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교결(禪敎訣) / 禪敎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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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결禪敎訣
선교결禪敎訣1)
청허 휴정淸虛休靜 지음
이인혜 (역)
요즈음 선禪을 하는 사람은 “이것이 우리 부처님 법이다”하고, 교敎를 하는 사람은 “이것이 우리 부처님 법이다”라고 한다. 하나의 법에 대해 같은 것은 같다고 하고 다른 것은 다르다 해야 하는데 손가락(指)이니 말(馬)2)이니 서로 다투고 있다. 아아, 그 누가 판단할 것인가.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며,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교는 말 있는 데서 출발하여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며, 선은 말 없는 데서 출발하여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다. 말 없는 곳에서 말 없는 곳에 이르면 누구도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어 억지로 ‘마음(心)’이라 부른다. 세상 사람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배워서 알고 사유해서 터득한다”3)라고 하니 참으로 가엾은 일이다. “교 안에도 선이 있다”는 교학자의 말은, 그것이 성문승聲聞乘도 아니요, 연각승緣覺乘도 아니요, 보살승菩薩乘4)도 아닌 데서 나왔고, 또한 불승佛乘5)도 아닌 데서 나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선가禪家의 문에 들어가는 첫 글귀이지 선의 근본 뜻은 아니다.

세존께서 일생에 펼치신 가르침은 마치 세 가지 자비의 그물을 삼계三界의 생사生死 바다에 펴신 것과 같다. 작은 그물로는 새우와 조개를 건지고인천人天을 교화하는 소승교小乘敎와 같다, 중간 그물로는 방어와 송어를 건지며연각緣覺을 교화하는 중승교中乘敎와 같다, 큰 그물로는 고래와 자라를 건져서대승 원돈교圓頓敎와 같다 그 모두를 열반의 언덕에 두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교의 차례이다. 그 가운데 하나의 그 무엇(一物)6)이 있어서 목덜미에 난 긴 털은 붉게 타는 불꽃 같고, 발톱은 쇠로 만든 창 같으며, 눈에서는 햇빛을 쏘아내고, 입에서는 바람과 우뢰를 토해내며, 몸을 한번 뒤치면 흰 물결이 하늘에 닿고 산과 강은 진동하며 해와 달이 어두워진다. 세 가지 그물 밖으로 뛰어나가 바로 푸른 구름 끝에 올라서 감로甘露를 쏟아 중생을 이롭게 한다.조사 문하에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기틀이 바로 이렇다7) 이것이 선이

007_0657_b_01L[禪敎訣]

007_0657_b_02L1)禪敎2)

007_0657_b_03L

007_0657_b_04L3)淸虛休靜撰

007_0657_b_05L
今禪者曰此吾師之法也今敎者曰
007_0657_b_06L此吾師之法也一法上同於同異於異
007_0657_b_07L而指馬交4)嗚呼其孰能訣之然禪
007_0657_b_08L是佛心敎是佛語也敎也者自有言
007_0657_b_09L至於無言者也禪也者自無言至於
007_0657_b_10L無言者也自無言至於無言則人莫
007_0657_b_11L得而名焉强名曰心世人不知其由
007_0657_b_12L謂學而知思而得是可愍也敎者曰
007_0657_b_13L敎中亦有禪也云者出於非聲聞乘
007_0657_b_14L緣覺乘非菩薩乘亦非佛乘之語也
007_0657_b_15L然此禪家入門之初句非禪旨也

007_0657_b_16L
世尊一代所說之敎也譬如將三種慈
007_0657_b_17L5)悲網張三界生死之海以小網摝蝦
007_0657_b_18L如人天
小乘敎
以中網摝魴鱒如緣覺6)
中乘敎
以大
007_0657_b_19L網摝鯨鰲如大乘
圓頓敎
俱置於涅7)槃之岸焉
007_0657_b_20L此敎之序也其中有一物鬣如朱火
007_0657_b_21L瓜如鐵戟眼射日光口吐風雷者
007_0657_b_22L身一轉白浪滔天山河震動日月晦
007_0657_b_23L超出乎三網之外直上乎靑雲之端
007_0657_b_24L注甘露而益羣生焉正如祖門敎
外別傳之機
此禪之

007_0657_c_01L교와 다른 점이다. 이 선법禪法은 우리 세존께서 진귀조사眞歸祖師8)에게서 따로 전해 받은 것이지 옛 부처9)의 묵은 말이 아니다. 요즈음 선의 뜻을 그릇되게 이어받은 사람들은 돈점頓漸의 문을 정통(正脈)이라 여기는가 하면, 혹은 원돈圓頓의 교를 종승宗乘으로 삼는다. 외도外道의 학설을 끌어와 비밀한 뜻을 설명하는가 하면, 혹은 업식業識10)에 놀아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다. 혹은 그림자를 자기라고 오인하며, 나아가서는 맹목적으로 방할棒喝11)을 함부로 쓰면서도 부끄러움이 없으니, 이는 진실로 어떤 심보란 말인가? 법을 비방하는 그들의 허물을 내가 어찌 말하겠는가? 내가 말하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는 것은 배워서 알고 사유해서 터득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마음을 끝까지 추적하여 그 길이 끊어진12)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고, 스스로 머리를 끄덕여 본 뒤에야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석가모니께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가섭이 파안미소破顔微笑13)하였고, 그것이 다시 입으로 후세에 전한 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달마達摩의 ‘확연무성廓然無聖’14),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선악불사善惡不思’15), 남악 회양南岳懷讓의 ‘거체편우車滯鞭牛’16), 청원 행사靑原行思의 ‘여릉미가廬陵米價’17), 마조 도일馬祖道一의 ‘흡진서강吸盡西江’ 18), 석두 희천石頭希遷의 ‘불회불법不會佛法’19), 운문 문언雲門文偃의 ‘호병胡餠’20),

007_0657_c_01L別於敎者也此禪之法吾佛世尊
007_0657_c_02L別傳乎眞歸祖師者也非古佛之陳言
007_0657_c_03L今錯承禪旨者或以頓漸之門
007_0657_c_04L正脉或以圓頓之敎作宗乘或引
007_0657_c_05L外道書說密旨或以弄業識爲本分
007_0657_c_06L或以認光影爲自已者至於恣行盲8)
007_0657_c_07L9)捧喝無慙無愧者是誠何心哉其謗
007_0657_c_08L法之愆余何敢言吾所謂敎外別傳者
007_0657_c_09L非學而知思而得者也須窮心路絕然
007_0657_c_10L始可知也須經自肯點頭然後
007_0657_c_11L可得也師不聞乎自釋尊拈花示衆迦
007_0657_c_12L葉破顔微笑乃至出於口而傳之於後
007_0657_c_13L10)摩廓然無聖六祖善惡不思
007_0657_c_14L師車滯鞭牛思師11)廬陵12)朱價馬祖吸
007_0657_c_15L盡西江石頭不會佛法至於雲門胡餠
007_0657_c_16L{底}崇禎十五年全羅道海南地崑崙山大興寺開
007_0657_c_17L刊本(國立圖書館所藏禪敎釋合綴本) {甲}崇禎
007_0657_c_18L三年京畿道朔寧地龍腹寺刊淸虛集七卷本
007_0657_c_19L四所載之本文(東國大學校所藏) {乙}康熙五年
007_0657_c_20L桐裡山泰安寺開板淸虛集二卷本(卷下)所載之
007_0657_c_21L本文(東國大學校所藏) {丙}刊年未詳妙香藏板
007_0657_c_22L淸虛集四卷本卷四所載之本文(東國大學校所
007_0657_c_23L藏)
「訣」下有「示惟政大師」{甲}{乙}{丙}撰者
007_0657_c_24L依淸虛碑銘補入{編}
「爭」作「諍」{甲}{乙}{丙}
007_0657_c_25L「悲」下有「之」{甲}{乙}{丙}「乘」無有{甲}{乙}{丙}
007_0657_c_26L「槃」作「盤」{乙}
「聾」作「䏊」{甲}{丙}「捧」作
007_0657_c_27L「棒」{甲}{乙}{丙}
「摩」作「磨」{甲}{乙}{丙}「廬」作
007_0657_c_28L「盧」{丙}
「朱」作「米」{甲}{乙}{丙}

007_0658_a_01L조주 종심趙州從諗의 ‘끽다喫茶’21), 투자 대동投子大同의 ‘고유沽油’22), 현사 사비玄沙師備의 ‘백지白紙’23), 설봉 의존雪峰義存의 ‘곤구輥毬’24), 화산 무은禾山無殷의 ‘타고打鼓’25), 신산 승밀神山僧密의 ‘고라敲羅’26), 도오 원지道吾圓智의 ‘작무作舞’27) 등이다. 이 모두가 과거 부처님과 조사들이 함께 부른 교외별전의 곡이다.28) 생각해서 얻을 수 있겠는가, 말로써 얻을 수 있겠는가. 이는 모기가 무쇠로 만든 소의 등을 물어뜯는 격이라 할 것이다.29) 지금 같은 말세에는 대부분 무딘 근기라, 교외별전의 기틀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만 이치의 길(理路)과 뜻의 길(義路)과 마음의 길(心路)과 말의 길(語路)에서, 보고 듣고 믿고 이해하는 원돈문圓頓門만을 중시하는 자들이다.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길이 끊어지고, 말의 길이 끊어져30), 아무 맛도 없고 더듬어 볼 수도 없는 경지에서 칠통漆桶31)을 깨뜨리는 경절문徑截文32)은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쩌면 좋겠는가.
지금 그대가 팔방八方의 납자衲子들에게 요긴한 곳에 칼을 대서 구멍을 뚫어주지 못하겠거든 단도직입으로 본분本分인 경절문徑截門의 활구活句로 그들을 가르쳐 스스로 깨닫고 얻게 해야 비로소 학인들에게 모범된 종사宗師가 될 것이다. 만일 학인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자기도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설법해 준다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33) 종사宗師가 되어서 이 법을 어기면 설법할 때 하늘 꽃이 억수로 떨어지더라도 모두가 바깥으로 치닫는 미치광이일 뿐이다. 그러나 학인의 처지라도 이 법을 믿으면 금생에 투철하게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목숨이 마칠 때 악업에 끌려가지 않고 깨달음을 향해 가는 바른 길로 곧장 들어가게 될 것이다.그 옛날 마조馬祖가 한 번 내지른 할喝에 백장百丈은 귀가 먹었고, 황벽黃檗은 혀를 뺐으니34), 이것이 임제종臨濟宗의 연원淵源이다. 그대는 분명히 정맥正脈을 가려내어 종지를 보는 눈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말을 길게 늘어놓았으니 훗날 노승의 뜻을 저버리지 말라. 만일 이 노승을 저버리면 반드시 부처님과 조사들의 깊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되리니 자세히 살피고 살펴라.

 숭정崇禎 15년(1642) 임오壬午 중춘일仲春日 전라도全羅道

007_0658_a_01L趙州喫茶投子沽油玄沙白紙雪峯
007_0658_a_02L輥毬禾山打皷神山敲羅道吾作舞
007_0658_a_03L斯等皆先佛先祖同唱敎外別傳之曲也
007_0658_a_04L思量得麽擬議得麽可謂蚊子之上鐵
007_0658_a_05L牛也今當末世多是劣機非別傳之
007_0658_a_06L機也故只貴圓頓門以理路義路心路
007_0658_a_07L語路生見聞信解者也不貴徑截門
007_0658_a_08L沒理路沒義路沒心路沒語路沒滋味無
007_0658_a_09L摸𢱢上打破漆桶者也然則如之何
007_0658_a_10L而可也今師對八方衲子之軰下刃要
007_0658_a_11L不得穿鑿直以本分徑截門活句
007_0658_a_12L敎伊自悟自得方是宗師爲人體裁也
007_0658_a_13L若見學人不薦便與1)柂泥說敎瞎人
007_0658_a_14L眼不少若宗師違此法則雖說法
007_0658_a_15L花亂墜 2)緫是癡狂外邊走也若學人
007_0658_a_16L信此法則雖今生未得徹悟臨命終時
007_0658_a_17L不被惡業所牽直入菩提正路也昔馬
007_0658_a_18L祖一喝也百丈耳聾黃蘗吐舌此臨濟
007_0658_a_19L宗之淵源也師必擇正脉宗眼分明
007_0658_a_20L故如許縷縷後日莫辜負老僧也若辜
007_0658_a_21L負老僧則必辜負佛祖之深恩也詳悉
007_0658_a_22L詳悉

007_0658_a_23L
007_0658_a_24L
3)崇禎十五年歲次壬午仲春日全羅道海

007_0658_b_01L해남海南地 두륜산(崑崙山) 대흥사大興寺에서 간행하다.
 공양주와 연판鍊板은 비구 승찬勝粲이고, 공양시주는 다음과 같다.
 박숭조朴崇祖 부부, 이개복李介卜 부부, 김국세金㕵世 부부, 조애운曺愛云 부부, 조춘실曺春失 부부, 말비末非, 김아평金我平, 옥금玉今, 차씨車氏, 누화樓花, 박갑생朴甲生 부부, 박봉朴奉 부부, 박계성朴繼成 부부, 신난수申難水 부부, 박용일朴龍日 부부, 점덕點德, 숙덕宿德, 대비代非, 하원수河元水 부부, 한언희韓彦希 부부, 김주봉金主奉 부부, 김선급金先及 부부, 한춘립韓春立 부부, 박용남朴龍男 부부 보체保體.

007_0658_b_01L南地崑崙山大興寺開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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供養主鍊板兼比丘勝粲供養施主朴崇
007_0658_b_03L祖兩主供養施主李介卜兩主金㕵世兩
007_0658_b_04L曺愛云兩主曺春失兩主末非保體
007_0658_b_05L金我平玉今保體車氏保體樓花保體
007_0658_b_06L朴甲生兩主朴奉兩主朴繼成兩主
007_0658_b_07L難水兩主朴龍日兩主點德保體宿德
007_0658_b_08L保體代非保體河元水兩主韓彦希兩
007_0658_b_09L金主奉兩主金先及兩主韓春立兩
007_0658_b_10L朴龍男兩主

007_0658_b_11L「柂」作「拖」{甲}{乙}{丙}「總」作「総」{甲}{乙}ㆍ作
007_0658_b_12L「總」{丙}
甲本刊記如下「崇禎三年庚午春王
007_0658_b_13L月日小弟子葆眞雙仡等謹持先師所撰七篇
007_0658_b_14L刊行于今傳於後世仍祝聖壽萬歲億兆咸樂
007_0658_b_15L佛日增輝法輪常轉(施主秩省略見淸虛集四
007_0658_b_16L卷末)」

007_0658_b_17L乙本刊記如下「康熙五年丙午仲夏日 桐裡山
007_0658_b_18L泰安寺開板(施主秩省略)
  1. 1)다른 본에는 이 글을 유정 대사惟政大師에게 준 것(示惟政大師)으로 되어 있다.
  2. 2)지마指馬 : 『莊子』「齊物論」에 나오는 비유이다. 시비, 장단, 대소 등의 대립적 현상은 상대성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을 뿐 독립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철저한 상대주의를 말한다. 여기에서는 선가와 교가가 서로 시비, 차별이 없는 하나의 불법에 대하여 불필요한 쟁론을 벌이고 있음을 말한다.
  3. 3)‘교는 말~터득한다’ 부분은 『禪門寶藏錄』 권1에서 인용한 것이다. 『선문보장록』에는 본문의 ‘禪也者’가 ‘心也者’이고 ‘强名曰心’이 ‘强名曰禪’으로 되어 있다.
  4. 4)승乘은 탈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한다. 성문승聲聞乘은 사제四諦의 법문으로 수행자를 이끄는 것이고, 연각승緣覺乘은 연기법緣起法의 이치를 설하는 것이며, 보살승菩薩乘은 바라밀로 대표되는 대승의 보살 수행법으로 수행자를 인도하는 것이다.
  5. 5)불승佛乘. 일승一乘 혹은 일불승一佛乘이라고도 한다. 즉 삼승三乘과 같은 방편법方便法이 아니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도리를 그대로 밝힌 단 하나의 최고最高 구경究竟의 불법이라는 말로, 보통 교학에서의 화엄華嚴과 천태天台의 교설을 지칭한다. 불승佛乘이라고도 한다.
  6. 6)하나의 그 무엇(一物) : 휴정의 『선가귀감』은 ‘하나의 그 무엇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본래부터 밝디밝으며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우나 생긴 적도 없고 사라진 적도 없으며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을 그려 나타낼 수도 없다.(有一物於此 從本以來 昭昭靈靈 不曾生不曾滅 名不得狀不得)’로 시작한다. ‘일물一物’은 그 무엇이라고도 결정지어 말할 수 없음이다. ‘物’을 ‘물건’이라 번역하는 것은 본래의 뜻에 적절하지 않다. 『六祖法寶壇經諺解』에 ‘ 것도 업거니’라고 ‘物’을 ‘것’이라 한 번역에 따라, 어떤 정해진 모습도 가지지 않고 모든 규정의 틀로부터 빠져나가는 ‘하나의 그 무엇’으로 옮겼다. 어떤 이름이나 개념과도 친근하지 않지만 동시에 가능한 모든 명칭이 붙어도 무방하다. 마음이나 부처나 중생을 비롯한 어떤 이름도 허용하지만 그중 어느 것에 확고한 보금자리를 틀고 이해하려 한다면 벌써 ‘하나의 그 무엇’은 아니다. 이 말은 ‘보리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에도 받침대가 없다. 본래 하나의 그 무엇도 없거늘, 어디서 티끌과 얼룩이 생기겠는가(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는 6조 혜능의 게송에서 유래한다. 『金剛經五家解說誼』에서는 “미혹한 것도 아니요 깨달은 것도 아니니 범부나 성인으로 일컬을 수도 없고, 나도 없고 남도 없으니 자신이나 타인이라 칭할 수도 없으므로 다만 ‘하나의 그 무엇’이라 한다. 6조 혜능이 ‘하나의 그 무엇이 있다.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부를 이름도 없고 쓸 글자도 없다. 위로는 하늘을 지탱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치며, 밝기는 태양과 같고 어둡기는 칠흑과 같다. 항상 움직이며 작용하는 속에 있으나 움직이고 작용하는 속에서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라고 한 말이 바로 이 뜻이다. 비록 이러하지만 ‘하나의 그 무엇’이라는 말 또한 억지로 붙인 말일 뿐이다. 그러므로 남악 회양화상이 ‘하나의 그 무엇이라 말하여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하나의 그 무엇이 여기에 있다’라고 한 말은 현재의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맑고 고요하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7. 7)일물一物을 용龍에 비유하고, 몸을 한 번 뒤집은 이후의 작용은 용이 승천하여 비를 내리는 과정으로 나타내었다.
  8. 8)진귀조사眞歸祖師: 부처님에게 교외별전의 조사선을 전했다고 하는 전설의 조사이다. 이설은 우리나라에만 전한다. 고려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1206~1277?)의 『禪門寶藏錄』에 최초로 보이는데, 여기에서는 『達磨密錄』에서 인용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달마밀록』은 달마에게 가탁한 위서僞書로서 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 여부도 의심스럽다.
  9. 9)고불古佛 : 과거불. 과거세에 성도한 부처를 말한다. 통상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 칠불을 일컫는데 여기서는 역사 속 석가모니를 일컫는 것 같다.
  10. 10)업식業識 : 作業相(梵 karmajātilakṣaṇa), 業相識이라고도 한다. 근본 무명의 미혹으로 본심本心이 움직이는 것으로 이는 유정有情의 윤회하는 근본식根本識을 가리킨다. 『大乘起信論』에서는 의意의 다섯가지 이름 중 하나로 말하였다. ‘업식이라 이름하는 것은 무명의 힘에 의해 불각심不覺心 움직이기 때문이다(一者、名爲業識,謂無明力不覺心動故)’
  11. 11)맹롱방할盲聾棒喝 : 아무 맥락도 모르는 채 방棒을 휘두르거나 할喝을 내지르는 것을 장님과 귀머거리의 행동에 비유한 말이다. 종사들이 쓰는 방과 할은 근본적인 도리로 이끌기 위하여 상대의 조건과 상황에 적절하게 발휘하는 수단인데, 이를 흉내만 내어 진정한 안목 없이 휘두르고 내지르는 것을 말한다.
  12. 12)궁심로절窮心路絕 : 빈틈없이 궁구하다가 사고와 논리로 따져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는 심경을 두고 ‘마음의 길이 끊어진 경계’ 또는 ‘전혀 맛을 느낄 수 없는 경계(沒滋味處)’ 또는 ‘마음이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경계(心無所之) 등이라 하며, 이는 공부가 극치에 이르러 화두의 숨은 본질이 실현된 상태를 나타낸다.
  13. 13)파안미소破顔微笑 :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등의 취지를 대표하는 이야기이다. “부처님께서 영취산의 법화 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대중이 모두 말이 없었으나 오직 가섭만이 파안미소를 지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을 간직한 눈, 열반의 현묘한 마음, 형상을 벗어난 진실한 상, 미묘한 법문 등이 있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교 밖에 별도로 전하니, 그것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聯燈會要』 권1)”
  14. 14)확연무성廓然無聖: ‘확연廓然’이란 드넓게 트여 한 점도 걸릴 장애가 없고 모든 대립과 상대적인 짝이 사라진 대오의 경계를 형용하는 말이다. ‘무성無聖’이란 그러한 경계에는 성스러운 것도 없다는 뜻이다. 최고의 진리는 일체의 분별을 넘어서므로 성聖과 속俗 또는 성聖과 범凡의 차별도 없는 도리를 나타낸다. “양무제가 ‘성스러운 진리의 근본적인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달마가 ‘드넓게 트였으니 성스러운 것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경덕전등록』 권3)
  15. 15)선악불사善惡不思: 본래의 온전한 구절은 ‘不思善不思惡’이다. 혜능이 행자의 신분으로 5조 홍인으로부터 6조로 인가를 받아 조사의 징표인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대유령을 넘어가다가 그것을 빼앗으려고 좇아오던 도명에게 주었던 화두이다. 의발을 빼앗으려 했던 애초의 악한 마음과 그 뒤에 법을 구하겠다고 한 선한 마음을 소재로 삼아 그 현장에 가장 적절한 화두로 도명을 이끈 것이다. “(마음을 바꿔 법을 받으려는 마음을) 선하다고도 생각하지 말고, (의발을 뺏으려던 이전의 마음을) 악하다고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이럴 때 어떤 것이 명상좌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여기에서 ‘본래면목’이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되어 이 공안이 후대에 활용될 때는 본래면목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제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6. 16)거체편우車滯鞭牛: 남악마전南嶽磨磚으로 잘 알려진 화두이다. 남악 회양이 마조 도일의 편벽된 좌선 수행을 깨우쳐 주기 위한 수단으로 벽돌을 갈았던 이야기에서 비롯하였다. “당나라 때 회양 선사가 남악 혜사의 옛터에서 암자를 짓고 있었다. 마조 도일이 그 옆에서 오랫동안 좌선을 하고 있었고, 회양은 이따금 벽돌을 갈고 쪼았다. 마조가 회양에게 물었다. ‘벽돌을 갈아 무엇에 쓰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 ‘벽돌을 갈아 어떻게 거울을 만든단 말입니까?’ ‘ 벽돌로 거울을 만들 수 없을진대 좌선하여 어떻게 도를 이룰 수 있단 말인가?’ 마조가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그렇다면 필경에는 어떻게 해야 옳은 것입니까?’ ‘예컨대 수레를 타고 있는 자가 있다고 하자.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수레를 채찍질해야 옳겠는가, 소를 채찍질해야 옳겠는가?’ 마조는 이 말에 확연히 깨우쳤다.”(『南嶽總勝集』 권중 「福嚴禪寺」)
  17. 17)여릉미가廬陵米價: 여릉은 중국의 여릉현으로 지금의 강서성인데 좋은 쌀의 산지로 유명하다. 청원행사가 불법의 대의를 묻는 학인에게 일상과 직접 관련된 쌀값을 묻는 말로써 대답하였다. 크다 작다, 많다 적다, 싸다 비싸다 등의 구분과 분별을 제거하도록 던져준 화두이다. “‘불법의 근본적인 뜻은 어떤 것입니까?’ ‘여릉 지방의 쌀값이 얼마인가?’”
  18. 18)흡진서강吸盡西江: 마조 도일과 방 거사 사이에 있었던 문답을 소재로 한 공안이다. “방 거사가 후에 강서로 가서 마조 대사를 만나 참문하였다.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 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한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마시면 말해 주겠다’ 방거사가 이 말을 듣자마자 그 깊은 뜻을 알아차렸다.”(『馬祖廣錄』)
  19. 19)불회불법不會佛法: “어떤 학인이 석두에게 물었다.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노주에게 물어보라.’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도 또한 모른다.’”(『聯燈會要』)
  20. 20)호병胡餠: “어떤 학인이 운문에게 물었다. ‘부처와 조사를 초월한 말이란 어떤 것입니까?’≺(입이) 열렸구나. 가뭄에 천둥 치는 듯한 소식이다. 쥐어틀어라!≻ 운문은 ‘호떡(胡餠)!’이라고 답하였다.≺혀를 입천장에 붙여라! 잘못이다.≻”(『碧巖錄』 77칙 「本則」)
  21. 21)끽다喫茶: 혹은 끽다거喫茶去라고도 한다. “조주 종심선사가 처음 찾아온 이에게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으니 그가 ‘와 본 일이 있습니다’라 답했고, 조주는 ‘차나 마시게’라고 하였다. 같은 질문을 다른 스님에게 하자 ‘와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조주는 이번에도 역시 ‘차나 마시게’라고 하였다. 후에 원주가 물었다. ‘어째서 와 보았다고 해도 차나 마시라 하시고, 와 보지 않았다고 해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 조주가 ‘원주!’하고 부르자 원주가 ‘예’라고 대답하니 ‘자네도 차나 마시게’라고 하였다.”(『五燈會元』 권4 「趙州從諗章」)
  22. 22)고유沽油: 투자 대동과 조주 종심 사이의 문답에서 유래한 화두이다. “대동이 투자산에 머물며 띠풀을 엮어 만든 초옥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조주 종심이 동성현에 이르렀는데 투자도 산을 내려 왔다가 도중에 서로 마주쳤으나 아직 면식은 없는 상태였다. 조주가 속인에게 나지막이 물어보고는 그가 투자임을 알고는 이에 몸을 돌려 물었다. ‘투자산의 주인이 아닌가?’ ‘한 푼 주시오.’ 조주가 먼저 암자에 도착하여 앉아 있는데 투자가 뒤따라 기름병 하나를 들고 암자로 돌아왔다. 조주가 물었다. ‘오래전부터 투자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는데, 와서 보니 한낱 기름 파는 늙은이로고.’ ‘그대는 단지 기름 파는 늙은이만을 보았을 뿐 투자는 알지 못하는구려.’ ‘어떤 것이 투자인가?’ ‘기름 사려! 기름 사려!’”(『경덕전등록』 권15 「投子大同傳」)
  23. 23)백지白紙: “현사가 학인을 시켜 설봉에게 편지를 올리게 했다. 설봉이 받아 뜯어보니 단지 석 장의 백지가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편지를 들어 보이며 학인에게 물었다. ‘알겠느냐?’ 그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설봉이 말했다. ‘군자는 천 리의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뜻을 같이 나눈다는 말을 모르느냐!’ 학인이 이 일을 현사에게 전하자 현사가 말했다. ‘산두(설봉) 노화상이 모르고 지나쳤다는 것도 모르는구나.’ ‘스님의 높은 뜻은 무엇입니까?’ ‘초봄에는 여전히 춥다는 것도 모르느냐!’”(『玄沙廣錄』 권하)
  24. 24)곤구輥毬: “법좌에 올라 말하였다. ‘대지 전체가 하나의 해탈문이거늘 손을 잡고 끌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구나.’ 이때 한 학인이 나와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제가 그러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또 다른 학인이 말하였다. ‘들어가서 무엇 하시렵니까?’ 설봉이 바로 때렸다. 현사가 말하였다. ‘제가 지금 제 역량을 남김없이 다 발휘해 버린다면 화상께서는 어떻게 말하시겠습니까?’ 이에 설봉은 세 개의 나무 공을 한꺼번에 던졌고, 현사는 패를 쪼개는 시늉을 해 보였다. 설봉이 말하였다. ‘그대는 영산회상에 직접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이와 같은 경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자기 자신의 일일 뿐입니다.’”(『五燈會元』 권7 「雪峯義存章」)
  25. 25)타고打鼓: ‘대오대철한 사람은 어떠합니까?’ ‘진제란 무엇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에 대해서는 여쭙지 않겠습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향상인이 찾아오면 어떻게 대하시겠습니까?’라는 네 차례의 물음에 대해 화산이 한결같이 ‘북을 두들길 줄 안다’라고 답한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26. 26)고라敲羅: 신산타라神山打羅(鑼)라고도 한다. “신산이 남전 문하에서 수좌로 있을 때 체질을 하고 있었다. 남전이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체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손으로 체질을 하는가, 발로 체질을 하는가?’ ‘화상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기억하라. 후에 눈 밝은 자가 종사를 만나거든 단지 이렇게만 들려 주거라.’(『경덕전등록』 권15)”
  27. 27)작무作舞: 도오홀무道吾笏舞 또는 도오무홀道吾舞笏이라고도 한다. 도오원지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한 학인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홀을 들고 춤어 추어보인 일화에서 비롯한 화두이다.
  28. 28)‘석존이’부터 여기 ‘교외별전의 곡이다’까지는 휴정의 『心法要抄』「敎外別傳曲」과 동일 내용이다.
  29. 29)어떤 분별로도 파고들어갈 여지가 없는 경계로 실현된 화두를 말한다.
  30. 30)이로理路는 도리로 이해하는 방법, 의로義路는 의미를 통해서 접근하는 방법, 심로心路는 마음으로 헤아리는 방법, 어로語路는 언어의 관념에 의존하여 이해하는 방법이다.
  31. 31)칠통漆桶: 시커먼 통 안에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이 사물의 이치를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이로․의로․심로․어로 등이 모두 틀어막혀 어떤 소식도 통하지 않고 모든 분별이 차단된 화두를 나타낸다.
  32. 32)경절문徑截門: ‘경절’은 무엇보다 빠른 지름길이라는 뜻으로 『碧巖錄』․『書狀』 등에 나오는 말이지만, 간화선과 직접 연결시켜 그 특징을 묘사하는 개념으로 사용한 선사는 보조 지눌이다. 그 뒤로 혜심慧諶으로부터 서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간화선사들이 주로 썼다. “경절문의 맛없는 말(화두)을 듣자마자 지적으로 분별하는 병통에 막히지 않고 곧바로 귀착점을 알게 되니, 이것을 일러 하나를 듣고 천 가지를 깨달아 대총지大摠持를 얻는 것이라 한다.”(纔聞徑截門無味之談, 不滯知解之病, 便知落處, 是謂一聞千悟, 得大摠持者也. 『看話決疑論』)
  33. 33)시종일관 어떤 맛도 없는 화두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며, 이 말 저 말 끌어들여 친절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다면 오히려 화두의 본질을 엄폐하고 마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34. 34)언어 이전의 소리인 할喝을 내지른 ‘입’과 그 할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칠통이 되어 버린 ‘귀’가 활구를 활구로 보존하는 두 가지 소통 기관인 셈이다. “백장이 드디어 마조를 다시 찾아가 법을 물은 인연에 대해 말했다. ‘마조께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불자를 꼿꼿이 세우기에 내가 「이것 그대로의 작용입니까? 이것을 떠난 작용입니까?(即此用? 離此用?)」라고 물었다. 마조께서 불자를 선상의 모서리에 걸쳐놓고 잠자코 있다가 내게 「너는 다음에 입술을 나불거리며 어떻게 남들을 가르치겠는가?(汝已後鼓兩片皮, 如何為人?)」라고 물었다. 내가 그 불자를 가져다 꼿꼿이 세우자 마조께서 「이것 그대로의 작용인가? 이것을 떠난 작용인가?(即此用? 離此用?)」라고 물었다. 내가 불자를 가져다가 선상의 모서리에 걸쳐놓자 마조께서 위엄 있게 할을 한 번(一喝) 내질렀는데 나는 당시에 삼일 동안 귀가 먹어 버렸다.(三日耳聾)’ 이 일화를 들은 황벽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혀를 내둘렀다.”(『碧巖錄』 11則 「評唱」)
  1. 1){底}崇禎十五年全羅道海南地崑崙山大興寺開刊本(國立圖書館所藏。禪敎釋合綴本) {甲}崇禎三年。京畿道朔寧地龍腹寺刊淸虛集七卷本。卷四所載之本文(東國大學校所藏) {乙}康熙五年桐裡山泰安寺開板淸虛集二卷本(卷下)所載之本文(東國大學校所藏) {丙}刊年未詳妙香藏板淸虛集四卷本。卷四所載之本文(東國大學校所藏)。
  2. 2)「訣」下有「示惟政大師」{甲}{乙}{丙}。
  3. 3)撰者名。依淸虛碑銘補入{編}。
  4. 4)「爭」作「諍」{甲}{乙}{丙}。
  5. 5)「悲」下有「之」{甲}{乙}{丙}。
  6. 6)「乘」無有{甲}{乙}{丙}。
  7. 7)「槃」作「盤」{乙}。
  8. 8)「聾」作「䏊」{甲}{丙}。
  9. 9)「捧」作「棒」{甲}{乙}{丙}。
  10. 10)「摩」作「磨」{甲}{乙}{丙}。
  11. 11)「廬」作「盧」{丙}。
  12. 12)「朱」作「米」{甲}{乙}{丙}。
  13. 1)「柂」作「拖」{甲}{乙}{丙}。
  14. 2)「總」作「総」{甲}{乙}ㆍ作「總」{丙}。
  15. 3)甲本刊記如下「崇禎三年庚午。春王月日。小弟子。葆眞。雙仡等。謹持先師所撰七篇刊行于今。傳於後世。仍祝聖壽萬歲。億兆咸樂佛日增輝。法輪常轉(施主秩省略。見淸虛集四卷末)」。
    乙本刊記如下「康熙五年丙午。仲夏。日 桐裡山泰安寺開板(施主秩省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