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경허집(鏡虛集) / 畧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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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연보(畧譜)
스님은 성姓은 송씨宋氏이고 법명은 성우惺牛이며, 초명初名은 동욱東旭이고 호는 경허鏡虛이며,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지금으로부터 94년 전 기유년(1849)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두옥斗玉이고, 모친은 밀양密陽 박씨朴氏이다. 분만한 뒤 사흘 동안 울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신이한 일이라 하였다.
일찍 부친을 잃고 아홉 살 때 모친을 따라 상경하여 광주군廣州郡의 청계사淸溪寺에 들어가 계허桂虛 스님을 은사로 삼아 삭발하고 수계하니, 운수납자로 가진 것이 없었고, 오직 옷과 발우뿐이었다.

011_0587_c_14L畧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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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姓宋氏法名惺牛初名東旭號鏡
011_0587_c_17L礪山人也距今九十四年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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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八月二十四日生于全州子東里
011_0587_c_19L父斗玉母密陽朴氏分娩後三日不啼
011_0587_c_20L人皆稱異早喪其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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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歲時隨母上京投廣州郡淸溪寺
011_0587_c_22L桂虛大師祝髮受戒雲水蕭然衣鉢一
011_0587_c_23L{底}一九四三年中央禪院刊行鉛活字本「鏡
011_0587_c_24L虛集」三字編者補入

011_0588_a_01L늘 땔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 부처님을 공양하고 스승을 섬기는 일을 하느라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다.
14세 때 마침 한 선비가 청계사에 와서 함께 여름 한철을 보내기에 틈틈이 그 선비에게 가서 글을 배웠는데, 한 번 보면 곧바로 외웠고, 들으면 곧바로 글뜻을 알아 문리文理가 크게 진보하였다. 얼마 뒤 계허 스님이 환속하면서 스님이 대성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겨 추천하는 편지를 써서 스님을 계룡산 동학사 만화 강백萬化講伯 화상에게 보냈다. 스님은 만화 강백에게서 일대시교一大時敎를 수료했는데, 한가하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게 공부하되, 남이 한 번 하면 자기는 열 번 하고, 남이 열 번 하면 자기는 백 번 하여1) 내전內典과 외전外典을 두루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름이 전국에 알려졌다.
23세 때 대중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강석을 여니,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들듯이 사방의 학인들이 모여들었다.
31세 때 여름, 스님은 문득 지난날 계허 스님이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정의情義가 생각나서 한번 찾아가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스님은 대중에게 말하고 출발하여 가다가 중도에 이르러 갑자기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기에 급히 어느 촌가에 들어가 비를 피하려 했더니, 주인이 내쫓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온 동네 수십 집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지금 이곳에는 역질이 크게 창궐하여 걸리는 자는 곧바로 죽는데, 어찌 감히 손님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스님은 문득 이 말을 듣고는 두려워 마음이 섬뜩하여 마치 죽음의 벼랑 앞에 선 것만 같았다. 이에 문자로는 생사를 면할 수 없음을 문득 깨닫고, 곧바로 보리심을 일으켰다.
계룡산에 돌아온 뒤 학인들을 해산하고는 칩거하며 단정히 앉아서 오로지 영운 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마사도래화驢事未去馬事到來話를 참구하였다.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머리를 쳐서 수마를 없애어 일념만년一念萬年 은산철벽銀山鐵壁에 이르렀다. 이렇게 석 달 동안 공부하자 깨달을 기연이 이미 무르익었다. 하루는 어느 스님이 “소가 되면 콧구멍을 뚫을 곳이 없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이 말을 듣자마자 대지가 가라앉고 물아物我를 몽땅 잊어 백천 가지 법문과

011_0588_a_01L嘗以負薪汲水供佛奉師爲己任
011_0588_a_02L未遑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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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四歲時適有一士人寓寺過夏
011_0588_a_04L暇就學過目成誦隨聞解義文理大
011_0588_a_05L未幾桂虛師還俗惜師之未能大
011_0588_a_06L以書薦師于鷄龍山東鶴寺萬化講
011_0588_a_07L師於萬化講伯處修了一大時敎
011_0588_a_08L做工不閑不忙人一己十人十己百
011_0588_a_09L博涉內外莫不精通名震八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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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三歲時以衆望開講於東鶴寺
011_0588_a_11L方學者如水就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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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一歲時夏師忽憶桂虛師前日眷
011_0588_a_13L愛之誼欲徃訪之吿衆發程中路猝
011_0588_a_14L遇暴風急雨遽入村家欲避風雨
011_0588_a_15L人迫逐不許一洞數十戶家家如之
011_0588_a_16L問其由則對曰方今癘疫大熾罹病立
011_0588_a_17L何敢接客師聞之心神悚動如臨
011_0588_a_18L生死斷崖頓覺文字之未能免生死
011_0588_a_19L發菩提心還山後遂散學人閉門端
011_0588_a_20L專叅靈雲禪師之驢事未去馬事到
011_0588_a_21L來話刺股打頭以除睡魔一念萬年
011_0588_a_22L銀山鐵壁如是三月萬機已熟一日
011_0588_a_23L僧問如何是爲牛則爲無穿鼻孔處
011_0588_a_24L師言下大地平沈物我俱忘百千法

011_0588_b_01L한량없는 묘의妙義가 당장에 얼음 녹듯 풀렸으니, 때는 기묘년(1879, 고종 16) 겨울 11월 보름께였다. 이로부터 형해形骸를 초탈하고 소절小節에 구애받지 않아 임운등등任雲騰騰하며 유유자적하였다.
32세 때 홍주洪州 천장암天藏庵에 와서 주석하였다.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하다가 전등傳燈의 연원을 특별히 밝히면서 자신은 용암龍巖 화상의 법을 잇는다고 하였으니, 스님은 청허에게 11세손이 되고, 환성에게 7세손이 된다.
스님은 20여 년 동안 홍주洪州의 천장암天藏庵, 서산의 개심사開心寺와 부석사浮石寺 등지를 오가면서 때로는 마음을 가라앉혀 선정에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을 위해 설법하기도 하여 선풍을 크게 떨쳤다.
51세 때 합천陜川 해인사로 옮겨 주석하였다. 때마침 칙지勅旨가 내려 장경을 인쇄하는 한편 수선사修禪社를 새로 설치하는 일을 하게 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法主로 삼았다.
54세 때 동래東萊 범어사 금강암金剛庵 및 마하사摩訶寺에 나한개분불사羅漢改粉佛事를 할 때 증명법사證明法師가 되었다.
56세 때 오대산,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군安邊郡 석왕사釋王寺에 이르러 오백나한개분불사五百羅漢改粉佛事의 증명법사가 되었다. 그 후로 욕심을 끊고 세상을 피하여 이름을 숨기고 자취를 감춘 채 갑산甲山·강계江界 등지에서 살면서 스스로 호를 난주蘭洲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유관儒冠을 써서 바라문婆羅門의 모습을 하고서는 만행萬行을 하는 두타頭陀로서 세간 속에 들어 인연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64세 때인 임자년(1912) 4월 25일, 병 없이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하니, 법랍이 56세였다.
이상 약보略譜는 스님의 행적을 상세히 알 수 없어 단지 후인들이 기록한 글들과

011_0588_b_01L無量妙義當下氷釋時則己卯冬
011_0588_b_02L十一月望間也自此超脫形骸不拘小
011_0588_b_03L任運騰騰悠悠自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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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二歲時住洪州天藏庵一日對衆
011_0588_b_05L演法次特明傳燈淵源仍自嗣法于龍
011_0588_b_06L嚴和尙師於淸虛爲十一世孫而於喚
011_0588_b_07L惺爲七世孫也爾來二十餘年間往來
011_0588_b_08L于洪州之天藏瑞山之開心浮石等地
011_0588_b_09L有時暝心默想有時爲人說敎大振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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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588_b_11L
五十一歲時移錫于陜川海印寺當寺
011_0588_b_12L適有敕旨之印經佛事及新設修禪社
011_0588_b_13L之業衆推師爲法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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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十四歲時東萊梵魚寺金剛庵及摩
011_0588_b_15L訶寺羅漢改粉佛事時爲證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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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十六歲時歷五臺及金剛到安邊釋
011_0588_b_17L王寺爲五百羅漢改粉佛事之叅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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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後絕欲避世逃名潜跡於甲山江界
011_0588_b_19L等地自號蘭洲以長髮儒冠現婆羅
011_0588_b_20L門身萬行頭陀入泥入水隨緣行化
011_0588_b_21L六十四歲時壬子四月二十五日無病
011_0588_b_22L而入寂于甲山熊耳坊道下洞法臘五
011_0588_b_23L十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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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略譜未得詳傳只資後人所記之散

011_0588_c_01L평소에 들은 단편單片들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라 누락된 곳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약보라 명명했으니, 독자들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한용운은 찬술하다.

011_0588_c_01L屑及平日所聞之單片倘有缺漏故名
011_0588_c_02L以略譜望讀者亮燭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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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雲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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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남이 한 번~백 번 하여 : 『중용장구中庸章句』 20장에서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해야 한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라고 한 것을 차용하였다.
  1. 1){底}一九四三年。中央禪院刊行鉛活字本。「鏡虛集」三字。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