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인악집(仁嶽集) / 題仁岳遺稿卷首

ABC_BJ_H0231_T_001
인악집仁嶽集

010_0400_a_01L
인악집仁嶽集
인악 의첨仁嶽義沾
김석군 (역)
인악유고仁岳遺稿 권수卷首
그 사람의 시를 읊고 글을 읽어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그 말을 듣고 행실을 보았음이랴. 을묘乙卯(1795)년 겨울에 달구達丘1)의 이아貳衙2)로 아버님을 뵈러 갔다가 한 달 남짓 머무르면서 인악仁岳이라는 이름을 실컷 들었기에 편지를 써서 한번 만나자고 하니 스님께서 나를 저버리지 않고 찾아주셨다. 유가와 불교의 다른 점을 흥미진진하게 나누었고 산수에 대한 평가를 아주 재미있게 나누어 거의 하루 밤낮이 되었는데도 그 말이 나올수록 더욱 기이하였다. 비유하자면 양자강(長江)과 황하(大河)가 곤륜산을 뚫고 바다로 들어가되 도도하게 내달리는 것과 같았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용모는 단정하고 엄숙하며 행동은 바르고 진중하여 상문桑門3)의 덕사德士인 줄 알겠으니 과연 명성을 그냥 얻은 것이 아니었다.
늦봄에 비슬산(毘岳)4)에 있는 명적암을 찾았을 때 산비가 막 개어 고운 햇살은 숲을 비추고 꽃은 피고 새는 울며 사물마다 하늘의 심오한 비밀을 드러냈다. 스님은 누더기 옷(雲衲)을 입고 손에는 염주를 들고 계셨다. 한 권의 『화엄경』은 또 바람결에 덮였다 펴졌다 하였다. 창문을 바라보시면서 기쁜 얼굴 하셨고 시상詩想이 떠올라 시를 짓고자 하면 일어나셨다. 나로서는 억지로 안 되는 결점이었다.
“스님께서는 불경(貝葉)5)과 여러 책의 갈래를 섭렵하셨고 그 근원도 탐구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유가의 책에 대해서도 큰 안목이 있고 말씀도 잘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스님께서 “다른 버릇은 없지만 버릇이라고 한다면 책 보는 것뿐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좋아하는 것은 『주역』과 주자朱子의 책입니다. 책을 잡고 뜻을 음미할 적마다 이 몸이 유가儒家인지 선가禪家인지 잊을 정도입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벌떡 일어나 “마음은 유가이지만 자취는 불가佛家라고 하는데 당신께서 정말 그렇군요.”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사적인 원고를 읽어보니 유가와 석가의 말이 그 가운데에 잘 짜여서 차마 손에서 놓기가 아까웠다. 스님께서 마침내 서문을 부탁하기에 나는 웃으며 승낙하였다.
한해가 못 되어 내가 다시 명적암에 와 보니 그 사람을 볼 수 없으나

010_0400_a_01L[仁嶽集]

010_0400_a_02L1)題仁岳遺稿卷首

010_0400_a_03L
010_0400_a_04L
誦其詩讀其書尙可以知其人矧茲
010_0400_a_05L聽其言而觀其行者耶乙卯冬來覲于
010_0400_a_06L達丘貳衙留月餘飽聞仁岳之名
010_0400_a_07L要一面則師不我遐棄儼屈瓶錫
010_0400_a_08L津儒釋之辨娓娓山水之評殆一晝夜
010_0400_a_09L而其言愈出愈奇譬如長江大河決崑
010_0400_a_10L崙注之海浩浩其奔也非徒是耳
010_0400_a_11L容整肅擧止端重可知爲桑門德士
010_0400_a_12L果然名不虛得矣暮春者訪于毘岳之
010_0400_a_13L朙寂庵則時山雨初霽麗日曬林
010_0400_a_14L花啼鳥箇箇天機師戴雲衲手明珠
010_0400_a_15L一部華嚴又臨風卷舒當牕怡顏
010_0400_a_16L思飄飄欲詩以起我而病難强矣
010_0400_a_17L師於貝葉羣書已涉其流而探其源
010_0400_a_18L於儒家書亦能大開眼大開口否師曰
010_0400_a_19L無所癖癖惟看書酷好者羲易朱書
010_0400_a_20L每把卷玩索殆忘此身之爲儒爲禪
010_0400_a_21L蹶然起曰所謂心儒跡佛者子眞是耶
010_0400_a_22L仍取看其私稿則儒釋話頭交錯其中
010_0400_a_23L愛不忍捨手師遂托以弁文余笑而諾
010_0400_a_24L歲未周而我行再斯則其人不可見

010_0400_b_01L그 문집을 목판에 새기려 하였다. 어찌 삶과 죽음에 대한 느낌이 없을 수 있겠는가? 책머리에 글을 쓰니 어찌 부처님 머리에 오물을 끼얹었다는 혐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스님은 하늘이 내리신 자질이 고상하고 재주가 많았다. 만약 일찍이 스승과 벗의 도움을 입어 명성明誠6)의 영역에 나아갔다면 성현의 문하에서 편안히 걸으면서 나아갔을 것이다. 안타깝도다! 젊었을 때 이끌어 줄 이가 없어 자취를 사문에 물들이고는 그 몸이 마치도록 돌아올 줄 몰랐다. 지금 그 적막한 글들은 스님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뒤에 이 시를 읊고 글을 읽는 자는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의 이름은 의첨義沾이고 자는 자의子宜이며 달성 사람으로 나이는 겨우 51세였다.
정사丁巳(1797)년 중춘 열흘에 홍직필洪直弼7)이 달구의 오월당에서 쓴다.

010_0400_b_01L其集將入榟矣安得無存沒之感而於
010_0400_b_02L其卷首之題寧顧拋糞佛頭之嫌耶
010_0400_b_03L師以天品之高才分之盛若早蒙
010_0400_b_04L師友之益進身明誠之域則於聖贒門
010_0400_b_05L其將平步而進矣惜乎少無攀援
010_0400_b_06L染跡沙門終其身而莫之返也今其寂
010_0400_b_07L寥篇什雖不足以不朽師而後之誦
010_0400_b_08L此詩讀此書者庶乎知其爲人矣
010_0400_b_09L名義沾字子宜達城人年才五十一

010_0400_b_10L
歲丁巳仲春旬日洪直弼書于達之
010_0400_b_11L梧月堂中

010_0400_b_12L{底}嘉慶二年洪直弼書記本(東國大學校所
010_0400_b_13L藏)
  1. 1)달구達丘 : 대구大邱의 옛 이름이다.
  2. 2)이아貳衙 : 감영監營이 있는 고을의 관아를 말한다.
  3. 3)상문桑門 : 승려僧侶를 말한다. 사문沙門의 이역異譯이다.
  4. 4)비슬산 :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 사이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 용연사龍淵寺와 명적암明寂庵 등 많은 사찰이 있다.
  5. 5)불경(貝葉) : 고대 인도에서는 패다라 나뭇잎(貝葉)에다 경전을 썼으므로 불경佛經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6. 6)명성明誠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1장에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명明으로 말미암아 성해지는 것을 교敎라 하니, 성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해진다.(自誠明謂之性, 自明誠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고 하였다. 성誠은 마음에 거짓이 없고 지극히 진실한 상태이고 명明은 사리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여기서의 명성의 영역은 유가를 말한다.
  7. 7)홍직필洪直弼(1776-1852) : 자字는 백응伯應 또는 백림伯臨이며, 호號는 매산梅山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과거에 실패한 후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당시에 부친인 홍이간洪履簡이 대구 부판관副判官으로 있었다. 저서로는 『매산집梅山集』이 있다.
  1. 1){底}嘉慶二年洪直弼書記本(東國大學校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