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선원소류(禪源溯流) / 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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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跋)
『선문염송』은 말을 떠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서 강백講伯의 담론이 모호하여 제대로 분별하기 어려운데, 우리 어르신인 백파 화상은 그 깊고 미묘한 도리를 분석하여 『선문염송사기』를 지으셨다. 진실한 학자의 안목에 더하여 설두 법형이 이어 선문禪文407)을 크게 진작하였다. 다만 이에 미혹할까 염려하여 이내 『선원소류』를 지어 법미法味를 막힘없이 꿰뚫었다. 그런즉 물고기 잡는 통발을 취할 따름이지 이것에 얽혀 들어서는 안 된다. 이로써 보건대 우리 법형이 어르신에게는 가섭이 아니겠는가! 올여름 법형이 전질을 회편하고자 하였으나 처음 뜻처럼 부합하지 못하고 단지 3권을 완성하였을 뿐이다. 어떻게 이 『선원소류』가 특별히 시운을 만난 것인가. 법을 함께하는 도반들의 강청으로 부득이 간행하여 펴게 되었으니, 우리 형제들은 상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대청 광서 15년 기축년(1889) 7월 자자일에 법제 환옹 환진408)이 쓰다.

주상 전하 임자생 이씨 성수무강, 왕비 전하 신해생 민씨 성수제년, 세자 저하 갑술생 이씨 봉각천추, 세빈 저하 임신생 민씨 보록장춘, 대왕대비 전하 무진생 조씨 귀령만세, 왕대비 전하 신묘생 홍씨 학수무궁, 순화궁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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拈頌離言月指講伯談論糢糊難辨
010_0677_b_05L老爺白坡和尙分析玄微爲之私記
010_0677_b_06L學者之眼目而又係雪竇法兄大振禪文
010_0677_b_07L唯恐此迷乃述㴑流洞徹法味然則取
010_0677_b_08L魚之筌莫此爲緊以此觀之吾兄即老
010_0677_b_09L爺之迦葉也非歟今夏兄欲會編於全秩
010_0677_b_10L未合如初只成三卷時也何爲此㴑流
010_0677_b_11L特爲時會法伴之强請不得已並以印
010_0677_b_12L願我同胞試詳覽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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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淸光緖十五年己丑七月自恣日法弟
010_0677_b_14L幻翁喚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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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上殿下壬子生李氏聖壽無彊王妃殿
010_0677_b_17L下辛亥生閔氏聖壽齊年世子邸下甲戌
010_0677_b_18L生李氏鳳閣千秋世嬪邸下壬申生閔氏
010_0677_b_19L寶籙長春大王大妃殿下戊辰生趙氏
010_0677_b_20L齡萬歲王大妃殿下辛卯生洪氏鶴壽無
010_0677_b_21L順和宮金氏
  1. 407)선문禪文 : 선의 행업行業과 문장文章.
  2. 408)환옹 환진幻翁喚眞(1824~1904) : 『朝鮮佛敎通史』 上編 「李太王殿下(太皇帝) 李熙 在位四十四年」(B31, 436a19), “환옹 대사의 법명은 환진이며, 백파의 법손이다. 호남 순창 영구산 구암사 에서 뜻을 성취하고 경동 양주 천마산 봉인사 에 주석하였다. 오욕을 떨쳐 버려 청정하였으며 언행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대한제국 광무 8년 갑진년에 청량사에서 단정히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幻翁大師, 法名喚眞, 白坡之法孫也. 發跡湖南, 淳昌靈龜山龜巖寺 住錫京東. 楊州天磨山奉印寺 離慾淸淨, 言行無礙. 前韓光武八年甲辰, 在淸涼寺, 端坐入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