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몽암대사문집(蒙庵大師文集) / 蒙庵大師文集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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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암대사문집 하권(蒙庵大師文集 下)
서書
종정 양암 장로 탁현에게 준 글(與宗正讓庵長老卓賢書)
인편人便에 삼가 좌묵左墨1)을 받들고는, 대법체大法體가 강녕하심을 알았을 뿐만이 아닙니다. 이와 함께 인광印光2)이 누추한 사립문에까지 비치게 해 주셨으니, 이 얼마나 성대한 일이며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저는 견마犬馬의 나이가 비록 높지는 않지만, 해역咳逆(咳嗽)과 천급喘急(喘息)이 함께 발작하여 쇠잔한 용색容色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만물이 영화롭게 되는 때를 맞아서도 일체 그늘진 골짜기의 썩은 그루터기처럼 되어 회춘回春할 길이 자연히 없어졌으므로 항상 화욕火浴(火葬)의 일이 늦춰지는 것만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작년에 지팡이를 짚고 동쪽에서 북쪽으로 다니셨을 적에, 모르겠습니다만 바랑 속에 금전은 얼마나 들어 있었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노년에 다리에 힘도 빠져서 지탱하기 어려우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칠십 냥의 청부靑蚨3)는 전액全額을 부쳐 드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만, 물화物貨가 영원靈源에 있어서 거인居人의 제재制裁를 받기 때문에, 단지 제가 불린 돈 15관貫 남짓과 문하門下의 금전 4냥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리게 되었으니, 약소하다고 꾸짖지 말아 주십시오.
비碑를 세우는 장소는 선당禪堂과 대웅전大雄殿 사이를 살펴서 결정하십시오. 죽을 때가 다 된 자가 뭐라고 입을 놀리겠습니까마는, 몇 년 동안 수고하여 모은 수백의 청동전靑銅錢으로 한 병의 악수惡水를 사 가지고 와서, 서방세계로 떠나신 노老 함장函丈4)의 머리 위에 쏟아붓는다면, 내 비를 세우는 자는 삼생三生의 원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유촉遺囑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병석에 누워 있는 중에 황망해서 남의 손을 빌리다 보니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010_0367_c_02L蒙庵大師文集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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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67_c_04L1)

010_0367_c_05L與宗正讓庵長老卓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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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來敬承左墨非但審大法軆䂊康
010_0367_c_07L令印光射人蘿戶何等盛事何等慰
010_0367_c_08L弟犬馬之齒雖不高而咳逆喘急
010_0367_c_09L幷作老色殘容益甚時當物物向榮之
010_0367_c_10L而一如陰谷朽株自無更春之道
010_0367_c_11L以火浴稍遲爲恨年昨化笻自東而
010_0367_c_12L未審所囊幾金伏想暮年脚力𨆬
010_0367_c_13L難以支遣矣七十兩靑2) [72] 切欲完
010_0367_c_14L而物在靈源爲㞐人所裁只以在弟
010_0367_c_15L所息者十五貫强兼門下錢四兩
010_0367_c_16L羞以上莫以薄略見誚也樹碑之所
010_0367_c_17L禪與大間惟觀風定之垂死者郍容一
010_0367_c_18L喙耶然以數年勞苦累百靑銅買得
010_0367_c_19L一瓶惡水潑於西去脫灑老3) [73] 丈頭
010_0367_c_20L如遺囑第三生寃何餘負席中帶忙
010_0367_c_21L呼倩不具

010_0367_c_22L「書」一字編者補入「蛈」作「蚨」{甲}「凾」
010_0367_c_23L作「涵」{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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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又)
몇 달 동안 비석을 다듬고 새기는 일을 하는 가운데 또 원院의 업무까지 겸하여 분주하시니, 모르겠습니다만 통섭統攝하는 기체氣體가 효상爻象에 옮겨지지 않고 여독旅毒이 겹쳐서 일어나지는 않으셨는지요. 구구하게 덕을 연모하는 나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만 길의 서명西溟과 같다고나 할 것입니다.
나는 허약한 체질이 더욱 쇠해지고 천급喘急이 더욱 심해지기만 합니다. 이는 실지實地의 공부工夫가 없어서 업망業網이 모여들어 빚어진 결과이니, 어찌 감히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겠습니까.
귀부龜趺가 비신碑身을 받쳐 올리는 날짜를 제로提老5)가 미리 점지해 주셨기에, 이달 초순에 제가 직접 가지는 못했어도 운거雲居6)에 대신 보내어 저의 불민함을 사죄하였습니다. 그런데 운거하는 것이 구름과 같을 수가 없어서 도리어 속세의 밧줄에 결박을 당하고 말았으니, 마음이 실로 괴롭기만 합니다.
어려서부터 다자탑多子塔의 인연7)을 만난 덕분에, 중년中年에 비록 청소하고 물 길어 주는 사람 없어도 마음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을 당하여 대리해서 보낼 이가 한 사람도 없으니, 이것이 비록 숙연宿緣의 소치所致인 줄은 알지만 비감悲感에 격동되어 곧장 화욕火浴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호초胡椒는 불국佛國(인도)에서 나오는 것이니, 부종수교扶宗樹敎의 직임職任에나 적합할 것인데, 어떻게 폐인인 저에게까지 기꺼이 나누어 주신단 말입니까.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저 영위榮衛(氣血)를 더욱 보중하시고 비갈碑碣을 공고히 세우시기만을 축원합니다. 격식을 갖추지 못하니, 삼가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제봉 장로 성연8)에게 준 글(與提峰長老聖淵書)
연전에 북쪽으로 순행하실 적에 제가 비록 병석에 있으면서도 날마다 일어나 고대하는 심정이 마치 굶주린 자가 밥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았는데, 확실한 기별을 얻지 못하다가 이제야 바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주師主(제봉 장로를 말함)께서 선사先師를 위하여 진력하시는 정성이 남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는 그지없이 흠모하는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병색이 날로 심해져서 기력이 떨어졌으므로 아침저녁으로 소망하는 것은 단지 화욕火浴일 뿐입니다.
70냥의 적측赤仄9)은 영원靈源10)의 새로운 논의에 저지되었으므로, 단지 저에게 남아 있는 15관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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累月攻石鐫務中又兼院事倥偬未審
010_0368_a_03L統攝氣體不爲爻象所移而旅酸不至
010_0368_a_04L於層生乎區區戀德之私請量西溟萬
010_0368_a_05L丈矣弟蒲質愈衰喘急益增此是無
010_0368_a_06L宲地工夫業網聚鍾之致豈敢怨尤天
010_0368_a_07L人耶神龜戴石日字提老預卜此月
010_0368_a_08L初旬弟雖未親笻遆送雲居以謝
010_0368_a_09L不敏矣雲居者未能如雲還爲塵索
010_0368_a_10L所縛苦哉苦哉少見多子塔因緣故
010_0368_a_11L中年雖掃汲無人不掛於念頭今當此
010_0368_a_12L無一人遆送雖知宿緣所致悲感
010_0368_a_13L所激直欲徑入火浴也胡椒是佛國所
010_0368_a_14L可合於扶宗樹敎之任如何分甘於
010_0368_a_15L弟多謝多謝餘只祝榮衛益珍
010_0368_a_16L碣鞏固不具伏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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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68_a_18L與提峰長老聖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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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昨化輪之北雖在負席中日起懸望
010_0368_a_20L如飢者之不忘食也未得其的今聞正
010_0368_a_21L始諳師主爲先竭力之誠拔人千丈
010_0368_a_22L難任欽艶之至弟病色日駈氣力時減
010_0368_a_23L曉夕所1) [74] 只是火浴七十兩2)赤仄 [75]
010_0368_a_24L靈源新論所沮只以留弟者十五貫

010_0368_b_01L남짓과 문하門下의 사람들이 보태 준 4냥을 합쳐서 약소하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바쳐 올리게 되었으니, 주하麈下(門下)의 승려가 꾸짖어 물리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비문碑文은 내가 여러 스님들의 설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선사先師를 천 길 구덩이 속에 묻어 놓고서 “나의 비를 세우는 자는 삼생三生의 원수가 될 것이다.”라는 유촉遺囑 중의 말씀을 거꾸로 징험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석이 이미 이와 같이 되었다면 세우는 장소를 남에게 물어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오직 재량裁量해서 정하시면 될 것입니다.
요즈음 들어 숨이 가빠지는 증세(喘急)가 더욱 심해져서 문밖을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남의 부담이 되곤 하니, 남이 나를 버렸을 뿐만이 아니라 나도 자신을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 뒤로는 혹 문중門中의 일을 가지고 사람을 누추한 이곳에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병중에 있는 몸이라 남의 손을 빌리다 보니,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또(又)
망팔望八(71세)의 연세에 북쪽을 순행하는가 하면 다시 남쪽으로 돌아오고 동쪽에서 교화를 펼치는가 하면 서쪽에서 가르침을 베푸는 등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왕성하기만 하십니다. 이는 각별히 선사先師를 위하는 정성이 단사丹砂처럼 환히 빛나 삼광(해ㆍ달ㆍ별)을 아우를 만하고 금석金石을 꿰뚫을 만큼 누구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무더위와 장맛비가 교차하는 때에, 모르겠습니다만 공력功力은 어느 경지에 이르셨고, 자금은 얼마나 모으셨으며, 기체氣體는 노곤해지지 않으셨는지요. 하늘에 축원하며 사모하여 달리는 저의 정성은, 때때로 곡풍谷風을 따라 귀부龜趺와 용두龍頭를 다듬어 세우는 도량道場 주위를 에워싸며 휘감곤 합니다.
저는 백 가지 질병이 교대로 침노하고 천 가지 신고辛苦가 일제히 발작하기 때문에, 신마神馬와 구륜尻輪11)을 타고 다니더라도 멀리까지 이르기에는 지극히 곤란할 것이니, 이는 보고 듣는 이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소위 운거雲居한다고 하는 것도 지난번의 연고緣故 때문에 자라목처럼 위축되어, 예전에 저를 방문하셨을 때(左顧) 마주하고 약속했던 것도 모두 자허子虛(虛構)로 돌아갔기에, 단지 서쪽을 바라보고 길이 탄식하며 절을 하노라니 계속해서 눈물만 줄줄 흐를 따름입니다. 사주師主께서는 이 사이의 정상情想을 목격目擊하셨지만, 제방諸方이 성토聲討하는 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목이 메는 심정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해송海松은 사방으로 구해 보아도 찾기가 어려워서, 단지 향고香菰 1승升을 가지고 애오라지 구구한 정성을 표하려 하니, 물건이 약소해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010_0368_b_01L兼門下人所施四兩忘略以上勿令
010_0368_b_02L塵下僧呵退也碑文末吾不知師等說
010_0368_b_03L埋却先師千仭坑中返驗遺囑中爲吾
010_0368_b_04L碑者是第三生寃之說必慮於此也
010_0368_b_05L石旣如3) [76] 樹之所奚卜於人唯裁而
010_0368_b_06L的之也近來喘急益甚出門則必爲人
010_0368_b_07L所負非但人棄之而亦自棄已久
010_0368_b_08L後若以門事使人莫送於陋地也
010_0368_b_09L4) [77] 5) [78] 伏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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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望八之年北征南還東化西設
010_0368_b_13L而益銳盖一段爲先之誠炳然如丹
010_0368_b_14L三光可幷金石可貫拔俗千丈邇來
010_0368_b_15L暑潦交作未審功力至於郍境泉資至
010_0368_b_16L於幾數氣體不至於委頓乎祝天馳慕
010_0368_b_17L之誠時隨谷風旋繞於攻樹龜龍道
010_0368_b_18L弟百疾交攻千辛幷作神馬尻輪
010_0368_b_19L致遠極難觀聽所知而所謂雲居
010_0368_b_20L以鄕緣龜縮前左顧時面約盡帥子虛
010_0368_b_21L西望長吁而拜繼之淚漱漱下矣師主
010_0368_b_22L目擊此間情想如諸方口誅何難任哽
010_0368_b_23L海松四求覔難只以香菰一升
010_0368_b_24L表區區惟以薄略爲愧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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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담12) 법로에게 올린 글(上蓮潭法老書)
연전에 삼가 내려 주신 위로의 글을 받고는 공연跫然의 기쁨13)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즉시 회답을 올리지 못한 것은 천질賤質이 오래도록 병에 골골했던 탓으로 7척尺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아니어서 죽는 것이 편할 정도일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삼가 모연慕緣하는 화사化士의 말을 듣건대, 대법가大法駕가 건회建會를 주관하는 자의 소청所請에 사私가 없었기 때문에, 화륜化輪을 종남終南의 연월烟月에 굴려 내달으시며 사람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대비大悲 중의 일생一生에서 득력得力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모년暮年에 길을 닦으며 쉴 새 없이 여행을 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고달프셨겠기에, 하성下誠이 지극히 우려스러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소승小僧은 법상法喪을 당하고 나서 또 은제恩制를 만났는데, 지난해에 상복喪服을 벗고는 금년 봄에 겨우 첫 번째 기신忌辰을 넘겼습니다. 그런데 천급喘急과 해역咳逆이 교대로 싸움을 벌이고 다릿심이 또 덩달아 떨어져서, 화욕火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그런 중에도 구천九泉의 지역에 한을 품고 떠날 일은 있지 않습니다.
삼천三千의 불佛을 공양供養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듣기 어려운 일인데, 사주師主께서 확삭矍鑠14)하시니 이 또한 법문法門의 성대한 일입니다. 곧장 길을 떠나가서 뵙고도 싶습니다만, 병으로 그 정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일생의 가연佳緣이 추산崷山에서 하직 인사를 드리던 때로 끝난단 말입니까. 저의 소원은 단지 사주와 함께 청정해지고 싶을 뿐입니다.
표원의 재소에 답한 글(答表院齋所書)
사람과 편지가 함께 도착해서, 재회齋會의 염량炎凉(정황)을 삼가 알았으니, 얼마나 위로되고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겠습니까. 나는 근년 이래로 쇠약한 정도가 점점 깊어져서 지금은 일어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마침 인장印章을 보게 되니 숙환宿患이 수그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임職任을 맡기는 법으로 말하면, 조정의 규례로 논하건대

010_0368_c_01L上蓮潭法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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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昨伏受下賜慰書而跫然未即仰復
010_0368_c_03L賤質長汨於病七尺非復自有
010_0368_c_04L非徒沒便而已向敬聞慕緣化士之言
010_0368_c_05L大法駕爲建會主管者所請無私化輪
010_0368_c_06L轉駈於終南烟月竭力爲人是大悲中
010_0368_c_07L一生得力之處而暮年修程袞袞行李
010_0368_c_08L應多艱苦矣下誠不勝6) [79] 慮之至
010_0368_c_09L僧法喪後又遭恩制去年闋服今春
010_0368_c_10L才過初忌喘急咳逆交戰脚力又隨𨆬
010_0368_c_11L自知入火浴在斯須然亦無抱恨
010_0368_c_12L九泉之處也三千佛供養世所罕聞
010_0368_c_13L師主矍鑠亦法門盛事即欲策笻
010_0368_c_14L病未遂誠一生佳緣當止於崷山拜辭
010_0368_c_15L時耶只願與欲淸淨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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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68_c_17L答表院齋所書

010_0368_c_18L
人與書俱到敬審齋會上炎凉何等慰
010_0368_c_19L何等慶幸潁自近年以來衰癃漸
010_0368_c_20L今至於不振之境而適見印章宿
010_0368_c_21L痾似歇然管任之法以朝禮論之
010_0368_c_22L「望」作「思」{甲}「赤仄」作「靑蚨」{甲}「此」
010_0368_c_23L作「是」{甲}
「病」下有「呼」{甲}「俱」作「具」
010_0368_c_24L{甲}
「憂」作「虞」{甲}

010_0369_a_01L방악方岳의 직임이라도 교서敎書를 낸 뒤에 부임하거나 부임하지 않을 수도 있고, 공경公卿의 직임이라도 패초牌招를 낸 뒤에 응하거나 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승원僧院의 법례法例로 논하더라도, 벽하碧霞 대로大老의 후임으로 취진醉眞 선로禪老를 택하여 차지差紙를 내었는데, 진로眞老가 약간 귀먹은 질환이 있었으므로 태허太虛 사주師主를 꾸짖고 욕하면서 “태허는 인사人事를 모르는 자이다. 어떻게 병이 있는 중을 중망重望에 의주擬注한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태허 사주가 그 말을 듣고서도 노하지 아니하고 다시 호암虎岩 법로法老가 (그 일을 맡도록) 대신 그 명단을 채웠습니다.
유교儒敎나 석교釋敎나 예로부터 법도가 이와 같은데, 지금 귀원貴院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귀원이 나의 누추한 거처와 거리가 3백 리쯤 떨어져서 나의 질병이 이와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차지를 물론 낼 수도 있겠지만, 이미 나의 병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터인데 특별히 사람을 파견하여 인장을 보내다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이것이 조정의 법률입니까, 승원의 법률입니까. 지금 보건대 관원들도 병이 있으면 인장을 던지고 떠나면 그뿐이지, 인장을 가지고 병든 수재守宰를 뒤따라가서 그 집에 던지는 경우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나에게 온 승려가 말하기를 “만약 사정이 이와 같다면, 어째서 차지를 내기 전에 미리 사람을 보내어 알리지 않았느냐.”라고 하였는데, 내가 이 말을 듣고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에게 천안통天眼通이 없는데, 나의 이름을 해조該曹에 보고할 줄이야 내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만약 이 승려의 말대로라면, 내가 속으로는 하고 싶으면서도 밖으로는 가식적으로 말한다고 옆에서 눈짓하며 비웃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승려가 또 말하기를 “사주가 만약 병으로 걷지 못하게 되면, 추향秋享을 대행代行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크게 부당한 말입니다. 평안하고 건강한 사람이 직임을 맡고 있다가 병이 있어서 불참不參하게 되면, 대신 사람을 보내어 병 때문에 가지 못한다는 뜻을 알려야 할 터인데, 지금 병 때문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인장을 받는다면, 추향 때에 무슨 말로 가지 못한다는 뜻을 알리시렵니까.
그러나 나의 병의 진위眞僞에 대해서는 불천佛天이 굽어보시고 선사先師가 또 살펴보시는 바이니, 다시 번거롭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행여 이 병에서 소생하게 된다면, 지체 없이 달려가서 사당에 배알할 것입니다. 차지와 인신印信을 동봉同封해서 올리려 하였으나, 나를 찾아온 승려가 고집이 대단해서 머리를 내저으며 듣지 않으니, 나의 병이 낫기를 기다려서 내가 직접 짊어지고 가서 바칠까 합니다.

010_0369_a_01L方岳之任出敎後有赴不赴公卿之
010_0369_a_02L出牌後有進不進以院法論之
010_0369_a_03L霞大老後以醉眞禪老出差紙眞老有
010_0369_a_04L細聾疾詬辱太虛師主曰太虛不知人
010_0369_a_05L事者何以有病之僧擬之於重望乎
010_0369_a_06L太虛師主聞不之怒更以虎1) [80] 法老
010_0369_a_07L備員儒與釋古法若是今貴院不然
010_0369_a_08L院之與陋處里隔三百則不知賤病之
010_0369_a_09L若是出差紙固也旣聞病而專人送章
010_0369_a_10L何哉此朝律乎院法乎今見官有病
010_0369_a_11L則投印而去未聞以印隨病守而投其
010_0369_a_12L又來僧語曰若事情如此則何2) [81]
010_0369_a_13L未出差紙前預使一伻耶聞來心寒
010_0369_a_14L我無天眼3) [82] 何以知報賤名於該曺耶
010_0369_a_15L若如此僧之言傍有目笑我欲爲而外
010_0369_a_16L假浮辭者也又曰師主若病不步秋享
010_0369_a_17L代行云是大不然4) [83] 之人帶任
010_0369_a_18L5)不叅 [84] 則代遣人致其病不赴之意
010_0369_a_19L今旣知病不行而受印則秋享以何說
010_0369_a_20L致不赴之意耶然病之眞詐佛天斯臨
010_0369_a_21L先師又鑑更何煩說倘此病蘇朗
010_0369_a_22L寸進而謁祠矣差紙與印信同封以上
010_0369_a_23L而來僧固執者掉頭而不聽待賤6) [85]
010_0369_a_24L勿藥後自負而上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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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에게 답한 글(答南岳書)
황산黃山에서 여기에 옮겨온 뒤로 발병이 나서 신음하며 누워 있은 지 넉 달이 되었는데도, 새로 알게 된 사람이나 옛날부터 알던 사람이나 논할 것 없이 나를 찾아와서 위문하거나 서신으로 물어보는 자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이로부터 소태백小太白의 법친法親 문하에서 소외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존자尊者께서 미천한 이 몸을 초개草芥로 보지 않고 영광스럽게 염려해 주며, 설봉雪峰의 수단手段을 현사玄沙의 백지白紙보다 먼저 보여 주셨으므로,15) 삼가 글을 받고 나서 옷소매 사이에 감춰 두고는 적막한 중의 기이한 완물玩物로 삼고 있으니, 어찌 다만 백붕百朋16)을 내려 주신 정도일 뿐이겠습니까. 매우 감사합니다.
저번에 어떤 중이 나에게 고하고 저자에 나갔다가 돌아와서 영경靈境의 소식과 법리法履17)를 전한 말에 의하면, 광사廣寺의 승려에게 매롱賣弄을 당하여 향책鄕責을 입은 것이 적지 않다고 하기에, 지극히 놀랍고 우려되는 마음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공부하신 것으로 말하면, 단지 화복禍福이 들이닥치는 지경에 이르더라도 손발 하나 까딱하지 않으실 분이니, 이런 일 때문에 지켜 오던 바를 바꾸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공력을 들이던 곳도 이 지점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일층 광채를 발하여 마치 정금精金을 용광로에서 단련해야 더욱 빛을 발하는 것18)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곤궁한 것이 나의 본분인데, 더군다나 지금은 객客 가운데에서도 객이 되어 있으니, 그 절박한 상황은 죄다 써서 보여 드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앉아 시냇물을 들이마시고 분수에 맞게 생활하면서 궁귀窮鬼가 동요시킬 수 없게 하는 것은 내가 스스로 터득한 바입니다. 껄껄껄.
말초末稍의 승회勝會를 베풀기 위하여 침저沈苴를 많이 마련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보니, 이는 바로 말세에 보기 드문 일이기에, 목을 빼고 동쪽을 바라보면서 경탄하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성이라는 것은 사람의 미기美器로서 조물造物이 매우 꺼리는 바입니다. 지금 아름다운 명성이 성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나, 세상의 길은 양羊의 창자와 같고 사람의 심보는 범처럼 으르렁대기만 하니, 생선에 뼈가 많아서 삼키기 힘들고 황금빛 귤도 먹기엔 너무 시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열자列子』에 “명성은 이익을 기약하지 않아도 이익이 뒤따르고, 형벌은 다툼을 기약하지 않아도 다툼이 뒤따르고, 다툼은 원망을 기약하지 않아도 원망이 뒤따른다.”19)라고 하였으니, 비록 그 일을 하더라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저번에 호湖의 연로蓮老와 퇴형退兄이

010_0369_b_01L答南岳書

010_0369_b_02L
自黃山般移于此呻於足而臥者四箇
010_0369_b_03L而無論新知舊識無一分面問書訊
010_0369_b_04L意謂自此見阻於小太白法親之門矣
010_0369_b_05L唯尊不芥視斯微而辱在盛念雪峰手
010_0369_b_06L先之於玄沙白紙之前敬受以來
010_0369_b_07L藏之於衣袖間以爲寂中奇玩奚啻百
010_0369_b_08L朋之賜耶多感向一僧告出市而來傳
010_0369_b_09L靈境佳息法履爲廣寺僧所賣弄被鄕
010_0369_b_10L責不些不任驚慮之至然平昔所學
010_0369_b_11L只要到禍福之際手足不露想忖不
010_0369_b_12L但以此不移其所守前之所着力處
010_0369_b_13L此地頭7) [86] 生一層光彩如精金入火
010_0369_b_14L愈見明耀矣潁固窮是本色而况今在
010_0369_b_15L客中之客其屢不可齒錄然深居澗
010_0369_b_16L飮隨分生活其窮魔不能撓我自所得
010_0369_b_17L呵呵承欲建末稍勝會多營沈苴
010_0369_b_18L此是季葉罕覩之事引領東望不勝
010_0369_b_19L艶歎然名者人之美器造物甚忌之
010_0369_b_20L今令名不8) [87] 不盛9) [88] 以世路羊腸
010_0369_b_21L心虎角恐時魚多骨金橘大酸也10) [89]
010_0369_b_22L子云名不與利期而利隨之刑不與
010_0369_b_23L爭期而爭隨之爭不與怨期而怨隨之
010_0369_b_24L雖爲之不可不愼也向湖之蓮老退兄

010_0369_c_01L모두 이 해害를 받았는데, 존자께서 나를 너무 깊이 아껴 주시기 때문에 감히 이렇게 고하는 바입니다. 이 편지를 보신 뒤에는 곧바로 없애 버리십시오.
영파 법로 성규20)에게 올린 글(上影波法老聖珪書)
지난해 겨울에 그곳으로 곧장 가는 인편人便이 있었는데도 안부를 묻는 서신을 올리지 못했던 것은, 그 행정行程이 급박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만 가지 인연을 털어 버리고서 한번 직접 찾아가 뵈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기 때문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또 한질寒疾의 공격을 받아 음식을 들지 못하는 때도 많아서, 이 때문에 또 정성을 바치지 못하였으니, 황송한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주師主께서는 본래 마음이 바다와 같으시니, 하승下僧이 이처럼 실례失禮한 일을 한번 웃고 넘기시겠지만, 저의 마음은 항상 존안尊顔을 그리워할 뿐, 멀리 계시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한 해를 보내고 나서도 예배를 드리지 못했으니, 어찌 허전한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근래에 위에서 내려온 자의 말에 의하면, 꽤나 온역瘟疫이 사람들에게 퍼졌다고 하는데, 모르겠습니다만 그 독기毒氣가 정계淨界 아래에서 부지런히 종사하는 승僧에게는 미치지 않아, 함양涵養하시는 것이 평상시보다 낫지는 않으신지요. 저의 치달리는 정성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소승小僧은 기질氣質이 편협한데다 품행에도 힘을 쓰지 않아서, 실지實地의 공부工夫에 털끝만큼도 근사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안으로 밝지 못할 뿐 아니라 밖으로 마업魔業의 조롱을 초래한 나머지 법로法老의 화禍가 이르게끔 하였으니, 우마주牛馬走21)의 처지에서는 만 번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애석할 것이 없는 만큼, 서산西山에 해가 기우는 나이의 얼굴 검은 한 노인22)이 비난을 받고 제방諸方의 비웃음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진 목숨이 스러지지 않고 여기에까지 굴러온 것은, 모두 좌하座下께서 관례를 뛰어넘는 자비로 비춰 주신 덕분이니, 그

010_0369_c_01L皆受此害而尊愛我太深故敢告以此
010_0369_c_02L見後即水火11) [90]

010_0369_c_03L

010_0369_c_04L上影波法老聖珪

010_0369_c_05L
客冬有直介而不修訊非但其行之迫
010_0369_c_06L亦以擺萬緣一親鳧趨矢于中而未
010_0369_c_07L今又爲寒疾所攻不食者數以是又未
010_0369_c_08L遂誠悚惶不可陳矣師主素是海肚
010_0369_c_09L應把下僧這等失禮之事付之於哂
010_0369_c_10L餘而區區之忱積稔尊顏在不遠而不
010_0369_c_11L得頂禮於守歲之後豈無愔愔者乎
010_0369_c_12L有自上而來者言頗有瘟氣侵人未審
010_0369_c_13L厥毒不及於淨界下役走之僧而涵養
010_0369_c_14L勝常否不任誠馳小僧氣質褊䮕
010_0369_c_15L又不力其於實地工夫無毫髮近似者
010_0369_c_16L內旣不明外致魔業之弄以至法老之
010_0369_c_17L在牛馬之走雖被萬12) [91] 是不堪惜
010_0369_c_18L而垂西一䃜顏見過與於諸方之目哂
010_0369_c_19L莫若無生之爲愈也然頑喘不滅而轉
010_0369_c_20L至斯者皆座下越例之悲照所燭其爲
010_0369_c_21L「岩」作「巖」{甲}「以」上有「不」{甲}「通」
010_0369_c_22L有無{甲}
「徤」作「健」{甲}「不參」無有{甲}
010_0369_c_23L「疾」作「病」{甲}「反」作「返」{甲}「謂」作
010_0369_c_24L「爲」{甲}
「如」作「加」{甲}「列」作「烈」{甲}
010_0369_c_25L「之」作「也」{甲}「事」作「死」{甲}

010_0370_a_01L음공陰功은 언어나 문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추위가 풀린 뒤에 명봉鳴鳳 등 지역으로 발길을 돌려 볼까도 합니다만, 얼굴을 익히 아는 자도 드문 데다가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알려질 만큼 이름도 나지 않아서 마치 멀리 고야姑射23)에 가는 것처럼 망연茫然하기만 합니다. 행여 대자대비하신 만 팔천 개의 손 중에서 한 손가락으로 인도해 주시는 은혜를 얻는다면, 이 몸이 난처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니, 오직 양찰하여 어여삐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 이만 줄이고 단지 스스로 보중保重하시기만을 축원합니다.
나운24) 장로에게 올린 글(上懶雲長老書)
음산한 장맛비가 독기를 내뿜는 것이 윤달부터 가을까지 이어져서 만정萬情이 고달픈 것을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염룡炎龍이 수레를 나누어 타고 떠나 산의 동쪽과 서쪽의 기후가 다르게 되었으니, 모르겠습니다만 그 고달픔이 보운도량普雲道場에는 미치지 않는 가운데 함양涵養하는 것이 평상시보다 낫지는 않으신지요. 저의 찬앙攅仰하는 사정私情은, 마치 굶주린 자가 먹을 것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마음먹기로는, 만약 보덕普德의 재석齋席을 마치면, 저의 발길이 신계神溪의 연월烟月을 다시 밟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추풍秋風이 쏴 불어오자 월越나라 새가 남쪽 지방의 가지를 생각하는 감흥이 곧바로 일어났으므로, 걸망을 메고 길을 떠나면서 구월 초에 신계에 가기로 다짐하고서는 여기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올 적에 우러러 진달한 말이 거꾸로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으니, 삼가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기사奇師의 재학才學이 매우 훌륭하여 곤산崑山의 기미氣味가 여기에 있으니, 저의 졸렬한 솜씨는 온윤溫潤을 잃어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를 연담 유일蓮潭有一 장로(蓮老)의 큰 풀무(大冶) 가운데로 보낸다면 연성連城25)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여 줄 것입니다.
청파26) 장로 혜원에게 올린 글(上靑坡長老惠苑書)
완영完營(全州)에서 예족禮足(예배)을 하고 물러나온 지가 흡사 어제 일 같은데, 손가락을 꼽아 보니 세월이 벌써 3년이나 흘렀습니다. 경앙景仰하는 저의 유유悠悠한 정성이야 자나 깨나 잊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한번 직접 찾아가 뵙지도 못했으니, 법계法界와 같은 드넓은 아량으로 혹 용서해 주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심정은 오장五臟이 달아오를 뿐 뭐라고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010_0370_a_01L陰功不可齒而錄也寒解後欲轉向鳴
010_0370_a_02L鳳等處而熟面者鮮矣更無名見知
010_0370_a_03L於彼處之人茫然若姑射之遠倘得大
010_0370_a_04L悲萬八手中一指之引則身之致
010_0370_a_05L在於難惟量之而怜之也餘只祝爲1)
010_0370_a_06L [92] 自珍焉

010_0370_a_07L

010_0370_a_08L上懶雲長老書

010_0370_a_09L
陰蜧流毒自閏跨秋萬情苦2) [93] 不可
010_0370_a_10L言而旣者然炎龍分轍山之東西有異
010_0370_a_11L則未審厥苦不及於普雲道場而涵養
010_0370_a_12L勝常否區區攅仰之私如飢者之不忘
010_0370_a_13L食也其初頭爲心若終普德齋席
010_0370_a_14L賤蹤當復神溪烟月矣秋風浙瀝越鳥
010_0370_a_15L南枝之思旋起挑包發步牢矢於九初
010_0370_a_16L而蹲此來時仰陳之辭返歸於烏有之
010_0370_a_17L伏罪奇師之才學甚多崑山之氣味
010_0370_a_18L在斯拙工之手喪溫潤必矣使送蓮
010_0370_a_19L老大冶中彰其連城之美也

010_0370_a_20L

010_0370_a_21L上靑坡長老惠苑

010_0370_a_22L
完營禮足而退怳如昨日3) [94] 則歲
010_0370_a_23L已三白矣悠悠景仰之誠雖托於窹寐
010_0370_a_24L一未得鳧趨面訊法界弘量其或見原
010_0370_a_25L而區區之忱蒼熱交煎無以爲辭

010_0370_b_01L양신陽神27)이 절서節序를 안찰按察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바람 기운이 아직도 쌀쌀한 이때에,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중을 통섭統攝하는 기체후氣體候가 진귀疹鬼에게 야유를 받지 않고 함양하는 것이 보통 때보다 나으신지요. 삼가 생각건대, 친히 화암도량華岩道場을 점검하며 부사의不思議 가운데 활계活計를 편안히 지으시리라고 여겨집니다.
소승小僧은 두류頭流에서 걸음을 옮겨 바닷가 절간에서 한 해를 보낸 뒤에, 황산黃山에서 하안거夏安居를 마치고 소백小白의 눈 속에서 좌선坐禪하였으며, 추위가 풀리기를 기다려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다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호서湖西로 내려가서는 또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 사이의 천신만고千辛萬苦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는데, 다행히도 은덕을 입어 목숨을 구제하였으니, 이는 불보살과 같은 자애로운 은혜이기에 앙모하며 축원하여 마지않습니다.
두류의 법로法老가 소마小魔의 소동에 휘둘려서 눈보라를 무릅쓰고 길을 떠난 것은 모두 소승 등이 불민不敏한 죄이니 또 무슨 말씀을 번거롭게 올리겠습니까마는, 가까이 있으면서 섭재攝齋하는 노고가 없지 않으실 것이니, 송구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영호 장로에게 올린 글(上影湖長老書)
요즈음 날씨가 싸늘한데, 모르겠습니다만 정양靜養하시는 기체후氣體候가 외마外魔의 야유를 받지 않고 삼상三常28)이 예전보다 나으신지요. 제가 사모하여 치달리면서 여현藜莧의 위장29)에 주름져 차곡차곡 쌓인 마음은 어쩌면 동해 바다에나 비유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해재解齋하고 나서 곧바로 헌병軒屏(상대방의 거소)의 아래에 직접 찾아가 뵙고 마치지 못한 인연을 다하려고 했지만 하루 이틀 미적거리는 사이에 별의별 질병의 공격을 교대로 받다 보니, 매양 움츠리고 물러나 몸을 숨길 것을 생각하여 황양黃楊이 윤년의 액운을 만난 듯하고,30) 요송搖松의 여사餘思31)가 다시없으니 한단학보邯鄲學步와 같습니다.32) 그래서 처음에 먹었던 마음을 이루지 못했으니, 삼가 생각건대 마음속으로 비난하고 입으로 꾸짖는 것이 적지 않으시리라고 여겨집니다.
하월霞月은 학기學機가 많이 있는데, 연로蓮老가 강연講筵을 머지않아 중지할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그를 권면해 보내는 데 힘을 들여서 본원本願을 이루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9월 초로 일정을 잡고 있습니다. 병중에 있는 몸이라 남의 손을 빌리다 보니,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010_0370_b_01L神按節已久而風色猶浙瀝未審攝衆
010_0370_b_02L氣體候不爲疹鬼所揶揄而涵養勝常
010_0370_b_03L伏想親點華4) [95] 道場穩作不思議
010_0370_b_04L中活計矣小僧自頭流發步歷歲于海
010_0370_b_05L結夏于黃山坐雪于小5) [96] 遲其寒
010_0370_b_06L解而入金剛待其雨收而下湖西又過
010_0370_b_07L一歲則其間萬辛千苦非可提而旣
010_0370_b_08L然賴而濟命是慈光府惠攅祝萬萬
010_0370_b_09L頭流法老爲小魔所撓冒雪作行
010_0370_b_10L是小僧等不敏之罪復何煩陳然在近
010_0370_b_11L不無攝齋之勞不任悚仄

010_0370_b_12L

010_0370_b_13L上影湖長老書

010_0370_b_14L
即日凄淸未審靜養氣體候不爲外魔
010_0370_b_15L所挷揄而三常朕昔否區區嚮徃之思
010_0370_b_16L襞積藜莧之6) [97] 諸量東海矣某解
010_0370_b_17L齋後即欲鳧趨軒屏之下以盡未了之
010_0370_b_18L而一兩支離百疾交攻每思退縮
010_0370_b_19L藏身若黃7) [98] 8) [99] 更無搖松餘思
010_0370_b_20L如邯鄲學步由茲未遂初9) [100] 伏想心
010_0370_b_21L非口誅不些矣霞月多有學機而蓮老
010_0370_b_22L之輟講筵不久伏望着力勸送以遂本
010_0370_b_23L願也笻之南以九初爲期耳餘帶病倩
010_0370_b_24L謹不備伏惟

010_0370_c_01L
해봉 법로 유기33)에게 올린 글(上海峰法老有機書)
요즈음 바람 기운이 매서운데,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대법왕大法王께서는 신우新寓 중의 광경光景(體候)이 한질寒疾에 기만을 당하지 않고 신요申夭함34)이 평소보다 더 나으신지요. 사모하며 치달리는 정성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소승小僧은 기질氣質이 치우치고 잡스러우며 학해學解에도 공력을 들이지 않아서, 남쪽 북쪽으로 떠돌아다니며 쓸데없이 고생만 하는 가운데 견마犬馬의 나이가 어느덧 육갑六甲의 고개에 올랐습니다. 삼가 만사萬事를 생각건대, 황발黃髮 7척尺의 무상한 이 몸으로서는 만 가지 인연을 모두 떨쳐 버리고 가산伽山의 기슭에다 띳집을 하나 엮어 놓고는 매일 함장凾丈(講席)의 아래에 왕래하면서 미처 듣지 못한 여론餘論을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에 도착해 보니 하늘이 원로元老를 오래 있게 하지 않고 마군魔軍이 그 사이에 방해를 한 나머지 마침내 법가法駕를 끌고 왼쪽으로 가시게 하고 말았으므로, 창연悵然히 동쪽 하늘을 바라보기만 할 뿐 유유히 사모하며 치달리는 정성이 낙강洛江과 함께 길기만 합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쓰임이 되려고 한다.”35)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돌아보면 사람들 모두가 소승을 비웃고 소승을 헐뜯기만 하는데, 오직 스승님께서 지나칠 정도로 저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면서 엄하게 타이르고 후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도 귀와 눈이 번쩍 뜨일 터인데, 소승이 금수禽獸가 아니니 어찌 마음속으로 결초보은結草報恩하려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삼가 흠탄欽歎하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연말이 멀지 않은 이때에 삼가 바라옵건대 법가께서는 모든 미망迷妄을 복으로 바꾸어 더욱 보중하며 새해를 맞으시고, 솟구치는 샘물을 속히 뿌려 이 목마름을 해소해 주소서.
경파 장로 유백의 별세를 위문한 글(問鏡波長老有伯揖世書)
늦가을에 발이 부르터서 누워 있는 중에, 어떤 중이 지나가다가 말로 전하기를 “경파鏡波가 세상을 떠났다.”라고 하기에,

010_0370_c_01L上海峰法老有機

010_0370_c_02L
即日風色栗冽伏未審大法王新寓中
010_0370_c_03L光景不爲寒疾所欺而申夭朕常乎
010_0370_c_04L不任誠馳小僧氣質褊䮕學解不力
010_0370_c_05L之南之北空費生受而犬馬之齒
010_0370_c_06L登六甲嶺矣伏念萬事黃髮七尺子虛
010_0370_c_07L罷脫萬緣結一茅於伽山之麓逐日徃
010_0370_c_08L來於凾丈之下欲聽所未聞之餘論
010_0370_c_09L來到此山則天不慗遺魔沮其間
010_0370_c_10L使法駕引而左悵望東天悠悠嚮徃之
010_0370_c_11L與洛江俱長古人云士爲知己者
010_0370_c_12L環顧宇內人皆哂小僧毁小僧
010_0370_c_13L師主知之太過愛之太過嚴厲之慰諭
010_0370_c_14L稠濃之恩賜雖盲聾乎知者亦足於駭
010_0370_c_15L耳目小僧非獸非禽豈無殞結於中乎
010_0370_c_16L伏不勝鹽歎守歲不遠伏願法駕爲福
010_0370_c_17L群迷珍重受新而速灑湧泉以解此渴
010_0370_c_18L

010_0370_c_19L

010_0370_c_20L問鏡波長老有伯揖世書

010_0370_c_21L
秋抄趼臥中有過僧舌傳鏡波無常
010_0370_c_22L「三有」無有{甲}「悶」作「㦖」{甲}「指」作
010_0370_c_23L「脂」{甲}
「岩」作「嚴」{甲}「伯」作「白」{甲}
010_0370_c_24L「膓」作「腸」{甲}「揚」作「楊」{甲}「閨」作
010_0370_c_25L「閏」{甲}
「心」作「志」{甲}

010_0371_a_01L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아서 눈으로 직접 보았느냐고 힐문하였더니, 길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라고 하였으므로,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두류頭流에서 직접 소식이 오기만을 줄곧 기다렸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여쯤 지나서 확실한 소식이 부고訃告와 함께 직지直指에서 왔기에 배곡拜哭을 하고 열어 봤더니, 8월 24일이 바로 별세한 날이었습니다. 아, 애통합니다. 법우法宇의 동량棟梁이 부러지고 선정禪庭의 형장荊杖이 꺾였습니다. 이렇게 빨리 뺏어 가다니, 그 애통함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 기질氣質을 보면 경견硬堅하였고 음운音韵을 보면 상랑詳朗하였으므로, 법로法老의 말후사末後事를 마음속으로 믿고 그에게 기대하였는데, 건강한 자는 죽고 병든 자는 살아남으며, 청수淸瘦한 자는 먼저 떠나고 치비痴肥한 자가 아직 세상에 있을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어쩌면 천태산天台山 회향사回向寺36)에 일수一數37)가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극락계極樂界 구련대九蓮臺38)에 일품一品이 비어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저는 도대체 그 원인을 알 수가 없는데, 다만 따라갈 길이 없기에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 따름입니다.
저의 절실한 심정으로는 지금이라도 화욕火浴을 행하는 곳으로 지팡이를 돌려서 마음속의 슬픔을 다 쏟고 싶습니다마는, 금강산의 여정旅程이 벌써 절반에 접어든 데다가 이 몸의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지금 만약 중도에 그만둔다면 이생에서는 다시 기회를 얻기 어렵기에, 부득이 눈이 녹은 뒤에 다시 출발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십재十齋를 이미 선처善處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문하門下에서 우제憂制(喪制)를 지키는 자는 몇 명이며 거상居喪하는 중에 모두 탈은 없는지 모르겠기에, 마음만 더욱 절실하게 그곳을 향해 치달립니다. 지팡이를 돌리는 시기는 다음 가을로 정하였는데, 그때 손을 부여잡고 속마음을 털어놓겠습니다.
중봉 태여에게 준 글(與中峰泰如書)
벽호闢戶의 달39)에 10월 초에 쓰신 글을 접수하였습니다. 미미娓娓(滔滔)히 펼쳐지는 백 가지 말씀이 실로 면담面談하는 듯하여, 5백여 리에 걸쳐 중첩한 산과 물들이 털끝만큼도 그 사이에 가로막히지 않았으니, “속마음을 서로 비추어 보면 천 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자리에 있는 것(肝膽相照 千里一席)”이라는 말이 정말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베틀의 북보다도 세월의 화살이 빨리 흘러서 또 상수相守40)를 보내게 되었는데, 모르겠습니다만

010_0371_a_01L蹷然起坐詰其親目則答以聽拾路說
010_0371_a_02L疑信將半長待頭流之直笻矣又過一
010_0371_a_03L月强而的信帶訃書而自直指來
010_0371_a_04L哭而啓則八月二十四日乃辭世之辰
010_0371_a_05L嗚呼痛哉法宇棟折禪庭荊摧速奪
010_0371_a_06L之痛其可勝言視其氣質硬堅音韵
010_0371_a_07L1) [101] 法老末後事心信而擬之誰知
010_0371_a_08L健者沒而病者存淸瘦者先足而痴
010_0371_a_09L肥者尙世意者天台山回向寺小一
010_0371_a_10L數而然耶極樂界九蓮臺空一品而然
010_0371_a_11L吾不知端倪而但無從之涕漱漱
010_0371_a_12L下也某切欲旋向北之笻於火浴之2) [102]
010_0371_a_13L以盡在心之悲而金剛已半此身之病
010_0371_a_14L轉劇今若中3) [103] 則此生難再故不得
010_0371_a_15L雪解後更發前步耳承十齋旣已
010_0371_a_16L善處云4) [104] 門下守憂制者幾數
010_0371_a_17L苫中皆得免恙否益切神馳回笻定
010_0371_a_18L於來秋其時當握攄耳

010_0371_a_19L

010_0371_a_20L與中峰泰如

010_0371_a_21L
闢戶月收十月初書娓娓百言正如
010_0371_a_22L面談五百餘里重山複水不一毫見
010_0371_a_23L隔於其間所謂肝膽相照千里一席
010_0371_a_24L信不誣矣梭輕年矢又經相守未諦新

010_0371_b_01L신당新幢의 법미法味가 걸망을 메고 행각하던 때보다 훨씬 낫지 않으신지요. 경하慶賀하는 나의 심정을 언어와 문자로 죄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금강산 여행은 오락가락 지지부진한 채 가는 곳마다 머물러 있는 것이 바로 마馬 복파伏波가 경耿 장군將軍에게 비웃음을 받은 것41)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영서靈犀처럼 서로 잊지 못하는 마음42)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절실해지니, 추위가 풀린 뒤에는 다시 이전의 발걸음을 이어 갈 생각입니다.
우리 부처님이 말씀하신 “일체 유위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43)라는 구절을 비록 많은 세월 동안 가슴속에 새기면서도 철저하게 알지 못하였는데, 지금 추월秋月이 이지러지고 경파鏡波가 떠나간 것을 보건대 대성大聖의 가르침이 지극하고 지극합니다.
그러나 풀이 벌써 한 해를 묵도록 아직까지 포복匍匐의 예禮를 늦추고 있어서44) 눈물이 옷소매를 가득 적시는데도 일행을 따라서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그저 한스러울 뿐입니다. 법로法老가 작년에 변괴變恠를 당한 뒤를 이어 또 이렇게 두 분의 상喪을 당하는 등 모년暮年의 경색景色이 좋지 못한 것이 이와 같으니, 우마주牛馬走45)의 처지에서 가슴에 걸린 생각이 응당 어떠하겠습니까. 이는 필시 하늘이 우리 문호門戶를 쇠하게 하려는 것이겠습니다만, 그래도 믿고 의지하며 위로 받을 수 있는 분으로는 오직 우리 어르신이 계실 뿐이니, 있는 힘껏 종문宗門을 붙들어 일으켜서 멀리 있는 사람의 소망에 부응해 주셨으면 합니다.
원 상국의 죽음을 애도하며 올린 글(上元相國吊書)
지난 양월陽月(10월) 그믐날 밤에 향을 사르며 홀로 앉아서 잠깐 조는 사이에 홀연히 합하閤下와 용문龍門의 산광수색山光水色한 가운데에서 회동하여 담소하고 환락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정한 모습이 평소와 같으면서도 오직 국은國恩을 갚지 못한 일을 우려하시는 마음이 적지 않았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를, 꿈이 만약 허망하지 않다면 만나서 이야기할 날이 멀지 않으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 승려 한 사람이 완부完府(全州)에서 와서 전하기를 “이동泥洞 상국相國이 질환으로 별세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지난번의 꿈이 과연 사실이었단 말입니까. 장주莊周가 말하기를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던 자도 다음날 낮이 되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다.”46)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꿈속에서 합하와 함께 다정하게 얘기하며 단란하게 지낸 것이,

010_0371_b_01L幢法味大勝於5) [105] 包擦挎之時否
010_0371_b_02L抃之私非齒錄可旣拙金剛一笻
010_0371_b_03L遲婓婓到處逗6) [106] 正如馬伏波取笑
010_0371_b_04L於耿將軍然耿耿靈犀愈久愈丹
010_0371_b_05L解後更發前步矣我佛有言一切有
010_0371_b_06L爲法如夢幻泡影雖服膺多積年7) [107]
010_0371_b_07L而亦未能徹髓之知今見秋月之缺
010_0371_b_08L波之逝大聖之敎至哉至哉然宿草
010_0371_b_09L已經而尙嵇 [13] 匍匐之禮有淚盈裾
010_0371_b_10L不同隨其行爲恨耳法老昨年變恠後
010_0371_b_11L又見此兩喪暮年景色不佳者如此
010_0371_b_12L牛馬之走懸念當如何哉此必天衰吾
010_0371_b_13L門耶然賴而寛懷者獨吾丈在願盡
010_0371_b_14L力扶宗以副遠望也

010_0371_b_15L

010_0371_b_16L上元相國吊書

010_0371_b_17L
客陽月晦夜燒香獨坐因以8) [108]
010_0371_b_18L與閤下會於龍門山光水9) [109] 談笑
010_0371_b_19L歡娛欵若平昔唯以未報國恩憂慮
010_0371_b_20L不些覺則夢也窃自念夢若非虛
010_0371_b_21L話果不遠也及過十日一僧自完府來
010_0371_b_22L傳云泥洞相國以疾捐舘嗚呼宿昔
010_0371_b_23L之夢其果眞耶莊周云夢飮酒者
010_0371_b_24L而哭泣然則夢與閤下欵語團欒者

010_0371_c_01L어쩌면 이처럼 영원히 이별하여 원로元老를 다시는 뵙지 못하는 무궁한 슬픔을 예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합하의 연세는 이제 겨우 54세입니다. 외방에 목민관으로 나가면 호남 백성들이 그 청렴함을 칭송하였고, 조정에 들어와 백관을 통솔하면 군상君上이 그 충성심을 가상히 여겼으므로, 한없는 수복壽福을 향유하시리라고 삼가 생각하였는데, 어찌하여 하늘이 원로를 남겨 두지 않아 이 기막힌 지경에 이르게 하였단 말입니까.
아, 기미箕尾를 걸터타고 앉아 상제上帝의 좌우에서 보좌하시려는 것입니까.47) 학의 등에 올라타고 방호方壺48)의 연월烟月 속에서 소요逍遙하시려는 것입니까. 막막하고 아득해서 어찌된 연고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 구원九原에서는 다시 일으키기 어려워 지음知音이 아득히 멀어졌으니, 의리상 당연히 조문하러 가야 하겠으나, 병으로 분곡奔哭하지 못한 채 천 리 멀리에서 슬픔을 머금고는 단지 다과茶菓로 애통한 심정을 부칠 따름입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합하께서 일찍이 영윤令胤을 칭찬하며 식우食牛의 기상이 있다고 하였으니,49) 만약 이 병에서 낫기만 하면 지팡이를 짚고 한번 찾아가서 현윤賢胤에게 조문하고 또 합하의 묘소에 곡을 한 뒤에야 비로소 하성下誠의 비통한 마음을 다할 수 있겠습니다.
아, 부생浮生의 한 세상이 모두 몽환夢幻이라면, 소승의 슬픈 꿈속의 일인 이것도 단지 꿈일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꿈속에 있으면서도 이것이 허망한 줄 알지 못하고서 사실이라고 말한다면, 지금의 슬픔이 어찌 또한 꿈속에서 실제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가슴이 아픕니다.
이 운봉 사또에게 올린 글(上李雲峰使道書)
작일昨日에 수레를 타고 떠나실 적에 비가 와서 땅이 많이 젖었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울퉁불퉁한 돌길을 어떻게 잘 달려서 돌아가셨으며, 그 뒤에 주무시고 드시는 것이

010_0371_c_01L豈非有此永隔之別而慗遺無涯之痛者
010_0371_c_02L嗚呼閤下之年五十有四矣出牧
010_0371_c_03L則湖民頌其淸入緫則君上嘉其忠
010_0371_c_04L以爲當享無彊之壽福矣何其天不慗
010_0371_c_05L至於斯極嗚呼其跨箕尾羽儀於
010_0371_c_06L上帝之左右耶其乘鶴背逍遙於方壺
010_0371_c_07L之烟月耶漠漠乎冥冥乎不知其端倪
010_0371_c_08L嗚呼九原難作知音冥邈義當徃
010_0371_c_09L而病未能奔哭含悽千里只以茶
010_0371_c_10L10) [110] 寓哀而已雖然閤下甞讃令胤
010_0371_c_11L食牛之氣云倘此病蘇朗11) [111] 扶杖一
010_0371_c_12L吊其賢胤又哭閤下之墓然後
010_0371_c_13L盡下誠之所痛也浮生一世都是
010_0371_c_14L夢幻則小僧之悲夢事是亦夢而已
010_0371_c_15L然在夢中不知是虛而謂之實則今之
010_0371_c_16L12) [112] 非夢中之實悲乎嗚呼痛哉

010_0371_c_17L

010_0371_c_18L上李雲峰13)使道 [113]

010_0371_c_19L
大昨華輿之發路也多有雨漸未審嶢
010_0371_c_20L角石路何以堪馳而返駕後衾枕匙著
010_0371_c_21L「詳」作「祥」{甲}「墟」下有「而」{甲}「轍」
010_0371_c_22L作「輟」{甲}
「知」作「諦」{甲}「桃」作「挑」{甲}
010_0371_c_23L「留」作「遛」{甲}「素」作「所」{甲}「暇」作
010_0371_c_24L「假」{甲}
「之」無有{甲}「菓」作「果」{甲}
010_0371_c_25L「則」無有{甲}
「亦」無有{甲}「使道」無有{甲}

010_0372_a_01L모두 평소보다 나으신지요. 제가 우러러 흠모하는 정성은 눈먼 자가 눈 뜨기를 잊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승은 본디 포류蒲柳의 잔질殘質50)로서 우연히 아랫자리(下風)에서 뵙고 예배 드릴 수 있었는데, 아무도 빠뜨리지 않는 박애博愛의 도를 베풀어 주고 남다르게 대하는 안색을 보여 주셨으며, 미천한 저를 용납하여 말씀도 하고 당부도 해 주셨습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땅속의 벌레가 구천九天의 선곡仙鵠을 만난 것과 같기에, 하직하고 돌아온 뒤로 수사洙泗의 지란芝蘭 향기와 부강涪江의 달밤의 분위기51)가 아직도 심안心眼 사이에 아련하여 시간이 갈수록 더욱 새로워지니, 본래 신교神交가 있고 숙연宿緣이 끊어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까. 떨리면서도 환호하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청매집靑梅集』52)을 어렵사리 찾아 튼튼하게 묶어 올립니다. 오직 기일을 늦춰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격식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또(又)
대감님이 행차하셨을 적에 삼가 장하아帳下兒53)를 통하여, 사또께서 어버이를 모시고 시선視膳54)하는 모습(光景)과, 병권兵權을 쥐고 송사訟事를 처리하는 제반諸般 일에 달리 방해를 받는 일 없이 크게 신복神福을 향유하신다는 것을 알고는, 서쪽 하늘을 향해 합장하고 경하하며 흠모하는 지극한 심정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근래에 민요民謠를 들어 보건대, 한 경내의 기아饑餓에 시달리는 무리가 죽어서 구학溝壑을 메우지 않고 모두 보리가 누렇게 익는 것을 보게 된 것은 바로 우리 원님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계책 덕분이요, 들에 버려진 전답田畓이 없고 시장에 도박賭愽이 근절된 것은 또한 관가官家가 청렴하고 공명한 덕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이 찬양하는 것이 이와 같고 보면 임금님의 포상褒賞하는 교서敎書가 응당 내려올 것이기에, 미리 축하드리며 환호하는 바입니다.
소승의 호흡이 가쁜 증세가 무더운 계절을 만나면 조금 완화되기는 하나, 사지四肢에 힘이 빠지면서 나른해지는 고민苦悶이 또 이전보다 갑절이나 되니, 어느 때에나 고통이 없는 화욕삼매火浴三昧에 들어갈 수 있을는지요.
『능엄경楞嚴經』의 주요 내용을 초록鈔錄해서 보내 드리려고 하였으나, 옆에 있는 승려가 책자冊子를 가지고 또 출타중이니,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기록해서 올리겠습니다. 「사비어록四碑語錄」55)은 베끼고 싶어 하는 자가 있으니,

010_0372_a_01L俱得勝常乎區區攅仰之誠如盲者之
010_0372_a_02L不忘視也小僧素是蒲柳1) [114] 偶得
010_0372_a_03L瞻禮下風施愽愛不遺之道賜雅顏非
010_0372_a_04L常之色攝受微物載語載囑比如壤
010_0372_a_05L接得九天仙鵠拜辭歸來洙泗芝
010_0372_a_06L蘭之香涪江夜月之色猶依依於心眼
010_0372_a_07L愈久而愈新神交有素宿緣不斷
010_0372_a_08L而然耶不任兢2) [115] 靑梅集艱尋牢絆
010_0372_a_09L以上惟以緩期爲罪耳餘謹不備
010_0372_a_10L

010_0372_a_11L

010_0372_a_12L

010_0372_a_13L
大監主行次時敬因帳下兒伏審省下
010_0372_a_14L視膳光景與攬戈聽訟諸節無他竪撓
010_0372_a_15L而不享神福西望叉賀不任欽鹽 [14] 之至
010_0372_a_16L近聞民謠一境貧餓之流不塡溝壑
010_0372_a_17L而俱見麥黃者是我3) [116] 經濟之策
010_0372_a_18L無荒田市絕賭愽亦是官家廉明之致
010_0372_a_19L則民之舌艶如此天之綸褒應降
010_0372_a_20L預賀萬萬小僧喘急逢炎則雖4) [117]
010_0372_a_21L而四肢忍𤁧苦悶又倍於前何時得入
010_0372_a_22L順過之火浴三昧耶稜嚴梵語關節
010_0372_a_23L5) [118] 而傍僧册6) [119] 亦出他遲待
010_0372_a_24L其還當錄上耳四碑語錄有欲謄者

010_0372_b_01L잘못된 곳에 대하여 크게 교정을 가해서 내려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청매집靑梅集』은 이제야 겨우 봉해 올리니, 열람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또(又)
하직 인사를 올리고 떠나온 지 벌써 날이 많이 지났는데,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원님께서는 백성을 은택恩澤으로 보살피고 공무公務를 행하는 여가에 현가絃歌를 즐기며 날로 달로 편안하게 큰 복을 누리고 계시는지요. 구구하게 축원하는 정성은, 칠원漆園의 나비에 의탁하여, 담화를 나누던 어목헌禦牧軒 주위를 항상 맴돌고 있습니다.56)
소승은 병든 몸을 이끌고 돌아온 뒤로 한두 달 동안이나 쓰러져 누워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머리를 쳐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그저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연히 흙과 쓰레기(土芥)처럼 미천한 소승에게 하늘 같으신 분이 신분을 뛰어넘는 만남을 허여하시어, 은혜를 두텁게 내려 주고 위로해 주며 엄하게 타일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문장文章의 박식한 이해와 빙벽氷蘗의 드높은 절조에 대해서야, 소승이 감히 그 변두리도 엿볼 수 없겠지만, 심심산골 속의 미물微物도 지각知覺은 지니고 있으니, 어찌 운결殞結57)의 감회가 없겠습니까.
나의 원고를 들여보내라고 하교下敎하셨습니다만, 한 번만 들춰 보면 필시 소순蔬筍58)이 눈 안에 가득할 터이니, 반마班馬를 요리하는 오봉루五鳳樓의 밝은 감식鑑識에 눈여겨볼 만한 것은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59) 그러나 부탁하신 말씀이 산처럼 무거우니 어찌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다만 반생半生 동안 예배하고 염불하는 여가에 사람들에게 이끌려서 풀벌레처럼 울어 본 시문詩文이 조금 있긴 하였으나, 모아서 엮는 일에는 게으른 나머지 마치 장풍長風에 끊어진 구름장처럼 이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60)에 부쳐지고 말았습니다.
제자 아이(小足)가 조금 자라서 대충 시豕 자와 해亥 자 정도는 구분할 줄을 알기에,61) 옆에서 한두 게송偈頌을 수습해서 얻은 것이 작은 두루마리를 이루었는데, 산문散文은 상자 속의 잡동사니 원고 속에 흩어져 있어서 지금 추려 내고 있기 때문에, 단지 게송 약간만 간추려 올리려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또(又)
큰절(大寺)의 서기승書記僧이 돌아오는 편에 삼가 하사하신 서한을 받아 보고는, 사또께서 무더운 이 계절에 어버이를 모시고

010_0372_b_01L就其差誤處大加斥正而下擲也靑梅
010_0372_b_02L7) [120] 封上俯垂採覽焉

010_0372_b_03L

010_0372_b_04L

010_0372_b_05L
拜辭日已有矣伏未審尊主庇民光景
010_0372_b_06L與務外絃歌便日康月穩大享嘏慶乎
010_0372_b_07L區區攅祝之誠托之於柒園蝶長繞於
010_0372_b_08L禦牧軒拜話之地小僧曳疾歸來委頓
010_0372_b_09L一兩月方始擧頭然第有自幸者偶以
010_0372_b_10L土芥之賤天與不次之逢加以恩賜稠
010_0372_b_11L慰諭嚴厲文章愽解氷蘗高節
010_0372_b_12L不敢窺其涯涘而山竇微物亦有知覺
010_0372_b_13L豈無殞結之感乎下敎私蒿一開卷
010_0372_b_14L必蔬8) [121] 滿目小無登覽於濃煎班馬之
010_0372_b_15L五鳳樓明鑑而盛囑如山豈敢違命
010_0372_b_16L第半生禮念暇爲人所牽小有草虫之
010_0372_b_17L懶於收緝如長風斷雲業已付之
010_0372_b_18L於無何有之鄕矣小足稍長粗卞豕亥
010_0372_b_19L從傍拾得一二偈則成小卷書則散在
010_0372_b_20L匣中雌蒿方事捃拾故只以偈牢絆
010_0372_b_21L罪悚耳

010_0372_b_22L

010_0372_b_23L

010_0372_b_24L
大寺記僧回伏承下賜書謹審蒸溽

010_0372_c_01L시선視膳(봉양)하시는 광경光景(體候)과, 공용公冗62)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 없이 거의 모두 평소보다 낫게 지내신다는 것과, 조정의 포상褒賞이 또 실제의 덕에 걸맞게 내려왔다는 것을 삼가 알고서, 서쪽을 향해 재배再拜하며 그지없이 흠탄欽歎하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경직의방敬直義方63)으로 안팎이 서로 찬조贊助하여 주일主一64)과 함양涵養65)의 공효를 거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미루어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 수가 있었겠습니까.
소승小僧은 기질氣質이 편벽되고 조잡한데다 품행에도 힘을 쓰지 않아서, 반생半生 동안 살아온 삶이 늘 혼마昏魔와 산마散魔 속에 빠져 있었는데, 지금은 또 견마犬馬의 나이가 벌써 육갑六甲(육순)의 고개를 넘어, 풍주병風注病과 담천병痰喘病의 증세가 번갈아 더욱 심하게 침노하는 등 조금도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저 빨리 화욕火浴(茶毗)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보내 주신 『심경결해心經結解』를 몇 번이나 상세히 음미하였는데, 언구言句가 모두 성경誠敬으로 함양涵養한 가운데에서 나온 소식이었으므로, 음영일향吟咏一餉66)하고 군습아후捃拾牙後67)하며 철집시문綴緝時文68)하여 공부하는 저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멀리 삼사三舍를 물러나 줄 정도였으니,69) 정말 황돈篁墩70)의 소疏라 할 만한 것으로서, 배를 지탱하는 상앗대요 밥을 떠먹는 숟가락이라고 할 것이었습니다.
합하閤下는 폄직貶職되었을 때에 미련을 두거나 애석해하는 태도가 조금도 없었으니, 이 모두가 원원源源한 기상氣象이요 맥맥脈脈히 이루어진 공부工夫의 결과로서, 쌓으면 구산丘山이 되고 쏟아 내면 강하江河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사거달거舍去達去71)의 경지 속에서 나온 것이니, 그 누가 여기에 발돋움하여 미칠 수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귀한 이 부채로 말하면, 본래 남훈南薰의 전각72) 위의 바람을 받들어 드날려서 저 백성들을 위로해 주시던 물건인데, 산골의 미천한 이 몸까지도 남은 바람결에 몸을 씻게 되었으니 그지없이 춤추며 뛰고 싶은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사비어록四碑語錄」은 먼 데 있던 중이 이제 돌아가려 하는데 반절도 베끼지 못하였으니, 만약 두루 한 번 열람하셨으면 돌려주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소승이 이 산에 있은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가을철 서늘한 날씨가 돌아오면 다른 산의 연월烟月에 바릿대를 던져 볼까 하기에 미리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010_0372_c_01L下視膳光景不爲公冗所奪而率皆
010_0372_c_02L勝常朝端褒▼(厾-去*言)亦稱實德而降西望
010_0372_c_03L再拜不任欽塩之至若非敬直義方內
010_0372_c_04L外相資主一涵養之致曷能持 [15] 己及物
010_0372_c_05L之盛耶小僧氣質褊䮕行又不力
010_0372_c_06L生云爲長在昏散二魔之中而今又犬
010_0372_c_07L馬之齒9) [122] 六甲嶺矣風注痰喘
010_0372_c_08L戰益甚小無生況曉夕所思只是速
010_0372_c_09L火浴而已下示心經結解詳味數過了
010_0372_c_10L言句皆自誠敬涵養中做出底消息
010_0372_c_11L他吟咏一餉捃拾牙後綴緝時文
010_0372_c_12L爲學者相去遠辟三舍矣可謂墩篁 [16]
010_0372_c_13L撑舡有蒿喫飯有匙者也閤下於
010_0372_c_14L貶時小無顧戀憂惜之態此皆源源氣
010_0372_c_15L脉脉工夫蓄則丘山瀉則江河
010_0372_c_16L自舍去達去之中孰能趾及寶箑素是
010_0372_c_17L奉揚南薰殿上風慰彼黎10) [123] 之物
010_0372_c_18L竇麋蹤亦浴餘颷不任舞蹈之至
010_0372_c_19L碑語錄遠僧欲歸而半謄未了若考
010_0372_c_20L覽周環則下擲企望小僧在此山已久
010_0372_c_21L若秋凉則欲擲鉢他岑烟月故預告耳

010_0372_c_22L「賤」作「殘」{甲}「忭」作「抃」{甲}「侯」作
010_0372_c_23L「候」{甲}
「小」作「少」{甲}「鈔」作「抄」{甲}
010_0372_c_24L「字」作「子」{甲}
「僅」下有「得」{甲}「荀」作
010_0372_c_25L「筍」{甲}
「踰」作「登」{甲}「庶」作「度」{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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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又)
저번에 답장을 받아 보고서, 삼가 어버이를 시봉侍奉하시는 체후體候를 잘 알았습니다. 대감님의 환후患候가 매우 위중危重하여 걱정되는 마음이 적지 않았는데, 곧바로 나으셔서 다시 약을 쓰지 않게 된 것은, 분명히 사또님의 뛰어난 효심이 하늘을 받치고 땅을 두를 만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옛날의 유이행庾異行73)이라도 어떻게 이보다 더하겠습니까. 그지없이 흠탄欽歎하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소승이 글을 지어서 직접 찾아가 뵙지 못한 죄를 고백하려 하였으나, 소승 역시 비질鼻疾로 쓰러져 누워 있었던 탓으로 정성을 바치지 못한 채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지체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다스림을 받는 위치에 있는 자의 도리이겠습니까.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요즈음 가을철에 들어섰다고는 해도 무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데, 모르겠습니다만 근래에 시선視膳하시는 잠자리와 음식에 있어서 모두 병근病根을 완전히 뽑아 버리고 예전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거하시는지요. 치달리는 정성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정문일침頂門一針의 가르침을 내리신 것도 보잘것없는 죽반승粥飯僧74)이 헤아릴 수 있는 바가 결코 아닌데, 하물며 유불儒佛의 시비是非에 관한 일이겠습니까. 이른바 포고布鼓를 쳐서 뇌문雷門에 견주는 격75)이요, 절름발이 나귀를 달려서 하늘을 나는 용에 대적하는 격이니, 감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소승이 거하는 곳이 영남嶺南과 호남湖南 사이에 있어서 분요紛懮가 매우 많기 때문에 조용하고 외진 곳을 찾아가려고 하다가, 지극한 덕화德化에 감화된 나머지 다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떠나려고 마음먹은 죄가 너무나도 설만褻慢하게 모독冒瀆한 혐의가 있어서 엎드려 탄식하여 마지않고 있었는데, 귀한 부채를 선물하며 우승愚僧을 지극히 총애하시는 것이 두 번이나 이르렀으니, 삼가 운결殞結76)의 감회가 더해집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난 부채를 주시고 뒤에는 둥근 부채를 주시어, 소승으로 하여금 규구䂓矩77)를 깊이 본받아 행하게 해 주셨으니, 정말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민 판서에게 올린 글(上閔判書)
격식은 생략하옵고, 죄지은 소승은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
연전에 제자 아이(賤足)가 돌아오는 편에, 삼가 여강驪江(驪州)의 장령掌令 나리가 병환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 애통합니다. 어두운 길에 촛불이 꺼졌으니 공문孔門은 누가 인도한단 말입니까. 학문의 바다에 배가 침몰하였으니 성인聖人의 언덕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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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拜下覆敎謹伏審侍屛裡光景以大
010_0373_a_03L監主患候劇重憂慮不些旋復勿藥
010_0373_a_04L此必是使道主拔例之孝柱天匝地之
010_0373_a_05L雖古之庾異行何以加乎不任欽
010_0373_a_06L塩之至擬欲作書以伸未能鳧趨之罪
010_0373_a_07L而小僧亦爲鼻疾所委頓未能遂誠
010_0373_a_08L迤邐至於此久此豈在治下之道乎
010_0373_a_09L仄悚仄即日雖云秋人暑炎益亢
010_0373_a_10L審邇來視膳衾枕匙筯悉拔病柱而燕
010_0373_a_11L申勝昔乎難任誠馳頂門砭針之敎
010_0373_a_12L決非么麽粥飯僧所可擬況儒佛是非
010_0373_a_13L所謂擊皮 [17] 鼓擬雷門走蹇驢敵飛龍
010_0373_a_14L不敢當不敢當小僧所㞐處間於嶺
010_0373_a_15L甚多紛懮故欲向靜僻處還感至
010_0373_a_16L化而更蹲初頭發意之罪極涉1) [124]
010_0373_a_17L伏歎無地寶箑之賜至寵愚僧至於
010_0373_a_18L兩度伏增殞結之感然初方後圓
010_0373_a_19L使小僧深則䂓矩而行多謝多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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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73_a_21L上閔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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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罪小僧頓首年昨賤足還伏承
010_0373_a_23L驪江掌令進賜主以疾捐舘嗚呼痛哉
010_0373_a_24L昏路燭滅孔門誰導學海舟沉聖岸

010_0373_b_01L누가 보내 준단 말입니까. 생각이 이에 이르고 보면, 비록 멀리에서 그 소식을 알았어도, 우승愚僧의 뒤따르지 못하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하물며 대감님께서는 우애友愛가 남다르신 중에 하늘이 사문斯文을 망치는 일을 또 눈으로 보셨음이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이러한 경계境界를 당하여서는 오장五臟이 끓어오르면서 어떻게 마음을 다잡지 못하시리라고 여겨집니다.
소승이 비록 병중病中에 있다 하더라도, 즉시 지팡이를 짚고 가서 애곡哀哭하고 싶었습니다만, 은사恩師가 또 서방정토西方淨土로 돌아가시어 화욕火浴과 설재設齋 등의 일에 골몰하다 보니, 소족小足(문도)을 대신 보내어 초상初喪을 조문弔問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단지 해송海松 몇 승升과 규란虬卵 열 관串으로 애오라지 미천한 정성을 표하려니, 매우 약소해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또 삼가 기억하건대, 지난 가을에 하사下賜하신 좋은 약제藥劑는 맛보자마자 심안心眼이 번쩍 뜨였고, 익히 맛보는 동안에 고질병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으니, 삼가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又)
신해년78) 가을에 삼가 글 한 통을 써서 소족小足(제자)에게 대신 올리게 하였으나, 도성 문이 하늘과 같아서 산골의 미천한 신분이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여강驪江 해산海山의 사자使者에게 건네주어 올리게 하였는데,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홍교洪喬의 수작79)을 면해서 합하께서 받아 보실 수나 있었는지요. 정확한 소식을 전혀 얻지 못해서 하성下誠이 매우 애태우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소족이 합하께서 그때 기거(俯仰)하시던 여러 내용들, 가령 천관天官(吏曹)의 차석次席을 그만두고 나와서 문형文衡(大提學)의 부붕副堋으로 승진하셨다는 것이라든가 잠자리에 들고 음식을 드시는 일 모두가 보통보다 낫다는 것과 같은 소식들을 모두 세밀히 알아 가지고 왔으니, 이는 참으로 산골의 제일 기쁜 소식이라서 그지없이 흠탄欽歎하는 심정을 삼가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소승은 금강金剛에서 돌아온 뒤에 두류頭流 옆에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을 수선하여 문을 닫고 홀로 앉아 있으려니 하나의 발우鉢盂가 적막한 가운데 온갖 질병이 한꺼번에 일어났습니다만, 그래도 신명을 떨치고 정신을 가다듬어 송붕松堋의 공사를 끝마쳤습니다. 그리하여 달이 초가집 위에 떠오르고 사람도 고요해지는 때가 되면, 한 잔의 차와 한 자루의 촛불을 가지고 위로 삼전三殿80)의 산과 바다 같은 수복壽福을 축원한 다음에 합하를 축원하곤 하는데,

010_0373_b_01L孰送思之至此雖在遠仰知愚僧無
010_0373_b_02L從之涕漱漱下矣況大監主越例友愛
010_0373_b_03L天喪斯文又在目下伏想當此境界
010_0373_b_04L五內蒼熱無以爲心矣小僧雖在病中
010_0373_b_05L即欲扶笻徃哭而恩2) [125] 又歸西汨於
010_0373_b_06L火浴設齋等事替遣小足仰問初制
010_0373_b_07L而只以海松數升虬卵十串聊表微誠
010_0373_b_08L甚以薄略爲愧又伏記前秋下賜良劑
010_0373_b_09L才甞心眼豁開熟味沉痾似袪伏謝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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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亥秋敬修一書使小足替上而都
010_0373_b_14L門若天非在山麋蹤所可闖入轉授驪
010_0373_b_15L江海山使者使上之伏未審得免洪喬
010_0373_b_16L而登案下鑑乎苦不得其的下誠深庸
010_0373_b_17L憂煎然小足細得閤下其時俯仰諸節
010_0373_b_18L若畫自天官亞席轉昇文衡副𡊢衾枕
010_0373_b_19L3) [126] 悉皆勝常而來此是山竇第一
010_0373_b_20L喜消息伏不任艶歎之至小僧自金剛
010_0373_b_21L歸後修癈廬頭流之側閉門孤坐
010_0373_b_22L鉢蕭然百疾俱作然猶抖神厲精
010_0373_b_23L松𡊢月上茅屋人靜之時以椀茶丁燭
010_0373_b_24L上祝三殿山壽海福次及閤下未能

010_0373_c_01L새벽에 동이 틀 때까지 전일하게 해 내지는 못하고 있으니, 화욕火浴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금생今生에 합하를 모시고 이런 구구한 심정을 설명드릴 기회를 얻을 수 있을는지요.
산중山中의 채품菜品이 비록 많으나, 청옥靑玉과 연소軟蔬야말로 산골 미각味覺의 극치라 할 것인데, 지금 다섯 다발을 올리려니 매우 약소해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나머지는 황공해서 일일이 다 말씀드리지 못하고, 단지 높은 수레 큰 깃발이 하루빨리 영로嶺路를 치달리시기만을 기원합니다.
또(又)
연전에 합하閤下께서 복상服喪을 마치시는 날에 사자使者 한 사람을 전담해 보내지도 못한 채 떨리고 애달픈 마음으로 목을 빼고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일만 산이 구름 속에 이어진 가운데 날이 저물고 달이 뜨곤 하였는데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말이 길어집니다. 요즈음 서늘하고 맑은 날씨에,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물기勿旗81) 아래의 체후體候가 예전보다 낫게 편안히 지내고 계시는지요.
금년의 봄과 여름은 산과 들을 막론하고 모두 절진絕陳의 환란82)이 있는데, 삼가 생각건대 흰 모래밭의 여강驪江(驪州)에도 식지食指(食口)가 워낙 많아서 부앙俯仰하는 사이에 가슴이 쓰리고 저린 광경이 펼쳐질 것이니, 필시 안연顔淵의 바가지83)도 텅 비고 굴원屈原의 모자84)도 해지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고궁固窮하고 안명安命85)하는 것이 일생 동안에 득력得力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소승이 구구하게 손을 모아 축원하는 정성으로는, 이 일을 우러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승은 견마犬馬의 나이가 벌써 육갑六甲의 고개에 들어서서 눈이 어두워지고 머리칼이 하얘진 가운데 해수병咳嗽病으로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갈수록 악화되기 때문에, 경교經敎의 원로들도 그냥 방임한 채 아무 말 없이 버려둔 상태입니다. 그래서 홀로 앉아 서방정토西方淨土나 외우면서 글자도 모르는 일개 유기승遺棄僧의 처지를 감수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그저 화욕火浴에 돌아가는 때가 조금씩 지연되는 것만을 한스럽게 여길 따름입니다.
그러나 불천佛天이 햇수를 빌려줘서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면, 납극蠟屐86)에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다시 영경靈境을 찾으리라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하기도 합니다만,

010_0373_c_01L徹曉專尅自知歸火浴不遠未知今生
010_0373_c_02L可得陪閤下陳此區區耶山中菜品雖
010_0373_c_03L靑玉軟蔬是峽味之極者今上五
010_0373_c_04L甚以薄略爲愧餘惶恐不一一
010_0373_c_05L祝高車大旆早駈嶺路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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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昨閤下關 [18] 服日未能專一伻怛然傷
010_0373_c_09L4) [127] 北望萬山連雲日暮月出
010_0373_c_10L欲言則長矣即日凄淸伏未審勿旗下
010_0373_c_11L光景申夭勝昔乎今年春夏無論山
010_0373_c_12L皆有絕陳之患伏想白沙驪江食指
010_0373_c_13L旣多俯仰酸楚必有顏之䕯原之冠
010_0373_c_14L載空載弊雖固窮安命是一生得力之
010_0373_c_15L區區攅祝之誠不得不爲之仰慮也
010_0373_c_16L小僧犬馬之齒已入5) [128] 甲路頭眼暗
010_0373_c_17L髮皓咳逆喘急愈出愈恠所以經敎
010_0373_c_18L宿耆任他嘿嘿拋置孤坐念西甘作
010_0373_c_19L不識字一棄僧已久只以歸火浴稍遲
010_0373_c_20L爲恨耳然佛天假年不遂溝壑則當
010_0373_c_21L6) [129] 屐藜笻復尋靈境牢矢于中而恩
010_0373_c_22L「慢」作「漫」{甲}「師」下有「僧」{甲}「筯」
010_0373_c_23L作「箸」{甲}
「嶺」作「領」{甲}「七」作「六」{甲}
010_0373_c_24L「蠟」作「獵」{甲}

010_0374_a_01L은부恩傅(恩師)가 건재하시고 천질賤疾이 이와 같으니, 봉미산鳳尾山의 한 모임은 아득히 기약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금생의 가연佳緣이 여강驪江에서 해후邂逅하던 때로 그쳐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미치면 그만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산중의 생활이 요즘 들어 갈수록 담박淡泊해져서 성의를 보일 물건이 원체 없기에, 그저 세 덩어리의 연소軟蔬와 네 다발의 청옥靑玉으로 구구한 정성을 표하오니, 비록 약소한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장하아帳下兒(士卒)가 꾸짖어 물리치게 하지 마시고 주방의 말품末品으로나마 끼워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민 장령에게 올린 글(上閔掌令書)
요즈음 점점 화창해지는 날씨에, 모르겠습니다만 함양涵養하시는 기체후氣體候가 큰 경사를 크게 누리고 계시는지요. 삼가 생각건대, 여강驪江의 평소 생활이 옛날 운곡雲谷87)의 맑고 또렷함과 똑같은 풍치를 함께 점하고 있으시리니, 정말 멋지고 멋진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소승은 남쪽으로 내려온 뒤에 온갖 질병이 번갈아 침노하여 7척尺의 몸이 더 이상 나의 소유가 아니라서, 마음 살피는(觀心) 공부도 저쪽에다 내던져 버리고는, 병들어 칩거하며 흐리멍덩하게 밥이나 축내는 중의 신세를 감수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성상聖上을 축원하는 일념一念만은 병들수록 더욱 새로워지는데, 한밤중에 머리를 붙들고 향을 사르며 만수무강萬壽無疆을 빌고 나서 한 생각이 찔끔 새어 나갈 때면 어느새 봉미산鳳尾山 남쪽 주위를 배회하고 있으니, 한 가닥의 영서靈犀88)가 환하게 서로 비치면 산과 강물도 그 사이를 가로막지 못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보내 드리는 다섯 다발의 산나물은 산중의 맛 중에서도 최고로 좋은 것인데, 두류산頭流山 정상에서 캐낸 것은 그 이름을 청옥靑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약간만 간추려서 올리려니 오직 약소한 것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또(又)
지난해 봄에 서신을 받고 보니 물 흐르듯 이어진 수백 마디 말씀이 모두 함양涵養하신 본원本源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야말로 낭간琅玕(美玉)과 해주海珠(진주)가 사람의

010_0374_a_01L傳尙在賤疾若此尾山一會杳無前
010_0374_a_02L此生佳緣當止於驪江邂逅時耶
010_0374_a_03L之及此不任悵涕山中活計邇來轉
010_0374_a_04L益淡泊元無露誠之物只以三塊軟蔬
010_0374_a_05L四束靑1) [130] 以表區區雖涉薄略
010_0374_a_06L使帳下兒呵退而以備仙2) [131] 之末品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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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74_a_08L上閔掌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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即日漸向和融未審涵養氣體候大享
010_0374_a_10L嘏慶乎敬惟驪江燕申與古之雲谷惺
010_0374_a_11L俱占一種風致盛事盛事小僧來
010_0374_a_12L南後百疾交攻七尺非復我有觀心
010_0374_a_13L工夫拋擲於那邊甘作病蟄儱侗粥
010_0374_a_14L飯之僧已久惟祝聖一念愈病愈新
010_0374_a_15L午夜扶頭燒香山呼後一念㵕漏時
010_0374_a_16L於鳳尾山南始知一段靈犀耿耿相照
010_0374_a_17L3)河山 [132] 不能阻隔於其間也所上五束
010_0374_a_18L是山味中絕佳者自頭流峰頂而出
010_0374_a_19L名曰靑*玉 [133] 今牢絆仰呈而惟以薄
010_0374_a_20L略爲愧耳

010_0374_a_21L

010_0374_a_22L

010_0374_a_23L
年昨春獲拜下書娓娓4) [134] 百語5) [135]
010_0374_a_24L涵養本源而出者政如琅玕海珠射人

010_0374_b_01L폐부肺腑를 비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요즈음 화창한 날씨에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난실蘭室89) 아래에서 지내는 체후體候가 병마病魔에 기만을 당하는 일 없이 크게 큰 복을 누리고 계시는지요. 구구하게 덕을 연모하는 심정은 앞 강물에 견주어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승은 죄역罪逆이 심중深重하여 지난 정월 초사흗날에 선사先師가 홀연히 서천西天으로 돌아가셨는데도, 숨 쉬는 것이 가빠져서 자리를 등지고 누운 신세인지라, 화욕火浴(茶毗)의 절차와 석총石塚(사리탑)의 조성造成 등에도 힘을 쓰지 못한 채 남의 도움을 받아서 일을 치렀으니, 이는 혼만 흩어지지 않은 죽은 목숨인지라 그저 혼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음속으로 슬퍼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내 주신 신령한 약제藥劑가 마침 지극히 곤욕을 치르는 중에 이르러서 눈 안을 가득 채우게 하였으니, 반절은 되살아난 이 기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산미山味는 산나물의 품종 중에서도 제일 맛이 좋기 때문에, 많이 캐고 싶은 간절한 심정으로 지난여름에 중 몇 명을 천왕봉天王峯 정상으로 보냈는데 겨우 조금만 캐 가지고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비록 약소한 혐의가 있기는 하지만, 장하아帳下兒(사졸)가 꾸짖어 물리치게 하지 마시고, 주방 찬장의 말단에 끼이게 해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산속이 적막하여 누런 토끼털과 흰 양털의 붓(兔黃羊白)은 사서 쓸 수가 없는 까닭에, 아승兒僧이 이것을 보고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모르겠다만 어느 세계에 이런 기화奇貨가 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믿고 의지하여 겨울을 잘 보내고 나서 이것마저 다 쓰고 나면 별 수 없이 칡을 씹어서라도 붓 대신 써야겠습니다.90)
조 홍산에게 올린 글(上趙鴻山書)
요즈음 싸늘한 날씨에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진사주進賜主(나리)의 기체후氣體候가 병마에 기만을 당하지 않고 예전보다 편히 지내고 계시는지요. 덕을 연모하는 구구한 사정私情은 서해 바다의 일만 이랑에 견주어도 좋을 것입니다.
소승은 여름에 사자使者 한 사람을 전담해서 보내려고 하였으나, 풍단風丹(丹毒)의 독기에 쐰 나머지 몇 달 동안이나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7척尺의 몸도 나의 소유가 아닌 상태에서 거의 귀백鬼伯(염라대왕)의 수중에 들어갈 뻔하다가 불천佛天이 보살펴 주신 덕분으로 겨우 살길을 찾은 것이 며칠쯤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지체하고 말았으니,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매양 생각건대, 나리께서는 두우斗牛에 빛을 내쏘는(衝斗) 기품을 지니신 만큼,91) 백대栢臺(司憲府)나 감당甘棠(方伯)이 아니면

010_0374_b_01L肺腑即日和淸伏未審蘭室下燕申光
010_0374_b_02L無竪撓見6) [136] 而大享嘏慶乎區區
010_0374_b_03L戀德之私請量前江矣小僧罪逆深重
010_0374_b_04L以去元月初三日先師奄忽歸西
010_0374_b_05L身在喘急負席之中火浴之節石塚
010_0374_b_06L之勞未能出力而賴他而濟是魂不
010_0374_b_07L散之死漢只自淚7) [137] 心哀而已下惠
010_0374_b_08L神劑及於極困之中使充斥阿睹
010_0374_b_09L得蘇朗不任义賀數種山味是蔬品
010_0374_b_10L之極者切欲多得前夏中使數僧於天
010_0374_b_11L王峯頂才得如干而還雖涉薄略
010_0374_b_12L使帳下兒呵退而使備仙盤之末也
010_0374_b_13L中閴寂兔黃羊白不得貿用兒僧見
010_0374_b_14L此而喜曰不知何世界有此奇貨賴而
010_0374_b_15L經冬8) [138] 此用盡當嚙葛代之矣

010_0374_b_16L

010_0374_b_17L上趙鴻山書

010_0374_b_18L
即日凄淸伏未審進賜主氣體候不爲
010_0374_b_19L竪撓所欺而申夭勝昔否區區戀德之
010_0374_b_20L私請量西溟萬9) [139] 小僧夏中欲專
010_0374_b_21L一伻而爲風丹所毒累月負席七尺
010_0374_b_22L非自有幾入鬼伯之手佛天所覆
010_0374_b_23L尋生路如干日由茲迁至今不任悚仄
010_0374_b_24L每念進賜主10) [140] 斗氣宇非栢臺甘棠

010_0374_c_01L목천木天(翰林院)이나 여화黎火(禮部)에 올라가셔야 마땅한데, 오랫동안 이추泥甃92)에 칩거하고 계시니, 이를 생각하면 답답함과 한스러움이 번갈아 이르면서 눈물이 잇따라 줄줄 흘러내리곤 합니다.
『증보자휘增補字彙』의 일에 대해서는 봄에 보낸 편지의 말미에서 보고드렸는데, 모르겠습니다만 포기拋棄하는 데에 이르지는 않으셨습니까. 만약 경성京城의 인편人便이 늦춰질 것 같으면 가까운 곳에서 주선周旋하여 한 건件을 추송推送하되, 넉넉히 값을 쳐서 소승에게 분부分付하여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송 남원에게 올린 글(上宋南原書)
괴하槐夏(4월) 초에 삼가 듣건대, 부석鳧舃93)이 회현懷縣의 비래산飛來山 아래에서 날아와 광한廣漢의 선부仙府에 내려앉았다고 하였는데, 칩거하며 엎드려 있은 지 이미 오래되어서 흐리멍덩하게 깨닫지 못한 채 아스라이 고야姑射94)의 머나먼 일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읍성邑城에 들어갔던 사람이 돌아온 편에 그 상세한 내용을 알고 나서는, 완연히 광풍제월光風霽月95)의 자태를 바람 부는 패계浿溪 가에 모시고 무릎을 맞대며 환담歡談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으니, 이야말로 금년에 산골에서 듣게 된 가장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잠자리와 음식 등 기거하는 모든 일 및 서화書畫와 금기琴碁 속에서 지내는 체후體候가 쓸데없는 공무公務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 없이 날마다 달마다 편안하여 큰 경사를 크게 누리신다는 것을 삼가 알고는, 그지없이 환희하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소승은 기해년(1779, 정조 3) 가을부터 해인海印과 태백太白과 금강金剛 등지를 굴러다니다가, 신해년(1791, 정조 15) 정월에 법사法師 설파雪坡96)의 중제重制(무거운 服制)를 만나서 다시 이 산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책자册子와 시축詩軸까지 갑을음세甲乙陰歲97) 사이에 모조리 잃어버렸는데, 합하閤下께서 내려 주신 경거瓊琚98)도 그 안에 들어 있었으니, 죽을죄를 졌습니다.

010_0374_c_01L應上於木天黎火而長蟄泥甃鬱恨
010_0374_c_02L11) [141] 繼之淚漱漱下矣增補字彙事
010_0374_c_03L春書尾啓告矣未審不至於拋棄乎
010_0374_c_04L京便似緩則近地周旋一件推送
010_0374_c_05L以優價分付於小僧處貿償若何

010_0374_c_06L

010_0374_c_07L上宋南原書

010_0374_c_08L
槐夏初伏聞鳧▼(卯/鳥)自懷縣飛來山下
010_0374_c_09L飛下於廣漢仙府蟄伏已久濛濛不覺
010_0374_c_10L渺渺若姑射之遠入城人歸來乃得
010_0374_c_11L其詳完若侍光風霽月之儀於風浿溪
010_0374_c_12L促滕晤語是今年山竇中第一喜消
010_0374_c_13L12) [142] 伏審衾枕匙筯俯仰諸節若畫
010_0374_c_14L琴裡光景不爲公冗所奪日康月穩
010_0374_c_15L大享嘏慶伏不任舞蹈之至小僧自己
010_0374_c_16L亥秋轉向海印太白金剛等處辛亥首
010_0374_c_17L遭法師雪坡重制更入茲山略干
010_0374_c_18L册子及兼詩軸盡失於甲乙陰歲之中
010_0374_c_19L閤下所賜瓊琚亦入其中死罪下示
010_0374_c_20L「玉」作「▼(艹/玉)」{甲}次同「槃」作「盘」{甲}「河
010_0374_c_21L山」作「山河」{甲}
「數」無有{甲}「留」作「由」
010_0374_c_22L{甲}
「欺」作「期」{甲}「逆」作「迸」{甲}「而」
010_0374_c_23L作「以」{甲}
「傾」作「頃」{甲}「衝」作「衡」{甲}
010_0374_c_24L「之」作「至」{甲}「因」作「仍」{甲}

010_0375_a_01L
한번 찾아오라고 지시하신 일로 말하면, 그렇게 말씀하시기 전에 소승이 직접 찾아가 뵈었어야 옳은 일입니다만, 숨이 가빠지는 증세와 해수咳嗽의 병증이 날씨가 추워지면서 더욱 심해져서 정성을 다할 길이 없으니 송구스럽습니다.
또(又)
저번에 내려 주신 글을 받고는 비록 병석病席에 누워 있는 몸이었지만 번번이 정성을 다해 살펴보았더니, 종이 가득 은근한 뜻이 모두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가르침이었으므로 홀연히 통증을 잊기까지 하였으며, 패계浿溪의 버들 그늘(柳陰)에서 창수唱酬한 시묵詩墨이라는 데 생각에 미치니, 건듯 꿈속에서 봉래蓬萊를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소식을 주신 뒤로 며칠 동안 막바지 추위가 더욱 매서운데,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존주尊主께서는 주민을 돌보시는 기체후氣體候가 병마病魔에 기만을 당하는 일 없이 평소보다 나은 큰 경사를 누리고 계시는지요. 삼가 생각건대, 조세租稅의 정사가 날로 번다해지면서 백성의 시름이 눈에 가득할 터인데, 이런 일이야 합하閤下의 경제(經世濟民)의 계책에 있어서는 칼을 놀릴 적에 여유가 있으시겠지만,99) 그래도 땅이 넓고 일이 복잡한 만큼 마음을 쓰는 일이 필시 많을 터이니 무성武城의 현가絃歌100)에 방해되지는 않으실는지요. 방해되지 않으시기만을 축원하는 바입니다.
소승은 냉천冷喘과 풍통風痛이 추위를 만나면 반드시 기세를 올리면서 일어나고, 한번 일어났다 하면 반드시 6, 7일 간은 음식을 들지 못하는데, 그러면 3, 4일 간은 뜸해졌다가 추위가 심해지면 또 발작하곤 하니, 가슴팍이 숨차서 옆구리로 헐떡이는 형상과 괴로워 죽겠다고 원망하며 소리치는 정상을 접하면, 옆에 있는 자들로서 혀를 차며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자주 문안 편지를 올릴 수 없었는데, 용서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보내 주신 해산물을 삶고 볶았더니 모두 병자病者의 입맛에 알맞았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그런데 흰쌀은 비록 민천民天이긴 하지만,101) 운송雲松이 산에 있고102) 구복口腹은 사소한 일이니,103) 어떻게 이 구복 때문에 합하에게 폐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쌀을 가지고 황촉黃燭 네 자루를 사서 우러러 합하를 위해 긴 대나무 같은 장수(筠壽)와 바다 같은 큰 복(海福)을 축원하게 하려 하니, 꾸짖지 마시기를 삼가 바라는 바입니다.
송 진사104)에게 올린 글(上宋進賜書)
사람이 돌아오는 편에 홀연히 내려 주신 글을 받고 보니 종이 가득 은근한 뜻이 마치

010_0375_a_01L來現事小僧鳧趨應在發敎之前
010_0375_a_02L急咳逆到寒益甚末由遂誠悚仄

010_0375_a_03L

010_0375_a_04L

010_0375_a_05L
向拜下墨雖在負席中輒盡誠看滿
010_0375_a_06L紙慇懃皆肝膈之敎忽然忘痛念及
010_0375_a_07L浿溪柳陰唱酬詩墨却似夢裡蓬萊
010_0375_a_08L後積日窮陰益冽伏未審尊主庇民氣
010_0375_a_09L體候無竪撓見欺而嘏慶勝常敬想
010_0375_a_10L租政日繁民憂溢目此在閤下經濟之
010_0375_a_11L遊刃有餘然地廣務劇費心必多
010_0375_a_12L得無妨於武城絃歌乎祝祝小僧冷喘
010_0375_a_13L風痛遇寒則必乘勢而起起必六七日
010_0375_a_14L不食則三四日間歇寒極則又發胷喘
010_0375_a_15L脇息之形聲寃呌苦之狀在傍者
010_0375_a_16L不咨嗟由茲未能頻頻修訊其可見原
010_0375_a_17L下送海味烹煑俱合病唇多謝
010_0375_a_18L1) [143] 則雖是民天然雲松在山口腹
010_0375_a_19L細事安能以此腹仰累於閤下哉
010_0375_a_20L米貿得黃燭四丁仰爲閤下使祝筠壽
010_0375_a_21L海福矣伏望勿罪也

010_0375_a_22L

010_0375_a_23L上宋進賜書

010_0375_a_24L
人回忽拜下賜寵墨滿紙慇懃如琅

010_0375_b_01L낭간琅玕(옥돌)과 해주海珠(진주)가 사람의 폐부肺腑를 비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비록 얼굴을 뵙고 대화는 나누지 못했어도, 단정히 앉아서 몇 차례 반복하여 상세히 읽다 보니, 직접 찾아뵙고 대면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이 소춘小春105)을 맞이하여 어버이 슬하에서 시선視膳하며 기거하는 체후體候가 평소보다 나으시리라 여겨지는바, 그쪽으로 치달리는 정성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소승은 기질氣質이 편협하고 잡스러운 데다 품행에 또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숙업宿業이 매개媒介가 되어 진귀疹鬼가 또 야유揶揄하는 바람에 온 몸뚱이가 하나의 병의 집합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괴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괴롭게 하고 있으니,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직 화욕火浴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지척咫尺의 거리에 있는 광한廣寒의 선부仙府106)에도 찾아가서 인사드리지 못했으니,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보여 주신 맑은 시운詩韻은 펼쳐보자마자 침침한 눈이 한결 밝아지고 입안에 가득 향내가 풍겼습니다. 이런 글은 정금精金이나 미옥美玉과 같아서 원래 정해진 값이 있으니, 미천한 견식으로서는 헤아려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또 외람되게 지나친 총애를 받고서 이 시에 화운和韻하라는 명이 계셨기에, 즉시 그 뜻에 부응하려고 하였으나 오래된 우물이라서 물결이 일지 않고 매몰된 칼이라서 광채가 없기 때문에 오유烏有107)의 지경에 놓아둔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그만둘 수 없기에 진부한 기어棄語들을 주워 모아 올리게 되었습니다만, 장하아帳下兒(士卒)가 소벽笑躄108)하게 할까 두려우니, 곧바로 장독 덮개(覆瓿)로나 사용하라고 명하시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109) 시문詩文의 사고私稿는 짓는 대로 사라져 맹화가 고초를 사르는 것처럼 분멸되어 남은 것이 없습니다. 설혹 아승兒僧이 곁에서 한둘을 기억하였더라도 진사塵沙로 눈만 흐리게 할 뿐이라, 이미 없는 셈 쳤습니다. 이 때문에 바치지 못하니 송측하고 송측할 뿐입니다.
또(又)
지난번에 삼가 손수 쓰신 글을 받고 나서 몇 번이나 규복圭復110)했더니, 유려하게 이어지는 백 마디 말이 마치 산홋가지처럼 번득이고 부용꽃처럼 광택이 나서, 한순간에 사람의 심왕心王이 활짝 트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항상 옷소매 사이에 넣어 두고는 적막한 중에 완상玩賞하는 진품珍品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어찌 백붕百朋을 내려 주신 정도일 뿐이겠습니까.
요즈음 현음玄陰(한겨울의 陰氣)이 더욱 매서운데, 삼가 모르겠습니다만 이 혹한酷寒이 선부仙府의 정계淨界에는 미치지 않아서 잠을 자고 음식을

010_0375_b_01L玕海珠射人肺腑雖未承顏陪話
010_0375_b_02L坐詳讀數過了足當面謁伏惟履茲小
010_0375_b_03L省下視膳起㞐候勝常乎難任誠馳
010_0375_b_04L小僧氣質褊䮕行又不力宿業所媒疹
010_0375_b_05L又揶揄渾身都爲一病聚非但自
010_0375_b_06L人亦苦之曉夕所思惟火浴而已
010_0375_b_07L是以咫尺廣2) [144] 仙府未能徃拜罪悚
010_0375_b_08L罪悚下示淸韵才展昏眼增明牙頰
010_0375_b_09L生芬斯文如精金美玉自有定價
010_0375_b_10L淺識所能擬議謬伏承過愛有索和之
010_0375_b_11L即欲思副而古井無波埋劒無光
010_0375_b_12L置之於烏有之鄕已久今不得已搶拾
010_0375_b_13L陳荒棄語以上恐令帳下兒笑躄即命
010_0375_b_14L覆瓿可也詩與文私蒿 [19] 隨得隨失
010_0375_b_15L猛火枯草焚滅無餘設或兒僧從傍
010_0375_b_16L記得一二是滿目塵沙之具業已付之
010_0375_b_17L於之虛是以不得仰呈悚仄悚仄

010_0375_b_18L

010_0375_b_19L

010_0375_b_20L
向伏承手滋圭復累過了娓娓百語
010_0375_b_21L粲如珊瑚柯濯濯如芙蓉花頓令人心
010_0375_b_22L王開3)𣣶 [145] 長留衣袖間以爲寂中奇玩
010_0375_b_23L4) [146] 百朋之錫耶即日玄陰益冽
010_0375_b_24L未審厥酷不及於仙府淨界而衾枕匙

010_0375_c_01L드는 것이 모두 평소보다 나으신지요. 하늘에 축원하며 흠모하는 정성이 칠원漆園의 나비111)로 변화하여 언제나 능한헌凌寒軒의 아래를 맴돌고 있습니다.
소승은 천질賤疾이 점점 깊어지면서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을 보이곤 하는데, 비록 조금 뜸해지는 때라 할지라도 심신心神이 어질어질해서 만사萬事를 모두 하나의 허자虛字에 부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불南無佛을 염송하려 해도 그마저 병 때문에 할 수 없기에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저 화욕火浴일 뿐입니다.
삼가 근심스러운 것은, 소승의 원고를 한번 펼쳐 보시기만 하면 필시 소순蔬筍112)이 눈에 가득하여, 어느 것 하나도 대인大人 군자君子의 청람淸覽에 합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교盛敎가 산과 같이 무거우니, 어떻게 감히 명命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다만 도아塗鴉113)P의 필묵이 사람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서, 그동안 수습收拾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심드렁하게 무하유지향亡何有之鄕114)에 놔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소족小足(어린 제자)이 조금 자라나 시해豕亥를 구분할 줄 알게 되면서115) 옆에서 그런대로 40~50수首쯤 주워 모았는데, 저번에 본현本縣의 사또(使道)가 분부分付하였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잊고 바쳐 올린 것이 지금 몇 달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족으로 하여금 가는 길에 서신을 가지고 가서 그 글을 찾아내어 삼가 헌궤軒几의 아래에 바치게끔 하였는데, 이 글을 볼 적에 장하아帳下兒(士卒)가 웃다가 배를 그러안고 넘어질까 걱정됩니다.
「칠우정기七友亭記」는 비록 병들지 않은 때라 하더라도, 소승의 뱃속이 물기 없는 오래된 우물과 같아서 글을 지어 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터인데, 하물며 지금은 병들어 쓰러져 누워 있는 중이니 어떻게 엮어 볼 수가 절대로 없습니다. 그리고 설혹 짓는다고 하더라도 글자마다 먼지나 모래와 같아서 도리어 청안淸案을 모독하겠기에 당부하신 것을 어기게 되었으니, 삼가 바라건대 꾸짖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산속이 적막하여 누런 토끼털과 흰 염소 털의 붓(兔黃羔白)은 전혀 사서 쓸 수가 없었는데, 지금 몇 자루의 붓(管城)을 선물하셨으므로, 아승兒僧이 이것을 얻고 나서는 춤을 추면서 “어떤 세계에 이렇게 기막힌 보배가 있겠느냐.”라고 합니다. 이 덕분에 겨울을 잘 보내게 되었으니, 삼가 손뼉을 치며 환희하는 심정이 더해집니다.

010_0375_c_01L5) [147] 渾得勝常乎祝天馳慕之誠化爲
010_0375_c_02L柒園蝶長繞於凌寒軒下而已小僧賤
010_0375_c_03L疾漸深頻遭窒之狀雖小歇時
010_0375_c_04L神眩慌萬事都付一虛字而欲誦南無
010_0375_c_05L又以病不能曉夕所思只是火浴
010_0375_c_06L伏悶私蒿一開卷必蔬荀滿目百不
010_0375_c_07L當於大人君子之淸覽盛敎如山豈敢
010_0375_c_08L辱命第塗鴉之墨恐爲人所笑懶於
010_0375_c_09L收拾等閑付之於6) [148] 何有之鄕矣
010_0375_c_10L足稍長能辨豕亥從傍7) [149] 得僅四五
010_0375_c_11L十首向本縣使道分付故忘羞呈上
010_0375_c_12L今積月矣使小足去路賫書乞尋敬上
010_0375_c_13L軒几之下覽時恐帳下兒捧腹而絕倒
010_0375_c_14L七友亭記雖不病時腹如無波古
010_0375_c_15L雖欲爲之而不可得況今在病委頓
010_0375_c_16L絕無可搆之理設或爲之字字塵
010_0375_c_17L還瀆淸案8) [150] 仰違所敎伏望勿
010_0375_c_18L口誅山中閴寂兔黃9) [151] 絕無可市
010_0375_c_19L今惠下數管城兒僧得此而手舞曰
010_0375_c_20L世界有此至寶乎賴而經冬伏增欣
010_0375_c_21L

010_0375_c_22L「餐」作「粲」{甲}「漢」作「寒」{甲}「𣣶」作
010_0375_c_23L「豁」{甲}
「是」作「啻」{甲}「箸」作「筯」{甲}
010_0375_c_24L「亡」作「無」{甲}「拾」作「記」{甲}「故」無有
010_0375_c_25L{甲}
「羔」作「羊」{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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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목사에게 올린 글(上尙州牧使書)
계사년(1773, 영조 49) 겨울에 우연히 흙과 쓰레기(土芥) 같은 미천한 신분으로 호남湖南의 당영棠營(監營)에 들어가서 이동泥洞 상공相公을 알현謁見할 적에 처음으로 부석鳧舃(지방장관의 별칭)을 뵐 수 있었는데, 그 광경이 마치 구름을 헤치고 태양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은사恩賜를 후하게 내려 어질게 효유하고 엄하게 타이르며 금관錦館116)에 한번 찾아오라는 분부를 내리셨으므로, 이를 가슴에 새기고서 그 뒤에 곧장 지팡이를 짚고 찾아가 뵈려 하였으나 풍마風魔와 한마寒魔가 안팎으로 번갈아 침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솔잎을 하나의 물에 섞어서 열흘 걸러 세 사발을 마시는 생활 속에서, 세성歲星이 한 주기를 넘기고 다시 반절을 돌 때까지,117) 마침내 마음속에 다짐한 하나의 식양息壤118)이 오유지향烏有之鄕(無爲)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삼가 탄식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명승지를 찾아다니다 여기에 들른 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짓을 하며 서로들 말하기를 “홍洪 사또(使道)가 성산星山에서 뜯던 거문고 소리가 상주尙州 교외의 연월烟月 속에서 다시 들리게 되었다. 운운云云.”이라고 하였는데,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도 아직 믿지 못하다가, 본사本寺의 중에게 물어본 뒤에야 비로소 예전의 소문이 과연 거짓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는 필시 조물자造物者가 미천한 정성이 간절한 것을 굽어살핀 덕분에 뜻하지 않은 지역에 강림降臨하신 것일 테니, 감격하며 황공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새로 핀 꽃들이 마지막을 고하고 회나무 그늘이 여름을 고하려 하는 이때에, 삼가 생각건대 매헌梅軒 아래의 기체후氣體候가 평소보다 나은 가운데 날마다 새로운 복을 누리시리라 여겨집니다. 교방鮫魴을 눈으로 직접 검열하시고,119) 해수薤水로 또 많은 말씀을 하셨나니,120) 두 손을 모아 축원하는 정성은 자나 깨나 마음이 맺혀 있는 듯(如結)합니다.121)
소승은 포류蒲柳의 체질122)인데도 아직 구학溝壑을 메우지 않고서 세상 사이에서 부유蜉蝣하노라니 꽤나 지리한 느낌이 들던 차에, 지금 바야흐로 8, 9인의 납자衲子가 금강산의 세 번째 유람을 꾀하면서 이 산에 와서 몇 달째 머물고 있는데, 갖추고 있는 것이래야 금강金剛, 능가稜伽, 잡화雜花(華嚴), 선게禪偈 등 약간의 책에 불과하지만, 솔을 씹고 샘물을 마시면서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으니, 이것도 관부官府의 크나큰 은혜 아님이 없기에 삼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하안거夏安居를 해제한 뒤에는 또 북쪽으로 지팡이를 옮기려 하는데, 가는 길이 치소治所를 경유하므로 알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만, 정녕 두려운 것은 문을 지키는 자가 무뢰승無賴僧이라 하여 물리치며 거만하게 쫓아낼까 하는 점입니다. 산속의 땅강아지와 같은 미물微物이 공문公門에 글을 올리는 것이 지극히 당돌한 혐의가 있긴 합니다만, 해바라기와 같은 정성(葵忱)에 느껴지는 것을 스스로

010_0376_a_01L上尙州牧使書

010_0376_a_02L
癸巳冬偶以土芥之賤入湖之棠營
010_0376_a_03L謁泥洞相公時始獲拜鳧1) [152] 依披雲
010_0376_a_04L見日如也加以恩賜稠濃慰諭嚴厲
010_0376_a_05L垂一來錦舘之敎2) [153] 以後即欲手
010_0376_a_06L而風寒二魔內外交攻和松一水
010_0376_a_07L隔旬三3) [154] 跨歲星而半周遂使丹忱
010_0376_a_08L一息壤歸之於烏有之鄕伏歎近有探
010_0376_a_09L勝而過者肩手相語曰洪使道星山
010_0376_a_10L4) [155] 再調於尙郊烟月云云初聞
010_0376_a_11L之信及詢本寺僧然後方知前聞
010_0376_a_12L非子虛此必是造物者俯瞰微誠惓惓
010_0376_a_13L降臨於不謀之域耶感惶無任新花
010_0376_a_14L告盡槐陰欲夏伏惟梅軒下氣體候勝
010_0376_a_15L而日嚮新嘏也鮫魴閱眼薤水更爲
010_0376_a_16L多言攢祝之誠窹寐如結小僧蒲柳之
010_0376_a_17L尙不塡溝壑蜉蝣世間頗覺支離
010_0376_a_18L今方八九衲子謀金剛第三之遊來斯
010_0376_a_19L山者數箇月而所俱者金剛稜伽雜花
010_0376_a_20L禪偈如干卷矣嚼松掬泉足以充飢
010_0376_a_21L無非鴻恩府惠伏感解夏後又發北笻
010_0376_a_22L而路由治下切欲面謁而政恐爲閽者
010_0376_a_23L以無賴僧攘去謾驅之耳山螻微物
010_0376_a_24L上書公門極涉唐突然葵忱所感

010_0376_b_01L숨길 수 없는 점이 있기에, 감히 매미나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발하게 되었으니,123) 모쪼록 용서하고 꾸짖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다만 절서節序에 순탄하게 길복吉福을 더 받으시어 임금님의 표창表彰을 향유하시기를 삼가 축원합니다. 격식을 갖추지 못하니 삼가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진안에게 올린 글(上李鎭安書)
요즈음 추위가 점점 매서워지는 때에, 모르겠습니다만 당영棠營에 왕래하는 기체후氣體候가 풍양風恙에 기만을 당하지 않고 큰 경사를 크게 누리고 계시는지요. 구구한 하침下忱(아랫사람의 정성)은 매양 칠원漆園의 나비처럼 펄럭이며 이락헌二樂軒의 병풍 아래로 날아가서 원님의 귀한 말씀을 접하는 듯합니다.
소승은 추운 시냇물과 서리 진 솔과 함께 지내며 매양 기마飢魔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비록 승리하는 공을 아뢰는 때가 있더라도 구구한 7척尺의 몸이 본래 한기寒氣에 상해 있어서 매양 기롱을 당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쓰러져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은 것은 이천二天124)이 보살펴 준 은혜 아닌 것이 없기에 삼가 감사드리고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저번에 우러러 품달稟達한 것이 있는데, 모르겠습니다만 서한書翰을 왕복할 때에 말미末尾에다 그 일을 언급하지 않으셨는지요. 명색이 산승山僧이면서 공정公庭에 소청所請하는 것이 산처럼 죄를 짓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방도를 꾀하는 것이 엉성하다는 점 또한 알고 있습니다마는, 일단 품달한 일이니 되든 안 되든 간에 이 중에게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봉명 내원의 청장에 답한 글(答鳴鳳內院請狀書)
현사 사비玄沙師備의 백지白紙가 있기 이전에 설봉 의존雪峰義存의 수단手段을 먼저 보여 주시어,125) 산골짜기의 소생으로 하여금 정계淨界 위에 계신 여러분의 도후道候가 평상시보다 나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에 청풍淸風과 섬등剡藤이 다 함께 일어나 춤을 추며 똑같이 기쁜 미간眉間을 치켜세우는 것이 마치 지나支那126)의 죽반승粥飯僧이 회향사回向寺 쪽의 소식을 실컷 듣게 된 것과 같습니다.127)
나는 삼장三障128)이 거듭 두꺼워지고 백질百疾이 번갈아 공격하는데, 이미 학문에 철저하지 못한데다 수행에도 공력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본지풍광本地風光에 대해서 약상弱喪한 자처럼 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129)

010_0376_b_01L有不可掩者敢發泥蟬土蟈之鳴須見
010_0376_b_02L原而勿罪餘只伏祝順序增吉以享綸
010_0376_b_03L謹不備伏惟

010_0376_b_04L

010_0376_b_05L上李鎭安書

010_0376_b_06L
即日漸向栗冽未審棠營來徃氣體候
010_0376_b_07L不爲風恙所欺而大嚮嘏慶乎區區下
010_0376_b_08L每與柒園蝶栩然飛繞於二樂軒屏
010_0376_b_09L之下如承警咳也小僧寒澗霜松
010_0376_b_10L與飢魔爭戰雖奏勝功而區區七尺
010_0376_b_11L本傷於寒每被所欺而不至於委頓者
010_0376_b_12L無非二天覆惠伏感伏感向有所仰禀
010_0376_b_13L未審書翰徃復時其尻語及彼事乎
010_0376_b_14L稱山僧有所仰請於公庭非但有罪如
010_0376_b_15L亦知謀道之不熟也然旣禀之事
010_0376_b_16L爲與不爲付於此僧也

010_0376_b_17L

010_0376_b_18L答鳴鳳內院請狀書

010_0376_b_19L
未有玄沙白紙先之以雪峰手段使窮
010_0376_b_20L竇鯫生得審淨界上僉道候勝常
010_0376_b_21L風與剡藤俱起手舞共喜眉齊聳
010_0376_b_22L支那粥飯僧飽聽回向寺畔聲息如也
010_0376_b_23L某三障荐濃百疾交攻學旣未徹
010_0376_b_24L又不力於本地風光弱喪者已久

010_0376_c_01L‘공연히 남염부제南閻浮提에 와서 한 바퀴 돌고 갈 뿐’130)이라고 말할 만하기에 스스로도 불쌍하게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하되, 다북쑥 같은 잡초(蓬艾) 덤불 사이에서 일어나는 속정俗情일랑 떨쳐 버리고 빙설氷雪의 고향에 마음을 깃들이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납하臘下에 북쪽으로 지팡이를 짚고 떠나긴 하였지만, 해사海寺에서 불나는 것을 보았는가 하면 황산黃山에서 병들어 눕고 말았으니, 숙업宿業이 매개하는 까닭에 비록 산해山海 중에 있더라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토개土芥와 같은 미천한 이 몸을 도외시하지 않고 너무 지나치게 추어올려 주며 초치招致하는 과분한 은총을 내가 받은 것은, 흡사 배를 잃고 표류하는 중에 호壺131)를 얻은 것이나 비슷하다고 할 것이니, 어찌 감히 명하신 대로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고니의 알(鵠卵)은 월나라 닭(越雞)이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132) 남석濫石133)은 절뚝거리는 나귀가 실어 나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동토東土를 뛰어넘어 거벽巨擘을 모셔야 하는 정람精藍(精舍)에, 어떻게 이와 같이 부부扶扶(幼稚)한 부류에게 함부로 주의注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악령嶽靈(산신령)이 머리를 가로젓고 조수鳥獸가 조롱하며 비웃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흑려黑蜧를 꾸짖고 나서134) 비록 다시 걸음을 옮기더라도 내가 직접 가서 나에게 걸맞은 봉실蓬室(오두막)을 내가 직접 챙길 것입니다. 나머지는 병으로 남에게 대신 쓰게 하는 처지라서 이만 줄이고 격식을 갖추지 못합니다. 삼가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기문記文-7편
무량사 시왕전 중수기無量寺十王殿重修記
당저當宁(今上) 즉위 6년째 되는 임인년(1782, 정조 6)에 내가 유력游歷하다가 수산壽山의 백련白蓮에서 결하結夏135)하며 동문同門 선로禪老인 동파東坡와 이웃하였는데, 그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큰절의 승려인 신종信宗은 수교倕巧136)로 이름난 자이다. 지난해 신축년에 자기가 거하는 절에서 북을 쳐서 대중을 모아 놓고 고하기를 ‘우리는 머리칼이 새카맣고 치아가 새하얗고 피부가 번들번들하다. 그런데 청홍靑紅 등의 색色이

010_0376_c_01L謂空來南閻浮提打一遭自憐今則牢
010_0376_c_02L矢于中欲脫情於蓬艾之間5) [156] 心於
010_0376_c_03L氷雪之鄕臘下雖發北笻然而見火于
010_0376_c_04L海寺臥疾于黃山始識宿業所媒
010_0376_c_05L山海中亦莫逃者信不誣矣承不外
010_0376_c_06L土芥之微褒爲孔過而招之甚寵
010_0376_c_07L若失舡漂流中接得壺相似敢不唯命
010_0376_c_08L是從然而鵠卵非越鷄所抱濫石非
010_0376_c_09L6) [157] 驢可載跨東土居巨擘之精藍
010_0376_c_10L7) [158] 擬於如此扶扶之流乎恐嶽靈掉
010_0376_c_11L頭而鳥獸嘲笑也誅蜧後雖更發步而
010_0376_c_12L自去親點稱我之蓬室矣餘病倩只此
010_0376_c_13L不具伏惟

010_0376_c_14L

010_0376_c_15L記文

010_0376_c_16L無量寺十王殿重修記

010_0376_c_17L
當宁六年壬寅余因8) [159] 結夏于壽
010_0376_c_18L山之白蓮與同門禪老東坡隣坡一日
010_0376_c_19L過余曰大寺僧信宗倕巧之名者年昨
010_0376_c_20L辛丑於所居寺擊鼓集衆而告之曰
010_0376_c_21L吾髮髤矣9) [160] 膚澤矣靑紅等色
010_0376_c_22L「舃」作「▼(卯/鳥)」{甲}「應」作「膺」{甲}「椀」作
010_0376_c_23L「梡」{甲}
「琹」作「琴」{甲}「栖」作「棲」{甲}
010_0376_c_24L「蹇」作「騫」{甲}「忘」作「妄」{甲}「游」作
010_0376_c_25L「遊」{甲}
「晢」作「晳」{甲}

010_0377_a_01L우리 눈을 멀게 하고, 궁상宮商 등의 음音이 우리 귀를 먹게 하고, 호오好惡 등의 향香이 우리 코를 중독시키고, 감산담甘酸淡 등의 미味가 우리 혀를 망가뜨리고, 냉난삽冷暖 등의 촉觸이 우리 몸을 자극하고, 희노애락喜怒哀樂 등의 염念이 우리 뜻을 상하게 하는데, 이 여섯 가지가 항상 밖에서 번갈아 일어나고 안에서 위협하는 일을 잠시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몸이 쇠해지며 손이 떨리고 정력이 감소하며 정신이 피곤해지면, 백일百一의 풍도風刀에 의해 몸이 분해되고 십팔十八의 귀졸鬼卒에 의해 기롱을 당하면서, 음백陰魄은 땅으로 가라앉으려 하고 양혼陽魂은 하늘로 날아가 흩어지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의 육구六寇137)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친속親屬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며, 붕우朋友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아서, 천하의 고통과 호겁浩刼의 신산辛酸을 우리 자신이 뭉뚱그려서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색력色力이 아직 고갈되지 않은 이때에 맞추어서 명왕冥王과 좋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데, 그 시왕전十王殿이 이미 기울어 무너졌으니 지금 이 일을 알맞은 시기에 완수했으면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자귀를 휘두르며 시주施主를 모집함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모두 호응하였으며, 사승寺僧 중에도 당랑螳螂처럼 대드는 자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반달 남짓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모기 같은 힘은 점점 고갈되는 데도 기러기 같은 마음은 더욱 첨예해졌으므로, 내가 그의 뜻은 크지만 힘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서 나 역시 한 손을 보태어 도왔는데, 시왕전이 이제 완성되었으니, 그대의 말을 얻어 나무에 새겨서 오래도록 전하려고 한다.”
내가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
“이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종으로부터 시작되어 동파에게서 마무리되었으니, 동파와 신종은 공허蛩驉가 궐蟨을 업고 달리는 격이요,138) 장비長臂와 장각長脚의 관계139)라고 할 만하다. 그러니 극락에서는 아미타불의 좌우左右가 될 것이요, 염라에 노닐 때에는 지장보살의 전후前後가 될 것이다. 비록 3척尺의 입140)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공의 아름다움을 전부 다 선양宣揚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나의 글로 다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나의 말을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염라대왕의 손안에 쇠방망이가 있음141)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 진사 칠우정기宋進士七友亭記
옛사람은 자기에게 유익한 것을 벗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사람만이 아니라

010_0377_a_01L盲吾目宮商等音聾吾耳好惡等香
010_0377_a_02L剸吾鼻甘酸淡等味爽吾舌冷暖𤁧
010_0377_a_03L等觸刺吾身喜怒1) [161] 樂等念喪吾意
010_0377_a_04L此六者常交於外而2) [162] 於內未暫捨
010_0377_a_05L一朝身委而手戰精減而神疲
010_0377_a_06L百一風刀之所解十八鬼卒之所欺
010_0377_a_07L魄欲沈陽魂欲飛則六寇也莫吾待
010_0377_a_08L親屬也莫吾待朋友也莫吾待而天
010_0377_a_09L下之苦浩刼之辛吾自萃而肩之
010_0377_a_10L趂色力之未竭結勝緣於冥王之事矣
010_0377_a_11L殿已傾3) [163] 願今適遂運斤募緣一路
010_0377_a_12L俱作寺僧莫有螳拒者然歷半月餘
010_0377_a_13L蚊力漸竭鴻心益銳4) [164] 其志大力
010_0377_a_14L5) [165] 亦出一手而助殿目今斷手矣
010_0377_a_15L得子之言登於木壽其傳也余應之
010_0377_a_16L丕休哉斯事也始於宗而終於6) [166]
010_0377_a_17L唯*坡 [167] 與宗可謂蛩驢 [20] 之於走蟨長臂
010_0377_a_18L之於長脚在極樂爲彌陁左右遊閻羅
010_0377_a_19L居地藏前後雖喙長三尺不可盡揚
010_0377_a_20L其功之美況吾文者耶然苟咈吾言
010_0377_a_21L閻老手中鐵棒在

010_0377_a_22L

010_0377_a_23L宋進士七友亭記

010_0377_a_24L
古之人以益我者爲友則不唯於人

010_0377_b_01L물物에도 벗이 있는 것이니, 그래서 삼우정三友亭이니, 오우정五友亭이니 하는 것들이 세워졌던 것이다.
지금 상사上舍 송공宋公이 계산鷄山의 남쪽 용전龍田 위쪽에 하나의 택지宅地를 점하였는데, 골짜기가 깊지 않으면서도 그윽하고 세상이 멀지 않으면서도 소음이 없었으므로, 마침내 몇 칸의 기둥을 세우고 띠를 올린 뒤에 편액扁額을 ‘칠우七友’라고 내걸었다.
대개 옛날의 오우五友는 송국松菊에 삼우三友를 합쳐서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되, 풍월風月은 문에 들어오는 것을 취하고, 운수雲水는 자유자재한 것을 취하고, 상률橡栗은 서로 보호해 주는 것을 취하였으며, 전문典文의 경우에는 그 뜻을 취하여 벗을 삼았으니, 그러고 보면 물物은 비록 열을 헤아리더라도 벗을 삼은 뜻은 다섯이라고 하겠다.
도홍경陶弘景과 같은 목객木客142)의 무리는 산속의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탐욕을 부린 자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산의 정묵靜默과 물의 청탁淸濯과 시詩의 견흥遣興(흥을 푸는 것)과 술의 통성通性(성정을 통하는 것)은 물론이요, 바람의 상쾌함과 달의 밝음과 송국의 곧음까지 모두 취하여 벗을 삼음으로써, 한 가닥 정신의 어둡지 않은 체軆로 하여금 구전九轉의 금단金丹을 이루게 하고 백련百鍊의 강철을 이루게 하였다. 따라서 산을 본받아 말을 신중히 하고 물을 본받아 욕심을 씻어 내어, 바람의 상쾌함과 달의 밝음처럼 될 것이요, 그런 뒤에는 송국의 절조를 낭묘廊廟(조정)의 위에 세우고, 술 마시는 것이 염매鹽梅143)에 어울릴 수 있게 될 것이며, 시를 짓는 것이 갱재賡載144)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당연히 허리띠를 풀고 태창太倉의 곡식을 받아먹으면서,145) 임금을 요순堯舜의 경지로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베개를 밀치고 여기에 돌아오게 되면, 산은 무이武夷146)가 될 만하고 물은 부강涪江147)이 될 만하니, 무우舞雩148)의 서늘한 바람과 운곡雲谷149)의 밝은 달빛 속에서, 한 섬을 마셔도 어지럽지 않은 술을 마시고,150) 하늘에 가득한 상송商頌의 시를 노래하며,151) 소나무에 기대고 국화를 캐면서 돌아올 것이다.152) 이처럼 나가서 활동하든 들어와 가만히 있든, 오직 칠우가 있을 뿐이니, 어찌 오우가 견줄 수 있는 것이겠는가. 그렇다면 후세 사람들이 이 칠우정을 흠모하는 것이, 어찌 오늘날 사람들이 담계潭溪와 고정考亭153)을 흠모함보다 뒤질 리가 있겠는가.
마곡사 시왕전기麻谷寺十王殿記
부처가 가르침을 베푼 마음으로 말하면, 자비로 악인을 변화시키고 보시로 탐욕을 변혁시켰으니 이는 인화仁化이고,

010_0377_b_01L亦在於物故有三友五友亭之設今上
010_0377_b_02L舍宋公於鷄山之南龍田之上占一
010_0377_b_03L區宅谷不深而能幽世不遠而無喧
010_0377_b_04L遂建數楹而茅焉扁軒曰七友盖昔之
010_0377_b_05L五友合松菊三友爲娛樂風月取其
010_0377_b_06L入戶雲水取其自在橡栗取其相保
010_0377_b_07L至於典文取其義而友之則物雖十數
010_0377_b_08L而友義則五弘景木客之輩貪淫於山
010_0377_b_09L者之事也今山之靜默水之淸濯
010_0377_b_10L之遣興酒之通性以至風之爽月之
010_0377_b_11L松菊之貞皆取而友使一段精神
010_0377_b_12L不昧之軆九轉成丹百鍊成剛山以
010_0377_b_13L愼言水以濯慾如風之爽月之明然後
010_0377_b_14L建松7) [168] 之節於廊8) [169] 之上酒可合於
010_0377_b_15L9)鹽梅 [170] 詩可續於賡載宜解帶而食倉
010_0377_b_16L可致君於堯舜也若拂枕歸斯則山可
010_0377_b_17L以爲武夷水可敵於涪江舞雽 [21] 凉風
010_0377_b_18L雲谷皓月飮至石不亂之酒歌商頌滿
010_0377_b_19L天之詩倚松採菊而歸出興 [22] 唯七
010_0377_b_20L友而已奚五友之可比哉然則後之人
010_0377_b_21L慕此亭豈下於今之人慕潭溪考亭哉

010_0377_b_22L

010_0377_b_23L麻谷寺十王殿記

010_0377_b_24L
佛設敎之心以悲變惡以施革貪

010_0377_c_01L공空으로 유有를 떨쳐 버리고 상常으로 단斷을 다스렸으니154) 이는 지화智化이고, 화택火宅의 비유155)로 어린 중생을 유도誘導하고 지옥의 이야기로 어리석은 중생을 교화하였으니 이는 겁화劫化156)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이 설을 듣고 이롭게 여기고 두렵게 여겨서, 과거를 고쳐 미래를 닦게 하고 잘못을 알아 선善으로 옮겨 가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지옥을 가리켜 보여 준 까닭이요 시왕전이 세워지게 된 까닭으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 것 또한 지대하다 하겠다.
그러나 불법佛法이 오래되어 쇠해지면서, 부처의 마음은 중생의 마음을 고쳐서 악을 뉘우치게 하는 데 있지 불공佛供을 올리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팔사八邪157)가 날뛰고 죄가 십악十惡158)을 갖추었더라도, 한 사발의 차와 몇 말의 밥을 바치면 죄를 면하고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아, 이는 겁화의 길이 막혀서 세상을 미혹게 하는 비방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지금 마곡사의 시왕전이 눈부시게 일신一新되었다. 삼간三間과 오가五架의 광륜廣輪이 7적赤(尺)이고 보면 이는 그 규모가 광대한 것이요, 일금一金과 십곤十袞159)에 달빛과 별빛이 환하고 보면 그 상像이 엄숙한 것이다. 대개 본분인本分人이 불심佛心을 체득하여 색색色色으로 장엄해 놓은 것이야 논할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수재修齋하는 자와 예경禮敬하는 자와 유완遊翫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하겠는가.
경계에 흔들려 일어난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 등 번뇌의 바람(八風)이 호호탕탕 불어올 때에는 절치노심切齒怒心해야 할 것이고, 시끄럽게 소란을 피울 때에는 회광반조回光反照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경계가 어디에서 나올 것이며 마음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는가. 마음이 일단 드러나지 않으면 경계 역시 있지 않을 것이니, 마음과 경계가 이미 고요하여 영성靈性의 불꽃이 빛을 밝히면, 중생을 교화하는 여래의 마음을 응당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생을 교화하는 여래의 마음을 보았다면 제봉霽峯이 일을 주관한 마음도 보게 될 것이요, 그 마음을 보았다면 큰 그물을 펼쳐서

010_0377_c_01L化也以空遣有10) [171] 治斷智化也
010_0377_c_02L以火宅誘小以地獄化愚*㤼 [172] 化也
010_0377_c_03L衆生聞說利而畏之使改徃而修來
010_0377_c_04L非而遷善此地11) [173] 所指出而十王殿
010_0377_c_05L之所以設也其於人恩亦弘矣然法久
010_0377_c_06L而弊人不知佛之心在於革心悛惡
010_0377_c_07L在陳供將謂雖心騰八邪罪備十惡
010_0377_c_08L12) [174] 茶數斗飯免罪徼福刼化之
010_0377_c_09L路塞惑世之謗作矣今麻谷寺十王殿
010_0377_c_10L煥然一新三間五架廣輪七赤則其
010_0377_c_11L量恢一金十袞月皎星羅則厥像嚴
010_0377_c_12L盖有本分人體佛心而色色成辨無可
010_0377_c_13L論者唯修齋者禮敬者遊翫者當如
010_0377_c_14L何用心哉當於利衰毁譽境風浩浩之
010_0377_c_15L切齒怒心閧閧之際回光13) [175]
010_0377_c_16L境從何來心從何起心旣不見境亦不
010_0377_c_17L心境旣寂靈熖騰輝則應見如來
010_0377_c_18L化物之心旣見如來化物之心則亦見
010_0377_c_19L霽峰幹事之心旣見其心則可布大網
010_0377_c_20L「愛」作「哀」{甲}「㥘」作「劫」{甲}次同「頹」
010_0377_c_21L無有{甲}
「㦖」作「悶」{甲}「倎」作「㑋」{甲}
010_0377_c_22L「坡」作「波」{甲}次同「萄」作「菊」{甲}「廟」
010_0377_c_23L作「庙」{甲}
「鹽梅」作「梅鹽」{甲}「相」作「常」
010_0377_c_24L{甲}
「獄」下有「之」{甲}「椀」作「梡」{甲}
010_0377_c_25L「反」作「返」{甲}

010_0378_a_01L인천人天의 물고기들을 건져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예경禮敬의 상想이나 수제修齋의 상이나 면죄免罪의 상을 일으킨다면, 세상을 미혹했다는 비난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철위鐵圍에 떨어지는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다.
중관음기中觀音記
중관음中觀音은 신계神溪에서 서쪽으로 일우후지一牛吼地160)에 있는데, 예전에 관음봉觀音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命名한 것이다. 지금 화재로 인하여 골짜기로 옮겨 세우면서도 이름은 예전 그대로 놔두었다. 깊은 용소龍沼에 쌓인 물이 그 아래를 치달림에 용사龍蛇가 굴속에 똬리를 틀고서 잠겨 있고, 칼처럼 우뚝 솟은 연꽃 봉우리가 그 뒤에 늘어서 있어 원유猿猱도 부여잡고 건너가는 것을 걱정하니, 형체를 잊고 도道에 뜻을 둔 자가 아니면 능히 그 경내境內에 올라가서 그 정신을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유력遊歷하다가 그 옆에서 석장錫杖을 쉴 적에 도가 매우 깊은 듯한 중 한 사람이 있었는데 법자法字를 우혜宇慧라고 하였다. 그가 불이 나서 절을 옮길 때의 일의 전말顚末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기문記文을 써 달라고 청하기에, 내가 글솜씨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며 완강히 버텼으나, 그가 몇 갑절이나 더 고집을 부리면서 끝까지 청하였다. 이에 내가 시험 삼아 기문을 청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가 대답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시주施主한 자와 화연化緣한 자와 일을 주관한 자와 임무를 맡은 자의 이름을 나무에 새겨서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외자可畏者(後生)로 하여금 이를 보고 감흥을 일으켜서, 지금 사람들이 한 것처럼 중건하고 보수하게 한다면, 비록 재가 가득 쌓여 못을 메우고 먼지가 날려 바다를 뒤덮더라도, 이 사암寺庵은 길이 보존되리니, 이것이 어찌 기문의 공력이 아니겠는가.”
내가 말했다.
“그렇긴 하다. 그러나 그대의 뜻은 아름다우나 그대의 소원은 작다고 하겠다. 이 사암에서 들은 것을 돌이켜 소리를 듣는 그 가운데로부터 일분一分이라도 흘러나온다면,161) 그것이 바로 보살의 원통보전圓通寶殿이다. 이것이 일단 보전寶殿이 된 이상에는,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으로서, 난생卵生이거나 태생胎生이거나 습생濕生이거나 화생化生이거나, 그리고 유색有色 무색無色ㆍ비유색非有色 비무색非無色이거나, 유상有想 무상無想ㆍ

010_0378_a_01L撈漉人天魚矣然若作禮敬想修齋想
010_0378_a_02L免罪之想非但惑世之招亦未免墮在
010_0378_a_03L鐵圍去1) [176] 勉旃勉旃

010_0378_a_04L

010_0378_a_05L中觀音記

010_0378_a_06L
中觀音者去神溪西一牛吼地舊在
010_0378_a_07L觀音峰下故命名今仍火移剏于谷
010_0378_a_08L而猶號舊焉深涯蓄洩走其下龍蛇之
010_0378_a_09L穩潜窟矗劒霜蓮排其後猿猱之愁攀
010_0378_a_10L非忘其形志于道者罕能陟其境
010_0378_a_11L棲其神也余因遊歷次休錫于傍
010_0378_a_12L一僧甚似道者法字2) [177] 以火與移
010_0378_a_13L時事顚末請識於余余以不文拒之
010_0378_a_14L固靳之慧之請倍簁膠固試扣請記之
010_0378_a_15L源由答曰無餘欲以施者化者幹事者
010_0378_a_16L作務者之名登於木而壽其傳使可畏
010_0378_a_17L覽而興感修替補缺猶如今之人
010_0378_a_18L則雖灰撲塡池塵飛漲海此庵長存
010_0378_a_19L斯豈非記之力歟余曰子之志雖佳
010_0378_a_20L而願則3) [178] 斯庵也從返聞聞聲中
010_0378_a_21L一分流出4) [179] 即是菩薩圓通寶殿也
010_0378_a_22L旣是寶殿則盡十方世界所有衆生
010_0378_a_23L5)若卵生 [180] 若胎生若濕生若化6) [181]
010_0378_a_24L有色無色非有色非無色若有想無想

010_0378_b_01L비유상非有想 비무상非無想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다 이 가람 안에 들어와서 신심身心이 편안하게 평등법회平等法會에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록 겁화劫火가 바다 밑바닥까지 태우고, 겁풍劫風이 산에 불어와 무너뜨리더라도,162) 이 사암은 항상 안정되어 천인天人이 항상 충만할 것이니, 옮겨서 세울 필요가 뭐가 있겠으며, 보수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이 가람에는 본래 시주한 자와 화연한 자도 없고 일을 주관한 자와 임무를 맡은 자도 없으며, 또 기문을 청할 것도 없고 청한 대로 서술할 것도 없으며, 또 옮겨 세우거나 보수할 것도 없고 시방세계의 십이류생十二類生을 위한 가람의 법회法會도 모두 본래 없으니, 또 어떻게 기문을 쓰겠는가.”
그러자 우혜가 환하게 깨닫고는 알았다고 하면서 천읍天揖163)을 하고 떠났으므로, 내가 이렇게 적었다. 혜공慧公은 관동關東 발연사鉢淵寺에서 출가하였는데, 영서嶺西 회양淮陽 사람이다.
심원암에 종을 설치한 일에 대한 기문(深院庵懸鍾記)
종鍾의 유래는 오래되었다. 황제黃帝가 해안에 짐승이 있는 것을 보고 포뢰蒲牢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소리가 종과 같았다. 그런데 그 짐승의 성질이 고래를 두려워하여 고래를 만나기만 하면 울부짖었으므로, 부씨鳧氏에게 명하여 종을 만들 적에 머리 모양을 포뢰처럼 하고 종 치는 채는 고래 모양으로 깎게 하였다. 그리고 서국西國의 예를 들어 보건대,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세상에 출현하여 금종金鍾을 가지고 관정灌頂의 의식을 행하였고 겁초刼初에 이미 일찌감치 종이 있었는데, 부처가 세상에 나옴에 미쳐서는 건도揵度164)를 하기 위하여 대중을 모으는 기구로 썼으므로, 무릇 총림을 조성할 때에는 모두 이 종을 두게 되었다.
이 암자로 말하면 창건하고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단지 사발만 한 작은 종 하나를 두고서 길고 짧은 경루更漏에 대비하였는데, 처마의 풍경이 바람에 울릴 때면 그때마다 그 소리가 골고루 들리지 않는 것이 흠이었다. 이에 이 산의 중인 법우法祐가 대중과 함께 서원을 세우고 재화를 모아 안심사安心寺의 종을 사서 매달아 놓고는 나에게 기문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 종이 모두 세 차례 사람의 손을 거쳐 오는 동안, 이로움과 해로움을 끼친 것이 각각 반씩이다. 지금 여기에 온 것으로 말하면, 일을 주간主幹하는 자가

010_0378_b_01L非有想非無想盡入此伽藍中身心安
010_0378_b_02L㞐平等法會則雖刼火燒海底
010_0378_b_03L鼓山7) [182] 此庵常安然天人常充滿
010_0378_b_04L何假移剏何假修補乎迹此而觀之
010_0378_b_05L於此伽藍上本無施者本無化者
010_0378_b_06L亦無幹事者亦無作務者又無請而記
010_0378_b_07L之者又無從而述之者又無移剏修復
010_0378_b_08L十方世界十二類生伽藍法會
010_0378_b_09L8)皆悉 [183] 本無則又何以記爲慧豁然唯
010_0378_b_10L天揖而去於是乎書慧公出家於
010_0378_b_11L關東鉢淵嶺西淮陽人也

010_0378_b_12L

010_0378_b_13L深院庵懸鍾記

010_0378_b_14L
夫鍾之來久如黃帝見海岸有獸
010_0378_b_15L蒲牢聲如鍾而性畏鯨遇鯨輒吼故
010_0378_b_16L鳧氏造鍾頭象蒲牢削桴象鯨至於西
010_0378_b_17L輪王出世用金鍾灌頂刼初已早有
010_0378_b_18L而曁佛出世用爲揵度集衆之具故
010_0378_b_19L凡設叢林皆有之至於斯庵剏之積
010_0378_b_20L而只有小如9) [184] 以備長短之更
010_0378_b_21L每於簷鈴風吼之時以不10) [185] 爲病
010_0378_b_22L之釋法祐與介衆矢心鳩財買安心
010_0378_b_23L寺中鍾懸之請誌於余余曰此鍾
010_0378_b_24L三歷手來利害半焉今之來也幹事

010_0378_c_01L힘줄과 뼈를 수고롭게 하고 바람과 눈으로 목욕을 하며 어렵사리 홍진紅塵에 묻힌 속에서 구하였으니, 예전에 주조鑄造한 종을 샀던 자와 더불어 부처와 조사祖師의 공을 이룰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약 반야탕般若湯(술의 은어)을 좋아하는 자가 왕왕 경읍京邑에 출입하며 호귀豪貴와 서로 결탁하여 사귀면서 여기저기 떠돌다가 공물公物을 해쳐 종을 들고 나가 자기 빚을 갚는다면, 예전에 두 번 팔아먹은 자와 똑같이 참혹하게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니, 경계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늙은이로서는 젊은이를 경책하고 젊은이로서는 뒷사람을 경책하여, 하늘과 땅이 서로 삐걱거리고 음陰과 양陽이 서로 뒤흔들어 세계가 공중의 한 미진微塵처럼 될 때까지 그렇게 한다면, 시주施主하는 자나 화연化緣하는 자 모두 똑같이 순전히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은 없는 낙방樂邦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제인諸人이 게송을 굳이 청하기에, 내원內院의 운韻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수답酬答하였다.

寺在崷崗東盡頭    드높은 언덕 동쪽 끝머리에 절이 있나니
危簷遙壓古龍州    높다란 처마가 멀리 옛 용주를 진압하네
長屏匝地羣峰合    병풍처럼 땅을 둘러 뭇 봉우리 합쳐지고
震響吼岑萬水流    우레처럼 산을 울려 일만 물이 흘러가네
兜率曾經芳草夏    일찍이 도솔에서 방초의 여름을 지냈는데
深院今坐桂花秋    지금은 심원에서 계화의 가을에 앉았노라
江潮勝韵無人繼    강물 조수 멋진 시운을 잇는 사람 없어서
慚愧蔬詩壁面留    벽면에 소순蔬筍의 시 남기려니 부끄럽네
은적암 중건기隱寂庵重建記
옛날에 마음을 닦은 사람들 중에 근기가 뛰어나고 믿음이 굳건한 자는 오히려 세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혹 산봉우리의 꼭대기에다 띳집을 짓기도 하였으니, 무주無住와 같은 곳이 그런 곳이다. 다음으로 힘이 미약하고 마음이 연약한 자는 가는 길이 험준하여 올라갈 때 애를 먹을까 겁을 먹고는 반드시 산 아래 기슭에다 집을 짓곤 하였으니, 군자君子와 같은 곳이 그런 곳이다.

010_0378_c_01L筋勞骨苦風櫛雪沐僅僅塵合而
010_0378_c_02L則與前鑄買者作佛成祖無疑也
010_0378_c_03L11) [186] 般若湯者徃徃京去邑入豪交
010_0378_c_04L貴結轉轉害公擧而賽債則與前之兩
010_0378_c_05L賣者同人捺落慘矣12) [187] 之*誡 [188]
010_0378_c_06L老警少以少警後以至於天與地相軋
010_0378_c_07L陰與陽相盪世界如空中一微塵之久
010_0378_c_08L則施者化者同入純利無害之樂邦矣
010_0378_c_09L諸人以偈堅請依內院韵酬之偈曰

010_0378_c_10L寺在崷崗東盡頭危簷遙壓古龍州

010_0378_c_11L長屏匝地羣峰合震響吼岑萬水流

010_0378_c_12L兜率曾經芳草夏13) [189] 今坐桂花秋

010_0378_c_13L江潮勝韵無人繼慚愧蔬詩壁面留

010_0378_c_14L

010_0378_c_15L隱寂庵重建記

010_0378_c_16L
古之修心之士根勝信堅者猶恐世之
010_0378_c_17L不遠山之不深或於峰之冢椒茅焉
010_0378_c_18L無住等是次力微心軟者㤼於澭陡之
010_0378_c_19L登陟之苦必於山之麓樊宅焉
010_0378_c_20L「也」無有{甲}「宇」作「于」{甲}「倎」作「㑋」
010_0378_c_21L{甲}
「則」無有{甲}「若卵生」無有{甲}「生」
010_0378_c_22L下有「若卵生」{甲}
「相」作「上」{甲}「皆悉」
010_0378_c_23L作「悉皆」{甲}
「椀」作「梡」{甲}「遍」作「徧」
010_0378_c_24L{甲}
「嗜」作「咾」{甲}「誡」作「戒」{甲}次同
010_0378_c_25L「院」作「庵」{甲}

010_0379_a_01L그래서 중간 정도 되는 사람들 중에 신심信心은 남보다 앞서려 해도 노병老病에 구애되어 멀리 갈 수 없는 자는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이다. 무착 대사無着大師가 이를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무주의 아래 군자의 위에다 사슴이 뛰노는 소굴을 허물고 잡목이 우거진 곳을 개간하여 약간의 건물을 세우고서 기와를 올렸다. 골이 깊지 않아도 숨을(隱) 수 있고, 세상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도 고요할(寂) 수 있어 마침내 ‘은적隱寂’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사방 멀리에서 산을 찾는 이들이 이곳을 의지하여 침류수석枕流漱石165)의 장소로 삼았다.
그러나 세월이 이미 오래 흐른 탓으로 바람이 침투하고 빗물이 새며 기둥이 기울고 서까래가 빠져서 장차 거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당저當宁(今上) 7년(1783, 정조 7)에 치손緇孫인 벽파碧波 스님이 선사先師의 자취가 없어질까 두려워하여 손을 써서 새롭게 하고는 기문을 써 달라고 나에게 청하였다. 이에 내가 두려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두로杜老의 천간千間 집166)과 변생邊生의 구주九州 이불167)은 그저 부질없는 소원을 말해 본 것인데도 세상에서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지금 스님이 그 뜻을 잘 계승하고 그 일을 잘 이어받아 큰 집을 다시 세워서 늙고 병든 이들을 보호하였으니,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러나 나는 글에는 서툴러서 문장이나 다듬고 꾸미는 습관을 일체 없었던 것으로 치부한 채 글자도 모르는 죽반승粥飯僧이라는 비판을 감수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어떻게 이 아름다운 요청에 응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매우 굳게 거절하였으나, 그가 나에게 청하는 성의가 몇 배나 더하였으므로, 마침내 붓을 빼 들고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암자에 대해서 말해 보겠다. 모두 7칸 10가架에 광륜廣輪이 10적赤(尺) 남짓 되는 것은 암자의 양量이요, 치옥㢁屋을 짓고 연방蓮房을 짓고 양로당養老堂과 염화실拈花室을 지은 것은 암자의 제制요, 왕래한 자의 발이 부르트고 권화勸化한 자가 수고하고 시재施財한 자가 부지런히 애쓴 것은 암자의 인因이요, 수倕168)가 교묘하게 재주를 발휘하고 노獿가 하얗게 흙을 칠하고169) 일을 주관한 자가 노심초사한 것은 암자의 연緣이다.
양量과 제制와 인因과 연緣을 모두 지닌 가운데, 얕아도 그윽할 수 있고 가까워도 고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경境의 은적隱寂이요, 하루 24시간 동안 은은적적隱隱寂寂한 중에서 소소역력昭昭歷歷한 경지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거자居者의 은적이요,

010_0379_a_01L子等是其中庸之徒信欲勝而爲老病
010_0379_a_02L所拘不能遠引者無依歸無着大師
010_0379_a_03L1) [190] 於無住之下君子之上破麋鹿
010_0379_a_04L之窟薙樵靑之場建如干屋而瓦焉
010_0379_a_05L谷不深而能隱世不遠而能寂遂名曰
010_0379_a_06L隱寂四遠謀山者賴而爲枕流漱石之
010_0379_a_07L所也然歷年旣久風欺雨滲棟傾椽
010_0379_a_08L將至於不居之境矣當宁七年
010_0379_a_09L孫碧波師憂先2) [191] 之湮沒出手新之
010_0379_a_10L3) [192] 於余余竦然而起曰杜老千間
010_0379_a_11L4) [193] 邊生九州被徒設空願而世猶
010_0379_a_12L美之今師善繼其志善述其事重結
010_0379_a_13L大屋而庇老病偉矣哉然余生於文
010_0379_a_14L雕篆之習付一於子虛甘作不識
010_0379_a_15L字粥飯僧已久何以應其佳請耶拒之
010_0379_a_16L甚堅請之倍簁故遂5) [194] 毫書之曰
010_0379_a_17L凡七間十架廣輪十赤有强者
010_0379_a_18L之量也爲㢁屋爲蓮房爲養老堂拈
010_0379_a_19L花室者庵之制也來徃者趼勸化者
010_0379_a_20L施財者矻矻6) [195] 之因也倕材呈巧
010_0379_a_21L夔堊𪐇 [23] 幹事者焦勞*庵 [196] 之緣也
010_0379_a_22L量制因緣能淺而幽近而閴者即境
010_0379_a_23L之隱寂也於二六時中究昭昭歷歷於
010_0379_a_24L隱隱寂寂之中者即㞐者之隱寂也

010_0379_b_01L힘줄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무위無爲의 마음을 지니고 무작無作의 상想을 지은 것은 바로 작자作者의 은적이요, 경境과 거居와 작作이 모두 은적이고 보면 덩달아 기문을 짓는 자도 기록하지 않는 중에 기록하는 것이니 이 역시 은적인 것이다. 이 은적이 비록 산수의 사이에 붙어 있으나, 산수는 그것이 은적인 줄을 알지 못하고, 오직 거하는 자만이 은적이 왜 은적이 되는지를 아는 것이니, 만약 여기에 거하면서도 이것을 모른다면, 뒷날 염라대왕이 밥 먹고 죽 먹은 값을 내라고 요구할 때170)에 그 손안에 든 3천 근 쇠몽둥이가 무서울 것이다.
능여암기能如庵記
이 능여암의 염화실拈花室은 직지사直指寺에서 달이 돋는 곳에 있는데,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인 능여能如가 천마天魔를 곡하게 한 곳이다.171) 한복판에 몇 칸의 건물로 넓고 크게 툭 트인 곳은 부처님을 모신 전각殿閣이요, 그 좌측에 겹쳐 지은 집들로 언덕의 반쯤 되게 낮고 넓게 지은 곳은 대중이 거하는 봉료蜂寮이다.
이 암자가 성상聖上 기해년(1779, 정조 3)에 불에 탔다가 그 이듬해인 경자년(1780, 정조 4) 봄에 공사를 일으켜서 크게 중건하여 완성한 것은 비괘否卦가 가고 태괘泰卦가 온 것으로 암자의 수數(운수)요, 4칸 10가架로 가로세로가 아홉 자 남짓 되게 설계하여 예전의 제도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한 것은 암자의 양量(규모)이다. 그리고 날마다 절약하여 저축하는 한편으로 인연 맺을 시주들을 모집하여 완공할 수 있게 이바지한 것은 현재의 주실籌室172)인 대운大雲이 바로 그 사람이고, 매양 세상의 고통을 헤아려 낙향樂鄕의 생각으로 세월을 보내며 자기를 버리는 보시행을 깊이 행한 것은 모촌某村의 모인某人이 바로 그 단월檀越이며, 왕래하느라 발이 부르트고 노역勞役에 복무하느라 손에 못이 박힌 것은 현재의 대중이요, 공수工倕와 같은 묘한 재주로 자귀를 바람 소리 나게 휘둘러 험한 곳에 가설架設해서 완성한 것은 장석匠石이다. 또 옆에서 노심초사하며 일을 주관한 것은 본사本寺의 현顯이란 자요, 그 일의 전말을 서술한 것은 두류산인頭流散人인 몽암蒙庵이란 자이다. 나는 병으로 시달리는 데다 글 짓는 데 서투르지만, 요청하는 것이 끈덕진 데다 대운이 능여를 사모하여 중건한 것이 흐뭇하게 여겨지기에

010_0379_b_01L筋苦骨爲無爲心作無作7) [197] 即作者
010_0379_b_02L之隱寂也境與居作皆隱寂則從而記
010_0379_b_03L之者於無記中記之亦隱寂也這隱
010_0379_b_04L雖寄於山水之間然山水不知其爲
010_0379_b_05L隱寂惟居者知隱寂之所以爲隱寂也
010_0379_b_06L若㞐而不知他日閻老索粥飯錢時
010_0379_b_07L中三千斤鐵棒畏也夫

010_0379_b_08L

010_0379_b_09L能如*庵 [198]

010_0379_b_10L
此能如拈花室者直指月生之處羅高
010_0379_b_11L僧能如哭魔之所也其心數楹廓落而
010_0379_b_12L爽塏者安佛之殿也其左疊榭半崖而
010_0379_b_13L低恢者坐衆之蜂寮也室唯火於聖上
010_0379_b_14L己亥武興於庚子春者丕> [24] 謝而泰臻
010_0379_b_15L度四間十架廣輪而九赤有强者
010_0379_b_16L遵古勿易量也日損其盂餘而兼募
010_0379_b_17L衆緣以供斷手之役時籌室大雲
010_0379_b_18L人者也每揣其世苦而送想樂鄕
010_0379_b_19L行徹己之施某村某人 [25] 檀者也來徃
010_0379_b_20L繭而服勞胼胝時衆也風斤倕材
010_0379_b_21L險而成匠石也在傍焦心以幹事
010_0379_b_22L寺之顯者也述其事之顚末頭流散人
010_0379_b_23L蒙庵者也以潁汨於疾而生於文者
010_0379_b_24L因請之膠又喜雲之慕如而重新也

010_0379_c_01L이렇게 서술하였다.
서문序文-8편
『범망경』 서문(梵網經序)
황각皇覺(부처)이 목차木叉173)에 대해서 내려 주신 떳떳한 가르침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범망경』이 크다고 할 것이니, 이는 백겁百刼의 수행 이전에 발원發源하고 천화千花가 사퇴辭退하는 시기에 흘러내려, 녹원鹿苑과 용성龍城에서 가없이 펼쳐지고 상암象岩과 취령鷲嶺에서 질펀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라尸羅174)의 오묘한 자취를 열어서 청량淸凉을 받고 화택火宅을 빠져나오게 하였으며, 해탈의 현묘한 종지를 열어서 계벌戒筏을 타고 미진迷津을 벗어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진단震旦은 백목조白木條175)에서 동쪽으로 2만 8천 리나 떨어져 있는 까닭에 인연을 맺을 길이 이미 막혀서 이를 보고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법운法運이 순환循環하여 금화金花가 손바닥에 드러나고 가신迦神(龍王)이 정성을 바친 덕분에, 동수보살童壽菩薩(鳩摩羅什)이 요진姚秦에서 번역을 하고 월저 대사月渚大師가 접역鰈域(우리나라의 별칭)에서 판각을 함으로써, 내중內衆으로 하여금 절축折軸176)의 근심을 벗어나게 하고 외배外輩로 하여금 부낭浮囊177)의 견고함을 얻게끔 하였으니, 그 위대한 공적功跡은 실로 헤아려 의논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그러나 시운時運이 더욱 내려가고 인법人法이 더욱 위태로워지자, 먼 후손인 혜월慧月이 선인先人의 자취가 인몰될까 걱정하고 전해지는 것이 넓지 않게 될까 두려워한 나머지, 서관西關에서 퇴강頹綱을 거듭 모으고 남악南嶽에서 수목壽木을 다시 열었다. 그리하여 연장蓮藏의 계해戒海가 이로 말미암아 다시 맑아지고, 심지心地의 혜구慧炬가 이렇게 해서 다시 밝아졌으니,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도리에 지극하고 극진했다고 하겠다.
아, 오늘을 옛날에 견주어 보고 옛날을 오늘에 비교해 보건대, 월저 노인의 공功은

010_0379_c_01L是乎述之也

010_0379_c_02L

010_0379_c_03L序文

010_0379_c_04L梵網經序

010_0379_c_05L
皇覺木叉彜訓有多種而特梵網大焉
010_0379_c_06L以源乎百8) [199] 修行之前派乎千花辭退
010_0379_c_07L之時汪洋於鹿苑龍城瀚漫於象岩鷲
010_0379_c_08L啓尸羅之妙躅使受淸凉而出火
010_0379_c_09L開解脫之玄宗使乘戒筏而越迷津
010_0379_c_10L9) [200] 震旦在白木條東二萬八千里外
010_0379_c_11L10) [201] 旣隔無由見聞法運循環金花
010_0379_c_12L現掌11) [202] 神獻誠童壽菩薩誦飜於姚
010_0379_c_13L月渚大師剞劂於鰈域使內衆免
010_0379_c_14L折軸之憂外輩獲浮囊之固其豊功偉
010_0379_c_15L固難得而思議12) [203] 然年運益降
010_0379_c_16L法逾殆雲孫慧月憂先跡之湮沒
010_0379_c_17L其傳之不廣重緝頹綱於西關再開壽
010_0379_c_18L木於南嶽蓮藏戒海由是再淸心地
010_0379_c_19L慧矩 [26] 於焉重明至於紹隆之道至矣盡
010_0379_c_20L將今比昔援古較今月老之功
010_0379_c_21L「㦖」作「悶」{甲}「迹」作「跡」{甲}「誌」作
010_0379_c_22L「識」{甲}
「之」無有{甲}「拔」作「援」{甲}
010_0379_c_23L「庵」作「菴」{甲}次同
「相」作「想」{甲}「劫」
010_0379_c_24L作「㥘」{甲}
「吐」作「咄」{甲}「章」作「障」{甲}
010_0379_c_25L「迦」作「伽」{甲}「也」無有{甲}

010_0380_a_01L구마라습鳩摩羅什의 아래에 있지 않고, 혜월의 공은 또 월저 노인의 아래에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하늘에 있어서는 삼광三光(日月星)과 유사하고 인간에 있어서는 삼덕三德(智仁勇)과 같다고 할 것이니,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고 북과 거문고가 합주하는 격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몇 년 동안이나 병들어 칩거하며 심안心眼이 계율戒律과 격조隔阻해서, 계덕戒德의 만분의 일도 찬조할 수가 없는 처지이지만, 나의 글을 청하는 성의가 워낙 대단하기에, 대략 그 전말顚末을 서술하게 되었다. 삼가 계주戒珠가 더욱 빛을 발하여 일월과 어울려 밝음을 같이하고, 초계草繫 비구처럼 널리 아름다운 이름을 떨쳐178) 천지와 더불어 봄을 함께하기를 바란다.
『지장경』 서문(地藏經序)
혜월慧月 선사가 판각에 참여할 약간 명의 시주를 모집하여 『지장경地藏經』을 사빈四濱의 인쇄소에서 간행하는 한편, 경經의 덕德을 찬미하려고 사람을 보내 나에게 말했다.
“위음왕불威音王佛 이후로 보살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각과覺果가 원만해진 뒤에도 여전히 악도惡道에 머물러 있는 자는 오직 이 지장보살地藏菩薩뿐이요, 법온法蘊(佛經)의 숫자가 8만을 능가하지만 초初ㆍ중中ㆍ후後 결집結集에서 모두 고취苦趣를 위한 것은 단지 이 하나의 『지장경』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보살을 공양하고 이 경문經文을 간행함으로써, 후생後生들로 하여금 수지受持하게 하는 것이다. 발원發願하는 것이 이 보살과 같고 수행하는 것이 이 보살과 같으면 이 또한 지장地藏인 것이니, 어찌 법문法門의 일대 경사慶事가 아니겠는가.”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대개 이 지장보살로 말하면, 처음에 성녀聖女의 신분으로 각화불覺花佛을 공양供養하여 모친을 구유九幽(地下)에서 구제하였으며, 옷을 벗어 주고 땅속에 들어가 숨는(脫衣入地) 선행을 닦아서 곤유坤柔(여성)의 오장五障의 몸을 면하였다. 그리고 진생계盡生界179)를 해야만 성불成佛하겠다는 서원誓願을 발한 것은 시방十方을 다하고 삼제三際를 통틀어 오직 이 지장보살이 유일하다.
그런데 지금 공公이 보살을 공양하고 이 경을 간행하는 서원을 모두 지장처럼 하고자 한다면 이 또한 지장인 것이니, 희기안도希驥顔徒180)의 설이 믿을 만하다고 하리라. 그러나 지장은 고취에 있으면서 고취를 잊었을 뿐만이 아니라, 고취가

010_0380_a_01L不在於羅1) [204] 之下慧月之功又不在
010_0380_a_02L於月老之下則在天類三光在人猶三
010_0380_a_03L可謂敲2) [205] 齊和鼓瑟兩會者也
010_0380_a_04L多年病蟄心眼阻律不能讃戒德之萬
010_0380_a_05L但因來請之3)膠固 [206] 略叙顚末伏願
010_0380_a_06L戒珠增輝叶日月而齊明繫草傳芳
010_0380_a_07L與天地而同春

010_0380_a_08L

010_0380_a_09L地藏經序

010_0380_a_10L
慧月禪師募緣與刻如干數以地藏經
010_0380_a_11L鋟於四濱之榟更欲讃經德使人語余
010_0380_a_12L自威音已還菩薩不知幾河沙
010_0380_a_13L果圓後尙在惡道者惟斯菩薩法蘊
010_0380_a_14L數踰八十千而初中後皆爲苦趣者
010_0380_a_15L只此一經故菩薩供之經文刊之使
010_0380_a_16L可畏者受持發願如菩薩修行如菩
010_0380_a_17L則是亦地藏豈非法門一大慶事耶
010_0380_a_18L余曰丕休哉盖菩薩始自聖女供養
010_0380_a_19L覺花侊濟母九幽中修脫衣入地之行
010_0380_a_20L免坤柔五障之身以至發盡生界方成
010_0380_a_21L佛之願則是盡十方該三際惟一地
010_0380_a_22L藏而已今公供聖鋟經之願皆欲如地
010_0380_a_23L則是亦地藏希驥顔徒之說信矣
010_0380_a_24L然地藏非但在苦趣忘苦趣示苦趣爲

010_0380_b_01L열반涅槃임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단시檀施와 화증化證으로부터 시작해서 간사幹事에 이르기까지,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시상施想이나 화상化想 그리고 간사상幹事想 같은 것이 있다면, 이는 지장보살에게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가 지옥문 앞에서 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혜월은 누차 명산에 노닐면서 자기 몸을 버리는 은미한 인因을 빈번히 지었으니, 훌륭한 장인匠人이 제련製鍊한 정금精金은 결코 빛이 변하는 일이 없듯이 집착의 소굴에서 천 길 멀리 벗어난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해인사 불량계 서문(海印寺佛糧契序)
호남湖南의 청봉靑峰 화상이 치백緇白을 막론하고 성품이 부드러우며 서원誓願이 견고한 약간 명을 모집하여, 단금斷金181)의 마음으로 맹세하고는 해인사 대장전大藏殿의 불량계佛粮契를 조직하였다. 내가 그 계를 만든 뜻이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말을 전하는 자가 와서 말했다.
“팔표八表(팔방)에 명산이 많지 않은 가운데 그래도 가야산이 제일 낫고, 거찰巨刹이 별로 없는 가운데 그래도 장판藏板이 유일하다. 화상이 이 전殿에 정공淨供이 결핍된 것을 개탄하고, 아침저녁으로 수소守掃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자기의 의발衣鉢을 내다 팔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시주를 모집하되, 사람의 고하高下와 빈부貧富를 논하지 않고 재물의 다과多寡와 경중輕重을 따지지도 않았으며, 전재錢財를 희사하는 자는 모두 장부에 이름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소리가 구고九臯182)에서 울리자 천 리에서 호응한 결과, 몇 년이 되지 않아서 전錢이 백百의 단위를 넘어서고 전田이 경頃의 단위를 넘어서서, 그것으로 향화香火를 받들고 명로冥路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살갗은 말할 수 있어도 골수에 대해서는 모르는 자이다. 태고시대의 질박한 대도大道가 한번 사라진 뒤로 인욕人欲이 갈수록 기승을 부린 나머지, 돈은 알아도 자기 몸은 잊어버리며 자기 몸은 알아도 마음에는 어둡게 되었다. 그래서 화상이 등심等心183)을 발휘하고 대원大願을 운용하여,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사람을 끌어들이고 계책契册을 갖추어 시주의 명단(啣)을 받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보시布施로 인도하고 계율戒律로 교화시켜서, 속연俗緣을 잊고 본성本性을 회복하는 데 이르게 하였다고 보면, 이 조그마한 공양供養이 운문雲門의 호병胡餅184)이나 앙산仰山의 밥185)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가지고 삼세三世의 여래如來를 공양할 수 있고 시방十方의

010_0380_b_01L涅槃則始自檀施化證以至幹事
010_0380_b_02L有一毫施想化想以至幹事想則非但
010_0380_b_03L不及更增菩薩門前之淚矣慧月累遊
010_0380_b_04L名山頻作捨身微因所謂大冶精金
010_0380_b_05L遮等窠窟逈拔千丈矣

010_0380_b_06L

010_0380_b_07L海印寺佛糧契序

010_0380_b_08L
湖南靑峰和尙募緇白性柔願牢者如
010_0380_b_09L斷金矢心爲海印寺大藏殿佛粮契
010_0380_b_10L余問之曰契意何居有致其語者曰
010_0380_b_11L八表山之勝者無多而伽倻最刹之巨
010_0380_b_12L幾何而藏板獨和尙慨此殿淨供之缺
010_0380_b_13L4) [207] 晨昏守掃之無售其衣鉢5) [208]
010_0380_b_14L不論人之高下貧富亦不問財之豊
010_0380_b_15L纎輕重凡輸其錢者皆得名于册
010_0380_b_16L九臯應千里不幾年而錢過百田踰
010_0380_b_17L以奉香火用資冥路余蹷然起哂
010_0380_b_18L子可謂言其膚而忘其髓者也自大
010_0380_b_19L朴旣散人欲益熾知其錢而忘其身
010_0380_b_20L知其身而昧其心故和尙發等心
010_0380_b_21L大願托此事而引人修契册而受啣
010_0380_b_22L誘人以檀漸人以戒以至於忘緣復本
010_0380_b_23L則此微供不下雲門餅仰山飯矣
010_0380_b_24L可以此供養三世如來亦可供養十方

010_0380_c_01L법계法界에 공양할 수도 있어서, 일체一切 무한수無限數의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중생들이 모두 이 공양의 덕을 입게 될 것이니, 내가 이를 통해서 위에서처럼 향화를 받들고 명로에 이바지한다는 등 여러 가지로 말하는 자들은 모두 화상을 모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화상의 마음 씀이 명로에 이바지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거의 불량계佛粮契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니, 그대가 돌아가서 계契에 든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실상사 법전 등촉계 서문(實相寺法殿燈燭契序)
지곡사智谷寺에서 신심信心을 개발開發한 문익文益이 보화유호寶貨肉好186) 25관貫을 희사하여 문수사文殊寺 법전法殿의 암흑을 깨뜨릴(破暗) 자금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이튿날에 또 실상사에서 적측赤側187) 30관을 받들어 대소大小 2전殿의 밝음을 이을(續明) 수요需要에 충당하게 하였다. 내가 물었다.
“무슨 뜻으로 이렇게 보시하는 것인가.”
그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나는 어려서 출가하여 비록 큰절에 몸을 담았지만 항상 산속의 선지식善知識들에게 문과問過188)하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모두 ‘지옥은 칠흑처럼 깜깜하고, 불계佛界는 태양처럼 밝다. 따라서 비경悲敬의 전田189)에 등불을 켜고 촛불을 밝히면, 영원히 지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그대는 힘쓰도록 하라.’고 하였으므로, 내가 이 말을 가슴에 품고 뼛속에 새겼다. 그런데 지금 마침 약간의 재물을 얻었으므로 뜻을 같이하는 자들과 함께 광명계光明契를 결성하려고 하는데, 승속僧俗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여기에 재물을 가져오기만 하면 분실되지도 않고 새지도 않게 창고 안에 견고하게 보관하여 매년 이자를 불려 가며 반절은 호마胡麻(참깨)를 사고 반절은 밀거蜜炬(밀랍)를 사서 등불로는 밤의 어둠을 쫓아내고 촛불로는 예배하며 찬양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 년, 이 년이 지나고 다시 십 년이 지나 승려가 죽으면 제자가 대신하고 속인이 죽으면 아들이 뒤이어서, 천만 년의 시간이 지나 음陰과 양陽이 서로 갈마들고 불과

010_0380_c_01L法界一切無央數飢虛衆生盡沾此供
010_0380_c_02L吾於是6) [209] 知上來奉香火資冥路種
010_0380_c_03L種說皆不知和尙者也若知和尙之心
010_0380_c_04L不在資冥路庶可語佛粮7) [210] 公乎歸
010_0380_c_05L語*稧 [211] 中人皆點頭矣

010_0380_c_06L

010_0380_c_07L實相寺法殿燈燭契序

010_0380_c_08L
智谷寺有發信開心文益 [27] 寶貨肉好
010_0380_c_09L二十五貫爲文殊寺法殿破暗之資
010_0380_c_10L日又於實相寺奉赤8) [212] 三十貫爲大小
010_0380_c_11L二殿續明之需余問曰施意奚若
010_0380_c_12L某自幻出家雖居大寺常問過山
010_0380_c_13L知識皆曰地獄黑柒柒佛界光晃晃
010_0380_c_14L張燈爇燭於悲敬之田者永與捺落迦
010_0380_c_15L相違子勉旃服斯言鏤諸骨矣今適
010_0380_c_16L9) [213] 干物欲與同志者結光明契
010_0380_c_17L揀僧及俗男與女輸財於此不失不漏
010_0380_c_18L堅牢藏中隨年殖子半以買胡麻
010_0380_c_19L以買蜜炬燈以逐夜燭以禮讃一年
010_0380_c_20L二年更歷於十年僧沒資代俗死子
010_0380_c_21L以至於千萬歲外陰與陽相盪
010_0380_c_22L「汁」作「什」{甲}「拍」作「柏」{甲}「膠固」
010_0380_c_23L作「固膠」{甲}
「㦖」作「悶」{甲}「募」作「謀」
010_0380_c_24L{甲}
「乎」無有{甲}「稧」作「契」{甲}次同
010_0380_c_25L「側」作「仄」{甲}
「若」作「略」{甲}

010_0381_a_01L바람이 서로 쏘아 대고 하늘과 땅이 서로 삐걱거리면서 시방세계가 공중의 하나의 미진微塵처럼 오래된 뒤에야 그만둘 것이다.”
이에 내가 탄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칭찬하였다.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이는 내가 바라던 그대로이다.”
마침내 제현諸賢과 의논하였는데, 구고九皐에서 소리가 울림에 천 리에서 호응하였다. 그리하여 쾌흔快欣 비구가 청부靑蚨190) 20냥을 꺼내 주었으며, 그 밖에 각각의 사위師位와 각각의 첨원僉員들도 다 함께 동참하려는 마음이 충만하여 아끼는 마음 없이 환희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저축한 것을 털어놓기도 하고 바랑에 두었던 것을 쏟아 놓기도 하였다. 이에 향을 사르고 계契를 맺으며 맹세하였다.
“문익공文益公이여, 문익공이여. 우리도 공과 함께 광명의 회상會上에 동참하여 광명의 종자種子를 성취하리니, 그 공功과 그 덕德은 오직 부처님이 증명하시리라.”
이렇게 계契를 다 맺자 글로 기록하기를 청하였으므로 그들이 말한 대로 적어 넣었다.
등촉계문燈燭契文
대저 등燈은 비추는 것(照燭)으로 체體를 삼고 암흑을 깨는 것(破暗)으로 용用을 삼는다. 세존이 직접 명하고 제조諸祖가 우러러 신앙하면서부터 이 등의 체가 전해졌으니, 빈녀貧女의 하나의 등잔불191)이 비람毘嵐192)의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것 역시 이 등의 밝음(明)인 것이다. 대개 이 등은 법계法界의 성性에서 나와서 온전히 법계로 밝음을 삼으니, 그렇다면 생사生死의 험한 길을 비춰 주고 무명無明의 두꺼운 어둠을 깨뜨리는 것으로는 이 등만 한 것이 없다.
지금 이 암자는 지어진 뒤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상주常住193)가 텅 비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침에 분향焚香하고 저녁에 축원祝願할 때나 달이 뜨지 않고 구름이 뒤덮인 밤에는 법전法殿이 깜깜하고 성상聖像이 침침해서 마치 흑산黑山의 귀가鬼家와도 같고 생사의 대야大夜와도 비슷하다. 만약 빈녀처럼 신심信心의 손을 뻗어서 법계의 대심大心을 운용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덕德의 씨앗을 뿌린다면, 호마胡麻나 봉골蜂骨(밀랍)을 짓누르고 쥐어짜서 이것을 매달아 밝혀, 생사의 길을 벗어나고 무명의 암흑을

010_0381_a_01L與風相射天與地相軋十方世界
010_0381_a_02L空中一微塵之久而後已余㗲㗲然起
010_0381_a_03L謝曰丕休哉丕休哉正適我願遂謀
010_0381_a_04L諸賢聲九臯應千里快欣比丘出靑
010_0381_a_05L [28] 二十兩其餘各各師位各各僉員
010_0381_a_06L運滿羨心無慳心歡喜心或傾其所
010_0381_a_07L或倒其包囊燒香結契而誓曰
010_0381_a_08L公益公我等與公同會於光明會上
010_0381_a_09L1) [214] 就光明種子其功其德唯佛證知
010_0381_a_10L契訖請書依其言識之

010_0381_a_11L

010_0381_a_12L燈燭契文

010_0381_a_13L
夫燈者照燭爲體破暗爲用自從世
010_0381_a_14L尊之面命諸祖之仰信爲傳此燈之體
010_0381_a_15L貧女一2) [215] 毘嵐3) [216] 不滅者亦是此
010_0381_a_16L燈之光也盖是燈也從法界性而生
010_0381_a_17L全以法界爲明則照生死之險道破無
010_0381_a_18L明之厚夜莫若是燈也今是庵也
010_0381_a_19L之積稔而常住則虛矣其於朝焚夕祝
010_0381_a_20L之時月黑雲陰之夜法殿黯黯聖像
010_0381_a_21L柒柒若黑山之鬼家猶生死之大夜
010_0381_a_22L果能出信手如貧女焉運法界之大心
010_0381_a_23L出莊而種德則或胡麻或蜂骨壓之
010_0381_a_24L滓之懸之明之生死路可越無明暗

010_0381_b_01L깨뜨림으로써, 구류九類194)를 제도하고 구련九蓮195)에 태어나게 하며 제조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삼가 바라건대 뜻있는 선사善士가 이 장부帳簿에 향기로운 명함을 걸어 놓는다면, 후세의 사람이 오늘의 사람을 보는 것이 오늘의 사람이 옛날의 빈녀를 보는 것과 같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등촉찬문燈燭讃文
대저 세상의 천박한 자는 몇 관貫의 동전銅錢과 반묘半畝의 전답田畓을 한번 비경悲敬의 전田196)에 시주하면 큰소리 내어 자랑하며 남이 혹시 알아주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런데 지금 문익文益 비구는 보화유호寶貨肉好를 가지고 등불을 켜서 법전法殿을 연이어 밝힌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이 보광도량普光道場에까지 이르렀고, 신심信心을 발하여 그 뜻을 실천한 것이 한두 때만이 아니라 금년 금일에까지 이르렀고, 광명을 공양한 것이 한두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법계法界의 무한수無限數 불법佛法에까지 이르렀고, 광명으로 천발薦拔(薦度)한 것이 한두 생친生親만이 아니라 법계의 무궁한 중생에까지 이르렀다. 그리하여 삼륜三輪197)을 공적空寂하게 하려는 그 마음의 드넓음과 그 서원誓願의 원대함이야말로, 칠불七佛이 팔불八佛이 될 수 있고 이장二藏이 삼장三藏이 될 수 있는 것이겠기에,198) 병석에 누워 있다가 환희심을 가누지 못한 나머지 저물어가는 이때에 남의 손을 빌려서 이렇게 적게 되었다.
수성대 중수기水聲臺重修記
계축년(1793, 정조 17) 봄에 내가 병이 위중하여 문을 닫아걸고 드러누운 지199) 달이 벌써 두 번이나 둥글었는데, 금파錦波 도우道友가 추위를 무릅쓰고 찾아와서 나에게 말했다.
“이 산은 두로杜老가 말한 삼한三韓 밖에 있는 방장方丈이다.200) 이 한 산의 정수精粹한 기운이 광대하게 뒤엉겨서 덕德과 도道의 승경勝景으로 맺혔는데, 그 덕과 도의 승경이 다하지 않아서 아래로 내려와 이 절이 되었으니, 이 절이 이 때문에 호남에서 유명하게 되었다.

010_0381_b_01L可破九類可度九蓮可生諸祖可作
010_0381_b_02L伏願有志善士請掛芳啣則安知後之
010_0381_b_03L人視今之人不若今之人視古之貧女
010_0381_b_04L

010_0381_b_05L

010_0381_b_06L燈燭讃文

010_0381_b_07L
夫世之淺夫薄者以數貫銅半畝田
010_0381_b_08L度施諸悲敬之田則㗲㗲然詑猶恐人
010_0381_b_09L之不知今文益比丘以寶貨肉好
010_0381_b_10L燈續明於法殿而非但一二處乃至於
010_0381_b_11L斯普光道場發心運意非但一二時
010_0381_b_12L乃至於今年今日光明供養非但一二
010_0381_b_13L乃至於法界無盡限佛法光明薦拔
010_0381_b_14L非但一二生親乃至於法界無央數生
010_0381_b_15L能使三輪空寂其心之普願之大七佛
010_0381_b_16L可八二藏可三負席中不勝忻4) [217]
010_0381_b_17L傍暮呼倩

010_0381_b_18L

010_0381_b_19L水聲臺重修記

010_0381_b_20L
癸丑王春余病力却掃而臥者月已
010_0381_b_21L再彀矣錦波道友冒寒而來謂余曰
010_0381_b_22L此山杜老所謂三韓外方丈也一山精
010_0381_b_23L粹之氣輪菌磅礴結爲德道之勝
010_0381_b_24L道之勝不盡而下爲寺寺由是鳴於湖

010_0381_c_01L내가 개사開士 중에서 특별히 그대를 택하여 현판을 장식하는 몇 마디 말을 청하고자 한다.”
내가 사양하여 말했다.
“나는 현판 위에 새겨 놓기에는 문장 솜씨가 부족하다. 게다가 또 평소에 찬술撰述하는 습관이 없어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부탁하라.”
그러자 금파가 내 말을 받아서 바로 말했다.
“내가 감히 다른 사람에게 청하지 못하겠기에 그대에게 부탁한 것인데, 그대는 또 어찌하여 이토록 인색하게 구는가. 그리고 이 절이 창건된 연대는 알아볼 수가 없지만, 주춧돌이 나무꾼이 다니는 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강희康熙 병오년(1666, 현종 7)에 백장百丈의 승려 상혜尙慧가 띠풀을 잘라서 결계結界201)를 하였는데, 불행히도 적賊의 화염에 불타고 말았으며, 옹정雍正 정미년(1727, 영조 3)에 선자禪者 철인哲仁이 그 뒤를 이어서 공사를 일으켰으나, 또 세월이 오래되면서 비바람을 맞아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땅의 운세는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고 시대마다 적당한 사람이 나오게 마련이라서, 개찰開刹과 운평芸平이 재물을 모아 이자를 늘리고 금파와 영휘永輝가 자기 보따리를 풀고 시주를 모집하여, 장석匠石을 불러와 낙성을 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치옥㢁屋과 각도閣道와 당堂과 무廡가 들어서자, 헌창軒牕과 맹롱甍櫳이 어디서나 불룩하니 솟아올라서 임천林泉과 아름다움을 다투니, 산이 이로 인해 더욱 기이해지고 절이 이로 인해 더욱 멋있어졌으므로, 사람들 모두가 마음으로 칭찬하고 입으로 부러워하며 위대한 공적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지금 눈으로 휘황하게 보일지라도, 혹 나중에 퇴락하여 앞으로 또 공사를 시작하던 처음처럼 될까 걱정도 되는 만큼 기문記文을 지어서 후생들에게 전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에, 그대에게 누를 끼치려 한 것이다.”
내가 말했다.
“그대가 처음을 경계하고 끝을 염려하니, 만물의 시초(物之初)202)에 대해서 더불어 논할 수 있겠다. 그대는 다만 나를 위하여 암자 안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고하도록 하라. ‘물이라는 것으로 말하면, 앞 물결이 뒤 물결을 이끌어 주고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면서 졸졸 흘러내려 맑음을 이어 주니 이것은 물의 상相이요, 숲을 휘돌아 돌과 부딪치고 골을 진동시키며

010_0381_c_01L吾得公於開士中以弁楣數語請
010_0381_c_02L余謝曰潁文不足以辱木刻加又平
010_0381_c_03L無習撰述不知所以云者公其請
010_0381_c_04L諸他波遽曰吾不敢請於他故維子
010_0381_c_05L之歸而子又何固靳之膠耶且是寺開
010_0381_c_06L剏年朝無從𧨝得但基礎留之於樵靑
010_0381_c_07L之場康熙丙午百丈釋尙慧誅茅結
010_0381_c_08L不幸見火于賊炎雍正丁未禪者
010_0381_c_09L哲仁踵武興功又爲年深風雨所欺
010_0381_c_10L幾隣於無矣地運環復代有其人
010_0381_c_11L刹及芸平鳩財而殖子錦波與永輝
010_0381_c_12L撤己而募緣召匠告成所以爲5) [218]
010_0381_c_13L爲閣道爲堂爲廡軒牕甍櫳在在6) [219]
010_0381_c_14L與林泉爭美山以此益奇寺以此
010_0381_c_15L益勝人皆心賢舌艶之曰豊功偉績
010_0381_c_16L雖煥於目或恐日後泯然將復如濫觴
010_0381_c_17L之始則不若述之以傳于可畏者云故
010_0381_c_18L余乃曰公戒始慮終可與論物之
010_0381_c_19L初者公第爲我告庵中人曰水兮水
010_0381_c_20L前流引後流後流排7) [220] 涓涓而淸
010_0381_c_21L續者水之相也縈林而觸石振壑而
010_0381_c_22L「或」作「成」{甲}「盞」作「戔」{甲}「風」作
010_0381_c_23L「吹」{甲}
「忭」作「抃」{甲}「痑」作「㢁」{甲}
010_0381_c_24L「窮」作「穹」{甲}「前」下有「流」{甲}

010_0382_a_01L산을 울리고 바람 불고 비 오는 것처럼 콸콸 흐르니 이것은 물의 성聲이다. 옛사람이 수성水聲이라고 명명한 뜻으로 말하면, 여기에 거하는 자로 하여금 마음과 몸을 수련하여 물처럼 맑게 하려고 그랬을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속진의 소리가 귀에 들릴까 저어해서 유수流水가 산을 감싸게 했다203)는 뜻을 취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색色과 성聲도 공空과 같다고 여기고, 공 역시 색과 성과 같다(視色聲猶空。視空猶色聲。)고 여기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속으로 듣는 물소리 모두가 공空한 것이고, 공하다고 하는 그것도 공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서암瑞庵 화상의 적적성성寂寂惺惺한 곳이요,204) 또 역易의 무극無極205)인 것이며, 도道의 천하모天下母206)인 것이니, 다시 수성水聲이라고 이름 붙일 까닭이 무엇이겠으며, 또 나의 말로 기문을 지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금파가 미소를 지으면서 잘 알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적었다.
금강산 표훈사의 부역을 견감蠲減한 것을 기록한 글(金剛山表訓蠲役記)
이 산이 수려하게 솟아서 신령스럽고 기이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으뜸이기 때문에 열성列聖이 서로 이어 가며 국가에서 축희祝禧하는 곳으로 삼았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절이 커지고, 승려가 많아지면서 계율이 느슨해졌으므로, 관역官役이 이런 와중에서 생겨나 선禪과 교敎에 힘쓰지 않는 무리를 혼내 주었는데, 부역賦役이 번거로워지면서 승단이 쇠잔해짐에 따라 거의 폐사廢寺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당저當宁(正祖)가 즉위하시어, 선조先朝의 뜻을 계승하고 제반 폐해(弊政)를 개혁하면서, 광명한 촛불로 교화하시어 도옥逃屋207)을 비추어 주었다. 그리하여 백성을 사랑하는 여파가 치류緇流에까지 미쳐서, 여러 가지 사찰의 부역에 대해 조목별로 반포하여 견감蠲減해 줌에, 그 소문이 산골에서 울려 천 리에까지 전파되었다.
이때는 진양晉陽(본관이 晉州인 것)의 강공姜公이 마침 이 고을을 와치臥治208)하며 승제承制209)하는 날이었는데, 민첩하게 손을 써서 봉행奉行한 결과 모든 부역에 대해서 대소大小와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하나하나 말끔히 없애 주었으니, 위대하다고 하겠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대성大聖이 세상을 다스리면 반드시 보좌하는 자가 나온다고 하였다. 생각건대, 하늘이 성상聖上을 보내어 안에서 일으키게 하고, 다시 강공을 보내어 밖에서 호응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는 참으로 본말이 서로 부합하고 상하가 서로 조응하는 것이니, 실로 성세聖世에나 볼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에 제승諸僧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성상을 축원하고 나서

010_0382_a_01L吼山淙淙1) [221] 若風雨者水之聲也
010_0382_a_02L人命名之義欲使居者修心鍊形將同
010_0382_a_03L之水淸而然耶抑取恐2)鹿 [222] 聲到耳
010_0382_a_04L敎流水籠山之義而然耶我佛有言
010_0382_a_05L色聲猶空視空猶色聲以至能3) [223]
010_0382_a_06L所聞聲俱空而空者亦空則即是瑞庵
010_0382_a_07L和尙寂寂惺惺之處亦是易之無極
010_0382_a_08L之天下母4) [224] 何水聲之名亦何余言
010_0382_a_09L之記錦波微哂曰於是書之

010_0382_a_10L

010_0382_a_11L金剛山表5) [225] 蠲役記

010_0382_a_12L
玆山之秀峙靈異6) [226] 國故列聖相承
010_0382_a_13L爲國家祝禧之所7) [227] 8) [228] 寺殷僧繁
010_0382_a_14L而戒緩官役生于中以勵不禪不敎之
010_0382_a_15L而役9) [229] 僧殘以至於幾弊之境矣
010_0382_a_16L爰及當宁嗣位繼先朝志而革諸弊
010_0382_a_17L光明燭而照逃屋愛民餘波所及緇流
010_0382_a_18L多般寺役頒條蠲除聲九臯應千里
010_0382_a_19L時晋姜公適臥治斯郡承制之日敏手
010_0382_a_20L奉行凡役無大與小公與私一一滌
010_0382_a_21L偉矣哉古云大聖應世必有補翼
010_0382_a_22L意者天遣聖上作之於內更使姜公
010_0382_a_23L和之於外耶可謂本末相符上下相照
010_0382_a_24L聖世之能事矣諸僧手舞祝聖之次

010_0382_b_01L다시 강공을 축원하기를 “산처럼 높은 수명을 향유하시고, 물처럼 맑은 명예를 누리시기를. 산과 같은 수명과 바다와 같은 복덕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향기로우시기를.”이라고 하였다. 축원이 끝나자 기문을 청하였는데, 내가 사양해도 안 되기에 이렇게 적었다.
권문勸文-16편
법전권문法殿勸文
대저 사속四俗이 모두 “석씨釋氏는 선악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간다며 사람을 협박한다.”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나 말고는 이런 권문勸文을 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육적六籍(六經)을 잘 모르기는 해도 가끔 괜찮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역易에도 앙경殃慶210)이 있고, 예禮에서도 적원積原211)을 설명하고 있는데, 두보가 천 칸의 큰집을 소원하고 변생邊生이 구주九州의 이불을 읊자,212) 죽어 가는 슬픈 목소리로 무혹誣惑한다고 비방하며 와글와글 떠들어 대는 저들의 말이 한번 북을 칠 필요도 없이 마구 쏟아져 내려왔다.
지금 이 법전法殿은 두 태실胎室213) 아래에 있는데, 지어진 지 오래되어서 바람과 비에 기롱을 받아 이려栭梠(枓栱과 平高臺)가 이지러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는 무리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탐승探勝하는 자들에게 책망을 받기 때문에 새롭게 하여 학의 둥지를 만들고 싶어도 힘이 미력하여 혼자서는 하기 어려우므로 널리 개제愷悌한 군자들에게 고하는 바이니, 무혹한다고 꾸짖지 마시고 각각 도움의 손길을 내려 주셨으면 한다.
그리하여 기울어지고 부러지고 이지러진 것들을 붙들어 주고 이어 완전하게 해 준다면, 다시 눈을 씻고 유상遊賞할 수 있을 뿐더러 용천龍天도 감동하여 용모를 바꿀 것이다. 그 공적이 광대한 것이 마치 하늘을 사다리로 올라갈 수 없는 것과 같고 바다를 배로 건널 수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니, 부디 힘쓰고 힘써 주기 바란다. 집기什器는 궁중에서 나오고 갈삿갓(蘆笠)은 임금님이 제로諸路에 준비하도록 하셨으니, 입으로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이에 다음과 같이 봉축奉祝하는 바이다. “시방의 법계가 나의 입이 되어, 보시한 공덕을 끊임없이 축원하리라.”214)
개와권문蓋瓦勸文
지붕은 기와끼리 서로 의지한 후에라야 세월에 오래 버틸 수 있으니, 이는 궐蟨과 공蛩 그리고 장비長臂와 장각長脚이 서로 도와서 잘 달리고 물고기를 잘 잡는 것215)과 같다고 하겠다.

010_0382_b_01L更祝姜公曰壽與山屹名共水淸
010_0382_b_02L壽海福逾久逾馨祝訖請記之辭不
010_0382_b_03L書之

010_0382_b_04L

010_0382_b_05L10)勸文

010_0382_b_06L法殿勸文

010_0382_b_07L
夫四俗盡謂釋氏善惡天獄䝱人而捨
010_0382_b_08L余不書者因與六籍阻徃徃得之言者
010_0382_b_09L易有殃慶禮陳積原杜願千間之厦
010_0382_b_10L邊誦九州之被彼謗誣惑嗷嗷之言
010_0382_b_11L待一作鼓而下矣今茲殿也在兩胎室
010_0382_b_12L而斷手云遠風打雨欺栭梠虧
010_0382_b_13L院輩穉耆盡被探勝者所誚切欲新而
010_0382_b_14L鶴巢蚊力難於獨普告愷悌君子
010_0382_b_15L以惑誣見誚而各出一手使傾者折者
010_0382_b_16L毁者扶之輯之完之11) [230] 賞可拭目
010_0382_b_17L而龍天亦動容其功浩瀚如天不可梯
010_0382_b_18L海不可航渡勉旃勉旃器汁 [29] 生天
010_0382_b_19L蘆笠輪王12) [231] 備諸路口不煩仍茲奉
010_0382_b_20L十方法界爲吾口祝施功德無間歇

010_0382_b_21L

010_0382_b_22L盖瓦勸文

010_0382_b_23L
屋之與瓦相籍 [30] 而後能久於世猶蟨
010_0382_b_24L之於蛩長臂之於長脚互須而能走漁

010_0382_c_01L그러므로 황제黃帝가 수倕216)에게 집을 짓도록 명하고 띠풀로 위를 가리게 하였지만 매양 풍우의 근심을 면치 못하였으므로, 하우夏禹 때에 이르러 곤오昆吾로 하여금 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기와가 유柔를 바꾸어 강剛을 이룬 것이나 둥글게 합하고 모나게 깎아 낸 것은 하늘과 땅의 정상正象을 본받은 것이요, 수키와는 굽어보고 암키와가 우러러보게 한 것은 음陰과 양陽의 수기粹氣를 머금은 것이니, 이것이 바로 기와가 유행하게 된 소이所以로서, 참으로 우주에 통하고 만고에 걸쳐서 바뀌지 않을 묘법妙法이라고 하겠다.
지금 이 건물은 낙성한 지 이미 오래된 탓에 물고기 비늘처럼 이어진 기왓장들이 떨어져 나가서, 금상金像이 앉아서 비 맞게 하고 방포方袍217)가 축축한 데에서 거하게 하니, 지금이야말로 힘을 내어 기와를 구워야 할 때이다. 그런데 학 둥지 속의 모기와 같은 힘은 장석匠石이 자귀를 휘두를 때에 이미 고갈되었고, 기와를 살 여력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권문勸文을 지어서 다시 시주를 모집하게 되었다. 아무쪼록 군자들이 각각 도움의 손길을 내려 주어 이 공을 이루게 해 준다면, 공과 궐이 서로 돕고 장비와 장각이 상호 의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인因이 이미 광대한 만큼 그 과果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생각건대 어느 때 어디서나 찬양하면서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는 설상舌相(長廣舌)이 있게 될 것이다.
가사권문袈裟勸文
계엽季葉(말세)에 단나檀那(보시)를 닦는 길이 만 가지로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의袈衣에 대한 것이 특별히 유명하다. 가로세로(廣輪)가 방정方正한 것은 상相이요, 청흑靑黑이 목란木蘭218)인 것은 색色이요, 삼주三肘(5척尺 4촌寸)와 오주五肘(9척)로 재단裁斷하는 것은 양量이요, 찢어서 밭두둑 모양으로 꿰매어 보여 주는 것은 복福이다.219) 그리고 한복판의 주폭主幅과 사우四隅는 바로 제석帝釋과 사왕四王이 수미須彌의 네 모퉁이를 진압하는 것이요, 그 위에 세 개가 긴 것은 바로 시방의 삼보三寶인 것이요, 그 아래에 하나는 길고 하나는

010_0382_c_01L是以黃帝命倕作室廕以茨茅
010_0382_c_02L未免風雨之憂爰及夏禹使昆吾燒以
010_0382_c_03L爲瓦變柔成剛合圓削方體天地之
010_0382_c_04L正象䲶俯而鴦仰含陰陽之粹飛
010_0382_c_05L瓦之所以興誠該宇宙亘萬古不易之
010_0382_c_06L妙軌也今茲舍也落成已久魚鱗隳
010_0382_c_07L致使金像坐雨方袍居濕此誠遒
010_0382_c_08L遒謀陶之秋也鶴巢蚊力已竭於匠石
010_0382_c_09L之風斤無餘勇可賈於瓦故出勸文
010_0382_c_10L更募檀繄願君子各出一手以成斯
010_0382_c_11L則可謂蛩蟨相資臂脚互依其因
010_0382_c_12L旣大果亦難量惟洞而稱揚遍覆三
010_0382_c_13L千大千世界舌相在

010_0382_c_14L

010_0382_c_15L袈裟勸文

010_0382_c_16L
季葉修檀之路萬殊而獨袈衣名焉
010_0382_c_17L輪方正相也靑黑木蘭色也裁三肘
010_0382_c_18L五肘量也示裂縫畦畛福也當中主
010_0382_c_19L幅與四隅即帝釋四王鎭須彌四角也
010_0382_c_20L其上三長即十方三寶也其下一長一
010_0382_c_21L「而」無有{甲}「鹿」作「塵」{甲}「開」作「聞」
010_0382_c_22L{甲}
「夫」作「復」{甲}「訓」下有「寺」{甲}
010_0382_c_23L「於」下有「東」{甲}
「而」作「然」{甲}「久」下
010_0382_c_24L有「而」{甲}
「煩」作「繁」{甲}「勸文」無有{甲}
010_0382_c_25L「游」作「遊」{甲}「之」下有「報」{甲}

010_0383_a_01L짧은 것은 바로 육도취생六道趣生인 것이니, 그러고 보면 십계十界의 의정依正220)이 이 옷을 벗어나지 않아서, 심心이 곧 이 옷이요 이 옷이 곧 심인 것이다. 그래서 삼세제불이 대개 이 옷을 전한 것이고, 삼십삼 조사들도 이 옷을 전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시金翅가 비록 악독해도 한 오라기 옷의 위의를 해치지 못하였고,221) 견서堅誓가 비록 포학해도 가사를 훔쳐 입은 사람을 공경하였으니,222) 이는 대개 이 옷이 부사의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옷의 덕이 이미 부사의하다면 시주하는 덕도 부사의하기 때문에, 육선六線의 공덕으로 도끼와 모탕(斧櫍)의 흉액을 면하고, 삼팔포三八布를 보시한 공덕으로 해교海橋의 아름다움을 향유한 것에 대해서는223) 진시방법계를 입으로 삼고 그 법계 안의 경계를 혀로 삼더라도 그 공덕의 만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다. 만약 내가 위에서 누누이 말한 것(絡索) 중에 혹 한 구절이라도 사람들을 속여 홀린 것이 있다면, 위태韋駄224)의 손안에 있는 팔만 사천 근斤의 쇠몽둥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무쪼록 선사善士들은 힘써 주고 힘써 주기 바란다.
주종권문鑄鍾勸文
『부법전付法傳』에 이르기를 “부처가 열반한 뒤에 가섭이 수미산에 올라가 종을 쳐서 시방의 득통한 자들을 구름처럼 모이게 했다.”225)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종鍾은 법기法器 중에서 대중을 모이게 하는 기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기록에 전하기를 “황제黃帝가 부씨鳧氏에게 명하여 종을 주조할 적에, 바닷가에 짐승이 있는 것을 보고 포뢰蒲牢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소리가 종과 같고 그 성질이 고래를 겁내어 만나기만 하면 울부짖었으므로, 종의 머리를 포뢰 모양으로 하고 종 채를 고래 모양으로 깎게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상법像法이 도래하기 전에 벌써 일찌감치 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주림전珠林傳』을 보면, “수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경조京兆(長安)에서 한 사람이 죽었다가 7일 만에 다시 소생하여 말하기를 ‘지하에서 주周 무제武帝를 만났는데 고통을 혹심하게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별할 즈음에 그가 나에게 「나를 위해 수제隋帝에게 ≺부고府庫의 백물百物을 내가 그대와 함께하겠다. 내가 고통을 받을 때에 종소리를 듣는 동안에는 잠시 고통이 덜해지곤 하니, 천하의 사관寺觀에 조칙을 내려

010_0383_a_01L即六道趣生也然則十界依正
010_0383_a_02L出此衣1) [232] 此衣此衣*則 [233] 三世
010_0383_a_03L諸佛盖傳此也三十三諸祖亦授此
010_0383_a_04L是以金翅之毒獰不能害一縷之威
010_0383_a_05L堅誓之酷暴猶能敬竊服之人盖有不
010_0383_a_06L思議力故其衣之德旣不思議能施
010_0383_a_07L之德亦不思議故以六線之功免斧
010_0383_a_08L櫍之厄三八布享海橋之美盡十方
010_0383_a_09L法界爲口即其中所有爲舌不能稱功
010_0383_a_10L德之萬一也如上絡索若有一句
010_0383_a_11L惑諸人韋駄手中八萬四千斤鐵棒
010_0383_a_12L伏願善士勉旃勉旃

010_0383_a_13L

010_0383_a_14L鑄鍾勸文

010_0383_a_15L
付法傳云佛涅槃後迦葉上須彌擊鍾
010_0383_a_16L雲集十方得通者則鍾法中集衆之器
010_0383_a_17L世詮云黃帝命鳧氏鑄鍾見海岸
010_0383_a_18L有獸名蒲牢聲如鍾而性畏鯨遇之
010_0383_a_19L輒鳴故厥頭如蒲牢狀而削桴象鯨
010_0383_a_20L則像法未來已早有鍾也珠林傳云
010_0383_a_21L隋開皇中京兆一人殞後七日甦云
010_0383_a_22L地下見周武帝受苦孔酷臨別謂曰
010_0383_a_23L爲我報隋帝府庫百物我共有之
010_0383_a_24L受苦之時每聞鍾聲暫歇勑天下寺

010_0383_b_01L그 소리를 오래 끌도록 하라. 그리고 나를 위해 따로 종 하나를 만들어 주면 더욱 좋겠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하였다. 운운云云.”의 말이 실려 있으니, 그렇다면 종이 삼계를 포괄하고 도속道俗을 통틀어 고통을 그치고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기구인 것이 분명하다.
지금 이 절에도 종이 있어서, 육시六時에 길게 이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이 아득히 오래되었는데, 지난번에 종치는 자에게 손상을 받은 나머지 저녁에 28회 치는 소리와 새벽에 36회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새로 마련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변변치 않은 힘으로는 혼자서 걸머지기가 어렵기에 널리 단헌檀軒에게 고하게 되었다. 부디 군자들께서 있는 힘껏 재물을 희사하여 정신이 깨어나게 하는 이 종을 만들어서 명로冥路에 도움이 되게 해 주기를 삼가 바라노니, 그렇게 한다면 다른 소소한 시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공덕이 엄청날 것이다.
대책권문大册勸文
대저 사람이 아는 것은 모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매양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상은, 자기의 좁은 소견으로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단정하려 하면서 보시를 해도 과보果報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 정와井蛙226)가 구덩이 집(坎宅)을 자랑하고 풍이馮夷227)가 추수秋水를 자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대방大方228)이 수지하는 것을 그리워하여, 동규冬葵가 꽃을 피우고 서조瑞鳥가 꽃을 머금는 것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평소에 가슴에 가득한데도 책이 없어서 골몰하던 끝에, 뜻을 같이하는 선사善士들에게 우러러 고하게 되었으니, 감택坎宅과 추수를 가지고 과보가 없다고 단정하지 마시고 각각 도움의 손길을 내려 주시기 바란다. 손을 씻고 고통을 구제함에 해신海神이 제때에 비를 내려 주었다는 설은 방책方册에 갖추 기록되어 있으니, 여기서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주기권문鑄器勸文
유정有頂의 바람에 불타거나 무저無底의 물속에 표류하지 않고,229) 속진俗塵 밖으로 묘하게 빠져나오는 하나의 길이 있으니, 아불我佛의 단나檀那와 조과鳥窠의 중선衆善230)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이 길을 따라서 곧장 재물의 대소大小와

010_0383_b_01L可延久其聲爲我別造一鍾尤善云
010_0383_b_02L然則鍾該三界通道俗歇苦發省
010_0383_b_03L之具必也2)斯寺 [234] 亦有其物爲六
010_0383_b_04L時延久之聲攸 [31] 向爲掌抱者所傷
010_0383_b_05L之四七響3) [235] 之六六音不報已久矣
010_0383_b_06L切欲謀新扶扶一力難於獨肩普告
010_0383_b_07L檀軒敬願君子屭贔傾儲造此發省
010_0383_b_08L之具以資冥路也則與他瑣瑣之施
010_0383_b_09L辟三舍矣

010_0383_b_10L

010_0383_b_11L大册勸文

010_0383_b_12L
夫人之所知不若其所不知每在常輒
010_0383_b_13L欲以所不見而斷所未能了言施無報
010_0383_b_14L何異井蛙坎宅馮夷秋水之伐耶余慕
010_0383_b_15L大方受持欲如冬葵發艶瑞鳥含花者
010_0383_b_16L盈腔有素而汨於無册仰告同志善士
010_0383_b_17L無以坎宅秋水自斷其無報而各出一
010_0383_b_18L手也盥水救苦海神時雨之說具者方
010_0383_b_19L不煩

010_0383_b_20L

010_0383_b_21L鑄器勸文

010_0383_b_22L
有不爲有頂風無底水所漂焚而妙出
010_0383_b_23L塵外之一路即我佛之檀那鳥窠之衆
010_0383_b_24L是也若緣此路則不問其財大與

010_0383_c_01L다과多寡를 따지지 않고 솥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서 이 기구를 주조하는 데 희사한다면, 유정의 바람과 무저의 물을 면하고 묘하게 빠져나오는 하나의 길에 곧장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하면 희희낙락하는 태평시대의 봄날이 돌아오고 은은하게 상고시대의 덕화가 펼쳐져서, 용루龍樓에는 다시 삼황三皇의 달빛이 밝게 비칠 것이요, 봉각鳳閣에는 거듭 오제五帝의 바람이 맑게 불어올 것이다.
도배권문塗排勸文
『지도론智度論』에 “사문沙門 이십억二十億이 지소紙素(종이와 견직물)로 정장淨場을 도배하여, 다생多生에 발밑에 털이 나는 과보를 받았다.”231)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발에 털이 나면 땅을 밟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실로 20억 냥의 돈을 덜어 내어 승방僧房을 중하게 도배해 준 것인데, 이렇게 해서 운수납자가 먼지와 오물 속에서 벗어나게 하고, 도체道體가 얼어붙어 입김으로 불어 녹이는 환란이 없게 하였으므로, 부처가 훌륭하다고 칭찬한 것이다.
그런데 더군다나 지금은 시대가 이미 말세여서 탐욕이 이미 극에 이르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능히 재물을 덜어 내어 섬등剡藤(종이)을 구매하여 너덜너덜해진 이 지석紙席을 다시 바꿔 준다면, 옛날을 오늘처럼 여기고 인人을 천天처럼 여기며 이익을 털끝처럼 여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니, 그 공이 이십억보다도 위일 것이요, 그 칭찬이 이 세상 부처님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구주九州의 이불을 만들기에 족하다고 한 것은 변생에 대한 평가로 입에 오른 말이요, 천 칸의 집을 짓겠다고 한 것은 단지 두로杜老의 소원에서 나온 것일 뿐이니,232) 어찌 실제로 지은 이 참된 공덕과 견줄 수나 있겠는가. 이상 누누이 말씀드린 것은 모두 『지도론』에서 말씀한 뜻이니, 오직 단나檀那(시주)께서는 이 점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상모권문像貌勸文
불상佛像의 유래가 오래되었으니, 파우波于의 이왕二王233)으로부터 시작되어, 가유迦維의 구억九億234)에 의해 널리 퍼져 나갔다. 이 어찌 삼신三身의 덕이 원만하니

010_0383_c_01L多與寡盡鉼倒底投於斯鑄器
010_0383_c_02L有頂風無底水可免妙出一路可以經
010_0383_c_03L造矣熈熈太平春隱隱上古化龍樓
010_0383_c_04L4) [236] 三皇月鳳閣重淸五帝風

010_0383_c_05L

010_0383_c_06L塗排勸文

010_0383_c_07L
智度論云沙門二十億以紙素塗飾淨
010_0383_c_08L多生感足下生毛之報足生毛者
010_0383_c_09L不履地故良以二十億損減割之重塗
010_0383_c_10L蜂委之室使雲衲免塵汚之侵道體無
010_0383_c_11L呵凍之患故佛讃曰善哉況今時已
010_0383_c_12L季矣欲已極矣能損財貿剡藤改此
010_0383_c_13L隳缺紙席則可謂視古猶今視人猶天
010_0383_c_14L視利猶毛其功可上於二十億其讃不
010_0383_c_15L止於此方佛九州之被徒上於邊生之
010_0383_c_16L千間之厦只發於杜老之願奚比
010_0383_c_17L此實地做底眞5) [237] 德乎如上絡索
010_0383_c_18L是論音惟檀那目之也

010_0383_c_19L

010_0383_c_20L像貌勸文

010_0383_c_21L
像之肇遠矣濫觴於波于二王而汪洋
010_0383_c_22L乎迦維九億豈非三身之德周圓
010_0383_c_23L「則」作「即」{甲}「斯寺」作「茲殿」{甲}
010_0383_c_24L「辰」作「晨」{甲}「躍」作「曜」{甲}「功」作
010_0383_c_25L「工」{甲}

010_0384_a_01L비상한 과보를 새기고 사지四智의 지혜가 참으로 청정하니 증상의 공덕을 불화佛畫로 그린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백목조白木條235)에서 동쪽으로 8만여 리 밖에 떨어져 있지만, 그 땅의 불상을 본받아서 존의尊儀를 마침내 조성하였는데, 날이 가고 달이 차면서 혁금赩金(金銅)의 상모像貌가 훼손됨을 면치 못했기에, 감히 승연勝緣을 가지고 두루 달식達識들에게 고하노니, 함께 당래當來의 인因을 맺어 같이 무상無上의 과果를 이루었으면 한다. 혹시 청회淸懷에 걸맞거든 이 장부에 아호雅號를 기록해 주시기 바란다.
명등권문明燈勸文
자사刺使가 한번 이끗을 생각함에 벽귀壁鬼가 깔깔거리며 웃고,236) 빈녀貧女가 일전一錢의 등불을 켬에 비람毘嵐이 불어도 꺼지지 않으니,237) 그렇다면 이끗은 해악을 끼치는 원금이 되고 등불은 선善을 불리는 이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사善士들은 이끗을 버리고 이 등불을 켜 주기를 삼가 바라노니, 그러면 불지佛智를 증득할 수 있고 이끗의 해악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부지런히 힘써야 할 것이니, 변방의 봉화烽火가 잠잠해지면 불법의 수레바퀴가 구를 것이다.
통용권문通用勸文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백세百歲를 기약하지만, 한 사람도 백 년을 살지 못하고서 향유하는 것이 희순希順238)에 지나지 않는데, 그 사이에 밤 시간을 제외하고 또 질병과 근심으로 괴로워하는 때를 제외하면, 웃으며 즐거워하는 시간은 약간의 날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또 무상無常(죽음)이 졸지에 닥쳐와서 이수二竪239)가 몰래 상의하면 십무十巫의 술법도 소용이 없을 것이니,240) 그렇다면 그 고통이 또 어떠할지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삼가 바라건대 여러분은 이와 같은 일을 깊이 생각하여, 재물이 사소하다고 혐의하지 말고 각각 환심歡心을 운용하여 도움의 손길을 내려 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저 무락無樂과 무상無常을 뛰어넘을 수 있고, 난사蘭奢(명예)와 실달悉達(지혜)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기 바란다.

010_0384_a_01L有殊常之報四智之慧眞淨畫多增上
010_0384_a_02L之功歟今茲地也在白木條東八萬餘
010_0384_a_03L里外1) [238] 2) [239] 土而聿成尊儀則日
010_0384_a_04L富月滿赩金未免隳缺敢以勝緣
010_0384_a_05L告達識共結當來之因同成無上之果
010_0384_a_06L倘稱淸懷請掛雅號

010_0384_a_07L

010_0384_a_08L明燈勸文

010_0384_a_09L
刺使一念利壁鬼笑呵呵貧女一錢燈
010_0384_a_10L毘嵐吹不滅然則利爲害母燈爲善因
010_0384_a_11L伏願善士捨是利而造是燈則佛智可
010_0384_a_12L利域可出矣3) [240] 旃*勉 [241] 邊烽息
010_0384_a_13L法輪轉

010_0384_a_14L

010_0384_a_15L通用勸文

010_0384_a_16L
世之人盡以百歲爲期而無一人登百
010_0384_a_17L所享不過希順而其間除夜而又除
010_0384_a_18L疾憂苦則開口樂者無如干日況又
010_0384_a_19L無常卒至二竪潜言十巫空術則苦
010_0384_a_20L苦又4)可知 [242] 伏願僉尊深思此等事
010_0384_a_21L莫以財之些小爲嫌各運歡心出隻手
010_0384_a_22L則彼無樂與無常可越蘭奢與悉達可
010_0384_a_23L*勉 [243] 旃*勉 [244]

010_0384_b_01L
또(又)
대저 한 자의 물결이나 한 치의 햇볕은 대력大力의 소유자도 멈추게 할 수가 없고, 해가 운행하고 달이 도는 것은 현재賢才라도 막을 도리가 없기 때문에, 무상無常(죽음)의 괴로운 시간이 번개처럼 들이닥치고 고름이 흘러내리는 몸뚱이의 변화가 우레처럼 몰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몽매한 속습俗習을 깨우치는 진성眞性이 있고 바른 길을 열어 주는 하취遐趣가 참으로 있으니, 그러기 위해서는 견뢰장堅牢藏에다 씨앗을 심어 두는 것보다 상책은 없다고 할 것이다.
지금 이 일 역시 견뢰장에다 하나의 씨앗을 심어 두는 일에 속하니, 삼가 뜻있는 분들은 각각 자루 속의 금전과 항아리 속의 곡식을 기울여서, 새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 이 곳간 속에 희사하기 바란다. 그러면 육체는 무상의 영역 안에 붙어 있을지라도, 정신은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세계로 초월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권문(勸文)
법전권문法殿勸文
용이 하늘에 오르려면 척목尺木241)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도 한 치의 선행(寸善)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문에 옛날의 성현은 선행이 크다고 하여, 까마득한 절벽(巖崖)242)과 같다고 하여 포기하려는 생각(懸崖想)을 하거나, 선행이 작다고 하여 지푸라기 버리듯이 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배도裴度의 제의濟蟻243)와 현우賢愚의 노립蘆笠244)과 사도査道의 맥주麥舟245) 그리고 사안謝安의 동산전東山殿246)과 현도玄度의 월주탑越州塔247)과 양호羊祜의 무당사武當寺248) 등을 예로 든다면, 탑사塔寺를 희사하고 목숨을 살린 측면에서 볼 때, 그 선행에 비록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허령불매虛靈不昧249)의 심지心地에서 시작되어 이목耳目으로 보고 듣는 가운데에서 발로되고 사상事相과 비경悲敬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점에 있어서는 털끝만큼도 다른 점이 없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선을 보고는 미치지 못할 것처럼 서둘러 했다.(見善如不及)”250)라고 말해도 실로 헛된 말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아, 대박大朴이 흩어져 없어진 뒤로 인욕人欲이 갈수록 기승을 부린 나머지, 도道를 구해 출가한 자들이 마치 갑옷 위에 진흙이 묻은 것처럼 되면서 불전佛殿도 이에 따라 훼손을 당하여, 위는 물이 새고 아래는 축축하며 옆에서는 바람이 들어오고 모서리에는 눈이 쌓이게 되었으니, 경상經像(불상)이 모독을 당하는 것이 이보다 심한 경우는 있지 않았다. 누가 허령虛靈의 심지에서 성심을 발휘하고 아끼는 곳간에서 재보를 꺼내어, 훼손되고 물이 새고 무너진 것들을 보완하고 덮어 주고 완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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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尺波寸景大力不能住日御月輪
010_0384_b_03L賢才莫能遏是以無常之苦電擊膿泡
010_0384_b_04L之質雷奔良有發蒙俗之眞性啓正道
010_0384_b_05L之遐趣莫種善於堅牢藏若也今茲事
010_0384_b_06L亦堅牢藏之一數伏願有志之士
010_0384_b_07L各傾囊金▼(瓦+翁)粟投此不5)漏不失 [245] 之藏中
010_0384_b_08L則可謂形寄無常域中心超不增不減
010_0384_b_09L之界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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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84_b_11L法殿勸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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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之升天也資於尺木人之作聖也
010_0384_b_13L始於寸善是以昔之聖賢未甞以善之
010_0384_b_14L大作崖想而以小芥棄也故裴度濟
010_0384_b_15L賢愚蘆笠査道麥舟謝安東山殿
010_0384_b_16L玄度越州塔羊祐 [32] 武當寺隨塔寺與生
010_0384_b_17L善雖有輕重異而始於虛靈不6) [246]
010_0384_b_18L之地發於耳目聽見之中成於事相悲
010_0384_b_19L敬之間無一毫等殊故曰見善如不及
010_0384_b_20L信不子虛矣大福 [33] 7) [247] 8) [248] 愈熾
010_0384_b_21L謀道出家者如甲上泥點而佛殿9) [249]
010_0384_b_22L上漏下濕傍風10) [250] 經像漫漶
010_0384_b_23L莫斯若也孰能運誠心於虛靈出財寶
010_0384_b_24L於悋藏隳者漏者破者補之覆之成之

010_0384_c_01L월탑越塔이나 무당武當과 같이 해 줄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천계天階에 오르는 척목이 되고 성도聖道에 들어가는 하나의 디딤돌이 되는 것으로서, 그 공덕이 엄청나게 큼이 마치 하늘을 사다리로 오를 수 없는 것과 같고 바다를 배로 건널 수 없는 것과 같으리니, 뒷사람이 오늘날의 선사善士들을 흠모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람들이 옛날의 양호羊祜와 사안謝安을 흠모하는 것과 같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이를 인하여 봉축하면서 시방법계로부터 인구人口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있는 이들 모두가 곧장 이야기를 할 것이니, 여기에서 나의 입과 혀로 거론한 내용에 의거하여 보시한 공덕을 축원하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별축別祝
거꾸로 안치安置한 안치雁齒(階層) 위의 13층에 계시는 광명변조존光明遍照尊(大日如來)께서 비록 대천세계를 두루 교화시키더라도, 기무機務를 섭행攝行할 때에는 염부閻浮에 많이 머무르시고, 우유에서 모두 나오는 오미五味의 농담濃淡을 모두 갖춘 가르침이 비록 사바세계에 흡족하더라도, 드러내어 천양闡揚할 때에는 오직 취봉鷲峰의 교설을 으뜸으로 삼으니, 이에 만물이 첨앙瞻仰하는 곳이 있게 되어서 삼륜三輪의 홍범弘範이 무궁하다고 하겠습니다.
광채 찬란한 고경古鏡 속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있고, 빙 둘러싼 연화蓮花 위에는 많은 몸들이 있습니다. 색계의 겨자와 승금勝金의 바늘은 1겁, 2겁의 인연이 아니요,251) 눈먼 거북이가 떠다니는 나무를 만난 것252)은 천 년, 만 년의 궐공蟨蛩이 아닙니다. 이미 향화香火를 올리고 돌아가 의지하였으니, 어찌 천발薦拔(薦度)하는 경건한 마음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삼가 길이 떠난 혼백여魂魄輿를 추모하면서 다음과 같이 아뢰는 바입니다.
제가 의지依止한 갈마羯磨253)께서는 빙벽氷蘗과 같은 성품을 품부 받으시고 몸은 뇌하纇瑕를 여의셨습니다. 계륵과 같은 세상맛을 싫어하여 학장鶴腸의 출가254)를 모질게 단행하신 뒤에, 가던 길을 곧장 앞으로 나아가서(驀直持路)

010_0384_c_01L如越塔武當則即升天11) [251] 之尺木
010_0384_c_02L聖道之寸蹬其功浩瀚如天不可梯上
010_0384_c_03L海不可航渡安知後之人慕今之善士
010_0384_c_04L不若今之人慕古之羊謝耶因茲奉祝
010_0384_c_05L十方界至人口其中所有即其舌憑此
010_0384_c_06L口與舌頭祝施功德無間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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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84_c_08L別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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倒安鴈齒上十三糼光明遍照尊雖遍
010_0384_c_10L化於大千而攝機多住于閻浮迸出牛
010_0384_c_11L乳下五味濃淡俱備敎縱冾於娑婆
010_0384_c_12L闡揚惟宗于鷲峰萬類之瞻仰有所
010_0384_c_13L輪之弘範無窮玲瓏古鏡中兩影周匝
010_0384_c_14L蓮花上多躬色界芥勝金針非一刼二
010_0384_c_15L刼之因緣盲龜感浮木非千載萬載之
010_0384_c_16L蟨蛩旣用香火之12)歸依 [252] 可乏薦拔之
010_0384_c_17L13) [253] 伏惟長逝之魄輿余依止之
010_0384_c_18L羯磨性賦氷蘗身離類 [34] 14) [254] 鷄肋之
010_0384_c_19L世味咬鶴腸之出家驀直持路能悅
010_0384_c_20L「而」無有{甲}「被」作「彼」{甲}「勉」作「免」
010_0384_c_21L{甲}次同
「可知」作「何如」{甲}「漏不失」作
010_0384_c_22L「失不漏」{甲}
「眛」作「昧」{甲}「益」作「旣」
010_0384_c_23L{甲}
「欲」作「慾」{甲}「隳」作「隨」{甲}「隅」
010_0384_c_24L作「雨」{甲}
「階」作「堦」{甲}「歸依」作「依歸」
010_0384_c_25L{甲}
「悰」作「宗」{甲}「厭」作「壓」{甲}

010_0385_a_01L노려보는 눈길을 즐겁게 할 수 있었고,255) 형편에 따라 굶주림을 구제하여 교만의 마음을 잘 돌리셨습니다. 발걸음이 일만 이천 봉의 정상을 두루 밟은 것은 무갈無羯256)에게 기원冀願하는 바가 있어서요, 안광이 십이十二의 비류飛流(폭포)를 환히 비춘 것은 적멸寂滅을 흠모해서였습니다.
게다가 자질이 하下 중의 하下인 저를 골육骨肉과 다름없이 대해 주고, 옷 입고 밥 먹는 것을 과갈爪葛257)과 똑같이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백 년 동안 길이 모시려고 생각하면서 반생 동안 많은 시름을 모르고 지냈는데, 이수二竪가 몰래 상의하여 십무十巫의 계책이 소용없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258) 신화薪火259)가 이로써 교체되었으니 성대한 그 모습을 되돌리기 어렵게 되었고, 배수盃水260)가 이로써 뜰에 쏟아졌으니 질펀한 그 물을 누가 수습하겠습니까. 방장方丈 주위를 돌면서 애곡哀哭을 발하니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수택手澤을 어루만지며 애를 태우나니 눈물이 구천에 사무칩니다. 부질없이 이시以時261)의 감회만 발하는 것은 명로冥路에 보탬이 되지 않을 줄을 알겠기에, 여재如在262)의 정성을 펼쳐서 법전法田으로 인도해 드릴까 합니다.
이에 청정한 승류勝流를 모집하여 장엄의 청회淸會를 전개하노라니, 수일讎日(忌日)이 재차 도래하는 때에 맞춰서 외일畏日263)이 이제 막 떠오르고, 건월乾月(4월)이 다시 돌아옴을 만나 밝은 달이 처음 매달렸습니다. 활활 타는 불에 경유輕乳가 솟으니 조로趙老가 슬며시 미소를 짓고,264) 깊은 물을 길어다 흰 쌀밥을 지으니 금우金牛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265) 보개寶盖와 수번修幡(긴 깃발)은 정토淨土의 그것을 나란히 펴놓은 듯하고, 이파異葩(특이한 꽃)와 명향名香은 천궁天宮이 선연嬋娟함과 같습니다. 종고鍾鼓가 울려 퍼지고 범패 소리가 진동하는 가운데, 공양供養의 구름이 자욱하게 특별히 마련되고, 공덕의 바다가 굉장하게 원만히 구비되니, 단종丹悰(단심)에 감응하여 불천佛天이 강림합니다.
비로봉은 산의 모습이 기묘하니 지분脂粉을 발라서 장엄할 필요가 없고, 세존천世尊川은 시내의 혀가 길고 넓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일 것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존령尊靈께서는 속히 화택火宅을 벗어나 삼유三有266)의 해변에 용주龍舟를 띄우시고, 각장覺場으로 뛰어올라 구련대九蓮臺 안에서 선곡仙曲을 연주하소서. 그리하여 시방十方의 불소佛所에서 왼쪽에서 돕고 오른쪽에서 도우며, 구유九幽(九泉)의 중생을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이끄신 뒤에, 위로는 유정有頂267)의 끝에서부터 아래로는 풍륜風輪268)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양인良因에 목욕하여 다 함께 정과正果를 이루게 하소서.

010_0385_a_01L怒張之目隨宜濟飢善回憍慢之心
010_0385_a_02L脚跟遍於萬二峰頂無羯是冀眼力照
010_0385_a_03L於十二飛流寂滅斯欽况下下資資
010_0385_a_04L與骨肉而無異衣衣食食共爪 [35] 葛而齊
010_0385_a_05L擬百齡之永侍昧半生之多愁
010_0385_a_06L知二竪之潜言遽見十巫之空猷薪火
010_0385_a_07L以之交謝葱葱難返盃水以之覆庭
010_0385_a_08L泳泳誰收環方丈而發哀有聲徹天
010_0385_a_09L撫手澤而摧腸有淚徹泉空發以時之
010_0385_a_10L知無補於冥路斯申如在之誠
010_0385_a_11L啓薦於法田 [36] 淸淨之勝流展莊嚴之
010_0385_a_12L淸會適讎日之再到畏日初作偶乾
010_0385_a_13L月之重回白月始絃 [37] 輕乳於活火
010_0385_a_14L趙老淺笑蒸白粲於暗浪金牛舞拳
010_0385_a_15L寶盖修幡擬淨土之騈羅異葩名香
010_0385_a_16L等天宮之嬋妍 [38] 鍾鳴鼓響梵放員宣
010_0385_a_17L供養雲郁郁乎異備功德海轟轟1) [255]
010_0385_a_18L丹悰所格佛天斯臨毘盧峰山容
010_0385_a_19L奇妙不假莊嚴之脂粉世酋川溪舌廣
010_0385_a_20L何勞葛藤之雌黃伏願尊靈速脫
010_0385_a_21L火宅泛龍舟於三有海畔超升覺場
010_0385_a_22L奏仙曲於九蓮臺中十方佛所左補右
010_0385_a_23L九幽衆生前將後將然後上窮有
010_0385_a_24L下及風輪等沐良因齊成正果云

010_0385_b_01L운운云云.
또(又)
법신法身은 비상非相이라서 가없는 3척尺의 근기가 곧바로 일제히 응하나니 이는 천 강에 달빛이 가득한 것과 같고, 지리至理는 무언亡言이라서 해수海水의 이선二禪이 다 같이 들을 수 있게 해 주나니 이는 만물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방편의 문이 열린 뒤로 중생이 의탁하는 것이 무궁하게 되었는데, 하물며 격절激切하게 귀의하는 제자의 단심丹心에 대해서는 축황笁皇(부처)께서 당연히 불쌍하게 여겨 호념護念하는 신공神功을 내리셨음이겠습니까. 이에 시절이 돌아온 감회에 젖어서, 마침내 옆에 계시는 듯한 영靈에게 재齋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영가靈駕는 약년弱年에 할애割愛269)하여 장년壯年에 들어서는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습니다. 백정대百井臺와 구룡동九龍洞은 도시 등라藤蘿를 채취하는 땅이었고, 만폭곡萬瀑谷과 시왕봉十王峰은 모두 석장錫杖을 노닌 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매양 씩씩한 걸음걸이로 자량資糧을 마련하려 하였고, 항상 여생에 심공心工을 닦으려 하였는데, 삼상三相270)의 변화가 번개 치듯 찾아와서 풍륜風輪에 조각 꽃잎을 날릴 줄 누가 알았겠으며, 이서二鼠271)가 등나무 덩굴을 갉아먹어 화성火城에 남은 잎사귀가 떨어질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세간에는 은혜의 당간幢竿이 이미 부러졌고, 미역迷域에는 심석心石이 기울어진 듯합니다.272)
음용音容을 상상하고 경해警咳(가르침)를 생각하면 비록 마음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침당寢堂을 보고 장구杖屨(지팡이와 신발)를 어루만지면 이미 눈앞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망극한 은해恩海를 보답할 것을 생각하여 삼가 무차無遮의 법연法筵을 열어 보고자, 육화六和273)의 용상龍象(高僧)들을 선별하여 비경悲敬의 이전二田274)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다연茶煙이 허공에 감도니 천둥 같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고,275) 쌀밥을 지어 진설하니 향적여래香積如來의 국토인 것만 같습니다. 풍지楓脂의 향香과 호마胡麻의 등燈은 우두牛頭276)를 사르고 반야의 빛을 비추는 것이요, 수선水仙의 꽃과 백운白雲의 번개幡蓋는 도솔兜率을 가리고 운선雲仙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범패 소리가 맑게 울리니 위로 유정有頂의 선정禪定을 놀라게 하고, 북과 바라가 요란하게 울리니 아래로 무제無際의 지옥을 진동시킵니다. 성대하게 공양할 기구가 이미 갖추어졌으니, 이 불법의 재회齋會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드리워 주셨으면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망령亡靈은 삼장三障277)과 오개五蓋278)를 소멸해 버리고 오품五品279)과 삼현三賢280) 등과

010_0385_b_01L云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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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身非相即齊應無邊三尺之機若千
010_0385_b_05L江之滿月至理亡言能頓周海水二禪
010_0385_b_06L之聽似萬彙之春風方便門之旣闢
010_0385_b_07L羣生2) [256] 之無窮況弟子激切歸依之丹
010_0385_b_08L宜笁皇痛怜護念之神功是用撫時
010_0385_b_09L之感聿薦如在之靈伏念靈駕弱年
010_0385_b_10L割愛壯齡無爭百井臺九龍洞都爲
010_0385_b_11L採藤之地萬瀑谷十王峰盡是遊錫之
010_0385_b_12L每欲營資糧於健步長擬修心工於
010_0385_b_13L餘生誰知三相之激電飛片花於風輪
010_0385_b_14L詎解二鼠之侵藤落殘葉於火城於世
010_0385_b_15L間恩幢已折在迷3) [257] 心石似傾想音
010_0385_b_16L容思警咳雖依依於心下覩寢堂撫杖
010_0385_b_17L已倏倏於目前思報罔極之恩海
010_0385_b_18L敬營無遮之法筵選龍象之六和請悲
010_0385_b_19L敬之二田4) [258] 搶兮驚雷笑飯羅兮香
010_0385_b_20L積天楓脂香胡麻燈爇燃牛頭般若
010_0385_b_21L仙花白雲盖掩張兠率雲仙唄音嘹亮
010_0385_b_22L上驚有頂之定鼓鈸喧轟下振無際之
010_0385_b_23L獄燃供養具之已5) [259] 佛法會之垂怜
010_0385_b_24L伏願亡靈三障五盖之消遣五品三賢

010_0385_c_01L어깨를 나란히 하여, 담화曇花의 그림자 속에서 보소寶所에 오르고 각수覺樹의 수풀 안에서 금련金蓮에 앉으소서. 이와 함께 의주衣珠281)를 풀고 수용하는 마음을 지어서 삼계三界의 궁류窮類를 널리 구제하시고, 화택火宅의 이웃이 되어 혜거慧炬(지혜의 횃불)를 비춤으로써 구유九幽의 미원迷員을 이끌어 주심은 물론, 비悲와 지智를 짝으로 운용하되 각해覺海에 이를 때까지 가없이 하시고, 복福과 혜慧 양쪽을 다 원만하게 하되 법운法雲282)에 오를 때까지 더더욱 원만하게 하소서. 그리고 남은 물결이 미치는 곳마다 고류枯流가 모두 소생하게 하소서.
또(又)
홍종洪鍾(大鍾)은 무변無邊의 음성을 갖추어서 한번 치면 철위鐵圍를 대번에 깨뜨리나니 어둠 속에 빠진 중생들이 각오覺悟하기를 기대할 수가 있고, 제불諸佛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이 원만하여 한번 보고 예배하면 똑같이 구제를 받나니283) 거울에 드러난(鏡顯) 장애 있는 인연(緣障)들을 모두 포용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우마주牛馬走284)의 한 조각 단심丹心에 대해서야 응당 악예鸑猊의 각황覺皇285)께서 충분히 살펴 주셨을 것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이에 시절이 돌아온 감회에 젖어서, 마침내 옆에 계시는 듯한 영靈에게 재齋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영가靈駕는 학의 뼈대에 솔의 자태를 갖추시고, 얼음 같은 마음에 옥玉 같은 정情을 지니셨습니다. 구오驅烏286)의 나이에 출가한 것은 사원四怨287)이 자신을 핍박함을 두려워해서였고, 지팡이를 짚고 순성巡城(巡禮)한 것은 만행萬行의 훈수薰修를 기대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대충大蟲과 더불어 장사長沙의 경잠景岑 제안堤岸에서 포효하였고,288) 눈먼 거북이(盲龜)와 함께 조계의 유파流派에서 우유優遊하였습니다.
여릉廬陵에서 쌀값을 물어 본지本地의 옛 한가로움을 얻었고,289) 무딘 도끼(鈯斧)290)를 소요逍遙에게 전해 주고는 가산家山의 초승달 아래에 누웠습니다. 부처도 치고 조사도 쳤으며,291) 경전도 펼쳐 놓고 논서도 펼쳐 놓았습니다. 수행도 싫어하지 않고 교학에도 게으르지 않아서 과거를 잇고 미래를 열어 주는(繼徃開來) 도道를 겸비하였고, 가난해도 천시하지 않고 병들어도 버리지 않아서 길 잃은 자를 인도하고 고통을 구제하는 처방이 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상三相의 변화가 번개 치듯 찾아오고,292) 어느새 이서二鼠293)가 위태롭게 갉아먹는 바람에,

010_0385_c_01L之交肩曇花影裡登寶所覺樹林中坐
010_0385_c_02L金蓮解衣珠而作受用普濟三界之窮
010_0385_c_03L傍火宅而燃慧炬接引九幽之迷員
010_0385_c_04L悲智雙運窮覺海而無涯福慧兩圓
010_0385_c_05L登法雲而益圓餘波所曁枯流咸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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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385_c_07L

010_0385_c_08L
洪鍾具無邊音性一擊而頓徹鐵圍
010_0385_c_09L沉之覺悟可期諸佛圓同體大悲瞻禮
010_0385_c_10L而齊蒙與拔鏡顯之緣障宜括況牛馬
010_0385_c_11L走一片之丹忱宜鸑猊皇十分之鑑閱
010_0385_c_12L是用以時之感聿薦如在之靈伏念靈
010_0385_c_13L鶴骨松姿氷心玉情驅烏出家
010_0385_c_14L四怨之逼己策杖巡城冀萬行之薰修
010_0385_c_15L共大虫而哮吼於長沙淨 [39] 岑堤岸伴盲
010_0385_c_16L龜而優遊於曹溪流派問米價於盧陵
010_0385_c_17L得本地之舊閑傳鈯斧於逍遙臥家山
010_0385_c_18L之新月佛也打祖也打經也宣論也
010_0385_c_19L行不厭敎不怠繼徃開來之道兼備
010_0385_c_20L貧無賤病無棄導迷濟苦之方頓全
010_0385_c_21L三相之激電遽二鼠之攅危飛一葉於
010_0385_c_22L「于」作「乎」{甲}「託」作「托」{甲}「役」作
010_0385_c_23L「域」{甲}
「業」作「茶」{甲}「備」下有「冀」
010_0385_c_24L{甲}

010_0386_a_01L달 지는 선림禪林에서 하나의 잎이 떨어져 신화薪火가 교체되고, 천주天柱의 거암巨岩에서 천 길 위의 바윗돌이 무너져 서수逝水가 다 함께 슬퍼합니다. 가르쳐 주고 길러 주신 은혜를 생각하노라면 간장이 끊어지는 듯하고, 수택手澤을 어루만지노라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시내 북쪽과 산 남쪽에는 석장을 짚고 내려오시는 모습이 아련하고, 바람 부는 아침과 달 뜨는 저녁에는 기침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마침 수일讎日이 재차 도래하니 날은 현익玄黓의 석목析木에 해당하고, 정히 재회齋會를 세 번 설하니 때는 대장大壯의 현효玄枵를 만났습니다.294) 자기의 곳간을 열어젖히고 이물利物의 화천貨泉(財貨)을 운용하여, 도량을 수월水月에 세우고 불사佛事를 공화空花에서 일으켰습니다. 다리 부러진 솥에 자순紫筍의 기름이 떠오르니 조주趙州가 활짝 웃고, 밑 빠진 사발에 향적香積의 밥이 담기니 금우金牛가 미소를 짓습니다.295)
기다란 깃발과 보개寶盖가 자욱하게 태양을 가리며 공중에 나란하고, 이향異香과 명화名花가 찬란하게 법전法殿을 빛내며 구름을 감쌌습니다. 범패의 음향은 무간지옥을 일깨우고, 보등寶燈의 광채는 불야성不夜城296)에 이어졌습니다. 대중이 공양하는 구름이 무성하게 일어나고 육화六和의 승려가 엄숙히 도열한 가운데, 삼엄한 것은 마치 나란사那蘭寺와 같고 아름다운 것은 영산회靈山會와 같습니다.
태화산의 형세는 기묘하여 법왕法王의 면목을 온전히 드러내고, 마계麻溪의 물줄기는 길고도 넓으니 이런저런 얘기를 덧붙일 필요도 없습니다.297) 삼가 바라건대, 망령亡靈은 삼보의 가지加持를 의지하고 만령萬靈의 보임保任을 자뢰資賴하여, 칠보수七寶樹 그늘 아래에서 거듭 우유優遊하시고 구련대九蓮臺 근처에서 다시 경행經行하소서. 비록 그렇더라도, 고류苦類가 불쌍하니 용주龍舟를 삼유三有의 바닷가에 다시 띄우시고, 우리들의 귀의처 없으니 대망大網을 사생四生의 물결 속에 거듭 펼쳐 주소서. 그리고 남은 물결이 미치는 곳마다 고류苦類가 모두 소생하게 해 주소서.
금강산 법기보살에게 청원한 글298)(金剛山法起菩薩請)
우러러 살피건대, 법기法起 대성大聖께서는 접역鰈域(우리나라)의 금강산에 거하며 법용法勇과 무갈無羯299)의 명호名號를 지닌 존자尊者이신데, 미묘한 상호相好가 단아하고 순수함이 부용芙蓉이 물에서 나온 것과 같고,

010_0386_a_01L落月禪林薪火交謝摧千仞於天柱巨
010_0386_a_02L逝水合悲思誨育而摧肝撫手澤而
010_0386_a_03L雪涕溪之北山之陽依俙杖錫之降臨
010_0386_a_04L風之晨月之夕彷佛謦咳之來抵適再
010_0386_a_05L到之讐日當玄默 [40] 之折 [41] 正三設之
010_0386_a_06L齋時値大壯之玄枵開自己之廩庾
010_0386_a_07L運利物之貨泉建道場於水月作佛事
010_0386_a_08L於空花折脚鐺紫筍油趙州啓粲穿
010_0386_a_09L心甌香積飡金牛含笑修旛寶盖
010_0386_a_10L鬰乎排日齊空異香名花郁郁哉
010_0386_a_11L殿繞雲梵唄響警無間之獄1) [260]
010_0386_a_12L連不夜之城衆供雲靉靉六和僧之濟
010_0386_a_13L森然若那蘭寺美哉如靈山會
010_0386_a_14L華山形奇妙全露法王之面目麻溪水
010_0386_a_15L舌廣長何必葛藤之雌黃伏願亡靈
010_0386_a_16L仗三寶之加持資萬靈之保任七寶樹
010_0386_a_17L陰重優遊九蓮臺畔更經行雖然苦類
010_0386_a_18L可憫龍舟再沉 [42] 於三有海上我等無怙
010_0386_a_19L大網重布於四生瀾中餘波所曁苦類
010_0386_a_20L咸蘇

010_0386_a_21L

010_0386_a_22L2)金剛山法起菩薩請 [261]

010_0386_a_23L
仰惟法起大聖者住鰈域金剛之上
010_0386_a_24L法勇無羯之尊妙相端粹如芙蓉之出

010_0386_b_01L성스러운 지혜가 밝고 맑음은 달이 공중에 임한 것과 같으니, 140종의 공덕은 그 신묘함이 제불諸佛과 같고, 1만 2천 등等의 권속은 높이 이승二乘을 뛰어넘었습니다.
보살께서는 비신非身으로 현신現身하여 기원衹園의 불회佛會에서 반야에 참여하였고, 무법無法으로 설법하여 향성香城의 중연衆筵에서 파륜波崙300)을 제도하였습니다. 구하는 바를 모두 성취하게 하는 것은 텅 빈 골이 메아리로 응답하는 것과 같고, 소원을 따르지 않음이 없는 것은 큰 종이 두드리는 대로 소리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때문에 사바세계에서 운운하며, 특별히 자기 몸을 위하여 천재千災를 소멸하고 만덕萬德을 성취하는 청원을 하기 위해, 삼가 이 산의 이 암자에서 경건히 정결한 음식을 마련하고 법기보살을 공양하며 훈훈勲勲히 작법作法하여 묘한 원조를 우러러 바라게 되었습니다.
우右는 삼가 아룁니다. 우두牛頭의 향301)을 살라 예배하고 청원하며, 구름처럼 김이 나는 밥을 지어 올려 재齋를 지내옵니다. 재의 체모는 비록 변변찮아도 경건한 정성은 어여삐 여길 만하니, 이쪽으로 조감照鑑을 돌려 향연香筵에 강림하시기를 빌면서, 삼가 일심一心을 부여잡고 먼저 삼청三請을 진달합니다.
일심一心으로 봉청奉請하여 상구하화上求下化하는 것으로 체體를 삼으신 연고로, 기원회衹園會에서 석존을 뵙고 마하암摩訶庵에서 의상義相을 접한 분에게 귀의합니다. 중생을 구호求護하고 위험에서 구제하여, 고고枯槁한 자에게는 구름과 비가 되어 주시고, 가난하고 병든 자에게는 복 되고 의원醫員이 되어 주시며, 평등하게 불법을 펼치면서 항상 진공眞空에 거주하시는 법기보살마하살法起菩薩摩訶薩과 일만 이천 권속이시여, 오직 자비 베풀어 도량에 강림하여 이 공양을 받아 주시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層岩立立法王面    우뚝 선 층암마다 법왕의 면목이요
小溪潺潺般若聲    졸졸 흐르는 냇물은 반야의 소리로다
物物頭頭體盡是    두두물물 본색이 모두 이러한 것을
幾看雲白與松靑    흰 구름 푸른 솔을 얼마나 보아 왔던가


010_0386_b_01L聖智明湛若桂輪之臨空百四十
010_0386_b_02L種功德妙等諸佛萬二千等眷屬高超
010_0386_b_03L二乘非身現身叅般若於衹園佛會
010_0386_b_04L無法說法度波崙於香城衆筵有求皆
010_0386_b_05L如空谷之答響無願不從若洪鍾
010_0386_b_06L之待扣是以娑婆世界云云特爲己身
010_0386_b_07L能滅千灾成就萬德之願謹於茲山是
010_0386_b_08L虔設淨飡供養法起菩薩勲勲作
010_0386_b_09L仰祈妙援者

010_0386_b_10L
右伏以爇牛頭而禮請呈雲蒸而修齋
010_0386_b_11L齋體雖微虔誠可愍冀回茲鑑降赴
010_0386_b_12L香筵謹秉一心先陳三請

010_0386_b_13L
南無一心奉請上求下化以爲體故
010_0386_b_14L覲釋尊於衹園會上接義相於摩訶庵
010_0386_b_15L求護衆生遵濟危險於枯槁者
010_0386_b_16L雲爲雨於貧病者爲福爲醫平等演
010_0386_b_17L常住眞空法起菩薩摩訶薩幷諸
010_0386_b_18L一萬二千眷屬惟願慈悲降臨道場
010_0386_b_19L受此供養歌詠

010_0386_b_20L
層岩立立法王面小溪潺潺般若聲

010_0386_b_21L物物頭頭體盡是幾看雲白與松靑

010_0386_b_22L「燈」作「燭」{甲}自此至末甲本無有
  1. 1)좌묵左墨 : 잘못 보내진 한묵翰墨이라는 뜻으로, 상대방의 편지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2. 2)인광印光 : 작인鵲印의 빛이라는 뜻으로, 종정의 직인職印을 높여서 부른 말이다. 작인은 금인金印과 같은 뜻으로, 고관의 인장을 비유하는 말이다. 산 까치(山鵲) 비슷한 새가 땅에 떨어져 변한 둥근 돌 속에 금인이 들어 있었는데, 후한後漢의 장호張顥가 이것을 얻어서 나중에 태위太尉의 관직에까지 올랐다는 전설에서 연유한 것이다. 『搜神記』 권9.
  3. 3)청부靑蚨 : 전설 속의 벌레 이름으로, 돈의 별칭으로 쓰인다. 이 청부충靑蚨蟲 모자母子의 피를 동전에 발라 놓으면, 어디에 있든 서로 날아와 같은 장소로 모여든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搜神記』 권13.
  4. 4)함장函丈 : 선생과 제자 사이의 거리가 1장丈 정도 떨어져 있는 데에서 나온 말로, 강학講學하는 장소 혹은 스승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5. 5)제로提老 : 바로 뒤의 편지에 나오는 제봉 장로提峰長老를 지칭하는 듯하다.
  6. 6)운거雲居 : 구름 속에 거한다는 뜻으로, 산중에서 은거하는 것, 혹은 그 은거지나 은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7. 7)다자탑多子塔의 인연 : 석가모니가 수제자 가섭迦葉에게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해 주었다는 선종禪宗 전설의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인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에서 나온 말로, 불법佛法을 통해서 도반으로 함께 알고 지내게 된 인연이라는 말이다. 삼처전심은 이 분반좌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의 염화미소拈花微笑와 쌍림수하雙林樹下의 관 속에서 두 발을 내밀어 가섭에게 보여 주었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를 말한다.
  8. 8)성연聖淵 : 설파 상언雪坡尙彦(1707~1791)의 제자.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에게 간청하여 설파의 비명을 짓게 하였는데, 그 글이 『樊巖集』 권57에 「雪坡大師碑銘」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 비문 말미에 “아, 스님은 한마디로 말하면 『華嚴經』의 충신이고 성연은 또 스님의 충신이다. 자기가 섬기는 대상에 마음을 극진히 하는 데 있어서는 유가나 불가의 도가 일찍이 다른 적이 없다. 내가 명을 짓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겁 뒤에까지 사람들을 권장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스님이 임종 때에 제자에게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고, 또 부득이하다면 채 상국에게 비명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데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나는 스님을 모르지만 스님은 나를 잘 알았으니, 의리상 저버릴 수 없기에 이렇게 명을 짓게 되었다.(嗚呼。師一言以蔽之曰。華嚴之忠臣也。若聖淵。又師之忠臣也。盡心所事。儒與釋道未嘗不同。余不銘。何以勸在後之千劫也。况師臨化飭弟子曰。愼勿碑。又曰。如不得已。非乞銘蔡相國。不可。余不知師。師能知余。義不可相負。乃作銘。)”라는 말이 나온다.
  9. 9)적측赤仄 : 한漢 무제武帝 때 만들었다는 적동赤銅의 화폐를 말하는데, 보통 금전의 별칭으로 쓰인다. 적측赤側이라고도 한다.
  10. 10)영원靈源 : 함양咸陽에 있는 사찰 이름이다.
  11. 11)신마神馬와 구륜尻輪 : 『莊子』 「大宗師」의 “조물주가 나의 꽁무니를 점점 변화시켜 수레바퀴로 만들고, 나의 정신을 말로 변화시킨다면, 내가 이를 이용하여 타고 다닐 것이니, 어찌 다시 수레가 필요하겠는가.(浸假而化予之尻以爲輪。以神爲馬。予因以乘之。豈更駕哉。)”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12. 12)연담蓮潭 : 연담 유일蓮潭有一(1720~1799)이다. 본관은 화순和順이고, 속성은 천千이며, 자는 무이無二이다. 18세에 법천사法泉寺 성철性哲에게 출가하고, 이듬해에 안빈安貧에게 구족계를 받았으며, 해인사海印寺의 체정體靜 문하에서 선지禪旨를 배우고, 설파 상언雪坡尙彦에게 『華嚴經』을 배웠다. 1750년 보림사寶林寺에 들어가서 30여 년을 강설講說하는 동안 언제나 100여 명의 제자가 따랐다. 60세 때 시기하는 승려의 투서로 인해 퇴암退庵과 함께 며칠 동안 구금을 당하기도 하였다. 서산西山의 의발衣鉢을 전수하여 선교禪敎의 총본산인 해남海南 대흥사大興寺 12대종사大宗師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저서에 『楞嚴私記』, 『諸經會要』, 『四集私記』, 『蓮潭林下錄』, 『圓覺私記』 등이 있다. 『韓國文集叢刊』 255권에 수록된 이충익李忠翊의 『椒園遺藁』 2책冊에 「蓮潭和尙碑記」가 실려 있다.
  13. 13)공연跫然의 기쁨 : 저벅저벅 걸어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기쁨이라는 뜻으로, 홀로 외로이 거하는 사람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서 위로해 주는 것과 같은 즐거움이라는 말이다. 『莊子』 「徐无鬼」에, 텅 빈 골짜기에 숨어 사는 사람을 가정한 뒤에 “그런 사람은 저벅저벅 걸어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뻐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형제나 친척의 기침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면 얼마나 더 기쁘겠는가.(聞人足音跫然而喜矣。又況乎昆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14. 14)확삭矍鑠 : 늙은 사람이 여전히 강건하여 젊은이처럼 씩씩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동한東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말 위에 가뿐히 뛰어 올라 용맹을 보이자, 한漢 무제武帝가 “이 노인네가 참으로 씩씩하기도 하다.(矍鑠哉是翁也。)”라고 찬탄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後漢書』 권24 「馬援傳」.
  15. 15)설봉雪峰의 수단手段을~보여 주셨으므로 : 몽암이 편지를 보내기 전에 남악이 먼저 선수를 쳐서 편지를 보냈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당나라 현사 사비玄沙師備(835~908)가 설봉 의존雪峰義存(821~908)에게 보낸 편지를 설봉이 뜯어 보니 백지白紙 3폭幅이 들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설봉이 “군자천리동풍君子千里同風”이라고 평하자, 이 말을 들은 현사가 “초봄인데 아직도 춥다.(孟春猶寒。)”라고 말한 일화가 전한다. 현사는 설봉의 법사法嗣이다. 『五燈會元』 권7 「福州玄沙師備宗一禪師」.
  16. 16)백붕百朋 : 매우 많은 재물을 뜻한다. 옛날에는 패각貝殼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5패를 1관串이라 하고 2관을 1붕朋이라 했다고 한다. 『詩經』 「小雅」 ≺菁菁者莪≻에 “군자를 만나 뵌 이 기쁨이여, 마치 보화寶貨를 나에게 내려 주신 듯하도다.(旣見君子。錫我百朋。)”라는 말이 나온다.
  17. 17)법리法履 : 불법佛法을 체득한 분의 체후體候라는 뜻으로, 승려의 안부를 물을 때 쓰는 말이다. 법후法候라고도 한다.
  18. 18)정금精金을 용광로에서~발하는 것 : 이와 같은 뜻에서 “단련한 정금은 결코 빛이 변하는 일이 없다.(大冶精金。應無變色。)”, “수없이 단련해 얻은 정금의 색은 바뀌지 않는다.(百煉精金色不改。)”라고 한다.
  19. 19)명성은 이익을~원망이 뒤따른다 : 『列子』 「說符」.
  20. 20)성규聖珪(1728~1812) : 성규聖奎라고도 한다. 20세에 출가하여 해봉 유기海峰有璣, 황산 퇴은黃山退隱, 설파 상언雪坡尙彦, 함월 해원涵月海源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가 입적하자 남공철南公轍(1760~1840)이 비문碑文을 지었는데, 현재 은해사銀海寺에 전한다. 은해사 거조암居祖庵의 편액은 영파影波가 72세 때 쓴 글씨라고 한다.
  21. 21)우마주牛馬走 : 우마를 관장하는 하인下人이라는 뜻으로, 사마천이 「報任少卿書」 서두에서 ‘태사공의 우마주(太史公牛馬走)’라고 겸칭謙稱한 말에서 유래하여 불초자식이라는 뜻으로 보통 쓰이는데, 여기서는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였다. 태사공은 사마천의 부친인 사마담司馬談을 가리킨다.
  22. 22)서산西山에 해가~한 노인 : 최치원崔致遠의 문집인 『孤雲集』 권2 「無染和尙碑銘」에 ‘얼굴이 검은 기년耆年의 노인(有一䃜顔耆年)’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기년은 60세 정도의 나이를 말한다.
  23. 23)고야姑射 : 묘고야藐姑射의 준말로,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하는데, 『莊子』 「逍遙遊」의 “묘고야 산에 신인이 살고 있는데, 살결이 빙설과 같고 부드럽기가 처녀와 같으며,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을 호흡하며 이슬을 마신다.(藐姑射之山。有神人居焉。肌膚若氷雪。淖約若處子。不食五穀。吸風飮露。)”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4. 24)나운懶雲(1709~1782) : 금강산 신계사神溪寺에 주석하였으며, 그의 비문도 신계사에 있다고 전한다.
  25. 25)연성連城 : 연성벽連城璧의 준말로, 전국시대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열다섯 개의 성과 바꾸자고 청한 화씨벽和氏璧을 말하는데, 보통 진귀한 보물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진귀한 옥돌을 형산荊山에서 얻어 초왕楚王에게 바쳤다가 임금을 속인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두 차례나 발뒤꿈치를 잘려 통곡하였는데, 나중에 가서야 겨우 왕에게 진가眞價를 인정받고서 천하제일의 보배인 화씨벽을 만들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권4 「和氏」,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26. 26)청파靑坡 : 속성은 정丁씨이고, 전주인全州人이며, 금계 원우錦溪元宇(1675~1740)의 제자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에 그를 추억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茶山詩文集』 권5 ≺憶昔行寄惠藏≻.
  27. 27)양신陽神 : 양陽의 귀신이라는 뜻으로, 도교道敎의 신 이름이다. 도교에서는 천제天帝가 구사驅使하는 양신을 육갑六甲이라고 하고, 음신陰神을 육정六丁이라고 하는데, 도사道士가 부록符籙으로 불러와서 부린다고 한다.
  28. 28)삼상三常 : 원래는 상주常住하는 3종의 불신佛身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강건한 몸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29. 29)여현藜莧의 위장 : 여현은 명아주와 비름으로, 채식菜食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유韓愈의 시에 “삼 년 동안 국자감의 선생으로 있으면서, 위장을 여현으로 익히 채웠소.(三年國子師。腸肚習藜莧。)”라는 표현이 나온다. 『韓昌黎集』 권4 ≺崔十六少府攝伊陽以詩及書見投因酬 三十韻≻.
  30. 30)황양黃楊이 윤년의~만난 듯하고 : 윤년에는 황양목, 즉 회양목이 액운을 당한다는 황양액윤년黃楊厄閏年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이 고사는 소식蘇軾의 “뜰의 초목들 봄이 오면 무수히 자라건만, 오직 황양목은 윤년에 재앙을 당한다네.(園中草木春無數。只有黃楊厄閏年。)”라는 시구에서 나온 것인데, 소식의 자주自註에 “속설俗說에 의하면, 황양목이 1년에 한 치(一寸)씩 더디게 자라다가 윤년을 만나면 오히려 세 치(三寸)가 줄어든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권11 ≺監洞霄宮兪康直郞中所居四詠 退圃≻.
  31. 31)요송搖松의 여사餘思 : 『緇門警訓』 권3 「傳禪觀法」에 “총채를 움켜잡고 소나무 가지를 흔든다.(執麈搖松。)”라는 말이 나온다. 주미麈尾나 소나무 가지를 불자拂子로 삼아 법문을 펼치던 고승의 유풍遺風을 뜻한다.
  32. 32)한단학보邯鄲學步와 같습니다 : 새로운 것을 배우기는커녕 지금까지 자기가 배운 것마저 잊어버릴 것 같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이다. 연燕나라 수릉壽陵 땅의 소년이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의 걸음걸이를 배우려다가(學步)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본래의 자기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린 나머지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한단학보의 이야기가 『莊子』 「秋水」에 나온다.
  33. 33)유기有機(1707~1785) : 본관은 문화文化, 속성은 유柳씨, 호는 해봉海峰 또는 호은好隱이며,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한다. 청주淸州 출신으로 16세에 출가하여, 해인사의 의눌義訥에게 배웠고, 1772년에는 표충사表忠寺의 총섭總攝을 지냈으며, 78세의 나이로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 저서에 『好隱集』, 『普勸文』 등이 있다.
  34. 34)신요申夭함 : 화평하고 즐거운 생활을 말한다. 『論語』 「述而」에서 “공자가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적에는, 마음이 활짝 풀어진 듯하고 즐거운 듯하였다.(子之燕居。申申如也。夭夭如也。)”라고 표현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35. 35)장부는 자기를~되려고 한다 : 사마천司馬遷의 「報任少卿書」에 “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쓰임이 되려 하고, 여인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예쁘게 단장하려 한다.(士爲知己者用。女爲說己者容。)”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권41.
  36. 36)회향사回向寺 : 평소에는 운무雲霧에 가려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인仙人의 사찰인데, 당唐 현종玄宗 때 법수法秀라는 승려가 그곳에 가서 전생에 현종이 불었다는 옥소玉簫를 가져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회향사는 종남산終南山에 있었다고 하는데, 몽암이 천태산天台山이라고 한 것은 의문이다. 『宋高僧傳』 권18 「唐京兆法秀傳」, 『太平廣記』 권96 「回向寺狂僧」.
  37. 37)일수一數 : 없어서는 안 될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태화太和 연간에 어떤 이가 숭산嵩山에 놀러 갔다가, 보자기를 베고 자는 사람을 만나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그대는 저 달이 칠보七寶로 합성된 것을 아는가. 알(丸)처럼 생긴 달의 그림자 가운데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햇빛이 녹이기 때문에 항상 팔만 이천 호가 그 달을 수리하는데, 내가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다.(君知月乃七寶合成乎。月勢如丸。其影。日爍其凸處也。常有八萬二千戶修之。予卽一數。)”라고 대답하고는 보자기를 열어 보였는데, 그 속에 도끼와 자귀 두어 자루가 들어 있더라는 전설이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의 『酉陽雜俎』 권1 「天咫」에 보인다.
  38. 38)구련대九蓮臺 : 구품九品의 연대蓮臺라는 말로,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往生할 때 아홉 등급으로 나뉘는 연화대蓮花臺라는 뜻이다. 『觀無量壽經』에 의하면, 아홉 등급은 중생의 근기를 상품上品, 중품中品, 하품下品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상생上生, 중생中生, 하생下生으로 나눈 것인데, 이에 따라 왕생하는 정토도 구품의 정토로 나뉘고, 이들을 맞는 아미타불阿彌陀佛도 구품의 미타로 나뉘며, 수인手印도 구품의 수인으로, 염불念佛하는 방법도 구품의 염불로 나뉜다고 한다.
  39. 39)벽호闢戶의 달 : 문을 여는 달이라는 뜻으로, 건乾, 즉 양陽이 처음 생기는 동짓달을 말한다. 『周易』 「繫辭傳 上」에 “문을 닫는 것을 곤坤이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건乾이라 하며, 한 번 닫히고 한 번 열리는 것을 변變이라 한다.(闔戶謂之坤。闢戶謂之乾。一闔一闢謂之變。)”라는 말이 나온다.
  40. 40)상수相守 : 서로 밤을 지샌다는 뜻으로, 수세守歲, 즉 한 해의 끝인 섣달그믐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어린애들은 억지로 잠을 자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며 밤을 꼬박 지새우네.(兒童强不睡。相守夜讙譁。)”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권3 ≺守歲≻.
  41. 41)마馬 복파伏波가~받은 것 : 복파는 후한後漢의 명장인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을 가리키고, 경耿 장군將軍은 경서耿舒를 가리킨다. 후한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25년에 마원이 대군을 이끌고 남만南蠻을 정벌할 적에, 지리적 여건과 날씨와 역병疫病으로 곤경에 처하여 진격을 늦추고 있었다. 이때 마원을 따라 출정한 중랑장中郞將 경서耿舒가 그의 형인 경감耿弇에게 “마원이 진군하지 않아 좋은 기회를 놓쳤다.”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자, 경감이 황제에게 이를 알려서 문책하는 사신으로 양송梁松을 보냈는데, 그때는 이미 마원이 병사病死한 뒤였으므로 경서에게 마원 대신 제군諸軍을 감독하게 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권14.
  42. 42)영서靈犀처럼 서로~못하는 마음 : 몽암과 금강산이 서로 못 잊어 하는 절실한 마음이라는 말이다. 영서, 즉 물소는 뿔 가운데에 실 같은 흰 무늬가 있는데, 양쪽 뿔을 관통하여 신기하게 감응한다는 설이 있으므로, 양자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에 “육신은 문채 나는 봉황처럼 쌍으로 날아 볼 날개가 없으나, 마음은 신령한 물소의 뿔처럼 한 점으로 통할 수가 있네.(身無彩鳳雙飛翼。心有靈犀一點通。)”라는 표현이 있다. 『李義山詩集』 권상 ≺無題≻.
  43. 43)일체 유위법有爲法은~그림자와 같다 : 『金剛般若波羅密經』 「應化非眞分」에 “일체 유위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또한 아침 이슬이나 번갯불과 같으니, 응당 이렇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如露亦如電。應作如是觀。)”라는 말이 나온다.
  44. 44)아직까지 포복匍匐의~늦추고 있어서 : 직접 찾아가서 은사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포복의 예는 효자가 부모상을 당해서 그지없이 애통해 하는 상례喪禮를 뜻한다. 『禮記』 「問喪」에 “효자는 부모상을 당하여, 슬프고 애통하고 뜻이 답답하기 때문에, 땅에 배를 깔고 기면서 곡을 하는 것이다.(孝子親死。悲哀志懣。故匍匐而哭之。)”라는 말이 나온다.
  45. 45)우마주牛馬走 : 제자의 별칭. 주 21 참조.
  46. 46)꿈속에서 술을~눈물을 흘린다 : 『莊子』 「齊物論」에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던 자도 아침이 되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고, 꿈속에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던 자도 아침이 되면 즐겁게 사냥하러 나간다. 우리가 한창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른다. 그러고는 꿈속에서 다시 꿈을 점치기도 하다가, 꿈을 깨고 난 뒤에야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큰 깨달음을 얻은 뒤에야 우리 인생이 하나의 큰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夢飮酒者。旦而哭泣。夢哭泣者。旦而田獵。方其夢也。不知其夢也。夢之中又占其夢焉。覺而後知其夢也。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라는 말이 나온다.
  47. 47)기미箕尾를 걸터타고~보좌하시려는 것입니까 : 은殷 고종高宗의 재상 부열傅說이 죽은 뒤에 기미성箕尾星을 타고 앉아 부열성傅說星이 되었다는 전설을 인용한 것으로, 조정의 대신이나 위인의 죽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莊子』 「大宗師」.
  48. 48)방호方壺 : 고대 전설에 나오는 바닷속 선산仙山을 말한다. 진晉나라 왕가王嘉가 지은 『拾遺記』 「高辛」에 “삼호는 곧 바닷속의 삼신산이다. 첫째는 방호이니 곧 방장이요, 둘째는 봉호이니 곧 봉래요, 셋째는 영호이니 곧 영주이다. 모양이 병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三壺。則海中三山也。一曰方壺。則方丈也。二曰蓬壺。則蓬萊也。三曰瀛壺。則瀛洲也。形如壺器。)”라는 말이 나온다.
  49. 49)영윤令胤을 칭찬하며~있다고 하였으니 : 그의 아들이 어려서부터 걸출한 모습을 보였다고 자랑했다는 말이다. 식우食牛는 소를 잡아먹는다는 뜻으로, “호랑이나 표범 새끼는 아직 털 무늬가 이루어지기 전에도 소를 잡아먹는 기상을 지니고 있다.(虎豹之駒。未成文而有食牛之氣。)”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尸子』 권하.
  50. 50)포류蒲柳의 잔질殘質 : 포류처럼 쇠잔한 체질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포류는 창포와 갯버들의 합칭으로, 일찍 늙고 쇠해지는 허약한 체질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고열지顧悅之가 간문제簡文帝와 동갑이었는데도 이른 나이에 머리칼이 하얗게 세자 황제가 그 이유를 물으니 “신은 포류와 같은 체질이라서 가을이 가까워지기만 해도 벌써 낙엽이 지고 맙니다.(蒲柳之資。望秋而落。)”라고 대답한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言語」.
  51. 51)수사洙泗의 지란芝蘭~달밤의 분위기 : 유학儒學에 종사하는 자를 칭송하는 말이다. 수사는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에 가까운 데다 그 강물 사이의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고사가 있고, 부강涪江은 송유宋儒 정이程頤가 부주涪州의 강물을 건널 적에 풍랑이 극심하여 배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자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경악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정이만은 동요함이 없이 태연자약했던 고사와 관련이 있다.
  52. 52)『청매집靑梅集』 : 조선 중기의 승려 인오印悟(1548~1623)의 시문집. 청매는 그의 호이고, 자는 묵계默契이다. 휴정休靜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3년 동안 의승장義僧將으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으며, 왜적이 물러가자 부안扶安 요차봉了嵯峯의 마천대摩天臺 기슭에 월명암月明庵을 짓고 살다가, 지리산智異山 연곡사鷰谷寺로 옮겨 말년을 보냈다. 인조 9년(1631) 겨울에 이정귀李廷龜가 써 준 「靑梅集 序」가 『月沙集』 권40에 실려 있다.
  53. 53)장하아帳下兒 : 부하 사졸士卒을 뜻하는 말이다. 장하아랑帳下兒郞이라고도 한다.
  54. 54)시선視膳 : 세자가 임금의 음식을 살피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운봉현감雲峰縣監이 부친인 대감을 봉양하는 뜻으로 쓰였다.
  55. 55)「사비어록四碑語錄」 :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사산비명四山碑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56. 56)구구하게 축원하는~맴돌고 있습니다 :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꿈속에서나마 항상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말이다. 칠원漆園은 몽현蒙縣의 칠원리漆園吏를 지낸 장자莊子를 가리키는데, 『莊子』 「齊物論」 마지막에 “언젠가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풀나풀 잘 날아다니는 나비의 입장에서 스스로 유쾌하고 만족스럽기만 하였을 뿐 자기가 장주인 것은 알지도 못하였는데, 조금 뒤에 잠을 깨고 보니 몸이 뻣뻣한 장주라는 인간이었다.(昔者莊周夢爲胡蝶。栩栩然胡蝶也。自喩適志與。不知周也。俄然覺則蘧蘧然周也。)”라는 나비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57. 57)운결殞結 : 운수결초殞首結草의 준말로, 살아서나 죽어서나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이밀李密이 나이 96세인 조모祖母의 봉양을 위해 벼슬을 사직하면서 올린 「陳情表」의 “조모의 여생을 끝까지 보전할 수 있게만 된다면, 살아서는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고 죽어서는 결초보은結草報恩하겠다.(卒保餘年。臣生當隕首。死當結草。)”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58. 58)소순蔬筍 : 채소와 죽순이나 먹는 승려의 보잘것없는 시문이라는 말이다.
  59. 59)반마班馬를 요리하는~없을 것입니다 : 문단의 거장巨匠의 눈으로 볼 때에는 모두 형편없는 글로 보일 것이라는 말이다. 반마는 『漢書』와 『史記』를 지은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의 병칭이다. 오봉루五鳳樓는 옛날 낙양洛陽에 있던 누각의 이름인데, 송宋나라 한계韓洎가 자기 형인 한부韓溥의 글 솜씨는 겨우 비바람을 막는 초가집을 짓는 실력인 데 비해, 자신의 문장 솜씨는 오봉루를 지을 만하다고 자찬自讚한 고사에서 유래하여 문장 솜씨가 뛰어난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類說』 권53 「引 談苑」. 또 송宋나라 양주한梁周翰이 태조太祖에게 「五鳳樓賦」를 지어 올려 거장巨匠의 솜씨라고 찬탄을 받은 고사도 있다. 『宋史』 권439 「梁周翰傳」.
  60. 60)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이라는 뜻인데, 『莊子』 「逍遙遊」의 “지금 자네가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쓸모가 없다고 걱정한다면, 어찌하여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의 광막한 들판에다 심어 놓고, 그 옆에서 하는 일 없이 방황하고, 그 아래에서 누워 지내며 소요하지 않는 것인가.(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廣莫之野。彷徨乎無爲其側。逍遙乎寢臥其下。)”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보통은 유무有無와 시비是非 등 모든 대립적 요소가 사라진 이상향理想鄕 혹은 선경仙境을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이 없어진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61. 61)시豕 자와~줄을 알기에 : 시豕와 해亥처럼 모양이 비슷해서 착오를 범하기 쉬운 글자를 구분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었다는 말이다. 자하子夏가 위衛나라에 들렀을 때 어떤 이가 『史記』를 읽으면서 “진晉나라 군대가 삼시三豕에 하수를 건넜다.(晉師三豕涉河。)”라고 하자, 자하가 “아니다. 삼시는 기해의 잘못이다. 기와 삼이 서로 비슷하고 시와 해가 서로 비슷해서 그런 것이다.(非也。是己亥也。夫己與三相近。豕與亥相似。)”라고 바로잡아 준 고사가 전한다. 『呂氏春秋』 「察傳」.
  62. 62)공용公冗 : 관원이 공무로 처리해야 할 갖가지 잡다한 일을 말한다.
  63. 63)경직의방敬直義方 : 『周易』 「坤卦 文言」의 “군자는 경으로써 안의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밖의 일을 바르게 하니, 이렇게 경과 의가 확립되어서 그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義以方外。敬義立而德不孤。)”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64. 64)주일主一 :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준말이다. 이는 송유宋儒 정이程頤가 경敬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한 명제인데, 주일은 하나를 위주로 한다는 뜻으로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무적無適은 옮겨 감이 없다는 뜻으로 마음속에 잡념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二程粹言』 권상에 “주일을 경이라 하고, 무적을 일이라 한다.(主一之謂敬。無適之謂一。)”라는 정이의 말이 나오고, 『朱子語類』 권120에 “정자가 말한 주일무적의 주일은 단지 전일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程子所謂主一無適。主一只是專一。)”라는 주희朱熹의 말이 나온다.
  65. 65)함양涵養 : 존양存養과 같은 말이다. 존양은 본래의 마음을 보존하고 바른 성품을 기른다는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준말로, 『孟子』 「盡心 上」의 “마음을 보존하고 성품을 기르면 하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未發)의 정靜할 때에는 존양의 공부를, 이미 일어나서(已發) 동動할 때에는 성찰省察의 공부를 강조한다.
  66. 66)음영일향吟咏一餉 : 잠시 노래하며 읊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건성으로 대충 넘어간다는 말이다. 일향一餉은 한 번 밥을 먹을 동안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간을 말한다. 『心經附註』 「正心章」에 “지금에 공부하는 자들을 보면, 정심正心을 말할 때에는 다만 정심을 가지고 잠시 노래하며 읊을 뿐이요, 성의誠意를 말할 때에는 또 성의를 가지고 잠시 노래하며 읊을 뿐이요, 수신修身을 말할 때에는 또 성현이 허다하게 수신을 말한 부분을 가지고 입으로 따라서 욀 뿐이며, 혹은 언어를 주워 모으고 시문時文을 엮어 지을 뿐이니, 이와 같이 공부한다면 자기의 신상身上에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今之學者。說正心。但將正心。吟詠一餉。說誠意。又將誠意。吟詠一餉。說脩身。又將聖賢許多說脩身處。諷誦而已。或掇拾言語。綴緝時文。如此爲學。却於自家身上。有何交涉。)”라는 주희朱熹의 말이 나온다.
  67. 67)군습아후捃拾牙後 : 타인의 언어 문자를 주워 모아 그대로 따라하면서 자기 말인 것처럼 써먹는 것을 말한다. 아후牙後는 입속의 어금니를 거쳐 나온 발언이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은호殷浩가 자기 생질인 강백康伯에 대해서 “내 아후의 지혜도 제대로 주워 담지 못한다.(未得我牙後慧。)”라고 평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68. 68)철집시문綴緝時文 : 시문時文을 엮어 짓는다는 뜻. 시문은 과문科文, 즉 과거 시험 답안지를 작성하는 글이라는 뜻이다. 주 66 참조.
  69. 69)그 차이가~줄 정도였으니 : 춘추시대의 패자覇者와 일반 제후諸侯처럼 실력이 월등히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1사舍는 30리이니, 삼사三舍는 90리에 해당한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하나인 진晉 문공文公 중이重耳가 망명객의 신분으로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다가 초楚나라에 들렀을 때, “만약 군왕 덕분에 진晉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중에 진나라와 초나라가 군사 작전을 벌이면서 중원에서 마주칠 경우 군왕을 위해 90리를 물러나 주겠다. 그래도 군왕이 전쟁을 중지하려 하지 않으면 왼손에는 채찍과 활을 쥐고 오른쪽에는 활집과 화살통을 차고서 군왕과 한판 겨룰 것이다.(若以君之靈得反晉國。晉楚治兵遇於中原。其辟君三舍。若不獲命。其左執鞭弭。右屬櫜鞬。以與君周旋。)”라고 약속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그 약속대로 실행한 고사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희공 23년, 28년 기사.
  70. 70)황돈篁墩 : 명나라 정민정程敏政(1445~1499)의 별호이다. 10세에 신동으로 천거되어 조명詔命을 받고 한림원독서翰林院讀書가 되었으며,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칠 때까지 당대 제일의 해박한 지식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篁墩集』 등 저서가 매우 많으나, 그중에서도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의 『心經』을 해설하고 보완한 『心經附註』가 특히 유명하다.
  71. 71)사거달거舍去達去 : 생사를 초월한 경지를 비유하는 말. 정이程頤가 부주涪州에 배를 타고 귀양 갈 때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염여퇴灩澦堆를 지날 적에 풍랑이 극심하여 배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자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경악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정이만은 동요함이 없이 태연자약하였는데, 언덕 위의 어떤 초부樵夫가 정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큰 소리로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이치를 통하여 달관해서 그런 것인가?(舍去如斯。達去如斯。)”라고 물었으므로, 정이가 그에게 대답하려고 하였으나 배는 이미 떠난 뒤였다는 이야기가 『心經附註』 「正心章」 주석에 보인다.
  72. 72)남훈南薰의 전각 : 선정善政을 베푸는 제왕의 전각. 순舜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南風歌≻를 지어 부르면서 “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풍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可以解吾民之慍兮。南風之時兮。可以阜吾民之財兮。)”이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禮記」 「樂記」. 당唐나라에 남훈전南薰殿이라는 이름의 궁궐이 있기도 하다.
  73. 73)유이행庾異行 : 진晉나라 사람으로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던 유곤庾袞의 별칭이다. 자는 숙포叔褒이다. 일찍이 전염병이 퍼져서 위의 두 형이 죽고, 다음 형인 비毗가 또다시 위독해지자, 가족들이 전염될까 모두 두려워하여 밖에 나가 있었으나, 유곤만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홀로 부축하며 간호하였는데, 백여 일 만에 형의 병세도 호전好轉되고, 그 자신도 아무런 탈이 없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권88 「孝友 庾袞列傳」.
  74. 74)죽반승粥飯僧 : 밥이나 죽만 축낼 뿐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승려라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75. 75)포고布鼓를 쳐서~견주는 격 : 몽암 자신의 실력은 베로 만든 북(布鼓)과 같아서 뇌문雷門의 북과 같은 운봉현감의 실력과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한漢나라 왕존王尊이 동평왕東平王의 상相이 되었을 때, 왕 앞에서 태부太傅가 ≺相鼠≻라는 시를 강론하는 것을 보고는, “소리도 안 나는 베 북을 가지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큰 북이 걸려 있는 뇌문 앞을 지나가지 말라.(毋持布鼓過雷門。)”라고 하면서, 변변찮은 재주로 자기 앞에서 뽐내지 말라는 뜻으로 힐난했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뇌문은 회계會稽의 성문城門을 가리키는데, 뇌문 위에 걸린 북은 소리가 커서 낙양洛陽에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漢書』 「王尊傳」. 포고의 경우, 선禪 문헌에서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 사유분별로도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76. 76)운결殞結 : 죽어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는 말. 주 57 참조.
  77. 77)규구䂓矩 : 규規는 원圓을 만드는 기구이고, 구矩는 방형方形을 만드는 기구로서, 법도法度의 뜻으로 쓰인다.
  78. 78)신해년 : 몽암의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연기年紀를 확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몽암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 예컨대 연담 유일蓮潭有一(1720~1799), 영파 성규影波聖珪(1728~1812), 나운懶雲(1709~1782), 해봉 유기海峯有機(1707~1785), 설파 상언雪坡尙彦(1707~1791) 등의 생몰연대를 참작하건대, 이 신해년은 1791년(정조 15)이 아닐까 유추한다. 아래에 나오는 간지干支들도 같은 방식으로 유추하여 간주間註를 달았다.
  79. 79)홍교洪喬의 수작 : 편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字가 홍교洪喬인 진晉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太守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적에, 사람들이 1백여 통의 편지를 모아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버리고는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올라라. 내가 우편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浮者自浮。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말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世說新語』 「任誕」.
  80. 80)삼전三殿 : 왕대비전王大妃殿, 대전大殿, 중궁전中宮殿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81. 81)물기勿旗 : 사물四勿의 깃대(旗)라는 뜻이다. 사물은 『論語』 「顔淵」의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朱子語類』 권41 「顔淵問仁章」에 비례물시非禮勿視를 논하면서 “『說文解字』에 물勿 자는 깃발 끝의 수술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이 깃발을 한 번 휘두르면 삼군三軍이 모두 물러나는 것이니, 공부는 단지 이 물 자에 달려 있다.(說文謂勿字似旗脚。此旗一麾。三軍盡退。工夫只在勿字上。)”라고 말한 내용이 보인다.
  82. 82)절진絕陳의 환란 : 진陳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진 환란이라는 뜻으로, 먹을 것이 떨어져서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하는 변고를 말한다. 공자孔子가 진陳과 채蔡의 사이에서 포위를 당하였을 때에 양식이 떨어진 상태에서 7일 동안이나 밥을 짓지 못해 종자從者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에 자로子路가 성난 얼굴로 군자도 궁할 수가 있느냐고 묻자, 공자가 “군자는 아무리 궁해도 이를 편안히 여기면서 자신의 절조를 굳게 지키지만, 소인은 궁하면 제멋대로 굴기 마련이다.(君子固窮。小人窮斯濫矣。)”라고 답변한 내용이 『論語』 「衛靈公」에 나온다. 여기에서 고궁固窮의 고사가 나왔다.
  83. 83)안연顔淵의 바가지 : 안연이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의 물을 마시며(一簞食。一瓢飮。) 안빈낙도安貧樂道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84. 84)굴원屈原의 모자 : 굴원의 「漁父辭」에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모자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자는 반드시 의복의 먼지를 털어 입는다.(新沐者必彈冠。新浴者必振衣。)”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85. 85)안명安命 : 운명에 순응하여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 것을 말한다. 『莊子』 「德充符」에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알고서 운명에 순응하여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 것은, 오직 덕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知不可奈何而安之若命。唯有德者能之。)”라는 말이 나온다.
  86. 86)납극蠟屐 : 밀랍을 칠한 나막신. 산천 유람을 즐겨 다니는 비유로 쓰인다. 진晉나라 완부가 나막신에 항상 밀랍을 반들반들하게 칠해서 신고 다녔는데, 언젠가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갔을 때에도 밀랍을 불에 녹여 신발에 칠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서 “일생 동안 이런 나막신을 몇 켤레나 신고 다닐지 모르겠다.(未知一生當着幾緉屐。)”고 탄식했다는 고사가 유명하다. 『世說新語』 「雅量」.
  87. 87)운곡雲谷 : 주희朱熹가 초당을 짓고 독서하던 산 이름으로,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 서북쪽 70리 지점에 무이산武夷山의 시계市界와 접해 있는데, 보통 은거하는 곳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晦菴集』 권78에 주희의 「雲谷記」가 수록되어 있다.
  88. 88)한 가닥의 영서靈犀 : 양자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주 42 참조.
  89. 89)난실蘭室 : 지란지실芝蘭之室의 준말로, 고상한 인품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민 장령의 형님인 민 판서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孔子家語』 권4 「六本」에 “선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난초 향기 그윽한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오래 있다 보면 난초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그 향기와 동화되었기 때문이다.(與善人居。如入芝蘭之室。久而不聞其香。卽與之化矣。)”라는 말이 나온다.
  90. 90)산속이 적막하여~대신 써야겠습니다 : 참고로 신유한申維翰(1681~1752)의 『靑泉集』 권3 「答崔士集書」에 “저번에 글을 보내면서 선물하신 다섯 자루의 붓은 그야말로 몇 천 냥의 가치에 맞먹는 것이었습니다. 산 남쪽의 물자로 말하면 이 세계가 멸망한 뒤인 것처럼 완전히 거덜이 났습니다. 누런 토끼털과 흰 염소 털의 붓(兎黃羔白)은 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칡에 먹물을 묻혀서 썼던 과두문자科斗文字들은 바로 희황羲皇이 획을 긋기 이전에나 있던 것들입니다. 아이들은 붓털을 잡아당기고 좋아 날뛰며 신이 났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세계에 이런 보화寶貨가 있겠습니까. 덕분에 겨울 내내 이 붓에다 먹물을 묻혀서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다 쓰고 나면 다시 결승結繩의 시대를 맞게 되겠지만, 문장에 대해서야 할 일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前書所惠五管。便敵千鍰。山南百物。若經刦灰。兎黃羔白。非市上可覔。墨葛科斗。便爲羲皇畫前事。兒子輩抽毫踊躍。不知何世界有此珍貨。賴以經冬濡墨。此而用盡。當復作結繩之世。卽於文章何有。)”라는 내용의 흡사한 표현들이 눈에 띄는데, 아무래도 청천보다 후배일 몽암이 이 글을 보고서 참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91. 91)두우斗牛에 빛을~지니신 만큼 : 출중한 자질의 소유자라는 말인데, 은연중에 그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매몰되어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옛날 오吳나라 지역인 예장군豫章郡 풍성豊城 땅에 묻혀서 밤마다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에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다가 발굴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晉書』 「張華傳」.
  92. 92)이추泥甃 : 진흙과 벽돌이라는 뜻으로, 우물 속과 같이 비좁은 공간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시골 수령의 자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莊子』 「秋水」에, 우물 안의 개구리가 자신의 생활을 묘사하면서 “나는 즐겁기만 하다네. 나는 우물 난간 위에서 깡충깡충 뛰어놀다가 안에 들어가서는 깨어진 벽돌 끝에서 휴식을 취한다네. 그뿐인가, 물에 뛰어들면 두 겨드랑이를 물에 찰싹 붙인 채 턱을 들어야 하고, 진흙을 차면 발이 빠져서 발등까지 잠겨 버린다네.(吾樂與。吾跳梁乎井幹之上。入休乎缺甃之崖。赴水則接腋持頤。蹶泥則沒足滅跗。)”라고 표현한 말이 나온다.
  93. 93)부석鳧舃 : 오리로 신을 삼는다는 뜻으로 고을 수령을 비유하는 말인데, 후한後漢 왕교王喬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섭현葉縣의 현령으로 있으면서 매월 삭망朔望 때마다 먼 길을 수레(車騎)도 없이 항상 조정에 나오곤 하였는데, 임금이 이를 괴이하게 여기고서 태사太史로 하여금 탐지하게 한 결과, 그가 올 때마다 동남쪽에서 두 마리의 오리(雙鳧)가 날아왔으므로, 그물을 쳐서 이를 잡고 보니, 바로 상서령尙書令 때 하사받았던 신발(舃)이 그 속에 있었다고 한다. 『後漢書』 「王喬傳」.
  94. 94)고야姑射 :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한다. 주 23 참조.
  95. 95)광풍제월光風霽月 :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빛이라는 뜻으로, 고상한 인품의 소유자를 비유한다. 황정견黃庭堅의 「濂溪詩序」에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고 가슴 속이 깨끗해서 마치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빛 같다.(舂陵周茂叔。人品甚高。胸中灑落。如光風霽月。)”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무숙茂叔은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자字이다.
  96. 96)설파雪坡(1707~1791) : 본명은 이상언李尙彥으로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며 무장茂長 사람이다. 19세에 선운사禪雲寺로 출가하여 희섬希暹의 제자가 되었고, 연봉蓮峰과 체정體淨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1739년(영조 15) 용추사龍湫寺에서 개강開講하였는데, 특히 화엄華嚴에 비중을 두었다.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가 대경초大經抄를 교정하고 금강산, 두류산頭流山, 묘향산妙香山 등지에서 좌선坐禪하였다. 1770년(영조 46)에 낙안樂安 징광사澄光寺에 불이 나서 자신이 정리한 『華嚴經』의 판목板目이 타 버리자 80권본을 다시 판각하여 함양咸陽 영각사靈覺寺에 경판각을 짓고 봉안하였다. 저서로 『淸凉鈔摘抉隱科』 1권과 『鉤玄記』 1권이 있으며, 긍선亘璇과 성우性瑀와 홍주洪倜 등이 그의 제자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 가운데 “내 듣건대 설파 대사 선정에 드셨다는데, 높은 그의 자취 여기에 숨지는 않았는지. 연공蓮公은 고개 숙여 대답하려 하지 않고, 그냥 헤어진 뒤로 소식 없다고 말하기만.(吾聞雪坡入禪定。無乃高蹤此逃匿。蓮公俛首不肯答。但道別來無消息。)”이라는 구절이 보이고, “설파 대사는 유일의 법형이다.(雪坡大士。有一之法兄。)”라는 자주自註가 붙어 있다. 연공은 연담 유일蓮潭有一을 가리킨다. 『茶山詩文集』 권1 ≺智異山僧歌示有一≻.
  97. 97)갑을음세甲乙陰歲 : 미상未詳이다. 기해년에서 신해년까지의 12년 사이에 끼어 있는 갑진년(1784, 정조 8)과 을사년(1785, 정조 9)의 음기陰氣가 혹독한(窮陰) 해라는 뜻이 아닐까 추측한다.
  98. 98)경거瓊琚 : 답례로 지어 준 주옥같은 시라는 말이다. 『詩經』 「衛風」 ≺木瓜≻의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신 분, 나는 패옥佩玉으로 답례하고 싶나니, 굳이 보답하려 해서가 아니라, 길이 친하게 지내자는 것이외다.(投我以木瓜。報之以瓊琚。匪報也。永以爲好也。)”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99. 99)칼을 놀릴~여유가 있으시겠지만 : 경험이 많고 실력이 있어서 고을 정사를 능란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말이다. 상권 주 14 참조.
  100. 100)무성武城의 현가絃歌 : 무성에서 거문고와 비파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시가詩歌를 읊는다는 뜻으로, 고을 수령이 백성들에게 예악禮樂을 가르치며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자유子游가 수령으로 있는 무성 고을에 현가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공자가 흐뭇하여 빙그레 웃으면서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割雞焉用牛刀。)”라고 농담을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陽貨」.
  101. 101)흰쌀은 비록 민천民天이긴 하지만 : 흰쌀과 같은 식량은 민천, 즉 백성이 하늘로 삼는 것이라는 말이다. 『史記』 「陸賈傳」에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王者以民人爲天。而民人以食爲天。)”라는 말이 나온다.
  102. 102)운송雲松이 산에 있고 : 하늘 높이 구름 위까지 치솟은 낙락장송이 산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그 솔잎만 따 먹어도 식량은 걱정할 일이 없다는 뜻의 해학적인 말이다. 「上尙州牧使書」에 “솔잎을 하나의 물에 섞어서, 열흘 걸러 세 사발을 마신다.(和松一水。隔旬三椀。)”라는 표현이 나온다.
  103. 103)구복口腹은 사소한 일이니 : 입과 배를 채우려고 음식을 밝히는 것은 그다지 귀한 일이 못 된다는 말이다. 『孟子』 「告子 上」에 “음식을 밝히는 자는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나니, 그 이유는 작은 것을 기르려고 큰 것을 잃기 때문이다.(飮食之人。則人賤之矣。爲其養小以失大也。)”라는 말이 나온다.
  104. 104)송 진사宋進賜 : 윗글에 나온 송씨 성의 남원부사南原府使를 말한다. 진사進賜는 지위가 높은 벼슬아치를 높여 부르는 말로, 나으리 혹은 나리로 번역된다.
  105. 105)소춘小春 : 겨울철 첫 달, 즉 음력 10월을 말한다. 이때는 그래도 봄처럼 온화한 기운이 남아 있다고 해서 소춘 혹은 소양춘小陽春이라고 불렀다. 『初學記』에 “겨울철에 양기가 발동하면서 만물이 귀의할 곳을 얻게 되는바, 그 기운이 봄처럼 따뜻하게 되기 때문에 소춘 혹은 소양춘이라고 한다.(冬月之陽。萬物歸之。以其溫暖如春。故謂之小春。亦云小陽春。)”라는 말이 나온다.
  106. 106)광한廣寒의 선부仙府 : 남원부사의 집무실을 말한다.
  107. 107)오유烏有 : ‘어찌 있으랴’라는 뜻으로, 실제로 없는 것, 혹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上林賦」를 지어 무제武帝의 수렵 행위를 풍간諷諫하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오유선생烏有先生과 자허子虛와 무시공无是公 등 3인의 가공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司馬相如傳」.
  108. 108)소벽笑躄 : 절름발이를 보고 비웃었다는 뜻으로, 몽암의 글이 비정상적이라고 조롱할 것이라는 말이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누각이 민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민가의 절름발이(躄者) 한 사람이 힘겹게 물을 길어 가는 것을 평원군의 미인이 위에서 보고는 크게 웃었다. 절름발이가 평원군을 찾아와서 자기를 비웃은 미인의 목을 달라고 요청하자, 평원군이 웃으며 그러겠다고 가볍게 대답하고는 끝내 죽이지 않았는데, 그 뒤에 문객이 절반이나 넘게 빠져나가자 이를 괴이하게 여겨서 그 까닭을 물으니, “절름발이를 비웃은 미인을 죽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대가 여색을 좋아하고 선비를 천하게 대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以君之不殺笑躄者。以君爲愛色而賤士。)”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평원군이 절름발이를 비웃은 미인의 목을 베어 절름발이에게 찾아가서 사과하니, 그 뒤로 문객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는 참소벽자斬笑躄者의 고사가 전한다. 『史記』 권76 「平原君虞卿列傳」.
  109. 109)장독 덮개(覆瓿)로나~좋을까 합니다 : 조금도 가치 없는 졸렬한 글이니 당장에 폐기처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뜻의 겸사謙辭인데, 이와 함께 너무 고상해서 보통 사람들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기 때문에 무시당할 수도 있으리라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깃들어 있기도 하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이 『周易』에 견주어 『太玄經』을 짓고, 『論語』에 견주어 『法言』을 지었는데, 유흠劉歆이 이 글들을 보고 나서 양웅에게 말하기를 “공연히 혼자서 고생만 하였다. 지금의 학자들은 작록爵祿을 받는 이로움이 있는데도 공부를 하지 않아서 『周易』에도 밝지 못하니, 또 『太玄經』에 대해서야 어떠하겠는가. 내 생각에는 후인後人들이 장독 덮개(醬瓿)로나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空自苦。今學者有祿利。然尙不能明易。又如何。吾恐後人用覆醬瓿也。)”라고 하니, 양웅이 웃고 대답하지 않았다(笑而不應)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漢書』 「揚雄傳 下」.
  110. 110)규복圭復 : 삼복백규三復白圭의 준말로,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읽으면서 깊이 음미한다는 말이다. 『詩經』 「大雅」 ≺抑≻ 중에 “흰 옥돌에 묻어 있는 오점汚點은 그래도 깎아서 없앨 수 있지만, 말을 한번 잘못해서 생긴 오점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白圭之玷。尙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라는 말이 나오는데, 공자의 제자인 남용南容이 매일 이 구절을 세 번씩 반복해서 외우자(三復白圭), 공자가 훌륭하게 여기고서 자신의 조카딸을 그의 처로 삼게 했던 고사가 있다. 『論語』 「先進」.
  111. 111)칠원漆園의 나비 : 꿈속의 정경을 비유하는 말. 주 56 참조.
  112. 112)소순蔬筍 : 보잘것없는 승려의 시라는 말. 주 58 참조.
  113. 113)도아塗鴉 : 까마귀 떼로 도배塗褙하였다는 말로, 글이나 그림 솜씨가 치졸하다는 뜻의 겸사謙辭로 쓰이는 말이다. 당唐나라 노동盧仝의 시에 “홀연히 책상 위에서 먹물을 튀기니, 시서를 도배한 것이 까마귀 떼라 할까.(忽來案上飜墨汁。塗抹詩書如老鴉。)”라는 구절에서 비롯한 말이다. 『玉川子集』 권1 「示添丁」.
  114. 114)무하유지향亡何有之鄕 :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비유하는 말. 주 60 참조.
  115. 115)시해豕亥를 구분할~알게 되면서 : 오자誤字를 가려낼 정도의 실력은 된다는 말. 주 61 참조.
  116. 116)금관錦館 : 금영錦營, 즉 충청도 감영監營이 있는 공주公州의 관소館所를 말한다. 공주가 금강錦江 가에 있으므로 그렇게 칭한다. 충청감사는 금백錦伯이라고 한다.
  117. 117)세성歲星이 한~돌 때까지 : 18년의 세월이 지나갔다는 말이다. 세성은 12년을 주기로 하늘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되어 있다.
  118. 118)식양息壤 : 식양재피息壤在彼의 준말로, 맹세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 무왕武王이 감무甘茂에게 한韓나라 의양宜陽을 정벌토록 하였는데, 감무는 왕이 혹시 남의 말을 듣고서 변심할까 봐 식양이라는 읍에서 굳게 맹세하게 하였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왕이 공손연公孫衍 등의 말을 듣고 회군回軍을 명하였는데, 감무가 “식양이 저기에 있다.(息壤在彼。)”라면서 왕의 맹세를 환기시키자, 왕이 다시 공격하게 하여 의양을 함락시킨 고사가 있다. 『戰國策』 「秦策」, 『史記』 권71 「樗里子甘茂列傳」.
  119. 119)교방鮫魴을 눈으로 직접 검열하시고 : 바닷속에서 활개를 치는 교어鮫魚와 방어魴魚처럼, 지방에서 권세를 부리는 호족豪族 세력을 견제하는 것을 말한다.
  120. 120)해수薤水로 또~말씀을 하셨나니 : 해수는 지방장관이 청렴하게 지내면서 권세 부리는 자들을 진압하고 백성을 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방삼龐參이 한양태수漢陽太守로 부임하여 고사高士인 임당任棠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가 아무 말 없이 염교의 큰 뿌리 하나(薤一大本)와 물 한 사발(水一盂)을 문 앞에 놓고는 손자 아이를 품에 안고 엎드려 있자, 방삼이 한참 동안 그 의미를 생각하다가 ‘물처럼 청렴하고, 염교 뿌리를 뽑아 버리듯 힘 있는 자를 억누르고, 손자 아이처럼 약한 백성을 돌보아 주라는 뜻’임을 깨닫고는 돌아가서 그대로 실천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龐參傳」. 그리고 소식蘇軾의 시에 “선생은 단지 맑게 앉아 있을 뿐이지만, 해수로 이미 말씀을 많이 하셨는걸. 그래서 당시에 방인들이 감화를 받아, 아침부터 술타령하는 자가 시장에 없었다오.(先生但淸坐。薤水已多言。當時邦人化。市無晨飮豚。)”라는 말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권26 ≺遺直坊≻.
  121. 121)두 손을~있는 듯(如結)합니다 : 매듭이 굳게 맺혀서 풀리지 않는 것처럼, 자나 깨나 잊지 않고 항상 생각하며 축원한다는 말이다. 본문의 여결如結은, 『詩經』 「曹風」 ≺尸鳩≻의 “뻐꾸기가 뽕나무에 있으니, 그 새끼가 일곱이로다. 숙인 군자여, 그 위의가 한결같도다. 그 위의가 한결같음이여, 마음이 맺혀 있는 듯하도다.(尸鳩在桑。其子七兮。淑人君子。其儀一兮。其儀一兮。心如結兮。)”라는 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뻐꾸기는 새끼에게 먹이를 줄 적에 아침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고 저녁에는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가 여러 새끼들을 고르게 먹이는데, 군자의 마음 씀도 이와 같이 균평均平하고 전일專一하다는 말이다.
  122. 122)포류蒲柳의 체질 : 창포와 갯버들처럼 쇠약한 체질이라는 말. 주 50 참조.
  123. 123)해바라기와 같은~발하게 되었으니 : 신유한申維翰의 『靑泉集』 권3 「答崔士集書 二」에 “매미나 개구리도 제철이 되면 우는 것처럼, 스스로 정성에 느껴지는 것을 숨길 수 없는 점이 있기에, 감히 3편을 기록해서 한번 보시라고 올리는 바이다.(然泥蟬土蟈。候至則鳴。精誠所感。自有不可掩者。敢錄三篇呈覽。)”라는 비슷한 표현이 보인다.
  124. 124)이천二天 : 두 개의 하늘이라는 뜻으로,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지방 장관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소장蘇章이 기주자사冀州刺史로 부임했을 적에 옛 친구가 그의 관할 구역인 청하淸河의 태수太守로 있으면서 불법적으로 부정행위를 범한 사실을 적발하고는 그 친구를 불러 술을 같이 마시면서 화기애애하게 옛날의 우정을 서로 나누었는데, 그 친구가 기뻐하며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하늘을 가지고 있지만 나만은 두 개의 하늘을 가지고 있다.(人皆有一天。我獨有二天。)”고 하자, 소장이 “오늘 저녁에 내가 자연인自然人으로서 옛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 것은 사은私恩이요, 내일 기주자사로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공법公法이다.(今夕蘇孺文與故人飲者。私恩也。明日冀州刺史案事者。公法也。)”라고 하면서 마침내 그의 죄를 바로잡아 처벌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蘇章傳」.
  125. 125)현사 사비玄沙師備의~보여 주시어 : 몽암이 편지를 보내기 전에 내원內院에서 먼저 선수를 쳐서 편지를 보냈다는 뜻의 해학적인 표현. 주 15 참조.
  126. 126)지나支那 : 고대 인도와 희랍과 로마 등지에서 중국을 부르던 칭호이다. 지나至那, 지나脂那라고도 한다.
  127. 127)회향사回向寺 쪽의~것과 같습니다 : 꿈속의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짐을 비유한 말. 주 36 참조.
  128. 128)삼장三障 : 번뇌장煩惱障ㆍ업장業障ㆍ보장報障 등 세 가지 장애. 견사혹見思惑ㆍ진사혹塵沙惑ㆍ무명혹無明惑의 삼혹三惑을 가리키기도 하고, 혹은 탐貪ㆍ진嗔ㆍ치癡 삼독三毒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129. 129)본지풍광本地風光에 대해서~이미 오래되었으니 :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린 채 지금까지 헤맸다는 말이다. 약상弱喪은 고향을 떠나 길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莊子』 「齊物論」의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어쩌면 어려서 미아가 되어 고향에 돌아갈 줄 모르는 것과 같지 않은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耶。)”라는 말에서 나왔다.
  130. 130)공연히 남염부제南閻浮提에~갈 뿐 : 이 세상에 와서 하나도 이룬 것 없이 허무하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남염부제는 수미산須彌山 사대주四大洲의 남주南洲에 있는 땅으로, 남염부주南閻浮洲 혹은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한다. 원래는 인도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나중에는 인간 세상을 총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長阿含經』 권18 「閻浮提洲品」, 『大慧普覺禪師書』 권28 「答呂郎中」에 “공연히 이 세상에 나와 생의 한 바퀴를 돌다가 이 몸뚱이를 벗고 나서는 천당에 오름도 알지 못하고 지옥에 듦도 알지 못하며 그 업력業力을 따라서 제취諸趣에 흘러듦도 모두 알지 못한다.(空來世上打一遭。脫却這殼漏子。上天堂也不知。入地獄也不知。隨其業力流入諸趣並不知。)”라는 말이 나오고, 또 권16에 “공연히 이 세상에 나와 생의 한 바퀴를 돌다가, 장래에 업業을 지은 대로 과보果報를 받을 뿐, 필경에는 자신의 본명원신本命元辰, 즉 자성自性이 낙착하는 곳을 알지 못하니,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空來世上打一遭。將來隨業受報。畢竟不知自家本命元辰落著處。可不悲哉。)”라는 말이 나온다.
  131. 131)호壺 : 옛날에 물에 빠졌을 때 허리에 둘러 몸을 띄웠던 기구. 『莊子』 「逍遙遊」에 나오는 “지금 자네에게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다면, 어찌하여 그것을 큰 술통처럼 엮어 만들어서 강호에 띄울 생각은 하지 못하고, 너무 커서 쓸데없다고 걱정만 하는가.(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라는 장자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132. 132)고니의 알(鵠卵)은~것이 아니고 : 재질이 천박해서 제자를 교화하는 큰 임무를 맡기 어렵다는 말이다. 『莊子』 「庚桑楚」에 “월나라 닭은 고니의 알을 품을 수 없지만, 노나라 닭은 본시 품을 수가 있다. 그 닭들의 속성이 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능력이 서로 다른 것은, 그 재질에 원래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재질은 작아서 그대를 교화하기에 부족하다. 그대는 어찌하여 남쪽으로 가서 노자老子를 만나 보지 않는 것인가.(越雞不能伏鵠卵。魯雞固能矣。雞之與雞。其德非不同也。有能與不能者。其才固有巨小也。今吾才小。不足以化子。子胡不南見老子。)”라는 말이 나온다.
  133. 133)남석濫石 : 미상이다. 홍수에 떠밀려 내려온 큰 바위인지, 비석이나 벼루를 만드는 귀한 암석인지, 전거가 분명치 않다.
  134. 134)흑려黑蜧를 꾸짖고 나서 : ‘기청제祈晴祭를 지내고 나서’라는 말이다.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舜廟祈晴文」에 “감히 바라노니, 흑려를 꾸짖고 음예陰蜺를 매질하여, 후토后土가 마르게 하고 하늘 끝이 활짝 트이게 하소서.(敢望誅黑蜧。抶陰蜺。式乾后土。以廓天倪。)”라는 말이 나온다. 음예는 음기陰氣의 무지개로 백홍白虹을 가리킨다. 『淮南子』 「齊俗訓」에 “비가 오게 하는 것은 흑려가 제일이다.(致雨不若黑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허신許愼의 주注에 “흑려는 신령스러운 뱀이다. 연못 속에 잠겨서 구름과 비를 잘 일으킨다.(黑蜧。神蛇也。潛於神淵。能興雲雨。)”라고 하였다.
  135. 135)결하結夏 : 음력 4월 보름부터 3개월 동안 사찰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좌선 수행하는 것. 결제結制 혹은 하안거夏安居라고도 한다.
  136. 136)수교倕巧 : 교공巧工 공수工倕와 같은 명장名匠을 가리키는 말. 상권 주 63 참조.
  137. 137)육구六寇 : 육적六賊이라고도 한다.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아울러 도적에 비유한 말.
  138. 138)공허蛩驉가 궐蟨을~달리는 격이요 : 서로 믿고 의지하며 공생共生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 공허, 즉 공공蛩蛩과 거허駏驉라는 두 짐승은 잘 달리는 반면에 먹이를 잘 구하지 못하고, 궐은 잘 달리지 못하는 반면에 감초甘草를 구하여 두 짐승을 부양해 주기 때문에, 궐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공허가 그를 등에 업고 달아난다고 한다. 『淮南子』 「道應訓」.
  139. 139)장비長臂와 장각長脚의 관계 : 상부상조하는 관계. 적수赤水의 동쪽에 다리가 긴 사람들이 사는 장각국長脚国이 있고, 그 옆에 팔이 긴 사람들이 사는 장비국長臂国이 있는데, 장각인長脚人은 항상 장비인長臂人을 등에 업고 바다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는다고 한다. 그리고 장비인의 신장身長은 보통의 인간과 다를 게 없으나, 팔뚝 길이는 무려 6미터나 되며, 한 손에 각각 물고기 한 마리씩을 잡는다고 한다. 『山海經』 「海外南經」, 『三才圖會』.
  140. 140)3척尺의 입 : 언변言辯이 뛰어남을 비유하는 말. 상권 주 198 참조.
  141. 141)염라대왕의 손안에 쇠방망이가 있음 : 염라대왕의 쇠몽둥이 맛을 보리라는 말로서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142. 142)목객木客 : 새 발톱에 어린아이 모습을 하고 높은 나무 위에 살면서 시를 지어 읊을 줄도 안다는 산속의 요정妖精인데, 보통은 세상과 완전히 떨어져서 심산유곡에 거하는 야인野人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143. 143)염매鹽梅 : 소금과 매실. 양념을 잘 섞어서 음식 맛을 좋게 하듯이 재상의 지위에서 나라를 이상적으로 잘 다스리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은殷 고종高宗이 재상 부열傅說에게 “내가 술이나 단술을 빚으려고 할 때에는 그대가 누룩이 되어 주고, 내가 양념을 섞어서 국을 끓이려 할 때에는 그대가 소금과 매실이 되어 주오.(若作酒醴。爾惟麴蘖。若作和羹。爾惟鹽梅。)”라고 한 말이 『書經』 「說命 下」에 나온다.
  144. 144)갱재賡載 : 임금의 노래에 화답하여 지은 시가詩歌. 『書經』 「益稷」에 순舜임금의 노래에 뒤이어 신하인 고요皐陶가 임금의 현명함을 칭송하는 한편 경계시키는 노래가 나온다.
  145. 145)허리띠를 풀고~곡식을 받아먹으면서 : 당나라 마존馬存의 ≺浩浩歌≻라는 시에 “등용이 되면 허리띠 풀고 태창太倉의 곡식을 받아먹고, 등용이 안 되면 베개를 밀치고 산언덕으로 돌아갈 뿐.(用之解帶食太倉。不用拂枕歸山阿。)”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146. 146)무이武夷 : 주희朱熹가 문인들과 강학했던 민중閩中, 즉 복건福建의 무이산武夷山을 가리킨다. 이곳을 배경으로 지은 ≺武夷九曲詩≻가 유명하다.
  147. 147)부강涪江 : 송유宋儒 정이程頤가 극심한 풍랑 속에서도 배 안에 태연히 앉아 있었던 부주涪州의 강물. 주 51 참조.
  148. 148)무우舞雩 : 기우제 드리는 곳. 상권 주 70 참조.
  149. 149)운곡雲谷 : 주희朱熹의 초당이 있던 곳. 주 87 참조.
  150. 150)한 섬을~술을 마시고 : 『論語』 「鄕黨」에 “술에 대해서만은 일정한 양을 정해 두지 않았는데, 어지러운 지경에는 이르지 않게 하였다.(唯酒無量。不及亂。)”라는 공자에 대한 말이 나온다.
  151. 151)하늘에 가득한~시를 노래하며 :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있을 때 3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예사였고, 10년 동안 옷 한 벌도 지어 입지 못하는 고달픈 환경 속에서 뒤축이 다 떨어진 신발을 끌며 상송商頌을 소리 높이 부르니, 그 음성이 천지를 가득 진동시키면서 마치 금석金石의 악기에서 나오는 듯했다는 이야기가 『莊子』 「讓王」에 나온다.
  152. 152)소나무에 기대고~돌아올 것이다 :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시에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면서, 유연히 남쪽 산을 바라보노라.(採菊東籬下。悠然見南山。)”라는 명구名句가 있다. 『陶淵明集』 권3 ≺飮酒 五≻. 또 그의 ≺歸去來辭≻에 “해는 어둑어둑 곧 지려 하는데, 외로운 소나무에 기대어 어루만지며 서성거리네.(景翳翳以將入。撫孤松而盤桓。)”라는 말이 나온다.
  153. 153)담계潭溪와 고정考亭 : 담계는 주희가 초년에 살던 곳이고, 고정은 만년에 살던 곳으로 그의 별호이기도 하다.
  154. 154)상常으로 단斷을 다스렸으니 : 유무有無로 대변되는 이견二見을 모두 깨뜨려 주는 지혜의 가르침을 보여 주었다는 말이다. 공空이든 유有이든 혹은 단멸斷滅과 상주常住나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이거나 차별적 견해에 입각한 집착을 상대되는 것으로써 격파해 주는 방편이다.
  155. 155)화택火宅의 비유 : 각종 미혹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의 세계를 불난 집에 비유한 것. 상권 주 68 참조.
  156. 156)겁화劫化 : 두렵게 해서 교화시키는 것.
  157. 157)팔사八邪 : 팔정도八正道와 상대되는 말로서 신身ㆍ구口ㆍ의意로 범하는 여덟 가지 잘못을 말한다. 사견邪見ㆍ사지邪志ㆍ사어邪語ㆍ사업邪業ㆍ사명邪命ㆍ사방편邪方便ㆍ사념邪念ㆍ사정邪定이 그것이다. 팔사행八邪行이라고도 한다.
  158. 158)십악十惡 : 십선十善과 상대되는 말로서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淫ㆍ망어妄語ㆍ양설兩舌ㆍ악구惡口ㆍ기어綺語ㆍ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사견邪見을 가리킨다.
  159. 159)일금一金과 십곤十袞 : 황금색의 지장보살상과 곤룡포를 입은 시왕의 상.
  160. 160)일우후지一牛吼地 : 거리가 서로 가깝거나 조그마한 지역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飜譯名義集』 「數量」에 “구로사拘盧舍를 한역어로 오백궁五百弓 또는 일우후지一牛吼地라고도 하는데, 이는 큰 소가 우는 소리를 최대한 들을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혹은 일고성一鼓聲이라고도 한다.(拘盧舍。此云五百弓。亦云一牛吼地。謂大牛鳴聲所極聞。或云一鼓聲。)”라는 말이 나온다.
  161. 161)들은 것을~일분一分이라도 흘러나온다면 : 전도顚倒된 소리를 돌이켜서 자성自性의 소리를 듣게 하는 것. 『楞嚴經』 「觀世音菩薩耳根圓通章」에 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162. 162)겁화刧火가 바다~불어와 무너뜨리더라도 : 『壇經』의 “괴겁壞劫의 불이 바다 밑바닥까지 태우고 바람이 휘몰아쳐 산이 무너지더라도 참되고 영원하며 적멸한 즐거움인 열반의 상은 이와 같다.(劫火燒海底。風鼓山相擊。真常寂滅樂。涅槃相如是。)”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163. 163)천읍天揖 : 읍揖은 공경과 겸양의 뜻을 표하기 위해 두 손을 맞잡고 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면서 허리를 약간 구부렸다가 펴는 것으로 배拜보다는 가벼운 인사법인데, 『周禮』에 의하면 천읍은 다른 사읍土揖이나 시읍時揖과 달리 손을 조금 더 들어 올려서 동성同姓인 제후諸侯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다. 『周禮注疏』 권38 「秋官 司儀」.
  164. 164)건도揵度 : ⓢ skandha, ⓟ khandhaka의 음역. 출가出家, 수계受戒, 포살布薩, 안거安居, 자자自恣, 식물食物, 약물藥物, 의복衣服, 분쟁紛爭 등의 일에 대하여 한곳에 모여 의논하며 처리하는 결집結集의 행사를 말한다. 보통 건도犍度라고 하며, 건타建陀ㆍ건도建圖ㆍ건도乾度ㆍ새건다塞建陀ㆍ사건도娑犍圖라고도 한다.
  165. 165)침류수석枕流漱石 : 은거하며 수도하는 것을 비유한 말. 상권 주 97 참조.
  166. 166)두로杜老의 천간千間 집 : 두로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를 말한다. 그가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에 초가집을 짓고 살다가 폭풍우에 지붕이 날아가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근심하며 지은 시 끝부분에 “어떡하면 천만 칸의 널찍한 집을 얻어서, 천하의 빈한한 선비들을 크게 비호하여 모두 즐거운 얼굴이 되게 하고, 풍우에도 동요하지 않고서 산처럼 안정되게 할까. 아, 어느 때에나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이런 큰 집을 볼거나. 그렇게만 된다면 내 집만 유독 부서져서 얼어 죽는다 하더라도 만족하리라.(安得廣廈千萬間。大庇天下寒士俱歡顔。風雨不動安如山。嗚呼。何時眼前突兀見此屋。吾廬獨破受凍死亦足。)”라는 말이 나온다. 『杜少陵詩集』 권10 ≺茅屋爲秋風所破歌≻.
  167. 167)변생邊生의 구주九州 이불 : 변생은 후한後漢 영제靈帝 때의 문사인 변양邊讓을 가리킨다. 공융孔融이 변양을 조조에게 천거하는 글에 “변양은 구주의 이불을 만들기에는 부족하지만, 홑겹의 첨유襜褕를 만들기에는 넉넉하다.(邊讓爲九州之被則不足。爲單衣襜褕則有餘。)”라 한 말이 있다. 『太平御覧』 권707.
  168. 168)수倕 : 교공巧工인 공수工倕. 상권 주 63 참조.
  169. 169)노獿가 하얗게 흙을 칠하고 : 노獿는 고대의 유명한 미장이 이름이다.
  170. 170)염라대왕이 밥~요구할 때 : 수행이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밥이나 축낸 죄의 값을 받으리라는 의미이다. 『碧巖錄』 66칙에 “이처럼 행각한다면 염라대왕이 그대에게 행각 기간 동안 얻어먹은 밥값을 내라고 할 것이다.(似恁麼行脚。閻羅老子問爾。索飯錢在。)”라고 한 말의 의미와 같다.
  171. 171)천마天魔를 곡하게 한 곳이다 : 참선하며 도를 닦은 곳이라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눌암에 노인이 있는데, 좌선을 하면 천마가 곡을 한다.(訥菴有老人。宴坐天魔哭。)”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권32 ≺葉敎授和溽字韻詩復次韻爲戲記龍井之遊≻. 천마는 사람들이 선업善業을 닦으면 곡을 하고, 악업惡業을 닦으면 기뻐한다고 한다.
  172. 172)주실籌室 : 방장方丈이나 주지住持 혹은 그 거실을 가리킨다. 조실祖室의 별칭으로도 쓰인다. 인도의 우바국다優波鞠多 존자가 제자 한 명을 제도할 적마다 산가지(籌) 하나씩을 석실石室 안에 던져 두었는데, 사방 6장 되는 그 방이 산가지로 가득 차게 되자, 법을 전수하고 입멸入滅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景德傳燈錄』 권1, 『寶林傳』 권1.
  173. 173)목차木叉 : ⓢ prātimokśa를 음역한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준말. 계율戒律을 뜻한다.
  174. 174)시라尸羅 : ⓢ śīla의 음역으로, 신身ㆍ구口ㆍ의意 삼업三業의 죄악을 방지한다는 뜻을 지니는데, 보통 계戒 혹은 율律을 가리킨다. 청량淸涼ㆍ수습修習ㆍ안정安靜 등으로 의역한다.
  175. 175)백목조白木條 : 인도의 동쪽에 있는 나라 이름. 중국의 입장에서는 서쪽에 있으므로 서번西蕃이라고 한다. 『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권9, 『四分律行事鈔資持記』 권13. 인도에서는 중국을 진단震旦이라고 부른다. 『法苑珠林』 권89에 “진단은 백목조에서 동쪽으로 2만 7천 리 떨어져 있다.(震旦在白木條東二萬七千里。)”라는 구절이 보인다.
  176. 176)절축折軸 : 수레바퀴의 굴대를 부러뜨린다는 뜻으로, 외국에서 경판經板을 수레에 가득 싣고 오다가 환난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戰國策』 「魏策 一」에 “깃털도 많이 실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쌓이면 수레바퀴의 굴대를 부러뜨리고, 사람들이 많이 말하면 쇠도 녹이는 법이다.(積羽沈舟。群輕折軸。衆口鑠金。)”라는 말이 나온다.
  177. 177)부낭浮囊 : 물을 건널 때 사용하는 공기 주머니인데, 여기서는 계율戒律을 비유하였다. 불자가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키는 것이, 바다를 건널 때 부낭으로 익사를 예방하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北本大般涅槃經』 권11 「聖行品」, 『慧琳音義』 권3.
  178. 178)초계草繫 비구처럼~이름을 떨쳐 : 『梵網經』 권하에 “금계를 호지하여 일상 어느 때나 이 계를 독송하기를 금강처럼 하고, 부낭을 가지고 대해를 건너는 것처럼 해야 하며, 초계 비구처럼 해야 한다.(護持禁戒。行住坐臥。日夜六時。讀誦是戒。猶如金剛。如帶持浮囊。欲度大海。如草繫比丘。)”라는 글이 있다.
  179. 179)진생계盡生界 : 세간의 일체 중생을 제도하여 중생계衆生界가 모두 텅 비게 하는 것을 말한다.
  180. 180)희기안도希驥顔徒 :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있기를 바라는 안회顔回의 무리라는 뜻으로, 안회도 스승인 공자 덕분에 이름이 드러났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혜월을 비롯하여 이 불사佛事에 참여한 사람들이 혹시라도 지장보살에 기대어 덩달아 유명해지려 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은근히 풍자하는 뜻으로 몽암이 사용하였다. 『史記』 「伯夷列傳」에 “안회가 비록 독실하게 학문을 닦긴 하였지만, 그래도 ‘천리마의 꼬리 끝에 붙었기(附驥尾)’ 때문에 그 행동이 더욱 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顏淵雖篤學。附驥尾而行益顯。)”고 하였는데, 당唐나라 사마정司馬貞이 “쉬파리가 천리마 꼬리 끝에 붙어서 천리를 치달리는 것처럼, 안회도 공자 덕분에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뜻이다.(蒼蠅附驥尾而致千里。以譬顏回因孔子而名彰也。)”라고 해설하였다. 한漢나라 왕포王褒의 「사자강덕론四子講德論」에 “천리마 꼬리에 붙어 있으면 천리를 함께 치달릴 수도 있고, 기러기 날개를 더위잡으면 사해를 날아갈 수도 있으니, 내가 비록 우둔하긴 하지만 그대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附驥尾。則涉千里。攀鴻翮。則翔四海。僕雖頑嚚。願從足下。)”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권26.
  181. 181)단금斷金 : 쇠도 자를 수 있다는 말로, 동지 의식이 굳건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周易』 「繫辭傳 上」의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쇠도 자를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의 말에서는 난초 향기가 풍겨 나온다.(二人同心。其利斷金。同心之言。其臭如蘭。)”라는 말에서 나왔다.
  182. 182)구고九臯 : 고臯는 물로 인해 패인 구덩이이다. 구고는 아래의 고에서부터 세어 올라가 아홉 번째의 구덩이란 말로, 깊은 산골을 뜻한다. 『詩經』 「小雅」 ≺鶴鳴≻에 “학이 구고에서 우니, 그 소리가 위로 하늘에까지 들린다.(鶴鳴于九皐。聲聞于天。)”라는 말이 나온다.
  183. 183)등심等心 : 평등심平等心의 준말. 일체 중생에 대하여 친소親疏 등 차별의식을 일으키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는 자비심慈悲心을 말한다.
  184. 184)운문雲門의 호병胡餅 : 운문 문언雲門文偃에게 어떤 승려가 불조佛祖를 초월한 경지를 묻자, 운문이 대뜸 호병胡餅이라고 대답한 공안公案. 호병은 호마유胡麻油, 즉 참기름에 튀겨 만든 유과油果의 한 종류이다. 『雲門廣錄』 권상.
  185. 185)앙산仰山의 밥 : 『緇門警訓』 권6에 완중대阮中大가 지은 ≺仰山飯≻이라는 장문의 게송이 실려 있는데, 처음에 “앙산의 밥이여, 앙산의 밥이여.(仰山飯。仰山飯。)”로 시작하여 “옛사람은 모두 도를 배우기 바빠서, 두루 선지식 찾아뵈러 방방곡곡 다녔었지. 나무껍질 풀잎으로 끼니를 메웠으니, 어찌 이 밥으로 배를 채웠으랴. 백 년 세월이 꿈이요 허깨비 같으니, 스승 찾아 공부할 일 얼른 해야지. 그럼에도 심지가 분명치 못하다면, 부처도 앙산의 밥 소화시키기 어려우리.(古人都爲學道忙。遍參知識遊諸方。木皮草葉供鐺煮。豈有此飯充飢腸。百歲光陰如夢幻。參請工夫宜早辦。若還心地不分明。佛也難消仰山飯。)”라는 구절로 끝맺고 있다.
  186. 186)보화유호寶貨肉好 : 주조된 대전大錢을 말한다. 『漢書』 「食貨志 下」에, 주周 경왕景王이 “마침내 대전을 주조하고는 보화寶貨라고 문자를 새겨 넣었으며, 유호肉好에 모두 주곽周郭이 있게 하였다.(卒鑄大錢。文曰寶貨。肉好皆有周郭。)”라는 말이 나오는데, 당나라 안사고顔師古가 해설하면서 위소韋昭의 말을 인용하여 “유는 돈 모양이고, 호는 구멍이다.(肉。錢形也。好。孔也。)”라고 하였다. 즉 유호의 유肉는 옥기玉器나 전錢의 둥근 주변을 말하고, 호好는 중간의 네모난 구멍을 말한다. 『爾雅』 「釋器」에 “유가 호의 배가 되면 벽이라고 하고, 호가 유의 배가 되면 원이라고 하고, 유와 호가 같으면 환이라고 한다.(肉倍好謂之璧。好倍肉謂之瑗。肉好若一謂之環。)”라는 말이 나온다. 주곽은 돈의 둥근 주변과 중간의 네모난 구멍에 불룩 튀어나온 윤곽輪廓을 말한다. 『五洲衍文長箋散稿』 경사류 「金壺字考字音辨證說」에 “유호. 유의 음은 유이며, 상성이다. 돈의 모양이 아름답고 둥그런 모습이다.(肉好。肉。柔。上聲。錢美滿。)”라고 한 데에 따라 ‘肉’을 ‘유’로 독음하였다.
  187. 187)적측赤側 : 돈의 바깥 테두리를 붉은 구리로 두른 전폐錢幣를 말하는데, 돈의 별칭으로 쓰인다. 한漢 무제武帝 때에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史記』 「平準書」에는 ‘赤側’이라고 하였고, 『漢書』 「食貨志 下」에는 ‘赤仄’이라고 하였다.
  188. 188)문과問過 : 아는 것도 다시 물어보는 등 철저히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두 사람이 돼지를 마주 들고 지나가는 것을 석가모니가 보고서 무엇이냐고 묻자, “부처는 일체지를 갖췄는데 돼지도 모르십니까.(佛具一切智。猪子也不識。)”라고 대답하니, 석가가 “그래도 확인해 보아야 한다.(也須問過。)”라고 말한 내용이 『五燈會元』 권1 「釋迦牟尼佛」에 나온다.
  189. 189)비경悲敬의 전田 : 비전悲田과 경전敬田으로, 중생과 사원에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이 비전과 경전에 은전恩田을 합친 것이 삼복전三福田이다. 비전은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돕기 위한 것이고, 경전은 불佛ㆍ법法ㆍ승僧을 공경하기 위한 것이고, 은전은 부모와 사장師長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다. 비전은 연민복전憐愍福田 혹은 빈궁복전貧窮福田이라고도 하고, 경전은 공경복전恭敬福田 혹은 공덕복전功德福田이라고도 하고, 은전은 보은복전報恩福田이라고도 한다.
  190. 190)청부靑蚨 : 돈의 별칭. 주 3 참조.
  191. 191)빈녀貧女의 하나의 등잔불 :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구걸해 얻은 1전錢으로 등불 하나를 켤 수 있는 기름을 사서 기원정사에 있는 부처에게 공양하며 서원하고 떠났는데, 다음 날 다른 등불은 다 꺼졌어도 난타의 등불은 여전히 환히 빛나는 것을 목련目連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부처가 ‘이 등불은 대보리심大菩提心을 발한 자의 보시이기 때문에, 성문聲聞의 사람들이 훼손할 수 없으며, 나아가 사대四大 해수海水나 대풍大風에도 꺼지지 않고 항상 밝을 것’이라고 일러 준 고사가 전한다. 『賢愚經』 권3 「貧女難陀品」, 『四分律行事鈔資持記』 권하. 이것이 장명등長明燈의 기원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192. 192)비람毘嵐 : ⓢ vairambhaka를 음역한 말. 우주의 시초와 종말에 불어온다는 신속하고 맹렬한 바람을 말한다.
  193. 193)상주常住 : 항상 있어야 할 것들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등촉 등과 같이 절 안의 생활필수품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불교와 도교에서는 사사寺舍, 전지田地, 집기什器 등을 상주물常住物 혹은 줄여서 상주라고 칭한다.
  194. 194)구류九類 : 삼계의 중생이 출생하는 아홉 가지 형태를 말한다. 삼계 공통인 사생四生, 즉 태생胎生ㆍ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에다, 색계色界의 ‘유색有色’과 무색계無色界의 ‘무색無色’과 무색계 중에서 무상천無想天을 제외한 제천諸天의 ‘유상有想’과 무색계 중 무상천의 ‘무상無想’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을 합한 것이다.
  195. 195)구련九蓮 : 극락에 있는 구련대九蓮臺의 준말. 주 38 참조.
  196. 196)비경悲敬의 전田 : 비전悲田과 경전敬田. 중생과 사찰에 공양하는 것. 주 189 참조.
  197. 197)삼륜三輪 : 업력業力에 의해 기세계器世界를 구성하는 풍륜風輪ㆍ수륜水輪ㆍ금륜金輪.
  198. 198)칠불七佛이 팔불八佛이~있는 것이겠기에 : 문익 비구가 석가모니를 이어 미래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몽암이 극찬한 것이다. 칠불七佛은 석가모니와 그 이전의 육불六佛을 말한다. 육불은 과거겁過去劫 중의 삼불三佛인 비바시毗婆屍, 시기屍棄, 비사부毗舍浮와 현재겁現在劫 중의 삼불인 구류손拘留孫, 구나함拘那含, 가섭迦葉을 말한다. 석가모니도 현재겁에 속한다. 『七佛經』, 『法苑珠林』 권8. 이장二藏은 소승의 경인 성문장聲聞藏과 대승의 경인 보살장菩薩藏을 말하는데, 여기에 불장佛藏을 더하여 삼장三藏이 된다.
  199. 199)문을 닫아걸고 드러누운 지 : 문을 닫아걸고 길도 쓸지 않으며 방문객을 맞지 않는다는 ‘두문각소杜門却掃’의 준말이다.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이 “대문을 닫고서 정원의 길도 쓸지 않았으며, 산업은 돌보지 않은 채 독서만 일삼았다.(杜門却掃。棄産營書。)”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魏書』 권90 「逸士列傳 李謐」.
  200. 200)이 산은~있는 방장方丈이다 :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방장이 바로 우리나라의 지리산이라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방장산은 삼한의 밖에 있고, 곤륜산은 만국의 서쪽에 있다.(方丈三韓外。崑崙萬國西。)”라는 표현이 있다. 『杜少陵詩集』 권3 ≺奉贈太常張卿≻.
  201. 201)결계結界 : 안거安居하여 결속結束하며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서 경계를 획정한 지역. 도량의 구역이라는 말과 같은데, 여기서는 그러한 터를 잡아서 도량을 세웠다는 말로 쓰였다.
  202. 202)만물의 시초(物之初) : 모든 존재의 궁극적 근원이 되는 경지를 말한다. 『莊子』 「田子方」에 “나는 내 마음을 만물의 시초에서 노닐게 한다.(吾遊心於物之初。)”라면서 노담老聃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대목이 나온다.
  203. 203)속진의 소리가~감싸게 했다 : 최치원의 ≺籠山亭≻ 시를 인용한 것. 상권 주 27 참조.
  204. 204)서암瑞庵 화상의 적적성성寂寂惺惺한 곳이요 : 『無門關』에 “서암 사언瑞巖師彦 화상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 하고 부르고 스스로 ‘예!’라고 응답했으며, ‘정신을 똑똑히 차리라’고 말하고는 ‘예!’라고 자답했으며, ‘어느 때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하고는 ‘예! 예!’라고 응답했다.(瑞巖彥和尙。每日自喚主人公。復自應諾。乃云。惺惺著。喏。他時異日。莫受人瞞。喏喏。)”라고 했다.
  205. 205)무극無極 :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의 「太極圖說」 첫머리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라는 말이 나온다. 역易, 즉 『周易』에 나온다고 한 것은 몽암의 착오이다.
  206. 206)천하모天下母 : 천하의 어미라는 뜻으로, 도道의 별칭이다. 『道德經』 25장에 “어떤 물건이 혼돈의 상태로 이루어졌는데, 천지의 생성보다도 앞서 있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이, 홀로 존재하며 변화하지 않고, 두루 행해지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하의 어미가 될 만하다.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므로, 일단 도道라고 부르기로 하였다.(有物混成。先天地生。寂兮寥兮。獨立不改。周行而不殆。可以爲天下母。吾不知其名。字之曰道。)”라는 말이 나온다.
  207. 207)도옥逃屋 : 나라의 학정虐政을 못 이겨 도망친 주민의 가옥을 말한다. 당나라 섭이중聶夷中의 ≺詠田家≻라는 시에 “나의 소원은 우리 임금님이, 광명한 촛불로 화현하시어, 잘사는 집은 비춰 주지 마시고, 그저 도망친 집만 비춰 주시기를.(我願君王心。化作光明燭。不照綺羅筵。只照逃亡屋。)”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208. 208)와치臥治 : 원래는 병이 들어 누워서 다스린다는 뜻이지만, 보통 지방 장관이 청정한 무위無爲의 정치를 베풀어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한漢 무제武帝 때 동해태수東海太守 급암汲黯이 병이 많아 누워서 다스렸는데도(臥治) 동해가 크게 안정되었는데, 그 뒤에 회양태수淮陽太守로 임명하자 급암이 극구 사양하니, 무제가 “나는 단지 그대의 중망을 빌리려 했을 뿐이니, 그대는 병을 치료하며 누워서 다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吾徒得君之重。臥而治之。)”라고 설득하여 부임하게 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史記』 「汲黯列傳」.
  209. 209)승제承制 : 조정의 재가를 받지 않고 적절히 편리할 대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210. 210)앙경殃慶 : 재앙과 경사라는 뜻으로, 『周易』 「坤卦 文言」의 “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경사가 있게 마련이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후손에게 반드시 재앙이 돌아오게 마련이다.(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라는 말을 압축한 것이다.
  211. 211)적원積原 : 미상이다. 오자인 듯하다.
  212. 212)두보가 천~이불을 읊자 : 주 166, 167 참조.
  213. 213)태실胎室 : 왕족의 태胎를 묻은 곳을 말한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을 간수군看守軍이라고 하는데, 왕과 왕비의 태실에는 각 8인, 선왕과 선후 그리고 세자의 태실에는 각 4인이 배치되었다.
  214. 214)시방의 법계가~끊임없이 축원하리라 : 『嘉泰普燈錄』 권15, 『大慧語錄』 권6에 “시방 법계가 사람들 입에 이르렀으니, 법계 일체가 곧 혀라. 다만 이 입과 혀에 의지하여 우리 군주의 수명이 간단없기를 축원하노라.(十方法界至人口。法界所有即其舌。只憑此口與舌頭。祝吾君壽無間歇。)”라는 게가 있는데, 이 구절들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215. 215)궐蟨과 공蛩~잡는 것 :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비유하는 말. 주 138, 139 참조.
  216. 216)수倕 : 교공巧工인 공수工倕. 상권 주 63 참조.
  217. 217)방포方袍 : 방포객方袍客의 준말로, 승려를 가리킨다. 방포는 방형方形으로 된 비구의 가사. 방복方服이라고도 한다.
  218. 218)목란木蘭 : 나무껍질이 계피와 같아서 향기가 나고 그 색깔이 흑색으로 선명하여 옷을 물들이는 데 쓰는데, 그 목란의木蘭衣를 후세에 가사로 많이 착용하면서 율의律衣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219. 219)찢어서 밭두둑~것은 복福이다 : 전답에서 곡식이 나와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해서 가사를 복전의福田衣 혹은 전의田衣라고 한다. 부처가 왕사성王舍城에 있을 적에 논밭의 경계가 분명한 것을 보고는 아난에게 “과거의 부처님들이 입은 옷의 모양이 이와 같았다. 지금부터는 이에 의거해서 옷 모양을 만들도록 하라.(過去諸佛衣相如是。從今依此作衣相。)”라고 지시한 고사가 전한다. 『釋氏要覽』 권상 「田相起緣條」.
  220. 220)의정依正 : 의정이보依正二報, 즉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를 말한다. 정보正報는 과거의 업인業因에 따라 과보果報의 정체正體를 받는 것으로, 예컨대 인간에 태어나면 인간의 사지四肢, 오관五官 등의 몸을 받고, 축생에 태어나면 우모치혁羽毛齒革 등의 몸을 받는 것을 말하고, 의보依報는 정보正報에 따른 거주지의 과보를 받는 것으로, 인간에 태어나면 가옥에 거하고 축생에 태어나면 둥지나 동굴 등에 거하는 것을 말한다. 이세간二世間 중에서 중생세간衆生世間은 정보에 해당하고, 국토세간國土世間은 의보에 해당한다.
  221. 221)금시金翅가 비록~해치지 못하였고 : 금시조金翅鳥, 즉 가루라迦樓羅는 바닷속 용과 용의 처자妻子를 잡아먹고 사는데, 부처님이 용왕龍王의 간청을 받아들여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여러 용왕들에게 나눠 주었는바, 그 뒤로는 그 옷의 한 오라기를 걸치기만 해도 모두 환란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海龍王經』 권4 「金翅鳥品」.
  222. 222)견서堅誓가 비록~사람을 공경하였으니 : 황금색 털을 지닌 견서라는 이름의 사자가 청정하게 수도하는 벽지불辟支佛과 친근하게 지냈는데, 사냥꾼이 사자를 잡아서 그 털을 왕에게 바칠 욕심으로,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는 등 수도자의 행색을 하고는 사자를 가까이 유인하여 독화살을 쏘았다. 이때 사자가 포효하며 그 사냥꾼을 해치려고 하다가, 이 가사는 현성賢聖의 표지이니 악심惡心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하면서 게송을 읊고는 그대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이때의 사자는 바로 인위因位 때의 부처님이었고, 그 사냥꾼은 제바달다提婆達多였다는 견서사자堅誓師子의 이야기가 전한다. 『報恩經』 권7, 『賢愚經』 권13.
  223. 223)육선六線의 공덕으로~것에 대해서는 : 전거 미상이다. 삼팔주三八紬라는 견직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팔포三八布는 면직물의 일종으로 보인다.
  224. 224)위태韋駄 : 호법護法 신장神將의 이름. 금강저金剛杵를 손에 들고 있다고 한다.
  225. 225)부처가 열반한~모이게 했다 : 『付法藏因緣傳』에는 보이지 않고 『佛祖統紀』 권34에 “4월 15일에 대가섭이 수미산에 올라 구리로 만든 건추를 치고 천 명의 아라한을 모아 법장을 결집했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226. 226)정와井蛙 : 우물 안 개구리. 개구리가 바다의 별주부에게 자기의 거처를 자랑하면서 한번 구경하러 오라고 초청했다가 망신을 당한 이야기가 『莊子』 「秋水」에 자세히 나온다.
  227. 227)풍이馮夷 : 물귀신의 이름으로, 하백河伯이라고도 한다. 상권 주 58 참조.
  228. 228)대방大方 : 대방지가大方之家의 준말로, 식견이 원대하고 대도大道에 통달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황하 귀신 하백河伯이 북해北海 귀신 약若에게 “지금 내가 북해에 와서 그대의 한없이 넓은 경지를 보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그대의 문에 이르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아마도 두고두고 대방지가에게 비웃음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今我睹子之難窮也。吾非至於子之門則殆矣。吾長見笑於大方之家。)”라고 말한 이야기가 『莊子』 「秋水」 서두에 나온다.
  229. 229)유정有頂의 바람에~표류하지 않고 : 형체를 지닌 이 세상의 온갖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유정은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별칭인데, 형체가 있는 세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무저無底는 밑바닥이 없다는 뜻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중생의 번뇌를 비유한 말이다.
  230. 230)조과鳥窠의 중선衆善 :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항주자사杭州刺史로 부임하여 조과 도림鳥窠道林 선사에게 불법의 대의大意를 물었을 때, “악을 짓지 말고 선을 봉행하라.(諸惡莫作。衆善奉行。)”라고 대답하였는데, 백거이가 “그런 대답은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것이다.(三歲孩兒也解恁柚麽道。)”라고 하자, 선사가 “세 살 먹은 아이도 말할 수 있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행할 수 없는 것이다.(三歲孩兒雖道得。八十老人行不得。)”라고 하니, 백거이가 탄복하며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景德傳燈錄』 권4 「鳥窠道林傳」.
  231. 231)사문沙門 이십억二十億이~과보를 받았다 : 이십억은 이십억이二十億耳의 준말로, 석가모니불 당시에 아라한과를 얻은 비구의 이름이다. 『大智度論』 권29에 “사문 이십억이가 비바시불 때에 방사房舍를 지어 비구승에게 주고 양피羊皮를 깔아서 승려들이 그 위를 밟게 하였다. 그 인연으로 91겁 동안 발로 땅을 밟지 않았고, 인천人天 중에서 무량한 복락을 받았다. 그리고 말후末後에 대장자大長者의 집에 태어나 단정한 몸을 받고 발밑에 2촌의 털이 자라났는데 그 색깔이 푸른 유리와 같았으며 오른쪽으로 맴돌았다. 처음 태어났을 때 부친이 그에게 이십억 냥의 금을 주었는데, 뒤에 세상의 오욕을 싫어해서 출가하여 득도하였다. 부처는 그의 정진이 비구 중에 제일이라고 칭찬하였다.(沙門二十億耳。於鞞婆尸佛法中作一房舍給比丘僧。布一羊皮令僧蹈上。以是因緣故。九十一劫中足不蹈地。受人天中無量福樂。末後身生大長者家。受身端政足下生毛長二寸色如青琉璃右旋。初生時父與二十億兩金。後厭世五欲出家得道。佛說精進比丘第一。)”라는 말이 나온다.
  232. 232)구주九州의 이불을~것일 뿐이니 : 주 166, 167 참조.
  233. 233)파우波于의 이왕二王 : 부처를 사모하여 황금으로 주조하고 전단栴檀을 새겨서 불상을 만든 인도의 파사닉왕波斯匿王과 우전국于闐國의 왕. 우전국은 우전국優塡國이라고도 한다. 『經律異相』 권6 「造佛形像」 조에 그 내용이 상세히 나온다.
  234. 234)가유迦維의 구억九億 : 가유迦維는 석가의 조국인 가유라위迦維羅衛의 준말이고, 구억九億은 장자長者의 이름이다. 『修行本起經』 권1 「現變品」. 가유라위는 ⓢ Kapila-vastu, ⓟ Kapila-vatthu의 음역으로, 가비라위迦毘羅衛라고도 하며, 이 밖에 가비라번파수도迦比羅番皤窣堵, 가비라파소도迦毘羅婆蘇都, 겁비라벌수도劫比羅伐窣堵, 파두석시수婆兜釋翅搜라고도 한다. 한역어는 황적성黃赤城이다.
  235. 235)백목조白木條 : 서번西蕃. 주 175 참조.
  236. 236)자사刺使가 한번~깔깔거리며 웃고 : 남조南朝 송宋 때에 유백룡劉伯龍이 어려서부터 가난하였는데, 상서좌승尙書左丞과 소부少府와 무릉태수武陵太守의 관직을 거치는 동안에도 가난이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장차 장사꾼처럼 1할의 이익을 남겨 보려고 사람들과 상의를 하자, 한 귀신이 곁에서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니(一鬼在傍撫掌大笑), 백룡이 탄식하며 “빈궁한 것은 본시 나의 운명인데, 그만 또 귀신의 웃음거리가 되었구나.(貧窮固有命。乃復爲鬼所笑也。)”라고 하고는 그만두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南史』 권17 「劉粹列傳」.
  237. 237)빈녀貧女가 일전一錢의~꺼지지 않으니 : 주 191 참조.
  238. 238)희순希順 : 고희古希와 이순耳順, 즉 70세와 60세를 말한다.
  239. 239)이수二竪 : 병마病魔. 춘추시대 진晉 경공景公의 꿈에 더벅머리 두 아이(二竪)가 서로 몰래 상의하여 고황膏肓 안으로 들어갔는데, 결국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0년.
  240. 240)십무十巫의 술법도~없을 것이니 : 신묘한 무의巫醫의 의술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廣弘明集』 권27 ≺生老病死門頌≻. 진晉나라 곽박郭璞이 지은 『山海經』 권16 「大荒西經」에 의하면, 대황 안에 풍저豐沮라는 영산靈山이 있는데, 무함巫咸, 무즉巫卽, 무반巫盼, 무팽巫彭, 무고巫姑, 무진巫眞, 무례巫禮, 무저巫抵, 무사巫謝, 무라巫羅 등 십무十巫가 이 산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캐고, 또 이들을 무함이 통솔했다고 한다.
  241. 241)척목尺木 : 용이 하늘로 오를 때에 의지한다고 옛사람이 믿었던 조그만 나무를 말한다. 한漢나라 왕충王充의 『論衡』 「龍虛」에 “용은 척목이 없으면 하늘로 올라갈 수 없다.(龍無尺木。無以升天。)”라는 말이 단서短書의 말로 인용되어 나온다.
  242. 242)까마득한 절벽(巖崖) : 견고한 장벽. 소식의 시에 “왕망王莽은 자신의 욕망을 멋대로 부리면서, 경서를 차용하여 견고한 장벽을 구축했다.(巨君縱獨慾。借經作巖崖。)”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권43 「和陶雜詩十一首」 중 제10수.
  243. 243)제의濟蟻 : 개미와 같은 미물의 목숨을 구제해 주었다는 말인데, 송宋나라 사람 송교宋郊가 폭우를 만나 빠져 죽기 직전의 개미들을 불쌍히 여기고는 대나무 다리를 놓아서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여 살려 준 인연으로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했다는 송교도의宋郊渡蟻의 고사가 있다. 배도裵度라고 한 것은 몽암의 착오인 듯하다.
  244. 244)현우賢愚의 노립蘆笠 : 전생에 여래에게 삿갓을 보시한 인연으로 금생에 아라한과를 얻은 시립나한施笠羅漢의 이야기가 『賢愚經』 권10 「阿難總持品」에 나온다.
  245. 245)맥주麥舟 : 보리를 실은 배라는 뜻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물질적으로 도와줄 때에 쓰는 말이다. 송宋나라 범요부范堯夫가 보리 5백 곡斛을 배에 싣고 오다가, 단양丹陽에서 석만경石曼卿이 두 달 동안이나 상喪을 치르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배를 모두 그에게 내준 뒤에 자신은 단기單騎로 돌아왔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冷齋夜話』 권10. 몽암이 사도査道의 고사로 인용한 것은 착각인 듯하다. 사도는 송나라 사람으로, 과거에 응시하러 갈 적에 친척들이 가난한 그를 위해 3만 냥을 모아 주었는데, 부친의 벗인 여옹呂翁의 집에서 초상을 치를 돈이 없어 딸을 팔려고 하자 그 돈을 주어 장례를 행하게 했다는 사도경탁査道傾橐의 고사로 유명하다.
  246. 246)사안謝安의 동산전東山殿 : 세상에 나가지 않고 동산에 높이 누워 은거했다는 동산고와東山高臥의 고사로 유명한 진晉나라 사안이 그 동산에 불전을 희사했다는 뜻인 듯하다. 그런데 사안이 지둔支遁, 우법개于法開, 습착치習鑿齒, 축법태竺法汰, 축법광竺法曠 등 고승과 친하게 지냈고, 그의 시문 역시 현학玄學의 묘미妙味를 많이 함축하고 있긴 하나, 몽암이 인용한 이 동산전의 전거는 미상이다.
  247. 247)현도玄度의 월주탑越州塔 : 현도는 고승高僧 지도림支道林과 청담을 나눈 것으로 유명한 동진東晉의 명사 허순許詢의 자字이다. 동진의 승려 담언曇彦이 허순과 함께 전목塼木의 대탑大塔 두 개를 쌓다가 완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순이 먼저 죽었다. 그가 죽고 나서 30년이 지나 담언의 나이 120여 세가 되던 때에, 담언이 문인에게 “허현도가 올 것이다.(許玄度來也。)”라고 하면서 그의 환생還生을 예언하였는데, 과연 얼마 뒤에 악양왕岳陽王 소찰蕭詧이 절에 찾아오자, 그의 전신前身이 허순임을 깨닫게 한 뒤에, 그의 시주를 받아서 두 개의 탑을 완공했다는 월주탑의 고사가 전한다. 또 이와 함께 대중이 허물어진 용흥사龍興寺의 대전大殿을 중수重修하자고 청하자, 담언이 “이 일은 나의 인연으로는 힘이 닿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2백 년 뒤에 비의의 공덕주가 나와서 이 대전을 일으키고 크게 불사를 지을 것이다.(非貧道緣力也。却後二百年有緋衣功德主。來興此殿大作佛事。)”라고 예언하였는데, 과연 나중에 당나라 재상 배휴裵休가 불법에 귀의하여 그 말대로 했다고 한다. 비의緋衣는 배裵 자의 파자破字이다. 『景德傳燈錄』 권12 「裵休傳」.
  248. 248)양호羊祜의 무당사武當寺 : 진晉나라 형주도독荊州都督 양호羊祜가 “무당산의 사찰에 물자를 공급하라.(供給武當山寺。)”고 지시하였는데, 그 까닭을 묻자 양호가 대답하기를 “전생에 많은 과오를 저질러서 그렇다.(前身多有諸過。)”라고 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양호가 이 절을 지어 준 인연으로 나중에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이 『佛祖統紀』 권36에 나온다.
  249. 249)허령불매虛靈不昧 : 텅 비고 신령스러워 어둡지 않다는 뜻인데, 『大學章句』의 명덕明德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註에 나오는 말이다.
  250. 250)선을 보고는~서둘러 했다(見善如不及) : 『論語』 「季氏」에 “선善을 보거든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하고, 불선不善을 보거든 끓는 물을 더듬은 것과 같이 해야 한다.(見善如不及。見不善如探湯。)”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251. 251)색계의 겨자와~인연이 아니요 : 매우 만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 말이다. 도리천忉利天에서 겨자씨 하나가 아래로 떨어져서 염부제閻浮提, 즉 이 세상에 곧추 세운 바늘 위에 꽂히는 것처럼 부처의 출세出世를 만나기 어렵다는 ‘추개투침봉墜芥投針鋒’의 비유가 『北本涅槃經』 권2에 실려 있다. 여기서는 몽암과 스승이 만난 인연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도리천은 욕계欲界에 속하는데 몽암이 색계라고 한 것은 변려문체騈儷文體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실수한 것 같고 착오인 듯싶다. 사주四洲의 첫 번째가 남염부제南閻浮提로 이 세상을 뜻하는데, 중국말로는 승금주勝金洲라고 한다. 참고로 두 번째는 서구야니西瞿耶尼이고, 세 번째는 동불바제東弗婆提이고, 네 번째는 북울단월北鬱單越인데, 각각 승처勝處, 승신勝身, 승처勝處로 한역한다.
  252. 252)눈먼 거북이가~만난 것 : 몽암과 스승 사이의 희귀한 인연을 비유한 말이다. 『涅槃經』 권20 「高貴德王菩薩品」에 “사람의 몸 얻기 어려운 것이 우담발화와 같은데 내가 지금 이미 얻었고, 여래를 만나기 어려운 것이 우담발화보다 더한데 내가 지금 이미 만났으며, 청정한 법보를 보고 듣는 것이 어려운데 내가 지금 이미 들었으니, 이는 비유컨대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난 것과 같다.(人身難得如優曇花。我今已得。如來難値過優曇花。我今已値。淸淨法寶難得見聞。我今已聞。猶如盲龜値浮木孔。)”라는 말이 나온다.
  253. 253)갈마羯磨 :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 즉 계사戒師를 말한다.
  254. 254)학장鶴腸의 출가 : 마음속으로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출가라는 말이다.
  255. 255)가던 길을~수 있었고 : 오대산五臺山 아래에 한 노파가 살았는데, 승려들이 오대산 가는 길을 물으면 으레 “곧장 앞으로 가라.(驀直去。)”고 대답하였고, 승려들이 그 말대로 하면 으레 혀를 차면서 “이 스님도 이 모양이구나.(好箇師僧。又恁麽去。)”라고 핀잔하곤 하였다. 조주 종심趙州從諗 선사가 이 말을 듣고는 그 노파를 시험하러 가서 똑같은 대답을 듣고 돌아와 대중에게 “노파에 대해서 내가 그대들을 위해 정체를 간파하였다.(婆子。我爲汝勘破了也。)”라고 말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주감파趙州勘婆’ 또는 ‘대산파자臺山婆子’라는 공안으로 알려져 있다. 『景德傳燈錄』 권10, 『無門關』, 『聯燈會要』 권6.
  256. 256)무갈無羯 : 금강산에 거한다는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 상권 주 135 참조.
  257. 257)과갈瓜葛 : 오이나 칡덩굴의 가지와 잎이 서로 엉클어진 것에서 연유하여, 친척 관계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258. 258)이수二竪가 몰래~누가 알았겠습니까 : 어떤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난치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는 말. 주 239 참조.
  259. 259)신화薪火 : 장작의 불이라는 뜻으로, 땔감이 다 타 버리는 것처럼 사람의 육신도 쇠해져서 죽음을 맞는 것을 가리킨다. 『莊子』 「養生主」의 “땔감의 장작은 불타서 다 없어져도, 불씨는 새로 전해져서 끝날 줄을 알지 못한다.(指窮於爲薪。火傳也。不知其盡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배움이 전수傳授되며 끊이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260. 260)배수盃水 : 한 잔의 물. 일정한 형체를 지닌 인간의 삶을 비유한 말이다. 배수杯水라고도 한다. 『莊子』 「逍遙遊」의 “물이 쌓인 것이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우기에 역부족이다. 한 잔의 물을 움푹 팬 마루 위에 부어 놓으면, 지푸라기야 배처럼 뜨겠지만 잔을 놓으면 달라붙을 것이다. 이는 물이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且夫水之積也不厚。則其負大舟也無力。覆杯水於坳堂之上。則芥爲之舟。置杯焉則膠。水淺而舟大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261. 261)이시以時 : 제때에 맞게 한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때맞춰 제사를 올리는 뜻으로 쓰였다. 『孟子』 「盡心 下」에 “동물성 제물을 마련하고, 식물성 제물을 정결히 갖추어, 제사를 제때에 지낸다.(犠牲旣成。粢盛旣絜。祭祀以時。)”라는 말이 나온다.
  262. 262)여재如在 : 살아 있는 것처럼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것을 말한다. 『論語』 「八佾」에, “공자가 제사를 지낼 적에는 선조가 계신 듯이 하고 신을 제사 지낼 적에는 신이 계신 듯이 하였다.(祭如在。祭神如神在。)”라는 말이 나온다. 또 『中庸章句』 16장에 “제사를 지낼 때면 귀신이 양양히 그 위에 있는 듯도 하고 좌우에 있는 듯도 하다.(承祭祀。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라는 말이 나온다.
  263. 263)외일畏日 : 사람을 두렵게 하는 여름날의 태양이라는 말이다. “겨울철의 햇빛은 사랑스럽고 여름철의 햇빛은 무섭기만 하다.(冬日可愛。夏日可畏。)”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春秋左氏傳』 문공文公 7년 주註.
  264. 264)활활 타는~미소를 짓고 : 차를 끓여 올리는 것을 뜻하는 시적인 표현이다. 소식의 시에 “잠에서 깨어나 돌 샘물을 끓이니, 자순紫筍이 익혀져서 경유輕乳처럼 번진다.(覺來烹石泉。紫筍發輕乳。)”라는 구절이 있다. 『蘇東坡詩集』 권7 「宿臨安淨土寺」. 자순은 상품上品에 속하는 차의 이름이고, 경유는 우유처럼 위에 둥둥 뜬 기름이라는 뜻으로, 자순이 푹 익었을 때의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조로趙老는 당나라 조주 종심趙州從諗 선사를 가리킨다. 그가 누구에게나 “차 한잔 마시고 가라.(喫茶去。)”라고 하여, 일상생활 속에 선禪의 묘리妙理가 들어 있음을 보여 준 선종의 화두가 전한다. 『五燈會元』 권4 「趙州從諗」.
  265. 265)깊은 물을~춤을 춥니다 : 금우金牛 화상이 매일 점심때가 되면 자기 밥통을 들고 승당 앞으로 나아가서 춤을 추며 껄껄 웃고는 “보살들이여, 어서들 와서 밥을 먹게나.(菩薩子喫飯來。)”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떤 중이 장경長慶에게 묻자 장경이 금우의 행동을 찬탄한 ‘금우반통金牛飯桶’이라는 공안公案이 『碧巖錄』 74칙에 나온다. 그리고 그 뒤에 장경이 찬탄한 뜻에 대해서 어떤 중이 대광大光에게 묻자 대광이 금우와 똑같이 춤을 추었는데, 대광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흉내 내는 그 중을 향해서 대광이 “이 여우 귀신 같은 놈(這野狐精。)”이라고 호통을 친 ‘대광작무大光作舞’ 공안이 또 『碧巖錄』 93칙에 나온다.
  266. 266)삼유三有 : 인과율因果律의 적용을 받으면서 생사를 반복하는 세 종류의 세계.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 즉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킨다.
  267. 267)유정有頂 :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별칭. 주 229 참조.
  268. 268)풍륜風輪 : 대지大地의 사륜四輪의 하나로, 이 세계 속에서 가장 낮은 곳을 의미한다. 이 세계의 가장 상층부인 허공의 위를 공륜空輪이라 하고, 이 공륜에 의하여 풍륜과 수륜水輪과 금륜金輪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합쳐서 사륜四輪이라고 한다. 『俱舍論』 권11, 12.
  269. 269)할애割愛 : 친애의 정을 떼어 버리고 어버이 곁을 떠나 출가했다는 말이다.
  270. 270)삼상三相 :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여기서는 유위법有爲法의 세 가지 상인 생상生相, 주이상住異相, 멸상滅相을 말한다.
  271. 271)이서二鼠 : 『譬喩經』에 나오는 흰 쥐(白鼠)와 검은 쥐(黑鼠). 각각이 일日과 월月 혹은 주晝와 야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광야曠野에서 사나운 코끼리 두 마리를 피해 등나무 덩굴을 타고 우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희고 검은 두 마리의 쥐가 덩굴을 갉아먹어 끊어지려 하였다. 그런데 그 옆에는 네 마리의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그 아래에는 세 마리의 용이 불을 내뿜고 있었는데, 나무뿌리에서 다섯 방울의 벌꿀이 입으로 떨어지자 이를 맛보며 잠시 두려운 마음을 잊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광야는 무명無明, 두 마리 코끼리는 생사, 덩굴은 목숨, 우물에 들어간 것은 무상無常, 네 마리의 뱀은 사대四大, 세 마리의 용은 삼독三毒, 다섯 방울의 꿀은 오욕五欲을 의미한다고 한다.
  272. 272)미역迷域에는 심석心石이 기울어진 듯합니다 : 미역은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 심석은 마음속에 새겨 놓은 빗돌처럼 중생이 모범으로 삼을 사표라는 뜻으로 쓴 말이다.
  273. 273)육화六和 : 육화경六和敬의 준말로, 서로 함께 애경愛敬해야 할 여섯 가지 종류의 일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신화경身和敬ㆍ구화경口和敬ㆍ의화경意和敬ㆍ계화경戒和敬ㆍ견화경見和敬ㆍ이화경利和敬을 통해, 공주共住하고 무쟁無諍하고 동사同事하고 동수同修하고 동해同解하고 동균同均하는 것을 가리킨다.
  274. 274)비경悲敬의 이전二田 : 비전悲田과 경전敬田. 중생과 사찰에 공양하는 것. 주 189 참조.
  275. 275)다연茶煙이 허공에~들리는 듯하고 : 조주趙州의 끽다거喫茶去 일화. 주 264 참조.
  276. 276)우두牛頭 : 우두단향牛頭栴檀, 즉 우두산牛頭山에서 생산되는 전단栴檀 향나무를 말한다.
  277. 277)삼장三障 : 탐貪ㆍ진嗔ㆍ치癡의 별칭. 주 128 참조.
  278. 278)오개五蓋 : 본성을 뒤덮어서 은폐시키는 다섯 가지 번뇌. 탐욕貪慾ㆍ진에嗔恚ㆍ혼면惛眠ㆍ조희調戲ㆍ의모疑侮를 말한다.
  279. 279)오품五品 : 십신十信 이전의 경지를 수행하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다섯 품위品位로, 수희품隨喜品ㆍ독송품讀誦品ㆍ설법품說法品ㆍ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ㆍ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 등을 말하는데, 천태종天台宗의 교리에서 나온 것이다. 『天台四敎儀集註』 권하.
  280. 280)삼현三賢 : 십성十聖, 즉 십지보살十地菩薩의 경지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알기는 하지만, 아직 범부의 성품을 떠나지 못하여 십주十住ㆍ십행十行ㆍ십회향十廻向 단계에 머물러 있는 수행인을 가리킨다.
  281. 281)의주衣珠 : 옷 속의 보주寶珠. 불성 혹은 대승의 진리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어떤 사람이 친구의 집에 가서 술에 취해 잠들자, 친구가 그 사람의 옷 속에 보주를 매어 놓고 외출하였는데, 그 사람은 타국으로 떠돌아다니면서 고생하다가,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 그 사실을 알고는 필요한 물건을 원하는 대로 사서 쓰면서 무궁한 낙을 누렸다는 이야기가 『法華經』 권4 「五百弟子授記品」에 나온다. ‘법화칠유法華七喩’ 중의 하나로, 계주繫珠라고도 한다.
  282. 282)법운法雲 : 십지보살十地菩薩의 마지막 최고의 단계인 법운지法雲地.
  283. 283)홍종洪鍾(大鍾)은 무변無邊의~구제를 받나니 : 『靈峰蕅益大師宗論』 권7 「化鐵地藏疏」에 나오는 구절과 흡사하다.
  284. 284)우마주牛馬走 : 제자의 별칭. 주 21 참조.
  285. 285)악예鸑猊의 각황覺皇 : 악예鸑猊는 봉황의 다른 이름인 악작鸑鷟과 사자의 다른 이름인 사예狻猊를 합한 말이다. 마치 봉황과도 같고 사자와도 같은 깨달은 임금님이라는 말로서 부처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몽암의 스승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286. 286)구오驅烏 : 까마귀가 음식을 뺏어 먹지 못하도록 쫓아낸다는 뜻인데, 7세에서 13세 사이의 사미에 대한 별칭이다. 아난이 신도의 고아를 데려오자, 부처가 “이 아이가 까마귀를 쫓을 수 있고, 계율을 지킬 수 있고, 한 끼니만 먹을 수 있는가. 만약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출가하도록 들어 주어라.(此小兒能驅烏。能持戒。能一食不。若能如是者。聽令出家。)”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四分律』 권34 「受戒揵度」.
  287. 287)사원四怨 : 번뇌마煩惱魔, 사마死魔, 음마陰魔, 천자마天子魔. 음마는 오음五陰, 즉 오온五蘊으로 인한 고뇌를 말하고, 천자마는 욕계제육천欲界第六天, 즉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마왕魔王이 선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치는 것을 말한다.
  288. 288)대충大蟲과 더불어~제안堤岸에서 포효하였고 : 당나라 선승 경잠景岑의 고사를 인용하여 영가靈駕를 비유한 것이다. 대충은 호랑이의 별칭이다. 경잠은 유년에 출가하여 남전 보원南泉普願을 참알하고 그의 법을 이었다. 처음에는 장사長沙 녹원사鹿苑寺에 거하였고 뒤에는 정처 없이 인연 따라 수기설법隨機說法을 하다가, 다시 호남湖南 장사산長沙山으로 돌아와 교화를 크게 펼쳤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장사 화상長沙和尙이라고 불렀다. 그는 기봉機鋒이 예리하고 험준하였다. 앙산 혜적仰山慧寂이 그와 함께 달구경을 하다가 “사람마다 모두 이런 달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쓰지 못할 따름입니다.(人人盡有遮箇事。只是用不得。)”라고 하자, 경잠이 “딱 들어맞는 말이네. 그대가 써 보게.(恰是。請汝用。)”라고 하였고, 혜적이 “어떻게 쓰시겠습니까?(作麼生用。)”라고 반문하자, 경잠이 앙산을 걷어차 거꾸러뜨렸다.(蹋倒仰山) 이에 앙산이 “흡사 호랑이 같습니다.(直下似箇大蟲。)”라고 평하였으므로, 그 뒤로 제방諸方에서 장사 경잠을 잠대충岑大蟲이라고 일컬었다. 『景德傳燈錄』 권10, 『聯燈會要』 권6, 『五燈會元』 권4, 『佛祖歷代通載』 권17.
  289. 289)여릉廬陵에서 쌀값을~한가로움을 얻었고 : 청원 행사靑原行思의 공안. 『景德傳燈錄』 권5에 “청원에게 하루는 어떤 학인이 ‘불법의 근본적인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청원은 ‘여릉의 쌀값은 얼마나 하느냐?’라고 하였다.(僧問。如何是佛法大意。師曰。廬陵米作麼價。)”라고 전한다.
  290. 290)무딘 도끼(鈯斧) : 도를 전해 줄 때의 상징적인 물건으로, 의발衣鉢과 같이 쓰인다. 청원 행사靑原行思가 석두 희천石頭希遷에게 한 말 가운데 나온다. 『景德傳燈錄』 권5에 “청원 선사가 희천에게 편지를 가지고 남악 회양 화상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며 말했다. ‘너는 편지를 전하고 속히 돌아오라. 내게 둔한 도끼 한 자루가 있으니 너에게 주어 산에 주석토록 하리라.’(師令希遷持書。與南嶽讓和尙曰。汝達書了速迴。吾有箇鈯斧子。與汝住山。)”라는 문답이 나온다.
  291. 291)부처도 치고 조사도 쳤으며 : 부처와 조사로 대변되는 모든 법도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五燈會元』 권16에 “부처도 치고 조사도 칠 것이니, 진인 앞에서 거짓을 말하지 말라.(佛也打。祖也打。眞人面前不說假。)”라고 하였고, 『密菴語錄』에 “그런 까닭에 덕산은 한 자루 백방白棒을 들고서 부처가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린다고 한 것이다.(所以德山據一條白棒。佛來也打。祖來也打。)”라고 한 말들이 보인다.
  292. 292)삼상三相의 변화가~치듯 찾아오고 : 어느새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이르렀다는 말. 주 270 참조.
  293. 293)이서二鼠 : 희고 검은 두 마리의 쥐로, 일월日月을 가리키는 말. 주 271 참조.
  294. 294)마침 수일讎日이~현효玄枵를 만났습니다 : 죽은 뒤에 다시 기일忌日이 찾아와서 2월 임인일壬寅日 자시子時에 재齋를 지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수일은 기일의 별칭이다. 현익玄黓과 석목析木은 고갑자古甲子로, 간지干支의 임壬과 인寅에 해당한다. 대장大壯은 주역周易 64괘의 하나로 봄철 2월의 괘에 해당하고, 현효玄枵는 12성차星次의 하나로 간지에서는 자子에 배당된다.
  295. 295)다리 부러진~미소를 짓습니다 : 제사에 올릴 차와 음식이 마련되었다는 말. ‘다리 부러진 솥’과 ‘밑 빠진 사발’은 모두 물건으로서의 제 기능을 잃고 쓸모없어진 것인데, 이로써 역설적으로 무엇으로든 쓸 수 있고 무엇이든 담을 수 있어 일정한 한계에서 벗어나 있음을 비유한다. 이를 각각 조주가 “차나 마셔라.(喫茶去。)”라는 말로 누구에게나 무차별하게 써먹었던 일화와 금우가 공양 때마다 스스로 밥을 들고 승당 앞에서 춤을 추며 껄껄대고 웃으며 “보살들, 밥 드시오.(菩薩子喫飯來。)”라고 한 일화와 연관 지어서 차와 음식이 모두 마련되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296. 296)불야성不夜城 : 밤에도 등불이 켜져서 대낮같이 환한 곳을 말하는데, 밤에도 해가 떴다는 산동성山東省 동래군東萊郡 불야현不夜縣의 성城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齊地記』.
  297. 297)태화산의 형세는~필요도 없습니다 : 소식의 시에 “시냇물 소리는 바로 부처의 광장설이요, 산 빛 또한 청정한 법신法身이라고 하리.(溪聲便是廣長舌。山色豈非淸淨身。)”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권23 ≺贈東林總長老≻. 광장설廣長舌은 부처의 이른바 32가지 대인상大人相 가운데 하나로, 얼굴을 다 덮고 머리까지 올라간다는 긴 혀를 말하는데, 설법을 뛰어나게 잘하는 것을 말한다. 장광설長廣舌이라고도 한다.
  298. 298)이 작품은 글의 내용이나 문장의 작법으로 볼 때 이전에 나온 글의 수준과는 너무 차이가 나서, 이것이 과연 몽암의 작품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리고 문맥이 아예 연결되지 않는 곳도 더러 나오는데, 가능한 한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번역해 보았다.
  299. 299)법용法勇과 무갈無羯 : 금강산에 거한다는 법기보살法起菩薩의 별칭.
  300. 300)파륜波崙 : 반야를 구하기 위해 7일 동안 밤낮으로 울며 곡했다는 살타파륜보살薩陀波崙菩薩을 말하는데, 흔히 구도求道의 뜻이 투철한 수행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혹은 파륜波倫이라고 하며, 의역意譯하여 상제보살常啼菩薩이라고도 한다.
  301. 301)우두牛頭의 향 : 전단향수旃檀香樹. 주 276 참조.
  1. 1)「書」一字。編者補入。
  2. 2)「蛈」作「蚨」{甲}。
  3. 3)「凾」作「涵」{甲}。
  4. 1)「望」作「思」{甲}。
  5. 2)「赤仄」作「靑蚨」{甲}。
  6. 3)「此」作「是」{甲}。
  7. 4)「病」下有「呼」{甲}。
  8. 5)「俱」作「具」{甲}。
  9. 6)「憂」作「虞」{甲}。
  10. 1)「岩」作「巖」{甲}。
  11. 2)「以」上有「不」{甲}。
  12. 3)「通」有無{甲}。
  13. 4)「徤」作「健」{甲}。
  14. 5)「不參」無有{甲}。
  15. 6)「疾」作「病」{甲}。
  16. 7)「反」作「返」{甲}。
  17. 8)「謂」作「爲」{甲}。
  18. 9)「如」作「加」{甲}。
  19. 10)「列」作「烈」{甲}。
  20. 11)「之」作「也」{甲}。
  21. 12)「事」作「死」{甲}。
  22. 1)「三有」無有{甲}。
  23. 2)「悶」作「㦖」{甲}。
  24. 3)「指」作「脂」{甲}。
  25. 4)「岩」作「嚴」{甲}。
  26. 5)「伯」作「白」{甲}。
  27. 6)「膓」作「腸」{甲}。
  28. 7)「揚」作「楊」{甲}。
  29. 8)「閨」作「閏」{甲}。
  30. 9)「心」作「志」{甲}。
  31. 1)「詳」作「祥」{甲}。
  32. 2)「墟」下有「而」{甲}。
  33. 3)「轍」作「輟」{甲}。
  34. 4)「知」作「諦」{甲}。
  35. 5)「桃」作「挑」{甲}。
  36. 6)「留」作「遛」{甲}。
  37. 7)「素」作「所」{甲}。
  38. 8)「暇」作「假」{甲}。
  39. 9)「之」無有{甲}。
  40. 10)「菓」作「果」{甲}。
  41. 11)「則」無有{甲}。
  42. 12)「亦」無有{甲}。
  43. 13)「使道」無有{甲}。
  44. 1)「賤」作「殘」{甲}。
  45. 2)「忭」作「抃」{甲}。
  46. 3)「侯」作「候」{甲}。
  47. 4)「小」作「少」{甲}。
  48. 5)「鈔」作「抄」{甲}。
  49. 6)「字」作「子」{甲}。
  50. 7)「僅」下有「得」{甲}。
  51. 8)「荀」作「筍」{甲}。
  52. 9)「踰」作「登」{甲}。
  53. 10)「庶」作「度」{甲}。
  54. 1)「慢」作「漫」{甲}。
  55. 2)「師」下有「僧」{甲}。
  56. 3)「筯」作「箸」{甲}。
  57. 4)「嶺」作「領」{甲}。
  58. 5)「七」作「六」{甲}。
  59. 6)「蠟」作「獵」{甲}。
  60. 1)「玉」作「▼(艹/玉)」{甲}次同。
  61. 2)「槃」作「盘」{甲}。
  62. 3)「河山」作「山河」{甲}。
  63. 4)「數」無有{甲}。
  64. 5)「留」作「由」{甲}。
  65. 6)「欺」作「期」{甲}。
  66. 7)「逆」作「迸」{甲}。
  67. 8)「而」作「以」{甲}。
  68. 9)「傾」作「頃」{甲}。
  69. 10)「衝」作「衡」{甲}。
  70. 11)「之」作「至」{甲}。
  71. 12)「因」作「仍」{甲}。
  72. 1)「餐」作「粲」{甲}。
  73. 2)「漢」作「寒」{甲}。
  74. 3)「𣣶」作「豁」{甲}。
  75. 4)「是」作「啻」{甲}。
  76. 5)「箸」作「筯」{甲}。
  77. 6)「亡」作「無」{甲}。
  78. 7)「拾」作「記」{甲}。
  79. 8)「故」無有{甲}。
  80. 9)「羔」作「羊」{甲}。
  81. 1)「舃」作「▼(卯/鳥)」{甲}。
  82. 2)「應」作「膺」{甲}。
  83. 3)「椀」作「梡」{甲}。
  84. 4)「琹」作「琴」{甲}。
  85. 5)「栖」作「棲」{甲}。
  86. 6)「蹇」作「騫」{甲}。
  87. 7)「忘」作「妄」{甲}。
  88. 8)「游」作「遊」{甲}。
  89. 9)「晢」作「晳」{甲}。
  90. 1)「愛」作「哀」{甲}。
  91. 2)「㥘」作「劫」{甲}次同。
  92. 3)「頹」無有{甲}。
  93. 4)「㦖」作「悶」{甲}。
  94. 5)「倎」作「㑋」{甲}。
  95. 6)「坡」作「波」{甲}次同。
  96. 7)「萄」作「菊」{甲}。
  97. 8)「廟」作「庙」{甲}。
  98. 9)「鹽梅」作「梅鹽」{甲}。
  99. 10)「相」作「常」{甲}。
  100. 11)「獄」下有「之」{甲}。
  101. 12)「椀」作「梡」{甲}。
  102. 13)「反」作「返」{甲}。
  103. 1)「也」無有{甲}。
  104. 2)「宇」作「于」{甲}。
  105. 3)「倎」作「㑋」{甲}。
  106. 4)「則」無有{甲}。
  107. 5)「若卵生」無有{甲}。
  108. 6)「生」下有「若卵生」{甲}。
  109. 7)「相」作「上」{甲}。
  110. 8)「皆悉」作「悉皆」{甲}。
  111. 9)「椀」作「梡」{甲}。
  112. 10)「遍」作「徧」{甲}。
  113. 11)「嗜」作「咾」{甲}。
  114. 12)「誡」作「戒」{甲}次同。
  115. 13)「院」作「庵」{甲}。
  116. 1)「㦖」作「悶」{甲}。
  117. 2)「迹」作「跡」{甲}。
  118. 3)「誌」作「識」{甲}。
  119. 4)「之」無有{甲}。
  120. 5)「拔」作「援」{甲}。
  121. 6)「庵」作「菴」{甲}次同。
  122. 7)「相」作「想」{甲}。
  123. 8)「劫」作「㥘」{甲}。
  124. 9)「吐」作「咄」{甲}。
  125. 10)「章」作「障」{甲}。
  126. 11)「迦」作「伽」{甲}。
  127. 12)「也」無有{甲}。
  128. 1)「汁」作「什」{甲}。
  129. 2)「拍」作「柏」{甲}。
  130. 3)「膠固」作「固膠」{甲}。
  131. 4)「㦖」作「悶」{甲}。
  132. 5)「募」作「謀」{甲}。
  133. 6)「乎」無有{甲}。
  134. 7)「稧」作「契」{甲}次同。
  135. 8)「側」作「仄」{甲}。
  136. 9)「若」作「略」{甲}。
  137. 1)「或」作「成」{甲}。
  138. 2)「盞」作「戔」{甲}。
  139. 3)「風」作「吹」{甲}。
  140. 4)「忭」作「抃」{甲}。
  141. 5)「痑」作「㢁」{甲}。
  142. 6)「窮」作「穹」{甲}。
  143. 7)「前」下有「流」{甲}。
  144. 1)「而」無有{甲}。
  145. 2)「鹿」作「塵」{甲}。
  146. 3)「開」作「聞」{甲}。
  147. 4)「夫」作「復」{甲}。
  148. 5)「訓」下有「寺」{甲}。
  149. 6)「於」下有「東」{甲}。
  150. 7)「而」作「然」{甲}。
  151. 8)「久」下有「而」{甲}。
  152. 9)「煩」作「繁」{甲}。
  153. 10)「勸文」無有{甲}。
  154. 11)「游」作「遊」{甲}。
  155. 12)「之」下有「報」{甲}。
  156. 1)「則」作「即」{甲}。
  157. 2)「斯寺」作「茲殿」{甲}。
  158. 3)「辰」作「晨」{甲}。
  159. 4)「躍」作「曜」{甲}。
  160. 5)「功」作「工」{甲}。
  161. 1)「而」無有{甲}。
  162. 2)「被」作「彼」{甲}。
  163. 3)「勉」作「免」{甲}次同。
  164. 4)「可知」作「何如」{甲}。
  165. 5)「漏不失」作「失不漏」{甲}。
  166. 6)「眛」作「昧」{甲}。
  167. 7)「益」作「旣」{甲}。
  168. 8)「欲」作「慾」{甲}。
  169. 9)「隳」作「隨」{甲}。
  170. 10)「隅」作「雨」{甲}。
  171. 11)「階」作「堦」{甲}。
  172. 12)「歸依」作「依歸」{甲}。
  173. 13)「悰」作「宗」{甲}。
  174. 14)「厭」作「壓」{甲}。
  175. 1)「于」作「乎」{甲}。
  176. 2)「託」作「托」{甲}。
  177. 3)「役」作「域」{甲}。
  178. 4)「業」作「茶」{甲}。
  179. 5)「備」下有「冀」{甲}。
  180. 1)「燈」作「燭」{甲}。
  181. 2)自此至末。甲本無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