한국불교전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 / [跋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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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최상승(最乘)은 후학들이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반드시 이 법의 증험을 고찰한 후에야 사람들이 이를 믿을 것이다.
『법화경』이 동방에 들어와 번역된 후 여러 주석가들의 장소章疏가 많으나, 지자 대사智者大師의 해석만이 세상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그러나 전해지면서 간혹 본래의 진실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그 오묘한 뜻을 완전히 통달하지 못한 채 강연함으로써 근원은 하나인 묘법이 여러 가지 설로 나뉘게 되었다.
일찍이 이 경을 읽은 자라고 하면 반드시 『법화삼매참조선강의法華三昧懺助宣講義』와 더불어 무릇 『영험전』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현묘한 종지玄旨를 바로 탐구하고 묘한 감응(妙應)을 깊이 구할 수 있으니, 단연코 이 두 권에 (그 뜻이) 들어 있다.
묘혜妙慧1)가 삼가 재원을 마련하여 이 두 책을 간행하고 만의사萬義寺2)에 안치하니, 길이 전하여 사라지지 않게 할 따름이다.
절은 지원至元 연간(고려 충숙왕대 1264〜1294)까지 정고貞古와 현묵玄黙이 서로 대를 이어 주석하다가 우리 할아버지 충숙공의 백부이신 진구珎丘 대선사 혼기混其3)에게 전해졌다. 혼기는 또한 삼장법사 의선義旋4)에게 전하고, 의선 이후 세 번 전하여 나(묘혜)에게 이르렀으니, 요컨대 모두 우리 종단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절은 본래 혼기 스님께서 일찍이 법화도량으로 개설하였던 곳이므로 여기에서 영험전의 법을 선양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임금님의 만수무강(一人之壽)과 온 나라 백성들의 안녕, 그리고 돌아가신 부친 조덕유趙德裕 영가가 정토에 왕생하며, 보시를 베푼 신도들이 각각 좋은 과보를 얻으며,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다 함께 법의 교화를 입기 바라나이다.
조선 효종 3년(순치 9년, 1652) 2월 전라남도 보성군 오봉산 개흥사 중간重刊.5)
주상 전하께서 만수를 누리시길 받들어 위하며, 대시주 산화잡山花帀, 대시주 ▣▣▣, 시주 하복잡河卜帀, 시주 자훈慈訓 비구, 시주 ▣▣▣의 (후원으로) 선화善和 비구와 성임性稔 비구가 간행하고, 극능克能 비구가 책임을 맡다.

006_0570_b_01L[跋文]
4)最乘之法 [213] 非後學所能辯必考是法之
006_0570_b_02L驗然後而人信之自法華東譯以後
006_0570_b_03L家章䟽盖多而智者解釋獨行於世
006_0570_b_04L流傳或失本眞講演未達其奧一源之妙
006_0570_b_05L5) [214] 於萬派嘗謂讀是經者要看講儀與
006_0570_b_06L夫靈驗傳以其直探玄旨深求妙應
006_0570_b_07L在二書也妙慧謹捨貲財刊此二書
006_0570_b_08L寘于萬義寺以壽不朽耳6) [215] 7) [216]
006_0570_b_09L貞古玄默相繼主席卒傳於余王8) [217]
006_0570_b_10L肅公之伯父珎丘大禪師混其其又傳於
006_0570_b_11L三藏法師義旋旋後三傳而至于余
006_0570_b_12L皆不出乎吾宗爾寺本混其嘗設法華道
006_0570_b_13L場故冝於此宣揚此法用匄9)一人之壽
006_0570_b_14L萬姓之安兼及先父趙德裕往生淨域
006_0570_b_15L助施檀越各證善果法界含靈同沾法
006_0570_b_16L化云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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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順治九年壬辰二月日全南道寶城郡
006_0570_b_18L五峯山開興寺重刊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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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爲主上三展下壽萬歲大施主山花帀
006_0570_b_20L大施主▣▣▣施主河卜帀施主慈訓
006_0570_b_21L比丘施主▣▣▣此刊善和比丘性稔
006_0570_b_22L比丘斡善克能比丘

006_0570_b_23L壁」作「壁鑿」{乙}「輕」作「輙」{乙}「下」
006_0570_b_24L下有「終」{乙}
此跋文甲本無有」作「岐」
006_0570_b_25L{乙}
「在」作「生」{乙}「元」作「亢」{乙}「父」作
006_0570_b_26L「主」{乙}
「一人…化云」三十六字無有{乙}
006_0570_b_27L本刊記如下「大靑山中菴開板化主云熙皇明嘉
006_0570_b_28L靖十三年甲午六月日全羅道高敞文殊寺重鋟」
  1. 1)묘혜妙慧 : 조덕유趙德裕의 아들로 이 발문을 썼고, 의선 이후 세 번째 만의사 주지를 역임한 인물이다.
  2. 2)만의사萬義寺 : 수원의 동쪽에 있던 절로 예부터 국가의 복리를 기원하던 비보사찰이었으나, 그동안 황폐되었던 것을 고려 충선왕~충숙왕 1년(皇慶 연간 1312~1313)에 천태종의 승려 혼기混其가 새로 중건하였다. 그 후 의선義璇이 절을 맡았고, 다시 나라에서 묘련사妙蓮寺 문인에게 귀속시켜 전하게 하였다.
  3. 3)혼기混其 : 충선왕 때(1308~1313) 대선사로 천태종의 진구사珍丘寺 주지로 있다가 수원 만의사를 중창하였다.
  4. 4)의선義旋 : 충선왕 때 공신 정숙공貞肅公 조인규趙仁規의 아들로 일찍 출가하여 원혜圓慧의 법을 받았다. 원나라 황실로부터 삼장법사三藏法師라는 칭호를 받았고, 고려 왕실로부터 현오 대사玄吾大師에 봉해져 영원사瑩源寺 주지를 겸하였다. 충숙왕에게 묘련사 중창을 건의 완성하여 만의사를 부속 사찰로 하였다.
  5. 5)갑본(고창 문수사본)의 간기刊記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대청산大靑山 중암中菴이 개판하였고, 화주 운희云熙가 중종 29년(嘉靖 13년, 1534년 갑오) 6월 전라도 고창高敞 문수사文殊寺에서 중판(重鋟)하였다.”
  1. 1)壁」作「壁鑿」{乙}。
  2. 2)「輕」作「輙」{乙}。
  3. 3)「下」下有「終」{乙}。
  4. 4)此跋文甲本無有。
  5. 5)」作「岐」{乙}。
  6. 6)「在」作「生」{乙}。
  7. 7)「元」作「亢」{乙}。
  8. 8)「父」作「主」{乙}。
  9. 9)「一人…化云」三十六字無有{乙}。
  10. 10)甲本刊記如下「大靑山中菴開板。化主云熙。皇明嘉靖十三年甲午六月日全羅道高敞文殊寺重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