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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586_b_23L극암집 발克庵集跋문과 시는 도에 대해 말단에 해당한다. 그러나 도가 가운데 쌓여서 -
011_0586_b_23L克庵集跋
011_0586_b_24L文若詩之於道也。抑末也。然道之積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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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586_c_01L언어로 발휘되는 것이 문이요, 영화英華(아름다움)에 도달하면 시이다. 나무에 뿌리가 있어서 가지로 뻗어나가고 마침내 꽃과 잎사귀를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극암공께서는 어릴 때 도량이 넓어서 산에 들어가 수도하여 견성見性하셨다. 팔공산은 그분의 도량이다. 성품은 준엄하면서 넓어 영재를 많이 교육하셨다. 또한 선비를 사랑하여 혜원공慧遠公에 대해 도연명陶淵明 같은 이들이 많았다. 공의 성은 서씨徐氏로서 달성에서 명망이 있었다. 나에 대해서는 항렬이 높은데 40여 년 동안 애초에 일면식이 없다가 갑오년(1894) 가을에 성전암聖殿庵156)으로 공을 찾아뵈었다. 선풍도골을 뵈니 과연 세상 밖으로 해탈하는 모습이 있었다. 불경들은 당연히 소유한 바이고 유가 서적에 대해서도 또한 자세하게 통달하셨다. 사람이 궁구하면 기술이 견고해진다고 하더니 그 이치에 귀결됨을 속일 수 없다.병오년(1906) 가을에 옥산서숙玉山西塾으로 나를 방문하셔서 고향의 친분을 나누셨고, 이야기는 도에 이어져 흥미진진했다. 다만 나의 발이 차지遮地에 이르지 못하여 차지를 말해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남기신 게송 가운데 “겨자씨 같은 인연, 파초잎 소식(芥緣蕉信)” 네 글자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엿볼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옥계玉溪로 돌아와 머물고, 공께서는 또 천주사天柱寺157)에 머무셨다.158)기유년(1909) 봄에 다시 공께서 계신 곳에 찾아가 뵈었다. 나이와 모습이 상하셔서 이전과 달라졌는데 마음만은 굳건해서 젊은이들에게 양보하지 않으셨다. 시문(咳唾)159)을 조금 얻어 보았다. 이것이 손제자 석응石應에게 거듭 전하여 모아졌으니, 문과 시가 함께 있다. 이는 공을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후인에게는 또한 족히 남겨진 눈썹(遺睫)을 보고 돌아가는 학160)을 생각하는 자료가 된다.아아, 태고太古 대사의 맥이 서산西山 대사로부터 공에게 미쳤다. 적전嫡傳(제자) 혼원混元이 비록 일찍 세상을 여의었으나 이후 더욱 명망이 있으니, 석응石應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이해(1909) 2월 10일 속세의 족질族侄 한기翰基가 삼가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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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586_c_01L中。而發之言語。則文也。達之英華。則
011_0586_c_02L詩也。如木之有本。而發達於柯條。則
011_0586_c_03L花葉終可見也。克庵公某。早年磊落
011_0586_c_04L入山修道。因以見性。公山蓋其道場也。
011_0586_c_05L性峻而弘。多育英才。且愛士。如遠公
011_0586_c_06L之於淵明者多。公姓徐。望達城。於吾
011_0586_c_07L上行。而自四十餘年。初無一日雅。歲
011_0586_c_08L甲午秋。謁公於聖殿庵。見仙風道骨。
011_0586_c_09L果有解脫塵外之狀。貝葉諸經。固其所
011_0586_c_10L有。而至於儒家書。殆亦曲暢旁通。人
011_0586_c_11L窮而工固。其理也歸。尙不能諼。丙午
011_0586_c_12L秋。顧我於玉山西塾。叙舊鄕敦誼。畢
011_0586_c_13L談及道娓娓。但我脚不到遮地。遮地說
011_0586_c_14L不得。然就他畱偈中。芥緣蕉信四箇字。
011_0586_c_15L得以覷得彷彿。越後。余纔玉溪還棲。
011_0586_c_16L而公又駐札天柱矣。己酉春。再謁於公
011_0586_c_17L在所。見年貌俱傷。殆非前日。而惟心
011_0586_c_18L力堅剛。不遜少壯。得見咳唾若干。乃
011_0586_c_19L重傳孫石應收集也。而文若詩俱在。此
011_0586_c_20L不足爲公輕重。而其在後也。亦足爲見
011_0586_c_21L遺睫。而想歸鶴之資矣。於乎太古師的
011_0586_c_22L脈。自西山師。而及於公。嫡傳混元。雖
011_0586_c_23L早世。然從後優望。乃知石應在也。是
011_0586_c_24L年二月十日。俗族侄翰基。謹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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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성전암聖殿庵 : 대구 팔공산 파계사의 암자.
- 157)천주사天柱寺 :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 팔공산에 있던 사찰.
- 158)머무셨다(駐札) : 주찰駐札은 주차駐劄라고도 하며, 외지에 머물러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 159)시문(咳唾) : 해타咳唾는 타인의 아름다운 시문을 가리킨다. 『莊子』 「秋水」.
- 160)돌아가는 학(歸鶴) : 고향을 잊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 한漢나라 때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 들어가 선술仙術을 배우고 뒤에 학으로 변화하여 고향에 돌아가서 성문의 화표주華表柱에 앉았는데, 한 소년이 활로 그를 쏘려 하자 그 학이 날아올라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여.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네. 성곽은 예전 같은데 사람은 그때 사람 아니어라. 어이해 신선 안 배우고 무덤만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年今來歸。 城郭如故人民非。 何不學仙冢纍纍。)”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藝文類聚』 권78, 『搜神後記』 권1.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이대형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