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설담집(雪潭集) / 雪潭集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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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담집 하권(雪潭集下)
간찰(書)
동강 김담54) 선생께 올리는 편지
어찌 누각 위에서 베푸신 훌륭하고 뛰어난 말씀을 모르겠습니까. 밤낮으로 삼생三生55)의 뛰어난 인연을 진실로 알겠으니, 대감을 향한 마음에 기쁘고 행복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직접 그 훌륭하신 말씀을 듣고 선상禪床에 머무르며 오래도록 옥호빙玉壺氷56)을 대하는 자이겠습니까.
월출산은 남쪽 지방에서 가장 신령한 지역이며, 또한 이곳은 합하閤下께서 다스리는 지역입니다. 마땅히 동림사東林寺에서 눈밭에 앉아 도잠陶潛과 혜원惠遠57)의 끊임없는 발자취를 기쁜 마음으로 따라가야 하는데, 뜬구름처럼 돌아다녀 명산名山에 쌓이고 쌓인 빚이 있어 근심되는 바가 있어서, 이렇듯 벗어나 대감의 훌륭한 교화가 미치지 못하는 먼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맑은 가르침을 받지 못한 지가 오래여서 마음이 이리저리 혼란하여 자꾸 흔들리고 안정이 되질 않습니다.
삼가 잘 모르겠습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백성들을 돌보고 다스리는 생활은 평온하고(申申如) 즐거우십니까(夭夭如).58) 진실로 우러러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이 태산泰山이나 망망대해(溟海)에 비교하여 보아도 어느 것이 더 높고 깊은지 모를 지경입니다.
저는 어렵사리 깊은 산속에 한 곳을 얻어 그곳에 거주하여서 우선 운수승(雲水)59)의 모양새는 갖추긴 하였으니, 비로소 불경 공부를 한다고 할 수 있으나, 아둔한 것이 예전과 다름이 없어서 조금도 이해하는 것이 없습니다. 눈앞에는 오로지 근진根塵60)만이 있어서 나날이 마음속으로 다투고 있으나, 그것을 싸워 이겨낼 일은 희망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평생의 학문과 이해가 다만 정견情見에 불과할 뿐이어서, 실지實地의 참된 경계에서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자 하나,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 경계가 이미 다르고, 그 발걸음도 또한 그저 그럴 뿐입니다. 대감과 편지 소식을 주고받은 것이 너무 오래되어서 남쪽의 구름만을 바라보니, 더욱더 슬프고 암담할 뿐입니다.
미혹한 제자를 보내서 안부 인사를 드리며 삼가 이별을 고하면서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모두 잘되시길 엎드려 축원합니다. 미처 감히 숨기거나 꺼리지 않고 저의 아둔한 마음을 담아 한 편의 산 시(山偈)를 써서 보냅니다. 삼가 헤아려 살펴봐 주십시오.

009_0733_c_02L雪潭集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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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33_c_05L上東岡金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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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暯閣上陪高論日夜固知三生勝緣
009_0733_c_07L下情欣幸無所紀極而況奉寶唾
009_0733_c_08L鎭禪床長對玉壺氷者乎月出靈區
009_0733_c_09L甲於南維又是閤下所寬之土則宜
009_0733_c_10L更東林坐雪喜追陶惠源源之踵
009_0733_c_11L浮雲行止積債名山有所病心
009_0733_c_12L此般運仁風邈矣淸化久外情牽與
009_0733_c_13L中心搖搖伏未審盛夏毒熱
009_0733_c_14L字起處申申如夭夭如仰慕之忱
009_0733_c_15L對較泰山溟海未知誰高誰深山人
009_0733_c_16L艱得雲山一枝栖姑全雲水之樣
009_0733_c_17L所謂內典工夫而昏肚依前解不入微
009_0733_c_18L現前根塵日與心鬪戰勝之功杳然
009_0733_c_19L息望平生學解盡是情見實地上
009_0733_c_20L眞的不欲闇黮得乎封彊已殊
009_0733_c_21L武亦落落音徽之相接將似阻曠
009_0733_c_22L望南雲尤切悵黯委遣迷弟徃候
009_0733_c_23L記室謹此告別餘伏祝若時萬重
009_0733_c_24L絕山偈出於愚衷未敢隱諱伏惟
009_0733_c_25L兼垂下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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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편지(又)
일전에 선생의 정무실(政室)에 들어가 인의仁義의 말씀을 듣고서 기쁜 마음에 가슴의 응어리가 확 열리는 듯하였습니다. 이 어찌 저와 같이 하찮은 이를 합하閤下께서 내치지 않은 것이 이와 같이 깊으십니까. 스스로 황송하고 감사할 따름이어서 뭐라 우러러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시기에 정무政務를 보시는 생활은 어떠하십니까. 모든 일이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선원을 가득 채운 승려들에게 날마다 말 밖의 뜻(言外之旨)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직까지 악동들의 야유를 곁에서 듣지 못하였으니, 삼가 외호外護의 덕을 알겠습니다. 매번 단 앞에 엎드려서 우러러 기원하고 기원할 따름입니다.
삼가 편지 심부름꾼을 대신 보내어서 공경하는 뜻을 전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예를 다 갖추지 못합니다.
천남의 옛 벗에게 보내는 편지
인연에 따라 모이고 흩어짐이 세상의 이치요, 만나면 기쁘고 헤어지면 슬픈 것은 인정人情의 당연함이라, 모이고 흩어지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이에 형체는 점차 쇠약해지고 마음은 점차 식어갈 따름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건대 요즘 고요히 보내는 생활은 복되고 진중한가.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 절절한데, 더욱이 시원한 바람에 달빛까지 밝으니 벗을 그리는 마음 금할 길 없네.
나는 노쇠하고 병약한 상태인 데다가 여전히 거칠고 못난데, 새롭게 사문師門의 중대한 책임을 떠맡게 되었네. 가야 할 길이 천 리와 같이 멀어서 그 지름길을 먼저 이끌어 꿈결에서 벗어나려고 하네만, 그대가 멀리 행차하여 돌아올 줄 모르니, 첫출발부터 일이 어그러질 뿐만 아니네. 이로부터 구름낀 나무숲과 같이 아득하고 멀어, 함께 자리하여 의논할 길이 없네. 또한 막막하여 고개를 들어 그대가 있는 남쪽을 바라보니, 마음과 생각이 마르고 끊겨 있을 뿐이네.
이만 줄이겠네.
나주 목사 윤흡께 올리는 편지
지난번 부임하여 오셨을 때 다행히 직접 대면을 하게 되었으니, 이는 저에게 있어 평생의 경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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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者入政室聞仁義之說欣然若有
009_0734_a_03L開乎胷茅是何以山人無似被閤下
009_0734_a_04L不外若是之深也揆分惶感無以
009_0734_a_05L仰喩伏未審此際視篆法候若何
009_0734_a_06L惟萬安山人與滿院禪侶日講言外
009_0734_a_07L之旨了不見魔兒椰楡 [4] 於傍伏知外
009_0734_a_08L護之德也每伏壇前仰祝仰祝
009_0734_a_09L遣封師代徃致敬敢此不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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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34_a_11L與天南故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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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因聚以緣散流俗之常逢而喜
009_0734_a_13L而愁亦人情之職也聚散喜愁之間
009_0734_a_14L宜乎形欲銷而心要灰矣云云何㦲
009_0734_a_15L惟辰下靜餘做履珍福憧憧朋思
009_0734_a_16L於風輕月皎時不禁悠悠某潦倒麁
009_0734_a_17L新荷師門重擔望寶所遐千里
009_0734_a_18L望其捷逕之先導事出夢寐象車遐
009_0734_a_19L擧弗返非直前頭事落莫從此雲樹
009_0734_a_20L杳邈同堂合席之計亦左擡頭南雲
009_0734_a_21L望眼思膓將欲枯斷耳餘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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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34_a_23L上羅州尹牧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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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登龍門幸得賜顏平生慶事

009_0734_b_01L제 분수에 넘치는 일이어서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로 송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늦여름(老暑)에 정무政務를 보시는 생활은 진승珍勝하십니까. 삼가 그리움이 지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탕약에 의지한 채 침상에만 있으면서 오래도록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도록 선송禪誦을 접고 정진하질 못하고 있어 날이 갈수록 점차 마음이 답답해지고 어지러워질 뿐입니다. 이와 같으니, 어찌 상승上乘과 서로 부합하여 삼관三關을 환히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좋은 시절을 그저 헛되이 보내게 되지 않을까 걱정될 뿐입니다.
시원한 가을 기운이 오동나무에 불어와 잎이 질 무렵에 한번 찾아뵙고서 다시금 인의仁義에 대한 설명을 듣길 바랍니다. 백성을 다스리며 보내시는 생활이 전에 없이 더욱 맑고 복되기를 바랍니다.
너무 장황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초 대사께 답하는 편지
때마침 보내 주신 편지를 받아 보고서 저를 저버리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할 따름입니다. 편지를 읽고 대사께서 엄동설한에 지내시는 생활이 즐겁고 평안하다는 것을 알고서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남쪽 지방의 나그네 신세로 지내고 있으니, 그 마음이 쓸쓸하고 황폐한 것을 어찌 다 보일 수 있겠습니까. 그 수행과 공부는 내팽개친 지 이미 오래되어서, 혹 파계破戒할 날짜만 기다릴 지경이니, 비록 그렇게 되어 파계를 한다고 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또한 어떻게 서로 헤어져 멀어서 만날 방법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너무 멀어서 만날 길이 없으니, 길이 너무 먼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나머지는 다 아뢰지 못합니다.
이봉62)에게 답하여 보내는 편지
한번 외진 땅에 자리하고 나니, 함께 자리하기가 쉽지 않아서 오래도록 현묘한 도를 논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 사이에 이러한 이별이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보내 주신 안부 편지를 받고서, 청화淸和(음력 4월)에 대법가大法駕63)가 이미 용문龍門을 올라 초탈자재超脫自在하게 되었다64)는 소식을 알고는, 매우 위로가 되고, 한편으로는 그 사이 오래도록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은사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일을 생각하니, 구천의 한이 견디기 어려운데 이 보잘것없이 아둔한 나는 그래도 살아서 두 번이나 기일이 지나감을 보았으니,

009_0734_b_01L分悚感無所仰煩伏未審老暑
009_0734_b_02L篆政候珍勝伏慕無任下誠之至
009_0734_b_03L人歸治湯枰長事服藥尙未得蘇朗
009_0734_b_04L氣勢而禪誦久撤心田日漸茅塞
009_0734_b_05L是而能與上乘相契透得三關乎
009_0734_b_06L未免虛送好光陰也凉生庭梧一造
009_0734_b_07L刺謁更聽仁義之說未前撫字起居
009_0734_b_08L益加淸福恐煩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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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34_b_10L答礎大師

009_0734_b_11L
時以書見存不我遐棄感感雪寒做
009_0734_b_12L候淸適殊慰殊慰俺久客南方
009_0734_b_13L懷寥落奈何示也其等工夫擔閣
009_0734_b_14L已久或待破戒之時否雖待而得亦
009_0734_b_15L無奇又將安用相分云遠末由會面
009_0734_b_16L只恨路迢迢餘不宣

009_0734_b_17L

009_0734_b_18L答离峯

009_0734_b_19L
一成涯角未易并席久曠譚玄
009_0734_b_20L間此別良足憐嘆萬萬謂外伏拜下
009_0734_b_21L憑審淸和大法駕已登龍門超脫
009_0734_b_22L自在慰溯之極頓忘中間隔濶之
009_0734_b_23L積思優早哭恩師難堪九原之恨
009_0734_b_24L冥頑無狀猶生於三年之間忍見再

009_0734_c_01L더욱 비통합니다만 어찌하겠습니까.
전에 보내 드린 편지는 어느 집으로 가서 휴지가 되었고, 약록藥錄도 그러합니다. 사람 일을 믿기 어려움이 이러한 지경입니까? 다시금 번잡하게 멀리 편지를 보내게 되니, 옛 벗에게 다시금 신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약록을 또한 다시 베껴서 보냅니다. 그 가운데 오가피나무의 처방은 더위를 다스리는 데 더없이 좋은 약이라고 하는데, 그 약의 효험은 아직 체험해 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계율의 몸(戒身)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혹 방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위독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임시 처방으로 써 보는 것도 또한 나쁜 일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금강산 구경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이곳에 얽매여서 따라가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그러나 조만간 일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워서 훌쩍 길을 떠날 것입니다. 우선 높은 헐성루歇惺樓에 올라서 금강산의 1만 2천 봉우리를 훑어보고 법기보살의 참모습(法機眞)에 정례頂禮하여서, 후세의 사람들에게 산령山靈에 대해 가히 전할 만하도록 할 것입니다.
인편이 있어서 편지를 급하게 보내느라, 글씨를 마구 흘려 썼습니다. 다른 여러 이야기들은 미처 다 적지 못합니다.
상월께 답하는 편지
대사께서 가까운 곳에 머물고 계시므로 예법상 마땅히 찾아가 알현해야 하는데, 그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봄과 가을 이래로 연이어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어서 날마다 어긋나고 달마다 미루다 보니,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말로 깊이 황송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삼가 궁금합니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대사의 생활과 건강은 두루 다복하셨습니까?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종일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사를 뵙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더위를 타고 간간이 심해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법해法海가 더럽혀진 것이 지금과 같이 극심한 적이 없었는데, 대사께서 법실法室의 종문宗門 석로碩老65)로서 현재 이러한 어지러운 상황을 바로잡는 자리에 계시니, 게으른 자가 올곧게 행동하고 완악한 자가 온화해질 것입니다. 지혜의 해(慧日)가 거듭 밝게 비추고 선정의 바람(禪風)이 재차 떨쳐 일어나는 것이 머지않아 눈앞에 다가올 것이라 생각되니, 매우 위로되면서 북받쳐 오르는 마음을 이겨낼 길이 없는데, 외딴 곳에 홀로 떨어져 있으니 한스러울 뿐입니다. 마침 제가 북쪽으로 갈 일이 있었는데, 대사께서 남쪽으로 내려오셨으니, 기러기가 날아가자 제비가 돌아오는 격66)입니다.

009_0734_c_01L過讐朞益切悲痛奈何奈何前書
009_0734_c_02L已歸何家人休紙而藥錄并隨人事之
009_0734_c_03L難恃至此耶再煩遠書自愧無信於
009_0734_c_04L故舊耳藥錄又爲謄送而其中五加
009_0734_c_05L尤最治暑云曾未經驗且妨淨
009_0734_c_06L戒身未知如何若至危篤則或用
009_0734_c_07L推移之權道亦非惡事否楓嶽之玩
009_0734_c_08L盛矣㦲恨此拘蟄之蹤未易啚附驥
009_0734_c_09L之益耳然早晩了緣業以一笻飄然
009_0734_c_10L先登歇惺高樓眼獵萬二千峯
009_0734_c_11L禮法機眞面可傳後有人於山靈也便
009_0734_c_12L人臨發筆力甚草草未盡多少話頭

009_0734_c_13L

009_0734_c_14L答霜月

009_0734_c_15L
瓶錫近住禮當徃謁之不遑而春
009_0734_c_16L夏以來連有冗擾日差月退以至
009_0734_c_17L此稽實深惶愧伏未審暑濕大法
009_0734_c_18L候神相多福一念瞻企之忱昕晡靡
009_0734_c_19L素有伏暑帶旺間發伏悶何
009_0734_c_20L法海滓穢莫此時若也法室以
009_0734_c_21L宗門碩老任出糾正從此懶者立
009_0734_c_22L者廉慧日重暉禪風再振可指日
009_0734_c_23L而見不勝慰聳而恨孤陋適治
009_0734_c_24L爲北大法駕南驅成乎雁鳦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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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줄입니다.
동복68)의 수령 임서에게 올리는 편지
지난번에 세목정洗目亭이라는 정자에서 만나 저의 마음을 맑게 해준 훌륭한 가르침을 돌아와 생각해 보니, 얻은 것이 실로 적지 않습니다. 대감을 그리워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비가 그친 터라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백성을 어루만져 다스리시는 생활은 두루 평안하십니까. 구구한 저의 마음으로 늘 그리워 마지않았습니다.
저는 멀고 험한 길을 걸어 거처로 돌아올 적에 염송을 하며 별 탈 없이 도착하였으니, 이는 모두 대감의 덕인 줄 알겠습니다. 지난번에 부탁하신 두 경經은 요사이 비가 내려 습한 날씨 때문에 이제야 보내 드립니다. 그런데 대체로 기양祈禳69)의 감응을 구하는 것은 오로지 정성의 간절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우러러 공경하는 관례를 좇는 것에 달려 있지 않은 듯하니, 억지로 경전에서 보고 익숙하게 들은 것을 가지고 논의하는 수준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대감의 시에 삼가 차운하여 보내 드립니다. 그러나 베로 만든 북(布鼓)이 어찌 뇌문雷門의 큰 북에 어울리겠습니까?70) 도리어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황공하온지라, 이만 줄입니다.
두 번째 편지
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 나서 매서운 추위에 부모님을 모시고 정무를 돌보시는 생활이 두루 평안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감을 그리워하는 저의 마음 무척이나 간절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앓던 병이 모두 낫게 되었습니다. 산인山人의 만나고 헤어짐이란, 온통 한 줄기 가을바람에 정처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습니다. 제자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일로 말하자면, 저는 이러한 격무를 마다하고 싶은 생각에 고요하고 인적이 닿지 않은 무등산(瑞石山)과 같은 곳으로 향하고자 하오니, 이러한 저의 뜻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전에 같이 공부하던 이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나니, 뜬구름 같은 내 신세가 무척이나 쓸쓸해짐을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이리저리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통쾌하기는 하였지만 정묵한 선공禪功은 여태 쌓인 것이 없고, 평상시 마음 쓰는 것은 전혀 문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예전의 버릇을 고치기가 어렵고, 현묘한 이치와 매우 멀어지는 것이 스스로 보아도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009_0735_a_01L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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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35_a_03L上同福任使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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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目名亭淸心嘉誨歸來像想
009_0735_a_05L得不些矣感懷耿切雨餘日氣漸泠
009_0735_a_06L伏惟侍懽外撫字起居萬福區區瞻
009_0735_a_07L𨓏日夕靡弛山人間關還寓念誦無
009_0735_a_08L伏知德也下囑兩經間緣雨濕
009_0735_a_09L今始封納而凢干祈禳之感應專在
009_0735_a_10L誠欵之切否似不在時俗崇事之循例
009_0735_a_11L非强見經習聽論爲也高韵謹次仰塵
009_0735_a_12L而布鼓豈合雷門還慚不自量也
009_0735_a_13L惶恐不備

009_0735_a_14L

009_0735_a_15L

009_0735_a_16L
伏承下書謹審凝寒侍中政候和平
009_0735_a_17L下情溯𨓏尤極切切賤軀日前所愼
009_0735_a_18L已得痊愈而山人聚散渾如一陣秋
009_0735_a_19L落葉無㝎傳講門役憚此星繁
009_0735_a_20L欲向瑞石靜僻渠意難奪舊日從學
009_0735_a_21L捲席盡送浮雲身世轉覺蕭散自此
009_0735_a_22L南北從心是快而靜嘿禪功已無積
009_0735_a_23L平居心念渾未離文字關頭
009_0735_a_24L愧舊習難磨而去玄理遠矣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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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오언전에게 올리는 편지
한번 움막에 들려서 그대의 시훼柴毁71)한 모습을 대하고 보니, 실로 저의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저는 먼 여행길에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앓던 독종毒瘇72) 때문에 늘 신음한답니다. 지난여름에 또 친동생을 잃어 몸소 장사를 치르다 보니, 그동안 모아 두었던 기운을 모두 소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흐르는 세월은 유수와 같아 그새 3년이 지났습니다. 예제禮制에는 정해 둔 기한이 있어 관복冠服은 이미 바뀌었지만,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떠나간 이를 생각하노라면, 부끄럽고 탄식만 나올 뿐입니다.
삼가 잘 모르겠습니다. 초여름 날씨에 기체는 편안하신지요. 또한 참의叅議73) 합하閤下의 기체는 어떠십니까. 우러러 그리워하는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
이제 경전을 강론하고 문도들을 훈육하는 일에서 물러나 한적한 곳에 머물고 있으니, 선공禪功을 배가시키고, 상승上乘에 대해 깊이 갈고닦아야 할 적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심기心器가 워낙 좋지 못한 탓에 진도가 더디기만 합니다. 세상에 아무런 보탬도 없이 태평성대에 살면서 다만 갚을 수 없는 막대한 은혜만 받았을 뿐이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보내 주신 『자휘字彙』는 잘 모르는 문자에 있어 현명한 스승을 대신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매우 감사드립니다. 다시금 대감을 뵙고자 하나 딱히 날짜를 기약하기가 어렵습니다. 삼가 편지를 보내고자 하니 슬프고 멍한 생각이 더할 뿐입니다. 부디 나랏일에 모든 것을 다 바치시는 와중에도 더욱 몸을 아끼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은암에게 부치는 편지
지난봄 노승이 묵으러 왔을 때 선산仙山의 소식을 전해 주었는데, 여러 사람들의 논의에 의해 공公을 상사上師의 자리로 추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신으로 실호室號를 청하였는데, 바빠서 미처 거기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초여름에 사람을 보내기로 약속했건만, 초여름에 걸린 병이 영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향에서는 종수從嫂(사촌 형제의 아내)의 초상이 있었고, 종씨從氏74)의 대를 이은 첫째 아이(允兒)가 또한 그 외가의 상변喪變을 연이어 당하였습니다. 그러한 정황으로 도무지 다리를 뺄 틈이 없었던 것인데, 마치 그 일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려 이렇듯 늦어진 것처럼 비춰질까 두렵습니다. 비록 정황이 이러하지만

009_0735_b_01L上吳泰仁彥傳

009_0735_b_02L
一投廬下拜慰孝中柴毁之容實切
009_0735_b_03L下衷而山人遠行不啻多掣久患
009_0735_b_04L毒瘇連事呻椘去夏又哭家弟
009_0735_b_05L營掩土因失所蘊於焉之間歲月
009_0735_b_06L如流三年已盡禮制有限冠服已
009_0735_b_07L想像北望慚嘆而已伏未審
009_0735_b_08L夏氣體安迪而叅議閤下氣體又復
009_0735_b_09L如何伏不勝仰慕之忱優講傳門役
009_0735_b_10L退處閒寂倍用禪功究會上乘
009_0735_b_11L其時矣而心器浮劣寸進尺退
009_0735_b_12L生聖世徒受水土深恩耳惶恐惶恐
009_0735_b_13L前歲下送字彙黯黮文字處撿替一明
009_0735_b_14L爲賜至矣感篆萬萬更陪高躅
009_0735_b_15L難指期伏紙倍覺悵惘餘伏祝爲國
009_0735_b_16L盡忠益加珍衛不備

009_0735_b_17L

009_0735_b_18L寄隱巖

009_0735_b_19L
昨春閒老宿來致以仙山衆議推公
009_0735_b_20L上師席書且請室號忙未及副
009_0735_b_21L以夏初送使夏初房有病故連蔓不
009_0735_b_22L而桑鄕從嫂之喪且繼從氏之後
009_0735_b_23L允兒亦疊遭其外家喪變無隙出脚
009_0735_b_24L便若遺忘以延此晩雖是勢也

009_0735_c_01L이처럼 괴아怪訝한 일만 생기니, 세상의 일이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늦더위에 수도하며 보내는 생활은 평안하시며, 선방에 닦는 공행工行은 더욱 힘써 수행하고 계십니까. 소요逍遙 대사의 청풍淸風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늘 가슴에 안타까운 마음이 멎지 않습니다. 당신께서는 그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월초에 무등산(瑞石山) 아래로 거처를 옮겨 거주하고 있는데, 그런대로 지낼 만합니다. 공이 머무시는 곳을 은암隱巖이라 이름하니 암혈에 은거하시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려 하십니까, 아니면 고요하게 선을 하시거나 한가롭게 교리를 공부하려 하시는지요? 법의法衣와 『선원제전집』 전질을 보내 드리니, 그런대로 거두어 주십시오.
나머지 전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입니다.
나은에게 답한 편지
지난번 찾아뵈었을 때에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일들이 미처 처리되지 않아서 울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근심거리로 남아 있는데 편지로 그 점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혹한 추위에도 수양하시는 생활이 안온하고 강녕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 깊이 위로가 되니 마주하여 대화한 듯합니다. 제가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생활 자체가 생소하고 낯설어 하는 일마다 힘들고 괴로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저 운명이거니 하며 거기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선객禪客이 와서 본사本寺의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공께서 법좌에 오르셨다고 하니, 그 산사에 인연을 맺게 된 것에 대해 기쁠 따름입니다. 그런데 원瑗이 또한 불회사佛會寺의 병불秉拂75)이 되고, 나암懶庵은 영봉사靈峯寺로 옮겨 가는데, 제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너그러이 생각해 주십시오.
도반인 원瑗의 호는 청은淸隱으로 하고, 공의 호는 나은懶隱으로 하였습니다. 세속을 혐오하여 물러나서 조사의 경계로 몰래 숨어든 것은, 손을 날려 용을 낚아채고 봉황을 때려잡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된 다음에야 제가 함부로 짓지도 않고, 공께서도 공연히 받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거듭 잔문殘門을 밝혀 주시는데 어찌 다시 의심하겠습니까? 『불적佛蹟』과 『선결禪訣』 두 책을 별도로 보내 드리니, 공께서는 웃으며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이만 줄입니다. 묵묵한 가운데 부디 잘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석천사에 답하는 편지

009_0735_c_01L涉恠訝世事堪恨未委老暑法履珍
009_0735_c_02L室中工行益自勵否逍遙淸風
009_0735_c_03L息振久矣慷慨之念每熱於胷次
009_0735_c_04L其會麽吾月初移栖瑞石之下姑支
009_0735_c_05L幸也公之室以隱巖汚扁將隱伏
009_0735_c_06L巖穴勇勤乎靜擧禪閒看敎耶
009_0735_c_07L衣一禪詮全帙送似依收餘在嘿中
009_0735_c_08L不宣

009_0735_c_09L

009_0735_c_10L答懶隱

009_0735_c_11L
曩面塵撓未剖阻菀幽抱迨爲心隙
009_0735_c_12L𧏮書及慮襮得悉法履隆寒安健
009_0735_c_13L當對討吾移栖生拙地觸事酸椘
009_0735_c_14L亦命也順受而已禪客來傳其本寺
009_0735_c_15L强公陞座云喜有緣於其山
009_0735_c_16L瑗亦秉拂於佛會寺而懶庵移入靈峯
009_0735_c_17L影助之翼亦尠矣遙慮遙慮
009_0735_c_18L友之號揭以淸隱又扁公以懶隱
009_0735_c_19L能懶退塵臼而隱栖祖域奮手挐龍
009_0735_c_20L打鳳耶然後吾不妄命公不虛受
009_0735_c_21L闡殘門胡更疑也佛蹟禪訣兩册
009_0735_c_22L以標外公其笑收餘縷遠輸嘿中
009_0735_c_23L恭希深照

009_0735_c_24L

009_0735_c_25L答石泉寺中

009_0736_a_01L
맥추麥秋76)에 스님들이 모두 흩어지고 난 뒤 문을 닫아걸고 물소리 들리는 한적한 곳에 근심스레 앉아 있노라니 마음이 여간 울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뜻밖에 보내 주신 편지가 멀리서 이르자, 우울했던 심사가 탁 트여 위로를 받았으니, 의례적으로 받던 보통의 편지와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무더운 장마철에 사찰을 운영하며 지내시는 생활이 진중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한번 북쪽에서 돌아온 뒤로는 하는 일마다 좋지 못하여 아직까지 한가하게 지내고 있지 못하니, 이 또한 한때의 운수인가 봅니다.
어이하여 선산仙山의 보기 좋은 풍모로 남쪽에만 머물러 계십니까? 늘 한번은 오르고자 하였지만 그러지를 못하였는데, 지금 마침 초청해 주심을 받고 보니, 그곳에 오를 날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터운 정의로 보아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하지만 흉년일 때에는 대체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탓에 짐짓 무턱대고 따르기가 어려워 보계寶界77)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는 것이 깊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다시금 훗날을 기다려 찾아뵙고자 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선제에게 부치는 편지
그대의 병이 미처 낫기 전에 헤어진 뒤 이미 세 차례 편지나 인편이 모두 그간에 끊어졌습니다. 이미 병이 나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염려되는 마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시질 않았습니다.
나와 법려法侶79)들은 흉년을 만나고부터 저마다 시냇물 소리 들리는 한적한 곳으로 돌아가 문을 닫아걸고 눈을 가리는 공(遮眼之功)을 아예 포기하고 몽상 속(黑甜界)에서 세월을 허비하였으니, 이와 같이 한다면 언젠가 완악하고 노둔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은계隱季가 지난번에 또 창질(癘)을 앓았다는 것은 또한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올해의 운수가 유독 우리에게 각박하였지만 모두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나이도 어느덧 마흔 남짓인데도 우리들은 모두 늙어 버렸으니, 예전의 좋고 나쁜 일들이 모두 한바탕 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데도 그저 잘 먹고 편하게 지낼 궁리만 하고 있으니, 어찌 세속적인 근성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로부터 자질구레한 생업을 모두 털어 버리고 어느 산의 고요하고 궁벽진 곳 조그마한 방에 함께 누워 편안히 수양하고서 전후의 잘되고 못된 것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이때라 하겠습니다. 그대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나를 망령든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성性이라는 것은 하늘이 균등하게 내려 준 것이지만 정情만은 여전히 저마다 다르니, 정에 의해 만들어진 습관은

009_0736_a_01L
麥秋僧盡散閉戶水聲中悄坐無悰
009_0736_a_02L意耑札遠及開慰卓出居恒書翰之
009_0736_a_03L比也況伏審潦炎攝院政履珍斐
009_0736_a_04L一自北歸觸事坎坷未得閑田地
009_0736_a_05L一時數也奈何仙山厚風擅南中
009_0736_a_06L願一登而未果今適寵招已知其不
009_0736_a_07L眷情即當徃赴而荒年去就
009_0736_a_08L多掣肘姑難頷從深恨寶界遲分耳
009_0736_a_09L更俟它日欲作不請客不宣

009_0736_a_10L

009_0736_a_11L寄禪弟

009_0736_a_12L
分携在君病未蘇完之前月已三彎而
009_0736_a_13L書使俱絕於間計已復常而慮念
009_0736_a_14L夙宵靡弛耳吾法侶逢荒各歸閉窓
009_0736_a_15L溪流聲邊拋却遮眼之功而或消光
009_0736_a_16L景於黑甜界中如是而將不成頑鈍耶
009_0736_a_17L隱季向又經癘可驚年運偏剝於吾
009_0736_a_18L而俱免鬼簿爲幸也歲不我與
009_0736_a_19L覺四旬餘吾軰俱老平昔所作好惡
009_0736_a_20L皆夢也徒坐策口身豈遺世本
009_0736_a_21L從此擺撥餘營雙臥何山靜僻
009_0736_a_22L處十笏房以安收養而將謝前後利
009_0736_a_23L此其時矣君能思回不我忘耶
009_0736_a_24L人之性所賦於天均也而情尙各歧

009_0736_b_01L교화되기 어려운 법입니다. 매번 사람들의 일들이 진행되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그럴 때마다 탄식과 눈물이 솟는 것이 실로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대는 그 점을 헤아리길 바랍니다.
돌보고 있는 아이는 예전과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그립기만 합니다. 무더운 더위가 심해질수록 편해지고자 하는 마음 끝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운 선화81)에게 부치는 편지
얼마 전 눈보라 치는 때에 저를 전송해 주기 위해 오셔서 하룻밤을 묵고 가셨는데, 그토록 저에 대해 신경을 써 준 당신의 간절한 마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늦추위에 선 수행을 하시는 생활은 평안하신지요? 새로운 거처에서 보내시는 생활은 좀 마음에 드십니까? 그립고 간절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저는 산길이 눈으로 덮여 한가롭게 여러 날을 지내는 동안 마음 가는 대로 생활하였으니, 이것은 나의 노쇠함에 걸맞는 일입니다. 가을 달과 봄바람에 뜬구름 같은 인생은 쉽사리 늙어 가니, 그 속에서 세상의 일을 떠나서 아미불阿彌佛을 힘껏 불러서 백 년 후에 갚아야 할 업의 빚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간곡한 저의 마음을 미루어 존尊께 바랍니다.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머지는 번잡하여 세세히 적지 않습니다.
창평82)의 수령 조재복에게 올리는 편지
오랜만에 다스리시는 경계에 이르고 보니 미물인 수목水木들에게까지 많은 은혜가 미쳤는데, 하물며 여러 번 직접 만나 주시고 보살펴 사랑해 주시는 저 같은 이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황송하고 감격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외로운 학이 문득 다른 산을 그리워하듯 떠나서 미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였으니, 비록 일의 상황이 그리된 것일지라도 저의 마음은 실로 겸연쩍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눈 오는 가운데서도 합하께서는 백성들을 돌봐 주시고, 고을을 다스리시는 생활은 두루 평안하십니까? 우러러 그리워하는 마음에 다만 가슴이 뭉클할 뿐입니다.
저는 아산鵝山에서 간신히 한 나무 가지에 깃들어 있습니다. 자연의 맑고 시원한 풍광은 인가와 떨어져 있으니, 다소나마 그윽한 곳을 방문해 주시는 데 부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늘 원하고 있습니다.
명부明府83)께서는 남쪽 지방에 오랫동안 계시어 쉽사리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시나, 제가 경을 외고 좌선을 하는 여가에

009_0736_b_01L錦楦難化每臨人事運爲之間驗
009_0736_b_02L嗟嘆釀涙者實屢矣君其諒乎
009_0736_b_03L兒一如舊樣否并用戀戀炎威轉肆
009_0736_b_04L對穩未涯臨紙茫茫餘不宣

009_0736_b_05L

009_0736_b_06L寄雲禪和

009_0736_b_07L
乃者雪風送我來一宿而去汔未忘
009_0736_b_08L傾情之眷切未諦老寒禪履淸保
009_0736_b_09L新寓之味契意耶嚮𨓏維多優雪埋
009_0736_b_10L山徑靜散日倍坐臥從心是稱吾
009_0736_b_11L衰爾秋月春風浮生易老去其間
009_0736_b_12L世事勤呼阿彌佛以敵百年後業債
009_0736_b_13L路閻子推區區望於尊尊其會麽
009_0736_b_14L餘煩不細細

009_0736_b_15L

009_0736_b_16L上昌平趙使君載福

009_0736_b_17L
久跧化界多恩水木而況有數次賜
009_0736_b_18L顏眷愛者乎惶感極矣孤鶴忽戀他
009_0736_b_19L不得告別雖是事勢所致而下
009_0736_b_20L情實歉悵耳伏未諳雪裏閤下字履
009_0736_b_21L製錦萬勝仰慕第切衷膈山人鵝山
009_0736_b_22L厪得一枝之栖水石淸爽人烟隔遠
009_0736_b_23L稍副訪幽素願爲幸明府緣長南州
009_0736_b_24L未易賦歸去來禪誦餘閒更謀掣鈴

009_0736_c_01L다시금 매화 그림자 사이에서 대감을 만나 뵙길 기대해 봅니다.
한 해가 저무는 즈음, 새해에는 나랏일하시는 가운데 더욱 진중하시길 우러러 축원합니다.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세마洗馬84) 이운영에게 답하는 편지
뜻하지 않게 삼가 편지를 받고 보니, 비록 예전처럼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마치 세속의 티끌이 없는 몹시도 고요한 곳에서 맑은 가르침을 받는 것과 같아서 매우 위로가 되는 것이 보옥을 안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물며 단풍 붉고 국화 피는 시절에 나막신(謝屐)을 신고서 산에 들어오시어 당의 편액(堂扁)을 보시고선 그 자리에서 화제華題를 써 주시니, 이 산방의 호사였습니다. 깊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나래를 펴고 달려가 우러러 사례하고자 하나, 승려가 감히 공문에 나아갈 수 없기에 찾아뵙지 못하고 보니, 송구함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두 번째 편지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서 대군자大君子의 아름다운 얼굴을 봄에, 인물과 환경이 함께 아름다우니, 이것은 부질없는 세상에서 쉽사리 접해 보기 어려운 경우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인연인지라 깨어 있을 때는 그리워하고 잠잘 때는 꿈까지 꾸어 봅니다. 더욱이 저를 생각해 주시는 각별한 뜻이 편지에 가득하여 매우 소중히 생각해 주셨고, 또한 한 다발의 시문(瓊琚)까지 동봉하여, 잊지 않았다는 두터운 정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산림 아래 살고 있는 저처럼 못난 사람이 어떻게 이런 대우를 얻을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매우 감격스러운 탓에 스스로 측은해질 정도였습니다.
연사시蓮社詩85)의 처음 말구를 짓고 나서 삼가 명에 따라 수정을 하였지만, 원래 작품 자체가 엉성하게 지어졌으니, 어찌 다시 음미할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훌륭한 작품에 감히 삼가 엉성한 작품을 덧붙여 우러러 올리지만, 보시기에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공연히 맑은 서안을 더럽힌 것 같아 도리어 떨리는 마음에 함부로 제가 맡고 있던 역할을 그만두고야 말았습니다.
우러러 감사드리며 아울러 양친을 모시는 기거가 어떠신지 안부를 묻습니다. 새 경經을 공께 올리는 것을 허락하시어 붓으로 옮겨 적는 수고로움을 잊은 채 필사하였으니, 이는 산문山門의 영광일 따름입니다. 이 편지를 가져가는 스님은 나이가 젊어서, 공문의 거취를 잘 모르니

009_0736_c_01L於梅影之間耳歲色欲遒仰祝迓新
009_0736_c_02L爲國益珍惶恐不備

009_0736_c_03L

009_0736_c_04L謝李洗馬運永

009_0736_c_05L
意外伏承手枉雖欠御李之舊如得
009_0736_c_06L淸誨於靜邃無塵之地珍慰不翅拱
009_0736_c_07L玉如也況有楓酣菊華時謝屐入山
009_0736_c_08L之示堂扁坐屈華題奢此山房
009_0736_c_09L惠深矣事體不安即堪翼如仰謝
009_0736_c_10L雲蹤未敢公門姑停咨且不勝悚然
009_0736_c_11L伏惟恕察不備

009_0736_c_12L

009_0736_c_13L

009_0736_c_14L
佳山水處奉接大君子佳眉目人境
009_0736_c_15L俱可所謂浮世不易啚佳緣可堪
009_0736_c_16L以思寢以夢者而況匪意滿紙書以
009_0736_c_17L珍重且帶一掬瓊琚厚表不忘情者
009_0736_c_18L林下微末何以得此不覺感極
009_0736_c_19L成悲耳蓮社詩初搆末句謹依命點
009_0736_c_20L而素是蔬糲豈復爲梁味乎
009_0736_c_21L敢謹續貂仰呈以爲如何空浼
009_0736_c_22L淸案還慄敢替迷役仰謝兼候侍歡
009_0736_c_23L起居耳新經依諾奉上忘勞下筆
009_0736_c_24L光山門也此師年少不閑公庭去

009_0737_a_01L너그럽게 가르쳐 주시고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진사 박양직에게 답하는 편지
바닷가에서 이별하고 난 지 몇 해가 지났습니까? 늘 지난번에 모여 앉아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 것을 추억하니, 마음과 정신이 솟구치는 것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뜻밖에 동봉된 귀한 편지가 창틈으로 이르고 보니, 문득 눈앞이 맑아졌습니다. 급히 손으로 편지를 뜯어봄에, 이것은 바로 평소에 알고 지내던 죽호竹湖의 노인이 10월(陽月) 7일에 보낸 것인데, 어느 곳에서 지체되었기에 이제야 받아 보게 되었단 말입니까? 그러나 보내오신 글을 여러 번 읽어 보고 나니, 도리어 오랜 시일 동안 지체되었던 것을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막혔던 소식이 환연煥然하게 한 폭의 지면에 표현되어 있으니, 인간 세상의 어떤 즐거움과 위로됨도 이에 비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몸의 상태가 어떠하신지 비록 다행히도 세세하게 알 수 있었지만, 편지가 이미 수개월 전에 쓰신 것이기 때문에 중간의 안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무척이나 울적했습니다.
저는 충청도(湖中)에서 올라오면서 학우들을 이끌고 서남西南으로 옮겨 왔습니다. 무정하게도 한 해가 이미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앞으로 60세가 단지 7년 남았는데 말 밖의 뜻과 세상 밖의 현묘함은 남아 있질 않습니다. 혈기가 쇠하고 이는 흔들리는 늙은이가 되어, 두타행(頭陀)87)과 평소 그나마 알고 있던 문자상의 이해마저도 버려 두고 지내고 보니, 생사 인연의 근원에 대해 궁구함이 없이 그냥저냥 지냈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한층 의지와 기개를 떨쳐 별도로 종문宗門의 높은 관문(上頭關)을 궁구하려 한들, 어찌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평범함과 노둔함을 부여받았고, 이미 여력이 없는 데다 이런 처지와 이런 삶을 살다 보니, 다만 이러한 지경에 머물 뿐입니다. 저를 아껴 주시는 군자께서는 반드시 애달프게 여기시어 글을 지어 재차 이런 서신을 보내 주시니, 비록 감당하기에는 역부족하지만, 더욱 저를 아껴 주시는 간곡한 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로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신경을 써 주시니, 매우 감사할 따름입니다.
서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기에 곁에서 모시면서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으니, 편지를 씀에 더욱 한스럽기만 합니다.

009_0737_a_01L恕敎眷護不宣

009_0737_a_02L

009_0737_a_03L謝朴進士良直

009_0737_a_04L
海上奉別不知年每憶疇曩娓娓
009_0737_a_05L團話不禁心神之飛越料外一封珍
009_0737_a_06L來入牕間眼界忽淸急手折緘
009_0737_a_07L乃是平生竹湖叟陽月七日所出者也
009_0737_a_08L何處淹留今始至此圭復再三
009_0737_a_09L忘遲延之久而有年閡隔音信煥然
009_0737_a_10L一幅紙面人間有何樣喜慰能敵是
009_0737_a_11L伊時起居雖幸細悉而書已作
009_0737_a_12L數月前事中間動靜窅然還昧
009_0737_a_13L可悶菀山人一上湖中牽引學伴
009_0737_a_14L移西南無情歲律已屬殘臘前去
009_0737_a_15L六十只隔七年而言外之旨象外
009_0737_a_16L之玄隨手失去血衰齒豁幾作一
009_0737_a_17L老洫棄置頭陀平昔文字上學解
009_0737_a_18L無賴於生死門自分雖欲奮一層志槩
009_0737_a_19L別究宗門上頭關復陽得乎落地初
009_0737_a_20L受畀凢魯已無餘力及此地此
009_0737_a_21L只如是而止耳愛我君子必見
009_0737_a_22L憐深也賛文再此書及雖不敢當
009_0737_a_23L尤見眷戀之情老而冞篤拜謝千萬
009_0737_a_24L居成涯角陪晤未易卜臨書尤用悵

009_0737_b_01L
이만 줄입니다.
송음산거 김복현에게 올리는 편지
헤어진 지 어느덧 스무 해가 지났는데, 사는 곳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대의 고아한 풍모가 멀리서도 생각이 나는 통에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애달프게 하여 머리가 희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올해 한가로이 거처하시면서 도를 맛보시는 기체氣體가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공께서 책을 짊어지고 서대산으로 들어가시니, 매우 오랫동안 그저 귀동냥으로만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고 이러한 정한을 토로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행동이 어찌 평소 마음이겠습니까? 산의 풍광과 샘물 소리를 꿈에서라도 일찍이 마주한 적 없었지만 매번 정신만은 첩첩 산봉우리와 굽이쳐 흐르는 계곡으로 달려가는 생각을 늘 하곤 하였습니다.
지난해 심각한 가뭄이 들어 온 천하에 사는 사람들이 괴로움을 호소하였으니, 다들 이러한 상황을 견뎌내기 어려워하였습니다. 저는 본디 생업에 관한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거듭 그에 따른 근심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보다 앞서 여러 번 내려 주신 편지들이 한꺼번에 도착하여 답장을 하지 못한 것이 되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보내 주신 편지를 오랫동안 책상머리에 놓아두니, 늘 얼굴을 마주 대한 듯하여 족히 이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편지가 없을 수 없다는 말이 진실로 그러합니다.
집안의 난옥蘭玉90)들은 오랫동안 동쪽에 머물고 있지만 다들 잘 지내며, 예전과 변함없이 학문에 열중하고 계십니까? 모든 것이 간절히 그립기만 합니다.
저는 20년 동안 복상服喪을 연이어 행하느라 충청도 남북의 산에서 머무르며 자연의 풍광을 등지고 뜬구름처럼 외로이 지냈으니, 묵은 종이와 너덜너덜한 경전이 무슨 보탬이 있겠습니까? 정신은 쇠약해지고 얼굴은 생기를 잃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망조차 없습니다. 태산에 은거하는 고고한 군자와 세상의 나이로는 1년의 차이가 나지만, 온몸의 쇠잔한 기력은 서로 엇비슷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인생살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월악月嶽에서 옛적에 노닐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뚜렷하기 마치 엊그제 일과 같습니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세상의 일은 덧없이 흘러가고 푸른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되는 것처럼 온갖 것이 변해 가니, 뜬구름 같은 세상에 그저 사는 인생이

009_0737_b_01L不備

009_0737_b_02L

009_0737_b_03L上松陰山居金福鉉

009_0737_b_04L
離違倐二十春秋地絕涯角無由對
009_0737_b_05L積抱緬想高風令人心絕魂消
009_0737_b_06L欲髮白耳伏惟年來靜居味道
009_0737_b_07L體若何携書入西岱山中耳食許久
009_0737_b_08L一未尋吐此豈素情也嶽色泉聲
009_0737_b_09L夢曾不對而每神𨓏於疊嶂複流
009_0737_b_10L之耿耿也去歲酷旱一天之下告歉
009_0737_b_11L同然調度之艱素不閑於營産重爲
009_0737_b_12L之梗慮不已前此屢賜手書一并
009_0737_b_13L傳到便左闕謝則爲心疵而帖紙
009_0737_b_14L鎭床頭長常替眞對起足慰此心
009_0737_b_15L書不可無信矣階庭蘭玉尙留連東
009_0737_b_16L而俱全舊時樣如一濯錦業否
009_0737_b_17L切伏慕山人廿載之間牽引湖中南
009_0737_b_18L北山服喪連仍秀又背山水浮雲隻
009_0737_b_19L故紙殘經無補乎微精弱神
009_0737_b_20L貌十去八九非復昔者優矣岱山
009_0737_b_21L高隱君子人間甲子差一年毛血氣
009_0737_b_22L力之衰想伯仲如矣人生幾何
009_0737_b_23L憶月嶽舊遊宛如昨日而轉頭之頃
009_0737_b_24L世事已隨滄桑百變浮世餘生

009_0737_c_01L어찌 슬픔이 되지 않겠습니까? 굵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예전에 한 번 제가 사는 곳을 방문해 주시어 마치 흐르는 물처럼 밤낮으로 이야기를 나눈 지가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번 생애에 남겨진 한이 될까 염려되어 늦가을에 한 번이라도 찾아뵙고자 하나, 비대한 몸과 더딘 발걸음으로 변변찮은 바람이라도 이룰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던 차에 적상산 순사順師가 이곳에 이른다고 하니, 문 앞의 길을 지나갈 때 잠시라도 머무른다면, 경의를 표하고 가르침을 청할까 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설파에게 주는 편지
상가象駕91)가 해인사에 들어온 뒤로 방장사方丈寺 때보다 대사의 말씀과 모습이 더욱 멀어져서 늘 그리워하는 마음에 답답하여 마치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는 듯하였습니다. 용당龍堂92)에 화재가 났을 때 마침 출타하셨다가 그 일을 당하셨으니, 그때 모두들 놀라서 혜탄蕙嘆93)이 그치지 않았으니, 이런 기이한 일들은 다만 천년의 법장法藏94)에 한정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삼가 요즘 대사의 건강과 생활은 평안하십니까? 요사이 몸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애통함(半割之痛)을 겪으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함께 변산邊山을 유행하던 자들 모두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병으로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습니다. 호상湖上에서 스님들과 종유하던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어 버렸습니다. 정겹게 서로 마주하며 편안하게 토론했던 일들은 이제 다시 하기가 어렵게 되었군요.
아름다운 산수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지금까지 마음속에 맺혀 있습니다. 언제쯤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인간의 세월이란 번개처럼 흘러가서 모두 다 늙고 쇠잔해지기 마련입니다. 다만 옛정을 제외하고 그 밖의 것들은 한바탕 꿈과 같습니다.
병 때문에 편지 쓰기가 어려워서 남의 손을 빌려 적느라, 이만 줄입니다.
춘담에게 답하는 편지
무등산96)에서 여러 사람들의 논의 끝에 드디어 그대가 무등無等의 법좌에 오르게 되었다고 하니, 무등에 연고를 두게 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무등으로부터 조사의 종지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드러내어 밝힌다면, 머지않아

009_0737_c_01L不爲之悲絕涕泫然下也一訪起居
009_0737_c_02L有如流水日夜徒言已遵十年矣
009_0737_c_03L爲此生遺恨決計於秋晩一走而體
009_0737_c_04L肥脚鈍未知獲遂殘願否也適此赤
009_0737_c_05L裳順師到此云過門廡前路暫憑
009_0737_c_06L申敬想易關照也不備

009_0737_c_07L

009_0737_c_08L與雪坡

009_0737_c_09L
象駕入海印聲光益復杳然於方丈
009_0737_c_10L憧憧梗思猶食物之不下也
009_0737_c_11L堂刼火適出虎錫植彼時驚動遠
009_0737_c_12L爲之蕙嘆不已者不獨爲千年法
009_0737_c_13L藏而已伏惟此時大法候鄭重
009_0737_c_14L遭半割之痛頃聞之同遊邊山者
009_0737_c_15L爲之驚怛不知以何辭寬慰也弟久
009_0737_c_16L蟄病作討勝湖上瓶錫業已前過
009_0737_c_17L失含靑相對穩討積懷於佳山好水之
009_0737_c_18L猶至今耿結耳奉誨何時電光
009_0737_c_19L人世俱成衰暯只有舊情餘外皆
009_0737_c_20L病倩不宣

009_0737_c_21L

009_0737_c_22L答春潭

009_0737_c_23L
無等聞有衆議今升無等之法座
009_0737_c_24L有緣於無等也從無等闡揚宗敎

009_0738_a_01L더할 수 없이 큰(무등) 진보를 기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늙은이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무등무마無等無魔의 경지에 이르러 보내는 수도생활은 진중하며, 높은 자리에 올라 본인이 있을 곳이 못 된다고 후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름지기 늘 마음을 다져야 하니, 특히 장실에 있는 경우라면 공덕과 실제의 일을 새롭게 해야 하겠지요.
나는 늙어서 그저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으니, 세상에 이름을 얻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대가 무등의 주지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보내오니, 마치 차디찬 연못의 물고기가 따스한 못에서 활기차게 뛰놀듯 기쁩니다. 쇠락한 종문을 진작시키는 것을 지금부터라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벗들이 돌아가는 편에 대략 편지를 부칩니다. 이만 줄입니다.
연담에게 답하는 편지
뜻하지 않게 편지를 받고서 가산迦山에 왕림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가산이 더욱 중하게 되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보내온 편지에 대해 미처 답장하지 못한 채 어느덧 새해가 되었군요. 삼가 대사께서 강론하시며 보내시는 생활은 평안하십니까? 새해를 맞이하여 안부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섣달에 하는 수 없이 이곳으로 처소를 옮기게 되었는데, 바로 이곳은 예전에 대사를 모시고 머물던 곳이었으니, 눈에 닿는 데마다 감흥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예순 줄에 접어드니, 기력이 갈수록 너무 쇠잔해져서 마음속으로도 무척이나 두려웠습니다. 이곳은 규배奎輩들이 이미 법석法席을 더럽혔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대사께서는 남쪽으로 내려가시고 저의 발걸음은 또 북쪽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상床을 마주하고 얘기하는 것도 끝내 쉽지 않으니, 이렇게 편지를 쓰매 더욱 서글퍼집니다.
이만 줄입니다.
일 소사께 답하는 편지
지난번에 알리지 않고 떠나가서 지금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 보니, 병이 낫지 않아 몸이 성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염려가 가시질 않았습니다.
점쟁이가 모든 일이 어지럽게 꼬이게 된다고 하였지만, 어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겠습니까? 어버이와 떨어져 먼 곳에 사는 자는 비록 병이 걸리지 않더라도 안부를 묻는 법이니, 마땅히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개 사람이 병에 걸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비유하자면 하늘이 흐렸다 맑았다 하는 것과 같으니, 하늘이 어찌 언제나 맑기만 하고 흐리지 않겠으며,

009_0738_a_01L期於無等之進耶堪慰老懷也未知
009_0738_a_02L到無等無魔而法履珍迪坐地後悔難
009_0738_a_03L容處須勵新心特有室中新功業也
009_0738_a_04L才老巡城得名已晩即以春潭
009_0738_a_05L揭室額寒潭之魚生角於暄潭衰門
009_0738_a_06L之振從今有望耶同友之歸略及
009_0738_a_07L緖餘不宣

009_0738_a_08L

009_0738_a_09L答蓮潭

009_0738_a_10L
料表拜翰知象車下占迦山想迦山
009_0738_a_11L增重也書未復歲忽云新伏惟大
009_0738_a_12L講候佳迪仰賀維新弟亦爲此所强
009_0738_a_13L臘末移次即舊日侍從周旋處觸目
009_0738_a_14L生感而今年已登六十歲衰換已極
009_0738_a_15L心甚瞿然奎軰點汚法席而已何感
009_0738_a_16L之有瓶錫南下吾行又北上對床
009_0738_a_17L談猝未易臨書增悵不宣

009_0738_a_18L

009_0738_a_19L答馹少師

009_0738_a_20L
頃不告去迨爲心塵即見手簡
009_0738_a_21L病未袪體爲慮不已卜說紛紜云
009_0738_a_22L何知其知之眞也離親遠居者雖不
009_0738_a_23L病而問應有何說也盖人之病不病
009_0738_a_24L天之有陰晴天何長晴而不陰人何

009_0738_b_01L사람이 어찌 늘 건강하기만 하고 아프지 않겠습니까? 육신에는 늘 있는 일이니,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이 아닙니다. 비否의 운수가 극에 이르면 반드시 태泰의 운수가 되는 법입니다.97)
유마사에 답하는 편지
사찰에서 어리석은 저를 법좌에 앉히고 명부에 올린다는 것을 이전에 여러 차례 편지로 거절을 하였습니다만, 욕되이 여기지 않으시고 또다시 편지를 보내 주시니, 총림의 성대한 풍조가 너무나도 깊어서 감격하고 또다시 감격하였습니다.
편지를 받고서 엄동설한에 사찰의 살림을 돌보시는 생활이 평안하시고, 사찰에 모든 것이 아무 탈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마음이 풀리고 위로됨이 그지없습니다.
저는 전부터 앓던 종기가 아직까지 낫지 않아 여전히 자리보전하며 신음을 하고 있으니, 이런 답답함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까? 유마사로부터 이미 초대를 받고, 여러분들의 간절한 부탁과 함께 사절이 세 차례나 이르렀으니, 제가 어떤 물건이기에 이다지도 우대하십니까? 그런데도 더욱 미적거리며 곧바로 그곳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저 끝까지 어떻게 되리라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저는 병으로 지쳐 있는 상태인 데다가, 여기에 행로의 괴로움까지 더해졌습니다. 게다가 신강新講에 미진한 부분이 있고, 이보다 앞서 또 선암대회仙嵓大會의 초청을 받게 되었으니, 이러한 청을 또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거취에 있어 자주 옮겨 다닌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선산仙山을 떠나며 밟았던 물이 맑아지기도 전에 돌이켜 저곳으로 가려고 짐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이사는 중요한 일입니다. 한 번도 오히려 저에게는 견디기 어렵기만 한데, 하물며 두세 차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봄에 선암으로 향하여 모임을 마친 다음,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이른바 완벽한 계책이라 생각됩니다. 편지를 전하고 사찰로 돌아가는 이에게 긍정의 답을 보내지 않으니 사찰에서는 편지를 쓰지 않는 것만 못하고, 저로서는 편지를 받들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비록 형세가 그렇다고 할지라도 피차간에 무료함은 말해 더 무엇 하겠습니까? 만약 청하는데 응하려는 마음이 없으면서 핑계를 대고 이처럼 말한다고 한다면 이는 제 마음이 아닙니다. 하늘의 해가 비추고 있습니다. 머잖아 한번 찾아뵙는 불청객이 되어

009_0738_b_01L長健而不病肉團身上平常事心不
009_0738_b_02L小疑慮也否運極則必泰耳

009_0738_b_03L

009_0738_b_04L答維麽寺中

009_0738_b_05L
寺以不慧齒錄秉拂者前日屢却書
009_0738_b_06L不以辱又枉委札叢林盛風比諸逈
009_0738_b_07L感又感也連伏審祁寒政履珍
009_0738_b_08L院中葆貞慰釋叵量僕日前瘇
009_0738_b_09L氣未瘳尙爾負席呻椘此悶何喩
009_0738_b_10L招旣出輿議懃使至三優何人
009_0738_b_11L更遲回不即戒錫而終孤其望也
009_0738_b_12L以不慧不啻病難道途之役赴此
009_0738_b_13L屬耳且有新講未盡之缺前此又
009_0738_b_14L到仙嵓大會之請請亦不可等視者也
009_0738_b_15L此際去就在此未免有數飛之譏
009_0738_b_16L仙山跡水未淸旋有挑包向彼之
009_0738_b_17L移徙重事也一猶爲難況再三
009_0738_b_18L而疊萃衆唇舌者耶然則蹲此過歲
009_0738_b_19L春向仙嵓罷會後觀機何𨓏所謂
009_0738_b_20L萬全之計也玆不得頷諾於回使
009_0738_b_21L不如不書此不如不奉書雖曰勢也
009_0738_b_22L彼此之無聊尙復何言若無意副請
009_0738_b_23L而托故如是云則非其情也天日
009_0738_b_24L有照耳早晩不可不一作不請客

009_0738_c_01L사찰의 청정한 경계를 더럽히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이러한 결정 때문에 미움을 사서 깊은 골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요? 그저 한번 웃고 말 일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돌아가는 인편에 말로 전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남평98)의 윤·홍·나 학사들에게 답하여 올리는 편지
쓸쓸한 객창에서 천금과도 같은 애틋한 안부 편지가 안개를 헤치고(披霧) 제 책상머리에 도착하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더구나 엄동설한에 인재를 가르치시고 아울러 모든 생활들이 청아하고 윤택하다는 것을 아니, 더욱 위로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이별을 고하지 않고서 다른 산으로 가 버린 것을 서운하게 여기신다면, 아무래도 형기形器 밖의 깊은 뜻에는 도달하지 못한 게 아닌지요? 이 점이 매우 근심스럽습니다. 마음으로 평소에 잊기 어려운 경지로 들어가기를 기약한다면, 굳이 하던 일을 멈추고서 빙 둘러앉은 다음 한가롭게 이별의 소회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한 조각의 오월吳月이 오랫동안 하늘에 있으면서 두 고향을 잘 비추고 있습니다. 새로 머무르고 있는 곳은 바로 무등의 산마루입니다. 물은 맑고 산은 고요하여 조금도 세속의 상념이 없는 곳입니다. 한번 죽장망혜로 가벼이 오시어 둘러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산 좋고 물 맑은 곳은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고 합니다.
나 공羅公의 빼어나고 침착한 태도, 얼음처럼 맑은 정신과 고결한 풍채는, 매번 제 마음에 또한 인연임을 느끼게 합니다.
인편이 뜻밖에 서둘러 가므로 이만 줄입니다.
식 상인에게 대신 답하여 보내는 편지
반년 간 고요한 곳에서 함께 선 수행을 한 것은, 실로 뜬구름 같은 세상에 아주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인연은 한계가 있는 법으로, 갑자기 남북으로 떨어지게 되어 매우 서글펐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대의 편지를 받고서 옛정은 만 겹의 구름 덮인 산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으니, 그지없이 위로되었습니다.
사제 등이 사문에 구름처럼 모였다가 각각 저마다 흩어지고 나면, 온갖 쓸쓸함이 새로 일어나는 것만 같아서 너무도 괴롭습니다. 다시 그대를 만나는 것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009_0738_c_01L汚淨界倘不以此執嫌而深鎻洞雲
009_0738_c_02L呵呵餘附歸舌不宣

009_0738_c_03L

009_0738_c_04L謝上南平尹洪羅僉學士

009_0738_c_05L
悄然旅窓千金情問披霧落案
009_0738_c_06L氣可掬而況伏悉雪寒硺瑚琿僉氣
009_0738_c_07L味味道淸腴尤慰區區者誠矣以不
009_0738_c_08L告別走他山爲薄情恐未達形器外
009_0738_c_09L深旨是爲悶甚心期若入平生難忘
009_0738_c_10L何用停工團欒坐閑叙別爲也
009_0738_c_11L片吳月長在天中相照兩鄕心好矣
009_0738_c_12L新居乃無等之巓也水淸山靜無一
009_0738_c_13L點塵想或可竹杖芒鞋聯翩來遊否
009_0738_c_14L佳山麗水能發人之好意思云也
009_0738_c_15L公秀雅淵默氷神玉骨每來余心上
009_0738_c_16L亦知緣也便發意外走艸未盡情

009_0738_c_17L

009_0738_c_18L代謝湜上人

009_0738_c_19L
半年禪河之游泳實是浮世勝事
009_0738_c_20L良緣有限遽辦南北之隔深庸悵仰
009_0738_c_21L忽承情書於此際果知故情不隔於
009_0738_c_22L雲山萬重也旋慰旋慰弟等雲聚於
009_0738_c_23L師門散衆之餘凡百蕭索有若新生
009_0738_c_24L良苦良苦更對芝眉知在那時

009_0739_a_01L한번 석장을 짚고 어서 와서 문 앞의 한 그루 소나무를 위로해 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서문(序)
계안稧案의 서문(稧案序)
‘안案’이란 바로 동지들을 모아 약속을 지키고자 작성한 문건이니, 무릇 모임에 대한 규정의 큰 강령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부모가 없으면 태어날 수 없고, 스승이나 벗이 없으면 또한 성장하지 못한다. 끝없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살아 계실 때는 봉양하고, 돌아가실 때 장사를 지내어 마음속에 유감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으로서 행해야 하는 당연한 직분이니, 지금 바로 이것이 계稧를 만드는 이유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계, 구성원들은 모두 쇠미한 집안의 후예들로, 세상에 그 가문의 창성한 가업을 지키고 그 대를 이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어버이와 헤어져서 출가를 한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 책 상자를 짊어지고 스승을 따라 돌아다니며 세속 밖의 자연에서 거친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하늘이 부여한 성품이 없지 않아 효근孝謹에 물들고 신의信義가 마음에 가득한데 출가자가 되어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로 욕심 없이 지내어서 가진 재물이 없어 부모와 친지와, 스승과 벗에 대해 재물로 보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품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부모와 벗에 대해서는 다만 마음속에 늘 생각은 하지만 위로하고 기쁘게 할 방법이 없었으니, 매번 흉중에 열이 나고 미어지고 찢어지듯 아픈 것이 가슴이 오랫동안 병든 것과 같았다. 그러던 중 병술년 초하룻날에 마침 사문師門에 모였을 때에 여기에 대해 언급을 하여 스승님과 부모님을 위하는 모임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논의를 하고서 상론尙論100) 가운데 타당한 것을 정하였다. 이에 평소에 사귀었던 벗들이 인효仁孝를 서로 채찍질하고 신실信實할 것을 권면하였다. 정월 16일에 정기 모임을 갖고서 초안을 만들었다. 모임의 명칭은 금란101)계金蘭契로 정하고서 여러 의견을 모아 다음과 같이 계안에 썼다.
“우리들은 나란히 한 세대에 태어나서 모두 부모로부터 형체를 물려받고,

009_0739_a_01L錫飄然早慰門前一枝松可矣餘付
009_0739_a_02L默領

009_0739_a_03L

009_0739_a_04L

009_0739_a_05L稧案序

009_0739_a_06L
案乃會同志牢約成劵者也原夫會約
009_0739_a_07L之大關節人於天地靡父母不生
009_0739_a_08L無師與友且不成宜袞袞竭力志體
009_0739_a_09L養生送死無憾於中固是斯人當
009_0739_a_10L行之職故今此稧之所以作也惟我
009_0739_a_11L稧中俱以窮家殘裔無勢於世守
009_0739_a_12L其家昌承基緖故辭親出家相與
009_0739_a_13L負笈從師旅泊菲食於世外林渠
009_0739_a_14L或不無天賦孝謹襲染信義欝中
009_0739_a_15L作外者萍蓬身世淡泊無儲胥
009_0739_a_16L肉親師友斷無含感思報之資斧
009_0739_a_17L於趍庭麗澤徒搆思存諸心而無以
009_0739_a_18L慰悅每庸熱胷漬眥心若病之者許
009_0739_a_19L歲之丙戌初吉適會師門語及
009_0739_a_20L遂起爲師親修稧之議㝎爲尙論
009_0739_a_21L之當於是乎平昔友于中駈策仁孝
009_0739_a_22L網羅信實卜元正十六日期會成案
009_0739_a_23L而目以爲金蘭契因以用衆議題劵曰
009_0739_a_24L凡吾儕生並一代皆禀形父母

009_0739_b_01L사부에게 몸을 맡기고 살아왔다. 그러고 보면, 이 생애에는 성심을 다하고 사력을 다해야 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궁핍함과 현달함, 주림과 풍요는 부여받은 명이 다르다. 가난 속에서 부모를 봉양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과 개나 말도 하는 봉양을 하지 못하고서 어느덧 난극欒棘102)의 슬픔에 얽매였고, 영원한 구로劬勞103)의 보답을 저버렸다. 살아 있을 때는 봉양할 길이 없고, 돌아가셨을 때도 예를 갖출 수가 없어서 하늘에 소리쳐도 이를 데가 없고 땅을 딛고 설 만한 데가 없으니, 혼과 뼈가 전부 사그라진 다음에야 이 애통함이 그치게 될 것이다. 어찌 길게 탄식하며 통곡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지금 맹약하여 계를 만드는 것이니, 어렵고 쉬움을 마다하지 않고 때를 보아 재물을 모으며 함께 넉넉해지기를 힘써서 편안하고 넉넉하게 봉양하다가 갑작스런 상제喪祭에는 다 함께 의지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으로 뜻을 삼는다면, 이는 바로 성姓은 같지 않지만 형제나 다름없는 이라고 하겠다.
저마다 모름지기 돈독하고 화목하기를 힘써야 하니, 이 모임이 끝내 버려지고 잊혀지면서 유명무실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를, 나는 이 모임에 바랄 것이다. 이것은 마음을 닦고 학문에 힘을 쓰고 나서 여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으스대며 돌아다니면서 내 몸 밖의 물욕을 오로지 쫓느라 일신상에 주체가 없고, 하는 모든 일마다 체계가 없다면, 이에 대해 억지로 논할 것이 못 된다. 아, 세상의, 부모와 스승이 있는데도 재물의 힘이 없는 가난한 자와, 천륜의 인연이 적어 세상에 홀로 있는 이들이 이것을 보면, 더욱 효의孝義에 대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쇠미한 세상에서는 사람의 좋아하고 싫어함을 잘 말하는 법이다. 어째서 타인을 참소할 궁리를 하여 굳이 소인배들이나 하는 헐뜯음과 아부를 하려는 것일까? 이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주 간하면 소원해지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면 정이 박해지는 것은 인간 세상의 실상이다. 사람의 삶이란 사슴이나 돼지가 아니어서 오래도록 모일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들의 구름과 새 같은 생애는 모였다 흩어지는 것을 일일이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신講信104)의 모임은 매해 인일人日105)에 지정한다. 매년 한 번씩 사문師門에 전부 모여 한 해를 보내며 단란한 대화를 나누고서 오랜 기간 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덜고자 한다. 또 공경함을 쉽게 놓치지 않도록 하고서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타인에게까지 파급시켜 의기투합한다면,

009_0739_b_01L身師傅而行世則可爲此生殫誠效
009_0739_b_02L死之地而人之窮顯飢穰殊命菽水
009_0739_b_03L之歡犬馬之養未伸俄纒欒棘之悲
009_0739_b_04L永負劬勞之報生無以爲養死無以
009_0739_b_05L爲禮呼天靡及觸也無容魂盡骨
009_0739_b_06L鑠然後此慟乃已矣安得不長吁
009_0739_b_07L而繼之失聲也故今盟好作稧不辭
009_0739_b_08L劇易相時鳩貲共務豊衍安閒饋
009_0739_b_09L急遽喪祭同倚相濟爲意則便
009_0739_b_10L是姓不同兄弟也各須敦睦勉旃
009_0739_b_11L就不得終歸於有聲無實之忽遺區區
009_0739_b_12L望於楔中耳是可修心務學中餘力
009_0739_b_13L馳騖飛揚專徇物欲於軀殼之外
009_0739_b_14L身無主萬事無綱非所强論也
009_0739_b_15L世之有父母師表而貧略無財力惸獨
009_0739_b_16L鮮天倫者視此而激增孝義之感發歟
009_0739_b_17L澆漓衰俗善言人好惡懷沙窺影
009_0739_b_18L做弩左腹之毁譽耶是未可知也
009_0739_b_19L則踈久則薄世態之本色人生非鹿
009_0739_b_20L不得長聚之而況吾雲鳥生涯
009_0739_b_21L散不可一二數也講信之期指㝎於
009_0739_b_22L每歲人日年年一度齊會師門
009_0739_b_23L年團話使免數久之踈薄而又未易
009_0739_b_24L敬持己恕及物意氣相期不以小

009_0739_c_01L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속에 담아 두는 일이 없을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난 뒤에 의義로써 맺은 맹계盟稧의 무거운 부담감을 모두 잊고 만에 하나라도 잘못된 폐단이 발생할 때에 미리 마련해 둔 조목이 없으면 훗날 장애를 염려하여 본전을 지급하고 내쫓는 것을 상책으로 삼고, 벌금을 부가하여 부끄럽게 하는 것을 차선책으로 삼으며, 잘못된 허물을 바로잡는 것을 하책으로 삼는다. 이리하여 한결같이 회원들 모두에게 선행을 하도록 권장하여 회칙에 따라 제약을 가하여서 장차 회칙의 조목과 조항을 어기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모든 회원들에게 차례로 해당 사항에 자문을 구하여 일의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승낙을 받도록 하며, 마땅히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은 반드시 권징勸懲한다. 그렇게 되면 이로부터 체계가 완성될 것이니, 조목을 공경히 따를 것을 생각해서 뒷면에 걸어 영원히 계의 정해진 규칙으로 삼는다.”
기記
대은암 정전과 운영루의 중창기(大隱庵正殿及雲影樓重創記)
설산의 남쪽 성덕산聖德山107)에는 구릉에 시렁을 놓은 듯한 집채와 나는 듯한 뭇 용마루, 자라가 짊어진 듯한 주춧돌이 있으니, 바로 관음사觀音寺이다. 동쪽으로 수백 보쯤 올라가면 대은암이 있는데, 암자가 새로 지어진 뒤로부터 폐사가 되었다가 다시 중창된 것이 두어 차례였다. 숭정崇禎 후 경자년(1660) 봄에 의견儀堅 장로가 본 사찰의 시왕十王을 만들었다. 처음 몇 칸의 사옥을 지을 때 탁 트인 지형에 산세가 조화를 이루어서 선가에서 말하는 전단旃檀108)의 영험한 경계라고 하는 것에 딱 들어맞았다. 그러므로 교리와 오묘한 이치를 터득하려는 수많은 무리들이 다투어 찾아와 자리를 잡았다. 이에 차츰 그 규모를 넓혀서 마침내는 ‘대은大隱’이란 이름으로 편액을 걸어 그 함의를 붙여 놓고서 그곳에서 즐거이 수도를 하였다.
그런데 39년이 지난 무인년(1698) 여름, 불에 다 타 버렸으니, 예전에 꽃비가 내리던 곳은 간곳없이 쑥대밭이 무성한 곳으로 변했다. 그 이듬해 기묘년(1699)에 산속에 살던 승려 처연處衍이 성규性圭와 함께 통하는 바가 있어 서로 맹세하고서 자신의 재물을 모두 다 내놓고 또한 모연募緣109)하였다. 비로소 그곳을 개척하여 시렁을 얹고 크게 확장하였다.

009_0739_c_01L時違從介意者無幾矣會議之餘
009_0739_c_02L僉忘結義盟稧之重而萬有一失之端
009_0739_c_03L預無節目杜斷慮爲後次梗礙以給
009_0739_c_04L本放黜爲上罰金悔愧爲次繩愆紏
009_0739_c_05L繆爲下一同責善拑制勿將以違條
009_0739_c_06L犯科巡質列座咸諾事密而當罰
009_0739_c_07L嚴而必勸懲由係即爲體念欽崇條
009_0739_c_08L揭于後永以爲稧中㝎䂓

009_0739_c_09L

009_0739_c_10L

009_0739_c_11L大隱庵正殿及雲影樓重創記

009_0739_c_12L
雪山之陽聖德山有棟宇架壑羣甍
009_0739_c_13L翬飛衆礎鰲負者觀音寺也東而
009_0739_c_14L上數百步許有大隱庵庵自始創
009_0739_c_15L而復新者盖再焉崇禎後庚子春
009_0739_c_16L老儀堅爲造本寺十王像初建數間
009_0739_c_17L而地形邃曠山勢周遭儘爲禪
009_0739_c_18L家旃檀之靈界故轉敎叅玄之徒
009_0739_c_19L多爭居焉迺稍廣其室宇遂以大隱
009_0739_c_20L扁其額寓其藏修之樂焉後三十
009_0739_c_21L九年戊寅夏回祿爲灾昔之雨花之
009_0739_c_22L蕩然作野蔓之塲越明年己卯
009_0739_c_23L之僧處衍與性圭暢感矢心罄己
009_0739_c_24L且募緣始拓其間架而張大之

009_0740_a_01L
갑신년(1704) 여름, 성행性行과 해천海天이 선승先僧들이 했던 일을 계승하여 마음을 합쳐 힘을 다하였다. 그들이 조성한 불상과 불화는 그 규모가 크면서도 단엄하였으니, 무인년 이전에 비해서 더욱 훌륭하였다. 이 암자는 한 번 폐사가 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임신년(1752) 여름에 대중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세월이 오래되어 사찰의 노후함을 염려하여 새롭게 단장하고 수리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사람들을 동원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안에서 방과 곁채를 짓기로 하였다. 일을 착수하고서 통정 설원通政雪瑗에게 감독을 맡기니, 무리들이 모두 따랐다. 건축 자재와 그것을 다루는 훌륭한 기술을 모두 동원하여 얼마 되지 않아 전각이 세워졌으니, 그 우뚝 솟아오르고 탁 트인 모양은 예전의 것을 그대로 따랐다.
옛날 앞 누대에 몇 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매우 좁고 볼품이 없어서 마치 작은 우물과 비슷하였다. 당시에 스님들의 해회海會를 개최할 때마다 항상 서로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아서 사람들이 모두 병통으로 여겼다. 그런데 재력이 거의 다하여 미처 수리를 하지 못하였다. 승려 종연宗演이 그 점을 애석하게 여겨서 재목과 인부들을 모아 심력을 기울인 결과, 마침내 갑술년(1754) 겨울에 정전正殿에 걸맞게 더욱 늘려 지었다. 이로부터 체용이 전부 구비되었고, 크고 작은 것까지 모두 갖추어져 분명하게 규모를 갖춘 대사찰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암자가 두 차례 폐사되고 중창된 경위이다. 아, 암자를 전후로 창건하고 수리할 적에 여러분들이 적절한 시기에 도와준 공로가 성대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기록할 만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불가의 도는 애초에 적묵寂默을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대법大法을 닦아 행하는 자들은 구름과 안개에 둘러싸인 자연 속에서 은거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엿보지 못하는 경계에서 그 소리와 빛을 찾은 뒤라야, 바야흐로 이 도道에는 작은 겨자씨 안에 거대한 수미산이 있다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만할 것이다. 새들은 산에 깃들면서도 나무 끝에 둥지를 틀고, 물고기는 냇물 속에 살면서도 모래나 진흙에 몸을 숨기기도 한다. 하물며 우리들이 자취를 숨기고 그림자를 감춘 이유가 어찌 정사淨社로 대은大隱의 장소를 삼지 않겠는가. 이는 바로 대은암의 흥폐가 이 법의 성쇠를 충분히 징험한 것이니,

009_0740_a_01L逮甲申夏性行及海天接踵而起
009_0740_a_02L心竭力雕畫像佛其爲宏敞端嚴
009_0740_a_03L戊寅以前益勝焉此爲庵一廢而重新
009_0740_a_04L者也後五十四年壬申夏大衆聚議
009_0740_a_05L惧其歲久而屋老抗志改新不苟於
009_0740_a_06L不忮於衆而劃房儲始手嗾
009_0740_a_07L政雪瑗典監而一衆承翼窮士木奇
009_0740_a_08L不多時殿之穹窿軒豁一因舊
009_0740_a_09L古有前樓數楹而頗狹陋埳井
009_0740_a_10L如也時建法侶海會恒有縶膝之嘆
009_0740_a_11L人皆病之而財力垂匱未及改修
009_0740_a_12L僧宗演甚惜之鳩材僝工殫勞心
009_0740_a_13L乃於甲戌冬稱正殿增廣而營建
009_0740_a_14L自是體用俱備巨細畢擧煥然
009_0740_a_15L爲大蘭若䂓模此乃庵二廢而重新者
009_0740_a_16L嗚呼庵之前後創修也諸公機
009_0740_a_17L會倡啓之功盛矣是皆可書也余以
009_0740_a_18L爲吾釋門之道旣主寂默則其信修
009_0740_a_19L大法行者隱栖雲烟人無所窺
009_0740_a_20L其聲光然後方可底於容斯道以芥裏
009_0740_a_21L須彌之域矣鳥栖於山猶巢木末
009_0740_a_22L潜於川猶穴沙泥且況吾黨之所以
009_0740_a_23L晦跡藏影者豈不以淨社爲大隱之所
009_0740_a_24L也㦲是庵之興廢足以驗此法之盛

009_0740_b_01L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족히 큰 것을 비추어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충청에서 후학들을 이끌고 본 암자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암자의 노승들이 나에게 암자가 거쳤던 연혁의 실제를 말하고는 글로 기술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엉성하게나마 붓을 적셔 이에 여러 법려들에게 경계하며 말하기를, “훗날 이 암자에 머무르는 자들은 삼가 앉아서 떠들거나 누워 자지 말고 마음을 맑게 하고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데 도모하기를 힘쓴다면, 거의 대은의 뜻을 저버리지 않게 될 것이고, 또한 시주를 베푼 신도들의 공로에 보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文
개와110)를 권하는 글(蓋瓦勸文)
집을 만들 때에 단지 장백匠伯의 공만을 말하고 와공瓦功은 말하지 않는다. 아, 그것은 또한 생각이 매우 단순한 것이라 하겠다. 커다란 집이 비록 크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긴 여름날의 모진 장마와 추운 겨울날 눈이 쌓일 때에 만약 기와로 지붕을 잇지 않으면, 대들보는 썩고 서까래는 기울어 얼마 못 가 집이 주저앉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는, 와공이 장백의 공에 못지않다.
생각건대 우리 사찰의 대법당과 여러 공전公殿을 근자에 비록 수리를 했지만, 미처 기와를 갈지 못하여 비가 새고 바람이 스며드니, 이대로라면 필시 썩어 무너질 것이다. 이런 경우가 어찌 커다란 공업에 한 삼태기를 못 부어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이에 기와를 구워 그것을 덮어 법전을 완벽하게 하려 하는데 만약 여러 선인들의 도움이 없다면 막대한 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아래와 같이 고한다.
“감히 이 권선문을 가지고 시주자들에게 두루 보시해 주기를 바라노니, 저마다 가진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시주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전에 갈삿갓(蘆笠)으로 불상을 덮어 주어서 전륜성왕(輪王)에게 복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운주동의 불탑을 수리한 뒤 약사전을 중건하기 위한 권선문(雲住洞佛塔修理後重建藥師殿勸善文)

009_0740_b_01L事雖小而足以喩大者也余自湖
009_0740_b_02L携後蒙戾止本庵庵之僉老
009_0740_b_03L余道中間沿革之實要請記述以文
009_0740_b_04L不獲遂强拙泚毫而仍戒諸法侶曰
009_0740_b_05L後之住此庵者愼勿徒坐喧臥眠
009_0740_b_06L須務圖明心透玄庶不負大隱之義
009_0740_b_07L亦可報建施之功云爾

009_0740_b_08L

009_0740_b_09L

009_0740_b_10L盖瓦勸文

009_0740_b_11L
創宇者只言匠伯之功而瓦功不與
009_0740_b_12L嗚呼其亦不思之甚也夫大厦
009_0740_b_13L廣室雖高且美麗九夏長霖三冬
009_0740_b_14L積雪若無盖瓦則棟朽椽傾顚覆
009_0740_b_15L不占而知矣故余謂瓦功不在匠伯之
009_0740_b_16L下也惟我寺大法堂與諸公殿
009_0740_b_17L雖補葺猶未遑改瓦雨漏風穿
009_0740_b_18L傾必矣豈匪功虧一簣者耶玆欲燔
009_0740_b_19L瓦覆之使法殿以至萬全之功而倘
009_0740_b_20L非衆善之攸助則莫大之功難望
009_0740_b_21L敢將勸軸普乞檀門各隨豊儉
009_0740_b_22L可五花於斯文古有蘆笠覆佛福受
009_0740_b_23L輪王云爾

009_0740_b_24L

009_0740_b_25L雲住洞佛塔修理後重建藥師殿勸

009_0740_c_01L
어떤 신인神人이 있었는데, 아명은 도선道詵112)이고, 법휘는 경보慶甫이고, 자는 광종光宗이다. 연기煙起는 그의 별호이다. 낭주朗州113) 서구림西鳩林 성기동聖基洞에서 남녀의 교합 없이 태어났다. 아버지의 성은 전해지지 않는데, 아마 최씨崔氏인 듯하다. 그의 어미가 동월冬月(동짓달)에 참외(苽)를 먹고 그를 낳았다. 그의 무덤은 순천에 있다. 도선이 창건한 옥룡사玉龍寺114) 승려들이 보호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최씨의 묘라고 전해오니, 그릇된 것이 아님을 알겠다. 그의 행적은 상나라의 시조인 설契과 주나라의 시조인 기棄의 탄생 설화와 그 유형이 매우 비슷하다.115) 삼한三韓 말엽에 당나라에 들어갔는데, 당나라가 망하자 일행 선사一行禪師116)의 핵심적인 도력道力과 여러 역학 및 풍수지리의 묘술을 얻었으며, 또한 정밀한 깨달음이 있었으니, 당시에 그를 ‘선하후해先河後海’117)라고 일컬었다.
우리 동방은 지형이 마치 물에 떠가는 배와 같으니, 묵직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 없고 위태롭게 출렁이는 형세를 면치 못하였다. 도선 선사가 능주綾州 운주동雲住洞을 둘러보다가 그곳을 배의 중심(舟腹)에 해당하는 요지로 지목하고서 그곳에 천불千佛 천탑千塔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 천불 천탑으로 출렁이는 형세를 짓눌러 안정되게 하여서 그로부터 전쟁이 그치고 난리가 멈추었으니, 나라의 요충지라 할 만하였다.
석원釋苑의 상사上士 보덕普德 화상에게 명하여 암자 한 채를 창건하게 하고는, ‘약사藥師’라 편액하고 머물러 지키게 하였다. 개천사開天寺118) 또한 화상이 창건한 것이다. 입적하는 순간에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지키라고 당부하여 수백 년 동안 그곳을 계속하여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자 그 법이 점차 잘 지켜지지 않아서 끝내 그곳을 지켜내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곳을 찾는 속인들이 불당과 탑을 허물어 밭을 개간하고 논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함부로 무덤을 두어 방생放生을 하는 청정한 경계를 더럽혔다. 끝내 단속하지 못한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이를 두고 시인 묵객들도 수심과 번뇌를 이기지 못하였는데, 승려(方袍圓頂)들의 안색은 어떠하였겠는가? 이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노라.
“선교禪敎의 종정宗正119)인 아무개가 영문營門의 지주들에게 모두 허락을 받고 나서 가까운 고을의 치중緇衆들에게 복원에 관한 모든 일을 맡겨 옛날 땅속에 묻혔던 불상을 일으키고 기울던 불탑을 바로잡았다.

009_0740_c_01L善文

009_0740_c_02L
有神人兒名道詵法諱慶甫字光
009_0740_c_03L烟起其別號者於朗州西鳩林聖
009_0740_c_04L基洞無人道而生父姓無傳焉盖其
009_0740_c_05L呑苽於冬月而誕焉其墓在於順
009_0740_c_06L天地師所剏玉龍寺僧守護而尙傳崔
009_0740_c_07L氏墓云可考信不誣而其跡也
009_0740_c_08L彿乎商之契周之棄首尾三韓末入
009_0740_c_09L唐國沒得一行禪師骨髓道力餘風
009_0740_c_10L堪輿妙術亦有精見處時稱先河後
009_0740_c_11L海也我東地形行舟如也物無鎭
009_0740_c_12L未免欹危漂沒銓綾州雲住洞目以
009_0740_c_13L爲舟腹樹千佛千塔使之鎭安息靜
009_0740_c_14L戰爭兵革可謂國之重坊也命釋苑
009_0740_c_15L上士普德和尙剏一庵扁之曰藥師
009_0740_c_16L守護焉開天寺亦和尙所剏也臨歸
009_0740_c_17L囑令人屬繼護歷數百載云
009_0740_c_18L久成廢漸不克終求利俗子毁佛
009_0740_c_19L壞塔墾田作畓或肆然置塚以汚
009_0740_c_20L放生淨界而終不禁戢者勢不及之
009_0740_c_21L致也騷人墨客不勝愁惱方袍圓
009_0740_c_22L頂寧有顏面有曰禪敎宗正某
009_0740_c_23L營門地主俱得諾筆起近邑緇衆
009_0740_c_24L勞董役昔之埋佛欹塔起之正之

009_0741_a_01L사물이 극한 데까지 가면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후에 이곳에서 숙직하면서 지키는 이가 없으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터이니, 정녕 이 일을 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약사전의 건립에 대한 것은 연기煙起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였으나, 촉산蜀山은 너무 어리고, 수달須達과 구선久仙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가 없었다. 이에 화사化士120)에게 명하여 권선문(勸文)121)을 가지고서 인덕을 잘 베푸시는 군자들에게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삼가 바라는 것은 도선 국사께서 국가를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것에 대해 추념하고, 우리나라가 영원토록 안정되도록 한 공덕에 감사하는 것이다. 모두 이 권선문에 꽃다운 이름을 기록하길 바라니, 사재를 희사하여 약사전을 중건하는 일은 그 공덕이 너무도 커서 당시 국사의 업적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로다.”
소요 선사께서 손수 적으신 연주시聯珠詩124)의 권후에 쓰다(題逍遙先師翁手書聯珠詩卷後)
강천剛泉은 바로 내가 출가한 곳이고, 은실恩室께서 오랫동안 머무르신 곳이기도 하였으니, 당시에 늘 왕래하던 곳이다. 경진년(1760) 올봄에 용문龍門의 임시 거처를 떠나 예전에 지나가다 방문한 적이 있던 산의 선仙 장로를 조문하였는데, 바로 나의 소싯적 스승이셨다. 한번 은실께서 입적하신 뒤 가 볼 인연이 없었으니 오늘의 행보는 6~7년 만의 방문이었다. 산천은 예전 그대로인데 인걸은 간 곳 없어 슬픈 마음이 평소보다 더할 뿐만이 아니었다. 장로께서는 연로하고 육체는 쇠해졌으니, 예전에 비하면 마치 전혀 딴 사람 같아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마음속 깊이 요동을 쳤으니, 장로 또한 나를 아껴 주시는 것이 평소보다 더하였다. 헤어지려 할 때 내게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나에게는 연주시 한 책이 있는데, 이는 소요 대로逍遙大老께서 직접 써 주신 것이네. 예전 나의 선사先師께서 선월禪月 화상이 입적한 가을에 이것을 얻으셨는데, 여러 경로를 거쳐 나에게 이르게 되었네. 시라는 것이 어느 곳인들 없겠는가? 그러나 옛 장로들께 들은 말에 따르면, 그 필법이 극히 범상치 않아서 당시 중국의 사람들이 보고는, 모두 ‘성인의 경지에 이른 필체(聖筆)’라 하며 앞다투어 공경히 예를 갖추어 하나라도 얻어다가 보배로 삼고자 하였다고 하네.

009_0741_a_01L謂物極則返者也堪可幸㦲然後無
009_0741_a_02L守直禁護則一因舊貫丁寧不可不
009_0741_a_03L建藥師殿使之烟起監之而蜀
009_0741_a_04L山已童須達久仙非一力所能
009_0741_a_05L命化士持勸文普告好施仁君子
009_0741_a_06L願思國師爲國效勞之勤感我國永世
009_0741_a_07L奠安之德咸署芳名於斯券而舍財
009_0741_a_08L重建則其爲功德之勝大不獨專美
009_0741_a_09L於國師當時也

009_0741_a_10L

009_0741_a_11L題逍遙先師翁手書聯珠詩卷後

009_0741_a_12L
剛泉即余薙染處恩室久住也
009_0741_a_13L常來徃庚辰斯年春發龍門旅次
009_0741_a_14L舊過之山之仙長老即余童蒙一字師
009_0741_a_15L一自恩室下世無因緣數𨓏還今行
009_0741_a_16L適出於六七年久之餘不但物是
009_0741_a_17L人非之感倍於常也長老年邁質朽
009_0741_a_18L昔日猶兩人對越難抒悲喜之交
009_0741_a_19L搖於內而長老亦忻愛之異於平時
009_0741_a_20L別謂余曰我有聯珠詩一册乃逍遙
009_0741_a_21L大老手書昔我先師得之於禪月和
009_0741_a_22L上卒逝之秋流至我者也詩則何處
009_0741_a_23L無之聞諸古老其筆法殊凡當時
009_0741_a_24L中朝人見之皆鳴以聖筆爭致敬禮

009_0741_b_01L이는 육안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후세에 그만한 것을 찾아보아도 결코 흔하게 얻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네.
지금 나는 너무 늙어서 머지않아 죽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또한 대대로 지킬 자가 없을 것이니, 그 점이 애석할 따름이네. 그대는 소요 선사의 현손이고, 한창 사석師席의 중망을 입어서 그분을 앙모하고 애석하게 여기는 것이 다른 이들과는 현격하게 다를 것이라 생각되네. 지금 내가 그대에게 이것을 줄 터이니, 그대는 옥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전할 만한 사람에게 건네주게.”
내가 그것을 공경히 양손으로 받고는,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것이 있었구나. 이것은 과연 우리 선조 선사이신 소요 선사께서 직접 쓰신 글씨로다.”
책을 펴 보고서 감상하며 선사를 그리는 마음에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비록 아름다운 옥을 가득 잡고 영묘한 구슬을 가득 품고 있을지라도, 이 책을 얻은 기쁨과 다행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시만을 아껴서 그러한 것은 아니니, 선사의 손길이 가득 담긴 서책이 소중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새것과 같았다. 이에 조심히 소매에 넣고 돌아와서 배접을 하여 수리하고, 손수 몇 줄의 발문을 지어 문하의 여러 법려들에게 부탁하며 말하였다.
“이는 우리 선조이신 소요 선사의 필적이다. 후에 전해 줄 만한 사람에게 이 필적을 넘겨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이것을 상자에 넣어 소중하게 간직해서 손상되지 않도록 하라.”
제문祭文
월하당 탑에 올리는 제문(祭月河堂塔文)
詩山秀氣     시산詩山125)의 빼어난 기상이
鍾乎吾師     우리 선사에게 모였네
早覺塵幻     일찍 헛된 세속 깨닫고
逃鏟衣緇     뛰쳐나와 법복을 입었지
宿種緣勝     예부터 심어 놓은 좋은 인연은
今作師資     지금 대사가 된 바탕이요
法施恩渥     불법을 베푼 은혜는
如海難思     바다와 같아 헤아리기 어려웠네
誠信淺劣     참으로 보잘것없는 내가
孝養幾何     어떻게 모실 수가 있으리오
俛仰天地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에
愧忸良多     부끄러운 일 너무도 많았네
世速夜壑     세상은 밤 골짜기보다 빨리
化緣息之     교화의 인연 꺼져 가니
蒼天哭放     창천의 통곡 소리
于公于私     공과 사에 미치네
禪室寂寞     고요하고 쓸쓸한 선실에
雲煙空飛     구름과 연기 허공에 흩날리고
薪臺火滅     섶나무 쌓은 누대 타오르니
我安適歸     나는야 어디로 돌아갈꼬

009_0741_b_01L取爲寶云此非肉眼所知而求之後
009_0741_b_02L決不可多得者明也今我已老
009_0741_b_03L火無幾且無能世守者堪可惜也
009_0741_b_04L以逍遙法玄孫方負師席重望其慕
009_0741_b_05L悅珍惜絕異於他矣今以是予君
009_0741_b_06L須玉持將可傳於其人也余敬受合
009_0741_b_07L手而嘆曰有是㦲是果吾先祖師逍
009_0741_b_08L遙室揮洒手滋歟披翫感慕自不
009_0741_b_09L覺日之將晩雖滿把崑玉盈懷驪珠
009_0741_b_10L未足喩如其忻幸非愛其詩而然也
009_0741_b_11L乃重其先師手澤尙新也於是謹袖而
009_0741_b_12L使添紙修補手題數行跋語
009_0741_b_13L囑乎門下諸法侶曰是吾逍遙先祖師
009_0741_b_14L筆迹也後余有其人則應知金護
009_0741_b_15L藏之室中篋俾勿傷

009_0741_b_16L

009_0741_b_17L祭文

009_0741_b_18L祭月河堂塔文

009_0741_b_19L
詩山秀氣鍾乎吾師早覺塵幻
009_0741_b_20L鏟衣緇宿種緣勝今作師資法施
009_0741_b_21L恩渥如海難思誠信淺劣孝養幾
009_0741_b_22L俛仰天地愧忸良多世速夜壑
009_0741_b_23L化緣息之蒼天哭放于公于私
009_0741_b_24L室寂寞雲烟空飛薪臺火滅我安

009_0741_c_01L幸得靈迹     다행히 발우의 청정수와 사리와 같은
鉢水寶珠     선사의 신령한 자취를 얻게 되어
三生淨業     삼생三生의 정업淨業은
警世長流     길이 세상을 깨우치게 되었네
塔支三疊     이렇게 세운 삼층의 탑은
尊師琳宮     사원에서 선사를 받들리니
即縫無縫     부도가 있건 없건 간에
古今同風     고금의 흠모는 매한가지
淸茶一椀     맑은 차를 담던 주발 하나
萬古深情     만고토록 깊은 정한情恨 새기누나
眞諦無語     진제眞諦는 말이 없으니
說豈縱橫     이래저래 말해 무엇 하리
금곡 선사의 사리탑에 올리는 제문(祭金谷禪師塔文)
여러 생의 뛰어난 업연으로 이 세상에서 바늘과 개자(針芥)126)같이 의기가 투합하여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이룬 것이 기쁠 뿐입니다. 발우 하나로 생계를 꾸리면서 주방에서 공양할 때 어려운 살림으로 땔나무와 양식이 부족하여서 좋은 음식을 바치지 못한 것이 서글펐습니다. 무엇을 세속의 도리(世諦)라 합니까? 바람에 등불이 꺼지듯 열반하셨으니, 잠깐 사이 구름처럼 서글픔 밀려옵니다. 옛 골짜기의 달도 조문하는데, 주인 떠난 빈집에서 효양할 수 있겠습니까? 다비를 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쌓인 선禪 수행의 공력은 다행히 육신이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천지와 함께 하나가 되었으니, 선사의 사리(寶珠)는 천년만년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삼층의 석탑을 만들어 강산剛山의 옥동玉洞에 세우면, 천년만년 기나긴 세월 동안 높은 탑에 비칠 둥근 달처럼 사람들이 사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어찌 이곳에 이르며 어찌 이곳을 떠나겠습니까? 거칠게나마 제사 음식을 갖추어 감실 앞에서 공경을 다하여 진설합니다. 떡과 다과를 수북이 쌓아 놓았으니, 신이여, 영靈이여, 이곳에 오시어 저희 정성을 굽어 살펴 주소서. 어찌 이곳에 계시다가, 또한 이곳을 떠나셨습니까?
기행문紀行文
몽행록夢行錄
나는 평소에 대중들을 이끌어 강론하는 것을 업으로 삼다 보니, 명승지를 찾아다닐 겨를이 없었다. 이제 나이 55세가 되니, 자못 늙고 쇠하여 가련하다고 할 만하다. 용집龍集 계미년(1763) 8월 가을에 명승지를 유람하고픈 마음이 매우 극심하여서 자리를 나서려고 하였으나, 시기를 놓쳐 오래도록 답답하였다. 깊은 골짜기에 틀어박혀서 그랬던 것이다. 이번 달 27일 신해辛亥일에 문하의 제자들을 데리고 스승의 만류를 뒤로 한 채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009_0741_c_01L適歸幸得靈迹鉢水寶珠三生淨
009_0741_c_02L警世長流塔支三疊尊師琳宮
009_0741_c_03L即縫無縫古今同風淸茶一椀
009_0741_c_04L古深情眞諦無語說豈縱橫

009_0741_c_05L

009_0741_c_06L祭金谷禪師塔文

009_0741_c_07L
多生勝緣針芥投於此世喜成師子
009_0741_c_08L之分一鉢生計桂玉迫於供厨
009_0741_c_09L乏甘旨之奉誰謂世諦風燈火滅
009_0741_c_10L須雲愁古壑月吊虛堂孝養何得
009_0741_c_11L火浴告期積刼禪工幸不泯於身後
009_0741_c_12L一馬乾坤留寶珠於千秋造三層之
009_0741_c_13L石塔樹剛山之玉洞層落落影團團
009_0741_c_14L千古萬古與人看靈何卽此亦何離
009_0741_c_15L具薄菲之羞奠敬陳設於龕前
009_0741_c_16L尖尖菓堆堆神兮靈兮盻蠁間誠
009_0741_c_17L在此亦豈去此

009_0741_c_18L[紀行文]

009_0741_c_19L夢行錄

009_0741_c_20L
余素率衆業講無睱 [5] 討勝年邁五十
009_0741_c_21L頗可曰衰遲堪憐龍集癸未秋八
009_0741_c_22L酷發覽勝之興盖挑乎坐失稔
009_0741_c_23L久欝蟄古壑而致其然爾本月二十
009_0741_c_24L七日辛亥携門役埅鎭師挑包行具

009_0742_a_01L
골짜기를 막 벗어날 때쯤 문중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전하는 자를 만났으니, 아, 가슴이 아프도다. 길이 먼 탓에 서둘러 다비茶毘 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갔으나, 장례는 이미 3일 전에 치러진 뒤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길을 나서겠다고 말하고 나서 법운암法雲庵에서 머물렀다. 세상사가 무상함을 애달파하며 마음 둘 곳을 몰랐으니, 남양南陽에 곡哭을 하여 눈물이 마르지 않고, 멍한 채 있다가도 이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기일전하여 슬픔을 억지로 참고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길을 나섰다. 기記·우友·총聰·혜彗·정定 다섯 승려들이 고개 아래 사거리까지 나를 위로하며 배웅하였다. 저물녘에 두곡斗谷에 도착하여 위양渭陽의 임시 거처에 들어갔다.
그믐 저녁쯤에 상두사象頭寺 동전東殿에 도착하였으니, 바로 두월斗月 장로이신 묵안默岸 스님께서 주석하신 곳이다. 간목竿木128) 놀이를 벌이는 곳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또한 화암사花巖寺와 대둔사大芚寺를 한번 다녀오려고 하였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아직 실천하지 못하였네.”라고 말씀하셨다. 놀이를 마치고 이별하려고 하니, 그 문하의 스님 몇 분이 고개 아래까지 데려다 주고는 가는 길을 알려 주었다.
9월 초하루 을묘일에 금산사金山寺129)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은 바로 젊은 시절에 법사 스님을 모시고, 하안거를 지내던 곳이었다. 금파 법로金波法老와 연파蓮波 도반, 세환世幻·야학夜壑 스님들 모두 이미 열반하시었다. 옛 뜰을 배회하며 망휴암望休庵 쪽을 바라보니, 사형께서 새로 지은 장륙전丈六殿만이 홀로 우뚝 서 있었다. 사물은 그대로인데 사람만이 그 자리에 없어 무상함에 눈물이 옷깃을 적시었다. 금산사의 다른 곳은 황폐해졌고, 옛날에 알고 지내던 분들도 또한 모두 별이 지듯 열반하셨으니,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함에 소홀한 부분이 있어 괜스레 마음이 아파왔다.
송대松臺130)를 지나 곧장 감로암甘露庵에 오르니, 낙파당洛波堂 회랭會冷이 마침 주지를 하고 있었다. 그와는 일찍이 친분이 있었는데, 이제 누런 이에 흰머리를 하고 있어서 처음 만나는 듯 생소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문득 그와 지난날에 있었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나니, 사람의 오랜 이별에 슬픔이 밀려왔다. 공양을 하고 나니, 해가(날이) 아직 일러서 일찌감치 비전碑殿131) 심원深院으로부터 출발하여 은격암隱閴庵에 도착하였는데, 그곳 주지 우일宇一 스님은 두월斗月 선사의 시자였다. 그가 나와서 나를 맞이하여 방에 들어갔다. 나를 매우 따뜻하게 대접하였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잘 대접하였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정신없이 자는 바람에 해가 이미 동쪽에 뜬 줄도 몰랐다.132)
아침에 국사봉國師峯133)까지 나를 전송해 주었다. 들쭉날쭉한 돌길을 앞서 인도해 주었는데, 거의 10리에 달했다. 두터운 후의를 느낄 수 있었다.

009_0742_a_01L登程纔出洞遭門老息化訃使
009_0742_a_02L可慘因迃路奔哭於萬日洞下茶毘
009_0742_a_03L之所即喪出後三日日將西因辭
009_0742_a_04L留法雲庵悼世無常極無所棲
009_0742_a_05L盖緣哭南陽目未乾嗒然又復
009_0742_a_06L有此也轉發强忍矢啚初心戒錫出
009_0742_a_07L舊記友聦慧㝎五軰慰送交衢嶺下
009_0742_a_08L投斗谷入渭陽寓所晦夕行至象頭
009_0742_a_09L寺東殿即斗月丈默岸竿木戱塲言
009_0742_a_10L某亦業欲一遊花巖大芚拘緣未果
009_0742_a_11L一戱而別門下數僧護至嶺底指路
009_0742_a_12L九月朔乙卯入金山寺乃少小時
009_0742_a_13L法室結夏處金波法老蓮波故友
009_0742_a_14L幻夜壑俱已歸眞徘徊舊庭瞻望
009_0742_a_15L休庵兄所新丈六殿獨巋然物是人
009_0742_a_16L襟沾感涙寺餘荒墟舊知者
009_0742_a_17L落落晨星貽念薄面有所病心過松
009_0742_a_18L直上甘露庵洛波堂會泠適主此
009_0742_a_19L曾有雅齒黃髮白幾作生面話徃事
009_0742_a_20L輒娓娓人生濶別堪嗟食已日尙早
009_0742_a_21L自碑殿深院至隱閴庵主宇一乃斗月
009_0742_a_22L之役出迎入室對穩更深而就寢
009_0742_a_23L不知東方之旣白朝送至國師峯
009_0742_a_24L前崎嶇石路較可十里意厚可感

009_0742_b_01L산꼭대기에 돌을 깔고(班荊)134) 앉아서 잠시 작별 인사를 나눌 무렵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여 맑고 고운 빛이 눈부시게 비치었다. 동쪽으로는 지리산(頭流), 서쪽으로는 변산(邊湖), 북쪽으로는 종남산, 남쪽으로는 무등산이 있었으며, 천 갈래로 강물이 흘러 마치 실과 같이 사이사이로 실개천이 흘렀다. 추줄산崷崪山135)·운주산雲住山·회문산回門山136)·두승산斗升山137)은 우뚝한 봉우리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여 마치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가리키듯 뚜렷했으니, 내가 생각해 볼 때 아마도 남쪽 지방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경치는 없을 것이다.
2일, 완부完府(전북 완주)에 도착하여 시장을 구경하였다. 한 스님이 와서 말하길, 두월 장로가 따라온다고 했다. 잠시 냇가에서 가던 길을 멈춰 서있으려니, 이윽고 도착하였다. 매우 기뻐 손을 잡고 미더운 친구에게 감사했다. 그와 함께 성가퀴(雉堞)138)와 경기전慶基殿139)을 구경하였다. 날이 저물어 서문西門에 있는 김 공金公의 집에서 머물렀는데,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중하고 정성스러웠으니, 대읍大邑의 풍모를 엿볼 수 있었다.
3일, 일찍 길을 나서서 양정포陽正浦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공양을 들었는데, 해가 이미 정오에 있었다. 비가 올 기세가 하늘 가득 역력하여 구름과 안개가 나무를 에워싸고 있었다. 발길을 재촉하여 몇 리를 걸어갔을 때쯤 비가 쏟아붓듯 내렸다. 왕포역王浦驛 구좌리狗坐里에 도착하여 김씨 성을 가진 인가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날씨가 맑았다가 비가 내렸다 하였기에 비가 그쳐 개면 길을 나서고, 비가 내리면 길을 멈추었다. 힘겹게 깊은 계곡으로 들어서서 일주문一柱門140)에 의지하여 잠시 쉴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여러 산봉우리는 비취색을 띠었고, 감돌아 흐르는 한 줄기 냇가는 푸른색이었으며, 찬 바위는 수려하고 기이하였고, 높이 쭉쭉 뻗은 나무들은 잎과 가지가 무성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몇 백 걸음을 가니 높은 봉우리가 있었는데, 여러 갈래의 능선들이 이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으로는 물이 빠르게 쏟아져 떨어졌는데, 그 길이가 수백 길(丈)이나 되었다. 떨어진 물은 소용돌이치며 못(潭)을 이루었는데, 그 색이 검푸른 빛깔이었다.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돌 사이로 졸졸 흐르고, 깎아 세운 듯한 벼랑은 하늘 높이 솟아 있어서 마치 성벽을 쌓아 놓은 것 같았다. 몸을 굽혀 위로 올라가서 돌아보니, 바람이 아래로 지나간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고목들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으며, 구름이 끼었다 개었다, 짙었다 옅었다를 반복하며 무성한 나뭇잎들을 둘러싸고 있으니, 마치 한 폭의 살아 있는 그림과 같다. 범종과 풍경 소리가 짙은 구름에서 꽃비를 내리는 하늘에 은은하게 울리니, 황홀하여 신비한 다른 세계로 느껴졌다. 진화 옹眞化翁께서 첩첩산중의 깊은 산골짜기에 광채를 감추고 숨긴 신추神樞와 명건冥鍵을 여시어 지령地靈의 꽁꽁 숨겨진 비밀을 펼치고, 천기天機의 빈틈을 엿보아서 용궁龍宮을 지어 남방을 진압하여 복종시켰으니, 그것이 바로 화암사花巖寺141)이다.

009_0742_b_01L荊坐山巓暫叙別時朝暾始出
009_0742_b_02L彩爛然東頭流西邊湖北終南
009_0742_b_03L無等千派江流如線間涓崷崪雲
009_0742_b_04L住回門斗升諸山對峙培塿歷歷如
009_0742_b_05L指掌竊意南中奇觀無踰此初二日
009_0742_b_06L到完府翫市有一衲尋告斗月携
009_0742_b_07L使追踵植杖川上俄而至劇懽握
009_0742_b_08L信友因同翫雉堞及慶基殿暮留西
009_0742_b_09L門外金公家頗懃欵可見大邑風
009_0742_b_10L三日早行至陽正浦始飯日已午
009_0742_b_11L意滿天雲霧擁樹促步前數里
009_0742_b_12L如注至王浦驛狗坐里入金姓人家
009_0742_b_13L寄宿明日日氣或晴或雨霽行潦
009_0742_b_14L間關入邃谷得倚一柱門暫歇
009_0742_b_15L峯擁翠一溪繞碧寒巖秀異喬木
009_0742_b_16L扶踈起行數百步有高峯支分回
009_0742_b_17L壁折湍注瀑可幾百丈環回作潭
009_0742_b_18L色蒼黑沿溪履石碧崖凌空如列
009_0742_b_19L鞠躬步上迴視風斯下矣登絕
009_0742_b_20L古樹簇擁晴雲濃淡橫繞殷葉
009_0742_b_21L如活畫磬梵隱隱於曇雲雨花之天
009_0742_b_22L然別一靈區眞化翁開藏光匿輝之神
009_0742_b_23L樞冥鍵於重巒複壑發地靈之慳秘
009_0742_b_24L覷天機之缺罅剏龍宮以鎭南服者

009_0742_c_01L
옛날에 원효元曉·의상義相·윤필尹弼 등 세 조사祖師께서 도량을 짓고서 지혜를 나누고 설법을 베풀어 신묘함을 펼치신 곳이다. 이 산에는 세 암자가 있는데, 각각 세 조사의 이름을 따서 편액으로 걸어놓았다. 서천西天의 황목단黃䒟142)을 옮겨 와 암혈巖穴에 심었는데, 각기 퍼져 용이 숨어 있다고 하는 골짜기의 작은 연못143)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연못의 물을 받아 자라서 바위의 위아래로 퍼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의 발톱 자국이 남아 있는 것과 같았다.
누각144)에 들어서서 의복을 정돈하고서 관음상觀音像에 엄숙히 예를 올렸는데, 관음상의 모양이 다른 것과 달리 특이하였다. 그곳에 계시는 노스님께서 “세 조사께서 전단향栴檀香나무를 베어서 증단證壇에 두고, 함께 불상을 조성하는 일을 맡아서 진행하니, 하루도 되지 않아서 삼세 여래상과 관음상이 완성되었다. 삼세 여래상은 대둔암大芚庵에 안치하였고, 관음상은 이곳에 두었다. 남은 향나무 몇 가지는 높은 궤짝에 잘 간직하여서 지금까지 보물로 전해진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전단향나무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구경하였다. 또한 사찰에 건물을 짓고 경계를 쌓았다. 난리를 겪어 사찰은 무너져 있었고,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넝쿨이 엉켜 있었다. 금불상은 노출된 지 몇 년 되었는데 비바람 맞아 새것 같았다.
옛날에 관찰사(方伯)145)로 있었던 성달생成達生146)이란 분이 마침 이곳에 수렵을 나와서 사냥용 흰 송골매를 풀어놓았다. 날아가더니 썩은 들보 위에 앉아서는 아무리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들보를 쓰러트렸는데, 들보의 틈 사이에서 사찰 이름을 얻었는데, 글자가 예스러웠다. 이에 감동하여 화암사를 중건하였다. 이 일은 사전寺典147)에 실려 있으니, 살펴보면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향각148)의 주지(香閣主)인 도희道熙와 아사리(闍梨)149) 대순大淳은, 일찍이 두월 장로를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이다. 기뻐하며 나를 맞이하고, 매우 정성스럽게 대접하였다. 오차午茶150) 후에 의상암義相庵을 구경하고 나서 윤필암尹弼庵으로 갔다. 그곳의 춘파 상운春坡尙運 스님께서는 별당別堂에 가셨기 때문에 그 문인인 광훈廣訓과 자리를 함께했다. 거동과 말씨가 매우 공손하고 예의가 발라서 훌륭한 인물이 될 만하였다. 그가 몇 년 전에 법운암法雲庵에서 나를 보았다고 하였다. 곧 떡(餠糆)과 다과를 내와 먼 여행길을 위로하였다. 하룻밤 묵어가길 간절히 바라며 떠나는 것을 만류하였으나, 번거롭게 하는 것이 싫어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나섰다. 날이 저물어 향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춘파 스님과 아침 공양을 하고 신실新室에서 함께 있다가, 스님이 고개의 뒤편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오시에 안심사安心寺151)에 들어가서 대순大淳이 싸 준 오식午食을 먹고서 새로 지은 사리각舍利閣에서 잠시 쉬었다.

009_0742_c_01L花巖也昔元曉義相尹弼三祖師
009_0742_c_02L搆壇塲運智摛辭馳神作用地
009_0742_c_03L有三菴因其名揭額移西天黃𦱒
009_0742_c_04L種巖穴各致龍藏洞淵拱衛使洒
009_0742_c_05L水花之叢上下巖猶留龍爪痕入樓
009_0742_c_06L整衣肅觀音像像異於他聞之居
009_0742_c_07L [6] 三祖師伐栴檀香居證壇
009_0742_c_08L董事不日成三世如來與觀音像
009_0742_c_09L三如來安大芚庵觀音位此餘香數
009_0742_c_10L深藏卓樻至今傳寶翫所伐香
009_0742_c_11L址又築室封經亂寺壞叢薄葛藪
009_0742_c_12L金像露坐閱幾春秋風雨如新
009_0742_c_13L方伯成公達生適出獵放白鶻飛坐
009_0742_c_14L朽梁上劇呼不應因倒梁得樑間
009_0742_c_15L名字蒼而古遂感而重建事載寺
009_0742_c_16L可査勘香閣主道熙闍梨大淳
009_0742_c_17L於斗月摳衣擎鉢者欣出迎甚欵
009_0742_c_18L茶後翫義相庵到尹弼庵春坡尙
009_0742_c_19L運出別堂門人廣訓繼席而䫉甚恭
009_0742_c_20L言有倫可器自言數年前見儂於法
009_0742_c_21L雲庵卽辦餅糆茶菓慰遠行懃挽
009_0742_c_22L留宿嫌煩强撥暮還香閣春坡供
009_0742_c_23L又偕新室來送後嶺午入安心
009_0742_c_24L大淳備午食入新建舍利閣小憇

009_0743_a_01L적설루積雪樓에 올라가는데, 간살의 간격(間架)이 매우 넓었으며, 그 규모가 굉장히 크고 높았다. 선현先賢들이 적어 놓은 시판詩板들이 많이 걸려 있었으며, 왼편에는 범종이, 오른편에는 법고가 있었다. 그리고 누각의 양쪽에는 익랑翼廊152)을 지어 놓았다. 그 지세地勢가 바르면서도 정려精麗하였으며, 때때로 범종 소리가 울렸으니, 호남의 여러 사찰 중에는 이러한 형태의 누각은 일찍이 없었던 것이었다.
향각으로 돌아와 머물러 있다가 대대로 임금께서 직접 쓰신 글씨153)를 받들어 감상하였는데, 그 필적이 마치 은고리와 같이 아름다우면서도 쇠사슬과 같이 강건하여서 아찔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나 눈에 차고 넘쳤다. 나의 행보가 너무 더딘 것을 한스러워했는데, 오히려 천천히 하여 훌륭한 눈요기를 하였다. 종연宗演이라고 하는 승려가 있었는데, 나이는 어렸지만 매우 총명하였고, 용모가 수려하였으며, 문필文筆에도 약간의 재주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외진 곳에 머물러 그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안타까웠다.
이른바 한산전寒山殿이라고 하는 곳에서 백운암白雲庵으로 올라갔다. 기울어진 바위를 뚫고 그곳에 무쇠로 된 기둥을 세우고 높은 누각을 지었는데, 아찔하여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곳은 한가하면서도 맑고 고요하여 한 점의 번뇌도 일어나지 않았다. 떠나올 때 대순이 점심 공양을 싸 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다시 산비탈을 올라갔는데, 길이 매우 가파르고 구불구불하고 험하여서 돌길을 따라 득모암得母庵에 이르렀다.154) 위를 올려보니 마치 천상에 있는 듯하였다. 옛날에 손순목孫順穆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선덕宣德155) 10년 홍건적紅巾賊 유복통劉福通156)이 송경松京(開城)을 함락하여 몹시 혼란스런 상황에서 어머님을 잃었다. 그는 이 암자에 와서 세 번에 걸쳐 16아라한(十六聖)께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세 번째 공양을 베풀던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다. 꿈속에 여러 아라한들이 앉아 있었는데, 돌아보며 손순목에게 말하기를, “너는 어머니가 계신 곳을 잊었느냐?”라고 하였다. 손순목이 놀라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 보니, 어머니께서 과연 누대에 앉아 계셨다. 이 이후로 벽운대碧雲臺라는 옛 이름을 고쳐 득모암得母菴이라 이름하였다. 손순목은 옥구沃溝157) 사람이다. 판기板記에 기록되어 있다.
수천 걸음을 가니, 바위 계곡이 매우 그윽하고 깊었으며, 수풀은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가파른 절벽을 올라 서쪽의 만경대萬景臺158)에 올라갔다. 가파르게 위아래로 뾰족하게 솟아 있어서 마치 창을 꽂아 놓은 듯 마치 고깔의 옆모습과도 같았으며, 창을 쭉 세워 놓은 듯하였고, 연꽃이 처음 꽃봉오리를 터트린 모양과도 같았다. 구름이 끼었다가도 안개가 깔리고 개었다가도 비가 내려 아침저녁으로 천변만화의 모습을 보였다. 경사가 급격한 기슭에서 돌이 무수히 떨어져 빼곡하게 늘어섰는데, 돌이 마치 날아갈 기세이거나

009_0743_a_01L登積雪樓間架宏廣䂓模軒敞
009_0743_a_02L懸先賢詩板左鍾右皷各建翼廊
009_0743_a_03L其地而精麗時奏梵聲湖內諸刹
009_0743_a_04L曾有此樣樓居還香閣奉翫列聖御
009_0743_a_05L銀鉤鐵索眩曜溢目恨吾行太
009_0743_a_06L尙遲一壯矚有僧宗演年小頗
009_0743_a_07L聦明佳眉目稍文筆才而惜跧一
009_0743_a_08L或未展耳自所謂寒山殿者
009_0743_a_09L于曰 [7] 白雲庵𨰢欹巖鑄鐵植柱
009_0743_a_10L巍樓炫轉熒煌閴寥淸灑無一点
009_0743_a_11L塵想出淳之齎午齋大是趣事
009_0743_a_12L上山坂壘巚盤曲循石磴入得母
009_0743_a_13L仰視如天上在古有孫順穆爲
009_0743_a_14L名人於宣德十年紅巾賊劉福通
009_0743_a_15L松京搶攘中失母就是庵三度懇
009_0743_a_16L禱十六聖第三設供之晨假寐
009_0743_a_17L衆聖羅坐顧謂穆曰汝忘而母所在
009_0743_a_18L穆驚覺起視母果坐于臺上
009_0743_a_19L後易舊號碧雲臺因名得母菴穆沃
009_0743_a_20L溝人板記云行數千步巖谷幽邃
009_0743_a_21L林樾茂密上絕巚西登萬景臺
009_0743_a_22L下峭拔攅蹙若植戟若側弁若列
009_0743_a_23L戈矛若芙蓉菡萏之初開雲烟晴雨
009_0743_a_24L晨夕可萬狀奔崖墮石森羅碁布

009_0743_b_01L경사를 타고 삐뚤빼뚤 굴러 내려가기도 하였다. 그 거리가 거의 1리 반에 이르렀고, 담벼락처럼 가파른 절벽은 천 길이나 되었다. 바위 계곡과 수목 사이로 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불었다. 바위 사이로 한 줄기 길이 나 있어서 의관衣冠을 밖에 벗어 두고서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행도암行道庵에 도착하여서 여기저기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암자의 ‘암자는 비어도 부처는 걱정하지 않는다(庵虛佛不愁)’라는 구절을 읊었다. 더없이 청정하여 맑고 깨끗하였으며, 바위와 단풍나무는 취한 듯하고 골짜기 시냇물과 소나무에서 거문고 소리가 울려 눈과 귀를 호강시키니 다른 날 꿈속에 보이리라.
이윽고 마정고개(馬亭嶺)를 넘어 중봉암中峯庵에 도착하였다.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으며, 비취색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였다. 몇 분의 스님들이 암자에 머물러 계셨는데, 나를 보고 기쁜 낯으로 맞이하여 주었다. 하늘과 맞닿은 깊은 산속이라, 사람의 발길이 뜸하여 그런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이곳 스님들의 기풍이 순수한 것이리라.
6일, 날이 막 밝아올 무렵 뒷고개(後嶺)로부터 곧바로 길을 나서서 허통암許洞庵에 도착하였다. 깊은 골짜기의 푸른 바위는 깎아지른 듯 가팔랐고, 그곳의 폭포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졌다. 풍광이 매우 뛰어나 별세계에 온 듯하였다. 동쪽으로 1, 2리쯤 떨어진 곳에는 마천대摩天臺159)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이 산의 최고봉이다. 항상 운기雲氣가 가득하고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그 아래에서 일어났다. 날아가는 새의 등이 보일 정도로 높아서 올려다보면 하늘이 바로 앞에 닿을 듯하고, 내려다보면 땅이 만 길이나 떨어져 있는 듯하였다.
계룡산의 이름난 명소와, 내포內浦·강경江境·관촉灌蜀에 이르는 먼 거리의 풍경까지 한눈에 다 들어왔다. 몇 리를 걸으니,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삐쭉 솟아 서 있었다. 거대한 봉우리가 허공에 꼽혀 있는 듯하였는데, 마치 궁궐문과 같았다. 작은 길이 나뉘고 갈라져 어디로 갈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움직이려고 할 때 풀이 무성한 황량한 고개에서 쓰러져 가는 간판 하나를 찾았다. 그런데 자획이 희미하여서 ‘석문입石門入’이라는 세 글자를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로부터 생각을 가다듬고, 석문石門으로부터 덩굴을 헤치며 동쪽으로 갔다. 시든 단풍과 흰 바위벽을 지나 등나무로 어두운 길을 돌아 나오니, 기암괴벽이 이곳저곳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쪽으로 치우친 것, 기운 것, 뾰족하게 나와 있는 것, 거꾸로 밑부분이 뾰족한 것, 쓰러질 듯한 것, 삐쭉 솟아오를 듯한 것, 가로로 가지런한 것, 바르고 가지런하여 둥근 것, 쓰러져 있는 것, 평평한 것, 끊어지려다 이어져 있는 것이

009_0743_b_01L欲飛又迤𨓦下轉約里半許壁立
009_0743_b_02L千仞風颼颼起巖谷林木間緣巖
009_0743_b_03L間一線路卸衣冠置外入石罅
009_0743_b_04L行道庵盤桓不覺放唫庵虛佛不愁之
009_0743_b_05L淸絕灑落巖楓醉亞澗松鳴瑟
009_0743_b_06L可供耳目應入他日夢踰馬亭嶺
009_0743_b_07L中峯庵烟嵐濛霧翠色如滴有數
009_0743_b_08L僧守庵見客怡顏無或洞天奧邃
009_0743_b_09L跡罕至歟不然僧風淳耳初五 [8]
009_0743_b_10L日黎明自後嶺直取道至許洞庵
009_0743_b_11L壑虛窈翠巖削苽飛泉噴雪別一
009_0743_b_12L勝區折而東可一二里有曰摩天臺
009_0743_b_13L山之第一高勝處常有雲氣紛郁
009_0743_b_14L雨在下飛鳥視其背仰而天不尺
009_0743_b_15L而地萬仞如也鷄龍名區內浦江境 [9]
009_0743_b_16L灌蜀之遠一騁眸可窮行幾里
009_0743_b_17L巖角立鵠峙揷虛宛若門闕微路
009_0743_b_18L分歧環笻迷向蹰躇移時草沒荒皐
009_0743_b_19L得一朽牌字畫漫漶僅可知石門入
009_0743_b_20L三字自此正慮從石門捫蘿而東
009_0743_b_21L霜楓明壁回藤暗逕有奇巖恠石紛
009_0743_b_22L欹者倚者銳而出者却而後者
009_0743_b_23L巓而欲仆者拔而欲起者橫理者
009_0743_b_24L莊而拱者偃者夷者將斷而復續

009_0743_c_01L덩굴과 함께 모두 청록 일색이었다.
골짜기의 오묘한 풍경이 이곳에 이르러 가면 갈수록 더욱 깊어졌고, 계곡의 깊이와 넓이가 더욱 넓어졌다. 그곳에 맑은 풍경 소리가 구름 끝까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늙은 노송나무는 어찌나 큰지 소를 다 가릴 만하였고, 일곱 형상은 칠성七星과 같았으니, 수백 년은 된 나무 같았다. 크고 넓으며 채색을 칠한 화려한 누각이 나무가 우거진 깊은 계곡에 있었는데, 이는 바깥 세계의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가는데, 걸어 들어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풍경이 나왔다. 편액에 ‘대둔암大芚菴’이라고 쓰여 있었으니, 지난번에 화암사에서 전단나무로 만든 불상을 옮겨 놓았다고 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비록 한겨울의 추위에 엄청난 눈이 내렸지만, 불상 정수리의 아홉 줄 기와에는 눈이 전혀 남아 있질 않았다. 또한 몇 년 전에 큰 물난리로 산과 계곡의 지형이 바뀌고, 모래와 돌들이 급류에 휩쓸려 후문까지 내려와 후문 앞부분의 좌우에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그 돌의 크기가 삼태기만 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절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으니, 다들 “부처님의 영험이다.”라고 하였다.
나와 같이 둔하고 게으른 이도 기뻐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솟아나서 함께 거처하는 스님들과 밤새워 좌선을 하였는데, 먼 여정의 노고를 잊을 정도였다. 주지는 성월 천일城月天日 노스님이셨는데, 수행이 독실하고, 마음이 온화하면서도 평안하였다. 지금 연세가 95세였으니, 이는 낙서160)사운樂西司運 고덕高德의 법도라고 한다. 대략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덕행이 높으신 자인慈忍 대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 세 불상의 금칠을 다시 하기 위해 수천 냥의 재물을 모았다. 산신山神이 허투루 청하여 말하기를, “원효·의상·윤필 세 성인의 증험을 얻으면 괜찮겠지만, 얻지 못한다면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마음이 불안하고 너무 두려워 한숨을 쉬었는데, 곧 불상 수리에 필요한 재물이 모두 모금되었고, 그 나머지로 전루前樓·영당影堂161)·별실別室을 세웠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계속 들었는데도, 피곤한 줄을 몰랐다.
7일 신유辛酉일, 두월이 본 거처로 돌아간다고 하기에 이끌려 대둔암을 나서게 되었다. 누각 앞의 갈림길에 서니 이별을 앞둔 나그네의 아쉬운 마음을 알 만하였다. 내가 본래 유행하기로 마음먹었던 곳을 다 다니지 못하였다. 이곳은 이전에 왔었던 곳이니, 남쪽에서 공부를 할 때 설봉雪峯 화상의 다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도갑원道岬院의 대중들의 강한 만류로 인해 끝내 길을 나서지 못하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그곳의 수십여 학승들과 함께 하안거에 들어 사찰의 동림東林에서 머물며 수행을 하였다.

009_0743_c_01L與藤蘿皆蒼綠一色盖洞之妙
009_0743_c_02L至此行到邃深洞益空豁一聲淸磬
009_0743_c_03L泠落雲端老檜可蔽牛者七狀如七
009_0743_c_04L星然盖數百年物也輪奐畫閣
009_0743_c_05L出林壑應非烟火世界信步漸入佳
009_0743_c_06L扁之曰大芚菴向所謂花巖寺造
009_0743_c_07L來栴檀佛也雖隆冬饕雪像之頂九
009_0743_c_08L行瓦不留雪又數年前大水山谷
009_0743_c_09L易處沙石漂流至後門前分左右
009_0743_c_10L積成丘山石大如籠者不一殿因舊
009_0743_c_11L無恙咸曰佛之靈如余之頑懶聳起
009_0743_c_12L慕悅同居僧坐禪徹夜可忘行邁勞
009_0743_c_13L主老城月天日篤行恬靜今九十五歲
009_0743_c_14L樂西司運高德法徒云略叙梗槩
009_0743_c_15L言曰有古德慈忍爲此三像改衣
009_0743_c_16L鳩財累千山神空請云如得曉
009_0743_c_17L相弼三聖證可不得則否心惕息即
009_0743_c_18L完施財費其遺建前樓影堂別室
009_0743_c_19L已聽之纚纚令人忘倦初七日辛酉
009_0743_c_20L斗月告還本居携出菴樓頭分路
009_0743_c_21L裡別懷可知余本遊興未殘沮玆在
009_0743_c_22L學南哭雪峯和上歸路偶被堅挽於
009_0743_c_23L道岬院衆終奪遍質不起之志與數
009_0743_c_24L十餘學結夏考課於寺之東林適東

009_0744_a_01L
마침 동강東岡 김 선생께서 이곳에 군수로 부임하였기에 우연한 기회에 한 번 뵙고서 그분을 매우 흠모하게 되었다. 선생의 둘째 아들인 송음 공松陰公(金福鉉)은 가업을 잘 이었으며, 어질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부군으로부터 대대로 교유를 가져 때때로 왕래하였는데 그 사이 편지도 보지 못한 지 이제 20여 년이 흘렀다. 동강 선생께서 돌아가신 후 송음 공은 평범한 생활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집을 떠나 책을 짊어지고 대은암岱隱庵의 깊고 고요한 계곡에 들어가 시서詩書를 즐거움으로 삼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둔암으로부터 대은암岱隱庵으로 갔는데, 온통 수풀이 푸른빛을 띠는 곳에 인가162)가 있어 그곳에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속리산俗離山 쪽으로 향하여 보니, 화양華陽 계곡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그런 마음으로 정원에 이르니, 쭉쭉 뻗은 대나무가 무성하였고, 길가의 버드나무는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렸다. 몇 칸 안 되는 작은 초가집(茅屋)은 비와 바람을 가리지 못하였으며, 그 사는 곳은 쓸쓸할 정도로 고요하였고, 조(粟)와 수수(秫)로 때우는 끼니도 일정하지 않은 듯하였다. 다만 경서와 전적이 들보에까지 쌓여 있었고, 도서圖書가 벽면에 가득하였다. 창을 열어젖히니, 앞에 흐르는 계곡물에 햇빛이 반사되어 쏟아지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푸른빛을 쏟아내어 궤석几席163)에 이르렀다. 하인에게 지키게 하고 가마를 준비시켜 출타하여 밖에 머문 지 오래되었는데, 일로 인해 발이 묶여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외로운 학이 멀리 날아감에 어찌 10년 만의 폭설이 내린단 말인가.164)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는 정해진 운수가 있고, 사람 일이 잘 어그러짐을 절로 알겠네. 쓸쓸히 홀로 앉아 있다가 억지로 발길을 돌려 말없이 길을 나서야만 했다. 그런데 마침 동강 선생의 종손從孫인 맹명씨孟明氏가 보은읍報恩邑(현재 충청북도 보은군)으로부터 와서 객으로 있었다. 서로 함께 예전에 (할아버지와 숙부와) 가까이 지내던 정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있었던 일들을 전부 이야기하자 점차 마음이 통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서 다음날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압운165)을 띄워서 시를 지어서 주니, 나에게 시를 지어서 준 뜻을 잊지 못할 것이라. 중양일重陽日166)의 귀한 선물이라 할 수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길을 떠나 진산읍珍山邑167)의 여관에서 투숙하였다.
10일 갑자일, 새벽에 여관을 출발하여 천등산千燈山168)에 도착하였다. 북쪽에는 안심사가 있었고, 왼쪽 편에는 냇가의 바위가 매우 아름다웠다. 석대石臺가 돌기해 있었는데, 그 위에 앉을 만한 자리가 있었다. 그 아래로는 냇물이 세차게 흘렀는데, 그 물보라의 모습이 마치 마구 튀어 오르는 구슬과도 같았다.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거세게 쏟아졌는데, 바위에 부딪쳐서 깎이고 패여서 물이 고여 있거나 못을 이루기도 하였다. 조금 올라가자 가슴이 막힘 없이 확 트여 마치 초가집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듯하였다. 잔을 들고서 난간에 기대어 서서 강물에 구름이 비쳐 흘러가는 곳을 보니, 이곳은 세상에 드물게 한가한 곳이었다.

009_0744_a_01L岡金先生來守是郡偶一見甚愛之
009_0744_a_02L先生第二令胤松陰公能家其業
009_0744_a_03L而有文章與爲世交時以徃來
009_0744_a_04L以赫蹄不面今垂二十餘載自先生
009_0744_a_05L下世公小適俗調棄家而携書
009_0744_a_06L西岱隱黔中詩書爲娛不求世知
009_0744_a_07L芚去岱隱一莾蒼地因訪欵扉
009_0744_a_08L向俗離華陽是耿耿者懷及至園竹
009_0744_a_09L猗猗巷柳裊裊數間茅屋不蔽風
009_0744_a_10L活計蕭條秫粟不繼只充梁卷籍
009_0744_a_11L滿壁圖書開窓則前流波光遙岑積
009_0744_a_12L萃于几席而已令守一傔命駕
009_0744_a_13L外居久有事掣肘迴路無日孤鶴
009_0744_a_14L遠飛豈下十載雪棹自知逢別有數
009_0744_a_15L人事好乘悄然獨坐强歸忘默
009_0744_a_16L從孫孟明氏適自報恩科邑來爲客
009_0744_a_17L屬耳相與講舊誼展盡底蘊稍豁
009_0744_a_18L宿而辭發爲拈韻博▼(口+粲)志不忘也
009_0744_a_19L貴重陽日扶笻行投宿珍山邑邸
009_0744_a_20L旬日甲子曉發旅店行到千燈北安
009_0744_a_21L左川石甚佳有石臺突起可坐
009_0744_a_22L下飛流勢若跳珠㶁㶁泧泧嚙石渟
009_0744_a_23L或成潭登之意甚豁如若開茅
009_0744_a_24L把杯倚欄雲影墮江世鮮閑

009_0744_b_01L그 주인이 대명臺名을 잊고 기록이 누락된 것을 개탄스러워할 만하였다. 그곳을 지나 신흥사新興寺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서봉 명색西峯明賾 장로를 만났다. 매우 친절히 마음을 써 주셨고, 각별히 대우해 주셨다.
11일, 운문사雲門寺를 지나는데, 주르륵 내리는 비와 계속 부는 산바람에 단풍나무 잎이 길가에 가득 떨어져 마치 수놓은 비단을 밟고 걸어가는 듯하였다. 돌다리를 지나서 서굴西窟에 도착하니, 여러 개의 암혈과 겹겹의 봉우리가 기이하고 뛰어난 풍광을 선사했는데, 그곳에서 그 풍광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반룡 처원盤龍處愿 장석丈席169)을 방문하였는데, 마지막으로 만나고 헤어진 것이 이미 20여 년이나 지났다. 빙그레 웃으시며 나와 보시는데, 얼굴 가득 화색이 돌았다. 스님께서 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셔서 급히 동자를 불러 다과 상을 차려오도록 했다. 매우 즐거워하며 차를 권하시고는, 따뜻하게 몸을 녹이도록 배려해 주셨다. 날이 막 저물려 하자, 나를 이끌어 본사本寺로 데려가 주시고, 매우 후한 대접을 내게 베풀어 주시고는,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배웅하시면서 직접 감을 싸 주셨고, 또한 길을 가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셨으니, 같은 처지에서 마음 씀이 더욱 후하다고 하겠다.
12일, 내둔암內屯庵에 머물다가 그 골짜기로 들어갔는데, 넓은 바위가 1, 2리나 되게 연이어 펼쳐져 있어서 흙을 한 번도 밟지 않고 걸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바위가 청명하고 숲이 고요하여 수양修養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잠시 물병과 발우를 내려 공양을 마치고 나서 청하여 사오로四五路 화상畫像을 구경하였다. 오도자吳道子170)의 필격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비슷하기는 했지만 그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저물녘 위봉성威鳳城 동문에 올랐는데, 우뚝 솟아 큰 절벽이 쭉 늘어서 있어서 마치 병풍과 같았다. 빙 둘러 수백 리를 살펴보니, 산과 구릉 그리고 촌락들이 셀 수 있을 정도로 뚜렷이 보였다. 북암北庵에 들어갔는데, 채근采根이라는 찬불승(唄僧)이 있어 잠시 주객主客의 예를 행하였다.
13일, 여러 법당을 차례로 다니며 살펴보고서 행궁行宮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푸른빛을 띠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나라에 대한 충정심(芹曝171)之慕)이 솟아났다. 성의 서문을 나와서 10리를 걸어가서 송광사松廣寺 관음전觀音殿에 도착하였으니, 이곳은 강사 청파 혜원靑坡慧苑 스님이 당幢을 세우고 수행 구도를 펼치는 곳으로, 일찍이 인재가 넘치던 사찰이다. 단 한번의 면식도 없었지만, 오늘 나를 맞이하기를, 마치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처럼 대해 주었다. 이곳에 긍현肯賢 상인上人이란 분이 있었는데, 청백하고 총명하여 큰 인물이 될 만한 분이었다. 시를 잘 지었으며, 유순하고 온화하여서 언문言門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인일麟馹 스님 무리는 함께 방장산(方壺)에 유람을 떠났다.

009_0744_b_01L者使主可慨忘臺名漏記因入新興
009_0744_b_02L適西峯明賾丈懃用慮殊遇十一
009_0744_b_03L踰雲門寺雨蕭蕭嵐陣陣
009_0744_b_04L葉滿逕如行錦繡躡石橋抵西窟
009_0744_b_05L衆峀疊嶺效奇獻秀盡在一覽
009_0744_b_06L盤龍丈席處愿分張已遒廿許年
009_0744_b_07L爾出見面浮春色引其室急呼童
009_0744_b_08L展觴稱快勸茶爲使臥温調將暮
009_0744_b_09L携役下本寺周厚遇資而通昔談
009_0744_b_10L臨送親褁柿又爲路次濡沫之
009_0744_b_11L情尤可厚十二日方次內屯庵
009_0744_b_12L入其洞一二里連鋪廣石使不踏一
009_0744_b_13L巖明林靜可容修養者鉼鉢一
009_0744_b_14L時占飯了請翫四五路像畫已聞吳
009_0744_b_15L道子筆格似非暮登威鳳城東門
009_0744_b_16L壁崛起橫列如屏環視數百里
009_0744_b_17L巒墟落昭昭可數入北庵有唄僧
009_0744_b_18L名采根者行一時主客禮十三日
009_0744_b_19L閱諸法殿因觀行宮松竹交翠之間
009_0744_b_20L起芹曝之慕出城西門行十里
009_0744_b_21L松廣寺觀音殿講師靑坡慧苑建幢地
009_0744_b_22L曾飽爲人才欠一面今出迎若舊
009_0744_b_23L識然有上人肯賢白晢可器有詩才
009_0744_b_24L柔順和雅因盛言門之役麟馹軰同

009_0744_c_01L청파 스님께서는 소싯적 여가에 시학詩學을 익혔는데, 호남의 뛰어난 선비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여 그 씨소(父牛)를 잡아서 먹이고자 할 정도였다. 스님과 함께 앉아서 뛰어난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시를 감상하였다. 그 시를 가지고 도란도란 시평을 말하느라 반나절 동안 자리하여 떠나는 것을 잊은 채 계속 머물러 있었다. 머무는 동안 정감 어린 별미를 대접받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또한 융숭한 배웅을 받았으니, 그 보살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14일, 삼천三川172)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15일에 시산詩山 박영朴令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안과는 대대로 두터운 인연을 맺고 있었다. 하루 더 묵어가도록 만류하면서 물심양면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다음날 길을 나서겠다고 고하자 점심을 차려 주고, 여정에 쓸 노잣돈을 챙겨 주었다.
17일, 피향정披香亭173)에 잠시 올라 벽면에 붙어 있는 훌륭한 시들을 감상하고, 길을 떠나 고부군(古阜)의 말목장터(馬項里)174)에 도착했다. 석사碩士 김유옥金瑬玉씨 문랑門廊 아래를 지나게 되어 인사를 하고 곧바로 지나가려는데, 많은 선비들이 함께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불렀다. 올라가서 주인장 어른께 인사하였는데, 마침 나와 동년생이어서 더욱 각별히 잘 대해 주었다. 곧 점심 공양을 베풀어 주고, 또한 시를 지어 먼 길을 떠나는 나에게 주기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길을 나섰는데, 마을 밖까지 배웅을 하였다. 그런데 주인장의 아들이 나를 부르며 말하기를, “날이 저물어 가는데 가는 길에 사관寺觀175)이 없으면,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처음 만나는 이에게 이와 같이 대접하는 것은 우연히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18일, 개암사開巖寺176)에 들어갔다. 변산邊山(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산) 초입에서 향승香僧 성순性恂을 만났는데, 나이가 40세이었다. 눈썹 언저리에 밝은 기운이 서려 있었고, 문자를 풀이하는 능력이 훌륭하였다.
다음날 아침, 도솔암兜率庵177)을 찾아갔다. 암자 터는 주변이 탁 트여 있고 평평하면서 넓었다. 그렇게 높거나 험하지 않은 산이 그 주위를 둘러싸 있었으며, 샘물은 맛이 좋았고 수풀은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이에 마음과 눈이 모두 확 열렸으니, 이렇기 때문에 낭주浪州178)가 호남의 이름난 고을이라고 한 것이리라. 동쪽에는 지리산(蓬萊)이 있는데, 지리산은 모든 산 가운데 으뜸이니, 도솔이라는 이름은 그 실재와 딱 들어맞는 말이로다.179) 지순智淳이라고 하는 승려가 일찍이 나에게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스승이 그곳에 있어서 지순은 일찍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문득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마음이 매우 아리고 슬펐다.
해가 저물어 우금굴禹金窟180)에 올랐는데, 가파르고 험준한 바위가 돌출되어 있었다. 어찌나 큰지 반은 구름 중에 들어 있었고, 쭉 벌여 있어서 하늘을 가렸다.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고 둥글었으며, 주변의 수십 리가 훤히 보였다.

009_0744_c_01L遊方壺靑坡唇脗間習餘事詩學
009_0744_c_02L於湖上賢可欲食其父牛者也與之
009_0744_c_03L鼎坐翫賢士大夫所酬唱而因於
009_0744_c_04L賢之作小有口評處半日足忘撼頓
009_0744_c_05L而情饋別味歸又厚津送其眷
009_0744_c_06L可感十四日宿三川旅次十五日
009_0744_c_07L訪詩山朴令家曾有相厚世誼挽一
009_0744_c_08L恩待厚饋告行䊑與金贍行厨
009_0744_c_09L十七日暫上披香亭翫壁上佳什
009_0744_c_10L古阜馬項里路出金碩士瑬玉甫門廊
009_0744_c_11L揖而直過多士同席呼暫話
009_0744_c_12L拜主翁適同年生殊愛之即供午
009_0744_c_13L又作詩贐行謝辭出里許送賢胤
009_0744_c_14L又召云日暮前無寺觀可還也
009_0744_c_15L面乃如是非偶爾十八日入開巖
009_0744_c_16L邊山初頭香僧性恂年四旬
009_0744_c_17L宇爽朗解文字可佳詰朝尋兜率庵
009_0744_c_18L基址開朗夷曠不甚峻峯巒回抱
009_0744_c_19L甘樹密心眼俱開所謂浪州之縣名
009_0744_c_20L於湖右有蓬萊蓬萊之冠於諸山
009_0744_c_21L兜率云者直得情狀語有僧智淳曾
009_0744_c_22L學余其師在語及淳早化輒含涙可
009_0744_c_23L向晩上禹金窟有巖突出巉峻
009_0744_c_24L入雲中挻然干霄上銳下圓數十

009_0745_a_01L삼한三韓 시대 때 우禹·김金 두 장수가 세상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았는데,181) 그 산성의 둘레는 매우 넓어 수백 명이 들어갈 만하였다. 그 중간에 암자 하나를 세워 옥천玉泉이라는 이름의 편액을 붙였다. 깎아지른 절벽에 샘물이 있는데,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이 매우 맑았다.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마치 옥玉과 같았다.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그곳에 사는 대중들에게 넉넉히 물을 공급하였으니, 옥천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에 부끄럽지 않았다.
법명이 경헌敬憲인 암주庵主는 연세가 70여 세쯤으로 보였는데, 머리는 학처럼 희었지만 얼굴은 아이와 같았으니, 훌륭히 도를 닦은 이의 모습이었다. 언사言詞가 고풍스럽고 순수하였으며, 내부의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한결같았고 나와 너라는 분별이 없었으니, 참으로 본받을 만하였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서로 이별하였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하고 돌아가서 다시 길을 나섰는데, 지형이 중복되었다. 서쪽으로 10여 리를 가면 청림촌靑林村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곳에 가 보니 마을의 모든 가옥이 한눈에 보일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울타리는 떨어지고 흩어져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 보였으니, 새삼 스산하고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밭은 겨우 100묘182) 정도밖에 없어서 간신히 자급자족하는 것으로 보였으니, 석호리石壕吏183)의 세금 독촉을 모르고 지내는 듯하였다.
마을 한편에는 깨진 탑이 풀밭에 솟아 있었는데, 계원鷄園184)의 옛터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실상사實相寺185)의 사적에 과연 선탄禪坦186) 고로古老의 청림사靑林寺187) 시詩가 보였다. 주봉主峯은 삐쭉 솟아오른 것이 매우 높고 가팔랐으며, 바위는 험준하면서도 구불구불 길게 늘어서 7백, 8백 보步나 횡으로 뻗어 있었으며, 여러 갈래로 갈라져 퍼진 능선이 끝이 없었다. 쭉 뻗은 소나무와 온갖 모습으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는 한눈에 보일 정도로 지세가 평평하고 넓었다. 깊고 고요한 별세계였다. 물줄기를 따라 점차 내려가니 양쪽 기슭으로 계곡물이 매우 길게 이어져 있는데, 물살이 매우 빨랐다.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것이 마치 우레와 같아서 골짜기를 진동시켰다. 물이 고여서 못을 이루었는데, 마치 거울과 같아서 티끌 하나 없을 정도로 매우 맑고 깨끗하였으며, 낙엽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으니, 바로 금강연金剛淵이었다. 바위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아찔하여 생각과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길을 알려 줄 때 신신당부했던 대로 길을 잡아 갔으니, 바로 실상사옛 정인사正因寺이다.로 가는 길을 버리고 사자항獅子項 쪽으로 방향을 틀어 서쪽으로 3, 4리쯤을 내려가니, 계곡 쪽의 길이 확 트이며 통하였는데, 골이 매우 깊었다.
누런 띠풀이 자란 들판에 산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탄부炭夫188)를 만나 그를 따라서

009_0745_a_01L里可望三韓時禹金兩將避世築城
009_0745_a_02L於此內廣可周旋數百人中建一庵
009_0745_a_03L以玉泉加其顚極冠絕地有泉淙潺
009_0745_a_04L湛碧瑩潔如玉大旱不涸足供居
009_0745_a_05L衆之汲不愧命名意庵主名敬憲
009_0745_a_06L可七十餘鶴髮童顏道態增長
009_0745_a_07L詞古朴一內外無彼此者可埓也
009_0745_a_08L巓相別慮誤行歸次形地重復
009_0745_a_09L西轉十餘里有靑林村編戶一覽殆
009_0745_a_10L籬落蕭散居不成行更覺牢
009_0745_a_11L田僅百畝自食力似不知石壕
009_0745_a_12L吏催科稅也傍聳破塔亂草間疑古
009_0745_a_13L鷄園遺墟於實相事蹟果見禪坦古
009_0745_a_14L老靑林寺詩主峯岧嶢峭拔石勢崚
009_0745_a_15L𡾓蜿蜒橫亘七八百步分支衍派無
009_0745_a_16L紀極長松萬章荒草一望土地平
009_0745_a_17L別一邃靜乾坤躡流漸下兩崖
009_0745_a_18L連通川源甚長水勢迅奔激而爲
009_0745_a_19L如雷振壑渟而成淵如鏡絕塵
009_0745_a_20L泓澄瑩綠落葉不着者乃金剛淵也
009_0745_a_21L坐巖俯瞰可毛髮直竦魂慮惕慴
009_0745_a_22L依指路之所叮囑棄實相古正因
寺也
之去
009_0745_a_23L從獅子項折而西下三四里洞豁而
009_0745_a_24L山路多跂於黃茅之坪偶逢一炭

009_0745_b_01L몇 리를 갔다. 그 광부가 가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계곡의 냇물 넘어 손을 들어 가리켜 삼폭포三瀑布189)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를 붙잡으며 오르고 위험한 곳에 매달려 겨우 양봉兩峯에 올랐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들쭉날쭉하였고 매우 가팔랐으며, 깎아지른 절벽은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있었는데, 그곳에 계곡물이 3층으로 쏟아져 내렸다. 구름 주변으로 물보라가 어지럽게 마구 날렸는데, 마치 우레와 같이 세차게 뿜어져 쏟아졌으며, 마치 비가 지나가듯 주변의 푸릇푸릇한 초목들을 적셨으니, 변산의 삼폭포라고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산꼭대기에 오르니 사람이 사는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인간이 사는 세상과 별개의 세계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저물녘에 까마귀는 둥지로 돌아가고, 해는 용봉舂峯으로 기울어지는 때에 사슴과 고라니가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간간이 나타났다. 위쪽으로 올라가 도착한 곳에 지형은 평평하기가 마치 숫돌과 같았다. 쑥으로 덮인 긴 돌길과 구름에 기댄 듯 지어진 범각梵閣은 마치 그림과 같았으니, 이것이 바로 월명암月明庵190)이다. 영묘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상쾌한 기운이 계속해 이어져서, 황홀함이 마치 신선의 집(瑤臺)이나 달 속에 있는 궁전(月殿)과 같았다. 용과 범 같은 여러 봉우리가 빙 둘러 서 있으며 서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니, 옛사람들이 이승과 다른 별세계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서쪽으로 연이어 등운암登雲庵·묘적암妙寂庵 두 암자가 있었는데,191) 거의 헐고 무너져 있었다.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그곳에 있었는데, 무가無價 화상을 위해 암자를 고치고 있었다. 겨우 옛 기반만을 회복하였을 뿐, 나머지 부분은 모두 턱없이 부족하였다. 동쪽에는 법왕대法王臺가 있었는데, 일찍이 부설浮雪 거사가 거처하던 곳이었다. 태산泰山과 같이 높은 바위산이 삐쭉 솟아 경계를 이루고, 사찰의 터는 산뜻하고 아름다웠으니, 지리산의 칠불암七佛庵·무주암無住庵과 서로 우열을 가릴 만하였다. 밤이 깊으니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고요하였고, 달은 밝아 대낮 같았다. 불등佛燈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비추고, 옷깃 속으로 상쾌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들어오니, 마음에 잊히지 않아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20일 맑음. 아침에 월정대月精臺에 올랐는데, 김퇴어金退漁192)가 쓴 시구인 “갑자기 몸과 바위 절벽이 공중에 뜬 듯하고, 산이 큰 파도를 따라 출렁듯하여 다시 놀랐네.(忽驚身與絶巖浮。 復恐山隨巨海流。)”라는 말은, 주변 풍경을 참으로 잘 표현한 말이었다. 사방이 확 트이고 넓었는데, 성읍城邑과 그 밖의 움막집들 그리고 강산과 임야가 일일이 셀 수 있을 정도로 분명히 보였다. 넓고 큰 바다는 끝이 없어서 하늘과 하나가 되어 구분이 되지 않았으며, 갑자기 돌풍이 불어닥쳐서 큰 파도를 일으켜 하늘 위로 솟구치니 우레가 만 번이나 치는 우렁찬 소리를 내었다. 이무기의 기운(蜃氣)과 용의 빛(龍光)이 숨었다 나타났다, 보였다 안 보였다 하였고, 물새(沙禽)와 물고기(水獸) 그리고 어선(浪船)과 범선(風帆)은 아득히 먼 출렁이는 파도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월출산月出山193)과 승달산僧達山194)

009_0745_b_01L追行幾里炭者放擔越澗擧手
009_0745_b_02L指點三瀑布路攀木緣危而登兩
009_0745_b_03L嶙峋峍屼斷崖絕壁逈出天表
009_0745_b_04L飛流三層亂橫雲邊濆怒若雷
009_0745_b_05L翠蒼綠潤如過雨世傳邊山三瀑布
009_0745_b_06L者此也登巓絕無人烟疑其與塵寰
009_0745_b_07L相隔暮鴉歸巢西暉舂峯麋鹿徃
009_0745_b_08L徃林藪間行到上方地平如砥
009_0745_b_09L草長磴梵閣倚雲如畫者月明庵也
009_0745_b_10L靈飈習習爽氣繩繩怳如瑤臺月殿
009_0745_b_11L龍虎諸峯盤旋交拱輸美昔人所謂
009_0745_b_12L別爲一天者非耶西連登雲妙寂二庵
009_0745_b_13L幾毁壞有金姓人爲無價和上葺治
009_0745_b_14L稍復舊制歉餘纔空東有法王臺
009_0745_b_15L浮雪所居泰山矻嵲結局園址明麗
009_0745_b_16L可與七佛無住伯仲夜深人靜月白
009_0745_b_17L如晝佛燈淡暗襟懷爽凉耿耿無
009_0745_b_18L二十日朝晴上月精臺金退漁
009_0745_b_19L驚身與絕巖浮復恐山隨巨海流之句
009_0745_b_20L眞善喩四向空濶城邑廬舍江山
009_0745_b_21L林野歷歷可數大海無津與天爲
009_0745_b_22L忽颶風起驚濤拍天作萬雷聲
009_0745_b_23L蜃氣龍光隱見明滅沙禽水獸浪船
009_0745_b_24L風帆出沒於雲濤杳靄間月出僧達

009_0745_c_01L여러 먼 풍경들이 모두 주위를 둘러보는 중에 눈앞에 들어왔으니, 참으로 천하의 뛰어나고 훌륭하며 비할 데 없이 기이한 경관들이었다. 지난날 옛 종이에 있는 고리타분한 내용들에 얽매이고 매달리며 보낸 반평생의 세월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동산東山에 오르면 노魯나라가 작게 보이고 태산(泰嶽)에 오르면 천하가 작게 보인다.”195)라고 한 말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으며, 또한 훌륭한 문장과 글씨들이 명산대천에 많이 있는 것을 보고서 흠모하게 되었다.
왼쪽에는 사자바위(獅巖), 오른쪽에는 학바위(鶴巖)가 서로 향하여 사자의 형상을 이루고 학의 형상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옛날에 앙昂과 운월雲月 두 성인이 각각 타고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높은 비탈길을 따라서 빙 돌아 올라가니, 산꼭대기의 절반 정도를 오르게 되었는데, 열 보를 올라가면 아홉 번을 되돌아볼 정도로 험난했다. 구름 사이로 난 길을 헤치고 올라가다가 동쪽 방향으로 길을 잡아 수백 보를 내려가니, 돌로 된 오솔길이 옆으로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서 계단을 올라가 군색한 걸음으로 올라가니, 마침내 평지를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 실상사實相寺196)가 있었는데, 그 옛날 승려들이 넘쳐나고 복이 깃든 절터가 완전히 몰락해 있었다. 사찰의 영묘했던 건물은 무너지고 부서졌으며, 쇠락한 기운이 냉랭하게 흘렀다. 중층으로 된 누각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 다만 은으로 쓴 글자가 새겨진 향로香爐와 놋쇠로 된 거북과 학은 오래된 듯하면서도 품격이 있어서 볼 만하였다.
서쪽으로 5리쯤 가니, 직연直淵(直沼)폭포197)가 있었다. 바위산은 울퉁불퉁 솟아 있고, 산골짜기는 깊고 가팔랐으며, 고여 있는 깊은 물은 마치 벽옥(璧)과 같아서 볼 만하였다. 발이 탱탱 부르터서 이리저리 다니며 다 보지 못한 것이 한 가지 한스러운 점이었다.
남암南庵으로부터 곧바로 올라가서 내소사萊蘇寺198)로 향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풀숲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서 갔는데, 그 길이 여러 나무들과 넝쿨에 덮여 있는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자 하늘에서 빛이 비치었고, 이윽고 산의 맨 꼭대기에 도달하였는데, 지형이 마치 소반과 같이 평평하였다. 정신이 하늘에서 노니는 듯 이 몸이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할 지경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서(이전에 지나온 벼랑을 생각하니) 큰 골짜기와 바위, 날카롭고 가파른 돌산 사이로 본 것마다 마음과 눈에 걸리니 영묘한 바위와 좋은 돌들이 조각조각 겹겹이 있었다. 끊어진 듯하면서도 또한 이어진 것이 마치 힘줄과 같았고, 엎어져 있는 것은 자는 것 같았으며, 평평한 것은 마치 곧게 펴놓은 듯하였고, 기울어져 있는 것은 마치 기대어 있는 것과 같았다. 높은 것은 북두칠성과 같았고, 구부러져 있는 것은 허리를 숙인 것 같았으며, 합쳐져 있는 것은 둥지로 돌아가는 난새(鸞)199)와 같았고, 섞여 있는 것은 지나가는 기러기(鴈)와 같았다. 나란히 있는 것은 형과 아우 같았고, 늘어서 있는 것은 주인과 손님 같았으니, 여기서 일일이 다 헤아려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고목과 노송의 기이하게 뻗은 뿌리와 오래된 나뭇가지가

009_0745_c_01L諸遠之景皆在指顧中眞天下卓偉
009_0745_c_02L奇絕觀也尤恨向之繫䕯古紙糟粕
009_0745_c_03L輥過半生益高仰小魯小天下之得於
009_0745_c_04L東山泰嶽又欽慕文章筆妙之多在於
009_0745_c_05L名山大川耳左獅巖右鶴巖相向
009_0745_c_06L獅形垂鶴形昂雲月二聖各騎升
009_0745_c_07L天云右從高磴屈折而上及登半
009_0745_c_08L十步九顧躡雲徑迤東數百步
009_0745_c_09L轉而下石徑紆仄躡級窘步及履
009_0745_c_10L平地有實相寺僧役浩穰福地淪
009_0745_c_11L靈宮墜壞衰氣冷冷重樓複閣
009_0745_c_12L無開眼惟銀字香爐與鍮龜鶴
009_0745_c_13L而閑可觀西去五里許有直淵者
009_0745_c_14L巒矗簇洞壑嶄㠔渟泓如璧可觀
009_0745_c_15L繭缺望可一追恨自南庵直上
009_0745_c_16L向萊蘇兎徑線掛於雜樹蒙翳之中
009_0745_c_17L光垂下及抵絕頂平如盤處神遊
009_0745_c_18L太虛不知此身尙在人間世靜思俄
009_0745_c_19L經之窮崖巨谷石稜峭确間所覩來心係
009_0745_c_20L目者靈巖好石之片片重重折而又
009_0745_c_21L連者如勁仆者如眠平者如鋪
009_0745_c_22L者如倚高者如斗俯者如鞠合者
009_0745_c_23L如歸鸞雜者如去鴈比者如兄弟
009_0745_c_24L者如賔主不可記數又古樹老松

009_0746_a_01L그 사이에 어지럽게 뻗어 있었으니, 혹은 높이 솟아 있거나, 혹은 누워 있었다. 혹은 밑으로 구부러져 있거나, 혹은 비스듬히 서 있었으며, 혹은 구부러져 빙 둘러 있거나, 혹은 쭉 뻗어 있으면서 휘어져 있었다. 혹은 위로 솟구쳐서 날아오를 듯하였으며, 또한 혹 휘장이나 일산처럼 펼쳐져 있었는데, 이러한 것이 또한 몇 그루나 되는지 셀 수 없이 많았으니, 이렇게 생긴 모양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다함이 없었다.
길을 틀어 동쪽으로 50여 보를 걸어가니, 매우 위태롭고 험한 길이 나왔는데, 길을 가는 동안 지형지물을 잡아서 몸을 지탱하거나 끌어 올렸으며, 혹은 바위에 앉아서 구르다시피 하여서 내려갔는데, 그곳에 사자암獅子菴이 있었다. 쭉쭉 뻗은 대나무는 숲을 이루며 서 있었고, 쭉 늘어선 큰 산들은 웅장하게 솟아 있었다. 그 앞에는 몇 리 되지 않는 곳에 바다가 있었고, 가까운 곳에는 강물이 아득히 넓고 길게 흘러서 그 끝을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구름이 걸릴 정도로 높은 나무와 돛단배는 숨었다 나타났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였다.
그곳의 주지(座主)인 명간明衎 스님은 얼굴이 매우 깨끗하고 준수하였으며, 소탈하면서 쾌활하였다. 호떡(胡餅)을 내와서 함께 먹다가 나에게 묻기를, “왕자암王子菴과 석자암釋子菴 두 암자를 보셨습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이에 옛날 진표 율사眞表律師200)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부풍현扶風縣 대정大井 마을201) 사람이다. 집에 아무런 재산이 없어서 낚시를 생업으로 삼았는데, 어느 날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그런데 날이 저물 때쯤 큰 자라(鱉)를 잡았다. 그런데 사는 사람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라를 부엌에 매달아 놓고 굶주린 채 누웠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그의 옆에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밥상으로 얼른 가서 그것을 먹었는데, 다음날 아침에도 또한 그러했다.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몰래 숨어서 엿보니 아리따운 여인이 자라로부터 나왔다. 비록 중매인(蹇脩)202)은 없었지만, 그녀와 결혼을 하여 부부의 연을 맺고는 사랑을 나누었다. 연기와 안개가 서로 번갈아 짙게 깔리고, 비와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거처가 큰 집으로 바뀌었다. 새가 날개를 편 것같이 휘황찬란한 집으로 변하였으니, 완연히 관아의 건물과 같았다. 그리고 어린 종과 하인들이 한 무리를 이루었고, 준마들이 마구간에 쭉 벌여 있어서 부유함과 영화로움이 성대하였다. 그런데 그는 시서詩書를 익히지 않고 사냥만을 일삼았다.
어느 날 저녁, 여인이 말하기를, “출산을 할 테니 조금 피해 주세요.” 하였다. 부인이 계속해서 꺼리기에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밤에 몰래 돌아와 보니 과연 일곱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들의 머리엔 기린의 뿔이 높이 솟아 있었다. 구름과 안개 속에서 몸을 씻다가, 누군가 엿보는 것을 부인이 알아챘다. 그래서 용龍의 형상을 한 일곱 아들을 불러들였는데, 가 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부인은 그 너무나도 참혹한 상황에 매우 분노하여서 밤에 그 모든 것을 깡그리 없애어 날려 버렸으니,

009_0746_a_01L根古幹錯亂其間者或喬或偃
009_0746_a_02L俯或欹或屈而蟠或怒而攫或奮
009_0746_a_03L而欲騰又或如帷盖之張又莫筭幾
009_0746_a_04L箇株皆造物者無盡藏折而東五十
009_0746_a_05L餘步極危絕險相徃徃或援或携
009_0746_a_06L坐巖輥轉而下有上獅子菴脩篁叢
009_0746_a_07L列岳雄峙其前去海不數里而近
009_0746_a_08L江波浩渺極目無際雲樹風帆
009_0746_a_09L暎遐邇有座主明衎爲人淸秀踈快
009_0746_a_10L出胡餅對啖因問觀王子釋子二菴
009_0746_a_11L者否余曰未也因傳古眞表律師
009_0746_a_12L風大井村人也在家無產以釣爲事
009_0746_a_13L一日終不釣一魚暮得巨鱉還無人
009_0746_a_14L懸厨飢臥朝看滿盤珍饌在側
009_0746_a_15L進食之明朝亦然心怪之潜窺得
009_0746_a_16L一美姬從鱉出雖乏蹇脩與結縭
009_0746_a_17L星期因成好烟交霧壓雨濃風撓
009_0746_a_18L居化大廈鳥革翬飛宛然官廨
009_0746_a_19L僕成隊駿驄列廐榮富赫然詩書
009_0746_a_20L不閑以射爲業一夕姬言我已當
009_0746_a_21L小避出云恠其伉儷間間忌權
009_0746_a_22L從夜潜還縱觀果誕七子鱗角
009_0746_a_23L崢嶸洗浴於雲霧中姬知窺呼入七
009_0746_a_24L龍子見已立死姬不 [10] 憤其甚剝

009_0746_b_01L오직 빈터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참으로 홀린 것 같았는데, 그 여인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어리석은 사내는 그저 불가에 있다가 그곳에 머물러 살게 되었는데, 세상엔 아직까지 칠룡묘七龍墓가 전하여진다.
이로부터 사내는 실의에 빠져 오직 활과 화살을 가지고서 날짐승과 들짐승들을 사냥하러 다니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쏘아서 맞혔는데, 사슴이 흘린 피를 따라서 불당(佛宇)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화살이 불상에 꽂혀 있었다. 그는 크게 놀라 뉘우치고서 화살을 뽑았다(却弓矢). 산에는 ‘각궁시却弓矢’라고 이름한 곳이 있다. 이에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는 출가하였으며, 결사結社하여 선禪을 수행하여서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마천대摩天臺(변산의 의상봉)에서 몸을 크게 변화시켜 다리를 뻗어 금산사金山寺에서 공양을 받았다고 한다. 금산사 위에 아직까지 기족암▼(足+企)足菴과 비장암臂長菴이 남아 있다고 하니, 매우 신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왼쪽에는 벽송대碧松臺가 있었는데, 그곳은 벽송碧松 화상께서 처음 깨달음을 얻으신 곳이다. 명간 스님과 함께 길을 나서서 그곳에 이르렀는데, 다 무너져 있었다. 우거진 덤불 속으로 들어가니, 계단 옆으로 오죽烏竹 몇 줄기가 있었다. 색이 바래서 오래된 듯한 비취 빛을 띠고 있는데, 혹 그 당시에 직접 심었던 것이 뿌리내려 손자가 나온 듯 보였다.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가니, 취연대鷲鷰臺가 있었다. 몸을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니, 선운산禪雲山·소요산逍遙山·백양산白羊山 등 여러 산들이 하나하나 동서남북 종횡으로 뻗어 있었고, 호수와 모래사장과 무성한 풀밭이 펼쳐져 있었으며, 길게 흐르는 강과 큰 냇물이 있었다. 이렇듯 산과 바다의 풍경이 앉은 자리에서 다 보였으니, 춘암春庵203)이 이른바 “문을 여니 푸른 바다 위로 해가 떠 있고, 승려가 남쪽을 가리키니 바다 물결이 이네.(開門滄海日。 僧指午潮生。)”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 것이리라.
21일, 법당에 올라 현판의 기문(記)을 보았다. 화재(欝攸)204)로 인해 법당이 불타는 참상을 겪었기 때문에, 이후에 서봉 청민西峯淸敏 종사宗師께서 이전의 아름다운 건물양식을 계승하여 복원 작업에 관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관장하였다. 관서關西205) 지방의 뛰어난 장인인 각민覺敏이 자와 먹줄로 측량하고 목재를 다듬어 세워서 옛 모습을 복원하였는데, 법당의 규모가 매우 웅장하였으며, 그 주변 경계가 매우 크고 화려하였다. 조각을 해 놓은 꽃과 잎은 새로 돋아나고 피어나는 듯하였고, 용머리와 봉황 날개는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였다. 비록 단청이 없긴 하나 매우 단정하고 꾸밈없이 수수한 것이 더욱 좋아 보였다. 골짜기를 빠져나와 검진黔津으로 향하였다. 중간에 서량舒良 대사를 만났는데, 그 사람됨이 순수하고 성실하였으며 선량하였다. 나를 그 주인집으로 데려가서 공경을 다해 정성스럽게 대접해 주었다. 집을 나와 길을 나서서 1리쯤 걸어가 포구浦口에서 옛 누각을 구경하였다.

009_0746_b_01L撤飛去唯餘空墟眞似𡛥女已歸
009_0746_b_02L宵漢去獃郞猶在火邉栖其地
009_0746_b_03L猶傳七龍墓從此落托唯持弓矢
009_0746_b_04L禽獸爲業一日射鹿踵鮮血入佛宇
009_0746_b_05L像乃帶矢也大驚悔却弓矢山有
009_0746_b_06L却弓矢爲名地因剃染結社修禪
009_0746_b_07L得大惺悟摩天臺現大化身𨀣足受
009_0746_b_08L供於金山寺寺之上尙有𨀣足菴臂
009_0746_b_09L長菴云可神也左有碧松臺碧松和
009_0746_b_10L尙初悟處與衎老杖屨及之廢
009_0746_b_11L榛莾而有階邉數莖烏竹猶帶舊翠
009_0746_b_12L當年手種根抽孫歟轉而北有鷲鷰臺
009_0746_b_13L俯視其下禪雲逍遙白羊諸山一一
009_0746_b_14L縱橫東南沙湖茁萊長江大川山海
009_0746_b_15L之景可盡几案邉春庵所謂開門滄
009_0746_b_16L海日僧指午潮生者指此也二十
009_0746_b_17L一日上法堂見板記自經欝攸之慘
009_0746_b_18L宗師西峯淸敏踵前徽揔管謀畫
009_0746_b_19L關西良工覺敏尋引度材以復舊觀
009_0746_b_20L堂制甚雄環鉅麗雕花刻葉生新
009_0746_b_21L頭鳳翼活動雖欠丹堊孔靚儉素
009_0746_b_22L尤好出洞向黔津逢舒良大師
009_0746_b_23L人質慤純良引其主家敬服輸欵
009_0746_b_24L罷行可里許翫舊閣於浦口日將

009_0746_c_01L
해가 고개 너머로 지려고 하였는데, 초제招提(사찰)에 몸을 의탁하기 어려웠다. 일찍이 상사上舍(生員) 황윤석黃胤錫206) 선생에 대한 풍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됨이 어질고 선하며, 글을 잘 지어 그 명성이 세상에 자자하였다. 시골 늙은이에게 길을 물어 구수골(龜壽洞)207)에 들어갔다. 그 대인은 풍채가 굉장히 컸고, 학문의 경지가 깊고 넓었으며, 산수山水를 좋아하는 고결한 선비였다. 한 번 보니 마치 옛날부터 보아 온 것과 같았다. 군자의 풍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빈객을 좋아하였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고, 업신여기지 않았다. 나의 일정이 너무나 바빠서 봉호蓬壺(仙山)의 아름다운 시를 미처 다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내년 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부탁을 하였다.
22일, 구월암九月菴에 도착하였는데, 우바새優婆塞208)가 거처하고 있었다. 개심령開心嶺을 넘어 내장산內藏山 숙소에 도착하였다.
23일, 돌아가는 길에 하서河西 선생의 수장壽藏(생전에 만들어 놓은 무덤)을 지나자마자 바로 자포곡茨蒲谷으로 내려갔다. 옥봉玉峯209) 선생의 이손耳孫(7대손)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와 머물러 살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가는 길에 그곳에 들려 서실書室을 두드려 보고 사당(榭)을 지났는데, 재난을 막는 부역을 하느라 집안이 매우 소란스러워서 잠시도 다른 것을 할 틈이 없어 보였다. 대강 보기에도 그 곤궁함이 매우 급박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주인은 그 선조의 친필 여러 폭을 나에게 꺼내어 보여 주었다. 그리고 명나라 사신(天使) 주지번朱之蕃210)과 기타 대국大國의 사신들과 석봉石峯 선생이 남기신 여러 작품과, 중국의 서예가 왕 종王鍾과 고금의 명필名筆 10책과, 우리나라의 여러 현인들이 쓴 편지(簡帖) 몇 권, 대대로 집에 내려오는 친필 편지(手牘)를 보여 주었다. 나와 같이 식견이 얕은 자가 얻은 것 없이 헛걸음을 하고 돌아가지 않도록 배려를 해주었으니, 지금과 같이 야박한 세상에 참으로 보기 드문 마음 씀씀이였다. 주인은 마땅히 이러한 세상에 둘도 없는 가보를 영원토록 대대로 전할 것이리라. 해가 저물어 백양산白羊山 청류동淸流洞211) 학봉鶴峯의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24일, 동암東菴 청심대淸心臺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운문암雲門菴212)을 지나서 이봉离峯 스님을 만나 뵙고서 안부를 묻고 옥천玉泉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경時敬 화상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나와서 인사하였는데, 그는 고향을 등지고 떠나 오로지 참선 수행만을 한다고 하니, 그 뜻이 매우 고매하였다.
발길을 옮겨 백련암(白蓮)으로 내려가서 바라보니, 영천암(靈泉)·약사암(藥師)·물외암(物外) 세 암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푸른 나무가 우거진 산림에 맑은 기운이 감돌고 푸른 봉우리가 울창하게 우뚝 솟아 있으며, 실개천이 구름 사이로 흐르고 서리 맞은 단풍이 주위를 빙 두르고 있었으니,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였다. 옛 시에 “책상머리에 앉아서 별세계가 없다고 말하지 마라. 산을 직접 보면 별세계로 통하는 문이 따로 있음을 믿으리라.(莫言展榻殊無地。 須信看山別有門。)”라고 한 말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 하겠다.

009_0746_c_01L度嶺招提難托曾聞黃上舍胤錫
009_0746_c_02L爲人仁善文名滿一世問野老
009_0746_c_03L龜壽洞又其大人姿䫉魁偉文學
009_0746_c_04L贍富好山水高士一見如舊君子
009_0746_c_05L好客信不誣惜余緣忙未盡蓬壺
009_0746_c_06L美詩以囑明春重游二十二日
009_0746_c_07L九月菴優婆塞所居踰開心嶺
009_0746_c_08L內藏宿二十三日歸路適出河西
009_0746_c_09L先生壽藏下茨蒲谷已聞玉峯先生耳
009_0746_c_10L孫移寓因歷扣書室經榭宣災方
009_0746_c_11L居停撓不遑他不小槪見其窘
009_0746_c_12L遽幾微色出示其先筆累幅及朱天
009_0746_c_13L使之蕃其他大國使與石峯生筆多
009_0746_c_14L中朝王鍾兼古今名筆十册我東
009_0746_c_15L諸賢簡帖幾卷家庭手牘使余賤望
009_0746_c_16L不歸落莫空還實末俗稀罕心宜主
009_0746_c_17L傳此絕寶永世暮投白羊山淸流洞鶴
009_0746_c_18L峯室中宿廿四日訪東菴淸心臺
009_0746_c_19L雲門菴見离峯叙暄凉坐㝎玉泉
009_0746_c_20L時敬和上在衆出見撥鄕縛來叅禪
009_0746_c_21L其意高邁因下白蓮望靈泉藥師物
009_0746_c_22L外三占菴翠嵐淡籠靑峯蔚秀
009_0746_c_23L泉細流霜楓掩抱望之如畫古云
009_0746_c_24L莫言展榻殊無地須信看山別有門者

009_0747_a_01L달빛에 취해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손에 손을 맞잡고 그 사이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니, 한밤중(三鼓)이 되는 줄도 몰랐다.
25일, 소요逍遙 대사의 영정에 참배를 드리고 나오니, 정토사淨土寺(백양사)의 서쪽 위로 연못가의 정자(水閣)가 높이 보였다. 그곳에 여러 현인들이 현판에 적어 놓은 시를 완미하고, 향각香閣으로 들어가 소요 대사의 필적筆跡을 감상하였다. 90여 세 때 쓰셨는데, 필력에 혼이 담긴 듯 힘차 보였다. 천진암天眞菴에 올라 환월喚月 선사를 뵙고선, 그의 시집을 청해 그와 종일토록 마주하고 시문을 보았다. 청아한 말과 아름다운 글귀가 온화하고 순수하면서도 정교하고 치밀했는데, 당唐나라 한시의 유려한 문체가 묻어나는 곳이 매우 많이 있었다. 그와 이별 후 10년간 그 시에 대한 공부가 이처럼 크게 진보해 있었다.
26일, 지나가다 칠립리柒笠里에 들려서 이고李孤를 위문하고, 하늘재(天峙)에 있는 영의永儀의 친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27일, 온계温磎에서 점심 공양을 하고, 본 거처로 돌아왔다.
아, 내가 발을 혹사시키고 마음을 다해 애쓰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되, 그 멀고 험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한 명의 현인이라도 만나고, 이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고 식견을 밝혀 가슴이 확 트여 막힘이 없게 하기 위함이니, 이것이 바로 내가 평소에 매시간 매일 갈망하던 바였다. 그저 높은 곳에 올라서 바다를 굽어보는 것을 즐거워하고 한때의 풍광에 기뻐하며 산속의 집에 누워 창을 통해 하늘을 보고서 눈을 요리조리 굴리고 마음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하는 것은, 모두 취한 듯 놀고 꿈꾸듯 돌아다니는 망령된 행위에 불과한 것이니, 도리어 마음을 바로 하고 좌정坐靜하며 불경을 외고 마음 깊이 관하는 것만 못하다.
세상에 산수山水를 관람하길 좋아하는 자 가운데 바다를 바라보고 산을 살펴 눈과 마음을 활짝 열어서 대장부의 호방한 기상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하니 천천히 때를 기다려서 손에 침을 퉤퉤 뱉고는(唾手),213) 서쪽으로 궁궐의 웅대함과 도성의 장엄한 모습과 울창한 삼림의 아름답고 푸른 기운이 매우 왕성한 풍경을 구경하고, 고귀하고 재능이 뛰어난 인재들과 친교를 맺는 것을 즐기며, 동쪽으로 만폭동(萬瀑)과 구연동(九淵)의 웅장하고 거침없는 광경과 나한상(羅漢)·시왕상(十王)의 불자拂子를 구경하고, 헐성루(歇惺)214)에 올라갔다. 그리고 중향성(衆香)215)의 바다와 같이 많은 성인들께 정례하고, 낙산사(洛山)의 의상대(東臺)216)에 사지를 펼쳐 누워서 바람과 물결 소리를 듣고, 관음상에 절을 하고서 막힘없이 확 트여서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원을 채우고, 산과 같이 크고 높은 뜻을 이룰 것인가?
우리나라는 치우쳐 있고 협소하여

009_0747_a_01L可驗醉月樞丈携手叙阻不知夜三
009_0747_a_02L廿五日謁逍遙先翁高顯於淨
009_0747_a_03L土寺西上水閣翫諸賢板詩入香閣
009_0747_a_04L翫逍翁筆跡九十餘歲時所書筆力
009_0747_a_05L神健上天眞菴見喚月請其詩
009_0747_a_06L對觀終日淸詞佳句冲粹精緻
009_0747_a_07L多有逼唐處別後十年間詩學如是
009_0747_a_08L大進廿六日歷入柒笠里慰李
009_0747_a_09L孤來宿天峙永儀親家廿七日
009_0747_a_10L飯温磎還本栖余費脚力
009_0747_a_11L心慮登峙涉流不憚險遠者要觀
009_0747_a_12L一哲人有心工明識見使胷肚
009_0747_a_13L然無滯礙是余日夜期期渴望者
009_0747_a_14L豈陟高俯海以快一時觀歸臥山窓
009_0747_a_15L令目搖心攪俱歸醉游夢行之妄
009_0747_a_16L不如正心坐靜念經內觀世之好觀
009_0747_a_17L山水者有幾人望海眺岳開眼豁胷
009_0747_a_18L以層丈夫之氣岸者乎然則徐待唾手
009_0747_a_19L西笑翫宮闕之雄都城之壯欝䓗 [11]
009_0747_a_20L佳氣之騰旺而押高貴碩才東略萬
009_0747_a_21L瀑九淵之雄渾羅漢十王之塵䈡
009_0747_a_22L上歇惺頂禮衆香海聖施四大洛山
009_0747_a_23L東臺聽風瀾拜觀音而洞然無間
009_0747_a_24L滿願海遂志山耶我東偏小山無

009_0747_b_01L천 리나 되는 높은 산도 없고 만 길이나 되는 깊은 물도 없어서 간간이 산천의 기운을 받아 영준英俊한 인물을 배출하지만, 신주神州(중국)는 높은 산과 큰 강의 그 맑고 정밀한 기운을 이어받고 뛰어난 기상을 뽐내어 문장은 협곡을 쓰러트릴 만하고, 필력은 군진을 쓸어 버릴 만하여 비길 사람이 없는데, 하물며 백 년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에 골짜기 안의 뱀과 같이 좁은 식견의 인생이 구덩이와 진흙 벽에 웅크리고 지내어서 식견이 좁고 마음이 좀스러워 끝내 펼쳐지 못하는 사람이랴? 지금 내가 부질없이 길게 기록하여 이미 그것을 진술했으니, 쓸데없이 나의 붓으로 흰 종이를 더럽히고, 붓을 닳게 한 것이로다. 마음을 넓고 느긋하게 가져서 산과 물 사이에서 자유롭게 두어 가는 곳마다 즐겁지 않은 것이 없는 자가 본다면, 아마도 몽행록夢行錄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009_0747_b_01L千里高水罕萬丈深雖間出山川
009_0747_b_02L禀英俊視神州崇山巨河基承淑精
009_0747_b_03L氣拔傑豪文倒峽筆掃陣莫與京
009_0747_b_04L而況跳丸百年壑蛇人生塊蟄泥甃
009_0747_b_05L蒿目蓬心終無展擧者歟今徒謾錄
009_0747_b_06L已陳之之乎空使吾楮毫汚素面
009_0747_b_07L尖頭如令浩然自放山水間無徃
009_0747_b_08L不樂者見之其不曰夢行錄歟

009_0747_b_0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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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4)김담金墰 : 조선 후기 문신(1678~?)으로, 자는 사관士寬, 호는 동강東岡이다.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관으로 근무했으며,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장령으로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가 다시 장령으로 복직되었다.
  2. 55)삼생三生 : 과거·현재·미래의 세상이라는 뜻으로, 전생前生·현생現生·후생後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3. 56)옥호빙玉壺氷 : 당나라 시인 왕창령王昌齡이 “낙양 친구들이 나에 대해 물으면, 한 조각 얼음처럼 깨끗한 마음이 옥 주전자에 담겨 있다고 전해 주게.(洛陽親友如相問。 一片氷心在玉壺。)”라고 쓴 시에서 나온 말이다. 옥병 안의 얼음이라는 뜻으로, 깨끗한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4. 57)도잠陶潛과 혜원惠遠 : 도잠은 동진東晋 시대 처사. 혜원은 당시의 고승.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혜원이 백련사白蓮寺를 결성하고 교유하였다.
  5. 58)『논어』 「述而」편의 “공자가 한가히 집에 머물 때에는 마음에 여유가 있었고 즐거워하였다.(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6. 59)운수승(雲水) : 탁발승이니,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정처 없이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수행하는 승려를 말한다.
  7. 60)근진根塵 : 근根은 곧 육식六識을 일으키는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을 가리키고, 진塵은 곧 이상의 육근六根을 통하여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서 정심淨心을 더럽히고 진성眞性을 흐리게 하는 육진六塵을 가리킨다.
  8. 62)이봉离峰 : 조선 후기의 승려(1814∼1890)로서, 법명은 낙현이고, 호는 이봉이다. 전라남도 나주 출생으로, 15세에 나주 쌍계사雙溪寺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뒤 불경을 배웠다. 그리고 여러 강백講伯들을 찾아다니면서 불경의 깊은 뜻을 묻고 선禪을 수행하여 선과 교에 모두 통달하였다. 그 뒤 가지산伽智山·보림사寶林寺·송대암松臺庵·대원사大原寺 등지에서 수행하며 많은 제자를 길렀다. 송광사에서 세수 77세, 법랍 62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문집 2권, 행장 1권이 있다.
  9. 63)대법가大法駕 : 상대방의 유행遊行이나 행차를 뜻하는 말이다.
  10. 64)아래의 내용으로 보아, 유유자적하게 금강산을 유람하고 온 것을 일러 말한 것이다.
  11. 65)석로碩老 : 학문과 덕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말한다.
  12. 66)기러기가 날아가자 제비가 돌아오는 격 : 제비는 기러기가 시베리아로 떠난 다음 해 봄에 돌아오고, 기러기는 제비가 강남으로 떠난 겨울에 방문하기 때문이다. 제비와 기러기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 서로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말한다.
  13. 68)동복同福 :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지역의 옛 지명이다.
  14. 69)기양祈禳 : 기복양재祈福禳災의 준말로서, 복은 들어오고 재앙은 물러가라고 비는 것을 말한다.
  15. 70)포고布鼓는 베로 만들어 아예 소리도 나지 않는 북을 말한다. 뇌문은 뇌문고雷門鼓의 준말로, 그 북소리가 백 리 밖까지 들렸다는 월越나라 회계성문會稽城門의 큰 북이다. 자신의 하찮은 재주를 뽐내는 것을 비유한 말로, 감히 상대방에게 당치 않게도 변변찮은 말을 개진하였다는 뜻이다.
  16. 71)시훼柴毁 : 부모의 상에 너무 슬퍼하여 몸이 몹시 야윈 것을 말한다.
  17. 72)독종毒瘇 : 병으로 인해 다리가 심하게 부어오르는 증상을 말한다.
  18. 73)참의叅議 : 조선시대 육조의 정삼품 관직을 말한다.
  19. 74)종씨從氏 : 상대방의 사촌 형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20. 75)병불秉拂 : 사찰에서 불법佛法을 가르치는 수좌首座가 되는 것을 말한다.
  21. 76)맥추麥秋 : 보리가 익는 계절, 즉 음력 4월~5월을 말한다.
  22. 77)보계寶界 : 일반적으로 사찰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23. 79)법려法侶 : 불법을 같이 배우는 동료를 뜻한다.
  24. 81)선화禪和 : 참선參禪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선승禪僧을 말한다.
  25. 82)창평昌平 : 전라남도 담양의 옛 지명이다.
  26. 83)명부明府 : 지방관의 별칭이자, 경칭이다.
  27. 84)세마洗馬 : 익위사翊衛司의 종구품 벼슬로, 세자 행차 때 앞에서 인도하는 임무를 맡는다.
  28. 85)연사시蓮社詩 : 유가와 불가 사이의 시 짓기 모임 때 지어진 시를 말한다.
  29. 87)두타행(頭陀) : 번뇌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깨끗하게 불도佛道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
  30. 90)난옥蘭玉 : 지란芝蘭과 옥수玉樹의 준말로, 다른 사람의 자제를 비유해서 쓰는 표현이다.
  31. 91)상가象駕 : 불법佛法을 비유하는 말로, 상대방의 거동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32. 92)용당龍堂 : 용두관음龍頭觀音을 모셔 놓은 불당을 말한다.
  33. 93)혜탄蕙嘆 : 원래는 동류의 불행을 슬퍼하는 말이다. 육기陸機의 「歎逝賦」에 나오는, “진실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하고, 지초가 불타면 혜초가 탄식하는구나.(信松茂而栢悅。 嗟芝焚而蕙歎。)”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34. 94)법장法藏 : 온갖 법의 진리를 갈무리하고 있다는 뜻으로, 불경佛經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35. 96)무등산 : 광주시 북구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과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여기서는 무등산에 있는 사찰을 뜻한다.
  36. 97)비否는 『주역』의 천지비괘天地否卦를 말하며, 태泰는 지천태괘地天泰卦를 말한다. 비는 음양이 서로 조화가 되지 않고 막혀 있는 것이고, 태는 음양이 서로 화합하여 조화를 이룬 것을 말한다.
  37. 98)남평南平 :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옛 지명이다.
  38. 100)상론尙論 : 도리에 맞아 세상 사람들이 받들고 있는 일반적인 지식에 대한 말이나 글을 말한다.
  39. 101)금란金蘭 : 금란지교金蘭之交의 준말.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蘭草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 간에 서로 마음이 맞고 교분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나갈 만큼 우정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40. 102)난극欒棘 : 수척한 상주喪主를 가리킨다. 『시경』 「檜風」 〈素冠〉에서, “행여 흰 관을 쓴 극인의 수척함을 볼 수 있을까?(庶見素冠兮。 棘人欒欒兮。)” 하였는데, 주註에서, “극棘은 급하다는 뜻으로 상주는 급하여 경황이 없기 때문에 상주를 극인이라 하며, 난란欒欒은 수척한 모습이다.” 하였다.
  41. 103)구로劬勞 : 어버이의 은혜를 말한다. 『시경』 「小雅」 〈蓼莪〉에서, “아, 애달프다, 우리 부모님. 나를 낳아 무진 애를 쓰셨도다.(哀哀父母。 生我劬勞。)”라고 하였다.
  42. 104)강신講信 : 향약鄕約에서 모임의 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신의를 새롭게 다지던 일을 말한다.
  43. 105)인일人日 : 음력 정월 7일을 가리킨다. 이날 일곱 가지 나물로 국을 끓여 먹고, 사람 모양의 각종 장식물을 만들어 병풍에 붙이기도 하고 머리에 꽂기도 하면서 높은 산에 올라 시를 읊던 풍속이 있었다.
  44. 107)성덕산聖德山 :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에 있는 산이다.
  45. 108)전단旃檀 : 향나무 이름이다. 이 나무로 불상을 만들기도 한다.
  46. 109)모연募緣 : 사찰에 재물을 보시하게 하여 선연善緣을 맺게 하는 것을 말한다.
  47. 110)개와蓋瓦 : 건물의 기와로 지붕을 새로 올리는 것을 말한다.
  48. 112)도선道詵 : 통일신라시대의 승려(827~898)로, 풍수지리설의 대가이다. 그의 음양지리설,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은 조선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道詵秘記』 등이 있다. 전남 영암靈岩 출생으로, 15세에 지리산 서봉인 월류봉에서 불경을 공부하였고, 4년 만인 846년에 대의大義를 통달하였고, 신승神僧으로 추앙받았다.
  49. 113)낭주朗州 : 전남 영암의 옛 지명이다.
  50. 114)옥룡사玉龍寺 :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백계산白鷄山에 있는 절로, 경문왕 4년(864)에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다.
  51. 115)은殷나라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쌍둥이였는데, 여동생과 함께 시냇가에서 목욕을 하며 놀다 제비의 알을 입에 삼킨 후 그를 낳았다. 주周의 시조 후직后稷은 이름이 기棄인데, 어머니 강원姜原이 들에 나가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을 하였다. 그 후 아들을 낳았는데 불길하게 생각되어 바닥에 버렸으나 말과 소가 지나가면서 피하고 밟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데려와 키웠는데 한 번 버렸다고 해서 이름을 버릴 기棄로 지었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 선사의 어머니가 냇가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그를 낳았는데, 불길하여 길에 버렸더니, 들짐승들과 날짐승들이 그를 보살폈다고 한다.
  52. 116)일행 선사一行禪師 : 당대唐代의 밀교승(683∼727)으로, 천문학자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이다. 일설에 의하면 도선은 당나라로 유학 가서 밀교 승려 일행一行으로부터 풍수설을 배워 왔다고 하는데, 일행 선사는 당나라 초기의 승려이고, 도선의 생몰년은 당나라 말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연대에 모순이 있고, 도선이 당나라에 유학하였다는 것도 신빙성이 없다.
  53. 117)선하후해先河後海 : 직역하면 하천에 앞서고 바다의 뒤에 있다는 말로, 학문과 덕행이 모두 그 냇물에 앞서서 근원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깊이와 넓이가 바다보다도 그 정도가 크다는 뜻이다.
  54. 118)개천사開天寺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가동리 천태산天台山에 있는 절이다.
  55. 119)종정宗正 : 종파의 제일 높은 어른을 지칭하는 말이다.
  56. 120)화사化士 : 화주승化主僧을 말하니, 고을로 내려가 집을 다니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법연法緣을 맺게 하고, 시주를 받아 절의 양식을 대고 살림을 맡는 승려를 말한다.
  57. 121)권선문(勸文) : 불가에서 사찰에 시주를 권하는 내용의 글을 말한다.
  58. 124)연주시聯珠詩 : 칠언절구로 된 당시唐詩를 추려 모은 시집을 말한다.
  59. 125)시산詩山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에 있는 리里이다. 장군봉 아래 언덕 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60. 126)바늘과 개자(針芥) : 하늘에서 바늘을 던져 겨자씨를 맞추듯 만나기 어려움, 또는 어렵게 만난 인연을 가리킨다.
  61. 128)간목竿木 : 꼭두각시를 놀리는 사람이 가지고 다니는 막대기를 말한다.
  62. 129)금산사金山寺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절이다.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된 것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후 인조 4년(1626)에 재건된 것이다.
  63. 130)송대松臺 : 금산사 안, 북쪽의 높은 돈대로서, 그 위에는 금산사 오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바로 뒤에는 석종 모양의 사리 계단이 있다.
  64. 131)비전碑殿 : 고승들의 부도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목조 건물을 말한다.
  65. 132)소식蘇軾의 「赤壁賦」에, “배 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줄도 몰랐더라.(相與枕藉乎舟中。 不知東方之旣白。)”라는 말이 있다.
  66. 133)국사봉國師峯 : 현재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에 있는 산이다.
  67. 134)반형班荊 : 춘추시대 초楚나라 오거伍擧가 정鄭나라로 도망쳤다가 다시 진晉나라로 망명하려 할 때에 진나라로 가려는 성자聲子를 정나라 교외에서 만나 가시나무 가지를 땅에 깔고 앉아서 고국에 돌아가는 일을 의논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절친한 관계를 이른다.
  68. 135)추줄산崷崪山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와 동상면 수만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24m이다. 현재는 위봉산威鳳山으로 불린다.
  69. 136)회문산回門山 : 전라북도 임실군의 서쪽 강진면 용수리와 순창군 구림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37m이다. 북쪽 섬진강에 인접한 높은 산으로 노령산맥 줄기이다.
  70. 137)두승산斗升山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덕천면·소성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44m이다. 정읍시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고부면을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71. 138)성가퀴(雉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다.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72. 139)경기전慶基殿 : 조선 태조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전각으로,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다.
  73. 140)일주문一柱門 :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74. 141)화암사花巖寺 : 694년 일교 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불명산佛明山 기슭에 있다.
  75. 142)황목단黃▼(艹/牧)䒟 : 황색 모란을 말한다. 대체로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높이는 2m 정도이며 가지는 굵고 털이 없다. 잎은 세 겹으로 되어 있고, 작은 잎은 달걀 모양이며, 2∼5개로 갈라진다. 잎 표면은 털이 없고 뒷면은 잔털이 있으며, 흔히 흰빛이 돈다.
  76. 143)연화 공주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임금의 꿈속에 부처님이 나타나 꽃잎을 던져 주었다. 그 꽃이 있는 곳을 수소문하여 그곳으로 갔는데, 연못 속에서 용이 나타나 그 꽃에 물을 주고 사라졌다. 사신이 그 꽃을 꺾어 와 공주에게 먹이니 병이 깨끗이 나았고, 그곳에 지은 절이 화암사라는 설화가 있다.
  77. 144)누각 : 화암사에 있는 우화루雨花樓를 말한다.
  78. 145)관찰사(方伯) : 조선시대의 종이품 외관직外官職으로, 감사監司라고도 한다. 지금의 도지사와 같은 관직이다.
  79. 146)성달생成達生 :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무신(1376~1444)이다. 전라도 관찰사 겸 병마절도사, 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무과 출신이나 문필에 능했으며, 특히 서찰書札을 잘 썼다. 화암사 중창기重創記 비문에 의하면, 성달생이 화암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고 한다.
  80. 147)사전寺典 : 흔히 대도서大道署 내지 내도감內都監이라고 한다. 사찰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말한다. 여기서는 대도서에서 작성한 기록, 사찰의 일을 기록한 사지寺誌의 뜻으로 쓰였다.
  81. 148)향각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을 맡아보는 임원의 숙소를 말한다.
  82. 149)아사리(闍梨) :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를 말한다. 한역하면 궤범사軌範師·규범사規範師이다.
  83. 150)오차午茶 : 점심 공양 후에 모여서 다과를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
  84. 151)안심사安心寺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대둔산大芚山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자장慈藏이 세우고 부처의 사리를 이 절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85. 152)익랑翼廊 : 중앙 건물의 양편에 이어서 지은 행랑을 말한다.
  86. 153)임금께서 직접 쓰신 글씨 : 영조가 안심사에 직접 글씨를 써서 보내와 어서각御書閣을 세워 보관하였다고 한다.
  87. 154)아래의 득모암에 대한 기록에는 착오가 있는 듯하다. 시기와 장소 및 인물의 설정이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택리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첨부한다. 『택리지』에, “대둔사의 뒷산은 계룡산에서 뻗어온 줄기인데, 절 뒤에 백운암이 있다. 함열咸悅 사람 손순목이 어릴 때 임진왜란을 만나 어미를 잃었다.……사람들이 크게 놀라서 그 암자 이름을 고쳐 득모암得母庵이라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88. 155)선덕宣德 : 명나라 선종(1426~1435) 때 연호. 선덕 10년은 1435년이다.
  89. 156)유복통劉福通 : 중국 영주 출신의 인물(1321~1363)로, 원말元末 홍건적의 두목이었다.
  90. 157)옥구沃溝 :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 있었던 옛 지명이다. 현재의 군산시에 해당한다.
  91. 158)만경대萬景臺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에 있는 남고산성의 서쪽에 있는 절벽으로, 통일신라시대 때 자연적 요새로 쓰였다.
  92. 159)마천대摩天臺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과 전북 완주군 운주면의 경계에 있는 대둔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93. 160)낙서樂西 : 고려시대 때 신승神僧. 진언과 참법 등을 스님들에게 전수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94. 161)영당影堂 : 덕이 높은 승려의 화상畫像이나 조각상彫刻像을 모시어 둔 사당을 말한다.
  95. 162)인가 : 송음 공이 집을 떠나 머물고 있는 집을 말한다.
  96. 163)궤석几席 : 벽에 세워 놓고 몸을 기대고 앉을 수 있게 만든 방석과 자리를 뜻한다.
  97. 164)학은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멀리 날아가자마자 많은 눈이 내렸다는 것은, 설담 대사가 송음 공을 찾아왔는데, 때마침 자리를 비운 상황을 비유한 말이다.
  98. 165)압운押韻 : 한시를 지을 때 같은 운자韻字를 일정한 곳에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운율을 조성하는 작법이다.
  99. 166)중양일重陽日 : 음력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중양절重陽節이라고도 한다.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의 하나이다. 중일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들이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만수滿數인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100. 167)진산읍珍山邑 : 충청남도 금산군 소재의 고을로서, 대둔산 부근 동쪽에 있다.
  101. 168)천등산千燈山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 있는 산이다. 높이 707m로, 대둔산 부근에 있다. 전주에서 대둔산 가는 방향으로 오른쪽에 우뚝 솟아 있다. 산세가 수려하고 암자가 많다. 현재는 천등산天燈山이라고 하나, 옛날에는 천등산千燈山으로도 표기한 듯하다.
  102. 169)장석丈席 : 『禮記』 「曲禮」의 “스승과 제자의 자리는 한 길 정도의 거리를 둔다.”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말로, 일반적으로 스승,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103. 170)오도자吳道子 : 당나라 때의 천재 화가인 오도현吳道玄(700~760)을 말한다. 현종에게 재주를 인정받아 궁정화가가 되었다. 원래 이름은 도자道子였는데, 현종이 도현道玄이란 이름을 내려 주었다.
  104. 171)근폭芹曝 : 미나리와 햇볕을 뜻하는 말로, 송宋나라 사람이 봄철의 따스한 햇볕과 맛있는 미나리를 임금에게 바치려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는 설담 대사가 겨울철에도 푸르른 소나무와 대나무를 보고서, 임금께 절개를 지키는 충정심이 솟아났다는 뜻으로 쓰였다.
  105. 172)삼천三川 : 전라북도 완주군과 전주시에 흐르는 하천으로, 삼천천이라고도 한다.
  106. 173)피향정披香亭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107. 174)말목장터(馬項里) :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에 있는 마을이다.
  108. 175)사관寺觀 : 사찰과 도관道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109. 176)개암사開巖寺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절로,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110. 177)도솔암兜率庵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선운사의 암자이다.
  111. 178)낭주浪州 : 『高麗地理誌』에 따르면, 양주는 전라도 고부군 보안현의 별호라고 되어 있다. 현재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해당한다.
  112. 179)암자 이름인 도솔은 도솔천兜率天에서 따온 말로, 이곳은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머물고 있는 천상의 정토淨土이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욕계 육천 중 제4천인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지리산을 수미산에 빗대고 도솔암을 도솔천에 빗대어 그 풍광이 마치 천상의 그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113. 180)우금굴禹金窟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우금산의 정상부에 우금바위가 있는데, 그 아래에 있는 바위굴이다.
  114. 181)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의 뒷산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인 우금산성을 말한다. 『문헌비고』에는 삼한시대 우禹·진陳 두 장군이 성을 쌓고 주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우금산성을 우진산성이라고도 한다. 우금바위와 개암사 저수지까지의 능선 밑으로 산성을 쌓았는데, 남쪽으로 통한 계곡 입구에 남문을 설치하였고, 양쪽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장되어 있다.
  115. 182)묘畝 : ‘밭고랑’이라는 뜻으로, 전답 넓이의 단위이다. 본음은 ‘무’이지만 현재는 ‘묘’로 변음되어 사용되고 있다. 조선 때 호조의 정문에 의거하면, “전지를, 사방 5척尺, 면적 25척으로 1보步를 삼고, 240보로 1묘를 삼으며, 1백 묘로 1경頃을 삼고, 5경으로 1자정字丁을 삼는다.”라고 되어 있다.
  116. 183)석호리石壕吏 : ‘석호촌의 관리’라는 뜻으로, 두보杜甫가 쓴 한시이다. 그 앞부분의, “저녁에 석호촌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관리가 밤에 사람을 잡으러 왔네. 할아버지는 담을 넘어 도망가고, 할머니는 문에 나가 응대하네.(暮投石壕村。 有吏夜捉人。 老翁踰牆走。 老婦出門看。)”라는 내용에서 보이듯이, 위정자의 잘못으로 학정虐政에 시달리는 백성의 참담한 현실을 표현한 시이다.
  117. 184)계원鷄園 : 인도 마갈타국에 있던 절 이름으로, 아소카 왕이 창건하였다. 범어 굴굴타아람마(Kukkutaarama)의 한역어로, 계작사鷄雀寺·계두말사鷄頭末寺·계사鷄寺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사찰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118. 185)실상사實相寺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절이다.
  119. 186)선탄禪坦 : 고려의 승려로, 생몰년은 미상이다. 호는 환옹幻翁이다. 시를 잘 지었으며, 거문고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특히 사대부들과의 교류가 많았으며, 이제현李齊賢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120. 187)청림사靑林寺 : 변산邊山 안의 상서면 청림리에 있었던 절로, 변산의 사대 사찰 중의 하나였는데 언제 소실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청림사지에서 나온 동종에 새겨진 명문으로 보아 이 절이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절이란 것을 알 뿐이다. 절이 있었던 절터에는 지금 청림리라는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 마을의 한복판에 묘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 옛날에 탑이 서 있었다 하여 지금도 ‘탑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121. 188)탄부炭夫 :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인부를 말한다.
  122. 189)삼폭포三瀑布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에 있는 폭포로, 석포리石浦里 소재 내소사來蘇寺의 북서쪽, 선인봉仙人峰의 동쪽 산자락에 형성된 계류폭포溪流瀑布이다. 높이 20m 이상을 쏟아져 내려 옥수담玉水潭에 떨어지는 직소폭포를 비롯하여, 그 밑에 제2, 제3의 폭포가 또 있어서 삼폭포라고 한다.
  123. 190)월명암月明庵 :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중계리 변산 쌍선봉雙仙峰에 있는 절이다. 신문왕 11년(691)에 고승 부설浮雪이 창건하였다. 조선 선조 때의 고승 진묵震默이 중창하여 17년 동안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이후 수차례 중건되었다.
  124. 191)이와 관련된 고사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부설 거사浮雪居士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성은 진陣이고, 이름은 광세光世였다. 어려서 출가하여 경주 불국사에서 원정圓淨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묘화라는 여인과 결혼을 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부설 거사는 묘화 부인과 두 자녀인 등운登雲·월명月明으로 하여금 출가하여 승려가 되게 하고, 두 자녀를 위하여 지금의 변산에 있는 등운암登雲庵과 월명암月明庵을 지었고, 부인을 위해 묘적암妙寂庵을 지었다.
  125. 192)김퇴어金退漁 :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진상金鎭商(1687~1755)을 말한다. 호는 퇴어退漁, 자는 여익汝翼이며, 김장생의 현손이다. 숙종 때 관직을 지내다가 신임사화로 무산에 유배되었다. 1724년 영조의 즉위로 이조정랑으로 등용되었고,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글씨에 뛰어나 많은 비문을 썼다.
  126. 193)월출산月出山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에 있는 해발 809m의 산이다.
  127. 194)승달산僧達山 : 전라남도 무안군의 중앙부에 있으며, 청계면과 몽탄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128. 195)『孟子』 「盡心」 상에, “공자께서 동산에 오르시어 노나라가 작은 줄 아셨고, 태산에 오르시어 천하가 작은 줄 아셨다.(孔子。 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라는 말이 있다.
  129. 196)실상사實相寺 : 신라 신문왕 9년(689)에 초의 선사草衣禪師가 창건하고, 조선조 때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중창한 절로서, 현재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절터가 남아 있다. 실상사는 변산 6대 사찰의 하나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고 하나 6·25 때 전소되었다. 실상사지는 내변산의 직소폭포로 가는 천왕봉과 인장봉 사이에 있는데, 주위 형세가 온통 바위로 된 암산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130. 197)직연直淵(直沼)폭포 : 현재 통상 직소폭포라고 한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는 폭포이다.
  131. 198)내소사萊蘇寺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鎭西面 석포리石浦里에 있다. 백제 무왕 34년(633)에 백제의 승려 혜구 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觀音峰(433m) 아래 있는데, 관음봉을 일명 능가산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보통 ‘능가산 내소사’로 부르기도 한다.
  132. 199)난새(鸞) :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로서, 부부 한 쌍이 늘 같이 다닌다고 한다.
  133. 200)진표 율사眞表律師 : 통일신라 중기의 고승高僧(713~780)이다. 성은 정井, 아버지는 진내말眞乃末, 어머니는 길보랑吉寶娘이며, 완산주完山州 만경현萬頃縣 출신이다. 유가론과 유식론을 중심 교학으로 하여 연구 체계화한 법상종法相宗을 금산사金山寺에서 개종하였다.
  134. 201)부풍현扶風縣 대정大井 마을 : 현재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이다.
  135. 202)중매인(蹇脩) : 건수蹇脩는 복희씨의 신하로, 중매에 능했던 고대 여인의 이름이다. 이후에 중매인의 통칭으로 사용되었다.
  136. 203)춘암春庵 : 조선 후기의 선비인 소응천蘇凝天(1704~1760)을 말한다. 본관은 진주, 자는 일혼一渾이며, 춘암春庵은 호이다. 제자백가를 섭렵하였고, 경전에 박학하였다. 문사文辭에 재주가 있었으며, 특히 시는 그 솜씨가 뛰어나 수백 개의 운자韻字로 시를 지었다. 또한 역법曆法과 병법兵法에도 밝았다. 부모의 상에 시묘할 때에 해남의 두류산에 띠풀로 집을 짓고는 종일토록 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사방의 학자들이 그의 풍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137. 204)화재(欝攸) : 울유欝攸는 본래 화재를 일으키는 신의 이름이다. 화신火神 또는 화마火魔라고도 한다.
  138. 205)관서關西 : 마천령의 서쪽 지방,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139. 206)황윤석黃胤錫 : 조선 후기의 학자(1729~1791)로, 자는 영수永叟, 호는 이재頤齋이다. 본은 장수長水이다. 1759년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1786년 전생서典牲署의 주부를 거쳐 전의현감全義縣監을 지냈다.
  140. 207)구수골(龜壽洞) : 옛 고창군 흥덕현의 마을로, 현재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의 마을이다.
  141. 208)우바새優婆塞 : 출가하지 않은 재가 남자 신도를 말한다. 산스크리트 upāsaka의 음사어로, 한역하면 청신사淸信士이고, 근사남近事男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거사라고 한다.
  142. 209)옥봉玉峯 :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광훈白光勳(1537~1582)을 말한다. 본관은 해미海美이고, 자는 창경彰卿이며, 옥봉玉峯은 호이다. 종형제를 포함한 집안 4형제가 모두 문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호남 시인이다. 특히 절구絶句를 잘하여 당나라의 천재 시인 이하李賀에 비견되었다.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어서 영화체永和體에 빼어났다.
  143. 210)주지번朱之蕃 : 명나라의 관인이자 서예가(1561~1626)이다. 자는 원개元介이고, 호는 난우蘭瑀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렸으며, 시와 글에 능했다. 만력 23년(1595) 장원으로 선발이 된 뒤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승진하였는데, 관원으로 있으면서 청렴결백하고 공정하였다. 만력 33년(1605)에 조선에 봉명 사신으로 와서 많은 선비들과 교류를 하였고, 수많은 서화와 시문을 남겼다.
  144. 211)청류동淸流洞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양수리 청류동이다.
  145. 212)운문암雲門菴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의 최고봉인 상왕봉 아래에 백양사가 있는데, 그 산내 암자이다. 조선 중기 진묵 대사와 백파 긍선 선사가 이곳에 주석하였다.
  146. 213)손에 침을 퉤퉤 뱉고는(唾手) : 유람을 떠나기 전 손에 침을 뱉어 힘차게 출발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147. 214)헐성루(歇惺) : 금강산 내금강의 표훈동 정양사正陽寺에 있던 누각으로, 내금강의 42개 봉우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던 곳이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에 와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 한다.
  148. 215)중향성(衆香) : 금강산 내금강의 영랑봉 동남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하얀 바위 성을 말한다.
  149. 216)의상대(東臺) : 신라시대 의상 대사가 창건한 낙산사에 있는 정자이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명승지로, 소나무 숲이 우거진 해안 절벽에 자리 잡고 있어 아름다운 주변 풍광과 일출 경관이 멋진 곳으로 이름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