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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8_a_02L다송문고 제2권(茶松文稿 卷第二)조계산인 금명 보정 지음(曹溪山人 錦溟寶鼎 著)문文원통계안 서문(圓通契案序)공양이 4만억 가지로되 구단具檀1)이 진실로 성불의 기반이 되고, 교설이 8만 4천 법문이로되 권화權化2)가 중생을 제도하는 근본입니다. 이치에는 반드시 인과가 있고 일에는 보응이 없지 않습니다. 관음대성觀音大聖을 우러러 생각하니, 사생四生3)의 부친이요 중성衆聖의 왕이십니다. 높이 십지十地4) 위로 받들어 권현權現5)의 뒤에 계시니 세칭 ‘미타영중彌陀影衆’6)이요, 항상 삼계三界에서 눈앞에 영험하게 응하시니 사람들이 ‘도량교주道場敎主’라고 일컫습니다. 다라多羅7)의 팔 안에 1천 개의 손으로 세워 드니 삼제三際8) 의정依正9)의 좋거나 나쁜 보응에 먼지와 모래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가라迦羅10) 머리 위에 천 개의 눈이 횡으로 열리니 시방 중생의 선악 인과가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궁전은 천지에 비밀스레 감춘 해안가 인적 드문 보타락가補陀落迦11)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장엄하였고, 신통력은 신출귀몰하여 사주泗洲의 성승聖僧12)이나 섬부陝部의 선녀仙女13) 등 자의금골紫衣金骨로 변현하기도 하셨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통찰하고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보시니, 이 고독한 이들을 슬피 여기소서. 인아人我의 굴속에 육진六塵14)이 늘어나 험준한 사산四山을 넘기 어렵고, 탐진貪嗔의 경계 위에 팔풍八風15)이 요동하니 파도치는 삼해三海를 어찌 견디겠습니까. 보배 뗏목을 버리고 그저 부유하니 나찰羅刹16)의 빈 주머니를 얼마나 허락할 것이며, 좋은 사다리를 버리고 넘어지니 살귀殺鬼들이 입맛 다시는 문을 두려워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자비행에 어찌 열어 보여 주시는 도가 없겠습니까. -
012_0718_a_02L茶松文稿1)卷 [2] 第二
012_0718_a_03L
012_0718_a_04L
012_0718_a_05L曹溪山人錦溟寶鼎著
012_0718_a_06L2)文
012_0718_a_07L圓通契案序
012_0718_a_08L供分四萬億種。具檀信爲成佛之基。敎
012_0718_a_09L說八萬四千門。權化是度生之本。理必
012_0718_a_10L有因果。事不無報應。仰唯觀音大聖者
012_0718_a_11L四生之父。衆聖之王。高拱十地上。位
012_0718_a_12L後權現。世稱彌陀影衆。恒在三界中。
012_0718_a_13L目前靈應。人謂道場敎主。多羅臂中。
012_0718_a_14L千手竪擧。三際依正休咎報應。塵沙
012_0718_a_15L莫逾。迦羅首上千眼橫開。十方衆生
012_0718_a_16L善惡果因。毫釐不忒。宮殿也。天藏地秘。
012_0718_a_17L海岸孤絕。寶陀洛迦。琪花瑶木莊嚴。
012_0718_a_18L神通則。神出鬼降。泗洲聖僧。陜部仙女。
012_0718_a_19L紫衣金骨變現。通他心性。觀世人音
012_0718_a_20L哀此孤獨。人我窟中。六塵培增。難越
012_0718_a_21L四山之險峻。貪嗔境上。八風鼓動。安
012_0718_a_22L堪三海之波濤。捨寶筏而徒浮。幾許羅
012_0718_a_23L刹之乞囊。放善梯而顚倒。猶恐殺鬼之
012_0718_a_24L噉門。況吾慈悲之行。奈無開示之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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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8_b_01L그래서 이 계안契案을 맺어 단문檀門(시주)께 고합니다. 원통회圓通會17)에서 큰 방법(大方)을 널리 여니 병들고 힘든 이들이 어떤 장애인들 없애지 못하겠습니까. 달콤한 이슬 담은 병(甘露壜) 주위로 법우法雨가 널리 적시니 선경禪經18)을 읽는 이들에게 어떤 복이 이르지 않으리오. 염불에 응하여 편안함을 주리니 문득 이익이 많음을 칭할 것이요, 소리를 찾아 괴로움을 구하리니 때때로 길상이라 부르리라. 오묘한 향이 흩날리니 귀계鬼界라도 태울 듯하고, 진실한 형상이 나타나는 곳이 어찌 천당 아니겠습니까.엎드려 바라건대 너와 나 지혜롭건 어리석건 간에 화사化士19)가 서원하는 누각에 같이 들어가고 선남신녀들이 원통圓通 보문普門의 도량으로 함께 나아가서, 거리의 권화權化가 무궁하여 백도伯道20)에게 후사가 있게 하고, 단나檀那(시주)의 보시에 바람 있어 안회顏回21)가 장수하게 하소서.방장산 월화 장로22)께 올리는 서(上方丈山月和長老序)이의二儀(천지)에 삼재三才(천지인)를 드러내어 부침하니 사방四方의 기강이 안정되고, 만물에 오상五常을 나열하여 혼잡하니 삼교三敎(유불선)의 강령이 나뉘었습니다. 삼교는 만물의 정립鼎立이요, 사방은 이의二儀의 기둥(柱砥)입니다. 불교는 불교로서 도교(老)는 도교로서 유교(孔)는 유교로서 각기 익숙한 바로 보배를 삼으니, 물욕에 매인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어찌 이의二儀의 본성이겠습니까. 그러나 바다의 짠맛은 동일하고 도의 근본은 동일한데 시종 어찌 삼교의 정립과 사방의 혼잡이 있겠습니까. 모두 진리를 등지고 세속을 향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도에 있어서 표현은 다를지라도 법도는 같습니다. 하나의 공空 안에 본래 자황䧳黃23)의 구분이 없는데 다만 눈을 가린 것이 그렇게 보이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교의 구분은 만물의 가림 때문이니 어찌 공에 관계있겠습니까.형(吾兄)께서는 삼교의 다르지 않음을 융합하고자 하시어 욕천浴川24) 정사精舍에서 노고魯誥(유교 경전)를 어려서 해석하고, 방외의 명찰(名藍)25)에서 축분竺墳(불경)을 어른이 되어 토론하셨습니다.26) -
012_0718_b_01L故結此案。敢吿檀門。圓通會上。廣闢
012_0718_b_02L大方。病苦者何障而不滅。甘露壜邊。
012_0718_b_03L普潤法雨。禪經者何福而不臻。應念與
012_0718_b_04L安而乍稱多利。尋聲求苦而時號吉祥。
012_0718_b_05L妙香飛兮。猶燋鬼界。眞相現處。何難
012_0718_b_06L天堂。伏願爾我智愚。同入化士誓願之
012_0718_b_07L樓閣。善男信女。共赴圓通普門之道場。
012_0718_b_08L街坊之權化無窮。使伯道有後。檀那之
012_0718_b_09L信施有願。以顏回永年。
012_0718_b_10L
012_0718_b_11L上方丈山月和長老序
012_0718_b_12L二儀表三才而浮沉。四方之紀已定。萬
012_0718_b_13L物列五常而混雜。三敎之綱爰分。三敎
012_0718_b_14L萬物之鼎峙。四方二儀之柱砥。以自佛
012_0718_b_15L以佛。魯以魯 [66] 。孔以孔。各以所習。爲寶
012_0718_b_16L者。盖物欲之所羅籠者久矣。此豈二儀
012_0718_b_17L之本性也哉。然而海醎一味。道本同源。
012_0718_b_18L始終寧有三敎之鼎峙。四方之混雜。皆
012_0718_b_19L是背眞向俗之所能也。其於道也。發致
012_0718_b_20L雖殊。其揆一也。一空之裡。本無䧳黃
012_0718_b_21L之分。但翳目者所使以也。然則三敎之
012_0718_b_22L分。曲在物之所翳。何管於空也哉。盖
012_0718_b_23L吾兄欲融三敎之無二。髫詮魯誥於浴
012_0718_b_24L川之精舍。冠討竺墳於方外之名藍。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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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8_c_01L구용九容27)에 대해 하루 세 번 반성하고, 십과十科28)에 대해 사심四心29)으로 맹세한 것이 모두 구비口碑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구준衢樽30)에 만취하여 덕의 향기로 배불렀으니 타인의 고량진미를 바라지 않고, 푸줏간 문에서 질겅질겅 씹어31) 몸을 윤택하게 하고 물렸으니 타인의 수놓은 비단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능한 일을 두루 하고 나서 타인에게 넓히려는 생각이 일어나니, 가랑비 내리는 향기로운 풀들이 있는 방장산으로 학이 돌아오듯, 흰 달과 따스한 바람이 부는 조계산(溪山)에 봉황이 있는 듯합니다. 산은 이로써 더욱 윤택해지고 개울은 이를 따라 흐릅니다. 사리事理가 함께 융화하니 성상性相(본성과 현상)에 걸림(碍膺) 있는 이들이 빈 채로 왔다가 채워서 돌아가고, 삼교를 함께 닦으니 치백緇白(불교와 유교)에 의심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달려왔다가 썰물처럼 물러납니다. 혹은 때때로 ‘소리 들음을 돌이켜 들음(反聞聞性)’32)이 있어 기미를 잊고 얼핏 잠이 들고, 혹은 때때로 집중執中ㆍ시중時中33)이 있으니 가假를 다루어 진眞을 이룹니다. 염拈34)하거나 송頌하거나 화광동진和光同塵35)이 아님이 없으니, 송誦하거나 술述하거나 응기접물應機接物36)이 아니겠습니까. 인연 따라 변하고 운수에 맡겨 거두시니, 삼교를 융화시킬 이는 형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나 또한 이의二儀 사이에 낀 미물이라 삼교가 어떠한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는데 일찍이 형과 함께 향화香火 올린 인연이 있고 또한 비파를 놓은(捨琴) 인연37)을 맺은 터라 흰 이(瓠犀)38)가 드러남을 돌아보지 않고 피하기 어려운 붓을 감히 꺼냈습니다. 먼저 이의가 만물의 기강이 됨을 서술하고 다음에 훈지塤箎39)가 서로 어울리는 아름다운 구절에 감탄합니다. 삼교를 깨달은 이의 책상에 감히 드리오니 채납采納(수용)해 주시기 바랍니다.화엄사 원화40) 함장(스승)께 올리는 글정해년(1887) 봄(上大華嚴寺圓華凾丈文丁亥春)제불諸佛과 조사들(列祖)께서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함은 의천義天(이치의 하늘)의 자비 구름과 법우法雨 같고, 보살과 중생(群生)이 골수를 얻고 거죽을 얻음은 복된 땅에 오이를 심고 벼를 경작함과 같습니다. 모두 방편의 문을 열어 근기에 맞추고,41) -
012_0718_c_01L省之於九容。四心之於十科。其所矢心。
012_0718_c_02L盡載口碑。而況滿醉衢樽。旣飽德馨。
012_0718_c_03L不願人之粱肉之味。大嚼屠門。多飫閠
012_0718_c_04L身。不願人之錦繡之紋。能事已周。鼓
012_0718_c_05L起推餘之想。細雨芳草。鶴歸方丈。皓
012_0718_c_06L月陽風。鳳儀溪山。山由是以增潤。川
012_0718_c_07L履玆以漩澓。事理雙融。性相之碍膺者
012_0718_c_08L虛往而實歸。三敎兼修。緇白之狐疑者
012_0718_c_09L雲奔而潮退。或有時返聞聞性。忘機而
012_0718_c_10L假眠。或有時執中時中。弄假而成眞。
012_0718_c_11L或拈或頌。莫非和光同塵。載誦載述。
012_0718_c_12L無乃應機接物。隨緣而化。任運而收。
012_0718_c_13L融三敎者。莫吾兄而阿誰也。余亦介二
012_0718_c_14L儀之微物。莫卞三敎之如之何。而曾與
012_0718_c_15L吾兄有香火之因。亦結捨琴之緣。忘顧
012_0718_c_16L瓠犀之露。敢抽難避之毫。先叙二儀萬
012_0718_c_17L物之紀綱。次感塤箎相和之佳句。敢呈
012_0718_c_18L三敎了夫几下。許垂采納焉。
012_0718_c_19L
012_0718_c_20L上大華嚴寺圓華凾丈文丁亥春
012_0718_c_21L夫諸佛列祖之傳禪傳敎。若義天之慈
012_0718_c_22L雲法雨。菩薩群生之得髓得皮。如福地
012_0718_c_23L之種瓜耕稻。盡開方便門而逗機。悉從
012_0718_c_24L「卷」一字。編者補入。「文」一字。編者補
012_0718_c_25L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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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9_a_01L다 진여의 바다를 따라 흘러나오게 합니다.우리 대종장大宗匠께서는 덕운德雲으로 몸을 윤택하게 하고 법우法雨로 마음을 비옥하게 하십니다. 면면히 흐르는 종맥宗脉을 우러러보노라면 부휴浮休42)와 벽암碧嵓43)이 먼 조상이 되고 도도한 법의 물결을 굽어보면 영해影海44)와 풍암楓嵓45)이 근세의 스승이 되니, 모두 당대 용상龍象이요 말세의 중추(樞機)이십니다. 10년을 경영함에 법을 위해 몸을 잊어 우담優曇46) 꽃을 맛보았고, 반세기 언행은 중생 제도를 업으로 삼아 함명涵溟47) 바다를 삼켰습니다. 산을 나와 바다를 아우르니 복성福城의 아이48)를 보는 듯하고, 풀을 헤치고 나아가며 바람에 머리 감으니 나찰의 말49)을 많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꽃에 이슬이 맺히고 행위의 잎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그렇게 남으로 가고 북으로 가서 결사結社의 의례50)를 스스로 거행하고, 서쪽으로 동쪽으로 매번 법을 베푸는 지위에 머물렀습니다.제불諸佛의 대원大願을 생각해 보면 본래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오늘날 경륜經綸이 다만 자신을 이롭게 하고자 함과 어찌 같겠습니까. 이에 반야봉 아래에 법당法幢51)을 세워 근본지根本智52)를 본체로 삼고, 화엄바다에 경방經牓을 내걸어 만행화萬行華53)를 활용으로 삼았습니다. 활용 그대로 본체이니 천지의 상징이 있고, 본체 그대로 활용이니 어찌 해회海會54)의 빛남이 없겠습니까. 삼세제불이 증명하고 시방중생이 주반主伴(주ㆍ객체)이 됩니다. 제불이 그대로 반伴인 중생이니 근기에 많고 적음이 없고, 중생이 그대로 증명하는 제불이니 법이 공空하지 않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화엄바다에서 항상 설하고 두루 설하니 설하지 않더라도 설함이요, 감인계堪忍界55)에서 음을 듣고 소리를 들으니 들림이 없어도 듣습니다. 장광설을 열어 무진법장無盡法藏을 펼치니 소리가 팔해八垓56)에 들리고, 아름다운 바람이 더욱 불어오며 명성이 오악五岳보다 높아 명예가 더욱 많아집니다. 양고기 숨겨 놓은 언덕에 파리와 개미가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범 있는 평원에 까마귀와 참새가 시끄러이 우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뱀을 마신 것57)이 산산이 흩어져 의심하는 것이 얼음처럼 녹습니다.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함에 여래의 삼전三傳한 곳58)이 어찌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겠습니까, -
012_0719_a_01L眞如海而流出。唯我大宗匠。德雲潤身。
012_0719_a_02L法雨沃心。仰觀宗脉之源源。浮休碧嵓
012_0719_a_03L爲遠世祖。俯考法波之滔滔。影海楓嵓
012_0719_a_04L爲近世師。皆是當代龍象。叔世樞機。
012_0719_a_05L十載經營。爲法亡躬。咀嚼優曇之花。
012_0719_a_06L半世云爲。濟衆爲業。呑吐菡 [67] 溟之海。出
012_0719_a_07L山并海。幾見福城之兒。拔草櫛風。多
012_0719_a_08L聞羅刹之說。心花露結。行葉風揚。所
012_0719_a_09L以之南之北。自擧結社之讓。自西自東。
012_0719_a_10L每住法施之位。思唯諸佛大願。本乎利
012_0719_a_11L他。奈若今日經綸。只求自利。於是建
012_0719_a_12L法幢於般若峰下。以根本智爲體。揭經
012_0719_a_13L牓於華嚴海中。以萬行華爲用。卽用之
012_0719_a_14L體。旣有天地之徵祥。卽體之用。那無
012_0719_a_15L海會之放光。三世佛作證明。十方衆爲
012_0719_a_16L主伴。卽佛之伴衆。其機則無多無少。卽
012_0719_a_17L衆之證佛。其法則不空不有。然則華嚴
012_0719_a_18L海中。常說徧說。雖不說而說。堪忍界裡。
012_0719_a_19L音聞聲聞。唯無聞而聞。開廣長之舌相。
012_0719_a_20L闢無盡之法藏。聲聞八垓。嘉風益熾。
012_0719_a_21L名高五岳。令譽尤多。猶如羊藏丘垤。
012_0719_a_22L難防蠅蟻之鼓動。虎隱平原。誰禁烏雀
012_0719_a_23L之喧噪。飮蛇者瓦解。狐疑者冰析。禪
012_0719_a_24L之傳。敎之傳。何專美於如來三傳之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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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9_b_01L골수를 얻고 거죽을 얻음에 혜가惠可59)가 삼배三拜한 풍모보다 명확합니다.아아, 산이 어찌 옥을 품기 이전에 윤택하겠습니까. 물 또한 구슬을 품은 연후에 길어집니다. 방장산의 영광은 이로부터 커지고, 화엄사의 아름다운 칭호는 지금부터 드날릴 것입니다. 함장凾丈(스승)의 풍모는 산처럼 높고 물처럼 깁니다. 저는 조계의 잔류殘流요 솔숲의 병든 잎으로, 높은 풍모를 듣고 말단에 참여하여 아름다운 명성을 우러러 예를 올립니다. 침개針芥의 인연60)이 어찌 그리 큰가요. 일찍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니 청량淸凉의 ‘오지성인五地聖人으로 세속의 마음을 일으킴’이요,61)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을 들으니 도안道安의 ‘풍속이 다른 타지에도 통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62) 여기서 바로 증험이 됩니다. 이른바 근기에 따른 점설漸說63)이요 방편의 묘문妙門이니, 인연 있으면 머무르고 인연이 떨어지면 가는 것이지만, 막중한 법은法恩을 이기지 못해, 헤어지는 느낌을 대략 적습니다.바라건대 이 몸으로 보리심을 발하여 당堂의 모든 선우善友들이 단박에 해탈문을 열어, 세세생생에 제불을 받들고 곳곳에서 선우를 친근하게 하소서. 환화幻花의 허공 속에서 항상 불사佛事를 짓고 실제 이치 옆에서 항상 묘법을 말하며, 출몰함에 구품九品(정토)의 주인이 되고 왕래함에 삼계三界의 객이 되도록 하소서.또한 바라건대 구족九族64)의 죽은 영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고, 육친六親65) 중생(含識)이 모두 고통의 윤회를 벗어나게 하소서. 삼도사생三途四生66)과 팔난구유八難九有67)에 모두 진여의 이치를 증명하고, 팔부천룡八部天龍68)과 당堂에 가득한 성현들이 함께 좋은 인연의 증거를 지으소서. 최후의 몸에 이르러서는 항상 큰 가르침을 넓히어 불심에 가합하다 일컫고 큰 법당法幢을 세워 부처의 혜명慧命69)을 이으소서. 그러한즉 선과 교를 전하고 피부와 골수를 얻음이 여기서 다 될 것입니다.용악 장로께 사례하는 편지백양산70) 정토사에 있다. 법명은 성인.(謝龍岳長老書在白羊山浄土寺。名性仁。) -
012_0719_b_01L髓也得。皮也得。猶端的於惠可三拜之
012_0719_b_02L風。嗚呼。山何蘊玉以前閠 [68] 。水亦藏珠
012_0719_b_03L然後長。方丈榮光。從此大。華嚴佳號。
012_0719_b_04L自今揚。唯凾丈之風。山高水長。余唯曹
012_0719_b_05L溪殘流。松林病葉。聞高風而叅末。仰
012_0719_b_06L令譽而禮足。針芥之緣孰大焉。說其未
012_0719_b_07L曾說。淸凉之謂五地聖人。起世俗心
012_0719_b_08L聞所未嘗聞。道安之謂他方殊俗。無不
012_0719_b_09L通之之言。卽驗於此矣。所謂逐機漸說
012_0719_b_10L方便妙門。有緣住。離緣去。不勝法恩
012_0719_b_11L之重。槩書臨行之感。願我此身。能發
012_0719_b_12L菩提心。一堂善友。頓開解脫門。生生
012_0719_b_13L承事諸佛。在在親近善友。恒作佛事於
012_0719_b_14L幻花空裡。常談妙法於實際理邊。出沒
012_0719_b_15L爲九品之主。往來作三界之賓。抑願九
012_0719_b_16L族亡靈。俱生淨土。六親含識。悉超苦
012_0719_b_17L輪。三途四生。八難九有。咸證眞如之
012_0719_b_18L理。八部天龍。滿堂聖賢。共作良緣之
012_0719_b_19L證。至於最後身。常弘大敎。稱可佛心
012_0719_b_20L建大法幢。續佛慧命。然則傳禪敎得皮
012_0719_b_21L髓。於是乎盡之矣。
012_0719_b_22L
012_0719_b_23L謝龍岳長老書在白羊山浄土寺。名性
012_0719_b_24L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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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9_c_01L전광석화 같은 세월에 만남과 이별의 빠르고 늦음이 어찌 있겠습니까. 부평초 같은 천지에 주인과 객의 있고 없음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구토九土71)가 아득하게 걸림이 없으니 주인 속의 손이요 손 가운데 주인이며, 육시六時72)에 생각마다 한탄이 많으니 이별했다 만나고 만났다 이별함입니다. 실로 세월의 무상함 때문이지 어찌 천지의 크기 때문이겠습니까.우리 화상께서는 속세 나이로도 위(甲)고 법랍으로도 형인데, 유리단琉璃壇 앞에서 구족계를 받으시니 그 바람은 먼저 자비롭고 뒤에 지혜로움이며, 청원루淸遠樓 위에서 오묘한 연꽃을 감상하니 그 경치는 하나로 돌이켜 셋을 모음입니다.73) 불일당佛日堂 앞에 낮과 밤의 밝고 어둠이 없더라도 감인계堪忍界(속세)에서 보토報土74)의 같고 다름을 어찌하겠습니까. 이에 형은 용산龍山75)의 기린이 되고 아우는 조계산의 원숭이 되어, 삼성三星과 반월이 강동江東의 저녁 구름에 은은히 빛나더라도 사대四大76) 일신은 위북渭北의 봄 나무에 쓸쓸합니다.77)하물며 형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부친상)을 만나셨는데 아우는 땅을 치는 인사도 못하였으니, 어찌 마음이 그렇게 시켰겠습니까. 실로 끈 없이 스스로 묶여 있는 격입니다. 아, 번개 치듯 하는 세월에 어찌 사화四花78)가 피고 지는 것을 보겠습니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는 세 번 옮긴79) 교훈을 받은 듯합니다. 이러므로 벼루 동쪽과 등불 남쪽(硯東燈南)에서80) 연야演若81)의 거울에 무척 놀라고, 물 양지와 산 북쪽(水陽山北)82)에서 친구의 구슬83)을 풀지 못합니다. 길이 어찌 용산 봉우리에 막히었는지, 이에 보배 장소에 가기 어려움을 압니다. 그러나 행할 만한 날에 행할 만한 일을 행하니 그 정이 단술과 같지 않고,84) 만날 만한 시간에 만날 만한 이를 만나니 이 행차를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정해년(火猪, 1887) 순주鶉咮85)에 길이 연대암蓮臺庵으로 열리고, 반딧불 나는 경염庚炎(삼복더위)에 일을 완산역完山驛(전주)에서 관리합니다. 이에 주인과 객이 없는 가운데 주인 속의 객을 나누더라도, 만나고 헤어짐이 없는 가운데 헤어지고 만남을 기뻐합니다.지난해에 10수의 시를 땅에 던지시니 쇳소리 남86)을 들었고, 작년의 편지 한 통은 거울을 꺼내 옥 같은 얼굴을 보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정이 한가득함을 감탄하노니 썩은 붓의 표현이 부끄럽고, -
012_0719_c_01L石火光陰。誰有逢別之遲速。浮萍天地。
012_0719_c_02L難分賓主之有無。九土茫茫無碍。主中
012_0719_c_03L賓。寶中主。六時念念多恨。離而合。合
012_0719_c_04L而離。實由光陰之無常。奚因天地之有
012_0719_c_05L大。唯吾和尙。俗年之甲。法臈之兄。受
012_0719_c_06L具戒於琉璃壇前。其願則先慈後智。玩
012_0719_c_07L妙蓮於淸遠樓上。其景則歸一會三。佛
012_0719_c_08L日堂前。雖無晝夜之明昧。堪忍界裡。
012_0719_c_09L其奈報土之異同。於是兄作龍山之獜。
012_0719_c_10L弟爲曹溪之猿。三星半月。雖隱隱於江
012_0719_c_11L東之暮雲。四大一躬。寥寥於渭北春樹。
012_0719_c_12L況乃兄遭崩天之痛。弟闕叩地之候。豈
012_0719_c_13L欲有心使然也。實是無繩自縳歟。吁。
012_0719_c_14L電拂光陰。焉見四花之開落。萍蹤身勢。
012_0719_c_15L幾蒙三遷之敎訓。是以硯東燈南。多驚
012_0719_c_16L演若之鏡。水陽山北。莫解親友之珠。
012_0719_c_17L路何塞於龍岑。是知難到寶所。然而爲
012_0719_c_18L可爲於可爲之日。其情也不若醴。逢
012_0719_c_19L可逢於可逢之時。斯行也不蹖跼。火猪
012_0719_c_20L之鶉咮。路開蓮臺庵中。飛螢之庚炎。
012_0719_c_21L事管於完山驛上。於是乎。雖分無主賓
012_0719_c_22L之主中賓。且喜不合離之離而合。往歲
012_0719_c_23L十首韻。乃聞擲地金聲。昨年一凾書。
012_0719_c_24L勝見開鏡玉面。然而情滿其斛。堪嗟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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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0_a_01L말이 매우 짧아서 창피하니 철주掣肘87)한 듯한 글씨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감히 난잡한 글 10수를 지어서 외람되이 3자 날랜 입으로 말씀드립니다. 새는 원망하고 꽃은 근심하니 용악(龍峰)의 필설을 감내하기 어렵고, 숲이 참담하고 냇물이 부끄러워하니 송계松溪의 시평을 절로 저버렸습니다. 요컨대 제 글을 인가해 주시길 구함이 아니라 그저 무상한 이별과 만남을 기록하여, 주객의 분리되지 않음만 드러내고 또한 형제가 다름을 서술할 뿐입니다.우룡 법우에게 보내는 답서하동 쌍계사에 있다.(答雨龍法友書在河東雙溪寺)정해년(赤豕, 1887) 황양월黃楊月88)에 방장산 화엄사에 참례하고, 한가함을 틈타 신발을 끌고 맑은 개울과 세찬 여울의 꼭대기로 갔습니다. 거문고 소리 같은 개울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고, 비파 같은 소나무 소리가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조물주의 음악에 맡기니 그 즐거움에 기미를 잊고 얼핏 잠이 들었습니다.‘한민漢旻’이라는 개사開士89)가 맨발로 와서는 편지를 꺼내 주기에, 피곤한 눈썹을 비비고 읽다가 나도 몰래 규복圭復90)하고는, 작년에 받은 횡해黌海91)의 법우法友 응오應悟 상인上人(스님)의 편지(信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인은 한민 공의 법형이요, 일찍이 얼마간 가르침을 받았으니 어찌 심상할 수 있겠습니까.처음 수도암에서 보았을 때 연달아 『능엄경』을 읽었고, 다시 법화사에서 만나 같이 깨달음의 장으로 들어갔으며, 발걸음 따라(信) 조계산에 이르러 기쁘게 잡화雜華(화엄경)를 꺾었습니다. 세 번 옮긴 인연을 일찍이 논하자면 어찌 한때의 감동에 비기겠습니까. 하물며 다섯 글자를 보여 주시며 구하시니, 어찌 그저 약한 수레에 무거운 짐이요 짧은 줄로 깊은 우물을 긷는 것에 불과하겠습니까. 돌이 말함에 거북이가 돌아보는92) 부끄러움을 도모하지 않지만, 까치가 울자 범이 본받는 염치를 무릅쓰고, 함부로 율시 한 수를 지었으니, 꽃부리를 씹고 꽃을 따는 것93)으로 보지 마십시오. 오직 향화香火의 인연이 중하고 크므로 이와 같이 대신할 뿐입니다.상인上人은 누구신가. 호가 우룡雨龍이라네. -
012_0720_a_01L恧腐毫。言短其綆。可羞書慚掣肘。敢
012_0720_a_02L搆十首荒辭。叨似三尺利喙。鳥寃花愁。
012_0720_a_03L難耐龍峰之筆舌。林慚澗愧。自負松溪
012_0720_a_04L之詩枰 [69] 。要且非求有印吾文。聊書無常
012_0720_a_05L離合。以表賓主之不分。亦舒昆季之自
012_0720_a_06L異云尒。
012_0720_a_07L
012_0720_a_08L1)• 答雨龍法友書在河東雙溪寺 [10]
012_0720_a_09L赤豕之黃楊。叅方丈之華嚴。偸閑曳屐。
012_0720_a_10L就憑於淸流湍石之頂。澗琴斷續。松瑟
012_0720_a_11L搏之。任他造物之樂。其樂而忘機假眠。
012_0720_a_12L有開士漢旻者。跣足就之。抽尺書剔困
012_0720_a_13L眉。不覺圭復。迺知年前橫 [70] 海法友應悟
012_0720_a_14L上人信墨也。上人卽旻公之法兄。而多
012_0720_a_15L少親炙於夙分。豈尋常且忍哉。初見修
012_0720_a_16L道。連讀楞嚴。再逢法華。同入覺場。信
012_0720_a_17L到曹溪。喜折雜華。盖嘗論三遷之緣。
012_0720_a_18L奚足比一時之感哉。況以五字示而求
012_0720_a_19L之。豈但以弱轅載重短綆汲深謝之乎。
012_0720_a_20L不圖石言龜顧之愧。敢冒雉鳴虎效之
012_0720_a_21L廉。妄搆一律。莫以嚼英采花看得也。
012_0720_a_22L唯以香火之緣。旣重且大。如是賽之。
012_0720_a_23L上人誰也。雨龍其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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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0_b_01L형민 상인(스님)을 전송하는 서여수 흥국사(送衡旻上人序麗水興國寺)바다는 온갖 하천을 받아들이니 필시 마니摩尼94)가 있고, 땅은 삼라만상을 실으니 어찌 숫돌이 없겠습니까. 사생四生 가운데 그 길이 덕 있고 뭇 보배들의 위에 쓰임새가 무궁합니다. 보배로는 자연의 구슬이 없는데 인간이 어찌 천진한 상태로 성인이 되겠습니까. 오개五盖95)의 미혹에 많이 얽혀서 수증修證96)을 빌려 밝음을 깨닫고, 천 길 깊이의 파도에 홀로 빛나니 바닷물을 떠서 뜻과 같이하길 맹세합니다.상인께서는 경도京島97)에서 기를 모으고98) 취봉鷲峰(영취산)에서 삭발하였습니다. 사은四恩이 갚기 어려움을 매번 걱정하고 삼장三藏을 듣지 못함을 길게 탄식하였습니다. 이에 하늘까지 솟을 듯한 마음을 품고서 석장을 비껴들고 산과 바다로 나가고, 바위를 뚫을 듯한 뜻을 안고 어깨에 발우를 짊어지고 북으로 달리고 남으로 다녔습니다. 맑은 바람을 마시며 도인(道流)을 방문하고, 은미한 말을 탐색하러 친구를 찾았습니다. 행실이 고상하고 이치에 고결(義潔)한 이가 아니면 벗으로 삼지 않으니, 향과 난초의 뿌리가 아니면 누가 몸에 지닐 수 있겠습니까. 가히 ‘숫돌처럼 견고하고 마니처럼 빛난다’고 할 만합니다.붕새가 조계산에 나타나 경운擎雲99)의 처마에 날개를 퍼덕이고, 학은 방장산으로 돌아가 원화圓華100) 자리에 날개깃을 접습니다. 청출어람이라101) 선현이 탄식하고, 뒤에 출발했으나 앞서 도착함을 그대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영취산이 이로써 더욱 윤택하고 방장산이 이로써 빈 껍질이 되었습니다. 하천이 9리를 적시니 선재동자가 간간이 옴을 다시 보게 되고, 우담화가 다시 피니 석원釋院(사찰)이 거듭 영화로움을 기뻐합니다. 가히 바다를 퍼내어 보배를 얻었다 하리니, 실로 수증修證102)하여 밝음을 깨우친 것입니다.내가 횡해黌海(글방)에 부평초 같은 종적으로 마침 장님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조계산 불일당佛日堂에서 우연히 만났으니103) 갑신년(靑猿, 1884) 순수鶉首104)의 때이고, 방장산 화엄사에서 다시 만났으니 정해년(赤猪, 1887) 강루降婁(9월)105)의 계절입니다. 비파를 놓은106) 인걸과 숙업의 인연에 대해 어찌 푸성귀 내 나는 한 구절이 없겠습니까. 발섭跋涉107)의 공을 축하하니 한편으로 갱장羹墻108)의 마땅함이 될 것입니다. -
012_0720_b_01L送衡旻上人序麗水興國寺
012_0720_b_02L海納百川。必有摩尼。地載萬品。那無
012_0720_b_03L砥石。四生之中。其道則有德。衆珍之
012_0720_b_04L上。所用也無量。寶無自然之珠。人何
012_0720_b_05L天眞而聖。多纒五盖之惑。假修證而覺
012_0720_b_06L明。獨耀千尋之波。誓抒酌而如意。上
012_0720_b_07L人氣鍾於京島。髮落於鷲峰。每恐四恩
012_0720_b_08L之難酬。長歎三藏之未聞。於是衿懷衝
012_0720_b_09L天。手橫錫而出山并海。膺盤徹石。肩
012_0720_b_10L荷鉢而走北之南。飮淸風而訪道流。探
012_0720_b_11L微言而尋知己。非行高義潔者。莫與爲
012_0720_b_12L朋。靡香蘭木根。則其誰能佩。可謂固
012_0720_b_13L夫砥石映彼摩尼。鵬顯曹溪。敲翔擎雲
012_0720_b_14L之軒。鶴歸方丈。收翅圓華之筵。茜縫
012_0720_b_15L藍靑。先賢之所歎。後發前至。吾君之
012_0720_b_16L可觀。鷲山以之增潤。方丈以之空殻。
012_0720_b_17L河潤九里。更見善財之間來。曇華再訪。
012_0720_b_18L可喜釋院之重榮。可謂抒海得寶。實是
012_0720_b_19L修證覺明。余橫 [71] 海萍蹤。適塡盲杖。傾
012_0720_b_20L盖於曹溪佛日。靑猿鶉首之時。再逢於
012_0720_b_21L方丈華嚴。赤猪降委之節。其於捨琴之
012_0720_b_22L傑。宿業之緣。何無蔬荀之一句哉。以
012_0720_b_23L賀跋涉之功。且庶羹墻之誼也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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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0_c_01L연포의 상인 연파가 행각하기에 보내는 답서본래 방장산에서 조계산으로 와서 머물렀다.(答蓮圃上人蓮坡遊方序本自方丈來住曹溪山)주정周鼎이 크니 사물이 작을 수 없고, 강호康瓠가 작으니109) 사물이 클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작으면 비어서 가득 채울 수 없고, 크면 넘쳐서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릇의 넓고 좁음에 맞추어 받아들여 담아야 그릇과 사물이 그 적합함대로 적합하게 되고 그 크고 작음이 양에 맞추어 비거나 넘치는 화망을 반드시 초래하지 않으리니, 그렇게 해야 ‘큰 것은 크다 하고 작은 것은 작다 하여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것’이라 할 만합니다.조계산에 ‘무명無名’이라는 그릇이 있으니 본체는 시방법계十方法界에 두루 가득하여 도무지 빈 곳이 없고, 활용은 삼제三際110) 대천세계를 포괄하여 본래 원만합니다. 사대四大111)를 조화하여 본체로 삼으니 정鼎의 화풍火風은 역의 괘이고,112) 삼장三藏을 나열하여 발로 삼으니 경전과 율장ㆍ논서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물 긷고 땔감 나르니113) 사구四句114)의 불이 타지 않고, 부처와 조사를 삶으니115) 삼선三禪116)의 길이 이에 끊어집니다. 그릇이 그릇인 까닭은 광대함이 법계와 같고 두루 가득함이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덮고 고금에 걸쳐 있는 것이 이 그릇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렇다면 수미산과 향해香海,117) 교룡과 고래, 삼장과 사대, 사위四圍와 오명五明,118) 티끌과 인허隣虛(극미), 산의 진미와 바다의 해산물에 대해 포괄하고 싸매지 않음이 없으니, 비지 않고 넘치지 않는 것은 오직 이 그릇인 것입니다. 그릇이 큰 까닭은 그 채움에 있어서 크고 작고 곱고 추하고를 가리지 않음이요, 배움에 있어서 내경內經(불경)과 외전外典을 논하지 않음이며, 재료에 있어서 금ㆍ은ㆍ동ㆍ철을 버리지 않음이며, 활용에 있어서 춥고 덥고 빠르고 늦음을 피하지 않음이니, 많을수록 더욱 부족하여 -
012_0720_c_01L• 答蓮圃上人蓮坡遊方序本自方丈
012_0720_c_02L來住曹溪山
012_0720_c_03L夫周鼎之大也。物不能小。康瓠之小也。
012_0720_c_04L物不得大。何也。小則虛而不滿。大則
012_0720_c_05L濫而不收。然則稱其器之廣狹。而納而
012_0720_c_06L盛之。器與物當自適。其適大小。各稱
012_0720_c_07L其量。必不招虛而濫之之禍。而乃可謂
012_0720_c_08L大其大。小其小。無欠無餘者歟。曹溪
012_0720_c_09L有器曰無名。體周法界十方。都無空
012_0720_c_10L缺。用包大千三際。本自圓滿。和四大
012_0720_c_11L而爲體。鼎之火風。易之卦也。列三藏
012_0720_c_12L而爲足。經與律論。佛之言也。運水搬
012_0720_c_13L柴。四句之火莫焚。鎔佛烹祖。三禪之
012_0720_c_14L路斯絕。所以器之爲器也。廣大如法界。
012_0720_c_15L周徧如虛空。盖天地亘古今者。捨此器
012_0720_c_16L而安往耶。然則須彌之於香海。鮫龍之
012_0720_c_17L於鯨魚。三藏之於四大。四圍之於五明。
012_0720_c_18L微塵之於隣虛。山珍之於海錯。莫不包
012_0720_c_19L羅藏裹。不虛不濫者。唯此器歟。所以
012_0720_c_20L器之大者。其盛也。不擇巨細妍醜。其
012_0720_c_21L學也。不論內經外典。其質也。不捨金
012_0720_c_22L銀銅鐵。其用也。不避寒暑早晩。愈多
012_0720_c_23L此• 標者。撰者親筆原稿(底本)中。加漆
012_0720_c_24L「删」字及削除線處標示也。其「删」字及削除線
012_0720_c_25L處。此書撰者。意中不合。以爲削除。然而編
012_0720_c_26L者。不削而全載。以ㆍ標示之。以下倣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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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1_a_01L주정周鼎을 멀리 초월하는 것을 나는 공公에게 징험했습니다. 나는 강호康瓠에 해당하니 어찌 주정과 동일하게 말하여 비견하겠습니까. 그저 공의 법량法量이 주정의 넓고 큼과 같음을 보고 감동하여 글을 쓰니, 채우지 못한다는 기롱을 면하기 바라는 것입니다.흥양군(고흥) 팔영산 능가사 서불암 기문(興陽郡八影山楞伽寺西佛菴記)나라 남쪽 8백 리에 ‘고흥’이라는 현이 있고, 현의 동쪽으로 1유순由旬119) 거리에 ‘팔영산’이 있다. 옛날에는 ‘팔전산八田山’이라 했는데 ‘팔영산’이라고도 부른다. 후위後魏120) 탁발씨拓跋氏 13년(399)121)에 팔영산이 위나라 군주의 손 씻는 그릇에 비치었다. 군주는 기이하게 여겨 찾아보도록 했는데, 천하를 다니며 찾다가 해상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상서로운 무늬 비단에 ‘팔영’ 두 글자를 써 주고, 본국에 사신을 보내 큰 가람을 창설하게 했으니 지금 일컫는 ‘능가사楞伽寺’가 그러하다.산의 뛰어난 풍광은 지리산ㆍ월출산과 우위를 다투고, 그 나머지 천지가 비장하고 신명이 출몰하는 듯한 형상은 보는 이가 스스로 얻어야지, 다 언급할 수는 없다. 봉우리 남쪽(离) 기슭에 ‘백운동白雲洞’이 있는데 많은 바위들이 빼어남을 다투고 온갖 형상들이 빛을 섞으니, 흐릿하고 어렴풋하며 깨끗하고 이어진 모습이 여름 하늘의 구름 같다. 그래서 선비들이 백운동이라 일컬었다.앞에 백운사白雲寺가 있었는데 지금은 산막山幕122)이 있다. 약초를 캐는 이가 아니면 오는 이 없다. 계곡 중심에 ‘서불암西佛庵’이 있으니 벼랑에 매달린 형국으로 북동쪽(壬)을 등지고 남서쪽(丙)을 향해 있으며 사방 처마는 성과 같아 사다리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 청룡(동쪽) 우매산牛埋山123)과 백호(서쪽) 마복산馬伏山124)이 굽이굽이 낮게 엎드려 감싸 안으며 빼어남을 다툰다. 푸른 하늘(碧落)의 바위 밑에 가장 진귀한 것은 용 입에서 솟아나는 은빛 샘으로, 맛이 달고 반짝반짝 청결하다.그믐밤에도 바라보며 궤안에 기대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은 영주瀛洲(제주)의 한라산이요, 등지고 우러러 -
012_0721_a_01L而愈不足。其量迥超周鼎者。吾於公
012_0721_a_02L驗矣。余是康瓠者。寧道以周鼎同日而
012_0721_a_03L比肩㢤。只見公之法量。如鼎之廣且大
012_0721_a_04L也。感而書之。庶免乎不滿之譏。
012_0721_a_05L
012_0721_a_06L興陽郡八影山楞伽寺西佛菴記
012_0721_a_07L國之南八百里有縣曰高興。縣之東一
012_0721_a_08L由旬有山曰八影。舊號八田。而同稱八
012_0721_a_09L影者。後魏跖 [72] 跋氏十三年。八峰照印於
012_0721_a_10L魏主與 [73] 器。主異而使之以物色。旁求
012_0721_a_11L天下。廼得于海上。因以瑞錦繪。賜八
012_0721_a_12L影二字。遣使本國。芿 [74] 剏大伽藍。今稱
012_0721_a_13L楞伽是也。山之勝槩。能與智異月出爭
012_0721_a_14L雄。而其餘天藏地秘。神出鬼沒之狀。
012_0721_a_15L覽者自得。叵能盡擧也。峰之离麓。有
012_0721_a_16L洞曰白雲。千岩競秀。萬像交光。濛濛
012_0721_a_17L靉靉。潔潔綿綿者。若夏天之雲。故土
012_0721_a_18L人謂之白雲洞前有白雲寺。今
有一山幕也。非採藥所
012_0721_a_19L罕到。洞之臍有庵曰西佛。懸崖作局。
012_0721_a_20L壬丙爲向背。四簷如城。非梯莫能攀
012_0721_a_21L牛埋山之靑龍。馬伏山之白虎。逶迤低
012_0721_a_22L伏。爭秀藏抱。碧落嵓底最可珍者。龍
012_0721_a_23L口銀泉。味甘光潔。朓而望也。隱几
012_0721_a_24L可摩者。瀛洲之漢挐。背而仰之。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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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1_b_01L목을 늘이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운봉雲峰(남원)의 방장산(지리산)이다. 짙푸르고 망망한 바다에 여러 섬들이 뒤섞여 바둑판 같은데 두 개의 주먹바위가 까마귀 머리처럼 파도 속에서 돌연 솟아 있으니 ‘동해상 구계朐界에 있는 진나라 동문東門’125)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조금 마음을 편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유구琉球의 태자이고,126) 표류하다가 돌아간 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풍수지리가들이 말하는 ‘구름 속의 신선자리’라는 것이 여기서 어긋나지 않는다. 암자를 지은 지 꽤 오래되었으나 여기서 승려가 입적했다는(僧化)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이 모두 서불암의 큰 볼거리이다. 암자에 문헌이 없어서 그저 상량문만 취할 따름이니, 대략 다음과 같다.동진東晋 의희義熙 13년(417), 즉 신라 눌지왕 3년(419)127)에 우리 해동의 아도阿度128)가 창건하였다. 기원후 다섯 번째 신유년 당 태종 정관貞觀 원년(627)129)에 산승 석인碩仁이 중창을 맹세하고 아전鵝殿(법당)을 높게 하니 관음 한 구軀가 월지月支130)로부터 왔다. 인연이 있어 즉시 응한 것이다. 익실翼室131)이 나란히 밝아 16성상聖像(나한상)이 큰 복전福田이 되어 이뤄지지 않는 바람이 없었다. 이후 두 쥐(밤낮)가 서로 침노하고 사겁四刼132)이 서로 찾아오니 이치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광서光緖 4년 경진(1880)133)에 주석하고 있던 노승 설암雪嵓 선사는 복지福地가 무너진 것에 강개하여 공사를 벌였다. 눈처럼 흰 사다리로 수倕의 재목을 험한 곳에 설치하고, 서리처럼 하얀 칠로 노猱의 백악白堊을 새로 발랐다.134) 날을 정해 마침을 고하니 어엿하게 화성化成된 듯하였다. 둥근 옥(玉璧)이 바다(鴻溟)의 달을 품으니 만 송이 서리꽃이 피고, 바위 구멍에서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부니 사계절 내내 하늘 음악이 울린다. 비록 선부제鮮浮提135) 바다에 살지만 어찌 도사타兜斯陁136) 천상에 부끄럽겠는가. 아, 이 암자에 머물며 이 불상에 공양하는 이는 관음의 천수천안 가운데 하나를 얻을 듯하니, 긴 강을 휘저어 제호醍醐137)를 만들고 대지를 변하게하여 황금으로 만듦이 또한 쉽지 않겠는가.나는 조계산에서 여기로 와 이틀 묵으니 신선을 구함인가, -
012_0721_b_01L頸可呼者。雲峰之方丈。蒼茫碧海。諸
012_0721_b_02L島之交錯者。彷彿乎一局碁。兩柱拳
012_0721_b_03L石。如烏頭許。突聳波心者。卽東海
012_0721_b_04L上朐界中秦東門是也。於此小可安心
012_0721_b_05L靜慮。能以化仙作佛者。琉球太子。漂
012_0721_b_06L流還國。其儷不億。相地者。謂雲中仙
012_0721_b_07L座者。於此不謬矣。剏庵頗久。而未聞
012_0721_b_08L僧化于此。是皆爲西佛庵之大觀也。庵
012_0721_b_09L無文考。但取信樑文而已也。其略曰
012_0721_b_10L東晋義熙十三年。卽新羅訥祇王三年
012_0721_b_11L我東阿度之所剏也。迄紀元後五辛酉
012_0721_b_12L唐太宗貞觀元年。山之釋碩仁。矢心重
012_0721_b_13L葺。鵝殿崔嵬。一躬觀音。來自月支。有
012_0721_b_14L緣卽應。翼室并明。十六聖像作大福
012_0721_b_15L田。無願不遂。二鼠迭侵。四刼相尋。理
012_0721_b_16L固然矣。越光緖四年庚辰。住山老雪嵓
012_0721_b_17L禪師。慷慨福地壞空。經之營之。雪梯
012_0721_b_18L而倕材架嶮。霜塗而猱堊粘新。尅日吿
012_0721_b_19L訖。儼若化成。玉壁 [75] 含鴻溟之月。萬朶
012_0721_b_20L霜華。石竇吼松間之風。四時天樂。雖
012_0721_b_21L居鮮浮提海中。寧慚兜斯陁天上。噫。
012_0721_b_22L住斯庵供是佛者。若得觀音千手眼之
012_0721_b_23L一。攪長河爲醍醐。變大地作黃金。不
012_0721_b_24L亦易乎㢤。余自曹溪。信宿于玆。求仙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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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1_c_01L약을 캐려는 것인가. 암자의 주인이 본래 동향이라는 친분이 있어서 재齋를 지내고 차를 마실 때 대화가 본 암자의 시종에 이르렀고,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그대는 어찌 한마디 말로 여기에 삼생을 묶지 않습니까.”“선사께서 이 암자에 머무시는데 제가 이 말을 함은 어찌 너무 지나치지 않겠습니까?”“그렇지 않습니다. 공성孔聖(공자)이 노나라에 태어나 노나라 역사를 바탕으로 『춘추春秋』를 만든 것이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나는 이에 글을 써서 기록한다.조계산 보조암 강당과 선불장138)을 위한 연화 결사의 글임진년(1892) 3월(曹溪山普照庵講堂選佛場緣化結社文壬辰三月日)살펴보건대,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필시 큰 비원悲願의 선근善根을 빌리고, 불조佛祖께서 마음을 전하심은 굴窟 안팎의 결집(部藏)139)에서 들었으니, 삼도三途140)를 구제할 방략이요 일사一事(깨달음)에 나아갈 권형權衡141)입니다.돌아보건대, 이 암자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142)의 교해敎海(가르침의 바다)입니다. 승안承安 5년(1200)에 본 암자에 머물다가 큰 사찰로 창건하였으니, 보리좌菩提座143)를 옮기지 않고 보광당普光堂에 나아간 것144)과 같습니다. 10년이 지나 원음圓音을 내어 중생을 타이르니 도독고塗毒鼓145)를 스스로 울려 수라취修羅趣146)를 여읜 것과 같습니다. 덕은 천지와 같아 질서 잃은 만물을 융화시키고, 믿음은 사시四時와 같아 질서 있는 삼라만상을 생숙生熟시킵니다. 이로써 진각眞覺147)과 청진淸眞148) 등에게 전하니 16노추老錐149)가 되고, 이로써 부휴浮休150)와 벽암碧嵓151) 등에 이르러 32종맥을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인천人天의 안목을 열어젖히고 불조佛祖의 종유宗猷152)를 드날렸습니다. 온 천지의 선불장選佛場에서 설경說經하는 강주講主(강사)들이 세상에 드문 용처럼 나타났고, 온 세계의 학승 법려法侶153)로서 배움을 청하는 무리들이 멀고 가까운 데서 구름처럼 달려왔습니다. 하물며 다시 백암栢庵154)과 무용無用155)이 선교禪敎의 마당에서 홀로 거니니 침명枕溟156)과 우담優曇157)이 그림자와 메아리 같은 짝이 되며, -
012_0721_c_01L採藥乎。庵主素有同鄕之分。齋餘茶
012_0721_c_02L初。語及本庵之終始。仍云子盍以一言
012_0721_c_03L係三生於此乎。曰師住是庵。吾有是言。
012_0721_c_04L豈非太過乎。曰不然。孔聖之生於魯
012_0721_c_05L因魯史作春秋者。何異是爲㢤。余於是
012_0721_c_06L乎書爲誌。
012_0721_c_07L
012_0721_c_08L曹溪山普照庵講堂選佛場緣化結
012_0721_c_09L社文壬辰三月日
012_0721_c_10L詳夫菩薩之爲物。必假大悲願之善根。
012_0721_c_11L佛祖之傳心。曾聞窟內外之部藏。濟三
012_0721_c_12L途之方略。就一事之權衡。顧此庵。卽
012_0721_c_13L普照國師之禪房。選佛場之敎海。承安
012_0721_c_14L五年。住本庵而剏大寺。如不移菩提座
012_0721_c_15L而赴普光堂。越于十載。放圓音而警衆
012_0721_c_16L生。若自鳴塗毒鼓之喪修羅趣。德如天
012_0721_c_17L地。融冶萬物之失倫。信若四時。生熟
012_0721_c_18L森羅之得序。以是而傳之眞覺淸眞等。
012_0721_c_19L爲十六之老錐。因玆以迄于浮休碧嵓
012_0721_c_20L師。繼卅三之宗脉。開斫人天之眼目。
012_0721_c_21L闡揚佛祖之宗猷。渾天地選佛場。說經
012_0721_c_22L之主。間世龍現。盡世界學法侶。請益
012_0721_c_23L之徒。遐邇雲奔。况復栢庵無用。獨步
012_0721_c_24L於禪敎之場。枕溟優曇。作影響之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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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2_a_01L영해影海158)와 풍암楓嵓159)이 대회의 자리를 높이 마련하여 묵암默庵과 응암應庵160)이 상족上足(제자)의 무리가 되니, 불조佛祖가 원력으로 다시 태어나서 보살이 만행 방편을 펼침을 알았습니다. 용상龍象(대덕)이 늘어서니 문수보살이 문을 나선 듯하고, 북과 나팔이 크게 울리니 묘음보살이 모임에 들어온 듯합니다. 칠중七衆161) 가운데 운석韻釋(詩僧)들이 항룡발降龍鉢162)을 다투어 던지니 만고강산에 번화繁華하고, 팔굉八紘163)의 고승들이 해호공解虎笻164)을 다투어 던지니 천추千秋(천년) 운월雲月에 장관입니다. 향기를 품고 입정하니 오고 감이 없는 말을 다투어 쏟아 내어 말(斗)로 헤아릴 정도요, 꽃을 뿌리며 경전을 말하니 생멸이 없는 말을 자주 논하여 수레에 실을 정도입니다.165)진정 이른바 문예를 흥기할 곳이며 선불選佛의 장소인데, 다만 인연과 운수가 더욱 하강하여 사람과 법이 더욱 위태롭습니다. 연하煙霞166)가 빛을 잃고 수월水月이 빛을 숨기니, 아름다운 대坮와 보탑寶塔167)을 누가 조각할 것입니까. 금옥 같은 글과 게송을 천양할 주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뺏을 강주가 면면히 끊이지 않으니 보리菩提 존자의 현기懸記168)가 있는 듯하고, 경전을 옆에 끼고 다니는 무리들이 왕왕 돌아오니 실로 불일佛日169) 노승의 원력이 사라지지 않음을 알겠습니다.대개 이러한 법성法性의 참다운 보배는 가득 차고 빔이 없지만 감인堪忍(속세)의 티끌 재물은 어찌 진퇴가 없겠습니까. 단월檀越(시주)이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서 이런 것입니까. 패엽貝葉170)이 봄바람의 각수覺樹에 다시 푸르러지고, 법의 파도가 가을달의 조계산에 다시 맑아지길 바랍니다. 이에 짧은 글을 가지고 단월 문하에 널리 고합니다.흙덩이를 바쳐 마침내 전륜성왕이 되니 덕승德勝 아이의171) 안목(藻鑑)이요, 금 땅을 보시하여 정사를 완성하니 수달다須達多172)의 시주입니다. 재물은 몸을 해치는 칼이니 희사하기 어려운 티끌 보배를 아끼지 마시고, 선행은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니 썩지 않을 좋은 인연을 심기 바랍니다. 각수覺樹의 색과 패엽의 소리가 진실로 지옥을 깨뜨리는 도끼요, 옥호玉毫173)의 빛과 금구金口(부처의 입)의 게송이 천당에 오르는 사다리임을 누가 알겠습니까. ‘크게 치면 크게 운다’는 것은 구담씨瞿曇氏(부처)의 가르침이요,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온다’174)는 것은 공부자孔夫子(공자)의 진실한 말(丁寧)입니다. -
012_0722_a_01L影海楓嵓。高設大會之座。默庵應庵。
012_0722_a_02L爲上足之儔。是知佛祖願力受生。菩薩
012_0722_a_03L萬行方便。龍像 [76] 列立。依然文殊之出門。
012_0722_a_04L鼓角喧轟。彷彿妙音之入會。七衆韻釋
012_0722_a_05L競擲降龍鉢。繁華萬古江山。八紘高僧
012_0722_a_06L爭投解虎笻。壯觀千秋雲月。懷香入定
012_0722_a_07L無去來之說。景 [77] 抱斗量。散花談經。不
012_0722_a_08L生滅之言。動論車載。眞所謂興文之地
012_0722_a_09L選佛之場。但以緣運益降。人法愈殆。
012_0722_a_10L煙霞失色。水月潛光。華坮寶塌 [78] 。彫縷
012_0722_a_11L何人。金文玉偈。闡揚無主。然而奪席
012_0722_a_12L之主。綿綿不絕。倘是菩提尊之懸記若
012_0722_a_13L存。橫經之徒。徃徃斯歸。實知佛日老之
012_0722_a_14L願力不滅。盖此法性眞寶。雖無盈虛。堪
012_0722_a_15L忍塵財。奈無進退。非無檀越而然矣。必
012_0722_a_16L待旺運而是歟。敢冀貝葉。重翠於覺樹
012_0722_a_17L春風。法波再淸於曹溪秋月。聊將短軸
012_0722_a_18L普吿檀門。獻土麨而竟作輪王。德勝童
012_0722_a_19L之藻鑑。施金地而已成精舍。須達陀之
012_0722_a_20L檀行。財是害身之刀。莫惜難捨之塵寶。
012_0722_a_21L善是護身之符。願樹不朽之良緣。覺樹
012_0722_a_22L色貝葉聲。須信破地獄之斧鉞。玉毫光
012_0722_a_23L金口偈。誰知上天堂之棧梯。大鼓大鳴。
012_0722_a_24L瞿曇氏之銘訓。出爾反爾。孔夫子之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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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2_b_01L청부아안靑鈇鵝眼175)이 희게 빛나고 붉게 고우니 지니고 있는 것을 헤아려 반출하시고, 유리와 진주ㆍ산호ㆍ호박琥珀 등은 가산家產이 아니면 어찌 논하겠습니까. 허리에 찬 10만 전錢은 학의 등에 탄 선비의176) 환상이고, 공적이 삼천세계에 가득함은 필시 용화삼회龍華三會177)에 참여할 사람입니다. 만 가지 근심이 얼음처럼 녹을 테니 쇠를 끊을 듯한 약속을 한 번 허락하소서. 요명堯蓂178)이 날마다 길어지고 사민四民179)이 태평가를 부르며, 순금舜琴180)의 훈풍에 백공百工들이 복성福星과 서운瑞雲의 경사에 화답하기를 봉축하옵니다.조계산 천자암 성산각181)의 중건 화문4월 일(曹溪山天子庵星山閣重建化文四月日)하늘에 펼쳐져 인간에게 화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칠원성군七元星君(북두칠성)이요, 땅의 온갖 형상 속에 중생의 선악을 살피는 것은 팔대산왕八大山王입니다. 이 모두는 옛 성현께서 자비를 일으켜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며 보살이 권형權衡182)으로 자취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와룡卧龍이 병진兵陣에서 복을 기도했으니183) 천년의 안목(藻鑑)이 한나라 역사에 밝게 빛나고, 우리 태조께서 제단을 정결히 하고 발원하였으니 세 칸 사찰(法宇)이 계봉鷄峰에 우뚝합니다.184) 복전福田을 심으려고 한다면 이를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우리의 이 암자는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창설하시고 담당湛堂185) 고족高足(수제자)이 득도한 곳입니다. 땅이 신령하고 사람이 걸출하며 물화物華186)가 특별하니, 연못가 노룡老龍 같은 두 쌍의 향나무가 빼어난데 이는 진실로 사자師資187)의 전단향栴檀香 나무 지팡이로서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바다구름이 일었다가 사라짐에 고개를 들어 마주하는 것은 고흥高興의 팔영산八影山이요, 밤 빛깔이 썰렁함에 궤안에 기대어 불러 보는 것은 영암靈嵓의 월출산月出山입니다. 하물며 게다가 장안동長安洞의 웅장함과 고읍촌古邑村의 화려함이 더해지니 어떻겠습니까. 다양한 풀들과 온갖 꽃들이 모두 천자암의 좋은 볼거리인 것입니다. 오래된 한 칸 작은 집이 있어서 주천성군周天星君과 열악산령列嶽山靈188)을 -
012_0722_b_01L寧。靑鈇鵝眼白璨紅鮮。度已有而盤出
012_0722_b_02L琉璃眞珠珊瑚琥珀。非家產則何論。腰
012_0722_b_03L纏十萬錢。只是鶴背上一幻土。功滿三
012_0722_b_04L千界。必叅龍華中三會人萬縷冰消。一
012_0722_b_05L諾金斷。奉祝堯蓂日永。四民興衢壤之
012_0722_b_06L歌。舜琴風熏 [79] 。百工和星雲之慶。
012_0722_b_07L
012_0722_b_08L曹溪山天子庵星山閣重建化文四
012_0722_b_09L月日
012_0722_b_10L天之森羅。能禍福於人間者。七元星君。
012_0722_b_11L地之萬像。察善惡於群品者。八大山王。
012_0722_b_12L是皆爲古聖之興悲現形。菩薩之權衡
012_0722_b_13L示跡。所以孔卧龍兵陣祈福。千載藻鑑。
012_0722_b_14L昭明於漢史。我太祖淨壇發願。三間法
012_0722_b_15L宇。嵬然乎鷄峰。欲樹福田。捨此安歸。
012_0722_b_16L唯我是庵者。普照國師之所剏占。湛堂
012_0722_b_17L高足之得道處也。地靈人傑。物華殊特。
012_0722_b_18L若其泉畔老龍雙香挺秀。眞是師資之
012_0722_b_19L栴檀笻。抵今不滅。海雲起沒兮。翹首
012_0722_b_20L相對者。高興之八影山。夜色虛凉兮
012_0722_b_21L隱几可呼者。靈嵓之月出山也。况又長
012_0722_b_22L安洞之雄壯。古邑村之華麗。千般瑞草。
012_0722_b_23L萬品名花。皆爲天子菴之大觀歟。古有
012_0722_b_24L一間斗屋。而周天星君。列嶽山靈。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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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2_c_01L여기에 봉안하니, 겨자씨에 수미산을 넣는 것과 같습니다. 성인의 경지는 넓고 좁음에 자재自在하지만 범인의 심정으로는 크고 작음을 용납하기 어려우니 어찌합니까. 중흥을 계획하는데 창시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 터럭을 모아 공을 만들고 온갖 하천을 모아 바다에 이르듯 하려고 합니다.바라건대 삼계三界의 티끌 재물을 희사하여 구천九天의 옥루玉樓에 오르소서. 공명孔明의 감응(蒙熏)189)과 태조의 가피가 어찌 옛날의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겠습니까. 선군자와 선여인께서는 성군星君의 은혜로운 살핌에 따라 수명을 연장하고 산왕山王의 복전에 선한 씨를 심어 연하烟霞(산수)의 지경에서 나란히 걷고 전단 숲으로 같이 나아가길 빕니다.본군(순천) 수령 원우상190)이 폐해를 없애 준 것에 대한 칭송기(本郡守元禹常除瘼頌記)백성에게 나라는 병자에게 좋은 의원이 있는 것과 같고, 사찰에 관리는 자식에게 자비로운 모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도탄에 빠진 자는 부모(怙恃)의 은덕을 외치는 법이고 병이 깊은 자는 편작扁鵲191)의 처방을 구하는 법입니다. 처방을 얻어 병을 치료하고 덕을 입어 백성을 구제하면 의원에게 보상하고 부모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우리 원元 사또께서는 하늘이 모아 준 남은 경사(餘慶)요 산악이 내려 준 영령으로서 북궐北闕(대궐)에 절을 올리고 남쪽 지방으로 깃발을 돌렸습니다. 우리의 공전公田에 비를 내리시니 만민이 같이 소생하고, 우리의 궁벽한 골짜기에 은택을 베푸시니 온갖 폐단이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진주가 돌아온다는 노래가 합포合浦의 백성에게만192) 국한되지 않고 범이 건너갔다는193) 송축이 또한 승평군昇平郡(순천)에도 들립니다. 하물며 또한 성주城主(수령)의 한 말씀은 바람이 달리듯 하고, 고을 관리들의 응낙은 풀이 눕듯 합니다. 빈도貧道들을 보살펴 주시니 편작의 처방입니까, 부모(怙恃)의 은덕입니까. 병자가 감사함을 생각하고 백성이 은덕을 의논하니 어찌 예상翳桑의 보답194)이 없겠습니까. 이에 방함芳啣(성함)을 들어 잊지 못함을 만에 하나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본도(전라도) 수의어사 이면상195)의 천왕문 단청 공덕에 대한 송가(本道繡衣李冕相天王門丹靑功德頌) -
012_0722_c_01L安于玆。猶如納須彌於芥子。雖聖境之
012_0722_c_02L廣狹自在。奈凡情之巨細難容。所以斯
012_0722_c_03L謨重興。難於始剏。故玆聚衆毫而成毬。
012_0722_c_04L會百川而到海。願捨三界塵財。要上九
012_0722_c_05L天玉樓。孔明之蒙熏。太祖之加被。何
012_0722_c_06L專媺於古哉。幸諸善君子善女人。延壽
012_0722_c_07L命於星君之惠鑑。樹善種於山王之福
012_0722_c_08L田。齊步烟霞境上。共赴栴檀林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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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2_c_10L• 本郡守元禹常除瘼頌記
012_0722_c_11L民之有國。如病良醫。寺之有史。如子
012_0722_c_12L慈母。塗炭者。必呼怙恃之德。痼肓者。
012_0722_c_13L必求扁鵲之方。得方療病。荷德濟民
012_0722_c_14L則償其醫報其母之道果何如也㢤。唯
012_0722_c_15L我元候 [80] 。天鍾餘慶。岳降斯靈。獻拜北闕。
012_0722_c_16L還旆南州。雨我公田。萬民咸甦。澤吾
012_0722_c_17L窮谷。百弊俱寂。以其珠還之謠。不專
012_0722_c_18L於合浦之民。虎渡之頌。亦聞於昇平之
012_0722_c_19L郡。况復城主之一言風馳。鄕司之衆諾
012_0722_c_20L草偃。顧念貧道等。扁鵲之方歟。怙恃
012_0722_c_21L之德歟。病之感想。民之德誼。那可無預 [81]
012_0722_c_22L桑之報乎。爰揭芳啣。庶報不忘之萬一。
012_0722_c_23L
012_0722_c_24L本道繡衣李冕相天王門丹靑功德
012_0722_c_25L頌
-
012_0723_a_01L佛光東布 불광이 동쪽으로 퍼지니
八土普明 팔토(전국)가 널리 밝아지고
法雨西霔 법우가 서쪽에 쏟아지니
三草等潤 삼초196)가 같이 윤택해지네
時運所啓 시운이 열리는바
事不偶偕 사업이 함께하지 않으리오
敬我霜臺 공경하는 우리 상대197)시여
族登仙譜 친족으로 선보198)에 올라
憂分北闕 북궐(대궐)의 근심을 나누어199)
氣鍾南州 남방으로 기운이 모아지니
秋水文章 가을 물 같은 문장과
春城花樓 봄 성의 꽃 누각이라
甲仁胄義 인을 갑옷으로 의를 투구로200)
衣繡佩金 수의 입고 금인金印 차니
德潤完城 은덕이 완주 성에 윤택하고
澤及松岑 은택이 송광사 봉우리에 미쳐
六度其首 육도의 으뜸이요201)
三歸其心 삼귀202)의 마음이라
綸音露墜 윤음이 이슬처럼
寺瘼邑侵 사찰의 폐단과 고을의 침탈 없애니
讃賀抃躍 손뼉 치고 뛰며 찬양하며
永世不忘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位極人臣 지위는 신하로서 최고가 되고
子孫永昌 자손은 영원히 창성하시리조계산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이안203)한 연기와 평옛 기록에서 뽑음. 병인년(1926) 9월 20일(曹溪山普照國師甘露塔移安緣起評古記抄丙寅九月二十日)보조국사께서 고려 희종 6년 경오(1210) 3월 27일에 입적하시니 향년 53세요, 큰 사리가 30개 나오고 작은 것은 셀 수 없었다고 한다. 4년 지난 계유년(1213) 4월 10일에 수선사修禪社의 북쪽 기슭 옛 보현전普賢殿 위에 탑을 세웠다. 현재 성수전聖壽殿 위가 옛터이다. 백여 년 지나연대와 주관자의 이름을 알 수 없으니 괴이하다. 어떤 이유인지 보조암普照庵 정상세칭 ‘범등고개(虎背嶝)’으로 이안移安했다. 입적 후 260년 지난 명나라 성화成化 13년, 즉 이조 성종 8년 정유년(1477) 4월 27일에 주지 육정六正 선사가 무설당無舌堂 앞으로 봉안하여 비석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현재 설법전說法殿, 즉 장경각藏經閣이다. 115년 후 임진왜란에 이르러 파괴되어 귀부龜趺204)만 남았다고 한다.사리가 산실된 게 이때다. 86년 후 청나라 강희康熙 17년 무오(1678)에 설명雪明 장로가 백암栢庵 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비석과 탑을 거듭 세웠다고 한다. 10년 후 강희 26년, 즉 숙종 13년 정묘(1687) 3월 6일에 -
012_0723_a_01L佛光東布。八土普明。法雨西霔。三草
012_0723_a_02L等潤。時運所啓。事不偶偕。敬我霜臺。
012_0723_a_03L族登仙譜。憂分北闕。氣鍾南州。秋水
012_0723_a_04L文章。春城花樓。甲仁胄義。衣繡佩金。
012_0723_a_05L德潤完城。澤及松岑。六度其首。三歸
012_0723_a_06L其心。綸音露墜。寺瘼邑侵。讃賀抃躍。
012_0723_a_07L永世不忘。位極人臣。子孫永昌。
012_0723_a_08L
012_0723_a_09L曹溪山普照國師甘露塔移安緣起
012_0723_a_10L評古記抄丙寅九月二十日
012_0723_a_11L高麗熙宗1)八 [11] 年2)庚午 [12] 三月二十七日
012_0723_a_12L示寂。壽五十三。舍利大者三十。小者
012_0723_a_13L無數云。越四年癸酉四月十日。立塔于
012_0723_a_14L社之北麓古普賢殿上。今聖壽殿上。是
012_0723_a_15L古址也。越百餘年。年代及主者名
未詳。可恠也。以何緣
012_0723_a_16L移安于普照庵頂上。世所稱虎
背嶝云示滅後二
012_0723_a_17L百六十年。大明成化十三年。卽李朝
012_0723_a_18L成宗八年丁酉四月二十七日。住持六
012_0723_a_19L正禪師。奉安于無舌堂前。與碑並立。
012_0723_a_20L今說法殿
卽藏經閣至一百十五年壬亂破壞。只存
012_0723_a_21L龜趺云。舍利散失
此時也越八十六年后。大淸康
012_0723_a_22L熙十七年戊午雪明長老。依栢庵禪師
012_0723_a_23L所敎。重立碑塔云云。十年後康熙二
012_0723_a_24L十六年。卽3)肅宗十三年丁卯 [13] 三月六
-
012_0723_b_01L해문海文 비구가 고봉원高峰原 위로 이안하여 탑 앞에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37년 지나 옹정雍正 원년, 즉 경종 3년 계묘(1723) 4월 16일 영해影海 선사가 주지 기인起仁에게 명하여 옛터로 봉안하게 했다고 한다. 43년 지나 건륭乾隆 29년, 즉 영조 41년 을유(1765) 3월 19일에 주지 창오昌旿가 비전고개(碑殿嶝) 위 부휴탑浮休塔 뒤로 이안했다고 한다. 6년 지나 영조 46년 경인(1770) 11월 12일에 주지 승감勝鑑또는 평원平遠이라 한다.이 옛터에 봉안했다고 한다. 158년 지나 대정大正 15년 병인(1926) 9월 20일에 주지 찬의賛儀가 탑을 고치고 대를 쌓았다고 한다.사유는 해당 기문記文205)에 있다.
평評은 다음과 같다.
비석과 탑의 이안을 살폈다. 비석은 한 번 부서져 거듭 세워지고 한 번 나갔으니 현재 비전고개(碑嶝)에 있는 게 이것이다. 탑 또한 한 번 부서져 거듭 세워지고 세 번 나왔다가 세 번 들어오니 현재 옛터에 있는 게 이것이다. 그런데 나가면 유골이 더럽혀지고, 들어오면 상서로운 빛이 영롱하다고 한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진신眞身으로서 길흉과 근심(悔悋)에 어찌 관여하리오마는, 다만 세제世諦206)상의 소견으로는 재앙과 상서로움이 출입에 관여하니, 이와 같음으로 사찰과 승려의 화복禍福과 성쇠衰盛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으나 그럴 수 있는가. 만약 세상의 보물을 위험한 곳에 두면 위험하고 편안한 곳에 두면 편안한데, 하물며 막엄하고 중한 보배인 성골聖骨을 함부로 옮겨서 편안하고 위태로움과 길흉의 땅을 가리지 않는다면 화복과 재앙ㆍ상서로움이 어찌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우리들의 후손 되는 이들이 삼가지 않고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찌 우리의 조사들을 거스르는 후손이 될 뿐이겠는가. 아비지옥의 고통을 달게 받게 될지니, 삼가지 않겠는가. -
012_0723_b_01L日。海文比丘。移安于高峰原上。立
012_0723_b_02L碑于塔前云。越三十七年。雍正元年
012_0723_b_03L卽景宗三年4)癸卯 [14] 四月十六日。影海禪
012_0723_b_04L師命住持起仁。奉安于古址云。越四
012_0723_b_05L十三年。乾隆二十九年。卽英宗四十一
012_0723_b_06L年5)乙酉 [15] 三月十九日。住持昌旿。移安
012_0723_b_07L于碑殿嶝上浮休塔後云。越六年。卽英
012_0723_b_08L宗四十六年6)庚寅 [16] 十一月十二日。住持
012_0723_b_09L勝鑑。亦云
平遠奉安于古址云。越一百五十
012_0723_b_10L八年。大正十五年丙寅九月二十日住
012_0723_b_11L持賛儀。改塔築坮云。事由在
本記文
012_0723_b_12L評曰。觀其碑塔之移安。碑唯一壞。重
012_0723_b_13L立而一出。現在碑嶝是也。塔亦一壞。重
012_0723_b_14L立而三出三入。現在古址是也。然而出
012_0723_b_15L則觸髏汚陋。入則祥光玲瓏云。若以金
012_0723_b_16L剛不壞之眞身。何管於吉凶悔悋㢤。但
012_0723_b_17L以世諦上所見災祥。管於出入。以若此
012_0723_b_18L至於寺僧之禍福衰盛。不欲言而得乎。
012_0723_b_19L如世之重寶。置諸危處則危之。置諸安
012_0723_b_20L處則安之。况以聖骨之莫嚴重寶。妄自
012_0723_b_21L遷動。不擇安危吉凶之地。禍福災祥
012_0723_b_22L安敢不存於此㢤。吾輩之爲裔者。若不
012_0723_b_23L愼而妄動。則何啻吾祖之逆孫。甘受阿
012_0723_b_24L鼻之苦痛。可不愼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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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3_c_01L영호207) 강백이 시를 청하기에 보낸 답서백양산에 있다.(答映湖講伯求韻在白羊山)삼양三陽이 엎드리고 육음六陰이 승한데208) 근래 은우恩憂209)를 겪어 문을 닫고 고요히 정양하며 그저 약(刀圭)210)을 급무로 삼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물소리와 새소리가 상하에서 답을 하고 소나무 그늘과 대나무 음지가 좌우로 들쭉날쭉하니, 임을 그리는 일념이 이때에 정녕 심합니다. 고개 위 구름과 강가의 나무를211) 아침저녁으로 바라다 보는데 어떤 시편(瓊琚)212)이 하늘에서 떨어진 듯 먼지 구덩이에 날아 떨어졌습니다. 급히 손으로 펼쳐 읽어 보니 기쁨에 앞서 눈썹이 올라갔습니다. 여러 번 반복하여(圭復)213) 읊어 삼키자 어금니와 뺨에서 향기가 나오니, 시의 골격과 율격은 장莊ㆍ한韓의 뱃속에서 나오고 글씨 필봉은 은과 쇠의 사슬214) 아래 깎은 듯합니다. 글월마다 금수강산이요 구절마다 연하烟霞의 누대입니다. 사사로이 생각하니, 등불의 남쪽이요 벼루의 북쪽에서215) 십수 년간 눈썹을 치켜뜨고 괴로움을 삼킨 분명한 효과를 이에 이르러 더욱 깨닫게 됩니다.정鼎(영호)의 연참鉛槧216)과 글 가방(書櫜)은 모두 울타리(芭蘺) 주변 사물에 속하니, 어찌 효빈效嚬217)을 일삼아 하겠습니까. 그저 처벌을 피하고자 억지로 망령된 붓을 꺼내 듭니다.송광사 시왕 탱화를 새로 조성한 기문경자년(1900) 2월 27일(松廣寺十王幀新成記庚子二月二十七日)하루는 어떤 객이 무주無住(머묾이 없음)에서 와서 말하길, “평범한 사원이라도 시왕의 존상尊像을 안치하지 않음이 없는데 하물며 해동의 큰 사찰로서 삼보사찰의 지위에 이름을 올려놓았고 일찍이 여러 성현께서 주지를 맡으신 곳인데 -
012_0723_c_01L答映湖講伯求韻在白羊山
012_0723_c_02L三陽已伏。六陰乘勝。近嬰恩憂。杜門
012_0723_c_03L潛靜。只以刁 [82] 圭爲急務。而况水聲鳥語
012_0723_c_04L上下相答。松影竹陰。左右叅差。思人
012_0723_c_05L一念。此時政劇。嶺雲江樹。朝暮瞻望。
012_0723_c_06L有何瓊琚。若自天殞。而飛落塵臼。忙
012_0723_c_07L手披讀。喜先聳眉。圭復呷下。牙臉生
012_0723_c_08L香。若其詩骨律格。抽出於莊韓之肚裡。
012_0723_c_09L書劔筆鋒。削截於銀銕之索下。章章錦
012_0723_c_10L繡江山。句句烟霞樓坮。私念於硯北
012_0723_c_11L燈南。十數年間。提眉喫辛之明效。到
012_0723_c_12L此益覺也。鼎鉛槧書櫜。都屬於芭蘺
012_0723_c_13L邊物。安事效嚬爲㢤。只圖免誅。强抽
012_0723_c_14L妄毫。
012_0723_c_15L
012_0723_c_16L松廣寺十王幀新成記庚子二月二
012_0723_c_17L十七日
012_0723_c_18L一日有客。自無住而來者曰。雖尋常寺
012_0723_c_19L院。莫不安十大王尊像。而况以海東
012_0723_c_20L宏刹。名叅三寶之位。曾是列聖之住持
012_0723_c_21L「八」底本傍註曰「六」{編}。「庚午」底本傍註
012_0723_c_22L曰「距今七百十七年」{編}。「肅宗十三」底本傍
012_0723_c_23L註曰「距今二百四十年」{編}。「癸卯」底本傍註
012_0723_c_24L曰「距今二百四年」{編}。「乙卯」底本傍註曰「距
012_0723_c_25L今二百六十七年」{編}。「庚寅」底本傍註曰「距
012_0723_c_26L今一百五十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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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4_a_01L어찌 시왕의 존상이 없습니까.”라고 하였다.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할머니 적삼을 빌려 입고 할머니에게 절하는 것이라.218) 의심에 대해 의심하면 의심이 어찌 풀어지겠습니까. 내가 벌써 의심한 지 오래되었는데 그대 또한 이와 같군요. 근래 『공덕록』본사本寺에 전해 오던 것을 얻었는데 ‘옹정雍正 병오년영조 2년(1726)에 비구 요안了眼이 명부㝠府의 실상實相을 고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194년 전입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존상이 있었는데 도광道光 22년헌종 8년(1842) 임인년 화재로 옥석玉石이 모두 불타 버렸고 사찰을 개창한 후에 옛 탱화를 그대로 안치하고서 존상을 조성할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가 많더라도 한 줄 기록만 못하니, 기록이 있는 것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그러나 옛 탱화는 언제 조성한 것인지 알지 못하며, 혼이 날아가고 채색이 흩어져서 시주(檀那)의 신심을 도울 수 없으니 새벽과 아침에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광서光緖 25년 기해년 가을광무光武 3년(1899)에 여러 논의가 바람 몰아치듯 하고 대중의 뜻이 풀 눕듯 하니, 산승 보정寶鼎이 창도하는 주인이 되어 손이 상함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대중의 금전 2천 정도를 모아, 같은 해 11월 3일에 시작하여 다음 해 경자년(1900) 2월 27일에 봉안하여 회향하였습니다. 아마도 불모佛母219)보응 현엄普應玄广의 기술일 것이니, 준제 오도準提吳道220)가 다시 나타난 것입니까. 어찌 그리 세밀하고 드러남이 이와 같은지요. 역력하고 은은함은 범선梵仙의 자비로운 모습을 옮겨 왔고, 문채 있고 찬란함은 용파龍婆의 자태를 추출한 것입니다. 만월滿月의 진용眞容221)이 완연히 지옥문 앞에서 석장을 휘두르는 것 같고, 시부(十殿) 명왕이 궤안 위에서 공안을 결정하는 듯합니다. 염부제閻浮提(이승)의 충효와 선악이 업경業鏡에 고스란히 비치고, 명부계㝠府界(저승)의 열의烈義와 상벌이 저울대에서 측량되는 듯합니다. 예전에 혼이 날아간 판관은 엄숙한 면목으로 변하였고, 이전에 채색이 흩어진 귀왕鬼王은 장엄한 형상으로 문득 바뀌었습니다. -
012_0724_a_01L而何獨無十王之尊像也。余曰。借婆
012_0724_a_02L衫拜婆年者也。疑於疑而疑何冰釋。吾
012_0724_a_03L已疑之久。子亦如是乎。近得功德錄。
012_0724_a_04L本寺
傳來有言曰。雍正丙午。英祖
二年比丘了眼
012_0724_a_05L㝠府實相改建云。距今一百九十四年
012_0724_a_06L也。然則昔有尊像。而去道光二十二年。
012_0724_a_07L憲宗
八年壬寅回祿。玉石俱焚。以剏寺後
012_0724_a_08L仍安舊幀。而末暇造像耶。傳說雖多。莫
012_0724_a_09L若一毫之錄。錄之所存。何足疑也㢤。
012_0724_a_10L然而舊幀不知何代所剏。而魂飛彩漫。
012_0724_a_11L不能助檀那之信慮。有晨夕之難存矣。
012_0724_a_12L光緖二十五年己亥秋。光武
三年 衆議風馳。
012_0724_a_13L輿情草偃。以山之釋寶鼎。爲倡導之
012_0724_a_14L主。莫悟傷手。鳩大衆金餘二千。同年
012_0724_a_15L十一月三日始。越庚子二月二十七日
012_0724_a_16L奉安而回向之。盖其佛母普應
玄广之技術也。
012_0724_a_17L準提吳道之重現耶。何其密顯之若是
012_0724_a_18L也。歷歷隱隱。移來於梵仙之慈容。彬彬
012_0724_a_19L煌煌。抽出於龍婆之眞姿。滿月眞容。
012_0724_a_20L完若振錫於獄門之前。十殿㝠王。况似
012_0724_a_21L決公於几案之上。閻浮提忠孝善惡。照
012_0724_a_22L印於業鏡。㝠府界烈義賞罰。測量於
012_0724_a_23L秤錘。昔之魂飛判官。變成肅嚴面目。
012_0724_a_24L前之彩漫鬼王。頓作莊嚴妙相。由是
-
012_0724_b_01L이로부터 시주(檀氏)의 믿음이 샘처럼 솟구치고 승려(闍梨)의 정성이 구름처럼 일어납니다. 이후로는 천당에서 상을 주고 지옥에서 벌을 내림이, 왕이 칼을 쥐어 살리고 죽임이 자재한 것과 같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대중께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향을 사르소서.”객이 기뻐하며 물러났다.경자년(1900) 3월에 다송산방茶松山房에서 쓴다.기로소 원당222)을 새로 세우는 일에 대한 상언223)당시의 사건은 따로 기록해 두었다.(耆老所願堂新建事上言狀其時事件在別錄)전라도 승주군 송광사의 승려 보정寶鼎본명 첨화添華은 목욕재계하고 백 번 절을 하며 기로소 존엄尊嚴224) 아래 삼가 상언上言합니다.엎드려 생각건대, 황제의 덕은 하늘처럼 크시니 영원히 밝은 일월처럼 우러러보고, 성대한 의식을 크게 거행하니 나라의 경사가 거듭 이름을 보게 됩니다. 칭송이 조정과 재야에서 들끓고 기쁨이 온 세상에 넘쳐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산간의 고요한 무리들 또한 교화(維化)의 대상 가운데 하나이니, 까마귀의 정성과 견마犬馬의 정성225)을 마음에 본받습니다.이 본사는 신라 혜린惠璘226)과 고려 보조普照가 창건한 것으로, 남쪽에는 천자암天子庵이 있고, 북쪽에는 천태성天台星, 서쪽에는 모후산母后山, 동쪽에는 대장봉大將峯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구역을 차지하니 지위는 삼보종찰에 참여하고, 16국사들이 이어서 주지를 하였고 여러 차례 조정의 진휼賑恤227)을 받았습니다. 태조 고황제께서 창업하신 초기에 무학국사無學國師가 이 산에 주석하니 ‘대승선종大乘禪宗’이라는 편액을 특별히 하사하셨고, 지금 대황제 폐하께서는 덕德이 삼조三朝228)와 부합하여 위로 기로소에 들어가는(入社) 경사를 받들고, 예禮는 구작九爵229)을 이루어 넉넉히 노인을 봉양하는 법전을 베푸셨습니다. 나라의 복이 영원히 창성할 것이요, 나라의 운명이 새로워집니다. 마침 이러한 보배로운 운수의 경사스런 모임에 어찌 고루 적시는 은택을 하소연하지 않겠습니까.이에 감히 죄를 무릅쓰고 우러러 아뢰노니, 원당願堂을 새로 지으라는 처분을 특별히 내려 주시어 성수聖壽가 만억 년 가도록 -
012_0724_b_01L檀氏之信泉湧。闍梨之誠雲興。從玆
012_0724_b_02L以徃。償之以天堂。罰之以地獄。如王
012_0724_b_03L秉釰。殺活自在。唯願大衆。稽首拈香。
012_0724_b_04L客喜而退之。庚子三月日茶松山房書。
012_0724_b_05L
012_0724_b_06L耆老所願堂新建事上言狀其時事
012_0724_b_07L件在別錄
012_0724_b_08L某道某郡某寺臣僧寶鼎。本名
添華齋沐百拜。
012_0724_b_09L謹上言于耆老所尊嚴之下。伏以帝德
012_0724_b_10L天大。仰視日月之長明。縟儀誕擧。聿
012_0724_b_11L覩邦慶之洊臻。頌騰朝野。喜溢寰宇。伏
012_0724_b_12L念山間寂靜之徒。亦維化中一物也。而
012_0724_b_13L烏鳥之誠。犬馬之忱。敢效于衷。維
012_0724_b_14L玆本寺。粤在羅麗惠璘普照之所剏。而
012_0724_b_15L南有天子庵。北有天台星。西有母后
012_0724_b_16L山。東有大將峯。中藏一區。位叅三寶
012_0724_b_17L宗刹。十六國師。相繼住持。而累蒙
012_0724_b_18L朝家賑恤矣。太祖高皇帝。創業之初
012_0724_b_19L國師無學。住錫玆山。特賜大乘禪宗
012_0724_b_20L之額。而今大皇帝陛下。德配三朝。上
012_0724_b_21L承入社之慶。禮成九爵。優施養老之
012_0724_b_22L典。國祚永昌。邦命維新。適玆寶運慶
012_0724_b_23L會。盍訴均霑之澤。玆敢冒罪仰瀆。特
012_0724_b_24L下願堂新建處分。俾聖壽萬億年。爲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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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4_c_01L축원하는 장소로 삼게 하소서. 죽음을 무릅쓰고 엎드려 기원합니다.임인년(1902) 11월 19일 기로소 처분處分.비제批題230) : 알았다. 처분대로 할 것. 30일 어보御寶 날인.팔상성도231) 청문232) 유치233)작법234)은 평상시와 같음.(八相成道請文由致作法如常)우러러 생각건대, 석가여래 대성大聖의 청정한 법계의 몸은 본래 나고 사라짐이 없는데 대비大悲 원력으로 드러내어 생生을 받으시니, 도솔타천兜率陀天235)에서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되고, 가비라국迦毘羅國236)에 내려오시어 ‘일체의성一切義成’237)이라 칭하셨다. 금단천자金團天子238)가 그 집을 선택하여 백정반왕白淨飯王239)을 부친으로 삼아, 흰 코끼리(玉象)가 태양을 타고 대술大術240)의 태로 오시었다. 금륜왕金輪王241)이 되어 무우수無憂樹(보리수) 아래 탄생하시어 10세 때 욕락欲樂242)을 받으시고 사문四門에 유관遊觀(돌아다니며 구경함)을 드러내셨다. 이에 8일 밤에 춘성春城(동궁)을 넘으시고 6년 동안 설산(雪嶺)에 머무셨다. 최후 수승한 몸243)으로 보리수 도량244)에 나아가 해탈의 깊은 인연을 원만하게 하시고 금강보좌金剛寶座245)에 오르셨다. 이로 말미암아 마군魔軍이 자비로운 힘을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돌아갔고, 유혹하던 여자들이 정심定心에 독을 끼치려다 패하여 추한 모습으로 바뀌었다.246)성불한 후에 교화 인연을 관찰하니, 이에 도리천忉利天 제석帝釋247)이 33천을 구름처럼 몰아오고 감인堪忍(이승) 계왕界王248)이 18범梵249)을 안개처럼 감싸고 와서, 이마를 땅에 대고 예를 갖추어(頭面作禮)250) 전법륜을 청하였다. 도수道樹(보리수) 아래에서 일어나 녹야원(鹿林園)251)으로 나아가사 사제四諦를 부연하여 먼저 5인252)을 제도하고, 삼승三乘을 설하여 마침내 5천 명을 구제하셨다. 사덕四德253)을 노래하사 삼이三伊254)를 드러내시고 만인(萬有)을 지시하여 일성一性(불성)으로 돌이키셨다. 그러나 유위법有爲法255)은 소멸함이 있음을 밝히고 무상無常(진제眞諦)은 생生이 없음을 드러내시고자, 머리를 학림鶴林256)에 두시어 두루 삼매의 문을 돌아다니시고 돌이켜 옥좌에 오르시어 -
012_0724_c_01L所之地。冒死伏祝。壬寅十一月十九日
012_0724_c_02L耆老所處分。批題。知悉處分向事。三
012_0724_c_03L十日着寶。
012_0724_c_04L
012_0724_c_05L八相成道請文
012_0724_c_06L由致作法
如常。
012_0724_c_07L仰唯釋迦如來大聖者。淨法界身。本無
012_0724_c_08L出沒。大悲願力。示現受生。洎兜率陀
012_0724_c_09L天。爲護明菩薩。降迦毘羅國。號一切
012_0724_c_10L義成。金團天子選其家。白淨飯王爲
012_0724_c_11L其父。玉象乘日。示來于大術胎中。金
012_0724_c_12L輪作王。創誕於無憂樹下。受欲樂於十
012_0724_c_13L歲。現遊觀於四門。於是踰春城於八夜。
012_0724_c_14L捿雪嶺於六年。以最後之勝體。詣菩提
012_0724_c_15L之道場。圓解脫之深因。登金剛之寶座。
012_0724_c_16L由是魔軍威懾於慈力。愁怖旋歸。媚女
012_0724_c_17L敗毒於定心。媸羸變質。旣成佛已。觀
012_0724_c_18L所化緣。伊乃忉利帝釋。雲歸於三十三
012_0724_c_19L天。堪忍界主。霧擁於一十八梵。頭面
012_0724_c_20L作禮。請轉法輪。起道樹下。詣鹿林園。
012_0724_c_21L演四諦。先度五人。說三乘。終濟五千。唱
012_0724_c_22L四德而顯三伊。指萬有而歸一性。然而
012_0724_c_23L明有爲之有滅。表無常 [83] 之無生。首卧鶴
012_0724_c_24L林。遍遊三昧之門。還登玉座。將復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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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5_a_01L일진一眞257)의 성품을 회복하셨다.258)이로써 아무개는 이번 달 오늘 정갈한 음식을 경건히 마련하고 우러러 오묘하게 돕는 분께 기도합니다.엎드려 생각건대, 이름난 우두향(牛首香)259)을 사르고 향적香積의 좋은 음식을 쪄 내어 지극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자비에 귀의하고 덕에 귀의합니다. 사사로운 마음을 이기는 정성을 타심통으로 멀리서 살피시고, 인연 있는 청을 혜안으로 멀리 살피소서. 삼가 한 마음을 잡아 먼저 삼청三請260)을 나열합니다.나무(南無)261) 운운云云.도사다천覩史多天(도솔천) 위에서 호명護明 존호가 되고, 마가다국(摩竭提國)262)에서 마야摩耶 성모의 꿈에 감응하니, 금단천자金團天子가 그 집을 선택하여, 백정반왕白淨飯王을 부친으로 삼으셨네. 이에 구름거리(雲衢, 하늘)에서 일륜日輪에 코끼리를 매어 달리니 60억 제천諸天이 의논하여 호종護從하고, 석씨 가문에 성스런 몸을 용처럼 서리니 삼천계 염부주에 인자함이 성대하도다.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은 우리 본사本師263) 석가모니불이라네(是我本師釋迦牟尼佛). 오직 바라건대 운운.
白淨飯王爲其父 백정반왕이 부친이 되고
金團天子選其家 금단천자가 그 집을 선택하여
日輪象駕來摩竭 일륜에 코끼리 매어 마가다국 오시니
龍蟠胎身號釋迦 용처럼 서린 태아를 석가라 부르네
나무 운운.10개월이 차서 4월 8일에 성모 마야麽耶께서 채녀采女(궁녀)들을 데리고 룸비니(藍毘尼)264) 동산에 나들이 나가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고 오른쪽 옆구리로 낳으셨네. 일곱 줄기 연꽃이 절로 나타나 발을 받드니 수레바퀴처럼 크도다. 일곱 걸음을 용처럼 걸으시고 스스로 음성을 내니 웅장하기 사자후 같아라. 아홉 용들이 물을 뿜어 태자의 몸을 씻기고, 하늘에서 꽃을 뿌리고 정성스레 기악妓樂265)을 받들었네.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甲寅四月初八日 갑인년 사월 초파일에266)
聖母遊戱藍毘園 성모께서 룸비니 동산에 나가시어
攀樹枝兮降右脇 나무 잡고 오른쪽 옆구리로 낳으사
蓮花承足大如輪 연꽃이 발을 받드니 수레처럼 크도다
나무 운운.사문四門에서 네 종류의 상을 보시니 생로병사가 무섭고 두렵도다. 모래사장에서 사문沙門의 모습이 지팡이 짚고 현신現神함을 만나니267) 공경하고 우러를 만하였네. -
012_0725_a_01L眞之性。是以云云。今月是日。虔設淨
012_0725_a_02L饌。仰祈妙援者。右伏以爇牛首之名香。
012_0725_a_03L蒸香積之妙饋。至意至誠。歸慈歸德。
012_0725_a_04L他心遠鑑尅念之誠。慧眼遙觀有緣之
012_0725_a_05L請。謹秉一心。先陳三請。南無云云。覩
012_0725_a_06L史多天上。爲護明尊號。摩竭提國中。
012_0725_a_07L感摩耶聖夢。金團天子選其家。白淨
012_0725_a_08L飯王爲其父。於是象駕日輪於雲衢。六
012_0725_a_09L十億諸天。議以護從。龍蟠聖身於釋種。
012_0725_a_10L三千界閻浮。仁且熾盛。兜率來儀相。
012_0725_a_11L是我本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白淨
012_0725_a_12L飯王爲▼(女+耶)父。金團天子選其家。日輪象
012_0725_a_13L駕來摩竭。龍蟠胎身號釋迦。南無云云。
012_0725_a_14L十箇月滿。四月八日。聖母麽耶。將諸
012_0725_a_15L采女。遊藍毘尼園。攀無憂樹枝。右脇
012_0725_a_16L降誕。七莖蓮花。自現承足。大如車輪。
012_0725_a_17L七步龍行。自作音聲。雄如獅吼。九龍
012_0725_a_18L吐水。灌沐太子之身。諸天散花。供獻
012_0725_a_19L妓樂之誠。毘藍降生相。是我本師釋迦
012_0725_a_20L牟尼佛。唯願云云。甲寅四月初八日。
012_0725_a_21L聖母遊戱藍毘園。攀樹枝兮降右脇。蓮
012_0725_a_22L花承足大如輪。南無云云。四門見四種
012_0725_a_23L之相。生病老死。可憎可怖。沙場遇沙
012_0725_a_24L門之像。執錫現神。可欽可仰。四山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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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5_b_01L사산四山268)은 사생四生의 업의 근심이니 싫증 내어 멀리하고, 불자佛子(사문)는 불타佛陀269)의 진제眞諦이니 따라가 배우도다. 온갖 기악妓樂은 그저 슬픔과 근심만 증가시키니, 일념의 오묘한 도리에 대한 초심을 빼앗기지 않는다네.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四門第觀四山相 사문에서 사산의 형상을 보니
老死病生眞可愁 생로병사가 진정 근심이로다
最後沙門淸淨法 최후의 사문은 청정한 법이요
百千妓樂徒增悲 온갖 기악은 그저 슬픔만 더하네
나무 운운.조병천자澡甁天子가 깨닫게 하여 기녀의 추한 얼굴을 드러내고,270) 정거천인淨居天人271)이 받들어 찬다카(車匿)272)가 뛰어넘어 엄중히 수레를 몰았네. 사문四門의 병사들은 갑자기 피곤해지고 사왕四王이 건척揵陟273)의 네 발을 받들어, 8일 밤에 성을 넘으니 팔부八部274)가 태자의 팔난八難275)을 옹위하도다. 석범釋梵(제석)이 수레 덮개를 잡으니 궁인들이 깨달을 수 없고, 기이한 인연으로 앞서 인도하니 그 은애恩愛를 따라가 얽을 수 없도다. 성을 나가서는 제천諸天이 사라졌도다.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四兵頓疲宮門靜 사문의 병사들이 지쳐 궁문이 고요하니
釋梵執盖作護從 석범이 덮개를 잡아 호종이 되고
四王奉持飛揵馬 사왕이 받들어 건척을 날게 하여
踰城八夜八部擁 8일 밤에 성을 넘으니 팔부가 옹위하네
나무 운운.설산에 가서 고요한 숲에 이르러, 칼을 휘둘러 검은 머리 삭발하니 탑이 천궁에서 일어나고,276) 곤룡포를 가죽옷으로 바꿔 입으니 모습이 산의 노루 같아라. 두루 선인들을 찾아가 도법을 물으며 용굴277)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결국 해탈하지 못하고, 연하連河278)에 가기도 했으나 홀로 정려靜慮279)를 구하게 되었네. 날마다 마름을 먹으니 모습이 고목처럼 되고 밤에는 수화水火를 끊으니 목숨이 실낱같구나. 끝내 죽을 받아 드시고280) 대도를 이루게 되도다.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徃至雪山屆靜林 설산에 가서 고요한 숲에 이르러
揮刀落髮誓弘深 칼로 삭발하고 깊은 서원 세워서
遍詣衆仙非究竟 두루 선인들 찾아가나 결국 아니니
欲求大道覔吾心 대도를 구하려면 내 마음 찾으라
나무 운운. -
012_0725_b_01L是四生之業患。厭而遠之。佛子元是佛
012_0725_b_02L陀之眞諦。追而學之。百千妓樂。徒增
012_0725_b_03L悲憂。一念妙道。莫奪初心。四門遊觀
012_0725_b_04L相。是我本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
012_0725_b_05L四門第觀四山相。老死病生眞可愁。最
012_0725_b_06L後沙門淸淨法。百千妓樂徒增悲。南無
012_0725_b_07L云云。澡淨 [84] 天子以驚覺。彰妓女之醜容。
012_0725_b_08L淨居天人以捧持。躍車匿而嚴駕。四兵
012_0725_b_09L頓疲。四王奉揵陟之四足。八夜踰城。
012_0725_b_10L八部擁太子之八難。釋梵執盖。宮屬莫
012_0725_b_11L能覺知。奇緣先導。恩愛莫敢追絆。出
012_0725_b_12L城旣畢。諸天忽隱。踰城出家相。是我
012_0725_b_13L本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四兵頓疲
012_0725_b_14L宮門靜。釋梵執盖作護從。四王奉持飛
012_0725_b_15L揵馬。踰城八夜八部擁。南無云云。徃
012_0725_b_16L至雪山。屆閑靜林。揮寶刀而落紺髮。
012_0725_b_17L塔起天宮。將衮服以貿皮衣。形叅山鹿。
012_0725_b_18L遍詣衆仙。歷問道法。或入龍窟。竟非
012_0725_b_19L解脫。或徃蓮 [85] 河。獨求靜慮。日食麻菱
012_0725_b_20L形如枯木。夜絕水火。命如懸絲。終受
012_0725_b_21L麋 [86] 粥。方成大道。雪山修道相。是我本
012_0725_b_22L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徃至雪山屆
012_0725_b_23L靜林。揮刀落髮誓弘深。遍詣衆仙非究
012_0725_b_24L竟。欲求大道覔吾心。南無云云。欲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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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5_c_01L궁극에 이르길 구하려고 총목방叢木房281)을 방문하시고, 수승한 체體를 얻고자 홀로 보리수 아래 나아가셨네. 해탈문에 들어감에 삿된 마귀의 장애가 없더라도 금강보좌 위에 앉음에 파순波旬282)의 훼방이 있구나. 자비력을 일으켜 움직이니 80억 무리가 곧장 낙담하고, 정심定心으로 들어가 편히 앉으니 10종의 마궁魔宮이 홀연 무너지도다.283) 연꽃이 물에서 솟아나듯 찬란함이 없는 곳 없고, 밝은 달(桂月)이 공중에 걸린 듯 광명이 빛나도다.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菩提樹下金剛座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에서
意外波旬試道情 뜻밖에 파순이 도의 실정을 시험하나
慈力泰然心不動 자비력으로 태연히 마음에 동요 없어
魔宮傾覆法王平 마궁이 무너지고 법왕은 평안하도다
나무 운운.7일 동안 사유하여 범천梵天의 청을 받았고 십신十身284)이 원만하니 그림자와 메아리의 근기로 응당 공양 받네. 문득 화엄을 설하시니 작은 근기로 자리에서 듣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고, 물러나 아함을 펼치시어 자리에서 물러나 참석하지 못한 하열下劣한 이들도 인도하시네. 방등경方等經285)과 반야경般若經286)은 교화 형식(化儀)의 점법漸法이요, 『원각경』과 『법화경』은 근기를 따르는 돈교頓敎로다. 삼승의 방편을 마치니 일승一乘의 실지가 원만하도다.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自古鹿林演說場 예로부터 녹림은 연설하던 장이라
甘言苦口日何長 달콤한 말과 쓰디쓴 말을 날마다 길게
四十餘年方便法 사십여 년 동안 펼쳤던 방편의 법은
機儀盡是渡衆生 근기와 형식이 모두 중생 구제에 있네
나무 운운.교화 인연을 마치고 열반의 때가 이르니, 유루有漏287)의 세계 버리고 무상한 이치 보이셨네. 구시라성拘尸羅城288)에 가서 사라수沙羅樹289) 사이로 들어가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일진一眞의 본성을 회복하시려고 서쪽으로 얼굴을 향해 입적하여 삼매의 문에 유희하시도다. 일월이 떨어지고 천지가 엎어지는 듯한데, 7일 동안 금관金棺에 가려서도 여전히 다비의 법칙을 기다리고,290) 두 발의 뒤꿈치(玉趺)를 보이시어291) 정법正法의 안장眼藏292)을 부촉하셨다네. -
012_0725_c_01L臻極。委訪叢木房中。爲得勝體。獨詣
012_0725_c_02L菩提樹下。解脫門中。雖無邪魔之罣碍。
012_0725_c_03L金剛座上。猶有波旬之阻戱。起慈力而
012_0725_c_04L運動。八十億衆。直下落膽。入定心而
012_0725_c_05L安座。十種魔宮。忽地傾覆。類蓮花而
012_0725_c_06L出水。赫煥無方。若桂月之懸空。光明
012_0725_c_07L洞徹。樹下降魔相。是我本師釋迦牟尼
012_0725_c_08L佛。唯願云云。菩提樹下金剛座。意外
012_0725_c_09L波旬試道情。慈力泰然心不動。魔宮傾
012_0725_c_10L覆法王平。南無云云。七日思唯。旣受
012_0725_c_11L梵天之請。十身圓滿。應供影響之機。
012_0725_c_12L頓說華嚴。堪嗟小機之在座不聞。退演
012_0725_c_13L阿含。引道下劣之退席不叅。方等般若。
012_0725_c_14L卽化儀之漸法。圓覺法華。乃隨機之頓
012_0725_c_15L敎。三乘方便旣畢。一乘實地圓滿。鹿
012_0725_c_16L苑轉法相。是我本師釋迦牟尼佛。唯願
012_0725_c_17L云云。自古鹿林演說場。甘言苦口日何
012_0725_c_18L長。四十餘年方便法。機儀盡是渡衆生。
012_0725_c_19L南無云云。化緣旣畢。湼槃時至。捨有
012_0725_c_20L漏之界。示無常之義。徃拘尸羅城。入
012_0725_c_21L沙羅樹間。北首而卧。將復一眞之性。
012_0725_c_22L西面而化。遊戱三昧之門。猶日月之墜
012_0725_c_23L落。若天地傾覆。掩七日之金棺。猶待
012_0725_c_24L茶毘之軌則。示雙足之玉趺。必付正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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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6_a_01L쌍림열반상雙林湼槃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四雙八隻鶴林間 네 쌍 여덟 그루의 사라수 사이에서
首北面西般湼槃 머리는 북으로 얼굴은 서로 반열반에 드시니
一眞心性無傳處 일진의 심성을 전할 곳 없어
强掩麽城七日關 억지로 마성을 7일 동안 잠갔네기로소 원당 성수전 창건에 대한 상언임인년(1902) 10월 상경하여 머물다가 계묘년(1903) 6월에 상언함. 당시 사실은 따로 기록해 두었다.(耆老所願堂聖壽殿剏建事上言狀壬寅十月日上京留連。至癸卯六月日。上其時事實在別錄中。)전라도 승주군 송광사 신승臣僧 보정寶鼎은 목욕재계하고 백배百拜하며 기로소 존엄尊嚴 아래 삼가 상언上言합니다.엎드려 생각건대, 하늘의 해가 비추고 지혜의 구름이 덮듯이 획하劃下의 덕과 성수전 건립의 처분을 넉넉히 받으니, 사체事體가 중대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옵는데 본소本所(기로소)의 감칙甘飭293)과 탁지부(度部)의 훈척訓尺(증명서)이 본군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침 체임遞任294)과 맞물려서 세 번이나 늦어진 후에 단지 가까운 면面에서 징수하기 어려운 가결전加結錢295)으로 분배하여 출첩出帖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체거遞去296)하옵거니와 감독(監蕫)은 또 어찌할 수 없습니다. 막중한 성수전의 일로 획하한 금전에 대해 어찌 이처럼 심상한 조치를 용납하겠사옵니까? 또한 기와로 말하자면 요즘 장마와 무더위로 물과 흙이 인몰되어 기와 굽기가 극히 어려운 까닭에 가까운 지역을 면밀하게 탐색하니, 흥양군興陽郡 여도진呂島鎭 낙안군樂安郡 선소창船所倉297)과 본군 북창北倉에서 매년 탈락하고 남은 것들에 대해 상세히 조사하여 기록하여 올리오며, 새로 성수전 세우는 택일기擇日記298)를 정선하여 올립니다.엎드려 빌건대, 지성至聖(임금)께서 살피신 후에 위의 획하 금액의 독봉督捧299)과 세 곳의 목재와 기와를 허락하신 것에 대해 특별히 처분하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
012_0726_a_01L之眼藏。雙林湼槃相。是我本師釋迦牟
012_0726_a_02L尼佛。唯願云云。四雙八隻鶴林間。首
012_0726_a_03L北面西般湼槃。一眞心性無傳處。强掩
012_0726_a_04L麽 [87] 城七日關。
012_0726_a_05L
012_0726_a_06L耆老所願堂聖壽殿剏建事上言狀
012_0726_a_07L壬寅十月日上京留連。至癸卯六月
日。上其時事實在別錄中。
012_0726_a_08L某道某郡某寺臣僧寶鼎。齋浴百拜。謹
012_0726_a_09L上言于耆老所尊嚴之下。伏以天日之
012_0726_a_10L所照。慧雲之所覆。優蒙劃下之德。建
012_0726_a_11L殿之處分。事體莫不重大。故尅日蕫役
012_0726_a_12L是白齊。本所甘飭果度部訓尺。卽到付
012_0726_a_13L本郡。則適値遞任是如。三次靳遲後。
012_0726_a_14L只以近面加結錢難捧者。分排出帖是
012_0726_a_15L乎遣。卽爲遞去是乎所。監蕫亦莫可奈
012_0726_a_16L何是白如乎。莫重聖殿之役。劃下之錢。
012_0726_a_17L寧容若是尋常擧措是白乎旀。且以瓦
012_0726_a_18L子言之。方今潦炎。水土湮沒。陶瓦極
012_0726_a_19L難故。備探近地爲乎尼。興陽郡呂島鎭
012_0726_a_20L樂安郡船所倉。本郡北倉。逐年脫落。
012_0726_a_21L所餘者詳査錄不是乎旀。新建聖壽殿
012_0726_a_22L擇日記精選賚上。伏乞至聖垂察敎是
012_0726_a_23L後。上項劃下錢督捧事。三處材瓦。賜
012_0726_a_24L許事件。特爲處分敎是乎乙喩。冒死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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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6_b_01L죽음을 무릅쓰고 엎드려 아뢰오며, 택일기는 또한 지명至明(임금)께서 밝히 살피시고 출척黜陟300)의 가부를 처분해 주시기를 다시 기다리옵나이다. 간절한 기도와 지극한 정성을 감당하지 못하며 천만 번 천만 번 바라옵나이다.광무 6년(1902) 7월.비제批題 : 새로 세우는 일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땅히 각 부서에 감칙甘飭하여 속히 일을 마치도록 할 것. 6월 24일 어보御寶 날인.또 상량문과 액호, 예폐301)에 대한 상언(又樑文額號禮幣事上言狀)전라도 승주군 송광사 신승臣僧 보정寶鼎이 목욕재계하고 백배하며 기로소 존엄 아래 삼가 상언합니다.공경히 생각건대,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는 덕이 삼조三朝에 부합하고 교화가 만방에 넘칩니다. 성수聖壽가 육십을 바라보는 처음(51세)에 어가御駕가 오색구름을 헤치고 기로소(耆社)에 들어가셨습니다. 어가를 여러 음악이 감싸고 예연禮宴을 펼치니 실로 5백 년 이래 드문 성대한 행사이며, 진실로 삼천리 태평 제국입니다. 특별히 도신道臣(관찰사)에게 성수전을 본사에 새로 세우라고 명하시니 사체가 중하여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여 이미 절반은 지났사옵나이다. 무릇 상량이라 일컫는 때에 상량문을 찬술하여 적는 것과 금은ㆍ옥백玉帛302)의 예단은 덕을 기리고 폐백을 바치는 규범이니, 사연을 들어 죽음을 무릅쓰고 우러러 아룁니다.엎드려 빌건대, 지성至聖께서 살피신 후에 성수전 상량문 찬술과 액호를 짓는 과역을 특별히 허락하여 내려 주시옵고, 예단 폐물을 넉넉히 더하여 처분하여 주시는 등 황공한 연유에 대해 저는 처분이 어떠하실지 알지 못하옵나이다. 간절한 기도를 감당하지 못하옵나이다.광무 7년 계묘년(1903) 7월.비제批題 : 마땅히 처분이 있을 것. 내탕고內帑庫에서 홍공단紅貢緞 1필을 내 주고, -
012_0726_b_01L望爲白乎旀。擇日記亦至明照察。黜
012_0726_b_02L陟可否。更俟處分之地。無任懇禱至
012_0726_b_03L誠千萬千萬。光武六年癸卯七月日。批
012_0726_b_04L題。新建之役。不可不念。當甘飭各
012_0726_b_05L部矣。不日竣役向事。六月二十四日
012_0726_b_06L着寶。
012_0726_b_07L
012_0726_b_08L又樑文額號禮幣事上言狀
012_0726_b_09L某道某郡某寺臣僧寶鼎。齋沐百拜。謹
012_0726_b_10L上言于耆老所尊嚴之下。恭唯我大皇
012_0726_b_11L帝陛下。德配三朝。化溢萬方。聖壽望
012_0726_b_12L六之初。御駕披五雲。而入耆社。金輦
012_0726_b_13L擁衆樂。而設禮宴。實五百年罕有之晟
012_0726_b_14L擧。寔三千里太平之帝國。特命道臣
012_0726_b_15L新建聖殿於本寺。事體旣重。尅日蕫役
012_0726_b_16L剏已過半是白如乎。凡稱上樑之時。樑
012_0726_b_17L文記述之撰寫。金銀玉帛之禮單。卽頌
012_0726_b_18L德獻幣之䂓矩。敢擧事緣。冒死仰達。
012_0726_b_19L伏乞至聖照鑑敎是後。聖壽殿樑文記
012_0726_b_20L述。額號撰寫課役。特爲許賜爲白乎旀。
012_0726_b_21L禮單幣物。優加處分敎是乎等。惶恐緣
012_0726_b_22L由事。伏未知處分如何敎是乎喩。無任
012_0726_b_23L懇禱之地。光武七年癸卯七月日。批題。
012_0726_b_24L當有處分向事。內下紅工 [88] 縀一疋。寫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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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6_c_01L상량문과 액호 6자는 윤용선尹容善303)이 짓고 이순익李淳翼304)이 쓰라고 칙하勅下한다. 수자水字 은화 3원과 엽전 2백 냥.풍암305) 조사의 부도를 비전에 봉안하는 기문정사년(1917) 가을(楓嵓祖師浮屠奉安碑殿記丁巳秋)물에는 근원이 있어 유장하게 흐르고,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어 지체가 움직인다.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얻고 지체를 인하여 혈맥을 움직이는 것은 상세하게 볼 수 있다. 근원을 막고 흐름을 구하며 혈맥을 끊고 지체를 잇는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지금 조계산의 불조佛祖 원류는 유래하는 바가 있다. 33세世 아래이자 5종파의 위로서306) 다른 산(종파)에 대해서는 족히 논할 만한 게 없는 것 같고, 임제臨濟의 아래이자 태고太古의 후예로서307) 다른 사찰과 매우 다르다. 특수한 것으로는 태고의 6세손으로 부용芙蓉(영관靈觀)이 있고 부용의 아래에 청허淸虛와 부휴浮休 두 가지가 있어서 각기 종풍宗風을 퍼뜨렸다. 부휴의 아래 적손嫡孫들이 등불을 이어 끊이지 않았는데 유독 조계산이 가장 성대하다. 그래서 이에 돌을 다듬고 묘소를 쌓아 비석을 세우거나 비명을 새기니, 부휴와 벽암碧嵓, 취미翠微, 백암栢庵, 무용無用, 영해影海, 풍암楓嵓, 묵암默庵, 환해幻海308)이다. 9탑을 차례로 세우니 진주를 이음에 차례 있음과 같고, 주변 계파의 나열은 흩어진 별들이 가지런하지 않음과 같다. 어찌 공경히 감탄하지 않겠는가.지난 건륭乾隆 연간309)에 묵암默庵 화상의 동생인 벽담碧潭310) 대사가 거짓된 청오靑烏311) 비결에 미혹하여 풍암 조사의 탑을 보조普照(감로탑)의 서북쪽(乾) 모퉁이로 옮겼다. 벽담이 왼쪽이 되고 회계會溪312)가 오른쪽이 되니, 풍암 노숙이 보처補處313)의 소목昭穆314)을 얻는다 한들 머리와 발의 바른 혈맥의 차례를 잃어버림은 어찌할 것인가. 근원을 막고 흐름을 구하며 혈맥을 끊고 지체를 잇는다 하리니, 영원하길 구하나 어찌 가능하겠는가. 하물며 무신년(1908) 병화4월 8일에 일본인 안정安正이 불을 질렀다.에 두 암자315)가 혹독하게 화재 변란을 당하여 -
012_0726_c_01L文額號六字。勅下尹容善撰。李淳翼書。
012_0726_c_02L水字銀貨三元。葉錢二百兩。
012_0726_c_03L
012_0726_c_04L楓嵓祖師浮屠奉安碑殿記丁巳秋
012_0726_c_05L水有源而流長。人有脉而枝動。沂流得
012_0726_c_06L源。因枝運脉者。見之詳矣。塞源求流
012_0726_c_07L斷脉連枝者。未得聞也。今曹溪佛祖源
012_0726_c_08L流。有所自來。卅三之下。五派之上。自
012_0726_c_09L若於他山無足可論。而臨濟之下。太
012_0726_c_10L古之後。逈異諸刹。有其特殊者。卽太
012_0726_c_11L古六世。有芙蓉。蓉之下。有淸虛浮休
012_0726_c_12L兩枝。各播宗風。而唯浮休之下嫡孫。燈
012_0726_c_13L燈不絕者。獨曹溪最盛也。故玆攻石而
012_0726_c_14L封塚。或樹碑而勒銘。曰浮休碧嵓翠微
012_0726_c_15L栢庵無用影海楓嵓默庵幻海也。九塔
012_0726_c_16L之第立。若聯珠之有序。傍派之羅列。
012_0726_c_17L如散星之不齊。孰無欽嘆哉。粤在乾隆
012_0726_c_18L年中。默庵和尙之弟。碧潭大師。惑於
012_0726_c_19L靑烏之誣訣。移楓嵓祖塔于普照之乾
012_0726_c_20L隅。碧潭而左之。會溪而右之。雖使
012_0726_c_21L楓老得補處之昭穆。奈失頭足正脉之
012_0726_c_22L位次何也。可謂塞源討流。斷脉連枝
012_0726_c_23L者。求欲長遠。烏可得也。況戊申兵燹。
012_0726_c_24L四月十八日。倭
人安正冲火也。兩庵酷遭鬱攸之變。一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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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7_a_01L보방寶坊(사찰) 전체가 홀연 범과 표범의 굴로 변하고, 세 구의 안탑鴈塔316)이 돌연 여우와 이리의 마당에 서게 되었다. 지난날 벽담 대사의 청오靑烏 면목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아아, 안타깝도다.대정大正 5년청나라 광서光緖 41년,317) 조선 개국 525년이다. 병진년(1916) 봄에 본사 주지설월 용섭雪月龍燮318)가 의로운 일을 시작하자 대중이 모두 즐거워하였다. 같은 해 4월 8일에 풍암 조사의 탑을 옮겨 비전碑殿 본좌本座에 봉안하였다. 영해影海 부친이 그 머리를 잇고 묵암默庵 후손이 그 발을 계승하니, 저 깨진 거울이 다시 합하고 이지러진 달이 다시 둥글어짐이다. 진주가 합포合浦로 돌아오니319) 진주가 어찌 합포를 떠났겠는가. 부처님이 보리도량을 떠났겠는가. 부처님이 보리도량에 항상 머묾이 정녕 좋은 증거가 된다. 우리 조사의 탑은 비전碑殿을 떠나지 않았다. 이미 보조普照(의 가문)에 올라 보조를 떠나지 않고 항상 비전에 머문다.불조佛祖의 동정을 어찌 감히 색상의 왕복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이 혹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전말을 기록하여 보임으로써 혈맥을 끊고 지체를 이으려는 무리들에게 훈계하여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구하고 겁석劫石320)의 시간에 진주를 이어 사찰(松門)이 영원히 평온하게 하길 바라노라. 오직 우리 조계산 후손(雲孫)들은 벽암 대사의 미혹과 설월 선사의 의로움에 대해 능히 비난과 칭찬으로 점검함이 있을 것인가.『조선불교약사』를 읽은 감상을 논함권퇴경321)이 서술한 책정사년(1917) 겨울(讀佛敎畧史感想論權退耕所述略史丁巳冬)역사가의 필체(史筆)란 천하의 정령精靈이며 고금의 공론입니다. 하늘에 있으면 별이고 땅에 있으면 산천이며 인간에 있어서는 영특한 기운이 됩니다. 그 기를 받아 터럭을 모으니 혹 터럭 하나의 차이가 있으면 천 년 동안 남을 한이 될까 염려하니 역사가의 필체가 막중하고 큼이 이와 같습니다. 어찌 삼가고 두렵지 않겠습니까.귀좌貴座322)께서 찬술한 『조선불교약사』 가운데 신라와 고려 고승과 운석韵釋,323) 그리고 삼한 조선(本朝)의 뛰어나고 기이한 자취들이 -
012_0727_a_01L寶坊。忽作虎豹之窟。三軀鴈塔。突立
012_0727_a_02L狐狸之場。昔日碧師靑烏之面目。果安
012_0727_a_03L在者乎。嗚嗚嘻嘻。大正五年淸光緖四十
一年鮮開國
012_0727_a_04L五百廿
五年也丙辰春。本住持雪月
龍燮倡儀 [89] 。大衆
012_0727_a_05L咸悦。同四月八日。運楓嵓祖塔。安碑
012_0727_a_06L殿本座。影父繼其頭。默孫承其足。毉
012_0727_a_07L彼破鏡復合。缺月重圓。珠還合浦。珠
012_0727_a_08L何離於合浦。佛離菩提場。佛恒住於
012_0727_a_09L菩提場者。正爲良證也。吾祖之塔。不
012_0727_a_10L離碑殿。已昇普照。不離普照。常住碑
012_0727_a_11L殿。佛祖之動靜。安敢以色相往復測度
012_0727_a_12L也哉。然而事或不然。錄示顚末。戒其
012_0727_a_13L斷脉連枝之徒。庶圖沂流討源。聯珠
012_0727_a_14L刼石。永鎭松門。唯我曹溪雲孫。至於
012_0727_a_15L碧師之惑誣。雪公之倡義也。能有毁讃
012_0727_a_16L而檢點也麽。
012_0727_a_17L
012_0727_a_18L• 讀佛敎畧史感想論權退耕所
述略史丁巳冬
012_0727_a_19L夫史筆者。天下之精靈。古今之公論也。
012_0727_a_20L在天爲星辰。在地爲岳瀆。在人爲英特
012_0727_a_21L之氣。受其氣而蔟毫。或有一髮之差。倘
012_0727_a_22L慮遺千載之恨。史筆之重且大若此。豈
012_0727_a_23L不愼且畏哉。貴座所撰畧史中。羅麗
012_0727_a_24L之高僧韵釋。三韓本朝之勝賞異蹟。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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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7_b_01L찬란하고 분명하며 숨고 흩어진 것들을 수습하여, 요충지(關坊)에 요점을 모으고 네거리에 드러내어 게시하였으니, 그 신이하고 정령精靈함은 아름다움을 후세에 남길 공론이 되기에 적합합니다. 한 가지 작은 안타까움이 있다면 조계산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모은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완성한 장소에 대해 주소를 기재하지 않았고, 구곡龜谷324) 조사의 설화를 운운하면서 또한 주소를325)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인명고人名考 가운데 보조普照의 성姓을 조趙326)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약사’의 명칭은 이로 말미암아 얻은 것입니까. 간략히 할 만한 것을 간략히 함은 괜찮지만 간략히 할 수 없는 것을 간략히 함은 어찌 천고에 한을 남김이 되지 않겠습니까.생각건대, 우주宇宙 옹翁의 창간 화설話說화설만 간행하고 송설頌說은 간행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초판이다.의 일에 주소를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미천자彌天子의 향산香山 설화화설과 송설을 합친 이름이다. 설화를 아울러 간행했으니 이것은 재판이다.의 간행327)에 우주 옹 화설의 옛 기록은 싣지 않았습니다. 설파雪坡328) 노스님의 대경大經 사업에 백암栢庵 노스님이 신주神州329) 바다에 떠돌았던 큰 인연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소은과華嚴經疏隱科』330)의 사업에 회암晦庵331) 노스님이 창안하여 기록했던 선線을 매몰하였습니다. 백파白坡332) 노스님이 『대승기신론』을 신간한 사업에는 백암 노스님이 회편會編하여 간행한 업적333)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백암 노스님의 『치문경훈緇門警訓』 주석 사업에는 태고太古 조사가 유통한 단서를 수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몇 가지 조항들은 이미 학계에서 천고의 한으로 남게 되었으니 엉터리라는 비방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의 고견과 식견으로 구준衢樽334)에 만취하여 세상의 찬란한 문화를 누리고 방외方外의 철학 서적도 만끽하여, 지혜의 칼과 어휘의 창이 긴요한 곳을 유린하고, 쇠를 뽑고 못을 끊을 정도로335) 얼크러진 사이에 지침이 되건만 어찌 알지 못하고 그러하십니까?필시 번쇄함을 꺼려서 그러한 것이겠지요. 번쇄함을 꺼린다면 아방亞房(선방)으로 돌아가 ‘무無’ 자字 화두를 들지 않고 서재(書舘)에 앉아 역사가의 필체를 휘둘러 -
012_0727_b_01L然而明著。索隱而收散。會要於關坊。
012_0727_b_02L揭露於衢肆。其神異精靈。適足爲流芳
012_0727_b_03L之公論也。而至若一髮之所恨者。卽曹
012_0727_b_04L溪山眞覺國師所集拈頌成處。不載住
012_0727_b_05L所。龜谷祖師說話述云。亦不明住所。
012_0727_b_06L人名考中。普照姓趙云者。何也。畧
012_0727_b_07L史之名。由玆而得乎。可畧而畧之可
012_0727_b_08L也。不可畧而畧之。那無遺恨於千古耶。
012_0727_b_09L窃惟宇宙翁之創刊話說但刊話說。未刊
頌說。此初刊也。之
012_0727_b_10L役。不明住所也。彌天子之香山說話
012_0727_b_11L話說頌說合名。說話
并刊。此卽二刊也。之刊。不載宇宙翁話
012_0727_b_12L說之舊錄也。雪坡翁之大經之役。不載
012_0727_b_13L栢庵老神州海泊之大緣起也。又述華
012_0727_b_14L嚴隱科之役。昧沒晦庵翁創錄之線也。
012_0727_b_15L白坡老之新刊起信之役。不載栢庵翁
012_0727_b_16L會編剞劂之績也。栢庵老之註警訓之
012_0727_b_17L役。不收太古祖流通之緖也。此數條者
012_0727_b_18L旣遺學家千古之恨。而不欲負杜撰之
012_0727_b_19L誚而得乎。以師之高見宏識。滿醉衢樽。
012_0727_b_20L旣飫域中之文華。飽采方外之哲牘。而
012_0727_b_21L智釰詞鋒。遊刃於肎綮之處。拔鐵截釘。
012_0727_b_22L指針於盤錯之間也。豈不知而然哉。必
012_0727_b_23L憚煩而然矣。旣云憚煩。何不歸亞房
012_0727_b_24L觀無字。而坐書舘揮史筆。自買宇宙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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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7_c_01L스스로 ‘우주옹ㆍ미천자’ 등의 엉터리 이름을 사십니까. 아아, 천은자天隱子336)가 말하길, “승국勝國337) 진각眞覺 대사가 큰 지식으로 불일佛日(지눌) 노스님의 밀전密傳을 얻어 12부部로 시작하여 제가잡기諸家襍記로 마무리하여, 도원道原338)의 『경덕전등록景德傳登錄』에 맞서 한 편을 집성하여 ‘염송拈頌’이라 명명하였고, 책이 이루어지자 구곡 각운龜谷覺雲에게 전하고, 각운이 받아서는 바로 간행하여 배포했다고 했습니다. 우주 옹은 말하길, 해동 조계산 진각 대사가 여러 기록을 탈취(獵取)하여 『전등록』에 맞서 『염송』을 집성하여 각운에게 전하였고, 각운이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에서 명을 받들어 3년 동안 입원入院339)하고 7일 동안 엄관掩關340)하여 찬란하고 명확하게 이것을 베꼈는데, 기록하는 때에 붓끝에서 오색 사리가 빗방울 떨어지듯 하였으니 인간의 기술로 이룬 것이 아닐 정도였고, 인천人天의 인물들에게 명하여 간행하여 배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몇 줄의 글이 어찌 번거롭게 역사서의 분량을 늘리겠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간략히 하였으니 ‘약사’라는 명칭은 『염송설화』가 이루어진 곳에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정鄭씨를 조趙씨로 바꾼 것은 혹 교정할 겨를이 없었다 할지라도 또한 뒤에 교정을 해서 따르는 것이 옳은데 끝내 그러함이 없는 것은 왜입니까.나의 관견으로 그저 한곳에 여러 의혹이 있으니 하물며 일부 역사서에 의혹되는 부분이 필시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노쇠하고 천박한 놈으로 어찌 대방大方(위인)의 글(寶唾)341)을 입에 올리겠습니까. 그저 제 문중의 여한에 의혹이 있고 또한 근고近古의 여타 의혹을 인용하여 공론의 작은 흠집을 면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갈등을 주목하실 수 있겠습니까.『수선지』 서문신묘년(1891) 봄에 시작하여 정사년(1917) 겨울에 초고를 마쳤다.(修禪誌序辛卯春作至丁巳冬草)‘수선修禪’으로 지誌의 이름을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개당開堂342)한 처음에 보조실普照室에서 머물렀는데 하루는 불사佛事 때문에 당사堂司343)에 가서 오래되고 진귀한 물건들을 살폈다. -
012_0727_c_01L天等之杜撰之名哉。噫噫。天隱子云。
012_0727_c_02L勝國眞覺大師。以大知識。獲佛日老
012_0727_c_03L之密傳。始於十二部。終以諸家襍記。
012_0727_c_04L對道源 [90] 傳燈錄。集成一編。命曰拈頌。
012_0727_c_05L書成。傳之龜谷覺雲。雲受而旋卽刊布
012_0727_c_06L云云。宇宙翁云。海東曹溪山眞覺大師
012_0727_c_07L獵取諸錄。對傳燈而集成拈頌。傳於覺
012_0727_c_08L雲。雲奉命于曹溪修禪社。入院三年。
012_0727_c_09L掩關七日。粲然明著寫斯。記時筆端。
012_0727_c_10L五色舍利。落如雨點。殆非人巧之所成
012_0727_c_11L命人天公。鋟刊傳流云云。此數行文
012_0727_c_12L何煩於一部史篇之多。而如是畧之。以
012_0727_c_13L略史之名。獨專於拈頌話說成處也。且
012_0727_c_14L以鄭易趙。容或校證之未遑。而亦從後
012_0727_c_15L證誤可也。終無其然。何也。以吾管見
012_0727_c_16L只有一處多感 [91] 。而況一部史中所感 [92] 處。
012_0727_c_17L必不無者乎。余以衰頽陋漢。安敢掛舌
012_0727_c_18L於大方之寶唾也。只感私門之遺恨。亦
012_0727_c_19L引近古之餘感。庶免公論之微玷也。如
012_0727_c_20L是葛藤。能有着眼麽。
012_0727_c_21L
012_0727_c_22L修禪誌序辛卯春作至丁巳冬草
012_0727_c_23L以修禪而名誌者。何。余開堂之初。住
012_0727_c_24L於普照室中。一日仍佛事。抵堂司閱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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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8_a_01L파손된 책들이 먼지 덮인 함에 매몰되고 글자는 좀이 먹어 불쏘시개에 가까웠다. 조용히 수습하여 삼가 펼쳐 보니 윤음綸音과 『수선사창명修禪社創銘』이었다. 나도 몰래 책을 덮고 탄식하였다. “이것은 (보조)국사(國老)께서 장정하여 보배로 간직한 물건이 아닌가. 천 년이 되지 않아 온통 폐물 형색이 되어 버렸구나. 머리 깎은 내가 어찌 보수하여 길이 전해지도록 하지 않겠는가.”즉시 종이를 잘라 책을 만들어 한 축軸을 선사繕寫344)하여 봉안하고 ‘수선’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사원비嗣院碑345)와 사찰 안에 달린 상량문이나 기記 등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후에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뽑아 필사하였다. 이것이 『수선지』를 지은 까닭이다.그리고 당사堂司에 전하여 책함에 진중히 두라고 한 뜻이 어찌 그저 그렇겠는가. 천 년 긴 세월 후에 이 책을 펼쳐 보는 이는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리라. 또한 지금 사람이 옛날을 보는 것과 같으리라. 이어서 기록하고 보충하고 다듬으니 이 『수선지』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노라. 오직 펼쳐 읽는 이들은 책 이름의 뜻을 본받아서 제작한 업적을 추모하고 착안하여 힘쓰시라.백양산의 청장346)을 사양하는 글정사년(1917) 8월 25일(謝白羊山請狀書丁巳八月二十五日)지난번 옥엽玉葉(옆서)이 진토에 날아 떨어졌는데 답례를 하지 못했고 하물며 경함瓊凾(편지)이 가을 소리를 띠고 도착하니, 더욱 절실히 송구합니다. 다시 편지를 통해, 단풍과 국화가 선명함을 다투는 때에 영체領軆347)가 편안하심을 알게 되니 우러러 절절히 축하드립니다.공경히 답장하는 것은 귀 강원講院으로 초빙한다는 말씀으로, 총애하여 부르시는 행복을 입었으나 어찌 높으신 기대의 뜻에 부합하겠습니까. 다만 5백 금을 소비하여 죽은 말의 뼈를 사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천리마가 스스로 올 것입니다.348) 바라건대 높으신 기대를 멈추시어 이 졸렬한 형상으로 하여금 (진흙) 길에서 꼬리를 끌며349) -
012_0728_a_01L物異珍。有殘1)券 [17] 破帙。埋沒塵櫝。蠧蝕
012_0728_a_02L字損。幾乎紙燼之物。窃收而愼展之。
012_0728_a_03L卽綸音與修禪社創銘也。不覺掩*券而
012_0728_a_04L歎曰。此無乃國老之粧䊣而寶藏之物
012_0728_a_05L耶。未及千齡。渾爲廢物之形色也。以
012_0728_a_06L吾禿頭者。盍無修補永壽哉。卽斫楮成
012_0728_a_07L篇。繕寫一𨋀。而安名修禪。繼以嗣院
012_0728_a_08L碑及寺內所懸樑與記。無論巨細。可爲
012_0728_a_09L後考者。抄而筆之。此修禪誌之所以
012_0728_a_10L作也。且傳堂司鎭書樻者意。豈徒然乎
012_0728_a_11L哉。以爲千載浩刼展*券讀此者。知余
012_0728_a_12L心之所在。而亦如今視昔。繼而錄之。
012_0728_a_13L補以修之。庶幾此誌之不泯也。唯展讀
012_0728_a_14L諸君。倘軆名誌之意。追慕粧䊣之績。
012_0728_a_15L着眼而勉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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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8_a_17L• 謝白羊山請狀書丁巳八月二十五日
012_0728_a_18L曩者。玉葉飛落塵界。而旣無酬答之禮。
012_0728_a_19L而況復瓊凾信帶秋聲而至者乎。益切
012_0728_a_20L悚悶也。更憑審楓菊爭鮮。領軆上萬甯。
012_0728_a_21L仰祝切切。敬復者。貴講院雇騁 [93] 之敎。旣
012_0728_a_22L荷寵招之幸。而安副高望之意哉。但費
012_0728_a_23L五百金。而欲買死馬骨。當有千里馬自
012_0728_a_24L來矣。幸休高望。俾此拙狀。曳尾於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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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8_b_01L천 년을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만 번 바라고 만 번 바라옵니다.김환경350) 영가 추도식 축문정사년(1917) 8월 28일(金喚鯨靈駕追悼式祝丁巳八月二十八日)유세차, 오호 슬프도다. 이전에 빼어났던 신령스런 싹이 사바세계에 떨어져 먼지 가운데 있어도 물들지 않아, 동진출가童眞出家하여 손으로 각수覺樹(보리수)를 붙잡고 입으로 우담바라를 씹으며 일찌감치 법문의 깃발을 세웠고 거듭 교망敎網의 벼리를 떨치고 법주法主의 지위에 올라 상빈上賓351)의 명성으로 칭해졌습니다.아아, 애통하도다. 갑자기 무상한 이치를 만나 유한한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워지니,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352)라는 한탄을 하기도 하고 시력을 잃는 아픔353)을 겪기도 했습니다. 선문禪門의 주춧돌이 갑자기 무너지고 교해敎海의 아름다운 배가 홀연 침몰하니 사제지간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슬퍼하며 영결의 감동으로 추모합니다.이에 이포伊蒲354)의 상념으로 삼가 다과와 청작淸酌(술)을 갖추니 이러한 정경을 굽어 살피고 흠향하소서.오 참사355)에게 올리는 편지복천356) 남현에 거주하며 호는 소재이고 자는 호민이다.(上吳叅事書福川南峴號小齋字浩民)꽃이 피고 잎이 떨어짐은 대지의 절기가 시들고 번영함이요, 파도가 치고 물결이 고요함은 일심 가운데 망상이 일어나고 소멸함입니다. 꽃이 피니 잎이 지는 기일을 생각하지 않고, 파도가 치니 어찌 물결이 고요해지는 날을 알겠습니까. 절기와 망상은 그렇게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그러하며, 반연(緣)하려 하지 않아도 인因하여 반연하게 되니 어찌 피하겠습니까.지금 빈도貧道는 수 년간 행장(行李)으로 자연히 움직였다가 인연으로 고요해지니 절기의 순환을 몇 번 보았고, 인연으로 피고 자연히 떨어져서 망상이 일어나고 멸함을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절기는 이수理數이고 망상은 무명無明입니다. 무명이 움직임에 -
012_0728_b_01L中。以終天年之地。萬望萬望。
012_0728_b_02L
012_0728_b_03L• 金喚鯨靈駕追悼式祝丁巳八月二
012_0728_b_04L十八日
012_0728_b_05L維云云。嗚呼哀哉。宿挺靈芽。影落娑
012_0728_b_06L婆。在塵不染。童眞出家。手攀覺樹。口
012_0728_b_07L嚼曇花。早建法門之幢。重振敎網之綱。
012_0728_b_08L登法主之位。稱上賓之名。吁嘻痛哉。
012_0728_b_09L忽遭無常之理。難保有限之命。或有傷 [94]
012_0728_b_10L予之恨。或切喪明之痛。禪門柱石。俄
012_0728_b_11L而崩摧。敎海芳舟。忽爾沈墜。師資同
012_0728_b_12L風。物我咸凄。敢慕永訣之感。玆庸伊
012_0728_b_13L蒲之想。謹以茶果之淸酌。俯歆情景而
012_0728_b_14L尙饗。
012_0728_b_15L
012_0728_b_16L• 上吳叅事書福川南峴號小齋字浩民
012_0728_b_17L花開葉落。大地上節候之枯榮。波動浪
012_0728_b_18L靜。一心中妄想之起滅也。花開不意葉
012_0728_b_19L落之期。波動安知浪靜之日。節之候
012_0728_b_20L妄之想也。不期然而自然。不欲緣而因
012_0728_b_21L緣。烏可免哉。今貧道數年間行李。自
012_0728_b_22L然而動。因緣而靜。幾見節候之循環。
012_0728_b_23L因緣而開。自然而落。足知妄想之起滅。
012_0728_b_24L節候則理數也。妄想則無明也。無明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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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8_c_01L이수의 고요한 바를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이제 겨우 본지本地에 잎이 지고 자기 마음에 물결이 고요하니 이전처럼 그저 본지풍광本地風光357)이요 헤아리건대(擬然) 역시 자기 마음이 달빛일 따름입니다. 어찌 뛰어나고 기특함이 있겠습니까.공손히 듣자니, 족하足下의 몸에 비야毘耶의 근심358)을 근래 겪었는데, 불이不二의 즐거움을 아직 말씀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만사萬獅의 행차를 하지 못하고 그저 일개 승려를 통해 편지를 보내니, 예의 없음에 대한 처벌을 특별히 내리시어 불가사의한 가풍을 아끼지 않으심이 어떠십니까. 축원하고 축원합니다. 다시 이로운 약이 되는 게송 하나를 바칩니다.
抹却毘耶示疾圖 비야에서 질병 보인 그림을 지워 버리니
佛瘡祖病一都盧 부처의 종기나 조사의 질병이 도로359)라
法華藥草還鈍劣 법화의 약초도 오히려 졸렬할 뿐이니
不是藥者採來無 약이 아닌 것을 캐 오는 것이 어떨지360)승평군(순천) 조계산 극락교 기문정사년(1917) 7월 7일 개통(昇平郡曹溪山極樂橋記丁巳七月初七日開通)해륙에서 무거운 것을 운반하고 건너게 해 주는 것으로 배와 차가 있고, 하천에서 허공에 설치하여 건너기 편리하게 하는 것이 교량이다. 운반과 설치의 동정動靜이 다르지만 건너는 공훈은 동일하다. 고금의 고량 가운데 이름을 가진 것을 돌아보니 대략 헤아려 셀 수 있다. 하늘의 오작교는 견우의 약속이고, 지상의 천진교天津橋는 선녀의 흥취이며,361) 천태산의 완화교浣花橋362)는 시인의 흥이고 송악松岳(개성)의 선죽교는 충신의 유감이다. 만리산萬里山의 만석萬石, 월미산月尾山의 노량鷺梁 이외 그 나머지 이름난 하천과 긴 강에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한 것을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예양豫讓이 다리에 숨어 있다가 임금께 보답하고363) 자방子房이 교량에서 노닐면서 스승을 기다리고364) 미생尾生이 교량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고365) 설옹薛翁(원효)은 -
012_0728_c_01L所動。誰堪理數之所靜也。今纔葉落於
012_0728_c_02L本地。浪靜於自心。依前只是本地風光。
012_0728_c_03L擬然亦是自心月色而已。安有殊勝奇
012_0728_c_04L特也哉。恭聞足下體上。近嬰毘耶之憂
012_0728_c_05L尙談不二之樂云。而自未作萬獅之行。
012_0728_c_06L只敢替一闍之郵。特賜沒禮義之誅罪。
012_0728_c_07L無惜不思議之家風也否。祝祝。更引利
012_0728_c_08L藥一頌而呈上。抹却毘耶示疾圖。佛瘡
012_0728_c_09L祖病一都盧。法華藥草還鈍劣。不是藥
012_0728_c_10L者採來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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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8_c_12L昇平郡曹溪山極樂橋記丁巳七月
012_0728_c_13L初七日開通
012_0728_c_14L海陸之運重通涉者。舟車。河川之架空
012_0728_c_15L利濟者。橋梁也。運架動靜雖殊。其涉
012_0728_c_16L濟之功一也。俯仰古今橋之所有名者。
012_0728_c_17L槩領畧而數矣。天之烏鵲橋。牽牛之結
012_0728_c_18L約也。地之天津橋。仙女之寄興也。天
012_0728_c_19L台浣花橋。詩士之發興也。松岳善竹橋。
012_0728_c_20L忠士之遺感也。萬石之於萬里。鷺梁之
012_0728_c_21L於月尾。其餘名川長河。架橋通涉者
012_0728_c_22L不欲枚擧。而至若豫讓伏橋而報君。子
012_0728_c_23L房遊橋而待師。尾生坐橋而期友。薛翁
012_0728_c_24L「券」疑「卷」{編}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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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9_a_01L교량에서 떨어져 궁宮에 들어갔으니366) 이 모든 것은 이것(교량)에 의탁하여 흥을 부치고 이것에 기대어 공을 세운 것으로 각기 하나의 이치가 존재함이 있다.다만 이 교량(극락교)은 그 시초를 고찰하자면, 옹정雍正 8년 경술(1730) 봄에 화주化主367) 탁근卓勤이 창설한 것이다. 함풍咸豊 4년 갑인(1854) 가을에 홍수가 나서 무너졌다. 그 후에 나무를 가설하고 흙을 쌓으며 돌을 포개고 판자를 연결하였으나, 건너는 데 어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정大正 6년 병진(1916)368) 가을에 이르러 조계산의 승려 한붕漢朋 공公이 건너기 극히 어려움을 개탄하여 재산을 털어 장인을 불렀고 완성을 고하기에 거의 이르렀는데 장인이 서툴러서 무너지고 말았다. 정사년(1917) 봄에 다시 돌을 모으고 허공에 가설하여 날을 정해 감독을 하였다. 칠석에 이르러 준공하여 개통하고 ‘극락’이라고 명명하였으니, 견우와 선녀의 약속과 흥취를 알고 그 즐거움을 즐긴 것인가, 시흥과 충성심(忠感)으로 즐거운 것인가. 임금께 보답하고 스승을 기다리며 즐거운 것인가, 친구를 기다리고 궁전에 들어가는 즐거움인가. 그 즐거움의 즐거움 되는 까닭을 나는 알지 못한다.즐거움의 이른바 ‘극락’이라는 것은 즉 연화세계이다. 이 교량에 올라 몇 리를 가면 대승선종大乘禪宗 조계 문중으로 법계장엄 대도량이 호중별계壺中別界369)를 이루었으니, 즉 보림寶林370)의 맑은 바람이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불일佛日과 혜월慧月이 영원토록 비추며, 샘은 달고 수풀은 우거져 진정 수선修禪 득도의 보방寶坊(사찰)이다. 밝은 창과 정갈한 자리(單)에 선의禪衣371)를 여미고 공空을 관觀하며, 바람 부는 아침과 달 뜬 저녁에 석장을 짚고 교량에 나아가면 연화蓮華 고향이 걸음을 들어올리지 않아도 오르게 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않아도 앉을 수 있으니, 교량의 명명이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지 않은 것인가. 그리고 봄꽃과 가을 달, 여름 소나무와 겨울 눈 같은 사계절의 변화 모습과 조약돌에 흐르는 물소리와 나는 듯이 흐르는 여울,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 등 눈길이 닿는 성색聲色은 -
012_0729_a_01L墮橋而入宮。是皆托此而寄興。憑斯而
012_0729_a_02L建功者。各有一理存焉。但是橋者。考
012_0729_a_03L其濫觴。雍正八年庚戌春。化主卓勤之
012_0729_a_04L所剏也。咸豊四年甲寅秋。洪水漲溢之
012_0729_a_05L所壞者也。其後架木培土。累石連板。
012_0729_a_06L難堪步涉者。不待言而記 [95] 得矣。迄大正
012_0729_a_07L六年丙辰秋。山之釋漢朋公。慨步涉之
012_0729_a_08L極艱。傾廪招匠。幾至吿竣矣。爲匠氏
012_0729_a_09L之未巧而壞之。丁巳春。更以伐石架空。
012_0729_a_10L尅日蕫役。至七夕日。竣工開通。芿以
012_0729_a_11L極樂。命其名者。知牽牛仙女之約與興
012_0729_a_12L而樂其樂耶。爲詩興忠感而樂耶。報君
012_0729_a_13L待師而樂耶。期友入宮之樂耶。吾未知
012_0729_a_14L其樂之所以爲樂也。盖樂之所謂極樂
012_0729_a_15L者。卽蓮華世界也。登此橋而躋乎數里。
012_0729_a_16L大乘禪宗。曹溪門內。法界莊嚴大道場
012_0729_a_17L自作壺中別界。卽寶林之淸風。悦可衆
012_0729_a_18L心。佛日之慧月。永歲照臨。泉甘林茂。
012_0729_a_19L眞修禪得道之寶坊。明窓淨單。歛禪衣
012_0729_a_20L而觀空。風朝月夕。携杖錫而臨橋。則
012_0729_a_21L蓮華故鄕。不擡步而躋攀。極樂淨土
012_0729_a_22L非往生而坐卧。橋之命名。在此而不在
012_0729_a_23L彼歟。且春花秋月。夏松冬雪。四時之
012_0729_a_24L變態。洴石飛湍。茂林脩竹。目寓之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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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9_b_01L그저 교량에 가서 올라간 이가 취하기에 달렸을 뿐이다. 어찌 족히 말하리오.아아, 완성되었다가 무너지고 무너졌다가 완성됨은 조물주가 시기를 많이 함이라. 옛날 흙다리와 판자 다리가 금일 교룡의 허리와 별 무지개처럼 변할 줄 누가 알았으랴. 교량에 오르는 이들은 그 명명한 깊은 뜻을 본받고 흥취와 감동의 허튼 생각을 취하지는 말라.한붕漢朋 옹翁은 고흥高興 사람이다. 성은 안씨安氏요, 자는 성학聖鶴이다. 성품은 강하고 과감하며 기개는 고한孤閑하고 절개(風節)는 아스라이 높으며, 계정밀행戒定密行372)은 타인이 헤아리기 어렵다. 몸은 사찰(松門)에 붙이고, 마음은 연화세계에 기울였다.난재일기蘭齋日記정봉 대화상의 입적을 알리는 통장을미년(1895) 3월 8일 입적(正峯大和尙出世通狀乙未三月初八日示寂)엎드려 듣건대, 널 밖으로 두 발꿈치를 보이시어 불생불멸의 영험한 자취를 분명하게 하시고, 고갯마루에서 신발 한 짝을 끌어373) 가고 옴이 없는 표시를 명백하게 하셨습니다. 소림사에서 면벽하니 9년 동안 아름다운 취향이 많고, 마가다국에서 문을 닫고 7일간 본보기를 보이셨습니다.374) 동방 1만 8천 여래375)의 상서로운 징조를 비추시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서방 33조사의 기이한 자취를 열거하니 어찌 계산하여 알겠습니까. 치미齒眉376)와 족륜足輪377)의 빛을 나툼은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경전을 강설할 상서요, 일광과 월륜月輪의 모양이 드러남은 마명馬鳴과 용수龍樹378)가 몸을 드러낼 명칭이었습니다. 또한 빛을 받아 경전을 강설함은 즉 금강장金剛藏379)이 십지十地380)에서도 받기 어려운 예절을 말한 것이고, 나무를 잡고 입적을 보임은 승찬僧璨 스님이 한 구절 부전不傳의 가풍을 보임이라.381) 이 모두는 제불諸佛의 방편 권행權行382)을 본뜬 것(影響)이니 본색 납승衲僧383)의 이성理性과 실사實事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往劫) 깊은 공부의 분수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현재 넓은 지혜의 눈앞만 따르겠습니까. -
012_0729_b_01L色。祇臨登者之管取如許而已。何足道
012_0729_b_02L哉。嗚呼。成而壞。壞而成。造物者多猜。
012_0729_b_03L誰知昔日土圯板橋。變成今日蛟腰星
012_0729_b_04L虹也哉。唯登臨諸君。能體命名之深趣。
012_0729_b_05L莫取興感之浮想焉。漢朋翁。高興人也。
012_0729_b_06L姓安氏。字聖鶴。性剛果。意氣孤閑。風
012_0729_b_07L節卓逈。戒定密行。人所難測。身托松
012_0729_b_08L門。心注蓮界云爾。蘭齋日記。
012_0729_b_09L
012_0729_b_10L正峯大和尙出世通狀乙未三月初
012_0729_b_11L八日示寂
012_0729_b_12L伏聞示雙趺於槨外。不生不滅之靈蹟
012_0729_b_13L昭昭。携隻履於嶺頭。無去無來之表信
012_0729_b_14L的的。少林面壁。多是九載之嘉趣。摩
012_0729_b_15L竭掩關。乃見七日之楷模。照東方萬八
012_0729_b_16L千如來之徵祥。其數弗億。列西土三十
012_0729_b_17L三祖師之奇蹟。何計較知。放齒眉足輪
012_0729_b_18L之光。文殊普賢說經之普瑞。現日光
012_0729_b_19L月輪之相。馬鳴龍樹現身之名稱。抑
012_0729_b_20L復蒙光說經。卽金剛藏說十地難受之
012_0729_b_21L禮節。攀樹示滅。是僧璨師示一句不
012_0729_b_22L傳之家風。是皆爲影響諸佛之方便權
012_0729_b_23L行。非宜乎本色衲僧之理性實事。然流
012_0729_b_24L出徃刼深工之分上。豈從現今廣慧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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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29_c_01L비록 세간의 작은 기술이라 하더라도 필시 긴밀하게 연습한 데서 나온 것인데 하물며 형체 바깥의 큰 사물이 소홀히 범상한 뜻에서 말미암겠습니까.우리 화상은 성이 최씨이고 호는 인찬引璨으로 부휴浮休 큰스님의 적전嫡傳384)이요, 허주虛舟385) 화상의 법제法弟이십니다. 불립문자는 벽안碧眼386)이 종주로 한 바와 크게 같으니, 관여하지 않는 방행放行387)이 조백棗栢388)의 장애 없음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정토 닦음을 업으로 삼아 구품연화대에 태어나길 항상 원했고, 아미타불 뵙기를 기약하여 여섯 자 염불(나무아미타불)을 잊지 않았습니다. 평생 마음 쓴 면목을 알고자 하면 3일 동안 하늘에 뻗친 빛나는 상서를 보면 됩니다.이제 3월(窉月) 생명生明389) 6일 계명성이 보이는 첫 시각(새벽)에 가벼운 질병을 보이시고는 일어나지 않으시니 색양色養390)을 버리고 입적(歸眞)하여 홀연 순식간에 문을 닫고 문득 하루아침에 면벽을 하였습니다. 감실龕室 속에 두 발꿈치를 거두어 짐짓 불생불멸의 영혼(識靈)을 보이지 않으시고, 방안에 신발 한 짝을 놔 두니 또한 가고 옴이 없는 표시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비의 재의(齋體)를 수행하고 사유闍維391)의 사물을 갖추니, 달은 부상扶桑(동쪽)에 아직 오르지 않았지만 해는 약목若木392)에 이미 잠겼습니다. 이에 두 줄기 상서로운 빛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니 동쪽은 열반의 방이요, 한 줄기 하늘빛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찬란하니 북쪽은 화장(火浴)의 장소입니다. 처음에 오색구름이 영롱하니 문수보살이 광명으로 깨닫게 함(光明覺)393)입니까. 마침내 일곱 줄기로 은은히 비추니 여래께서 모습을 드러냄(現相品)394)이 아닙니까. 백천 일월의 화려한 빛과 같고 억만 천지의 찬란함처럼 황홀합니다. 골짜기가 텅 비니 산새와 들새가 놀라 날아오르고, 일월이 빛을 잃으니 원근의 승려와 일반인(緇素)들이 찬송합니다. 5경(새벽 4시경)에 이르도록 밝게 빛나 목감木龕(나무 상자)에 단정히 앉은 정수리에 들이붓고, 구천九天에 응하여 서려 앉으니 은하수 별들의 형국(體局)을 바로 관통합니다.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3일 밤을 또한 이와 같이 했습니다. -
012_0729_c_01L目前。雖世間一小技。必出於緊梗習性。
012_0729_c_02L况形外幾大物。自由於率易凡情。惟我
012_0729_c_03L和尙。崔氏爲姓。引璨其號。浮休大老
012_0729_c_04L之嫡傳。虛舟和尙之法弟也。不立文字。
012_0729_c_05L大同碧眼之所宗。不關放行。何殊棗
012_0729_c_06L栢之無碍。修淨土爲業。常願九品之受
012_0729_c_07L生。見彌陁爲期。不忘六字之念佛。欲
012_0729_c_08L知一生用心之面目。就見三日亘天之
012_0729_c_09L璨祥。今窉月生明之六日。啓明之初刻。
012_0729_c_10L示微疾而弗起。捐色養而歸眞。忽頃刻
012_0729_c_11L而掩關。奄一朝而面壁。歛雙趺於龕裡。
012_0729_c_12L姑不見不生不滅之識靈。留隻履於室
012_0729_c_13L中。亦未知無去無來之表信。修茶毘之
012_0729_c_14L齋體。偹闍維之物機。月未上於扶桑。
012_0729_c_15L日已蘸於若木。際玆雙髼瑞色。自西亘
012_0729_c_16L東。東是湼槃之室。一面天光。從南璨
012_0729_c_17L北。北則火浴之場。始五雲以玲瓏。倘
012_0729_c_18L是曼殊之光明覺也。終七道而隱映。無
012_0729_c_19L乃如來之現相品耶。猶若百千日月之
012_0729_c_20L輝華。怳然億萬乾坤之晃朗。洞壑廓徹
012_0729_c_21L山禽野鳥飛驚。日月奪光。遠近緇素讃
012_0729_c_22L頌。達五更而昭晰。湊灌於木龕端坐之
012_0729_c_23L頂門。應九天而盤蜿。直貫乎銀河列宿
012_0729_c_24L之體局。非唯一度乃已。如是三宵亦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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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0_a_01L대개 이 제불諸佛과 보살의 상서로운 징조는 경전 강설로 인하여 상서를 드러내거니와 조사들과 납승의 기이한 행적은 무엇으로 인하여 자취를 남깁니까. 필시 정토에 태어나는 상서로운 빛이요, 아미타불의 상서로운 색을 본 것입니다.고금에 드문 위대한 자취이니 어찌 침묵하여 말없이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동지들은 사람에게 고금의 모양이 있다고 고집하지 말고 법에 멀고 가까움이 없다는 논설을 믿어서 즉시 무상한 마음을 펼쳐 대인의 경계에서 유희하고, 속히 유루有漏395)의 처지를 뛰어넘어 본색의 가풍에 소요하시기를 깊이 바랍니다.『계산시고』 발문溪山詩稿跋文서생書生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시詩이다. 그래서 옛날 성현이라는 분들은 시로 가사를 지어 감흥을 일으켰다. 솥에 새기고 돌에 새기는 말이 이것 없으면 될 수가 없다. 당송唐宋 이래 여덟 분의 뛰어난 이들396)이 시로써 세상에 유명했는데 유독 이백李白을 더욱 좋아한다. 그 삶은 꽃과 새처럼 근심스레 했고, 그 죽음에 있어 풍월처럼 한가로이 여겼다. 세상에 이름난 이유가 시를 잘 지은 까닭에 있으니, 시가 없을 수 있는가.나는 시를 잘 짓지 못하고 또한 뛰어난 이들을 사모하지도 못하지만 재주와 시가 유명하지 않음을 한스럽게 여기고 또한 배움이 옛날의 아름다운 지경에 이를 수 없음을 안다. 다만 가르치는 즈음에 학생들이 경전을 보다가 남은 시간에 혹시 빈 간격을 낭비할까 염려되어 그 재능에 따라 문장을 엮어 글을 완성하게 하여 ‘계산시고’라 하였다.그러나 처음은 있고 끝이 없는 경우가 있고 처음을 파헤쳐 마침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다만 품부 받은 재능이 어떠한가에 관계될 따름이다. 어찌 내게 관여되겠는가. 옛날 세상에 이름난 이들은 시에 재능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하물며 요즘 세상에 이름난 이들이 이것 없이 가능하겠는가. 혹시 훗날 일이 완성되어 글을 대하여 관람하면 -
012_0730_a_01L盖此諸佛菩薩徵祥。緣說經而現瑞。列
012_0730_a_02L祖衲僧奇蹟。因甚麽而遺蹤。必也受生
012_0730_a_03L淨土之祥光。獲見彌陁之瑞色。罕古今
012_0730_a_04L之景蹟。何寢默而寐然。願諸同志。毋
012_0730_a_05L執人有古今之相。須信法無遐邇之論
012_0730_a_06L卽發無常之心。遊戱於大人之境界。速
012_0730_a_07L超有漏之地。逍遙於本色之家風。幸甚。
012_0730_a_08L
012_0730_a_09L• 溪山詩稿跋文
012_0730_a_10L書生所以不可無者。詩也。故古之聖賢
012_0730_a_11L者。詩以歌詞之興感之。銘鼎也。勒石也。
012_0730_a_12L不能無此而行之。自唐宋以下八家諸
012_0730_a_13L哲。以詩鳴於世。而獨李白益好之。其
012_0730_a_14L生也。花鳥愁之。其死也。風月閑之。其
012_0730_a_15L名世者存乎能詩之所以然者也。詩可
012_0730_a_16L無耶。余雖不能詩。亦莫敢慕聖哲。而
012_0730_a_17L自恨才與詩之未名。亦知學不能逮古
012_0730_a_18L之佳境。但於敎授之際。使學者看經之
012_0730_a_19L餘。或慮空隙之浪費也。隨其才能。而
012_0730_a_20L習綴成篇曰。溪山詩稿。然而有有始而
012_0730_a_21L無終者。有原始而要終者。只管其品賦
012_0730_a_22L之如何也。何預於我哉。古之名世者
012_0730_a_23L旣以詩之所能。况今之名世者。無此
012_0730_a_24L而得乎。倘功成他日。臨編觀覽。則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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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0_b_01L미간을 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후회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붉히거나 하리라.이것으로 발문을 쓰니, 서생에게 일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부휴 선조397)임제 26세의 비를 거듭 세우며 지은 비음기398)짓기만 하고 판에 새기지는 않았으니, 송염재399)가 지은 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浮休禪祖臨濟二十六世重立碑陰記但制出而不登榟。以宋念齋所作文用之故也。)오직 우리 대선사께서는 사바 대천세계에 드러내시어, 황하가 맑아지는400) 5백 년에 응하여 조계의 선종禪宗을 널리 천명하신 진정한 불자佛子이시며, 윤지綸旨의 아름다운 명401)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기둥이셨습니다. 『원각경』의 선천先天에 대해 앞선 인연의402) 금송錦頌403)을 누가 아뢰리오. 수미산의 호겁浩劫(긴 시간)에 현재의 귀부龜趺404)를 깨닫지 못합니다. 속리사 앞에서 깨진 비석을 발견하고 조계산 골짜기에 7길(仞) 비석을 세우려고 합니다.무오년(1918) 봄에 본사 주지 설월 용섭雪月龍燮이 본사 공금과 사재를 모으고 영ㆍ호남 후손(雲仍)들의 재물을 규합하여 예산 비용 2만 가운데 2천 원圓 가까이 모았습니다. 법화 언덕에서 돌을 캐고 서울 장인에게 빛이 나도록 다듬게 했습니다. 이에 백곡白谷405)의 옛 명銘406)을 활용하여 청구靑丘(조선)의 이름난 붓을 빌리니, 정부의 재정에 의뢰하여 철륜鐵輪의 화장火牆에 솟아오릅니다. 처음 시작함(登程)은 강남 제비 소리를 듣는 좋은 때였는데, 마치고 아룀(上達)은 욕불浴佛407)을 하례하는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전액篆額408)은 살아 있는 듯 오룡五龍의 무늬를 점찍은 듯하고, 게송은 구슬을 엮은 듯 만 곡斛409)의 구슬처럼 찬란합니다. 오직 우리 대중들은 ‘네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無念爾祖)’410)는 구절을 흠모하여 ‘무리가 실로 많도다(寔繁有徒)’411)라는 가르침을 추도합니다.무오년(1918) 1월 14세손 보정寶鼎이 분향하며 삼가 기록합니다.밭을 개간하기 위해 터를 닦는 축문무오년(1918) 1월 27일 황우송412)(墾田開基祝文戊午一月二十七日黃友松) -
012_0730_b_01L有展眉而點頭。或有悔心而愧顏者也。
012_0730_b_02L以是而書之。庶望乎書生之一助云尒。
012_0730_b_03L
012_0730_b_04L浮休禪祖臨濟二
十六世重立碑陰記但制出
而不登
012_0730_b_05L榟。以宋念齋所
作文用之故也。
012_0730_b_06L唯我大禪師。現大千於沙界。應半千之
012_0730_b_07L河淸。廣闡曹溪之禪宗。眞是佛子。不
012_0730_b_08L動綸旨之嘉命。卽乃國砥。圓覺先天。
012_0730_b_09L誰吿前因之錦頌。須彌浩刼。莫悟現在
012_0730_b_10L之龜趺。發見短碣於俗離寺前。謀樹七
012_0730_b_11L仞於曹溪洞上。歲戊午春。本寺住持雪
012_0730_b_12L月龍燮。倡募本寺公私之金。叫化嶺湖
012_0730_b_13L雲仍之財。算費餘二萬額。恰募近二千
012_0730_b_14L圓。採石於法華之邱。鍊光於漢城之匠。
012_0730_b_15L迺用白谷之舊銘。爰借靑丘之名毫。賴
012_0730_b_16L政府之金贜。騰鐵輪之火牆。始登程也。
012_0730_b_17L聞江燕之吉辰。終上達兮。賀浴佛之良
012_0730_b_18L日。篆額如活。墨點五龍之紋。偈頌聯
012_0730_b_19L珠。光燦萬斛之玉。唯我大衆。欽慕無
012_0730_b_20L念爾祖之句。追悼息 [96] 繁有徒之訓。戊午
012_0730_b_21L一月日。十四世孫寶鼎。焚香謹誌。
012_0730_b_22L
012_0730_b_23L• 墾田開基祝文戊午一月二十七日黃
012_0730_b_24L友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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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0_c_01L이름난 하천과 넓은 벌판에 영험한 신들이여,
지역은 ‘무동撫桐’이요 하천은 ‘봉천鳳川’입니다.
여기에 빈 터가 있어 개간을 시작하니
재목도 기르지 않고 물고기도 기르지 않아
공연히 도깨비와 다람쥐들로 하여금
거칠고 묵은 풀밭을 차지하게 하였도다.
막중한 왕토는 마땅히 백성에게 속해야 하니
남북으로 개간하여 크게 옥토를 이루리.
이에 곡일穀日413)에 자욱한 풀을 베니
오직 신들께서는 화내지 말고 두려워도 말고
신이한 힘을 펼쳐 일꾼을 보호하여
흙을 옮기고 돌을 캐 내길 귀신이 돕는 듯하여
음양의 돌과 흙으로 쌓아 이루게 하소서.
삼가 광주리 밥과 음식을 갖추어
좋은 울창주414)와 함께 드리니 흠향하소서.지와굴 터를 닦는 축문2월 5일 김대우(地瓦窟開基祝文二月初五日金大愚)산신과 국사局師,415) 높은 산 존엄한 영령이시여,
토지의 신들이여 이 도량에 강림하시어
우리의 창건을 보호하여 각기 신통을 펼치소서.
터를 닦고 기와 구워 호불護佛의 궁전 마련하니
우리 일꾼을 도와 재해 없애고 상서를 내리시어
악한 짐승은 물러가고 선한 신명이 나타나시어
하늘이 보호하고 땅이 도와 따스한 바람 보내사
바라는 바 속히 이루어 경사를 크게 이루도록 하소서.
삼가 맑은 술을 드리노니 흠향하소서.제운416) 대선사 비음기무오년(1918) 4월 8일 강철월(霽雲大禪師碑陰記戊午四月八日姜哲月)공적을 따라서 덕을 추모함은 덕 있는 이에 대한 감상이요, 덕을 수립하나 공적이 없음은 지극한 이가 자취를 감춤입니다. 무릇 사람에게 비상하고 뛰어난 덕과 공적이 있는 경우에는 마땅히 돌에 새기고 솥에 새겨야 합니다.지금 선사의 조부 ‘기인起仁’417)은 그 지역의 시승(韻釋)이요 속세 밖의 명철한 승려였습니다. 숙종조에 통정첩通政帖418)과 -
012_0730_c_01L名川廣野。靈祗等众。域號撫桐。水名
012_0730_c_02L鳳川。玆有空土。可起墾佃。不養奇材。
012_0730_c_03L不產漁沺。空使魍魎。及與鼯孫。陳茅荒
012_0730_c_04L草。一場牧鄽。莫重王土。宜屬王民。以
012_0730_c_05L開阡陌。大成沃田。玆庸穀日。剪草開
012_0730_c_06L湮。唯冀神祗。勿嗔勿惧。能放神力。斗
012_0730_c_07L護役夫。運土拔石。如遇鬼扶。陰石陽
012_0730_c_08L土。築着成偶。謹以簞食。兼偹麋粻。庸
012_0730_c_09L韶鬱鬯。伏唯尙享。
012_0730_c_10L
012_0730_c_11L• 地瓦窟開基祝文二月初五日金大愚
012_0730_c_12L山神局師。崇岳尊靈。土祗地神。降此
012_0730_c_13L道場。護我剏事。各放神通。開基陶瓦。
012_0730_c_14L爲護佛宮。助我役夫。消災降祥。惡獸
012_0730_c_15L迸迹。善神現形。天護地助。借送陽風。
012_0730_c_16L速成所望。大就慶功。謹以淸酌。伏唯
012_0730_c_17L尙饗。
012_0730_c_18L
012_0730_c_19L霽雲大禪師碑陰記戊午四月八日
012_0730_c_20L姜哲月
012_0730_c_21L追功慕德。德人之感想。樹德無功。至
012_0730_c_22L人之晦跡。凢人有非常卓犖之德與功
012_0730_c_23L者。宜勒石而銘鼎也。今師之祖曰起仁。
012_0730_c_24L域中韻釋。物外明僧。肅宗朝有通政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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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1_a_01L팔도도총섭八道都捴攝 교지敎旨를 받았으며, 시호를 ‘자운紫雲’이라 합니다. 선사의 부친 ‘법안法顏’ 또한 통정 첩지가 있으니, 세 번 전하여 대사께 이르렀습니다.419) 당시 불법의 흥성은 이 3대代의 집안에서 나왔으니 진정 필만畢萬420)의 이후를 징험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선사께서는 처마 아래 빛을 감추고421) 호리병 속422)에 덕을 숨겨,423) 눈 오는 달밤과 바람 부는 호시절에 금빛 하늘의 조의祖意424)를 펼쳐 내고, 푸른 산과 물에 옥빛 게송의 법류法流를 쏟아 내었습니다. 손으로 『화엄경』을 사경하며 마음으로 해탈법문을 증험하셨으니, 이것이 일생 동안 덕을 세운 것입니다. 하물며 천자암天子庵을 네 번째 창건하셨으니 선사께서 애써서 간고幹蠱425)한 것입니다.선사의 열반(泥洹) 후 97년 만에 문인 동호東湖와 추파秋波 등이 선사先師의 공적을 추모하여 비석을 자르고 흙을 북돋았습니다. 17년 후에 후손(雲仍) 경해鏡海426)와 경봉景鳳427)ㆍ인봉印峰428) 등이 문도 40여 인과 함께 천여 원의 의연금을 모아 운암云庵과 상전祥銓에게 명하여 선사의 덕을 추모하여 비석을 다듬어 새기게 했습니다.아아, 비석이 남포藍浦429)에서 나왔으나 비석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명銘은 서울 분이 지었으니, 명 또한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나의 필체는 졸렬하지만 감히 선사의 지극한 덕을 기념하고 또한 공적을 따르는 무리가 있음을 찬양합니다. 바라는 바 겁석劫石430)이 닳도록 정민貞珉431)은 길이 남기를.임경당 돌우물을 새로 완성한 명무오년(1918) 4월 17일(臨鏡堂石井新成銘戊午四月十七日)물은 육부삼사六府三事432) 가운데 첫 번째이다. 크게 물살을 드러내는 것은 강과 바다이고 작게 마실 것을 모아 놓은 것을 샘과 우물이라 한다. 물을 건너고 논밭에 물을 대는 공적과 더러움을 씻고 갈증을 해소하는 이로움이 이만한 게 없으니, 물의 공적과 이로움이 위대하다.이 당은 개울의 모퉁이에 있는 사찰의 입술에 해당하는데, -
012_0731_a_01L及八道都捴攝。敎旨謚曰紫雲。師之父
012_0731_a_02L曰法顏。亦有通政之帖。三傳至大師。
012_0731_a_03L當時佛法之興隆。出於三代之閫域。眞
012_0731_a_04L所謂畢萬之後可驗也。先師鞱光廡下。
012_0731_a_05L匿德壺中。雪月風華。提撕金天之祖意。
012_0731_a_06L碧山淥水。呑吐玉偈之法流。手寫華嚴
012_0731_a_07L大經。心證觧脫法門。此迺一生之樹德。
012_0731_a_08L而况天子庵第四剏建。卽師之拮据幹
012_0731_a_09L蠱者乎。師之泥洹後九十七年。門人東
012_0731_a_10L湖秋波等。追先師之功。斫石而封塚。
012_0731_a_11L越十七年。雲仍鏡海景鳳印峰等。與門
012_0731_a_12L徒四十餘人。募千有餘圓義金。命云庵
012_0731_a_13L祥銓。慕先師之德。鍊石而勒銘之。嗚
012_0731_a_14L嗚。石出藍浦。石何有言。銘綴漢城。銘
012_0731_a_15L亦無價。予筆雖拙。敢紀先師至德。亦
012_0731_a_16L賛有徒追功。所冀者。刼石磨而貞珉
012_0731_a_17L長存。
012_0731_a_18L
012_0731_a_19L臨鏡堂石井新成銘戊午四月十七
012_0731_a_20L日
012_0731_a_21L水乃六府三事之一數也。大而放浪者
012_0731_a_22L謂之江海。小而貯飮者。謂之泉井。以
012_0731_a_23L其涉濟漑灌之功。濯穢觧渴之利。莫此
012_0731_a_24L若也。水之功利大矣哉。此堂在溪之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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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1_b_01L삼청각三淸閣과 육감정六鑑亭이 당의 서쪽 처마에 쓸쓸하게 서 있어 신선들이 거니는 것을 항상 보고, 능허교淩虛橋와 천왕문天王門이 당의 남쪽에 나열해 있어 범패 읊조리는 소리를 매번 듣는다. 여타 사계절의 변화와 만상을 살핌에 있어 진정 조계산의 경치가 임경당 한 곳에 있다고 하는 것이 진실로 어긋나지 않는다. 당의 동남쪽(巽) 뜰에 물이 자연히 솟아나 졸졸 흐르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장마와 가뭄에 관계없이 자강불식自强不息하니 족히 샘물과 우물의 근원이 될 만하다.옛날 당을 지을 때 우물을 파서 설치하였는데 물통을 문 밖에 마련하여 아침저녁으로 물 긷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갑인년(靑虎, 1914)에 미쳐 서응瑞應 공公이 멋진 기술로 당의 남쪽 담장 안에 홈통을 매설하여 물줄기를 이끄니 물이 더욱 차가워졌고 길은 더욱 탄탄해졌다. 필시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어 먹는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을 모아 두는 방법은 나무통이 썩어 손상될까 항상 걱정이다. 우禹 임금의 솥433)처럼 무겁고 장자莊子의 표주박434)처럼 큰 게 있더라도 얻기 어렵지만 쉽게 부서질 것이다. 하물며 달리 구하기 어려운 것은 어떻겠는가.당堂에 거하는 석덕碩德 한붕漢朋 옹翁이 오래도록 깊이 근심하다가 사재를 털어서 시냇가의 바위를 다듬고 3백 금을 들여서 7곡斛 남짓 되는 우물을 팠다. 길이는 6자, 넓이는 4자, 깊이는 1자 4치이다. 동쪽(卯乙)의 물을 끌어 남쪽(巳丙)의 불을 진압하니 물과 불이 서로 해치지 않는435) 바른 위치에서 한 구역 석당石塘(돌연못)에 물이 고인다. 옥 같은 물이 가득 차니 은빛 물결이 당을 둘러서, 넘실거리고 졸졸 흘러 근원이 마르지 않는다. 또한 달이 물결 속에 떨어지면 거울처럼 만물을 비추고 바람이 수면에 불면 가슴이 청량해지니, 이것이 임경당의 큰 볼거리다.밭에 물을 대는 공적은 없으나 갈증을 해소하는 이로움이 있으니 샘 우물의 도는 넓고도 크다. 하물며 또한 차를 달여 부처님께 공양하여 감로의 맛으로 변화시키니, -
012_0731_b_01L寺之唇。而三淸閣六鑑亭。寥落於堂之
012_0731_b_02L西廡。常見仙子之逍遙。淩虛橋天王門。
012_0731_b_03L併列於堂之南面。每聞梵樂之嘯咏。其
012_0731_b_04L餘四時變態。萬像照鑑。眞所謂曹溪勝
012_0731_b_05L賞。在臨鏡一堂者。信不謬矣。堂之巽
012_0731_b_06L庭。水自湧而滚滚然。夏冽而冬溫。不
012_0731_b_07L關水旱。自强不息。足爲泉井之源。古
012_0731_b_08L之剏堂之初。鑿而貯之。槽設門外。爲
012_0731_b_09L嫌朝暮之汲矣。洎于靑虎。以瑞應公之
012_0731_b_10L善巧。埋梘引槽於堂之南墻內。水益冽
012_0731_b_11L冽也。路甚坦坦焉。必不爲朝汲暮吸之
012_0731_b_12L艱阻也。然而貯水之方。常患木槽之朽
012_0731_b_13L壞。雖有禹鼎之重。莊瓠之大。尙爲難
012_0731_b_14L得而易壞。况餘求之難易者乎。堂之碩
012_0731_b_15L德漢朋翁。甚患之久矣。捐家貲。攻溪
012_0731_b_16L石。費三百餘金。斫井量七斛許。長六
012_0731_b_17L尺。廣四尺。深一尺四寸也。引卯乙之
012_0731_b_18L水。壓巳丙之火。水火不相射之正位。
012_0731_b_19L渟滀於一區石塘中。玉水盈科。銀波周
012_0731_b_20L堂。洋洋焉。淙淙然。其源不渴。抑復月
012_0731_b_21L落波心。鏡像照臨。風來水面。襟靈淸
012_0731_b_22L凉。此卽臨鏡堂之大觀也。雖無漑灌之
012_0731_b_23L功。能有解渴之利。泉井之道。廣且大
012_0731_b_24L矣。况又煎茶供佛。變成甘露之味。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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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1_c_01L음식을 만드는 재승齋僧은 선열禪悅의 즐거움을 얻으리라.아, 향해香海는 마르더라도 이 우물은 비지 않을 것이요, 석수石髓436)에는 근원이 있어도 시주의 복은 무궁하리라.벽담당 탑을 이안하는 축문탑 세 본이 보조암 북쪽 모퉁이에 있었는데 풍암당 탑은 병진년(1916) 봄에 비전으로 이안하였고, 이번 무오년(1918) 4월 24일에 벽담437)과 회계438) 두 탑을 일시에 비전으로 이안하므로 이 글을 썼다.(碧潭堂塔移安祝三本在普照庵北隅。而楓嵓堂塔。丙辰春移安碑殿。今戊午四月二十四日。碧潭會溪二塔。一時移安碑殿。故有此文也。)현선顯先439) 조사祖師 벽담당碧潭堂 대화상 존영尊靈 아래 올립니다.
법신은 자취 없고 묘체妙體는 담백한데
자비로 사물에 응하여 영골靈骨로 참을 드러내사
삿된 견해의 그물을 부수고 불조佛祖의 인끈을 차니
마음은 화장세계440)에 융합하고 탑은 동쪽(東震)을 진무하네.
흉조를 피하고 길조로 나아가 조사의 관문을 열고
터를 잡아 기초를 놓으니 소목昭穆441)에 질서 있어
위로 조종祖宗을 모시고 옆으로 형제를 나열하네.
엎드려 바라건대 존영이시여, 화내지 말고 꾸짖지 마소서.
우리 후손들은 실로 많은 무리가 있어442)
미미한 음식이나마 갖추어 정성을 표하고
삼가 차를 끓이니 흠향하소서.또(회계당 탑을 이안하는 축문)(又)회계당會溪堂 대종사 존영尊靈 아래 올립니다.
온 나라에 이름이 알려진 총림 대덕으로
법안法眼은 고명하고 용모는 빼어나시어
고금의 귀감이며 자타의 법칙이시니
교해敎海의 노를 만드사 불조佛祖의 맥을 이어
소리는 여러 산에 응하고 기운은 주석柱石 같은데
교화를 쉬고 입적(歸證)하여 영식靈識443)을 드러내셨네.
영험한 그 구슬이 대록大麓444)으로 들어가니
스승이 운용하고 제자가 따르며 동시에 움직여
법의 물결이 정정하고 차례(昭穆)가 역력하게
주춧돌을 봉안하니 기러기처럼 질서 있어
뛰어나게 높고 상서로워 길이 산악을 진호하네.
추모하는 무리들이 차를 배설하니
영험한 신명이시여 흠향하소서. -
012_0731_c_01L飪齋僧。便得禪悅之樂。噫。香海雖渴。
012_0731_c_02L此井不空。石髓有源。檀福無窮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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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1_c_04L碧潭堂塔移安祝三本在普照庵北隅。而
楓嵓堂塔。丙辰春移安
012_0731_c_05L碑殿。今戊午四月二十四日。碧潭會
溪二塔。一時移安碑殿。故有此文也。
012_0731_c_06L顯先祖師碧潭堂大和尙尊靈之下。法
012_0731_c_07L身無迹。妙體湛然。大悲應物。靈骨現
012_0731_c_08L眞。破邪見網。佩佛祖印。心融華藏。塔
012_0731_c_09L鎻東震。避凶就吉。運啓祖關。銓基定
012_0731_c_10L礎。昭穆有序。上御祖宗。傍列兄弟。伏
012_0731_c_11L唯尊靈。勿嗔勿咎。唯我雲仍。息 [97] 繁有
012_0731_c_12L徒。特備微奠。庸表丹誠。謹以點茶。伏
012_0731_c_13L唯尙饗。
012_0731_c_14L
012_0731_c_15L又
012_0731_c_16L會溪堂大宗師尊靈。一國名現。叢林大
012_0731_c_17L德。法眼高明。容儀挺特。今古龜鏡。
012_0731_c_18L自他繩墨。作敎海楫。繼佛祖脉。聲應
012_0731_c_19L諸山。氣若柱石。休化歸證。獨露靈識。
012_0731_c_20L有靈其珠。入于大麓。師運資從。同時
012_0731_c_21L動作。法派井井。昭穆歷歷。銓礎奉安。
012_0731_c_22L形同雁鵠。殊特崇禎。永鎭山岳。追慕
012_0731_c_23L其徒。敢設茗藥。伏唯靈神。俯奠歆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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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2_a_01L벽담당 탑과 회계당 탑을 비전에 이안하고 담을 쌓는 기문(碧潭堂1)塔會溪堂塔移安碑殿及築墻記)전傳에 이르길, “선사의 성품은 강직(强毅)하여 그의 눈 아래 사람들이 달려가지 못하고 혀 아래 여럿이 행하지 못하였다. 종풍을 부지함이 현판을 태우는 경계가 되고, 기회에 응함이 자리를 빼앗는445) 형세가 되었다.”라고 했다. 강령降靈한 본本으로 세상에 드문 기이한 국면을 이루셨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렇게 된 것인가.벽담 선사께서 세상에 계실 때 풍암楓岩446) 노숙老宿447)의 탑을 보조탑의 서북쪽(乾) 모퉁이로 이안하였다. 이는 필시 보처존補處尊448)을 염두에 둔 것으로 타인이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 성품의 과감함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선사께서 입적하신정종正宗 22년 무오(1798) 9월 29일 다음 해에 그 왼쪽에 탑을 세웠고, 후에 회계당會溪堂이 입적하여 또 그 오른쪽에 탑을 세웠으니, 보처의 예언이 명확하게 부합하였다.아아, 대한 융희隆熙개국 512년 무신 무신(1908) 봄4월 18일에 의병 난리에 동암東庵(은적암)과 보조암이 혹독하게 일병日兵의 방화를 당하여449) 두 채의 보배 구역이 곤명昆明450) 장소로 변하고 세 채의 스투파(窣堵)451)가 쓸쓸한 근심을 같이 띠게 되었으니 운수(理數)의 순환이 아니겠는가. 이에 9년 (지나서) 병진(1916) 봄에 지주 설월 용섭雪月龍燮452)이 풍암 조사의 탑을 먼저 옮겨 비가 있는 비탈(碑嶝)의 본좌本座에 안치했다.사건은 해당 기문에 보인다. 두 채의 탑을 아직 이안하지 않은 상태로 무오년(1918) 봄에 이르러 담을 쌓고 기와를 얹어 4문파의 재물을 덜어 보조하니 수백 원圓을 소비하였는데, 진실로 가히 ‘산을 빛내고 개울을 아름답게 했다’453) 할 만 했다. 같은 해 5월 본문本門 사람호봉豪峯ㆍ위송衛松ㆍ호명皓溟ㆍ용연龍淵ㆍ곤명混溟ㆍ눌봉訥峯 등이 힘을 합쳐 두 선사의 탑을 이안했다. 일꾼은 16인뿐이라서 여섯 번씩 짐을 졌고 비용은 60원이 들었으며, 며칠 되지 않아 봉안했다.탑을 세운 때부터 무오년까지 123년이다. 풍암 노숙이 영해影海 조사의 맥을 잇고 묵암默庵이 (풍암을) 계승하여, -
012_0732_a_01L1)碧潭堂 [18] 塔會溪堂塔移安碑殿及
012_0732_a_02L築墻記
012_0732_a_03L傳曰。禪師性行强毅。眼下人不能走。
012_0732_a_04L舌底衆莫敢行。扶宗爲焚板之警。應會
012_0732_a_05L作奪席之勢。降靈之本。致間世之奇局。
012_0732_a_06L不其然而然乎㢤。以故禪師在世。運楓
012_0732_a_07L老之塔。安于普照之乾隅。此必是將爲
012_0732_a_08L補處尊之預算。而人莫敢以抗志。其性
012_0732_a_09L行之果。敢於此驗矣。禪師示寂正宗二十
二年。戊
012_0732_a_10L午九月二
十九日之翌年。立塔于其左。後會溪堂
012_0732_a_11L示寂。又立之其右。補處之讖。端合符
012_0732_a_12L契也。嘻嘻。迄大韓隆熙二年開國五百十
二年戊申也
012_0732_a_13L戊申春四月十
八日。義兵之亂。東普兩庵。酷
012_0732_a_14L遭日兵之燹禍。二區寶坊。變作昆明
012_0732_a_15L之場。三位窣堵。共帶怊悵之愁。無乃
012_0732_a_16L理數之循環歟。粤九年丙辰春。住持雪
012_0732_a_17L月龍燮。先運楓祖之塔。妥于碑嶝本座
012_0732_a_18L事見
本記。兩位之塔。未暇運安。而至戊午春
012_0732_a_19L築垣而盖瓦之。捐四門財而補助。費數
012_0732_a_20L百圓金。信可謂山輝而川媚者也。仝
012_0732_a_21L年五月本門人豪峯衛松皓溟
龍淵混溟訥峯等。同力運兩
012_0732_a_22L禪師之塔。役丁但十六人。六次荷擔。
012_0732_a_23L用財六十餘圓。不數日奉安。而自立塔
至今戊
012_0732_a_24L午一百二
十三年也以楓老繼影祖之脉。而默塔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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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2_b_01L벽담 선사를 묵암 비의 오른쪽에 안치하고 회계 선사가 계승하였다. 그리하여 위로 부휴浮休부터 아래로 풍암 노숙에 이르기까지 조사들과 후손들이 소목昭穆의 차례로 나열되니 불조佛祖의 전등傳燈과 같았다. 풍암 노숙의 밑에 서너 분파가 생겨 가지마다 잎사귀마다 잇고 이어서 무궁한 기초를 전하였으니, 비록 삼척동자라 해도 일러 주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그리하여 차례茶禮5월 5일를 지내고 나서 나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나는 말했다.“기문이란 사건의 명칭이요, 명칭이란 사실의 손님입니다. 사건이 완성되고 사실 또한 이루어졌으니 어찌 명칭을 쓰겠습니까.”“이른바 사건과 사실이 천년토록 전해지는 것은 명칭에 기대어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홀로 명칭 없이 서게 된다면 전해지지 않음은 해를 보듯 명확하니, 명칭의 의미를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까.”나는 이에 선사의 덕과 행위, 사건과 실제가 이와 같고 이와 같음을 대략 기록한다.조계산 진영당 이전과 새로 영정을 조성한 연기에 대한 의론무오년(1918) 7월에 기록하다.(曹溪山眞影堂移建及新造影緣起論戊午七月日誌)융희隆熙 2년 무신(黃猿, 1908) 4월 18일에 동암東庵(은적암)과 보조암이 혹독하게 병화兵火를 당해 동암의 불상을 문수당文殊堂으로 이안하고, 보조암의 불상은 자음당慈蔭堂(국사전)454)으로 이안하였다. 신위神位에 따라 향을 올렸는데 보조암의 선조 영정 같은 경우는 봉안할 겨를이 없어서 후손들이 안타까워했다. 4년 후 신해(白豕, 1911) 3월 9일에 본사 지주 설월雪月 화상이 남곡南谷 화사畫師를 불러 영정 35축軸을 새로 조성하여 사찰의 동쪽 진영당에 걸고 차례茶禮를 지냈다. 그리고 내게 기문을 구하며 말하였다.“전기傳記에 옛 영당과 새 영당의 혼란함이 있으니, -
012_0732_b_01L其嫡。碧師安於默碑之右。而會師承其
012_0732_b_02L派。上自浮休。下至楓老。祖祖孫孫。昭
012_0732_b_03L昭穆穆。儼若佛祖之傳燈也。楓老之下
012_0732_b_04L三四分派。枝枝葉葉。繼繼承承。傳於
012_0732_b_05L無窮之基礎。雖三尺。不待言而記得也。
012_0732_b_06L芿以茶禮之五月
五日事旣就矣。囑余其記。
012_0732_b_07L余曰記者。事之名也。名者。實之賓也。
012_0732_b_08L事旣成。實亦就矣。何足名之爲也哉。
012_0732_b_09L曰所謂事實之傳於千秋者。賴其名而
012_0732_b_10L不朽者也。若以實獨立於無名之鄕。則
012_0732_b_11L其所不傳。指日可待也。名之謂名。烏
012_0732_b_12L可忽諸。余於是略記禪師之德與行事
012_0732_b_13L實之如是之如是也。
012_0732_b_14L
012_0732_b_15L曹溪山眞影堂移建及新造影緣起
012_0732_b_16L論戊午七月日誌
012_0732_b_17L隆熙二年黃猿之四月十八日。東普兩
012_0732_b_18L庵。酷遭兵燹。東佛像移安于文殊堂。
012_0732_b_19L普佛像移安于慈蔭堂。依位奉香。而至
012_0732_b_20L若普庵之先祖影幀。未暇奉安。爲雲仍
012_0732_b_21L之病焉。越四年。白豕三月九日。本住
012_0732_b_22L持雪月和上。招南谷畫師。新造影幀三
012_0732_b_23L十五軸。掛于寺之東眞影堂。仍茶禮之
012_0732_b_24L已。求余記云。傳記有古影堂新影堂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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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2_c_01L선조 영정의 효시와 중수하여 이안한 과정에 대해 들어 볼 수 있습니까?”“네, 네. 본사에 영당을 마련함은 옛 기록을 고찰해 보면, 국사께서 열반한 처음에 진영을 모사하여 축대 위 선방과 보조암 조실에 봉안하였습니다. 그 후 15조사의 진영을 차례로 봉안하였으니 이것이 자음당 보조암 조실에 진영을 건 시작(草昧)입니다. 건륭乾隆 10년 을축(1745)에 이르러 16조사의 영정을 다시 그렸으니 화주化主455)는 지변指卞이었고, 건륭 45년 경자(1780)에 16조사의 영정을 거듭 완성했으니 화주는 수징水澄이요, 가경嘉慶 12년 정묘(1807)에 옛 영당을 중수했으니 화주는 화봉華峰이었습니다. 이것이 16조사를 자음당에 봉안한 내력이니, ‘옛 영당’으로 칭하게 된 것이 빛나고 명확합니다.묵암자默庵子가 서술한 영당 상량문에 이르길, 구름 밖 청산을 베어 중앙(主中)의 보전寶殿을 지으니, 오른쪽은 자음당이요 왼쪽 수석水石이며 진락대眞樂臺456)를 등지고 침계루를 향했으며, 중국을 접한 태고太古(보우普愚)457)와 두 계수나무를 기른 부용芙蓉458)이라 했으니, 이에 건륭乾隆 연간에 새로 지은 당堂임을 알 수 있습니다.동치同治 3년 갑자(1864)에 새 영당을 중수하고, 광서光緖 11년 병술(1866)459) 봄에 새 영당을 도성당道成堂460) 옛터로 옮겨 세웠습니다.을유년(1885) 2월 2일 밤에 화재가 났기 때문이다. 주관은 용운당龍雲堂461)이 했습니다. 18년 지나 계묘년(1903) 가을에 다시 본래 있던 곳으로 옮겼으니 당시 주지가 주관했습니다. 이것이 태고太古 이하 조사들을 새 영당에 봉안한 내력이니 명확해서 의혹이 없습니다.지금 하는 불사는 보조암의 동쪽 건물(東廡)에 있으니, 광서光緖 원년 병자(1876)462)에 창립한 것입니다. 풍암楓嵓 이하 4문파의 진영을 안치한 영당이 문득 화재(崑炎)463)를 만나, 남아 있던 토산물을 각기 뜻에 따라 동시에 들어서 -
012_0732_c_01L混濫。先祖影幀之蒿矢及重修移安。可
012_0732_c_02L得聞乎。曰唯唯。本寺影堂之設。考諸
012_0732_c_03L古記。國師泥洹之初。摸寫眞影。奉安
012_0732_c_04L于坮上禪房及普庵祖室。其後十五祖
012_0732_c_05L影。次第奉安。是爲慈蔭堂普祖室。掛
012_0732_c_06L影之草昧也。至乾隆十年乙丑十六祖
012_0732_c_07L影重畫。化主指卞。乾隆四十五年庚子
012_0732_c_08L十六祖影重成。化主水澄。嘉慶十二年
012_0732_c_09L丁卯。古影堂重修。化主華峰。此卽十
012_0732_c_10L六祖奉安之慈蔭堂。稱爲古影堂云者。
012_0732_c_11L章章明矣。默庵子所述影堂梁文云。斫
012_0732_c_12L雲外之靑山。建主中之寶殿。右慈陰 [98] 而
012_0732_c_13L左水石。背眞樂而面枕溪。接中國之太
012_0732_c_14L古。毓兩桂之芙蓉。是知乾隆年間新剏
012_0732_c_15L之堂也。同治三年甲子。新影堂重修。光
012_0732_c_16L緖十一年丙戌春。新影堂移建于道成
012_0732_c_17L堂古址。乙酉二月二日
夜回祿故也主管龍雲堂。越十
012_0732_c_18L八年癸卯秋。更移于本基。時住持主幹
012_0732_c_19L也。此卽太古下列祖奉安之新影堂云
012_0732_c_20L者。的的無疑也。今之役也。卽普照
012_0732_c_21L庵之東廡。光緖元年丙子年剏立。所
012_0732_c_22L安楓嵓下四門派影堂。遽遭昆 [99] 炎。而所
012_0732_c_23L存土地物。各隨志願。同時并擧。每
012_0732_c_24L「碧潭」底本頭註曰「臨濟三十三世」{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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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3_a_01L신위마다 3원圓씩 소비하여 도합 35축을 이 당에 걸었습니다. 이 당은 본래 태고 이하 조사들의 진영을 안치한 곳인데 대장전大藏殿 벽으로 이안하였으니, 예禮에 이르길 ‘친한 이를 가까이하고 소원한 이를 멀리한다.’는 것이고, 경전에 이르길 ‘새롭거나 오래되거나 여럿이 은미하거나 드러나거나 함께 이루어진다.’464)는 것입니다. 이는 불조佛祖의 변화신이 출입에 장애 없는 매우 불가사의한 경계입니다.당堂이 갔다가 돌아옴에 한계가 없어 은연히 삼변정토三變淨土465)와 같고, 진영은 훼손되고 완성됨에 자재하니 찬란히 뭇 별들의 섬궁蟾宮(달) 같습니다. 신구新舊 당의 명명과 진영을 중수하여 이안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된 것일 테지요.”설월 옹(雪翁)이 흔쾌히 말했다. “당堂이 이와 같이 갔다가 돌아오고 진영이 이와 같이 훼손되었다가 완성되었으니, 어찌 기문이 없어서 되겠습니까.”내가 이에 기문을 지어 후인들에게 보인다.칠전의 동쪽 방장이 고금에 이름이 다름에 대한 변증8월 일(七殿東方丈古今名異卞八月日)다송茶松 노인이 하루는 무설전無說殿에서 회차會茶466)하니 무설 도인無舌道人과 오천 장실梧泉丈室이 자리로 오는데, 흡사 벽암헌碧嵓軒과 호월皓月과 청풍淸風 세 존숙尊宿께서 앉아서 회차하던467) 가풍 같았다. 무설 도인이 묻기를, “대상칠전臺上七殿은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하였다.“법신보살法身菩薩468)의 자리가 무설전즉 설법전說法殿으로, 현재 장경전藏經殿이다.에 있고 왼쪽 넷과 오른쪽 셋이 이것입니다. 동서 방장方丈은 이 칠전의 선승당禪僧堂469)이니, 동서에 각기 선승당이 있어서 셀 수 있습니다. 서쪽에는 삼일암三日菴본래 서쪽 방장方丈 상사당上舍堂인데 담당湛堂470)이 3일 만에 견성見性하였기에 불린 이름이다.이 있고 이 아래에 선승당인 하사당下舍堂과 청운당靑雲堂471)이 있으니 오른쪽 3전殿이 됩니다. 동쪽에는 조사전祖師殿병술년(1886)에 축성전祝聖殿472)을 설치한 용운당주龍雲堂主, 기유년(1909)에 조사 진영을 건 응월당주應月堂主.이 있다. 이 아래에 선승당인 백설당白雪堂473)과 -
012_0733_a_01L位費三圓式。合三十五軸。揭于此堂
012_0733_a_02L而此堂本所安太古下諸祖影。移安于
012_0733_a_03L大藏殿壁。禮所云。近親而遠疏者耶。
012_0733_a_04L經所云。新舊衆隱現俱成者耶。此是佛
012_0733_a_05L祖變化身土 [100] 出入無碍之大不思議境界
012_0733_a_06L也。堂之徃復而無際。隱然若三變之淨
012_0733_a_07L土。影則壞成而自在。煥然如衆星之蟾
012_0733_a_08L宮。其新舊堂之命名。影重修之移安。
012_0733_a_09L不其然而然乎。雪翁欣然曰。堂如是徃
012_0733_a_10L而復。影如是壞而成。豈其無記而可乎
012_0733_a_11L哉。余於是記而示諸后。
012_0733_a_12L
012_0733_a_13L七殿東方丈古今名異卞八月日
012_0733_a_14L茶松叟一日會茶於無說殿上。有無舌
012_0733_a_15L道人。與梧泉丈室適個座。恰如碧嵓軒
012_0733_a_16L皓月淸風三尊宿打坐會茶之家風也。
012_0733_a_17L舌問。坮上七殿那箇是是甚麽意旨。
012_0733_a_18L曰法身菩薩坐在無說殿。卽說法殿
今藏經殿左之
012_0733_a_19L四右之三是也。東西方丈。卽此殿之禪
012_0733_a_20L僧堂。東西各有禪僧堂。可以數得也。
012_0733_a_21L西卽三日菴。本西方丈上舍堂名也。
湛堂三日見性。立名也。此下有
012_0733_a_22L禪僧堂。曰下舍堂靑雲堂也。卽右之
012_0733_a_23L三殿是也。東卽祖師殿。丙戌設祝聖殿龍雲
堂主。己酉掛祖師
012_0733_a_24L影應月
堂主。此下有禪僧堂。曰白雪堂遮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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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3_b_01L차안당遮眼堂ㆍ자음당慈蔭堂474)이 당은 당시 국사들께서 모여 공양하던 곳이다.이 있으니 왼쪽 4전殿이 됩니다. 동서 방장과 양쪽 선승당에 식당을 합하면 7전이 됩니다. 이 당들이 진락대眞樂臺 아래 진여문眞如門475) 안에 있기 때문에 ‘대상칠전臺上七殿’이라 부릅니다. 옛 기록에 이르길, 이 전殿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는 큰 화로이므로 또한 ‘선불장選佛場’이라 부르고 또는 ‘급제당及第堂’이라고도 부른다고 했습니다. 상사당과 하사당, 그리고 청운당 이름이 그저 그렇겠습니까.”“7전의 이름이 그런 것은 그러하군요. 동서 방장이 고금에 이름이 다른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동서는 주인과 빈객의 지위입니다. 보조普照께서 계실 때에 보조가 주인으로 동쪽에 거하고 진각眞覺476)이 빈객으로 서쪽에 머물렀습니다. 고봉高峯477)과 태고太古478)ㆍ부용芙蓉479)에 이르기까지 주인과 빈객이 대대로 없던 적이 없습니다. 주인은 동쪽, 빈객은 서쪽의 위치이므로 동서 방장이라고 칭합니다. 서쪽이 삼일암이 된 것은 담당湛堂 화상和上이 여기에 앉아 선정에 들어 삼 일 만에 견성見性했기 때문에 비로소 ‘삼일암’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동쪽이 조사전이 된 것은 도광道光 22년(1842)에 본사의 아홉 번째 창건주 용운당龍雲堂이 머물렀는데, 보조로부터 용운에 이르기까지 조사와 손자들이 주인이 되지 않고 이곳에 머문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 당을 보면 네모와 원이 들어맞고 사방에 청헌廳軒이 있고 문은 없으며, 중앙에 온돌이 있고 대들보는 없습니다. 말(斗)만 한 크기에 사방이 한 장丈으로 십홀방장十笏方丈480)에 만 개의 사자좌(獅座)481)가 부족하지 않고 남음도 없으니 정명淨名482)을 이름인가.광서光緖 13년 정해(1887)에 본 군수 이범진李範晋483)이 주지 용운당龍雲堂과 함께 이 당堂에 축성전祝聖殿을 창설하여 온돌 위에 대청을 더하고 처마 밖에 문을 걸었으며 이전의 긴 담장을 무너뜨리고 층계를 놓아 섬돌마다 삼중의 문(閭)을 세워 찬란하게 일신하였습니다. 삼전三殿의 위패를 봉안하고 축성전 판액을 걸어 -
012_0733_b_01L堂。及慈蔭堂。此堂當時諸國
師會食堂也卽左之四殿
012_0733_b_02L是也。東西方丈及兩禪僧堂。并食堂
012_0733_b_03L則足七殿。此堂并在眞樂坮下眞如門
012_0733_b_04L內故稱云。臺上七殿。古記云。此殿卽
012_0733_b_05L烹佛烹祖之大爐。亦云選佛場。亦云
012_0733_b_06L及第堂。上下舍及靑雲堂之名意。豈
012_0733_b_07L徒然哉。曰七殿之名意。然卽然矣。東
012_0733_b_08L西方丈古今名異者如何。曰東西乃主
012_0733_b_09L賓之位。普照在時。普照主也。居其東。
012_0733_b_10L眞覺賓也。居其西。以至高峯太古芙蓉
012_0733_b_11L主主賓賓。無世無之。而主東賓西之位。
012_0733_b_12L故稱東西方丈也。西爲三日庵者。湛堂
012_0733_b_13L和上。坐此入定。至三日見性故。始稱
012_0733_b_14L三日庵也。東爲祖師殿者。道光二十二
012_0733_b_15L年。本寺第九剏主龍雲堂居之。盖自普
012_0733_b_16L照。迄于龍雲。祖祖孫孫。未爲主而居
012_0733_b_17L此者。未之有也。觀其堂。則方圓相稱。
012_0733_b_18L四有廳軒而無門。中有溫堗而無樑。如
012_0733_b_19L斗而方於丈。十笏方丈。萬箇獅座。無
012_0733_b_20L欠無餘者。淨名之謂歟。光緖十三年丁
012_0733_b_21L亥。本郡守李範晋。與主僧龍雲堂。倡
012_0733_b_22L設祝聖殿於此堂。而堗上加廳。軒外揭
012_0733_b_23L門。壞前長垣而架梯陛。陛上建三重閭。
012_0733_b_24L煥然一新。奉安三殿牌。揭祝聖殿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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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3_c_01L‘어천문於千門’484) 이름을 보이니 안팎의 무지개문(虹門)과 높고 낮은 처마와 섬돌에 해 아래 다섯 빛깔의 구름이 지척에 있는 듯하였습니다. 세상 밖(物外) 백성들이 모두 우로雨露485)에 목욕하고, 명량明兩486)의 칭송과 홍일弘一의 교화를 무궁한 세월 동안 누리게 될 것입니다.풍조風潮가 송악松岳487)에 넘치고 세파가 뽕나무밭을 뒤흔들어,488) 융희隆熙 3년 기유(1909) 응종월應鍾月(10월)에 심검당尋釰堂에 학교를 마련하게 되어 33조사의 진영을 축성전에 옮겨 거니, 축성전의 위패는 허공의 뼛속으로 숨고 액호額號는 오유향烏有鄕489) 바깥으로 돌아갔습니다. 옛날에 이른바 제나라가 변하면 노나라가 되고 노나라가 변하면 도를 행하게 된다490)고 하더니, 진실로 그 말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방장이 축성전이 되고, 축성전이 조사전이 되니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동서 방장의 이름이 고금에 차이가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무설無舌 공公이 혀를 묶고는 묵언당으로 돌아가고, 오천자梧泉子는 샘물을 마시고 보제당普濟堂으로 돌아갔다. 다송 노인은 차 한 사발을 점다點茶491)하고 한 줌의 솔잎을 먹고서 지팡이 짚고 허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조계산 송광사 사자목의 새 길과 옛길의 연기에 대한 변증10월 3일(曹溪山松廣寺獅子項新舊路緣起卞十月三日)다송자茶松子가 운영雲影 노숙老宿의 처소(軒)를 방문하여 산수에 대한 의논을 하다가, 화제가 조계산의 아름다움과 터전의 통창함에 이르러 그 의미가 어떠한지 물었다. 운영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사찰의 인묘寅卯492) 방향 10리쯤에 주봉 ‘호악봉虎嶽峯’이 있고 남북으로 지류가 있는데 남쪽은 사찰의 병정丙丁493) 방향으로 훤하게 트여 광활하다. 곤신경유坤申庚酉494)로 에둘러 건해乾亥495)에 이르러는 머리를 들고 마감하니 일곱 봉우리, 즉 장막봉帳幕峰과 호령봉號令峰,496) 대장봉大將峰,497) 인귀봉印歸峰, 조계봉曹溪峰,498) 직세봉直歲峰, 백로봉白鷺峰이 늘어서 있습니다. -
012_0733_c_01L懸於千門號。內外虹門。高低軒陛。日
012_0733_c_02L下五雲。如隔咫尺。物外群氓。咸沐雨
012_0733_c_03L露。明兩之頌。弘一之化。將享於無窮
012_0733_c_04L之年矣。風潮溢於松岳。世波蕩於桑田。
012_0733_c_05L至隆熙三年己酉應鍾月。設學校於尋
012_0733_c_06L釰堂。卅三祖影。移掛於祝聖殿。殿牌
012_0733_c_07L隱於虛空骨中。額號歸於烏有鄕外。古
012_0733_c_08L所謂齊變爲魯。魯變爲道。信不謬矣。
012_0733_c_09L方丈之於聖殿。聖殿之於祖師殿。何異
012_0733_c_10L於此耶。東西方丈之名。古今異稱者。
012_0733_c_11L職由乎此也。何足疑也哉。無舌公結舌。
012_0733_c_12L而歸之默言堂。梧泉子飮泉而歸之普
012_0733_c_13L濟堂。茶松叟點茶一甌。餐松一掬。扶
012_0733_c_14L藜觀空。長嘯太息而已。
012_0733_c_15L
012_0733_c_16L曹溪山松廣寺獅子項新舊路緣起
012_0733_c_17L卞十月三日
012_0733_c_18L茶松子訪雲影老宿軒。問山水論。語及
012_0733_c_19L曹溪山水之奇麗。基局之開通。其意如
012_0733_c_20L何。雲曰寺之寅卯方十里許。有主峯曰
012_0733_c_21L虎嶽峯。有南北兩支。南則寺之丙丁方。
012_0733_c_22L宕闢廣濶。坤申庚酉圍繞。至乾亥而矯
012_0733_c_23L首結閈。而七峰列立。曰帳幕峰號令
012_0733_c_24L峰大將峰印歸峰曹溪峰直歲峰白鷺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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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4_a_01L차례대로 일어났다가 눕고 달리다가 돌아보니 만경창파에 물오리와 돛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습니다. 북쪽은 사찰의 갑인甲寅499) 방향으로 머리를 들어 높이 솟아 축계자임丑癸子壬500)에서 술해戌亥501)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돌려 낮게 엎드렸으니 또한 일곱 봉우리가 차례로 서 있습니다. 즉 장고봉長鼓峰과 증봉甑峰(시루봉), 화봉火峰, 학봉鶴峰,502) 망봉望峰(망수봉), 옥대봉玉燈峰, 탄금봉彈琴峰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끊어지고 숙였다가 우러르니 1천 층 봉우리가 구름과 파도처럼 겹겹이 서로 안아 옷깃이 되고 지류마다 교차하여 성城을 이룹니다.멀리서 바라보면 하늘 감옥이 둘러싼 듯하고 가까이 건너가 보면 양의 창자처럼 꼬여 있습니다. 주봉에서 진辰(동남쪽)으로 입수入首503)하여 머리를 든 것은 장고봉으로, 갑묘甲卯504)의 용으로 맥이 떨어졌다가 혹 묘을卯乙505)에서 일어나 인갑寅甲506)으로 눕고 손사巽巳507)에서 일어났다가 간인艮寅508)에서 눕습니다. 중조봉中祖峰509)은 우람하고 끄트머리 줄기(孫枝)들은 늘어섰습니다(璿列). 이와 같이 십 리를 행룡行龍510)하다가 광활한 터가 나오는데 말 만 마리를 수용할 정도입니다. 이를 ‘바람에 나부끼는 비단 띠(風吹羅帶)’511)가 하나하나 국면을 맺는다 하거나, ‘큰 못의 연꽃(大澤芙蓉)’이 면면이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갑경병임甲庚丙壬512)의 4대격大格은 좌우 향배向背가 되고, 진술축미辰戌丑未513)의 4고장庫葬514)은 네 모퉁이의 8문이 됩니다. 법계法界에 늘어서서 국면을 펼치니 주인과 빈객이 마주 앉음에 응하고, 두 시내가 모여 연못을 이루니 용과 범이 세상을 지키는 형세를 포용합니다. 용 안에는 목마른 사자가 물을 마시는 형국이 있고 범 안에는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는 형국이 있는데, 서로 포용하여 수구水口515)를 들이고 장쇄藏鎻516)하니, 수구는 즉 상통하는 목구멍에 해당합니다.”“혹 ‘남쪽 기슭의 다리’라거나 혹 ‘북쪽 기슭의 길’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분분한 것은 왜 그런가요?”“조계산 문 밖의 큰길이 본래 용 옆구리인데 개통되어 유린되었습니다. 원래 큰 도시 명승지인 천연의 터전인데 사자 목에 이르러 큰 이해利害가 있다는 논란이 있는 고로 남쪽과 북쪽에서 고금에 다른 명칭이 있는 것입니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옹정雍正 8년 경술(1730) 봄에 화주化主 탁근卓勤이 창건하였는데, -
012_0734_a_01L如次起而伏走而顧。若萬頃波之鳬帆。
012_0734_a_02L北則寺之甲寅方。起頭崇嶐。丑癸子
012_0734_a_03L壬。至戌亥而回頭低伏。而亦有七峰第
012_0734_a_04L立。曰長鼓峰甑峰火峰鶴峰望峰玉燈
012_0734_a_05L峰彈琴峰。如次連而斷低而仰。如千層
012_0734_a_06L峰之雲濤。重重相抱而作袊。枝枝相叉
012_0734_a_07L而作城。遠而望也。若天獄之樞環。近
012_0734_a_08L而涉之。似羊腸之螺廻。自主峰辰入首
012_0734_a_09L而起頭者。卽長鼓峰。甲卯龍而落脉。
012_0734_a_10L或卯乙起而寅甲伏。或巽巳起而艮寅
012_0734_a_11L伏。中祖峰豊隆。末孫枝璿列。如是十
012_0734_a_12L里行龍。一局廣闢。萬馬可容。或云風
012_0734_a_13L吹羅帶。個個結局。或云大澤芙蓉。面
012_0734_a_14L面結實。甲庚丙壬四大格。爲向背左右。
012_0734_a_15L辰戌丑未四庫葬。爲四隅八門。列法界
012_0734_a_16L而布局。應主賓之對坐。會雙溪而成潭。
012_0734_a_17L抱龍虎之持世。龍內有渴獅飮水形。虎
012_0734_a_18L內有老牛舐犢形。相抱爲內水口而藏
012_0734_a_19L鎻。水口卽通涉之咽喉也。或南岸橋。
012_0734_a_20L或北岸路。從古紛紜者。何也。盖曹溪
012_0734_a_21L門外大路。本自龍脇開通蹂躝。原是大
012_0734_a_22L都明勝之天然基局。而至獅項。有大利
012_0734_a_23L害之論故。於南於北。古今異稱者是也。
012_0734_a_24L按古記。雍正八年庚戌春。化主卓勤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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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4_b_01L함풍咸豊 4년 갑인(1854) 가을에 홍수로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남쪽 길에서 사자 목을 자른 극락교의 처음과 끝입니다. 그리고 길을 고친 기록(改路記)을 살펴보면, 처음에 용호 사이에 큰길을 개통하였고 중간에 무당의 말을 믿고서 옛 길을 폐하고 용 꼬리 사자 목에 새 길을 내었습니다. 임진년(1892) 오월에 이르러 다시 옛 길을 수리하였으니 이것은 즉 북쪽 기슭에서 사자 목을 피하여 옛 길을 따른 처음과 끝입니다.26년 지나서 정사년(1917) 7월에 산승 한붕漢朋 공公이 재산을 희사하여 옛 무지개다리 터에 석교를 놓고 도로를 정비하여 사자 목을 자르고 용 꼬리를 끊었으니 이것이 바로 극락교의 처음과 끝입니다. 옛 기록은 다만 극락교의 시종에 관한 연대만 말하고 길의 신구新舊에 대한 변론은 없습니다. 임진년에 길을 보수한 기록에서 비로소 신구 길의 이해에 대한 변론을 하였고 정사년 작업을 논하였으나 오롯이 신구 이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허공에 석교를 놓고 땅을 북돋아 방죽을 설치하여 사자 목을 자르고 용 꼬리를 끊어 수레와 말이 통하게 하니 큰 도시와 항구보다 더 낫게 되었습니다. 아아, 남쪽 기슭의 길이 옛것입니까, 북쪽 기슭의 길이 새 것입니까. 옛길이 이롭습니까, 새 길이 해롭습니까. 진실로 무엇이 옛것이고 무엇이 새 것이며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 정확히 변론할 수 없습니다.전하는 바에는, 옛날에 사찰이 부유하고 승려가 성대할 시절에 가까운 곳에 있던 훼불毀佛하는 이가 신이한 안목이 있다고 칭하고서는 승려들을 속여서, 사자 목에 길을 열고 용 꼬리에 다리를 건설하면 사찰은 더욱 부유해지고 승려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 했습니다. 승려들이 그 말을 믿고 길을 고치고 다리를 세웠더니, 이로부터 사찰과 승려가 점차 퇴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당의 말을 믿고 임진년에 일을 벌인 것과 유사하고, 두 말이 부합하니 신구新舊를 분별할 수 있고 이해利害가 절로 구별됩니다.논해 보자면, 옛 길이란 성사聖師께서 도안道眼으로 사찰을 창건한 처음에 사자 목을 피하여 북쪽 기슭을 건넜다고 하는 것이 해당됩니다. 새 길이란 훼불毀佛하는 무당이 옹정雍正 연간에 사자 목을 자르고 -
012_0734_b_01L剏也。咸豊四年甲寅秋。洪水所壞也。
012_0734_b_02L此卽南路斫獅子項極樂橋之始終也。
012_0734_b_03L又按改路記。始通大路於龍虎之間。中
012_0734_b_04L年偶信巫覡。廢古治新於龍尾獅項。迄
012_0734_b_05L于壬辰五月。更修古路。此卽北岸避獅
012_0734_b_06L項從古路之始終也。越二十六年丁巳
012_0734_b_07L七月。山之釋漢朋公。捨財架石於古虹
012_0734_b_08L橋地。修治道路。斫獅項斷龍尾。此卽
012_0734_b_09L極樂橋之終始也。盖古記。但言橋之始
012_0734_b_10L終年記。無路之新舊之卞。壬辰改路之
012_0734_b_11L記。始卞新舊路之利害。論丁巳之役
012_0734_b_12L專無新舊利害之說。築石架空。培土闢
012_0734_b_13L堰。斫項斷尾。車馬通涉。便勝於大都
012_0734_b_14L巨港。噫噫。南岸路古耶。北岸路新耶。
012_0734_b_15L古路利耶。新路害耶。固莫得以卞其
012_0734_b_16L何古何新誰利誰害之的處也。傳說云
012_0734_b_17L昔在寺富僧盛時。近有毀佛者。稱以神
012_0734_b_18L眼誣僧云。開路獅項。建橋龍尾。寺益
012_0734_b_19L富。僧益盛。僧信其言。改其路。建其橋
012_0734_b_20L矣。從玆寺僧漸衰云。此與信巫之說壬
012_0734_b_21L辰之役大同。而兩說符契。新舊可卞。
012_0734_b_22L利害自分。盖嘗論之。古路者。聖師道
012_0734_b_23L眼。剏寺之初。避獅項渡北岸者是也。
012_0734_b_24L新路者。毀佛巫覡。雍正之間。斫獅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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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4_c_01L남쪽 기슭에 올랐다고 하는 것이 해당됩니다. 살아 있는 맥을 한 번 끊으니 천 년 동안 잇기 어렵고, 죽은 재가 불을 구하나 백 년 동안 얻기 어렵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자의 맥을 한 번 끊으면 끝내 잇기 어려울 것이요, 죽은 용의 꼬리에 석교를 세우더라도 끝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해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조봉祖峰의 우뚝함(逈特)과 용호의 안음(抱藏), 수구의 장쇄藏鎻, 중조봉中祖峰의 행룡行龍, 두 시냇물의 득파得破,517) 비단 띠 모양의 정국正局, 법계도의 배치, 4대격大格의 향배向背, 4고장庫葬의 고임과 쏟아짐(渟瀉), 용호 옆구리의 통섭通涉 같은 경우는 천지가 비장한 군옥부群玉府518)러니 이 모두 도안으로 창업하여 천지가 함께 보존되길 도모한 계획이 됩니다. 어이하여 말세에 사특한 말을 믿고 힘쓰기를 이처럼 의기양양하게 합니까.”나는 이에 기록하여 도안과 고견을 가진 이에게 보이노라.화엄사 진응 화상을 청하는 글(請華嚴寺震應和尙書)선문禪門이 세상에 행한 지가 멀고 크지 않음이 없고 선사禪師가 세상에 유명함이 또한 많고 밝지 않음이 없으니, 조계산 한 굽이에 이르러 선문의 조종朝宗이라 칭할 수 있음이 또한 불가함이 되지 않습니다.각노覺老에 대해 구옹龜翁은519) 널리 퍼뜨렸다 하더라도 세대가 지나고 시간이 멀어지니 그저 종이와 묵만 남아서, 살아 있는 조사의 뜻이 허공을 말하는 혀끝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조사의 글이 오유烏有(없음)의 먼지 속으로 묻히게 되니 불자佛子로서 한심하여 어찌 그저 애만 끊겠습니까. 지난번 우담자優曇子520)가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을 지역에 반포했으나 다만 책상 위 문구文具일 뿐입니다. 조석으로 눈여겨보고 마음과 입으로 회자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조계 선문은 땅에 떨어질 것임이 의심할 바 없습니다. -
012_0734_c_01L蹋南岸者是也。若其生脉一斷。千載難
012_0734_c_02L續。死灰求火。百年難得。以今生獅脉
012_0734_c_03L一斷。終不可續。死龍尾架石。終不可
012_0734_c_04L活也。其所利害之果何如哉。至若祖峰
012_0734_c_05L之逈特。龍虎之抱藏。水口之藏鎻。中
012_0734_c_06L祖峰之行龍。兩溪水之得破。羅帶形之
012_0734_c_07L正局。法界圖之布錯。四大格之向背
012_0734_c_08L四庫葬之渟瀉。龍虎脇之通涉。天藏地
012_0734_c_09L秘。群玉之府。是皆爲道眼剏業之所以
012_0734_c_10L圖天地俱存之計也。奈之何以叔季信
012_0734_c_11L邪加功之如是得得也。余於是記。而示
012_0734_c_12L之於道眼高見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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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4_c_14L• 請華嚴寺震應和尙書
012_0734_c_15L盖禪門之行于世。靡不遠且大矣。禪師
012_0734_c_16L之鳴於世。亦靡不衆且曠也。而至若曹
012_0734_c_17L溪一曲。能稱禪門之朝宗。亦未爲不可
012_0734_c_18L也。覺老之龜翁。雖云宏闡。然而世降
012_0734_c_19L時遠。徒遺紙墨。活底祖意。便歸於談空
012_0734_c_20L之舌頭端。祖文忽埋於烏有之塵裡。其
012_0734_c_21L爲佛子所可寒心者。何但切腑哉。向者
012_0734_c_22L優曇子之證正錄。雖頒於域內。只是案
012_0734_c_23L上文具而已。誰有晨夕着眼膾炙心口
012_0734_c_24L耶。若此不擧。曹溪禪門。幾乎落地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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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5_a_01L현재 지역 내 사찰들의 푸른 눈은 번개 같아 교문敎門의 갈등을 모두 쓸어 버리고, 붉은 혀는 고래 같아 화장華藏521)의 파란을 모두 삼켜 버립니다. 오직 안타까운 것은 선문에 볼 만한 게 없으니 다만 창설剏設이 없어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엎드려 생각건대 화상께서 평등한 자비를 운용하시어 화장루華藏樓를 떠나지 마시고 조계산에 강림하소서. 제(不佞)522)가 발기하여 일말一末의 편지를 보내 사방의 동지들을 부르니 필경 개미처럼 사모하여523) 구름처럼 모여드는 정경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를 당하여 우리 대사께서 단에 오르시어 불자를 세워 들고 임제종의 본지를 설파하면, 참석하여 듣는 무리들이 책을 들고 조계선의 물살에 함께 목욕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언우齴齲524)가 강을 건너온 공덕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니 또한 각노覺老가 편집한 공덕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화상께서는 눈여겨보시고 답변해 주십시오.월간잡지(해동불보)를 읽고 감상을 쓴 편지최예운525)이 당시 주필이다.(讀月報感想書崔兒1)雲時在主筆)이번에 선생께서 보필報筆526)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나를 책망하심이 절실하고 간절하며 알뜰하고 부지런하여527) 간담이 땅에 떨어지니,528) 분수 밖의 총애를 받음이 왕의 식사를 거지에게 베푼 듯하니 어찌 안심하고 입으로 넘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선생께서 세상 추기樞機529)를 다하고 현변玄辯(이치)을 다하여530) 『해동불보海東佛報』531)에서 활달하고 넓게 비추시니, 미약한 지견知見으로 대방大方532)의 지혜로운 안목에 함부로 글을 던진다면 어찌 태허太虛에 터럭 하나 될 뿐이겠습니까. 또한 큰 골짜기에 물 한 방울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감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걸림이 없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즉 보조국사普照國師 비문을 싣다가 완재하지 않은 것입니다.보필報筆이 세상에 중요한 이유는, 고금 역사 가운데 본받을 만한 것이나 성현의 시순時順533) 간의 특별한 행적, 불조佛祖가 주고받은 아름다운 모범, -
012_0735_a_01L無疑矣。現今域中諸刹。靑眼如電。揮
012_0735_a_02L盡敎門之葛藤。赤舌如鯨。呑盡華藏之
012_0735_a_03L波瀾。唯恨禪文之莫閱者。第無剏設而
012_0735_a_04L然之然也。伏唯和尙。運平等慈。不離
012_0735_a_05L華藏樓。而降臨曹溪。以不佞之發起。輪
012_0735_a_06L一末之尺書。招四山之同志。必有蟻慕
012_0735_a_07L雲圍之情景。當此時也。吾師登壇。竪拂。
012_0735_a_08L談罷臨濟之宗旨。聽徒叅會。挾笑咸沐
012_0735_a_09L曹溪之禪波。如是以可報齴齲渡江之
012_0735_a_10L功。亦不負覺老綴葺之德也。唯和尙着
012_0735_a_11L眼一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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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5_a_13L• 讀月報感想書崔兒 [101] 雲時在主筆
012_0735_a_14L今先生責我以不記報筆。切切恳恳。諄
012_0735_a_15L諄孳孳。肝膽塗地。以至於分外之寵
012_0735_a_16L幸如推王饌而惠乞兒。渠敢安心而下
012_0735_a_17L口哉。且以先生之竭世樞機。窮諸玄
012_0735_a_18L辯。磊落廓照於海東佛報。以若微麽
012_0735_a_19L知見。妄投大方之慧目。則奚但爲一
012_0735_a_20L毫之於太虛。亦如一滴之於巨壑。故
012_0735_a_21L玆不敢抽毫於其間。然而不能無碍膺
012_0735_a_22L者有之。卽普照國師碑載之未完者也。
012_0735_a_23L盖以報筆之重於世者。古今歷史之可
012_0735_a_24L軌。賢聖時順之殊蹟。佛祖受授之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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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5_b_01L학계가 진보하는 오묘한 방법 등에 대해 본 것을 기록하고 들은 것을 모아서 세상에 반포하고 이목에 공포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가히 보필이 크게 경사스런 이유라 할 만합니다. 이제 조계 보조普照의 비문을 기재하되 완성하지 않고 또한 3개월이 지나도록 잇지 않으니534) 왜 그렇습니까. 보조의 도덕이 화담華潭535)과 함명涵溟536)의 교화에 미치지 못하고 김군수金君綏537)의 찬술이 또한 여하정呂荷亭538)이나 이유원李裕元539)의 찬술만 못합니까? 지금 보필은 바로 옛날 사필에 해당합니다. 글(筆)이 미완이라면 비문이 미완이요, 비문이 미완이라면 월보 또한 미완이요, 월보가 미완이라면 잡지사에서 보필報筆을 잡고서 죽백竹帛540)에 흠이 있음을 부끄러워함이 없겠습니까. 잡지사에서 보필을 잡고서 삭제하고 기술하는 것을 자유롭게 함은 장사가 팔을 펼침에 타인의 힘으로 말미암지 않음과 같습니다.공손히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서까래처럼 큰 붓541)을 움직여 반절의 비명碑銘을 이어 비명을 완성하여 월보에 게재함으로써 훗날 비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처음을 탐색하고 결말을 요약하여 국사의 덕음德音에 배부르게 한다면, 선생이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세상에 공표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밝게 살펴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경월 거사의 「선문증정록 서문」 서술에 대한 답서당시 경성에 있었다. 추강 대사가 상경하여 인쇄할 때 (경월 거사에게) 서술하기를 청하였고, 제출하였기에 답하는 글이다.(答擎月居士證正序述書時在京。秋江大士上京印刷時。請述。提出故。仍答辭也。)임계년(1892~1893)이 나뉠 때 광충교廣冲橋542)에서 차를 마셨고, 경술년(1910) 봄에 수표교水表橋543)에서 헤어졌고, 계축년(1913) 봄에 조계산방에서 글을 읽었습니다. 같이 차를 마신 지가 이미 10년이 지났고 헤어진 지 또한 4년(四花)이 지났으니 오늘 인적이 드문 드넓은 지경에서 글을 읽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글이 간략하면서도 풍부함은 실로 비단 마음과 수놓은 입544)의 큰 보배 상자 속에서 나온 것이니 -
012_0735_b_01L模。學界進步之妙方者。見則記之。聞
012_0735_b_02L則募之。頒於世。公於目。是可云報
012_0735_b_03L筆之所以大慶幸也。今曹溪普照之碑
012_0735_b_04L記而未完。亦過三個月而不續。何也。
012_0735_b_05L以其普照之道德。莫及於花 [102] 潭菡 [103] 溟之
012_0735_b_06L敎行。金君綏之撰。亦不若呂荷亭李裕
012_0735_b_07L元之述耶。今之報筆。卽古之史筆也。
012_0735_b_08L筆若未完。一碑未完。碑若未完。報亦
012_0735_b_09L未完。報若未完。居報社秉報筆。能無
012_0735_b_10L愧於竹帛之玷之乎。旣居其社秉其筆
012_0735_b_11L而削之筆之。任其自由。如壯士伸臂
012_0735_b_12L不由他力也。恭唯先生。運如椽之筆。
012_0735_b_13L續半絕之銘。完其碑。載其報。使後之
012_0735_b_14L讀碑者。原始要終。飽飫國師德音。無
012_0735_b_15L乃先生之筆於是公於世之結果耶。唯
012_0735_b_16L先生。切須洞鑑也否。
012_0735_b_17L
012_0735_b_18L• 答擎月居士證正序述書時在京。秋江
大士上京印
012_0735_b_19L刷時。請述。提出
故。仍答辭也。
012_0735_b_20L壬癸年分。酌茶於廣冲橋。庚戌春。別
012_0735_b_21L顏於水表橋。癸丑夏。讀文於曹溪山房。
012_0735_b_22L酌茶也。已過十霜。別顏也。亦經四花。
012_0735_b_23L而安知今日讀其文於希夷曠漠之境哉。
012_0735_b_24L以其文之略而豊之。寔出於錦心繡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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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5_c_01L가히 물고기 눈을 단련하여 밝은 구슬을 만들고 평범한 바위를 황금으로 만든 것이라545) 할 만합니다.이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546)의 서술은 지금까지 40년이나 되었고 선생의 글을547) 천 리 바깥에서 얻어 오대양 안에 이 『선문증정록』을 공급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이 『선문증정록』이 세상에 행해짐에 이 글을 얻음은 사람이 발을 얻음과 같습니다. 눈과 발이 서로 도우니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나 또한 우둔하고 완고하여 다만 그러함이 그러함만을 기억하고, 차를 마시며 이별하던 정만 서술하니 『선문증정록』 글을 얻은 기연은 훗날 살필 수 있겠는지요.오직 바라건대 혜감慧鑑548)하소서.근본을 배반하고 스승을 구하는 학우에게 보여 주는 글(示學友背本求師之人書)아, 우리 아무개 공公은 내 직언을 들으시오.부모가 낳아 주셨으니 마땅히 모셔서 봉양해야 하고, 스승(師長)에게 법도를 받았으니 예의로 공경히 받들어야 합니다. 갑작스레 그동안 몸담았던 학교와 이름 걸었던 사당社堂을 떠나니, 관계된 것은 근본에 보답함이요 바라는 것은 업적을 이룸입니다. 간혹 근본을 잊어 은혜를 배반하고 마음을 놓아 업적을 잃으면 사당에 돌아가 얼굴을 대하는 날에 무엇을 빌려 얼굴을 싸매고 무슨 말을 하여 보답할 것입니까.아아, 괴군蒯君이 한신韓信을 설득함에549) ‘음식을 미루어 나를 먹이고 옷을 벗어 나를 입혔으니 배반함은 좋지 않다’는 말550)이 역사(竹帛)에 전해져 이목을 놀라게 합니다. 스승이 제자를 기름에 옷 입히고 먹이며 사랑하고 길러 주어, 우리 문중을 잘 계승하라는 말로 이목에 경계하니 그 말씀이 조석으로 쟁쟁합니다. 지금으로 옛일을 보니 그 취향이 어찌 다릅니까. 이것으로 저것을 보니 그 도의를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일시 곤란하여 두 마음을 품을 생각이 일어나서 그 본색의 가치로서 이전의 높낮이를 비교하자면 어찌 다만 계산으로 능히 할 뿐이겠습니까. -
012_0735_c_01L之大寶篋中也。可謂鍊魚目作明珠。斫
012_0735_c_02L碌石成眞金者矣。本錄之記述也。迄今
012_0735_c_03L四十禩之久。而得先生文於千里之外。
012_0735_c_04L供斯錄於五洋之內。噓唏哉。本錄之行
012_0735_c_05L於世。得斯文如人之得足也。可謂目足
012_0735_c_06L相資。無所徃而不適也哉。余亦愚且頑。
012_0735_c_07L而但記其然之然也。叙其酌別之情。錄
012_0735_c_08L文之得機。幸使他日相照耶。唯冀慧鑑
012_0735_c_09L焉。
012_0735_c_10L
012_0735_c_11L示學友背本求師之人書
012_0735_c_12L嗟。吾某公。聽吾直言。父母生身。宜可
012_0735_c_13L侍養。師長受度。禮可敬奉。頓然謝離
012_0735_c_14L身捿學庠。名掛社堂。所管者。報本也。
012_0735_c_15L所願者。成業也。其或忘本而背恩。放
012_0735_c_16L心而失業。歸堂對面之日。借何物而褁
012_0735_c_17L面。措何辭而報答哉。嗚呼。蒯君之說
012_0735_c_18L信也。推食食我。解衣衣我。背之不祥之
012_0735_c_19L說。傳之 [104] 帛。駭人耳目也。師長之養
012_0735_c_20L佐也。衣而食之。愛而養之。善繼吾門
012_0735_c_21L之說。警之耳目。錚之晨夕者。以今視
012_0735_c_22L昔。其趣何殊。以此觀彼。其誼誰忘哉。
012_0735_c_23L若或一時之困難。忽起二心之想。以其
012_0735_c_24L本色之價値。比前高低。豈但以算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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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6_a_01L장부가 세상에 나타남에 한번 곤란을 겪었다고 끝내 본색이 변화되면 어찌 사람으로서 도리어 푸르디푸르고 정정한 송백만 같지 못한 것입니까. 다만 군색한 때를 당하여 이빨을 물어 소리를 삼키고 눈여겨보아 정신을 수습하면서, 어린 나이에 입산한 어딘가에 혹시 잊지 못할 곳이 있는지 돌아보았습니까. 온 세상 인정이 한결같이 세력만을 헤아린다면 석숭石崇551)의 이름이 도리어 중니仲尼(공자)보다 높고 윤왕輪王552)의 지위가 도리어 실달悉達(부처)보다 높을 것입니다.나로서 보자면 한 표주박의 붉은 모래(丹砂)553)가 1만 통의 지게미보다 훨씬 나으니, 한 조각 붉은 깃발로 땅에 가득한 패잔병들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어찌 감히 일시의 곤란으로 도의를 배반하고 세력을 따라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끼치겠습니까. 두터운 도의를 한 번 배반하면 지하의 처벌을 피하기 어렵거늘, 고명高名을 한 번 잃게 되면 지역(域中)의 드러난 형벌을 어떻게 속죄하렵니까. 그대와 나는 도의가 미더워서 감히 충언을 펼치니 귀로 듣기는 거슬리더라도 고귀한 도의에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조계산 제6세 원감국사께서 지은 『가송록』을 옮겨 적고 쓴 발문(曹溪山第六世圓鑑國師所著歌頌錄印寫跋文)옛날 용맹龍猛554) 존자尊者께서 서인도에 나타나 염부제閻浮提(인간 세상)의 책을 모두 읽어 읽을 만한 게 없자 사가라沙迦羅555) 용왕 궁중으로 들어가 소장되어 있는 경전을 모두 열람하고서 약본畧本 『화엄경』을 외워 나와서 염부제와 4천하556)에 반포하셨다. 그 후 삼장법사557) 무리가 나와서 번역을 하여 타지에 전하였으니 큰 경전이 아니겠는가. 이제 조계산 제6세 원감국사圓鑑國師558)께서 지은 『가송록』 1책은 원래 본산本山(송광사)에서 방판方板(목판)으로 소장한 것인데 불행히 병화를 입었고 또한 개인적으로 소장한 것도 없어서 보고 듣는 게 드물어져 자못 공부하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이 되었다. -
012_0736_a_01L所能也哉。盖以丈夫現於世者。一經困
012_0736_a_02L難。卒變本色。則豈以人而反不如蒼蒼
012_0736_a_03L亭亭之松栢耶。第當窘猝之時。含齒呑
012_0736_a_04L聲。着眼收神。自顧齠年入山之郍邊
012_0736_a_05L倘有難忘之處也否。若擧世人情一向
012_0736_a_06L推勢。則石崇之名。反高於仲尼。輪王
012_0736_a_07L之位。反高於悉達耶。以吾觀之。則一
012_0736_a_08L瓢丹砂。逈勝於萬樽糟糠。一片赤幟。
012_0736_a_09L能伏於滿地殘兵也。安敢以一時之困
012_0736_a_10L難。背誼追勢。以遺乎千人之目笑哉。
012_0736_a_11L重誼一背。難免地下之陰誅。高名一失。
012_0736_a_12L奚贖域中之現戮耶。君與吾而誼孚。敢
012_0736_a_13L開忠言。耳雖違逆。庶補高誼云尒。
012_0736_a_14L
012_0736_a_15L曹溪山第六世圓鑑國師所著歌頌
012_0736_a_16L錄印寫跋文
012_0736_a_17L昔龍猛尊者。現于西印度。讀盡閻浮提
012_0736_a_18L書。無可讀者。入沙迦羅龍王宮中。其
012_0736_a_19L所藏經。莫不畢閱。而誦出畧本華嚴經。
012_0736_a_20L頒於閻浮及四天下。其後三藏法師輩
012_0736_a_21L出。譯傳方外者。莫是大經歟。今1)曹 [19] 山
012_0736_a_22L第六世圓鑑國師所著歌頌錄一局。原
012_0736_a_23L是本山方板所藏。而不幸爲兵燹之所
012_0736_a_24L害。亦無私藏。罕所見聞。頗爲學者病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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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6_b_01L무오년(黃馬, 1918) 봄에 조계산의 승려 해은海隱 공公559)이 서울에 머무는 동경 임제종 한당 선사閒堂禪師의 군지軍持560)에 『가송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을 쓸고 크게 숨을 토하며 말했다. “이것을 얻기 어려움은 용왕 턱 밑에서 진주를561) 가져오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차라리 듣지 못했으면 그만이려니와 들었는데 어찌 구하지 않겠는가.”즉시 여장을 꾸려 한성에 가서 육당 학인六堂學人 최 공崔公562)과 함께 두루 찾아 얻고자 했다. 쇠를 갈고 뼈를 깎는 듯 열심히 했다. 육당이 아베(阿部) 거사居士에게 소개하여, 거사 또한 한당 선사에게 끈질기게 구하니(膠索), 선사가 마음으로 허락하였다. 한 달을 기한으로 아베에게 전하고, 아베는 육당에게 전하여, 육당은 해은에게 전하니, 해은이 보배로 여겨 가지고 와서 조계산에 이르러 대중에게 보였다. 대중이 모두 절을 하고 보며 서로 칭하기를, “합포合浦의 진주가 돌아왔고563) 화씨和氏의 구슬이 완전해졌도다.564) 나도 몰래 춤을 추며 그칠 바를 모르겠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실로 한당이 말한 기한이 넉넉하지 않아서 판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세 학우에게 명하여 20질을 옮겨 적고서 나누어 보관하게 하고는 기궐씨剞劂氏565)의 시절인연 여부를 기다렸다.아, 용맹자龍猛子가 여래如來 입멸(B.C. 483경) 후 738년에 사가라沙迦羅 용궁 보관소에 들어가 경전을 외워 나왔고, 해은 공은 국사國師 입멸 후 624년에 상경하여 한당이 보관한 것을 빌려 가져왔다. 해은 공의 공적을 논하자면 용맹보다 덜하지 않고, 육당과 아베의 공적도 해은 공보다 높지 않다. 한당의 공적은 용궁 보관에 비견되고, 학우가 옮겨 적은 공적은 또한 삼장법사의 덕보다 못하지 않다. 하늘의 오성五星과 같고 땅의 오행五行과 같으니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다섯 인연이 함께 이루어진 것에 진실로 거짓이 없다.보정寶鼎 내가 조계의 종파宗波를 마시고 국사의 법유法乳로 성장한 지 지금에 40년이 된다. 이 『가송록』을 봉독하면서 나도 몰래 눈물을 떨구며 이와 같이 기록하여 -
012_0736_b_01L黃馬之春。山之釋海隱公。竊聞本錄之
012_0736_b_02L藏在於漢城留東京臨濟宗閒堂禪師軍
012_0736_b_03L持中。撫膺太息曰。此之難得難於龍頷
012_0736_b_04L下穿珠也。然而寧以不聞。聞何不求哉。
012_0736_b_05L卽褁足抵漢城。與六堂學人崔公。圖周
012_0736_b_06L覔得。若磨鐵然刮骨焉。六堂紹介於阿
012_0736_b_07L部居士。士亦膠索於閒堂禪師。師心許
012_0736_b_08L之。限一朔而傳之阿。阿傳之六。六傳
012_0736_b_09L之海。海寶而賚之。抵曹溪。現介衆。衆
012_0736_b_10L皆拜觀而相賀曰。浦珠還歟。和璧完歟。
012_0736_b_11L不覺舞蹈。莫知攸云。然而固閒堂之立
012_0736_b_12L期不贍。不暇壽木。而命諸三學友。印
012_0736_b_13L寫二十袠。分藏之。以待剞劂氏之時緣
012_0736_b_14L如何也。吁。龍猛子於如來滅後。七百
012_0736_b_15L三十八年間。入沙迦羅藏。而誦出大經。
012_0736_b_16L海隱公於國師滅後。六百二十四年時。
012_0736_b_17L上京都閒堂藏。而賚來本錄。盖嘗論之
012_0736_b_18L海公之功。不下於龍猛。六堂阿部之功。
012_0736_b_19L亦莫上於海公。閒堂之功。比諸龍藏。學
012_0736_b_20L友印寫之功。又不下於三藏之德矣。在
012_0736_b_21L天如五星。在地若五行。可謂闕一不
012_0736_b_22L可。五緣俱成者。信不誣也。鼎飮啄曹
012_0736_b_23L溪之宗波。長養國師之法乳者。四十年
012_0736_b_24L于此矣。奉讀本錄。不覺泣泪而記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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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6_c_01L대중에게 고하노니, 오직 통달한 자는 같이 증명해 주시길.대정大正 7년(1918) 저옹돈장著雍敦牂566) 응종應鍾(10월) 하완下浣(하순)에 조계曹溪 후학後學 보정寶鼎이 다송실茶松室에서 쓰다.동복군 유마사 봉향각의 창건 상량문기미년(1919) 3월 3일 상량(同福郡維摩寺奉香閣剏建上樑文己未三月初三日上樑)아랑위兒郞偉.567)도솔타兜卛陀568)의 내원궁內院宮은 이루어지고 비워지는(成空) 겁刼을 보인 적이 없고, 색구경色究竟569)의 비상계非想界570)는 머무르고 무너진다는(住壞)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 다만 의정依正571)이 다르겠습니까. 실로 업과 인연의 감응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이제 유마사維摩寺는 비록 내원㮈園572)의 숙원은 없지만 다만 역수曆數의 해(星朞)를 돌아봅니다. 당나라 정관貞觀 기원 정해년(627)에 개산開山573)하여 창건(草剏)하였고, 청나라 순치順治 13년 병신해(1656)에 넓혀서 다시 지었습니다. 산은 ‘모후산母后山’이니 공왕恭王이 머물렀던 이후로 나복산蘿葍山 이름을 바꾸었고,574) 사찰은 ‘유마사’이니 거사가 물을 마실 당시 제월천濟月泉의 좋은 인연575) 때문입니다. 말이 서산으로 달아나니 채찍 그림자를 보고는 도를 깨치고, 북두칠성(斗)이 동쪽 고개에 걸리니 뻐꾸기(布穀)576)가 풍년을 점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은하수에 별들이 늘어서 금륜金輪(태양)에 조회하여 절을 하고, 옥 같은 계곡(玉澗)의 긴 여울은 돌다리577)를 씻으며 맑게 흐릅니다. 극락전에 삼불三佛578)의 진리가 공공적적空空寂寂하고, 명부㝠府 책상 위에 시왕의 판결이 소소영령昭昭靈靈579)합니다. 실로 몇천 년 이어 온 꽃비 내리는 도량이요, 십주十州580) 가운데 군옥부群玉府581)입니다.그러나 머무르고 빔이 돌고 도니 넝쿨이 울타리를 에워쌈을 탄식하게 되고,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순환하니 여우와 토끼가 섬돌에 사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승료僧寮가 적막하니 서쪽 방과 동쪽 방이 염군炎君(화재)의 재앙을 만났고, 선암禪庵(암자)이 황량하니 남쪽 굴과 북쪽 대坮가 -
012_0736_c_01L如右。吿于大衆。唯達者同垂證明。大
012_0736_c_02L正七年著雍敦牂應鍾下浣日。曹溪後
012_0736_c_03L學寶鼎。書茶松室中。
012_0736_c_04L
012_0736_c_05L同福郡維摩寺奉香閣剏建上樑文
012_0736_c_06L己未三月初三日上樑
012_0736_c_07L兒郞偉。兜卛陀內院宮。未見成空之刼。
012_0736_c_08L色究竟非想界。不聞住壞之名。何但依
012_0736_c_09L正之所殊。寔由業緣之所感。今維摩寺
012_0736_c_10L者。雖無乎㮈園之宿願。但稽於曆數之
012_0736_c_11L星朞。唐貞觀紀元丁亥年。開山而草剏。
012_0736_c_12L淸順治十三丙申歲。廣拓而重修。山以
012_0736_c_13L母后兮。恭王駐驆後。蘿葍山之改號。
012_0736_c_14L寺名維摩者。居士飮啄時。濟月泉之良
012_0736_c_15L緣。馬逃西山。見鞭影而證道。斗掛東
012_0736_c_16L嶺。聞布糓之占年。銀漢列星。朝金輪
012_0736_c_17L而摸 [105] 拜。玉澗長湍。洴石橋而淸流。極
012_0736_c_18L樂殿中。三佛之眞理。空空寂寂。㝠府
012_0736_c_19L案上。十王之決獄。昭昭靈靈。寔迺幾
012_0736_c_20L千年雨花之場。環十州群玉之府。然而
012_0736_c_21L住空輪轉。堪嗟藤蘿之繞籬。成壞循環。
012_0736_c_22L難禁狐兎之捿砌。僧寮寂寞。西室東堂。
012_0736_c_23L遭炎君之流災。禪庵荒凉。南窟北坮。
012_0736_c_24L「曹」下疑脫「溪」{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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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7_a_01L은자의 거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염라왕의 건물에 업경0業鏡의 빛이 침침하고, 응진당應眞堂582) 앞에 신묘한 감식이 먼지에 묻혔습니다. 옥 같은 섬돌은 온통 돌 조각이 되고, 우담바라는 가시넝쿨로 바뀌었습니다. 이로부터 안개와 구름으로 잠겨 오래도록 쓸쓸하고, 바위의 샘물은 오열하며 슬피 흘렀습니다.광서光緖 5년 신사(1881)583)에 경성의 고승(高師) 김경담金景潭이 창건하는 화주化主가 되고 광부光府(전라도) 관찰사 김규홍金奎弘584)이 단나檀那(시주) 손님이 되어, 먼저 향당香堂을 세웠는데 옥 같은 기와를 덮을 겨를이 없었고 다음으로 불우佛宇를 수리하는데 다만 금용金容585)을 봉안하기만 도모했습니다. 할향喝香586)과 헌재獻齋587)로 왕토王土가 길이 이어짐을 우러러 축원하고, 푯말로 표시한 지역으로 민생의 안정을 보호 유지합니다. 요컨대 3기紀(36년)가 겨우 지나자 서까래와 모자茅茨588)가 어긋나고, 백 년이 되지 않아 향적방과 당우堂宇589)가 무너졌습니다. 위에서 내리는 비와 옆에서 부는 바람에 기둥이 틀어지고 벽이 떨어졌습니다.기미년(黃羊, 1919) 봄에 마을의 대부와 믿음 있는 군자들이 단문檀門(시주)을 보호하여 인연을 구하고, 주지 김영운金榮雲이 삼림을 가꾸어 재물을 모았습니다. 옛터가 좁음을 꺼려서 새로운 평평한 땅을 골라, 한 층을 낮추어 터전을 닦아 대족월大簇月(1월) 20일에 초석을 놓았으며, 사면에 기둥을 세워 대량월大梁月590) 상순(上澣)에 들보를 올렸습니다. 진송秦松591)을 도끼로 자르니 사대부四大夫592)가 특별하고, 한백漢栢593)을 먹줄로 다듬으니 삼장군三將軍이 솟아올랐습니다. 두 통나무가 가지런히 조화로우니 넝쿨과 여우ㆍ토끼들이 혼몽한 상태에서 문득 깨어나고, 육위六偉594)를 나란히 거행하니 가시나무와 기와ㆍ자갈들이 모두 광명을 발합니다.이에 긴 들보를 들어 짧은 송가를 부르니, 송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兒郞偉。拋樑震 어영차(兒郞偉), 들보 동쪽(震)에 던지네
斗掛金輪聳萬仭 북두칠성 걸린 금륜金輪이 만 길로 솟는데
獅子仰天穴在何 사자가 하늘 우러르던 굴은 어디에 있나
白雲深處人難信 흰 구름 깊은 곳을 사람들은 믿지 못하네
兒郞偉。拋樑离 어영차, 들보 남쪽(离)에 던지네
龍抱虎蹲各展眉 용처럼 안고 범처럼 앉아 각기 눈썹 펴니
廣橋石氣天津近 광교廣橋의 돌 기운에 하늘나루가 가깝네
王子何年聽子規 왕은 어느 해에 자규 소리를 들을까595)
兒郞偉。拋樑兌 어영차, 들보 서쪽(兌)에 던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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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7_a_01L或隱士之捿息。閻王殿上。業鏡光沈。
012_0737_a_02L應眞堂前。神鑑塵沒。玉階滿成瓦礫。
012_0737_a_03L曇花變爲蒺藜。由是烟雲鎻而長悽。石
012_0737_a_04L泉咽而下悵。迄于光緖五年辛巳。京城
012_0737_a_05L高師金景潭。爲剏化之主。光府觀察金
012_0737_a_06L奎弘。作檀那之賓。先建香堂。未暇玉
012_0737_a_07L瓦之盖覆。次修佛宇。只圖金容之奉安。
012_0737_a_08L喝香獻齋。仰祝王土之遐曆。標木場界。
012_0737_a_09L護持民生之賴安。要且三紀纔過。椽梠
012_0737_a_10L茅茨差脫。百載不滿。香積堂宇崩頽。
012_0737_a_11L上雨而傍風。棟斜而壁落。黃羊之春。
012_0737_a_12L郡大夫信君子。護檀門而求緣。住持釋
012_0737_a_13L金榮雲。埋 [106] 森林而聚財。嫌舊址之陜隘。
012_0737_a_14L銓新土之坦平。落一層而開基。大簇月
012_0737_a_15L中念日安礎。維四面而立柱。大梁月上
012_0737_a_16L澣日上樑。斫秦松而斧斤。四大夫之特
012_0737_a_17L地。運漢栢而繩墨。三將軍之騰空。雙
012_0737_a_18L樸齊和。藤蘿狐兎。頓惺魂夢。六偉并
012_0737_a_19L擧。蒺藜瓦礫。咸放光明。爰擧脩樑。載
012_0737_a_20L唱短頌。頌曰。
012_0737_a_21L兒郞偉。拋樑震。斗掛金輪聳萬仭。獅子
012_0737_a_22L仰天穴在何。白雲深處人難信。兒郞偉。
012_0737_a_23L拋樑离。龍抱虎蹲各展眉。廣橋石氣天
012_0737_a_24L津近。王子何年聽子規。兒郞偉。拋樑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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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7_b_01L一帶靑山雲靄靄 일대 청산에 구름이 자욱한데
濟月何人已汲泉 제월천에 누가 벌써 샘을 길렀나
更持木杓終朝汰 다시 구기 가지고 아침 내내 거르네
兒郞偉。拋樑坎 어영차, 들보 북쪽(坎)에 던지네
紺殿大雄肯赴感 감전紺殿(절)의 대웅大雄(부처)이 감동하시리니
心香一炷祝明君 심향心香596) 한 줄기로 현명한 임금을 축원하여
昇遐今朝供祭禫 승하한 오늘 아침에 담제597)를 받드네
兒郞偉。拋樑乾 어영차, 들보 위쪽(乾)에 던지네
紫微宮裡列諸仙 자미궁598) 안에 늘어선 신선들이
白雲一片如相駕 백운 한 조각을 수레처럼 몰아서
幻化吾身倐百年 내 몸을 변화시켜 백 년 지난 듯하네
兒郞偉。拋樑坤 어영차, 들보 아래쪽(坤)에 던지네
萬像無非作一根 만물이 일근一根을 짓지 않음이 없어
普吿千村檀越氏 온 마을의 단월들에게 널리 고하노니
莫存知解入吾門 알음알이 두고서 내 문으로 들어오지 마시라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上樑한 후에 온갖 재앙이 법우法雨에 모두 씻겨지고 온갖 복이 승당僧堂에 모여드소서. 불일佛日이 빛을 더하여 내원궁內院宮 안에서 요일堯日599)과 병행하고, 선풍禪風이 더욱 치성하여 비상천非想天600)에서 순풍舜風601)과 조화를 이루소서.수선사 계의602) 서문10월 15일(修禪社契誼序十月十五日)생각건대, 석가모니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湼槃妙心603)으로 마하가섭摩訶迦葉604)에게 부촉하시어 계속해서 이어지니, 그 도의 명쾌(直截)하고 원묘圓妙하며 초월(迥絶)한 이치는 온갖 관료와 대신(阿衡)에 대해 천자인 경우와 같아 삼승교법三乘敎法605)으로 방불하게 비견될 수 없음이 자세히 책에 실려 있다. 그 공리功利를 비교하면 선단仙丹이 적은 분량으로도 죽은 이를 살리는 것과 똑같다. 능히 진실로 참구하고(實參) 진실로 깨달아서(實悟) 일념회광一念廻光606)하여 옛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면, 어찌 삼기三祗607)의 헛된 공력을 쓸 것인가. 비록 진실로 함이 없어서 혼침昏沈과 도거掉擧(들뜸)가 뒤섞이더라도 또한 저 인과因果의 행문行門이 도달하는 바가 아니다.부처님이 말씀하신 일대장교一大藏敎608)에는 절반으로 원만하지 않은 것도 있고 임시변통(權)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도 있다.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길, 요의了義609)에 의거하고 불요의不了義에 의거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절반으로 원만하지 못한 것과 임시변통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은 의거해서는 안 된다. 그 이치가 드러났는데 지금 수행자를 보면 대개 절반에 미혹되고 임시변통에 막혀 일생을 그르치고 있으니 슬프도다.옛날 고야산姑射山의 선인仙人은 -
012_0737_b_01L一帶靑山雲靄靄。濟月何人已汲泉。更
012_0737_b_02L持木杓終朝汰。兒郞偉。拋樑坎。紺殿大
012_0737_b_03L雄肯赴感。心香一炷祝明君。昇遐今朝
012_0737_b_04L供祭禫。兒郞偉。拋樑乾。紫微宮裡列諸
012_0737_b_05L仙。白雲一片如相駕。幻化吾身倐百年。
012_0737_b_06L兒郞偉。拋樑坤。萬像無非作一根。普吿
012_0737_b_07L千村檀越氏。莫存知解入吾門。伏願上
012_0737_b_08L樑之後。千殃咸沐於法雨。百福鼎集於
012_0737_b_09L僧堂。佛日增輝。并堯日於內院宮裡。
012_0737_b_10L禪風益熾。和舜風於非想天中。
012_0737_b_11L
012_0737_b_12L• 修禪社契誼序十月十五日
012_0737_b_13L原夫釋迦氏。以正法眼藏湼槃妙心。付
012_0737_b_14L囑摩訶迦葉。轉轉相授。其道直截。其圓
012_0737_b_15L妙迥絕之理。如百僚阿衡之於天子。不
012_0737_b_16L可以三乘敎法比擬髣髴。具在方册。較
012_0737_b_17L量功利。一似仙丹。刁圭而起死。若能
012_0737_b_18L實叅實悟。一念廻光。與古佛齊肩。何用
012_0737_b_19L三祗枉功。縱未有實。溷沌於昏掉。亦非
012_0737_b_20L他因果行門所到。佛說一代 [107] 藏敎。有半
012_0737_b_21L而未圓者。權而未實者。佛自說依了義。
012_0737_b_22L不依不了義。其半也權也。不可以依之
012_0737_b_23L也。其理彰著。而今觀修行者。擧槩迷
012_0737_b_24L半滯權。誤了一生。悲夫。昔姑射仙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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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7_c_01L그 정신이 맺히면 만물이 병들지 않게 하고,610)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신선이 되어 오르니 닭과 개도 구름을 탔다.611) 닭과 개도 그 도의 교화를 받았는데 하물며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사람임에랴. 신선 또한 만물이 병들지 않게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도임에랴. 그래서 말하길, “듣고도 믿지 않았으나 그래도 불종佛種612)의 인因을 맺었고, 배우고도 미처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대로 사람과 하늘의 복을 더한다.”613)라고 한다. 그래서 동참하는 계의契誼를 마련하여 최상의 인연을 같이 맺어 수역壽域에 같이 이르도록 하였다.수역이란 무엇인가. 청산은 검푸르고(凝凝) 벽해는 시퍼렇고 구름 조각이 펼쳐지며 소나무 소리 스산하니 무엇이든 자기의 빛을 항상 발하지 않음이 없어 하늘을 두르고 땅을 두르며 옛날과 지금에 이르도다. 신묘한 작용이 항하사의 모래처럼 많더라도 견고함이 금강 같다. 그래서 고덕古德이 말하길, “반야 위에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614)라고 했다. 성불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응당 깊은 마음으로 큰 원력을 발할지라.이 수승한 인연에 따라 우러러 성수聖壽(임금 수명)를 축원합니다. 운운云云.제운 화상의 비석을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3월 14일에 세움.615)(霽雲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四日立)총림叢林의 대덕大德 제운당德霽雲 존령尊靈이시여
법신은 본래 청정하고, 진상眞相은 이름이 없으며
지인은 사사로움이 없고, 대덕은 공적이 없거늘616)
하물며 우리 선조께서는, 무상함을 몸소 체득하시어
유위有爲의 업을 없애고, 무루無漏의 종지를 증득하셨네.
후손들이 추모하여, 돌을 다듬어 비석을 세우니
귀부龜趺가 돌아보는 듯, 용대龍坮는 날아오르는 듯
높이 푸른 벽을 지탱하고, 은은히 흰 빛이 비추니
글씨는 살아 있는 교룡 같아, 빛나는 말로 칭송하였네.
시작한 일이 이루어졌으니, 이에 차와 향을 올리며
추모하는 무리들이, 이에 정성을 다하여
삼가 알가閼伽617)를 드리노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벽담618) 화상의 비석을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3월 13일에 세움.(碧潭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三日立)대화엄종주 벽담당碧潭堂 각령覺靈619)이시여,
불조佛祖의 심인心印을 전하여, -
012_0737_c_01L其心凝而萬物不疪。淮南王安。登仙而
012_0737_c_02L鷄犬乘雲。鷄犬被其道化。况最靈於物
012_0737_c_03L者乎。仙亦能使物不疪。况佛無上正道
012_0737_c_04L乎。故云聞而不信。尙結佛種之因。學
012_0737_c_05L而未成。猶盖 [108] 人天之福。故設同叅契誼。
012_0737_c_06L使共結最上因緣。同臻壽域。夫壽域者
012_0737_c_07L何也。靑山凝凝。碧海蒼蒼。雲片展張。
012_0737_c_08L松聲蕭瑟。無物非自己常光。匝天匝地。
012_0737_c_09L亘古亘今。雖妙用恒沙。能堅固如金剛。
012_0737_c_10L故古德云。般若上無虛棄之功夫。若有
012_0737_c_11L成佛願者。應發深心大願也哉。仗玆勝
012_0737_c_12L緣。仰祝聖壽云云。
012_0737_c_13L
012_0737_c_14L霽雲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四日立
012_0737_c_15L叢林大德霽雲堂尊靈。法身本淨。眞相
012_0737_c_16L無名。至人無己。大德無功。况吾先祖。
012_0737_c_17L體達無常。蕩有爲業。證無漏宗。雲仍
012_0737_c_18L追慕。攻石樹碑。龜趺如顧。龍坮若飛。
012_0737_c_19L高撑翠壁。隱映白輝。篆活蛟腰。頌綴
012_0737_c_20L錦彙。剏事已周。玆薦茶香。庶追感慕。
012_0737_c_21L爰庸鬯誠。謹以閼伽。伏唯尙饗。
012_0737_c_22L
012_0737_c_23L碧潭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三日立
012_0737_c_24L大華嚴宗主碧潭堂覺靈。傳佛祖心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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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8_a_01L인천人天의 안목을 여시고
덕산德山620)의 할喝을 활용하며, 임제臨濟의 종지를 지니사
12종사의 자리를 빼앗고, 열여덟 분(公)의 당堂621)을 이어
거창한 업을 이미 수립했으니, 어찌 후손들의 정성이 없겠습니까.
이에 돌을 다듬는 비용을 쓰고, 금송錦頌622)의 공적을 지으니
비석 짊어진 거북은 진흙에 묻히고, 싸우는 모습의 용은 하늘로 솟아
우뚝 솟아난 운근雲根623)으로, 그 빛이 달의 얼굴을 쓰다듬고
연못 달의 그림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산 구름의 빛을 잘게 자르네.
여러 음식과 차를 드리노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학생에게 보이다(示學生)사람이 모여 삶에 금수와 다른 것은 규율(規模)로 몸을 따르게 함이 있음이니 차례를 넘어 앉거나 누울 수 없는 것이다. 바른 마음으로 책을 끼고 위치에 따라 자리에 앉아 규율에 편안하면 만물을 경계할 수 있다. 배우는 자리를 ‘학사學肆’624)라고 부르는 것은 많은 물품들의 배열이 서로 뒤섞이지 않아서 문란하지 않고 조리가 있기 때문인데, 지금 배우는 이들은 도리어 시장(市肆)만 못하니 되겠는가?옛날 백이伯夷ㆍ숙제叔弟와 공자ㆍ맹자는 수양산에서 굶주려 죽거나 빈말을 하며 베풂이 없던 필부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 사람들에게 빗대면 기뻐한다. 걸桀ㆍ주紂와 유幽ㆍ려厲625)는 귀하게 천자가 되고 부유하게 사해의 제왕이 되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 사람들에게 빗대면 화를 낸다. 그대들은 진실로 생각해 보라. 필부에게 비교하면 화내야 할 텐데 도리어 기뻐하고 제왕에게 비교하면 기뻐해야 할 텐데 도리어 화를 낸다. 기쁨과 화냄이 상반되니 왜 그러한가. 진실로 사람의 귀하고 천함은 도덕의 득실에 있고 지위의 고하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대들은 힘쓸지어다.웃옷을 벗고 경전을 보는 학도들을 훈계하다(誡學徒脫上衣看經) -
012_0738_a_01L開人天眼睛。用德山之喝。佩臨濟之宗。
012_0738_a_02L奪十二宗席。繼十八公堂。旣樹巨剏之
012_0738_a_03L業。盍無雲裔之誠。玆庸攻石之費。載
012_0738_a_04L綴錦頌之功。負龜沒泥。鬪龍騰空。突
012_0738_a_05L聳雲根。光磨月容。薄批潭月之影。細
012_0738_a_06L切山雲之光。庶羞茶薦。伏唯尙饗。
012_0738_a_07L
012_0738_a_08L示學生
012_0738_a_09L人之群居。所以異於禽獸者。以其有規
012_0738_a_10L模隨身。不能越序坐卧故也。以正心挾
012_0738_a_11L册。依位列坐。規模安詳。則可以警物
012_0738_a_12L也。以學地。稱爲學肆者。品物行列。叅
012_0738_a_13L而不襍。有條不紊之謂也。今所爲學者。
012_0738_a_14L而反不如市肆而可乎。古之夷齊孔孟。
012_0738_a_15L是餓死首陽。空言無施之匹夫。而今人
012_0738_a_16L以此比之則喜。桀紂幽厲。貴爲天子。
012_0738_a_17L富有四海之帝王。而今人以此比之則
012_0738_a_18L怒。諸君誠思之。比諸匹夫。宜怒而反
012_0738_a_19L喜。比諸帝王。宜喜而反怒。以其喜怒
012_0738_a_20L相反。何也。固其人之所貴賤者。在道
012_0738_a_21L德之得失。不在名位之高下也。唯諸君
012_0738_a_22L勉之。
012_0738_a_23L
012_0738_a_24L誡學徒脫上衣看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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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8_b_01L무릇 뿔을 보면 소라는 것을 알고, 갈기를 보면 말이라는 것을 안다. 뿔에 다섯 빛깔이 있으면 기린이라는 것을 알고, 예천醴泉626)의 물을 먹고 오동나무에 서식하는 것을 보면 봉황임을 알며, 도덕을 알고 법의法衣를 입고 금문金文(경전)을 귀하게 여기면 학도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소인데 뿔이 없고 말인데 갈기가 없고 기린인데 뿔에 다섯 빛깔이 없고 봉황인데 예천의 물을 먹거나 오동나무에 서식하지 않고 학도인데 도덕이 없고 웃옷을 벗고 금문을 천하게 여기면 내가 말한 소와 말과 봉황 등이 아니고 상서롭지 않은 개와 양 따위에 불과함을 안다. 그렇다면 소와 말과 봉황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뿔과 갈기 등이며 학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또한 도덕과 법의 등이다. 하물며 사람들이 기린과 봉황에 대해 들어 왔는데, 보니까 뿔과 색채가 없고 일반 풀을 먹는다면 일반 금수에 불과하니 그 견문의 차이가 또한 부끄럽지 않겠는가.사마司馬 공公이 책을 읽다가 창의氅衣627)를 벗지 않고 잠을 자면서, “꿈에 성현을 뵐까 그렇다.”라고 하였다. 저들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세상 밖에서 맑게 수도하여 불도를 공부하는 이들임에랴. 그대들은 폐할 수 없음을 알았으니, 어찌 스스로 위의威儀를 없이 하여 자기의 덕을 손상시키겠는가.벽담 선사의 비를 세우는 연기 서문기미년(1919) 3월 13일에 세움.(碧潭禪師立碑緣起序己未三月十三日立)무릇 도덕이라 함은 사람이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얻는 것이고, 사업이라 함은 사람이 몸을 수고롭게 하여 이룬 것이며, 금전이라 함은 즉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도덕이 있어야 사업이 이루어지고 사업이 있어야 금전을 사용하게 되지만 어찌 이와 같은 데 그칠 뿐이겠는가. 금전으로 인하여 사업이 이루어지고 사업으로 인하여 도덕이 사라지지 않게 된다. -
012_0738_b_01L夫角者。知其牛也。鬣者。知其馬也。一
012_0738_b_02L角五彩者。知其麟也。啄醴泉捿升梧者。
012_0738_b_03L知其鳳凰也。知道德着法衣貴金文者。
012_0738_b_04L知其學者也。故知牛而無角。馬而無鬣。
012_0738_b_05L麟而無一角五彩。鳳凰而無啄醴泉捿
012_0738_b_06L升梧。學者而無道德脫上衣賤金文。
012_0738_b_07L非吾所謂牛馬麟鳳等。乃不祥之犬羊
012_0738_b_08L等之不過也。然則牛馬麟鳳之不可無
012_0738_b_09L者。卽角鬣等也。學者而不可無者。亦
012_0738_b_10L道德法衣等也。况人聞有麟鳳而得得
012_0738_b_11L來。見無角彩。食凡草。則不過凡禽獸。
012_0738_b_12L其見聞之差。不亦愧哉。司馬公讀書。
012_0738_b_13L不脫氅衣宿曰。恐見聖於夢也。彼尙如
012_0738_b_14L此。况物外淸修之學佛者乎。諸君旣知
012_0738_b_15L其不可癈。則何可自蔑威儀以損己德
012_0738_b_16L者哉。
012_0738_b_17L
012_0738_b_18L碧潭禪師立碑緣起序己未三月十
012_0738_b_19L三日立
012_0738_b_20L夫道德云者。人之勞心而得者。事業云
012_0738_b_21L者。人之勞身而成者。金錢云者。卽人
012_0738_b_22L之使用者也。有道德而事業成之。有事
012_0738_b_23L業而金錢乃用之。豈如此而止乎。因於
012_0738_b_24L金錢。事業方成。因於事業。而道德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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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8_c_01L이 세 가지는 세상에서 세발솥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 크도다, 도덕이여. 이것은 삼불후三不朽628) 가운데 하나다.이제 선사先師께서 교敎의 바다에서 헤엄치시고 선禪의 종지를 일으키사 도를 단련하고 덕을 심어 심성을 수고롭게 하셨으니, 이에 도덕이란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얻는다고 할 만하다. 선사의 7세손 호명皓溟과 봉욱琫旭은 지기志氣가 맑고 높으며 행실(行義)이 과감하고 결백한데 부친 용선龍船 화상의 잊지 못하는 남은 감동을 사모하여, 하루는 문도들 전체를 모아 놓고는 선사의 사라지지 않는 도덕을 자기 임무로 삼아 깊이 토론하고 경영하여, 상족上足629) 만호滿浩에게 명하여 경성과 남포藍浦로 달려가(千走) 비명과 비석을 구하게 하였다. 만호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즉시 제운霽雲 문중의 후손 운암云庵과 뜻을 같이하여 각자 조사祖師를 받들어 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먼저 경성으로 가서 소개를 받아 비명과 전서篆書를 받고 다음으로 남포에 갔다. 다행히 좋은 인연을 만나 바위를 얻어 쪼개어 두 개의 비석으로 만들었으니 이는 드물게 좋은 모양이었다. 같은 날 운반하여 같은 날 세웠으니 이 또한 호겁浩刼 이전에 일신을 나누고 자리를 나누어 앉겠다는 맹세의 기연이 아닐 수 없다. 호명과 만호는 그 사부께서 남긴 명을 삼가 준행하여 근골을 수고롭게 하고 타니대수拖泥帶水630)하여 막중한 창업을 장애 없이 성취하였으니 또한 사업은 몸을 수고롭게 하여 이루는 것이라 할 만하다.그렇다면 금전이란 사업하는 이가 사용하는 것이고 사업이란 도덕 있는 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는 서로 도와 이루어 능히 창업을 이루는 것이다. 창업이 완전해졌으니 연기緣起 서문이 없을 수 없어서, 처음을 궁구하고 마지막을 요약하는 때와 금전을 지출한 양을 뒤에 나열하고, 다만 세 가지 불후가 이와 같고 이와 같음을 기록하여 훗날 문도들이 살피도록 한다. -
012_0738_c_01L朽。此三者。在世如鼎足。而闕一不可
012_0738_c_02L也。大矣哉。道德。此卽三不朽之一數
012_0738_c_03L也。今先師。游泳敎海。提撕禪宗。鍊道
012_0738_c_04L種德。勞矻心性者。是可謂道德者。勞
012_0738_c_05L心而得也。師之七世孫皓溟琫旭。志氣
012_0738_c_06L淸高。行義果潔。慕其父龍船和尙。未
012_0738_c_07L忘之餘感。一日會一門人首某員。以先
012_0738_c_08L師道德之不朽。爲之己任。闌議之。經
012_0738_c_09L營之。命其上足滿浩。必千走京城及藍
012_0738_c_10L浦。而求銘若石也。浩云唯唯。卽與霽
012_0738_c_11L雲門孫云庵同志。各祖其祖而營碑。先
012_0738_c_12L之京城。紹介譔銘書篆。次到藍浦。幸遇
012_0738_c_13L良緣。採得一塊石。坼成兩個碑。此乃
012_0738_c_14L罕有之勝狀。同日運。同日立。亦莫非
012_0738_c_15L浩刼前分一身分半座之同盟奇緣也哉。
012_0738_c_16L溟與浩也。恪遵其師父之遺命。勞筋苦
012_0738_c_17L骨。拖泥帶水。莫重剏業。無障成就。亦
012_0738_c_18L可謂事業者。勞身而成也。然則金錢者
012_0738_c_19L事業者之使用也。事業者。道德者之使
012_0738_c_20L用也。所以三者者。相資而相成。能就
012_0738_c_21L剏業者也。剏事已周。不可無緣起序
012_0738_c_22L而其原始要終之日時。金錢支拂之多
012_0738_c_23L小。鱸 [109] 列于后。但紀三者之不朽如是如
012_0738_c_24L是。爲後門人之所矚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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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9_a_01L이태왕을 천도하는 기도 축문기미년(1919) 4월 1일 회향(薦李太王祈禱祝己未四月一日回向)신승臣僧 아무개는 지극한 마음으로 대훈위大勳位631) 이태왕李太王632) 선가仙駕633)를 받듭니다.
하늘이 내신 경략과, 신령이 돕는 위의로
사사로움을 극복하여 임금이 되사, 백성 보기를 자식처럼 하시고
폭원여도幅員輿圖634)로써, 제위에 오름을 담당하사 풍화風化를 기다리셨고
동관彤管635)으로 아름다움을 남기사, 아득히 선어仙馭636)하여 구름을 타시니
성전聖殿에 받들어, 유명의 길을 보배 뗏목에 의지하게 하고
향을 기사耆社637)에서 살라, 극락에서 불력佛力을 받게 합니다.
다시 사바세계에 돌아오사, 전륜왕의 궁전에 탄생하시고
법인法忍638)을 단번에 증득하사, 불과佛果의 지위에 속히 오르소서.이태왕의 백일재 연기 서문위와 같음.(李太王百齋緣起序同上)천지인 삼재三才는 양의兩儀(음양)의 삼합三合이요, 일월성 삼요三曜는 칠정七政639)의 삼합이며, 정사임丁巳壬 삼기三奇640)는 오행의 삼합이다. 양의와 칠정, 오행이 처음 나뉨에 어느 사물이든 삼합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삼재와 삼요와 삼기가 사계절을 관리하고 만물을 이루는 것이며 또한 삼합으로 갑주甲冑를 삼으니, 크도다 삼합이여.이제 대훈위大勳位 이태왕李太王 전하의 백일재를 송광사에 배설한 것은 즉 삼합에 관계되어 그러한 것이다. 왜 그런가. 지난 기해년(1899)에 대장경을 칙명으로 간행하여 보관하였고, 계묘년(1903)에 성수전聖壽殿을 지어서 위패를 봉안하였고, 기미년(1919)에 백일재를 하사하여 봉행하게 되니 실로 삼합이 아닐 수 없고, 큰 세 가지 인연을 이 산에 심은 것이로다. 하물며 임자생641)의 백일재가 기미년 4월 1일 임자삭壬子朔에 당하니, 재주齋主인 제8평등왕平等王642)이 염부제閻浮提(인간 세상) 안의 임자명壬子命을 관할한다. 이 임자생과 임자일ㆍ임자명이 -
012_0739_a_01L薦李太王祈禱祝己未四月一日回向
012_0739_a_02L臣僧某。至心奉爲大勳位李太王仙駕。
012_0739_a_03L天縱睿畧。神贊英威。克己爲君。視民
012_0739_a_04L如子。幅員輿圖。膺龍飛而候風。彤管
012_0739_a_05L流芳。邈仙馭而乘雲。供獻聖殿。凭寶
012_0739_a_06L筏於㝠路。香爇耆社。承佛力於樂邦。
012_0739_a_07L再還娑婆。降誕於輪王之宮。頓證法忍。
012_0739_a_08L速登於佛果之位。
012_0739_a_09L
012_0739_a_10L李太王百齋緣起序同上
012_0739_a_11L天地人三才。兩儀之三合。日月星三曜。
012_0739_a_12L七政之三合。丁巳壬三奇。五行之三合
012_0739_a_13L也。兩儀七政五行之肇判。無一物非三
012_0739_a_14L合而成辦者。故三才三曜三奇之管四
012_0739_a_15L時成萬物者。亦以三合爲甲冑。大矣哉。
012_0739_a_16L三合也。今大勳位李太王殿下百齋之
012_0739_a_17L設於松廣寺者。卽管於三合而然矣。何
012_0739_a_18L也。去己亥年。大藏經之勅印而藏鎭。
012_0739_a_19L癸卯年聖壽殿之命建而奉安位牌。己
012_0739_a_20L未年百日齋之下賜而奉悼也。實莫非
012_0739_a_21L三合。而種三大因緣於玆山歟。况又壬
012_0739_a_22L子生之百日齋。當於己未四月一日壬
012_0739_a_23L子朔。當齋主之第八平等王。管閻浮提
012_0739_a_24L內壬子命。盖此壬子生壬子日壬子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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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9_b_01L선택하지 않은 좋은 때에 적합하니 이 어찌 삼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엎드려 듣자니, 태왕전하께서 기로사에 드시어 원당을 망륙望六의 나이643)에 짓고, 예정하길, “희년稀年(70)에 송광사 원당에서 재를 마련하겠다.”라고 하였으니 그 어잠御箴(말씀)이 분명하다. 또한 이왕궁李王宮에서 어잠御箴을 받드는 정성과 상궁 천씨千氏가 명을 받드는 힘으로 재수齋需를 마련할 은화와 불번佛幡,644) 반기盤器(접시), 탁의卓衣,645) 장병帳屏,646) 향촉香燭, 금주錦紬(비단) 등 진기한 물품들을 넉넉하게 하사하였다. 예정한 어잠과 어잠을 받듦과 명을 받듦이 또한 삼합에 관계됨이 분명하다.재 지내는 때를 간략히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진열하고, 주지 아무개가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배수拜手647)하고 말하였다. “크시도다, 임금의 덕이여. 해가 뜨매 어두운 곳을 비추지 않음이 없음과 같고, 비가 내림에 무엇이든 윤택하게 하지 않음이 없음과 같도다. 나 또한 경전을 간행하던 장소와 건물을 짓던 곳에서 착수하고 신발을 매어 일을 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제 재를 올리고 애도하는 날에 어찌 망극한 비통함과 추모하는 감정이 없으리오.” 이에 세 가지 큰 연기緣起를 서술하니 삼합三合의 원요原要648)에 적절할 따름이다.조계산 국사전의 중창에 따른 상량 명과 서문기미년(1919) 4월 10일(曹溪山國師殿重剏上樑銘并序己未四月十日)어영차(兒郞偉).화장華藏649)이 무너지고 비고 이루어지고 머무는 세계에 있어 사바娑婆ㆍ염부제閻浮提650)가 도량을 여의지 않으며, 제불諸佛이 환화幻化(변화)의 방편문을 여시니 최상승의 선이 저절로 당념當念(현재)에 있습니다. 찰찰원융刹刹圓融하고 진진혼입塵塵混入하니651) 풀과 지푸라기ㆍ기와 등이 모두 광명을 떨치고, 말마다 이치에 계합하고 구절마다 근기에 맞아 꾀꼬리 소리와 제비 소리가 함께 오묘한 노래를 부릅니다. 무엇인들 광장설상廣長舌相652)과 청정신토淸淨身土가 아니겠습니까.조계산 송광사는 산 이름에 근원이 있으니, -
012_0739_b_01L適合於非選擇之良辰。此豈非三合而
012_0739_b_02L何也。伏聞太王殿下。入耄社。建願堂
012_0739_b_03L望六之年。預定曰。第當稀年。設齋於
012_0739_b_04L松廣寺願堂之御箴昭著。又以李王宮
012_0739_b_05L奉箴之誠。尙宮千氏奉命之力。齋需
012_0739_b_06L銀貨。佛幡盤器卓衣帳屏香燭錦紬等
012_0739_b_07L奇珍寶玩。優數賜下。以其預箴也。奉
012_0739_b_08L箴也。奉命也。亦管於三合明之矣。齋時
012_0739_b_09L畧錄成册。而陳列之而住持臣某。請弁
012_0739_b_10L於余。余拜手曰。大哉王德。如日輪之
012_0739_b_11L無幽不燭。若雨澤而無物不潤。余亦曾
012_0739_b_12L於印經之場。建殿之地。靡不有着手褁
012_0739_b_13L足之役。以今獻齋奉悼之日。盍無罔極
012_0739_b_14L之痛。追慕之感哉。於是乎。敢舒三大
012_0739_b_15L緣起。切適於三合之原要云尒。
012_0739_b_16L
012_0739_b_17L曹溪山國師殿重剏上樑銘并序己
012_0739_b_18L未四月十日
012_0739_b_19L兒郞偉。華藏在壞空成住界。娑婆閻浮
012_0739_b_20L不離道場。諸佛開幻化方便門。最上乘
012_0739_b_21L禪自在當念。刹刹圓融。塵塵混入。草縷
012_0739_b_22L瓦礫。咸放光明。言言契理。句句逗機。鶯
012_0739_b_23L音燕語。共談妙唱。無乃廣長舌相也。淸
012_0739_b_24L淨身土歟。曹溪山松廣寺者。山名有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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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9_c_01L조계종의 보림寶林 조계653)와 흡사한 고로 칙명으로 ‘조계’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사찰이 왜 근거가 없겠습니까. 열여덟 분이 이역異域의 총림을 널리 교화한 고로 특별히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 시초를 고찰하면 신라 법흥왕 원년에 혜린慧璘 선사께서 아란야阿蘭若654)를 작게 지었고, 중흥한 것을 살펴보면 고려 신종 3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큰 가람을 넓게 펼치셨습니다. 상족上足인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선종을 크게 알리셨으니 수선사修禪社의 규도規度를 비교하면 한 가지로 동일하고, 고봉高峯655)의 후예(末孫)가 사우寺宇를 법계도法界圖의 모습으로 크게 중창하였으니 또한 두셋이 있지 않습니다. 어찌 다만 16존尊(국사)이 자리를 이어 중수하였겠습니까. 또한 세 화상656)이 명을 받들어 주석하였습니다. 강희康熙 임인년(1722)에 백암栢庵657) 선사가 불일佛日(지눌)의 가풍을 중흥하였고, 도광道光 임인년(1842)에 용운龍雲658) 대덕大德이 법우法宇의 문호를 크게 일으켰습니다.이 건물은 대상坮上 7전殿의 하나이고 도중圖中 1층層의 7방房이니, 창설한 것을 살펴보면 사찰과 동일한 때입니다. 주석하던 날에는 도를 말하며 모여 공양하는 장소였는데, 니원泥洹(열반)하는 때에는 변하여 진영을 걸고 향을 사르며 축원하는 전당이 됩니다. 앞에는 행해당行解堂이요 뒤에는 진락대眞樂臺659)이니 갑경甲庚660)을 향하고 등지는 모양이며, 오른쪽은 방장이요 왼쪽은 영당이니 임병丙壬661)을 보필하는 우익으로 삼았습니다.일찍이 동림東林 18현인662)의 영각影閣에 대해 들었는데 지금 조계 16조사의 진당眞堂663)을 보니, 위대하도다, 호남 십승지十勝地664)로 유명한 곳이라고 도선道詵665) 스님이 감탄하였고, 해동 제일의 복된 땅이라고 현릉玄陵666)이 칭찬하였습니다.667) 먹은 것을 토하니 물고기로 변하여 은빛 비늘을 흩뿌리고,668) 던진 석장이 나무로 자라니 단향목669) 두 그루가 울울창창합니다. 남쪽을 진호하는 꽃비가 내리는 도량으로 인천人天을 제도하는 선박이요, 동국을 두른 군옥부群玉府670)로서 불조佛祖를 삶는 솥단지에 부합합니다. 이는 국사께서 교화한 장소요 불조께서 다니신 경계가 아님이 없습니다.그러고 나서 진영(影眞)이 -
012_0739_c_01L曹溪宗恰如寶林曹溪。故勅命曹溪之
012_0739_c_02L號。寺何無據。十八公廣化異域叢林。
012_0739_c_03L故特稱松廣之名。考其草昧。羅法興元
012_0739_c_04L年。慧璘禪師。小剏阿蘭若。稽乎重興。
012_0739_c_05L麗神宗三年。普照國老。廣闢大伽藍。
012_0739_c_06L眞覺上足。大闡禪宗。修禪社之規度。
012_0739_c_07L較若畫一。高峯末孫。宏剏寺宇。法界
012_0739_c_08L圖之體形。亦無二三。何但十六尊之繼
012_0739_c_09L席重修。抑亦三和尙之承命住錫。康熙
012_0739_c_10L壬寅歲。栢庵禪師。重興佛日之家風。
012_0739_c_11L道光壬寅年。龍雲大德。巨剏法宇之門
012_0739_c_12L戶。是堂者。坮上七殿之一數。圖中一
012_0739_c_13L層之七房。稽乎剏修。與寺同日。住錫
012_0739_c_14L之日。擬爲談道會食堂。泥洹之時。變
012_0739_c_15L成掛眞祝香殿。前行解而後眞樂。甲庚
012_0739_c_16L爲向背之局形。右方丈而左影堂。丙壬
012_0739_c_17L作補弼之羽翼。曾聞東林十八賢影閣。
012_0739_c_18L今見曹溪十六祖眞堂。大矣㢤。湖南十
012_0739_c_19L勝之名區。道詵師之所歎。海東一等之
012_0739_c_20L福地。玄陵朝之所稱。吐食化魚。銀鱗
012_0739_c_21L潑潑。擲杖生樹。雙檀蒼蒼。鎭南州雨
012_0739_c_22L花之場。贐是濟人天之船筏。環東土群
012_0739_c_23L玉之府。端合烹佛祖之鑊湯。爾莫非國
012_0739_c_24L師化導之坊。佛祖遊履之界。然而影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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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0_a_01L잠시라도 탈락이 없었으니 가정嘉靖과 천계天啓671) 연간에 계림戒林과 성은性訔이 입계入啓672)하여 거듭 완성했던 것입니다. 당우堂宇는 바야흐로 무너질까 걱정이어서 강희康熙와 도광道光 연간에 백암栢庵과 용운龍雲이 개인적으로 수리하였습니다만, 들보와 서까래는 비에 젖어 썩어 가고, 금칠한 벽은 안개에 흐릿해졌습니다. 어찌 시주 인연이 없겠습니까마는 입계入啓한 앞 자취를 본받을 것이요,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야지 어찌 개인적으로 수리한 뒷일을 따르겠습니까.병진년(赤龍, 1916) 봄에 길씨吉氏 선여인이 4백 원圓 금액을 보시하여, 정사년(火蛇, 1917) 가을에 주지 이설월李雪月673)이 오등후五等侯의 정당政堂674)에 계啓(보고)하였더니, 기술자를 보내 측량하고 장인에게 목재를 다듬게 했습니다. 기수祇樹675)를 새로 베어 내니 내원㮈苑676)의 앞선 공적에 손상이 없고, 수재倕材677)를 가려 꺾으니 단계檀溪의 숙원宿願이 막힐까 염려되었습니다. 무오년(1918) 응종월應鍾月(10월)에 시작하여 석목析木(11월)과 대려大呂(12월)에 ‘쩡쩡 창창’ 도끼질을 하고, 기미년(1919) 대량춘大樑春678)에 복궤覆簣679)하여 택천澤天과 고선姑洗(3월)680)에 ‘우르릉 탁탁’ 일을 하였습니다. 황폐한 섬돌을 바꾸어 금으로 장식하고, 낮은 행랑을 아로새긴 회랑으로 바꾸었습니다. 옥 단청이 주목되니 화려한 우물에는 꽃들이 모여 늘어서 있고, 황금색과 푸른빛이 해를 쏘니 수놓은 두공(枓栱)에는 가지가 옹위하듯 맞물려 있습니다. 겹으로 된 불전은 용처럼 서린 가운데 1만 덕을 지닌 진용眞容이 달처럼 원만하고, 층층 누대는 봉황처럼 우뚝 서 있는데 16존영尊影이 별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금방울이 보림寶林의 바람에 부딪히니 사방에 하늘 음악이 울리고681) 옥기와에 조계曹溪의 달이 비치니 1만 송이 연꽃이 빛납니다. 제자봉帝字峰(조계봉)을 우러르니 구름을 잡은 닭의 발 같고, 을자수乙字水가 문을 두르니 구슬을 희롱하는 용의 허리 같습니다. 도솔천(都史天)에 떠내려 온 것인가, 어슴푸레 가라궁迦羅宮682)이 변하여 나타난 듯합니다.이에 육위송六偉頌을 공경히 불러 사은四恩683)의 공덕을 널리 고합니다.
兒郞偉。拋梁震 어영차, 들보 동쪽(震)에 던지네
眞樂臺高餘萬仞 진락대眞樂臺 높이가 만 길이라
金色界中主者誰 금빛 세계의 주인 누구인가
曼殊舍利傳心印 만수사리曼殊舍利684)가 심인을 전하도다
兒郞偉。拋梁离 어영차, 들보 남쪽(离)에 던지네
眞影堂堂老古錐 진영당의 당노堂老685) 고추古錐686)가
塵塵妙色放光處 티끌마다 오묘한 색으로 빛을 내는 곳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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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0_a_01L也。姑無脫落。嘉靖天啓。戒林性訔。入
012_0740_a_02L啓重成。堂宇則方患傾斜。康熙道光
012_0740_a_03L栢庵龍雲。從私修葺。杗桷衰朽於淋雨。
012_0740_a_04L金碧漫漶於烟霞。豈無檀緣。宜効入啓
012_0740_a_05L之前轍。必待旺運。何事從私之後箴。
012_0740_a_06L赤龍春吉氏善女人。施四百圓之金額。
012_0740_a_07L火蛇秋住持李雪月。啓五等候之政堂。
012_0740_a_08L派技術而測圖。命匠氏而鍊木。新斫祇
012_0740_a_09L樹。無傷㮈苑之前功。選拓倕材。恐沮
012_0740_a_10L檀溪之宿願。濫觴於戊午應鍾月。析
012_0740_a_11L木并大呂而丁丁摐摐。覆簣於己未大
012_0740_a_12L樑春。澤天與姑洗而轟轟濯濯。易荒
012_0740_a_13L堦而鈆 [110] 砌。變卑庠而琱廊。玉丹凝眸。
012_0740_a_14L綺井華櫕 [111] 而𩉾鞢。金碧射日。繡栭技 [112] 擁
012_0740_a_15L而杈枒。複殿龍蟠中。萬德眞容月滿。
012_0740_a_16L層樓鳳跱上。十六尊影星羅。金鈴激
012_0740_a_17L寶林之風。四時天樂。玉瓦印曹溪之月。
012_0740_a_18L萬朶蓮光。面仰帝字峰。若挐雲之鷄足。
012_0740_a_19L門環乙字水。似弄珠之龍腰。疑是都史
012_0740_a_20L天之浮來。隱然迦羅宮之變現。敬唱六
012_0740_a_21L偉之頌。普吿四恩之功。兒郞偉拋梁震。
012_0740_a_22L眞樂臺高餘萬仞。金色界中主者誰。曼
012_0740_a_23L殊舍利傳心印。兒郞偉拋梁离。眞影堂
012_0740_a_24L堂老古錐。塵塵妙色放光處。覺首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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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0_b_01L覺首上人應展眉 각수覺首687) 상인上人이 얼굴을 펴리라
兒郞偉。拋梁兌 어영차, 들보 서쪽(兌)에 던지네
帝字曹峰浮翠盖 제자봉帝字峰이 푸른 일산처럼 떠 있으니
蓮花世界路何迷 연화세계의 길을 누가 헤매리
財首指頭雲靄靄 재수財首688)가 가리키는 손끝에 구름이 자욱하네
兒郞偉。拋梁坎 어영차, 들보 북쪽(坎)에 던지네
三日明泉波淡淡 삼일명천三日明泉689)의 물빛이 맑고
木覔山頭薝葍花 목멱산 꼭대기에 치자꽃 붉으니
應知寶首躋𦴻蓞 보수寶首690)가 연꽃에 오름을 알겠네
兒郞偉。拋梁乾 어영차, 들보 위쪽(乾)에 던지네
三十六宮都是仙 36궁이 모두 신선세계이고
賢首樓臺平等住 현수賢首691) 누대가 평등하게 머무는데
空居兜率夜摩天 공연히 도솔천과 야마천692)에 머물까
兒郞偉。拋梁坤 어영차, 들보 아래쪽(坤)에 던지네
蠢蠢其徒鎭日奔 여러 무리들이 날마다 달려오고
玻璃色界元淸淨 파리玻璃693) 색계는 원래 청정한데
智首何年建刹幡 지수智首694)는 언제 찰번刹幡695) 세울까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 온갖 복이 길상의 문에 모이고 다섯 마귀는 조계의 물에 모두 목욕하게 하소서. 7전殿 선당禪堂은 7보리과菩提果가 충만하여 화두 참구와 송념頌拈으로 화장찰해華藏刹海696)의 물가에서 같이 노닐며, 8만 장경각에대 팔대각인八大覺人들이 모여 독송하고 설법함에 제불의 해탈 경계를 단번에 증득하게 하소서.이봉 대선사의 비를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4월 26일 정축(离峯大禪師立碑祝文己未四月二十六日丁丑)유세차 운운.
총림 대덕 이봉离峯 대선사 각령覺靈이시여.
가야(迦洛) 왕의 후손이며 학성군鶴城君697)의 종족으로
청허淸虛 조사의 적손이며 소요逍遙698) 선사의 정맥이십니다.
충과 효를 겸전하시고 선과 교를 같이 익히시어
단문檀門(시주)을 넓게 열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셨습니다.
가산迦山699)의 달을 낭랑히 읊조리며 보림寶林의 풍습을 바로잡으시고
조계의 물에 발우를 씻으시며 선찰禪刹의 종지를 마음으로 전하셨습니다.
교화의 인연을 이미 다하니 달이 하늘(天衢)에서 떨어지고
마음은 본래 상이 없으나 후손들은 추모합니다.
이에 거북 비석을 세우고 금송錦頌700)을 새기니
전서篆書는 살아 있는 용인 듯, 소리가 하늘을 울립니다.
울창주를 진설하고 단향檀香을 사르며
삼가 맑은 차를 올리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
012_0740_b_01L應展眉。兒郞偉拋梁兌。帝字曹峰浮翠
012_0740_b_02L盖。蓮花世界路何迷。財首指頭雲靄靄。
012_0740_b_03L兒郞偉拋梁坎。三日明泉波淡淡。木覔
012_0740_b_04L山頭薝葍花。應知寶首躋菡蓞。兒郞偉
012_0740_b_05L拋梁乾。三十六宮都是仙。賢首樓臺平
012_0740_b_06L等住。空居兜率夜摩天。兒郞偉拋梁坤。
012_0740_b_07L蠢蠢其徒鎭日奔。玻璃色界元淸淨。智
012_0740_b_08L首何年建刹幡。伏願上樑之後。百福鼎
012_0740_b_09L集於吉祥之門。五魔咸沐於曹溪之水。
012_0740_b_10L七殿禪堂。充滿七菩提果。叅話頌拈。
012_0740_b_11L同遊華藏刹海之濱。八萬經閣。會集八
012_0740_b_12L大覺人。讀誦說聽。頓證諸佛解脫之境。
012_0740_b_13L
012_0740_b_14L离峯大禪師立碑祝文己未四月二
012_0740_b_15L十六日丁丑
012_0740_b_16L維歲次云云。叢林大德离峯大禪師覺
012_0740_b_17L靈。迦洛王之苗裔。鶴城君之宗族。淸
012_0740_b_18L虛祖之嫡孫。逍遙師之正脉。忠孝雙全。
012_0740_b_19L禪敎兼講。廣開檀門。普渡跉𨂲。朗吟
012_0740_b_20L迦山之月。糾正寶林之風。洗鉢曹溪之
012_0740_b_21L水。傳心禪刹之宗。化緣已周。月落天衢。
012_0740_b_22L心本無相。雲仍追慕。迺營龜碑。載印
012_0740_b_23L錦頌。篆活龍蛇。聲震穹窿。敢陳鬯禮。
012_0740_b_24L慶爇檀享 [113] 。謹以淸茶。伏唯尙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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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0_c_01L기봉 대선사의 비를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6월 9일 기미(奇峰大禪師立碑祝文己未六月初九日己未)대공덕주 기봉奇峰701) 대선사 각령覺靈이시여.
대대로 풍부豊府(안동)에 거처하다가 화주和州702)로 옮기고
부모의 집을 떠나 봉루鳳樓에 투신하시니
최崔 공신功臣의 11세손이요 부휴浮休 조사의 9세손이십니다.
조계에서 법을 구하여 소나무와 구름(松雲)에 자취를 의탁하사
묵암默庵703)의 방에서 참학하였고 두월斗月704)의 문하에서 분향(拈香)하였습니다.
13년 동안 강설하여 삼칠재三七齋의 상서로운 모습이 있었고
삼장三藏의 가르침을 술지게미로 여기고 한 가지(一着子)로 향상하려 하였습니다.
임인년(1902) 화재에 대해 계묘년(1903)에 크게 창건하니
솔고개에 바람이 크게 떨치고 조계의 달이 두 번 굽어졌습니다.
창업이 완전해지고 인연대로 선서善逝705)하셨습니다.
상相 있는 것은 무상하여 깎지 않으면 조화롭지 않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조사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706)
비석은 푸른 벽을 지탱하고 용은 푸른 공중에 서리며
비단 노래(錦頌)는 옥처럼 조화롭고 구름 전서(雲篆)는 바람을 부릅니다.
달을 치고 구름을 자르며 향을 사르고 울창주를 드립니다.
삼가 차를 따르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조계산 송광사 청진암의 네 번째 창건기6월 10일(曹溪山松廣寺淸眞庵第四剏建記六月十日)승평昇平(순천)의 서쪽 1유순由旬707) 남짓한 곳에 ‘조계산’이 있는데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을 ‘호령봉號令峰’708)이라 한다. 호령봉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남쪽으로 터져 용이 된 것은 굴곡과 기복이 바다에서 용이 날아 구름을 일으키고 물을 희롱하는 듯하며, 북쪽으로 달려 범이 된 것은 춤추고 뛰는 것이 산에서 범이 ‘으르릉’거리거나 ‘어흥’ 소리치는 듯하다. 북쪽 줄기가 목구멍에 맺혀 문득 일어선 것이 ‘시루봉(甑峯)’709)으로 뚜껑을 덮은 듯 펑퍼짐한데, 높게 아스라이 솟아 오른쪽에 축간丑艮(동북)710)으로 떨어진 것은 송광사의 백호가 되고 중간에 경태庚兌(서쪽)711)로 떨어진 것은 -
012_0740_c_01L奇峰大禪師立碑祝文己未六月初
012_0740_c_02L九日己未
012_0740_c_03L大功德主奇峰大禪師覺靈。世居豊府。
012_0740_c_04L載遷和州。謝家鯉庭。投身鳳樓。崔功
012_0740_c_05L臣之十一世。浮休祖之九世孫。求法曹
012_0740_c_06L溪。托迹松雲。叅學於默庵之堂。拈香
012_0740_c_07L於斗月之門。十三載之講說。三七齋之
012_0740_c_08L瑞相。三藏敎如糟糠。一着子之向上。
012_0740_c_09L壬寅年之回祿。癸卯歲之巨剏。風一振
012_0740_c_10L於松嶺。月再彎於曹溪。剏業旣周。化
012_0740_c_11L緣善逝。有相無常。非斲非調。有徒繁
012_0740_c_12L息。無念而祖。碑撑翠壁。龍蟠碧空。錦
012_0740_c_13L頌調玉。雲篆喝風。批月切雲。爇香薦
012_0740_c_14L鬯。謹以酌茶。伏唯尙享。
012_0740_c_15L
012_0740_c_16L曹溪山松廣寺淸眞庵第四剏建記
012_0740_c_17L六月十日
012_0740_c_18L昇平之西一由旬許有山。曰曹溪。山之
012_0740_c_19L最高者曰號令峰。峰有兩支。南圻 [114] 而爲
012_0740_c_20L龍者。屈曲起伏。如滄海飛龍之興雲戱
012_0740_c_21L水。北走而爲虎者。鼓舞踴躍。如碧山
012_0740_c_22L怒虎之蹲喝放嘯也。北支結咽而卒起
012_0740_c_23L者曰甑峯。如胄覆而磅磚 [115] 。高逈特立。
012_0740_c_24L右落丑艮者。爲寺之白虎。中落庚兌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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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1_a_01L송광사의 주봉이 된다. 일어섰다 엎드려 맥을 맺고 갈래로 나뉘어 안아 감싸니 연꽃이 흩뿌려진 듯하다. 그 중앙에 터를 점하니 황건黃巾(도둑)의 소굴이 아니라면 마땅히 백납白衲(승려)의 거처가 되어야 한다.이에 고려 신종 3년(1200) 경신금나라 승안承安 5년이다.에 보조국사께서 결사結社하여 수선修禪하는 큰 사찰로 삼으셨다.명칭을 ‘수선사修禪社’라 하였는데 후에 칙명으로 ‘송광사松廣寺’로 고쳤다.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도운 실제 기록은 김군수金君綏712)와 최신崔侁의 필적에 상세하니 덧붙이고 싶지 않다. 세 번 전하여 청진국사淸眞國師713)에 이르니, 즉 고려 고종 21년(1234) 갑오이다. 사찰의 뒤에 있는 제1주봉主峰 아래에 가서 서까래 몇 개를 얽고서 머무니, 즉 임종 시에 안선安禪(좌선)하신 별실이다. 암자의 명칭(청진암)이 그렇게 해서 얻어졌다. 왼쪽 봉우리에 석종石鍾 하나가 있으나 비갈碑碣이 보이지 않으니, 몇 번이나 수리를 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암자가 기울어져 근심이 조석을 떠나지 않았다.이에 728년 기미(1919)조선국 528년이다.에 암자의 승려 춘성春盛과 두현斗玹이 주지 설월雪月과 향응하여 대중을 불러서 얼마간 재물을 모아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다가 상량문을 얻으니, “만력萬曆 17년 기축(1589)에 세 번째 창건했다.”라는 기록이 있었다. 연화緣化714)한 아름다운 이름은 고찰할 수 없으니 유감이 없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맹추월孟陬月(1월)에 일을 시작하여 병든 곳을 고치고 무너진 곳을 정비하여 경영하고 감독하니 몇 달 되지 않아 완성되었다. 본채(正堂)는 우뚝하고 곁채는 날아갈 듯715) 크고 화려했다. 이것이 네 번째 창건이 아니겠는가.이에 범패를 울리며 단에 올라 법려法侶(도반)들을 하탑下榻716)하니, 지혜의 구름이 청진암 경내 위에 가득하고 하늘 꽃이 길상사吉祥社(송광사)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용과 범이 날아 움직여 호위하며 따르고, 바람과 비가 기쁘고 조화롭게 순종하였다. 연화緣化하고 간고幹蠱717)한 힘과 단나檀那(시주)의 은혜로이 희사한 덕은 천의天衣718)처럼 길고 땅처럼 오래갈 것이며, 물의 근원이 깊고 산이 높은 것과 같다. 그래서 이에 기록하여 -
012_0741_a_01L爲寺之主峯。起伏結脉。分支藏抱。若
012_0741_a_02L蓮花之倒撒。中占一局。若非黃巾之窟。
012_0741_a_03L宜爲白衲之宅。粤在高麗神宗三年庚
012_0741_a_04L申。金承安
五年也普照國老。結社修禪之宏刹。
012_0741_a_05L名修禪社後
勅改松廣寺 以其福國祐世之實錄。詳於
012_0741_a_06L金君綏崔侁之筆。不欲贅焉。三傳至
012_0741_a_07L淸眞國師。卽麗高宗二十一年甲午也。
012_0741_a_08L就寺之後第一主峰下。結數椽而卜居。
012_0741_a_09L卽臨終安禪之別室也。庵之名。仍玆
012_0741_a_10L而得矣。左峰有石鍾一軀。而不見碑碣。
012_0741_a_11L誰稽幾經修葺哉。庵之病頽。慮不旦夕
012_0741_a_12L矣。粤七百二十八年己未。朝鮮國五百
二十八年也庵
012_0741_a_13L之釋春盛斗玹。與住持雪月響應。叫化
012_0741_a_14L大衆。鳩聚若干財。尅日蕫役。得其梁
012_0741_a_15L文。曰萬曆十七年己丑三剏云。莫考緣
012_0741_a_16L化之芳啣。不能無恨。然而仍孟陬月
012_0741_a_17L始役。病者醫之。頽者整之。經營之。蕫
012_0741_a_18L督之。不數月而吿竣。正堂突兀。翼廊
012_0741_a_19L彙 [116] 飛。輪焉奐焉。此莫是第四剏耶。於
012_0741_a_20L是梵唄登壇。法侶下塌 [117] 。慧雲彌漫於
012_0741_a_21L淸眞境上。天花亂墜於吉祥社中。龍
012_0741_a_22L虎飛動而護從。風雨和悅而調順。其於
012_0741_a_23L緣化幹蠧 [118] 之力。檀那惠捨之德。天衣長
012_0741_a_24L而地久。水源深而山高。故玆而記。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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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1_b_01L후인들에게 보인다.송광사 나한 전설에 대한 변증7월 3일(松廣寺羅漢傳說卞七月三日)옛날 승국勝國719) 신종 3년(1200) 경신에 보조국사께서 팔공산(公山) 거조사居祖寺720)에서 와서 길상사吉祥社에 안선安禪(좌선)할 자리를 얻었다. 거친 풀 가운데를 넓게 개척하여 창건한 지 9년 만에 완성이 되었다. 조계 종지를 크게 천양하고 산 이름과 사찰 이름을 거듭 바꾸어 ‘조계산 송광사’라 하였으니 모두 칙지勅旨희종熙宗 4년(1208) 무진에 사액賜額이 있었다.에 따른 것이다.위사韋史 신석희申錫禧721)의 기록에 따르면, “나무로 만든 매를 날려 흰 연꽃이 있는 터를 점치고, 잎사귀로 만든 범들로 녹림의 도적들을 쓸어버렸다.”라고 하였다. 또한 “지팡이를 던진 것이 살아 나무가 되었으니 세 그루 전단향이 사라지지 않고 더 자라지도 않았다. 먹은 고기를 토하니 물고기가 되어, 무수한 은빛 비늘의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살아 움직였다.”라고 하였다.구봉九峰722) 노스님의 기록에는 “화국華國(중국)에서 몸을 빼 금나라 황제의 셋째 아들을 데리고 왔다.723) 천자암天子庵과 삼일당三日堂을 창건하고 이름을 지었으며 즉석에서 옥게玉偈를 지었다. 아산峨山의 16성인을 초빙하였으니, 설법전의 높다란 사다리가 현존한다. 화덕군火德君724)에 대한 구화군救火軍725)의 토목 기술은 불구덩이를 멸하는 도력이다. 16존상을 새로 조성하는 사업에 불구덩이를 만들어 훈도燻陶하고 스스로 뛰어넘어 단壇에 올랐으니, 이 모두 국사께서 증득한 힘이요 오묘한 방법이었다.”라고 하였다.전설이 오래되어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으니 그래서 현존하는 성상聖像들의 몸체가 훼손되고 옷이 벗겨지며 채색이 흐릿해졌다. 어찌 납자衲子(승려)들만 무색하겠는가. 또한 단씨壇氏(시주)도 근심스러워하나 미망에 익숙하여 오묘한 인연을 도모하기 어려웠다. 열 입이 전하고 여섯 귀가 듣는데 성인의 경지를 높이 추앙하여 범인이 듣기에 놀라웠고 습관에 온통 취하여 주먹을 펼 것을 깨닫지 못한726) 지가 오래되었다.이제 『영월집詠月集』727) 「중수나한기重修羅漢記」를 보니, 대략 다음과 같다. “정유년(1597)에 -
012_0741_b_01L示于後。
012_0741_b_02L
012_0741_b_03L1)松廣寺羅漢傳說卞七月三日 [19]
012_0741_b_04L昔在勝國神宗三年庚申。有普照國師
012_0741_b_05L自公山居祖寺來。得安禪之地於吉祥
012_0741_b_06L社。荒茀之中。廣拓開剏。九載訖功。大
012_0741_b_07L闡曹溪宗旨。重易山名寺號。曰曹溪山
012_0741_b_08L松廣寺者。皆勅旨熙宗四年戊辰
有賜額之事也。申韋
012_0741_b_09L史記云。飛木鷹而占白蓮之基。散葉
012_0741_b_10L虎而掃綠林之賊。又曰杖投生幻樹。三
012_0741_b_11L個栴檀。不滅不生。食吐化爲魚。無數
012_0741_b_12L銀鱗。自在活潑。九峰老記云。身挺華
012_0741_b_13L國。携金帝之第三男。天子庵三日堂
012_0741_b_14L之剏號。口演玉偈。招峨山之十六聖。
012_0741_b_15L說法殿加峙棧現存。至於火德君救火
012_0741_b_16L軍之土木奇術。是乃滅火坑之道力。十
012_0741_b_17L六尊新造役。設火坑而燻陶。自超昇壇。
012_0741_b_18L是皆國師之證力妙方。傳說旣久。膾炙
012_0741_b_19L耳目。以故現存聖像。壞體脫衣。五彩
012_0741_b_20L漫漶。何但衲子無色。亦爲壇氏有愁
012_0741_b_21L然而慣於迷妄。難圖妙緣。十口所傳
012_0741_b_22L六耳所聞。高推聖境。語驚凡聽。渾醉
012_0741_b_23L習慣。莫悟申拳者。流來久矣。今見詠
012_0741_b_24L月集重修羅漢記。其略曰歲在丁酉。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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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1_c_01L성상이 적들에게 훼손되어 감실龕室이 처량해지니 속인들은 복을 심을 곳이 없고 승려들은 공경할 곳이 없어졌다. 어찌 이름난 사찰의 일대 흠이 아니겠는가. 산승 아무개가 새롭게 할 뜻이 있어서 계해년(1623) 봄에 시작하여 갑자년(1624) 겨울에 일을 마쳤다. 삼존불과 16진용眞容이 찬란하게 빛나니 별과 달이 푸른 하늘(碧落)에서 서로 빛나고 금과 옥이 붉은 쟁반에서 서로 비추는 듯하다.”라고 하였다. 그 연표를 고찰해 보니 만력萬曆 25년(1597) 정유, 즉 선조 30년이다. 27년 지난 천계天啓 3년(1623) 계해는 즉 인조 원년이다.국사께서 교화를 크게 펼친 날신종 7년(1204) 갑자년이다.728)에 처음 조성한 성상이 393년 지나 정유(1597)에 이르러 적들에게 해를 입었다. 인조 원년(1623) 계해에 다시 조성한 성상이 이제 295년 지나 기미대정大正 8년(1919) 기미년에 이르러 훼손되고 색이 바랬는데 전설에 익숙해져서 보수하지 못하니, 의혹됨이 심하구나, 세상이 무고를 좋아함이여. 어리석은 이의 구설수 때문에 만덕萬德의 장엄함을 길이 누락시키고, 미치광이의 의혹 때문에 만인의 복전을 길이 없애면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믿음 있는 선남선녀에게 바라노니 얼음 같은 집착을 깨뜨리고 장엄의 도구를 판별하여 믿음의 씨를 복전에 뿌리면 창건한 공덕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스스로 변증하여 기록하노라.조계산 송광사 국사전의 중수기길금729) 360원. 대중금 139원 13전 6리. 사금 2,001원 69전 6리. 기미(1919) 5월 5일 봉안.(曹溪山松廣寺國師殿重修記吉金三百六十圓。○大衆金一百三十九圓十三錢六里。寺金二千一圓六十九錢六里。己未五月午日奉安。) -
012_0741_c_01L相于賊。凄凉龕室。俗無植福之處。僧
012_0741_c_02L無投敬之地。豈非名刹之一大欠事耶。
012_0741_c_03L山之釋某。有志重新。始役於癸亥之
012_0741_c_04L春。訖功於甲子之冬。三尊嚴像。十六
012_0741_c_05L眞容。爭煥炳列。星月交輝於碧落。金
012_0741_c_06L珠互映於赤盤云。考其年表。萬曆二十
012_0741_c_07L五年丁酉。卽宣祖三十年是也。越二十
012_0741_c_08L七年天啓三年癸亥。卽仁祖元年是也。
012_0741_c_09L以自國師隆化之日。神宗七年
甲子年也剏造之聖
012_0741_c_10L像。迄于三百九十三年丁酉。爲賊所害。
012_0741_c_11L仁祖元年癸亥。重修之聖像。迄今二百
012_0741_c_12L九十五年己未。大正八年
己未年爲壞相脫彩。而
012_0741_c_13L慣於傳說。不能修補。惑之甚矣。世之
012_0741_c_14L好誣也。以愚夫之口舌。永闕萬德之莊
012_0741_c_15L嚴。以狂夫之熒惑。永蔽萬姓之福田。
012_0741_c_16L豈非痛惜哉。唯冀信男善女。破冰執而
012_0741_c_17L辦莊嚴之具。下信種於福田。庶報乎剏
012_0741_c_18L修之功。敢自卞錄。
012_0741_c_19L
012_0741_c_20L曹溪山松廣寺國師殿重修記吉金
三百
012_0741_c_21L六十圓。◆大衆金一百三十九圓十三錢六里。
寺金二千一圓六十九錢六里。己未五月午日
012_0741_c_22L此文上底本頭註曰「自國師入寂熙宗庚午。至
012_0741_c_23L萬曆二十五年丁酉三百八十八。自國師入曹溪
012_0741_c_24L庚申。至大正十二年。自天啓三年癸亥。至大正
012_0741_c_25L十二年癸亥三百一年。合七百二十五年也」{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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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2_a_01L내가 어느 날 용화당龍華堂(지장전)에서 회차會茶730)하며 불조佛祖의 가풍에 대해 말하다가 수선修繕하는 임무에 미쳐 간고幹蠱731)의 뜻이 있는 것처럼 하였다. 본사 주지 설월雪月 옹翁이 내게 부탁하여 말했다.“지금 국사전의 중수重修를 마쳤는데 어찌 한마디 하여 문미에 걸지 않겠습니까?”“그렇다면 전말을 들어 볼 수 있습니까?”“상량문을 보지 못해서 옛 인연을 고찰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다만 기록이 있어, 강희康熙 61년(1722) 임인에 백암栢庵(성총性聰) 노스님이 중수하였고 가경嘉慶 12년(1807) 정묘에 화봉華峯 스님이 보수하였다고 하는데 또한 몇 번이나 중건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의 일은 병진년(赤龍, 1916) 봄에 관산冠山732)의 신녀信女 김씨가 2천 관貫을 포금布金733)하여 국사전을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국사전은 원래 평범한 법우法宇가 아니므로 정사년(1917) 가을에 정당政堂(지방 관아)에 달려가 호소하여 그 소중함을 알게 하였습니다. 정당에서는 공학 박사 기술자 쿠리야마(栗山)와 기코(木子)734)를 두 차례 파견하여 측량하게 하였는데 그가 탄식하길, ‘이 국사전은 고려 시대 미술로 솜씨가 좋은 장인의 옛 자취이니 함부로 부수고 더할 수 없다. 다만 보수만 해서 기운 것을 바로 하고 썩은 것을 새롭게 하며 빠진 것을 보충하고 누운 것을 서게 하며 새는 곳에 기와를 대고 부서진 곳에 흙칠을 해서 아름다운 자취를 잃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오년(1918) 10월에 재목을 베어 일을 시작했고 후루타(古田) 감독에게 보내어 한결같이 그 말대로 보수하였습니다. 기미년(1919) 5월에 이르러 일을 마치고 봉안하니 그 8개월 동안에 장애 없이 성취하여 완전히 새롭게 찬란해졌습니다. 단나檀那의 공적과 정당政堂의 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뒷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으니 일전어一轉語735)가 필요합니다.”“아, 설 옹雪翁의 힘이여. 거문고가 묘하기는 하나 손가락이 아니면 연주할 수 없고, 도道가 원만하더라도 스승이 아니면 깨우칠 수 없네. 이번 국사전의 일은 단나와 정당이 거문고와 도道 같고, -
012_0742_a_01L奉
安。
012_0742_a_02L余一日會茶於龍華堂上。說盡佛祖家
012_0742_a_03L風。語及修繕之務。若有幹蠱之思。本
012_0742_a_04L住持雪月翁屬余曰。今國師殿重修了。
012_0742_a_05L而盍無一言揭楣哉。曰然。則可得聞
012_0742_a_06L顚末乎。曰恨未見梁文。莫考昔因。而
012_0742_a_07L但有記云。康熙六十一年壬寅。栢庵老
012_0742_a_08L重修。嘉慶十二年丁卯。華峯師修葺云。
012_0742_a_09L亦未知幾重建也。今之役。則赤龍之春
012_0742_a_10L冠山信女金氏。布金二千貫。以修國師
012_0742_a_11L殿。而然此殿。元非尋常法宇故。丁巳
012_0742_a_12L秋走訴于政堂。使知其所重。政堂再
012_0742_a_13L遣工學博士技術員栗山木子。測圖而
012_0742_a_14L嘆曰。此殿卽麗朝美術巧匠之古蹟。不
012_0742_a_15L敢毀掇者。但架修補。而猗者正而朽者
012_0742_a_16L新之。闕者補而卧者立之。漏者瓦之。
012_0742_a_17L破者塗之。毋喪美績也。戊午十月。伐
012_0742_a_18L木而始役之。又送古田監督。一如其言
012_0742_a_19L而修補之。至己未午月。竣工而奉安之
012_0742_a_20L這間八個月。無障成就。一新奐然。以
012_0742_a_21L其檀那之功。政堂之德難忘。而欲示諸
012_0742_a_22L後。師須一轉語曰。嘻。雪翁之力。琴雖
012_0742_a_23L妙而非指不發。道雖圓而非師不覺。今
012_0742_a_24L之殿之役也。檀那與政堂。但如琴與道
-
012_0742_b_01L설 옹이 앞장섬은 손가락과 스승 같도다. 이로 말미암아 엄숙한 금용金容이 옥평상 위에 높다랗고 은은한 옥영玉影은 금벽金壁에 빛나네. 불일佛日이 조계의 물과 바위를 거듭 비추고 조사의 호령이 상서로운 구름과 안개를 거듭 뒤흔들도다. 이것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교화(叫化)하는 힘이 아닐 수 없도다.”설월 옹은 웃으며 말이 없었다.나머지 전각들의 우람함과 사방으로 둘러싼 배치, 산 좋고 물 맑은 풍치와 달콤한 샘물과 무성한 숲의 아름다움은 관람한 이들이 기억할 것이니 다만 단나의 인연만 나열한다.두월 대사의 비를 세우는 제문기미년(1919) 8월 기묘삭736) 9일 정해에 세움. 한붕737)과 성학이 주관함.(斗月大師立碑祭文己未八月己卯朔初九日丁亥立安。漢鵬聖鶴爲主也。)행行(항렬) 5대조 두월斗月738) 대선사시여.계파는 금천金天739)이요, 본적은 광산光山(광주)의 유파로다. 세간의 음악을 싫어하니 불 속의 연꽃(火中蓮)과 같고, 위엄이 북두와 같으며 마음은 동녘의 달과 같네. 풍암楓巖 노스님이 경전을 가르쳤고, 원화圓華740) 옹에게 의발을 전수했네. 부휴浮休 조사의 7세손이요 백암栢庵 노스님의 4세손으로서 쌍기雙奇741)의 법부法父이며 사걸四傑742)의 막내였네. 공적은 천자암(天庵)743)을 건설하여 그 덕이 도적에까지 이르고, 발자취는 속세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하물며 서울로 갔으랴. 마음으로 조사의 영역에 참여하고 눈은 불경에 붙여, 보시는 가을 물처럼 맑고 덕은 봄 구름처럼 풍성하도다. 응신應身744)은 희수稀壽에 셋(73)이요 승랍은 지명知命(50)에 여덟(58)을 넘으셨네. 지혜의 가지 수려한데 불법의 기둥이 갑자기 쓰러지니745) 안개 속 넝쿨은 초췌하고746) 후손들은 애통해하네.아아, 대사를 사모하는 많은 무리들이 바위를 다듬어 무덤에 봉하고 옥을 깎아 비석을 세우니, 코끼리 네 마리가 땅에서 솟고 용 여섯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네. 거북이는 잘 돌아보나 비석은 다른 말이 없도다. 산호 같은 송가를 엮으니 전서는 구름 속 규룡 같도다. 이제 길일(穀日)을 골라 높이 푸른 벽을 지탱하니 보당寶幢(깃발)이 아스라하고 사리舍利는 참되도다.투박한 술이나마 향기로운 음식을 갖추어 삼가 울금鬱金747)을 드리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
012_0742_b_01L而已。雪翁之唱囮。若指與師也。由是
012_0742_b_02L而儼然金容。嵬嵬乎玉榻之上。隱然玉
012_0742_b_03L影。彬彬於金壁之中。佛日重照於曹溪
012_0742_b_04L水石。祖令再振於古祥雲烟。是莫非運
012_0742_b_05L指叫化之力乎。翁笑而默然。其餘殿宇
012_0742_b_06L之宏傑。基局之環抱。山明水麗之趣。
012_0742_b_07L泉甘林茂之味。覽者記得。只列檀緣。
012_0742_b_08L
012_0742_b_09L斗月大師立碑祭文己未八月己卯朔初
九日丁亥立安。漢
012_0742_b_10L鵬聖鶴
爲主也。
012_0742_b_11L行五代祖。斗月大禪師。系派金天。籍
012_0742_b_12L流光山。厭世間樂。若火中蓮。威如北
012_0742_b_13L斗。心似東月。楓老授經。華翁傳鉢。浮
012_0742_b_14L休祖之七世。栢庵老之四代。卽雙奇之
012_0742_b_15L法父。是四傑之叔季。功建天庵。德被
012_0742_b_16L匪徒。跡不入俗。況復上都。心叅祖域。
012_0742_b_17L眼掛佛文。施若秋水。德同春雲。應身
012_0742_b_18L稀三。臘過命八。慧柯方秀。法棟俄折。
012_0742_b_19L烟蘿憔悴。雲仍痛忉。嗚呼感慕。繁息
012_0742_b_20L有曺。攻石封塚。删玉樹碑。四象地湧。
012_0742_b_21L六龍天垂。龜有善顧。石無異言。頌綴
012_0742_b_22L珊瑚。篆活虬雲。玆選穀日。高撑翠壁。
012_0742_b_23L寶幢崔嵬。舍利眞的。載庸薄尊。特備
012_0742_b_24L香養。謹以鬱金。伏唯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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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2_c_01L진도 군수 이 옹748)께 올리는 편지기미년(1919) 중추(上珍島郡守李云翁書己未仲秋日)엎드려 생각건대, 합하閤下께서 남쪽으로 행차하시니 바다 구름이 아득하고 역로驛路749)가 막막하여 하교河橋의 근심과 강수江樹의 부끄러움750)이 솔문(松門) 밖 낙강洛江751) 위에서 오히려 간절한데, 헌병軒屛752) 아래 안부를 미처 묻기도 전에 외롭고 누추한 거리로 먼저 편지를 보내 주시니, 정중하고 송구함은 하늘의 벌을 받아 죽을 듯하여 나도 몰래 부끄럽고 뭐라 말할지 판별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비야毘耶753)의 번뇌에 구속되어 연야演若754)의 미친 성품을 스스로 짓다가 이제야 겨우 조금 완치되어서 게을러짐(慢延)을 깨닫게 됩니다.비록 그러하나 푸성귀(승려)의 말이라도 말없이 쳐다보는(默照) 마음보다 도리어 나으리니 이에 우러러 아뢰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살펴보소서. 다시 기도하노니, 관아는 고요하고 엄숙하여 영주瀛洲755)의 신선 풍모 보기를 기약하고, 해역海域(진도)은 맑고 평안하여 곤륜산의 지혜 달이 비추기를 바라나이다. 이만 글을 줄입니다.허정환이 법을 구하기에 쓴 답서기미년(1919) 초겨울. 본래는 응암756) 문파인데 또한 가르친 공적이 있다. 가난을 버리고 부유함을 따른 까닭이다.(答許正煥求法書己末初冬日。本爲應庵門派。亦有敎授之功。捨貧從富故也。)그대의 편지를 보고 기뻐했는데 그대의 편지를 읽고 슬퍼했으니, 무슨 까닭인가. 조정祖庭757)의 나무 한 그루가 조계曹溪에 뿌리를 서려 법유法乳에 함께 젖어 거의 총림을 이루었으니 장차 푸르게 번성하고 꾀꼬리 소리를 들을 텐데, 무지한 나무꾼이 가지를 베고 힘껏 뽑아서 어느 집의 기둥으로 삼으니, 미워서 탄식이 나도다. 이로부터 뜰(庭軒)은 무색해져서 바람이 불어도 ‘솔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달이 떠도 은은한 모양이 보이지 않으리니 이전의 공적이 여기에 이르러 사라질 줄 누가 알았으랴.아아, 예전의 설파雪坡758)가 회당晦堂759)의 문에서 공부를 이루고, 호암虎嵓760)의 뜰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동방의 설파 후손이 지역에 가득한 것은 모두 회당 옹翁의 공적이다. 이제 그대는 달 문하에서 마음을 밝히고 구름 뜰에 투신했으니, 구름이 허공에 가득하다면 달이 필시 비추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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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2_c_02L上珍島郡守李云翁書己未仲秋日
012_0742_c_03L伏唯閤下。運駕南征。海雲迢迢。驛路
012_0742_c_04L漠漠。河橋之愁。江樹之耻。尙切於松
012_0742_c_05L門之外。洛江之上。未及修問於軒屛之
012_0742_c_06L下。先卽下書於孤陋之巷。鄭重感悚
012_0742_c_07L如殞天譴。不覺愧恧。莫卞攸云。而況
012_0742_c_08L拘於毘耶之惱魔。自作乎演若之狂性。
012_0742_c_09L今纔稍完。方覺慢延。然雖而蔬荀之說。
012_0742_c_10L反勝於默照之心。玆敢仰籲。伏唯照察。
012_0742_c_11L更祈衙閫肅靜。期見瀛洲之仙風。海
012_0742_c_12L域晏淸。庶照崙山之慧月。不備狀辭。
012_0742_c_13L
012_0742_c_14L答許正煥求法書己末初冬日。本爲應
庵門派。
012_0742_c_15L亦有敎授之功。
捨貧從富故也。
012_0742_c_16L見君之書喜。而讀君之書悲之何也。祖
012_0742_c_17L庭一樹。根盤曹溪。同霑法乳。幾成叢
012_0742_c_18L林。將見綠之繁。黃鳥之音。無知樵夫
012_0742_c_19L斫一枝而力拔之。爲那家之棟。可憎歎
012_0742_c_20L哉。從此庭軒無色。風來不聞瑟瑟之響。
012_0742_c_21L月到不見隱隱之影。誰知前功之到此
012_0742_c_22L烏有哉。嗚呼。昔之雪坡。成工於晦堂
012_0742_c_23L之門。作家於虎嵓之庭。東方雪孫。滿
012_0742_c_24L於域中者。盡是晦翁之功也。今君明心
012_0742_c_25L於月門。投身於雲庭。雲若滿空。月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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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3_a_01L휴암休庵의 적적함과 응암應庵의 막막함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러할 줄 알 것이다. 이에 이르러 그대의 영광은 구름 거리에 가득하여 일어나 뛰고 굽혔다 뛰며 손과 발로 춤을 추면서 호수 빛의 넘실댐과 달빛의 휘영청 밝음을 보지 못하고, 결국 응암 집안의 보물을 잃어버리게 되니, 회당이 사람을 잃은 것과 같다. 그대에게 얼마나 경사스런 유쾌함이 있는가.편지 가운데 ‘재물(財)을 알고 사람을 모른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대가 법을 구함이 재물을 아는 것인가, 은혜를 아는 것인가. 굶주림과 추위를 참지 못하여 그런 것인가, 따뜻함과 배부름을 구하려고 그런 것이 아닌가. 마음은 항상 굶주림과 배부름의 뜻을 품고 입으로 항상 부족함과 충족함에 대한 말을 하며 집안에서 앙앙 대고 길에서 궁시렁대며 스승과 제자의 정이 멀어짐을 야기하고 친족의 정이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어느 아침에 감득感得하여 달리 법을 구하기를 허락하니, 치닫는 정의 무리(情黨)가 좌우로 결탁하는구나. 입은 창고의 문에 걸고 몸은 화려한 집안 뜰에 의탁하였으니, 재물을 모르고 은혜를 안다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가.그대가 이와 같으니 이제부터는 필시 비단옷을 입고 배부르고 관옥冠玉761)에 금신을 신고 사계社界에 출두하여 눈길은 천하에 높이 뜨고 입은 해외로 크게 벌려, 나보다 높은 이는 없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비록 한 지역에서 활보하고자 하나 지역의 빈정거림은 어찌할 것인가.아아, 장수와 요절은 동일하고 범석范石762)은 동일한 귀신이니, 영광과 욕됨은 잠시일 뿐 풍요와 검약이 어찌 다르리오. 조금이라도 바른 지견이 있다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구하여 은혜를 버리고 법을 구함을 어찌 일삼겠는가. 나의 게송을 들으라.동복군 옹성산 몽성암 칠성계안 서문11월 11일(同福郡甕城山夢聖庵七星契案序十一月十一日)무릇 칠성계란 무엇인가. 선남선녀 신도들이 단금斷金763)의 교분으로 -
012_0743_a_01L不照。休庵之寂寂。應庵之莫莫。不待
012_0743_a_02L言而其然也。到此君之榮光。滿於雲衢。
012_0743_a_03L起踴曲踴。手舞足蹈。不見湖光之洋洋。
012_0743_a_04L月色之皎皎。終見失於應庵家裡寶藏。
012_0743_a_05L如晦堂之失人。於君有幾個慶快也哉。
012_0743_a_06L書中知財不知人者。何謂也。以君之求
012_0743_a_07L法。知財耶。知恩耶。不忍飢凍而然也。
012_0743_a_08L不求溫飽而然耶。心常懷飢飽之情。口
012_0743_a_09L常說窘足之言。鞅鞅於家裡。苟苟於途
012_0743_a_10L中。惹起師資之情踈。做出眷族之誼離。
012_0743_a_11L一朝感得。任他求法之諾。馳走情黨。
012_0743_a_12L左締右結。口掛於倉廪之門。身托於華
012_0743_a_13L族之庭。不知財而知恩者。果如是乎。
012_0743_a_14L君旣如是。則從此必衣錦而膓飫。冠玉
012_0743_a_15L而履金。出頭於社界。眼高開於宇內。
012_0743_a_16L口大張於海外。自以謂無有上於我者。
012_0743_a_17L雖欲作一方之活步。其奈何一方之嚬
012_0743_a_18L嗾哉。噫噫。彭殤一轍。范石一鬼。榮辱
012_0743_a_19L暫時。豊儉何殊。小有正知見者。何事
012_0743_a_20L捨此求彼。棄恩求法哉。聽吾一偈。
012_0743_a_21L
012_0743_a_22L• 同福郡甕城山夢聖庵七星契案序
012_0743_a_23L十一月十一日
012_0743_a_24L夫七星契者。何謂也。信男善女。斷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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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3_b_01L재물을 모아 성군星君(북두칠성)께 공양하여 재앙을 소멸하고 복을 받음을 말한다. 일이 어찌 쓸데없겠는가.이 몽성암夢聖庵은 대성大聖(부처님) 자부慈父께서 꿈에 감응하여 대단신大檀信(시주) 오씨吳氏 문중에 영험을 드러내시어 월봉月峰 정상에 터를 정하고 암자를 창건하게 하신 것이다. 바람이 있으면 응하며 돌아보아 이루어 주지 않음이 없으니 다시 논할 게 없다. 하물며 칠원성군七元星君은 허공(空界)을 순환하고 인간 세계를 굽어 살피시며 크게는 천계를 주유하면서 작게는 미진微塵에 들어가는 무량하고 신이한 변화와 가늠할 수 없는 공덕을 지닌 분이시다. 그 영험을 개괄하여 논하자면 자손이 창대하고 수명이 길어져 만 리 허공에 구름이 일어나는 듯하다. 온갖 복이 나오고 수많은 장애가 소멸되니 수많은 강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살핌이 환하여 터럭만 한 선악도 착오가 없고, 신이한 칼이 엄정하여 조금의 복과 재앙도 피할 수 없다. 믿음의 힘이 일어나면 어찌 복이 오지 않으리오. 정성스런 마음이 이르면 어찌 장애가 소멸되지 않으리오.엎드려 생각건대, 가장 뛰어난 선(上善)의 대단씨大檀氏들께서 마음을 잃게 하는 티끌 재물을 아끼지 마시고 몸을 보호할 좋은 인연을 깊이 심어, 현재 사바세계에서 다른 성의 형제를 체결하고 앞으로 극락세계에서 업을 같이할 도반(法侶)과 유희하고자 이에 향사香社764)를 결성하고 그 명단(芳啣)을 고하노라.몽성암 창건기11월 11일(夢聖庵剏建記十一月十一日)노령蘆嶺765)의 남쪽이자 무악毋岳766)의 북쪽에 ‘옹성甕城’이란 산이 있다. 형체는 크게 두툼하여 철 단지(鐵甕)를 엎어 놓은 듯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투구의 끈이 풀어진 듯하고 가까이서 우러러보면 철위산(輪圍)767)이 겹쳐진 듯하니, 그래서 그 명칭을 얻은 것인가.옹성 아래에 적벽赤壁이 있고 적벽 아래에 강이 있고 강 언덕에 정자가 있다. 정자의 벽면은 살아 있는 병풍이요 강 위엔 맑은 바람, 정자에서 보이는 밝은 달은 소선蘇仙768)의 아름다운 취향과 방불하도다. -
012_0743_b_01L聚財。獻供星君。消災降福之謂也。事
012_0743_b_02L豈徒然哉。此夢聖菴者。大聖慈父。感
012_0743_b_03L夢現靈於大檀信吳氏之門。占基剏菴
012_0743_b_04L於月峰之頂。有願卽應。無顧不遂。已
012_0743_b_05L無更論。而况七元星君。循環空界。俯
012_0743_b_06L察人間。大周天界。細入微塵之無量神
012_0743_b_07L變叵思功德者哉。槩論其靈。則子孫
012_0743_b_08L昌而壽命長。似雲興於萬里空界。百福
012_0743_b_09L進而千障滅。若月印於千江波心。慧鑑
012_0743_b_10L昭昭。不錯絲毫之善惡。神釰嚴嚴。難
012_0743_b_11L逃分寸之福殃。信力所起。何福而不臻。
012_0743_b_12L誠心所到。何障而不滅哉。伏唯諸上善
012_0743_b_13L大檀氏。莫惜喪心之塵財。深種護身之
012_0743_b_14L良緣。現在娑婆。締結異姓之昆季。當
012_0743_b_15L生極樂。遊戱同業之法侶。玆結香社。
012_0743_b_16L爰吿芳啣。
012_0743_b_17L
012_0743_b_18L夢聖庵剏建記十一月十一日
012_0743_b_19L蘆嶺之南。毋岳之北。有山曰甕城。其
012_0743_b_20L形磅磚 [119] 。若鐵甕之覆。遠而望也。如胄
012_0743_b_21L凱之脫纓。近而仰也。似輪圍之疊衿。
012_0743_b_22L故得其名歟。甕城之下。有赤壁。壁下
012_0743_b_23L有江。江岸有亭。壁面之活屏。江上之
012_0743_b_24L淸風。亭中之皓月。依俙乎蘇仙之嘉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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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3_c_01L적벽의 정상에 ‘칠성대’가 있으니, 범과 용이 서려 있어 북극성이 비추고, 하늘과 땅이 비장하여 남극성769)이 헌수獻壽770)하니, 신명이 보호하고 귀신이 달아나는 별세계요 마땅히 불상을 봉안하고 참선(安禪)할 복지인데,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 그러한 것이로다.마침 무오년(黃馬, 1918) 봄에 동복군의 신도 오완기吳完基가 부처님 꿈을 꾸고 터를 정하더니 과연 남아를 얻었다. 믿음의 씨앗이 저절로 싹터서 집안 재물을 내어 이 암자를 짓고 태영泰英 상인上人(스님)을 초빙하여 일을 감독하고 암자에 주석하게 하였다. 같은 해 초여름에 시작하여 8월 그믐에 마쳤다. 이것이 ‘몽성암’이라고 명명한 까닭이로다.기미년(1919) 가을에 불상을 주조하고 탱화를 그려 나란히 봉안하고 낙성재落成齋를 마련했다. 온갖 색들을 다 갖추고 온갖 것들을 성취하니 단나檀那(시주)가 부처님께 기도함에 뜻대로 되고 납자衲子(승려)들이 거주함에 편리하다. 부처님의 감응은 달이 강에 비침과 같아 본래 논할 수 없다.하잠霞岑(노을 봉우리)에 기대어 성봉星峰이 높다랗게, 구름 낀 개울을 내리누르고 푸른 강은 첩첩이 겹쳐지네. 서쪽으로 서석瑞石771)의 무등산을 가리키고 동쪽으로 운룡雲龍의 비봉산을 소리치도다. 오르는 이들이 스스로 감흥을 펼칠 터이니 어찌 족히 말하겠는가. 그러나 사사四事772) 공양으로 부처님과 승려들에게 보시함에 쌀 한 톨이 7근의 무게이니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어렵다는 게 옛 성현773)의 밝은 가르침이다. 선정에 거하면서 피를 머금어 식사하고 칼을 차고 잠을 자며774) 거하는 승려는 누구인가. 암자를 창건한 혼명渾溟 화상의 상족上足(제자)인 태영泰英이다. 기록하는 이는 누구인가. 조계 늙은이 금명錦溟이라 한다.해강 김규진과 죽농 안순환이 30사찰의 액호를 써서 보냈기에 판 뒤에 쓴 간단한 서문12월 12일(金圭鎭海岡安淳煥竹農寫送三十寺額號板背小引十二月十二日)이 판액은 한양의 명사明士 김해강金海岡775)과 안죽농安竹農776) 두 분이 그려 보낸 서화書畵이다. -
012_0743_c_01L耶。赤壁之頂有臺。名七星。虎踞而龍
012_0743_c_02L蟠。北宸照臨。天藏而地秘。南極獻壽。
012_0743_c_03L是可謂神護鬼遁之別界。宜奉佛安禪
012_0743_c_04L之福地。必待旺運而然矣。適黃馬之春。
012_0743_c_05L郡之信士吳完基。夢聖而占基。果得一
012_0743_c_06L男。信芽自萌。出家財。剏是庵。招泰英
012_0743_c_07L上人。蕫其役。主其庵。仝年初夏始。八
012_0743_c_08L月晦日終。此所以夢聖菴之命名者歟。
012_0743_c_09L越己未秋。銑佛像。畵聖幀。并奉安而
012_0743_c_10L設落成齋。色色畢備。頭頭成辦。檀那
012_0743_c_11L之祈聖如意。衲子之棲息便宜。以其佛
012_0743_c_12L聖之感應。如月印江。固不可論。至若
012_0743_c_13L却倚霞岑。星峰崇嶐。俯壓雲澗。壁
012_0743_c_14L江疊層。西指瑞石之無等。東喝雲龍之
012_0743_c_15L飛峰。登臨者之自得以興感暢舒。何足
012_0743_c_16L道哉。然而四事供養。施佛及僧。一米
012_0743_c_17L七斤。錙銖難報。古聖之明訓。唯居禪
012_0743_c_18L含血而食。帶刀而眠。居僧誰也。剏庵
012_0743_c_19L主渾溟和尙之上足泰英是也。記者誰
012_0743_c_20L也。曹溪老漢錦溟云尒。
012_0743_c_21L
012_0743_c_22L• 金圭鎭海岡安淳煥竹農寫送三十
012_0743_c_23L寺額號板背小引。十二月十二日
012_0743_c_24L此額卽漢陽明士金海岡安竹儂 [120] 二公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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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4_a_01L두 분은 일찍 벼슬살이를 하여 청요직淸要職777)을 다 거치고 일찍이 서화로 조정에서 이름이 났으나 성품은 아름다운 산수를 좋아하였다. 해진 두루마리와 먹을 도시의 먼지 속에서 모조리 부서지게 하느니 도리어 멀리 금지옥토 범궁梵宮(사찰)에서 관람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겨, 30본사本寺778)의 액호額號를 완성하였다. 이에 해강의 글씨와 죽농의 그림을 판본처럼 새기고 칠하여 장소에 따라 배포하여 범궁의 문미에 높이 걸게 하였다.아, 두 분의 마음은 수묵 난죽水墨蘭竹의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한씨 문계안 서문경신년(1920) 1월(韓氏門契案序庚申一月日)산에 맥이 있어 국면을 이루고, 물에 근원이 있어 못을 이룬다. 국면을 이루면 땅이 영험하고 사람은 걸출해지며, 못을 이루면 용이 깃들고 물고기가 변한다. 이것은 산과 물이 기운을 모은 것으로, 하물며 사람은 만물 가운데 영험하니 어찌 맥을 찾고 근원을 탐색하여 세상에 바로 서고 이름을 드러나게 함이 없겠는가.이제 한씨는 청주에 관적을 두고 복천福川779)에 산 지가 거의 십수 대代에 이른다. 본래 의관을 갖춘 혈통으로 여항閭巷780)에 은거하면서도 관적의 청전靑氊781)을 굳게 지켰다. 지난 임인년(1902)에 무악毋岳(무등산) 남쪽이자 두치斗峙의 서쪽에 한 자락 산기슭을 얻어 몇 개의 혈穴을 점쳐서 부모를 안장할 음택陰宅(산소)으로 삼았다. 이후 삼림을 배양하여 선산(先壠)의 울타리로 삼은 지가 19년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산그늘이 덮어 주어, 아들과 손자들이 번식하여 무리 지으니 마을을 이루어 안도하게 되는 경사에 이르게 되었다. 외로이 궁박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 어찌 먼 시골의 지극한 바가 되지 않겠는가. 이후로는 삼림을 배양하고 덤불을 베어 내어 금액이 많든 적든 문중에 원금을 마련하고 -
012_0744_a_01L所寫書畵也。二公蚤遊宦海。歷盡淸要。
012_0744_a_02L曾以書畵。名於朝而性好山水之美者
012_0744_a_03L也。與其殘𨋀破墨。渾碎於紫陌紅塵之
012_0744_a_04L中。反不若遐觀於金地梵宮之外。仍成
012_0744_a_05L三十本寺額號。海之書。竹之畵。如板
012_0744_a_06L本而刻塗之。隨處播及。高揭梵宮之楣。
012_0744_a_07L噫。二公之心。不泯於水墨蘭竹之間
012_0744_a_08L云尒。
012_0744_a_09L
012_0744_a_10L• 韓氏門契案序庚申一月日
012_0744_a_11L山有脉而作局。水有源而成潭。作局則
012_0744_a_12L地靈而人傑。成潭則龍隱而魚變。此山
012_0744_a_13L水之鍾氣。而况人於萬物之靈。而豈無
012_0744_a_14L尋脉討源。而立於世現於名者哉。今韓
012_0744_a_15L氏貫於淸州而居於福川者。幾至十數
012_0744_a_16L代也。本衣冠之胄而隱於閭巷。固守貫
012_0744_a_17L籍之靑氊矣。去壬寅年。得一片山麓於
012_0744_a_18L毋岳之南。斗峙之西。占數穴而安父母
012_0744_a_19L之陰宅。養森林而爲先壠之藩籬者。十
012_0744_a_20L九年之久也。何幸。山蔭所覆。子其子
012_0744_a_21L孫其孫。繁息有徒。以至成村安堵之餘
012_0744_a_22L慶。比諸孤單窮獨之時。此豈不爲之遐
012_0744_a_23L鄕之所極乎。從此以往也。養森林。剪
012_0744_a_24L榛苦。隨多少金。立本於門中。殖利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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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4_b_01L친족들에게 이자를 불려서 선산(先塋)과 친족의 자본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누가 알겠는가, 맥을 찾고 근원을 탐색하는 날에 땅이 영험하고 사람이 걸출하며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 경우가 있으니 이날에 계를 이룬 근원을 돌아보게 될 줄. 이렇게 계약하여 굳게 계안을 정하고 아래에 친족의 명단(芳啣)을 나열한다.『조계고승전』 서문3월 3일(曹溪高僧傳序三月三日)‘고승전’이란 또한 ‘명승전’이라고도 하니, 즉 도덕으로 고명한 사승師僧782)들을 전한 기록이다. 고승전을 짓는 것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시작되었다. 당나라 의정義淨783)과 혜교惠皎784)ㆍ보창寶唱785) 등이 각기 10권을 저술했고 송나라 찬영贊寧786)이 또한 10권을 저술하고 도선道宣787)이 또 1권을 저술했다. 금나라 세종이 40권을 제작했으니 전후로 도합 100여 권이 세상에 유행하였는데 모두 도덕으로 고명한 승려들에 대한 기록이다.해동을 보자면, 신라와 고려 때부터 삼한의 명승들이 배출되어 출중한 현인들이 진단震旦(중국)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였는데 원래 승전은 없었다. 신라 때 『신승전神僧傳』이 있고, 고려 때 『학승전學僧傳』이 있었을 뿐이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이라 하여 각훈覺訓788)이 지은 것이 있다. 이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또한 고승전이 있는데 시반(師蠻)789)이 저술한 것이고, 근래 『동사열전東師列傳』이 있으니 범해梵海790) 노스님이 찬술한 것으로 모두 통방정안通方正眼791)이요 불문佛門의 등불을 이음이다. 다섯 종파의 유파792)를 가리지 않고 또한 구산九山793) 선문의 분류를 따지지 않으니, 실로 관방關坊에 의거하여 오는 이들은 모두 취지가 같다는 것인가.오직 이 『조계고승전』은 다만 조계산의 고승들에 관한 기록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즉 우리 개산조開山祖 보조국사께서 구산의 장벽을 열어젖혀 선교의 종찰로 삼고 -
012_0744_b_01L族下。使有緊用於先塋及門族之資。誰
012_0744_b_02L知爲尋脉討源之日。有地靈人傑。魚變
012_0744_b_03L成龍者。顧念乎此日之成契之源也哉。
012_0744_b_04L以此契約。而牢定成案。列族門之芳啣
012_0744_b_05L于左。
012_0744_b_06L
012_0744_b_07L1)曹溪高僧傳序三月三日 [21]
012_0744_b_08L高僧傳者。亦云名僧傳。卽道德高名之
012_0744_b_09L師僧傳錄也。高僧傳之作。嚆矢於唐宋
012_0744_b_10L之代。唐之義淨惠皎寶唱等。各述十卷。
012_0744_b_11L宋之贊寧。亦作十卷。道宣又述一卷。
012_0744_b_12L金之世宗。御製四十卷。前後合一百餘
012_0744_b_13L局。行于世。而盡是道高名僧之傳錄也。
012_0744_b_14L若海東則自羅麗三韓名僧輩出。矯矯
012_0744_b_15L群賢。比肩於震旦。而原無其傳。以唯
012_0744_b_16L羅有神僧傳。麗有學僧傳而已。至於三
012_0744_b_17L國。始有海東高僧傳。覺訓之所造。及
012_0744_b_18L于李朝。亦有高僧傳。師蠻之所述。近
012_0744_b_19L有東師傳。梵海翁之所撰。而皆爲通方
012_0744_b_20L之正眼。佛門之續燈也。不揀五宗之派
012_0744_b_21L流。亦不問九山之分岐。實謂據關坊而
012_0744_b_22L來者。皆同趣歟。唯此傳者。但曹溪山
012_0744_b_23L之高僧傳也。曷故然也。卽我開山祖普
012_0744_b_24L照國師。闢九山之障壁。爲禪敎之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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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4_c_01L여러 유파들을 융합하여 조계종을 세우니 이로부터 구산이 변하여 하나의 도가 되고 선과 교 양가兩家가 합하여 하나의 종이 되었다. 조계종의 취지가 넓고 크도다. 이로 말미암아 본종本宗의 창업주에서 시작하여 본종의 유파에 마치기까지 하나하나 여러 책들을 열람하여, 어느 산 어느 문중을 막론하고 이 종宗에 관계되면 병입하여 수록하였다. 명銘과 행장(狀)이 있으면 원본에 따라 대략 기록하고 고찰할 게 없으면 다만 차례대로 기록하였다. 현재 가히 명승이라 할 만한 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고찰하여 행장을 이루고 가외可畏(후인)794)를 기다린다.그러나 다만 이와 같은 것으로 어찌 당나라와 송나라, 신라와 고려의 문장 사업을 도모했겠는가. 그저 종주께서 장애를 열어젖혀 종지를 세우신 것의 만분의 일이나 은혜를 갚고자 한 것이요, 다만 조사들의 고명한 도덕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람이다. 오직 통달한 이들은 같이 증명해 주시라. 뒤를 이어 등불을 전하여 결국 원질原帙795)을 완성하기를 정축頂祝796)할 따름이다.『저역총보』 서문(著譯叢譜序)천하의 성인은 책을 저술하여 가르치지 않음이 없고, 세상 밖(方外) 현인들도 불경(梵)을 번역하여 남기지 않음이 없다. 불교가 동쪽으로 전래한 이후로 저서와 역서가 더욱 많아졌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의 인도 승려들과 진나라와 송나라의 유명한 이들이 명성을 다투어 논서를 짓고 경전을 번역하니 긴 창공에 구름이 일듯 하였고 큰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듯 하였다.해동에 이르러서도 또한 진단震旦(중국)보다 덜하지 않은데 간혹 경전과 논서의 같고 다름이나 소기疏記(주석)의 구별, 저자와 역자의 이름들을 분변할 수 없고, 강의하는 즈음에 -
012_0744_c_01L融諸家之派流。立曹溪之宗。自是九山
012_0744_c_02L變爲一道。兩家合爲一宗。曹溪宗之趣
012_0744_c_03L義。廣且大矣哉。由是始於本宗之剏主。
012_0744_c_04L終於本宗之派流者。一一閱於群篇。不
012_0744_c_05L論何山何門。而唯關於是宗。并入而錄
012_0744_c_06L之。而有銘狀。則依本畧錄。無狀可考
012_0744_c_07L則但依次列錄。至於現見可爲名僧者。
012_0744_c_08L私考而成狀。以待可畏也。然而但如此
012_0744_c_09L者。豈圖唐宋羅麗之文章事業也哉。庶
012_0744_c_10L報宗主之闢障立宗萬一之恩。秪望諸
012_0744_c_11L祖之道高德名之不朽也。唯達者。同垂
012_0744_c_12L證明。續後傳燈。竟成原帙。頂祝耳。
012_0744_c_13L
012_0744_c_14L2)著譯叢譜序 [22]
012_0744_c_15L天下聖者。莫不著書而敎之。方外賢哲
012_0744_c_16L亦莫不譯梵而遺之。自佛敎東漸。著譯
012_0744_c_17L益熾。漢唐之胡僧。晋宋之名士。競名
012_0744_c_18L爭頭。造論而譯經也。如長空之雲興
012_0744_c_19L若巨海之波進。以至海東。亦不下於震
012_0744_c_20L旦。而或經論之同異。疏記之并別。著
012_0744_c_21L譯之氏名。莫能分卞。至於講授之際。
012_0744_c_22L此序文。旣載於曹溪高僧傳篇(韓國佛敎全書
012_0744_c_23L第十二册三八一頁上段){編}。此序文旣載於著
012_0744_c_24L譯叢譜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四三五頁中
012_0744_c_25L段){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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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5_a_01L매번 빠뜨리고 잊어버리는 근심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열람하는 대로 그때마다 합쳐서 글을 주고받을 때에 자료로 삼게 하였는데 거의 한 권이 되었기에, 이름을 ‘저역총보著譯叢譜’라 하여 책상머리에 두고 항상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한번 펼치면 고금의 저술가들을 편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스스로 눈여겨볼 뿐이지 어찌 고견을 지닌 대가들에게 증정하기를 도모하겠는가. 안목 있는 이들이 보면 불쏘시개로 충당하여 일성一星797)의 근심을 면하지 못하리라. 한 번 웃노라.엄군(부친) 통정공의 신산798) 장례 축문기유(1909) 2월 일(嚴君通政公新山葬禮祝己酉二月日)현고顯考 통정대부通政大夫 부군府君 신위神位799)
신이하고 영령하시니, 진동하거나 놀라지 마소서.
다섯 번 산소를 바꾸어, 삼망三望800)으로 결정하니
세상에서 ‘천마天馬’라 칭하고, 사람들이 영험한 자리라 하는 곳
백리 행룡行龍801)에, 별점으로 자리 하나 얻어서
임任을 향하고 병丙을 등지며,802) 진辰과 경庚으로803) 파정破汀804)하니
혈의 깊이는 4척이요, 흙은 오황五黃805)을 겸했습니다.
이에 옥관玉棺을 내리고, 고르게 금정金精806)을 나누니
오성이 내리 비추고, 양의兩儀(일월)가 함께 응하며
만 리에 바람이 통하니, 일기一氣가 형통합니다.
바라건대 신령께서는, 이제부터 음택에서 편안히
시간이 갈수록 평안하시고, 재앙을 소멸하고 복을 내리시길
지극한 마음으로 축원하오며, 소박한 음식이나마 차려서
삼가 맑은 술을 드리노니, 굽어 음식을 흠향하소서.자당 숙부인 전주 이씨의 신산 장례 축문임자(1912) 2월 27일(慈堂淑夫人全州李氏新山葬祝壬子二月二十七日)현비顯妣 숙부인淑夫人807) 이씨 존령尊靈
세 번 후토后土808)를 옮긴, 한 구역의 명당
선인들이 바둑 두는, 구름 속 신선 마을
경태庚兌809)로 낙맥落脉810)하는, -
012_0745_a_01L每不無遺忘之慮。故隨所閱。而逐旋捏
012_0745_a_02L合。使備酬唱之資。幾成一局。命名以
012_0745_a_03L著譯叢譜。寘諸案頭。俾要常目。一展
012_0745_a_04L而便見古今述作者。然而只可以自家
012_0745_a_05L寓目。豈圖持贈大方之高見也哉。若具
012_0745_a_06L眼者見之。足充紙燼。而不免一星之患
012_0745_a_07L也夫。一笑。
012_0745_a_08L
012_0745_a_09L• 嚴君通政公新山葬禮祝己酉二月
012_0745_a_10L日
012_0745_a_11L顯考通政大夫府君神位。唯神唯靈。勿
012_0745_a_12L震勿驚。五遷改塚。三望迺銓。世稱天
012_0745_a_13L馬。人謂靈阡。百里行龍。一穴占星。壬
012_0745_a_14L丙向背。辰庚破汀。穴深四尺。土兼五
012_0745_a_15L黃。乃下玉棺。均分金精。五星照臨。兩
012_0745_a_16L儀并應。萬里風通。一氣元亨。唯願神
012_0745_a_17L靈。從玆安宅。愈久彌寧。消災降福。
012_0745_a_18L至心奉祝。爰設菲薄。謹以淸酌。俯欽
012_0745_a_19L斯奠。
012_0745_a_20L
012_0745_a_21L• 慈堂淑夫人全州李氏新山葬祝
012_0745_a_22L壬子二月二十七日
012_0745_a_23L顯妣淑夫人李氏尊靈。三遷后土。一地
012_0745_a_24L明堂。仙人圍碁。雲中仙鄕。庚兌落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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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5_b_01L유酉를 등지고 묘卯를 향해811)
병丙에서 득得하고 진辰으로 파하며,812) 위로 아래로 다시 살피니
뒤로 평평한 언덕으로 떨어지고, 앞으로 넓은 평야가 열리니
용이 머리를 돌려 서리고, 범이 꼬리를 내려 엎드리며
거북이 등에 해당하니, 오석烏石813)들이 섞여 있어
안으로 혈을 여니, 길한 곳의 음택입니다.
바라건대 편안하시어, 천지처럼 장구하게
자손들이 가지와 잎사귀처럼, 영원히 번성하게 하소서.6대와 5대 조비 묘의 석물을 봉안하는 축문경신(1920) 4월 일(六代五代祖妣墓石物奉安祝庚申四月日)덕이 밝은 바위비탈에서, 호승胡僧814)이 예불합니다.
세월이 오래되어, 산소가 부실해져서
개금開金815) 골짜기 위에, 회룡回龍이 조상을 돌아봅니다.
일을 시작하여,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니
먼저 사토莎土816)를 더하고, 다음 석재를 옮겨
세 구역에 상을 차리니, 한 쌍 망주望柱817)에
석 좌의 신좌神坐,818) 한 개의 비석
옥을 다듬어 용이 서리게 하니, 구름처럼 우뚝 솟구쳐
전각은 살아 있는 듯하고, 소목昭穆이 분명해지니
산천이 빛을 내며, 귀졸은 숨고 신이 영명하도다.
엄숙하신 조상을 생각지 않을까, 실로 많은 후손들이
시작한 일을 마치고서, 음식을 차리니
태뢰太牢819)는 없지만, 갱장羹墻820)이 있습니다.
이에 다과를 배설하고, 띠풀821)과 울창주를 세우며
삼가 맑은 술을 따르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석보약록』 자서釋譜畧錄自序『석가보釋迦譜』는 북위北魏822)의 승우僧佑823)가 편집한 것이다. 위로는 찰리刹利 구담瞿曇 감자甘蔗824) 석가가 강령하신 종기鍾氣825)의 시원을 서술하고, 아래로 싯다르타(悉達) 성인의 자취와 소멸의 마지막(要終)을 언급하였다. 그 문장은 박식하고 그 뜻은 오묘하여, 원래 초학자들이 떠벌릴 수 있는 게 아니요, 여러 경전들의 중요한 문장을 수색하고 논서(請論)들의 분명한 뜻을 절취하여 -
012_0745_b_01L酉坐卯向。丙得辰破。更察俯仰。背落
012_0745_b_02L平崗。面開大野。龍結回頭。虎伏低尾。
012_0745_b_03L龜背當局。烏石列錯。內開一穴。吉阡
012_0745_b_04L陰宅。唯冀安宅。地久天長。子葉孫枝。
012_0745_b_05L永昌茂榮。
012_0745_b_06L
012_0745_b_07L• 六代五代祖妣墓石物奉安祝庚申
012_0745_b_08L四月日
012_0745_b_09L明德嵓嶝。胡僧禮佛。歲月久深。封疆
012_0745_b_10L不實。開金洞上。回龍顧祖。經始營之。
012_0745_b_11L兩役并擧。先加莎土。次運石村。三區
012_0745_b_12L床盤。一雙望柱。三座神坐。一躬碑碣。
012_0745_b_13L磨玉盤砣 [121] 。聳雲突兀。篆刻活凝。昭穆
012_0745_b_14L著明。山輝川媚。鬼遁神靈。無念肅祖。
012_0745_b_15L寔繁有徒。要終剏役。爰設爼豆。雖無
012_0745_b_16L太牢。迺有羹墻。庸排茶果。載竪茅鬯。
012_0745_b_17L謹酌淸醪。伏唯尙饗。
012_0745_b_18L
012_0745_b_19L釋譜畧錄自序
012_0745_b_20L本譜卽北魏僧佑之所緝也。上述刹利
012_0745_b_21L瞿曇甘蔗。釋迦之降靈。鍾氣之原始。
012_0745_b_22L下及悉達。聖人之示迹。垂滅之要終也。
012_0745_b_23L其文博。其義奧。原非初學之所藉口。
012_0745_b_24L搜索群經之要文。節取請論之了義。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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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5_c_01L30권826)으로 만들었다. 비록 섭렵하고자 하나 번거로울까 두려워서 간단하게 할 뜻이 없지 않았다.나는 강의하는 여가에 틈나는 대로 보면서 번거로움을 줄이고 간략하게 취하여 기록해서 60항목(科)을 만드니, 항목은 본래보다 배가 되었으나 문장은 열에 하나보다 더 간략해졌다. 문장은 이전보다 간략해졌으나 뜻은 본 책보다 덜하지 않다. 이것이 번거로움을 꺼려하고 간략함을 좋아하는 모범이다. 항목 끝에는 매번 노래를 붙여서 60가지가 되게 하였으니, 즉 기야송祇夜頌827)이다. 다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한글로 토를 붙여서 ‘석보약록釋譜畧錄’이라고 명명하여 초학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처럼 기록하고 송頌을 붙인 것에 어찌 조금이나마 두찬杜撰(날조)한 아견我見828)이 있으리오. 혹시 방외에 흘러들어 가 안목을 갖춘 이들의 검토가 있을까 기다릴 뿐이다.동경으로 유학 가는 완섭829) 사미를 보내며2월 17일(送完燮沙彌東京留學二月十七日)너는 신해년(1911) 봄에 입산하여 삭발하고는, 보통학교에 들어가 3년이 지나 졸업하였고, 바로 전문불교830)에 들어가서는 4년이 지나 봄에 또 졸업하고서, 돌아와 지방과地方科에 들어가서 이번 봄 학기에 또 졸업한다. 전후 10년 사이에 세 번을 아울러 졸업한 것이다. 이제 또 바다를 건너가 위없는 법보를 공부하려고 하니, 옛사람이 말한 바, 옥을 캐는 이는 곤륜산의 험준함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이는 여학驪壑831)의 깊은 곳도 사양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 말이 진실하도다. 이제 너는 의주意珠를 캐고자 하니 큰 바다의 파도를 어찌 꺼리며, 심옥心玉을 찾고자 하니 바다 건너기를 어찌 사양하겠는가. 바다를 건너니 옛사람의 행장을 본받아 인천의 안목을 이루어, 남아가 출가한 큰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진정 바라노라. 출발이 촉박함을 깨닫지 못하고 한마디 말로 먼 길 오르는 감상을 부치니, 너는 반드시 삼가 가서 진중하게 돌아오라. 노래는 다음과 같다. -
012_0745_c_01L三十𡰳之多矣。雖欲涉獵。㥘於煩剏。
012_0745_c_02L靡嘗無短簡之志也。予於講授之餘。隨
012_0745_c_03L暇一閱。節煩取畧而錄之。爲六十科
012_0745_c_04L而科雖倍於本。而文益畧於十一。文雖
012_0745_c_05L畧於前。而義不欠於本𡰳。此憚煩好畧
012_0745_c_06L之方軌也。科末每係一闋。爲六十咏
012_0745_c_07L卽祇夜頌也。但畧而錄之。諺而吐之。
012_0745_c_08L以釋譜畧錄命名之。爲初學之一覽。然
012_0745_c_09L而如是錄頌。豈有如小孔杜撰之我見。
012_0745_c_10L或流入方外。庶待具眼之證正云尒。
012_0745_c_11L
012_0745_c_12L送完燮沙彌東京留學二月十七日
012_0745_c_13L汝辛亥之春。入山剃染。仍入普通校。
012_0745_c_14L越三年卒業。卽入專門佛敎。越四年春
012_0745_c_15L又卒業。反入地方科。今春期又卒業。
012_0745_c_16L前後十年間。三者并卒業也。今又渡海
012_0745_c_17L欲學無上法寶者。古人云。採玉者。不
012_0745_c_18L憚崑丘之峻。探珠者。不辭驪壑之深。
012_0745_c_19L誠哉是言。今汝欲採意珠。何憚鴻溟之
012_0745_c_20L波瀾。欲探心玉。奚辭鯨浪之跋涉哉。
012_0745_c_21L旣涉溟浪。能效古人之行李。可作人天
012_0745_c_22L之眼目。不負男兒出家之大志。是所苦
012_0745_c_23L望。臨行促迫不覺。以一言囑其登程之
012_0745_c_24L感想。汝須謹愼而往。珍重而返。頌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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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6_a_01L『진각국사 법어송 초집』 서문(眞覺國師法語頌抄集序)병신년(赤猿, 1896) 봄에 방장方丈으로 물러나 거하며 이시二時(아침저녁)의 다반茶飰(차와 식사)과 일주一炷 심향心香832)으로 다만 무상無常을 구하는데, 어떤 사리闍梨833)가 불교 역사책을 가지고 와서는 보여 주며 의심되는 것을 구하기에, 질문하는 것에 답하며 한 번 살펴보면서 그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고자 했다.834) 그러다 조계산 진각국사眞覺國師835)께서 지으신 가송 14편을 보고는 몽당붓을 꺼내어 초록하고 한 번 읊으며 음미하였다. 이는 전에 들어본 『조계록曹溪錄』 중에 전하던 것을 베낀 것인가. 어찌하여 일찍 보지 못하였던가. 그러나 비록 전부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물방울 하나를 움켜쥠에 향해香海836) 전체를 얻었다 하리니 어찌 공경하지 않으리오. 그리고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837) 가운데 인용한 무의자無衣子838)의 송頌 24수를 얻어서 합하여 한 권을 만들었으니 가히 모래를 헤쳐 금을 가리고 터럭을 모아 공을 만든다고 할 만하다. 그것을 법어록 말미에 붙여서, 함치含齒839) 후손을 기다리노니 세상에 반포됨이 없겠는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조계록』 원본을 보지 못한 것이다.『선문염송』 1125칙則 화제(話) 가운데 무의자는 생각건대 송頌하지 않은 화제가 없을 터인데, 결집할 때 어찌하여 조사들의 말미에 붙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설화의 주인이 또한 갖추어 인용하지 않고 어찌 다만 20여 송頌만 사용하였는가. 아, 저 진각 노스님을 보노라면 그래도 사양을 좋아하는 풍모로 자기 송을 붙이지 않았다. 만약 후손이 설화를 지을 때 세간과 출세간의 문자를 함부로 취했다면, 어찌하여 자기 스승의 보묵寶墨(글)을 (싣지 않고) 울타리 주변 물건처럼 방치했을까. 내가 당시 후손들을 본다면 기꺼이 몽둥이로 아프게 30방을 칠 것이 틀림없다. 통달한 이들은 같이 증명해 주시지 않을까. -
012_0746_a_01L眞覺國師法語頌抄集序
012_0746_a_02L歲赤猿之春。退居方丈。二時茶飰。一
012_0746_a_03L炷心香。只求無常。有一闍梨。袖佛史
012_0746_a_04L而示之。以求其惑。酬其所詰。而閱編
012_0746_a_05L一覽。將自適其適矣。見有曹溪眞覺國
012_0746_a_06L師所寶唾歌頌十四題。卽抽禿頴而抄
012_0746_a_07L之。乃一唱而妍味之。是乃曾所聞曹溪
012_0746_a_08L錄中所傳謄耶。何覽之未蚤也。然雖未
012_0746_a_09L見全錄。猶云掬一滴而得香海之全渤。
012_0746_a_10L豈不欽也哉。又採得說話中所引無衣
012_0746_a_11L子頌二十四首。合爲一𡰳。可謂潑沙揀
012_0746_a_12L金。聚毛成毬。繼于法語錄之尾。以待
012_0746_a_13L雲仍之含齒者。得無布諸宇內耶。最所
012_0746_a_14L恨者。未見曹溪錄之元本也。拈頌一千
012_0746_a_15L一百二十五話中。無衣子想無話不頌
012_0746_a_16L也。而結集時。何不續於諸祖之末。且
012_0746_a_17L說話主。亦不具引。而何但用二十餘頌
012_0746_a_18L乎。嘻。睠彼覺老。猶以好讓之風。不繼
012_0746_a_19L己頌。若以雲孫之作說話時。捏取世出
012_0746_a_20L世之文字。而何以自家師翁之寶墨。寘
012_0746_a_21L諸巴籬邊物之相似也。我若當時得見
012_0746_a_22L雲孫。好箇三十痛棒也不疑耳。唯諸達
012_0746_a_23L士。同垂證明也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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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6_b_01L부휴 선조의 비를 세운 역사 서문4월 8일(浮休先祖立碑歷史序四月八日)현릉玄陵이 말한, ‘조계산이 즉 동방 제일의 대도량이다’라는 것은840) 16국사들이 왕명으로 이어서 주석하여 나라에 복을 주고 세상을 도와 조계종을 창설하고 인천의 안목을 널리 열었기 때문인가, 도는 사람이 넓히는지라841) 사람이 영걸하면 땅도 신령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선조(부휴)께서 세상에 나타나 도를 고금에 비추어 명성이 타 지역까지 진동하였는데 다른 산에 비를 세우지 않고 오직 이 조계 문도들이 이 산에 비를 세우는 것은 9세대 적손嫡孫들이 소목昭穆을 계승함이 다른 산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적손들은 ‘벽암碧嵓과 취미翠微, 백암栢庵, 무용無用, 영해影海, 풍암楓嵓, 묵암默庵, 환해幻海,842) 용운龍雲843) ’이니, 등불과 등불이 타고 병과 병에 붓고 마음과 마음에 도장 찍은 듯하다. 곡탑鵠塔844)이 수미首尾에서 구슬을 빛내니 주변 유파 후손들이 가지마다 잎사귀마다 귀비龜碑845)들이 소목을 이어 나열된다. 그런데 오직 선조께서는 탑만 있고 비가 없으니 괜찮은가?이에 주지가 앞장서고 대중이 응모하여 문인들에게 5천여 원圓을 모금하였고, 천안에서 강화석江華石을 구매하여 철차鐵車에 싣고 목포항(木港)에 이르러, 증기선(輪船)에 옮기고 벌교에 내린 다음 동거銅車에 실어 소 5필로 끌고 길을 따라 마을에서 부역하여 바야흐로 본사에 도달하게 되었다. 운반 비용이 물건 값(體金)보다 대여섯 배나 되었으니, 사람들이 말하길, 귀신의 방법이 아니면 필시 부처님의 힘이라 하였다. 그리고는 백곡白谷이 찬술한 명銘846)과 중국인의 액전額篆(전서)을 얻으니, 이른바 돌 옮기는 것이 돌 구하기보다 어렵고 전서 쓰는 것이 명 짓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겠다.남상濫觴(시작)은 무오년(黃馬, 1918) 봄이요 복궤覆簣(마침)847)는 경신년(1920) 여름이다. 그런데 선조의 열반(泥洹)이 지금 290년 지났는데 문하에 용과 코끼리ㆍ사자ㆍ범 무리들이 비를 세우는 정성이 어찌 없었겠는가. 다만 선사의 도덕이 법계와 같이 광대하여 허공의 골骨에 -
012_0746_b_01L浮休先祖立碑歷史序四月八日
012_0746_b_02L玄陵之所謂曹溪山。卽東方第一大道
012_0746_b_03L場云者。爲十六國師。勅住繼席。福國
012_0746_b_04L祐世。剏闢曹溪宗。廣開人天眼之故歟。
012_0746_b_05L莫是道以人弘。人傑地靈者歟。先祖現
012_0746_b_06L世。道映古今。名震殊域。而不於他山
012_0746_b_07L樹碑。唯此曹溪門徒。營碑于玆山者。
012_0746_b_08L以有九世嫡孫。承繼昭穆。逈異諸山故
012_0746_b_09L也。其嫡孫曰。碧嵓翠微栢庵無用影海
012_0746_b_10L楓嵓默庵幻海龍雲。如燈燈燃瓶瓶注
012_0746_b_11L心心印。鵠塔映珠於首尾。傍派雲仍
012_0746_b_12L枝枝葉葉。龜碑續列於昭穆。而唯獨先
012_0746_b_13L祖。有塔無碑。可乎哉。於是住持倡首。
012_0746_b_14L大衆應謀。慕門人金五千餘圓。購江華
012_0746_b_15L石於天安。載鐵車而至木港。登輪船而
012_0746_b_16L下筏橋。載銅車。拽牛五匹。沿路各村扶
012_0746_b_17L役。方達本寺。運費蓓蓰體金。人謂若
012_0746_b_18L非鬼術。必也佛力云尒。仍用白谷所撰
012_0746_b_19L銘。爰得漢人之額篆。是所謂運石難於
012_0746_b_20L求石。寫篆難於撰銘也。其濫觴也。黃
012_0746_b_21L馬之春。以覆簣也。白猿之夏。然而先
012_0746_b_22L祖泥洹。迄今二百九十年之久。而門下
012_0746_b_23L龍象獅虎之徒。抑何無竪碑之誠哉。但
012_0746_b_24L以先師之道德。廣大如法界。藏諸虛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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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6_c_01L감추었으니 유즉무有卽無(있음이 곧 없음이다.)의 형상이요, 이제 굼뜨고 어리석은 무리들로써 진상眞相의 경계에 한 터럭을 드러내었으니 무즉유無卽有의 형상이다.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유무有無가 장애 없고 사리事理가 원융하여 진실로 대사의 진실한 자취가 동방 대도량에 드러났다고 하겠다. 나는 아름다운 취지를 흠모하여 대략 기록해서 가외可畏(후배)에게 보이노라.부휴 조사의 비를 세우는 제문경신년(1920) 4월 20일에 세움.(浮休祖師立石祭文庚申四月二十日立)운운.대조계大曹溪 종주宗主 부휴당浮休堂848) 존령尊靈이시여.신령한 기운이 석무갈石無碣에 모여 옛 대방帶方(남원)에 성스런 태를 의탁하셨네. 출가하여 화엄의 가르침을 배우고, 입도하여 임제의 종주가 되셨도다. 앎은 삼교三敎에 통달하사 인천의 귀감(龜鏡)이 되시고, 덕은 사중四衆849)을 위하여 어지러운 길의 큰 종이 되셨네. 지혜는 명나라 사신의 행차도 머무르게 하였고,850) 도력은 바다 오랑캐의 칼을 복종시켰도다.851) 미친 승려의 무고는 남관南冠852)의 모범을 드러내고,853) 뜰의 이무기는 『원각경』을 듣고 변화하였네.854) 모영毛頴(붓)이 중국 선비의 거울에 굳건했고, 고삐가 왕의 뜰로 이어졌네. 비록 본분의 겸추鉗鎚855)에 능하였지만 반드시 신훈新熏856)의 기봉機鋒857)을 겸하셨도다. 널리 방외 무리까지 접하니 7백 명이나 되고, 장차 수족을 펴 보이니858) 칠순이 지났도다.859) 교화 인연이 두루 주밀함에 미쳐 세제世諦860)를 따라 원만하게 입적하셨으니, 긴 대들보가 다시 꺾임이라 총림의 적막함을 어찌하리오. 고통의 바다에서 큰 노를 잃고 어두운 거리에서 보배 촛불이 꺼짐이라. 지혜의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니 구름 같은 후손들이 추모하노라.불우佛宇(사찰)가 동쪽에서 퇴색하니 해회海會861)가 망극하도다. 사면의 산에 무봉탑無縫塔862)을 세웠으나 한 지역에는 아직도 명銘을 적은 돌이 없도다. 근역槿域(조선)의 문도들이 많지 않음이 아니요, 조계 종파가 적손 아님이 아니네. -
012_0746_c_01L骨中。有卽無相。以今蠢頑痴庸之流
012_0746_c_02L露一毫於眞相界中。無卽有相。以古較
012_0746_c_03L今。有無無碍。事理圓融。眞所謂大師
012_0746_c_04L眞蹟。一現於東方大道場矣。予欽慕嘉
012_0746_c_05L趣。畧記而示諸可畏。
012_0746_c_06L
012_0746_c_07L浮休祖師立石祭文庚申四月二十
012_0746_c_08L日立
012_0746_c_09L云云。大曹溪之宗主浮休堂之尊靈。
012_0746_c_10L鍾氣靈於石無碣。托聖胎於古帶方。出
012_0746_c_11L家學華嚴之敎。入道爲臨濟之宗。智達
012_0746_c_12L三敎。作人天之龜鏡。德兼四衆。爲迷
012_0746_c_13L途之鴻鍾。慧猶駐乎天使之勒。道能伏
012_0746_c_14L乎海寇之鋒。狂誣現於南冠之型。庭蟒
012_0746_c_15L化於圓覺之經。毛頴犍於漢士之鏡。轡
012_0746_c_16L鞅連於王者之庭。雖能乎本分之鉗鎚。
012_0746_c_17L必兼於新熏之機鋒。普接方外。衆盈七
012_0746_c_18L百之徒。將啓手足。年逾七旬之齡。洎
012_0746_c_19L化緣之方周。順世諦而圓寂。抑復脩樑
012_0746_c_20L之已摧。爭奈叢林之寂寞。苦海失其巨
012_0746_c_21L楫。昏衢滅其寶燭。慧日西墜。雲仍追
012_0746_c_22L慕。佛宇東頽。海會罔極。四山雖起無
012_0746_c_23L縫之塔。一地尙闕有銘之石。槿域門徒
012_0746_c_24L不爲不夥。曹溪宗派非是非嫡。坮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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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7_a_01L대석坮石(받침돌)을 조계산(溪山) 언덕에서 캐고, 비석은 강화도 옥으로 다듬도다. 거북은 여섯 지체를 감추어 앉아 하수와 낙수에 웅크린 듯하고,863) 용이 머리에서 둘이 싸우며 높이 푸른 벽을 지탱하네. 글자는 여주驪珠(검은 구슬)를 흩뿌린 듯 놀이 금송錦頌에 비치고, 전서는 살아 있는 규룡의 허리 같으니 구름이 수놓은 벽옥을 감싸도다. 우리 조사의 공업을 기록할 뿐 우리 조사의 도덕은 표현하지 못하네. 그저 사모하는 모양만 드러낼 뿐이니 아직도 살아계신 듯한 감상을 말하노라. 한 접시의 호떡과 변변찮은 음식을 진열하고 세 사발의 중국차(漢茗)로 대략 슬픈 마음을 표현하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심향心香을 함께 드리오니 막엄한 존령尊靈이시여 굽어 받으소서. 여러 음식을 드리노니 흠향하소서.환해864) 화상의 비를 세우는 제문5월 5일865)(幻海和上立石祭文五月五日)화엄華嚴 대종사大宗師 환해당幻海堂 존령尊靈이시여.유림儒林에서 우뚝 빼어나 석원釋園에 옮겨 심으니, 일찌감치 티끌세계를 떠나 선근善根을 널리 꽃피우셨네. 팔영산866)에 영험한 기운이 내리니 고흥의 남쪽이라. 달이 공중에서 밝은 듯, 용이 못에 있는 듯하도다. 법의를 묵암默庵 노스님께 얻고 종지를 조계산에서 펼쳤도다. 환몽을 비로장해毘盧藏海867)에서 깨고, 법인法印을 대 법린法璘의 숫돌에 연마하니, 지혜의 가지가 바야흐로 수려하여 대중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는데, 불법의 동량이 느닷없이 쓰러지니868) 새들이 울어 대도다. 하나의 영험한 골상은 하늘을 덮은 콧구멍이요 사리 세 알은 땅에 떨어진 눈빛(眼光)이로다. 법신法身은 본래 그러하거늘 후손들이 추모하여, 탑이며 비석에 명銘을 마련하고 제사 지내도다. 전서(篆)는 교룡처럼 활발하고 노래는 산호처럼 찬란하며, 거북은 말없이 잘 돌아보고, 비석은 빛이 나 더욱 찬란하게, 푸른 석벽의 용 뿔이 드높이 아스라한 절벽의 거북에 올라탔네. 전단향과 서수犀首를 사르며 이포伊蒲869)의 제호醍醐를 마련하고 특별히 운문雲門을 갖추고 경건하게 울향鬱香을 태웁니다. 공경히 영령께 드리노니 흠향하소서. -
012_0747_a_01L採於溪山之崗。躰碑磨於江華之玉。龜
012_0747_a_02L趺六藏。盤踞河洛。龍冠雙鬪。高撑翠
012_0747_a_03L壁。字撒驪珠。霞龔錦頌。篆活虬腰。雲
012_0747_a_04L籠繡璧。唯紀吾師之功業。難極吾師之
012_0747_a_05L道德。但表思慕之外貌。猶云如存之感
012_0747_a_06L想。一盋胡餅。兼陳薄奠。三甌漢茗。畧
012_0747_a_07L表哀衷。齊運沒價之心香。俯歆莫嚴之
012_0747_a_08L尊靈。庶羞企薦。伏唯尙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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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7_a_10L幻海和上立石祭文五月五日
012_0747_a_11L華嚴大宗師幻海堂尊靈。挺特儒林。移
012_0747_a_12L植釋園。蚤謝塵界。敷榮善根。降靈八
012_0747_a_13L影。高興其南。如月朗空。若龍處潭。得
012_0747_a_14L法衣於默老。闡宗旨於曹溪。幻夢覺於
012_0747_a_15L毘盧藏海。法印磨於大法璘砥。慧柯方
012_0747_a_16L秀。悅可衆心。法棟俄墜。咽號群禽。一
012_0747_a_17L頂靈骨。掩天鼻孔。三枚舍利。落地眼
012_0747_a_18L光。法身本然。雲仍追慕。載塔載碑。迺
012_0747_a_19L銘迺醋。篆蛟龍之活潑。頌珊瑚之燦爛。
012_0747_a_20L龜無言而善顧。石有光而益煥。撑翠
012_0747_a_21L壁之虬角。駕蒼崖之龜趺。焚栴檀與犀
012_0747_a_22L首。設伊蒲之醍醐。特備雲門。敬煎鬱
012_0747_a_23L香。祗薦于靈。伏唯尙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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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7_b_01L태안사 봉서암 중창기경신년(1920) 7월泰安寺鳳瑞庵重剏記庚申七月日지리산 남쪽에 ‘봉두산鳳頭山’이 있는데 봉우리들이 특히 수려하여 감싼 모양이 날아오르는 봉황의 무대 같고, 두 물줄기가 나뉘었다가 합쳐져 흐르니 흡사 태극의 둥근 그림 같다. 토양은 비옥하고 숲은 무성하며 샘물은 달고 시냇물은 풍부하니, 선인仙人의 집이 아니면 불자佛子의 거처로다. 첫째 봉우리 아래에 ‘태안사泰安寺’가 있으니 속칭 ‘동리사桐裏寺’라고도 함은 옛날 산 이름 때문이다.신라 시대에 신승神僧 셋이 암자를 지었다는데 자세히 말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당나라 원화元和 9년(814)에 혜철국사慧哲國師께서 크게 창건하여 비로소 ‘봉두산 태안사’라고 칭하였다. 아전鵝殿(법당)이 아스라이 높고 봉방蜂房이 이어져, 신라와 고려 시대 천여 년 동안 꽃비가 내리던 보방寶坊(사찰)이다. 사찰의 남서쪽(坤)으로 반보(一武) 떨어져서 ‘봉서암’이 있으니 사찰과 같이 창건되었는데 고찰할 문건이 없으니, 이전에 몇 번이나 흥폐를 겪었는지 알 수 없다. 청오靑烏870)가 말하길, “사찰이 인신寅申871)으로 자리 잡고 암자가 정계丁癸872)로 터를 잡았으니 그 방향과 기복이 봉황이 서로 쫓고 서식하는 듯하다. 사찰이 있고서 암자가 없을 수 없고 암자가 있고서 또한 사찰이 없을 수 없음을 단연코 생각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암자가 사찰에 관계됨이 어찌 중차대하지 않은가. 또한 봉황교鳳凰橋가 언덕의 눈썹에 닿고 능파각凌波閣이 물 입구에 걸터앉은 것은 용과 범이 서로 건너는 모양이다. 반월봉이 배후에 걸려 있고 쌍계수雙溪水가 앞에서 합해지는 것은 물과 달이 서로 비추는 형국이다. 천마天馬가 날아오르고 지고地庫가 중첩되며 대나무가 빽빽하고 오동나무 그늘이 맑게 그윽한 것은 모두 봉서암의 큰 볼거리로다.그러나 겁파劫波가 이어지니 허물어지고 비게 되는 운수를 어찌 면할 것인가. 지난 강희康煕 신사년(1701)에 이 산의 각현覺玄 상인上人이 단문檀門(시주)들에 부르짖어 -
012_0747_b_01L
012_0747_b_02L泰安寺鳳瑞庵重剏記庚申七月日
012_0747_b_03L智異之南有山曰鳳頭。衆峯特秀而抱
012_0747_b_04L藏。若飛鳳之舞臺。二水分派而合流。
012_0747_b_05L似太極之環圖。土肥而林茂。泉甘而溪
012_0747_b_06L沃。若非仙人之宅。原是佛子之居。第
012_0747_b_07L一峯下。有寺曰泰安。俗稱桐裏者。卽
012_0747_b_08L古之山名歟。羅朝三神僧之結菴。不足
012_0747_b_09L詳說。而唐元和九年。慧哲國師之宏剏。
012_0747_b_10L始稱鳳頭山泰安寺之號。鵝殿崔嵬。蜂
012_0747_b_11L房陸續。卽羅麗朝千餘年花雨之寶坊
012_0747_b_12L也。寺之坤一武許。有庵曰鳳瑞。以與
012_0747_b_13L寺同剏。而文無可考。莫悟前因之幾經
012_0747_b_14L興廢也。靑烏有言曰。寺以寅申而得局。
012_0747_b_15L庵以丁癸而作基。其向背起伏。如鳳凰
012_0747_b_16L之相逐捿息。有寺而不可無庵。有庵而
012_0747_b_17L亦不可無寺。斷可以想也云。庵之有關
012_0747_b_18L於寺者。豈不重且大哉。抑復鳳凰橋之
012_0747_b_19L接其岸眉。凌波閣之跨乎水口者。所以
012_0747_b_20L爲龍虎之相渡。半月峯掛其背。雙溪水
012_0747_b_21L合其前者。所以爲水月之相照也。以其
012_0747_b_22L天馬之飛騰。地庫之重疊。竹樹之鬱密。
012_0747_b_23L梧陰之淸幽。是皆爲鳳瑞庵之大觀歟。
012_0747_b_24L然而刼波所傳。誰免壞空之運乎。往在
012_0747_b_25L康煕辛巳。山之覺玄上人。叫化檀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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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7_c_01L옛터에 크게 난야蘭若(사찰)를 창건하니 정전正殿 6칸과 익실翼室873) 각기 5칸, 정루正樓 5칸, 회랑 2칸, 서문 1칸으로 크고 넓게 지어서 호남의 으뜸 건물이요 납자衲子들의 기북驥北874)이 되었다. 아아, 이슬이 가면 서리가 오며 토끼(달)가 달리고 까마귀(해) 날아, 또한 이뤄지고 무너지는 때가 있으니 만물의 성쇠를 인간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주지 영월映月 선사는 이 산의 염불당 화주로서 일찍이 공적인 업무에 있어서 크게 역량이 있었다. 혹 종정鍾鼎을 만들어 당堂에 걸기도 하고 혹 토지를 사서 불전에 바치기도 했으니 불법을 호위하는 마음이 갈수록 더한 이라 하겠다. 이 암자가 스러진 것을 보고는 왕년에 수리한 것을 사랑하여 부흥시키려는 마음을 일으켜 대중에게 고하기를, “산림을 공연히 썩히는 것이 어찌 불상 머리를 덮는 것과 같겠는가.”라고 하고, 한 기슭의 삼림을 방매하여 3만 금액을 얻어서는 장인들을 불러 계획을 잡아 날을 정해 일을 감독했다. 정전正殿의 뒤 처마가 긴 것은 자르고 수리하였으며, 서실西室과 사문沙門875)은 옛 모습을 버리고 혁신하였고 동무東廡876)와 정루正樓는 새롭게 보수하여 옛 모습을 일신하였다.경신년(1920) 맹춘孟春(1월)에 시작하여 같은 해 초가을(7월)에 마쳤다. 이에 종소리와 경쇠 소리를 수월水月의 바깥으로 보내니, 봉황이 오동과 대나무 사이로 날아와 춤추었다.877) 삼존불은 코끼리 자리(象座)에 의젓하고, 다라니(多羅) 가르침은 용이 잠겨 있는 곳(龍藏)에 가득하다.878) 오동나무 꽃 그림자 속에 상서로운 구름이 영롱하고, 대나무 그늘 사이로 상서로운 바람이 수수수 분다. 암자의 완성으로 사찰은 빛이 나고 봉황이 짝을 얻었으니, 사찰과 암자의 체모가 구비되고 자웅의 즐거움이 족하도다. 아, 오늘의 일은 원화元和와 강희康熙 삼생三生에 걸쳐 거듭 찾아온 원력임을 어찌 알겠는가.나는 조계산에서 와서 미타실彌陀室에서 좌하坐夏879)하다가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대중이 그 완성(要終)을 말하면서 방함芳啣(성함)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감히 한마디 말을 대중에게 고하였다. -
012_0747_c_01L仍於舊墟。大剏蘭若。正殿六間。翼室
012_0747_c_02L各五間。正樓五間。廊二間。西門一
012_0747_c_03L間。宏傑廣闢。爲湖南之甲第。衲子之
012_0747_c_04L驥北矣。嗚呼。露往霜來。兎走烏飛。界
012_0747_c_05L亦成壞。况物之盛衰。人孰能哉。有住
012_0747_c_06L持映月禪師。卽山之念佛堂化主。曾於
012_0747_c_07L公務。大有力量焉。或化鍾鼎而掛堂。
012_0747_c_08L或買土地而獻佛。護佛法之心。老當益
012_0747_c_09L壯者也。目此庵之傾覆。愛往年之修治。
012_0747_c_10L爰起興復之心。乃吿衆曰。以其山林之
012_0747_c_11L空腐。孰與盖佛頭乎。放一麓之森林。
012_0747_c_12L得三萬之金額。招工䂓度。克日蕫役。
012_0747_c_13L正殿後簷。斷其長而修之。西室及沙門。
012_0747_c_14L頓袪舊而革新。東廡與正樓。改補新而
012_0747_c_15L換舊。始於庚申孟春。終於同年初秋。於
012_0747_c_16L是鍾磬送音於水月之表。鳳凰來儀於
012_0747_c_17L梧竹之間。三尊佛儼然於象座。多羅敎
012_0747_c_18L押揲於龍藏。桐華影裡。瑞雲玲瓏。竹
012_0747_c_19L樹陰邊。祥風蕭瑟。庵之成也。寺以之
012_0747_c_20L生光。鳳以之得凰。寺庵之體具矣。雌
012_0747_c_21L雄之樂足也。嘻。今日之役。安知爲元
012_0747_c_22L和康熙三生重來之願力也哉。餘自曹
012_0747_c_23L溪。坐夏於彌陀室。茶餘有大衆說其要
012_0747_c_24L終。記其芳啣。以示來者。敢以一言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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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8_a_01L“암자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은 운수이고 사람이 살고 죽은 것은 운명입니다. 오직 도의 생성만이 무너지고 죽는 사이에 있지 않습니다. 대중들은 이 암자에 올라 칼을 차고 자며880) 이 당에 거처하여 또한 마시고 먹으리니, 바라건대 거듭 찾아온 원력을 갚으소서.”『화엄경』 사경 발문8월 15일(寫華嚴經跋八月十五日)크도다, 사경寫經의 공덕이여. 여래의 말씀을 축건竺乾881)의 범자梵字로 잘 적어서 편집하였고, 삼장三藏의 번역을 진단震旦(중국)의 문자로 또한 필사하여 유통하니 나라에서 나라로 전하고 마을에서 마을로 전해졌다. 필사가 없으면 전할 수 있겠는가. 해동에서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불교를 수입하여 고려 시대에 소장본을 간행(刊鎭)하니 또한 필사의 공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보자면 필사자의 공덕이 어찌 넓고 크지 않은가. 『법화경』과 『금강경』, 『지장경』, 『유마경』 등 수십 장의 경전을 필사하여 전하는 이는 대나무와 갈대처럼 헤아릴 수 없지만, 약본 『화엄경』 10조 95,048자882)를 필사하는 이는 동토東土(조선) 전역에서 많이 얻을 수 없다. 간혹 명민한 선비가 필명을 팔아서 시나 부賦 등 한가로이 먹을 희롱하는 것처럼 삼업三業883)을 정갈하게 하지 않고 향도 피우지 않고 절도 하지 않고서 필사한다면 비단으로 감싸고 옥함에 보관한다 하더라도 귀하게 되지 않는다.우리 조선에 이르러, 보개산寶盖山의 남호南湖,884) 금강산의 나은懶隱,885) 조계산의 경운擎雲886)은 모두 방외方外에 필명이 있던 분들로, 백 년 사이에 큰 경전을 필사하였고 진신縉紳(관료)들에게 고명을 얻었으니, 어려운 일을 했다고 할 만하다. 지금 어렵고도 더욱 어려운 것은 조계산 눌봉 정기訥峯正基가 그러하다. 재주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
012_0748_a_01L衆。曰庵之壞成。數也。人之死生。命也。
012_0748_a_02L而唯道之生成。不在於壞死之間也。唯
012_0748_a_03L大衆登此庵也。帶刀而眠。居此堂也。
012_0748_a_04L亦飮血而食。庶報重來之願力也夫。
012_0748_a_05L
012_0748_a_06L寫華嚴經跋八月十五日
012_0748_a_07L大矣哉。寫經功德。如來所說。竺乾梵
012_0748_a_08L字。賴繕寫而編錄。三藏所譯。震旦文
012_0748_a_09L字。亦筆授而流傳。以國傳國。從鄕傳
012_0748_a_10L鄕。無筆寫而傳者。不可得也。若海東
012_0748_a_11L則麗濟羅之佛敎輸入。高麗朝之藏本
012_0748_a_12L刊鎭。亦莫過筆寫之功而已。以是觀之。
012_0748_a_13L寫氏之功。豈非廣且大也哉。所以法華
012_0748_a_14L金剛地藏維摩數十紙經之寫傳者。如
012_0748_a_15L竹葦之不億。而若佛華嚴畧本十兆九
012_0748_a_16L萬五千四十八字經之寫者。環東土不
012_0748_a_17L可多得也。或以才敏之士。售於筆名。
012_0748_a_18L若詩稿賦編之等閑戱墨。不淨三業。不
012_0748_a_19L香不拜而寫者。雖錦粧琅凾。未足貴
012_0748_a_20L也。至於我朝。寶盖山之南湖。金剛山
012_0748_a_21L之懶隱。曹溪山之擎雲。俱有筆名於方
012_0748_a_22L外者。旣寫大經於百十年之間。已得高
012_0748_a_23L名於縉紳之士。可謂難矣哉。以今難之
012_0748_a_24L尤難者。唯曹溪山訥峯正基是也。才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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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8_b_01L신앙은 절륜하며, 필체는 빼어나지 않지만 설경說經887)은 출중하고, 외모가 놀라울 정도는 아닌데 계율은 타인을 압도한다. 몸이 집에 있지는 않으나 부모에 효도하고 집을 보살피며, 지혜와 자비가 겸비되어 사범師範의 덕을 몸에 지녔고 종설宗說888)에 두루 통하여 가르침을 전하는 풍모가 마음에 절실하다. 20여 년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여 티끌 재산으로 저축한 업에 대해 단번에 짚신처럼 벗어 던지고 구름처럼 물처럼 행장을 꾸려 산수 사이에 자취를 숨겼다. 문득 사경의 공덕이 황하의 모래만큼 금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뛰어남을 깨닫고는 사경을 하기로 맹세했다. 『화엄경』 사경을 최상의 공덕으로 여기고는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단향檀香 1주炷를 사르며 한 글자마다 한 번 염송하고 한 줄마다 한 번 절하며 한 장마다 한 번 읽는 것을 법식으로 정하였다. 조계산 은적암隱寂庵에서 시작하여 동악산動樂山 도림사道林寺889)에서 마치니 문득 10년 광음을 소비하였고 단씨檀氏(시주)의 청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인연 따라 응접하며 불사佛事를 시행하여 장애 없이 성취하며, 교해敎海를 원만히 하였으니 신근信根이 아니면 어찌 물러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구옹龜翁의 필주筆珠를 떨구지 않더라도 청사淸師의 설연舌蓮을 감상할 만하다. 아, 한가로이 먹을 놀리는 것에 비교하면 어찌 하늘과 땅의 차이에 그치겠는가. 크도다, 사경의 공덕이여.나는 조계산의 남은 유파요 송광사의 병든 선사로서 다행히 불사佛事의 말미에 참여하여 편찬의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눈은 어지럽고 손은 서툴러서 아름답게 치장할 수 없다. 노끈으로 비단을 묶는 것처럼 도리어 본래의 덕을 잃게 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만 수희隨喜890)하여 다행히 사경 공덕의 만분의 일 인연이라도 얻게 되어 이렇게 서문을 쓴다.도림사 대법당 상량문8월 20일道林寺大法堂上樑文八月二十日듣자 하니, 황금을 투척하여 동산을 매입함은 수달須達891)의 원력이 끝없음이요, 장대를 세워 -
012_0748_b_01L超倫。而信佛絕倫。筆不出群。而說經
012_0748_b_02L異群。貌不驚人。而戒德壓人。身不在
012_0748_b_03L家。而孝親濟家。智悲雙行。身佩師範
012_0748_b_04L之德。宗說兼通。心切傳敎之風。二十
012_0748_b_05L餘年。口說心行。塵財之產。畜積之業。
012_0748_b_06L頓然脫屣。雲水行裝。遁迹於湖山之間
012_0748_b_07L矣。忽覺寫經功德。勝造河沙金塔。誓
012_0748_b_08L心寫經。以華嚴經。爲最上功德。淸淨
012_0748_b_09L三業。檀香一炷。一字一念。一行一拜。
012_0748_b_10L一張一讀。以定課式。始於曹溪之隱寂。
012_0748_b_11L終於動樂之道林。遽費十年之光陰。莫
012_0748_b_12L負檀氏之所請。隨緣應接。施作佛事。
012_0748_b_13L無障成就。圓滿敎海。若非信根。孰能
012_0748_b_14L不退。雖不落龜翁之筆珠。當可賞淸師
012_0748_b_15L之舌蓮。嘻。比諸等閑戱墨。何啻於天
012_0748_b_16L淵懸也哉。大矣哉。寫經功德歟。余曹
012_0748_b_17L溪殘派。松社病禪。幸叅佛事之末。叨
012_0748_b_18L結粧䌙之緣。目眩手拙。莫可侈美。恰
012_0748_b_19L如藁索結錦。反喪本德者也。然而祗可
012_0748_b_20L隨喜。庶得寫經功德分萬一之緣。如
012_0748_b_21L是序。
012_0748_b_22L
012_0748_b_23L道林寺大法堂上樑文八月二十日
012_0748_b_24L盖聞擲金買園。須達之願力無盡。竪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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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8_c_01L사찰을 세움은 제석帝釋의 정성이 작지 않음이라. 이는 항사겁恒沙劫892)에 심은 인연이 아닐 수 없으니 미진계微塵界893)에서 닦아 이룬 공덕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이 산(곡성 동악산)의 이 사찰은 신라 시대의 맑게 흐르는 물과 바위, 고려 시대 불도의 으뜸이 되는 사찰이었습니다. 이전 시대 개산開山(창건)은 묘길상妙吉祥(길상암)의 현재 판액으로 알 수 있고, 현재의 위치(銓局)는 원효암의 옛터로 말미암았습니다. 만력萬曆 경자년(1600) 봄에 이르러 도림사를 처음 창건하였는데 화주(化士)의 호칭은 어찌 망실하였는가. 강희康熙 계묘년(1663)에 비로소 ‘동악사動樂寺’라 칭하였으니 즉 영오靈悟 선사의 인연 때문입니다. 도광道光 신사년(1821)에 세 번째 창건하게 되니 도성 두홍道成斗弘이 담당했고, 대한 경신년(1920)에 네 번째 중수하니 눌봉 정기訥峰正基가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일제히 모두 방외(物外)의 고승들이니 또한 교화된 신도들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대단월大檀越 정丁 신사信士894)가 자원하여 성금을 처음 내고, 작은 공덕의 선남자들이 인연 따라 창건을 도와 무주상無住相895)의 성금을 허락하니, 어찌 다만 수달須達의 바라는 마음뿐이리오. 인연 있는 대중이 응함이니, 어찌 특히 제석帝釋의 정성어린 힘일 뿐이리오.이에 새 목재를 곡우穀雨896)에 베어 내니 한백漢栢과 진송秦松이 채찍 따라 올라가고,897) 남풍藍風898)에 옛 먼지를 쓸어 버리니 흙덩이와 기와들이 빛을 내며 무너졌습니다. 옛 기초를 그대로 두고 기둥만 바꾸니 청오靑烏(풍수)의 풍수 이야기를 묻지 않았고, 새로 서늘해지길 기다려 상량하니 경신년(白猿, 1920) 보름달을 선택하였습니다. 도끼를 휘두르니 공수工倕899)의 소매에 바람이 일고, 규획하고 헤아려 차곡差穀(택일)의 장부에 날짜를 적습니다. 신명의 상서로움에 기환정사祇桓精舍900)가 솟아나고, 하늘향이 짙게 날리니 향적香積(공양간)의 연기구름 영롱함이 이러하도다. 오량五樑901)의 노래가 이미 솟았으니 육위六偉의 노래902)를 부릅니다.
東 동
方丈山雲海日紅 방장산의 구름 바다에 해가 붉고
大野渡頭仙子宅 큰 들을 건너면 신선의 집과
滿城開士道無窮 성 가득 개사開士903)들의 도력이 무궁하네
南 남
山號通明積翠嵐 산 이름은 통명通明904)이라 짙푸르고
欲落層嵓應谷立 떨어질 듯 층층 바위가 골짜기 향해 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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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8_c_01L建刹。帝釋之誠心不微。是莫非恒沙刼
012_0748_c_02L種得因緣。孰能知微塵界修成功德。玆
012_0748_c_03L山是寺。羅代之淸流水石。麗朝之道宗
012_0748_c_04L寺庵。刼前開山。憑知妙吉祥之現額。
012_0748_c_05L現在銓局。亦因元曉庵之古基。迄于萬
012_0748_c_06L曆庚子春。初剏道林。何忘失化士之號。
012_0748_c_07L康熙癸卯歲。始稱動樂。卽靈悟禪師之
012_0748_c_08L緣。道光辛巳。第三剏主道成斗弘是也。
012_0748_c_09L大韓庚申。第四重修訥峰正基是歟。一
012_0748_c_10L齊爲物外高僧。亦不無化中信徒。而今
012_0748_c_11L大檀越丁信士。自願擲金之倡囮。小功
012_0748_c_12L德諸善男。隨緣建刹之助伴。無住相之
012_0748_c_13L金諾。何但須達之願心。有緣衆之響應。
012_0748_c_14L豈特帝釋之誠力。於是乎。斫新材於穀
012_0748_c_15L雨。漢栢秦松。隨鞭登騰。掃舊塵於藍
012_0748_c_16L風。土塊瓦礫。放光崩落。仍舊礎而換
012_0748_c_17L柱。不問靑烏之談風。待新凉而拋樑。
012_0748_c_18L選擇白猿之望月。運斧生風於工倕之
012_0748_c_19L袖。規度尅日於差糓之篇。神祗禎祥。
012_0748_c_20L湧出祇桓之精舍。天香飛馥。玲瓏香積
012_0748_c_21L之烟雲。如是哉。旣騰五樑之歌。載唱
012_0748_c_22L六偉之頌。東。方丈山雲海日紅。大野渡
012_0748_c_23L頭仙子宅。滿城開士道無窮。南。山號
012_0748_c_24L通明積翠嵐。欲落層嵓應谷立。是知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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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9_a_01L是知白虎護伽藍 백호가 가람을 호위하는 줄 알겠네
西 서
妙吉祥峰相不齊 묘길상 봉우리 가지런하지 않고905)
道林鬱密楓林好 도림사 빽빽한 숲은 단풍이 좋아라
白鳥啣花供佛低 백조가 꽃을 물어 부처님께 공양하네
北 북
聖出峰高恩罔極 성출봉聖出峰906) 높으니 은혜가 망극하고
屏疊嶂中古蹟多 병풍처럼 첩첩 산중에 옛 자취 많구나
降仙臺下又神德 신선 내린 대臺 아래 또 신이한 덕德이로다907)
上 상
回首仰觀一貪狼 머리 돌려 우러르는 탐랑貪狼908) 하나
問爾人間禍福能 묻나니 인간 세계 화복에 능한가
紫微宮裡群星張 자미궁에 여러 별들이 길게 빛나네
下 하
溪聲如舌談般若 냇물 소리909)는 반야를 말하는 듯
四時動樂道林長 사계절 음악 소리가 도림사에 영원하니
使我若聾又若啞 우리들은 귀먹고 또 벙어리 된 듯하네.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 음악을 울려(動樂) 대중과 함께 즐겨 즐겁고 즐거우며, 도림道林이 삼림과 함께 숲을 이루고 이루소서. 길상암吉祥庵910) 앞에 성중聖衆이 늘어서서 길상의 묘한 덕을 내리고, 성출봉 아래 신이한 덕이 사라지지 않으니 성출봉의 이름난 구역을 보호하소서. 단씨檀氏(시주)의 집 안에 온갖 복이 모여들어 팔룡구령八龍九齡911) 금어옥대金魚玉帶912)가 자자손손 불문하고 이어지고, 승려들의 가람에는 오중五衆913)이 모두 모여 육도六度와 십신十信914)으로 선禪과 덕을 갖춘 교사가 형과 아우를 막론하고 되게 하소서.도림사 대법당 중창기道林寺大法堂重剏記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은 본래 몸이 없는데 중생에 응하여 몸을 나투시고, 법은 본래 형상이 없는데 환화幻化915)를 따라 형상을 나툰다. 그래서 신토身土를 환화 세계에 나투고 누대樓臺가 빛과 소리 가운데 찬란함은 모두 제불諸佛이 방편으로 응하신 것이니 어찌 보살의 진제眞諦와 관계되겠는가.도림사에는 옛일을 돌아볼 문서가 없어서 다만 전기傳記를 살펴보아 만수대사曼殊大士(문수보살)의 환화幻化와 원효 삼성三聖916)의 창건(創修), 호겁浩刼(긴 세월)의 개창開創, 신라와 고려 시대의 중수 등의 앞선 인연을 깨달을 수 없으나 강희康熙 계묘년(1663) 영오靈悟가 세 번째 개창하고, 도광道光 신사년(1821)에 도성道成이 네 번째 개창하고 남파南波가 또한 인연 따라 보수하니, 당대에 번화함이 오히려 겁파刼波의 흐름으로 귀결됨을 -
012_0749_a_01L虎護伽藍。西。妙吉祥峰相不齊。道林鬱
012_0749_a_02L密楓林好。白鳥啣花供佛低。北。聖出
012_0749_a_03L峰高恩罔極。屏疊嶂中古蹟多。降仙臺
012_0749_a_04L下又神德。上。回首仰觀一貪狼。問爾
012_0749_a_05L人間禍福能。紫微宮裡群星張。下。溪聲
012_0749_a_06L如舌談般若。四時動樂道林長。使我若
012_0749_a_07L聾又若啞。伏願上樑之後。動樂與衆樂
012_0749_a_08L而樂樂。道林并森林而林林。吉祥庵
012_0749_a_09L前。聖衆森羅。降吉祥之妙德。聖出峰
012_0749_a_10L下。神德不壞。護聖出之名區。檀氏家
012_0749_a_11L裡。百福鼎臻。八龍九齡。金魚玉帶。子
012_0749_a_12L子孫孫而不問。僧伽藍中。五衆咸集。
012_0749_a_13L六度十信。禪德敎師。兄兄弟弟而莫論。
012_0749_a_14L
012_0749_a_15L道林寺大法堂重剏記
012_0749_a_16L如是我聞。佛本無身。應衆生而現身。法
012_0749_a_17L本無相。從幻化而現相。以故身土現於
012_0749_a_18L幻化之界。樓臺煥乎影響之中。盡是諸
012_0749_a_19L佛權應。何關菩薩眞諦也哉。唯道林寺
012_0749_a_20L無文稽古。但考傳記。曼殊大士之幻化。
012_0749_a_21L元曉三聖之剏修。浩刼之開剏。羅麗之
012_0749_a_22L重修。莫悟前因。而迄于康熙癸卯。靈
012_0749_a_23L悟之三剏。道光辛巳。道成之四剏。南
012_0749_a_24L波亦隨緣修補。當代繁華。尙歸刼波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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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9_b_01L어찌 족히 더 이야기할 것인가.이제 대웅전은 기둥(棟樑)이 무너지고 서까래가 기울고 수놓은 두공枓栱이 떨어지고 맞물려 놓은917) 것이 빠졌다. 향을 사르며 두 번 일어나 경쇠를 울리고 거듭 돌아보게 되니, 어찌 여기 거승居僧들만 낙심(寒心)하겠는가. 거사居士들의 슬픔을 더하지 않음이 없었다. 마침 본군(곡성) 대단신사大檀信士(시주) 정수태丁秀泰 공이 샘과 바위 사이에서 피서를 즐기다가 전각들이 기운 것을 몸소 보고 게다가 주지의 걱정을 듣고서는 이에 바람을 두기를 “제불諸佛 궁전을 예로부터 단신檀信(시주)들이 세웠으니 나 또한 단신의 일부가 됨이 옳도다.”라고 하고는 7백 원元을 내어, 이것으로 종잣돈을 삼아 단씨檀氏(시주)들에게 구하면 반드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주지 눌봉訥峯이 머리를 조아려 다음과 같이 찬양하였다. “천 리도 한 발짝부터이고, 높은 산(九仞)도 삼태기 흙 하나부터이니, 대인의 앞장섬으로 불전의 중창이 이미 절반은 된 셈이니 어찌 선善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고는 단문檀門들에 행화行化918)하여 천여 원을 모아, 경신년(1920) 봄에 시작하여 같은 해 가을에 일을 마쳤다.무너진 것이 이뤄지고 낮은 것이 높아졌으며 기운 것은 바로 서고 옛 것이 새로워졌다. 치수와 먹줄, 회칠과 흙 손질 하는 이들이 각기 기술을 발휘하니 웅장하고 화려하며919) 크고 아름다웠다.920) 삼존불이 복전複殿921) 안에 의젓하고, 성중聖衆이 층루層樓 위에서 옹위하니, 몸 없는데 몸을 나투고 형상 없는데 형상을 나툰다는 말을 이에 이르러 진실로 믿게 되었다. 영향影響의 신토身土를 화주(化士)의 세 치 혀 위에 드러내시고, 환화幻化 누대가 시주(檀氏)의 한 조각 마음속에서 솟아났도다.복을 빌고 수명을 늘리는 감응은 수많은 강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고, 재앙을 소멸하고 복을 내리는 영험은 온갖 나라에 봄이 오는 것과 같으리라. 보광전普光殿922)에 혜감慧鑑이 길이 밝아 산이 울고 골이 응하며, 보제루普濟樓923)에 업보의 인연(報緣)이 밝게 드러나 물이 흐르고 꽃이 피도다. -
012_0749_b_01L所流。何足贅說乎。今大雄殿。棟樑頽
012_0749_b_02L壞。椽梠傾圯。繡栭之崩落。杈枒之差
012_0749_b_03L脫。焚香而再擧。因鳴磬而重回頭者。
012_0749_b_04L豈但居僧之寒心。不無居士之添悽。適
012_0749_b_05L本郡大檀信士丁公秀泰。避暑于泉石
012_0749_b_06L之間。親見殿宇之頽傾。又聞住持之供
012_0749_b_07L慮。爰有願言曰。諸佛宮殿。從古檀信
012_0749_b_08L之所建。而吾亦作檀信之一分者可乎。
012_0749_b_09L出賚七百元。以此爲本。求諸檀氏。事
012_0749_b_10L必成矣。住持訥峯稽首讃曰。千里初
012_0749_b_11L步。九仞一簣。大人倡起。佛殿重剏。事
012_0749_b_12L已過半。豈不善哉。乃行化諸檀門。鳩
012_0749_b_13L千餘元。始役於庚申之春。竣功於同年
012_0749_b_14L之秋。壞者成而底者高之。傾者正而舊
012_0749_b_15L者新之。規矩繩墨。灰塗圬墁。各呈其
012_0749_b_16L巧。鳥革彙 [122] 飛。輪焉奐焉。三佛儼然於
012_0749_b_17L複殿之中。衆聖擁衛於層樓之上。无身
012_0749_b_18L而現身。無相而現相。到此良信。影響
012_0749_b_19L身土。顯現於化士之三寸舌上。幻化樓
012_0749_b_20L臺。湧出於檀氏之一片心中。求福延壽
012_0749_b_21L之感應。若月印千江。消災降祥之靈驗。
012_0749_b_22L如春行萬國。普光殿上。慧鑑長明。山
012_0749_b_23L鳴而谷應。普濟樓中。報緣昭現。水流
012_0749_b_24L而花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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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9_c_01L도림사 길상암 중수기道林寺吉祥庵重修記전해 오기를, ‘완성’과 ‘파괴’924)는 이치와 운수의 감응이고, 계획하고 도모함925)은 화주와 보시의 인연이라고 한다. 그래서 완성과 파괴는 화주와 보시의 복전福田이요, 복전을 만나 씨를 뿌릴 수 있으니 즉 선남자의 큰 기연奇緣이 된다.이제 길상암은 즉 문수보살께서 창건하시고 또한 원효元曉와 의상義湘과 윤필尹弼이 중수하어 신성(聖)을 모신 영험한 구역이다. 처음에 묘길상妙吉祥(문수보살)을 따랐기 때문에 ‘길상암’이라고 칭하였다. 또는 길성吉星이 내리 비추어 성중聖衆이 솟아나는 상서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길상암이라 한 것인가.926) 신라와 고려 시대 이래로 완성과 파괴를 여러 번 겪었으니 열 번의 중수한 자취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이조 기미년(1919)에 이르러 암주庵主 취암翠菴 공公이 조계산에서 이곳으로 옮겨 와서는 약 1년 되자마자 항상 중수할 생각으로 잠자거나 먹을 때나 걱정으로 삼았다. 마침 광주 임 공林公과 본군 정수태丁秀泰 공이 암자가 기울어진 것을 보고는 큰 발원을 같이 내어 도합 5백 금을 내고, 또 신녀信女 배씨裵氏가 단문檀門에 부르짖어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였다. 경신년(1920) 봄에 시작하여 몇 개월 되지 않아 마무리(伏簣)하니, 찬란하게 새로워졌다.제불諸佛이 자리에 편안하시고 성중聖衆이 환희하며 가신伽神927)이 상서로움을 드리니, 즉 이른바 ‘길상吉祥’ 호칭이 이로 말미암음을 알 수 있다. 정 공과 임 공이 복전을 처음 일으켜 선근을 심었고 또한 단씨檀氏들과 함께 선한 인연을 같이 맺었다. 두 분의 증험으로 지위가 신하의 최고로 오르시고 자손은 길이 창성하리라. 단씨의 선한 벗들을 이끌어 길상의 복락福樂을 같이 받으니, 어찌 선남자의 큰 기연이 아니리오. 그래서 뒤에 방함芳啣(성함)을 게시한다. -
012_0749_c_01L道林寺吉祥庵重修記
012_0749_c_02L傳云。曰成曰壞。理數之所感。經之營
012_0749_c_03L之。化施之因緣。故云成壞。乃化施者
012_0749_c_04L之福田。遇福田而能下種者。卽善男子
012_0749_c_05L之大奇緣也。今吉祥庵者。卽文殊之所
012_0749_c_06L剏。亦元曉義湘尹弼之重修。安聖之靈
012_0749_c_07L區也。初從妙吉祥。而稱吉祥之號。抑
012_0749_c_08L吉星照臨。聖衆湧出之嘉祥。故云吉祥
012_0749_c_09L歟。自羅麗以來。多經成壞。十番重修
012_0749_c_10L之蹟。不能枚擧。而至于李朝己未歲。
012_0749_c_11L庵主翠菴公。自曹溪來住于此。纔有年
012_0749_c_12L所。而常以重修。爲枕食之憂。適有光
012_0749_c_13L州林公某。本郡丁公某秀
泰見庵之傾覆。
012_0749_c_14L同發大願。合財五百金。又有信女裵
012_0749_c_15L氏。叫化檀門。尅日蕫役。始庚申春。
012_0749_c_16L不數月而伏簣。奐然一新。諸佛安座。
012_0749_c_17L聖衆歡喜。伽神呈祥。卽所謂吉祥之號。
012_0749_c_18L從玆可覺矣。以其丁林兩公之倡起福
012_0749_c_19L田。已種善根。而亦與諸檀氏。同結善
012_0749_c_20L緣。兩公之驗。位極人臣。子孫永昌。接
012_0749_c_21L引諸檀之善友。同受吉祥之福樂。豈
012_0749_c_22L非善男子之大奇緣哉。所以揭示芳啣
012_0749_c_23L于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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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0_a_01L조계산 감로암 동별당을 새로 건축하는 기문9월 9일(曹溪山甘露庵東別堂新建記九月九日)암자를 ‘감로’라고 명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선사修禪社) 제6세 원감국사圓鑑國師께서 암자를 짓고 들어간(入院) 날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今朝果熟沾甘露 오늘 아침 과일 익어 감로甘露에 젖으니
無限人天一味同 무한한 인천人天이 함께 맛보는구나928)
이것이 (‘감로’라고) 이름 붙인 발단(草昧)일까. 암자의 정전正殿과 정루正樓는 임병壬丙929) 방향으로 하고, 동료東寮와 문루門樓는 갑경甲庚930) 방향인데, 고찰할 문헌이 없어서 몇 번이나 수리했는지 알 수 없다. 광서光緖 기묘년(1879) 여름에 정전正殿과 좌익左翼을 이어서 수리하였으니 경원敬圓 총섭㧾攝931)이 주관하였고, 신묘년(1891) 봄에 정루正樓를 또 수리하였으니 용선龍船 대사가 주관하였다. 지금 가장 걱정거리는 동료東寮(동별당) 5칸의 주춧돌 바닥이 함몰되어 매번 물과 흙이 인몰되고 기둥이 어긋나서 비바람이 스며듦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왼쪽으로 기울고 오른쪽이 무너져 싸락눈처럼 벽이 떨어지고, 동쪽이 무너지고 서쪽이 가라앉아 벼락 치듯 기와가 무너진다. 저녁에 아침까지 남아 있을지 보장하지 못하니 침식枕食이 어찌 편안하겠는가.경신년(1920) 봄에 이 암자의 장로 용호龍湖 대덕大德이 2천 금을 내고 성봉性峯과 동운東雲 두 개사開士가 이번 사무를 보는 석덕碩德들과 맹약을 맺어 본사에 간구하니, 각당各堂과 제덕諸德이 얼마간 모금하여, 같은 해 맹추孟陬(1월)에 시작하여 중하仲夏(5월)에 마쳤다. 아, 몇 길의 산등성이(層阿)를 잘라서 네 칸의 범궁梵宮을 세우니, 동쪽 면을 돌려 남쪽으로 삼고 밑 빠진 것을 올려 높게 하였다. 다섯 들보가 다섯 기둥과 함께 광채를 드날려 서까래를 가설하고 기와를 덮었고, 네 문이 네 벽을 이어 널찍하니 불상을 안치하고 승려들은 즐겁도다. 목을 빼 부를 수 있는 조계산 제자봉帝字峰(조계봉)이 완연하고, 눈길 가는 대로 회포를 품으니 대장봉大將峯 깃발이 펼쳐 있도다. 귀비龜碑(비석)의 금송錦頌(노래)과 -
012_0750_a_01L曹溪山甘露庵東別堂新建記九月
012_0750_a_02L九日
012_0750_a_03L庵以甘露命者。何謂也。第六圓鑑國師。
012_0750_a_04L剏庵入院之日。有詩云。今朝果熟沾甘
012_0750_a_05L露。無限人天一味同之句。卽爲命名之
012_0750_a_06L草昧歟。庵之正殿及正樓。壬丙爲向背。
012_0750_a_07L東寮與門樓。甲庚爲向背。而無文獻
012_0750_a_08L可考。不知幾經剏修也。至光緖己卯夏
012_0750_a_09L正殿及左翼。繼而修葺。敬圓㧾攝主之。
012_0750_a_10L辛卯春正樓又修。龍船大師管之。今之
012_0750_a_11L最患者。唯東寮五間。址礎底陷。每犯
012_0750_a_12L水土之湮沒。棟樑差脫。不庇風雨之漶
012_0750_a_13L漫。左傾右圯。壁落如霰。東頽西沒。瓦
012_0750_a_14L崩若雷。夕不慮朝。枕食何安哉。庚申
012_0750_a_15L春本庵長老龍湖大德。出財二千金。性
012_0750_a_16L峯東雲二開士。與本事務諸碩德盟約
012_0750_a_17L而恳求於本寺。各堂及諸德。鳩金略干。
012_0750_a_18L始於同年孟陬。終於仲夏。噫。斫數仞
012_0750_a_19L之層阿。建四間之梵宮。回東面而爲南。
012_0750_a_20L陟底陷而成高。五樑并五柱而騰輝。椽
012_0750_a_21L可架而瓦可覆矣。四門聯四壁而洞敞。
012_0750_a_22L佛可安而僧可樂也。以延頸可呼者。曹
012_0750_a_23L溪峰之帝字完然。其縱目憑懷者。大將
012_0750_a_24L峯之旗纛布列。至若龜碑之錦頌。鶴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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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0_b_01L학천鶴泉(개울)의 영액靈液(샘물) 같은 경우는 마시고 읊는 이가 저절로 얻을 테니 어찌 길게 늘어놓겠는가. 다만 단씨檀氏 은혜의 힘과 사무의 성공으로 이 별당을 이루었으니 어찌 아름다운 자취를 게시하여 길이 잊지 않도록 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기록하노라.태안사 16나한을 이안한 연기신유년(1921) 봄(泰安寺十六聖移安緣起辛酉春)본사本寺의 석상 16나한 성중聖衆은 즉 (혜철慧哲)국사께서 사찰을 창건하시던 때에 조성하여 봉안한 것인데 임진년(1592) 병화로 훼멸되어, 온전하게 봉안할 만한 상이 하나도 없고 비석 무더기 아래 쌓여 있어 승려와 단나檀那(시주)들의 신앙이 현재 결여되어 있으니 사원의 수치가 된다.순천 지역의 이웃 사찰인 대흥사932)가 마침 다년간 비었고 오직 16성상만이 엄연히 아직 남아 있어 마땅히 봉안할 만하다. 여럿의 의논이 일제히 펼쳐져, 동치同治 12년 계유년(1873) 봄에 본사(태안사)로 이안하였다. 미타전彌陀殿 오른쪽에 응진당應眞堂을 새로 건립하고서 봉안한 것이다. 향공양을 법도대로 하였는데 다만 흠이라 할 것은 이로부터 다툼이 일어나서 도반(法侶)들이 흩어지고 사찰 재물이 없어진 것이니, 식자識者들은 주인과 손이 꺼려서 다툰 것이라 하였다.당시 주관한 긍오亘悟 등이 옳다. 10년933) 지나 계사년(1893) 봄에 주지 축정竺靜 화상이 대중에게 고하길, “사찰의 패망은 새로 나한을 봉안한 데서 말미암았으니 다시 다른 산으로 이안하여 주인과 손의 꺼림을 막으려 하니 괜찮겠습니까.”라고 하니, 대중들이 좋다고 하였다. 즉시 정려淨侶934)들에게 아미산峨嵋山 천태굴天台窟935)로 이안하게 하였다. 그런데 채색한 탱화가 음습한 습기로 온통 젖고, 백옥 성상聖像은 새어드는 빗방울을 거의 다 무릅쓰게 되니 누군들 한심하지 않겠는가. 갑진년(1904) 봄에 주지 포룡抱龍 화상이 다시 성기암聖祈庵936)에 봉안하였고, 다음 해 을사년(1905)에 수경袖鯨 선사가 -
012_0750_b_01L之靈液。飮詠者自得。何足長提。但以
012_0750_b_02L檀氏之惠力。事務之成功。賴成此堂
012_0750_b_03L何不揭示芳躅爲永世不忘者哉。如是
012_0750_b_04L而記之。
012_0750_b_05L
012_0750_b_06L泰安寺十六聖移安緣起辛酉春
012_0750_b_07L本寺石羅漢十六聖衆。卽國師剏寺之
012_0750_b_08L時。造像奉安。而爲壬辰兵燹之所毁。
012_0750_b_09L一無完像可奉。委積于龜碑之堆下。現
012_0750_b_10L闕居僧檀那之信仰。窃爲寺院之羞辱
012_0750_b_11L矣。順天地大興隣寺。適空廢多年。唯
012_0750_b_12L十六聖像。儼然尙存。宜可奉安也。衆
012_0750_b_13L議齊發。於同治十二年癸酉春。移安于
012_0750_b_14L本寺。新建應眞堂於彌陀殿右。而仍安
012_0750_b_15L之。香供如法。但所欠者。從此起諍。法
012_0750_b_16L侶渙散。寺財耗損。識者以爲主賓忌諍
012_0750_b_17L云。時主管亘
悟等是也越十年癸巳春。住持竺靜
012_0750_b_18L和尙吿衆曰。寺之敗亡。職由乎新羅
012_0750_b_19L漢奉安。更移他山。欲杜主賓之嫌可乎。
012_0750_b_20L衆曰善哉。卽發淨侶。移安于峨嵋山
012_0750_b_21L天台窟。彩畫佛幀。渾浸陰䨪之嵐。白
012_0750_b_22L玉聖像。幾蒙滴漏之雨。孰不曰寒心
012_0750_b_23L哉。粤甲辰春。住持抱龍和尙。還奉于
012_0750_b_24L聖祈庵。明年乙巳。袖鯨禪師。化得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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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0_c_01L용호龍湖 대사의 금 1백 냥兩을 시주(化得)하여 부도전 익실翼室937)로 이안하고 채색을 다시 하고 분을 바르고서, 거승居僧들에게 향공양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병오년(1906)에 해회당海會堂으로 이안하여 도배하고 향공양을 한결같이 법당처럼 하였다. 4년 지난 기유년(1909) 봄에 동봉東峰 등이 동일암東日庵으로 이안하였는데 일하一夏938)를 지나지 않아서 동허東虛 등이 다시 해회당으로 이안하였다. 경술년(1910) 봄에 이르러 관음전으로 다시 이안하였다. 이 전각은 대웅전 왼쪽에 있으며 예전에는 대법당이었다. 계묘년(1903)에 인담印潭 화상이 옮겨 세운 옛 응진당이 이것이다. 관음불을 대웅전에 함께 이안하기에 부족하여 다른 전각에 봉안하고, 이에 성중을 봉안하여 관음전 현판을 없애고 응진당 칭호를 걸었다. 그리고 탑의 뒤 기슭에 옛 석상을 묻었다.계유년(1873)부터 경술년(1910)에 봉안하기까지 여덟 차례 이동하여 아이들의 장난처럼 되었으니 얼마나 상서로운 복이 있고 어떤 즐거움을 보았던가. 제성諸聖의 진리는 비록 정결하고 더러움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으나 중생의 망상은 어찌 저와 나의 증오와 사랑이 없겠는가. 그렇다면 무지와 망각의 견해로 존엄하기 그지없는 진상眞相을 함부로 옮겼으니 어찌 아름다움과 더러움, 길함과 흉함의 의논이 없겠는가. 내가 듣고서 민망하여 대략 그 말을 서술한다. 이로부터 다시는 함부로 옮겨서 화를 부르는 지경이 없기를 정수頂手939)하고 지극히 비노라.(주완섭을) 간병해 준 강재원에게 감사하는 편지계해년(1923) 봄 동경에 있을 때 아팠기 때문이다.(謝姜在源看病書癸亥春在東京時。苦痛故也。)오동나무 아래서 한 번 보고서 겁몽刼夢940)을 미처 깨지 못하였는데 삼화三花를 겪고 또 일랍一臈을 더하니941) 진실로 세파가 쉬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나니 여행하시는 중에 장애 없이 잘 지내시는지, 절실하게 궁금합니다.늙은이는 보잘것없이 나이만 먹으니 장차 세상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대는 잠시도 겨를 없는 가운데 -
012_0750_c_01L湖大師金一百兩。移安于浮屠殿翼
012_0750_c_02L室。改彩塗粉。使居僧奉香也。又明年
012_0750_c_03L丙午。移于海會堂。塗褙香供。一如法
012_0750_c_04L堂。越四年己酉春。東峰等移于東日庵。
012_0750_c_05L未經一夏。東虛等又移海會堂。至庚戌
012_0750_c_06L春。更安于觀音殿。此殿卽大雄殿左大
012_0750_c_07L法堂舊墟。癸卯年印潭和尙。所移建古
012_0750_c_08L應眞堂是也。觀音佛同安于大雄殿。不
012_0750_c_09L足別殿奉安。迺安聖衆。除觀音額。而
012_0750_c_10L揭應眞號。仍埋古石像於塔之後麓也。
012_0750_c_11L盖自癸酉至庚戌之安座。爲八次運動
012_0750_c_12L如小兒之嬉戱。有幾個福祥。見何等
012_0750_c_13L富樂耶。諸聖眞理。雖無淨穢之好惡。
012_0750_c_14L衆生妄想。那無彼我之憎愛哉。然則以
012_0750_c_15L無知罔覺之見。妄動乎莫尊之眞相。豈
012_0750_c_16L無休咎吉凶之論也。余聞而悶之。略述
012_0750_c_17L個言。從是以徃。更無妄遷招禍之境。
012_0750_c_18L頂手至祝。
012_0750_c_19L
012_0750_c_20L• 謝姜在源看病書癸亥春在東京
時。苦痛故也。
012_0750_c_21L桐下一面。未惺刼夢。於經三花。又加
012_0750_c_22L一臈。信覺世波之不息。而更詢旅體無
012_0750_c_23L障做得否。爲之切切僕僕。老漢無似添
012_0750_c_24L齒。將安庸於世哉。尊候晷刻不暇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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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1_a_01L주생朱生942)의 병상을 항상 돌아보아 오래도록 우려하고 동정을 대단히 표현한다고 하더군요. 어찌 붓 하나로 능히 감사함을 표현하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동쪽을 향해 절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 마음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바야흐로 숙소와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은 윤의閠衣의 희망일 뿐 아니라 또한 숙업宿業의 기연일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같이 길상吉祥을 이루고 아울러 안락을 향유하소서.또다시 사례함(又再謝)31일에 답장했으나 여전히 황겁한 상태로 보낸 것이고, 여전히 냉담한 말씀조차 하나도 없어서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으니, 게(螊蚧)가 형구에 낀 듯합니다. 어찌 조금이라도 풀어지겠습니까.옛날 사람들이 말하길, 통달한 사람은 병 있음을 선지식으로 여기고 병 간호를 복전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식과 복전이 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밭에 씨를 뿌리려 하지 않고 심상하게 지나쳐 길 가는 사람처럼 하니 그 과보를 누리지 못함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대가 주생朱生을 간호하여 분주히 하고 조심스레 마음을 쓰며 학업을 폐하고 탕약 시중을 들고 의사를 불러 진찰하게 하고 얼음을 깨어 약을 만들고943) 식사를 잊은 채 안마를 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병자가 호흡이 원활하지 않아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에 이르자 입술을 대어 숨을 불어 넣고 귀에 대고 일깨우면서, 성호聖號를 불러 경계하게 하고 신명을 돌이켜 소생하게 하니, 세 번 기절했다가 세 번 소생하여 목숨을 구해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경을 생각해 보니 옛날 미생尾生과 효기孝己944)의 행실로도 진실로 멀찌감치 비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 친형제ㆍ친인척으로서 어찌 흘려 버리겠습니까. 그래서 한마디 짧은 말로나마 그대에게 복이 되는 결과를 축원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공덕으로 분단생사分段生死945)의 거친 자질을 여의고 -
012_0751_a_01L中。常顧於朱生之病床。移時憂慮。剩
012_0751_a_02L表同情之多大云。何但一毫之所能哉。
012_0751_a_03L不覺向東而稽首。仰天而許心也。且方
012_0751_a_04L與同舘宿食者。非唯閠衣之希望。抑亦
012_0751_a_05L宿業之奇緣。唯冀同致吉祥。併享安樂
012_0751_a_06L之地。
012_0751_a_07L
012_0751_a_08L• 又再謝
012_0751_a_09L三十一日旣答。猶在惶㥘中所發。而尙
012_0751_a_10L闕冷淡之一詞。碍膺未解。如螊蚧之於
012_0751_a_11L枷杻者。何嘗小弛哉。古云達人。以有病
012_0751_a_12L爲善知識。以看病爲福田。世人非不知
012_0751_a_13L爲知識及福田。而不肎下種於其田。尋
012_0751_a_14L常看過。如路上人相似。未享其果必也。
012_0751_a_15L而今吾君之看護朱生也。得得奔忙。兢
012_0751_a_16L兢用心。廢業而侍湯。招醫而診療。叩
012_0751_a_17L冰而製藥。忘饌而撫摩。至於病者。呼
012_0751_a_18L吸不通。㦖絕幾沒之際。接唇而昫嫗。
012_0751_a_19L提耳而唱起。稱聖號而警愓。返神明而
012_0751_a_20L甦生。三絕而三復。以至濟命保存。闇
012_0751_a_21L想其情景。雖古之美 [123] 生孝已之行。固
012_0751_a_22L莫得而比例者遠矣。以其親兄弟同族
012_0751_a_23L屬。安敢越乎哉。故將一尺短詞。敢祝
012_0751_a_24L吾君作福之結果也。唯以此功德。離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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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1_b_01L금강의 청정한 몸을 얻으시기를, 한 줄기 심향心香으로 삼시三時에 걸쳐 염송합니다.응암 선사의 진영을 새로 조성하는 기문(應庵禪師眞影新造記)임제의 30세손 적통嫡統으로 ‘풍암楓嵓’이 있고, 풍암의 아래 4대덕인 ‘묵암默庵’과 ‘응암應庵’ㆍ‘제운霽雲’ㆍ‘벽담碧潭’을 세칭 ‘풍하사걸楓下四傑’이라 한다. 사걸의 후예들이 번성하여 현존하는 이들이 도합 2백 남짓에 이른다. 저 세 문도들은 진영을 걸고 탑비를 세워서 추모의 예를 한결같이 준수하는데 우리 응암 문도들은 아직 진영을 걸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탑비를 세우겠는가. 그 문도로서 안타까워한 지 오래되었다.무기년戊己年946) 병화를 겪은 후에 신해년(1911) 봄에 이르러 조사들의 진영을 새로 조성하는 날에 나는 함호菡湖947) 장로와 협력하여 말하길,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 선조의 진영 사업을 도모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 돈 2천여 금을 내어서 진영을 그리고, 풍암 노옹의 아래에 안치하기로 하였다. 묵형默兄(묵암)과 좌우가 되고 제운과 벽담은 그다음이 된다. 토지를 사서 사찰에 들이고 매년 차례茶禮 지낼 물품을 마련하게 하였다. 아, 사걸의 진실한 모습이 살아 있는 듯한 그림 속에 나열되니, 엄연히 관중사걸關中四傑948)이 집 공什公(구마라집)949) 아래 절하는 것 같다. 이것은 함호 노옹의 원력이 아님이 없도다. 그러나 진영 사업을 마치더라도 탑비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또 함호 노옹과 함께 도모하나 힘이 미약하여 아직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아아, 선사先師의 법유法乳를 같이 적시고도 타인이 능히 행하는 바를 행하지 못하니, 도리어 사걸의 문도가 되지 않음만 못하다. 쯔쯧, 애석하도다. -
012_0751_b_01L叚麁質。得金剛淨身。一炷心香。三時
012_0751_b_02L念誦。
012_0751_b_03L
012_0751_b_04L應庵禪師眞影新造記
012_0751_b_05L臨濟下三十世。有嫡統曰楓嵓。嵓之下
012_0751_b_06L有四大德。曰默庵。曰應庵。曰霽雲。曰
012_0751_b_07L碧潭。世稱楓下四傑。四傑之後。有徒
012_0751_b_08L繁息。現存者。合至二百餘。彼三門之
012_0751_b_09L徒。掛之眞影。竪之塔碑。一遵追慕之
012_0751_b_10L禮。而唯吾應庵之徒。尙未遑掛影。況
012_0751_b_11L何塔碑之所營哉。爲其徒而飮恨久矣。
012_0751_b_12L戊己兵火之後。至辛亥春。諸祖影眞
012_0751_b_13L新成之日。予與菡湖長老恊謀云。當此
012_0751_b_14L際會。盍謀先祖影事耶。曰諾。仍出自
012_0751_b_15L賚費二千餘金。摹眞而掛安于楓老之
012_0751_b_16L下。與默兄相爲左右。雲與潭又其次。
012_0751_b_17L買土納于寺。爲逐年茶禮之需。吁。四
012_0751_b_18L傑之眞相。列於活畫之中。儼若關中四
012_0751_b_19L傑。膜拜於什公之下也。此莫非菡老之
012_0751_b_20L願力歟。然影事雖畢。猶有塔碑之恨。故
012_0751_b_21L又與菡老謀營之。力綿未果。嗚呼。同
012_0751_b_22L沾先師之法乳。而未能行人之所能行。
012_0751_b_23L反不如不爲四傑之徒爲愈。咄。且惜矣
012_0751_b_24L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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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1_c_01L『신심명』 번역 해설의 발문(信心銘譯說跋文)내가 『불조록찬송佛祖錄讃頌』950) 사업을 하면서 삼매의 문과 바다로 들어가려는데, 해은海隱 공公이 조계산에서 와서, 가져온 책을 내게 보이며 “일전어一轉語951) 서문을 얻을 수 없겠습니까?”라고 했다. 내가 기쁘게 받아 보니, 즉 이전에 강당에서 가르친 제3조 승찬僧璨 시호 감지선사鑑智禪師가 찬술한 『신심명』이었다.글자는 584자이고 구절은 146개이며 운韵은 26절節로 바뀐다. 먼저 입성入聲952)으로 마음의 본체를 일으켜(起心之體) 본체를 따라 작용을 일으키고, 후에 평성平聲953)으로 마음의 작용을 맺어(結心之用) 작용을 거두어 본체로 귀결하였으니(攝用歸體) 그래서 그러한가. 옛날의 제창提唱954)을 대강 고찰하니, 송宋ㆍ원元ㆍ명明ㆍ청淸 운석韻釋(시승)의 구절 풀이, 조선 백암栢庵955)의 주해, 일본 게이잔(瑩山)956)의 염제拈提957) 등이 모두 간단하거나 번잡하여 둔한 근기에는 타당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이제 해은 공이 오로지 게이잔의 염제에 따라 번역하고 화룡畫龍 진헐眞歇958)의 염고拈古로 증명하여 설명하였다. 줄여서 간단하게 하고 보완하여 완성함으로써 초학자가 훑어보기에 편리하도록 하니, 진정 ‘사람이 촛불을 켬에 다만 그 빛을 빌리고 벌이 꽃을 찾되 그 향기를 퇴색시키지 않음과 같다’고 할 만하다.도를 행하는 이가 구절의 복잡함에 나가지 않아 광대한 신심을 바로 펼치고, 마음을 펼치는 이는 표현의 찌꺼기에 구애받지 않고 궁극의 지혜를 얻을 것이다. 행하고 펼치는 것은 삼매의 문을 통해 유희하는 것이고, 번역하여 설명하는 것 또한 삼매의 바다를 통해 유출되는 것이다. 어찌 그저 그렇겠는가. 나 또한 삼매의 문을 통해 일어남이 이와 같아서 말미에 쓰노라.낙안군 동화사 승당의 불상 개금과 탱화를 조성한 기문신유년(1921) 여름(樂安郡桐華寺僧堂佛像改金佛幀新成記辛酉夏) -
012_0751_c_01L信心銘譯說跋文
012_0751_c_02L余方事佛祖讃頌。將入三昧門海。有海
012_0751_c_03L隱公。自曹溪而來。挾册見余曰。得無
012_0751_c_04L一轉緖言否。余欣然受之。卽前日講家
012_0751_c_05L敎授三祖僧璨謚鑑智禪師所撰信心銘
012_0751_c_06L也。其字也五八四。其句也一四六。其
012_0751_c_07L韵也二十六節換改。而先以入聲起心
012_0751_c_08L之體。從體起用。後以平聲結心之用。
012_0751_c_09L攝用歸體。故然耶。槩考古之提唱。宋
012_0751_c_10L元明淸之韻釋句解。鮮之栢庵註解。日
012_0751_c_11L之瑩山拈提。皆涉於簡煩。莫穩乎鈍根。
012_0751_c_12L以爲病焉。今海隱公。專依瑩山之拈提
012_0751_c_13L而譯之。次證畫龍眞歇之提 [124] 古而說之。
012_0751_c_14L删而簡之。補而完之。使初學者。一覽
012_0751_c_15L便了。眞可謂如人秉燭。但借其光。如
012_0751_c_16L蜂採花。不渝其香者也。行道者不陟
012_0751_c_17L句讀之曲岐。直發廣大之信心。發心者
012_0751_c_18L不拘文言之糟粕。卽得究竟之智鑑。行
012_0751_c_19L而發之者。從三昧門而遊戱。譯而說之
012_0751_c_20L者。亦從三昧海而流出也。豈其徒然乎
012_0751_c_21L也哉。余亦從三昧門而起如是。而書
012_0751_c_22L其尾。
012_0751_c_23L
012_0751_c_24L樂安郡桐華寺僧堂佛像改金佛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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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2_a_01L경전에 이르길, 진리는 말이 없어 수증修證959)할 게 없다고 하니 이를 일러 참된 수증이라 하고, 법신法身은 상相이 아니라 장엄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를 일러 참된 장엄이라 한다. 그래서 눈이 천지를 덮고 코로 신토身土를 거둠이 즉 납승衲僧의 본색이니, 모호한 진리나 모양 있는 법신은 모두 신훈新熏의 말광末光을 염려한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이처럼 상이 없는데 몸을 드러냄은 제불諸佛의 임시 응함(權應)이며, 수증할 게 없는데 발원하는 것은 실로 중생의 근기로 감응(機感)960)함이다. 근기와 임시가 서로 투합하고 응함과 감응이 부합하니, 어찌 수월도량에서 큰 공덕을 이루지 않겠는가?이제 주지 우송友松961)이 조계산에서 와서 여기에 주석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 금용金容(불상)의 색이 바래짐을 부끄럽게 여기고 또한 채운彩雲이 빛을 잃음이 안타까워, 한 번 교화의 바람을 부니 시주의 숲(檀林)이 일제히 누웠다. 모임을 맺어 이루고 날을 정해 장인을 불러 고치고 개금하며 새로 탱화를 그리니, 장애 없이 성취하여 환희하며 회향하였다. 1구軀 금산金山(불상)이 도솔궁에 거둥하시고 뭇 바다의 채운이 가라장迦羅藏962)에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기원정사(祇桓寺)의 단상檀像963)이 우뚝 서 있는 듯하고 자미궁紫微宮964)의 성중星衆이 나열한 듯하다. 두둥실 뜬 뗏목을 타고 옥경玉京(하늘) 신선이 안락성安樂城에 노니는 듯하고, 밝고 밝은 오동나무 꽃에 금강 선중禪衆(수행승)들이 금화산金華山 위에서 선정에 든 듯하다.제불諸佛의 감응이 두루 미쳤으니 단씨檀氏들의 바람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찰나마다 보리를 생각하는 신근信根이 진리를 따라 물러서지 않고, 집안마다 수복壽福을 주는 경사스런 구름이 법신과 함께 무궁하리라. 그 밖에 산과 바다의 넓고 평평함과 물과 구름의 그득함은 보는 이들이 절로 얻으리니, 다만 단씨들의 성함을 아래 나열한다.『불조록찬송』 서문(佛祖錄贊頌小引) -
012_0752_a_01L新成記辛酉夏
012_0752_a_02L經云眞理無言無修證。是名眞修證。法
012_0752_a_03L身非相非莊嚴。是名眞莊嚴。所以眼盖
012_0752_a_04L乾坤。鼻收身土。卽是衲僧之本色。若
012_0752_a_05L乃糢糊眞理。打樣法身。都慮新熏之末
012_0752_a_06L光也。雖然如是。無相而現身。乃諸佛
012_0752_a_07L之權應。無修而發願。實衆生之機感。
012_0752_a_08L機權相投。感應契符。盍成大功德於水
012_0752_a_09L月道場也哉。於是住持友松。自曹溪山
012_0752_a_10L來。住于此者。不幾年矣。心慚金容之
012_0752_a_11L沒色。亦感彩雲之無光。化風一號。檀
012_0752_a_12L林齊偃。結界建會。克日招工。重修改
012_0752_a_13L金。新畫佛幀。無障成就。歡喜回向。無
012_0752_a_14L乃一軀金山。來儀於兜率宮中。衆海彩
012_0752_a_15L雲。飛騰於迦羅藏裡。怳然祇桓寺之檀
012_0752_a_16L像特立。依俙紫微宮之星衆列羅。浮槎
012_0752_a_17L泛泛。玉京仙子。遊戱於安樂城中。桐
012_0752_a_18L花明明。金剛禪衆。入定於金華山上。
012_0752_a_19L諸佛之感應旣周。檀氏之願言必就。念
012_0752_a_20L念菩提信根。從眞理而不退。家家壽福
012_0752_a_21L慶雲。與法身而無窮。其餘山海之宏平
012_0752_a_22L水雲之汗漫。覽者自得。祗列檀啣于左。
012_0752_a_23L
012_0752_a_24L1)佛祖錄贊頌小引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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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2_b_01L부처는 본래 기록이 없는데 조사인들 어찌 있겠는가. 기록이 본래 있는 게 아닌데 하물며 찬송이 있겠는가. 그러나 부처와 조사가 세상에 출현함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우리에게 불지견佛知見965)을 개오開悟966)하게 한다. 능사能事(능력)를 이미 두루 펼치고 교화를 쉬어 입멸入滅하시니 어찌 기록과 찬송이 쓸모 있겠는가. 그러나 불자佛子가 되어서 그 막대한 은혜와 힘을 잊을 수 없어 만분의 일이나마 덕을 갚고자 하여 기록하고 찬송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나 그렇게 된 것인가.도원道源의 『전등록傳燈錄』967)과 화정華亭의 『통재록通載錄』,968) 염상念常의 『역대록歷代錄』,969) 여직汝稷의 『지월록指月錄』,970) 준욱遵勗의 『광등록廣燈錄』,971) 유백惟白의 『속등록續燈錄』,972) 이 모두는 자세한 기록들이다. 이어서 지반志磐의 『통기統記』973)와 보제普濟의 『회원會元』,974) 공진拱辰의 『통록通錄』,975) 이들은 간추린 기록들이다. 무착無着의 섭론송攝論頌976)과 용수龍樹의 약찬송略贊頌, 현수 청량賢首淸凉의 구회송九會頌,977) 선부善傅와 야보冶父의 금강송金剛頌,978) 규산圭山의 진망송眞妄頌,979) 사마司馬의 선림송禪林頌은 간추린 기록에 대한 간추린 찬송이다. 기록과 찬송은 자세하고 간략함이 비록 다르지만 취지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부처와 조사가 있는데 기록과 찬송이 없어서 되겠는가.‘찬송’이란 인도(竺乾)에서 시작되어 중화中華에 이르고 해동에서 마쳤다. 『통재通載』와 『전등록傳燈錄』과 『통사通史』에 기재된 것들을 대체로 기록하고 찬송하여, ‘불조록찬송’이라 하고 두 편으로 나누었다. 인도와 중국을 1편의 안팎으로 하고 해동에 있어서는 종宗으로 나누어 2편의 같고 다름으로 삼으니 합하여 네 부분이 된다. 권卷에 따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기록과 행장에 따랐으니 조금도 의심이 없다. 시기가 가까운 것에 주력했고 고찰할 만한 기록이 없으면 소문에 따라서만 기록했다. 자세한 행장이 없고 전혀 소문도 없는 것은 빼놓고 찬송하지 않았으니, 미상으로 빼놓은 안타까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내가) 해외 벽지에 거처하여 고루해서 견문이 없으니 어찌 깊이 질책하겠는가. -
012_0752_b_01L佛本無錄。祖何有哉。錄非本有。況頌
012_0752_b_02L乎哉。然而佛祖現世。爲一大事因緣。
012_0752_b_03L使吾開悟佛知見。能事旣周。休化入滅。
012_0752_b_04L有何錄與頌之爲也哉。爲其佛子者。難
012_0752_b_05L忘其莫大之恩力。庶報萬一之德。以錄
012_0752_b_06L而頌之者。不其然而然乎。以若道源之
012_0752_b_07L傳燈錄。華亭之通載錄。念常之歷代錄
012_0752_b_08L汝稷之指月錄。遵勗之廣燈錄。唯 [125] 白之
012_0752_b_09L續燈錄。此皆爲錄之廣也。至於志磐之
012_0752_b_10L統記。普濟之會元。拱辰之通錄。此乃
012_0752_b_11L錄之略也。無着攝論頌。龍樹略贊頌
012_0752_b_12L賢首淸凉九會頌。善傅冶父金剛頌。圭
012_0752_b_13L山之眞妄頌。司馬之禪林頌。卽略錄之
012_0752_b_14L略贊頌也。錄與頌。廣略雖殊。其趣一
012_0752_b_15L也。然則有佛祖而無錄頌得乎。今之贊
012_0752_b_16L頌。始於竺乾。至於中華。終於海東。而
012_0752_b_17L通載傳燈通史之所載者。槩錄而頌之
012_0752_b_18L曰佛祖錄贊頌。分爲二篇。以竺華爲一
012_0752_b_19L篇之內外。在海東以宗分爲二篇之同
012_0752_b_20L異。合爲四片。依卷當檢也。然而依錄
012_0752_b_21L據狀者。稍無疑。主於近古。無錄考狀
012_0752_b_22L者。但隨聞錄之。狀無可詳也。專無所
012_0752_b_23L聞處。拔而不頌。想有未詳漏闕之恨。
012_0752_b_24L但僻居海外。孤陋莫聞。何足深誅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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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2_c_01L우러러 바라는 것은, 안목을 갖춘 이들이 기록을 잇고 찬송을 이어 문장을 고르고 빛을 윤택하게 하여 책을 완성한다면, (부처님의 막대한 은혜와 힘을) 잊을 수 없는 뜻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삼장법수집』 서문(三藏法數集序)법수法數란 제법諸法의 명수名數(명목의 수)이다. 진법은 이름이 없는데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극수極數는 수가 없는데 어떤 수를 셀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중생이 진법에 어둡고 극수를 잊어서 진법과 극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여 억지로 일심一心의 명수를 세웠다. 일심이 이문二門980)ㆍ삼대三大981)ㆍ사신四信982)ㆍ오행五行983) 등984) 8만 법문을 세우자마자 삼라만상의 세계를 일제히 드러내는데,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으면 도리어 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흙덩이를 쫓는985) 데 이르러 돌아올 줄 모르니 이로 말미암아 당나라ㆍ송나라ㆍ명나라 시대에 현수賢首와 장수長水ㆍ원정圓靜ㆍ적조寂照ㆍ일여一如986) 등 뛰어난(矯矯) 현인들이 각기 수단(手眼)을 내어 삼장과 제승諸乘987)을 찾아서 각기 법수 1질을 완성하여 당시에 공포했으니 옛스런 비단이나 순금이 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간혹 너무 번잡하게 섭렵하거나 혹은 너무 간략해서 당황하게 하여, 책을 덮어 버리고 한탄하게 하는 아쉬움에 이르게 한다.나는 강의하던 여가나 대화(唱酬)하던 즈음에 힐항頡頏(겨룸)에 곤란한 것들을 매번 기록하였으니 1자字 부류부터 20여 편片에 이르기까지 부분마다 조항을 나열하여 본 이름 아래 뜻을 해석하기도 하고 법의 비유를 같이 들기도 하고, 그림을 보이기도 하고, 게송을 보이기도 하고, 앞선 현인들이 기록한 것을 빼고 싣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빠진 것에 따라 보충하면서 보는 대로 뽑아 기록하여 -
012_0752_c_01L仰祈具眼。續錄繼頌。調文閠光。以成
012_0752_c_02L完篇。庶補難忘之志也否。
012_0752_c_03L
012_0752_c_04L三藏法數集序
012_0752_c_05L法數者。諸法之名數也。眞法無名。何
012_0752_c_06L名可名。極數無數。何數可數之爲乎哉。
012_0752_c_07L但以衆生。昧眞法忘極數。不知眞極之
012_0752_c_08L爲何物也。强立一心之名數。一心纔立
012_0752_c_09L二門三大四信五行等八萬法門。齊現
012_0752_c_10L於森羅之界。捨本逐末。反不知名數之
012_0752_c_11L爲何等物也。以至於逐塊而不知返。由
012_0752_c_12L是以唐宋明代。賢首長水圓靜寂照一
012_0752_c_13L如等。矯矯群哲。各出手眼。搜得三藏
012_0752_c_14L及諸乘。各成法數一袠。公諸當時。莫
012_0752_c_15L非爲古錦純金。然而或有太煩涉獵。有
012_0752_c_16L或太略罔措。以至掩卷嗟咜之病矣。予
012_0752_c_17L於講授之餘。唱酬之際。困於頡頏者。
012_0752_c_18L輙記而錄之。自一字類。至二十餘片。
012_0752_c_19L部部條列。而本名下。或釋義。或法喩
012_0752_c_20L并擧。或圖示。或頌示之。至於先哲所
012_0752_c_21L錄者。拔而不載。但從闕補出。隨覽抄
012_0752_c_22L此引文。旣載於佛祖錄賛頌篇(韓國佛敎全書
012_0752_c_23L第十二册三一六頁上段) 然與佛祖錄賛頌序小
012_0752_c_24L異{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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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3_a_01L1권을 거의 이루었다. 그래서 책상에 놓아 두고는 입에 맞는 맛을 돕도록 했는데 또한 주미麈尾988)의 청에 부합할 따름이다.아, 법에는 고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지혜와 우둔함이 있다. 지금의 우둔함이 옛날 당나라ㆍ송나라ㆍ명나라 시대 지혜로운 이들이 일삼던 것에 어찌 관여하겠는가. 간혹 방외로 유입되어 일성一星이 있어서 던진다면 무극의 고향 진공眞空의 뼛속에 보관할 것이 의심 없으리라. 하하하.『염불요문과해』 발문念佛要門科解跋文경전989)에 이르길, “여래 법신은 상주하여 불멸한다.”라고 하니 무슨 뜻인가. 진실제眞實際(진실한 실제)를 증명하고 방편문을 행하여 우리 부처님의 혜명慧命990)이 천 년 뒤에도 끊이지 않게 함이 바로 법신이 불멸한다는 것인가.우리 불일 보조佛日普照 선사께서 대비大悲의 원력願力으로 그림자가 사바세계에 떨어져 유독 염부閻浮(인간 세상) 해동海東에 인연이 있어서 조계曹溪의 종휘宗輝991) 노스님에게 득도得度992)하였고 배움에 일정한 스승이 없었다. 팔공산 거조사居祖寺993)에서 결사하여 콧구멍을 밟아 버리고994) 남쪽으로 지리산 무주암無住庵을 유람하고 조계산에서 조종祖宗995)을 크게 천명하셨다. 경절문經截門 원돈圓頓996)의 뜻으로 선정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게 하는 핵심으로 삼고, 정토문淨土門 염불念佛997) 과목으로 세상과 중생을 제도할 방편으로 삼으니 이것이 진실을 증명하고 임시방편을 행하여 혜명이 단절되지 않으며 법신이 불멸하는 것이 아닌가.염불문의 글은 간략하지만 뜻은 풍성하며, 아미타불의 인연은 가볍고 과보는 무거워, 지극한 글을 자득하고도 누누이 쓰려 하지 않았도다. 아, 여래 입멸 후에 2천여 년 지나 우리 선사께서 세상에 나타나시니(1158), 여래 법신이 엄연히 불멸함이라. 우리 선사께서 입멸하신 지 7백여 년이 지나대안大安 경오년(1210)부터 대정大正 11년 임술년(1922)까지 713년이다. 『염불요문』이 사라져 보이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문도들의 배움이 -
012_0753_a_01L記。幾成一局。寘諸几案。以助適口之
012_0753_a_02L味。亦副塵尾之請也而已。吁。法無古
012_0753_a_03L今。人有智愚。今之愚。何預於古智之
012_0753_a_04L唐宋明代之所事也哉。或流入方外。當
012_0753_a_05L有一星而投之。藏諸無極之鄕眞空骨
012_0753_a_06L中也。無疑者夫。呵呵。
012_0753_a_07L
012_0753_a_08L1)念佛要門科解跋文 [24]
012_0753_a_09L經云如來法身常住不滅者。何謂也。
012_0753_a_10L證眞實際。行方便門。使吾佛慧命。不
012_0753_a_11L斷於千載之下。卽法身不滅歟。唯我佛
012_0753_a_12L日普照禪師。以大悲願力。影落娑婆。
012_0753_a_13L偏有因緣於閻浮之海東。得度於曹溪
012_0753_a_14L之宗輝老。學無常師。結社於公山之居
012_0753_a_15L祖寺。踏着鼻孔。南遊智異之無住庵。
012_0753_a_16L大闡祖宗於曹溪山。以經截門圓頓旨。
012_0753_a_17L爲習定均慧之樞要。以淨土門念佛科。
012_0753_a_18L爲濟世度生之方便。是無乃證眞行權
012_0753_a_19L慧命不斷。法身不滅者哉。念佛門之文
012_0753_a_20L略義豊。彌陀佛之因輕果重。至文自得。
012_0753_a_21L不肎累累。嘻。如來滅後。二千餘禩。吾
012_0753_a_22L師現世。如來法身。儼然不滅。吾師滅後
012_0753_a_23L七百餘年。自大安庚午。至大正十
一年壬戌。七百十三年。念佛要門
012_0753_a_24L湮沒不行。何也。莫非吾徒之學膚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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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3_b_01L겉만 훑는998) 얕은 식견이 아님이 없기 때문인가.나 또한 얕은 지식과 좁은 소견으로 조계산 아래에서 글만 읽으며999) 찌꺼기만 맛보다가 다행히 기산綺山1000)의 소장품에서 이 책을 얻고는 피눈물을 흘리며 봉독하니 우담바라를 움켜쥔 듯하였다. 그 인물됨을 탄식하여 손이 다치는 것을 헤아리지 않고 외람되이 병든 싹을 뽑아내고 감히 과목과 주석을 엮어, 통달한 식견과 높은 견해를 가진 이들에게 공경히 알린다.엎드려 바라건대, 대롱으로 표범의 무늬 하나만 본다고 꾸짖지 말고 첨삭을 가한 경전(大典)을 더하기를 바란다. 우리 선사의 마음이 여래 법신과 함께 불멸하기를 바라며 이와 같이 쓴다.자정국사의 탑이 훼손된 연기임술년(1922) 5월 오일午日1001)(慈靜國師毁塔緣起壬戌五月午日)바다의 동쪽이자 호수의 남쪽에 ‘조계’라는 산이 있고, 산 아래 개울 위에는 ‘송광松廣’이라는 사찰이 있다. 승국勝國1002) 이래로 그곳이 굉장하다고 칭해지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바로 16국사께서 차례로 세상에 나타나사 사원을 크게 넓히고 도적들을 제도(傑拓)하여 9산1003)의 장벽을 없애고 수선修禪의 모임(社會)을 결성했으며, 양종兩宗(교ㆍ선)의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하고 조계의 종지를 세워, 나라와 세상을 복되게 하고 생령生靈(중생)을 널리 구제했기 때문인가. 국사들께서 당시에 각기 별원別院을 손수 지어서 평생 좌선할 장소로 삼으셨는데 사찰(中寺)의 북쪽에 ‘자정慈靜’이라는 암자가 있으니 바로 7대 자정국사慈靜國師1004)께서 지으신 것으로 남쪽을 향하고 북쪽을 등져, 명백하고 바르게 마음을 맑게 하는 선방(禪室)이 된다.국사의 법명은 인일印一인데 비명碑銘은 보지 못하여서, 실제 사적을 알 수 없음이 항상 아쉬웠다. 국사께서 입적한 후에 암자의 동쪽 10보 되는 곳에 탑(묘광탑妙光塔)을 세웠으니 암자와 방위가 동일하다. 탑의 높이는 3층으로 1길(仞) 남짓이다. 가공한 솜씨가 극히 아름답다. 지나온 해를 헤아려 보니 대개 7백여 년이 된다. 거승居僧이 수호함이 얼마나 엄중하였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임술년(1922) 여름 -
012_0753_b_01L淺識之罪也哉。予亦膚識管見。鑚紙啜
012_0753_b_02L粕於曹溪山下。幸得斯文於綺山藏中。
012_0753_b_03L泣血奉讀。如攬曇蕚。嗟嘆湮沒。不揆
012_0753_b_04L傷手。叨抽病穎。敢綴科註。敬吿通識
012_0753_b_05L高見。伏冀無誅管見之小豹。有增筆削
012_0753_b_06L之大典。庶望吾師之心。與如來法身不
012_0753_b_07L滅。如是乎書。
012_0753_b_08L
012_0753_b_09L慈靜國師毁塔緣起壬戌五月午日
012_0753_b_10L海之東。湖之南。有山曰曹溪。山之下。
012_0753_b_11L溪之上。有寺曰松廣。自勝國伊來。以
012_0753_b_12L域中宏傑而稱者。何也。卽十六國師
012_0753_b_13L第次現世。宏剏寺院。傑拓匪徒。闢九
012_0753_b_14L山之障壁。結修禪之社會。均兩宗之定
012_0753_b_15L慧。立曹溪之宗旨。福國祐世。廣濟生
012_0753_b_16L靈之故歟。諸國師當時。各手搆別院。
012_0753_b_17L爲終天安禪之所。而就中寺之北。有庵
012_0753_b_18L曰慈靜。卽第七慈靜國師所搆。而面
012_0753_b_19L南背北。爲明正澄心之禪室也。師諱印
012_0753_b_20L一。未見碑銘。常恨實蹟之未詳。師之
012_0753_b_21L沒後。旣竪塔於庵之東十步許。與庵同
012_0753_b_22L爲向背。而塔高三層仞餘。其攻治極侈
012_0753_b_23L美。考其歷年。槩七百餘禩矣。居僧之
012_0753_b_24L守護。其何等嚴重也哉。不幸。壬戌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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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3_c_01L단양端陽(단오) 날에 어떤 도적이 탑을 부수고 땅을 파헤치는 소리가 암자에 울렸다. 거승들이 급히 가서 도적들을 붙잡으니, 즉 본면本面(승주) 진촌津村의 미치광이 박부권朴夫權이란 자였다. 즉시 이유를 조사하여 물으니 답하길, 여기를 파서 한양까지 뚫으려 했다고 한다. 어딘들 땅이 없어 하필 여기를 팠는가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엄하게 조사하고 수색하였는데 빈 합과 자기磁器 하나를 얻었을 뿐 사리는 없었다. 다시 주재소駐在所에 호소하니 순사를 파견하여 엄하게 조사를 하였으나 끝내 사리는 나오지 않았다. 혹시 땅을 파고 숨겨 두었나 해서 땅을 1자 남짓 파 보았더니 돌함(石凾)에 물이 가득 있었다. 물을 떠 내서 자세히 보니 영골靈骨이 쌀알처럼 작은 것들이 여러 개 있었고, 사리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아, 천신이 돕지 않으심인가. 지신이 보호하지 않음인가. 탑을 훼손하고 사리를 잃어버리고 명당明堂(묘)을 부순 것은 모두 운수런가. 어찌 망극함이 이와 같은가. 온 산의 치도緇徒(승려)들이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고 땅을 치며 애통해 했지만 도무지 어쩔 수 없었다. 도적의 죄를 논하자면 만 번 죽어도 갚기 어렵다. 그러나 병소兵所에 호소하여 해당 부서에 부쳤으니 법률에 따라 조치함이 마땅하다.자기磁器(자정국사 사리함)를 또 잃어버릴까 걱정되어서 다만 탑함塔凾에 영골만 봉안하여 다시 봉축封築하였다. 자기는 국사들의 원불願佛과 옛 물건을 보관(藏鎭)한 곳에 봉안하고서, 사진 기술원技術員을 불러서 사진을 촬영하여 배포함으로써 보배가 이처럼 드물고 기이함을 알게 하였다. 자기는 고려 시대 장인이 만든 것으로 높이는 1치 4푼, 넓이는 3치, 내원은 8치 3푼, 외원은 8치 7푼으로 화려한 학을 수놓았는데 털끝으로 무늬를 그렸다. 방원方圓과 상하가 어울렸는데 말로는 그 특이함을 다 표현할 수 없고 -
012_0753_c_01L夏。端陽之日。何等賊人。破塔掘地。聲
012_0753_c_02L動庵內。居僧卒發捉賊。卽本面津村狂
012_0753_c_03L漢朴夫權者也。卽査問其故。答云從此
012_0753_c_04L鑿通漢陽云。曰何處無地。何必從此掘
012_0753_c_05L通乎。餘無答言。嚴査推覔。但得空盒
012_0753_c_06L磁器一枚。而舍利空焉。更訴駐在所
012_0753_c_07L發巡使。嚴懲査問。終无舍利故。或疑
012_0753_c_08L地窖密藏。卽掘地尺餘。有石凾盈水。
012_0753_c_09L杓而詳之。乃有靈骨。小如粒者。多數
012_0753_c_10L存焉。舍利亦不見。嗚呼。天神不祐歟。
012_0753_c_11L地祗不護歟。毁塔失舍利破明堂。并是
012_0753_c_12L運數歟。何其罔極之若是耶。渾山緇徒
012_0753_c_13L呼天仰訴。撲地痛悼。無所遞及。莫可
012_0753_c_14L若何。論其賊罪。萬死無贖。然旣訴兵
012_0753_c_15L所。付之該所。當依律勘處可也。唯恐磁
012_0753_c_16L器更失。但奉安靈骨于塔凾。還以封築。
012_0753_c_17L磁器奉安于諸國師願佛及古物藏鎭之
012_0753_c_18L所。而仍聘寫眞技術員。撮眞分布。以
012_0753_c_19L知寶玩之若是稀奇也。磁器卽高麗匠
012_0753_c_20L所成。而高一寸四分廣三寸。內圓八寸
012_0753_c_21L三分。外圓八寸七分。繡以華鶴。紋以
012_0753_c_22L毫釐。盖以方圓上下相稱。口不能盡其
012_0753_c_23L此跋文。旣載於念佛要門科解篇(韓國佛敎全
012_0753_c_24L書第十二册四三四頁下段){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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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4_a_01L눈으로 그 오묘함을 관찰할 수 없다. 대도시 박물관이라도 이와 같이 좋고 진기한 보배를 많이 소장할 수는 없다.나는 또한 조계종의 말손으로 잠시 봉산鳳山에 머물다가 문득 망극한 기별을 듣고는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붓을 휘둘러 대략을 기록해서 대중에게 부친다. 바라건대 동지들이 여기에 이르러 잘 호념護念1005)하지 않는다면 도적놈과 함께 손을 잡고 고뇌(苦趣)로 들어감이 화살처럼 빠르리라.불기(釋元) 2949년 임술년(1922) 7월 7일에 게송 하나를 적는다.
國師塔碣在庵東 국사의 탑이 암자 동쪽에 있는데
千載今朝賊不忠 천 년 후 오늘날 불충한 도적이여
誰見魋傾夫子樹 뉘 알았으랴, 상퇴1006)가 공자의 나무 쓰러뜨릴 줄
但聞項掘始皇宮 항우1007)가 진시황 궁전 파헤침을 들었네
石凾端合靈珠在 석함은 합해지고 영묘한 구슬 남았는데
磁器緣何舍利空 자기는 무슨 연유로 사리가 비었나
依前封築還多感 이전처럼 봉축함에 오히려 느낌이 많으니
箇裡如叅老祖翁 그 속에서 노스님께 참배하는 듯하구나해남군 북평면 천태산 칠성암의 중건 상량문계해년(1923) 4월(海南郡北平面天台山七星庵重建上樑文癸亥四月)공경히 생각건대, 칠성(七曜)이 천제의 수레(帝車)를 움직이니1008) 찬란하게 하늘 문양(乾象)에 매달려 돌고, 육도六度(바라밀)를 불영佛䭘에 높이 드니 사람들의 도리 지킴에 분명하게 감동합니다. 이에 감실 등불을 켜고자 도모하니 이 우주에 두루 미치게 될 것입니다.이 칠성암을 보건대, 바다의 남쪽이요 (북평) 면의 북쪽으로 고운 마고麻姑1009)의 산을 이웃에 접하고, 구름의 서쪽이요 물의 동쪽으로 우두牛斗1010)의 성스런 호칭을 암자가 얻었습니다. 문헌을 고찰할 수 없으니 언제 창건되었는지 누가 알까, 앞선 인연을 고하지 않으니 중수한 인연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겹겹의 산들은 푸름을 머금어 천 년의 보방寶坊(절)을 비호하고, 깊숙한 시내의 찬 물방울은 아홉 굽이의 옥뢰玉籟(소리)를 멀리 당기네. 만다라曼陀羅1011) 나무의 꽃이 어여쁘게 피어 웃음 지으며 긴 봄날 향기로운 바람에 붉은 꽃 남았고, 마니주摩尼珠(보주)의 구름이 뭉실뭉실 말없이 영해瀛海(대해)의 교교한 달을 빛으로 머금도다. -
012_0754_a_01L殊異。目不能覽其巧妙。雖大都博物局
012_0754_a_02L如此玩好珍奇之寶。莫可多得也。余亦
012_0754_a_03L曹溪末孫。暫寓鳳山。忽耳罔極之寄。
012_0754_a_04L不覺痛惋。泣血揮穎。記其大略。付諸
012_0754_a_05L介衆。願諸同志。到此不善護念。與賊
012_0754_a_06L漢携手。同入苦趣。如箭射云尒。釋元
012_0754_a_07L二九四九壬戌七月七日。書一偈曰。
012_0754_a_08L國師塔碣在庵東。千載今朝賊不忠。
012_0754_a_09L誰見魋傾夫子樹。但聞項掘始皇宮。
012_0754_a_10L石凾端合靈珠在。磁器緣何舍利空。
012_0754_a_11L依前封築還多感。箇裡如叅老祖翁。
012_0754_a_12L
012_0754_a_13L海南郡北平面天台山七星庵重建
012_0754_a_14L上樑文癸亥四月
012_0754_a_15L恭唯七曜運於帝車。炳若乾象之懸幹。
012_0754_a_16L六度揭乎佛䭘。昭感人事之秉彝。爰謀
012_0754_a_17L粧點龕燈。迺攸彌綸宇宙。睠玆七星
012_0754_a_18L庵者。海之南。面之北。山接麻姑之芳
012_0754_a_19L隣。雲之西。水之東。庵得牛斗之聖號。
012_0754_a_20L未考文獻。誰知剏占之代年。不吿前因。
012_0754_a_21L莫悟修建之幾個。重巒含碧。秘護千年
012_0754_a_22L之寶坊。絕澗瀉寒。遠控九曲之玉籟。
012_0754_a_23L曼陀樹花。嬋妍解笑。紅餘長春之香風。
012_0754_a_24L摩尼珠雲。繽紛無言。光含瀛海之皎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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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4_b_01L하물며 다시 동혼銅渾1012)의 아름다운 거울로 천경天經을 징험하여 환히 빛나고, 옥두玉斗와 주형珠衡1013)은 지기地紀를 관할하여 은밀히 정하도다. 삼륜三輪1014)을 고르게 하고 칠정七政1015)을 가지런히 하니 위엄 있게 재앙을 소멸시키는 분이고, 만복을 이루고 온갖 마장을 물리치니 혹시 치성광熾盛光1016) 신성이겠지요. 그러나 겁파에 쓸리어 아직도 복을 비는 장소가 없고, 단신檀信(신도)이 귀의하나 목마르게 우러르는 예물(珪幣)이 없었습니다.‘붕명鵬溟 대덕’이란 분이 있어서, 바야흐로 구름 날개를 펼치니 곤이가 변하여 붕새가 되었고, 장차 단문檀門에 고하니 바다가 넘쳐서 대해가 될 것입니다. 보응을 깊이 진술하나니 한 번 소리침에 바람처럼 달리고, 창설하고 수리함에 온갖 구멍1017)의 풀들이 눕습니다. 이에 청련靑蓮의 옛터를 개척하니 구슬 먼지들이 흩어져 빛을 발하고, 백옥의 새 기초를 놓으니 보배로운 빛이 발하고 상서로움을 드날립니다. 동쪽 끝에서 옥간玉簡1018)을 자르니 목성(木宿)이 정채를 띠고, 상방에 범자梵字를 날리니 장성匠星이 일을 합니다.1019) 사대부四大夫1020)를 떨어져 세우니 중려仲呂(4월) 10일(澣初)을 이미 선택했고, 상장군上將軍1021)이 날아오르니 다시 중건重乾(4월) 보름 후를 기약했습니다. 바람을 날리며 도끼를 움직이니 일꾼의 기량이 높디높고, 땀방울 흘려 옷을 적시니 공수工倕1022)의 감독이 부지런합니다.가타伽陀(게偈)의 노래가 필요한데 어찌 아랑兒郞1023)의 가사가 없겠습니까.
東 동
剌桐華映木蘭紅 엄나무 꽃에 붉은 모란이 비치니
試觀月出峯頭月 월출봉 위 달을 바라보라
一穗天香襲寶宮 한 줄기 천향이 보궁(절)에 스미리
西 서
萬里鏡湖天欲齊 만 리 거울 호수에 하늘도 나란하니
如今安得平和術 이제 어찌하면 평화의 도술 얻어서
水陸同歸一馬蹄 물과 바다 함께 마제馬蹄1024)로 돌아갈까
南 남
萬仞頭崙眼底叅 만 길 두륜산이 눈 밑에 있으니
那向漢拏尋別地 어찌 한라산이나 다른 곳을 찾으랴
水雲千載拜瞿曇 구름 바다에 천 년 동안 석불에 참배하네
北 북
無極其形成太極 무극의 그 형체가 태극을 이루어
滿天風雨尙非晴 하늘 가득한 풍우가 아직도 개지 않았네
何日群生多慶福 어느 날에나 중생에게 복이 많을까
上 상
紫紺宮中星宿朗 자감궁紫紺宮1025)에 별들이 찬란하여
終日乾乾不息行 종일토록 끊임없이 쉬지 않으니
加行一度尤无像 한층 운행을 더해 더욱 형상 없으라
下 하
滿城佛子談般若 온 성의 불자들이 반야를 말하며
遲日茶銚生紫烟 지일遲日1026)에 다기에서 연기 피어오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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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4_b_01L況復銅渾瑶鏡。可徵天經而炳瑩。玉斗
012_0754_b_02L珠衡。常管地紀而㝠隲。平三輪。齊七
012_0754_b_03L政。儼然消災障之尊。成萬福。攘千魔。
012_0754_b_04L倘是熾盛光之聖。然而刼波所泐。尙闕
012_0754_b_05L祝釐之壇場。檀信歸依。原無渴仰之珪
012_0754_b_06L幣。曰有鵬溟大德。方展雲翼。鯤已化而
012_0754_b_07L爲鵬。將吿檀門。海欲溢而成溟。深陳
012_0754_b_08L報應。一叫而風馳。剏營建修。萬竅之
012_0754_b_09L草偃。於是乎。拓靑蓮之舊址。珠塵散
012_0754_b_10L而放光。銓白玉之新礎。寶熖發而颺瑞。
012_0754_b_11L折玉簡於東極。木宿動精。飛梵字於上
012_0754_b_12L方。匠星赴役。四大夫之離立。旣差仲
012_0754_b_13L呂之澣初。上將軍之飛騰。更占重乾之
012_0754_b_14L望後。風生運斧。匠氏之伎倆嵬嵬。汗
012_0754_b_15L滴作衣。公 [126] 倕之蕫督役役。旣要伽陀之
012_0754_b_16L頌。盍無兒郞之辭。東。剌桐華映木蘭
012_0754_b_17L紅。試觀月出峯頭月。一穗天香襲寶宮。
012_0754_b_18L西。萬里鏡湖天欲齊。如今安得平和術。
012_0754_b_19L水陸同歸一馬蹄。南。萬仞頭崙眼底叅。
012_0754_b_20L那向漢拏尋別地。水雲千載拜瞿曇。北。
012_0754_b_21L無極其形成太極。滿天風雨尙非晴。何
012_0754_b_22L日群生多慶福。上。紫紺宮中星宿朗。
012_0754_b_23L終日乾乾不息行。加行一度尤无像。下。
012_0754_b_24L滿城佛子談般若。遲日茶銚生紫烟。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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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4_c_01L更招黃鶴奏鳴珂 다시 황학을 불러 명가鳴珂1027)를 연주하리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 경사스런 별빛이 임하며 삼원三元(일월성)이 궤도를 따라, 불법의 구름(曇雲)이 비추어 육기六氣1028)가 제대로 펼쳐지며, 아사리阿闍梨(스승)의 단 앞에 옥게玉偈를 부르니 패엽梖葉(불경)이 길이 푸르고, 대단월大檀越의 집에는 온갖 재앙이 흩어져 만복이 몰려드소서.4월 15일 상량.보성군 벌교 포구의 송명교당 상량문5월 2일 상량(寶城郡筏橋浦松明校堂上樑文五月二日己未上梁)보건대, 불일佛日이 동쪽에서 비추어 요일堯日1029)과 함께 밝음을 다투고, 혜풍慧風이 서쪽에서 불어 순풍舜風1030)과 함께 소리를 다툽니다. 탕망湯網1031)의 삼면을 풀고 우문禹門1032)의 9층을 쪼개며, 도야桃野1033)에 바람이 소리 내어 울리니 다른 풍속의 노래에 응하며, 접수鰈水1034)의 호수에 파도가 이니 이역異域의 문명에 나아갑니다. 누가 혁명의 장부가 아니리오, 모두 개화開和 세계(의 장부)입니다.우리 송명교당은 원래 처음부터 불교를 포교하는 단체로 요컨대 결국엔 민족 교육의 장소입니다. (이곳은) 낙주樂州1035)의 시문市門으로서 보성의 항구에 속합니다. 부사浮槎1036) 옛 군郡을 없애니 한나라 사신의 문물이 적막하고, 돌 뗏목(石筏)1037)을 가설하여 다리를 놓으니 진나라 동자들의 거마가 크게 울렸습니다. 온 천지에 노래와 춤이 가득하니 풍조風潮에 따른 추이가 어찌 없겠습니까, 전 세계의 풍류에 노래(歌誦)를 화합하여 부르길 도모합니다.터전은 서씨徐氏의 옥토를 점하니 수달다須達陀가 황금을 던져 동산 구입한 것과 같고, 재목은 조계산(曺山)의 삼림을 나르니 기타 태자祗陀太子가 발원하여 나무 보시한 것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진나라 채찍1038)을 빌려 감독하니 삼장군과 오대부1039)가 머리를 들어 스스로 이르고, 하나라 수레를 몰아 운반하니 긴 서까래와 짧은 평고대들이 꼬리를 흔들며 모여듭니다. 장성匠星을 뜰 아래로 부르니 목성이 빛을 발하고, 기초(礎山)를 기둥 사이에 정하니 -
012_0754_c_01L招黃鶴奏鳴珂。伏願上樑之後。慶星光
012_0754_c_02L臨。三元順軌。曇雲影照。六氣敍綸。阿
012_0754_c_03L闍梨壇前。玉偈誦而梖葉長翠。大檀越
012_0754_c_04L家裡。千災散而萬福鼎臻。四月十五日
012_0754_c_05L上梁。
012_0754_c_06L
012_0754_c_07L寶城郡筏橋浦松明校堂上樑文五
012_0754_c_08L月二日己未上梁
012_0754_c_09L觀夫佛日東照。并堯日而爭明。慧風西
012_0754_c_10L巡。與舜風而競吼。解湯網之三面。擘
012_0754_c_11L禹門之九層。桃野風鳴響。應殊俗之歌
012_0754_c_12L頌。鰈水湖動波。進異域之文明。誰非
012_0754_c_13L革命丈夫。盡是開和世界。唯我松明校
012_0754_c_14L堂。原始佛宗布敎之社。要終民族養育
012_0754_c_15L之堂。以樂州之市門。屬寶城之巷口。
012_0754_c_16L廢浮槎之舊郡。漢使之文物寥寥。架石
012_0754_c_17L筏而爲橋。秦童之車馬▼(車+急)▼(車+急)。渾天地歌
012_0754_c_18L舞。盍無推移之風潮。盡世界風流。爰
012_0754_c_19L謀唱和之歌誦。基銓徐氏之沃野。便同
012_0754_c_20L須達陀擲金買園。材輸曺山之森林。何
012_0754_c_21L異祗太子發願施樹。借秦鞭而蕫役。三
012_0754_c_22L將軍五大夫。矯首而自臻。驅夏車而運
012_0754_c_23L搬。長椽吏短梠徒。搖尾而爭聚。招匠
012_0754_c_24L星於庭下。木宿以之放光。定礎山於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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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5_a_01L황금 줄로 먹을 찍어 표시합니다. 옥루玉樓에 해가 비치니 노을 용마루가 연기와 먼지의 세계를 벗어나고, 보개寶盖(닫집)가 허공에 걸리니 구름 평고대가 색과 모양의 세계를 초월합니다. 귀부龜趺를 옥섬돌에 놓으니 하늘 꽃이 무수히 날리고 안주鴈柱1040)를 보배 섬돌에 나열하니 바다구름이 은은히 비칩니다. 서로 맞물려 올리니 순임금이 교당을 창시한 듯하고, 장인(倕範)이 가다듬으니 완연히 범왕梵王1041)이 정사精舍에 다시 모인 듯합니다. 비록 염부주閻浮洲(인간 세상) 접역鰈域(조선)에 있어도 사가라沙迦羅 용궁에 부끄럽지 않습니다.위로 봉방蜂房(승방)을 여니 추노鄒魯1042)의 군자들이 편안해하고, 가운데 안탑鴈塔1043)을 나열하니 나라의 학생들(諸生)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정원 큰 나무의 그늘이 머니 환퇴桓魋1044)의 도끼가 어찌 관계되겠습니까. 들판엔 면체綿蕝1045)의 예가 가까우니 매번 노나라 성읍의 송현誦絃1046)을 듣습니다. 노을 봉우리에 기댄다면 동화사(桐寺) 금암金庵의 종과 경쇠 소리를 들을 것이요, 구름 시내를 굽어본다면 신기루와 용궁(蛟宮)의 건성乾城1047)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철산鐵山1048)이 떠 오니 여섯 자라가 삼신섬1049)을 짊어지고, 은포銀浦1050)를 둘러 가니 쌍무지개가 온갖 하천을 삼킵니다. 아침 바다에 구름이 자욱하니 천 길 규룡의 등에 올라탄 듯하고, 저녁 시장에 안개가 자욱하니 만국의 화천貨泉1051)을 서로 바꿉니다.그 취지를 보자면, 범자梵字(불경)와 영문英文ㆍ체조의 과정이니 불선佛仙의 도인導引1052) 하는 화학化學1053)을 모방하고, 산학算學과 지리ㆍ산술의 규칙이니 황노黃老의 형명刑名1054)이 남긴 줄기를 추출함입니다. 이미 애써 두루 도모하였으니 이에 아랑兒郞의 노래1055)를 엮습니다. 때는 중구절重九節이 아니니 왕王 학사學士1056)의 사운시四韻詩를 기다리지 않고, 계절이 단오(端陽)이니 마땅히 굴屈 대부大夫1057)의 육위부六偉賦1058)를 불러야 합니다.
東 동
雙虹飛入梵王宮 쌍무지개가 범왕梵王의 궁전으로 날아들고
日輪輾出扶桑路 일륜日輪은 부상扶桑(동해)의 길로 굴러 나오니
五彩沸騰天地紅 다섯 색채가 천지를 붉게 물들이며 끓어오르네
南 남
鐵山如秀帶蒼嵐 철산이 수려하게 푸른 안개를 띠었는데
祝融何事貪珠玉 축융祝融1059)은 무슨 일로 구슬을 탐하나
滄海無潮碧似藍 창해에 파도 없어 쪽처럼 파랗도다
西 서
金華山寂鳥空啼 금화산은 적막한데 새가 공연히 울고
曦仲轉輪且莫速 희중曦仲1060)의 바퀴 굴림이 또한 빠르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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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5_a_01L間。金繩爲之點墨。玉樓曜日。霞棟出
012_0755_a_02L煙塵之寰。寶盖懸空。雲梠超色相之界。
012_0755_a_03L龜趺錯於玉砌。天花繽紛。鴈柱列於
012_0755_a_04L瑶堦。海雲隱映。杈枒交揭。疑然舜帝
012_0755_a_05L之剏始校堂。倕範侈磨。完是梵王之
012_0755_a_06L重會精舍。雖在閻浮洲鰈域。不愧沙迦
012_0755_a_07L羅龍宮。上啓蜂房。可安鄒魯之君子。
012_0755_a_08L中列鴈榻 [127] 。能容郡國之諸生。庭遠大樹
012_0755_a_09L之陰。何關桓魋之荷斧。野近綿蕝之禮。
012_0755_a_10L每聞魯城之誦絃。若以却倚霞岑。聊
012_0755_a_11L聞桐寺金庵之鍾磬。俯壓雲澗。多見蜃
012_0755_a_12L樓蛟宮之乾城。鐵山浮來。六鰲負三神
012_0755_a_13L之島。銀浦匝去。雙虹呑百川之河。朝
012_0755_a_14L海雲擁。可跨千尋之虬背。夕市霧集。
012_0755_a_15L交易萬國之貨泉。其趣則梵字英文。體
012_0755_a_16L操科程。模倣於佛仙導引之化學。算學
012_0755_a_17L地理。數術䂓則。抽出於黃老刑名之餘
012_0755_a_18L綸。旣周拮据之圖。載綴兒郞之頌。時
012_0755_a_19L非重九。莫待王學士之四韻詩。節啓端
012_0755_a_20L陽。宜唱屈大夫之六偉賦。東。雙虹飛
012_0755_a_21L入梵王宮。日輪輾出扶桑路。五彩沸騰
012_0755_a_22L天地紅。南。鐵山如秀帶蒼嵐。祝融何
012_0755_a_23L事貪珠玉。滄海無潮碧似藍。西。金華
012_0755_a_24L山寂鳥空啼。曦仲轉輪且莫速。天鴉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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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5_b_01L天鴉唱罷夕陽低 고니(天鴉)가 노래 마치니 석양이 낮게 깔리네
北 북
望美天涯心欲極 망미산1061) 하늘 가에 마음은 끝없이 가고
大野茫茫地盡頭 너른 들 아득하여 땅은 끝을 다하는데
古城雉堞皆荒落 옛 성의 성가퀴들 모두 황망히 스러졌네
上 상
紫微宮裏開雲幌 자미궁 안에 구름 휘장을 열치는데
玉帝尙今夢未惺 옥황상제는 아직도 꿈이 깨지 않으니
是知乾道唯元象 건도乾道는 원상元象임을 알겠네1062)
下 하
電燭煌煌不見夜 전등불이 휘황하여 어둠을 보지 못하고
鼛鼓長鳴六偉終 북을 오래도록 울려 육위송을 끝내니
萬民咸樂齊聲賀 만민이 함께 즐거이 한 목소리로 축하하네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사계절에 하늘 음악이 육률六律1063)의 훈지塤箎1064)를 조화롭게 하고 상하사방의 신명이 사민四民의 사업을 보호하소서. 우담바라가 기수祗樹1065)에 다시 피어나니 사자좌獅子座 위에 남종과 북종의 높은 스승들이 자재自在하고, 바다 구름이 송문松門(송명교당)에 다시 모이니 용 같은 무리(龍兒徒)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큰 철학을 많이 산출하소서.곡성군 봉두산 동리사 능파각의 중수 상량문5월 18일(谷城郡鳳頭山桐裡寺凌波閣重修樑文五月十八日)보건대, 곡성군 남쪽으로 1유순由旬1066) 남짓에 ‘봉두산鳳頭山’이 있고, 산의 서남쪽(坤) 10리 남짓에 ‘동리사桐裡寺(태안사)’가 있습니다. 밖을 감싸고 안으로 중첩되니 오동잎이 층층이 겹쳐진 듯하고, 왼쪽으로 비밀스럽고 오른쪽으로 감추니 봉황이 잠자코 엎드린 듯합니다.1067) 혜철국사慧徹國師1068)께서 창건하시고 동파桐坡 스님이 중수하셨습니다.그 중에 ‘능파각凌波閣’이란 것은 어떤 선인이 창건하셨는지 기록을 보지 못하였고 다만 원선遠禪이 중수하였다는 구절만 있습니다. 이어서 건륭乾隆 31년 병술년(1766)에 태윤太允 대사(士)가 정교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가경嘉慶 14년 기사년(1809)에 영혜永惠 옹翁이 창의倡義1069)하셨습니다. 함풍咸豊 11년 신유년(1861)에 일노日老 선사가 다섯 번째 중창하셨고, 대정大正 12년 계해년(1923)에 영월映月 주지께서 여섯 번째 중창하셨습니다. 지금까지 20세기도 채우지 못하였는데 5, 6차례 중수를 겪은 것입니다. 훗날에 지금을 보면 생각건대 태안사의 불후하고 고상한 자취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요, -
012_0755_b_01L罷夕陽低。北。望美天涯心欲極。大野
012_0755_b_02L茫茫地盡頭。古城雉堞皆荒落。上。紫
012_0755_b_03L微宮裏開雲幌。玉帝尙今夢未惺。是知
012_0755_b_04L乾道唯元象。下。電燭煌煌不見夜。鼛
012_0755_b_05L鼓長鳴六偉終。萬民咸樂齊聲賀。伏願
012_0755_b_06L上樑之後。四時天樂。調六律之塤箎。
012_0755_b_07L六方神祗。護四民之事業。曇華重開於
012_0755_b_08L祗樹。獅子座上。自在南北宗之高等師。
012_0755_b_09L海雲再會於松門。龍兒徒中。多產東西
012_0755_b_10L洋之大哲學云爾。
012_0755_b_11L
012_0755_b_12L谷城郡鳳頭山桐裡寺凌波閣重修
012_0755_b_13L樑文五月十八日
012_0755_b_14L觀夫郡之南由旬許。有山曰鳳頭。山之
012_0755_b_15L坤十里餘。有寺曰桐裡。外抱而內疊。
012_0755_b_16L如桐葉之疊層。左秘而右藏。似鳳子之
012_0755_b_17L藏伏。以徹國老之剏點。及桐坡師之重
012_0755_b_18L修。就中凌波閣者。不見先人剏始之文。
012_0755_b_19L但有遠禪重修之句。繼以乾隆卅一丙
012_0755_b_20L戌歲太允士之巧能。嘉慶十四己巳年
012_0755_b_21L永惠翁之倡義。咸豊十一辛酉役。幸日
012_0755_b_22L老禪五重。大正十二癸亥修。映月住持
012_0755_b_23L六剏。迄今未滿二十世紀。以經五六重
012_0755_b_24L修。後之視今。想不孤泰安寺不朽之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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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5_c_01L지금으로서 옛날을 보자면 아직도 능파각의 뛰어난 경광을 논할 만합니다. 용과 범이 머리를 섞으니 교룡을 가설하여 복종시키는 듯하고,1070) 온갖 하천이 다투어 모이니 병 입구를 기울이듯 세차게 흐릅니다. 비 없이 치는 맑은 우레에 물을 건너는 무지개가 꿈틀대고, 바람 없이 나는 상쾌한 소리에 은하수 걸터앉은 비각飛閣이 날아오를 듯합니다. 그 외 사계절의 눈과 달, 바람과 꽃들은 어찌 삼산三山의 장생長生1071) 일월에 그치리오. 삼세(三際)의 공덕을 논했으니 육위六偉의 짧은 노래를 불러야 마땅합니다.
東 동
一路上房通 한 줄기 길이 상방上房1072)으로 통하니
竹樹淡蒼裡 대나무 숲 맑고 푸른 가운데
鳳兒捿碧桐 봉황이 푸른 오동에 머문다네
南 남
蒼龍頭若蠶 창룡의 머리가 누에 같아
從此如高響 여기서 높이 소리 내면
能招鳳瑞庵 봉서암1073)을 부를 수 있겠네
西 서
雙峽與天齊 두 골짜기가 하늘과 나란하여
九曲如相渡 아홉 굽이를 건널 듯이
桐溪見鳳溪 동계桐溪에서 봉계鳳溪를 보노라
北 북
鷹峙開長谷 솔치(鷹峙)에 긴 골짜기 열려
欲見廣慈師 광자廣慈1074) 스님을 보려고
行尋碑碣石 비석을 찾아가네
上 상
何時見玉皇 언제나 옥황상제를 보려나
天津閣道邊 은하수(天津) 각도閣道1075) 옆에서
牛斗逢貪狼 우두牛斗1076)가 탐랑貪狼1077)을 만나네
下 하
迅波忘晝夜 빠른 파도는 밤낮을 잊고
蟠石欲相穿 서린 바위를 뚫고자
激湍壺口瀉 거센 물살이 병을 기울이듯 쏟아지네
엎드려 바라건대, 만겁의 티끌 재앙을 물로 씻어 버리고 삼청궁1078)의 선객仙客으로 교량에 오르소서. 용과 범이 싸움을 멈추고 삼보三寶의 용 후손을 항상 보호하고, 봉황 산등성이에 잉태하사 겹눈동자1079)의 봉황 후손을 길이 보양하소서.태안사 대지전1080)을 새로 창건하는 상량문6월 22일(泰安寺大持殿新剏建上樑文六月二十二日)살펴보건대, 석제釋帝1081)께서 강림하시어 기관騎官 위치의 거사車肆1082)를 처음 진설하시고 각황覺皇(부처)께서 다스리심에 봉향각奉香閣의 천주天厨1083)를 먼저 차지하셨습니다. 천시天床와 시루市樓1084)의 기미(機)가 수레에 실을 정도라고 논하며, 전단향과 침향(沈水)1085) 물품이 말(斗)로 헤아릴 정도라 합니다. 이 모두 기관騎官의 주당周堂1086)이니 봉향각의 관건이 아님이 없습니다.이 전각은 원래 높여서 ‘향로전’이라 하고 -
012_0755_c_01L蹟。今之視昔。尙可論凌波閣勝賞之景
012_0755_c_02L光。龍虎交頭。架蛟龍而禁伏。百川爭
012_0755_c_03L聚。傾壺口而激湍。不雨晴雷。渡水之
012_0755_c_04L虹霓蝘蜿。無風爽籟。跨漢之飛閣飄然。
012_0755_c_05L其餘四時之雪月風花。何止三山之長
012_0755_c_06L生日月。旣論三際之功德。宜唱六偉之
012_0755_c_07L短詞。東。一路上房通。竹樹淡蒼裡。鳳
012_0755_c_08L兒捿碧桐。南。蒼龍頭若蠶。從此如高
012_0755_c_09L響。能招鳳瑞庵。西。雙峽與天齊。九曲
012_0755_c_10L如相渡。桐溪見鳳溪。北。鷹峙開長谷。
012_0755_c_11L欲見廣慈師。行尋碑碣石。上。何時見
012_0755_c_12L玉皇。天津閣道邊。牛斗逢貪狼。下。迅
012_0755_c_13L波忘晝夜。蟠石欲相穿。激湍壺口瀉。
012_0755_c_14L伏願水滌萬刼之塵殃。橋登三淸之仙
012_0755_c_15L客。龍虎停鬪。常護三寶之龍孫。鳳崗
012_0755_c_16L孕胎。長養雙瞳之鳳子。
012_0755_c_17L
012_0755_c_18L泰安寺大持殿新剏建上樑文六月
012_0755_c_19L二十二日
012_0755_c_20L原夫。釋帝降臨。初陳騎官位之車肆。覺
012_0755_c_21L皇御宇。先占奉香閣之天厨。天床市樓
012_0755_c_22L之機。動論車載。栴檀沈水之品。景抱
012_0755_c_23L斗量。盡是騎官之周堂。莫非奉香之
012_0755_c_24L關犍。唯是殿者。原是香爐殿之尊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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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6_a_01L혹은 일반적으로 ‘대지전’이라 칭합니다. 사찰을 창건할 초기에 이 전각이 없을 수 없고, 부처님을 받드는 날에 또한 이 건물이 어찌 없을 수 있습니까. 그 중대하고 존귀함을 논하자면 대웅전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그 연혁을 돌아보면 당나라 원화元和 갑오년신라 헌종1087) 6년(814)에 혜철 국사慧徹國師가 비로소 창건하셨고, 844년에 이르러 명明 주지가 이어서 중수하셨고, 청나라 순치順治 정유년조선 효종 8년(1657)에 신信 화주化主가 중창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265년(1923)에 이르러 영월映月 주지가 일신하여 창건하셨습니다.설선당說禪堂 위에 법중法衆(승려)이 즐비하니 범인과 성현이 서로 참례함에 상응하고, 국사전 앞에 사리闍梨(고승)들이 융성하니 용과 뱀들이 뒤섞여 있는 듯합니다. 업경대業鏡臺 아래 염라왕이 안건을 결정한다면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대복전大福田에서 성중聖衆이 진리에 응하니 모습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람의 규모가 아님이 없으니 총림의 법도(軌模)라고 누가 말하지 않겠습니까.그러나 겁파劫波가 찾아와서 연기와 먼지로 더럽혀짐을 탄식하게 되고, 바람과 서리가 몰아침에 기둥과 들보가 상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이에 거듭 새롭게 하기를 도모하여 남풍藍風1088)에 기와를 날리고, 복구하기를 도모하여 겁우刼雨에 구슬의 먼지를 씻어 냅니다. 터전에 옛 규모를 헤아려 구름바위(雲石)를 잘라 주춧돌로 놓고, 장인이 새 재목을 다듬어 바람도끼(風斧)를 휘둘러 치수대로 깎아 냅니다. 밤을 새워 솟아나니 제석천이 장대를 세워 놓은 듯하고, 맑은 아침에 날아갈 듯하니1089) 원래 용궁(虬宮)에서 사찰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천풍天風1090)의 저녁에 시작하여 천지天地1091)의 볕(陽)에 복궤覆簣1092)합니다. 넓고 넓은 신의 공덕이 아니라면 참으로 밝고 밝은 귀부鬼符1093)일 것입니다. 부종鳧鍾1094)이 고래처럼 울리니 포뢰蒲牢1095)의 입술에 벼락 치고, 하고河鼓1096)가 천둥처럼 울리니 천부天桴1097)의 소매에 번개가 번쩍입니다. 백련사(蓮社)1098)의 바람을 이미 맺었으니, 아랑兒郞의 노래를 도우려고 향화香火의 붓을 꺼내 가타伽陀(게송)의 노래를 엮습니다.
東 동
一竿紅日掛蒼桐 한 발 솟은 붉은 해가 푸른 오동나무에 걸려
諸君回顧閻羅國 제군이 염라국을 돌아보게 되니
果果因因本不空 결과와 인연들은 본래 공하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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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6_a_01L或稱大持殿之常名。剏寺之初。不可無
012_0756_a_02L此殿。奉佛之日。亦盍闕是堂。若論其重
012_0756_a_03L且尊。比肩乎大雄殿。稽其沿革。則唐
012_0756_a_04L元和甲午。新羅憲
宗六年徹國師始剏。至於八百
012_0756_a_05L四十四年。明住持爲先次重修。淸順治
012_0756_a_06L丁酉。朝鮮孝
宗八年信化主剏修。迄今二百六十
012_0756_a_07L五年。映月住持。卽一新剏建。說禪堂
012_0756_a_08L上。法衆濟濟。想應凡聖交叅。國師殿
012_0756_a_09L前。闍梨隆隆。怳然龍蛇混雜。若以業
012_0756_a_10L鏡臺下。閻王結案。毫釐不差。大福田
012_0756_a_11L中。聖衆應眞。形影莫忒。此莫非伽藍
012_0756_a_12L䂓度。孰不曰叢林軌模。然而刼波相尋。
012_0756_a_13L堪嗟烟塵之漫漶。風霜交擊。奈若棟樑
012_0756_a_14L之朽傷。爰謀重新。飛瓦礫於藍風。載
012_0756_a_15L圖復舊。滌珠塵於刼雨。基銓舊度。斫
012_0756_a_16L雲石而安磌。匠礱新材。運風斧而削墨。
012_0756_a_17L罔夜湧出。倘是釋天之幻化竪竿。淸朝
012_0756_a_18L彙 [128] 飛。原非虬宮之造物建刹。濫觴於天
012_0756_a_19L風之夕。覆簣於天地之陽。若非神功之
012_0756_a_20L浩浩。寔是鬼符之昭昭。鳧鍾鯨吼。霹
012_0756_a_21L靂蒲牢之唇。河鼓雷轟。電閃天桴之袖。
012_0756_a_22L旣結蓮社之願。迺助兒郞之詞。敢抽香
012_0756_a_23L火之毫。載綴伽陀之頌。東。一竿紅日
012_0756_a_24L掛蒼桐。諸君回顧閻羅國。果果因因本
-
012_0756_b_01L南 남
中祖峯前聖祈庵 중조봉 앞의 성기암聖祈庵1099)
初地若知彈指境 처음에 만약 손가락 튕기는1100) 경지 안다면
奈何詢友百城叅 어찌 1백 성읍의 친구들을 찾아가랴
西 서
鵝殿崔嵬羅殿低 높다란 아전鵝殿(법당)과 낮은 나전羅殿1101)
從此一線通彼岸 이로부터 한 줄기가 피안으로 통하니
蓮花故國路何迷 연꽃 나라로 가는 길을 어이 헤매랴
北 북
國師殿上彌陀國 국사전 위에 미타국彌陀國이라
轉身一陟坐鳳頭 몸을 돌려 한 번에 봉두산에 올라앉으니
不勞擧手摩天極 힘들이지 않고 손을 들어 하늘(天極) 만지노라
上 상
終日乾乾不息强 종일토록 씩씩하게 쉬지 않고 강건하게
天花亂落吉星臨 하늘 꽃이 어지러이 떨어지고 길성이 빛나며
帝網重重雲錦帳 제망帝網1102)이 구름 같은 비단 휘장에 겹겹이로다
下 하
罔明入定觀般若 망명罔明1103)이 선정에 들어 반야를 관찰하니
風輪攪動大香湖 풍륜風輪이 커다란 향호香湖를 어지럽혀
無數魚龍皆變化 무수한 어룡들이 모두 변화하도다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후에 칠중七衆1104)이 만세루萬歲樓 위에 모여들고 팔부八部1105)가 일주문一柱門 앞을 에워싸며, 향적香積1106) 주방에서 향기로운 음식을 차려 보리의 오묘한 과보를 증명하고, 범종루 아래 칼 숲을 기울여 연꽃 고향을 드러내소서.조계산 송광사 칠성각을 새로 지으려 터를 닦는 축문사천 (군수) 김학모가 창건함.(曹溪山松廣寺七星閣新建開基祝金泗川學模剏建)계해년(1923) 8월 20일 병오에 김학모金學模가
산신 국사局司1107)와 토지 신명께 밝게 아뢰나니
노여워 마시고 근심하지 마시고, 신령하고 진실하사
금 같은 땅의 터를 닦으려고, 옥 같은 밭을 살펴서
정밀하게 세 기둥을 세워, 칠성(七元)을 봉안하려고
먼저 옥 같은 쌀을 찌고, 거듭 운문雲門1108)을 자르니
용안龍眼과 천근天根이 수북합니다.1109)
이에 울창주를 바치고, 이름난 향을 사르며
삼가 맑은 술을 드리노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기둥을 세우는 축문9월 9일(立柱祝九月九日)화엄 바다 같은 모임에, 신령한 무리들이
부처와 법을 호위하여, -
012_0756_b_01L不空。南。中祖峯前聖祈庵。初地若知
012_0756_b_02L彈指境。奈何詢友百城叅。西。鵝殿崔
012_0756_b_03L嵬羅殿低。從此一線通彼岸。蓮花故國
012_0756_b_04L路何迷。北。國師殿上彌陀國。轉身一
012_0756_b_05L陟坐鳳頭。不勞擧手摩天極。上。終日
012_0756_b_06L乾乾不息强。天花亂落吉星臨。帝網重
012_0756_b_07L重雲錦帳。下。罔明入定觀般若。風輪
012_0756_b_08L攪動大香湖。無數魚龍皆變化。伏願上
012_0756_b_09L梁之後。七衆駢闐於萬歲樓上。八部擁
012_0756_b_10L衛於一柱門前。香積厨中。饌香飯而證
012_0756_b_11L菩提之妙果。梵鍾樓下。傾釰樹而現蓮
012_0756_b_12L花之故鄕。
012_0756_b_13L
012_0756_b_14L曹溪山松廣寺七星閣新建開基祝
012_0756_b_15L金泗川學
模剏建
012_0756_b_16L癸亥八月二十日丙午。金學模敢昭吿
012_0756_b_17L于山神局司。土祗靈神。勿嗔勿恤。唯
012_0756_b_18L靈唯眞。爰開金地。迺銓玉田。精建三
012_0756_b_19L棟。奉安七元。先蒸玉粒。再割雲門。鬪
012_0756_b_20L鬪龍眼。釘釘天根。玆傾薦鬯。載爇名
012_0756_b_21L香。謹以淸酌。伏唯尙亭。
012_0756_b_22L
012_0756_b_23L立柱祝九月九日
012_0756_b_24L華嚴海會。靈祗等衆。護佛護法。旣嚴
-
012_0756_c_01L엄하고 중하니
모래와 자갈을 치우고, 땅을 쓸고 북돋아
옥을 잘라 주춧돌 놓고, 계수 잘라 기둥을 세우니
토공土公과 사록司祿1110)은, 장성匠星으로 언덕에 나열하여
태산처럼 안정되고, 금성金城처럼 견고하리니
사보四輔1111)가 떨어져 서고, 삼태三台1112)가 호종하여
방죽에 주막 깃발 나열하고, 주막에 하늘 술동이 늘어서며
바다 해산물을 지지고, 하늘 곳간 음식을 잘라 내니
음식물이 비록 소박하지만, 정성에 감응하시고
대략 다과를 진설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칠성각 상량문10월 5일에 올리다.(七星閣上梁文十月初五日上)우러러 보건대, 자미원紫微垣1113) 안에 어궁御宮과 제좌帝座1114)가 엄중하고, 적도륜赤道輪에 칠요七曜와 삼태三台가 빛납니다. 천선天船과 각도閣道1115)는 이필二弼과 문성文星1116)의 양문陽門1117)이요, 천주天厨와 내계內階1118)는 사보四輔와 여사女史1119)의 부로附路1120)입니다. 전사傳舍와 구진句陳1121)의 방향이 자재하고, 화개華盖와 음덕陰德1122)의 지위가 여전합니다.이 산은 지역상 청구靑邱의 남쪽에 접해 있고 별자리로는 각角ㆍ항亢1123)의 구역(紀)입니다. 천전天田1124)의 분야로서는 옛 승평昇平(순천)의 군문軍門1125)이요, 지축地軸의 구역으로는 지금 순천의 토사土司1126)입니다. 그 가운데 항지亢池1127)의 갈래가 아득한데 근원은 대조계산 남쪽에서 발원하였고, 고루庫樓1128)의 기둥이 높아 문은 옛 길상사1129)의 명칭(榜)으로 통합니다. 태미원(太微)1130) 9경卿의 길성이 내리 비추고, 주정周鼎1131) 5후侯의 섭제攝提1132)가 균형을 잡습니다. 16조사의 해탈도는 팔곡八穀1133)과 팔미八微의 정령이며, 육감정六鑑亭의 우화각(羽化虹)1134)은 천진天津1135)과 천문天門의 교각입니다. 어찌 다만 수명과 부귀를 연장하는 첩경일 뿐이겠습니까, 실로 자손을 구하는 복전입니다.이에 대단신大檀信(시주)은 말하자면 금천씨金天氏1136)의 선류璿流1137)로서 삼한의 갑주甲胄1138)로 일컬어집니다. 대대로 승평의 옥부玉府1139)에 거하여 특별히 오색구름의 정관丁冠1140)을 썼습니다. 관로는 형통하여 사주泗州(사천)의 직함1141)을 몸에 지니고, 바다처럼 복이 넓어 집안에 산과 호수처럼 금은을 모았습니다. -
012_0756_c_01L旣重。沙礫廣拓。淨土埵封。删玉安礎。
012_0756_c_02L折桂竪棟。土公司祿。匠星列陵。安夫
012_0756_c_03L岱嶺。固彼金城。四輔離立。三台護從。
012_0756_c_04L羅堰酒旗。列肆天樽。敢煎海錯。載切
012_0756_c_05L天囷。物雖菲薄。䖍誠感應。略陳茶菓。
012_0756_c_06L伏以尙饗。
012_0756_c_07L
012_0756_c_08L七星閣上梁文十月初五日上 [129]
012_0756_c_09L仰觀紫微院 [130] 內。御宮帝座之嚴嚴。赤道
012_0756_c_10L輪中。七曜三台之昭昭。天船閣道。二弼
012_0756_c_11L文星之▣門。天厨內階。四輔女史之附
012_0756_c_12L路。傳舍句陳之方自在。華盖陰德之位
012_0756_c_13L猶存。唯玆▣▣。地接靑邱之离。星分
012_0756_c_14L角亢之紀。天田分野。古昇平之軍門。地
012_0756_c_15L𨋀列區。今順天之▣▣。就中亢池派遠。
012_0756_c_16L源出大曹溪之山陽。庫樓柱高。門通古
012_0756_c_17L吉祥之寺榜。▣▣九卿之吉星照臨。周
012_0756_c_18L鼎五候 [131] 之攝提秤衡。十六祖解脫道。八
012_0756_c_19L糓八微之精▣。六鑑亭羽化虹。天津天
012_0756_c_20L門之橋閣。豈但延壽貴之捷徑。實乃求
012_0756_c_21L子孫之▣田。爰有大檀信。曰族降金天
012_0756_c_22L之璿流。儘稱三韓之甲胄。世居昇平之
012_0756_c_23L玉府。峙▣五雲之丁冠。宦路亨通。腰
012_0756_c_24L佩泗州之印綬。福海廣博。家藏湖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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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7_a_01L그러하니 수명과 부귀의 영광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많은 자손에게 경사가 이어지길 바라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가만히 칠원七元의 영험한 살핌에 대해 듣고서 이에 삼생의 선근善根을 심게 되었습니다.길성吉星의 좋은 땅을 고르고자 하니 어찌 길상사 도량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이에 수달須達이 동산 산 것을 흠모하여 코끼리에 실은 황금을 아끼지 않고, 기타祗陀가 보시한 나무를 베니 소 덮을1142) 기둥을 걱정함이 없습니다. 우림羽林1143)에서 부월斧鉞1144)을 휘두르니 쇠사슬 같은 괴강魁罡1145)이 천혼天溷1146)에서 모습을 감추고, 천시天市1147)에서 장성匠星을 부르니 종정宗正1148) 대부大夫가 신궁神宮1149)에서 향응합니다. 미축未丑1150)에 터전을 살펴 남두南斗와 북추北樞(북두칠성)로 군신의 위치를 정하고, 을신乙辛1151)에 걸쳐 보필하니 동정東井1152)과 서함西咸1153)이 주인과 손님의 방위를 호위합니다. 첩벽疊壁을 잘라 섬돌을 들이니 토공土公이 사록司祿1154)이 되고, 여석礪石1155)에 갈아 제방을 나열하니(羅堰)1156) 귀부龜趺가 능선에 나열합니다. 10기둥을 장원長垣과 영대靈臺1157)에 세우니 소미小微1158)가 와서 비추고, 9깃발1159)을 도사屠肆와 명당明堂1160)에 나열하니 태존太尊1161)이 와서 임합니다. 천폭天幅1162)에 달이 생기니 삼기叅旗 제왕諸王1163)이 부이附耳하여 권설卷舌1164)하고, 천가天街1165)에 달이 오르니 거기車騎1166) 장군이 돈완頓頑하고 절위折威1167)합니다. 그리하여 주기酒旗가 천준天樽1168)에 거꾸러지니 헌원軒轅의 기관騎官1169)이 방불하고, 천부天桴가 하고河鼓1170)를 울리니 뇌전雷電의 벽력霹靂1171)과 유사합니다. 천사天社의 천창天倉1172) 문은 구령鈎鈴의 대약大鑰1173)을 굳게 잠그고, 누고樓庫의 누시樓市 가게에는 기부器府1174)의 사공司空을 항상 진열합니다. 별鱉1175)이 꼬리를 천강天江1176)에서 흔들고, 어魚1177)가 비늘을 거사車肆1178)에 놓습니다. 관삭貫索1179)을 이미 짰으니 호분虎賁1180)의 긴 들보를 들고, 연도輦道1181)에 끌려고 하니 상서尙書1182)의 짧은 명銘을 바칩니다. 노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東 동
紅日輾來天秤宮 붉은 해가 천칭궁天秤宮1183)에 굴러 오르니
明川十里從何到 맑은 냇물이 십 리에 걸쳐 어디서 오는가
水石名亭土司空 수석의 이름난 정자는 토사공土司空1184) 몫이라
南 남
帝字峰頭畢觜參 제자봉 꼭대기에 필畢ㆍ자觜ㆍ삼參1185) 보이니
五十三尊星若列 53존1186)의 별들이 나열하여
華藏世界拈香叅 화장세계에서 향 들고 참여한 듯하네
西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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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7_a_01L金銀。雖不▣壽富貴之光榮。最唯恨多
012_0757_a_02L子孫之餘慶。竊聞七元之靈鑑。爰種三
012_0757_a_03L生之▣根。欲選吉星之勝地。盍歸吉祥
012_0757_a_04L之道場。於是慕須達之買園。不惜駄▣
012_0757_a_05L之金銑。伐祗陀之施樹。無慮蔽牛之棟
012_0757_a_06L樑。運斧鉞鉞於羽林。鐵鎻魁罡。▣形
012_0757_a_07L於天溷。招匠星於天市。宗正大夫。響
012_0757_a_08L應於神宮。銓未丑而爲基。南斗北樞。定
012_0757_a_09L君臣之位。伴乙辛而輔弼。東井西咸。
012_0757_a_10L護主賓之方。斫疊壁而納階。土公爲之
012_0757_a_11L司祿。磨礪石而羅堰。龜趺以之列陵
012_0757_a_12L十柱立於長垣靈臺。小微來照。九旗列
012_0757_a_13L於屠肆明堂。大尊降臨。天幅月生。叅
012_0757_a_14L旗諸王。附耳而卷舌。天街月上。車騎
012_0757_a_15L將軍。頓頑而折威。以故酒旗倒於天樽
012_0757_a_16L兮。軒轅騎官之彷彿。天桴動於河鼓。
012_0757_a_17L雷電霹靂之依俙。天社之天倉門。健閉
012_0757_a_18L鈎鈴之大鑰。樓庫之樓市肆。常陳器附 [132]
012_0757_a_19L之司空。鱉尾搖於天江。魚鱗錯於車肆。
012_0757_a_20L貫索旣織。載擧虎賁之脩樑。輦道將牽。
012_0757_a_21L迺獻尙書之短銘。頌曰。東。紅日輾來
012_0757_a_22L天秤宮。明川十里從何到。水石名亭土
012_0757_a_23L司空。南。帝字峰頭畢觜參。五十三尊
012_0757_a_24L星若列。華藏世界拈香叅。西。師子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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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7_b_01L師子嶝尻舊曹溪 사자고개 꽁무니 옛 조계에
弦月初生山鳥愕 초승달 막 생기나니 산새가 놀라고
金烏飛盡浴咸池 금오는 함지로1187) 목욕하러 날아가네
北 북
離宮聖德長相億 이궁離宮1188)의 성덕을 길이 기억하노니
河鼓一聲霹靂馳 하고河鼓 일성에 벽력霹靂이 치달아
天綱回電風塵熄 천강天綱1189)의 번개에 풍진이 사라지네
上 상
貪狼星邊分角亢 탐랑성貪狼星 가에 각角ㆍ항亢1190)이 나뉘어
若借牽牛織女機 견우와 직녀 베틀을 빌려서
大梁飛到非非想 큰 들보가 비비상천1191)에 날아오르는 듯
下 하
大陸洪荒唯一馬 넓고 큰 대륙에 오직 말 하나1192)
水際風輪接鐵圍 물가 풍륜風輪1193)이 철위산을 접하고
漸臺列肆誰能跨 점대漸臺1194) 나열한 가게에 누가 걸터앉으랴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구신九辰1195)이 추극樞極(중추)의 음덕을 내리시고, 칠원七元은 천주天厨의 양문陽門을 여소서. 천음天陰1196) 월정月精은 남아를 많이 잉태하게 하시어 순씨荀氏 팔룡八龍1197)의 후손들이 번성하게 하시고, 태양太陽 일색日色은 수역壽域(장수)의 경사를 비추어 주공周公 구령九齡1198)의 흰머리와 두터운 눈썹이 화려하게 하소서.대시주 사천泗川 군수 김학모金學謨 경신년(1860) 생生묵암 선사의 비석을 세우는 제문갑자년(1924) 3월 15일(默庵禪師立石祭文甲子三月十五日)대화엄종주 현顯 묵암 선사시여, 여래께서 부리시어 보살이 거듭 출현한 것이로다.
팔영산에 기운이 모여, 신령이 장사촌(沙邨)1199)에 강림하니
향나무(栴檀) 영험한 싹이, 공문空門에 옮겨 심어져
금화산에서 꽃이 피고, 풍암楓巖 노숙에게 과실을 맺고서
영천암1200)에서 법당法幢을 세우고, 송광사에서 주미麈尾를 세워
인천의 안목을 열고, 불조의 마음에 도달하여
화장세계의 바다에 헤엄치며, 공덕의 숲을 길이 기르더니
교화의 인연이 두루 미치자, 법의 기둥이 문득 스러지도다.
법신은 비록 공하지만, 후손들은 추모하여
진영이 방장산에 서리고, 탑(鴈塔)이 운근雲根(돌)에 솟았네.
외경하는 크나큰 공적을, 옥에 거듭 새기길 도모하여
받침돌이 사찰(金地)에 자리하고, 용머리가 하늘(雲衢)로 오르니
용 허리에 전서가 살아 꿈틀대고, 보주(麽尼)를 옥구玉球에 흩은 듯
귀신이 보호하며 도와, 높이 푸른 벽이 버텨 섰네.
근원을 탐색하고 결말을 알아차려서, 일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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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7_b_01L尻舊曹溪。弦月初生山鳥愕。金烏飛盡
012_0757_b_02L浴咸池。北。離宮聖德長相億。河鼓一
012_0757_b_03L聲霹靂馳。天綱回電風塵熄。上。貪狼
012_0757_b_04L星邊分角亢。若借牽牛織女機。大梁飛
012_0757_b_05L到非非想。下。大陸洪荒唯一馬。水際
012_0757_b_06L風輪接鐵圍。漸臺列肆誰能跨。伏願上
012_0757_b_07L樑之後。九辰降樞極之陰德。七元啓天
012_0757_b_08L厨之陽門。天陰月精。孕多男之胎。荀
012_0757_b_09L氏八龍之子枝孫葉蒼翠。太陽日色。照
012_0757_b_10L壽域之慶。周公九齡之鶴鬚狵眉縞華。
012_0757_b_11L大施主。泗川郡守。金學謨。庚申生。
012_0757_b_12L
012_0757_b_13L默庵禪師立石祭文甲子三月十五日
012_0757_b_14L大華嚴宗主顯默庵禪師。如來使之也。
012_0757_b_15L菩薩重現歟。氣鍾八影。靈降沙邨。栴
012_0757_b_16L檀靈芽。移植空門。開花於金華。結果
012_0757_b_17L於楓老。樹幢於靈泉。竪塵 [133] 於松社。開
012_0757_b_18L人天之眼。達佛祖之心。游泳華藏之海。
012_0757_b_19L長養功德之林。化緣旣周。法棟俄墜。
012_0757_b_20L法身雖空。雲仍追慕。眞影蟠于方丈。
012_0757_b_21L鴈塔聳於雲根。畏豊功之礓礫。謀重刻
012_0757_b_22L之琅玕。龜趺踞乎金地。蛟首騰於雲衢。
012_0757_b_23L龍腰活於篆額。麽尼撒於玉球。鬼護神
012_0757_b_24L助。高撑翠壁。原始要終。乃竣創役。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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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7_c_01L다과를 배설하여, 존령께 바치며
투박한 음식이나마 진설하고, 향을 사르며
삼가 제호醍醐를 따르니, 흠향하소서.애감계 서문(哀感契序)미물인 까마귀와 까치도 반포지효를 알고, 미미한 개와 말도 또한 주인에게 보답할 마음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반포지효나 보답할 마음을 아는 미물보다 못하다면 어찌 타당하겠는가.이제 조계산의 청년 수십 명이 성이 다른 형제지간을 맺어 같은 몸을 나눈 형제 되어 부모와 사부의 상사喪事에 힘닿는 대로 부조하며 같은 마음으로 슬퍼한다는 뜻을 의논으로 결정하였다. 또한 세상 도리를 따르자면 재물 없이는 성사되기 어려우므로 쌀을 갹출하여 자본을 모으고 이자를 내어 일에 따라 돕기로 하니, 안팎으로 부조하는 도라 하겠다.그래서 이에 한마디 말로 동지들을 권면한다. 오직 실제 참된 정성으로 위를 공경하고 아래에 공손하며 효도하고 우애 있어 화목하고 유순하면 비단 애감계의 일원으로 반포하고 보답하는 이치를 알 뿐 아니라 또한 만물의 영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음이 오직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힘쓸지어다.곡성군 도림사 시왕나한전의 중수기4월 8일谷城郡道林寺十王羅漢殿重修記四月八日호남에 아름다운 산과 물이 많지만 간혹 웅장하나 수려하지 않은 경우 또는 수려하나 웅장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는데 유독 웅장하며 특히 수려한 것이 동악산動樂山이로다. 순강鶉江(섬진강)이 그 북쪽을 에워싸 띠를 이루고 봉악鳳岳이 남쪽에 서서 옷깃을 이루며, 방장산이 동쪽에 있으니 때때로 신선의 풍모를 보고, -
012_0757_c_01L設茶饋。庸獻尊靈。陳設菲薄。竪鬯爇
012_0757_c_02L香。謹酌醍醐。伏唯尙享。
012_0757_c_03L
012_0757_c_04L• 哀感契序
012_0757_c_05L夫以烏鵲之微物。而能知反哺。以犬馬
012_0757_c_06L之微畜。而亦知報主之心。以况人之靈
012_0757_c_07L於萬物者。不若微物之反報。則豈可得
012_0757_c_08L乎哉。以今溪山之靑年十數員。結異姓
012_0757_c_09L之昆季。斷同體之兄弟。至於父母師傅
012_0757_c_10L之喪事也。隨力相賻。同心哀感之意。
012_0757_c_11L議匠旣決。亦從世諦之道。無物難成。故
012_0757_c_12L略醵斗米。存本出利。隨事補助。可謂
012_0757_c_13L內外相賻之道也。故玆一言。以勸諸同
012_0757_c_14L志。唯以實地眞誠。上敬下恭。且孝且
012_0757_c_15L悌。敦睦和順。則非但以一契之人。能
012_0757_c_16L知反報之義而已。亦不媿萬物之靈。唯
012_0757_c_17L存於斯矣。唯諸君勉旃。
012_0757_c_18L
012_0757_c_19L谷城郡道林寺十王羅漢殿重修記
012_0757_c_20L四月八日
012_0757_c_21L湖南多佳山水。或雄而不秀者。或秀而
012_0757_c_22L不雄者有之。而獨雄而特秀者。唯動樂
012_0757_c_23L山歟。鶉江繞其北而爲帶。鳳岳立其南
012_0757_c_24L而作衿。方丈在東。時見仙子之風。雪
-
012_0758_a_01L설산雪山1201)이 서쪽에 있으니 흔히 인초忍草1202)의 향기를 맡는다. 이것이 묘길상(문수보살)의 유허1203)가 아니겠는가. 원효 노옹이 처음 자리를 잡았도다. 그리하여 다섯 봉우리 정상의 강선대降仙臺에 바둑바위(碁嵓)1204)가 존재하고, 10리 긴 골짝의 거울 반석(鏡面磐)에 맑은 물이 쉬지 않고 흐른다. 물소리는 음악 같고 도심道心은 숲 같아서 산 이름과 사찰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이리니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사찰의 창건은 신라ㆍ고려 시대에 이루어져 여러 차례 보수를 했으나 거의 쓰러진 지가 오래되었다. 불자(승려) 눌봉訥峯이 조계산에서 와 주지로 6, 7년 있으면서 호불護佛의 믿음을 매섭게 발휘하여 중창의 바람을 문득 일으켰다. 경신년(1920) 봄에 법우法宇를 일신하고 다시 1천 문의 단연檀緣(시주)을 모아 다시 나한 양전兩殿을 보수하니 갑자년(1924) 2월 20일에 시작하여 4월 욕불1205) 저녁에 마쳤다. 썩은 것을 거듭 새롭게 하고 무너진 것을 정돈하여 낮은 것은 높이고 새는 곳은 기와를 얹으니, 크고 찬란하였다. 아전鵝殿(법당)은 높다랗고 앙실鴦室은 날아갈 듯하니, 빠른 붕새가 구름 같은 날개를 펼쳐 남해로 옮겨 가며 3개월 동안 내려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남은 힘으로 누청1206) 몇 간과 객료客寮 몇 동棟을 상황에 따라 보수하였다. 바위 샘물이 이로써 다투어 쏟아지고 안개 구름이 이로써 상서로운 빛을 띠니 동악산의 새로운 면모가 눌봉을 기다려 거듭 찬란하고 도림사의 옛 가풍이 길상과 함께 다투어 울리는도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보제루1207)를 함께 수리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화 인연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요,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야 옳은 것이로다.아, 현재 말세의 운수로 저 수전노들이 복전福田에 선한 씨앗을 내리지 않고 그저 티끌 이익을 구할 즈음에 백천 가지 방편으로 교화의 문을 유람하면서 티끌 모아 산을 이루고 터럭 맺어 공을 만들 듯 불우佛宇를 중흥하고 성당聖堂을 보수하여 이처럼 끝을 잘 맺으니, 모르겠다, 우리 눌 공訥公 같은 이는 혹시 묘길상이 거듭 현현하신 것인가, 원효 노옹의 원력이런가. -
012_0758_a_01L山在西。多聞忍草之香。無乃妙吉祥之
012_0758_a_02L遺墟。元曉翁之剏占也。所以五峯頂崖
012_0758_a_03L降仙臺。碁嵓自存。十里長谷鏡面磐。
012_0758_a_04L淸流不息。泉聲如樂。道心如林。山名
012_0758_a_05L寺號之所以然。其然而非然耶。寺之剏
012_0758_a_06L始。旣在羅麗。累經修葺。而幾傾覆者
012_0758_a_07L有日矣。佛子訥峯。自曹溪來。住持六
012_0758_a_08L七年。酷發護佛之信。頓起重剏之願。
012_0758_a_09L庚申春一新法宇。復鳩千門之檀緣。更
012_0758_a_10L葺十羅兩殿。而始甲子二月之念。終四
012_0758_a_11L月浴佛之夕。朽敗者重新。傾覆者整頓。
012_0758_a_12L低者高之。滲 [134] 者瓦之。輪焉奐焉。鵝殿
012_0758_a_13L崔嵬。鴦室翬飛翼然。如快鵬之展雲
012_0758_a_14L翼徙南溟。而三月不下者也。推餘力而
012_0758_a_15L樓廳數間。客寮數棟。逐旋補葺。泉石
012_0758_a_16L以之爭瀉。煙雲以之禎彩。動樂之新面
012_0758_a_17L目。待訥峯而重煥。道林之舊家風。與
012_0758_a_18L吉祥而爭鳴。但小恨者。普樓之未暇并
012_0758_a_19L葺。然而非無化緣而然矣。必待旺運而
012_0758_a_20L是歟。噫。伊今末運。彼守錢奴。不下善
012_0758_a_21L種於福田。只求塵利之際。以百千方便
012_0758_a_22L優遊化門。聚塵成山。結毛成毬。重興
012_0758_a_23L佛宇。修葺聖堂。如是要終。未知。若吾
012_0758_a_24L訥公者。倘妙吉祥之重現乎。元曉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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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8_b_01L눌 공은 이 사찰에 대해서 가히 대공덕주大功德主라 하여도 실로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이에 쓰노라.조계산 화엄전, 오십전,1208) 나한전의 불상 중수기4월 8일(曹溪山華嚴五十羅漢三殿佛像重修記四月八日)법신法身은 형상이 없는데 어떤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가. 진리는 말이 없는데 어떤 말로 말할 수 있는가. 형상이 없는데 형상을 드러냄은 여래께서 방편문을 스스로 여심이요, 말이 없는데 말로 표현하시니 보살의 자비 바다가 더욱 깊도다. 그리하여 삼신三身1209) 가운데 흐름을 따르는 몸을 혹 드러내시거나 삼승 가운데 영향影響의 무리를 많이 드러내시니, 이 모두는 불보살이 진리를 따라 변화를 일으키는 원력이로다.이제 조계산 세 전각의 불상은 이른바 형상이 없는 가운데 형상을 드러냄이니 불조佛祖의 몸을 드러내거나 성문聲聞의 몸을 드러냄이다. 기록에, “청나라 강희康熙 23년 이조 숙종 10년 갑자(1684)에 화주(化士) 재오再悟가 화엄 50불상을 새로 만들었다.”라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231년 전이다. 그리고 “금나라 태화泰和 4년 고려 신종 7년 갑자(1204)에 16성상聖像을 만들었고, 393년 지나서 명나라 만력萬曆 25년 선조 30년 정유(1597)에 병화로 손상되었고, 27년 지나 천계天啓 4년 갑자(1624)에 대중이 수리하였다.”라고 하니 이것이 불상을 만들고 보수한 과정(緣起)이다. 이제 301년이 지나 대정大正 13년 갑자(1924)에 산승 영운榮雲 선사가 보수하고 불신佛身에 분을 바르고 성상에 채색하기를 2월 27일에 시작하여 4월 초파일에 마쳤다. 그렇다면 불상을 만든 지 231년에 한 번 분칠하고, 성상을 만든 지 721년에 두 번 채색했던 것이다. -
012_0758_b_01L願力耶。以若訥公之於此寺。可謂大功
012_0758_b_02L德主。實不爲過言。余於是乎書。
012_0758_b_03L
012_0758_b_04L曹溪山華嚴五十羅漢三殿佛像重
012_0758_b_05L修記四月八日
012_0758_b_06L法身無相。何相可相。眞理無言。何言
012_0758_b_07L可言。無相而現相。如來方便門自開。
012_0758_b_08L無言而發言。菩薩慈悲海益深。所以三
012_0758_b_09L身中或現隨流之身。三乘中多現影響
012_0758_b_10L之衆。是皆佛菩薩從眞起化之願力歟。
012_0758_b_11L今曹溪山三殿佛像者。所謂無相中現
012_0758_b_12L相。或現佛祖身。或現聲聞身者是也。
012_0758_b_13L有記云。淸康熙二十三李朝肅宗十年甲
012_0758_b_14L子。化士再悟。新造華嚴五十佛像。距
012_0758_b_15L今二百三十一年也。又金泰和四年麗
012_0758_b_16L朝神宗七年甲子。剏造十六聖像。而
012_0758_b_17L越三百九十三年。明萬曆二十五年宣
012_0758_b_18L祖三十丁酉。兵燹壞傷。越二十七年
012_0758_b_19L天啓四年甲子。大衆重修。此佛聖剏修
012_0758_b_20L之緣起也。迄今三百一年。大正十三年
012_0758_b_21L甲子。山之榮雲禪師重修。而粉於佛身。
012_0758_b_22L彩於聖像。始於二月念七。終於四月初
012_0758_b_23L八。然則佛剏之。二百三十一年一粉之。
012_0758_b_24L聖剏之。七百二十一年二彩之。盖以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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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8_c_01L완성되고 파괴되고 파괴되었다가 완성되니, 형상 있는 것들은 모두 그러하다. 완성과 파괴 가운데 파괴되지 않는 진신이 절로 있음을 누가 알 것인가.아, 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이미 갑자년(1684)에 있었고, 성상을 만들고 보수한 것이 또한 갑자년(1924)에 이루어졌다. 불사의 인연이 왜 갑자년을 기다려 결과를 맺었는가. 이와 같은 4갑자는 불상이 형상을 드러내는 운수가 상원上元(대보름) 화갑花甲에 편중되어 그러한 것이 아닌가. 또는 사찰의 방위가 갑경甲庚1210)으로 정해져서 그러한가.이제 영운榮雲 공公은 즉 원력을 다시 드러냄인가. 네 번의 불사가 반드시 갑자년을 기다려 성취되었으니 의아해하고 싶지 않으나 그럴 수 있는가. 그저 신성의 살핌이 밝고 밝음에 부칠 따름이다. 두 전각 불상의 은은함은 여러 옥들이 자줏빛 비단 휘장에 날아 떨어지는 듯하고, 16성상의 찬란함은 비단 형상(錦軀)이 흰 은쟁반에 나열되어 있는 듯하다. 과일을 받들어 부처님께 드리거나 향을 살라 성상에 예배한다. 사룡獅龍을 다루며 마니주를 희롱하고 방울(麈鈴)을 흔들어 대중을 경각시키며, 선정에 들어 공空을 보거나 손가락을 세워 잠을 깨우는데, 어렴풋하고 희미하게 엄연히 예전에 영취산에서 꽃을 들고 미소 짓던 진풍경이 여기에 있는 듯하도다. 아아, 영운 공의 마음이 형상 없는 가운데 형상을 드러냄에서 솟아나와 특별히 묵은 재산이 없는데도 문득 무상심(無常)을 발휘하여 왕년에 염불회에서 종을 걸었고 이제 또 주머니를 털어서 세 전각의 법사法事를 크게 마련하여, 장애 없이 성취하고 기쁘게 회향하니 좋구나. 당堂에 올라 경의를 표하는 자마다 누군들 백열栢悅1211)의 느낌이 없으며 따라서 기뻐하는 생각이 없겠는가.나 또한 말 없음의 말로 대략 시말을 기록하여 대중에게 널리 고하노라.조계산 송광사 극락교, 청량각 상량문4월 17일 상량曹溪山松廣寺極樂橋淸凉閣上梁文四月十七日上梁 -
012_0758_c_01L而壞。壞以成。有相皆然。誰知成壞中
012_0758_c_02L自有不壞之眞身哉。噫。佛之剏造。旣
012_0758_c_03L在甲子。而聖像剏修。亦以甲子成之。
012_0758_c_04L佛事因緣。何待甲子以結果如是四甲
012_0758_c_05L也。無乃佛像現相之運。偏重於上元花
012_0758_c_06L甲而然乎。抑寺之向背。以甲庚定局而
012_0758_c_07L然乎。今榮雲公。卽願力重現耶。四番
012_0758_c_08L佛事。必待甲子以成就。不欲無訝而得
012_0758_c_09L乎。只付聖鑑之昭昭而已。以其兩殿佛
012_0758_c_10L像隱然。若群玉之飛落於紫羅帳裡。十
012_0758_c_11L六聖像燦然。如錦軀之列錯於白銀盤
012_0758_c_12L中。或奉果而獻佛。或焚香以禮聖。弄
012_0758_c_13L獅龍而戱珠。振塵鈴而警衆。或入定觀
012_0758_c_14L空。或竪指覺睡。依俙然。彷彿焉。儼然
012_0758_c_15L若昔日靈山拈花微笑之眞風。其在玆
012_0758_c_16L歟。吁吁。雲公之心。湧出於無相中現
012_0758_c_17L相。特無宿產。而頓發無常。徃年掛鍾
012_0758_c_18L於念佛會。今又傾槖。宏設三殿法事。
012_0758_c_19L無障成就。歡喜回向。善哉。陞堂致敬
012_0758_c_20L者。誰無栢悅之感。隨喜之想哉。余亦
012_0758_c_21L以無言之言。略記始末。普吿大衆。
012_0758_c_22L
012_0758_c_23L曹溪山松廣寺極樂橋淸凉閣上梁
012_0758_c_24L文四月十七日上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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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9_a_01L보건대, 수국水國의 광한전廣寒殿은 용왕이 거닐며 재능을 부리고, 천궁의 은하수 다리는 까마귀와 까치가 애써 공덕을 쌓은 것이니, 인천人天의 아름다운 약속이 모이고, 수륙의 정교한 기술이 모인 것입니다. 이제 극락교는 인천을 초월한 명칭으로 수륙에 의거한 모임입니다. 신기루(蜃樓)가 방장산의 달을 토하니 광한전의 광명을 바라지 않고, 교룡의 등(극락교)이 조계산의 구름을 잉태하니 은하수 다리의 색상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처음을 돌아보아 시작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옹정雍正 8년 경술(1730) 봄에 탁근卓勤이 창설하였는데 함풍咸豊 4년 갑인(1854) 가을에 홍수로 무너졌습니다. 그 후 통하기 어렵던 흙다리를 북돋우고 판교板橋를 더하였으나 건너기 어려웠습니다. 산승 한붕漢朋 공이 건너기 매우 어려움을 개탄하여 이전 토목 공사를 고치니, 병진년(1916)에 시작하여 거의 이루어졌는데 잘못된 기술자 때문에 파괴되었습니다. 정사년(1917)에 다시 지을 때 솜씨 있는 장인을 불러 거듭 완성하였는데, 다만 이 누각은 같은 해에 마치지 못하고 갑자년(1924)을 기다려 거듭 공사하였습니다.이에 장성匠星을 다리 아래 가두니 목수木宿(목성)가 재목을 가리고, 주춧돌을 규룡 머리에 누르니 금정金精의 빛이 일렁이네. 거령巨靈1212)이 도끼를 휘두르니 반般ㆍ수倕1213)에게 정교한 생각을 발휘하게 하고, 대장장이(大冶)가 화로를 작동시키니 거푸집에 기이한 지혜를 사용하네. 푸른 새우가 꼬리를 드리우니 채색 무지개가 태미성의 빛을 마시고, 붉은 무지개가 머리를 드니 검은 자라가 봉래섬을 등지는도다. 은하수(天津)를 건너고자 하니 붉은 누각이 안개 속에 드러나고, 연도輦道1214)를 겨우 오르니 푸른 누각이 구름 끝에 서 있도다. 물고기는 옥 기와에 비단 비늘을 엮고 기러기는 옥 섬돌에 치아를 나열했네, 옥녀가 창에 임하니 그림자가 난새 두 마리 그려진 거울에 빠지고,1215) 신선이 기둥에 있으니 기운이 채색 봉황의 향기에 취하도다. 연하鷰賀1216)의 정성을 펴고자 봉의鳳儀1217)의 잔치를 마련하도다. 학의 등1218)에 기린 고기 반찬을 쌓아 두니 고갯마루의 구름을 잘게 잘랐고, 용의 눈1219)에 봉황 간의 술을 쏟으니 못 바닥의 달을 가볍게 치도다. 비단 주머니에서 새로운 말을 내어 -
012_0759_a_01L觀夫水國之廣寒殿。龍王之逍遙幹能。
012_0759_a_02L天宮之銀漢橋。烏鵲之劬勞功德。人天
012_0759_a_03L之佳約鼎集。水陸之巧術咸臻。今極樂
012_0759_a_04L橋者。超人天之名稱。據水陸之際會。
012_0759_a_05L蜃樓吐方丈之月。不願廣殿之光明。蛟
012_0759_a_06L背孕曹溪之雲。無愧漢橋之色相。欲稽
012_0759_a_07L剏始。可考濫觴。雍正八年庚戌春。卓
012_0759_a_08L勤之所剏也。咸豊四年甲寅秋。洪水之
012_0759_a_09L所圮歟。厥後培土圯之艱通。加板橋而
012_0759_a_10L難陟。山之釋漢朋公。慨步涉之極艱。
012_0759_a_11L改土木之前功。始丙辰而幾成。仍匪工
012_0759_a_12L而破壞。越丁巳而改築。招善匠而重成。
012_0759_a_13L但是樓也。在同年而未終。待甲子而重
012_0759_a_14L役。於是囚匠星於橋底。木宿掄材。壓
012_0759_a_15L礎砥於虬頭。金精動色。巨靈運斧。騁
012_0759_a_16L巧思於般倕。大冶鎔爐。用奇智於錘範。
012_0759_a_17L碧蝦垂尾。彩虹飮太微之光。赤霓矯頭。
012_0759_a_18L墨鰲負蓬萊之島。天津欲渡。彤閣出於
012_0759_a_19L煙中。輦道纔登。翠樓架於雲表。魚絹
012_0759_a_20L鱗於玉瓦。雁列齒於瑶階。玉女臨窓。
012_0759_a_21L影沈雙鸞之鏡。仙人在棟。氣醉彩鳳之
012_0759_a_22L香。欲展鷰賀之誠。爰設鳳儀之宴。鶴
012_0759_a_23L背飣獜脯之饌。細切嶺頭之雲。龍眼瀉
012_0759_a_24L鳳肝之醪。薄批潭底之月。要進錦囊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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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9_b_01L보물 누대의 장엄한 광경을 남겨 둬야 하는데, 쌍무지개처럼 긴 들보를 이미 올렸으니 육위六偉의 짧은 노래를 부르노라.
拋樑東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渴獅哮吼飮虬宮 목마른 사자가 포효하며 용궁을 마시고
大明初到扶桑下 큰 밝음이 부상扶桑 아래 처음 도달하니
萬縷彤霞嶺日紅 만 가닥 붉은 노을과 고개 넘어 해가 붉도다
南 남
帝字峰前現優曇 제자봉 앞에 우담바라 나타나서
若把一枝贈善財 한 가지 잡아 선재동자에게 준다면
百城巡友禮三三 100성을 다니며 수행승1220)에게 절하리
西 서
蓮花開處百禽啼 연꽃 피어난 곳에 온갖 새들 지저귀니
我若能跨天馬背 내가 천마 등에 탈 수 있다면
昂昂不問路高低 높디높아 길의 높낮이를 묻지 않으리
北 북
溟鯤何日化雲翼 바다 곤어1221)는 언제나 구름 날개로 변하려나
翹足暫踞倉庫峰 발돋움하여 창고봉倉庫峰에 잠시 기대고
手長一尺摩樞極 손이 한 자 자라 추극樞極1222)을 만지리
上 상
紫微宮裡開雲帳 자미궁 안에 구름 장막 걷고서
回首若證天耳通 머리 돌려 천이통1223)을 증득한다면
應聞織女支機響 응당 직녀의 베틀 소리를 듣겠지
下 하
迦羅藏海談祗夜 용왕(迦羅) 바다에서 기야1224)를 말하노니
曹溪一帶與天長 조계산 일대가 하늘처럼 유장하여
無數魚龍皆變化 무수한 어룡들이 모두 변화하리라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은하수 별들이 길상의 오운五雲을 내리고 수궁水宮의 용들이 마니주 칠보를 보내리라. 관리와 유자들1225)이 누각(청량각)에 올라 법을 보호하여 한나라와 당나라의 문물로 소요하는 풍류를 짓고, 용상龍象 비구들이 다리(극락교)에 올라 허공을 바라봄에 중생을 널리 제도하여 자유의 본색이 되소서.위와 함께 기둥 세우는 축문(同立柱祝文)무지개가 장공에 누우니, 기초가 용 뿔처럼 우뚝하고
광한전의 풍류와, 은하수의 별들이
광한전과 극락교를 장엄하고, 재목(漢栢)을 잘라 옮겨
공수工倕를 부르니, 장석匠石1226)이 분주하도다.
길일(穀日)을 택하여, 이에 낭간琅玕1227)을 세우니
어찌 오대부1228)이리오, 실로 십장군이라.
산해진미를 마련하고, 바다 음식을 거듭 끓이며
명차를 삼가 따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
012_0759_b_01L新語。留作瑶臺之壯觀。旣騰雙虹之脩
012_0759_b_02L樑。載唱六偉之短頌。拋樑東。渴獅哮
012_0759_b_03L吼飮虬宮。大明初到扶桑下。萬縷彤霞
012_0759_b_04L嶺日紅。南。帝字峰前現優曇。若把一
012_0759_b_05L枝贈善財。百城巡友禮三三。西。蓮花
012_0759_b_06L開處百禽啼。我若能跨天馬背。昂昂不
012_0759_b_07L問路高低。北。溟鯤何日化雲翼。翹足暫
012_0759_b_08L踞倉庫峰。手長一尺摩樞極。上。紫微
012_0759_b_09L宮裡開雲帳。回首若證天耳通。應聞織
012_0759_b_10L女支機響。下。迦羅藏海談祗夜。曹溪
012_0759_b_11L一帶與天長。無數魚龍皆變化。伏願上
012_0759_b_12L樑之後。銀河星宿。降吉祥之五雲。水
012_0759_b_13L宮龍兒。輸麽尼之七寶。縉紳章甫。登
012_0759_b_14L樓而護法。以漢唐文物。作逍遙之風流。
012_0759_b_15L龍象比丘。陟橋而觀空。以廣濟衆生。
012_0759_b_16L爲自由之本色。
012_0759_b_17L
012_0759_b_18L同立柱祝文
012_0759_b_19L虹卧長空。礎突虬角。廣寒風流。漢河
012_0759_b_20L列宿。莊嚴廣橋。斫輸漢栢。旣招工錘 [135] 。
012_0759_b_21L載奔匠石。差于穀日。迺竪琅玕。豈五
012_0759_b_22L大夫。實十將軍。爰設山珍。再爇海香。
012_0759_b_23L謹酌茗茶。伏唯尙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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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59_c_01L부인상을 당한 사마 송염재를 위문하는 편지(問宋司馬念齋喪配書)한 번 헤어진 후로 네 번 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에 비람풍에 맞아 천주天柱가 먼저 무너지고 겁파刼波에 쓸려 내실內室(부인)이 또 무너졌군요. 아이들이 의지할 바 없음은 살펴볼 것도 없는데, 하물며 존후尊候께서 타향에 행차하셨음에랴.긴 채찍 휘둘러 만류萬類 가운데 여우 자취1229)를 내몰다가 짧은 겉옷(短褐) 입고 일신의 거북 수명1230)을 기약하여, 감당할 수 없는 계율을 지키더니 이제 삭발(剗草) 허락을 들었습니다.아아, 예전 사마司馬1231) 객客께서 오늘 까마귀 쫓는(驅烏)1232) 이를 어찌 알겠습니까. 장남이 일본 서울로 들어간 지 이미 4년이 지났고, 차남은 거주지를 아직 모르고, 셋째는 생각건대 슬하에 있으리니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저(拙生)는 동리사(桐)로 옮긴 다음 해에 우연히 풍습風濕1233)으로 다리 한쪽이 무겁고 정강이가 부어서 거의 허리만 하게 되었습니다. 20개월을 침상에 누워 신음하는데 온갖 치료가 효과 없고, 작년 가을에 우연히 본원의 청이 있었으니 또한 학과學科의 어려운 바가 됩니다. 눈웃음을 돌아보지 않고 육족六足1234)에 의지하여 본원으로 돌아오니, 다만 수십 명이 주미麈尾를 만지작거릴 따름이었습니다. 이에 병마를 빌미로 삼아 아직까지 풍파의 참상慘喪에 예의를 하지 못하였으니 송구함이 어찌 다하겠습니까. 진실로 바다 같은 도량을 바랄 뿐입니다.엎드려 바라건대 존체尊體 평안하시고 교편敎鞭을 휘두르는 곳에 말없이(木訥) 고개를 끄덕이며 강송講頌할 때 면절綿蕞1235)하여 의례를 바치오며,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하고 줄이옵니다.용운1236) 대종사 비음기글쓴이로 기록에 참여하였으므로 이 글을 사용하지 않음.1237)(龍雲大宗師碑陰記書名叅記。故不用此文。)음과 양의 줄고 늚은 천지의 이치이고 불행과 행복1238)의 쇠하고 성함은 인도人道의 운수이다. 화상께서 중창한 공업1239)과 충효도덕, 검소한 행장은 조 공趙公1240)의 필적에 갖추어 기재되어 있으니 덧붙이지 않는다. 이전 갑오년(1894)에 세운 비석이 견고하지 않아 새기지 못하고 -
012_0759_c_01L問宋司馬念齋喪配書
012_0759_c_02L一自拜別。四花開落。毘嵐所擊。天柱
012_0759_c_03L先崩。刼波所蕩。內室更頽。兒孫之無
012_0759_c_04L賴。已無可診。而况尊候之動駕於異域
012_0759_c_05L者乎。揮長鞭而驅萬類之狐蹤。着短褐
012_0759_c_06L而期一身龜齡。曾守無敢之戒。今聞剗
012_0759_c_07L草之諾。嗚呼。盡是昔年司馬客。誰知
012_0759_c_08L今日驅烏君。長胤旣入日京。已過四年。
012_0759_c_09L次胤未知所住。三胤想在膝下。爲之涓
012_0759_c_10L涓處也。拙生移桐之明年。偶因風濕。
012_0759_c_11L一足之重。一脛之大。幾如腰矣。二十
012_0759_c_12L個月。在床叫楚。萬般治療。不得差快。
012_0759_c_13L昨秋偶有本院之請。亦爲學科之所艱。
012_0759_c_14L不顧目笑。賴六足而還本。但以十數輩。
012_0759_c_15L點麈而已。這仍病魔爲祟。尙闕風波慘
012_0759_c_16L喪之禮。悚悶何極。固當海量。伏唯尊
012_0759_c_17L體萬康。敎鞭振處。木訥點頭。講頌唱
012_0759_c_18L時。綿蕞獻儀。餘唯不備。
012_0759_c_19L
012_0759_c_20L龍雲大宗師碑陰記書名叅記。故
不用此文。
012_0759_c_21L陰陽之消長。天地之理也。丕泰之衰盛。
012_0759_c_22L人道之運也。若和尙之重剏功業。忠孝
012_0759_c_23L道德。節儉行李。備載趙公之筆而不贅
012_0759_c_24L也。前甲午所剏之碑石。不固而莫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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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0_a_01L다만 율암栗庵1241) 공公의 음기陰記만 기재하였기에 항상 탄식한 지 오래되었다. 다행히 갑자년(1924) 봄에 문손門孫 영우靈佑 등이 혈심血心으로 남포藍浦1242)에서 바위를 잘라 와서 이전의 명銘을 기재하였다. 거울 같은 표면의 비단 같은 송가는 옥쟁반에 진주를 흩뿌린 듯하여, 화상의 진의眞儀(모습)가 노룡老龍이 상서로운 구름에 오르는 듯하다. 이 어찌 살아 계시듯 느끼는 문손의 정성이 불행과 행복의 줄고 느는 가운데 특별히 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에 기록한다.아사 조종현1243)에게 보내는 답서(答趙雅士鍾鉉書)엎드려 생각건대 빈도貧道는 왕대인王大人(조부)의 문에 발을 들여놓아, 한 말씀 하사하시어 서신書紳1244)의 훈계로 삼기를 바랐는데 다만 아끼고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음으로 대인大人(부친)의 처마에서 구했는데 역시 얻지 못하고 물러나니, 슬퍼함이 오래되었습니다.그런데 문득 상원上元의 초여름에 몇몇(三三) 개사開士들이 즐거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형체 바깥의 친분1245)이 있는 듯이 산중으로 방문하셨습니다. 게을리 응하고 느긋하게 접대하다 보니 왕년에 뵈었던 한곡閒谷 고 왕존장王尊長(조부)의 영손令孫인 조趙 학사學士셨습니다. 그래서 공경히 하례하고 정성껏 대했으나 결국 이포伊蒲1246)의 만남을 하지 못하고 다만 관람의 바람만 부응하니, 즉 도 군陶君1247)이 말한 바, “산속에 무엇이 있나, 고개 위에 흰 구름 많도다. 그저 절로 기뻐할 뿐, 그대에게 주지 못하네.”라는 구절을 틈나는 대로 읊기를 마치고 그럭저럭 지나갔습니다. 재미를 깨닫기도 전에 갑자기 사문沙門(승려)을 전별電別1248)하니 옥대 풀어 산에 머무는1249) 자취를 얻지 못함이 아쉽습니다.지금 뜻밖에 한 통 편지(郵凾)가 누추한 문에 날아 떨어지기에, 바삐 펼쳐 읽어 보니 기쁨이 먼저 눈썹을 솟구치게 하고 거듭(圭復)1250) 완미하다 보니 바야흐로 종이 보풀이 일어납니다. 어떤 편지(咸狀)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것인가요? 이에 책을 덮고 탄식하길, “구하면 필시 얻으리니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고, -
012_0760_a_01L但載栗庵公陰記。而常所嘆惜者久矣。
012_0760_a_02L幸甲子春。門孫靈佑等。血心斫石於藍
012_0760_a_03L浦。芿載前銘。鏡面錦頌。如玉盤之撒
012_0760_a_04L眞珠。和尙眞儀。若老龍之騰瑞雲。此
012_0760_a_05L豈非門孫之誠。如存之感。特出於丕泰
012_0760_a_06L消長之中也哉。余於是乎記之。
012_0760_a_07L
012_0760_a_08L答趙雅士鍾鉉書
012_0760_a_09L伏以貧道。曾躡足於王大人之門。願賜
012_0760_a_10L一言。爲書紳之戒。而但愛之不肯許。
012_0760_a_11L次索於大人之軒。而亦不能得而退之。
012_0760_a_12L悵然久矣。忽於上元之初夏。有三三開
012_0760_a_13L士。欣欣然。飄飄然。若有知舊於形外。
012_0760_a_14L叩推於山中。倦然而應。悠然而接。乃
012_0760_a_15L徃年所陪叅閒谷。故王尊長之令孫趙
012_0760_a_16L學士也。雖敬賀而禮歎之。卒未能伊蒲
012_0760_a_17L之遇。而只副觀覽之願。卽陶君所謂山
012_0760_a_18L中何所有。嶺上多白雲。只可自怡悅。
012_0760_a_19L不堪持贈君之句。隨暇唱罷。因循放過。
012_0760_a_20L不覺滋味。倐忽電別於沙門。恨未得玉
012_0760_a_21L帶鎭山之績矣。以今料表。一朶郵凾。
012_0760_a_22L飛落陋扄。忙手披讀。喜先聳眉。圭復
012_0760_a_23L玩味。方覺紙毛。何等感狀從天墮地耶。
012_0760_a_24L乃掩卷而嘆曰。有求必得。如影隨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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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0_b_01L바라면 필시 이루어지리니 메아리가 소리를 전함과 같다고 하더니 진실로 의심할 게 없구나. 왕년에 구하다가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 문득 한 통 편지(琅凾)가 삼교三敎(유불선)의 깊은 의미를 다했으니, 가히 산과 바다에 가지 않고도 보물을 얻는다는 말이 정녕 거짓이 아니로다. 어찌 왕년에 구한 정성이 오늘 얻은 효험에 그윽이 부합함이 아니리오. 이미 삼교의 뜻을 받았으니 삼교의 이치로 답변하지 않을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아, 부처의 인연과 노자의 자연과 공자의 강상綱常은 그 도가 오래되었고 그 이치가 현묘하여 서로 의지함이 솥이 세 발로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떨어지지 못함은 이자伊字1251)의 점과 같으니, 이름은 비록 셋이지만 근원은 하나입니다. 한나라와 당나라 이후로 지금까지 성하거나 쇠함이 강상의 치란 여하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강상이 한 번 어지러워지면 자연의 도와 인연의 법이 그 사이에서 어떻게 행해지겠습니까. 현재 동서에 세파가 비등하고 상하에 강상이 문란하여 사람들이 각기 자유하고 사물이 각기 자임하여 옷이 그 옷이 아니고 음식이 그 음식이 아니며 행동이 그 도리가 아니고 앉음이 그 자리가 아니거늘 아침저녁으로 평화로운 정치를 어찌 기대하겠습니까. 다만 각자 본지本地를 세우고 각자 본심을 편안히 하여 임시방책을 따라 실제를 취하고 때에 맞게 진심(眞)을 지키면 삼교의 진리가 허공 뼈 사이에 갈무리되어 자재自在함으로써 사라지지 않고, 기회를 기다려 인연에 따라 일어서 자연히 서게 될 것입니다. 강상이 됨을 어찌 정돈하지 않고 얻겠습니까. 서로 의지하며 떨어지지 못하고 솥의 발이나 이자 같다는 것이 이러합니다.필로筆路가 막혀서 길게 제시하지 못하니 일단 이와 같을 뿐입니다.용운 선사의 비를 세우는 제문갑자년(1924) 9월 29일에 세움.(龍雲禪師立碑祭文甲子九月二十九日立) -
012_0760_b_01L有願必遂。如響傳聲。信無疑歟。徃年
012_0760_b_02L欲求而未果。今忽一𨋀琅凾。說盡三敎
012_0760_b_03L之幽趣。可謂不山不海而得寶者。正不
012_0760_b_04L誣也。豈非徃年求之之誠。暗符今日
012_0760_b_05L得之之効乎。旣荷三敎之趣。不可不以
012_0760_b_06L三敎之理答之。噫。佛之因緣。老之自
012_0760_b_07L然。孔之綱常。其道古遠。其理玄妙。其
012_0760_b_08L相資也。如鼎足之立。其不離也。如伊
012_0760_b_09L字之點。名雖有三。其源則一也。自漢
012_0760_b_10L唐以今。或盛或衰。唯關於綱常之治亂
012_0760_b_11L如何也。綱常一亂。自然之道。因緣之
012_0760_b_12L法。安行於其間哉。現今世波沸騰於東
012_0760_b_13L西。綱常紋亂於上下。人各自由。物各
012_0760_b_14L自任。衣不其衣。食不其食。行不其道。
012_0760_b_15L坐不其席。安期治平於朝暮乎哉。但
012_0760_b_16L各立本地。各安本心。從權取實。順時
012_0760_b_17L守眞。則三敎之眞理。藏在於虛空骨中
012_0760_b_18L自在不滅。第待際會。因緣而起。自然
012_0760_b_19L而立。其爲綱常者。何不整而得乎。所
012_0760_b_20L謂相資不離。如鼎足伊字者是也。筆路
012_0760_b_21L茅塞。未能長提。而姑如是已已。
012_0760_b_22L
012_0760_b_23L龍雲禪師立碑祭文甲子九月二十九
012_0760_b_24L日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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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0_c_01L교팔도규정승풍敎八道糾正僧風 도승통都僧統 부종수교扶宗樹敎 전불심인傳佛心印 선교양종禪敎兩宗 도총섭都摠攝 중창 대공덕주重剏大功德主 고故 용운龍雲 대종사大宗師 존령尊靈이시여.
정법淨法 세계의 몸은, 본래 출몰이 없으나
큰 자비원력으로, 왕래를 두었네.
화장세계1252) 옮기지 않고, 사바세계에 그림자 떨어지니
이씨(仙李)1253) 귀족으로, 효령대군파 후손이라
태백太白1254)의 옛 영령과, 통명산1255)의 성스런 계파로
용계촌에 뿌리를 서리고, 조계산에서 잎이 무성했도다.
일곱 사찰을 중창하고, 팔도(八垓)를 바로잡으며1256)
교종을 일으켜 세우고,1257) 중생을 제도하여
기율을 통제하고, 승단 풍속을 호령하니
사람 가운데 용과 코끼리요, 허공 속의 구름 무지개라
교화 인연이 다하자, 힘든 생이 어두워졌네.
후손 대중들이, 그 공덕을 추모하여
바위 잘라 세우고, 옥을 다듬어 명銘을 새기니
구슬을 은쟁반에 뿌린 듯, 용이 구름 장벽에 오르는 듯
푸른 벽이 높이 서니, 처음을 밝히고 결과를 요약했네.
이에 다과를 갖추어, 존영(尊幌)에 바치고
삼가 소밀酥蜜1258)을 따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개운산 동화사 선당의 중창 상량문11월 16일(開雲山桐華寺禪堂重剏上樑文十一月十六日)서술하노니, 악주樂州의 옛 현에 의거하다가 순천이라는 새 부府에 속하여, 별자리로는 각항角亢의 분야요, 지역으로는 패영貝瀛의 마을1259)을 접하도다. 악주의 동쪽에 ‘개운산’이 있고, 산 아래에 ‘동화사’가 있다. 처음을 돌아보면, 고려 선종 3년(1086)에 대각국사(大覺國老)가 보방寶坊(절)에 주석하였다. 그 중수를 고찰하면 명나라 숭정崇禎 기해년(1659)에 법홍法弘 선사가 정찰淨刹(절)에서 결사하여 규정癸丁1260)으로 방향을 잡고 임금과 신하의 고저를 정하며, 을신乙辛1261)을 당겨 옷깃과 소매로 주인과 손의 차례를 자리 나누었다. 각황씨覺皇氏(부처)가 선당禪堂과 승당僧堂을 둔 것은 -
012_0760_c_01L敎八道糾正僧風都僧統扶宗樹敎傳佛
012_0760_c_02L心印禪敎兩宗都摠攝重剏大功德主故
012_0760_c_03L龍雲大宗師尊靈。淨法界身。本無出沒。
012_0760_c_04L大悲願力。以有去來。不移華藏。影落
012_0760_c_05L娑婆。仙李貴族。孝寧遠裔。太白古靈。
012_0760_c_06L通明聖系。根蟠龍溪。葉繁曹溪。重剏
012_0760_c_07L七寺。糾正八垓。扶樹敎宗。度濟群迷。
012_0760_c_08L統制綱紀。號令僧風。人中龍象。空裡
012_0760_c_09L雲虹。化緣旣息。勞生將矇。雲仍大衆。
012_0760_c_10L追慕厥功。斫石爲趺。磨玉勒銘。珠撒
012_0760_c_11L銀盤。龍騰雲屛。高撑翠壁。原始要終。
012_0760_c_12L爰設茶菓。庸獻尊幌。謹酌酥蜜。伏維
012_0760_c_13L尙享。
012_0760_c_14L
012_0760_c_15L開雲山桐華寺禪堂重剏上樑文十
012_0760_c_16L一月十六日
012_0760_c_17L述曰據樂州之舊縣。屬順天之新府。星
012_0760_c_18L列角亢之分野。地接貝瀛之襟隣。州之
012_0760_c_19L東有山曰開雲山。山之下有寺曰桐華
012_0760_c_20L寺。稽其剏始。麗宣宗三年。大覺國老
012_0760_c_21L之憇錫寶坊。考厥重修。明崇禎己亥
012_0760_c_22L法弘禪師之結社淨刹。以癸丁而向背。
012_0760_c_23L位定君臣之高低。控乙辛而衿袂。坐分
012_0760_c_24L主賓之倫次。疑是覺皇氏有禪僧堂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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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1_a_01L어찌 대성전1262)에서 상재庠齋와 서재序齋1263) 명칭을 엶이 아니겠는가.이제 건물들(殿宇)이 기울어지지 않음이 없지만 유독 선당이 가장 급히 무너졌다. 그러나 머리카락으로 바위를 운반하듯 일은 크고 힘은 모기만하니 어찌하랴. 터럭 모아 공을 만들듯 인연을 넓혀 재물을 모아 수많은 가옥에 권선(唱化)하고 선남선녀에게 인연을 구하였다. 그리하여 중양重陽(9월) 초에 시작하여 복양復陽(11월) 보름에 복궤覆簣1264)하였다. 그 규모를 보면, 기와들은 소탕하고 이전대로 기초를 두어 용마루와 서까래를 날라서 기둥들을 혁신하였다. 날을 정해 성취하였으니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도움이라. 불시에 공적을 고하게 되니 귀신의 도움이 아니런가. 이에 선당과 승당이 병렬하니 이지러진 달이 다시 원만하게 되고, 상재와 서재가 나뉘어 부러진 날개가 나아 활짝 펼친 듯하다. 용신이 이로써 환희하고, 산천이 이로써 빛을 더한다. 이에 긴 들보를 들어 짧은 노래를 부르노라.
東 동
日輪輾碧空 둥근 해가 푸른 하늘에 구르니
一色海天外 동일한 빛인 바다와 하늘 밖에
五雲彩發紅 오색구름이 붉음을 펼치누나
南 남
八影碧如藍 팔영산 푸름이 쪽빛 같고
老星朝暮現 노인성1265)이 아침저녁으로 보이니
佛壽後三三 불수佛壽는 후삼삼後三三1266)이라
西 서
雲開月欲低 개운산의 달이 지려 하는데
不知祖宗旨 조사의 종지를 모르겠거든
回首問曹溪 고개 돌려 조계산에 물어보라
北 북
樞星臨北極 추성樞星1267)이 북극에 임하니
何日天風和 언제나 하늘 바람이 조화로워
萬民蒙聖德 만민이 성덕을 입을까
上 상
天理在元亨 천리는 원형元亨1268)에 있어
乾乾終日行 부지런히(乾乾) 종일 행하니
一度又加向 한 번(度) 또 더하도다
下 하
溪舌談般若 시냇물이 반야를 말하노니
曲終人極歡 노래 끝나자 사람들이 환희하고
我亦倍秪夜 나도 기야秪夜(노래)를 더하도다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지혜 구름이 열려 달이 보이고 동백꽃(桐花)이 피어 향기 나기를. 청정한 납승은 비구와 사미를 막론하고 아침저녁으로 바다처럼 나아 오고, 돈독한 믿음의 단월檀越들은 선남선녀를 가리지 않고 멀거나 가깝거나 구름처럼 달려오리라.송광사 심검당의 변혁에 관한 기문계해년(1923) 11월(松廣寺尋釰堂變革記癸亥十一月日) -
012_0761_a_01L豈非大成殿開庠序齋名。今者雖殿宇
012_0761_a_02L之非無頽斜。唯禪堂之最急傾覆。然而
012_0761_a_03L引髮運石。奈事巨而力蚊。結毛成毬。
012_0761_a_04L必緣廣而財。𩾥 [136] 唱化於千門萬戶。求緣
012_0761_a_05L於信女善男。濫觴於重陽之初。伏 [137] 簣於
012_0761_a_06L復陽之望。其制度也。掃蕩瓦礫。依舊
012_0761_a_07L安礎。運輸棟椽。革新列柱。克日成就。
012_0761_a_08L非人力而天陰。不時吿功。倘鬼扶而神
012_0761_a_09L助。於是禪僧并列。如缺月之重圓。庠
012_0761_a_10L序齊分。似折翔之雙擧。龍神以之歡喜。
012_0761_a_11L山川以之增輝。爰擧脩梁。載唱短頌。
012_0761_a_12L東。日輪輾碧空。一色海天外。五雲彩
012_0761_a_13L發紅。南。八影碧如藍。老星朝暮現。佛
012_0761_a_14L壽後三三。西。雲開月欲低。不知祖宗
012_0761_a_15L旨。回首問曹溪。北。樞星臨北極。何日
012_0761_a_16L天風和。萬民蒙聖德。上。天理在元亨。
012_0761_a_17L乾乾終日行。一度又加向。下。溪舌談
012_0761_a_18L般若。曲終人極歡。我亦倍秪夜。伏願
012_0761_a_19L上樑之後。慧雲開而見月。桐花發而聞
012_0761_a_20L香。淸淨衲僧。無論比丘沙彌。而朝暮
012_0761_a_21L海進。敦信檀越。不問信男善女。而遐
012_0761_a_22L邇雲奔。
012_0761_a_23L
012_0761_a_24L松廣寺尋釰堂變革記癸亥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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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1_b_01L화장세계의 장엄한 수용受用1269)이 각기 다르고 사바세계 의정依正1270)의 청정과 더러움이 절로 다르니 까닭은 무엇인가. 종찰種刹1271)의 같지 않음과 보화報化1272)의 좋고 나쁨, 몸과 국토의 거칠고 섬세함, 시기와 군주의 변천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되니 어찌 괴이하겠는가.이제 본사 사무실은 창건 연대를 고찰하지는 못하고, 건륭乾隆 10년 을축(1745) 동지 영조 21년에 본래 심검당尋釰堂으로 명명해서 납승들이 쉴 수 있는 승당으로 삼았다고 하며, 몇백 년 동안 그대로 안도할 따름이었다. 도광道光 임인년(1842)에 이르러 큰 화재(回祿) 이후에 33전殿을 보수할 겨를이 없어서 33탱화를 그렇게 그 당堂에 걸었으니 이리하여 즉 승당이 조당祖堂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69년 지나 경술년(1910) 봄에 풍조를 혁신함에 따라 학교를 이 당堂에 설치하고 조사들 탱화를 동쪽 방장으로 이안하니,1273) 이리하여 조당이 학당으로 변하게 되었다.그리고 13년 지난 계해년(1923) 겨울에 일층 개혁하여 대청 벽을 없애 버리고 부엌 굴뚝을 넓게 수리하고 문달門闥(문)을 유리 거울로 장식하고 관추關樞(돌쩌귀)를 은과 옥으로 감쌌다. 기둥을 칠하고 벽에 무늬를 넣어 일본 동경의 채색(灰彩)을 바르고, 복도를 깔고 문을 수놓아 서양 방식의 기술로 분칠을 했다. 쌓고 수선을 마치고는 사무실로 정하고 학교를 면 소재지로 옮겼다. 이리하여 학당이 공실公室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한즉 승려가 조사가 된 것은 실로 납승으로서 변하여 성인의 지위를 이룬 것이니 괴이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학당이 변하여 공실이 되었으니 즉 인간세계에서 배움으로 말미암아 도로 들어가는 과정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학문의 업은 이로 말미암아 더욱 소홀해지고 수도의 인연은 이로 말미암아 더욱 어두워졌다. 사람들의 지혜가 어두워지지 않으려 하나 -
012_0761_b_01L日
012_0761_b_02L華藏莊嚴之受用各異。娑婆依正之淨
012_0761_b_03L穢自殊。其故何也。職由種刹之不同。
012_0761_b_04L報化之勝劣。身土之麁細。時主之遷變
012_0761_b_05L故也。不欲然而自然。烏可恠哉。今本
012_0761_b_06L寺事務室者。未考剏始年代。而乾隆十
012_0761_b_07L年乙丑至冬英宗二十一年。本以尋釰
012_0761_b_08L堂命名。爲衲僧捿息之僧堂云。幾百
012_0761_b_09L年依舊安堵而已矣。迄道光壬寅大回
012_0761_b_10L祿後。卅三殿未暇建修故。卅三幀。仍
012_0761_b_11L掛其堂。是卽僧堂變爲祖堂也。越六
012_0761_b_12L十九年庚戌春。因風潮之革新。設學校
012_0761_b_13L於玆堂。祖幀移安于東方丈。是乃祖堂
012_0761_b_14L變爲學堂也。又十三年癸亥冬。一層改
012_0761_b_15L革。而蕩破廳壁。洞治竈堗。粧門撻 [138] 以
012_0761_b_16L琉璃之鏡。鎻關樞以銀玉之寶。漆棟紋
012_0761_b_17L壁。塗糊日京之灰彩。棧道繡闥。粉點
012_0761_b_18L洋制之工技。築着而修繕了。以定事務
012_0761_b_19L室。移學校于本面所。是亦學堂。變爲
012_0761_b_20L公室也。然則僧變爲祖。實是衲僧之革
012_0761_b_21L凡成聖之位次。容或無恠也。而至若學
012_0761_b_22L變設公。卽乃人界之由學入道之階
012_0761_b_23L級。果安在乎。學問之業。由是而益踈。
012_0761_b_24L修道之緣。由是而尤昧。人智之不欲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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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1_c_01L어찌 가능하겠는가.산승 인봉印峯 장로가 재물(貨泉)이 고갈되는 것을 생각하고는 자기 재물 70원圓을 덜어서 일부 재물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다. 비록 큰 창고의 곡식 한 알과 같다 하더라도 태산을 이루는 흙 한 덩어리가 됨을 어찌 사양하겠는가. 이에 이 당堂이 이처럼 변했음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이노라.송광사 천자암 중수기11월 3일松廣寺天子庵重修記十一月三日하룻밤에 이루는 것은 거미의 그물이요 열흘에 버리는 것은 누에의 고치이며 6개월에 옮기는 것은 제비의 둥지(窠)요 10개월에 빼앗는 것은 까치의 집(巢)이며 백 년 동안 전하는 것은 사람의 집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경영할 때는 뱃속에서 꺼내어 그물을 엮거나 실을 토하여 고치를 얽거나 진흙을 다져서 집을 짓거나 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는데, 곤충과 새들의 일이 길고 짧음과 솜씨 있고 서툶이 조금 다르지만, 지어서 안거하는 방책이 어찌 사람과 다르겠는가.이 암자는 옛 기록을 살펴보니, 보조국사께서 본사를 창건한 후에 이어서 지은 것이며 금나라 황제가 셋째 아들 담당湛堂을 보내 머물게 하였기 때문에 존귀한 편액을 걸었던 것이다. 351년 지나 명나라 만력萬曆 원년 계유년(1573)에 영묵 태운靈默太雲이 중수重修하였고 또 201년 지나 청나라 옹정雍正 8년 경술년(1730)에 자원 이제自願以濟가 중수하였고, 다시 67년 지나 가경嘉慶 2년 정사년(1797)에 두월斗月 장로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제 131년이 되는 대정大正 13년 갑자년(1924) 겨울에 삼림을 내어(出賚森林) 이설월李雪月1274)이 시작하고 김율암金栗庵1275)이 지키는 근간이 되며 해은 재선海隱栽善1276)이 일을 감독하고, 포봉 정인抱鳳正印이 재물을 주관하여 -
012_0761_c_01L而焉可得乎。有山之釋印峯長老。顧念
012_0761_c_02L貨泉之枯渴。捐家貲七十圓。庶補一隅
012_0761_c_03L之資。雖云如太倉之一粟。何辭泰山之
012_0761_c_04L一壤也哉。於是乎記此堂之如是變革。
012_0761_c_05L以示于後。
012_0761_c_06L
012_0761_c_07L松廣寺天子庵重修記十一月三日
012_0761_c_08L一夜而成者。蛛之網也。十日而棄者。
012_0761_c_09L蠶之繭也。六月而移者。燕之窠也。十
012_0761_c_10L月而奪者。鵲之巢也。百年而傳者。人
012_0761_c_11L之室也。然而方其營也。或抽腸而結網。
012_0761_c_12L或吐絲而纒繭。或搏泥而築窠。或含枝
012_0761_c_13L而作巢。雖昆虫微禽之修短巧拙小殊。
012_0761_c_14L其所營搆安居之策。何異於人也哉。玆
012_0761_c_15L庵者。考諸古記。國師剏本寺之後。繼
012_0761_c_16L而營建者。而且使金帝第三子湛堂始
012_0761_c_17L居之故。揭以尊扁者也。越三百五十一
012_0761_c_18L年。明萬曆元年癸酉。靈默太雲重修。
012_0761_c_19L又距二百一年。淸雍正八年庚戌。自願
012_0761_c_20L以濟重修。又越六十七年。嘉慶二年丁
012_0761_c_21L巳。斗月長老重修云。迄今一百三十一
012_0761_c_22L年。大正十三年甲子冬。出賚森林。李
012_0761_c_23L雪月爲始發之囮。金栗庵作仍守之幹。
012_0761_c_24L海隱栽善督其役。抱鳳正印幹其財。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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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2_a_01L9월 초에 시작해서 두 달이 되지 않아 일을 마쳤다. 이것이 네 번째 중수에 해당한다.암자에는 쌍향수雙香樹1277)가 성스런 자취의 영험함을 보이며 암자 동무東廡에 있다. 1칸 조실과 연결하여 향나무 아래 봉향奉香하는 곳으로 삼은 지가 몇 년 되었다. 그러나 굴뚝이 여전히 가까워서 식자識者들의 꺼리는 바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동무를 허물고 조실을 전각 앞으로 옮겨 후원에 서까래 더한 것을 제거하고 무너진 것은 지탱하고 기운 것은 바로잡으며, 썩은 것은 뽑아 버리고 낮은 것은 높게 하였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창건한 본전이 완전하게 우뚝 서서 찬란히 빛나며 아스라이 훌쩍 구름 하늘 밖으로 멀리 벗어난 듯하고 쌍향수의 상서로운 향기가 칠요七曜1278)의 궁전까지 퍼지는(浮動) 듯하며, 만홀萬笏 청산1279)이 삼보의 탑에 인사를 하는 듯하다.아아, 천 년이 되지 못하는 사이에 창건하고 중수하여 겁파刼波를 몇 번이나 지났도다. 오늘 중수한 이는 창건한 이가 거듭 나타난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옛날 창건한 이는 오늘 중수함의 발원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백 년을 말미암아 전하였으니 그물이나 고치ㆍ둥지ㆍ집(巢)에 비교하면 길고 짧은 것이 다르지만 짓는 것은 동일하다. 이전과 이전의 수리한 것을 기록하여 뒤와 뒤에서 잇는 무리들에게 보이노니, 여기에 머무는 이들은 절실하게 힘쓸지어다.조계산 송광사 용화당의 중수 상량문12월 8일(曹溪山松廣寺龍華堂重修上樑文十二月八日)공경히 생각건대, 도솔천(兜率陀) 내원궁內院宮은 원래 삼재三災1280)의 이뤄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없어짐이 없는데 염부제閻浮提(이승) 가운데 인도印度엔 팔난八難1281)의 괴로움과 즐거움ㆍ성함과 쇠함이 어찌 많은가. 석존의 임시 형체가 스스로 코끼리를 타고 와 학수鶴樹1282)의 모습을 드러내심이 아닌가. 자씨慈氏(미륵)의 복력福力으로 -
012_0762_a_01L自九月初始役。不兩月而覆簣。此卽第
012_0762_a_02L四重修也。庵以雙香樹。爲聖蹟之靈異。
012_0762_a_03L在庵之東廡。聯結一間祖室。使得香樹
012_0762_a_04L下奉香之室。以來有年矣。然烟堗尙逼。
012_0762_a_05L常爲知識之所忌。故今壞其廡。而移祖
012_0762_a_06L室於殿前。拔後院之加椽。頽者撑之。
012_0762_a_07L猗者正之。杇者拔而低者高之。唯以最
012_0762_a_08L剏本殿。完而突立。輪焉奐焉。嵬嵬然
012_0762_a_09L翼翼然。逈出雲宵之表。雙香瑞氣。浮
012_0762_a_10L動於七曜之宮。萬笏靑山。拱揖於三寶
012_0762_a_11L之塌。嗚呼。未滿千年之內。剏之修之。
012_0762_a_12L幾經刼波也。今日修之者。安知非剏者
012_0762_a_13L之重現。昔日剏之者。安知非今日修
012_0762_a_14L之之發願也。由是百年而傳之者。較諸
012_0762_a_15L網之繭之窠之巢之者。修短雖殊。營搆
012_0762_a_16L則一也。所以記前前之修葺。以示後後
012_0762_a_17L繼繕之徒。居乎此者。切須勉旃。
012_0762_a_18L
012_0762_a_19L曹溪山松廣寺龍華堂重修上樑文
012_0762_a_20L十二月八日
012_0762_a_21L恭唯兜率陀內院宮。原無三災之成住
012_0762_a_22L壞空。閻浮提中印度。何多八難之苦樂
012_0762_a_23L盛衰。疑是釋尊之權形。自現象駕鶴樹
012_0762_a_24L之物色。莫非慈氏之福力。必待獜瑞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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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2_b_01L기린의 상서로움과 용화龍華1283)의 풍광을 기다림이 아닐 수 없다. 겁운刼運1284)의 순환을 누가 피하리오, 이치의 왕복이 가장 두렵도다.이 송광사는 도솔천의 아래 염부제의 동쪽 모퉁이에 있다. 나라로 나라를 보자면 근역槿域 3천 리에 큰 길상吉祥의 복지요, 고을에서 고을로 이르자면 바닷가(桑海) 3백 고을의 작은 강남 별천지로다. 우리 혜린慧璘1285) 조사가 창건하시고 보조 노스님이 확장하셨도다. 법신은 소멸하지 않으니 사자좌가 설법전에 우뚝하고, 지혜의 눈이 길이 밝으니 용화회龍華會1286)가 법계도法界圖 위에 엄숙하도다. 나무 매1287)와 잎사귀 호랑이의 신이한 변화를 듣자 하니 위사韋史1288)의 필담에 기재되어 있고, 향나무 매화 아이1289)의 괴이함을 보자 하니 연천淵泉1290)이 유람하여 과장하였도다. 지팡이 던져 나무로 자라남은 부석사의 선비화仙扉花에서 증명되고,1291) 먹은 것을 토해 물고기 됨은 또한 원효(元翁)의 오어사吾魚寺에서 징험되었도다.1292) 기타 오묘한 술법이 어찌 허탄하다 하리오.이제 이 용화당은 시초를 고찰할 수 없어 옛 자취에 어둡고, 주먹 펴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누가 이전 인연을 고하리오.1293) 들보 뒤와 기와 머리에 다만 ‘홍치弘治 3년(1490)에 미륵전을 조성했다’는 글자만 보이고, 지면에 용화당을 언제 지었다는 기원紀元의 말이 없다. 그러나 현재 건물 전신을 보노라면 고황에 든 중병이 통탄스럽다. 옆으로 바람과 위로 비가 들이치고 박쥐들이 낮에 침입함을 더욱 미워하고, 좌로 기울고 우로 스러져 족제비가 밤에 울어 댐을 어이하리오. 어찌 다만 거처하는 승려들의 얼굴만 붉어지겠는가, 실로 부끄럽게도 유람하는 선비들의 마음도 한심스러워했도다. 이로 말미암아 대중의 좋은 계책을 모아 비상하고 신이한 처방을 헤아려서, 진주알과 유리 부스러기는 토산이 아니니 생각하지 말고 백미탕白米湯과 황금방黃金方은 있는 대로 더욱 힘썼네.이에 바람 도끼와 달 도끼로 장석匠石의 지휘 아래 분분히 휘두르고, 산악 신과 개울 영령이 비구(苾蒭)의 혀 아래 명령을 듣네. 들보와 기둥을 뒤섞으니 -
012_0762_b_01L華之風光。誰免刼運之循環。最畏理數
012_0762_b_02L之徃復。唯玆松廣寺者。兜率陀之下院。
012_0762_b_03L閻浮提之東陲。以國觀國兮。槿域三千
012_0762_b_04L里。大吉祥之福地。從鄕至鄕也。桑海
012_0762_b_05L三百州。小江南之別區。毉我慧璘祖之
012_0762_b_06L剏占。普照老之大闢。法身不滅。獅子
012_0762_b_07L座嵬嵬於說法殿中。慧目長明。龍華會
012_0762_b_08L儼儼乎法界圖上。聞諸木鷹葉虎之神
012_0762_b_09L變。說盡韋史之筆談。觀彼香樹梅童之
012_0762_b_10L恠奇。誇張淵泉之遊步。杖投生幻樹。
012_0762_b_11L旣證於浮石之仙扉花。食吐化爲魚。亦
012_0762_b_12L驗於元翁之吾魚寺。其餘妙術。何歸誕
012_0762_b_13L虛。今玆堂者。未考濫觴。自昧舊蹟。莫
012_0762_b_14L悟申拳。誰吿前因。樑背瓦頭。只見弘
012_0762_b_15L治三年彌勒殿成造之字。紙面筆舌。原
012_0762_b_16L無紀元。何日龍華堂剏修之言。然而現
012_0762_b_17L觀堂殿之全身。方痛膏肓之重病。傍風
012_0762_b_18L上雨。堪憎蝙蝠之晝侵。左傾右斜。何
012_0762_b_19L奈鼯鼬之夜叫。奚但居僧之赤面。實愧
012_0762_b_20L遊士之寒心。由是而集大衆之良謀。較
012_0762_b_21L非常之神劑。眞珠丸琉璃散。非土產而
012_0762_b_22L莫論。白米湯黃金方。隨所有而益辦。
012_0762_b_23L肆以風斤月斧。紛揮於匠石之指頭。岳
012_0762_b_24L神澗靈。聽令於苾蒭之舌底。杗楹錯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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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2_c_01L모습이 진나라 채찍1294)의 바람을 전하는 듯하고, 여러 북을 울리니 소리가 범패 음률을 울리도다. 자(䂓矩)와 먹줄(繩墨)로 고래와 미꾸라지의 꼬리와 머리에 줄을 긋고, 도끼와 칼을 갈아서 용과 봉황의 콧구멍을 잘라 새기도다. 저것을 자르고 이것을 끊으니 모두 헤아리는 목수의 재간이요, 톱의 꼬리와 도끼의 머리가 결묵結墨1295)의 제작에 부응하네. 기둥과 들보, 도리 등이 줄 맞춰 종횡으로 자리 잡고, 서까래와 문빗장 등을 차례대로 다듬어서 잘라 내네. 이에 보니, 병丙1296)을 등지고 임壬1297)을 향해 삼재의 재앙을 제압하고, 오른쪽 갑甲1298)과 왼쪽 경庚1299)으로 또한 칠살七殺1300)의 장애를 진압하네. 사방의 노을 지는 산들은 술해戌亥1301)의 입구에 다투어 모이고, 백 리의 은빛 강물은 축인丑寅1302)의 바다 입구로 다투어 달려가네. 이에 눈빛 재목(雪材)의 노을빛이 인초忍草의 향풍에 떠 움직이고, 무늬 초석(紋礎)의 태양빛이 보림寶林1303)의 서리 달을 비추었다. 금옥의 끈들이 천 길 구름사다리에 걸려 있고, 구름 노인과 원숭이 손자가 7리里 금지金地에서 기뻐 뛰누나.난亂1304)은 다음과 같다.
而已 그만이로다
魯一變而至於道 노나라가 한 번 변하면 도에 이름을
慣聞娑婆穢土 사바세계 예토穢土에서 익숙히 들었으니
三變爲諸佛淨宮 세 번 변하면 제불諸佛의 정궁淨宮이 될 텐데,
魯還變而返於齊 노나라가 도리어 변하여 제나라로 돌이키니
誰知彌勒樓閣 미륵의 누각이 세 번 변하여
三變爲縉紳旅舘 관리들의 여관이 될지 뉘 알았으리
이에 육위六偉1305)의 긴 노래를 울리고 7결闋의 짧은 명銘을 짓노라. 가사는 다음과 같다.
阿郞偉拋梁東 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져라
稽首慈陰十八公 자음당1306) 18공께 머리 조아리고
欲請三師爲證眼 세 스님을 증안證眼으로 청하려 하는데
却逢行解普賢童 문득 행해당1307)에서 보현동자1308) 만나네
南 남
丙丁峯高曰有庵 병정봉1309) 높이 암자가 있으니
百城知識要相見 온갖 성城의 지식인들을 보고자
善財拈香次第叅 선재가 향을 들고 차례로 참례하네
西 서
峰如帝宇壓曹溪 황제 같은 봉우리1310)는 조계를 압도하여
花花草草皆禪話 꽃마다 풀마다 모두 선을 말하는데
黃老底緣問木犀 황노黃老는 어이타 목서木犀를 묻는가1311)
北 북
梵鐘樓接大藏閾 범종루가 장경각 영역에 인접하고
先刼道成今尙空 선겁에 도를 이루어 지금 여전히 공하니
石泉印月待彌勒 석천1312)에 비친 달은 미륵을 기다리누나
上 상
兜率宮中開錦帳 도솔천 궁의 비단 휘장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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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2_c_01L影轉秦鞭之風。鼛鼓騰撞。聲動梵唄之
012_0762_c_02L律。䂓矩繩墨。點尺鯨鰌之尾頭。揩礱
012_0762_c_03L釿刀。斫刻龍鳳之鼻孔。截於彼。斷於
012_0762_c_04L此。都料杍之幹能。鉅之尾。斧之頭。副
012_0762_c_05L結墨之裁制。柱㭼檁。㭿枅梲。依行列
012_0762_c_06L而安立縱橫。桷棍槾。楗榱椽。從次第
012_0762_c_07L而磨鍊斫削。乃觀背丙而向壬。可壓三
012_0762_c_08L災之餘殃。右甲而左庚。亦鎭七殺之宿
012_0762_c_09L障。四圍霞嶂。爭聚戌亥之閈門。百里
012_0762_c_10L銀江。競奔丑寅之海口。於是雪材霞色。
012_0762_c_11L浮動於忍草之香風。紋礎日光。暉映
012_0762_c_12L於寶林之霜月。金繩玉索。揭揚於千仞
012_0762_c_13L雲梯。雲叟猿孫。抃躍於七里金地。亂
012_0762_c_14L曰而已。魯一變而至於道。慣聞娑婆穢
012_0762_c_15L土。三變爲諸佛淨宮。魯還變而返於
012_0762_c_16L齊。誰知彌勒樓閣。三變爲縉紳旅舘。
012_0762_c_17L爰騰六偉之長唱。載綴七闋之短銘。詞
012_0762_c_18L曰。阿郞偉拋梁東。稽首慈陰十八公。
012_0762_c_19L欲請三師爲證眼。却逢行解普賢童。南。
012_0762_c_20L丙丁峯高曰有庵。百城知識要相見。善
012_0762_c_21L財拈香次第叅。西。峰如帝宇壓曹溪。
012_0762_c_22L花花草草皆禪話。黃老底緣問木犀。北。
012_0762_c_23L梵鐘樓接大藏閾。先刼道成今尙空。石
012_0762_c_24L泉印月待彌勒。上。兜率宮中開錦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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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3_a_01L龍華何日見慈氏 언제 용화수 자씨(미륵)를 뵈려나
帝網重重分角亢 제망帝網1313)이 중중무진으로 각항角亢에 나뉘었네
下 하
大地茫茫唯一指 망망한 대지는 오직 손가락 하나1314)
上堂禪子帶刀眠 상당上堂 선자禪子1315)가 칼 차고 자니1316)
蜂房何人非結社 승방의 누군들 결사를 하지 않으랴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이 조계의 물에 씻겨나가고 십마백장十魔百障1317)이 길상吉祥의 바람에 흩날려 가게 하소서. 자씨慈氏(미륵) 궁중의 모든 상선인上善人들이 용화당에 운집하고, 석존 집안의 청정한 법중法衆들이 사자좌 앞에 바다처럼 모이게 하소서.조계산 송광사 화엄전, 불조전의 석축과 노전1318) 중창기(曹溪山松廣寺華嚴佛祖兩殿石築爐殿重剏記)삼변정토三變淨土1319)에 대해 일찍이 취령鷲嶺의 지극한 말씀을 들었고 오취잡거五趣襍居1320)에 대해 또한 나계천주螺䯻天主1321)에게 들었다. 그러므로 정토와 예토가 달리 변하고 무너짐과 이뤄짐이 절로 존재하는 것이다.지금 두 불전 앞에 2각閣과 1루樓가 있으니 월조각月照閣ㆍ명성각明星閣과 화장루華藏樓이다. 옛 기록을 살펴보니, 우리 왕조 인조 11년 계유년(1633)에 성性ㆍ현玄 두 스님이 법우法宇(사찰)를 창건하고 경판을 보관하였고, 겸하여 월조각을 창건하셨다. 숙종 10년 갑자년(1684)에 득오得悟 상인이 불조 석상을 만들었으니, 불전을 지은 것은 아마도 선천先天1322)이리라. 15년 지나 기사년(1689)1323)에 우계 전익友溪雋益1324)이 명성각과 화장루를 창건하였고, 영조 4년 무신년(1728) 가을에 춘선春善 장로가 화엄전 동서 협실과 정문을 보수하였다. 순조 원년(1800)에 윤수允修 도감都監1325)이 화엄전을 중수하였고, 철종 12년 신유년(1861)에 용운龍雲1326) 선사가 화장루를 세 번째 중수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3백 년이 되지 않아서 거듭 수리를 하였는데, 지금 허물어진 것은 운수이니 어찌할 것인가.을축년(1925)에 주지 율암 찬의栗庵贊儀1327)가 -
012_0763_a_01L龍華何日見慈氏。帝網重重分角亢。下。
012_0763_a_02L大地茫茫唯一指。上堂禪子帶刀眠。蜂
012_0763_a_03L房何人非結社。伏願上梁之後。三災八
012_0763_a_04L難。蕩滌於曹溪之水。十魔百障。飛颺
012_0763_a_05L於吉祥之風。慈氏宮中。諸上善人。雲
012_0763_a_06L集於龍華堂上。釋尊家裡。淸淨法衆。
012_0763_a_07L海會於獅子座前。
012_0763_a_08L
012_0763_a_09L曹溪山松廣寺華嚴佛祖兩殿石築
012_0763_a_10L爐殿重剏記
012_0763_a_11L若曰三變淨土。曾見鷲嶺極談。五趣襍
012_0763_a_12L居。亦聞螺䯻天主。所以淨穢異變。壞
012_0763_a_13L成自在。今兩殿之前。有二閣一樓。曰
012_0763_a_14L月照。曰明星。曰華藏也。按古記。我朝
012_0763_a_15L仁祖十一年癸酉。性玄二師。剏法宇而
012_0763_a_16L藏經板。兼剏月照閣。肅宗十年甲子
012_0763_a_17L得悟上人。造佛祖石像。剏殿疑在先天
012_0763_a_18L耶。越十五年己巳。友溪雋益。剏明星
012_0763_a_19L閣華藏樓。英祖四年戊申秋。春善長老
012_0763_a_20L華嚴殿東西夾室與正門修補。純祖元
012_0763_a_21L年。允修都監。華嚴殿重修。哲宗十二
012_0763_a_22L年辛酉。龍雲禪師。華藏樓三重修云。
012_0763_a_23L然則未滿三百年。再經修葺。而以今傾
012_0763_a_24L頽者。理數之奈何。歲乙丑住持栗庵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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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3_b_01L동지들에게 중창을 약속하기를, “사원의 허물어짐이 이와 같을 수는 없다. 앉아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어찌 우리들의 직분이겠는가.”라고 하고는, 삼림을 베고 재물을 구하여 장인을 불러 일을 시작했다. 월조각을 허물고 북으로 옮겨(退北) 칠성전의 향각香閣으로 삼으니 이 전殿과 각閣은 김학모金學模1328) 공이 보시하여 세운 것이다. 명성각이 무너져 앞으로 옮겨(退前) 두 전殿의 향사香社로 삼고, 화장루가 무너져 중앙에 세우니 세 전의 정문이 되었으며, 밖으로 사방 담장을 두르니 안으로 천 명을 수용할 만큼 규모가 널찍하고 담 안(序闥)이 밝았다. 이는 삼림을 방매한 비용으로 해은海隱 공公이 주관하였다. 그러나 가장 부족한 것은 석축 한 가지였다. 이 때문에 해은 공이 스승 용암龍嵓 노스님에게 고하기를, “몸 밖의 티끌 재물은 흑업黑業(악업)을 늘리기만 하니, 바라건대 선한 씨를 내려 장래 즐거운 과보를 얻고자 하는데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용암 노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조리 기구가 될 터이니 네가 맛을 맞출 수 있겠느냐?” 드디어 재산을 모두 기울여 나머지 3백 원을 내었다.다음 해 봄에 우부禹斧1329)를 빌려 벼랑을 깎고 진편秦鞭1330)을 휘둘러 바위를 질책하여 3개월이 못 되어 완성하니 천인天人의 도움이요 기산綺山 공公1331)의 감독이 아니겠는가. 이에 사방의 계단이 유리 빛으로 변하였고 두 전殿의 섬돌은 옥돌(琅玕)1332) 테두리(唇)를 자른 듯하다. 또한 7처의 중해衆海1333)가 시주(檀氏)의 청정한 마음 그릇에 은은히 현현하고, 3천의 불조佛祖들이 화주(化士)의 훌륭한 혀 위에 용솟음치도다. 인도한 공적이 시주(檀惠)의 덕보다 낮지 않고, 감독의 공력 또한 공덕의 지위보다 낮지 않도다. 공덕의 마침이 중창을 약속한 시작을 넘어서지 않도다. 그래서 이에 공과 덕의 성함을 내거니 겁석刼石이 민멸되도록 길이 보존되고 별과 달이 밝듯이 길이 비추리라. -
012_0763_b_01L儀。令同志剏約曰。寺院之頹圮者。莫
012_0763_b_02L此若也。而坐待傾伏。豈吾輩之職分哉。
012_0763_b_03L仍以伐森求財。招匠始役。月照閣壞而
012_0763_b_04L退北。爲七星殿之香閣。此殿與閣。乃
012_0763_b_05L金公學模之施建者也。明星閣壞而退
012_0763_b_06L前。爲兩殿之香社。華藏樓壞而建中。爲
012_0763_b_07L三殿之正門。而外環四墻。內容千人。
012_0763_b_08L䂓度宏剏。序闥洞彰。此乃放森林之費
012_0763_b_09L額。海隱公之幹督也。然而最欠者。石
012_0763_b_10L築一款也。由是而海隱公。吿其師龍嵓
012_0763_b_11L老曰。身外塵財。徒增黑業。願下善種。
012_0763_b_12L將獲樂果。伏唯何若。龍老莞爾諾曰。
012_0763_b_13L我爲調具。汝能調味耶。遂傾槖和盤
012_0763_b_14L而出餘三百圓。越明年春。借禹斧而斫
012_0763_b_15L崖。揮秦鞭而叱石。未三月而竣工。豈
012_0763_b_16L天人之所助。綺山公之監蕫也。於是乎
012_0763_b_17L四邊階道。變成琉璃之光。兩殿砌級。
012_0763_b_18L斫斷琅玕之唇。亦復七處衆海。隱現於
012_0763_b_19L檀氏淨心器中。三千佛祖。湧出於化士
012_0763_b_20L善巧舌上。所以化導之功。不下於檀惠
012_0763_b_21L之德。蕫監之力。亦不下於功德之位。
012_0763_b_22L功德之要終。莫越乎剏約之權輿。故玆
012_0763_b_23L揭芳啣。之功之德。刼石泯而長存。星
012_0763_b_24L月明而永照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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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3_c_01L해청당을 부수는 축문병인년(1926) 1월 12일 갑신(海淸堂破屋祝文丙寅一月十二日甲申)토지를 수호하는, 가람의 큰 신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령한 신들이시여
영산회상 당시에,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같이 함께 발심하니, 가람을 수호하리라.
사찰을 따라, 사원을 가리지 않고
고독원이나 기수祗樹,1334) 녹원鹿苑1335)과 학림鶴林1336)
이와 같은 곳들을, 지키지 않음이 없으니
바람을 질책하고 비에 소리쳐, 상서롭지 못함을 금했네.
오늘 이 해청당은, 오래되어 무너지니
길일을 택하여, 이에 일을 시작합니다.
바라건대 신령이시여, 화내지 말고 걱정 말고
잠시 허공 건물에 오르시어, 안도하고 보호하사
보호하는 생각을 도와서, 장애 없이 일하게 하소서.
정성껏 다과를 갖추고, 술을 마련하여
삼가 맑은 술과 함께, 여러 음식과 울향鬯香1337)을 드리노니굽혀 이 술을 받으시고,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보조국사 사리탑 축대가 무너져 세우는 축문(普照國師舍利塔築臺壞成祝)병인년(1926) 8월 27일 을축에 주지 찬의贊儀가 원력수생願力受生1338)하신 해동海東의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 존령尊靈께 밝히 아룁니다.청정한 법계의 몸은, 본래 생사가 없으나
큰 자비의 원력으로, 비로소 왕래가 있어
뜻에 따라 몸을 받아, 사바세계에 나시니
혜풍惠風이 남국에 불고, 불일佛日이 동방에 비쳐
업보의 인연이 송악1339)에 깊고, 조사의 밀인密印을 선종에 내걸어
도력은 9산의 장벽을 융화시키고,1340) 자리는 삼보의 이름에 참여했네.1341)
변화로 법계를 마치고, 탑을 조계에 두었으니
9층 안탑鴈塔과, 백 층의 치대鴟臺1342)
구역은 오래되었으나, 개축이 새로우니
본지本地는 무너지지 않으나, 잔도棧道1343)가 막혀
사방의 계단을, 옥빛으로 가다듬고
무덤에서 편안하시도록, 여러 겹 옥돌로 지탱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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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3_c_01L
012_0763_c_02L海淸堂破屋祝文丙寅一月十二日
012_0763_c_03L甲申
012_0763_c_04L土地守護。伽藍大神。不知名位。靈祗等
012_0763_c_05L衆。靈山當時。受佛付囑。同共發心。守
012_0763_c_06L護伽藍。隨逐佛舍。不擇寺庵。獨園祗
012_0763_c_07L樹。鹿苑鶴林。如是等處。莫不護從。叱
012_0763_c_08L風喝雨。呵禁不祥。于今此堂。年久傾
012_0763_c_09L覆。選差糓日。爰擧剏役。唯冀靈祗。勿
012_0763_c_10L嗔勿憂。暫駕空廈。安堵護祐。傍助護
012_0763_c_11L念。剏事無障。精修茶菓。玆設尊楹 [139] 。謹
012_0763_c_12L以淸酌。庶羞鬯香。俯歆斯尊。伏唯尙
012_0763_c_13L享。
012_0763_c_14L
012_0763_c_15L普照國師舍利塔築臺壞成祝
012_0763_c_16L歲次丙寅八月二十七日乙丑。住持贊
012_0763_c_17L儀。敢昭吿願力受生海東佛日普照國
012_0763_c_18L師尊靈。淨法界身。本無出沒。大悲願
012_0763_c_19L力。始有去來。隨意受生。影落娑婆。惠
012_0763_c_20L風扇於南國。佛日照於東方。報緣深於
012_0763_c_21L松岳。祖印揭於禪宗。道融九山之壁。
012_0763_c_22L位叅三寶之名。化終法界。塔鎻曹溪。
012_0763_c_23L九層鴈塔。百級鴟臺。封疆旣舊。改築
012_0763_c_24L維新。本地不壞。棧道乃堙。四邊階道。
012_0763_c_25L攻治璘垠。安堵窀穸。祇撑層珉。至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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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4_a_01L지극히 영험한 존령이시여, 놀라지 말고 화내지 마시고
신령으로 돕고 보호하사, 재앙을 없애고 길상을 내리시길
이에 울향을 올리며, 존령께 우러러 아뢰나니
음식은 소박하지만, 양식을 받으시고
삼가 차를 따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송광사 사천왕의 다섯 번째 중수기병인년(1926) 9월 9일 봉안(松廣寺四天王第五剏修記丙寅九月九日奉安)붉은 호랑이 해(丙寅, 1926) 중구일重九日에 운雲 사미가 책을 들고 와서 말했다.“지금 하는 불사佛事의 거문고 판 위에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명나라 숭정崇禎 원년 무진년(1628)에 희옥熙玉1344)이 증명하고 응원應圓1345)이 그렸고, 청나라 강희康熙 59년 경자년(1720)에 이제以濟가 증명하고 일기一機1346)가 그렸고, 청나라 가경嘉慶 11년 병인년(1806)에 서홍瑞弘1347)이 증명하고 도일度溢1348)이 그렸고, 광서光緖 17년 신묘년(1891)에 윤문倫文이 증명하고 천희天禧1349)가 그렸고, 대정大正 15년 병인년(1926)에 찬의贊儀가 주지住持를 맡고 문성文性1350)이 그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처음 창건한 연대에 사천왕의 위치와 손에 들고 있는 것, 발로 밟고 있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상세히 듣고 싶습니다.”“명나라 무진년(1628)은 지금부터 303년이라 오래되지 않았는데 다섯 번 수선을 하였으니 어찌 그리 빠른가. 형상 있는 것은 무상하다는 것이 진실로 속임이 없도다.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동방호세東方護世 건달바乾達婆의 군주 제두뢰타提頭賴吒1351)는 이곳 말로 ‘지국천왕持國天王’이라 하는데 거문고를 안고 음악을 연주한다. 남방호세南方護世 구반다鳩般茶의 군주 비류륵차毘留勒叉1352)는 이곳 말로 ‘증장천왕增長天王’이라 하는데 칼을 들고 사귀를 물리치거나 탑을 받들어 병화를 물리친다. 서방호세西方護世 대룡大龍의 군주 비루박차毘樓博叉1353)는 이곳 말로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 하는데 용을 호령하며 구슬을 희롱한다. 북방호세北方護世 대야차大藥叉의 군주 비사문毘沙門1354)은 이곳 말로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 하는데 -
012_0764_a_01L至尊。勿警勿嗔。鬼扶神護。消災降祥。
012_0764_a_02L玆庸薦鬯。仰籲尊靈。物雖菲薄。俯歆
012_0764_a_03L斯粻。謹以茶酌。伏唯尙饗。
012_0764_a_04L
012_0764_a_05L松廣寺四天王第五剏修記丙寅九
012_0764_a_06L月九日奉安
012_0764_a_07L歲赤虎之重九日。雲沙彌挾册而進曰。
012_0764_a_08L今見佛事所有琴板上所記。大明崇禎
012_0764_a_09L元年戊辰。熙玉證明。應圓畫之。大淸
012_0764_a_10L康熙五十九年庚子。以濟證明。一機畫
012_0764_a_11L之。大淸嘉慶十一年丙寅。瑞弘證明
012_0764_a_12L度溢畫之。光緖十七年辛卯。倫文證明。
012_0764_a_13L天禧畫之。大正十五年丙寅。贊儀住持。
012_0764_a_14L文性畫之云。初剏年代。四王位置。及
012_0764_a_15L手所持。足所履者。是何等物名。詳悉
012_0764_a_16L願聞乎。曰。大明戊辰。今爲三百三年之
012_0764_a_17L未遠。而五重修繕。何其太速歟。有相
012_0764_a_18L之無常。信不誣矣。諸般文不云乎。東
012_0764_a_19L方護世乾達婆主。提頭賴吒。此云持國
012_0764_a_20L天王。抱琴奏樂。南方護世鳩般茶主。
012_0764_a_21L毘留勒叉。此云增長天王。執釰驅邪。
012_0764_a_22L或奉塔退兵。西方護世爲大龍主。毘樓
012_0764_a_23L博叉。此云廣目天王。喝龍弄珠。北方
012_0764_a_24L護世大藥叉主。毘沙門。此云多聞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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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4_b_01L깃발을 들고 중생을 영도한다. 이들 모두 귀신을 제압하고 사귀를 쫓아 불길한 것을 금하고 불법을 수호하며 가람을 보호하니, 우리 부처님이 부탁하신 것이다. 지금 경영하면서 대중들이 갹출하고 산림 채벌한 비용을 합한 8백여 원圓으로 8월 20일에 시작하여 9월 10일에 마치니, 찬란하게 선명하고 장애 없이 회향回向1355)하였다. 이에 네 신체의 엄숙한 형상이 방위를 따라 늘어서니 오색구름이 골짜기 입구에서 빛을 더하고, 여덟 눈동자의 번개 광선이 때를 다투어 맑게 빛나니 해와 달이 하늘 거리에서 빛을 가리도다. 다섯 마귀는 몸을 감출 곳이 없으니 1백 귀신이 어디로 도망하리오.”운雲 사미가 머리를 조아리니, 기록하여 후인(可畏)들에게 보이노라.조계산 불일보조국사의 감로탑을 개축하는 기문병인년(1926) 9월 20일 봉안식(曹溪山佛日普照國師甘露塔改築記丙寅九月二十日奉安式)우리 국사께서 고려 희종 8년1356) 경오(1210)에 입적하셨고 다음 해에 사찰 북쪽 기슭에 탑을 세웠다. 그 후 세 번 나가고 세 번 들어온 자취는이 책 1권 7장丈에 보인다.1357) 묵암默庵 노스님의 필체로 다 기술되어 있으니 덧붙이고 싶지 않다.717년 후 대정 15년 병인(1926)에 본사 지주 찬의贊儀가 문득 발원을 하여 티끌 재물을 아끼지 않고 1,020여 원圓을 들여서 5월 보름에 시작하여 일꾼들을 불러 일을 감독하니 우부禹斧(도끼) 소리 가운데 황석공黃石公과 장석군匠石君1358)이 조각조각 잘라서 진편秦鞭(채찍)의 그림자 아래 긴 대열의 돌(長隊石)과 짧게 쌓은 돌이 구르고 굴러 도착하였다. 이에 8월 27일 탑을 열고 9월 3일에 구멍을 뚫으니 자기 단지 하나와 성골聖骨 1백 조각이 속에 가득히 안치되어 있어 쟁쟁 옥이 떨치듯 찬란히 금이 빛나듯 하였다. 그래서 자기磁器높이는 1척 남짓이요, 둘레가 작은 동이를 설법전 사자좌 위에 봉안하고 -
012_0764_b_01L建旗領衆。皆壓鬼逐邪。訶禁不祥。護
012_0764_b_02L佛護法。守護伽藍。吾佛之所囑也。今
012_0764_b_03L之營之。以大衆醵金。山林採伐費。八百
012_0764_b_04L餘圓金。而始於八月念。終乎九月旬。
012_0764_b_05L煥然鮮明。無障回向。於是乎四躬嚴像。
012_0764_b_06L隨方并列。五雲增彩於洞門。八眼電光
012_0764_b_07L競時瞪睛。雙曜掩映於天衢。五魔竄
012_0764_b_08L身無地。百鬼遁形何處耶。雲沙彌稽首
012_0764_b_09L記之以示可畏云爾。
012_0764_b_10L
012_0764_b_11L曹溪山佛日普照國師甘露塔改築
012_0764_b_12L記丙寅九月二十日奉安式
012_0764_b_13L唯我國師。高麗熙宗八年庚午示寂。越
012_0764_b_14L明年立塔于寺之北麓。而其後三出三
012_0764_b_15L入之蹟。見此卷
初七丈備盡於默老之筆。不欲
012_0764_b_16L贅焉。越七百十七年後。大正十五年丙
012_0764_b_17L寅夏。本住持贊儀。忽發剏願。不惜塵
012_0764_b_18L財。費一千二十餘圓金。濫觴於五月望。
012_0764_b_19L招工蕫役。禹斧聲中。黃石公匠石君
012_0764_b_20L片片而斷截。秦鞭影下。長隊石短築石
012_0764_b_21L轉轉而到着。於是開塔於八月二十七
012_0764_b_22L日。穿邃於九月初三日。一瓿磁器。百
012_0764_b_23L片聖骨。滿中安然。錚錚然玉振之。燦
012_0764_b_24L燦然金融焉。仍奉磁器高尺餘也
周小盆也于說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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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4_c_01L향을 사르며 목탁을 울리고 온 대중이 절하며 바라보고 모든 입으로 경축을 올렸다. 그런데 30매枚 사리 가운데 1알(粒)이 보이지 않으니,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인가. 미친놈이 삼켜 버린 것인가? 삼칠일 동안 향 공양으로 엄호하면서 차례대로 수도隧道1359)를 수선하였다. 9월 18일에 이르러 본 자리에 봉안하고 회를 칠하고 덮었으니, 인寅을 등진 신申 방향1360)이다. 새로 3층을 쌓아 내렸으니, 높이 드러내고자 함이요, 그 위에 옛 탑을 그대로 쌓았으니 예전대로 편하게 함이라. 합하여 9층이 된다. 사방 계단을 본 터에 따라 설치했으니 넓지도 좁지도 않다. 그 뒤를 쌓아서 담장을 두르고 그 앞을 통하여 경사지게 하니 30층 계단(棧)이 되었다. 그것은 사리 30매를 표현한 숫자인가. 엎드려 살피면 여산驪山1361)의 잔도棧道 같고, 우러러 바라보면 천극天極1362)의 각도閣道1363) 같도다.아아, 우리 말세의 보잘것없는 인생이 어떤 선근으로 717년 전의 성골을 여기서 대면하여 알현하게 되었나. 또한 오늘 시주(檀氏)의 인연이 긴 세월 속에 어떤 기이한 인연을 심어서 위없는 복전에 썩지 않는 뿌리를 심었는지 모르겠다.정묘년(1927) 가을에 대중(介衆)1364)이 발의하여 그 공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돌을 다듬어 명銘을 새기도록 했다.
法乳長曹溪 법유法乳가 조계에 영원하고
檀功隆松嶺 단공檀功1365)이 송광사 산에 높아라
佛日明法界 불일佛日이 법계에 밝고
甘露沾禪境 감로가 선경禪境을 적시누나
나는 국사의 법파法波에 외람되이 목욕하여 이에 자라나고 여기서 늙었는데 마음 밭에 한 터럭 선善이 부족하거늘 마침 이에 참여하여 친히 성골을 뵙고 개축 사업을 목도하니, 우러러 칭송하는 바람이 가슴에 가득하여 나도 몰래 붓을 꺼내 한 줄기를 기록함이 이와 같고 이와 같다.본사에서 염불당을 혁파함에 감상을 적은 설(本寺革罷念佛堂感想說) -
012_0764_c_01L殿獅子座上。焚香鳴鐸。一衆拜觀。萬
012_0764_c_02L口慶祝。而三十枚舍利。不見一粒。疑
012_0764_c_03L是壬亂所失耶。眞若狂夫所呑耶。三七
012_0764_c_04L日間。香供嚴護。第待修治邃 [140] 道。至九
012_0764_c_05L月十八日。奉安于本座。灰塗而盖覆之。
012_0764_c_06L乃寅坐申向也。新疊下三層。意欲高顯。
012_0764_c_07L而其上仍疊古塔。依舊安堵。合九層也。
012_0764_c_08L四階依本址。而不廣不俠。築其後而垣
012_0764_c_09L之。通其前而隊之。爲三十級而成棧。
012_0764_c_10L疑是舍利三十枚之表數耶。俯而察之。
012_0764_c_11L若驪山之於棧道。仰而望之。象天極之
012_0764_c_12L於閣道歟。嗚呼噫嘻。唯吾末葉殘生。
012_0764_c_13L何幸善根面謁乎七百十七年前聖骨
012_0764_c_14L於此乎。况復今日檀氏之緣。不知浩刼
012_0764_c_15L植何奇緣。而以種不朽根於無上福田
012_0764_c_16L也。越丁卯秋。介衆發議。恐泯厥功。鍊
012_0764_c_17L石勒銘曰。法乳長曹溪。檀功隆松嶺。
012_0764_c_18L佛日明法界。甘露沾禪境。予叨沐國師
012_0764_c_19L之法波。長於玆。老於斯。而乏一毫善於
012_0764_c_20L心田。適叅于玆。親拜聖骨。目醉剏役。
012_0764_c_21L賛仰之願。塞乎胷次。不覺抽毫。記諸
012_0764_c_22L一線。如是如是。
012_0764_c_23L
012_0764_c_24L本寺革罷念佛堂感想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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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5_a_01L『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길, “산에 ‘학’이라는 새가 있는데 목이 길고 다리 또한 그러해서 당당하게(軒軒) 날며 크게(嘎然) 울어 대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 구고九臯1366)의 구름 속 소나무 꼭대기가 아니면 머물지 않는다. 물에 ‘물오리(鳬)’라는 새가 있는데 목이 짧고 다리 또한 그러해서 문득 잠수하고 표연히 떠오르니 또한 삼강三江1367)의 안개 낀 물결 속이 아니라면 헤엄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 모두 조물주와 천진天眞이 그렇게 한 것이로다. 문득 강마을의 그물질 하는 이가 주살로 모두 잡아서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이으니, 이윽고 긴 것과 짧은 것 모두 아파하고 자른 것과 이은 것 모두 병이 나서, 새 족보 바깥으로 모두 버리게 되었다. 이것은 조물주를 거역하고 천진을 잃은 변고가 아니겠는가. 어찌 그리 긴 것에 소원하고 짧은 것에 친하여 책망하여 자르고 은혜롭게 이음이 이처럼 심한가.이제 조계산에 안팎의 교육이 있으니 안으로 선종과 교종ㆍ염불종이요 밖으로 소학교(小校)와 중학교(中校)ㆍ대학교(大校)의 명칭이 있다. 그런데 3종은 사찰의 창건 이래로 모두 겸하여 시행되었으니 솥의 발처럼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 3교는 혁신한 이후로 아래로부터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누각 층계처럼 점차 오르는 것이다. 누각에 오르는 이가 흥과 힘에 따라 1층에 올라 그치기도 하고 2층에 올라 그치기도 하고 3층에 오르기도 하고 설혹 끝까지 오르기도 한다. 다만 형외形外를 방랑하며 세계를 고무鼓舞하고 눈을 두리번거리며 회포를 펼치면서 세계(球宇)를 삼킬 마음과 성현을 평가할 뜻이 세상과 함께 부침하여 끝내 우리 집안의 물건이 되지 않는 것이 누각을 오르는 근본 뜻이다. 솥처럼 서 있는 경우는 대소를 막론하고 세 발을 같이 들어야지 하나라도 없으면 서지 못한다. 금이나 철이나 구리나 일시에 주조하여 죽을 끓이고 밥을 지어서 네 부처를 삶고 네 조사를 삶아 마침내 우리 집안의 본색 납자가 되는 것, -
012_0765_a_01L山海經云。山有鳥曰鶴。其頸長。其脛
012_0765_a_02L亦然。軒軒以飛。嘎然而鳴。聲聞于天。
012_0765_a_03L若非九兜 [141] 雲松之頂。莫可捿息。水有鳥
012_0765_a_04L曰鳬。其項短。其足亦然。忽焉以潛。飄
012_0765_a_05L然而浮。亦非三江烟波之心。莫與游泳。
012_0765_a_06L此皆造物天眞之使然也。忽有江村網
012_0765_a_07L夫。弋以并得之。斷其長而續乎短者。
012_0765_a_08L尋之長短俱痛之。斷續同病焉。并棄
012_0765_a_09L於禽譜之外。此無乃逆造物喪天眞之
012_0765_a_10L變乎哉。何其踈於長而親於短。咎而斷
012_0765_a_11L之。恩而續之。若是之甚乎。今曹溪山
012_0765_a_12L有內外敎育。內以禪宗敎宗念佛宗也。
012_0765_a_13L外以小校中校大校名焉。然而三宗。則
012_0765_a_14L自剏寺以來。并擧兼行。如鼎足而闕一
012_0765_a_15L不可者。三校則至革新以後。自下至高。
012_0765_a_16L如樓梯而漸陟者也。如登樓者。隨其
012_0765_a_17L興力。或一級而止者。或二級而止者。
012_0765_a_18L或三級而登者。設或終級登者。但放浪
012_0765_a_19L形外。鼓舞世界。遊目聘懷。并呑球宇
012_0765_a_20L之心。黜陟賢聖之意。與世沈沒。終不
012_0765_a_21L作吾家之物。是其登樓者之本旨也。如
012_0765_a_22L立鼎者。不論大小。三足并擧。廢一不
012_0765_a_23L竪。或金或鐵或銅。一時并鑄。煎於粥。
012_0765_a_24L作乎飯。烹而佛。烹而祖。終作吾家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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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5_b_01L이것이 솥을 세우는(立鼎) 본분이다.이제 이른바 ‘혁신’이란 솥발의 금이나 철ㆍ구리를 단박에 잘라 내고 누각(樓級)의 계단이나 섬돌ㆍ층계를 만드는 것이니, 그렇다면 끝내 오르는 몇 사람이 사원의 영광을 장쾌히 볼 것인가. 아아, 솥발은 이미 잘려서 구렁에 넘어져 있으니 끝내 요리하는 집안에 쓸모없으리라. 허물이 어느 곳에 있게 될는지 나는 알 수 없도다. 솥발을 빌려 누각에 오르는 이가 영광이 없다면 도리어 솥을 솥으로 하여 발로 삼고 누각을 누각으로 하여 계단(級)으로 오르게 하여, 각자 본색으로 위치에 편안하여 마땅하고 당연한 것만 못하다. 어찌하여 솥발을 잘라 층계를 지탱하고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잇겠는가. 주살이나 그물의 정교하거나 졸렬함으로 같은 병을 앓는 새 두 마리를 소생시킬 수 없으니 혁신자의 권한으로 본래 지위를 돌이켜 솥으로 만들 수 있는가. 같은 병으로 폐물이 됨을 어찌 기다리며 앉아 보리오. 여러분들이 증명하시라.함호1368) 화상이 유촉1369)하는 글(𦴻湖和尙遺囑文)말하노니, 너희 제자들아 내 말을 들어라.저 세월(光陰)은 화살 같아 내 이와 머리는 실 같아졌다. 해는 다그쳐 벌써 엄자산崦嵫山1370)에 있고 석양은 산에 있어, 무상하고 신속하니 무엇이든 보호하기 어렵다. 이 몸이 길이 있을 것을 어찌 기대하겠는가. 한숨도 멈추지 않고 백 년이 훌쩍 지나니 혹 불행해도 사후의 비판(雌黃)1371)을 누가 변론하겠는가. 일생에 모은 약간의 물건인 동산과 부동산을 사람들 앞에서 화반탁출和盤托出1372)하여 종류별로 나누고 나열하여 사심 없이 나누고 먼저 불량佛粮1373)과 선사위토先師位土1374)를 제외하고 나서 다음에 공公과 사私, 진眞과 속俗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나누도록 하라. -
012_0765_b_01L本色衲子。此乃立鼎者之本分也。而今
012_0765_b_02L所謂革新者。頓斫鼎足之金鐵銅。反作
012_0765_b_03L樓級之階隥梯。然則終登者。有幾人而
012_0765_b_04L壯觀光榮於寺院乎。嗚呼。鼎足旣折。
012_0765_b_05L顚伏於丘壑。終無用於烹飪之家。吾莫
012_0765_b_06L知其爲咎之所以存於何地也。若以借
012_0765_b_07L鼎足而登樓者。旣無榮光。反不如鼎其
012_0765_b_08L鼎而足之。樓其樓而級之。各自本色
012_0765_b_09L以安其位。宜之當之。如之何而斫鼎足
012_0765_b_10L而撑梯。斷其長而續短乎。以若弋網者
012_0765_b_11L之巧拙。旣莫能甦同病之二鳥。若以革
012_0765_b_12L新者之幹權。猶能還其本位。足以鼎之
012_0765_b_13L也。何待坐見同病之廢物耶。唯諸君
012_0765_b_14L證明也。
012_0765_b_15L
012_0765_b_16L𦴻湖和尙遺囑文
012_0765_b_17L曰爾徒弟等。聽吾一言。彼光陰若矢。
012_0765_b_18L我齒髮如絲。日迫奄嵫。夕陽在山。無
012_0765_b_19L常迅速。有物難保。安期此身之長存哉。
012_0765_b_20L一息不停。百年忽爾。如或不幸。誰能
012_0765_b_21L卞身後雌黃乎。所以一生鳩聚略干之
012_0765_b_22L物。動不動產。和盤托出於諸人面前。
012_0765_b_23L條分鱸列。均公無私。先除佛粮。及先
012_0765_b_24L師位土。次至公私眞俗。略略分計爲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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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5_c_01L몇 가지 의발 같은 것은 또한 있는 대로 희사하도록 하나하나 왼쪽에 기록하니, 너희들은 이에 따라 준행하여 목을 빼고 치혁鴟嚇1375)하지 않도록 하고 다만 족함을 알고 마땅하게(烏誼)1376) 하라. 무궁하게 길이 전하여 나로 하여금 눈 감고 서쪽 안락세계로 돌아가게 하라. 너희들은 힘쓸지어다.관음전 불량을 들이고자 하는 기문무진년(1928) 1월 길일(觀音殿佛粮願入記戊辰一月吉日)‘관음’이란 세상 사람의 소리를 들음이니, 듣는 성품을 돌이켜 보는 것을 일러 관음이라 한다. 귀는 원통圓通하여 두루 듣고, 몸은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다. 그 말씀은 설하지 않으면서 설하고, 그 마음은 생각지 않으면서 생각하니, 그 지혜를 생각할 수 없고 신통을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서 이른바 사생四生1377)의 부친이라 하니, 뭇 왕들이 왕으로 여기며 실로 자비희사의 스승(導師)이로다. 그렇다면 본전本殿(관음전)의 지킴을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그러나 혁신 초기라 풍조가 변함에 향화香火는 연기 없고 공양(齋供)은 풍부하지 않아 푸른 원숭이가 발우를 씻고 흰 새가 꽃을 머금으니 산이 적적하고 물이 잔잔히 흐름에 거승居僧들이 안타까워하고 유람하는 이들이 탄식하니, 달빛이 교교하고 바람이 쓸쓸하여, 거리 의논이 분분하고 물의가 떠들썩한 지 10여 년이 되었도다.마침 이에 대단신大檀信 함호菡湖 공公께서 주머니를 털어서 10마지기 토지를 원통圓通의 복전福田에 받들어 헌납하셨다. 밭 갈고 김매지 않아도 보리의 씨앗이 절로 자라고 찧고 불 때지 않아도 옥 같은 쌀밥이 완성되었다. 향적香積 주방의 한 발우 밥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아도 수북하게 많고,1378) 사자좌 위 향로의 향이 땅에서 솟지 않아도 하늘하늘 자욱하니, 시주(檀氏)의 한 조각 붉은 정성에서 유출된 것인가. 아, 복전複殿1379)이 용처럼 서린 아래에서 용을 항복시킨 발우1380)를 원숭이가 받들고, 경루磬樓가 봉황처럼 우뚝한 가운데 안개와 구름의 공양을 새가 말하네.이에 흰 눈썹의 고선枯禪1381)이 -
012_0765_c_01L如干衣鉢之物。亦隨所有而喜捨。一一
012_0765_c_02L左記。唯諸人等。依此遵施。俾母延頸
012_0765_c_03L而鴟嚇。唯以知足而烏誼。永傳無窮。
012_0765_c_04L使吾瞑目。而西歸安樂世界。爾等勉旃。
012_0765_c_05L
012_0765_c_06L觀音殿佛粮願入記戊辰一月吉日
012_0765_c_07L觀音者。聞世人音。反觀聞性之謂觀音
012_0765_c_08L也。其耳則圓通普聞。其身則無處不現。
012_0765_c_09L其辯也。無說而說。其心也。不念而念。
012_0765_c_10L智慧不思議。神通沒可量。世所謂四生
012_0765_c_11L之父。衆王以之王。實慈悲喜捨之導師。
012_0765_c_12L然則本殿之守衞。安敢忽諸。然而革新
012_0765_c_13L之初。風潮之變。香火無烟。齋供不豊。
012_0765_c_14L靑猿之洗鉢。白鳥之含花。山寂寂水
012_0765_c_15L滚滚。居僧之寒心。遊士之嗟嘆。月皎
012_0765_c_16L皎風凄凄。港 [142] 議紛紛。物論喧喧者。十
012_0765_c_17L餘年矣。適玆有大檀信菡湖公。傾槖搜
012_0765_c_18L囊。惠以十斗土。奉獻圓通福田。不耕
012_0765_c_19L不耘。菩提種自長。非舂非炊。玉粒饌
012_0765_c_20L已成。香積厨中一鉢飯。不從天而鬪鬪
012_0765_c_21L飣飣。師子座上一爐香。不從地而裊裊
012_0765_c_22L撲撲。秪從檀氏一片丹誠而流出歟。嘻。
012_0765_c_23L複殿龍蟠下。猿擎降龍之鉢。磬樓鳳峙
012_0765_c_24L中。鳥說烟雲之供。於是乎。白眉枯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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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6_a_01L기쁜 얼굴로 즐거워하고, 푸른 눈의 납승이 가락에 맞춰 찬송하네.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님이 어찌 환희하지 않으랴. 사람의 정이 신과 같으니 신이 어찌하여 지킬 마음이 없으랴. 시주(檀越) 옹翁의 발원하는 소리가 천둥처럼 관자재觀自在(관음)의 이근耳根에 쏟아지고, 선남자의 수희隨喜하는 즐거움이 구름처럼 원통전 보문普門1382)에 모이리라.지으신 공덕으로 널리 모두 회향하니 무진년 원단元旦(설)에 공양 올림을 시작한다.천태암 불답 기문(天台庵佛畓記)사람이 남에 하늘에서 명을 받고, 그 죽음에 혼이 지부地府로 돌아간다. 지부의 주인을 ‘명왕㝠王’이라 하고 명왕의 주인을 ‘지장대성地藏大聖’이라 한다. 큰 자비심이 봄날 햇살의 사심 없음과 같아서 정성을 바치는 이가 있으면 명왕의 판결에 관계없이 곧장 극락으로 가게 하니 어찌 공경하지 않으랴.이제 조도수趙道洙1383) 공은 돌아가신 부친을 위해 극락으로 천도하고자 2마지기 토지로 천태암 지장대성 앞에 받들어 바쳐 길이 공양의 자료로 삼으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대성께서는 시주(檀氏)의 미약한 정성을 밝히 살피사 이 망령亡靈으로 하여금 속히 연화세계에 오르게 하시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바라옵니다.무진년(1928) 3월 일석존 탄신에 결사하는 글무진년(1928) 4월 8일(釋尊誕辰結社文戊辰四月八日)엎드려 듣건대, 제불諸佛이 출현하실 때 모두 부모에 의탁하여 생을 받으시고 만물이 성장(興生)할 때 모두 천지(覆載)를 빌려 양육되는데, 오직 우리 석가씨만은 도솔천에서 화신을 거두어 대술大術1384)의 태 안에서 신운身雲1385)을 내리사,1386) 사바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시니 소천小千 세계 안에 국토(刹境)를 거두셨다. 청정과 더러움에 장애 없으니 원래 보답할 수 있는 인연이 아니요, 크고 작음에 자유로우니 모두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이라네. -
012_0766_a_01L怡顏而悅可。靑眼衲僧。協律而贊頌。
012_0766_a_02L凡心卽佛。佛何不歡喜。人情如神。神
012_0766_a_03L豈無護念哉。檀越翁之發願音如雷。灌
012_0766_a_04L於觀自在之耳根。善男子之隨喜樂若
012_0766_a_05L雲。會於圓通殿之普門。所作功德。普皆
012_0766_a_06L回向。戊辰元旦。上供爲始。
012_0766_a_07L
012_0766_a_08L• 天台庵佛畓記
012_0766_a_09L人之生也。受命于天。其死也。魂歸於
012_0766_a_10L地府。府之主曰㝠王。王之主曰地藏大
012_0766_a_11L聖也。大慈悲心。如春日之無私。若有
012_0766_a_12L獻誠者。不管㝠王之決案。直徃樂方。
012_0766_a_13L豈不欽哉。今趙公道洙。爲其亡父。欲
012_0766_a_14L薦樂國。以二斗土。奉獻于天台庵地藏
012_0766_a_15L大聖前。以爲永年供資。伏願大聖明
012_0766_a_16L鑑檀氏1)迷 [25] 誠。使此亡靈。速登蓮國。至
012_0766_a_17L心伏乞者。戊辰三月日。
012_0766_a_18L
012_0766_a_19L釋尊誕辰結社文戊辰四月八日
012_0766_a_20L伏聞諸佛出現。皆托父母而受生。萬類
012_0766_a_21L興生。盡假覆載而養毓。唯我釋迦氏
012_0766_a_22L收化兜率。降身雲於大術胎中。現形娑
012_0766_a_23L婆。納刹境於小千界內。淨穢無碍。原
012_0766_a_24L非實報酬因。大小自由。盡是度生方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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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6_b_01L주나라 소왕昭王 23년 계축 7월 8일은 신령이 내려온 좋은 때요 갑인(B.C. 1027) 4월 8일은 탄생하신 길일이라네. 일륜日輪을 띠고 코끼리를 타시니 널리 광명을 비추시고, 각수覺樹1387) 아래 용처럼 앉으시니 초연히 상서로운 모습이라. 무우수無憂樹1388) 아래 연꽃 가지를 발로 밟으시고, 룸비니 동산에서 사자좌에 앉으셨네. 계속해서(乾乾) 일곱 걸음 걸으시고 웅얼웅얼 몇 마디 하시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니 삼계에 홀로 존귀한 성인이심을 알겠고 9룡이 물을 뿜으니 사해의 물로 정수리에 부음을 구하지 않도다. 철수鐵樹1389)에서 꽃이 피고, 우담바라가 열매 맺는구나. 노나라 들판에서 기린을 잡으니 성군 이르시길 기대하고,1390) 번산(樊岑)에서 표범을 잡으니 꼬리 세움을 기뻐하겠네.1391) 그러나 기린과 봉황이 가시나무에 서식하지 않는데 교룡과 곤어가 도랑물에 숨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8일 밤에 동궁(春城)을 넘어 6년 동안 설산에 머물다가, 나무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시키니 용과 귀졸들이 자취를 감추고, 새벽별 전에 깨달으니 천지가 상서로운 징조를 보였도다. 이에 각장覺場에서 화엄을 설하시어 법계의 일곱 곳을1392) 나열하고, 녹원鹿苑에서 4제諦를 보이시어1393) 3승의 교종을 나열하셨네. 세 풀의 꽃다운 언덕은 세 수레로 유람하고 한 본성의 진실(眞際)은 일승의 지향(指歸)이라. 삼계三界의 스승(導師)일 뿐만 아니라 실로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시로다.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하여 어찌 기념을 잊으리오. 갚을 수 없는 덕을 갚고자 백련사의 맹세를 맺고, 보답하기 어려운 은혜를 보답하고자 도원桃園의 형제가 되노라. 엎드려 바라건대 모임에 참여한 도반들이 신근을 발휘하여 문중에 재물을 보시하여 유루有漏1394)의 티끌 재물을 넉넉히 은혜롭게 하고, 향사香社 대청 위에서 연기 없는 심향心香을 함께 사르니, 재보를 희사할 때에 사바세계와 화택지옥의 괴로움을 단박에 뛰어넘고, 향연이 끊어진 곳에 즉시 도솔천 연태蓮胎1395)의 극락에 오르게 하사, 함께 증명하고 함께 종지種智1396)를 원만히 하게 하소서. -
012_0766_b_01L周昭王二十三年癸丑七月初八日。降
012_0766_b_02L神之良辰。甲寅四月初八辰。誕生之吉
012_0766_b_03L日。日輪象駕。遍照光明。覺樹龍盤。超
012_0766_b_04L然瑞相。無憂樹下。足承蓮花之枝。毘
012_0766_b_05L尼園中。身跨師子之座。乾乾七步。哦
012_0766_b_06L哦數聲。一手指天。可知三界之獨尊聖。
012_0766_b_07L九龍吐水。不求四海之灌頂波。鐵樹生
012_0766_b_08L花。曇蕚結果。曰若獲獜魯野。將期邸
012_0766_b_09L君。獵豹樊歲。方歡竪尾。然而猉獜鸞
012_0766_b_10L鳳。猶非枳棘之所捿。蛟龍鯤鵬。况是
012_0766_b_11L溝瀆之所隱。由是踰春城於八夜。棲雪
012_0766_b_12L嶺於六年。樹下降魔。龍鬼以之遁跡。
012_0766_b_13L星前悟道。天地以之徵祥。於是覺場之
012_0766_b_14L說華嚴。羅七處於法界。鹿苑之示四諦。
012_0766_b_15L列三乘之敎宗。三草芳原。卽三車之遊
012_0766_b_16L履。一性眞際。乃一乘之指歸。非特三
012_0766_b_17L界導師。實乃四生慈父。然則當是日之
012_0766_b_18L良吉。何紀念之相忘。欲報莫報之德。
012_0766_b_19L宜結蓮社之盟心。將酬難酬之恩。爰搆
012_0766_b_20L桃園之昆季。伏願叅社道伴。頓發信根。
012_0766_b_21L財施門中。優惠有漏之塵財。香社堂上。
012_0766_b_22L共爇無煙之心香。財寶捨時。頓超娑婆
012_0766_b_23L火宅之苦趣。香烟斷處。卽登兜率蓮胎
012_0766_b_24L之樂方。同垂證明。同圓種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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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6_c_01L‘대경(화엄경) 글자수 분별의 결의’에 대한 변론무진년(1928) 6월 일(大經字數卞決疑辨戊辰六月日)무릇 고금의 역사가의 서술은 반드시 옛것을 고찰하는 것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지침이 정확하지 않으면 방향(線途)이 어지럽고 방향이 한번 어지러우면 행인이 길을 잃는다. 하물며 가르침의 바다로 이치(義理)를 담은 성현들의 경전經典이 어찌 옛것을 고찰하지 않고 유통되겠는가.이제 불교사보佛敎社報를 보니, ‘불교결의佛敎決疑’ 제목 아래 이른바 ‘동국경원東國經院의 물음’이라 하였다.1397)약본略本 『화엄경』의 자수字數에 대해 오직 묵암默庵 고로古老의 『화엄품목華嚴品目』1398) 가운데 자수를 가리켜 정하였고, 이 노스님 이전에는 전하는 바가 없었으니 허탄함이 매우 심하다고 하였다. 본 사주社主 퇴경씨退耕氏가 그 경개에 대해 풀어 답변했다.“이것은 종전從前으로도 많은 의심의 구름을 쌓아 왔다.”부터 “생겨난 바가 없는데 자수를 계산하였다.”라고 하였고, 말미에 “일없이 일 좋아하는 어떤 노장老長님이 『화엄경』 등의 경전 자수를 계산 발표했다.”라고 하였다. 경원經院에서 말한 ‘이 노스님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나 사주社主가 말한 ‘일없는 노장이 자수를 계산했다’는 말은 같은 모양의 허물이요 똑같이 귀양 보낼 일1399)임이 명백하도다.그 문답 가운데 허다한 갈등과 인아人我1400)의 말들은 모두 박식하여 과장하는 쭉정이 더미로 부쳐 버려야 한다. 다만 ‘보이지 않다’라거나 ‘일없다’는 두 언급(線路)에 대해서는 차례로 논변해야 한다. 왜 그런가. 『치문경훈』1401) 중권 34장 9줄에 ‘수주隨州 대홍산大洪山 수선사遂禪師가 『화엄경』을 예찬한 글(隨州大洪山遂禪師禮華嚴經文)’이 있다.남무南無 비로교주毘盧敎主 화엄자존華藏慈尊. 보배 게송의 황금 문장을 부연하고, 보배 함의 옥 문장을 펼치노니, 티끌마다 섞여 들고 국토마다 원융한 10조9만5천48자 일승원교一乘圓敎 대방광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여. 문 군文君은 어이하여 보지 못하였나? 군이 보지 못하였다고 묵암 노스님도 본 게 없다고 하면 그 인아의 좁은 견해는 이미 논변할 거리도 없다. 묵암 노스님이 본 게 없다는 말에 이르러 경원經院의 본 바가 없음에 귀결되니 또한 누누한 갈등이 어떠한지 기다릴 것도 없다. 만약 ‘수선사의 자수 발표’라고 한다면 사주가 비록 ‘일없는 노장’이라 말하더라도 이것이 일없이 나와서 교화문(化門)에 온 것인가. 경전에, 제불의 현신이 무량하니 -
012_0766_c_01L大經字數卞決疑辨戊辰六月日
012_0766_c_02L夫古今史筆之下手。必以稽古爲指針
012_0766_c_03L而針若不的。線途必亂。線途一亂。行
012_0766_c_04L人迷津。而况敎海義理之聖經賢典。奈
012_0766_c_05L無稽古而流通乎。今見佛敎社報中。佛
012_0766_c_06L敎決疑題下所謂東國經院問目云。略本
華嚴
012_0766_c_07L經字數。唯獨默庵古老華嚴品目中。字數定指
而此老以前。相傳無見。浮虛誕妄滋甚云本
012_0766_c_08L社主退耕氏。解答其槩云。從來疑雲貯來云。
乃至無所生而
012_0766_c_09L字數計算云。末後好事無事者何某
老長主華嚴等經字數計算發表云經院所謂
012_0766_c_10L此老以前無見之說。社主所謂無事老
012_0766_c_11L長字數計算之說。一狀領過。一道行遣
012_0766_c_12L也。必矣。盖其問答中。許多葛藤人我
012_0766_c_13L之說。都付于博識誇張之浮粃堆中。但
012_0766_c_14L以無見無事之二端線路。次第論之。何
012_0766_c_15L者。緇門中卷三十四丈上九行。隨州大
012_0766_c_16L洪山遂禪師禮華嚴文云。南無毘盧敎主華藏
慈尊。演寶偈之金
012_0766_c_17L文。布琅凾之玉軸。塵塵混入。刹刹圓融。十兆九
萬五千四十八字。一乘圓敎大方廣佛華嚴經云文
012_0766_c_18L君何無見。以君之無見。欲被於默老之
012_0766_c_19L無見者。其人我之管見。已無可論也。
012_0766_c_20L至於默老之無見。早歸於經院之無見。
012_0766_c_21L亦不待葛藤之累累如何矣。若曰遂禪
012_0766_c_22L師字數發表。社主雖曰。無事老長云。
012_0766_c_23L此其無事而出來化門耶。經云諸佛現
012_0766_c_24L「迷」疑「微」{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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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7_a_01L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보살의 몸으로 드러낸다거나 내지는 같거나 다른 부류의 몸으로 나타내신다고 했는데, 이는 석가가 화현하여 조사 문중의 수수守遂1402) 선사에게 들어간 것이다. 선사는 대홍산 보은報恩 화상을 이었으니 즉 달마 18세손으로, 일에 응하여 격외格外와 의리義理1403)를 드러내고 장애 없이 자재自在한 대불사의大不思議1404)의 조사 문중에서 짐을 꾸린 것이다. 어찌 의미가 없이 심상하게 비로자나의 깊은 세계(毘盧藏海)의 의리 구절과 게송 가운데 서술하리오. 금강신金剛神의 죽이거나 살리는 몽둥이와 꾸짖음을 어찌 면하리오. 반드시 증명하고 본 바가 없지 않아 분명하게 서술한 것이다. 어찌 의심하겠는가. 그렇다면 묵암 노스님의 서술은 필시 수守 스님에게 의지한 것이요, 수 스님의 계산은 필시 대불사의하고 사사무애事事無碍한 해탈 경계 가운데서 흘러나온 것인데, 어찌 썩은 지식과 좁은 소견으로 망령되이 오래된 조사 문중의 쇠를 끊을 만한 몽둥이(活椎)1405)가 어떻고 어떻다 헤아리는가. 이른바 ‘허망하고 떠 있는 마음은 모두 괴상한 견해라’1406) 한 것이 이런 것이다. 다만 이렇게만 지적해도 묵암 노스님이 근거한 것이 허탄하지 않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달리 말할 게 있으면 거듭 들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본 바가 없다’라거나 ‘일없다’는 허다한 갈등의 말을 문답하는 이의 두 어깨 위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돌이켜 부담시키고 싶지는 않다. 오직 바라건대, 두 대가께서는 굳이 사과하지 말고 즉시 짐을 싸 짊어지고 평등실平等室 해탈문 안에서 정좌(安坐)하면 매우 다행이겠다.함호 화상의 진영1407)에 대한 찬무진년(1928) 8월 17일(湖和尙影贊戊辰八月十七日)吁遮一𨋀尊影 아, 이 한 폭의 존영은
摹寫七分面目 일곱 분의 얼굴1408)을 옮겨 그렸으니
眉宇端嚴玩瑚 눈썹과 이마는 산호(玩瑚)처럼 단엄하고
眼堂殊特珪瑑 안당眼堂은 홀(珪瑑)처럼 빼어나도다.
噫眞身在什麽處 아, 진정한 몸은 어디에 있는가.
覔之轉失難睦 찾으려 하면 더욱 잃어버려 가까이 하기 어렵네.
碧𦴻萏裡幻容 푸른 연꽃(菡) 속의 환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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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7_a_01L身無量。爲度衆生。或現菩薩身。乃至
012_0767_a_02L同異類身云。此乃釋迦化現。權入祖門
012_0767_a_03L之守遂禪師。嗣大洪山報恩和尙。卽達
012_0767_a_04L摩十八世。應迹示現格外義理。無碍自
012_0767_a_05L在。大不思議之祖門行李也。豈可以無
012_0767_a_06L義味。尋常下筆於毘盧藏海義理句偈
012_0767_a_07L之中。而安敢免金剛神殺活之棒喝哉。
012_0767_a_08L必不無所證所見處而昭著下筆也。奚
012_0767_a_09L足疑乎。然則默老之下筆。必稽乎守師。
012_0767_a_10L守師之計算。必以大不思議事事無碍
012_0767_a_11L解脫境界中流出。安可以腐識管見。妄
012_0767_a_12L擬於古老祖門之截鐵活椎之如何若何
012_0767_a_13L哉。可謂虛妄浮心多諸恠見者此矣。但
012_0767_a_14L以如此指點。剩得乎默老之所據。非誕
012_0767_a_15L而已。更有說不妨重聽。然而向所云無
012_0767_a_16L見無事之許多葛藤之說。不欲反擔於
012_0767_a_17L問答家之雙肩無奈何之地也。唯冀二
012_0767_a_18L大家。無固而謝之。卽荷而擔之。安坐
012_0767_a_19L於平等室解脫門中。幸甚。
012_0767_a_20L
012_0767_a_21L菡湖和尙影贊戊辰八月十七日
012_0767_a_22L吁。遮一𨋀尊影。摹寫七分面目。眉宇
012_0767_a_23L端嚴玩瑚。眼堂殊特珪瑑。噫。眞身在
012_0767_a_24L什麽處。覔之轉失難睦。碧菡萏裡幻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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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7_b_01L香湖波心空谷 향기 호수(湖)의 물결 가운데 텅 빈 골짜기로다.
咄 쯔쯧.또(又)天眞不染塵汚 천진은 티끌에 물들지 않아
𦴻萏華生鏡湖 연꽃이 거울 호수에 피어났네.
一片心藏玉壺 한 조각 마음 담은 옥병은
精工如吸醍醐 정교하여 제호醍醐를 들이켠 듯하네.만일당 삼불의 개금과 불량답에 대한 기문(萬日堂三佛改金與佛粮畓記)저포苧袍의 은혜1409)도 죽백(帛)1410)에 기록하고 채소 음식(蒲饌)의 은혜도 솥(鼎)에 새기는데 하물며 황금으로 감싸고 토지로 반찬을 마련하여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게 함에랴.이제 이 당堂은 이전 염불당이었는데 폐지된 지 오래되어 염불하는 승려가 없고 종소리도 적막하였다. 주지 율암栗庵1411) 노옹이 대중의 청에 따라 복구하였는데 불의佛衣가 해지고 승려들 공양이 부족하여 굶주림과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본산의 대덕大德 함호菡湖 대화상께서 문득 신심을 발휘하여 황금 30속束을 사서 옷을 입히고, 토지 17석을 납입하여 공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만일재萬日齋 쌀과 지장보살 탄신일 공양과 은사와 자기의 위토位土, 기타 각전各殿의 불량佛粮 원입願入과 장례 비용 7백 냥兩, 그리고 재齋에 소용되는 물건들을 조목별로 균등히 배열하여 말로 부탁하고 글로 기록하였다.이후 이달 9일에 개금불사를 시작하였고 15일에 이르러 회향하고 봉안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포시晡時(오후 4시경)에 태연히 앉아서 입적하셨다. 세수世壽 76세요 승랍僧臘 61세이다.이에 불상은 옷을 입어 빛을 발하고 승려들은 공양을 얻어 염불하며 종이 울려 음악을 연주하니, 용천龍天이 기뻐하여 상서로움을 내렸다. 풍부한 공적과 두터운 덕에 대해 어찌 솥에 새기고 죽백에 기록하는 이어짐이 없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아래에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이노라. -
012_0767_b_01L香湖波心空谷。咄。
012_0767_b_02L
012_0767_b_03L又
012_0767_b_04L天眞不染塵汚。菡萏華生鏡湖。一片心
012_0767_b_05L藏玉壺。精工如吸醍醐。
012_0767_b_06L
012_0767_b_07L萬日堂三佛改金與佛粮畓記
012_0767_b_08L夫以苧袍之恩。猶能錄帛。以蒲饌之惠。
012_0767_b_09L尙或銘鼎。而况金以袍之。土以饌之。
012_0767_b_10L能免飢寒者乎。今是堂者。以前念佛堂
012_0767_b_11L廢止久。而僧無誦念。鍾鼓寂寂也。住
012_0767_b_12L持栗庵翁。仍衆請而復舊。然佛衣弊陋。
012_0767_b_13L僧供艱乏。莫堪飢寒矣。本山大德菡湖
012_0767_b_14L大和尙。頓發信心。買金三十束而衣之。
012_0767_b_15L納土十七石而供之。以永萬日齋米。地
012_0767_b_16L藏誕供。恩師及自己位土。其他各殿佛
012_0767_b_17L粮願入。及葬費七百兩。齋所用物。條
012_0767_b_18L列均排。言以囑之。筆以書之後。今月
012_0767_b_19L初九日。改金佛事始役。至十五日。回
012_0767_b_20L向而奉安之。又明日晡時。奄然坐化。
012_0767_b_21L壽七十六。臘六十一。於是乎佛著衣而
012_0767_b_22L放光。僧得供而念佛。鍾鼓鳴而動樂。
012_0767_b_23L龍天悅而降祥。其於豊功厚德。那無銘
012_0767_b_24L鼎錄帛之續乎哉。由是而記于左。示
012_0767_b_25L諸以后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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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7_c_01L순천군 초천면 개운산 동화사 중수기(順天郡草川面開雲山桐華寺重修記)부처의 궁전은 서천西天(인도)의 기원정사(祗桓精舍)에서 비로소 들렸고, 승가僧伽의 사원은 동토東土(중국)의 홍려시鴻臚寺1412)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즉 수달다須達多(Sudatta)가 지은 것으로 축법란竺法蘭1413)이 머물렀고, 해동에 이르면 고구려 때에 승가 명칭이 있었고 신라에는 부처 사원이 많았다. 어찌 다만 국민이 마음을 돌이킬 뿐이겠는가, 또한 상선上仙이 몸을 의탁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안찰鴈刹(절)이 구름처럼 배열되어 좁은 틈도 없을 지경이요 경부鯨桴(종)1414)가 천둥처럼 울려 하늘에 닿았다.1415) 삼한 시대에 이미 풍미한 바 있고 고려 시대에 더욱 풀이 눕는 듯하였고, 이어서 이조 시대에 이르러 3천 비보裨補1416) 사원이 나열되니, 삼보 종찰의 명칭이 특별히 정해졌다. 호남의 옛날 승평昇平 땅에 이르면 개운산이 바닷가(海甸)에 떨어져 있다. 바다 색깔은 담백하여 구름 하늘로 용솟음치고 구름 빛이 산의 남쪽을 열거나 막는데, 거기 동화사가 있다. 웅장한 형세는 아니지만 원래 화려한 모습이다.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창건하셨는데 당시에 동백꽃(桐華)이 눈 속에 흐드러지게 피었기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이후 수백 년 뒤에 법홍法弘 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불상에 감응이 있고 승려들은 계율을 어기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번 겁파刼波(세월)를 지나게 되자 법우法宇(사찰)는 황량해지고 불상은 더럽혀져서 아침저녁으로 재앙을 걱정하게 되었다. 주지 우송友松1417) 공이 조계산에서 와서 주석하고서 다음 해 대정大正 7년(1918) 무오년에 복구하겠다는 발원을 내서 권선문을 소매에 넣고 다니며 보시를 권하였다. 터럭 모아 공을 만들고 티끌 모아 산을 이루는 격이었는데, 길일을 정하여 감독하니 1년이 되지 않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갈라沙迦羅1418) 용궁이 바다 입구에서 용솟음치고 도솔천(兜史陀) 내원內院1419)이 구름 산에 내려온 듯하니, -
012_0767_c_01L順天郡草川面開雲山桐華寺重修
012_0767_c_02L記
012_0767_c_03L佛陀宮殿。始聞於西天之祗桓精舍。僧
012_0767_c_04L伽寺院。更見於東土之大鴻臚寺。卽須
012_0767_c_05L達多之所剏。乃竺法蘭之所捿。以至海
012_0767_c_06L東。則句麗方有僧伽之名。新羅多列佛
012_0767_c_07L陀之院。豈但國民之歸心。亦有上仙之
012_0767_c_08L投身。所以鴈刹雲排。將無隙地。鯨桴
012_0767_c_09L雷震。不遠諸天。韓代旣有風靡。麗朝
012_0767_c_10L尤可草偃。延及李朝。三千裨補之院齊
012_0767_c_11L列。三寶宗刹之名特定。至於湖南古昇
012_0767_c_12L平之坤。有山曰開雲。落在海甸。海色
012_0767_c_13L淡泊。聳出雲霄。雲光開遮山之南。有
012_0767_c_14L寺曰桐華。雖非雄傑之勢。原是華麗之
012_0767_c_15L形。剏在麗朝大覺國師所占。而于時桐
012_0767_c_16L華爛開於雪裡。故仍名焉。以後幾百年
012_0767_c_17L法弘大師重修云。自是佛有感應。僧無
012_0767_c_18L破律。邇來累經刼波。法宇荒落。佛面
012_0767_c_19L添漏。慮有朝夕之禍福矣。住持友松公
012_0767_c_20L自曹溪來住之。又明年大正七年戊午
012_0767_c_21L頓發復舊之願。袖疏行檀。聚毛成毬。
012_0767_c_22L合塵爲山。涓吉日蕫督。不朞年吿功。
012_0767_c_23L因以沙迦羅虬宮。湧出於海口。兜史陀
012_0767_c_24L內院。降臨於雲山。疑是達多重成祗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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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8_a_01L수달다가 거듭 기원정사를 이루고 축법란이 다시 홍려시에 이른 것인가 의아할 정도였다.아아, 현재 사람이 과거 사람이 다시 온 것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아름다운 발자취가 사라질까 염려되어 대략 기록한다.용화당 중수기龍華堂重修記현재 용화당은 옛날 미륵전이니 즉 자씨보살慈氏菩薩이 용화회龍華會에 강림하기 때문에 이름 붙인 것인가. 옛 기록들을 고찰하면 이 당은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창시하시어 ‘식당食堂’이라 하고서 미륵불을 봉안하였다고 하니, 이 당은 이로 말미암아 미륵전이라 이름 붙인 것인가.홍치弘治 3년 경술(1490) 6월에 신매信梅 스님이 미륵전을 조성하였고, 건륭乾隆 7년 임술(1742)에 성하性荷 스님이 용화당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는 미륵불의 하생下生을 일컫는 것인가. 광서光緖 10년 갑신(1884)에 용운龍雲1420) 화상이 수선하여 관리들의 숙소로 삼았으니, 이후로 ‘장소방丈所房’이라 칭하며, 사찰의 노장이 항상 주석하였다. 대정大正 13년 갑자(1924) 가을에 주지 율암栗庵 공이 중건하려는 계획을 세워 10월 26일에 시작하여 12월 21일에 마쳤다. 그중에 정당正堂 5칸과 서쪽 1칸을 증건하고 주루사문厨樓沙門 수십 칸을 부수고, 썩은 기둥은 절반을 교체하고 서까래는 모두 바꾸었다. 나머지 기운 것은 바로 세우고 낮은 것은 높이고서, 서울 기술자를 불러 단장하게 하며, 한성漢城의 문란門蘭을 구하고 경도京都의 회칠을 발랐다. 문에는 ‘용화당’ 판액을 걸고 장대에는 ‘응접應接’ 글자를 내걸었다.고귀한 손님들이 등림하니 선재동자가 미륵누각에 들어선 듯하고, 호탕한 선비들이 걸터앉으니 용맹龍猛1421)이 가라규궁迦羅虬宮(용궁)에 유람하는 듯하다. 홍려시鴻臚寺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화자관華資舘의 자태인가. 새김에 정교함을 다하였으니 도성의 누각(樓觀)에 비견되고 웅걸하게 치장하였으니 궁문의 누대(臺榭)와 나란함을 다투리라. -
012_0768_a_01L法蘭更到鴻臚耶。嗚呼。誰知非現在人
012_0768_a_02L是過去人重來哉。恐泯芳躅。略記于左。
012_0768_a_03L
012_0768_a_04L龍華堂重修記
012_0768_a_05L今龍華堂者。古彌勒殿。卽慈氏菩薩
012_0768_a_06L當降龍華會。故稱歟。考諸古記。此堂卽
012_0768_a_07L普照國師剏始。而名曰食堂。安彌勒佛
012_0768_a_08L云。疑是堂由此以命名耶。弘治三年庚
012_0768_a_09L戌六月。信梅師彌勒殿成造云。乾隆七
012_0768_a_10L年壬戌。性荷師重修龍華堂云。此是彌
012_0768_a_11L勒下生之稱謂耶。越光緖十年甲申。龍
012_0768_a_12L雲和上修繕。爲官使下處。自此恒稱丈
012_0768_a_13L所房。寺長常住也。迄大正十三年甲子
012_0768_a_14L秋。住持栗庵公。爰起重建之謀。十月
012_0768_a_15L二十六日始。十二月二十一日終。就中
012_0768_a_16L正堂五間西一間增建。厨樓沙門幾十
012_0768_a_17L間破壞。朽柱半改換。椽梠全改新。其
012_0768_a_18L餘猗者正而低者高之。招京匠而粧之。
012_0768_a_19L求漢城之門蘭。塗京都之灰漆。門揭龍
012_0768_a_20L華之額。竿掛應接之字。高賓登臨。若
012_0768_a_21L善財之入彌勒樓閣。豪士跨軒。如龍猛
012_0768_a_22L之遊迦羅虬宮。若非鴻臚寺之壯麗。疑
012_0768_a_23L是華資舘之體態。至若彫龔罄巧。比
012_0768_a_24L肩於都城樓觀。宏傑粧餙。爭衡於宮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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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8_b_01L이 모두 주지住持 옹翁과 감무監務 공公의 일처리와 녹림군綠林君(재목)과 백탄자白炭子(숯) 재원 덕분이다. 당시에 일을 맡아 수고한 크고 작은 이름(芳啣)들이 천 년 후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해청당 중건기海淸堂重建記‘해청’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즉 법성당法性堂 위 약사광불藥師光佛이 영산靈山에서 한 묘련 법문妙蓮法門을 바다처럼 모인 맑은 대중(海會淸衆)이 상주하여 듣는다는 말인가.숭정崇禎 13년 경진(1640) 3월에 희안熙安과 옥청玉淸 등이 해청海淸ㆍ원융圓融ㆍ법성法性 당을 같은 날 중건했다고 한다. 대정大正 15년 병인(1926) 봄에 이르러 본(송광사) 주지 율암栗庵 노옹이 동지들과 계획하길, 이 당이 퇴락하여 아침에 저녁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앉아서 무너지길 보느니 예방하는 게 낫지 않은가 하였다. 정월 20일에 시작하여 썩은 기둥은 보완하고, 오래된 서까래는 새것으로 교체하고, 동청東廳 두 칸을 늘렸다. 3월 17일에 들보를 올렸는데 본채는 넓지만 자는 방은 비좁아서, 1정町(밭두둑)의 동쪽 개울로 물려 7칸의 남랑南廊을 새로 세우고, 대청(廳堂)을 설치하여 단장하니 자고 먹는 데 편리하고, 사면을 둘러 담장을 세우니 작은 성의 성가퀴 같았다.감불龕佛1422)은 원래 보조암普照庵의 금불상이요 종(軒鍾)은 대개 대웅전의 동철銅鐵로 걸려 있던 것들이다. 본당에 쌓은 금액은 다만 1,908원圓인데 사중寺中이 쓴 금액은 7,003원이 넘어 합계 8,900여 원이 소비되었다. 아아, 물질의 이뤄지고 무너짐은 본래 금액의 줄고 늚에 관계되니 무엇이 괴이하랴.동쪽 개울이 길게 쏟아지듯 흐르고 서쪽 봉우리의 반달 같은 경치에 대해서는 보고 듣는 이들이 스스로 얻으리니 번거롭게 기술하고 싶지 않다. -
012_0768_b_01L臺榭。是皆爲住持翁監務公之幹能。綠
012_0768_b_02L林君白炭子之財源。當時執務劬勞之
012_0768_b_03L巨細芳啣。不欲泯於千載之下。如左記
012_0768_b_04L之。
012_0768_b_05L
012_0768_b_06L海淸堂重建記
012_0768_b_07L曰若海淸而名者。何也。卽法性堂上藥
012_0768_b_08L師光佛靈山妙蓮法門海會淸衆常住說
012_0768_b_09L聽之謂耶。按崇禎十三年庚辰三月。熙
012_0768_b_10L安玉淸等。海淸圓融法性。同日重建云。
012_0768_b_11L迄大正十五年丙寅春。本住持栗庵翁
012_0768_b_12L與同志謀。此堂之頽圮。朝不慮夕。坐
012_0768_b_13L見傾覆。孰與預防乎。自正月二十日始。
012_0768_b_14L朽柱者補之。舊椽者新之。東廳二間增
012_0768_b_15L架。同三月十七日上樑。以其正堂雖廣。
012_0768_b_16L宿室甚狹。退築一町之東溪。新建七間
012_0768_b_17L之南廊。架廳堂而粧修。宜眠食之穩便。
012_0768_b_18L環四偶而墻垣。若小城之雉堞。龕佛原
012_0768_b_19L是普照庵之金像。軒鍾多掛大雄殿之
012_0768_b_20L銅鐵。本堂貯金。但一千九百八圓。寺
012_0768_b_21L中費金。越七千三圓。合八千九百餘圓
012_0768_b_22L費盡。嗚呼。物質之成壞。本管於金額
012_0768_b_23L之消長也。何足恠哉。至於東溪之長瀉
012_0768_b_24L西峰之半輪。聽覽者自得。不欲煩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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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8_c_01L법성료의 본채 중수기(法性寮正堂重修記)세상에 형체가 있으니 ‘천지’라 한다. 천지라는 큰 덩어리로도 오히려 무너지고 이뤄짐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이 어찌 면하겠는가.이제 이 건물은 형체 없음으로부터 형체가 생겼으니 물질에 속하여 겁파刼波를 몇 번 겪었다. 숭정崇禎 13년 경진(1640)에 희안熙安이 중건重建하였고 강희康熙 64년 을사(1726)에 풍담風湛이 중수하였고, 건륭乾隆 56년 신해(1791)에 근민謹珉이 공루空樓를 고쳐 완성(重成)하였고, 도광道光 19년 기해(1839)에 만잠萬岑이 본채를 중건하였고, 광서光緖 10년 갑신(1884)에 경언敬彥이 북쪽 3칸을 증설하였다고 한다.이제 소화昭和 2년 정묘(1927) 가을에 주지 율암栗庵 공公이 대중과 중건하기를 계획하고 회성당檜城堂에게 감독하게 하였다. 8월부터 시작하여 체실體室 7칸 중에 남쪽 1칸을 늘리고 동청棟廳과 조실祖室에 대해 셋을 부수고 둘을 이루었다. 주방 1칸을 부수고 시청柴廳1423)을 만들고, 누각은 간간이 수리하였다. 12월 20일에 마쳤다. 들어간 금액은 본래 스스로 마련한 게 아니고 전부 사중寺中의 바람과 도움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강원을 설치하니 청풍납자淸風衲子들이 경전을 펼쳐 들고 가르침을 청하고, 새로 범종을 설치하니 법계의 중생들이 소리를 듣고 괴로움을 덜었다. 시냇물 소리의 연주와 누각의 모습은 이 건물의 경치 아님이 없다. 이에 사찰 신이 춤을 추고, 보는 이들이 손뼉을 치니, 가히 ‘제나라가 변하여 노나라 되고 노나라가 변하여 도에 이른다1424) ’고 한 것이 이런 것이다.무릇 여럿이 계획하고 감독한 공덕이 이뤄지고 무너지는 구덩이에 사라질까 염려되어 이와 같이 기록해서 후인들에게 보이노라.곡성군 옥과면 설산 수도암 기문(谷城郡玉果面雪山修道庵記)옛날 인도의 설산에서 실달悉達(Siddhattha) 태자가 도를 닦아 바르게 깨달았고, -
012_0768_c_01L法性寮正堂重修記
012_0768_c_02L世之有形者曰天地。以天地之大塊。尙
012_0768_c_03L未免壞成。而况間於天地者。烏可免哉。
012_0768_c_04L今是堂者。自無形而形者。屬於物質
012_0768_c_05L而幾經刼波。稽古崇禎十三年庚辰。熙
012_0768_c_06L安重建。康熙六十四年乙巳。風湛重修。
012_0768_c_07L乾隆五十六年辛亥。謹珉空樓重成。道
012_0768_c_08L光十九年己亥。萬岑正堂重建。光緖十
012_0768_c_09L八 [143] 年甲申。敬彥北三間增架云。今昭和
012_0768_c_10L二年丁卯秋。住持栗庵公。與衆謀重建。
012_0768_c_11L令檜城堂蕫役。自八月始。體室七間中
012_0768_c_12L南一間增。棟廳及祖室。破三成二。厨
012_0768_c_13L芳 [144] 一間。壞作柴廳。樓則間修。至十二
012_0768_c_14L月二十日畢。所入金非本自辦。全恃寺
012_0768_c_15L中願助也。仍設講院。淸風衲子。橫經
012_0768_c_16L請益。新掛梵鍾。法界群生。聞聲歇苦。
012_0768_c_17L溪舌之奏響。樓影之隱映。莫非此堂之
012_0768_c_18L勝賞也。於是乎伽神舞蹈。覽者抃躍。
012_0768_c_19L可謂齊變爲魯。魯變爲道者。此也。凡
012_0768_c_20L諸謀之監之之功。恐沒於成壞之坑。如
012_0768_c_21L是記之。示諸後。
012_0768_c_22L
012_0768_c_23L谷城郡玉果面雪山修道庵記
012_0768_c_24L古印度之雪山。悉達太子。修道而正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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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9_a_01L이제 옥과면 설산에서 민수敏洙 납자가 절을 짓고 이름 붙였으니 그 뜻이 어떠하겠는가. 즉 온갖 바위가 지극히 아름답고 빛깔이 눈 같아 그렇게 붙인 것이리라.산의 남쪽(离)에 정씨鄭氏 초당이 있었는데 지키며 기르니 나무들이 울창하고 기이하고 빼어나 기틀(基局)이 서려 있으니, 원래 속인이 더럽힐 바가 아니요 실로 석자釋子(승려)들의 수도 장소라 하겠다. 그래서 민 공敏公이 조계산에서 점차 이리로 와서 동지인 신녀信女 김씨金氏와 함께 발원하고 재물을 모았고 게다가 정씨 산장을 얻어 이에 암자를 지었다. 소화昭和 원년(1926) 가을에 시작하여 3년(1928) 봄에 마치고, 그해 4월 8일에 완성(落成)하였다. 이에 한 채의 범궁梵宮이 하나의 초당 가운데 환영처럼 솟아나고 삼보의 복전福田이 삼신산三神山의 바깥에 찬란히 드러났다.아, 산 이름과 암자 이름이 그렇게 붙은 까닭은 실로 월방月邦(인도)1425)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 어찌 그저 그러할 뿐인가. 산 모습이 탈속하고 샘물이 달며 뜰 가의 목탑이나 시야의 들판 색깔은 보는 이들이 스스로 얻을 뿐이다. 정씨의 산장과 단나檀那(시주)의 은혜와 화주(化士)의 바람과 창건주의 인연이 혹 천 년 후에 사라질까 염려되어, 산과 암자의 이름과 뜻을 먼저 분별하고 다음에 성함을 열거한다.보제당 석정 기문(普濟堂石井記)주나라 솥1426)은 나라의 보배이고 장주莊周의 표주박1427)은 집안의 소장품이지만 필시 물을 담는 쓰임새는 없다. 물을 담아 마실 수 있는 기구는 석정石井만 한 게 없다.이제 신녀信女 박춘정朴春庭은 본래 영남 사람인데 보성군 벌교리에 살게 되었다. 기사년(1929) 봄에 이 산에 나들이 와서는 이 건물에 우물이 없음을 보고, 스스로 바람과 믿음을 내어 천금千金을 기부했다. 바위를 뚫어 -
012_0769_a_01L今玉果之雪山。敏洙衲子。剏寺而名庵
012_0769_a_02L者。其意奚若。卽千巖竟秀。其色如雪
012_0769_a_03L故稱之歟。山之离有鄭氏之草堂。守而
012_0769_a_04L養之。林木蔚茂。奇而秀之。基局盤結。
012_0769_a_05L原非凡俗之所累。寔乃釋子之修道處
012_0769_a_06L也。故玆敏公。來自曹溪。轉到于此。與
012_0769_a_07L同志信女金氏。發願鳩材。又得鄭氏之
012_0769_a_08L山庄。爰剏寺庵。始於昭和元年秋。終
012_0769_a_09L乎三年春。同四月八日落成了。於是一
012_0769_a_10L區梵宮幻出於一草堂之中。三寶福田
012_0769_a_11L煥現於三神山之外。噫。山名庵號之所
012_0769_a_12L以爲稱者。實不愧於月邦之名義矣。豈
012_0769_a_13L徒然哉。若其山容之脫累。林泉之美甘。
012_0769_a_14L庭際之木塔。眼界之野色。覽者自得而
012_0769_a_15L已。至於鄭氏之庄。檀那之惠。化士之
012_0769_a_16L願。剏主之緣。恐或泯於千載之下。先
012_0769_a_17L卞山庵之名義。次列芳啣於左。
012_0769_a_18L
012_0769_a_19L普濟堂石井記
012_0769_a_20L夫周鼎之國寶。莊瓠之家藏。必無用於
012_0769_a_21L貯水者。而貯水飮啄之器。莫此石井
012_0769_a_22L若也。今信女朴春庭。本嶺南人。寓於
012_0769_a_23L寶城郡筏橋里。己巳春遊于玆山。觀此
012_0769_a_24L堂之無井也。自發願信。惠千金。穿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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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9_b_01L물을 담아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한 우리들 갈증도 풀게 하는 것이 바라는 것이었다.나는 이에 산 바깥에서 바위를 얻어 2월 26일에 시작해서 4월 4일에 마쳤다. 뜰 앞에 설치하고 물을 담아 공양하니 한결같이 단씨檀氏(시주)의 바람대로 되었다. 보배와 소장품으로 삼는 것이 어찌 솥이나 표주박으로 비견할 뿐이겠는가. 이어 다음과 같이 기린다.
刼石滅而寶珉利貞 겁석刼石이 사라지더라도 보배 옥돌은 날래고 곧으며
香海渴而德水淸淨 향해香海가 마르더라도 덕의 물은 맑고 깨끗하리라원화 대사의 수시 서문(圓華大師壽詩序)고흥의 동쪽에 ‘팔영산八影山’이 있고 팔영산 위에 ‘팔선八仙’이 있으며 팔선 아래에 ‘능가사楞伽寺’가 있다. ‘능가’를 번역하면 ‘가기 어렵다(難往)’가 된다. 사찰 안에 ‘성진性眞’이란 이가 있으니, ‘성진’이란 사람의 참된 본성이다. ‘팔선’이란 사람의 여덟 가지 식정識情1428)이다. 깨달음을 ‘참된 본성’이라 하고, 미혹함을 ‘식정’이라 한다. 미혹과 깨달음이 비록 다르나 본체로 보면 하나다. 이 식정을 깨달아 본성을 이루게 되므로 ‘성진性眞’이라 한 것인가. 생각건대 팔영八影의 기운은 성진이 그 영험함을 얻어 세상에 드러냈으니 그 이름 붙인 까닭이 어찌 그저 그러하겠는가.성진은 동진童眞1429)으로 이 산에 들어와 여기서 자라며 경전을 배우고 여기서 늙으며 업을 윤택하게 하면서 선조의 남긴 법을 전하여 ‘원화圓華’라는 호를 얻었다. 또한 어찌 팔식八識을 돌이켜 일진一眞을 이룸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좋구나, 이름이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참을 닦아 본성을 깨닫고 필시 원만한 과보를 얻게 하면 만행화萬行華1430)가 팔영산 위에 자연히 드러나서 팔선을 이끌고 참된 본성의 바다 가운데 유희하리니 누군들 흠모하지 않겠는가.스님은 동치同治 8년 기사(黃蛇, 1869)의 5월에 태어났으니 나보다 9년 뒤인데 함께 공부방(黌海)을 다니며 나이를 잊은 사귐을 맺었다. 인연 따라 남쪽으로 가서도 간간이 소식을 통하였다. -
012_0769_b_01L石。貯水供佛。亦解吾人渴情。是所願
012_0769_b_02L言。余仍玆而得石於山外。二月二十六
012_0769_b_03L日始。四月初四日終。運掛於庭前。貯
012_0769_b_04L水供養。一如檀氏之願。其所爲寶藏者。
012_0769_b_05L豈特以鼎瓠比肩也哉。仍以頌言曰。刼
012_0769_b_06L石滅而寶珉利貞。香海渴而德水淸淨。
012_0769_b_07L
012_0769_b_08L圓華大師壽詩序
012_0769_b_09L高興之東有山曰八影。八影之上有仙
012_0769_b_10L曰八仙。八仙之下有寺曰楞伽。楞伽此
012_0769_b_11L云難往。寺內有人曰性眞。性眞者。人
012_0769_b_12L之一眞性也。八仙者。人之八識情也。
012_0769_b_13L悟之名眞性。迷之名識情。迷悟雖殊。
012_0769_b_14L其體則一也。悟此識而成其性。故云性
012_0769_b_15L眞歟。想是八影之氣。性眞得其靈而現
012_0769_b_16L於世。其所以名者。豈徒然哉。性眞童
012_0769_b_17L眞。入玆山。長於此而學經。老於斯而
012_0769_b_18L潤業。傳先祖之遺法。得其號曰圓華。
012_0769_b_19L亦豈非轉八識成一眞之謂耶。善哉名
012_0769_b_20L號。若使此人修眞悟性。必得圓果。萬
012_0769_b_21L行華自現於八影之上。携八仙而遊戱
012_0769_b_22L眞性海中。孰不欽哉。師生於同治八年
012_0769_b_23L黃蛇之五月日。與余踞九年之後。共遊
012_0769_b_24L黌海。自結忘年之交。隨緣落南。間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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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9_c_01L세월(光陰)이 무상하여 홀연 소화昭和 4년 기사(屠維荒落, 1929) 석류꽃의 계절(5월)이 되니 즉 그대의 61년이 처음 돌아오는 경사스런 날이다. 잔치 자리의 오락을 알면서도 병마에 시달려서 갈 수 없으니 통절하도다.상족上足(제자) 영현永玄 상인上人이 귀인ㆍ군자들의 보배롭고 축원하는 문장을 소매에 넣어 와서 보여 주고 서문(辯言)을 간절히 구하였다. 나는 말하길, “그대의 스승은 바로 나의 막역한 벗이다. 이러한 경사에 이르러 어찌 문장을 짓지 못한다고 사양하겠는가.”라고 하고는 즉시 황잡한 말을 끄집어 내어 다만 팔영산의 성진 원화性眞圓華의 이름과 호가 이러이러함을 기록하노라.눌산 수좌가 은혜를 구하는 글(訥山首座求惠文)엎드려 듣건대, 석존께서 발우를 지니고 성에 들어가 일곱 집의 음식을 구걸하였고, 공성孔聖(공자)은 학문을 일으켜 진陳나라에 갔다가 7일 동안 식량이 끊겼다고 한다. 복과 지혜가 구족하고도 방편으로 규칙(軌)을 보이심이요 도와 덕이 높지만 실상은 곤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법왕法王과 대성大聖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불자납승佛子衲僧이 어려움에 임하는 것은 어떠하겠는가.이제 아무개는 어려서 정훈庭訓(가정교육)을 받고 일찍이 불교 가르침에 젖었다. 비록 고담을 하는 이름난 승려를 알현하였으나 장자長者의 오묘한 진리를 들어 보지 못하였다. 문자 찌꺼기로 삼시三時 선열禪悅의 맛을 삼고, 밀주진언密呪眞言으로 일생의 근거지(窟宅身)를 삼았다. 그러나 세속(世諦)의 생활 방법을 알지 못하고 인간 세상의 산업과 이익(物利)에 전혀 어둡다. 이로 말미암아 전해 오던 토지 몇 십 두斗가 온통 부모(親慈)를 구황救荒1431)하는 데 들어갔고, 현재 채장債帳1432) 수백 원이 동료와 교제한 가운데 돌출하였다.아아, 청빈한 납자는 자기 생활을 온갖 산의 솔잎에 부치므로 두려워할 게 없으나, 혼탁한 세상의 호걸은 나와 남을 구별하며 빚을 삼리三利1433) 도장(符印)에 부치니 -
012_0769_c_01L信息矣。光陰無常。忽到昭和四年屠維
012_0769_c_02L荒落榴花之節。卽吾君六一初度佳辰
012_0769_c_03L也。應知一宴上娛樂。爲病魔所戱而難
012_0769_c_04L徃痛切矣。有上足永玄上人。袖貴君子
012_0769_c_05L之寶唾嘏詞而示之。求以辯言恳之。余
012_0769_c_06L曰君之師。卽吾之莫逆友也。到此嘉慶。
012_0769_c_07L安敢以不文辭哉。卽抽荒辭。只紀八影
012_0769_c_08L山性眞圓華之名號如是如是。
012_0769_c_09L
012_0769_c_10L訥山首座求惠文
012_0769_c_11L伏聞釋尊持鉢而入城。乞七家之飯。孔
012_0769_c_12L聖興文而遊陳。絕七日之粮。或福慧足
012_0769_c_13L而方便示軌。或道德高而實相困窮。以
012_0769_c_14L其法王大聖。尙或如此。况以佛子衲
012_0769_c_15L僧。臨難奈何。今某幼蒙庭訓。早霑釋
012_0769_c_16L敎。雖謁名僧之高談。未聞長子 [145] 之妙諦。
012_0769_c_17L每以文字糟粕。爲三時之禪悅味。但以
012_0769_c_18L密呪眞言。爲一生之窟宅身。然而不知
012_0769_c_19L世諦之生活方法。專昧人間之產業物
012_0769_c_20L利。由是流來土地幾十斗。盡入於親慈
012_0769_c_21L救荒之中。現前債帳數百圓。突出於賓
012_0769_c_22L侶交際之上。吁吁。淸貧衲子。自己生
012_0769_c_23L活。付諸千山之松葉。旣無可畏。濁世
012_0769_c_24L豪夫。彼我債擔。屬於三利之符印。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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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0_a_01L어찌하겠는가. 그래서 세 치(혀)의 짧은 말을 가지고 많은 가문의 장자 집안에 고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군자들께서 몇 방울의 물을 기울여 목마른 붕어를 살리시고, 주머니 속 많은 돈을 넉넉히 베푸사 물외物外의 납자를 살리소서. 엎드려 바라건대 밝히 살피소서.경운1434) 화상의 찬에 답하는 글(答擎雲和尙賛文)보정(鼎, 필자)이 근래 석향후石鄕侯 즉묵공卽墨公1435)과 갈고 다듬는 교분1436)을 딱 끊자 저선생楮先生ㆍ중산군中山君1437) 역시 사귀어 맺는 길이 없어져서, 쓸쓸히 배우자를 잃은 듯 울타리에 버려진 물건이 됨을 달갑게 여겼다. 문득 한 통의 경함瓊凾(편지)이 천궁天宮에서 떨어지기에 공손히 손으로 받들어 보니 진실로 신선세계 대강헌大講軒 노고추老古錐1438)의 글(寶唾)1439)임을 깨달았다. 감사(感頌)함이 어떻겠는가.그 도덕은 봄 햇볕의 따사로움 같고 그 범행梵行1440)은 가을 물의 청결함 같으며, 그 말씀은 하늘의 꽃을 감동시키고 그 필설은 용의 정기를 감동시킬 만했다. 그래서 불찰佛刹(사찰)에서 금경金經을 옮겨 쓰니 노란 담비가 꼬리를 바치고, 선정仙亭에서 옥게玉偈를 부르니 흰 연꽃이 솟아나는 경사스러움이 자재하도다. 이는 근거 없는 황탄한 말이 아니요 원래 고찰할 바 있는 실제 자취로다. 이와 같은 위대하고 빛나는 행적이 이미 사람들의 입과 죽백竹帛(서적)에 실려 있는데 어찌 둔하고 졸렬한 필체로 만에 하나라도 찬양할 수 있겠는가.이제 본사 강생講生들의 단체 행동으로 인해 발길을 돌려 수많은 보배 구슬을 적막한 물가에 흩뿌리시니, 공경하는 마음으로 봉독하고 말없이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풀 냄새 나는 글 하나 함부로 엮어서 화수정花樹亭 선원璿源1441)의 처마 밑에 바칩니다. 바라건대 질정하여 물리치소서. 마음이 혼미하고 손이 떨리며 문방사우가 갖추어지지 않아 소사小師1442)에게 시켜서 기록하여 바칩니다. -
012_0770_a_01L若何哉。故將三寸之短篇說。敢吿千門
012_0770_a_02L之長子家。伏唯僉君子。傾數滴之水。
012_0770_a_03L活一痼 [146] 之鮒。優惠囊中之百金文。以活
012_0770_a_04L物外之一衲子。伏唯照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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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0_a_06L答擎雲和尙賛文
012_0770_a_07L鼎近與石鄕候 [147] 卽墨公頓絕磨琢之分。
012_0770_a_08L楮先生中山君亦無交締之道。索然如
012_0770_a_09L喪偶者。甘作芭蘺邊物矣。忽一朶瓊
012_0770_a_10L凾。殞自天宮。恭手奉覽。信覺仙界大
012_0770_a_11L講軒老古錐之寶唾也。何等感頌哉。其
012_0770_a_12L道德也。如春日之和融。其梵行也。似
012_0770_a_13L秋水之淸潔。其說也。能感天花。其筆
012_0770_a_14L也。能動虬精。所以佛刹之寫金經。黃
012_0770_a_15L鼦獻尾。仙亭之唱玉偈。白蓮出頭之慶
012_0770_a_16L祥自在。此非無據之荒辭。原是有稽之
012_0770_a_17L實績。若此景行犖蹟。旣載口碑竹帛。
012_0770_a_18L安可以鈍詞拙筆之所可攅仰之萬一哉。
012_0770_a_19L今仍本講生之團行。回躅惠以萬斛瓊
012_0770_a_20L琚。俯撒於寂莫之濱。敬心奉讀。不可以
012_0770_a_21L無言在座故。妄搆蔬荀一關。敢呈于花
012_0770_a_22L樹亭璿源之軒下。幸須斤正而退之。心
012_0770_a_23L昧手戰。四友未具。倩小師而記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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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0_b_01L모후산1443) 유마사 염불당을 새로 짓고 천 일 기도를 결사하는 글(母後山維摩寺新剏念佛堂千日祈禱結社文)엎드려 듣자니, 제불諸佛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의 백천 가지 문門 가운데 염불문이 최상이다. 왜 그러한가. 이 말엽 시대는 신근信根이 천박하여 대승 선법禪法으로는 깨달아 들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염불문이 최상이라 한다.이제 유마사維摩寺는 고려 공민왕이 피란하던 곳이다. 그래서 ‘모후산母后山’이라 했고, 유마거사가 도를 얻었던 곳이라서 제월천濟月泉1444)이 길이 흐르고 도마치逃馬峙1445)와 사자봉獅子峰이 동서로 에워싸니 골짜기는 깊숙하고 봉우리들이 첩첩이라. 은거하는 인사가 아니면 실로 납자衲子가 머무는 곳이다. 천 년 동안 꽃비가 내리는 보방寶坊(사찰)이 어이하여 하룻 밤에 겁파刼波로 인해 옮긴 바가 되었는가.광서光緖 5년(1879)에 이르러 서울 스님(京師) 김경담金景潭과 관찰사 김규홍金奎弘1446)이 보수하기로 같이 계획하였고, 기미년(1919)에 이르러 조계산 김영운金榮雲이 마을의 대부大夫들과 함께 단문檀門(시주)들의 재물을 모아 섬돌 아래 주당厨堂(부엌)을 세웠다. 그런데 비좁아서 무진년(1928) 봄에 이르러 주지 오호연吳浩然이 발원하고 소리쳐서 법당 앞에 승료僧寮 9칸을 만들었다. 찬란히 새롭게 되니 가히 ‘환영 같은 누각’이라 하겠다. 또한 밤이나 대추와 감 등 갖가지 과일 나무를 재배한 것이 수만 그루가 되고, 새로 개간한 밭이 또한 많았다.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다. 이어서 염불당을 마련하여 천 일 기도를 시작하였고, 뜻 있는 신도들과 모임을 맺고 마음을 닦아 극락에 함께 가고자 하는 결심으로 결안結案1447)하여 널리 아뢴다. 엎드려 바라건대 선군자善君子와 신여인信女人들은 신심信心을 단박에 발휘하여 같이 사안社案에 참여하소서. 옛말에, 한 무제의 옥당玉堂(궁궐)에 먼지가 자욱하고 석숭石崇의 금곡金谷1448)에 물만 그저 흐른다고 했으니, 상 위에 있는 술 살 돈을 아끼지 마시고 미타彌陀1449) 염불문으로 속히 들어오시오. -
012_0770_b_01L母後山維摩寺新剏念佛堂千日祈
012_0770_b_02L禱結社文
012_0770_b_03L伏聞諸佛渡生方便。百千門中。念佛一
012_0770_b_04L門最上。何者。唯此末葉。信根淺薄。大
012_0770_b_05L乘禪法。難可悟入。故念佛門最上云。
012_0770_b_06L今維摩寺者。麗恭王避亂地。故山名曰
012_0770_b_07L母后。維摩居士得道處。故濟月泉長流。
012_0770_b_08L逃馬峙獅子峰。東西擁衛。洞府深邃。
012_0770_b_09L峰巒層疊。若非隱逸之士。實是衲子之
012_0770_b_10L捿止。其一千年花雨之寶坊。何一夕間
012_0770_b_11L刼波之所遷。迄光緖五年。京師金景潭
012_0770_b_12L與觀察使金奎弘。恊謀剏葺。越至己未
012_0770_b_13L曹溪山金榮雲。與郡大夫。鳩財檀門。
012_0770_b_14L剏立厨堂於階下。陜陋難容故。至戊辰
012_0770_b_15L春。住持吳浩然。發願叫化。剏僧寮九
012_0770_b_16L間於法堂前。奐然一新。可謂幻住樓閣。
012_0770_b_17L亦復栗棗柿等。各色果木。耽爲栽培者
012_0770_b_18L幾萬株。新懇 [148] 田地。亦是夥多。不但若
012_0770_b_19L此而已。仍設念佛堂。千日祈祝始作。
012_0770_b_20L與有志信士。結社修心。同徃極樂之決
012_0770_b_21L心。結案普吿。伏願善君子信女人。頓
012_0770_b_22L發信心。同叅社案。古云漢武玉堂塵已
012_0770_b_23L沒。石崇金谷水空流云。莫惜床頭沽酒
012_0770_b_24L錢。速入彌陀念佛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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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0_c_01L고흥군 금산면 풍악산 송광암 중수와 개금 기문1450)(高興郡錦山面楓岳山松廣庵重修及改金記)엎드려 듣건대, 잎사귀 하나로 부처님을 덮어 준 덕택으로 십륜十輪의 왕위를 얻었고, 동전 셋을 스님에게 보시하고 5리의 보배(寶藏)를 얻었다1451)고 하는데, 하물며 전각을 수리하여 불상을 안치하고 10속束의 금으로 불상에 옷을 입혔으니 어찌 왕위와 보장으로 논할 뿐이겠는가.이 사찰은 바로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창건하셨다. 그 지역이 수려하고 그 불상은 신령하여 간절히 기도하면 즉시 응답하시니 종이 두드림을 기다림과 같고, 바람을 구하면 즉시 이루어지니 달이 강에 비침과 같다. 그 신령한 자취는 마을의 구비口碑(구전)에 자재하니 번거롭게 거듭할 필요 없다. 옛 기록을 고찰하면 가경嘉慶 11년 병인(1806)에 양개良盖 비구가 여섯 번째 중수重修하였고, 함풍咸豊 6년 병진(1856)에 증천證天 비구가 중수하니 고故 선극모宣克模 공이 공덕주가 되었고, 건양建陽 원년 병신(1896)에 우화又和가 중수하니 승지承旨 선영홍宣永鴻1452) 공이 또 공덕주가 되었고, 소화昭和 2년 정묘(1927)에 주지 경봉景鳳이 모화募化(탁발)하여 중수하니 참봉 선남훈宣南熏 공이 또 대공덕주가 되었다. 경오(1930) 봄에 개금改金 불사를 하였고, 참봉 공이 금산면 면장 장 공張公1453)ㆍ사키(佐木)1454) 등 여러 군자들과 함께 좋은 인연을 같이 맺어 불사를 성취하니 불당(佛宇)이 찬란해졌다. 썩은 평고대와 어긋난 기와들이 금강 보전寶殿으로 변하였고, 검은 칠을 한 신체는 광명 금체金體로 바뀌었다. 이로부터 불심佛心이 영험하여 복을 내리고 천룡이 환희하여 재앙을 소멸하리라.아, 선 공宣公이 3대에 걸쳐 복을 지으니 십륜의 왕위와 화華의 3축祝1455)은 논할 것도 없고, 같이 참여하여 인연 맺은 군자들도 5리의 금과 순荀의 8룡1456)이 필시 감응 있으리라. 화주化主가 단씨檀氏들의 좋은 인연을 규합하였으니 정업淨業을 같이 닦아서 종지種智를 같이 원만히 이룰 것에 의심이 없다. -
012_0770_c_01L高興郡錦山面楓岳山松廣庵重修
012_0770_c_02L及改金記
012_0770_c_03L伏聞一葉覆佛。感得十輪之王位。三錢
012_0770_c_04L施僧。尙得五里之寶藏。而况修一殿而
012_0770_c_05L安佛。銑十束而衣佛者。豈特以王位寶
012_0770_c_06L藏論之哉。今玆寺者。卽普照國師所剏
012_0770_c_07L也。其地也秀麗。其佛也神靈。恳禱卽
012_0770_c_08L應。如鍾待叩。求願卽遂。如月印江。其
012_0770_c_09L神異靈蹟。自在閭里之口碑。不足煩之。
012_0770_c_10L考其古記。嘉慶十一年丙寅。良盖比丘
012_0770_c_11L爲六重修。咸豊六年丙辰。證天比丘重
012_0770_c_12L修。故宣公克模。作功德主。建陽元年
012_0770_c_13L丙申。又和重修。承旨宣公永鴻又作
012_0770_c_14L功德主。昭和二年丁卯。住持景鳳。募
012_0770_c_15L化重修。叅奉宣公南熏。又作大功德。
012_0770_c_16L庚午春改金佛事。叅奉公與本面長南 [149]
012_0770_c_17L公。及佐木等諸君子。同結良緣。成就
012_0770_c_18L佛事。煥然佛宇。杇梠脫瓦。變成金剛
012_0770_c_19L寶殿。㓒身烏躬。改作光明金體。從此
012_0770_c_20L而佛心靈而降福。天龍歡而消災。嘻
012_0770_c_21L宣公三代之作福。十輪王華三祝已無
012_0770_c_22L可論。諸君叅同之結緣。五里金荀八
012_0770_c_23L龍必有感應。以其化主之叫合檀氏之
012_0770_c_24L良緣。同修淨業同圓種智之無疑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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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1_a_01L아름다운 자취가 사라질까 걱정되어 시말을 대략 기록해서 그 덕이 영원하기를 바라노라.제자들에게 촉루1457)하는 글(囑累徒弟文抄)아, 너희 제자들아. 나의 최후 한마디 말을 들어라.인생 일세에 백년 광음이 얼마나 되는가. 나는 올해 엄자산崦嵫山1458)에 가까워졌다. 납일臘日1459)이 점차 도래하여 하룻밤 멈추지 않으면 바로 설날(元旦) 일월이라. 이러한 경우에 이르러 힘은 비록 산을 뽑을 만해도 염라대왕(閻老)의 몽둥이를 당할 수 없고, 약이 비록 신명하다 해도 찰귀刹鬼1460)의 운명을 살릴 수 없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세간의 티끌 재산을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그래서 약간의 유물인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和盤) 왼쪽에 나누어 벌여 놓되 먼저 조상 위토位土를 쓰고 다음에 자기 위토와 진속眞俗의 상좌上佐와 손자들 이름 아래 배열하노니, 배열에 따라 준행하여 무궁하게 전하도록 하라. 그리고 티끌 재산이란 뜬구름 같으니 항상 족함을 알아 각기 분수를 지키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여 분수 밖의 것을 구하지 말고 도탑고 화목한 마음으로 수신제가修身濟家하면 이를 일러 ‘화목한 가풍’이라 칭하리니, 나는 이것을 부탁하고 또 부탁하니 너희들은 진중하라.소화昭和 5년 경오(1930) 음력 2월에 금명錦溟 사문沙門이 임종 시에 선례先例인 진제眞諦 조사의 자손기子孫記1461)를 손으로 들다. -
012_0771_a_01L恐泯芳蹟。略記始末。以永厥德云尒。
012_0771_a_02L
012_0771_a_03L1)囑累徒弟文抄 [26]
012_0771_a_04L諮爾徒弟等아 聽我最後一言하라 人
012_0771_a_05L生一世에 百年光蔭이 能有幾許오
012_0771_a_06L我今年迫崦嵫에 臘日이 看看到來하
012_0771_a_07L야 一夜不停이면 卽是元旦日月이라
012_0771_a_08L到此境遇하야 力雖拔山이나 不能當
012_0771_a_09L閻老之捧하고 藥雖神明이나 不可活
012_0771_a_10L刹鬼之命이라 當此時也에 世間塵財
012_0771_a_11L를 將安用哉아 所以若干遺物動不動
012_0771_a_12L產을 和盤分列于左하되 先以祖上位
012_0771_a_13L土하고 次列自己位土及眞俗佐孫等
012_0771_a_14L名下하노니 依列遵施하야 以傳無窮
012_0771_a_15L之地하라 且以塵財난 如浮雲하니
012_0771_a_16L常以知足하야 各守其分하며 安貧樂
012_0771_a_17L道하야 勿求分外하고 以篤睦之心으
012_0771_a_18L로 修身濟家하면 是可謂和睦家風이
012_0771_a_19L라 稱하리니 吾以是로 囑之又囑하
012_0771_a_20L니 汝等은 珍重하라。
012_0771_a_21L昭和五年庚午陰二月日
012_0771_a_22L錦溟沙門臨終。手提
012_0771_a_23L先例眞諦祖師子孫
012_0771_a_24L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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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1_b_01L선先 조사祖師 지봉당智峰堂 7과 선先 법은사法恩師 금련당金蓮堂 8 : 송광면松光面 장안리壯安里 1582. 논 2두斗. 쌀 15두.원元 재주財主 위토 : 문덕면文德面 곡천리曲川里 975. 논 3마지기(斗落).맏(長) 상좌上佐 제자第資 : 송광면 신평리新坪里 742, 207. 논 5마지기.다음 상좌 제자 : 송광면 구룡리九龍里 4854 3두. 984 2두. 5마지기.염불당 원입願入 : 송광면 신평리 728. 논 2마지기.장례 비용 : 송광면 신평리 209. 논 2마지기.차례로 속가俗家 조부와 현고비顯考妣 양주兩主의 위토 : 주암住岩 비룡리飛龍里 273. 논 2두.형님의 손자 : 주암 비룡리 273. 논 1두.둘째 형의 손자 : 주암 풍교리楓橋里 165. 논 1두 3되(升).막내의 손자 : 주암 비룡리. 1두.부록附錄[부록 1附錄一]행록초1)行錄草법휘法諱는 보정寶鼎이요 자字는 다송茶松이니, 금명錦溟은 호號이고 또한 ‘첨화添華’라고도 한다. -
012_0771_b_01L先祖師智峰堂七。先法恩師金蓮堂八。
012_0771_b_02L松光面壯安里一五八二。畓貳斗。米十
012_0771_b_03L五斗。元財主位土。文德面曲川里九七
012_0771_b_04L五畓參斗落。
012_0771_b_05L長上佐第資。松光面新坪里七四二。二
012_0771_b_06L○七。畓五斗落。
012_0771_b_07L次上佐第資。松光面九龍里四八五四
012_0771_b_08L三斗。九八四貳斗。五斗落。
012_0771_b_09L念佛堂願入。松光面新坪里七二八畓
012_0771_b_10L二斗落
012_0771_b_11L葬費。松光面新坪里二○九畓二斗落。
012_0771_b_12L次列俗家祖
012_0771_b_13L顯考妣兩主位土住岩飛龍里二七三畓
012_0771_b_14L二斗。
012_0771_b_15L伯氏孫子。住岩飛龍里。二七三畓一斗。
012_0771_b_16L仲氏孫子。住岩楓橋里。一六五畓一斗
012_0771_b_17L參升。
012_0771_b_18L季氏孫子。住岩飛龍里。一斗。
012_0771_b_19L
012_0771_b_20L
012_0771_b_21L[附錄]2)〔附錄一〕 [27]
012_0771_b_22L
012_0771_b_23L行錄草
012_0771_b_24L法諱寶鼎。字茶松。錦溟其號。亦名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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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1_c_01L곡성군谷城郡 운룡리雲龍里 사람이다. 성은 김씨로 옛 가락국 왕의 70대 후예이고, 이조 인종 때의 공신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2)의 11세 적손嫡孫이다. 조부는 자헌대부資憲大夫 김환태金煥泰이고 부친은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상종金相宗이다. 모친은 완산完山 이씨李氏로서 회임할 때 비단 같은 채색 구름 아래 개울이 넘쳐 바다가 되는 꿈을 꾸었다. 함풍咸豊 11년 신유년(1861) 1월 19일 축시丑時3)에 태어났다. 정수리는 높고 코는 똑바르니 골상이 길고 풍부했다.나이 겨우 5세 때 스스로 이름을 ‘영준英俊’이라 하였으니, 이웃 노인들이 비상하다고 여겼다.11세 때 입학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 독서한 지가 4년이 되는데 모친의 병이 위독하자 자신이 병수발을 맡아서 대소변 그릇을 들고 무수히 출입하면서 싫증 내지 않았다. 눈밭에서 영지를 캐고 진흙에 빠지며 조개를 구하는 데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렇게 20개월에 이르러 모친의 병환이 조금 차도가 있었지만 집안은 완전히 기울어서 자식 넷이 각자 흩어져 갈 곳이 없었다. 부친의 말씀에 따라 출가하게 되니, 모자간의 정이 어떠했겠는가.15세 을해년(1875) 12월 20일에 어버이를 떠나 출발하여 순천군 송광산松廣山에 이르러 금련金蓮 화상에 의지하여 득도得度(출가)하고 경파景坡 대사에게 절하고 계를 받았다. 하루는 문득 마음이 슬프고 모골이 쭈뼛하여 모친을 뵙고 싶어서 스승께 고하고 달려갔더니 모친의 병환이 다시 심해져 목숨이 경각에 있었다. 병수발을 한 지 3일 만에 영결하게 되니 즉 병자년(1876) 5월 21일이었다.18세 때 계사戒師를 모시고 유학遊學하여 경붕景鵬4)ㆍ구련九蓮5)ㆍ혼해混海6)ㆍ원화圓華7)ㆍ원해圓海8)ㆍ범해梵海9)ㆍ함명菡溟10) 등 대종사를 참학하였다. 8, 9년 사이에 그 조박糟粕11)의 맛을 배불리 얻었다.무자년(1888) 1월 18일에 -
012_0771_c_01L華。谷城郡雲龍里人也。姓金氏。古迦
012_0771_c_02L洛國王七十代裔。李朝仁廟時功臣鶴
012_0771_c_03L城君完之十一世嫡孫也。祖。資憲大夫
012_0771_c_04L煥泰。考。通政大夫相宗。母。完山李氏
012_0771_c_05L妊誕之夢。彩雲如錦。溪漲成溟。咸豊
012_0771_c_06L十一年辛酉一月十九日丑時生。頂高
012_0771_c_07L鼻直。骨相修豊。年甫五歲。自言名
012_0771_c_08L曰英俊。隣老以爲非常云。十一歲入學。
012_0771_c_09L日耕夜讀者。僅四年。慈母病篤。自任
012_0771_c_10L侍湯。大小便器。無巡出入。心不厭惡。
012_0771_c_11L雪中採芝。沒泥求蛤。莫不竭力。以至
012_0771_c_12L二十箇月後。慈恙雖小差。家道悉蕩敗。
012_0771_c_13L四子各散。無處可徃。依父敎令出家。
012_0771_c_14L母子之情狀。當如何哉。十五歲乙亥十
012_0771_c_15L二月二十日。乃謝親發行。至順天郡松
012_0771_c_16L廣山。依金蓮和尙得度。拜景坡大師受
012_0771_c_17L戒。一日忽心慘毛竪。思欲見母。吿師
012_0771_c_18L馳徃。慈恙更發。命在呼吸。纔侍湯三
012_0771_c_19L日永訣。卽丙子五月二十一日。十八歲
012_0771_c_20L陪戒師遊學。叅于景鵬九蓮混海圓華
012_0771_c_21L圓海梵海菡溟等諸大宗師。八九年之
012_0771_c_22L間。飽得其糟粕之味。戊子一月十八日
012_0771_c_23L「囑累徒弟文抄」別紙流通。編者移置於此。
012_0771_c_24L「附錄一」三字。編者補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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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2_a_01L엄군嚴君(부친)의 영서永逝(죽음)에 곡을 했다. 같은 해 2월에 은사의 유촉(恩囑)을 받들어 허주虛舟12) 선사를 여산厲山 땅에서 참학하였다. 은사恩師의 선호禪號 ‘금련당金蓮堂’을 받고 돌아와 은사에게 고하자, 은사가 말했다.“나의 생전 바람을 네가 이제 완성시켰구나.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병상에 있어서 전할 만한 물건이 없으니, 너는 다른 가문에서 법을 구하는 게 좋겠다.”“10년 가르쳐 길렀으니 본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만 심법心法을 전함이 오직 우리의 가풍家風입니다. 물건이 있고 없고를 어찌 말하겠습니까.”“말인즉 옳지만 내 어찌 차마 하겠느냐.”은사의 병이 더욱 심해져서 대소변을 치우게 되었는데 병수발하면서 괘념하지 않았다. 기축년(1898) 7월 26일에 입적하였다. 오호, 망극하도다. 탄식하며 시 하나를 지었다.
雙親恩傅俱看病 어버이와 은사 스님 모두 간병하여
大小糞穢手自摩 대변과 소변을 손수 직접 처리했지
雪芝泥蛤皆常事 눈밭의 영지와 진흙 밭 조개는 일상사
最恨無能斫脂蘇 손가락 피 내어 소생시키지 못함이 한이네
30세 경인년(1890) 2월에 금련당金蓮堂 아래에서 건당建幢13)하였고 보조실普照室에 주석하였으니 즉 부휴浮休14) 종파의 14세 문파門派라 하겠다.신묘년(1891) 봄에 본암本庵(보조암)을 수선하고 서각제西閣祭15)의 폐해(苦瘼)를 혁파하였다.임진년(1892) 2월에 능가산 서불암西佛庵16)에 들어가 관음상에 7일 동안 기도했다.갑오년(1894)에 동학 난을 막았고 서울 군대(京師)의 노략을 맞아 사찰과 승려를 지켰다.을미년(1895)에 본사 청진실淸眞室에 주석하였다.병신년(1896) 봄에 방장산(지리산) 화엄사에서 요청하여, 갔다. 당시 걸출한 수재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정유년(1897) 1월에 본산의 요청이 있어서 광원실廣遠室17)에 주석했으니 즉 국사께서 결사結社하셨던 도량이다. 법중法衆이 많고 많아서 방장이 좁았다. 같은 해 가을에 보조암普照庵의 요청에 따라 갔는데 마침 법을 전한 인연이 있었다. 납월(12월) 8일에 문하제자 눌봉訥峯18)에게 전강傳講하니 이것이 첫 번째 전심傳心이다.무술년(1898) 봄에 심우心友19) 도량道良이 방장산에 들어왔다. 즉시 금강산으로 향하여 처음에는 -
012_0772_a_01L哭嚴君之永逝。同年二月。奉恩囑而叅
012_0772_a_02L虛舟禪師於厲山地。受恩師禪號曰金
012_0772_a_03L蓮堂。歸來吿恩。恩曰。吾之生願。汝今
012_0772_a_04L成矣。然吾久在病床。無物可傳。汝求
012_0772_a_05L法他門可乎。答曰。十年敎養。本意安在。
012_0772_a_06L但傳心法。唯吾家風。物之有無。何足
012_0772_a_07L道之。恩曰言卽是矣。吾何忍乎。恩病
012_0772_a_08L尤甚。大小便除滌。侍湯之情。不忍掛
012_0772_a_09L念。至己丑七月二十六日奄寂。嗚呼
012_0772_a_10L罔極哉。嘆成一關曰。雙親恩傅俱看病。
012_0772_a_11L大小糞穢手自摩。雪芝泥蛤皆常事。最
012_0772_a_12L恨無能斫脂蘇。三十歲庚寅二月。建幢
012_0772_a_13L於金蓮堂下。住席於普照室中。卽浮休
012_0772_a_14L宗十四世門派云。辛卯春修繕本庵。而
012_0772_a_15L革罷西閣祭苦瘼。壬辰二月。入楞伽山
012_0772_a_16L西佛庵。祈觀音像七日。甲午拒東之亂
012_0772_a_17L接京師之掠。寺僧保安。乙未住本寺淸
012_0772_a_18L眞室中。丙申春赴方丈山華嚴寺請。當
012_0772_a_19L時宏傑秀才。盡萃于此。丁酉一月有本
012_0772_a_20L山之請。住廣遠室中。卽國師結社之道
012_0772_a_21L場。法衆濟濟。方丈自隘。同年秋赴普
012_0772_a_22L照庵請。適有傳法之緣。臘月八日。傳
012_0772_a_23L講于訥峯門弟。此第一傳心也。戊戌春
012_0772_a_24L心友道良。入方丈山。卽向金剛山。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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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2_b_01L원종찰圓宗刹 장경藏經에 참례하고 다음에 불종찰佛宗刹 불묘佛廟에 참례하였다. 홀연 가뭄 피해를 입자 계림군鷄林郡 사불산과 속리산ㆍ계룡산을 거쳐 돌아왔다. 비 올 때 방장산(화엄사 만일암) 구층대九層臺에 앉아 염불하고 눈 올 때 조계산(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서 결제結制20)했다.기해년(1899) 1월에 해인사의 대장경을 인간하는 불사 모임에 들어가 교정과 편집의 책임을 맡았고, 일부 경전을 본사에 봉안하였다. 퇴재退齋를 모시고 진상하기 위해 역마를 타고 상경하였다가 돌아왔다. 칙명을 받들어 남여籃輿21)의 폐해를 혁파하였다. 대중(介衆)이 시왕十王 각부各部의 탱화를 새로 조성할 때 화주를 맡겨 2천여 금을 구하니, 며칠 되지 않아 성사시켰다. 다음 해 2월 15일에 이르러 일을 마치고 봉안하였다.경자년(1900) 1월에 본군 통인通引22)이 혼란을 일으키자, 총섭의 임무를 담당하여 사원의 존폐를 염려하고 직무를 맡아 공무를 행하여 즉시 태상시太常寺23)에 보고하였다. 서울에서 포교를 보내 두 통인을 붙잡아 경무청警務廳24)으로 보냈다. 특별히 처분을 내려 엄형嚴刑을 가해 추방하였고, 또한 칙지勅旨 계판啓板25)을 내려 관청 폐해(官瘼)의 일을 혁파하게 하였다. 이에 사찰이 안정되었다.신축년(1901)에 해남군 대흥사의 화재 이후 불사소佛事所에 나아가 증명단證明壇26) 40축軸의 복장腹藏27)을 장애 없이 성취하였다. 봉안하는 날 저녁에 상서로운 구름이 하늘에 서렸다.임인년(1902)에 해인선원에서 하안거를 맺었다. 상궁 천씨千氏가 금강계단과 대구품大九品28) 승가리僧伽梨29) 모임을 마련하니 증명석에 참여하였다. 하안거 해제 후에 천씨를 모시고 본사로 돌아와 불전에 은혜롭게 보시하니, 번거롭지 않았다.30) 같은 10월에 기로사(耆社) 원당願堂 일로 대내大內31)에서 공문을 보내 해당 승려를 부르자, 자원하여 상경하였다. 마침 대내가 편치 않아서 화엄회를 동대문 바깥 원흥사元興寺32)에 마련하니 13도의 고승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그 모임에 참여하여 현요玄要를 이야기하였다.해랍解臘33) 후 -
012_0772_b_01L叅圓宗刹藏經。次禮佛宗刹佛廟。忽爲
012_0772_b_02L旱魃之所害。由鷄林郡四佛山俗離山
012_0772_b_03L鷄龍山而還。雨際坐方丈之九層臺念
012_0772_b_04L佛。雪際結曹溪之三日庵。己亥一月
012_0772_b_05L入海印寺。印大藏經佛事會。爲較正編
012_0772_b_06L集之任。一部經奉安于本寺。奉退齋進
012_0772_b_07L上。乘馹上京而還。奉勅革袪藍轝之瘼。
012_0772_b_08L介衆以十王各部幀新成化主責之。求
012_0772_b_09L財二千餘金。不日成功。至明年二月十
012_0772_b_10L五日畢奉安也。庚子一月。本郡通引之
012_0772_b_11L作亂。以㧾攝之任擔之。自念寺院之存
012_0772_b_12L亡。佩印行公。卽報于太常寺。自京發
012_0772_b_13L校。捉上二通引于警務廳。特下處分
012_0772_b_14L嚴刑放下。亦下勅旨啓板。革罷官瘼
012_0772_b_15L之役。寺乃安堵。辛丑赴海南郡大興寺
012_0772_b_16L回祿後佛事所。證明壇四十軸腹藏。無
012_0772_b_17L障成就。奉安之夕。瑞雲蟠空。壬寅結
012_0772_b_18L夏於海印禪院。尙宮千氏。設金剛戒壇
012_0772_b_19L及大九品僧伽梨會。叅證明席。解夏後
012_0772_b_20L陪千氏還本寺。佛前惠施。不煩。同年
012_0772_b_21L十月。以耆社願堂事。自大內發關。招
012_0772_b_22L該事僧。自願上京。適因大內不寧。設
012_0772_b_23L華嚴會於東門外元興寺。十三道高僧
012_0772_b_24L會集。亦叅其會。談說玄要。解臘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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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2_c_01L계묘년(1903) 5월 초에 이르자 내하금內下金34) 1만 관貫을 탁지부度支部에서 환척換尺하여 정명원鄭明源35)과 함께 수레를 타고 본사로 돌아왔다.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니 12월에 마치게 되었다. 그동안 손수 지은 것이 세 번, 상언上言한 것이 세 번이며, 성城에 들어가 두루 도모한 일이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다. 혹자가 “불자佛子(승려)가 본업에 힘쓰지 않고 서울에 출몰하니 명예와 이익을 구함이 아닌가?”라고 하자, “불자 또한 신하이다. 군주를 위하는 마음이 본래 부처를 위하는 마음에 있으니 우리들의 군주에 대한 충성이 어찌 부처님에 대한 공경과 다르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같은 해 12월에 또 본사 섭리攝理의 책임을 맡았다가 갑진년(1904) 가을에 이르러 병마 때문에 사임하고 물러나 만일암 방장실로 돌아왔다가 다시 무등산 원효암으로 가서 결랍結臘36)하였다.을사년(1905) 3월에 회광晦光37) 선사가 전경轉經38) 불사 때문에 오자, 그 가운데 입승立繩39)과 검경도감檢經都監의 직임을 맡았다. 또 계단戒壇을 마련하여 갈마羯摩40)의 지위로 참여하였다.병오년(1906) 3월에 본本 시왕계十王契에 예수預修41) 무차회無遮會를 마련하여 화주의 직임을 맡아서 단문壇門(시주)을 모집(鳩化)하여 영靈들을 천도했다.무신년(1908)에 청진암淸眞庵42)에 자취를 숨겼다. 의병(義酋)43)들이 산에 가득했고 일본 병사들이 항거하였다. 4월 18일에 이르러 동암東庵과 보조암이 일시에 화재를 당했는데 본 암자는 편안히 화재를 면했다.기유년(1909) 봄에 익우益友44) 한둘이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이런 세상에서 몸을 보호하는 계책은 초야에 숨는 게 제일인데 어찌하여 같이 가지 않는가?”라고 하자, “두 형이 어찌 그러함을 알리오. 나는 이미 산에 들어와 불자가 되었고 산을 내려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소. 산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을지언정 끝내 불자의 이름을 바꾸지는 않겠소. 오직 형들은 삶을 잘 도모하시오.”라고 답했다.경술년(1910)에 풍조가 일변하자 신학문을 위해 학교를 설치하여 교육하였는데 한문과 불교 과목의 스승으로 추대하니, 교편을 사양하지 못하고 몇 년간 교편을 잡았다.임자년(1912) 4월 8일에 -
012_0772_c_01L至癸卯五月初。內下金一萬貫。自度支
012_0772_c_02L部換尺。與鄭明源。乘輪還本。克日蕫
012_0772_c_03L役。至十二月吿功。這間手製三度。上
012_0772_c_04L言三度。入城周圖事。不能枚擧。或曰
012_0772_c_05L佛子不務本業。出沒京都。無乃釣名求
012_0772_c_06L利耶。曰佛子亦臣子。爲君之心。本在
012_0772_c_07L爲佛。吾徒之忠君。何異於敬佛乎。同
012_0772_c_08L年十二月。又責以本寺攝理之任。至甲
012_0772_c_09L辰秋。以病魔謝任。退歸萬日方丈室
012_0772_c_10L又赴無等山元曉庵結臘也。乙巳三月
012_0772_c_11L晦光禪師。以轉經佛事。來以會中。立
012_0772_c_12L繩及檢經都監之任。又設戒壇。叅羯摩
012_0772_c_13L之位。丙午三月。本十王契中。設預修
012_0772_c_14L無遮會。推擔化主之任。鳩化壇門而薦
012_0772_c_15L靈。戊申隱迹于淸眞庵。義酋遍山。日
012_0772_c_16L兵抗拒。至四月十八日。東普兩庵。一
012_0772_c_17L時衝燹。而本庵安然免禍。己酉春一兩
012_0772_c_18L益友。前牽後推曰。此世保身之計。莫
012_0772_c_19L若野隱。何不偕行乎。曰兩兄安知其然
012_0772_c_20L吾旣入山。以爲佛子。誓不下山。寧爲
012_0772_c_21L山氓所害。終不改佛子之名。唯兄等善
012_0772_c_22L自圖生也。庚戌風潮一變。乃以新學之。
012_0772_c_23L𧨕設校敎育。而推以漢文及佛敎師。
012_0772_c_24L故不辭敎鞭。數年敎授。壬子四月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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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3_a_01L금강계단을 장경전藏經殿에 마련하니 화상和尙과 아사리阿闍黎45) 계율을 받은 이들이 백 명에 달했다. 7월 15일에 응암應庵46) 선조의 영정을 마련하여 당堂에 걸었다.47)갑인년(1914) 2월에 (송광사) 보제당普濟堂에 강원講院을 마련하여 강석講席에 부임하니 사자 무리들이 즐비하여 사람을 무는 경우가 많았다.48)을묘년(1915) 3월에 방장산 천은사泉隱寺에 가서 또한 크게 모임을 여니 화산華山의 학도들이 점차 출몰하였다. 이에 좌주座主가 치혁鴟嚇49)하는 혐의가 없지 않아서, 겨우 1납臘(년)을 넘겼다.병진년(1916) 1월 15일에 해남군 대흥사로 가니 바로 12종사께서 교화를 밝히신 곳이다. 사찰의 풍조는 융화하고 법중法衆이 번창하였다.정사년(1917) 1월 13일에 다시 본산의 요청에 따라 가니, 실로 이른바 “푸른 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 좋다.”50)라는 격이었다.무오년(1918) 3월에 해은당海隱堂에서 전강傳講51)하니, 이것이 두 번째 전심傳心이다.경신년(1920) 4월 초에 태안사泰安寺 선원으로 옮겨서 하안거를 마치고 또 봉서암鳳瑞庵 염불당에서 결랍結臘하였다.신유년(1921) 1월 19일은 바로 61번째 생일(初度)이었다. 제자(徒弟)들이 1당堂에 다회茶會를 마련하여 수시壽詩52) 1권을 만들어 기념하고자 했다. 5월 15일에 본사에서 주지 직임을 세 번 청하였으나 다음과 같이 굳이 사양하였다. “내가 벌써 두 번이나 직임(印綬)을 맡아 산수(水土)의 은혜에 보답하였습니다. 이제 직임을 맡는다면 누진漏盡53)의 기롱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9월에 우연히 각기脚氣54)로 고통하며 신음한 지 10개월이 지나 조금 나았다.임술년(1922) 7월에 또 본산 강원의 요청이 있어서 행각을 거두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보제당에 주석하였다.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그렇지 못해서 연이어 7년을 주석하면서 강론(佔畢)55)하였다.무진년(1928) 2월에 강원을 법성료法性寮로 옮기자 역시 자리를 옮겨 주석하였다. 3월에 해은당海隱堂에서 전강傳講하니 바로 세 번째 전심傳心이다. 보제당 염불회念佛會로 돌아와 정토업淨土業을 지었다. -
012_0773_a_01L設金剛戒壇于藏經殿。爲和尙阿闍黎
012_0773_a_02L戒徒盈百。七月十五日。以應庵先祖影
012_0773_a_03L幀剏新。掛于堂。甲寅二月。設講院於
012_0773_a_04L普濟堂。赴任講席。獅徒濟濟。咬人者
012_0773_a_05L多矣。乙卯三月。赴方丈山泉隱寺。亦
012_0773_a_06L大會而華山學徒。稍稍出沒。座主不無
012_0773_a_07L鴟嚇之嫌。僅過一臘。丙辰一月十五日
012_0773_a_08L赴海南郡大興寺。卽十二宗師闡化之
012_0773_a_09L地。寺風和融。法衆繁昌。丁巳一月十
012_0773_a_10L三日。又赴本山之請。實所謂靑春好還
012_0773_a_11L鄕者也。戊午三月。傳講于海隱堂。此
012_0773_a_12L第二傳心▣。▣▣▣▣▣移 [150] 住泰安寺
012_0773_a_13L禪院解夏。又結臘於鳳瑞庵念佛堂。辛
012_0773_a_14L酉一月十九日。卽六一初度也。徒弟等
012_0773_a_15L設茶會一堂。壽詩一𢎥。以欲紀念之表。
012_0773_a_16L五月十五日。自本寺以住持之任三請
012_0773_a_17L而固辭曰。吾旣再秉印綬。以報水土之
012_0773_a_18L恩。今若佩印。安堪漏盡之譏耶。九月
012_0773_a_19L偶以脚氣苦痛。吟呻十箇月。小差。壬戌
012_0773_a_20L七月。又有本山講院之請。卽收脚還山。
012_0773_a_21L仍住普濟堂。欲退不得。連住七年而佔
012_0773_a_22L畢。戊辰二月。講院移定於法性寮。亦
012_0773_a_23L移席住之。三月傳講海隱堂。卽第三處
012_0773_a_24L傳心也。返于普濟堂念佛會。以做淨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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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3_b_01L8월 15일에 삼존불三尊佛을 개금하였다. 본당本堂의 벽화 구품도九品圖56)를 사람을 시켜 결말 짓고자 했으니 미타불彌陀佛57)인 까닭이다. 찬란하게 수리하였으니 바로 함호菡湖58) 선사가 보시한 것이다.그 저술로는 시고詩稿 3권ㆍ문고文稿 2권ㆍ『불조찬영佛祖贊詠』 1권ㆍ『정토백영淨土百詠』 1권이 있고, 편록編錄으로는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 1권ㆍ『저역총보著譯叢譜』 1권ㆍ『석보약록釋譜略錄』 1권ㆍ『삼장법수三藏法數』 1권ㆍ『염불요해念佛要解』 1권ㆍ『속명수집續名數集』 1권ㆍ『십지경과十地經科』ㆍ『능엄경과도楞嚴經科圖』ㆍ『대동영선大東咏選』ㆍ『질의록質疑錄』ㆍ『수미산도須彌山圖』가 있다. 그 개당開堂하여 설회設會한 것이 모두 8처處 10회會이니, 일생 사업이 이와 같을 뿐이다.[부록 2附錄二]금명 강백의 61세 수시 서문(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서창으로 해가 질 때 우연히 의산義山의 시를 읽다가 “석양이 한없이 좋은데 다만 황혼이 가깝구나.”59)라는 구절에 이르러 나도 몰래 허허 감탄하면서 뜰의 나무를 바라보며 방황하였다. 문득 주완섭朱完燮 생도의 편지를 받았으니, 주朱 생도는 에도(江戶, 도쿄)에서 유학하는 사람인데, 편지로 그의 사부인 금명 강백의 61세 수시壽詩에 대한 서문을 삼가 청하는 것이었다.금명 강백은 남쪽의 석덕碩德 가운데 백미로서 나이(齒髮)가 한영漢永60)보다 10년 많다. 그윽이 30년 전을 회상하니 처음 금명 강백을 보았을 때의 -
012_0773_b_01L業。八月十五日。三尊佛銑金。本堂壁
012_0773_b_02L畫九品圖。使人欲結。彌陀佛故也。奐然
012_0773_b_03L修理。卽菡湖禪師所施也。其著述者
012_0773_b_04L詩稿三。文稿二。佛祖贊詠一。淨土百
012_0773_b_05L詠一。編錄者。曹溪高僧傳一。著譯叢
012_0773_b_06L譜一。釋譜略錄一。三藏法數一。念佛
012_0773_b_07L要解一。續名數集一。十地經科。楞嚴
012_0773_b_08L經科圖。大東咏選。質疑錄。須彌山圖
012_0773_b_09L也。其開堂設會。凡八處十會。一生事
012_0773_b_10L業。如是而已。
012_0773_b_11L
012_0773_b_12L
012_0773_b_13L
012_0773_b_14L1)〔附錄二〕 [28]
012_0773_b_15L
012_0773_b_16L2)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 [29]
012_0773_b_17L
012_0773_b_18L落日西窓。偶讀義山詩。至夕陽無限好
012_0773_b_19L只是近黃昏。不覺歔欷感歎。觀庭樹
012_0773_b_20L以彷徨。輒承朱生完燮書。朱生方留
012_0773_b_21L學。江戶上人也。書中勤請其師父錦溟
012_0773_b_22L講伯六十一壽詩序。錦溟伯南中碩德
012_0773_b_23L之白眉。而齒髮長於漢永者。十有春秋
012_0773_b_24L也。緬憶三十年前。初見錦溟伯。時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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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3_c_01L성대한 만남이 문득 새벽 일 같은데 지금 세월이 쓸쓸히 또 도도히 흘러감이 어찌 이리 빠른가. 나는 겨우 약관弱冠(20세)에 학문에 뜻을 두어 백양산(羊山)과 조계산(曹溪) 사이로 뛰어난 학자들을 두루 방문하였다. 금명 강백은 보조普照 난야蘭若(절)에서 새로 개당開幢하였고 월하月荷 공公 또한 자정慈靜 도량61)에서 휘주揮麈62)하였으니, 모두 꽃다운 나이의 이름난 분들로 영걸한 모습이 타인을 감동시켰고 지혜는 태양을 쏠 만했다. 자리를 둘러 배우기를 청하는 이들이 항상 수십 인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나란히 대열을 이루던 이들 가운데 ‘제봉찬霽峰讃’,63) ‘금봉림錦峰林’,64) ‘진응찬震應璨’,65) ‘금파호琴巴湖’66)가 가장 경외하는 벗이었다.당시 해외의 문운文運이 날마다 왕성하였으니 호상毫相이 동쪽을 비춤67)과 같을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한국을 돌아보건대 흑산黑山 아래로 치달리는 귀졸鬼卒이나 여우 무리 같아서 볼 만한 정교政敎가 없으니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들의 세상 밖 영활靈活은 천하 국가를 멀리 벗어났다. 나의 궤선軌線은 오직 천석泉石(산수)에 정을 붙이고 구름과 달을 관리하며 둘도 없는 진제眞諦를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따름이 막역하였으니, 길이 좋아하여 역매驛梅68)를 주기도 하고 흥이 일면 설도雪棹69)를 요리하기도 했다. 옛사람이 말한 바 “만남에 기뻐서 늙음이 이르는 줄도 몰랐다.”70)라는 격이다. 이후 10년이 지나 금명 강백과 화산華山 능파淩波 공公은 동쪽으로 바다와 산악을 유람하다가 속리산 수정봉 아래 있는 나를 방문하셨다. 환한 얼굴에 말씀(詞稜)이 원만(朗圓)하니 도 있는 분의 기상을 더욱 볼 수 있었다. 하룻밤 가르침을 들으니, 친한 벗을 다시 만난 감회를 깊이 펼 수 있었다.다시 10년이 지나 융마戎馬(전란)가 혼란하고 풍운이 몰아치는 세상에 산중 사람 또한 도를 지키기 어려웠다. -
012_0773_c_01L會事。恍然如隔一晨。而至今落落復滚
012_0773_c_02L滚。一何斯極。余甫弱冠志於學問。歷
012_0773_c_03L訪名宿于羊山曹溪之間。錦溟伯新開
012_0773_c_04L幢於普照蘭若。月荷公亦揮塵於慈靜
012_0773_c_05L道場。俱以芳年名士。英姿動人。慧頴
012_0773_c_06L射日。繞座請益者。常數十人也。又與
012_0773_c_07L余比肩同隊者。曰霽峰讃。曰錦峰林。
012_0773_c_08L曰震應璨。曰琴巴湖。其最畏友也。方
012_0773_c_09L是時。外洋之文運。蒸蒸日上。不啻若
012_0773_c_10L毫相之東照。顧吾韓邦。徒馳黑山下鬼
012_0773_c_11L卒狐輩。無有政敎之可觀。尙忍言哉。
012_0773_c_12L然吾輩之方外靈活。則逈脫天下國。我
012_0773_c_13L之軌線。唯以寄情泉石。管領雲月。爲
012_0773_c_14L無二眞諦。故其從莫逆也。永好而或投
012_0773_c_15L贈驛梅。興會而或料理雪棹。古人所謂
012_0773_c_16L欣於所遇。曾不知老之將至耳。嗣後十
012_0773_c_17L年。錦溟伯與華山淩波公。東遊海岳。
012_0773_c_18L次訪我於俗離山水晶峰下。韶顏充然。
012_0773_c_19L詞稜朗圓。尤見其有道者氣像。聽誨一
012_0773_c_20L夜。使我深發再逢親友之感矣。又十年
012_0773_c_21L戎馬搶攘。風雲人世。山中人亦難守道。
012_0773_c_22L「附錄二」三字。編者補入。{底}松廣寺所藏筆
012_0773_c_23L寫本。此詩集。本以別行本流通。此非茶松子
012_0773_c_24L之撰述故。編者以爲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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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4_a_01L그래서 나는 한용운韓龍雲 공과 새로운 가르침에 주력하였다. 바야흐로 충청도와 경상도 이남에 공무가 있어서 금명 강백을 삼청각三淸閣에서 뵈었는데 두 눈동자가 여전히 빛이 나고 안색도 이전보다 주름이 없는데 머리카락은 더 창백蒼白했다.다시 10년이 지나니 우리의 도가 불행함인가, 균천鈞天71)에 사람이 없도다. 제봉霽峰과 금봉錦峰ㆍ능파淩波ㆍ금파琴巴 등의 상인上人들이 차례로 신선(仙侶)이 되고, 월하月荷 공公과 진응震應 공公이 모두 별천지를 개척하여 왕래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용운 공은 대비大悲를 드러냄으로써 근래에 삼매의 바다에 들어갔는데72) 홀로 나는 보잘것없이 오래도록 한강의 객이 되어 끝내 내세울 만한 일이 없다. 비 오면 눕고 눈을 반찬으로 삼아 누구와 같이 꿈을 꿀까. 아아, 슬프도다. 돌아가는 기러기를 눈으로 송별하며 밝은 달이 완연한데 어찌 거듭 원만하길 바라리오. 지난 시절 우리들이 맑게 노닐었던 것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이에 풍파가 놀라운 시대라 다시 지난날의 화평했던 시절이 아니로다. 왕왕 촉급하고 비린 먼지가 바람을 따라 고요한 산창山窓에게까지 난입하니, 노스님(老古錐)이 말씀하신 바 “눈여겨봐야 할 시절”이라. 그러나 금명 강백은 능히 중정中正하고 건실한 모습으로 지주砥柱73)를 지탱하여 세우고 초복初服74)을 다시 닦아 조산曹山과 동호桐湖 어름에서 소요하면서 아스라이 높은 관을 쓰고 찬란한 패옥을 차시어, 옛 걸음을 잃어버린 나로 하여금 진실로 우러러보게 하니 얼마나 위대하신가.마침 신유년(1921) 봄에 금명 강백의 고령(邵齡)이 이미 화갑 고개 위에 오르셔서, 문하의 용상龍象(대덕)으로 완섭完燮 상인上人 같은 경우 이제 청년으로 가장 빼어난 영재가 되었으니 진실로 가히 이른바 ‘석양의 풍경이 진실로 무한히 좋지 않음이 없다’ 하리라.나 같은 이 또한 머리칼이 이미 창연蒼然75)해지고 생애가 점차 고담苦淡 지경으로 들어감에 금명 강백의 말광末光(여광)을 공경히 바라보면서 흠모와 감송感頌76)이 없겠는가. 이러므로 30년 동안 느꼈던 정회를 대략 서술하여 -
012_0774_a_01L故余與龍雲公。力主新敎。方有公事
012_0774_a_02L於湖嶺以南。得拜錦溟伯于三淸閣中。
012_0774_a_03L雙瞳尙烱烱。顏容未皺於前日。鬢毛加
012_0774_a_04L蒼白焉。又復十年。吾道之不幸歟。鈎 [151]
012_0774_a_05L天之無人歟。霽峰錦峰淩波琴巴諸上
012_0774_a_06L人。次第化仙侶。月荷公震應公。皆拓
012_0774_a_07L別寰。至不相徃來。龍雲公用現大悲
012_0774_a_08L近入三昧海。獨余無狀。久客漢上。竟
012_0774_a_09L無一事建竪。雨卧雪餐。與誰同夢。噫
012_0774_a_10L嘻悲夫。目送歸鴻。明月宛在。寧欲重
012_0774_a_11L圓。曩時吾輩。淸遊安所。可幾乎哉。于
012_0774_a_12L玆風波驚刼。非復昔日之昭代熙和。徃
012_0774_a_13L徃噍殺之腥塵隨風。亂入于涔寂山窓
012_0774_a_14L老古錐所云。著眼時節也。然錦溟伯
012_0774_a_15L能以中正健相。撑立砥柱。復修初服。
012_0774_a_16L盤旋於曹山桐湖之交。岌岌峨冠。陸離
012_0774_a_17L瓊珮。令吾猶失故步者。允所瞻仰。何
012_0774_a_18L其偉歟。適於辛酉春。錦溟伯之邵齡
012_0774_a_19L已登花甲嶺上。而門下龍象。如完燮上
012_0774_a_20L人者。爲今靑年英材之最秀。則眞可謂
012_0774_a_21L夕陽景象洵非無限好者哉。如余者亦
012_0774_a_22L已鬂髮蒼然。生涯漸入苦淡一境。聳觀
012_0774_a_23L錦溟伯之末光。能無企羨且感頌者乎。
012_0774_a_24L是以略叙三十年感舊之情懷。聊以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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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4_b_01L완섭 상인에게 답장할 뿐이다.불기佛紀 2948년 신유(1921) 1월 30일 영호 한영映湖漢永이 삼가 쓰다.금명 대사 수시錦溟大師壽詩보정의 원래 시(寶鼎原韻)金鷄唱曉借天靈 금계77)가 새벽을 알려 하늘 영을 빌리는
六一今朝未慧惺 61세 오늘 아침에도 지혜를 깨치지 못하니
去益昏迷難點石 갈수록 더욱 혼미하여 교화하기78) 어려우나
疲能隨喜但飜經 피곤해도 능히 기뻐하며 다만 불경 뒤적이네
堪羞鬂髮無爲白 머리칼이 일없이 백발 됨을 부끄러워하고
可愛庭蘭漸自靑 뜰의 난초가 점차 절로 푸르름을 좋아하네
幾訪曹溪多少路 조계산의 많은 길들을 몇 번이나 방문했나
謾觀水月坐松亭 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송정에 앉노라
삼가 원래 시에 차운하다(謹次原韻)兄我同年禀一靈 형과 나는 같은 해에 영혼을 받아서
養身敎海夢初惺 가르침의 바다에 몸을 길러 꿈을 깨고
循友歷叅深翰墨 벗을 따라 두루 참학하여 필묵이 깊고
開人眼目悟眞經 사람의 안목을 여는 참 경전을 깨달으니
宴會東風窓梅白 잔치 모임의 동풍에 창가 매화는 희고
詩融和氣壽山靑 시 짓는 화락한 기운에 수산79)이 푸르니
如今再得齊瓶鉢 지금 제나라 발우를 다시 얻는다면
回甲桐林樂滿亭 동림80)의 회갑에 즐거움이 정자에 가득하리
화옹花翁 양영월梁映月81)
道骨儼然南嶽靈 도의 골격이 의젓한 남악의 영령이여
纖塵不動石頭惺 가는 먼지도 날리지 않게 석두를 깨치네
桐山留月照新曲 동산82)에 머무는 달은 새로운 노래 비추고
鴨水生春飜古經 압수83)에 봄기운 나니 옛 경전 들추네
自笑狂氛天下赤 미친 기운에 천하가 붉어짐을 웃어 대나니
最憐芳草磵邊靑 방초가 계곡 옆에 푸름이 가장 사랑스럽네
心香一瓣憑鴻爪 심향 한 가닥을 홍조84)에 기대니
雲樹依微漢上亭 구름 낀 숲은 어렴풋이 한강 위 정자 같구나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85)
주완섭朱完燮 군이 그의 스승 금명 화상의 61번째 생신인 -
012_0774_b_01L完燮上人云爾。
012_0774_b_02L佛紀二九四八年辛酉一月三十日。
012_0774_b_03L映湖漢永謹叙。
012_0774_b_04L
012_0774_b_05L1)錦溟大師壽詩 [30]
012_0774_b_06L
012_0774_b_07L2)寶鼎原韻
012_0774_b_08L金鷄唱曉借天靈。六一今朝未慧惺。
012_0774_b_09L去益昏迷難點石。疲能隨喜但飜經。
012_0774_b_10L堪羞鬂髮無爲白。可愛庭蘭漸自靑。
012_0774_b_11L幾訪曹溪多少路。謾觀水月坐松亭。
012_0774_b_12L
012_0774_b_13L謹次原韻
012_0774_b_14L兄我同年禀一靈。養身敎海夢初惺。
012_0774_b_15L循友歷叅深翰墨。開人眼目悟眞經。
012_0774_b_16L宴會東風窓梅白。詩融和氣壽山靑。
012_0774_b_17L如今再得齊瓶鉢。回甲桐林樂滿亭。
012_0774_b_18L花翁梁映月。
012_0774_b_19L道骨儼然南嶽靈。纖塵不動石頭惺。
012_0774_b_20L桐山留月照新曲。鴨水生春飜古經。
012_0774_b_21L自笑狂氛天下赤。最憐芳草磵邊靑。
012_0774_b_22L心香一瓣憑鴻爪。雲樹依微漢上亭。
012_0774_b_23L石顚朴漢永。
012_0774_b_24L朱君完燮。爲其師錦溟和尙。六十一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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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4_c_01L신유년(1921) 정월 19일을 위하여 사방의 군자들에게 글을 구하였다. 주 군은 해외에서 유학하던 차라 나에게 편지를 보내 알렸다. 나는 화상과 이별한 지 해가 지났는데 듣자하니 이번 봄에 동리선방桐裡禪房86)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 도모道貌를 생각하니 늙어갈수록 더욱 맑아서 당연히 삼매세계에 들었으리라. 두 집안의 정리를 붙잡고 주 군의 효성에 감격하여 삼가 원운에 차운하여 하례한다.
一入名山養性靈 한번 명산에 들어가 성령을 기르니
弧辰風味益惺惺 생일의 풍미가 더욱 또렷하구나
六旬春早茶松室 60세 되는 이른 봄의 다송실에서
十重恩深玉笈經 열 겹의 은혜 깊은 옥급87) 경전
想裡曹溪緣最熟 생각 속에 조계의 인연은 가장 무르익고
定中桐嶽眼俱靑 선정 속에 동악의 눈은 모두 푸르도다
朱君遙獻無量祝 주 군이 멀리서 무량한 축하를 드리니
日下天長海上亭 해 아래 긴 하늘의 바다 위 정자라네
사생社生88) 호산壺山 송태회宋泰會89)
승평부昇平府(순천) 조계산에 한 화상이 있으니 성은 김씨, 호는 금명錦溟이라. 어려서 출가하여 경전을 읽어 박식하고 커서 입참入叅하고 상당上堂90)하여 대중에게 설법하니 선문의 기둥이요 티끌 바다의 보배 선박이로다. 아아, 광음이 물과 같아 백 년이 찰나이니, 이에 화상의 화갑이 돌아왔도다. 이 날에 향풍이 가득하고 법우法雨가 뒤섞여 내리는데 두타頭陀91)들이 숲처럼 와서 하례하고 사미沙彌들이 줄을 지어 절하고 춤추는도다. 비록 인간 세상의 행위지만 천상의 음악 같도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가 빠졌으니 화상이 가장 사랑하는 소좌小佐(제자) 완섭完燮이 화연華筵(잔치)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섭은 바로 나의 종제從弟92)인데 14개월을 뱃속에 있다가 태어났다. 그래서 온 집안이 비범하다고 일컬었다. 14세 때 티끌세상을 자못 싫어하여 애써 출가를 구하였다. 처음에 조계산에 들어가 -
012_0774_c_01L度。在辛酉正月十九日。乞文于四方君
012_0774_c_02L子。朱君方遊學海外。寄書示余。余別
012_0774_c_03L和尙已年。聞今春叅于桐裡禪房。想其
012_0774_c_04L道貌。老而彌淸。當入三昧界也。攬兩
012_0774_c_05L家之誼。感朱君之孝。謹次其原韻而賀
012_0774_c_06L之。
012_0774_c_07L一入名山養性靈。弧辰風味益惺惺。
012_0774_c_08L六旬春早茶松室。十重恩深玉笈經。
012_0774_c_09L想裡曹溪緣最熟。定中桐嶽眼俱靑。
012_0774_c_10L朱君遙獻無量祝。日下天長海上亭。
012_0774_c_11L社生壺山宋泰會。
012_0774_c_12L昇平府曹溪山中。有一和尙。姓金氏。
012_0774_c_13L號錦溟。幼年出家。閱經廣識。壯歲入
012_0774_c_14L叅。上堂說衆。禪門之棟樑。塵海之寶
012_0774_c_15L航。嗟呼。光陰如水。刹羅百年。於是乎
012_0774_c_16L和尙之花甲週回。是日也。香風靄靄。
012_0774_c_17L法雨紛紛。頭陀如林而來賀。沙彌作列
012_0774_c_18L而拜舞。雖是人間做。疑是天上樂。然
012_0774_c_19L有一缺于此。和尙最愛小佐完燮。未叅
012_0774_c_20L於華筵故也。完燮卽吾之從弟。而此君
012_0774_c_21L孕十四月而生。一門相謂非凡。年纔十
012_0774_c_22L四。頗厭塵寰。苦求出家。初入曹溪山。
012_0774_c_23L此題名。編者補入。「寶鼎」二字。編者補
012_0774_c_24L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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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5_a_01L화상께 의탁하고는 그렇게 사제관계를 맺었다. 스승은 이로부터 은혜가 자못 깊고 깨우쳐 일러 주니, 밤낮으로 슬하에서 잠시도 허비하지 않았다. 세상에 변화가 많아 물살이 도도하고 혁신의 북소리가 울려 공문空門(사찰)까지 미쳤다. 스승은 부득이 에도가와(江戶川)93)로 보내 유학하도록 하였다. 스승의 화갑이 마침 입학 시기에 해당하니, 학업을 폐하고 돌아온다면 사부의 여러 겹 바람을 저버림이 된다. 그래서 주저하며 단행하지 못하고, 꽃을 꽂고 복숭아 드리는94) 정성을 수행하지 못하고서 그저 구름을 바라보고 축강祝崗95)하는 절을 올릴 뿐이었다. 완섭의 안타까움만이 아니라 또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고 감동하여 말로 표현하니 대략 만분의 하나라도 축원을 표시하고자 한다. 축원은 다음과 같다.
眞僧不世出 불세출의 참된 승려
年老道無盡 나이 늙어도 도는 다함 없네
數計恒沙盡 항하 모래가 다하도록
無量壽無盡 무량한 수명 다함 없으리
六一年高修一靈 61년 동안 높이 닦은 하나의 영
靈臺臺上獨來惺 영대96) 대 위에서 홀로 깨었네
牛回羊化無非道 소 돌아감과 양의 변화, 도 아님 없으니
蟬噪鶯歌㧾是經 매미 울고 꾀꼬리 노래함 모두 경전이지
江戶邊雲鵬趐遠 에도의 구름에 붕새가 멀리 날고
山樓半日鶴衫靑 산 누각에 걸린 해에 학 날개 푸르네
聊知和尙心如月 화상의 마음이 달과 같음을 알리니
遍照百千萬億亭 백천만억의 정자를 두루 비추네
취은翠隱 주영찬朱榮璨
강 이름으로 금강錦江은 있는데 금명錦溟은 없다. 명溟이란 바다의 이름인데 또한 금해錦海도 없다. 삼보 가람 가운데 김金 상인上人 보정寶鼎은 호를 금명으로 받았는데 그 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금錦이란 베틀의 실 가운데 최고이고, 명溟이란 푸른 바다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이다. 최고의 비단과 가장 깊은 바다로서 어찌 범상한 물건과 태생을 비교하겠는가.김 상인이 호를 얻음은 진실로 우연이 아니다. 또한 비단은 남방의 본색에 속하므로 금명은 남명南溟이다. 남명이란 천지天池이다. 또한 어찌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곳이 아니리오. 알지 못하겠다. 또는 김보정金寶鼎이 관음보살의 제자가 되길 원하였던가. -
012_0775_a_01L投依於和尙。仍結師佐。師自此恩慈頗
012_0775_a_02L重。示喩密悟。日夕膝下。寸陰不虛。塵
012_0775_a_03L世多飜。波浪滔滔。革新一鼓。動及空門。
012_0775_a_04L師不得已。乃命送于江戶川留學。師之
012_0775_a_05L花辰。適値入學期也。如廢學歸來。還
012_0775_a_06L負師父積累之望。故週貯未斷。未遂揷
012_0775_a_07L花獻桃之誠。徒勞望雲祝崗之拜。非惟
012_0775_a_08L完燮之結恨。且令聞者多感。感而發言。
012_0775_a_09L略表萬一之祝。祝曰。眞僧不世出。年
012_0775_a_10L老道無盡。數計恒沙盡。無量壽無盡。
012_0775_a_11L六一年高修一靈。靈臺臺上獨來惺。
012_0775_a_12L牛回羊化無非道。蟬噪鶯歌㧾是經。
012_0775_a_13L江戶邊雲鵬趐遠。山樓半日鶴衫靑。
012_0775_a_14L聊知和尙心如月。遍照百千萬億亭。
012_0775_a_15L翠隱朱榮璨。
012_0775_a_16L盖有江名錦而無錦名溟。溟是海之名
012_0775_a_17L而亦無錦名海也。三寶伽藍中。金上人
012_0775_a_18L寶鼎。受號以錦溟。莫詳其所據。而然
012_0775_a_19L而錦是機絲之無上。溟是滄溟之甚深。
012_0775_a_20L以其無上之繡。甚深之洋。安可擬比於
012_0775_a_21L凡物凡胎哉。金上人之得號。誠非偶然
012_0775_a_22L而且想錦屬南方本色。則錦溟卽南溟。
012_0775_a_23L南溟者。天池也。亦豈非觀世音現化處。
012_0775_a_24L不識不知。抑或金寶鼎願爲觀音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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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5_b_01L감히 관견管見으로 수시晬詩97) 끝에 붙인다.
賀君精進感神靈 그대 정진하여 신령 감동시킴을 축하하노니
不昧心燈了慧惺 마음 등불에 어둡지 않아 지혜롭게 깨었도다
衣鉢將傳誰守戒 의발을 전함에 누가 계를 지킬 것인가
色觀俱滅只餘經 모습이 모두 사라져도 경전만은 남으리
壽長南極星辰耀 남극성처럼 장수하여 빛나시기를
夢覺前庭栢樹靑 꿈을 깨니 뜰의 잣나무가 푸르도다
一派錦溟源有自 한 줄기 금명은 본래 근원이 있으니
曹溪山氣立亭亭 조계산 기운이 정정하게 서 있네
소파小坡 조정현趙晶鉉
신유년(1921) 음력 정월 19일은 법은야法恩爺98) 금명錦溟 대강사大講師의 현호懸弧99) 길일(嘉辰)이니 인간의 영화로운 경사가 이날보다 더함이 없다. 그러나 마침 이 때에 완섭完燮은 학해學海에 이름을 도적질하여 에도(江戶)에 몸이 정체되었으니, 절구를 가는100) 공력이 부족하지만 죽을 나눠 먹는 의지를 결정하였다. 황향黃香101)이 부친의 베개에 부채질하는 정성은 간절하지만 노래자老萊子102)가 색동옷 입고 춤을 추던 예절이 결여되었다. 아, 조용히 무릎 꿇고 엎드려 생각건대 과거는 꿈과 같고 현재는 감개무량이니 공문空門(사찰) 10년 동안 중후한 은혜를 받았도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르치고 길러 주시며 모든 이理와 사事에 있어 진실로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시니 사은四恩103)에 있어 무거움이 태산 같아 삼생三生에 증명하더라도 만에 하나라도 보답할 수 없도다. 스승이 제자(資)를 생각하고 제자가 스승을 우러름에 길은 만 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한 줄로 통하여 생각마다 끊이지 않고 때마다 잊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 61세 화갑을 맞음에랴. 진실로 황공하여 유장한 안타까움을 해소할 길 없다. 이에 여러 방면 대군자大君子들의 주옥같은 글을 축사(嘏詞)로 구하여, 축하하고 기념하는 재료로 삼게 했다. 그리고 푸성귀 같은 말이나마 바쳐서 명령榠欞104)의 복을 비느라 우둔함을 헤아리지 않고 대략 서술한다.
六旬道氣百磨靈 육순의 도력으로 백 번이나 영을 다듬으니
風貌超然儼獨惺 풍모가 초연하게 엄연히 홀로 깨었도다
定中心照桐山月 선정 중에 마음을 비추는 동산의 달
境上塵晴法海經 지경의 먼지도 맑은 법해의 경전이라네
齎慶嘏詞雲朶白 경사를 담은 축사로 구름 꽃이 희고
供歡祝盞篆烟靑 축하드리는 잔에 향연이 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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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5_b_01L弟子歟。敢以管見。并尾晬詩。
012_0775_b_02L賀君精進感神靈。不昧心燈了慧惺。
012_0775_b_03L衣鉢將傳誰守戒。色觀俱滅只餘經。
012_0775_b_04L壽長南極星辰耀。夢覺前庭栢樹靑。
012_0775_b_05L一派錦溟源有自。曹溪山氣立亭亭。
012_0775_b_06L小坡趙晶鉉。
012_0775_b_07L辛酉陰正月十九日。爲法恩爺錦溟大
012_0775_b_08L講師。懸弧嘉辰而人間榮慶。莫此日
012_0775_b_09L若也。然適玆燮。方盜名學海。滯身江
012_0775_b_10L戶。工欠磨杵。志決割粥。雖切黃香扇
012_0775_b_11L枕之誠。旋缺老萊斑舞之禮。噫。靜跪
012_0775_b_12L伏念。過去夢幻。現在感慨。空門十載。
012_0775_b_13L厚蒙重恩。自幼迄今。以敎以育。凡於
012_0775_b_14L理事。洵諄訓導。在四恩而重若泰山。
012_0775_b_15L證三生而莫報萬一也。師之念資。資之
012_0775_b_16L仰師。路隔萬里。心通一線。念念不斷。
012_0775_b_17L時時難忘。况値此六之一花甲乎哉。誠
012_0775_b_18L惶誠恐。長恨莫消。于是乞得諸方大君
012_0775_b_19L子瓊琚嘏詞。俾作祝賀紀念之次。謹將
012_0775_b_20L菲蔬之詞。替獻榠欞之福。以故不揣愚
012_0775_b_21L騃。聊敍大略。
012_0775_b_22L六旬道氣百磨靈。風貌超然儼獨惺。
012_0775_b_23L定中心照桐山月。境上塵晴法海經。
012_0775_b_24L齎慶嘏詞雲朶白。供歡祝盞篆烟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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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5_c_01L恨身萬里江湖外 안타까운 것은 몸이 만 리 강호 바깥이라
獻壽無能滯旅亭 장수 기원의 잔 못 올리고 여관에 묶임이라
에도 여관에서 소좌 완섭이 삼가 절하고 쓰다.(時在江戶旅舍小佐完燮謹拜稿)
空門龍象老逾靈 공문의 용상대덕이 늙을수록 영험하니
出世初年已慧惺 세상에 나온 초년에 이미 지혜로웠지
牀前雲集三千衆 단상 앞에 구름처럼 모인 삼천 대중들
胷裡燈明八萬經 가슴속 등불을 밝히는 팔만대장경
淋漓蕉葉毫端墨 흥건한 파초 잎들은 붓끝에서 먹색이요
㶑灎蓮花鉢底靑 물결 위의 연꽃은 발우 밑에서 푸르네
願借露牛超火宅 바라건대 노지 백우로 화택을 넘길105)
共君閑話六鑑亭 그대와 함께 육감정106)에서 이야기하네
남파南坡 김효찬金孝燦107)
曹溪自古最稱靈 조계는 예로부터 가장 신령하다 하여
韵釋從生有佖惺 글 짓는 승려가 생겨나 깨었도다
化流鰈域三千里 교화가 한반도 삼천리에 흐르고
緣熟龍宮八萬經 인연이 용궁의 팔만대장경에 깊도다
百年夢裡雙鬂白 백 년은 꿈처럼 지나 귀밑머리 하얀데
四節春間一面靑 사계절이 봄이라 얼굴은 청춘이라네
謹將壽句遙呈禮 삼가 생신 축하 시를 멀리서 드리나니
可賀鶴來華表亭 축하하는 학이 화표108) 정자로 오리라
백취운白翠雲109)
宿刼親因繫鷲靈 숙겁의 친한 인연이 영취산에 매여
幾多醉夢一場惺 수많은 취한 꿈을 한바탕 깨고 나서
寸心不漏塵沙佛 작은 마음에 수많은 부처 놓치지 않고
半句能揚海墨經 절반 구절로 바다 같은 경전 칭양했네
壽酒松間凌雪碧 생신 술잔이 솔 사이의 눈보다 맑고
賀箋梅下入琴靑 축하 글은 매화 아래 거문고로 푸르니
曹山祗樹深雲雨 조계산의 기수110)에 구름과 비가 깊고
法水溶溶滿石亭 법수가 흥건하여 바위 정자에 가득하네
송만암宋曼庵111)
壽國晬春放化靈 장수 나라의 생신 봄에 화령을 내니
回頭物物入惺惺 머리 돌리니 존재마다 깨달음에 드네
吐呑日月三千世 일월을 토하고 삼킨 삼천 대천 세계
呼答風雲八萬經 풍운을 부르고 답한 팔만대장경
大地香烟凝夢白 대지의 향기로운 연기에 엉긴 꿈은 희고
滿天淑氣拂衿靑 하늘 가득 맑은 기운 스치는 옷깃 푸르네
曹溪不老今猶古 조계는 영원하여 오늘도 옛스러우니
度此迷倫樂此亭 미혹한 이들 구제하고 이 정자에서 즐기네
이석암李石庵
曹溪淑氣毓英靈 조계의 맑은 기운이 영령을 기르고
天遣吾師早證惺 하늘이 우리 스승 보내 일찍 깨달으니
書法傳家今古帖 서법은 집안에 전하는 고금의 첩이요
宗風繼世萬千經 종풍은 대대로 이어진 만천 권 경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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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5_c_01L恨身萬里江湖外。獻壽無能滯旅亭。
012_0775_c_02L時在江戶旅舍小佐完燮謹拜稿。
012_0775_c_03L空門龍象老逾靈。出世初年已慧惺。
012_0775_c_04L牀前雲集三千衆。胷裡燈明八萬經。
012_0775_c_05L淋漓蕉葉毫端墨。㶑灎蓮花鉢底靑。
012_0775_c_06L願借露牛超火宅。共君閑話六鑑亭。
012_0775_c_07L南坡金孝燦。
012_0775_c_08L曹溪自古最稱靈。韵釋從生有佖惺。
012_0775_c_09L化流鰈域三千里。緣熟龍宮八萬經。
012_0775_c_10L百年夢裡雙鬂白。四節春間一面靑。
012_0775_c_11L謹將壽句遙呈禮。可賀鶴來華表亭。
012_0775_c_12L白翠雲。
012_0775_c_13L宿刼親因繫鷲靈。幾多醉夢一場惺。
012_0775_c_14L寸心不漏塵沙佛。半句能揚海墨經。
012_0775_c_15L壽酒松間凌雪碧。賀箋梅下入琴靑。
012_0775_c_16L曹山祗樹深雲雨。法水溶溶滿石亭。
012_0775_c_17L宋曼庵。
012_0775_c_18L壽國晬春放化靈。回頭物物入惺惺。
012_0775_c_19L吐呑日月三千世。呼答風雲八萬經。
012_0775_c_20L大地香烟凝夢白。滿天淑氣拂衿靑。
012_0775_c_21L曹溪不老今猶古。度此迷倫樂此亭。
012_0775_c_22L李石庵。
012_0775_c_23L曹溪淑氣毓英靈。天遣吾師早證惺。
012_0775_c_24L書法傳家今古帖。宗風繼世萬千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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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6_a_01L爲設壽筵山雪白 수연을 마련한 산에 남은 눈은 희고
親迎故友澗松靑 친구들 친히 맞는 개울가 소나무 푸르네
數句蕪詞遙寄頌 몇 마디 무잡한 말로 멀리서 송시 부치고
未能獻祝枕溪亭 개울 위 정자에서 축하를 드리지 못하네
안창위安暢尉
五鳳翩翩瑞氣靈 다섯 봉황이 훨훨 날아 영험한 기운에
洞天性月竟惺惺 동천112)의 성월은 끝내 깨어 있나니
靜思仙母安心術 서왕모의 안심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朗讀梵王長壽經 범천왕의 『장수경』113) 낭랑히 읽노라
閱盡空華鬂髮白 허공 꽃을 다 보아 머리칼은 하얗고
談來公案眼波靑 공안을 이야기하는 눈동자 푸르도다
萬年觴裡顏逾少 만 년의 술잔 속에 얼굴은 더욱 젊어
高卧南山松竹亭 높이 남산 송죽 정자에 누웠네
정황진鄭晄震114)
鍊來利刃最威靈 단련한 날카로운 칼날이 가장 영험하니
方接群昏莫不惺 혼미한 군생들 맞아 깨우치지 않음 없네
始越南城唯問法 처음에 남쪽 성 넘어 오직 법을 물었고
終遊敎海已叅經 끝내 가르침 바다에 노닐어 경전 익혔네
春廻古圃荊花赤 봄이 묵은 밭에 돌아오니 형화115) 붉고
日㬉仙階寶樹靑 해가 신선 계단에 비치니 보수116) 푸른데
壽祝霞盃兼賀篤 장수 비는 노을 잔에 축하가 돈독하고
飄然華髮獨亭亭 흩날리는 백발이 홀로 정정하구나
용암龍巖 최진수崔振秀
風儀卓爾氣虛靈 풍채 탁월하고 기운은 영험하여
萬彙坐中獨自惺 만인이 앉은 가운데 홀로 깨었구나
滿篋新詩幽興在 책상 가득한 시는 그윽한 흥취 있고
一樽淸酌幾巡經 한 동이 맑은 술은 몇 순배 돌았나
胸懷廓落乾坤白 가슴은 드넓어 천지가 하얗고
公案圓成栢樹靑 공안 원만히 성취하니 잣나무 푸르다117)
南極明星垂鳳峙 밝은 남극성이 봉두산에 드리울 제
靄瑞遠及六鑑亭 상서로운 아지랑이 멀리 육감정에 미치네
이설월李雪月118)
大地曹溪人巨靈 대지는 조계산이요 사람은 거령119)이라
終朝如愚反惺惺 아침 내내 바보 같으나 도리어 깨어서
落花芳草隨行道 지는 꽃과 풀들을 따라 도를 행하고
明月淸風已轉經 밝은 달 맑은 바람에 벌써 독경했네
不許獰龍蟠水碧 사나운 용이 푸른 물에 서림을 허용 않고
但看癯鶴翹松靑 마른 학이 푸른 솔에 날아 앉음만 보네
想應春到深山雪 봄이 와도 깊은 산의 눈을 생각하노니
壽酒顚狂六鑑亭 장수 기원하는 술로 육감정에서 취하리
백학명白鶴鳴
天色推福降斯靈 하늘빛이 복을 주려 이 영령을 내리시니
辛酉春風物再惺 신유년 봄바람에 만물이 거듭 깨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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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6_a_01L爲設壽筵山雪白。親迎故友澗松靑。
012_0776_a_02L數句蕪詞遙寄頌。未能獻祝枕溪亭。
012_0776_a_03L安暢尉。
012_0776_a_04L五鳳翩翩瑞氣靈。洞天性月竟惺惺。
012_0776_a_05L靜思仙母安心術。朗讀梵王長壽經。
012_0776_a_06L閱盡空華鬂髮白。談來公案眼波靑。
012_0776_a_07L萬年觴裡顏逾少。高卧南山松竹亭。
012_0776_a_08L鄭晄震。
012_0776_a_09L鍊來利刃最威靈。方接群昏莫不惺。
012_0776_a_10L始越南城唯問法。終遊敎海已叅經。
012_0776_a_11L春廻古圃荊花赤。日㬉仙階寶樹靑。
012_0776_a_12L壽祝霞盃兼賀篤。飄然華髮獨亭亭。
012_0776_a_13L龍巖崔振秀。
012_0776_a_14L風儀卓爾氣虛靈。萬彙坐中獨自惺。
012_0776_a_15L滿篋新詩幽興在。一樽淸酌幾巡經。
012_0776_a_16L胸懷廓落乾坤白。公案圓成栢樹靑。
012_0776_a_17L南極明星垂鳳峙。靄瑞遠及六鑑亭。
012_0776_a_18L李雪月。
012_0776_a_19L大地曹溪人巨靈。終朝如愚反惺惺。
012_0776_a_20L落花芳草隨行道。明月淸風已轉經。
012_0776_a_21L不許獰龍蟠水碧。但看癯鶴翹松靑。
012_0776_a_22L想應春到深山雪。壽酒顚狂六鑑亭。
012_0776_a_23L白鶴鳴。
012_0776_a_24L天色推福降斯靈。辛酉春風物再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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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6_b_01L雙蘭膝下無窮樂 두 난초는 슬하의 무궁한 즐거움이요
十尺棚頭大藏經 10척의 시렁 위에 놓인 대장경 보니
鶴髮爭新華首白 학발이 새롭길 다투어 머리는 하얗고
龜齡占得壽椿靑 거북 나이로 대춘120)처럼 장수하여
傳敎傳禪能事畢 교와 선을 전하는 일을 마치고
優遊靜坐哲翁亭 조용히 앉은 철학자의 정자로다
석호錫虎 임형순林炯珣121)
溪山千載最仙靈 천 년의 산과 물에 가장 뛰어난 영령이니
肯說師翁夢復惺 노스님 꿈을 다시 깨었다고 어찌 말하랴
月照蓮花心契理 달 비치는 연꽃에 마음은 이치와 합하고
風飜貝葉口傳經 바람 날리는 패엽에 입으로 경전 전하네
雲孫能述家行古 후손이 능히 오래된 가행을 계승하고
鶴壽宜增浩氣靑 수명122) 증가하며 호탕한 기운 청춘이라
六十春秋大事畢 육십의 춘추로 일대사를 마쳤으니
香醪佳頌鳳凰亭 향기로운 술과 노래로 봉황정에서 즐기네
겸호兼湖 도진호都鎭鎬123)
列星抱送嶽鍾靈 뭇 별들이 산악의 정령을 안아 보내니
玉雪精神萬事惺 옥설 같은 정신으로 만사를 깨우쳤네
弧矢何年曾設宴 호시124)로 어느 해 잔치를 베풀었나
晬盤今日又來經 생일상을 오늘에 또 와서 겪는구나
筆頭雲起雙蛟黑 붓끝에서 구름 일듯 쌍룡이 검고
塵末風生兩眼靑 티끌에 바람 불어 두 눈이 푸르네
亂酌無巡紅燭屹 어지러운 술잔에 붉은 촛불 아스라이
繡屛荷盖更亭亭 휘장과 연잎 일산이 더욱 정정하도다
강철월姜哲月
年高德邵性其靈 나이 많고 덕이 아름답고 성품 신령해
龜父文章使世惺 거북 아비의 문장이 세상을 깨우네
鬂爲嗜書已半白 머리칼은 책을 좋아해 이미 반백이나
眼因擇友猶常靑 눈은 벗을 가리느라 여전히 푸르네125)
鳳鳴歧處奏新樂 봉황 우는 기산126)에 새 음악 연주되고
鶴翼南時誦古經 학이 남으로 올 때 옛 경전 외우네
竟捧壽庵祈遐籌 수암을 받들어 장수를 기원하노니
伐毛洗髓捿仙亭 털 뽑고 골수 씻어127) 선정에 머무소서
춘당春堂 이규한李圭翰
泰安寺裡降仙靈 태안사 안에 강림한 선령이시여
挺松鶴骨更惺惺 솔과 학의 자태로 더욱 성성하도다
壯時名遍三千刹 젊은 시절 명성이 삼천리 사찰에 퍼졌고
老去心空八萬經 늙어갈수록 마음 비워 팔만대장경뿐이네
毛髮無爲從古白 모발은 일없이 예로부터 하얗고
眼瞳自若至今靑 눈동자는 태연히 지금까지 파랗도다
六十年來何所有 육십 년 동안 무엇을 소유하였나
二蘭春色一書亭 두 난초의 봄빛과 하나의 정자라네
만취晩翠 최평담崔平澹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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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6_b_01L雙蘭膝下無窮樂。十尺棚頭大藏經。
012_0776_b_02L鶴髮爭新華首白。龜齡占得壽椿靑。
012_0776_b_03L傳敎傳禪能事畢。優遊靜坐哲翁亭。
012_0776_b_04L錫虎林炯珣。
012_0776_b_05L溪山千載最仙靈。肯說師翁夢復惺。
012_0776_b_06L月照蓮花心契理。風飜貝葉口傳經。
012_0776_b_07L雲孫能述家行古。鶴壽宜增浩氣靑。
012_0776_b_08L六十春秋大事畢。香醪佳頌鳳凰亭。
012_0776_b_09L兼湖都鎭鎬。
012_0776_b_10L列星抱送嶽鍾靈。玉雪精神萬事惺。
012_0776_b_11L弧矢何年曾設宴。晬盤今日又來經。
012_0776_b_12L筆頭雲起雙蛟黑。塵末風生兩眼靑。
012_0776_b_13L亂酌無巡紅燭屹。繡屛荷盖更亭亭。
012_0776_b_14L姜哲月。
012_0776_b_15L年高德邵性其靈。龜父文章使世惺。
012_0776_b_16L鬂爲嗜書已半白。眼因擇友猶常靑。
012_0776_b_17L鳳鳴歧 [152] 處奏新樂。鶴翼南時誦古經。
012_0776_b_18L竟捧壽庵祈遐籌。伐毛洗髓捿仙亭。
012_0776_b_19L春堂李圭翰。
012_0776_b_20L泰安寺裡降仙靈。挺松鶴骨更惺惺。
012_0776_b_21L壯時名遍三千刹。老去心空八萬經。
012_0776_b_22L毛髮無爲從古白。眼瞳自若至今靑。
012_0776_b_23L六十年來何所有。二蘭春色一書亭。
012_0776_b_24L晩翠崔平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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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6_c_01L仁壽誠難六一靈 인자함과 장수를 겸한 61세 영령이여
弧筵幻夢獨能惺 생일잔치의 환몽을 홀로 깨었도다
畫縑星色輝天極 비단의 별빛이 하늘 끝에 빛나고
舞彩風光轉孝經 색동옷 춤129)의 풍광이 『효경』 읽는 듯
方綻梅腮三逕白 막 피어난 매화 뺨이 세 길130)에 희고
始萌柳眼一簾靑 새로 싹튼 버들의 주렴 가득 파랗구나
衆芳盈室春猶返 뭇 꽃들이 방에 가득하니 봄이 돌아온 듯
坐久餘香襲客亭 오래 앉아 있노라니 향이 객정에 스미네
취암翠庵 오귀일吳歸一
先生此日岳降靈 선생의 이날에 산악이 신령 내려131)
初度重回大夢惺 첫돌이 거듭 돌아와 큰 꿈을 깨시니
遠壑雪風猶吼吼 먼 골짜기 풍설은 아직도 울어 대는데
北山霜栢也靑靑 북산의 서리 맞은 잣나무는 푸르디 푸르네
禪林襲跡常登座 선림의 스민 자취로 항상 자리에 오르나
敎海溺身不輟經 교해에 빠진 몸이라 경전을 쉬지 않았지
耆少厭遊眞喜會 노소간에 진정 즐거운 모임 실컷 노닐어
淸茶晩盛夕陽亭 맑은 차가 저물녘 정자에 가득하구나
석암石 김수경金袖鯨132)
一生光景到今靈 일생의 광경이 지금까지 영험하여
謾抽花筵老皓惺 화연을 펼치니 늙도록 깨었구나
偉矣播名山影白 위대하도다, 명성 퍼진 산 그림자 희고
猗哉托跡海紋靑 아름답도다, 자취 남긴 바다 물결 푸르네
性窮寥廓天中月 본성을 다하니 텅 빈 하늘의 달 같고
心活叅商物外經 마음 활발하니 삼상133)은 물외의 경이라
吾兩此幽緣百刼 우리 둘의 이 그윽함은 백겁의 인연이요
壽餘更望鶴松亭 장수하고서 다시 학송정을 바라보네
국천掬泉 조하담曺荷淡
花開鐵樹草堂靈 꽃이 철수134)에 피어난 초당 영험하니
南極老星夢覺惺 남극노성의 꿈에서 깨어났도다
瑶桃進祝三千甲 보배 복숭아 드리며 3천 년 장수 기원하니
八百榠欞歲復經 8백 명령135) 나무 나이를 거듭 누리시길
了知水月蘇仙學 물과 달을 안 건 소 신선의 배움이요136)
歸去田園晋紀靑 전원으로 돌아감은 진 역사에 푸르네137)
斑衣牙琴奉獻壽 색동옷과 거문고138)로 장수를 축원하노니
歌罷酒醒送客亭 노래 마치고 술 깨어 객정에서 송별하네
우송友松 황선명黃善明
曹溪靈嶽始降靈 영험한 조계산에 처음 영령이 강림하니
心月惺惺事又惺 달 같은 마음 성성하여 만사도 성성하네
默坐深庵猿獻蜜 묵묵히 앉은 암자에 원숭이가 꿀 드리고
久誦淨榻虎聽經 오래도록 읊은 탑에 호랑이도 경을 듣네
鶴叟道骨零星白 학 같은 노인의 도골은 별처럼 희고
鳳頂神眸帶紺靑 봉황 같은 신령한 눈동자는 감청색이네
辛酉春風周六一 신유년 봄바람에 맞은 61세
更高慧命壽山亭 지혜가 더욱 높은 수산정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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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6_c_01L仁壽誠難六一靈。弧筵幻夢獨能惺。
012_0776_c_02L畫縑星色輝天極。舞彩風光轉孝經。
012_0776_c_03L方綻梅腮三逕白。始萌 [153] 柳眼一簾靑。
012_0776_c_04L衆芳盈室春猶返。坐久餘香襲客亭。
012_0776_c_05L翠庵吳歸一。
012_0776_c_06L先生此日岳降靈。初度重回大夢惺。
012_0776_c_07L遠壑雪風猶吼吼。北山霜栢也靑靑。
012_0776_c_08L禪林襲跡常登座。敎海溺身不輟經。
012_0776_c_09L耆少厭遊眞喜會。淸茶晩盛夕陽亭。
012_0776_c_10L石𢈪金袖鯨。
012_0776_c_11L一生光景到今靈。謾抽花筵老皓惺。
012_0776_c_12L偉矣播名山影白。猗哉托跡海紋靑。
012_0776_c_13L性窮寥廓天中月。心活叅商物外經。
012_0776_c_14L吾兩此幽緣百刼。壽餘更望鶴松亭。
012_0776_c_15L掬泉曺荷淡。
012_0776_c_16L花開鐵樹草堂靈。南極老星夢覺惺。
012_0776_c_17L瑶桃進祝三千甲。八百榠欞歲復經。
012_0776_c_18L了知水月蘇仙學。歸去田園晋紀靑。
012_0776_c_19L斑衣牙琴奉獻壽。歌罷酒醒送客亭。
012_0776_c_20L友松黃善明。
012_0776_c_21L曹溪靈嶽始降靈。心月惺惺事又惺。
012_0776_c_22L默坐深庵猿獻蜜。久誦淨榻虎聽經。
012_0776_c_23L鶴叟道骨零星白。鳳頂神眸帶紺靑。
012_0776_c_24L辛酉春風周六一。更高慧命壽山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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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7_a_01L추담秋潭 송기영宋基榮
誰知世務箇中靈 누가 알랴, 세상일 속의 영령을
師亦通明理事惺 스님 또한 통찰하여 이치와 일에 깨었네
蓬矢四方違素約 사방에 봉시139) 날림은 평소 약속 어긋나고
蓼莪三復報書經 육아140) 시를 세 번 읊어 서경에 보답하네
秋到六旬毛鬂白 가을에 이른 육순에 모발이 하얗게 되고
春回萬樹葉枝靑 봄이 돌아온 온갖 나무 나뭇잎들 푸르다
遙想宴筵來會客 멀리 잔치 자리에 오는 손님들 생각하니
或吟或酌更登亭 시 읊거나 술 마시며 다시 정자 오르겠지
이담해李湛海141)
鐵花多發感春靈 철수화 많이 피어142) 봄 영령에 감동하니
未鬪風幡意自惺 바람인가 깃발인가143) 싸우지 않고 깨치네
眞方細透長生術 참다운 방법으로 장생술에 세밀히 통하고
閒夢圓叅大藏經 한가로운 꿈에 대장경을 원만히 살폈네
千江水月眉含白 온 강물에 비친 달처럼 눈썹은 백색이요
一塢煙霞衿帶靑 한 마을의 연기와 노을에 옷깃이 푸르구나
捿鶴樓頭吹笛客 학이 깃든 누각에서 손님이 피리 부니
南飛曲罷立亭亭 남쪽으로 날다가 곡이 끝나자 우뚝 서네
회정悔亭 윤준尹準
翛然龜鶴老彌靈 초연히 거북과 학144)처럼 늙을수록 신령해
四大都空五內惺 사대육신 모두 공하고 오장이 깨어
慧月隨人常遍照 지혜 달은 사람 따라 항상 두루 비추고
名山無處不曾經 이름난 산 어디든 가 보지 않은 곳 없어
秋深舊社蓮花白 가을 깊은 옛 절에 연꽃이 희고
夜靜玄譚梖葉靑 밤 고요히 현묘한 대화에 패엽 푸르네
多少江南蘭菊伴 다소간 강남에서 난초와 국화가 짝하니
弧辰遙壽喚仙亭 환선정145) 생신 잔치 멀리서 축하드리네
우재愚齋 손면일孫冕一
認難人皆物中靈 사람들 모두 신령하다 하기는 어려우나
錦老六旬寂裡惺 금명 노스님은 육순에 성성적적하여
頭戴不移濟世佛 머리에는 세상 구하는 부처를 이고
胸懷自有洗心經 가슴에는 마음 씻는 경전 품었도다
晩秋鳳入桐山碧 늦가을에 봉황이 드니 동리산 푸르고
千歲龜遊蓮葉靑 천 년 거북이 노니 연잎이 파랗도다
憐君從此還多事 그대가 이로부터 일 많아짐 애달프니
總管松風水月亭 솔바람 수월정을 모두 관리해야 하리
소송小松 임영주林永周
高卧紺園養性靈 사찰에 높이 누워 성령을 기르니
空空一理妙能惺 공하고 공한 이치를 오묘하게 깨쳤네
容顏似玉塵無浼 얼굴은 옥처럼 티끌이 묻지 않고
鬂髮如銀歲幾經 머리칼은 은 같으니 몇 해를 지냈나
路遶名山春雪白 길은 명산을 둘러 봄눈이 희고
日臨初度瑞霞靑 해는 생신에 임해 상서로운 놀 푸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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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7_a_01L秋潭宋基榮。
012_0777_a_02L誰知世務箇中靈。師亦通明理事惺。
012_0777_a_03L蓬矢四方違素約。蓼莪三復報書經。
012_0777_a_04L秋到六旬毛鬂白。春回萬樹葉枝靑。
012_0777_a_05L遙想宴筵來會客。或吟或酌更登亭。
012_0777_a_06L李湛海。
012_0777_a_07L鐵花多發感春靈。未鬪風幡意自惺。
012_0777_a_08L眞方細透長生術。閒夢圓叅大藏經。
012_0777_a_09L千江水月眉含白。一塢煙霞衿帶靑。
012_0777_a_10L捿鶴樓頭吹笛客。南飛曲罷立亭亭。
012_0777_a_11L悔亭尹準。
012_0777_a_12L翛然龜鶴老彌靈。四大都空五內惺。
012_0777_a_13L慧月隨人常遍照。名山無處不曾經。
012_0777_a_14L秋深舊社蓮花白。夜靜玄譚梖葉靑。
012_0777_a_15L多少江南蘭菊伴。弧辰遙壽喚仙亭。
012_0777_a_16L愚齋孫冕一。
012_0777_a_17L認難人皆物中靈。錦老六旬寂裡惺。
012_0777_a_18L頭戴不移濟世佛。胸懷自有洗心經。
012_0777_a_19L晩秋鳳入桐山碧。千歲龜遊蓮葉靑。
012_0777_a_20L憐君從此還多事。總管松風水月亭。
012_0777_a_21L小松林永周。
012_0777_a_22L高卧紺園養性靈。空空一理妙能惺。
012_0777_a_23L容顏似玉塵無浼。鬂髮如銀歲幾經。
012_0777_a_24L路遶名山春雪白。日臨初度瑞霞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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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7_b_01L曹溪贈別飜疑夢 조계산에서 이별한 지가 꿈속인 듯
茶罷相思獨倚亭 차로 그리움 달래며 홀로 정자에 기대네
월파月坡 장순환張舜煥
名山幾處服芝靈 명산 몇 곳에서 영지를 복용했나
六十年高萬化惺 육십 년 동안 온갖 변화를 깨우쳤네
祈壽永希千歲佛 기도하여 천 년의 부처 길이 바라고
燒香朗讀八陽經 향 사르며 『팔양경』146) 낭랑히 읽네
庵前泉湧心俱白 암자 앞 솟는 샘처럼 마음도 희고
塵外人來眼更靑 티끌 바깥의 사람 오니 눈길 푸르다147)
思與智仙携酒去 지선148)과 술 가지고 갈 생각 해 보나
忌歸日上醉翁亭 돌아오는 날에 취옹정 오르길 꺼리네149)
백천栢泉 장훈민張熏玟
澹泊冲虛老更靈 담백하고 허허롭게 늙을수록 신령하니
佛燈徹夜道惺惺 불등으로 밤새도록 도력이 성성하구나
楓林理屐雲初捲 단풍숲에서 나막신 고쳐 매니 구름 개고
蕭寺尋僧雨忽經 사찰에서 승려 찾으니 비 문득 지나네
枳子花傍寒圃綠 탱자꽃 옆의 찬 밭은 푸르스름하고
蒲葵香滿壽觴靑 부들 향 가득히 생신 축하 술잔이 푸르네
何方渾脫緣塵去 어디에서 인연 티끌을 온통 벗을까
茶果行臨近水亭 다과를 가지고 물 가까운 정자로 가네
국포菊圃 정만조鄭萬朝150)
物外超然得氣靈 세상 밖에 초연히 영험한 기운 얻어
曹溪明月獨惺惺 조계산 밝은 달이 홀로 깨어 있구나
短笻遊遍三千域 짧은 지팡이로 삼천리 전역을 다니고
皓首能窮八萬經 흰머리로 팔만대장경 다 공부했지
流水觀心虛映白 흐르는 물에 마음 보니 비어 하얗고
高山齊壽仰彌靑 산처럼 장수하여 우러를수록 푸르시길
天涯佐燮歸期晩 천애 멀리서 수좌 완섭은 기약 늦어
夢斷扶桑覊旅亭 동쪽 나그네 정자에서 꿈이 끊겼구나
주완섭 군을 천은산방151)에서 만났었는데, 마음가짐과 조예가 평범한 승려가 아님을 알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더욱 이 스님과 이 상좌를 공경하게 되므로 마지막 구절에 언급하였다.(朱君完燮。嘗邂逅於泉隱山房。持心造詣。知非凡侶。今焉遡流。尤欽是師是佐。故末句玆及之。)
교라喬羅 양태기梁泰基
桐山秀氣降仙靈 동리산 수려한 기운에 선령이 내려
中有茶翁獨自惺 그 속에 다송 노인 홀로 깨어 있네
遯世身遊十方佛 세상 피해 시방 부처 찾아 유람하고
叅禪心藏數凾經 참선하는 마음에 수십 권 경전 담았네
鳳頭萬業花蘭茁 봉황 머리 만 가지 일에 난초 싹트고
鶴髮餘齡松竹靑 학 머리칼의 나이에 송죽이 푸르도다
纔過六旬春又復 육순을 지나자마자 봄이 또 돌아오니
願從日日淩波亭 원컨대 날마다 능파정에서 종유하리라
미초嵋樵 조주현趙周鉉
桐山木石發精靈 동리산 나무와 바위가 정령을 펼쳐 내
中有高僧意更惺 그 속에 고승 있어 뜻이 더욱 깨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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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7_b_01L曹溪贈別飜疑夢。茶罷相思獨倚亭。
012_0777_b_02L月坡張舜煥。
012_0777_b_03L名山幾處服芝靈。六十年高萬化惺。
012_0777_b_04L祈壽永希千歲佛。燒香朗讀八陽經。
012_0777_b_05L庵前泉湧心俱白。塵外人來眼更靑。
012_0777_b_06L思與智仙携酒去。忌歸日上醉翁亭。
012_0777_b_07L栢泉張熏玟。
012_0777_b_08L澹泊冲虛老更靈。佛燈徹夜道惺惺。
012_0777_b_09L楓林理屐雲初捲。蕭寺尋僧雨忽經。
012_0777_b_10L枳子花傍寒圃綠。蒲葵香滿壽觴靑。
012_0777_b_11L何方渾脫緣塵去。茶果行臨近水亭。
012_0777_b_12L菊圃鄭萬朝。
012_0777_b_13L物外超然得氣靈。曹溪明月獨惺惺。
012_0777_b_14L短笻遊遍三千域。皓首能窮八萬經。
012_0777_b_15L流水觀心虛映白。高山齊壽仰彌靑。
012_0777_b_16L天涯佐燮歸期晩。夢斷扶桑覊旅亭。
012_0777_b_17L朱君完燮。嘗邂逅於泉隱山房。持心造詣。知非。
凡侶。今焉遡流。尤欽是師是佐。故末句玆及之。
012_0777_b_18L喬羅梁泰基。
012_0777_b_19L桐山秀氣降仙靈。中有茶翁獨自惺。
012_0777_b_20L遯世身遊十方佛。叅禪心藏數凾經。
012_0777_b_21L鳳頭萬業花蘭茁。鶴髮餘齡松竹靑。
012_0777_b_22L纔過六旬春又復。願從日日淩波亭。
012_0777_b_23L嵋樵趙周鉉。
012_0777_b_24L桐山木石發精靈。中有高僧意更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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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7_c_01L忘世生涯千結衲 세상 잊은 생애는 천 번 기운 가사
終身誦念一凾經 종신토록 외운 건 한 질의 경전이지
老人星現塵障絶 노인성이 드러나 티끌 장애 끊어지고
曇鉢花明佛髮靑 우담바라 피어 부처의 머릿결 푸르네
六十年來桑海變 육십 년 동안 상전벽해 변했는데
愛君仙標獨亭亭 그대의 신선 풍채 홀로 정정함을 아끼네
이종현李鍾現
天挺人豪鍾地靈 하늘이 낸 인걸이요 땅 기운의 정령이라
托身淨土骨還惺 몸을 정토에 의탁하니 골격은 깨어 있고
三千大界曾修道 삼천 대천 세계에서 도를 닦았고
六十龕燈長抱經 육십 년 동안 감등에 경전 품었네
休恠鏡中眉鬂白 거울 속 눈썹 희다고 괴히 여기지 마라
始看樽側眼眸靑 술동이 옆에 눈동자 푸름을 비로소 보네
仍稱壽斝爭酬酌 이어서 생신 술잔이라 다투어 따르노니
詩滿箱筐客滿亭 시는 상자에, 손님은 정자에 가득하네
춘곡春谷 이회혁李會赫
鳳舞桐山昔降靈 봉황 춤추는 동리산에 정령 내려서
前生水月夢初惺 전생의 물과 달에 꿈을 비로소 깨니
戱圖兼寫蓮花帖 장난삼아 연꽃첩을 겸하여 필사하고
善禱重繙貝葉經 잘 기도하며 거듭 패엽경 펼쳐 보네
顧我衰頽羞鬂白 나의 노쇠함을 보니 백발이 부끄럽고
愛君歡喜滿眸靑 그대 눈동자 가득한 푸름을 기뻐하네
茂如翠栢推人悅 무성함이 잣나무 같아 기쁘게 하니152)
尋路今朝上錦亭 길 찾은 오늘 아침 비단 정자에 오르네
금석錦石 안용섭安容燮153)
久喫靈區藥草靈 오래도록 먹은 영험한 곳의 약초 신령해
列仙喚伴大師惺 신선들 불러 함께하는 대사 성성하구나
寒梅雪逕淸修道 눈길의 찬 매화처럼 맑게 도를 닦고
明月松堂靜說經 송당의 명월처럼 고요히 경전을 읽었네
法水源深僧足白 법의 샘은 근원이 깊어 스님의 발 희고
壽山層立佛頭靑 장수산 층층이 서니 불상 머리 푸르네
滿座賓朋和氣溢 자리 가득한 벗들은 화기가 넘치고
瑞日玲瓏午影亭 상서로운 해 영롱해 정자에 그림자 드네
안인섭安仁燮
强康藉福佛爲靈 건강한 복 받으니 부처는 신령하고
慧眼無埃了自惺 지혜의 눈은 티끌 없어 절로 성성하네
初地煙霞躋壽域 초지154)의 연기와 놀이 장수 영역 오르고
半簾花雨洗心經 반쯤 걷은 주렴의 꽃비는 마음 씻는 경전
日星又返先天曜 해와 별이 또 돌아와 선천에 빛나고
眉鬢重生舊歲靑 눈썹과 귀밑머리 다시 나니 옛 청춘이라
欲畫上人塵表像 상인의 세상 벗어난 모습 그리고자 하니
鷄群野鶴立亭亭 여러 닭 속의 학처럼 꼿꼿하게 서 있구나
춘사春史 유광묵柳匡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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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7_c_01L忘世生涯千結衲。終身誦念一凾經。
012_0777_c_02L老人星現塵障絕。曇鉢花明佛髮靑。
012_0777_c_03L六十年來桑海變。愛君仙標獨亭亭。
012_0777_c_04L李鍾現。
012_0777_c_05L天挺人豪鍾地靈。托身淨土骨還惺。
012_0777_c_06L三千大界曾修道。六十龕燈長抱經。
012_0777_c_07L休恠鏡中眉鬂白。始看樽側眼眸靑。
012_0777_c_08L仍稱壽斝爭酬酌。詩滿箱筐客滿亭。
012_0777_c_09L春谷李會赫。
012_0777_c_10L鳳舞桐山昔降靈。前生水月夢初惺。
012_0777_c_11L戱圖兼寫蓮花帖。善禱重繙貝葉經。
012_0777_c_12L顧我衰頽羞鬂白。愛君歡喜滿眸靑。
012_0777_c_13L茂如翠栢推人悅。尋路今朝上錦亭。
012_0777_c_14L錦石安容燮。
012_0777_c_15L久喫靈區藥草靈。列仙喚伴大師惺。
012_0777_c_16L寒梅雪逕淸修道。明月松堂靜說經。
012_0777_c_17L法水源深僧足白。壽山層立佛頭靑。
012_0777_c_18L滿座賓朋和氣溢。瑞日玲瓏午影亭。
012_0777_c_19L安仁燮。
012_0777_c_20L强康藉福佛爲靈。慧眼無埃了自惺。
012_0777_c_21L初地煙霞躋壽域。半簾花雨洗心經。
012_0777_c_22L日星又返先天曜。眉鬢重生舊歲靑。
012_0777_c_23L欲畫上人塵表像。鷄群野鶴立亭亭。
012_0777_c_24L春史柳匡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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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8_a_01L早入招提養本靈 일찍 절에 들어가 본령을 기르면서
澹然惟願衆均惺 담백하게 바라는 건 중생들 깨어남이라
桐山歲晩移仙仗 동리산 늦은 나이에 석장을 옮겨서
海寺春深輯道經 바닷가 절 깊은 봄에 도경을 모았네
昏夜引燈分墑埴 어둔 밤에 등불 당겨 더듬어 가고
虛空描畫沒丹靑 허공에 그림 그리는데 단청이 없구나
祝君此世渾無礙 축원하노니 그대는 이생에 장애 없길
風滿高臺月滿亭 바람 가득한 높은 누대에 달 가득해라
경헌敬軒 김인초金仁初
天賦茶翁性質靈 하늘이 낸 다송 노인은 성품 영험해
昭昭佛訓覺蔥惺 밝은 부처 교훈을 깨달아 성성하도다
着袈戴衲鬚眉白 가사 입은 머리와 눈썹이 희고
學古知今道眼靑 온고지신의 도안이 푸르구나
逢談俗客多閒日 속객 만나 대화하는 한가한 날 많고
壽獻諸僧誦法經 장수 축원하는 승려들은 법경 외고
然然六十一年過 그러그러하게 육십일 년을 지나오니
高上泰安最好亭 높은 태안사에서 가장 좋은 정자라
풍계豊溪 김정섭金貞燮
雪月桐林夜氣靈 동리산의 눈과 달에 밤공기 영험한데
茶翁鬂髮若新惺 다송 노인의 머리칼은 새로 성성하구나
年朋對話星霜白 나이 든 벗들과 대화하니 성상155) 희고
春屬分居湖海靑 봄이 속한 지역에 호수와 바다 푸르네
現地梅花思見道 현재 매화를 보며 견도156)를 생각하고
多時蕉葉笑飜經 여러 날 파초 잎에 경전 번역을 웃노라
雲遊倍感蓬弧日 구름처럼 다니느라 생일 감동이 더하니
南望迢迢六鑑亭 남쪽으로 멀리 아득히 바라보는 육감정
동산東山 이종안李鍾安
世間孰謂佛無靈 세상 누가 말했나 부처가 영험 없다고
早使茶翁得慧惺 일찍 다송 노인에게 지혜를 얻게 하였지
觀道怳生虛室白 도를 보니 빈 방에 흰 빛이 생겨나고157)
題名恰取長官靑 이름 지으니 장관이 푸름을 얻은 듯
春深香社同修契 봄 깊은 향사158)에서 같이 계모임 하고
夜久承庵獨抱經 밤새도록 암자에서 홀로 경전 읽었네
老去逾多山水樂 늙어갈수록 산수의 즐거움 많아지니
勸君須作智仙亭 권하노니 그대는 지선정159) 지어야 하리
단산丹山 조해규趙海奎
早識名山自秘靈 일찍 안 명산은 절로 영험함 감추지만
上人緣業獨心惺 상인은 인연 따라 홀로 마음 깨었네
裘笛入門春酒㬉 갖옷과 피리로 들어가니 봄 술 따뜻하고
圖書授子夜燈靑 도서를 주니 밤 등불이 파랗구나
飮啄從容看鶴瘦 조용히 마시는 학처럼 마른 노인 보니
吸噓安穩做熊經 평온히 호흡하며 웅경160)을 하네
聞說昇平詩社好 순천의 시 모임이 좋다고 들었더니
白蓮幻作菊蘭亭 백련 핀 듯한 국화 난초의 정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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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8_a_01L早入招提養本靈。澹然惟願衆均惺。
012_0778_a_02L桐山歲晩移仙仗。海寺春深輯道經。
012_0778_a_03L昏夜引燈分墑埴。虛空描畫沒丹靑。
012_0778_a_04L祝君此世渾無礙。風滿高臺月滿亭。
012_0778_a_05L敬軒金仁初。
012_0778_a_06L天賦茶翁性質靈。昭昭佛訓覺蔥惺。
012_0778_a_07L着袈戴衲鬚眉白。學古知今道眼靑。
012_0778_a_08L逢談俗客多閒日。壽獻諸僧誦法經。
012_0778_a_09L然然六十一年過。高上泰安最好亭。
012_0778_a_10L豊溪金貞燮。
012_0778_a_11L雪月桐林夜氣靈。茶翁鬂髮若新惺。
012_0778_a_12L年朋對話星霜白。春屬分居湖海靑。
012_0778_a_13L現地梅花思見道。多時蕉葉笑飜經。
012_0778_a_14L雲遊倍感蓬弧日。南望迢迢六鑑亭。
012_0778_a_15L東山李鍾安。
012_0778_a_16L世間孰謂佛無靈。早使茶翁得慧惺。
012_0778_a_17L觀道怳生虛室白。題名恰取長官靑。
012_0778_a_18L春深香社同修契。夜久承庵獨抱經。
012_0778_a_19L老去逾多山水樂。勸君須作智仙亭。
012_0778_a_20L丹山趙海奎。
012_0778_a_21L早識名山自秘靈。上人緣業獨心惺。
012_0778_a_22L裘笛入門春酒㬉。圖書授子夜燈靑。
012_0778_a_23L飮啄從容看鶴瘦。吸噓安穩做熊經。
012_0778_a_24L聞說昇平詩社好。白蓮幻作菊蘭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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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8_b_01L우재愚齋 조종신趙鍾信
早托禪房養性靈 일찍 선방에 의탁하여 성령을 길렀으니
六旬無恙自惺惺 육순에 병 없이 절로 성성하도다
得來何處文章手 어디서 얻은 건가, 문장 수법은
精妙應從釋氏經 정묘함은 응당 불경에서 온 것이지
老栢無知千歲碧 늙은 잣나무는 모르지만 천 년 푸르고
種松可待十圍靑 소나무 심어 열 아름 푸르길 기다리네
散在弟兄今只尺 흩어진 형제들이 지금 지척에 있어
鯨音節節月亭亭 종소리161) 절절하고 달은 뚜렷하도다
금원錦園 박제훈朴齊薫
回甲山中講佛靈 회갑 맞아 산중에서 불경 강독하는 영령
空空世事夢還惺 공허한 세상일에 꿈을 깨었도다
早年勝地三千界 이른 해부터 명승지 삼천 대천 세계에서
白首眞工八萬經 백수 노인 되도록 참된 공부 팔만대장경
倍憶萱堂勞日至 더욱 훤당162) 그리는 생일163) 오니
優看蘭室寶林靑 넉넉히 난실 보니 보림164)이 푸르도다
酬君我亦星星髮 그대에게 술 따르는 나도 머리 희끗하고
纔別沙門出野亭 사문을 이별하고서 들판의 정자 나서네
오산五山 강영림姜永琳
春風回甲有明靈 봄바람에 회갑 맞은 밝은 영령이여
萬物榮光世盡惺 만물의 영광이 대대로 모두 깨었도다
仙鶴來遊成道友 선학이 놀러 오니 도를 이룬 친구요
天花感得說眞經 하늘 꽃이 감동하게 경전을 말하네
壽山高遠長年碧 장수산이 아스라이 오래도록 푸르고
智海廣深眼定靑 지혜 바다 넓고 깊어 눈길 정녕 파랗네
永斷塵緣無下俗 티끌 인연을 길이 끊어 하속이 없고
一生晦跡白雲亭 일생 동안 자취를 백운정에 감췄구나
김화성金華性
行正心眞又智靈 행위 바르고 마음 참되며 또 지혜로워
此身空寂獨先惺 이 몸이 텅 비어 홀로 먼저 깨었도다
梅窓月滿登禪榻 매화 창에 달 가득히 참선 자리에 오르고
雲洞鍾鳴轉法經 구름 골에 종소리 울려 경전을 전독하네
松裡鶴飛千載白 솔 사이로 학 날아 천 년 동안 희고
巖頭松立四時靑 바위 끝에 소나무 서서 사계절 푸르네
春來詩咏花園閣 봄이 와 시를 읊조리는 화원 누각
秋日楓林菊玩亭 가을 단풍 숲에서 국화를 감상하는 정자
김주흔金湊欣
正當春日降神靈 봄날을 당하여 신령이 강림하시니
天送智人物有惺 하늘이 지혜 사람을 보내 만물 깨우네
靜室蒲團禪一杖 고요한 방의 방석과 석장 하나
香淸案上兩凾經 향 맑은 책상 위에 경전 둘
明心此月窓前白 마음 밝히는 이 달은 창 앞에 희고
節氣彼松雪裡靑 절개 있는 저 솔은 눈 속에 푸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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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8_b_01L愚齋趙鍾信。
012_0778_b_02L早托禪房養性靈。六旬無恙自惺惺。
012_0778_b_03L得來何處文章手。精妙應從釋氏經。
012_0778_b_04L老栢無知千歲碧。種松可待十圍靑。
012_0778_b_05L散在弟兄今只尺。鯨音節節月亭亭。
012_0778_b_06L錦園朴齊薫。
012_0778_b_07L回甲山中講佛靈。空空世事夢還惺。
012_0778_b_08L早年勝地三千界。白首眞工八萬經。
012_0778_b_09L倍憶萱堂勞日至。優看蘭室寶林靑。
012_0778_b_10L酬君我亦星星髮。纔別沙門出野亭。
012_0778_b_11L五山姜永琳。
012_0778_b_12L春風回甲有明靈。萬物榮光世盡惺。
012_0778_b_13L仙鶴來遊成道友。天花感得說眞經。
012_0778_b_14L壽山高遠長年碧。智海廣深眼定靑。
012_0778_b_15L永斷塵緣無下俗。一生晦跡白雲亭。
012_0778_b_16L金華性。
012_0778_b_17L行正心眞又智靈。此身空寂獨先惺。
012_0778_b_18L梅窓月滿登禪榻。雲洞鍾鳴轉法經。
012_0778_b_19L松裡鶴飛千載白。巖頭松立四時靑。
012_0778_b_20L春來詩咏花園閣。秋日楓林菊玩亭。
012_0778_b_21L金湊欣。
012_0778_b_22L正當春日降神靈。天送智人物有惺。
012_0778_b_23L靜室蒲團禪一杖。香淸案上兩凾經。
012_0778_b_24L明心此月窓前白。節氣彼松雪裡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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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8_c_01L處世無爲塵跡事 세상에 처하여 티끌 일은 하지 않고
唯遊與鶴百花亭 오직 학과 함께 백화정에서 노니네
김병연金丙淵
茶松遐壽必由靈 다송165)의 장수함은 신령에서 비롯하니
性器雍容慧且惺 성품은 화목하고 지혜롭게 깨었도다
眞緣穩做三生夢 참된 인연 지으니 삼생이 꿈이요
法語淸藏五戒經 법어를 맑게 담으니 오계의 경전이라
佛前衲着雲光白 불전에 납의 입으니 구름빛으로 희고
庭際烟深篆影靑 뜰에 향 연기 깊어 그 모양 푸르다
花甲回春如許好 화갑 맞은 봄이 얼마나 좋은가
淨軒雙樹立亭亭 청정한 집에 두 나무 정정하게 서 있네
죽포竹圃 신申
老星南極降精靈 남극노인성이 정령을 내렸더니
鍾此胡僧壽且惺 이 승려에게 모여 장수하고 깨었구나
一寺宿齋爭供味 온 사찰이 재계하여 다투어 공양하고
票賓致賀各封經 빈객들이 하례하고 각기 경전 대하네
晬回六甲桑弧久 생일 육갑이라 상호桑弧166) 오래되고
花見重春鐵樹靑 꽃이 핀 봄이라 철수167) 푸른데
雅分雖無瞻仰遠 평소 교분 없어 멀리서 우러러보니
醉仙完在碧桃亭 취한 신선이 완연히 벽도정에 있도다
남강南岡 정鄭
天降星精會地靈 하늘이 내린 별의 정령이 땅에 모여
胡僧壽福賴心惺 승려의 장수함은 마음이 깨어 있기 때문
喜看鐵樹開花日 철수에 꽃 피어난 날 기쁘게 바라보나
哀感蓼蕭懷母經 모친 생각나게 하는 육소168) 슬프구나
滿地雲霞商峀白 대지 가득한 구름 노을에 상산169) 희고
供盤藥果海桃靑 접시에 담은 약과와 바다 복숭아 파랗네
衆賓致賀來如市 여러 손님들 축하하러 오니 시장인 듯
係馬杉松處處亭 말 매어 놓은 소나무가 곳곳에 우뚝하네
봉헌鳳軒 정鄭
上人遐壽卽仙靈 상인의 긴 수명은 바로 신선의 영험함
爲問梵音惺未惺 묻노니 범음을 깨쳤는가, 그렇지 않은가
身外渾忘烟火累 몸 밖의 연기와 불의 누추함 온통 잊어
胷中倒誦楞嚴經 가슴속의 능엄경을 거꾸로 외우는도다
荷擎沆瀣泉通白 연잎의 밤이슬처럼 샘이 희게 솟고
茶沸旗槍雪映靑 뾰족한170) 차 끓어 눈에 푸르게 비치네
瘦似古梅淸似鶴 파리하게 매화 같고 맑음은 학 같아
老年風骨益亭亭 노년에 풍채 있는 모습 더욱 정정하네
조재操齋 양기묵梁箕默
幼來塵世老仙靈 어려서 진세 떠나 온 늙은 선령이여
六十年間刼夢惺 육십 년 동안 겁몽을 깨었구나
泉鳴雲綴朝蒔藥 샘 소리 구름 맺히는 아침에 약초 심고
鍾落燈深夜誦經 종소리 등불 깊은 밤에 경전 외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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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8_c_01L處世無爲塵跡事。唯遊與鶴百花亭。
012_0778_c_02L金丙淵。
012_0778_c_03L茶松遐壽必由靈。性器雍容慧且惺。
012_0778_c_04L眞緣穩做三生夢。法語淸藏五戒經。
012_0778_c_05L佛前衲着雲光白。庭際烟深篆影靑。
012_0778_c_06L花甲回春如許好。淨軒雙樹立亭亭。
012_0778_c_07L竹圃。申。
012_0778_c_08L老星南極降精靈。鍾此胡僧壽且惺。
012_0778_c_09L一寺宿齋爭供味。票 [154] 賓致賀各封 [155] 經。
012_0778_c_10L晬回六甲桑弧久。花見重春鐵樹靑。
012_0778_c_11L雅分雖無瞻仰遠。醉仙完在碧桃亭。
012_0778_c_12L南岡鄭。
012_0778_c_13L天降星精會地靈。胡僧壽福賴心惺。
012_0778_c_14L喜看鐵樹開花日。哀感蓼蕭懷母經。
012_0778_c_15L滿地雲霞商峀白。供盤藥果海桃靑。
012_0778_c_16L衆賓致賀來如市。係馬杉松處處亭。
012_0778_c_17L鳳軒鄭。
012_0778_c_18L上人遐壽卽仙靈。爲問梵音惺未惺。
012_0778_c_19L身外渾忘烟火累。胷中倒誦楞嚴經。
012_0778_c_20L荷擎沆瀣泉通白。茶沸旗槍雪映靑。
012_0778_c_21L瘦似古梅淸似鶴。老年風骨益亭亭。
012_0778_c_22L操齋梁箕默。
012_0778_c_23L幼來塵世老仙靈。六十年間刼夢惺。
012_0778_c_24L泉鳴雲綴朝蒔藥。鍾落燈深夜誦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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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9_a_01L法界幢竿心已赤 법계의 당간에 마음이 벌써 붉고
卷中貝葉眼常靑 책 속의 패엽에 눈은 항상 푸르네
闍梨無言相慶賀 스님들 말없이 서로 경사스레 축하하니
龜蓮十丈立亭亭 열 길 구련171)이 우뚝하게 서 있구나
운사雲史 조철규趙哲奎
心惟是佛佛惟靈 마음이 부처이고 부처는 영험하니
早向溪山寺上惺 일찍 산에 가서 사찰에서 깨쳤도다
求方偃仰三千甲 방법 구해 위아래 살핀 삼천갑자
叅法融通八萬經 법을 참구해 통달한 팔만 경전
鶴飛捿閣同吾白 학이 날아 머무는 누각은 나처럼 희고
鳳晩尋巢降彼靑 봉황 늦게 찾는 자리는 저렇게 푸르네
遙羡諸天花雨裡 하늘에서 꽃비 내림 멀리서 부러워
薫衣幾拂短長亭 향기 옷 몇 번이나 떨쳤나 단장정172)에서
봉계鳳溪 이종익李鍾翊
積翠郡南鍾地靈 푸른 산 남쪽 마을에 땅의 정령 모여
此中溟老也惺惺 이 가운데 금명 노승이 깨어 있으니
慈悲心徹三千界 자비심으로 삼천 대천 세계를 꿰고
玄妙眼過八萬經 현묘한 안목으로 팔만대장경 보았네
物外點頭維石白 세상 밖 머리 끄덕이던 돌173)은 희고
世間知己是山靑 세상에서 자기 알아주는 산은 푸르니
羽仙今日非君耶 우화등선한 신선이 오늘 그대 아닌가
五色雲晴鳳瑞亭 오색빛의 구름이 맑은 봉서정이라네
배헌拜軒 조영선趙泳善174)
納納玄門大慧靈 거두고 거두는 현묘한 문에 지혜 정령
恒河沙裡了蔥惺 항하사 모래 속에 깨우쳤구나
曇花雨露重三骨 우담바라는 비와 이슬 속 삼짇날 돋고
貝葉魚山八萬經 어산175)의 패엽은 팔만대장경 되었네
溟海珠沈身有彩 깊은 바다의 구슬처럼 몸이 빛나고
星圖日㬉眼生靑 성도의 따스한 햇빛에 눈동자 푸르네
誰知今日分章意 뉘 알랴, 오늘 이별하는 글의 뜻이
只在淸秋話別亭 다만 가을 이별 말하는 정자에 있음을
동송東松 조趙
古寺有人地最靈 옛 사찰에 지상의 가장 신령한 이 있어
錦溟六一一心醒 금명은 61년을 한마음으로 깨었네
寒知桐葉秋成算 차가운 오동잎에 가을이 옴을 헤아리고
妙入蓮花日誦經 연화세계 들어가 날마다 경전 외는구나
鬂許中年公道白 귀밑머리는 중년이라 공정히 하얗고176)
盃如初度子襟靑 술잔은 처음처럼 옷깃에 파랗네
諸天復降無量佛 하늘에서 다시 무량불을 내리셨으니
石下孤菴水上亭 바위 아래 외론 암자 물 위의 정자라네
행산杏山 정인성鄭寅成
桐山迢遞近仙靈 동리산 아득히 신선에 가깝더니
中有高僧道慧惺 그 속에 고승 있어 지혜롭게 깨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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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9_a_01L法界幢竿心已赤。卷中貝葉眼常靑。
012_0779_a_02L闍梨無言相慶賀。龜蓮十丈立亭亭。
012_0779_a_03L雲史趙哲奎。
012_0779_a_04L心惟是佛佛惟靈。早向溪山寺上惺。
012_0779_a_05L求方偃仰三千甲。叅法融通八萬經。
012_0779_a_06L鶴飛捿閣同吾白。鳳晩尋巢降彼靑。
012_0779_a_07L遙羡諸天花雨裡。薫衣幾拂短長亭。
012_0779_a_08L鳳溪李鍾翊。
012_0779_a_09L積翠郡南鍾地靈。此中溟老也惺惺。
012_0779_a_10L慈悲心徹三千界。玄妙眼過八萬經。
012_0779_a_11L物外點頭維石白。世間知己是山靑。
012_0779_a_12L羽仙今日非君耶。五色雲晴鳳瑞亭。
012_0779_a_13L拜軒趙泳善。
012_0779_a_14L納納玄門大慧靈。恒河沙裡了蔥惺。
012_0779_a_15L曇花雨露重三骨。貝葉魚山八萬經。
012_0779_a_16L溟海珠沈身有彩。星圖日㬉眼生靑。
012_0779_a_17L誰知今日分章意。只在淸秋話別亭。
012_0779_a_18L東松趙。
012_0779_a_19L古寺有人地最靈。錦溟六一一心醒。
012_0779_a_20L寒知桐葉秋成算。妙入蓮花日誦經。
012_0779_a_21L鬂許中年公道白。盃如初度子襟靑。
012_0779_a_22L諸天復降無量佛。石下孤菴水上亭。
012_0779_a_23L杏山鄭寅成。
012_0779_a_24L桐山迢遞近仙靈。中有高僧道慧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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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9_b_01L澗畔遊麕晨掃逕 시냇가 노루들 새벽에 길 청소하고
樓前歸鶴夜聽經 누각 앞의 학이 밤새 경전 소리 듣네
一樽酒熟弧辰㬉 술동이의 술 익는 생일날 따스하고
數磬聲殘佛宇靑 경쇠들의 소리 잦아드는 사찰 푸르네
昔自儂家情地厚 예로부터 우리들의 정이 두터웠으니
相思幾度倚孤亭 몇 번이나 그리웠나 외론 정자에 기대
초와樵窩 장용민張鎔玟
六旬衣鉢保心靈 육순의 의발은 심령을 보호하고
道入玄門覺脫惺 도에 들어가는 현문에서 깨달았네
一生甘老三千界 일생 늙음이 달가운 삼천 대천 세계
百刼都灰八萬經 백겁에 모두 재가 되는 팔만대장경
頓遣雅懷桐月白 평소 회포 풀어 낸 동리산 달은 밝고
笑看浮影洛雲靑 웃노니, 뜬 그림자 서울 구름 파랗네
居山淸福能如許 산에 사는 맑은 복은 어떠한가
晩景猶餘水石亭 만년의 경치 수석정에 남음 있네
호송湖松 김권용金權容
芥納須彌佛有靈 겨자씨에 수미산을 넣는 부처 영험하고
錦溟開士自惺惺 금명 고승은 스스로 깨어 있다네
曹溪夜靜聞天籟 조계산 고요한 밤에 하늘 소리 듣고
貝葉春深講古經 패엽의 봄 깊어 옛 경전을 강독하네
弧矢門前槎月素 문 앞의 활과 화살은 달뗏목177)처럼 희고
曇花影裡晋山靑 우담바라 그림자 속에 진산이 푸르도다
西風倦客來吹笛 서풍에 게으른 손이 피리를 부는
鳳瑞樓如放鶴亭 봉서루는 방학정178)과 비슷하도다
임천壬川 장기혁張基赫
有星南極最爲靈 별 가운데 남극성이 가장 신령한데
降此溟翁世獨惺 금명 노옹에게 내려 세상에 홀로 깨었네
壽限遲遲遊佛界 수명은 느릿느릿 불계에서 노닐고
生涯淡淡讀仙經 생애는 담담하여 신선 경전을 읽었는데
公道不悲雙鬂白 공도는 자비 없어 귀밑머리 희고
棣園無恙數枝靑 형제들 탈 없어 여러 가지들 푸르네
獻祝觴前多弟子 축하하는 술잔 앞에 여러 제자들
競呼萬歲立亭亭 다투어 만세를 부르며 우뚝하게 섰네
학사鶴沙 김성찬金聖贊
六旬安過賴神靈 육순을 편히 지냄은 신령에 의지함이라
老去人情夢若惺 늙어갈수록 인정은 꿈을 깨는 듯하네
入山前日忘千刼 산에 들기 전에 천겁을 잊었고
護道當年守一經 도를 수호하던 당시 한 부 경전 지켰네
三生佛界中心素 삼생의 불계 가운데 마음이 희고
萬壑春光分內靑 만학의 봄빛은 분수에 따라 푸르네
從此康寧多究煉 이로부터 평안히 연단179)을 연구하리니
乾乾思默坐雲亭 건건180)이 생각하며 구름 정자에 앉았네
김두영金斗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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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9_b_01L澗畔遊麕晨掃逕。樓前歸鶴夜聽經。
012_0779_b_02L一樽酒熟弧辰㬉。數磬聲殘佛宇靑。
012_0779_b_03L昔自儂家情地厚。相思幾度倚孤亭。
012_0779_b_04L樵窩張鎔玟。
012_0779_b_05L六旬衣鉢保心靈。道入玄門覺脫惺。
012_0779_b_06L一生甘老三千界。百刼都灰八萬經。
012_0779_b_07L頓遣雅懷桐月白。笑看浮影洛雲靑。
012_0779_b_08L居山淸福能如許。晩景猶餘水石亭。
012_0779_b_09L湖松金權容。
012_0779_b_10L芥納須彌佛有靈。錦溟開士自惺惺。
012_0779_b_11L曹溪夜靜聞天籟。貝葉春深講古經。
012_0779_b_12L弧矢門前槎月素。曇花影裡晋山靑。
012_0779_b_13L西風倦客來吹笛。鳳瑞樓如放鶴亭。
012_0779_b_14L壬川張基赫。
012_0779_b_15L有星南極最爲靈。降此溟翁世獨惺。
012_0779_b_16L壽限遲遲遊佛界。生涯淡淡讀仙經。
012_0779_b_17L公道不悲雙鬂白。棣園無恙數枝靑。
012_0779_b_18L獻祝觴前多弟子。競呼萬歲立亭亭。
012_0779_b_19L鶴沙金聖贊。
012_0779_b_20L六旬安過賴神靈。老去人情夢若惺。
012_0779_b_21L入山前日忘千刼。護道當年守一經。
012_0779_b_22L三生佛界中心素。萬壑春光分內靑。
012_0779_b_23L從此康寧多究煉。乾乾思默坐雲亭。
012_0779_b_24L金斗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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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9_c_01L天降奇才最粹靈 하늘이 낸 재주라 가장 순수 신령하고
色空至理子惟惺 색즉시공의 이치를 그대가 깨쳤구려
祝融峰明寧古有 축융봉 밝은 달은 옛날에도 있었지만
曹溪山影更今靑 조계산의 빛깔은 오늘 다시 푸르구나
花開淸晨行月榭 꽃이 핀 맑은 새벽에 달 정자에 가서
白雲閑塔講仙經 구름이 한가로운 탑에서 신선 경전 읽네
遙憐爲說百年事 백 년의 일 말함을 멀리서 애달파하니
歸則必歸兜率亭 돌아오면 필시 도솔정으로 돌아오리
노암蘆巖 서영수徐英洙
尊師禀性本虛靈 대사의 품성은 본래 비어 신령하니
學道無疑道自惺 배움의 도에 장애 없어 절로 깨닫네
晩與交隣香茗足 늦게 이웃과 사귀어 향기로운 차 좋고
賢宜同譜竹山靑 어질어 족보가 같고 죽산181)이 푸르네
全忘世慮常思佛 세상 근심 온통 잊고 항상 염불하며
優得閒情暗誦經 한가함 넉넉히 얻어 경전을 외는구나
寂寞諸天花雨裡 적막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중에
千江印月映高亭 온 강에 스민 달 높은 정자에 비치네
석포石圃 김영배金英培
望七斯翁覺性靈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의 성품 신령해
松形鶴骨獨惺惺 솔 형상 학 골격으로 홀로 깨어 있네
慧光逈徹三千界 지혜의 빛 멀리 삼천 대천 세계 퍼지고
道力精通八萬經 도력은 정밀하게 팔만대장경을 통했네
爲賀處身溫玉白 하례하노니 처신이 따스한 백옥 같고
自慚塵世饜煙靑 세속에서 부끄럽나니 파란 연기 물리네
夏臘仙家無量算 선가의 하랍182)은 헤아릴 수 없으니
籛鏗遐壽益亭亭 전갱183)의 나이 들수록 더욱 정정하네
선승호宣昇浩
山是淸凉水亦靈 산은 청량하고 물 또한 신령한데
一生眞趣箇中惺 일생 참된 취미는 그중에 깨어 있음이라
瑞氣第觀回鐵樹 상서로운 기운을 보나니 철수 두르고
暮年猶切講金經 모년에도 여전히 금강경 강독하네
好結因緣蓮社白 인연을 잘 맺었으니 백련사요
將傳心印法蘭靑 심인184)을 전할 법란이 푸르구나
種德修功如許大 덕을 심고 공을 닦음이 얼마나 큰가
伽藍爲此立亭亭 가람이 이 때문에 정정하게 서 있네
청사靑史 김양현金良現
先生性癖耽區靈 선생의 성격이 영험한 곳 좋아하여
潛跡曹溪頓悟惺 조계산에 자취 감추고 돈오하여 깨었네
鐵樹花間留錫杖 철수의 꽃 핀 곳에 석장을 머물고
長庚星下誦金經 장경성185) 아래에서 금강경 외는구나
厚情臨事常心赤 두터운 정으로 일하여 항상 마음 붉고
和氣對人每眼靑 화사한 기운으로 타인 대해 푸른 눈길
十戒淸淨增壽福 십계로 청정하니 장수와 복이 증가하고
紅顏白髮益亭亭 홍안에 백발로 더욱 정정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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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9_c_01L天降奇才最粹靈。色空至理子惟惺。
012_0779_c_02L祝融峰明寧古有。曹溪山影更今靑。
012_0779_c_03L花開淸晨行月榭。白雲閑塔講仙經。
012_0779_c_04L遙憐爲說百年事。歸則必歸兜率亭。
012_0779_c_05L蘆巖徐英洙。
012_0779_c_06L尊師禀性本虛靈。學道無疑道自惺。
012_0779_c_07L晩與交隣香茗足。賢宜同譜竹山靑。
012_0779_c_08L全忘世慮常思佛。優得閒情暗誦經。
012_0779_c_09L寂寞諸天花雨裡。千江印月映高亭。
012_0779_c_10L石圃金英培。
012_0779_c_11L望七斯翁覺性靈。松形鶴骨獨惺惺。
012_0779_c_12L慧光逈徹三千界。道力精通八萬經。
012_0779_c_13L爲賀處身溫玉白。自慚塵世饜煙靑。
012_0779_c_14L夏臘仙家無量算。籛鏗遐壽益亭亭。
012_0779_c_15L宣昇浩。
012_0779_c_16L山是淸凉水亦靈。一生眞趣箇中惺。
012_0779_c_17L瑞氣第觀回鐵樹。暮年猶切講金經。
012_0779_c_18L好結因緣蓮社白。將傳心印法蘭靑。
012_0779_c_19L種德修功如許大。伽藍爲此立亭亭。
012_0779_c_20L靑史金良現。
012_0779_c_21L先生性癖耽區靈。潛跡曹溪頓悟惺。
012_0779_c_22L鐵樹花間留錫杖。長庚星下誦金經。
012_0779_c_23L厚情臨事常心赤。和氣對人每眼靑。
012_0779_c_24L十戒淸淨增壽福。紅顏白髮益亭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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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0_a_01L 묵은默隱 최묵현崔默鉉
修鍊神心道至靈 마음을 수련하여 도는 지극히 신령하고
兜天花雨夢難惺 도솔천의 꽃비에 꿈을 깨기 어렵네
鬂生鶴睫幻僊骨 귀밑머리에서 학 눈썹 생겨 선골 되고
眼瀉秋波穿釋經 눈에서 추파를 쏟아 내 불경을 꿰뚫네
南極星躔增動彩 남극성의 자리에 빛이 더욱 움직이고
上元鐵樹復回靑 상원에 철수는 다시 푸름을 회복하네
聊知受福無疆界 복을 받음이 경계 없음을 알지니
鮐背龜紋獨立亭 복어 등 거북 무늬186)로 홀로 정자에 서네
만운晩雲 최진국崔珍國187)
曹溪淑氣降仙靈 조계산 맑은 기운이 선령으로 강림하여
不染俗塵道味惺 속진에 물들지 않아 도를 깨우쳤네
圓明性慧通三寶 원만하고 밝은 성품으로 삼보에 통하고
種好身光藏八經 80종호188) 몸의 빛은 팔만대장경 담았네
煩惱心淸如水白 번뇌의 마음 맑아 물처럼 희고
是非言默學山靑 시비의 말이 없이 푸른 산을 배웠네
無關榮辱方回甲 영욕에 관련 없이 바야흐로 회갑이요
鳳舞桐兮人賀亭 봉황 춤추는 오동나무에 축하하는 정자
산사山史 서창영徐昌英
鳳頭山下降仙靈 봉두산 아래 선령이 강림하여
瑞月三更夢復惺 달 뜬 삼경의 꿈을 다시 깨었구나
曾年送我雲中別 일찍이 나를 구름 속에서 송별하고
今日訪君雪裡經 오늘 그대를 방문하느라 눈 속 지나니
梖多寶葉手端老 패다라엽이 손끝에서 늙어 가고
栢樹禪心春外靑 잣나무 참선 마음이 봄 밖에 푸르네
然雖壽筵叅未得 비록 생신 축하연에 참여하지 못하나
斷金猶勝結蘭亭 쇠 끊음이 난초 맺는189) 정자보다 나으리
국은菊隱 김사룡金士龍
聞道曹溪毓地靈 듣자니, 조계산이 땅의 정령 길러
淨蓮如錦夢圓惺 청정한 연꽃이 비단 같아 꿈을 깨고
生涯雲竈茶三椀 생애는 구름 부엌의 차 세 잔이요
居處花宮案一經 거처는 꽃집이라 책상에 경전 하나
催玆流歲頭盈白 흐르는 세월 재촉하여 머리는 가득 희고
捿彼深山眼對靑 저 깊은 산에 깃들어 눈이 마주함 푸르네
始識仁人能至壽 인자한 이는 장수함을 비로소 알지니
茂如松栢獨亭亭 무성함이 솔과 잣처럼 홀로 정정하도다
춘사春史 이종택李鍾宅190)
名山秀麗護神靈 명산이 수려하여 신령을 보호하니
錦溟上人閒夢惺 금명 상인이 한가한 꿈을 깨었구나
澗戶蒼苔猿獻果 개울가 이끼 낀 집 원숭이가 과일 드리고
古壇松樹鶴聽經 소나무 오래된 단상에서 학이 경전 듣네
雲邊飛錫斜陽遠 구름 가에 석장 날리는 석양이 멀고
燈下看書兩眼靑 등불 아래 책을 보는 두 눈동자 푸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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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0_a_01L默隱崔默鉉。
012_0780_a_02L修鍊神心道至靈。兜天花雨夢難惺。
012_0780_a_03L鬂生鶴睫幻僊骨。眼瀉秋波穿釋經。
012_0780_a_04L南極星躔增動彩。上元鐵樹復回靑。
012_0780_a_05L聊知受福無疆界。鮐背龜紋獨立亭。
012_0780_a_06L晩雲崔珍國。
012_0780_a_07L曹溪淑氣降仙靈。不染俗塵道味惺。
012_0780_a_08L圓明性慧通三寶。種好身光藏八經。
012_0780_a_09L煩惱心淸如水白。是非言默學山靑。
012_0780_a_10L無關榮辱方回甲。鳳舞桐兮人賀亭。
012_0780_a_11L山史徐昌英。
012_0780_a_12L鳳頭山下降仙靈。瑞月三更夢復惺。
012_0780_a_13L曾年送我雲中別。今日訪君雪裡經。
012_0780_a_14L梖多寶葉手端老。栢樹禪心春外靑。
012_0780_a_15L然雖壽筵叅未得。斷金猶勝結蘭亭。
012_0780_a_16L菊隱金士龍。
012_0780_a_17L聞道曹溪毓地靈。淨蓮如錦夢圓惺。
012_0780_a_18L生涯雲竈茶三椀。居處花宮案一經。
012_0780_a_19L催玆流歲頭盈白。捿彼深山眼對靑。
012_0780_a_20L始識仁人能至壽。茂如松栢獨亭亭。
012_0780_a_21L春史李鍾宅。
012_0780_a_22L名山秀麗護神靈。錦溟上人閒夢惺。
012_0780_a_23L澗戶蒼苔猿獻果。古壇松樹鶴聽經。
012_0780_a_24L雲邊飛錫斜陽遠。燈下看書兩眼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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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0_b_01L修道入山今又甲 도 닦느라 산에 든 지 이제 또 회갑이라
斷崖嘉木自成亭 벼랑에 아름다운 나무 절로 정자 이뤘네
노은路隱 현응무玄應武
禮雲古寺問神靈 상운의 오래된 사찰에서 신령을 물으니
爭道錦溟也獨惺 금명이 홀로 깨었다고 다투어 말하네
蓮葉千年龜獻算 연잎 천 년 되어 거북이 셈을 바치고
松燈半夜鶴聽經 솔등불 켠 한밤중에 학이 경전 듣네
心通流水來來白 마음은 흐르는 물에 통해 갈수록 희고
顏借高山去去靑 얼굴은 높은 산을 빌려 갈수록 푸르네
幸得同庚仙侶在 다행히 동갑의 신선 같은 벗들이 있어
椒樽雙擧月亭亭 산초술191) 쌍으로 드니 달이 정정하네
난해難海 유영柳泳
桐山淑氣毓精靈 동리산 맑은 기운이 정령을 길러 내니
一夢沙門子獨惺 한 꿈의 사문에서 그대 홀로 깨었구나
在昔前身明月好 예전 전신은 밝은 달을 좋아하였고
幻今流水刼塵經 오늘은 흐르는 물로 겁진192)을 거쳤네
羨君名譽香茶潔 그대 명예가 청결한 차 같음 부러우니
信彼光陰鐵竹靑 저 광음에도 쇠와 대나무 푸름 믿겠네
櫛枇伽藍春不老 즐비한 가람은 봄에도 늙지 않고
低回南極夜垂亭 낮게 휘도는 남극성이 정자에 드리우네
병곡屛谷 유선묵柳善默
一生修道養心靈 일생 수도하여 심령을 기르니
淡泊胷襟怳若惺 담백한 가슴이 깨어난 듯하네
五鳳爲誰呈瑞彩 다섯 봉황은 누굴 위해 상서로움 드리나
二僧居住讀玄經 두 승려가 거주하여 경전을 읽는구나
莫將世態禪門醉 세태를 가지고 선문에서 취하지 말라
詔示人間佛眼靑 세상에 보이노니 부처 눈은 푸르다네
千歲遊龜知在此 천 년 노니는 거북이 여기 있음 알지니
十方蓮葉出亭亭 시방의 연잎이 정정하게 솟는도다
성헌省軒 최홍선崔洪善
泰安寺古鳳山靈 태안사 오래되고 봉두산 신령하니
晩有僊人獨自惺 느지막이 신선 있어 홀로 깨었구나
泉石光陰添鶴算 샘과 바위의 세월에 학의 나이 더하고
案箱貝葉聽鵝經 책상의 패엽경을 거위193)가 듣네
三乘遙界禪雲白 삼승의 먼 세계에 선운이 하얗고
一鉢浮香佛飯靑 발우 하나에 향기로운 불반 파랗네
最是錦溟仁且壽 바로 금명이니 인자하고 장수하여
晬詩猶似昔旗亭 생일 축하시가 옛 술집과 비슷하네
용성산인龍城散人 윤주섭尹胄燮
鳳有貞祥錦有靈 봉황의 상서로움 있고 비단 정령 있는
其人如鶴意惺惺 그 사람은 학처럼 뜻이 깨어 있어
六旬遁跡塵間世 육순 동안 티끌 세상에 자취 숨기고
一甲觀心解脫經 회갑 동안 해탈 경전에서 마음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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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0_b_01L修道入山今又甲。斷崖嘉木自成亭。
012_0780_b_02L路隱玄應武。
012_0780_b_03L禮 [156] 雲古寺問神靈。爭道錦溟也獨惺。
012_0780_b_04L蓮葉千年龜獻算。松燈半夜鶴聽經。
012_0780_b_05L心通流水來來白。顏借高山去去靑。
012_0780_b_06L幸得同庚仙侶在。椒樽雙擧月亭亭。
012_0780_b_07L難海柳泳。
012_0780_b_08L桐山淑氣毓精靈。一夢沙門子獨惺。
012_0780_b_09L在昔前身明月好。幻今流水刼塵經。
012_0780_b_10L羨君名譽香茶潔。信彼光陰鐵竹靑。
012_0780_b_11L櫛枇伽藍春不老。低回南極夜垂亭。
012_0780_b_12L屛谷柳善默。
012_0780_b_13L一生修道養心靈。淡泊胷襟怳若惺。
012_0780_b_14L五鳳爲誰呈瑞彩。二僧居住讀玄經。
012_0780_b_15L莫將世態禪門醉。詔示人間佛眼靑。
012_0780_b_16L千歲遊龜知在此。十方蓮葉出亭亭。
012_0780_b_17L省軒崔洪善。
012_0780_b_18L泰安寺古鳳山靈。晩有僊人獨自惺。
012_0780_b_19L泉石光陰添鶴算。案箱貝葉聽鵝經。
012_0780_b_20L三乘遙界禪雲白。一鉢浮香佛飯靑。
012_0780_b_21L最是錦溟仁且壽。晬詩猶似昔旗亭。
012_0780_b_22L龍城散人尹胄燮。
012_0780_b_23L鳳有貞祥錦有靈。其人如鶴意惺惺。
012_0780_b_24L六旬遁跡塵間世。一甲觀心解脫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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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0_c_01L鐵樹分香溟月白 철수는 향 나눠 바다의 달이 희고
彌山入芥目眉靑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 미목 파랗네
淩波閣上前秋夢 능파각194)에서 가을 꿈이 앞서니
俗客無嚴憇短亭 속객이 무엄하게 단정195)에서 쉬는구나
서순경徐舜卿
南鮮叢林法藥靈 남쪽의 총림에 법약이 영험하여
譚塵隨處敎人惺 세상 이야기로 곳곳에서 각성시키니
文章黼黻花中錦 문장이 화려하여 꽃 중의 비단이요
道德玲瓏海裒經 도덕이 영롱하니 바다의 경전이라
月圓鶴壽藐椿白 달처럼 원만하고 학 나이로 대춘처럼 희고
風動龜齡堯艸靑 바람처럼 움직이며 거북 나이로 풀처럼 푸르네
秦童遺業今安在 진나라 아이들196)의 남은 일 지금 어디 있나
不老晏開瑞鳳亭 불로초가 늦게 서봉정에 피었는데
허용許鏞
弧南瑞彩降神靈 호남197)이 상서로운 빛으로 신령 내리니
鍾出溟公慧且惺 그렇게 나온 금명 공은 지혜롭고 깨어
蓬桑朝日重廻白 생일198) 아침 해는 거듭 돌아와 희고
蒲柳春光一夢靑 갯버들 봄 풍경에 꿈은 푸르구나
善道修來眞聖道 선한 도를 닦은 이래 성인의 도 참되고
玄經讀盡復黃經 현묘한 경전 읽고 다시 황정경 읽네
獻賀觴前歌壽算 축하의 잔 올리기 앞서 장수 노래 부르니
高崗松栢秀亭亭 높은 산등 솔과 잣이 수려하게 정정하네
운강雲岡 이병호李炳昊
壽星南極降精靈 남극 수성199)이 정령으로 강림하여
古甲先天夢已惺 회갑에 선천의 꿈을 벌써 깨었네
閒居身世超塵俗 한가로운 신세는 속진을 초월하고
普濟心工誦法經 널리 구제하는 마음 공부로 법경을 외네
奏笛嵋山蘇鶴白 피리 부는 아미산의 소학200)이 희고
獻圖凾谷李牛靑 도서 바친 함곡관의 이우201)가 파랗구나
八果福田春不老 여덟 과일의 복전이 봄에 늙지 않고
明花鐵樹立亭亭 밝은 꽃의 철수가 정정하게 서 있구나
옥뢰玉瀨 김영성金永誠
惟人最大物之靈 사람이 가장 위대하니 만물 중 신령해
六一茶翁道夢惺 61세 다송 노인은 꿈을 깨었구나
儉食無憂徒素饌 검소한 식사로 근심 없이 소찬만 하고
淸虛養性尙玄經 청허하게 본성 길러 현묘한 경전 높이네
印月澄江頭已白 맑은 강가에 비친 달은 희고
曇雲幻界眼重靑 흐린 구름 세상에서 눈동자 거듭 푸르네
今朝倍切思親孝 오늘 아침 더 절실하게 어버이 그리나니
悔入禪房老此亭 선방에 들어감 후회하며 정자에서 늙네
성석醒石 김주현金周鉉
丰彩英姿始降靈 아름답고 뛰어난 이 비로소 강림하여
泰平生長卓然惺 태평하게 자라 탁월하게 깨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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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0_c_01L鐵樹分香溟月白。彌山入芥目眉靑。
012_0780_c_02L淩波閣上前秋夢。俗客無嚴憇短亭。
012_0780_c_03L徐舜卿。
012_0780_c_04L南鮮叢林法藥靈。譚塵隨處敎人惺。
012_0780_c_05L文章黼黻花中錦。道德玲瓏海裒經。
012_0780_c_06L月圓鶴壽藐椿白。風動龜齡堯艸靑。
012_0780_c_07L秦童遺業今安在。不老晏開瑞鳳亭。
012_0780_c_08L許鏞。
012_0780_c_09L弧南瑞彩降神靈。鍾出溟公慧且惺。
012_0780_c_10L蓬桑朝日重廻白。蒲柳春光一夢靑。
012_0780_c_11L善道修來眞聖道。玄經讀盡復黃經。
012_0780_c_12L獻賀觴前歌壽算。高崗松栢秀亭亭。
012_0780_c_13L雲岡李炳昊。
012_0780_c_14L壽星南極降精靈。古甲先天夢已惺。
012_0780_c_15L閒居身世超塵俗。普濟心工誦法經。
012_0780_c_16L奏笛嵋山蘇鶴白。獻圖凾谷李牛靑。
012_0780_c_17L八果福田春不老。明花鐵樹立亭亭。
012_0780_c_18L玉瀨金永誠。
012_0780_c_19L惟人最大物之靈。六一茶翁道夢惺。
012_0780_c_20L儉食無憂徒素饌。淸虛養性尙玄經。
012_0780_c_21L印月澄江頭已白。曇雲幻界眼重靑。
012_0780_c_22L今朝倍切思親孝。悔入禪房老此亭。
012_0780_c_23L醒石金周鉉。
012_0780_c_24L丰彩英姿始降靈。泰平生長卓然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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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1_a_01L氷桃剩進三千壽 빙도202) 남아 삼천 세에 나아가고
宇量能藏八萬經 도량은 능히 팔만대장경을 담네
仙骨淨淸雙耳屹 청정한 신선 골격에 두 귀 우뚝하고
庭蘭玉立二枝靑 옥 같은 뜰의 난초 두 가지 푸르네
也應不食煙霞味 응당 불에 익힌 음식 먹지 않으리니
却世登臨慧月亭 속세 떠나 혜월정에 오르도다
봉재鳳齋 전종호全宗鎬
瑞日回週再毓靈 상서로운 해 돌아와 다시 영령 기르니
沙門道骨主翁惺 사문의 도인 주인옹이 깨었구나
延年知易叅禪術 나이 늘림이 쉬움 알지니 참선술이요
繼世蹉難敎子經 세대 이음 어려우니 자식 가르치는 경전
澹靜心師雲水白 맑고 고요한 마음의 스승은 운수처럼 희고
劬勞恩感蓼莪靑 애쓰신203) 은혜 느끼는 다북쑥204) 파랗네
叉手闍梨來獻壽 합장한 아사리들이 와서 장수 기원하니
桐之山下月之亭 동리산 아래 달이 뜬 정자에서라네
김영하金永夏
古甲主翁精且靈 회갑 맞은 주인옹 정치하고 영험하니
仙耶人否卓然惺 신선인가 인간인가 탁월하게 깨었구나
籌屋盈盈添壽海 주옥205)이 차서 수명의 바다 더하고
寶花落落講華經 보배 꽃 떨어지는 화엄경 강독 자리
鳳瑞惟羞霜鬂白 봉서는 서리처럼 하얀 머리 부끄럽고
太行應啖石泥靑 태항은 푸른 석니206)를 탐하리라
六旬重到劬勞日 육순에 거듭 돌아오는 생일날
祝賀延笻客上亭 축하하러 지팡이 짚은 객이 정자 오르네
김병우金炳祐
庚同鐵樹始生靈 동갑의 철수가 비로소 신령을 낳아
默識玄圓慧正惺 말없이 현묘 원만함 아는 지혜로 깨었네
獻幅蠡圖驚耳目 여도207)를 바쳐서 이목을 놀라게 하니
着斕蠡子繡丹靑 채색 옷 입은 범려가 단청을 수놓네
夙離棣戶恒修道 일찍 형제 떠나 항상 도를 닦았고
倍感蘭湯解誦經 난탕208)에 느낌 더하여 경전 외는구나
桐裏眞源應菊水 동리산 참 근원은 응당 국화 물이리니
飮多此日老亭亭 이날 많이 마시면 늙어도 정정하리
김영교金永敎
英年卓錫駐斯靈 꽃다운 나이에 높이 주석을 세운 정령
宿世證緣可以惺 전생의 인연을 증명하여 깨우쳤구나
間從來客吟驚句 간간이 손님 따라 경구를 읊나니
欲度餘生講法經 여생을 제도하려 경전을 강독하네
願深慈海娑婆小 바람 깊은 자비 바다에 사바세계 작고
春滿壽山鐵樹靑 봄 가득한 장수산에 철수가 푸르구나
六十苦行何盡說 육십 년 고행을 어찌 다 말하리
濟功無量祗園亭 구제한 공 무량하니 기원과 같도다
우사愚史 김성렬金性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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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1_a_01L氷桃剩進三千壽。宇量能藏八萬經。
012_0781_a_02L仙骨淨淸雙耳屹。庭蘭玉立二枝靑。
012_0781_a_03L也應不食煙霞味。却世登臨慧月亭。
012_0781_a_04L鳳齋全宗鎬。
012_0781_a_05L瑞日回週再毓靈。沙門道骨主翁惺。
012_0781_a_06L延年知易叅禪術。繼世蹉難敎子經。
012_0781_a_07L澹靜心師雲水白。劬勞恩感蓼莪靑。
012_0781_a_08L叉手闍梨來獻壽。桐之山下月之亭。
012_0781_a_09L金永夏。
012_0781_a_10L古甲主翁精且靈。仙耶人否卓然惺。
012_0781_a_11L籌屋盈盈添壽海。寶花落落講華經。
012_0781_a_12L鳳瑞惟羞霜鬂白。太行應啖石泥靑。
012_0781_a_13L六旬重到劬勞日。祝賀延笻客上亭。
012_0781_a_14L金炳祐。
012_0781_a_15L庚同鐵樹始生靈。默識玄圓慧正惺。
012_0781_a_16L獻幅蠡圖驚耳目。着斕蠡子繡丹靑。
012_0781_a_17L夙離棣戶恒修道。倍感蘭湯解誦經。
012_0781_a_18L桐裏眞源應菊水。飮多此日老亭亭。
012_0781_a_19L金永敎。
012_0781_a_20L英年卓錫駐斯靈。宿世證緣可以惺。
012_0781_a_21L間從來客吟驚句。欲度餘生講法經。
012_0781_a_22L願深慈海娑婆小。春滿壽山鐵樹靑。
012_0781_a_23L六十苦行何盡說。濟功無量祗園亭。
012_0781_a_24L愚史金性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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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1_b_01L弧節重回此地靈 생일이 거듭 돌아온 이 지역의 정령
沙門德齒自今惺 사문의 덕과 나이로 이제 절로 깨니
家聲金海王孫系 집안은 김해 왕손의 후예이고
禪派曹溪六祖經 불교로는 조계 육조의 정맥이라네
生涯無着雲山白 생애는 집착 없어 구름산처럼 희고
道氣淡如鏡水靑 도는 담백하여 거울물처럼 푸르네
度算盈室仍爲壽 산가지가 방에 가득 그렇게 장수하여
爲賀詩箋盡日亭 축하시 적은 종이 종일토록 쌓이네
남사南史 김성조金性祚
六十安居法界靈 육십 년 안거한 법계의 정령
黃顏白髮獨惺惺 누런 얼굴에 백발로 홀로 깨었구나
中年桐岳惟修性 중년에 동리산에서 본성을 닦았고
曾歲松燈且閱經 일찍이 솔불로 또한 경전 읽었지
風停胷海心花發 바람이 그친 가슴 바다에 심화 피고
雨過壽山鐵樹靑 비 지나는 장수산에 철수가 푸르네
高賓齊賀終無散 고귀한 손님들 축하하며 흩어짐 없고
日落小焉月上亭 해 저물고 잠시 후 달이 정자에 오르네
김봉준金鳳準
萬水千山不匿靈 온갖 물과 산이 정령을 숨기지 않아
緇衣白拂已惺惺 승복에 흰 불자 떨쳐 이미 깨었구나
尋常施設兼人術 평소 베푸는 게 뛰어난 방법인데
何必云爲救國經 하필 나라 구할 경전을 말하리오
明月心神光復潔 밝은 달에 마음은 빛나고 청결하며
春風梵相色添靑 봄바람에 범상209)은 푸른색 더하도다
曹溪一派滔滔下 조계 한 줄기가 도도하게 흘러내리는데
愧我無緣獻壽亭 부끄럽게도 생일 축하 정자에 인연 없네
만암曼庵 송종헌宋宗憲210)
逸老巖溪降瑞靈 일로암 시냇물에 정령이 강림하여
師傅用壽尙惺惺 사부는 장수하고도 여전히 깨었구나
仙年丹龜灰塵刼 신선 나이의 붉은 거북은 진겁 다하고
磬夜香燈鑑道經 밤새 등 켜고 진리 경전 살펴보네
紺院芝蘭向春馥 사찰의 지초와 난초가 봄에 향기롭고
交庭竹栢入冬靑 뜰의 대나무 잣나무는 겨울에도 푸르러
龜蓮嚥氣肥鳬藻 연잎의 거북 연기211)하고 물오리212) 살지니
影裏寒潭水月亭 그늘진 찬 연못에 수월정이로다
국헌菊軒 조홍근趙洪根
罄鍾聲裏養心靈 경쇠와 종소리로 심령을 기르고
坐演三車意自惺 앉아서 삼거213) 보니 뜻이 절로 깨어
初度春還花鐵樹 생일 봄이 돌아오니 철수에 꽃 피고
此生說去道禪經 이 생애에 말한 것은 참선 경전이로다
盤龍藏鉢恒水澄 용이 서린 발우는 항하사처럼 맑고
舞鶴登庭壽山靑 학이 오르는 뜰의 장수산 푸르구나
魚戱萬波同月印 물고기 노는 물결에 달이 비치고
紺園貝葉蔭成亭 사찰의 패엽 그늘이 정자 이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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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1_b_01L弧節重回此地靈。沙門德齒自今惺。
012_0781_b_02L家聲金海王孫系。禪派曹溪六祖經。
012_0781_b_03L生涯無着雲山白。道氣淡如鏡水靑。
012_0781_b_04L度算盈室仍爲壽。爲賀詩箋盡日亭。
012_0781_b_05L南史金性祚。
012_0781_b_06L六十安居法界靈。黃顏白髮獨惺惺。
012_0781_b_07L中年桐岳惟修性。曾歲松燈且閱經。
012_0781_b_08L風停胷海心花發。雨過壽山鐵樹靑。
012_0781_b_09L高賓齊賀終無散。日落小焉月上亭。
012_0781_b_10L金鳳準。
012_0781_b_11L萬水千山不匿靈。緇衣白拂已惺惺。
012_0781_b_12L尋常施設兼人術。何必云爲救國經。
012_0781_b_13L明月心神光復潔。春風梵相色添靑。
012_0781_b_14L曹溪一派滔滔下。愧我無緣獻壽亭。
012_0781_b_15L曼庵宋宗憲。
012_0781_b_16L逸老巖溪降瑞靈。師傅用壽尙惺惺。
012_0781_b_17L仙年丹龜灰塵刼。磬夜香燈鑑道經。
012_0781_b_18L紺院芝蘭向春馥。交庭竹栢入冬靑。
012_0781_b_19L龜蓮嚥氣肥鳬藻。影裏寒潭水月亭。
012_0781_b_20L菊軒趙洪根。
012_0781_b_21L罄鍾聲裏養心靈。坐演三車意自惺。
012_0781_b_22L初度春還花鐵樹。此生說去道禪經。
012_0781_b_23L盤龍藏鉢恒水澄。舞鶴登庭壽山靑。
012_0781_b_24L魚戱萬波同月印。紺園貝葉蔭成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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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1_c_01L 신규환申圭桓214)
南嶽降生早毓靈 남악에 강생하여 일찍 정령 기르고
出家悟道喚惺惺 출가하여 도를 깨치니 성성하도다
劬勞多感蓼莪句 부모 노고 감동하는 육아의 구절
淸靜誦傳般若經 청정하게 외어 전하는 건 반야경
好結名流蓮社白 명사들과 인연 맺은 백련사 희고
貯看法界苾蒭靑 우두커니 법계 바라보는 비구 푸르네
弧辰續在上元後 생일이 상원 이후에 이어졌으니
春水臨高六鑑亭 봄물이 높이 육감정에 이르도다
운초雲樵 김종응金鍾應
現世之初已秀靈 현생 초기에 이미 빼어나고 영특하여
靈臺未必喚而惺 영대215)를 환기하지 않고도 깨었구나
生平度了蓮花界 평생 연화세계를 헤아렸으니
骨相淸於貝葉經 골격이 패엽경보다 맑도다
蓼莪劬勞春雪白 육아의 애쓴 노고는 봄눈처럼 희고
螟蛉敎誨夜燈靑 명령216) 가르침은 밤 등불처럼 푸르네
踵門賀客知多小 방문하는 축하 손님들이 많아서
不憚長亭與短亭 먼 거리 짧은 거리 꺼리지 않는구나
소파小波 송명회宋明會217)
禀得曹溪一氣靈 조계의 영험한 기를 타고나서
自從現世已惺惺 현생 나면서부터 이미 깨었도다
玄談在口終爲法 현담이 늘 입에 있어 마침내 법이 되고
妙悟由心不待經 깨달음이 경전 없이 마음에서 우러났네
流水光陰雙髩白 흐르는 물 같은 광음에 귀밑머리 희고
名山宿業兩瞳靑 명산의 숙업218)으로 두 눈동자 푸르네
弧辰又合淸寒像 생일이 또한 청한한 모습에 합당하니
梅雪新晴月滿亭 눈 속 매화가 달 가득한 정자에 새롭네
만사晩士 김명수金命洙
금옹의 수첩을 읽은 후 감동하여(謹讀錦翁壽帖後感)有是明星有地靈 이 밝은 별이 있고 대지의 정령 있어
古今有幾等持惺 고금에 몇 번이나 깨달음 지녔나
神光已會蓮華智 신이한 광채로 이해한 연꽃의 지혜인데
眼界何煩貝葉經 눈앞에 어찌 패엽경이 번거로우랴
儀範乘雲天上樂 규범 있게 구름 타니 천상의 즐거움이요
芳名載石海東靑 아름다운 이름을 돌에 실은 해동 푸르네
嗟乎未得師子乳 아, 사자후를 얻지 못하였으니
心事如登勞勞亭 심사가 노로정219)에 오른 듯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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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1_c_01L申圭桓。
012_0781_c_02L南嶽降生早毓靈。出家悟道喚惺惺。
012_0781_c_03L劬勞多感蓼莪句。淸靜誦傳般若經。
012_0781_c_04L好結名流蓮社白。貯看法界苾蒭靑。
012_0781_c_05L弧辰續在上元後。春水臨高六鑑亭。
012_0781_c_06L雲樵金鍾應。
012_0781_c_07L現世之初已秀靈。靈臺未必喚而惺。
012_0781_c_08L生平度了蓮花界。骨相淸於貝葉經。
012_0781_c_09L蓼莪劬勞春雪白。螟蛉敎誨夜燈靑。
012_0781_c_10L踵門賀客知多小。不憚長亭與短亭。
012_0781_c_11L小波宋明會。
012_0781_c_12L禀得曹溪一氣靈。自從現世已惺惺。
012_0781_c_13L玄談在口終爲法。妙悟由心不待經。
012_0781_c_14L流水光陰雙髩白。名山宿業兩瞳靑。
012_0781_c_15L弧辰又合淸寒像。梅雪新晴月滿亭。
012_0781_c_16L晩士金命洙。
012_0781_c_17L
012_0781_c_18L1)謹讀錦翁壽帖後感 [31]
012_0781_c_19L有是明星有地靈。古今有幾等持惺。
012_0781_c_20L神光已會蓮華智。眼界何煩貝葉經。
012_0781_c_21L儀範乘雲天上樂。芳名載石海東靑。
012_0781_c_22L嗟乎未得師子乳。心事如登勞勞亭。
012_0781_c_23L此詩。底本在「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文之
012_0781_c_24L前。編者移置於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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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2_a_01L 계미년(1943) 가을에 후학 임보극220)이 삼가 쓰다.(癸未秋日後學任普極謹題)
[부록 3附錄三]금명 선사 비명 병서錦溟禪師碑銘并序사람이 어려서는 효도로 이름이 나고 자라서는 가르침으로 유명하여, 들고 남에 걸림이 없고 일과 이치를 같이 닦는 것은 위대한 도사導師(스승)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방외方外로 사귀는 금명錦溟 선사가 거의 그렇다.선사의 휘諱는 보정寶鼎이고 호는 금명이며 속성은 김씨金氏로서 가락국 왕의 후예이고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221)의 후손이다. 중세中世에 영암靈巖에서 곡성谷城으로 이주하였다. 부친의 휘는 상종相宗이고 모친은 이씨이다. 임신 중에 채색 구름이 개울에 만연하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철종 신유년(1861) 정월 19일에 태어나니, 두각頭角(정수리)이 뾰족하고 지혜가 뛰어났다.5세 때 스스로 이름을 ‘영준英俊’이라 하였다.222)11세 때 배우기 시작하니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책을 들고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모친의 병을 간호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눈밭을 헤치고 약초를 캐고 땅을 파서 조개를 구하니, 신명이 감동하여, 모친이 회복하게 되었다. 당시 14세였다.성동成童(15세)에 부친이 출가하라 명하여 송광사 금련金蓮 화상에게 의지하여 삭발하고 비로소 향수해香水海223)를 읽었는데 한 번에 암송하였다. 하루는 홀연 마음이 동하여 스승께 고하고 급히 집으로 가니 모친의 병세가 이미 위독하였다.17세 때 경파景坡 화상에게 계를 받았다. 이후로 사방을 다니며 공부하여 대종장大宗匠, 즉 원해圓海224)ㆍ범해梵海225)ㆍ원화圓華ㆍ함명涵溟226) 같은 분들을 두루 참학하니, 그분들이 마음을 기울이지 않음이 없었고 가르침에 나이를 잊고 칭찬하였다.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으로부터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등 여러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섭렵하였다. 글씨는 -
012_0782_a_01L癸未秋日。後學任普極。謹題。
012_0782_a_02L
012_0782_a_03L
012_0782_a_04L1)〔附錄三〕 [32]
012_0782_a_05L
012_0782_a_06L2)錦溟禪師碑銘并序 [33]
012_0782_a_07L曰有人焉。幼而以孝名。長而以敎著。
012_0782_a_08L出入無礙。事理雙修。非大導師。不能
012_0782_a_09L焉。以吾方外之交。惟錦溟禪師。庶幾
012_0782_a_10L焉。師諱寶鼎。號錦溟。金其姓。駕洛王
012_0782_a_11L裔。鶴城君完后也。中世自靈巖。寓谷
012_0782_a_12L城。父曰相宗。母李氏。有娠夢。彩雲溪
012_0782_a_13L漲之異。哲宗辛酉正月十九日。師生
012_0782_a_14L頭角嶄然。慧識迢邁。五歲自言名英俊。
012_0782_a_15L十一歲就學。晝執鉏。夜抱書。矻矻不
012_0782_a_16L已。侍母病積二年。須臾不離側。踏雪
012_0782_a_17L採芝。穿土得蛤。感神明而復矧翔。時
012_0782_a_18L十四歲也。成童因父命出家。依松廣寺
012_0782_a_19L金蓮和尙剃染。始讀香水海。一回便誦。
012_0782_a_20L一日忽心動。吿師急歸家。母病已㞃矣。
012_0782_a_21L十七受戒于景坡和尙。自後遊學四方
012_0782_a_22L歷叅大宗匠。如圓海梵海圓華菡 [157] 溟諸
012_0782_a_23L公。莫不傾心。敎誨忘年推詡。自六經
012_0782_a_24L四子。以至老莊諸家。一皆涉獵。筆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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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2_b_01L자못 힘차고 성품은 근검하고 치밀하여 헌 종이나 낡은 붓이라도 글 쓰는 데에 사용하고, 밤에는 실 두 가닥을 합쳐 등불 심지로 삼으니, 학우들이 웃어 댔지만, 태연자약했다.허주虛舟 선사를 참학하고 금련 스승의 호號를 받았다. 금련 스승이 병으로 누워 고생하게 되자 다른 문사門師에게 법을 구하라 명하니, 고하길 “10년의 은혜가 중한데 저의 유무가 어찌 대단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간혹 이익으로 유도하곤 하였으나 그때마다 “이익으로 법을 구함은 나의 본분이 아닙니다.”라고 하니, 듣는 이들이 옳게 여겼다. 스승의 질병을 간호함에 의사를 찾고 약을 구하여 하루 밤낮에 2백 리를 왕복하였고, 팔영산八影山227)에 들어가 만병초萬病艸를 메고서 당일에 돌아오기도 했다. 금련 스승이 입적함에 시를 지어 슬픔을 표하였다.
親疴傅病敢言苦 어버이와 스승의 질병에 감히 힘들다 하랴
手淈尿糞身自扶 손으로 오줌과 똥을 살피고 몸을 부지하여
雪芝泥蛤皆常事 눈 속의 지초와 진흙의 조개 캠이 일상이라네
恨未當時咋指蘇 한스러운 건 손 깨물어 소생시키지 못함이라
그리고는 건당建幢한 후에 초빙을 받아 전경轉經228)하였다. 본사本寺(송광사)의 보조암이나 광원암廣遠菴,229) 그리고 지방의 학림學林과 방장산의 화엄사ㆍ천은사泉隱寺, 해남의 대흥사, 곡성의 태안사泰安寺 등 이르는 곳마다 다투어 맞이하니, 발이 부르터 머물기도 하고 안거하며 참구叅究하기도 하였다. 선원 계단戒壇에 빈자리 없이 강마講劘하여 훈도薫陶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영남과 호남의 재주 있는 이들이 문하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서각西閣(뒷간)의 잡스런 제사들을 혁파하고 가마(藍輿) 적폐를 없애며 행패 부리는 관리를 징치함에 있어서는 과감하였다. 해인사의 장경藏經을 가지고 (송광사로) 돌아가 성수전聖壽殿을 창건하며 대흥사에서 크게 불사를 조성함에 있어서는 근면하였다. 갑오년(1894)과 정유년(1897)에 산 전체가 병화를 혹독하게 입었는데 위험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하려 하였으니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광무光武 병술년230)에 선종과 교종 양쪽에서 자헌대부를 수여하고 본사 도총섭都㧾攝을 맡은 게 네 번이고 해인사 선의禪議가 된 게 한 번이다.61세 생일에 스스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去益昏迷難點石 갈수록 더욱 혼미하여 교화하기 어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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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2_b_01L頗遒健。性勤儉緻密。雖廢紙退筆。必
012_0782_b_02L資書寫。夜以合兩線。爲燈炷。學友或
012_0782_b_03L笑之。而顧自如也。叅虛舟禪師。受蓮
012_0782_b_04L師號。及蓮師委疾且窘跲。命求法他門
012_0782_b_05L師。吿曰十年恩重。物何足有無。或有以
012_0782_b_06L利誘之。輒曰以利求法。非吾本分。聞
012_0782_b_07L者韙之。侍師疾也。尋醫求藥。一晝夜
012_0782_b_08L徃還二百里。入八影山。擔曳萬病艸。
012_0782_b_09L當日還山。及蓮師沒。賦詩識哀曰。
012_0782_b_10L親疴傅病敢言苦。手淈尿糞身自扶。
012_0782_b_11L雪芝泥蛤皆常事。恨未當時咋指蘇。
012_0782_b_12L因建幢後。被聘轉經。若本寺之普照廣
012_0782_b_13L遠諸菴。地方學林。及方丈之華嚴泉隱。
012_0782_b_14L海南之大興。谷城之泰安。所至爭迎。
012_0782_b_15L或重趼留連。或安居叅究。禪院戒壇
012_0782_b_16L殆無虛席。莫不講劘薫陶。嶺湖才俊
012_0782_b_17L多出門下。至若罷西閣雜祭。袪藍輿積
012_0782_b_18L弊。懲官隷悖亂。其果敢也。賚歸海印
012_0782_b_19L之藏經。剏建聖壽之殿。大興之大造佛
012_0782_b_20L事。其勤勞也。午酉之歲。一山酷被兵
012_0782_b_21L燹。見危不怖。誓欲殉敎。其信念也。光
012_0782_b_22L武丙戌。以禪敎兩宗。授資資憲。爲本
012_0782_b_23L寺都㧾攝者四。爲海印寺禪議者一。六
012_0782_b_24L十一生朝。自題有云。去益昏迷難點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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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2_c_01L疲能隨喜但翻經 피곤해도 능히 기뻐하며 다만 불경 뒤적이네
승려나 일반인이나 여기에 화답하는 이가 매우 많았다. 나는 일찍이 그 진영에 다음과 같은 찬讃을 붙였다.
有爛其眼 빛나는 눈동자
有頎其容 헌걸찬 모습
卽之嫣然可掬 다가서면 아름다워 움켜잡을 만하고
望之儼然可敬 바라보면 의젓하니 공경할 만하도다
詞華則五色紋錦 아름다운 말은 오색 빛깔의 비단 같고
胷海則萬里滄溟 바다 같은 가슴은 만 리에 푸르도다
盖記實也 이 언급은 실제를 기록한 것이다.
경오년(1930) 2월 13일에 입적하였으니 세수世壽 70이요 법랍은 55세다. 몇 권의 문집과 『향사열전鄕師列傳』이 있다. 편록編錄한 것으로는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과 『저역총보著譯叢譜』, 『석보약록釋譜略錄』, 『삼장법수三藏法數』, 『불조찬송佛祖讃頌』, 『정토백영淨土百詠』, 『염불요해念佛要解』, 『십지경과十地經科』 등 수십 종이 있다.상족上足(수제자)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은 일찍 청출어람이라는 명예를 자부하고 나에게 유학을 공부하였다. 기군紀羣의 사귐231)으로 여러 번 명문銘文을 청하였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사의 깨달은 경지는 내가 헤아릴 수 없으나 그 지극한 행실에 대해서는 쓸 것이 많다. 이것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명銘은 다음과 같다.어버이 섬김을 미루어 스승 섬김을 효라고 한다뜻을 세워 사물에 응함을 이치라고 한다효와 이치를 앎에 출입에 방해가 없고 일과 이치를 같이 닦았다 하리라게다가 오색 빛깔의 화려한 말과 만 리 바다 같은 마음이참으로 용상龍象 대덕이요 말세의 사표로다아, 세상에 선과 교를 말하는 이들이 그저 껍데기만 맛볼 뿐이니몽둥이로 고함만 일삼는 이들이여 어찌 선사에게 구하지 않는가염재거사念齋居士 송태회宋泰會232)가 짓다. -
012_0782_c_01L疲能隨喜但翻經。緇素和之者甚多。余
012_0782_c_02L嘗讃其影曰。有爛其眼。有頎其容。卽
012_0782_c_03L之嫣然可掬。望之儼然可敬。詞華則五
012_0782_c_04L色紋錦。㐫海則萬里滄溟。盖記實也。
012_0782_c_05L庚午二月十三日入寂。世壽七十。法臘
012_0782_c_06L五十五。有集若干卷。鄕師列傳。其編
012_0782_c_07L錄者。曹溪高僧傳。著譯叢譜。釋譜略
012_0782_c_08L錄。三藏法數。佛祖讃頌。淨土百詠。念
012_0782_c_09L佛要解。十地經科等數十種。上足朱龍
012_0782_c_10L隱完燮。早負靑藍之譽。而學儒書于余
012_0782_c_11L者也。以紀羣之交。屢謁銘文。余曰。師
012_0782_c_12L之悟境。非吾可測。而其至行實事。可
012_0782_c_13L書者多。是不可以不銘。銘曰。
012_0782_c_14L推事親而事師曰孝也。以立志而應物
012_0782_c_15L曰義也。惟孝且義。故曰出入無礙。事
012_0782_c_16L理雙修。加之以五色詞華萬里胸海。洵
012_0782_c_17L可爲龍象之大德。而像季之師表也。噫。
012_0782_c_18L世之說禪說敎。徒然啜糟粕。而事棒喝
012_0782_c_19L者。盍於師而求之。
012_0782_c_20L念齋居士宋泰會撰。
012_0782_c_21L「附錄三」三字。編者補入。「錦溟禪師碑銘
012_0782_c_22L幷序」及「錦溟大宗師碑陰記」各各別紙流通。編
012_0782_c_23L者收集而於此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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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3_a_01L금명 대종사 비음기錦溟大宗師碑陰記제방諸方(각지)의 선지식이 벼와 삼과 대와 갈대처럼 많아서 아직 두루 참학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이치에 통하나 일에 막히기도 하고 선정이 깊으나 지혜가 건조하기도 하여, 모두 의논할 바가 있을 수 있다. 오직 금명 노스님은 이런 게 없이 고로古老의 풍모가 있다. 나는 어릴 적 불사로 인해 송광사에 약 반 년 머물렀는데, 맡은 일이 매우 바빠서 경전을 읽고 답을 청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기뻐하여 성심으로 (스님께) 감복하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생각하길, 갑오년(木馬)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리라 하였다. 어느덧 40년이 지났건만, 나는 다시 남쪽으로 가지 못하고 노스님은 이미 서방정토로 가셨다. 어그러지기는 쉽고 만나기는 어려움이 이와 같도다. 제자(神足)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 공公이 명銘을 가지고 서울로 와서 내게 보이며 말했다.“스님께서 우리 스님에 대해 아시는 게 있음을 아는데 어찌 일전어一轉語233)를 내려 주어 비음기를 장식하지 않으십니까.”“네, 아닙니다. 염재念齊(송태회)의 명銘이 충분합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알기에, 노스님께서 일생 동안 가르침을 자상하게 하셨고 때마다 다시 좌선을 편히 하시고 염불에 근면하신 지 또한 여러 해입니다. 계율을 근엄하게 지키셔서 제방의 모범이 되신 고로 명치明治 임자년(1912)과 소화昭和 병인년(1926)에 두 번 계단戒壇을 마련하시니 돌아와 걸계乞戒234)한 이가 매번 천 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또 붓을 잡는 데 근면하고 간절하여 그 저술한 바가 모두 후학이 보배로 삼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참선에 전력하지 않고도 선정 힘이 크고 무無에 들어가지 않고도 처사가 명백하였으니 진속眞俗을 아울러 융통하지 않은 이라면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스님께서 입적하신 지 이미 1기紀(12년)가 지났다. 용은은 덕업이 혹시 민멸될까 걱정하여 개인 재산을 털어서 정민貞珉(비석)을 도모하였다. 송광사와 태안사, 관음사, 대흥사, 백양사, 화엄사, 천은사泉隱寺 등이 모두 공재公財를 보조했다. -
012_0783_a_01L錦溟大宗師碑陰記
012_0783_a_02L諸方之善知識。如稻麻竹葦。未曾遍叅。
012_0783_a_03L然以余所觀。或通乎理而滯乎事。或深
012_0783_a_04L於定而乾於慧。皆可以有以議。惟錦溟
012_0783_a_05L老師。無是也。有古老風焉。余少時因
012_0783_a_06L佛事。留朽 [158] 廣者。約半年。所幹孔劇。雖
012_0783_a_07L未能橫經請答。然心則已悅而誠服矣。
012_0783_a_08L事濟而歸。自以謂木馬餘緣更續。有
012_0783_a_09L匆匆十年 [159] 。余不復南行。老師已西化。
012_0783_a_10L蹉跎之易。會遇之難。有如是夫。令其
012_0783_a_11L神足龍隱燮公。齎銘入洛。而示於余
012_0783_a_12L且曰。知師之於吾師。有知焉。盍下一轉
012_0783_a_13L語。以侈其陰乎。曰唯唯否否。念齊之
012_0783_a_14L銘。盡之矣。復何爲哉。然吾知其老師
012_0783_a_15L一生諄諄於敎誨。而時復安於坐禪。勤
012_0783_a_16L於念佛者。亦累夏矣。持律謹嚴。爲諸
012_0783_a_17L方矜式故。明治壬子昭和丙寅。兩設戒
012_0783_a_18L壇。而回來乞戒者。每盈千指。又復勤
012_0783_a_19L懇於秉筆故。其所著述。皆後學之可寶
012_0783_a_20L者也。不專禪而定力大。不入無而處事
012_0783_a_21L明。非眞俗雙融者。其孰能與於此哉。
012_0783_a_22L師殁已一紀矣。龍隱懼其臨 [160] 業之或泯。
012_0783_a_23L盡罄私槖。乃謀貞珉。松廣泰安觀音大
012_0783_a_24L興白羊華嚴泉隱諸寺。皆以公財助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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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3_b_01L그 문하에 있는 제자들과 게를 받았거나 한마디 말을 들은 이들이 모두 정성을 기울이고 힘을 다해서, 그 일의 성공을 고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노스님의 교화를 앙모해서가 아니며, 더욱이 주완섭 공의 정성과 힘에 감동함이 아니겠는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잊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안다.
운양雲陽 사문沙門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235) 쓰다.계보 : 부휴浮休 7세世 풍암楓巖, 응암 낭윤應庵朗允, 영암 등찬影庵等讃, 성월 서유聖月瑞薷, 지봉 지안智峰之安, 벽련 인성碧蓮仁性,236) 금련 경원金蓮敬圓, 금명 보정錦溟寶鼎.
수업문생受業門生 대표 : 만암 종헌曼庵宗憲,237) 석호 형순錫虎炯珣,238) 해은 재선海隱栽善,239) 기산 석진綺山錫珍.제자弟資 : 용은 완섭龍隱完燮, 백은 종택栢隱鍾宅.240)계제자戒弟子 : 동하東夏, 동식東植, 천경天鏡, 종출鍾出.손제자孫弟資 : 봉길鳳吉, 동희東熙.직원 : 주지住持 기산 석진綺山錫珍, 감무監務 용은 완섭龍隱完燮, 법무法務 금당 재순錦堂在順, 교무敎務 청은 순홍淸隱淳弘, 감사監事 모곡 재영暮谷再榮, 재무財務 등곡 병렬藤谷丙烈,241) 서기書記 영은 일오靈隱日五, 서기 춘고 병렬春臯炳烈, 강사講師 석호 형순錫虎炯珣, 강사 인산 상정仁山相禎, 염불원念佛院 화주化主 대우 금추大愚錦秋.영건營建 : -
012_0783_b_01L其在門弟子之列者。與夫受一偈。承一
012_0783_b_02L語者。莫不傾誠竭力。以吿厥成。此豈
012_0783_b_03L非慕老師之臨化。而尤感於燮公之誠
012_0783_b_04L力也耶。吾知其愈久而人之不能忘也
012_0783_b_05L已。雲陽沙門。退耕相老識。
012_0783_b_06L系譜。
012_0783_b_07L浮休七世楓巖。應庵朗允。影庵等讃。
012_0783_b_08L聖月瑞薷。智峰之安。碧蓮仁性。金蓮
012_0783_b_09L敬圓。錦溟寶鼎。
012_0783_b_10L
012_0783_b_11L受業門生代表。
012_0783_b_12L曼庵宗憲。錫虎炯珣。海隱栽善。綺山
012_0783_b_13L錫珍。
012_0783_b_14L弟資。
012_0783_b_15L龍隱完燮。栢隱鍾宅。
012_0783_b_16L戒弟子。
012_0783_b_17L東夏。東植。天鏡。鍾出。
012_0783_b_18L孫弟資。
012_0783_b_19L鳳吉。東熙。
012_0783_b_20L職員。
012_0783_b_21L住持綺山錫珍。監務龍隱完燮。法務錦
012_0783_b_22L堂在順。敎務淸隱淳弘。監事暮谷再榮。
012_0783_b_23L財務藤谷丙烈。書記靈隱曰 [161] 五。書記春
012_0783_b_24L臯炳烈。講師錫虎炯珣。講師仁山相禎。
012_0783_b_25L念佛院化主大愚錦秋。
012_0783_b_26L營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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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83_c_01L용은 완섭.별좌別座 : 백은 종택.속질俗姪 : 김재두金在斗, 재규在圭, 재수在守.시중時衆242) 2백여 명, 도서실 주무主務 학담 득수鶴潭得秀.불기佛紀 2969년(1942) 임오.찬조기賛助記 : 송광사중松廣寺中, 태안사중泰安寺中, 관음사중觀音寺中, 대흥사중大興寺中, 화엄사중華嚴寺中, 천은사중泉隱寺中, 수업문생受業門生과 유지有志 60인.비석 : 남포藍浦243)에서 산출.제작 : 경성석물미술공업사京城石物美術工業社.각공刻工 : 김창웅金昌雄,244) 이경구李庚求, 정한경鄭漢景.석공石工 : 조소근曺小根. -
012_0783_c_01L龍隱完燮。
012_0783_c_02L別座。
012_0783_c_03L栢隱鍾宅。
012_0783_c_04L俗姪。
012_0783_c_05L金在斗。在圭。在守。
012_0783_c_06L時衆二百餘。圖書室主務鶴潭得秀。
012_0783_c_07L佛紀二千九百六十九年壬午月日。
012_0783_c_08L賛助記。
012_0783_c_09L松廣寺中。泰安寺中。觀音寺中。大興
012_0783_c_10L寺中。華嚴寺中。泉隱寺中。
012_0783_c_11L受業門生與有志六十人。
012_0783_c_12L石出藍浦
012_0783_c_13L製作。京城石物美術工業社。
012_0783_c_14L刻工。金昌雄。李庚求。鄭漢景。
012_0783_c_15L石工。曺小根。
- 1)구단具檀 : ‘보시를 갖춤’을 뜻하는 듯함. 단檀은 보시(dãna)를 가리킴.
- 2)권화權化 :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여 세상에 나타나는 것.
- 3)사생四生 : 생명체를 출생 방식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한 것. 모태에서 태어나는 태생胎生, 알에서 깨어나는 난생卵生, 습한 곳에서 생기는 습생濕生, 어느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업력業力으로 태어나는 화생化生.
- 4)십지十地 : 보살의 열 가지 수행 단계. 『華嚴經』에서 천명한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십지와 천태종의 통교通敎 십지가 있다.
- 5)권현權現 :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일부러 신으로 변하여 나타나는 것.
- 6)미타영중彌陀影衆 : 아미타불이 관음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하므로, 관음보살을 미타영중이라 일컬음.
- 7)다라多羅 : ⓢ Tārā. 다라관음多羅觀音. 다라는 눈을 뜻함. 관음의 눈에서 나오는 광명으로부터 여인의 모습을 한 다라관음이 화현하였다고 한다.
- 8)삼제三際 :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전세, 현세, 내세.
- 9)의정依正 :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부처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을 의보,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을 정보라고 함.
- 10)가라迦羅 : 용왕. ⓢ Sāgara. 사갈라沙竭羅.
- 11)보타락가補陀落迦 : ⓢ potalaka. 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산. 광명光明ㆍ소수만장엄小樹蔓莊嚴ㆍ해도海島라 번역.
- 12)사주泗洲의 성승聖僧 : 708년 당나라 황제의 초청을 받은 범승 승가僧伽 대사가 사주泗州 보광왕사普光王寺에서 주로 머물며 포교 활동을 하였는데 어느 때는 몸을 크게도 나투고 어느 때는 작게도 나투고 또는 십일면 관세음보살의 얼굴로도 나투고 하여 그 기이한 행동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가 입적하자 중종이 탑을 짓고 ‘사주대성泗洲大聖’으로 추대하였는데, 그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하였다.
- 13)섬부陝部의 선녀仙女 : 섬부 지역의 음란한 풍속을 그치게 하려고 관음보살이 선녀로 나타나 금쇄골을 남겼다고 한다.
- 14)육진六塵 : 인간의 본성을 흐리게 하는 여섯 가지 경계. 곧, 육근이 작용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 15)팔풍八風 : 수행인의 마음을 흔들어 시끄럽게 하는 여덟 가지 종류의 경계를 바람에 비유한 표현.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ㆍ칭稱ㆍ기譏ㆍ고苦ㆍ낙樂을 말한다.
- 16)나찰羅刹 : ⓢ raksasa. 가외可畏, 속질귀涑疾鬼, 호자護者. 공중을 날아다니며 언제나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다고 함.
- 17)원통회圓通會 : 관음 법회. 『楞嚴經』에 나오는 25가지 수행법 중에 이근원통耳根圓通을 관음보살이 사용하였다고 하여, 관음보살을 원통교주圓通敎主라 칭한다.
- 18)선경禪經 : 선정禪定에 관한 경전.
- 19)화사化士 : 중생을 교화 인도하는 아미타불이나 석가여래 같은 성인.
- 20)백도伯道 : 진晉나라 등유鄧攸의 자. 등유가 하동태수일 때 석륵石勒의 난을 피하는 중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없게 되자 조카를 데리고 가고 자기 자식을 버렸다. 『世說新語』.
- 21)안회顏回 : 공자의 제자로 칭찬을 많이 받았으나 일찍 죽어 공자가 안타까워했다.
- 22)월화 장로月和長老 : 본 책의 「월화당 학계 서문」 참조.
- 23)자황䧳黃 : 시비나 선악에 대한 평가. 옛날 누런 종이에 글을 쓰고 잘못된 글이 있으면 노란색의 채료彩料 자황을 칠하여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썼으므로 전하여 자구字句의 첨삭添削이나 비평을 뜻한다.
- 24)욕천浴川 : 전라남도 곡성谷城의 옛 이름.
- 25)명찰(名藍) : 원문의 ‘藍’은 가람伽藍(사찰, ⓢ samghārāma)을 뜻한다.
- 26)노고魯誥(유교 경전)를 어려서~되어 토론하셨습니다 : 원문 ‘髫詮魯誥’와 ‘冠討竺墳’은 당나라 종밀宗密이 쓴 『圓覺經大疏』의 서문에 있는 “髫專魯誥。冠討竺墳。”을 활용한 것이다.
- 27)구용九容 : 아홉 가지 태도와 몸가짐.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擊蒙要訣』에 나오는 말이다. ① 발걸음을 진중하게 한다(足容重), ② 손동작을 공손하게 한다(手容恭), ③ 시선을 단정하게 한다(目容端), ④ 필요하지 않을 때는 입을 다문다(口容止), ⑤ 목소리를 조용히 한다(聲容靜), ⑥ 고개를 똑바로 한다(頭容直), ⑦ 기운을 엄숙하게 한다(氣容肅), ⑧ 바로 서서 점잖은 태도를 갖는다(立容德), ⑨ 안색을 바르게 한다(色容莊).
- 28)십과十科 : 수행 십과. ① 신심견고信心堅固, ② 조석예불朝夕禮佛, ③ 간경구법看經求法, ④ 염불선정念佛禪定, ⑤ 참회발원懺悔發願, ⑥ 보시이타布施利他, ⑦ 지계청정持戒淸淨, ⑧ 인욕수순忍辱隨順, ⑨ 용맹정진勇猛精進, ⑩ 전법도생傳法度生.
- 29)사심四心 : 문헌마다 다른데 『禪源諸詮集都序』의 경우 육단심肉團心ㆍ연려심緣慮心ㆍ집기심集起心ㆍ견실심堅實心이라 했고, 『淨土論』에서는 지혜심智慧心ㆍ방편심方便心ㆍ무장심無障心ㆍ승진심勝眞心이라 했다.
- 30)구준衢樽 : 성현의 도. 성인의 도는 길거리 복판에 술통을 놓아 둔 것과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적당히 자기 양대로 떠서 마시면 된다고 하였다. 『淮南子』.
- 31)푸줏간 문에서 질겅질겅 씹어 : 원문은 ‘大嚼屠門’. 본래는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배불리 먹는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 32)소리 들음을 돌이켜 들음(反聞聞性) : 이근원통耳根圓通의 수행법. 귀로 듣는 소리를 자각하는 수행법. 『楞嚴經』.
- 33)집중執中ㆍ시중時中 : 집중은 치우치지 않게 중용의 도리를 행함이요, 시중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처신함이다. 『中庸』.
- 34)염拈 : 요지를 제시함. 예로 선문염송禪門拈頌.
- 35)화광동진和光同塵 : 빛을 감추고 티끌과 같이 함.
- 36)응기접물應機接物 : 듣는 이의 수준과 역량에 맞게 진리를 해설함.
- 37)비파를 놓은(捨琴) 인연 : 미상.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이 비파를 놓고 말하였다는 구절이 『論語』 「先進」에 있으니, 자기 뜻을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뜻하는 듯하다.
- 38)흰 이(瓠犀) : 원문 ‘瓠犀’는 박의 씨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미인의 고르고 하얀 치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그저 ‘이’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이가 드러난다’는 것은 상대방이 편지를 보고 웃을 것임을 뜻한다.
- 39)훈지塤箎 : 서로 가락이 잘 맞는 두 개의 관악기로서 보통 형제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詩經』 「小雅」 ≺何人斯≻에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 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塤。仲氏吹篪。)”라고 하였다.
- 40)원화圓華 : 덕주德柱(1839~1893)의 호. 성은 정씨鄭氏, 전라남도 담양 출신.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중이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斗月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본 책의 「지리산 대화엄사 임제종 36세 적손 원화 대선사의 행장 초고」 참조.
- 41)근기에 맞추고 : 원문 ‘逗機’는 ‘투기投機’라고도 함. 설법 따위를 근기에 맞게 함.
- 42)부휴浮休 : 선수善修(1543~1615)의 호. 속성은 김씨. 지리산의 신명信明에게 출가하여 부용 영관芙蓉靈觀의 법을 이어받았다.
- 43)벽암碧嵓 : 각성覺性(1575~1660)의 호. 지리산 화엄사를 중창하였으며 승병을 이끌었다.
- 44)영해影海 : 약탄若坦(1668~1754)의 호. 자는 수눌守訥. 고흥 능가사楞伽寺에 출가하여 득우得牛와 수연秀演에게 경론經論을 배운 후 참선 수행함.
- 45)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 46)우담優曇 : 홍기洪基(1822~1880). 함명과 함께 조계산의 종장으로 꼽힘.
- 47)함명涵溟(1824~1902) : 호는 태선太先. 『緇門警訓私記』 1권이 현존한다.
- 48)복성福城의 아이 : 『華嚴經』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두루 다니다가 복성 동쪽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났다고 한다.
- 49)나찰의 말 : 보살 법당을 수호하는 나찰귀왕羅刹鬼王이 선재동자 위에 꽃을 뿌리자 선재동자가 어디서 선지식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고, 이에 나찰은 시방에 두루 예배하고(敬禮十方) 모든 경계를 바른 생각으로 사유하고(正念思惟一切境界), 용맹하고 자재하게 시방에 두루 노닐어(勇猛自在。遍遊十方。) 선지식을 구하고, 몸과 행위가 꿈같고 번개 같음을 앎으로써(知身知行。如夢如電。) 선지식에게 나아가라 하였다. 『華嚴經』 「入法界品」.
- 50)의례 : 원문의 ‘讓’은 오기인 듯함.
- 51)법당法幢 : 불법을 표시하는 깃발.
- 52)근본지根本智 :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함. 모든 분별이 끊어진 지혜.
- 53)만행화萬行華 : 모든 생명이 만 가지 자비를 행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공양하는 꽃.
- 54)해회海會 : 많은 불보살이 모인 자리.
- 55)감인계堪忍界 : ⓢ sahā-loka-dhātu. 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 세상. 사바세계娑婆世界와 같음.
- 56)팔해八垓 : 팔방의 극한.
- 57)뱀을 마신 것 : 원문 ‘飮蛇’. 뱀 그림자가 비친 술을 마셨다는 뜻으로, 공연히 오해하여 의심함을 말한다. 진晉나라 악광樂廣이 친구와 술을 마실 적에 그 친구가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오인하고는 병이 들었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병이 절로 나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권43 「樂廣列傳」.
- 58)여래의 삼전三傳한 곳 :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Sarnāth. 부처님이 5비구를 찾아 처음 법을 설하신 곳.
- 59)혜가惠可 : 혜가慧可(481~593). 남북조南北朝 시대 달마 대사의 제자. 선종의 2조.
- 60)침개針芥의 인연 : 개자투침봉芥子投針鋒의 준말. 바늘에 겨자씨를 던져 꿰듯 극히 만나기 어려운 일을 말함. 북본北本 『涅盤經』 권2.
- 61)청량淸凉의 ‘오지성인五地聖人으로~마음을 일으킴’이요 : 화엄종의 제4조인 청량 징관清涼澄觀이 당나라 승려로서 궁궐에서 역경 사업을 한 후에 오대산 화엄사에 들어가 오지성인으로서 세속의 마음을 일으켜 온갖 학문에 두루 통했다는 기록이 있다. 『佛祖歷代通載』 권14. 오지五地란 보살의 수행 단계인 십지 가운데 다섯 번째로서 ‘박지薄地’라고 한다. 이는 수다원에서 사다함행을 하는 것으로 욕계의 9종 번뇌를 일정 부분 끊어 냈기 때문이요, 보살에게는 아비발치지阿鞞跋致地를 뛰어넘었으나 아직 불도佛道를 성취하지 못한 것으로 온갖 번뇌는 끊어 내었으나 그 밖의 무의식으로 된 무명無明에 의한 불선업의 응어리가 남아 있고 무명도 얇게 남아 있는 단계이다. 아비발치는 ‘avivartika’의 음사. 불퇴不退ㆍ불퇴전不退轉이라 번역. 수행으로 도달한 경지에서 다시 범부의 상태로 후퇴하지 않음. 즉 다시 범부의 상태로 후퇴하지 않는 경지.
- 62)도안道安의 ‘풍속이~없다는 말’이 : 도안은 동진東晉 시대의 걸출한 불교학자. 풍속이 다른 타지의 말도 통했다는 기록은 명교 설숭明教契嵩의 「尊僧篇」에 나온다. 『緇門警訓』 권1.
- 63)점설漸說 : 차례대로 설명함.
- 64)구족九族 : 아홉 범주의 친족. 고조高祖, 증조, 조부, 부친父親, 자기, 아들, 손자, 증손, 현손玄孫.
- 65)육친六親 : 부모父母, 형제兄弟, 처자妻子.
- 66)삼도사생三途四生 : 삼도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사생은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 67)팔난구유八難九有 : 팔난은 불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가지 어려움을 뜻하는 말로 지옥ㆍ아귀ㆍ축생ㆍ장수천長壽天ㆍ변지邊地ㆍ맹롱음아盲聾音啞ㆍ세지변총世智辯聰ㆍ불전불후佛前佛後를 이른다. 구유는 구거九居라고도 하며 삼계의 유정중생이 사는 아홉 곳.
- 68)팔부천룡八部天龍 : 불법을 지키는 신장神將들. 곧 천天, 용龍, 야차夜叉(Yaksa), 건달바乾達婆(Gandharra), 아수라阿脩羅(Asura), 가루라迦樓羅(Garuda), 긴나라緊那羅(Kimnara), 마후라가摩喉羅伽(Mahoraga).
- 69)혜명慧命 : 불법의 명맥.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수행자.
- 70)백양산白羊山 : 전라남도 장성군과 전라북도 순창군에 걸쳐 있는 산. 일명 백암산白巖山.
- 71)구토九土 : 구주九州. 전국을 가리킴. 우禹가 홍수를 다스리고 나서 천하를 구주로 나누어 다스렸다.
- 72)육시六時 : 하루를 여섯 등분한 것. 신조晨朝(아침)ㆍ일중日中(한낮)ㆍ일몰日沒(해질녘)ㆍ초야初夜(초저녁)ㆍ중야中夜(한밤중)ㆍ후야後夜(한밤중에서 아침까지).
- 73)하나로 돌이켜 셋을 모음입니다 : 원문은 ‘歸一會三’. 『法華經』 28품 가운데 앞 14품의 요지를 드러낸 말. 세존께서 『法華經』을 설하기 이전에는 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는 뜻.
- 74)보토報土 : 애써서 수행한 결과로 얻은 불토.
- 75)용산龍山 : 용악龍岳 장로가 있는 산을 가리키는 듯함.
- 76)사대四大 : 물질의 구성 요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종류를 가리킴.
- 77)강동江東의 저녁~나무에 쓸쓸합니다 :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요, 강동의 저물녘 구름이로다. 어느 때 한 동이 술로, 거듭 더불어 세세히 글을 논할까.(渭北春天樹。江東日暮雲。何時一樽酒。重與細論文。)”라고 하였다. 위북은 두보가 머문 곳이요, 강동은 이백이 가는 곳이다.
- 78)사화四花 : 석가모니가 『法華經』을 설법할 때 서조瑞兆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백련화白蓮華ㆍ대백련화大白蓮華ㆍ홍련화紅蓮華ㆍ대홍련화大紅蓮華의 네 가지 꽃.
- 79)세 번 옮긴 : 어린 맹자孟子의 교육을 위해 모친이 세 번 집을 옮겼다.
- 80)벼루 동쪽과 등불 남쪽(硯東燈南)에서 : 등불을 켜고 편지를 쓰는 상황을 말하는 듯함.
- 81)연야演若 : 연야달다演若達多. 『楞嚴經』에서 부루나富樓那가 부처님께 망상의 원인에 대해 묻자, 실라성室羅城의 연야달다가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 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미쳐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원인이 없다고 하셨다.
- 82)물 양지와 산 북쪽(水陽山北) : 송광사의 위치를 말하는 듯함. 송광사는 보성강의 동남쪽 아래 조계산의 북쪽에 있다.
- 83)친구의 구슬 : 친구는 부처님을 뜻함. 부처님이 말씀하신 비유로,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친구 집에 찾아가서 대접을 받고 잠들었는데 친구가 보배 구슬을 옷 속에 매 놓고 말없이 떠났다고 함. 『法華經』 「五百弟子受記品」.
- 84)단술과 같지 않고 : 이익을 따지는 소인의 사귐이 아니라는 뜻. 『莊子』 「山木」에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 술과 같다.(君子之交淡若水。小人之交甘若醴。)”라고 하였다.
- 85)순주鶉咮 : 순월鶉月이 5월이므로 5월 초를 말함.
- 86)땅에 던지시니 쇳소리 남 : 원문은 ‘擲地金聲’. 훌륭한 시문을 뜻한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天台山賦≻를 짓고 벗 범영기范榮期에게 “이 글을 땅에 던져 보았더니 쇳소리가 나더라.”라고 하기에, 범영기가 읽어 보고는 과연 칭찬이 입에서 끊이지 않았다 한다. 『晉書』 권56 「孫綽傳」.
- 87)철주掣肘 : 남의 팔꿈치를 옆에서 끈다는 뜻으로, 남의 일에 참견하여 못하게 방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기서는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실력을 가리킴. 원문 ‘書慚掣肘’는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에 나옴.
- 88)황양월黃楊月 : 미상.
- 89)개사開士 : 불도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사부라는 뜻으로, ‘보살’ 또는 ‘고승’을 달리 이르는 말.
- 90)규복圭復 : 백규白圭를 삼복三復한다는 뜻으로, 가슴에 새기며 재차 반복해 읽는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抑≻에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尙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라고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자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해 주었다.(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하였다.
- 91)횡해黌海 : 학사學舍를 이름. 학문의 길이 바다같이 넓음을 비유하는 말.
- 92)돌이 말함에 거북이가 돌아보는 : 자신의 말이 거북이가 등진 비석에 새겨짐을 뜻함.
- 93)꽃부리를 씹고~따는 것 : 원문은 ‘嚼英采花’. 훌륭한 글을 가리킴. 당나라 한유韓愈의 「進學解」에 “향기 짙은 문장에 흠뻑 젖고 그 꽃술을 입에 머금고 씹어서 문장을 지으니 그 책이 집안에 가득하다.(沈浸醲郁。含英咀華。作爲文章。其書滿家。)”라는 표현이 나온다.
- 94)마니摩尼 : ⓢ maṇi의 음사. 주珠ㆍ보주寶珠라고 번역.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컬음.
- 95)오개五盖 : 다섯 가지 장애. ① 탐욕(lobha), ② 성냄(dosa), ③ 해태(thina)와 혼침(middha), ④ 들뜸(uddhacca)과 후회(kukucca), ⑤ 의심(vicikiccha).
- 96)수증修證 : 수행을 쌓아서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수인증과修因證果.
- 97)경도京島 : ‘경도莖島’를 가리키는 듯함.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 98)기를 모으고 : 원문은 ‘氣鍾’. 태어남을 가리킴.
- 99)경운擎雲(1852~1936) : 강백講伯ㆍ사경사寫經師. 속성은 김씨. 경상남도 웅천熊川에서 태어나 17세 때 출가하여, 구례군 연곡사鷰谷寺 환월幻月의 제자가 되었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대승강원大乘講院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뒤에는 직접 강의를 담당하여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순천의 환산정喚山亭을 매입하여 새로운 포교당을 설립하고 포교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 100)원화圓華(1839~1893) : 덕주德柱의 호. 자는 수미守微이며 전라남도 담양 출신이다.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중이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斗月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본 책의 「지리산 대화엄사 임제종 36세 적손 원화 대선사의 행장 초고」 참조.
- 101)청출어람이라 : 원문은 ‘茜絳藍靑’. ‘茜絳’도 ‘藍靑’, 즉 ‘靑出於藍’과 같은 뜻이다. 원문은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보인다.
- 102)수증修證 : 방편을 닦아 깨달음.
- 103)우연히 만났으니 : 원문은 ‘傾盖’. 수레를 멈추고 일산을 기울인다는 것인데, 길에서 잠깐 만남을 뜻한다. 『史記』 「魯仲連鄒陽列傳」에 “속어俗語에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귀어도 처음 사귄 듯하고, 수레를 멈추고 잠깐 만났어도 오래 사귄 듯하다.(白頭如新。傾蓋如故。)’고 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서로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 104)순수鶉首 : 순월鶉月이 5월이므로 5월 초를 말함.
- 105)강루降婁(9월) : 강루는 별 이름으로 규루奎婁라고도 함. 12지 가운데 술戌에 해당함.
- 106)비파를 놓은 :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이 비파를 놓고 말하였다는 구절이 『論語』 「先進」에 있으니, 자기 뜻을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뜻하는 듯하다.
- 107)발섭跋涉 :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먼 길을 돌아다니는 것을 말함.
- 108)갱장羹墻 : 어진 이를 사모한다는 뜻. 『後漢書』 「李固傳」에, “순舜이 요堯를 사모하여, 앉아 있을 적에는 요임금을 담장에서 뵙는 듯하고, 밥 먹을 적에는 요임금을 국에서 뵙는 듯했다.”라고 하였다.
- 109)주정周鼎이 크니~강호康瓠가 작으니 : 주정은 주나라 때 왕권을 상징하던 구정九鼎으로, 하나라 우왕禹王이 구주九州에서 금을 모아 만든 솥이다. 강호는 깨진 질그릇이다. 한나라 가의賈誼의 「弔屈原賦」에서 “주정은 버려 두고 강호를 보배로 여기네.(斡棄周鼎兮寶康瓠)”라고 하였다.
- 110)삼제三際 : 삼세三世, 즉 과거와 현재, 미래.
- 111)사대四大 : 물질의 구성 요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종류를 가리킴.
- 112)사대를 조화하여~역의 괘이고 : 지, 수, 화, 풍 가운데 화, 풍이 만나 정괘鼎卦를 만듦.
- 113)물 긷고 땔감 나르니 : 원문은 ‘運水搬柴’. ‘평범한 일상사’를 말함인데 수행이 일상사 외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할 때 자주 사용된다.
- 114)사구四句 : 사구백비四句百非를 가리키는 듯함. 유有(긍정), 무無(부정), 역유역무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전개해 나가는 것을 사구라고 하고, 이 사구를 몇 번이고 또 계속 부정해 나가는 것을 백비百非라고 한다.
- 115)부처와 조사를 삶으니 : 부처나 조사라는 이상적인 인격체가 고정되어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수행자의 선병禪病을 치료하기 위한 법문. 『祖堂集』 9.
- 116)삼선三禪 : 운문雲門 선사가 대중을 교화한 삼자선三字禪으로, 나를 돌아보는 ‘고顧’, 남을 비춰 보는 ‘감鑑’, 일체를 초월하여 자적自適하는 ‘이咦’를 말한다.
- 117)향해香海 :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향수 바다.
- 118)오명五明 : 명明은 학문을 뜻함. 고대 인도의 다섯 가지 학문. 성명聲明은 언어ㆍ문학ㆍ문법에 대한 학문, 인명因明은 논리학, 내명內明은 종교의 취지를 밝히는 학문, 의방명醫方明은 의술에 대한 학문, 공교명工巧明은 공예ㆍ기술에 대한 학문.
- 119)유순由旬 : ⓢ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실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약 8km로 간주함.
- 120)후위後魏 : 북위北魏. 386년부터 534년을 가리킨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선비족鮮卑族 탁발씨가 세운 북조 정권 가운데 하나.
- 121)탁발씨拓跋氏 13년(399) : 탁발씨는 북위의 태조 탁발규拓跋珪(재위 386~409)를 가리킴.
- 122)산막山幕 : 사냥꾼 또는 약초를 캐거나 숯을 굽는 사람이 쓰려고 산속에 임시로 간단히 지은 집.
- 123)우매산牛埋山 :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우미산인 듯함.
- 124)마복산馬伏山 : 고흥군 포두면에 있다.
- 125)동해상 구계朐界에~진나라 동문東門 : 『史記』 권6 「秦始皇本紀」에 “동해의 구계에 돌을 세워서 진나라 동문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구계는 구현朐縣의 경계이다. 구현은 강소성江蘇省 동해현東海縣의 남쪽에 있다. 진시황 35년에 동쪽을 순수하여 돌을 구현 경계 가운데 세워서 동쪽의 문으로 삼았던 것이다.
- 126)여기서 조금~유구琉球의 태자이고 : 유구 태자가 표류하다 능가사에 오게 되었는데 관음보살께 기도하여 7일 만에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 127)의희義熙 13년(417)~눌지왕 3년(419) : 두 연도 표기가 일치하지 않으니 착오가 있는 듯하다.
- 128)아도阿度(357~?) : 고구려 출신으로 16세 때 사신을 따라 아버지 아굴마阿掘摩가 있는 위나라로 넘어가 출가해 아도라는 도첩을 받고 현창玄暢에게 아도我道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후 19세 때 귀국해 어머니의 뜻을 따라 눌지왕(417~457)이 다스리는 신라로 넘어와 포교하였다.
- 129)신유년 당~정관貞觀 원년(627) : 정관 원년은 정해년이므로 착오가 있는 듯하다.
- 130)월지月支(月氏) : 서역에 있던 나라의 이름으로 원래 둔황 지역에 있었으나 한나라 때에 흉노에게 쫓겨나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부근에 정착하였다.
- 131)익실翼室 : 본채의 좌우 양쪽에 있는 방.
- 132)사겁四刼 : 세상이 성립했다가 소멸하고 다시 생성되는 성겁成劫ㆍ주겁住劫ㆍ괴겁壞劫ㆍ공겁空劫의 네 과정.
- 133)광서光緖 4년 경진(1880) : 광서 4년은 1878년인데 경진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 134)눈처럼 흰~새로 발랐다 : 수倕는 목수, 노猱는 미장이로 유명한 전설의 인물이다. 원문 “雪梯而倕材架嶮。霜塗而猱堊粘新。”은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만 ‘猱堊粘新’이 최치원의 글에는 ‘夔堊黏香’으로 되어 있다.
- 135)선부제鮮浮提 : 조선과 염부제閻浮提를 결합한 개념인 듯함. 염부제 또는 남섬부주南贍部洲는 ⓢ jambu-dvīpa의 음사. ‘jambu’는 나무 이름, ‘dvīpa’는 주洲로, 수미산 남쪽에 있다는 대륙. 여기에 잠부 나무가 많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함.
- 136)도사타兜斯陁 : 도솔타兜率陀. ⓢ Tuṣita. 상족上足ㆍ묘족妙足ㆍ선족善足ㆍ지족知足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수미산 꼭대기로부터 12만 유순 위에 있는 하늘. 욕계 6천 중에 제4천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천상의 정토.
- 137)제호醍醐 : 우유에 갈분葛粉을 타서 미음같이 쑨 죽. 최상급의 음식.
- 138)선불장選佛場 : 부처를 뽑는 장소라는 뜻으로 수행승이 좌선하는 곳.
- 139)굴窟 안팎의 결집(部藏) : 석가모니께서 입적한 후에 500여 명의 비구가 왕사성 칠엽굴七葉窟에 모여 경經과 율律을 결집한 것을 ‘굴내결집’이라 하고, 굴내결집에 참가하지 못한 비구들이 모여 따로 굴 밖에서 결집한 것을 ‘굴외결집’이라 함.
- 140)삼도三途 :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 141)권형權衡 : 권權은 저울추를, 형衡은 저울대를 말하며, 합쳐서 저울 또는 저울질을 의미함.
- 142)선불장選佛場 : 부처를 뽑는 장소라는 뜻. 수행승이 좌선하는 곳.
- 143)보리좌菩提座 : 깨달음의 자리.
- 144)보리좌를 옮기지~나아간 것 : 『華嚴經』 「如來名號品」에 “그때 세존께서 마갈제국의 고요한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광명전普光明殿의 연화장蓮華藏 사자좌師子座에 앉아 계셨다.(佛在摩竭提國寂滅道場。初始得佛。普光法堂。坐蓮華藏師子座上。)”라는 서술이 나온다. 『大正新脩大藏經』 9책.
- 145)도독고塗毒鼓 : 표면에 독을 발라 놓은 북인데 그 북소리를 듣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한다. 『涅槃經』에서 “나의 교법의 뜻은 도독고와 같아서 한 번 울리면 멀고 가까운 곳에서 듣는 이 모두가 죽느니라.”라고 하였다.
- 146)수라취修羅趣 : 아수라취阿修羅趣, 아수라도阿修羅道. 늘 싸움만을 일삼는 무리들의 세계로, 수미산 옆의 바다 밑에 있다고 한다.
- 147)진각眞覺 : 혜심慧諶(1178~1234)의 호.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송광사)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저서로는 『禪門拈頌集』 등이 있다.
- 148)청진淸眞 : 몽여夢如(?~1252)의 호. 수선사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 이규보李奎報와 교유.
- 149)16노추老錐 : 노추는 노고추老古錐의 준말. ‘노고’는 존경한다는 뜻이고 ‘추’는 송곳처럼 예민함을 뜻하여, 덕이 높고 선기禪機가 예민한 승려를 이르는 말.
- 150)부휴浮休 : 선수善修(1543~1615)의 호. 지리산의 신명信明에게 출가하여 부용 영관芙蓉靈觀의 법을 이어받았다.
- 151)벽암碧嵓 : 각성覺性(1575~1660)의 호. 선수善修의 제자. 지리산 화엄사를 중창하였으며 승병을 이끌었다.
- 152)종유宗猷 : 종문宗門에서 걸출한 자, 또는 그 도를 추존推尊함을 가리킴.
- 153)법려法侶 : 불법을 함께 배우는 벗.
- 154)백암栢庵 : 성총性聰(1631~1700)의 호. 13세 때 출가하여 지리산 수초守初 밑에서 불경을 배웠고 많은 불서를 간행하였다.
- 155)무용無用 : 수연秀演(1651~1719)의 호. 19세 때 조계산 송광사로 출가하여 혜관惠寬의 제자가 되었고, 혜공慧空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선암사仙巖寺의 침굉枕肱을 찾아가서 선의 진수를 물어 대오大悟하였다. 조계산 은적암隱寂庵의 백암을 찾아가서 다시 깨달음을 인정받았다. 1692년에는 선암사에서 화엄회華嚴會를 열었으며, 1700년 7월에는 백암의 뒤를 이어 조실祖室이 되었다.
- 156)침명枕溟 : 한성翰醒(1801~1876)의 호. 16세 때 팔영산八影山 선계암仙界庵으로 가서 권민權敏을 은사로 하여 삭발하였다. 춘파春坡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긍선亘璇에게 선과 참법懺法을 배운 다음 혁원奕謜의 법을 이었다.
- 157)우담優曇 : 홍기洪基(1832~1881)의 호. 초명은 우행禹幸, 성은 권權이다. 『禪門證正錄』을 지어 긍선亘璇(1767~1852)의 『禪文手鏡』을 논박했다.
- 158)영해影海 : 약탄若坦(1668~1754)의 호. 자는 수눌守訥. 고흥 능가사楞伽寺에 출가하여 득우得牛와 수연秀演에게 경론經論을 배운 후 참선 수행함.
- 159)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 160)응암應庵 : 낭윤朗允(1718~1794)의 호. 본문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 참조.
- 161)칠중七衆 :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일곱 부류의 사람.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예비 비구니)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가리킨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 162)항룡발降龍鉢 : 용을 항복시킨 발우. 육조대사 당시 못에 물을 마구 휘젓고 다니며 바람을 일으키는 용이 있어서, 육조대사께서 “너 이놈, 몸을 키우고 재주를 부릴 줄은 알지만 몸을 작게 나툴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법문을 하자 그 용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몸을 작게 해서 육조대사 앞에 나타났다. 이때 육조대사께서 발우로 딱 덮어서 용의 항복을 받은 일이 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163)팔굉八紘 : 팔방. 온 세상.
- 164)해호공解虎笻 : 범 싸움을 말린 석장. 제齊나라 승려 혜조慧稠가 회주懷州 왕옥산王屋山에 있다가 두 마리 범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석장으로 말렸다고 하며, 또 수隋나라 때 담순曇詢이란 승려가 산길을 가다가 두 마리 범이 여러 날 동안 싸우는 것을 보고, 석장을 들어 두 마리를 갈라 놓았다고 한다. 영가 현각永嘉玄覺의 「證道歌」에 “용을 항복시킨 발우요, 범 싸움을 풀어 놓은 석장(降龍鉢而解虎錫)”이라 하였다.
- 165)오고 감이~실을 정도입니다 : 원문 “無去來之說。競抱斗量。散花談經。不生滅之言。動論車載。”은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서 “無去無來之說。競抱斗量。不生不滅之談。動論車載。”를 활용한 것이다.
- 166)연하煙霞 : 안개와 노을. 고요한 산수 경치.
- 167)보탑寶塔 : 불구류에 속하는 공예 소탑들의 총칭.
- 168)현기懸記 : 부처가 미래 일에 대하여 미리 말하여 둔 일.
- 169)불일佛日 : 지눌知訥의 시호가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다.
- 170)패엽貝葉 : 패다라엽貝多羅葉. ⓢ pattra. 인도에서 여기에 경문經文을 썼기에 경전을 뜻하게 됨.
- 171)흙덩이를 바쳐~덕승德勝 아이의 : 『阿育王傳』에 실려 있는 아소카 대왕의 전생담이다. 아소카 대왕이 과거 생에 덕승德勝이라는 동자였는데 무승無勝이라는 동자와 함께 길에서 흙 장난을 하고 있었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가 길을 지나갔는데 덕승은 부모가 보시하는 모습을 흉내 내어 석가모니 부처의 발우에 흙을 공양하면서 자신이 미래세에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공양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발원하였다. 이에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이 열반한 지 백 년 뒤에 이 아이가 전륜성왕이 되어 자신의 사리를 나누어 8만 4천 개의 보탑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수기하였다. 결국 이 아이는 다음 생에 아소카 대왕으로 태어나 인도를 통일하고 불법을 수호하게 되었다.
- 172)수달다須達多 : ⓢ sudatta. 사위성舍衛城의 부호이자 파사닉왕波斯匿王의 신하.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구입한 동산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석가모니에게 바침.
- 173)옥호玉毫 : 부처의 미간에 있는 흰 털.
- 174)네게서 나온~네게로 돌아온다 : 원문은 ‘出爾反爾’. 이 문장은 공자가 아니라 제자 증자曾子의 말로 『孟子』 「梁惠王」에 “出乎爾者。反乎爾者也。”라고 하였다.
- 175)청부아안靑鈇鵝眼 : 동전을 말함. 청부는 남방의 매미 비슷한 수충水虫이다. 그 새끼만 잡아 오면 어미가 저절로 날아오므로, 그것을 이용하여 한쪽 동전에는 어미의 피를, 다른 쪽 동전에는 새끼의 피를 발라서, 새끼의 피를 바른 동전은 가지고 있고 어미의 피를 바른 동전으로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면 그 돈이 저절로 돌아온다고 한다. 『淮南子』 「萬畢術」에 나온다. 아안은 남북조南北朝 시대 송宋나라 폐제廢帝 이후에 주조된 구멍이 뚫린 엽전이다. 매우 얇고 작아서 1천 전錢의 길이가 3촌寸이 채 안 되었고, 매우 가벼워서 물에 가라앉지 않았으며,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정도로 조잡하였다고 한다. 후대에 악전惡錢의 대명사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엽전의 의미로 쓰였다.
- 176)허리에 찬~탄 선비의 : 이루기 힘든 환상을 말함. 어떤 이는 재물을 많이 갖고 싶다고 하고, 어떤 이는 양주 자사揚州刺使가 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이는 학을 타고서 노닐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때 한 사람이 나서서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淵鑑類函』 ≺鳥3 鶴3≻.
- 177)용화삼회龍華三會 : 미래불인 미륵이 용화수 아래 3회의 설법으로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법회.
- 178)요명堯蓂 : 요堯임금이 명엽蓂葉이라는 풀을 보고 달력을 만든 데서 나온 말인데 여기서는 임금의 수명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 달 주기로 1일부터 15일까지 한 잎씩 피어나다가 15일 이후부터 한 잎씩 지기 시작해 30일이 되면 다 떨어졌으므로 요임금이 그것을 보고 월력을 만들었다. 『竹書紀年』.
- 179)사민四民 : 사농공상. 곧 선비, 농부, 장인, 상인 등 모든 백성.
- 180)순금舜琴 : 순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성냄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이 풍부하리로다.(南風之薰兮。可以解吾民之慍兮。南風之時兮。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禮記』 「樂記」.
- 181)성산각星山閣 : 사찰에서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이었던 칠성, 산신, 독성獨聖을 봉안한 곳.
- 182)권형權衡 : 저울.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임시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행위 규범인 ‘권도權道’의 의미로 사용된 듯함.
- 183)와룡卧龍이 병진兵陣에서 복을 기도했으니 : 제갈공명이 남병산南屛山에 칠성단을 설치하고 동남풍이 불기를 기도하여 적벽대전에서 성공하였다. 소설 『三國志演義』 49회 「七星壇諸葛祭風三江口周瑜縱火」에 나옴.
- 184)우리 태조께서~계봉鷄峰에 우뚝합니다 : 이성계가 함경도 안변에 있을 때 꿈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나오다가 거울 깨지는 소리에 꿈을 깨었다. 이 꿈을 설봉산 승려가 왕이 될 징조라고 해석해 주자 사찰을 세우고 ‘석왕사’라고 하였다. 계봉은 송악산 뒤쪽에 있는데, 계봉 너머에 태조의 조부 작제건作帝建의 옛 집터가 있다.
- 185)담당湛堂 : 성징聖澄의 자. 호는 월계越溪이며 송광사 16국사 중 제9번째 국사이다. 행적은 전하지 않으며, 그에 얽힌 설화가 『松廣寺誌』에 전한다. 원래 금나라의 태자였는데 고려에 와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 186)물화物華 : 산과 물 따위의 자연계에서의 아름다운 현상.
- 187)사자師資 : 스승으로 삼고 의지함. 또는 스승과 제자.
- 188)주천성군周天星君과 열악산령列嶽山靈 : 온 하늘의 별들과 여러 산의 신령들.
- 189)공명孔明의 감응(蒙熏) :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화공을 위해 남동풍이 불도록 하늘에 기도하니 한겨울에 남동풍이 불었다고 한다.
- 190)원우상元禹常(1839~?) : 1871년에 영일현감迎日縣監을 지냈으며, 1881년에는 선기장善騎將에 올랐다. 그 후 경상좌도병마절도사(1882), 평안도병마절도사(1885) 등 외직으로 있다가 1888년에 경직인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듬해 별군직別軍職을 맡았다. 1890년에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거쳐서 1896년 중추원 1등의관 칙임관 2등과 함경북도 관찰사 칙임관 3등, 1897년 중추원 1등의관 칙임관 2등을 역임하였다. 1898년에 정2품이 되었다. 이에 대한 의법 처리로 지도군智島郡 고군산古群山에 귀양 3년에 처해졌으나 곧 특별 석방되었다. 1904년에는 육군참령陸軍參領에서 참장參將으로 승진하여 경무사 칙임관 2등, 유행병예방위원장流行病豫防委員長, 헌병사령관, 중추원의관 칙임관 2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이 되었다.
- 191)편작扁鵲 : 전국戰國시대의 의술인. 거의 죽을 뻔한 괵국虢國 태자를 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 192)진주가 돌아온다는~합포合浦의 백성에게만 : 후한後漢 때 합포에서 진주가 생산되었는데, 탐관오리가 조개를 무리하게 채취하게 하니 진주가 나오지 않다가, 맹상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정사를 행하자, 다시 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後漢書』 「孟嘗傳」.
- 193)범이 건너갔다는 : 후한 때 유곤劉昆이 홍농弘農의 태수가 되었다. 이전에 홍농에선 호환虎患이 많았는데 유곤이 선정을 베풀자 호랑이가 새끼를 업고 황하를 건너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한다.
- 194)예상翳桑의 보답 : 예상은 지명인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을 뜻한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영첩靈輒이 이곳에서 굶주려 쓰러져 있는데 조돈趙盾이 지나다 보고 먹을 것을 주어 구제해 주었다. 그 뒤에 영첩이 진나라 영공靈公의 갑사甲士가 되어, 위험에 처한 조돈을 구제해 주었다. 『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
- 195)이면상李冕相(1846~?) :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규聖圭. 이종영李種永의 아들로 종정경 이승수李升洙에게 입양되어 완원군完原君 이유명李惟命의 손자가 되었다. 1892년 전라도 암행어사가 되어,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수령구임법守令久任法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계방촌契防村을 혁파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 196)삼초三草 : 『法華經』 「藥草喩品」에 있는 비유로서 소초小草는 인승人乘과 천승天乘, 중초中草는 성문과 연각, 상초上草는 장교藏敎(소승교)의 보살을 비유함.
- 197)상대霜臺 : 어사대御史臺. 사헌부의 별칭. 여기서는 수의어사를 가리킴.
- 198)선보仙譜 : 신선의 계보. 여기서는 왕족 계보를 가리킴.
- 199)북궐北闕(대궐)의 근심을 나누어 : 지방 관리가 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전라도 수의어사가 됨을 가리킴.
- 200)인을 갑옷으로 의를 투구로 : 원문 ‘甲仁胄義’는 최치원의 「無染和尙碑銘」에 나온다.
- 201)육도六度의 으뜸이요 : 육도는 육바라밀六波羅蜜. 그 첫째는 보시이다.
- 202)삼귀三歸 : 삼귀의三歸依. 불법승에 귀의함.
- 203)이안移安 :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
- 204)귀부龜趺 :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 205)해당 기문記文 : 뒤에 있는 「조계산 불일보조국사의 감로탑을 개축하는 기문」을 가리킴.
- 206)세제世諦 : 세간의 이치를 기준으로 할 때 타당한 진리.
- 207)영호映湖 : 정호鼎鎬(1870~1948)의 호. 성은 박씨朴氏, 자는 한영漢永, 또 다른 호는 석전石顚. 19세 때 전주 태조암太祖庵으로 출가하여 금산錦山의 제자가 되었고, 21세 때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환응幻應에게 4교敎를 배우고, 선암사仙巖寺의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배운 뒤, 구암사龜巖寺에서 처명處明의 법을 이어받았다. 금봉錦峯ㆍ진응震應과 함께 근대 불교사의 3대 강백講伯으로 추앙받았으며, 경사자집經史子集과 노장학설을 두루 섭렵하고 서법書法까지도 겸통한 고승으로 평가받았다.
- 208)삼양三陽이 엎드리고 육음六陰이 승한데 : 곤괘坤卦에 해당하는 10월을 가리킴.
- 209)은우恩憂 : 은사恩師의 상喪을 가리키는 듯함.
- 210)약(刀圭) : 도규刀圭는 칼처럼 생긴 약 숟가락인데 대개 의약이나 의술을 가리킨다.
- 211)고개 위~강가의 나무를 :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시 ≺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요, 강동의 저물녘 구름이로다. 어느 때 한 동이 술로, 거듭 더불어 세세히 글을 논할까.(渭北春天樹。江東日暮雲。何時一樽酒。重與細論文。)”라고 하였다.
- 212)시편(瓊琚) : 원문 ‘瓊琚’는 보배로운 구슬로 상대방의 시문에 대한 미칭美稱이다. 『詩經』 「衛風」 〈木瓜〉에 “나에게 목과를 주거늘 경거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報之以瓊琚。)”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 213)여러 번 반복하여(圭復) : 『詩經』 「大雅」 〈抑〉의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거니와,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尙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라고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로, 상대방의 시문을 정성스럽게 읽는 것을 말한다. 『論語』 「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거늘,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해 주었다.(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하였다.
- 214)은과 쇠의 사슬 : 글씨가 뛰어남을 가리킴. 원문 ‘銀銕之索’은 ‘銀鉤鐵索’의 변용.
- 215)등불의 남쪽이요 벼루의 북쪽에서 : 저녁 때 글을 짓는 상황을 말함.
- 216)연참鉛槧 : 연필과 종이. 연鉛은 연분필을, 참槧은 목판을 말한다. 『西京雜記』에, “양자운揚子雲이 항상 연필을 품고 목판을 들고 다녔다.”라고 하였다.
- 217)효빈效嚬 : 자기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남의 흉내를 내는 것.
- 218)할머니 적삼을~절하는 것이라 : 원문 ‘借婆衫拜婆年’은 『金剛經註解』의 ‘借婆衫子拜婆年’을 차용한 것으로, 상대방에게 맞게 답변함을 말한다. 『卍新續藏』 24책 785면.
- 219)불모佛母 : 제불諸佛을 낳는 어머니라는 뜻인데, 불화나 불상을 조성한 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 220)준제 오도準提吳道 : 오도는 탱화를 잘 그린 당나라 화자 오도자吳道子. ‘준제’는 ⓢ Cundi의 음역으로, 준제準提ㆍ준제准提ㆍ준지准胝ㆍ준니准尼로 표기되는데,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불화를 조성한’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221)만월滿月의 진용眞容 : 지장보살을 가리킴. 「地藏請」에 “仰唯。地藏大聖者。滿月眞容。澄江淨眼。”이라 하였다.
- 222)기로소耆老所 원당願堂 : 기로소는 나이 많은 임금이나 정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문신들이 일흔이 넘으면 들어갈 수 있는 조선 시대 최고위층들의 친목 기구였다. 조선 시대에 기로소에 입소한 왕은 태조와 숙종, 영조, 고종 네 명에 불과했다. 기로소 원당은 사찰을 단순히 왕실 원당으로 지정한 것만이 아니었다. 조정에서 돈과 물자를 내려 유교식 사당 형태의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왕의 어첩과 전패를 모셨으며, 기로소의 대표가 직접 공문을 내려 가장 지체가 높은 승려를 원장과 판사로 각각 임명하고, 원장과 판사가 직접 왕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안녕을 발원할 것을 지시했다. 기로소 원당은 왕을 상징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사찰 경내는 물론 금표 안의 산림에조차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기로소 원당이 설치된 것은 영조와 고종대 두 차례로, 1744년 영조가 기로소에 든 것을 기념해 의성 고운사에 연수전이 설치된 것이 최초이며, 1902년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해 순천 송광사에 성수전이 설치된 것이 두 번째이다. 탁효정, 「고운사」, 『불교신문』, 2013.08.20 참조.
- 223)상언上言 : 조선 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문서 양식.
- 224)기로소 존엄尊嚴 : 1902년 51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들어간 고종을 가리킨다.
- 225)까마귀의 정성과 견마犬馬의 정성 : 임금이나 나라에 바치는 충성을 표현하는 말.
- 226)혜린惠璘 :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 말에 혜린 선사가 사찰을 지어 길상사吉祥寺라 하였는데 건물은 겨우 1백여 칸이었으며 승려 수는 30~40명 정도였다고 한다.
- 227)진휼賑恤 : 곤경에 처한 백성을 도와줌.
- 228)삼조三朝 : 하루에 세 번 뵘. 주周 문왕文王이 세자로 있을 적에, 왕계王季에게 하루에 세 차례씩 문안을 올렸다고 함.
- 229)구작九爵 : 구작례九爵禮. 정조正朝ㆍ동지冬至ㆍ탄일誕日 등이나 왕실의 행사에서 조하朝賀할 사안이 있을 경우 하례賀禮하는 잔치를 베푸는데, 이때 임금ㆍ세자ㆍ중궁 등에게 술잔을 아홉 번 올리는 예.
- 230)비제批題 : 임금의 비답批答 기록.
- 231)팔상성도八相成道 :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 강도솔상降兜率相, 탁태상託胎相, 출태상出胎相, 출가상出家相, 항마상降魔相, 성도상成道相, 전법륜상轉法輪相, 열반상涅槃相.
- 232)청문請文 : 여러 부처ㆍ보살ㆍ성중聖衆ㆍ혼령 등을 청하여 공양하는 법식.
- 233)유치由致 : 부처나 보살을 청할 때 그 까닭을 먼저 말하는 일.
- 234)작법作法 : 불교 의례.
- 235)도솔타천兜率陀天 : 도솔천兜率天. ⓢ Tusita-deva. 욕계 6천의 넷째 하늘에 해당한다. 도사다覩史多ㆍ도솔타兜率陀ㆍ도술兜術이라고도 쓰며, 수미산 꼭대기로부터 12만 유순 위에 있는 하늘이라고 한다. 여기에 내원內院ㆍ외원外院이 있으니, 외원은 일반 천중天衆의 욕락처欲樂處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를 말한다. 사바세계에 나는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이 하늘에 계시다가 성불한다고 한다.
- 236)가비라국迦毘羅國 : ⓢ Kapila. 카필라. 중인도에 있던 마가다Magadha국의 비호를 받던 코살라Kosala국의 보호령이었다.
- 237)일체의성一切義成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붓다의 출가 전 이름인 싯다르타(ⓢ siddhārtha)를 번역한 말.
- 238)금단천자金團天子 : 호명보살이 도솔천에서 일체 중생을 교화하려는 생각을 내고는 금단천자에게 분부하여 태어날 만한 곳을 고르라 하였다. 『本行經』.
- 239)백정반왕白淨飯王 : ⓢ Suddhodana. 백정왕白淨王, 수두단輸頭檀, 수도타나首圖駝那, 설두屑頭라고도 함.
- 240)대술大術 : 석가모니의 모친 마야부인摩耶夫人(마하마야摩訶摩耶). 대환大幻ㆍ대술大術ㆍ대지모大智母ㆍ천후天后라고 번역한다.
- 241)금륜왕金輪王 : 사천하四天下를 다스리는 사륜왕四輪王 가운데 하나. 금륜왕은 수미須彌 사주四洲인 네 천하, 곧 동녘의 불바제弗婆提, 서녘의 구타니瞿陁尼, 남녘의 염부제閻浮提, 북녘의 울단월鬱單越을 다 다스렸음. 전륜왕轉輪王 가운데에서 가장 수승한 윤왕輪王.
- 242)욕락欲樂 : 색ㆍ성ㆍ향ㆍ미ㆍ촉 오욕의 즐거움. 일체 번뇌의 근원. 『本行經』에 “태자가 궁에 있을 때 오욕이 충분했고 즐거움이 자재하며 10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 243)최후 수승한 몸 : 현재 생에 그치고 다시 후유後有를 받지 않으므로 일컫는 말이다.
- 244)보리수 도량 : 마가다국摩竭陀國 니련하泥蓮河 서남쪽 10리에 보리수가 있다고 『西城記』에 나옴.
- 245)금강보좌金剛寶座 : 보리수나무 아래를 말함. 굳은 도리에 일정하게 드는 삼매의 자리이기에 그렇게 부름.
- 246)마군魔軍이 자비로운~모습으로 바뀌었다 : 부처님께서 보리수 밑에 계실 때 악마 파순波旬이 딸들을 보내 부처님을 유혹하려 했으나, 딸들이 추하고 파리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정심定心에 든 마음 앞에 감화되어 꽃을 바쳐 용서를 구하였고, 이후 파순은 80억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부처님의 도를 부수려고 위협하였으나 실패했다.
- 247)도리천忉利天 제석帝釋 : 도리천은 33천이라고도 한다. 욕계 6천의 제2천에 해당한다.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있는 선견천善見天이라는 궁전에 제석천帝釋天이 머무르면서 사방 32성의 신神들을 지배한다.
- 248)계왕界王 : 대범천왕大梵天王. 색계 초선천의 제3천인 대범천에 있으며 사바세계를 다스린다는 왕.
- 249)18범梵 : 초선의 3천天(범중梵衆, 범보梵輔, 대범大梵), 2선의 3천(소광少光, 무량광無量光, 광음光音), 3선의 3천(소정少淨, 무량정無量淨, 편정遍淨), 4선의 9천(소엄식小嚴飾, 무량엄식無量嚴飾, 엄식과실嚴飾果實, 무상無想, 무조無造, 무열無熱天, 선견善見, 대선견大善見天, 아가니타阿迦尼吒)을 말함.
- 250)이마를 땅에~예를 갖추어(頭面作禮) : 두면예족頭面禮足ㆍ접족정례接足頂禮ㆍ접족작례接足作禮라고도 함. 상대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두 손을 내밀어 손바닥 절반으로 상대편의 발을 받들어 자기 머리에 대는 동작.
- 251)녹야원鹿野苑(鹿林園) : 석가가 불도를 닦아 처음 설법한 곳.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동산. 중부 인도 파라나국派羅奈國 북쪽 성 밖에 있던 동산.
- 252)5인 : 최초로 석가에게 귀의한 다섯 명의 비구. 콘단냐(ājñāta-kauṇḍinya; 倧蓮如; 阿若憍陳如)ㆍ아사지Assaji(阿說示)ㆍ마하나마Mahanama(摩訶男)ㆍ밧디야Bhaddhiya(婆提)ㆍ바파Vappa(婆頗).
- 253)사덕四德 : 열반의 과果, 즉 상常, 락樂, 아我, 정淨.
- 254)삼이三伊 : 열반의 체體, 즉 반야, 해탈, 법신. 범어의 이伊는 점. 위의 한 점은 법신, 아래 왼쪽 점은 반야, 오른쪽 점은 해탈을 가리킨다.
- 255)유위법有爲法 : 세제법世諦法.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 256)학림鶴林 : 석가모니가 입멸한 쿠시나가라kuśinagara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숲을 말함. 석가모니가 입멸할 때, 그 숲이 학과 같이 희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함.
- 257)일진一眞 : 우주 만유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평등 무차별한 절대의 진리.
- 258)청정한 법계의~성품을 회복하셨다 : 이 부분은 당나라 왕발王勃의 「釋迦如來成道記」를 초략한 것이다.
- 259)우두향(牛首香) : 마라야摩羅耶산에서 나는 전단향의 이름. 그 향을 몸에 바르면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40권본 『華嚴經』 14권.
- 260)삼청三請 : 범패의 곡명.
- 261)나무(南無) : ⓢ Namasa를 음사音寫한 말로 귀명歸命이라 번역한다. 귀명이란 글자 그대로 신명身命을 던져 돌아가 의지함을 뜻한다.
- 262)마가다국(摩竭提國) : ⓢ magadha, 마갈타국摩竭陀國. 지금의 비하르Bihar의 남쪽 지역에 있던 고대 국가로, 도읍지는 왕사성王舍城.
- 263)본사本師 : 근본 스승.
- 264)룸비니Lumbini(藍毘尼) : 중인도 가비라성의 동쪽에 있던 꽃동산.
- 265)기악妓樂 : 기생의 풍류. 여기서는 그저 ‘음악’이라는 뜻으로 사용함.
- 266)갑인년 사월 초파일에 : 석가탄신일은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갑인년은 『周書異記』를 인용한 당나라 법림法琳의 『辯正論』 등에 따른 것이다.
- 267)사문沙門의 모습이~현신現神함을 만나니 : 석가모니가 성을 나오자 수행자로 변한 정거천인淨居天人이 오른손엔 석장을 짚고 왼손엔 발우를 들고 나타났다.
- 268)사산四山 : 생로병사 네 가지의 고통을 산에 비유한 표현.
- 269)불타佛陀 : 부처. 붓다(buddha)의 음역.
- 270)조병천자澡甁天子가 깨닫게~얼굴을 드러내고 : 석가모니의 출가를 막으려고 부왕이 기악을 늘려서 즐겁게 하려고 하자 매일 밤 정거천인淨居天人 조병澡甁이 와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기녀들이 잘 때에 의상을 흩어서 부정하게 하여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증가시켰다.
- 271)정거천인淨居天人 :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성자들이 태어나는 천상인 정거천淨居天의 사람. 『佛本行集經』에서는 태자가 건척을 타고 궁문을 향해 나가자 야차들이 허공 가운데 각각 손으로 말의 네 발을 받들고 조용히 걸어 궁 안 어떤 이들도 말굽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本行經』.
- 272)찬다카(車匿) : ⓢ Chandaka. 천탁가闡鐸迦라고도 음역. 실달 태자가 성을 넘어서 고행의 첫 길을 떠날 때에 백마 건척揵陟을 끌던 마부의 이름.
- 273)건척揵陟 : ⓢ kanthaka. 건덕犍德, 간척干陟, 건특骞特, 가차가迦磋迦라고도 함.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탄 말의 이름.
- 274)팔부八部 : 여덟 종의 신장神將. 천天, 용龍, 야차夜叉, 가루라迦樓羅(금시조金翅鳥), 아수라阿修羅, 마후라가摩睺羅迦(음악의 신), 긴나라緊那羅(가무의 신), 건달바乾闥婆(식향食香).
- 275)팔난八難 : 여덟 가지의 재난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그저 ‘여러 곤란함’을 뜻한다.
- 276)칼을 휘둘러~천궁에서 일어나고 : 석가모니께서 삭발하니 제석帝釋이 머리카락을 받아 도리천에 가서 탑을 세워 기념하였다.
- 277)용굴 : 용왕 가다迦茶는 오랜 시절을 살아 구루손불拘樓孫佛과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과 가섭불迦葉佛의 성도를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석가모니의 성도한 모습을 보고 권속과 함께 향기로운 꽃과 풍악과 깃발과 가리개를 들고 공양을 드렸다. 여기서는 아직 석가모니의 깨달음이 완전하지 않다는 맥락으로 바꾸어 기술하고 있다.
- 278)연하連河 : ⓢ nerañjarā. 니련하尼連河. 고행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달은 석가모니는 니련하에 가서 몸을 씻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갖가지 화향花香이 뿌려졌다.
- 279)정려靜慮 : ⓢ dhyāna. 선나禪那, 정定.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은 상태.
- 280)죽을 받아 드시고 : 우유 짜는 여인 난타바라難陀波羅(Nandabala)는 죽을 쑤어 수신樹神에게 제사 지내려던 참에 정거천자가 허공에서 하는 말을 듣고 니련수尼連水 물가로 가서 죽을 바쳤다.
- 281)총목방叢木房 : 설산에 있는 진귀조사眞歸祖師의 거처. 부처님은 출가한 후 6년간의 수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런데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이 궁극적 경지가 아님을 자각하고 수십 개월 동안 진귀조사를 찾아 유행을 했다고 한다. 진귀조사설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독특한 설이다. 이것은 선불교를 중국에 전한 달마가 2조 혜가에게 전했다는 게송에서 기인한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진귀조사가 설산에 있으면서 석가가 오기를 총목방에서 기다렸네. 임오년에 조사의 심인心印을 전하니, 동시에 마음으로 조사의 종지를 얻었다네.” 이 게송은 『禪門寶藏錄』에서 『達摩密錄』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전하고 있는 내용인데, 이 책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다. 이일야, 「사굴산문-진귀조사설의 속내」, 『불교신문』, 2014.10.6 참조.
- 282)파순波旬 : 욕계 제6천의 임금인 마왕의 이름.
- 283)10종의 마궁魔宮이 홀연 무너지도다 : 외도의 무리인 도제수나闍提首那 등 십선十仙, 즉 10명의 바라문婆羅門 무리가 열반회상에서 각자 주장을 펼치며 여래께 힐난하자 여래가 하나하나 논파하셨다고 『涅槃經』 「憍陳如品」에 나온다.
- 284)십신十身 : 『華嚴經』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갖춘 열 가지 몸. 보리신菩提身, 원신願身, 화신化身, 주지신住持身, 상호장엄신相好莊嚴身, 세력신勢力身, 여의신如意身, 복덕신福德身, 지신智身, 법신法身.
- 285)방등경方等經 : 방등시에 설해진 경전들. 부처님께서 경전을 설하시던 시기별로 나눌 때 다섯 시기가 있는데, 첫 번째는 화엄시(성도후 3.7일), 두 번째 아함시(12년), 세 번째 방등시(8년), 네 번째 반야시(21년), 다섯 번째 법화열반시(8년)이다. 초기의 설법이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인 줄 모르고, 소승의 낮은 깨달음을 부처님의 깊은 깨달음과 동일시하여 여기에 만족하고 머물려고 하는 자들에게 소승은 방편일 뿐이고 부처님의 본 뜻은 대승에 있다고 가르쳐 이들의 잘못된 견해를 타파하는 시기가 방등시에 해당된다. 여기에는 『維摩經』, 『勝鬘經』, 『楞伽經』, 『思益經』, 『楞嚴三昧經』, 『金光明經』 등이 포함된다.
- 286)반야경般若經 : 최초로 대승大乘을 선언한 경전. 반야경은 계통을 달리하는 10종 이상의 경전 군群을 형성했는데, 각 계통은 적어도 600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증광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 287)유루有漏 : ⓢ sâsrava. 번뇌가 있음을 뜻하는 말.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에 상대되는 말이다. 여기서 누漏는 누설漏泄이란 말로 번뇌를 의미한다.
- 288)구시라성拘尸羅城(Kusinagar) : 북부 인도의 성. 지금의 쿠시나가르 성.
- 289)사라수沙羅樹 : ⓢ sala. ‘단단한 나무’라는 뜻이다.
- 290)7일 동안~법칙을 기다리고 : 쿠시나가라 성의 백성들이 부처님의 관을 자기들 성에 안치한 공덕으로 자신들만 복을 받으려고 하자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부처님은 스스로 관을 허공으로 떠올려 성안으로 날아가 쿠시나가라 성 곳곳을 돌았다. 성안의 백성들은 온갖 향, 꽃, 영락을 갖고 다비하는 장소로 가서 비애에 젖은 목소리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다. 수많은 천인들 역시 향과 꽃을 공양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의 관이 허공을 타고 다비하는 장소로 날아와 천천히 평상 위로 내려왔다.
- 291)두 발의 뒤꿈치(玉趺)를 보이시어 : 마가다국에서 포교하던 제자 마하가섭은 오백 제자와 함께 쿠시나가라로 오던 도중에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들었다. 부처님의 관에 이르러 가섭은 스승의 열반과 임종을 보지 못한 서러움에 대성통곡을 했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천이통으로 가섭이 온 것을 알고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밀었다. 고대 인도에는 스승이나 손님을 맞는 방법 중 하나가 발 씻을 물을 내서 발을 씻겨 주는 것이었다. 부처님이 발을 내민 것은 임종을 보지 못해 서럽게 우는 제자에 대한 배려였다.
- 292)안장眼藏 : 선악을 명확히 분별하는 심안으로 일체 사물을 밝혀 내 갈무리한다는 의미.
- 293)감칙甘飭 :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로 감결甘結(공문)을 보내어서 신칙함.
- 294)체임遞任 : 정해진 임기가 차서 그 벼슬을 해임함.
- 295)가결전加結錢 : 잡세. 면적 단위로 부과되던 토지의 세율을 원래보다 높여서 부당하게 받아 내던 세금.
- 296)체거遞去 : 벼슬을 내놓고 물러감.
- 297)선소창船所倉 : 배와 관련된 창고.
- 298)택일기擇日記 : 큰일을 치를 때 좋은 날짜를 골라 기록한 것.
- 299)독봉督捧 : 조세 또는 빌려준 돈이나 물건을 독촉하여 거두어들임.
- 300)출척黜陟 : 등용과 추출.
- 301)예폐禮幣 : 공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 예로써 주는 물건.
- 302)옥백玉帛 : 옥과 비단.
- 303)윤용선尹容善(1829~1904) : 자는 경규景圭, 호는 자유재自有齋,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해평海平. 이조 참판 윤치의尹致義의 아들. 1885년(고종 22) 문과에 급제하여 문명文名을 떨쳤다.
- 304)이순익李淳翼 : 1857년(철종 8)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여 급제하였다. 이후 규장각 직각 등을 역임하고 1902년 정1품 보국輔國에 올랐다.
- 305)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제자이며 속성은 밀양 박씨, 전라남도 순천 출생. 어린 나이에 출가해 당대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 306)33세世 아래이자 5종파의 위로서 : 석가모니부터 계산하면 혜능은 33조사가 되고, 혜능 이후 다섯 종파로 나뉘는데 임제종이 으뜸이다.
- 307)임제臨濟의 아래이자 태고太古의 후예로서 :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普愚는 임제종의 18대손인 원나라 석옥 청공石屋淸珙(1272~1352)에게 배웠다.
- 308)환해幻海 : 법린法璘(1749~1820)의 호. 16세 때 능가사로 출가, 송광사 묵암默庵에게 배움.
- 309)건륭乾隆 연간 : 1736년부터 1796년을 이른다.
- 310)벽담碧潭 : 행인幸仁(1721~1788). 풍암 세찰의 제자.
- 311)청오靑烏 : 풍수ㆍ지관地官을 말함. 풍수지리학의 원조인 한나라의 청오자靑烏子가 자신의 학문을 요약하여 묘 터를 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여 『靑烏經』이란 책을 펴낸 데서 유래함.
- 312)회계會溪 : 벽담碧潭의 제자. 법명은 휘종輝宗. 1835년 11월 9일 입적하여 송광사 북쪽 기슭에 탑을 세우고 동각에 진영을 모심.
- 313)보처補處 : 본래는 주불의 좌우에 모신 보살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풍암의 좌우를 말함.
- 314)소목昭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함.
- 315)두 암자 : 은적암隱寂庵과 보조암普照菴을 가리킴. 본문 「은적암과 보조암의 화재 기문」 참조.
- 316)안탑鴈塔 : 절 탑. 인도의 왕사성王舍城에서 승려들이 기러기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희롱하는 말로 “우리들이 배가 고프니, 몸으로 보시하라.”라고 하였더니, 기러기가 스스로 죽어서 떨어졌다. 이에 승려들이 감동하여 기러기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당나라 현장玄奘의 『大唐西域記』 「摩揭陀國」.
- 317)광서光緖 41년 : 광서는 34년으로 끝나고 이 해는 선통宣統 5년에 해당한다.
- 318)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 1908년 송광사 판사직判事職에 취임, 1911년에 송광사 주주에 취임, 1913년에 대종사 법계를 받음.
- 319)진주가 합포合浦로 돌아오니 : 후한後漢 때 합포에서 진주가 생산되었는데, 탐관오리가 조개를 무리하게 채취하게 하니 진주가 나오지 않다가, 맹상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정사를 행하자, 다시 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後漢書』 「孟嘗傳」.
- 320)겁석劫石 : 겁劫의 무한한 시간을 비유한 말. 곧, 가로ㆍ세로ㆍ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약 8km)인 큰 반석을 솜털로 짠 베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 321)권퇴경權退耕 : 권상로權相老(1879~1965).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원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에 『朝鮮佛敎略史』 등이 있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퇴경退耕.
- 322)귀좌貴座 :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말.
- 323)운석韵釋 : 시를 잘 짓는 승려.
- 324)구곡龜谷 : 각운覺雲의 호. 고려 말의 승려. 보우普愚의 법통을 이어 남원 만행산 승련사勝蓮寺에 있었으며, 『傳燈錄』에 심취하여 30여 년간 연구하였다.
- 325)조계산 진각국사眞覺國師가~또한 주소를 : 주소는 조계산 송광사를 가리킨다. 본문 「광원암 중수 화문」에 “진각국사가 여기서 염송拈頌을 모아 훌륭한 명예를 중화中華(중국)보다 빛나게 했고, 구곡龜谷 선사는 여기서 설화를 기록하여 동방에 아름다운 풍습이 고무되도록 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 326)조趙 : 보조국사 지눌의 속성은 정鄭이다.
- 327)미천자彌天子의 향산香山~재판이다.의 간행 : 미천노彌天老가 향산사香山寺에서 『禪門拈頌說話』를 간행했다. 「重刊拈頌說話序」 참조. 『韓國佛敎全書』 5, 3면.
- 328)설파雪坡 : 본명 이상언李尙彥(1707~1791). 19세 때 승려가 되어 33세 때 용추사龍湫寺 판전板殿에서 불법을 강의하였다. 후에 해인사에 들어가 『大經抄』를 교정하고 금강산과 두류산ㆍ묘향산으로 다니면서 좌선하였다. 1770년(영조 46) 징광사澄光寺에 불이 나서 『華嚴經』 판목板目이 타 버리자 사재私財를 털어 다시 새겨 영각사靈覺寺에 두었다.
- 329)신주神州 : 전국시대 사람 추연騶衍이 중국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한 것에서 대개 ‘중국’을 가리킨다. 그러나 백암이 중국에 간 기록은 없고 전라도 신안 임자도에 표류한 중국 선박에서 경전을 다수 얻어서 이를 간행하였다.
- 330)『화엄경소은과華嚴經疏隱科』 : 당나라 청량淸凉이 찬술한 『疏科華嚴經疏鈔』가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불명확해서 학자들이 어려워했던 내용 하나하나를 회암晦庵이 해석하고 상정詳定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
- 331)회암晦庵 : 정혜定慧(1685~1741)의 호. 1685년 경상남도 창원 출생. 9세 때 범어사로 출가하였고, 설암 추봉에게 수학하고, 가야산으로 돌아가 교학에 매진함. 이후 금강산에 들어가 좌선하고 석왕사 등에서 강석을 열었다. 만년에 청암사에 주석하였고 현재 청암사에 탑비가 전한다.
- 332)백파白坡 : 긍선亙璇(1767~1852)의 호. 1767년에 선운사禪雲寺 시헌詩憲의 제자가 되었고, 연곡蓮谷에게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21세 때 상언尙彦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선의 지침서인 『禪門手鏡』을 저술했다. 평소에 교유가 깊었던 김정희는 초상화를 그린 후 그를 ‘해동의 달마(達磨)’라고 격찬하였다.
- 333)백암 노스님이~간행한 업적 : 백암 성총이 『大乘起信論筆削記會編』을 편찬함.
- 334)구준衢樽 : 성현의 도. 성인의 도는 길거리 복판에 술통을 놓아 둔 것과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적당히 자기 양대로 떠서 마시면 된다고 하였다. 『淮南子』.
- 335)쇠를 뽑고~끊을 정도로 : 굳건하고 과감하여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음을 가리킴. 원문 ‘拔鐵截釘’은 『景德傳燈錄』 권17에 나오는 ‘斬釘截鐵’과 같음.
- 336)천은자天隱子 : 미상. 『禪門拈頌說話』에 서문을 더하였다.
- 337)승국勝國 : 바로 이전 왕조. 여기서는 고려.
- 338)도원道原 : 송나라 승려. 경덕景德 원년元年(1004)에 『景德傳燈錄』을 찬술함.
- 339)입원入院 : 새로 한 사원의 주지住持에 임명되어 그 사원에 들어감.
- 340)엄관掩關 : 문을 닫고 참선에 드는 것.
- 341)글(寶唾) : 보배로운 침이란 뜻으로 훌륭한 글귀를 가리킴.
- 342)개당開堂 : 새로 주지가 되어 처음으로 설법하는 의식.
- 343)당사堂司 : 승당僧堂의 사무를 맡은 유나維那가 있는 곳.
- 344)선사繕寫 : 잘못을 바로잡아 베껴 씀.
- 345)사원비嗣院碑 : 조선 숙종 4년(1678)에 조종저趙宗著(1631~1690)가 짓고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가 쓰고 낭원군朗原君 이간李偘이 전액을 쓴 「順天松廣寺嗣院事蹟碑」. 송광사 소장 『曹溪山松廣寺史庫』 상(건물부).
- 346)청장請狀 : 오라고 청하는 글.
- 347)영체領軆 : 상대방이 사찰을 영솔하는 지위에 있을 때 일컫는 말인 듯함.
- 348)죽은 말의~올 것입니다 : 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에게 곽외郭隗가 “죽은 말 한 마리의 뼈를 500금金에 사들였더니, 1년도 채 안 되어서 살아 있는 천리마 세 마리가 찾아왔다.”라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기부터 우선 대우를 잘해 주면 천하의 현사들이 저절로 모여들 것이라고 말하자, 소왕이 연경燕京에 황금대를 세우고 인재를 초빙하니, 악의樂毅와 극신劇辛 등의 명사가 대거 찾아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
- 349)길에서 꼬리를 끌며 : 『莊子』 「秋水」에 나오는 표현. 장자가 초나라 왕의 초빙을 거절하면서 죽어서 존귀하게 되기보다는 살아서 진흙 밭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고 하였다.
- 350)김환경金喚鯨 : 환경 대현喚鯨大鉉(1890~1917). 순천 별량면 출신. 11세 때 송광사로 출가하여 상주 남장사 용성龍城에게 배우고 다시 호붕과 금명에게 배웠다.
- 351)상빈上賓 : 지위가 매우 높은 손님이나 윗자리에 모셔 대접할 만한 손님.
- 352)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 제자 안회顔回가 일찍 죽자 공자가 탄식한 말. 『論語』 「先進」.
- 353)시력을 잃는 아픔 :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는 아들이 죽자 크게 상심하여 시력을 잃었다. 『禮記』 「檀弓」.
- 354)이포伊蒲 : 이포새伊蒲塞. ⓢ Upāsaka. 우바새優婆塞의 이역異譯. 속세에 있으면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신도를 말한다.
- 355)참사叅事 : 종9품 관직.
- 356)복천福川 : 전라남도 화순군 지역에 있었던 동복현同福縣의 옛 이름.
- 357)본지풍광本地風光 : 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부처의 성품. 어떠한 미혹도 번뇌도 없는 부처의 경지.
- 358)비야毘耶의 근심 : 병을 일컬음. 유마거사維摩居士는 비야리성毗耶離城에서 늘 칭병稱病하고 누워서 문병 오는 불제자들에게 침묵으로 설법했음. 『維摩詰小說經』.
- 359)도로都盧 : 희극.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인데, 그곳의 사람들은 몸이 가벼워 나무를 잘 오르므로 장대 연희를 가리킨다.
- 360)비야에서 질병~것이 어떨지 : 이 시는 김정희金正喜의 문집 『阮堂全集』 권10에 있는 ≺戲題示優曇 曇方踝腫≻이다.
- 361)천진교天津橋는 선녀의 흥취이며 : 천진교는 낙수洛水에 있는 교량. 선녀는 복비宓妃. 복비가 낙수에 다리를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고자 부잣집 자제들에게 은자銀子를 던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 362)완화교浣花橋 : 두보杜甫의 초당이 있던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의 교량.
- 363)예양豫讓이 다리에~임금께 보답하고 : 전국시대 진晉나라의 예양은 지백智伯의 신하였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자 복수를 하기 위해 몸에 옻칠을 하여 벙어리 행세를 하며 기회를 노렸다. 조양자가 외출할 때 다리 밑에 숨었다가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발각되어 칼로 자결하였다.
- 364)자방이 교량에서~스승을 기다리고 : 진秦나라 말기에 흙다리 위에서 한 노인이 장량張良과 만나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장량에게 주워 오게 하였다. 장량이 신발을 주워 노인이 시키는 대로 신겨 주자 며칠 뒤에 병서兵書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읽으면 왕자王者의 스승이 될 것이다. 13년 후에 네가 나를 제북濟北에서 만날 것인데, 곡성산穀城山 아래 누런 돌이 바로 나일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 365)미생尾生이 교량에~친구를 기다렸고 : 미생은 옛날의 미더운 선비로서 일찍이 여자와 더불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는 오지 아니하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홍수가 밀어닥쳤다. 그래도 미생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다리 기둥을 안고 죽었다. 『莊子』 「盜跖」.
- 366)설옹薛翁(원효)은 교량에서~궁宮에 들어갔으니 : 원효는 월성 주변을 흐르는 월정교月淨橋를 건너다가 일부러 물에 빠졌고 이를 보고 신하들이 원효를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있는 요석궁으로 데려갔다.
- 367)화주化主 : 세상을 교화하는 주인, 곧 부처님을 말하나, 일반적으로는 가방화주街坊化主, 또는 가방街坊 공양주供養主를 말함. 즉 거리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시물施物을 얻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게 하는 동시에, 그 절에서 쓰는 비용을 마련하는 스님을 말함.
- 368)대정大正 6년 병진(1916) : 병진년은 대정 5년에 해당하므로 착오가 있는 듯함.
- 369)호중별계壺中別界 : 호리병 속의 별세계란 뜻으로 신선세계를 가리킨다. 『後漢書』 「方術傳」의 기록으로, 후한 시대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약장수 할아버지를 따라 호리병 속의 신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 370)보림寶林 : ‘보배 숲’이라는 뜻으로 육조대사 혜능이 머물렀던 사찰 이름이기도 하다.
- 371)선의禪衣 : 선승이 입는 옷.
- 372)계정밀행戒定密行 : 계戒는 몸을 절제함, 정定은 마음을 고요히 함, 밀행은 오로지 불도 수행에만 힘씀.
- 373)고갯마루에서 신발~짝을 끌어 : 달마 대사가 열반에 들어 웅이산熊耳山에 장사한 지 3년 만에 위魏나라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총령蔥嶺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손에 신을 한 짝 들고 가고 있었다. 이에 송운이 어디로 가는지 묻자, 답변하길 서역으로 간다고 했다. 송운이 돌아와서 복명을 마치고 그 일을 자세히 보고했더니, 황제가 무덤을 열게 했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 374)마가다국에서 문을~본보기를 보이셨습니다 :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서 성도한 다음 문을 닫고 삼칠일 동안 설법을 하지 않은 인연을 ‘마갈엄실摩竭掩室’ 또는 ‘마갈엄관摩竭掩關’이라 한다.
- 375)동방 1만 8천 여래 : 『法華經』 「序品」에, 동방에 1만 8천 불국토가 있다고 하였다.
- 376)치미齒眉 : 부처님 32상 가운데 ‘이가 40개나 된다’와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는 등의 특징을 일컫는 듯하다.
- 377)족륜足輪 : 부처님 발바닥에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고 거기서 빛이 나왔다 한다.
- 378)마명馬鳴과 용수龍樹 : 마명은 간다라에서 불법을 크게 선양하고 『佛所行讚』과 『大乘起信論』을 저술하였고, 용수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하여 『中論』 등을 저술하였다.
- 379)금강장金剛藏 : 금강장보살. ⓢ Vajragarbha. 금강계金剛界의 현겁賢劫 16존尊 중의 한 분. 『華嚴經』 「十地品」에서 상수보살上首菩薩로 삼았고, 『十地經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찌하여 금강장이라 하는가. 장은 곧 견고함을 이름이니 비유하면 수장樹藏과 같다. 나무가 매우 단단하면서도 꽃과 잎을 갈무리하고 때가 이르면 꽃과 잎을 돋우어 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 380)십지十地 : 보살의 열 가지 수행 단계. 『華嚴經』에서 천명한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십지와 천태종의 통교通敎 십지가 있다.
- 381)나무를 잡고~가풍을 보임이라 : 승찬僧璨(?~606)은 선불교 제3대 조사. 601년 사리친견법회에서 “글자와 말은 소용없는 사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고, 한쪽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선 채로 입적하였다. 그가 남긴 「信心銘」은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로다(言語道斷。非去來今。)”라는 게송으로 끝마치는데, 중국 초기 선의 중심 문제인 불성을 중도의 공사상에 입각해 설명하고 있다.
- 382)권행權行 : 형편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행하거나 대행함.
- 383)납승衲僧 : 납자衲子. 납의衲衣(누더기 옷)를 입은 승려.
- 384)적전嫡傳 : 정통의 혈통에서 정통으로 이어받음.
- 385)허주虛舟 : 덕진德眞(1806~1888)의 호. 조계산 송광사에 들어가 삭발하고 홀로 선정을 닦으며 도학을 성취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불러 국가를 위하여 철원 보개산寶蓋山 지장암地藏庵과 고산高山 운문사雲門寺에서 기원하게 하였다.
- 386)벽안碧眼 : 달마 대사. ‘벽안호승碧眼胡僧’이라 불림.
- 387)방행放行 : 수행자를 속박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 두어 교도하는 방법.
- 388)조백棗栢 : 당나라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의 호. 3년 동안 매일 대추 열 개와 숟가락만한 잣잎떡 하나를 먹으면서 『新花嚴經』에 대한 논을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 389)생명生明 : 달이 생김을 뜻하는 말로 초사흘을 가리킨다.
- 390)색양色養 : 안색을 기쁘게 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것 또는 부모의 안색을 살펴 받드는 것인데 여기서는 육신을 뜻하는 말로 쓰임.
- 391)사유闍維 : 팔리어 ‘jhāpeti’의 음사. 소연燒然ㆍ분소焚燒라고 번역. 시체를 불살라 장사 지내는 일.
- 392)약목若木 : 고대 신화에 나오는 나무 이름으로, 서방의 해가 지는 곳에서 자라는 큰 나무라고 한다.
- 393)광명으로 깨닫게 함(光明覺) : 『華嚴經』 9권에 「光明覺品」이 있음.
- 394)여래께서 모습을 드러냄(現相品) : 『華嚴經』 6권에 「如來現相品」이 있음.
- 395)유루有漏 : ⓢ sâsrava. 번뇌가 있음을 뜻하는 말.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에 상대되는 말이다. 여기서 ‘루漏’는 누설漏泄이란 말로 번뇌를 의미한다.
- 396)당송唐宋 이래~뛰어난 이들 : 주로 고문古文으로 뛰어난 당송팔대가, 즉 당나라의 한유韓愈ㆍ유종원柳宗元,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ㆍ소순蘇洵ㆍ소식蘇軾ㆍ소철蘇轍ㆍ증공曾鞏ㆍ왕안석王安石을 일컫는다. 본문에 일컬은 이백은 여기에 속하지 않으니 착오가 있는 듯하다.
- 397)선조禪祖 : 선불교의 시조. 대개는 달마 대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부휴 대사를 그만큼 높여 일컬은 것이다.
- 398)비음기碑陰記 : 비석 뒷면에 새기는 글.
- 399)송염재宋念齋 : 송태회宋泰會(1872~1942).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며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 한일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 능주, 순천, 고창 등에서 한문과 서화 등을 가르쳤다.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서 입선한 후 글씨와 사군자에서 모두 9회에 걸쳐 입선하였다. 본서의 「범해 선사 시집의 발문」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 400)황하가 맑아지는 : 황하는 백 년을 기다려도 맑아지지 않는다는 백년하청百年河清이라는 말이 있다.
- 401)윤지綸旨의 아름다운 명 : 부휴 선사가 광해군 때 두류산에 있었는데 어떤 미친 승려의 무고 때문에 투옥되었다가 무죄가 판명되자, 광해군이 내전으로 초빙한 다음 설법을 청하여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가사 한 벌과 푸른 비단장삼 한 벌, 푸른 비단바지 한 벌, 금강석 염주 하나와 진완珍玩을 주었다. 또 봉인사奉印寺에 재齋를 설하여 그를 증명으로 삼았다. 선사가 입적하자 광해군은 ‘부휴당부종수교변지무애추가홍각대사선수등계존자浮休堂扶宗樹敎辯智無礙追加弘覺大師善修登階尊者’라는 시호를 내렸다.
- 402)『원각경』의 선천先天에~앞선 인연의 : 부휴 선사가 무주 구천동에서 『圓覺經』을 외우고 있을 때 큰 뱀이 나타나서 계단 아래에 누웠다. 『圓覺經』을 다 외운 다음 뱀에게 가서 한 발로 그 꼬리를 밟자 뱀이 머리를 들고 물러났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절하고는 “화상의 설법의 힘을 입사와 이미 고신苦身을 여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403)금송錦頌 : 비단처럼 아름다운 노래.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재주는 금송에 뒤져서 글을 짜내기 어렵도다.(才輸錦頌文難織)”라는 시구가 있음.
- 404)귀부龜趺 :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 405)백곡白谷 : 처능處能(1617~1680)의 호. 성은 김씨, 자는 신수愼守. 12세 때 의현義賢에게 글을 배우다가 불경을 읽고 그 깊은 이치에 감동하여 출가를 결심하였고, 15세 때 승려가 된 뒤 다시 신익성申翊聖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의 각성覺性을 찾아가 23년 동안 수선修禪과 내전內典을 익혀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찰은 대둔사大芚寺의 안심암安心庵이었다. 한편, 현종의 척불정책에 대하여 전국 승려를 대표하여 「諫廢釋敎疏」를 올렸고, 1680년 금산사金山寺에서 대법회를 열고 그해 7월에 입적하였다.
- 406)옛 명銘 : 『柏谷集』에 「追加弘覺登階碑銘幷序」가 있다.
- 407)욕불浴佛 : 관불灌佛. 초파일날 애기 부처님을 모셔 놓고 물을 붓는 의식.
- 408)전액篆額 : 전자篆字로 쓴 비갈碑碣이나 현판의 제액題額.
- 409)곡斛 : 분량 단위. 1곡은 10말(斗).
- 410)네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無念爾祖) : 『詩經』 「大雅」 ≺文王≻의 구절.
- 411)무리가 실로 많도다(寔繁有徒) : 『書經』 「仲虺之誥」의 구절인데 최치원의 「善安住院壁記」에도 쓰였다.
- 412)황우송黃友松 : 우송友松 황선명黃善明. 1917년 송광사에서 순천 동화사桐華寺로 가서 주지를 역임함. 그러므로 이 글은 동화사와 관련됨.
- 413)곡일穀日 : 곡단穀旦. 좋은 날. “날씨 좋은 날 남쪽의 원씨를 찾는구나.(穀旦于差。南方之原。)” 『詩經』 「陳風」 ≺東門之枌≻.
- 414)울창주 : 울금향鬱金香을 넣어 빚은 향기 나는 술. 제사의 강신降神에 씀.
- 415)국사局師 : 형국形局, 즉 해당 자연 환경을 지키는 신.
- 416)제운霽雲 : 해징海澄(1719~1804)의 호.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제자.
- 417)기인起仁 : 경종 3년 계묘(1723) 4월 16일에 송광사 주지로서 영해影海 선사의 명에 따라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옛터로 봉안하였다고, 본서 「조계산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이안한 연기와 평」에 기록되어 있다.
- 418)통정첩通政帖 : 통정대부의 첩지.
- 419)세 번~대사께 이르렀습니다 :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나오는 표현이다. 뒤 문장 ‘필만의 이후를 징험할 수 있다’는 표현도 같은 글에 나온다.
- 420)필만畢萬 :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람. 필공고畢公高의 후예로, 진헌공晉獻公을 섬겼다. 헌공을 도와 경耿나라와 곽霍나라, 위魏나라를 멸망시켰다. 위지魏地에 봉해져서 대부大夫가 되었다. 이후 위魏ㆍ한韓ㆍ조趙가 진나라를 삼분三分했다.
- 421)처마 아래 빛을 감추고 : 외출하지 않고 집에 머문다는 의미로 썼는데, 본래는 옥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처마 밑에 버려둔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위나라 농부가 들에서 밭을 갈다가 지름이 한 자 되는 옥을 얻고도 그것이 옥인 줄 모르고 이웃 사람에게 말하자, 이웃 사람이 “이는 괴석怪石이니, 놔두면 집안에 이롭지 않다.”라고 하였다. 농부는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망설이다가 돌아가 처마 밑에 두었는데, 그 옥이 온 집을 환하게 밝히자 몹시 두려워 황급히 먼 들판에 버렸다. 이에 이웃 사람이 그 옥을 가져다가 위왕에게 바치니, 위왕이 옥공을 불러 옥을 감정하도록 하였다. 옥공이 옥을 바라보고는 재차 절을 하고 하례하기를 “대왕께서 천하의 보옥을 얻으셨습니다. 신은 아직 이런 옥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값을 묻자, 옥공이 “이는 합당한 값이 없으니, 다섯 성이 있는 도시를 가지고도 겨우 한 번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라고 하였다. 위왕이 옥을 바친 사람에게 천금을 하사하고 길이 상대부의 봉록을 받게 해 주었다. 『尹文子』 「大道」 上.
- 422)호리병 속 : 신선세계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산속을 가리킴. 후한後漢 때 선인仙人 호공壺公이 시장에서 약을 팔다가 장이 파하면 문득 병 속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이를 본 비장방費長房이 한 번은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 엄연한 별천지別天地가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권82.
- 423)처마 아래~덕을 숨겨 : 원문은 “鞱光廡下。匿德壺中。”으로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나온다.
- 424)조의祖意 : 조사祖師들이 전한 선禪의 참뜻.
- 425)간고幹蠱 : 자식이 부모의 사업을 이어받아 잘 조처하여 바로잡는 것을 뜻함. 『周易』 「蠱卦」에 “초육初六은 아버지의 잘못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初六。幹父之蠱。有子。考无咎。)”라고 하였다.
- 426)경해鏡海 : 관일官一(1844~1928)의 법호. 속성은 엄씨, 순천 태생. 20세 때 경잠敬岑에게 출가하였고 우담優曇에게 계를 받았다. 35세 때 응허應虛의 법을 잇고 송광사 자정암과 관원암에 주석하였다.
- 427)경봉景鳳 : 축정竺靜(1864~1941)의 법호.
- 428)인봉印峰 : 창율昌律(1859~1942)의 법호.
- 429)남포藍浦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이곳의 벼룻돌이 특산물일 정도로 좋은 돌이 많은 곳이다.
- 430)겁석劫石 : 겁劫의 무한한 시간을 비유한 말. 곧, 가로ㆍ세로ㆍ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을 솜털로 짠 베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 431)정민貞珉 :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 여기서는 비석을 말함.
- 432)육부삼사六府三事 : 육부는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곡穀이고 삼사는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을 말함. 『書經』 「大禹謨」.
- 433)우禹 임금의 솥 : 우 임금이 치수 사업을 마치고 천하에서 바친 청동을 모아 아홉 개의 솥을 만들었다. 훗날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치고 나서 이 구정九鼎을 주나라 수도로 옮겼다고 한다.
- 434)장자莊子의 표주박 :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위왕魏王이 나에게 큰 표주박을 주었는데, 너무 커서 쓸 데가 없다.”라고 말하자, 장자가 “그렇다면 강이나 호수에 띄워 배를 만들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그리 걱정을 하느냐.”라고 말하였다. 『莊子』 「逍遙遊」.
- 435)물과 불이~해치지 않는 : 『周易』 「說卦傳」에 “천天과 지地가 자리를 정하고 산山과 택澤이 기를 통하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물과 불이 서로 해치지 않아 팔괘가 서로 교착交錯한다.(天地定位。山澤通氣。雷風相薄。水火不相射。八卦相錯。)”라는 말이 있다.
- 436)석수石髓 : 석종유石鍾乳. 즉 돌 고드름의 이명異名인데, 선인仙人들이 이것을 복용한다고 한다. 『本草』 「石髓」. 여기서는 돌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가리킴.
- 437)벽담碧潭 : 행인幸仁(1721~1788).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제자. 해남 대흥사의 13대 강사에 속한다.
- 438)회계會溪 : 법명은 휘종輝宗. 벽담의 제자.
- 439)현선顯先 : 입적하신 분을 일컫는 말.
- 440)화장세계 :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 비로자나불이 있는 공덕 무량, 광대 장엄의 세계.
- 441)소목昭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함.
- 442)실로 많은 무리가 있어(寔繁有徒) : 『書經』 「仲虺之誥」의 구절인데 최치원의 「善安住院壁記」에도 쓰였다.
- 443)영식靈識 : 영혼, 또는 신령스러운 의식.
- 444)대록大麓 : 큰 산기슭. 『書經』 「舜典」에 “큰 산기슭에 들어가게 하시니 열풍烈風과 뇌우雷雨에 혼미하지 않으셨다.(納于大麓。烈風雷雨弗迷。)”라고 한 말이 보인다.
- 445)자리를 빼앗는 : 법석에서 논쟁할 때 상대를 설복시켜 방석을 빼앗았다는 뜻.
- 446)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제자. 속성은 밀양 박씨이며 전라남도 순천 출생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해 당대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 447)노숙老宿 : 불도佛道에 지식이 많은 승려.
- 448)보처존補處尊 : 주불主佛의 좌우에서 모시는 보살.
- 449)대한 융희隆熙개국~방화를 당하여 : 해당 사건은 본서의 「은적암과 보조암의 화재 기문」에 자세하다.
- 450)곤명昆明 : 연못 이름인데 여기서는 재난을 당한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됨. 한漢 무제武帝 때 곤명지昆明池 밑바닥에서 나온 검은 재에 대하여, 인도 승려 축법란竺法蘭이 “바로 그것이 겁화를 당한 재(劫灰)”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高僧傳』 권1 「竺法蘭」.
- 451)스투파(窣堵) : ‘率堵波’라 적는다. ⓢ stūpa의 음사. 탑塔.
- 452)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 명진학교 2회 졸업.
- 453)산을 빛내고~아름답게 했다 : 원문 ‘山輝而川媚’는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지은 「文賦」의 “돌이 옥을 감추고 있으면 그 때문에 산이 빛나고, 물이 진주를 품고 있으면 내가 그 때문에 아름답게 된다.(石韞玉而山輝。水懷珠而川媚。)”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文選』 권17. 최치원의 「無染和尙碑銘」에 보인다.
- 454)자음당慈蔭堂 : 송광사 국사전의 별칭.
- 455)화주化主 : 가방화주街坊化主, 또는 가방街坊 공양주供養主. 거리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시물施物을 얻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게 하는 동시에, 그 절에서 쓰는 비용을 마련하는 스님을 말함.
- 456)진락대眞樂臺 :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鴟)를 날려 보냈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앉았다. 그래서 그 뒷등을 치락대鴟落臺(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한다. 이 치락대를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1226~1292)가 진락대라고 했다 한다.
- 457)중국을 접한 태고太古(보우普愚) : 태고 보우는 원나라에 가서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잇고 다음 해에 돌아왔다.
- 458)두 계수나무를 기른 부용芙蓉 : 부용 영관芙蓉靈觀이 벽송 지엄碧松智嚴으로부터 태고 보우의 법통을 계승하여 청허 휴정淸虛休靜과 부휴 선수浮休善修에게 전해 주었다.
- 459)광서光緖 11년 병술(1886) : 병술년은 광서 12년에 해당하므로 착오가 있는 듯하다.
- 460)도성당道成堂 : 송광사 승보전 뒤편에 위치. 1938년 중건.
- 461)용운당龍雲堂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용운당에 대해서는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고.
- 462)광서光緖 원년 병자(1876) : 병자년은 광서 2년에 해당하므로 착오가 있는 듯하다.
- 463)화재(崑炎) : 원문 ‘崑炎’은 곤륜산의 불꽃으로, 『書經』 「胤征」의 “곤륜산에 불이 나 옥석이 모두 탄다.(火炎崑岡。玉石俱焚。)”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464)새롭거나 오래되거나~함께 이루어진다 : ‘새롭거나 오래되거나 여럿이’는 미상인데 후반부, 즉 ‘은미하거나 드러나거나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은 『華嚴經』 십현문十玄門의 하나인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 465)삼변정토三變之淨土 : 『法華經』 「見寶塔品」에서 세 번의 변화를 통해 보여 준 정토.
- 466)회차會茶 : 모여서 차를 마심.
- 467)벽암헌碧嵓軒과 호월皓月과~앉아서 회차하던 : 『禪門綱要集』 「三聖章」에 나오는 장면인데, 벽암碧菴 노숙老宿의 송헌松軒에서 호월 상인이 묻고 청풍 장로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임제의 삼구三句ㆍ삼현三玄ㆍ삼요三要의 위치와 성격을 밝히는 대목이다. ‘둘’이 회차한 것인데 다송은 ‘셋’으로 파악하고 있다.
- 468)법신보살法身菩薩 : 보살이 거듭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인 오십이위五十二位 가운데 초지初地에서 십지十地까지의 보살을 말함.
- 469)선승당禪僧堂 : 참선하는 선당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승당을 아울러 이르는 말.
- 470)담당湛堂 : 성징聖澄의 자. 호는 월계越溪. 송광사 16국사 중 아홉 번째 국사이다. 행적은 전하지 않으며, 그에 얽힌 설화가 『松廣寺之』에 전한다. 원래 금나라의 태자였는데 고려에 와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 471)청운당靑雲堂 :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파괴되어 사라짐.
- 472)축성전祝聖殿 : 본문 「축성전 창건기」 참조.
- 473)백설당白雪堂 :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파괴되어 사라짐.
- 474)자음당慈蔭堂 : 송광사 대웅전 남동쪽에 있는 현재 국사전.
- 475)진여문眞如門 : 설법전 앞에 있다.
- 476)진각眞覺 : 혜심慧諶(1178~1234).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송광사)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저서로는 『禪門拈頌集』 등이 있다.
- 477)고봉高峯 : 법명은 법장法藏(1350~1428). 속성은 김씨, 본관은 신주愼州이며 다른 호는 지숭志崇이다. 송광사 16번째 국사. 고봉국사는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20세 때 출가하여 나옹懶翁을 스승으로 삼고 법맥을 이었다. 30년 동안 국내 명산을 찾아다닌 끝에 송광사에 머물렀다. 16국사 중 마지막 국사이며, 1428년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신찬信贊ㆍ혜성惠性ㆍ상제尙濟ㆍ홍인洪仁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高峰法藏歌集』과 「普濟尊者三種歌」가 있다. 고봉국사가 소지했던 불감佛龕 ‘주자원불廚子願佛’이 전한다.
- 478)태고太古 : 보우普愚(1301~382). 태고는 호, 시호는 원증圓證. 1347년 중국 호주湖州 천호암天湖庵에서 석옥石屋에게 도를 인정받고, 「太古庵歌」의 발문과 가사를 받았다. 1371년 공민왕이 국사로 봉하였다.
- 479)부용芙蓉 : 영관靈觀(1485~1571)의 당호. 자는 은암隱庵, 법호는 연선蓮船. 지리산의 지엄智儼을 만나 비로소 불법을 대오하고, 보우普愚의 법통을 계승, 이를 휴정休靜과 부휴浮休에게 전수하였다.
- 480)십홀방장十笏方丈 : 사방으로 1장丈 되는 방. “당나라 현경顯慶 연간에 장사長史 왕현책王玄策을 칙사로 보냈는데, 인도로 향하는 길에 정명淨名(유마힐)의 집에 들러 홀笏로 그 터를 재어 보니 겨우 10홀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방 1장의 집(方丈之室)이라 불렀다.(於大唐顯慶年中。勅使衛長史王玄策。因向印度過淨名宅。以笏量基。止有十笏。故號方丈之室也。)”라고 석도세釋道世의 『法苑珠林』 권29에 나온다.
- 481)사자좌(獅座) : 고승이 앉는 자리.
- 482)정명淨名 : ⓢ vimalakīrti. 『維摩經』의 주인공인 유마힐維摩詰의 번역어. 무구칭無垢稱이라고도 함.
- 483)이범진李範晋(1852~1911) : 자는 성삼聖三, 본관은 전주.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 왕비 민씨의 사랑을 받아 궁중에 출입, 친로파 안경수安駉壽 등과 같이 궁중 세력을 잡고 친일파를 몰아내고 일본 장교에게 훈련을 받은 훈련대를 해산하는 등 일본색 일소에 노력하였다.
- 484)어천문於千門 : 천운川雲 이범진의 글씨다.
- 485)우로雨露 : 비와 이슬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은혜를 비유하는 말.
- 486)명량明兩 : 왕과 왕세자. 『周易』 이괘離卦 상사象辭의 “밝은 것이 두 번 일어남이 이괘의 상이다. 대인은 그것으로 밝음을 이어 사방을 비춘다.(明兩作離。大人以繼明照於四方。)”라는 말에서 유래.
- 487)송악松岳 : 송광사가 있는 산.
- 488)세파가 뽕나무밭을 뒤흔들어 : 상전벽해桑田碧海, 즉 큰 변화를 가리킴.
- 489)오유향烏有鄕 : ‘어찌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없음’을 가리킨다.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子虛賦」.
- 490)제나라가 변하면~행하게 된다 : 『論語』 「雍也」의 “齊一變。至於魯。魯一變。至於道。”를 말함.
- 491)점다點茶 : 차를 끓이는 법의 한 가지로, 마른 찻잎을 그릇에 담고 끓는 물을 부어 우림. 여기서는 차를 마셨다는 의미로 사용함.
- 492)인묘寅卯 : 동쪽. 인寅은 정동에서 북으로 30도 위쪽. 묘卯는 정동.
- 493)병정丙丁 : 남쪽. 병丙은 정남에서 15도 동쪽, 정丁은 정남에서 15도 서쪽.
- 494)곤신경유坤申庚酉 : 남서쪽. 곤坤은 남쪽과 서쪽의 정중앙이고, 15도 서쪽으로 옮겨서 신申, 다시 서쪽으로 15도 옮겨서 경庚, 다시 서쪽으로 15도 옮기면 정서 방향이 된다.
- 495)건해乾亥 : 서북쪽. 건乾은 서북쪽 중심이고 해亥는 건에서 북쪽으로 15도 가까움.
- 496)호령봉號令峰 : 송광사 쪽 굴목재의 안쪽 산봉우리.
- 497)대장봉大將峰 : 천자암 뒤 산봉우리.
- 498)조계봉曹溪峰 : 화엄전 뒤 산봉우리.
- 499)갑인甲寅 : 동북쪽. 갑은 정동에서 15도 북쪽이고 인寅은 정동에서 북으로 30도 위쪽.
- 500)축계자임丑癸子壬 : 북쪽. 축丑은 정북에서 30도 동쪽으로 치우쳐 있고 자子는 정북, 그 사이에 계癸가 있고, 임壬은 정북에서 서쪽으로 15도 치우쳐 있음.
- 501)술해戌亥 : 서북쪽. 술戌은 정서에서 30도 북쪽으로 치우치고 해亥는 정북에서 30도 서쪽으로 치우침.
- 502)학봉鶴峰 : 감로암 뒤 산봉우리.
- 503)입수入首 : 산줄기가 혈로 이어지는 곳.
- 504)갑묘甲卯 : 동북쪽. 묘卯는 정동, 갑甲은 북쪽으로 15도 치우침.
- 505)묘을卯乙 : 동남쪽. 을乙은 남쪽으로 15도 치우침.
- 506)인갑寅甲 : 동북쪽. 인寅은 갑甲보다 15도 북쪽으로 치우침.
- 507)손사巽巳 : 동남쪽. 손巽은 동쪽과 남쪽의 정중앙이고 사巳는 손보다 15도 남쪽으로 치우침.
- 508)간인艮寅 : 동북쪽. 간艮은 동쪽과 북쪽의 정중앙이고, 인寅은 간보다 15도 동쪽으로 치우침.
- 509)중조봉中祖峰 : 태조봉太祖峰으로부터 뻗어 나온 산맥에서 다시 일어난 봉우리.
- 510)행룡行龍 : 높았다 낮았다 하며 멀리 뻗어 나간 산맥.
- 511)바람에 나부끼는 비단 띠(風吹羅帶) : 풍수지리 용어.
- 512)갑경병임甲庚丙壬 : 갑甲은 정동에서 15도 위쪽이고, 이와 등져서 경庚은 정서에서 15도 아래쪽이다. 병丙은 정남에서 15도 오른쪽이고, 이와 등져서 임壬은 정북에서 15도 왼쪽이다.
- 513)진술축미辰戌丑未 : 진辰은 정동에서 30도 아래쪽이고, 술戌은 정서에서 30도 위쪽이며, 축丑은 정북에서 30도 오른쪽이고, 미未는 정남에서 30도 왼쪽이다.
- 514)4고장庫葬 : 고장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가두어진 상태.
- 515)수구水口 : 풍수지리에 있어서 물이 흘러들어 가는 곳.
- 516)장쇄藏鎻 : 기운이 누설되지 않도록 산세가 꽉 짜여 있는 것을 말함.
- 517)득파得破 : 물이 흘러들어 오는 곳을 ‘득得’, 흘러 나가는 곳을 ‘파破’라고 함.
- 518)군옥부群玉府 : 옥이 보관된 창고. 군옥은 본래 옥이 난다는 선산이기도 하다.
- 519)각노覺老에 대해 구옹龜翁은 : 각노는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으로 『禪門拈頌集』을 편찬했고, 구옹은 구곡 각운龜谷覺雲으로 고려 말에 『禪門拈頌說話』를 편찬했다.
- 520)우담자優曇子 : 홍기洪基(1832~1881). 우담은 법호. 초명은 우행禹幸, 성은 권權이다.
- 521)화장華藏 :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 한량 없는 공덕과 광대장엄廣大莊嚴을 갖춘 불국토.
- 522)제(不佞) : 원문 ‘不佞’은 재주가 없다는 뜻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 523)개미처럼 사모하여 : 『莊子』 「徐無鬼」에 “양고기가 개미를 좋아하지 않아도 개미들이 좋아서 달려드는 것처럼(蟻慕羊肉) 순임금이 노린내 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舜有羶行) 백성들이 좋아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 524)언우齴齲 : 뻐드렁니에 충치투성이. 달마 대사를 가리킴. 삼교노인三教老人이 쓴 「碧巖錄序」에 “齴齲來東。單傳心印。”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 525)최예운崔猊雲 : 최동식崔東植(1851~?). 예운 산인猊雲散人으로 법명은 혜근惠勤이다. 최치원의 후손으로 집안은 대대로 호남에 살았다. 조계산 선암사에서 출가 득도하였으며 경붕 익운景鵬益運(1836~1915) 대사 밑에서 공부하였다. 1913년에 간행된 『禪門證正錄』 서문에 “猊雲散人惠勤。識于木覓山琵琶館。”이라는 문구가 있다.
- 526)보필報筆 : 월보月報의 필진筆陣.
- 527)이번에 선생께서~알뜰하고 부지런하여 : 1914년 3월 『海東佛報』 5호에 예운 산인猊雲散人이 쓴 「敬答松廣寺金錦冥講伯書」가 게재되었다. 금명 보정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내용이다.
- 528)간담이 땅에 떨어지니 : 원문은 ‘肝膽塗地’. 참혹하게 죽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만큼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였다.
- 529)추기樞機 : 중추가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나 자리, 또는 기관.
- 530)세상 추기를~현변玄辯(이치)을 다하여 : 원문 “竭世樞機。窮諸玄辯。”은 『佛祖綱目』 권32 「崇信禪師傳法宣鑒」 등에 보임.
- 531)『해동불보海東佛報』 : 『朝鮮佛敎月報』의 후신으로서, 1913년 11월 20일자로 창간되어 1914년 6월 20일 통권 8호로 종간되었다. 창간호의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박한영朴漢永, 인쇄자 오종렴吳鍾濂, 인쇄소 창문사昌文社, 발행소 해동불보사(서울ㆍ북부 전동磚洞 2통 1호), A5판 76면, 정가 10전이다.
- 532)대방大方 : 학문과 식견이 높은 사람.
- 533)시순時順 : 태어나고 죽는 사람의 일생. 『莊子』 「養生主」의 “마침 그때에 태어난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요, 마침 이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선생이 갈 때가 된 것이니 시운을 편안히 여기고서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슬픔과 기쁨 따위의 감정이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適來。夫子時也。適去。夫子順也。安時而處順。哀樂不能入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534)조계 보조普照의~잇지 않으니 : 1914년 『海東佛報』 5호에 「大覺國師墓誌銘」(記者 選)이 게재되었다.
- 535)화담華潭 : 경화敬和(1786~1848)의 호.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선승. 1815년(순조 15)부터 여러 강원에서 조실祖室로 있으면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주관하였는데, 55군데에서 83회나 열어 대중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저서로는 『天地八陽神呪經註』와 『偈頌六十七品』 등이 있다.
- 536)함명涵溟(1824~1902) : 호는 태선太先. 호남의 대표적 강백이었다. 그가 찬술한 『緇門警訓私記』 1권이 현존한다.
- 537)김군수金君綏 :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설당雪堂. 아버지는 김돈중金敦中이며, 할아버지는 김부식金富軾이다. 1210년(희종 6) 공주지사公州知事 재임 시에 「松廣寺普照國師碑銘」을 찬술하였다.
- 538)여하정呂荷亭 : 여규형呂圭亨(1849~1922).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사원士元, 호는 하정荷亭. 경기 양근楊根에서 출생했다. 시詩, 서화書畫, 불경佛經에 모두 능통하였고 오세창 등과 『大東詩選』을 편집하였다. 여규형이 찬술한 「華嚴宗主函溟堂大禪師碑銘幷序」가 『海東佛報』 6호(1914년 4월)에 게재되었다.
- 539)이유원李裕元(1814~1888) :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ㆍ묵농默農. 1882년 전권대신으로서 일본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제물포조약에 조인하였다. 학문에 능하여 『林下筆記』와 『嘉梧藁略』ㆍ『橘山文稿』를 남겼으며, 예서에 능하였다. 「華潭大師浮屠碑銘」을 찬술하였다.
- 540)죽백竹帛 : 사서史書. 종이가 없었던 시대에 청죽靑竹으로 만든 간찰簡札이나 비단 헝겊에 글자를 쓴 데서 서책書冊을 지칭하였고, 역사라는 뜻으로도 사용함.
- 541)서까래처럼 큰 붓 : 원문은 ‘如椽之筆’. 다른 사람의 문장이나 서법이 뛰어나다고 칭찬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의 서예가 왕순王珣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 542)광충교廣冲橋 : 약칭 광교廣橋. 서울 청계천의 여섯 번째에 있었다고 해서 육교六橋라고도 하였다. 광교는 후에 이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 543)수표교水表橋 : 원래는 청계 2가 수표다리길 사거리에 있었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었다가 현재는 장충단奬忠壇 공원 입구의 개천 위에 놓여 있다.
- 544)비단 마음과 수놓은 입 : 원문 ‘錦心繡口’. 짓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
- 545)물고기 눈을~만든 것이라 : 물고기 눈(魚目)과 연석燕山(연산에서 나는 돌)은 진주처럼 보이지만 진주가 아니므로 가짜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투박한 것을 표현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평범한 바위(碌石)’라고 하였는데 문맥상 ‘연석’의 뜻으로 사용한 듯하다.
- 546)『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 : 우담 홍기優曇洪基(1832~1881)가 백파 긍선白坡亘旋의 『禪文手鏡』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자 1874년에 찬술하여 1913년에 송광사에서 간행함. 본문의 「『선문증정록』을 인쇄하기 위해 베껴 쓰고 난 후의 발문」 참조.
- 547)선생의 글을 : 1913년에 간행된 『禪門證正錄』에는 예운산인猊雲散人의 서문이 있는데 여기에 우담 홍기의 강연에 참석한 지 40년 후에 천 리 바깥에서 서문을 쓴다는 표현(予曾叅曇老講筵。晨夕茶甌香篆之間。頗論箇事。髣髴皓月淸風之會于碧巖松軒。爾四十年後。落筆於千里雲海之中。)이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월거사擎月居士’는 ‘예운산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548)혜감慧鑑 : 지혜로운 상대방이 잘 살펴 달라는 뜻으로 편지에서 쓰는 투식어.
- 549)괴군蒯君이 한신韓信을 설득함에 : 괴군은 제나라 사람 괴통蒯通. 그는 한신에게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도 삶는다는 토사구팽을 언급하며 “군주가 위협을 느낄 정도의 용기와 지략이 있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라는 경고의 말을 하였다.
- 550)음식을 미루어~ 않다’는 말 : 한신韓信이 제나라를 점령하자 항우項羽가 그에게 유방劉邦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했는데 한신이 거절하며 “한왕漢王은 나를 중용했을 뿐만 아니라 나를 대장군에 봉하여 수만의 군대를 지휘하게 했으며, 아울러 나에게 관심을 가져 ‘옷을 벗어 나를 입혔고, 음식을 미루어 나를 먹였고, 말을 하면 들어 주고 계책을 채용해 주었는데 내가 배반하면 좋지 않다.(解衣衣我。推食食我。言聽計用。我倍之不祥。)”라고 했다. 『史記』 「淮陰侯列傳」.
- 551)석숭石崇 : 서진西晋의 대부호大富豪. 낭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 552)윤왕輪王 : 윤보輪寶를 굴리면서 세계를 통치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약칭.
- 553)붉은 모래(丹砂) : 연단鍊丹을 해서 단약丹藥을 만들어 내는 광물의 이름이다. 옛날 도사道士들은 단사를 원료로 하여 불로장생의 비약祕藥을 구워 냈다.
- 554)용맹龍猛(150~250) : 나가르주나Nagarjuna, 용수龍樹. 밀교密教에서는 ‘용맹’이라고 나타내기도 한다.
- 555)사가라沙迦羅 : ⓢ Sāgara. 사갈라沙竭羅. 사가라는 ‘큰 바다’라는 뜻.
- 556)4천하 : 우주의 중심 수미산의 사방에 있는 4대주大洲. 염부주는 4대주 가운데 남쪽에 있다.
- 557)삼장법사 : 경율론 삼장에 통달한 불교 학자를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현장玄奘(602~664)을 가리킨다. 현장은 스승과 경전을 찾아 16년간 중앙아시아 지역과 인도 등을 여행했다. 645년 현장법사는 여행을 마치고 많은 경전과 율律, 논論, 불상, 사리 등을 가지고 당나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당 태종이 그에게 구법 여행을 기록할 것을 명하자 열두 권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여행한 138개국의 지리, 기후, 산물, 정치, 교통, 언어, 전설 등과 사찰ㆍ승려의 수, 인물 등 불교적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大唐西域記』를 편찬했다.
- 558)원감국사圓鑑國師 : 충지冲止(1226~1293). 법호는 법환法桓ㆍ복암 노인宓庵老人, 시호는 원감圓鑑, 속명은 위원개魏元凱. 원나라 세조의 흠모를 받았으며, 원오圓悟의 법을 이어 수선사修禪社 제6세 국사가 되었다.
- 559)해은海隱 공公 : 해은 재선海隱栽善. 금명 보정에게 수업을 받은 승려.
- 560)군지軍持 : ⓢ kuṇḍikā의 음사. 물병. 그러나 여기서는 소지품을 가리킴.
- 561)용왕 턱 밑에서 진주를 : 『莊子』 「列禦寇」에 “천금의 구슬이 깊은 연못 여룡의 턱 밑에 있다.(夫千金之珠。必在九重之淵。而驪龍頷下。)”라고 하였다.
- 562)육당 학인六堂學人 최 공崔公 : 최남선崔南善(1890~1957). 본관은 동주東州,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육公六이다. 호는 육당六堂 등. 1906년 신문관新文館을 설립하고 1908년 11월 잡지 『少年』을 출판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이다. 1910년 3월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의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냈고, 같은 해 10월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해 조선의 고서古書를 발간하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고자 하였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 하나였지만, 이어 친일 활동을 하였다.
- 563)합포合浦의 진주가 돌아왔고 : 합포는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구슬의 산지이다. 탐욕스런 태수가 부임하자 구슬이 나오지 않다가 뒤에 맹상孟嘗이라는 청렴한 관리가 오자 다시 나왔다고 한다. 『後漢書』 「孟嘗傳」.
- 564)화씨和氏의 구슬이 완전해졌도다 :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초나라 변화卞和가 초산楚山에서 얻은 구슬 화씨벽和氏璧을 소유하게 되었다.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이 소문을 듣고 조에 사신을 보내어 15성城과 화씨벽을 바꾸자고 청하였다. 혜문왕의 명을 받고 인상여印相如가 화씨벽을 일단 소양왕에게 바쳤으나 15성 이야기는 조금도 비치지 않자, 인상여는 구슬에 흠집이 있어 가르쳐 드리겠다고 속여서 구슬을 돌려받고는, 왕이 15성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구슬은 가져가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와 이 구슬을 부숴 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 소양왕은 할 수 없이 인상여를 정중하게 놓아 보냈다. 『史記』 「印相如傳」.
- 565)기궐씨剞劂氏 : 판목版木을 새기는 사람.
- 566)저옹돈장著雍敦牂 : ‘무오’에 해당하는 고갑자.
- 567)아랑위兒郎偉 : 상량문에서 시 첫 부분에 쓰는 말. 대개 ‘어기여차’의 뜻으로 봄.
- 568)도솔타兜率陀 : 도솔천兜率天. ⓢ Tusita-deva. 욕계 6천의 넷째 하늘에 해당한다. 도사다覩史多ㆍ도솔타ㆍ도술兜術이라고도 쓰며, 여기에 내원內院ㆍ외원外院이 있으니, 외원은 일반 천중天衆의 욕락처欲樂處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를 말한다.
- 569)색구경色究竟 : 아가니타阿迦尼吒(阿迦膩吒). ⓢ akaniṣṭha. 색계 17천天 가운데 가장 위에 있으므로 색구경이라 번역. 형상에 얽매여 있는 경지의 가장 위에 있으므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함.
- 570)비상계非想界 : 비상비비상계非想非非想界. 무색계의 넷째 하늘.
- 571)의정依正 :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부처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을 의보,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을 정보라고 함.
- 572)내원㮈園 : 바라내국波羅㮈國(Bārāṇasī)의 녹야원鹿野苑. ⓢ mṛgadāva. 석가모니불이 성도 후 최초로 설법한 성지.
- 573)개산開山 : 절을 처음 창건함.
- 574)산은 ‘모후산母后山’이니~이름을 바꾸었고 :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쳐들어 왔을 때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전라남도 화순군까지 피난을 왔는데,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여 남짓 머물렀다고 한다. 그 후 원래 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 이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 575)제월천濟月泉의 좋은 인연 : 제월천은 유마사 계곡에 흐르는 물. 당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 유마운維摩雲이 관직을 버리고 화순 동복군으로 건너와 유마사를 창건하여 머물다가 죽었고 그의 딸 보안普安이 혼자 머무는데, 자기를 사모하여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승려에게 ‘달을 건져 내면 내 몸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하는 등의 방편을 써서 정욕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 576)뻐꾸기(布穀) : 뻐꾸기 울음소리 ‘포곡布穀’을 모내기를 재촉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풍년을 점친다고 한 것이다.
- 577)돌다리 : 보안교普安橋. 보안普安이 치마폭으로 싸 놓은 다리라고 한다.
- 578)삼불三佛 : 극락세계에 있다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大勢至보살을 일컫는 말.
- 579)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 580)십주十州 : 신선이 산다는 열 개의 섬 ‘십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 581)군옥부群玉府 : 군옥산群玉山은 서왕모西王母가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산仙山인데, 뒤에 제왕의 장서각藏書閣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는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穆天子傳』.
- 582)응진당應眞堂 : 나한전羅漢殿.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고 깨달음을 이루어 아라한이 된 부처님의 큰 제자를 모신 법당이다. 주불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을 때는 영산전靈山殿이라 하고 열여섯 분의 아라한阿羅漢들만 모셨을 때는 응진전應眞殿, 나한전 또는 응진당이라고 한다.
- 583)광서光緖 5년 신사(1881) : 신사는 광서 7년에 해당한다. ‘신사’를 기준으로 서력을 표시했다.
- 584)김규홍金奎弘(1845~?) :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자는 화일華一이며 서울 출신이다. 1889년 전라도 관찰사, 1891년 형조판서, 1892년 예조판서, 1893년 공조판서ㆍ경기도 관찰사, 1894년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 585)금용金容 : 불타와 보살의 황금빛 얼굴.
- 586)할향喝香 : 부처님께 향을 살라 올리며 부르는 노래.
- 587)헌재獻齋 : 재를 올림.
- 588)모자茅茨 : 띠로 이어 만든 지붕.
- 589)당우堂宇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일컫는 말.
- 590)대량월大梁月 : 미상. 원문을 보면 ‘夾鍾’에 점을 찍고 ‘大梁’이라고 표기하였다. 협종은 2월을 가리킨다. 2월은 대장월大壯月이라고도 하니 대장월의 오기일 수도 있다.
- 591)진송秦松 : 진시황秦始皇이 봉선을 행하러 태산泰山에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는 그 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 592)사대부四大夫 : 미상. ‘오대부五大夫’의 오기가 아닐까.
- 593)한백漢柏 : 한 무제가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비유했고, 태산에 여섯 그루를 심었는데 아직도 네 그루가 있다고 한다.
- 594)육위六偉 : 상량할 때 사방과 상하 여섯 방위로 노래함을 뜻함.
- 595)왕은 어느~소리를 들을까 : 촉蜀나라 망제望帝인 두우杜宇가 임금 자리를 내 주고 도망칠 때에 자규, 즉 두견이가 울었는데, 그 뒤로 촉 땅 사람들이 두견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망제를 생각한 나머지 비감에 사로잡혀 마치 자규가 “어째서 빨리 돌아가지 않는가.(不如歸去)”라고 하며 울어 대는 것처럼 들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太平御覽』 권166.
- 596)심향心香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향을 불살라서 부처에게 바치는 결재潔齋(심신을 깨끗이 하는 것)하는 마음.
- 597)담제禫祭 : 대상大祥을 치른 다음다음 달 하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
- 598)자미궁紫微宮 : 자미성紫微星의 별자리를 천자天子의 자리로 삼아 일컫는 말. 옥황상제가 거하는 곳을 말하기도 함.
- 599)요일堯日 : 요임금의 해라는 뜻으로 태평시대를 뜻하는 말이다. 『史記』 권1 「五帝本紀」의 “제요라는 분은 방훈이니, 어질기는 하늘과 같고 아는 것은 신과 같으며, 가까이 나아가면 태양과 같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과 같다.(帝堯者放勳。其仁如天。其知如神。就之如日。望之如雲。)”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 600)비상천非想天 :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무색계의 넷째 하늘.
- 601)순풍舜風 : 순舜임금의 풍화風化. 즉 순임금 시대와 같은 교화라는 뜻으로 찬양한 것임. 순임금이 오현금五弦琴을 만들어 남풍南風을 노래하였다고 한다.
- 602)계의契誼 : ‘친분’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계契’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 603)열반묘심湼槃妙心 :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오묘한 깨달음의 마음.
- 604)마하가섭摩訶迦葉 : ⓢ mahākāśyapa의 음사. 대음광大飮光이라 번역.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 용맹정진의 두타행頭陀行이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을 받은 상수제자上首第子.
- 605)삼승교법三乘敎法 : 성문聲聞, 연각緣閣, 보살菩薩에 대한 세 가지 교법敎法.
- 606)일념회광一念廻光 : 청정일념으로 자기의 본래면목을 되돌아본다는 뜻. 일념회광하면 자기의 본성이 그대로 부처임을 알게 된다.
- 607)삼기三祗 :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 아승기(ⓢ asanga, asaṃkhya)는 무수無數를 의미. 보살이 발심發心한 뒤 수행을 완성하여 부처가 될 때까지의 수행 기간. 이 수행의 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이라 함. 세 부분으로 나눈 수행의 기간은 경론經論마다 설이 일정하지 않다. 보살의 50계위를 3기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나누기도 한다. ① 제1아승지겁 : 10신信ㆍ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回向의 40위位. ② 제2아승지겁 : 10지地 가운데 초지初地(환희지)부터 7지까지. ③ 제3아승지겁 : 8지(부동지)부터 10지(법운지)까지.
- 608)일대장교一大藏敎 : 방대한 경전.
- 609)요의了義 : 불법의 이치를 끝까지 규명하여 분명하게 설명해서 나타냄.
- 610)고야산姑射山의 선인仙人은~않게 하고 : 『莊子』 「逍遙遊」에 나오는 이야기.
- 611)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구름을 탔다 : 유안이 『八老丹經』 36장을 받아 단약丹藥을 단련하여 이를 먹고 대낮에 승천하였는데, 개와 닭이 솥 속에 남아 있던 단약을 핥아 먹고 또 승천하여, 닭은 천상에서 울고 개는 구름 속에서 짖었다고 한다. 『神仙傳』.
- 612)불종佛種 : 불과佛果를 내는 종자. 보살의 수행을 말함.
- 613)듣고도 믿지~복을 더한다 : 「永明智覺禪師唯心訣」의 글이다. 『大正新脩大藏經』 권48, 996면.
- 614)반야 위에~공부가 없다 : 원문 ‘般若上無虛棄之功夫’와 유사한 ‘般若無虛棄之功’ 구절이 『雪關禪師語錄』 권10 「與錢機山相國」에 보인다. 설관 선사는 명나라 승려로서 법명은 지은智誾(1584~1637) 또는 도은道誾이다. 『嘉興藏』 권27, 514면.
- 615)본문 앞부분에는 3월 31일에 쓴 축문 「제운당 비석을 세우는 축문」이 있다.
- 616)지인은 사사로움이~공적이 없거늘 : 지인은 도를 체득한 자를 말하며, 이 구절은 『莊子』 「逍遙遊」에 나온다. 대덕은 덕이 높은 스님.
- 617)알가閼伽 : ⓢ argha의 음사. 불전에 바치는 청정한 물, 또는 그것을 담는 그릇.
- 618)벽담碧潭 : 행인幸仁(1721~1788).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제자. 해남 대흥사의 13대 강사에 속한다.
- 619)각령覺靈 : 입적한 고승을 높여 이르는 말.
- 620)덕산德山 : 당나라의 선승禪僧으로 행사行思 밑에서 제5조가 되었다. 엄격한 수행으로 유명하고 제자를 가르칠 때 몽둥이를 잘 썼으므로 ‘임제臨濟의 할喝, 덕산의 몽둥이’라는 말이 나왔다. 본문에서 ‘덕산의 할’이라고 한 것은 착오인 듯하다.
- 621)열여덟 분(公)의 당堂 : 송광사의 ‘송松’은 ‘十八公’으로 파자된다. 열여덟 분의 큰 스님이 불법을 널리 펴는(廣) 사찰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라는 전설이 있다.
- 622)금송錦頌 : 비단처럼 아름다운 노래.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재주는 금송에 뒤져서 글을 짜내기 어렵다.(才輸錦頌文難織)”라는 구절이 있음.
- 623)운근雲根 : 구름이 생겨 나는 밑뿌리라는 뜻인데 돌이나 바위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비석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함.
- 624)학사學肆 : 경론經論을 배우고 익히는 곳.
- 625)걸桀ㆍ주紂와 유幽ㆍ려厲 : 폭군들.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걸과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 주周나라 때의 폭군인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 626)예천醴泉 : 단맛이 나는 물이 솟는 샘. 태평한 시대에 상서祥瑞라고 함. 『禮記』 「禮運」.
- 627)창의氅衣 : 벼슬아치가 평상시 입던 웃옷. 직령으로 된 포의 하나로, 도포와 두루마기의 중간 형태임.
- 628)삼불후三不朽 : 세 가지 (영원히) 썩지 않을 일. 입덕立德ㆍ입공立功ㆍ입언立言. 『春秋左傳』.
- 629)상족上足 : 뛰어난 제자.
- 630)타니대수拖泥帶水 : 진흙과 물을 끌어 온다는 뜻으로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몹시 수고로움을 뜻한다.
- 631)대훈위大勳位 : 나라나 군주를 위하여 드러나게 세운 공로와 벼슬의 등급인 훈위의 최고 단계.
- 632)이태왕李太王(1852~1919) : 고종을 가리킴. 조선 제26대 왕.
- 633)선가仙駕 : 돌아가신 분을 일컫는 말.
- 634)폭원여도幅員輿圖 : ‘폭원’과 ‘여도’ 둘 다 강토를 뜻함.
- 635)동관彤管 : 대에 붉은 칠을 한 붓. 옛날 여사女史가 궁중에서 기록을 할 때 붉은 칠을 한 붓대를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역사’를 가리키는 듯함.
- 636)선어仙馭 : 신선이 타고 오르는 수레. 곧 임금이 세상을 떠남을 말함.
- 637)기사耆社 : 기로소耆老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
- 638)법인法忍 : 진리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거기에 안주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음.
- 639)칠정七政 : 일日ㆍ월月과 오성五星, 즉 화火ㆍ수水ㆍ금金ㆍ목木ㆍ토土.
- 640)삼기三奇 : 사주 내에서 삼기는 3살殺의 것이라고도 하며 재관인財官印을 뜻한다. 삼기는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복록수福祿壽를 아울러 관장하는 신으로 일日을 주로 하고 사주가 순順하면 길운, 역逆의 것은 흉운으로 한다.
- 641)임자생 : 고종이 태어난 해가 임자년(1852)이다.
- 642)제8평등왕平等王 : 명부전 시왕 가운데 여덟 번째로서 사후 100일을 담당한다고 한다.
- 643)망륙望六의 나이 :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으로 51세를 가리킨다. 고종은 1902년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 644)불번佛幡 : 예로부터 경계를 알리는 순수한 깃발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장례의식의 도구 혹은 불교의 장엄구로 사용된다.
- 645)탁의卓衣 : 승려가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법의法衣.
- 646)장병帳屏 : 천으로 만든 칸막이. 병풍 등을 가리킨다.
- 647)배수拜手 : 두 손을 들어 마주 잡고 절을 함.
- 648)원요原要 : 원시요종原始要終. 일의 시작을 깊이 궁구하고 일의 마지막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이다.
- 649)화장華藏 : 연화장蓮華藏세계. 비로자나불이 있는 공덕 무량功德無量, 광대 장엄廣大莊嚴의 세계.
- 650)사바娑婆ㆍ염부제閻浮提 : 둘 다 인간 세상을 가리킴.
- 651)찰찰원융刹刹圓融하고 진진혼입塵塵混入하니 : 찰토와 찰토가 원융무애하고 티끌과 티끌이 혼융한다는 뜻으로 『華嚴經』의 세계를 형용하는 말.
- 652)광장설상廣長舌相 : 넓고 긴 부처님의 혀 모양. 이는 허망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는 상相. 『法華經』에 세존世尊이 대신력大神力을 보인 것은 광장설과 청정법신淸淨法身에서 나왔다 했다.
- 653)보림寶林 조계 : 육조 혜능이 소주韶州 조계曹溪에 있는 보림사寶林寺에 머물렀던 것을 말함.
- 654)아란야阿蘭若 : ⓢ araṇya. 수행처. 마을에서 떨어져 수행자들이 머물기에 적합한 곳.
- 655)고봉高峯(1350~1428) : 법명은 법장法藏, 속성은 김씨, 본관은 신주愼州이며 다른 호는 지숭志崇. 송광사 16번째 국사. 고봉국사는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20세 때 출가하여 나옹懶翁을 스승으로 삼고 법맥을 이었다. 30년 동안 국내 명산을 찾아다닌 끝에 송광사에 머물렀다. 16국사 중 마지막 국사이며, 1428년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신찬信贊ㆍ혜성惠性ㆍ상제尙濟ㆍ홍인洪仁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高峰法藏歌集』과 「普濟尊者三種歌」가 있다.
- 656)세 화상 : 나옹 혜근懶翁慧勤이 공민왕으로부터 왕사 책봉을 받은 후 수선사(송광사)에 머물며 1371년부터 1373년까지 사주를 역임했고, 이어서 제자인 무학 자초無學自超(1373~1375)와 환암 혼수幻庵混修(1375~1376)가 사주를 역임했다.
- 657)백암栢庵 : 성총性聰(1631~1700)의 호. 13세 때 출가하여 지리산 수초守初 밑에서 불경을 배웠고 많은 불서를 간행하였다.
- 658)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조.
- 659)진락대眞樂臺 :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위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鴟)를 날려 보냈더니 지금의 송광사 국사전 뒷등에 앉았다. 그래서 그 뒷등을 치락대鴟落臺(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는데 후에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가 진락대라고 했다 한다.
- 660)갑경甲庚 : 갑은 정동에서 15도 북으로 올라간 방향이고, 경은 반대로 정서에서 15도 남으로 내려간 방향이다.
- 661)임병丙壬 : 임은 정북에서 15도 서쪽으로 기울고, 병은 반대로 정남에서 15도 동쪽으로 기운 방향이다.
- 662)동림東林 18현인 : 동림사는 진晉나라 혜원慧遠 법사가 머물던 여산廬山의 사찰. 이곳에서 당시 유명했던 18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였다.
- 663)진당眞堂 : 영각影閣. 초상을 모신 건물.
- 664)십승지十勝地 : 조선 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10여 곳의 장소. 전통적 이상향의 하나이다.
- 665)도선道詵(827~898) :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과 풍수지상법風水地相法을 담은 『道詵秘記』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 666)현릉玄陵 : 고려 공민왕의 능.
- 667)해동 제일의~현릉이 칭찬하였습니다 : ‘송광사는 동방 제일의 도량이므로 나옹 혜근懶翁惠勤에게 왕명으로 거주토록 하였다’는 기록이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문」에 보인다. 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가산문고, 1997.
- 668)먹은 것을~비늘을 흩뿌리고 : 보조국사가 송광사 터에 사찰을 세우려고 그곳에 머물던 도둑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니 그들이 국사의 신통력을 시험하려고 살아 있는 물고기를 공양하였는데, 국사가 이를 받아 삼켰다. 도둑들이 국사의 파계 행위를 비난하며 해하려 하자, 국사가 물가로 가서 물고기들을 모두 산 채로 뱉어 냈다. 그것이 지금 송광사 능허교 아래에서 노니는 물고기 떼의 원조라고 한다.
- 669)단향목 : 송광사의 향나무 두 그루 쌍향수는 천연기념물 88호로 지정되어 있다.
- 670)군옥부群玉府 : ‘옥이 보관된 창고’라는 뜻으로 경치 좋은 곳을 뜻한다. 군옥산群玉山은 서왕모西王母가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산仙山이다. 『穆天子傳』.
- 671)가정嘉靖과 천계天啓 : 가정은 명나라 세종 때의 연호로서 1522년부터 1566년이고, 천계는 명나라 희종 때의 연호로서 1621년부터 1627년이다.
- 672)입계入啓 :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글월을 올리거나 또는 직접 아뢰는 일.
- 673)이설월李雪月 : 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동국대학교의 전신으로 1906년에 개교한 명진학교明進學校 2회 졸업.
- 674)정당政堂 : 지방 관아. 여기서는 (건축) 업무를 주관하는 곳을 말함.
- 675)기수祇樹 : 기타수祇陁樹, 곧 기타祇陁 소유의 수풀. 기타는 중인도中印度 사위성舍衛城 파사닉왕波斯匿王의 태자 이름임.
- 676)내원㮈園 : 바라내국波羅㮈國(Bārāṇasī)의 녹야원鹿野苑. 석가모니불이 성도 후 최초로 설법한 성지.
- 677)수재倕材 : 좋은 재목을 가리킴. 수倕는 요堯임금 때 뛰어난 목수. 춘추시대 말기의 공수반公輸班과 함께 유명한 교장巧匠으로 알려졌다. 『莊子』 「達生」.
- 678)대량춘大樑春 : 미상. 문맥상 1월을 가리키는 듯함.
- 679)복궤覆簣 : 삼태기로 흙을 날라 쌓음.
- 680)택천澤天과 고선姑洗(3월) : 택천쾌澤天夬 괘는 3월에 해당하고, 고선은 12율律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니 둘 다 3월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 681)황폐한 섬돌을~음악이 울리고 : 이 부분은 대체로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을 활용하였다.
- 682)가라궁迦羅宮 : 사가라沙迦羅궁을 가리키는 듯함. 사가라는 8대 용왕의 하나로서 고대로부터 비를 내려 주는 신으로서 널리 숭앙받고 있으며, 특히 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해 주는 대표적인 호법신이다. 수많은 불경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 683)사은四恩 : 『心地觀經』에 따르면 부모의 은혜, 중생의 은혜, 국왕의 은혜, 삼보의 은혜를 들고, 일체의 중생은 모두 사은을 진 존재라고 함.
- 684)만수사리曼殊舍利 :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동쪽 부동지불不動智佛의 금색 세계’에 있는 보살이다.
- 685)당노堂老 : 해당 건물의 노스님.
- 686)고추古錐 : 노선사에 대한 경칭. 선기가 예민하기가 날카로운 송곳과 같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 687)각수覺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남방 무애지불無碍智佛의 묘색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 688)재수財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서방 멸암지불滅暗智佛의 연화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 689)삼일명천三日明泉 : 삼일영천三日靈泉.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송광사 삼일암 옆의 예천醴泉을 마시면서 선정을 닦아 사흘 만에 견성하였으므로 이 암자를 ‘삼일암’이라 하고 샘을 ‘삼일영천三日靈泉’이라 했다.
- 690)보수寶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북방 위의지불威儀智佛의 담복화색薝蔔華色 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오는데, 북방에 연화장 사자좌를 화작化作하여 결가부좌한다고 하였다.
- 691)현수賢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상방 관찰지불觀察智佛의 평등색 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 692)도솔천과 야마천 : 도솔천은 욕계 6천 중 제4천으로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천상의 정토이고, 야마천은 욕계 6천 중 제3천이다.
- 693)파리玻璃 : 칠보 중의 하나.
- 694)지수智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아래쪽 범지불梵智佛의 파리색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 695)찰번刹幡 : 사찰 앞의 찰간刹竿, 즉 당간幢竿에 달려 있는 깃발로서, 사찰에서 설법이나 특별한 의식 행사가 있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 696)화장찰해華藏刹海 : 『華嚴經』의 세계, 즉 연화장세계를 말함.
- 697)학성군鶴城君 : 김완金完(1577~1635). 본관 김해, 자는 자구子具. 인조 2년(1624)에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학성군에 봉해졌고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 698)소요逍遙 : 태능太能(1562~1649)의 호. 담양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백양사에서 출가하고 부휴 선수浮休善修로부터 장경을 배우고 서산대사에게 선지禪旨를 깨달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군僧軍에 가담하였고 후에 지리산 연곡사燕谷寺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 699)가산迦山 : ⓢ potalaka.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 관음보살의 상주처. 『華嚴經』 「入法界品」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다에 접한 아름다운 곳이라 하였다.
- 700)금송錦頌 : 비단처럼 아름다운 노래.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재주는 금송에 뒤져서 글을 짜내기 어렵다.(才輸錦頌文難織)”라는 구절이 있음.
- 701)기봉奇峰 : 장오藏旿(1776~1853)의 호. 침명枕溟ㆍ인파印波ㆍ성암惺庵과 함께 4대 종장宗匠으로 일컬어졌고,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龍雲堂이 1829년에 기봉 대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이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에 나온다.
- 702)화주和州 : 함경남도 영흥.
- 703)묵암默庵 : 최눌最訥(1717~1790)의 호. 본관은 밀양이고, 성은 박씨이며 자는 이식耳食이다. 전라도 흥양현興陽縣 장사촌長沙村 출신.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법을 이었다.
- 704)두월斗月 : 우홍禹洪(1744~1816)의 호. 1797년에 제운霽雲과 함께 송광사 천자암을 중건하였다. 본문 앞쪽에 「두월 화상의 문계 서문」이 있다.
- 705)선서善逝 : 깨달음에 잘 이르렀다는 뜻, 곧 부처를 일컫는데 여기서는 ‘입적’이란 뜻으로 쓰임.
- 706)많은 무리들이~생각하지 않겠습니까 : “무리가 실로 많도다.(寔繁有徒)”라는 『書經』 「仲虺之誥」의 구절과 “네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無念爾祖)”라는 『詩經』 「大雅」 ≺文王≻의 구절을 합친 표현으로 최치원이 「智證和尙碑銘」에서 “無念爾祖。寔繁有徒。”라고 한 것을 차용한 표현이다.
- 707)유순由旬 : ⓢ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실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약 8km로 간주함.
- 708)호령봉號令峰 : 881m. ‘효령봉’이라고도 하는데 현재 ‘연산봉’이라 불림.
- 709)시루봉(甑峯) : 왼쪽이 ‘관재’와 ‘망수봉’으로 뻗어 내리는 송광사의 백호 줄기로 Y자형 삼거리인 곳.
- 710)축간丑艮(동북) : 간艮은 동북, 축丑은 동북에서 북으로 15도 위쪽.
- 711)경태庚兌(서쪽) : 태兌는 정서, 경庚은 정서에서 남으로 15도 아래쪽.
- 712)김군수金君綏 :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설당雪堂. 아버지는 김돈중金敦中이며, 할아버지는 김부식金富軾이다. 1210년(희종 6) 공주지사公州知事 재임 시에 「松廣寺普照國師碑銘」을 찬술하였다.
- 713)청진국사淸眞國師 : 고려 승려 몽여夢如(?~1252)의 시호. 수선사修禪社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 이규보李奎報와 교유.
- 714)연화緣化 : 불사佛事를 경영하여 시주의 연분을 구하고 사업을 설계함.
- 715)날아갈 듯 : 원문 ‘翬飛’는 『詩經』 「小雅」 ≺斯干≻에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으며, 꿩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如鳥斯革。如翬斯飛。)”에서 나온 말이다.
- 716)하탑下榻 : 걸상을 내린다는 뜻으로, 손님을 맞아 극진히 대접함을 이르는 말. 후한의 진번陳蕃이 높은 선비였던 주구周璆를 위하여 특별히 안석案席을 마련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 717)간고幹蠱 : 주 425 참조.
- 718)천의天衣 : 보살이나 천인이 입는 얇은 옷으로 무봉의無縫衣라고 한다.
- 719)승국勝國 : 바로 이전 왕조. 여기서는 고려.
- 720)거조사居祖寺 : ‘거조암’이라고도 함.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팔공산에 있는 절. 693년(효소왕 2) 원효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고려 시대에는 지눌知訥이 송광사에 수선사修禪社를 세워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룩하기 전에 각 종파의 고승들을 맞아 몇 해 동안 수행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 721)신석희申錫禧 :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사수士綬이며, 호는 위사韋史이다. 1848년(헌종 14) 5월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즉위년) 오정수吳正秀ㆍ박규수朴珪壽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으며, 1854년에는 순천부사順天府使로서 수재水災 수습에 진력하였다. 글씨에 능하여 광화문의 상량문을 썼으며, 저서에 『東狹紀』가 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 722)구봉九峰 : 혜흔慧昕의 호. 경남 산청군의 대원사를 1890년에 크게 중창했던 기록이 있다.
- 723)금나라 황제의~데리고 왔다 : 금나라 장종章宗이 불법을 시험하려 하자 고려의 보조국사께서 허공을 날아 금나라에 가서 시험에 응하니 제천諸天이 꽃비를 내렸다. 이에 장종이 스승의 예로 영접하고 예우하다가, 국사가 귀국하자 세 번째 왕자를 제자로 보냈으니 이가 후에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9세 담당국사가 되었다고 한다.
- 724)화덕군火德君 : 화덕진군火德眞君. 불을 맡은 신령으로 축융祝融이라고도 한다.
- 725)구화군救火軍 : 불 끄는 일꾼.
- 726)주먹을 펼~깨닫지 못한 : 보시할 인연을 깨닫지 못함을 뜻함. 어떤 장자長者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주먹을 펴지 못하는 아들을 데리고 천축天竺의 24조祖인 사자 존자師子尊者를 찾아와서 하소연하자, 존자가 찬찬히 살펴보다가 “내 구슬을 돌려다오.”라고 말하니, 그 아들이 주먹을 펴고 구슬을 돌려주었는데, 이는 존자가 전생에 승려의 신분으로 서해西海 용왕재龍王齋에 참석했을 때 동자에게 맡겨 둔 구슬이었다는 이야기가 『聯燈會要』 권2 「二十四祖師子尊者」에 나온다.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莫悟申拳’ 구절이 나온다.
- 727)『영월집詠月集』 : 영월 청학詠月淸學(1570~1654)의 문집. 영월의 자는 현주玄珠 또는 수현守玄, 속성은 홍洪, 어머니는 강씨姜氏. 13세 때 가지산 보림사寶林寺로 출가하였다. 이후 지리산에 가서 부휴 선수浮休善修 밑에서 배웠고, 다시 묘향산의 청허 휴정淸虛休靜에게 배워 그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산에서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 728)신종 7년(1204) 갑자년이다 : 뒤에 나오는 393년을 기준으로 하면 보조국사가 입적한 희종熙宗 6년(1210) 경오년이 되어야 하므로 오기인 듯하다.
- 729)길금吉金 : 길씨吉氏 선여인이 보시한 금액을 말하는 듯함. 본문 「조계산 국사전의 중창에 따른 상량 명과 서문」을 보면 1916년에도 4백 원을 보시한 기록이 있다.
- 730)회차會茶 : 모여서 차를 마심.
- 731)간고幹蠱 : 주 425 참조.
- 732)관산冠山 : 천관산이 있는, 전라남도 장흥군 남부에 있는 읍.
- 733)포금布金 : 황금을 땅에 깐다는 뜻으로, 사원 건립 기금을 시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석가의 설법을 듣고 매우 경모한 나머지 정사精舍를 세워 주려고 기타 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을 구매하려고 하자, 태자가 장난삼아서 “황금을 이 땅에 가득 깔면 팔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수달 장자가 집에 있는 황금을 코끼리에 싣고 와서 그 땅에 가득 깔자, 태자가 감동하여 그 땅을 매도하는 한편 자기도 원중園中의 임목林木을 희사하여 마침내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건립했다는 ‘기원포금祇園布金’의 고사가 전한다. 『大唐西域記』 권6.
- 734)쿠리야마(栗山)와 기코(木子) : 쿠리야마 준이치(栗山俊一両)는 총독부의 명으로 1916년에 총독부 고적 일반 조사를 하였고 기코 토모타카(木子智隆)는 평양 보통문을 수리하고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등을 수축하였으며 석굴암을 복원하고 불국사 다보탑의 모습을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
- 735)일전어一轉語 : 미혹한 마음을 싹 바꿔 깨달음에 들게 하는 간단명료한 한마디 말.
- 736)기묘삭己卯朔 : 8월 1일의 갑자가 기묘라는 뜻.
- 737)한붕漢鵬(漢朋, 1864~?) : 고흥 출신으로 속성은 안씨安氏요, 자는 성학聖鶴이라고 본문 「승평군 조계산 극락교 기문」에 소개되어 있다. 현재 송광사 종고루鐘鼓樓 옆 약수터에 ‘漢朋和尙’이라 새겨져 있다.
- 738)두월斗月 : 우홍禹洪(1744~1816)의 호. 본문 앞쪽에 「두월 화상의 문계 서문」이 있다.
- 739)금천金天 : 김씨. 『三國史記』 41, 열전 1 「金庾信」에 신라인들이 스스로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의 후손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740)원화圓華 : 덕주德柱(1839~1893)의 호. 자는 수미守微. 전라남도 담양 출신.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승려가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본 책의 「지리산 대화엄사 임제종 36세 적손 원화 대선사의 행장 초고」 참조.
- 741)쌍기雙奇 : 기봉 장오奇峰藏旿(1776~1853)와 기운 설환奇雲說還을 가리킴.
- 742)사걸四傑 : 풍암楓巖 아래 4대 걸인으로 묵암 최눌默庵最訥과 응암 낭윤應庵朗允과 제운 해증霽雲海澄과 벽담 행인碧潭幸仁이 있었다고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에 기록되어 있다.
- 743)천자암天子庵(天庵) : 두월은 1797년에 제운霽雲과 함께 송광사 천자암을 중건하였다.
- 744)응신應身 : 과거세에 수행한 보과報果로 얻는 몸.
- 745)지혜의 가지~갑자기 쓰러지니 : 원문 “慧柯方秀。法棟俄折。”과 유사한 표현 “慧柯方秀。法棟俄墮。”가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나온다.
- 746)안개 속 넝쿨은 초췌하고 : 원문 ‘煙蘿憔悴’가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나온다.
- 747)울금鬱金 : 식물 이름인데 여기서는 울금향鬱金香을 넣어 빚은 향기 나는 술 울창주를 가리킴.
- 748)이 옹李翁 : 이병휘李秉輝(1851~?). 본관은 광주廣州. 1883년(고종 20) 선공감繕工監 감역관監役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1886년 별군직, 1888년 진해현감을 거쳐, 1889년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1895년 북한산성 관성장管城將, 1896년 경상남도 시찰관을 거쳐 평리원平理院이 개편된 고등재판소 검사, 법부 형사국장, 지방제도가 23부제로 개편된 뒤 제주부 관찰사로 있다가, 1896년 지방제도가 다시 13도제로 바뀌고 전라남도 산하에 제주목이 설치되자, 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재임 중인 1898년에 일어난 제주농민항쟁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면직되어 1901년 태笞 100의 선고를 받았다. 1906년 법부 한성재판소 수반판사로 복직되었고, 1907년 영암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에 한일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총독부 관리로 이동하였다. 조선총독부 군수로서 순천군, 곡성군, 진도군에서 근무하였다.
- 749)역로驛路 : 역마驛馬를 바꿔 타는 곳과 통하는 길.
- 750)하교河橋의 근심과 강수江樹의 부끄러움 : 하교와 강수는 이별하는 장소를 뜻하는 상투어. 강수의 부끄러움이란 전송을 하지 못한 마음을 가리킴. 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問이 두심언杜審言과 이별하며 지은 시 ≺別杜審言≻(『全唐詩』 권52)에 “병들어 누워 인사도 못하는데, 아, 그대 만 리 길 떠나시는가. 하수 다리에서 전송도 못하다니, 강가의 나무에 멀리 정이 어렸네.(臥病人事絶。嗟君萬里行。河橋不相送。江樹遠含情。)”라고 하였다.
- 751)낙강洛江 : 송광사 앞의 보성강을 가리키는 듯함. 송광사 근처에 ‘낙수리’라는 지명이 있다.
- 752)헌병軒屛 : 마루의 난간과 방안에 둘러친 병풍이라는 뜻으로, 어른의 가까운 곁을 이르는 말이다.
- 753)비야毘耶 : 지명. 여기서는 질병을 뜻함. 유마 거사維摩居士가 비야리성毗耶離城에서 늘 칭병稱病하고 누워서 문병 오는 불제자들에게 병을 가지고 설법했음.
- 754)연야演若 : 연야달다演若達多. 『楞嚴經』에서 부루나富樓那가 부처님께 망상의 원인에 대해 묻자, 실라성室羅城의 연야달다가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 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미쳐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원인이 없다고 하셨다.
- 755)영주瀛洲 : 바다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데 여기서는 진도를 빗대어 표현함.
- 756)응암應庵 : 낭윤朗允(1718~1794)의 호. 자字는 퇴옹退翁, 곡성군谷城郡 통명리通明里 출신이다. 속성은 초계草溪 최씨崔氏로 부친은 봉의鳳儀, 모친은 이씨李氏이다. 17세 때 용담龍潭 대덕에게 구족계를 받고, 18세 때(1735) 조계산 풍암 강백楓嵓講伯을 방문하여 공부하고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전하고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닦았다.
- 757)조정祖庭 : 조사가 머무는 뜰, 곧 선종을 뜻함.
- 758)설파雪坡 : 상언尙彥(1707~1791)의 호. 19세 때 고창 선운사에 투신하여 운섬雲暹 장로에게 머리 깎고 연봉蓮峯과 호암 체정虎巖體淨 두 화상에게 게송을 받았다. 또 회암 정혜晦菴定慧에게 배웠다. 서산西山에게 7세손이 되고 환성 지안喚醒志安에게 손자가 된다. 33세 때 용추사龍湫寺 판전板殿에서 불법을 강의하였다. 후에 해인사에 들어가 대경초大經抄를 교정하고 금강산과 두류산ㆍ묘향산으로 다니면서 좌선하였다. 1770년(영조 46) 징광사澄光寺에 불이 나서 『華嚴經』 판목板目이 타 버리자 사재私財를 털어 다시 새겨 영각사靈覺寺에 두었다.
- 759)회당晦堂 : 회암 정혜晦菴定慧(1685~1741). 숙종 37년(1711)에 율사栗寺에서 첫 강석講席 이후 석왕사와 명봉사, 청암사, 벽송사 등에서 활발하게 강석을 펼친 화엄종장으로 만년에는 김천 청암사에 주석했다. 부휴 선수浮休善修→벽암 각성碧巖覺性→모운 진언募雲震言→보광 원민葆光圓旻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으며 청암사와 쌍계사를 중심으로 해인사와 직지사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 760)호암虎嵓 : 호암 체정虎巖體淨(1687~1748). 환성 지안喚惺志安(1664~1729)의 제자임. 환성의 문인 가운데 함월 해원은 북쪽에서, 호암 체정은 남쪽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고 『山史畧抄』에 기록됐다. 조선 후기 호남과 영남에서 호암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호암을 비롯해 그의 문하로 만화 원오, 연해 광열, 영곡 영우, 연담 유일 등이 대흥사 12대 종사와 12대 강사로 불리고, 제자들은 호암이 표훈사 원통암에서 입적하자 추모 불사를 일으켰다.
- 761)관옥冠玉 : 모자를 장식한 아름다운 옥을 말하는데, 미남으로 소문났던 한漢나라 진평陳平에 대해서 주발周勃과 관영灌嬰 등이 “진평이 비록 외모는 잘생겨서 관을 장식한 옥과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속마음까지 꼭 그렇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平雖美丈夫。如冠玉耳。其中未必有也。)”라고 평한 기록이 보인다. 『史記』 권56 「陳丞相世家」.
- 762)범석范石 : 범려范蠡와 석숭石崇. 범려는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보좌하여 당시의 대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의 패업을 이루었다. 구천이 패업을 이룩한 후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월나라를 떠나 상인으로 성공했다. 석숭은 서진西晉 발해渤海 남피南皮 사람으로 사치를 좋아해 일찍이 귀척貴戚 왕개王愷와 함께 거부로 어깨를 겨루었다.
- 763)단금斷金 :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 『周易』 「繫辭」 上 “二人同心。其利斷金。”
- 764)향사香社 : 당나라 백거이白居易가 향산香山의 승려 여만如滿과 함께 결성한 향화사香火社의 준말. 결사結社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함.
- 765)노령蘆嶺 : 노령산맥에 붙어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에서 전라북도의 정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갈재.
- 766)무악毋岳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과 남면, 전라남도 순천시와의 경계에 있는 모후산母后山을 가리키는 듯함.
- 767)철위산(輪圍) : 세계의 가장 끝에 있는 산. 철륜위산鐵輪圍山 또는 금강산金剛山ㆍ금강위산金剛圍山이라고도 한다. 불교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의 한가운데에는 수미산이 있고, 아홉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가 이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다. 이를 ‘구산팔해九山八海’라 하는데, 이 중 가장 바깥쪽에 있는 산을 이르는 말이다.
- 768)소선蘇仙 : 송나라 시인 소식蘇軾을 신선에 빗댄 표현. 소식이 7월 기망旣望(16일)에 적벽 아래서 배를 띄우고 놀면서 「赤壁賦」를 지었다.
- 769)남극성 : 도교에서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수성인壽星人’, ‘수노인壽老人’으로 불리며 인간의 행복과 장수를 주관한다고 한다.
- 770)헌수獻壽 : 환갑이나 잔치 같은 때 오래 살기를 비는 뜻으로 주인공에게 술잔을 올림.
- 771)서석瑞石 : 무등산을 ‘서석산’이라고도 함.
- 772)사사四事 : 의복, 음식, 탕약, 와구臥具(침구류). 와구 대신 방사房舍(거주처)를 넣기도 함.
- 773)옛 성현 : ‘일미칠근一米七斤’, 즉 쌀알 하나를 만들려면 농부가 7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표현은 진晉나라 도안道安이 제자들에게 남긴 글에 보인다. 『緇門警訓』 권2.
- 774)칼을 차고 잠을 자며 : 잠을 잘 때도 번뇌를 자르는 칼을 차고 잔다는 뜻으로 수련에 매진함을 가리킨다. 『緇門警訓』 권3에 “帶刀而眠。離諸夢想。”이라 하였다.
- 775)김해강金海岡 : 해강은 김규진金圭鎭(1868~1933)의 호. 자는 용삼容三, 다른 호는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ㆍ무기옹無己翁. 서화 연구회를 창설하여 근대 한국 서화 미술 발전에 공헌하였다. 산수화로는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의 벽화가 유명하며, 저서에 『海崗蘭竹譜』와 『六體筆論』 따위가 있다.
- 776)안죽농安竹儂 : 죽농은 안순환安淳煥(1871~1942)의 호. 조선 음식 전문가. 대한제국의 궁중잔치 음식을 도맡았던 전선사典膳司의 책임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요릿집인 명월관明月館을 설립한 조선 음식 전문가이다.
- 777)청요직淸要職 : 청직淸職과 요직要職을 합한 말로, 지위가 높고 귀하며 맡은 직무가 중요한 관직을 가리킨다.
- 778)30본사本寺 : 1911년 6월 3일 일제가 「朝鮮寺刹令」을 공포하고, 같은 해 9월 1일 동시행규칙을 발표하였다. 이 법령은 일제의 식민지 종교 정책의 하나로 시행된 것으로, 삼십본산三十本山을 정하여 전국의 1,300여 사찰을 분할 관리하게 하고, 본사와 말사末寺에는 주지를 두되, 본사의 주지는 총독의 인가를, 말사의 주지는 각 도지사의 인가를 얻어서 취임하도록 규정하였다. 1924년 11월 20일 사찰령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전라남도의 화엄사華嚴寺가 본산으로 승격되었고, 이때부터 31본사가 되었다.
- 779)복천福川 : 동복현(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ㆍ이서면ㆍ북면ㆍ남면 일대)의 별호.
- 780)여항閭巷 : 서민이 사는 마을.
- 781)청전靑氊 : 선대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아,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靑氈我家舊物。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권80.
- 782)사승師僧 : 사표가 되는 승려를 이르는 말.
- 783)의정義淨(635~713) : 자字는 문명文明. 어려서 출가하고, 671년에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에서 바닷길로 인도에 가서 25년 동안 순례하면서 대소승을 배운 후 많은 범본梵本을 가지고 광주廣州를 거쳐 695년에 낙양洛陽에 돌아옴. 낙양 불수기사佛授記寺, 남경南京 복선사福先寺, 장안長安 서명사西明寺ㆍ대천복사大薦福寺 등에서 『金光明最勝王經』 등 56종 230권을 번역함. 저서로 『南海寄歸內法傳』과 『大唐西域求法高僧傳』이 있다.
- 784)혜교惠皎(495~554) : 남조 양梁나라 승려. 『高僧傳』을 지음.
- 785)보창寶唱 : 남조 양나라 승려. 18세 때 승우僧祐의 문하에 가서 경률을 배우고, 뒤에 장엄사莊嚴寺에 있으면서 여러 글을 찾아보아 이치를 짐작했다. 처사 고도顧道, 광려曠呂와 승지僧智 등에게서 경서와 역사, 장자, 주역을 연구했다. 그 뒤부터 역경 사업에 종사하여 여러 스님들의 저서를 찬탄, 또 여러 가지 책을 저술했다. 저서도 대단히 많은데 『比丘尼傳』 4권, 『名僧傳抄』 1권 등이 있다.
- 786)찬영贊寧(919~1002) : 호는 통혜通慧. 천태산天台山에서 구족계를 받고 경ㆍ율ㆍ논 삼장三藏을 널리 공부했는데, 특히 남산율南山律에 정통하였다. 유교나 노장 사상 등에도 해박하고 담론에도 뛰어나 왕후 귀족과 지식인의 존경을 받았다. 만년에 칙명으로 『宋高僧傳』 30권, 『大宋僧史略』 3권을 지었다.
- 787)도선道宣(596~667) : 당나라 승려. 현장玄奘이 645년에 귀국하여 홍복사弘福寺에서 역경譯經할 때 필수筆受와 윤문潤文을 맡음. 658년에 서명사西明寺가 완성되자 칙명으로 그 절의 상좌上座가 됨. 저서로 『續高僧傳』과 『廣弘明集』, 『釋迦氏譜』 등이 있다.
- 788)각훈覺訓 : 고려 고종 때 활동한 화엄종 승려. 호는 고양취곤高陽醉髠, 각월覺月이다. 흥왕사興王寺와 영통사靈通寺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엄종 고승이다. 일찍부터 이인로李仁老ㆍ이규보李奎報와 교유하였으며, 유학과 문장에도 능하였다. 1215년(고종 2) 영통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왕명으로 『海東高僧傳』을 저술했는데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 789)시반(師蠻, 1625~1710) : 일본 승려. 1702년에 『本朝高僧傳』(일본 고승전)을 저술. 1678년에는 선승禪僧에 관한 전기인 『延寶傳燈錄』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일반 승려는 물론, 선인ㆍ성인ㆍ신 등에 관한 전기도 싣고 있다.
- 790)범해梵海 : 각안覺岸(1820~1896)의 호. 자 환여幻如, 속성 최崔, 전라남도 완도 출생. 14세 때 해남 대흥사로 출가하여 호의縞衣를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16세 때 초의草衣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 불경과 함께 유서儒書도 익혔다. 27세 때 호의의 법法을 이어받고 진불암眞佛庵에 머물며 선禪과 교학敎學을 가르쳤다. 화엄학華嚴學과 선ㆍ계율에 모두 통했으며, 유ㆍ불ㆍ도 3교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저서에 『東師列傳』과 『梵海禪師遺稿』 등이 있다.
- 791)통방정안通方正眼 : 모든 곳에 통하는 바른 안목.
- 792)다섯 종파의 유파 : 육조 혜능 이후로 발생한 임제종, 위앙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을 말한다.
- 793)구산九山 :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선승들이 세운 선종의 아홉 산문. 『禪門祖師禮懺儀文』은 구산의 명칭과 장소, 개산조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각 선풍의 특성을 칠언사구의 시로 나타낸 문헌이다.
- 794)가외可畏(후인) : 『論語』 「子罕」 편에 “後生可畏(뒤에 난 사람이 두려워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 795)원질原帙 : 당나라와 송나라의 『高僧傳』 같은 체재를 갖춘 책을 가리키는 듯함.
- 796)정축頂祝 : 이마를 땅에 대고 축하함.
- 797)일성一星 : ‘일성지화一星之火’의 줄임말. 불똥, 화재를 뜻함. 『明心寶鑑』 「省心篇」.
- 798)신산新山 : 새로운 묘.
- 799)현고顯考 통정대부通政大夫 부군府君 신위神位 : 현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고, 통정대부는 정3품 상계의 품계이며, 부군은 돌아가신 자기 아비나 가까운 조상에 대한 높임말이다.
- 800)삼망三望 : 후보 셋을 올려서 그중에 선택하는 방식.
- 801)행룡行龍 : 풍수지리에서, 높았다 낮았다 하며 멀리 뻗어 나간 산맥.
- 802)임任을 향하고 병丙을 등지며 : 임은 정북에서 서쪽으로 15도 기운 방향. 병은 그 반대로 정남에서 동쪽으로 15도 기운 방향.
- 803)진辰과 경庚으로 : 진은 정동에서 30도 남쪽 방향이고, 경은 정서에서 15도 남쪽 방향.
- 804)파정破汀 : 묏자리를 팠다는 뜻인 듯함.
- 805)오황五黃 : 오행五行 가운데 토는 중위에 있으며, 이에 색을 배당하면 황黃이 된다.
- 806)금정金精 : 태백성太白星.
- 807)현비顯妣 숙부인淑夫人 : 현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고, 숙부인은 정3품 당상관인 문무관의 처에게 주는 작위이다.
- 808)후토后土 : 토지의 신.
- 809)경태庚兌 : 경庚은 정서에서 남으로 15도 아래 방향이고, 태兌는 정서 방향.
- 810)낙맥落脉 : 산의 기복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뻗어 내리는 것.
- 811)유酉를 등지고 묘卯를 향해 : 유는 정서, 묘는 정동 방향.
- 812)병丙에서 득得하고 진辰으로 파하며 : 병은 정남에서 동으로 15도 기운 방향이고, 진은 정동에서 남으로 30도 기운 방향. 득은 양기가 시작하는 방향, 파는 양기가 나가는 방향을 뜻함.
- 813)오석烏石 : 바탕이 단단하지 아니하고 빛이 검은 파리 광택의 바윗돌.
- 814)호승胡僧 : 외국 승려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저 승려라는 말로 쓰인 듯함.
- 815)개금開金 : 관을 묻기 위하여 ‘정井’ 자 모양의 나무틀을 놓고 구덩이를 파는 개금정開金井의 의미인 듯함.
- 816)사토莎土 : 무덤의 잔디와 흙.
- 817)망주望柱 : 능묘 앞에 세우는 석주石柱. 석망주石望柱라고도 함.
- 818)신좌神坐 : 신위판神位版을 놓는 자리.
- 819)태뢰太牢 : 소ㆍ양ㆍ돼지 세 짐승의 고기를 모두 쓴 요리.
- 820)갱장羹墻 : 국과 담장의 의미로,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함을 이르는 말. 『後漢書』 「李固傳」에 “옛날 요堯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임금이 3년 동안 사모하여, 앉았을 적에는 요임금이 담장(墻)에 보이고 식사할 때는 국(羹)에서 보였다.”라고 하였다.
- 821)띠풀 : 원문 ‘茅’는 ‘苞茅’로, 제사용 술을 거를 때 쓰는 청모菁茅이다. 『春秋左傳』 ‘희공僖公 4년’.
- 822)북위北魏 : 선비족의 탁발부拓跋部가 중국 화북 지역에 세운 북조 최초의 왕조(386~534). 승우는 남조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저자의 착오라 하겠다.
- 823)승우僧佑(445~518) : 남조 제량齊梁 시대의 불교 사학가. 불교의 전적과 사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出三藏記集』과 『弘明集』, 『釋迦譜』 등을 저술함.
- 824)찰리刹利 구담瞿曇 감자甘蔗 : 찰리는 찰제리刹帝利, 즉 ⓢ kṣatriy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성四姓 가운데 둘째 계급으로, 왕족ㆍ귀족ㆍ무사 그룹. 구담은 ⓢ Gotama의 음사. 석가釋迦 종족의 성. 감자는 ⓢ ikṣuvāku의 번역어. 일종日種ㆍ선생善生이라고도 번역함. 음사는 의마懿摩. 석가족釋迦族의 시조.
- 825)종기鍾氣 : 정기가 한데 뭉침.
- 826)30권 : 『釋迦譜』는 내용상 34품으로 나뉘고, 권수는 5권이다.
- 827)기야송祇夜頌 : 게송. ⓢ geya의 음사. 응송應頌ㆍ중송重頌이라 번역. 십이부경十二部經의 하나. 경전의 서술 형식에서,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
- 828)아견我見 :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
- 829)완섭完燮 :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
- 830)전문불교 : 불교사범학교를 말하는 듯함. 1906년 5월 불교계에서 동대문 밖 원흥사元興寺에 세운 명진학교가 1910년 불교사범학교, 1914년 불교고등학교, 1915년 중앙학림中央學林으로 개칭하였다.
- 831)여학驪壑 : 턱 밑에 귀한 구슬을 가지고 있는 검은 용(驪龍)이 있는 깊은 바다. 『莊子』 「列禦寇」.
- 832)일주一炷 심향心香 : 주炷는 향을 세는 단위이고 심향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다. 즉 향을 불살라서 부처에게 바치는 결재潔齋(심신을 깨끗이 하는 것)하는 마음.
- 833)사리闍梨 : 모범이 되어 제자의 행위를 바로잡는 고승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그저 승려를 뜻함.
- 834)그 즐거움을~즐기고자 했다 : 원문 ‘將自適其適矣’는 『莊子』 「騈拇」의 “남이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지 못하는 자(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를 인용한 것이다.
- 835)진각국사眞覺國師 : 혜심慧諶(1178~1234).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송광사)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저서로는 『禪門拈頌集』 등이 있다.
- 836)향해香海 :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향수 바다.
- 837)『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 고려 후기의 승려 각운覺雲이 스승인 진각국사 혜심이 저술한 『禪門拈頌』에 대하여 핵심어를 뽑고, 거기에 다시 설화를 붙인 주석서.
- 838)무의자無衣子 : 진각국사 혜심의 호.
- 839)함치含齒 : 대발함치戴髮含齒. 머리칼과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동물과 다른 사람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 840)현릉玄陵이 말한~도량이다’라는 것은 : 현릉은 고려 공민왕이고 그의 말은 『懶翁禪師語錄』의 「塔銘」에 나온다.
- 841)도는 사람이 넓히는지라 : 원문 ‘道以人弘’은 『論語』 「衛靈公」의 ‘人能弘道’를 변용한 것.
- 842)환해幻海 : 법린法璘(1749~1820)의 호. 16세 때 능가사로 출가, 송광사 묵암默庵에게 배움.
- 843)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15세 때 송광사로 출가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고.
- 844)곡탑鵠塔 : 곡림鵠林의 탑이라는 뜻인데 일반적인 탑의 의미로 사용함. 곡림은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쌍림雙林 또는 사라쌍수沙羅雙樹라고도 하며, 곡탑에는 석가모니의 사리舍利가 간직되어 있음.
- 845)귀비龜碑 : 거북을 닮은 용 비희贔屭 모양의 석좌石座 위에 비석을 세워 놓은 것.
- 846)백곡白谷이 찬술한 명銘 : 백곡 처능白谷處能(1617~1680)이 쓴 「追加弘覺登階碑銘幷序」가 『白谷集』에 실려 전한다.
- 847)복궤覆簣(마침) : 흙 한 삼태기를 부어 산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일을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論語』 「子罕」의 “비유하자면, 산을 만들 적에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붓지 않아 산을 못 이루고서 중지하는 것도 내 자신이 중지하는 것과 같으며, 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부어 산을 만들기 시작해서 점점 만들어 나가는 것도 내가 해 나가는 것과 같다.(譬如爲山。未成一簣。止。吾止也。譬如平地。雖覆一簣。進。吾往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848)부휴당浮休堂 : 부휴 선수浮休善修(1543~1615). 서산대사의 사제로 전통적인 격외선格外禪을 계승하였다. 해인사ㆍ송광사ㆍ칠불암ㆍ백장사白丈寺 등에 부도가 세워졌고, 광해군은 ‘부휴당부종수교변지무애추가홍각대사선수등계존자浮休堂扶宗樹敎辯智無礙追加弘覺大師善修登階尊者’라는 시호를 내렸다.
- 849)사중四衆 : 불문佛門의 네 가지 제자인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를 통틀어 이르는 말.
- 850)명나라 사신의~머무르게 하였고 : 가야산 해인사에 머물렀을 때 명나라 장수 이종성李宗城이 찾아와서 법문을 듣고 며칠 동안 옆에서 모셨다.
- 851)바다 오랑캐의 칼을 복종시켰도다 : 임진왜란이 일어나 덕유산 초암에 은신하고 있던 중 왜적 수십 명을 만났는데, 차수叉手를 하고 선 그의 앞에서 왜적이 칼날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였으나, 그가 태연부동하게 있었으므로 왜적들이 크게 놀라 절한 뒤 물러갔다.
- 852)남관南冠 : 포로. 남쪽 지방 초楚나라의 관冠으로 포로를 지칭하는 말. 『春秋左傳』 ‘성공成公 9년’에 “초나라의 종의鍾儀가 남관을 쓰고 포로로 잡혔다.”라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임.
- 853)미친 승려의~모범을 드러내고 : 광해군 때 두류산에 있었는데 어떤 미친 승려가 무고하여 투옥되었다가 무죄가 판명되어, 광해군이 내전으로 초빙한 다음 설법을 청하여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가사 한 벌과 푸른 비단 장삼 한 벌, 푸른 비단 바지 한 벌, 금강석 염주 하나와 진완珍玩을 주었다.
- 854)뜰의 이무기는~듣고 변화하였네 : 무주 구천동에서 『圓覺經』을 외우고 있을 때 큰 뱀이 나타나서 계단 아래에 누워 있었다. 『圓覺經』을 다 외운 다음 뱀에게 가서 한 발로 그 꼬리를 밟자 뱀이 머리를 들고 물러났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절하고는 “화상의 설법의 힘을 입사와 이미 고신苦身을 여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855)겸추鉗鎚 :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단련하는 집게와 망치. 선승禪僧의 엄격한 지도력을 비유함.
- 856)신훈新熏 :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이르는 말.
- 857)기봉機鋒 : 선승禪僧의 예리한 말이나 동작.
- 858)수족을 펴 보이니 : 원문은 ‘啓手足’. 죽음을 뜻함. 본래는 부모가 임종에 하는 유언을 뜻하는 말로, 효도를 다한다는 뜻도 됨. 즉 사람이 아무런 상처 없이 죽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증자曾子가 죽으면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발과 손을 펴 보도록 하면서(啓予手。啓予足。) 항상 부모님이 물려준 몸을 조심히 가질 것을 유언으로 남긴 데서 나온 말로 『論語』 「泰伯」에 보임.
- 859)칠순이 지났도다 : 부휴는 72세를 누렸다.
- 860)세제世諦 : 세간의 이치를 기준으로 할 때 타당한 진리.
- 861)해회海會 : 모든 물줄기가 바다에서 만나는 것처럼 장엄하게 열리는 불교의 성대한 집회를 뜻한다.
- 862)무봉탑無縫塔 : 하나의 돌을 달걀 모양으로 조각한 탑.
- 863)하수와 낙수에 웅크린 듯하고 : 하수와 낙수는 중국의 강 이름인데 ‘하도낙서河圖洛書’로 유명하다.
- 864)환해幻海 : 법린法璘(1749~1820)의 호. 16세 때 능가사로 출가, 송광사 묵암默庵에게 배움.
- 865)「환해 화상의 비를 세우는 제문」은 1919년 호붕 진홍浩鵬振弘이 썼고, 1920년 3월에 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 866)팔영산 :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산.
- 867)비로장해毘盧藏海 : 비로자나불이 있는 연화장세계의 바다.
- 868)지혜의 가지가~느닷없이 쓰러지니 : 원문 ‘慧柯方秀’와 ‘法棟俄墜’는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나온다.
- 869)이포伊蒲 : 이포새伊蒲塞. ⓢ Upāsaka. 우바새優婆塞의 이역異譯. 속세에 있으면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신도를 말한다.
- 870)청오靑烏 : 풍수, 지관地官을 말함. 풍수지리학의 원조인 한나라의 청오자靑烏子가 자신의 학문을 요약하여 묘 터를 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여 『靑烏經』이란 책을 펴낸 데서 유래함.
- 871)인신寅申 : 인寅은 정동에서 북으로 30도 위쪽이고 신申은 그 반대로 정서에서 남으로 30도 아래쪽 방향이다.
- 872)정계丁癸 : 정丁은 정남에서 서쪽으로 15도 기울고 계癸는 반대로 정북에서 동으로 15도 기운 방향이다.
- 873)익실翼室 : 본 건물의 좌우에 날개처럼 첨가하여 건축한 건물.
- 874)기북驥北 : 기주冀州의 북쪽. 준마가 많이 나는 곳으로 훌륭한 인재가 모이는 곳을 말한다.
- 875)사문沙門 : 승사僧舍를 가리키는 듯함.
- 876)동무東廡 : 정전의 동쪽 건물.
- 877)봉황이 오동과~날아와 춤추었다 : 원문 ‘鳳凰來儀’는 『書經』 「益稷」에 나온다.
- 878)가득하다 : 원문 ‘押揲’은 미상인데 문맥상 ‘가득하다’로 해석했다.
- 879)좌하坐夏 : 수행승들이 여름에 일정한 기간 동안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것.
- 880)칼을 차고 자며 : 잠을 잘 때도 번뇌를 자르는 칼을 차고 잔다는 뜻으로 수련에 매진함을 가리킨다. 『緇門警訓』 권3에 “帶刀而眠。離諸夢想。”이라 하였다.
- 881)축건竺乾 : 인도. 천축天竺 서건西乾.
- 882)10조 95,048자 : 「새벽 종송」에 “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一乘圓敎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 하였으니 이 구절은 『緇門警訓』 「隨州大洪山遂禪師禮華嚴經文」 등에 나옴.
- 883)삼업三業 : 몸과 입과 마음의 세 가지 욕심으로 인하여 저지르는 죄업의 총칭.
- 884)보개산寶盖山의 남호南湖 : 보개산은 강원도 천원군에 있는 산. 남호 영기南湖永奇(1820~1872) 선사는 소疏를 갖춘 『阿彌陀經』을 쓰는데, 글자 한 자를 쓸 때마다 세 번 절하고 세 번 염불을 하며 『阿彌陀經』을 써서 부처님께 바쳤다. 그 글씨의 목각판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十六觀經』과 『蓮宗寶鑑』을 써서 목각하여 양주군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 두었다. 그리고 서울 뚝섬 건너 봉은사奉恩寺에서 8권의 『華嚴經』 판을 목각하고 판전板殿이라는 법당을 지어 봉안하였다. 고종 원년(1864)에는 대장경을 인출하였다. 『奉恩寺藏經刻版記』.
- 885)나은懶隱 : 보욱保郁의 호. 1861년(철종 12)에 건봉사 연사蓮社에서 「無量壽經重刊序」를 지었고, 1862년에 『佛說大目蓮經』에 서문을 썼고, 1871년에는 고려 후기 민지閔漬가 찬술했던 『金剛山楡岾寺事蹟記』를 보유하여 간행했다.
- 886)경운擎雲(1852~1936) : 경상남도 웅천熊川에서 태어나 17세 때 출가하여, 구례군 연곡사鷰谷寺 환월幻月의 제자가 되었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대승강원大乘講院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뒤에는 직접 강의를 담당하여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910년 서울에서 중앙포교당이 설립되자 포교당의 교화 사업에 힘을 기울였고, 1911년 조선불교임제종운동이 일어났을 때 임시 관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917년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이 창립되었을 때 최고직인 교정敎正에 추대되었다. 또한 근대의 대표적인 사경승으로, 1880년 명성황후의 발원으로 『金字法華經』을 서사書寫하였다. 이때 쓴 『金字法華經』 한 질은 양산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필적이 매우 뛰어남을 볼 수 있다. 1896년부터는 선암사에서 『華嚴經』의 사경을 시작하여 6년 만에 완성하였는데, 『華嚴經』의 한 글자를 끝낼 때마다 일배一拜를 하면서 서사하였다.
- 887)설경說經 : 경전을 해설함.
- 888)종설宗說 : 스스로 체득한 깨달음 그 자체와 그것을 말로 표현한 가르침.
- 889)동악산動樂山 도림사道林寺 : 전라남도 곡성에 있다. 660년(태종무열왕 7)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 890)수희隨喜 : 남의 좋은 일을 보고 함께 기뻐함. 남의 선행을 칭찬함.
- 891)수달須達 : ⓢ sudatta. 사위성舍衛城의 부호. 파사닉왕波斯匿王의 신하.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구입한 동산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석가모니에게 바침.
- 892)항사겁恒沙刼 : 항하사겁.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 893)미진계微塵界 : 미진수세계. 티끌의 수처럼 한량없이 많은 세계를 말함.
- 894)신사信士 : 불교 신자인 남자.
- 895)무주상無住相 : 상相에 집착하지 않음.
- 896)곡우穀雨 : 청명과 입하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4월 20일 무렵이다.
- 897)한백漢栢과 진송秦松이~따라 올라가고 : 재목들이 저절로 자리를 잡는 듯하다는 뜻으로, 진시황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하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晉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 898)남풍藍風 : 비람풍毘嵐風. ⓢ vairambhaka의 음사, 신맹迅猛이라 번역. 우주가 성립될 때나 파괴되어 끝날 때, 맹렬하게 휘몰아친다는 폭풍.
- 899)공수工倕 : 요堯임금 때의 훌륭한 장인. 『莊子』 「達生」.
- 900)기환정사祇桓精舍 : 기원정사祇園精舍. 석존釋尊과 같은 때 사위성에 살던 부호富豪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지어 부처님께 드린 절. 기환祇桓의 기祇는 기타祇陁이고, 환桓은 숲이니, 기타수祇陁樹와 같음.
- 901)오량五樑 : 보를 다섯 줄로 놓은 집.
- 902)육위六偉의 노래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 903)개사開士 : 성불할 수 있는 정도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사부라는 뜻으로 보살 또는 고승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재가 신도를 가리킴.
- 904)통명通明 : 도림사를 중심으로 북쪽에 동악산이 있고, 남서쪽으로 통명산이 있다.
- 905)묘길상 봉우리 가지런하지 않고 : 도림사 서쪽으로 길상암 약수터가 있는 봉우리를 말하는 듯함.
- 906)성출봉聖出峰 : 동악산의 봉우리인데, 이 봉우리 중턱에 도림사가 있다.
- 907)신선 내린~신이한 덕德이로다 : 신선 내린 대(降仙臺)는 동악산 신선바위를 가리키는 듯하고, 신이한 덕과 관련해서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여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이후 원효가 도림사로 개칭하였다는 말이 있다.
- 908)탐랑貪狼 :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뒤에 나오는 자미궁에는 여와女媧 옥황상제가 거하여 북두칠성에게 지시하여 티끌 먼지에 이르기까지 관계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 『七星經』.
- 909)냇물 소리 : 도림사 아래에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시냇물이 있다.
- 910)길상암吉祥庵 : 처익處翼(1813~1888)이 창건하였다고 『東師列傳』에 보이는데,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 911)팔룡구령八龍九齡 : 동한 시대 순숙荀淑에게 뛰어난 여덟 아들이 있어 사람들은 그들을 여덟 마리의 용龍, 즉 팔룡八龍이라고 불렀다. 법화경에 등장하는 팔룡은 모두 선善한 용이다. 구령은 『禮記』 「文王世子」에 주 무왕이 꿈에 천제께서 90세를 주었다는 이야기.
- 912)금어옥대金魚玉帶 : 금어는 관인官人이 관복官服에 찼던 치레걸이(佩飾). 3질 이상의 높은 벼슬아치들이 자줏빛 관복에 매달았다고 함. 당唐나라에서 3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금제金製 어형魚形 치레걸이를 찼던 것에서 비롯하였음. 옥대는 띠돈을 옥으로 만든 대.
- 913)오중五衆 : 출가자를 다섯 종류로 나눈 것.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식차마나式叉摩那ㆍ사미沙弥ㆍ사미니沙弥尼.
- 914)육도六度와 십신十信 : 육도는 육바라밀. 십신은 보살이 수행하는 단계로서 오십이위五十二位 가운데 처음의 십위.
- 915)환화幻化 : 우주 만물이 환상과 같이 변화함. 모든 형상과 심상은 환화라고 한다.
- 916)삼성三聖 : 신라 시대 원효와 의상ㆍ윤필尹弼을 말함.
- 917)수놓은 두공枓栱이~맞물려 놓은 : 이 부분은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의 “수놓은 두공에는 가지가 옹위하듯 서로 맞물려 있는데(繡栭枝擁而杈枒)” 부분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 918)행화行化 : 자기의 수행과 남의 교화를 아울러 하는 일.
- 919)웅장하고 화려하며 : 원문 ‘鳥革翬飛’는, 『詩經』 「小雅」 ≺斯干≻에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으며, 꿩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如鳥斯革。如翬斯飛。)”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朱熹의 『詩經集傳』에 “그 동우棟宇가 높게 일어남은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고, 처마가 화려하고 높으며 날아갈 듯함은 꿩이 날아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 대개 그 건물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다.(其棟宇峻起。如鳥之驚而革也。其簷阿華采而軒翔。如翬之飛而矯其翼也。蓋其堂之美如此。)”라고 하였다.
- 920)크고 아름다웠다 : 원문 ‘輪焉奐焉’은 진나라 헌문자獻文子가 집을 짓자 장로가 송축하기를, “아름답다, 윤輪이여. 아름답다, 환奐이여.(美哉輪焉。美哉奐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윤환輪奐은 집이 크고 아름다운 것을 말한다. 『禮記』 「檀弓」 下.
- 921)복전複殿 : 여러 층의 전각.
- 922)보광전普光殿 :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삼존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 923)보제루普濟樓 : 도림사의 강당. 계곡을 끼고 높은 축대를 따라 들어서 있다.
- 924)‘완성’과 ‘파괴’ : 원문 ‘曰成曰壞’는 사겁四劫, 즉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을 말한다.
- 925)계획하고 도모함 : 원문 ‘經之營之’는 『詩經』 「大雅」 ≺靈臺≻에 “영대를 처음으로 경영하여 헤아리고 도모하시자, 백성들이 달려들어 하루도 못 되어 완성했네.(經始靈臺。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에서 인용한 것이다.
- 926)처음에 묘길상妙吉祥(문수보살)을~한 것인가 : 도림사에 있는 「길상암 나한전 유적 중수기」에 “원효와 의상ㆍ윤필 세 분 선사께서 수도하실 때에 성출봉에 있는 바위굴에서 16나한과 옥으로 빚은 불상이 차례대로 솟아나올 즈음에 윤필 법사의 꿈속에 나타나 가르쳐 주시면서 어서 빨리 봉안하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지시하신 봉우리 바위굴을 찾아서 가보니 불상들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불은 빛을 발하며 솟아오른 바위굴 속 끝에서 말없이 편안하게 앉아 계시었다. 윤필 법사는 큰 빛을 발하는 그 존상을 뵙고 한없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 수없이 엎드려 예배를 올린 후 등에 업고 봉안하였다. 날마다 즐거이 등에 업고 모신 분이 열다섯 분이었는데……날마다 등에 업은 듯이 공경하며 봉안할 때에 하늘에서 천상선인께서 즐거운 음성으로 찬탄하면서 앞뒤에서 길을 가리키고 인도하실 때에 허공이 진동하였기 때문에 동악산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 927)가신伽神 : 가람(사찰)의 신, 또는 동악산과 관련하여 가릉빈가迦陵頻伽로 해석될 수 있음.
- 928)오늘 아침~함께 맛보는구나 : 이 시는 「曹溪山第六世贈謚圓鑑國師碑銘」에 따르면 41세 때 김해현 감로사甘露社 주지를 할 때 어떤 승려의 청에 따라 쓴 것이라 한다.
- 929)임병壬丙 : 임은 정북에서 15도 서쪽으로 기운 방향이고 병은 반대로 정남에서 15도 동쪽으로 기운 방향.
- 930)갑경甲庚 : 갑은 정동에서 15도 북으로 기운 방향이고 경은 정서에서 15도 남쪽으로 기운 방향.
- 931)총섭㧾攝 : 넓은 의미에서는 도총섭都摠攝까지 포함되나, 일반적으로는 현재의 본사本寺 주지급主持級에 주어졌던 직책명이다.
- 932)대흥사 : 미상. 1909년에 기록한 「곡성 태안사에 십륙존을 봉안한 연기 기문」에는 ‘隣郡太興寺’로 되어 있다.
- 933)10년 : 뒤의 계사년을 기준으로 하면 ‘20년’이 되어야 한다.
- 934)정려淨侶 : 계율을 지키는 데 힘써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승려.
- 935)아미산峨嵋山 천태굴天台窟 : 아미산은 태안사 서쪽인 곡성 목사동면 신전리에 있는 588m의 산이고 천태굴은 아미산 520m에 있는 천태암의 석굴이다.
- 936)성기암聖祈庵 : 태안사의 암자.
- 937)익실翼室 : 본채의 좌우 양편에 달린 방.
- 938)일하一夏 :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의 90일간, 곧 하안거夏安居 기간을 말함.
- 939)정수頂手 : 미상.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경의를 표하는 모양.
- 940)겁몽刼夢 : 오랜 시간의 꿈.
- 941)삼화三花를 겪고~일랍一臈을 더하니 : 삼화는 꽃 피는 계절인 봄의 세 달을 가리키는 듯하고, 일랍은 승려가 된 햇수인 승랍僧臘을 가리키는 듯함.
- 942)주생朱生 : 금명 보정의 제자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 당시 동경 유학 중이었다.
- 943)얼음을 깨어 약을 만들고 : 미상. 진나라 왕상王祥이 모친을 위해 고기를 잡으려고 겨울철에 얼음을 뚫으려 하자 얼음이 저절로 풀리고 잉어가 튀어나왔다는 고사를 말하는 듯함. 『晉書』 권33 「王祥列傳」.
- 944)미생尾生과 효기孝己 : 미생은 옛날의 미더운 선비로서, 일찍이 여자와 더불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는 오지 아니하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홍수가 밀어닥쳤다. 그래도 미생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다리 기둥을 안고 죽었다. 『壯子』에 보임. 효기는 은殷나라 고종의 아들인데, 어질고 효성스러웠다. 부왕이 후궁의 말만 듣고 그를 내쫓아도 끝내 원망하지 않았다고 함.
- 945)분단생사分段生死 : 삼계三界에서 태어나고 죽는 일을 되풀이하는 범부의 생사. 각자 과거에 지은 행위에 따라 신체의 크고 작음과 목숨의 길고 짧음이 구별된다고 하여 분단分段이라 함.
- 946)무기년戊己年 :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정미7조약과 고종의 양위,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투쟁이 전개되었는데, 이에 대해 일본은 1908년 5월 경기도ㆍ충청도ㆍ강원도 일부 지방에 제6사단의 보병 제23연대를, 서울ㆍ평안도ㆍ황해도에 제7사단의 보병 27연대를 각각 파견하여 의병 탄압에 주력하였다. 그에 따라 전국적인 의병 활동이 위축되었지만 호남 지역은 유지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 사령부는 1909년 9월 1일부터 약 2개월간 ‘남한대토벌작전’을 지휘하며 호남 의병을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무신년은 1908년, 기유년은 1909년이다.
- 947)함호菡湖(?~1928) : 송광사의 승려.
- 948)관중사걸關中四傑 : 구마라집의 제자들 가운데 특히 뛰어난 도융道融과 승예僧叡, 승조僧肇, 도생道生을 가리킴.
- 949)집 공什公(구마라집, 344~413) : ⓢ Kumārajīva. 구자국龜玆國(현재의 신장 쿠차에 속함) 출신의 불교 사상가. 한자 표기는 구마라시바鳩摩羅時婆, 구마라기바拘摩羅耆婆이고 줄여서 나집羅什, 집什, 의역하여 동수童壽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4대 역경가들 가운데 가장 정평이 나 있다.
- 950)『불조록찬송佛祖錄讃頌』 : 서천西天 28조사祖師부터 조계종사曹溪宗師에 이르기까지 인도, 중국, 한국에서 이름을 떨쳤던 스님들의 행적과 찬송이 실려 있다고 한다. 「佛祖錄讃頌小引」 참조.
- 951)일전어一轉語 : 미혹한 마음을 싹 바꿔 깨달음에 들게 하는 간단명료한 한마디 말.
- 952)입성入聲 : 『信心銘』 첫째 구절의 ‘擇’이 ‘陌’ 운으로 입성이다.
- 953)평성平聲 : 『信心銘』 마지막 글자 ‘今’이 ‘侵’ 운으로 평성이다.
- 954)제창提唱 : 종지宗旨의 대강大綱을 제시하여 설법함.
- 955)백암栢庵 : 성총性聰(1631~1700)의 호. 13세 때 출가하여 지리산 수초守初 밑에서 불경을 배웠고 많은 불서를 간행하였다.
- 956)게이잔(瑩山) : 게이잔 조킨(瑩山紹瑾, 1268~1325). 일본 조동종의 중흥조. 조동종의 사상과 의례에 토착적 요소를 도입.
- 957)염제拈提 : 염고拈古. 고칙古則을 제시하여 이를 평창評唱함. 문제를 드러내어 해설하고 비평함.
- 958)진헐眞歇 : 송나라 승려 청료淸了(1088~1151)의 호. 사천성 성도成都 대자사大慈寺에서 경론經論을 배움. 그 후 단하 자순丹霞子淳(1064~1117)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고 여러 지역을 편력하면서 조동종을 전파함.
- 959)수증修證 : 수행하여 진리를 증오證悟함.
- 960)감응(機感) : 중생의 근기가 부처의 교화를 받아들임.
- 961)우송友松 : 속명은 황선명黃善明.
- 962)가라장迦羅藏 : 미상. 용궁인 듯함. 가라迦羅, 즉 사갈라沙竭羅는 용왕을 말함.
- 963)단상檀像 : 전단栴檀ㆍ백단白檀 등을 재료로 하여 조각한 불상.
- 964)자미궁紫微宮 : 옥황상제가 거하는 별자리. 큰곰자리를 중심으로 170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
- 965)불지견佛知見 : 제법실상의 진리를 남김없이 깨달아 조견照見하는 부처님의 지혜.
- 966)개오開悟 : 지혜를 얻어 진리를 깨달음.
- 967)도원道源의 『전등록傳燈錄』 : 송나라 고승 도원이 황제의 명에 따라 1004년(경덕 원년)에 지은 『景德傳燈錄』 30권 1700칙.
- 968)화정華亭의 『통재록通載錄』 : 『景德傳燈錄』 14권에 화정 선자華亭船子가 나오는데 『通載錄』을 지었다는 기록은 없다. 본문 바로 뒤에 언급된 염상이 화정華亭 사람이고 『佛祖通載』를 찬술하였으니 ‘염상의 『歷代錄』’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됨.
- 969)염상念常의 『역대록歷代錄』 : 염상은 원나라 승려. 『歷代錄』은 『佛祖通載』를 가리킴.
- 970)여직汝稷의 『지월록指月錄』 : 명나라 학자 구여직瞿汝稷이 1692년에 찬술한 『指月錄』 30권.
- 971)준욱遵勗의 『광등록廣燈錄』 : 송나라 임제종 이준욱李遵勗이 천성 7년(1029)에 찬술한 『天聖廣燈錄』.
- 972)유백惟白의 『속등록續燈錄』 : 송나라 법운사法雲寺의 주지 불국 유백佛國惟白이 1101년에 지은 『建中靖國續燈錄』.
- 973)지반志磐의 『통기統記』 : 송나라 천태종의 승려 지반이 찬술한 『佛祖統紀』.
- 974)보제普濟의 『회원會元』 : 송나라 승려 보제(1178~1253)가 기존의 『景德傳燈錄』과 『天聖廣燈錄』, 『燃燈會要』, 『建中靖國續燈錄』, 『嘉泰普燈錄』 등을 정리ㆍ재편집한 『五燈會元』.
- 975)공진拱辰의 『통록通錄』 : 북송 시대 11세기 말엽에 공진이 찬술한 『祖源通錄』 24권.
- 976)무착無着의 섭론송攝論頌 : 인도의 논사 무착이 지은 『攝大乘論』에 나오는 게송을 말함.
- 977)현수 청량賢首淸凉의 구회송九會頌 : 현수는 당나라 때 화엄종 제2조祖 지엄智儼의 뒤를 이어 화엄종을 대성시킨 사람이고, 청량은 당나라 화엄종 제4조 징관澄觀의 호. ‘구회송’은 『華嚴七處九會頌釋章』을 가리키는 듯함. 이 책은 ‘청량산清涼山 대화엄사大華嚴寺 사문沙門 징관澄觀 찬술撰述’로 되어 있음. 앞의 ‘현수’는 오기인 듯함.
- 978)선부善傅와 야보冶父의 금강송金剛頌 : 남송의 야보(1127~1279)는 호가 도천道川으로 임제의 6세손이다. 그가 지은 금강경송金剛經頌이 『金剛經五家解』에 나온다. 규장각에 야보 천노冶父川老의 송頌과 주석이 첨부된 『金剛經』(古 1730~1784)이 있고 이 책에 숭승 무궁崇勝無窮 선사 선부善傅의 송頌이 첨가된 『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이 합본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부와 『金剛經』을 관련지은 것은 착오이다.
- 979)규산圭山의 진망송眞妄頌 : 당나라 중종 때 복례 법사複禮法師가 찬술한 『眞妄頌』이 있는데 규산과의 관련은 알 수 없다.
- 980)이문二門 : 불교를 교리상 두 종류로 나눈 분류법. 비문悲門과 지문智門, 본문本門과 적문迹門, 섭수문攝受門과 절복문折伏門, 억지문과 섭취문, 유문有門과 공문空門,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사문과 이문, 진제문과 속제문 등. 『大乘起信論』에서는 진여문과 생멸문을 말한다.
- 981)삼대三大 : 진여 자체와 진여의 공덕, 진여의 작용.
- 982)사신四信 : 신근본信根本ㆍ신불信佛ㆍ신법信法ㆍ신승信僧. 『大乘起信論』 「修行信心分」.
- 983)오행五行 :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
- 984)일심一心의 명수를~오행 등 : 일심부터 오행까지의 나열은 『大乘起信論』에 나온다.
- 985)흙덩이를 쫓는 : 원문 ‘逐塊’. 『傳燈錄』에 나오는 “韓獹逐塊。師子咬人。”을 뜻한다. 사람이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는 뜻이다.
- 986)현수賢首와 장수長水ㆍ원정圓靜ㆍ적조寂照ㆍ일여一如 : 현수는 당나라 때 화엄종을 대성시킨 법장法藏, 장수는 『大乘起信論筆削記』 등을 찬술한 송나라 자선子璿, 원정ㆍ적조는 미상. 일여는 『大明三藏法數』 50권을 찬술한 명나라 승려.
- 987)제승諸乘 :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모든 교리, 다시 말해 모든 진리를 가리키는 말.
- 988)주미麈尾 : 고라니의 꼬리는 먼지가 잘 털린다 하여 이것으로 만든 먼지떨이를 승려나 청담을 하던 사람들이 많이 가졌음. 여기서는 법문을 가리키는 듯함.
- 989)경전 : 해당 경전은 『法華經』 「如來壽量品」이다.
- 990)혜명慧命 : 불법의 명맥.
- 991)종휘宗輝 : 사굴산파闍崛山派에 속하는 승려. 보조국사가 8세 때 종휘를 은사로 하여 출가했다고 한다.
- 992)득도得度 : 불교 신자가 되어 부처의 제도濟度를 얻음.
- 993)거조사居祖寺 : 738년(효성왕 2)에 승려 원참元旵이 창건하였다. 거조암이라고도 함.
- 994)콧구멍을 밟아 버리고 : 근본을 타파한다는 뜻. 모태에서 콧구멍이 제일 먼저 생긴다는 데서 나온 말.
- 995)조종祖宗 : 조사가 전한 선禪의 요지.
- 996)경절문經截門 원돈圓頓 : 지눌이 정립한 3종 선문禪門인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과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경절문經截門 가운데 경절문은 방편을 무시하고 직관에 의해 빨리 질러가는 것이며, 원돈은 처음부터 곧바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주시하여 원만하게 단박 깨달음을 뜻함.
- 997)정토문淨土門 염불念佛 : 정토문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부처가 되기를 가르치는 교문이고, 수행 방법이 염불이다.
- 998)겉만 훑는 : 원문 ‘膚受’는 『論語』에서 ‘膚受之愬’라고 하여 ‘참언讒言이나 중상中傷 따위를 살을 에는 듯이 절실하게 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달리 사용되었다.
- 999)글만 읽으며 : 원문 ‘鑚紙’는 『傳燈錄』에 “신찬神瓚 선사가 하루는 벌이 창지窓紙를 뚫고 나가려는 것을 보고서 말하기를 ‘세계가 저렇게 광활한데 선뜻 나가지 못하고 오래된 종이만 뚫는구나.’라고 하였다.”라는 데서 유래함.
- 1000)기산綺山 : 석진錫辰(1892~1968)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성은 임林씨. 아버지는 원오元悟이고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1905년 송광사 천자암天子庵에서 취월翠月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호붕浩鵬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송광사 보통과를 이수하고, 그해 4월 금명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 1001)오일午日 : 날짜를 천간 지지天干地支와 맞추어 놓은 것 가운데에서 지지가 오午 자로 된 날. 무오일戊午日ㆍ경오일庚午日ㆍ임오일壬午日 등을 말한다. 말날(午日)에는 말을 소중하게 여겨 팥떡을 해서 마구간 앞에 놓고 말의 무병과 건강을 비는 풍속이 있다. 방위로는 정남방, 오행으로는 화火, 색깔로는 적색이며, 시간으로는 오전 11시~오후 1시이며, 정오가 오시의 중간이다.
- 1002)승국勝國 : 바로 이전 왕조. 여기서는 고려.
- 1003)9산 : 신라 말 고려 초의 선문 종파.
- 1004)자정국사慈靜國師(?~?) : 「松廣寺嗣院事蹟碑」에 따르면, 법명은 일인一印이며 1293년부터 1301년(충렬왕 19~27) 사이에 수선사주修禪社主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 1005)호념護念 : 늘 염두에 두고 보호함.
- 1006)상퇴 : 송나라 사마상퇴司馬向魋. 공자가 가는 길에 숨어 있다가 나무를 쓰러뜨려 공자를 죽이려 했으나 공자는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論語』 「述而」.
- 1007)항우項羽 : 항우는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함락한 뒤 3세 황제를 처형하고 아방궁을 불살랐다고 한다.
- 1008)천제의 수레를 움직이니 : 원문 ‘運於帝車’는 『史記』 「天官書」의 “斗爲帝車。運于中央。”과 관련된다.
- 1009)마고麻姑 : 마고할미. 해남, 옹진, 강화 등 주로 해안 도서 지방에서 신모적神母的 창조주로서 전승되고 있다.
- 1010)우두牛斗 : 28수宿 가운데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 1011)만다라曼陀羅(曼茶羅; maṇḍala) : 만다라는 원圓을 뜻한다. 둥글게 두루 갖춤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어떤 것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나 부분이 단 하나라도 빠짐이 없이 완전하게 구비된 상태를 나타낸다. 불법의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를 이르는 말,
- 1012)동혼銅渾 : 당나라 때 물의 힘을 이용하여 천문을 관측하던 기구.
- 1013)옥두玉斗와 주형珠衡 : 옥두는 여기서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혼천의를 뜻할 때도 있다. 왕발王勃이 지은 「夫子廟碑序文」에는, “주형과 옥두는 떳떳한 하늘 도수에 따라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星湖僿說』 권6 「玉斗」.
- 1014)삼륜三輪 : ① 전륜성왕의 정법수레에 비유하여 부처님 교화의 세 가지를 일컫는 신륜身輪ㆍ구륜口輪ㆍ의륜意輪. ② 수미산 아래의 대지 밑에서 사바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풍륜風輪ㆍ수륜水輪ㆍ금륜金輪.
- 1015)칠정七政 : ① 일日, 월月과 오성五星인 화火ㆍ수水ㆍ금金ㆍ목木ㆍ토土. ② 북두칠성.
- 1016)치성광熾盛光 : 치성광여래. 불교에서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 1017)온갖 구멍 : 원문 ‘萬竅’는 『莊子』 「齊物論」에 “저 거대한 흙덩어리인 대지가 기운을 내뿜으면 우리가 그것을 바람이라고 하는데, 이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불었다 하면 만 개의 구멍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其名爲風。是唯無作。作則萬竅窺怒呺。)”라는 구절의 의미를 차용한 듯함.
- 1018)옥간玉簡 : 백간白簡. 도교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고하는 문서.
- 1019)동쪽 끝에서~일을 합니다 : 원문 “折玉簡於東極。木宿動精。飛梵字於上方。匠星赴役。”은 신광수申光洙(1712~1775)의 「海南頭輪山大芚寺八相殿鐵鏡樓重修上樑文」(『石北集』 권13)의 “飛梵書於上仙。匠星赴役。折玉簡於東極。木宿動精。”에서 가져온 것이다.
- 1020)사대부四大夫 : 진시황이 소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했던 고사를 인용한 표현으로, 소나무로 만든 네 기둥을 가리킴.
- 1021)상장군上將軍 : 한무제가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비유한 고사를 인용한 표현으로, 측백나무로 만든 들보를 가리킴.
- 1022)공수工倕 : 요堯임금 때의 훌륭한 장인. 『莊子』 「達生」.
- 1023)아랑兒郞 : 아랑위兒郎偉. 상량문에서 시 첫 부분에 쓰는 말. 대개 ‘어기여차’의 뜻으로 봄.
- 1024)마제馬蹄 :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말하는 듯함. 『莊子』 「馬蹄篇」.
- 1025)자감궁紫紺宮 : 자감전紫紺殿. 자줏빛 궁전.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 위에 있는 궁전. 나한전 주련에 “紫紺宮中星若列。十六大阿羅漢衆。”이라 했다.
- 1026)지일遲日 : 봄날을 뜻한다. 『詩經』 「豳風」 ≺七月≻의 “봄날이 더디고 더디다.(春日遲遲)”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1027)명가鳴珂 : 귀인들이 타는 말에 장식한 옥기를 가리키는데, 악기의 뜻으로도 사용함.
- 1028)육기六氣 : 풍風, 한寒, 서暑, 습濕, 조燥, 화火 등 여섯 가지 기氣를 말한다.
- 1029)요일堯日 : 요堯임금의 해. 태평성대를 가리킴.
- 1030)순풍舜風 : 순舜임금의 바람. 태평성대를 가리킴. 순임금이 궁중에서 거문고를 탔는데, 그 곡조 이름을 후세에 남훈곡南薰曲이라고 이름 지었고, 그 거문고의 화평한 음조로 인해 온 세상 사람이 다 화평한 심정으로 안락한 생활을 즐겼다 한다.
- 1031)탕망湯網 : 탕湯임금이 들에 나가서 그물을 쳐 짐승을 잡는 사람이 사면에 모두 그물을 치고는 상하 사방의 짐승이 모두 나의 그물로 들어오라고 축원하는 것을 보고, 그 삼면에 친 그물을 제거하고는 ‘왼쪽으로 달아날 놈은 왼쪽으로 달아나고 오른쪽으로 달아날 놈은 오른쪽으로 달아나라. 다만 달아나기 싫은 놈만 내 그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史記』 「殷本紀」.
- 1032)우문禹門 : 우禹임금이 9년 홍수를 다스릴 때 험한 지역을 개척하여 황하黃河의 물을 통하게 했다는 곳인 용문龍門을 말한다.
- 1033)도야桃野 : 동방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조선을 가리킴. 중국 동남쪽에 하늘 높이 치솟은 도도桃都라는 이름의 거목巨木이 있고 그 위에 천계天雞라는 닭이 서식하는데, 해가 떠오르면서 이 나무를 비추면 천계가 울고 그러면 천하의 닭들이 따라 운다는 전설이 있다. 『述異記』.
- 1034)접수鰈水 : 가자미가 많이 잡히는 동해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조선을 가리킴.
- 1035)낙주樂州 : 벌교의 고려 때 명칭. 이후 ‘낙안樂安’으로 불림.
- 1036)부사浮槎 : 낙안의 옛 이름.
- 1037)돌 뗏목(石筏) : 벌교천에 있는 홍교虹橋. 벌교천에 처음엔 뗏목 모양으로 목재 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강물에 휩쓸려 가자 돌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 1038)진나라 채찍 : 진시황秦始皇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했다. 그러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 1039)삼장군과 오대부五大夫 : 삼장군은 측백나무, 오대부는 소나무. 진시황이 봉선을 행하러 태산泰山에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는 그 나무를 오대부에 봉했던 고사가 전하고, 한 무제가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비유했으며, 태산에 여섯 그루를 심었는데 아직도 네 그루가 있다고 한다. “五大夫之秦松……三將軍之漢栢”이란 표현이 본문에 등장한다.
- 1040)안주鴈柱 : 기러기 발 모양의 기둥.
- 1041)범왕梵王 : 범천왕. 호법신의 하나.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왕.
- 1042)추노鄒魯 : 추나라의 맹자孟子와 노나라의 공자孔子.
- 1043)안탑鴈塔 : 절 탑. 인도의 왕사성王舍城에서 승려들이 기러기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희롱하는 말로 “우리들이 배가 고프니, 몸으로 보시하라.”라고 하였더니, 기러기가 스스로 죽어서 떨어졌다. 이에 승려들이 감동하여 기러기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당나라 현장玄奘의 『大唐西域記』 「摩揭陀國」.
- 1044)환퇴桓魋 : 성姓은 상向이므로 상퇴向魋라고도 함. 공자가 송나라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아래에서 예를 익히고 있는데, 환퇴가 공자를 죽이고자 하여 그 나무를 뽑았다고 함.
- 1045)면체綿蕝 : 야외에서 예의를 익히는 것. 면綿은 노끈을 잇고, 체蕝는 띠(茅)를 묶어 위치를 표하는 것으로, 대나무를 죽 이어서 세우고 거기에 띠로 꼰 새끼를 둘러서 존비尊卑의 위차를 표시한 것을 말함. 한고조漢高祖 때 박사博士 숙손통叔孫通이 제자 1백여 인과 함께 야외에서 면체를 베풀고 예를 익혔음. 『史記』 권99 「叔孫通傳」.
- 1046)송현誦絃 : 시가를 송독誦讀함. 예악 교화를 가리킴. 『禮記』 「文王世子」 “春誦夏弦”.
- 1047)건성乾城 : 건달바가 음악과 향기로 허공에 교묘하게 쌓은 성. 공空ㆍ허구ㆍ허망ㆍ일시적 존재 등을 비유함. 건달바乾達婆(ⓢ gandharva-nagara)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金剛窟에 살며, 제석천帝釋天의 아악雅樂을 맡아보는 신.
- 1048)철산鐵山 : 철위산鐵圍山. 세계의 가장 끝에 있는 산. 철륜위산鐵輪圍山 또는 금강산ㆍ금강위산金剛圍山이라고도 한다.
- 1049)삼신섬 : 삼신산.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洲山.
- 1050)은포銀浦 : 달빛이 비쳐서 은빛과 같은 갯물. 은하수를 가리키기도 함.
- 1051)화천貨泉 : 화폐. 왕망王莽 때 만든 화폐의 이름.
- 1052)도인導引 : 고대부터 전해지는 건강 체조를 말한다. 원래 고대의 신선가가 이용하였던 불로장생을 위한 양생법의 하나로, 후에 의사도 치료법으로서 안마와 함께 채용하였다.
- 1053)화학化學 : 여기서는 불로장생의 약으로 믿었던 단丹을 만드는 연단술을 가리킴.
- 1054)황노黃老의 형명刑名 : 황노는 도가에서 시조로 받드는 황제黃帝와 노자. 형명은 형벌과 명분. 『史記』 「韓非列傳」.
- 1055)아랑兒郞의 노래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 1056)왕王 학사學士 : 당나라 한림학사 출신의 왕유王維. 당나라 개원 9년(721)에 진사가 되어 감찰어사監察御使, 좌보궐左補闕, 문부랑중文部郞中 등을 역임했고 안녹산의 난 이후 벼슬을 버리고 산야에 묻혀 불교에 귀의했다. 그가 17세 때 지은 시 ≺9월 9일 산동의 형제를 생각하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가 유명하다.
- 1057)굴屈 대부大夫 : 전국시대 초나라 대부 굴원屈原.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라는 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5월 5일에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단오의 유래이다.
- 1058)육위부六偉賦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 1059)축융祝融 : 여름을 맡은 신, 또는 남쪽 바다를 맡은 신이나 남방의 신을 가리키는 말.
- 1060)희중曦仲 : 태양의 신. 『書經』 「堯典」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양가의 희중과 희숙羲叔, 화중和仲과 화숙和叔의 네 명이 각각 동남서북의 대지 끝에서 태양의 운행과 춘하추동의 계절을 조정하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 1061)망미산 : 보성읍 보성리 동륜마을에 망미산성望美山城이 있었는데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 1062)건도乾道는 원상元象임을 알겠네 : 『周易』 건괘乾卦에 “건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정하다.(乾。元亨利貞。)”라고 하였다.
- 1063)육률六律 : 십이율十二律 중 양성陽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소리. 음성에 속하는 소리를 육려六呂라고 하며, 여기서 육률은 육률과 육려를 함께 지칭하는 듯하다.
- 1064)훈지塤箎 : 형제 혹은 친구 사이의 화목과 조화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으로, 『詩經』 「小雅」 ≺何人斯≻의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 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壎。仲氏吹篪。)”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1065)기수祗樹 : 파사익 왕의 태자였던 기타祗陀가 심은 나무들.
- 1066)유순由旬 : ⓢ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실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약 8km로 간주함.
- 1067)밖을 감싸고~엎드린 듯합니다 : 봉황이 서식하는 나무가 오동나무이고 동리사를 둘러싼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동리산’이라 불렀으며 둘러싼 주변 산세의 최고점을 봉황의 머리, 즉 ‘봉두산’이라 부른다.
- 1068)혜철 국사慧徹國師 : ‘惠哲’이라고도 함. 자字는 청보淸寶이며, 속성은 박朴씨이고 신라 시대 경주에서 출생하였다. 당나라에 들어가 서당 지장西堂智藏 선사의 법을 이어받았다. 경문왕景文王이 ‘적인寂忍’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東師列傳』.
- 1069)창의倡義 : 대개는 국난을 당하였을 때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권선하여 중수했다’는 의미인 듯함.
- 1070)용과 범이~복종시키는 듯하고 : 「泰安寺鳳瑞庵重剏記」에 “능파각凌波閣이 물 입구에 걸터앉은 것은 용과 범이 서로 건너는 모양이다.(凌波閣之跨乎水口者。所以爲龍虎之相渡。)”라고 했다.
- 1071)삼산三山의 장생長生 :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洲山의 세 산에는 선인들이 살며 불로불사의 약이 있다고 한다.
- 1072)상방上房 : 선종禪宗에서 주지를 일컫는 말. 본디 산상山上의 절을 일컫던 말인데, 주지가 거처하는 곳이 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으므로 훗날 주지를 지칭하는 말로 변하였음.
- 1073)봉서암 : 동리사의 암자. 본문 앞쪽에 「봉두산 동리사 봉서암의 개와 권선문」과 「태안사 봉서암 중창기」가 있다.
- 1074)광자廣慈(864~945) : 법명은 윤다允多, 자는 법신法信. 대안사의 2대조사. 대사의 탑이 950년(광종 1)에 건립되어 태안사에 전한다.
- 1075)각도閣道 : 북두北斗의 축성軸星인데, 임금의 궁宮을 뜻한다.
- 1076)우두牛斗 : 견우성牽牛星과 북두성北斗星. ‘牛頭’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 1077)탐랑貪狼 : 북두칠성의 하나. 추성樞星이라고 부르는데 하늘의 원기에 짝이 된다고 한다. 『五洲衍文長箋散稿』 「옥추경에 대소 두 경이 있다는 변증설」.
- 1078)삼청궁 : 도교에서 신봉하는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과 상청영보도군上淸靈寶道君, 태청태상노군太淸太上老君의 거처. 『通俗編』 「釋道」.
- 1079)겹눈동자 : 원문 ‘雙瞳’은 ‘重瞳’과 같음. 순 임금과 항우가 겹눈동자였다고 한다.
- 1080)대지전大持殿 : 봉향각奉香閣, 응향각凝香閣. 불전이나 법당을 관리하는 지전持殿 혹은 노전爐殿이 거처하는 곳.
- 1081)석제釋帝 : 욕계 6천의 제2천으로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忉利天의 제왕帝王인 제석천帝釋天을 달리 일컫는 말.
- 1082)기관騎官 위치의 거사車肆 : 기관은 29수 가운데 동방에 있는 저수氐宿 아래에 있는 27개의 붉은 별을 가리킴. 거사는 천시원天市垣에 딸린 별자리 이름으로 수레와 가마 따위의 교통수단을 주관하는데, 여기서는 기관의 아래쪽에 있는 거기車騎나 진거陣車 등의 별자리를 가리키는 듯함.
- 1083)천주天厨 : 대궐의 부엌을 가리키기도 하고 별자리 이름이기도 하다. 별자리로서는 기본적으로 ‘성대한 연회’를 뜻한다.
- 1084)천시天床와 시루市樓 : 천시는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며 하늘나라 임금이 잠을 청하는 침소 별자리를 말하는데,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시루도 별자리 이름이다.
- 1085)침향(沈水) : 침향나무가 단단하고 무거워서 물에 가라앉는다고 하여 ‘침수’라고 한다.
- 1086)주당周堂 : 점술에서 말하는 흉살凶殺의 일종으로 이사와 신행新行, 가취嫁娶, 안장安葬 등을 꺼림.
- 1087)헌종(재위 809~826) : 헌덕왕을 가리킴. 신라의 제41대 왕.
- 1088)남풍藍風 : 비람풍毘嵐風. ⓢ vairambhaka의 음사이며 신맹迅猛이라 번역. 우주가 성립될 때나 파괴되어 끝날 때, 맹렬하게 휘몰아친다는 폭풍.
- 1089)날아갈 듯하니 : 원문 ‘翬飛’는, 『詩經』 「小雅」 ≺斯干≻에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으며, 꿩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如鳥斯革。如翬斯飛。)”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朱熹의 『詩經集傳』에 “그 동우棟宇가 높게 일어남은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고, 처마가 화려하고 높으며 날아갈 듯함은 꿩이 날아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 대개 그 건물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다.(其棟宇峻起。如鳥之驚而革也。其簷阿華采而軒翔。如翬之飛而矯其翼也。蓋其堂之美如此。)”라고 하였다.
- 1090)천풍天風 : 천풍구괘天風姤卦. 오월午月. 5월.
- 1091)천지天地 : 천지비괘天地否卦. 7월.
- 1092)복궤覆簣 : 삼태기 흙을 붓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고, 여기서는 완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 1093)귀부鬼符 : 귀신이 신표로 가지고 다니는 부절符節.
- 1094)부종鳧鍾 : 종을 가리킴. 부씨가 종을 만들었다는 데서 나온 말. 『周禮』 「考工記」 “鳧氏爲鍾”.
- 1095)포뢰蒲牢 : 종을 매다는 용뉴龍鈕. 원래는 용의 셋째 아들인데 고래를 두려워하여 크게 운다고 하여 포뢰의 모습을 종鐘 위에 만들어 놓고 고래의 형상을 종 치는 나무, 즉 당목撞木에 새긴다.
- 1096)하고河鼓 : 별자리. ‘하늘 북’이라는 뜻인데 우수牛宿에 속한다.
- 1097)천부天桴 : 별자리. ‘하늘 북채’라는 뜻인데 우수에 속하며, 북을 두드리는 일과 시간을 알리는 일을 맡는다고 한다.
- 1098)백련사(蓮社) : 진晉의 고승 혜원慧遠이 여산廬山에서 만든 불교 모임.
- 1099)성기암聖祈庵 : 태안사의 암자.
- 1100)손가락 튕기는 : 아래쪽의 ‘하’ 노래에 나오는 망명 보살의 고사를 말하는 듯함.
- 1101)나전羅殿 : 아라한을 모신 나한전羅漢殿을 가리키는 듯함.
- 1102)제망帝網 : 보망寶網, 인다라망因陀羅網. 제석帝釋이 살고 있는 궁전을 덮고 있는 거대한 그물로, 그 마디마디에 달려 있는 무수한 보배 구슬이 빛의 반사로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고, 그 반사가 또 서로를 반사하여 무궁무진하다고 함. 걸림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작용하면서 어우러져 있는 장엄한 세계를 비유함.
- 1103)망명罔明 : 초지初地 보살. 분별적 지성을 극복했다는 선종의 불립문자를 상징함. 문수보살이 여러 부처들이 모인 곳에 이르렀을 때, 여러 부처들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직 한 명의 여인만이 석가모니 자리 가까이에서 삼매에 들어 있어서, 문수가 세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세존은 여자를 깨워 삼매의 경지에서 나오게 해서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문수는 여인의 주변을 세 번 돌고서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기고는 신통력을 다하여 깨우려고 했으나 깨우지 못했다. 그러자 세존은 말하길, “설령 수백 수천의 문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여자를 삼매의 경지에서 나오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래로 내려가 12억이라고 하는 갠지스강 모래알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면, 이 여자를 삼매에서 꺼낼 수 있는 망명보살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순간 망명 대사가 땅에서 솟아 나와 세존에게 예배를 하였다. 세존은 망명에게 여인을 삼매로부터 꺼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망명이 여인 앞에 이르러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기자, 여인은 바로 삼매의 경지에서 빠져나왔다. 『無門關』 42칙 「女子出定」.
- 1104)칠중七衆 :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일곱 부류의 사람.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예비 비구니)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가리킨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 1105)팔부八部 : 여덟 종의 신장神將. 천天, 용龍, 야차夜叉, 가루라迦樓羅(금시조金翅鳥), 아수라阿修羅, 마후라가摩睺羅迦(음악의 신), 긴나라緊那羅(가무의 신), 건달바乾闥婆(식향食香). 인도에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던 신들 가운데 여덟 신을 하나의 군으로 수용해서 불교의 수호신으로 삼아 조성한 상을 말한다.
- 1106)향적香積 : 중향衆香 나라의 부처 이름. 사찰 음식을 가리킴. 『維摩詰經』 「香積品」.
- 1107)국사局司 : 국사단局司壇. 절의 구역 안을 맡아본다는 신명.
- 1108)운문雲門 : 떡을 말하는 듯함. 어떤 이가 운문에게, 어떤 것이 불조를 초월한 말이냐고 물으니 호떡이라고 답했다. 『碧巖錄』 77칙.
- 1109)용안龍眼과 천근天根이 수북합니다 : 음식을 수북이 진설함을 말함. 용안과 천근은 미상. 원문 ‘釘釘’은 ‘飣飣’의 오자인 듯하다. ‘鬪鬪飣飣’이란 말이 『高峰原妙禪師禪要』 「晚參」에 나옴.
- 1110)토공土公과 사록司祿 : 토공은 북방 벽수壁宿에 속하는 별자리. 사록 성군司祿星君은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남두육성의 하나로서 북방 허수虛宿에 속하는 별자리.
- 1111)사보四輔 : 삼원三垣 가운데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별자리. 천제天帝의 좌우 전후에서 천제를 보좌하는 네 사람의 벼슬아치라는 뜻.
- 1112)삼태三台 : 삼원 가운데 태미원太微垣에 딸린 별자리. 삼공三公, 즉 천제를 보필하는 신하의 역할을 뜻한다.
- 1113)자미원紫微垣 : 동아시아의 별자리인 삼원三垣의 하나이다. 삼원 중 두 번째에 해당되며, 천구의 북극을 포함한다. 서양 별자리에서 큰곰자리의 일부가 해당되며, 작은곰자리, 용자리를 포함한다.
- 1114)제좌帝座 : 삼원 가운데 천시원天市垣에 딸린 별자리. 천제의 자리를 뜻한다.
- 1115)천선天船과 각도閣道 : 천선은 서방 위수胃宿에 속하는 것으로 수로를 잘 통하게 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각도는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것으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씌워 만든 집 사이의 통로를 뜻한다.
- 1116)문성文星 :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
- 1117)양문陽門 : 동방 항수亢宿에 속하며, 궁성 동남쪽에 있는 문을 뜻한다.
- 1118)천주天厨와 내계內階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천주는 하늘의 부엌이라는 뜻을 지닌 별자리. 내계는 천황天皇의 뜰에 해당하는 별자리.
- 1119)사보四輔와 여사女史 : 삼원 가운데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 1120)부로附路 :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별자리. 비바람이 몰아치는 재해나 병란으로 인해 은하수 큰길 별자리인 각도閣道로 다니지 못할 경우 이용하는 샛길이다.
- 1121)전사傳舍와 구진句陳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전사는 숙소를 뜻하고, 구진은 천자를 둘러싸 호위함을 뜻함.
- 1122)화개華盖와 음덕陰德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화개는 덮개를 뜻한다.
- 1123)각角ㆍ항亢 : 동방 7수宿에 속하는 별들.
- 1124)천전天田 : 동방 각수角宿 또는 북방 우수牛宿에 속하는 별자리.
- 1125)군문軍門 : 남방 진수軫宿에 속하는 별자리.
- 1126)토사土司 : 외딴 지방. 원元나라 이후 서남 지역의 만족蠻族을 다스리던 지방관으로 그 지역민들의 회유 수단으로 그들의 추장들을 임명하여 세습시켰음. 전하여 만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음. 토사공土司空일 수도 있음. 토사공은 진수軫宿에 속하는 별자리.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토사공도 있다.
- 1127)항지亢池 : 동방 저수氐宿 중에 속하는 것으로 현재 목동자리의 일부임.
- 1128)고루庫樓 : 동방 각수角宿에 딸린 별자리 이름. 병거兵車와 무기를 보관하는 곳을 상징한다.
- 1129)옛 길상사 : 송광사의 창건 당시 이름이 길상사였다.
- 1130)태미원(太微) : 별자리 이름.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궁정으로, 5제가 거처하고, 12제후의 부서가 됨, 따라서 명령을 정비하고 집행함.
- 1131)주정周鼎 : 동방 각수角宿의 제일 위쪽에 있는 세 개의 별. 천하 패권을 차지하는 천자의 상징.
- 1132)섭제攝提 : 대각大角 별자리 양 옆에 세 개씩 짝지어 대각을 보좌하는 별자리.
- 1133)팔곡八穀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현재의 마차부자리, 기린자리, 살쾡이자리의 일부에 걸쳐 있음.
- 1134)우화각(羽化虹) : 송광사 육감정 옆에 놓인 교각. 우화란 말은 우화등선의 줄임말이고, 홍虹은 무지개 모양의 다리를 뜻함.
- 1135)천진天津 : 북방 여수女宿에 속하는 별자리. 하늘 나루터라는 뜻.
- 1136)금천씨金天氏 : 김씨. 신라인들은 스스로를 황제黃帝의 아들인 소호少昊 금천씨의 후손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三國史記』 「金庾信列傳」에 전한다.
- 1137)선류璿流 : 선원璿源으로부터 흘러내려 오는 줄기, 즉 왕손王孫이라는 뜻.
- 1138)갑주甲胄 : 갑옷과 투구. 여기서는 삼한을 지탱하고 보호하는 큰 성씨라는 뜻으로 사용됨.
- 1139)옥부玉府 :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비옥한 토지를 뜻한다.
- 1140)정관丁冠 : 미상인데 정자관程子冠이 아닐까. 정자관은 사대부들이 쓰던 관모의 하나로, 서당의 훈장들이나 양반들이 평상시 집에서 썼다.
- 1141)사주泗州(사천)의 직함 : 시주자인 김학모金學模가 사천泗川 군수이다.
- 1142)소 덮을 : 원문은 ‘蔽牛’. 소를 가릴 만큼 큰 나무를 말한다. 『莊子』 「人間世」에 “장석이 제나라로 가는 길에 곡원에 이르러 사당의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그늘이 소 수천 마리를 가릴 수 있었고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되었다.(匠石之齊。至於曲轅。見櫟社樹。其大蔽數千牛。絜之百圍。)”라고 하였다.
- 1143)우림羽林 : 북방 실수室宿에 속한 별자리.
- 1144)부월斧鉞 : 도끼. 부월鈇鉞은 실수에 속한 별자리.
- 1145)괴강魁罡 : 북두칠성의 제1성인 두괴斗魁와 천강성天罡星을 합칭한 말이다. 여기서는 괴강살魁罡殺을 뜻함.
- 1146)천혼天溷 :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것으로 현재 고래자리의 일부임.
- 1147)천시天市 : 북극을 중심으로 중앙에 있는 삼원三垣의 하나로서, 하늘의 도시라는 뜻이다. 태미원太微垣과 마찬가지로, 황도黃道가 천시원의 바로 남쪽을 지난다. 봄과 여름에 잘 보이는 별자리이다.
- 1148)종정宗正 : 천시원天市垣에 속하는 별자리. 왕실의 친인척을 관리하는 벼슬을 뜻한다.
- 1149)신궁神宮 : 동방 미수尾宿에 속하는 별자리.
- 1150)미축未丑 : 미는 남서에서 남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고, 축은 반대로 동북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다.
- 1151)을신乙辛 : 을은 정동에서 남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고, 신은 반대로 정서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다.
- 1152)동정東井 : 남방에 속하는 별자리 정수井宿는 동쪽 우물이라는 뜻으로 ‘동정’이라 불린다.
- 1153)서함西咸 : 동방 방수房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방수의 서쪽 사립문에 해당한다.
- 1154)토공土公이 사록司祿 : 토공은 북방 벽수壁宿에 해당하고, 사록은 북방 허수虛宿에 속하는 별자리.
- 1155)여석礪石 : 서방 묘수昴宿에 속하는 별자리로서 숫돌이라는 뜻이다.
- 1156)제방을 나열하니(羅堰) : 원문 ‘羅堰’은 북방 우수牛宿에 속하는 별자리이기도 하다.
- 1157)장원長垣과 영대靈臺 : 장원은 태미원에 속하며 장성이라는 뜻이고, 영대도 태미원에 속하며 천문대를 뜻한다.
- 1158)소미小微 : 태미원에 속하며 옛날 사대부를 뜻한다.
- 1159)9깃발 : 휘호徽號나 등급의 다름을 표시하기 위한 아홉 가지 종류의 깃발로, 상常, 기旂, 전旜, 물物, 기旗, 여旟, 조旐, 수旞, 정旌 등을 말한다.
- 1160)도사屠肆와 명당明堂 : 도사는 삼원 가운데 천시원에 속하며 정육점이라는 뜻이고, 명당은 태미원에 속한다.
- 1161)태존太尊 : 자미원에 속하며 임금의 친척을 뜻한다.
- 1162)천폭天幅 : 동방 저수氐宿에 속하는 별자리.
- 1163)삼기叅旗 제왕諸王 : 삼기는 서방 삼수參宿에 속하는 별자리이고, 제왕은 서방 필수畢宿에 속하는 별자리.
- 1164)부이附耳하여 권설卷舌 : 부이는 귀에 가까이 소곤거린다는 뜻인데 서방 필수畢宿에 속하고, 권설은 혀를 만다는 뜻으로 놀라서 말을 못하는 모습인데 서방 묘수昴宿에 속하는 별자리이다.
- 1165)천가天街 : 서방 필수에 속하는 별자리.
- 1166)거기車騎 : 동방 저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기마 부대를 이끄는 장군을 뜻한다.
- 1167)돈완頓頑하고 절위折威 : 돈완은 동방 항수亢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감옥의 간수를 뜻하고, 절위는 항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죄인을 처벌하여 위엄을 세운다는 뜻이다.
- 1168)주기酒旗가 천준天樽 : 주기는 남방 유수柳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주막 깃발을 뜻하고, 천준은 남방 정수井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술)동이를 뜻한다.
- 1169)헌원軒轅의 기관騎官 : 헌원은 남방 성수星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황제黃帝를 가리키고, 기관은 동방 저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병사를 뜻한다.
- 1170)천부天桴가 하고河鼓 : 둘 다 북방 우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부는 북채, 하고는 북을 뜻함.
- 1171)뇌전雷電의 벽력霹靂 : 뇌전은 북방 실수室宿에 속한 별자리로 번개를 뜻하고, 벽력은 북방 벽수壁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둥을 뜻한다.
- 1172)천사天社의 천창天倉 : 천사는 남방 귀수鬼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음식 준비하는 곳이고, 천창은 서방 누수婁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창고를 뜻한다.
- 1173)구령鈎鈴의 대약大鑰 : 구령은 동방 방수房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열쇠를 뜻하고, 대약은 큰 자물쇠라는 뜻이다.
- 1174)기부器府 : 남방 진수軫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병기를 관리하는 관청을 뜻한다.
- 1175)별鱉 : 북방 두수斗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자라를 뜻한다.
- 1176)천강天江 : 북방 실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하늘의 강을 뜻한다.
- 1177)어魚 : 동방 미수尾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물고기를 뜻한다.
- 1178)거사車肆 : 천시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수레를 팔고 수리하는 가게를 뜻한다.
- 1179)관삭貫索 : 천시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동전 꿰는 끈을 뜻한다.
- 1180)호분虎賁 : 태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의 친위대 대장을 뜻한다.
- 1181)연도輦道 : 북방 우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가마가 가는 길을 뜻한다.
- 1182)상서尙書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의 비서관을 뜻한다.
- 1183)천칭궁天秤宮 : 별자리에서, 황도黃道 12궁의 일곱째인 처녀자리의 위치.
- 1184)토사공土司空 :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토목 공사 담당 관리를 뜻한다.
- 1185)필畢ㆍ자觜ㆍ삼參 : 서방 7수宿에 속하는 별자리들.
- 1186)53존 : 53존불. 『觀藥王藥上二菩薩經』에 53불佛이 나오는데, 이 53불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곳마다 시방의 여러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 사중四重 오역죄五逆罪가 없어져서 깨끗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유점사에 53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 1187)금오金烏는 함지로 : 금오는 태양의 이명異名이다. 태양 속에 발 세 개가 달린 까마귀가 있다는 전설에 기인한 것이다. 함지는 해가 멱 감는다는 하늘 위의 못으로 해가 지는 곳, 즉 서쪽 바다를 뜻한다. 『淮南子』 「天文訓」.
- 1188)이궁離宮 : 북방 실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의 별장을 뜻한다.
- 1189)천강天綱 : 북방 실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가 사냥 가서 세우는 천막을 뜻한다.
- 1190)탐랑성貪狼星 가에 각角ㆍ항亢 : 탐람성은 북두칠성의 첫째 별. 각ㆍ항은 동방 7수에 속하는 별들.
- 1191)비비상천 :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處天. 무색계 가운데 가장 높은 곳.
- 1192)말 하나 : 원문은 ‘一馬’. 『莊子』 「齊物論」에 “손가락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만 같지 않고, 말을 가지고 말이 말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 말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만 같지 않으니, 하늘과 땅은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以指喩指之非指。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以馬喩馬之非馬。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라는 말이 나온다.
- 1193)풍륜風輪 : 수미산 둘레에 있는 구산팔해九山八海와 사주四洲 밑에는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세 원통형의 층層이 있는데, 위층을 금륜金輪, 중간층을 수륜水輪, 아래층을 풍륜이라 함.
- 1194)점대漸臺 : 북방 우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은하수의 누각을 뜻한다.
- 1195)구신九辰 : 북두칠성 가운데 제6 무곡성 주변의 별 두 개인 내필성內弼星과 외보성外輔星을 합쳐 이르는 말.
- 1196)천음天陰 : 서방 묘수昴宿의 별자리로 저녁 노을과 밤하늘을 뜻한다.
- 1197)순씨荀氏 팔룡八龍 : 한나라 말엽 순숙荀淑이 낳은 여덟 명의 훌륭한 아들을 일컬음. 그중 순곤荀緄은 제남상濟南相을 역임했고, 조조曹操를 보필한 순욱荀彧을 낳았다.
- 1198)주공周公 구령九齡 : 장수함을 뜻함. ‘주공’은 주나라의 오기인 듯함. 『禮記』 「文王世子」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문왕이 무왕에게 말하기를 “너는 무슨 꿈을 꾸었느냐?”라고 하니, 무왕이 답하기를 “꿈에 천제께서 저에게 구령을 주셨습니다.”라고 했다. 문왕이 “너는 그것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니 무왕이 “서방에 아홉 나라가 있으니 군왕께서 마침내 진무鎭撫하실 듯합니다.”라고 했다. 문왕이 “아니다. 옛날에는 나이를 령齡이라 말했으니 이(齒)도 또한 령이다. 내 수명은 100세이고 네 수명은 90세니 내가 너에게 세 살을 주겠다.”라고 하였다. 문왕은 97세에 임종하고 무왕은 93세에 임종하였다.
- 1199)장사촌長沙村(沙邨) : 묵암은 전라도 흥양현興陽縣 장사촌 출신이다.
- 1200)영천암靈泉庵 : 순천 대광사의 암자. 응암應庵이 26세 때인 계해년(1743) 봄에 (순천) 대광사大光寺 영천암에서 풍암楓岩의 강헌講軒을 다시 따랐고 묵암이 동일한 장소에서 법당法幢을 세웠다는 기록이 본문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에 있다.
- 1201)설산雪山 : 곡성 옥과면 설옥리에 있는 산.
- 1202)인초忍草 : 『緇門警訓』에 ‘雪山忍草’라는 표현이 있다.
- 1203)묘길상(문수보살)의 유허 :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 1204)강선대降仙臺에 바둑바위(碁嵓) : 동악산 정상 부근 신선바위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놀던 자리라고 전한다.
- 1205)욕불浴佛 : 부처님 오신 날에 향을 넣어 달인 물을 불상의 머리부터 끼얹어 씻기는 일.
- 1206)누청樓廳 : 돌출한 누각.
- 1207)보제루普濟樓(普樓) : 보제루는 도림사의 강당으로서, 계곡을 끼고 높은 축대를 따라 들어서 있다.
- 1208)오십전五十殿 : 불조전. 과거 7불과 미래 천불의 불조인 53불을 모셨다.
- 1209)삼신三身 : 불신을 세 가지 종류로 표현한 교리. 즉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
- 1210)갑경甲庚 : 갑은 정동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경은 이와 반대로 정서에서 15도 남쪽으로 치우친 방향.
- 1211)백열栢悅 : ‘송무백열松茂栢悅’의 준말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동료가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1212)거령巨靈 : 물의 신. 고려 이인로李仁老의 시 ≺穿石≻에서 거령이 청산을 쪼갰다고 했다. “巨靈含意擘靑山。蓬島樓臺第幾間。”
- 1213)반般ㆍ수倕 : 노魯나라 목수장인 공수반公輸般과 요임금 때의 공수工倕.
- 1214)연도輦道 : 우수牛宿. 직녀성職女星의 서쪽에 있는 오성五星.
- 1215)장성匠星을 다리~거울에 빠지고 : 이 부분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의 「廣寒殿白玉樓上樑文」에서 인용한 것이다. 조금 표현을 달리한 부분이 있으니,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囚匠星於屋底。木宿掄材。壓鐵山於楹間。金精動色。坤靈揮鑿。騁巧思於般倕。大冶鎔鑪。運奇智於錘範。靑赮垂尾。雙虹飮星宿之河。赤霓昂頭。六鼇戴蓬萊之島。璇題燭日。出彤閣於煙中。綺綴流星。架翠廊於雲表。魚緝鱗於玉瓦。雁列齒於瑤階。微連捧旂。下月節於重霧。鳧伯樹纛。設蘭幄於三辰。金繩結綺戶之流蘇。珠網護雕欄之阿閣。仙人在棟。氣吹彩鳳之香臺。玉女臨窓。水溢雙鸞之鏡匣。”
- 1216)연하鷰賀 : 축하한다는 뜻. 『淮南子』 「說林訓」에 “목욕할 채비가 갖추어지면 이들이 서로 슬퍼하고, 큰 집이 이루어지면 제비와 참새들이 서로 축하한다.(湯沐具而蟣蝨相弔。大厦成而燕雀相賀。)”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본디 제비와 참새가 사람의 집을 자기들의 깃들 곳으로 삼아 서로 축하한다는 뜻에서, 흔히 남이 새로 집을 지은 것을 축하하는 말로 쓰이며, 또는 일반적인 축하의 뜻으로도 쓰인다.
- 1217)봉의鳳儀 : 순임금이 소韶 음악을 연주하자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일을 가리킴.
- 1218)학의 등 : ‘학이 그려진 쟁반 위’라는 뜻으로 보임.
- 1219)용의 눈 : 용의 눈이 그려진 술잔인 듯함.
- 1220)수행승 : 원문 ‘三三’은 ‘前三三後三三’의 준말인 듯함.
- 1221)곤어 : 북쪽 바다에 사는 곤어는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데 새로 탈바꿈하면 붕새가 되어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고 한다. 『莊子』 「逍遙遊」.
- 1222)추극樞極 : 두추斗樞와 북극성. 두추는 북두칠성의 첫째 별이며 천구天樞라고 한다.
- 1223)천이통天耳通 :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불가사의하고 자유자재한 능력.
- 1224)기야祗夜 : ⓢ geya. 중송重頌, 응송應頌.
- 1225)관리와 유자들 : 원문은 ‘縉紳章甫’. 진신縉紳은 관리들이 허리띠에 꽂는 홀과 띠를 말하고, 장보章甫는 유자들이 쓰던 관.
- 1226)장석匠石 : 고대의 유명한 장인匠人. 『莊子』 「人間世」.
- 1227)낭간琅玕 : 청녹색의 비취. 여기서는 기둥을 가리킴.
- 1228)오대부五大夫 : 진시황秦始皇이 봉선을 행하러 태산泰山에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는 그 나무를 오대부에 봉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 1229)여우 자취 : 의심 많은 여우가 확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듯함.
- 1230)거북 수명 : 원문은 ‘龜齡’. 장수를 뜻함.
- 1231)사마司馬 : 송태회宋泰會(1872~1942)를 가리킴.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고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 16세 때 형 재회在會와 함께 최연소로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동몽진사童蒙進士’로 불렸다. 시문詩文과 서예에 뛰어났고 『매일신보』 기자로 잠시 활동하였다. 한일 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 능주, 순천, 고창 등에서 한문과 서화 등을 가르쳤다.
- 1232)까마귀 쫓는(驅烏) : 구오驅烏 사미. 음식을 보고 날아드는 까마귀나 쫓는 일을 맡았다고 하여 7세에서 13세에 이르는 사미를 가리키는 말.
- 1233)풍습風濕 : 습한 곳에서 사는 까닭으로 습기를 받아서 뼈마디가 저리고 아픈 병.
- 1234)육족六足 : 말과 마부.
- 1235)면절綿蕞 : 야외에서 예禮를 익히기 위해 띠(茅)를 베어 묶어서 죽 늘어세워 존비尊卑의 차례를 표시한 것을 가리키는데, 한고조漢高祖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이 방법을 통하여 조정의 의례를 새로 제정했던 데서 온 말이다. 절蕞은 절蕝과 같다. 면綿은 면으로 만든 끈을 설치해서 연습하는 곳을 만든 것이고, 절蕞은 대나무를 세우고 띠를 세워서 존비의 차례를 만든 것이다. 『歷代史選』 권6 「漢紀」.
- 1236)용운龍雲(1813~1888) : 법명은 처익處益. 송광사를 중창한 승려.
- 1237)송광사에 있는 용운대종사비에는 당시 주지 직임을 맡은 율암 찬의栗庵讃儀가 지은 「重修陰記」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금명 보정은 글씨를 썼는데 “자헌대부 겸법종찰선의 승종찰도섭리 금명보정 서資憲大夫兼法宗刹禪議僧宗刹道攝理錦溟寶鼎書”라 하였다.
- 1238)불행과 행복 : 원문 ‘丕泰’는 『周易』의 비괘와 태괘를 가리킴.
- 1239)중창한 공업 : 송광사는 1842년(헌종 8) 낙하당落霞堂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과 소장품들이 소실되었다. 이듬해 기봉奇峰과 용운이 대웅전과 명부전ㆍ응향각凝香閣ㆍ법왕문法王門 등을 차례로 중건하였는데, 1856년(철종 7)까지 14년이 걸렸다. 그 뒤 율암栗庵이 1924년에서 1928년 사이에 용화당龍華堂과 명성각明星閣ㆍ사감고寺監庫ㆍ장탄문墻坦門 등을 신축, 증축하였다.
- 1240)조 공趙公 : 조성희趙性喜. 고종 때에 동복 현감同福縣監, 임실 현감任實縣監, 태인 현감泰仁縣監, 옥천 군수沃川郡守, 무주 부사茂朱府使 등을 지냈다. 비문에 ‘통훈대부 행무주부사 적상진 수성장 겸토포사 함안 조성희通訓大夫行茂朱府使赤裳鎭守城將兼討捕使咸安趙性喜’라 하였다. 『梅泉集』에 교유시와 만시가 보인다.
- 1241)율암栗庵 : 율암 찬의栗庵讃儀(1867~1929). 범해梵海 선사의 제자.
- 1242)남포藍浦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이곳의 벼룻돌이 특산물일 정도로 좋은 돌이 많은 곳이다.
- 1243)조종현趙鍾鉉 : 조경한趙擎韓(1900~1993). 본관은 옥천玉川이고 이명은 안훈安勳ㆍ안일청安一靑ㆍ조종현이며 호는 백강白岡이다. 전라남도 순천 출생의 독립운동가이다. 선암사 출신인 조종현趙宗玄(1906~1989)과는 다른 인물이다.
- 1244)서신書紳 : 큰 띠에 적는다는 뜻으로 잊지 않겠다는 의미. 『論語』 「衛靈公」에 자장子長이 공자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커다란 띠에 기록하였다는 것에서 유래함.
- 1245)형체 바깥의 친분 : 외형적인 것은 상관하지 않고, 서로 마음으로써 사귐을 말함. 망형지교忘形之交.
- 1246)이포伊蒲 : 이포새伊蒲塞의 준말인 듯함.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승려.
- 1247)도 군陶君 : 도굉경陶宏景을 가리킴. 남북조시대 사람. 제齊 고제高帝의 부름에 답한 시 ≺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이 있다. 홍경弘景이라고도 함. 『南史』.
- 1248)전별電別 : 뇌봉전별雷逢電別. 갑자기 벼락처럼 만나고 곧 번개처럼 헤어진다.
- 1249)옥대玉帶 풀어 산에 머무는 : 원문은 ‘玉帶鎭山’. 요원 불인了元佛印 선사가 금산사를 찾아온 소동파에게 말하기를, 일전어一轉語에 대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학사의 몸에 띤 옥대를 풀어 산문山門에 두라고 했다. 『金山志』.
- 1250)거듭(圭復) : 원문 ‘圭復’은 백규白圭를 삼복三復한다는 뜻으로, 가슴에 새기며 재차 반복해 읽는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抑≻에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尙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라고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자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하였다.
- 1251)이자伊字 : 범어梵語의 ‘∴’ 자.
- 1252)화장세계 : 연화장세계.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정토. 이 부처는 천 개의 잎을 가진 연화좌蓮華座에 앉아 있는데, 그 잎 낱낱은 낱낱의 세계를 상징하며, 그 낱낱의 세계에 100억 국토가 있고 그 국토에 보신불報身佛이 출현한다고 함.
- 1253)이씨(仙李) : 노자老子가 이수李樹 아래에서 태어나서 성을 이李로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당나라 왕실에서 노자의 후손이라고 자처하였으므로 그 종족을 선리라고 지칭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 1254)태백太白 :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자.
- 1255)통명산 : 용운 처익의 조부가 곡성 통명산 아래 용계촌으로 옮겨 거주한 것을 말한다.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조.
- 1256)팔도(八垓)를 바로잡으며 : 용운의 직책 가운데 일부인 ‘교팔도규정승풍敎八道糾正僧風’을 언급한 것이다.
- 1257)교종을 일으켜 세우고 : 용운의 직책 가운데 일부인 ‘부종수교扶宗樹敎’를 언급한 것이다.
- 1258)소밀酥蜜 : 우유와 꿀을 섞은 것.
- 1259)패영貝瀛의 마을 : 꼬막이 많이 나는 벌교를 가리키는 듯함.
- 1260)규정癸丁 : 규는 정북에서 동으로 15도 기운 방향, 정은 반대로 정남에서 서로 15도 기운 방향.
- 1261)을신乙辛 : 을은 정동에서 15도 남쪽으로 기운 방향, 신은 반대로 정서에서 북으로 15도 기운 방향.
- 1262)대성전大成殿 : 문묘 안에 있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전각.
- 1263)상재庠齋와 서재序齋 : 상재는 성균관을 뜻하는데 문맥상 성균관의 동재와 서재를 가리키는 듯함. 동재는 강당이고 서재는 기숙사이니 동재는 선당, 서재는 승당에 비유할 만하다.
- 1264)복궤覆簣 : 삼태기로 흙을 날라 쌓는다는 뜻인데 일을 마친다는 의미로 사용함.
- 1265)노인성 :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수명을 관장함.
- 1266)후삼삼後三三 : 당나라 무착無着 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오대산에 갔다가 어떤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대중이 몇이나 되냐고 묻자, 노인이 ‘前三三後三三’이라 답하였다. 여기서는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사용함.
- 1267)추성樞星 : 북두칠성의 머리 쪽에 있는 네 개의 별 가운데 첫째 별.
- 1268)원형元亨 : 원형이정元亨利貞. 『周易』 「乾卦」에 나오는 사덕四德. 원元은 만물이 처음 태어나는 것으로, 봄에 해당된다. 형亨은 만물이 성장하는 것으로, 여름에 해당된다. 이利는 만물이 성숙하는 것으로 가을에 해당한다. 정貞은 만물이 수렴되는 것으로 겨울에 해당한다.
- 1269)수용受用 : 삼신三身의 하나. 수용신에는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이 있다. 자수용신은 다른 보살이 보고 들을 수 없는 불신佛身으로서, 자기가 얻은 법락法樂을 자기만이 즐겨 하는 몸이요, 타수용신은 십지十地의 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이 볼 수 있고, 자기가 받는 법락을 다른 보살에게도 주는 불신이다. 이를 법신法身ㆍ응신應身에 배당하여 자수용신을 법신, 타수용신을 응신이라 하고, 또는 2신身을 모두 보신이라 하는 등 여러 학설이 있다. 『攝大乘論』에, “수용신이란 제불諸佛이 갖가지 국토國土와 보살대중의 법회에 현현하는 불신으로서, 그것은 법신을 의지依止로 삼는다. 그리하여 제불의 청정불토淸淨佛土와 대승의 법락法樂을 수용하는 인因이 된다.”라고 하였다.
- 1270)의정依正 :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부처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을 의보,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을 정보라고 함.
- 1271)종찰種刹 : 종족과 찰토, 즉 국토.
- 1272)보화報化 : 보신報身(수용受用)과 화신化身.
- 1273)경술년(1910) 봄에~방장으로 이안하니 : 본문 「칠전의 동쪽 방장이 고금에 이름이 다름에 대한 변증」에 같은 내용이 기유년(1909)의 일로 기재되어 있다.
- 1274)이설월李雪月 : 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동국대학교의 전신으로 1906년에 개교한 명진학교明進學校 2회 졸업생.
- 1275)김율암金栗庵 : 율암 찬의栗庵讃儀(1867~1929). 범해梵海 선사의 제자.
- 1276)해은 재선海隱栽善 : 금명 보정에게 수업을 받은 승려. 법명은 오천梧泉, 이름은 재선栽善.
- 1277)쌍향수雙香樹 : 송광사 천자암에 1세 보조국사와 9세 담당국사湛堂國師가 꽂은 향나무 지팡이가 자라서 두 그루 향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88호.
- 1278)칠요七曜 : 일日, 월月 및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의 다섯 별.
- 1279)만홀萬笏 청산 : 온 산이 홀笏(관리가 임금 앞에 조회할 때 들던 수판手板)을 세운 듯하다는 뜻.
- 1280)삼재三災 : 도병재刀兵災ㆍ질역재疾疫災ㆍ기근재飢饉災와 세계를 파계破戒하는 수재水災ㆍ화재火災ㆍ풍재風災.
- 1281)팔난八難 : 부처를 볼 수 없고 불법을 들을 수 없는 여덟 가지 곤란. 곧 지옥, 축생, 아귀, 장수천長壽天, 귀머거리와 장님, 정토의 변지邊地, 세지변총世智辯聰, 불전불후佛前佛後.
- 1282)학수鶴樹 : 부처님께서 북인도의 구시라拘尸羅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물가의 사라수 여덟 그루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자리를 깔고 열반에 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서 그것을 학림鶴林 또는 학수라 한다.
- 1283)용화龍華 : 용화수龍華樹. 미래에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 1284)겁운刼運 : 재앙이 낀 운수.
- 1285)혜린慧璘 : 신라 법흥왕 원년에 혜린 선사가 사찰을 지었다고, 본문 「조계산 국사전의 중창에 따른 상량 명과 서문」에 기재되어 있다.
- 1286)용화회龍華會 : 미륵이 도솔천에서 이 세상에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 후에 행하는 설법 모임.
- 1287)나무 매 : 보조 선사가 나무로 만든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한 마리가 추월산에 내려앉아 암자를 짓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1288)위사韋史 : 신석희申錫禧(1808~1873)의 호. 1848년(헌종 14) 5월 증광시增廣試 병과 급제. 1850년(철종 1) 3월 18일 황해도 암행어사로 김상우 등을 탄핵하고, 규장각직각ㆍ도청응교都廳應敎 등을 역임하였으며, 1854년에는 순천 부사로서 수재 피해 수습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松廣寺之』 부록 「題詠」 편에 천자암 찬시가 실려 있다.
- 1289)향나무 매화 아이 : 홍석주가 송광사에 갔을 때 관음전 기둥 위에 아이 모양의 나무 조각이 있길래 물어보니, 1797년의 일이라고 하면서 승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삼청각에 화재가 났으나 승려들은 잠이 들어 모르던 차에 마당에서 불이 났다는 외침이 들렸다. 승려들이 나가 보니 아이가 외치면서 관음전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화재를 진압하고 이를 기이하게 여겨 향나무로 동자상을 만들어 봉안했다. 이 무렵 선암사에도 화재가 났는데 그 말을 듣고 동자상을 선암사로 가져갔다. 그러자 동자가 꿈에 나타나 자신을 돌려다 놓으라고 했고, 선암사에는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영험이 없다고 생각한 선암사 승려들이 동자상을 계곡에 버렸고, 동자상 꿈을 꾼 송광사 승려들이 동자상을 찾아 나한전 처마 사이에 봉안하였다. 이 상을 ‘매산梅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淵泉翁遊山錄」.
- 1290)연천淵泉 : 홍석주洪奭周(1774~1842)의 호.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백成伯. 약관에 모시毛詩ㆍ경례經禮ㆍ자사子史ㆍ육예백가六藝百家의 글을 모두 읽어 일가를 이루었다. 충청도 관찰사를 지낼 무렵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淵泉翁遊山錄」 현판이 송광사 우화각에 있고, 문집에는 이와 다른 「松廣遊記」가 있다.
- 1291)지팡이 던져~선비화仙扉花에서 증명되고 : 의상 대사가 부석사에 꽂은 지팡이가 나무 선비화로 자라났다고 한다.
- 1292)먹은 것을~오어사吾魚寺에서 징험되었도다 : 혜공 선사와 원효 대사가 깨달음을 겨루기 위해 물고기를 각각 잡아먹었다가 다시 살려 내는 내기를 했다. 그러나 살아난 고기가 한 마리밖에 없자 두 스님이 ‘나의 고기(吾魚)’라고 말한 데서 사찰명이 유래되었다.
- 1293)주먹 펴는~인연을 고하리오 : 옛날 어떤 비구가 법화경을 외는데 항상 ‘애체靉靆’ 두 글자를 잊었다. 스승이 말하길, 네가 전생에 법화경을 수지할 때 이 두 글자가 좀먹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傳燈錄』에 25조 사야다가 항상 왼손을 주먹 쥐고 있다가 사자존자를 뵙고는 주먹을 펼치자 구슬이 있었고, 사자가 숙세 인연을 말하고 출가를 권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먹 펴기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인연이 없어서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나온다.
- 1294)진나라 채찍 : 진시황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하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 1295)결묵結墨 : 재목을 다듬을 때 먹으로 치수를 표시하는 일.
- 1296)병丙 : 정남에서 동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 1297)임壬 : 정북에서 서로 15도 치우친 방향.
- 1298)갑甲 : 정동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 1299)경庚 : 정서에서 남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 1300)칠살七殺 : 십간 오행의 일곱 번째는 각각 양은 양의 극, 음은 음의 극이 되는 작용이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에는 각각 음양이 있고, 갑甲에서 계癸에 이르는 열 종류의 간干은 모두 이들 오행의 어느 것인가에 소속이 되는데, 예를 들어 갑목甲木은 무토戊土를 목극토木剋土로 극하고 을목乙木도 기토己土를 마찬가지로 극한다. 그리고 무토에서 차례로 헤아려 일곱 번째의 갑이 양은 양의 극, 기토에서 헤아려 을목은 일곱 번째의 음끼리의 극이 된다. 10간은 각각 일곱 번째의 간에서 극을 받는 상이 되며 이것을 일컬어 칠살이라 한다. 고독, 박명, 색난, 실권, 병재, 이별의 일곱 가지 흉의를 내포하므로 칠살이라 부름.
- 1301)술해戌亥 : 술은 정서에서 30도 북으로 치우친 방향이고, 해는 정북에서 서로 30도 치우친 방향.
- 1302)축인丑寅 : 축은 정북에서 동으로 30도 치우친 방향이고, 인은 정동에서 30도 북으로 치우친 방향.
- 1303)보림寶林 : ‘보배 숲’이란 뜻으로 육조대사 혜능이 조계曹溪에 지어서 36년 동안 가르침을 편 사찰명이기도 하다.
- 1304)난亂 : 마무리. 초사楚辭의 종장終章이 ‘난왈亂曰’로 시작하는 데서 유래함.
- 1305)육위六偉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 1306)자음당慈陰堂 : 국사전의 이칭. ‘자음’은 16국사의 은덕을 뜻함.
- 1307)행해당行解堂 : 본문 「행해당을 중건하는 화문」에 위대한 왕사王師 세 분의 진영이 있는 충사忠祠로 소개되었다.
- 1308)보현동자 : 보현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
- 1309)병정봉 : 조계산의 봉우리. 높이 532미터.
- 1310)황제 같은 봉우리 : 조계산 제자봉帝字峯.
- 1311)황노黃老는 어이타 목서木犀를 묻는가 : 송나라 문인 황정견黃庭堅이 황룡 회당黃龍晦堂 선사에게 법을 물었더니, 선사는 “목서 꽃의 향기를 맡았는가?”라고 물었고, 맡았다고 하니 “나는 네게 숨긴 게 없다.”라고 하였다. 『釋氏稽古略』 권4.
- 1312)석천石泉 : 석천에 대해서는 「종과 밥솥, 석천을 시주한 공덕에 대한 기문」에 보인다.
- 1313)제망帝網 : 인다라망因陀羅網. 인도의 신들 중 제왕에 해당하는 인드라신이 하늘을 다스리는 무기. 그물의 크기가 하늘을 덮는다. 그물망의 한 코마다 구슬이 달려 있는데 하나의 구슬에 수많은 다른 구슬이 비쳐서 다함없이 상대방을 비추는 불교의 무한 법계 사상을 내포한다.
- 1314)망망한 대지는~손가락 하나 : 『莊子』 「齊物論」의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天地一指也。萬物一馬也。)”라고 한 데서 온 말.
- 1315)선자禪子 : 선禪을 닦는 이.
- 1316)칼 차고 자니 : 잠을 잘 때도 번뇌를 자르는 칼을 차고 잔다는 뜻으로 수련에 매진함을 가리킨다. 『緇門警訓』 권3에 “帶刀而眠。離諸夢想。”이라 하였다.
- 1317)십마백장十魔百障 : 십마는 10종의 번뇌를 마군에 비유한 것으로, 욕欲ㆍ우수憂愁ㆍ기갈飢渴ㆍ애愛ㆍ수면ㆍ포외怖畏ㆍ의疑ㆍ함독含毒ㆍ이양利養ㆍ고만高慢. 백장은 온갖 장애.
- 1318)노전爐殿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을 맡아보는 사람의 숙소. 향각香閣.
- 1319)삼변정토三變淨土 : 석존께서 분신分身 제불諸佛을 수용하기 위해 세 번 국토를 바꾸어 청정하게 한 것. 첫째로 사바세계를 청정하게 하였으나 그것으로 다 수용하기 어렵게 되자 두 번에 걸쳐 예토를 청정하게 바꾸었다. 『法華經』 「見寶塔品」.
- 1320)오취잡거五趣襍居 : 욕계에 여러 중생들이 모여서 함께 살고 있음을 말한다. 오취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중생들.
- 1321)나계천주螺䯻天主 : 대범천왕大梵天王의 머리카락이 소라같이 되었다 하여 그를 나계범왕螺髻梵王이라고 일컫는데, 여기서는 석가불釋迦佛을 가리킴.
- 1322)선천先天 : 후천後天에 대비되는 말인데 여기서는 단지 ‘옛날’이라는 의미로 쓰인 듯함.
- 1323)15년 지나 기사년(1689) : 기사년이 맞다면 앞의 15년은 ‘5년’의 오류로 보인다.
- 1324)우계 전익友溪雋益 : 백암 성총栢庵性聰(1631~1700)의 제자.
- 1325)도감都監 : 돈이나 곡식을 관리하는 직책.
- 1326)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15세 때 송광사로 출가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고.
- 1327)율암 찬의栗庵贊儀(1867~1929) : 휘는 찬의贊儀, 자는 남계藍溪. 1882년(고종 19) 선암산에서 월주 대사月宙大師에게 머리를 깎았으며, 남쪽으로 유향하여 두륜산에서 범해梵海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참고로 금명 보정이 율암 찬의 입적 3개월 전에 쓴 「栗庵大禪師眞贊」이 전한다.
- 1328)김학모金學模 : 사천 군수를 지냈다. 본문 「조계산 송광사 칠성각을 새로 지으려 터를 닦는 축문」(1923) 참조.
- 1329)우부禹斧 : 도끼. 우禹가 천하의 하천을 개척할 때 용문산龍門山을 도끼로 끊었다 한다.
- 1330)진편秦鞭 : 채찍. 진시황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했다. 그러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 1331)기산綺山 공公 : 석진錫辰(1892~1968)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성은 임林씨. 아버지는 원오元悟이고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1905년 송광사 천자암天子庵에서 취월翠月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호붕浩鵬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송광사 보통과를 이수하고, 그해 4월 금명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 1332)옥돌(琅玕) : 낭간은 청록색의 반투명 비취를 말한다.
- 1333)중해衆海 : 중생의 바다. 많은 사람을 뜻함.
- 1334)고독원이나 기수祗樹 : 원문은 ‘獨園祗樹’. 파사닉왕의 태자인 기타祇陀가 소유한 원림園林을 급고독장자가 사서 정사를 지어 석가모니불께 바치고, 기타는 그 수풀을 바쳤으므로,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하여 ‘기수급고독원’이라 한다. 여기서는 둘을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 1335)녹원鹿苑 : 녹야원鹿野苑의 준말. 석가가 불도를 닦아 처음 설법한 곳.
- 1336)학림鶴林 : 중인도 구시나가라 밖 니련선하 가에 있던 사라쌍수沙羅雙樹의 숲. 석가모니불이 입적한 곳.
- 1337)울향鬯香 : 술. 기장으로 빚은 술에 울금鬱金으로 조화시킨 것이다.
- 1338)원력수생願力受生 : 원력으로 몸을 받음.
- 1339)송악 : 송광사가 있는 산을 가리킴.
- 1340)도력은 9산의 장벽을 융화시키고 : 지눌은 8세 때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闍崛山派에 속했던 종휘宗暉를 은사로 승려가 되었는데, 선교합일의 이론을 정립하여 ‘선교합일 회교귀선會敎歸禪’이라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수한 종지를 창도하였다.
- 1341)자리는 삼보의 이름에 참여했네 : 지눌의 가르침을 따라 절제된 수행 생활을 하는 승려들로 인해 송광사는 삼보 중의 하나인 승僧을 대표하는 절로 알려졌다.
- 1342)치대鴟臺 : 치락대鴟落臺. 보조국사가 송광사 절터를 잡을 때 나복산羅葍山(현재의 모후산母后山)에서 나무로 만든 솔개(木鴟)를 날렸더니 국사전國師殿의 뒷등에 떨어져 앉았으므로 이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라 했는데, 후에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가 진락대眞樂臺라고 했다.
- 1343)잔도棧道 : 험한 산의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를 놓듯이 하여 낸 길인데, 여기서는 송광사 관음전 뒤편 보조국사 사리탑이 있는 언덕에 설치한 계단을 말한다.
- 1344)희옥熙玉 : 송광사 소장 『大方廣佛華嚴經疏』를 각성覺性 등과 함께 1635년에 간행했다고 한다.
- 1345)응원應圓 : 인균印均(仁均)과 함께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승.
- 1346)일기一機 : 1718년에 안성 칠장사七長寺 원통전圓通殿의 목조木造 관음삼존상觀音三尊像을 제작하기도 했다.
- 1347)서홍瑞弘 : 1799년에 송광사에서 『妙法蓮華經』을 쓰고 교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 1348)도일度溢 : 사천왕상을 개채할 때 홍태弘太와 함께 화승으로 참여하였다.
- 1349)천희天禧 :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이다. 당호는 용선당龍船堂이다. 천희天喜(天熙)가 제작에 참여한 불화는 1873년 향림사 ≺七星圖≻를 비롯해 총 8점이 알려져 있다. 1891년 향호당香湖堂 묘영妙英이 주도하였던 송광사 사천왕상의 개채改彩 불사에 참여하였다.
- 1350)문성文性(1867~1954) :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활동했던 화승이다. 당호는 보응당普應堂이다. 속성은 김씨, 속명은 계창桂昌. 마곡사에서 화풍을 크게 떨치던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 문하에 입문하여 본격적으로 화원의 수업을 닦았다. 연파당蓮波堂 화인華印ㆍ향호당香湖堂 묘영妙英과 같은 전라도와 경상도 등지에서 활동했던 화승들과 더불어 작업하며 기량을 닦았다. 1903년에는 순천 송광사에서 고종황제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하는 원당을 설치하고 단청을 하였는데, 문성은 묘영ㆍ천희와 더불어 초본을 담당하였다. 이때 그려진 벽화가 현재 송광사 관음전 내부에 남아 있다.
- 1351)제두뢰타提頭賴吒 : ⓢ Dhṛtarāṣṭra의 음사. 지국持國이라 번역. 수미산의 동쪽에 살면서 건달바揵闥婆와 부단나富單那를 거느린다. 부단나는 ⓢ pūtana의 음사이며 취아귀臭餓鬼 또는 열병귀熱病鬼로 번역된다.
- 1352)비류륵차毘留勒叉 : ⓢ Virūḍhaka. 수미산 남쪽에 살면서 구반다鳩槃茶와 벽려다薜荔多를 거느린다. 구반다는 ⓢ kumbhāṇḍa의 음사이며, 옹형甕形으로 번역되는데 그늘진 모습이 항아리 같기 때문이며 염매귀厭魅鬼라고도 한다. 벽려다는 ⓢ preta의 음사이며 아귀餓鬼로 번역된다.
- 1353)비루박차毘樓博叉 : ⓢ Virūpākṣa. 수미산 서쪽에 살면서 용과 비사사毘舍闍를 거느린다. 비사사는 ⓢ piśāca의 음사로, 사람과 오곡의 정기를 먹는다고 한다.
- 1354)비사문毘沙門 : ⓢ Dhanada 또는 vaiśravaṇa. 수미산 북쪽에 거주하며 야차藥叉(ⓢ yakṣa)와 나찰羅刹(ⓢ rākṣasa)을 거느린다.
- 1355)회향回向 : 회전취향回轉趣向. 자신이 쌓은 선근과 공덕을 타인에게 돌려 자타가 함께 불과佛果의 성취를 기하려는 것. 불사의 마지막 단계가 회향이므로 일의 마침을 뜻함.
- 1356)8년 : 6년의 오류.
- 1357)이 책~7장丈에 보인다 : 본문 「조계산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이안한 연기와 평」을 말함.
- 1358)황석공黃石公과 장석군匠石君 : 바위와 관련한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황석공은 한漢나라의 개국 공신 장량張良이 흙다리 위에서 만난 노인인데, 노인이 일부러 다리 밑으로 내던진 신발을 주워 준 인연으로 태공太公의 병법을 전수했고, 장석군은 『莊子』 「人間世」에, 사당에 있는 아름드리 거목巨木을 보고는 쓸모없는 산목散木이라고 여겨 그냥 지나쳤다는 도목수 장석匠石을 가리키는 듯함.
- 1359)수도隧道 : 묘도墓道. 무덤으로 통하는 굴길.
- 1360)인寅을 등진 신申 방향 : 인은 정동에서 30도 북쪽으로 치우친 방향이고 신은 그 반대로 정서에서 30도 남쪽으로 치우친 방향이다.
- 1361)여산驪山 :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산.
- 1362)천극天極 : 북극성 또는 하늘을 뜻함.
- 1363)각도閣道 : 대개 지붕을 씌워 만든 집 사이의 통로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잔도棧道를 뜻함.
- 1364)대중大衆(介衆) : 『歷代史選』 권3 주나라 경왕敬王 2년 협주에 “개중介衆은 대중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 1365)단공檀功 : 시주의 공덕.
- 1366)구고九臯 : ‘깊은 구덩이’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하늘’의 뜻으로 사용함. 『詩經』 「小雅」 ≺鶴鳴≻에 “학이 구고에서 우니 소리가 하늘까지 들리네.(鶴鳴于九臯。聲聞于天。)”라는 구절이 있다.
- 1367)삼강三江 : 곤산현崑山縣 남쪽 9리 되는 곳에 있다. 우공이 세 갈래의 강물을 바다로 흘러들어 가게 하자 태호가 일정해졌다. 당대 중초仲初의 「吳都賦」 주에 송강 70리에서 갈라져 흐르다 동북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루강婁江, 동남으로 흐르는 것을 동강東江이라 했는데, 송강과 합하여 삼강이라고 한다.
- 1368)함호菡湖(?~1928) : 송광사의 승려.
- 1369)유촉遺囑 :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
- 1370)엄자산崦嵫山 : 해가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산의 이름으로, 만년晚年 또는 노년老年의 비유로 쓰인다.
- 1371)비판(雌黃) : 옛날 누런 종이에 글을 쓰고 잘못된 글이 있으면 자황을 칠하여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썼던 데서 나온 말이다.
- 1372)화반탁출和盤托出 : 음식물을 소반에 차려서 들고 나온다는 뜻으로, 일체 남기지 않고 드러냄을 이름.
- 1373)불량佛粮 : 불공에 쓰는 곡식.
- 1374)선사위토先師位土 : 돌아가신 스승의 제사를 관리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
- 1375)치혁鴟嚇 : 자기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봐 으르다.
- 1376)마땅하게(烏誼) : ‘오烏’는 의미 없이 치혁과 대비되게 하기 위해 쓴 말.
- 1377)사생四生 :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 1378)수북하게 많고 : 원문은 ‘鬪鬪飣飣’. 『高峰原妙禪師禪要』 「晚參」에 나옴.
- 1379)복전複殿 : 여러 층의 전각.
- 1380)용을 항복시킨 발우 : 육조대사 당시 못에 물을 마구 휘젓고 다니며 바람을 일으키는 용이 있어서, 육조대사가 “너 이놈, 몸을 키우고 재주를 부릴 줄은 알지만 몸을 작게 나툴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법문을 하자 그 용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몸을 작게 해서 육조대사 앞에 나타났다. 이때 육조대사가 발우로 딱 덮어서 용의 항복을 받은 일이 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 1381)고선枯禪 : 세상사 다 잊고 앉아서 참선만 하는 승려.
- 1382)보문普門 : 원만하고 완전한 가르침.
- 1383)조도수趙道洙 : 본관 옥천. 삼탄三灘 조대춘趙大春이 순천시 주암면 궁각리 매우 부락에 세운 양벽정漾碧亭을 1927년에 중건한 바 있다. 정청주, 「조선 후기 전남지역 사족의 누정 건립」, 『湖南文化硏究』 24,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1996년 참조.
- 1384)대술大術 : 석가모니의 모친. 마하 마야摩訶摩耶. 대환大幻ㆍ대지모大智母ㆍ천후天后라고도 번역한다.
- 1385)신운身雲 : 갖가지 몸을 나타내는 것이 구름과 같음을 말함.
- 1386)도솔천에서 화신을~신운을 내리사 : 석가모니는 흰 코끼리 형상으로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의 태 속에 드셨다.
- 1387)각수覺樹 : 석가모니가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나무라는 뜻으로 보리수를 일컫는 말.
- 1388)무우수無憂樹 : ⓢ aśoka. 근심이 없는 나무란 뜻으로, 보리수를 일컫는 말. 석가모니가 룸비니 동산의 이 나무 아래서 탄생할 때 마야부인이 이 나무를 잡았다 함.
- 1389)철수鐵樹 : 잎은 향포香蒲와 같고 자색紫色을 띤 나무인데, 소철蘇鐵이라고도 하고, 해송海松이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다만 이 나무는 원래 열대 식물인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므로,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무심無心,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에 비유하여 사려와 분별을 단절하는 수행의 법칙으로 삼는다.
- 1390)노나라 들판에서~이르시길 기대하고 : 『春秋』 ‘애공哀公 14년조條’에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 기린을 잡았다.(西狩獲麟)”라고 하였는데, 성왕聖王의 시대에나 출현하는 기린이 난세에 나와 잡혔기 때문에 공자가 절필하였다고 한다.
- 1391)번산(樊岑)에서 표범을~세움을 기뻐하겠네 : 옛날에 제왕이 행차할 때 따르는 행렬의 맨 마지막 수레에는 표범 꼬리를 매달아서 위용을 과시했다고 한다.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무창武昌의 번산樊山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어떤 노파가 무엇을 잡았느냐고 묻기에 표범 한 마리를 잡았다고 했더니, 그 노파가 “어째서 표범 꼬리를 수레에 매달아 세우지 않느냐.(何不豎豹尾)”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淵鑑類函』 권429 표豹 1. 이 구절은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에서 인용함.
- 1392)화엄을 설하시어~일곱 곳을 : 석가모니께서 『華嚴經』을 설한 장소가 일곱 곳이라는 말. 인간 세상에서 네 군데, 천상에서 세 군데. 칠처구회七處九會.
- 1393)녹원鹿苑에서 4제諦를 보이시어 :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를 상대로 처음 설법한 것이 고집멸도 사제의 가르침이다.
- 1394)유루有漏 : ⓢ sâsrava. 번뇌가 있음을 뜻하는 말.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에 상대되는 말이다.
- 1395)연태蓮胎 : 연꽃을 통해 서방정토에 태어남을 가리킨다. 『觀經』.
- 1396)종지種智 : 일체 만물의 각각 다른 상을 낱낱이 정밀하게 아는 부처의 지혜.
- 1397)불교사보佛敎社報를 보니~물음’이라 하였다 : 불교사에서 1928년에 발행한 잡지 『佛敎』 49호 「佛敎決疑」의 33회에 ‘금강산 유점사 동국경원’에서 질문한 ‘大經字數卞’과 이에 대해 답변한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의 글이 실려 있다. 『佛敎』 52호에는 김해은金海隱의 글 「佛敎決疑第三三回問書를 닑고-특히 楡岾寺東國經院」이 실려 있는데 본문과 견해가 일치한다. 해은은 호, 법명은 오천梧泉, 이름은 재선栽善. 『茶松詩稿』 권2에 칠언율시 「강단을 연 김오천에게 화답하다(和金梧泉開講)」가 있는데 협주로 “이름은 재선栽善, 호는 해은海隱이다. 정사년(1917) 겨울에 건당하기 전에 대원사로부터 왔는데, 도중에 쌍계사 강주의 요청으로 그대로 주실하여 개당하였다가 다음 해에 본사로 돌아가서 건당하고 주실하였다.(名栽善。號海隱。未建幢。自大原寺來。路爲雙溪寺講主請。仍住室開堂。明年還本。建幢住室。)”라고 하였다.
- 1398)『화엄품목華嚴品目』 : 조선 후기의 승려 묵암 최눌默庵最訥이 『華嚴經』의 요지를 도표화하여 저술한 책. ‘화엄과도華嚴科圖’라고도 함.
- 1399)같은 모양의~보낼 일 : 원문은 “一狀領過。一道行遣也。” ‘領過’는 ‘처리하다’로, 이때 ‘過’는 어조사로 여긴다. 또는 ‘領過’를 범죄 사실을 심문하여 기록한 문서로 보기도 한다. 이 구절은 『書狀』의 「答江給事少明」에 보임.
- 1400)인아人我 : 인아지상人我之相. 나와 남을 갈라 놓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남을 경시하는 마음.
- 1401)『치문경훈』 : 원元의 지현智賢이 승려들에게 경책과 교훈이 될 만한 글들을 모은 책. 조선 후기 백암 성총栢庵性聰(1631~1700)이 주석을 붙인 『緇門警訓』이 상중하로 나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위창 古 1798-7).
- 1402)수수守遂 : 속성은 장章씨이며 호는 정자凈慈이고 수령遂寧 봉계蓬溪(현 사천성四川省) 출신으로, 1135년에 수주隨州의 대홍산大洪山 정암사凈巖寺에 거주하였으며 『四十二章經註』와 『潙山警策註』, 『遺教經補註』 등이 전함.
- 1403)격외格外와 의리義理 : 격외는 일반적인 가르침의 형식을 벗어난 것이요, 의리는 말의 가르침을 통해 전달되는 이치라 할 수 있다.
- 1404)대불사의大不思議 :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인데, 화엄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 1405)몽둥이(活椎) : 사람을 죽이는 용도가 아니라 잘못을 깨닫게 하는 몽둥이라는 뜻으로 ‘活’을 쓴 것으로 보인다.
- 1406)허망하고 떠~괴상한 견해라 : 원문 ‘虛妄浮心多諸恠見’은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의 ‘虛妄浮心多諸巧見’에서 ‘巧’를 ‘恠’로 바꾼 것이다.
- 1407)함호菡湖 화상의 진영 : 화승畵僧 김예식金禮植이 그렸다고 함. 김정희, 「조선 후기 화승의 진영상」, 『강좌미술사』 35, 한국미술사연구소, 2010, 71쪽 참조.
- 1408)일곱 분의 얼굴 : 정면이 아니라 좌우로 고개를 조금 돌린 얼굴 그림을 가리킴.
- 1409)저포苧袍의 은혜 : 저苧와 관련해서는 춘추시대 오나라 계찰季札이 정나라 자산子産에게 호대縞帶를 선물하고 자산은 계찰에게 저의紵衣를 선물했다는 고사가 『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9년’에 있고, 포袍와 관련해서는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수가須賈가 친구 범저范雎(혹은 범수范睢)가 주취에 떠는 것을 보고 제포綈袍를 주었던 고사가 있다. 『史記』 「范睢蔡潭列傳」. 여기서는 범저의 고사를 말하는 듯함.
- 1410)죽백(帛) : 종이가 없었던 시대에 청죽靑竹으로 만든 간찰簡札이나 비단 헝겊에 글자를 쓴 데서 서책書冊을 지칭하였고, 역사라는 뜻으로도 쓰임.
- 1411)율암栗庵(1867~1929) : 법명은 찬의讃儀. 범해梵海 선사의 제자. 송광사 주지를 맡음.
- 1412)홍려시鴻臚寺 : 후한 명제 때 서역에서 불경을 싣고 온 흰 말이, 의전을 담당하는 관청 홍려시에 머물렀고 추후 절을 세워 백마사白馬寺라 이름 지었다. 관청 명칭이 불교의 절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 1413)축법란竺法蘭 : 후한後漢 시대에 처음으로 중국에 불교를 전한 대월지국大月氏國의 승려이자 역경가譯經家. 67년 가섭마등迦葉摩騰과 함께 낙양洛陽으로 와서 백마사白馬寺에 머물며 포교에 힘썼다.
- 1414)경부鯨桴(종) : 종의 윗부분에 음통과 포뢰浦牢(용)가 있는데 용의 목 부분에 종의 걸쇠가 걸려 있는 이 부분을 용뉴龍紐라고 부른다. 포뢰는 용의 아들인데 고래를 보면 무서워서 크게 운다고 한다. 그래서 종 치는 방망이에 고래를 새겨 넣어 경부라 한다.
- 1415)안찰鴈刹(절)이 구름처럼~하늘에 닿았다 : 이 부분은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을 인용한 것이다.
- 1416)비보裨補 : 풍수지리상으로 돕고 보완한다는 뜻.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의 비보사탑설에서 비롯함.
- 1417)우송友松 : 우송 황선명黃善明. 본문 「밭을 개간하기 위해 터를 닦는 축문」과 「낙안군 동화사 승당의 불상 개금과 탱화를 조성한 기문」 참조.
- 1418)사갈라沙迦羅 : ⓢ Sāgara. 큰 바다.
- 1419)도솔천(兜史陀) 내원內院 : 도솔천은 욕계 6천의 넷째 하늘로서 이곳은 다섯 가지 욕망을 마음껏 누리며 만족한 삶을 살기에 지족천이라고 한다. 그곳의 내원궁에 미륵보살이 거주한다.
- 1420)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15세 때 송광사로 출가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조.
- 1421)용맹龍猛 : 용수龍樹. Nagarjuna. 남인도의 승려로서 대승불교를 일으킨 주역. 용수 보살이 어떤 늙은 비구의 인도로 용궁에 들어가 많은 경전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용수 보살은 한없이 많은 화엄경 범본梵本 가운데서 하본下本 화엄경을 지상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 1422)감불龕佛 :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인 불감佛龕에 모신 불상.
- 1423)시청柴廳 : 땔감 놓는 곳을 말하는 듯함.
- 1424)제나라가 변하여~도에 이른다 : 『論語』 「雍也」의 “齊一變。至於魯。魯一變。至於道。”를 변용함.
- 1425)월방月邦(인도) : 『首楞嚴義疏注經』에 따르면 인도가 별처럼 작은 나라들에 비하여 달처럼 크므로 월방이라 한다고 했다.
- 1426)주나라 솥 : 주정周鼎. 주나라 왕권을 상징함. 우禹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붙이를 모아 주조했다는 큰 솥.
- 1427)장주莊周의 표주박 : 『莊子』 「逍遙遊」에서 양梁나라의 재상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하길, “위魏왕이 내게 큰 박씨를 주었습니다. 이것을 심었더니 그 박은 나중에 다섯 섬 무게만큼 커졌습니다. 여기에 물을 부었더니 박이 튼튼치 않아서인지 들면 모두 부서지기에 그것을 두 쪽으로 쪼개 표주박을 만들었다오. 하지만 너무 편편하고 얕아서인지 많은 물을 담을 수 없었소이다. 아무리 큰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소용이 없으므로 나는 그것을 깨뜨려 버렸소이다.”라고 하니 장자는 큰 것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하면서 “다섯 섬 무게의 박이 있다면, 왜 커다란 술통을 만들어 허리에 차고 강호에 띄워 유유히 놀아 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각 난 바가지가 편편하고 낮아서 쓸모없으리라는 걱정만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의 마음 쓰는 것이 너무 각박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 1428)식정識情 : 마음. 식심.
- 1429)동진童眞 : 승려가 될 뜻을 가지고 절에 와서 불도를 배우면서 아직 출가하지 않은 사내아이.
- 1430)만행화萬行華 : 자비를 기반으로 한 만 가지의 행을 꽃에 비유한 표현.
- 1431)구황救荒 : 기근을 구제함.
- 1432)채장債帳 : 남에게 빌린 돈의 금액을 적는 장부.
- 1433)삼리三利 : ‘고리대’를 뜻하는 듯함. 『周易』 「說卦」에 “시가의 세 배에 가까운 이득이 된다.(爲近利市三倍)”라는 구절이 있음.
- 1434)경운擎雲(1852~1936) : 강백講伯ㆍ사경사寫經師. 속성은 김씨. 경상남도 웅천熊川에서 태어나 17세 때 출가하여, 구례군 연곡사鷰谷寺 환월幻月의 제자가 되었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대승강원大乘講院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뒤에는 직접 강의를 담당하여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순천의 환산정喚山亭을 매입하여 새로운 포교당을 설립하고 포교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 1435)석향후石鄕侯 즉묵공卽墨公 : 벼루를 가리킨다. 당나라 문숭증文嵩曾이 벼루를 의인화하여 지은 「即墨侯石虛中傳」에서, 남포藍浦의 석허중이 석향후로서 부절을 가지고 즉묵군卽墨郡 일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즉묵공은 ‘먹’의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다.
- 1436)갈고 다듬는 교분 : 갈고 다듬는다는 표현은 벼루와 먹의 관계를 말하고 원문 ‘磨琢’는 또한 친구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 1437)저선생楮先生ㆍ중산군中山君 : 저선생은 종이, 중산군은 붓을 가리킴. 당나라 한유韓愈의 「毛穎傳」에서 비롯됨.
- 1438)노고추老古錐 : 노선사에 대한 경칭. 선기의 예민함이 날카로운 송곳과 같다는 뜻.
- 1439)글(寶唾) : 보배로운 침이란 뜻으로 훌륭한 글귀를 가리킴.
- 1440)범행梵行 : 불도 수행. 범梵은 청정을 뜻함. 음욕淫欲을 끊고 계율을 지키는 청정한 수행.
- 1441)선원璿源 : 왕실 족보. 여기서는 그저 족보를 높여 이름.
- 1442)소사小師 :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지 10년이 안 된 비구.
- 1443)모후산母后山 :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이곳까지 피난 왔다가 수려한 산세가 좋아서 왕이 1년 남짓 머물렀다. 그 후 원래 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 1444)제월천濟月泉 : 유마사 계곡에 흐르는 물. 당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 유마운維摩雲이 관직을 버리고 화순 동복군으로 건너와 유마사를 창건하여 머물다가 죽었고 그의 딸 보안普安이 혼자 머무는데 자기를 사모하여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승려에게 ‘달을 건져 내면 내 몸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하는 등의 방편을 써서 정욕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 1445)도마치逃馬峙 : 유마사 왼쪽 편의 높이 486m 봉우리.
- 1446)김규홍金奎弘(1845~?) :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화일華一, 서울 출신. 1889년 전라도 관찰사, 1891년 형조판서, 1892년 예조판서, 1893년 공조판서ㆍ경기도 관찰사, 1894년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 1447)결안結案 : 문안을 작성함.
- 1448)석숭石崇의 금곡金谷 : 진晉나라 무제 때 부자 석숭이 낙양洛陽 서북쪽 계곡에 지은 별장 금곡원金谷園. 「綠珠傳」에 따르면 계곡에 금수金水가 흐르기 때문에 금곡이라 했다고 전한다.
- 1449)미타彌陀 : 아미타불의 약칭.
- 1450)이 글은 권1의 「고흥군 금산면 풍악산 송광암 중수기」와 거의 일치한다.
- 1451)동전 셋을~보배(寶藏)를 얻었다 : 옛날 악생왕惡生王이 동산에서 황금 고양이를 보고는 사람을 보내 땅을 파 보니, 3섬들이 구리쇠 독을 하나 얻었는데 거기에는 금전이 가득 차 있었다. 좀 더 깊이 파다가 또 독 하나를 얻었다. 이렇게 하여 세 개의 독을 얻었는데 또 곁으로 파다가 거기서도 구리쇠 독을 얻었다. 쉬지 않고 자꾸 파서 5리에 이르는 동안 모두 구리쇠 독을 얻었는데 거기에도 금전이 가득 차 있었다. 악생왕은 매우 이상히 여겨 곧 존자 가전연迦栴延에게 가서 그 돈을 얻은 내력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과거의 그 인이 뭐냐고 물었다. 존자는 대답하였다. “자세히 들으십시오. 먼 옛날 91겁 전 비바시불毘婆尸佛의 끼친 법이 있을 때 여러 비구들이 네거리에 높고 큰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발우를 얹어 두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 든든한 창고 안에 돈을 넣겠는가? 이 창고에 넣은 돈은 물도 띄울 수 없고 불도 태울 수 없으며, 왕도 빼앗을 수 없고 도둑도 겁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어떤 가난한 사람이 마침 나무를 팔아 돈 세 전을 얻은 것이 있었는데, 그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그 돈을 모두 발우에 넣고 성심으로 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을 향해 5리쯤 걸어오면서 걸음마다 기뻐하고, 집 문에 이르러서는 보시한 그곳을 향해 진심으로 발원하고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그 가난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왕입니다. 왕은 과거에 세 전을 보시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세상마다 존귀하여 그런 세 개의 돈 항아리를 얻었으며, 5리 동안 걸음걸음마다 기뻐한 인연으로 항상 5리 안에 그런 돈이 있게 된 것입니다.” 왕은 전생의 인연을 듣고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雜寶藏經』 9권 103 ‘金猫因緣’.
- 1452)선영홍宣永鴻(1861~1924) : 본관 보성. 고흥 도양면 관리(현 도덕면)에서 태어나 거금도 지역인 금산면을 기반으로 부를 이루었다. 충남 보은군에 「前秘書卿宣永鴻施惠碑」가 세워져 있다.
- 1453)장 공張公 : 장남박張南搏. 거금도 고흥군 금산면 신촌리에 장남박 면장의 행적을 기념하는 비가 1941년에 세워져 전해진다.
- 1454)사키(佐木) : 앞의 글에는 사사키(佐佐木)로 되어 있다.
- 1455)화華의 3축祝 : 요堯임금 때에 화 땅의 봉인封人(관직)이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 세 가지로써 임금을 위해 축도祝禱했다. 화봉삼축華封三祝. 『莊子』 「天地」.
- 1456)순荀의 8룡 : 한나라 말엽 순숙荀淑이 낳은 여덟 명의 훌륭한 아들을 일컬음. 자손이 번창하리라는 뜻.
- 1457)촉루囑累 : 타인에게 고하고 의뢰함.
- 1458)엄자산崦嵫山 : 해가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산의 이름으로, 만년晚年 또는 노년老年의 비유로 쓰인다.
- 1459)납일臘日 : 동지로부터 세 번째의 미일未日. 납일 때가 되면 대개 음력으로 연말 무렵이 되므로 여기서는 ‘죽을 때’라는 의미로 사용됨.
- 1460)찰귀刹鬼 : 사람 잡아먹는 귀신.
- 1461)진제眞諦 조사의 자손기子孫記 : 권2에 있는 「함호 화상이 유촉하는 글」을 가리킴.
- 1)행록초行錄草 : ‘행록行錄’은 사람의 말이나 행실을 적은 글이며 ‘초草’는 초고라는 뜻.
- 2)김완金完(1577~1635) : 정유재란을 당하여 남원의 진사 조경남과 정사달 등과 함께 거병하여 현재의 구례군 산동면 원촌들에서 왜적과 대결하여 크게 이겼고, 이것을 기념하여 후손 및 지방의 사민들이 합력하여 1887년에 그 격전장에 「金完將軍戰勝遺墟碑」를 세웠다.
- 3)축시丑時 :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를 말한다.
- 4)경붕景鵬 : 익운益運(1836~1915)의 호. 다송은 1878년에 송광사 광원암에서 경붕에게 『起信論』을 배웠다.
- 5)구련九蓮 : 다송은 1881년에 송광사 보조암에서 구련에게 『懸談』을 배웠다.
- 6)혼해混海 : 다송은 1880년 봄에 지리산 법화암에서 혼해에게 다시 『起信論』을 배웠다.
- 7)원화圓華 : 덕주德柱(1839~1893)의 호. 성은 정씨鄭氏, 전라남도 담양 출신.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승려가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斗月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다송은 1880년 가을에 화엄사 구층암으로 찾아가 『圓覺經』을 배웠다.
- 8)원해圓海 : 다송은 원해에게 1883년에 광원암에서 『十地經』을 배웠다.
- 9)범해梵海 : 다송은 범해에게 1886년에 대흥사에서 고문古文과 사산비명四山碑銘 등을 배우고 구족계를 받았다.
- 10)함명菡溟 : 다송은 1909년에 함명에게 선암사 대승암에서 『禪門拈頌』을 배웠다.
- 11)조박糟粕 : 술찌꺼기라는 뜻으로 고인이 남긴 글을 가리키는데, 곧 고인의 진면목을 추구하지 않고 껍데기만 익힘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겸칭으로 사용함.
- 12)허주虛舟 : 덕진德眞(1806~1888)의 호. 조계산 송광사에 들어가 삭발하고 홀로 선정을 닦으며 도학을 성취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불러 국가를 위하여 철원 보개산寶蓋山 지장암地藏庵과 고산高山 운문사雲門寺에서 기원하게 하였다.
- 13)건당建幢 : 법을 전하는 스승에게서 법맥法脈을 이어받는 일.
- 14)부휴浮休 : 선수善修(1543~1615)의 호. 서산 대사의 사제로 전통적인 격외선格外禪을 계승하였고, 일념회기一念回機ㆍ일념회광一念回光ㆍ회광반조回光返照를 강조하여 임진왜란 이후의 불교계를 정비하였다. 저서로는 『浮休堂大師集』이 있다.
- 15)서각제西閣祭 : 서각은 뒷간을 말함. 우리나라 집들이 남향이기 때문에 뒷간이 통풍이 잘 되는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각제는 측신廁神을 모시는 제의. 측신은 성현成俔의 『慵齋叢話』 5권에, 인간에게 화禍를 주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 16)서불암西佛庵 : 고흥 팔영산 능가사의 암자. 본문 「흥양군 팔영산 능가사 서불암 기문」 참조.
- 17)광원실廣遠室 : 광원암인 듯함. 광원암은 고려 시대 진각 혜심眞覺慧諶이 주석하면서 『禪門拈頌集』 30권을 펴내어 광원유포廣遠流布한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짐.
- 18)눌봉訥峯 : 금명 보정이 활동하던 시기에 송광사와 도림사 등에서 활동했던 승려.
- 19)심우心友 : 마음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
- 20)결제結制 : 안거를 시작할 때 행하는 의식. 동안거 결제를 결동結冬이라고도 함.
- 21)남여籃輿 : 뚜껑이 없는 의자 비슷한 작은 가마. 앞뒤 각각 두 사람이 어깨에 메게 되어 있는데 양반들의 행차를 위해 승려들이 메곤 했다.
- 22)통인通引 : 수령守令의 신변에서 호소呼召ㆍ사환使喚에 응하던 이속.
- 23)태상시太常寺 : 제사와 증시贈諡를 맡아보던 관청.
- 24)경무청警務廳 : 조선 말기의 경찰 업무를 관장하던 관청. 1894년 갑오경장으로 관제가 개편됨에 따라 내무아문內務衙門에 소속된 관청의 하나로, 종래의 좌ㆍ우 포도청을 합쳐 설립한 것이다.
- 25)계판啓板 : 승정원에서 주의사항을 써 걸어 놓았던 게시판의 일종.
- 26)증명단證明壇 : 재단齋壇 가운데 비로자나불 등의 신격을 모신 상단을 말함.
- 27)복장腹藏 : 불상을 조성할 때 불상의 배 안에 사리와 불경 등을 넣는 일.
- 28)대구품大九品 : 가사 여든한 벌을 만드는 일.
- 29)승가리僧伽梨 : 삼의三衣의 하나. 중의重衣ㆍ합의合衣라 번역. 대의大衣라고도 함. 설법할 때 또는 마을에 나가 걸식할 때 입는 옷.
- 30)번거롭지 않았다 : 문맥상 이 부분에 결락이 있는 듯함.
- 31)대내大內 : 임금을 비롯하여 왕비, 왕대비들이 거처하는 곳을 두루 이르는 말. 여기서는 왕비를 뜻함.
- 32)원흥사元興寺 :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던 절. 1899년에 창건하여 조선불교의 총종무소總宗務所로 하고, 1902년에 대법산大法山에 지정되어 국내의 중심 사찰이 됨.
- 33)해랍解臘 : 동안거 해제.
- 34)내하금內下金 : 임금이 사사로이 내려 준 돈.
- 35)정명원鄭明源 : 당시 정3품 벼슬아치. 송광사에 원당願堂 세우는 일을 감독하였다. 본문 「성수전의 제반 집물을 전장하는 서문」 참조.
- 36)결랍結臘 : 동안거 결제.
- 37)회광晦光(1862~1933) : 법명은 사선師璿, 성은 이씨, 강원도 양양 출신. 19세 때 설악산 신흥사神興寺로 출가하여 정함定含의 제자가 되었고, 24세 때 간성 건봉사乾鳳寺에 있는 본엽本葉의 법맥을 받았다. 29세 때 건봉사에서 개강開講하여 불경을 가르치다가, 1904년에 홍월초洪月初 등이 명진학교明進學校를 설립하자 명진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08년에 각 도의 사찰대표 52명이 원흥사元興寺에 모여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조직하였을 때 대종정大宗正으로 추대되었으며, 191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동맹을 체결하였다. 그 뒤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이 반포되어 30본산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해인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 38)전경轉經 : 경전의 내용을 이해함과 동시에 불덕을 찬탄 공양하여 선근공덕을 쌓는다고 하는 목적과 불보살의 가호에 의하여 복을 구하려 하는 기도의 목적을 겸하여 행하는 독경 의식.
- 39)입승立繩 : 기강을 맡은 직임.
- 40)갈마羯摩 : 갈마아사리羯摩阿闍梨. 계 받는 취지를 대중에게 알리는 표백表白과 갈마문羯摩文을 읽는 스승.
- 41)예수預修 : 예수재預修齋. 현생에 공덕을 쌓아 사후에 극락왕생하고자 행하는 의례.
- 42)청진암淸眞庵 : 송광사 암자. 본문 「조계산 송광사 청진암의 네 번째 창건기」 참조.
- 43)의병(義酋) : 1907년에 들어와 일제의 헤이그 특사 사건을 기화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을 강제해 군대까지 해산케 했다. 이에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 부대를 조직해 일제에 투쟁하거나 기존의 의병 부대에 투신해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 44)익우益友 : 유익한 친구.
- 45)아사리阿闍黎 : ⓢ Ācārya. 자신을 바르게 하여 제자의 품행을 규정糾正하는 승려, 즉 승도僧徒의 스승.
- 46)응암應庵 : 낭윤朗允(1718~1794)의 호. 자字는 퇴옹退翁, 곡성군谷城郡 통명리通明里 출신이다. 속성은 초계草溪 최씨崔氏로 부친은 봉의鳳儀, 모친은 이씨李氏이다. 17세 때 용담龍潭 대덕에게 구족계를 받고, 18세 때(1735) 조계산 풍암 강백楓嵓講伯을 방문하여 공부하고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전하고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닦았다.
- 47)응암 선조의~당堂에 걸었다 : 본문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와 「응암 선사의 진영을 새로 조성하는 기문」 참조.
- 48)사자 무리들이~경우가 많았다 :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傳燈錄』에 “한로축괴韓獹逐塊 사자교인獅子咬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개(韓獹)에게 돌을 던지면 개는 구르는 돌덩이를 쫓아가 입으로 문다. 그러나 사자에게 돌을 던지면 사자는 구르는 돌을 쫓지 않고 돌을 던진 인간을 찾아 문다는 뜻이다.
- 49)치혁鴟嚇 : 자기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봐 으른다는 뜻. 『莊子』 「秋水」에 남방에 원추鵷鶵라는 새가 있어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갈 적에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단물이 나오는 샘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데, 이때 올빼미는 썩은 쥐를 물고 있으면서 마침 그 위를 날아가는 원추를 보고는 제 썩은 쥐를 빼앗길까 봐 꿱 하고 을러 댔다고 한다.
- 50)푸른 봄에~돌아가기 좋다 : 원문 “靑春好還鄕”은 당나라 두보杜甫의 칠언율시 ≺관군이 하남과 하북을 수복했다는 소문을 듣고(聞官軍收河南河北)≻의 구절 “靑春作伴好還鄕”을 차용한 것이다.
- 51)전강傳講 : 강맥講脈을 전수함.
- 52)수시壽詩 : 생일 축시.
- 53)누진漏盡 : 종명누진鍾鳴漏盡. 늙어서도 벼슬이나 명리에 연연함을 이르는 말이다. 삼국시대에 위魏나라의 전예田豫가 “나이가 칠십이 넘어서도 자리에 있는 것은 비유하면 종이 울리고 누각이 다하였는데도 밤길을 쉼 없이 가는 것과 같으니, 이는 죄인입니다.(年過七十而以居位。譬猶鐘鳴漏盡而夜行不休。是罪人也。)”라고 하였다. 『三國志』 권26 「魏書」 ‘田豫傳’.
- 54)각기脚氣 : 영양실조의 하나로, 처음 발병하면 말초신경 실조증 때문에 다리 부위가 나른하고 입 주위ㆍ손끝ㆍ발끝 등에 저린 감이 오며 심한 경우 무릎에 힘이 빠져 엉금엉금 기게 됨.
- 55)강론(佔畢) : 점佔은 본다는 뜻이요, 필畢은 간독簡牘(책)이다. 『禮記』에 “요즘 가르치는 이들은 그 점필을 음풍吟諷할 따름이다.(今之敎者。呻其佔畢。)”라고 하였다.
- 56)구품도九品圖 : 아홉 단계로 분류된 극락정토.
- 57)미타불彌陀佛 : 서방 정토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한다는 부처.
- 58)함호菡湖(?~1928) : 송광사의 승려.
- 59)석양이 한없이~황혼이 가깝구나 :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 ≺樂游原≻의 구절. 의산義山은 이상은의 자.
- 60)한영漢永 : 영호 정호映湖鼎鎬(1870~1948)의 자. 성은 박씨朴氏, 또 다른 호는 석전石顚. 19세 때 전주 태조암太祖庵으로 출가하여 금산錦山의 제자가 되었고, 21세 때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환응幻應에게 사교四敎를 배우고, 선암사仙巖寺의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배운 뒤, 구암사龜巖寺에서 처명處明의 법을 이어받았다. 금봉錦峯ㆍ진응震應과 함께 근대 불교사의 3대 강백講伯으로 추앙받았으며, 경사자집經史子集과 노장학설을 두루 섭렵하고 서법書法까지도 겸통한 고승으로 평가받았다.
- 61)자정慈靜 도량 : 송광사 산내암자. 고려 때 자정국사慈靜國師(1293~1301)가 창건했다고 함. 1975년 법정法頂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 편액을 걸었다.
- 62)휘주揮麈 : 고라니 꼬리털(麈尾)을 매단 불자拂子를 손에 쥔다는 뜻인데, 먼지떨이처럼 생긴 그 불자는 위진魏晉 시대 때 청담을 즐기던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다녔으며, 승려들도 애용하였다.
- 63)제봉찬霽峰讃 : 제봉 영찬霽峰永讚. 경운擎雲(1852~1936)의 제자.
- 64)금봉림錦峰林 : 금봉錦峰 장기림張基林(1869~1915). 법명은 병연秉演, 아호는 향엄香嚴이며 경운이 법부法父이다. 전라남도 여수 출생이고 부친은 장건하張建廈, 모친은 영성靈城 정씨丁氏이다. 15세 때 출가하여 원화圓化(구례 화엄사), 경운(순천 선암사), 범해梵海(해남 대흥사), 원응圓應(해남 대흥사)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사집과 사교ㆍ『拈頌』 등을 배웠다. 이 밖에도 이밀제李蜜齊ㆍ황매천黃梅泉 등과 토론을 벌일 만큼 외전外典에도 밝았다. 1895년(을미년) 3월 선암사 대승암 강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13년 선암사 주지에 취임했고, 순천 환선정喚仙亭에 포교당을 개설하는 등 산중 불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 65)진응찬震應璨 : 진응 혜찬震應慧燦. 경운(1852~1936)의 제자.
- 66)금파호琴巴湖 : 금파 경호琴巴竟湖(1868~1915). 전라북도 김제 출생. 임실 상이암上耳庵에서 출가하였고, 21세 때 경봉景峰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뒤 전국의 유명한 강원講院들을 다니면서 불경 공부에 몰두하였다. 특히, 벽송사碧松寺ㆍ대원사大源寺ㆍ화엄사ㆍ백양사ㆍ동학사 등에서 불교의 근본 경전들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 뒤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불경을 가르치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항상 수백 명의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았다.
- 67)호상毫相이 동쪽을 비춤 : 호상은 석가 32상相 중의 하나. 미간眉間에 백모白毛가 있는데 이것을 펴면 한 길 다섯 자가 되며 평소에는 오른쪽으로 말려 있다. 『法華經』 「序品」 제1에 “爾時。佛放眉間白毫相光。照東方萬八千世界。靡不周徧。”이라 하였다.
- 68)역매驛梅 : 역사驛使 편에 부치는 매화로,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육개陸凱가 강남에 있을 때 교분이 두터웠던 범엽范曄에게 매화 한 가지를 부치면서, “매화를 꺾다 역사를 만났기에 농두 사는 그대에게 부치오. 강남에는 아무것도 없어 애오라지 한 가지 봄을 보낸다오.(折梅逢驛使。寄與隴頭人。江南無所有。聊贈一枝春。)”라는 시를 함께 부친 데서 유래한다.
- 69)설도雪棹 :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타고 갔던 배. 왕휘지는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눈이 내리는 한밤중에 개자 친구인 대규戴逵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에 즉시 밤을 새워 배를 타고 가 대규가 사는 집 문 앞까지 갔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任誕」.
- 70)만남에 기뻐서~줄도 몰랐다 : 원문 “欣於所遇。曾不知老之將至。”는 동진 시대 왕희지王羲之의 「蘭亭集序」 “當其欣於所遇。暫得於己。快然自得。曾不知老之將至。”를 인용한 것이다.
- 71)균천鈞天 : 구천九天의 하나로서 하늘의 한 중앙에 위치한 상제上帝의 궁전.
- 72)한용운 공은~바다에 들어갔는데 : 한용운이 1920년 만세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아 3년 동안 옥살이를 한 것을 가리킴.
- 73)지주砥柱 : 역경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이를 비유하는 말. 중국 황하 중류에 있는 기둥 모양의 돌인데, 격류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서 절개를 지키는 이를 비유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다.
- 74)초복初服 : ‘관리 노릇을 하기 전의 복장’이란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본분사를 가리키는 듯함.
- 75)창연蒼然 : 흐릿함. 여기서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함을 표현함.
- 76)감송感頌 : 깊이 느껴 기림.
- 77)금계金鷄 : 신유년의 신은 오행五行에서 금에 해당한다.
- 78)교화하기 : 원문은 ‘點石’. 동진東晉 때 도생道生(355~434) 화상이 소주蘇州의 호구산虎丘山에서 돌을 모아 놓고 『涅盤經』을 강하면서 “내가 말하는 법이 불심에 들어맞는가?”라고 하니 모든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를 ‘완석점두頑石點頭’라고 한다.
- 79)수산 : 대개 ‘수산복해壽山福海’라고 하여 장수를 축하하는 말로 쓰임.
- 80)동림桐林 : 금명 보정이 1921년경에 주석하던 봉두산鳳頭山 동리사桐裏寺의 숲을 가리킴.
- 81)양영월梁映月 : 1921년경에 봉두산 동리사(즉 태안사) 주지를 맡았다. 「태안사 봉서암 중창기」 참조.
- 82)동산桐山 : 동리사桐裏寺의 산, 즉 봉두산을 가리키는 듯함.
- 83)압수鴨水 : 태안사 북쪽으로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하여 합록合綠으로 불리다가 오리과 철새들이 많이 날아드는 것에 따라 압록이라 불렸다고 한다.
- 84)홍조鴻爪 : 기러기가 눈이나 진흙 위에 남기는 발자국. 돌아가는 기러기가 다시 돌아올 때의 안표로 눈이나 진흙 위에 남기는 발자국이 이내 자취 없이 사라진다는 뜻에서, 인세人世의 여로旅路의 자취, 또는 그 자취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85)박한영朴漢永 :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이다. 주 60 참조.
- 86)동리선방桐裡禪房 : 금명 보정이 당시 주석하던 봉두산鳳頭山 동리사桐裏寺.
- 87)옥급玉笈 : 대개 도교의 비서秘書를 감춘 상자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불경을 담은 상자를 가리킴.
- 88)사생社生 : 향촌에 설립된 학교인 사학社學의 생도.
- 89)송태회宋泰會(1872~1942)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사평리 출생.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ㆍ호산壺山. 시문詩文과 서예에 뛰어났고 매일신보 기자로 잠시 활동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군 사립 보성학교, 능주군 사립 육영학교, 순천군 송광사에 있었던 사립 보명학교 등에서 한문을 가르쳤다. 문장과 서예에 두루 뛰어나 지역 고승과 문인들의 비문과 현판 등을 많이 써서 영암 도갑사,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구례 천은사 등 전남 지방의 유명 사찰에 남아 있다.
- 90)상당上堂 : 설법하기 위해 법당에 올라감.
- 91)두타頭陀 : ⓢ dhuta. 의식주에 관한 탐욕을 제거하기 위한 수행. 여기서는 수행승을 가리킴.
- 92)종제從弟 : 아버지 친형제의 아들딸 가운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아우.
- 93)에도가와(江戶川) : 일본 간토, 도쿄 도都 23행정구의 하나.
- 94)복숭아 드리는 :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 선인仙人인 서왕모西王母가 3천 년에 한 번 열리는 천도복숭아를 바친다는 제목의 정재呈才 「獻仙桃」가 있다.
- 95)축강祝崗 : 장수를 기원함. 『詩經』 「天保」의 “하늘이 왕을 보호하고 안정시켜 흥성하게 하지 않음이 없으니, 산 같고 언덕 같으며 산마루 같고 구릉 같으며 냇물이 한창 이르는 듯 불어나지 않음이 없네.(天保定爾。以莫不興。如山如阜。如岡如陵。如川之方至。以莫不增。)”에서 나온 것이다.
- 96)영대靈臺 :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
- 97)수시晬詩 : 생일을 축하하는 시.
- 98)법은야法恩爺 : 법의 은혜를 끼친 분이라는 뜻. 야爺는 남자의 존칭.
- 99)현호懸弧 : 생일. 『禮記』 「內則」에 “자식을 낳음에 남자일 경우는 문 왼쪽에 뽕나무 활을 걸고, 여자일 경우는 문 오른쪽에 수건을 건다.(子生男子。設弧於門左。女子。設帨於門右。)”라고 하였다.
- 100)절구를 가는 : 원문 ‘磨杵’는 ‘마저성침磨杵成針’의 준말. 쇠로 만든 다듬이 방망이를 갈아서 침을 만든다는 뜻.
- 101)황향黃香 : 후한後漢 시대의 인물. 여름에 더울 때는 아버지가 자고 있는 잠자리나 베개를 부채질하고, 추울 때는 자신의 체온으로 아버지가 앉을 자리를 따뜻하게 해서 아버지를 앉게 했다. 『蒙求』.
- 102)노래자老萊子 : 춘추시대 말기 초楚나라 인물.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려고 70이 넘은 나이에 어린애가 입는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일화가 유명하다.
- 103)사은四恩 : 『心地觀經』에 따르면 부모의 은혜, 중생의 은혜, 국왕의 은혜, 삼보의 은혜를 들고, 일체의 중생은 모두 사은을 진 존재라고 함.
- 104)명령榠欞 : 장수. ‘명령冥靈’과 같은 뜻으로, 오래 산다는 남국南國의 나무 이름. 『列子』 「湯問」에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라는 나무가 있으니, 500년을 봄으로 삼고,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 105)노지 백우로 화택을 넘길 : 노지 백우는 일승 묘법을 가리킴. 한 부호가 집에 불이 났는데도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 집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양거羊車ㆍ녹거鹿車ㆍ우거牛車로 유인하여 그들이 노지로 나오자 희고 큰 소가 끄는 멋진 수레를 각각 선물했다. 『法華經』 제3 「譬喩品」 ‘火宅喩’.
- 106)육감정六鑑亭 : 송광사 임경당에서 계곡물 쪽으로 난 정자.
- 107)김효찬金孝燦 : 자는 대겸大兼, 호는 남파南坡, 순천 출신이다. 조선 시대 말기 중추원中樞院 소속의 관직 중추원의관을 지냈으며, 1913년 순천 군수 이병휘李秉輝와 함께 난국음사蘭菊吟社를 창설해 근고루近古樓와 연자루燕子樓ㆍ선암사仙巖寺 등에서 많은 시문을 남겼다. 저서에 『南坡詩集』이 있다.
- 108)화표華表 : 여기서는 장수를 뜻함.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와서는 요동 성문의 화표주華表柱 위에 내려앉았는데, 소년 하나가 활을 쏘려고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면서 “옛날 정 영위가 한 마리 새가 되어,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 처음 돌아왔소.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은 모두 바뀌었나니, 신선술 왜 안 배우고 무덤만 이리도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去家千年今始歸。城郭如故人民非。何不學仙冢纍纍。)”라고 탄식하고는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搜神後記』 권1.
- 109)백취운白翠雲 : 1910년대 대흥사 주지. 당시 교종으로서 강학을 위주로 한 인물로 『朝鮮佛敎通史』에 기재되어 있다.
- 110)기수祗樹 : 파사닉(波斯匿; Prasenajit)왕의 태자였던 기타祗陀(Jeta)가 심은 나무들. 여기서는 숲을 가리킴.
- 111)송만암宋曼庵(1876~1957) : 법휘는 종헌宗憲.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며 목양산인牧羊山人이라고도 한다. 11세 때 어머니가 죽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백양사白羊寺로 출가하여 취운翠雲 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16세 때 구암사龜巖寺 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박한영朴漢永 강백에게 수학하고 다시 운문암雲門庵의 환응幻應 강백에게 수학하여 불교경전을 익혔다. 23세 때 환응 강백에게서 전강傳講을 받아 개강開講하였으며, 1905년 이후에는 청류암靑流庵ㆍ백련암白蓮庵ㆍ천진암天眞庵ㆍ해인사 강원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910년에 나라를 잃게 되자 다시 백양사로 돌아와서 광성의숙廣成義塾을 설립하고 이전의 강원 제도를 혁신하였다. 당시에 그는 100여 명의 학승들에게 불경뿐만 아니라 외전外典도 함께 배우게 했으며,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던 교재인 국사國史와 지리, 기타 민족정신을 심어 줄 수 있는 모든 교과목을 지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양사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출입하게 되었으며, 단순한 사찰의 기능을 넘어선 민족정신 함양 도량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1911년에 백양사에서 대오견성大悟見性하여 수백 명의 수좌首座들에게 선을 지도하였다. 1928년부터 3년 동안 현재의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에는 광주에 정광중학교淨光中學校를 설립하여 7년 동안 교장직을 역임하는 한편, 호남고불총림湖南古佛叢林을 결성하여 불교정화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뒤 1952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제2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5년 동안 재직하였다.
- 112)동천洞天 : 신선이 사는 곳. 경치 좋은 계곡.
- 113)『장수경』 : 원제는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佛說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
- 114)정황진鄭晄震(1890~?) : 필명 사후생. 쌍계사에 출가하여, 1910년대 일본 조동종계 대학에 유학하였다. 귀국 후 1925년에 창립한 불교총서간행회 활동을 하였으며, 자신의 연구 논문은 물론 일본 학자의 논고를 많이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다. 원효의 「晉譯華嚴經疏序」를 1918년에 『朝鮮佛敎叢報』 12호에 기송記送한 기록이 있는 등 원효의 저서를 집성한 인물이다.
- 115)형화荊花 : 자형화紫荊花. 형제의 비유. 『續齊諧記』 「紫荊樹」에 남조南朝 양梁나라 경조京兆 사람인 전진田眞 삼형제가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나니, 오직 자형수紫荊樹 한 그루만 남았으므로, 이것을 셋으로 쪼개서 나누자고 의논하고서 다음날 그 나무를 베러 가 보니, 나무가 이미 말라 버렸다. 그래서 전진이 크게 놀라 아우들에게 말하기를, “이 나무의 뿌리가 하나인지라, 장차 쪼개서 나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마른 것이니, 우리는 나무만도 못하다.”라고 하고는, 나누었던 재산을 다시 합하여 형제간에 아주 화목하게 살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
- 116)보수寶樹 : 극락정토에 일곱 줄로 벌여 서 있는 보물 나무.
- 117)공안 원만히~잣나무 푸르다 : 공안 가운데 유명한 ‘정전백수庭前柏樹’를 예로 들어 공안, 즉 화두를 성취했음을 표현했다.
- 118)이설월李雪月 : 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동국대학교의 전신으로 1906년에 개교한 명진학교明進學校 2회 졸업.
- 119)거령巨靈 : 황하黃河의 신으로, 화산華山을 손으로 쳐서 쪼개어 황화의 흐름을 틔웠다 한다. 장형張衡의 「西京賦」.
- 120)대춘大椿 : 매우 오래 산다고 일컬어지는 나무. 『莊子』 「逍遙遊」에 대춘이 8천 년을 봄으로 하고 8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하였다.
- 121)임형순林炯珣 : 곡성군谷城郡 도림사道林寺 주지를 역임함. 『조선총독부관보』 1932년 6월 1일자 참조.
- 122)수명 : 원문은 ‘鶴壽’. 삼국시대 오나라 육기陸璣의 모시소毛詩疏에, “학은 천 년을 산다.”라고 하였음. 학을 선금仙禽이라 하여 축수祝壽하는 데 많이 사용한다.
- 123)도진호都鎭鎬(1889~1986) : 1920년 조선불교청년회를 발기. 1930년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불교청년대회에 조선 대표로 파견.
- 124)호시弧矢 :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남자의 출생 또는 대장부의 원대한 포부를 말한다. 옛날에 남자아이가 출생하면 상목桑木으로 활을 만들고 봉초蓬草로 화살을 천지 사방에 대고 쏨으로써 사방에 뜻을 둔 남자의 기상을 상징하였다. 『禮記』 「內則」.
- 125)눈은 벗을~여전히 푸르네 : 원문 ‘靑眼’은 누군가를 반가워하는 눈길을 뜻한다. 삼국시대 위魏나라 완적阮籍이 속된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 즉 흰 눈자위를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 즉 검은 눈동자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낸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簡傲」.
- 126)봉황 우는 기산 : 주周나라가 일어날 적에 봉황이 기산에서 울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길상吉祥의 조짐을 의미한다. 『國語』에 주나라 내사內史 과過가 “주나라가 흥기할 때 기산에서 봉황새가 울었다.”라고 하였다.
- 127)털 뽑고 골수 씻어 : 환골탈태와 같은 의미.
- 128)최평담崔平澹 : 천은사 부도군에 있는 월봉당유운선사유혜비月峯堂裕雲禪師遺惠碑가 1918년에 세워졌는데 비석에 새겨진 제자弟資 명단에 보인다.
- 129)색동옷 춤 : 부모에게 효도함을 뜻한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인 노래자老萊子는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어, 일흔 살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의 놀이를 하여 어버이를 기쁘게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小學』 「稽古」.
- 130)세 길 : 은자의 거처를 말한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歸去來辭」에 “(정원의) 세 길이 거칠어졌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三逕就荒。松菊猶存。)”라는 표현이 있다.
- 131)산악이 신령 내려 : 원문 ‘岳降靈’은 『詩經』 「大雅」 ≺崧高≻의 “維嶽降神”에서 온 것으로, 산악의 신령한 정기로 위인을 낳았다는 뜻이다.
- 132)김수경金袖鯨 : 1912년에 곡성군 태안사 주지를 맡음. 『조선총독부관보』 1595호.
- 133)삼상叅商 :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삼성參星은 동쪽 하늘에 있고 상성商星은 서쪽 하늘에 있어서, 각각 뜨고 지는 시각이 다른 관계로 영원히 서로 만날 수가 없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春秋左傳』 ‘소공昭公 원년元年’.
- 134)철수鐵樹 : 잎은 향포香蒲와 같고 자색紫色을 띤 나무인데, 소철蘇鐵이라고도 하고, 해송海松이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다만 이 나무는 원래 열대 식물인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므로,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무심無心,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에 비유하여 사려와 분별을 단절하는 수행의 법칙으로 삼는다.
- 135)명령榠欞 : 매우 오래 산다고 일컬어지는 나무. 『莊子』 「逍遙遊」에, 초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 있는데 5백 년을 봄으로 하고 5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하였다.
- 136)물과 달을~신선의 배움이요 : 소 신선은 송나라 소식을 가리킴. 물과 달은 「赤壁賦」의 내용 “擊空明兮泝流光” 등을 말한다.
- 137)전원으로 돌아감은~역사에 푸르네 : 「歸去來辭」를 지은 도연명陶淵明은 동진東晋 시대 문인이다.
- 138)거문고 : 원문 ‘牙琴’은 춘추시대 종자기鍾子期가 잘 들었던 백아伯牙의 거문고를 뜻한다. 『列子』 「湯問」.
- 139)봉시蓬矢 : 쑥대로 만든 화살. 여기서는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쓰임.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살을 천지사방에 쏘아서 성공을 축원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뜻이 바뀌어 남자가 큰 뜻을 세움을 비유하는 말로 쓰임.
- 140)육아蓼莪 : 『詩經』 「小雅」의 한 편명으로, 부모가 돌아가신 후 그 은혜를 기리며 효도를 다하지 못했음을 슬퍼하는 내용.
- 141)이담해李湛海 : 범어사의 승려.
- 142)철수화 많이 피어 : 극히 실현되기 어려움을 비유함. 철수는 열대 지방의 나무로 꽃이 잘 피지 않음. 명나라 왕제王济의 『君子堂日詢手鏡』에 “吳浙間嘗有俗諺云。見事難成。則云須鐵樹花開。”라 하였다.
- 143)바람인가 깃발인가 : 인종印宗 법사가 열반경 강의를 하고 있을 때, 두 승려가 바람과 깃발을 가지고 다투길,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또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였다. 이를 듣고 혜능이 그것은 바람이나 깃발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 하니, 놀란 인종은 혜능의 제자가 되었다.
- 144)거북과 학 : 장수를 상징한다.
- 145)환선정喚仙亭 : 전라남도 순천시 조곡동稠谷洞 죽도봉공원竹島峰公園 내에 있다. 원래 환선정은 매곡동 둑실로 건너가는 다리 머리에 있었는데 1962년 8월 28일 수해로 유실되면서 1988년에 현재 자리에 복건했다.
- 146)『팔양경八陽經』 : 당나라 삼장법사 의정義淨이 한역한 『佛說天地八陽經神呪經』. 천지 음양의 여덟 가지 이치와 혼인, 해산, 장례법을 설한 경전.
- 147)눈길 푸르다 : 손님을 반갑게 맞음을 뜻함.
- 148)지선智仙 : 송나라 문인 구양수歐陽脩와 교유한 승려. 취옹정을 지은 인물로 「醉翁亭記」에 등장한다.
- 149)꺼리네 : 문맥이 순조롭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해당 부분의 원문 ‘忌’는 ‘忘’의 오자로 보인다.
- 150)정만조鄭萬朝(1858~1936) :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대경大卿, 호는 무정茂亭. 대한제국기에는 규장각 부제학을 지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동사문회 부회장, 경학원 대제학, 조선사편수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 151)천은산방 : 지리산 천은사泉隱寺인 듯함. 보정은 을묘년(1915) 3월에 방장산 천은사에 가서 또한 크게 모임을 열었다. 「行錄草」 참조.
- 152)무성함이 잣나무~기쁘게 하니 : 송무백열松茂栢悅의 의미.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동료가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
- 153)안용섭安容燮(1860~1923) : 자는 경중敬仲, 호는 금석錦石. 『錦石遺稿』가 전한다.
- 154)초지初地 :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 가운데 십지十地의 첫 단계, 즉 환희지歡喜地.
- 155)성상星霜 : 세월을 뜻하는데, 이 구절 뒤에 ‘희다’고 한 것은 서리와 별의 의미를 살린 것이다.
- 156)견도見道 : 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여 견혹見惑을 끊는 단계. 이 이상의 단계에 이른 사람을 성자라고 함.
- 157)빈 방에~빛이 생겨나고 : 방이 비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환하게 밝아진다는 뜻. 마음이 무상무념이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비유함. 『莊子』 「人間世」.
- 158)향사香社 :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향산香山의 승려 여만如滿과 함께 결성한 모임인 향화사香火社의 준말로, 여기서는 육감정을 비유한 것이다.
- 159)지선정智仙亭 : 지선은 송나라 구양수歐陽修의 「醉翁亭記」에 나오는, 취옹정을 세우고 구양수와 교유한 승려 이름이다.
- 160)웅경熊經 : 도인술導引術의 하나로, 곰이 나무에 기어 올라가는 자세. 새가 목을 늘여 먹을 것을 구하는 자세인 조신鳥伸과 같이 언급됨. 『莊子』 「刻意」.
- 161)종소리 : 원문은 ‘鯨音’. 종의 윗부분에 음통과 포뢰浦牢(용)가 있는데 용의 목 부분에 종의 걸쇠가 걸려 있는 이 부분을 용뉴龍紐라고 부른다. 포뢰는 용의 아들인데 고래를 보면 무서워서 크게 운다고 한다.
- 162)훤당萱堂 :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 163)생일 : 원문 ‘勞’는 ‘劬勞’를 뜻함. 이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수고로움을 뜻함. 『詩經』 「小雅」 ≺蓼莪≻에 “슬프다 우리 부모, 날 낳고 고생 많으셨지.(哀哀父母。生我劬勞。)”라는 구절이 있다.
- 164)보림寶林 : ‘보배 숲’이라는 뜻으로 육조대사 혜능이 머물렀던 사찰 이름이기도 하다.
- 165)다송茶松 : 필자 금명 보정錦溟寶鼎의 호.
- 166)상호桑弧 : 뽕나무로 만든 활.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로 만든 활로 쑥대로 만든 살을 천지 사방에 쏘아서 성공을 축원한 풍속으로, 출생을 뜻함.
- 167)철수鐵樹 : 잎은 향포香蒲와 같고 자색紫色을 띤 나무인데, 소철蘇鐵이라고도 하고, 해송海松이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다만 이 나무는 원래 열대 식물인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므로,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무심無心,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에 비유하여 사려와 분별을 단절하는 수행의 법칙으로 삼는다.
- 168)육소 : 『詩經』 「小雅」의 편명. 육소蓼蕭는 크게 자란 쑥으로, 잘 자란 쑥이 이슬에 촉촉이 젖어 있는 것처럼 풍신이 좋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잔치하며 화락하게 노는 모습을 노래한 것.
- 169)상산 : 원문은 ‘商峀’. 상산사호商山四皓로 유명한 곳. 진시황 때에 난리를 피하여 은거한 이들인데, 여기서는 덕망이 높은 은거자의 거처를 뜻하는 말로 쓰였고, 다송을 상산사호에 비유한 것이다.
- 170)뾰족한 : 원문의 ‘旗槍’은 노란빛ㆍ붉은빛의 작은 기를 단 단창短槍인데 여기서는 찻잎의 뾰족한 모양을 가리킴.
- 171)구련龜蓮 : 장수를 뜻함. 송나라 주희朱熹가 어머니의 생신날 축수한 시 ≺壽母生朝≻의 “구련을 올려 천 년의 장수를 기원하고, 영원히 부조로 하여금 한 집안을 풍요롭게 하네.(願上龜蓮千歳壽。永令鳬藻一家肥。)”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로, 천 년을 사는 거북이가 연잎 위에서 논다는 뜻인 ‘구련’은 장수를 상징한다.
- 172)단장정 : 행인의 휴식이나 전별 장소용으로 길거리에 설치한 휴게소. 단정은 5리里이고 장정은 10리에 설치함.
- 173)머리 끄덕이던 돌 : 동진東晉 때 도생道生(355~434) 화상이 소주蘇州의 호구산虎丘山에서 돌을 모아 놓고 『涅盤經』을 강하면서 “내가 말하는 법이 불심에 들어맞는가?”라고 하니 모든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를 ‘완석점두頑石點頭’라고 한다.
- 174)조영선趙泳善(1879~1931) : 호는 배헌拜軒, 자는 이경而慶, 본관은 옥천이고 곡성谷城 사람이다. 저서로 『拜軒集』이 있다. 1906년(광무 10)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최익현과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 175)어산魚山 : 범패梵唄 수도장의 발상지. 인도는 이민달라산, 중국은 어산이 범패의 발상지라고 한다. 불경의 게송에 곡을 붙인 노래를 범패라 한다.
- 176)귀밑머리는 중년이라 공정히 하얗고 : 두보의 시 ≺送隱者≻에 “세간의 공정한 도리는 오직 백발이라.(公道世間唯白髮)”라 하였다.
- 177)달뗏목 : 요堯임금 때 서해西海에 광휘光輝를 발하는 큰 뗏목 하나가 떠서 언뜻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그 광휘가 마치 성월星月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 같았는데, 이 뗏목은 항상 사해四海를 떠돌아서 12년 만에 천체天體를 일주하곤 했으므로 이 뗏목을 관월사貫月楂 또는 괘성사挂星楂라고 불렀다. 『拾遺記』.
- 178)방학정放鶴亭 : 송나라 은자隱者 장사후張師厚가 서주徐州 운룡산雲龍山에 은거하면서 동산에 정자를 짓고 학을 길렀다. 소식이 그것을 보고 그 정자 이름을 방학정이라고 불렀으며 방학정을 제목으로 하여 「放鶴亭記」를 지었다. 『東坡全集』 『古文觀止』.
- 179)연단鍊丹 : 신선이 되는 단약丹藥을 제조하는 비법.
- 180)건건乾乾 : 두려워하고 수성修省한다는 뜻. 『周易』 「乾卦」에, “군자는 종일 건건한다.(君子終日乾乾)”라고 하였다.
- 181)죽산 : 곡성군 죽산리에 있는 산 이름. 김영배는 다송과 동성동본이고 역시 곡성 출신인 듯함.
- 182)하랍夏臘 : 승려의 나이. 승려가 90일간의 하안거夏安居를 지낸 햇수. 법랍法臘이라고도 함.
- 183)전갱籛鏗 : 팽조彭祖의 이름. 요임금 때 사람으로 팽성彭城에 봉하였기 때문에 팽조라고도 하는데, 767살이 되었어도 노쇠하지 않았다 한다. 『列仙傳』.
- 184)심인心印 :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부처의 깨달음의 내용.
- 185)장경성長庚星 : 금성, 샛별, 계명성啓明星, 태백성太白星.
- 186)복어 등 거북 무늬 : 복어의 반점 같은 얼룩이 있는 등은 장수하는 노인을 가리키고, 거북은 장수를 상징한다.
- 187)최진국崔珍國(1862~?) : 자는 태여泰汝, 호는 만운晩雲, 본관은 전주. 기송사奇松沙를 종유從遊하여 경서經書의 뜻을 연마하였다. 문집文集이 있고 문생門生들이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였다.
- 188)80종호種好 : 32상相 80종호. 부처님이 몸에 갖추신 뛰어난 묘상妙相 혹은 상호相好를 작게는 32가지, 크게는 80가지의 특징으로 나타낸 것이다.
- 189)쇠 끊음이 난초 맺는 : 쇠를 끊음(斷金)이나 난초 맺음(結蘭) 모두 우정을 뜻한다. 『周易』 「繫辭上傳」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취가 난향과 같다.(二人同心。其利斷金。同心之言。其臭如蘭。)”라고 하였다.
- 190)이종택李鍾宅 : 육봉六峯 이종택(1865~1942)인 듯함. 육봉 이종택은 영암 출신으로 본관은 함풍. 『六峯遺集』이 있음.
- 191)산초술 : 산초술은 향이 좋아 신神에게 바치고 정월 초하룻날 축하주로도 사용하였음.
- 192)겁진刼塵 : 천지가 온통 뒤집힐 때 일어나는 먼지.
- 193)거위 : 진晉나라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좋은 거위를 기르고 있다는 산음山陰의 한 도사道士를 찾아갔는데, 그 도사가 왕희지에게 『道德經』 한 권을 붓으로 써 주면 주겠다고 하자, 왕희지가 흔쾌히 승낙하고 그 경문經文을 써 준 다음에 그 대가로 거위를 가지고 왔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王羲之傳」.
- 194)능파각 : 태안사의 금강문으로 누각을 겸한 일종의 다리 건물.
- 195)단정短亭 : 행인들의 휴게소로서, 5리里마다 단정을 설치하고 10리마다 장정을 설치하였다.
- 196)진나라 아이들 : 진시황이 서불徐市에게 동남동녀를 데리고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보냈다.
- 197)호남弧南 : 남극노인성老人星의 별칭.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
- 198)생일 : 원문 ‘蓬桑’은 상봉호시桑弧蓬矢의 준말.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살. 예전에는 남자가 태어나면 이 두 가지를 만들어서 천지 사방에 쏘아 큰 뜻을 이루기를 비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 199)수성壽星 : 노인성의 별칭.
- 200)피리 부는 아미산의 소학 : 아미산은 사천성四川省 남서쪽에 있는 산. 아미산 부근에 삼소사三蘇祠, 즉 송나라 소순과 소식蘇軾ㆍ소철의 거주지에 세운 사당이 있다. 소식의 「赤壁賦」에 퉁소를 부는 대목이 있고(客有吹洞簫者), 「後赤壁賦」에 학이 등장한다. “適有孤鶴。橫江東來。”
- 201)도서 바친 함곡관의 이우 : 이이李耳, 즉 노자가 청우靑牛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수문장 윤희尹喜의 요청으로 『道德經』을 써 주었다고 한다.
- 202)빙도 : 1만 년 만에 열리는 복숭아. 『拾遺記』에 이르기를, “부상扶桑으로 5만 리쯤 가면 방당磅磄이라는 산이 있고 이 산 위에는 1백 아름드리나 되는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이 복숭아는 1만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 그리고 울수鬱水라는 물은 방당산 동쪽에 있는데, 여기에는 1천 상常(1상은 16척尺)이나 되는 연뿌리가 난다.”라고 하였다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전한다.
- 203)애쓰신 : 원문 ‘劬勞’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수고를 뜻하는 말로 『詩經』 「小雅」 ≺蓼莪≻에 “애달파라 우리 부모님, 나를 낳아 애쓰셨도다.(哀哀父母。生我劬勞。)”라고 하였다.
- 204)다북쑥 : 원문 ‘蓼莪’는 『詩經』 「小雅」의 편명으로, 부모가 돌아가신 후 그 은혜를 기리며 효도를 다하지 못했음을 슬퍼하는 내용임.
- 205)주옥籌屋 : 옛날 세 노인이 함께 만난 자리에서 어떤 자가 나이를 물었다. 세 노인 모두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고 대답하였는데, 그중 한 노인이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면 그때마다 산가지 한 개를 놓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하나씩 놓은 산가지가 열 칸의 집에 이미 가득 찼다.(水變桑田時。吾輒下一籌。邇來吾籌已滿十間屋。)”라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東坡志林』 권2.
- 206)석니石泥 : 돌가루와 진흙의 혼합물. 봉선封禪할 때 봉니封泥용으로 사용되었다.
- 207)여도蠡圖 : 춘추시대 범려范蠡가 월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벼슬을 버리고 오호五湖에 은둔한 내용을 그린 것.
- 208)난탕蘭湯 : 향기로운 난초를 넣어서 끓인 물. 불상不祥한 것을 물리칠 수 있다 하여 난탕으로 목욕재계를 했다고 한다. 『大戴禮記』 「夏小正」에 의하면 “단오일에는 난탕으로 목욕을 한다.(午日以蘭湯沐浴)”라고 하였다.
- 209)범상梵相 : 범梵은 맑다는 뜻으로 일체의 번뇌, 일체의 죄과를 완전히 벗어난 상태이다.
- 210)송종헌宋宗憲(1876~1957) :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1886년 11세 때 백양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구암사龜岩寺로 옮겨 박한영 문하에서 경전을 배워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 25세부터 32세까지 7년 동안은 운문선원雲門禪院에서 오로지 참선을 통한 정진에 전념했다. 1898년 무렵부터 강사 생활을 시작해서 1907년부터 해인사에서 강의를 이어 가고, 1910년 백양사로 돌아왔다. 사립 광성의숙廣成義塾 측량강습소를 설립(1910)하여 본격적인 후진 양성을 시작하였다. 또 광주시 광산구에 정광 중ㆍ고등학교와 서울에 불교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를 설립해 첫 학장에 취임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신식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했다.
- 211)연기嚥氣 : 양생법養生法의 하나. 입 안에 있는 공기를 배에 들어가게 삼키는 것.
- 212)물오리 : 원문 ‘鳬藻’는 물오리가 조류藻類를 보면 기뻐한다는 뜻으로, 몹시 기뻐서 떠듦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저 물오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 213)삼거三車 : 『法華經』 「譬喩品」에서 말하는 양거羊車, 녹거鹿車, 우거牛車의 세 수레.
- 214)신규환申圭桓 : 본관은 고령, 고흥 출신. 임진왜란 때 훈련원부정으로 왕을 의주로 호가하였던 영해榮海의 후손으로, 문학에 밝았다.
- 215)영대靈臺 :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
- 216)명령螟蛉 : 벌레의 유충인데, 『詩經』 「小宛」에 나나니벌이 명령을 물어다가 자기의 새끼로 기른다는 내용이 있어, 양자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제자들을 자식처럼 대했음을 말한다.
- 217)송명회宋明會(1872~1953) : 자는 남일南一, 호는 소파小波, 본관은 여산礪山, 출신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원당리元堂里이다. 1893년(고종 30)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으로부터 사사하였다. 1898년(광무 2)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배알하였는데 그 재주를 보고 자기 제자처럼 아꼈다. 1900년(광무 4)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다음 해 매천梅泉 황현黃玹을 찾았는데 매천과는 며칠을 함께 시를 논하며, 시문을 지어 서로 주고받았다. 동강東江 김영한金寧漢은 “호남의 시가詩家로서 ‘매천’ 이후에 소파가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 218)숙업宿業 : 지난 세상에서 지은 선악善惡의 행업.
- 219)노로정勞勞亭 : 오吳나라 때 세웠던 정자로 이별 장소였다. 그 터가 현재 강소성江蘇省 강녕현江寧縣 남쪽 15리에 있다. 이백의 시 ≺勞勞亭≻에 “天下傷心處。勞勞送客亭。”이라 하였다.
- 220)임보극任普極 : 향봉 향눌香峰香訥(1901~1983). 일본 대학에서 공부한 향봉 스님은 출가 후에는 교와 선을 겸비하고 오직 수행 정진에 몰두했다. 1950년대 중반 경주 오봉산 사주암에 주석. 부산 범어사 선원에서 입승을 볼 때 엄격하게 수좌들을 지도했다. 노년에 조계총림 방장 구산九山(1909~1983) 스님의 권유로 송광사로 돌아왔다.
- 221)김완金完(1577~1635) : 무과에 급제한 뒤 경상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진중으로 가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 남원의 궁장현弓藏峴에서 적병을 만나게 되어 남원의 진사 조경남과 정사달 등과 함께 거병하여 현재의 구례군 산동면 원촌들에서 왜적과 대결하여 승전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이 되었다.
- 222)5세 때~‘영준英俊’이라 하였다 : 실제 비명에는 이 부분이 없다.
- 223)향수해香水海 : 수미산을 둘러싼 바다. 『華嚴經』에 나오므로 『華嚴經』을 지칭하는 듯하다.
- 224)원해圓海(?~?) : 성은 음씨陰氏, 법명은 문주文周, 전라남도 순천 출신. 어려서 조계산 송광사로 출가하여 원만圓滿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비구계와 보살계를 각안覺岸으로부터 받았으며, 전국의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불경을 배운 뒤, 송광사로 돌아와서 후학들에게 강의하였다.
- 225)범해梵海(1820~1896) : 법명은 각안. 1833년(순조 33) 두륜산 대둔사大芚寺로 가서 출가하였고, 1835년 호의縞衣를 은사로 삼고 하의荷衣에게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초의草衣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1846년에 호의의 법을 이어 진불암眞佛庵에서 『華嚴經』과 『梵網經』을 강설하고 선리禪理를 가르쳤다.
- 226)함명涵溟(1824~1902) : 호는 태선太先. 『緇門警訓私記』 1권이 현존한다.
- 227)팔영산八影山 :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산.
- 228)전경轉經 : 경전의 글귀를 소리 내어 읽거나 읊조림.
- 229)광원암廣遠菴 : 순천 송광사에서 약 600m 떨어진 곳에 있는 송광사의 산내 암자이다.
- 230)광무光武 병술년 : 광무 연간에 병술년은 없다. 금명 생애로 보아 병술년은 1886년이다.
- 231)기군紀群의 사귐 : 기군은 후한後漢의 명사인 진기陳紀와 그의 아들 진군陳群을 가리킨다. 자신의 나이가 상대방 부자의 중간임을 말한 것이다. 노魯 지방의 공융孔融이 먼저는 진기와 벗하고 뒤에는 진군과 벗하였으므로, 후대에 여러 대에 걸쳐 교분을 맺는 것을 기군의 사귐이라 하였다.
- 232)송태회宋泰會(1872~1942) : 전라남도 화순 출신. 사호沙湖 송수면宋修勉의 조카이며,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 시문詩文과 서예에 뛰어났고 매일신보 기자로 잠시 활동하였다. 한일 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 능주, 순천, 고창 등에서 한문과 서화 등을 가르쳤다.
- 233)일전어一轉語 : 미혹한 마음을 싹 바꿔 깨달음에 들게 하는 간단한 한마디 말.
- 234)걸계乞戒 : 계를 청함.
- 235)권상로權相老(1879~1965) : 경상북도 문경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18세 때인 1896년 출가해 문경 김룡사金龍寺에서 서진瑞眞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었으며, 이회광李晦光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乾鳳寺에서 설립한 봉명학교鳳鳴學校 운영에 관여하였고, 김룡사 경흥학교慶興學校와 성의학교聖義學校 강사를 역임했다. 이회광의 주도로 불교계 대표들이 모여 창설된 종단인 원종圓宗에서 1909년 종무 편집부장으로 활동했다. 1911년 문경 대승사大乘寺의 주지가 되었다. 1912년 조선불교월보사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취임해 『조선불교월보』를 발행했으며, 1931년부터 1944년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1940년 혜화전문학교로 변경,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 교수로 재직했다.
- 236)벽련 인성碧蓮仁性 : 성은 장씨張氏, 전라남도 순천 출신. 지안之安 선사의 법을 계승하였으며, 개당開堂하여 설법할 때 경전에 나오는 인과의 이치를 잘 설명하여 불도佛道를 널리 선양할 인물로 기대를 모았다.
- 237)만암 종헌曼庵宗憲 : 송종헌(1876~1957). 주 210 참조.
- 238)석호 형순錫虎炯珣 : 임형순. 곡성군谷城郡 도림사道林寺 주지를 역임함.
- 239)해은 재선海隱栽善 : 법명은 오천梧泉, 이름은 재선栽善. 『茶松詩稿』 권2에 칠언율시 ≺강단을 연 김오천에게 화답하다(和金梧泉開講)≻가 있는데 협주로 “이름은 재선, 호는 해은이다. 정사년(1917) 겨울에 건당하기 전에 대원사로부터 왔는데, 도중에 쌍계사 강주의 요청으로 그대로 주실하여 개당하였다가 다음 해에 본사로 돌아가서 건당하고 주실하였다.(名栽善。號海隱。未建幢。自大原寺來。路爲雙溪寺講主請。仍住室開堂。明年還本。建幢住室。)”라고 하였다.
- 240)백은 종택栢隱鍾宅 : 미상. 송광사에 머물다가,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외나로도로 흘러가서 시계 수리공으로 생활하며 환속하고, 결혼하였다. 이후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 덕암산 중턱의 봉래사蓬萊寺에 안거하던 벽운 성범碧雲性梵이 입적하자 그 후임으로 봉래사에 주석하였다.(백기란, 「茶松子 茶詩 고찰」,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 241)등곡 병렬藤谷丙烈(1905~1959) : 송광사에 주석.
- 242)시중時衆 :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
- 243)남포藍浦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이곳의 벼룻돌이 특산물일 정도로 좋은 돌이 많은 곳이다.
- 244)김창웅金昌雄 :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1929년에 세워진 「한미산 흥국사 만일회비(漢美山興國寺萬日會碑記)」에도 각공으로서 참여했다.
- 1)「卷」一字。編者補入。
- 2)「文」一字。編者補入。
- 1)此• 標者。撰者親筆原稿(底本)中。加漆「删」字及削除線處標示也。其「删」字及削除線處。此書撰者。意中不合。以爲削除。然而編者。不削而全載。以ㆍ標示之。以下倣此。
- 1)「八」底本傍註曰「六」{編}。
- 2)「庚午」底本傍註曰「距今七百十七年」{編}。
- 3)「肅宗十三」底本傍註曰「距今二百四十年」{編}。
- 4)「癸卯」底本傍註曰「距今二百四年」{編}。
- 5)「乙卯」底本傍註曰「距今二百六十七年」{編}。
- 6)「庚寅」底本傍註曰「距今一百五十年」。
- 1)「券」疑「卷」{編}次同。
- 1)「碧潭」底本頭註曰「臨濟三十三世」{編}。
- 1)「曹」下疑脫「溪」{編}。
- 1)此文上底本頭註曰「自國師入寂熙宗庚午。至萬曆二十五年丁酉三百八十八。自國師入曹溪庚申。至大正十二年。自天啓三年癸亥。至大正十二年癸亥三百一年。合七百二十五年也」{編}。
- 1)此序文。旣載於曹溪高僧傳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三八一頁上段){編}。
- 2)此序文旣載於著譯叢譜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四三五頁中段){編}。
- 1)此引文。旣載於佛祖錄賛頌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三一六頁上段) 然與佛祖錄賛頌序小異{編}。
- 1)此跋文。旣載於念佛要門科解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四三四頁下段){編}。
- 1)「迷」疑「微」{編}。
- 1)「囑累徒弟文抄」別紙流通。編者移置於此。
- 2)「附錄一」三字。編者補入。
- 1)「附錄二」三字。編者補入。
- 2){底}松廣寺所藏筆寫本。此詩集。本以別行本流通。此非茶松子之撰述故。編者以爲附錄。
- 1)此題名。編者補入。
- 2)「寶鼎」二字。編者補入。
- 1)此詩。底本在「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文之前。編者移置於此。
- 1)「附錄三」三字。編者補入。
- 2)「錦溟禪師碑銘幷序」及「錦溟大宗師碑陰記」各各別紙流通。編者收集而於此載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