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 / 儒釋質疑論卷上

ABC_BJ_H0120_T_001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
지은이 미상
박해당 (역)

007_0252_b_02L
유석질의론 상권(儒釋質疑論卷上)
서문序文
도道에는 가까운 것이 있고 먼 것이 있으니 언덕배기와 태산泰山이나 화산華山 같은 것을 말함이다. 가르침에는 얕은 것이 있고 깊은 것이 있으니 발자국에 고인 물과 강이나 바다와 같은 것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발자국에 고인 물에 걸려 멈춘 이는 곤鯤1)이 붕鵬2)으로 변화하는 것을 더불어 말하기 어렵고, 언덕배기에 구애되는 이는 하늘과 땅의 장관에 대하여 더불어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두 가지 집착을 없앤 뒤에야 비로소 성인의 큰 도에 대하여 논할 수 있다. 무릇 성인들이 서로 이어 온 세상을 다스리는 큰 가르침으로서는 유교가 있고 노장사상3)이 있고 불교가 있으니 세상에서 말하는 삼교三敎가 이것이다. 삼교의 도는 모두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유교는 드러난 자취를 탐구하고, 불교는 참됨에 들어맞으며, 그 둘 사이를 이어 서로 붙여 주는 것이 노장사상이다.
무엇을 참됨이라 하고 무엇을 자취라 하는가? 밝히고 깨닫는 것을 참됨이라 하고, 닦고 다스리는 것을 자취라 한다.
자취라는 것은 모습이 생긴 뒤의 것으로서 정情이다. 사물을 궁구하고 앎을 이루고 뜻을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덕을 늘리고 일을 닦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닦지 않고 다스리지 않으면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태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방도가 없으며, 그런 결과가 없으면 (세상은) 어지럽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의 가르침이 이보다 급한 것이 없다. 따라서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려서 온 세상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참됨이라고 하는 것은 모양 이전의 것으로서 성性이다. 그 본체는 끝이 없고 그 밝음은 시작이 없으며, 신령하여 다함이 없고 묘하여 억지로 함이 없으며, 삼제三際4)를 끝까지 다하고 온 누리에 두루 미치며, 변함없이5) 홀로 존재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밝히고 깨달아 큰 깨달음의 경지로 초극하셨으니 그 몸은 음성이나 모양으로 찾을 수 없고, 그 마음은 생각이나 논의로 미칠 수 없다. 성인의 도가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007_0252_b_01L

007_0252_b_02L1)儒釋質疑論 [1] 卷上

007_0252_b_03L
007_0252_b_04L
道有近有遠丘陵泰華之謂也敎有淺
007_0252_b_05L有深蹄涔江海之謂也故滯於蹄涔者
007_0252_b_06L難與道鵾鵬之變化拘於丘陵者難與
007_0252_b_07L道乾坤之壯觀去斯二執然後可與論
007_0252_b_08L聖人之大道矣盖聖人相繼治世之大
007_0252_b_09L有儒者焉有老者焉有佛者焉
007_0252_b_10L之所謂三敎者是也三敎之道皆本乎
007_0252_b_11L而儒者攻乎迹佛者契乎眞接於
007_0252_b_12L其兩間而爲之膠粘者老氏之道也
007_0252_b_13L謂眞何謂迹明之悟之之謂眞修之
007_0252_b_14L治之之謂迹迹也者形而後者也
007_0252_b_15L格物致知誠意正心而進修德業
007_0252_b_16L皆是也不修不治則無以致修身
007_0252_b_17L齊家治國平天下之效無效則亂矣
007_0252_b_18L聖人之敎莫急於斯焉所以修齊而天
007_0252_b_19L下平者也眞也者形而上者也性也
007_0252_b_20L其體無涯其明無始靈而無竭妙而
007_0252_b_21L無爲窮三際亘十方湛然而獨存者也
007_0252_b_22L佛於是也明之悟之超極於大覺
007_0252_b_23L其身也不可以聲色求其心也不可
007_0252_b_24L以思議及聖人之道莫大於斯焉

007_0252_c_01L흐름을 거슬러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갈래의 흐름을 모아 근원으로 향하고, 마음을 거두어들여 근본으로 나아가, 하늘과 땅의 뿌리가 되고 모든 것에 명命으로 존재하니, 이것을 성이라 한다.
『능엄경』에서는 말하기를 “허공에서 큰 깨달음이 생겨남이 마치 바다에서 물방울 하나가 생겨나는 것과 같고, 티끌처럼 많은 유루有漏6)의 나라가 모두 허공에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다.”라고 하였고, 『원각경』에서는 말하기를 “그 가운데에는 갠지스강의 모래처럼 말할 수 없이 많은 부처님의 세계가 허공의 꽃7)과 같이 어지러이 일어났다 어지러이 사라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말한다.
그러나 드러나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은 자취이고, 묘하여 볼 수 없는 것은 성이다. 볼 수 없는 것은 멀고 깊으며, 볼 수 있는 것은 가깝고 얕다. 가까운 것은 먼 것에 미칠 수 없으므로 유교인들은 큰 깨달음의 경계를 더불어 말할 수 없고, 먼 것은 반드시 가까운 것에서 시작하므로 석가모니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습을 보이셨다. 얕은 것은 깊은 것에 이르지 못하므로 유교인들은 세속을 벗어난 가르침을 더불어 말할 수 없고, 깊은 것은 반드시 얕은 것을 다 갖추고 있으므로 석가모니는 세 가지 행위8)에 대한 경계를 앞세웠다. 유교인이 더불어 말할 수 없는 것은 살피지 않아서가 아니니, 또한 공자孔子가 말한 “안과 밖이 서로 미치지 않는다.”9)라는 것이다. 얕은 것을 먼저 하고 깊은 것을 뒤로 하며, 가까운 것에서 시작하여 먼 것에서 끝나는 것이 가르침의 차례이다.
한유韓愈10)는 불교가 삼대三代11)의 뒤에 일어났다 하여 억눌렀는데, 또한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세상 사물의 이치를 살펴보면 거친 것이 정미한 것에 앞서고,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에 앞선다. 꽃이 피고 난 뒤에 열매가 익고, 단련한 뒤에 그릇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어찌 앞의 것을 뛰어나고 뒤의 것을 모자란다 하겠는가?
또한 임금과 신하 관계도 없고, 아비와 자식 관계도 버린다는 것으로써 매우 질책하지만, 이 또한 부처님이 부처님인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 지아비와 지어미, 어른과 아이의 관계는 세간의 법도인데, 삼계三界12)를 벗어난 이를

007_0252_c_01L以泝流而返其源者也其然故能會派
007_0252_c_02L以朝宗攝心以趍本爲乾坤之祖
007_0252_c_03L於一切夫是謂性也楞嚴曰空生大
007_0252_c_04L覺中如海一漚發有漏微塵國皆依
007_0252_c_05L空所生圓覺曰其中不可說恒河沙諸
007_0252_c_06L佛世界猶如空花亂起亂滅此之謂
007_0252_c_07L2) [1] 顯而可見者迹也妙而不可見
007_0252_c_08L者性也不可見者遠而深可見者近而
007_0252_c_09L近不及遠故儒者不與言大覺之境
007_0252_c_10L而遠必自近故釋迦示降生之相
007_0252_c_11L淺不至深故儒者不與言出世之敎
007_0252_c_12L深必該淺故釋氏先三業之戒儒者之
007_0252_c_13L不與論非不審也亦孔子之言內外
007_0252_c_14L不相及之謂也先淺而後深始近而終
007_0252_c_15L敎之次也韓子以佛之興後乎三代
007_0252_c_16L而抑之不亦倒乎洎夫世間事物之理
007_0252_c_17L粗者先於精輕者先於重花然後果熟
007_0252_c_18L鍜然後噐成豈以先者爲優而後者爲
007_0252_c_19L劣乎又以無君臣弃父子爲厚責者
007_0252_c_20L是亦不知佛之所以爲佛也君臣父子
007_0252_c_21L夫婦長幼世間之法也超出三界者
007_0252_c_22L{底}嘉靖十六年刊本(東國大學校所藏) {甲}萬
007_0252_c_23L曆壬午龍仁地瑞鳳寺刊本(高麗大學校所藏)

007_0252_c_24L「然」磨滅{甲}

007_0253_a_01L다시 여기에 구속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모든 존재의 왕인 이를 어찌 임금에게 신하 되게 할 수 있고, 사생四生13)의 아버지인 이를 어찌 아비에게 자식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세간에서는 상제上帝를 본받을 만하다 여기는데, 상제는 오히려 그 몸으로 (부처님이) 앉을 자리가 되었고, 세간에서는 귀신을 공경할 만하다 여기는데, 귀신은 도리어 (부처님의) 시종이 되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하늘 가운데 하늘이라 부르니, 누가 그보다 더 위로 올라가서 (부처님의) 임금이 되고 아비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의 관계 속에 나타나 보이신 것은 이른바 “티끌 속에 앉아서 커다란 가르침의 수레바퀴를 굴린다.”14)라는 것으로, 세간에 그 가르침을 밝히고자 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어찌 그것을 참된 부처님 법계法界15)의 몸16)이라 하겠는가? 법계의 몸이라는 것은 해와 달과 별과 별자리와 산과 강과 온 땅을 그 안에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청정한 몸의 구름이 법계에 두루 미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보신報身과 화신化身17)은 참된 부처가 아니며, 또한 법을 설하는 이도 아니다.”18)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또한 부처님이 세상에 응하는 것은 봄이 모든 나라에 찾아오고 달이 많은 강물에 비치는 것과 같은데, 하나의 풀 하나의 강물만을 들어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봄은 단지 여기에만 있다, 달은 단지 여기에만 있다.”라고 한다면 어찌 봄과 달이 있는 곳을 안다 하겠는가?
부처 되는 공부를 하는 이들이 세속의 얽매임을 벗어나고 마음의 근원을 깨끗하게 하며, 참구의 궁극에서 훤하게 서로 계합하면, 물방울이 물로 돌아가고 눈병으로 생긴 헛것이 허공에서 사라지듯이 끝내 아무런 조짐이나 자취도 없게 되어 한 번에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근본으로 돌아가고,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라고 하는 것으로, 벌어진 틈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가 현각永嘉玄覺19)이 말하기를 “꿈속에서는 분명하게 육취六趣20)가 있었는데, 깨닫고 보니 텅 비어 대천세계大千世界21)가 없다.”22)라고 하였으며, 또한 “아무것도 함이 없는 것 같은 실상의 문, 단번에 곧바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네.”23)라고 하였으니, 어찌 사람을 속이겠는가? 이로 보자면 이 경지는 매우 공적인 자리로서 모든 중생이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여래 또한 자기만의 것으로 할 수 없다.

007_0253_a_01L復可使之拘乎況爲萬法之王者詎可
007_0253_a_02L使之臣於君爲四生之父者詎可使之
007_0253_a_03L子於父也故世以上帝爲可法而上帝
007_0253_a_04L尙以身爲床座世以鬼神爲可敬而鬼
007_0253_a_05L神反以爲侍從故號佛爲天中之天
007_0253_a_06L能亢其上作之君作之父也㦲不是强
007_0253_a_07L爲法如是故也然佛之示現於君臣父
007_0253_a_08L子之間者所謂坐微塵裏轉大法輪
007_0253_a_09L欲明其法於世間耳安可以彼爲眞佛
007_0253_a_10L法界之身耶法界之身者日月星辰山
007_0253_a_11L河大地無一不攝於其中淸淨身雲
007_0253_a_12L周遍法界之謂也故曰報化非眞佛
007_0253_a_13L非說法者此也且佛之應世也如春行
007_0253_a_14L之於萬國月影之於千江取其一草一
007_0253_a_15L而指之曰春但在是月但在是者
007_0253_a_16L豈謂識夫春與月之所存者乎爲佛之
007_0253_a_17L學者超塵累淨心源叅究之極豁然
007_0253_a_18L相契則如漚之歸水翳之消空了無
007_0253_a_19L朕迹而頓入於如來之地矣是之謂返
007_0253_a_20L本還源非有所間隔也故永嘉云
007_0253_a_21L裏明明有六趣覺後空空無大千又云
007_0253_a_22L爭似無爲實相門一超直入如來地
007_0253_a_23L欺人㦲以是觀之是地也乃大公之
007_0253_a_24L群生所共而有之如來亦不得而私

007_0253_b_01L그러므로 사내종ㆍ계집종같이 천한 이나 오랑캐들과 같은 미미한 이, 짐승 잡고 회 뜨는 등의 악한 일을 하는 무리들, 용녀龍女와 같은 다른 중생 부류들도 또한 나누어 갖지 않은 이가 없다. 진실로 그 도를 얻기만 하면 임금이나 아비가 신하나 자식으로 삼을 수 없고, 신하나 자식으로 삼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따르면서 높이 공경한다. 높이 공경하는 것은 왜인가? 도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으로 위아래를 삼지 않는데, 이 또한 억지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유교에서는 이로써 질책하니 어찌 불교의 이치를 아는 것이겠는가?
질의응답質疑應答
① 유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성의 같고 다름
어떤 이가 물어 말하였다 : 그대가 불교를 논한 것은 오로지 성性을 주로 한다. 성은 유학자들 또한 밝혔으니 이단에게 취할 것이 없다. 그러니 불교의 가르침이 학문에 군더더기가 되고 세상에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이 아닐 수 있겠는가?
답하겠다24) : (불교와 유교) 두 전통에서 말하는 성은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다른데, 그대가 아직 변별하지 못하고 있으니 다시 그대에게 풀이해 주겠다.
『중용』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명령을 일컬어 성이라 하고, 성에 따르는 것을 일컬어 도라 한다.”라고 하였고, 맹자孟子는 (사람은) 본성이 선함을 말하였으며, 말할 때마다 꼭 요임금과 순임금을 들었다. 또한 말하기를 “그 마음을 다하면 그 본성을 알고, 그 본성을 알면 그 하늘을 안다.”25)라고 하였다. 주자朱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사람 본성의 벼리로 삼았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불의 성질은 뜨겁고 물의 성질은 차갑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부류로서, 불과 물이 생겨나는 근원을 끝까지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하늘보다 뒤에 나오는 것으로서 사람에게 부여된 것이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깨달음의 바다는 그 본성이 맑고 원만하다. 맑고 원만한 깨달음은 근원적이고 묘하다. 근원적인 밝음이 비추어 대상을 만들어 내는데, 대상이 생기면 비추는 성질이 없어진다. 미혹되고 망령됨으로 허공이 있게 되고, 허공에 의지하여 세계가 생겨난다. 생각이 맑아져서 국토가 이루어지고, 지각知覺하니 이에 중생이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말하기를 “깨끗함이 극에 이르러 빛이 두루 꿰뚫어 비추고, 고요한 비춤이 허공을 품는다.”라고 하였는데, 하늘과 땅의 앞에 우뚝하여 사물에 따라 생겨나지 않고 사물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이것이다. 이는 선악 등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이다. 꿈속의 세계를

007_0253_b_01L故雖臧獲之賤獦獠之微屠膾之
007_0253_b_02L爲惡黨龍女之爲異類亦莫不有分
007_0253_b_03L苟得是道也君父不得而爲臣子不唯
007_0253_b_04L不得而爲臣子又從而尊敬之尊敬之
007_0253_b_05L者何道之所存也如道之所存不以
007_0253_b_06L人爲高下亦不是强爲法如是故也
007_0253_b_07L以是讓之豈知佛理者也㦲

007_0253_b_08L
或問之曰子之論佛專主乎性矣性則
007_0253_b_09L儒者亦以明焉無取於異端然則佛
007_0253_b_10L之爲敎得非疣贅於學而無益於天下
007_0253_b_11L

007_0253_b_12L
曰二家之言性名同而實異子猶未辨
007_0253_b_13L更爲子析之中庸曰天命之謂性
007_0253_b_14L性之謂道孟子即道性善言必稱堯舜
007_0253_b_15L又曰盡其心者知其性知其性則知其
007_0253_b_16L朱子以仁義禮智爲人性之綱等者
007_0253_b_17L如云火性熱水性凉之類而未極乎水
007_0253_b_18L火之所由起是則後乎天而賦於人者
007_0253_b_19L楞嚴曰覺海性澄圓澄圓覺元妙
007_0253_b_20L元明照生所所立照性亡迷妄有虛空
007_0253_b_21L依空立世界想澄成國土知覺乃衆生
007_0253_b_22L又曰淨極光通達寂照含虛空等者
007_0253_b_23L乎天地之先而不隨物生不隨物變者
007_0253_b_24L是也此則善惡思議不及之地以其夢

007_0253_c_01L참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집착하여 밝히 깨닫지 못하면 어찌 (몸을) 닦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있겠는가?
아아, 중생들이 이에 미혹되기가 오래되었다. 이에 미혹됨으로 말미암아 삼계의 불난 집에서 꿈을 꾸며 윤회가 끊이지 않아 많은 고뇌를 받는다. 모름지기 해탈의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하므로 부처님께서 자비의 원력을 이어 시대의 상황에 따라 성스러움을 드러내고, 이 법으로써 삼승三乘26)을 열어 (중생들을) 이끌어 모두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였다. 그 가르침을 세움에 수단적인 가르침과 참된 가르침이 있고, 시작의 가르침과 끝의 가르침이 있고, 점차로 드러내는 가르침과 한꺼번에 드러내는 가르침이 있고, 분명히 드러나는 가르침과 은밀한 가르침이 있다. 다시 원교圓敎27)의 생각할 수도 없는 가르침을 널리 펴서 거두어들이고 교화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정법안장正法眼藏28)의 열반에 드는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맡겨서 대대로 서로 전하여 교학의 가르침 밖에 따로 행하니,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의 문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며, 중생의 근기에 마땅한 방편이 다하지 않음이 없다.
오오, 그 가르침이 동쪽 땅 중국에서 일어난 것은 성인의 시대로부터 천여 년이나 뒤지지만, 듣고 아는 이는 행위의 과보를 갖추지 않는 이가 없어서, 크게는 성인이 되고 지인至人이 되며 작게는 현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 되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는 바른 원인을 잃지 않는다. 또한 착실하게 (경전을) 베껴 쓰거나 받아 지니고 독송하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공덕은 끝이 없고 복은 가없다. 그러므로 시방의 참된 주재자나 하늘과 땅이나 귀신들이 또한 그 도를 드높이고 그 법을 받들어 그것이 있는 곳마다 지키지 않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 책으로써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면 하늘과 땅이 감응하고, 귀신에게 요청하면 귀신이 이를 따른다.
어찌 하늘과 땅이나 귀신만이 그러하겠는가? 너른 영토에 사는 많은 무리에 이르기까지 그 가르침을 들은 이들은 감화되지 않은 이가 없어서 애써 상이나 벌 내리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쓸리듯이 스스로 변화하여 극도로 잘 다스려진 백성이 되니, 그 성대함이 매우 넓고 넓다.
또한 어리석고 사나운 사람들은 비록 가르쳐도 할 수가 없지만, 만일 그 부모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는 이가 없으니,

007_0253_c_01L執爲實有而不明悟則何可修治之
007_0253_c_02L有㦲生靈之迷此也久矣由迷此
007_0253_c_03L而夢於三界火宅之中輪廻不已受諸
007_0253_c_04L苦惱須知有超脫之道故佛承悲願力
007_0253_c_05L應運兆聖欲以是法開導三乘皆令
007_0253_c_06L得出而其敎之設也有權有實有始
007_0253_c_07L有終有漸有頓有顯有密復以圓敎
007_0253_c_08L不思議乘恢張攝化末後以正法眼藏
007_0253_c_09L涅槃妙心付囑大龜氏歷代相傳
007_0253_c_10L敎外別行而諸佛之敎門無不備矣
007_0253_c_11L生之機宜無不盡矣其敎之作於
007_0253_c_12L東震也乃遲去聖千有餘載而聞而知
007_0253_c_13L之者亦莫不具行果大則爲聖爲至人
007_0253_c_14L小則爲賢爲善士擧不失成佛之正因
007_0253_c_15L以至僅能書寫受持讀誦者功莫限而
007_0253_c_16L福無邉是以十方眞宰天地神祇亦莫
007_0253_c_17L不崇其道而奉其法隨所在而守護
007_0253_c_18L以其書祀於天地則天地應之
007_0253_c_19L於鬼神則鬼神順之豈獨天地鬼神而
007_0253_c_20L爲然哉以至率土之廣兆民之衆
007_0253_c_21L聞其法者無不感而化之不待賞罰之
007_0253_c_22L靡然趍以自化於變爲極治之民
007_0253_c_23L洋洋乎其盛哉且人之頑狼者雖誨之
007_0253_c_24L不得也若其父母之命則無有不順者

007_0254_a_01L이는 그 부모를 사랑하고 그 덕에 감화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부처님은 커다란 자비와 커다란 성의, 커다란 은혜, 커다란 이익, 커다란 인연으로써 사생四生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니, 하늘과 사람의 마음을 감격시키는 것이 진실로 세간의 부모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세간의 부모는 몸을 받은 부모이지만, 부처님이라는 아버지는 본성을 받은 자애로운 아버지이니 어찌 차마 스스로 따르지 않겠는가? 공자의 말처럼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며, 크고 커서 백성들이 이름을 붙일 수 없다.”29)는 것임이 확실하다.
이른바 극히 다스려진 백성이란, 그 몸이 다하도록 다섯 가지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 가지 악한 행위는 무엇인가? 죽이고, 훔치고, 사음하고, 헛된 말을 하고, 술 마시고, 고기 먹는 것이다. 아아, 악이 가득한 사람이 많은데 시대마다 또한 그들을 잡아 다스렸으니, 이것이 형벌과 행정적인 명령이 시행된 까닭이다. 비록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린다.”30)라고 하지만, 막는 데에 다 갖추지 못함이 있고 권하는 데에 다하지 못함이 있기 때문에 선한 사람은 게을러지고 악한 사람은 멋대로 한다. 멋대로 하여 악을 행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또한 요행스럽게 숨기면 (형벌을) 면한다. 공자는 (아비와 자식이) 서로 숨겨 주는 것을 정직하다 하였으니31) 그렇지 않겠는가? 진실로 숨기려는 계책이 마음에 있으면 악을 행하는 데에 또한 거리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숨기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해지면 삿되고, 요망하고, 아첨하고, 거짓된 것 등을 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되어 신하로서 임금을 속이고, 자식으로서 아비를 속이고, 백성으로서 윗사람을 속이며, 지아비와 지어미, 어른과 아이, 벗들 사이가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공명과 이익에만 급급한 이들이 다투어 시샘하고 서로 헐뜯어서, 간사한 것은 날로 치성해지고 덕과 의는 날로 없어져 세속의 마음이 날로 더욱 각박해지고 방탕해지는 데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귀신이 싫어하지 않음이 없어서 조화로운 기운이 훼손되고 기근饑饉이 자주 이르게 된다.
부처님께서 정하신 법은 끝까지 잘 갖추어져 있고 매우 엄하여, 살펴보는 데에는 귀신이 있고, 심문하는 데에는 명부冥府32)가 있고, 헤아리는 데에는

007_0254_a_01L愛其親而感其德也況佛以大慈大悲
007_0254_a_02L大誠大惠大利益大因緣爲四生之慈
007_0254_a_03L感激人天之心者固非世間父母之
007_0254_a_04L足比世間父母受形之父母佛之爲
007_0254_a_05L受性之慈父安忍而不自順歟
007_0254_a_06L孔子之言不治而不亂不言而自信
007_0254_a_07L不化而自行蕩蕩乎民無能名焉信矣
007_0254_a_08L所謂極治之民者終其身而不行五惡
007_0254_a_09L五惡者何殺盜邪淫妄言酒肉也
007_0254_a_10L嗚呼人之爲足惡者殷矣世亦得而治
007_0254_a_11L此利政之所由施也雖曰導之以德
007_0254_a_12L齊之以禮而其防之有未備勸之有未
007_0254_a_13L盡故善者怠而惡者肆焉及其肆而
007_0254_a_14L爲惡也亦僥倖而廋之則免矣孔子以
007_0254_a_15L相隱爲直不其然乎苟免之計在於心
007_0254_a_16L則其爲惡也亦何所憚哉故欲隱之至
007_0254_a_17L邪侫謟僞無所不至臣而欺於君子而
007_0254_a_18L欺於父民而欺於上夫婦長幼朋友
007_0254_a_19L之間無不皆然至有汲汲於功名利祿
007_0254_a_20L之間者爭競妬忌互興讒謗姦詐日
007_0254_a_21L德義日亡而風俗之心日益澆蕩
007_0254_a_22L故天地鬼神無不厭斁和氣致傷
007_0254_a_23L而飢饉荐至矣佛之制法也極備甚嚴
007_0254_a_24L察之則有鬼神鞫之則有冥府數之則

007_0254_b_01L선악의 두 장부가 있고, 따져 보는 데에는 저울과 거울의 두 가지 증거가 있고, 벌을 주는 데에는 아귀와 축생이 있고, 형을 내리는 데에는 지옥이 있어서 털끝만 한 악이라도 도망갈 곳이 없으며, 천당으로 상을 주고, 부귀로 보답하고, 인륜을 품부하고, 극락으로 올리니 가는 물줄기나 먼지 같은 선이라도 들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를 들으면 뒤집듯 악을 바꾸어 선에 들어가서, 악을 없애는 데에 다함이 없을까, 선을 행하는 데에 지극하지 못함이 있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귀신이 그 몸을 보호하고 그 행위를 지켜 주지 않음이 없게 되어 조화로운 기운이 맑아져 비가 때맞추어 내리고, 전쟁이 사라져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나라 안이 이로써 태평스럽게 다스려지고, 임금과 신하가 이로써 경사가 있으니, 어찌 (불교가) 군더더기로서 세상에 이익이 없다 하겠는가?
주나라가 쇠약해진 말기에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져서 하나같이 서로 속이는 것으로 이익을 삼고 죽이는 것으로 공을 삼으며 약한 이는 토해 내고 강한 이는 삼키며 서로 침공하고 정벌하니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괴로움이 극에 이르렀다. 이때 공자 맹자 같은 성인과 현인이 급하게 인仁과 의義와 충忠과 서恕와 선왕의 도로써 사람들을 잘 이끌었는데, 포폄하고 물리치는 주장이 본디 여러 곳에서 이미 많았지만 오히려 구할 겨를이 없었다. 만일 당시에 임금과 신하와 선비와 서인이었던 이들이 큰 깨달음의 가르침과 인과 죄복罪福의 논의를 듣고서, 이 생에서 비록 세상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죽으면 또한 다음 생의 과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살피게 하였다면, 어찌 풍속이 바뀌어서 잘 다스려지는 세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지금의 훌륭하고 믿음 있는 남자와 여자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계율을 잘 지켜 어지럽히지 않는 이라면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반드시 그 시대 사람들이 존중하는 이가 되어, 비록 부처님과 조사의 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진실로 더럽고 악한 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집에 머물게 하면 집안이 맑아지고 관직에 있게 하면 관직이 맑아지고 지방관을 맡게 하면 백성들의 풍속이 선해지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 나라의 명운이 새로워질 것이니,

007_0254_b_01L有善惡二簿質之則有秤鏡二證罰之
007_0254_b_02L則以鬼畜刑之則以泥犁而纎毫之惡
007_0254_b_03L無所逃賞之以天堂報之以富貴
007_0254_b_04L之以人倫昇之以極樂而涓塵之善無
007_0254_b_05L不擧故人之聞之也翻然改其惡而入
007_0254_b_06L於善猶恐去惡之不盡而爲善之未至
007_0254_b_07L故天地鬼神莫不保其身而護其
007_0254_b_08L和氣淑而雨賜時兵革消而人民安
007_0254_b_09L國界以之而治平君臣以之而有慶
007_0254_b_10L得謂之疣贅而無益於天下也哉周衰
007_0254_b_11L之末天下大亂一以相欺爲利殺戮
007_0254_b_12L爲功弱吐强呑互相侵伐而生民之
007_0254_b_13L塗炭極矣時有孔孟之聖賢皇皇然
007_0254_b_14L以仁義忠恕先王之道善誘於人褒貶
007_0254_b_15L拒闢之說固已多方而猶不暇救
007_0254_b_16L使當時之爲君臣士庶者得聞大覺之
007_0254_b_17L因果罪福之論審夫生雖得以欺於
007_0254_b_18L死亦不免於身後則豈不移風易俗
007_0254_b_19L而爲善治之世歟如今之善男信女
007_0254_b_20L佛之敎持戒不亂者猶蓮花之出淤泥
007_0254_b_21L必爲時俗之所尊重雖未及登佛祖之
007_0254_b_22L階除固不可以穢惡稱之也斯人也
007_0254_b_23L使之居家則家淳使之居官則官淸使
007_0254_b_24L之作郡則民風善使之爲國則邦命新

007_0254_c_01L이른바 물을 맑게 하는 구슬을 흐린 물에 던지면 흐린 물이 맑아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이것이다. 하물며 온 마음으로 선정과 지혜를 닦아 그 도의 극에 이른 이겠는가?
옛적 종심從諗 선사가 조주趙州에 살고 있을 때 이웃 나라들이 서로 공격하였는데, 기운을 살피는 이가 바라보고서 말하기를 “조주에는 성인의 기운이 있으니 싸워도 반드시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33)라고 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포위가 풀렸다. 도가 한 고을에 있으면 한 고을이 중해지고, 도가 한 나라에 있으면 한 나라가 중해지고, 도가 온 세상에 있으면 온 세상이 중해진다는 것이 이것이 아니겠는가?
② 타락한 승려들의 환속과 부역
묻겠다34) : 그대가 말한 같고 다름과 이익 됨의 설명은 사람의 의혹을 풀어 주기에 충분하다. 나 또한 그럴 것이라고 깊이 믿는다. 그러나 말법시대의 불교 승려들 가운데에는 양의 바탕에 호랑이 가죽만 쓴 이들이 열 가운데 늘 여덟아홉은 되는데, 나라에는 이익이 없고 도에는 해로움이 있어서 싹 사이에 강아지풀이 있는 것 같을 뿐만이 아니다.35) 이들을 가려서 쫓아내고 일반 백성들의 요역에 대신 편입시키고자 하는데, 그러면 저쪽(불교계)이나 이쪽(나라)에 모두 이익이 아니겠는가?
답하겠다 : 앉으라. 내가 그대에게 풀이해 주겠다. 기우제를 지내는 이는 물고기와 자라를 차마 손질하지 못하는데, 물고기와 자라가 용이라고 여겨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무덤을 돌보는 이는 풀이나 나무를 차마 베지 못하는데 풀이나 나무가 혼신이라고 여겨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무릇 경건하게 기도하고 애달피 그리워할 때에는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부처님께서 부처님이신 까닭을 알고서 받들었으면 비록 그 무리 가운데 물고기나 자라나 풀이나 나무와 같은 이라 할지라도 또한 어찌 모욕하여 일반 백성들의 예에 따라 요역을 시킬 수 있겠는가?
또 흙은 밟는 것이고 나무는 불 때는 것이지만 조각하고 빚어 불상을 만드는 데 미쳐서는 기도하면 감응이 있고 공경하면 복이 생겨난다.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어찌 알고 믿는 것이 흙이나 나무에조차 견줄 수 없겠는가? 비록 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어찌 공경하지 않고 도리어 불태우거나 밟아서

007_0254_c_01L所謂淸珠投於濁水濁水不得不淸者
007_0254_c_02L是也況全心㝎慧極於其道者乎
007_0254_c_03L諗禪師居趙州隣國相攻之有相氣者
007_0254_c_04L望之曰趙有聖人之氣戰必不勝
007_0254_c_05L此遂解道在一鄕則一鄕重道在一國
007_0254_c_06L則一國重道在天下則天下重非是之
007_0254_c_07L謂歟

007_0254_c_08L
曰子之言同異利益之說足以辨人之
007_0254_c_09L惑矣余亦以深信其然矣然末運佛氏
007_0254_c_10L之徒羊質虎皮者十常八九無益於
007_0254_c_11L國而有害於道也不啻如苗之有莠
007_0254_c_12L擇而去之以代編民之役不於彼此皆
007_0254_c_13L有益乎

007_0254_c_14L
曰居請爲子解之承雩祭者不忍宰
007_0254_c_15L於魚鼈非以魚鱉而謂之龍也事墳塋
007_0254_c_16L不忍伐於草木非以草木而謂之神
007_0254_c_17L盖其虔禱之間哀慕之際愛敬之
007_0254_c_18L無所不至也旣知佛之所以爲佛而
007_0254_c_19L奉之則雖其徒之如魚鱉草木者亦安
007_0254_c_20L可辱之而役於編民之例歟且土是踐
007_0254_c_21L物也木是薪物也及其雕塑而爲佛之
007_0254_c_22L像也祈之則有感應敬之則有福生
007_0254_c_23L旣預人品者寧知信不與土木比雖尸
007_0254_c_24L其位者烏得不敬而反薪之踐之損其

007_0255_a_01L그 복을 덜어 내고 그 허물을 빨리 불러올 수 있겠는가?
하물며 부처님께서는 뭇 생명들의 큰 근본이심에랴! 근본이 흔들리면 가지도 따라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승니僧尼36)들을 요역으로 몰아넣는 것을 경전과 불상을 불태우고 탑과 절을 부수는 죄와 같다고 하셨으며, 나라의 요얼妖孼이라고 하셨으니 나라를 가지고 있고 세상을 가지고 있는 이37)라면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하물며 승려들은 세간에 있으면서 스스로 그 도를 닦아 홀로 자신을 선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로지 그 법으로써 임금과 신하를 돕고 나라에 복을 내리며 두루 사람과 하늘 중생들에게 복밭이 되어 줌에랴!
예부터 성인과 현인들이 사람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 보일 때에 가난하고 병들고 못생기고 비루하여 불쌍히 여길 만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사람들에게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끌어내어 그들이 복의 씨앗을 심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또한 이 법은 겉모습으로 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풍간豐干 선사에게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알아도 보지 못한다.”38)는 말이 있고, 한산寒山은 “부처님을 골라서 좋은 향을 사르고, 승려들을 가려서 귀의하고 공양하면, 그대에게는 평등한 마음이 없으니, 현인과 성인 아무도 내려오지 않으리.”39)라고 하였으니, 겉모습만을 구하는 이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승려들을 가려내어서는 안 되고 아직 세속을 벗어나지 못한 이라 할지라도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니, 복을 바라는 이라면 더욱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도리어 채찍질하고 요역을 시킨다면 어찌 이치에 맞겠는가?
무릇 사람들이 세속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정情이 누累가 되기 때문이다. 정이 얽매이기로는 재물과 미색보다 더 심한 것이 없으니, 탐냄과 성냄의 불길이 여기에서 불타오르고 여러 생에 걸친 괴로움과 번뇌가 여기에서 생겨난다.
안타깝구나! 중생들이 이에 빠진 지가 오래되었다. 그 유래는 본디 시작이 없는 때부터 시작되고 물리도록 만족할 기약이 없어서, 심지어 밥상에는 사방 한 장이나 되게 음식을 많이 쌓아 놓고 좌우에는 시중드는 첩이 많으며 만종萬鍾40)의 영화와 천사千駟41)의 부유함이 있는데도 그 마음은 오히려 다하지 못하였다고 여기는 것이 세간의 행태이다.
승려는 이와는 반대로 정의 미혹에서 높이 벗어난다.

007_0255_a_01L福而速其咎乎況佛爲群靈之大本
007_0255_a_02L搖則枝末隨動故佛以驅役僧尼同於
007_0255_a_03L焚經像破塔寺之罪而爲國家之妖孽
007_0255_a_04L有國有天下者可不愼歟又況僧之
007_0255_a_05L處世間非特自修其道獨善其身而已
007_0255_a_06L專以其法資君臣祐家國普爲人天
007_0255_a_07L作福田者也自古聖賢示現人1) [2]
007_0255_a_08L以貧病醜陋可惜之形者良有以也
007_0255_a_09L其引出悲心令他種福又以曉夫是法
007_0255_a_10L之不可以貌取也故豊干禪師有見之
007_0255_a_11L不識識之不見之言寒山云擇佛焇
007_0255_a_12L好香揀僧歸供養汝無平等心賢聖
007_0255_a_13L俱不降求其外貌者可無媿乎此其
007_0255_a_14L所以浮圖之不可揀擇而未出乎塵勞
007_0255_a_15L不可以不敬欲望其福者尤不可
007_0255_a_16L以不敬而反策之役之豈其理歟凡人
007_0255_a_17L之汨於塵勞而不得出離者情爲其累
007_0255_a_18L情之所繫莫甚於財色而貪嗔之
007_0255_a_19L由是而熾焉多生苦惱由是而生
007_0255_a_20L嗟夫群生之沒於是也久矣其來固
007_0255_a_21L始於無始而無有厭足之期至有食前
007_0255_a_22L方丈之侈左右侍妾之多萬鍾之榮
007_0255_a_23L千駟之富而其心猶以爲未極者世間
007_0255_a_24L之熊也僧者反是而高超乎情惑之外

007_0255_b_01L그 온전히 하나임은 좋은 금이 광석에서 나온 것과 같고, 세속을 떠남은 옥 거울이 구름을 벗어난 것과 같아서 삼매를 닦을 수 있고 깨달음을 바랄 수 있다. 승려가 이와 같다면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더기 옷을 쌓아 두는 것은 추위를 막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고, 밥을 빌어 몸을 유지하는 것은 목숨을 보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사를 입는 것은 세상의 복밭42)임을 보이는 것이고, 발우를 지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마땅히 공양해야 함을 보이는 것이다.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밖으로는 그 모습을 훼손하여 얼굴을 꾸미지 않는 것이고, 안으로는 마음의 풀을 베어 무성하게 더러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유학자들은 이를 마른나무 같은 행위라고 비웃는데,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 그러나 마른나무 같은 행위를 하면 윤회가 끝난다. 윤회가 끝나고 나면 몸뚱이는 비록 남아 있을지라도 그 정신은 이미 본원으로 돌아가는데, 이는 마치 빈집처럼 몸이라는 그릇에 사람이 없는 것이어서 몸에 나아가 보아도 몸이 없고, 삶에 나아가 보아도 삶이 없다. 가고 오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어 진실로 죽고 태어남에 기대지 않으니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
만일 마른나무 같은 행위를 하지 않는 이라면 그 정신은 몸뚱이라는 껍데기 속에 갇혀 있으니, 한 번 영화롭게 되고 한 번 초췌해지는 일이 어느 해인들 없겠는가? 심지어는 비바람에 괴로움을 당하다가 도끼에 베어져 연기 속에 불태워지기도 하니 또한 이미 곤궁한 것이다.
유학자들이 말하기를 “죽고 태어남이 또한 크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죽고 태어남을 중시하지 않았겠는가? 지식이 있는 이라면 이 두 가지에서 어찌 가려 취하지 않겠는가?
③ 불교가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유교인이 불교를 배척한다는 것
묻겠다 : 승려들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잘 들었다. 이러하다면 부처님의 도가 자신을 닦는 데 절실하고 정치에 보탬이 되는 것이 이처럼 지극한데, 지금의 유학자들은 부화뇌동하여 불교를 배척하는 것을 잘한 일로 여기니, 바라건대 다하지 못한 설명을 이어 나가 시비의 문을 막아 버리면 또한 다행이 아니겠는가?
답하겠다 : 좋도다, 그 말이여! 삼교의 성인들은 저마다 그

007_0255_b_01L其全一也如眞金之出鑛其離塵也
007_0255_b_02L若玉鑑之離雲三味可修而菩提可冀
007_0255_b_03L僧也如此可不尊乎畜其百衲者
007_0255_b_04L寒不可不禦也乞食2) [3] 身者命不可
007_0255_b_05L不保也著袈裟者示爲世之福田也
007_0255_b_06L鉢盂者示爲世之應供也除其鬚髮有
007_0255_b_07L二義外則毁其形而不事容飾也內則
007_0255_b_08L芟心草而不令蕪穢也儒者笑爲枯槁
007_0255_b_09L之行是則是矣然枯精者輪廻之事
007_0255_b_10L畢矣輪廻旣畢則形骸雖存而其精
007_0255_b_11L已返於本源斯身器之無人也
007_0255_b_12L空舘然即身而無身即生而無生
007_0255_b_13L之就之唯意所適固非有待於死生也
007_0255_b_14L豈不快哉如不枯槁者即其精神
007_0255_b_15L於形殼之中一榮一憔何歲無之
007_0255_b_16L至苦風雨傷斤斧或薪於烟熖之中
007_0255_b_17L亦已困矣儒者曰死生亦大矣豈以
007_0255_b_18L死生爲不齒哉有智識者於斯二者
007_0255_b_19L奚不擇焉

007_0255_b_20L
曰僧之不可役旣聞命矣若是則佛氏
007_0255_b_21L之道切於修身而有補於政治也如此
007_0255_b_22L其至今之爲儒者雷同以斥佛爲能
007_0255_b_23L繹未盡之說以杜是非之門不亦幸乎

007_0255_b_24L
曰善哉言也三敎之聖者各醫其

007_0255_c_01L백성의 병을 고치는 이들이다. 다만 그 과정은 서로 같지 않다. 만일 수단적인 가르침을 잘 써서 교화하는 극치에 관해서는, 용이 아니면 어찌 용이 하는 일을 알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주제넘은 생각으로 말해 보자면 유교는 마음을 주로 하는 것이고, 노장사상은 기氣를 주로 하는 것이고, 불교는 성性을 주로 하는 것이다.
자연에는 네 가지 계절이 있는데 저마다 주인이 있어서 서로 이어 그 명령을 편다. 그러니 어찌 이 세 가지에만 주인이 없겠는가? 뒤에 무리가 된 이들이 그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갑자기 불교를 배척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삼아서 근심스레 일생의 큰 병통이 되니, 또한 주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공자께서는 부처님을 추앙하여 서쪽 지방의 큰 성인이라고 하면서도 스스로는 (성인에) 처하지 않았는데, 어찌 괜히 그랬겠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성인이란 인의仁義를 따르면서도 인의를 다하지 못하고, 도덕을 행하면서도 도덕을 다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인의와 도덕은 오직 부처님만이 다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요임금과 순임금은 널리 베푸는 것을 (해결해야 할) 근심거리로 여겼고, 탕왕과 무왕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덕이 있었다. 주공周公43)은 비록 성인이지만 정벌을 없애지 못하였고, 공자는 비록 인하였지만 제사에 쓰는 양을 없애지 못하였다. 또한 활과 화살로써 세상에 위세를 떨치고,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물고기 잡는 일에 종사하며, 희생을 죽여서 종묘에 제사 지내고, 날짐승 길짐승을 사냥하여 주방에 공급하는 데까지 이르는데, 이를 부처님의 도덕에 비교한다면 마치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부처님은 베푸는 것은 대천세계에 두루 적시고 덕은 사생을 두루 덮는다. 마군魔軍이 비록 포악하지만 항복시키는 데 무기를 쓰지 않았고, 가리왕歌利王44)이 비록 원한을 품었지만 되갚는 데 그대로 하지 않았다. 앙굴리말라45)가 죽이고자 하였으나 도리어 구제하여 제도하였고, 데바닷다46)가 해치고자 하였으나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하였으니, 유교와 불교의 나뉨이 진실로 이와 같다.
또한 세간의 법은 저마다 자기 아비를 아비로 삼고, 저마다 자기 자식을 자식으로 삼으며, 저마다 자기 몸을 몸으로 삼고, 저마다 자기 지어미를 지어미로 삼기 때문에 세상과

007_0255_c_01L民之病者也但其漸有不同耳若其善
007_0255_c_02L權功化之極致則非龍也而焉知龍之
007_0255_c_03L所爲乎然妄意之所謂則儒者主乎心
007_0255_c_04L者也老者主乎氣者也佛者主乎性者
007_0255_c_05L天有四時各有其主相承以宣其
007_0255_c_06L豈斯三者而獨無其主乎後之爲徒
007_0255_c_07L未達其主之心遽以排佛爲急務
007_0255_c_08L戚戚然爲一生之大病不亦反忤其主
007_0255_c_09L之意乎況孔子推佛爲西方之大聖
007_0255_c_10L而不自居焉豈徒然哉世之所謂聖人
007_0255_c_11L遵仁義而不能盡仁義行道德而不
007_0255_c_12L能盡道德者也仁義道德唯佛能盡之
007_0255_c_13L故堯舜病愽施湯武有慚德周公雖聖
007_0255_c_14L征伐未除孔子雖仁餼羊未去至夫
007_0255_c_15L爲弧矢以威其天下爲網罟以事其
007_0255_c_16L佃漁屠犧牲以祀其宗廟佃禽獸
007_0255_c_17L供其庖厨以此比佛之道德猶霄壤之
007_0255_c_18L不侔也佛者施則普洽大千德則遍
007_0255_c_19L覆四生魔軍雖暴伏之不以兵歌王
007_0255_c_20L雖怨報之不以直央崛欲殺而返爲救
007_0255_c_21L調達欲害而授記作佛儒佛之分
007_0255_c_22L誠若是也且世間之法者各父其父
007_0255_c_23L各子其子各身其身各妻其妻故
007_0255_c_24L「間」作「問」{甲}「攴」當作「支」{編}

007_0256_a_01L나 둘이 성립하고, 나와 남이 상대를 이루기 때문에 윤회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른바 윤회하는 일이라는 것은 목숨에는 목숨으로 되돌려 주고, 힘에는 힘으로 되갚는데, 세간의 만 가지 길이 어느 것도 그렇지 않은 것이 없어서 머리를 바꾸고 얼굴을 바꾸어 서로 높거나 낮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막힘없는 큰 자비로 만 가지 행위를 쌓고 만 가지 덕을 이루어, 삼계를 이끄는 스승이자 사생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어서, 큰 근본으로써 거두어 묶고, 하나의 성품으로써 평등하게 하니 저것과 이것, 세상과 내가 모두 참된 경지로 돌아간다. 『금강경』에서 “내가 모두를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가서 번뇌를 없애고 해탈케 하리라.”라고 한 말이 이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시 윤회하는 일이 있겠는가?
따뜻한 기운으로 낳고 서늘한 기운으로 이루어서47) 한 번 펼치고 한 번 베푸는 것이 조화의 이치이니, 성인의 도를 말하는 것이다. 휘날리듯 뿌리고 빨아들이듯 거두어들여서 한 번 말아 들이고 한 번 펴는 것이 조화의 공용이니, 성인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다. 유교를 알면서 불교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봄이 있음을 알면서 가을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현명하다 할 수 있겠는가? 자연에는 네 가지 계절이 있어서 돌아가면서 만물을 생성하는데, 성인이 세운 가르침이 번갈아 일어나서 천하를 교화하여 이루는 것 또한 이러할 뿐이다.
만일 먼저 선왕先王48)과 주공과 공자의 법으로써 형정을 밝히고 예악을 정하여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린 뒤, 더 높이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이) 나고 죽는 윤회 밖으로 벗어나 근본으로 돌아가고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여, 청정한 열반의 즐거움으로 나아가거나, 마음대로 몸을 내어서 온 누리 어떤 나라건 인연 따라 태어나 중생들을 만나 교화하거나 못 할 것이 없게 하면, 이른바 비단에 꽃을 더한 것과 같이 자기 집안의 모든 광채를 충분히 드날리게 되니, 어찌 선을 다하고 아름다움을 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불교를 공부하는 무리도 똑같이 사람의 자식이지만, 아내와 첩을 두지 않으니 시샘하고 꺼릴 것이 없고, 이름과 이익을 취하지 않으니 권력을 다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씩씩대며 마치 원수처럼 보고

007_0256_a_01L我兩立自他成敵而輪廻之事起矣
007_0256_a_02L所謂輪廻之事者以命還命以力償力
007_0256_a_03L世間萬途無不皆然改頭換面互爲
007_0256_a_04L高下故佛以無碍大悲積萬行成萬德
007_0256_a_05L爲三界導師四生慈父括之以大本
007_0256_a_06L之以一性而彼此物我咸歸乎實際
007_0256_a_07L金剛經所謂我皆令入無餘涅槃而滅度
007_0256_a_08L之者是也何更復有輪廻之事哉煦煦
007_0256_a_09L以生之凄凄以成之一張一施造化
007_0256_a_10L之理也聖人之道之謂也揚揚以播之
007_0256_a_11L吸吸以收之一卷一舒造化之功也
007_0256_a_12L聖人之敎之謂也知儒而不知有佛者
007_0256_a_13L知有春而不知有秋者也可謂賢乎
007_0256_a_14L有四時循環以生成萬物聖人設敎
007_0256_a_15L迭興以化成天下亦由是而已若以先
007_0256_a_16L王周孔之法明刑政㝎禮樂平治天下
007_0256_a_17L而後進而昇之使之脫乎死生之外
007_0256_a_18L還其本返其源以趍淸淨涅槃之樂
007_0256_a_19L意生身於十方國土隨緣降誕接化
007_0256_a_20L群生無不可者可謂錦上添花發揚
007_0256_a_21L自家十分光彩矣豈不盡善盡美也
007_0256_a_22L學佛之徒者均是人子也不畜妻妾
007_0256_a_23L則無有所妬忌也不取名利則無有所
007_0256_a_24L爭權也憤憤然見之如仇讎惡之如

007_0256_b_01L뱀처럼 미워하는 이를 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알지 못하겠다. 만일 불교를 배척해서 이름을 사려고 한다면 그 또한 비루한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이름은 내용의 손님이니 주인이 있으면 손님이 저절로 온다.”라고 하였다. 또 하물며 불교를 파괴하는 이는 세간에서 모두 흉악하다고 말하는데, 안으로 도덕이라는 주인을 닦지 않고 갑자기 그 명성만을 바란다면 현명하다 할 수 있겠는가? 그 명성을 바라면서 도리어 흉악한 악명만을 불러온다면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또 한나라 명제 때 불법佛法이 동쪽으로 전파된 뒤부터 황제와 왕과 공작과 후작과 이름난 유학자와 거대한 집안에서 불교를 받든 이가 자못 많았다. 또한 이백李白,49) 두보杜甫,50) 노공盧公, 이고李翶,51) 유자후柳子厚,52) 소동파蘇東坡,53) 백낙천白樂天,54) 배휴裴休,55) 장천각張天覺56) 등의 무리 또한 불교를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그 높은 이름을 잃지 않았다. 또 세상에서 불교를 배척하기로는 한유와 구양수歐陽脩57)의 무리만 한 이가 없는데, 한유가 조주로 좌천되어서는 언제나 태전太顚58) 선사에게 불법을 물었고 최후에는 시자 곁에서 들어가는 길을 얻었다.59) 구양수는 벼슬을 그만둔 뒤 또한 육일거사六一居士라 칭하였는데, 거사라는 이름은 불교를 배우는 이들의 이름인데 이로써 칭하였으니 또한 불교를 배웠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사람이 궁해지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어서는 어찌 이전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화살이 시위를 떠나 버리면 돌이킬 수가 없고, 미친 말이 입에서 나오면 어떻게 거두어들이겠는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계60)를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업을 부르지 않고자 하면 여래의 바른 가르침의 바퀴를 욕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한때 미치고 어그러진 계책을 멋대로 행하여 성인을 욕하고 배척하고서 그 후환을 어찌할 것인가?
아, 몸뚱이가 보잘것없기로는 큰 창고 속의 쌀 한 톨 같을 뿐만이 아니고, 세월이 촉박하기로는 여관에 잠시 머무는 길손 같을 뿐만이 아니어서, 어리석은 사람도 백 년 동안의 뜬구름 같은 삶이 꿈이나 허깨비 같음을 안다. 가난하고 부유하고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모두 전생의 원인에 매여 있는 것이고, 현명하고 어리석고 귀하고 천한 것은 모두 정해진 분수가 있는 것이니, 얻는다고 해서 어찌 기뻐할 만하고 잃는다고 해서

007_0256_b_01L蛇虺者吾未知其何謂也若因排佛而
007_0256_b_02L欲沽名者其亦陋矣古人有言曰
007_0256_b_03L者實之賔有主賔自至又況破佛者
007_0256_b_04L世皆以㐫惡稱之內不修道德之主
007_0256_b_05L遽欲其名可謂賢乎欲其名而反召其
007_0256_b_06L㐫名可謂智乎又自漢明佛法東播之
007_0256_b_07L帝王公侯名儒巨家奉佛者頗多
007_0256_b_08L且如李白杜甫盧公李翺柳子厚蘇東坡
007_0256_b_09L白樂天裴休張天覺之儔亦不因崇佛
007_0256_b_10L而失其高名也且世之排佛莫若韓
007_0256_b_11L退之歐陽脩之輩退之之貶潮州也
007_0256_b_12L常問法於大顚末後於侍者邉得介入
007_0256_b_13L脩之致仕也亦以六一居士稱之
007_0256_b_14L居士之名學佛之名也以是稱之則知
007_0256_b_15L有佛矣莫是葉落歸根人窮返本之謂
007_0256_b_16L及其爾也豈不悔前非也然箭旣
007_0256_b_17L離絃無由返勢狂言出口何自而收
007_0256_b_18L興戎之戒其可忽歟故曰欲得不
007_0256_b_19L招無間業莫謗如來正法輪肆一時狂
007_0256_b_20L悖之計毁斥聖人而其如後患何
007_0256_b_21L身器之微非特大倉𥺀米也光陰之促
007_0256_b_22L非特逆旅過客也百歲浮生愚者亦知
007_0256_b_23L其夢幻貧富壽夭皆繫前因賢愚貴
007_0256_b_24L皆有㝎分得之而何足喜失之而

007_0256_c_01L어찌 슬퍼할 만하겠는가? 금으로 만든 탄환은 보잘것없는 참새에게 쏘지 않고, 상투 속의 구슬61)은 작은 공으로는 주지 않는다. 식견이 있는 군자라면 자질구레한 이름 때문에 그 본성의 선함을 없애고 뒷날의 곤궁함을 스스로 남기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다.
④ 불교는 오랑캐의 가르침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묻겠다 : 불교를 욕하는 유교인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불교는 서쪽 오랑캐의 가르침이니 중국에서 시행할 수 없다.”라고 한다. 또한 중국 성인의 가르침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62)보다 앞서는 것이 없는데 불교에서는 논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불교가) 열등하다고 보는 것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답하겠다 : 이는 이른바 터에 얽매여서 큰 이치에 통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라의 영역은 비유하자면 그릇과 같다. 그릇의 크기는 같지 않을 수 있어도 어느 그릇인들 가운데가 없겠는가? 저곳 또한 하나의 세상이고 이곳 또한 하나의 세상이다. 중국에서는 저곳을 오랑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또한 천축에서 이곳을 오랑캐라고 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하물며 저 천축은 남섬부주南贍部洲63)의 한가운데로서 오랑캐가 아니다. 그 땅의 넓이는 동쪽 중국에서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거의 백 개는 있고 다섯 천축으로 나뉘는데, 가운데에 있는 것이 카필라이다.
여래께서는 가섭불의 시대에 보처보살의 자리에 오른 뒤 도솔천궁兜率天宮64)에 올라가 태어나서 이 세상에 응할 때를 기다리다가, 그 때가 이르려 하니 금단천자에게 명하여 염부제를 두루 다니며 태어날 곳을 살펴보게 하였다. 천자가 돌아와 보고하니 해로 변화하여 흰 코끼리를 타고 염부제로 내려와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마야부인의 태胎 속으로 들어가셨는데, 그때 도솔천의 무리인 99억의 천자가 같이 내려와 또한 태 속에 머물면서, 따르는 무리인 성문의 제자가 되거나 왕이나 신하나 장자나 거사나 사서인士庶人이나 백성이 되어 부처님께서 널리 교화하는 것을 돕고자 하였다. 이때가 바로 주나라 소왕 13년 계축년 7월 15일 한밤중이다.
열 달이 다 찬 뒤 어머니가 동산에서 거닐다가

007_0256_c_01L何足悲金彈不爲微雀而發髻珠不以
007_0256_c_02L小功而授有識君子無以區區之名
007_0256_c_03L滅其性善而自貽後困可也

007_0256_c_04L
曰儒之訾佛者必曰佛者西夷之敎也
007_0256_c_05L不可施於中國且中國聖人之敎莫先
007_0256_c_06L於圖書而佛者不及論以是而劣之
007_0256_c_07L豈非然乎

007_0256_c_08L
曰是所謂拘墟而不達大理者也國土
007_0256_c_09L之分疆比猶器也器之大小雖或不
007_0256_c_10L而中則何器而無之彼亦一天下
007_0256_c_11L此亦一天下諸夏以彼爲夷則亦安知
007_0256_c_12L天竺之不以此爲夷也況彼天竺者
007_0256_c_13L南贍部洲之中而非夷也其地之廣
007_0256_c_14L東夏之所謂天下者殆有百數分爲五
007_0256_c_15L而居其中者乃迦維也如來於迦
007_0256_c_16L葉佛時位登左補上生兜率天宮
007_0256_c_17L待應世之時及其時之將至也命金團
007_0256_c_18L天子巡歷閻浮閱其降生之處天子
007_0256_c_19L反命化日輪駕白象下降閻浮乃從
007_0256_c_20L右脇入摩耶胎時兜率天衆九十九億
007_0256_c_21L天子一時下降亦復處胎願爲徒屬
007_0256_c_22L聲聞弟子或作王臣長者居士士庶人
007_0256_c_23L助佛揚化即周昭王十三年癸丑七
007_0256_c_24L月十五日夜半也十月旣滿母遊於園

007_0257_a_01L무우수無憂樹 아래에 이르러 무우수의 가지를 잡으니 태자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땅에서는 금빛 연꽃이 솟아나 태자의 몸을 받들고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금빛 몸을 씻겨 주었다. 씻기가 끝나자 두루 일곱 걸음을 걸으며 눈으로는 사방을 돌아보고 손가락으로는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사자후를 지어 말씀하시기를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 홀로 높다.”라고 하셨다. 이때 하늘과 땅이 여섯 가지로 흔들리고 해는 겹쳐서 나타났으며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조짐이 하나가 아니었는데, 바로 소왕 14년65) 갑인년 4월 8일이다.
소왕이 이를 보고 몹시 놀라고 기이하게 여겨 태사관太史官 소소유蘇少游에게 점을 치게 하였더니 건괘乾卦 구오효九五爻를 얻고서 바로 아뢰기를 “건은 금인의 지위로서 서쪽에 머무니, 서쪽 세상에 큰 성인이 태어났다는 상서로운 조짐입니다.”라고 하였다. 소왕이 “이 땅에는 어떠한가?”라고 물으니, “성스러운 분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시대66)에는 이곳에 오지 않습니다. 천 년 뒤에 마땅히 교법이 이 땅에 흘러 전해질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소왕이 관장하는 부서에 칙명을 내려 (이 내용을) 돌에 새겨 기록하고 낙양성 남쪽 교외의 단 아래에 묻게 하였다.
목왕이 즉위한 뒤 30년 동안 밝은 빛이 자주 이 땅을 비추었는데 바로 가르침을 설하여 중생들을 구제할 때였다. 목왕은 부처님이 나타나신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들이 이 땅을 침략할까 두려워서 재상과 여후呂侯에게 칙명을 내려 세상의 병마를 도산 아래에서 점검하여 서역의 (침략을) 방비하게 하였다.
공왕이 즉위한 지 3년째 되던 임신년 2월 15일에 하늘과 땅이 여섯 가지로 반복하여 흔들리고 산과 언덕이 무너지고 강물이 들끓고 큰 바람이 나무를 뽑고 달리는 짐승들이 슬프게 울부짖고 나는 새들이 떨어졌으며, 열다섯 줄기 하얀 무지개가 해를 꿰뚫었다. 왕이 몹시 괴이하게 여겨서 북을 울리게 하여 뭇 신하들을 모두 모은 뒤 “이것이 무슨 재이災異인가? 과인의 종묘에 무너질 위험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그때 태사관 호일다扈逸多가 아뢰기를 “이는 서역의 성인이 세상을 떠날 조짐으로 왕의 일에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공왕 또한 부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007_0257_a_01L至無憂樹下攀無憂樹枝太子從右脇
007_0257_a_02L而生地涌金蓮奉太子身九龍吐水
007_0257_a_03L灌沐金𨈬沐浴才訖周行七步目顧
007_0257_a_04L四方指天指地作獅子吼云天上天
007_0257_a_05L下唯我獨尊是時乾坤六種振動
007_0257_a_06L有重輪靈瑞非一即昭王十四年甲寅
007_0257_a_07L四月八日也昭王見此驚異非常
007_0257_a_08L太史官蘇少游卜之得乾卦九五1) [4]
007_0257_a_09L秦曰乾是金人之位住於西也西天有
007_0257_a_10L大聖人降生之瑞也昭王問曰於此土
007_0257_a_11L何如對曰聖躬御世之時不來此千年
007_0257_a_12L後合有敎法流傳此土昭王勅命所司
007_0257_a_13L刻石記之瘞於洛陽城南郊壇之下
007_0257_a_14L王即位三十年間數有光明來照此土
007_0257_a_15L正當說法度生之時也穆王不知是佛
007_0257_a_16L出現恐彼來侵此土勅命宰相呂侯
007_0257_a_17L點檢天下兵馬於塗山之下以防西域
007_0257_a_18L恭王即位三年壬申二月十五日天地
007_0257_a_19L六返震動山崖崩倒江河混沸大風
007_0257_a_20L拔樹走獸悲嘷飛禽墮落有十五道
007_0257_a_21L白虹貫日恭王甚恠勑令鳴皷大集
007_0257_a_22L群臣問曰是何災異寡人宗廟莫有
007_0257_a_23L傾危耶時太史官扈逸多奏曰是西域
007_0257_a_24L聖人滅度之瑞非干王事恭王亦不知

007_0257_b_01L크게 기뻐하는 얼굴로 3일 동안 음악을 연주하면서 뭇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서역의 성인이 이제 이미 사라졌으니 이 땅에는 걱정이 없겠구나.”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어렸을 때 이름은 실달다이다. 아버지 정반왕이 아사타 선인을 불러 태자의 관상을 보게 하였는데, 선인이 보고서 슬피 울며 그치지 않았다. 왕이 아들에게 무슨 상서롭지 못함이 있는지 선인에게 묻자, “태자는 삼십이상三十二相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세간에 있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고 사람과 하늘 중생의 스승이 되어 큰 가르침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저는 지금 나이가 이미 120세라서 머지않아 목숨이 다하게 되어 설법을 들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슬퍼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조금 자라 부왕이 마차를 장엄하고 태자를 안고서 대자재천의 사당에 배알하였을 때에는 뭇 신상들이 모두 일어나서 태자의 발에 절하였다. 부왕이 놀라 찬탄하며 “내 아들이 하늘의 신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나니 ‘하늘 가운데의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나이가 일곱 살이 되어 학문을 닦을 때가 되자 나라 안의 총명한 바라문을 두루 찾아다닌 뒤 선우라는 이를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태자가 “무슨 책으로 가르치려 하십니까?”라고 물으니 그 스승이 답하기를 “범서와 거류서佉留書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그것은 서로 다른 책이 예순네 가지가 있는데 지금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두 가지만 말씀하시고 맙니까? 또 두 글자가 빠진 책도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스승이 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물으니, 태자가 대답하기를 “이 아阿 자는 부술 수 없다는 뜻이고, 또한 둘이 없는 바르고 참된 길이라는 뜻입니다.”라고 하였다. 선우가 이를 듣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깊이 일어나 왕에게 아뢰기를 “태자는 하늘 중생과 사람의 스승으로서 뭇 기술과 전적과 육예와 천문과 지리를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다 알고 있으니 제가 어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태자가 열일곱 살이 되자 왕이 야수다라를 태자비로 삼았는데 단정하기가 으뜸이고 예의를 모두 갖추고 행동하였다. 태자가 비록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007_0257_b_01L是佛大悅龍顏作樂三日而謂群臣
007_0257_b_02L西域聖人今已滅矣此土其無虞
007_0257_b_03L佛之少名悉達多父淨飯王召阿
007_0257_b_04L私陁仚 [1] 相太子仙人見之悲泣不已
007_0257_b_05L王問仚人言子何不祥對曰太子具足
007_0257_b_06L三十二相在世即爲轉輪聖王出家成
007_0257_b_07L等正覺爲人天師轉大法輪我今年
007_0257_b_08L已百二十歲不久命終不聞說法故
007_0257_b_09L自悲之耳太子漸長父王嚴駕抱謁
007_0257_b_10L於大自在天廟時諸神像悉皆起禮太
007_0257_b_11L子之足父王驚嘆曰我子於天神中
007_0257_b_12L最尊最勝宜字天中天年及七歲
007_0257_b_13L修學時遍訪國中聰明婆羅門名選友
007_0257_b_14L爲太子師太子問曰以何書典而
007_0257_b_15L相敎乎其師荅曰梵書佉留書太子
007_0257_b_16L其異書者六十有四今師何言止
007_0257_b_17L有二種又有書缺二字太子問師
007_0257_b_18L不能荅反而問之太子荅曰此阿字
007_0257_b_19L不可壞義亦是無二正眞之道義
007_0257_b_20L選友聞之深生慙愧而白王言太子
007_0257_b_21L乃天人之師凡諸伎術典籍六藝
007_0257_b_22L文地理悉皆自然生而知之我安可敎
007_0257_b_23L太子年及十七王爲娉妃耶輸陁
007_0257_b_24L端正2) [5] 禮義備擧太子雖納

007_0257_c_01L세속의 뜻이 전혀 없어서 오래도록 접촉하지 않았으며 조용한 밤에도 선관만 닦았다.
태자가 궁중에 머문 날이 오래되어 궁중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며 구경하고자 하자, 왕이 뭇 신하들에게 칙명을 내려 길을 깨끗이 치우게 하였다.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따르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성의 동쪽 문으로 나갔는데 구경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때 정거천인淨居天人이 늙은이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는데 머리는 하얗고 허리는 구부러졌으며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걸어갔다. 태자가 종자에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물으니, “늙은이입니다.”라고 답하였다. “무엇을 늙은이라고 하느냐?”라고 다시 물으니 “어린아이에서부터 차례로 변하여 몸은 마르고 쇠약해지고 남은 목숨은 얼마 없으므로 노인이라고 부릅니다.”라고 답하였다. 태자가 “오직 이 한 사람만이 늙느냐? 모든 이가 다 그러하냐?”라고 다시 물으니 “사람마다 모두 이러하여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태자가 한숨 쉬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비록 부유하고 귀하지만 어찌 이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며, 궁중으로 돌아와서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다시 남쪽 문으로 갔을 때에는 정거천인이 다시 병든 사람으로 변하였는데 살이 문드러져 뼈가 드러나고 숨을 헐떡이고 앓는 소리를 내며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여 두 사람이 겨드랑이를 부축한 채 길가에 서 있었다. 이에 태자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묻자, 종자가 답하기를 “이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묻기를 “무엇을 병든 사람67)이라고 하느냐?”라고 묻자 “사대四大가 조화롭지 못하여 온몸의 마디마디가 욱신거리며 아프고, 음식이 잘 내려가지를 않아서 기력이 약해진 이를 병든 사람이라고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다시 “오직 이 사람만 그러하냐? 나머지 모든 이가 다 그러하냐?”라고 묻자 “귀한 이건 천한 이건 모두 그러합니다.”라고 답하였다. 태자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세상 사람들은 즐거움에만 빠져 두려워하지 않는가?”라고 하였으며, 궁중에 돌아와서는 근심하며 괴로워하였다.
왕이 뭇 신하들을 불러 질책하며 말하기를 “태자가 처음 동쪽 문으로 나갈 때 늙은이를 만나 보고 마음이 즐겁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경들에게 칙명을 내려 길을 깨끗이 치우라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병든 사람을 다시 보게 하였는가?”라고 하자, 뭇 신하들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왕의 준엄한 명을 받들어 점검하여 살피지 않은 바가 없었는데, 병든 사람이 온 곳을 모르겠으니 이는 신들의 죄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바라문의 아들 우다이가

007_0257_c_01L無俗意久而不接於靜夜中但修禪
007_0257_c_02L太子在宮日久欲出遊觀王勑諸
007_0257_c_03L淨治衢道導從圍繞出城東門
007_0257_c_04L者如雲時淨居天人化作老人頭白
007_0257_c_05L背傴柱杖羸步太子問從者言此何
007_0257_c_06L人耶荅曰老人又問何謂老人荅曰
007_0257_c_07L始自兒童次第遷變形枯色衰餘命
007_0257_c_08L無歲故謂老人太子又問唯此一人
007_0257_c_09L老耶一切皆然耶荅曰人人悉爾無一
007_0257_c_10L免者太子喟然曰我雖富貴豈免此
007_0257_c_11L還宮不樂復遊南門時淨居天人
007_0257_c_12L復作病人肉消骨露喘息呻吟不能
007_0257_c_13L自持兩人扶腋在於道傍太子乃問
007_0257_c_14L此何人耶從者荅曰此病人也又問
007_0257_c_15L何謂爲病荅曰四大不和百節疼痛
007_0257_c_16L飮食不下氣力衰微是之謂病人
007_0257_c_17L問唯此人尒餘皆然耶荅曰貴賤悉尒
007_0257_c_18L太子嘆曰云何世人耽樂不畏還宮
007_0257_c_19L憂惱王召群臣嘖之曰太子初出東門
007_0257_c_20L逢見老人心不悅故又再勑卿等
007_0257_c_21L治道路云何病人又令見之群臣奏
007_0257_c_22L奉王嚴命無不檢察不知病人所
007_0257_c_23L從來處非臣之罪王聞婆羅門子優陀
007_0257_c_24L「㕛」疑「爻」{編}「苐」通用「第」{編}

007_0258_a_01L지혜와 말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불러 명하기를 “태자가 상서롭지 못한 것을 보면 마음이 몹시 즐겁지 않을 것이니 네가 벗이 되어 잘 꾀어 보라.”라고 하였다.
태자가 우다이와 많은 관료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시 서쪽 문으로 나가자 정거천인이 다시 죽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였는데, 딸린 이들이 에워싸고 울부짖으면서 저승길을 배웅하였다. 태자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라고 묻자, 우다이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하기를 “이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바람의 힘이 몸뚱이를 해체하고 신식神識은 떠납니다. 사대로 만들어진 뭇 감각기관은 다시 지각이 없으니 진실로 슬퍼할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곧바로 궁중으로 돌아와 근심이 더욱 더하였다.
우다이가 태자에게 말하기를 “이제 진실된 말씀을 올리고자 하오니 질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뭇 왕들은 욕락欲樂을 누린 뒤에 출가하였는데, 태자께서는 어찌하여 (욕락을) 영원히 끊고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나라를 버리고 도를 배우는 이는 없습니다. 태자께서 다섯 가지 욕망을 누리고 자식을 낳아 왕의 후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말하기를 “진실로 네가 말한 대로다. 다만 나는 다섯 가지 욕망에 즐거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태어나서 죽는 괴로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섯 가지 욕망을 취하여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네가 옛날에 뭇 왕들이 먼저 다섯 가지 욕망을 거친 뒤에 출가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뭇 왕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애욕 때문에 지옥에 있기도 하고 아귀 무리 속에 있기도 하고 축생의 온갖 부류 속에 있기도 하다. 이처럼 윤회하는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어찌하여 나더러 애욕을 누리라고 하느냐?”라고 하였다.
우다이가 말솜씨를 다하여 힘써 권하였지만 끝내 태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북쪽 문으로 갔을 때 정거천자가 사문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태자 앞에 나타났다. 태자가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라고 물으니 “저는 비구입니다. 세간은 덧없으니 저는 거룩한 길을 닦아 저 언덕으로 벗어납니다.”라고 답하였는데, 이처럼 말하고는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태자가 ‘이 앞에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보았을 때에는 그 때문에 두려운 바가 있었는데 오늘 비구를 만나니 내 마음을 열어 깨우쳐 주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부왕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도

007_0258_a_01L極有智辯召而命曰太子若見不
007_0258_a_02L情甚不悅汝可爲友善而誘之
007_0258_a_03L子與優陀夷百僚萬衆復出西門
007_0258_a_04L居天人又作死人眷屬圍繞號哭送
007_0258_a_05L太子問此何人耶優陁夷不覺荅
007_0258_a_06L言此死人也風力解形神識去矣
007_0258_a_07L大諸根無復所知誠可哀也太子即
007_0258_a_08L便還宮彌加憂慼優陁夷白太子曰
007_0258_a_09L今獻誠言願不見嘖古今諸王受欲
007_0258_a_10L樂已然後出家太子云何永絶不顧
007_0258_a_11L無有弃國而學道者唯願太子受於五
007_0258_a_12L令有子息不絕王嗣太子荅言
007_0258_a_13L如所言但我不言五欲無樂以畏老病
007_0258_a_14L生死之苦故於五欲不取愛著汝言古
007_0258_a_15L者諸王先經五欲然後出家此諸王
007_0258_a_16L今在何許以愛欲故或在地獄
007_0258_a_17L在餓鬼或在畜生雜類之中以有如是
007_0258_a_18L輪轉苦故我欲解脫汝今云何令我愛
007_0258_a_19L優陀夷雖竭言辯勉之太子終不能
007_0258_a_20L廻復遊北門淨居天子化作沙門於
007_0258_a_21L太子前太子問曰汝何等人荅曰我
007_0258_a_22L是比丘世間無常我修聖道超於彼
007_0258_a_23L作是語已登空而去太子念言
007_0258_a_24L見老病死苦爲之所懼今遇比丘
007_0258_a_25L悟我心不勝欣悅前白父王曰恩愛

007_0258_b_01L반드시 헤어짐이 있으니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자 왕이 몹시 기뻐하지 않았다.
태자가 다시 말하기를 “왕께서 제게 네 가지 바람을 들어주신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자, 왕이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라고 하였다. 태자가 말하기를 “첫째는 늙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병이 없는 것이고, 셋째는 죽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왕이 “네가 바라는 그 같은 것을 세상에 누가 얻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였다.
이때 관상쟁이가 왕에게 아뢰기를 “태자가 만일 출가하지 않는다면 이레 뒤에는 전륜왕의 지위를 얻어 일곱 가지 보배가 저절로 이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곧바로 뭇 신하들에게 칙명을 내려 말하기를 “밤낮으로 엄하게 대비하여 성문 여닫는 소리가 40리 밖에서도 들리게 하라.”라고 하였으며, 야수다라에게 칙명을 내려 배로 더 방비하며 살피게 하였다.
왕이 태자에게 말하기를 “지금 나라에 후사가 없으니 아들을 하나 낳는다면 출가를 허락하겠다.”라고 하자, 태자가 곧바로 야수다라의 배를 가리키니 곧바로 임신하였다. 그런 뒤에 라훌라가 하늘에서 떠나 변화하여 태어났으니, 부모가 관계를 가져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태자의 이때 나이가 열아홉 살이었다.
출가할 때가 되자 2월 8일 밤에 뭇 하늘 중생의 무리가 태자의 앞으로 내려와서 머리와 얼굴을 발에 대고 절하면서 태자에게 말하기를 “한량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애써 수행한 것이 오늘 이미 무르익었으니 출가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답하기를 “왕께서 안팎의 궁인들에게 칙명을 내려 엄밀하게 지키니 나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라고 하자, 뭇 하늘 중생의 무리가 말하기를 “저희들이 방편을 써서 아는 이가 없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곧바로 차익車匿에게 저 건척犍陟을 끌고 오라 하였다. 이때 사천왕이 말의 네 다리를 받들고 아울러 차익을 붙들었으며 제석천이 가리개를 들고 북쪽 문이 소리 없이 저절로 열리게 하였다.
태자가 발가선인跋伽仙人이 고행하는 숲에 이르러 사자후를 토하며 말하기를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아름다운 꾸미개를 다 버리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았으니 내가 이제 또한 그렇게 하리라.”라고 하고는, 곧바로 보배 관과 드리개 등을 벗어 차익에게 주고서 부왕에게 돌아가 올리게 하였다. 곧이어 날카로운 칼로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았는데, 제석천이 머리카락을 받들고 하늘에 올라가 탑을 세웠다. 이때 정거천자가

007_0258_b_01L必離聽我出家王甚不悅太子復言
007_0258_b_02L王能與我四願者即不出家王曰汝願
007_0258_b_03L何等太子荅曰一者不老二者無病
007_0258_b_04L三者不死四者不別王曰如汝願者
007_0258_b_05L世誰得之時相師奏王曰太子若不出
007_0258_b_06L七日之後得輪王位七寶自至
007_0258_b_07L聞歡喜即勑群臣云日夜嚴備城門
007_0258_b_08L開閇聞四十里勑輸陀羅陪加防察
007_0258_b_09L王告太子國今無嗣宜生一子却聽
007_0258_b_10L出家太子即指輸陁羅腹便覺有娠
007_0258_b_11L然後羅侯從天變沒化生不由父母會
007_0258_b_12L合而有太子是年十九出家時至
007_0258_b_13L月八夜諸天下來太子之前頭面禮足
007_0258_b_14L白太子言無量劫來勤苦修行今已
007_0258_b_15L成熟出家是宜太子荅言王勑內外
007_0258_b_16L宮屬防衛嚴密欲出無從諸天白言
007_0258_b_17L我等方便使無知者太子即勑車匿
007_0258_b_18L彼犍陟來時四天王捧馬四足并接
007_0258_b_19L車匿帝釋執盖北門自開不使有聲
007_0258_b_20L1) [6] 子至於跋伽仚林作獅子吼曰
007_0258_b_21L去諸佛爲求菩提弃捨飾好剃除鬚
007_0258_b_22L我今亦尒便脫寶冠與瓔珞等
007_0258_b_23L付車匿廻上父王即以利刀自剃鬚
007_0258_b_24L帝釋接髮上天建塔時淨居天子

007_0258_c_01L몸에 가사를 걸친 사냥꾼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니 태자가 보배 옷과 바꾸어 입었다.
차익이 큰 소리로 울부짖고 건척이 슬프게 울며 길을 따라 돌아갔는데, 태자가 보이지 않자 부왕과 이모, 야수다라 등이 구슬피 울다 기절하였으며 온 나라가 슬퍼하며 그리워하였다. 이에 부왕이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을 뽑아 태자를 뒤쫓아 가서 모시게 하였다.
태자가 여러 선인들이 머문 곳을 찾아가서 보니 나무껍질과 풀잎으로 옷을 삼은 이도 있고, 풀과 나무의 꽃과 열매를 먹을거리로 삼은 이도 있고, 물이나 불을 섬기기도 하고, 해나 달을 섬기기도 하고, 가시덤불 위에 거꾸러져 있기도 하고, 물이나 불 앞에 누워 있기도 하고, 하루에 한 번만 먹기도 하고, 이틀에 한 번만 먹기도 하면서 이처럼 고행을 닦고 있었다.
태자가 “어떤 과보를 구하고자 합니까?”라고 물으니 선인들이 “하늘에 태어나고자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태자가 “뭇 하늘이 비록 즐겁기는 하지만 복이 다하면 윤회하여 끝내는 괴로움이 모여들게 되는데 어찌하여 온갖 괴로운 원인을 닦아 괴로운 과보를 구합니까? 이는 모두 해탈의 참되고 바른 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는 떠나가서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났다.
교진여 등이 오래도록 따라다니다가 그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말하기를 “이 미친 사람이 길을 골라 가지 않으니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포기하고 돌아가면 왕이 우리 집안을 멸절시킬 것이니 이곳에 머물러 정미한 고행을 닦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다음으로 아라라阿羅邏와 가란迦蘭 두 선인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서 그들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끊은 방법을 물으니 선인이 답하기를 “중생의 시작은 어두운 태초에서 시작되었는데, 어두운 태초는 자만을 일으키고, 자만은 어리석은 마음을 낳고, 어리석은 마음은 애욕에 물듦을 낳고, 애욕에 물듦은 다섯 가지 티끌의 기운을 낳고, 다섯 가지 티끌의 기운은 다섯 가지 요소를 낳고, 다섯 가지 요소는 탐욕과 성냄과 뭇 번뇌를 낳으니, 이에 윤회하여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가 있게 되었다.”라고 답하였다.
태자가 “말씀하신 태어나고 죽음의 근본을 이미 아신다면 다시

007_0258_c_01L化作獵士身被袈裟太子以寶衣貿
007_0258_c_02L之而著車匿大哭犍陟悲鳴緣路而
007_0258_c_03L父王姨母輸陀羅等不見太子
007_0258_c_04L哀號悶絶擧國悲慕於是父王選出
007_0258_c_05L憍陳如等五人追侍太子太子尋詣衆
007_0258_c_06L仚住處見其或以樹皮草葉爲衣服者
007_0258_c_07L或以草木花果爲食物者或事水火
007_0258_c_08L事日月或倒荆蕀之上或臥水火之前
007_0258_c_09L或一日一食或二日一食苦行如此
007_0258_c_10L太子問言欲求何果仚人荅言爲欲
007_0258_c_11L生天太子乃言諸天雖樂福盡輪廻
007_0258_c_12L終爲苦聚云何修諸苦因以求苦報
007_0258_c_13L皆非解脫眞正之道辭而去之過山踰
007_0258_c_14L憍陳如等相從旣久不耐其艱
007_0258_c_15L此狂人行不擇路奚可隨之設委而還
007_0258_c_16L王滅吾家不如止此精苦修行太子次
007_0258_c_17L詣阿羅邏迦蘭二仚人所詰其所斷生
007_0258_c_18L老病死之法仚人荅言衆生之始
007_0258_c_19L於冥初冥初起於我慢我慢生於癡心
007_0258_c_20L癡心生於染愛染愛生於五微塵氣
007_0258_c_21L微塵氣生於五大五大生於貪欲嗔恚
007_0258_c_22L及諸煩惱於是流轉生老病死憂悲苦
007_0258_c_23L太子又問已知所說生死根本
007_0258_c_24L「太」作「大」{甲}

007_0259_a_01L어떤 방편으로 그것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으니 선인이 “끊고자 한다면 선정을 닦아 익혀야 한다. 욕망과 악하여 선하지 않은 것들을 떠나 각覺과 관觀이 있으면 초선初禪을 얻는다. 각과 관을 없애고 정이 생겨나서 기뻐하는 마음에 들어가면 제2선을 얻는다. 기뻐하는 마음을 버리고 바른 생각을 얻고 근본적인 즐거움을 갖추면 제3선을 얻는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고 깨끗한 생각을 얻고 근본을 버리는 데 들어가면 제4선을 얻는데, 생각이 없게 되는 과보를 얻어 색이라는 생각을 떠나고, 공처空處에 들어가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식처識處에 들어가 한량없는 생각을 없애어 오로지 식識이 식을 관찰하고,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 갖가지 생각을 떠나고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에 들어가는데 이 경지를 궁극의 해탈이라고 하니, 이것이 도를 배우는 모든 이들의 저 언덕이다.”라고 답하였다.
태자가 묻기를 “비상비비상처에는 내(我)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일 없다고 한다면 비상비비상처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있다고 한다면 나에게는 앎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에게 앎이 없다면 나무나 돌멩이 같을 것이고, 나에게 앎이 있다면 곧 반연함이 있는 것입니다. 반연함이 있게 되면 물들어 집착함이 있게 되고, 물들어 집착하기 때문에 해탈이 아닙니다. 그대는 거친 번뇌는 다하였지만 미세한 번뇌는 아직 남아 있으니 저 언덕으로 건너간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두 선인을 조복하고 나서 설산으로 들어가 12년 동안 고행을 하였는데, 하루에 삼씨 한 알과 쌀 한 톨만을 먹기도 하고, 나아가 이레에 삼씨와 쌀 한 톨씩만 먹는 데까지 이르니 마른나무처럼 몸이 말랐다. 이에 ‘만일 내가 이 여윈 몸으로 도를 얻는다면 저 뭇 외도들은 이것을 열반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마땅히 먹을거리를 받아먹은 뒤에 도를 이루리라.’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 정거천자가 아래로 내려와 저 숲 밖에서 소를 치고 있던 난타바라難陀婆羅라는 여인에게 권하여 우유죽을 가져다 태자에게 공양하게 하였다.
태자가 받아먹기를 마치자 몸에서 빛이 나고 윤기가 흘러 깨달음 이루기를 감당할 만하게 되었다. 과거 부처님을 관찰하니 풀로 앉을 자리를 삼았으므로 제석천이 보통 사람 모습으로 변신하여 풀을 들어

007_0259_a_01L何方便而能斷之仚人荅言若欲斷者
007_0259_a_02L修習禪㝎離欲惡不善之法有覺有觀
007_0259_a_03L得初禪除覺觀㝎生入喜心得第二
007_0259_a_04L捨喜心得正念具根樂得第三禪
007_0259_a_05L除苦樂得淨念入捨根得第四禪
007_0259_a_06L無想報離色想入空處滅有對想
007_0259_a_07L識處滅無量想識唯觀識入無所有
007_0259_a_08L離於種種想入非想非非想斯處
007_0259_a_09L名爲究竟解脫是諸學者之彼岸也
007_0259_a_10L子問曰非想非非想處有我耶爲無
007_0259_a_11L我耶若言無我不應言非想非非想
007_0259_a_12L若言有我我爲有知我爲無知我若
007_0259_a_13L無知即同木石我若有知即有攀緣
007_0259_a_14L旣有攀緣即有染著以染著故即非
007_0259_a_15L解脫汝盡麁結猶細結在非度彼岸
007_0259_a_16L太子調伏是二仚已入雪山中
007_0259_a_17L行二六載日食一麻一米乃至七日
007_0259_a_18L食一麻米瘦若枯木心自念言我若
007_0259_a_19L以此羸身而取道者彼諸外道當以
007_0259_a_20L是爲涅槃因我當受食然後成道旣作
007_0259_a_21L是念淨居天子下來勸彼林外牧女難
007_0259_a_22L陀婆羅門 [2] 令取乳麋供養太子太子受
007_0259_a_23L食已竟身體光閏堪遂菩提觀過去
007_0259_a_24L以草爲座帝釋化作凡人持草以

007_0259_b_01L바쳤는데, 태자가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니 “길상吉祥입니다.”라고 답하였다. 태자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불길한 것을 부수고 길상을 이루리라.”라고 하였다.
염부나무 아래에서 저 풀 자리 위에 앉아 관찰하고 사유하여 하늘과 땅을 감동시키고 크고 밝은 빛을 뿜어 마귀의 궁전까지 덮었다. 파순波旬이 두려워하며 네 딸을 시켜 태자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만 가지 요염한 자태로 유혹하게 하였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이때 파순이 뭇 마귀의 무리를 이끌고 일부러 와서 괴롭히면서 “만일 일어나서 가지 않으면 너를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라고 말하니, 태자가 “네가 먼저 나의 정병을 움직이게 한 뒤에야 나를 바다에 던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이때 뭇 마귀의 무리가 온 힘을 다하였으나 정병을 조금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나아가 갖가지 위세를 부리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돌을 안은 이는 들지를 못하고, 들었다 해도 내려놓지를 못하며, 춤추듯 어지럽게 날리던 칼날들이 허공에 멈추고, 우레ㆍ번개ㆍ우박ㆍ비가 모두 다섯 빛깔 꽃이 되니, 뭇 마귀들이 힘을 다 써 버려서 다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자가 이때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12월 8일 밤 샛별이 떠오를 때 문득 크게 깨달아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었다. 삼계를 두루 관찰하니 어떠한 즐거움도 없는지라, “이 모든 중생들은 어떠한 인연으로 늙고 죽음이 있는가? 곧 늙고 죽음은 태어남을 뿌리로 삼음을 알겠다. 만일 태어남을 떠나면 곧 늙고 죽음도 없다. 인연에 따라 생겨나는데, 욕유ㆍ색유ㆍ무색유의 업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라고 하였다.
또 삼유三有의 업은 사취四取에서 생겨나고, 취는 애愛에서 생겨나고 애는 수受에서 생겨나고 수는 촉觸에서 생겨나고 촉은 육입六入에서 생겨나고 육입은 명색名色에서 생겨나고 명색은 식識에서 생겨나고 식은 행行에서 생겨나고 행은 무명無明에서 생겨나니, 만일 무명을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육입이 멸하고, 육입이 멸하면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007_0259_b_01L太子問云汝名何等荅曰吉祥
007_0259_b_02L子喜曰我破不吉以成吉祥坐彼草
007_0259_b_03L閻浮樹下觀樹思惟感動天地
007_0259_b_04L大光明覆蔽魔宮波旬恐怖令彼四
007_0259_b_05L詣太子所萬端妖媚惑之不動
007_0259_b_06L時波旬將諸魔衆故來惱壞而作是言
007_0259_b_07L若不起去擲汝海中太子荅曰汝先
007_0259_b_08L動我淨缾然後可能擲我海中時諸魔
007_0259_b_09L盡力不能令缾小動乃至種種作威
007_0259_b_10L若抱石者不能勝擧設能擧者復不
007_0259_b_11L能下飛刀舞釰停於空中雷電雹雨
007_0259_b_12L成五色花群魔力盡無復能爲太子
007_0259_b_13L是年1) [7] 臘月八夜明星現時霍然
007_0259_b_14L大悟成等正覺普觀三界無有一樂
007_0259_b_15L云是諸衆生以何因緣而有老死即知
007_0259_b_16L老死以生爲本若離於生即無老死
007_0259_b_17L從因緣生因於欲有色有無色有業生
007_0259_b_18L又觀三有業從四取生取從愛生
007_0259_b_19L從受生受從觸生觸從六入生六入
007_0259_b_20L從名色生名色從識生識從行生
007_0259_b_21L從無明生若滅無明則行滅行滅則識
007_0259_b_22L識滅則名色滅名色滅則六入滅
007_0259_b_23L六入滅則觸滅觸滅則受滅受滅則愛
007_0259_b_24L愛滅則取滅取滅則有滅有滅則

007_0259_c_01L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늙고 죽는 근심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뇌도 멸한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처럼 순서대로 또 거꾸로 십이인연을 관찰하여 삼십칠조도품과 십팔불공법과 사무소외와 십신통력을 갖추었다.
이때 온 땅덩이가 열여덟 가지로 흔들렸고 하늘 중생들은 음악을 연주하며 꽃을 뿌리고 향을 피웠으며 천룡팔부가 올린 공양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여래께서 21일 동안 사유하기를 ‘내가 얻은 법은 매우 깊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알 수 있다. 모든 중생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삿된 견해에 뒤덮이고 막혀 지혜가 없으니 내가 얻은 법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제 만일 가르침의 바퀴를 굴린다면 저들은 미혹되어 믿고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비방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차라리 말하지 말고 열반에 들어가야겠다.’라고 생각하였다.
이때 대범천왕이 옆에 있다가 에워싸며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태어나고 죽는 윤회 속에 오래 머무시면서 나라와 성과 아내와 자식과 머리와 눈과 뼛골과 뇌를 버린 것은 법을 구하기 위해서인데, 오늘 법의 바다가 이미 가득 찼고 법의 깃발이 이미 세워졌으니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열어 (중생들을) 이끌 바로 그때인데 어찌하여 열반에 들려 하십니까?”라고 하면서 법을 설할 것을 세 번이나 청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그 청을 받아들여 바라나국의 녹야원으로 나아가 네 가지 진리와 십이인연의 가르침의 바퀴를 처음 굴리셨으며, 이로부터 300차례 남짓 가르침을 폈는데, 말씀하신 것으로는 『화엄경』ㆍ『아함경』ㆍ『방등경』ㆍ『반야경』ㆍ『능엄경』ㆍ『법화경』ㆍ『원각경』ㆍ『능가경』ㆍ『열반경』 등 팔만의 참된 가르침이자 다함이 없는 법장이 있다. 그 신통력과 밝은 빛과 방편과 삼매는 큰 경전68)에 실린 것과 같은데, 다 갖추어 기록하기 어렵다.
세상에 머물 기한이 다 차자 일흔아홉 되던 해에 사라쌍수 사이에 이르러 큰 열반에 들어가셨다. 초빈과 대렴이 다 끝나고 나서 가섭迦葉이 뒤늦게

007_0259_c_01L生滅生滅則老死憂悲苦惱滅如是逆
007_0259_c_02L觀十二因緣具足三十七助道品
007_0259_c_03L十八不共法四無所畏十神通力于時
007_0259_c_04L大地十八相動天作伎樂散花燒香
007_0259_c_05L龍天八部所設供養充塞虛空如來於
007_0259_c_06L三七日中思惟我所得法甚深難解
007_0259_c_07L唯佛與佛乃能知之一切衆生爲於
007_0259_c_08L貪欲瞋恚愚癡邪見之所覆障無有智
007_0259_c_09L云何能解我所得法我今若爲轉法
007_0259_c_10L輪者彼必迷惑不能信受而生誹謗
007_0259_c_11L當墮惡道我寧默然入般涅槃時大
007_0259_c_12L梵天王在側圍繞白言世尊久住生
007_0259_c_13L捨於國城妻子頭目髓腦爲求法故
007_0259_c_14L今日法海已滿法幢已立開導正時
007_0259_c_15L云何涅槃三請說法尒時世尊乃受
007_0259_c_16L其請即詣波羅奈國鹿野苑中初轉四
007_0259_c_17L諦十二行法輪自是而爲三百餘會
007_0259_c_18L所談者曰華嚴曰阿含曰方等曰般
007_0259_c_19L曰楞嚴曰法華曰圓覺曰楞伽
007_0259_c_20L曰涅槃等八萬眞詮無盡法藏也若其
007_0259_c_21L神通光明方便三昧具如大經所載
007_0259_c_22L可具錄住世旣滿七十九載至娑羅
007_0259_c_23L雙樹間入大涅槃殯殮旣畢迦葉後
007_0259_c_24L「三」作「五」{甲}

007_0260_a_01L도착하니 곽 밖으로 두 발을 보이셨으며, 금관이 저절로 들리고 불을 일으켜서 태웠는데, 여덟 휘 네 말이나 되는 사리가 비처럼 쏟아졌고, 세간에 두루 퍼져서 길이길이 복밭이 되었다.
이것이 각황께서 세상에 응하여 교화를 내리신 일의 시작과 끝이다. 그러니 어찌 불교가 오랑캐의 가르침이어서 중국에 펼치기가 합당하지 않다 하겠는가?
나의 좁은 생각을 한번 말해 보겠다. 법왕께서 세상에 응하신 일을 궁구해 보면 체體는 태극太極이고 용用은 하늘과 땅이니 운용하여 행하신 것이 저절로 하늘ㆍ땅과 함께 흘러 일 하나 모습 하나도 조화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다.
위로 높은 하늘에 태어난 것은 장주莊周가 말한 “큰 밝음의 위, 지극한 양의 근원”69)이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움직인 것은 하늘이 자시에 열리는 것에 호응한 것이다. 계축년에 태에 들어간 것은 땅이 축시에 열리는 것에 호응한 것이다. 갑인년에 태어난 것은 사람이 인시에 태어난 것에 호응한 것이다. 7월에 태에 들어간 것은 음기와 양기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맞설 때이니, 부모의 기가 고르게 된 뒤에 태에 들어간 것이다. 15를 취한 것은 양의 밝음과 음의 어두움의 중간이기 때문이다. 또 5는 흙의 생수生數70)이니 땅에 갈무리한다는 것에 호응한 것이다.
4월에 태에서 나온 것은 음이 다하여 양이 극에 이른 때이기 때문인데, 음이 다하면 태기가 사라지고 양이 극에 이르면 태어난다. 8일을 취한 것은 팔八이 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8은 나무의 성수成數71)인데 나무는 진震이니 “제왕이 진방에서 태어난다.”72)는 것에 호응한 것이다. 황금 연꽃으로 받든 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물들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금빛 몸을 씻겨 주었다는 것은 9가 양수이고 물은 양기가 변화한 것이니 이를 써서 음장陰藏73)의 기운을 씻어 없앤 것이다. 네 방위로 일곱 걸음씩을 걸어간 것은 네 방위에 저마다 칠요七曜74)가 있음을 보인 것이다. 칠요는 음양과 오행의 조화의 으뜸이다. 4에 7을 곱하면 스물여덟 개의 별자리75)가 되니 하늘의 법도이다. 눈으로 네 방위를 돌아보고 가운데를 겸하였으니 다섯 별이 되는데 곧 땅의 법도이다. 하늘과 땅의 법도가 갖추어지면

007_0260_a_01L槨示雙趺金棺自擧化火而焚
007_0260_a_02L利如雨八斛四斗流布世間永作福
007_0260_a_03L此覺皇應世垂化之始終也安得謂
007_0260_a_04L之夷敎而不合施於中國也請以管見
007_0260_a_05L言之原夫法王之應世也體則太極
007_0260_a_06L用則乾坤運用施爲自與天地流行
007_0260_a_07L一事一相無有不合於造化者上生九
007_0260_a_08L天之上者莊周所謂大明之上至陽之
007_0260_a_09L源也動之於子夜者天開於子之應也
007_0260_a_10L處胎以癸丑者地闢於丑之應也誕生
007_0260_a_11L於甲寅者人生於寅之應也入胎以七
007_0260_a_12L月者陰陽氣敵之時也父母氣均而後
007_0260_a_13L胎也取其十五者陽白陰黑之間也
007_0260_a_14L又五者土之生數坤以藏之之應也
007_0260_a_15L出胎以四月者陰盡陽極之時陰盡則
007_0260_a_16L胎氣消陽極則生矣取其八日者
007_0260_a_17L者開也又八者木之成數木爲震
007_0260_a_18L出乎震之應也奉以金蓮者處染不染
007_0260_a_19L之謂也九龍吐水沐浴金𨈬者九爲
007_0260_a_20L陽數水爲陽氣所化用以洗除陰藏之
007_0260_a_21L氣也四方各七步者示四方各有七曜
007_0260_a_22L七曜者陰陽五行造化之宗也
007_0260_a_23L七爲二十八宿天之經也目顧四方
007_0260_a_24L兼中則爲五星即地之緯也經緯具而

007_0260_b_01L문채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사자후를 한 것이다. 하늘을 가리킨 것은 공이고 양이며, 땅을 가리킨 것은 색이고 음이니 곧 음양과 공색의 안에 진여 자성의 부처가 있음을 보인 것이다. 그 자세가 홀로 있은 것은 견줄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부처님 나라에는 네 개의 세계가 있는데, 유독 섬부주의 가운데를 취한 것은 남쪽이 맑고 바르고 치우치지 않은 방위이므로, 그 가르침이 크게 들어맞고 크게 바르기 때문에 반드시 여기에서 유행할 것임을 보인 것이다. 이는 대대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응하여 중생들에게 열어 보일 때의 최초의 방편이다.
이러한 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용이 있으니, 진실로 세간의 성인들이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그저 나타난 일만 가지고 논한 것일 뿐이니 만일 이치에 나아가 말한다면 어찌 이와 같을 뿐이겠는가? 그러므로 몽산蒙山은 말하기를 “여래께서 크고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하시어 세 가지 몸이 완전히 나타나고 열 가지 칭호가 함께 드러나며 온 누리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체와 용을 같이하며 보고 듣는 것을 함께한다.”76)라고 하였다.
다만 자비로써 중생들을 마치 외아들처럼 불쌍하게 여기시며, 중생들이 미혹되고 어리석기 때문에 태어나는 모습을 보이시고,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자마자 곧 네 방위마다 일곱 걸음을 걷고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하늘 위 하늘 아래에서 내가 가장 높다.”라고 하셨으니, 분명하고도 분명하게 여래의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부처님77)께서 영명하고 영리한 사내대장부들에게 다 나누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깨달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다시 다른 방편을 끌어와서 황궁을 버리고 설산에 들어가 본보기를 일으키고 모양을 그렸으며,78) 샛별을 보고 크게 깨닫고서 “기이하구나!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 덕상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저 망상 때문에 뒤집히고 집착하여 증득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외치셨다. 이에 빛을 뿜어서 온 누리 모든 나라를 두루 비추고 여러 큰 보살들을 불러 모아 보리도량에서 크게 법회를 열어 『대방광불화엄경』을 펼쳐 설하시어 이 도를 발휘하셨다. 이는 법신불이 교주가 되어 현묘한 종지를 열어 드러낸 것으로, 신통과 밝은 빛과

007_0260_b_01L文彩發生故出獅子吼指天者空也
007_0260_b_02L陽也指地者色也陰也乃示陰陽空色
007_0260_b_03L之中即有眞如自性之佛其勢獨存
007_0260_b_04L無有比肩者也此一佛土世界有四
007_0260_b_05L取於贍部之中者南爲明正不偏之方
007_0260_b_06L示其法之大中大正必於是而流行也
007_0260_b_07L此則代佛應世開示衆生最初方便也
007_0260_b_08L有是體故有如是用也固非世間之聖
007_0260_b_09L所能髣髴也然此但事而論耳若即理
007_0260_b_10L而言之則豈直如是而已㢤故蒙山云
007_0260_b_11L如來證大圓覺三身圓現十號俱彰
007_0260_b_12L與十方諸佛同一體用共一見聞
007_0260_b_13L以慈悲憐愍衆生猶如一子爲衆生
007_0260_b_14L迷昧故示現受生才出母胎便乃四
007_0260_b_15L各行七步指天指地云天上天下唯
007_0260_b_16L我獨尊明明以如來正法眼藏涅槃妙
007_0260_b_17L當陽分付靈利男兒了也無人領悟
007_0260_b_18L又累他棄皇宮入雪山起模畫樣
007_0260_b_19L明星大悟唱言奇㦲一切衆生具有
007_0260_b_20L如來智慧德相但以妄想顚倒執著
007_0260_b_21L不證得於是放光遍照十方諸佛國土
007_0260_b_22L召集諸大菩薩大會於菩提場中演說
007_0260_b_23L大方廣佛華嚴經發揮此道法身佛爲
007_0260_b_24L敎主者開顯玄宗也以神通以光明以

007_0260_c_01L삼매와 위신력으로 금강심의 온전한 묘함을 드러내 보였는데, 특히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 보여 합당한 근기의 중생들이 묘한 도를 깨달아 들어가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지 않으시고 여러 보살들에게 위신력을 더해 주어 이 경을 펼쳐 설하게 하신 것은, 크게 깨달으신 세존의 체와 용이 태역太易과 같아서, 억지로 함이 없는 묘함으로 자연의 지극한 덕을 베풀어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함을 보이신 것이다.
이에 큰 가르침을 열었는데 ‘대방광’은 큰 법이고, 큰 법은 열반묘심이고 금강심이고, 맑고 깨끗하고 묘한 참된 마음으로, 이 마음이 허공을 품을 만큼 크므로 ‘대방광’이라고 한다. ‘불佛’은 깨달음이고 ‘화花’는 자비와 지혜와 행위와 서원이니, 참된 마음을 깨달으면 마땅히 자비와 지혜와 행위와 서원으로 묘한 체를 장엄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어야 한다. ‘경經’은 가르침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손가락을 통해 달을 보면 사내대장부라 하겠지만, 혹 손가락을 붙잡고 달이라 여긴다면 어떠하겠는가? 어리석음과 미혹됨이 심한 것이다.
또 옛날 큰 스님이 말하기를 “처음 왕궁에 태어날 때 근본을 보이며 두루 일곱 걸음을 걸었고, 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거듭 펼쳤지만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저 천둥 번개 소리만 대천세계에 두루 울렸다.”79)라고 하였으니, 이에 뜻을 두고 배우는 이들 또한 손가락을 붙잡아 공을 베풀려 해서는 안 되며, 눈이 마주치는 곳에서 구한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⑤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
묻겠다 : 처음 태어남이 이미 저와 같다면, 출가하고 중생들을 구제하고 열반에 들어간 일에 어찌 방편이 없겠는가? 다시 주석을 붙여 아직 들어 보지 못한 것을 듣게 해 달라.
답하겠다 : 네 문을 돌아다니면서 본 것은 사람이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허깨비 같은 몸이 있어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함과 이를 넘어서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문밖에 없음을 보인 것이다. 열아홉 살에 성을 넘은 것은 십팔계十八界를 다 지나 비로소 출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설산은 작은 티끌도 이르지 못하는 곳이다. 12년 동안 고행한 것은 육근과 육식을 깨끗하게 다스린 것이다. 서른에 도를 이룬 것은 공자가 말한 “서른 살에 섰다.”는 것이 이것이다. 300차례 남짓 설법하신 것은

007_0260_c_01L三昧以威神力顯示金剛心之全妙
007_0260_c_02L爲衆生開佛知見令當機悟入妙道也
007_0260_c_03L然佛不自說以威神力加諸菩薩
007_0260_c_04L說是經者表現大覺世尊體用與太易
007_0260_c_05L任無爲之妙施自然至德普利群
007_0260_c_06L生也開闡大敎也大方廣者大法也
007_0260_c_07L大法者涅槃妙心也金剛心也淸淨
007_0260_c_08L明妙眞心也此心量包虛空故曰大方
007_0260_c_09L佛者覺也花者悲智行願也
007_0260_c_10L悟眞心當以悲智行願莊嚴妙體成無
007_0260_c_11L上菩提經敎者標月指也因指見月
007_0260_c_12L可謂男兒其或執指爲月若何癡迷甚
007_0260_c_13L又古德云初誕王宮示本然周行
007_0260_c_14L七步又重宣指天指地無人會獨震雷
007_0260_c_15L音遍大千有志於是學者且莫執指施
007_0260_c_16L當求於目擊之間近矣

007_0260_c_17L
曰降生之序旣如彼也出家度生涅槃
007_0260_c_18L之事豈無方便更爲注脚聞所未聞
007_0260_c_19L曰四門遊觀者示人之有四大幻身
007_0260_c_20L免乎生老病死之苦而超之唯有一門
007_0260_c_21L十九踰城者過盡十八界方得出
007_0260_c_22L家也雪山者纎塵不到處也苦行二
007_0260_c_23L六載者淨治六根六識也三十成道者
007_0260_c_24L孔子所謂三十而立者是也說法三百

007_0261_a_01L두루 삼계에 묘한 법을 열어 보인 것이다.
대를 이어 나오신 부처님께서는 바야흐로 사람의 목숨이 100세일 때 태어나셨는데, 세상에 일흔아홉 살까지만 머무신 것은 스물한 살80)을 덜어 상제上帝와 명왕冥王과 아라한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이 말세의 충신 효자와 수행하는 비구들의 복과 목숨을 넉넉히 더해 주게 한 것이다.
두 나무 사이로 나아간 것은 중도제일의제를 보인 것이다. 염해져 금관에 들어간 것은 두 가지를 차단한 것이다. 곽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인 것은 두 가지를 비추는 것이다. 금관이 저절로 허공으로 들리고 불이 일어나서 스스로 탄 것은 여래의 몸은 속계의 불로 태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인 것이다. 사리가 여덟 휘 네 말에 이른 것은 팔만사천의 더럽고 괴로운 번뇌가 진여의 맑고 깨끗한 법신으로 바뀐 것이다.
무릇 사람이 사대를 받아 십팔계의 울타리 속에 있게 되면 가두는 것으로는 아내라는 감옥이 있고 얽어매는 것으로는 자식이라는 쇠사슬이 있다. 그가 받는 업은 벌과 같고 그가 받는 과보는 형벌과 같으니, 비록 은혜를 베푼다고 하지만 사실은 원수를 맺는 것이며, 비록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해치는 것이다. 마음의 번뇌는 물이 불에 끓는 것과 같고 몸이 업으로 나아가는 것은 나방이 등불에 날아드는 것과 같다. 누에가 실을 뽑아 스스로 그 몸을 묶듯이 쇠에 녹이 슬어서 그 형체를 삭여 없애듯이, 괴로운 상황이 이러한데도 어리석은 이들은 마음에 달게 여긴다.
오직 여래께서 장부의 뜻을 분발하여 반야의 칼날을 쥐고 오음五陰의 마귀를 치며 탐욕과 애욕의 그물을 찢고자 이 성을 넘어 저 산에 들어가셨다. 잡되게 마음 쓰는 일 없이 육근을 깨끗하게 다스리고 한 생각으로 정근하여 여래의 위없는 지견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으며, 그 깨달음으로 두루 사람과 하늘 중생들을 기쁘게 해 주셨다. 할 일을 다 마치시자 열반에 들어가려 하시면서 두 가지를 차단하고 두 가지를 비추어서 제일의를 보이셨고, 자기의 목숨을 덜어 말세의 후손들에게 넉넉하게 내리셨으며, 법신을 나누어 세간의 복밭을 널리 여셨다.
중생들을 위하는 큰 자비는 몸은 비록 다함이 있어도

007_0261_a_01L餘會者普爲三界開示妙法也代佛方
007_0261_a_02L生人壽百歲之時住世七十九年者
007_0261_a_03L三七㱓分付上帝冥王及阿羅漢俾其
007_0261_a_04L饒益末世忠臣孝子修行比丘之福壽
007_0261_a_05L詣雙樹之間者示中道第一義諦也
007_0261_a_06L殮入金棺者雙遮也槨示雙趺者
007_0261_a_07L照也金棺擧空化火自焚者示如來之
007_0261_a_08L非三界之火所能燎也舍利至於八
007_0261_a_09L斛四斗者八萬四千塵勞煩惱轉爲眞
007_0261_a_10L如淸淨法身也夫人之禀於四大而處
007_0261_a_11L於十八圍圈之中者囚之有妻獄繫之
007_0261_a_12L有子鏁其受業也若罰其受報也若刑
007_0261_a_13L雖曰恩之其實讎之雖曰愛之其實
007_0261_a_14L害之心之煩惱也如湯之沸火也
007_0261_a_15L之趍業也如蛾之赴燈也如蠶吐絲自
007_0261_a_16L纒其身如鐵生垢消殞其形苦狀如
007_0261_a_17L而昧者甘心焉唯有如來奮丈夫之
007_0261_a_18L秉般若之鋒擊五陰之魔裂貪愛
007_0261_a_19L之網踰是城入彼山無雜用心淨治
007_0261_a_20L六根精勤一念圓悟如來無上知見
007_0261_a_21L普以吾覺悅可人天能事已畢將入
007_0261_a_22L涅槃雙遮雙照示第一義以至減已
007_0261_a_23L垂裕末世之兒孫分法身廣闢世
007_0261_a_24L間之福田其爲衆生之大悲身有盡而

007_0261_b_01L뜻은 다함이 없으니, 성인 가운데 지극한 성인, 사생四生의 자애로운 아버지가 아니라면 누가 이럴 수 있겠는가? 이로 보자면 부처님을 배척하는 것은 부모를 배척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을 욕하는 것은 부모를 욕하는 것이 아닌가? 부모를 욕하고 배척한다면 그 죄가 어떠하겠는가? 이러한 악업으로 받는 것으로는, 현세에는 하늘이 내리는 형벌과 사람이 끼치는 화가 번갈아 공격할 것이고, 죽은 뒤에는 끓는 구리를 마시고 혀를 뽑히는 깊은 처벌이 있다. 위험이 닥쳐서야 후회하고 자책한들 자기 배꼽을 깨물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⑥ 불교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가르침이 없다는 것
묻겠다 : 그대의 말대로 부처는 체가 태극이고 용이 하늘과 땅이어서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 하늘과 땅과 함께 유행함을 알겠다. 그렇다면 하늘과 땅의 조화의 묘한 뜻은 하도ㆍ낙서보다 더 자세한 것이 없는데, 부처가 논하지 않은 것은 왜인가?
답하겠다 : 부처님께서 하도ㆍ낙서의 뜻을 사람들에게 다 보여 주었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못한 것이니, 비유하자면 장님이 밝은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나타나 보이실 때에는 반드시 세 몸을 갖추고 있는데, 세 몸이란 법신, 보신, 화신이다. 법신의 손 모양은 왼손과 오른손을 하나로 모아 쥐는데 그 체를 보이는 것이다. 역易의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 되는 것이 이것이다. 무극이라는 것은 가만히 고요하고 텅 비어 밝으면서 온 우주를 감싸는 것을 말한다. 무극 가운데 극에 이르러 영묘함이 일어나려는 것을 태극이라 말한다. 태극이라는 것은 묘한 밝음을 품어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을 말한다.
보신의 손 모양은 펼쳐서 왼손과 오른손을 펴고 있는데, 그 상象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역의 태초에서 태시太始가 되고, 태시에서 태소太素가 되어 음양이 이미 갈라지고 사상四象81)이 이미 나뉜 때이다. 왼손은 양이 되고 오른손은 음이 되며, 사상은 팔꿈치 (위아래의) 두 마디이니 왼손과 오른손을 합하여 넷이 된다. 세간에서 네 계절을 네 마디(四節)라 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007_0261_b_01L意無窮非聖中至聖四生慈父者
007_0261_b_02L能若是乎以此觀之則斥佛者其斥
007_0261_b_03L父母乎謗佛者其謗父母乎謗斥父
007_0261_b_04L母者其罪爲如何哉以是惡業感之
007_0261_b_05L則現世即有天刑人禍之交攻身後即
007_0261_b_06L有融銅拔舌之深誅臨危悔責噬臍何
007_0261_b_07L能及歟

007_0261_b_08L
問如子之言佛體則太極用則乾坤
007_0261_b_09L運動變化與天地流行則審矣然則天
007_0261_b_10L地造化之妙旨莫詳於圖書而佛之不
007_0261_b_11L及論何也

007_0261_b_12L
曰圖書之旨佛之示人盡矣而人自
007_0261_b_13L不察比猶盲者而不知日之明也
007_0261_b_14L之示現必具三身而三身者法報
007_0261_b_15L化也法身之結手合左右爲一拳示
007_0261_b_16L其體也易之自無極而太極是也
007_0261_b_17L極者湛寂虛明抱括十虛之謂也
007_0261_b_18L乎無極之中靈妙將發謂之太極
007_0261_b_19L極者含畜妙明充塞六合之謂也
007_0261_b_20L身之結手闢而展左右示其象也
007_0261_b_21L之自太初而爲太始自太始而爲太素
007_0261_b_22L陰陽已判四象已分之時也左爲陽右
007_0261_b_23L爲陰而四象則肘之二節也左右合而
007_0261_b_24L爲四矣世以四時爲四節者良有以也

007_0261_c_01L화신의 손 모양은 왼손은 펴고 오른손은 오므렸는데, 그 작용을 보여 주는 것이다. 편 것은 양이고 오므린 것은 음이다. 왼손 손가락은 세 개를 펴고 두 개를 굽혔으며, 오른손 손가락은 세 개를 굽히고 두 개를 폈는데, 편 것은 모두 하늘의 수이고, 굽힌 것은 모두 땅의 수이다. 두 손의 손가락이 굽히고 편 것이 서로 엇갈리는 것을 오행五行을 낳고 이루는 것에 짝지어 보자면, 왼손의 새끼손가락은 하늘의 1로서 물을 낳고, 무명지는 땅의 2로서 불을 낳고, 장지는 하늘의 3으로서 나무를 낳고, 검지는 땅의 4로서 쇠를 낳고, 엄지는 하늘의 5로서 흙을 낳는다. 이는 아래부터 쌓아 올라가 위에 이르는 것이다.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은 땅의 6으로서 물을 이루고, 무명지는 하늘의 7로서 불을 이루며, 나아가 엄지손가락이 땅의 10으로서 흙을 이루는 데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같은 기운끼리 서로 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오행이 생겨나고 이루어지는 바탕을 보인 것이다.
팔괘八卦82)가 상象을 이루는 것으로 짝지어 보자면, 왼손의 굽힌 세 손가락이 합하여 건乾괘가 되고, 편 두 손가락이 아래의 굽힌 손가락과 함께 진震괘가 되고, 편 두 손가락이 가운데의 굽힌 손가락과 함께 감坎괘가 되고, 편 두 손가락이 위의 굽힌 손가락과 함께 간艮괘가 되는데, 이것은 건괘, 진괘, 감괘, 간괘가 양으로서 왼손에 나타난 것이다. 오른손의 편 세 손가락이 합하여 곤坤괘가 되고, 굽힌 두 손가락이 아래의 편 손가락과 함께 손巽괘가 되고, 굽힌 두 손가락이 가운데의 편 손가락과 함께 이离괘가 되고, 굽힌 두 손가락이 위의 편 손가락과 함께 태兌괘가 된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건괘, 곤괘 등의 괘상의 뿌리를 보여 주는 것이다.
기의 흐름으로 짝지어 보자면, 한 손의 네 손가락은 각각 세 마디로 모두 열두 마디이고, 두 손을 합하면 (스물네 마디로) 스물넷의 기氣83)가 된다. 이 기가 서로 뒤섞여 오행이 생겨나고 이루는 것이 다 갖추어진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하늘과 땅의 조화의 근원을 보인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하는 것은 그 가운데를 비워 놓는 것이다. 네 손가락은 이미 물, 나무, 불, 쇠가 되어 사방에 자리 잡았으니, 엄지손가락은 흙이 되어

007_0261_c_01L化身之結手左舒右縮示其用也
007_0261_c_02L者陽而縮者陰也左手之指三伸二
007_0261_c_03L右手之指三屈二伸伸者皆天數
007_0261_c_04L而屈者皆地數也兩手之指屈伸相錯
007_0261_c_05L以五行生成配之則左手之小指爲天
007_0261_c_06L一而生水無名指爲地二而生火長指
007_0261_c_07L爲天三而生木次指爲地四而生金
007_0261_c_08L指爲天五而生土自下而積至于上者
007_0261_c_09L右手之小指爲地六而成水無名
007_0261_c_10L指爲天七而成火以至母指爲地十而
007_0261_c_11L成土各以同氣相求也此佛之所以示
007_0261_c_12L五行生成之本也以八卦之成象配之
007_0261_c_13L則左手之三屈而合成乾卦二伸與下
007_0261_c_14L屈爲震二伸與中屈爲坎二伸與上屈
007_0261_c_15L爲艮此所以乾震坎艮爲陽而象於左
007_0261_c_16L手也右手之三伸合成坤卦而二屈
007_0261_c_17L與下伸爲巽二屈與中伸爲离二屈與
007_0261_c_18L上伸爲兌此佛之所以示乾坤卦象之
007_0261_c_19L根也以氣之流行配之則手之四指
007_0261_c_20L各爲三節捴爲十二而合二手則爲二
007_0261_c_21L十四氣也以是氣錯綜而五行之生成
007_0261_c_22L備矣此佛之所以示乾坤造化之源也
007_0261_c_23L除其母指者虛其中也四指旣爲水木
007_0261_c_24L火金而位於四方則大指爲土無有

007_0262_a_01L네 손가락에 합하지 않음이 없다. 이는 흙이 올바른 자리를 얻어 어디나 두루 응하고, 가운데 자리에 있으면서 이리저리 얽혀 조화하는 것이다.
이로 보자면, 부처님께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매우 절실하고도 분명한데, 조화의 묘함은 그 몸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하늘과 땅의 조화의 근원인 까닭이니, 이에 어둡고서 밝다 할 수 있겠는가? 유교는 사물을 관찰하지만 불교는 한 몸에 다 아우르고, 유교는 자기 밖을 궁구하지만 불교는 자기 안을 밝히는데, 유교가 되고 불교가 된 까닭이 이것이다.
하도ㆍ낙서가 불교 경전에 실리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인도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불교 밖의 가르침으로, 결국 지푸라기 인형처럼 이미 진부한 것인데 여래께서 어찌 이어받아 말하겠는가? 그저 그것이 말미암은 근원을 밝힐 뿐이다. 그러므로 『능엄경』에서 오행의 연기를 스스로 다 분석하였으니 이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또 부처님의 지견은 넓고 크고 깊고 멀리 미치며,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은 갠지스강의 모래알 같은 세계를 끝까지 밝게 다 보는데 하도ㆍ낙서만 모르시겠는가? 『화엄경』의 다지바라문 같은 경우 감로화왕의 안팎의 덕상을 찬탄하면서 으뜸가는 거북을 끌어다 증명을 삼았으니, 인도에서도 이 법을 쓴다는 것이 이미 믿을 만한 것이다. 또 하물며 인도는 세계의 중심으로서 세상의 온갖 교법이 모두 그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주겁住劫의 시초에 오지五地ㆍ육지六地ㆍ칠지七地의 보살들이 본래 세운 서원의 힘을 받아 세간에 나투어서 임금이 되고 신하가 되고 온갖 학문의 학자가 되고 수많은 공인이 되어서 세간의 갖가지 여러 법을 널리 일으켜 세계를 장엄하고 중생들을 열어 이끌면서 모든 문헌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며, 서로 다른 책들이 많게는 예순네 가지나 되는데 어찌 하도ㆍ낙서만 그 안에 없겠는가? 『유마경』에서 말하는 “경서와 주금술, 뭇 기예가 공교로워, 이 일 행하는 것 다 나타내어, 뭇 중생들을 이롭게 하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유교가 이로써 불교보다 뛰어난 점을 구한다고 한다면,

007_0262_a_01L不合於四指此土之所以得正位而普
007_0262_a_02L應無方居中宮而錯綜造化者也以此
007_0262_a_03L觀之則佛之示人深切著明而造化之
007_0262_a_04L不過乎自己此佛之所以爲乾坤造
007_0262_a_05L化之宗者也而昧此可爲明乎儒者觀
007_0262_a_06L乎物而佛則捴乎身儒者攻乎外
007_0262_a_07L佛則明乎內此其所以爲儒佛也若圖
007_0262_a_08L書之不載佛書者是乃天竺常行外典
007_0262_a_09L之敎遂爲已陳芻狗耳如來何襲而控
007_0262_a_10L之哉但明其所自耳故楞嚴經中
007_0262_a_11L行之緣起儘自分析盖可見也且佛
007_0262_a_12L之知見廣大深遠佛眼所矚明極沙
007_0262_a_13L而獨圖書之不審乎如華嚴多智婆
007_0262_a_14L羅門讃甘露火王內外德相乃引元龜
007_0262_a_15L爲證則天竺之用是法亦已諒矣
007_0262_a_16L況天竺乃世界之中心諸有敎法皆從
007_0262_a_17L中出故住劫之初五地六地七地菩薩
007_0262_a_18L承本願力示現世間爲君爲臣爲九流
007_0262_a_19L爲百工廣興世間種種諸法莊嚴世界
007_0262_a_20L開導衆生一切典籍無不畢偹其書
007_0262_a_21L之異至於六十四種之多豈獨圖書而
007_0262_a_22L不在其中耶維摩經所謂經書呪禁術
007_0262_a_23L工巧諸伎藝盡現行此事饒益諸衆生
007_0262_a_24L是也儒者以是而求勝於佛敎何異乎

007_0262_b_01L하백河伯84)이 스스로 물이 많다고만 여길 뿐 다시 바다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그 문자를 범서梵書라고 부르는 것은 세계가 처음 이루어져서 어떤 사람이나 사물도 없이 텅 비어 있을 때, 광음천인이 과보가 다하여 아래로 내려오니, 몸에는 밝은 빛이 있고 발로는 구름을 밟을 수 있었지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은 것 때문에 그 몸이 단단하고 무거워져서 발이 땅을 떠나지 못하게 되어 세간에 살게 되었는데, 저 하늘의 문자와 말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세간에 유포하였기 때문에 범서라고 부른 것이다. 곧 그 문자가 사람이나 사물과 더불어 생겨났으니 이 땅에서 결승문자를 써서 다스린 것과 같지 않다.
중국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또한 모두 큰 방편을 지닌 보살들이 나툰 것이다. 그러므로 『수미사역경須彌四域經』에서는 말하기를 “응성應聲보살은 복희씨伏羲氏이고, 길상吉祥보살은 여와女媧이다.”라고 하였으며, 『공적소문경空寂所問經』에서는 말하기를 “가섭보살을 저들 (중국인들은) 노담老聃이라 부르고, 유동儒童보살을 저들은 공구孔丘라 부른다.”라고 하였으니, (하도ㆍ낙서의) 법이 인도에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이곳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분명하다.
⑦ 중국에 불교가 늦게 전래된 이유 등 일곱 항목이 실려 있다.
묻겠다 : 부처님께서 나투신 것이 주나라 소왕 때라면 어찌하여 그때 이 땅까지 아울러 교화하지 않으셨는가? 교법은 한나라 때 들어왔고 선법이 이른 것은 양나라 때이니 천 년이나 뒤늦게 된 것은 왜인가?
답하겠다 : 불법佛法의 유행은 반드시 시절 운수에 의지해야지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은 자연의 시간을 당기거나 물릴 수 없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다섯 가지 견고함이 있었는데 손가락에 더 많거나 모자람이 없듯이 모두 500년을 기한으로 삼았다. 세상의 흐름은 500년마다 한 번씩 변하는데 또한 오행이 감응하여 된 것이다. 맹자가 “500년이면 반드시 왕 될 이가 일어난다.”85)라고 하였는데 또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 견고함이라는 것은 첫째는 해탈이고 둘째는 선정이고 셋째는 많이 듣는 것이고, 넷째는 복덕이고 다섯째는 다툼이다. 이것은 법문이 시대에 따라 바뀌어 가는 순서이다.
해탈과 선정은 법 가운데 가장 묘하며

007_0262_b_01L河伯自多於水而不知復有海乎稱其
007_0262_b_02L文字爲梵書者世界初成曠無人物
007_0262_b_03L光音天人報盡下來身有光明足若
007_0262_b_04L御雲因餐地味其體堅重足不離地
007_0262_b_05L處於世間仍將彼天文字語言流布世
007_0262_b_06L故號梵書即其文字與人物並生
007_0262_b_07L非若此方結繩而爲政也東夏之所謂
007_0262_b_08L聖人者亦皆大權菩薩之示現故須彌
007_0262_b_09L四域經云應聲菩薩爲伏羲吉祥菩薩
007_0262_b_10L爲女媧空寂所問經云迦葉彼稱老聃
007_0262_b_11L儒童彼稱孔丘則其法之始於天竺
007_0262_b_12L東漸于此明矣

007_0262_b_13L
曰佛之示現在於周昭之時何不其時
007_0262_b_14L並化此方敎法之流於漢禪法之至於
007_0262_b_15L乃遲于千載之後者何也

007_0262_b_16L
曰佛法之流行必依時數不可苟然者
007_0262_b_17L若天時之不可進退也佛滅度後有五
007_0262_b_18L牢固皆以五百歲爲限如手指之無過
007_0262_b_19L不及者凡世之運五百歲一變而亦
007_0262_b_20L五行之所感也孟子曰五百年必有王
007_0262_b_21L者興亦謂此也所謂五牢固者第一
007_0262_b_22L爲解脫第二爲禪㝎第三爲多聞
007_0262_b_23L四爲福德第五爲鬪諍此法門隨世移
007_0262_b_24L變之漸也盖解脫禪㝎法之最妙而不

007_0262_c_01L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 종지는 또한 말로 하는 가르침 밖으로 벗어나 있다. 교법이 그 당시에 이르지 않은 까닭이 이것이다.
많이 듣는 것으로 한정된 시대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이 많이 듣는 것이 견고하여 교법이 유행하기에 알맞으므로 이에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후한 명제가 꿈에 금빛 모습을 보고 뭇 신하들에게 묻기를 “짐이 어젯밤에 침전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색다른 종류의 신령스러운 조짐을 보았는데 경들 가운데 누가 꿈을 풀이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때 승상 한헌韓憲이 “폐하께서 말씀하십시오.”라고 아뢰니, 명제가 말하기를 “짐이 꿈에 금빛 사람을 보았는데 몸길이가 1장 6척이고 얼굴 빛깔은 자금색이고 목에는 둥근 빛을 둘렀고 가슴에는 만자卍字가 새겨져 있고 머리에는 나계螺髺가 있고 이마는 털에서 나오는 빛을 띠었으며, 마음대로 날아올라 어디든 걸림이 없었는데, 입으로 말하기를 ‘나는 석가모니불로서 천축에서 태어나 열반에 들어간 지 이미 천 년이 지났다. 내게 큰 가르침이 있는데 이 땅에 전하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였다. 누가 이를 자세히 아는가?”라고 하였는데, 한헌과 허고許藁 등이 모두 근거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사인舍人 전의傳䝘가 자기 지위를 넘어 아뢰기를 “신이 『주서기周書記』를 읽어 보았는데, 소왕 24년에 큰 성인이 서역에서 태어나니 여러 가지 밝은 빛과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조짐이 이 나라를 비추었으며, 그때 태사관 소소유가 아뢰기를 ‘(성인이) 세상을 떠나고 천 년 뒤에야 성스러운 가르침이 이 땅에 흘러 전해지기에 합당합니다.’라고 하니 소왕이 사자를 보내어 낙양성 남쪽 교외의 단 아래에 비석에 기록하여 묻게 하였다고 합니다. 공왕이 즉위하고 3년 뒤인 임신년에 열반에 들어간 뒤로 딱 천 년이 지났으니 폐하께서 꿈꾸신 것은 반드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신이 설명한 말을 의심하신다면 주나라 때의 비석 기록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명제가 승상 한헌에게 성 남쪽으로 가서 옛 비석을 취하여 살펴보게 하였는데, 그 비문을 다 적어 아뢰니 명제가 크게 기뻐하며 국자박사 왕준王遵과 중랑장 진경秦景과 정원장군 채음蔡愔에게 18명을 이끌고 나라의 예물과 칙서를 지니고 서쪽으로 가서

007_0262_c_01L動者也其旨又離乎言敎之外此敎法
007_0262_c_02L之所以當是期而不至也若逮于多聞
007_0262_c_03L之限則人以多聞爲牢固宜乎敎法之
007_0262_c_04L流行於是運也故後漢明帝之夢金像
007_0262_c_05L問於群臣曰朕於昨夜寢殿中
007_0262_c_06L見異種靈瑞卿等能誰圖夢時有承相
007_0262_c_07L韓憲奏曰請陛下說之帝曰朕夢見金
007_0262_c_08L身長丈六尺紫金容色項佩圓光
007_0262_c_09L胸題卍字頭安螺髺額帶毫光飛騰
007_0262_c_10L自在東西無礙口稱吾是釋迦牟尼佛
007_0262_c_11L生在天竺滅度已經千載吾有大敎
007_0262_c_12L合傳此方誰能委知韓憲許藁等
007_0262_c_13L以爲無稽時有舍人傳䝘越班奏曰
007_0262_c_14L讀周書記云昭王二十四年有大聖人
007_0262_c_15L生於西域有異種光明靈瑞照於此國
007_0262_c_16L其時大史官蘇少游奏曰滅後一千年
007_0262_c_17L合有聖敎流傳此土昭王遣使於洛
007_0262_c_18L陽城南郊壇之下碑記埋之恭王即位
007_0262_c_19L三年壬申之歲入滅已來的有一千年
007_0262_c_20L陛下所夢必是其由恐臣辨言請檢
007_0262_c_21L周家碑記帝令承相韓憲徃取檢城南
007_0262_c_22L古碑具錄其碑文奏聞帝大悅以國
007_0262_c_23L子愽士王遵中郞將秦景㝎遠將軍蔡愔
007_0262_c_24L將從十八人賫持國贐及勑書遣於西

007_0263_a_01L성스러운 가르침을 구하게 하였다.
영평永平 3년 4월 8일 왕준 등이 명을 받들어 궁궐 아래에서 작별하고 떠나 여러 나라를 두루 거친 뒤 5년에 서역의 월지국에 이르렀고, 길 위에서 문득 두 명의 인도 승려를 만났는데, 한 명은 성이 가섭에 이름이 마등摩滕이고, 한 명은 성이 축竺에 이름이 법란法蘭이었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설한 범어 경전인 『금강반야경』ㆍ『묘법연화경』ㆍ『유마경』ㆍ『사십이장경』을 지니고 한나라 땅으로 오려던 참인데, 한나라 사신을 보고는 온 곳을 물었다.
왕준 등이 대답하기를 “제자들은 한나라에서 왔습니다. 한나라의 천자께서 꿈속에 금빛 사람을 보았는데, 입으로 부처라고 말하면서, 이제 멸도한 지 천 년이 지났으니 큰 가르침이 동쪽 땅으로 흘러 전해지기에 합당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 등을 보내어 멀리 길을 떠나 서쪽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찾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두 명의 인도 승려가 찬탄하며 말하기를 “한나라의 사신이 불법을 구하고자 서쪽 나라로 온 것은 모두 성스러운 힘이 가만히 도와주신 것으로, 인연이 맞아 여기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나라에는 아직 불법이 없음을 제대로 알고서 빈도들이 지금 불법을 지니고 여기에 왔습니다. 천사天使86)들께서는 번거롭게 서쪽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였다.
왕준 등이 매우 기뻐하며 경건하게 절하고 불경을 받들어 받아 백마에 싣고 두 명의 승려와 함께 낙양으로 오니 바로 영평 14년 10월 8일이다.
왕준 등 세 사람이 명 받은 일에 대해 황제에게 아뢰고 불경을 바치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저마다 황금 천 냥씩을 내려 주고 두 명의 승려는 홍려관에 머물며 경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황제가 생각하는 것이 이에 그치지를 않아서, 백마가 멀리 다녀온 피로 때문에 병이 생겨 죽자 칙명으로 낙양성 서쪽에 장사 지내게 하고 그 자리에 절을 하나 지었는데, 이에 ‘백마사’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때 오악五岳87)의 도사와 활대소滑大素, 신문신新文信 등이 문도 600명 남짓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어찌하여 황제께서 갑자기 미친 마음을 일으켜 우리 도교의 문을 버리고 멀리

007_0263_a_01L以求聖敎永平三年四月八日
007_0263_a_02L遵等奉命辭闕下巡歷諸方五年到西
007_0263_a_03L天月支國忽於路中相逢二梵僧
007_0263_a_04L僧姓迦葉名摩滕一僧姓竺名法蘭
007_0263_a_05L持佛梵字金剛般若妙法蓮經維摩經四
007_0263_a_06L十二章經欲來漢土見漢使而問所
007_0263_a_07L王遵等對曰弟子等從漢國而來
007_0263_a_08L漢朝天子夢見金人口稱是佛滅度
007_0263_a_09L已來今經千歲合有大敎流傳東土
007_0263_a_10L以故遣弟子等遠涉程途尋覔西方聖
007_0263_a_11L於是二梵僧嘆曰漢使欲求佛法
007_0263_a_12L來於西國盡是聖力潜扶因緣會遇
007_0263_a_13L在此相逢情知漢土未有佛法貧道
007_0263_a_14L今將佛法來於此矣天使等不煩
007_0263_a_15L西去王遵等喜悅非常作禮虔敬
007_0263_a_16L受佛經以白馬駄與二僧同來洛陽
007_0263_a_17L即永平十四年十月八日也王遵等三
007_0263_a_18L人復命以佛經獻於皇帝皇帝大悅
007_0263_a_19L賜黃金各千兩令二僧在鴻盧舘勑譯
007_0263_a_20L帝乃持念不已白馬遠涉疲勞
007_0263_a_21L病而死勑葬於洛陽城西當其處
007_0263_a_22L一伽籃額曰白馬寺時五岳道士及滑
007_0263_a_23L大素新文信等將門徒六百餘人相謂
007_0263_a_24L如何皇帝忽起狂心棄我道門

007_0263_b_01L오랑캐의 가르침을 구하여 오늘만 중시하고 옛날을 가벼이 여기며 귀만 귀하게 여기고 눈은 천시하는가? 오랑캐 신의 가르침을 없애라고 누가 간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때 남악도사 저선신楮善信이 말솜씨가 꿰뚫어 넘치고 덕이 넓고 행위가 고상하므로 무리들이 추천하여 마침내 표문表文을 닦아 황제에게 간하였다.
표문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남악도사 저선신 등 아흔 명88)은 죽을죄를 무릅쓰고 또 무릅쓰며 황제 폐하께 말씀을 올립니다. 신들이 듣기에 하늘과 땅에 훤히 통달하는 것은 다스릴 바를 글에 의지하고, 나라의 평안과 화평은 그 요체가 도를 받듦에 있으며, 어진 풍속을 퍼뜨리는 것은 예악에 달려 있고, 아름다운 덕을 널리 펴는 것은 흉악하고 완고한 이들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순임금의 해를 밝히고 요임금의 구름을 펼쳐 뭇 생명들을 채찍질하고 온갖 것들의 조종祖宗이 되시니, 사방의 오랑캐가 발돋움하여 기다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마음으로 귀의하여, 서쪽 나라에서는 서왕모의 복숭아를 바치고 동쪽 바다에서는 마고의 단술을 바칩니다.
다시 유교의 술법을 존중하시니 선비들이 위의가 있고, 우리 도교의 문을 일으키시니 누런 관을 쓴 이들이 번듯합니다. 이 태상노군의 가르침은 원기를 받아 예를 이루고 맑고 텅 빈 곳에 의탁하여 마음을 다스리며 현묘한 문에서 동물과 식물을 다스리고 중국에 법과 가르침을 펼칩니다. 그래서 백왕이 취하면 천년토록 풍교를 흠모하여 세속을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생기를 조섭하여 타고난 것을 잘 기를 수 있습니다.
하물며 폐하께서는 서릿발 같은 칼을 손에 쥐고 밝은 거울을 마음에 두고 계신데, 어찌하여 우리 도교의 종지를 버리고 멀리 오랑캐의 가르침을 구하십니까? 단지 오랑캐 신의 법 같은 것은 대개 요사스럽고 거짓되어 나라를 망하게 하고 집안을 망하게 하므로 중화의 문물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사람의 후사를 끊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더러운 옷을 입고서 변방 사막 지역에나 번역하여 전하고 말로 타일러 교화할 뿐입니다.
엎드려 빌건대 황제 폐하께서 저것과 이것을 비교하여 검증해 보시면 선하고 악함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주색朱色을 갈아 붉은색에 더해 보면 참되고 거짓됨이 저절로 나타날 것입니다.
신 등은 맑은 물과 흐린 물을 가려내어 뛰어나고 뒤떨어지는 등급을 매기기를 바랍니다. 만약 부처가 영험하다면 삼가 오랑캐 신의 가르침에 의지하겠습니다.
신이 어리석은 견해로 성스러운 귀를 어지럽혔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해의 밝은 빛을 돌려 비추시면 해바라기가 진실로 그쪽으로 기울어질 것입니다.89) 신 등은 진실로 황공하고 또 황공합니다. 죽을죄를 무릅쓰고 또 무릅쓰며 삼가 말씀드립니다.”
영평 15년 4월 5일

007_0263_b_01L求胡敎重今輕古貴耳賤目誰諫减
007_0263_b_02L却胡神之敎時南岳道士楮善信辯才
007_0263_b_03L透溢德廣行高衆人推許遂修表文
007_0263_b_04L諫於皇帝表曰南岳道士楮善信等九
007_0263_b_05L死罪死罪上言皇帝陛下臣聞天
007_0263_b_06L地廓達所理籍文國家安和要在奉
007_0263_b_07L播仁風者在其禮樂敷文德者
007_0263_b_08L其凶頑伏惟皇帝陛下暉舜日布堯雲
007_0263_b_09L鞭百靈朝萬品四夷蹺足六合歸心
007_0263_b_10L西天貢王母之桃東海獻麻姑之醴
007_0263_b_11L有尊其儒術士類蹌蹌興我道門
007_0263_b_12L冠濟濟是老君之敎禀元氣而成禮
007_0263_b_13L託淸虛而玩心宰動植於玄門布法敎
007_0263_b_14L於中國所以百王取則千載欽風濟俗
007_0263_b_15L安民攝生養性況陛下霜刀在手
007_0263_b_16L鏡居心如何弃我道宗遠求胡敎
007_0263_b_17L如胡神之法多是妖訛敗國亡家不叅
007_0263_b_18L華夏絕人後嗣削髮染衣譯傳流沙
007_0263_b_19L口諭敎化伏乞皇帝陛下彼此參驗
007_0263_b_20L善惡可知妍朱益丹眞僞自現臣等
007_0263_b_21L請揀涇渭俾科優劣佛若有靈謹依
007_0263_b_22L胡神之敎臣將愚見輒煩聖聽伏乞
007_0263_b_23L廻照大陽諒傾葵藿臣等誠惶誠恐
007_0263_b_24L死罪死罪謹言永平十五年四月五日

007_0263_c_01L저선신 등이 표문을 상덕전에 올리니, 황제가 말하기를 “오늘의 높은 도사들을 삿된 도사라고 부르려고 멀리서 복과 이익을 구한 것은 아니지만, 짐이 불교와 도교 두 가르침을 한 곳에 모아 그 뛰어나고 뒤떨어짐을 살펴볼 것이니 도사 등은 저마다 뛰어난 술법으로 그 승부를 정하라. 이에 임금의 뜻을 처리하는 관청에서는 백마사에 재 지낼 자리를 설치하라. 짐이 몸소 나아가 보면서 두 가르침을 비교하여 시험해 볼 것이다.”라고 하였다.
맡은 관청에서 칙명을 받들어 백마사 앞을 물 뿌리고 쓸어 내어 깔끔하게 정리한 뒤 도량을 배치하여 마련하였는데, 세 개의 단을 나누어 설치하고 도교 경전류인 『노자』ㆍ『장자』ㆍ『열자』ㆍ『학혜자』ㆍ『광성자』 등 37가의 책 365권을 동쪽 단 위에 올려놓고, 유교 문헌인 『주역』ㆍ『상서』ㆍ『모시』ㆍ『삼례』ㆍ『삼전』ㆍ『논어』ㆍ『효경』 등 374권을 가운데 단 위에 올려놓고, 불교 경전인 『금강반야경』ㆍ『묘법연화경』ㆍ『유마경』 등 3부를 서쪽 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날 이른 아침에 황제가 비와 빈과 채녀들을 거느리고 뭇 관료들에게 에워싸여 도량에 와서 그 뛰어나고 뒤떨어짐을 관찰하였는데, 저선신 등 690명은 동쪽 가에 서쪽을 향해 서고, 유생들은 남쪽 가에 북쪽을 향해 서고, 가섭마등과 축법란은 서쪽 가에 동쪽을 향해 섰으며, 이 뛰어난 일을 보러 온 서울의 남자와 여자들은 그 수를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도사 등이 저마다 요술을 보이는데, 칼 사다리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송곳 사다리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끓는 기름을 밟기도 하고, 큰 불 속에 서 있기도 하고, 주문과 부적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주문으로 큰 돌을 부수기도 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바람과 눈을 일으키기도 하고, 귀신들을 몰아 부리기도 하니, 황제가 그 별난 술법을 기이하게 여기고,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모두 일찍이 없던 일이라고 말하였다.
이때 가섭마등과 축법란 두 승려는 말없이 서 있었다. 황제가 두 승려에게 묻기를 “화상들에게 신통력이 있다면 어찌하여 술법을 지어 이 무리들에게 보여 주지 않는가?”라고 하자, 두 승려가 황제 앞으로 걸어 나와 아뢰기를 “이는 환술로서 외도들이나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007_0263_c_01L楮善信等奉表於像德殿皇帝曰
007_0263_c_02L求福利不圖今日尊師喚作邪師
007_0263_c_03L以佛道二敎會于一處觀其優劣
007_0263_c_04L等各以勝術㝎其勝否於是聖旨所司
007_0263_c_05L白馬寺鋪設齋莚朕親臨視比試二敎
007_0263_c_06L所司奉勑於白馬寺前精修洒掃
007_0263_c_07L立道場分設三壇道經類老子莊子列
007_0263_c_08L子學惠子廣成子等三十七家書三百六
007_0263_c_09L十五卷置於東壇之上儒書周易尙書
007_0263_c_10L毛詩三禮三典論語孝經等三百七十四
007_0263_c_11L置於中壇之上佛經金剛般若妙法
007_0263_c_12L蓮經維摩經等三部置於西壇之上
007_0263_c_13L日早朝帝將嬪妃彩女百僚圍繞
007_0263_c_14L御道場觀其優劣楮善信等六百九十
007_0263_c_15L東邉西面而立儒生等南邉北面
007_0263_c_16L而立騰蘭二僧西邉東面而立京師
007_0263_c_17L士女觀其勝事者莫知其數道士等
007_0263_c_18L各呈妖述或上刀梯或上錐梯踏煎
007_0263_c_19L立大火或呪符飛去或呪破大石
007_0263_c_20L呼吸風雪驅使鬼神帝奇其異術
007_0263_c_21L看此者皆言未曾有也是時滕蘭二僧
007_0263_c_22L默然而立帝問於二僧曰和尙等若有
007_0263_c_23L神通何不作術示此衆也二僧進步而
007_0263_c_24L前奏曰此是幻術外道所作佛敎之

007_0264_a_01L속에서는 오직 다툼이 없는 삼매를 행할 뿐이니, 빈도들이 어찌 감히 임금의 앞에서 이에 대항하여 술법을 다투겠습니까? 다른 술법으로 그 참되고 거짓됨을 징험하고자 합니다. 세간의 무정물 가운데에는 불보다 더 심한 것이 없으니, 세 가르침의 경서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불붙여 태우면 참되고 거짓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들이 아뢴 말에 따라 명제가 곧바로 공봉관供奉官에게 명하여 도교와 불교 두 가르침의 (경전들을) 가운데 단에 (유교 경전과 함께) 모으고, 향나무 장작들을 그 위에 쌓은 뒤 불을 질러 태웠다. 그러자 연기와 불꽃이 허공으로 치솟으며 도교와 유교 두 가르침의 경전들은 순식간에 모두 불타 버렸지만, 3부의 불경은 그대로 다 남아 열두 줄기 밝은 빛을 뿜었는데, 그 빛이 해를 꿰뚫고 하늘과 땅을 크게 비추니, 도사 등은 전전긍긍하고 모여서 본 대중은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였다.
이에 가섭마등과 축법란 두 승려가 단 위에 올라가 경전을 받들어 명제에게 바쳤다.
황제가 통사사인通事舍人 송상宋庠에게 명하여 저선신 등에게 “도사들이 표문을 올려 불교와 승부를 다투게 되었는데, 오늘 도교 경전은 모두 불에 타 버렸으니 다시 할 말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때 저선신 등은 입이 막히고 혀가 묶인 듯 다시 한마디 말도 없다가, 뭇 사람들의 앞에서 땅에 거꾸러져서 기가 막혀 죽으니 문도들이 남악에 장사 지냈다.
이때 도사 여혜통 등 630명은 머리카락을 깎고 승려가 되었고 정원장군 강순예 등 120명은 가사를 걸쳤으며 장혜진ㆍ왕지통 등 130명의 백성은 승려가 되기를 청하였고, 비와 빈과 채녀 하류 등 170명의 궁녀와 낙양의 부녀자 2천 명과 관을 쓴 유대업ㆍ최동허 등 90명의 여관女官 등은 비구니가 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칙명으로 낙양성 안에 열 곳의 큰 절을 짓고 일곱 곳의 절에는 비구들을 두고 세 곳의 절에는 비구니들을 두니 금구金口90)에서 나온 참된 가르침을 집집마다 생각하고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저마다 따라 행하였다.
그러므로

007_0264_a_01L唯行無諍三昧貧道等豈敢對此
007_0264_a_02L諍術於君王之前請以別術驗其眞僞
007_0264_a_03L世間無情之物莫甚於火但以三敎經
007_0264_a_04L集于一處下火焚燒以知眞僞
007_0264_a_05L乃依奏便令供奉官取道佛二敎
007_0264_a_06L于中壇香木諸薪積於其上以放火
007_0264_a_07L焚之烟焰騰空須臾之間道儒二敎
007_0264_a_08L盡爲煨燼三部佛經完然具在放十
007_0264_a_09L二道光明其光貫日大照乾坤道士
007_0264_a_10L等戰戰兢兢聚觀大衆讃歎佛德
007_0264_a_11L是滕蘭二僧乃登壇上奉經獻帝
007_0264_a_12L令通事舍人宋庠問於楮善信等曰
007_0264_a_13L士等進表得與佛敎爭勝否今日道典
007_0264_a_14L盡被焚焇更有言乎時楮善信等
007_0264_a_15L口結舌更無一言衆人之前倒地氣
007_0264_a_16L咽而死門徒葬于南岳中其時道士呂
007_0264_a_17L惠通等六百三十人削髮爲僧㝎遠將
007_0264_a_18L軍姜荀猊等一百二十人方袍百姓張
007_0264_a_19L惠進王智通等一百三十人請爲僧
007_0264_a_20L妃彩女河類等百七十宮女洛陽婦女二
007_0264_a_21L千人冠柳大業崔同虛等九十女冠等
007_0264_a_22L請爲尼皇帝勑造十大伽籃於洛陽城
007_0264_a_23L七伽籃安僧三伽籃安尼金口眞
007_0264_a_24L家家轉念如來聖敎箇箇遵行

007_0264_b_01L불법이 일어난 것은 반드시 은밀한 운수에 따르는 것이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선법이라는 것은 교학 밖에 따로 행하는 가장 뛰어난 종지이다. 부처님께서 영산의 법회에서 대범천왕 등이 금빛 바라꽃을 바치고 몸을 버려 법상과 법좌가 되어 중생들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부처님께 청하니, 이에 세존께서 자리에 오르시어 꽃을 들어 무리에게 보였는데, 100만 명의 사람과 하늘 중생들은 모두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오직 대가섭만은 얼굴을 펴고 미소 지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게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이 있는데 마하가섭에게 맡긴다.”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서로 전해 주고 받아 28대 달마대사에 이르렀고, 반야다라의 유촉을 받아 동쪽으로 이 땅에 와서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들어가 본성을 보아 부처가 되게 하였다.
28은 하늘의 법도인데, 법도는 움직이지 않으므로 28 이전에는 그 법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하늘의 법도가 갖추어진 뒤에 땅의 법도가 생기니, (하늘과) 땅의 법도는 서로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달마에 이르러 동쪽으로 와서 초조初祖가 되었으며, 장사 지내고 3년 뒤에 신발 한 짝을 들고 서쪽 땅으로 다시 돌아갔으니 바로 복덕이 견고한 때이다. 달마 뒤로 부처님의 옷과 발우를 전한 것이 5대에서 그쳤는데, 이는 다섯 별이니 땅의 법도이다. 하늘의 법도와 땅의 법도가 갖추어지니 문채가 드러나므로 육조 뒤로는 법이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세계에 두루 퍼지고 오가五家로 나뉘었으며 종장들이 많이 나왔다. 옷과 발우로써 신표를 삼던 것이 5대에서 그치고 전하지 않는 까닭이 이것이다.
또 복덕의 시대에는 세상 사람들이 다만 복을 짓는 것만으로 일을 삼을 뿐 본성을 보아 부처가 되는 지름길이 있음을 알지 못해서, 많이 들으면 미친 지혜로 치달리게 되고, 복을 닦으면 사람이나 하늘 중생이라는 상相에 머물게 된다. 이는 또한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의 큰 흠집이기 때문에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하나하나 다 내려놓게 하여 마음 쓰는 곳이 없게 하였으니, 이것이 선법이 된 까닭이다.
양무제의 경우 “짐이 일생 동안 불탑과 절을 짓고 보시하고 공양하며

007_0264_b_01L知佛法之興必依冥數而非偶然可知
007_0264_b_02L盖又禪法者敎外別行最上宗旨也
007_0264_b_03L佛於靈山會上因大梵天王獻金色波
007_0264_b_04L羅花1)身爲 [8] 床座請佛爲衆生說法
007_0264_b_05L世尊登座拈花示衆人天百萬悉皆
007_0264_b_06L罔措唯大迦葉破顏微笑世尊云
007_0264_b_07L有正法眼藏涅槃妙心實相無相付囑
007_0264_b_08L摩訶迦葉自此遆相傳受至二十八代
007_0264_b_09L達摩大士受般若多羅遺囑東來此土
007_0264_b_10L不立文字直指人心見性成佛二十
007_0264_b_11L八者天經也經不動故四七之前
007_0264_b_12L法未至經偹而後緯生相授者也
007_0264_b_13L故至達摩東來爲初祖葬後三年携隻
007_0264_b_14L還歸于西土正當福德牢固之時也
007_0264_b_15L達摩之後傳佛之衣鉢者止五代也
007_0264_b_16L是爲五星地緯也經緯備而文彩呈露
007_0264_b_17L六祖之後法周沙界分爲五家
007_0264_b_18L宗匠多矣此衣鉢之信止五代而不傳
007_0264_b_19L又且福德之時世徒以作福爲事
007_0264_b_20L而不知有見性成佛之捷徑多聞而馳
007_0264_b_21L騁於狂慧修福而住相於人天亦學佛
007_0264_b_22L之大釁故達摩之西來也一一將下無
007_0264_b_23L處用心玆其所以爲禪法也歟如梁武
007_0264_b_24L帝問曰朕一生造佛塔寺布施供養

007_0264_c_01L수없이 많은 승려들을 득도시켰는데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라고 물으니, 달마가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하였고, “어떤 것이 참된 공덕인가?”라고 하니, “깨끗한 지혜는 묘하고 완전하며 체가 텅 비어 고요한데, 이러한 공덕은 세간의 일로 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다시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의 으뜸가는 뜻인가?”라고 물으니, “휑하니 어떠한 성인도 없습니다.”라고 하였고, “짐과 마주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라고 하니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제와 이미 맞지 않으므로 달마가 곧 갈대를 꺾어 타고 강을 건넜다. 뒤에 신광神光91)처럼 보통을 넘어서는 근기를 갖춘 이가 없었다면 조사의 심인心印을 누가 전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부처님과 조사께서 들어 올리고 억누르는 자리에는 펼칠 때도 있고 말아 들일 때도 있지만, 한 번 억누르고 한 번 드날리는 것이 모두 중생들이 부처님의 지혜를 이루게 하려는 방편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세웅, 성안, 수미, 지운, 극능, 선호, 설징, 의등, 연희, 조계, 불계, 처인, 인해, 지정, 성묵, 인은, 성숭, 혜인, 옥수, 영우, 학총, 운섬, 옥섬, 혜안, 일옹, 지경, 성균, 영준, 능보, 도진, 학경, 사열, 경잠, 계희, 성은, 해매, 경희, 공수, 성심, 법순, 관준, 진응, 경운, 극숭, 옥청, 지견, 도순, 최진, 사오, 만희, 희준, 각징, 근숭, 조근, 능민, 옥정, 각련, 행전, 신언, 능제, 영희, 도희, 학경, 성조, 언수, 계행, 설청, 의돈.92)

007_0264_c_01L僧無數有何功德達摩曰片無功德
007_0264_c_02L曰如何是眞功德荅曰淨智妙圓體自
007_0264_c_03L空寂如是功德不以世求又問如何
007_0264_c_04L是聖諦第一義曰廓然無聖曰對朕者
007_0264_c_05L曰不識武帝旣不契達摩便2) [9]
007_0264_c_06L渡江矣末後若無神光具過量之機者
007_0264_c_07L祖師心印誰能傳者此是佛祖擡搦處
007_0264_c_08L有舒有卷3) [10] 一揚無非爲衆生
007_0264_c_09L就佛智之方便也

007_0264_c_10L
007_0264_c_11L
世雄性安守眉智雲克能禪浩雪澄
007_0264_c_12L義燈衍熈祖戒▼(亻+天)戒處仁印海智正
007_0264_c_13L省默印訔性崇惠仁玉修靈祐學聰
007_0264_c_14L云暹玉暹慧安一翁智冏性均英俊
007_0264_c_15L能寶道眞學敬思悅敬岑戒熈聖恩
007_0264_c_16L海梅敬熈空修性心法淳寬准眞應
007_0264_c_17L敬云克崇玉淸志堅道純崔進思悟
007_0264_c_18L萬熈希俊覺澄仅崇祖仅能敏玉精
007_0264_c_19L覺連行全信彥能濟靈熈道熈學冏
007_0264_c_20L性祖彥修戒行雪淸義敦

007_0264_c_21L「身爲」以下至卷上末甲本缺落「拆」疑
007_0264_c_22L「折」{編}
「㧕」疑「抑」{編}
  1. 1)곤鯤 : 『莊子』에 나오는 큰 물고기로서 북쪽의 큰 바다에 살며 때가 되면 붕새로 변한다고 한다.
  2. 2)붕鵬 : 『莊子』에 나오는 큰 새로서 곤이 변하여 된 것이다. 때가 되면 남쪽 큰 바다를 향하여 날아가는데 구만리 하늘 위로 올라가 6개월 동안이나 쉬지 않고 날아간다고 한다.
  3. 3)동아시아에서 삼교를 말할 때에는 대개 유교, 불교와 더불어 도교를 든다. 그런데 이 논에서는 ‘도道’라는 표현 대신에 ‘노老’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또한 논의하는 내용도 철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노장사상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4. 4)삼제三際 :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한다.
  5. 5)변함없이(湛然) : 원문 ‘湛然’의 ‘湛’이 불교 용어로 사용될 경우에는 ‘맑다’는 뜻보다는 ‘고여 흔들리지 않는 물처럼 흩어지거나 어질러지지 않고 그대로 변함이 없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6. 6)유루有漏 :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를 낳는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번뇌를 낳지 않는 존재는 무루無漏라고 한다.
  7. 7)허공의 꽃 : 눈에 병이 나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마치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보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본래 존재하지 않는 허망한 존재를 비유한다.
  8. 8)세 가지 행위 : 이른바 삼업三業으로,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를 말한다.
  9. 9)『莊子』 「大宗師」 .
  10. 10)한유韓愈(768~824) : 당나라 때의 유명한 문장가로서 「論佛骨表」 ㆍ「原道」 등의 글을 통해 유교사상에 근거하여 불교를 극렬하게 배척하였다.
  11. 11)삼대三代 : 중국의 하ㆍ은ㆍ주 세 왕조를 말한다. 하 왕조를 세운 우임금, 은 왕조를 세운 탕왕, 주 왕조를 세운 문왕ㆍ무왕이 모두 성인으로 추앙받기 때문에 삼대는 단순히 역사적인 왕조라는 뜻을 넘어서 성인들이 세운 정당한 왕조로서 도가 실현된 시대라는 뜻을 지닌다.
  12. 12)삼계三界 : 중생들이 사는 세 가지 세계로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욕계欲界, 욕망으로부터는 떠났지만 물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색계色界, 물질로부터는 자유롭지만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 따라서 삼계는 윤회하는 중생의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
  13. 13)사생四生 :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네 가지 방식으로 태어난다고 하는데, 사람이나 짐승처럼 태에서 태어나는 태생胎生, 새나 개구리처럼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卵生, 지렁이처럼 물기 있는 곳에서 태어나는 습생濕生, 극락에 태어나는 경우와 같이 변화되어 태어나는 화생化生을 말한다. 따라서 사생은 중생 전체를 가리킨다.
  14. 14)『首楞嚴經』 권4.
  15. 15)법계法界 : 진리의 세계를 말한다.
  16. 16)참된 부처님 법계法界의 몸 : 진리를 몸으로 하는 부처, 곧 법신불法身佛을 말한다.
  17. 17)보신報身과 화신化身 :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를 셋으로 나누어 보는데, 진리 그대로의 부처인 법신法身, 아미타불과 같이 수행의 과보로서 성취된 부처인 보신報身, 석가모니와 같이 이 땅에 태어나 수행하여 부처가 되고 늙고 죽는 모습을 보여 주는 부처인 화신化身이 있다.
  18. 18)『金剛般若波羅蜜經論』 권상.
  19. 19)영가 현각永嘉玄覺(665~713) : 당나라 때의 선승. 육조 혜능慧能에게서 깨달음을 인가받고 하루를 묵어 갔다고 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고도 불렸다. 저술로 『證道歌』ㆍ『永嘉集』 등이 있다.
  20. 20)육취六趣 : 중생이 윤회하여 존재하는 여섯 가지 양태로서 하늘 중생, 사람,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을 말한다.
  21. 21)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일대삼천세계一大三千世界라고도 한다. 불교의 우주론에 따르면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네 개의 대륙이 있고 그 바깥은 철위산鐵圍山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을 1세계라고 한다. 이 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이 1소천세계이고, 소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이 1중천세계이며, 중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이 1대천세계이다.
  22. 22)『永嘉證道歌』.
  23. 23)『永嘉證道歌』.
  24. 24)원문은 ‘曰’인데 문맥에 따라 이렇게 번역하였다. 뒤도 마찬가지이다.
  25. 25)『孟子』 「盡心 上」 에 “그 마음을 다하는 이는 그 성을 안다. 그 성을 알면 그 하늘을 안다.(盡其心者。知其性也。知其性。則知天矣。)”라고 하였다.
  26. 26)삼승三乘 : 성문聲聞이 되는 가르침인 성문승과 연각緣覺이 되는 가르침인 연각승, 보살菩薩이 되는 가르침인 보살승을 일컫는다. 이 가운데 성문승과 연각승은 자기만의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소승이라 하고, 보살승은 자신의 깨달음과 더불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대승이라 한다.
  27. 27)원교圓敎 : 모든 진리를 완전히 다 갖춘 가르침으로서 일반적으로 『華嚴經』의 가르침을 말한다.
  28. 28)정법안장正法眼藏 : 올바른 가르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비추어 보는 지혜의 눈이 갈무리되어 있다는 뜻으로서, 불교의 경전이나 그 경전 속에 담겨 있는 진리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29. 29)『列子』 「仲尼」 .
  30. 30)『論語』 「爲政」 .
  31. 31)『論語』 「子路」 .
  32. 32)명부冥府 : 죽은 이들을 관장하는 부서를 말한다.
  33. 33)『趙州眞際禪師語錄并行狀』 권상.
  34. 34)묻겠다 : 원문은 ‘曰’이지만 문맥에 따라 ‘묻겠다’, ‘답하겠다’로 번역하였다.
  35. 35)싹 사이에~뿐만이 아니다 :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이보다 훨씬 해롭다는 뜻이다.
  36. 36)승니僧尼 : 비구와 비구니를 말한다.
  37. 37)나라를 가지고~있는 이 :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천자인 중국의 황제가 온 세상을 다스리고 그 아래 왕들이 저마다의 나라를 다스린다고 보았다.
  38. 38)『寒山子詩集』.
  39. 39)『寒山子詩集』.
  40. 40)만종萬鍾 : 매우 많은 봉록을 말한다.
  41. 41)천사千駟 : 사駟는 네 필의 말을 뜻하므로 천사는 4천 필의 말을 뜻한다. 또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승乘이라 하므로 천사는 곧 천승千乘을 뜻하기도 하는데, 중국 고대의 법제에 의하면 천자는 만승을 지니고 제후는 천승을 지니므로 곧 제후를 가리킨다.
  42. 42)복밭 : 부처나 승려를 가리킨다. 사람들이 이들에게 공양하면 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복을 키우는 밭과 같다 하여 이렇게 부른다.
  43. 43)주공周公 : 주나라 무왕의 동생으로서, 무왕이 죽고 난 뒤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르자 이를 잘 보필하여 주나라 문물제도의 기틀을 닦아 놓았다. 아버지 문왕, 형 무왕과 더불어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44. 44)가리왕歌利王 : 석가모니가 전생에 인욕선인忍辱仙人이었을 때 그를 붙잡아다가 팔과 다리를 끊었다고 하는 포악한 왕을 가리킨다.
  45. 45)앙굴리말라 : 석가모니 당시의 수행자로서, 스승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수십 명의 사람을 죽여 그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손가락 목걸이’라는 뜻의 이 이름으로 불렸으나, 뒤에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참회하여 불교 교단에 출가하였다.
  46. 46)데바닷다 : 석가모니의 사촌 형제로서, 처음에는 불교 교단에 출가하여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었으나, 뒤에 교단을 장악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하자 여러 차례 석가모니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불교에서 악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47. 47)따뜻한 기운으로~기운으로 이루어서 : 봄에 싹이 나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한다.
  48. 48)선왕先王 : 중국에서 성인으로 칭송받는 요임금ㆍ순임금ㆍ우임금ㆍ탕왕과 문왕ㆍ무왕 등을 가리킨다.
  49. 49)이백李白(701~762) : 당나라 때 시인.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두보杜甫와 함께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꼽힌다.
  50. 50)두보杜甫(712~770) : 당나라 때 시인. 자는 자미子美이며 호는 소릉少陵ㆍ공부工部이다. 이백과 함께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꼽힌다.
  51. 51)이고李翶(772~841) : 당나라 때 문인. 자는 습지習之이며, 당송십육가唐宋十六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유학자이면서도 불교사상을 채택하여 심성心性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보였으며, 저서 『復性書』는 성리학의 선구가 되었다.
  52. 52)유자후柳子厚(773~819) : 당나라 때 문인. 이름은 종원宗元이고 자후는 자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한유와 함께 고문古文 부흥 운동을 제창하였다.
  53. 53)소동파蘇東坡(1036~1101) : 북송 때 문인. 본명은 소식蘇軾이고 자는 자첨子瞻이며, 동파는 호로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로 일컬어지며 모두 당송팔대가에 속한다.
  54. 54)백낙천白樂天(772~846) : 당나라 때 시인. 본명은 백거이白居易이고 낙천은 자이며,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시호는 문文이다.
  55. 55)배휴裴休(797~870) : 당나라 때 불교 거사. 자는 공미公美이다. 규봉 종밀圭峰宗密을 비롯한 승려들과 활발하게 교유하였으며, 규봉 종밀의 저술에 많은 서문을 지었다.
  56. 56)장천각張天覺(1043~1121) : 송나라 때 불교 거사. 이름은 상영商英, 법호는 무진거사無盡居士이며, 천각은 자이다. 19세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도솔 종열兜率從悅의 제자로 「護法論」 을 지어 불교를 변호하였다.
  57. 57)구양수歐陽脩(1007~1072) : 송나라 때 문인. 자는 영숙永叔이고 호는 취옹醉翁ㆍ육일거사六一居士이다. 당나라 때의 화려한 시풍에 반대하여 새로운 시풍을 열고 시詩와 문文 양 방면에 걸쳐 송나라 문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58. 58)태전太顚(732~824) : 당나라 때 승려. 법명은 보통寶通이다. 석두 희천石頭希遷의 법을 이어받아 조주에서 머물렀으며, 그곳으로 유배된 한유와 교유하였다.
  59. 59)한유가 조주로~길을 얻었다 : 한유가 조주로 좌천된 이후 태전 선사에게 불법의 핵심(省要處)을 물었는데, 태전 선사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이때 태전 선사의 시자였던 삼평三平이 선상을 세 번 두드리자 태전이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이에 삼평이 “먼저 정定으로 움직인 이후에 지혜로 뽑아냅니다.(先以定動。後以智拔。)”라고 답하였다. 이를 보던 한유가 태전에게 “제가 도리어 시자에게서 들어갈 곳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한 뒤 삼평에게 세 번 절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祖庭事苑』 권4(X64, 365c).
  60. 60)『書經』 「大禹謨」 에 나오는 말로서, 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말을 조심해야 함을 경계한 것이다.
  61. 61)상투 속의 구슬 : 상투 속에 넣어 지니는 귀한 구슬이라는 뜻으로, 교학적으로는 으뜸가는 가르침, 궁극의 진리를 비유한다.
  62. 62)하도河圖와 낙서洛書 : ‘하도’는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그림이고, ‘낙서’는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이다. 복희씨는 하도를 본떠 팔괘八卦를 그렸고, 우임금은 낙서를 보고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고 하여 『周易』과 홍범구주의 근원으로 비정하였다.
  63. 63)남섬부주南贍部洲 : 염부제閻浮提, 남염부제南閻浮提, 남염부주南閻浮洲, 염부閻浮, 염부주閻浮洲, 첨부瞻部라고도 한다. 불교의 우주론에서 수미산須彌山의 남쪽에 있는 땅으로서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염부나무가 많아서 이렇게 부른다. 오직 이곳에만 부처가 출현한다고 하며, 인간세계 또는 현세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64. 64)도솔천궁兜率天宮 : 도솔천의 내원內院에 있는 내원궁內院宮을 가리킨다. 도솔천은 ⓢ Tusita의 음역으로, 이곳에 사는 무리들은 다섯 가지 욕망을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의역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고, 그 산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욕계欲界의 여섯 하늘 가운데 네 번째 하늘인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내원과 외원外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원은 수많은 하늘 무리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다음에 부처로 태어날 보살의 정토로서 내원궁이라고 부른다. 이 내원궁은 석가모니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를 기다리며 머물렀던 곳이며, 지금은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이곳에 머물러 설법하면서 남섬부주에 내려와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65. 65)14년 : 중국 불교에는 부처가 태어난 해에 대해 다양한 설이 있는데, 주나라 소왕 때일 경우에는 모두 24년 갑인년이라 하였기 때문에 14년은 24년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앞의 13년 또한 23년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66. 66)지금의 임금인 소왕이 다스리는 때를 말한다.
  67. 67)병든 사람 : 원문은 ‘病’이지만 글의 흐름으로 볼 때 ‘병든 사람’으로 보는 것이 옳다.
  68. 68)큰 경전 : 원문 ‘大經’은 일반적으로 『華嚴經』을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불교 경전을 총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69. 69)『莊子』 「在宥」 에 “내가 너를 위해 큰 밝음의 위에 다다라 저 지극한 양의 근원에 이르렀다.(我爲女遂於大明之上矣。至彼至陽之原也。)”라는 구절이 있는데, 큰 밝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주석에 따라 차이가 있다.
  70. 70)생수生數 : 오행五行을 낳는 수로서 물(水)은 1, 불(火)은 2, 나무(木)는 3, 쇠(金)는 4, 흙(土)은 5이다.
  71. 71)성수成數 : 오행을 이루는 수로서 물은 6, 불은 7, 나무는 8, 쇠는 9, 흙은 10이다.
  72. 72)『周易』 「說卦」 .
  73. 73)음장陰藏 : 태 안을 말한다.
  74. 74)칠요七曜 : 일곱 가지 빛나는 것이라는 뜻으로서, 하늘에서 빛나는 해와 달과 금성, 목성, 수성, 화성, 토성의 다섯 별을 가리킨다.
  75. 75)스물여덟 개의 별자리 : 이십팔수二十八宿. 동아시아 고대 천문학에서는 하늘을 동서남북 네 방위로 나누고 각 방위마다 일곱 개의 별자리를 배당하였는데, 이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
  76. 76)『蒙山和尙六度普說』.
  77. 77)부처님(當陽) : 원문 ‘當陽’은 ‘북쪽에서 해가 있는 남쪽을 보고 있다.’라는 뜻으로, 제왕이나 부처를 가리킨다.
  78. 78)여러 가지 수행의 모습을 보였다는 뜻으로 보인다.
  79. 79)『禪宗頌古聯珠通集』.
  80. 80)스물한 살(三七㱓) : 원문의 ‘㱓’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나, 글의 흐름으로 보아 ‘해’나 ‘나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81. 81)사상四象 : 『周易』에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음과 양이 서로 결합하는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설명한 것으로서 태음太陰, 태양太陽, 소음少陰, 소양少陽을 말한다.
  82. 82)팔괘八卦 : 사상四象에 음과 양을 한 번씩 더 결합하여 이루어진 여덟 가지 경우의 수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건乾, 곤坤, 감坎, 이離, 간艮, 손巽, 진震, 태兌를 말한다. 이 팔괘는 구체적인 자연현상에 적용되어 건괘는 하늘, 곤괘는 땅, 감괘는 물, 이괘는 불, 간괘는 산, 손괘는 바람, 진괘는 벼락, 태괘는 연못을 가리키기도 하고, 방위에 적용되어 건괘는 서북쪽, 곤괘는 서남쪽, 감괘는 북쪽, 이괘는 남쪽, 간괘는 동북쪽, 손괘는 동남쪽, 진괘는 동쪽, 태괘는 서쪽을 가리키기도 한다.
  83. 83)스물넷의 기氣 : 이십사절기를 말한다.
  84. 84)하백河伯 : 『莊子』에 나오는 황하의 신을 말한다.
  85. 85)『孟子』 「公孫丑 下」 .
  86. 86)천사天使 : 황제의 사신을 말한다.
  87. 87)오악五岳 : 고대 중국에서 명산으로 꼽던 다섯 산을 말한다. 전승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동악 태산泰山, 남악 형산衡山, 서악 화산華山, 북악 항산恒山, 중악 숭산嵩山을 꼽는다.
  88. 88)아흔 명 : 전체 내용으로 볼 때는 690명이어야 하는데 글자가 빠진 듯하다.
  89. 89)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돌듯이 황제에게 충성하는 한결같은 마음을 알아 달라는 뜻으로 보인다.
  90. 90)금구金口 : 금빛 나는 입이라는 뜻으로서 부처의 입을 가리킨다.
  91. 91)신광神光 : 선종의 제2조인 혜가慧可를 가리킨다. 본래 법명이 신광이었으나 달마대사를 만나 가르침을 들은 뒤 혜가로 바꾸었다.
  92. 92)이 명단은 목판 판각에 관여한 승려들의 명단으로 보인다.
  1. 1){底}嘉靖十六年刊本(東國大學校所藏) {甲}萬曆壬午龍仁地瑞鳳寺刊本(高麗大學校所藏)。
  2. 2)「然」磨滅{甲}。
  3. 1)「間」作「問」{甲}。
  4. 2)「攴」當作「支」{編}。
  5. 1)「㕛」疑「爻」{編}。
  6. 2)「苐」通用「第」{編}。
  7. 1)「太」作「大」{甲}。
  8. 1)「三」作「五」{甲}。
  9. 1)「身爲」以下至卷上末。甲本缺落。
  10. 2)「拆」疑「折」{編}。
  11. 3)「㧕」疑「抑」{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