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묵암대사시초(黙庵大師詩抄) / 默庵集書信卷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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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암집서신 권중默庵集書信卷中
문(1)文(一)
우곡 주인의 철쭉장에 대한 편지에 답한다2편(答尤谷主人躑躅書二篇)
존양存養의 기후가 어떠하신지요? 지난번 철쭉(躑躅)88)을 구해 달라는 편지를 받고 마치 갱장羹墻89)을 뵙는 듯하였습니다. 산에 오르는 이들에게 두루 부탁하였으나 되지 않아서 구품舊品을 널리 모아 보았지만 역시 모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어제는 제가 직접 산에 들어가 한 가지를 꺾었으나 역시 썩 좋지는(外孫)90) 못합니다. 그래도 가지는 대나무와 같고 무늬는 거북 같아서 부족하나마 그런대로 손에 쥘 만하기에 감히 이것을 올립니다. 여러 가지를 가리느라 시일이 지체되었으니, 때맞추어 정성을 보이지 못한 것도 다 이런 까닭입니다.
아마도 이 지팡이가 주인의 손에 들어가면 물을 건너고 산을 노닐면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물건(活物)이 될 것이니, 저 청산에 매여 있는 뒤웅박이나 오이(匏苽)91)처럼 헛되이 허송세월하는 것과는 크게 다를 것입니다. 여암呂巖92)의 가마솥 속의 산천93)이나 장자(柒園)94)의 손가락의(指馬)95)의 천지나 유마維摩의 손바닥 위의 대천세계와 다를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저 거친 칡넝쿨(葛覃)96)도 누사嫘姒97)의 교묘한 솜씨를 만나면 가늘고 정교한 베로 변하고, 한 홉의 물도 신룡神龍의 주문을 만나면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로 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천세계가 비록 넓다 하여도 유마거사(淨名)98)가 그것을 얻으면 한 움큼이 될 것이며, 천지가 비록 광활하다 하여도 장자(莊周)가 그것을 체득하면 한 손가락이 될 것이며, 산천이 비록 아득하다 하여도 여동빈(洞貧)이 잡으면 솥 안의 물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 본래의 자리를 바꾸어 남의 처분을 받는다면 그것이 어찌 대천과 천지와 산천의 옛 모습이겠습니까?
특별히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또한 하나의 철쭉장이 되었던 것뿐입니다. 지금 이 철쭉이 만약 우곡주인의 손을 얻지 못했다면 다만 외로운 바위 위의 한 가지 나무 조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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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09_c_02L默庵集書信卷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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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09_c_04L1)文(一) [4]

010_0009_c_05L答尤谷主人躑躅書

010_0009_c_06L
不審存養氣侯若何向所求躑躅受囑
010_0009_c_07L以來如見羹墻廣謀於登山者而不
010_0009_c_08L多聚於舊品而亦不可故昨日躬自
010_0009_c_09L入山採得一枝亦不甚是外孫者
010_0009_c_10L但節則竹文則龜聊可握手敢玆呈
010_0009_c_11L多般揀擇遷延時月趨未效情
010_0009_c_12L以此也大抵此錫入主人手中涉水
010_0009_c_13L遊山動成活物與夫匏苽靑山空度
010_0009_c_14L歲月大有間矣豈異於呂巖鐺裡之山
010_0009_c_15L柒園指馬之天地維摩掌上之大千
010_0009_c_16L何刖葛覃之粗爲嫘姒所工則變
010_0009_c_17L爲精細之布一勺之水爲神龍所呪
010_0009_c_18L則化爲霶霈之雨然則大千雖廣淨名
010_0009_c_19L得之爲一握天地雖濶莊周體之爲一
010_0009_c_20L山川雖邈洞賓搏之爲鐺裏之物
010_0009_c_21L轉本位而受他處分豈大千天地山
010_0009_c_22L川之舊哉特因得其人而亦爲一躑躅
010_0009_c_23L而已也今此躑躅若不得尤谷主人手
010_0009_c_24L則但孤岩上一枝木片而止耳豈有指
010_0009_c_25L「文一」二字編者補入

010_0010_a_01L어찌 사동이나 하인을 시켜서 술을 가져 오게 하고 물고기를 세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정한 장소가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도 또한 나무의 옛 모습이 아닌 것을 알지만, 그 사람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곧바로 가마솥의 산천도, 지마의 천지도, 손바닥 안의 대천세계도 될 수 있는 것도 틀림이 없습니다. 아아, 부질없이 구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은 되지만, 도가 어디 멀리 있겠습니까?

吾掌欲大千則大千運吾掌 내 손바닥에 대천세계를 갖고자 하면 대천세계가 내 손바닥에 오고,
吾指欲天地則天地作吾指 내 손가락이 천지를 갖고자 하면 천지가 내 손가락이 되며,
吾鼎欲山川則山川入吾鼎 내 솥이 산천을 갖고자 하면 산천이 내 솥에 들어오고,
吾手欲躑躅則躑躅在吾手 내 손이 철쭉을 갖고자 하면 철쭉이 내 손에 있게 되네.

비록 각기 그 힘에 따라 참으로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러나 서로 얻는 도는 곧 하나입니다. 주인께서는 과연 이 이치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갈등이 끝이 없기에 다시 몇 구절 게송을 드립니다. 부디 이 산인이 사람 홀리는 괴상한 말로 사람을 미혹하려 한다는 말씀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한가한 때에 다듬어 주시기를 아끼지 마시고 또 아름다운 시문(瓊琚之報)으로 답해 주신다면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편지의 법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김상국께 올리다휘는 상복99)이다(上金相國諱相福)
1
괴정槐庭100)에 앉아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여가에 붓을 휘둘러 좋은 문장을 지어서 돌아가신 법조法祖의 70년 썩은 뼈를 적셔 일으켜 주셨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는(吐握)101) 넉넉한 은혜가 또한 산림에 묻혀 사는 선승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으니, 어찌 옛날의 배상국裴相國102)과 장관문張觀文103)만을 유독 대단하다 하겠습니까?
산인 아무개는 병으로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서(雌伏), 아직 음양을 다스리고 사시四時에 순응하시는 대감의 모습(風儀)을 모시지 못하여 못내 한스럽습니다. 요사이 자리를 좌의정(左台)으로 옮기시어 더욱 대궐(天門)104)에 가까워졌다고 들었습니다. 조야朝野의 기대가 어찌 적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해정海淨 스님(小師)을 보내어 움직이고 멈추는 일(動止)들이 두루 복되신지 우러러 여쭙습니다. 나머지는 봄 초입에 나아가 뵙고 하겠습니다. 황공하여 다 갖추지 못합니다.
답서를 붙임(答書附)
훌륭한 제자(高足)를 멀리까지 보내 주신 것이 오로지 비석 찍은 것(碑印)을 보여 주시기 위함인데 겸하여 안부를 묻는 편지까지 주시니 죄를 짓고 칩거하는(罪蟄)105) 가운데 감사한 마음 참으로 간절하오며, 또 스님의 스님으로서의 성실한 노력에 감동하였습니다.

010_0010_a_01L僮揮僕引酒數魚之能也哉故知遠近
010_0010_a_02L出入自在無方亦非木之舊而由得
010_0010_a_03L其人直爲鐺裏之山川指馬之天地
010_0010_a_04L掌握之大千也必矣嗚呼患不虗求
010_0010_a_05L道何遠乎吾掌欲大千則大千運吾掌
010_0010_a_06L吾指欲天地則天地作吾指吾鼎欲山
010_0010_a_07L則山川入吾鼎吾手欲躑躅則躑
010_0010_a_08L躅在吾手雖各隨其力眞似大小之不
010_0010_a_09L而其爲相得之道則一也主人還信
010_0010_a_10L得及麽葛藤不盡更呈數頌云云
010_0010_a_11L勿曰這山人以幻怪惑人閑中不恡
010_0010_a_12L郢削又垂瓊琚之報則幸甚不具簡䂓

010_0010_a_13L

010_0010_a_14L上金相國諱相福

010_0010_a_15L
坐槐庭論道經邦之暇揮灑寶唾
010_0010_a_16L潤起先法祖七十載之朽骨吐握之餘
010_0010_a_17L亦及於山林禪釋古之裴相國張觀
010_0010_a_18L豈獨多乎山人某病且雌伏尙未
010_0010_a_19L陪理陰陽順四時之風儀仰恨不已
010_0010_a_20L伏聞移身左台尤近天門云朝野之望
010_0010_a_21L豈其少哉玆遣海淨小師仰候動止
010_0010_a_22L萬福餘容春初進謁惶恐不備

010_0010_a_23L答書附

010_0010_a_24L
遠送高足專示碑印兼致問字
010_0010_a_25L蟄之中荷意良勤又感師爲師之誠

010_0010_b_01L보잘것없는 문장으로 뜻에 부응하려고 억지로 노력은 했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에 부끄러워하고 있던 차에, 또 어쩌자고 굳이 멀리서 번거롭게 탁본을 보내는 은혜를 주셨습니까?
보내 주신 능이버섯과 아름다운 종이도 주신대로 잘 받았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붓 세 자루와 먹 두 개와 부채 두 개를 보내 드립니다. 답장을 올리는 마음 다 펼치지 못합니다.
정해년 5월 사동社洞에서 답합니다.

2
세상 밖의 천한 자취가 숲 안에 병들어 엎드려 있으니, 오랫동안 재상으로서 정사를 하시는(調羹)106) 모습을 우러르면서도 아직 고상한 의론(高論)을 접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러러 사모함이 못내 간절합니다. 보내주신 아름다운 전서(佳篆)를 석액石額에 걸어 비석의 풍부한 위의를 빛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영광된 일입니까?
변변찮은 물건을 굳이 드리오니 너무 적은 것이라 부끄럽습니다. 꾸짖지 마시고 웃으며 받아 주십시오.
답서를 붙임(答書附)
혜蕙 사미가 오는 편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고 참선하는 정황이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크게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서로 떨어진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윽한 풍취를 받들어 접할 길이 없으니 매우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돌에 새기고 이렇게 찍어 준 은혜를 입은 것만으로도 이미 감사한 마음(珍謝)이 간절한데, 두 가지 물건까지 보내 주신 은혜까지 입으니 오히려 불안합니다. 나머지는 병 때문에 편지의 형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김 정랑107)께 올리다휘는 상숙이며, 배와거사이다.(上金正郞諱相肅坏瓦居士)
1
두 제자가 재상을 뵙는 길(鉉路)에 올라 도모하는 바를 크게 얻은 것은 다 대거사께서 그들을 위하여 앞뒤에서 힘써 주신 덕분이라고들 하니, 산인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나 절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망극하게도 장중한 글씨(罔涯莊書)를 돌에 새길 시기는 이 봄 내에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오랜 병이 조금 나아지면 마땅히 좌하座下에 나아가 유가와 석가가 다르지 않은 이치를 듣겠습니다. 조계의 도량이 비록 선조들의 『화엄경』 대법보大法寶의 판목을 두었던 곳은 아니지만 산이 밝고 물이 아름다우며 또 보조국사普照國師 아래로 16국사를 지나면서 또 유명한 스님들과 시 짓는 스님(韵釋)들이 머물렀던 곳이며 왕의 교화의 자취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유가와 석가 사이의 고상한 교류가 있어서 노닐며 완상하는 아름다운 모임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010_0010_b_01L力也拙文勉强應副方自歉愧
010_0010_b_02L何必遠煩榻惠也所送香耳佳紙
010_0010_b_03L受多謝三筆二墨二扇送之不宣
010_0010_b_04L答䟽丁亥五月社洞

010_0010_b_05L
010_0010_b_06L
物外賤蹤病伏林下久仰調羹之風
010_0010_b_07L而殆未接高論仰慕第切所賜佳篆
010_0010_b_08L而石額彰一碑之豊儀是何等榮曜乎
010_0010_b_09L不腆之物强呈薄略爲愧莞納不誅

010_0010_b_10L答書附

010_0010_b_11L
蕙沙彌來致問書以悉禪况之安
010_0010_b_12L慰而相去踔遠無由奉接玄風爲之
010_0010_b_13L悵然石刻荷此印惠已切珍謝
010_0010_b_14L種之惠還庸不安自餘病倩不宣
010_0010_b_15L狀式

010_0010_b_16L

010_0010_b_17L上金正郞諱相肅坏瓦居士 [8]

010_0010_b_18L
兩弟子得昇鉉路大得所圖者皆大居
010_0010_b_19L爲之先後之力云山人不覺起立拜
010_0010_b_20L罔涯莊書鐫石之期似在春間
010_0010_b_21L宿痾間則當進座下溫聽儒釋不異之
010_0010_b_22L曺溪道場雖非先祖華嚴大法寶
010_0010_b_23L留板之地山明水麗且經普照國師下
010_0010_b_24L十六國師與名僧韵釋住錫王化之蹟
010_0010_b_25L儒釋間高流莫不願一投足遊賞之

010_0010_c_01L남악南岳 선생의 이른바 “딴 산의 절을 감히 바라볼 수 없다.(他山寺, 莫敢望焉.)”는 말이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선사先師의 자취가 대군자의 문필의 뛰어난 인연을 입음으로써 천리 밖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좋은 품질의 수마노 돌을 높은 관리(軒冕)들이 왕래하는 중요한 길의 길가에 세우니, 앞에는 임경당臨鏡堂ㆍ삼청선각三淸仙閣ㆍ능허교凌虗橋ㆍ우화각羽化閣108)이 있고 좌우에는 무용선사無用先師109)와 삼연선생三淵先生110)이 세상을 잊고 도를 이야기하던 수석정水石亭과 진락대眞樂臺가 있는데 경치도 아름다울뿐더러 비석 또한 훌륭합니다. 이 대작 대필을 훌륭한 돌에 새겨서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 세우며 저는 선사의 자취가 영원히 끝없이 전해지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눈으로 우러러보고 손으로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무개 상국의 절묘하고 좋은 작품이며 아무개 정랑의 조화로운 신필神筆이구나.”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병들어 쇠잔한 머리 깎은 중의 몸으로 무슨 요행으로 이렇게 큰 사업을 천 년이나 지난 후에 이룰 수 있었을까요? 손발이 춤을 추면서 감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이 경사를 편지로 쓰며 마음에 넘치는 생각은 원래의 편지 외에 따로 고할 것이니 굽어살펴 주십시오.

2
편지를 쓰고 난 후에, 중봉대사中峰大師가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갑자기 구하시는 경전의 목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거사님의 친필이어서 손으로 받들고 보면 볼수록 마치 곁에서 가르침(警咳)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고봉록高峰錄』과 『금강경金剛經』 등의 네 경전은 멀리 본사에 보관해 두고 가지고 다니지 않는데다 해정海淨의 떠날 일정이 촉박하여 미처 보내 드리지 못하고, 다만 마침 책상머리에 있는 펼쳐서 보기 쉬운 어록語錄 몇 권을 대신 싸서 올립니다. 높으신 뜻에 맞으실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비록 높은 관직에 있는 사대부라 하여도 덮어 두기 어려운 전생(宿世)의 영골靈骨의 종자를 밝혀서, 날마다 자기 마음의 밝고 묘함을 경전(貝葉)에서 얻거나 혹은 풀무와 망치(鑪鎚) 아래에서 시험을 받음으로써 진공眞空의 즐거움을 마음에 새겨 걸고서

010_0010_c_01L嘉會南岳先生所謂他山寺莫敢望焉
010_0010_c_02L以此也今以先師之蹟被之於大
010_0010_c_03L君子文筆之勝因以傳之於千里外
010_0010_c_04L瑪瑙好品之石揭樹於軒冕徃來之要
010_0010_c_05L路邊前有臨鏡堂三淸仙閣凌虗橋羽
010_0010_c_06L化閣左右有無用先師與三淵先生
010_0010_c_07L機道話之水石亭眞樂𡋛景旣佳而碑
010_0010_c_08L亦勝矣以此大作大筆鐫於勝石
010_0010_c_09L於佳景之中吾喜先師之蹟傳之無窮
010_0010_c_10L目仰觀手摩挲者莫不曰某相國之絕
010_0010_c_11L妙好作某正郞之造化神筆云云也
010_0010_c_12L以殘身病髠何幸成此大功於千載之
010_0010_c_13L下乎哉手舞足蹈不知攸謝謹書此
010_0010_c_14L溢心靈之懷別告於元簡之外
010_0010_c_15L察焉

010_0010_c_16L
旣裁書已中峰大師自京下來忽傳
010_0010_c_17L求經目錄宛是居士親筆擎手看去
010_0010_c_18L如在警咳之側高峰錄及金剛等四經
010_0010_c_19L遠藏本寺曾不隨身海淨促行未及
010_0010_c_20L進呈只將時在床頭閱之易得向方
010_0010_c_21L底語錄數卷替以封上未審合於高意
010_0010_c_22L緬惟昔之士大夫雖在軒冕之中
010_0010_c_23L有發於宿世靈骨種子之難掩日用自
010_0010_c_24L心明妙或得之於貝葉之中或蒙試於
010_0010_c_25L鑪鎚之下銘佩眞空之樂而不暇顧流

010_0011_a_01L속류들의 비방과 비웃음을 돌아보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장관문張觀文111) 학사學士 같은 이는 종열從悅112) 대사를 뵙고 깊이 깨달아 항상 말하기를, “설사 철륜鐵輪이 정수리 위에서 구른다 해도 정혜定慧의 원명圓明함은 끝내 잃지 않으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처음 「무불편無佛篇」을 지은 것을 후회하고 마지막에는 『호법론護法論』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생각해 볼 것 같으면 선학禪學에 의거하여 나의 성명性命의 근원을 궁구하는 것이 애초에 장보章甫113)가 세상을 다스리는 도에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

아, 요즈음 세상의 군자들은 번뇌의 인연은 깊고 반야般若의 인연은 얕아서 곧은 길을 보아도 마치 월越 나라 사람이 살찌고 여윈 사람을 바라보는 것(越人肥瘠)114)과 같이합니다. 이 어찌 옛 성현들의 말씀과 지나간 행실을 많이 기억하여115) 사생四生과 육취六趣의 길에 두루 미치는 일이겠습니까?
내가 오랫동안 병폐로 여기고 있는 일입니다.
요사이 들으니 대거사께서는 타고난 바탕이 도를 좋아하여 문득 얻은 한 생각도 물러남이 없고 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크게 신향信向을 더하여 만법귀일萬法歸一의 화두를 보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 공안公案을 참구한다 하시니, 참으로 불길 속에 핀 연꽃이십니다.

불교의 경전(敎乘)을 훈습하고 스승과 벗(師友)이 절차탁마해서 달마가 처음 양왕梁王을 만나116) 행해지지 않는 일착자一著子117)에 기어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면, 어찌 요새 사람들의 우리(圈牢)를 벗어나 그처럼 부지런하고 신실하게 선경禪經을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드리는 이 어록은 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매우 긴요하고 절실한 것들입니다. 먼저 『서장書狀』을 읽어서 선법禪法이 유학자에게 있어서 남의 일(外事)이 아님을 아시고, 그다음에는 『분등록分燈錄』을 읽어서 유학자 중에도 또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는 분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성도기成道記』를 읽어서 여래께서 일생 교화하신(一化)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말을 자세히 알도록 하시고, 끝으로 『질의론質疑論』을 읽어 의혹을 푸는 차당差當을 상세하게 분별하신다면, 합하의 마음(方寸)이 신령해질 것이고 합하의 가는 길(路頭)이 바르게 될 것이니, 몸소 실천하는(踐履) 방향은 가히 속은 광대하고 겉은 곧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설사 온 유림儒林 사람들이 다 와서 흔들어 댄다 해도 합하께서 서 있는 자리는 끝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않습니까?
다만 헛되이 구하기만 하고 구별하지(饡採) 못한다면 금과 옥과 같은 문장과 게송이 도리어 합하의 눈에 티끌이 될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010_0011_a_01L俗之訾笑如張觀文學士見從悅深證
010_0011_a_02L了常曰假使鐵輪頂上旋定慧圓明終
010_0011_a_03L不失悔始之無佛篇終作護法論
010_0011_a_04L此考之依禪學盡吾性命之源初何
010_0011_a_05L害於章甫經世之道哉今世君子
010_0011_a_06L塵惱緣深般若緣淺故視直截之路
010_0011_a_07L如見越人肥瘠相似此豈多誌前言徃
010_0011_a_08L行之意普被四生六趣之道乎余病久
010_0011_a_09L近聞大居士天資好道頓無所得
010_0011_a_10L心念退步乃於還鄕 [9] 之路大加信
010_0011_a_11L以至看萬法歸一話爲本叅公案云
010_0011_a_12L眞火中蓮也非熏之敎乘磨之師友
010_0011_a_13L造於達摩初見梁王不售之一著子
010_0011_a_14L其何能脫出於時人之圈牢而得得求
010_0011_a_15L禪經如是之勤篤哉所呈語綠皆是切
010_0011_a_16L緊於用工者伏望初讀書狀以知禪法
010_0011_a_17L不是儒者之外事次讀分燈錄須信儒
010_0011_a_18L者亦有續佛慧命之分次讀成道記
010_0011_a_19L審如來一化之始卒終讀質疑論詳卞
010_0011_a_20L解惑之差當則閤下之方寸靈矣閤下
010_0011_a_21L之路頭正矣踐履之方可謂宏其中而
010_0011_a_22L肆其外矣假使盡儒林人來撓閤下之
010_0011_a_23L立處終不掀動矣豈不美哉但恐未
010_0011_a_24L得虛求以饡採則金章玉偈翻作閤下
010_0011_a_25L之眼塵也以爲如何以爲如何

010_0011_b_01L
온 편지를 붙임(來狀附)
머리를 조아리고 말씀드립니다. 죄과가 깊고 무거워 이런 큰 슬픔을 만났으니 다시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평선伻禪에게서 스님의 걱정하고 위로하는 편지를 받으니 슬프고도 감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별지에 보여 주신 묘한 진리(妙諦)는 마치 마주 대하고 말씀을 듣는 것 같아 답답하게 막혔던 가슴이 갑자기 확 뚫리게 해주었습니다. 사후 세계(靈界)의 훌륭한 경치를 비록 볼 수는 없지만 가히 상상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잘것없는 편지는 도리어 산문山門에 단지 더러운 폐를 끼치기만 할 뿐이니, 그 훌륭한 명성(光價)에 어찌 보탬이 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간절하게 부끄럽습니다.
스님은 나와 동갑(同庚)의 나이로 요행히 인연이 되어 여러 차례 편지로 질문과 답장을 주고받았고 또 경전을 서로 빌려주었으니, 그 아득하게 그리워하는 뜻이야 불가와 속가에 어찌 차별이 있겠습니까?
곧바로 혜사惠師을 마주 대하고 스님의 안부를 물었더니, 겨울 사이에 기침과 가래의 병을 앓으시다가 지금은 비록 약간 낫기는 하였으나 항상 편찮으신 곳이 많다고 말하였습니다. 산속에서 안정되게 섭생하시는(定攝) 몸이 어찌 이러하십니까?
더욱 절실하게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고맙게 보내 주신 능이 버섯(香耳)과 아름다운 종이(佳紙)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어떻게 해야 보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침 흰 부채(素箑)가 생겼기에 보내 드리니 정으로 받아 주십시오. 나머지는 편지의 형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정해년 5월 13일에 죄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답장을 올립니다.
동래 수령께 올리다(上東萊倅)
다른 나라의 괴상하고 특이한 광경은 옛날 사람들이 이미 다 말했습니다. 아, 저 오랑캐(犬羊)의 풍속이야 어디 족히 더불어 논하고 싶겠습니까만, 다만 왜승倭僧이 불교의 이치를 잘 알고 재주가 많다는 말을 들었고, 또 저들이 우리나라의 중답지 못한 속승俗僧을 보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 만나 그 조예造詣의 깊고 얕음을 견주어서 혹 우리의 도道에 대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면 나라를 빛내는 작은 힘이라도 될 것입니다.
하물며 업신여김을 막는 방법은 저들 적의 정세를 아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진실로 적의 정세를 바로 안다면

010_0011_b_01L來狀附

010_0011_b_02L
稽顙言罪辜深重罹此巨創更復何
010_0011_b_03L即於伻禪得承上人勤慰哀感
010_0011_b_04L無已別紙妙諦如獲對語令人却
010_0011_b_05L豁碍滯之懷也靈界勝賞雖不見
010_0011_b_06L可以想像而顧此拙書只是爲山門
010_0011_b_07L累穢豈能助其光價耶還切慙愧
010_0011_b_08L上人與吾同庚幸有緣因屢以書牘
010_0011_b_09L問答且以經卷相贈其懸懸勤眷之
010_0011_b_10L豈以禪俗有間耶即對惠師問上
010_0011_b_11L人安否冬間咳痰之病今雖少可
010_0011_b_12L恒多病▼(虫+恙)云山中定攝之身何若是
010_0011_b_13L更切同病之憐也惠來香耳佳紙
010_0011_b_14L多謝情意何以爲報適得素箑
010_0011_b_15L呈領情也餘不備䟽式丁亥五月十
010_0011_b_16L三日罪人稽顙謝䟽

010_0011_b_17L

010_0011_b_18L上東萊倅

010_0011_b_19L
異國恑異之觀昔人已言之矣
010_0011_b_20L犬羊之俗何足以欲與之接論哉第聞
010_0011_b_21L倭僧善佛理多技能云又聞彼見我國
010_0011_b_22L俗僧輩之頹靡多懷侮慢云故願一見
010_0011_b_23L欲校其造詣淺深倘得起敬於吾道
010_0011_b_24L則未必不爲光國之涓埃也況禦侮之
010_0011_b_25L莫若知彼敵情苟敵情之是知

010_0011_c_01L업신여김도 또한 따라서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들이 만약 예의의 나라라고 우리나라를 일컫는다면 우리도 반드시 음란한(烝報)118) 풍속을 가지고 그들을 나무랄 것입니다. 그러니 문답이 오가는 일 역시 명성과 평판(風聲)을 세우는 대단大段이며 대절大節이 될 것입니다. 사대부가 대사大師을 대우하는 예의는 예전에도 또한 있었던 일입니다.
바라건대 명부明府께서는 부디 천한 이 중(賤釋)을 보통 중(凡髠)들을 대하던 예에 견주지 마시고, 천리 밖 병든 다리가 끝내 낙막落莫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해 주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여시 거사에게 답하다목천 수령 김광수119)이다(答如是居士木川倅金光遂)
자신의 마음에 어두운 사람을 일러 범부凡夫라 하고 자신의 마음을 믿는 사람을 일러 성현聖賢이라 합니다. 마음은 어떤 물건일까요? 말할 때는 말하는 것이 그것이며 침묵할 때는 침묵하는 것이 그것이며 기쁘거나 성나는 자리에서 기뻐하고 성내는 것이 그것이며 앉거나 누울 자리에 앉고 눕는 것이 그것입니다. 마음은 어떤 형상일까요? 숨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밝고 또렷하며 텅 비어 신령한 것 같으면서도 분별하고 깨닫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교敎에서 말하는 형상이고, 입을 벽에 걸어 두고 7일 동안이나 문을 닫아걸고 음식 맛을 잊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는 것이 선禪에서 보여 주는 형상입니다.
마음이 아니면 임금을 받들고 백성을 다스릴 수 없으며, 마음이 아니면 질문과 답변이 오갈 수 없습니다. 유가와 불가의 형상이 다르나 유가와 불가가 되게 하는 것은 마음이며, 귀하고 천함의 계급이 다르지만 귀하고 천하게 만드는 것이 마음입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 마음으로 말미암아 각기 그 직분에 살고, 승속과 남녀가 마음으로 말미암아 각기 천성과 천명(性命)을 바로 합니다. 강하회독江河淮瀆은 그 물기를 찾는 것에서는 하나이며, 초목화실草木花宲은 그 기운을 찾는 것에서는 같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도는 하나이지 둘이 아니니, 크고 작음이나 범인과 성인도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먼저 저의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아, 어두운 것은 자기 스스로 어두운 것이지 마음은 일찍이 어두웠던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래께서는 “품 안의 보배이며 이마 위의 구슬(懷中寶, 額上珍.)”이라 비유하였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비록 믿는다고는 하여도 그 품격에는 깊고 얕음이 있으니, 그러므로 교敎에서 삼성三聖을 두고 위位를 육십지六十地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으시고, 선 자리가 바로 참(眞)이 됨(立處即眞)을 곧바로 가리켜서(直旨) 대천세계 8부部 대중들로 하여금

010_0011_c_01L侮亦從以可禦彼若以禮儀之邦穪我
010_0011_c_02L我必以承保 [10] 之俗難渠也則來問徃答
010_0011_c_03L亦莫非樹立風聲之大段大節也士大
010_0011_c_04L夫待大師之儀古亦有之伏乞明府
010_0011_c_05L不比賤釋於凡髠之例俾千里病脚
010_0011_c_06L不至於落莫之境則千萬幸甚

010_0011_c_07L

010_0011_c_08L答如是居士木川倅金光遂

010_0011_c_09L
昧自心者曰凡夫信自心者曰聖賢
010_0011_c_10L是何物語時語者是默時默者是
010_0011_c_11L怒處喜怒者是坐臥處坐臥者是也
010_0011_c_12L是何狀隱隱昭昭虛靈知覺者敎之
010_0011_c_13L言狀也口掛壁上掩關七日忘味如
010_0011_c_14L愚者禪之示狀也非心無以奉君治
010_0011_c_15L非心無以問答徃復儒釋殊形而
010_0011_c_16L所以爲儒釋者心也貴賤異等而所
010_0011_c_17L以爲貴賤者心也士農工商由心而
010_0011_c_18L各居其肆僧俗男女由心而各正性命
010_0011_c_19L江河淮瀆求其濕則一也草木花宲
010_0011_c_20L求其氣則同也來敎道一非二無大小
010_0011_c_21L凡聖云者可謂先得我心也昧者
010_0011_c_22L自昧而心未甞昧故如來喩之以懷中
010_0011_c_23L額上珍信者雖信而品則有深淺
010_0011_c_24L故敎居三聖位分六十也就中不動一
010_0011_c_25L而直指立處即眞使大千八部之衆

010_0012_a_01L근원으로 돌아가게(返本還源) 한 뒤에야 그치는 것은 오직 석가모니의 가르침뿐입니다.
아, 정명淨名120)과 방로龐老121)가 어디 일찍이 처자를 버리고 떠나서 따로 눈을 비비고(揑目)122) 괴상한 것을 만들어 냈습니까(生恠)? 그렇기에 길상吉祥은 말하기를,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 가지 일이 다 무량한 부처님 법을 갖추고 있다.(貪嗔痴三事, 具無量佛法.)”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이 어디 지금에서 과거까지만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십력十力123) 대웅大雄도 또한 “그릇에 나아가 금을 구하는(即器求金)” 것이 바른 견해(正見)임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임금에게 인仁을 권하는 것은 도가 인仁 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신하에게 충忠을 권하는 것은 도가 충忠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학자는 대인력大忍力을 갖고 있지 못해서 안으로 몸에 갇히고 밖으로 처자에 매여서 물결이 쉬지 않으므로 마음의 구슬이 드러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성을 넘어가는 자취를 열어서 화택火宅의 아들을 맞으신 것이니, 그렇게 머리를 깎아 번뇌를 제거하고 욕심을 막아 정신을 보존하여 본지本地를 빨리 밟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보내신 편지에 속진의 번뇌문(塵惱門) 안에서는 도를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석가모니와 달마대사를 인용하여 그 법칙을 실증한 것은 훌륭하였습니다. 그 진실한 지견과 오묘한 해석은 불조佛祖께서 나온 자리(出身處)에 꼭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와 같음이 합하께서 과거 오랜 세월 동안에 바른 인연(正因)을 심지 않으셨다면 번화한 부귀 속에서 어찌 능히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날 당나라 두홍점杜鴻漸124)과 송나라 왕상공王相公은 길을 잘못 들어 재상의 신분이 된 바람에 진리를 수행하는 규약을 밟지 못한 것을 평생 한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임종 때에는 모두 사문장沙門葬으로 장례를 지내달라고 유언하여, 몸을 바꿔 태어나 대사大事을 기필코 마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증 대제曾待制125)가 “전생의 인연이 복잡하게 뒤섞여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다.”라고 탄식한 일이 있는 것도 또한 이런 이치입니다. 이것은 필시 마음속에 고요하게 얻은 것이 있지만 스스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이런 탄식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음에 어두운 무리들은 공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오히려 자꾸 입술만 놀리면서 평생(千載)을 알아주는 사람 거의 없이 쓸쓸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합하께서는 지금 불법의 희열(法喜)을 이처럼 좋아하시니, 이는 아침저녁으로 만난다고 할 것(朝暮遇之)126)입니다. 그렇다면 합하께서는 지금 생에 있으면서 이미 묵은 자취를 이룬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직 출발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010_0012_a_01L必返本還源而後已者只唯釋迦敎乎
010_0012_a_02L淨名龐老何甞有離却妻子別用
010_0012_a_03L揑目生恠乎故吉祥云貪嗔痴三事
010_0012_a_04L具無量佛法此豈爲今適昔至者而言
010_0012_a_05L十力大雄亦非不知即器求金爲其
010_0012_a_06L正見也勸君以仁道在仁中勸臣以忠
010_0012_a_07L道在忠上然初機未得大忍力內囚於
010_0012_a_08L外累於妻子則波浪未息心珠難
010_0012_a_09L權開逾城之迹以接火宅之子
010_0012_a_10L剃髮去煩遏慾存神徑踏本地不亦
010_0012_a_11L可乎來敎謂塵惱門中害於修道
010_0012_a_12L釋迦達摩而宲之則偉哉眞知妙解
010_0012_a_13L深契於佛祖之出身處其如此非閤下
010_0012_a_14L宿植浩刼之正因則繁華富貴中豈能
010_0012_a_15L有此也昔唐杜鴻漸宋王相公恨平
010_0012_a_16L生錯路爲宰相身未蹈修眞之䂓故臨
010_0012_a_17L皆遺敎爲沙門葬望改頭換面
010_0012_a_18L畢大事以至曾待制之有前緣駁雜
010_0012_a_19L受此報之歎亦是這箇道理也此必默
010_0012_a_20L得於中者自有所不能已故乃得至此
010_0012_a_21L昧心之黨不生敬慕還多鼓唇
010_0012_a_22L寥千載尠有賞音者矣今閤下好法喜
010_0012_a_23L如此是可謂朝暮遇之也然此在閤下
010_0012_a_24L今生已成陳迹何則旣未求於發軔

010_0012_b_01L쓸데없이 엎어진 삼태기를 바로 세우려고만 한다면 가는 길에 전진과 퇴각(前却)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몸을 이미 나라에 바쳤는데 어떻게 모든 일에 세상을 벗어나고자 하는(出世)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모든 일을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고 시끄러운 속에서 공부조차 하지 않는다면 고로杲老127) 스님께서 말씀하신 “함원전(含元)128) 안에서 장안長安을 찾는다.”라는 책망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며, 마음의 길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아,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물욕物欲이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새는 그릇과 물이 새는 집을 고집스럽게 지키면서 구경究竟한 법이라고 여기고 소리와 빛깔(聲色)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진리(眞)를 가리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형색을 무너뜨린 사람의 도에 대해서 네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박는 것처럼 서로 맞지 않으니(鑿枘)128) 이단이라고 말할 뿐만이 아니고 온 세상이 다 그럴 것입니다.
지금 합하께서는 “짊어진 짐이 무겁고,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이 독실하여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한마디 말을 자신의 임무로 여겨서 확실하고 빈틈없게 한다면 바로 도에 들어가는 발단의 근원(張本)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진無盡130) 거사는 이른바 “설령 무쇠 바퀴가 정수리 위에서 돈다고 해도 선정과 지혜는 원만하고 밝아서 끝내 잃지 않으리라.”라고 말하였고, 여여如如 거사는 이른바 “속가에 살면서 도를 이루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재가자로서 사람을 제도하는 데 손과 눈을 함께 하겠는가?”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른바 “법성法性은 진眞과 짝이 되지 않으니, 성현이 되는 데에는 다른 길이 없다.”131)라고 한 말이 참으로 헛말이 아닙니다. 천부의 근기(天機)가 깊고 물질에 대한 욕심은 얕은 사람이라면 마치 엷은 구름 아래 햇빛이 뚫고 나오는 것 같을 터이니, 도를 깨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한나라 명제132) 이후로 지금까지 출가자로서 도를 얻은 사람은 많지만 재가자(在家)로서 도를 얻은 사람은 적은 것이 어찌 그 세속의 번거로운 일에 매이고 매이지 않음의 분명한 증명이며 징험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도를 깨치는 사람이 비단 재가자가 적은 것뿐만 아니고 출가자도 또한 전혀 없으니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다만 힘 있는 외호外護을 얻지 못하고 법운法雲이 쇠퇴하였기 때문입니다.
충만함과 공허함(盈虛), 쇠함과 성함(消長)을 우리 백성에게 들어보면, 보내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다 하늘로 말미암는 것은 아니고 또한 간혹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도 있다.”라고 하신 것은 맞지 않습니다. 빈도貧道의 평소 가슴에 항상 얽혀 있는 한입니다. 경전에서는 말합니다. “왕공이 불법을 존숭하면 세 가지 정기를 얻게 되나니, 첫째는 땅의 정기이고 둘째는 사람의 정기이며

010_0012_b_01L欲端乎覆蕢則在行前却况身已許國
010_0012_b_02L則豈可一切以出世爲心哉若付之無
010_0012_b_03L可奈何而不做閙中工夫則杲老含元
010_0012_b_04L覔長安之責必有在而心路塞矣嗚呼
010_0012_b_05L道之不行物欲壞之也執護漏器漏舍
010_0012_b_06L爲究竟法以聲色誇美掩眞不返
010_0012_b_07L其於毁形者之道不啻如鑿柄 [11] 而謂之
010_0012_b_08L異端擧世皆然也今閤下則曰荷擔
010_0012_b_09L之重依歸之篤不可不盡力自任
010_0012_b_10L一語的確親切正可作入道之張本
010_0012_b_11L無盡所謂假使鐵輪頂上旋定慧圓明
010_0012_b_12L終不失如如所謂不說在家成道阿誰
010_0012_b_13L行染度人共一手眼古所謂法性不並
010_0012_b_14L聖賢無異路者信非虛語也天機
010_0012_b_15L深而物欲淺者則猶如薄雲之下日光
010_0012_b_16L透漏何悟道之難哉自漢明至今
010_0012_b_17L家得道多在家得道少者豈非其俗累
010_0012_b_18L繫不繫之明效大驗歟然今之悟道者
010_0012_b_19L非但在家少而出家亦絕無者何哉
010_0012_b_20L緣未得有力之外護而法運衰替之致
010_0012_b_21L盈虛消長自我民聽則來敎所示
010_0012_b_22L非盡由天而亦或由人者非乎貧道之
010_0012_b_23L尋常紆恨於肺腑者經云王公尊崇佛
010_0012_b_24L則得三種精氣一地精氣二人精

010_0012_c_01L셋째는 오곡의 정기이다.” 부처님께서 만약 사람을 속이고 미혹하시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미 다섯 가지 진실한 말씀(宲語)133)을 하신 큰 성인이신데 어떻게 그렇게 한심한 일이 있겠습니까?
요즈음에 보면 오곡이 해마다 충실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질병이 많으며 땅의 힘이 점점 줄어들어 국운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거기에는 원인이 없지 않을 것인데,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할 만큼 넉넉하지 못하고 충효의 절개를 알지도 못합니다. 그 가운데 설사 머리 깎는 사람(圓顱)이 있다고 해도 다 빈궁한 집안(繩樞)134) 출신이거나 부역을 면제받은(免役)135) 사람 가운데에서 나오므로, 오히려 세속적인 무리보다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책을 읽고 수행하는(藏修) 도를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산인은 어려서 임금과 부모의 은택을 입어 다행히 경전을 강독하는(明經) 중이 되었으나 날마다 납자衲子들을 데리고 논하는 것은 『화엄경』이며 강하는 것은 『염송拈頌』이니 어찌 이 마음이 본래 무사無事하기를 기약하고 이 마음이 본래 광대하기를 기약하겠습니까?
거울을 들어 얼굴을 비춰보면 얼굴빛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니, 만일 이때 진지하고 바르게 면벽하여 수도하는 아름다운 모임을 만날 수 있다면 나도 어찌 하우下愚136)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습니까?
비록 앉아서 좌선하면서 일곱 개의 방석(蒲團)에 구멍을 내지는 못하더라도 입선(把定)의 공부는 아마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에 영골靈骨이 없고 지금 세상에 좋은 벗이 없어서, 한갓 찌꺼기(糟粕) 학문을 하면서 아직까지도 음식의 맛을 알지 못하니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대승의 법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방황하는 문밖의 나그네일 뿐이니, 자기를 이롭게 하는(自利) 수행이 이와 같은데 어떻게 감히 임금과 부모의 은혜를 받들어 보답하기를 바라겠습니까?
이것이 아침저녁 항상 스스로 머리를 쓸면서 남몰래 원통해하고, 머리를 기른 채 임금과 어버이를 섬기는 이들에게 부끄러워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지금 눈앞의 한 생각에서는 비록 계급이 없지만 굳이 훈습으로 말한다면 반드시 여러 생을 기약하여야 할 것이니, 하루아침이나 하룻저녁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배공裵公137)은 삼생三生 동안 황백黃白의 제자(上足)가 되었고 원앙袁央은 십생十生 동안 계속해서 고승高僧이 되었으며, 구마라집(羅什)138)의 번역은 멀리 비사毘娑에서 비롯되었고 지혜로운 분(智者)의 깨침(證)은 실로 영산靈山139)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전기에 글로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오랜 겁을 지나

010_0012_c_01L三五糓精氣佛如誑惑人也則已
010_0012_c_02L旣爲五宲語之大聖則豈不大可寒心
010_0012_c_03L今觀五糓連年不宲人多疾病
010_0012_c_04L力漸減國步多艱者非無所自因何
010_0012_c_05L致然居民救死不贍不知忠孝之節
010_0012_c_06L中雖有爲圓顱者皆出於繩樞免役之
010_0012_c_07L反在於流俗之下奚貴於藏修之道
010_0012_c_08L山人早沐君父之澤幸爲明經僧
010_0012_c_09L而日與衲子輩所論者華嚴所講者拈
010_0012_c_10L何期此心本來無事何期此心本來
010_0012_c_11L廣大乎擧鏡照顏面色自現若因此
010_0012_c_12L得逢眞正面壁之佳會則余豈下愚
010_0012_c_13L不移者哉雖未能坐破七箇蒲團把定
010_0012_c_14L工夫可庶幾矣然而宿無靈骨現乏良
010_0012_c_15L徒課於糟粕之學而尙未知食味可
010_0012_c_16L勝歎哉雖曰得逢大乘之法尙作彷徨
010_0012_c_17L門外之客自利修行如此何敢望奉報
010_0012_c_18L君親之恩乎此朝夕所以常自摩頭
010_0012_c_19L然痛恨而有愧於存髮事君事親者也
010_0012_c_20L抑有說焉現前一念雖無階級强論
010_0012_c_21L熏習則必期多生非一朝一夕之具
010_0012_c_22L故裵公三生爲黃白上足袁央十生
010_0012_c_23L連爲高僧羅什之譯遠眆於毘娑智者
010_0012_c_24L之證宲始於靈山傳有明文經刼旣

010_0013_a_01L도련陶練이 익으면 삼독三毒140)이 도리어 삼덕三德141)이 되니 얼음이 도로 물이 되는 것이며, 오욕五欲142)이 곧 오분五分143)이 되니 등불은 원래 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오면 이 말은 “범인이 곧 성인이며 허망(妄)이 곧 진실(眞)이다.”라는 말이 됩니다. 순서를 밟아 수행하는 공도 없이 한갓 큰소리만 친다면 정맥正脉을 밟지도 못하고 먼저 기력만 헛되이 낭비(撈攘)하게 될 것이니, 이렇게 무지한 맹선盲禪이 아직 자라지도 않은 이삭을 뽑아 버리지나 않을까(揠苗)144) 나는 두렵습니다. 보내신 편지에서, 도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어렵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또한 간절하고 당연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청량淸凉145)이 말하였습니다. “사바세계를 느끼는 자는 화장세계를 대하면서도 사바세계로 보고, 화장세계를 느끼는 자는 사바세계를 대하여서도 화장세계로 본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마치 지금 보통 사람들은 햇빛을 밝다고 하지만, 올빼미 같은 경우에는 한밤에는 이를 잡아서 그 털끝까지도 살피면서도 낮이 되면 눈이 어두워 언덕과 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어찌 범부가 보는 것이 올빼미보다 못한 줄을 알겠으며, 또 어찌 제불諸佛의 깨달음이 보통 사람보다 못한 줄을 알겠습니까?
이 말이 비록 사소하나 큰 것을 비유할 수 있으니, 요要은 업연業緣과 훈습熏習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자순子順이 말하기를, “노력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이에 군자가 될 수 있다.”146)고 하였습니다. 신포서申包胥은 말하기를, “사람이 결정하면 또한 능히 하늘을 이길 수도 있다.147)”고 하였습니다. 이 말 또한 훈습하여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니, 어디 꼭 부처님이 말씀을 하신 뒤에야 아는 것이겠습니까?
전날에는 외람되게 보잘것없는 저(蒭蕘)148)의 이야기로 대군자의 보시는 눈(淸覽)에 티끌을 끼얹었기에 그 때문에 항상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면서 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재차 내려주신 편지를 받고 보니 허물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또 좋게 보시고 겸하여 물건까지 내려주셨습니다. 만약 그사이에 묵은 인연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모습(形骸)을 벗어난 밖에서 두 마음이 서로 맞아 이처럼 간격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좌우의 납자들이 되풀이해서 보고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산은 이 때문에 덕이 불어나고 법은 이 때문에 빛을 더합니다. 빈도貧道에게 행복이 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전을 가지고 가서 사례하는 절차는 오로지

010_0013_a_01L陶練已熟則三毒翻爲三德氷還
010_0013_a_02L成水也五欲即成五分燈元是火也
010_0013_a_03L到此方言凡即聖妄即眞也未有▼(彳+(㐅/有))
010_0013_a_04L序之功而徒開大口則未踏正脉
010_0013_a_05L致撈攘如此盲禪吾恐揠苗也來敎
010_0013_a_06L所示成道之久且難不亦切當之論乎
010_0013_a_07L淸凉云感娑婆者對華藏而見娑婆
010_0013_a_08L感華藏者對娑婆而見華藏此何以稱
010_0013_a_09L如今常常人物則以日光爲明
010_0013_a_10L於鴟梟則夜撮蚤察毫末而晝出瞑目
010_0013_a_11L而不見丘山吾焉知凡夫之見不如鴟
010_0013_a_12L梟乎又焉知諸佛之證不如常常人物
010_0013_a_13L此言雖少可以喩大要不出於業
010_0013_a_14L緣熏習之如何耳子順曰作之不止
010_0013_a_15L乃成君子申包胥曰人定亦能勝天云
010_0013_a_16L此亦熏習不已必有可成之謂也
010_0013_a_17L何必待佛說而後知之也前日猥將蒭
010_0013_a_18L蕘之說上塵大君子之淸覽故常恐得
010_0013_a_19L不任此心今伏承再下書不惟不
010_0013_a_20L抑又好之兼垂之以貺若無宿緣
010_0013_a_21L於其間何能形骸之外兩心相契
010_0013_a_22L此其無間乎左右衲子莫不改觀歎美
010_0013_a_23L則山以之閏德法以之增光其爲貧道
010_0013_a_24L之幸不可勝喩也携經徃謝之節

010_0013_b_01L명령하신 목록에 따라 그대로 할 뿐입니다. 먼저 보내신 편지에 법시法施를 할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법을 저에게 내려주실지요? 요사이 『분등록分燈錄』 한 권을 얻었는데, 비록 완질의 보물은 아니지만 한가한 날에 영각鈴閣149)에서 날마다 한 장씩 펼쳐 보시면 봄이 모든 가지에 있듯 온 세상(羣目)이 환하게 밝아져서 수행하시는(措修) 데에 전혀 도움이 안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올려보냅니다.
아, 이 험한 세상에서 물과 우유(水乳)가 섞여 한 맛이 되는 것처럼 마음이 맞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데, 지금 요행히 큰 거사님께 장문의 편지를 두 번 받았으니, 저를 어떻게 감히 지금 이 세상의 스님으로만 볼 수 있겠습니까?
귀천을 다 잊어버리고 이치에 따라 말하는 것에 의심이 없기에 삼가 보내신 편지의 뜻에 부연하여 자세히 말씀드리며, 조금도 숨기는 것 없이 어르신(左右)께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부디 말 많은 중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깊은 말을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목우자牧牛子150)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삼세의 인연은 다 중생들이 세제世諦151)의 일에 자신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대로 미친 것이니 이러한 논리는 부처님의 법이 아니다.” 부디 바라건대 대거사님께서는 훈습이라는 의리의 소굴을 벗어 버리시고 오죽 눈앞의 한 생각만을 잡고 조금이나마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을 빌려서 백성을 위한 결과의 사이에 돌이켜 비추어 보시면(回光返照)152) 삼교三敎의 성인의 참 면목이 오직 거기에 있을 것이니, 어찌 미혹됨과 깨달음(迷悟)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나머지는 더 쓰지 않겠습니다. 또 세 장의 큰 종이에 장문으로 쓴 편지의 별지別紙가 있으므로 쓰지 않습니다
완부 정후백께 올리다휘는 원시이다(上完府鄭侯伯諱源始)
봄에 송광사를 돌아보실 때 수석정水石亭으로 모시고 따라갔던 그날에 미천한 저희 원고를 봐주셨습니다. 옥절玉節이 떠나실 때 비록 산수의 흥취를 다 이야기 나누지는 못했으나, 그러나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傾盖)153) 도가 있었으니 그 용을 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은(攀附鱗翼)154) 행복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은혜로운 교화가 미치는 곳이 산림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아침에 향불 사르고 저녁에 등불 결 때에 마치 담소하시는 모습(警咳)을 곁에서 뵙는 것 같았습니다. 산인의 연운年運은 비록 떠났으나 선송禪頌 어제와 똑같으니 이 역시 내려주신 은혜(賜) 덕분입니다.
봄이 되면 다시 금강산(金剛)을 밟을

010_0013_b_01L依來命錄示耳前書已許有法施之事
010_0013_b_02L未審有何法施我也近得分燈錄一卷
010_0013_b_03L雖未成全寶鈴閣閑日每一展玩
010_0013_b_04L春在萬枝羣目昭然不無措修之一助
010_0013_b_05L故爲先上呈嗚呼崢嶸世上水乳一
010_0013_b_06L難逢其人今幸得大居士兩度長書
010_0013_b_07L我何敢把作今世上人看也忘却貴賤
010_0013_b_08L論說無疑故敬演來書之旨畧不隱所
010_0013_b_09L知於左右幸毋曰多口阿師交淺而言
010_0013_b_10L深也牧牛子曰三世因緣盖是衆生
010_0013_b_11L自心自狂世諦之事如此之論非爲佛
010_0013_b_12L伏望大居士脫却熏習之義理窠窟
010_0013_b_13L惟將現前一念畧借回光反照於爲民
010_0013_b_14L結課之間則三敎聖人眞面目只在於
010_0013_b_15L何迷悟之可分哉咦呵呵餘不宣
010_0013_b_16L又有三大長簡
別紙而不書

010_0013_b_17L

010_0013_b_18L上完府鄭侯伯諱源始

010_0013_b_19L
春巡松廣寺水石亭上陪從之日
010_0013_b_20L覽賤藁玉節臨發雖未盡談山談水之
010_0013_b_21L然傾盖道存其爲攀附鱗翼之幸何
010_0013_b_22L如也惠化所曁山林無外朝焚夕點
010_0013_b_23L之際如在警咳之側也山人年運雖徃
010_0013_b_24L禪頌如昨此亦賜也開春則再踏金剛

010_0013_c_01L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그때 선화당宣化堂으로 달려가 절을 올리고 삼가 현명한 임금과 어진 신하(明良)의 뜻이 서로 맞은(相得) 뜻을 듣겠습니다. 혹 그렇게 못하면 내년 봄 순찰할 때 산문에 다시 찾아오시면 다시 진락대眞樂臺에서 모시겠습니다. 삼연三淵155) 선생이 읊으신 “조계산 사흘 밤 인연이 끝나지 않으니, 목우자가 내 전생의 몸이 아니겠나.”156)라는 구절은 사또가 외우듯 산인도 또한 외우고 있습니다. 귀하고 천한 신분에는 비록 거리가 있지만 유가와 불가의 교류는 예로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창려昌黎는 태전太顚 스님에게 옷을 남겨 두었고157) 동파東坡는 불인佛印 스님에게 허리띠를 풀어 주었습니다158). 우리나라의 근대 사람으로 말하자면 회당晦堂 대사는 친히 풍원군豊元君의 당堂에 올랐고, 영해影海 법사는 귀록옹歸鹿翁159)의 집에 편지를 보냈으니, 이것이 그 예입니다. 혹시라도 산인이 혜원惠遠160) 법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지 않는다면 심히 다행이겠습니다.
영남 성암의 붕운 방장에게 부친다(寄嶺南聖庵鵬運丈)
오래전 이별한 이래로 울적한 마음이 쌓여서 멀리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계획이 뒤집혀서 근처를 지나면서도 들르지 못하고 어긋나 버렸으니 원통합니다. 이 사람을 예전에 주석하고 계신 절로 찾아뵙지 못하게 하셨기에 그냥 호남으로 돌아온 일은 두고두고 한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장하丈下께서 지팡이를 떨치고 운수사雲水寺에 오셔서 서로 만나 하룻밤 정다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지나 않을까요? 나머지는 받들어 모실 때에 할 것이니 애태우지 않겠습니다.
안 장로에게 드리다(呈眼長老)
요즘 강의하시는 기후가 아무 탈 없이 좋으십니까?
대은大隱의 어진 인품은 다시 얻기 어려운 것이라, 온 총림이 다 애석히 여기고 있습니다. 하물며 서로 알아주고(相知) 서로 잘 맞는 사이라면(相得) 그 사사로운 한이야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무궁할 것입니다. 그릇과 학식, 재주와 기예에 있어서 그 사람을 짝할 이가 드무니, 이 사람으로 인하여 우리 종宗이 확장되고 광대해지는 것을 후일에 보게 될 것입니다.
아아, 하늘이 나로 하여금 우리 불교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할 운수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면,

010_0013_c_01L爲計其時趨拜於宣化堂下伏聽明良
010_0013_c_02L相得之旨矣或否則明春巡到再臨山
010_0013_c_03L重陪於眞樂臺上三淵先生所咏
010_0013_c_04L宿曺溪緣未了牧牛無乃我前身之句
010_0013_c_05L使道誦之山人亦誦之也貴賤雖隔
010_0013_c_06L儒釋交遊自古有之如昌黎留衣於太
010_0013_c_07L東坡解帶於佛印以我東近代言之
010_0013_c_08L則晦堂大師親昇於豊元君之堂影海
010_0013_c_09L法師通書於歸鹿翁之門此其則 [12]
010_0013_c_10L倘不以山人爲非惠遠而見拒則甚幸

010_0013_c_11L

010_0013_c_12L寄嶺南聖庵鵬運丈

010_0013_c_13L
濶別以來欝懷有積遠訪之計翻成
010_0013_c_14L過門之差恨使此漢不能預前搜問於
010_0013_c_15L住錫之坊也持此歸湖追恨無窮
010_0013_c_16L望丈下未可拂錫相見於雲水寺中
010_0013_c_17L得一宵情話之會也耶餘在奉副不能
010_0013_c_18L忉忉

010_0013_c_19L

010_0013_c_20L呈眼長老

010_0013_c_21L
近日講侯無恙淸勝大隱之賢難得
010_0013_c_22L叢林中共惜之況相知與相得之間
010_0013_c_23L其私恨有萬萬無窮者矣器識才藝
010_0013_c_24L儔其人因此子而張大吾宗佇見於異
010_0013_c_25L嗚呼天不欲使我不蹈興復之運乎

010_0014_a_01L어째서 우리 스님을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까?
영남 서악에 올린다(上嶺南西岳)
가르침의 바다(敎海) 한 물결 위에서 오랜 시간 우러러 읊으면서(瞻詠) 명성(風聲)이 미치는 곳에서 속마음(肝膽)을 서로 비추었으니, 단지 호남과 영남湖嶺의 거리가 멀어 거의 법의法儀를 받들지 못했습니다. 백암栢庵161) 선조께서는 동방 제일의 홍법弘法의 공을 세운 분이신데, 60년이 지나도록 아직 정덕旌德의 비갈이 없으니 무릇 강개慷慨한 마음을 가진 자 누구인들 원통해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즈음에 마침 김상가金相家에게서 명문銘文을 받았으니, 일은 마치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것 같아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듣자 하니 장하丈下의 인자한 행(仁羶)이 있는 곳에는 희고 검게(白黑) 개미처럼 모여든다고 합니다. 바라옵건대 부디 남의 일로 보지 마시고 수고로움을 잊고 힘을 베풀어 멀리서 이 일을 도와주신다면, 산이 숫돌처럼 바뀌고 강이 허리띠처럼 가늘어질 때(帶礪)162)까지 비석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 공도 영원할 것입니다. 어떠하십니까?
연담에게 드리다(與蓮潭)
마땅히 돌아가 쉬어야 할 텐데 돌아가 쉬지 않고 먼 곳으로 더욱 먼 걸음을 하시니, 비록 사람을 감화시켜 착하게 만드는(兼善) 즐거움이 있다 하여도 천성을 수양하는 양생(養性)의 길은 잃는 것입니다. 그러나 금강이라는 산은 대경大經에도 실려 있듯이 살다薩多163)가 몸을 맡기신 곳인데, 더구나 선사先師는 향성香城164)에 외짝 신을 남겼고 방언方彥은 풍악楓岳에 석장을 날리었으니, 한 번 꼭 올라가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만폭대萬瀑臺와 영원동靈源洞에 가게 되면 제가 마흔 전에 돌 위에 이름을 새겨 면생免生한 자취를 찾아보십시오. 혹 빗물에 씻겨서 흐려지지 않았으면 유람 길에 한 번 웃을 거리야 되지 않겠습니까?
일만 이천 봉의 경치를 비단 주머니 안에 다 거두어 넣어 형께서 문장을 쓴다면 누가 권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거의 남김없이 다하게 될 것이니 더 이상 무슨 잔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수천 리의 강과 산을 건너는 내내 진중하십시오.

010_0014_a_01L何奪我大隱之速也

010_0014_a_02L

010_0014_a_03L上嶺南西岳

010_0014_a_04L
敎海同波䂁詠多時風聲所曁肝膽
010_0014_a_05L相照只緣湖嶺之隔殆未奉法儀也
010_0014_a_06L栢庵先祖以東方第一弘法之功歷一
010_0014_a_07L周甲而尙闕旌德之碣凡有慷慨者
010_0014_a_08L孰不爲之憤惋哉此際適得銘文於金
010_0014_a_09L相家事同騎虎欲罷無由伏聞丈下
010_0014_a_10L仁羶所在白黑蟻歸云望須不把他事
010_0014_a_11L忘勞宣力遠助此事則帶礪山河
010_0014_a_12L石不泯而功不泯也如何如何

010_0014_a_13L

010_0014_a_14L與蓮潭

010_0014_a_15L
當歸休而不歸休轉遐擧於遠方雖有
010_0014_a_16L兼善之樂而殊失養性之道也然金剛
010_0014_a_17L一山大經之所載薩多之委身況先師
010_0014_a_18L留隻履於香城方彥爭勝錫於楓岳
010_0014_a_19L不可不一攀躋而後乃可也如至萬瀑
010_0014_a_20L𡋛靈源洞中試尋弟之四十前題名
010_0014_a_21L生之跡於石面上也倘不爲雨洗之所
010_0014_a_22L漫漶則未必不爲旅遊一破顏也收拾
010_0014_a_23L萬二千峯之景於一錦襄中以兄之文
010_0014_a_24L不待勸而殆盡無遺復夫何贅
010_0014_a_25L數千里江山跋涉珍重

010_0014_b_01L
목암에게 답한다이름은 환웅이니 완월의 자손이다(答牧庵名喚雄玩月之孠)
여러 번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 주니 일찍이 나에게서 배우고 닦은(講磨) 사람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내 노인을 노인 대접하는 것이 남의 노인에게도 미치는(老老及人)165) 정성이 이에 이르러 잡힐 듯합니다. 완월翫月166)이 자식이 있고 더구나 우리 도가 북쪽으로 뻗어갈 것을 알 수 있다 하겠습니다만, 두 강의(講) 사이의 시기를 놓쳐(蹉跎) 일과를 빠뜨린 것으로 말하자면 조금 불행한 것 같습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사람이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167)고 하였습니다. 바지가 해지도록 고생하며 다니는 것이 바로 장하丈下께서 지혜를 밝히고 그릇을 이룰 때이기 때문입니다. 상심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만 나암懶庵168) 방장의 강주講主인 조옹造翁이 시기하는 마음이 많아서 배우는 자들이 두려워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裹足)169) 것 같다 하니, 도의 불행이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습니까?
북쪽으로 돌아가시는 자취는 이제부터 아득하게 막혀 버릴 것이니(遙閡) 거의 죽게 된(濱死) 이 물건으로서야 다시 만날 길이 없겠습니다. 말이 여기까지 이르니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옵니다. 먼 길에 자중하십시오.
영남 한암 스님께 올린다(上嶺南閑巖師)
일찍부터 묵은 병을 안고 한쪽 구석에 엎드려 있느라, 눈 밝은 스님明師을 두루 찾아뵈려고 하였으나 막연하게 생각만 할 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스님(師主)의 높은 명성을 비록 젊어서부터 듣고 있기는 했으나 직접 찾아뵙고 말씀(雷音)을 듣는 것은 4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창연히 두류산을 바라보자면 멀리 못내 간절하게 달려가는 마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오늘 풍암楓岩 스님의 편지 가운데 겸하여 저의 안부까지 물어 주셨으며, 영중嶺中의 종후宗厚 스님께서도 말학末學을 버리지 않으시어 여기에서 뵈었습니다.
해인사에 틈이 생겼던 것은 멀리 10여 년 전의 일이고 이제는 화해하여 자잘한 허물은 모두 버리고 대도大道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하니, 술이 깨고 나서 어찌 번거롭게 취했을 대의 일을 들추어 말하겠습니까?
이미 지나간 그 일은 화化과 함께 가고 새 출발의 화목한 기운이 비추어 오니, 어찌 종후 스님이 해인사 도량으로 다시 돌아온 일뿐이겠습니까?
해인사도 또한 종후 스님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법의 무상無常한 성질은 반복하여 변화하니, 그렇지 않다면

010_0014_b_01L答牧庵名喚雄玩月 [13] 之孠

010_0014_b_02L
前後寄聲相問有勝於曾經講磨者
010_0014_b_03L老及人之誠闖此可掬翫月可謂有子
010_0014_b_04L益知吾道北矣蹉跎兩講之間以闕課
010_0014_b_05L言之則少似不幸古人云人不涉難
010_0014_b_06L則知不明磨裩擦袴正是丈下明智成
010_0014_b_07L器之秋也庸何傷但懶庵方張 [14] 之講主
010_0014_b_08L造翁多㺓似爲學者之所褁足云道之
010_0014_b_09L不幸孰大於斯乎北歸形跡自此遙
010_0014_b_10L閡濱死之物末由再接言之到此不覺
010_0014_b_11L長吁遠程自重

010_0014_b_12L

010_0014_b_13L上嶺南閑巖師

010_0014_b_14L
早抱宿㢌蟄伏一隅徧叅明師漠然不
010_0014_b_15L故師主高名雖有聞於初年面扣
010_0014_b_16L雷音過四十而猶未悵望頭流深切遐
010_0014_b_17L即於謂外今日楓岩師主狀中
010_0014_b_18L示付問之及嶺中宗厚不捨末學
010_0014_b_19L於此矣海印寺之分隙遠出於十餘年
010_0014_b_20L之前而今焉許和俱棄細過偕之
010_0014_b_21L道云惺來何煩提醉時事說乎彼旣徃
010_0014_b_22L與化俱徂自新之和氣照暎方來
010_0014_b_23L豈止宗復海印之場乎海印亦不負宗
010_0014_b_24L法無常性徃復轉變不如此則非

010_0014_c_01L진眞을 발하여 근원(源)으로 돌아가는 문이 아닐 것입니다.
또 듣자하니 환일幻日 스님과 환선幻善 스님은 해인사에서 일과 이치(理事)에 통달하여 덕을 존숭하고 도를 즐기는 뛰어난 인재(巨擘)이므로 대중과 더불어 의논하며 일을 잘 처리한다고 합니다. 해는 능히 어둠을 부수고 선善도 또한 악을 제거하는 것이니, 만약 두 분 환幻 스님을 일찌감치 10년 전에만 등용했더라면 어찌 어두운 바람에 잘못 이끌려 여기에 이르렀겠습니까?
이것은 일과 이치(理事)가 서로 멀리 어긋났기 때문이니, 호남에서 소문을 듣고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스님께서 가야산 설봉雪峯을 점찍어 불영산(佛靈)에 앉았으니 두 산이 안팎이 되어 완전한 모습을 이룰 것이며 선사의 면목을 거듭 빛내고 다시 국일國一의 가풍을 완전하게 할 것이니, 우리의 도는 다행히 이에 상관없이 큰 광명을 더할 것입니다.
전에는 해인사가 오랫동안 계산 밖에 있었는데 오늘은 오히려 이웃(一界)이 되었으니, 만일 하늘이 내게 남은 세월을 빌려주시고 또 병이 나아서 기력이 완전해지면 마땅히 무설헌無說軒에서 법을 들을 것이며 청암계靑岩溪 물가에서 현담을 나눌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스님이 그때가 되면 흰 구름이 마정령馬頂嶺 우두치牛頭峙을 잠그지 못하도록 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그런데 한탄스러운 일은 용암(龍)과 우암(雨) 두 선사께서 몇 년 사이에 연이어 돌아가시니, 고통 바다(苦海)의 배가 잠기고 인천人天의 눈이 사라졌습니다. 고승께서 천화하시는(遷奪) 애통함을 차마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다시 산수가 빼어난 유명한 곳을 밟게 되더라도 다만 신발 한 짝(隻履)170)만 볼 뿐, 두 발(雙趺)을 보지는 못할 것이니, 후학 된 자의 불행을 가히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양숙장에게 준다(與良淑丈)
온 산이 눈에 묻힌 속에서 문을 닫아걸고 화로를 끼고 종일토록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마치 이 생生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한 스님(白衲)이 찾아와 소매에서 편지와 법보法寶 한 권을 꺼내 주었으니, 바로 장하丈下께서 사랑으로 저에게 주시는 물건이었습니다. 이렇게 병을 앓고 있는 저(篤癃)의 처지를 생각할 때 어떻게 이런 것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용암龍岩 스님께서 돌아가셨으나(歸寂) 죽지 않는 것은 남아 있으니,

010_0014_c_01L發眞歸源之門也又得聞幻日幻善
010_0014_c_02L海印寺中通理達事尊德樂道之巨擘
010_0014_c_03L故與衆同議以畢能事云日能破
010_0014_c_04L善亦去惡若使兩幻早登用於十
010_0014_c_05L年之前豈暗風之所誤致此理事際之
010_0014_c_06L乖隔相離也在湖聞風不覺歛袵也
010_0014_c_07L師主點伽耶雪峯坐佛靈則兩山表裡
010_0014_c_08L合成全象復顯先師之面目更全國一
010_0014_c_09L之家風吾道之幸不干此而益大光明
010_0014_c_10L矣乎昔日海印長在計外今日還同
010_0014_c_11L一界若天假之以餘年病痊氣完
010_0014_c_12L會當聽法於無說軒下談玄於靑岩溪
010_0014_c_13L邊矣伏望師主當其時也勿使白雲鎻
010_0014_c_14L馬頂嶺牛頭峙則幸甚而所恨者
010_0014_c_15L雨兩岩先師數年間相繼而逝苦海
010_0014_c_16L舟沈人天眼滅遷奪之痛尙忍述歟
010_0014_c_17L雖有更踏名區但見隻履不見雙趺
010_0014_c_18L其爲後學之不幸可勝道哉

010_0014_c_19L

010_0014_c_20L與良淑丈

010_0014_c_21L
千峯雪裡杜門擁爐終日凝坐如不
010_0014_c_22L堪其生矣料外一白衲袖呈書與一卷
010_0014_c_23L法寶乃丈下寵賜之物也顧此篤癃
010_0014_c_24L何以得此龍岩歸寂不亡者存不幸中

010_0015_a_01L불행 중 다행한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면 용암 노스님께서 백가百家의 이서異書를 눈여겨보고 샅샅이 해부하는 일에 능숙하였던 것(目無全牛)171)은 그 학력學力으로 심원한 것을 끌어내는 소양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늘그막에 비밀삼매秘密三昧에 깊이 들어가 범자梵字의 오묘함을 꿰뚫어 보기를 마치 거울이 물건을 비추듯 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지금 그 영묘한 지혜(神知)가 십례十例 가운데 다 있으니 법문法門의 거벽의 능력이 능히 옛사람이 발명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면 또한 여기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개 범어와 한문과 한글의 세 가지 음을 아울러 쓰는 방법은 애초에 설은雪訔 대사에게서 비롯되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중간에 끊어져 이어지지 못하다가 영해影海172) 노스님이 나온 후로 비록 한두 학자가 있긴 했으나 겨우 조금씩 수정하고 보충하는 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글자가 변하는(變字) 오묘한 이치를 용암 노스님처럼 상세하고 절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하께서는 오랫동안 그분을 모셨으므로 그 오묘함을 다 전해 받았을 것이니, 마치 송옥宋玉173)이 굴원屈原에 대해 아는 것 같고, 후파侯巴174)가 자운子雲175)에 대해 아는 것 같을 것입니다.
아, 비밀스런 종宗은 장하의 힘을 입어 널리 퍼져 통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나뭇가지 끝에 석양이 비치듯 남은 날이 많지 않으니, 눈은 어둡고 정신도 혼미하여 그 일에 있는 힘을 다할 수 없으니, 한스럽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책은 비록 작으나 인도(西)와 중국(中)과 우리나라(鄕)의 문자로 써서 하나로 꿰어 모은 것으로 삼장三藏 교학敎學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그 관계하는 바가 큽니다.
혹 다시 출간하게 된다면 널리 찾아보고 두루 물어서 동방의 큰 공덕을 모으도록(功德聚) 하는 것이 좋겠으니, 바쁘게 대강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임 진사에게 답한다(答任進士)
정성스러운(覼縷) 편지가 정월 6일에 출발하여 이제야 비로소 저의 손(蔬手)에 들어왔으니 서로 아끼는 마음이 돈독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후미진 골짜기에까지 닿을 수 있었겠습니까?
산인은 임하林下에 거북이처럼 쪼그리고 살면서

010_0015_a_01L何可勝述歟復惟之龍老於百家
010_0015_a_02L異書寓目觹解目無全牛者以其學
010_0015_a_03L力鈎深有素之致也豈意老境深入
010_0015_a_04L秘密三昧燭諸梵字之妙如鏡照物乎
010_0015_a_05L今其神知俱在於十例之中向非法門
010_0015_a_06L巨擘手段能發前人之所未發亦不能
010_0015_a_07L至此也盖梵漢諺三音並書之法
010_0015_a_08L於雪訔大士傳於吾東中間寂無繼
010_0015_a_09L䡄者自影海老之出雖有一二學者
010_0015_a_10L稍稍修補之力然其深曉變字之妙
010_0015_a_11L有如龍老之詳且切者也丈下執侍多
010_0015_a_12L盡傳其妙如宋玉之於屈原侯巴之
010_0015_a_13L於子雲秘密一宗可以賴丈下流
010_0015_a_14L通也但愚也木末殘照餘景不多
010_0015_a_15L昏神昧未能大肆力於其間恨恨然此
010_0015_a_16L一卷部雖少而西中鄕三書一以貫綜
010_0015_a_17L爲三藏敎學之源本則其所關係者大
010_0015_a_18L倘從事於重刊則深搜愽訪廣質
010_0015_a_19L徧問爲東方一大功德聚可矣非可草
010_0015_a_20L草爲也

010_0015_a_21L

010_0015_a_22L答任進士

010_0015_a_23L
覼縷之簡發於元六始入於蔬手
010_0015_a_24L相愛之篤詎有此曲旁之及乎山人龜

010_0015_b_01L못나고 병든 몸을 눌러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다행히 연을 캐고 돌아가시는 길을 만나 서로 인사(識荆)176)를 주고받는 소원을 이루었고, 홀연 마음이 맞아 허물없이 친해져서 마음(䏶肝)에 깊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만 입고 있는 의관이 다른 처지라 아침저녁으로 더불어 공부하고 수행하지 못하니, 마치 무엇을 잃은 듯 마음속으로만 사모해 온 지 지금에 두 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이나 손수 쓰신 편지를 받으니, 마치 훤수(萱樹)와 같이 배락(背樂)하여 가히 지탱할 수 없습니다.
아아, 국휼國恤을 당해 가장 애통한 것은 백성들입니다. 다만 어진 임금이 뒤를 이어(繼極) 큰 운수가 바야흐로 형통하고 묵은 습속을 싹 쓸어내어 날로 새로운 풍속을 거듭 정비한다면, 체용(體用)의 학문을 갈고 닦아 아름다운 광명을 받을 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생각하면 먹는 것도 잊고 분심을 일으켜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평일보다 더 부지런히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편지에 말씀하신 창려(昌黎)의 충고로 충고하신다고177) 하신 것은 바로 달걀을 보자마자 시간을 알려 주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見卵而求時夜)178)? 산인은 자신을 피(稊)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피를 뽑아야 한다고 해서 익지 않은 벼까지 실없이 시험 삼아 뽑다가 그만 마디가 떨어져 버릴까 두렵습니다. 대인(留衣)의 아래(下風)에 스스로 물러나 서 있겠습니다.
아아, 이른바 유가와 석가의 논쟁은 예로부터 큰일이었는데, 참된 유학자(眞儒)도 아니고 참된 스님(眞釋)도 아니면서 갑자기 그 사이에서 입을 열고 말을 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편지에 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학禪學에 대해 의심이 없을 수 없는데, 의심하고도 그것을 풀려고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다음 적막한 곳에서 만나면 급하게 남쪽 북쪽으로 갔다 돌아오느라(南征北還) 번거롭게 하였던 일을 사과하겠습니다.
형체를 버리고 묵묵히 관조하면서 가지를 따르고 실마리를 쫒는다(隨條逐緖)는 평이 있었는데, 그런데 의심나는 것을 질정하고 거짓을 분변한다면 그 공이 당신의 것이겠습니까?
저의 것이겠습니까?
예로부터 덕 높은 스님과 시 짓는 스님들이 유명한 재상이나 큰 벼슬을 하는 관리들과 서로 절차切磋하였던 말과 탁마磨琢하였던 이야기가 해와 별처럼 밝고 단청처럼 환하게 과거의 여러 기록과 많은 책에 나타나 있거늘, 무릇 가지를 치려 하는(伐柯)179) 이가 멀리 있지도 않은 법칙을 취하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010_0015_b_01L縮林下抱拙養痾矣而再昨年幸接
010_0015_b_02L採蓮之歸得酬識荆之願㫚然莫逆於
010_0015_b_03L而深有慰於䏶肝但緣衣冠之別
010_0015_b_04L莫得與之朝夕講磨則如有所失耿耿
010_0015_b_05L于中者二白于玆矣再承手澤如萱樹
010_0015_b_06L背樂不可支也嗚呼國恤最爲臣民之
010_0015_b_07L而第明君繼極泰運方亨將擬振
010_0015_b_08L刷舊替之俗而重整日新之風則砥磨
010_0015_b_09L體用之學俟承休光者豈異人乎
010_0015_b_10L發憤忘食重下刻苦工夫有加於平日
010_0015_b_11L書所示以昌黎之告告之云者無乃
010_0015_b_12L見卵而求時夜乎山人自以爲稊稗之
010_0015_b_13L有秋者恐未熟之禾稷無端欲試之而
010_0015_b_14L落節自却立於留衣之下風也噓噓
010_0015_b_15L謂儒釋之論乃千古之大事也非眞儒
010_0015_b_16L眞釋未可遽以啓兌駕說其間也然書
010_0015_b_17L中又曰不能無疑於禪學凡疑惑而不
010_0015_b_18L謀其解可乎他日相從於寂寞之濱
010_0015_b_19L當謝擭捷於南征北還之擾擾廢形默
010_0015_b_20L照而有隨條逐緖之評則質疑卞僞之
010_0015_b_21L屬之尊乎屬之我乎自古高僧韻
010_0015_b_22L名公巨卿切磋之說磨琢之話
010_0015_b_23L如日星煥若丹靑著在前錄列書徃
010_0015_b_24L凡欲伐柯不取不遠之則可乎

010_0015_c_01L자신을 비우고 토론하면 두 마음에 다 의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만약 시끄럽게 억지로 변명하고 길고 짧음을 비교하며 다투기만 한다면, 그것은 세상에 드물게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아주 친한 사람들의 행할 바가 아닙니다.
서울에 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까?
산인은 다 썩어 가는 몸으로 겨우 한 가닥 숨만 붙어 있습니다. 이 병 많은 물건을 생각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겠으니, 명철하고 어진 분과 서로 뜻을 맞추는 다스림을 얻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나아가 뵙고 안부를 묻기 전까지 따뜻해지는 날씨에 더욱 몸을 아끼십시오.
별지로 올린다(上別紙)
만나기가 쉽지 않고 편지를 받기는 더욱 어려운데 다행히 아름다운 편지(玉音)가 도착하니 하고 싶은 말들이 칡넝쿨처럼 등나무 넝쿨처럼 자꾸 타고 오릅니다. 세상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더라도 부디 그냥 웃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편지 가운데 “선학禪學이라는 것에 대해 의혹이 없을 수 없으니 그 의심나는 것을 질정하고 그 거짓된 것을 분별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이것도 하나의 인연입니다. 회옹晦翁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 병을 알고 그것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능히 제거할 수 있는 약이다.” 지금 선학을 의심하여 의혹이 없어지는 까닭을 구하려고 한다면 이 의혹이 없기를 구하는 마음이 바로 의혹이 없는 선학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선禪이라는 것은 바로 사람 사람의 마음 바탕이(心地)이 어지럽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 고요하고 밝은 한 가닥 자성의 광명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담 밖의 소의 뿔을 보면서 그 뿔 밑에 있는 소를 몰라서야 되겠으며, 산 앞에 이는 연기를 보고 그 연기 밑에 불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옛사람은 말하기를, “깨치지 못한 사람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저 지금 누가 입을 움직인 것 같다고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도에 뜻을 둔 사람이 입을 움직여 말할 수 있으면서, 그 능히 말할 수 있는 까닭을 미루어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성현의 글을 읽으면서 성현의 마음을 모른다면 그것은 혹惑이며, 불조佛祖의 학문을 수호하면서 불조의 도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약弱한 것입니다.

010_0015_c_01L己討論兩心無疑也若夫呶呶强卞
010_0015_c_02L校爭長短殊非吾曠世朝暮遇之所當
010_0015_c_03L行也伏未審京行尙還乎山人朽然
010_0015_c_04L形殼僅存一息顧此多病之物易致
010_0015_c_05L朝暮死而恐未聞明良相得之治也
010_0015_c_06L謁未前向暖加愛

010_0015_c_07L

010_0015_c_08L上別紙

010_0015_c_09L
際會未易承書又難幸因玉音之及所
010_0015_c_10L欲言者打葛藤一上與世異好幸放
010_0015_c_11L一笑書中所示未能無惑於禪學者
010_0015_c_12L其疑而卞其僞云云嘻噫一段因緣也
010_0015_c_13L晦翁不云乎知其病而欲去之則欲去
010_0015_c_14L之心便是能去之藥今疑禪學而欲求
010_0015_c_15L其所以無惑者此求無惑之心便是無
010_0015_c_16L惑之禪學何也夫禪也者乃人人心
010_0015_c_17L無亂無痴寂寂朗朗底一段自性光
010_0015_c_18L明之謂也見墻外之牛角而不識角底
010_0015_c_19L之牛可乎見山前之起煙而不識煙下
010_0015_c_20L之火可乎古人云未悟之人聽一言
010_0015_c_21L只者如今誰動口凡爲有志於道者
010_0015_c_22L口能言而不推其所以能言者可乎
010_0015_c_23L聖賢之書而不知聖賢之心則惑矣
010_0015_c_24L佛祖之學而不行佛祖之道則弱也

010_0016_a_01L그렇기 때문에 “몸의 실상을 관觀하라.
부처를 관하는 것도 또한 그렇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한한 참 선지禪旨인데, 세속에서는 이단으로 돌리고 조금도 구별하지 않습니다(饡采). 『주역』에서 말하는 “날마다 쓰면서 알지 못한다.(日用而未知者.)”라는 것이 과연 빈말이 아닌 것입니다.
중니仲尼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하였습니다. 저 세속에서는 생生은 중하게 여기면서도 도道를 가볍게 여긴지가 오래 되었지만, 그러나 성인은 도를 중히 여기고 생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만일 세속의 무겁고 가벼움(輕重)으로 성인의 무겁고 가벼움을 견준다면 네모난 자루를 둥근 구멍에 박는 것처럼(鑿柄)180) 서로 반대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종일토록 10을 세면서 25는 모른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시경』ㆍ『서경』ㆍ『논어』ㆍ『맹자』ㆍ『중용』ㆍ『대학』 중에는 격언이 한둘이 아니니, 선禪도 또한 그 가운데 있습니다. 한쪽 귀퉁이를 들면 나머지 세 귀퉁이는 저절로 뒤집을 수 있는 것인데181), 지금 세 귀퉁이로써 한 귀퉁이를 드는 일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왜냐하면 『서경』에서 “중도를 잡는다.(執厥)”182)라고 말한 것과 『시경』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不大聲)”183)라고 말한 것과, 『대학』에서 “밝은 덕을 밝힌다.(明明德)”184)라고 말한 것과, 『중용』에서 “소리도 냄새도 없다.(無聲臭)”185)라고 말한 것과 증자曾子가 “오직 하나로 꿰어진다.(唯一貫)”186)라고 한 것과 안자顔子가 “더욱 높고 굳건하다.(彌高堅)”187)라고 말한 것과 맹자孟子가 “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皆備我)”188)라고 말한 것들이 다 세 귀퉁이가 밝아진 현묘한 뜻(玄旨)이 아니겠습니까?
눈썹이 빠지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며(不惜眉毛)189) 곡식을 해치는 가라지(稂莠)를 자처하여 자주색으로써 붉음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맹자의 “내게 갖추어져 있다(備我)”라는 말은 “모든 법은 오직 마음에 달려 있다.(萬法唯心)”라는 뜻으로 확대할 수 있고, 안자의 “높고 굳다.(高堅)”라는 말은 “물과 불에도 타거나 떠내려가지 않는 견고한 자성.(水火不焚漂之堅固一着子)”이라는 것으로 넓힐 수 있으며 증자의 “오직 하나로 꿰뚫는다.(唯一貫)”라는 말로 가섭迦葉의 염화미소190)를 증명할 수 있으니, “사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는다.(離四句, 絕百非.)”191)는 말 또한 어찌 “소리도 냄새도 없다.(無聲臭)”라는 소식과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자비와 지혜와 발원(悲智願)의 삼심三心은 바로 『대학』의 삼강三綱192)에 부합되는 것이며, “소리와 색을 크게 여기지 않는다.(不大聲色)”라고 한 『시경』의 말에는 “머리 위의 까치를 꺼리지 않는다.(不禁頭邊鵲)”라는 뜻이 있는 것이며, “진실로 그 중도를 잡는다.(允執厥中)”라고 한 『서경』은 석가모니 부처님(黃面老)의 한결같이 원만하고 화합하는 중도中道와 진심眞心에 맞는 것입니다. 나머지도 이렇게 미루어 추측해 본다면 내경內徑과 외전外典의 어느 것인들 “이 물건(是物)”이 아니겠습니까?

010_0016_a_01L曰觀身實相觀佛亦然此是無限眞禪
010_0016_a_02L而世俗則歸之於異端略不饡采
010_0016_a_03L易所謂日用而未知者果不虛矣仲尼
010_0016_a_04L朝聞道夕死可矣夫世俗之重生輕
010_0016_a_05L道久矣而聖人則重道輕生如此倘以
010_0016_a_06L世俗之輕重較於聖人之輕重則未免
010_0016_a_07L鑿柄 [15] 之相反今終日數十而不知二五
010_0016_a_08L甚可悲也詩書語孟庸學中格言
010_0016_a_09L不一而禪亦在其中也擧一隅則三隅
010_0016_a_10L猶可反而今以三隅何難於反一隅哉
010_0016_a_11L何者書之執厥中詩之不大聲大學
010_0016_a_12L之明明德中庸之無聲臭曾子之唯一
010_0016_a_13L顔子之彌高堅孟子之皆備我
010_0016_a_14L非三隅彰明之玄旨乎不惜眉毛自處
010_0016_a_15L於稂莠以紫亂朱矣以孟子之備我
010_0016_a_16L可以廓萬法唯心之旨也將顏子之高
010_0016_a_17L可以愽水火不焚漂之堅固一着子
010_0016_a_18L以曾子之唯一貫可以證迦葉之笑
010_0016_a_19L離四句絕百非亦何外於無聲臭之
010_0016_a_20L消息也悲智願之三心正符合於大學
010_0016_a_21L之三綱也於不大聲色之詩而不禁頭
010_0016_a_22L邊鵲之旨趣存焉於允勢厥中之書
010_0016_a_23L黃面老一圓融中道眞心合焉餘可類
010_0016_a_24L則內經外傳何莫非是物也故以

010_0016_b_01L그러므로 『예』에서 “불경하지 말라.(毋不敬)”라고 한 것은 “일곱 가지 자비를 행하여 원친에 평등하여 일체 사람을 두루 공경한다.(七種行慈, 寃親平等, 普敬一切人.)”라는 말의 단서가 되고 『시』에 “생각에 삿됨이 없다.(思無邪)”라고 한 것은 “삼매정수로 큰 광명장에 들어가는 장본을 세운다.(可以立三昧定受, 入於大光明藏.)”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산속에 들어가서도(納麓) 헤매지 않는다는 말193)은 코끼리를 던지는(擲象)194) 굳센 공력에 버금가는 것이고, 음식 맛을 잊고(忘味)195) 편안하고 얼굴빛이 좋다는 말(申夭)196)은 면벽 수행하는 묵묵함과 가까운 것이며 “나는 숨김이 없다.(吾無隱矣)197)”라는 말은 “눈앞에서 얼굴을 마주하여 수행을 지도하는 도량(覿面提指之場)”과 들쑥날쑥 비슷한 것이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天何言哉)198)”라는 말은 “입을 벽 위에 걸어두는 근기(口掛壁上之機)199)”와 서로 상하를 다투는 것입니다.
아아, 시대가 멀고 나라가 다르지만, 그 말은 다르지 않아 부절을 맞추는 것과 같으니, 덕을 좋아하는 타고난 본성을 지키려는(秉彛)200) 성품은 중국과 오랑캐(華夷)가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세속에서 말하는 “후사가 없는 것은 큰 불효이다.(無後不孝之大)”라는 것과 “애비도 없고 임금도 모른다.(無父無君)”라고 하는 책망은 애욕의 구덩이에 빠진(愛坑) 혼탁한 견해(濁見)이며 근성에 집착한(執近) 치우친 말(偏說)이어서 지금 논할 것이 아니니, 그만두고 다시는 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옛사람은 말했습니다. “삼승三乘 십이분十二分三乘十二分201)의 가르침은 그 체리體理가 극히 미묘하니, 어디에 또 달마가 서방에서 온 뜻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실로 육경六經의 미묘한 뜻을 정밀하게 안다면 또한 칠조七祖202)의 선리禪理에 어긋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느냐 하면, 두 정자程子는 즐거워하는 것을 연구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천칠백 공안을 넘나들었고, 주자양朱紫陽203)은 생각하고 가리키는 심성에 두루 통하면서도 있고 없는(有無) 이름과 말을 초월하여 깨쳤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에 “책 읽을 때는 행간의 먹만을 보지 않아야 비로소 이전의 교외의 마음을 알 수 있다.(讀書不見行間墨, 始識從前敎外心.)”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사람들의 참 보장寶藏은 밖에서 채우거나 비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태李泰는 『심경心經』에서 귀의할 마음을 내었고, 구양수歐陽修는 『법화경』에서 무릎을 꿇었으며204), 진서산眞西山205)은 귀겸貴謙에게 선禪을 물었고, 양구산楊龜山206)은 달다達多에게 시를 읊었으니, 이 모두가 다 한 여관207)에서 같이 자면서 앉아서 이 도로 나아가는(坐進此道)208) 모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나아가서는 이청련李靑蓮209)

010_0016_b_01L禮之毋不敬足以發七種行慈寃親平
010_0016_b_02L普敬一切人之端緖也以詩之思無
010_0016_b_03L可以立三昧定受入於大光明藏之
010_0016_b_04L張本也而况納麓之不迷垂亞於擲象
010_0016_b_05L之桓桓也忘味之申夭可隣於面壁之
010_0016_b_06L默默也吾無隱矣可出入於覿面提指
010_0016_b_07L之場也天何言哉互上下於口掛壁上
010_0016_b_08L之機也耶嗚呼時雖遠而國雖殊
010_0016_b_09L言之不異如合符節可見秉彛之性
010_0016_b_10L不以華夷而有間也若其世俗所謂無
010_0016_b_11L後不孝之大無父無君之責自是愛坑
010_0016_b_12L之濁見執近之偏說非今日之所論置
010_0016_b_13L之勿復道也古人云三乘十二分敎
010_0016_b_14L體理得妙何處更有達摩西來意愚謂
010_0016_b_15L苟有精於六經之微旨亦何違於七祖
010_0016_b_16L之禪理乎何以知其然也兩程子
010_0016_b_17L究所樂何事而泛濫於千七百則公案
010_0016_b_18L朱紫陽指顧眄之心性而悟得超有無
010_0016_b_19L之名言其詩曰讀書不見行間墨
010_0016_b_20L識從前敎外心此是人人眞寶藏不須
010_0016_b_21L尙外滿籝金李泰發歸心於心經
010_0016_b_22L陽修跪膝於法華眞西山之問禪於貴
010_0016_b_23L楊龜山之咏詩於達多無非一宿蘧
010_0016_b_24L [16] 坐進此道之樣子也至於李靑蓮白

010_0016_c_01L백향산白香山210) 같은 문장가나 곽분양郭汾陽211)과 조열도趙閱道212) 같이 부귀를 누린 사람들까지도, 말년에는 부처와 법을 찬탄하였지만 처음에는 관직(羽儀)과 인륜에 막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무불론無佛論」을 지었다가 나중에는 반대로 「호법론護法論」을 지은 장천각張天覺213)의 미혹을 깨침이 위대하고, 의심과 분노를 쉬고 사구四句의 묘한 뜻을 이룬 이참정李叅政214)의 깊은 반성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 유학자의 신(儒履)을 신고 도사의 관(道冠)을 썼지만, 집으로 돌아가서는 조사의 등불(祖燈)을 얹은 이가 이루 다 셀 수 없게 많습니다. 이 원래의 편지에서 말한 참 선비(眞儒)와 참 스님(眞釋)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도리를 말한 것입니다. 다만 유학하는 자는 선학禪學을 그 천하를 다스리는(經綸) 업에 맡기기 때문에 한갓 그 순수함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내 동산의 오디를 많이 먹으면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하는 폐단이 있기도 합니다215).
대개 의심이 없게 된 사람은 설사 분골쇄신하라고 시켜도 거절하지 않지만, 들어간 깊이가 깊지 못한 사람은 그저 종을 세우고 법을 전하려고만 하기에 너니 나니 하는 주장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고명한 백중伯仲께서는 탁월한 재목으로 칠서七書 가운데 헤엄치면서 그것으로 학문을 닦아 과거에 오르고 그것으로 출세하여 부모를 빛내며 두 발을 꽉 버티고 당시 사람들의 경솔하고 요행을 바라는 풍조를 바로잡아 돌렸기 때문에, 유가와 석가의 학자들이 모두 그를 북두성(星斗)처럼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통道統과 선지禪旨에 대해 의당 모르는 것이 없으실 텐데, 그런데도 의혹이 없을 수 없다 하면서 그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하려고 합니다. “당기기도 않고 놓지도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瞽說)을 조작하여(杜撰) 끌어올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여기에 대답하여 의문을 밝힐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고, 어리석고 우매한 제가 두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도의道誼로서 서로 허락하였음을 이미 느꼈기 때문에, 어르신께 잘못된 견해를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 글을 청하는 것이 이처럼 적절하시니, 만일 지금에 있어서 굳세게 분발하고 깊이 반성하기를 이부마李附馬216)와 양대년楊大年217)보다 못하지 않게 하신다면, 저 소동파가 “왕공이 그 부를 잃게 되고 양평이 그 지혜를 잃게 된다.(王公失其富, 良平失其智.)”218)라고 한 말과, 장자가 “황제가

010_0016_c_01L香山之文章郭汾陽趙閱道之富貴
010_0016_c_02L年讃佛讃法初不閡於羽儀人倫也
010_0016_c_03L以無佛論翻作護法論偉矣張天覺
010_0016_c_04L之改迷也息疑怒而足成四句妙旨
010_0016_c_05L李叅政之深省也嗚呼儒履道冠
010_0016_c_06L得歸家而載於祖燈者不可勝數此元
010_0016_c_07L狀所謂眞儒眞釋者便是這箇道理也
010_0016_c_08L但儒者之禪學以其任於經綸之業故
010_0016_c_09L非徒未得淳乎淳而亦多有食我園椹
010_0016_c_10L不見好音之弊盖得之無疑者雖使之
010_0016_c_11L粉骨碎身而固無所辭其有所入不甚
010_0016_c_12L深者只要立宗傳法故不能無彼我之
010_0016_c_13L談也今高明伯仲以超卓之材涵泳
010_0016_c_14L於七書之中以之治學而登科以之立
010_0016_c_15L身而顯親牢着脚頭輓廻時輩浮躁
010_0016_c_16L僥倖之風故儒釋學者望之如星斗
010_0016_c_17L則於道統禪旨宜無不曉而乃謂不能
010_0016_c_18L無惑欲質其疑云得無引而不發
010_0016_c_19L致瞽說之杜撰乎答此明問自有其人
010_0016_c_20L而非我搗昧所能置啄然已感道誼之
010_0016_c_21L相許故不隱謬見於左右瞑呼倩筆
010_0016_c_22L剴切如此倘因此際猛發深省不下
010_0016_c_23L於李附馬楊大年則東坡所謂王公失
010_0016_c_24L其富良平失其智莊生所謂黃帝之失

010_0017_a_01L천하를 잃게 되고 무장이 그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黃帝之失天下, 無臧之失其美.)”219)라고 한 말을 저절로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물러서서 세간을 바라보게 되면, 천지의 모든 사물과 세속의 득과 실(得失)이 그저 구슬피 우는 초파리에 불과할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빈 터에 매여서 화성化城220)에 머물러 있는다면, 다만 오십 걸음으로서 백 걸음을 비웃는 것221)이 될 뿐이어서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저절로 보지 못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저의 사람됨을 보고서 말을 버리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방외의 학문에 있어 지남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번 웃고 보아주십시오.
윤 스님을 조상하다(吊允師)
사바세계(忍界)가 무상無常하여 돌아가신 은사 스님(恩室)의 상복(孝服)을 아직 벗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신 한 짝(隻履)을 들고 세상을 떠나실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부고를 받고 슬픔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봄에 한암寒巖 선로先老를 조문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먼저는 편지가 없어 늦게 들었고 지금은 편지가 있어 전해지기는 했으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인편이 드물어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통곡하고 통곡합니다.
옛사람이 삶(生)을 좋아하고 죽음(死)을 싫어하는 것을 고향을 잃은 사람(弱喪)222)이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데에 비유하였는데, 그렇다면 형께서 가시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제가 남아 있는 것이 옳지 않은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젊고 건강한 사람이 일찍 죽고, 늙고 병든 사람이 살아 있습니까?
목숨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빈말이 아닙니다.
함께 늙어가면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살면서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로 돌봐주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일단 천양泉壤으로 돌아가 버림으로써 모든 일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홀로 호남의 바닷가에 서서 서로 기탁하고 싶었던 경계마저 아주 잃었습니다.
옛 시에서 말한, “불상에다 새 불상을 더 보탤 줄을 누가 알겠나. 도리어 한스러운 것은 문 앞에 고인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다.(雖知像外添新佛, 却恨門前減故人.)”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여러 번 변고(變)를 겪으며 기운이 쇠하고 정신이 어두워졌는데 요즘 와서 더욱 심한 것이 얼마 안 있어 형을 따라 죽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의 등불과 가르침의 거울에 이량二量223)이 분명한데 죽어서 알음이 있고 없는 것은 논할 것이 없습니다.
문인의 이름은 홍鴻의 편에 적어 보내 드리겠습니다.

010_0017_a_01L天下無臧之失其美自肯點頭矣
010_0017_a_02L後却來觀世間則天下之萬物世俗之
010_0017_a_03L得失不過爲啾啾之醯鷄而已也若拘
010_0017_a_04L於墟而滯在化城則只得以五十步笑
010_0017_a_05L百步而自歸於不見好音之科也伏望
010_0017_a_06L不以人癈言則未必不爲方外學之指
010_0017_a_07L南也一笑

010_0017_a_08L

010_0017_a_09L吊允師

010_0017_a_10L
誰知忍界無常先恩室未脫孝服遽携
010_0017_a_11L隻履乎承訃不勝痛悼春中吊寒巖先
010_0017_a_12L老書夫審達否前則無書而晩聞
010_0017_a_13L則有書而稽傳地隔便稀事乃至此
010_0017_a_14L痛哭痛哭古人以悅生惡死比之弱喪
010_0017_a_15L不知歸者然則兄之去是耶弟之存不
010_0017_a_16L是耶何少者强者夭沒老者病者存全
010_0017_a_17L壽者不可知固非虛語也俱臨老
010_0017_a_18L遠地生不相見猶有相照之樂今則
010_0017_a_19L一歸泉壤萬事瓦裂獨立湖濱永失
010_0017_a_20L想託之境古詩云雖知像外添新佛
010_0017_a_21L却恨門前減故人者是也余多經變
010_0017_a_22L衰神暗到此尤劇幾何其不隨兄而死
010_0017_a_23L心燈敎鏡二量分明死而有知無
010_0017_a_24L固不論也門人名號鴻便列示

010_0017_b_01L원빈元賓을 보는 것 같습니다.

010_0017_b_01L見元賓
  1. 88)척촉躑躅 : 철쭉나무 가지로 만든 지팡이, 즉 철쭉장(躑躅杖)을 말하는 것으로, 철쭉장은 빛깔이 아름답고 모양이 기이하여 지팡이로 많이 애용되었다.
  2. 89)갱장羹墻 : 사람을 앙모하는 것을 말한다. 요임금이 죽은 뒤에 순임금이 3년을 사모하여 식사 때에는 국에서 요임금을 보는 듯하고 앉아 있을 때는 담장에서 요임금을 보는 듯하였다고 한다. 『후한서』 권63 「이고전李固傳」에 나온다.
  3. 90)외손外孫 : 외손은 ‘딸의 아들(女子)’이므로 ‘호好’자가 된다. 동한東漢의 채옹蔡邕이 조아비曹娥碑에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虀臼’이라고 써 두었는데, 삼국 시대 조조曹操의 주부主簿 양수楊脩이 이를 파자破字하여 “황견은 ‘색이 있는 실(色絲)’이므로 ‘절絶’자가 되고 유부는 소녀少女이므로 ‘묘妙’자가 되고 외손은 ‘딸의 아들(女子)’이므로 ‘호好’자가 되고 절구(虀臼)는 ‘매운 것을 받아들이는(受辛)’ 것이므로 ‘사辭’가 된다. 따라서 ‘절묘호사絶妙好辭’, 즉 절묘한 좋은 글이란 뜻이 된다.”고 풀이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온다.
  4. 91)포과匏苽 : 춘추 시대 조趙 나라 중모재中牟宰인 필힐佛肹이 공자孔子을 부르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는데,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필힐은 불선한 사람이므로 가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였다. 공자가 이르기를 “내가 어디 뒤웅박이더냐, 어째서 한군데에 매여 있어 음식도 먹지 못한단 말이냐?(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양화陽貨」에 나온다.
  5. 92)여암呂巖 : 당나라 8선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는 동빈洞賓이고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다. 현령縣令으로 있던 중 벼슬을 버리고 종남산終南山으로 들어가 도를 닦았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일설에는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하자 천하를 떠돌아다니다가 종리권鐘離權을 만나 단사丹砂과 비결秘訣을 전해 받아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6. 93)여동빈이 황룡산黃龍山에서 황룡黃龍 선사에게, “한낱 곡식 가운데 세계를 감추고 반 되 드는 솥 안에 산천을 삶는다.(一粒粟中藏世界, 半升鐺內煮山川.)”는 말의 뜻을 물었던 고사를 말한다.
  7. 94)칠원柒園 : 장자莊子을 말한다. 장자가 일찍이 몽蒙이란 땅에서 칠원漆園, 즉 옻나무를 심는 밭에서 벼슬을 하였기 때문이다. 『사기』「노장전老莊傳」에 나온다.
  8. 95)지마指馬 : 『장자』「제물론」에 “손가락으로써 손가락이 손가락 아님을 가리키는 것은, 손가락 아닌 것으로써 손가락의 손가락 아님을 가리킴만 같지 못하다. 말(馬)로써 말의 말 아님을 가리키는 것은, 말 아닌 것으로써 말의 말 아님을 가리킴만 같지 못하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以指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以馬喩馬之非馬, 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라고 하였다.
  9. 96)갈담葛覃 : 『시경』「국풍國風」「주남周南」「갈담葛覃」에, “칡덩굴이 쭉쭉 뻗어 골짜기 가운데에 뻗어가서 잎이 매우 무성하거늘, 꾀꼬리는 날아와 떨기나무 위에 앉아서 평화로이 울어대도다. 칡덩굴이 쭉쭉 뻗어 골짜기 가운데에 뻗어가서 그 잎새가 빽빽하거늘, 그 덩굴을 베어 삶아서 굵고 가는 갈포옷을 지어 입으매 싫지가 않도다. 사씨에게 고하여 친정에 갈 것을 말하였으니 잠깐 사복도 빨고 잠깐 예복도 빠노니, 어느 건 빨고 어느 건 안 빨랴 돌아가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리라.(葛之覃兮, 施于中谷, 維葉萋萋. 黃鳥于飛, 集于灌木, 其鳴喈喈. 葛之覃兮, 施于中谷, 維葉莫莫. 是刈是濩, 爲絺爲綌, 服之無斁. 言告師氏, 言告言歸. 薄汚我私, 薄澣我衣, 害澣害否, 歸寧父母.)”라는 시가 있다. 이는 주周 나라 문왕文王의 후비 태사太姒가 몸소 칡덩굴을 거두어 가는 베와 굵은 베를 만들어 옷을 짓고서, 칡덩굴이 무성하던 때를 회고하여 지은 시이다.
  10. 97)누사嫘姒 : 주周 나라 문왕文王의 후비 태사太姒을 말한다.
  11. 98)정명淨名 : 인도 비야리국毘耶離國의 장자長者로 석존의 재가 제자였다 유마힐維摩詰, 유마거사維摩居士를 가리킨다.
  12. 99)김상복金相福 : 1714-1782.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중수仲叟, 호는 호 직하稷下 또는 자연自然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1740년(영조 16)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ㆍ승지 등을 역임하고 1763년에 우의정이 되었으며, 좌의정을 거쳐 1772년 영의정에 이르렀고, 후에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로 전임되었다. 벽파僻派로서, 1775년에는 전 참판前參判 서명선徐明善이 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영의정 한익모韓翼謩과 좌의정 홍인한洪麟漢을 논박하는 상소를 했을 때 왕으로부터 서명선의 상소문에 대한 의견을 질문 받았으나, 여론을 잘 알지 못해 대답을 못하겠다고 하여 사직 당하고, 공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왔다. 평소 청빈ㆍ검소한 생활을 신조로 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1800년(정조 24) 복관되었다. 『어제수덕전편御製樹德全編』을 편찬하고, 저서에 『통색문답通塞問答』 등이 있다.
  13. 100)괴정槐庭 : 주周 나라 때 삼공三公이 궁정의 홰나무 세 그루를 정면으로 향한 위치에서 조회를 하였기에 삼괴三槐가 삼공三公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는데, 송나라 초기에 진국공晉國公 왕우王祐가 손수 세 그루의 홰나무를 뜰아래에 심고서 “내 자손 중에 반드시 삼공이 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 아들 왕단王旦이 송 진종宋眞宗 때 태보太保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김상국이 우의정ㆍ좌의정ㆍ영의정을 역임한 재상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14. 101)토악吐握 : 토포악발吐哺握髮의 줄인 말로, 옛날 주공周公이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만나기에 급급하여 머리를 한 번 감는 동안에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나가고, 밥 한 끼를 먹는 동안에 입 안의 음식을 세 번이나 뱉어내고 나가서 손님을 맞아들였다는 고사가 있다.
  15. 102)배상국裴相國 : 중국 당나라 때의 재상 배휴裴休(797-870)을 말한다. 배휴의 자는 공미公美이며, 산서성 하동 문희聞喜 출신이므로 하동 대사河東大師이라고 한다. 황벽黃檗 희운希運 선사를 임지인 용흥사龍興寺과 개원사開元寺에 초빙해서 선법을 참구하고 널리 공부했다. 저서로는 『권발보리심勸發菩提心』과 황벽선사와의 문답을 실은 『전심법요傳心法要』가 전한다.
  16. 103)장관문張觀文 : 중국 송대의 정치가 장상영張商英(1043-1122)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호는 무진거사無盡居士이며 자는 천각天覺이다. 19세에 급제하고 신종神宗 때에 왕안석과 함께 신법新法에 대해 공의共議하였다. 처음에는 불교를 싫어하여 무불론을 써서 배척하려 하였으나 뒤에 우연히 『유마경』을 읽고 바른 믿음을 일으켰다. 원우元祐 연간에 오대산에 문수상文殊像을 소성하고 발원문을 지었다. 동림사東林寺 조각照覺 상총常總 선사에게 선禪을 묻고, 다시 도솔兜率 종열從悅 선사를 참알參謁하여 비로소 깨쳤다. 뒤에 진정문眞淨文 화상에 나아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였다. 대관大觀 4년(1110)에 승상이 되고 송宋 선화宣和 4년 11월에 세상을 떴다. 저서로 『호법론護法論』이 있다.
  17. 104)천문天門 : 대궐의 경칭敬稱이다.
  18. 105)죄칩罪蟄 : 부모의 상중에 있으므로 죄를 지어 숨어 지낸다고 표현하였다.
  19. 106)조갱調羹 : 음식을 조리할 때 쓰이는 소금과 매실로 재상으로서 국정을 다스림을 뜻한다. 『서경書經』「열명說命」 하下에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내가 술을 만들면 그대가 누룩이 되고, 내가 국을 끓이면 그대가 소금과 매실 역할을 하라.(若作酒醴, 爾惟麴蘗, 若作和羹, 爾惟鹽梅.)”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20. 107)김상숙金相肅 : 1717-1792.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이고 자는 계윤季潤, 호는 배와坏窩, 혹은 초루草樓라고 하였다. 1744년(영조 20)에 진사가 되고, 참봉ㆍ봉사ㆍ공조좌랑ㆍ익위사사어司禦ㆍ양근군수 등을 두루 거쳐 중추부첨지사에 이르렀다. 천성이 바르고 외형적인 출세보다는 내면적인 득도에 관심이 깊어 『주역』ㆍ『논어』ㆍ『노자』 등을 애독하였으며, 글씨를 잘 썼다. 작품으로 글씨에 『영상황보인표領相皇甫仁表』ㆍ『참판이희조표參判李喜朝表』ㆍ『수타사서곡당선사탑비壽陀寺瑞谷堂禪師塔碑』ㆍ『신흥사비문新興寺碑文』 등이 있다.
  21. 108)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송광사에 있는 전각들이다.
  22. 109)무용선사無用先師 : 조선 중기의 승려 수연秀演(1651-1719)의 호가 무용이다. 19세에 조계산 송광사로 출가하여 혜관惠寬의 제자가 되었고, 혜공慧空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을 받았다. 나이 68세, 승랍 51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무용집無用集』 3권이 전한다.
  23. 110)삼연선생三淵先生 : 조선 후기의 학자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호가 삼연이다. 김창흡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이며, 좌의정 상헌尙憲의 증손자이고 영의정 수항壽恒의 셋째아들이다. 『장자莊子』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를 좋아하고 시도詩道에 힘썼으며, 친상을 당한 뒤에는 불전佛典을 탐독해 슬픔을 잊으려 하였다. 형 창협과 함께 성리학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저서로는 『삼연집』ㆍ『심양일기瀋陽日記』 등이 있다.
  24. 111)장관문張觀文 : 중국 송대의 정치가 장상영張商英(1043-1122)을 말한다. 호는 무진거사無盡居士이며 자는 천각天覺이다. 19세에 급제하고 신종神宗 때에 왕안석과 함께 신법新法에 대해 공의共議하였다. 처음에는 불교를 싫어하여 무불론을 써서 배척하려 하였으나 뒤에 우연히 『유마경』을 읽고 정신正信을 일으켰다. 원우元祐 연간에 오대산에 문수상文殊像을 소성하고 발원문을 지었다. 동림사東林寺 조각照覺 상총常總 선사에게 선禪을 묻고, 다시 도솔兜率 종열從悅 선사를 참알參謁하여 비로소 깨쳤다. 뒤에 진정문眞淨文 화상에 나아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였다. 대관大觀 4년(1110)에 승상이 되고 송宋 선화宣和 4년 11월에 세상을 떴다. 저서로 『호법론護法論』이 있다.
  25. 112)종열從悅 : 1044-1091. 임제종 황룡파 보봉 극문의 법사法嗣인 도솔兜率 종열을 말한다.
  26. 113)장보章甫 : 검은 베로 만든 고대의 예관禮冠으로, 은대殷代에 시작되어 송宋 때는 선비가 쓰는 모자가 되었다. 『논어』「선진先進」에 “종묘의 일과 혹 모임이 있을 때는 현단의 옷과 예관을 쓰고 조금 돕기를 원합니다.(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為小相焉.)”라고 하였다.
  27. 114)월인비척見越人肥瘠 : 남쪽 월나라 사람이 북쪽 진秦 나라 사람들이 살찌고 여윈 것을 보는 것처럼 무관심하다는 말이다.
  28. 115)『주역周易』「대축괘大畜卦의 상象」에 “하늘이 산속에 있는 것이 대축괘의 상象이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옛 성인들의 말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그 지식으로 덕德을 키운다.[天在山中, 大畜, 君子以,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라는 말이 있다.
  29. 116)달마대사가 양나라 무제武帝를 만난 것을 말한다. 양무제가 달마대사에게 “무엇이 근본이 되는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라고 묻자, 달마대사는 “텅 비어 성스럽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무제가 다시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요?”라고 하자 달마대사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무제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달마는 위나라로 떠났고, 후에 무제가 다시 불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30. 117)일착자一着子 : 자성ㆍ법왕의 뜻이다. 법왕이란 사람마다 본래 가지고 있는 하나, 즉 일착자이다. 능히 만상의 주인 노릇을 하므로 법왕이라고 한다.
  31. 118)증보烝報 : 윗사람에게 간음하는 것을 증烝이라 하고 아랫사람에게 간음하는 것을 보報라고 한다.
  32. 119)김광수金光遂 : 권초卷初의 오언사운五言四韻 「여시 거사에게 올리다(上如是居士)」에는 김광수金光秀라고 되어 있다.
  33. 120)정명淨名 : 인도 비야리국의 장자로, 비말라힐毘沫羅詰 또는 유마힐維摩詰ㆍ유마라힐維摩羅詰ㆍ비마라난리제鼻磨羅難利帝이라고 음역하며 정명淨名ㆍ무구칭無垢稱이라 번역된다. 석가모니와 같은 때의 사람이다. 집에 있으면서 보살의 행을 닦고, 거사로서 학덕이 높아 사리불ㆍ가섭 등 석가모니의 큰 제자들도 그의 학해學解을 따를 수 없었다고 한다.
  34. 121)방로龐老 : 중국 당나라 때 호남성 형주 출신의 거사로, 이름은 온蘊, 자는 도현道玄이다. 아내와 1남 1녀 등 온 가족이 함께 득도하였다.
  35. 122)날목揑目 :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것이 눈을 비벼 허깨비를 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길주吉州 탐원산耽源山의 진응眞應 선사가 국사의 곁을 하직하고 본사로 돌아가려 하면서 마조馬祖을 뵙고 땅 위에다 원상圓相 하나를 그리고 방석을 펴고 절을 했더니 마조가 물었다. “그대는 부처가 되고 싶은가?” 선사가 대답하였다. “저는 눈을 비빌 줄 모릅니다.” 마조가 말하였다. “내가 그대만 못하구나.” 『선문염송』에 나온다.
  36. 123)십력十力 : 석가가 전지자全知者임을 나타내는 열 가지 힘을 말한다. ① 지시각비처력知是覺非處力, 즉 도리·비도리를 아는 힘, ② 지업보력知業報力 즉 업과 그 과보의 관계를 아는 힘, ③ 지제선삼매력知諸禪三昧力, 즉 갖가지 선정禪定에 통달하는 힘, ④ 지타중생제근상하력知他衆生諸根上下力, 즉 중생의 근기根機, 곧 이해능력을 아는 힘, ⑤ 지타중생종종욕력知他衆生種種欲力, 즉 중생의 갖가지 욕구를 아는 힘, ⑥ 지세간종종성력知世間種種性力, 즉 중생의 갖가지 성격을 아는 힘, ⑦ 지일체도지처상력知一切道智處相力, 즉 업을 통하여 나타나는 세계, 곧 중생이 지옥 ·열반 등 여러 곳으로 향하는 것을 아는 힘, ⑧ 지숙명력知宿命力, 즉 과거세의 일을 기억하는 힘, ⑨ 지천안력知天眼力, 즉 미래의 일을 아는 힘, ⑩ 지루진력知漏盡力, 즉 번뇌가 다 없어진 경지인 열반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여실히 아는 힘 등이다.
  37. 124)두홍점杜鴻漸 : 709-769. 당나라 복주濮州 복양濮陽 사람으로, 자는 지손之巽이고 두붕거杜鵬擧의 아들이다. 개원開元 20년(741) 금강지金剛智가 입적하자 비문을 지어 공덕을 칭송했다. 22년(743) 진사가 되어 처음에 삭방판관朔方判官이 되었다.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태자太子 형亨이 군대를 이끌고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할 때 태자에게 권해 영무靈武로 오게 하고, 배면裵冕 등과 함께 태자에게 즉위할 것을 권했다.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가 되었다. 양경兩京이 평정된 뒤 형남荊南을 다스렸다. 후에 상서우승尙書右丞과 태상경太常卿을 거쳐 예의사禮儀使로 태릉泰陵과 건릉建陵의 제도를 바로잡았다. 대종代宗 광덕廣德 2년(764) 병부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兵部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최간崔旰이 성도成都를 근거지로 할거하자 재상으로 명을 받아 가서 진무鎭撫했다. 성격이 겁이 많고 살육을 싫어한 데다가 도착하여 최간의 기세가 당당한 것에 두려움을 느껴 그를 예우하며 정치를 맡겼다. 얼마 뒤 들어와 정치를 보좌하면서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올랐다. 대력大曆 4년(769)에 파직되고, 그해 11월 죽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38. 125)증대제曾待制 : 송나라 증개曾開를 말한다. 자는 천유天游이며, 증시랑曾侍郞이라고도 한다.
  39. 126)조모우지朝暮遇之 :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의 “만세의 뒤에라도 이 해답을 아는 대성인을 만나게 된다면, 이것도 아침저녁 사이에 만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萬世之後 而一遇大聖人知其解者 是朝暮遇之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40. 127)고로杲老 :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선승禪僧으로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5대 전인傳人인 대혜大慧 종고 선사宗杲禪師를 말한다. 묵조선黙照禪을 비판하고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하여 선종 불교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41. 128)함원含元 : 장안長安에 있던, 당나라 고종高宗 때 지은 궁전인 함원전含元殿을 말한다. 본명은 봉래궁蓬萊宮이었다. 당나라 때 장사長沙 경잠景岑 선사에게 “어떤 것이 보현普賢 보살의 몸입니까?” 하니, 경잠 선사가 “함원전 안에서 다시 장안을 찾는구나.(含元殿裏, 更覓長安.)”라고 대답하였다. 『전등록傳燈錄』에 나온다. 이는 본래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는데 다시 불성을 찾는 중생의 미혹을 지적한 것이다.
  42. 128)조예鑿枘 : 원조방예圓鑿方枘의 준말로 둥근 구멍에 네모진 자루를 박는다는 뜻으로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을 이른다. 착鑿은 조나 착으로 읽는다. 『사기』에 나온다.
  43. 130)무진無盡 : 중국 송대의 정치가 장상영張商英(1043-1122)의 호가 무진거사無盡居士이다.
  44. 131)『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와 『종경록宗鏡錄』, 『중론소기中論疏記』에서 ‘影公云法性不並眞聖賢無異道’라고 인용한 것이 보인다. 영공은 晉의 담영曇影 스님으로 『화엄소華嚴疏』와 『중론소中論疏』를 지었다고 전한다.
  45. 132)한명漢明 : 불교가 중국 전래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중에서 한나라 명제(58-75년 재위) 때로 보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46. 133)실어宲語 : 진어자眞語者ㆍ실어자實語者ㆍ여어자如語者ㆍ불광어자不狂語者ㆍ불이어자不異語者 등의 여래오어如來五語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47. 134)승추繩樞 : 옹유승추甕牖繩樞의 준말이다. 집이 가난하여 깨진 항아리 주둥이로 창을 만들고 문기둥에 새끼줄을 매어 문지도리로 사용하였다는 말이다.
  48. 135)면역免役 : 조선시대에 신역身役을 면제해 준 제도이다. 군사로서 나이가 만 60세에 달한 자, 간질병․양안맹인兩眼盲人․양지절단자兩肢切斷者, 그리고 악성 질병에 걸린 자, 백치白痴·벙어리·난쟁이 등의 폐질자廢疾者, 부모의 나이가 70세 이상일 때 그 아들 중의 l명, 90세 이상일 때에는 그 아들 전부, 부모의 훈공勳功에 의해 벼슬할 자격을 얻은 자, 한 가족 중 많은 사람이 신역에 복무 중인 경우 등에는 면역의 혜택을 받았다.
  49. 136)하우불이下愚不移 :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 언제나 그대로 있을 뿐, 발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논어』「양화편陽貨篇」,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오직 총명한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만이 바뀌지 않는다.(子曰, 唯上知與下愚不移.)’고 하였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50. 137)배공裴公 : 중국 당나라 때의 재상 배휴裴休(797-870)를 가리킨다. 배휴의 자는 공미公美이며, 산서성 하동 문희聞喜 출신이므로 하동대사河東大師이라고 한다. 황벽黃檗 희운希運 선사를 임지인 용흥사龍興寺과 개원사開元寺에 초빙해서 선법을 참구하고 널리 공부했다. 저서로는 『권발보리심勸發菩提心』과 황벽선사와의 문답을 실은 『전심법요傳心法要』가 전한다.
  51. 138)라집羅什 : 인도 출신의 학승 구마라집鳩摩羅什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구마라집은 kumārajīva의 음역으로, 구마라집究摩羅什ㆍ구마라시바鳩摩羅時婆ㆍ구마라기바鳩摩羅耆婆이라고 쓰며 의역하여 동수童壽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구마라염鳩摩羅炎, 어머니는 구자국龜玆國 왕의 누이동생이었던 기바耆婆이었기 부모의 이름을 합해서 구마라집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7세 때 출가하여 대ㆍ소승 경론을 두루 섭렵한 뒤, 구자국에 머물면서 주로 대승을 홍포하는 데 힘썼다. 401년 중국으로 들어간 뒤, 장안長安에 머물면서 입적할 때까지 『대지도론』ㆍ『마하반야바라밀경』ㆍ『묘법연화경』 등 총 35부 300여 권의 경전을 번역했다. 413년 4월 13일에 세수 70세로 입적했다.
  52. 139)영산靈山 : 영취산靈鷲山의 줄임말로, 중인도 마갈다국 왕사성의 동북쪽에 있던 기사굴산耆闍崛山을 말한다. 이 산의 정상에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은 독수리가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장소 중 하나이다. 기사굴다산耆闍崛多山ㆍ기계산其鷄山ㆍ영산靈山ㆍ영조산靈鳥山ㆍ영취산靈鷲山ㆍ취대鷲臺ㆍ취두鷲頭ㆍ취령鷲嶺ㆍ취봉鷲峰ㆍ취봉산鷲峰山ㆍ취산鷲山ㆍ취악鷲嶽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53. 140)삼독三毒 : 중생의 마음을 해치는 가장 근본적인 번뇌 즉 탐내고(貪) 성내고(嗔) 어리석은(痴) 마음을 독에 비유한 것이다.
  54. 141)삼덕三德 : 열반경에서 설한 대열반이 갖춘 세 가지 덕으로 법신덕法身德, 반야덕般若德, 해탈덕解脫德을 말한다.
  55. 142)오욕五欲 :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에 대한 총칭으로, ①오묘욕五妙欲ㆍ오욕덕五欲德ㆍ오욕락五欲樂ㆍ오락五樂ㆍ오종락五種樂, ②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 등 오경五境에 집착해서 일으키는 다섯 가지의 욕망, ③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다섯 가지로 구분한 것. 즉 재욕財欲ㆍ색욕色欲ㆍ음식욕飮食欲ㆍ명욕名欲 즉 명예욕ㆍ수면욕睡眠欲을 말한다.
  56. 143)오분五分 :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의 다섯 덕성을 가리킨다.
  57. 144)알묘揠苗 : 알묘조장揠苗助長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곡식이 나기 시작할 때 싹을 잡아당겨 빨리 자라도록 돕는다는 뜻으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억지로 일을 진행 시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공손추」에 나온다.
  58. 145)청량淸凉 : 중국 화엄종華嚴宗의 청량 징관淸凉澄觀이다. 『화엄경소초華嚴經疏抄』 80권을 저술하였다.
  59. 146)『통감절요』 권2 「주기周紀」에, “자순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두 노력하지만, 노력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이에 군자가 되는 것이다.(子順曰, 人皆作之, 作之不止, 乃成君子.)”라고 하였다.
  60. 147)『사기史記』 권6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신포서가 산속에 도망하여 사람을 시켜 자서에게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는 ‘사람이 많으면 하늘의 뜻을 이길 수 있지만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깰 수 있다고 한다.(申包胥亡於山中, 使人謂子胥曰, 吾聞之,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라는 말이 있다.
  61. 148)추요蒭蕘 : 보잘것없는 나무꾼의 말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발언에 대한 겸사謙辭이다. 『시경』「대아大雅 판板」에, “옛날 성현 말씀에 나무꾼의 말이라도 들어보라 하셨다네.(先民有言, 詢于芻蕘.)”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62. 149)영각鈴閣 : 한림원 혹은 장수나 지방 수령이 집무하는 곳을 말한다.
  63. 150)목우자牧牛子 : 고려의 승려 지눌知訥(1158-1210) 스님으로, 호는 목우자牧牛子이며 시호는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다. 정혜결사定慧結社을 조직해 불교의 개혁을 추진했으며, 돈오점수頓悟漸修과 정혜쌍수定慧雙修을 주장하며 선교일치禪敎一致을 추구했다.
  64. 151)세제世諦 : 삼제三諦의 하나로,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진리, 즉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현실 생활의 이치를 말한다.
  65. 152)회광반조回光返照 :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말로, 자신을 반성해서 곧바로 자기 심성의 신령한 성품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66. 153)경개傾盖 : 공자가 길에서 정자程子을 만나자 수레의 포장을 젖히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길가는 도중에 서로 만나 정지하여 서서 이야기함을 이른다.
  67. 154)반부인익攀附鱗翼 : 인익鱗翼은 용과 봉, 즉 제왕을 상징하는 말로, 반룡부봉攀龍附鳳이라는 말과 같다. 한漢 나라 양웅揚雄의 『법언法言』「연건淵騫」편에, “용의 비늘을 끌어 잡고 봉의 날개에 붙는다.(攀龍鱗, 附鳳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68. 155)삼연三淵 : 조선 후기 1653년(효종 4)~1722년(경종 2)에 생존한 김창흡金昌翕의 호가 삼연이다.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자익子益이다. 저서로는 『삼연집』ㆍ『심양일기瀋陽日記』 등이 있다.
  69. 156)『삼연집습유三淵集拾遺』 권지십 「우증성오상인又贈性悟上人」이라는 시가 있는데, “노란 꾀꼬리와 소나기 모두 나그네를 잡는데, 여기 사는 중의 손님 대접마저 진실하네. 조계산 사흘 밤 인연이 끝나지 않으니 목우자가 나의 전생의 몸이 아니겠나.(黃鸝白雨捴留人, 亦識居僧待客眞. 三宿曺溪緣未了, 牧牛無乃我前身.)”이라고 하였다.
  70. 157)한창려韓昌黎가 조주潮州 자사刺史가 되어 가서, 태전太顚이란 선사에 감복하여 자주 왕래하고 편지도 부치고 의복도 머물러 두며,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 일이 있었다.
  71. 158)소동파蘇東坡가 불인佛印 요원了元 스님을 찾아갔는데, 불인 스님이 앉을 곳이 없다고 하자, 소동파는 “화상의 사대를 빌려서 앉읍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불인 스님은, “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옥대를 풀어 나에게 주시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대가 공한데, 어디에 앉겠소?”라고 물었다. 소동파는 대답하지 못하고 옥대를 풀어 주었고, 불인 선사는 납의를 선물하였다고 한다.
  72. 159)귀록옹歸鹿翁 :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90년(숙종 16)~1752년(영조 28)에 살았던 조현명趙顯命의 호가 귀록(歸鹿) 혹은 녹옹(鹿翁)이라 했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발생하자 사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종군하였고, 난이 진압된 뒤 그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 3등에 녹훈, 풍원군豊原君에 책봉되었다.
  73. 160)혜원慧遠 : 진晉 나라 때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 살았던 원공遠公을 가리킨다. 도연명陶淵明과 가깝게 교류하였다.
  74. 161)백암栢庵 : 1631년(인조 9)~1700년(숙종 26)에 생존한 승려인 성총性聰의 호이다. 법맥은 무용無用-영해影海-풍암楓巖-최눌最訥로 이어져 새로운 선종의 파를 만들었다.
  75. 162)대려帶礪 : 허리띠와 숫돌이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개국 공신들을 책봉하면서 “황하가 변하여 허리띠처럼 되고, 태산이 바뀌어 숫돌처럼 될 때까지, 그대들의 나라가 영원히 존속되어 후손들에게 전해지도록 할 것을 맹세한다.(使河如帶, 泰山若礪, 國家永寧, 爰及苗裔.)”라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사기』 권18 「고조공신후자년표高祖功臣侯者年表」에 나온다.
  76. 163)살다薩多 : 범어 Bodhisattva의 음역인 보리살타菩提薩陀를 줄여서 말한 것으로 보인다. 보리살타는 보살菩薩로, 여기서는 금강산에 머무른다는 법기보살法起菩薩을 말한다.
  77. 164)향성香城 : 금강산 내금강의 영랑봉 동남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하얀 바위를 중향성이라고 한다. 『화엄경』「제보살주처품諸菩薩住處品」에서는 법기보살이 금강산의 중향성衆香城에 머문다고 했다.
  78. 165)『맹자』「양혜왕梁惠王」 상上에 “나의 늙은 부모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남의 늙은 부모에게도 확대해서 적용한다.(老吾老, 以及人之老.)”라고 하였다.
  79. 166)완월翫月 : 조선 후기의 승려로, 1714년~1770년에 생존하였다.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며, 법명은 궤홍軌泓이고 호가 완월이다. 12세 때 평강平康 보월사寶月寺로 출가하였고, 해원海源에게 불법을 배운 뒤 법맥을 이었으며, 항상 스승을 따라 수도하였다. 만년에는 석왕사釋王寺에 머물면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입적하였다.
  80. 167)송나라의 문장가 장뢰張耒는 “만물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목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이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밝아지지 않는다.(夫物不受變, 則材不成, 人不涉難, 則智不明.)”라고 하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後集 「송진소장서送秦少章序」에 나온다.
  81. 168)나암懶庵 : 조선말기의 승려 승제勝濟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13대 강사 중 한 사람이다. 전라도 화순 쌍봉사에서 출가하여 설담雪潭 자우自優의 제자가 되었고 그 뒤 설파雪坡 상언尙彦을 찾아가서 『화엄경』을 배우고 그의 인가를 받았으나, 상언의 법맥을 잇지 않고 자우에게 돌아와서 법맥을 이었다. 저서에 『나암집懶庵集』이 있다.
  82. 169)과족裹足 : 발에 싸매는 것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범수전范睢傳」에 “입을 막고 발을 싸매니 감히 나아가지 못했다.(杜口裹足, 莫敢向秦.)”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83. 170)척리隻履 : 달마達磨 대사가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면벽面壁하면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한 뒤, 양梁 나라 대동大同 원년(535)에 시기하는 자가 올리는 세 번째 독약에 알면서도 일부러 마시고 중독되어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 매장되었다. 그런데 후세에 전하는 전설에 의하면, 위魏 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총령葱嶺에서 대사가 맨발로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보았기에 돌아와서 그 무덤을 파 보니 신 한 짝만 있었다고 한다. 『고승전高僧傳』에 나온다.
  84. 171)목무전우目無全牛 : 기술이나 예술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장자』「양생주편養生主篇」에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보이는 것은 모두 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소의 온전한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始臣之解牛之時, 所見无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85. 172)영해影海 : 조선 후기의 대선사 약탄若坦(1668!1754)의 호가 영해이며, 자는 수눌守吶이다. 호남의 여러 절에서 선교의 거장으로 유명하였으며, 저서로 『영해시집影海詩集』이 있다.
  86. 173)송옥宋玉 :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의 문인(?B.C.290~?B.C.222)으로, 굴원의 제자이다. 작품에 「구변九辯」ㆍ「초혼招魂」ㆍ「고당부高唐賦」 등이 있다.
  87. 174)후파侯巴 : 후파는 양웅의 제자이다.
  88. 175)자운子雲 :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인 양웅揚雄(B.C.53~A.D.18)의 자이다. 성제成帝 때에 궁정 문인이 되어 성제의 사치를 풍자한 문장을 남겼다. 후에 왕망王莽 정권을 찬미하는 글을 써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작품에 「감천부甘泉賦」ㆍ「하동부河東賦」가 있고, 저서에 『법언法言』ㆍ『태현太玄』 등이 있다.
  89. 176)식형識荆 : 이백李白이 한형주韓荊州 에게 준 편지에, “나서 만호후萬戶侯를 봉하는 것도 필요 없고 다만 한 번 한형주를 면식하기 바란다.(生不用封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조종韓朝宗이 형주 장사荊州長史로 있었기 때문에 쓴 말이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처음 면식을 갖는 것을 식형이라고 한다.
  90. 177)창려지고昌黎之告 : 한창려韓昌黎가 사관史官 벼슬을 지낼 때, 천형天刑과 인화人禍를 두려워하여 역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고사를 들어 충고한 것을 말한다.
  91. 178)『장자』「제물론齊物論」에, “계란을 보고 곧 시간을 알리는 새벽닭 울음을 구한다.(見卵, 而求時夜.)”고 하여,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92. 179)『시경』「빈풍豳風 벌가伐柯」에 “도낏자루 잡고 나무를 베는 사람이여, 그 법칙이 멀지 않다.(伐柯伐柯, 其則不遠.)”고 하였는데, 즉 그 자르는 나무의 길이는 손에 쥔 도낏자루를 표준으로 삼아야 하므로, 그 표준이 바로 눈앞에 있음을 이른 말이다. 곧 도道가 멀리 있지 않음을 뜻한다.
  93. 180)조예鑿枘 : 원조방예圓鑿方枘의 준말로 둥근 구멍에 네모진 자루를 박는다는 뜻으로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을 이른다. 착鑿은 조나 착으로 읽는다. 『사기』에 나온다.
  94. 181)『논어』「술이述而」에 “한 모퉁이를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아채어 반응하지 못한다면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95. 182)집궐執厥 : 『서경』「대우모大禹謨」에서 순舜이 우禹에게 선위하면서 하였던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밀하고 한결같이 하여 그 중도를 진실로 잡아야 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96. 183)『시경』「대아大雅 황의皇矣」에 “나는 밝은 덕을 생각하노니, 음성과 안색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予懷明德, 不大聲以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97. 184)명명덕明明德 : 타고난 본성을 밝히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 덕을 날로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대학』 제1장에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에 있고 지극한 선에 그치는 데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고 하였다.
  98. 185)무성취無聲臭 : 『중용』에 “하늘이 하는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지극하시도다.(上天之載, 無聲無臭, 至矣.)”라고 하였다.
  99. 186)유일관唯一貫 :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논어』「이인里仁」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아, 내 도는 하나로 꿰뚫어지느니라.’ 하니 증자가 ‘예’하고 대답하였다. 공자가 나가고 나서 문인들이 묻기를,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니, 증자가 대답하기를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뿐이다.’라고 하였다.(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100. 187)미고견彌高堅 : 『논어』「자한子罕」에 “안연이 슬프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우러러보면 더욱 높으며 뚫으면 더욱 굳고, 쳐다보면 앞에 있다가 홀연 뒤에 있다.(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田, 忽焉在後.)”고 하였다.
  101. 188)개비아皆備我 : 『맹자』「진심장구」 상에 “맹자가 이르기를, 만물이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孟子曰, 萬物皆備於我矣.)”고 하였다.
  102. 189)불석미모不惜眉毛 : 예전에 어떤 스님이 법문답을 잘못했다가 눈썹이 다 빠져 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그래서 눈썹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허물을 지어 남의 욕을 먹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103. 190)염화미소拈華微笑 :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었기에 석가가 그에게 불교의 진리를 전수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이심전심의 묘처妙處를 말한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고도 한다.
  104. 191)『주역』에 나온다.
  105. 192)삼강三綱 : 『대학』의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여덟 가지 조목을 삼강령三綱領ㆍ팔조목八條目이라고 한다. 그 중 삼강령은 명명덕明明德ㆍ신민新民ㆍ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106. 193)납록納麓 : 『서경』 「순전舜典」에 나오는 납우대록納于大麓을 줄인 말로,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는 뜻이다. 요堯 임금이 신하인 순舜에게 국정을 맡기기 전에 시험한 것으로, “산속에 들어가서 세찬 바람이 불고 천둥 치고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納于大麓, 烈風雷雨, 弗迷.)”고 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는 “비상非常한 변고를 만났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상도常道를 잃지 않은 것은 참으로 총명하며 성실하고 지혜롭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여 순의 뛰어난 도량을 표현한 말로 보았다.
  107. 194)척상擲象 : 석가모니가 태자일 때에 하루는 성 밖에서 코끼리를 만났다. 태자가 손으로 코끼리를 들어 공중으로 던지자 사흘 후에 코끼리가 떨어졌는데, 그 자리에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고 한다.
  108. 195)망미忘味 :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가 제나라에서 소소를 들어 보고는 대단히 도취되어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聞韶, 三月不知肉味.)”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109. 196)신요申夭 : 『논어』 「술이述而」에 “공자께서 집에 한가로이 계실 때에 그 모습이 날개를 사뿐히 펼친 듯했고, 얼굴엔 화색이 돌아 광채가 났다.(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고 하였다.
  110. 197)오무은吾無隱 : 『논어』 「술이述而」에 "너희들은 내가 무엇을 숨긴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숨긴 것이 없노라.(二三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라고 하였다.
  111. 198)천하언天何言 : 『논어』 「양화陽貨」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말하지 않고자 한다.’고 하니, 자공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만일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무엇으로 도를 말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시가 운행되고 온갖 사물이 생성되어도,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라고 말씀하셨다.(子曰予欲無言, 子貢曰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고 하였다.
  112. 199)구괘벽상口掛壁上 : 『종용록從容錄』에 “삼세의 여러 부처님들은 입을 벽 위에 걸어 놓으셨다.(三世諸佛, 口掛壁上.)”라고 하였다.
  113. 200)병이秉彛 : 사람이 지켜야 할 상도를 말하는 것으로, 『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에 “하늘이 사람을 이 세상에 내실 적에 누구나 하늘의 법칙이 그 속에 깃들게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진 본성은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는 것이다.(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彛, 好是懿德.)”라고 하였다.
  114. 201)십이분十二分 : 십이분교十二分敎를 말한다. 일체의 경전을 경문의 성질과 형식으로 구분하여 12종류로 나눈 것이다. 『지도론』 33의 설에 의하면, 1. 수다라須多羅, 2. 지야祗夜, 3. 가다伽陀, 4. 니다나尼陀那, 5. 이제목다伊帝目多, 6. 사다가闍多伽, 7. 아부다달마阿浮陀達摩, 8. 아바다나阿波陀那, 9. 우바제사優婆提舍, 10. 우다나優陀那, 11. 비불략毗佛略, 12. 화가라和伽羅의 12종을 말한다.
  115. 202)칠조七祖 : 화엄종의 선종에 칠조가 있다.
  116. 203)주자양朱紫陽 : 자양紫陽은 주자朱子의 별호이다
  117. 204)구양수歐陽修(1007~1072)가 낙양에서 벼슬을 할 때, 숭산崇山의 한 절에서 노승을 만났다. 노승에게 무슨 경을 읽느냐고 묻자 노승은 『법화경』을 읽는다고 대답했다. 구양수가, “옛 고승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담소하다가 열반하는데, 무슨 수로 그렇게 됩니까?”라고 묻자, 노승은 “정혜의 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구양수가 “요즘 세상엔 그런 인물이 없이 쓸쓸한 것은 왜입니까?”라고 하자, 노승은 “옛사람들은 생각 생각이 오로지 정혜에 있어서 임종 때에도 어지러움이 없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생각이 산란하니 임종 때에 어떻게 안정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말에 구양수는 매우 놀라 무릎을 꿇었다.
  118. 205)진서산眞西山 : 중국 송나라의 학자 진덕수眞德秀의 호가 서산西山이다. 주자학파의 학자로서 저서로는 『대학연의大學衍義』•『당서고의唐書考疑』•『독서기(讀書記』•『문장정종文章正宗』•『서산갑을고西山甲乙稿』•『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119. 206)양구산楊龜山 : 구산은 송나라 양시楊時(1053-1135)의 호로 자는 중립中立이다.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도학道學을 주희朱熹ㆍ장식張栻ㆍ여조겸呂祖謙 등에게 전하여 낙학洛學의 대종大宗으로 일컬어진다.
  120. 207)거로蘧蘆 : 여관이라는 뜻이다. 『장자』「천운天運」에 “인의는 선왕의 여관으로, 하룻밤 묵어가는 것은 좋지만 오래 묵을 곳은 못 된다.(仁義, 先王之蘧蘆也,止可以一宿, 而不可久處.)”라고 하였다.
  121. 208)『도덕경』에 “비록 보배를 실은 큰 수레를 바친다 해도, 가만히 앉아서 이 도에 나아가는 것만 못하다.(雖有拱壁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고 하였다.
  122. 209)이청련李靑蓮 : 청련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후백李後白(1520~1578)의 호이다. 본관은 연안이며, 자는 계진季眞이다. 평안도관찰사ㆍ예조참의ㆍ홍문관부제학ㆍ호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저서로 『청련집』이 있다.
  123. 210)백향산白香山 : 중국 중당中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호가 취음선생醉吟先生ㆍ향산거사香山居士이며, 자는 낙천樂天이다. 주요 저서에는 『장한가長恨歌』ㆍ『비파행琵琶行』 등이 있다.
  124. 211)곽분양郭汾陽 : 중국 당唐 나라의 무장武將 곽자의郭子儀(697~781)가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중원中原의 반란군을 토벌했고 위구르의 원군을 얻어 창안과 뤄양을 수복했다. 토번吐蕃이 창안을 치려 하자 위구르를 회유懷柔하고 토번을 무찔렀다. 그 공으로 상부尙父의 칭호를 받고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졌으며, 당나라 최대의 공신으로서 영광을 누렸다.
  125. 212)조열도趙閱道 : 조변은 송나라 때의 정치가 조변趙抃을 말한다. 조변의 자字가 열도閱道이다. 벼슬의 고하를 막론하고 잘못을 탄핵하여 철면어사鐵面御史라는 칭송을 받았다.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ㆍ참정지사參政知事를 지냈는데, 왕안석과 뜻이 맞지 않아 벼슬을 그만두었다.
  126. 213)장천각張天覺 : 중국 송대의 정치가 장상영張商英(1043~1122)을 말한다. 호는 무진거사無盡居士이며 자는 천각天覺이다. 19세에 급제하고 신종神宗 때에 왕안석과 함께 신법新法에 대해 공의共議하였다. 처음에는 불교를 싫어하여 무불론을 써서 배척하려 하였으나 뒤에 우연히 『유마경』을 읽고 바른 믿음을 일으켰다. 원우元祐 연간에 오대산에 문수상文殊像을 소성하고 발원문을 지었다. 동림사東林寺 조각照覺 상총常總 선사에게 선禪을 묻고, 다시 도솔兜率 종열從悅 선사를 참알參謁하여 비로소 깨쳤다. 뒤에 진정문眞淨文 화상에 나아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하였다. 대관大觀 4년(1110)에 승상이 되고 송宋 선화宣和 4년 11월에 세상을 떴다. 저서로 『호법론護法論』이 있다.
  127. 214)이참정李叅政 : 대혜大慧 종고宗杲(1089~1163) 선사의 『서장書狀』에 이참정에게 보내는 답서가 실려 있다.
  128. 215)원元 나라 야율초재耶律楚材(1190~1244)의 「병산거사서屏山居士序」에, “내 동산의 오디를 먹으면 좋은 소리를 보지 못할 것이니, 성인을 헐뜯고 비방하면 귀 멀고 눈먼 사람이 배우는 것이다.(食我園椹, 不見好音, 誣謗聖人, 聾瞽學者.)”라고 하였다.
  129. 216)이부마李附馬 : 이름은 준욱遵勖이며, 송나라 인종의 사위이다. 처음 곡은谷隱 온총蘊聰 선사에게 사사 받았으며 거사로서 그 후계자가 되었는데 자명慈明 초원楚圓 선사나 양대년 거사와 친교를 맺었다. 1038년에 입적하였고 『천성광등록』 30권을 저술하였다.
  130. 217)양대년楊大年 : 대년大年은 송宋 태조太祖에서 진종眞宗 연간의 학자인 양억楊億(974~1020)의 자이다. 양억은 시부詩賦에 능해 11세에 비서성秘書省 왕자王者가 되고, 진종 때에 발탁되어 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전장 제도典章制度에 특히 밝았으며, 저서로 『무이집武夷集』이 있다. 『송사宋史』에 보인다.
  131. 218)『고문진보』「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왕공이 그 귀함을 잃게 되고 진나라와 초나라도 그 부유함을 잃게 되며 장량과 진평이 그 지혜를 잃게 되며 맹부노가 하육이 그 용맹을 잃게 되며 장의와 소진이 그 말하는 것을 잃게 되니, 이것은 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王公失其貴, 晉楚失其富, 良平失其智, 賁育失其勇, 儀秦失其辨, 是孰使之然哉.)”라는 구절이 있다.
  132. 219)『장자』「대종사大宗師」에, “의이자가 말하기를, 저 무장이 그 아름다움을 잃고 거량이 그 힘을 잃고 황제가 그 지혜를 잃음은 모두 화로 속에서 녹여지고 두들겨 새롭게 단련되기 때문입니다(意而子曰, 夫無莊之失其美, 據梁之失其力, 黃帝之亡其知, 皆在鑪捶之間耳.)”라고 하였다.
  133. 220)화성化城 : 법화칠유法華七喩의 하나로, 소승小乘의 열반에 비유한 말이다. 『법화경』 제3에 있는 말로, 여러 사람이 보배를 찾아가다가 그 길이 험하여 사람들의 피로해 하므로, 그때 길잡이 하던 사람이 한 계교를 내어 신통력으로 임시로 큰 성을 나타내어 여기가 보배 있는 곳이라 하니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며 이 성에서 쉬었다고 한다. 길잡이는 여러 사람의 피로가 회복되자 화성을 없애버리고 다시 진짜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게 하였다는 비유이다.
  134. 221)『맹자』「양혜왕」 상上에 “오십 보로써 백 보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以五十步笑百步, 則何如.)”라는 말이 있다.
  135. 222)약상弱喪 : 고향을 잃은 사람이란 의미로, 본분을 잃어버린 경우를 비유한다. 『장자』「제물론齊物論」에 “내 어찌 삶을 좋아하는 것이 미혹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내 어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마치 어려서 고향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님을 알겠는가.(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 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라고 하였다.
  136. 223)이량二量 :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을 말한다.
  1. 1)「文一」二字。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