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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1_b_01L법계도기총수록 상권 2(法界圖記叢髓錄 卷上之二)『일승법계도』 원문 二이제 글을 해석하고자 함에 두 문으로 분별한다. 첫째는 도인의 뜻을 통틀어 해석하고, 둘째는 도인의 모양을 나누어 풀이한다.문 어째서 도인에 의거하였는가?답 석가여래의 가르침의 그물에 포섭되는 세 가지 세간이 해인삼매로부터 번다하게 나타난 것임을 표현하려고 한 까닭이다. 이른바 세 가지 세간이란 첫째는 기세간器世間이고, 둘째는 중생세간衆生世間이며, 셋째는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다. 지정각이란 불ㆍ보살이다. 세 가지 세간이 법을 다 포섭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논하지 않는다. 자세한 뜻은 『화엄경』에서 설하는 것1)과 같다.
둘째, (도인의) 모양을 나누어 (풀이하는) 문 가운데 세 문으로 나눈다. 첫째는 도인(印文)의 모양을 설명하고, 둘째는 글자의 모양을 밝히고, 셋째는 글의 뜻을 해석한다.
첫 번째,문 어째서 도인에 오직 한 길만 있는가?답 여래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른바 하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이다.어째서 번다하게 도는 굴곡이 많이 있는가?중생의 근기와 욕망이 같지 않은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곧 이 뜻은 삼승의 가르침에 해당한다.
어째서 한 길에 시작과 끝이 없는가?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일정한) 방법이 없어서 법계에 응하여 들어맞고, 십세에 상응하여 원융만족함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곧 이 뜻은 원교에 해당한다.어째서 네 면(四面)과 네 각(四角)이 있는가?사섭법(四攝)과 사무량심(四無量)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뜻은 삼승에 의거하여 일승一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도인의 모양은 이와 같다.
두 번째,문 어째서 글자 가운데 시작과 끝이 있는가?답 수행의 방편을 기준으로 하여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어째서 글자 가운데 굴곡이 많은가?삼승의 근기와 욕망이 달라서 같지 않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어째서 시작과 끝의 두 글자를 한가운데에 두었는가?원인과 결과의 두 자리가 법성의 집(法性家) 안의 진실한 덕용德用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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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1_b_02L法界圖記叢髓錄卷上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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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1_b_04L[一乘法界圖原文二]1)文云。 [92] 將欲釋文。二門分別。一惣釋
006_0791_b_05L印意。二別解印相。問。2)何 [93] 故依印。答。欲
006_0791_b_06L表釋迦如來敎網所攝。三種世間。從海
006_0791_b_07L印三昧。3)繁 [94] 出現4)現 [95] [121] 故。所謂三種世間。
006_0791_b_08L一器世間。二衆生世間。三智正覺世間。
006_0791_b_09L智正覺者。佛菩薩也。三種世間。攝5)法
006_0791_b_10L盡 [96] 故。不論餘者。廣義者。如花 [122] 嚴經說。
006_0791_b_11L第二別相門中。三門分別。一說印文相。
006_0791_b_12L二明字相。三釋文6)下 [97] 意。
006_0791_b_13L一。問。何故印文唯有一道。答。表如來一
006_0791_b_14L音故。所謂一善巧方便。何故多有7)盤 [98]
006_0791_b_15L廻屈曲。以隨衆生機欲不同故。即是
006_0791_b_16L8)義 [99] 當三乘敎。何故一道無有始終。 *現
006_0791_b_17L示善巧無方。應稱法界。十世相應。圓融
006_0791_b_18L滿足故。即是義當圓敎。何故有四面四
006_0791_b_19L角。彰四攝四無量故。此義依三乘*現
006_0791_b_20L一乘9)故。 [100] 印相如是。
006_0791_b_21L二。問。何故字中有始終耶。答。約修行方
006_0791_b_22L便。 *現因果不同故。何故字中多10)有 [101] 屈
006_0791_b_23L曲。 *現三乘根欲差別不同故。何故始
006_0791_b_24L終兩字。安置當中。表因果兩位。法性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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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1_c_01L성性이 중도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글자의 모양은 이와 같다.
문 위에서 이르기를,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다.”라고 하고, “한 집의 진실한 덕德이며 성性이 중도에 있다.”라고 하니,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그 뜻이 무엇인가?답 이 뜻은 실로 이해하기 어렵다. 비록 그러하나, 천친 논주天親論主가 육상六相의 방편으로써 뜻을 세운 분제分齊2)에 의거하면, 뜻의 도리에 준하여 분수 따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열 구절에 근거하여 육상을 변별하면 아래에 설함과 같다. 이제 우선 도인의 모습에 근거하여 육상을 밝혀서, 일승과 삼승이 주主와 반伴을 서로 이루어 법을 드러내는 분제를 보인다.
이른바 육상이란, 총상總相ㆍ별상別相ㆍ동상同相ㆍ이상異相ㆍ성상成相ㆍ괴상壞相이다. 총상이란 근본의 인(根本印)이다. 별상이란 나머지 굴곡들이니 별別이 인印을 의지하되 그 인印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동상이란 인印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굴곡은 다르지만 한 가지 인印이기 때문이다. 이상이란 늘어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첫 번째, 두 번째 등 굴곡들이 달라서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성상이란 간략히 설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인印을 이루기 때문이다. 괴상이란 널리 설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번다하게 도는 굴곡들이 각각 스스로 달라서 본래 짓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모든 연緣으로 생겨난 법이 육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이른바 총상은 뜻이 원교에 해당하며, 별상은 뜻이 삼승교에 해당한다. 총상ㆍ별상ㆍ성상ㆍ괴상 등이 즉卽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아니하여 항상 중도에 있듯이,3) 일승과 삼승도 또한 이와 같다. -
006_0791_c_01L內。眞實德用。性在中道故。字相如是。
006_0791_c_02L問。上云因果不同。 11)而 [102] 一家實德。性在
006_0791_c_03L中道。未知所由。其義云何。答。此義其
006_0791_c_04L實難解。雖然。依天親論主。以六相方
006_0791_c_05L便。立義分齊。准義道理。隨分可解。若
006_0791_c_06L約十句。以辨六相。如下說。今且約印
006_0791_c_07L像。以明六相。示一乘三乘。主伴相成現
006_0791_c_08L法分齊。第上之二第一張 所謂六相者。
006_0791_c_09L捴相別相同相異相成相壞相。捴
006_0791_c_10L相者根本印。別相者餘屈曲。別依止
006_0791_c_11L印。滿彼印故。同相12)者 [103] 印故。所謂曲別
006_0791_c_12L而同印故。異相者增相故。所謂第一第
006_0791_c_13L二等曲別增13)數 [104] 故。成相者略說故。所
006_0791_c_14L謂成印故。壞相者廣說故。所謂*盤廻
006_0791_c_15L屈曲。各各自14)別。 [105] 本來不作故。一切緣
006_0791_c_16L生法。無不六相成也。所謂捴相者義
006_0791_c_17L當圓敎。別相者義當三乘敎。如捴相
006_0791_c_18L別相成相壞相等。不即不離。不一不異。
006_0791_c_19L常在中道。一乘三乘。亦復如是。主伴
006_0791_c_20L「文云」無有{甲}。「何」下有「以」{甲}。「繁」
006_0791_c_21L作「槃」又冠註曰槃疑繁{甲}。「現」作「顯」{甲}次
006_0791_c_22L同。「法盡」作「盡法」{甲}。「下」無有{甲}。
006_0791_c_23L「盤」作「繁」 又冠註曰繁疑槃下同{甲}次同。
006_0791_c_24L「義」無有{甲}。「故」無有{甲}。「有」無有{甲}。
006_0791_c_25L「而」無有{甲}。「者」下有▣。又冠註曰▣疑入一
006_0791_c_26L本者印連續{甲}。「數」作「安」{甲}。「則」無有
006_0791_c_27L{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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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2_a_01L주主와 반伴이 서로 도와 즉卽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비록 중생을 이롭게 하나 오직 중도에 있어서 주主와 반伴을 서로 이루어 법을 드러냄이 이와 같다. 일승의 별교別敎와 삼승의 별교도 뜻에 준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대가 문의한 것도 뜻이 또한 이와 같다. 처음의 굴곡은 원인과 같고 뒤의 굴곡은 결과와 같다. 처음과 뒤가 같지 아니하나 오직 한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이, 비록 원인과 결과가 뜻은 다르나 오직 스스로 그러함(自如)에 머무른다. 삼승의 방편의 가르침에 의하므로 높고 낮음이 같지 않으나, 일승의 원교에 의하므로 앞과 뒤가 없다. 까닭을 알 수 있는 것은 경에서 설하기를, “또 모든 보살에게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의 광명을 설하여 지혜의 지地에 들어가게 하려는 까닭이다.”4)라고 한 것과 같다.
논에서 말한다.5)
‘모든 보살(一切菩薩)’이란 신信ㆍ행行ㆍ지地에 머무르는 이를 말한다.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不可思議諸佛法)’이란 출세간도의 덕목(出世間道品)이다. ‘광명(明)’이란 봄(見)과 지혜(智)와 얻음(得)과 깨달음(證)이다. ‘설한다(說)’는 것은 그 가운데서 분별하는 것이다. ‘들어간다(入)’란 믿고 좋아하며 얻고 깨닫는 것이다. ‘지혜의 지地’란 십지十地의 지혜를 말함이니, 본문 중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것이 근본의 들어감(根本入)이니, 경에서 “또 모든 보살에게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의 광명을 설하여 지혜의 지地에 들어가게 하려는 까닭이다.”6)라고 한 것과 같다.
이 경(修多羅)7) 중에 근본의 들어감(根本入)에 의하여 아홉 가지의 들어감(九種入)이 있음을 설하고 있다.첫째는 포섭의 들어감(攝入)이다. 문혜聞慧 가운데 모든 선근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경에서 “모든 선근을 포섭하(게 하려)는 까닭이다.”8)라고 한 것과 같다.둘째는 생각하고 헤아림의 들어감(思議入)이다. 사혜思慧가 모든 도의 덕목(道品) 가운데 지혜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잘 분별해서 선택하(게 하려)는 까닭이다.”9)라고 한 것과 같다.셋째는 법의 모양의 들어감(法相入)이다. 저러저러한 뜻(義) 가운데 한량없이 갖가지로 알기 때문이다. 경에서 “모든 법을 널리 알(게 하려)는 까닭이다.”10)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교화의 들어감(敎化入)이다. 생각하고 헤아린 것을 따라서 말(名字)이 갖추어져 법을 잘 설하기 때문이다. 경에서 “모든 법을 잘 결정하여 설하(게 하려)는 까닭이다.”11)라고 한 것과 같다.다섯째는 깨달음의 들어감(證入)이다. 모든 법에 평등한 지혜가 견도見道하는 때에 매우 청정하기 때문이다. -
006_0792_a_01L相資。不即不離。不一不異。雖利益衆
006_0792_a_02L生。而唯在中道。主伴相成。 *現法如是。
006_0792_a_03L一乘別敎。三乘別敎。准義可解。汝所
006_0792_a_04L問疑。義亦如是。初曲如因。 1)後 [106] 曲如果。
006_0792_a_05L如初後不同。而唯在當中。雖因果義別。
006_0792_a_06L而唯住自如。依三乘方便敎門故。高下
006_0792_a_07L不同。依一乘圓敎故。無有前後。所以
006_0792_a_08L得知。如經說。又一切菩薩。不可思議諸
006_0792_a_09L佛法明說。令入智2)惠 [107] [123] 地故。論曰。一切
006_0792_a_10L菩薩者。謂住信行地。不可思議諸佛法
006_0792_a_11L者。是出世間道品。明者。見智得3)訂。說
006_0792_a_12L者。於中分別。入者。信樂得訂。智*惠地
006_0792_a_13L者。謂十地智。如本分中說。此是根本
006_0792_a_14L入。如經。又一切菩薩。不可思議諸佛法
006_0792_a_15L明說。令入智*惠地故。此脩多羅中。說
006_0792_a_16L依根本入有九種入。一者攝入。聞*惠
006_0792_a_17L中攝一切善根故。如經。攝一切善根故。
006_0792_a_18L二者思議入。思*惠於一切道品中智
006_0792_a_19L方便故。第上之二第二張 如經。善分別
006_0792_a_20L選擇一切佛4)法。 [108] 三者法相入。彼彼義中。
006_0792_a_21L無量種種知 [124] 故。如經。廣知諸法故。四者
006_0792_a_22L敎化入。隨所思5)議。 [109] 名字具足。善說法
006_0792_a_23L故。如經。善6)決定 [110] 說諸法故。五者訂入。
006_0792_a_24L於一切法平等智。見道時中。善淸淨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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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2_b_01L경에서 “무분별한 지혜가 청정하여 잡되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다.”12)라고 한 것과 같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곧 스스로 불법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利他) 또한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自利)이라고 이름한다.
여섯째는 게으르지 않음의 들어감(不放逸入)이다. 수도修道하는 때 가운데 모든 번뇌의 장애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경에서 “일체 마법魔法이 능히 물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까닭이다.”13)라고 한 것과 같다.일곱째는 지地에서 지地로 옮김의 들어감(地地轉入)이다. 세간을 벗어나는 도의 덕목인 무탐無貪 등의 선근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경에서 “세간을 벗어나는 법인 선근을 청정하(게 하려)는 까닭이다.”14)라고 한 것과 같다. 다시 선근이 있어서 세간을 벗어나는 도의 덕목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보살로서 다함의 들어감(菩薩盡入)이다. 제십지第十地 가운데 모든 여래의 비밀스러운 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경에서 “불가사의한 경계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다.”15)라고 한 것과 같다.아홉째는 부처로서 다함의 들어감(佛盡入)이다. 일체의 지혜에 들어가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내지 일체의 지혜를 (갖춘) 사람의 지혜의 경계를 얻(게 하려)는 까닭이다.”16)라고 한 것과 같다.이 모든 들어감(諸入)은 지혜의 뜻의 차별을 비교한 것이니 차례로 더욱 뛰어나지만 근본의 들어감(根本入)은 아니다.
일체 설한 바 열 구절(十句) 가운데 모두 여섯 종류의 차별 모양의 문이 있으니 이것은 언설의 해석이다. 마땅히 사事는 제외됨을 알아야 하니, 사事란 오온(陰)ㆍ십팔계(界)ㆍ십이처(入) 등이다.여섯 종류의 모양은 총상ㆍ별상ㆍ동상ㆍ이상ㆍ성상ㆍ괴상이다. 총상은 근본의 들어감이고, 별상은 나머지 아홉 가지 들어감이니, 별別이 근본(本)을 의지하되 그 근본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동상은 들어감이기 때문이고, 이상은 늘어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성상은 간략히 설하기 때문이고, 괴상은 널리 설하기 때문이니,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과 같다. 나머지 모든 열 구절(十句) 가운데도 뜻을 따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17)
논의 글이 이와 같으니, 오직 논주가 근본(宗)을 세운 도리이다. 그러므로 알라. 비록 원인과 결과인 신信ㆍ해解ㆍ행行ㆍ회향廻向ㆍ지地ㆍ불佛이 자기 자리를 움직이지 아니하되 앞과 뒤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법이 각각 달라서 스스로 여여如如함에 머무르기 때문이며, 하나의 여여함(一如)과 많은 여여함(多如)의 여여한 모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묻는다. 무엇이 부처님의 법을 깊이 믿는 것인가? -
006_0792_b_01L如經。無分別智。淸淨不7)雜 [111] 故。菩薩敎化
006_0792_b_02L衆生。即是自成佛法。是故利他亦名
006_0792_b_03L自利。六者不放逸入。於脩道時中。遠
006_0792_b_04L離一切8)煩惱 [112] 障 [125] 故。如經。一切魔法。不
006_0792_b_05L能染故。七者地地轉入。出世間道品。無
006_0792_b_06L貪等善根淨故。如經。出世間法。善根
006_0792_b_07L淸淨故。復有善根。能爲出世間道品因
006_0792_b_08L故。八者菩薩盡入。於9)弟十地10)中。 [113] 入
006_0792_b_09L一切如來秘密智故。如經。得不可思議
006_0792_b_10L境界故。九者佛盡入。於一切智11)入 [114]
006_0792_b_11L智故。如經。乃至得一切智12)人 [115] 智境界故。
006_0792_b_12L是諸入爲13)挍 [116] 量智義差別。次*弟轉勝。
006_0792_b_13L非根本入。一切所說十句中。皆有六種
006_0792_b_14L差別相門。此言說解釋。應知除事。事
006_0792_b_15L者。謂陰界入等。六14)種 [117] 相者。謂捴相別
006_0792_b_16L15)相 [118] 16)同相異相 [119] 成相壞相。捴相者。是根
006_0792_b_17L本入。別相者。餘九17)入。 [120] 別依止本。滿彼
006_0792_b_18L本故。同相者。入故。異相者。增相故。成
006_0792_b_19L相者。略說故。壞相者。廣說故。如世界成
006_0792_b_20L18)壞。 [121] 餘一切十句中。隨義類知。論文
006_0792_b_21L如是。 19)准 [122] 是論主立宗道理。故知雖因
006_0792_b_22L果信解行廻地佛。自位不動。而無前後。
006_0792_b_23L20)何 [123] 21)以 [124] 故。諸法各異。住自如故。一如
006_0792_b_24L多如如如相。不可得故。是故經云。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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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2_c_01L답한다. 일체 모든 법이 오직 부처님만 아시는 바이고 나의 경계가 아니니, 만약 이러하다면 이름이 부처님의 법을 깊이 믿음이 된다.”18)라고 하니, 이것이 그 뜻이다.
문 육상六相은 무슨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가?답 연기의 무분별한 도리를 바로 나타내기 위한 까닭이다. 이 육상의 뜻으로써 비록 한 부의 경전(一部經)19)이 일곱 장소와 여덟 번의 모임과 품의 종류가 같지 않으나, 오직 「십지품十地品」에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까닭이 무엇인가? 이 근본이 법을 모두 포섭하기 때문이다. 「십지품」 가운데 비록 십지十地가 같지 않으나 오직 첫째 지(初地)에 있다.무슨 까닭인가? 한 지地에서 일어나지 않고 널리 일체 모든 지地의 공덕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한 지地 중에도 비록 많은 부분이 같지 않으나 오직 일념一念에 있다. 무슨 까닭인가? 삼세三世와 구세九世가 곧 일념이기 때문이니, 일체가 곧 하나인 까닭이다. 일념처럼 다념多念도 또한 이와 같다. 하나가 곧 일체이니 일념이 곧 다념 등인 것이다. 앞과 반대로 해도 곧 옳다.
이 이법(理)으로써 다라니법은 주主와 반伴이 서로 이루어진다. 한 법 듦을 따라서 일체를 다 포섭한다. 만약 모임(會)을 기준으로 설하면, 모임ㆍ모임 가운데 일체를 다 거둔다. 만약 품品을 기준으로 설하면, 품ㆍ품이 일체를 다 포섭하며, 내지 만약 문장을 기준으로 설하면 문장ㆍ문장과 구절ㆍ구절이 일체를 다 포섭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다라니의 법이 으레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
006_0792_c_01L云何深信佛法。答。一切諸法。唯佛所知。
006_0792_c_02L第上之二第三張 非我境界。若如是者。
006_0792_c_03L名爲深信佛法。是其義也。
006_0792_c_04L問。六相者。爲*現何義。答。22)正 [125] *現綠起
006_0792_c_05L無分別理故。以此六相義故。當知。雖一
006_0792_c_06L部經。七處八會。及品類不同。而唯在地
006_0792_c_07L品。所以者何。23)以 [126] 是根本。攝法盡故。地
006_0792_c_08L品中雖十地不同。而唯在初地。何以故。
006_0792_c_09L不起一地。普攝一切諸地功德故。一地
006_0792_c_10L中雖多分不同。而唯在一念。何以故。
006_0792_c_11L三世九世。即一念故。一切即一故。如一
006_0792_c_12L念。多念亦如是。一即一切。一念即多
006_0792_c_13L念等。反前即是。以此理故。陁羅尼
006_0792_c_14L法。主伴相成。隨擧一法。盡攝一切。若
006_0792_c_15L約會說。會會中盡攝一切。若約品說。
006_0792_c_16L品品盡攝一切。乃至若約文說。文文句
006_0792_c_17L句。盡攝一切。何以故。若無此。彼不成
006_0792_c_18L「後」上有「乃至」{甲}。「惠」作「慧」{甲}次同。
006_0792_c_19L「訂」通「證」於此書{編}次同。「法」下有「故」
006_0792_c_20L{甲}。「議」作「義」{甲}。「決定」無有{甲}。「雜」
006_0792_c_21L作「離」{甲}。「煩惱」作「菩薩」{甲}。「弟」作「第」
006_0792_c_22L{甲}{乙}次同。「中」無有{甲}。冠註曰入一作人
006_0792_c_23L次同{甲}。「人」作「入」{甲}。「挍」作「校」{乙}。
006_0792_c_24L「種」下有「差」{甲}。冠註曰相下疑脫同相異
006_0792_c_25L相四字{甲}。「同相異相」無有{甲}。「入」無有
006_0792_c_26L{甲}。「壞」下有「故」{甲}。「准」作「唯」{甲}。冠
006_0792_c_27L註曰何下入以字見{甲}。「以」無有{甲}。「正」無
006_0792_c_28L有{甲}。「以」無有{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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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3_a_01L주석석문釋文 1 (總釋印意ㆍ別解印相 중 說印文相, 明字相)〔1〕 도인의 뜻(印意)‘어째서 도인에 의거하였는가?’부터 ‘불ㆍ보살이다’까지20)
진수기『진기』에 이른다.‘어째서 도인에 의거하였는가? 답한다. 석가여래의 가르침의 그물에 거두어지는 등을 나타내고자 함’이란, ‘석가여래의 가르침의 그물’은 곧 깊고 얕음이 비록 다르나 이름과 모습이 있는 세계를 총체적으로 취하여 이른 것이다.
(문) ‘세 가지 세간이 해인삼매로부터 번다하게 나타난 것’에서 세 가지 세간의 법이 번다하게 나온 것은 곧 해인의 체를 여읜 것인가?답 세 가지 세간의 법이 곧 해인이니 전체가 나타나서 본래 여의지 않은 것이다.문 세 가지 세간을 거두어서 총상의 부처님으로 삼는다면, 총상과 별상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네 가지 세간이 되는 것인가?답 지정각세간에는 남을 상대하는 뜻이 있으며 상대를 끊은 뜻이 있다. 이 두 가지 뜻이 하나가 아님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네 가지 세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뜻이 다르지 않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다만 세 가지 세간이라고 한 것이다.
문 기器와 중생은 마땅히 세간이라고 하겠으나 지정각은 이미 세간을 벗어난 것인데 어찌 세간이라고 하는가?답 비로소 정각을 이룬 때(時) 가운데(中) 세 가지 세간의 법이 두렷이 밝게 나타나기 때문에 세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때(時)는 세世이고 가운데(中)는 간間이기 때문이다.문 지상至相 스님은 보살로 중생에 합하였는데21) 무슨 까닭에 여기에서는 불ㆍ보살을 합하여 지정각으로 삼는가?답 깨달음이 같음을 기준으로 해서 이르는 것일 뿐이다.〔2〕 도인의 모습(印相)1. 도인의 모습(印文相) 何故印文至現一乘故‘어째서 도인에’부터 ‘일승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까지22)
何故印文至現一乘故대기『대기』에 이른다. ‘어째서 도인에 오직 한 길만 있는가?’란 네 번째 해인23)에 서서 이 질문을 일으킨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근기와 욕망에 따라서 굴곡을 이루었다면 어째서 한 길이라고 하는가라고 이렇게 물은 것이다. ‘여래의 일음’이란 「입법계품」에 이르기를, “나는 법계가 한 성품임을 아니 여래의 일음一音을 일체중생이 요달하지 못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24)라고 한 것이다. -
006_0793_a_01L故。陁羅尼法。法如是故。如下說。
006_0793_a_02L[註釋][印意]何故依印至佛菩薩也。眞記云。何故
006_0793_a_03L依印。答欲表釋迦如來敎網所攝等
006_0793_a_04L者。釋迦敎網。則深淺雖殊。有名相
006_0793_a_05L際。捴取云也。三種世間。從海印三昧。
006_0793_a_06L繁出現現者。三世間法繁出。則離海
006_0793_a_07L印體耶。答。三世間法。即是海印全
006_0793_a_08L體現現。本不離也。問。攝三世間。爲捴
006_0793_a_09L相佛。則捴別不一故。爲四世間耶。
006_0793_a_10L答。智正覺中。有待他之義。有絶待義。
006_0793_a_11L約此二義不一故。亦可得云四種世
006_0793_a_12L間。然約二義不異故。但云三種世間
006_0793_a_13L耳。問。器及衆生。冝云世間。智正覺者。
006_0793_a_14L旣已出世。何云世間耶。答。始成正覺
006_0793_a_15L時中。三世間法。圓明現現。故云世
006_0793_a_16L間。謂時爲世。中爲間故也。問。至相。
006_0793_a_17L以菩薩合於衆生。何故。此中合佛菩
006_0793_a_18L薩爲智正覺耶。答。約覺同云耳。第上
006_0793_a_19L之二第四張。
006_0793_a_20L[印相]何故印文 至現一乘故。大記云。何故
006_0793_a_21L印文唯有一道者。立在1)弟四重海印。
006_0793_a_22L起此問也。謂旣隨根欲而成屈曲。何
006_0793_a_23L故云一道耶。如是問也。如來一音者。
006_0793_a_24L法界品云。我知法界一性。如來一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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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3_b_01L문 만약 일체중생이 일음을 이해한다면 이는 각각 이해함이 아니고, 만약 각각 이해한다면 일음을 이해하지 못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운운.(답) 만약 이러한 힐난에 상대한다면 총상과 별상 둘로써 답한다. 말하자면 굴곡을 무너뜨리지 않고 능히 평등하게 두루하기 때문에 일음이며, 평등하게 두루함을 움직이지 않고 운율이 차이나기 때문에 능히 굴곡을 이룬다. 이 가운데 능히 평등하게 두루함을 이루는 것은 총상이다. 음의 운율이 차이나는 것은 별상이다. 별상이 곧 총상인 까닭에 비록 중생이 각각 이해하나 일음을 이해한다. 총상이 곧 별상인 까닭에 비록 일음이나 각각 이해한다.
진수기『진기』에 이른다. 여래의 일음이란 총상의 음이다. 『입법계품』에 이르기를, “나는 법계가 한 성품임을 아니, 여래의 일음 운운.”25)이라 하였다. 이 뜻은 일체중생의 갖가지 차별 있는 음성 등이 곧 여래의 일음일 뿐인 것이다.문 이는 수호야신 선지식이 일음을 깨달아 보고서 “나는 법계가 한 성품임을 안다.”라고 한 것인데 무슨 까닭에 일체중생이라고 하는가? 만약 일체중생을 본다면 어째서 “나는 법계가 한 성품임을 안다.”라고 하는가?답 법계가 한 성품임을 보기 때문에 일음 가운데 일체의 종류가 있음을 안다. 총상을 얻음으로써 나뉘지 않는 별상을 알기 때문이다. ‘집’이라는 한마디 말이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걸치는 모든 연을 합해서 부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만약 세우고 걸치는 모든 연에 맞지 않는다면 ‘집’이라는 한마디 말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는가?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 구부러지고 굽어져서’라는 것은,
(문) 이미 법계가 한 성품임을 알았다면 삼승이 없으므로 따라서 또한 도인 중에 각곡角曲이 없는 것인가?답 이상이 있기 때문에 성품에 들어맞는 움직이지 않는 각곡이 있다.문 만약 그렇다면 삼승이 있는 것인가?답 일승의 각곡이 온전히 도인의 원만함을 다하므로 따라서 삼승의 한 쪽으로 치우친 각곡은 없다. -
006_0793_b_01L一切衆生無不了故。已上。 問。若一切衆
006_0793_b_02L生了一音者。非是各得解也。若各得
006_0793_b_03L解者。非是一音無不了也。云云。 若對
006_0793_b_04L此難。以摠別二相答也。謂不壞屈曲。
006_0793_b_05L而能等遍故。是一音。不動等遍。而差
006_0793_b_06L韵故。能成屈曲。此中能成等遍者
006_0793_b_07L摠相也。音韵差者別相也。別即摠
006_0793_b_08L故。雖衆生各得解。而了一音也。摠
006_0793_b_09L即別故。雖是一音。而各解也。
006_0793_b_10L眞記云。如來一音者。摠相音也。法
006_0793_b_11L界品云。我知法界一性如來一音云云。
006_0793_b_12L此義者。一切衆生種種差別音聲等。
006_0793_b_13L即是如來一音耳。問此守護夜神善。
006_0793_b_14L知識訂見一音云。我知法界一性也。
006_0793_b_15L何故云一切衆生耶。若見一切衆生
006_0793_b_16L者。何云我知法界一性耶。答見法界
006_0793_b_17L一性故。知一音中有一切種也。以得
006_0793_b_18L摠相。知不分之別相故。如家之一言
006_0793_b_19L契柱立梁橫諸綠而呼故也。若不契
006_0793_b_20L立橫諸綠。則家之一言。何處起耶。
006_0793_b_21L法記云。盤廻屈曲者。旣知法界一性。
006_0793_b_22L則無三乘。故亦無印中角曲耶。答。有
006_0793_b_23L異相故。有稱性不動之角曲也。問。若
006_0793_b_24L爾。有三乘耶。答。一乘角曲。全盡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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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3_c_01L진수기『진기』에 이른다.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일정한) 방법이 없어서’란 치우쳐 따르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앞의 ‘(일정한) 방법이 없다’에서 풀이한 것과 같다.26) ‘법계에 응하여 들어맞고’란 법계를 가로로 다하기 때문이고, ‘십세에 상응하여’란 삼세(三際)를 세로로 꿰뚫기 때문이다.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원융만족’이란 마치 허공이 일체의 사물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다. 이 하나의 기둥을 기준으로 하면 열 가지 보법을 포섭하여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법장』에서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법계를 융회하되 원통자재하여 보고 들음(見聞)을 떠나지 않는다. 이상.”27)라고 하였다. 일승 가운데는 보고 듣는 것이 원통의 법이므로 견문見聞의 지위에서 바로 구경의 부처님의 과위를 만족하게 되므로 ‘보고 들음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진수기『진기』에 이른다. ‘뜻은 원교에 해당한다’란 (다음과 같다.) 삼승별교와 삼승동교가 있고 일승동교와 일승별교가 있으며 일승원교가 있다. 만약 누각(樓觀)을 취하여 논한다면, 안의 장식莊飾은 일승이고 밖의 엄식嚴飾은 삼승이며 문은 곧 동교이다. 이른바 문이란 안과 밖에 통하기 때문에 안이 비록 일승이라도 문 안은 곧 동교일승이다.28) 또 이 동교는 삼승 이상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즉 별교일승이 되는 것 또한 가능하니, 목표로 하는 것(所目)을 기준으로 하여 별교를 삼기 때문이다.
문 목표로 하는 것(所目)의 삼승은 뜻이 밖에 해당하니 장엄하는 것이 삼승인데 어째서 별교일승이라고 하는가?답 이 경 안의 흘러나오는 것(所流)과 목표로 하는 것(所目)의 삼승이 두 가지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첫째는 저 아래 근기로 하여금 나의 법과 같다고 헤아리게 하는 뜻이며, -
006_0793_c_01L圓。故無三乘一邊之角曲也。
006_0793_c_02L眞記云。善巧無方者。無偏順之方所
006_0793_c_03L也。如前無方中釋也。應稱法界者。
006_0793_c_04L第上之二第五張 橫盡法界故。十世
006_0793_c_05L相應者。竪貫三際故也。
006_0793_c_06L法記云。圓融滿足者。猶如虛空攝
006_0793_c_07L一切物。約此一柱。包攝十種普法。無
006_0793_c_08L所遺餘故也。是故普法章云。諸佛善
006_0793_c_09L巧。會融法界。圓通自在。不離見聞。已上。
006_0793_c_10L以一乘中見聞圓通之法故。見聞位
006_0793_c_11L中。即得滿足究竟佛果。故云不離見
006_0793_c_12L聞也。
006_0793_c_13L眞記云。義當圓敎者。有三乘別敎
006_0793_c_14L三乘同敎。有一乘同敎一乘別敎。
006_0793_c_15L有一乘圓敎也。若就樓觀而論者。內
006_0793_c_16L莊一乘。外嚴三乘。門則同敎也。所謂
006_0793_c_17L門者。通內外故。內雖一乘。而門內
006_0793_c_18L則同敎一乘也。又此同敎。約三乘已
006_0793_c_19L上之義。即爲別敎一乘亦得。以約所
006_0793_c_20L目爲別敎故。問。所目三乘。義當於外
006_0793_c_21L是嚴三乘。何云別敎一乘耶。答。此
006_0793_c_22L經之內。所流所目之三乘。具含二
006_0793_c_23L義。一者。令彼下機計謂同於我法之
006_0793_c_24L「弟」作「第」{乙}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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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4_a_01L둘째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얻은 법이 온전히 화엄의 큰 허공임을 알도록 하는 뜻이다. 처음 뜻을 기준으로 하면 문 밖에 해당하기 때문에 삼승이니 바깥의 엄식이 된다. 뒤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문 안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승이니 안의 장식이 된다. 지금은 뒤의 뜻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목표로 하는 것으로 동교일승을 삼으며 내지 별교일승이라고 이름할 뿐이다. 바로 누각의 안을 기준해야만 비로소 자체의 별교일승이다. 맨 처음부터 삼승을 보지 않기 때문에 자체의 별교라고 하는 것이다.
‘원교’란 앞의 사교四敎를 통틀어 행하는(履) 것이다.문 이것은 곧 저 동교의 일승과 삼승이 화합하는 뜻과 어떻게 다른가?답 아래 근기를 (자기에게) 이끌어 화합시키고자 하는 것은 동교이다. (삼승을) 자신의 참된 덕으로 삼아 통틀어 행하고자 하는 것은 원교이다. 따라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동교는 대지와 같으니 삼승의 풀과 나무를 기르기 때문이고, 별교는 큰 바다와 같으니 삼승의 죽은 시체를 머무르게 하지 않기 때문이며, 원교는 허공과 같으니 (대지와 큰 바다) 둘의 의지하는 바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고기
‘고기’에 이른다. 동교와 별교가 나뉨이 아홉 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첫째, 황소의 수레는 동교이니 양과 사슴(의 수레)과 같기 때문이다. 큰 흰 소의 수레는 별교이니 삼승의 밖이기 때문이다. 둘째, 큰 흰 소의 수레는 동교이고 왕의 상투 중의 구슬(王髻中珠)29)은 별교이다. 운운. 셋째, 법화는 동교이고 화엄은 별교이다. 운운. 넷째, 제2회부터 「여래수호광명공덕품如來隨好光明功德品」30)까지는 동교이고, 「보현행품」 이후는 별교이다. 운운. 다섯째, 보현의 말을 나타냄은 문자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동교이고, 보현의 안으로 증득함은 문자를 여의고 언설을 끊었기 때문에 별교이다.
여섯째, 보현의 안으로 증득함은 인분因分이기 때문에 동교이고, 부처님의 밖으로 향하심은 과분果分이기 때문에 별교이다. -
006_0794_a_01L義。二者令彼解其自所得法。全是花
006_0794_a_02L嚴大虛之義也。約初義則當於門外。
006_0794_a_03L故是三乘爲外嚴也。約後義則當於
006_0794_a_04L門內。故是一乘爲內莊也。今約後義
006_0794_a_05L故。以所目爲同敎一乘。乃至亦名別
006_0794_a_06L敎一乘耳。直約樓觀之內。方自體別
006_0794_a_07L敎一乘也。初初不見三乘。故云自體
006_0794_a_08L別敎也。圓敎者。通履前四敎也。問。
006_0794_a_09L是則與彼同敎一三和合之義。何異
006_0794_a_10L耶。答。欲引下機而和合者。是同敎也。
006_0794_a_11L欲爲自家實德而通履者。是圓敎也。
006_0794_a_12L故古人云。同敎如大地。長養三乘草
006_0794_a_13L木故。別敎如大海。不宿三乘死尸故。
006_0794_a_14L第上之二第六張 圓敎如虛空。爲二
006_0794_a_15L所依故也。
006_0794_a_16L古記云。同敎別敎。分有九種。謂
006_0794_a_17L一黃牛車同。共羊鹿故。大白牛車
006_0794_a_18L別。三乘外故。二大白牛車同。王
006_0794_a_19L髻中珠別。云云。 三法花同。花嚴別。
006_0794_a_20L云云。四*弟二會至隨好品同。普
006_0794_a_21L賢行品以去別。云云。 五普賢現語
006_0794_a_22L言。墮在文字故同。普賢內訂。離文
006_0794_a_23L字絶言說故別。六普賢內訂。是因
006_0794_a_24L分故同。佛外向。是果分故別。七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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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4_b_01L일곱째, 부처님의 밖으로 향하심은 근기와 연(機緣)을 향하기 때문에 동교이고, 부처님의 안으로 향하심은 곧 비록 화엄삼매 속에서 과덕의 대중을 위하여 국토의 바다와 같은 법을 보이셨지만 인분의 근기를 등지고 여의었기 때문에 별교이다. 여덟째, 부처님의 안으로 향하심은 등짐과 향함이 있기 때문에 동교이고, 해인삼매 속의 법성을 설할 수 없음은 등짐과 향함을 여의었기 때문에 별교이다. 아홉째, 위에서부터 밝혀 온 설함과 설할 수 없음 등은 우수함과 열등함, 깊음과 얕음이 있기 때문에 동교이고, 이 해인삼매의 법성을 설할 수 없는 가운데 설함과 설할 수 없음은 둘이 없으니 곧 분별이 없기 때문에 별교이다.
의상 화상이 이르기를, “만약 정情을 기준으로 하여 설한다면 증분과 교분의 두 법이 항상 두 변에 있게 되나, 만약 이법(理)을 기준으로 하여 말한다면 증분과 교분의 두 법이 예부터 중도中道이며, 하나로서 무분별이다.”31)라고 한 것이 대개 이를 일컫는 것이다. 이상은 우선 이법의 분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만약 글의 뜻의 분제에 의거한다면 같고 다름이 하나가 아니다. 말하자면 한 부(의 『화엄경』)을 통틀어서 이를 나누면, 곧 차별의 연은 동교이고 본래의 진실은 별교이다. 만약 하나의 교화의 처음과 끝에 의거한다면, 곧 여러 많은 다른 뜻을 하나의 말로 통틀어 제목하기 때문에 동교이고, 근기에 따라서 각각 다르기 때문에 별교이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사섭법과 사무량심’이란 (다음과 같다.) 이 사섭법과 사무량심의 두 가지 네 인과로써 아래 사교의 인과인 여덟 지위를 나타낸다. 만약 73개의 도장 가운데 일一 자의 도장으로 그것을 도장 찍으면 곧 이 여덟 인과의 지위를 움직이지 않음이 곧 일승의 곁이 없는 인과이다. 이 일승의 인과로 앞의 여덟 (인과)에 더하면 곧 열이 된다. 다섯 인因은 보살이고 다섯 과果는 부처님이다. 그 네 부처님으로 사방에 나누어 배치하고 일승의 부처님으로 한가운데에 안치한다. 다섯 보살로 나누어 배치하는 것 또한 이러하다. 이와 같은 인과가 다만 내 마음 안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법일 뿐이다. -
006_0794_b_01L外向。向機綠故同。佛內向。則雖花
006_0794_b_02L嚴定中。爲果德衆。示國土海法。而
006_0794_b_03L背離因機故別。八佛內向。有背向
006_0794_b_04L故同。海印定中。法性不可說。離背
006_0794_b_05L向故別。九上來所明。說不說等。有
006_0794_b_06L勝劣深淺故同。此海印定。法性不
006_0794_b_07L可說中說不說。無二則無分別故別
006_0794_b_08L也。相和尙云。若約情說。訂敎
006_0794_b_09L兩法。常在二邊。若約理云。訂敎
006_0794_b_10L兩法。舊來中道。一無分別。蓋謂
006_0794_b_11L此乎。上來且約理分。若據文義分
006_0794_b_12L齊。同別非一。謂通於一部分之。
006_0794_b_13L則差別綠同敎。本實則別敎。若據
006_0794_b_14L一化始終。則衆多別義。一言通目
006_0794_b_15L故同。隨機各別故別也。
006_0794_b_16L大記云。四攝四無量者。以此四攝四
006_0794_b_17L無量之二四因果。表下四敎因果八
006_0794_b_18L位。若以七十三印之中一字印印之。
006_0794_b_19L則不動此八因果之位。即是一乘無
006_0794_b_20L側因果也。第上之二第七張以此一乘
006_0794_b_21L因果。加於前八。即成十也。五因是
006_0794_b_22L菩薩。五果是佛也。以其四佛。分置四
006_0794_b_23L方。以一乘佛。安置當中。以五菩薩。分
006_0794_b_24L置亦爾。如是因果。但我心內。本具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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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4_c_01L이 중에 사방 및 육방, 팔방, 시방 등은 삼승에 의거하여 나눈 것이다. 말하자면 성문은 사제四諦를 밝히기 때문에 이에 의거하여 사방으로 나눈다. 연각은 12지(연기)를 관하니 이는 2 곱하기 6이기 때문에 이에 의거하여 육방으로 나눈다. 시교와 종교 가운데 통틀어서 사섭법과 사무량심이 있으니 2 곱하기 4는 곧 8이기 때문에 이에 의거하여 팔방으로 나눈다. 동교에는 곧 그 같음 중에 별교의 10 곱하기 10의 다함없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의거하여 시방으로 나눈다. 만약 머무름 없는 별교를 기준으로 하면 곧 본래 방소方所가 없다. 이런 까닭에 글에 이르기를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은 (일정한) 방법이 없다.”라고 하며 내지 “뜻은 원교에 해당한다.”라고 한 것이다.
문 시교와 종교의 두 가르침도 또한 시방을 밝히는데 무슨 까닭에 오직 팔방이라고 이르는가?답 이것은 여덟 잎의 궤칙32)을 기준으로 하여 이른 것일 뿐이다. 또 시교와 종교에서는 통틀어 사섭의 인과 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팔방으로 나눈 것뿐이다.문 만약 돈교 중의 인과를 함께 취하면 돈교에서도 또한 팔방으로 나누는가?답 실제를 기준으로 하면 통한다. 그러나 인과는 지위이니 돈교 중에서는 지위의 모습이 숨어 있기 때문에 우선 제외했을 뿐이다.문 무엇이 여덟 잎의 궤칙인가?답 이것은 『비로자나경毘盧遮那經』33)과 『불지경佛地經』34) 중의 여덟 잎으로 부처님을 짓는 궤칙이다.
‘삼승에 의거하여 일승을 나타낸 것이다’란 (다음과 같다.) 일승의 원만한 도인에는 비록 각角과 면面이 없지만 이 도인이 일체의 법을 거두어서 다하기 때문에 네 면과 네 각의 모습을 갖추니, 삼승에서 사방ㆍ육방ㆍ팔방ㆍ시방 등으로 나눔으로써 일승의 방소가 없는 원만한 도인을 점차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만약 오직 각과 면만을 본다면 오로지 삼승일 뿐이고, 오직 원만한 도인만을 본다면 오로지 일승일 뿐이다. 만약 각과 면에 의거하여 원만한 도인을 본다면 곧 동교이다. 그래서 ‘삼승에 의거하여 일승을 나타낸다’라고 한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앞의 굴곡도 -
006_0794_c_01L法也。此中四方。及六方八方十方等。
006_0794_c_02L依三乘分也。謂聲聞明四諦故。依此
006_0794_c_03L分四方。緣覺觀十二支而是二六
006_0794_c_04L故。依此分六方。始終敎中。通有四攝
006_0794_c_05L四無量而二四即八故。依此分八方。
006_0794_c_06L同敎中即其同中。含有別敎十十無
006_0794_c_07L盡義故。依此分十方也。若約無住別
006_0794_c_08L敎。則本無方也。是故文云。善巧無
006_0794_c_09L方。乃至云。義當圓敎也。問。始終二
006_0794_c_10L敎。亦明十方。何故唯云八方耶。答。
006_0794_c_11L此約八葉之軌云耳。又始終敎中。摠
006_0794_c_12L約四攝因果等故。分八方耳。問。若并
006_0794_c_13L取頓敎中因果。則頓敎中。亦分八方
006_0794_c_14L耶。答。約實則通。然因果是位。頓敎
006_0794_c_15L之中。位相隱故且除耳。問。何是八葉
006_0794_c_16L軌耶。答。此是毗盧遮那經。及佛地經
006_0794_c_17L中。八葉作佛之軌也。依三乘現一乘
006_0794_c_18L者。一乘圓印。雖無角面。此印攝盡
006_0794_c_19L一切法故。具其四面四角相。以分三
006_0794_c_20L乘四方六方八方十方等。漸現一乘
006_0794_c_21L無方之圓印故也。若唯見角面。則一
006_0794_c_22L向三乘。唯見圓印。則一向一乘。若
006_0794_c_23L依角面見圓印。則是同敎也。故云依
006_0794_c_24L三乘現一乘也。問。若爾。前之屈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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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5_a_01L혹 오직 굴곡만을 본다면 오로지 삼승이나, 혹 굴곡에 의거하여 원만한 도인을 본다면 또한 삼승에 의거하여 일승을 나타내는 것인가? 이 각과 면은 곧 동교이고 앞의 굴곡은 다만 삼승에 따로 집착하는 것인가?답 굴곡 또한 한 길로 된 붉은 도인의 능히 따르는 덕이기 때문에, 그래서 또한 삼승에 의거하여 일승을 나타내는 뜻이 있다.2. 글자의 모습(字相) : 육상원융 何故字中至性在中道‘어째서 글자 중에’부터 ‘성性이 중도에 있음’까지35)
법융기『법기』에 이른다.“(문) 어째서 글자 중에 시작과 끝이 있는가? 답 수행의 방편을 기준으로 하여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음을 드러낸다.”란, 말한 바 수행방편은 일승의 수행인가, 삼승의 수행인가?답 다만 삼승의 수행방편일 뿐이다.문 무슨 까닭에 일승에는 수행방편이 없는가?답 일승에는 원인과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문 만약 그렇다면 무슨 까닭에 아래에서 “원인과 결과의 두 자리가 법성의 집 안의 진실한 덕용이며, 성性이 중도에 있다.”라고 하는가?답 다만 삼승의 원인이 먼저이고 결과가 나중이라고 집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원인과 결과가 동시인 뜻을 나타내는 까닭에 말한 것일 뿐이다. 만약 실제를 기준으로 하여 말한다면 이 종宗 중에는 원인과 결과의 이름이 없다.
문 만약 그렇다면 결과를 온전히 한 원인과 원인을 온전히 한 결과도 또한 없는가?답 그렇다. 그래서 지상 스님이 이르기를, “원인은 결과와 다름이 없는 원인이고, 결과는 원인과 다름이 없는 결과이다. 그러나 인과의 명칭은 연緣에 기대어 나타나는 것이니 줄어들거나 가득 차는 것이 저로부터이고 나36)에게서 됨은 없다.”37)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일승에 곁이 없는 인과(無側因果)도 또한 세우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문 도인의 오십사각이 하나하나가 도인의 원만함을 온전히 다함이 이와 같다면 도인을 온전히 한 각도 또한 버려야만 하는가?답 만약 우리의 종宗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와 같은 일이 없으니 어찌 다시 버리겠는가? 증분 가운데는 원인과 결과, 증분과 교분, 일승과 삼승, 동교와 별교 등의 일이 없기 때문이다. -
006_0795_a_01L若唯見屈曲。則一向三乘。若依屈
006_0795_a_02L曲見圓印。則亦是依三乘現一乘耶。
006_0795_a_03L此角面則是同敎也。前之屈曲。但是
006_0795_a_04L別執三乘耶。答。屈曲亦是一道朱印
006_0795_a_05L之能隨之德故。第上之二第八張 是
006_0795_a_06L以亦有依三現一之義也。
006_0795_a_07L何故字中 至性在中道。法記云。何故
006_0795_a_08L字中有始終耶。答約修行方便。現因
006_0795_a_09L果不同者。所言修行方便。則一乘修
006_0795_a_10L行耶。三乘修行耶。答。但是三乘修行
006_0795_a_11L方便耳。問。何故一乘無修行方便耶。
006_0795_a_12L答。以一乘中無因果故。問。若尒。何故
006_0795_a_13L下云因果兩位法性家內眞實德用。
006_0795_a_14L性在中道耶。答。只爲三乘執因先果
006_0795_a_15L後之人。現因果同時義故云耳。若約
006_0795_a_16L實云。此宗之中。無因果名。問。若尒。則
006_0795_a_17L全果之因。全因之果亦無耶。答。尒也。
006_0795_a_18L故至相云。因無異果之因。果無異因
006_0795_a_19L之果。然因果之稱。寄現於綠。虧盈
006_0795_a_20L自彼。於我無爲。故知一乘無側因果
006_0795_a_21L亦不立也。問。印之五十四角。一一全
006_0795_a_22L盡印圓如是。全印之角。亦應捨耶。答。
006_0795_a_23L若約自宗。無如是事。何更捨也。以訂
006_0795_a_24L分中。無有因果訂分敎分一乘三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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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5_b_01L연기분 가운데 비로소 원인과 결과, 증분과 교분, 일승과 삼승, 동교와 별교 등의 갖가지 일을 설할 뿐이다. 이런 까닭에 연기분에 나아가서 “원인과 결과의 두 자리가 성性이 중도에 있다.”라고 한 것이다.
문 만약 진실로 인과를 세우지 않는다면 어찌 인과가 없다고 부정하는 큰 삿된 견해가 아니겠는가?답 인과를 뛰어넘은 곳에 서서 인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 어찌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의상) 화상이 다른 이에게 이 뜻을 질문하게 하여 이르기를, “법성 중에 인과가 있는가, 인과가 없는가? 만약 법성 중에 인과가 있다면 마땅히 법성이 아닐 것이니, 법성 중에는 인과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답하게 하여 이르기를, “인과가 없다.”라고 하였다.
문 그렇다면 근본의 들어감(根本入) 중에 펼친 바 아홉 개의 들어감(九入)이 근본을 만족시키지 않는가?답 만족시킨다.문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인과가 없다고 하는가?답 그대가 집착하는 바 포섭(攝)과 생각하고 헤아림(思議) 등으로 저 (근본의 들어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낱낱의 들어감(入入)이 저 근본을 만족시킨다. 이런 까닭에 그것에 인과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낱낱의 들어감을 기준으로 하여 포섭과 생각하고 헤아림 등을 따라서 알음알이를 낸다면 수승함과 열등함의 인과의 지위가 있기 때문에 이는 동교이다. 만약 포섭 등을 기준으로 하여 낱낱의 들어감에 따라서 알음알이를 낸다면 성性이 중도에 있어서 수승함과 열등함의 인과가 없으나 또한 동교이다. 만약 낱낱의 들어감을 제외하고 다만 포섭과 생각하고 헤아림 등을 기준으로 하면 곧 삼승별교이다. 만약 바로 근본의 들어감을 기준으로 한다면 일승별교이다. 이 세 가지 뜻을 기준으로 하여 도인의 뜻을 나타내며, 또한 『화엄대경』에 많은 뜻을 갖추고 있음도 나타낸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어째서 글자 중에 굴곡이 많은가? 삼승의 근기와 욕망 등을 드러내고자’라고 한 것은, 실제를 기준으로 하면 글자 중의 굴곡은 삼도三途와 인ㆍ천人天에도 통한다. 그러나 글자는 알음알이를 내는 말(詮)이기 때문에 -
006_0795_b_01L同敎別敎等事。綠起分中。方說因果
006_0795_b_02L訂敎一三同別敎等種種事耳。是故
006_0795_b_03L就綠起分云。因果兩位。性在中道也。
006_0795_b_04L問。若實不立因果。豈不是撥無因果
006_0795_b_05L之大邪見耶。答。立在過越因果之處。
006_0795_b_06L言無因果。豈是撥無耶。故和尙令人
006_0795_b_07L難此義云。法性之中。有因果耶。無因
006_0795_b_08L果耶。若法性中。有因果者。應非法
006_0795_b_09L性。以法性中無因果故。又令答云。
006_0795_b_10L無因果也。問。然則。根本入中。所開九
006_0795_b_11L入。不滿本耶。答。滿也。問。若尒。何云
006_0795_b_12L無因果耶。第上之二第九張 答。非汝
006_0795_b_13L所執攝思議等能滿彼也。但是入入
006_0795_b_14L能滿彼1)▣。 [127] [126] 是故於彼。無因果也。若
006_0795_b_15L約入入。隨攝思議等而生解。則有
006_0795_b_16L勝劣因果之位故。是同敎。若約攝等
006_0795_b_17L隨於入入而生解。則有性在中道。無
006_0795_b_18L勝劣之因果。亦是同敎。若除入入。
006_0795_b_19L但約攝思議等。即是三乘別敎。若直
006_0795_b_20L約根本入。則是一乘別敎也。約此三
006_0795_b_21L義。以現印義。亦現大經具含多義。
006_0795_b_22L大記云。何故字中多有屈曲。現三乘
006_0795_b_23L根欲等者。約實則字中屈曲。通於三
006_0795_b_24L途人天。然而字者。是生解之詮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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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5_c_01L우선 알음알이의 가르침(敎相)이 나타남을 기준으로 해서, 다만 ‘삼승의 근기와 욕망’이라고 했을 뿐이다.‘어째서 시작과 끝의 두 글자를 한가운데에 두었는가’ 등이란 (다음과 같다.) ‘법法’ 자는 원인이고 ‘불佛’ 자는 결과이니 일승과 삼승에 통한다. 삼승의 앞과 뒤의 인과가 곧 법성의 덕용이며 성이 중도에 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까닭에 처음과 끝의 두 글자를 한가운데에 둔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오직 삼승의 인과만을 기준으로 하여 논한 것인데 어째서 인과가 일승에도 통한다고 하는가?답 만약 실제의 도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법이 각각 스스로 여여한 지위에 머물러 본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삼승의 사람은 오직 앞과 뒤만을 보지만 일승은 그렇지 아니하여 필요에 따라서 자재하다. 이런 까닭에 앞과 뒤의 인과를 기준으로 하여 성性이 중도에 있다는 뜻이 일승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일승에도 통한다고 한 것이다.
‘법성의 집(法性家)’은 두 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증분의 법성과 머무름 없는 별교의 법성이다. 실상과 총상과 법신과 중도 등도 또한 두 가지 뜻에 통한다. 시설문 중에는 증분과 교분을 나누어 보이는 뜻이 있고 일승과 삼승을 나누어 보이는 뜻이 있다. 그래서 인과가 일승과 삼승에 통하고 법성이 증분과 교분에 통한다고 한 것이다.
진수기『진기』에 이른다. ‘법성의 집(法性家)’이란 오늘의 연緣 중에 일어난 법을 기준으로 하면 증분과 연기분의 법성이 된다. 혹은 증분과 교분을 나누지 않는 중도라야 비로소 법성의 집이 된다고 한다.
1) 법계도인法界圖印
‘위에서 이르기를, 원인과 결과가’부터 ‘앞과 뒤가 없다’까지38)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위에서 이르기를,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다.’라고 하고” 내지 ‘그 뜻이 무엇인가’ 등이란 (다음과 같다.) 이 질문을 일으킨 뜻은, 앞에서 “수행의 방편을 기준으로 하여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음을 드러낸다.”라고 하고, -
006_0795_c_01L且約解敎相現。但云三乘根欲耳。何
006_0795_c_02L故始終兩字安置當中等者。法字是
006_0795_c_03L因。佛字是果。通一乘三乘也。欲現
006_0795_c_04L三乘之前後因果。即是法性德用。性
006_0795_c_05L在中道故。以始終二字。安置當中也。
006_0795_c_06L問。若尒。唯約三乘因果而論。何云因
006_0795_c_07L果通一乘耶。答。若約實道理。諸法各
006_0795_c_08L各。住自如位。本來不動。然三乘之人。
006_0795_c_09L唯見前後。一乘不尒。隨須自在。是
006_0795_c_10L故約前後因果。現性在中道之義在
006_0795_c_11L於一乘故。云通一乘也。法性家者。有
006_0795_c_12L二。謂訂分之法性。及無住別敎之法
006_0795_c_13L性也。實相捴相法身中道等。亦通二
006_0795_c_14L義也。施設門中。有分示訂敎之義。
006_0795_c_15L有分示一乘三乘之義。故云因果通
006_0795_c_16L一乘三乘。法性通訂分敎分。
006_0795_c_17L眞記云。法性家者。約今日綠中所起
006_0795_c_18L之法。爲訂分及綠起分之法性也。或
006_0795_c_19L云訂敎不分之中道。方爲法性家也。
006_0795_c_20L第上之二第一○張。
006_0795_c_21L上云因果 至無有前後。法記云。上云
006_0795_c_22L因果不同乃至其義云何等者。起此
006_0795_c_23L問意。前云。約修行方便。現因果不同。
006_0795_c_24L▣字體磨滅{底}ㆍ作「本」{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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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6_a_01L다음에 또 이르기를, “원인과 결과의 두 자리가 법성의 집 안의 진실한 덕용德用이며, 성性이 중도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이 뜻을 알지 못해서 이와 같이 물은 것이다.
문 앞에서 도인의 모습을 마침에 다시 별다른 질문이 없었는데, 무슨 까닭에 이 중에 글자의 모습을 풀이하고서 또다시 이 질문과 대답을 시설하는가?답 그 도인의 길은 글자의 모습을 따라서 그린 것이기 때문에 글자의 모습을 자세히 풀이하면 도인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천친 논주가 육상의 방편으로써 뜻을 세운 등에 의거하면’이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 네 가지 보살행의 글(四種菩薩行文)39)에서 육상의 뜻을 나타내신 것은, 만약 모든 보살이 법의 체體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육상으로써 그 마음을 원융하게 단련하여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논주는 부처님의 뜻을 얻었기 때문에 열 가지 들어가는(十入) 곳에서 육상 방편을 밝혀서 삼승의 포섭의 들어감(攝入) 등은 삼현이고 내지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佛盡入)은 부처님의 과위이니 이와 같이 차례로 거듭 더욱 수승해진다는 집착을 다스리니, 그 포섭의 들어감 등 아홉 가지 들어감이 근본의 들어감에 들어맞으면 수승함과 열등함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천친보살이 열 가지 들어가는(十入) 곳에서 육상을 밝히는 날에 비로소 부처님의 은혜를 갚았다.”라고 하였다. (의상) 화상이 이 논주의 뜻을 얻었기 때문에 “천친 논주가 뜻을 세운 분제分齊에 의거하면, 그 도리에 준하여 삼승의 앞과 뒤의 인과가 성품이 중도에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육상방편의 말을 기준으로 하여 융질 대덕(融質德)40)이 이르기를, “육상이란 오직 교문敎門의 시설일 뿐이니 법의 체에 있어서는 관련된 바가 없다. 그래서 방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상) 화상이 이르기를 ‘법성의 집에 들어가는 중요한 문이며, 다라니의 곳집(藏)을 여는 좋은 열쇠’41)라고 한 것이다. 법장(康藏) 스님은 이르기를 ‘이 방편으로써 일승을 깨닫는다’42)라고 하고, 또 ‘4구四句와 육상43)이 함께 법에 들어가는 방편이 된다. 이상.’44)라고 하였으니, 다만 능히 설하는(能詮) 교문의 방편임을 안다.”라고 하였다. -
006_0796_a_01L而次又云。因果兩位。法性家內。眞實德
006_0796_a_02L用。性在中道故。未知此意。如是問
006_0796_a_03L也。問。前印相終。更無別問。何故此中
006_0796_a_04L釋字相已。更復設此問答耶。答。其印
006_0796_a_05L道。則隨字相而畫故。委釋字相。則
006_0796_a_06L可解印相故也。
006_0796_a_07L大記云。依天親論主。以六相方便。立
006_0796_a_08L義等者。佛於四種菩薩行文。現六相
006_0796_a_09L意者。若諸菩薩。欲入法體。要以六
006_0796_a_10L相融鍊其心。方可得入故也。論主得
006_0796_a_11L佛意故。於十入處。明六相方便。以治
006_0796_a_12L三乘。攝入等是三賢。乃至佛盡入是
006_0796_a_13L佛果。如是次1)弟。轉勝之執。現其攝
006_0796_a_14L等九入。稱根本入。無勝劣也。故古辭
006_0796_a_15L云。天親菩薩。於十入處。明六相日。
006_0796_a_16L始報佛恩也。和尙得此論主意故云。
006_0796_a_17L依天親論主立義分齊。准其道理。則
006_0796_a_18L三乘之前後因果。性在中道所由可解
006_0796_a_19L也。約此六相方便之言。融質德云。六
006_0796_a_20L相者。唯是敎門施設耳。於法體上。無
006_0796_a_21L所關也。故言方便也。故和尙云。入法
006_0796_a_22L性家之要門。開陁羅尼藏好鑰匙。康
006_0796_a_23L藏云。以此方便會一乘。又云。四句與
006_0796_a_24L六相。俱爲入法方便。已上 。故知但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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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6_b_01L사유 대덕(思惟德)45)은 이르기를, “육상이란 다만 법의 체의 교묘한 모습을 모아 이룬 것에 근거하여 방편이라고 이름할 뿐이니, 이 외에 다시 들어갈 바 법의 체는 없다. 그러므로 (의상) 화상은 ‘모든 연緣으로 생겨난 법이 육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46)라고 하고, 또 ‘육상이란 연기의 무분별한 도리를 바르게 나타내는 것’47)이라 하며, 내지 ‘이 이법(理)인 까닭에 다라니법은 주主와 반伴이 서로 이룬다’48)라고 하였다. 강장 스님은 이르기를, ‘네 번째는 모아 이룬 방편이니 모든 법의 동일한 체體의 교묘한 모습을 모아 이루기 때문에 방편이라고 이름한다. 『지론智論』에 이르기를, “이 법이 훌륭하고 교묘하게 모아 이루기 때문에 방편이라 이름한다. 이상.”49)라 한다’50)고 하였다. 그러므로 다만 설해지는 법의 체를 기준으로 하여 방편이라 함을 안다.”라고 하였다.
풀이하여 말하면51) 이 위의 두 가지 설은 만약 치우쳐 집착하면 둘 모두 허물이 있다. 말하자면 각각 한 모퉁이에 막혀 있어서 이치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도리에 의거하면 각각 의지하는 바가 있어서 두 가지 설이 모두 옳다. 무엇인가? (육상은) 만약 동교에서라면 고정되어 집착하는 견해를 깨뜨리기 때문에 다만 교문敎門의 법에 들어가는 방편이다. 만약 별교에서라면 바로 법의 체를 밝히기 때문에 곧 원융한 법의 훌륭하고 교묘하게 모아 이루는 방편이다.
‘일승과 삼승이 주主와 반伴을 서로 이룬다’란, 머무름 없는 별교는 주主이고 달리 집착하는 삼승은 권속으로서 반伴이다. 이 가운데 주主와 반伴의 법의 체를 세우는 까닭에 주主와 반伴의 모습을 이룬다는 것이다.문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아래에서는 주主와 반伴이 서로 돕는다고 하는가?답 주主와 반伴의 법을 세우고 나서 그 달리 집착하는 삼승인 반伴으로 하여금 인연과 연기 등의 삼관52)을 익혀서 그 마음을 수련하게 하기 때문이다. 흘러나오는 것(所流)으로서 삼승인 반伴은 성기性起의 다음에 이르러 머무름 없는 별교인 주主와 서로 도와서, 두렷이 밝은 주主와 반伴을 이루기 때문이다.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주主와 반伴이 서로 이루어 법의 분제를 나타낸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
006_0796_b_01L能詮敎門之方便也。思惟德云。六相
006_0796_b_02L者。但約法體巧相集成。名方便耳。此
006_0796_b_03L外更無所入法體也。故和尙云。一切
006_0796_b_04L綠生法。無不六相成。又云。六相者。正
006_0796_b_05L現緣起無分別理 。第上之二第一一張
006_0796_b_06L乃至云。以此理故。陁羅尼法。主伴相
006_0796_b_07L成。康藏云。*弟四集成方便。諸法同體
006_0796_b_08L巧相集成故名方便。智論云。此法善
006_0796_b_09L巧集成。故名方便。已上。 故知但約所
006_0796_b_10L詮法體爲方便也。解云。此上二說。若
006_0796_b_11L偏執。則二俱有過。謂各滯一隅。不當
006_0796_b_12L理故。若據道理。各有所憑。二說俱
006_0796_b_13L是。何者。如同敎中。破定執見故。只
006_0796_b_14L是敎門入法方便也。若別敎中。直明
006_0796_b_15L法體故。即是圓融之法。善巧集成方
006_0796_b_16L便也。一乘三乘。主伴相成者。無住
006_0796_b_17L別敎是主。別執三乘是眷屬伴。此
006_0796_b_18L中立主伴法體故。云成主伴相也。問。
006_0796_b_19L若尒。何故下云主伴相資耶。答。立
006_0796_b_20L主伴法已。令其別執三乘之伴。習因
006_0796_b_21L綠綠起等三觀。修鍊其心故。所流三
006_0796_b_22L乘之伴。至於性起之後際。與無住別
006_0796_b_23L敎之主相資。得成圓明主伴故也。
006_0796_b_24L法記云。主伴相成。現法分齊者。餘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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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6_c_01L다른 곳의 삼승은 다만 권속일 뿐이며 반伴이 될 수 없으나, 이 가운데의 뜻은 도인의 원만함은 일승이기 때문에 주主이고, 오십사각은 삼승이기 때문에 반伴이다. 모든 각을 말미암기 때문에 도인의 원만함을 이루고, 도인의 원만함을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각을 이룬다. 이런 까닭에 일승과 삼승이 서로 이루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각이 도인의 원만함을 온전히 다한다는 것은 나타난 바의 분제이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육상이란 총상과 별상 둘은 법의 다함없음을 드러내고, 동상과 이상 둘은 법의 걸림 없음을 나타내며, 성상과 괴상 둘은 법의 곁이 없음을 보인다. 일승의 법의 뜻은 이 셋을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개별적으로 풀이하면 총상은 머무름 없는 법의 자체를 바로 표방하고, 별상은 머무름 없는 총상의 다함없음을 가리키며, 동상은 다함없음의 걸림 없음을 나타내고, 이상은 걸림 없음의 어긋남 없음을 풀이하며, 성상은 어긋남 없음의 곁이 없음을 보이고, 괴상은 곁이 없음의 움직이지 않음을 나타낸다.
문 머무름 없는 법의 자체는 무엇인가?답 법계의 법이 합해서 한 몸이 된 것이 이것이다.문 법계의 법이 움직이기 때문에 한 몸을 이룸이 되는가?답 다만 움직이지 않음을 말미암아 한 몸을 이룬다. 만약 이 하나의 집을 기준으로 하여 논한다면, 서까래 등의 모든 연이 각자 움직이지 않아야 비로소 하나의 총상인 집을 이룰 수 있다.문 ‘별상은 다함없음을 나타낸다’ 등은 무엇인가?답 별상은 서까래 등의 모든 연이 각각 다르므로 하나의 총상인 집 가운데 하나가 아닌 덕을 나타내기 때문에, “별상은 총상의 다함없음을 가리킨다.”라고 한 것이다.
서까래 등의 연 가운데 동상이 필요하면 곧 일장 이척(丈二)의 서까래가 이십 보二十步53)의 집에 칭합하고 다른 연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동상은 다함없음의 걸림 없음을 나타낸다.”라고 한 것이다. -
006_0796_c_01L三乘。但是眷屬。不得爲伴。此中意
006_0796_c_02L者。印圓則一乘故。是主。五十四角。
006_0796_c_03L則三乘故。是伴也。由諸角故。得成印
006_0796_c_04L圓。由印圓故。得成諸角。是故一乘
006_0796_c_05L三乘。互相成也。其一一角。全盡印圓
006_0796_c_06L者。是所現分齊也。
006_0796_c_07L大記云。六相者 捴別二相。表法無盡。
006_0796_c_08L同異二相。現法無㝵。成壞二相。示法
006_0796_c_09L無側。一乘法義。不出此三也。若別釋
006_0796_c_10L者。 捴相直標無住法之自體。別相
006_0796_c_11L指無住捴之無盡。同相現無盡之無
006_0796_c_12L㝵。異相釋無㝵之無違。成相示無違
006_0796_c_13L之無側。第上之二第一二張 壞相表無
006_0796_c_14L側之不動也。問。無住法之自體云何。
006_0796_c_15L答。法界之法。混爲一身是。問。法界之
006_0796_c_16L法。爲是動故。成一身耶。答。只由不動。
006_0796_c_17L成一身耳。若約此一堂論。則椽等諸
006_0796_c_18L緣。各自不動。方得成一摠相堂耳。問。
006_0796_c_19L別相表無盡等者。何耶。答。別相者。椽
006_0796_c_20L等諸緣。各差別故。現一摠相堂中非
006_0796_c_21L一之德故。云別相指摠相之無盡也。
006_0796_c_22L椽等綠中須同相。則丈二之椽。稱二
006_0796_c_23L十步堂。餘緣亦尒。故云同相現無盡
006_0796_c_24L「弟」作「第」{乙}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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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7_a_01L또 이 연 가운데 이상이 필요하면 곧 일장 이척의 서까래가 비록 이십 보의 집에 칭합하나 스스로 일장 이척(丈二)의 자리를 움직이지 않으며 다른 연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상은 걸림 없음의 어긋남 없음을 밝힌다.”라고 한 것이다.
그 일장 이척(丈二)의 서까래가 이 집을 이룸을 볼 때 곁에 다른 연이 없으므로 이 하나의 서까래가 곧 곁이 없으며 다른 연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성상은 어긋남 없음의 곁이 없음을 보인다.”라고 한 것이다.무너지는 것(壞)은 이루어지는 곳에서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괴상은 곁이 없음의 움직이지 않음을 나타낸다.”라고 한 것이다.
문 무슨 까닭에 오직 여섯이며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가?답 총상과 별상의 한 쌍은 상근기가 들어가고, 동상과 이상의 한 쌍은 중근기가 들어가며, 성상과 괴상의 한 쌍은 하근기가 들어간다. 진실로 하근기는 동상과 이상 가운데 총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줄어서 넷이나 다섯에 이르지 않는다. 비록 하근기라도 두루 성상과 괴상을 배운다면 반드시 총상에 들어가기 때문에 늘어나서 일곱이나 여덟에 이르지 않는다.
강장 스님은 이르기를, “총상은 하나가 많은 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별상은 많은 덕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며, 별이 총에 의지하되 그 총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이상.”54)라고 하였다.문 “하나가 많은 덕을 포함한다.”란 총과 총으로서의 많은 덕인가, 별과 별로서의 많은 덕인가?답 두 뜻을 함께 얻는다. 말하자면 별을 잡아서 총을 이루기 때문에 ‘별과 별로서의 많은 덕’이라고 하는 것도 또한 얻는다. 그러나 그 총 가운데 갖춘 바 별로서의 덕이 하나하나가 모두 총을 온전히 다하기 때문에 ‘총과 총으로서의 많은 덕’이라고 하는 것도 또한 얻는다.
문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다함없는 총을 세워야 하는가?답 비록 ‘많은 덕’이라고 하지만 하나 밖의 많음이 아니기 때문에 이 어려움은 없다.문 이미 이르기를, “총상은 하나가 많은 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으니, 포함되는 많은 덕이 포함하는 하나와 뜻의 문이 각각 다를 것인데 어째서 하나 밖의 많음이 아니라고 하는가?답 다만 그 많은 덕이 합해지는 곳을 지목하여 포함하는 하나의 총이라고 했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하나 밖의 많음, 많음 밖의 하나가 아닌 것이다. -
006_0797_a_01L之無碍也。又此綠中須異相。則丈二
006_0797_a_02L之椽。雖稱於二十步堂。而不動自文
006_0797_a_03L二位。餘綠亦尒。故云異相明無碍之
006_0797_a_04L無違也。見其丈二椽之成此堂時。側
006_0797_a_05L無餘綠故。此一椽即是無側。餘綠亦
006_0797_a_06L尒。故云成相示無違之無側也。壞於
006_0797_a_07L成處壞。故云壞相表無側之不動也。
006_0797_a_08L問。何故唯六。不多不小。答。惣別一對。
006_0797_a_09L上根得入。同異一對。中根得入。成壞
006_0797_a_10L一對。下根得入。良以下根。於同異中。
006_0797_a_11L不能得惣故。不減至四五也。雖是下
006_0797_a_12L根。歷學成壞。必得入惣故。不增至七
006_0797_a_13L八也。康藏云。惣相者一含多德故。
006_0797_a_14L別相者多德非一故。別依止惣滿彼
006_0797_a_15L惣故。已上。 問。一含多德者。惣惣多德。
006_0797_a_16L別別多德。答1)二 [128] 義俱得。謂攬別成惣
006_0797_a_17L故。云別別多德亦得。然其惣中所具
006_0797_a_18L別德。一一皆全盡惣故。云惣惣多德
006_0797_a_19L亦得。問。若尒。應立無盡惣耶。答。雖云
006_0797_a_20L多德。非是一外之多故。此難也。問
006_0797_a_21L旣云惣相者一含多德故。所含多
006_0797_a_22L德第上之二第一三張 與能含一義門。
006_0797_a_23L各異。何云非是一外之多耶。答。但其
006_0797_a_24L多德合處。目爲能含一惣耳。是故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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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7_b_01L‘별이 총에 의지하되 그 총을 만족시킨다’란,문 만약 종류로써 각각 육상을 나누면 총상ㆍ동상ㆍ성상이 한 가지가 되며, 별상ㆍ이상ㆍ괴상이 한 가지가 된다. 이미 총상과 한 종류이므로 동상에는 총상과 동일한 뜻이 있고, 성상에는 총상을 성립시키는 뜻이 있으나, 무슨 까닭에 별상은 이상ㆍ괴상과 한 종류인데 총상을 만족시키는 뜻이 있는가?답 만약 총상을 얻는다면 별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총상을) 얻지 못한 근기에게 총상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에 (별상을) 연 것이다. 별상을 열 때 총상의 뜻이 이미 나타난다. 이런 까닭에 별상 중에 총상을 만족시키는 뜻이 있는 것이다.문 만족시킴에 이르는가, 이르지 않는가?답 만족시킴에 이른다.문 이것은 별상을 해석하는 뜻이기 때문에 마땅히 본래의 총상을 만족시킴에 이르지 않아야 하는데 어째서 이른다고 하는가?답 이미 총을 나눌 때 총을 여는 것을 말미암은 까닭에 저 별의 덕을 나타내니 도리어 별로써 총을 만족시킬 때 만족시킴에 이르는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총 가운데 별의 모양이 있는가?답 없다. 무엇인가? 본래 별의 모습이 없는 총 가운데 연 바이기 때문에 비록 그 별상이 본래의 총을 만족시킴에 이르더라도 총 가운데 별의 모습이 없다.문 만약 그렇다면 삼승에서 차별의 세속을 없애고 평등의 진실로 돌아가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답 일승 가운데 분별은 온전히 무분별이며 무분별이 온전히 분별이다. 분별을 없애야만 비로소 무분별에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다르다.
동상同相이란 총의 덕을 나타내 보이고자 별상을 열었으나 이미 별상을 열고 나서, 어떤 미혹한 사람이 그 별상이 총과 전혀 다르다고 할 것을 염려하는 까닭에, 그로 하여금 그 별상이 총과 온전히 같음을 알게 하기 위하여 별상 다음에 동상을 밝힌 것이다. 동同에 많은 뜻이 있으니 말하자면 상동ㆍ하동과 내동ㆍ외동이다. 만약 이 집을 기준으로 하여 논하면 모든 연이 총인 집과 같은 것은 상동이고, -
006_0797_b_01L是一外之多。多外之一也。別依止惣。
006_0797_b_02L滿彼惣者。問。若以類各分六相。則
006_0797_b_03L惣同成爲一際。別異壞爲一際也。旣
006_0797_b_04L與惣爲一類故。同有同惣義。成有成
006_0797_b_05L惣義。何故別相與異壞爲一類。而有
006_0797_b_06L滿惣之義耶。答。若得惣相。不須別相。
006_0797_b_07L但於未得機中。欲示惣相故開也。開
006_0797_b_08L別之時。惣義已現。是故別中有滿惣
006_0797_b_09L義。問。及滿耶。不及耶。答。及滿也。問。
006_0797_b_10L此是別相釋義故。應不及滿本惣。何
006_0797_b_11L云及耶。答。旣分惣之時。由開惣故。
006_0797_b_12L現彼別德。還以別滿惣之時。及滿也。
006_0797_b_13L問。若尒。惣中有別皃耶。答。無也。何
006_0797_b_14L者。本於無別皃之惣中。所開故。雖其
006_0797_b_15L別相。及滿本惣。惣中無別皃也。問。若
006_0797_b_16L爾。與三乘泯差別俗歸平等眞。何異
006_0797_b_17L耶。答。一乘中。分別全無分別。無分
006_0797_b_18L別全分別。非泯分別方歸無分別。是
006_0797_b_19L故異也。同相者。欲現惣德故。開別
006_0797_b_20L相。旣開別已。恐有惑人謂其別相
006_0797_b_21L逈別於惣故。欲令其知彼別相全
006_0797_b_22L同於惣故。於別相之次。明同相也。
006_0797_b_23L同有多義。謂上同下同。內同外同。
006_0797_b_24L若約此舍論者。諸綠同於惣舍者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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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7_c_01L총인 집이 모든 연과 같은 것은 하동이다. 상동 가운데 나아가 모든 연이 집과 같은 것은 안으로 향하는 동(內向同)이고, 모든 연이 서로 바라보아 집을 이루는 힘의 뜻이 가지런히 같은 것은 밖으로 향하는 동(外向同)이다. 또 분동分同과 만동滿同의 두 가지 뜻이 있다. 말하자면 한 척(一尺)의 기와가 한 척의 힘을 내어서 이십 보二十步의 집과 같은 것은 분동이고, 한 척의 기와가 이십 보의 힘을 내어서 이십 보의 집과 같은 것은 만동이다.
이상異相은 그 능히 이루는 모든 연의 모습과 종류가 다르고, 각각의 자리가 움직이지 않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문 만약 실제로 다르다면 마땅히 같지 않은 것인가?답 다만 다름을 말미암기 때문에 같음의 뜻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다르지 않다면, 기와가 이미 한 척이면 서까래 또한 한 척이어서 본래 연의 자리에서 어긋나 앞의 가지런히 같이 집을 짓는 뜻을 잃는다.
문 만약 그렇다면 한 척의 기와가 이십 보의 힘을 내서 이십 보의 집과 같아지고 서까래 또한 이와 같다면, 이 또한 어찌 본래의 연의 자리를 잃는 것이 아니겠는가?답 기와가 만약 자신의 한 척의 자리를 움직여서 서까래의 일장 이척(二丈)의 자리와 같아지고, 그런 후에 이십 보의 힘을 내며, 서까래 또한 이와 같다면, 마땅히 본래의 자리를 잃는 것이다. 기와가 스스로 본래의 한 척의 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서까래 또한 일장 이척의 자리를 움직이지 아니하되 각각 이십 보의 힘을 내어서 집과 같기 때문에, 비록 함께 이십 보의 힘을 내더라도 기와는 일장 이척이 아니고 서까래는 한 척이 아니라, 각각 스스로의 자리에 머무르는 까닭에 어긋나지 않는다.
성상成相은 짓지 않음의 지음을 밝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연 등이 각각의 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집을 이루는 것이다. 앞의 동상에서는 서까래 등의 모든 연이 서로 바라보고 서로 거두어서 집을 이루는 힘의 뜻이 가지런히 같다. 또 서까래 등의 모든 연이 총을 바라봄을 기준으로 하면 집이 서까래를 거느리고, 총이 연을 바라보면 서까래가 집을 거느린다. -
006_0797_c_01L同。惣舍同於諸綠者下同。就上同中。
006_0797_c_02L諸綠同於舍者。內向同。諸綠相望。成
006_0797_c_03L舍力義齊同者。外向同也。又有分同
006_0797_c_04L滿同二義。謂一尺之瓦。出一尺之力。
006_0797_c_05L第上之二第一四張 同於二十步堂者
006_0797_c_06L分同。一尺瓦。出二十步力。同於二
006_0797_c_07L十步堂者滿同也。異相者。示其能
006_0797_c_08L成諸綠形類差別各位不動之義也。
006_0797_c_09L問。若實異者。應非同耶。答。只由異故。
006_0797_c_10L得有同義。若不異者。瓦旣一尺。椽
006_0797_c_11L亦一尺。違本緣位。失前齊同作舍之
006_0797_c_12L義。問。若爾。一尺之瓦。出二十步力。
006_0797_c_13L同於二十步堂。椽亦如是者。此亦豈
006_0797_c_14L非失本綠位耶。答。瓦若動自一尺之
006_0797_c_15L位。同於椽之丈二之位。然後出二十
006_0797_c_16L步力。緣亦如是者。應失本位。瓦自
006_0797_c_17L不動本一尺位。椽亦不動丈二之位。
006_0797_c_18L而各出二十步力。同於堂故。雖並出
006_0797_c_19L二十步力。瓦非丈二。緣非一尺。各
006_0797_c_20L住自位故。不違也。成相者。明不作
006_0797_c_21L之作。謂諸綠等。各位不動。得成舍也。
006_0797_c_22L前同相中。緣等諸綠。相望相攝。成
006_0797_c_23L舍力義齊同。又約椽等諸綠望於惣。
006_0797_c_24L則舍帶於椽。惣望於綠。則椽帶於舍。
006_0797_c_25L「二」作「一一」{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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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8_a_01L그런 까닭에 (동상에) 서로 바라보고 서로 거두며 서로 거느리는 뜻이 있는 것이다.이 성상 중에는 하나의 연을 기준으로 함을 따라서 곧 바로 총이니 상대를 끊고 곁이 없으며 능히 이루는 연 외에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서로 바라보고 서로 거두는 뜻을 설하지 않는다.
괴상壞相은 지음의 짓지 않음을 밝힌다. 말하자면 서까래 등의 모든 연이 각각 자기의 법에 머물러서 본래 움직이지 않는다.문 이 가운데 움직이지 않음이 앞의 이상 가운데 움직이지 않음과 어떻게 다른가?답 앞의 이상에서는 자리(位)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기와의 한 척의 자리가 서까래의 일장 이척의 자리와 더불어 각각 비록 움직이지 아니하되 서로 바라보는 뜻이 있다. 이 가운데는 체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법과 법이 각각 서로 알지 못한다. 성상의 집을 기준으로 모든 연에 대해서 물어보기를 기둥이 (집을) 이루는가, 내지 기와가 이루는가라고, 이같이 두루 물어보아도 한 물건도 그 집을 이루는 것이 없다. 이와 같으므로 성상의 집이 구경이다. 곧 짓되 짓지 않기 때문에 괴상이 곧 성립되며, 없어지고 무너짐의 괴상은 아니다.
고기
‘고기’에 이른다.문 옛 대덕이 이르기를, “인연의 집은 지으면 이루어지고 짓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기의 집은 지으면 이루어지지 않고 짓지 않으면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이 뜻이 무엇인가?답 동상의 집은 지음이 있는 지음이고 성상의 집은 지음이 없는 지음이기 때문이다. 동상과 성상을 상대하여 설하면 동상은 연기가 앞에 나타나는 뜻이고 성상은 연기가 자성이 없는 뜻이다. 성상과 괴상을 상대하여 설하면 성상은 짓지 않음의 지음이기 때문에 자성이 없는 연기의 뜻이고, 괴상은 지음의 짓지 않음이기 때문에 연기가 자성이 없는 뜻이다.
옛말(古辭)에 이르기를, “주춧돌로부터 시작해서 들보 위의 기와를 마쳐야 비로소 온전한 집을 세우는 것은 변계의 집이다. -
006_0798_a_01L故有相望相攝相帶之義。此成相中。
006_0798_a_02L隨約一綠。即正是惣。絶待無側。能成
006_0798_a_03L綠外。無別所成。是故不說相望相攝
006_0798_a_04L之義。壞相者。明作之不作。謂椽等
006_0798_a_05L諸綠。各住自法。本來不動也。問。此中
006_0798_a_06L不動。與前異相中不動。何別。答。前異
006_0798_a_07L相中。位不動故。瓦一尺位。與椽丈
006_0798_a_08L二位。各雖不動。而有相望之義。此
006_0798_a_09L中體不動故。法法各各。不相知也。約
006_0798_a_10L成相堂。詰於諸綠。柱成耶。乃至瓦成
006_0798_a_11L耶。如是遍詰。無有一物成彼堂。由
006_0798_a_12L如是故。成相堂究竟也。即作而不作
006_0798_a_13L故。壞相即成。非滅壞之壞也。第上之
006_0798_a_14L二第一五張。
006_0798_a_15L古記云。問。古德云。因緣堂。作則得
006_0798_a_16L成。不作則不得成。緣起堂。作則不
006_0798_a_17L得成。不作則得成。此義云何。答。
006_0798_a_18L同相舍。有作之作。成相舍。無作之
006_0798_a_19L作故也。同相成相相對說。則同相
006_0798_a_20L者。緣起現前義。成相者。綠起無
006_0798_a_21L性義。成相壞相相對說。則成相者。
006_0798_a_22L不作之作故。無性綠起義。壞相者。
006_0798_a_23L作之不作故。緣起無性義也。古辭
006_0798_a_24L云。始從柱底石。終梁上瓦。方立
-
006_0798_b_01L도끼를 쥐고 나무를 찍음에 한 번 한 번 찍음을 따라서 온전한 집을 세우는 것은 인연의 집이다. 도끼가 나무를 내려찍지 않고 나무가 도끼에 찍히지 않아도 온전한 집을 세우는 것은 연기의 집이다. 나무의 싹이 푸를 때 온전한 집을 세우는 것은 성기의 집이다. 성기에 나아가 나무의 종자를 심을 때 온전한 집을 세우는 것은 머무름 없음의 집이다. 종자가 곧 참 (집)인 것은 실상의 집이다.”라고 하였다.
강장 스님이 이르기를, “무엇이 집인가? 서까래가 곧 집이다. 무슨 까닭인가? 서까래가 온전히 홀로 집을 짓기 때문이다. 내지 묻는다. 만약 서까래가 온전히 홀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기와 등이 있지 않아도 또한 마땅히 집을 짓는가? 답한다. 아직 기와 등이 있지 않을 때에는 서까래가 아니기 때문에 짓지 않는다. 이상.”55)라고 하였다.
문 비록 기와 등이 없어도 서까래임을 분명히 보는데, 무슨 까닭에 기와가 없을 때에는 서까래가 아니라고 하는가?답 변계의 힐난일 뿐이다. 『화엄대경』에 이르기를, “지혜의 바다가 너르고 가없어서 헤아릴 수 없어 도리어 비방을 늘린다.”56)라고 하니 가히 삼가지 않겠는가? 생멸이 있는 마음으로 실상의 이법을 의심하지 말라. 나의 이 보법에서 인연의 서까래는 스스로 하나의 서까래가 곧 자기 종류의 나머지 서까래를 포섭하니, 혹 한 척(一尺)의 기둥머리와 혹 여덟 척의 기둥과 내지 기와ㆍ돌ㆍ나무를 다듬는 목공, 기와를 굽는 화부 등, 일체의 모든 법을 널리 다 끝까지 거두어서 집을 지어 끝낸 연후에야 비로소 서까래가 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옛사람이 이르기를, “오늘 기둥을 베어서 어제 이미 이루어진 집을 짓고자 한다고 하니, 만약 그렇다면 어제 이미 이루어진 집은 기둥 없이 이루어진 것인가? 이미 이르기를 ‘오늘 기둥을 베어서 어제 이미 이루어진 집을 짓고자 한다’라고 했으니, 그러므로 어제 이미 이루어진 집이 기둥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안다. 이상.”라고 하였다. -
006_0798_b_01L全舍者。遍計堂。荷斧打木。隨一
006_0798_b_02L一打。立全舍者。因綠堂。斧不墮木。
006_0798_b_03L木不犯斧。立全舍者。綠起堂。木
006_0798_b_04L芽靑時。立全舍者。性起堂也。就
006_0798_b_05L於性起中。木種下時。立全舍者。無
006_0798_b_06L住堂。種即眞者。實相堂也。康藏云。
006_0798_b_07L何是舍耶。椽即是舍。何以故。爲
006_0798_b_08L椽全獨能作舍故。乃至問。若椽全
006_0798_b_09L獨能作舍者。未有瓦等。亦應作舍。
006_0798_b_10L答。未有瓦等時。不是椽故不1)作。 [129]
006_0798_b_11L已上。 問。雖無瓦等。現見是椽。何
006_0798_b_12L故云無瓦時不是椽耶。答。遍計之
006_0798_b_13L難耳。大經云。智海廣無涯。未測
006_0798_b_14L返增謗。可不愼哉。母以有生滅心
006_0798_b_15L疑實相理。我此普法。因緣之椽。自
006_0798_b_16L是一椽即攝自類餘椽。若一尺栱。
006_0798_b_17L若八尺柱。乃至瓦焉石焉。鍊木之
006_0798_b_18L工。燔瓦之父等。一切諸法。普皆
006_0798_b_19L攝盡。作舍究竟。然後方得爲是椽
006_0798_b_20L故。是以爾也。古人云。今日採柱。
006_0798_b_21L欲作昨日已成之舍。若爾。昨日已
006_0798_b_22L成之舍。第上之二第一六張 無柱而
006_0798_b_23L成耶。旣云今日採柱欲作昨日已
006_0798_b_24L成之舍故。知昨日已成之舍非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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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8_c_01L그러므로 집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기둥이며, 또 집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서까래인 것이다.
진수기『진기』에 이른다. 이른바 육상이란 (다음과 같다.) 이 가운데 대의大意는 노사나불盧舍那佛57)이 가장 존귀하고 수승하며 우리들 중생은 가장 비천하고 하열하니, 노사나불은 총상이고 중생은 별상이다. 중생의 몸은 따로 자체가 없고 온전히 노사나불의 몸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지금은 둘이 각각 다른 뜻을 보인다. 남(他)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강장 스님은 이르기를, “지말은 근본에 의거하여 일어남과 일어나지 않음이 있다.”58)라고 하였다.
동상은 중생의 몸을 기준으로 하면 다른 사물이 없고 오직 부처님의 몸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몸이 저 부처님을 거느리고 있다. 이상은 비록 중생의 몸이 저 부처님의 몸을 거느리고 있으나 능히 거느림을 움직이지 않고 항상 중생인 것이다. 거느림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같음(同)이 있다고 하고, 중생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다름(異)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강장 스님은 이르기를, “저 일어난 지말이 이미 근본을 거느리고 있으니, 이런 까닭에 서로 바라봄에 같음이 있고 다름이 있다.”59)라고 하였다.
성상은 비천한 중생의 몸이 곧 바로 존귀한 부처님의 몸이니, 털끝만큼도 부처님의 몸과 다른 때가 없으므로 저와 같게 하는 것이 아니다. 동상을 관하는 것은 저와 같게 하는 것이고, 성상을 관하는 것은 곧 바로 하나일 뿐인 것이다. 괴상은 법계의 차별 있는 법이 각각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곧 중생의 몸 가운데의 진실한 덕용이며 성性이 중도에 있음이니, 곧 바로 하나일 뿐이므로 존재함이 있다고 하고, 각각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무너짐(壞)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장 스님이 이르기를, “저 근본을 거느리는 지말이 이미 근본에 거두어짐이 되니, 이런 까닭에 당체가 존재함이 있고 무너짐이 있다.”60)라고 하였다.
고기
‘고기’에 이른다. 예전에 신림 대덕이 당나라에 들어가 융순 스님에게 나아가서 의문을 지어 질문하기를, “이미 성불했다면 처음부터 범부의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하니, -
006_0798_c_01L柱而成矣。已上。 是故舍成方是柱。
006_0798_c_02L又舍成方是椽也。
006_0798_c_03L眞記云。所謂六相者。此中大意。盧
006_0798_c_04L舍那佛最尊勝。我等衆生最卑劣。舍
006_0798_c_05L那是惣相。衆生是別相。衆生身者。
006_0798_c_06L無別自體。全以舍那身成。然今示二
006_0798_c_07L各別義也。不他故云不起。不一故云
006_0798_c_08L起也。故康藏云。末依於本。有起不
006_0798_c_09L起。同相者。約衆生身。無餘物。唯是
006_0798_c_10L佛身。故衆生身帶有彼佛。異相者。
006_0798_c_11L雖衆生身帶彼佛身。而不動能帶恒
006_0798_c_12L衆生也。約帶義。云有同。約衆生義。云
006_0798_c_13L有異也。故康藏云。彼所起末。旣帶
006_0798_c_14L於本。是故相望有同有異。成相者。
006_0798_c_15L卑衆生身。即正尊佛身。無毫末許。與
006_0798_c_16L佛身別時。故不令同於彼。同相觀者。
006_0798_c_17L令同於彼。成相觀者。即正一耳。壞
006_0798_c_18L相者。法界差別之法。各自不動。即
006_0798_c_19L是衆生身中眞實德用。性在中道也。
006_0798_c_20L即正一耳。故云有存。各自不動故
006_0798_c_21L云有壞也。故康藏云。彼帶本之末。
006_0798_c_22L旣爲本攝。是故當體有存有壞也。
006_0798_c_23L古記云。昔林德。入唐就融順師。作
006_0798_c_24L難而問。旣已成佛。初初不動凡身
006_0798_c_25L「作」作「住」{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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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9_a_01L융순 스님이 이르기를, “육상 가운데 동상과 이상이 있으니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상.”라고 하였다.
문 어째서 육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통틀어 말하지 않고, 다만 특별히 동상과 이상만을 취하여 말하는가?답 만약 집을 기준으로 하여 말하면 별상은 곧 서까래 등의 모든 연이 총상의 집과 다른 것일 뿐이고, 그 모양과 굴곡, 길고 짧음을 보는 것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또 그 괴상이란 다만 모든 연이 각각 자기의 법에 머물러서 본래 짓지 않음을 보는 것이다. 오직 동상과 이상만이 하나의 연을 기준으로 함을 따라서 모든 연을 거두고 거느려서 만족된 집을 이룬다. 힘의 뜻이 가지런히 같으나 기둥은 팔척八尺이고 서까래는 곧 일장 이척(二丈)이며 기와는 일척 남짓(尺餘)이다. 이와 같이 길고 짧은 차별의 지위가 각각 스스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다만 이 뜻을 취하여 답한 것이다.
육상장
『육상장六相章』61)에 이른다.
一卽具多名摠相 하나가 곧 많음을 갖춘 것은 총상이라 이름하고
多卽非一是別相 많음이 곧 하나가 아닌 것은 별상이다.
多類自同成於摠 많은 부류가 스스로 같아서 총을 이루고
各體別異現於同 각각의 체가 달라서 같음을 나타낸다.
一多緣起理妙成 하나와 많음의 연기의 이법이 묘하게 이루어지고
壞住自法常不作 무너짐은 자신의 법에 머물러 항상 짓지 않는다.
唯智境界非事識 오직 지혜의 경계이고, 현상에 대한 알음알이(事識)가 아니니
以此方便會一乘 이 방편으로써 일승을 깨닫는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총상이란 근본인이다. 별상이란 나머지 굴곡들이니 별別이 인印을 의지하되 그 인印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근본인’은 별을 여읜 총이고, ‘그 인印을 만족시킨다’는 별을 거느린 총이다. 그러나 비록 두 가지 뜻이 있으나 두 가지 총은 없으니, 이른바 총이란 상대할 별이 없기 때문에 ‘별別을 여읜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별을 여읜 총이 이미 별을 가지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별을 거느린다’라고 한 것이다. 총을 의거하여 별을 여는 것에 부분적으로 여는 것(分開)과 완전히 여는 것(滿開)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여는 뜻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인印을 만족시킨다’라고 한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별 이외에 다시 근본의 총이 없는데 어째서 도인에 의지함과 도인을 만족시킴을 말하는가? -
006_0799_a_01L何。順云。六相之中。有同異也。有
006_0799_a_02L何難哉。已上。 問。何不通云有六相
006_0799_a_03L故。而但特取同異云耶。答。若約舍
006_0799_a_04L云。別則椽等諸綠。別於捴舍而已。
006_0799_a_05L第上之二第一七張 非謂見其形曲
006_0799_a_06L長短。又其壞者。但見諸綠各住
006_0799_a_07L自法本不作耳。唯同異相。隨約
006_0799_a_08L一緣。攝帶諸緣。成滿足舍。力義齊
006_0799_a_09L同。而柱則八尺。椽則丈二。瓦則
006_0799_a_10L尺餘。如是長短差別之位。各自不
006_0799_a_11L動故。但取此義而答也。
006_0799_a_12L六相章云。一即具多名捴相。多
006_0799_a_13L即非一是別相。多類自同成於摠。
006_0799_a_14L各體別異現於同。一多緣起理妙
006_0799_a_15L成。壞住自法常不作。唯智境界非
006_0799_a_16L事識。以此方便會一乘。
006_0799_a_17L大記云。摠相者。根本印。別相者。餘
006_0799_a_18L屈曲。別依止印。滿彼印故者。根本印
006_0799_a_19L者。離別之摠。滿彼印者。帶別之摠
006_0799_a_20L也。然雖有二義。而無二摠。所謂摠
006_0799_a_21L者無別可對。故云離別。然此離別
006_0799_a_22L之摠。旣攬別成。故云帶別耳。依摠開
006_0799_a_23L別。有分開滿開故。約滿開之義。云
006_0799_a_24L滿彼印也。問。若尒。別外更無本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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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9_b_01L답 실제를 기준으로 하여 말하면, 곧 마땅히 도인에 의지함과 도인을 만족시킴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곁이 없음을 깨달아 서로 알지 못하는 곳에 이르게 하기 위한 까닭에, 우선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여 이와 같이 말한 것일 뿐이다.
‘동상이란 인印이기 때문이다’란 모든 굴곡 등이 하나하나가 비록 다르나 한 가지 원만한 도인이기 때문이다. 같음(同)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말하자면 동등하기 때문에 같음과 하나이기 때문에 같음이다. 동등하기 때문에 같은 것은 육상의 나열된 문의 동상인 까닭에 여러 연이 서로 바라보아 힘의 뜻이 가지런히 같은 것이다. 하나이기 때문에 같은 것은 동상의 한 연이 모든 연을 거두어 다하니 곧 총이다.
‘이상이란 늘어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란 처음의 굴곡과 다음의 굴곡이 각각 달라서 늘어나는 수이기 때문이다. 늘어남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말하자면 안으로 향하여 늘어남과 밖으로 향하여 늘어남이다. 말하자면 총과 같은 모든 연이 서로 같지 않은 것은 안으로 향하여 늘어남이고, 서로 바라봄에 조화롭게 통하는 모든 연이 서로 같지 않은 것은 밖으로 향하여 늘어남이다.
‘성상이란 간략히 설하기 때문이다’란 말하자면 모든 굴곡이 합하여 하나의 도인을 이루기 때문이다. 모든 연의 구경의 자리에 이르러서 단지 하나의 연이 곧 바로 총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간략히 설한다’고 한 것이다. ‘괴상이란 널리 설하기 때문이다’란 모든 굴곡이 각각 머물러서 본래 지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연을 두루 살펴서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스스로 그러한(自如) 곳에 이르게 하는 까닭에 ‘널리 설한다’라고 한 것이다.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총상이란 근본인이다. 별상이란 나머지 굴곡들이다’라는 것은, 총은 하나가 많은 덕을 포함한 것이고 별은 많은 덕이 하나가 아닌 것이다.문 ‘하나’는 무엇이며 ‘많은 덕’은 무엇인가?답 법계의 법이 듦을 따라서 곁이 없는 뜻이 ‘하나’이다. 이 곁이 없는 하나의 다함없는 뜻이 ‘많은 덕’이다.문 곁이 없는 하나의 다함없는 뜻을 어떻게 보는가? -
006_0799_b_01L何云依印與滿印耶。答。約實而言。即
006_0799_b_02L不應云依印滿印。然欲令解無側
006_0799_b_03L至不相知處故。 1)且 [130] 分能所。如是云耳。
006_0799_b_04L同相者。印故者。諸屈曲等。一一雖別。
006_0799_b_05L而同是圓印故也。同有二義。謂等故
006_0799_b_06L同。一故同也。等故同者。六相列門
006_0799_b_07L之同相故。諸綠相望。力義齊同也。一
006_0799_b_08L故同者。同相一緣。攝盡諸緣。即是
006_0799_b_09L摠也。異相者。增相故者。初曲次曲。
006_0799_b_10L各異增數故也。增有二義。謂內向增
006_0799_b_11L外向增也。謂同於摠之諸緣。不相是
006_0799_b_12L者。內向增。互望和通之諸緣。不相是
006_0799_b_13L者。第上之二第一八張 外向增也。成
006_0799_b_14L相者。略說故者。謂諸屈曲合成一印
006_0799_b_15L故也。至於諸緣究竟之際。只言一
006_0799_b_16L綠即正是摠故。云略說也。壞相者
006_0799_b_17L廣說故者。諸曲各住。本無爲作故也。
006_0799_b_18L遍徵諸緣。令至不增不減自如之處
006_0799_b_19L故。云廣說也。
006_0799_b_20L法記云。摠相者。根本印。別相者。餘屈
006_0799_b_21L曲者。摠則一含多德。別則多德非一
006_0799_b_22L也。問。一者是何。多德是何。答。法界
006_0799_b_23L法之隨擧無側之義。是一也。此無側
006_0799_b_24L一之無盡之義。是多德也。問。無側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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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799_c_01L답 우선 이 연緣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을 기준으로 하여 말하면, 매 하나하나의 연이 모두 집을 만족시키는 것이 이것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법을 듦에 따라 곁이 없이 일어나서 구경에 상대를 끊은 것은 곁이 없는 하나이다. 이 하나가 포함하는 바 별의 덕도 또한 각각 모두 포함하여 하나하나가 구경인 까닭에 매 하나하나의 연이 모두 법을 만족시키는 것은 다함없는 덕이다.
만약 예를 들어 말하면 문수보살 선지식은 지혜와 비춤이 두 가지 모습이 없다. 만약 의지하는 바를 따라 풀어서 설하면,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볼 때 곧 삼천세계 티끌 수의 선지식을 본다. 말하자면 능히 비추는 지혜가 비추어지는 경계와 다만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문수를 볼 때 의지하는 바 삼천세계가 곧 선지식이니, 따라서 ‘삼천세계 티끌 수의 선지식을 본다’는 것이다. 만약 의지하는 바를 버리고 설하면, 곧 법계의 모든 법을 모두 잡아 지녀 하나의 문수를 이루기 때문에, 하나의 문수를 볼 때에 다만 삼천세계 티끌 수의 선지식을 볼 뿐만 아니라, 또한 법계의 티끌 수의 모든 선지식(善友)을 단박 참견參見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하나의 문수가 법계의 경계를 다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삼천세계 티끌 수의 선지식이 하나하나 또한 법계의 경계를 다하는 것이다.
문 그렇다면 하나의 문수인가, 여러 문수인가?답 기준으로 하는 바를 따라서 기준이 하나의 문수이며, 기준으로 하는 바를 따라서 기준이 하나의 집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문수 또한 가능하고 여러 문수 또한 가능하며, 하나의 집 또한 가능하고 여러 집 또한 가능하다.
‘동상이란 인印이기 때문이다’란 오십사각五十四角이 한 가지 하나의 원만한 도인이기 때문에 ‘굴곡은 다르지만 한가지 인印’이라고 하는 것이다.문 분동分同과 만동滿同의 뜻은 무엇인가?답 나누어서 다르게 할 수 없는 큰 허공을 나누어서 시방으로 하여, -
006_0799_c_01L之無盡之義。如何見耶。答。且約此緣
006_0799_c_02L成一堂云。則每一一緣。皆滿足堂者
006_0799_c_03L是也。謂隨擧一法無側起。而究竟
006_0799_c_04L絶待者。是無側一。此一所含別德。亦
006_0799_c_05L各統包。一一究竟故。每一一緣。皆滿
006_0799_c_06L足法者。是無盡之德也。若引例而言
006_0799_c_07L者。文殊知識。是智照無二相。若隨
006_0799_c_08L所依而散說。則善財見文殊時。即見
006_0799_c_09L三千世界塵數知識。謂能照智與所
006_0799_c_10L照境。只是一故。見一文殊時。所依
006_0799_c_11L三千。即是知識。故云即見三千世界
006_0799_c_12L塵數知識也。若捨所依而說。則摠攬
006_0799_c_13L法界諸法。成一文殊故。見一文殊時。
006_0799_c_14L非但得見三千世界塵數知識。亦得
006_0799_c_15L頓叅法界塵數諸善友也。是故約一
006_0799_c_16L文殊盡法界際。三千世界塵數知識。
006_0799_c_17L一一亦盡法界際也。問。然則。一文殊
006_0799_c_18L耶。多文殊耶。答。隨所約。約是一文殊。
006_0799_c_19L隨所約。約是一堂也。是故一文殊亦
006_0799_c_20L得。多文殊亦得。一堂亦得。多堂亦得
006_0799_c_21L也。第上之二第一九張 同相者。印故者。
006_0799_c_22L五十四角。同一印圓。故云曲別而同
006_0799_c_23L印也。問。分同滿同之義。云何。答。不可
006_0799_c_24L「且」作「具」{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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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0_a_01L한 방향의 허공이 큰 허공과 같을 때 시방의 허공이 동시에 같은 것은 만동이다. 오직 한 방향의 같은 것만을 보고 나머지 방향(의 허공이 큰 허공과) 같은 것을 보지 않는 것은 분동이다.
‘이상이란 늘어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란 (다음과 같다.)문 수數가 늘어나는 것인가, 자리(位)가 늘어나는 것인가?답 혹은 이르기를, “첫 번째 각, 두 번째 각, 이렇게 세기 때문에 그 수가 늘어남을 따라서 자리 또한 늘어난다.”라고 한다. 혹은 이르기를, “첫 번째, 두 번째, 이렇게 세기 때문에 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각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성상이란 간략히 설하기 때문이다’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집 앞에 서서 ‘사람 (있느냐?)’는 한마디 말로 집 안의 대중을 부르면 대중이 모두 입으로 대답(口許)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도인(印)’이라는 한마디 말로 도인을 부를 때 오십사각이 모두 도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강장 스님이 이르기를, “연緣으로 이루어져 화합한 것을 간략히 말해서 표방해 나타내는 것이다.”62)라고 하였다.문 동상 가운데 하나하나의 각이 원만한 도인과 같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 중에서는 무슨 뜻을 밝히는가?답 하나의 각곡角曲을 따라서 매 (각곡)마다 곧 도인인 것이 성상이 될 뿐이고, 모든 각이 도인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괴상이란 널리 설하기 때문이다’란, 마치 사람의 몸에 국집하여 그 ‘사람’의 이름을 따져봄에 (사람 몸 중의) 한 물건도 적합하게 ‘사람’의 이름을 받음이 없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널리 분별하여 오십사각을 차례로 살펴보아도 한 각도 ‘원만한 도인’의 이름을 받음이 없다. 그러므로 강장 스님이 이르기를, “연緣이 흩어져 지음이 없으니 널리 인연을 분별하는 것이다.”63)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도인 가운데 도인의 원만함은 총상이고, 원만한 도인의 모든 각곡은 별상이다. 모든 각곡의 하나하나가 가지런히 한 가지 도인인 것은 동상이고, 가지런히 한 가지 도인이지만 움직이지 않고 각각 다른 것은 이상이다. 움직이지 않고 다르지만 치우쳐 해당되는 바 없이 곧 바른 도인인 것은 성상이고, 곧 바른 도인이면서 각각 스스로 머물러 짓지 않는 것은 괴상이다. -
006_0800_a_01L分異之大虛。分爲十方。一方虛空。
006_0800_a_02L同大虛時。十方虛空。同時同者。滿同。
006_0800_a_03L唯見一方同。不見餘方同者。分同也。
006_0800_a_04L異相者。增相故者。問。數增耶。位增耶。
006_0800_a_05L答。一云。1)弟一角*弟二角。如是而數。
006_0800_a_06L故隨其數增。位亦增也。一云。*弟一
006_0800_a_07L*弟二。如是而數。故云數增。然非角
006_0800_a_08L增故。非位增也。成相者。略說故者。
006_0800_a_09L比如有人。立在堂前。以人一言。呼堂
006_0800_a_10L內衆。衆皆口許。如是以印一言。呼印
006_0800_a_11L之時。五十四角。皆即是印。故康藏
006_0800_a_12L云。綠成和合。略言標現。問。同相中。
006_0800_a_13L明一一角同於圓印之義。此中明何
006_0800_a_14L義耶。答。隨一角曲。每即是印。爲成相
006_0800_a_15L耳。非謂諸角成於印也。壞相者。廣說
006_0800_a_16L故者。如執人身。詰其人名。無有一物
006_0800_a_17L的受人名。如是廣辨五十四角。次*弟
006_0800_a_18L詰之。無有一角受圓印名。故康藏云。
006_0800_a_19L緣散無作。廣辨因緣也。故此印中印
006_0800_a_20L之圓滿者。是摠相也。圓滿印之諸角
006_0800_a_21L曲者。是別相也。諸角曲之二 [127] 齊同
006_0800_a_22L印者。是同相也。齊同印而不動各異
006_0800_a_23L者。是異相也。不動異而無所偏當即
006_0800_a_24L正印者。是成相也。即正印而各各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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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0_b_01L이 육상의 문이 바로 일승의, 함께하지 않는 방편이며 또한 함께하지 않는 법의 체體이다.
이 육상으로 또 삼관三觀에 배대하면 별상은 변계이고, 동상과 이상은 인연관이며, 성상과 괴상은 연기관이고, 근본의 총상은 성기관이다. 이는 지위에 의해서 말한 것이고, 만약 일승을 기준으로 하면 인연ㆍ연기ㆍ성기의 삼관이 얕고 깊음이 없다.
‘총상은 뜻이 원교에 해당하고, 별상은 뜻이 삼승교에 해당한다’라는 것은,문 원교는 동교인가, 별교인가?답 동교이다. 말하자면 도인의 원만함은 원교이고 오십사각은 삼승이다. 그러므로 원교와 삼승이 모두 동교이다. 무엇인가? 도인의 원만함을 여의고는 모든 각곡이 없으며, 모든 각곡을 여의고는 도인의 원만함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신림 대덕은 이 도리를 의거하여 오중의 총상과 별상을 세웠다. 말하자면 첫째는 별을 여읜 총이니, 오중해인의 첫 해인이다. 둘째는 별을 거느리되 별을 여읜 총이며 또한 연 가운데 나타나되 연을 여읜 총이라고도 하니, 제2해인이다. 셋째는 총이 곧 별이고 별이 곧 총이니, 제3해인이다. 넷째는 또한 총이고 또한 별이니, 제4해인이다. 다섯째는 총도 아니고 별도 아니니, 제5해인이다. 말하자면 별을 잡아 지녀 총을 이루기 때문에 총이 아니고, 총을 의지해서 별을 이루기 때문에 별이 아니니 아울러 형체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이 오중 안에서 처음은 총이고 다음은 별이며, 또 제2는 총이고 제3은 별 등이니 이와 같이 서로 바라보아 총과 별을 짓는다. 또 이 하나하나가 각각 총과 별을 갖춘다. 말하자면 첫 해인을 제외하고 제이중해인에서 부처님의 증득하신 마음은 총이고 나타난 삼세간은 별이니, 이 별이 총보다 하열하지 않다. -
006_0800_b_01L住不爲作者。是壞相也。此六相門。
006_0800_b_02L正是一乘不共方便。亦是不共法體
006_0800_b_03L也。以此六相。且配三觀。則別相是遍
006_0800_b_04L計也。同異則因緣觀。成壞則緣起觀。
006_0800_b_05L第上之二第二○張 本摠則性起觀也。
006_0800_b_06L此則寄位言耳。若約一乘。則因綠綠
006_0800_b_07L起性起三觀。無淺深也。惣相者。義當
006_0800_b_08L圓敎。別相者。義當三乘敎者。問。圓
006_0800_b_09L敎者。是同敎耶。是別敎耶。答。是同
006_0800_b_10L敎也。謂印圓是圓敎。五十四角是三
006_0800_b_11L乘。是故圓敎及三乘。皆同敎也。何者。
006_0800_b_12L離印圓。無諸角。離諸角。無印圓故也。
006_0800_b_13L大記云。林德。依此處。立五重惣別。謂
006_0800_b_14L一離別之惣。是五重海印之初海印
006_0800_b_15L也。二帶別而離別之惣。亦云緣中
006_0800_b_16L現而離緣之惣。是*弟二海印也。三
006_0800_b_17L惣即別別即惣。是*弟三海印。四亦
006_0800_b_18L惣亦別。是*弟四海印也。五非惣非
006_0800_b_19L別。是*弟五海印也。謂攬別成捴故
006_0800_b_20L非捴。 依捴成別故非別。並形奪故也。
006_0800_b_21L於此五重之內。初捴次別。又*弟二
006_0800_b_22L捴。*弟三別等。如是相望。而作捴別。
006_0800_b_23L又此二 [128] 各具捴別也。謂除初海印。於
006_0800_b_24L*弟二重。佛訂心是捴。 所現三世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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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0_c_01L이 가운데 동ㆍ이ㆍ성ㆍ괴는 없으니, 이 총과 별이 다만 한 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연기인 육상이 들어가는 바인 참된 근원이다. 제삼중해인에서는 육상을 쓰는 데 방해롭지 않으나, 이 또한 법의 체이고 방편의 육상은 아니다.
제사중 이후를 기준으로 하여 인연ㆍ연기ㆍ성기 등의 삼관을 배대하면, 세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말하자면 첫째는 총상이란 머무름 없는 별교이고 별상은 흘러나온 바 삼승이다. 목표로 하는 바(所目) 중에서 동상ㆍ이상은 인연관이고 성상은 연기관이며 괴상은 성기관이다. 이 가운데 다스리는 바 병을 기준으로 하여 별상으로 삼을 뿐이고, 능히 다스리는 육상 가운데 별상은 아니다. 둘째는 머무름 없는 별교와 달리 집착하는 삼승을 제하고 목표로 하는 바에 나아가면, 총상ㆍ별상은 성기관이고 동상ㆍ이상은 인연관이며 성상ㆍ괴상은 연기관이다. 또 이 삼관이 하나하나가 각각 육상을 갖춘다. 이 제사중 이후는 방편의 육상이다. 이 오중(五重海印)으로 곳곳의 문장을 해석함에 뜻과 이치가 비로소 다하니, 지금 이 글 중에도 오중을 갖춘다.
고기
‘고기’에 이른다. 의상 화상이 총장總章 원년(668) 10월 11일 청선사淸禪寺64) 반야원般若院에서 지엄 스님에게 여쭈었다. “보법의 궤칙을 받아 지니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기를, “그대가 지닐 수 있겠는가? 우선 옷깃을 들면 털이 가지런해지고 벼리를 집으면 그물눈이 바르게 된다.”라고 하였다. (의상 스님이) 여쭈었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기를, “아래로는 세속의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도의 실상이다.”라고 하고, 이어서 십중의 총상과 별상을 설하여 이를 보였다. -
006_0800_c_01L別。此別不劣於捴也。此中無同異成
006_0800_c_02L壞。此之捴別。只 是一體故。是綠起
006_0800_c_03L六相之所入眞源也。於*弟三重。不
006_0800_c_04L防用六相也。此亦法體。非方便六相
006_0800_c_05L也。約*弟四重以去。配因綠緣起性
006_0800_c_06L起等三觀。含有三義。謂一捴相者。無
006_0800_c_07L住別敎。別相者。所流三乘。於所目
006_0800_c_08L中。同異相者因緣觀。成相者緣起
006_0800_c_09L觀。壞相者性起觀。此中約所治之
006_0800_c_10L病。爲別相耳。非能治六相中別相也。
006_0800_c_11L二除無住別敎及別執三乘。就所目
006_0800_c_12L中。 捴別相者性起觀。同異相者因
006_0800_c_13L綠觀。成壞相者緣起觀也。又此三
006_0800_c_14L觀第上之二第二一張 一一各具六相
006_0800_c_15L也。此*弟四重。以去。是方便六相也。
006_0800_c_16L以此五重。釋處處文。義理方盡。今此
006_0800_c_17L文中。具五重也。
006_0800_c_18L古記云。相和尙。捴章元年十月十
006_0800_c_19L一日。在淸禪寺般若院中。問於儼
006_0800_c_20L師。受持普法軌則云何。師曰。汝
006_0800_c_21L能持否。且擧領毛齊。提2)網 [131] [129] 目正也。
006_0800_c_22L問。是義云何。師曰。下至世俗之法。
006_0800_c_23L皆是中道實相也。遂說十重捴別。
006_0800_c_24L「弟」作「第」{乙}次同。「網」作「綱」{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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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1_a_01L지엄 스님의 행장 중 총과 별의 글이 바로 이것이다.
첫째는 수순함이 총摠이고 거스름이 별別이다. 말하자면 총상인 과법이 티끌 수의 연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순함이 총이다. 총을 이루는 연이 다르기 때문에 거스름이 별이다.둘째는 거스름이 총이고 수순함이 별이다. 말하자면 총을 이루는 연이 자기의 자리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거스름이 총이다. 자기의 자리를 움직이지 아니하나 능히 이루기 때문에 수순함이 별이다.셋째는 별과 같은 총이며 총과 같은 별이다. 말하자면 별이 온전히 총이기 때문에 별과 같은 총이다. 총이 온전히 별이기 때문에 총과 같은 별이다.
넷째는 별을 알지 못하는 총이며 총을 알지 못하는 별이다. 말하자면 이루어지는 총 가운데 별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별을 알지 못하는 총이다. 능히 이루는 연 가운데 총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총을 알지 못하는 별이다.다섯째는 별을 여읜 총이며 총을 여읜 별이다. 말하자면 총상인 과법 가운데 연이 총 아님이 없기 때문에 별을 여읜 총이다. 총과 다른 별이 없기 때문에 총을 여읜 별이다.
여섯째는 머무름 없음이 총이고 머무름 없음이 별이다. 말하자면 머무름이 없다는 것은 자재하지 않다는 뜻이니, 총상인 과법이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머무름 없음이 총이라고 한다. 이 머무름 없는 총이 티끌 수의 연 가운데 치우쳐 해당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머무름 없음이 별이다.일곱째는 실상이 총이고 실상이 별이다. 말하자면 총상인 과법이 지智의 분별하여 깨달아 앎을 여의었기 때문에 실상이 총이다. 연이 별상이 없기 때문에 실상이 별이니 이른바 모습이 없음이다.
여덟째는 법성이 총이고 법성이 별이다. 말하자면 총상인 과법이 성性이 스스로 원만히 통하여 연을 만나면 이에 수순하기 때문에 법성이 총이다. 이 수순하는 법이 온전히 온전히 곁이 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법성이 별이라고 한다. -
006_0801_a_01L以示之。儼師行錄中捴別之文。即
006_0801_a_02L是此也。一順捴違別。謂捴相果法。
006_0801_a_03L以塵數緣成故。順則捴。 成捴緣別
006_0801_a_04L故。違則別也。二違捴順別。謂成
006_0801_a_05L捴之緣。自位不動故。違則捴。 自
006_0801_a_06L位不動而能成故。順則別也。三如
006_0801_a_07L別之捴。 如捴之別。謂別全是捴故。
006_0801_a_08L如別之捴。 捴全是別故。如捴之別
006_0801_a_09L也。四別不知之捴。 捴不知之別。
006_0801_a_10L謂所成捴中無別皃故。別不知之
006_0801_a_11L捴。 能成緣中無捴皃故。 捴不知之
006_0801_a_12L別也。五離別之捴。 離捴之別。謂
006_0801_a_13L捴相果中緣而無不捴故。離別之
006_0801_a_14L捴。 無異捴之別故。離捴之別也。
006_0801_a_15L六無住捴。無住別。謂無住者。不自
006_0801_a_16L在義。以捴相果法。不住於自。故
006_0801_a_17L云無住捴。 此無住捴。 塵數緣中
006_0801_a_18L無所偏當故。無住別也。七實相捴。
006_0801_a_19L實相別。謂捴相果法。離於智之分
006_0801_a_20L別了知故。實相捴。 緣無別相故。
006_0801_a_21L實相別也。所謂無相也。八法性捴。
006_0801_a_22L法性別。謂捴相果法。性自圓通。
006_0801_a_23L觸緣斯順故。第上之二第二二張 法
006_0801_a_24L性捴。 斯順之法。全全無側起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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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1_b_01L아홉째는 해인이 총이고 해인이 별이다. 말하자면 다함없는 법수法數가 두렷이 밝게 몰록 나타나 남음이 없기 때문에 해인이 총이라고 한다. 몰록 나타난 법이 각각 서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인이 별이라고 한다.열째는 증득이 총이고 증득이 별이다. 말하자면 총상인 과법은 오직 부처님만 증득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에 증득이 총이라고 한다. 이 증득 중에 모든 법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증득이 별이라고 한다.
신림 대덕이 이르기를, “이 열 가지의 총과 별로 법을 평등하게 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티끌, 하나의 개미가 노사나불과 더불어 원래 한 몸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뜻에 의거하여야 비로소 동시에 갖추어짐(同時具足)과 인드라그물의 미세한 경계65) 등이 있다.”라고 하였다.
문 넷째의 총ㆍ별이 다섯째와 어떻게 다른가?답 넷째는 비록 서로 알지 못하나 두 지위의 다름이 없는 것은 아니며, 다섯째는 하나의 체體에서 총을 말하고 별을 말하는 까닭에 다르다.문 여섯째의 머무름 없음이 총ㆍ별인 것은 일곱째의 실상이 총ㆍ별인 것과 어떻게 다른가?답 실상은 지智의 분별을 여읜 것을 말하니, 곧 여섯째의 머무름 없는 지智를 가려낸 것이다. 여덟째 법성을 구족함에 이르러서 이지理智를 알 수 있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총상ㆍ별상’에서 ‘항상 중도에 있다’66)까지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뜻은 총상으로부터 중도에 이르러 비로소 ‘같다(如)’라는 것이고,67) (다른) 하나의 뜻은 총상ㆍ별상 다음에 바로 ‘같다’라는 것이다.68)
풀이하면, 처음 뜻은 총은 별이 아니고 별은 총이 아니며 성은 괴가 아니고 괴는 성이 아닌 것 등인 까닭에 ‘즉하지도 않고’, ‘하나도 아니고’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총이 온전히 별이고 별이 온전히 총이기 때문에 ‘여의지도 않으며’, ‘다르지도 아니하여’ 등이라고 한 것이다.뒤의 뜻은 ‘즉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는 성상ㆍ괴상이고,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아니하여’는 동상ㆍ이상이다. -
006_0801_b_01L云法性別也。九海印捴。海印別。謂
006_0801_b_02L無盡法數圓1)▣ [132] 頓現無遺故。云
006_0801_b_03L海印捴。頓現之法。各不相知故。云
006_0801_b_04L海印別也。十訂捴訂別。謂捴相果
006_0801_b_05L法。唯佛訂處故。云訂捴。 於此訂
006_0801_b_06L中。諸法不動故。云訂別也。林德
006_0801_b_07L云。以此十重捴別。平法然後。方能
006_0801_b_08L得見一塵一蟻與舍那佛元是一
006_0801_b_09L身。依如是等義。方有同時具足
006_0801_b_10L及因陁羅網微細境界等也。問。2)弟
006_0801_b_11L四捴別與*弟五。何別。答。*弟四重。
006_0801_b_12L雖不相知。非無二位之殊。 *弟五
006_0801_b_13L重。則於一體上。云捴云別故。別也。
006_0801_b_14L問。*弟六無住捴別。與*弟七實相
006_0801_b_15L捴別。何別。答。實相云離於智之分
006_0801_b_16L別。則簡於*弟六無住之智也。至
006_0801_b_17L於*弟八。法性具足。理智可知也。
006_0801_b_18L大記云。如捴相別相乃至常在中道
006_0801_b_19L者。有二釋。謂一意。從捴相至中道。方
006_0801_b_20L云如字。一意。於捴相別相下。即云如
006_0801_b_21L字。解云。初意。則捴非別。別非捴。 成非
006_0801_b_22L壞。壞非成等。故云不即不一。然而捴
006_0801_b_23L全別。別全捴。 故云不離不異等也。後
006_0801_b_24L意。則不即不離則成壞相也。不一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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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1_c_01L말하자면 아래 가르침의 사람이 구경의 과보의 자리에 이르름에 진실과 허망이 같은 체라고 집착하므로 괴상의 도장으로 도장 찍으면, 진실과 허망이 각자 머물러 본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즉하지도 않고’라고 한다. 성상의 도장으로 도장 찍으면 진실과 허망이 진실이기 때문에 ‘여의지도 않는다’라고 한다. 또 시각이 본각과 같은 지위를 만남에 범부와 성인이 하나다, 다르다라는 병이 있기 때문에 동상(과 이상)으로써 이를 다스린다.69) 말하자면 (시각이) 본각과 즉하여 같아지는 날에 범부와 성인이 한 몸이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이상으로써 이를 다스리면 범부와 성인이 각각 다르므로 ‘하나도 아니고’라고 하며, 동상으로써 이를 다스리면 범부와 성인이 하나이므로 ‘다르지도 아니하여’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연ㆍ연기(ㆍ성기) 등의 삼관으로써, 다르다고 집착하는 삼승의 ‘즉함’과 ‘여읨’과 ‘하나’와 ‘다름’의 병을 상대하여 다스리기 때문에, 그 삼승의 권속이 일승의 주主와 더불어 즉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는 반伴이 되어서, 두렷이 밝으며 덕을 갖춘 주主와 반伴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문 육상을 쓰면 병이 마땅히 이미 다 나을 것인데 어째서 다시 4구를 쓸 필요가 있는가?답 만약 총상을 얻으면 4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르다고 계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4구를 설하는 것뿐이다.
‘일승과 삼승이 주主와 반伴을 서로 이룬다’란,문 한결같이 일승은 주主이고 삼승은 반伴인가, 혹은 이와 반대로 해서도 말하는가?답 어떤 이는 뒤와 같다고 말한다. 비록 그러나 오직 한결같이 일승이 주主이고 삼승은 반伴이다. 말하자면 한결같이 근본의 들어감(根本入)을 총상이라 이름하고 아홉 가지 들어감(九入)을 별상이라 이름할 뿐이다. 근본의 들어감의 이름으로 별상을 삼고 나머지 아홉 가지 들어감의 이름으로 총상을 삼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일승의 이름으로 총상을 삼고 주主를 삼으며, 삼승의 이름으로 별상을 삼고 반伴을 삼는다.
문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주主와 반伴을 서로 이룬다.”라고 말하는가? -
006_0801_c_01L異則同異相也。謂下敎人。至究竟果
006_0801_c_02L處。執眞妄同體故。以壞相印印之。
006_0801_c_03L則眞妄各住本來不動。故云不即。以
006_0801_c_04L成相印印之。則眞妄眞。故云不離也。
006_0801_c_05L又當始覺同本覺之位。有凡聖一異
006_0801_c_06L之病故。以同相治之。謂即同本覺之
006_0801_c_07L日。執凡聖一身故。以異相治之。凡
006_0801_c_08L聖各異。故云不一。以同相治之。凡
006_0801_c_09L聖一量。故云不異也。如是以因緣緣
006_0801_c_10L起等三觀。第上之二第二三張 對治別
006_0801_c_11L執三乘即離一異之病故。其三乘眷
006_0801_c_12L屬。與一乘主。爲不即不離之伴。得成
006_0801_c_13L圓明具德之主伴也。問。用六相則病
006_0801_c_14L應已盡。何須更用四句耶。答。若得捴
006_0801_c_15L相。則不須四句。然爲3)計 [133] 別之人。說
006_0801_c_16L四句耳。一乘三乘主伴相成者。問。一
006_0801_c_17L向一乘主三乘伴耶。或反此而云耶。
006_0801_c_18L答。有云如後。雖然。唯是一向一乘是
006_0801_c_19L主。三乘是伴也。謂一向根本入名爲
006_0801_c_20L捴。 九入名爲別耳。非以根本入之名
006_0801_c_21L爲別。餘九入名爲惣故。但以一乘之
006_0801_c_22L名。爲捴爲主。三乘之名。爲別爲伴也。
006_0801_c_23L問。若爾。何故。云主伴相成耶。答。由
006_0801_c_24L▣高麗大藏經影印本作「明」{編}。「弟」作「第」
006_0801_c_25L{乙}次同。「計」作「許」{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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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2_a_01L답 일승을 말미암기 때문에 삼승이 있고 삼승을 말미암기 때문에 일승이 있다. 그러므로 일승은 삼승을 모두 포함하여 주主가 되고, 삼승은 반드시 일승에 의거하여 반伴이 되기 때문에 ‘서로 이룬다’라고 한 것이다.
‘일승의 별교와 삼승의 별교도 뜻에 준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육상의 뜻을 쓰면 오직 동교의 문이기 때문에 일승별교와 삼승별교를 제외한다. 그러나 만약 자세하게 설하면, 일승별교가 주主가 되고 삼승별교가 권속으로서 반伴이니, 이를 기준으로 하여 중도의 뜻을 나타내 보이면 준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이르기를, “앞에서 말한 원교와 삼승은 모두 동교인데, 지금 이 일승별교는 동교보다 깊고 삼승별교는 동교보다 낮으니, 뜻에 준하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오직 스스로 그러함(自如)에 머무른다’란, 삼승의 모습은 융섭하지만 체는 융섭하지 않는 평등한 진여가 아니다. 체와 모습이 함께 융섭되어 분별이 없는 자리와 더불어 괴상 가운데 본래 짓지 않으며 각각 스스로 그러함에 머무는 뜻을 기준으로 하여 이른 것이다. “삼승방편의 가르침의 문에 의하므로 높고 낮음이 같지 않다.” 등이란 만약 삼승방편의 수행을 기준으로 하면 원인과 결과를 차례로 늘어놓아(行布) 위와 아래가 같지 않으나, 만약 일승의 진실한 뜻에 의하면 원인과 결과가 원융하여 법성의 덕용德用이 다만 중도에 있으므로 ‘앞과 뒤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간의장
『간의장簡義章』70)에 이른다. 원융과 항포行布에 네 가지 문이 있음을 설한다.첫째, 삼승은 항포이고 일승은 원융이다. 『법계도』의 본문에서 “삼승방편의 가르침에 의하므로 높고 낮음이 같지 않으며 일승원교에 의하므로 앞과 뒤가 없다.”라는 등으로 말한 것과 같다.둘째, 이 『(화엄)경』 가운데 나아가 바깥 모습(外相)이 동교인 것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동上同이니, 71) -
006_0802_a_01L一乘故有三乘。由三乘故有一乘。是
006_0802_a_02L故。一乘則捴含三乘爲主。三乘則要
006_0802_a_03L依一乘爲伴。故云相成也。一乘別敎
006_0802_a_04L三乘別敎。准義可解者。用六相義。唯
006_0802_a_05L同敎門故。除一乘別敎及三乘別敎。
006_0802_a_06L然若委說。則一乘別敎爲主。三乘別
006_0802_a_07L敎是眷屬伴。約此現示中道之義。可
006_0802_a_08L准解也。一云。前云圓敎及三乘。皆是
006_0802_a_09L同敎。今此一乘別敎。深於同敎。三
006_0802_a_10L乘別敎。淺於同敎。准義可解故也。
006_0802_a_11L法記云。唯住自如者。非是三乘相融
006_0802_a_12L體不融之平等眞如也。約體相俱融。
006_0802_a_13L無分別之處。與壞相中。本來不作。
006_0802_a_14L各住自如之義云也。依三乘方便敎
006_0802_a_15L門故。高下不同等者。若約三乘方便
006_0802_a_16L修行。則行布因果高下不同。若依一
006_0802_a_17L乘實意。則因果圓融。法性德用。但在
006_0802_a_18L中道。故云無有前後也。第上之二第二
006_0802_a_19L四張。
006_0802_a_20L簡義章云。圓融行布說有四門。一
006_0802_a_21L三乘行布一乘圓融。如圖文云。依
006_0802_a_22L三乘方便敎門故。高下不同。依一
006_0802_a_23L乘圓敎故。無有前後等。二就此經
006_0802_a_24L中。外相同敎有二。一上同。以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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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2_b_01L둘째는 하동下同이니, 아래로 땅에 (그린) 그림과 비슷하여 앞과 뒤가 있기 때문이다. 상동은 원융의 뜻이고 하동은 항포의 뜻이다. 「십지품」에서 한 마리 새의 자취가 두 가지에 통하는 것72)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 바깥 모습이 동교인 것으로 항포를 삼고 자체의 별교로 원융을 삼는다. 「소전차별장」에 이르기를, “모든 가르침을 안립하는 데 두 가지 선교가 있다.”73)라고 하는 등과 같다. 또 『과간科簡』74)에 이르기를, “보현의 지위가 둘이 있다.”75)라고 하는 등이 이것이다.넷째, 자체의 별교에 나아가 본래의 지위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항포이고 걸림 없이 원융한 것이 원융이다. 말하자면 광대함과 협소함 가운데 나눔과 나눔이 없음이다.76) 또 상입문에서 본성이 없음과 무너지지 않음이다. 또 자기의 자리를 움직이지 않으면서 항상 가고 오는 것이다. 또 육상 중에서 셋은 원융이고 셋은 항포 등이다.77)
2) 십입十入
‘모든 보살이란’부터 ‘오온(陰)ㆍ십팔계(界)ㆍ십이처(入) 등이다’까지78)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논에서 말한다. 모든 보살(一切菩薩)이란 신信ㆍ행行ㆍ지地에 머무르는 자를 말한다’라고 한 것은, 신信은 십신十信이고, 행行은 삼현三賢이며, 지地는 십지十地이다. 만약 크게 나누는 문에 의하면 신信ㆍ행行의 지위는 삼현이고 증득을 얻음은 십지이다.‘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不可思議諸佛法)이란 출세간도의 품류이다’라고 한 것은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은 곧 부처님의 안으로 증득하심(內證)이다. 말하자면 마치 연못의 물이 그림자를 갖추어 포함하는 것과 같으니 두 가지 뜻이 있다. 말하자면 모든 모양을 거두어들이는 뜻과 모든 모양을 나타내는 뜻으로, 어떤 한 사람이 연못가에 서서 이 모든 모양을 보고 다른 이를 위해 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이 증득하신 세 가지 세간이 자신의 몸과 마음이 됨은 저 물 가운데 모든 모양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고, 자신의 안으로 증득함으로써 근기에 임하여 밖을 향하여 십지를 나누어 보이는 것은 저 물 가운데 모든 모양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
006_0802_b_01L畫向空。即體同空。隨分無㝵。二
006_0802_b_02L下同。下似地畫。有前後故。上同
006_0802_b_03L是圓融義。下同是行布義。如地品
006_0802_b_04L中。以一鳥跡通於二故。三外相
006_0802_b_05L同敎爲行布。自體別敎爲圓融。如
006_0802_b_06L所詮章云。安立諸敎。有二善巧等。
006_0802_b_07L又科簡云。普賢位有二等是也。四
006_0802_b_08L就自體別敎。不壞本位是行布。無
006_0802_b_09L㝵圓融是圓融。謂廣1)俠中分無分。
006_0802_b_10L又相入門。無性不壞。又不動自位。
006_0802_b_11L而恒去來。又六相中。三圓融三行
006_0802_b_12L布等也。
006_0802_b_13L一切菩薩 至陰界入等。法記云。論曰。
006_0802_b_14L一切菩薩者。謂住信行地者。信者十
006_0802_b_15L信。行者三賢。地者十地也。若約大
006_0802_b_16L分門。則信行地者三賢。得2)訂者十
006_0802_b_17L地也。不可思議諸佛法者。是出世間
006_0802_b_18L道品者。不思議佛法。則是佛內訂也。
006_0802_b_19L謂猶如池水具含影像。有二義也。謂
006_0802_b_20L攝入諸像義。及現現諸像義。而有
006_0802_b_21L一人立在池邊。見此諸像。爲他說也。
006_0802_b_22L如是佛訂三種世間。爲自身心。如彼
006_0802_b_23L水中。攝入諸像。以自內訂。臨機外向。
006_0802_b_24L分示十地。如彼水中。現現諸像。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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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2_c_01L금강장보살이 삼매79) 중에서 부처님의 밖으로 향하시는 법을 잘 받고 삼매에서 나온 후에 근기를 위하여 설하는 것은, 저 한 사람이 연못가에 서서 물속의 영상을 보고 다른 이에게 설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만약 안으로 증득함을 기준으로 하면 오직 불가사의한 법이고 십지의 모습은 없다. 그러나 앞의 근기가 삼승이 많기 때문에 부처님의 뜻이 십지를 설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밖으로 향하는 마음에 십지를 나누어 보이는 것은 뜻이 큼(義大)이니 설할 수 없다. 금강장보살이 삼매에 들어가서 그 법을 잘 받고 삼매에서 나온 이후에 설한 십지는 설함이 큼(說大)이니 말할 수 있다.80)그러므로 지상 스님이 이르기를, “지地에 두 부분이 있으니, 첫째는 원인이고 둘째는 결과이다. 원인은 말하자면 세간의 방편행을 닦는 것이니, 곧 가행의 지地의 영역이다. 결과는 말하자면 세간을 벗어나 모습을 여읜 진실을 증득하는 것으로 곧 바르게 증득한 지혜의 영역이다.”81)라고 하였다.
‘출세간도의 품류’란,문 어째서 출세간의 자리에서 도道에 품류가 있는가?답 만약 불가사의한 법을 기준으로 하면 비록 도道에 품류가 없지만 그러나 근기의 인연을 위하여 십지를 나누어 보이기 때문에 도道에 품류가 있다. 그러므로 지상 스님은 이르기를, “지금 이 십지는 부처님의 원인의 지위를 거두어 일승ㆍ삼승ㆍ성문ㆍ인천人天이 함께 그 가운데 있어서 오승五乘82)의 관觀하는 바가 된다. 보현보살이 증득한 지위는 부처님 과보가 거두어 작용하는 것이 걸림 없이 자재하여 일체를 모두 다한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십지의 법이 중생을 거두는 가운데 가장 첫 문이기 때문이며, (십)지의 법이 매우 깊어서 깨달아 구별하기가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83)라고 하였다.
‘광명(明)이란 봄(見)과 지혜(智)와 얻음(得)과 깨달음(證)이다’라는 것은, 깨달아 보는 지혜로써 중생의 몸과 마음이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임을 깨닫는 것이다.문 무슨 까닭에 중생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가?답 만약 깨달아 보는 지혜를 기준으로 한다면, 움직이지 않는 오늘의 낱낱 중생의 몸과 마음이 곧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이며, 곧 세간도世間道의 품류이다. -
006_0802_c_01L剛藏之定中。稱受佛外向法。出定已
006_0802_c_02L後。爲機而說。如彼一人。立在池邊。
006_0802_c_03L見水中像。與他說也。謂如約內訂。
006_0802_c_04L則唯不思議法。無十地相。然以前機。
006_0802_c_05L多三乘故。第上之二第二五張 佛意欲
006_0802_c_06L令爲說十地。故於外向心頭。分示十
006_0802_c_07L地。是義大不可說。剛藏入定。稱受
006_0802_c_08L其法。出定已後。所說十地。是說大
006_0802_c_09L可說也。故至相云。地有二分。一因
006_0802_c_10L二果。因謂世間方便行修。即加行地
006_0802_c_11L分齊。果謂出世離相眞訂。即正訂智
006_0802_c_12L分齊也。出世間道品者。問。何故出世
006_0802_c_13L間處道有品耶。答。若約不思議法。則
006_0802_c_14L雖無道品。然爲機緣。分示十地故。有
006_0802_c_15L道品。是故至相云。今此十地者。攝
006_0802_c_16L佛因位。一乘三乘聲聞人天。並在其
006_0802_c_17L中。爲五乘所觀。普賢訂位。佛果攝
006_0802_c_18L用。無㝵自在。一切皆盡。何以故。十
006_0802_c_19L地之法。攝衆生中最初門故。地法甚
006_0802_c_20L深。最難了別故也。明者見智得訂者。
006_0802_c_21L以訂見之智。得訂衆生身心是不思
006_0802_c_22L議佛法也。問。何故衆生不知不見耶。
006_0802_c_23L答。若約訂見之智。不動今日箇箇衆
006_0802_c_24L生之身心。即是不思議佛法。即是世
006_0802_c_25L「俠」作「狹」{乙}。「訂」通「證」於此書{編}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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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3_a_01L그러나 다만 범부가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문 무슨 까닭에 지상 스님은 이르기를, “앞의 둘은 관의 깨침(觀解)이고 뒤의 둘은 행의 깨침(行解)이니, 봄(見)은 시작이고 지혜(智)는 끝이며 얻음(得)은 시작이고 깨달음(證)은 끝이다.”84)라고 하였는가?답 이것은 다만 수행에 기대어 말한 것이다. 만약 임시방편으로 말한다면, 두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의 겁 동안 연기의 실상 다라니를 닦는 것은 관의 깨침(觀解)이고, 찰나찰나 얻고 깨닫는 것은 행의 깨침(行解)이다.
‘설한다(說)란 그중에서 분별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만약 부처님의 마음을 기준으로 하면 비록 십지가 없으나, 인도되는 근기가 삼승이 많으므로 금강장보살에게 가피하여 십지를 설하게 하여, 신信ㆍ행行ㆍ지地의 보살이 지혜의 지地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려는 까닭에, 이에 후에 얻는 필筆 중에서 십지를 나누어 보이는 것으로 설함을 삼는다. 둘째는 금강장보살이 삼매 중에서 잘 받아 후에 얻는 말(言說)로 설함을 삼는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말이 없음으로 그 설함을 삼기 때문에 이는 말이 없는 가르침의 근본이며, 금강장보살의 잘 받음도 또한 말이 없으나 말을 기다리는 가르침의 근본이 된다.85)
‘들어간다(入)란 믿고 좋아하며 얻고 깨닫는 것이다’라는 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미 닦아 익힌 것은 그대의 몸과 마음을 깨닫는 것이니, 그대들은 다시 다른 일이 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무슨 까닭에 우리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가? 다만 믿음이 없기 때문에 알지 못할 뿐이고, 믿으면 곧 알 수 있으니 반드시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기의 몸과 마음이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임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믿음(信)’이라고 한다. 이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항상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함(樂)’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믿고 좋아하므로 자기의 몸과 마음을 직접 깨닫기 때문에 ‘얻음과 깨달음(得證)’이라고 한다.
‘지혜의 지地란 십지의 지혜를 말한다’란 지상 스님과 혜원 스님이 같이 이 구절86)로 근본의 들어감(根本入)을 삼았다.87)문 가피로 이루려는 바(加所爲)88)의 이십 구89)는 (부처님이) 바로 설하시는 때의 말씀인가? 경전을 (전한) 사람(經家)이 열거한 것인가?90) -
006_0803_a_01L間道品。然但凡夫自不知耳。問。何故。
006_0803_a_02L至相云。前二觀解。後二行解。見始
006_0803_a_03L智終。得始訂終耶。答。此但寄修云耳。
006_0803_a_04L若假言者。二佛世界塵數劫中。修緣
006_0803_a_05L起實相陁羅尼者。是觀解。念念得訂
006_0803_a_06L者。是行解也。說者於中分別者。有
006_0803_a_07L二。一若約佛心。則雖無十地。由所引
006_0803_a_08L機多三乘故。加金剛藏。爲說十地。欲
006_0803_a_09L令信行地菩薩。訂入智惠地故。乃於
006_0803_a_10L後得筆中。分示十地。以爲說也。二剛
006_0803_a_11L藏菩薩。定中稱受。後得言說。以爲說
006_0803_a_12L也。謂佛以無言。爲其說故。是無言
006_0803_a_13L敎之本也。剛藏之稱受。亦是無言。
006_0803_a_14L第上之二第二六張 而爲待言敎之本
006_0803_a_15L也。入者信樂得訂者。佛言我已修
006_0803_a_16L習。訂汝身心。汝等應知。更無異事。何
006_0803_a_17L故我等未得知耶。但以無信故不得
006_0803_a_18L耳。信則能知。要須信也。是故能信
006_0803_a_19L自己身心是不思議佛法。故云信也。
006_0803_a_20L不捨此信。而能恒守。故云樂也。由如
006_0803_a_21L是信樂故。親訂自己身心。 1)▣ [134] 云得訂
006_0803_a_22L也。智惠地者謂十地智者。至相與遠
006_0803_a_23L師。同以此句。爲根本入也。問。加所
006_0803_a_24L爲二十句者。爲是正說時言耶。爲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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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3_b_01L답 문장을 기준으로 하면 경전을 (전한) 사람이고, 뜻을 기준으로 하면 바로 설하신 것이다.문 만약 뜻을 기준으로 하면 바로 설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님의 구업口業에 거두어지는가, 의업意業에 거두어지는가?답 구업이다.문 부처님이 선정 가운데 계셔서 구업으로 짓는 말씀이 없는데 어째서 구(업)이라고 하는가?답 가르침의 일어나는 바가 구업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이 일어나는 바 가르침이 어디로부터 일어나는가? 본래 설하지 않음으로 근본을 삼기 때문에 이는 의업이다. 만약 모습을 드러냄을 기준으로 하면 광명을 놓고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는 등의 법을 보이는 궤칙은 신업에 거두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구업은 큰 허공에 들어맞기 때문에 일어난 가르침 또한 큰 허공에 들어맞는다.
‘포섭의 들어감(攝入)’이란 불가사의한 법을 믿고 듣는 마음 가운데 그 법이 몰록 나타나기 때문에 ‘포섭(攝)’이라 하고, 마음이 법에 계합하여 들어맞기 때문에 ‘들어감(入)’이라고 한다. ‘들음에 의한 지혜(聞慧) 가운데 일체 선근을 거둔다’는 것은, 불타삼장佛陀三藏91)이 이르기를, “체體에 들어맞는 들음에 의한 지혜가 원종圓宗의 이법(理)을 거두어 이법과 상응하니 귀중함이 된다. 이상.”라고 하였다. ‘체에 들어 맞는다’란 해인의 체體에 들어맞는 것이다. 비유하면 뭇 싹들이 다 대지에 의거하는 것과 같이,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 선근도 해인에 의거하지 않고 일어나며 해인에 의거하지 않고 머무르는 것이 없다. 이 해인의 법이 믿는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몰록 나타나기 때문에 ‘들음에 의한 지혜(聞慧) 가운데 일체 선근을 거둔다’라고 한다.
‘생각하고 헤아림의 들어감(思議入)’이란 들음에 의한 지혜로 들은 바를 생각하여 잃지 않는 것이다. ‘헤아림(議)’은 생각에 의한 지혜 가운데 생각하는 바 법을 뜻과 말로 관觀하여 그 모습을 깨닫는 것이다. ‘들어감(入)’은 위와 같다. ‘일체 도의 품류(道品)’는 불가사의한 법이다. ‘지혜의 방편(智方便)’이란 만약 법을 들을 때 마음이 밖으로 반연攀緣하지 않고 오로지 이 법에 의거하여 계속 사유함이 ‘방方’이며, -
006_0803_b_01L經家所列耶。答。約文則經家。約義則
006_0803_b_02L正說也。問。若約義則正說者。爲佛
006_0803_b_03L口業所攝耶。意業所攝耶。答。口業
006_0803_b_04L也。問。佛在定中。無有口業爲作之說。
006_0803_b_05L何云口耶。答。以敎之所起。從口業故
006_0803_b_06L也。此所起之敎。從何而起耶。本以
006_0803_b_07L不說爲根故。是意業。若約現相。放光
006_0803_b_08L摩頂執手觸目等。示法之軌則。是身
006_0803_b_09L業所攝也。然佛口業。稱大虛故。所起
006_0803_b_10L之敎。亦稱大虛也。攝入者。信聞不
006_0803_b_11L思議法之心中。其法頓現故。云攝也。
006_0803_b_12L心契稱法故。云入也。聞惠中。攝一切
006_0803_b_13L善根者。佛陁三藏云。稱體聞惠。攝圓
006_0803_b_14L宗理。與理相應。爲可貴也。已上。 稱體
006_0803_b_15L者。稱海印體也。比如衆苗。皆依大
006_0803_b_16L地。世出世間一切善根。無有不依海
006_0803_b_17L印而起不依海印而住也。此海印之
006_0803_b_18L法。於信心中。了了頓現故。云聞惠
006_0803_b_19L中攝一切善根也。思議入者。聞惠
006_0803_b_20L所聞。思而不失也。議者。於思惠中。
006_0803_b_21L所思之法。以意言觀。了其相狀。入者
006_0803_b_22L同上。一切道品者。不思議法也。智
006_0803_b_23L方便者。第上之二第二七張 若聞法時。
006_0803_b_24L心不外緣。專依此法。相續思惟。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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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3_c_01L이와 같음을 말미암아 마음이 법에 익숙한 것이 ‘편便’이다. ‘분별하여 선택함’이란 그 마음이 들은 바 법을 행하여 그 거스름과 수순함을 분별함이니, 이와 같음을 말미암아 그 수순하는 법을 취하는 것은 ‘선選’이고 그 거스르는 법을 버리는 것은 ‘택擇’이다.
‘법의 모습의 들어감(法相入)’이란 생각하는 바 법이 마음에 나타나 명료하고 분명하기 때문이다. ‘저러저러한 뜻(彼彼義)’은 불가사의한 법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량없이 갖가지로 안다’는 것은, 무릇 접촉해서 향하여 대면하는 대상이 불가사의한 부처님 법이 아님이 없기 때문에, 앎의 대상인 법이 이미 한량이 없으며 앎의 주체인 지혜 또한 한량이 없는 것이다.
‘교화의 들어감(敎化入)’이란 (다음과 같다.) 앞의 ‘포섭의 들어감’에서는 불가사의한 법을 들으며, ‘생각하고 헤아림의 들어감’에서는 그 법의 모습을 생각하고 살피며, ‘법의 모습의 들어감’에서는 그 불가사의한 법이 그 마음에 나타난다. 보살이 최초에 서원을 일으키는 것은 먼저 자기를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남을 제도하고자 하므로, 그 마음에 나타난 법으로써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교화의 들어감’이라고 하는 것이다.‘생각하고 헤아린 바를 따라서 말(名字)이 갖추어져 법을 잘 설한다’라는 것은, 그 생각에 의한 지혜의 생각한 바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헤아린 바를 따라서’라고 한 것이다. 앞의 들음에 의한 지혜의 들은 바 법에 알맞게 이름을 세워 교화하기 때문에 ‘말이 갖추어져’라고 한 것이다. ‘잘 결정하여 설한다’란 만약 오로지 들은 법을 전하는 것으로 다른 이를 교화한다면 곧 잘 결정하여 설하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면 손바닥의 진주를 분명하게 보는 것과 같다. 마음에서 법을 깨닫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 이같이 자기가 얻은 법으로 다른 이를 위하여 연설하는 까닭에 ‘잘 결정하여 설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들어감(證入)’이란 자신이 얻은 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할 때 자신의 수행이 곧 가득차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란 불가사의한 법이다. -
006_0803_c_01L方也。由如是故。心便於法。是便也。
006_0803_c_02L分別選擇者。其心行於所聞之法。別
006_0803_c_03L其逆順。由如是故。取其順法。是選
006_0803_c_04L也。捨其逆法者。是擇也。法相入者。
006_0803_c_05L所思之法。於心現現。了了分明故也。
006_0803_c_06L彼彼義者。以不思議法非一故也。
006_0803_c_07L無量種種知者。凡所觸向對面。無非
006_0803_c_08L不思議佛法故。所知之法。旣無有量。
006_0803_c_09L能知之智。亦無量也。敎化入者。前
006_0803_c_10L攝入中。聞不思議法。思議入中。思察
006_0803_c_11L其法相。法相入中。彼不思議法。現其
006_0803_c_12L心也。菩薩最初發誓願者。非先自度。
006_0803_c_13L欲先度他故。以其心所現之法。敎諸
006_0803_c_14L衆生故。云敎化入也。隨所思議。名字
006_0803_c_15L具足。善說法者。以其思惠所思之法。
006_0803_c_16L敎化衆生故。云隨所思議也。稱前聞
006_0803_c_17L惠所聞之法。立名敎化故。云名字具
006_0803_c_18L足也。善決定說者。若以傳聞之法而
006_0803_c_19L敎他。則非善決定說也。比如明見掌
006_0803_c_20L中之珠。心中了法。亦復如是。而以
006_0803_c_21L如是自所得法。爲他演說故。云善
006_0803_c_22L決定說也。訂入者。以自所得之法。
006_0803_c_23L化衆生時。自行即滿故也。一切法者。
006_0803_c_24L▣字體磨滅{底}ㆍ作「故」{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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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4_a_01L‘평등한 지혜’는 이 보살의 마음이 저 법을 증득할 때 그 마음이 법과 나누어질 수 없으니, 비유하면 그릇으로 연못의 물을 길어 가득 채웠다가 다시 연못 가운데 부으면, 이것이 그릇의 물이고 이것이 연못의 물이라고 구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평등한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곧 스스로 부처님의 법을 이루는 것이다’라는 것은,문 무슨 까닭에 ‘깨달음의 들어감’에 이르른 후에 비로소 교화의 들어감을 해석하는가?답 ‘깨달음의 들어감’을 변별할 때 비로소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보살이 서원을 일으키는 것이 다만 다른 이를 제도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먼저 다른 이를 제도할 때 법이 본래 그러하여 스스로 진여의 법을 증득하기 때문에 ‘깨달음의 들어감’에 이르른 후에 ‘교화의 들어감’을 해석하는 것이다.
‘방일하지 않음의 들어감(不放逸入)’이란, 마치 기둥을 반연할 때 마음이 만약 움직임이 있으면 곧 ‘방放’이고, 그 ‘방放’으로 말미암아 다른 경계로 나아감이 곧 ‘일逸’인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이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에 의거하여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또 다른 경계에 마음이 또한 나아가지 아니하므로 ‘방일하지 않음의 들어감’이라고 한 것이다.‘일체 마법魔法이 물들이지 못하(게 하려)는 까닭이다’라고 말한 것은 마魔에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천天이고, 둘째는 인人이며, 셋째는 음陰이고, 넷째는 번뇌煩惱이다. 번뇌마는 세 가지 독이 뿌리가 되어 일어난 번뇌이다. 말하자면 수행하는 마음이 어기거나 따르는 경계를 대하여 혹 화를 내고 혹 탐하여서 적정하지 못하는 것이 번뇌마이다. 음마란 오온(五陰) 가운데 넷은 마음이고 하나는 색色이다. 수행할 때 옷ㆍ음식 등과 그리고 다섯 가지 티끌(五塵)92)의 경계를 탐하여 구하는 것은 색마色魔이고, 탐하여 구하는 마음은 심마心魔이다. 인마란 수행할 때 부모와 시주(檀越)와 나쁜 친구와 색色을 좋아하는 이 등의 부류가 모두 인마이다. 천마란 수행할 때 여섯 번째 하늘(第六天)93)의 (천)마가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
006_0804_a_01L是不思議法也。平等智者。此菩薩心。
006_0804_a_02L得彼法時。其心與法。不可得分。比如
006_0804_a_03L以器。汲盈池水。還注池中。不可得分。
006_0804_a_04L此是器水此是池水。故云平等智也。
006_0804_a_05L敎化衆生。即是自成佛法者。問。何
006_0804_a_06L故。至訂入後。方釋敎化入耶。答。辨訂
006_0804_a_07L入時。方現利他即是自利之義也。謂
006_0804_a_08L菩薩發誓。第上之二第二八張 只欲度
006_0804_a_09L他。然先度他時。法爾自訂眞如法故。
006_0804_a_10L至訂入後。釋敎化入也。不放逸入者。
006_0804_a_11L如緣柱時。心若有轉。即是放也。由
006_0804_a_12L其放故。趣於他境。即是逸也。如是
006_0804_a_13L菩薩。依不思議佛法。其心不轉。又
006_0804_a_14L於他境。心亦不趣。故云不放逸入也。
006_0804_a_15L言一切魔法不能染者。魔有四種。一
006_0804_a_16L天。二人。三陰。四煩惱也。煩惱魔者。三
006_0804_a_17L毒爲根所起煩惱也。謂修行之心。對
006_0804_a_18L違順境。或嗔或貪。不能寂靜。是煩
006_0804_a_19L惱魔也。陰魔者。五陰之中。四是心。
006_0804_a_20L一是色。修行之時。貪求衣食等及
006_0804_a_21L五塵境界。是色魔。貪求之心。是心魔
006_0804_a_22L也。人魔者。修行之時。父母檀越惡
006_0804_a_23L友好色等類。皆人魔也。天魔者。修
006_0804_a_24L行之時。 1)弟六天魔。即自思惟。此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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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4_b_01L‘이 사람이 그 수승한 마음을 일으켜 수승한 행을 닦으면 반드시 수승한 과보를 얻을 것이니 나의 권속이 아니다’라고 하여, 그러므로 이 사람을 떠나지 않고 항상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하려 하며, 만약 괴롭히고 혼란스럽게 할 수 없으면 곧 그가 죽게 하고자 하니 이러한 것이 천마이다.
‘지地에서 지地로 옮김의 들어감(地地轉入)’이란 (다음과 같다.) 일곱 번째 지(七地)94) 이전에서는 비록 능히 나아가 모습이 없이 닦지만, 그러나 공들여 힘씀(功用)이 있는 지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가행加行의 마음작용(作意)을 일으켜서 자기 마음의 수행의 힘에 올라타서 닦는다. 여덟 번째 지(八地)95) 이상은 모습이 없이 관觀하는 지혜가 구경에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본래의 서원과 법의 힘에 올라타서 뜻대로 나아가 닦는 까닭에 ‘지地에서 지地로 옮김의 들어감’이라고 한 것이다.‘무탐無貪 등의 선근이 청정하다’란 불가사의한 법에 본래 세 가지 독이 없기 때문에, 무탐 등의 선善이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있다. 그러나 지위에 의지함을 기준으로 하면 일곱 번째 지地 이전은 공용이 있는 지위이니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세 종류 선근(三種善根)96)의 청정한 뜻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여덟 번째 지地의 뜻대로 되는 지위에 이르러서 세 종류 선근의 청정한 뜻이 구경에 나타나기 때문에 ‘무탐 등의 선근이 청정하다’라고 한 것이다.
‘또 선근이 있어’ 등은 의심을 결정하여 굴복시키는 것이다. 십지 가운데 하나하나의 지地가 모두 지地 이전의 가행에 의한 선근이 있으며, 지地 이상의 선근이 있기 때문에, 지地 이전의 가행을 기준으로 하여 말하면 ‘또 선근이 있다’고 하고, 지地 이상의 선근을 기준으로 삼으면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이다. 의심하여 이르기를, “일곱 번째 지地 이전의 가행에 의한 선근이 여덟 번째 지地 이상의 선근을 낳는 것인가?”라고 하니, 이 의심을 해결하기 위한 까닭에 “오직 여덟 번째 지地의 가행에 의한 선근만 그 여덟 번째 지地의 선근을 낳는다.”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또 선근이 있어 세간을 벗어나는 도의 품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보살로서 다함의 들어감(菩薩盡入)’ 가운데 ‘여래의 비밀스러운 지혜’란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을 기준으로 하면 비록 열 가지 거듭(十重)됨이 없지만, -
006_0804_b_01L起其勝心。修其勝行。必得勝果。非
006_0804_b_02L我眷屬。是故不離此人。常欲惱亂。
006_0804_b_03L若不能惱亂。即欲令其死。此等是天
006_0804_b_04L魔也。地地轉入者。七地已前。雖能
006_0804_b_05L趣向。無相而修。然是有功用位故。
006_0804_b_06L猶起加行作意。乘於自心行力而修。
006_0804_b_07L八地已上。無相觀智。現前究竟故。乘
006_0804_b_08L本誓願及與法力。任運進修。故云地
006_0804_b_09L地轉入也。無貪等善根淨者。不思議
006_0804_b_10L法中。本無三毒故。無貪等善。無始時
006_0804_b_11L有。然約寄位。則七地以前。有功用
006_0804_b_12L位。執心不捨故。三種善根淸淨之義。
006_0804_b_13L不得現前。至於八地任運之位。三種
006_0804_b_14L善根淨義竟現。故云無貪等善根淨
006_0804_b_15L也。復有善根等者。決伏疑也。於十
006_0804_b_16L地中。第上之二第二九張 一一地。皆
006_0804_b_17L有地前加行善根。有地上善根故。約
006_0804_b_18L地前加行云。復有善根。約地上。善
006_0804_b_19L根則是不思議佛法也。疑云。七地以
006_0804_b_20L前加行善根。生於八地以上善根耶。
006_0804_b_21L爲決此疑故云。唯八地之加行善根。
006_0804_b_22L生其八地善根也。是故云。復有善根。
006_0804_b_23L能爲出世間道品因也。菩薩盡入中。
006_0804_b_24L如來秘密智者。約不思議佛法。則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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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4_c_01L지위에 의지함을 따라서 또한 열 가지 비밀스러운 지혜로 나누는 것이다. 이 비밀스러운 지혜가 불가사의한 법인 까닭에 이 법을 얻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일체 여래의 비밀스러운 지혜에 들어간다.”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佛盡入)’ 가운데 ‘일체의 지혜에 들어가는 지혜’란 ‘일체의 지혜’는 부처님의 일체지인 일체종지一切種智이다. ‘들어가는 지혜(入智)’는 보살의 지혜이다. 보살의 지혜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원만한 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에 보살의 지혜도 또한 원만한 지혜를 이루는 것이다.
문 ‘보살로서 다함의 들어감’에서 말한 ‘여래의 비밀스러운 지혜에 들어감’은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에서 말한 ‘부처님의 일체지에 들어감’과 더불어 어떻게 다른가?답 ‘보살로서 다함의 들어감’ 중에서는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을 얻으나 다만 결과를 다한 원인의 지위이고,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 중에서 불가사의한 법을 얻는 것은 원인을 다하는 결과의 지위이기 때문에 다르다.문 혜원 스님은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으로써 원인 중에 있음을 삼았으니, ‘보살로서 다함의 들어감’과 어떻게 다른가?97)답 세움(建立)을 기준으로 하면 ‘보살로서 다함의 들어감’은 열 번째 지地에 세우고,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은 부처님의 과위에 세운다. 그런데 부처님으로서 다함으로 원인 중의 결과를 삼은 것은 신信ㆍ행行ㆍ지地의 보살이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을 얻은 까닭에 원인 중의 결과로 삼아 부처님의 과보로서의 덕德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지, 부처님으로서 다함이 원인에 있음을 삼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들어감은 비교해 헤아림이 된다’는 등은, ‘이 모든 들어감’으로부터 ‘차별’에 이르기까지 비교하여 헤아리는 바가 되는 것은 혜원 스님의 뜻98)이고, ‘모든 들어감’으로부터 ‘더욱 뛰어남’에 이르기까지 비교하여 헤아리는 바가 되는 것은 법장 스님의 뜻99)이다.혜원 스님의 뜻은 삼현三賢과 십지十地의 차례로 더욱 뛰어난 지위가 의지할 바이기 때문에 떨칠 바이고, 아홉 가지 들어감의 차별은 ‘근본의 들어감’ 중에서 덕德의 뜻이 차별한 것이기 때문에 떨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
006_0804_c_01L無十重。而隨寄位。且分十種秘密智
006_0804_c_02L也。此秘密智。是不思議法故。約得
006_0804_c_03L此法云。入一切如來秘密智也。佛盡
006_0804_c_04L入中。於一切智入智者。一切智者。是
006_0804_c_05L佛一切智一切種智也。入智者。菩薩
006_0804_c_06L智也。由菩薩智。入佛圓智故。菩薩
006_0804_c_07L之智。亦成圓智也。問。菩薩盡入中。云
006_0804_c_08L入如來秘密智。與佛盡入中。云入佛
006_0804_c_09L一切智。何別。答。菩薩盡入中。得不
006_0804_c_10L思議佛法。而但是盡果之因位。佛盡
006_0804_c_11L入中。得不思議法。是盡因之果位故。
006_0804_c_12L別也。問。遠公以佛盡入爲在因中。與
006_0804_c_13L菩薩盡入。何別。答。約建立。則菩薩盡
006_0804_c_14L入立*弟十地。佛盡入立佛果位。而
006_0804_c_15L以佛盡爲因中之果者。以信行地菩
006_0804_c_16L薩得不思議佛法故。以爲因中果
006_0804_c_17L而云得佛果德。非謂佛盡爲在因也。
006_0804_c_18L是諸入爲挍量等者。從是諸入至差
006_0804_c_19L別爲所挍量者。是遠公之意。從諸
006_0804_c_20L入至轉勝爲所挍量者。是藏師之意
006_0804_c_21L也。遠公意。則三賢十地。次*弟轉勝之
006_0804_c_22L位。是所寄故。是所拂也。九入差別。
006_0804_c_23L是根本入中德義差別故。非所拂也。
006_0804_c_24L「弟」作「第」{乙}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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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5_a_01L법장 스님의 뜻은 곧 삼현과 십지가 온전히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의 지위이고, 포섭의 들어감 등 아홉 가지 들어감도 또한 온전히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이니, 그러므로 아홉 가지 들어감의 차별과 그리고 삼현ㆍ십지의 더욱 뛰어남을 다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지혜의 뜻의 차별인 아홉 가지 들어감과 차례로 더욱 뛰어난 삼현ㆍ십지가 다 떨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비교하여 헤아리지만 버리지 않는 것이며, 그 삼승 가운데 항포行布ㆍ차례(次第)ㆍ차별ㆍ더욱 뛰어남(轉勝)ㆍ결정 등은 모두 버릴 바이다.
문 이미 온전히 불가사의한 법인 삼현ㆍ십지라면 마땅히 수승함과 열등함이 없어야 하는데, 어째서 더욱 뛰어남이 있다고 하는가?답 비록 망정으로 헤아리는 수승함과 열등함은 없으나, 또한 연기의 수승함과 열등함은 있다.
문 연기의 수승함과 열등함은 무엇인가?답 마치 병 중에 큰 허공을 머금고 있고 옹기 중에도 또한 그러하지만 그러나 큰 허공을 머금은 병은 어린아이가 들 수 있으나 큰 허공을 머금은 옹기는 어린아이가 쉽게 들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십신十信의 지위에서 법계를 거두어 다하고 십주 등의 지위에서도 또한 법계를 거두니, 비록 법계를 거두는 뜻은 같으나 지위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법계를 거두는 십신은 열등함이고 법계를 거두는 십주 등은 수승함이다. 따라서 연기의 차별이 떨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믿음의 지위에서 부처를 이루는 뜻에 근거하여 순범順梵과 행장行將100)의 두 대덕은 세워서 원만한 부처님(圓滿佛)이라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세워서 분수에 따른 부처님(隨分佛)이라 하였다. 이에 신림 대덕이 이 두 뜻을 들어 상원 스님에게 나아가 물으니, 상원 스님이 이르기를, “모두 (의상) 화상의 뜻이 아니다. 십신의 한 지위로써 십주 등을 형용하는 것은 문門이 다르기 때문에 분수에 따른 부처님이라고 한다. 그러나 법계를 온전히 거두어서 구경에 곁이 없기 때문에 원만한 부처님이라고 한다. 이로써 일승은 어느 한 지위를 따라서 부처를 이룰 때에 분수와 원만의 두 뜻을 갖추는 것이다. 이상.”라고 하였다. -
006_0805_a_01L第上之二第三○張 藏師意。則三賢十
006_0805_a_02L地。是全不思議佛法之位也。攝等九
006_0805_a_03L入。亦全不思議佛法也。是故九入差
006_0805_a_04L別及三賢十地之轉勝。皆不捨也。
006_0805_a_05L是則智義差別之九入。次*弟轉勝三
006_0805_a_06L賢十地。皆非所拂。是故挍量而不捨
006_0805_a_07L也。其三乘中。行布次*弟差別轉勝
006_0805_a_08L決定者。皆所捨也。問。旣全不思議法
006_0805_a_09L之三賢十地。應無勝劣。何云有轉勝
006_0805_a_10L耶。答。雖無情計之勝劣。亦有緣起之
006_0805_a_11L勝劣也。問。緣起勝劣云何。答。猶如瓶
006_0805_a_12L中含大虛空。甕中亦爾。然含大空之
006_0805_a_13L瓶。童稚能提。含大空之甕。童不易
006_0805_a_14L提。如是十信位中。攝盡法界。十住
006_0805_a_15L等位。亦攝法界。雖攝法界義同。而
006_0805_a_16L隨位別故。攝法界之十信是劣。攝法
006_0805_a_17L界之十住等是勝也。故緣起差別。非
006_0805_a_18L所拂也。是故。約一信位成佛之義。順
006_0805_a_19L梵行將二德。立爲圓滿佛。餘人等。立
006_0805_a_20L爲隨分佛。於是林德。擧此二義。就
006_0805_a_21L問相元。元曰。俱非和尙之意。則以十
006_0805_a_22L信一位。形十住等。爲門別故。云隨分
006_0805_a_23L佛。然全攝法界。究竟無側故。云圓滿
006_0805_a_24L佛也。是以一乘隨何一位。成佛之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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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5_b_01L따라서 법장 스님의 뜻은 아홉 가지 들어감 가운데 들어감은 ‘근본의 들어감’의 들어감이고, 아홉 가지 들어감 가운데 포섭 등의 아홉 가지는 ‘근본의 들어감’ 가운데 지혜의 지地이므로 다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설로 해석한 것이다’란 세 가지 뜻이 있다. 혜원 스님은 “이 아홉 가지 들어감의 언설에서 육상으로 해석한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101)라고 하였다. 법장 스님의 두 가지 해석은 소䟽102)와 같다. ‘사事는 제외되니, 사事란 오온(陰)ㆍ십팔계(界)’ 등이란, 이 뜻은 실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림 대덕이 대승경공大乘冏公에게 물으니, 경공이 이르기를, “오온(陰)ㆍ십팔계(界)ㆍ십이처(入)에 육상이 필요하니 그것을 융섭하면 어려움이 없으나, ‘제외한다’고 말한 것은 삼과三科103)ㆍ백법百法104)에 육상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오온ㆍ십팔계ㆍ십이처를 제외한다면 어느 곳에 육상을 쓸 것인가? 따라서 내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다른 스님은 이르기를, “육상은 삼승을 이끌 때 쓰는 방편이다. 그러나 그 집착하는 바 체성이 각각 다르니 삼과의 법에 육상을 쓰면 그 법이 잡되고 어지럽게 되어 이익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사事를 제외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융순 화상은 이르기를, “반드시 육상의 언설로 『화엄경』을 설해야 한다. 만약 삼과ㆍ백법으로 설하면 삼승이다. 그래서 ‘사事를 제외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화엄경탐현기
법장 스님의 소䟽105)에 (이른다.) 가피로 이루려는 바(加所爲)를 해석하는 가운데 이십 구문106)을 두 가지 이익에 의거하여 나눈다. 처음 열 가지는 남과 함께하는 자리自利이고, 뒤의 열 가지는 자기와 함께하는 이타利他이다. 운운. 앞 가운데 (세친) 논주는 네 가지 문의 해석을 지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해석하여 근본을 나타낸다. 운운.107) 넷째는 근본과 지말이 걸림 없는 것이다.처음에 총체적으로 (십)지의 법을 논하면 연기에 여섯 가지 뜻이 있다.첫째, ‘일체 보살이란 신信ㆍ행行ㆍ지地이다’라는 것은 가피할 바의 근기를 든 것이다. -
006_0805_b_01L具足分滿二義也。已上。 故藏師之意。
006_0805_b_02L九入中入者。是根本入之入也。九入
006_0805_b_03L中攝等九者。是根本入中智惠地也。
006_0805_b_04L故皆不捨也。此言說解釋者。有三義。
006_0805_b_05L遠公云。此九入言說中。以六相解釋
006_0805_b_06L之義。應知也。藏師二釋如䟽。除事。事
006_0805_b_07L者謂陰界等者。此義實難可解。故
006_0805_b_08L第上之二第三一張 林德問於大乘冏
006_0805_b_09L公。冏云。於陰界入。須六相則融之無
006_0805_b_10L難。而言除者。言三科百法不用六相
006_0805_b_11L也。然而若除陰界入。何處用六相耶。
006_0805_b_12L故非吾所可知也。餘師云。六相者。
006_0805_b_13L引三乘時之所用方便也。然彼所執
006_0805_b_14L體性各別。三科法上用六相。則其法
006_0805_b_15L雜亂。不得利益。故云除事也。融順和
006_0805_b_16L尙云。要以六相言說。說花嚴經。若
006_0805_b_17L以三科百法說。則是三乘。故云除
006_0805_b_18L事也。
006_0805_b_19L藏䟽。釋加所爲中。二十句文。依二
006_0805_b_20L利分。初十共他自利。後十共自利
006_0805_b_21L他。云云。 前中論王。佛 [130] 四門解釋。一
006_0805_b_22L捴釋現本。云云。 四本末無碍。初中。
006_0805_b_23L捴論地法。緣起有六義。一一切菩
006_0805_b_24L薩是信行地者。擧所被機。謂地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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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5_c_01L말하자면 지地 이전 보살은 진여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다만 믿는 마음에 의거하여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운운.
(둘째,)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의 법이란 출세간도의 품류(品)이다’라는 것은, 이것은 얻는 바 법이다. 그러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원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십지의 법의 체體는 출세간의 흐름이 없는 법이니, 마음과 말의 길이 끊어짐을 ‘불가사의’라고 이름한다. 통틀어 불과佛果를 낳기 때문에 이름하여 ‘도道’라고 하니, 아래에서 이르기를, 위대한 성인의 길은 저 원인이다라고 한 까닭이다.108) 십지 지위의 품류의 종류가 차별한 것을 ‘품류’라고 이름한다. 운운. 둘째는 결과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부처님이 얻으신 법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법’이라고 이름한다. 아래의 지위가 추측하지 못함을 ‘불가사의’라고 이름한다. 지地 이상의 보살이 이 법을 부분적으로 깨닫게 하는 것을 ‘출세간도의 품류’라고 이름한다. 지地의 지혜가 노니는 바를 ‘도道’라고 이름한다. 부분적으로 깨달아 아직 원만하지 않음을 ‘품류’라고 이름한다.
셋째, ‘광명(明)’이란 비로소 바라보는 것을 ‘봄(見)’이라고 이름하고, 자세히 비추는 것을 ‘지혜(智)’라고 이름하며, 지혜로 비추는 것이고 추론(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얻음(得)’이라고 이름하고, 그윽한 정신에 계합하기 때문에 다시 ‘깨달음(證)’이라고 이름한다. 운운.넷째, ‘설한다(說)란 그 가운데 분별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능히 깨달아 얻는 주체와 대상의 법 가운데 말로써 십위의 차별을 분석하여 지혜의 행行의 우열과 공덕과 지혜의 같고 다름을 밝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들어간다(入)란 믿음(信)과 좋아함(樂)과 얻음(得)과 깨달음(證)이다’라는 것은, 말하자면 지地 이전의 믿음과 좋아함에는 들어감의 뜻이 멀리 있고, 지地 이상의 깨달아 얻음에는 서로 들어감이 바로 앞에서 이루어진다. 들어감의 뜻을 통틀어서 논하면, 반드시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르기 때문에 처음과 끝을 갖추는 것이다. 또한 믿음은 처음이고 좋아함은 끝이며 얻음은 처음이고 깨달음은 끝이다.
여섯째, ‘지혜의 지地란 십지의 지혜를 말하니, 본문 중에서 설한 것과 같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 이치를 깨닫는 성스러운 지혜에 부처님의 과보를 생성하고 머물러 유지하는 등의 작용이 있음을 ‘지위(地)’라고 이름한다. 처음의 환희지로부터 마지막의 법운지에 이르기까지 본문 중에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
006_0805_c_01L菩薩。未訂眞如。但依信心。而起行
006_0805_c_02L故。云云。 不可思議諸佛法者。是出
006_0805_c_03L世間道品者。此是所得之法。然有
006_0805_c_04L二釋。一約因。謂十地法體。是出
006_0805_c_05L世間無流之法。心言路絕。名不
006_0805_c_06L思議。通生佛果故名爲道。下云
006_0805_c_07L大聖道者是彼因故。十位品類。差
006_0805_c_08L別名品。云云。 二約果。謂佛所得之
006_0805_c_09L法故名佛法。非下位圖1)托。 [135] [131] 名不
006_0805_c_10L思議。令地上菩薩分訂此法。名出
006_0805_c_11L世間道品。地智所遊曰道。分訂未
006_0805_c_12L圓名品。三明者。 [132] 創矚名見。委照
006_0805_c_13L名智。智照非比故名爲得。冥神
006_0805_c_14L契合故復名訂。云云。 四說者於中
006_0805_c_15L分別者。於此能所訂得法中。以言
006_0805_c_16L分釋十位差別。 第上之二第三二張
006_0805_c_17L明智行優劣功惠等異故也。五入
006_0805_c_18L者信樂得訂者。謂地前信樂遠
006_0805_c_19L有入義。地上訂得現成交入。通論
006_0805_c_20L入義。必從此至彼故。具始終也。
006_0805_c_21L亦信始樂終得始訂終。六智惠地
006_0805_c_22L者。謂十地智。如本分中說。謂此訂
006_0805_c_23L理聖智。有生成住持佛果等用。名地。
006_0805_c_24L始從歡喜。終至法雲。本分中現。可
006_0805_c_25L「托」作「杔」{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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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6_a_01L이상의 여섯 가지 뜻이 융합하여 걸림이 없어서 가르침과 뜻에 통하고, 깨달음과 추론에 통하며, 경계와 지혜에 통하고, 사람과 법에 통하며, 원인과 결과에 통하여, 어우러져 통해서 걸림이 없어 총체적으로 한 덩어리가 됨을 ‘십지의 법’이라고 이름한다. 혹 뒤에 갖가지 차별을 전개해도 모두 다 이 총괄하는 구句 중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것을 ‘근본의 들어감’이라고 이름한다.
두 번째는 근본에 의거하여 지말을 여는 것이니, 아홉 구절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그중의 네 가지 지위는 말하자면 원하고 좋아함(願樂)의 지위, 봄(見)의 지위, 닦음(修)의 지위, 구경의 지위이다. 처음 넷은 지地 이전의 원하고 좋아함(願樂)의 지위에 의거하고, 다음 하나는 초지에 의거하며, 다음 셋은 닦음(修)의 지위에 의거하고, 마지막 하나는 구경의 지위를 밝힌다.109)
문 여기에서는 바로 십지의 법을 설하는 것인데, 무슨 까닭에 지地 이전과 부처님의 과보를 설하는가?답 십지가 앞으로는 아래를 일으키는 공덕이 있고 뒤로는 위를 이루는 뜻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또 해석하면, 십지의 깨달음의 지혜로 아함阿含110)의 광명을 놓으니, 이런 까닭에 지地 이전은 이 십지의 아함에 부분적으로 거두어지는 것이다. 이 지地의 지혜가 과분果分의 바다에 의거하여 이루어지는 까닭에 (십지에) 부처님의 과보가 있는 것이다. 위의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법’과 아래의 새의 자취가 의거하는 바 허공111) 등이 모두 이 일이다.
처음 가운데 첫 하나112)에서는 들음에 의한 지혜를 기준으로 하여 선근을 닦는 것을 ‘일체를 거둔다’라고 이름한다. 둘째는 생각에 의한 지혜의 처음을 밝힌 것이니, 도리를 간택함이다. 논에서 ‘지혜의 방편’이란 (경문의) ‘잘 분별하여’를 풀이한 것이고, ‘도의 품류’는 ‘부처님의 법’을 해석한 것이다. 셋째는 생각에 의한 지혜의 마지막이다. 말하자면 생각으로 인해 널리 아는 것이다. ‘저러저러한 뜻(彼彼義)’은 ‘모든 법’을 풀이한 것이고, ‘갖가지로 안다’는 ‘널리 알(게 하려)는’을 해석한 것이다. 넷째는 닦음에 의한 지혜를 밝힌 것이니 걸림 없이 가르침을 세워 믿을 수 있기 때문에 ‘결정하여 설한다’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닦음은 두 가지 이익에 통하나 지금은 남을 이롭게 함(利他)을 든 것이다. 보살이 남을 교화하는 것이 곧 스스로 부처님의 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이롭게 함(自利)에 거두어들여지는 것이다. -
006_0806_a_01L知。此上六義。融合無碍。通敎及
006_0806_a_02L義。通1)訂及比。通境及智。通人及
006_0806_a_03L法。通因及果。混通無碍。捴爲一圑。
006_0806_a_04L名十地法。若展於後種種差別。皆
006_0806_a_05L悉於此捴句中出。是故名此爲根
006_0806_a_06L本入。二依本開末。分成九句。於中
006_0806_a_07L四位。謂願樂位。見位。修位。究竟
006_0806_a_08L位。初四寄前 [133] 地前願樂位。次一寄
006_0806_a_09L初地。次三寄修位。後一明究竟位。
006_0806_a_10L問。此中正爲說十地法。何故乃說
006_0806_a_11L地前及佛果。答。爲現十地前有起
006_0806_a_12L下之功後有成上之義。又釋。由十
006_0806_a_13L地訂智。放阿含光。是故地前是
006_0806_a_14L此十地阿含分攝。由此地智依果
006_0806_a_15L海成故有佛果。上不思議佛法。
006_0806_a_16L及下鳥跡所依空等。並是其事。初
006_0806_a_17L中初一。約聞惠修善根。名攝一切。
006_0806_a_18L二明思惠之始。簡擇道理。論中智
006_0806_a_19L方便者。釋善分別也。道品釋佛法
006_0806_a_20L也。三思惠之終。謂因思廣知。彼
006_0806_a_21L彼義釋諸法。種種2)知 [136] [134] 釋廣知。四
006_0806_a_22L明修惠。無疑立敎。可信故云決定
006_0806_a_23L說。謂修通二利。第上之二第三三張
006_0806_a_24L今擧利他。菩薩化他。即是自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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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6_b_01L논에서 ‘생각하고 헤아린 것을 따라서’는 생각에 의한 지혜가 생각하는 바이고, ‘말(名字)이 갖추어져’는 들음에 의한 지혜가 지니는 바이기 때문에 ‘결정하여 설하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믿음과 좋아함을 나타내었고, 아래로는 얻음과 깨달음을 변별한다. 다섯째는 봄의 지위(見位)이다. 운운. 논에서 ‘모든 법에 평등한 지혜’는 ‘분별없는 지혜’를 풀이한 것이다. 말하자면 초지에서 바로 진여를 깨달아서 주체(能)와 대상(所)의 두 모습이 없기 때문에 ‘평등’하다고 하는 것이다. ‘견도見道하는 때에 매우 청정하다’는 ‘매우 청정하여 잡되지 않음’을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두 가지 아我113)와 분별과 수면隨眠114)을 여의는 것이다. 여섯째는 도道를 닦는 지위를 밝히는 가운데 지地와 지地에서 하나의 무명을 따로 끊기 때문에 번뇌장 또한 영원히 굴복시켜 여읜다. 따라서 세상의 법에 뒤섞이지 않음을 ‘방일하지 않음의 들어감’이라고 이름한다. 마법은 세상의 법이다. 일곱째는 닦음의 지위(修位)를 밝히는 가운데 지혜의 행이 더욱 나아감을 ‘지地에서 지地로 옮김의 들어감’이라고 이름한다. 말하자면 흐름이 없는 선근이 일체의 세 가지 선善하지 않은 법을 영원히 여의는 것이다. 무탐無貪 등의 선근 등은 성내지 않음(無嗔)과 어리석지 않음(無癡)을 똑같이 취하는 것이다. ‘또 선근이 있어 세간을 벗어나는 도의 품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지地에서의 가행선근이다.
여덟째는 십지의 배움이 다함을 ‘보살로서 다함의 들어감’이라고 이름한다. 아래 큰 다함의 부분(大盡分)115)에서 밝히는 것과 같으니, 열 번째 지地의 보살이 여래의 열 가지 비밀스러운 지혜(如來十種秘密智)116)에 들어가 비밀스럽고 은밀하며 깊고 그윽하여 헤아려 알기 어렵기 때문에 ‘부사의’라고 이름한다. 아홉째는 구경의 자리이니 원인의 도道가 이미 원만하여 부처님의 과보가 이에 수승함을 밝히는 것이다. 끝까지 가득찬 과보가 원만함을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이라고 이름한다. 논에서 ‘들어가는 지혜(入智)’는 (경의) ‘얻는다(得)’라는 글자를 풀이한 것이다.
세 번째는 지말을 모아 근본에 돌아가는 것이니, ‘모든 들어감’이라고 말한 것은 위의 아홉 가지 들어감을 합한 것이다. ‘비교하여 헤아림이 된다’ 등은 그 차별 없음의 차별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지地 이전, 지地 이상 내지 부처님의 지위(佛地)를 의지하여 -
006_0806_b_01L法故。入自利3)收。 [137] [135] 論中。隨所思議。
006_0806_b_02L是思惠所思。名字具足。是聞惠所
006_0806_b_03L持。故決定說也。上來現信樂。自
006_0806_b_04L下辨得訂。五見位。云云。 論中一切
006_0806_b_05L法平等智。釋無分別智。謂於初地。
006_0806_b_06L正訂眞如。無能所二相。故云平等。 [136]
006_0806_b_07L見道時中。善淸淨者。釋善淨不雜。
006_0806_b_08L謂離二我分別隨眠。 [137] 六明修道位
006_0806_b_09L中。地地別斷一無明故。於煩惱
006_0806_b_10L障。亦永伏離。故云世法不雜名
006_0806_b_11L不放逸入。魔法是4)世 [138] 法也。七明
006_0806_b_12L修位中。智行轉進。名地地轉入。
006_0806_b_13L謂無流善根。永離一切三不善法。
006_0806_b_14L無貪等善根等者。等取無嗔無癡
006_0806_b_15L也。復有善根能爲出世間道品因
006_0806_b_16L者。是諸地中加行善根也。八十
006_0806_b_17L地學窮。名菩薩盡入。如下大盡分
006_0806_b_18L中明。5)弟十地菩薩入如來十種
006_0806_b_19L秘密智。以秘隱深密難可測知
006_0806_b_20L故。名不思議。 [138] 九究竟位。明因道旣
006_0806_b_21L圓。佛果斯尅。窮滿果圓。名佛盡
006_0806_b_22L入。論中入智者。釋得字也。三會
006_0806_b_23L末歸本。言是諸入者。牒上九入。
006_0806_b_24L爲挍量等者。現其無別之別。謂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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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6_c_01L지위의 지혜(地智)의 차별과 차례로 더욱 뛰어난 모습을 비교하여 헤아린 것이고, 근본의 들어감 가운데 또한 이와 같은 등의 항포行布와 차례(次第)와 결정의 차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말을 융섭하여 근본으로 돌아가서 둘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은 근본에 의거하여 지말을 일으켜서 다름없음의 다름을 밝히고, 지금은 지말을 모아 근본에 돌아가서 다르되 다름없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근본과 지말이 걸림 없다는 것이란, 말하자면 육상의 총상과 별상이 걸림 없음을 밝히기 때문이다. 이 육상의 뜻을 풀이하는 데 여섯 가지 문을 짓는다.
첫째, 가르침이 일어난 뜻을 밝힌다. 말하자면 고정되어 집착하는 견해를 깨뜨려서 연기의 원융한 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이법이 앞에 나타나면 일체 미혹의 장애는 하나가 멸하면 일체가 멸하고, 일체 행行의 지위는 하나가 이루어지면 일체가 이루어지는 등이다.
둘째, 종류이니, (다음과 같다.)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님 등의 4구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음 등의 4구,117) 그리고 태어남도 아니고 등의 팔불八不118)과 십불十不119) 등이 모두 다 현상(事)을 모아 이법(理)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흐름의 부류는 다만 저러한 것 등이 이법에 들어가서 하나의 적정에 따르는 것이다. 이제 이 이법에 들어감은 저 현상을 원융하여 상즉상입하게 해서 보현의 법을 이루는 것이니, 이에 왼쪽과 오른쪽만 있을 뿐이다.셋째, 나온 바를 밝히는 것이다. 이 글은 아래 경문의 네 번째 대원 가운데 나오니,120) 경을 전하는 사람(經家)이 스스로 설한 것이고, (『십지경론』의) 논주가 임의로 지은 것이 아니다.
넷째, 건립을 밝히는 것이다. ‘무슨 까닭에 오직 여섯이며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가’란, 말하자면 무릇 모든 연기법이 세 문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지말이 근본에서 일어남과 일어나지 않음이 있다. -
006_0806_c_01L地前地上乃至佛地。挍量地智
006_0806_c_02L差別。次*弟轉勝之相。非謂根本入
006_0806_c_03L中亦如此等行布次*弟決定差
006_0806_c_04L別。是故融末歸本。現無二矣。前
006_0806_c_05L依本起末。明無別之別。今會末歸
006_0806_c_06L本。明別而無別故也。四本末無碍
006_0806_c_07L者。第上之二第三四張 謂明六相捴
006_0806_c_08L別無碍故也。釋此六相義。作六門。
006_0806_c_09L一明敎興意。謂破定執見。以現緣
006_0806_c_10L起圓融之法。此理現前。一切惑障。
006_0806_c_11L一滅一切滅。一切行位。一成一切
006_0806_c_12L成等。二種類者。不自不他等四句。
006_0806_c_13L及不有不無等四句。并不生等八
006_0806_c_14L不。十不等。皆悉會事入理。是此流
006_0806_c_15L類。但彼等入理。以順一寂。今此入
006_0806_c_16L理。圓融彼事。使相即相入。成普
006_0806_c_17L賢法。有斯6)▣ [139] [139] 右耳。 7)二 [140] [140] 明所出者。
006_0806_c_18L此文出在下經*弟四大願中。經家
006_0806_c_19L自說。非是論主率意而作。四明
006_0806_c_20L建立者。何故唯六不多不小者。謂
006_0806_c_21L汎諸緣起法。要有三門。一末於本
006_0806_c_22L「訂」通「證」於此書{編}次同。脚註曰知疑智
006_0806_c_23L{乙}。「收」作「攝」{乙}。「世」作「母」{乙}。「弟」
006_0806_c_24L作「第」{乙}次同。▣字體磨滅{底}ㆍ作「左」{乙}。
006_0806_c_25L「二」作「三」{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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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7_a_01L둘째는 저 일어난 지말이 이미 근본을 거둔다. 이 까닭에 서로 바라봄에 같음이 있고 다름이 있다. 셋째는 저 근본을 거느린 지말이 이미 근본에 거두어짐이 된다. 그러므로 당체에 존재함이 있고 무너짐이 있다. 만약 이 셋을 갖추지 않으면 연기를 이루지 못한다. 셋 가운데 각각 둘이기 때문에 다만 오직 여섯일 뿐이다.
다섯째, 문답으로 결정하여 택하는 것이니, 둘이 있다. 첫 번째는 거스름(逆)이니, 말하자면 총도 아니고 별도 아닌 등이 각각 서로서로 모든 모습을 빼앗아서 모든 모습이 다 다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따름(順)이니, 말하자면 또한 총이고 또한 별인 등이 각각 모습을 따라서 성취하는 등이다. 생각하고 준하여서 지은 것이다.
여섯째, 글을 해석하는 것이니, 다섯이 있다.첫 번째는 법을 기준으로 하여 수數를 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설해진 법에 여섯 종류의 모습이 있는 등이다.두 번째는 가르침의 뜻을 정함을 변별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설로 해석한 것이다’란, 가르침을 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가운데 이 육상의 언설을 안립하는 것은 경문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한다. 또 이를 풀이한 가운데 육상을 해석한 것은, 이곳의 경문이 아니라 다만 논주가 해석한 뜻일 뿐이다. ‘사事는 제외됨을 알아야하니, (사事란) 말하자면 오온(陰)ㆍ십팔계(界)ㆍ십이처(入) 등이다’라는 것은, 이것은 그 뜻을 정함을 변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리를 기준으로 하여 융통을 설한 것이고, 오온 등 현상의 모습 중에서 변별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제하여 가려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네 번째는 모습을 풀이하는 가운데, 별상 내에서 ‘별別이 본本에 의지하되’는 총에 의지하여 별을 여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저 근본을 만족시킨다’는 (별이) 다시 능히 총을 이루는 것이다. 말하자면 반드시 본에 의지해야 하는 별이 바야흐로 능히 본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늘어나는 모습’은 앞의 아홉 가지 들어감의 점차 늘어나는 모습이니 ‘다름(異)’을 나타내는 것이다.연緣이 이루어져 화합함을 간략한 말로 표현하고, 연緣이 흩어져 지음이 없음은 널리 인연을 변별한다.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과 같다’는 것은 비유를 들어서 나타낸 것이니, 말하자면 마치 백억의 사천하가 합하여 하나의 사바세계를 이루는 것을 간략한 말로 표현하면 ‘이룸(成)’이 되고, -
006_0807_a_01L有起不起。二彼所起末。旣帶於本。
006_0807_a_02L是故相望。有同有異。三彼帶本之
006_0807_a_03L末。旣爲本1)收。 [141] [141] 是故當體。有存有
006_0807_a_04L壞。若不具此三。不成緣起。三中各
006_0807_a_05L二。故但唯六。五問答決擇者。有二。
006_0807_a_06L初逆。謂非捴非別等。各各互相形
006_0807_a_07L奪諸相。皆盡故也。二順。謂亦捴
006_0807_a_08L亦別等。各各順相成就等。思准作
006_0807_a_09L之。六釋文有五。一約法擧數。謂於
006_0807_a_10L所說法中有六種相等。二辨定敎
006_0807_a_11L義。此言說解釋者。是定敎。謂於此
006_0807_a_12L中。安此六相之言說。爲欲解釋經
006_0807_a_13L文。應知此義。又釋此中釋六相。非
006_0807_a_14L是此處經文。但是論主解釋之意。
006_0807_a_15L應知除事。謂陰界入等者。此辨定
006_0807_a_16L其義。謂約道理說融通。非是陰等
006_0807_a_17L事相中辨。第上之二第三五張 故除
006_0807_a_18L簡之。三列名。可知。四釋相中。別內
006_0807_a_19L別依本者。明依捴開別。滿彼本者。
006_0807_a_20L還能成捴。 謂要依本之別。方能滿
006_0807_a_21L本故也。增相者。是前九入。漸增之
006_0807_a_22L相。以現異也。緣成和合。略言標
006_0807_a_23L現。緣散無作。廣辨因緣。如世界成
006_0807_a_24L壞者。擧喩以現。謂如百億四天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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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7_b_01L만약 백억의 차별을 분별하여 널리 설하면 하나의 사바세계가 의거하여 머무를 바가 없게 하기 때문에 ‘무너짐(壞)’이 된다.다섯 번째, ‘나머지 모든’은 모든 곳에서 (육상의 가르침을) 권하는 것이니, 준하여 견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고기
‘고기’에 이른다. 법장 스님의 소䟽에 이르기를, “(세친) 논주가 네 가지 문의 해석을 지었다. 운운.”121)라고 한다. 이 네 가지 문의 이름은 비록 소䟽를 지은 이가 스스로 지은 것이나, 그러나 저 『(십지경)론』 가운데 본래 그 뜻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세친) 논주가 네 가지 문을 지었다.”라고 한 것이다.
문 이 네 가지 문은 다 일승인가, 혹은 삼승인가?답 어떤 이는 이른다. 네 가지 문이 다 일승이다. 무엇인가? 처음 문은 “가르침과 뜻에 통하고 내지 원인과 결과에 통하여, 합하여 통틀어서 장애가 없어 운운.”라 하니, 이와 같이 열 가지 보법의 이름을 기준으로 한다. 둘째 문은 ‘다름없음의 다름’이고, 셋째 문은 ‘다르되 다름없음’이며, 넷째 문은 ‘총상과 별상이 걸림 없음’이기 때문이다.어떤 이는 이른다. 처음과 뒤의 두 문은 앞의 해석과 같다. 둘째는 근본의 들어감에 의거하여 아홉 가지 들어감의 지말을 여니, 삼승이 한마음(一心)의 근본에 의거하여 흘러서 육도六道를 이루는 것과 같다. 셋째는 아홉 가지 들어감의 지말을 모아서 근본의 들어감으로 돌아가니, 또한 삼승이 육도의 차별을 모아서 평등한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뜻과 같다. 따라서 이 두 문은 모두 삼승이다.
어떤 이는 이른다. 첫 하나는 일승이고 다음의 둘은 삼승이니 또한 앞의 해석과 같다. 넷째 문은 비록 육상을 밝히나 육상의 가르침이 일어난 뜻에 이르기를, ‘고정되어 집착하는 견해를 깨뜨려서 연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미 이르기를, 집착을 깨뜨린 후에 덕을 나타낸다고 한 까닭에, 이는 모습을 닦는 문의 원융한 뜻이므로 처음 문의 총체적으로 해석한, 근본을 나타내는 일승에 상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삼승이라고 한다. -
006_0807_b_01L成一娑婆。略言標現爲成。若分別
006_0807_b_02L廣說百億差別。令一娑婆無所
006_0807_b_03L依住故爲壞。五餘一切者。勸於
006_0807_b_04L一切處。准類知之。
006_0807_b_05L古記云。藏䟽云。論主作四門解釋。
006_0807_b_06L云云。 此四門名。雖是䟽主自作。然
006_0807_b_07L彼論中。本具其義。故云論主作四
006_0807_b_08L門也。問。此四門者。皆一乘耶。或
006_0807_b_09L三乘耶。答。一云。四門皆是一乘。何
006_0807_b_10L者。初門則通敎及義。乃至通因
006_0807_b_11L及果。混通無碍。云云。 如是約十種
006_0807_b_12L普法名。 2)弟二門則無別之別。 *弟
006_0807_b_13L三門則別而無別。 *弟四門則捴別
006_0807_b_14L無㝵故。一云。初後二門。同前釋也。
006_0807_b_15L*弟二則依根本入開九入末。同
006_0807_b_16L於三乘依一心本流成六道。 *弟
006_0807_b_17L三則會九入末。歸根本入。亦同三
006_0807_b_18L乘會六道差別歸平等一心之義。故
006_0807_b_19L此二門並三乘也。一云。初一一乘。
006_0807_b_20L次二三乘。亦同前釋。 *弟四門則
006_0807_b_21L雖明六相。六相敎興意云。破定執
006_0807_b_22L見。以現緣起。旣云破執而後現德
006_0807_b_23L故。是修相門之圓融義故。對初門
006_0807_b_24L捴釋現本之一乘。故云三乘也。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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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7_c_01L어떤 이는 이른다. 논주가 앞의 세 문에서 육상을 밝히지 않고 넷째 문에 이르러 육상을 논하기 때문에, 이 논의 글의 모습을 기준으로 하면 분명하게 나타나니, 앞의 셋은 삼승이고 뒤의 하나는 일승이다. 그러나 넷째 문이 육상을 밝힐 때 앞의 세 문의 근본과 지말을 가지고 논하기 때문에, 넷째 문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앞의 세 문도 다 또한 일승이다.122)
문 이 넷째의 ‘근본과 지말의 걸림 없음’은 그 뜻이 무엇인가?답 어떤 이는 이른다. (『화엄경』) 여덟 번째 모임에 대한 주석(䟽)에서, ‘근본 모임을 펴서(舒) 지말 모임이 되고, 지말 모임을 말아 거두어(卷) 근본 모임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123) 지금 이 또한 그러하여, 근본의 총상을 열어서 아홉 가지 들어감의 지말을 이루고, 아홉 가지 들어감의 지말을 모아서 근본의 총을 이룬다.
어떤 이는 이른다. 일승 가운데 정해진 근본과 지말이 없기 때문에 하나를 들면 주主가 되고 나머지는 반伴이 된다. 그러므로 열 가지 들어감에서 듦을 따라 근본이 되고 나머지는 지말이 된다.어떤 이는 이른다. 근본은 스스로 항상 근본이고 지말도 또한 스스로 항상 지말이나 걸림이 없다. 말하자면 한결같이 근본의 들어감을 이름하여 총상이라 하고 나머지 아홉 가지 들어감으로써 이름하여 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한결같이 나머지 아홉 가지 들어감을 이름하여 별이라 하고 근본의 들어감으로써 이름하여 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문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근본과 지말이 걸림 없음을 이루는가?답 총에 의거하여 별을 열 때 만약 근본인 총을 깨뜨려서 아홉 가지 들어감인 지말을 이룬다면 곧 별이 총에 걸리는 것이다. 별을 모아 총을 이룰 때도 또한 만약 그러하다면 총이 별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나 총이 움직이지 아니하되 별을 이루고 별이 움직이지 아니하되 총을 이루기 때문에, 근본은 항상 근본이고 지말은 항상 지말이지만 능히 걸림 없음을 이룬다. -
006_0807_c_01L云。論主於前三門。不明六相。至
006_0807_c_02L*弟四門。第上之二第三六張 論六
006_0807_c_03L相故。約此論文相現著。則前三三
006_0807_c_04L乘。後一一乘也。然*弟四門。明六
006_0807_c_05L相時。將前三門本末論故。約*弟
006_0807_c_06L四門看。則前之三門。皆亦一乘
006_0807_c_07L也。問。此*弟四本末無㝵。其義云
006_0807_c_08L何。答。一云。*弟八會䟽云。本會舒
006_0807_c_09L爲末會。末會卷爲本會故。今此亦
006_0807_c_10L尒。開根本摠。成九入末。會九入末。
006_0807_c_11L成根本摠也。一云。一乘中無定本
006_0807_c_12L末故。擧一爲主。餘則爲伴。是以
006_0807_c_13L於十入中。隨擧爲本。餘則爲末也。
006_0807_c_14L一云。本則自恒本。末亦自恒末。而
006_0807_c_15L無㝵也。謂一向根本入名爲摠。
006_0807_c_16L非以餘九入名爲摠。一向餘九入
006_0807_c_17L名爲別。非以根本入名爲別也。
006_0807_c_18L問。若尒。何成本末無㝵耶。答。依摠
006_0807_c_19L開別時。若破根本摠而成九入末。
006_0807_c_20L則別㝵於摠也。會別成摠時。亦若
006_0807_c_21L尒則。摠㝵於別也。然而摠不動而
006_0807_c_22L成別。別不動而成摠故。本則恒本。
006_0807_c_23L末則恒末。而能成無㝵也。問。六相
006_0807_c_24L「收」作「攝」{乙}。「弟」作「第」{乙}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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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8_a_01L문 『육상장』에 이르기를, “서까래가 곧 집이므로 총상이라 이름하고 집이 곧 서까래이므로 별상이라 이름한다.이상.”124)라고 한다. 이 글에 의거하면 근본이 도리어 지말이 되고 지말이 도리어 근본이 됨을 허용하는 것인가?답 일승에서는 만약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이루어지면 처음과 끝을 여읜 까닭”125)에 비록 ‘서까래가 곧 집이다’라고 하더라도, 이미 집일 때에는 처음과 끝을 여의었으므로 먼저 별인 서까래가 있고 후에 집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근본이 도리어 지말이 되고 지말이 도리어 근본이 된다고 하지 않는다.
문 서까래는 별의 연緣인데 이미 “서까래가 곧 집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또한 포섭의 들어감 등의 별이 총이 되는 뜻도 있기 때문에 또 지말이 도리어 근본이 되는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답 만약 포섭의 들어감 등이 총이 되는 뜻이라면 곧 이것은 근본의 들어감이기 때문에, 다만 총으로써 이름하여 총이라고 하고 별로써 이름하여 총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포섭의 들어감 등이 만약 총이 된다면 다만 근본의 들어감이라고 할 뿐이다.
고기
‘고기’에 이른다. 근본의 들어감의 큰 허공 가운데 여덟 가지 어려움이 있다. 만약 이 여덟 가지 어려움을 안다면 비록 그 본 소䟽를 보지 못하더라도 『십지경론』의 오묘한 뜻을 안다고 할 수 있으나, 만약 이 여덟 가지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면 비록 열 명, 스무 명의 주석가의 소䟽를 얻더라도 『십지경론』의 뜻을 안다고 할 수 없다.말하자면 첫째, 이 큰 허공 중에 비록 총과 별의 모습이 없으나 총과 별을 나눌 수 있는 뜻이 있으니 이것을 보기 어렵다. 말하자면 위의 오중五重의 총과 별126)에서 처음 삼중을 기준으로 하여 본다.
둘째, 이 큰 허공 중에 비록 여러 가르침의 수행의 지위가 없으나 여러 가르침의 수행의 지위를 나눌 수 있으니 또한 보기 어렵다. 흘러나온 바 삼승의 아홉 가지 들어감의 자리에서 본다. -
006_0808_a_01L章云。椽即是舍。故名摠相。舍即
006_0808_a_02L是椽。故名別相。已上 依此文則。可
006_0808_a_03L許本還爲末末還爲本耶。答。一乘
006_0808_a_04L之中。若不成則已。成則離始終故。
006_0808_a_05L雖云椽即是舍。旣是舍時。離始終
006_0808_a_06L故。非是先有別椽後成舍也。是故
006_0808_a_07L不云本還爲末末還爲本也。問。椽
006_0808_a_08L是別緣。旣云椽即是舍故。亦有攝
006_0808_a_09L入等別爲摠之義。故亦可云末還
006_0808_a_10L爲本之義。何不然耶。答。若攝入等
006_0808_a_11L第上之二第三七張 爲摠之義。即
006_0808_a_12L是根本入故。但以摠名爲摠。不以
006_0808_a_13L別名爲摠也。是以攝入等。若爲摠
006_0808_a_14L則但云根本入也。
006_0808_a_15L古記云。根本入大虛之中。有八難
006_0808_a_16L也。若得知此八難。則雖不見其本
006_0808_a_17L䟽。可謂得知地論之妙旨。若不知
006_0808_a_18L此八難。則雖得一十二十家䟽。不
006_0808_a_19L可謂知地論之旨也。謂一此大虛
006_0808_a_20L中。雖無摠別之相。而有可分摠別
006_0808_a_21L之義。此難見也。謂於上五重摠別。
006_0808_a_22L約初三重見也。二此大虛中。雖無
006_0808_a_23L諸敎行位。而有可分諸敎行位。
006_0808_a_24L亦難見也。於所流三乘九入處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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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8_b_01L셋째, 이 큰 허공 중에 비록 항상함과 항상함이 없음(無常)도 없으나, 항상함의 지혜가 장애를 끊음과 항상함이 없음의 지혜가 장애를 끊음이 있으니 또한 보기 어렵다. ‘또 선근이 있어’127) 등의 문구를 기준으로 하여 본다. 만약 품品과 모임(會)을 기준으로 하면, 차별과 평등의 두 가지 두루한 인과(差別平等二周因果)128)와 수생修生과 본유本有129)의 두 지혜이다.
넷째, 이 큰 허공 중에 항상함과 항상함이 없음에 대한 지혜가 합하여 하나의 흐름이 없는 지혜를 이룸이 있으니 또한 보기 어렵다. 말하자면 첫 모임의 사십 부류130)의 법체法體와 법계 모임의 신중神衆은 유위有爲이며 보현보살과 문수보살 등의 한가지로 태어난 무리(同生衆)131)는 곧 무위無爲이다. 이 유위와 무위가 합하여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 자체의 지혜를 이룬다.132)
다섯째, 이 큰 허공 중에 생멸과 생멸하지 않음이 합하여 법의 체體를 이룸이 있으니 또한 보기 어렵다. 이는 머무름이 없는 별교의 문 가운데 얕고 깊음이 없는 삼관三觀133)의 생멸과 증분 가운데 생겨남이 없는 부처님 법의 생멸하지 않음이다.여섯째, 이 큰 허공 중에 움직이지 않는 근본 무명이 곧 법의 체體를 만족시키니 또한 보기 어렵다. 종교終敎의 근본과 지말 등의 무명에 대해서 ‘보普’ 자의 도장으로 도장 찍어 정해서 본다.
일곱째, 이 큰 허공 중에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에서 발심하고, 포섭의 들어감의 지위에서 성불하니 또한 보기 어렵다. ‘이 모든 들어감은 지혜의 뜻의 차별을 비교해 헤아림이 된다’는 등의 문구를 기준으로 하여 본다.여덟째, 이 큰 허공 중에 지옥의 지위에서 발심하는 사람은 없으나, 그러나 지옥에서 발심하여 성불함이 있으니 또한 보기 어렵다. “이것은 언설로 해석한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의 문구에 의거하여 본다.
3) 연기무분별리緣起無分別理
‘모든 법이 각각 달라서’부터 ‘모든 지地의 공덕’까지134)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모든 법이 각각 달라서 스스로 여여如如함에 머무르기 때문이며, -
006_0808_b_01L也。三此大虛中。雖無常無常。而
006_0808_b_02L有常智斷障。無常智斷障。亦難見
006_0808_b_03L也。約復有善根等文見也。若約品
006_0808_b_04L會者。是差別平等二周因果修
006_0808_b_05L生本有之二智也。四此大虛中。有
006_0808_b_06L常無常智合成一無流智。亦難見
006_0808_b_07L也。謂初會四十類法體。及法界會
006_0808_b_08L神衆。則有爲也。普賢文殊等同生
006_0808_b_09L衆。則無爲也。此有爲無爲。合成法
006_0808_b_10L身毗1)蘆 [142] 遮那自體智也。五此大
006_0808_b_11L虛中。有生滅不生滅。合成法體。亦
006_0808_b_12L難見也。是無住別敎門中。無淺深
006_0808_b_13L三觀之生滅。訂分中無生佛法之
006_0808_b_14L不生滅也。六此大虛中。不動根本
006_0808_b_15L無明。即是滿足法體。亦難見也。
006_0808_b_16L於終敎根本枝末等無明。以普字
006_0808_b_17L印。印定而見也。七此大虛中。於
006_0808_b_18L佛盡入發心。第上之二第三八張 於
006_0808_b_19L攝入位成佛。亦難見也。約是諸入
006_0808_b_20L爲挍量智義差別等文見也。八此
006_0808_b_21L大虛中。無地獄位發心之人。然
006_0808_b_22L有地獄中。發心成佛。亦難見也。
006_0808_b_23L依此言說解釋應知之文見也。
006_0808_b_24L諸法各異 至諸地功德。法記云。諸法
-
006_0808_c_01L하나의 여여함과 많은 여여함의 여여한 모습을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은 오십사각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여여함’이라고 하나, 이것이 ‘제1각의 여如이고 이것이 제2각의 여如이다’라는 등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모습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제)1각을 기준으로 할 때가 곧 오십사각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여함’이라고 하며, 제2각을 기준으로 하는 것 또한 이와 같다. 이에 이르러 마침내 앞의 질문에서 “위에서 이르기를,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다고 하고, 한 집의 참된 덕德이며 성性이 중도에 있다’고 하니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135)라고 한 뜻에 답하는 것이다.
대기『대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묻는다. 무엇이 부처님의 법을 깊이 믿는 것인가? 답한다. 일체 모든 법이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는 바이고 나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한 것 등은, 『승만경』을 인용하여 위의 것을 증명하며 스스로는 겸손히 한 것이다. 말하자면 앞에서 이르기를, ‘이 뜻은 실로 이해하기 어렵다. 비록 그러하나, 천친 논주에 의거하면 내지 분한 따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뜻으로는 오직 부처님만이 아시는 바이고 내 자신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나 가르침과 이법(理)에 의거하여 분수 따라 이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 가운데 우러러 미루는 지혜를 인용하여 증명을 삼은 것이다. 저 경에서 이르기를 ‘매우 깊은 법의 지혜를 성취함’은 첫 번째 사람을 위한 것이고, ‘수순하는 법의 지혜를 성취함’은 두 번째 사람을 위한 것이고, ‘여래에게 우러러 미루며 나의 경계가 아니다’라는 것은 세 번째 사람을 위한 것이다.136) 풀이하면 처음은 깨달은 지혜이고 다음은 삼현三賢이며 마지막은 십신十信이다.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일곱 장소와 여덟 모임과 품의 종류가 같지 않으나 오직 「십지품十地品」에 있으니, 까닭이 무엇인가? 이 근본으로써 법을 모두 거두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실담장悉曇章」137)과 같다. 일체 모든 글자는 첫 장章이 근본이 되니 이와 같이 세간과 출세간의 일체 모든 법은 십지가 근본이 된다.138) -
006_0808_c_01L各異住自如故。一如多如如如相。不
006_0808_c_02L可得者。約五十四角。故云如如。而不
006_0808_c_03L可分。此是2)弟一角如。此是*弟二角
006_0808_c_04L如等。故云相不可得。約一角時。即
006_0808_c_05L約五十四角。故云如如。約*弟二角。
006_0808_c_06L亦如是也。至此竟答前問。上云因果
006_0808_c_07L不同。而一家實德。性在中道。未知
006_0808_c_08L所由之義。
006_0808_c_09L大記云。是故經云。問云。何深信佛
006_0808_c_10L法。答。一切諸法。唯佛所知。非我境
006_0808_c_11L界等者。引勝鬘經。訂上自謙也。謂
006_0808_c_12L前云。此義其實難解。雖然。依天親論
006_0808_c_13L主。乃至隨分可解云者。意云唯佛所
006_0808_c_14L知非我自分所解。然依敎理。隨分
006_0808_c_15L現此義也。是故引經中仰推之智而
006_0808_c_16L爲訂也。彼經云。成就甚深法智。爲
006_0808_c_17L*弟一人。成就隨順法智。爲*弟二人。
006_0808_c_18L仰推如來非我境界。爲*弟三人。解
006_0808_c_19L云。初則訂智。次則三賢。後則十信也。
006_0808_c_20L法記云。七處八會。及品類不同。而唯
006_0808_c_21L在地品。所以者何。以是根本得 [142] 法盡
006_0808_c_22L故者。如悉曇章。一切諸字。初章爲
006_0808_c_23L本。如是世出世間。一切諸法。十地爲
006_0808_c_24L「蘆」作「盧」{乙}。「弟」作「第」{乙}次同。
-
006_0809_a_01L따라서 ‘법을 모두 거둔다’라고 하는 것이다.고기
‘고기’에 이른다.문 일승의 십지를 어떻게 보는가?답 부석산 40일 법회에서 의상 화상이 “일승의 십지는 가로(橫)이며 세로(竪)이다.”라고 하였다. 상원相元 스님과 지통智通 스님 등이 화상의 뜻을 이미 얻었다고 말하고 그 법회가 마침에 이르러 각자 깨달은 바를 바치자, 화상이 이르기를, “모두 얻지 못하였다. 일승의 십지는 적멸도량에서 비로소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의 마음에 의지해서 본다.”라고 하였다. 후에 신림 대덕이 풀이하여 말하기를, “초회의 십지는 태어나면서 장님인 사람이 색상을 보고 본다는 것과 같다. 「광명각품」 이후의 십지는 태어나면서 귀머거리인 사람이 소리를 듣고 본다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초회의 근본에 의지해서 뒤의 「광명각품」의 십지를 일으키니 수생修生의 십지, 불과佛果의 십지, 본유本有의 십지, 이세간의 십지, 입법계의 십지이다.
문 일승의 다함없는 십지를 어떻게 보는가?답 삼승 중에는 삼천세계의 법의 광명에 의거하고, 일승의 수순하는 문(一乘隨門)139)에서도 또한 세계(界)의 법의 광명에 의거하고, 우리 별교에서는 (세계)종種의 법의 광명에 의거하여 (본다).삼승의 십지는 초지는 백 개 잎의 연꽃의 광명에 의지한다. 말하자면 두루 만족된 진여(遍滿眞)를 안으로 가득히 증득한 타수용신他受用身이 의거하는 바이며 또한 응신應身이다. 그 백 개의 잎에서 전체를 총괄하는 하나의 잎이 정토의 변화이다. 또 하나하나의 잎 가운데 각각 백억의 석가모니부처님이 있으니 예토의 변화이다. 둘째 지地는 천 개 잎 연꽃의 광명에 의한다. 앞에 준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지 열째 지地는 수없는 잎의 연꽃의 광명에 의한다. -
006_0809_a_01L本。故云攝法盡也。
006_0809_a_02L古記云。一乘十地。如何見耶。答。浮
006_0809_a_03L石山四十日會。和尙云。一乘十地。
006_0809_a_04L1)撗 [143] [143] 也竪也。相元智通等。以謂已
006_0809_a_05L得和尙之意。第上之二第三九張 及
006_0809_a_06L其會終。各呈所領。和尙曰。並不
006_0809_a_07L得也。一乘十地者。依寂滅道場
006_0809_a_08L始成正覺佛心而見也。後林徳釋
006_0809_a_09L云。初會十地者。如生盲人見色
006_0809_a_10L而見也。光明覺品以去十地者。如
006_0809_a_11L生聾人聞聲而見也。謂依初會本。
006_0809_a_12L起後光明覺品十地。修生十地。
006_0809_a_13L佛果十地。本有十地。離世間十地。
006_0809_a_14L入法界十地也。問。一乘無盡十地。
006_0809_a_15L如何見耶。答。三乘中依三千界法
006_0809_a_16L明也。一乘隨門中亦依界法明也。
006_0809_a_17L自別敎中依於種法明也。三乘十
006_0809_a_18L地者。初地依百葉蓮花明也。謂
006_0809_a_19L仲密訂遍滿眞。他受用身之所依也。
006_0809_a_20L亦是應身也。其百葉中。全統一葉
006_0809_a_21L則淨土之化也。又一一葉中。各有
006_0809_a_22L百億釋迦。則穢土之化也。二地則
006_0809_a_23L依千葉蓮花明也。准前可知。乃
006_0809_a_24L至2)弟十地。則依無數葉蓮花明也。
-
006_0809_b_01L또한 앞에 준하여 안다.이 삼승 가운데 연꽃이란 십지의 보살이 의지하여 머무는 바이다.140) 일승의 연꽃은 곧 십지의 체體이다. 일승의 수순하는 문에서 세계(界)의 법에 의거하여 변별하는 것은 삼승과 같으나, 다만 육상으로 이루기 때문에 다를 뿐이다. ‘(세계)종種에 의거하여 변별한다’고 말하는 것은 초회에 합하여 오십여섯 거듭(五十六重)의 십지가 있다. 말하자면 교분의 한 거듭과 증분의 오십다섯 거듭이다.
교분의 한 거듭이라고 말한 것은 세계바다에 열 가지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국토의 티끌수 향물바다(香水海)가 있는데, 가장 가운데 바다에 큰 연꽃이 생겨나고 이 연꽃 위에 세계종世界種이 있다. 이 하나의 세계종에 스무 거듭의 세계가 있으니 이 스무 거듭이 곧 십지이다. 십지에 각각 자분自分과 앞으로 나아감이 있기 때문에 스무 거듭이 있다. 이 하나의 세계종이 이미 십지가 있는 것과 같이 나머지 낱낱의 세계종에도 모두 십지가 있기 때문에 열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티끌 수 십지가 있다. 따라서 ‘다함없는 십지’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한 거듭이다. 만약 나아가 보면 곧 거듭거듭 다함없는 십지가 있으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증분의 십지’라고 말한 것은 다섯 바다(五海)와 열 지혜(十智)141)를 기준으로 하여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바다로써 지혜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십 바다가 있으니, 다섯 거듭의 십지이다. 지혜로써 바다에 들어가기 때문에 오백 지혜가 있으니, 오십 거듭의 십지이다. 그러므로 증분 가운데 합하여 오십다섯 거듭의 십지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수행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약 나아가 보면 곧 거듭거듭 다함없는 십지가 있으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문 삼승은 환희歡喜와 이구離垢 등으로써 십지를 삼는다. 일승에서는 무엇으로써 이름하는가? -
006_0809_b_01L亦准前知。此三乘中蓮花者。十地
006_0809_b_02L菩薩之所依住也。一乘蓮花。則是
006_0809_b_03L十地體也。一乘隨門中。依界法辨
006_0809_b_04L者。同於三乘。但以六相成故別耳。
006_0809_b_05L言依種辨者。初會中合有五十六
006_0809_b_06L重十地。謂敎分之一重。訂分之五
006_0809_b_07L十五重也。言敎分一重者。世界海
006_0809_b_08L中。有十不可說佛刹塵數之香水
006_0809_b_09L海。最中央海。出大蓮花。此蓮花
006_0809_b_10L上。有世界種。此一種中。有二十
006_0809_b_11L重世界。此二十重。即是十地。十地
006_0809_b_12L各有自分勝進故。有二十重也。如
006_0809_b_13L此一種。第上之二第四○張 旣有十
006_0809_b_14L地。餘一一種。皆有十地故。有十
006_0809_b_15L不可說世界塵數十地。故云無盡
006_0809_b_16L十地也。此則一重耳。若進見者。
006_0809_b_17L即有重重無盡十地。可思。言訂分
006_0809_b_18L十地者。約五海十智見也。謂以海
006_0809_b_19L入智故。有五十海。則五重十地。
006_0809_b_20L以智入海故。有五百智。則五十重
006_0809_b_21L十地。是故訂分中合有五十五重
006_0809_b_22L十地也。是約一行門也。若進見者。
006_0809_b_23L即有重重無盡十地。可思。問。三乘
006_0809_b_24L以歡喜離垢等爲十地。一乘中。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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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09_c_01L답 동교의 수순하는 문에서는 삼승과 같다. 만약 별교에서라면 세계의 이름, 바다의 이름, 지혜의 이름 등이 다 십지의 이름이다. 원교의 문에서는 환희 등의 이름과 세계 등의 이름이 다 십지의 이름이다. 말하자면 삼승 중에는 오직 이름만 있을 뿐이고 실제 법의 체體가 없다. 원교 중에는 법의 체體를 갖춤으로써 십지를 삼는다. 또 삼승 초교의 십지는 세로(竪)의 지위이다. 말하자면 십신과 십주로부터 점차 부처님의 과보에 이르기 때문이다. 숙교의 십지는 가로(橫)의 지위이다. 말하자면 한 여래장의 체體 가운데 나누어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일승 중에서는 가로와 세로를 갖춘다. 말하자면 가로로 허공법계를 포함하고 세로로 구세와 십세를 꿰뚫기 때문이다. 십신과 십주 등은 다 십지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법장 스님이 이르기를, “십지는 앞으로는 지地 이전을 거두고 위로는 부처님의 과보를 거둔다. 모임과 모임의 근본되는 부분에 다 바다가 있다고 하니, 이에 모두 십지로 근본을 삼음을 안다.”라고 하였다. (의상) 화상의 뜻도 마땅히 그러할 뿐임을 알아야 한다.
법융기『법기』에 이른다. ‘하나의 지地에서 일어나지 않고 널리 일체 모든 지地의 공덕을 거둔다’라고 한 것 등은 이 가운데 연기법을 바로 밝히기 때문에 ‘하나가 일체를 거둔다’라고 하는 것이다.문 만약 연기의 만족하여 곁이 없는 법을 기준으로 한다면, 곧 그 ‘하나’라는 말이 이미 충분하니 어째서 거듭 ‘널리 거둔다(普攝)’라고 말할 필요가 있는가?답 실제로는 이처럼 다만 ‘하나의 지地’를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필요에 따라서 이른 것뿐이다. -
006_0809_c_01L以名耶。答。同敎隨門中。與三乘同。
006_0809_c_02L若別敎中。世界名海名智名等。皆
006_0809_c_03L十地名也。圓敎門中。歡喜等名世
006_0809_c_04L界等名。皆十地名。謂三乘中。唯
006_0809_c_05L有名耳。無實法體。圓敎之中。以
006_0809_c_06L具法體。爲十地也。又三乘初敎十
006_0809_c_07L地者。竪位也。謂從十信十住漸
006_0809_c_08L至佛果故也。熟敎十地者。橫位
006_0809_c_09L也。謂於一如來藏體中之所分立
006_0809_c_10L故也。一乘中。具橫竪也。謂橫包虛
006_0809_c_11L空法界。竪貫九世十世故也。十
006_0809_c_12L信十住等。皆從十地而起也。故藏
006_0809_c_13L師云。3)十 [144] [144] 地者。前4) [145] [145] 地前。上攝佛
006_0809_c_14L果也。會會本分。皆云有海。是知
006_0809_c_15L皆以十地爲根本也。和尙之意。應
006_0809_c_16L知爾耳。
006_0809_c_17L法記云。不起一地。普攝一切諸地功
006_0809_c_18L德等者。此中正明緣起法。故云一攝
006_0809_c_19L一切也。問。若約緣起滿足無側法者。
006_0809_c_20L即其一言已足。何必重言普攝耶。答。
006_0809_c_21L實則如是只言一地足矣。但隨5)須 [146] [146] 云
006_0809_c_22L耳。第上之二第四一張。
006_0809_c_23L「撗」作「橫」{乙}。「弟」作「第」{乙}。「十」無有
006_0809_c_24L{乙}。「」作「攝」{乙}。「須」作「順」{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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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810_a_01L고기
‘고기’에 이른다. 지상 스님이 경 가운데 “하나의 지地에서 일체 모든 지地를 널리 거둔다.”142)는 문구를 주석하여 이르기를, “수행의 모습이 차례로 하여 마지막에 궁극적인 실제의 자체에 이르는 것에 나아가 논한다. 요약하면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작이기 때문에 마지막을 생기게 할 수 있으며, 마침내 끝까지 만족시키기 때문에 ‘거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록 처음의 시작이지만 그러나 모든 지地에서 행하는 바 모든 법을 능히 행하여 다름이 없기 때문에, ‘거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루는 바의 행은 다만 자신의 분상(自分) 가운데 존재하니, 위와 아래의 우열은 단지 밝음과 어두움으로 다름이 될 뿐이다. 셋째는 다만 처음의 시작이 곧 일체 모든 지地의 공덕을 거두기 때문에 ‘거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넷째는 처음과 나중이기 때문에 ‘거둠’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처음의 시작이 곧 바로 마지막이기 때문에 ‘거둠’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상.”143)라고 하였다. 풀이하면 어떤 이는 말하기를 “처음 둘은 시교와 종교이고, 뒤의 둘은 일승이다. 일승의 둘 가운데 처음은 연기분이고 뒤는 과분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일승의 둘 가운데) 처음은 중문이고 뒤는 즉문이다.”라고 한다.
『법계도기총수록』 상권 2 -
006_0810_a_01L古記云。至相釋經中在於一地普
006_0810_a_02L攝一切諸地之文云。就行相次1)弟
006_0810_a_03L終至窮實自體以論。要略有四。一
006_0810_a_04L以於始故。能生於後。終竟滿足故。
006_0810_a_05L言攝也。二雖是初始。然能行於諸
006_0810_a_06L地所行諸法無2)姝 [147] [147] 故。言攝也。而
006_0810_a_07L所成之行。但在自分中。上下優劣。
006_0810_a_08L但以明昧爲異耳。三但是初始即
006_0810_a_09L攝一切諸地功德故。名攝也。四非
006_0810_a_10L謂以初後故名攝。但是初始即
006_0810_a_11L正是終故。名攝也已上 解云一云。
006_0810_a_12L初二始終敎。後二一乘。一乘二中。
006_0810_a_13L初緣起分。後果分。一云初中門。
006_0810_a_14L後即門也第上之二第四二張。
006_0810_a_15L法界圖記叢髓錄卷上之二。
006_0810_a_16L「弟」作「第」{乙}。「姝」作「殊」{乙}。
- 1)『화엄경』에는 해인삼매의 세력으로 인해 일체를 다 나타내 남김이 없다는 「현수보살품」의 게송 등 이 구절과 맥을 같이하는 설이 여러 군데 보인다. 법장도 이러한 게송 등을 근거로 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인 『화엄경』이 삼라만상森羅萬象, 즉 세 가지 세간을 모두 거두며 바로 해인삼매 중에 나타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화엄경탐현기』(K47, 469c26~470a3; T35, 119c11~15).
- 2)분제分齊의 의미는 나누어 가지런히 한다는 것으로 같은 것끼리 모아 나누는 것이니 경계, 부문, 영역 등으로 번역된다.
- 3)‘총상ㆍ별상’에서 ‘중도에 있듯이’까지의 해석에 대해 『대기』에서는 또 다른 해석의 예를 소개하고 있다. 『총수록』 상권 2 각주 68) 참조.
- 4)세친의 『십지경론』에서 『십지경』 원문 중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K15, 3a8~9; T26, 124b19~20)
- 5)이하의 인용문은 『십지경』에서 금강장불金剛藏佛이 금강장보살의 입정入定을 열 가지로 칭찬하시는 경문〔『십지경론』(K15, 3a8~14; T26, 124b19~24)〕을 세친이 『십지경론』에서 주석한 부분이다.(K15, 3b1~c13; T26, 124c5~125a6)
- 6)세친의 『십지경론』에서 『십지경』 원문 중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K15, 3a8~9; T26, 124b19~20)
- 7)이 경(修多羅)은 『십지경』을 가리킨다.
- 8)『십지경』(『십지경론』, K15, 3a9; T26, 124b20).
- 9)『십지경』(『십지경론』, K15, 3a10; T26, 124b20~21).
- 10)『십지경』(『십지경론』, K15, 3a10~11; T26, 124b21).
- 11)『십지경』(『십지경론』, K15, 3a11; T26, 124b21~22).
- 12)『십지경』(『십지경론』, K15, 3a11~12; T26, 124b22).
- 13)『십지경』(『십지경론』, K15, 3a12; T26, 124b22~23).
- 14)『십지경』(『십지경론』, K15, 3a12~13; T26, 124b23).
- 15)『십지경』(『십지경론』, K15, 3a13~14; T26, 124b23~24).
- 16)『십지경』(『십지경론』, K15, 3a14; T26, 124b24).
- 17)앞의 “모든 보살(一切菩薩)”부터 “뜻을 따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隨義類知)”까지는 『십지경론』(K15, 3b1~c13; T26, 124c5~125a6)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 18)『총수록』의 주석(『大記』, H6, 808c9~19; K45, 184b9~16)에 의하면 이 구절은 『勝鬘經』의 인용이다. 상권 2 각주 136) 참조.
- 19)한 부의 경전(一部經) : 7처, 8회, 34품, 60권으로 이루어진 『대방광불화엄경』을 가리킨다.
- 20)『총수록』(H6, 793a2). 이에 해당하는 『일승법계도』 원문은 H2, 1b2~6; H6, 791b3~7.
- 21)지엄의 『수현기』(K47, 67c9~10; T35, 88b22~24)에서는 「입법계품」의 근본법회〔『육십화엄』(K8, 305a16~b2; T9, 677b25~c6)〕를 주석하면서 기수급고독원의 대장엄중각大莊嚴重閣을 기세간으로, 여래의 모임을 지정각세간으로, 보살의 모임을 중생세간으로 분류하는 구절이 보인다. “初莊重閣等卽器世間。 二如來集卽智正覺。 三菩薩集卽衆生世間耳。” 그러나 『공목장』 「三世間章」(T45, 568c17~569a8)에서는 보살이 중생신을 나투는 것은 중생들의 믿고 좋아함을 알아서 자재하게 차별신을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풀이하고도 있다.
- 22)『총수록』(H6, 793a20). 이에 해당하는 『일승법계도』 원문은 H2, 1b10~16; H6, 791b 11~18.
- 23)네 번째 해인 : 오중해인 가운데 네 번째인 ‘보현이 삼매에 들어가 관하는 해인(普賢入定觀海印)’을 가리킨다. 『대기』(H6, 768b14~15)는 앞에서 이 해인을 『일승법계도』 제목 가운데 굴곡을 나타내는 ‘오십사각’에 배대하였다.
-
24)『팔십화엄』 「입법계품」의 37번째 선지식인 수호일체성증장위력주야신守護一切城增長威力主夜神의 설법 중 일부분이다.(K8, 879c8~9; T10, 388b26~27) 참고로 『육십화엄』과 『사십화엄』의 해당 경문을 아울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선지식 경문 출전 『팔십화엄』 守護一切城增長威力主夜神 我知法界一性 如來一音 一切衆生無不了故 K8, 879c8~9;T10, 388b26~27 『육십화엄』 妙德守護諸城夜天 知法界一 如來妙音 一切衆生無不聞故 K8, 372c4~5;T9, 738b15~16 『사십화엄』 守護一切城增長威德主夜神 我知法界一性 入於如來圓滿言音 隨衆生心無不了故 K36, 122c10~11;T10, 761a16~18 - 25)위의 각주 24)와 같음.
- 26)『일승법계도』(H2, 1a3; H6, 768a5)의 ‘無方’에 대한 『진수기』(H6, 772c17~19)의 주석을 가리킨다.
- 27)『보법장』으로 인용된 이 구절은 지엄의 『공목장』 「初會十門料簡一經意」(T45, 537a 15~16) 중의 일부분이다. 상권 1 각주 38) 참조.
- 28)『총수록』(H6, 838a18~b1)에서 삼승과 일승, 동교와 별교의 관계를 설명할 때 누각(樓)을 이용하는 경우는 뒤의 ‘고기古記’에서 지엄의 설을 인용하면서 한 번 더 소개된다. 현존하는 지엄의 저술에 ‘고기’의 인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구절은 없지만 『화엄오십요문답』(T45, 522a18~29)에 이와 동일한 맥락의 내용이 보인다.
- 29)왕의 상투 중의 구슬(王髻中珠)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안락행품安樂行品」(K9, 770b11~771c22; T9, 38c4~39c17)에 나오는 비유로서, 구슬은 『법화경』을 뜻한다. 이 비유에서는 전륜성왕이 전쟁을 할 때 부하들에게 그 전공戰功에 따라 갖가지 상을 내리지만 오직 자신의 상투에 있는 보석은 그들이 놀랄까 봐 주지 않다가 다른 여러 상을 준 후에 마지막에 주는 것과 같이, 여래도 또한 중생들에게 갖가지 경 등을 설하지만 이 믿기 어려운 『법화경』만은 끝까지 설하지 않다가 이제 중생들이 일체지를 얻게 하고자 설하신다고 한다.
- 30)『팔십화엄』의 제2회 「여래명호품」부터 제7회 제35품 「여래수호광명공덕품」까지를 가리킨다.
- 31)『일승법계도』(H2, 4中3~4; H6, 812a9~10).
- 32)여덟 잎의 궤칙(八葉之軌) : 『대일경』에 근거한 만다라의 작법 도상 한가운데 대일여래가 자리한 중대팔엽원中臺八葉院이 여덟 잎을 가진 연꽃으로 묘사되어 있음에 의한 것이다. 이 경전에서는 이 만다라 수행을 통한 일체지의 획득, 즉 성불을 위한 수행법을 설하고 있다.
- 33)『毘盧遮那經』 : 『大毘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 속칭 『대일경』을 가리킨다. 선무외善無畏와 일행一行이 725년에 역출하였다.
- 34)『佛地經』 : 현존하는 경전 목록에 『불지경』과 연관시킬 수 있는 경전은 당唐의 현장玄奘이 645년에 번역한 『佛說佛地經』이 있으나 이 경에는 ‘여덟 잎(八葉)’과 관련된 구절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불설불지경』에 대한 인도 친광보살親光菩薩의 주석서 『佛地經論』(현장 역, 649)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 35)『총수록』(H6, 795a7). 이에 해당하는 『일승법계도』 원문은 H2, 1b18~22; H6, 791b 19~c1.
- 36)저(彼)는 삼승이고, 나(我)는 일승, 차종此宗을 뜻한다.
- 37)지엄의 『수현기』 가운데 『화엄경』 「현수품」에 대한 주석 중 일부이다.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결과는 원인과 다름이 없는 결과이고, 원인은 결과와 다름이 없는 원인이나, 인과의 명칭은 연緣에 기대어 나타난 것이다. 그 연이 차이나서 다른 흐름들이 함께 갈마드니 줄어들고 가득 차는 것은 저로부터이고 나에게서 됨은 없다.(果無異因之果。 因無異果之因。 而因果之稱。 寄顯於緣。 其緣乃差。 殊流同軼。 虧盈自彼。 於我無爲。)”(K47, 17b11~13; T35, 32a10~12)
- 38)『총수록』(H6, 795c21). 이에 해당하는 『일승법계도』 원문은 H2, 1b23~2a5; H6, 791c2~792a7.
- 39)네 가지 보살행의 글(四種菩薩行文) : 『화엄경』 「십지품」과 『십지경』의 십대원 중 육상의 명목이 나오는 제4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4원은 바라밀을 육상의 방법으로 행하여 중생의 마음이 증장되기를 원하는 것이다.(T9, 545b25~c3; T10, 181c23~28; T26, 139a14~20)
- 40)융질 대덕(融質德) : 『대기』의 이곳 인용문 외에 균여의 『십구장원통기』에 8회 정도 인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융질이 법융의 『십구장』에 주석을 가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9세기 전반 이후에 활동했던 의상계 화엄학승으로 추정된다.
- 41)『일승법계도』(H2, 7c9~10; H6, 831c5).
- 42)법장, 『화엄일승교의분제장』 「의리분제장」(T45, 509a3)에서 육상원융을 설하는 마지막 구절이다. 이 구절은 「육상송」으로 불린다. 지엄이 지은 「육상송」 또는 『육상장』의 일부분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상권 2 각주 61) 참조.
- 43)4구四句와 육상 : 법장은 『화엄일승교의분제장』 「義理分齊」 중 두 번째, ‘연기인문육의緣起因門六義’에 대해서 4구와 육상을 이용하여 설명한다. 육상은 총ㆍ별ㆍ동ㆍ이ㆍ성ㆍ괴의 육상이다. 4구는 체體를 기준으로 할 때와 작용(用)을 기준으로 할 때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전자는 있음(有)ㆍ없음(無)ㆍ있기도 하고 없기도 함(亦有亦無)ㆍ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음(非有非無)의 4구이며 후자는 자기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님(不自生也)ㆍ남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님(不他生也)ㆍ둘 모두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님(不共生也)ㆍ원인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님(非無因生也)의 4구이다. 『화엄일승교의분제장』(T45, 502b17~28).
- 44)법장, 『화엄일승교의분제장』(T45, 503a7~8).
- 45)사유 대덕(思惟德) : 『일승법계도』에 대하여 해석을 가한 것으로 보아 의상계 화엄학승으로 추정된다.
- 46)『일승법계도』(H2, 1c12; H6, 791c15~16).
- 47)『일승법계도』(H2, 2b23~24; H6, 792c4~5).
- 48)『일승법계도』(H2, 2c8~9; H6, 792c13~14).
- 49)『십지경론』(K15, 4b16~17; T26, 125b19), “此法善巧成。 是故名方便。”
- 50)법장(康藏)의 설로 인용되는 이 구절은 현존하는 법장의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집성방편’과 관련된 논의는 『화엄경탐현기』 가운데 「십지품」 주석 부분에서 법장은 방편을 네 가지가 아닌 ‘발기방편發起方便’ㆍ‘무주방편無住方便’ㆍ‘집성방편集成方便’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T35, 283c26~284a2) 집성방편을 포함하여 방편을 네 가지로 설명하는 것은 정영사 혜원의 저술에 다수 보인다. 『대승의장』(T44, 766a10~17), “四集成方便。 諸法同體巧相集成。 一備一切一切成一。 故曰方便。 故地經中說六相門以爲方便。 又彼論言。 此法巧成名方便矣。”, 「十地經論義記」(卍71, 307a13~16), “四集成方便。 如下第四大願中說。 彼說六相以爲方便。 諸法同體巧相集成。 故名方便。 今據第四故。 言此法善巧成故名方便矣。”
- 51)육상방편에 대해서 융질 대덕과 사유 대덕이 언급한 두 가지 설에 대한 『대기』의 풀이이다.
- 52)『대기』(H6, 800c5~17)는 아래 부분에서 삼관을 인연ㆍ연기ㆍ성기의 삼관으로 밝히고 있다.
- 53)보步 : 토지 및 건물 넓이의 단위를 나타내는 말. 1보는 여섯 자 제곱으로 약 3.3㎡이다. 이는 1평에 해당되므로 20보는 20평가량 된다.
- 54)법장, 『화엄일승교분기』(T45, 507c6~7), “總相者。 一舍多德故。 別相者。 多德非一故。 別依比總滿彼總故。” 교감주에서 이본에는 ‘舍’가 ‘含’으로, ‘比’가 ‘止’로 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 55)법장, 『화엄일승교의분제장』(T45, 507c21~508a1), “何者是舍耶。 答椽卽是舍。 何以故。 爲椽全自獨能作舍故。 若離於椽。 舍卽不成。 若得椽時。 卽得舍矣。 問若椽全自獨作舍者。 未有瓦等。 亦應作舍。 答未有瓦等時。 不是椽故不作。”
- 56)『사십화엄』(K36, 69a12; T10, 717c15~17), “지혜의 바다가 너르고 헤아리기 어려워라. 측량하지 못하여 도리어 비방을 늘린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이루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룬다.(智海廣難量。 不測反增謗。 牛飮水成乳。 蛇飮水成毒。)” 이 경문은 『사십화엄』에만 있으며, 대경大經인 『육십화엄』과 『팔십화엄』에는 해당 구절이 보이지 않는다.
- 57)여기서 노사나盧舍那는 비로자나를 줄인 말로 볼 수 있다. 『진수기』는 신라 하대 『팔십화엄』이 신라에 전래된 이후, 『팔십화엄』에 의거하고 있음을 9회설 인용으로도 알 수 있다. 비로자나불은 노사나불이니 석가모니불과 다르지 않고 원융한 법신불이다.
- 58)법장, 『화엄경탐현기』(T35, 282b2).
- 59)법장, 『화엄경탐현기』(T35, 282b2~3).
- 60)법장, 『화엄경탐현기』(T35, 282b3~4), “彼帶本之末旣爲本收。 是故當體有存有壞。”
- 61)『六相章』 : 『六相章』의 내용은 「六相頌」이라고도 한다. 법장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T45, 508c24~509a3)에 ‘頌曰’이라 하여 수록되어 있다. 대각 의천大覺義天의 『圓宗文類』에서 “華嚴六相頌。 終南山。 儼尊者述。 義分齊中承用。”이라 하여 법장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 「의리분제」에 보이는 「육상송」이 지엄의 『육상장』에서 발췌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화엄일승교의분제장』에 대한 후대 주석서인 선희善熹, 『華嚴一乘敎義分齊章復古記』(卍58, 369a13~14) 등에서 인용하여 전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이 「육상송」의 내용은 지엄이 지은 『육상장』의 일부이거나 혹은 전체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총수록』 중 ‘고기’(H6, 807c23~808a2)와 균여, 『일승법계도원통기』(H4, 15b6~14), 「釋華嚴敎分記圓通鈔」(H4, 15b 등)는 ‘육상장六相章’이라는 이름으로 법장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 「의리분제장」 가운데 ‘육상원융의六相圓融義’를 인용하고 있다. 즉 그 당시에는 『화엄일승교의분제장』의 ‘육상원융의’를 ‘육상장’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 62)법장, 『화엄경탐현기』(T35, 282b18~19).
- 63)법장, 『화엄경탐현기』(T35, 282b19).
- 64)법장이 지은 『華嚴經傳記』(T51, 163c28~164a1)에는 지엄이 총장 원년(668) 10월 29일 청정사淸淨寺에서 67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의 ‘淸禪寺’는 ‘淸淨寺’와 동일한 장소로 보인다.
- 65)동시에 갖추어짐(同時具足)과 인드라그물의 미세한 경계 등(同時具足及因陁羅網微細境界等) :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과 인드라망경계문(因陁羅網境界門) 등으로 구성되는 십현문十玄門을 가리킨다.
- 66)H6, 791c17~19, “如摠相別相成相等不卽不離不一不異常在中也。”
- 67)이에 의하면, “총상ㆍ별상ㆍ동상ㆍ이상ㆍ성상ㆍ괴상이 즉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아니하여 항상 성이 중도에 있는 것과 같이”로 번역된다.
- 68)이에 의하면, “총상ㆍ별상과 같이 동상ㆍ이상ㆍ성상ㆍ괴상이 즉하지도 않고 여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아니하여 항상 성이 중도에 있다.”로 번역된다.
- 69)이곳의 ‘동상으로써 이를 다스린다(以同相治之)’는 구절은 ‘謂’ 이후에 이상과 동상의 두 가지를 통해 시각과 본각의 같고 다름을 논하는 것을 고려할 때 ‘異相’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즉 ‘동상과 이상으로써 이를 다스린다(以同相異相治之)’고 해야 뒤의 ‘謂’ 이후의 논의와 대구가 맞는다.
- 70)『簡義章』 : 저자 미상. 현존하지 않는다. 『간의장』에 『일승법계도』가 인용되어 있음을 볼 때 의상계 화엄 문헌인 것으로 추정된다.
- 71)허공에 (그린) 그림으로 허공을 향함에 곧 (그림의) 체가 허공과 같아서 분한 따라 걸림이 없다.허공에 그린 그림의 비유는 『화엄경』에 여러 번 나타난다. 『십지경론』(K15, 9b17~18; T26, 129a11~12)의 해당 경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허공의 바람 모습처럼, 지혜도 이와 같아서 분별하여 부처님의 번뇌 없음을 보기 어렵다.(如彩畫虛空。 如虛空風相。 智如是分別。 難見佛無漏。)” 『십지경론』(K15, 9b19~c6; T26, 129a13~22)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허공에 그린 그림도 그림이므로 벽壁에 그린 그림과 같아 없지 않지만, 허공에 그려 머물지 않으므로 있지 않다고 풀이한다. 법장은 『화엄경탐현기』(T35, 291a23~25)에서 허공은 평등한 과분果分을, 허공의 그림은 십지에 대한 언설의 법문을, 허공의 그림이 그려진 곳은 인분因分인 십지의 체體를 비유한 것으로 주석한다.
- 72)「십지품」 서분(T10, 180c27~28)에 나오는 비유이다. “허공 가운데 새의 자취처럼 설하기 어렵고 보이기 어렵다. 이와 같이 십지의 뜻은 마음으로 요달하기 어렵다.(如空中鳥迹。 難說難可示。 如是十地義。 心意不能了。)” 『십지경론』(K15, 15c20~21; T26, 132b18~19; 133c7~8)의 해당 경문은 “허공 가운데 새의 자취처럼 설하기 어렵고 보기 어렵다. 십지의 뜻도 이와 같아서 설하고 들을 수 없다.(如空中鳥跡。 難說不可見。 十地義如是。 不可得說聞。)”이다. 법장은 『화엄경탐현기』(T35, 298a11~b1)에서 이에 대해 허공을 과해果海로, 새가 날 때 자취의 자리를 십지(因分)의 체體로, 자취의 모습을 십지의 모습으로, 새의 자취 자체는 십지에 대한 말로 된 가르침으로 풀이한다. 또 법장은 새가 모래를 지날 때 자취를 남기듯이 소승의 가르침은 말에 의한 뜻을 드러내지만 허공을 날 때의 자취로 비유된 십지법문은 대승의 가르침으로 말을 여읜 뜻을 나타낸다고 설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두 가지에 통한다는 것은 허공을 나는 새의 자취가, 허공과 모래땅의 자취 두 가지, 즉 상동과 하동인 원융과 항포에 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73)법장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 「소전차별장」(T45, 490a21~27)에서 세 번째, 행위行位의 분제를 밝히는 가운데 한 지위가 일체의 지위를 갖춘다는 설에 대한 문답 중 일부이다. 본문에서는 ‘모든 가르침(諸敎)’으로 되어 있으나 「소전장」에는 ‘모든 지위(諸位)’로 되어 있다. 문답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문 만약 그렇다면(첫 지위가 마지막 지위를 갖추고 있다면) 어떻게 모든 지위가 단계로 내려가 차례를 이룬다고 설하는가? 답 이 경에 모든 지위를 안립하는 데 두 가지 선교가 있다. 첫째는 모습을 기준으로 문에 나아가 지위의 앞과 뒤를 나누어 삼승과 같음에 의탁하여 저 (삼승을) 인도하는 방편이니 동교이다. 둘째는 체體를 기준으로 법에 나아가 앞과 뒤가 상입하고 원융자재하여 저 삼승과 다르니 별교이다. 다만 문을 옮기지 않고서 항상 상즉하고 상즉을 무너뜨리지 않고서 항상 앞과 뒤이니 이런 까닭에 두 가지 뜻이 융통하여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問。 若爾。 云何說得諸位階降次弟。 答。 以此經中。 安立諸位。 有二善巧。 一約相就門。 分位前後。 寄同三乘。 引彼方便。 是同敎也。 二約體就法。 前後相入。 圓融自在。 異彼三乘。 是別敎也。 但以不移門。 而恒相卽。 不壞卽而恒前後。 是故二義融通。 不相違也。”
- 74)『과간科簡』 : 저술명으로 생각되나 현존하는 화엄종 문헌 목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과간은 과목요간, 과목분류의 의미이다. 만약 『科簡』을 『料簡』의 잘못으로 본다면 『東域傳燈目錄』(T55, 1147a13; a16)에 『華嚴經料簡』과 『華嚴經要集料簡』이라는 저술이 있기는 하지만 현존하지 않아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 75)지엄은 보현위 가운데 신信에서 십지까지 인因과 과果인 보살과 불의 지위로 나누고(普賢位中從信已上乃至十地。 皆通因果菩薩及佛。 復爲五門。 此依普賢阿含說。)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T35, 27c9~11), 법장은 아함위와 증위의 둘로 나누고 있다.(約普賢位相。 此有二分。 一阿含位。 如此品說。 二證位。 如十地品說。) 『화엄경탐현기』(T35, 197c12~16).
- 76)이 구절은 법장의 『화엄경지귀』 중 다음 구절을 이용하여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항상 본래의 지위분제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이는 곧 나눔이 바로 나눔이 없음으로 광대함과 협소함이 걸림 없다.(恒不壞本位分齊。 此卽分則無分廣狹無礙。)”(T45, 594b7~8).
- 77)앞의 ‘셋’은 총상ㆍ동상ㆍ성상을, 뒤의 ‘셋’은 별상ㆍ이상ㆍ괴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총수록』에서 육상을 이처럼 두 가지로 구분하는 예는 H6, 797b가 참조된다.
- 78)『총수록』(H6, 802b13). 이에 해당하는 『일승법계도』 원문은 H2, 2a7~b11; H6, 792a 8~b15.
- 79)보살대지혜광명삼매菩薩大智慧光明三昧. 『육십화엄』 「십지품」(K8, 162c16~17; T9, 542b13~14), 『팔십화엄』 「십지품」(K8, 633c18~19; T10, 179a8~9). 『십지경론』(K15, 2c7; T26, 124a26)에는 ‘보살대승광명삼매菩薩大乘光明三昧’로 되어 있다.
- 80)부처님의 증득과 가르침을 ‘의대義大’와 ‘설대說大’로 구분하는 것은, 지엄의 『공목장』 「청분의 끝에 증득과 가르침의 두 가지 큼에 대한 장(請分未*證敎二大章)」(T45, 562b5~c1)에서 ‘의대義大’와 ‘교대敎大’로 나누어 설하는 부분과 유사하다. 『공목장』에서 뜻이 큼(義大)은 증분을 가리키며 가르침이 큼(敎大)은 교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뜻(義)은 증득하는 법의 뜻이기 때문이고, 가르침(敎)은 지목하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또 큼(大)은 증분과 교분(證敎)의 덕이 작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뜻이 큼과 가르침이 큼은 일승에 속하며 삼승에도 통하지만, 소승에는 단지 가르침만을 설하고, 또한 그 덕이 크지 않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 일승원교에서는 보고 들음(見聞)은 가르침이 큼에, 보현의 증득(普賢證)은 뜻이 큼에 배대된다.
- 81)지엄, 『수현기』 가운데 「십지품」 주석(T35, 53b26~29)의 일부분이다. “地有二分。 一因二果。 因謂世間方便行修。 卽加行智分齊也。 果謂出生離相眞證。 卽正證分齊。”
- 82)오승五乘 : 『공목장』(T45, 560b26~29)에서 지엄은 오승을 인천승人天乘ㆍ성문연각승聲聞緣覺乘ㆍ점오승漸悟乘(漸敎所爲)ㆍ돈오승頓悟乘(頓敎所爲)ㆍ구경승究竟乘(一乘)으로 밝히고 있다.
- 83)지엄, 『공목장』(T45, 560b22~26).
- 84)지엄, 『수현기』(K47, 34a6~7; T35, 50b9~10).
- 85)이와 같은 설함에 대한 두 가지 구분은 앞의 ‘의대’와 ‘설대’의 구분과 그 문장이나 문맥 등이 유사하다.
- 86)세친이 『십지경론』(K15, 3a9; T26, 124b19~20)에서 열 가지 들어감으로 풀이하는 경문 가운데 첫 구절인 “지혜의 지地에 들어가게 하려는 까닭이다.(令入智慧地故)”를 가리킨다.
- 87)정영사 혜원과 지엄은 세친이 『십지경론』(K47, 34a4~12; T35, 50b7~16)에서 열 가지 들어감(十入) 가운데 앞의 첫 구절을 근본의 들어감(根本入)으로 풀이한 것을 받아들였다. 지엄은 『수현기』에서 이 열 가지 들어감이 교화되는 이를 대상으로 하여 가피로 이루려는 바(加所爲)를 밝힌 것으로서 그 가운데 첫째는 총總이고 나머지는 별別이라고 설한다. 혜원은 『十地經論義記』(卍71, 299a10~13)에서 이 구절을 근본의 들어감으로 해석하며 다른 아홉 구절을 바라보기에 이것을 근본이라고 하는 것이고, 원인과 결과에서의 근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 경에 붙인 경명과 같다고 설한다.
- 88)가피로 이루려는 바(加所爲) : 부처님의 가피加被에 관한 경문을 지론종과 화엄종에서 셋으로 나누어 주석하는데, 그 가운데 두 번째이다. 셋은 문헌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법장의 『화엄경탐현기』(K47, 620b24~25; T35, 280b17~18)에서는 가피의 인(加所因)ㆍ가피로 이루려는 바(加所爲)ㆍ가피의 모습(加相)으로 나눈다.
- 89)이십 구 : ‘가피로 이루려는 바(加所爲)’로 주석되는 『십지경』(혹은 「십지품」)의 이십 구절을 가리킨다. 『육십화엄』(K8, 162c23~163a10; T9, 542b21~c3), 『팔십화엄』(K8, 634a2~13; T10, 179a16~27), 세친, 『십지경론』(K15, 3a8~21; T26, 124b19~c2) 등.
- 90)경전의 내용을 경전을 전한 경가經家에 의한 부분과 부처님이 직접 설하신 부분으로 나누어 볼 때, 가피로 이루려는 바(加所爲)에 대한 이십 구가 어디에 속하는가를 묻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정영사 혜원은 『십지경론의기』(卍71, 299a13~16)에서 이 이십 구가 경가가 열거한 부분이라고 설하고 있다. 반면 징관은 『청량소』(T35, 633c15~16)에서 「십주품」 첫 부분에 나오는 가피로 이루려는 바에 대한 경문을 풀이하면서 이를 바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라 한다.
- 91)불타삼장佛陀三藏 : 『신편제종교장총록』(T55, 1167a1)에 『指歸兩卷』이 불타삼장의 저술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인용되는 구절이 일본 가나자와문고(金沢文庫)에 현존하는 『華嚴經兩卷旨歸』에 보이는 것을 볼 때, 여기의 불타삼장은 『화엄경양권지귀』의 저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 92)다섯 가지 티끌(五塵) : 감각의 대상인 여섯 가지 경계 가운데 법法을 제외한 색色ㆍ소리(聲)ㆍ향기(香)ㆍ맛(味)ㆍ감촉(觸)을 가리킨다.
- 93)여섯 번째 하늘(第六天) : 욕계ㆍ색계ㆍ무색계로 구성되는 불교의 우주관에서 욕계의 하늘 중에서 여섯 번째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을 가리킨다.
- 94)일곱 번째 지(七地) : 보살의 계위를 나타내는 열 가지 지위(十地) 중에서 일곱 번째인 원행지遠行地(ⓢ dūraṃgamābhūmi)를 가리킨다.
- 95)여덟 번째 지(八地) : 보살의 계위를 나타내는 열 가지 지위 중에서 여덟 번째인 부동지不動地(ⓢ acalābhūmi)를 가리킨다.
- 96)세 종류 선근(三種善根) : 세 가지 독(三毒), 즉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
97)혜원慧遠은 『십지경론의기』에서 “부처님으로서 다함에서도 처음은 이름을 나열한다. 비록 원인 중에 있지만 부처님의 덕德을 모두 거두어서 ‘부처님으로서 다함’이라고 이름한다.(佛盡之中。 亦初列名。 雖在因中。 備攝佛德名爲佛盡。)”라고 하고, 또한 아홉 가지 들어감을 십지에 배대하면서도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을 부처님의 지위가 아닌 열 번째 지地에 해당시킨다.(卍71, 300b18~301a1) 이에 반해 법장 등 후대의 화엄가들은 부처님으로서 다함의 들어감을 보살십지가 아닌 부처님의 과위인 구경위에 배대한다. 참고로 혜원과 법장의 아홉 가지 들어감에 대한 배대를 도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慧遠 九入 法藏 世間 (加行位) 聞慧 地前 ① 攝入 地前 聞慧 (加行位) 思慧 ② 思議入 思慧 ③ 法相入 修慧 ④ 敎化入 修慧 出世間 訂 初地 ⑤ 訂入 初地 見道位 二地~七地 ⑥ 不放逸入 二地~九地 修道位 ⑦ 地地轉入 八地~九地 ⑧ 菩薩盡入 十地 十地 ⑨ 佛盡入 究竟位 究竟位 『십지경론의기』卍71, 299a5~300a3 『십지경론』K15, 3a8~14;T26, 124b19~24 『화엄경탐현기』T35, 281a4~282a12 - 98)혜원, 『십지경론의기』, ‘모든 들어감’이란 포섭의 들어감 등 아홉 가지의 들어감이다. ‘지혜의 뜻의 차별을 비교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들어감의 지혜의 지地 중에서 덕德의 뜻의 차별을 임시로 비교하여 헤아린 것이기 때문에 세간으로부터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의지한 것이다.(是諸入者。 是攝入等九種入也。 言爲校量智義別者。 爲假校量入智地中德義差別故。 寄世間乃至佛地。)”(卍71, 301a5~11)
- 99)법장, 『화엄경탐현기』, ‘모든 들어감’이라고 말한 것은 위의 아홉 가지 들어감을 합한 것이다. ‘비교하여 헤아린 것’ 등은 그 차별 없음의 차별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지地 이상으로부터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기까지 의거하여 지위의 지혜의 차별과 차례로 더욱 뛰어난 모습을 비교하여 헤아린 것이다.(言是諸入者。 牒上九入。 爲校量等者。 顯其無別之別。 謂寄地上乃至佛地。 校量地智差別次第轉勝之相。)”(K47, 622a12~15; T35, 282a14~16)
- 100)순범順梵과 행장行將 : 생몰 연대나 활동 분야 등의 전기를 알 수 없다. 다만 신림이 상원에게 한 질문이 순범과 행장의 원만불에 관한 것으로 볼 때, 순범과 행장은 늦어도 신림, 상원과 동시대의 화엄 관련 승려로 간주된다. 상원은 의상의 직제자로서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중반에 활동하였고, 신림은 상원의 제자로서 8세기 중엽에 활동한 것으로 생각된다.
- 101)혜원, 『십지경론의기』(K71, 301b3~4; 卍45, 40b6~7).
- 102)법장은 『화엄경탐현기』(K47, 622b7~10; T35, 282b10~13)에서 이 구절을 두 가지로 풀이한다. 첫째는 ‘언설’을 육상으로, ‘해석’의 대상을 이곳의 경문으로 본다. 둘째는 ‘해석’의 대상이 육상이지만 이것을 해석하는 언설은 경문이 아니라 『십지경론』의 저자인 세친이 해석한 뜻일 뿐이라고 주석한다. “‘이것은 언설로 해석한 것이다’란 가르침을 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에서 이 육상의 언설을 안립하는 것은 경문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이 뜻을 알아야 한다. 또 풀이하면, 여기에서 육상을 해석한 것은 이곳의 경문이 아니라 다만 논주가 해석한 뜻일 뿐이다.(此言說解釋者是定敎。 謂於此中。 安此六相之言說。 爲欲解釋經文。 應知此意。 又釋。 此中釋六相。 非是此處經文。 但是論主解釋之意。)”
- 103)삼과三科 : 오온五蘊ㆍ십이처十二處ㆍ십팔계十八界를 합쳐서 가리키는 말이다.
- 104)백법百法 : 유식학파에서 유위ㆍ무위의 모든 법을 총괄하여 백 가지 법으로 나타낸 것이다.
- 105)법장, 『화엄경탐현기』(K47, 621a10~622b19; T35, 281a4~282b23). 『총수록』에서는 『화엄경탐현기』의 본문 내용 중 일부분을 생략하면서 인용하고 있다.
- 106)『십지경』 처음 부분에 금강장보살이 삼매에 들자, 시방의 금강장불이 금강장보살을 가피하는 가운데 설해지는 가피의 이유 또는 가피로 이루려는 바에 대한 이십 구문을 가리킨다. 『십지경론』(K15, 3a8~21; T26, 124b19~c2).
- 107)생략된 내용은 네 가지 문 가운데 둘째와 셋째의 문이다. “둘째는 근본에 의거하여 지말을 연다. 셋째는 지말을 모아 근본에 돌아감을 밝힌다.(二依本開末 三明會末歸本)”(T35, 281a)
- 108)세친, 『십지경론』(K15, 14b17~c1; T26, 132c8~15), “‘미묘하여 성인의 도道는 알기 어려우니 분별이 아니고 생각을 여의었다’ 이 게송은 무슨 뜻에 의거하여 설하는가?……다시 말한다. 왜 알기 어려운가? 위대한 성인의 길은 알기 어렵다. 위대한 성인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이다. 이런 까닭에 ‘미묘하다’라고 말한다. ‘도道’는 원인이다. 이 도를 수행하여 성스러운 곳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微難知聖道。 非分別離念。 此偈依何義說〈中略〉復云何難知。 大聖道難知。 大聖者所謂諸佛。 是故言微。 道者是因。 修行此道。 能到聖處故。)”
-
109)이상의 네 가지 지위와 아홉 가지 들어감의 배대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九入 攝入 思議入 法相入 敎化入 證入 不放逸入 地地轉入 菩薩盡入 佛盡入 四位 願樂位 見位 修位 究竟位 階位 地前 初地 第二地~第十地 佛 - 110)아함阿含 : ⓢ āgama. 부처님의 입(金口)으로 설해져 전해진 가르침을 의미한다. 법장은 『화엄경탐현기』(K47, 617c10~28; T35, 277b14~c5)에서 「십지품」에 대해 총總으로는 십지의 증행證行을 근본으로 하며 개별로는 열 가지 뜻이 있다고 밝히면서, 그 중 일곱 번째로 지위를 기준으로 십지의 지위를 구분하여 깨달음(證)의 지위와 아함의 지위로 나눈다. 또 법장은 혜원〔『십지경론의기』(卍71, 302b15~304a2)〕과 지엄〔『수현기』(K47, 34a14~b14; T35, 50b18~c22)〕의 논의를 받아들여 『십지경론』에 의거하면 아홉 가지 아함과 깨달음(證)의 상대가 있다고 풀이한다.(T35, 282c3~283a14)
- 111)『십지경』 서분에 나오는 비유이다. 상권 2 각주 72) 참조.
- 112)원하고 좋아함(願樂)의 지위에 배대되는 네 가지 들어감 가운데 첫 번째인 포섭의 들어감(攝入)을 가리킨다.(상권 2 각주 97) 참조) 여기서 풀이하는 『십지경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포섭의 들어감(攝入)이니, 들음에 의한 지혜(聞慧) 가운데 일체 선근을 거두는 까닭이다. 경經에서 ‘일체불법을 잘 분별하여 선택하는 까닭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一者。 攝入聞慧中。 攝一切善根故。 如經攝一切善根故。)” 『십지경론』(T26, 125), 『총수록』(H6, 792a16~17).
- 113)두 가지 아我 : 인아人我와 법아法我를 가리킨다.
- 114)수면隨眠 : ⓢ anuśaya.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 115)큰 다함의 부분(大盡分) : 세친이 『십지경론』(K15, 104c4~10; T26, 193c6~11)에서 열 번째 지인 법운지法雲地를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가운데, 네 번째인 ‘큰 다함에 들어가는 부분(入大盡分)’을 가리킨다. 『십지경론』(K15, 107c15~109c9; T26, 195c18~197a14)에 이에 해당하는 경문과 주석이 있다.
- 116)여래의 열 가지 비밀스러운 지혜(如來十種秘密智) : 법장은 이 열 가지 지혜가 무엇인지 여기서 직접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육십화엄』 「십지품」(K47, 709c15~21; T35, 375c23~376a1)의 아래 구절을 주석하면서 이 열 가지를 비밀스러운 자리에 대한 지혜(密處智)를 밝히는 것이라고 한다. “또 모든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자리, 이른바 몸의 비밀스러움, 입의 비밀스러움, 뜻의 비밀스러움, 때와 때 아님을 아시는 비밀스러움, 보살에게 수기하시는 비밀스러움, 중생을 거두어 조복시키시는 비밀스러움, 모든 승乘이 차별한 비밀스러움, 8만4천 모든 근기가 차별한 비밀스러움, 업이 실답게 짓는 바의 비밀스러움, 행行이 보리를 얻는 비밀스러움, 이러한 등의 비밀스러움을 모두 여실하게 안다.(又諸佛密處。 所謂。 身密。 口密。 意密。 知時非時密。 與菩薩授記密。 攝伏衆生密。 諸乘差別密。 八萬四千諸根差別密。 業如實所作密。 行得菩提密。 如是等密。 皆如實知。)”(K8, 192b4~7; T9, 572c14~18) 징관도 『청량소초』(T36, 413c21~414a4)에서 『팔십화엄』(K8, 666c3~7; T10, 206b20~24)의 해당하는 구절을 주석하면서 이것이 열 가지 비밀스러운 지혜라고 풀이한다.
- 117)『총수록』 상권 2 각주 43) 참조.
- 118)태어남도 아니고 등의 팔불八不 : 용수龍樹의 『中論』 귀경송 등을 비롯하여 대승경론에 보이는 네 쌍으로 이루어진 여덟 가지 부정을 가리킨다. ① 생겨나지도 않고(不生), ② 사라지지도 않으며(不滅), ③ 항상하지도 않고(不常), ④ 끊어지지도 않으며(不斷), ⑤ 하나도 아니고(不一), ⑥ 다르지도 않으며(不異), ⑦ 오지도 않고(不來), ⑧ 가지도 않는다(不去). 『중론』(K16, 350b17~19; T30, 1b14~17).
- 119)십불十不 : 팔불八不과 마찬가지로 다섯 대립쌍의 동시부정을 통해 일체법의 실상을 밝히는 방편으로서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다음 십이인연에 대한 십불이 대표적이다.(K38, 961a1~3; T12, 768b19~21) ① 나지도 않고(不出), ② 사라지지도 않으며(不滅), ③ 항상하지도 않고(不常), ④ 끊어지지도 않으며(不斷), ⑤ 하나도 아니고(非一), ⑥ 둘도 아니며(非二), ⑦ 오지도 않고(不來), ⑧ 가지도 않으며(不去), ⑨ 원인도 아니고(非因), ⑩ 결과도 아니다(非果). 참고로 법장은 『화엄경탐현기』(K47, 576a12~13; T35, 233a20~22)에서 『육십화엄』 「菩薩十無盡藏品」(K8, 84a13~16; T9, 475a17~20)의 다음 구절을 ‘십불十不’로 표현하기도 한다. “시방 일체세계의 낱낱 세계 가운데 삼세의 한량없고 수없는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서 부처님의 일을 베풀어 행하시고 반열반하신다. 저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늘어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다하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으며, 앎도 아니고 혼란도 아니다.(十方一切世界。 一一世界中。 三世無量無數諸佛。 出興於世。 施行佛事。 而般涅槃。 彼諸佛智慧。 不增不減。 不生不滅。 不盡不去。 不近不遠。 不智不亂。)”
- 120)세친, 『십지경론』(K15, 23c20~24a4; T26, 139a14~20).
- 121)법장, 『화엄경탐현기』(K47, 621a13; T35, 281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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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이상의 논의를 네 가지 문의 이름과 간략히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六相四門解釋 ① 一云 ② 一云 ③ 一云 ④ 一云 一. 總釋顯本 一乘 一乘 一乘 三乘 一乘 二. 依本開末 三乘 三乘 三. 會末歸本 四. 本末無礙 一乘 一乘 - 123)『육십화엄』에 대한 주석서 중에 이와 같은 구절을 찾기 어렵다. 다만 법장은 『화엄경탐현기』에서 제8회 「입법계품」을 근본법회와 지말법회로 나누어, 근본법회는 지말법회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비록 말아져 있더라도(卷) 항상 펼쳐져 있고(舒), 지말법회는 근본법회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비록 펼쳐져 있더라도(舒) 항상 말아져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K47, 778c13~16; T35, 450b15~18).
- 124)『육상장』으로 출전을 밝히고 있는 이 구절은 법장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 「의리분제장」(T45, 508a27~28)에서 ‘육상원융의六相圓融義’ 가운데 일부분이다. 『육상장』에 대해서는 상권 2 각주 42)와 61) 참조.
- 125)법장, 『화엄일승교의분제장』 「의리분제장」(T45, 504b3~4).
- 126)『총수록』에 실려 있는 『대기』(H6, 800b13~c17)는 신림의 설로서 다음의 오중 총별설을 전하고 있다. ① 별을 여읜 총(離別之摠), ② 별을 거느리되 별을 여읜 총상(帶別而離別), ③ 총이 곧 별이고 별이 곧 총(摠卽別別卽摠), ④ 또한 총이고 또한 별(亦摠亦別), ⑤ 총도 아니고 별도 아님(非摠非別).
- 127)『십지경론』(K15, 3b23; T26, 124c23)에서 열 가지 들어감 중 지말의 들어감에서 일곱 번째, 지地에서 지地로 옮김의 들어감(地地轉入)을 풀이하는 구절 중 일부분이다.
- 128)차별과 평등의 두 가지 두루한 인과(差別平等二周因果) : 오주인과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에 해당한다. 법장의 『화엄경탐현기』에 따르면 차별인과는 『육십화엄』의 「如來名號品」부터 「佛小相光明功德品」까지, 평등인과는 「普賢菩薩行品」부터 「寶王如來性起品」까지에 배대되며 이 둘은 모두 성해인과成解因果에 해당한다. 오주인과의 출전과 내용은 상권 1 각주 20) 참조.
- 129)수생修生과 본유本有 : 화엄종에서 부처님의 공덕 또는 법계연기 가운데 정법연기를 설명하는 방편 가운데 하나이다. 지엄은 『수현기』(K47, 45a15~b13; T35, 62c27~63a29)에서 『화엄경』에 의거하여 법계연기를 정법연기와 염법연기로 나누고 정법연기를, ① 본유本有, ② 본유수생本有修生, ③ 수생修生, ④ 수생본유修生本有로 구분하여 설한다. 이 가운데 본유에 대해서는 연기의 본래 실체라 하며 「성기품」의 경문을 예로 들고, 또 수생에 대해서는 신信 등의 선근이 아직 현전하지 않다가 지금 청정한 가르침에 대해서 연緣에 기대어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법장은 『화엄경탐현기』(K47, 724a23~28; T35, 392a15~20)에서 이에 대해 모든 부처님의 공덕이 수생과 본유 두 가지를 넘지 않으며, 이 두 가지가 서로 상대하면 모두 네 구가 있게 된다고 한다. 첫째, 수생에 대해 곧 신信 등의 선근은 본래는 없으나 지금 있기 때문이고, 둘째, 본유는 곧 진여가 항하의 모래 수처럼 많은 성性 공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한다.
- 130)첫 모임의 사십 부류 : 『화엄경』 첫 모임 첫 품(『육십화엄』은 「世間淨眼品」, 『팔십화엄』은 「世主妙嚴品」)에 등장하는 보현보살을 위시한 보살대중과 39류의 신중을 가리킨다. 39류의 신중과 관련하여 『육십화엄』과 『팔십화엄』이 순서와 항목에는 차이를 보인다.
- 131)한가지로 태어난 무리(同生衆) : 『화엄경』에서 첫모임에 모인 대중 가운데 보현보살을 위시한 보살대중을 가리킨다. 이 모든 보살들은 다 여래의 선근바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보살들이 옛적에 다 비로자나여래와 더불어 한가지 선근을 모아서 보살행을 닦아서 다 여래선근의 바다로부터 태어났다.(此諸菩薩。 往昔皆與毘盧遮那佛如來共集善根。 修菩薩行。 皆從如來善根海生。)”(『大方廣佛華嚴經』 卷1, T10, 2a25~27) 여기서 보살대중 외의 39류 화엄성중들은 다르게 태어난 무리(異生衆)라고 부른다. 세친, 『십지경론』(K15, 8b19~20; T26, 128b5~7) 등. 『청량소』(T35, 535a4~12)에서도 첫 모임의 40부류 전체를 두 무리로 나누고 그 가운데 첫 번째인 보살을 한가지로 태어난 무리로, 나머지를 다르게 태어난 무리로 구분하며 그 의미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로 풀이한다. 첫째, 보살은 법성의 몸을 얻어서 사람과 같이 한 부류의 보살의 모습을 짓기 때문이고, 여러 부류(雜類)는 다양하게 다른 생과 갖가지의 모습을 짓기 때문이다. 둘째, 보살은 모든 지위에 통하기 때문이고, 신중은 법계의 차별된 덕이기 때문이다.
- 132)지엄은 『수현기』(K47, 4a17~19; T35, 17a22~23)에서 한가지로 태어난 무리인 보살은 무위연집無爲緣集의 무리, 다르게 태어난 무리인 화엄성중은 유위연집有爲緣集의 무리를 밝힌 것으로 풀이한다. 무위와 유위가 합하여 자체의 지혜를 이룬다는 구절은 지론종의 독특한 3종 연집설(유위연집ㆍ무위연집ㆍ자체연집)의 영향이 보인다.
- 133)삼관三觀 : 화엄종의 별교일승에는 여러 삼관이 있지만, 여기에서 언급되는 삼관은 의상계 화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인연관ㆍ연기관ㆍ성기관의 삼관으로 생각된다. “만약 일승을 기준으로 하면 인연ㆍ연기ㆍ성기의 삼관은 얕음과 깊음이 없다.(若約一乘。 則因緣緣起性起三觀。 無淺深也。)”(H6, 800b6~7)
- 134)『총수록』(H6, 808b24). 이에 해당하는 『일승법계도』 원문은 H2, 2b19~c4; H6, 792b 23~c9.
- 135)『일승법계도』(H2, 1b23~24; H6, 791c2~3).
- 136)『승만경』(K6, 1369a24~b7; T12, 222c20~25)의 다음 구절을 줄여서 인용한 것이다. “세 종류의 선남자와 선여인이 매우 깊은 뜻에 대해 자신이 다치고 상함을 여의고 큰 공덕을 내어 대승의 길에 들어갑니다. 무엇이 셋이 되는가 하면, 혹 선남자와 선여인이 매우 깊은 법의 지혜를 스스로 성취하거나, 혹 선남자와 선여인이 수순하는 법의 지혜를 성취하거나, 혹 선남자와 선여인이 모든 깊은 법에 대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는, 세존을 우러러 생각하며 나의 경계가 아니라 오직 부처님이 아실 바이다라 하면 이를 선남자와 선여인이 여래를 우러러 생각한다고 이름합니다.(三種善男子善女人。 於甚深義。 離自毀傷。 生大功德。 入大乘道。 何等爲三。 謂若善男子善女人。 自成就甚深法智。 若善男子善女人。 成就隨順法智。 若善男子善女人。 於諸深法。 不自了知。 仰惟世尊。 非我境界。 唯佛所知。 是名善男子善女人仰惟如來。)”
- 137)「悉曇章」 : 고대 인도 문법학(vyākaraṇa) 문헌의 첫 장章을 가리키며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의 음운론, 즉 소리의 형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실담(ⓢ siddham 또는 siddhām)’은 ‘성취’를 뜻하는데 첫 장의 처음에 나오는 귀경게의 일부를 들어 장章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이어서 언급된 ‘첫 장(初章)’은 「실담장」을 가리킨다.
- 138)이 구절은 『화엄경』 「십지품」(K8, 164a10~13; T9, 543c5~9)의 다음 내용을 줄여서 인용한 것이다. “비유하면 일체의 문자가 모두 첫 장章에 거두어지며, 첫 장章이 근본이 되어 한 글자도 첫 장章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불자야, 십지는 이 일체 부처님 법의 근본이며 보살이 이 십지를 갖추어 행하면 일체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譬如一切文字。 皆初章所攝。 初章爲本。 無有一字不入初章者。 如是。 佛子。 十地者。 是一切佛法之根本。 菩薩具足行是十地。 能得一切智慧。)”
- 139)일승의 수순하는 문(一乘隨門) : 아래의 ‘동교의 수순하는 문(同敎隨門)’이라는 문구로 볼 때 문맥상 일승 가운데 동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140)삼승의 십지에 대해서 연꽃의 수를 다르게 하며 비유하는 이 구절은 『大乘本生心地觀經』(K37, 491b4~23; T3, 298c25~299a12) 등의 구절과 문맥이 유사하다. 해당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선남자야! 두 번째는 여래의 타수용신이니……일체의 여래는 십지의 모든 보살대중을 교화하기 위하여 열 가지 타수용신을 나타내신다. 첫 번째 부처님의 몸은 백 개 잎 연꽃에 앉으시어 초지 보살을 위하여 백 가지 법의 광명문을 설하신다. 보살이 깨닫고서는 큰 신통을 일으켜 변화가 백 가지 부처님 세계에 가득차고 이익이 무수한 중생을 안락하게 한다. 두 번째 부처님의 몸은 천 개 잎 연꽃에 앉으시어 제2지 보살을 위하여 천 가지 법의 광명문을 설하신다……내지 제10지의 타수용신은 말할 수 없는 오묘한 보배 연꽃에 앉으시어 제10지 보살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여러 법의 광명문을 설하신다.(諸善男子。 二者如來佗受用身〈中略〉一切如來。 爲化十地諸菩薩衆。 現於十種佗受用身。 第一佛身。 坐百葉蓮華。 爲初地菩薩。 說百法明門。 菩薩悟已。 起大神通。 變化滿於百佛世界。 利益安樂無數衆生。 第二佛身。 坐千葉蓮華。 爲二地菩薩。 說千法明門〈中略〉乃至十地佗受用身。 坐不可說妙寶蓮華。 爲十地菩薩。 說不可說諸法明門。)” 『청량소초』(T36, 31c17~32a4)에서는 이러한 설을 소개한 후 참된 구극의 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며 비판한다.
- 141)열 지혜(十智) : 『육십화엄』 「盧舍那佛品」(K8, 17b17~c2; T9, 409a3~12)에서 보현보살이 다섯 가지 바다와 같이 한량없는 경계를 관찰하고서 설하는 열 가지 불가사의한 지혜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① 모든 부처님의 일체 세계의 이루어짐과 무너짐에 대한 청정한 지혜(諸佛一切世界海成敗清淨智), ② 불가사의한 일체중생계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不可思議一切衆生界起智), ③ 법계를 관찰함에 대한 지혜(觀察法界智), ④ 일체 여래의 자재로움에 대한 지혜(一切如來自在智), ⑤ 청정한 서원으로 법륜을 굴림에 대한 지혜(清淨願轉法輪智), ⑥ 힘이 있어 두려운 바가 없는 함께하지 않는 법에 대한 지혜(力無所畏不共法智), ⑦ 광명과 찬탄하는 음성에 대한 지혜(光明讚歎音聲智), ⑧ 세 가지로 중생을 교화함에 대한 지혜(三種敎化衆生智), ⑨ 한량없는 삼매법문의 무너지지 않음에 대한 지혜(無量三昧法門不壞智), ⑩ 여래의 갖가지 자재로움에 대한 지혜(如來種種自在智)이다. 지엄은 『수현기』(K47, 9a3~4; T35, 22b15~16)에서 이 열 가지 지혜가 『화엄경』 정종분의 본분本分인 다섯 바다(五海)에 대한 지혜이자 삼세간에 대한 지혜라고 풀이한다. 『팔십화엄』에서 대응하는 곳은 「世界成就品」(K10, 465a13~b25; T10, 34b10~c17)에 보이며, 다섯 바다는 열 바다, 열 지혜는 스물아홉 지혜로 되어 있다.
- 142)『육십화엄』 「세간정안품」(K8, 1c3; T9, 395b25~26), “하나의 지地에 머물러 일체 모든 지地의 공덕을 널리 거둔다.(住於一地。 普攝一切諸地功德。)”
- 143)지엄, 『수현기』(K47, 4b3~9; T35, 17b8~16).
- 1)「文云」無有{甲}。
- 2)「何」下有「以」{甲}。
- 3)「繁」作「槃」又冠註曰槃疑繁{甲}。
- 4)「現」作「顯」{甲}次同。
- 5)「法盡」作「盡法」{甲}。
- 6)「下」無有{甲}。
- 7)「盤」作「繁」 又冠註曰繁疑槃下同{甲}次同。
- 8)「義」無有{甲}。
- 9)「故」無有{甲}。
- 10)「有」無有{甲}。
- 11)「而」無有{甲}。
- 12)「者」下有▣。又冠註曰▣疑入一本者印連續{甲}。
- 13)「數」作「安」{甲}。
- 14)「則」無有{甲}。
- 1)「後」上有「乃至」{甲}。
- 2)「惠」作「慧」{甲}次同。
- 3)「訂」通「證」於此書{編}次同。
- 4)「法」下有「故」{甲}。
- 5)「議」作「義」{甲}。
- 6)「決定」無有{甲}。
- 7)「雜」作「離」{甲}。
- 8)「煩惱」作「菩薩」{甲}。
- 9)「弟」作「第」{甲}{乙}次同。
- 10)「中」無有{甲}。
- 11)冠註曰入一作人次同{甲}。
- 12)「人」作「入」{甲}。
- 13)「挍」作「校」{乙}。
- 14)「種」下有「差」{甲}。
- 15)冠註曰相下疑脫同相異相四字{甲}。
- 16)「同相異相」無有{甲}。
- 17)「入」無有{甲}。
- 18)「壞」下有「故」{甲}。
- 19)「准」作「唯」{甲}。
- 20)冠註曰何下入以字見{甲}。
- 21)「以」無有{甲}。
- 22)「正」無有{甲}。
- 23)「以」無有{甲}。
- 1)「弟」作「第」{乙}次同。
- 1)▣字體磨滅{底}ㆍ作「本」{乙}」。
- 1)「弟」作「第」{乙}次同。
- 1)「二」作「一一」{乙}。
- 1)「作」作「住」{乙}。
- 1)「且」作「具」{乙}。
- 1)「弟」作「第」{乙}次同。
- 2)「網」作「綱」{乙}。
- 1)▣高麗大藏經影印本作「明」{編}。
- 2)「弟」作「第」{乙}次同。
- 3)「計」作「許」{乙}。
- 1)「俠」作「狹」{乙}。
- 2)「訂」通「證」於此書{編}次同。
- 1)▣字體磨滅{底}ㆍ作「故」{乙}。
- 1)「弟」作「第」{乙}次同。
- 1)「托」作「杔」{乙}。
- 1)「訂」通「證」於此書{編}次同。
- 2)脚註曰知疑智{乙}。
- 3)「收」作「攝」{乙}。
- 4)「世」作「母」{乙}。
- 5)「弟」作「第」{乙}次同。
- 6)▣字體磨滅{底}ㆍ作「左」{乙}。
- 7)「二」作「三」{乙}。
- 1)「收」作「攝」{乙}。
- 2)「弟」作「第」{乙}次同。
- 1)「蘆」作「盧」{乙}。
- 2)「弟」作「第」{乙}次同。
- 1)「撗」作「橫」{乙}。
- 2)「弟」作「第」{乙}。
- 3)「十」無有{乙}。
- 4)「」作「攝」{乙}。
- 5)「須」作「順」{乙}。
- 1)「弟」作「第」{乙}。
- 2)「姝」作「殊」{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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