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삼로행적(三老行蹟) / 慶聖堂休翁行錄後跋

ABC_BJ_H0145_T_002

007_0758_a_06L
경성당慶聖堂 휴옹休翁의 행록行錄 뒤에 쓴 발문跋文

강서江西의 한 물줄기가 계림雞林에서 처음 흘러나온 뒤로 선정禪定의 물결이 신주神州에까지 유입流入된 것이 거의 1천여 년이나 되었다. 우리 동방의 경우는 바닷가 모서리에 외따로 처하여 천하에서 작은 나라에 속하기는 하지만, 현성賢聖의 도道가 성행하여 빛나는 점에 있어서는 중국에 비교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말하자면 고운孤雲이 말한 대로 군자君子가 살기에 합당한 지역이니, 법왕法王의 도를 숭봉하는 것도 마른 쑥에 불길이 번지고 낮은 곳으로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지원至元에서 지순至順에 이르는 연간에 고려 말의 태고 이웅太古利雄존자가 원元나라 호주湖州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방에 들어가서 심인心印을 전해 받고 돌아온 뒤에 환암 혼수幻庵混修에게 의발衣鉢을 전하였고, 혼수는 귀곡 각운龜谷覺雲에게 전하였으며, 각운은 등계 정심登階正心에게 전하였다. 정심은 명明나라에 들어가서 임제종의 설당 총통雪堂摠統 화상을 참알參謁하여 인가印可를 받고 돌아온 뒤에 벽송 지엄碧松智嚴에게 전하였고, 지엄은 부용 영관芙蓉靈觀에게 전하였으며, 영관은 청허 휴정淸虛休靜에게 전하였고, 휴정은 사명 유정四溟惟政에게 전하였다.
황명皇明 홍치洪治 연간에 선화자禪和子라는 분이 있었으니, 그는 영남嶺南 울산부蔚山府 사람으로서, 속성俗姓은 장씨張氏이고, 휘諱는 일선一禪이었다. 경성慶聖은 바로 그의 당호堂號이다. 그가 집을 나와서 도를 닦고 세상에 나와서 교화를 편 행적은 모두 행록行錄에 기록된 바와 같다. 그의 법맥法脈은 곧 벽송碧松의 제자인데, 이는 조계曹溪의 혜능慧能에게 영가 현각永嘉玄覺이 있었던 것과 같다.
그의 선풍仙風 도골道骨이 쇄락하고 탈속脫俗한 것은 선관禪關을 빌려서 얻은 것이 아니요, 바로 하늘에서 품부 받은 것이 그와 같았다. 그런데 더구나 정문頂門의 활안活眼을 활짝 뜨고서 선문禪門의 용상龍象으로 우뚝 서게 된 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당시에 선사의 이름을 듣거나 선사의 자태를 접한 사람들이 마치 용광로에서 양금良金이 제련되듯 신속히 범부凡夫에서 탈피하여

007_0758_a_06L

007_0758_a_07L1)慶聖堂休翁行錄後跋

007_0758_a_08L
自江西之一派濫觴于鷄林禪波定水
007_0758_a_09L流於神州者迨千有餘年若我東者
007_0758_a_10L僻處海隅迨天下褊小之邦然賢聖之道
007_0758_a_11L盛行而崇光者猶不愧於中國則如孤雲
007_0758_a_12L所謂宜君子之鄕傳法王之道若火炶燥
007_0758_a_13L𦫿水經卑原者也至元之至順之間有麗
007_0758_a_14L季太古利雄尊者入元之湖州霞霧山石
007_0758_a_15L屋淸珙之室得傳心印而還傳於幻庵混
007_0758_a_16L修傳於龜谷覺雲雲傳於登階正心
007_0758_a_17L入明謁臨濟下雪堂捴統和尙受印可而
007_0758_a_18L傳於碧松智嚴嚴傳於芙蓉靈觀
007_0758_a_19L傳於淸虛休靜靜傳於四溟惟政焉在皇
007_0758_a_20L明洪治之間有所謂禪和子焉則嶺南之
007_0758_a_21L蔚山府人俗姓張氏諱一禪慶聖即其堂
007_0758_a_22L號也至於出家行道出世演化之跡
007_0758_a_23L如其行錄所紀也而其嗣法則爲碧松之
007_0758_a_24L如曺溪之有永嘉者也其仙風道骨
007_0758_a_25L洒脫俗則非假禪關而得乃天禀若是
007_0758_a_26L況豁開頂門活眼挺然爲禪門龍象當時
007_0758_a_27L聞師之名見師之儀者其速轉凡如良金

007_0758_b_01L빛나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만이 아니라, 후세에 선사의 풍도를 듣는 자들도 마치 높이 솟은 태산泰山이나 화산華山을 대하듯 앙망仰望하게 되었으니, 우리 동방에서 수백 년 사이에 이처럼 신성神聖한 분은 있지 않았던 듯도 싶다.
삼한三韓의 납자衲子가 울산부蔚山府를 불국佛國으로 여기는 것은, 이곳이 바로 선사가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산의 사찰이 한 번 난리를 겪은 뒤로는 선사의 유적을 후세에 전할 수 있는 것까지도 전혀 없게 되었으므로 승려와 속인들이 모두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지난 을미년 봄에 묘향산妙香山에서 내려온 어떤 도인道人이 운흥사雲興寺에 와서 선사의 행장行狀과 진영眞影 소본小本을 소매 속에서 꺼내 보여주자, 사원의 대중이 모두 기뻐하고 경축하며 곧바로 덕원德元 노숙老宿에게 선사의 영당影堂을 세우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경열도인敬悅道人이 함께 환희하며 단청丹靑을 입힐 계획을 세우고, 또 선사의 진영眞影을 구하여 영당에 걸고는 바로 향화香火를 받들었다.
그 뒤 경신년 봄에 대덕大德 탄수坦修 영공令公이 운흥사에서 지팡이를 짚고 재를 넘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의 거처에 찾아와서 이상의 내용을 이야기한 뒤에 장차 경성당慶聖堂의 행록行錄을 발간하려 하니 발문跋文을 써 달라고 나에게 요청하였다. 내가 무릎을 꿇고 그 행장을 받아 보니, 벽송야로행장碧松野老行狀이 앞에 있었고, 야로野老가 지은 선게禪偈 수십 수가 권의 처음에 부기되어 있었으며, 청허대사가 신령스런 필체로 편찬한 것이 서사書寫되어 있었다. 이에 내가 재배再拜를 하고 탄수대덕에게 다음과 같이 고하였다.

벽송碧松과 경성慶聖이야말로 우리 동방의 신성神聖이시고, 청허淸虛 역시 근세近世의 선장禪匠이시다. 지금 대덕 덕분에 두 성인의 아름다운 행적을 얻어 보고는, 마치 두 성인의 가르침을 가까이에서 직접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세一世의 행운으로서 어떤 것이 이에 미칠 수 있겠는가.
삼가 바라건대 우리 대덕은 이 전권全卷을 개서改書할 것 없이 곧장 간행하시라. 그리하여 후세 사람이 벽송과 경성의 높은 행적을 보게 한다면, 나부懶夫도 반드시 부지런해지고, 탐부貪夫도 반드시 청렴해지고, 완부頑夫도 반드시 충성스러워지고, 폭부暴夫도 반드시 어질게 될 것이요, 청허淸虛의 오묘한 글을 보게 한다면, 두풍頭風이 있고 안질眼疾에 걸린 자라도 반드시 말끔히 낫고 환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니, 세상에 유익한 것이 마치 마니摩尼 구슬이 흐린 물을 비춰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안자顔子처럼 되기를 원하는 자는 안자의 무리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경성慶聖이

007_0758_b_01L之入爐錘光明攻煥雖在後世聞師之風
007_0758_b_02L望之若泰華之高若吾東數百年間
007_0758_b_03L未有若此之神聖之者也三韓衲子以蔚
007_0758_b_04L府爲佛國者以師之生鄕故也然蔚之寺
007_0758_b_05L一由經亂之後至於在師之跡無一
007_0758_b_06L毫可傳於後者故道俗咸以爲恥徃在乙
007_0758_b_07L未春有道人自妙香來者至於雲興寺
007_0758_b_08L出師之行狀及眞影小本於是寺衆咸皆
007_0758_b_09L喜慶即勸德元老宿建師之影堂有敬
007_0758_b_10L悅道人隨喜謀丹雘又摹師之眞掛於
007_0758_b_11L即奉香火也越在白猿之春有大德
007_0758_b_12L坦修令公自雲興杖策踰嶺于于而來予
007_0758_b_13L之所居叙以如上而爲言欲將慶聖堂行
007_0758_b_14L錄繡梓而命予爲跋予跪受其行狀而閱
007_0758_b_15L則首以碧松野老行狀及野老所製禪
007_0758_b_16L偈數十首付於卷首乃淸虛大師神筆之
007_0758_b_17L所編撰而寫者也予再拜而告於修大德
007_0758_b_18L碧松慶聖乃吾東之神聖也淸虛亦
007_0758_b_19L近世之禪匠也今因大德得見二聖之芳
007_0758_b_20L行盛跡使我如獲親承二聖之謦咳於凾
007_0758_b_21L丈之側其爲一世之忻幸孰有及此者耶
007_0758_b_22L伏願我大德以此全卷直入於梓無改書
007_0758_b_23L使後之人見碧松慶聖之高行則雖懶夫
007_0758_b_24L必勤貪夫必廉頑夫必忠暴夫必賢
007_0758_b_25L淸虛之妙筆則雖有頭風眼瞙者必得洒
007_0758_b_26L然痊且括也其有益於世如摩尼之照濁
007_0758_b_27L流矣古人云希顏之人顔之徒今慶聖

007_0758_c_01L비록 세상에 드문 덕행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우리 대덕과 같은 사람이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면, 형산荊山의 벽옥璧玉이 돌 속에 묻힌 것과 같을 것이니, 좋은 미옥美玉인 줄 그 누가 알겠는가. 우리 대덕과 같은 사람은 바로 안자의 무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발문跋文으로 말하면, 나의 솜씨가 거칠고 글이 졸렬하다고 할지라도, 일단 부탁을 받은 이상 어찌 감히 심력心力을 다하지 않겠는가. 다만 두려운 것은, 나의 거칠고 졸렬한 글을 청허淸虛의 신수神手 아래에 끼워 놓으면, 마치 맨다리로 진신縉紳의 옆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조연助演의 역할은커녕 그저 방관자傍觀者의 비웃음만 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경신년 4월 상순에 동계 경일東溪敬一은 재배再拜하고 쓰다.

007_0758_c_01L雖有曠世之德行若不遇如我大德等
007_0758_c_02L以示之於世則如荊壁之藏於石中孰知
007_0758_c_03L其良美也哉如我大德等即可謂顏之徒
007_0758_c_04L至乎跋也敬一雖手荒而詞拙旣獲
007_0758_c_05L承命敢不盡心力而第恐以予荒詞拙筆
007_0758_c_06L副於淸虛神手之下如赤脚之人立縉紳
007_0758_c_07L之傍不得助其歎但取笑於旁觀者耳

007_0758_c_08L
白猿淸和上浣東溪敬一再拜2)

007_0758_c_09L此跋文只在乙本甲本刊記如何「隆慶三
007_0758_c_10L年己巳五月妙香山普賢寺開刊」 施主秩
007_0758_c_11L與碧松堂埜老頌底本同故省略

007_0758_c_12L乙本刊記如下「兩位持殿戒敏比丘太敬比丘
007_0758_c_13L僧統通政大夫神益和尙嘉善大夫性俊山中大
007_0758_c_14L德太應此丘普濟此丘印浻比丘嘉善大夫融
007_0758_c_15L通政大夫勝惠通政大夫勝暹嘉善大夫印
007_0758_c_16L嘉善大夫正寛通政大夫一淸通政大夫應
007_0758_c_17L通政大夫淸卞自願都執造功通政大夫坦
007_0758_c_18L得通斯傳欲成久之中間滯在今始于畢
007_0758_c_19L子施主天賛板殿掌務省黨首僧怡建書記粹
007_0758_c_20L直舍冠日三寶雙印執役掌務忠式自發願
007_0758_c_21L功德刻能信浮板狀頭兼刻演熙康熙廾九年
007_0758_c_22L庚午七月慶尙道蔚山雲興寺開刊移板在通
007_0758_c_23L度寺」

007_0758_c_24L丙本刊記如下「高麗國光明山大法住寺開刊
007_0758_c_25L手祖軒化士惠元引示崇悟」

007_0758_c_26L丁本刊記及施主秩與淸虛集底本同
    1. 1)此跋文。只在乙本。
    2. 2)甲本刊記如何「隆慶三年己巳。五月。日。妙香山普賢寺開刊」 施主秩與碧松堂埜老頌底本同故。省略。
      乙本刊記如下。「兩位持殿戒敏比丘。太敬比丘僧統通政大夫神益。和尙嘉善大夫性俊。山中大德太應此丘。普濟此丘。印浻比丘。嘉善大夫融信。通政大夫勝惠。通政大夫勝暹。嘉善大夫印玄。嘉善大夫正寛。通政大夫一淸。通政大夫應楚。通政大夫淸卞。自願都執造功。通政大夫坦修。得通斯傳欲成久之。中間滯在今始于畢。板子施主天賛。板殿掌務省黨。首僧怡建。書記粹悟。直舍冠日。三寶雙印。執役掌務忠式。自發願功德刻能信。浮板狀頭兼刻演熙。康熙廾九年庚午。七月。日。慶尙道蔚山雲興寺開刊移板在通度寺」。
      丙本刊記如下「高麗國光明山大法住寺開刊。刻手祖軒。化士惠元。引示崇悟」。
      丁本刊記及施主秩與淸虛集底本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