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다송문고(茶松文稿) / 茶松文稿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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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송문고 제2권(茶松文稿 卷第二)
조계산인 금명 보정 지음(曹溪山人 錦溟寶鼎 著)
문文
원통계안 서문(圓通契案序)
공양이 4만억 가지로되 구단具檀1)이 진실로 성불의 기반이 되고, 교설이 8만 4천 법문이로되 권화權化2)가 중생을 제도하는 근본입니다. 이치에는 반드시 인과가 있고 일에는 보응이 없지 않습니다. 관음대성觀音大聖을 우러러 생각하니, 사생四生3)의 부친이요 중성衆聖의 왕이십니다. 높이 십지十地4) 위로 받들어 권현權現5)의 뒤에 계시니 세칭 ‘미타영중彌陀影衆’6)이요, 항상 삼계三界에서 눈앞에 영험하게 응하시니 사람들이 ‘도량교주道場敎主’라고 일컫습니다. 다라多羅7)의 팔 안에 1천 개의 손으로 세워 드니 삼제三際8) 의정依正9)의 좋거나 나쁜 보응에 먼지와 모래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가라迦羅10) 머리 위에 천 개의 눈이 횡으로 열리니 시방 중생의 선악 인과가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궁전은 천지에 비밀스레 감춘 해안가 인적 드문 보타락가補陀落迦11)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장엄하였고, 신통력은 신출귀몰하여 사주泗洲의 성승聖僧12)이나 섬부陝部의 선녀仙女13) 등 자의금골紫衣金骨로 변현하기도 하셨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통찰하고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보시니, 이 고독한 이들을 슬피 여기소서. 인아人我의 굴속에 육진六塵14)이 늘어나 험준한 사산四山을 넘기 어렵고, 탐진貪嗔의 경계 위에 팔풍八風15)이 요동하니 파도치는 삼해三海를 어찌 견디겠습니까. 보배 뗏목을 버리고 그저 부유하니 나찰羅刹16)의 빈 주머니를 얼마나 허락할 것이며, 좋은 사다리를 버리고 넘어지니 살귀殺鬼들이 입맛 다시는 문을 두려워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자비행에 어찌 열어 보여 주시는 도가 없겠습니까.

012_0718_a_02L茶松文稿1) [2] 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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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8_a_05L曹溪山人錦溟寶鼎著

012_0718_a_06L2)

012_0718_a_07L圓通契案序

012_0718_a_08L
供分四萬億種具檀信爲成佛之基
012_0718_a_09L說八萬四千門權化是度生之本理必
012_0718_a_10L有因果事不無報應仰唯觀音大聖者
012_0718_a_11L四生之父衆聖之王高拱十地上
012_0718_a_12L後權現世稱彌陀影衆恒在三界中
012_0718_a_13L目前靈應人謂道場敎主多羅臂中
012_0718_a_14L千手竪擧三際依正休咎報應塵沙
012_0718_a_15L莫逾迦羅首上千眼橫開十方衆生
012_0718_a_16L善惡果因毫釐不忒宮殿也天藏地秘
012_0718_a_17L海岸孤絕寶陀洛迦琪花瑶木莊嚴
012_0718_a_18L神通則神出鬼降泗洲聖僧陜部仙女
012_0718_a_19L紫衣金骨變現通他心性觀世人音
012_0718_a_20L哀此孤獨人我窟中六塵培增難越
012_0718_a_21L四山之險峻貪嗔境上八風鼓動
012_0718_a_22L堪三海之波濤捨寶筏而徒浮幾許羅
012_0718_a_23L刹之乞囊放善梯而顚倒猶恐殺鬼之
012_0718_a_24L噉門況吾慈悲之行奈無開示之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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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계안契案을 맺어 단문檀門(시주)께 고합니다. 원통회圓通會17)에서 큰 방법(大方)을 널리 여니 병들고 힘든 이들이 어떤 장애인들 없애지 못하겠습니까. 달콤한 이슬 담은 병(甘露壜) 주위로 법우法雨가 널리 적시니 선경禪經18)을 읽는 이들에게 어떤 복이 이르지 않으리오. 염불에 응하여 편안함을 주리니 문득 이익이 많음을 칭할 것이요, 소리를 찾아 괴로움을 구하리니 때때로 길상이라 부르리라. 오묘한 향이 흩날리니 귀계鬼界라도 태울 듯하고, 진실한 형상이 나타나는 곳이 어찌 천당 아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너와 나 지혜롭건 어리석건 간에 화사化士19)가 서원하는 누각에 같이 들어가고 선남신녀들이 원통圓通 보문普門의 도량으로 함께 나아가서, 거리의 권화權化가 무궁하여 백도伯道20)에게 후사가 있게 하고, 단나檀那(시주)의 보시에 바람 있어 안회顏回21)가 장수하게 하소서.
방장산 월화 장로22)께 올리는 서(上方丈山月和長老序)
이의二儀(천지)에 삼재三才(천지인)를 드러내어 부침하니 사방四方의 기강이 안정되고, 만물에 오상五常을 나열하여 혼잡하니 삼교三敎(유불선)의 강령이 나뉘었습니다. 삼교는 만물의 정립鼎立이요, 사방은 이의二儀의 기둥(柱砥)입니다. 불교는 불교로서 도교(老)는 도교로서 유교(孔)는 유교로서 각기 익숙한 바로 보배를 삼으니, 물욕에 매인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어찌 이의二儀의 본성이겠습니까. 그러나 바다의 짠맛은 동일하고 도의 근본은 동일한데 시종 어찌 삼교의 정립과 사방의 혼잡이 있겠습니까. 모두 진리를 등지고 세속을 향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도에 있어서 표현은 다를지라도 법도는 같습니다. 하나의 공空 안에 본래 자황䧳黃23)의 구분이 없는데 다만 눈을 가린 것이 그렇게 보이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교의 구분은 만물의 가림 때문이니 어찌 공에 관계있겠습니까.
형(吾兄)께서는 삼교의 다르지 않음을 융합하고자 하시어 욕천浴川24) 정사精舍에서 노고魯誥(유교 경전)를 어려서 해석하고, 방외의 명찰(名藍)25)에서 축분竺墳(불경)을 어른이 되어 토론하셨습니다.26)

012_0718_b_01L故結此案敢吿檀門圓通會上廣闢
012_0718_b_02L大方病苦者何障而不滅甘露壜邊
012_0718_b_03L普潤法雨禪經者何福而不臻應念與
012_0718_b_04L安而乍稱多利尋聲求苦而時號吉祥
012_0718_b_05L妙香飛兮猶燋鬼界眞相現處何難
012_0718_b_06L天堂伏願爾我智愚同入化士誓願之
012_0718_b_07L樓閣善男信女共赴圓通普門之道場
012_0718_b_08L街坊之權化無窮使伯道有後檀那之
012_0718_b_09L信施有願以顏回永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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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8_b_11L上方丈山月和長老序

012_0718_b_12L
二儀表三才而浮沉四方之紀已定
012_0718_b_13L物列五常而混雜三敎之綱爰分三敎
012_0718_b_14L萬物之鼎峙四方二儀之柱砥以自佛
012_0718_b_15L以佛魯以魯 [66] 孔以孔各以所習爲寶
012_0718_b_16L盖物欲之所羅籠者久矣此豈二儀
012_0718_b_17L之本性也哉然而海醎一味道本同源
012_0718_b_18L始終寧有三敎之鼎峙四方之混雜
012_0718_b_19L是背眞向俗之所能也其於道也發致
012_0718_b_20L雖殊其揆一也一空之裡本無䧳黃
012_0718_b_21L之分但翳目者所使以也然則三敎之
012_0718_b_22L曲在物之所翳何管於空也哉
012_0718_b_23L吾兄欲融三敎之無二髫詮魯誥於浴
012_0718_b_24L川之精舍冠討竺墳於方外之名藍

012_0718_c_01L구용九容27)에 대해 하루 세 번 반성하고, 십과十科28)에 대해 사심四心29)으로 맹세한 것이 모두 구비口碑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구준衢樽30)에 만취하여 덕의 향기로 배불렀으니 타인의 고량진미를 바라지 않고, 푸줏간 문에서 질겅질겅 씹어31) 몸을 윤택하게 하고 물렸으니 타인의 수놓은 비단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능한 일을 두루 하고 나서 타인에게 넓히려는 생각이 일어나니, 가랑비 내리는 향기로운 풀들이 있는 방장산으로 학이 돌아오듯, 흰 달과 따스한 바람이 부는 조계산(溪山)에 봉황이 있는 듯합니다. 산은 이로써 더욱 윤택해지고 개울은 이를 따라 흐릅니다. 사리事理가 함께 융화하니 성상性相(본성과 현상)에 걸림(碍膺) 있는 이들이 빈 채로 왔다가 채워서 돌아가고, 삼교를 함께 닦으니 치백緇白(불교와 유교)에 의심하는 이들이 구름처럼 달려왔다가 썰물처럼 물러납니다. 혹은 때때로 ‘소리 들음을 돌이켜 들음(反聞聞性)’32)이 있어 기미를 잊고 얼핏 잠이 들고, 혹은 때때로 집중執中ㆍ시중時中33)이 있으니 가假를 다루어 진眞을 이룹니다. 염拈34)하거나 송頌하거나 화광동진和光同塵35)이 아님이 없으니, 송誦하거나 술述하거나 응기접물應機接物36)이 아니겠습니까. 인연 따라 변하고 운수에 맡겨 거두시니, 삼교를 융화시킬 이는 형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나 또한 이의二儀 사이에 낀 미물이라 삼교가 어떠한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는데 일찍이 형과 함께 향화香火 올린 인연이 있고 또한 비파를 놓은(捨琴) 인연37)을 맺은 터라 흰 이(瓠犀)38)가 드러남을 돌아보지 않고 피하기 어려운 붓을 감히 꺼냈습니다. 먼저 이의가 만물의 기강이 됨을 서술하고 다음에 훈지塤箎39)가 서로 어울리는 아름다운 구절에 감탄합니다. 삼교를 깨달은 이의 책상에 감히 드리오니 채납采納(수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엄사 원화40) 함장(스승)께 올리는 글정해년(1887) 봄(上大華嚴寺圓華凾丈文丁亥春)
제불諸佛과 조사들(列祖)께서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함은 의천義天(이치의 하늘)의 자비 구름과 법우法雨 같고, 보살과 중생(群生)이 골수를 얻고 거죽을 얻음은 복된 땅에 오이를 심고 벼를 경작함과 같습니다. 모두 방편의 문을 열어 근기에 맞추고,41)

012_0718_c_01L省之於九容四心之於十科其所矢心
012_0718_c_02L盡載口碑而況滿醉衢樽旣飽德馨
012_0718_c_03L不願人之粱肉之味大嚼屠門多飫閠
012_0718_c_04L不願人之錦繡之紋能事已周
012_0718_c_05L起推餘之想細雨芳草鶴歸方丈
012_0718_c_06L月陽風鳳儀溪山山由是以增潤
012_0718_c_07L履玆以漩澓事理雙融性相之碍膺者
012_0718_c_08L虛往而實歸三敎兼修緇白之狐疑者
012_0718_c_09L雲奔而潮退或有時返聞聞性忘機而
012_0718_c_10L假眠或有時執中時中弄假而成眞
012_0718_c_11L或拈或頌莫非和光同塵載誦載述
012_0718_c_12L無乃應機接物隨緣而化任運而收
012_0718_c_13L融三敎者莫吾兄而阿誰也余亦介二
012_0718_c_14L儀之微物莫卞三敎之如之何而曾與
012_0718_c_15L吾兄有香火之因亦結捨琴之緣忘顧
012_0718_c_16L瓠犀之露敢抽難避之毫先叙二儀萬
012_0718_c_17L物之紀綱次感塤箎相和之佳句敢呈
012_0718_c_18L三敎了夫几下許垂采納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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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8_c_20L上大華嚴寺圓華凾丈文丁亥春

012_0718_c_21L
夫諸佛列祖之傳禪傳敎若義天之慈
012_0718_c_22L雲法雨菩薩群生之得髓得皮如福地
012_0718_c_23L之種瓜耕稻盡開方便門而逗機悉從
012_0718_c_24L「卷」一字編者補入「文」一字編者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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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9_a_01L다 진여의 바다를 따라 흘러나오게 합니다.
우리 대종장大宗匠께서는 덕운德雲으로 몸을 윤택하게 하고 법우法雨로 마음을 비옥하게 하십니다. 면면히 흐르는 종맥宗脉을 우러러보노라면 부휴浮休42)와 벽암碧嵓43)이 먼 조상이 되고 도도한 법의 물결을 굽어보면 영해影海44)와 풍암楓嵓45)이 근세의 스승이 되니, 모두 당대 용상龍象이요 말세의 중추(樞機)이십니다. 10년을 경영함에 법을 위해 몸을 잊어 우담優曇46) 꽃을 맛보았고, 반세기 언행은 중생 제도를 업으로 삼아 함명涵溟47) 바다를 삼켰습니다. 산을 나와 바다를 아우르니 복성福城의 아이48)를 보는 듯하고, 풀을 헤치고 나아가며 바람에 머리 감으니 나찰의 말49)을 많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꽃에 이슬이 맺히고 행위의 잎이 바람에 흩날립니다. 그렇게 남으로 가고 북으로 가서 결사結社의 의례50)를 스스로 거행하고, 서쪽으로 동쪽으로 매번 법을 베푸는 지위에 머물렀습니다.
제불諸佛의 대원大願을 생각해 보면 본래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오늘날 경륜經綸이 다만 자신을 이롭게 하고자 함과 어찌 같겠습니까. 이에 반야봉 아래에 법당法幢51)을 세워 근본지根本智52)를 본체로 삼고, 화엄바다에 경방經牓을 내걸어 만행화萬行華53)를 활용으로 삼았습니다. 활용 그대로 본체이니 천지의 상징이 있고, 본체 그대로 활용이니 어찌 해회海會54)의 빛남이 없겠습니까. 삼세제불이 증명하고 시방중생이 주반主伴(주ㆍ객체)이 됩니다. 제불이 그대로 반伴인 중생이니 근기에 많고 적음이 없고, 중생이 그대로 증명하는 제불이니 법이 공空하지 않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화엄바다에서 항상 설하고 두루 설하니 설하지 않더라도 설함이요, 감인계堪忍界55)에서 음을 듣고 소리를 들으니 들림이 없어도 듣습니다. 장광설을 열어 무진법장無盡法藏을 펼치니 소리가 팔해八垓56)에 들리고, 아름다운 바람이 더욱 불어오며 명성이 오악五岳보다 높아 명예가 더욱 많아집니다. 양고기 숨겨 놓은 언덕에 파리와 개미가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범 있는 평원에 까마귀와 참새가 시끄러이 우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뱀을 마신 것57)이 산산이 흩어져 의심하는 것이 얼음처럼 녹습니다.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함에 여래의 삼전三傳한 곳58)이 어찌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겠습니까,

012_0719_a_01L眞如海而流出唯我大宗匠德雲潤身
012_0719_a_02L法雨沃心仰觀宗脉之源源浮休碧嵓
012_0719_a_03L爲遠世祖俯考法波之滔滔影海楓嵓
012_0719_a_04L爲近世師皆是當代龍象叔世樞機
012_0719_a_05L十載經營爲法亡躬咀嚼優曇之花
012_0719_a_06L半世云爲濟衆爲業呑吐菡 [67] 溟之海
012_0719_a_07L山并海幾見福城之兒拔草櫛風
012_0719_a_08L聞羅刹之說心花露結行葉風揚
012_0719_a_09L以之南之北自擧結社之讓自西自東
012_0719_a_10L每住法施之位思唯諸佛大願本乎利
012_0719_a_11L奈若今日經綸只求自利於是建
012_0719_a_12L法幢於般若峰下以根本智爲體揭經
012_0719_a_13L牓於華嚴海中以萬行華爲用卽用之
012_0719_a_14L旣有天地之徵祥卽體之用那無
012_0719_a_15L海會之放光三世佛作證明十方衆爲
012_0719_a_16L主伴卽佛之伴衆其機則無多無少
012_0719_a_17L衆之證佛其法則不空不有然則華嚴
012_0719_a_18L海中常說徧說雖不說而說堪忍界裡
012_0719_a_19L音聞聲聞唯無聞而聞開廣長之舌相
012_0719_a_20L闢無盡之法藏聲聞八垓嘉風益熾
012_0719_a_21L名高五岳令譽尤多猶如羊藏丘垤
012_0719_a_22L難防蠅蟻之鼓動虎隱平原誰禁烏雀
012_0719_a_23L之喧噪飮蛇者瓦解狐疑者冰析
012_0719_a_24L之傳敎之傳何專美於如來三傳之處

012_0719_b_01L골수를 얻고 거죽을 얻음에 혜가惠可59)가 삼배三拜한 풍모보다 명확합니다.
아아, 산이 어찌 옥을 품기 이전에 윤택하겠습니까. 물 또한 구슬을 품은 연후에 길어집니다. 방장산의 영광은 이로부터 커지고, 화엄사의 아름다운 칭호는 지금부터 드날릴 것입니다. 함장凾丈(스승)의 풍모는 산처럼 높고 물처럼 깁니다. 저는 조계의 잔류殘流요 솔숲의 병든 잎으로, 높은 풍모를 듣고 말단에 참여하여 아름다운 명성을 우러러 예를 올립니다. 침개針芥의 인연60)이 어찌 그리 큰가요. 일찍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니 청량淸凉의 ‘오지성인五地聖人으로 세속의 마음을 일으킴’이요,61)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을 들으니 도안道安의 ‘풍속이 다른 타지에도 통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62) 여기서 바로 증험이 됩니다. 이른바 근기에 따른 점설漸說63)이요 방편의 묘문妙門이니, 인연 있으면 머무르고 인연이 떨어지면 가는 것이지만, 막중한 법은法恩을 이기지 못해, 헤어지는 느낌을 대략 적습니다.
바라건대 이 몸으로 보리심을 발하여 당堂의 모든 선우善友들이 단박에 해탈문을 열어, 세세생생에 제불을 받들고 곳곳에서 선우를 친근하게 하소서. 환화幻花의 허공 속에서 항상 불사佛事를 짓고 실제 이치 옆에서 항상 묘법을 말하며, 출몰함에 구품九品(정토)의 주인이 되고 왕래함에 삼계三界의 객이 되도록 하소서.
또한 바라건대 구족九族64)의 죽은 영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고, 육친六親65) 중생(含識)이 모두 고통의 윤회를 벗어나게 하소서. 삼도사생三途四生66)과 팔난구유八難九有67)에 모두 진여의 이치를 증명하고, 팔부천룡八部天龍68)과 당堂에 가득한 성현들이 함께 좋은 인연의 증거를 지으소서. 최후의 몸에 이르러서는 항상 큰 가르침을 넓히어 불심에 가합하다 일컫고 큰 법당法幢을 세워 부처의 혜명慧命69)을 이으소서. 그러한즉 선과 교를 전하고 피부와 골수를 얻음이 여기서 다 될 것입니다.
용악 장로께 사례하는 편지백양산70) 정토사에 있다. 법명은 성인.(謝龍岳長老書在白羊山浄土寺。名性仁。)

012_0719_b_01L髓也得皮也得猶端的於惠可三拜之
012_0719_b_02L嗚呼山何蘊玉以前閠 [68] 水亦藏珠
012_0719_b_03L然後長方丈榮光從此大華嚴佳號
012_0719_b_04L自今揚唯凾丈之風山高水長余唯曹
012_0719_b_05L溪殘流松林病葉聞高風而叅末
012_0719_b_06L令譽而禮足針芥之緣孰大焉說其未
012_0719_b_07L曾說淸凉之謂五地聖人起世俗心
012_0719_b_08L聞所未嘗聞道安之謂他方殊俗無不
012_0719_b_09L通之之言卽驗於此矣所謂逐機漸說
012_0719_b_10L方便妙門有緣住離緣去不勝法恩
012_0719_b_11L之重槩書臨行之感願我此身能發
012_0719_b_12L菩提心一堂善友頓開解脫門生生
012_0719_b_13L承事諸佛在在親近善友恒作佛事於
012_0719_b_14L幻花空裡常談妙法於實際理邊出沒
012_0719_b_15L爲九品之主往來作三界之賓抑願九
012_0719_b_16L族亡靈俱生淨土六親含識悉超苦
012_0719_b_17L三途四生八難九有咸證眞如之
012_0719_b_18L八部天龍滿堂聖賢共作良緣之
012_0719_b_19L至於最後身常弘大敎稱可佛心
012_0719_b_20L建大法幢續佛慧命然則傳禪敎得皮
012_0719_b_21L於是乎盡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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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19_b_23L謝龍岳長老書在白羊山浄土寺名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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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석화 같은 세월에 만남과 이별의 빠르고 늦음이 어찌 있겠습니까. 부평초 같은 천지에 주인과 객의 있고 없음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구토九土71)가 아득하게 걸림이 없으니 주인 속의 손이요 손 가운데 주인이며, 육시六時72)에 생각마다 한탄이 많으니 이별했다 만나고 만났다 이별함입니다. 실로 세월의 무상함 때문이지 어찌 천지의 크기 때문이겠습니까.
우리 화상께서는 속세 나이로도 위(甲)고 법랍으로도 형인데, 유리단琉璃壇 앞에서 구족계를 받으시니 그 바람은 먼저 자비롭고 뒤에 지혜로움이며, 청원루淸遠樓 위에서 오묘한 연꽃을 감상하니 그 경치는 하나로 돌이켜 셋을 모음입니다.73) 불일당佛日堂 앞에 낮과 밤의 밝고 어둠이 없더라도 감인계堪忍界(속세)에서 보토報土74)의 같고 다름을 어찌하겠습니까. 이에 형은 용산龍山75)의 기린이 되고 아우는 조계산의 원숭이 되어, 삼성三星과 반월이 강동江東의 저녁 구름에 은은히 빛나더라도 사대四大76) 일신은 위북渭北의 봄 나무에 쓸쓸합니다.77)
하물며 형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부친상)을 만나셨는데 아우는 땅을 치는 인사도 못하였으니, 어찌 마음이 그렇게 시켰겠습니까. 실로 끈 없이 스스로 묶여 있는 격입니다. 아, 번개 치듯 하는 세월에 어찌 사화四花78)가 피고 지는 것을 보겠습니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는 세 번 옮긴79) 교훈을 받은 듯합니다. 이러므로 벼루 동쪽과 등불 남쪽(硯東燈南)에서80) 연야演若81)의 거울에 무척 놀라고, 물 양지와 산 북쪽(水陽山北)82)에서 친구의 구슬83)을 풀지 못합니다. 길이 어찌 용산 봉우리에 막히었는지, 이에 보배 장소에 가기 어려움을 압니다. 그러나 행할 만한 날에 행할 만한 일을 행하니 그 정이 단술과 같지 않고,84) 만날 만한 시간에 만날 만한 이를 만나니 이 행차를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정해년(火猪, 1887) 순주鶉咮85)에 길이 연대암蓮臺庵으로 열리고, 반딧불 나는 경염庚炎(삼복더위)에 일을 완산역完山驛(전주)에서 관리합니다. 이에 주인과 객이 없는 가운데 주인 속의 객을 나누더라도, 만나고 헤어짐이 없는 가운데 헤어지고 만남을 기뻐합니다.
지난해에 10수의 시를 땅에 던지시니 쇳소리 남86)을 들었고, 작년의 편지 한 통은 거울을 꺼내 옥 같은 얼굴을 보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정이 한가득함을 감탄하노니 썩은 붓의 표현이 부끄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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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火光陰誰有逢別之遲速浮萍天地
012_0719_c_02L難分賓主之有無九土茫茫無碍主中
012_0719_c_03L寶中主六時念念多恨離而合
012_0719_c_04L而離實由光陰之無常奚因天地之有
012_0719_c_05L唯吾和尙俗年之甲法臈之兄
012_0719_c_06L具戒於琉璃壇前其願則先慈後智
012_0719_c_07L妙蓮於淸遠樓上其景則歸一會三
012_0719_c_08L日堂前雖無晝夜之明昧堪忍界裡
012_0719_c_09L其奈報土之異同於是兄作龍山之獜
012_0719_c_10L弟爲曹溪之猿三星半月雖隱隱於江
012_0719_c_11L東之暮雲四大一躬寥寥於渭北春樹
012_0719_c_12L況乃兄遭崩天之痛弟闕叩地之候
012_0719_c_13L欲有心使然也實是無繩自縳歟
012_0719_c_14L電拂光陰焉見四花之開落萍蹤身勢
012_0719_c_15L幾蒙三遷之敎訓是以硯東燈南多驚
012_0719_c_16L演若之鏡水陽山北莫解親友之珠
012_0719_c_17L路何塞於龍岑是知難到寶所然而爲
012_0719_c_18L可爲於可爲之日其情也不若醴
012_0719_c_19L可逢於可逢之時斯行也不蹖跼火猪
012_0719_c_20L之鶉咮路開蓮臺庵中飛螢之庚炎
012_0719_c_21L事管於完山驛上於是乎雖分無主賓
012_0719_c_22L之主中賓且喜不合離之離而合往歲
012_0719_c_23L十首韻乃聞擲地金聲昨年一凾書
012_0719_c_24L勝見開鏡玉面然而情滿其斛堪嗟詞

012_0720_a_01L말이 매우 짧아서 창피하니 철주掣肘87)한 듯한 글씨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감히 난잡한 글 10수를 지어서 외람되이 3자 날랜 입으로 말씀드립니다. 새는 원망하고 꽃은 근심하니 용악(龍峰)의 필설을 감내하기 어렵고, 숲이 참담하고 냇물이 부끄러워하니 송계松溪의 시평을 절로 저버렸습니다. 요컨대 제 글을 인가해 주시길 구함이 아니라 그저 무상한 이별과 만남을 기록하여, 주객의 분리되지 않음만 드러내고 또한 형제가 다름을 서술할 뿐입니다.
우룡 법우에게 보내는 답서하동 쌍계사에 있다.(答雨龍法友書在河東雙溪寺)
정해년(赤豕, 1887) 황양월黃楊月88)에 방장산 화엄사에 참례하고, 한가함을 틈타 신발을 끌고 맑은 개울과 세찬 여울의 꼭대기로 갔습니다. 거문고 소리 같은 개울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고, 비파 같은 소나무 소리가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조물주의 음악에 맡기니 그 즐거움에 기미를 잊고 얼핏 잠이 들었습니다.
‘한민漢旻’이라는 개사開士89)가 맨발로 와서는 편지를 꺼내 주기에, 피곤한 눈썹을 비비고 읽다가 나도 몰래 규복圭復90)하고는, 작년에 받은 횡해黌海91)의 법우法友 응오應悟 상인上人(스님)의 편지(信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인은 한민 공의 법형이요, 일찍이 얼마간 가르침을 받았으니 어찌 심상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 수도암에서 보았을 때 연달아 『능엄경』을 읽었고, 다시 법화사에서 만나 같이 깨달음의 장으로 들어갔으며, 발걸음 따라(信) 조계산에 이르러 기쁘게 잡화雜華(화엄경)를 꺾었습니다. 세 번 옮긴 인연을 일찍이 논하자면 어찌 한때의 감동에 비기겠습니까. 하물며 다섯 글자를 보여 주시며 구하시니, 어찌 그저 약한 수레에 무거운 짐이요 짧은 줄로 깊은 우물을 긷는 것에 불과하겠습니까. 돌이 말함에 거북이가 돌아보는92) 부끄러움을 도모하지 않지만, 까치가 울자 범이 본받는 염치를 무릅쓰고, 함부로 율시 한 수를 지었으니, 꽃부리를 씹고 꽃을 따는 것93)으로 보지 마십시오. 오직 향화香火의 인연이 중하고 크므로 이와 같이 대신할 뿐입니다.
상인上人은 누구신가. 호가 우룡雨龍이라네.

012_0720_a_01L恧腐毫言短其綆可羞書慚掣肘
012_0720_a_02L搆十首荒辭叨似三尺利喙鳥寃花愁
012_0720_a_03L難耐龍峰之筆舌林慚澗愧自負松溪
012_0720_a_04L之詩枰 [69] 要且非求有印吾文聊書無常
012_0720_a_05L離合以表賓主之不分亦舒昆季之自
012_0720_a_06L異云尒

012_0720_a_07L

012_0720_a_08L1)• 答雨龍法友書在河東雙溪寺 [10]

012_0720_a_09L
赤豕之黃楊叅方丈之華嚴偸閑曳屐
012_0720_a_10L就憑於淸流湍石之頂澗琴斷續松瑟
012_0720_a_11L搏之任他造物之樂其樂而忘機假眠
012_0720_a_12L有開士漢旻者跣足就之抽尺書剔困
012_0720_a_13L不覺圭復迺知年前橫 [70] 海法友應悟
012_0720_a_14L上人信墨也上人卽旻公之法兄而多
012_0720_a_15L少親炙於夙分豈尋常且忍哉初見修
012_0720_a_16L連讀楞嚴再逢法華同入覺場
012_0720_a_17L到曹溪喜折雜華盖嘗論三遷之緣
012_0720_a_18L奚足比一時之感哉況以五字示而求
012_0720_a_19L豈但以弱轅載重短綆汲深謝之乎
012_0720_a_20L不圖石言龜顧之愧敢冒雉鳴虎效之
012_0720_a_21L妄搆一律莫以嚼英采花看得也
012_0720_a_22L唯以香火之緣旣重且大如是賽之
012_0720_a_23L上人誰也雨龍其號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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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 상인(스님)을 전송하는 서여수 흥국사(送衡旻上人序麗水興國寺)
바다는 온갖 하천을 받아들이니 필시 마니摩尼94)가 있고, 땅은 삼라만상을 실으니 어찌 숫돌이 없겠습니까. 사생四生 가운데 그 길이 덕 있고 뭇 보배들의 위에 쓰임새가 무궁합니다. 보배로는 자연의 구슬이 없는데 인간이 어찌 천진한 상태로 성인이 되겠습니까. 오개五盖95)의 미혹에 많이 얽혀서 수증修證96)을 빌려 밝음을 깨닫고, 천 길 깊이의 파도에 홀로 빛나니 바닷물을 떠서 뜻과 같이하길 맹세합니다.
상인께서는 경도京島97)에서 기를 모으고98) 취봉鷲峰(영취산)에서 삭발하였습니다. 사은四恩이 갚기 어려움을 매번 걱정하고 삼장三藏을 듣지 못함을 길게 탄식하였습니다. 이에 하늘까지 솟을 듯한 마음을 품고서 석장을 비껴들고 산과 바다로 나가고, 바위를 뚫을 듯한 뜻을 안고 어깨에 발우를 짊어지고 북으로 달리고 남으로 다녔습니다. 맑은 바람을 마시며 도인(道流)을 방문하고, 은미한 말을 탐색하러 친구를 찾았습니다. 행실이 고상하고 이치에 고결(義潔)한 이가 아니면 벗으로 삼지 않으니, 향과 난초의 뿌리가 아니면 누가 몸에 지닐 수 있겠습니까. 가히 ‘숫돌처럼 견고하고 마니처럼 빛난다’고 할 만합니다.
붕새가 조계산에 나타나 경운擎雲99)의 처마에 날개를 퍼덕이고, 학은 방장산으로 돌아가 원화圓華100) 자리에 날개깃을 접습니다. 청출어람이라101) 선현이 탄식하고, 뒤에 출발했으나 앞서 도착함을 그대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영취산이 이로써 더욱 윤택하고 방장산이 이로써 빈 껍질이 되었습니다. 하천이 9리를 적시니 선재동자가 간간이 옴을 다시 보게 되고, 우담화가 다시 피니 석원釋院(사찰)이 거듭 영화로움을 기뻐합니다. 가히 바다를 퍼내어 보배를 얻었다 하리니, 실로 수증修證102)하여 밝음을 깨우친 것입니다.
내가 횡해黌海(글방)에 부평초 같은 종적으로 마침 장님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조계산 불일당佛日堂에서 우연히 만났으니103) 갑신년(靑猿, 1884) 순수鶉首104)의 때이고, 방장산 화엄사에서 다시 만났으니 정해년(赤猪, 1887) 강루降婁(9월)105)의 계절입니다. 비파를 놓은106) 인걸과 숙업의 인연에 대해 어찌 푸성귀 내 나는 한 구절이 없겠습니까. 발섭跋涉107)의 공을 축하하니 한편으로 갱장羹墻108)의 마땅함이 될 것입니다.

012_0720_b_01L送衡旻上人序麗水興國寺

012_0720_b_02L
海納百川必有摩尼地載萬品那無
012_0720_b_03L砥石四生之中其道則有德衆珍之
012_0720_b_04L所用也無量寶無自然之珠人何
012_0720_b_05L天眞而聖多纒五盖之惑假修證而覺
012_0720_b_06L獨耀千尋之波誓抒酌而如意
012_0720_b_07L人氣鍾於京島髮落於鷲峰每恐四恩
012_0720_b_08L之難酬長歎三藏之未聞於是衿懷衝
012_0720_b_09L手橫錫而出山并海膺盤徹石
012_0720_b_10L荷鉢而走北之南飮淸風而訪道流
012_0720_b_11L微言而尋知己非行高義潔者莫與爲
012_0720_b_12L靡香蘭木根則其誰能佩可謂固
012_0720_b_13L夫砥石映彼摩尼鵬顯曹溪敲翔擎雲
012_0720_b_14L之軒鶴歸方丈收翅圓華之筵茜縫
012_0720_b_15L藍靑先賢之所歎後發前至吾君之
012_0720_b_16L可觀鷲山以之增潤方丈以之空殻
012_0720_b_17L河潤九里更見善財之間來曇華再訪
012_0720_b_18L可喜釋院之重榮可謂抒海得寶實是
012_0720_b_19L修證覺明余橫 [71] 海萍蹤適塡盲杖
012_0720_b_20L盖於曹溪佛日靑猿鶉首之時再逢於
012_0720_b_21L方丈華嚴赤猪降委之節其於捨琴之
012_0720_b_22L宿業之緣何無蔬荀之一句哉
012_0720_b_23L賀跋涉之功且庶羹墻之誼也夫

012_0720_c_01L
연포의 상인 연파가 행각하기에 보내는 답서본래 방장산에서 조계산으로 와서 머물렀다.(答蓮圃上人蓮坡遊方序本自方丈來住曹溪山)
주정周鼎이 크니 사물이 작을 수 없고, 강호康瓠가 작으니109) 사물이 클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작으면 비어서 가득 채울 수 없고, 크면 넘쳐서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릇의 넓고 좁음에 맞추어 받아들여 담아야 그릇과 사물이 그 적합함대로 적합하게 되고 그 크고 작음이 양에 맞추어 비거나 넘치는 화망을 반드시 초래하지 않으리니, 그렇게 해야 ‘큰 것은 크다 하고 작은 것은 작다 하여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것’이라 할 만합니다.
조계산에 ‘무명無名’이라는 그릇이 있으니 본체는 시방법계十方法界에 두루 가득하여 도무지 빈 곳이 없고, 활용은 삼제三際110) 대천세계를 포괄하여 본래 원만합니다. 사대四大111)를 조화하여 본체로 삼으니 정鼎의 화풍火風은 역의 괘이고,112) 삼장三藏을 나열하여 발로 삼으니 경전과 율장ㆍ논서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물 긷고 땔감 나르니113) 사구四句114)의 불이 타지 않고, 부처와 조사를 삶으니115) 삼선三禪116)의 길이 이에 끊어집니다. 그릇이 그릇인 까닭은 광대함이 법계와 같고 두루 가득함이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덮고 고금에 걸쳐 있는 것이 이 그릇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렇다면 수미산과 향해香海,117) 교룡과 고래, 삼장과 사대, 사위四圍와 오명五明,118) 티끌과 인허隣虛(극미), 산의 진미와 바다의 해산물에 대해 포괄하고 싸매지 않음이 없으니, 비지 않고 넘치지 않는 것은 오직 이 그릇인 것입니다. 그릇이 큰 까닭은 그 채움에 있어서 크고 작고 곱고 추하고를 가리지 않음이요, 배움에 있어서 내경內經(불경)과 외전外典을 논하지 않음이며, 재료에 있어서 금ㆍ은ㆍ동ㆍ철을 버리지 않음이며, 활용에 있어서 춥고 덥고 빠르고 늦음을 피하지 않음이니, 많을수록 더욱 부족하여

012_0720_c_01L• 答蓮圃上人蓮坡遊方序本自方丈
012_0720_c_02L來住曹溪山

012_0720_c_03L
夫周鼎之大也物不能小康瓠之小也
012_0720_c_04L物不得大何也小則虛而不滿大則
012_0720_c_05L濫而不收然則稱其器之廣狹而納而
012_0720_c_06L盛之器與物當自適其適大小各稱
012_0720_c_07L其量必不招虛而濫之之禍而乃可謂
012_0720_c_08L大其大小其小無欠無餘者歟曹溪
012_0720_c_09L有器曰無名體周法界十方都無空
012_0720_c_10L用包大千三際本自圓滿和四大
012_0720_c_11L而爲體鼎之火風易之卦也列三藏
012_0720_c_12L而爲足經與律論佛之言也運水搬
012_0720_c_13L四句之火莫焚鎔佛烹祖三禪之
012_0720_c_14L路斯絕所以器之爲器也廣大如法界
012_0720_c_15L周徧如虛空盖天地亘古今者捨此器
012_0720_c_16L而安往耶然則須彌之於香海鮫龍之
012_0720_c_17L於鯨魚三藏之於四大四圍之於五明
012_0720_c_18L微塵之於隣虛山珍之於海錯莫不包
012_0720_c_19L羅藏裹不虛不濫者唯此器歟所以
012_0720_c_20L器之大者其盛也不擇巨細妍醜
012_0720_c_21L學也不論內經外典其質也不捨金
012_0720_c_22L銀銅鐵其用也不避寒暑早晩愈多
012_0720_c_23L此• 標者撰者親筆原稿(底本)中加漆
012_0720_c_24L「删」字及削除線處標示也其「删」字及削除線
012_0720_c_25L此書撰者意中不合以爲削除然而編
012_0720_c_26L不削而全載以ㆍ標示之以下倣此

012_0721_a_01L주정周鼎을 멀리 초월하는 것을 나는 공公에게 징험했습니다. 나는 강호康瓠에 해당하니 어찌 주정과 동일하게 말하여 비견하겠습니까. 그저 공의 법량法量이 주정의 넓고 큼과 같음을 보고 감동하여 글을 쓰니, 채우지 못한다는 기롱을 면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흥양군(고흥) 팔영산 능가사 서불암 기문(興陽郡八影山楞伽寺西佛菴記)
나라 남쪽 8백 리에 ‘고흥’이라는 현이 있고, 현의 동쪽으로 1유순由旬119) 거리에 ‘팔영산’이 있다. 옛날에는 ‘팔전산八田山’이라 했는데 ‘팔영산’이라고도 부른다. 후위後魏120) 탁발씨拓跋氏 13년(399)121)에 팔영산이 위나라 군주의 손 씻는 그릇에 비치었다. 군주는 기이하게 여겨 찾아보도록 했는데, 천하를 다니며 찾다가 해상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상서로운 무늬 비단에 ‘팔영’ 두 글자를 써 주고, 본국에 사신을 보내 큰 가람을 창설하게 했으니 지금 일컫는 ‘능가사楞伽寺’가 그러하다.
산의 뛰어난 풍광은 지리산ㆍ월출산과 우위를 다투고, 그 나머지 천지가 비장하고 신명이 출몰하는 듯한 형상은 보는 이가 스스로 얻어야지, 다 언급할 수는 없다. 봉우리 남쪽(离) 기슭에 ‘백운동白雲洞’이 있는데 많은 바위들이 빼어남을 다투고 온갖 형상들이 빛을 섞으니, 흐릿하고 어렴풋하며 깨끗하고 이어진 모습이 여름 하늘의 구름 같다. 그래서 선비들이 백운동이라 일컬었다.앞에 백운사白雲寺가 있었는데 지금은 산막山幕122)이 있다. 약초를 캐는 이가 아니면 오는 이 없다. 계곡 중심에 ‘서불암西佛庵’이 있으니 벼랑에 매달린 형국으로 북동쪽(壬)을 등지고 남서쪽(丙)을 향해 있으며 사방 처마는 성과 같아 사다리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 청룡(동쪽) 우매산牛埋山123)과 백호(서쪽) 마복산馬伏山124)이 굽이굽이 낮게 엎드려 감싸 안으며 빼어남을 다툰다. 푸른 하늘(碧落)의 바위 밑에 가장 진귀한 것은 용 입에서 솟아나는 은빛 샘으로, 맛이 달고 반짝반짝 청결하다.
그믐밤에도 바라보며 궤안에 기대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은 영주瀛洲(제주)의 한라산이요, 등지고 우러러

012_0721_a_01L而愈不足其量迥超周鼎者吾於公
012_0721_a_02L驗矣余是康瓠者寧道以周鼎同日而
012_0721_a_03L比肩㢤只見公之法量如鼎之廣且大
012_0721_a_04L感而書之庶免乎不滿之譏

012_0721_a_05L

012_0721_a_06L興陽郡八影山楞伽寺西佛菴記

012_0721_a_07L
國之南八百里有縣曰高興縣之東一
012_0721_a_08L由旬有山曰八影舊號八田而同稱八
012_0721_a_09L影者後魏跖 [72] 跋氏十三年八峰照印於
012_0721_a_10L魏主與 [73] 主異而使之以物色旁求
012_0721_a_11L天下廼得于海上因以瑞錦繪賜八
012_0721_a_12L影二字遣使本國 [74] 剏大伽藍今稱
012_0721_a_13L楞伽是也山之勝槩能與智異月出爭
012_0721_a_14L而其餘天藏地秘神出鬼沒之狀
012_0721_a_15L覽者自得叵能盡擧也峰之离麓
012_0721_a_16L洞曰白雲千岩競秀萬像交光濛濛
012_0721_a_17L靉靉潔潔綿綿者若夏天之雲故土
012_0721_a_18L人謂之白雲洞前有白雲寺
有一山幕也
非採藥所
012_0721_a_19L罕到洞之臍有庵曰西佛懸崖作局
012_0721_a_20L壬丙爲向背四簷如城非梯莫能攀
012_0721_a_21L牛埋山之靑龍馬伏山之白虎逶迤低
012_0721_a_22L爭秀藏抱碧落嵓底最可珍者
012_0721_a_23L口銀泉味甘光潔朓而望也隱几
012_0721_a_24L可摩者瀛洲之漢挐背而仰之

012_0721_b_01L목을 늘이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운봉雲峰(남원)의 방장산(지리산)이다. 짙푸르고 망망한 바다에 여러 섬들이 뒤섞여 바둑판 같은데 두 개의 주먹바위가 까마귀 머리처럼 파도 속에서 돌연 솟아 있으니 ‘동해상 구계朐界에 있는 진나라 동문東門’125)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조금 마음을 편히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유구琉球의 태자이고,126) 표류하다가 돌아간 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풍수지리가들이 말하는 ‘구름 속의 신선자리’라는 것이 여기서 어긋나지 않는다. 암자를 지은 지 꽤 오래되었으나 여기서 승려가 입적했다는(僧化)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이 모두 서불암의 큰 볼거리이다. 암자에 문헌이 없어서 그저 상량문만 취할 따름이니, 대략 다음과 같다.
동진東晋 의희義熙 13년(417), 즉 신라 눌지왕 3년(419)127)에 우리 해동의 아도阿度128)가 창건하였다. 기원후 다섯 번째 신유년 당 태종 정관貞觀 원년(627)129)에 산승 석인碩仁이 중창을 맹세하고 아전鵝殿(법당)을 높게 하니 관음 한 구軀가 월지月支130)로부터 왔다. 인연이 있어 즉시 응한 것이다. 익실翼室131)이 나란히 밝아 16성상聖像(나한상)이 큰 복전福田이 되어 이뤄지지 않는 바람이 없었다. 이후 두 쥐(밤낮)가 서로 침노하고 사겁四刼132)이 서로 찾아오니 이치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
광서光緖 4년 경진(1880)133)에 주석하고 있던 노승 설암雪嵓 선사는 복지福地가 무너진 것에 강개하여 공사를 벌였다. 눈처럼 흰 사다리로 수倕의 재목을 험한 곳에 설치하고, 서리처럼 하얀 칠로 노猱의 백악白堊을 새로 발랐다.134) 날을 정해 마침을 고하니 어엿하게 화성化成된 듯하였다. 둥근 옥(玉璧)이 바다(鴻溟)의 달을 품으니 만 송이 서리꽃이 피고, 바위 구멍에서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부니 사계절 내내 하늘 음악이 울린다. 비록 선부제鮮浮提135) 바다에 살지만 어찌 도사타兜斯陁136) 천상에 부끄럽겠는가. 아, 이 암자에 머물며 이 불상에 공양하는 이는 관음의 천수천안 가운데 하나를 얻을 듯하니, 긴 강을 휘저어 제호醍醐137)를 만들고 대지를 변하게하여 황금으로 만듦이 또한 쉽지 않겠는가.
나는 조계산에서 여기로 와 이틀 묵으니 신선을 구함인가,

012_0721_b_01L頸可呼者雲峰之方丈蒼茫碧海
012_0721_b_02L島之交錯者彷彿乎一局碁兩柱拳
012_0721_b_03L如烏頭許突聳波心者卽東海
012_0721_b_04L上朐界中秦東門是也於此小可安心
012_0721_b_05L靜慮能以化仙作佛者琉球太子
012_0721_b_06L流還國其儷不億相地者謂雲中仙
012_0721_b_07L座者於此不謬矣剏庵頗久而未聞
012_0721_b_08L僧化于此是皆爲西佛庵之大觀也
012_0721_b_09L無文考但取信樑文而已也其略曰
012_0721_b_10L東晋義熙十三年卽新羅訥祇王三年
012_0721_b_11L我東阿度之所剏也迄紀元後五辛酉
012_0721_b_12L唐太宗貞觀元年山之釋碩仁矢心重
012_0721_b_13L鵝殿崔嵬一躬觀音來自月支
012_0721_b_14L緣卽應翼室并明十六聖像作大福
012_0721_b_15L無願不遂二鼠迭侵四刼相尋
012_0721_b_16L固然矣越光緖四年庚辰住山老雪嵓
012_0721_b_17L禪師慷慨福地壞空經之營之雪梯
012_0721_b_18L而倕材架嶮霜塗而猱堊粘新尅日吿
012_0721_b_19L儼若化成玉壁 [75] 含鴻溟之月萬朶
012_0721_b_20L霜華石竇吼松間之風四時天樂
012_0721_b_21L居鮮浮提海中寧慚兜斯陁天上
012_0721_b_22L住斯庵供是佛者若得觀音千手眼之
012_0721_b_23L攪長河爲醍醐變大地作黃金
012_0721_b_24L亦易乎㢤余自曹溪信宿于玆求仙乎

012_0721_c_01L약을 캐려는 것인가. 암자의 주인이 본래 동향이라는 친분이 있어서 재齋를 지내고 차를 마실 때 대화가 본 암자의 시종에 이르렀고,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한마디 말로 여기에 삼생을 묶지 않습니까.”
“선사께서 이 암자에 머무시는데 제가 이 말을 함은 어찌 너무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성孔聖(공자)이 노나라에 태어나 노나라 역사를 바탕으로 『춘추春秋』를 만든 것이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나는 이에 글을 써서 기록한다.
조계산 보조암 강당과 선불장138)을 위한 연화 결사의 글임진년(1892) 3월(曹溪山普照庵講堂選佛場緣化結社文壬辰三月日)
살펴보건대,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필시 큰 비원悲願의 선근善根을 빌리고, 불조佛祖께서 마음을 전하심은 굴窟 안팎의 결집(部藏)139)에서 들었으니, 삼도三途140)를 구제할 방략이요 일사一事(깨달음)에 나아갈 권형權衡141)입니다.
돌아보건대, 이 암자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142)의 교해敎海(가르침의 바다)입니다. 승안承安 5년(1200)에 본 암자에 머물다가 큰 사찰로 창건하였으니, 보리좌菩提座143)를 옮기지 않고 보광당普光堂에 나아간 것144)과 같습니다. 10년이 지나 원음圓音을 내어 중생을 타이르니 도독고塗毒鼓145)를 스스로 울려 수라취修羅趣146)를 여읜 것과 같습니다. 덕은 천지와 같아 질서 잃은 만물을 융화시키고, 믿음은 사시四時와 같아 질서 있는 삼라만상을 생숙生熟시킵니다. 이로써 진각眞覺147)과 청진淸眞148) 등에게 전하니 16노추老錐149)가 되고, 이로써 부휴浮休150)와 벽암碧嵓151) 등에 이르러 32종맥을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인천人天의 안목을 열어젖히고 불조佛祖의 종유宗猷152)를 드날렸습니다. 온 천지의 선불장選佛場에서 설경說經하는 강주講主(강사)들이 세상에 드문 용처럼 나타났고, 온 세계의 학승 법려法侶153)로서 배움을 청하는 무리들이 멀고 가까운 데서 구름처럼 달려왔습니다. 하물며 다시 백암栢庵154)과 무용無用155)이 선교禪敎의 마당에서 홀로 거니니 침명枕溟156)과 우담優曇157)이 그림자와 메아리 같은 짝이 되며,

012_0721_c_01L採藥乎庵主素有同鄕之分齋餘茶
012_0721_c_02L語及本庵之終始仍云子盍以一言
012_0721_c_03L係三生於此乎曰師住是庵吾有是言
012_0721_c_04L豈非太過乎曰不然孔聖之生於魯
012_0721_c_05L因魯史作春秋者何異是爲㢤余於是
012_0721_c_06L乎書爲誌

012_0721_c_07L

012_0721_c_08L曹溪山普照庵講堂選佛場緣化結
012_0721_c_09L社文壬辰三月日

012_0721_c_10L
詳夫菩薩之爲物必假大悲願之善根
012_0721_c_11L佛祖之傳心曾聞窟內外之部藏濟三
012_0721_c_12L途之方略就一事之權衡顧此庵
012_0721_c_13L普照國師之禪房選佛場之敎海承安
012_0721_c_14L五年住本庵而剏大寺如不移菩提座
012_0721_c_15L而赴普光堂越于十載放圓音而警衆
012_0721_c_16L若自鳴塗毒鼓之喪修羅趣德如天
012_0721_c_17L融冶萬物之失倫信若四時生熟
012_0721_c_18L森羅之得序以是而傳之眞覺淸眞等
012_0721_c_19L爲十六之老錐因玆以迄于浮休碧嵓
012_0721_c_20L繼卅三之宗脉開斫人天之眼目
012_0721_c_21L闡揚佛祖之宗猷渾天地選佛場說經
012_0721_c_22L之主間世龍現盡世界學法侶請益
012_0721_c_23L之徒遐邇雲奔况復栢庵無用獨步
012_0721_c_24L於禪敎之場枕溟優曇作影響之伴

012_0722_a_01L영해影海158)와 풍암楓嵓159)이 대회의 자리를 높이 마련하여 묵암默庵과 응암應庵160)이 상족上足(제자)의 무리가 되니, 불조佛祖가 원력으로 다시 태어나서 보살이 만행 방편을 펼침을 알았습니다. 용상龍象(대덕)이 늘어서니 문수보살이 문을 나선 듯하고, 북과 나팔이 크게 울리니 묘음보살이 모임에 들어온 듯합니다. 칠중七衆161) 가운데 운석韻釋(詩僧)들이 항룡발降龍鉢162)을 다투어 던지니 만고강산에 번화繁華하고, 팔굉八紘163)의 고승들이 해호공解虎笻164)을 다투어 던지니 천추千秋(천년) 운월雲月에 장관입니다. 향기를 품고 입정하니 오고 감이 없는 말을 다투어 쏟아 내어 말(斗)로 헤아릴 정도요, 꽃을 뿌리며 경전을 말하니 생멸이 없는 말을 자주 논하여 수레에 실을 정도입니다.165)
진정 이른바 문예를 흥기할 곳이며 선불選佛의 장소인데, 다만 인연과 운수가 더욱 하강하여 사람과 법이 더욱 위태롭습니다. 연하煙霞166)가 빛을 잃고 수월水月이 빛을 숨기니, 아름다운 대坮와 보탑寶塔167)을 누가 조각할 것입니까. 금옥 같은 글과 게송을 천양할 주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뺏을 강주가 면면히 끊이지 않으니 보리菩提 존자의 현기懸記168)가 있는 듯하고, 경전을 옆에 끼고 다니는 무리들이 왕왕 돌아오니 실로 불일佛日169) 노승의 원력이 사라지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대개 이러한 법성法性의 참다운 보배는 가득 차고 빔이 없지만 감인堪忍(속세)의 티끌 재물은 어찌 진퇴가 없겠습니까. 단월檀越(시주)이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서 이런 것입니까. 패엽貝葉170)이 봄바람의 각수覺樹에 다시 푸르러지고, 법의 파도가 가을달의 조계산에 다시 맑아지길 바랍니다. 이에 짧은 글을 가지고 단월 문하에 널리 고합니다.
흙덩이를 바쳐 마침내 전륜성왕이 되니 덕승德勝 아이의171) 안목(藻鑑)이요, 금 땅을 보시하여 정사를 완성하니 수달다須達多172)의 시주입니다. 재물은 몸을 해치는 칼이니 희사하기 어려운 티끌 보배를 아끼지 마시고, 선행은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니 썩지 않을 좋은 인연을 심기 바랍니다. 각수覺樹의 색과 패엽의 소리가 진실로 지옥을 깨뜨리는 도끼요, 옥호玉毫173)의 빛과 금구金口(부처의 입)의 게송이 천당에 오르는 사다리임을 누가 알겠습니까. ‘크게 치면 크게 운다’는 것은 구담씨瞿曇氏(부처)의 가르침이요,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온다’174)는 것은 공부자孔夫子(공자)의 진실한 말(丁寧)입니다.

012_0722_a_01L影海楓嵓高設大會之座默庵應庵
012_0722_a_02L爲上足之儔是知佛祖願力受生菩薩
012_0722_a_03L萬行方便龍像 [76] 列立依然文殊之出門
012_0722_a_04L鼓角喧轟彷彿妙音之入會七衆韻釋
012_0722_a_05L競擲降龍鉢繁華萬古江山八紘高僧
012_0722_a_06L爭投解虎笻壯觀千秋雲月懷香入定
012_0722_a_07L無去來之說 [77] 抱斗量散花談經
012_0722_a_08L生滅之言動論車載眞所謂興文之地
012_0722_a_09L選佛之場但以緣運益降人法愈殆
012_0722_a_10L煙霞失色水月潛光華坮寶塌 [78] 彫縷
012_0722_a_11L何人金文玉偈闡揚無主然而奪席
012_0722_a_12L之主綿綿不絕倘是菩提尊之懸記若
012_0722_a_13L橫經之徒徃徃斯歸實知佛日老之
012_0722_a_14L願力不滅盖此法性眞寶雖無盈虛
012_0722_a_15L忍塵財奈無進退非無檀越而然矣
012_0722_a_16L待旺運而是歟敢冀貝葉重翠於覺樹
012_0722_a_17L春風法波再淸於曹溪秋月聊將短軸
012_0722_a_18L普吿檀門獻土麨而竟作輪王德勝童
012_0722_a_19L之藻鑑施金地而已成精舍須達陀之
012_0722_a_20L檀行財是害身之刀莫惜難捨之塵寶
012_0722_a_21L善是護身之符願樹不朽之良緣覺樹
012_0722_a_22L色貝葉聲須信破地獄之斧鉞玉毫光
012_0722_a_23L金口偈誰知上天堂之棧梯大鼓大鳴
012_0722_a_24L瞿曇氏之銘訓出爾反爾孔夫子之丁

012_0722_b_01L청부아안靑鈇鵝眼175)이 희게 빛나고 붉게 고우니 지니고 있는 것을 헤아려 반출하시고, 유리와 진주ㆍ산호ㆍ호박琥珀 등은 가산家產이 아니면 어찌 논하겠습니까. 허리에 찬 10만 전錢은 학의 등에 탄 선비의176) 환상이고, 공적이 삼천세계에 가득함은 필시 용화삼회龍華三會177)에 참여할 사람입니다. 만 가지 근심이 얼음처럼 녹을 테니 쇠를 끊을 듯한 약속을 한 번 허락하소서. 요명堯蓂178)이 날마다 길어지고 사민四民179)이 태평가를 부르며, 순금舜琴180)의 훈풍에 백공百工들이 복성福星과 서운瑞雲의 경사에 화답하기를 봉축하옵니다.
조계산 천자암 성산각181)의 중건 화문4월 일(曹溪山天子庵星山閣重建化文四月日)
하늘에 펼쳐져 인간에게 화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칠원성군七元星君(북두칠성)이요, 땅의 온갖 형상 속에 중생의 선악을 살피는 것은 팔대산왕八大山王입니다. 이 모두는 옛 성현께서 자비를 일으켜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며 보살이 권형權衡182)으로 자취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와룡卧龍이 병진兵陣에서 복을 기도했으니183) 천년의 안목(藻鑑)이 한나라 역사에 밝게 빛나고, 우리 태조께서 제단을 정결히 하고 발원하였으니 세 칸 사찰(法宇)이 계봉鷄峰에 우뚝합니다.184) 복전福田을 심으려고 한다면 이를 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의 이 암자는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창설하시고 담당湛堂185) 고족高足(수제자)이 득도한 곳입니다. 땅이 신령하고 사람이 걸출하며 물화物華186)가 특별하니, 연못가 노룡老龍 같은 두 쌍의 향나무가 빼어난데 이는 진실로 사자師資187)의 전단향栴檀香 나무 지팡이로서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다구름이 일었다가 사라짐에 고개를 들어 마주하는 것은 고흥高興의 팔영산八影山이요, 밤 빛깔이 썰렁함에 궤안에 기대어 불러 보는 것은 영암靈嵓의 월출산月出山입니다. 하물며 게다가 장안동長安洞의 웅장함과 고읍촌古邑村의 화려함이 더해지니 어떻겠습니까. 다양한 풀들과 온갖 꽃들이 모두 천자암의 좋은 볼거리인 것입니다. 오래된 한 칸 작은 집이 있어서 주천성군周天星君과 열악산령列嶽山靈188)

012_0722_b_01L靑鈇鵝眼白璨紅鮮度已有而盤出
012_0722_b_02L琉璃眞珠珊瑚琥珀非家產則何論
012_0722_b_03L纏十萬錢只是鶴背上一幻土功滿三
012_0722_b_04L千界必叅龍華中三會人萬縷冰消
012_0722_b_05L諾金斷奉祝堯蓂日永四民興衢壤之
012_0722_b_06L舜琴風熏 [79] 百工和星雲之慶

012_0722_b_07L

012_0722_b_08L曹溪山天子庵星山閣重建化文
012_0722_b_09L月日

012_0722_b_10L
天之森羅能禍福於人間者七元星君
012_0722_b_11L地之萬像察善惡於群品者八大山王
012_0722_b_12L是皆爲古聖之興悲現形菩薩之權衡
012_0722_b_13L示跡所以孔卧龍兵陣祈福千載藻鑑
012_0722_b_14L昭明於漢史我太祖淨壇發願三間法
012_0722_b_15L嵬然乎鷄峰欲樹福田捨此安歸
012_0722_b_16L唯我是庵者普照國師之所剏占湛堂
012_0722_b_17L高足之得道處也地靈人傑物華殊特
012_0722_b_18L若其泉畔老龍雙香挺秀眞是師資之
012_0722_b_19L栴檀笻抵今不滅海雲起沒兮翹首
012_0722_b_20L相對者高興之八影山夜色虛凉兮
012_0722_b_21L隱几可呼者靈嵓之月出山也况又長
012_0722_b_22L安洞之雄壯古邑村之華麗千般瑞草
012_0722_b_23L萬品名花皆爲天子菴之大觀歟古有
012_0722_b_24L一間斗屋而周天星君列嶽山靈

012_0722_c_01L여기에 봉안하니, 겨자씨에 수미산을 넣는 것과 같습니다. 성인의 경지는 넓고 좁음에 자재自在하지만 범인의 심정으로는 크고 작음을 용납하기 어려우니 어찌합니까. 중흥을 계획하는데 창시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 터럭을 모아 공을 만들고 온갖 하천을 모아 바다에 이르듯 하려고 합니다.
바라건대 삼계三界의 티끌 재물을 희사하여 구천九天의 옥루玉樓에 오르소서. 공명孔明의 감응(蒙熏)189)과 태조의 가피가 어찌 옛날의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겠습니까. 선군자와 선여인께서는 성군星君의 은혜로운 살핌에 따라 수명을 연장하고 산왕山王의 복전에 선한 씨를 심어 연하烟霞(산수)의 지경에서 나란히 걷고 전단 숲으로 같이 나아가길 빕니다.
본군(순천) 수령 원우상190)이 폐해를 없애 준 것에 대한 칭송기(本郡守元禹常除瘼頌記)
백성에게 나라는 병자에게 좋은 의원이 있는 것과 같고, 사찰에 관리는 자식에게 자비로운 모친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도탄에 빠진 자는 부모(怙恃)의 은덕을 외치는 법이고 병이 깊은 자는 편작扁鵲191)의 처방을 구하는 법입니다. 처방을 얻어 병을 치료하고 덕을 입어 백성을 구제하면 의원에게 보상하고 부모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원元 사또께서는 하늘이 모아 준 남은 경사(餘慶)요 산악이 내려 준 영령으로서 북궐北闕(대궐)에 절을 올리고 남쪽 지방으로 깃발을 돌렸습니다. 우리의 공전公田에 비를 내리시니 만민이 같이 소생하고, 우리의 궁벽한 골짜기에 은택을 베푸시니 온갖 폐단이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진주가 돌아온다는 노래가 합포合浦의 백성에게만192) 국한되지 않고 범이 건너갔다는193) 송축이 또한 승평군昇平郡(순천)에도 들립니다. 하물며 또한 성주城主(수령)의 한 말씀은 바람이 달리듯 하고, 고을 관리들의 응낙은 풀이 눕듯 합니다. 빈도貧道들을 보살펴 주시니 편작의 처방입니까, 부모(怙恃)의 은덕입니까. 병자가 감사함을 생각하고 백성이 은덕을 의논하니 어찌 예상翳桑의 보답194)이 없겠습니까. 이에 방함芳啣(성함)을 들어 잊지 못함을 만에 하나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
본도(전라도) 수의어사 이면상195)의 천왕문 단청 공덕에 대한 송가(本道繡衣李冕相天王門丹靑功德頌)

012_0722_c_01L安于玆猶如納須彌於芥子雖聖境之
012_0722_c_02L廣狹自在奈凡情之巨細難容所以斯
012_0722_c_03L謨重興難於始剏故玆聚衆毫而成毬
012_0722_c_04L會百川而到海願捨三界塵財要上九
012_0722_c_05L天玉樓孔明之蒙熏太祖之加被
012_0722_c_06L專媺於古哉幸諸善君子善女人延壽
012_0722_c_07L命於星君之惠鑑樹善種於山王之福
012_0722_c_08L齊步烟霞境上共赴栴檀林下

012_0722_c_09L

012_0722_c_10L• 本郡守元禹常除瘼頌記

012_0722_c_11L
民之有國如病良醫寺之有史如子
012_0722_c_12L慈母塗炭者必呼怙恃之德痼肓者
012_0722_c_13L必求扁鵲之方得方療病荷德濟民
012_0722_c_14L則償其醫報其母之道果何如也㢤
012_0722_c_15L我元候 [80] 天鍾餘慶岳降斯靈獻拜北闕
012_0722_c_16L還旆南州雨我公田萬民咸甦澤吾
012_0722_c_17L窮谷百弊俱寂以其珠還之謠不專
012_0722_c_18L於合浦之民虎渡之頌亦聞於昇平之
012_0722_c_19L况復城主之一言風馳鄕司之衆諾
012_0722_c_20L草偃顧念貧道等扁鵲之方歟怙恃
012_0722_c_21L之德歟病之感想民之德誼那可無預 [81]
012_0722_c_22L桑之報乎爰揭芳啣庶報不忘之萬一

012_0722_c_23L

012_0722_c_24L本道繡衣李冕相天王門丹靑功德
012_0722_c_25L

012_0723_a_01L佛光東布     불광이 동쪽으로 퍼지니
八土普明     팔토(전국)가 널리 밝아지고
法雨西霔     법우가 서쪽에 쏟아지니
三草等潤     삼초196)가 같이 윤택해지네
時運所啓     시운이 열리는바
事不偶偕     사업이 함께하지 않으리오
敬我霜臺     공경하는 우리 상대197)시여
族登仙譜     친족으로 선보198)에 올라
憂分北闕     북궐(대궐)의 근심을 나누어199)
氣鍾南州     남방으로 기운이 모아지니
秋水文章     가을 물 같은 문장과
春城花樓     봄 성의 꽃 누각이라
甲仁胄義     인을 갑옷으로 의를 투구로200)
衣繡佩金     수의 입고 금인金印 차니
德潤完城     은덕이 완주 성에 윤택하고
澤及松岑     은택이 송광사 봉우리에 미쳐
六度其首     육도의 으뜸이요201)
三歸其心     삼귀202)의 마음이라
綸音露墜     윤음이 이슬처럼
寺瘼邑侵     사찰의 폐단과 고을의 침탈 없애니
讃賀抃躍     손뼉 치고 뛰며 찬양하며
永世不忘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位極人臣     지위는 신하로서 최고가 되고
子孫永昌     자손은 영원히 창성하시리
조계산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이안203)한 연기와 평옛 기록에서 뽑음. 병인년(1926) 9월 20일(曹溪山普照國師甘露塔移安緣起評古記抄丙寅九月二十日)
보조국사께서 고려 희종 6년 경오(1210) 3월 27일에 입적하시니 향년 53세요, 큰 사리가 30개 나오고 작은 것은 셀 수 없었다고 한다. 4년 지난 계유년(1213) 4월 10일에 수선사修禪社의 북쪽 기슭 옛 보현전普賢殿 위에 탑을 세웠다. 현재 성수전聖壽殿 위가 옛터이다. 백여 년 지나연대와 주관자의 이름을 알 수 없으니 괴이하다. 어떤 이유인지 보조암普照庵 정상세칭 ‘범등고개(虎背嶝)’으로 이안移安했다. 입적 후 260년 지난 명나라 성화成化 13년, 즉 이조 성종 8년 정유년(1477) 4월 27일에 주지 육정六正 선사가 무설당無舌堂 앞으로 봉안하여 비석과 나란히 서게 되었다.현재 설법전說法殿, 즉 장경각藏經閣이다. 115년 후 임진왜란에 이르러 파괴되어 귀부龜趺204)만 남았다고 한다.사리가 산실된 게 이때다. 86년 후 청나라 강희康熙 17년 무오(1678)에 설명雪明 장로가 백암栢庵 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비석과 탑을 거듭 세웠다고 한다. 10년 후 강희 26년, 즉 숙종 13년 정묘(1687) 3월 6일에

012_0723_a_01L
佛光東布八土普明法雨西霔三草
012_0723_a_02L等潤時運所啓事不偶偕敬我霜臺
012_0723_a_03L族登仙譜憂分北闕氣鍾南州秋水
012_0723_a_04L文章春城花樓甲仁胄義衣繡佩金
012_0723_a_05L德潤完城澤及松岑六度其首三歸
012_0723_a_06L其心綸音露墜寺瘼邑侵讃賀抃躍
012_0723_a_07L永世不忘位極人臣子孫永昌

012_0723_a_08L

012_0723_a_09L曹溪山普照國師甘露塔移安緣起
012_0723_a_10L古記抄丙寅九月二十日

012_0723_a_11L
高麗熙宗1) [11] 2)庚午 [12] 三月二十七日
012_0723_a_12L示寂壽五十三舍利大者三十小者
012_0723_a_13L無數云越四年癸酉四月十日立塔于
012_0723_a_14L社之北麓古普賢殿上今聖壽殿上
012_0723_a_15L古址也越百餘年年代及主者名
未詳可恠也
以何緣
012_0723_a_16L移安于普照庵頂上世所稱虎
背嶝云
示滅後二
012_0723_a_17L百六十年大明成化十三年卽李朝
012_0723_a_18L成宗八年丁酉四月二十七日住持六
012_0723_a_19L正禪師奉安于無舌堂前與碑並立
012_0723_a_20L今說法殿
卽藏經閣
至一百十五年壬亂破壞只存
012_0723_a_21L龜趺云舍利散失
此時也
越八十六年后大淸康
012_0723_a_22L熙十七年戊午雪明長老依栢庵禪師
012_0723_a_23L所敎重立碑塔云云十年後康熙二
012_0723_a_24L十六年3)肅宗十三年丁卯 [13] 三月六

012_0723_b_01L해문海文 비구가 고봉원高峰原 위로 이안하여 탑 앞에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37년 지나 옹정雍正 원년, 즉 경종 3년 계묘(1723) 4월 16일 영해影海 선사가 주지 기인起仁에게 명하여 옛터로 봉안하게 했다고 한다. 43년 지나 건륭乾隆 29년, 즉 영조 41년 을유(1765) 3월 19일에 주지 창오昌旿가 비전고개(碑殿嶝) 위 부휴탑浮休塔 뒤로 이안했다고 한다. 6년 지나 영조 46년 경인(1770) 11월 12일에 주지 승감勝鑑또는 평원平遠이라 한다.이 옛터에 봉안했다고 한다. 158년 지나 대정大正 15년 병인(1926) 9월 20일에 주지 찬의賛儀가 탑을 고치고 대를 쌓았다고 한다.사유는 해당 기문記文205)에 있다.

평評은 다음과 같다.

비석과 탑의 이안을 살폈다. 비석은 한 번 부서져 거듭 세워지고 한 번 나갔으니 현재 비전고개(碑嶝)에 있는 게 이것이다. 탑 또한 한 번 부서져 거듭 세워지고 세 번 나왔다가 세 번 들어오니 현재 옛터에 있는 게 이것이다. 그런데 나가면 유골이 더럽혀지고, 들어오면 상서로운 빛이 영롱하다고 한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진신眞身으로서 길흉과 근심(悔悋)에 어찌 관여하리오마는, 다만 세제世諦206)상의 소견으로는 재앙과 상서로움이 출입에 관여하니, 이와 같음으로 사찰과 승려의 화복禍福과 성쇠衰盛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으나 그럴 수 있는가. 만약 세상의 보물을 위험한 곳에 두면 위험하고 편안한 곳에 두면 편안한데, 하물며 막엄하고 중한 보배인 성골聖骨을 함부로 옮겨서 편안하고 위태로움과 길흉의 땅을 가리지 않는다면 화복과 재앙ㆍ상서로움이 어찌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우리들의 후손 되는 이들이 삼가지 않고 함부로 행동한다면 어찌 우리의 조사들을 거스르는 후손이 될 뿐이겠는가. 아비지옥의 고통을 달게 받게 될지니, 삼가지 않겠는가.

012_0723_b_01L海文比丘移安于高峰原上
012_0723_b_02L碑于塔前云越三十七年雍正元年
012_0723_b_03L卽景宗三年4)癸卯 [14] 四月十六日影海禪
012_0723_b_04L師命住持起仁奉安于古址云越四
012_0723_b_05L十三年乾隆二十九年卽英宗四十一
012_0723_b_06L5)乙酉 [15] 三月十九日住持昌旿移安
012_0723_b_07L于碑殿嶝上浮休塔後云越六年卽英
012_0723_b_08L宗四十六年6)庚寅 [16] 十一月十二日住持
012_0723_b_09L勝鑑亦云
平遠
奉安于古址云越一百五十
012_0723_b_10L八年大正十五年丙寅九月二十日住
012_0723_b_11L持賛儀改塔築坮云事由在
本記文

012_0723_b_12L評曰觀其碑塔之移安碑唯一壞
012_0723_b_13L立而一出現在碑嶝是也塔亦一壞
012_0723_b_14L立而三出三入現在古址是也然而出
012_0723_b_15L則觸髏汚陋入則祥光玲瓏云若以金
012_0723_b_16L剛不壞之眞身何管於吉凶悔悋㢤
012_0723_b_17L以世諦上所見災祥管於出入以若此
012_0723_b_18L至於寺僧之禍福衰盛不欲言而得乎
012_0723_b_19L如世之重寶置諸危處則危之置諸安
012_0723_b_20L處則安之况以聖骨之莫嚴重寶妄自
012_0723_b_21L遷動不擇安危吉凶之地禍福災祥
012_0723_b_22L安敢不存於此㢤吾輩之爲裔者若不
012_0723_b_23L愼而妄動則何啻吾祖之逆孫甘受阿
012_0723_b_24L鼻之苦痛可不愼㢤

012_0723_c_01L
영호207) 강백이 시를 청하기에 보낸 답서백양산에 있다.(答映湖講伯求韻在白羊山)
삼양三陽이 엎드리고 육음六陰이 승한데208) 근래 은우恩憂209)를 겪어 문을 닫고 고요히 정양하며 그저 약(刀圭)210)을 급무로 삼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물소리와 새소리가 상하에서 답을 하고 소나무 그늘과 대나무 음지가 좌우로 들쭉날쭉하니, 임을 그리는 일념이 이때에 정녕 심합니다. 고개 위 구름과 강가의 나무를211) 아침저녁으로 바라다 보는데 어떤 시편(瓊琚)212)이 하늘에서 떨어진 듯 먼지 구덩이에 날아 떨어졌습니다. 급히 손으로 펼쳐 읽어 보니 기쁨에 앞서 눈썹이 올라갔습니다. 여러 번 반복하여(圭復)213) 읊어 삼키자 어금니와 뺨에서 향기가 나오니, 시의 골격과 율격은 장莊ㆍ한韓의 뱃속에서 나오고 글씨 필봉은 은과 쇠의 사슬214) 아래 깎은 듯합니다. 글월마다 금수강산이요 구절마다 연하烟霞의 누대입니다. 사사로이 생각하니, 등불의 남쪽이요 벼루의 북쪽에서215) 십수 년간 눈썹을 치켜뜨고 괴로움을 삼킨 분명한 효과를 이에 이르러 더욱 깨닫게 됩니다.
정鼎(영호)의 연참鉛槧216)과 글 가방(書櫜)은 모두 울타리(芭蘺) 주변 사물에 속하니, 어찌 효빈效嚬217)을 일삼아 하겠습니까. 그저 처벌을 피하고자 억지로 망령된 붓을 꺼내 듭니다.
송광사 시왕 탱화를 새로 조성한 기문경자년(1900) 2월 27일(松廣寺十王幀新成記庚子二月二十七日)
하루는 어떤 객이 무주無住(머묾이 없음)에서 와서 말하길, “평범한 사원이라도 시왕의 존상尊像을 안치하지 않음이 없는데 하물며 해동의 큰 사찰로서 삼보사찰의 지위에 이름을 올려놓았고 일찍이 여러 성현께서 주지를 맡으신 곳인데

012_0723_c_01L答映湖講伯求韻在白羊山

012_0723_c_02L
三陽已伏六陰乘勝近嬰恩憂杜門
012_0723_c_03L潛靜只以刁 [82] 圭爲急務而况水聲鳥語
012_0723_c_04L上下相答松影竹陰左右叅差思人
012_0723_c_05L一念此時政劇嶺雲江樹朝暮瞻望
012_0723_c_06L有何瓊琚若自天殞而飛落塵臼
012_0723_c_07L手披讀喜先聳眉圭復呷下牙臉生
012_0723_c_08L若其詩骨律格抽出於莊韓之肚裡
012_0723_c_09L書劔筆鋒削截於銀銕之索下章章錦
012_0723_c_10L繡江山句句烟霞樓坮私念於硯北
012_0723_c_11L燈南十數年間提眉喫辛之明效
012_0723_c_12L此益覺也鼎鉛槧書櫜都屬於芭蘺
012_0723_c_13L邊物安事效嚬爲㢤只圖免誅强抽
012_0723_c_14L妄毫

012_0723_c_15L

012_0723_c_16L松廣寺十王幀新成記庚子二月二
012_0723_c_17L十七日

012_0723_c_18L
一日有客自無住而來者曰雖尋常寺
012_0723_c_19L莫不安十大王尊像而况以海東
012_0723_c_20L宏刹名叅三寶之位曾是列聖之住持
012_0723_c_21L「八」底本傍註曰「六」{編}「庚午」底本傍註
012_0723_c_22L曰「距今七百十七年」{編}
「肅宗十三」底本傍
012_0723_c_23L註曰「距今二百四十年」{編}
「癸卯」底本傍註
012_0723_c_24L曰「距今二百四年」{編}
「乙卯」底本傍註曰「距
012_0723_c_25L今二百六十七年」{編}
「庚寅」底本傍註曰「距
012_0723_c_26L今一百五十年」

012_0724_a_01L어찌 시왕의 존상이 없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할머니 적삼을 빌려 입고 할머니에게 절하는 것이라.218) 의심에 대해 의심하면 의심이 어찌 풀어지겠습니까. 내가 벌써 의심한 지 오래되었는데 그대 또한 이와 같군요. 근래 『공덕록』본사本寺에 전해 오던 것을 얻었는데 ‘옹정雍正 병오년영조 2년(1726)에 비구 요안了眼이 명부㝠府의 실상實相을 고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지금으로부터 194년 전입니다. 그렇다면 예전에 존상이 있었는데 도광道光 22년헌종 8년(1842) 임인년 화재로 옥석玉石이 모두 불타 버렸고 사찰을 개창한 후에 옛 탱화를 그대로 안치하고서 존상을 조성할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전해 오는 이야기가 많더라도 한 줄 기록만 못하니, 기록이 있는 것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그러나 옛 탱화는 언제 조성한 것인지 알지 못하며, 혼이 날아가고 채색이 흩어져서 시주(檀那)의 신심을 도울 수 없으니 새벽과 아침에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광서光緖 25년 기해년 가을광무光武 3년(1899)에 여러 논의가 바람 몰아치듯 하고 대중의 뜻이 풀 눕듯 하니, 산승 보정寶鼎이 창도하는 주인이 되어 손이 상함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대중의 금전 2천 정도를 모아, 같은 해 11월 3일에 시작하여 다음 해 경자년(1900) 2월 27일에 봉안하여 회향하였습니다. 아마도 불모佛母219)보응 현엄普應玄广의 기술일 것이니, 준제 오도準提吳道220)가 다시 나타난 것입니까. 어찌 그리 세밀하고 드러남이 이와 같은지요. 역력하고 은은함은 범선梵仙의 자비로운 모습을 옮겨 왔고, 문채 있고 찬란함은 용파龍婆의 자태를 추출한 것입니다. 만월滿月의 진용眞容221)이 완연히 지옥문 앞에서 석장을 휘두르는 것 같고, 시부(十殿) 명왕이 궤안 위에서 공안을 결정하는 듯합니다. 염부제閻浮提(이승)의 충효와 선악이 업경業鏡에 고스란히 비치고, 명부계㝠府界(저승)의 열의烈義와 상벌이 저울대에서 측량되는 듯합니다. 예전에 혼이 날아간 판관은 엄숙한 면목으로 변하였고, 이전에 채색이 흩어진 귀왕鬼王은 장엄한 형상으로 문득 바뀌었습니다.

012_0724_a_01L而何獨無十王之尊像也余曰借婆
012_0724_a_02L衫拜婆年者也疑於疑而疑何冰釋
012_0724_a_03L已疑之久子亦如是乎近得功德錄
012_0724_a_04L本寺
傳來
有言曰雍正丙午英祖
二年
比丘了眼
012_0724_a_05L㝠府實相改建云距今一百九十四年
012_0724_a_06L然則昔有尊像而去道光二十二年
012_0724_a_07L憲宗
八年
壬寅回祿玉石俱焚以剏寺後
012_0724_a_08L仍安舊幀而末暇造像耶傳說雖多
012_0724_a_09L若一毫之錄錄之所存何足疑也㢤
012_0724_a_10L然而舊幀不知何代所剏而魂飛彩漫
012_0724_a_11L不能助檀那之信慮有晨夕之難存矣
012_0724_a_12L光緖二十五年己亥秋光武
三年
衆議風馳
012_0724_a_13L輿情草偃以山之釋寶鼎爲倡導之
012_0724_a_14L莫悟傷手鳩大衆金餘二千同年
012_0724_a_15L十一月三日始越庚子二月二十七日
012_0724_a_16L奉安而回向之盖其佛母普應
玄广
之技術也
012_0724_a_17L準提吳道之重現耶何其密顯之若是
012_0724_a_18L歷歷隱隱移來於梵仙之慈容彬彬
012_0724_a_19L煌煌抽出於龍婆之眞姿滿月眞容
012_0724_a_20L完若振錫於獄門之前十殿㝠王况似
012_0724_a_21L決公於几案之上閻浮提忠孝善惡
012_0724_a_22L印於業鏡㝠府界烈義賞罰測量於
012_0724_a_23L秤錘昔之魂飛判官變成肅嚴面目
012_0724_a_24L前之彩漫鬼王頓作莊嚴妙相由是

012_0724_b_01L이로부터 시주(檀氏)의 믿음이 샘처럼 솟구치고 승려(闍梨)의 정성이 구름처럼 일어납니다. 이후로는 천당에서 상을 주고 지옥에서 벌을 내림이, 왕이 칼을 쥐어 살리고 죽임이 자재한 것과 같습니다. 오직 바라건대 대중께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향을 사르소서.”
객이 기뻐하며 물러났다.
경자년(1900) 3월에 다송산방茶松山房에서 쓴다.
기로소 원당222)을 새로 세우는 일에 대한 상언223)당시의 사건은 따로 기록해 두었다.(耆老所願堂新建事上言狀其時事件在別錄)
전라도 승주군 송광사의 승려 보정寶鼎본명 첨화添華은 목욕재계하고 백 번 절을 하며 기로소 존엄尊嚴224) 아래 삼가 상언上言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의 덕은 하늘처럼 크시니 영원히 밝은 일월처럼 우러러보고, 성대한 의식을 크게 거행하니 나라의 경사가 거듭 이름을 보게 됩니다. 칭송이 조정과 재야에서 들끓고 기쁨이 온 세상에 넘쳐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산간의 고요한 무리들 또한 교화(維化)의 대상 가운데 하나이니, 까마귀의 정성과 견마犬馬의 정성225)을 마음에 본받습니다.
이 본사는 신라 혜린惠璘226)과 고려 보조普照가 창건한 것으로, 남쪽에는 천자암天子庵이 있고, 북쪽에는 천태성天台星, 서쪽에는 모후산母后山, 동쪽에는 대장봉大將峯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구역을 차지하니 지위는 삼보종찰에 참여하고, 16국사들이 이어서 주지를 하였고 여러 차례 조정의 진휼賑恤227)을 받았습니다. 태조 고황제께서 창업하신 초기에 무학국사無學國師가 이 산에 주석하니 ‘대승선종大乘禪宗’이라는 편액을 특별히 하사하셨고, 지금 대황제 폐하께서는 덕德이 삼조三朝228)와 부합하여 위로 기로소에 들어가는(入社) 경사를 받들고, 예禮는 구작九爵229)을 이루어 넉넉히 노인을 봉양하는 법전을 베푸셨습니다. 나라의 복이 영원히 창성할 것이요, 나라의 운명이 새로워집니다. 마침 이러한 보배로운 운수의 경사스런 모임에 어찌 고루 적시는 은택을 하소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감히 죄를 무릅쓰고 우러러 아뢰노니, 원당願堂을 새로 지으라는 처분을 특별히 내려 주시어 성수聖壽가 만억 년 가도록

012_0724_b_01L檀氏之信泉湧闍梨之誠雲興從玆
012_0724_b_02L以徃償之以天堂罰之以地獄如王
012_0724_b_03L秉釰殺活自在唯願大衆稽首拈香
012_0724_b_04L客喜而退之庚子三月日茶松山房書

012_0724_b_05L

012_0724_b_06L耆老所願堂新建事上言狀其時事
012_0724_b_07L件在別錄

012_0724_b_08L
某道某郡某寺臣僧寶鼎本名
添華
齋沐百拜
012_0724_b_09L謹上言于耆老所尊嚴之下伏以帝德
012_0724_b_10L天大仰視日月之長明縟儀誕擧
012_0724_b_11L覩邦慶之洊臻頌騰朝野喜溢寰宇
012_0724_b_12L念山間寂靜之徒亦維化中一物也
012_0724_b_13L烏鳥之誠犬馬之忱敢效于衷
012_0724_b_14L玆本寺粤在羅麗惠璘普照之所剏
012_0724_b_15L南有天子庵北有天台星西有母后
012_0724_b_16L東有大將峯中藏一區位叅三寶
012_0724_b_17L宗刹十六國師相繼住持而累蒙
012_0724_b_18L朝家賑恤矣太祖高皇帝創業之初
012_0724_b_19L國師無學住錫玆山特賜大乘禪宗
012_0724_b_20L之額而今大皇帝陛下德配三朝
012_0724_b_21L承入社之慶禮成九爵優施養老之
012_0724_b_22L國祚永昌邦命維新適玆寶運慶
012_0724_b_23L盍訴均霑之澤玆敢冒罪仰瀆
012_0724_b_24L下願堂新建處分俾聖壽萬億年爲祝

012_0724_c_01L축원하는 장소로 삼게 하소서. 죽음을 무릅쓰고 엎드려 기원합니다.
임인년(1902) 11월 19일 기로소 처분處分.
비제批題230) : 알았다. 처분대로 할 것. 30일 어보御寶 날인.
팔상성도231) 청문232) 유치233)작법234)은 평상시와 같음.(八相成道請文由致作法如常)
우러러 생각건대, 석가여래 대성大聖의 청정한 법계의 몸은 본래 나고 사라짐이 없는데 대비大悲 원력으로 드러내어 생生을 받으시니, 도솔타천兜率陀天235)에서 호명보살護明菩薩이 되고, 가비라국迦毘羅國236)에 내려오시어 ‘일체의성一切義成’237)이라 칭하셨다. 금단천자金團天子238)가 그 집을 선택하여 백정반왕白淨飯王239)을 부친으로 삼아, 흰 코끼리(玉象)가 태양을 타고 대술大術240)의 태로 오시었다. 금륜왕金輪王241)이 되어 무우수無憂樹(보리수) 아래 탄생하시어 10세 때 욕락欲樂242)을 받으시고 사문四門에 유관遊觀(돌아다니며 구경함)을 드러내셨다. 이에 8일 밤에 춘성春城(동궁)을 넘으시고 6년 동안 설산(雪嶺)에 머무셨다. 최후 수승한 몸243)으로 보리수 도량244)에 나아가 해탈의 깊은 인연을 원만하게 하시고 금강보좌金剛寶座245)에 오르셨다. 이로 말미암아 마군魔軍이 자비로운 힘을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돌아갔고, 유혹하던 여자들이 정심定心에 독을 끼치려다 패하여 추한 모습으로 바뀌었다.246)
성불한 후에 교화 인연을 관찰하니, 이에 도리천忉利天 제석帝釋247)이 33천을 구름처럼 몰아오고 감인堪忍(이승) 계왕界王248)이 18범梵249)을 안개처럼 감싸고 와서, 이마를 땅에 대고 예를 갖추어(頭面作禮)250) 전법륜을 청하였다. 도수道樹(보리수) 아래에서 일어나 녹야원(鹿林園)251)으로 나아가사 사제四諦를 부연하여 먼저 5인252)을 제도하고, 삼승三乘을 설하여 마침내 5천 명을 구제하셨다. 사덕四德253)을 노래하사 삼이三伊254)를 드러내시고 만인(萬有)을 지시하여 일성一性(불성)으로 돌이키셨다. 그러나 유위법有爲法255)은 소멸함이 있음을 밝히고 무상無常(진제眞諦)은 생生이 없음을 드러내시고자, 머리를 학림鶴林256)에 두시어 두루 삼매의 문을 돌아다니시고 돌이켜 옥좌에 오르시어

012_0724_c_01L所之地冒死伏祝壬寅十一月十九日
012_0724_c_02L耆老所處分批題知悉處分向事
012_0724_c_03L十日着寶

012_0724_c_04L

012_0724_c_05L八相成道請文

012_0724_c_06L
由致作法
如常

012_0724_c_07L
仰唯釋迦如來大聖者淨法界身本無
012_0724_c_08L出沒大悲願力示現受生洎兜率陀
012_0724_c_09L爲護明菩薩降迦毘羅國號一切
012_0724_c_10L義成金團天子選其家白淨飯王爲
012_0724_c_11L其父玉象乘日示來于大術胎中
012_0724_c_12L輪作王創誕於無憂樹下受欲樂於十
012_0724_c_13L現遊觀於四門於是踰春城於八夜
012_0724_c_14L捿雪嶺於六年以最後之勝體詣菩提
012_0724_c_15L之道場圓解脫之深因登金剛之寶座
012_0724_c_16L由是魔軍威懾於慈力愁怖旋歸媚女
012_0724_c_17L敗毒於定心媸羸變質旣成佛已
012_0724_c_18L所化緣伊乃忉利帝釋雲歸於三十三
012_0724_c_19L堪忍界主霧擁於一十八梵頭面
012_0724_c_20L作禮請轉法輪起道樹下詣鹿林園
012_0724_c_21L演四諦先度五人說三乘終濟五千
012_0724_c_22L四德而顯三伊指萬有而歸一性然而
012_0724_c_23L明有爲之有滅表無常 [83] 之無生首卧鶴
012_0724_c_24L遍遊三昧之門還登玉座將復一

012_0725_a_01L일진一眞257)의 성품을 회복하셨다.258)
이로써 아무개는 이번 달 오늘 정갈한 음식을 경건히 마련하고 우러러 오묘하게 돕는 분께 기도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이름난 우두향(牛首香)259)을 사르고 향적香積의 좋은 음식을 쪄 내어 지극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자비에 귀의하고 덕에 귀의합니다. 사사로운 마음을 이기는 정성을 타심통으로 멀리서 살피시고, 인연 있는 청을 혜안으로 멀리 살피소서. 삼가 한 마음을 잡아 먼저 삼청三請260)을 나열합니다.
나무(南無)261) 운운云云.
도사다천覩史多天(도솔천) 위에서 호명護明 존호가 되고, 마가다국(摩竭提國)262)에서 마야摩耶 성모의 꿈에 감응하니, 금단천자金團天子가 그 집을 선택하여, 백정반왕白淨飯王을 부친으로 삼으셨네. 이에 구름거리(雲衢, 하늘)에서 일륜日輪에 코끼리를 매어 달리니 60억 제천諸天이 의논하여 호종護從하고, 석씨 가문에 성스런 몸을 용처럼 서리니 삼천계 염부주에 인자함이 성대하도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은 우리 본사本師263) 석가모니불이라네(是我本師釋迦牟尼佛). 오직 바라건대 운운.

白淨飯王爲其父  백정반왕이 부친이 되고
金團天子選其家  금단천자가 그 집을 선택하여
日輪象駕來摩竭  일륜에 코끼리 매어 마가다국 오시니
龍蟠胎身號釋迦  용처럼 서린 태아를 석가라 부르네

나무 운운.
10개월이 차서 4월 8일에 성모 마야麽耶께서 채녀采女(궁녀)들을 데리고 룸비니(藍毘尼)264) 동산에 나들이 나가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고 오른쪽 옆구리로 낳으셨네. 일곱 줄기 연꽃이 절로 나타나 발을 받드니 수레바퀴처럼 크도다. 일곱 걸음을 용처럼 걸으시고 스스로 음성을 내니 웅장하기 사자후 같아라. 아홉 용들이 물을 뿜어 태자의 몸을 씻기고, 하늘에서 꽃을 뿌리고 정성스레 기악妓樂265)을 받들었네.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甲寅四月初八日  갑인년 사월 초파일에266)
聖母遊戱藍毘園  성모께서 룸비니 동산에 나가시어
攀樹枝兮降右脇  나무 잡고 오른쪽 옆구리로 낳으사
蓮花承足大如輪  연꽃이 발을 받드니 수레처럼 크도다

나무 운운.
사문四門에서 네 종류의 상을 보시니 생로병사가 무섭고 두렵도다. 모래사장에서 사문沙門의 모습이 지팡이 짚고 현신現神함을 만나니267) 공경하고 우러를 만하였네.

012_0725_a_01L眞之性是以云云今月是日虔設淨
012_0725_a_02L仰祈妙援者右伏以爇牛首之名香
012_0725_a_03L蒸香積之妙饋至意至誠歸慈歸德
012_0725_a_04L他心遠鑑尅念之誠慧眼遙觀有緣之
012_0725_a_05L謹秉一心先陳三請南無云云
012_0725_a_06L史多天上爲護明尊號摩竭提國中
012_0725_a_07L感摩耶聖夢金團天子選其家白淨
012_0725_a_08L飯王爲其父於是象駕日輪於雲衢
012_0725_a_09L十億諸天議以護從龍蟠聖身於釋種
012_0725_a_10L三千界閻浮仁且熾盛兜率來儀相
012_0725_a_11L是我本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白淨
012_0725_a_12L飯王爲▼(女+耶)父金團天子選其家日輪象
012_0725_a_13L駕來摩竭龍蟠胎身號釋迦南無云云
012_0725_a_14L十箇月滿四月八日聖母麽耶將諸
012_0725_a_15L采女遊藍毘尼園攀無憂樹枝右脇
012_0725_a_16L降誕七莖蓮花自現承足大如車輪
012_0725_a_17L七步龍行自作音聲雄如獅吼九龍
012_0725_a_18L吐水灌沐太子之身諸天散花供獻
012_0725_a_19L妓樂之誠毘藍降生相是我本師釋迦
012_0725_a_20L牟尼佛唯願云云甲寅四月初八日
012_0725_a_21L聖母遊戱藍毘園攀樹枝兮降右脇
012_0725_a_22L花承足大如輪南無云云四門見四種
012_0725_a_23L之相生病老死可憎可怖沙場遇沙
012_0725_a_24L門之像執錫現神可欽可仰四山卽

012_0725_b_01L사산四山268)은 사생四生의 업의 근심이니 싫증 내어 멀리하고, 불자佛子(사문)는 불타佛陀269)의 진제眞諦이니 따라가 배우도다. 온갖 기악妓樂은 그저 슬픔과 근심만 증가시키니, 일념의 오묘한 도리에 대한 초심을 빼앗기지 않는다네.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四門第觀四山相  사문에서 사산의 형상을 보니
老死病生眞可愁  생로병사가 진정 근심이로다
最後沙門淸淨法  최후의 사문은 청정한 법이요
百千妓樂徒增悲  온갖 기악은 그저 슬픔만 더하네

나무 운운.
조병천자澡甁天子가 깨닫게 하여 기녀의 추한 얼굴을 드러내고,270) 정거천인淨居天人271)이 받들어 찬다카(車匿)272)가 뛰어넘어 엄중히 수레를 몰았네. 사문四門의 병사들은 갑자기 피곤해지고 사왕四王이 건척揵陟273)의 네 발을 받들어, 8일 밤에 성을 넘으니 팔부八部274)가 태자의 팔난八難275)을 옹위하도다. 석범釋梵(제석)이 수레 덮개를 잡으니 궁인들이 깨달을 수 없고, 기이한 인연으로 앞서 인도하니 그 은애恩愛를 따라가 얽을 수 없도다. 성을 나가서는 제천諸天이 사라졌도다.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四兵頓疲宮門靜  사문의 병사들이 지쳐 궁문이 고요하니
釋梵執盖作護從  석범이 덮개를 잡아 호종이 되고
四王奉持飛揵馬  사왕이 받들어 건척을 날게 하여
踰城八夜八部擁  8일 밤에 성을 넘으니 팔부가 옹위하네

나무 운운.
설산에 가서 고요한 숲에 이르러, 칼을 휘둘러 검은 머리 삭발하니 탑이 천궁에서 일어나고,276) 곤룡포를 가죽옷으로 바꿔 입으니 모습이 산의 노루 같아라. 두루 선인들을 찾아가 도법을 물으며 용굴277)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결국 해탈하지 못하고, 연하連河278)에 가기도 했으나 홀로 정려靜慮279)를 구하게 되었네. 날마다 마름을 먹으니 모습이 고목처럼 되고 밤에는 수화水火를 끊으니 목숨이 실낱같구나. 끝내 죽을 받아 드시고280) 대도를 이루게 되도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徃至雪山屆靜林  설산에 가서 고요한 숲에 이르러
揮刀落髮誓弘深  칼로 삭발하고 깊은 서원 세워서
遍詣衆仙非究竟  두루 선인들 찾아가나 결국 아니니
欲求大道覔吾心  대도를 구하려면 내 마음 찾으라

나무 운운.

012_0725_b_01L是四生之業患厭而遠之佛子元是佛
012_0725_b_02L陀之眞諦追而學之百千妓樂徒增
012_0725_b_03L悲憂一念妙道莫奪初心四門遊觀
012_0725_b_04L是我本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
012_0725_b_05L四門第觀四山相老死病生眞可愁
012_0725_b_06L後沙門淸淨法百千妓樂徒增悲南無
012_0725_b_07L云云澡淨 [84] 天子以驚覺彰妓女之醜容
012_0725_b_08L淨居天人以捧持躍車匿而嚴駕四兵
012_0725_b_09L頓疲四王奉揵陟之四足八夜踰城
012_0725_b_10L八部擁太子之八難釋梵執盖宮屬莫
012_0725_b_11L能覺知奇緣先導恩愛莫敢追絆
012_0725_b_12L城旣畢諸天忽隱踰城出家相是我
012_0725_b_13L本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四兵頓疲
012_0725_b_14L宮門靜釋梵執盖作護從四王奉持飛
012_0725_b_15L揵馬踰城八夜八部擁南無云云
012_0725_b_16L至雪山屆閑靜林揮寶刀而落紺髮
012_0725_b_17L塔起天宮將衮服以貿皮衣形叅山鹿
012_0725_b_18L遍詣衆仙歷問道法或入龍窟竟非
012_0725_b_19L解脫或徃蓮 [85] 獨求靜慮日食麻菱
012_0725_b_20L形如枯木夜絕水火命如懸絲終受
012_0725_b_21L [86] 方成大道雪山修道相是我本
012_0725_b_22L師釋迦牟尼佛唯願云云徃至雪山屆
012_0725_b_23L靜林揮刀落髮誓弘深遍詣衆仙非究
012_0725_b_24L欲求大道覔吾心南無云云欲求

012_0725_c_01L
궁극에 이르길 구하려고 총목방叢木房281)을 방문하시고, 수승한 체體를 얻고자 홀로 보리수 아래 나아가셨네. 해탈문에 들어감에 삿된 마귀의 장애가 없더라도 금강보좌 위에 앉음에 파순波旬282)의 훼방이 있구나. 자비력을 일으켜 움직이니 80억 무리가 곧장 낙담하고, 정심定心으로 들어가 편히 앉으니 10종의 마궁魔宮이 홀연 무너지도다.283) 연꽃이 물에서 솟아나듯 찬란함이 없는 곳 없고, 밝은 달(桂月)이 공중에 걸린 듯 광명이 빛나도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菩提樹下金剛座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에서
意外波旬試道情  뜻밖에 파순이 도의 실정을 시험하나
慈力泰然心不動  자비력으로 태연히 마음에 동요 없어
魔宮傾覆法王平  마궁이 무너지고 법왕은 평안하도다

나무 운운.
7일 동안 사유하여 범천梵天의 청을 받았고 십신十身284)이 원만하니 그림자와 메아리의 근기로 응당 공양 받네. 문득 화엄을 설하시니 작은 근기로 자리에서 듣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고, 물러나 아함을 펼치시어 자리에서 물러나 참석하지 못한 하열下劣한 이들도 인도하시네. 방등경方等經285)과 반야경般若經286)은 교화 형식(化儀)의 점법漸法이요, 『원각경』과 『법화경』은 근기를 따르는 돈교頓敎로다. 삼승의 방편을 마치니 일승一乘의 실지가 원만하도다.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自古鹿林演說場  예로부터 녹림은 연설하던 장이라
甘言苦口日何長  달콤한 말과 쓰디쓴 말을 날마다 길게
四十餘年方便法  사십여 년 동안 펼쳤던 방편의 법은
機儀盡是渡衆生  근기와 형식이 모두 중생 구제에 있네

나무 운운.
교화 인연을 마치고 열반의 때가 이르니, 유루有漏287)의 세계 버리고 무상한 이치 보이셨네. 구시라성拘尸羅城288)에 가서 사라수沙羅樹289) 사이로 들어가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일진一眞의 본성을 회복하시려고 서쪽으로 얼굴을 향해 입적하여 삼매의 문에 유희하시도다. 일월이 떨어지고 천지가 엎어지는 듯한데, 7일 동안 금관金棺에 가려서도 여전히 다비의 법칙을 기다리고,290) 두 발의 뒤꿈치(玉趺)를 보이시어291) 정법正法의 안장眼藏292)을 부촉하셨다네.

012_0725_c_01L臻極委訪叢木房中爲得勝體獨詣
012_0725_c_02L菩提樹下解脫門中雖無邪魔之罣碍
012_0725_c_03L金剛座上猶有波旬之阻戱起慈力而
012_0725_c_04L運動八十億衆直下落膽入定心而
012_0725_c_05L安座十種魔宮忽地傾覆類蓮花而
012_0725_c_06L出水赫煥無方若桂月之懸空光明
012_0725_c_07L洞徹樹下降魔相是我本師釋迦牟尼
012_0725_c_08L唯願云云菩提樹下金剛座意外
012_0725_c_09L波旬試道情慈力泰然心不動魔宮傾
012_0725_c_10L覆法王平南無云云七日思唯旣受
012_0725_c_11L梵天之請十身圓滿應供影響之機
012_0725_c_12L頓說華嚴堪嗟小機之在座不聞退演
012_0725_c_13L阿含引道下劣之退席不叅方等般若
012_0725_c_14L卽化儀之漸法圓覺法華乃隨機之頓
012_0725_c_15L三乘方便旣畢一乘實地圓滿鹿
012_0725_c_16L苑轉法相是我本師釋迦牟尼佛唯願
012_0725_c_17L云云自古鹿林演說場甘言苦口日何
012_0725_c_18L四十餘年方便法機儀盡是渡衆生
012_0725_c_19L南無云云化緣旣畢湼槃時至捨有
012_0725_c_20L漏之界示無常之義徃拘尸羅城
012_0725_c_21L沙羅樹間北首而卧將復一眞之性
012_0725_c_22L西面而化遊戱三昧之門猶日月之墜
012_0725_c_23L若天地傾覆掩七日之金棺猶待
012_0725_c_24L茶毘之軌則示雙足之玉趺必付正法

012_0726_a_01L
쌍림열반상雙林湼槃相은 우리 본사本師 석가모니불이라네. 오직 바라건대 운운.

四雙八隻鶴林間  네 쌍 여덟 그루의 사라수 사이에서
首北面西般湼槃  머리는 북으로 얼굴은 서로 반열반에 드시니
一眞心性無傳處  일진의 심성을 전할 곳 없어
强掩麽城七日關  억지로 마성을 7일 동안 잠갔네
기로소 원당 성수전 창건에 대한 상언임인년(1902) 10월 상경하여 머물다가 계묘년(1903) 6월에 상언함. 당시 사실은 따로 기록해 두었다.(耆老所願堂聖壽殿剏建事上言狀壬寅十月日上京留連。至癸卯六月日。上其時事實在別錄中。)
전라도 승주군 송광사 신승臣僧 보정寶鼎은 목욕재계하고 백배百拜하며 기로소 존엄尊嚴 아래 삼가 상언上言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하늘의 해가 비추고 지혜의 구름이 덮듯이 획하劃下의 덕과 성수전 건립의 처분을 넉넉히 받으니, 사체事體가 중대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옵는데 본소本所(기로소)의 감칙甘飭293)과 탁지부(度部)의 훈척訓尺(증명서)이 본군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침 체임遞任294)과 맞물려서 세 번이나 늦어진 후에 단지 가까운 면面에서 징수하기 어려운 가결전加結錢295)으로 분배하여 출첩出帖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체거遞去296)하옵거니와 감독(監蕫)은 또 어찌할 수 없습니다. 막중한 성수전의 일로 획하한 금전에 대해 어찌 이처럼 심상한 조치를 용납하겠사옵니까? 또한 기와로 말하자면 요즘 장마와 무더위로 물과 흙이 인몰되어 기와 굽기가 극히 어려운 까닭에 가까운 지역을 면밀하게 탐색하니, 흥양군興陽郡 여도진呂島鎭 낙안군樂安郡 선소창船所倉297)과 본군 북창北倉에서 매년 탈락하고 남은 것들에 대해 상세히 조사하여 기록하여 올리오며, 새로 성수전 세우는 택일기擇日記298)를 정선하여 올립니다.
엎드려 빌건대, 지성至聖(임금)께서 살피신 후에 위의 획하 금액의 독봉督捧299)과 세 곳의 목재와 기와를 허락하신 것에 대해 특별히 처분하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012_0726_a_01L之眼藏雙林湼槃相是我本師釋迦牟
012_0726_a_02L尼佛唯願云云四雙八隻鶴林間
012_0726_a_03L北面西般湼槃一眞心性無傳處强掩
012_0726_a_04L [87] 城七日關

012_0726_a_05L

012_0726_a_06L耆老所願堂聖壽殿剏建事上言狀
012_0726_a_07L壬寅十月日上京留連至癸卯六月
上其時事實在別錄中

012_0726_a_08L
某道某郡某寺臣僧寶鼎齋浴百拜
012_0726_a_09L上言于耆老所尊嚴之下伏以天日之
012_0726_a_10L所照慧雲之所覆優蒙劃下之德
012_0726_a_11L殿之處分事體莫不重大故尅日蕫役
012_0726_a_12L是白齊本所甘飭果度部訓尺卽到付
012_0726_a_13L本郡則適値遞任是如三次靳遲後
012_0726_a_14L只以近面加結錢難捧者分排出帖是
012_0726_a_15L乎遣卽爲遞去是乎所監蕫亦莫可奈
012_0726_a_16L何是白如乎莫重聖殿之役劃下之錢
012_0726_a_17L寧容若是尋常擧措是白乎旀且以瓦
012_0726_a_18L子言之方今潦炎水土湮沒陶瓦極
012_0726_a_19L難故備探近地爲乎尼興陽郡呂島鎭
012_0726_a_20L樂安郡船所倉本郡北倉逐年脫落
012_0726_a_21L所餘者詳査錄不是乎旀新建聖壽殿
012_0726_a_22L擇日記精選賚上伏乞至聖垂察敎是
012_0726_a_23L上項劃下錢督捧事三處材瓦
012_0726_a_24L許事件特爲處分敎是乎乙喩冒死伏

012_0726_b_01L죽음을 무릅쓰고 엎드려 아뢰오며, 택일기는 또한 지명至明(임금)께서 밝히 살피시고 출척黜陟300)의 가부를 처분해 주시기를 다시 기다리옵나이다. 간절한 기도와 지극한 정성을 감당하지 못하며 천만 번 천만 번 바라옵나이다.
광무 6년(1902) 7월.
비제批題 : 새로 세우는 일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땅히 각 부서에 감칙甘飭하여 속히 일을 마치도록 할 것. 6월 24일 어보御寶 날인.
또 상량문과 액호, 예폐301)에 대한 상언(又樑文額號禮幣事上言狀)
전라도 승주군 송광사 신승臣僧 보정寶鼎이 목욕재계하고 백배하며 기로소 존엄 아래 삼가 상언합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우리 대황제 폐하께서는 덕이 삼조三朝에 부합하고 교화가 만방에 넘칩니다. 성수聖壽가 육십을 바라보는 처음(51세)에 어가御駕가 오색구름을 헤치고 기로소(耆社)에 들어가셨습니다. 어가를 여러 음악이 감싸고 예연禮宴을 펼치니 실로 5백 년 이래 드문 성대한 행사이며, 진실로 삼천리 태평 제국입니다. 특별히 도신道臣(관찰사)에게 성수전을 본사에 새로 세우라고 명하시니 사체가 중하여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여 이미 절반은 지났사옵나이다. 무릇 상량이라 일컫는 때에 상량문을 찬술하여 적는 것과 금은ㆍ옥백玉帛302)의 예단은 덕을 기리고 폐백을 바치는 규범이니, 사연을 들어 죽음을 무릅쓰고 우러러 아룁니다.
엎드려 빌건대, 지성至聖께서 살피신 후에 성수전 상량문 찬술과 액호를 짓는 과역을 특별히 허락하여 내려 주시옵고, 예단 폐물을 넉넉히 더하여 처분하여 주시는 등 황공한 연유에 대해 저는 처분이 어떠하실지 알지 못하옵나이다. 간절한 기도를 감당하지 못하옵나이다.
광무 7년 계묘년(1903) 7월.
비제批題 : 마땅히 처분이 있을 것. 내탕고內帑庫에서 홍공단紅貢緞 1필을 내 주고,

012_0726_b_01L望爲白乎旀擇日記亦至明照察
012_0726_b_02L陟可否更俟處分之地無任懇禱至
012_0726_b_03L誠千萬千萬光武六年癸卯七月日
012_0726_b_04L新建之役不可不念當甘飭各
012_0726_b_05L部矣不日竣役向事六月二十四日
012_0726_b_06L着寶

012_0726_b_07L

012_0726_b_08L又樑文額號禮幣事上言狀

012_0726_b_09L
某道某郡某寺臣僧寶鼎齋沐百拜
012_0726_b_10L上言于耆老所尊嚴之下恭唯我大皇
012_0726_b_11L帝陛下德配三朝化溢萬方聖壽望
012_0726_b_12L六之初御駕披五雲而入耆社金輦
012_0726_b_13L擁衆樂而設禮宴實五百年罕有之晟
012_0726_b_14L寔三千里太平之帝國特命道臣
012_0726_b_15L新建聖殿於本寺事體旣重尅日蕫役
012_0726_b_16L剏已過半是白如乎凡稱上樑之時
012_0726_b_17L文記述之撰寫金銀玉帛之禮單卽頌
012_0726_b_18L德獻幣之䂓矩敢擧事緣冒死仰達
012_0726_b_19L伏乞至聖照鑑敎是後聖壽殿樑文記
012_0726_b_20L額號撰寫課役特爲許賜爲白乎旀
012_0726_b_21L禮單幣物優加處分敎是乎等惶恐緣
012_0726_b_22L由事伏未知處分如何敎是乎喩無任
012_0726_b_23L懇禱之地光武七年癸卯七月日批題
012_0726_b_24L當有處分向事內下紅工 [88] 縀一疋寫樑

012_0726_c_01L상량문과 액호 6자는 윤용선尹容善303)이 짓고 이순익李淳翼304)이 쓰라고 칙하勅下한다. 수자水字 은화 3원과 엽전 2백 냥.
풍암305) 조사의 부도를 비전에 봉안하는 기문정사년(1917) 가을(楓嵓祖師浮屠奉安碑殿記丁巳秋)
물에는 근원이 있어 유장하게 흐르고,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어 지체가 움직인다.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얻고 지체를 인하여 혈맥을 움직이는 것은 상세하게 볼 수 있다. 근원을 막고 흐름을 구하며 혈맥을 끊고 지체를 잇는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
지금 조계산의 불조佛祖 원류는 유래하는 바가 있다. 33세世 아래이자 5종파의 위로서306) 다른 산(종파)에 대해서는 족히 논할 만한 게 없는 것 같고, 임제臨濟의 아래이자 태고太古의 후예로서307) 다른 사찰과 매우 다르다. 특수한 것으로는 태고의 6세손으로 부용芙蓉(영관靈觀)이 있고 부용의 아래에 청허淸虛와 부휴浮休 두 가지가 있어서 각기 종풍宗風을 퍼뜨렸다. 부휴의 아래 적손嫡孫들이 등불을 이어 끊이지 않았는데 유독 조계산이 가장 성대하다. 그래서 이에 돌을 다듬고 묘소를 쌓아 비석을 세우거나 비명을 새기니, 부휴와 벽암碧嵓, 취미翠微, 백암栢庵, 무용無用, 영해影海, 풍암楓嵓, 묵암默庵, 환해幻海308)이다. 9탑을 차례로 세우니 진주를 이음에 차례 있음과 같고, 주변 계파의 나열은 흩어진 별들이 가지런하지 않음과 같다. 어찌 공경히 감탄하지 않겠는가.
지난 건륭乾隆 연간309)에 묵암默庵 화상의 동생인 벽담碧潭310) 대사가 거짓된 청오靑烏311) 비결에 미혹하여 풍암 조사의 탑을 보조普照(감로탑)의 서북쪽(乾) 모퉁이로 옮겼다. 벽담이 왼쪽이 되고 회계會溪312)가 오른쪽이 되니, 풍암 노숙이 보처補處313)의 소목昭穆314)을 얻는다 한들 머리와 발의 바른 혈맥의 차례를 잃어버림은 어찌할 것인가. 근원을 막고 흐름을 구하며 혈맥을 끊고 지체를 잇는다 하리니, 영원하길 구하나 어찌 가능하겠는가. 하물며 무신년(1908) 병화4월 8일에 일본인 안정安正이 불을 질렀다.에 두 암자315)가 혹독하게 화재 변란을 당하여

012_0726_c_01L文額號六字勅下尹容善撰李淳翼書
012_0726_c_02L水字銀貨三元葉錢二百兩

012_0726_c_03L

012_0726_c_04L楓嵓祖師浮屠奉安碑殿記丁巳秋

012_0726_c_05L
水有源而流長人有脉而枝動沂流得
012_0726_c_06L因枝運脉者見之詳矣塞源求流
012_0726_c_07L斷脉連枝者未得聞也今曹溪佛祖源
012_0726_c_08L有所自來卅三之下五派之上
012_0726_c_09L若於他山無足可論而臨濟之下
012_0726_c_10L古之後逈異諸刹有其特殊者卽太
012_0726_c_11L古六世有芙蓉蓉之下有淸虛浮休
012_0726_c_12L兩枝各播宗風而唯浮休之下嫡孫
012_0726_c_13L燈不絕者獨曹溪最盛也故玆攻石而
012_0726_c_14L封塚或樹碑而勒銘曰浮休碧嵓翠微
012_0726_c_15L栢庵無用影海楓嵓默庵幻海也九塔
012_0726_c_16L之第立若聯珠之有序傍派之羅列
012_0726_c_17L如散星之不齊孰無欽嘆哉粤在乾隆
012_0726_c_18L年中默庵和尙之弟碧潭大師惑於
012_0726_c_19L靑烏之誣訣移楓嵓祖塔于普照之乾
012_0726_c_20L碧潭而左之會溪而右之雖使
012_0726_c_21L楓老得補處之昭穆奈失頭足正脉之
012_0726_c_22L位次何也可謂塞源討流斷脉連枝
012_0726_c_23L求欲長遠烏可得也況戊申兵燹
012_0726_c_24L四月十八日
人安正冲火也
兩庵酷遭鬱攸之變一區

012_0727_a_01L보방寶坊(사찰) 전체가 홀연 범과 표범의 굴로 변하고, 세 구의 안탑鴈塔316)이 돌연 여우와 이리의 마당에 서게 되었다. 지난날 벽담 대사의 청오靑烏 면목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아아, 안타깝도다.
대정大正 5년청나라 광서光緖 41년,317) 조선 개국 525년이다. 병진년(1916) 봄에 본사 주지설월 용섭雪月龍燮318)가 의로운 일을 시작하자 대중이 모두 즐거워하였다. 같은 해 4월 8일에 풍암 조사의 탑을 옮겨 비전碑殿 본좌本座에 봉안하였다. 영해影海 부친이 그 머리를 잇고 묵암默庵 후손이 그 발을 계승하니, 저 깨진 거울이 다시 합하고 이지러진 달이 다시 둥글어짐이다. 진주가 합포合浦로 돌아오니319) 진주가 어찌 합포를 떠났겠는가. 부처님이 보리도량을 떠났겠는가. 부처님이 보리도량에 항상 머묾이 정녕 좋은 증거가 된다. 우리 조사의 탑은 비전碑殿을 떠나지 않았다. 이미 보조普照(의 가문)에 올라 보조를 떠나지 않고 항상 비전에 머문다.
불조佛祖의 동정을 어찌 감히 색상의 왕복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일이 혹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전말을 기록하여 보임으로써 혈맥을 끊고 지체를 이으려는 무리들에게 훈계하여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구하고 겁석劫石320)의 시간에 진주를 이어 사찰(松門)이 영원히 평온하게 하길 바라노라. 오직 우리 조계산 후손(雲孫)들은 벽암 대사의 미혹과 설월 선사의 의로움에 대해 능히 비난과 칭찬으로 점검함이 있을 것인가.
『조선불교약사』를 읽은 감상을 논함권퇴경321)이 서술한 책정사년(1917) 겨울(讀佛敎畧史感想論權退耕所述略史丁巳冬)
역사가의 필체(史筆)란 천하의 정령精靈이며 고금의 공론입니다. 하늘에 있으면 별이고 땅에 있으면 산천이며 인간에 있어서는 영특한 기운이 됩니다. 그 기를 받아 터럭을 모으니 혹 터럭 하나의 차이가 있으면 천 년 동안 남을 한이 될까 염려하니 역사가의 필체가 막중하고 큼이 이와 같습니다. 어찌 삼가고 두렵지 않겠습니까.
귀좌貴座322)께서 찬술한 『조선불교약사』 가운데 신라와 고려 고승과 운석韵釋,323) 그리고 삼한 조선(本朝)의 뛰어나고 기이한 자취들이

012_0727_a_01L寶坊忽作虎豹之窟三軀鴈塔突立
012_0727_a_02L狐狸之場昔日碧師靑烏之面目果安
012_0727_a_03L在者乎嗚嗚嘻嘻大正五年淸光緖四十
一年鮮開國
012_0727_a_04L五百廿
五年也
丙辰春本住持雪月
龍燮
倡儀 [89] 大衆
012_0727_a_05L咸悦同四月八日運楓嵓祖塔安碑
012_0727_a_06L殿本座影父繼其頭默孫承其足
012_0727_a_07L彼破鏡復合缺月重圓珠還合浦
012_0727_a_08L何離於合浦佛離菩提場佛恒住於
012_0727_a_09L菩提場者正爲良證也吾祖之塔
012_0727_a_10L離碑殿已昇普照不離普照常住碑
012_0727_a_11L殿佛祖之動靜安敢以色相往復測度
012_0727_a_12L也哉然而事或不然錄示顚末戒其
012_0727_a_13L斷脉連枝之徒庶圖沂流討源聯珠
012_0727_a_14L刼石永鎭松門唯我曹溪雲孫至於
012_0727_a_15L碧師之惑誣雪公之倡義也能有毁讃
012_0727_a_16L而檢點也麽

012_0727_a_17L

012_0727_a_18L• 讀佛敎畧史感想論權退耕所
述略史
丁巳冬

012_0727_a_19L
夫史筆者天下之精靈古今之公論也
012_0727_a_20L在天爲星辰在地爲岳瀆在人爲英特
012_0727_a_21L之氣受其氣而蔟毫或有一髮之差
012_0727_a_22L慮遺千載之恨史筆之重且大若此
012_0727_a_23L不愼且畏哉貴座所撰畧史中羅麗
012_0727_a_24L之高僧韵釋三韓本朝之勝賞異蹟

012_0727_b_01L찬란하고 분명하며 숨고 흩어진 것들을 수습하여, 요충지(關坊)에 요점을 모으고 네거리에 드러내어 게시하였으니, 그 신이하고 정령精靈함은 아름다움을 후세에 남길 공론이 되기에 적합합니다. 한 가지 작은 안타까움이 있다면 조계산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모은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을 완성한 장소에 대해 주소를 기재하지 않았고, 구곡龜谷324) 조사의 설화를 운운하면서 또한 주소를325)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인명고人名考 가운데 보조普照의 성姓을 조趙326)라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약사’의 명칭은 이로 말미암아 얻은 것입니까. 간략히 할 만한 것을 간략히 함은 괜찮지만 간략히 할 수 없는 것을 간략히 함은 어찌 천고에 한을 남김이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건대, 우주宇宙 옹翁의 창간 화설話說화설만 간행하고 송설頌說은 간행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초판이다.의 일에 주소를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미천자彌天子의 향산香山 설화화설과 송설을 합친 이름이다. 설화를 아울러 간행했으니 이것은 재판이다.의 간행327)에 우주 옹 화설의 옛 기록은 싣지 않았습니다. 설파雪坡328) 노스님의 대경大經 사업에 백암栢庵 노스님이 신주神州329) 바다에 떠돌았던 큰 인연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소은과華嚴經疏隱科』330)의 사업에 회암晦庵331) 노스님이 창안하여 기록했던 선線을 매몰하였습니다. 백파白坡332) 노스님이 『대승기신론』을 신간한 사업에는 백암 노스님이 회편會編하여 간행한 업적333)을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백암 노스님의 『치문경훈緇門警訓』 주석 사업에는 태고太古 조사가 유통한 단서를 수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몇 가지 조항들은 이미 학계에서 천고의 한으로 남게 되었으니 엉터리라는 비방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의 고견과 식견으로 구준衢樽334)에 만취하여 세상의 찬란한 문화를 누리고 방외方外의 철학 서적도 만끽하여, 지혜의 칼과 어휘의 창이 긴요한 곳을 유린하고, 쇠를 뽑고 못을 끊을 정도로335) 얼크러진 사이에 지침이 되건만 어찌 알지 못하고 그러하십니까?
필시 번쇄함을 꺼려서 그러한 것이겠지요. 번쇄함을 꺼린다면 아방亞房(선방)으로 돌아가 ‘무無’ 자字 화두를 들지 않고 서재(書舘)에 앉아 역사가의 필체를 휘둘러

012_0727_b_01L然而明著索隱而收散會要於關坊
012_0727_b_02L揭露於衢肆其神異精靈適足爲流芳
012_0727_b_03L之公論也而至若一髮之所恨者卽曹
012_0727_b_04L溪山眞覺國師所集拈頌成處不載住
012_0727_b_05L龜谷祖師說話述云亦不明住所
012_0727_b_06L人名考中普照姓趙云者何也
012_0727_b_07L史之名由玆而得乎可畧而畧之可
012_0727_b_08L不可畧而畧之那無遺恨於千古耶
012_0727_b_09L窃惟宇宙翁之創刊話說但刊話說未刊
頌說此初刊也

012_0727_b_10L不明住所也彌天子之香山說話
012_0727_b_11L話說頌說合名說話
并刊此卽二刊也
之刊不載宇宙翁話
012_0727_b_12L說之舊錄也雪坡翁之大經之役不載
012_0727_b_13L栢庵老神州海泊之大緣起也又述華
012_0727_b_14L嚴隱科之役昧沒晦庵翁創錄之線也
012_0727_b_15L白坡老之新刊起信之役不載栢庵翁
012_0727_b_16L會編剞劂之績也栢庵老之註警訓之
012_0727_b_17L不收太古祖流通之緖也此數條者
012_0727_b_18L旣遺學家千古之恨而不欲負杜撰之
012_0727_b_19L誚而得乎以師之高見宏識滿醉衢樽
012_0727_b_20L旣飫域中之文華飽采方外之哲牘
012_0727_b_21L智釰詞鋒遊刃於肎綮之處拔鐵截釘
012_0727_b_22L指針於盤錯之間也豈不知而然哉
012_0727_b_23L憚煩而然矣旣云憚煩何不歸亞房
012_0727_b_24L觀無字而坐書舘揮史筆自買宇宙彌

012_0727_c_01L스스로 ‘우주옹ㆍ미천자’ 등의 엉터리 이름을 사십니까. 아아, 천은자天隱子336)가 말하길, “승국勝國337) 진각眞覺 대사가 큰 지식으로 불일佛日(지눌) 노스님의 밀전密傳을 얻어 12부部로 시작하여 제가잡기諸家襍記로 마무리하여, 도원道原338)의 『경덕전등록景德傳登錄』에 맞서 한 편을 집성하여 ‘염송拈頌’이라 명명하였고, 책이 이루어지자 구곡 각운龜谷覺雲에게 전하고, 각운이 받아서는 바로 간행하여 배포했다고 했습니다. 우주 옹은 말하길, 해동 조계산 진각 대사가 여러 기록을 탈취(獵取)하여 『전등록』에 맞서 『염송』을 집성하여 각운에게 전하였고, 각운이 조계산 수선사修禪社에서 명을 받들어 3년 동안 입원入院339)하고 7일 동안 엄관掩關340)하여 찬란하고 명확하게 이것을 베꼈는데, 기록하는 때에 붓끝에서 오색 사리가 빗방울 떨어지듯 하였으니 인간의 기술로 이룬 것이 아닐 정도였고, 인천人天의 인물들에게 명하여 간행하여 배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몇 줄의 글이 어찌 번거롭게 역사서의 분량을 늘리겠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간략히 하였으니 ‘약사’라는 명칭은 『염송설화』가 이루어진 곳에만 해당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정鄭씨를 조趙씨로 바꾼 것은 혹 교정할 겨를이 없었다 할지라도 또한 뒤에 교정을 해서 따르는 것이 옳은데 끝내 그러함이 없는 것은 왜입니까.
나의 관견으로 그저 한곳에 여러 의혹이 있으니 하물며 일부 역사서에 의혹되는 부분이 필시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노쇠하고 천박한 놈으로 어찌 대방大方(위인)의 글(寶唾)341)을 입에 올리겠습니까. 그저 제 문중의 여한에 의혹이 있고 또한 근고近古의 여타 의혹을 인용하여 공론의 작은 흠집을 면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갈등을 주목하실 수 있겠습니까.
『수선지』 서문신묘년(1891) 봄에 시작하여 정사년(1917) 겨울에 초고를 마쳤다.(修禪誌序辛卯春作至丁巳冬草)
‘수선修禪’으로 지誌의 이름을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개당開堂342)한 처음에 보조실普照室에서 머물렀는데 하루는 불사佛事 때문에 당사堂司343)에 가서 오래되고 진귀한 물건들을 살폈다.

012_0727_c_01L天等之杜撰之名哉噫噫天隱子云
012_0727_c_02L勝國眞覺大師以大知識獲佛日老
012_0727_c_03L之密傳始於十二部終以諸家襍記
012_0727_c_04L對道源 [90] 傳燈錄集成一編命曰拈頌
012_0727_c_05L書成傳之龜谷覺雲雲受而旋卽刊布
012_0727_c_06L云云宇宙翁云海東曹溪山眞覺大師
012_0727_c_07L獵取諸錄對傳燈而集成拈頌傳於覺
012_0727_c_08L雲奉命于曹溪修禪社入院三年
012_0727_c_09L掩關七日粲然明著寫斯記時筆端
012_0727_c_10L五色舍利落如雨點殆非人巧之所成
012_0727_c_11L命人天公鋟刊傳流云云此數行文
012_0727_c_12L何煩於一部史篇之多而如是畧之
012_0727_c_13L略史之名獨專於拈頌話說成處也
012_0727_c_14L以鄭易趙容或校證之未遑而亦從後
012_0727_c_15L證誤可也終無其然何也以吾管見
012_0727_c_16L只有一處多感 [91] 而況一部史中所感 [92]
012_0727_c_17L必不無者乎余以衰頽陋漢安敢掛舌
012_0727_c_18L於大方之寶唾也只感私門之遺恨
012_0727_c_19L引近古之餘感庶免公論之微玷也
012_0727_c_20L是葛藤能有着眼麽

012_0727_c_21L

012_0727_c_22L修禪誌序辛卯春作至丁巳冬草

012_0727_c_23L
以修禪而名誌者余開堂之初
012_0727_c_24L於普照室中一日仍佛事抵堂司閱古

012_0728_a_01L파손된 책들이 먼지 덮인 함에 매몰되고 글자는 좀이 먹어 불쏘시개에 가까웠다. 조용히 수습하여 삼가 펼쳐 보니 윤음綸音과 『수선사창명修禪社創銘』이었다. 나도 몰래 책을 덮고 탄식하였다. “이것은 (보조)국사(國老)께서 장정하여 보배로 간직한 물건이 아닌가. 천 년이 되지 않아 온통 폐물 형색이 되어 버렸구나. 머리 깎은 내가 어찌 보수하여 길이 전해지도록 하지 않겠는가.”
즉시 종이를 잘라 책을 만들어 한 축軸을 선사繕寫344)하여 봉안하고 ‘수선’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사원비嗣院碑345)와 사찰 안에 달린 상량문이나 기記 등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후에 참고가 될 만한 것들을 뽑아 필사하였다. 이것이 『수선지』를 지은 까닭이다.
그리고 당사堂司에 전하여 책함에 진중히 두라고 한 뜻이 어찌 그저 그렇겠는가. 천 년 긴 세월 후에 이 책을 펼쳐 보는 이는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리라. 또한 지금 사람이 옛날을 보는 것과 같으리라. 이어서 기록하고 보충하고 다듬으니 이 『수선지』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노라. 오직 펼쳐 읽는 이들은 책 이름의 뜻을 본받아서 제작한 업적을 추모하고 착안하여 힘쓰시라.
백양산의 청장346)을 사양하는 글정사년(1917) 8월 25일(謝白羊山請狀書丁巳八月二十五日)
지난번 옥엽玉葉(옆서)이 진토에 날아 떨어졌는데 답례를 하지 못했고 하물며 경함瓊凾(편지)이 가을 소리를 띠고 도착하니, 더욱 절실히 송구합니다. 다시 편지를 통해, 단풍과 국화가 선명함을 다투는 때에 영체領軆347)가 편안하심을 알게 되니 우러러 절절히 축하드립니다.
공경히 답장하는 것은 귀 강원講院으로 초빙한다는 말씀으로, 총애하여 부르시는 행복을 입었으나 어찌 높으신 기대의 뜻에 부합하겠습니까. 다만 5백 금을 소비하여 죽은 말의 뼈를 사고자 하는 것이니 마땅히 천리마가 스스로 올 것입니다.348) 바라건대 높으신 기대를 멈추시어 이 졸렬한 형상으로 하여금 (진흙) 길에서 꼬리를 끌며349)

012_0728_a_01L物異珍有殘1) [17] 破帙埋沒塵櫝蠧蝕
012_0728_a_02L字損幾乎紙燼之物窃收而愼展之
012_0728_a_03L卽綸音與修禪社創銘也不覺掩*券而
012_0728_a_04L歎曰此無乃國老之粧䊣而寶藏之物
012_0728_a_05L未及千齡渾爲廢物之形色也
012_0728_a_06L吾禿頭者盍無修補永壽哉卽斫楮成
012_0728_a_07L繕寫一𨋀而安名修禪繼以嗣院
012_0728_a_08L碑及寺內所懸樑與記無論巨細可爲
012_0728_a_09L後考者抄而筆之此修禪誌之所以
012_0728_a_10L作也且傳堂司鎭書樻者意豈徒然乎
012_0728_a_11L以爲千載浩刼展*券讀此者知余
012_0728_a_12L心之所在而亦如今視昔繼而錄之
012_0728_a_13L補以修之庶幾此誌之不泯也唯展讀
012_0728_a_14L諸君倘軆名誌之意追慕粧䊣之績
012_0728_a_15L着眼而勉旃

012_0728_a_16L

012_0728_a_17L• 謝白羊山請狀書丁巳八月二十五日

012_0728_a_18L
曩者玉葉飛落塵界而旣無酬答之禮
012_0728_a_19L而況復瓊凾信帶秋聲而至者乎益切
012_0728_a_20L悚悶也更憑審楓菊爭鮮領軆上萬甯
012_0728_a_21L仰祝切切敬復者貴講院雇騁 [93] 之敎
012_0728_a_22L荷寵招之幸而安副高望之意哉但費
012_0728_a_23L五百金而欲買死馬骨當有千里馬自
012_0728_a_24L來矣幸休高望俾此拙狀曳尾於途

012_0728_b_01L천 년을 마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만 번 바라고 만 번 바라옵니다.
김환경350) 영가 추도식 축문정사년(1917) 8월 28일(金喚鯨靈駕追悼式祝丁巳八月二十八日)
유세차, 오호 슬프도다. 이전에 빼어났던 신령스런 싹이 사바세계에 떨어져 먼지 가운데 있어도 물들지 않아, 동진출가童眞出家하여 손으로 각수覺樹(보리수)를 붙잡고 입으로 우담바라를 씹으며 일찌감치 법문의 깃발을 세웠고 거듭 교망敎網의 벼리를 떨치고 법주法主의 지위에 올라 상빈上賓351)의 명성으로 칭해졌습니다.
아아, 애통하도다. 갑자기 무상한 이치를 만나 유한한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워지니,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352)라는 한탄을 하기도 하고 시력을 잃는 아픔353)을 겪기도 했습니다. 선문禪門의 주춧돌이 갑자기 무너지고 교해敎海의 아름다운 배가 홀연 침몰하니 사제지간에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슬퍼하며 영결의 감동으로 추모합니다.
이에 이포伊蒲354)의 상념으로 삼가 다과와 청작淸酌(술)을 갖추니 이러한 정경을 굽어 살피고 흠향하소서.
오 참사355)에게 올리는 편지복천356) 남현에 거주하며 호는 소재이고 자는 호민이다.(上吳叅事書福川南峴號小齋字浩民)
꽃이 피고 잎이 떨어짐은 대지의 절기가 시들고 번영함이요, 파도가 치고 물결이 고요함은 일심 가운데 망상이 일어나고 소멸함입니다. 꽃이 피니 잎이 지는 기일을 생각하지 않고, 파도가 치니 어찌 물결이 고요해지는 날을 알겠습니까. 절기와 망상은 그렇게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그러하며, 반연(緣)하려 하지 않아도 인因하여 반연하게 되니 어찌 피하겠습니까.
지금 빈도貧道는 수 년간 행장(行李)으로 자연히 움직였다가 인연으로 고요해지니 절기의 순환을 몇 번 보았고, 인연으로 피고 자연히 떨어져서 망상이 일어나고 멸함을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절기는 이수理數이고 망상은 무명無明입니다. 무명이 움직임에

012_0728_b_01L以終天年之地萬望萬望

012_0728_b_02L

012_0728_b_03L• 金喚鯨靈駕追悼式祝丁巳八月二
012_0728_b_04L十八日

012_0728_b_05L
維云云嗚呼哀哉宿挺靈芽影落娑
012_0728_b_06L在塵不染童眞出家手攀覺樹
012_0728_b_07L嚼曇花早建法門之幢重振敎網之綱
012_0728_b_08L登法主之位稱上賓之名吁嘻痛哉
012_0728_b_09L忽遭無常之理難保有限之命或有傷 [94]
012_0728_b_10L予之恨或切喪明之痛禪門柱石
012_0728_b_11L而崩摧敎海芳舟忽爾沈墜師資同
012_0728_b_12L物我咸凄敢慕永訣之感玆庸伊
012_0728_b_13L蒲之想謹以茶果之淸酌俯歆情景而
012_0728_b_14L尙饗

012_0728_b_15L

012_0728_b_16L• 上吳叅事書福川南峴號小齋字浩民

012_0728_b_17L
花開葉落大地上節候之枯榮波動浪
012_0728_b_18L一心中妄想之起滅也花開不意葉
012_0728_b_19L落之期波動安知浪靜之日節之候
012_0728_b_20L妄之想也不期然而自然不欲緣而因
012_0728_b_21L烏可免哉今貧道數年間行李
012_0728_b_22L然而動因緣而靜幾見節候之循環
012_0728_b_23L因緣而開自然而落足知妄想之起滅
012_0728_b_24L節候則理數也妄想則無明也無明之

012_0728_c_01L이수의 고요한 바를 누가 감당하겠습니까. 이제 겨우 본지本地에 잎이 지고 자기 마음에 물결이 고요하니 이전처럼 그저 본지풍광本地風光357)이요 헤아리건대(擬然) 역시 자기 마음이 달빛일 따름입니다. 어찌 뛰어나고 기특함이 있겠습니까.
공손히 듣자니, 족하足下의 몸에 비야毘耶의 근심358)을 근래 겪었는데, 불이不二의 즐거움을 아직 말씀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만사萬獅의 행차를 하지 못하고 그저 일개 승려를 통해 편지를 보내니, 예의 없음에 대한 처벌을 특별히 내리시어 불가사의한 가풍을 아끼지 않으심이 어떠십니까. 축원하고 축원합니다. 다시 이로운 약이 되는 게송 하나를 바칩니다.

抹却毘耶示疾圖  비야에서 질병 보인 그림을 지워 버리니
佛瘡祖病一都盧  부처의 종기나 조사의 질병이 도로359)
法華藥草還鈍劣  법화의 약초도 오히려 졸렬할 뿐이니
不是藥者採來無  약이 아닌 것을 캐 오는 것이 어떨지360)
승평군(순천) 조계산 극락교 기문정사년(1917) 7월 7일 개통(昇平郡曹溪山極樂橋記丁巳七月初七日開通)
해륙에서 무거운 것을 운반하고 건너게 해 주는 것으로 배와 차가 있고, 하천에서 허공에 설치하여 건너기 편리하게 하는 것이 교량이다. 운반과 설치의 동정動靜이 다르지만 건너는 공훈은 동일하다. 고금의 고량 가운데 이름을 가진 것을 돌아보니 대략 헤아려 셀 수 있다. 하늘의 오작교는 견우의 약속이고, 지상의 천진교天津橋는 선녀의 흥취이며,361) 천태산의 완화교浣花橋362)는 시인의 흥이고 송악松岳(개성)의 선죽교는 충신의 유감이다. 만리산萬里山의 만석萬石, 월미산月尾山의 노량鷺梁 이외 그 나머지 이름난 하천과 긴 강에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한 것을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예양豫讓이 다리에 숨어 있다가 임금께 보답하고363) 자방子房이 교량에서 노닐면서 스승을 기다리고364) 미생尾生이 교량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고365) 설옹薛翁(원효)은

012_0728_c_01L所動誰堪理數之所靜也今纔葉落於
012_0728_c_02L本地浪靜於自心依前只是本地風光
012_0728_c_03L擬然亦是自心月色而已安有殊勝奇
012_0728_c_04L特也哉恭聞足下體上近嬰毘耶之憂
012_0728_c_05L尙談不二之樂云而自未作萬獅之行
012_0728_c_06L只敢替一闍之郵特賜沒禮義之誅罪
012_0728_c_07L無惜不思議之家風也否祝祝更引利
012_0728_c_08L藥一頌而呈上抹却毘耶示疾圖佛瘡
012_0728_c_09L祖病一都盧法華藥草還鈍劣不是藥
012_0728_c_10L者採來無

012_0728_c_11L

012_0728_c_12L昇平郡曹溪山極樂橋記丁巳七月
012_0728_c_13L初七日開通

012_0728_c_14L
海陸之運重通涉者舟車河川之架空
012_0728_c_15L利濟者橋梁也運架動靜雖殊其涉
012_0728_c_16L濟之功一也俯仰古今橋之所有名者
012_0728_c_17L槩領畧而數矣天之烏鵲橋牽牛之結
012_0728_c_18L約也地之天津橋仙女之寄興也
012_0728_c_19L台浣花橋詩士之發興也松岳善竹橋
012_0728_c_20L忠士之遺感也萬石之於萬里鷺梁之
012_0728_c_21L於月尾其餘名川長河架橋通涉者
012_0728_c_22L不欲枚擧而至若豫讓伏橋而報君
012_0728_c_23L房遊橋而待師尾生坐橋而期友薛翁
012_0728_c_24L「券」疑「卷」{編}次同

012_0729_a_01L교량에서 떨어져 궁宮에 들어갔으니366) 이 모든 것은 이것(교량)에 의탁하여 흥을 부치고 이것에 기대어 공을 세운 것으로 각기 하나의 이치가 존재함이 있다.
다만 이 교량(극락교)은 그 시초를 고찰하자면, 옹정雍正 8년 경술(1730) 봄에 화주化主367) 탁근卓勤이 창설한 것이다. 함풍咸豊 4년 갑인(1854) 가을에 홍수가 나서 무너졌다. 그 후에 나무를 가설하고 흙을 쌓으며 돌을 포개고 판자를 연결하였으나, 건너는 데 어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정大正 6년 병진(1916)368) 가을에 이르러 조계산의 승려 한붕漢朋 공公이 건너기 극히 어려움을 개탄하여 재산을 털어 장인을 불렀고 완성을 고하기에 거의 이르렀는데 장인이 서툴러서 무너지고 말았다. 정사년(1917) 봄에 다시 돌을 모으고 허공에 가설하여 날을 정해 감독을 하였다. 칠석에 이르러 준공하여 개통하고 ‘극락’이라고 명명하였으니, 견우와 선녀의 약속과 흥취를 알고 그 즐거움을 즐긴 것인가, 시흥과 충성심(忠感)으로 즐거운 것인가. 임금께 보답하고 스승을 기다리며 즐거운 것인가, 친구를 기다리고 궁전에 들어가는 즐거움인가. 그 즐거움의 즐거움 되는 까닭을 나는 알지 못한다.
즐거움의 이른바 ‘극락’이라는 것은 즉 연화세계이다. 이 교량에 올라 몇 리를 가면 대승선종大乘禪宗 조계 문중으로 법계장엄 대도량이 호중별계壺中別界369)를 이루었으니, 즉 보림寶林370)의 맑은 바람이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불일佛日과 혜월慧月이 영원토록 비추며, 샘은 달고 수풀은 우거져 진정 수선修禪 득도의 보방寶坊(사찰)이다. 밝은 창과 정갈한 자리(單)에 선의禪衣371)를 여미고 공空을 관觀하며, 바람 부는 아침과 달 뜬 저녁에 석장을 짚고 교량에 나아가면 연화蓮華 고향이 걸음을 들어올리지 않아도 오르게 되고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않아도 앉을 수 있으니, 교량의 명명이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지 않은 것인가. 그리고 봄꽃과 가을 달, 여름 소나무와 겨울 눈 같은 사계절의 변화 모습과 조약돌에 흐르는 물소리와 나는 듯이 흐르는 여울, 무성한 숲과 긴 대나무 등 눈길이 닿는 성색聲色은

012_0729_a_01L墮橋而入宮是皆托此而寄興憑斯而
012_0729_a_02L建功者各有一理存焉但是橋者
012_0729_a_03L其濫觴雍正八年庚戌春化主卓勤之
012_0729_a_04L所剏也咸豊四年甲寅秋洪水漲溢之
012_0729_a_05L所壞者也其後架木培土累石連板
012_0729_a_06L難堪步涉者不待言而記 [95] 得矣迄大正
012_0729_a_07L六年丙辰秋山之釋漢朋公慨步涉之
012_0729_a_08L極艱傾廪招匠幾至吿竣矣爲匠氏
012_0729_a_09L之未巧而壞之丁巳春更以伐石架空
012_0729_a_10L尅日蕫役至七夕日竣工開通芿以
012_0729_a_11L極樂命其名者知牽牛仙女之約與興
012_0729_a_12L而樂其樂耶爲詩興忠感而樂耶報君
012_0729_a_13L待師而樂耶期友入宮之樂耶吾未知
012_0729_a_14L其樂之所以爲樂也盖樂之所謂極樂
012_0729_a_15L卽蓮華世界也登此橋而躋乎數里
012_0729_a_16L大乘禪宗曹溪門內法界莊嚴大道場
012_0729_a_17L自作壺中別界卽寶林之淸風悦可衆
012_0729_a_18L佛日之慧月永歲照臨泉甘林茂
012_0729_a_19L眞修禪得道之寶坊明窓淨單歛禪衣
012_0729_a_20L而觀空風朝月夕携杖錫而臨橋
012_0729_a_21L蓮華故鄕不擡步而躋攀極樂淨土
012_0729_a_22L非往生而坐卧橋之命名在此而不在
012_0729_a_23L彼歟且春花秋月夏松冬雪四時之
012_0729_a_24L變態洴石飛湍茂林脩竹目寓之聲

012_0729_b_01L그저 교량에 가서 올라간 이가 취하기에 달렸을 뿐이다. 어찌 족히 말하리오.
아아, 완성되었다가 무너지고 무너졌다가 완성됨은 조물주가 시기를 많이 함이라. 옛날 흙다리와 판자 다리가 금일 교룡의 허리와 별 무지개처럼 변할 줄 누가 알았으랴. 교량에 오르는 이들은 그 명명한 깊은 뜻을 본받고 흥취와 감동의 허튼 생각을 취하지는 말라.
한붕漢朋 옹翁은 고흥高興 사람이다. 성은 안씨安氏요, 자는 성학聖鶴이다. 성품은 강하고 과감하며 기개는 고한孤閑하고 절개(風節)는 아스라이 높으며, 계정밀행戒定密行372)은 타인이 헤아리기 어렵다. 몸은 사찰(松門)에 붙이고, 마음은 연화세계에 기울였다.난재일기蘭齋日記
정봉 대화상의 입적을 알리는 통장을미년(1895) 3월 8일 입적(正峯大和尙出世通狀乙未三月初八日示寂)
엎드려 듣건대, 널 밖으로 두 발꿈치를 보이시어 불생불멸의 영험한 자취를 분명하게 하시고, 고갯마루에서 신발 한 짝을 끌어373) 가고 옴이 없는 표시를 명백하게 하셨습니다. 소림사에서 면벽하니 9년 동안 아름다운 취향이 많고, 마가다국에서 문을 닫고 7일간 본보기를 보이셨습니다.374) 동방 1만 8천 여래375)의 상서로운 징조를 비추시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서방 33조사의 기이한 자취를 열거하니 어찌 계산하여 알겠습니까. 치미齒眉376)와 족륜足輪377)의 빛을 나툼은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이 경전을 강설할 상서요, 일광과 월륜月輪의 모양이 드러남은 마명馬鳴과 용수龍樹378)가 몸을 드러낼 명칭이었습니다. 또한 빛을 받아 경전을 강설함은 즉 금강장金剛藏379)이 십지十地380)에서도 받기 어려운 예절을 말한 것이고, 나무를 잡고 입적을 보임은 승찬僧璨 스님이 한 구절 부전不傳의 가풍을 보임이라.381) 이 모두는 제불諸佛의 방편 권행權行382)을 본뜬 것(影響)이니 본색 납승衲僧383)의 이성理性과 실사實事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往劫) 깊은 공부의 분수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현재 넓은 지혜의 눈앞만 따르겠습니까.

012_0729_b_01L祇臨登者之管取如許而已何足道
012_0729_b_02L嗚呼成而壞壞而成造物者多猜
012_0729_b_03L誰知昔日土圯板橋變成今日蛟腰星
012_0729_b_04L虹也哉唯登臨諸君能體命名之深趣
012_0729_b_05L莫取興感之浮想焉漢朋翁高興人也
012_0729_b_06L姓安氏字聖鶴性剛果意氣孤閑
012_0729_b_07L節卓逈戒定密行人所難測身托松
012_0729_b_08L心注蓮界云爾蘭齋日記

012_0729_b_09L

012_0729_b_10L正峯大和尙出世通狀乙未三月初
012_0729_b_11L八日示寂

012_0729_b_12L
伏聞示雙趺於槨外不生不滅之靈蹟
012_0729_b_13L昭昭携隻履於嶺頭無去無來之表信
012_0729_b_14L的的少林面壁多是九載之嘉趣
012_0729_b_15L竭掩關乃見七日之楷模照東方萬八
012_0729_b_16L千如來之徵祥其數弗億列西土三十
012_0729_b_17L三祖師之奇蹟何計較知放齒眉足輪
012_0729_b_18L之光文殊普賢說經之普瑞現日光
012_0729_b_19L月輪之相馬鳴龍樹現身之名稱
012_0729_b_20L復蒙光說經卽金剛藏說十地難受之
012_0729_b_21L禮節攀樹示滅是僧璨師示一句不
012_0729_b_22L傳之家風是皆爲影響諸佛之方便權
012_0729_b_23L非宜乎本色衲僧之理性實事然流
012_0729_b_24L出徃刼深工之分上豈從現今廣慧之

012_0729_c_01L비록 세간의 작은 기술이라 하더라도 필시 긴밀하게 연습한 데서 나온 것인데 하물며 형체 바깥의 큰 사물이 소홀히 범상한 뜻에서 말미암겠습니까.
우리 화상은 성이 최씨이고 호는 인찬引璨으로 부휴浮休 큰스님의 적전嫡傳384)이요, 허주虛舟385) 화상의 법제法弟이십니다. 불립문자는 벽안碧眼386)이 종주로 한 바와 크게 같으니, 관여하지 않는 방행放行387)이 조백棗栢388)의 장애 없음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정토 닦음을 업으로 삼아 구품연화대에 태어나길 항상 원했고, 아미타불 뵙기를 기약하여 여섯 자 염불(나무아미타불)을 잊지 않았습니다. 평생 마음 쓴 면목을 알고자 하면 3일 동안 하늘에 뻗친 빛나는 상서를 보면 됩니다.
이제 3월(窉月) 생명生明389) 6일 계명성이 보이는 첫 시각(새벽)에 가벼운 질병을 보이시고는 일어나지 않으시니 색양色養390)을 버리고 입적(歸眞)하여 홀연 순식간에 문을 닫고 문득 하루아침에 면벽을 하였습니다. 감실龕室 속에 두 발꿈치를 거두어 짐짓 불생불멸의 영혼(識靈)을 보이지 않으시고, 방안에 신발 한 짝을 놔 두니 또한 가고 옴이 없는 표시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비의 재의(齋體)를 수행하고 사유闍維391)의 사물을 갖추니, 달은 부상扶桑(동쪽)에 아직 오르지 않았지만 해는 약목若木392)에 이미 잠겼습니다. 이에 두 줄기 상서로운 빛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니 동쪽은 열반의 방이요, 한 줄기 하늘빛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찬란하니 북쪽은 화장(火浴)의 장소입니다. 처음에 오색구름이 영롱하니 문수보살이 광명으로 깨닫게 함(光明覺)393)입니까. 마침내 일곱 줄기로 은은히 비추니 여래께서 모습을 드러냄(現相品)394)이 아닙니까. 백천 일월의 화려한 빛과 같고 억만 천지의 찬란함처럼 황홀합니다. 골짜기가 텅 비니 산새와 들새가 놀라 날아오르고, 일월이 빛을 잃으니 원근의 승려와 일반인(緇素)들이 찬송합니다. 5경(새벽 4시경)에 이르도록 밝게 빛나 목감木龕(나무 상자)에 단정히 앉은 정수리에 들이붓고, 구천九天에 응하여 서려 앉으니 은하수 별들의 형국(體局)을 바로 관통합니다.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3일 밤을 또한 이와 같이 했습니다.

012_0729_c_01L目前雖世間一小技必出於緊梗習性
012_0729_c_02L况形外幾大物自由於率易凡情惟我
012_0729_c_03L和尙崔氏爲姓引璨其號浮休大老
012_0729_c_04L之嫡傳虛舟和尙之法弟也不立文字
012_0729_c_05L大同碧眼之所宗不關放行何殊棗
012_0729_c_06L栢之無碍修淨土爲業常願九品之受
012_0729_c_07L見彌陁爲期不忘六字之念佛
012_0729_c_08L知一生用心之面目就見三日亘天之
012_0729_c_09L璨祥今窉月生明之六日啓明之初刻
012_0729_c_10L示微疾而弗起捐色養而歸眞忽頃刻
012_0729_c_11L而掩關奄一朝而面壁歛雙趺於龕裡
012_0729_c_12L姑不見不生不滅之識靈留隻履於室
012_0729_c_13L亦未知無去無來之表信修茶毘之
012_0729_c_14L齋體偹闍維之物機月未上於扶桑
012_0729_c_15L日已蘸於若木際玆雙髼瑞色自西亘
012_0729_c_16L東是湼槃之室一面天光從南璨
012_0729_c_17L北則火浴之場始五雲以玲瓏
012_0729_c_18L是曼殊之光明覺也終七道而隱映
012_0729_c_19L乃如來之現相品耶猶若百千日月之
012_0729_c_20L輝華怳然億萬乾坤之晃朗洞壑廓徹
012_0729_c_21L山禽野鳥飛驚日月奪光遠近緇素讃
012_0729_c_22L達五更而昭晰湊灌於木龕端坐之
012_0729_c_23L頂門應九天而盤蜿直貫乎銀河列宿
012_0729_c_24L之體局非唯一度乃已如是三宵亦然

012_0730_a_01L대개 이 제불諸佛과 보살의 상서로운 징조는 경전 강설로 인하여 상서를 드러내거니와 조사들과 납승의 기이한 행적은 무엇으로 인하여 자취를 남깁니까. 필시 정토에 태어나는 상서로운 빛이요, 아미타불의 상서로운 색을 본 것입니다.
고금에 드문 위대한 자취이니 어찌 침묵하여 말없이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동지들은 사람에게 고금의 모양이 있다고 고집하지 말고 법에 멀고 가까움이 없다는 논설을 믿어서 즉시 무상한 마음을 펼쳐 대인의 경계에서 유희하고, 속히 유루有漏395)의 처지를 뛰어넘어 본색의 가풍에 소요하시기를 깊이 바랍니다.
『계산시고』 발문溪山詩稿跋文
서생書生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시詩이다. 그래서 옛날 성현이라는 분들은 시로 가사를 지어 감흥을 일으켰다. 솥에 새기고 돌에 새기는 말이 이것 없으면 될 수가 없다. 당송唐宋 이래 여덟 분의 뛰어난 이들396)이 시로써 세상에 유명했는데 유독 이백李白을 더욱 좋아한다. 그 삶은 꽃과 새처럼 근심스레 했고, 그 죽음에 있어 풍월처럼 한가로이 여겼다. 세상에 이름난 이유가 시를 잘 지은 까닭에 있으니, 시가 없을 수 있는가.
나는 시를 잘 짓지 못하고 또한 뛰어난 이들을 사모하지도 못하지만 재주와 시가 유명하지 않음을 한스럽게 여기고 또한 배움이 옛날의 아름다운 지경에 이를 수 없음을 안다. 다만 가르치는 즈음에 학생들이 경전을 보다가 남은 시간에 혹시 빈 간격을 낭비할까 염려되어 그 재능에 따라 문장을 엮어 글을 완성하게 하여 ‘계산시고’라 하였다.
그러나 처음은 있고 끝이 없는 경우가 있고 처음을 파헤쳐 마침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으니, 다만 품부 받은 재능이 어떠한가에 관계될 따름이다. 어찌 내게 관여되겠는가. 옛날 세상에 이름난 이들은 시에 재능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하물며 요즘 세상에 이름난 이들이 이것 없이 가능하겠는가. 혹시 훗날 일이 완성되어 글을 대하여 관람하면

012_0730_a_01L盖此諸佛菩薩徵祥緣說經而現瑞
012_0730_a_02L祖衲僧奇蹟因甚麽而遺蹤必也受生
012_0730_a_03L淨土之祥光獲見彌陁之瑞色罕古今
012_0730_a_04L之景蹟何寢默而寐然願諸同志
012_0730_a_05L執人有古今之相須信法無遐邇之論
012_0730_a_06L卽發無常之心遊戱於大人之境界
012_0730_a_07L超有漏之地逍遙於本色之家風幸甚

012_0730_a_08L

012_0730_a_09L• 溪山詩稿跋文

012_0730_a_10L
書生所以不可無者詩也故古之聖賢
012_0730_a_11L詩以歌詞之興感之銘鼎也勒石也
012_0730_a_12L不能無此而行之自唐宋以下八家諸
012_0730_a_13L以詩鳴於世而獨李白益好之
012_0730_a_14L生也花鳥愁之其死也風月閑之
012_0730_a_15L名世者存乎能詩之所以然者也詩可
012_0730_a_16L無耶余雖不能詩亦莫敢慕聖哲
012_0730_a_17L自恨才與詩之未名亦知學不能逮古
012_0730_a_18L之佳境但於敎授之際使學者看經之
012_0730_a_19L或慮空隙之浪費也隨其才能
012_0730_a_20L習綴成篇曰溪山詩稿然而有有始而
012_0730_a_21L無終者有原始而要終者只管其品賦
012_0730_a_22L之如何也何預於我哉古之名世者
012_0730_a_23L旣以詩之所能况今之名世者無此
012_0730_a_24L而得乎倘功成他日臨編觀覽則或

012_0730_b_01L미간을 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후회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붉히거나 하리라.
이것으로 발문을 쓰니, 서생에게 일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부휴 선조397)임제 26세의 비를 거듭 세우며 지은 비음기398)짓기만 하고 판에 새기지는 않았으니, 송염재399)가 지은 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浮休禪祖臨濟二十六世重立碑陰記但制出而不登榟。以宋念齋所作文用之故也。)
오직 우리 대선사께서는 사바 대천세계에 드러내시어, 황하가 맑아지는400) 5백 년에 응하여 조계의 선종禪宗을 널리 천명하신 진정한 불자佛子이시며, 윤지綸旨의 아름다운 명401)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기둥이셨습니다. 『원각경』의 선천先天에 대해 앞선 인연의402) 금송錦頌403)을 누가 아뢰리오. 수미산의 호겁浩劫(긴 시간)에 현재의 귀부龜趺404)를 깨닫지 못합니다. 속리사 앞에서 깨진 비석을 발견하고 조계산 골짜기에 7길(仞) 비석을 세우려고 합니다.
무오년(1918) 봄에 본사 주지 설월 용섭雪月龍燮이 본사 공금과 사재를 모으고 영ㆍ호남 후손(雲仍)들의 재물을 규합하여 예산 비용 2만 가운데 2천 원圓 가까이 모았습니다. 법화 언덕에서 돌을 캐고 서울 장인에게 빛이 나도록 다듬게 했습니다. 이에 백곡白谷405)의 옛 명銘406)을 활용하여 청구靑丘(조선)의 이름난 붓을 빌리니, 정부의 재정에 의뢰하여 철륜鐵輪의 화장火牆에 솟아오릅니다. 처음 시작함(登程)은 강남 제비 소리를 듣는 좋은 때였는데, 마치고 아룀(上達)은 욕불浴佛407)을 하례하는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전액篆額408)은 살아 있는 듯 오룡五龍의 무늬를 점찍은 듯하고, 게송은 구슬을 엮은 듯 만 곡斛409)의 구슬처럼 찬란합니다. 오직 우리 대중들은 ‘네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無念爾祖)’410)는 구절을 흠모하여 ‘무리가 실로 많도다(寔繁有徒)’411)라는 가르침을 추도합니다.
무오년(1918) 1월 14세손 보정寶鼎이 분향하며 삼가 기록합니다.
밭을 개간하기 위해 터를 닦는 축문무오년(1918) 1월 27일 황우송412)(墾田開基祝文戊午一月二十七日黃友松)

012_0730_b_01L有展眉而點頭或有悔心而愧顏者也
012_0730_b_02L以是而書之庶望乎書生之一助云尒

012_0730_b_03L

012_0730_b_04L浮休禪祖臨濟二
十六世
重立碑陰記但制出
而不登
012_0730_b_05L以宋念齋所
作文用之故也

012_0730_b_06L
唯我大禪師現大千於沙界應半千之
012_0730_b_07L河淸廣闡曹溪之禪宗眞是佛子
012_0730_b_08L動綸旨之嘉命卽乃國砥圓覺先天
012_0730_b_09L誰吿前因之錦頌須彌浩刼莫悟現在
012_0730_b_10L之龜趺發見短碣於俗離寺前謀樹七
012_0730_b_11L仞於曹溪洞上歲戊午春本寺住持雪
012_0730_b_12L月龍燮倡募本寺公私之金叫化嶺湖
012_0730_b_13L雲仍之財算費餘二萬額恰募近二千
012_0730_b_14L採石於法華之邱鍊光於漢城之匠
012_0730_b_15L迺用白谷之舊銘爰借靑丘之名毫
012_0730_b_16L政府之金贜騰鐵輪之火牆始登程也
012_0730_b_17L聞江燕之吉辰終上達兮賀浴佛之良
012_0730_b_18L篆額如活墨點五龍之紋偈頌聯
012_0730_b_19L光燦萬斛之玉唯我大衆欽慕無
012_0730_b_20L念爾祖之句追悼息 [96] 繁有徒之訓戊午
012_0730_b_21L一月日十四世孫寶鼎焚香謹誌

012_0730_b_22L

012_0730_b_23L• 墾田開基祝文戊午一月二十七日黃
012_0730_b_24L友松

012_0730_c_01L이름난 하천과 넓은 벌판에 영험한 신들이여,
지역은 ‘무동撫桐’이요 하천은 ‘봉천鳳川’입니다.
여기에 빈 터가 있어 개간을 시작하니
재목도 기르지 않고 물고기도 기르지 않아
공연히 도깨비와 다람쥐들로 하여금
거칠고 묵은 풀밭을 차지하게 하였도다.
막중한 왕토는 마땅히 백성에게 속해야 하니
남북으로 개간하여 크게 옥토를 이루리.
이에 곡일穀日413)에 자욱한 풀을 베니
오직 신들께서는 화내지 말고 두려워도 말고
신이한 힘을 펼쳐 일꾼을 보호하여
흙을 옮기고 돌을 캐 내길 귀신이 돕는 듯하여
음양의 돌과 흙으로 쌓아 이루게 하소서.
삼가 광주리 밥과 음식을 갖추어
좋은 울창주414)와 함께 드리니 흠향하소서.
지와굴 터를 닦는 축문2월 5일 김대우(地瓦窟開基祝文二月初五日金大愚)
산신과 국사局師,415) 높은 산 존엄한 영령이시여,
토지의 신들이여 이 도량에 강림하시어
우리의 창건을 보호하여 각기 신통을 펼치소서.
터를 닦고 기와 구워 호불護佛의 궁전 마련하니
우리 일꾼을 도와 재해 없애고 상서를 내리시어
악한 짐승은 물러가고 선한 신명이 나타나시어
하늘이 보호하고 땅이 도와 따스한 바람 보내사
바라는 바 속히 이루어 경사를 크게 이루도록 하소서.
삼가 맑은 술을 드리노니 흠향하소서.
제운416) 대선사 비음기무오년(1918) 4월 8일 강철월(霽雲大禪師碑陰記戊午四月八日姜哲月)
공적을 따라서 덕을 추모함은 덕 있는 이에 대한 감상이요, 덕을 수립하나 공적이 없음은 지극한 이가 자취를 감춤입니다. 무릇 사람에게 비상하고 뛰어난 덕과 공적이 있는 경우에는 마땅히 돌에 새기고 솥에 새겨야 합니다.
지금 선사의 조부 ‘기인起仁’417)은 그 지역의 시승(韻釋)이요 속세 밖의 명철한 승려였습니다. 숙종조에 통정첩通政帖418)

012_0730_c_01L
名川廣野靈祗等众域號撫桐水名
012_0730_c_02L鳳川玆有空土可起墾佃不養奇材
012_0730_c_03L不產漁沺空使魍魎及與鼯孫陳茅荒
012_0730_c_04L一場牧鄽莫重王土宜屬王民
012_0730_c_05L開阡陌大成沃田玆庸穀日剪草開
012_0730_c_06L唯冀神祗勿嗔勿惧能放神力
012_0730_c_07L護役夫運土拔石如遇鬼扶陰石陽
012_0730_c_08L築着成偶謹以簞食兼偹麋粻
012_0730_c_09L韶鬱鬯伏唯尙享

012_0730_c_10L

012_0730_c_11L• 地瓦窟開基祝文二月初五日金大愚

012_0730_c_12L
山神局師崇岳尊靈土祗地神降此
012_0730_c_13L道場護我剏事各放神通開基陶瓦
012_0730_c_14L爲護佛宮助我役夫消災降祥惡獸
012_0730_c_15L迸迹善神現形天護地助借送陽風
012_0730_c_16L速成所望大就慶功謹以淸酌伏唯
012_0730_c_17L尙饗

012_0730_c_18L

012_0730_c_19L霽雲大禪師碑陰記戊午四月八日
012_0730_c_20L姜哲月

012_0730_c_21L
追功慕德德人之感想樹德無功
012_0730_c_22L人之晦跡凢人有非常卓犖之德與功
012_0730_c_23L宜勒石而銘鼎也今師之祖曰起仁
012_0730_c_24L域中韻釋物外明僧肅宗朝有通政帖

012_0731_a_01L팔도도총섭八道都捴攝 교지敎旨를 받았으며, 시호를 ‘자운紫雲’이라 합니다. 선사의 부친 ‘법안法顏’ 또한 통정 첩지가 있으니, 세 번 전하여 대사께 이르렀습니다.419) 당시 불법의 흥성은 이 3대代의 집안에서 나왔으니 진정 필만畢萬420)의 이후를 징험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선사께서는 처마 아래 빛을 감추고421) 호리병 속422)에 덕을 숨겨,423) 눈 오는 달밤과 바람 부는 호시절에 금빛 하늘의 조의祖意424)를 펼쳐 내고, 푸른 산과 물에 옥빛 게송의 법류法流를 쏟아 내었습니다. 손으로 『화엄경』을 사경하며 마음으로 해탈법문을 증험하셨으니, 이것이 일생 동안 덕을 세운 것입니다. 하물며 천자암天子庵을 네 번째 창건하셨으니 선사께서 애써서 간고幹蠱425)한 것입니다.
선사의 열반(泥洹) 후 97년 만에 문인 동호東湖와 추파秋波 등이 선사先師의 공적을 추모하여 비석을 자르고 흙을 북돋았습니다. 17년 후에 후손(雲仍) 경해鏡海426)와 경봉景鳳427)ㆍ인봉印峰428) 등이 문도 40여 인과 함께 천여 원의 의연금을 모아 운암云庵과 상전祥銓에게 명하여 선사의 덕을 추모하여 비석을 다듬어 새기게 했습니다.
아아, 비석이 남포藍浦429)에서 나왔으나 비석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명銘은 서울 분이 지었으니, 명 또한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나의 필체는 졸렬하지만 감히 선사의 지극한 덕을 기념하고 또한 공적을 따르는 무리가 있음을 찬양합니다. 바라는 바 겁석劫石430)이 닳도록 정민貞珉431)은 길이 남기를.
임경당 돌우물을 새로 완성한 명무오년(1918) 4월 17일(臨鏡堂石井新成銘戊午四月十七日)
물은 육부삼사六府三事432) 가운데 첫 번째이다. 크게 물살을 드러내는 것은 강과 바다이고 작게 마실 것을 모아 놓은 것을 샘과 우물이라 한다. 물을 건너고 논밭에 물을 대는 공적과 더러움을 씻고 갈증을 해소하는 이로움이 이만한 게 없으니, 물의 공적과 이로움이 위대하다.
이 당은 개울의 모퉁이에 있는 사찰의 입술에 해당하는데,

012_0731_a_01L及八道都捴攝敎旨謚曰紫雲師之父
012_0731_a_02L曰法顏亦有通政之帖三傳至大師
012_0731_a_03L當時佛法之興隆出於三代之閫域
012_0731_a_04L所謂畢萬之後可驗也先師鞱光廡下
012_0731_a_05L匿德壺中雪月風華提撕金天之祖意
012_0731_a_06L碧山淥水呑吐玉偈之法流手寫華嚴
012_0731_a_07L大經心證觧脫法門此迺一生之樹德
012_0731_a_08L而况天子庵第四剏建卽師之拮据幹
012_0731_a_09L蠱者乎師之泥洹後九十七年門人東
012_0731_a_10L湖秋波等追先師之功斫石而封塚
012_0731_a_11L越十七年雲仍鏡海景鳳印峰等與門
012_0731_a_12L徒四十餘人募千有餘圓義金命云庵
012_0731_a_13L祥銓慕先師之德鍊石而勒銘之
012_0731_a_14L石出藍浦石何有言銘綴漢城
012_0731_a_15L亦無價予筆雖拙敢紀先師至德
012_0731_a_16L賛有徒追功所冀者刼石磨而貞珉
012_0731_a_17L長存

012_0731_a_18L

012_0731_a_19L臨鏡堂石井新成銘戊午四月十七
012_0731_a_20L

012_0731_a_21L
水乃六府三事之一數也大而放浪者
012_0731_a_22L謂之江海小而貯飮者謂之泉井
012_0731_a_23L其涉濟漑灌之功濯穢觧渴之利莫此
012_0731_a_24L若也水之功利大矣哉此堂在溪之角

012_0731_b_01L삼청각三淸閣과 육감정六鑑亭이 당의 서쪽 처마에 쓸쓸하게 서 있어 신선들이 거니는 것을 항상 보고, 능허교淩虛橋와 천왕문天王門이 당의 남쪽에 나열해 있어 범패 읊조리는 소리를 매번 듣는다. 여타 사계절의 변화와 만상을 살핌에 있어 진정 조계산의 경치가 임경당 한 곳에 있다고 하는 것이 진실로 어긋나지 않는다. 당의 동남쪽(巽) 뜰에 물이 자연히 솟아나 졸졸 흐르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장마와 가뭄에 관계없이 자강불식自强不息하니 족히 샘물과 우물의 근원이 될 만하다.
옛날 당을 지을 때 우물을 파서 설치하였는데 물통을 문 밖에 마련하여 아침저녁으로 물 긷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갑인년(靑虎, 1914)에 미쳐 서응瑞應 공公이 멋진 기술로 당의 남쪽 담장 안에 홈통을 매설하여 물줄기를 이끄니 물이 더욱 차가워졌고 길은 더욱 탄탄해졌다. 필시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어 먹는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을 모아 두는 방법은 나무통이 썩어 손상될까 항상 걱정이다. 우禹 임금의 솥433)처럼 무겁고 장자莊子의 표주박434)처럼 큰 게 있더라도 얻기 어렵지만 쉽게 부서질 것이다. 하물며 달리 구하기 어려운 것은 어떻겠는가.
당堂에 거하는 석덕碩德 한붕漢朋 옹翁이 오래도록 깊이 근심하다가 사재를 털어서 시냇가의 바위를 다듬고 3백 금을 들여서 7곡斛 남짓 되는 우물을 팠다. 길이는 6자, 넓이는 4자, 깊이는 1자 4치이다. 동쪽(卯乙)의 물을 끌어 남쪽(巳丙)의 불을 진압하니 물과 불이 서로 해치지 않는435) 바른 위치에서 한 구역 석당石塘(돌연못)에 물이 고인다. 옥 같은 물이 가득 차니 은빛 물결이 당을 둘러서, 넘실거리고 졸졸 흘러 근원이 마르지 않는다. 또한 달이 물결 속에 떨어지면 거울처럼 만물을 비추고 바람이 수면에 불면 가슴이 청량해지니, 이것이 임경당의 큰 볼거리다.
밭에 물을 대는 공적은 없으나 갈증을 해소하는 이로움이 있으니 샘 우물의 도는 넓고도 크다. 하물며 또한 차를 달여 부처님께 공양하여 감로의 맛으로 변화시키니,

012_0731_b_01L寺之唇而三淸閣六鑑亭寥落於堂之
012_0731_b_02L西廡常見仙子之逍遙淩虛橋天王門
012_0731_b_03L併列於堂之南面每聞梵樂之嘯咏
012_0731_b_04L餘四時變態萬像照鑑眞所謂曹溪勝
012_0731_b_05L在臨鏡一堂者信不謬矣堂之巽
012_0731_b_06L水自湧而滚滚然夏冽而冬溫
012_0731_b_07L關水旱自强不息足爲泉井之源
012_0731_b_08L之剏堂之初鑿而貯之槽設門外
012_0731_b_09L嫌朝暮之汲矣洎于靑虎以瑞應公之
012_0731_b_10L善巧埋梘引槽於堂之南墻內水益冽
012_0731_b_11L冽也路甚坦坦焉必不爲朝汲暮吸之
012_0731_b_12L艱阻也然而貯水之方常患木槽之朽
012_0731_b_13L雖有禹鼎之重莊瓠之大尙爲難
012_0731_b_14L得而易壞况餘求之難易者乎堂之碩
012_0731_b_15L德漢朋翁甚患之久矣捐家貲攻溪
012_0731_b_16L費三百餘金斫井量七斛許長六
012_0731_b_17L廣四尺深一尺四寸也引卯乙之
012_0731_b_18L壓巳丙之火水火不相射之正位
012_0731_b_19L渟滀於一區石塘中玉水盈科銀波周
012_0731_b_20L洋洋焉淙淙然其源不渴抑復月
012_0731_b_21L落波心鏡像照臨風來水面襟靈淸
012_0731_b_22L此卽臨鏡堂之大觀也雖無漑灌之
012_0731_b_23L能有解渴之利泉井之道廣且大
012_0731_b_24L况又煎茶供佛變成甘露之味

012_0731_c_01L음식을 만드는 재승齋僧은 선열禪悅의 즐거움을 얻으리라.
아, 향해香海는 마르더라도 이 우물은 비지 않을 것이요, 석수石髓436)에는 근원이 있어도 시주의 복은 무궁하리라.
벽담당 탑을 이안하는 축문탑 세 본이 보조암 북쪽 모퉁이에 있었는데 풍암당 탑은 병진년(1916) 봄에 비전으로 이안하였고, 이번 무오년(1918) 4월 24일에 벽담437)과 회계438) 두 탑을 일시에 비전으로 이안하므로 이 글을 썼다.(碧潭堂塔移安祝三本在普照庵北隅。而楓嵓堂塔。丙辰春移安碑殿。今戊午四月二十四日。碧潭會溪二塔。一時移安碑殿。故有此文也。)
현선顯先439) 조사祖師 벽담당碧潭堂 대화상 존영尊靈 아래 올립니다.

법신은 자취 없고 묘체妙體는 담백한데
자비로 사물에 응하여 영골靈骨로 참을 드러내사
삿된 견해의 그물을 부수고 불조佛祖의 인끈을 차니
마음은 화장세계440)에 융합하고 탑은 동쪽(東震)을 진무하네.
흉조를 피하고 길조로 나아가 조사의 관문을 열고
터를 잡아 기초를 놓으니 소목昭穆441)에 질서 있어
위로 조종祖宗을 모시고 옆으로 형제를 나열하네.
엎드려 바라건대 존영이시여, 화내지 말고 꾸짖지 마소서.
우리 후손들은 실로 많은 무리가 있어442)
미미한 음식이나마 갖추어 정성을 표하고
삼가 차를 끓이니 흠향하소서.
또(회계당 탑을 이안하는 축문)(又)
회계당會溪堂 대종사 존영尊靈 아래 올립니다.

온 나라에 이름이 알려진 총림 대덕으로
법안法眼은 고명하고 용모는 빼어나시어
고금의 귀감이며 자타의 법칙이시니
교해敎海의 노를 만드사 불조佛祖의 맥을 이어
소리는 여러 산에 응하고 기운은 주석柱石 같은데
교화를 쉬고 입적(歸證)하여 영식靈識443)을 드러내셨네.
영험한 그 구슬이 대록大麓444)으로 들어가니
스승이 운용하고 제자가 따르며 동시에 움직여
법의 물결이 정정하고 차례(昭穆)가 역력하게
주춧돌을 봉안하니 기러기처럼 질서 있어
뛰어나게 높고 상서로워 길이 산악을 진호하네.
추모하는 무리들이 차를 배설하니
영험한 신명이시여 흠향하소서.

012_0731_c_01L飪齋僧便得禪悅之樂香海雖渴
012_0731_c_02L此井不空石髓有源檀福無窮云爾

012_0731_c_03L

012_0731_c_04L碧潭堂塔移安祝三本在普照庵北隅
楓嵓堂塔丙辰春移安
012_0731_c_05L碑殿今戊午四月二十四日碧潭會
溪二塔一時移安碑殿故有此文也

012_0731_c_06L
顯先祖師碧潭堂大和尙尊靈之下
012_0731_c_07L身無迹妙體湛然大悲應物靈骨現
012_0731_c_08L破邪見網佩佛祖印心融華藏
012_0731_c_09L鎻東震避凶就吉運啓祖關銓基定
012_0731_c_10L昭穆有序上御祖宗傍列兄弟
012_0731_c_11L唯尊靈勿嗔勿咎唯我雲仍 [97] 繁有
012_0731_c_12L特備微奠庸表丹誠謹以點茶
012_0731_c_13L唯尙饗

012_0731_c_14L

012_0731_c_15L

012_0731_c_16L
會溪堂大宗師尊靈一國名現叢林大
012_0731_c_17L法眼高明容儀挺特今古龜鏡
012_0731_c_18L自他繩墨作敎海楫繼佛祖脉聲應
012_0731_c_19L諸山氣若柱石休化歸證獨露靈識
012_0731_c_20L有靈其珠入于大麓師運資從同時
012_0731_c_21L動作法派井井昭穆歷歷銓礎奉安
012_0731_c_22L形同雁鵠殊特崇禎永鎭山岳追慕
012_0731_c_23L其徒敢設茗藥伏唯靈神俯奠歆式

012_0732_a_01L
벽담당 탑과 회계당 탑을 비전에 이안하고 담을 쌓는 기문(碧潭堂1)塔會溪堂塔移安碑殿及築墻記)
전傳에 이르길, “선사의 성품은 강직(强毅)하여 그의 눈 아래 사람들이 달려가지 못하고 혀 아래 여럿이 행하지 못하였다. 종풍을 부지함이 현판을 태우는 경계가 되고, 기회에 응함이 자리를 빼앗는445) 형세가 되었다.”라고 했다. 강령降靈한 본本으로 세상에 드문 기이한 국면을 이루셨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렇게 된 것인가.
벽담 선사께서 세상에 계실 때 풍암楓岩446) 노숙老宿447)의 탑을 보조탑의 서북쪽(乾) 모퉁이로 이안하였다. 이는 필시 보처존補處尊448)을 염두에 둔 것으로 타인이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 성품의 과감함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선사께서 입적하신정종正宗 22년 무오(1798) 9월 29일 다음 해에 그 왼쪽에 탑을 세웠고, 후에 회계당會溪堂이 입적하여 또 그 오른쪽에 탑을 세웠으니, 보처의 예언이 명확하게 부합하였다.
아아, 대한 융희隆熙개국 512년 무신 무신(1908) 봄4월 18일에 의병 난리에 동암東庵(은적암)과 보조암이 혹독하게 일병日兵의 방화를 당하여449) 두 채의 보배 구역이 곤명昆明450) 장소로 변하고 세 채의 스투파(窣堵)451)가 쓸쓸한 근심을 같이 띠게 되었으니 운수(理數)의 순환이 아니겠는가. 이에 9년 (지나서) 병진(1916) 봄에 지주 설월 용섭雪月龍燮452)이 풍암 조사의 탑을 먼저 옮겨 비가 있는 비탈(碑嶝)의 본좌本座에 안치했다.사건은 해당 기문에 보인다. 두 채의 탑을 아직 이안하지 않은 상태로 무오년(1918) 봄에 이르러 담을 쌓고 기와를 얹어 4문파의 재물을 덜어 보조하니 수백 원圓을 소비하였는데, 진실로 가히 ‘산을 빛내고 개울을 아름답게 했다’453) 할 만 했다. 같은 해 5월 본문本門 사람호봉豪峯ㆍ위송衛松ㆍ호명皓溟ㆍ용연龍淵ㆍ곤명混溟ㆍ눌봉訥峯 등이 힘을 합쳐 두 선사의 탑을 이안했다. 일꾼은 16인뿐이라서 여섯 번씩 짐을 졌고 비용은 60원이 들었으며, 며칠 되지 않아 봉안했다.탑을 세운 때부터 무오년까지 123년이다. 풍암 노숙이 영해影海 조사의 맥을 잇고 묵암默庵이 (풍암을) 계승하여,

012_0732_a_01L1)碧潭堂 [18] 塔會溪堂塔移安碑殿及
012_0732_a_02L築墻記

012_0732_a_03L
傳曰禪師性行强毅眼下人不能走
012_0732_a_04L舌底衆莫敢行扶宗爲焚板之警應會
012_0732_a_05L作奪席之勢降靈之本致間世之奇局
012_0732_a_06L不其然而然乎㢤以故禪師在世運楓
012_0732_a_07L老之塔安于普照之乾隅此必是將爲
012_0732_a_08L補處尊之預算而人莫敢以抗志其性
012_0732_a_09L行之果敢於此驗矣禪師示寂正宗二十
二年
012_0732_a_10L午九月二
十九日
之翌年立塔于其左後會溪堂
012_0732_a_11L示寂又立之其右補處之讖端合符
012_0732_a_12L契也嘻嘻迄大韓隆熙二年開國五百十
二年戊申也

012_0732_a_13L戊申春四月十
八日
義兵之亂東普兩庵
012_0732_a_14L遭日兵之燹禍二區寶坊變作昆明
012_0732_a_15L之場三位窣堵共帶怊悵之愁無乃
012_0732_a_16L理數之循環歟粤九年丙辰春住持雪
012_0732_a_17L月龍燮先運楓祖之塔妥于碑嶝本座
012_0732_a_18L事見
本記
兩位之塔未暇運安而至戊午春
012_0732_a_19L築垣而盖瓦之捐四門財而補助費數
012_0732_a_20L百圓金信可謂山輝而川媚者也
012_0732_a_21L年五月本門人豪峯衛松皓溟
龍淵混溟訥峯
同力運兩
012_0732_a_22L禪師之塔役丁但十六人六次荷擔
012_0732_a_23L用財六十餘圓不數日奉安自立塔
至今戊
012_0732_a_24L午一百二
十三年也
以楓老繼影祖之脉而默塔繼

012_0732_b_01L벽담 선사를 묵암 비의 오른쪽에 안치하고 회계 선사가 계승하였다. 그리하여 위로 부휴浮休부터 아래로 풍암 노숙에 이르기까지 조사들과 후손들이 소목昭穆의 차례로 나열되니 불조佛祖의 전등傳燈과 같았다. 풍암 노숙의 밑에 서너 분파가 생겨 가지마다 잎사귀마다 잇고 이어서 무궁한 기초를 전하였으니, 비록 삼척동자라 해도 일러 주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차례茶禮5월 5일를 지내고 나서 나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나는 말했다.
“기문이란 사건의 명칭이요, 명칭이란 사실의 손님입니다. 사건이 완성되고 사실 또한 이루어졌으니 어찌 명칭을 쓰겠습니까.”
“이른바 사건과 사실이 천년토록 전해지는 것은 명칭에 기대어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홀로 명칭 없이 서게 된다면 전해지지 않음은 해를 보듯 명확하니, 명칭의 의미를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까.”
나는 이에 선사의 덕과 행위, 사건과 실제가 이와 같고 이와 같음을 대략 기록한다.
조계산 진영당 이전과 새로 영정을 조성한 연기에 대한 의론무오년(1918) 7월에 기록하다.(曹溪山眞影堂移建及新造影緣起論戊午七月日誌)
융희隆熙 2년 무신(黃猿, 1908) 4월 18일에 동암東庵(은적암)과 보조암이 혹독하게 병화兵火를 당해 동암의 불상을 문수당文殊堂으로 이안하고, 보조암의 불상은 자음당慈蔭堂(국사전)454)으로 이안하였다. 신위神位에 따라 향을 올렸는데 보조암의 선조 영정 같은 경우는 봉안할 겨를이 없어서 후손들이 안타까워했다. 4년 후 신해(白豕, 1911) 3월 9일에 본사 지주 설월雪月 화상이 남곡南谷 화사畫師를 불러 영정 35축軸을 새로 조성하여 사찰의 동쪽 진영당에 걸고 차례茶禮를 지냈다. 그리고 내게 기문을 구하며 말하였다.
“전기傳記에 옛 영당과 새 영당의 혼란함이 있으니,

012_0732_b_01L其嫡碧師安於默碑之右而會師承其
012_0732_b_02L上自浮休下至楓老祖祖孫孫
012_0732_b_03L昭穆穆儼若佛祖之傳燈也楓老之下
012_0732_b_04L三四分派枝枝葉葉繼繼承承傳於
012_0732_b_05L無窮之基礎雖三尺不待言而記得也
012_0732_b_06L芿以茶禮之五月
五日
事旣就矣囑余其記
012_0732_b_07L余曰記者事之名也名者實之賓也
012_0732_b_08L事旣成實亦就矣何足名之爲也哉
012_0732_b_09L曰所謂事實之傳於千秋者賴其名而
012_0732_b_10L不朽者也若以實獨立於無名之鄕
012_0732_b_11L其所不傳指日可待也名之謂名
012_0732_b_12L可忽諸余於是略記禪師之德與行事
012_0732_b_13L實之如是之如是也

012_0732_b_14L

012_0732_b_15L曹溪山眞影堂移建及新造影緣起
012_0732_b_16L戊午七月日誌

012_0732_b_17L
隆熙二年黃猿之四月十八日東普兩
012_0732_b_18L酷遭兵燹東佛像移安于文殊堂
012_0732_b_19L普佛像移安于慈蔭堂依位奉香而至
012_0732_b_20L若普庵之先祖影幀未暇奉安爲雲仍
012_0732_b_21L之病焉越四年白豕三月九日本住
012_0732_b_22L持雪月和上招南谷畫師新造影幀三
012_0732_b_23L十五軸掛于寺之東眞影堂仍茶禮之
012_0732_b_24L求余記云傳記有古影堂新影堂之

012_0732_c_01L선조 영정의 효시와 중수하여 이안한 과정에 대해 들어 볼 수 있습니까?”
“네, 네. 본사에 영당을 마련함은 옛 기록을 고찰해 보면, 국사께서 열반한 처음에 진영을 모사하여 축대 위 선방과 보조암 조실에 봉안하였습니다. 그 후 15조사의 진영을 차례로 봉안하였으니 이것이 자음당 보조암 조실에 진영을 건 시작(草昧)입니다. 건륭乾隆 10년 을축(1745)에 이르러 16조사의 영정을 다시 그렸으니 화주化主455)는 지변指卞이었고, 건륭 45년 경자(1780)에 16조사의 영정을 거듭 완성했으니 화주는 수징水澄이요, 가경嘉慶 12년 정묘(1807)에 옛 영당을 중수했으니 화주는 화봉華峰이었습니다. 이것이 16조사를 자음당에 봉안한 내력이니, ‘옛 영당’으로 칭하게 된 것이 빛나고 명확합니다.
묵암자默庵子가 서술한 영당 상량문에 이르길, 구름 밖 청산을 베어 중앙(主中)의 보전寶殿을 지으니, 오른쪽은 자음당이요 왼쪽 수석水石이며 진락대眞樂臺456)를 등지고 침계루를 향했으며, 중국을 접한 태고太古(보우普愚)457)와 두 계수나무를 기른 부용芙蓉458)이라 했으니, 이에 건륭乾隆 연간에 새로 지은 당堂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치同治 3년 갑자(1864)에 새 영당을 중수하고, 광서光緖 11년 병술(1866)459) 봄에 새 영당을 도성당道成堂460) 옛터로 옮겨 세웠습니다.을유년(1885) 2월 2일 밤에 화재가 났기 때문이다. 주관은 용운당龍雲堂461)이 했습니다. 18년 지나 계묘년(1903) 가을에 다시 본래 있던 곳으로 옮겼으니 당시 주지가 주관했습니다. 이것이 태고太古 이하 조사들을 새 영당에 봉안한 내력이니 명확해서 의혹이 없습니다.
지금 하는 불사는 보조암의 동쪽 건물(東廡)에 있으니, 광서光緖 원년 병자(1876)462)에 창립한 것입니다. 풍암楓嵓 이하 4문파의 진영을 안치한 영당이 문득 화재(崑炎)463)를 만나, 남아 있던 토산물을 각기 뜻에 따라 동시에 들어서

012_0732_c_01L混濫先祖影幀之蒿矢及重修移安
012_0732_c_02L得聞乎曰唯唯本寺影堂之設考諸
012_0732_c_03L古記國師泥洹之初摸寫眞影奉安
012_0732_c_04L于坮上禪房及普庵祖室其後十五祖
012_0732_c_05L次第奉安是爲慈蔭堂普祖室
012_0732_c_06L影之草昧也至乾隆十年乙丑十六祖
012_0732_c_07L影重畫化主指卞乾隆四十五年庚子
012_0732_c_08L十六祖影重成化主水澄嘉慶十二年
012_0732_c_09L丁卯古影堂重修化主華峰此卽十
012_0732_c_10L六祖奉安之慈蔭堂稱爲古影堂云者
012_0732_c_11L章章明矣默庵子所述影堂梁文云
012_0732_c_12L雲外之靑山建主中之寶殿右慈陰 [98]
012_0732_c_13L左水石背眞樂而面枕溪接中國之太
012_0732_c_14L毓兩桂之芙蓉是知乾隆年間新剏
012_0732_c_15L之堂也同治三年甲子新影堂重修
012_0732_c_16L緖十一年丙戌春新影堂移建于道成
012_0732_c_17L堂古址乙酉二月二日
夜回祿故也
主管龍雲堂越十
012_0732_c_18L八年癸卯秋更移于本基時住持主幹
012_0732_c_19L此卽太古下列祖奉安之新影堂云
012_0732_c_20L的的無疑也今之役也卽普照
012_0732_c_21L庵之東廡光緖元年丙子年剏立
012_0732_c_22L安楓嵓下四門派影堂遽遭昆 [99] 而所
012_0732_c_23L存土地物各隨志願同時并擧
012_0732_c_24L「碧潭」底本頭註曰「臨濟三十三世」{編}

012_0733_a_01L신위마다 3원圓씩 소비하여 도합 35축을 이 당에 걸었습니다. 이 당은 본래 태고 이하 조사들의 진영을 안치한 곳인데 대장전大藏殿 벽으로 이안하였으니, 예禮에 이르길 ‘친한 이를 가까이하고 소원한 이를 멀리한다.’는 것이고, 경전에 이르길 ‘새롭거나 오래되거나 여럿이 은미하거나 드러나거나 함께 이루어진다.’464)는 것입니다. 이는 불조佛祖의 변화신이 출입에 장애 없는 매우 불가사의한 경계입니다.
당堂이 갔다가 돌아옴에 한계가 없어 은연히 삼변정토三變淨土465)와 같고, 진영은 훼손되고 완성됨에 자재하니 찬란히 뭇 별들의 섬궁蟾宮(달) 같습니다. 신구新舊 당의 명명과 진영을 중수하여 이안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된 것일 테지요.”
설월 옹(雪翁)이 흔쾌히 말했다. “당堂이 이와 같이 갔다가 돌아오고 진영이 이와 같이 훼손되었다가 완성되었으니, 어찌 기문이 없어서 되겠습니까.”
내가 이에 기문을 지어 후인들에게 보인다.
칠전의 동쪽 방장이 고금에 이름이 다름에 대한 변증8월 일(七殿東方丈古今名異卞八月日)
다송茶松 노인이 하루는 무설전無說殿에서 회차會茶466)하니 무설 도인無舌道人과 오천 장실梧泉丈室이 자리로 오는데, 흡사 벽암헌碧嵓軒과 호월皓月과 청풍淸風 세 존숙尊宿께서 앉아서 회차하던467) 가풍 같았다. 무설 도인이 묻기를, “대상칠전臺上七殿은 어떤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법신보살法身菩薩468)의 자리가 무설전즉 설법전說法殿으로, 현재 장경전藏經殿이다.에 있고 왼쪽 넷과 오른쪽 셋이 이것입니다. 동서 방장方丈은 이 칠전의 선승당禪僧堂469)이니, 동서에 각기 선승당이 있어서 셀 수 있습니다. 서쪽에는 삼일암三日菴본래 서쪽 방장方丈 상사당上舍堂인데 담당湛堂470)이 3일 만에 견성見性하였기에 불린 이름이다.이 있고 이 아래에 선승당인 하사당下舍堂과 청운당靑雲堂471)이 있으니 오른쪽 3전殿이 됩니다. 동쪽에는 조사전祖師殿병술년(1886)에 축성전祝聖殿472)을 설치한 용운당주龍雲堂主, 기유년(1909)에 조사 진영을 건 응월당주應月堂主.이 있다. 이 아래에 선승당인 백설당白雪堂473)

012_0733_a_01L位費三圓式合三十五軸揭于此堂
012_0733_a_02L而此堂本所安太古下諸祖影移安于
012_0733_a_03L大藏殿壁禮所云近親而遠疏者耶
012_0733_a_04L經所云新舊衆隱現俱成者耶此是佛
012_0733_a_05L祖變化身土 [100] 出入無碍之大不思議境界
012_0733_a_06L堂之徃復而無際隱然若三變之淨
012_0733_a_07L影則壞成而自在煥然如衆星之蟾
012_0733_a_08L其新舊堂之命名影重修之移安
012_0733_a_09L不其然而然乎雪翁欣然曰堂如是徃
012_0733_a_10L而復影如是壞而成豈其無記而可乎
012_0733_a_11L余於是記而示諸后

012_0733_a_12L

012_0733_a_13L七殿東方丈古今名異卞八月日

012_0733_a_14L
茶松叟一日會茶於無說殿上有無舌
012_0733_a_15L道人與梧泉丈室適個座恰如碧嵓軒
012_0733_a_16L皓月淸風三尊宿打坐會茶之家風也
012_0733_a_17L舌問坮上七殿那箇是是甚麽意旨
012_0733_a_18L曰法身菩薩坐在無說殿卽說法殿
今藏經殿
左之
012_0733_a_19L四右之三是也東西方丈卽此殿之禪
012_0733_a_20L僧堂東西各有禪僧堂可以數得也
012_0733_a_21L西卽三日菴本西方丈上舍堂名也
湛堂三日見性立名也
此下有
012_0733_a_22L禪僧堂曰下舍堂靑雲堂也卽右之
012_0733_a_23L三殿是也東卽祖師殿丙戌設祝聖殿龍雲
堂主己酉掛祖師
012_0733_a_24L影應月
堂主
此下有禪僧堂曰白雪堂遮眼

012_0733_b_01L차안당遮眼堂ㆍ자음당慈蔭堂474)이 당은 당시 국사들께서 모여 공양하던 곳이다.이 있으니 왼쪽 4전殿이 됩니다. 동서 방장과 양쪽 선승당에 식당을 합하면 7전이 됩니다. 이 당들이 진락대眞樂臺 아래 진여문眞如門475) 안에 있기 때문에 ‘대상칠전臺上七殿’이라 부릅니다. 옛 기록에 이르길, 이 전殿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는 큰 화로이므로 또한 ‘선불장選佛場’이라 부르고 또는 ‘급제당及第堂’이라고도 부른다고 했습니다. 상사당과 하사당, 그리고 청운당 이름이 그저 그렇겠습니까.”
“7전의 이름이 그런 것은 그러하군요. 동서 방장이 고금에 이름이 다른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동서는 주인과 빈객의 지위입니다. 보조普照께서 계실 때에 보조가 주인으로 동쪽에 거하고 진각眞覺476)이 빈객으로 서쪽에 머물렀습니다. 고봉高峯477)과 태고太古478)ㆍ부용芙蓉479)에 이르기까지 주인과 빈객이 대대로 없던 적이 없습니다. 주인은 동쪽, 빈객은 서쪽의 위치이므로 동서 방장이라고 칭합니다. 서쪽이 삼일암이 된 것은 담당湛堂 화상和上이 여기에 앉아 선정에 들어 삼 일 만에 견성見性했기 때문에 비로소 ‘삼일암’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동쪽이 조사전이 된 것은 도광道光 22년(1842)에 본사의 아홉 번째 창건주 용운당龍雲堂이 머물렀는데, 보조로부터 용운에 이르기까지 조사와 손자들이 주인이 되지 않고 이곳에 머문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 당을 보면 네모와 원이 들어맞고 사방에 청헌廳軒이 있고 문은 없으며, 중앙에 온돌이 있고 대들보는 없습니다. 말(斗)만 한 크기에 사방이 한 장丈으로 십홀방장十笏方丈480)에 만 개의 사자좌(獅座)481)가 부족하지 않고 남음도 없으니 정명淨名482)을 이름인가.
광서光緖 13년 정해(1887)에 본 군수 이범진李範晋483)이 주지 용운당龍雲堂과 함께 이 당堂에 축성전祝聖殿을 창설하여 온돌 위에 대청을 더하고 처마 밖에 문을 걸었으며 이전의 긴 담장을 무너뜨리고 층계를 놓아 섬돌마다 삼중의 문(閭)을 세워 찬란하게 일신하였습니다. 삼전三殿의 위패를 봉안하고 축성전 판액을 걸어

012_0733_b_01L及慈蔭堂此堂當時諸國
師會食堂也
卽左之四殿
012_0733_b_02L是也東西方丈及兩禪僧堂并食堂
012_0733_b_03L則足七殿此堂并在眞樂坮下眞如門
012_0733_b_04L內故稱云臺上七殿古記云此殿卽
012_0733_b_05L烹佛烹祖之大爐亦云選佛場亦云
012_0733_b_06L及第堂上下舍及靑雲堂之名意
012_0733_b_07L徒然哉曰七殿之名意然卽然矣
012_0733_b_08L西方丈古今名異者如何曰東西乃主
012_0733_b_09L賓之位普照在時普照主也居其東
012_0733_b_10L眞覺賓也居其西以至高峯太古芙蓉
012_0733_b_11L主主賓賓無世無之而主東賓西之位
012_0733_b_12L故稱東西方丈也西爲三日庵者湛堂
012_0733_b_13L和上坐此入定至三日見性故始稱
012_0733_b_14L三日庵也東爲祖師殿者道光二十二
012_0733_b_15L本寺第九剏主龍雲堂居之盖自普
012_0733_b_16L迄于龍雲祖祖孫孫未爲主而居
012_0733_b_17L此者未之有也觀其堂則方圓相稱
012_0733_b_18L四有廳軒而無門中有溫堗而無樑
012_0733_b_19L斗而方於丈十笏方丈萬箇獅座
012_0733_b_20L欠無餘者淨名之謂歟光緖十三年丁
012_0733_b_21L本郡守李範晋與主僧龍雲堂
012_0733_b_22L設祝聖殿於此堂而堗上加廳軒外揭
012_0733_b_23L壞前長垣而架梯陛陛上建三重閭
012_0733_b_24L煥然一新奉安三殿牌揭祝聖殿額

012_0733_c_01L‘어천문於千門’484) 이름을 보이니 안팎의 무지개문(虹門)과 높고 낮은 처마와 섬돌에 해 아래 다섯 빛깔의 구름이 지척에 있는 듯하였습니다. 세상 밖(物外) 백성들이 모두 우로雨露485)에 목욕하고, 명량明兩486)의 칭송과 홍일弘一의 교화를 무궁한 세월 동안 누리게 될 것입니다.
풍조風潮가 송악松岳487)에 넘치고 세파가 뽕나무밭을 뒤흔들어,488) 융희隆熙 3년 기유(1909) 응종월應鍾月(10월)에 심검당尋釰堂에 학교를 마련하게 되어 33조사의 진영을 축성전에 옮겨 거니, 축성전의 위패는 허공의 뼛속으로 숨고 액호額號는 오유향烏有鄕489) 바깥으로 돌아갔습니다. 옛날에 이른바 제나라가 변하면 노나라가 되고 노나라가 변하면 도를 행하게 된다490)고 하더니, 진실로 그 말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방장이 축성전이 되고, 축성전이 조사전이 되니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동서 방장의 이름이 고금에 차이가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
무설無舌 공公이 혀를 묶고는 묵언당으로 돌아가고, 오천자梧泉子는 샘물을 마시고 보제당普濟堂으로 돌아갔다. 다송 노인은 차 한 사발을 점다點茶491)하고 한 줌의 솔잎을 먹고서 지팡이 짚고 허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쉴 뿐이었다.
조계산 송광사 사자목의 새 길과 옛길의 연기에 대한 변증10월 3일(曹溪山松廣寺獅子項新舊路緣起卞十月三日)
다송자茶松子가 운영雲影 노숙老宿의 처소(軒)를 방문하여 산수에 대한 의논을 하다가, 화제가 조계산의 아름다움과 터전의 통창함에 이르러 그 의미가 어떠한지 물었다. 운영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사찰의 인묘寅卯492) 방향 10리쯤에 주봉 ‘호악봉虎嶽峯’이 있고 남북으로 지류가 있는데 남쪽은 사찰의 병정丙丁493) 방향으로 훤하게 트여 광활하다. 곤신경유坤申庚酉494)로 에둘러 건해乾亥495)에 이르러는 머리를 들고 마감하니 일곱 봉우리, 즉 장막봉帳幕峰과 호령봉號令峰,496) 대장봉大將峰,497) 인귀봉印歸峰, 조계봉曹溪峰,498) 직세봉直歲峰, 백로봉白鷺峰이 늘어서 있습니다.

012_0733_c_01L懸於千門號內外虹門高低軒陛
012_0733_c_02L下五雲如隔咫尺物外群氓咸沐雨
012_0733_c_03L明兩之頌弘一之化將享於無窮
012_0733_c_04L之年矣風潮溢於松岳世波蕩於桑田
012_0733_c_05L至隆熙三年己酉應鍾月設學校於尋
012_0733_c_06L釰堂卅三祖影移掛於祝聖殿殿牌
012_0733_c_07L隱於虛空骨中額號歸於烏有鄕外
012_0733_c_08L所謂齊變爲魯魯變爲道信不謬矣
012_0733_c_09L方丈之於聖殿聖殿之於祖師殿何異
012_0733_c_10L於此耶東西方丈之名古今異稱者
012_0733_c_11L職由乎此也何足疑也哉無舌公結舌
012_0733_c_12L而歸之默言堂梧泉子飮泉而歸之普
012_0733_c_13L濟堂茶松叟點茶一甌餐松一掬
012_0733_c_14L藜觀空長嘯太息而已

012_0733_c_15L

012_0733_c_16L曹溪山松廣寺獅子項新舊路緣起
012_0733_c_17L卞十月三日

012_0733_c_18L
茶松子訪雲影老宿軒問山水論語及
012_0733_c_19L曹溪山水之奇麗基局之開通其意如
012_0733_c_20L雲曰寺之寅卯方十里許有主峯曰
012_0733_c_21L虎嶽峯有南北兩支南則寺之丙丁方
012_0733_c_22L宕闢廣濶坤申庚酉圍繞至乾亥而矯
012_0733_c_23L首結閈而七峰列立曰帳幕峰號令
012_0733_c_24L峰大將峰印歸峰曹溪峰直歲峰白鷺峰

012_0734_a_01L차례대로 일어났다가 눕고 달리다가 돌아보니 만경창파에 물오리와 돛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습니다. 북쪽은 사찰의 갑인甲寅499) 방향으로 머리를 들어 높이 솟아 축계자임丑癸子壬500)에서 술해戌亥501)에 이르기까지 머리를 돌려 낮게 엎드렸으니 또한 일곱 봉우리가 차례로 서 있습니다. 즉 장고봉長鼓峰과 증봉甑峰(시루봉), 화봉火峰, 학봉鶴峰,502) 망봉望峰(망수봉), 옥대봉玉燈峰, 탄금봉彈琴峰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끊어지고 숙였다가 우러르니 1천 층 봉우리가 구름과 파도처럼 겹겹이 서로 안아 옷깃이 되고 지류마다 교차하여 성城을 이룹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늘 감옥이 둘러싼 듯하고 가까이 건너가 보면 양의 창자처럼 꼬여 있습니다. 주봉에서 진辰(동남쪽)으로 입수入首503)하여 머리를 든 것은 장고봉으로, 갑묘甲卯504)의 용으로 맥이 떨어졌다가 혹 묘을卯乙505)에서 일어나 인갑寅甲506)으로 눕고 손사巽巳507)에서 일어났다가 간인艮寅508)에서 눕습니다. 중조봉中祖峰509)은 우람하고 끄트머리 줄기(孫枝)들은 늘어섰습니다(璿列). 이와 같이 십 리를 행룡行龍510)하다가 광활한 터가 나오는데 말 만 마리를 수용할 정도입니다. 이를 ‘바람에 나부끼는 비단 띠(風吹羅帶)’511)가 하나하나 국면을 맺는다 하거나, ‘큰 못의 연꽃(大澤芙蓉)’이 면면이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갑경병임甲庚丙壬512)의 4대격大格은 좌우 향배向背가 되고, 진술축미辰戌丑未513)의 4고장庫葬514)은 네 모퉁이의 8문이 됩니다. 법계法界에 늘어서서 국면을 펼치니 주인과 빈객이 마주 앉음에 응하고, 두 시내가 모여 연못을 이루니 용과 범이 세상을 지키는 형세를 포용합니다. 용 안에는 목마른 사자가 물을 마시는 형국이 있고 범 안에는 늙은 소가 송아지를 핥아 주는 형국이 있는데, 서로 포용하여 수구水口515)를 들이고 장쇄藏鎻516)하니, 수구는 즉 상통하는 목구멍에 해당합니다.”
“혹 ‘남쪽 기슭의 다리’라거나 혹 ‘북쪽 기슭의 길’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분분한 것은 왜 그런가요?”
“조계산 문 밖의 큰길이 본래 용 옆구리인데 개통되어 유린되었습니다. 원래 큰 도시 명승지인 천연의 터전인데 사자 목에 이르러 큰 이해利害가 있다는 논란이 있는 고로 남쪽과 북쪽에서 고금에 다른 명칭이 있는 것입니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옹정雍正 8년 경술(1730) 봄에 화주化主 탁근卓勤이 창건하였는데,

012_0734_a_01L如次起而伏走而顧若萬頃波之鳬帆
012_0734_a_02L北則寺之甲寅方起頭崇嶐丑癸子
012_0734_a_03L至戌亥而回頭低伏而亦有七峰第
012_0734_a_04L曰長鼓峰甑峰火峰鶴峰望峰玉燈
012_0734_a_05L峰彈琴峰如次連而斷低而仰如千層
012_0734_a_06L峰之雲濤重重相抱而作袊枝枝相叉
012_0734_a_07L而作城遠而望也若天獄之樞環
012_0734_a_08L而涉之似羊腸之螺廻自主峰辰入首
012_0734_a_09L而起頭者卽長鼓峰甲卯龍而落脉
012_0734_a_10L或卯乙起而寅甲伏或巽巳起而艮寅
012_0734_a_11L中祖峰豊隆末孫枝璿列如是十
012_0734_a_12L里行龍一局廣闢萬馬可容或云風
012_0734_a_13L吹羅帶個個結局或云大澤芙蓉
012_0734_a_14L面結實甲庚丙壬四大格爲向背左右
012_0734_a_15L辰戌丑未四庫葬爲四隅八門列法界
012_0734_a_16L而布局應主賓之對坐會雙溪而成潭
012_0734_a_17L抱龍虎之持世龍內有渴獅飮水形
012_0734_a_18L內有老牛舐犢形相抱爲內水口而藏
012_0734_a_19L水口卽通涉之咽喉也或南岸橋
012_0734_a_20L或北岸路從古紛紜者何也盖曹溪
012_0734_a_21L門外大路本自龍脇開通蹂躝原是大
012_0734_a_22L都明勝之天然基局而至獅項有大利
012_0734_a_23L害之論故於南於北古今異稱者是也
012_0734_a_24L按古記雍正八年庚戌春化主卓勤所

012_0734_b_01L함풍咸豊 4년 갑인(1854) 가을에 홍수로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남쪽 길에서 사자 목을 자른 극락교의 처음과 끝입니다. 그리고 길을 고친 기록(改路記)을 살펴보면, 처음에 용호 사이에 큰길을 개통하였고 중간에 무당의 말을 믿고서 옛 길을 폐하고 용 꼬리 사자 목에 새 길을 내었습니다. 임진년(1892) 오월에 이르러 다시 옛 길을 수리하였으니 이것은 즉 북쪽 기슭에서 사자 목을 피하여 옛 길을 따른 처음과 끝입니다.
26년 지나서 정사년(1917) 7월에 산승 한붕漢朋 공公이 재산을 희사하여 옛 무지개다리 터에 석교를 놓고 도로를 정비하여 사자 목을 자르고 용 꼬리를 끊었으니 이것이 바로 극락교의 처음과 끝입니다. 옛 기록은 다만 극락교의 시종에 관한 연대만 말하고 길의 신구新舊에 대한 변론은 없습니다. 임진년에 길을 보수한 기록에서 비로소 신구 길의 이해에 대한 변론을 하였고 정사년 작업을 논하였으나 오롯이 신구 이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허공에 석교를 놓고 땅을 북돋아 방죽을 설치하여 사자 목을 자르고 용 꼬리를 끊어 수레와 말이 통하게 하니 큰 도시와 항구보다 더 낫게 되었습니다. 아아, 남쪽 기슭의 길이 옛것입니까, 북쪽 기슭의 길이 새 것입니까. 옛길이 이롭습니까, 새 길이 해롭습니까. 진실로 무엇이 옛것이고 무엇이 새 것이며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 정확히 변론할 수 없습니다.
전하는 바에는, 옛날에 사찰이 부유하고 승려가 성대할 시절에 가까운 곳에 있던 훼불毀佛하는 이가 신이한 안목이 있다고 칭하고서는 승려들을 속여서, 사자 목에 길을 열고 용 꼬리에 다리를 건설하면 사찰은 더욱 부유해지고 승려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 했습니다. 승려들이 그 말을 믿고 길을 고치고 다리를 세웠더니, 이로부터 사찰과 승려가 점차 퇴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당의 말을 믿고 임진년에 일을 벌인 것과 유사하고, 두 말이 부합하니 신구新舊를 분별할 수 있고 이해利害가 절로 구별됩니다.
논해 보자면, 옛 길이란 성사聖師께서 도안道眼으로 사찰을 창건한 처음에 사자 목을 피하여 북쪽 기슭을 건넜다고 하는 것이 해당됩니다. 새 길이란 훼불毀佛하는 무당이 옹정雍正 연간에 사자 목을 자르고

012_0734_b_01L剏也咸豊四年甲寅秋洪水所壞也
012_0734_b_02L此卽南路斫獅子項極樂橋之始終也
012_0734_b_03L又按改路記始通大路於龍虎之間
012_0734_b_04L年偶信巫覡廢古治新於龍尾獅項
012_0734_b_05L于壬辰五月更修古路此卽北岸避獅
012_0734_b_06L項從古路之始終也越二十六年丁巳
012_0734_b_07L七月山之釋漢朋公捨財架石於古虹
012_0734_b_08L橋地修治道路斫獅項斷龍尾此卽
012_0734_b_09L極樂橋之終始也盖古記但言橋之始
012_0734_b_10L終年記無路之新舊之卞壬辰改路之
012_0734_b_11L始卞新舊路之利害論丁巳之役
012_0734_b_12L專無新舊利害之說築石架空培土闢
012_0734_b_13L斫項斷尾車馬通涉便勝於大都
012_0734_b_14L巨港噫噫南岸路古耶北岸路新耶
012_0734_b_15L古路利耶新路害耶固莫得以卞其
012_0734_b_16L何古何新誰利誰害之的處也傳說云
012_0734_b_17L昔在寺富僧盛時近有毀佛者稱以神
012_0734_b_18L眼誣僧云開路獅項建橋龍尾寺益
012_0734_b_19L僧益盛僧信其言改其路建其橋
012_0734_b_20L從玆寺僧漸衰云此與信巫之說壬
012_0734_b_21L辰之役大同而兩說符契新舊可卞
012_0734_b_22L利害自分盖嘗論之古路者聖師道
012_0734_b_23L剏寺之初避獅項渡北岸者是也
012_0734_b_24L新路者毀佛巫覡雍正之間斫獅項

012_0734_c_01L남쪽 기슭에 올랐다고 하는 것이 해당됩니다. 살아 있는 맥을 한 번 끊으니 천 년 동안 잇기 어렵고, 죽은 재가 불을 구하나 백 년 동안 얻기 어렵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자의 맥을 한 번 끊으면 끝내 잇기 어려울 것이요, 죽은 용의 꼬리에 석교를 세우더라도 끝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해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조봉祖峰의 우뚝함(逈特)과 용호의 안음(抱藏), 수구의 장쇄藏鎻, 중조봉中祖峰의 행룡行龍, 두 시냇물의 득파得破,517) 비단 띠 모양의 정국正局, 법계도의 배치, 4대격大格의 향배向背, 4고장庫葬의 고임과 쏟아짐(渟瀉), 용호 옆구리의 통섭通涉 같은 경우는 천지가 비장한 군옥부群玉府518)러니 이 모두 도안으로 창업하여 천지가 함께 보존되길 도모한 계획이 됩니다. 어이하여 말세에 사특한 말을 믿고 힘쓰기를 이처럼 의기양양하게 합니까.”
나는 이에 기록하여 도안과 고견을 가진 이에게 보이노라.
화엄사 진응 화상을 청하는 글(請華嚴寺震應和尙書)
선문禪門이 세상에 행한 지가 멀고 크지 않음이 없고 선사禪師가 세상에 유명함이 또한 많고 밝지 않음이 없으니, 조계산 한 굽이에 이르러 선문의 조종朝宗이라 칭할 수 있음이 또한 불가함이 되지 않습니다.
각노覺老에 대해 구옹龜翁은519) 널리 퍼뜨렸다 하더라도 세대가 지나고 시간이 멀어지니 그저 종이와 묵만 남아서, 살아 있는 조사의 뜻이 허공을 말하는 혀끝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조사의 글이 오유烏有(없음)의 먼지 속으로 묻히게 되니 불자佛子로서 한심하여 어찌 그저 애만 끊겠습니까. 지난번 우담자優曇子520)가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을 지역에 반포했으나 다만 책상 위 문구文具일 뿐입니다. 조석으로 눈여겨보고 마음과 입으로 회자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조계 선문은 땅에 떨어질 것임이 의심할 바 없습니다.

012_0734_c_01L蹋南岸者是也若其生脉一斷千載難
012_0734_c_02L死灰求火百年難得以今生獅脉
012_0734_c_03L一斷終不可續死龍尾架石終不可
012_0734_c_04L活也其所利害之果何如哉至若祖峰
012_0734_c_05L之逈特龍虎之抱藏水口之藏鎻
012_0734_c_06L祖峰之行龍兩溪水之得破羅帶形之
012_0734_c_07L正局法界圖之布錯四大格之向背
012_0734_c_08L四庫葬之渟瀉龍虎脇之通涉天藏地
012_0734_c_09L群玉之府是皆爲道眼剏業之所以
012_0734_c_10L圖天地俱存之計也奈之何以叔季信
012_0734_c_11L邪加功之如是得得也余於是記而示
012_0734_c_12L之於道眼高見者

012_0734_c_13L

012_0734_c_14L• 請華嚴寺震應和尙書

012_0734_c_15L
盖禪門之行于世靡不遠且大矣禪師
012_0734_c_16L之鳴於世亦靡不衆且曠也而至若曹
012_0734_c_17L溪一曲能稱禪門之朝宗亦未爲不可
012_0734_c_18L覺老之龜翁雖云宏闡然而世降
012_0734_c_19L時遠徒遺紙墨活底祖意便歸於談空
012_0734_c_20L之舌頭端祖文忽埋於烏有之塵裡
012_0734_c_21L爲佛子所可寒心者何但切腑哉向者
012_0734_c_22L優曇子之證正錄雖頒於域內只是案
012_0734_c_23L上文具而已誰有晨夕着眼膾炙心口
012_0734_c_24L若此不擧曹溪禪門幾乎落地而

012_0735_a_01L현재 지역 내 사찰들의 푸른 눈은 번개 같아 교문敎門의 갈등을 모두 쓸어 버리고, 붉은 혀는 고래 같아 화장華藏521)의 파란을 모두 삼켜 버립니다. 오직 안타까운 것은 선문에 볼 만한 게 없으니 다만 창설剏設이 없어 그렇고 그런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화상께서 평등한 자비를 운용하시어 화장루華藏樓를 떠나지 마시고 조계산에 강림하소서. 제(不佞)522)가 발기하여 일말一末의 편지를 보내 사방의 동지들을 부르니 필경 개미처럼 사모하여523) 구름처럼 모여드는 정경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를 당하여 우리 대사께서 단에 오르시어 불자를 세워 들고 임제종의 본지를 설파하면, 참석하여 듣는 무리들이 책을 들고 조계선의 물살에 함께 목욕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언우齴齲524)가 강을 건너온 공덕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니 또한 각노覺老가 편집한 공덕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화상께서는 눈여겨보시고 답변해 주십시오.
월간잡지(해동불보)를 읽고 감상을 쓴 편지최예운525)이 당시 주필이다.(讀月報感想書崔兒1)雲時在主筆)
이번에 선생께서 보필報筆526)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나를 책망하심이 절실하고 간절하며 알뜰하고 부지런하여527) 간담이 땅에 떨어지니,528) 분수 밖의 총애를 받음이 왕의 식사를 거지에게 베푼 듯하니 어찌 안심하고 입으로 넘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선생께서 세상 추기樞機529)를 다하고 현변玄辯(이치)을 다하여530) 『해동불보海東佛報』531)에서 활달하고 넓게 비추시니, 미약한 지견知見으로 대방大方532)의 지혜로운 안목에 함부로 글을 던진다면 어찌 태허太虛에 터럭 하나 될 뿐이겠습니까. 또한 큰 골짜기에 물 한 방울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감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걸림이 없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즉 보조국사普照國師 비문을 싣다가 완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보필報筆이 세상에 중요한 이유는, 고금 역사 가운데 본받을 만한 것이나 성현의 시순時順533) 간의 특별한 행적, 불조佛祖가 주고받은 아름다운 모범,

012_0735_a_01L無疑矣現今域中諸刹靑眼如電
012_0735_a_02L盡敎門之葛藤赤舌如鯨呑盡華藏之
012_0735_a_03L波瀾唯恨禪文之莫閱者第無剏設而
012_0735_a_04L然之然也伏唯和尙運平等慈不離
012_0735_a_05L華藏樓而降臨曹溪以不佞之發起
012_0735_a_06L一末之尺書招四山之同志必有蟻慕
012_0735_a_07L雲圍之情景當此時也吾師登壇竪拂
012_0735_a_08L談罷臨濟之宗旨聽徒叅會挾笑咸沐
012_0735_a_09L曹溪之禪波如是以可報齴齲渡江之
012_0735_a_10L亦不負覺老綴葺之德也唯和尙着
012_0735_a_11L眼一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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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5_a_13L• 讀月報感想書崔兒 [101] 雲時在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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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先生責我以不記報筆切切恳恳
012_0735_a_15L諄孳孳肝膽塗地以至於分外之寵
012_0735_a_16L幸如推王饌而惠乞兒渠敢安心而下
012_0735_a_17L口哉且以先生之竭世樞機窮諸玄
012_0735_a_18L磊落廓照於海東佛報以若微麽
012_0735_a_19L知見妄投大方之慧目則奚但爲一
012_0735_a_20L毫之於太虛亦如一滴之於巨壑
012_0735_a_21L玆不敢抽毫於其間然而不能無碍膺
012_0735_a_22L者有之卽普照國師碑載之未完者也
012_0735_a_23L盖以報筆之重於世者古今歷史之可
012_0735_a_24L賢聖時順之殊蹟佛祖受授之嘉

012_0735_b_01L학계가 진보하는 오묘한 방법 등에 대해 본 것을 기록하고 들은 것을 모아서 세상에 반포하고 이목에 공포하기 때문이니, 이것이 가히 보필이 크게 경사스런 이유라 할 만합니다. 이제 조계 보조普照의 비문을 기재하되 완성하지 않고 또한 3개월이 지나도록 잇지 않으니534) 왜 그렇습니까. 보조의 도덕이 화담華潭535)과 함명涵溟536)의 교화에 미치지 못하고 김군수金君綏537)의 찬술이 또한 여하정呂荷亭538)이나 이유원李裕元539)의 찬술만 못합니까? 지금 보필은 바로 옛날 사필에 해당합니다. 글(筆)이 미완이라면 비문이 미완이요, 비문이 미완이라면 월보 또한 미완이요, 월보가 미완이라면 잡지사에서 보필報筆을 잡고서 죽백竹帛540)에 흠이 있음을 부끄러워함이 없겠습니까. 잡지사에서 보필을 잡고서 삭제하고 기술하는 것을 자유롭게 함은 장사가 팔을 펼침에 타인의 힘으로 말미암지 않음과 같습니다.
공손히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서까래처럼 큰 붓541)을 움직여 반절의 비명碑銘을 이어 비명을 완성하여 월보에 게재함으로써 훗날 비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처음을 탐색하고 결말을 요약하여 국사의 덕음德音에 배부르게 한다면, 선생이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세상에 공표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밝게 살펴보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경월 거사의 「선문증정록 서문」 서술에 대한 답서당시 경성에 있었다. 추강 대사가 상경하여 인쇄할 때 (경월 거사에게) 서술하기를 청하였고, 제출하였기에 답하는 글이다.(答擎月居士證正序述書時在京。秋江大士上京印刷時。請述。提出故。仍答辭也。)
임계년(1892~1893)이 나뉠 때 광충교廣冲橋542)에서 차를 마셨고, 경술년(1910) 봄에 수표교水表橋543)에서 헤어졌고, 계축년(1913) 봄에 조계산방에서 글을 읽었습니다. 같이 차를 마신 지가 이미 10년이 지났고 헤어진 지 또한 4년(四花)이 지났으니 오늘 인적이 드문 드넓은 지경에서 글을 읽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글이 간략하면서도 풍부함은 실로 비단 마음과 수놓은 입544)의 큰 보배 상자 속에서 나온 것이니

012_0735_b_01L學界進步之妙方者見則記之
012_0735_b_02L則募之頒於世公於目是可云報
012_0735_b_03L筆之所以大慶幸也今曹溪普照之碑
012_0735_b_04L記而未完亦過三個月而不續何也
012_0735_b_05L以其普照之道德莫及於花 [102] 潭菡 [103] 溟之
012_0735_b_06L敎行金君綏之撰亦不若呂荷亭李裕
012_0735_b_07L元之述耶今之報筆卽古之史筆也
012_0735_b_08L筆若未完一碑未完碑若未完報亦
012_0735_b_09L未完報若未完居報社秉報筆能無
012_0735_b_10L愧於竹帛之玷之乎旣居其社秉其筆
012_0735_b_11L而削之筆之任其自由如壯士伸臂
012_0735_b_12L不由他力也恭唯先生運如椽之筆
012_0735_b_13L續半絕之銘完其碑載其報使後之
012_0735_b_14L讀碑者原始要終飽飫國師德音
012_0735_b_15L乃先生之筆於是公於世之結果耶
012_0735_b_16L先生切須洞鑑也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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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5_b_18L• 答擎月居士證正序述書時在京秋江
大士上京印
012_0735_b_19L刷時請述提出
仍答辭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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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癸年分酌茶於廣冲橋庚戌春
012_0735_b_21L顏於水表橋癸丑夏讀文於曹溪山房
012_0735_b_22L酌茶也已過十霜別顏也亦經四花
012_0735_b_23L而安知今日讀其文於希夷曠漠之境哉
012_0735_b_24L以其文之略而豊之寔出於錦心繡口

012_0735_c_01L가히 물고기 눈을 단련하여 밝은 구슬을 만들고 평범한 바위를 황금으로 만든 것이라545) 할 만합니다.
이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546)의 서술은 지금까지 40년이나 되었고 선생의 글을547) 천 리 바깥에서 얻어 오대양 안에 이 『선문증정록』을 공급하게 되었습니다. 아아, 이 『선문증정록』이 세상에 행해짐에 이 글을 얻음은 사람이 발을 얻음과 같습니다. 눈과 발이 서로 도우니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나 또한 우둔하고 완고하여 다만 그러함이 그러함만을 기억하고, 차를 마시며 이별하던 정만 서술하니 『선문증정록』 글을 얻은 기연은 훗날 살필 수 있겠는지요.
오직 바라건대 혜감慧鑑548)하소서.
근본을 배반하고 스승을 구하는 학우에게 보여 주는 글(示學友背本求師之人書)
아, 우리 아무개 공公은 내 직언을 들으시오.
부모가 낳아 주셨으니 마땅히 모셔서 봉양해야 하고, 스승(師長)에게 법도를 받았으니 예의로 공경히 받들어야 합니다. 갑작스레 그동안 몸담았던 학교와 이름 걸었던 사당社堂을 떠나니, 관계된 것은 근본에 보답함이요 바라는 것은 업적을 이룸입니다. 간혹 근본을 잊어 은혜를 배반하고 마음을 놓아 업적을 잃으면 사당에 돌아가 얼굴을 대하는 날에 무엇을 빌려 얼굴을 싸매고 무슨 말을 하여 보답할 것입니까.
아아, 괴군蒯君이 한신韓信을 설득함에549) ‘음식을 미루어 나를 먹이고 옷을 벗어 나를 입혔으니 배반함은 좋지 않다’는 말550)이 역사(竹帛)에 전해져 이목을 놀라게 합니다. 스승이 제자를 기름에 옷 입히고 먹이며 사랑하고 길러 주어, 우리 문중을 잘 계승하라는 말로 이목에 경계하니 그 말씀이 조석으로 쟁쟁합니다. 지금으로 옛일을 보니 그 취향이 어찌 다릅니까. 이것으로 저것을 보니 그 도의를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일시 곤란하여 두 마음을 품을 생각이 일어나서 그 본색의 가치로서 이전의 높낮이를 비교하자면 어찌 다만 계산으로 능히 할 뿐이겠습니까.

012_0735_c_01L之大寶篋中也可謂鍊魚目作明珠
012_0735_c_02L碌石成眞金者矣本錄之記述也迄今
012_0735_c_03L四十禩之久而得先生文於千里之外
012_0735_c_04L供斯錄於五洋之內噓唏哉本錄之行
012_0735_c_05L於世得斯文如人之得足也可謂目足
012_0735_c_06L相資無所徃而不適也哉余亦愚且頑
012_0735_c_07L而但記其然之然也叙其酌別之情
012_0735_c_08L文之得機幸使他日相照耶唯冀慧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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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35_c_10L

012_0735_c_11L示學友背本求師之人書

012_0735_c_12L
吾某公聽吾直言父母生身宜可
012_0735_c_13L侍養師長受度禮可敬奉頓然謝離
012_0735_c_14L身捿學庠名掛社堂所管者報本也
012_0735_c_15L所願者成業也其或忘本而背恩
012_0735_c_16L心而失業歸堂對面之日借何物而褁
012_0735_c_17L措何辭而報答哉嗚呼蒯君之說
012_0735_c_18L信也推食食我解衣衣我背之不祥之
012_0735_c_19L傳之 [104] 駭人耳目也師長之養
012_0735_c_20L佐也衣而食之愛而養之善繼吾門
012_0735_c_21L之說警之耳目錚之晨夕者以今視
012_0735_c_22L其趣何殊以此觀彼其誼誰忘哉
012_0735_c_23L若或一時之困難忽起二心之想以其
012_0735_c_24L本色之價値比前高低豈但以算數之

012_0736_a_01L장부가 세상에 나타남에 한번 곤란을 겪었다고 끝내 본색이 변화되면 어찌 사람으로서 도리어 푸르디푸르고 정정한 송백만 같지 못한 것입니까. 다만 군색한 때를 당하여 이빨을 물어 소리를 삼키고 눈여겨보아 정신을 수습하면서, 어린 나이에 입산한 어딘가에 혹시 잊지 못할 곳이 있는지 돌아보았습니까. 온 세상 인정이 한결같이 세력만을 헤아린다면 석숭石崇551)의 이름이 도리어 중니仲尼(공자)보다 높고 윤왕輪王552)의 지위가 도리어 실달悉達(부처)보다 높을 것입니다.
나로서 보자면 한 표주박의 붉은 모래(丹砂)553)가 1만 통의 지게미보다 훨씬 나으니, 한 조각 붉은 깃발로 땅에 가득한 패잔병들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어찌 감히 일시의 곤란으로 도의를 배반하고 세력을 따라 많은 이들의 비웃음을 끼치겠습니까. 두터운 도의를 한 번 배반하면 지하의 처벌을 피하기 어렵거늘, 고명高名을 한 번 잃게 되면 지역(域中)의 드러난 형벌을 어떻게 속죄하렵니까. 그대와 나는 도의가 미더워서 감히 충언을 펼치니 귀로 듣기는 거슬리더라도 고귀한 도의에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계산 제6세 원감국사께서 지은 『가송록』을 옮겨 적고 쓴 발문(曹溪山第六世圓鑑國師所著歌頌錄印寫跋文)
옛날 용맹龍猛554) 존자尊者께서 서인도에 나타나 염부제閻浮提(인간 세상)의 책을 모두 읽어 읽을 만한 게 없자 사가라沙迦羅555) 용왕 궁중으로 들어가 소장되어 있는 경전을 모두 열람하고서 약본畧本 『화엄경』을 외워 나와서 염부제와 4천하556)에 반포하셨다. 그 후 삼장법사557) 무리가 나와서 번역을 하여 타지에 전하였으니 큰 경전이 아니겠는가. 이제 조계산 제6세 원감국사圓鑑國師558)께서 지은 『가송록』 1책은 원래 본산本山(송광사)에서 방판方板(목판)으로 소장한 것인데 불행히 병화를 입었고 또한 개인적으로 소장한 것도 없어서 보고 듣는 게 드물어져 자못 공부하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이 되었다.

012_0736_a_01L所能也哉盖以丈夫現於世者一經困
012_0736_a_02L卒變本色則豈以人而反不如蒼蒼
012_0736_a_03L亭亭之松栢耶第當窘猝之時含齒呑
012_0736_a_04L着眼收神自顧齠年入山之郍邊
012_0736_a_05L倘有難忘之處也否若擧世人情一向
012_0736_a_06L推勢則石崇之名反高於仲尼輪王
012_0736_a_07L之位反高於悉達耶以吾觀之則一
012_0736_a_08L瓢丹砂逈勝於萬樽糟糠一片赤幟
012_0736_a_09L能伏於滿地殘兵也安敢以一時之困
012_0736_a_10L背誼追勢以遺乎千人之目笑哉
012_0736_a_11L重誼一背難免地下之陰誅高名一失
012_0736_a_12L奚贖域中之現戮耶君與吾而誼孚
012_0736_a_13L開忠言耳雖違逆庶補高誼云尒

012_0736_a_14L

012_0736_a_15L曹溪山第六世圓鑑國師所著歌頌
012_0736_a_16L錄印寫跋文

012_0736_a_17L
昔龍猛尊者現于西印度讀盡閻浮提
012_0736_a_18L無可讀者入沙迦羅龍王宮中
012_0736_a_19L所藏經莫不畢閱而誦出畧本華嚴經
012_0736_a_20L頒於閻浮及四天下其後三藏法師輩
012_0736_a_21L譯傳方外者莫是大經歟1) [19]
012_0736_a_22L第六世圓鑑國師所著歌頌錄一局
012_0736_a_23L是本山方板所藏而不幸爲兵燹之所
012_0736_a_24L亦無私藏罕所見聞頗爲學者病焉

012_0736_b_01L
무오년(黃馬, 1918) 봄에 조계산의 승려 해은海隱 공公559)이 서울에 머무는 동경 임제종 한당 선사閒堂禪師의 군지軍持560)에 『가송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을 쓸고 크게 숨을 토하며 말했다. “이것을 얻기 어려움은 용왕 턱 밑에서 진주를561) 가져오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차라리 듣지 못했으면 그만이려니와 들었는데 어찌 구하지 않겠는가.”
즉시 여장을 꾸려 한성에 가서 육당 학인六堂學人 최 공崔公562)과 함께 두루 찾아 얻고자 했다. 쇠를 갈고 뼈를 깎는 듯 열심히 했다. 육당이 아베(阿部) 거사居士에게 소개하여, 거사 또한 한당 선사에게 끈질기게 구하니(膠索), 선사가 마음으로 허락하였다. 한 달을 기한으로 아베에게 전하고, 아베는 육당에게 전하여, 육당은 해은에게 전하니, 해은이 보배로 여겨 가지고 와서 조계산에 이르러 대중에게 보였다. 대중이 모두 절을 하고 보며 서로 칭하기를, “합포合浦의 진주가 돌아왔고563) 화씨和氏의 구슬이 완전해졌도다.564) 나도 몰래 춤을 추며 그칠 바를 모르겠구나.”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실로 한당이 말한 기한이 넉넉하지 않아서 판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세 학우에게 명하여 20질을 옮겨 적고서 나누어 보관하게 하고는 기궐씨剞劂氏565)의 시절인연 여부를 기다렸다.
아, 용맹자龍猛子가 여래如來 입멸(B.C. 483경) 후 738년에 사가라沙迦羅 용궁 보관소에 들어가 경전을 외워 나왔고, 해은 공은 국사國師 입멸 후 624년에 상경하여 한당이 보관한 것을 빌려 가져왔다. 해은 공의 공적을 논하자면 용맹보다 덜하지 않고, 육당과 아베의 공적도 해은 공보다 높지 않다. 한당의 공적은 용궁 보관에 비견되고, 학우가 옮겨 적은 공적은 또한 삼장법사의 덕보다 못하지 않다. 하늘의 오성五星과 같고 땅의 오행五行과 같으니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다섯 인연이 함께 이루어진 것에 진실로 거짓이 없다.
보정寶鼎 내가 조계의 종파宗波를 마시고 국사의 법유法乳로 성장한 지 지금에 40년이 된다. 이 『가송록』을 봉독하면서 나도 몰래 눈물을 떨구며 이와 같이 기록하여

012_0736_b_01L黃馬之春山之釋海隱公竊聞本錄之
012_0736_b_02L藏在於漢城留東京臨濟宗閒堂禪師軍
012_0736_b_03L持中撫膺太息曰此之難得難於龍頷
012_0736_b_04L下穿珠也然而寧以不聞聞何不求哉
012_0736_b_05L卽褁足抵漢城與六堂學人崔公圖周
012_0736_b_06L覔得若磨鐵然刮骨焉六堂紹介於阿
012_0736_b_07L部居士士亦膠索於閒堂禪師師心許
012_0736_b_08L限一朔而傳之阿阿傳之六六傳
012_0736_b_09L之海海寶而賚之抵曹溪現介衆
012_0736_b_10L皆拜觀而相賀曰浦珠還歟和璧完歟
012_0736_b_11L不覺舞蹈莫知攸云然而固閒堂之立
012_0736_b_12L期不贍不暇壽木而命諸三學友
012_0736_b_13L寫二十袠分藏之以待剞劂氏之時緣
012_0736_b_14L如何也龍猛子於如來滅後七百
012_0736_b_15L三十八年間入沙迦羅藏而誦出大經
012_0736_b_16L海隱公於國師滅後六百二十四年時
012_0736_b_17L上京都閒堂藏而賚來本錄盖嘗論之
012_0736_b_18L海公之功不下於龍猛六堂阿部之功
012_0736_b_19L亦莫上於海公閒堂之功比諸龍藏
012_0736_b_20L友印寫之功又不下於三藏之德矣
012_0736_b_21L天如五星在地若五行可謂闕一不
012_0736_b_22L五緣俱成者信不誣也鼎飮啄曹
012_0736_b_23L溪之宗波長養國師之法乳者四十年
012_0736_b_24L于此矣奉讀本錄不覺泣泪而記之

012_0736_c_01L대중에게 고하노니, 오직 통달한 자는 같이 증명해 주시길.
대정大正 7년(1918) 저옹돈장著雍敦牂566) 응종應鍾(10월) 하완下浣(하순)에 조계曹溪 후학後學 보정寶鼎이 다송실茶松室에서 쓰다.
동복군 유마사 봉향각의 창건 상량문기미년(1919) 3월 3일 상량(同福郡維摩寺奉香閣剏建上樑文己未三月初三日上樑)
아랑위兒郞偉.567)
도솔타兜卛陀568)의 내원궁內院宮은 이루어지고 비워지는(成空) 겁刼을 보인 적이 없고, 색구경色究竟569)의 비상계非想界570)는 머무르고 무너진다는(住壞)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 다만 의정依正571)이 다르겠습니까. 실로 업과 인연의 감응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이제 유마사維摩寺는 비록 내원㮈園572)의 숙원은 없지만 다만 역수曆數의 해(星朞)를 돌아봅니다. 당나라 정관貞觀 기원 정해년(627)에 개산開山573)하여 창건(草剏)하였고, 청나라 순치順治 13년 병신해(1656)에 넓혀서 다시 지었습니다. 산은 ‘모후산母后山’이니 공왕恭王이 머물렀던 이후로 나복산蘿葍山 이름을 바꾸었고,574) 사찰은 ‘유마사’이니 거사가 물을 마실 당시 제월천濟月泉의 좋은 인연575) 때문입니다. 말이 서산으로 달아나니 채찍 그림자를 보고는 도를 깨치고, 북두칠성(斗)이 동쪽 고개에 걸리니 뻐꾸기(布穀)576)가 풍년을 점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은하수에 별들이 늘어서 금륜金輪(태양)에 조회하여 절을 하고, 옥 같은 계곡(玉澗)의 긴 여울은 돌다리577)를 씻으며 맑게 흐릅니다. 극락전에 삼불三佛578)의 진리가 공공적적空空寂寂하고, 명부㝠府 책상 위에 시왕의 판결이 소소영령昭昭靈靈579)합니다. 실로 몇천 년 이어 온 꽃비 내리는 도량이요, 십주十州580) 가운데 군옥부群玉府581)입니다.
그러나 머무르고 빔이 돌고 도니 넝쿨이 울타리를 에워쌈을 탄식하게 되고,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순환하니 여우와 토끼가 섬돌에 사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승료僧寮가 적막하니 서쪽 방과 동쪽 방이 염군炎君(화재)의 재앙을 만났고, 선암禪庵(암자)이 황량하니 남쪽 굴과 북쪽 대坮가

012_0736_c_01L如右吿于大衆唯達者同垂證明
012_0736_c_02L正七年著雍敦牂應鍾下浣日曹溪後
012_0736_c_03L學寶鼎書茶松室中

012_0736_c_04L

012_0736_c_05L同福郡維摩寺奉香閣剏建上樑文
012_0736_c_06L己未三月初三日上樑

012_0736_c_07L
兒郞偉兜卛陀內院宮未見成空之刼
012_0736_c_08L色究竟非想界不聞住壞之名何但依
012_0736_c_09L正之所殊寔由業緣之所感今維摩寺
012_0736_c_10L雖無乎㮈園之宿願但稽於曆數之
012_0736_c_11L星朞唐貞觀紀元丁亥年開山而草剏
012_0736_c_12L淸順治十三丙申歲廣拓而重修山以
012_0736_c_13L母后兮恭王駐驆後蘿葍山之改號
012_0736_c_14L寺名維摩者居士飮啄時濟月泉之良
012_0736_c_15L馬逃西山見鞭影而證道斗掛東
012_0736_c_16L聞布糓之占年銀漢列星朝金輪
012_0736_c_17L而摸 [105] 玉澗長湍洴石橋而淸流
012_0736_c_18L樂殿中三佛之眞理空空寂寂㝠府
012_0736_c_19L案上十王之決獄昭昭靈靈寔迺幾
012_0736_c_20L千年雨花之場環十州群玉之府然而
012_0736_c_21L住空輪轉堪嗟藤蘿之繞籬成壞循環
012_0736_c_22L難禁狐兎之捿砌僧寮寂寞西室東堂
012_0736_c_23L遭炎君之流災禪庵荒凉南窟北坮
012_0736_c_24L「曹」下疑脫「溪」{編}

012_0737_a_01L은자의 거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염라왕의 건물에 업경0業鏡의 빛이 침침하고, 응진당應眞堂582) 앞에 신묘한 감식이 먼지에 묻혔습니다. 옥 같은 섬돌은 온통 돌 조각이 되고, 우담바라는 가시넝쿨로 바뀌었습니다. 이로부터 안개와 구름으로 잠겨 오래도록 쓸쓸하고, 바위의 샘물은 오열하며 슬피 흘렀습니다.
광서光緖 5년 신사(1881)583)에 경성의 고승(高師) 김경담金景潭이 창건하는 화주化主가 되고 광부光府(전라도) 관찰사 김규홍金奎弘584)이 단나檀那(시주) 손님이 되어, 먼저 향당香堂을 세웠는데 옥 같은 기와를 덮을 겨를이 없었고 다음으로 불우佛宇를 수리하는데 다만 금용金容585)을 봉안하기만 도모했습니다. 할향喝香586)과 헌재獻齋587)로 왕토王土가 길이 이어짐을 우러러 축원하고, 푯말로 표시한 지역으로 민생의 안정을 보호 유지합니다. 요컨대 3기紀(36년)가 겨우 지나자 서까래와 모자茅茨588)가 어긋나고, 백 년이 되지 않아 향적방과 당우堂宇589)가 무너졌습니다. 위에서 내리는 비와 옆에서 부는 바람에 기둥이 틀어지고 벽이 떨어졌습니다.
기미년(黃羊, 1919) 봄에 마을의 대부와 믿음 있는 군자들이 단문檀門(시주)을 보호하여 인연을 구하고, 주지 김영운金榮雲이 삼림을 가꾸어 재물을 모았습니다. 옛터가 좁음을 꺼려서 새로운 평평한 땅을 골라, 한 층을 낮추어 터전을 닦아 대족월大簇月(1월) 20일에 초석을 놓았으며, 사면에 기둥을 세워 대량월大梁月590) 상순(上澣)에 들보를 올렸습니다. 진송秦松591)을 도끼로 자르니 사대부四大夫592)가 특별하고, 한백漢栢593)을 먹줄로 다듬으니 삼장군三將軍이 솟아올랐습니다. 두 통나무가 가지런히 조화로우니 넝쿨과 여우ㆍ토끼들이 혼몽한 상태에서 문득 깨어나고, 육위六偉594)를 나란히 거행하니 가시나무와 기와ㆍ자갈들이 모두 광명을 발합니다.
이에 긴 들보를 들어 짧은 송가를 부르니, 송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兒郞偉。拋樑震  어영차(兒郞偉), 들보 동쪽(震)에 던지네
斗掛金輪聳萬仭  북두칠성 걸린 금륜金輪이 만 길로 솟는데
獅子仰天穴在何  사자가 하늘 우러르던 굴은 어디에 있나
白雲深處人難信  흰 구름 깊은 곳을 사람들은 믿지 못하네

兒郞偉。拋樑离  어영차, 들보 남쪽(离)에 던지네
龍抱虎蹲各展眉  용처럼 안고 범처럼 앉아 각기 눈썹 펴니
廣橋石氣天津近  광교廣橋의 돌 기운에 하늘나루가 가깝네
王子何年聽子規  왕은 어느 해에 자규 소리를 들을까595)

兒郞偉。拋樑兌  어영차, 들보 서쪽(兌)에 던지네

012_0737_a_01L或隱士之捿息閻王殿上業鏡光沈
012_0737_a_02L應眞堂前神鑑塵沒玉階滿成瓦礫
012_0737_a_03L曇花變爲蒺藜由是烟雲鎻而長悽
012_0737_a_04L泉咽而下悵迄于光緖五年辛巳京城
012_0737_a_05L高師金景潭爲剏化之主光府觀察金
012_0737_a_06L奎弘作檀那之賓先建香堂未暇玉
012_0737_a_07L瓦之盖覆次修佛宇只圖金容之奉安
012_0737_a_08L喝香獻齋仰祝王土之遐曆標木場界
012_0737_a_09L護持民生之賴安要且三紀纔過椽梠
012_0737_a_10L茅茨差脫百載不滿香積堂宇崩頽
012_0737_a_11L上雨而傍風棟斜而壁落黃羊之春
012_0737_a_12L郡大夫信君子護檀門而求緣住持釋
012_0737_a_13L金榮雲 [106] 森林而聚財嫌舊址之陜隘
012_0737_a_14L銓新土之坦平落一層而開基大簇月
012_0737_a_15L中念日安礎維四面而立柱大梁月上
012_0737_a_16L澣日上樑斫秦松而斧斤四大夫之特
012_0737_a_17L運漢栢而繩墨三將軍之騰空
012_0737_a_18L樸齊和藤蘿狐兎頓惺魂夢六偉并
012_0737_a_19L蒺藜瓦礫咸放光明爰擧脩樑
012_0737_a_20L唱短頌頌曰

012_0737_a_21L兒郞偉拋樑震斗掛金輪聳萬仭獅子
012_0737_a_22L仰天穴在何白雲深處人難信兒郞偉
012_0737_a_23L拋樑离龍抱虎蹲各展眉廣橋石氣天
012_0737_a_24L津近王子何年聽子規兒郞偉拋樑兌

012_0737_b_01L一帶靑山雲靄靄  일대 청산에 구름이 자욱한데
濟月何人已汲泉  제월천에 누가 벌써 샘을 길렀나
更持木杓終朝汰  다시 구기 가지고 아침 내내 거르네

兒郞偉。拋樑坎  어영차, 들보 북쪽(坎)에 던지네
紺殿大雄肯赴感  감전紺殿(절)의 대웅大雄(부처)이 감동하시리니
心香一炷祝明君  심향心香596) 한 줄기로 현명한 임금을 축원하여
昇遐今朝供祭禫  승하한 오늘 아침에 담제597)를 받드네

兒郞偉。拋樑乾  어영차, 들보 위쪽(乾)에 던지네
紫微宮裡列諸仙  자미궁598) 안에 늘어선 신선들이
白雲一片如相駕  백운 한 조각을 수레처럼 몰아서
幻化吾身倐百年  내 몸을 변화시켜 백 년 지난 듯하네

兒郞偉。拋樑坤  어영차, 들보 아래쪽(坤)에 던지네
萬像無非作一根  만물이 일근一根을 짓지 않음이 없어
普吿千村檀越氏  온 마을의 단월들에게 널리 고하노니
莫存知解入吾門  알음알이 두고서 내 문으로 들어오지 마시라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上樑한 후에 온갖 재앙이 법우法雨에 모두 씻겨지고 온갖 복이 승당僧堂에 모여드소서. 불일佛日이 빛을 더하여 내원궁內院宮 안에서 요일堯日599)과 병행하고, 선풍禪風이 더욱 치성하여 비상천非想天600)에서 순풍舜風601)과 조화를 이루소서.
수선사 계의602) 서문10월 15일(修禪社契誼序十月十五日)
생각건대, 석가모니께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湼槃妙心603)으로 마하가섭摩訶迦葉604)에게 부촉하시어 계속해서 이어지니, 그 도의 명쾌(直截)하고 원묘圓妙하며 초월(迥絶)한 이치는 온갖 관료와 대신(阿衡)에 대해 천자인 경우와 같아 삼승교법三乘敎法605)으로 방불하게 비견될 수 없음이 자세히 책에 실려 있다. 그 공리功利를 비교하면 선단仙丹이 적은 분량으로도 죽은 이를 살리는 것과 똑같다. 능히 진실로 참구하고(實參) 진실로 깨달아서(實悟) 일념회광一念廻光606)하여 옛 부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면, 어찌 삼기三祗607)의 헛된 공력을 쓸 것인가. 비록 진실로 함이 없어서 혼침昏沈과 도거掉擧(들뜸)가 뒤섞이더라도 또한 저 인과因果의 행문行門이 도달하는 바가 아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일대장교一大藏敎608)에는 절반으로 원만하지 않은 것도 있고 임시변통(權)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도 있다. 부처님이 스스로 말씀하시길, 요의了義609)에 의거하고 불요의不了義에 의거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절반으로 원만하지 못한 것과 임시변통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은 의거해서는 안 된다. 그 이치가 드러났는데 지금 수행자를 보면 대개 절반에 미혹되고 임시변통에 막혀 일생을 그르치고 있으니 슬프도다.
옛날 고야산姑射山의 선인仙人은

012_0737_b_01L一帶靑山雲靄靄濟月何人已汲泉
012_0737_b_02L持木杓終朝汰兒郞偉拋樑坎紺殿大
012_0737_b_03L雄肯赴感心香一炷祝明君昇遐今朝
012_0737_b_04L供祭禫兒郞偉拋樑乾紫微宮裡列諸
012_0737_b_05L白雲一片如相駕幻化吾身倐百年
012_0737_b_06L兒郞偉拋樑坤萬像無非作一根普吿
012_0737_b_07L千村檀越氏莫存知解入吾門伏願上
012_0737_b_08L樑之後千殃咸沐於法雨百福鼎集於
012_0737_b_09L僧堂佛日增輝并堯日於內院宮裡
012_0737_b_10L禪風益熾和舜風於非想天中

012_0737_b_11L

012_0737_b_12L• 修禪社契誼序十月十五日

012_0737_b_13L
原夫釋迦氏以正法眼藏湼槃妙心
012_0737_b_14L囑摩訶迦葉轉轉相授其道直截其圓
012_0737_b_15L妙迥絕之理如百僚阿衡之於天子
012_0737_b_16L可以三乘敎法比擬髣髴具在方册
012_0737_b_17L量功利一似仙丹刁圭而起死若能
012_0737_b_18L實叅實悟一念廻光與古佛齊肩何用
012_0737_b_19L三祗枉功縱未有實溷沌於昏掉亦非
012_0737_b_20L他因果行門所到佛說一代 [107] 藏敎有半
012_0737_b_21L而未圓者權而未實者佛自說依了義
012_0737_b_22L不依不了義其半也權也不可以依之
012_0737_b_23L其理彰著而今觀修行者擧槩迷
012_0737_b_24L半滯權誤了一生悲夫昔姑射仙人

012_0737_c_01L그 정신이 맺히면 만물이 병들지 않게 하고,610)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신선이 되어 오르니 닭과 개도 구름을 탔다.611) 닭과 개도 그 도의 교화를 받았는데 하물며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한 사람임에랴. 신선 또한 만물이 병들지 않게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위없는 바른 도임에랴. 그래서 말하길, “듣고도 믿지 않았으나 그래도 불종佛種612)의 인因을 맺었고, 배우고도 미처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대로 사람과 하늘의 복을 더한다.”613)라고 한다. 그래서 동참하는 계의契誼를 마련하여 최상의 인연을 같이 맺어 수역壽域에 같이 이르도록 하였다.
수역이란 무엇인가. 청산은 검푸르고(凝凝) 벽해는 시퍼렇고 구름 조각이 펼쳐지며 소나무 소리 스산하니 무엇이든 자기의 빛을 항상 발하지 않음이 없어 하늘을 두르고 땅을 두르며 옛날과 지금에 이르도다. 신묘한 작용이 항하사의 모래처럼 많더라도 견고함이 금강 같다. 그래서 고덕古德이 말하길, “반야 위에 헛되이 버리는 공부가 없다.”614)라고 했다. 성불하기를 원하는 자가 있으면 응당 깊은 마음으로 큰 원력을 발할지라.
이 수승한 인연에 따라 우러러 성수聖壽(임금 수명)를 축원합니다. 운운云云.
제운 화상의 비석을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3월 14일에 세움.615)(霽雲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四日立)
총림叢林의 대덕大德 제운당德霽雲 존령尊靈이시여
법신은 본래 청정하고, 진상眞相은 이름이 없으며
지인은 사사로움이 없고, 대덕은 공적이 없거늘616)
하물며 우리 선조께서는, 무상함을 몸소 체득하시어
유위有爲의 업을 없애고, 무루無漏의 종지를 증득하셨네.
후손들이 추모하여, 돌을 다듬어 비석을 세우니
귀부龜趺가 돌아보는 듯, 용대龍坮는 날아오르는 듯
높이 푸른 벽을 지탱하고, 은은히 흰 빛이 비추니
글씨는 살아 있는 교룡 같아, 빛나는 말로 칭송하였네.
시작한 일이 이루어졌으니, 이에 차와 향을 올리며
추모하는 무리들이, 이에 정성을 다하여
삼가 알가閼伽617)를 드리노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벽담618) 화상의 비석을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3월 13일에 세움.(碧潭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三日立)
대화엄종주 벽담당碧潭堂 각령覺靈619)이시여,
불조佛祖의 심인心印을 전하여,

012_0737_c_01L其心凝而萬物不疪淮南王安登仙而
012_0737_c_02L鷄犬乘雲鷄犬被其道化况最靈於物
012_0737_c_03L者乎仙亦能使物不疪况佛無上正道
012_0737_c_04L故云聞而不信尙結佛種之因
012_0737_c_05L而未成猶盖 [108] 人天之福故設同叅契誼
012_0737_c_06L使共結最上因緣同臻壽域夫壽域者
012_0737_c_07L何也靑山凝凝碧海蒼蒼雲片展張
012_0737_c_08L松聲蕭瑟無物非自己常光匝天匝地
012_0737_c_09L亘古亘今雖妙用恒沙能堅固如金剛
012_0737_c_10L故古德云般若上無虛棄之功夫若有
012_0737_c_11L成佛願者應發深心大願也哉仗玆勝
012_0737_c_12L仰祝聖壽云云

012_0737_c_13L

012_0737_c_14L霽雲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四日立

012_0737_c_15L
叢林大德霽雲堂尊靈法身本淨眞相
012_0737_c_16L無名至人無己大德無功况吾先祖
012_0737_c_17L體達無常蕩有爲業證無漏宗雲仍
012_0737_c_18L追慕攻石樹碑龜趺如顧龍坮若飛
012_0737_c_19L高撑翠壁隱映白輝篆活蛟腰頌綴
012_0737_c_20L錦彙剏事已周玆薦茶香庶追感慕
012_0737_c_21L爰庸鬯誠謹以閼伽伏唯尙饗

012_0737_c_22L

012_0737_c_23L碧潭和尙立石祝己未三月十三日立

012_0737_c_24L
大華嚴宗主碧潭堂覺靈傳佛祖心印

012_0738_a_01L인천人天의 안목을 여시고
덕산德山620)의 할喝을 활용하며, 임제臨濟의 종지를 지니사
12종사의 자리를 빼앗고, 열여덟 분(公)의 당堂621)을 이어
거창한 업을 이미 수립했으니, 어찌 후손들의 정성이 없겠습니까.
이에 돌을 다듬는 비용을 쓰고, 금송錦頌622)의 공적을 지으니
비석 짊어진 거북은 진흙에 묻히고, 싸우는 모습의 용은 하늘로 솟아
우뚝 솟아난 운근雲根623)으로, 그 빛이 달의 얼굴을 쓰다듬고
연못 달의 그림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산 구름의 빛을 잘게 자르네.
여러 음식과 차를 드리노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학생에게 보이다(示學生)
사람이 모여 삶에 금수와 다른 것은 규율(規模)로 몸을 따르게 함이 있음이니 차례를 넘어 앉거나 누울 수 없는 것이다. 바른 마음으로 책을 끼고 위치에 따라 자리에 앉아 규율에 편안하면 만물을 경계할 수 있다. 배우는 자리를 ‘학사學肆’624)라고 부르는 것은 많은 물품들의 배열이 서로 뒤섞이지 않아서 문란하지 않고 조리가 있기 때문인데, 지금 배우는 이들은 도리어 시장(市肆)만 못하니 되겠는가?
옛날 백이伯夷ㆍ숙제叔弟와 공자ㆍ맹자는 수양산에서 굶주려 죽거나 빈말을 하며 베풂이 없던 필부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 사람들에게 빗대면 기뻐한다. 걸桀ㆍ주紂와 유幽ㆍ려厲625)는 귀하게 천자가 되고 부유하게 사해의 제왕이 되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 사람들에게 빗대면 화를 낸다. 그대들은 진실로 생각해 보라. 필부에게 비교하면 화내야 할 텐데 도리어 기뻐하고 제왕에게 비교하면 기뻐해야 할 텐데 도리어 화를 낸다. 기쁨과 화냄이 상반되니 왜 그러한가. 진실로 사람의 귀하고 천함은 도덕의 득실에 있고 지위의 고하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대들은 힘쓸지어다.
웃옷을 벗고 경전을 보는 학도들을 훈계하다(誡學徒脫上衣看經)

012_0738_a_01L開人天眼睛用德山之喝佩臨濟之宗
012_0738_a_02L奪十二宗席繼十八公堂旣樹巨剏之
012_0738_a_03L盍無雲裔之誠玆庸攻石之費
012_0738_a_04L綴錦頌之功負龜沒泥鬪龍騰空
012_0738_a_05L聳雲根光磨月容薄批潭月之影
012_0738_a_06L切山雲之光庶羞茶薦伏唯尙饗

012_0738_a_07L

012_0738_a_08L示學生

012_0738_a_09L
人之群居所以異於禽獸者以其有規
012_0738_a_10L模隨身不能越序坐卧故也以正心挾
012_0738_a_11L依位列坐規模安詳則可以警物
012_0738_a_12L以學地稱爲學肆者品物行列
012_0738_a_13L而不襍有條不紊之謂也今所爲學者
012_0738_a_14L而反不如市肆而可乎古之夷齊孔孟
012_0738_a_15L是餓死首陽空言無施之匹夫而今人
012_0738_a_16L以此比之則喜桀紂幽厲貴爲天子
012_0738_a_17L富有四海之帝王而今人以此比之則
012_0738_a_18L諸君誠思之比諸匹夫宜怒而反
012_0738_a_19L比諸帝王宜喜而反怒以其喜怒
012_0738_a_20L相反何也固其人之所貴賤者在道
012_0738_a_21L德之得失不在名位之高下也唯諸君
012_0738_a_22L勉之

012_0738_a_23L

012_0738_a_24L誡學徒脫上衣看經

012_0738_b_01L
무릇 뿔을 보면 소라는 것을 알고, 갈기를 보면 말이라는 것을 안다. 뿔에 다섯 빛깔이 있으면 기린이라는 것을 알고, 예천醴泉626)의 물을 먹고 오동나무에 서식하는 것을 보면 봉황임을 알며, 도덕을 알고 법의法衣를 입고 금문金文(경전)을 귀하게 여기면 학도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소인데 뿔이 없고 말인데 갈기가 없고 기린인데 뿔에 다섯 빛깔이 없고 봉황인데 예천의 물을 먹거나 오동나무에 서식하지 않고 학도인데 도덕이 없고 웃옷을 벗고 금문을 천하게 여기면 내가 말한 소와 말과 봉황 등이 아니고 상서롭지 않은 개와 양 따위에 불과함을 안다. 그렇다면 소와 말과 봉황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뿔과 갈기 등이며 학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또한 도덕과 법의 등이다. 하물며 사람들이 기린과 봉황에 대해 들어 왔는데, 보니까 뿔과 색채가 없고 일반 풀을 먹는다면 일반 금수에 불과하니 그 견문의 차이가 또한 부끄럽지 않겠는가.
사마司馬 공公이 책을 읽다가 창의氅衣627)를 벗지 않고 잠을 자면서, “꿈에 성현을 뵐까 그렇다.”라고 하였다. 저들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세상 밖에서 맑게 수도하여 불도를 공부하는 이들임에랴. 그대들은 폐할 수 없음을 알았으니, 어찌 스스로 위의威儀를 없이 하여 자기의 덕을 손상시키겠는가.
벽담 선사의 비를 세우는 연기 서문기미년(1919) 3월 13일에 세움.(碧潭禪師立碑緣起序己未三月十三日立)
무릇 도덕이라 함은 사람이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얻는 것이고, 사업이라 함은 사람이 몸을 수고롭게 하여 이룬 것이며, 금전이라 함은 즉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다. 도덕이 있어야 사업이 이루어지고 사업이 있어야 금전을 사용하게 되지만 어찌 이와 같은 데 그칠 뿐이겠는가. 금전으로 인하여 사업이 이루어지고 사업으로 인하여 도덕이 사라지지 않게 된다.

012_0738_b_01L
夫角者知其牛也鬣者知其馬也
012_0738_b_02L角五彩者知其麟也啄醴泉捿升梧者
012_0738_b_03L知其鳳凰也知道德着法衣貴金文者
012_0738_b_04L知其學者也故知牛而無角馬而無鬣
012_0738_b_05L麟而無一角五彩鳳凰而無啄醴泉捿
012_0738_b_06L升梧學者而無道德脫上衣賤金文
012_0738_b_07L非吾所謂牛馬麟鳳等乃不祥之犬羊
012_0738_b_08L等之不過也然則牛馬麟鳳之不可無
012_0738_b_09L卽角鬣等也學者而不可無者
012_0738_b_10L道德法衣等也况人聞有麟鳳而得得
012_0738_b_11L見無角彩食凡草則不過凡禽獸
012_0738_b_12L其見聞之差不亦愧哉司馬公讀書
012_0738_b_13L不脫氅衣宿曰恐見聖於夢也彼尙如
012_0738_b_14L况物外淸修之學佛者乎諸君旣知
012_0738_b_15L其不可癈則何可自蔑威儀以損己德
012_0738_b_16L者哉

012_0738_b_17L

012_0738_b_18L碧潭禪師立碑緣起序己未三月十
012_0738_b_19L三日立

012_0738_b_20L
夫道德云者人之勞心而得者事業云
012_0738_b_21L人之勞身而成者金錢云者卽人
012_0738_b_22L之使用者也有道德而事業成之有事
012_0738_b_23L業而金錢乃用之豈如此而止乎因於
012_0738_b_24L金錢事業方成因於事業而道德不

012_0738_c_01L이 세 가지는 세상에서 세발솥 같아서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 크도다, 도덕이여. 이것은 삼불후三不朽628) 가운데 하나다.
이제 선사先師께서 교敎의 바다에서 헤엄치시고 선禪의 종지를 일으키사 도를 단련하고 덕을 심어 심성을 수고롭게 하셨으니, 이에 도덕이란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얻는다고 할 만하다. 선사의 7세손 호명皓溟과 봉욱琫旭은 지기志氣가 맑고 높으며 행실(行義)이 과감하고 결백한데 부친 용선龍船 화상의 잊지 못하는 남은 감동을 사모하여, 하루는 문도들 전체를 모아 놓고는 선사의 사라지지 않는 도덕을 자기 임무로 삼아 깊이 토론하고 경영하여, 상족上足629) 만호滿浩에게 명하여 경성과 남포藍浦로 달려가(千走) 비명과 비석을 구하게 하였다. 만호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즉시 제운霽雲 문중의 후손 운암云庵과 뜻을 같이하여 각자 조사祖師를 받들어 비를 마련하기로 했다. 먼저 경성으로 가서 소개를 받아 비명과 전서篆書를 받고 다음으로 남포에 갔다. 다행히 좋은 인연을 만나 바위를 얻어 쪼개어 두 개의 비석으로 만들었으니 이는 드물게 좋은 모양이었다. 같은 날 운반하여 같은 날 세웠으니 이 또한 호겁浩刼 이전에 일신을 나누고 자리를 나누어 앉겠다는 맹세의 기연이 아닐 수 없다. 호명과 만호는 그 사부께서 남긴 명을 삼가 준행하여 근골을 수고롭게 하고 타니대수拖泥帶水630)하여 막중한 창업을 장애 없이 성취하였으니 또한 사업은 몸을 수고롭게 하여 이루는 것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금전이란 사업하는 이가 사용하는 것이고 사업이란 도덕 있는 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이 세 가지는 서로 도와 이루어 능히 창업을 이루는 것이다. 창업이 완전해졌으니 연기緣起 서문이 없을 수 없어서, 처음을 궁구하고 마지막을 요약하는 때와 금전을 지출한 양을 뒤에 나열하고, 다만 세 가지 불후가 이와 같고 이와 같음을 기록하여 훗날 문도들이 살피도록 한다.

012_0738_c_01L此三者在世如鼎足而闕一不可
012_0738_c_02L大矣哉道德此卽三不朽之一數
012_0738_c_03L今先師游泳敎海提撕禪宗鍊道
012_0738_c_04L種德勞矻心性者是可謂道德者
012_0738_c_05L心而得也師之七世孫皓溟琫旭志氣
012_0738_c_06L淸高行義果潔慕其父龍船和尙
012_0738_c_07L忘之餘感一日會一門人首某員以先
012_0738_c_08L師道德之不朽爲之己任闌議之
012_0738_c_09L營之命其上足滿浩必千走京城及藍
012_0738_c_10L而求銘若石也浩云唯唯卽與霽
012_0738_c_11L雲門孫云庵同志各祖其祖而營碑
012_0738_c_12L之京城紹介譔銘書篆次到藍浦幸遇
012_0738_c_13L良緣採得一塊石坼成兩個碑此乃
012_0738_c_14L罕有之勝狀同日運同日立亦莫非
012_0738_c_15L浩刼前分一身分半座之同盟奇緣也哉
012_0738_c_16L溟與浩也恪遵其師父之遺命勞筋苦
012_0738_c_17L拖泥帶水莫重剏業無障成就
012_0738_c_18L可謂事業者勞身而成也然則金錢者
012_0738_c_19L事業者之使用也事業者道德者之使
012_0738_c_20L用也所以三者者相資而相成能就
012_0738_c_21L剏業者也剏事已周不可無緣起序
012_0738_c_22L而其原始要終之日時金錢支拂之多
012_0738_c_23L [109] 列于后但紀三者之不朽如是如
012_0738_c_24L爲後門人之所矚也

012_0739_a_01L
이태왕을 천도하는 기도 축문기미년(1919) 4월 1일 회향(薦李太王祈禱祝己未四月一日回向)
신승臣僧 아무개는 지극한 마음으로 대훈위大勳位631) 이태왕李太王632) 선가仙駕633)를 받듭니다.
하늘이 내신 경략과, 신령이 돕는 위의로
사사로움을 극복하여 임금이 되사, 백성 보기를 자식처럼 하시고
폭원여도幅員輿圖634)로써, 제위에 오름을 담당하사 풍화風化를 기다리셨고
동관彤管635)으로 아름다움을 남기사, 아득히 선어仙馭636)하여 구름을 타시니
성전聖殿에 받들어, 유명의 길을 보배 뗏목에 의지하게 하고
향을 기사耆社637)에서 살라, 극락에서 불력佛力을 받게 합니다.
다시 사바세계에 돌아오사, 전륜왕의 궁전에 탄생하시고
법인法忍638)을 단번에 증득하사, 불과佛果의 지위에 속히 오르소서.
이태왕의 백일재 연기 서문위와 같음.(李太王百齋緣起序同上)
천지인 삼재三才는 양의兩儀(음양)의 삼합三合이요, 일월성 삼요三曜는 칠정七政639)의 삼합이며, 정사임丁巳壬 삼기三奇640)는 오행의 삼합이다. 양의와 칠정, 오행이 처음 나뉨에 어느 사물이든 삼합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삼재와 삼요와 삼기가 사계절을 관리하고 만물을 이루는 것이며 또한 삼합으로 갑주甲冑를 삼으니, 크도다 삼합이여.
이제 대훈위大勳位 이태왕李太王 전하의 백일재를 송광사에 배설한 것은 즉 삼합에 관계되어 그러한 것이다. 왜 그런가. 지난 기해년(1899)에 대장경을 칙명으로 간행하여 보관하였고, 계묘년(1903)에 성수전聖壽殿을 지어서 위패를 봉안하였고, 기미년(1919)에 백일재를 하사하여 봉행하게 되니 실로 삼합이 아닐 수 없고, 큰 세 가지 인연을 이 산에 심은 것이로다. 하물며 임자생641)의 백일재가 기미년 4월 1일 임자삭壬子朔에 당하니, 재주齋主인 제8평등왕平等王642)이 염부제閻浮提(인간 세상) 안의 임자명壬子命을 관할한다. 이 임자생과 임자일ㆍ임자명이

012_0739_a_01L薦李太王祈禱祝己未四月一日回向

012_0739_a_02L
臣僧某至心奉爲大勳位李太王仙駕
012_0739_a_03L天縱睿畧神贊英威克己爲君視民
012_0739_a_04L如子幅員輿圖膺龍飛而候風彤管
012_0739_a_05L流芳邈仙馭而乘雲供獻聖殿凭寶
012_0739_a_06L筏於㝠路香爇耆社承佛力於樂邦
012_0739_a_07L再還娑婆降誕於輪王之宮頓證法忍
012_0739_a_08L速登於佛果之位

012_0739_a_09L

012_0739_a_10L李太王百齋緣起序同上

012_0739_a_11L
天地人三才兩儀之三合日月星三曜
012_0739_a_12L七政之三合丁巳壬三奇五行之三合
012_0739_a_13L兩儀七政五行之肇判無一物非三
012_0739_a_14L合而成辦者故三才三曜三奇之管四
012_0739_a_15L時成萬物者亦以三合爲甲冑大矣哉
012_0739_a_16L三合也今大勳位李太王殿下百齋之
012_0739_a_17L設於松廣寺者卽管於三合而然矣
012_0739_a_18L去己亥年大藏經之勅印而藏鎭
012_0739_a_19L癸卯年聖壽殿之命建而奉安位牌
012_0739_a_20L未年百日齋之下賜而奉悼也實莫非
012_0739_a_21L三合而種三大因緣於玆山歟况又壬
012_0739_a_22L子生之百日齋當於己未四月一日壬
012_0739_a_23L子朔當齋主之第八平等王管閻浮提
012_0739_a_24L內壬子命盖此壬子生壬子日壬子命

012_0739_b_01L선택하지 않은 좋은 때에 적합하니 이 어찌 삼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엎드려 듣자니, 태왕전하께서 기로사에 드시어 원당을 망륙望六의 나이643)에 짓고, 예정하길, “희년稀年(70)에 송광사 원당에서 재를 마련하겠다.”라고 하였으니 그 어잠御箴(말씀)이 분명하다. 또한 이왕궁李王宮에서 어잠御箴을 받드는 정성과 상궁 천씨千氏가 명을 받드는 힘으로 재수齋需를 마련할 은화와 불번佛幡,644) 반기盤器(접시), 탁의卓衣,645) 장병帳屏,646) 향촉香燭, 금주錦紬(비단) 등 진기한 물품들을 넉넉하게 하사하였다. 예정한 어잠과 어잠을 받듦과 명을 받듦이 또한 삼합에 관계됨이 분명하다.
재 지내는 때를 간략히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진열하고, 주지 아무개가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배수拜手647)하고 말하였다. “크시도다, 임금의 덕이여. 해가 뜨매 어두운 곳을 비추지 않음이 없음과 같고, 비가 내림에 무엇이든 윤택하게 하지 않음이 없음과 같도다. 나 또한 경전을 간행하던 장소와 건물을 짓던 곳에서 착수하고 신발을 매어 일을 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제 재를 올리고 애도하는 날에 어찌 망극한 비통함과 추모하는 감정이 없으리오.” 이에 세 가지 큰 연기緣起를 서술하니 삼합三合의 원요原要648)에 적절할 따름이다.
조계산 국사전의 중창에 따른 상량 명과 서문기미년(1919) 4월 10일(曹溪山國師殿重剏上樑銘并序己未四月十日)
어영차(兒郞偉).
화장華藏649)이 무너지고 비고 이루어지고 머무는 세계에 있어 사바娑婆ㆍ염부제閻浮提650)가 도량을 여의지 않으며, 제불諸佛이 환화幻化(변화)의 방편문을 여시니 최상승의 선이 저절로 당념當念(현재)에 있습니다. 찰찰원융刹刹圓融하고 진진혼입塵塵混入하니651) 풀과 지푸라기ㆍ기와 등이 모두 광명을 떨치고, 말마다 이치에 계합하고 구절마다 근기에 맞아 꾀꼬리 소리와 제비 소리가 함께 오묘한 노래를 부릅니다. 무엇인들 광장설상廣長舌相652)과 청정신토淸淨身土가 아니겠습니까.
조계산 송광사는 산 이름에 근원이 있으니,

012_0739_b_01L適合於非選擇之良辰此豈非三合而
012_0739_b_02L何也伏聞太王殿下入耄社建願堂
012_0739_b_03L望六之年預定曰第當稀年設齋於
012_0739_b_04L松廣寺願堂之御箴昭著又以李王宮
012_0739_b_05L奉箴之誠尙宮千氏奉命之力齋需
012_0739_b_06L銀貨佛幡盤器卓衣帳屏香燭錦紬等
012_0739_b_07L奇珍寶玩優數賜下以其預箴也
012_0739_b_08L箴也奉命也亦管於三合明之矣齋時
012_0739_b_09L畧錄成册而陳列之而住持臣某請弁
012_0739_b_10L於余余拜手曰大哉王德如日輪之
012_0739_b_11L無幽不燭若雨澤而無物不潤余亦曾
012_0739_b_12L於印經之場建殿之地靡不有着手褁
012_0739_b_13L足之役以今獻齋奉悼之日盍無罔極
012_0739_b_14L之痛追慕之感哉於是乎敢舒三大
012_0739_b_15L緣起切適於三合之原要云尒

012_0739_b_16L

012_0739_b_17L曹溪山國師殿重剏上樑銘并序
012_0739_b_18L未四月十日

012_0739_b_19L
兒郞偉華藏在壞空成住界娑婆閻浮
012_0739_b_20L不離道場諸佛開幻化方便門最上乘
012_0739_b_21L禪自在當念刹刹圓融塵塵混入草縷
012_0739_b_22L瓦礫咸放光明言言契理句句逗機
012_0739_b_23L音燕語共談妙唱無乃廣長舌相也
012_0739_b_24L淨身土歟曹溪山松廣寺者山名有源

012_0739_c_01L조계종의 보림寶林 조계653)와 흡사한 고로 칙명으로 ‘조계’라는 호칭을 붙였습니다. 사찰이 왜 근거가 없겠습니까. 열여덟 분이 이역異域의 총림을 널리 교화한 고로 특별히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 시초를 고찰하면 신라 법흥왕 원년에 혜린慧璘 선사께서 아란야阿蘭若654)를 작게 지었고, 중흥한 것을 살펴보면 고려 신종 3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큰 가람을 넓게 펼치셨습니다. 상족上足인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선종을 크게 알리셨으니 수선사修禪社의 규도規度를 비교하면 한 가지로 동일하고, 고봉高峯655)의 후예(末孫)가 사우寺宇를 법계도法界圖의 모습으로 크게 중창하였으니 또한 두셋이 있지 않습니다. 어찌 다만 16존尊(국사)이 자리를 이어 중수하였겠습니까. 또한 세 화상656)이 명을 받들어 주석하였습니다. 강희康熙 임인년(1722)에 백암栢庵657) 선사가 불일佛日(지눌)의 가풍을 중흥하였고, 도광道光 임인년(1842)에 용운龍雲658) 대덕大德이 법우法宇의 문호를 크게 일으켰습니다.
이 건물은 대상坮上 7전殿의 하나이고 도중圖中 1층層의 7방房이니, 창설한 것을 살펴보면 사찰과 동일한 때입니다. 주석하던 날에는 도를 말하며 모여 공양하는 장소였는데, 니원泥洹(열반)하는 때에는 변하여 진영을 걸고 향을 사르며 축원하는 전당이 됩니다. 앞에는 행해당行解堂이요 뒤에는 진락대眞樂臺659)이니 갑경甲庚660)을 향하고 등지는 모양이며, 오른쪽은 방장이요 왼쪽은 영당이니 임병丙壬661)을 보필하는 우익으로 삼았습니다.
일찍이 동림東林 18현인662)의 영각影閣에 대해 들었는데 지금 조계 16조사의 진당眞堂663)을 보니, 위대하도다, 호남 십승지十勝地664)로 유명한 곳이라고 도선道詵665) 스님이 감탄하였고, 해동 제일의 복된 땅이라고 현릉玄陵666)이 칭찬하였습니다.667) 먹은 것을 토하니 물고기로 변하여 은빛 비늘을 흩뿌리고,668) 던진 석장이 나무로 자라니 단향목669) 두 그루가 울울창창합니다. 남쪽을 진호하는 꽃비가 내리는 도량으로 인천人天을 제도하는 선박이요, 동국을 두른 군옥부群玉府670)로서 불조佛祖를 삶는 솥단지에 부합합니다. 이는 국사께서 교화한 장소요 불조께서 다니신 경계가 아님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진영(影眞)이

012_0739_c_01L曹溪宗恰如寶林曹溪故勅命曹溪之
012_0739_c_02L寺何無據十八公廣化異域叢林
012_0739_c_03L故特稱松廣之名考其草昧羅法興元
012_0739_c_04L慧璘禪師小剏阿蘭若稽乎重興
012_0739_c_05L麗神宗三年普照國老廣闢大伽藍
012_0739_c_06L眞覺上足大闡禪宗修禪社之規度
012_0739_c_07L較若畫一高峯末孫宏剏寺宇法界
012_0739_c_08L圖之體形亦無二三何但十六尊之繼
012_0739_c_09L席重修抑亦三和尙之承命住錫康熙
012_0739_c_10L壬寅歲栢庵禪師重興佛日之家風
012_0739_c_11L道光壬寅年龍雲大德巨剏法宇之門
012_0739_c_12L是堂者坮上七殿之一數圖中一
012_0739_c_13L層之七房稽乎剏修與寺同日住錫
012_0739_c_14L之日擬爲談道會食堂泥洹之時
012_0739_c_15L成掛眞祝香殿前行解而後眞樂甲庚
012_0739_c_16L爲向背之局形右方丈而左影堂丙壬
012_0739_c_17L作補弼之羽翼曾聞東林十八賢影閣
012_0739_c_18L今見曹溪十六祖眞堂大矣㢤湖南十
012_0739_c_19L勝之名區道詵師之所歎海東一等之
012_0739_c_20L福地玄陵朝之所稱吐食化魚銀鱗
012_0739_c_21L潑潑擲杖生樹雙檀蒼蒼鎭南州雨
012_0739_c_22L花之場贐是濟人天之船筏環東土群
012_0739_c_23L玉之府端合烹佛祖之鑊湯爾莫非國
012_0739_c_24L師化導之坊佛祖遊履之界然而影眞

012_0740_a_01L잠시라도 탈락이 없었으니 가정嘉靖과 천계天啓671) 연간에 계림戒林과 성은性訔이 입계入啓672)하여 거듭 완성했던 것입니다. 당우堂宇는 바야흐로 무너질까 걱정이어서 강희康熙와 도광道光 연간에 백암栢庵과 용운龍雲이 개인적으로 수리하였습니다만, 들보와 서까래는 비에 젖어 썩어 가고, 금칠한 벽은 안개에 흐릿해졌습니다. 어찌 시주 인연이 없겠습니까마는 입계入啓한 앞 자취를 본받을 것이요,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야지 어찌 개인적으로 수리한 뒷일을 따르겠습니까.
병진년(赤龍, 1916) 봄에 길씨吉氏 선여인이 4백 원圓 금액을 보시하여, 정사년(火蛇, 1917) 가을에 주지 이설월李雪月673)이 오등후五等侯의 정당政堂674)에 계啓(보고)하였더니, 기술자를 보내 측량하고 장인에게 목재를 다듬게 했습니다. 기수祇樹675)를 새로 베어 내니 내원㮈苑676)의 앞선 공적에 손상이 없고, 수재倕材677)를 가려 꺾으니 단계檀溪의 숙원宿願이 막힐까 염려되었습니다. 무오년(1918) 응종월應鍾月(10월)에 시작하여 석목析木(11월)과 대려大呂(12월)에 ‘쩡쩡 창창’ 도끼질을 하고, 기미년(1919) 대량춘大樑春678)에 복궤覆簣679)하여 택천澤天과 고선姑洗(3월)680)에 ‘우르릉 탁탁’ 일을 하였습니다. 황폐한 섬돌을 바꾸어 금으로 장식하고, 낮은 행랑을 아로새긴 회랑으로 바꾸었습니다. 옥 단청이 주목되니 화려한 우물에는 꽃들이 모여 늘어서 있고, 황금색과 푸른빛이 해를 쏘니 수놓은 두공(枓栱)에는 가지가 옹위하듯 맞물려 있습니다. 겹으로 된 불전은 용처럼 서린 가운데 1만 덕을 지닌 진용眞容이 달처럼 원만하고, 층층 누대는 봉황처럼 우뚝 서 있는데 16존영尊影이 별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금방울이 보림寶林의 바람에 부딪히니 사방에 하늘 음악이 울리고681) 옥기와에 조계曹溪의 달이 비치니 1만 송이 연꽃이 빛납니다. 제자봉帝字峰(조계봉)을 우러르니 구름을 잡은 닭의 발 같고, 을자수乙字水가 문을 두르니 구슬을 희롱하는 용의 허리 같습니다. 도솔천(都史天)에 떠내려 온 것인가, 어슴푸레 가라궁迦羅宮682)이 변하여 나타난 듯합니다.
이에 육위송六偉頌을 공경히 불러 사은四恩683)의 공덕을 널리 고합니다.

兒郞偉。拋梁震  어영차, 들보 동쪽(震)에 던지네
眞樂臺高餘萬仞  진락대眞樂臺 높이가 만 길이라
金色界中主者誰  금빛 세계의 주인 누구인가
曼殊舍利傳心印  만수사리曼殊舍利684)가 심인을 전하도다

兒郞偉。拋梁离  어영차, 들보 남쪽(离)에 던지네
眞影堂堂老古錐  진영당의 당노堂老685) 고추古錐686)
塵塵妙色放光處  티끌마다 오묘한 색으로 빛을 내는 곳이니

012_0740_a_01L姑無脫落嘉靖天啓戒林性訔
012_0740_a_02L啓重成堂宇則方患傾斜康熙道光
012_0740_a_03L栢庵龍雲從私修葺杗桷衰朽於淋雨
012_0740_a_04L金碧漫漶於烟霞豈無檀緣宜効入啓
012_0740_a_05L之前轍必待旺運何事從私之後箴
012_0740_a_06L赤龍春吉氏善女人施四百圓之金額
012_0740_a_07L火蛇秋住持李雪月啓五等候之政堂
012_0740_a_08L派技術而測圖命匠氏而鍊木新斫祇
012_0740_a_09L無傷㮈苑之前功選拓倕材恐沮
012_0740_a_10L檀溪之宿願濫觴於戊午應鍾月
012_0740_a_11L木并大呂而丁丁摐摐覆簣於己未大
012_0740_a_12L樑春澤天與姑洗而轟轟濯濯易荒
012_0740_a_13L堦而鈆 [110] 變卑庠而琱廊玉丹凝眸
012_0740_a_14L綺井華櫕 [111] 而𩉾鞢金碧射日繡栭技 [112]
012_0740_a_15L而杈枒複殿龍蟠中萬德眞容月滿
012_0740_a_16L層樓鳳跱上十六尊影星羅金鈴激
012_0740_a_17L寶林之風四時天樂玉瓦印曹溪之月
012_0740_a_18L萬朶蓮光面仰帝字峰若挐雲之鷄足
012_0740_a_19L門環乙字水似弄珠之龍腰疑是都史
012_0740_a_20L天之浮來隱然迦羅宮之變現敬唱六
012_0740_a_21L偉之頌普吿四恩之功兒郞偉拋梁震
012_0740_a_22L眞樂臺高餘萬仞金色界中主者誰
012_0740_a_23L殊舍利傳心印兒郞偉拋梁离眞影堂
012_0740_a_24L堂老古錐塵塵妙色放光處覺首上人

012_0740_b_01L覺首上人應展眉  각수覺首687) 상인上人이 얼굴을 펴리라

兒郞偉。拋梁兌  어영차, 들보 서쪽(兌)에 던지네
帝字曹峰浮翠盖  제자봉帝字峰이 푸른 일산처럼 떠 있으니
蓮花世界路何迷  연화세계의 길을 누가 헤매리
財首指頭雲靄靄  재수財首688)가 가리키는 손끝에 구름이 자욱하네

兒郞偉。拋梁坎  어영차, 들보 북쪽(坎)에 던지네
三日明泉波淡淡  삼일명천三日明泉689)의 물빛이 맑고
木覔山頭薝葍花  목멱산 꼭대기에 치자꽃 붉으니
應知寶首躋𦴻蓞  보수寶首690)가 연꽃에 오름을 알겠네

兒郞偉。拋梁乾  어영차, 들보 위쪽(乾)에 던지네
三十六宮都是仙  36궁이 모두 신선세계이고
賢首樓臺平等住  현수賢首691) 누대가 평등하게 머무는데
空居兜率夜摩天  공연히 도솔천과 야마천692)에 머물까

兒郞偉。拋梁坤  어영차, 들보 아래쪽(坤)에 던지네
蠢蠢其徒鎭日奔  여러 무리들이 날마다 달려오고
玻璃色界元淸淨  파리玻璃693) 색계는 원래 청정한데
智首何年建刹幡  지수智首694)는 언제 찰번刹幡695) 세울까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 온갖 복이 길상의 문에 모이고 다섯 마귀는 조계의 물에 모두 목욕하게 하소서. 7전殿 선당禪堂은 7보리과菩提果가 충만하여 화두 참구와 송념頌拈으로 화장찰해華藏刹海696)의 물가에서 같이 노닐며, 8만 장경각에대 팔대각인八大覺人들이 모여 독송하고 설법함에 제불의 해탈 경계를 단번에 증득하게 하소서.
이봉 대선사의 비를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4월 26일 정축(离峯大禪師立碑祝文己未四月二十六日丁丑)
유세차 운운.
총림 대덕 이봉离峯 대선사 각령覺靈이시여.
가야(迦洛) 왕의 후손이며 학성군鶴城君697)의 종족으로
청허淸虛 조사의 적손이며 소요逍遙698) 선사의 정맥이십니다.
충과 효를 겸전하시고 선과 교를 같이 익히시어
단문檀門(시주)을 넓게 열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셨습니다.
가산迦山699)의 달을 낭랑히 읊조리며 보림寶林의 풍습을 바로잡으시고
조계의 물에 발우를 씻으시며 선찰禪刹의 종지를 마음으로 전하셨습니다.
교화의 인연을 이미 다하니 달이 하늘(天衢)에서 떨어지고
마음은 본래 상이 없으나 후손들은 추모합니다.
이에 거북 비석을 세우고 금송錦頌700)을 새기니
전서篆書는 살아 있는 용인 듯, 소리가 하늘을 울립니다.
울창주를 진설하고 단향檀香을 사르며
삼가 맑은 차를 올리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012_0740_b_01L應展眉兒郞偉拋梁兌帝字曹峰浮翠
012_0740_b_02L蓮花世界路何迷財首指頭雲靄靄
012_0740_b_03L兒郞偉拋梁坎三日明泉波淡淡木覔
012_0740_b_04L山頭薝葍花應知寶首躋菡蓞兒郞偉
012_0740_b_05L拋梁乾三十六宮都是仙賢首樓臺平
012_0740_b_06L等住空居兜率夜摩天兒郞偉拋梁坤
012_0740_b_07L蠢蠢其徒鎭日奔玻璃色界元淸淨
012_0740_b_08L首何年建刹幡伏願上樑之後百福鼎
012_0740_b_09L集於吉祥之門五魔咸沐於曹溪之水
012_0740_b_10L七殿禪堂充滿七菩提果叅話頌拈
012_0740_b_11L同遊華藏刹海之濱八萬經閣會集八
012_0740_b_12L大覺人讀誦說聽頓證諸佛解脫之境

012_0740_b_13L

012_0740_b_14L离峯大禪師立碑祝文己未四月二
012_0740_b_15L十六日丁丑

012_0740_b_16L
維歲次云云叢林大德离峯大禪師覺
012_0740_b_17L迦洛王之苗裔鶴城君之宗族
012_0740_b_18L虛祖之嫡孫逍遙師之正脉忠孝雙全
012_0740_b_19L禪敎兼講廣開檀門普渡跉𨂲朗吟
012_0740_b_20L迦山之月糾正寶林之風洗鉢曹溪之
012_0740_b_21L傳心禪刹之宗化緣已周月落天衢
012_0740_b_22L心本無相雲仍追慕迺營龜碑載印
012_0740_b_23L錦頌篆活龍蛇聲震穹窿敢陳鬯禮
012_0740_b_24L慶爇檀享 [113] 謹以淸茶伏唯尙嚮

012_0740_c_01L
기봉 대선사의 비를 세우는 축문기미년(1919) 6월 9일 기미(奇峰大禪師立碑祝文己未六月初九日己未)
대공덕주 기봉奇峰701) 대선사 각령覺靈이시여.
대대로 풍부豊府(안동)에 거처하다가 화주和州702)로 옮기고
부모의 집을 떠나 봉루鳳樓에 투신하시니
최崔 공신功臣의 11세손이요 부휴浮休 조사의 9세손이십니다.
조계에서 법을 구하여 소나무와 구름(松雲)에 자취를 의탁하사
묵암默庵703)의 방에서 참학하였고 두월斗月704)의 문하에서 분향(拈香)하였습니다.
13년 동안 강설하여 삼칠재三七齋의 상서로운 모습이 있었고
삼장三藏의 가르침을 술지게미로 여기고 한 가지(一着子)로 향상하려 하였습니다.
임인년(1902) 화재에 대해 계묘년(1903)에 크게 창건하니
솔고개에 바람이 크게 떨치고 조계의 달이 두 번 굽어졌습니다.
창업이 완전해지고 인연대로 선서善逝705)하셨습니다.
상相 있는 것은 무상하여 깎지 않으면 조화롭지 않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조사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706)
비석은 푸른 벽을 지탱하고 용은 푸른 공중에 서리며
비단 노래(錦頌)는 옥처럼 조화롭고 구름 전서(雲篆)는 바람을 부릅니다.
달을 치고 구름을 자르며 향을 사르고 울창주를 드립니다.
삼가 차를 따르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조계산 송광사 청진암의 네 번째 창건기6월 10일(曹溪山松廣寺淸眞庵第四剏建記六月十日)
승평昇平(순천)의 서쪽 1유순由旬707) 남짓한 곳에 ‘조계산’이 있는데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을 ‘호령봉號令峰’708)이라 한다. 호령봉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남쪽으로 터져 용이 된 것은 굴곡과 기복이 바다에서 용이 날아 구름을 일으키고 물을 희롱하는 듯하며, 북쪽으로 달려 범이 된 것은 춤추고 뛰는 것이 산에서 범이 ‘으르릉’거리거나 ‘어흥’ 소리치는 듯하다. 북쪽 줄기가 목구멍에 맺혀 문득 일어선 것이 ‘시루봉(甑峯)’709)으로 뚜껑을 덮은 듯 펑퍼짐한데, 높게 아스라이 솟아 오른쪽에 축간丑艮(동북)710)으로 떨어진 것은 송광사의 백호가 되고 중간에 경태庚兌(서쪽)711)로 떨어진 것은

012_0740_c_01L奇峰大禪師立碑祝文己未六月初
012_0740_c_02L九日己未

012_0740_c_03L
大功德主奇峰大禪師覺靈世居豊府
012_0740_c_04L載遷和州謝家鯉庭投身鳳樓崔功
012_0740_c_05L臣之十一世浮休祖之九世孫求法曹
012_0740_c_06L托迹松雲叅學於默庵之堂拈香
012_0740_c_07L於斗月之門十三載之講說三七齋之
012_0740_c_08L瑞相三藏敎如糟糠一着子之向上
012_0740_c_09L壬寅年之回祿癸卯歲之巨剏風一振
012_0740_c_10L於松嶺月再彎於曹溪剏業旣周
012_0740_c_11L緣善逝有相無常非斲非調有徒繁
012_0740_c_12L無念而祖碑撑翠壁龍蟠碧空
012_0740_c_13L頌調玉雲篆喝風批月切雲爇香薦
012_0740_c_14L謹以酌茶伏唯尙享

012_0740_c_15L

012_0740_c_16L曹溪山松廣寺淸眞庵第四剏建記
012_0740_c_17L六月十日

012_0740_c_18L
昇平之西一由旬許有山曰曹溪山之
012_0740_c_19L最高者曰號令峰峰有兩支南圻 [114] 而爲
012_0740_c_20L龍者屈曲起伏如滄海飛龍之興雲戱
012_0740_c_21L北走而爲虎者鼓舞踴躍如碧山
012_0740_c_22L怒虎之蹲喝放嘯也北支結咽而卒起
012_0740_c_23L者曰甑峯如胄覆而磅磚 [115] 高逈特立
012_0740_c_24L右落丑艮者爲寺之白虎中落庚兌者

012_0741_a_01L송광사의 주봉이 된다. 일어섰다 엎드려 맥을 맺고 갈래로 나뉘어 안아 감싸니 연꽃이 흩뿌려진 듯하다. 그 중앙에 터를 점하니 황건黃巾(도둑)의 소굴이 아니라면 마땅히 백납白衲(승려)의 거처가 되어야 한다.
이에 고려 신종 3년(1200) 경신금나라 승안承安 5년이다.에 보조국사께서 결사結社하여 수선修禪하는 큰 사찰로 삼으셨다.명칭을 ‘수선사修禪社’라 하였는데 후에 칙명으로 ‘송광사松廣寺’로 고쳤다.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도운 실제 기록은 김군수金君綏712)와 최신崔侁의 필적에 상세하니 덧붙이고 싶지 않다. 세 번 전하여 청진국사淸眞國師713)에 이르니, 즉 고려 고종 21년(1234) 갑오이다. 사찰의 뒤에 있는 제1주봉主峰 아래에 가서 서까래 몇 개를 얽고서 머무니, 즉 임종 시에 안선安禪(좌선)하신 별실이다. 암자의 명칭(청진암)이 그렇게 해서 얻어졌다. 왼쪽 봉우리에 석종石鍾 하나가 있으나 비갈碑碣이 보이지 않으니, 몇 번이나 수리를 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암자가 기울어져 근심이 조석을 떠나지 않았다.
이에 728년 기미(1919)조선국 528년이다.에 암자의 승려 춘성春盛과 두현斗玹이 주지 설월雪月과 향응하여 대중을 불러서 얼마간 재물을 모아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다가 상량문을 얻으니, “만력萬曆 17년 기축(1589)에 세 번째 창건했다.”라는 기록이 있었다. 연화緣化714)한 아름다운 이름은 고찰할 수 없으니 유감이 없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맹추월孟陬月(1월)에 일을 시작하여 병든 곳을 고치고 무너진 곳을 정비하여 경영하고 감독하니 몇 달 되지 않아 완성되었다. 본채(正堂)는 우뚝하고 곁채는 날아갈 듯715) 크고 화려했다. 이것이 네 번째 창건이 아니겠는가.
이에 범패를 울리며 단에 올라 법려法侶(도반)들을 하탑下榻716)하니, 지혜의 구름이 청진암 경내 위에 가득하고 하늘 꽃이 길상사吉祥社(송광사)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용과 범이 날아 움직여 호위하며 따르고, 바람과 비가 기쁘고 조화롭게 순종하였다. 연화緣化하고 간고幹蠱717)한 힘과 단나檀那(시주)의 은혜로이 희사한 덕은 천의天衣718)처럼 길고 땅처럼 오래갈 것이며, 물의 근원이 깊고 산이 높은 것과 같다. 그래서 이에 기록하여

012_0741_a_01L爲寺之主峯起伏結脉分支藏抱
012_0741_a_02L蓮花之倒撒中占一局若非黃巾之窟
012_0741_a_03L宜爲白衲之宅粤在高麗神宗三年庚
012_0741_a_04L金承安
五年也
普照國老結社修禪之宏刹
012_0741_a_05L名修禪社後
勅改松廣寺
以其福國祐世之實錄詳於
012_0741_a_06L金君綏崔侁之筆不欲贅焉三傳至
012_0741_a_07L淸眞國師卽麗高宗二十一年甲午也
012_0741_a_08L就寺之後第一主峰下結數椽而卜居
012_0741_a_09L卽臨終安禪之別室也庵之名仍玆
012_0741_a_10L而得矣左峰有石鍾一軀而不見碑碣
012_0741_a_11L誰稽幾經修葺哉庵之病頽慮不旦夕
012_0741_a_12L粤七百二十八年己未朝鮮國五百
二十八年也

012_0741_a_13L之釋春盛斗玹與住持雪月響應叫化
012_0741_a_14L大衆鳩聚若干財尅日蕫役得其梁
012_0741_a_15L曰萬曆十七年己丑三剏云莫考緣
012_0741_a_16L化之芳啣不能無恨然而仍孟陬月
012_0741_a_17L始役病者醫之頽者整之經營之
012_0741_a_18L督之不數月而吿竣正堂突兀翼廊
012_0741_a_19L [116] 輪焉奐焉此莫是第四剏耶
012_0741_a_20L是梵唄登壇法侶下塌 [117] 慧雲彌漫於
012_0741_a_21L淸眞境上天花亂墜於吉祥社中
012_0741_a_22L虎飛動而護從風雨和悅而調順其於
012_0741_a_23L緣化幹蠧 [118] 之力檀那惠捨之德天衣長
012_0741_a_24L而地久水源深而山高故玆而記

012_0741_b_01L후인들에게 보인다.
송광사 나한 전설에 대한 변증7월 3일(松廣寺羅漢傳說卞七月三日)
옛날 승국勝國719) 신종 3년(1200) 경신에 보조국사께서 팔공산(公山) 거조사居祖寺720)에서 와서 길상사吉祥社에 안선安禪(좌선)할 자리를 얻었다. 거친 풀 가운데를 넓게 개척하여 창건한 지 9년 만에 완성이 되었다. 조계 종지를 크게 천양하고 산 이름과 사찰 이름을 거듭 바꾸어 ‘조계산 송광사’라 하였으니 모두 칙지勅旨희종熙宗 4년(1208) 무진에 사액賜額이 있었다.에 따른 것이다.
위사韋史 신석희申錫禧721)의 기록에 따르면, “나무로 만든 매를 날려 흰 연꽃이 있는 터를 점치고, 잎사귀로 만든 범들로 녹림의 도적들을 쓸어버렸다.”라고 하였다. 또한 “지팡이를 던진 것이 살아 나무가 되었으니 세 그루 전단향이 사라지지 않고 더 자라지도 않았다. 먹은 고기를 토하니 물고기가 되어, 무수한 은빛 비늘의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살아 움직였다.”라고 하였다.
구봉九峰722) 노스님의 기록에는 “화국華國(중국)에서 몸을 빼 금나라 황제의 셋째 아들을 데리고 왔다.723) 천자암天子庵과 삼일당三日堂을 창건하고 이름을 지었으며 즉석에서 옥게玉偈를 지었다. 아산峨山의 16성인을 초빙하였으니, 설법전의 높다란 사다리가 현존한다. 화덕군火德君724)에 대한 구화군救火軍725)의 토목 기술은 불구덩이를 멸하는 도력이다. 16존상을 새로 조성하는 사업에 불구덩이를 만들어 훈도燻陶하고 스스로 뛰어넘어 단壇에 올랐으니, 이 모두 국사께서 증득한 힘이요 오묘한 방법이었다.”라고 하였다.
전설이 오래되어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으니 그래서 현존하는 성상聖像들의 몸체가 훼손되고 옷이 벗겨지며 채색이 흐릿해졌다. 어찌 납자衲子(승려)들만 무색하겠는가. 또한 단씨壇氏(시주)도 근심스러워하나 미망에 익숙하여 오묘한 인연을 도모하기 어려웠다. 열 입이 전하고 여섯 귀가 듣는데 성인의 경지를 높이 추앙하여 범인이 듣기에 놀라웠고 습관에 온통 취하여 주먹을 펼 것을 깨닫지 못한726) 지가 오래되었다.
이제 『영월집詠月集』727) 「중수나한기重修羅漢記」를 보니, 대략 다음과 같다. “정유년(1597)에

012_0741_b_01L示于後

012_0741_b_02L

012_0741_b_03L1)松廣寺羅漢傳說卞七月三日 [19]

012_0741_b_04L
昔在勝國神宗三年庚申有普照國師
012_0741_b_05L自公山居祖寺來得安禪之地於吉祥
012_0741_b_06L荒茀之中廣拓開剏九載訖功
012_0741_b_07L闡曹溪宗旨重易山名寺號曰曹溪山
012_0741_b_08L松廣寺者皆勅旨熙宗四年戊辰
有賜額之事
申韋
012_0741_b_09L史記云飛木鷹而占白蓮之基散葉
012_0741_b_10L虎而掃綠林之賊又曰杖投生幻樹
012_0741_b_11L個栴檀不滅不生食吐化爲魚無數
012_0741_b_12L銀鱗自在活潑九峰老記云身挺華
012_0741_b_13L携金帝之第三男天子庵三日堂
012_0741_b_14L之剏號口演玉偈招峨山之十六聖
012_0741_b_15L說法殿加峙棧現存至於火德君救火
012_0741_b_16L軍之土木奇術是乃滅火坑之道力
012_0741_b_17L六尊新造役設火坑而燻陶自超昇壇
012_0741_b_18L是皆國師之證力妙方傳說旣久膾炙
012_0741_b_19L耳目以故現存聖像壞體脫衣五彩
012_0741_b_20L漫漶何但衲子無色亦爲壇氏有愁
012_0741_b_21L然而慣於迷妄難圖妙緣十口所傳
012_0741_b_22L六耳所聞高推聖境語驚凡聽渾醉
012_0741_b_23L習慣莫悟申拳者流來久矣今見詠
012_0741_b_24L月集重修羅漢記其略曰歲在丁酉

012_0741_c_01L성상이 적들에게 훼손되어 감실龕室이 처량해지니 속인들은 복을 심을 곳이 없고 승려들은 공경할 곳이 없어졌다. 어찌 이름난 사찰의 일대 흠이 아니겠는가. 산승 아무개가 새롭게 할 뜻이 있어서 계해년(1623) 봄에 시작하여 갑자년(1624) 겨울에 일을 마쳤다. 삼존불과 16진용眞容이 찬란하게 빛나니 별과 달이 푸른 하늘(碧落)에서 서로 빛나고 금과 옥이 붉은 쟁반에서 서로 비추는 듯하다.”라고 하였다. 그 연표를 고찰해 보니 만력萬曆 25년(1597) 정유, 즉 선조 30년이다. 27년 지난 천계天啓 3년(1623) 계해는 즉 인조 원년이다.
국사께서 교화를 크게 펼친 날신종 7년(1204) 갑자년이다.728)에 처음 조성한 성상이 393년 지나 정유(1597)에 이르러 적들에게 해를 입었다. 인조 원년(1623) 계해에 다시 조성한 성상이 이제 295년 지나 기미대정大正 8년(1919) 기미년에 이르러 훼손되고 색이 바랬는데 전설에 익숙해져서 보수하지 못하니, 의혹됨이 심하구나, 세상이 무고를 좋아함이여. 어리석은 이의 구설수 때문에 만덕萬德의 장엄함을 길이 누락시키고, 미치광이의 의혹 때문에 만인의 복전을 길이 없애면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믿음 있는 선남선녀에게 바라노니 얼음 같은 집착을 깨뜨리고 장엄의 도구를 판별하여 믿음의 씨를 복전에 뿌리면 창건한 공덕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히 스스로 변증하여 기록하노라.
조계산 송광사 국사전의 중수기길금729) 360원. 대중금 139원 13전 6리. 사금 2,001원 69전 6리. 기미(1919) 5월 5일 봉안.(曹溪山松廣寺國師殿重修記吉金三百六十圓。○大衆金一百三十九圓十三錢六里。寺金二千一圓六十九錢六里。己未五月午日奉安。)

012_0741_c_01L相于賊凄凉龕室俗無植福之處
012_0741_c_02L無投敬之地豈非名刹之一大欠事耶
012_0741_c_03L山之釋某有志重新始役於癸亥之
012_0741_c_04L訖功於甲子之冬三尊嚴像十六
012_0741_c_05L眞容爭煥炳列星月交輝於碧落
012_0741_c_06L珠互映於赤盤云考其年表萬曆二十
012_0741_c_07L五年丁酉卽宣祖三十年是也越二十
012_0741_c_08L七年天啓三年癸亥卽仁祖元年是也
012_0741_c_09L以自國師隆化之日神宗七年
甲子年也
剏造之聖
012_0741_c_10L迄于三百九十三年丁酉爲賊所害
012_0741_c_11L仁祖元年癸亥重修之聖像迄今二百
012_0741_c_12L九十五年己未大正八年
己未年
爲壞相脫彩
012_0741_c_13L慣於傳說不能修補惑之甚矣世之
012_0741_c_14L好誣也以愚夫之口舌永闕萬德之莊
012_0741_c_15L以狂夫之熒惑永蔽萬姓之福田
012_0741_c_16L豈非痛惜哉唯冀信男善女破冰執而
012_0741_c_17L辦莊嚴之具下信種於福田庶報乎剏
012_0741_c_18L修之功敢自卞錄

012_0741_c_19L

012_0741_c_20L曹溪山松廣寺國師殿重修記吉金
三百
012_0741_c_21L六十圓◆大衆金一百三十九圓十三錢六里
寺金二千一圓六十九錢六里己未五月午日

012_0741_c_22L此文上底本頭註曰「自國師入寂熙宗庚午
012_0741_c_23L萬曆二十五年丁酉三百八十八自國師入曹溪
012_0741_c_24L庚申至大正十二年自天啓三年癸亥至大正
012_0741_c_25L十二年癸亥三百一年合七百二十五年也」{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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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느 날 용화당龍華堂(지장전)에서 회차會茶730)하며 불조佛祖의 가풍에 대해 말하다가 수선修繕하는 임무에 미쳐 간고幹蠱731)의 뜻이 있는 것처럼 하였다. 본사 주지 설월雪月 옹翁이 내게 부탁하여 말했다.
“지금 국사전의 중수重修를 마쳤는데 어찌 한마디 하여 문미에 걸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전말을 들어 볼 수 있습니까?”
“상량문을 보지 못해서 옛 인연을 고찰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다만 기록이 있어, 강희康熙 61년(1722) 임인에 백암栢庵(성총性聰) 노스님이 중수하였고 가경嘉慶 12년(1807) 정묘에 화봉華峯 스님이 보수하였다고 하는데 또한 몇 번이나 중건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의 일은 병진년(赤龍, 1916) 봄에 관산冠山732)의 신녀信女 김씨가 2천 관貫을 포금布金733)하여 국사전을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국사전은 원래 평범한 법우法宇가 아니므로 정사년(1917) 가을에 정당政堂(지방 관아)에 달려가 호소하여 그 소중함을 알게 하였습니다. 정당에서는 공학 박사 기술자 쿠리야마(栗山)와 기코(木子)734)를 두 차례 파견하여 측량하게 하였는데 그가 탄식하길, ‘이 국사전은 고려 시대 미술로 솜씨가 좋은 장인의 옛 자취이니 함부로 부수고 더할 수 없다. 다만 보수만 해서 기운 것을 바로 하고 썩은 것을 새롭게 하며 빠진 것을 보충하고 누운 것을 서게 하며 새는 곳에 기와를 대고 부서진 곳에 흙칠을 해서 아름다운 자취를 잃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오년(1918) 10월에 재목을 베어 일을 시작했고 후루타(古田) 감독에게 보내어 한결같이 그 말대로 보수하였습니다. 기미년(1919) 5월에 이르러 일을 마치고 봉안하니 그 8개월 동안에 장애 없이 성취하여 완전히 새롭게 찬란해졌습니다. 단나檀那의 공적과 정당政堂의 덕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뒷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으니 일전어一轉語735)가 필요합니다.”
“아, 설 옹雪翁의 힘이여. 거문고가 묘하기는 하나 손가락이 아니면 연주할 수 없고, 도道가 원만하더라도 스승이 아니면 깨우칠 수 없네. 이번 국사전의 일은 단나와 정당이 거문고와 도道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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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一日會茶於龍華堂上說盡佛祖家
012_0742_a_03L語及修繕之務若有幹蠱之思
012_0742_a_04L住持雪月翁屬余曰今國師殿重修了
012_0742_a_05L而盍無一言揭楣哉曰然則可得聞
012_0742_a_06L顚末乎曰恨未見梁文莫考昔因
012_0742_a_07L但有記云康熙六十一年壬寅栢庵老
012_0742_a_08L重修嘉慶十二年丁卯華峯師修葺云
012_0742_a_09L亦未知幾重建也今之役則赤龍之春
012_0742_a_10L冠山信女金氏布金二千貫以修國師
012_0742_a_11L殿而然此殿元非尋常法宇故丁巳
012_0742_a_12L秋走訴于政堂使知其所重政堂再
012_0742_a_13L遣工學博士技術員栗山木子測圖而
012_0742_a_14L嘆曰此殿卽麗朝美術巧匠之古蹟
012_0742_a_15L敢毀掇者但架修補而猗者正而朽者
012_0742_a_16L新之闕者補而卧者立之漏者瓦之
012_0742_a_17L破者塗之毋喪美績也戊午十月
012_0742_a_18L木而始役之又送古田監督一如其言
012_0742_a_19L而修補之至己未午月竣工而奉安之
012_0742_a_20L這間八個月無障成就一新奐然
012_0742_a_21L其檀那之功政堂之德難忘而欲示諸
012_0742_a_22L師須一轉語曰雪翁之力琴雖
012_0742_a_23L妙而非指不發道雖圓而非師不覺
012_0742_a_24L之殿之役也檀那與政堂但如琴與道

012_0742_b_01L설 옹이 앞장섬은 손가락과 스승 같도다. 이로 말미암아 엄숙한 금용金容이 옥평상 위에 높다랗고 은은한 옥영玉影은 금벽金壁에 빛나네. 불일佛日이 조계의 물과 바위를 거듭 비추고 조사의 호령이 상서로운 구름과 안개를 거듭 뒤흔들도다. 이것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교화(叫化)하는 힘이 아닐 수 없도다.”
설월 옹은 웃으며 말이 없었다.
나머지 전각들의 우람함과 사방으로 둘러싼 배치, 산 좋고 물 맑은 풍치와 달콤한 샘물과 무성한 숲의 아름다움은 관람한 이들이 기억할 것이니 다만 단나의 인연만 나열한다.
두월 대사의 비를 세우는 제문기미년(1919) 8월 기묘삭736) 9일 정해에 세움. 한붕737)과 성학이 주관함.(斗月大師立碑祭文己未八月己卯朔初九日丁亥立安。漢鵬聖鶴爲主也。)
행行(항렬) 5대조 두월斗月738) 대선사시여.
계파는 금천金天739)이요, 본적은 광산光山(광주)의 유파로다. 세간의 음악을 싫어하니 불 속의 연꽃(火中蓮)과 같고, 위엄이 북두와 같으며 마음은 동녘의 달과 같네. 풍암楓巖 노스님이 경전을 가르쳤고, 원화圓華740) 옹에게 의발을 전수했네. 부휴浮休 조사의 7세손이요 백암栢庵 노스님의 4세손으로서 쌍기雙奇741)의 법부法父이며 사걸四傑742)의 막내였네. 공적은 천자암(天庵)743)을 건설하여 그 덕이 도적에까지 이르고, 발자취는 속세로 들어가지 않았는데 하물며 서울로 갔으랴. 마음으로 조사의 영역에 참여하고 눈은 불경에 붙여, 보시는 가을 물처럼 맑고 덕은 봄 구름처럼 풍성하도다. 응신應身744)은 희수稀壽에 셋(73)이요 승랍은 지명知命(50)에 여덟(58)을 넘으셨네. 지혜의 가지 수려한데 불법의 기둥이 갑자기 쓰러지니745) 안개 속 넝쿨은 초췌하고746) 후손들은 애통해하네.
아아, 대사를 사모하는 많은 무리들이 바위를 다듬어 무덤에 봉하고 옥을 깎아 비석을 세우니, 코끼리 네 마리가 땅에서 솟고 용 여섯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네. 거북이는 잘 돌아보나 비석은 다른 말이 없도다. 산호 같은 송가를 엮으니 전서는 구름 속 규룡 같도다. 이제 길일(穀日)을 골라 높이 푸른 벽을 지탱하니 보당寶幢(깃발)이 아스라하고 사리舍利는 참되도다.
투박한 술이나마 향기로운 음식을 갖추어 삼가 울금鬱金747)을 드리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012_0742_b_01L而已雪翁之唱囮若指與師也由是
012_0742_b_02L而儼然金容嵬嵬乎玉榻之上隱然玉
012_0742_b_03L彬彬於金壁之中佛日重照於曹溪
012_0742_b_04L水石祖令再振於古祥雲烟是莫非運
012_0742_b_05L指叫化之力乎翁笑而默然其餘殿宇
012_0742_b_06L之宏傑基局之環抱山明水麗之趣
012_0742_b_07L泉甘林茂之味覽者記得只列檀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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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2_b_09L斗月大師立碑祭文己未八月己卯朔初
九日丁亥立安
012_0742_b_10L鵬聖鶴
爲主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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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五代祖斗月大禪師系派金天
012_0742_b_12L流光山厭世間樂若火中蓮威如北
012_0742_b_13L心似東月楓老授經華翁傳鉢
012_0742_b_14L休祖之七世栢庵老之四代卽雙奇之
012_0742_b_15L法父是四傑之叔季功建天庵德被
012_0742_b_16L匪徒跡不入俗況復上都心叅祖域
012_0742_b_17L眼掛佛文施若秋水德同春雲應身
012_0742_b_18L稀三臘過命八慧柯方秀法棟俄折
012_0742_b_19L烟蘿憔悴雲仍痛忉嗚呼感慕繁息
012_0742_b_20L有曺攻石封塚删玉樹碑四象地湧
012_0742_b_21L六龍天垂龜有善顧石無異言頌綴
012_0742_b_22L珊瑚篆活虬雲玆選穀日高撑翠壁
012_0742_b_23L寶幢崔嵬舍利眞的載庸薄尊特備
012_0742_b_24L香養謹以鬱金伏唯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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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군수 이 옹748)께 올리는 편지기미년(1919) 중추(上珍島郡守李云翁書己未仲秋日)
엎드려 생각건대, 합하閤下께서 남쪽으로 행차하시니 바다 구름이 아득하고 역로驛路749)가 막막하여 하교河橋의 근심과 강수江樹의 부끄러움750)이 솔문(松門) 밖 낙강洛江751) 위에서 오히려 간절한데, 헌병軒屛752) 아래 안부를 미처 묻기도 전에 외롭고 누추한 거리로 먼저 편지를 보내 주시니, 정중하고 송구함은 하늘의 벌을 받아 죽을 듯하여 나도 몰래 부끄럽고 뭐라 말할지 판별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비야毘耶753)의 번뇌에 구속되어 연야演若754)의 미친 성품을 스스로 짓다가 이제야 겨우 조금 완치되어서 게을러짐(慢延)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그러하나 푸성귀(승려)의 말이라도 말없이 쳐다보는(默照) 마음보다 도리어 나으리니 이에 우러러 아뢰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살펴보소서. 다시 기도하노니, 관아는 고요하고 엄숙하여 영주瀛洲755)의 신선 풍모 보기를 기약하고, 해역海域(진도)은 맑고 평안하여 곤륜산의 지혜 달이 비추기를 바라나이다. 이만 글을 줄입니다.
허정환이 법을 구하기에 쓴 답서기미년(1919) 초겨울. 본래는 응암756) 문파인데 또한 가르친 공적이 있다. 가난을 버리고 부유함을 따른 까닭이다.(答許正煥求法書己末初冬日。本爲應庵門派。亦有敎授之功。捨貧從富故也。)
그대의 편지를 보고 기뻐했는데 그대의 편지를 읽고 슬퍼했으니, 무슨 까닭인가. 조정祖庭757)의 나무 한 그루가 조계曹溪에 뿌리를 서려 법유法乳에 함께 젖어 거의 총림을 이루었으니 장차 푸르게 번성하고 꾀꼬리 소리를 들을 텐데, 무지한 나무꾼이 가지를 베고 힘껏 뽑아서 어느 집의 기둥으로 삼으니, 미워서 탄식이 나도다. 이로부터 뜰(庭軒)은 무색해져서 바람이 불어도 ‘솔솔’ 소리가 들리지 않고 달이 떠도 은은한 모양이 보이지 않으리니 이전의 공적이 여기에 이르러 사라질 줄 누가 알았으랴.
아아, 예전의 설파雪坡758)가 회당晦堂759)의 문에서 공부를 이루고, 호암虎嵓760)의 뜰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동방의 설파 후손이 지역에 가득한 것은 모두 회당 옹翁의 공적이다. 이제 그대는 달 문하에서 마음을 밝히고 구름 뜰에 투신했으니, 구름이 허공에 가득하다면 달이 필시 비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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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2_c_02L上珍島郡守李云翁書己未仲秋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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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唯閤下運駕南征海雲迢迢驛路
012_0742_c_04L漠漠河橋之愁江樹之耻尙切於松
012_0742_c_05L門之外洛江之上未及修問於軒屛之
012_0742_c_06L先卽下書於孤陋之巷鄭重感悚
012_0742_c_07L如殞天譴不覺愧恧莫卞攸云而況
012_0742_c_08L拘於毘耶之惱魔自作乎演若之狂性
012_0742_c_09L今纔稍完方覺慢延然雖而蔬荀之說
012_0742_c_10L反勝於默照之心玆敢仰籲伏唯照察
012_0742_c_11L更祈衙閫肅靜期見瀛洲之仙風
012_0742_c_12L域晏淸庶照崙山之慧月不備狀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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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2_c_14L答許正煥求法書己末初冬日本爲應
庵門派
012_0742_c_15L亦有敎授之功
捨貧從富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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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君之書喜而讀君之書悲之何也
012_0742_c_17L庭一樹根盤曹溪同霑法乳幾成叢
012_0742_c_18L將見綠之繁黃鳥之音無知樵夫
012_0742_c_19L斫一枝而力拔之爲那家之棟可憎歎
012_0742_c_20L從此庭軒無色風來不聞瑟瑟之響
012_0742_c_21L月到不見隱隱之影誰知前功之到此
012_0742_c_22L烏有哉嗚呼昔之雪坡成工於晦堂
012_0742_c_23L之門作家於虎嵓之庭東方雪孫滿
012_0742_c_24L於域中者盡是晦翁之功也今君明心
012_0742_c_25L於月門投身於雲庭雲若滿空月必

012_0743_a_01L휴암休庵의 적적함과 응암應庵의 막막함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러할 줄 알 것이다. 이에 이르러 그대의 영광은 구름 거리에 가득하여 일어나 뛰고 굽혔다 뛰며 손과 발로 춤을 추면서 호수 빛의 넘실댐과 달빛의 휘영청 밝음을 보지 못하고, 결국 응암 집안의 보물을 잃어버리게 되니, 회당이 사람을 잃은 것과 같다. 그대에게 얼마나 경사스런 유쾌함이 있는가.
편지 가운데 ‘재물(財)을 알고 사람을 모른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대가 법을 구함이 재물을 아는 것인가, 은혜를 아는 것인가. 굶주림과 추위를 참지 못하여 그런 것인가, 따뜻함과 배부름을 구하려고 그런 것이 아닌가. 마음은 항상 굶주림과 배부름의 뜻을 품고 입으로 항상 부족함과 충족함에 대한 말을 하며 집안에서 앙앙 대고 길에서 궁시렁대며 스승과 제자의 정이 멀어짐을 야기하고 친족의 정이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어느 아침에 감득感得하여 달리 법을 구하기를 허락하니, 치닫는 정의 무리(情黨)가 좌우로 결탁하는구나. 입은 창고의 문에 걸고 몸은 화려한 집안 뜰에 의탁하였으니, 재물을 모르고 은혜를 안다는 것이 과연 이와 같은가.
그대가 이와 같으니 이제부터는 필시 비단옷을 입고 배부르고 관옥冠玉761)에 금신을 신고 사계社界에 출두하여 눈길은 천하에 높이 뜨고 입은 해외로 크게 벌려, 나보다 높은 이는 없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비록 한 지역에서 활보하고자 하나 지역의 빈정거림은 어찌할 것인가.
아아, 장수와 요절은 동일하고 범석范石762)은 동일한 귀신이니, 영광과 욕됨은 잠시일 뿐 풍요와 검약이 어찌 다르리오. 조금이라도 바른 지견이 있다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구하여 은혜를 버리고 법을 구함을 어찌 일삼겠는가. 나의 게송을 들으라.
동복군 옹성산 몽성암 칠성계안 서문11월 11일(同福郡甕城山夢聖庵七星契案序十一月十一日)
무릇 칠성계란 무엇인가. 선남선녀 신도들이 단금斷金763)의 교분으로

012_0743_a_01L不照休庵之寂寂應庵之莫莫不待
012_0743_a_02L言而其然也到此君之榮光滿於雲衢
012_0743_a_03L起踴曲踴手舞足蹈不見湖光之洋洋
012_0743_a_04L月色之皎皎終見失於應庵家裡寶藏
012_0743_a_05L如晦堂之失人於君有幾個慶快也哉
012_0743_a_06L書中知財不知人者何謂也以君之求
012_0743_a_07L知財耶知恩耶不忍飢凍而然也
012_0743_a_08L不求溫飽而然耶心常懷飢飽之情
012_0743_a_09L常說窘足之言鞅鞅於家裡苟苟於途
012_0743_a_10L惹起師資之情踈做出眷族之誼離
012_0743_a_11L一朝感得任他求法之諾馳走情黨
012_0743_a_12L左締右結口掛於倉廪之門身托於華
012_0743_a_13L族之庭不知財而知恩者果如是乎
012_0743_a_14L君旣如是則從此必衣錦而膓飫冠玉
012_0743_a_15L而履金出頭於社界眼高開於宇內
012_0743_a_16L口大張於海外自以謂無有上於我者
012_0743_a_17L雖欲作一方之活步其奈何一方之嚬
012_0743_a_18L嗾哉噫噫彭殤一轍范石一鬼榮辱
012_0743_a_19L暫時豊儉何殊小有正知見者何事
012_0743_a_20L捨此求彼棄恩求法哉聽吾一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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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3_a_22L• 同福郡甕城山夢聖庵七星契案序
012_0743_a_23L十一月十一日

012_0743_a_24L
夫七星契者何謂也信男善女斷金

012_0743_b_01L재물을 모아 성군星君(북두칠성)께 공양하여 재앙을 소멸하고 복을 받음을 말한다. 일이 어찌 쓸데없겠는가.
이 몽성암夢聖庵은 대성大聖(부처님) 자부慈父께서 꿈에 감응하여 대단신大檀信(시주) 오씨吳氏 문중에 영험을 드러내시어 월봉月峰 정상에 터를 정하고 암자를 창건하게 하신 것이다. 바람이 있으면 응하며 돌아보아 이루어 주지 않음이 없으니 다시 논할 게 없다. 하물며 칠원성군七元星君은 허공(空界)을 순환하고 인간 세계를 굽어 살피시며 크게는 천계를 주유하면서 작게는 미진微塵에 들어가는 무량하고 신이한 변화와 가늠할 수 없는 공덕을 지닌 분이시다. 그 영험을 개괄하여 논하자면 자손이 창대하고 수명이 길어져 만 리 허공에 구름이 일어나는 듯하다. 온갖 복이 나오고 수많은 장애가 소멸되니 수많은 강물 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지혜로운 살핌이 환하여 터럭만 한 선악도 착오가 없고, 신이한 칼이 엄정하여 조금의 복과 재앙도 피할 수 없다. 믿음의 힘이 일어나면 어찌 복이 오지 않으리오. 정성스런 마음이 이르면 어찌 장애가 소멸되지 않으리오.
엎드려 생각건대, 가장 뛰어난 선(上善)의 대단씨大檀氏들께서 마음을 잃게 하는 티끌 재물을 아끼지 마시고 몸을 보호할 좋은 인연을 깊이 심어, 현재 사바세계에서 다른 성의 형제를 체결하고 앞으로 극락세계에서 업을 같이할 도반(法侶)과 유희하고자 이에 향사香社764)를 결성하고 그 명단(芳啣)을 고하노라.
몽성암 창건기11월 11일(夢聖庵剏建記十一月十一日)
노령蘆嶺765)의 남쪽이자 무악毋岳766)의 북쪽에 ‘옹성甕城’이란 산이 있다. 형체는 크게 두툼하여 철 단지(鐵甕)를 엎어 놓은 듯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투구의 끈이 풀어진 듯하고 가까이서 우러러보면 철위산(輪圍)767)이 겹쳐진 듯하니, 그래서 그 명칭을 얻은 것인가.
옹성 아래에 적벽赤壁이 있고 적벽 아래에 강이 있고 강 언덕에 정자가 있다. 정자의 벽면은 살아 있는 병풍이요 강 위엔 맑은 바람, 정자에서 보이는 밝은 달은 소선蘇仙768)의 아름다운 취향과 방불하도다.

012_0743_b_01L聚財獻供星君消災降福之謂也
012_0743_b_02L豈徒然哉此夢聖菴者大聖慈父
012_0743_b_03L夢現靈於大檀信吳氏之門占基剏菴
012_0743_b_04L於月峰之頂有願卽應無顧不遂
012_0743_b_05L無更論而况七元星君循環空界
012_0743_b_06L察人間大周天界細入微塵之無量神
012_0743_b_07L變叵思功德者哉槩論其靈則子孫
012_0743_b_08L昌而壽命長似雲興於萬里空界百福
012_0743_b_09L進而千障滅若月印於千江波心慧鑑
012_0743_b_10L昭昭不錯絲毫之善惡神釰嚴嚴
012_0743_b_11L逃分寸之福殃信力所起何福而不臻
012_0743_b_12L誠心所到何障而不滅哉伏唯諸上善
012_0743_b_13L大檀氏莫惜喪心之塵財深種護身之
012_0743_b_14L良緣現在娑婆締結異姓之昆季
012_0743_b_15L生極樂遊戱同業之法侶玆結香社
012_0743_b_16L爰吿芳啣

012_0743_b_17L

012_0743_b_18L夢聖庵剏建記十一月十一日

012_0743_b_19L
蘆嶺之南毋岳之北有山曰甕城
012_0743_b_20L形磅磚 [119] 若鐵甕之覆遠而望也如胄
012_0743_b_21L凱之脫纓近而仰也似輪圍之疊衿
012_0743_b_22L故得其名歟甕城之下有赤壁壁下
012_0743_b_23L有江江岸有亭壁面之活屏江上之
012_0743_b_24L淸風亭中之皓月依俙乎蘇仙之嘉趣

012_0743_c_01L적벽의 정상에 ‘칠성대’가 있으니, 범과 용이 서려 있어 북극성이 비추고, 하늘과 땅이 비장하여 남극성769)이 헌수獻壽770)하니, 신명이 보호하고 귀신이 달아나는 별세계요 마땅히 불상을 봉안하고 참선(安禪)할 복지인데,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 그러한 것이로다.
마침 무오년(黃馬, 1918) 봄에 동복군의 신도 오완기吳完基가 부처님 꿈을 꾸고 터를 정하더니 과연 남아를 얻었다. 믿음의 씨앗이 저절로 싹터서 집안 재물을 내어 이 암자를 짓고 태영泰英 상인上人(스님)을 초빙하여 일을 감독하고 암자에 주석하게 하였다. 같은 해 초여름에 시작하여 8월 그믐에 마쳤다. 이것이 ‘몽성암’이라고 명명한 까닭이로다.
기미년(1919) 가을에 불상을 주조하고 탱화를 그려 나란히 봉안하고 낙성재落成齋를 마련했다. 온갖 색들을 다 갖추고 온갖 것들을 성취하니 단나檀那(시주)가 부처님께 기도함에 뜻대로 되고 납자衲子(승려)들이 거주함에 편리하다. 부처님의 감응은 달이 강에 비침과 같아 본래 논할 수 없다.
하잠霞岑(노을 봉우리)에 기대어 성봉星峰이 높다랗게, 구름 낀 개울을 내리누르고 푸른 강은 첩첩이 겹쳐지네. 서쪽으로 서석瑞石771)의 무등산을 가리키고 동쪽으로 운룡雲龍의 비봉산을 소리치도다. 오르는 이들이 스스로 감흥을 펼칠 터이니 어찌 족히 말하겠는가. 그러나 사사四事772) 공양으로 부처님과 승려들에게 보시함에 쌀 한 톨이 7근의 무게이니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어렵다는 게 옛 성현773)의 밝은 가르침이다. 선정에 거하면서 피를 머금어 식사하고 칼을 차고 잠을 자며774) 거하는 승려는 누구인가. 암자를 창건한 혼명渾溟 화상의 상족上足(제자)인 태영泰英이다. 기록하는 이는 누구인가. 조계 늙은이 금명錦溟이라 한다.
해강 김규진과 죽농 안순환이 30사찰의 액호를 써서 보냈기에 판 뒤에 쓴 간단한 서문12월 12일(金圭鎭海岡安淳煥竹農寫送三十寺額號板背小引十二月十二日)
이 판액은 한양의 명사明士 김해강金海岡775)과 안죽농安竹農776) 두 분이 그려 보낸 서화書畵이다.

012_0743_c_01L赤壁之頂有臺名七星虎踞而龍
012_0743_c_02L北宸照臨天藏而地秘南極獻壽
012_0743_c_03L是可謂神護鬼遁之別界宜奉佛安禪
012_0743_c_04L之福地必待旺運而然矣適黃馬之春
012_0743_c_05L郡之信士吳完基夢聖而占基果得一
012_0743_c_06L信芽自萌出家財剏是庵招泰英
012_0743_c_07L上人蕫其役主其庵仝年初夏始
012_0743_c_08L月晦日終此所以夢聖菴之命名者歟
012_0743_c_09L越己未秋銑佛像畵聖幀并奉安而
012_0743_c_10L設落成齋色色畢備頭頭成辦檀那
012_0743_c_11L之祈聖如意衲子之棲息便宜以其佛
012_0743_c_12L聖之感應如月印江固不可論至若
012_0743_c_13L却倚霞岑星峰崇嶐俯壓雲澗
012_0743_c_14L江疊層西指瑞石之無等東喝雲龍之
012_0743_c_15L飛峰登臨者之自得以興感暢舒何足
012_0743_c_16L道哉然而四事供養施佛及僧一米
012_0743_c_17L七斤錙銖難報古聖之明訓唯居禪
012_0743_c_18L含血而食帶刀而眠居僧誰也剏庵
012_0743_c_19L主渾溟和尙之上足泰英是也記者誰
012_0743_c_20L曹溪老漢錦溟云尒

012_0743_c_21L

012_0743_c_22L• 金圭鎭海岡安淳煥竹農寫送三十
012_0743_c_23L寺額號板背小引十二月十二日

012_0743_c_24L
此額卽漢陽明士金海岡安竹儂 [120] 二公之

012_0744_a_01L두 분은 일찍 벼슬살이를 하여 청요직淸要職777)을 다 거치고 일찍이 서화로 조정에서 이름이 났으나 성품은 아름다운 산수를 좋아하였다. 해진 두루마리와 먹을 도시의 먼지 속에서 모조리 부서지게 하느니 도리어 멀리 금지옥토 범궁梵宮(사찰)에서 관람하는 것만 못하다고 여겨, 30본사本寺778)의 액호額號를 완성하였다. 이에 해강의 글씨와 죽농의 그림을 판본처럼 새기고 칠하여 장소에 따라 배포하여 범궁의 문미에 높이 걸게 하였다.
아, 두 분의 마음은 수묵 난죽水墨蘭竹의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한씨 문계안 서문경신년(1920) 1월(韓氏門契案序庚申一月日)
산에 맥이 있어 국면을 이루고, 물에 근원이 있어 못을 이룬다. 국면을 이루면 땅이 영험하고 사람은 걸출해지며, 못을 이루면 용이 깃들고 물고기가 변한다. 이것은 산과 물이 기운을 모은 것으로, 하물며 사람은 만물 가운데 영험하니 어찌 맥을 찾고 근원을 탐색하여 세상에 바로 서고 이름을 드러나게 함이 없겠는가.
이제 한씨는 청주에 관적을 두고 복천福川779)에 산 지가 거의 십수 대代에 이른다. 본래 의관을 갖춘 혈통으로 여항閭巷780)에 은거하면서도 관적의 청전靑氊781)을 굳게 지켰다. 지난 임인년(1902)에 무악毋岳(무등산) 남쪽이자 두치斗峙의 서쪽에 한 자락 산기슭을 얻어 몇 개의 혈穴을 점쳐서 부모를 안장할 음택陰宅(산소)으로 삼았다. 이후 삼림을 배양하여 선산(先壠)의 울타리로 삼은 지가 19년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산그늘이 덮어 주어, 아들과 손자들이 번식하여 무리 지으니 마을을 이루어 안도하게 되는 경사에 이르게 되었다. 외로이 궁박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이 어찌 먼 시골의 지극한 바가 되지 않겠는가. 이후로는 삼림을 배양하고 덤불을 베어 내어 금액이 많든 적든 문중에 원금을 마련하고

012_0744_a_01L所寫書畵也二公蚤遊宦海歷盡淸要
012_0744_a_02L曾以書畵名於朝而性好山水之美者
012_0744_a_03L與其殘𨋀破墨渾碎於紫陌紅塵之
012_0744_a_04L反不若遐觀於金地梵宮之外仍成
012_0744_a_05L三十本寺額號海之書竹之畵如板
012_0744_a_06L本而刻塗之隨處播及高揭梵宮之楣
012_0744_a_07L二公之心不泯於水墨蘭竹之間
012_0744_a_08L云尒

012_0744_a_09L

012_0744_a_10L• 韓氏門契案序庚申一月日

012_0744_a_11L
山有脉而作局水有源而成潭作局則
012_0744_a_12L地靈而人傑成潭則龍隱而魚變此山
012_0744_a_13L水之鍾氣而况人於萬物之靈而豈無
012_0744_a_14L尋脉討源而立於世現於名者哉今韓
012_0744_a_15L氏貫於淸州而居於福川者幾至十數
012_0744_a_16L代也本衣冠之胄而隱於閭巷固守貫
012_0744_a_17L籍之靑氊矣去壬寅年得一片山麓於
012_0744_a_18L毋岳之南斗峙之西占數穴而安父母
012_0744_a_19L之陰宅養森林而爲先壠之藩籬者
012_0744_a_20L九年之久也何幸山蔭所覆子其子
012_0744_a_21L孫其孫繁息有徒以至成村安堵之餘
012_0744_a_22L比諸孤單窮獨之時此豈不爲之遐
012_0744_a_23L鄕之所極乎從此以往也養森林
012_0744_a_24L榛苦隨多少金立本於門中殖利於

012_0744_b_01L친족들에게 이자를 불려서 선산(先塋)과 친족의 자본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누가 알겠는가, 맥을 찾고 근원을 탐색하는 날에 땅이 영험하고 사람이 걸출하며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 경우가 있으니 이날에 계를 이룬 근원을 돌아보게 될 줄. 이렇게 계약하여 굳게 계안을 정하고 아래에 친족의 명단(芳啣)을 나열한다.
『조계고승전』 서문3월 3일(曹溪高僧傳序三月三日)
‘고승전’이란 또한 ‘명승전’이라고도 하니, 즉 도덕으로 고명한 사승師僧782)들을 전한 기록이다. 고승전을 짓는 것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시작되었다. 당나라 의정義淨783)과 혜교惠皎784)ㆍ보창寶唱785) 등이 각기 10권을 저술했고 송나라 찬영贊寧786)이 또한 10권을 저술하고 도선道宣787)이 또 1권을 저술했다. 금나라 세종이 40권을 제작했으니 전후로 도합 100여 권이 세상에 유행하였는데 모두 도덕으로 고명한 승려들에 대한 기록이다.
해동을 보자면, 신라와 고려 때부터 삼한의 명승들이 배출되어 출중한 현인들이 진단震旦(중국)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였는데 원래 승전은 없었다. 신라 때 『신승전神僧傳』이 있고, 고려 때 『학승전學僧傳』이 있었을 뿐이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이라 하여 각훈覺訓788)이 지은 것이 있다. 이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또한 고승전이 있는데 시반(師蠻)789)이 저술한 것이고, 근래 『동사열전東師列傳』이 있으니 범해梵海790) 노스님이 찬술한 것으로 모두 통방정안通方正眼791)이요 불문佛門의 등불을 이음이다. 다섯 종파의 유파792)를 가리지 않고 또한 구산九山793) 선문의 분류를 따지지 않으니, 실로 관방關坊에 의거하여 오는 이들은 모두 취지가 같다는 것인가.
오직 이 『조계고승전』은 다만 조계산의 고승들에 관한 기록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즉 우리 개산조開山祖 보조국사께서 구산의 장벽을 열어젖혀 선교의 종찰로 삼고

012_0744_b_01L族下使有緊用於先塋及門族之資
012_0744_b_02L知爲尋脉討源之日有地靈人傑魚變
012_0744_b_03L成龍者顧念乎此日之成契之源也哉
012_0744_b_04L以此契約而牢定成案列族門之芳啣
012_0744_b_05L于左

012_0744_b_06L

012_0744_b_07L1)曹溪高僧傳序三月三日 [21]

012_0744_b_08L
高僧傳者亦云名僧傳卽道德高名之
012_0744_b_09L師僧傳錄也高僧傳之作嚆矢於唐宋
012_0744_b_10L之代唐之義淨惠皎寶唱等各述十卷
012_0744_b_11L宋之贊寧亦作十卷道宣又述一卷
012_0744_b_12L金之世宗御製四十卷前後合一百餘
012_0744_b_13L行于世而盡是道高名僧之傳錄也
012_0744_b_14L若海東則自羅麗三韓名僧輩出矯矯
012_0744_b_15L群賢比肩於震旦而原無其傳以唯
012_0744_b_16L羅有神僧傳麗有學僧傳而已至於三
012_0744_b_17L始有海東高僧傳覺訓之所造
012_0744_b_18L于李朝亦有高僧傳師蠻之所述
012_0744_b_19L有東師傳梵海翁之所撰而皆爲通方
012_0744_b_20L之正眼佛門之續燈也不揀五宗之派
012_0744_b_21L亦不問九山之分岐實謂據關坊而
012_0744_b_22L來者皆同趣歟唯此傳者但曹溪山
012_0744_b_23L之高僧傳也曷故然也卽我開山祖普
012_0744_b_24L照國師闢九山之障壁爲禪敎之宗

012_0744_c_01L여러 유파들을 융합하여 조계종을 세우니 이로부터 구산이 변하여 하나의 도가 되고 선과 교 양가兩家가 합하여 하나의 종이 되었다. 조계종의 취지가 넓고 크도다. 이로 말미암아 본종本宗의 창업주에서 시작하여 본종의 유파에 마치기까지 하나하나 여러 책들을 열람하여, 어느 산 어느 문중을 막론하고 이 종宗에 관계되면 병입하여 수록하였다. 명銘과 행장(狀)이 있으면 원본에 따라 대략 기록하고 고찰할 게 없으면 다만 차례대로 기록하였다. 현재 가히 명승이라 할 만한 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고찰하여 행장을 이루고 가외可畏(후인)794)를 기다린다.
그러나 다만 이와 같은 것으로 어찌 당나라와 송나라, 신라와 고려의 문장 사업을 도모했겠는가. 그저 종주께서 장애를 열어젖혀 종지를 세우신 것의 만분의 일이나 은혜를 갚고자 한 것이요, 다만 조사들의 고명한 도덕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람이다. 오직 통달한 이들은 같이 증명해 주시라. 뒤를 이어 등불을 전하여 결국 원질原帙795)을 완성하기를 정축頂祝796)할 따름이다.
『저역총보』 서문(著譯叢譜序)
천하의 성인은 책을 저술하여 가르치지 않음이 없고, 세상 밖(方外) 현인들도 불경(梵)을 번역하여 남기지 않음이 없다. 불교가 동쪽으로 전래한 이후로 저서와 역서가 더욱 많아졌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의 인도 승려들과 진나라와 송나라의 유명한 이들이 명성을 다투어 논서를 짓고 경전을 번역하니 긴 창공에 구름이 일듯 하였고 큰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듯 하였다.
해동에 이르러서도 또한 진단震旦(중국)보다 덜하지 않은데 간혹 경전과 논서의 같고 다름이나 소기疏記(주석)의 구별, 저자와 역자의 이름들을 분변할 수 없고, 강의하는 즈음에

012_0744_c_01L融諸家之派流立曹溪之宗自是九山
012_0744_c_02L變爲一道兩家合爲一宗曹溪宗之趣
012_0744_c_03L廣且大矣哉由是始於本宗之剏主
012_0744_c_04L終於本宗之派流者一一閱於群篇
012_0744_c_05L論何山何門而唯關於是宗并入而錄
012_0744_c_06L而有銘狀則依本畧錄無狀可考
012_0744_c_07L則但依次列錄至於現見可爲名僧者
012_0744_c_08L私考而成狀以待可畏也然而但如此
012_0744_c_09L豈圖唐宋羅麗之文章事業也哉
012_0744_c_10L報宗主之闢障立宗萬一之恩秪望諸
012_0744_c_11L祖之道高德名之不朽也唯達者同垂
012_0744_c_12L證明續後傳燈竟成原帙頂祝耳

012_0744_c_13L

012_0744_c_14L2)著譯叢譜序 [22]

012_0744_c_15L
天下聖者莫不著書而敎之方外賢哲
012_0744_c_16L亦莫不譯梵而遺之自佛敎東漸著譯
012_0744_c_17L益熾漢唐之胡僧晋宋之名士競名
012_0744_c_18L爭頭造論而譯經也如長空之雲興
012_0744_c_19L若巨海之波進以至海東亦不下於震
012_0744_c_20L而或經論之同異疏記之并別
012_0744_c_21L譯之氏名莫能分卞至於講授之際
012_0744_c_22L此序文旣載於曹溪高僧傳篇(韓國佛敎全書
012_0744_c_23L第十二册三八一頁上段){編}
此序文旣載於著
012_0744_c_24L譯叢譜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四三五頁中
012_0744_c_25L段){編}

012_0745_a_01L매번 빠뜨리고 잊어버리는 근심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열람하는 대로 그때마다 합쳐서 글을 주고받을 때에 자료로 삼게 하였는데 거의 한 권이 되었기에, 이름을 ‘저역총보著譯叢譜’라 하여 책상머리에 두고 항상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한번 펼치면 고금의 저술가들을 편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스스로 눈여겨볼 뿐이지 어찌 고견을 지닌 대가들에게 증정하기를 도모하겠는가. 안목 있는 이들이 보면 불쏘시개로 충당하여 일성一星797)의 근심을 면하지 못하리라. 한 번 웃노라.
엄군(부친) 통정공의 신산798) 장례 축문기유(1909) 2월 일(嚴君通政公新山葬禮祝己酉二月日)
현고顯考 통정대부通政大夫 부군府君 신위神位799)
신이하고 영령하시니, 진동하거나 놀라지 마소서.
다섯 번 산소를 바꾸어, 삼망三望800)으로 결정하니
세상에서 ‘천마天馬’라 칭하고, 사람들이 영험한 자리라 하는 곳
백리 행룡行龍801)에, 별점으로 자리 하나 얻어서
임任을 향하고 병丙을 등지며,802) 진辰과 경庚으로803) 파정破汀804)하니
혈의 깊이는 4척이요, 흙은 오황五黃805)을 겸했습니다.
이에 옥관玉棺을 내리고, 고르게 금정金精806)을 나누니
오성이 내리 비추고, 양의兩儀(일월)가 함께 응하며
만 리에 바람이 통하니, 일기一氣가 형통합니다.
바라건대 신령께서는, 이제부터 음택에서 편안히
시간이 갈수록 평안하시고, 재앙을 소멸하고 복을 내리시길
지극한 마음으로 축원하오며, 소박한 음식이나마 차려서
삼가 맑은 술을 드리노니, 굽어 음식을 흠향하소서.
자당 숙부인 전주 이씨의 신산 장례 축문임자(1912) 2월 27일(慈堂淑夫人全州李氏新山葬祝壬子二月二十七日)
현비顯妣 숙부인淑夫人807) 이씨 존령尊靈
세 번 후토后土808)를 옮긴, 한 구역의 명당
선인들이 바둑 두는, 구름 속 신선 마을
경태庚兌809)로 낙맥落脉810)하는,

012_0745_a_01L每不無遺忘之慮故隨所閱而逐旋捏
012_0745_a_02L使備酬唱之資幾成一局命名以
012_0745_a_03L著譯叢譜寘諸案頭俾要常目一展
012_0745_a_04L而便見古今述作者然而只可以自家
012_0745_a_05L寓目豈圖持贈大方之高見也哉若具
012_0745_a_06L眼者見之足充紙燼而不免一星之患
012_0745_a_07L也夫一笑

012_0745_a_08L

012_0745_a_09L• 嚴君通政公新山葬禮祝己酉二月
012_0745_a_10L

012_0745_a_11L
顯考通政大夫府君神位唯神唯靈
012_0745_a_12L震勿驚五遷改塚三望迺銓世稱天
012_0745_a_13L人謂靈阡百里行龍一穴占星
012_0745_a_14L丙向背辰庚破汀穴深四尺土兼五
012_0745_a_15L乃下玉棺均分金精五星照臨
012_0745_a_16L儀并應萬里風通一氣元亨唯願神
012_0745_a_17L從玆安宅愈久彌寧消災降福
012_0745_a_18L至心奉祝爰設菲薄謹以淸酌俯欽
012_0745_a_19L斯奠

012_0745_a_20L

012_0745_a_21L• 慈堂淑夫人全州李氏新山葬祝
012_0745_a_22L壬子二月二十七日

012_0745_a_23L
顯妣淑夫人李氏尊靈三遷后土一地
012_0745_a_24L明堂仙人圍碁雲中仙鄕庚兌落脉

012_0745_b_01L유酉를 등지고 묘卯를 향해811)
병丙에서 득得하고 진辰으로 파하며,812) 위로 아래로 다시 살피니
뒤로 평평한 언덕으로 떨어지고, 앞으로 넓은 평야가 열리니
용이 머리를 돌려 서리고, 범이 꼬리를 내려 엎드리며
거북이 등에 해당하니, 오석烏石813)들이 섞여 있어
안으로 혈을 여니, 길한 곳의 음택입니다.
바라건대 편안하시어, 천지처럼 장구하게
자손들이 가지와 잎사귀처럼, 영원히 번성하게 하소서.
6대와 5대 조비 묘의 석물을 봉안하는 축문경신(1920) 4월 일(六代五代祖妣墓石物奉安祝庚申四月日)
덕이 밝은 바위비탈에서, 호승胡僧814)이 예불합니다.
세월이 오래되어, 산소가 부실해져서
개금開金815) 골짜기 위에, 회룡回龍이 조상을 돌아봅니다.
일을 시작하여,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니
먼저 사토莎土816)를 더하고, 다음 석재를 옮겨
세 구역에 상을 차리니, 한 쌍 망주望柱817)
석 좌의 신좌神坐,818) 한 개의 비석
옥을 다듬어 용이 서리게 하니, 구름처럼 우뚝 솟구쳐
전각은 살아 있는 듯하고, 소목昭穆이 분명해지니
산천이 빛을 내며, 귀졸은 숨고 신이 영명하도다.
엄숙하신 조상을 생각지 않을까, 실로 많은 후손들이
시작한 일을 마치고서, 음식을 차리니
태뢰太牢819)는 없지만, 갱장羹墻820)이 있습니다.
이에 다과를 배설하고, 띠풀821)과 울창주를 세우며
삼가 맑은 술을 따르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석보약록』 자서釋譜畧錄自序
『석가보釋迦譜』는 북위北魏822)의 승우僧佑823)가 편집한 것이다. 위로는 찰리刹利 구담瞿曇 감자甘蔗824) 석가가 강령하신 종기鍾氣825)의 시원을 서술하고, 아래로 싯다르타(悉達) 성인의 자취와 소멸의 마지막(要終)을 언급하였다. 그 문장은 박식하고 그 뜻은 오묘하여, 원래 초학자들이 떠벌릴 수 있는 게 아니요, 여러 경전들의 중요한 문장을 수색하고 논서(請論)들의 분명한 뜻을 절취하여

012_0745_b_01L酉坐卯向丙得辰破更察俯仰背落
012_0745_b_02L平崗面開大野龍結回頭虎伏低尾
012_0745_b_03L龜背當局烏石列錯內開一穴吉阡
012_0745_b_04L陰宅唯冀安宅地久天長子葉孫枝
012_0745_b_05L永昌茂榮

012_0745_b_06L

012_0745_b_07L• 六代五代祖妣墓石物奉安祝庚申
012_0745_b_08L四月日

012_0745_b_09L
明德嵓嶝胡僧禮佛歲月久深封疆
012_0745_b_10L不實開金洞上回龍顧祖經始營之
012_0745_b_11L兩役并擧先加莎土次運石村三區
012_0745_b_12L床盤一雙望柱三座神坐一躬碑碣
012_0745_b_13L磨玉盤砣 [121] 聳雲突兀篆刻活凝昭穆
012_0745_b_14L著明山輝川媚鬼遁神靈無念肅祖
012_0745_b_15L寔繁有徒要終剏役爰設爼豆雖無
012_0745_b_16L太牢迺有羹墻庸排茶果載竪茅鬯
012_0745_b_17L謹酌淸醪伏唯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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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5_b_19L釋譜畧錄自序

012_0745_b_20L
本譜卽北魏僧佑之所緝也上述刹利
012_0745_b_21L瞿曇甘蔗釋迦之降靈鍾氣之原始
012_0745_b_22L下及悉達聖人之示迹垂滅之要終也
012_0745_b_23L其文博其義奧原非初學之所藉口
012_0745_b_24L搜索群經之要文節取請論之了義

012_0745_c_01L30권826)으로 만들었다. 비록 섭렵하고자 하나 번거로울까 두려워서 간단하게 할 뜻이 없지 않았다.
나는 강의하는 여가에 틈나는 대로 보면서 번거로움을 줄이고 간략하게 취하여 기록해서 60항목(科)을 만드니, 항목은 본래보다 배가 되었으나 문장은 열에 하나보다 더 간략해졌다. 문장은 이전보다 간략해졌으나 뜻은 본 책보다 덜하지 않다. 이것이 번거로움을 꺼려하고 간략함을 좋아하는 모범이다. 항목 끝에는 매번 노래를 붙여서 60가지가 되게 하였으니, 즉 기야송祇夜頌827)이다. 다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한글로 토를 붙여서 ‘석보약록釋譜畧錄’이라고 명명하여 초학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처럼 기록하고 송頌을 붙인 것에 어찌 조금이나마 두찬杜撰(날조)한 아견我見828)이 있으리오. 혹시 방외에 흘러들어 가 안목을 갖춘 이들의 검토가 있을까 기다릴 뿐이다.
동경으로 유학 가는 완섭829) 사미를 보내며2월 17일(送完燮沙彌東京留學二月十七日)
너는 신해년(1911) 봄에 입산하여 삭발하고는, 보통학교에 들어가 3년이 지나 졸업하였고, 바로 전문불교830)에 들어가서는 4년이 지나 봄에 또 졸업하고서, 돌아와 지방과地方科에 들어가서 이번 봄 학기에 또 졸업한다. 전후 10년 사이에 세 번을 아울러 졸업한 것이다. 이제 또 바다를 건너가 위없는 법보를 공부하려고 하니, 옛사람이 말한 바, 옥을 캐는 이는 곤륜산의 험준함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이는 여학驪壑831)의 깊은 곳도 사양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 말이 진실하도다. 이제 너는 의주意珠를 캐고자 하니 큰 바다의 파도를 어찌 꺼리며, 심옥心玉을 찾고자 하니 바다 건너기를 어찌 사양하겠는가. 바다를 건너니 옛사람의 행장을 본받아 인천의 안목을 이루어, 남아가 출가한 큰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진정 바라노라. 출발이 촉박함을 깨닫지 못하고 한마디 말로 먼 길 오르는 감상을 부치니, 너는 반드시 삼가 가서 진중하게 돌아오라. 노래는 다음과 같다.

012_0745_c_01L三十𡰳之多矣雖欲涉獵㥘於煩剏
012_0745_c_02L靡嘗無短簡之志也予於講授之餘
012_0745_c_03L暇一閱節煩取畧而錄之爲六十科
012_0745_c_04L而科雖倍於本而文益畧於十一文雖
012_0745_c_05L畧於前而義不欠於本𡰳此憚煩好畧
012_0745_c_06L之方軌也科末每係一闋爲六十咏
012_0745_c_07L卽祇夜頌也但畧而錄之諺而吐之
012_0745_c_08L以釋譜畧錄命名之爲初學之一覽
012_0745_c_09L而如是錄頌豈有如小孔杜撰之我見
012_0745_c_10L或流入方外庶待具眼之證正云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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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5_c_12L送完燮沙彌東京留學二月十七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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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辛亥之春入山剃染仍入普通校
012_0745_c_14L越三年卒業卽入專門佛敎越四年春
012_0745_c_15L又卒業反入地方科今春期又卒業
012_0745_c_16L前後十年間三者并卒業也今又渡海
012_0745_c_17L欲學無上法寶者古人云採玉者
012_0745_c_18L憚崑丘之峻探珠者不辭驪壑之深
012_0745_c_19L誠哉是言今汝欲採意珠何憚鴻溟之
012_0745_c_20L波瀾欲探心玉奚辭鯨浪之跋涉哉
012_0745_c_21L旣涉溟浪能效古人之行李可作人天
012_0745_c_22L之眼目不負男兒出家之大志是所苦
012_0745_c_23L臨行促迫不覺以一言囑其登程之
012_0745_c_24L感想汝須謹愼而往珍重而返頌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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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국사 법어송 초집』 서문(眞覺國師法語頌抄集序)
병신년(赤猿, 1896) 봄에 방장方丈으로 물러나 거하며 이시二時(아침저녁)의 다반茶飰(차와 식사)과 일주一炷 심향心香832)으로 다만 무상無常을 구하는데, 어떤 사리闍梨833)가 불교 역사책을 가지고 와서는 보여 주며 의심되는 것을 구하기에, 질문하는 것에 답하며 한 번 살펴보면서 그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고자 했다.834) 그러다 조계산 진각국사眞覺國師835)께서 지으신 가송 14편을 보고는 몽당붓을 꺼내어 초록하고 한 번 읊으며 음미하였다. 이는 전에 들어본 『조계록曹溪錄』 중에 전하던 것을 베낀 것인가. 어찌하여 일찍 보지 못하였던가. 그러나 비록 전부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래도 물방울 하나를 움켜쥠에 향해香海836) 전체를 얻었다 하리니 어찌 공경하지 않으리오. 그리고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837) 가운데 인용한 무의자無衣子838)의 송頌 24수를 얻어서 합하여 한 권을 만들었으니 가히 모래를 헤쳐 금을 가리고 터럭을 모아 공을 만든다고 할 만하다. 그것을 법어록 말미에 붙여서, 함치含齒839) 후손을 기다리노니 세상에 반포됨이 없겠는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조계록』 원본을 보지 못한 것이다.
『선문염송』 1125칙則 화제(話) 가운데 무의자는 생각건대 송頌하지 않은 화제가 없을 터인데, 결집할 때 어찌하여 조사들의 말미에 붙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설화의 주인이 또한 갖추어 인용하지 않고 어찌 다만 20여 송頌만 사용하였는가. 아, 저 진각 노스님을 보노라면 그래도 사양을 좋아하는 풍모로 자기 송을 붙이지 않았다. 만약 후손이 설화를 지을 때 세간과 출세간의 문자를 함부로 취했다면, 어찌하여 자기 스승의 보묵寶墨(글)을 (싣지 않고) 울타리 주변 물건처럼 방치했을까. 내가 당시 후손들을 본다면 기꺼이 몽둥이로 아프게 30방을 칠 것이 틀림없다. 통달한 이들은 같이 증명해 주시지 않을까.

012_0746_a_01L眞覺國師法語頌抄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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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赤猿之春退居方丈二時茶飰
012_0746_a_03L炷心香只求無常有一闍梨袖佛史
012_0746_a_04L而示之以求其惑酬其所詰而閱編
012_0746_a_05L一覽將自適其適矣見有曹溪眞覺國
012_0746_a_06L師所寶唾歌頌十四題卽抽禿頴而抄
012_0746_a_07L乃一唱而妍味之是乃曾所聞曹溪
012_0746_a_08L錄中所傳謄耶何覽之未蚤也然雖未
012_0746_a_09L見全錄猶云掬一滴而得香海之全渤
012_0746_a_10L豈不欽也哉又採得說話中所引無衣
012_0746_a_11L子頌二十四首合爲一𡰳可謂潑沙揀
012_0746_a_12L聚毛成毬繼于法語錄之尾以待
012_0746_a_13L雲仍之含齒者得無布諸宇內耶最所
012_0746_a_14L恨者未見曹溪錄之元本也拈頌一千
012_0746_a_15L一百二十五話中無衣子想無話不頌
012_0746_a_16L而結集時何不續於諸祖之末
012_0746_a_17L說話主亦不具引而何但用二十餘頌
012_0746_a_18L睠彼覺老猶以好讓之風不繼
012_0746_a_19L己頌若以雲孫之作說話時捏取世出
012_0746_a_20L世之文字而何以自家師翁之寶墨
012_0746_a_21L諸巴籬邊物之相似也我若當時得見
012_0746_a_22L雲孫好箇三十痛棒也不疑耳唯諸達
012_0746_a_23L同垂證明也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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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휴 선조의 비를 세운 역사 서문4월 8일(浮休先祖立碑歷史序四月八日)
현릉玄陵이 말한, ‘조계산이 즉 동방 제일의 대도량이다’라는 것은840) 16국사들이 왕명으로 이어서 주석하여 나라에 복을 주고 세상을 도와 조계종을 창설하고 인천의 안목을 널리 열었기 때문인가, 도는 사람이 넓히는지라841) 사람이 영걸하면 땅도 신령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선조(부휴)께서 세상에 나타나 도를 고금에 비추어 명성이 타 지역까지 진동하였는데 다른 산에 비를 세우지 않고 오직 이 조계 문도들이 이 산에 비를 세우는 것은 9세대 적손嫡孫들이 소목昭穆을 계승함이 다른 산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적손들은 ‘벽암碧嵓과 취미翠微, 백암栢庵, 무용無用, 영해影海, 풍암楓嵓, 묵암默庵, 환해幻海,842) 용운龍雲843) ’이니, 등불과 등불이 타고 병과 병에 붓고 마음과 마음에 도장 찍은 듯하다. 곡탑鵠塔844)이 수미首尾에서 구슬을 빛내니 주변 유파 후손들이 가지마다 잎사귀마다 귀비龜碑845)들이 소목을 이어 나열된다. 그런데 오직 선조께서는 탑만 있고 비가 없으니 괜찮은가?
이에 주지가 앞장서고 대중이 응모하여 문인들에게 5천여 원圓을 모금하였고, 천안에서 강화석江華石을 구매하여 철차鐵車에 싣고 목포항(木港)에 이르러, 증기선(輪船)에 옮기고 벌교에 내린 다음 동거銅車에 실어 소 5필로 끌고 길을 따라 마을에서 부역하여 바야흐로 본사에 도달하게 되었다. 운반 비용이 물건 값(體金)보다 대여섯 배나 되었으니, 사람들이 말하길, 귀신의 방법이 아니면 필시 부처님의 힘이라 하였다. 그리고는 백곡白谷이 찬술한 명銘846)과 중국인의 액전額篆(전서)을 얻으니, 이른바 돌 옮기는 것이 돌 구하기보다 어렵고 전서 쓰는 것이 명 짓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겠다.
남상濫觴(시작)은 무오년(黃馬, 1918) 봄이요 복궤覆簣(마침)847)는 경신년(1920) 여름이다. 그런데 선조의 열반(泥洹)이 지금 290년 지났는데 문하에 용과 코끼리ㆍ사자ㆍ범 무리들이 비를 세우는 정성이 어찌 없었겠는가. 다만 선사의 도덕이 법계와 같이 광대하여 허공의 골骨에

012_0746_b_01L浮休先祖立碑歷史序四月八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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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陵之所謂曹溪山卽東方第一大道
012_0746_b_03L場云者爲十六國師勅住繼席福國
012_0746_b_04L祐世剏闢曹溪宗廣開人天眼之故歟
012_0746_b_05L莫是道以人弘人傑地靈者歟先祖現
012_0746_b_06L道映古今名震殊域而不於他山
012_0746_b_07L樹碑唯此曹溪門徒營碑于玆山者
012_0746_b_08L以有九世嫡孫承繼昭穆逈異諸山故
012_0746_b_09L其嫡孫曰碧嵓翠微栢庵無用影海
012_0746_b_10L楓嵓默庵幻海龍雲如燈燈燃瓶瓶注
012_0746_b_11L心心印鵠塔映珠於首尾傍派雲仍
012_0746_b_12L枝枝葉葉龜碑續列於昭穆而唯獨先
012_0746_b_13L有塔無碑可乎哉於是住持倡首
012_0746_b_14L大衆應謀慕門人金五千餘圓購江華
012_0746_b_15L石於天安載鐵車而至木港登輪船而
012_0746_b_16L下筏橋載銅車拽牛五匹沿路各村扶
012_0746_b_17L方達本寺運費蓓蓰體金人謂若
012_0746_b_18L非鬼術必也佛力云尒仍用白谷所撰
012_0746_b_19L爰得漢人之額篆是所謂運石難於
012_0746_b_20L求石寫篆難於撰銘也其濫觴也
012_0746_b_21L馬之春以覆簣也白猿之夏然而先
012_0746_b_22L祖泥洹迄今二百九十年之久而門下
012_0746_b_23L龍象獅虎之徒抑何無竪碑之誠哉
012_0746_b_24L以先師之道德廣大如法界藏諸虛空

012_0746_c_01L감추었으니 유즉무有卽無(있음이 곧 없음이다.)의 형상이요, 이제 굼뜨고 어리석은 무리들로써 진상眞相의 경계에 한 터럭을 드러내었으니 무즉유無卽有의 형상이다.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유무有無가 장애 없고 사리事理가 원융하여 진실로 대사의 진실한 자취가 동방 대도량에 드러났다고 하겠다. 나는 아름다운 취지를 흠모하여 대략 기록해서 가외可畏(후배)에게 보이노라.
부휴 조사의 비를 세우는 제문경신년(1920) 4월 20일에 세움.(浮休祖師立石祭文庚申四月二十日立)
운운.
대조계大曹溪 종주宗主 부휴당浮休堂848) 존령尊靈이시여.
신령한 기운이 석무갈石無碣에 모여 옛 대방帶方(남원)에 성스런 태를 의탁하셨네. 출가하여 화엄의 가르침을 배우고, 입도하여 임제의 종주가 되셨도다. 앎은 삼교三敎에 통달하사 인천의 귀감(龜鏡)이 되시고, 덕은 사중四衆849)을 위하여 어지러운 길의 큰 종이 되셨네. 지혜는 명나라 사신의 행차도 머무르게 하였고,850) 도력은 바다 오랑캐의 칼을 복종시켰도다.851) 미친 승려의 무고는 남관南冠852)의 모범을 드러내고,853) 뜰의 이무기는 『원각경』을 듣고 변화하였네.854) 모영毛頴(붓)이 중국 선비의 거울에 굳건했고, 고삐가 왕의 뜰로 이어졌네. 비록 본분의 겸추鉗鎚855)에 능하였지만 반드시 신훈新熏856)의 기봉機鋒857)을 겸하셨도다. 널리 방외 무리까지 접하니 7백 명이나 되고, 장차 수족을 펴 보이니858) 칠순이 지났도다.859) 교화 인연이 두루 주밀함에 미쳐 세제世諦860)를 따라 원만하게 입적하셨으니, 긴 대들보가 다시 꺾임이라 총림의 적막함을 어찌하리오. 고통의 바다에서 큰 노를 잃고 어두운 거리에서 보배 촛불이 꺼짐이라. 지혜의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니 구름 같은 후손들이 추모하노라.
불우佛宇(사찰)가 동쪽에서 퇴색하니 해회海會861)가 망극하도다. 사면의 산에 무봉탑無縫塔862)을 세웠으나 한 지역에는 아직도 명銘을 적은 돌이 없도다. 근역槿域(조선)의 문도들이 많지 않음이 아니요, 조계 종파가 적손 아님이 아니네.

012_0746_c_01L骨中有卽無相以今蠢頑痴庸之流
012_0746_c_02L露一毫於眞相界中無卽有相以古較
012_0746_c_03L有無無碍事理圓融眞所謂大師
012_0746_c_04L眞蹟一現於東方大道場矣予欽慕嘉
012_0746_c_05L畧記而示諸可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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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6_c_07L浮休祖師立石祭文庚申四月二十
012_0746_c_08L日立

012_0746_c_09L
云云大曹溪之宗主浮休堂之尊靈
012_0746_c_10L鍾氣靈於石無碣托聖胎於古帶方
012_0746_c_11L家學華嚴之敎入道爲臨濟之宗智達
012_0746_c_12L三敎作人天之龜鏡德兼四衆爲迷
012_0746_c_13L途之鴻鍾慧猶駐乎天使之勒道能伏
012_0746_c_14L乎海寇之鋒狂誣現於南冠之型庭蟒
012_0746_c_15L化於圓覺之經毛頴犍於漢士之鏡
012_0746_c_16L鞅連於王者之庭雖能乎本分之鉗鎚
012_0746_c_17L必兼於新熏之機鋒普接方外衆盈七
012_0746_c_18L百之徒將啓手足年逾七旬之齡
012_0746_c_19L化緣之方周順世諦而圓寂抑復脩樑
012_0746_c_20L之已摧爭奈叢林之寂寞苦海失其巨
012_0746_c_21L昏衢滅其寶燭慧日西墜雲仍追
012_0746_c_22L佛宇東頽海會罔極四山雖起無
012_0746_c_23L縫之塔一地尙闕有銘之石槿域門徒
012_0746_c_24L不爲不夥曹溪宗派非是非嫡坮石

012_0747_a_01L대석坮石(받침돌)을 조계산(溪山) 언덕에서 캐고, 비석은 강화도 옥으로 다듬도다. 거북은 여섯 지체를 감추어 앉아 하수와 낙수에 웅크린 듯하고,863) 용이 머리에서 둘이 싸우며 높이 푸른 벽을 지탱하네. 글자는 여주驪珠(검은 구슬)를 흩뿌린 듯 놀이 금송錦頌에 비치고, 전서는 살아 있는 규룡의 허리 같으니 구름이 수놓은 벽옥을 감싸도다. 우리 조사의 공업을 기록할 뿐 우리 조사의 도덕은 표현하지 못하네. 그저 사모하는 모양만 드러낼 뿐이니 아직도 살아계신 듯한 감상을 말하노라. 한 접시의 호떡과 변변찮은 음식을 진열하고 세 사발의 중국차(漢茗)로 대략 슬픈 마음을 표현하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심향心香을 함께 드리오니 막엄한 존령尊靈이시여 굽어 받으소서. 여러 음식을 드리노니 흠향하소서.
환해864) 화상의 비를 세우는 제문5월 5일865)(幻海和上立石祭文五月五日)
화엄華嚴 대종사大宗師 환해당幻海堂 존령尊靈이시여.
유림儒林에서 우뚝 빼어나 석원釋園에 옮겨 심으니, 일찌감치 티끌세계를 떠나 선근善根을 널리 꽃피우셨네. 팔영산866)에 영험한 기운이 내리니 고흥의 남쪽이라. 달이 공중에서 밝은 듯, 용이 못에 있는 듯하도다. 법의를 묵암默庵 노스님께 얻고 종지를 조계산에서 펼쳤도다. 환몽을 비로장해毘盧藏海867)에서 깨고, 법인法印을 대 법린法璘의 숫돌에 연마하니, 지혜의 가지가 바야흐로 수려하여 대중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는데, 불법의 동량이 느닷없이 쓰러지니868) 새들이 울어 대도다. 하나의 영험한 골상은 하늘을 덮은 콧구멍이요 사리 세 알은 땅에 떨어진 눈빛(眼光)이로다. 법신法身은 본래 그러하거늘 후손들이 추모하여, 탑이며 비석에 명銘을 마련하고 제사 지내도다. 전서(篆)는 교룡처럼 활발하고 노래는 산호처럼 찬란하며, 거북은 말없이 잘 돌아보고, 비석은 빛이 나 더욱 찬란하게, 푸른 석벽의 용 뿔이 드높이 아스라한 절벽의 거북에 올라탔네. 전단향과 서수犀首를 사르며 이포伊蒲869)의 제호醍醐를 마련하고 특별히 운문雲門을 갖추고 경건하게 울향鬱香을 태웁니다. 공경히 영령께 드리노니 흠향하소서.

012_0747_a_01L採於溪山之崗躰碑磨於江華之玉
012_0747_a_02L趺六藏盤踞河洛龍冠雙鬪高撑翠
012_0747_a_03L字撒驪珠霞龔錦頌篆活虬腰
012_0747_a_04L籠繡璧唯紀吾師之功業難極吾師之
012_0747_a_05L道德但表思慕之外貌猶云如存之感
012_0747_a_06L一盋胡餅兼陳薄奠三甌漢茗
012_0747_a_07L表哀衷齊運沒價之心香俯歆莫嚴之
012_0747_a_08L尊靈庶羞企薦伏唯尙享

012_0747_a_09L

012_0747_a_10L幻海和上立石祭文五月五日

012_0747_a_11L
華嚴大宗師幻海堂尊靈挺特儒林
012_0747_a_12L植釋園蚤謝塵界敷榮善根降靈八
012_0747_a_13L高興其南如月朗空若龍處潭
012_0747_a_14L法衣於默老闡宗旨於曹溪幻夢覺於
012_0747_a_15L毘盧藏海法印磨於大法璘砥慧柯方
012_0747_a_16L悅可衆心法棟俄墜咽號群禽
012_0747_a_17L頂靈骨掩天鼻孔三枚舍利落地眼
012_0747_a_18L法身本然雲仍追慕載塔載碑
012_0747_a_19L銘迺醋篆蛟龍之活潑頌珊瑚之燦爛
012_0747_a_20L龜無言而善顧石有光而益煥撑翠
012_0747_a_21L壁之虬角駕蒼崖之龜趺焚栴檀與犀
012_0747_a_22L設伊蒲之醍醐特備雲門敬煎鬱
012_0747_a_23L祗薦于靈伏唯尙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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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봉서암 중창기경신년(1920) 7월泰安寺鳳瑞庵重剏記庚申七月日
지리산 남쪽에 ‘봉두산鳳頭山’이 있는데 봉우리들이 특히 수려하여 감싼 모양이 날아오르는 봉황의 무대 같고, 두 물줄기가 나뉘었다가 합쳐져 흐르니 흡사 태극의 둥근 그림 같다. 토양은 비옥하고 숲은 무성하며 샘물은 달고 시냇물은 풍부하니, 선인仙人의 집이 아니면 불자佛子의 거처로다. 첫째 봉우리 아래에 ‘태안사泰安寺’가 있으니 속칭 ‘동리사桐裏寺’라고도 함은 옛날 산 이름 때문이다.
신라 시대에 신승神僧 셋이 암자를 지었다는데 자세히 말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당나라 원화元和 9년(814)에 혜철국사慧哲國師께서 크게 창건하여 비로소 ‘봉두산 태안사’라고 칭하였다. 아전鵝殿(법당)이 아스라이 높고 봉방蜂房이 이어져, 신라와 고려 시대 천여 년 동안 꽃비가 내리던 보방寶坊(사찰)이다. 사찰의 남서쪽(坤)으로 반보(一武) 떨어져서 ‘봉서암’이 있으니 사찰과 같이 창건되었는데 고찰할 문건이 없으니, 이전에 몇 번이나 흥폐를 겪었는지 알 수 없다. 청오靑烏870)가 말하길, “사찰이 인신寅申871)으로 자리 잡고 암자가 정계丁癸872)로 터를 잡았으니 그 방향과 기복이 봉황이 서로 쫓고 서식하는 듯하다. 사찰이 있고서 암자가 없을 수 없고 암자가 있고서 또한 사찰이 없을 수 없음을 단연코 생각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암자가 사찰에 관계됨이 어찌 중차대하지 않은가. 또한 봉황교鳳凰橋가 언덕의 눈썹에 닿고 능파각凌波閣이 물 입구에 걸터앉은 것은 용과 범이 서로 건너는 모양이다. 반월봉이 배후에 걸려 있고 쌍계수雙溪水가 앞에서 합해지는 것은 물과 달이 서로 비추는 형국이다. 천마天馬가 날아오르고 지고地庫가 중첩되며 대나무가 빽빽하고 오동나무 그늘이 맑게 그윽한 것은 모두 봉서암의 큰 볼거리로다.
그러나 겁파劫波가 이어지니 허물어지고 비게 되는 운수를 어찌 면할 것인가. 지난 강희康煕 신사년(1701)에 이 산의 각현覺玄 상인上人이 단문檀門(시주)들에 부르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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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47_b_02L泰安寺鳳瑞庵重剏記庚申七月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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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之南有山曰鳳頭衆峯特秀而抱
012_0747_b_04L若飛鳳之舞臺二水分派而合流
012_0747_b_05L似太極之環圖土肥而林茂泉甘而溪
012_0747_b_06L若非仙人之宅原是佛子之居
012_0747_b_07L一峯下有寺曰泰安俗稱桐裏者
012_0747_b_08L古之山名歟羅朝三神僧之結菴不足
012_0747_b_09L詳說而唐元和九年慧哲國師之宏剏
012_0747_b_10L始稱鳳頭山泰安寺之號鵝殿崔嵬
012_0747_b_11L房陸續卽羅麗朝千餘年花雨之寶坊
012_0747_b_12L寺之坤一武許有庵曰鳳瑞以與
012_0747_b_13L寺同剏而文無可考莫悟前因之幾經
012_0747_b_14L興廢也靑烏有言曰寺以寅申而得局
012_0747_b_15L庵以丁癸而作基其向背起伏如鳳凰
012_0747_b_16L之相逐捿息有寺而不可無庵有庵而
012_0747_b_17L亦不可無寺斷可以想也云庵之有關
012_0747_b_18L於寺者豈不重且大哉抑復鳳凰橋之
012_0747_b_19L接其岸眉凌波閣之跨乎水口者所以
012_0747_b_20L爲龍虎之相渡半月峯掛其背雙溪水
012_0747_b_21L合其前者所以爲水月之相照也以其
012_0747_b_22L天馬之飛騰地庫之重疊竹樹之鬱密
012_0747_b_23L梧陰之淸幽是皆爲鳳瑞庵之大觀歟
012_0747_b_24L然而刼波所傳誰免壞空之運乎往在
012_0747_b_25L康煕辛巳山之覺玄上人叫化檀門

012_0747_c_01L옛터에 크게 난야蘭若(사찰)를 창건하니 정전正殿 6칸과 익실翼室873) 각기 5칸, 정루正樓 5칸, 회랑 2칸, 서문 1칸으로 크고 넓게 지어서 호남의 으뜸 건물이요 납자衲子들의 기북驥北874)이 되었다. 아아, 이슬이 가면 서리가 오며 토끼(달)가 달리고 까마귀(해) 날아, 또한 이뤄지고 무너지는 때가 있으니 만물의 성쇠를 인간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주지 영월映月 선사는 이 산의 염불당 화주로서 일찍이 공적인 업무에 있어서 크게 역량이 있었다. 혹 종정鍾鼎을 만들어 당堂에 걸기도 하고 혹 토지를 사서 불전에 바치기도 했으니 불법을 호위하는 마음이 갈수록 더한 이라 하겠다. 이 암자가 스러진 것을 보고는 왕년에 수리한 것을 사랑하여 부흥시키려는 마음을 일으켜 대중에게 고하기를, “산림을 공연히 썩히는 것이 어찌 불상 머리를 덮는 것과 같겠는가.”라고 하고, 한 기슭의 삼림을 방매하여 3만 금액을 얻어서는 장인들을 불러 계획을 잡아 날을 정해 일을 감독했다. 정전正殿의 뒤 처마가 긴 것은 자르고 수리하였으며, 서실西室과 사문沙門875)은 옛 모습을 버리고 혁신하였고 동무東廡876)와 정루正樓는 새롭게 보수하여 옛 모습을 일신하였다.
경신년(1920) 맹춘孟春(1월)에 시작하여 같은 해 초가을(7월)에 마쳤다. 이에 종소리와 경쇠 소리를 수월水月의 바깥으로 보내니, 봉황이 오동과 대나무 사이로 날아와 춤추었다.877) 삼존불은 코끼리 자리(象座)에 의젓하고, 다라니(多羅) 가르침은 용이 잠겨 있는 곳(龍藏)에 가득하다.878) 오동나무 꽃 그림자 속에 상서로운 구름이 영롱하고, 대나무 그늘 사이로 상서로운 바람이 수수수 분다. 암자의 완성으로 사찰은 빛이 나고 봉황이 짝을 얻었으니, 사찰과 암자의 체모가 구비되고 자웅의 즐거움이 족하도다. 아, 오늘의 일은 원화元和와 강희康熙 삼생三生에 걸쳐 거듭 찾아온 원력임을 어찌 알겠는가.
나는 조계산에서 와서 미타실彌陀室에서 좌하坐夏879)하다가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대중이 그 완성(要終)을 말하면서 방함芳啣(성함)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여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감히 한마디 말을 대중에게 고하였다.

012_0747_c_01L仍於舊墟大剏蘭若正殿六間翼室
012_0747_c_02L各五間正樓五間廊二間西門一
012_0747_c_03L宏傑廣闢爲湖南之甲第衲子之
012_0747_c_04L驥北矣嗚呼露往霜來兎走烏飛
012_0747_c_05L亦成壞况物之盛衰人孰能哉有住
012_0747_c_06L持映月禪師卽山之念佛堂化主曾於
012_0747_c_07L公務大有力量焉或化鍾鼎而掛堂
012_0747_c_08L或買土地而獻佛護佛法之心老當益
012_0747_c_09L壯者也目此庵之傾覆愛往年之修治
012_0747_c_10L爰起興復之心乃吿衆曰以其山林之
012_0747_c_11L空腐孰與盖佛頭乎放一麓之森林
012_0747_c_12L得三萬之金額招工䂓度克日蕫役
012_0747_c_13L正殿後簷斷其長而修之西室及沙門
012_0747_c_14L頓袪舊而革新東廡與正樓改補新而
012_0747_c_15L換舊始於庚申孟春終於同年初秋
012_0747_c_16L是鍾磬送音於水月之表鳳凰來儀於
012_0747_c_17L梧竹之間三尊佛儼然於象座多羅敎
012_0747_c_18L押揲於龍藏桐華影裡瑞雲玲瓏
012_0747_c_19L樹陰邊祥風蕭瑟庵之成也寺以之
012_0747_c_20L生光鳳以之得凰寺庵之體具矣
012_0747_c_21L雄之樂足也今日之役安知爲元
012_0747_c_22L和康熙三生重來之願力也哉餘自曹
012_0747_c_23L坐夏於彌陀室茶餘有大衆說其要
012_0747_c_24L記其芳啣以示來者敢以一言吿

012_0748_a_01L“암자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은 운수이고 사람이 살고 죽은 것은 운명입니다. 오직 도의 생성만이 무너지고 죽는 사이에 있지 않습니다. 대중들은 이 암자에 올라 칼을 차고 자며880) 이 당에 거처하여 또한 마시고 먹으리니, 바라건대 거듭 찾아온 원력을 갚으소서.”
『화엄경』 사경 발문8월 15일(寫華嚴經跋八月十五日)
크도다, 사경寫經의 공덕이여. 여래의 말씀을 축건竺乾881)의 범자梵字로 잘 적어서 편집하였고, 삼장三藏의 번역을 진단震旦(중국)의 문자로 또한 필사하여 유통하니 나라에서 나라로 전하고 마을에서 마을로 전해졌다. 필사가 없으면 전할 수 있겠는가. 해동에서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불교를 수입하여 고려 시대에 소장본을 간행(刊鎭)하니 또한 필사의 공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보자면 필사자의 공덕이 어찌 넓고 크지 않은가. 『법화경』과 『금강경』, 『지장경』, 『유마경』 등 수십 장의 경전을 필사하여 전하는 이는 대나무와 갈대처럼 헤아릴 수 없지만, 약본 『화엄경』 10조 95,048자882)를 필사하는 이는 동토東土(조선) 전역에서 많이 얻을 수 없다. 간혹 명민한 선비가 필명을 팔아서 시나 부賦 등 한가로이 먹을 희롱하는 것처럼 삼업三業883)을 정갈하게 하지 않고 향도 피우지 않고 절도 하지 않고서 필사한다면 비단으로 감싸고 옥함에 보관한다 하더라도 귀하게 되지 않는다.
우리 조선에 이르러, 보개산寶盖山의 남호南湖,884) 금강산의 나은懶隱,885) 조계산의 경운擎雲886)은 모두 방외方外에 필명이 있던 분들로, 백 년 사이에 큰 경전을 필사하였고 진신縉紳(관료)들에게 고명을 얻었으니, 어려운 일을 했다고 할 만하다. 지금 어렵고도 더욱 어려운 것은 조계산 눌봉 정기訥峯正基가 그러하다. 재주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012_0748_a_01L曰庵之壞成數也人之死生命也
012_0748_a_02L而唯道之生成不在於壞死之間也
012_0748_a_03L大衆登此庵也帶刀而眠居此堂也
012_0748_a_04L亦飮血而食庶報重來之願力也夫

012_0748_a_05L

012_0748_a_06L寫華嚴經跋八月十五日

012_0748_a_07L
大矣哉寫經功德如來所說竺乾梵
012_0748_a_08L賴繕寫而編錄三藏所譯震旦文
012_0748_a_09L亦筆授而流傳以國傳國從鄕傳
012_0748_a_10L無筆寫而傳者不可得也若海東
012_0748_a_11L則麗濟羅之佛敎輸入高麗朝之藏本
012_0748_a_12L刊鎭亦莫過筆寫之功而已以是觀之
012_0748_a_13L寫氏之功豈非廣且大也哉所以法華
012_0748_a_14L金剛地藏維摩數十紙經之寫傳者
012_0748_a_15L竹葦之不億而若佛華嚴畧本十兆九
012_0748_a_16L萬五千四十八字經之寫者環東土不
012_0748_a_17L可多得也或以才敏之士售於筆名
012_0748_a_18L若詩稿賦編之等閑戱墨不淨三業
012_0748_a_19L香不拜而寫者雖錦粧琅凾未足貴
012_0748_a_20L至於我朝寶盖山之南湖金剛山
012_0748_a_21L之懶隱曹溪山之擎雲俱有筆名於方
012_0748_a_22L外者旣寫大經於百十年之間已得高
012_0748_a_23L名於縉紳之士可謂難矣哉以今難之
012_0748_a_24L尤難者唯曹溪山訥峯正基是也才不

012_0748_b_01L신앙은 절륜하며, 필체는 빼어나지 않지만 설경說經887)은 출중하고, 외모가 놀라울 정도는 아닌데 계율은 타인을 압도한다. 몸이 집에 있지는 않으나 부모에 효도하고 집을 보살피며, 지혜와 자비가 겸비되어 사범師範의 덕을 몸에 지녔고 종설宗說888)에 두루 통하여 가르침을 전하는 풍모가 마음에 절실하다. 20여 년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여 티끌 재산으로 저축한 업에 대해 단번에 짚신처럼 벗어 던지고 구름처럼 물처럼 행장을 꾸려 산수 사이에 자취를 숨겼다. 문득 사경의 공덕이 황하의 모래만큼 금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뛰어남을 깨닫고는 사경을 하기로 맹세했다. 『화엄경』 사경을 최상의 공덕으로 여기고는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단향檀香 1주炷를 사르며 한 글자마다 한 번 염송하고 한 줄마다 한 번 절하며 한 장마다 한 번 읽는 것을 법식으로 정하였다. 조계산 은적암隱寂庵에서 시작하여 동악산動樂山 도림사道林寺889)에서 마치니 문득 10년 광음을 소비하였고 단씨檀氏(시주)의 청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인연 따라 응접하며 불사佛事를 시행하여 장애 없이 성취하며, 교해敎海를 원만히 하였으니 신근信根이 아니면 어찌 물러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구옹龜翁의 필주筆珠를 떨구지 않더라도 청사淸師의 설연舌蓮을 감상할 만하다. 아, 한가로이 먹을 놀리는 것에 비교하면 어찌 하늘과 땅의 차이에 그치겠는가. 크도다, 사경의 공덕이여.
나는 조계산의 남은 유파요 송광사의 병든 선사로서 다행히 불사佛事의 말미에 참여하여 편찬의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눈은 어지럽고 손은 서툴러서 아름답게 치장할 수 없다. 노끈으로 비단을 묶는 것처럼 도리어 본래의 덕을 잃게 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만 수희隨喜890)하여 다행히 사경 공덕의 만분의 일 인연이라도 얻게 되어 이렇게 서문을 쓴다.
도림사 대법당 상량문8월 20일道林寺大法堂上樑文八月二十日
듣자 하니, 황금을 투척하여 동산을 매입함은 수달須達891)의 원력이 끝없음이요, 장대를 세워

012_0748_b_01L超倫而信佛絕倫筆不出群而說經
012_0748_b_02L異群貌不驚人而戒德壓人身不在
012_0748_b_03L而孝親濟家智悲雙行身佩師範
012_0748_b_04L之德宗說兼通心切傳敎之風二十
012_0748_b_05L餘年口說心行塵財之產畜積之業
012_0748_b_06L頓然脫屣雲水行裝遁迹於湖山之間
012_0748_b_07L忽覺寫經功德勝造河沙金塔
012_0748_b_08L心寫經以華嚴經爲最上功德淸淨
012_0748_b_09L三業檀香一炷一字一念一行一拜
012_0748_b_10L一張一讀以定課式始於曹溪之隱寂
012_0748_b_11L終於動樂之道林遽費十年之光陰
012_0748_b_12L負檀氏之所請隨緣應接施作佛事
012_0748_b_13L無障成就圓滿敎海若非信根孰能
012_0748_b_14L不退雖不落龜翁之筆珠當可賞淸師
012_0748_b_15L之舌蓮比諸等閑戱墨何啻於天
012_0748_b_16L淵懸也哉大矣哉寫經功德歟余曹
012_0748_b_17L溪殘派松社病禪幸叅佛事之末
012_0748_b_18L結粧䌙之緣目眩手拙莫可侈美
012_0748_b_19L如藁索結錦反喪本德者也然而祗可
012_0748_b_20L隨喜庶得寫經功德分萬一之緣
012_0748_b_21L是序

012_0748_b_22L

012_0748_b_23L道林寺大法堂上樑文八月二十日

012_0748_b_24L
盖聞擲金買園須達之願力無盡竪竿

012_0748_c_01L사찰을 세움은 제석帝釋의 정성이 작지 않음이라. 이는 항사겁恒沙劫892)에 심은 인연이 아닐 수 없으니 미진계微塵界893)에서 닦아 이룬 공덕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산(곡성 동악산)의 이 사찰은 신라 시대의 맑게 흐르는 물과 바위, 고려 시대 불도의 으뜸이 되는 사찰이었습니다. 이전 시대 개산開山(창건)은 묘길상妙吉祥(길상암)의 현재 판액으로 알 수 있고, 현재의 위치(銓局)는 원효암의 옛터로 말미암았습니다. 만력萬曆 경자년(1600) 봄에 이르러 도림사를 처음 창건하였는데 화주(化士)의 호칭은 어찌 망실하였는가. 강희康熙 계묘년(1663)에 비로소 ‘동악사動樂寺’라 칭하였으니 즉 영오靈悟 선사의 인연 때문입니다. 도광道光 신사년(1821)에 세 번째 창건하게 되니 도성 두홍道成斗弘이 담당했고, 대한 경신년(1920)에 네 번째 중수하니 눌봉 정기訥峰正基가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일제히 모두 방외(物外)의 고승들이니 또한 교화된 신도들이 없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대단월大檀越 정丁 신사信士894)가 자원하여 성금을 처음 내고, 작은 공덕의 선남자들이 인연 따라 창건을 도와 무주상無住相895)의 성금을 허락하니, 어찌 다만 수달須達의 바라는 마음뿐이리오. 인연 있는 대중이 응함이니, 어찌 특히 제석帝釋의 정성어린 힘일 뿐이리오.
이에 새 목재를 곡우穀雨896)에 베어 내니 한백漢栢과 진송秦松이 채찍 따라 올라가고,897) 남풍藍風898)에 옛 먼지를 쓸어 버리니 흙덩이와 기와들이 빛을 내며 무너졌습니다. 옛 기초를 그대로 두고 기둥만 바꾸니 청오靑烏(풍수)의 풍수 이야기를 묻지 않았고, 새로 서늘해지길 기다려 상량하니 경신년(白猿, 1920) 보름달을 선택하였습니다. 도끼를 휘두르니 공수工倕899)의 소매에 바람이 일고, 규획하고 헤아려 차곡差穀(택일)의 장부에 날짜를 적습니다. 신명의 상서로움에 기환정사祇桓精舍900)가 솟아나고, 하늘향이 짙게 날리니 향적香積(공양간)의 연기구름 영롱함이 이러하도다. 오량五樑901)의 노래가 이미 솟았으니 육위六偉의 노래902)를 부릅니다.

東        동
方丈山雲海日紅  방장산의 구름 바다에 해가 붉고
大野渡頭仙子宅  큰 들을 건너면 신선의 집과
滿城開士道無窮  성 가득 개사開士903)들의 도력이 무궁하네

南        남
山號通明積翠嵐  산 이름은 통명通明904)이라 짙푸르고
欲落層嵓應谷立  떨어질 듯 층층 바위가 골짜기 향해 서니

012_0748_c_01L建刹帝釋之誠心不微是莫非恒沙刼
012_0748_c_02L種得因緣孰能知微塵界修成功德
012_0748_c_03L山是寺羅代之淸流水石麗朝之道宗
012_0748_c_04L寺庵刼前開山憑知妙吉祥之現額
012_0748_c_05L現在銓局亦因元曉庵之古基迄于萬
012_0748_c_06L曆庚子春初剏道林何忘失化士之號
012_0748_c_07L康熙癸卯歲始稱動樂卽靈悟禪師之
012_0748_c_08L道光辛巳第三剏主道成斗弘是也
012_0748_c_09L大韓庚申第四重修訥峰正基是歟
012_0748_c_10L齊爲物外高僧亦不無化中信徒而今
012_0748_c_11L大檀越丁信士自願擲金之倡囮小功
012_0748_c_12L德諸善男隨緣建刹之助伴無住相之
012_0748_c_13L金諾何但須達之願心有緣衆之響應
012_0748_c_14L豈特帝釋之誠力於是乎斫新材於穀
012_0748_c_15L漢栢秦松隨鞭登騰掃舊塵於藍
012_0748_c_16L土塊瓦礫放光崩落仍舊礎而換
012_0748_c_17L不問靑烏之談風待新凉而拋樑
012_0748_c_18L選擇白猿之望月運斧生風於工倕之
012_0748_c_19L規度尅日於差糓之篇神祗禎祥
012_0748_c_20L湧出祇桓之精舍天香飛馥玲瓏香積
012_0748_c_21L之烟雲如是哉旣騰五樑之歌載唱
012_0748_c_22L六偉之頌方丈山雲海日紅大野渡
012_0748_c_23L頭仙子宅滿城開士道無窮山號
012_0748_c_24L通明積翠嵐欲落層嵓應谷立是知白

012_0749_a_01L是知白虎護伽藍  백호가 가람을 호위하는 줄 알겠네

西        서
妙吉祥峰相不齊  묘길상 봉우리 가지런하지 않고905)
道林鬱密楓林好  도림사 빽빽한 숲은 단풍이 좋아라
白鳥啣花供佛低  백조가 꽃을 물어 부처님께 공양하네

北        북
聖出峰高恩罔極  성출봉聖出峰906) 높으니 은혜가 망극하고
屏疊嶂中古蹟多  병풍처럼 첩첩 산중에 옛 자취 많구나
降仙臺下又神德  신선 내린 대臺 아래 또 신이한 덕德이로다907)

上        상
回首仰觀一貪狼  머리 돌려 우러르는 탐랑貪狼908) 하나
問爾人間禍福能  묻나니 인간 세계 화복에 능한가
紫微宮裡群星張  자미궁에 여러 별들이 길게 빛나네

下        하
溪聲如舌談般若  냇물 소리909)는 반야를 말하는 듯
四時動樂道林長  사계절 음악 소리가 도림사에 영원하니
使我若聾又若啞  우리들은 귀먹고 또 벙어리 된 듯하네.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 음악을 울려(動樂) 대중과 함께 즐겨 즐겁고 즐거우며, 도림道林이 삼림과 함께 숲을 이루고 이루소서. 길상암吉祥庵910) 앞에 성중聖衆이 늘어서서 길상의 묘한 덕을 내리고, 성출봉 아래 신이한 덕이 사라지지 않으니 성출봉의 이름난 구역을 보호하소서. 단씨檀氏(시주)의 집 안에 온갖 복이 모여들어 팔룡구령八龍九齡911) 금어옥대金魚玉帶912)가 자자손손 불문하고 이어지고, 승려들의 가람에는 오중五衆913)이 모두 모여 육도六度와 십신十信914)으로 선禪과 덕을 갖춘 교사가 형과 아우를 막론하고 되게 하소서.
도림사 대법당 중창기道林寺大法堂重剏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은 본래 몸이 없는데 중생에 응하여 몸을 나투시고, 법은 본래 형상이 없는데 환화幻化915)를 따라 형상을 나툰다. 그래서 신토身土를 환화 세계에 나투고 누대樓臺가 빛과 소리 가운데 찬란함은 모두 제불諸佛이 방편으로 응하신 것이니 어찌 보살의 진제眞諦와 관계되겠는가.
도림사에는 옛일을 돌아볼 문서가 없어서 다만 전기傳記를 살펴보아 만수대사曼殊大士(문수보살)의 환화幻化와 원효 삼성三聖916)의 창건(創修), 호겁浩刼(긴 세월)의 개창開創, 신라와 고려 시대의 중수 등의 앞선 인연을 깨달을 수 없으나 강희康熙 계묘년(1663) 영오靈悟가 세 번째 개창하고, 도광道光 신사년(1821)에 도성道成이 네 번째 개창하고 남파南波가 또한 인연 따라 보수하니, 당대에 번화함이 오히려 겁파刼波의 흐름으로 귀결됨을

012_0749_a_01L虎護伽藍西妙吉祥峰相不齊道林鬱
012_0749_a_02L密楓林好白鳥啣花供佛低聖出
012_0749_a_03L峰高恩罔極屏疊嶂中古蹟多降仙臺
012_0749_a_04L下又神德回首仰觀一貪狼問爾
012_0749_a_05L人間禍福能紫微宮裡群星張溪聲
012_0749_a_06L如舌談般若四時動樂道林長使我若
012_0749_a_07L聾又若啞伏願上樑之後動樂與衆樂
012_0749_a_08L而樂樂道林并森林而林林吉祥庵
012_0749_a_09L聖衆森羅降吉祥之妙德聖出峰
012_0749_a_10L神德不壞護聖出之名區檀氏家
012_0749_a_11L百福鼎臻八龍九齡金魚玉帶
012_0749_a_12L子孫孫而不問僧伽藍中五衆咸集
012_0749_a_13L六度十信禪德敎師兄兄弟弟而莫論

012_0749_a_14L

012_0749_a_15L道林寺大法堂重剏記

012_0749_a_16L
如是我聞佛本無身應衆生而現身
012_0749_a_17L本無相從幻化而現相以故身土現於
012_0749_a_18L幻化之界樓臺煥乎影響之中盡是諸
012_0749_a_19L佛權應何關菩薩眞諦也哉唯道林寺
012_0749_a_20L無文稽古但考傳記曼殊大士之幻化
012_0749_a_21L元曉三聖之剏修浩刼之開剏羅麗之
012_0749_a_22L重修莫悟前因而迄于康熙癸卯
012_0749_a_23L悟之三剏道光辛巳道成之四剏
012_0749_a_24L波亦隨緣修補當代繁華尙歸刼波之

012_0749_b_01L어찌 족히 더 이야기할 것인가.
이제 대웅전은 기둥(棟樑)이 무너지고 서까래가 기울고 수놓은 두공枓栱이 떨어지고 맞물려 놓은917) 것이 빠졌다. 향을 사르며 두 번 일어나 경쇠를 울리고 거듭 돌아보게 되니, 어찌 여기 거승居僧들만 낙심(寒心)하겠는가. 거사居士들의 슬픔을 더하지 않음이 없었다. 마침 본군(곡성) 대단신사大檀信士(시주) 정수태丁秀泰 공이 샘과 바위 사이에서 피서를 즐기다가 전각들이 기운 것을 몸소 보고 게다가 주지의 걱정을 듣고서는 이에 바람을 두기를 “제불諸佛 궁전을 예로부터 단신檀信(시주)들이 세웠으니 나 또한 단신의 일부가 됨이 옳도다.”라고 하고는 7백 원元을 내어, 이것으로 종잣돈을 삼아 단씨檀氏(시주)들에게 구하면 반드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주지 눌봉訥峯이 머리를 조아려 다음과 같이 찬양하였다. “천 리도 한 발짝부터이고, 높은 산(九仞)도 삼태기 흙 하나부터이니, 대인의 앞장섬으로 불전의 중창이 이미 절반은 된 셈이니 어찌 선善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고는 단문檀門들에 행화行化918)하여 천여 원을 모아, 경신년(1920) 봄에 시작하여 같은 해 가을에 일을 마쳤다.
무너진 것이 이뤄지고 낮은 것이 높아졌으며 기운 것은 바로 서고 옛 것이 새로워졌다. 치수와 먹줄, 회칠과 흙 손질 하는 이들이 각기 기술을 발휘하니 웅장하고 화려하며919) 크고 아름다웠다.920) 삼존불이 복전複殿921) 안에 의젓하고, 성중聖衆이 층루層樓 위에서 옹위하니, 몸 없는데 몸을 나투고 형상 없는데 형상을 나툰다는 말을 이에 이르러 진실로 믿게 되었다. 영향影響의 신토身土를 화주(化士)의 세 치 혀 위에 드러내시고, 환화幻化 누대가 시주(檀氏)의 한 조각 마음속에서 솟아났도다.
복을 빌고 수명을 늘리는 감응은 수많은 강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고, 재앙을 소멸하고 복을 내리는 영험은 온갖 나라에 봄이 오는 것과 같으리라. 보광전普光殿922)에 혜감慧鑑이 길이 밝아 산이 울고 골이 응하며, 보제루普濟樓923)에 업보의 인연(報緣)이 밝게 드러나 물이 흐르고 꽃이 피도다.

012_0749_b_01L所流何足贅說乎今大雄殿棟樑頽
012_0749_b_02L椽梠傾圯繡栭之崩落杈枒之差
012_0749_b_03L焚香而再擧因鳴磬而重回頭者
012_0749_b_04L豈但居僧之寒心不無居士之添悽
012_0749_b_05L本郡大檀信士丁公秀泰避暑于泉石
012_0749_b_06L之間親見殿宇之頽傾又聞住持之供
012_0749_b_07L爰有願言曰諸佛宮殿從古檀信
012_0749_b_08L之所建而吾亦作檀信之一分者可乎
012_0749_b_09L出賚七百元以此爲本求諸檀氏
012_0749_b_10L必成矣住持訥峯稽首讃曰千里初
012_0749_b_11L九仞一簣大人倡起佛殿重剏
012_0749_b_12L已過半豈不善哉乃行化諸檀門
012_0749_b_13L千餘元始役於庚申之春竣功於同年
012_0749_b_14L之秋壞者成而底者高之傾者正而舊
012_0749_b_15L者新之規矩繩墨灰塗圬墁各呈其
012_0749_b_16L鳥革彙 [122] 輪焉奐焉三佛儼然於
012_0749_b_17L複殿之中衆聖擁衛於層樓之上无身
012_0749_b_18L而現身無相而現相到此良信影響
012_0749_b_19L身土顯現於化士之三寸舌上幻化樓
012_0749_b_20L湧出於檀氏之一片心中求福延壽
012_0749_b_21L之感應若月印千江消災降祥之靈驗
012_0749_b_22L如春行萬國普光殿上慧鑑長明
012_0749_b_23L鳴而谷應普濟樓中報緣昭現水流
012_0749_b_24L而花開

012_0749_c_01L
도림사 길상암 중수기道林寺吉祥庵重修記
전해 오기를, ‘완성’과 ‘파괴’924)는 이치와 운수의 감응이고, 계획하고 도모함925)은 화주와 보시의 인연이라고 한다. 그래서 완성과 파괴는 화주와 보시의 복전福田이요, 복전을 만나 씨를 뿌릴 수 있으니 즉 선남자의 큰 기연奇緣이 된다.
이제 길상암은 즉 문수보살께서 창건하시고 또한 원효元曉와 의상義湘과 윤필尹弼이 중수하어 신성(聖)을 모신 영험한 구역이다. 처음에 묘길상妙吉祥(문수보살)을 따랐기 때문에 ‘길상암’이라고 칭하였다. 또는 길성吉星이 내리 비추어 성중聖衆이 솟아나는 상서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길상암이라 한 것인가.926) 신라와 고려 시대 이래로 완성과 파괴를 여러 번 겪었으니 열 번의 중수한 자취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이조 기미년(1919)에 이르러 암주庵主 취암翠菴 공公이 조계산에서 이곳으로 옮겨 와서는 약 1년 되자마자 항상 중수할 생각으로 잠자거나 먹을 때나 걱정으로 삼았다. 마침 광주 임 공林公과 본군 정수태丁秀泰 공이 암자가 기울어진 것을 보고는 큰 발원을 같이 내어 도합 5백 금을 내고, 또 신녀信女 배씨裵氏가 단문檀門에 부르짖어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였다. 경신년(1920) 봄에 시작하여 몇 개월 되지 않아 마무리(伏簣)하니, 찬란하게 새로워졌다.
제불諸佛이 자리에 편안하시고 성중聖衆이 환희하며 가신伽神927)이 상서로움을 드리니, 즉 이른바 ‘길상吉祥’ 호칭이 이로 말미암음을 알 수 있다. 정 공과 임 공이 복전을 처음 일으켜 선근을 심었고 또한 단씨檀氏들과 함께 선한 인연을 같이 맺었다. 두 분의 증험으로 지위가 신하의 최고로 오르시고 자손은 길이 창성하리라. 단씨의 선한 벗들을 이끌어 길상의 복락福樂을 같이 받으니, 어찌 선남자의 큰 기연이 아니리오. 그래서 뒤에 방함芳啣(성함)을 게시한다.

012_0749_c_01L道林寺吉祥庵重修記

012_0749_c_02L
傳云曰成曰壞理數之所感經之營
012_0749_c_03L化施之因緣故云成壞乃化施者
012_0749_c_04L之福田遇福田而能下種者卽善男子
012_0749_c_05L之大奇緣也今吉祥庵者卽文殊之所
012_0749_c_06L亦元曉義湘尹弼之重修安聖之靈
012_0749_c_07L區也初從妙吉祥而稱吉祥之號
012_0749_c_08L吉星照臨聖衆湧出之嘉祥故云吉祥
012_0749_c_09L自羅麗以來多經成壞十番重修
012_0749_c_10L之蹟不能枚擧而至于李朝己未歲
012_0749_c_11L庵主翠菴公自曹溪來住于此纔有年
012_0749_c_12L而常以重修爲枕食之憂適有光
012_0749_c_13L州林公某本郡丁公某
見庵之傾覆
012_0749_c_14L同發大願合財五百金又有信女裵
012_0749_c_15L叫化檀門尅日蕫役始庚申春
012_0749_c_16L不數月而伏簣奐然一新諸佛安座
012_0749_c_17L聖衆歡喜伽神呈祥卽所謂吉祥之號
012_0749_c_18L從玆可覺矣以其丁林兩公之倡起福
012_0749_c_19L已種善根而亦與諸檀氏同結善
012_0749_c_20L兩公之驗位極人臣子孫永昌
012_0749_c_21L引諸檀之善友同受吉祥之福樂
012_0749_c_22L非善男子之大奇緣哉所以揭示芳啣
012_0749_c_23L于后

012_0750_a_01L
조계산 감로암 동별당을 새로 건축하는 기문9월 9일(曹溪山甘露庵東別堂新建記九月九日)
암자를 ‘감로’라고 명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선사修禪社) 제6세 원감국사圓鑑國師께서 암자를 짓고 들어간(入院) 날에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今朝果熟沾甘露  오늘 아침 과일 익어 감로甘露에 젖으니
無限人天一味同  무한한 인천人天이 함께 맛보는구나928)

이것이 (‘감로’라고) 이름 붙인 발단(草昧)일까. 암자의 정전正殿과 정루正樓는 임병壬丙929) 방향으로 하고, 동료東寮와 문루門樓는 갑경甲庚930) 방향인데, 고찰할 문헌이 없어서 몇 번이나 수리했는지 알 수 없다. 광서光緖 기묘년(1879) 여름에 정전正殿과 좌익左翼을 이어서 수리하였으니 경원敬圓 총섭㧾攝931)이 주관하였고, 신묘년(1891) 봄에 정루正樓를 또 수리하였으니 용선龍船 대사가 주관하였다. 지금 가장 걱정거리는 동료東寮(동별당) 5칸의 주춧돌 바닥이 함몰되어 매번 물과 흙이 인몰되고 기둥이 어긋나서 비바람이 스며듦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왼쪽으로 기울고 오른쪽이 무너져 싸락눈처럼 벽이 떨어지고, 동쪽이 무너지고 서쪽이 가라앉아 벼락 치듯 기와가 무너진다. 저녁에 아침까지 남아 있을지 보장하지 못하니 침식枕食이 어찌 편안하겠는가.
경신년(1920) 봄에 이 암자의 장로 용호龍湖 대덕大德이 2천 금을 내고 성봉性峯과 동운東雲 두 개사開士가 이번 사무를 보는 석덕碩德들과 맹약을 맺어 본사에 간구하니, 각당各堂과 제덕諸德이 얼마간 모금하여, 같은 해 맹추孟陬(1월)에 시작하여 중하仲夏(5월)에 마쳤다. 아, 몇 길의 산등성이(層阿)를 잘라서 네 칸의 범궁梵宮을 세우니, 동쪽 면을 돌려 남쪽으로 삼고 밑 빠진 것을 올려 높게 하였다. 다섯 들보가 다섯 기둥과 함께 광채를 드날려 서까래를 가설하고 기와를 덮었고, 네 문이 네 벽을 이어 널찍하니 불상을 안치하고 승려들은 즐겁도다. 목을 빼 부를 수 있는 조계산 제자봉帝字峰(조계봉)이 완연하고, 눈길 가는 대로 회포를 품으니 대장봉大將峯 깃발이 펼쳐 있도다. 귀비龜碑(비석)의 금송錦頌(노래)과

012_0750_a_01L曹溪山甘露庵東別堂新建記九月
012_0750_a_02L九日

012_0750_a_03L
庵以甘露命者何謂也第六圓鑑國師
012_0750_a_04L剏庵入院之日有詩云今朝果熟沾甘
012_0750_a_05L無限人天一味同之句卽爲命名之
012_0750_a_06L草昧歟庵之正殿及正樓壬丙爲向背
012_0750_a_07L東寮與門樓甲庚爲向背而無文獻
012_0750_a_08L可考不知幾經剏修也至光緖己卯夏
012_0750_a_09L正殿及左翼繼而修葺敬圓㧾攝主之
012_0750_a_10L辛卯春正樓又修龍船大師管之今之
012_0750_a_11L最患者唯東寮五間址礎底陷每犯
012_0750_a_12L水土之湮沒棟樑差脫不庇風雨之漶
012_0750_a_13L左傾右圯壁落如霰東頽西沒
012_0750_a_14L崩若雷夕不慮朝枕食何安哉庚申
012_0750_a_15L春本庵長老龍湖大德出財二千金
012_0750_a_16L峯東雲二開士與本事務諸碩德盟約
012_0750_a_17L而恳求於本寺各堂及諸德鳩金略干
012_0750_a_18L始於同年孟陬終於仲夏斫數仞
012_0750_a_19L之層阿建四間之梵宮回東面而爲南
012_0750_a_20L陟底陷而成高五樑并五柱而騰輝
012_0750_a_21L可架而瓦可覆矣四門聯四壁而洞敞
012_0750_a_22L佛可安而僧可樂也以延頸可呼者
012_0750_a_23L溪峰之帝字完然其縱目憑懷者大將
012_0750_a_24L峯之旗纛布列至若龜碑之錦頌鶴泉

012_0750_b_01L학천鶴泉(개울)의 영액靈液(샘물) 같은 경우는 마시고 읊는 이가 저절로 얻을 테니 어찌 길게 늘어놓겠는가. 다만 단씨檀氏 은혜의 힘과 사무의 성공으로 이 별당을 이루었으니 어찌 아름다운 자취를 게시하여 길이 잊지 않도록 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기록하노라.
태안사 16나한을 이안한 연기신유년(1921) 봄(泰安寺十六聖移安緣起辛酉春)
본사本寺의 석상 16나한 성중聖衆은 즉 (혜철慧哲)국사께서 사찰을 창건하시던 때에 조성하여 봉안한 것인데 임진년(1592) 병화로 훼멸되어, 온전하게 봉안할 만한 상이 하나도 없고 비석 무더기 아래 쌓여 있어 승려와 단나檀那(시주)들의 신앙이 현재 결여되어 있으니 사원의 수치가 된다.
순천 지역의 이웃 사찰인 대흥사932)가 마침 다년간 비었고 오직 16성상만이 엄연히 아직 남아 있어 마땅히 봉안할 만하다. 여럿의 의논이 일제히 펼쳐져, 동치同治 12년 계유년(1873) 봄에 본사(태안사)로 이안하였다. 미타전彌陀殿 오른쪽에 응진당應眞堂을 새로 건립하고서 봉안한 것이다. 향공양을 법도대로 하였는데 다만 흠이라 할 것은 이로부터 다툼이 일어나서 도반(法侶)들이 흩어지고 사찰 재물이 없어진 것이니, 식자識者들은 주인과 손이 꺼려서 다툰 것이라 하였다.당시 주관한 긍오亘悟 등이 옳다. 10년933) 지나 계사년(1893) 봄에 주지 축정竺靜 화상이 대중에게 고하길, “사찰의 패망은 새로 나한을 봉안한 데서 말미암았으니 다시 다른 산으로 이안하여 주인과 손의 꺼림을 막으려 하니 괜찮겠습니까.”라고 하니, 대중들이 좋다고 하였다. 즉시 정려淨侶934)들에게 아미산峨嵋山 천태굴天台窟935)로 이안하게 하였다. 그런데 채색한 탱화가 음습한 습기로 온통 젖고, 백옥 성상聖像은 새어드는 빗방울을 거의 다 무릅쓰게 되니 누군들 한심하지 않겠는가. 갑진년(1904) 봄에 주지 포룡抱龍 화상이 다시 성기암聖祈庵936)에 봉안하였고, 다음 해 을사년(1905)에 수경袖鯨 선사가

012_0750_b_01L之靈液飮詠者自得何足長提但以
012_0750_b_02L檀氏之惠力事務之成功賴成此堂
012_0750_b_03L何不揭示芳躅爲永世不忘者哉如是
012_0750_b_04L而記之

012_0750_b_05L

012_0750_b_06L泰安寺十六聖移安緣起辛酉春

012_0750_b_07L
本寺石羅漢十六聖衆卽國師剏寺之
012_0750_b_08L造像奉安而爲壬辰兵燹之所毁
012_0750_b_09L一無完像可奉委積于龜碑之堆下
012_0750_b_10L闕居僧檀那之信仰窃爲寺院之羞辱
012_0750_b_11L順天地大興隣寺適空廢多年
012_0750_b_12L十六聖像儼然尙存宜可奉安也
012_0750_b_13L議齊發於同治十二年癸酉春移安于
012_0750_b_14L本寺新建應眞堂於彌陀殿右而仍安
012_0750_b_15L香供如法但所欠者從此起諍
012_0750_b_16L侶渙散寺財耗損識者以爲主賓忌諍
012_0750_b_17L時主管亘
悟等是也
越十年癸巳春住持竺靜
012_0750_b_18L和尙吿衆曰寺之敗亡職由乎新羅
012_0750_b_19L漢奉安更移他山欲杜主賓之嫌可乎
012_0750_b_20L衆曰善哉卽發淨侶移安于峨嵋山
012_0750_b_21L天台窟彩畫佛幀渾浸陰䨪之嵐
012_0750_b_22L玉聖像幾蒙滴漏之雨孰不曰寒心
012_0750_b_23L粤甲辰春住持抱龍和尙還奉于
012_0750_b_24L聖祈庵明年乙巳袖鯨禪師化得龍

012_0750_c_01L용호龍湖 대사의 금 1백 냥兩을 시주(化得)하여 부도전 익실翼室937)로 이안하고 채색을 다시 하고 분을 바르고서, 거승居僧들에게 향공양하게 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 병오년(1906)에 해회당海會堂으로 이안하여 도배하고 향공양을 한결같이 법당처럼 하였다. 4년 지난 기유년(1909) 봄에 동봉東峰 등이 동일암東日庵으로 이안하였는데 일하一夏938)를 지나지 않아서 동허東虛 등이 다시 해회당으로 이안하였다. 경술년(1910) 봄에 이르러 관음전으로 다시 이안하였다. 이 전각은 대웅전 왼쪽에 있으며 예전에는 대법당이었다. 계묘년(1903)에 인담印潭 화상이 옮겨 세운 옛 응진당이 이것이다. 관음불을 대웅전에 함께 이안하기에 부족하여 다른 전각에 봉안하고, 이에 성중을 봉안하여 관음전 현판을 없애고 응진당 칭호를 걸었다. 그리고 탑의 뒤 기슭에 옛 석상을 묻었다.
계유년(1873)부터 경술년(1910)에 봉안하기까지 여덟 차례 이동하여 아이들의 장난처럼 되었으니 얼마나 상서로운 복이 있고 어떤 즐거움을 보았던가. 제성諸聖의 진리는 비록 정결하고 더러움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으나 중생의 망상은 어찌 저와 나의 증오와 사랑이 없겠는가. 그렇다면 무지와 망각의 견해로 존엄하기 그지없는 진상眞相을 함부로 옮겼으니 어찌 아름다움과 더러움, 길함과 흉함의 의논이 없겠는가. 내가 듣고서 민망하여 대략 그 말을 서술한다. 이로부터 다시는 함부로 옮겨서 화를 부르는 지경이 없기를 정수頂手939)하고 지극히 비노라.
(주완섭을) 간병해 준 강재원에게 감사하는 편지계해년(1923) 봄 동경에 있을 때 아팠기 때문이다.(謝姜在源看病書癸亥春在東京時。苦痛故也。)
오동나무 아래서 한 번 보고서 겁몽刼夢940)을 미처 깨지 못하였는데 삼화三花를 겪고 또 일랍一臈을 더하니941) 진실로 세파가 쉬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나니 여행하시는 중에 장애 없이 잘 지내시는지, 절실하게 궁금합니다.
늙은이는 보잘것없이 나이만 먹으니 장차 세상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대는 잠시도 겨를 없는 가운데

012_0750_c_01L湖大師金一百兩移安于浮屠殿翼
012_0750_c_02L改彩塗粉使居僧奉香也又明年
012_0750_c_03L丙午移于海會堂塗褙香供一如法
012_0750_c_04L越四年己酉春東峰等移于東日庵
012_0750_c_05L未經一夏東虛等又移海會堂至庚戌
012_0750_c_06L更安于觀音殿此殿卽大雄殿左大
012_0750_c_07L法堂舊墟癸卯年印潭和尙所移建古
012_0750_c_08L應眞堂是也觀音佛同安于大雄殿
012_0750_c_09L足別殿奉安迺安聖衆除觀音額
012_0750_c_10L揭應眞號仍埋古石像於塔之後麓也
012_0750_c_11L盖自癸酉至庚戌之安座爲八次運動
012_0750_c_12L如小兒之嬉戱有幾個福祥見何等
012_0750_c_13L富樂耶諸聖眞理雖無淨穢之好惡
012_0750_c_14L衆生妄想那無彼我之憎愛哉然則以
012_0750_c_15L無知罔覺之見妄動乎莫尊之眞相
012_0750_c_16L無休咎吉凶之論也余聞而悶之略述
012_0750_c_17L個言從是以徃更無妄遷招禍之境
012_0750_c_18L頂手至祝

012_0750_c_19L

012_0750_c_20L• 謝姜在源看病書癸亥春在東京
苦痛故也

012_0750_c_21L
桐下一面未惺刼夢於經三花又加
012_0750_c_22L一臈信覺世波之不息而更詢旅體無
012_0750_c_23L障做得否爲之切切僕僕老漢無似添
012_0750_c_24L將安庸於世哉尊候晷刻不暇之

012_0751_a_01L주생朱生942)의 병상을 항상 돌아보아 오래도록 우려하고 동정을 대단히 표현한다고 하더군요. 어찌 붓 하나로 능히 감사함을 표현하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동쪽을 향해 절을 하고 하늘을 우러러 마음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바야흐로 숙소와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은 윤의閠衣의 희망일 뿐 아니라 또한 숙업宿業의 기연일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같이 길상吉祥을 이루고 아울러 안락을 향유하소서.
또다시 사례함(又再謝)
31일에 답장했으나 여전히 황겁한 상태로 보낸 것이고, 여전히 냉담한 말씀조차 하나도 없어서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으니, 게(螊蚧)가 형구에 낀 듯합니다. 어찌 조금이라도 풀어지겠습니까.
옛날 사람들이 말하길, 통달한 사람은 병 있음을 선지식으로 여기고 병 간호를 복전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식과 복전이 됨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밭에 씨를 뿌리려 하지 않고 심상하게 지나쳐 길 가는 사람처럼 하니 그 과보를 누리지 못함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대가 주생朱生을 간호하여 분주히 하고 조심스레 마음을 쓰며 학업을 폐하고 탕약 시중을 들고 의사를 불러 진찰하게 하고 얼음을 깨어 약을 만들고943) 식사를 잊은 채 안마를 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병자가 호흡이 원활하지 않아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에 이르자 입술을 대어 숨을 불어 넣고 귀에 대고 일깨우면서, 성호聖號를 불러 경계하게 하고 신명을 돌이켜 소생하게 하니, 세 번 기절했다가 세 번 소생하여 목숨을 구해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경을 생각해 보니 옛날 미생尾生과 효기孝己944)의 행실로도 진실로 멀찌감치 비견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 친형제ㆍ친인척으로서 어찌 흘려 버리겠습니까. 그래서 한마디 짧은 말로나마 그대에게 복이 되는 결과를 축원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공덕으로 분단생사分段生死945)의 거친 자질을 여의고

012_0751_a_01L常顧於朱生之病床移時憂慮
012_0751_a_02L表同情之多大云何但一毫之所能哉
012_0751_a_03L不覺向東而稽首仰天而許心也且方
012_0751_a_04L與同舘宿食者非唯閠衣之希望抑亦
012_0751_a_05L宿業之奇緣唯冀同致吉祥併享安樂
012_0751_a_06L之地

012_0751_a_07L

012_0751_a_08L• 又再謝

012_0751_a_09L
三十一日旣答猶在惶㥘中所發而尙
012_0751_a_10L闕冷淡之一詞碍膺未解如螊蚧之於
012_0751_a_11L枷杻者何嘗小弛哉古云達人以有病
012_0751_a_12L爲善知識以看病爲福田世人非不知
012_0751_a_13L爲知識及福田而不肎下種於其田
012_0751_a_14L常看過如路上人相似未享其果必也
012_0751_a_15L而今吾君之看護朱生也得得奔忙
012_0751_a_16L兢用心廢業而侍湯招醫而診療
012_0751_a_17L冰而製藥忘饌而撫摩至於病者
012_0751_a_18L吸不通㦖絕幾沒之際接唇而昫嫗
012_0751_a_19L提耳而唱起稱聖號而警愓返神明而
012_0751_a_20L甦生三絕而三復以至濟命保存
012_0751_a_21L想其情景雖古之美 [123] 生孝已之行
012_0751_a_22L莫得而比例者遠矣以其親兄弟同族
012_0751_a_23L安敢越乎哉故將一尺短詞敢祝
012_0751_a_24L吾君作福之結果也唯以此功德離分

012_0751_b_01L금강의 청정한 몸을 얻으시기를, 한 줄기 심향心香으로 삼시三時에 걸쳐 염송합니다.
응암 선사의 진영을 새로 조성하는 기문(應庵禪師眞影新造記)
임제의 30세손 적통嫡統으로 ‘풍암楓嵓’이 있고, 풍암의 아래 4대덕인 ‘묵암默庵’과 ‘응암應庵’ㆍ‘제운霽雲’ㆍ‘벽담碧潭’을 세칭 ‘풍하사걸楓下四傑’이라 한다. 사걸의 후예들이 번성하여 현존하는 이들이 도합 2백 남짓에 이른다. 저 세 문도들은 진영을 걸고 탑비를 세워서 추모의 예를 한결같이 준수하는데 우리 응암 문도들은 아직 진영을 걸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탑비를 세우겠는가. 그 문도로서 안타까워한 지 오래되었다.
무기년戊己年946) 병화를 겪은 후에 신해년(1911) 봄에 이르러 조사들의 진영을 새로 조성하는 날에 나는 함호菡湖947) 장로와 협력하여 말하길,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찌 선조의 진영 사업을 도모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 돈 2천여 금을 내어서 진영을 그리고, 풍암 노옹의 아래에 안치하기로 하였다. 묵형默兄(묵암)과 좌우가 되고 제운과 벽담은 그다음이 된다. 토지를 사서 사찰에 들이고 매년 차례茶禮 지낼 물품을 마련하게 하였다. 아, 사걸의 진실한 모습이 살아 있는 듯한 그림 속에 나열되니, 엄연히 관중사걸關中四傑948)이 집 공什公(구마라집)949) 아래 절하는 것 같다. 이것은 함호 노옹의 원력이 아님이 없도다. 그러나 진영 사업을 마치더라도 탑비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또 함호 노옹과 함께 도모하나 힘이 미약하여 아직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아아, 선사先師의 법유法乳를 같이 적시고도 타인이 능히 행하는 바를 행하지 못하니, 도리어 사걸의 문도가 되지 않음만 못하다. 쯔쯧, 애석하도다.

012_0751_b_01L叚麁質得金剛淨身一炷心香三時
012_0751_b_02L念誦

012_0751_b_03L

012_0751_b_04L應庵禪師眞影新造記

012_0751_b_05L
臨濟下三十世有嫡統曰楓嵓嵓之下
012_0751_b_06L有四大德曰默庵曰應庵曰霽雲
012_0751_b_07L碧潭世稱楓下四傑四傑之後有徒
012_0751_b_08L繁息現存者合至二百餘彼三門之
012_0751_b_09L掛之眞影竪之塔碑一遵追慕之
012_0751_b_10L而唯吾應庵之徒尙未遑掛影
012_0751_b_11L何塔碑之所營哉爲其徒而飮恨久矣
012_0751_b_12L戊己兵火之後至辛亥春諸祖影眞
012_0751_b_13L新成之日予與菡湖長老恊謀云當此
012_0751_b_14L際會盍謀先祖影事耶曰諾仍出自
012_0751_b_15L賚費二千餘金摹眞而掛安于楓老之
012_0751_b_16L與默兄相爲左右雲與潭又其次
012_0751_b_17L買土納于寺爲逐年茶禮之需
012_0751_b_18L傑之眞相列於活畫之中儼若關中四
012_0751_b_19L膜拜於什公之下也此莫非菡老之
012_0751_b_20L願力歟然影事雖畢猶有塔碑之恨
012_0751_b_21L又與菡老謀營之力綿未果嗚呼
012_0751_b_22L沾先師之法乳而未能行人之所能行
012_0751_b_23L反不如不爲四傑之徒爲愈且惜矣
012_0751_b_24L

012_0751_c_01L
『신심명』 번역 해설의 발문(信心銘譯說跋文)
내가 『불조록찬송佛祖錄讃頌』950) 사업을 하면서 삼매의 문과 바다로 들어가려는데, 해은海隱 공公이 조계산에서 와서, 가져온 책을 내게 보이며 “일전어一轉語951) 서문을 얻을 수 없겠습니까?”라고 했다. 내가 기쁘게 받아 보니, 즉 이전에 강당에서 가르친 제3조 승찬僧璨 시호 감지선사鑑智禪師가 찬술한 『신심명』이었다.
글자는 584자이고 구절은 146개이며 운韵은 26절節로 바뀐다. 먼저 입성入聲952)으로 마음의 본체를 일으켜(起心之體) 본체를 따라 작용을 일으키고, 후에 평성平聲953)으로 마음의 작용을 맺어(結心之用) 작용을 거두어 본체로 귀결하였으니(攝用歸體) 그래서 그러한가. 옛날의 제창提唱954)을 대강 고찰하니, 송宋ㆍ원元ㆍ명明ㆍ청淸 운석韻釋(시승)의 구절 풀이, 조선 백암栢庵955)의 주해, 일본 게이잔(瑩山)956)의 염제拈提957) 등이 모두 간단하거나 번잡하여 둔한 근기에는 타당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이제 해은 공이 오로지 게이잔의 염제에 따라 번역하고 화룡畫龍 진헐眞歇958)의 염고拈古로 증명하여 설명하였다. 줄여서 간단하게 하고 보완하여 완성함으로써 초학자가 훑어보기에 편리하도록 하니, 진정 ‘사람이 촛불을 켬에 다만 그 빛을 빌리고 벌이 꽃을 찾되 그 향기를 퇴색시키지 않음과 같다’고 할 만하다.
도를 행하는 이가 구절의 복잡함에 나가지 않아 광대한 신심을 바로 펼치고, 마음을 펼치는 이는 표현의 찌꺼기에 구애받지 않고 궁극의 지혜를 얻을 것이다. 행하고 펼치는 것은 삼매의 문을 통해 유희하는 것이고, 번역하여 설명하는 것 또한 삼매의 바다를 통해 유출되는 것이다. 어찌 그저 그렇겠는가. 나 또한 삼매의 문을 통해 일어남이 이와 같아서 말미에 쓰노라.
낙안군 동화사 승당의 불상 개금과 탱화를 조성한 기문신유년(1921) 여름(樂安郡桐華寺僧堂佛像改金佛幀新成記辛酉夏)

012_0751_c_01L信心銘譯說跋文

012_0751_c_02L
余方事佛祖讃頌將入三昧門海有海
012_0751_c_03L隱公自曹溪而來挾册見余曰得無
012_0751_c_04L一轉緖言否余欣然受之卽前日講家
012_0751_c_05L敎授三祖僧璨謚鑑智禪師所撰信心銘
012_0751_c_06L其字也五八四其句也一四六
012_0751_c_07L韵也二十六節換改而先以入聲起心
012_0751_c_08L之體從體起用後以平聲結心之用
012_0751_c_09L攝用歸體故然耶槩考古之提唱
012_0751_c_10L元明淸之韻釋句解鮮之栢庵註解
012_0751_c_11L之瑩山拈提皆涉於簡煩莫穩乎鈍根
012_0751_c_12L以爲病焉今海隱公專依瑩山之拈提
012_0751_c_13L而譯之次證畫龍眞歇之提 [124] 古而說之
012_0751_c_14L删而簡之補而完之使初學者一覽
012_0751_c_15L便了眞可謂如人秉燭但借其光
012_0751_c_16L蜂採花不渝其香者也行道者不陟
012_0751_c_17L句讀之曲岐直發廣大之信心發心者
012_0751_c_18L不拘文言之糟粕卽得究竟之智鑑
012_0751_c_19L而發之者從三昧門而遊戱譯而說之
012_0751_c_20L亦從三昧海而流出也豈其徒然乎
012_0751_c_21L也哉余亦從三昧門而起如是而書
012_0751_c_22L其尾

012_0751_c_23L

012_0751_c_24L樂安郡桐華寺僧堂佛像改金佛幀

012_0752_a_01L
경전에 이르길, 진리는 말이 없어 수증修證959)할 게 없다고 하니 이를 일러 참된 수증이라 하고, 법신法身은 상相이 아니라 장엄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를 일러 참된 장엄이라 한다. 그래서 눈이 천지를 덮고 코로 신토身土를 거둠이 즉 납승衲僧의 본색이니, 모호한 진리나 모양 있는 법신은 모두 신훈新熏의 말광末光을 염려한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이처럼 상이 없는데 몸을 드러냄은 제불諸佛의 임시 응함(權應)이며, 수증할 게 없는데 발원하는 것은 실로 중생의 근기로 감응(機感)960)함이다. 근기와 임시가 서로 투합하고 응함과 감응이 부합하니, 어찌 수월도량에서 큰 공덕을 이루지 않겠는가?
이제 주지 우송友松961)이 조계산에서 와서 여기에 주석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 금용金容(불상)의 색이 바래짐을 부끄럽게 여기고 또한 채운彩雲이 빛을 잃음이 안타까워, 한 번 교화의 바람을 부니 시주의 숲(檀林)이 일제히 누웠다. 모임을 맺어 이루고 날을 정해 장인을 불러 고치고 개금하며 새로 탱화를 그리니, 장애 없이 성취하여 환희하며 회향하였다. 1구軀 금산金山(불상)이 도솔궁에 거둥하시고 뭇 바다의 채운이 가라장迦羅藏962)에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기원정사(祇桓寺)의 단상檀像963)이 우뚝 서 있는 듯하고 자미궁紫微宮964)의 성중星衆이 나열한 듯하다. 두둥실 뜬 뗏목을 타고 옥경玉京(하늘) 신선이 안락성安樂城에 노니는 듯하고, 밝고 밝은 오동나무 꽃에 금강 선중禪衆(수행승)들이 금화산金華山 위에서 선정에 든 듯하다.
제불諸佛의 감응이 두루 미쳤으니 단씨檀氏들의 바람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찰나마다 보리를 생각하는 신근信根이 진리를 따라 물러서지 않고, 집안마다 수복壽福을 주는 경사스런 구름이 법신과 함께 무궁하리라. 그 밖에 산과 바다의 넓고 평평함과 물과 구름의 그득함은 보는 이들이 절로 얻으리니, 다만 단씨들의 성함을 아래 나열한다.
『불조록찬송』 서문(佛祖錄贊頌小引)

012_0752_a_01L新成記辛酉夏

012_0752_a_02L
經云眞理無言無修證是名眞修證
012_0752_a_03L身非相非莊嚴是名眞莊嚴所以眼盖
012_0752_a_04L乾坤鼻收身土卽是衲僧之本色
012_0752_a_05L乃糢糊眞理打樣法身都慮新熏之末
012_0752_a_06L光也雖然如是無相而現身乃諸佛
012_0752_a_07L之權應無修而發願實衆生之機感
012_0752_a_08L機權相投感應契符盍成大功德於水
012_0752_a_09L月道場也哉於是住持友松自曹溪山
012_0752_a_10L住于此者不幾年矣心慚金容之
012_0752_a_11L沒色亦感彩雲之無光化風一號
012_0752_a_12L林齊偃結界建會克日招工重修改
012_0752_a_13L新畫佛幀無障成就歡喜回向
012_0752_a_14L乃一軀金山來儀於兜率宮中衆海彩
012_0752_a_15L飛騰於迦羅藏裡怳然祇桓寺之檀
012_0752_a_16L像特立依俙紫微宮之星衆列羅浮槎
012_0752_a_17L泛泛玉京仙子遊戱於安樂城中
012_0752_a_18L花明明金剛禪衆入定於金華山上
012_0752_a_19L諸佛之感應旣周檀氏之願言必就
012_0752_a_20L念菩提信根從眞理而不退家家壽福
012_0752_a_21L慶雲與法身而無窮其餘山海之宏平
012_0752_a_22L水雲之汗漫覽者自得祗列檀啣于左

012_0752_a_23L

012_0752_a_24L1)佛祖錄贊頌小引 [23]

012_0752_b_01L
부처는 본래 기록이 없는데 조사인들 어찌 있겠는가. 기록이 본래 있는 게 아닌데 하물며 찬송이 있겠는가. 그러나 부처와 조사가 세상에 출현함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우리에게 불지견佛知見965)을 개오開悟966)하게 한다. 능사能事(능력)를 이미 두루 펼치고 교화를 쉬어 입멸入滅하시니 어찌 기록과 찬송이 쓸모 있겠는가. 그러나 불자佛子가 되어서 그 막대한 은혜와 힘을 잊을 수 없어 만분의 일이나마 덕을 갚고자 하여 기록하고 찬송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나 그렇게 된 것인가.
도원道源의 『전등록傳燈錄』967)과 화정華亭의 『통재록通載錄』,968) 염상念常의 『역대록歷代錄』,969) 여직汝稷의 『지월록指月錄』,970) 준욱遵勗의 『광등록廣燈錄』,971) 유백惟白의 『속등록續燈錄』,972) 이 모두는 자세한 기록들이다. 이어서 지반志磐의 『통기統記』973)와 보제普濟의 『회원會元』,974) 공진拱辰의 『통록通錄』,975) 이들은 간추린 기록들이다. 무착無着의 섭론송攝論頌976)과 용수龍樹의 약찬송略贊頌, 현수 청량賢首淸凉의 구회송九會頌,977) 선부善傅와 야보冶父의 금강송金剛頌,978) 규산圭山의 진망송眞妄頌,979) 사마司馬의 선림송禪林頌은 간추린 기록에 대한 간추린 찬송이다. 기록과 찬송은 자세하고 간략함이 비록 다르지만 취지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부처와 조사가 있는데 기록과 찬송이 없어서 되겠는가.
‘찬송’이란 인도(竺乾)에서 시작되어 중화中華에 이르고 해동에서 마쳤다. 『통재通載』와 『전등록傳燈錄』과 『통사通史』에 기재된 것들을 대체로 기록하고 찬송하여, ‘불조록찬송’이라 하고 두 편으로 나누었다. 인도와 중국을 1편의 안팎으로 하고 해동에 있어서는 종宗으로 나누어 2편의 같고 다름으로 삼으니 합하여 네 부분이 된다. 권卷에 따라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기록과 행장에 따랐으니 조금도 의심이 없다. 시기가 가까운 것에 주력했고 고찰할 만한 기록이 없으면 소문에 따라서만 기록했다. 자세한 행장이 없고 전혀 소문도 없는 것은 빼놓고 찬송하지 않았으니, 미상으로 빼놓은 안타까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내가) 해외 벽지에 거처하여 고루해서 견문이 없으니 어찌 깊이 질책하겠는가.

012_0752_b_01L
佛本無錄祖何有哉錄非本有況頌
012_0752_b_02L乎哉然而佛祖現世爲一大事因緣
012_0752_b_03L使吾開悟佛知見能事旣周休化入滅
012_0752_b_04L有何錄與頌之爲也哉爲其佛子者
012_0752_b_05L忘其莫大之恩力庶報萬一之德以錄
012_0752_b_06L而頌之者不其然而然乎以若道源之
012_0752_b_07L傳燈錄華亭之通載錄念常之歷代錄
012_0752_b_08L汝稷之指月錄遵勗之廣燈錄 [125] 白之
012_0752_b_09L續燈錄此皆爲錄之廣也至於志磐之
012_0752_b_10L統記普濟之會元拱辰之通錄此乃
012_0752_b_11L錄之略也無着攝論頌龍樹略贊頌
012_0752_b_12L賢首淸凉九會頌善傅冶父金剛頌
012_0752_b_13L山之眞妄頌司馬之禪林頌卽略錄之
012_0752_b_14L略贊頌也錄與頌廣略雖殊其趣一
012_0752_b_15L然則有佛祖而無錄頌得乎今之贊
012_0752_b_16L始於竺乾至於中華終於海東
012_0752_b_17L通載傳燈通史之所載者槩錄而頌之
012_0752_b_18L曰佛祖錄贊頌分爲二篇以竺華爲一
012_0752_b_19L篇之內外在海東以宗分爲二篇之同
012_0752_b_20L合爲四片依卷當檢也然而依錄
012_0752_b_21L據狀者稍無疑主於近古無錄考狀
012_0752_b_22L但隨聞錄之狀無可詳也專無所
012_0752_b_23L聞處拔而不頌想有未詳漏闕之恨
012_0752_b_24L但僻居海外孤陋莫聞何足深誅哉

012_0752_c_01L우러러 바라는 것은, 안목을 갖춘 이들이 기록을 잇고 찬송을 이어 문장을 고르고 빛을 윤택하게 하여 책을 완성한다면, (부처님의 막대한 은혜와 힘을) 잊을 수 없는 뜻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삼장법수집』 서문(三藏法數集序)
법수法數란 제법諸法의 명수名數(명목의 수)이다. 진법은 이름이 없는데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극수極數는 수가 없는데 어떤 수를 셀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중생이 진법에 어둡고 극수를 잊어서 진법과 극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여 억지로 일심一心의 명수를 세웠다. 일심이 이문二門980)ㆍ삼대三大981)ㆍ사신四信982)ㆍ오행五行983)984) 8만 법문을 세우자마자 삼라만상의 세계를 일제히 드러내는데,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쫓으면 도리어 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흙덩이를 쫓는985) 데 이르러 돌아올 줄 모르니 이로 말미암아 당나라ㆍ송나라ㆍ명나라 시대에 현수賢首와 장수長水ㆍ원정圓靜ㆍ적조寂照ㆍ일여一如986) 등 뛰어난(矯矯) 현인들이 각기 수단(手眼)을 내어 삼장과 제승諸乘987)을 찾아서 각기 법수 1질을 완성하여 당시에 공포했으니 옛스런 비단이나 순금이 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간혹 너무 번잡하게 섭렵하거나 혹은 너무 간략해서 당황하게 하여, 책을 덮어 버리고 한탄하게 하는 아쉬움에 이르게 한다.
나는 강의하던 여가나 대화(唱酬)하던 즈음에 힐항頡頏(겨룸)에 곤란한 것들을 매번 기록하였으니 1자字 부류부터 20여 편片에 이르기까지 부분마다 조항을 나열하여 본 이름 아래 뜻을 해석하기도 하고 법의 비유를 같이 들기도 하고, 그림을 보이기도 하고, 게송을 보이기도 하고, 앞선 현인들이 기록한 것을 빼고 싣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만 빠진 것에 따라 보충하면서 보는 대로 뽑아 기록하여

012_0752_c_01L仰祈具眼續錄繼頌調文閠光以成
012_0752_c_02L完篇庶補難忘之志也否

012_0752_c_03L

012_0752_c_04L三藏法數集序

012_0752_c_05L
法數者諸法之名數也眞法無名
012_0752_c_06L名可名極數無數何數可數之爲乎哉
012_0752_c_07L但以衆生昧眞法忘極數不知眞極之
012_0752_c_08L爲何物也强立一心之名數一心纔立
012_0752_c_09L二門三大四信五行等八萬法門齊現
012_0752_c_10L於森羅之界捨本逐末反不知名數之
012_0752_c_11L爲何等物也以至於逐塊而不知返
012_0752_c_12L是以唐宋明代賢首長水圓靜寂照一
012_0752_c_13L如等矯矯群哲各出手眼搜得三藏
012_0752_c_14L及諸乘各成法數一袠公諸當時
012_0752_c_15L非爲古錦純金然而或有太煩涉獵
012_0752_c_16L或太略罔措以至掩卷嗟咜之病矣
012_0752_c_17L於講授之餘唱酬之際困於頡頏者
012_0752_c_18L輙記而錄之自一字類至二十餘片
012_0752_c_19L部部條列而本名下或釋義或法喩
012_0752_c_20L并擧或圖示或頌示之至於先哲所
012_0752_c_21L錄者拔而不載但從闕補出隨覽抄
012_0752_c_22L此引文旣載於佛祖錄賛頌篇(韓國佛敎全書
012_0752_c_23L第十二册三一六頁上段) 然與佛祖錄賛頌序小
012_0752_c_24L異{編}

012_0753_a_01L1권을 거의 이루었다. 그래서 책상에 놓아 두고는 입에 맞는 맛을 돕도록 했는데 또한 주미麈尾988)의 청에 부합할 따름이다.
아, 법에는 고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지혜와 우둔함이 있다. 지금의 우둔함이 옛날 당나라ㆍ송나라ㆍ명나라 시대 지혜로운 이들이 일삼던 것에 어찌 관여하겠는가. 간혹 방외로 유입되어 일성一星이 있어서 던진다면 무극의 고향 진공眞空의 뼛속에 보관할 것이 의심 없으리라. 하하하.
『염불요문과해』 발문念佛要門科解跋文
경전989)에 이르길, “여래 법신은 상주하여 불멸한다.”라고 하니 무슨 뜻인가. 진실제眞實際(진실한 실제)를 증명하고 방편문을 행하여 우리 부처님의 혜명慧命990)이 천 년 뒤에도 끊이지 않게 함이 바로 법신이 불멸한다는 것인가.
우리 불일 보조佛日普照 선사께서 대비大悲의 원력願力으로 그림자가 사바세계에 떨어져 유독 염부閻浮(인간 세상) 해동海東에 인연이 있어서 조계曹溪의 종휘宗輝991) 노스님에게 득도得度992)하였고 배움에 일정한 스승이 없었다. 팔공산 거조사居祖寺993)에서 결사하여 콧구멍을 밟아 버리고994) 남쪽으로 지리산 무주암無住庵을 유람하고 조계산에서 조종祖宗995)을 크게 천명하셨다. 경절문經截門 원돈圓頓996)의 뜻으로 선정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게 하는 핵심으로 삼고, 정토문淨土門 염불念佛997) 과목으로 세상과 중생을 제도할 방편으로 삼으니 이것이 진실을 증명하고 임시방편을 행하여 혜명이 단절되지 않으며 법신이 불멸하는 것이 아닌가.
염불문의 글은 간략하지만 뜻은 풍성하며, 아미타불의 인연은 가볍고 과보는 무거워, 지극한 글을 자득하고도 누누이 쓰려 하지 않았도다. 아, 여래 입멸 후에 2천여 년 지나 우리 선사께서 세상에 나타나시니(1158), 여래 법신이 엄연히 불멸함이라. 우리 선사께서 입멸하신 지 7백여 년이 지나대안大安 경오년(1210)부터 대정大正 11년 임술년(1922)까지 713년이다. 『염불요문』이 사라져 보이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문도들의 배움이

012_0753_a_01L幾成一局寘諸几案以助適口之
012_0753_a_02L亦副塵尾之請也而已法無古
012_0753_a_03L人有智愚今之愚何預於古智之
012_0753_a_04L唐宋明代之所事也哉或流入方外
012_0753_a_05L有一星而投之藏諸無極之鄕眞空骨
012_0753_a_06L中也無疑者夫呵呵

012_0753_a_07L

012_0753_a_08L1)念佛要門科解跋文 [24]

012_0753_a_09L
經云如來法身常住不滅者何謂也
012_0753_a_10L證眞實際行方便門使吾佛慧命
012_0753_a_11L斷於千載之下卽法身不滅歟唯我佛
012_0753_a_12L日普照禪師以大悲願力影落娑婆
012_0753_a_13L偏有因緣於閻浮之海東得度於曹溪
012_0753_a_14L之宗輝老學無常師結社於公山之居
012_0753_a_15L祖寺踏着鼻孔南遊智異之無住庵
012_0753_a_16L大闡祖宗於曹溪山以經截門圓頓旨
012_0753_a_17L爲習定均慧之樞要以淨土門念佛科
012_0753_a_18L爲濟世度生之方便是無乃證眞行權
012_0753_a_19L慧命不斷法身不滅者哉念佛門之文
012_0753_a_20L略義豊彌陀佛之因輕果重至文自得
012_0753_a_21L不肎累累如來滅後二千餘禩
012_0753_a_22L師現世如來法身儼然不滅吾師滅後
012_0753_a_23L七百餘年自大安庚午至大正十
一年壬戌七百十三年
念佛要門
012_0753_a_24L湮沒不行何也莫非吾徒之學膚受

012_0753_b_01L겉만 훑는998) 얕은 식견이 아님이 없기 때문인가.
나 또한 얕은 지식과 좁은 소견으로 조계산 아래에서 글만 읽으며999) 찌꺼기만 맛보다가 다행히 기산綺山1000)의 소장품에서 이 책을 얻고는 피눈물을 흘리며 봉독하니 우담바라를 움켜쥔 듯하였다. 그 인물됨을 탄식하여 손이 다치는 것을 헤아리지 않고 외람되이 병든 싹을 뽑아내고 감히 과목과 주석을 엮어, 통달한 식견과 높은 견해를 가진 이들에게 공경히 알린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롱으로 표범의 무늬 하나만 본다고 꾸짖지 말고 첨삭을 가한 경전(大典)을 더하기를 바란다. 우리 선사의 마음이 여래 법신과 함께 불멸하기를 바라며 이와 같이 쓴다.
자정국사의 탑이 훼손된 연기임술년(1922) 5월 오일午日1001)(慈靜國師毁塔緣起壬戌五月午日)
바다의 동쪽이자 호수의 남쪽에 ‘조계’라는 산이 있고, 산 아래 개울 위에는 ‘송광松廣’이라는 사찰이 있다. 승국勝國1002) 이래로 그곳이 굉장하다고 칭해지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바로 16국사께서 차례로 세상에 나타나사 사원을 크게 넓히고 도적들을 제도(傑拓)하여 9산1003)의 장벽을 없애고 수선修禪의 모임(社會)을 결성했으며, 양종兩宗(교ㆍ선)의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하고 조계의 종지를 세워, 나라와 세상을 복되게 하고 생령生靈(중생)을 널리 구제했기 때문인가. 국사들께서 당시에 각기 별원別院을 손수 지어서 평생 좌선할 장소로 삼으셨는데 사찰(中寺)의 북쪽에 ‘자정慈靜’이라는 암자가 있으니 바로 7대 자정국사慈靜國師1004)께서 지으신 것으로 남쪽을 향하고 북쪽을 등져, 명백하고 바르게 마음을 맑게 하는 선방(禪室)이 된다.
국사의 법명은 인일印一인데 비명碑銘은 보지 못하여서, 실제 사적을 알 수 없음이 항상 아쉬웠다. 국사께서 입적한 후에 암자의 동쪽 10보 되는 곳에 탑(묘광탑妙光塔)을 세웠으니 암자와 방위가 동일하다. 탑의 높이는 3층으로 1길(仞) 남짓이다. 가공한 솜씨가 극히 아름답다. 지나온 해를 헤아려 보니 대개 7백여 년이 된다. 거승居僧이 수호함이 얼마나 엄중하였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임술년(1922) 여름

012_0753_b_01L淺識之罪也哉予亦膚識管見鑚紙啜
012_0753_b_02L粕於曹溪山下幸得斯文於綺山藏中
012_0753_b_03L泣血奉讀如攬曇蕚嗟嘆湮沒不揆
012_0753_b_04L傷手叨抽病穎敢綴科註敬吿通識
012_0753_b_05L高見伏冀無誅管見之小豹有增筆削
012_0753_b_06L之大典庶望吾師之心與如來法身不
012_0753_b_07L如是乎書

012_0753_b_08L

012_0753_b_09L慈靜國師毁塔緣起壬戌五月午日

012_0753_b_10L
海之東湖之南有山曰曹溪山之下
012_0753_b_11L溪之上有寺曰松廣自勝國伊來
012_0753_b_12L域中宏傑而稱者何也卽十六國師
012_0753_b_13L第次現世宏剏寺院傑拓匪徒闢九
012_0753_b_14L山之障壁結修禪之社會均兩宗之定
012_0753_b_15L立曹溪之宗旨福國祐世廣濟生
012_0753_b_16L靈之故歟諸國師當時各手搆別院
012_0753_b_17L爲終天安禪之所而就中寺之北有庵
012_0753_b_18L曰慈靜卽第七慈靜國師所搆而面
012_0753_b_19L南背北爲明正澄心之禪室也師諱印
012_0753_b_20L未見碑銘常恨實蹟之未詳師之
012_0753_b_21L沒後旣竪塔於庵之東十步許與庵同
012_0753_b_22L爲向背而塔高三層仞餘其攻治極侈
012_0753_b_23L考其歷年槩七百餘禩矣居僧之
012_0753_b_24L守護其何等嚴重也哉不幸壬戌之

012_0753_c_01L단양端陽(단오) 날에 어떤 도적이 탑을 부수고 땅을 파헤치는 소리가 암자에 울렸다. 거승들이 급히 가서 도적들을 붙잡으니, 즉 본면本面(승주) 진촌津村의 미치광이 박부권朴夫權이란 자였다. 즉시 이유를 조사하여 물으니 답하길, 여기를 파서 한양까지 뚫으려 했다고 한다. 어딘들 땅이 없어 하필 여기를 팠는가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 엄하게 조사하고 수색하였는데 빈 합과 자기磁器 하나를 얻었을 뿐 사리는 없었다. 다시 주재소駐在所에 호소하니 순사를 파견하여 엄하게 조사를 하였으나 끝내 사리는 나오지 않았다. 혹시 땅을 파고 숨겨 두었나 해서 땅을 1자 남짓 파 보았더니 돌함(石凾)에 물이 가득 있었다. 물을 떠 내서 자세히 보니 영골靈骨이 쌀알처럼 작은 것들이 여러 개 있었고, 사리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
아, 천신이 돕지 않으심인가. 지신이 보호하지 않음인가. 탑을 훼손하고 사리를 잃어버리고 명당明堂(묘)을 부순 것은 모두 운수런가. 어찌 망극함이 이와 같은가. 온 산의 치도緇徒(승려)들이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고 땅을 치며 애통해 했지만 도무지 어쩔 수 없었다. 도적의 죄를 논하자면 만 번 죽어도 갚기 어렵다. 그러나 병소兵所에 호소하여 해당 부서에 부쳤으니 법률에 따라 조치함이 마땅하다.
자기磁器(자정국사 사리함)를 또 잃어버릴까 걱정되어서 다만 탑함塔凾에 영골만 봉안하여 다시 봉축封築하였다. 자기는 국사들의 원불願佛과 옛 물건을 보관(藏鎭)한 곳에 봉안하고서, 사진 기술원技術員을 불러서 사진을 촬영하여 배포함으로써 보배가 이처럼 드물고 기이함을 알게 하였다. 자기는 고려 시대 장인이 만든 것으로 높이는 1치 4푼, 넓이는 3치, 내원은 8치 3푼, 외원은 8치 7푼으로 화려한 학을 수놓았는데 털끝으로 무늬를 그렸다. 방원方圓과 상하가 어울렸는데 말로는 그 특이함을 다 표현할 수 없고

012_0753_c_01L端陽之日何等賊人破塔掘地
012_0753_c_02L動庵內居僧卒發捉賊卽本面津村狂
012_0753_c_03L漢朴夫權者也卽査問其故答云從此
012_0753_c_04L鑿通漢陽云曰何處無地何必從此掘
012_0753_c_05L通乎餘無答言嚴査推覔但得空盒
012_0753_c_06L磁器一枚而舍利空焉更訴駐在所
012_0753_c_07L發巡使嚴懲査問終无舍利故或疑
012_0753_c_08L地窖密藏卽掘地尺餘有石凾盈水
012_0753_c_09L杓而詳之乃有靈骨小如粒者多數
012_0753_c_10L存焉舍利亦不見嗚呼天神不祐歟
012_0753_c_11L地祗不護歟毁塔失舍利破明堂并是
012_0753_c_12L運數歟何其罔極之若是耶渾山緇徒
012_0753_c_13L呼天仰訴撲地痛悼無所遞及莫可
012_0753_c_14L若何論其賊罪萬死無贖然旣訴兵
012_0753_c_15L付之該所當依律勘處可也唯恐磁
012_0753_c_16L器更失但奉安靈骨于塔凾還以封築
012_0753_c_17L磁器奉安于諸國師願佛及古物藏鎭之
012_0753_c_18L而仍聘寫眞技術員撮眞分布
012_0753_c_19L知寶玩之若是稀奇也磁器卽高麗匠
012_0753_c_20L所成而高一寸四分廣三寸內圓八寸
012_0753_c_21L三分外圓八寸七分繡以華鶴紋以
012_0753_c_22L毫釐盖以方圓上下相稱口不能盡其
012_0753_c_23L此跋文旣載於念佛要門科解篇(韓國佛敎全
012_0753_c_24L書第十二册四三四頁下段){編}

012_0754_a_01L눈으로 그 오묘함을 관찰할 수 없다. 대도시 박물관이라도 이와 같이 좋고 진기한 보배를 많이 소장할 수는 없다.
나는 또한 조계종의 말손으로 잠시 봉산鳳山에 머물다가 문득 망극한 기별을 듣고는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붓을 휘둘러 대략을 기록해서 대중에게 부친다. 바라건대 동지들이 여기에 이르러 잘 호념護念1005)하지 않는다면 도적놈과 함께 손을 잡고 고뇌(苦趣)로 들어감이 화살처럼 빠르리라.
불기(釋元) 2949년 임술년(1922) 7월 7일에 게송 하나를 적는다.

國師塔碣在庵東  국사의 탑이 암자 동쪽에 있는데
千載今朝賊不忠  천 년 후 오늘날 불충한 도적이여
誰見魋傾夫子樹  뉘 알았으랴, 상퇴1006)가 공자의 나무 쓰러뜨릴 줄
但聞項掘始皇宮  항우1007)가 진시황 궁전 파헤침을 들었네
石凾端合靈珠在  석함은 합해지고 영묘한 구슬 남았는데
磁器緣何舍利空  자기는 무슨 연유로 사리가 비었나
依前封築還多感  이전처럼 봉축함에 오히려 느낌이 많으니
箇裡如叅老祖翁  그 속에서 노스님께 참배하는 듯하구나
해남군 북평면 천태산 칠성암의 중건 상량문계해년(1923) 4월(海南郡北平面天台山七星庵重建上樑文癸亥四月)
공경히 생각건대, 칠성(七曜)이 천제의 수레(帝車)를 움직이니1008) 찬란하게 하늘 문양(乾象)에 매달려 돌고, 육도六度(바라밀)를 불영佛䭘에 높이 드니 사람들의 도리 지킴에 분명하게 감동합니다. 이에 감실 등불을 켜고자 도모하니 이 우주에 두루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 칠성암을 보건대, 바다의 남쪽이요 (북평) 면의 북쪽으로 고운 마고麻姑1009)의 산을 이웃에 접하고, 구름의 서쪽이요 물의 동쪽으로 우두牛斗1010)의 성스런 호칭을 암자가 얻었습니다. 문헌을 고찰할 수 없으니 언제 창건되었는지 누가 알까, 앞선 인연을 고하지 않으니 중수한 인연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겹겹의 산들은 푸름을 머금어 천 년의 보방寶坊(절)을 비호하고, 깊숙한 시내의 찬 물방울은 아홉 굽이의 옥뢰玉籟(소리)를 멀리 당기네. 만다라曼陀羅1011) 나무의 꽃이 어여쁘게 피어 웃음 지으며 긴 봄날 향기로운 바람에 붉은 꽃 남았고, 마니주摩尼珠(보주)의 구름이 뭉실뭉실 말없이 영해瀛海(대해)의 교교한 달을 빛으로 머금도다.

012_0754_a_01L殊異目不能覽其巧妙雖大都博物局
012_0754_a_02L如此玩好珍奇之寶莫可多得也余亦
012_0754_a_03L曹溪末孫暫寓鳳山忽耳罔極之寄
012_0754_a_04L不覺痛惋泣血揮穎記其大略付諸
012_0754_a_05L介衆願諸同志到此不善護念與賊
012_0754_a_06L漢携手同入苦趣如箭射云尒釋元
012_0754_a_07L二九四九壬戌七月七日書一偈曰

012_0754_a_08L國師塔碣在庵東千載今朝賊不忠

012_0754_a_09L誰見魋傾夫子樹但聞項掘始皇宮

012_0754_a_10L石凾端合靈珠在磁器緣何舍利空

012_0754_a_11L依前封築還多感箇裡如叅老祖翁

012_0754_a_12L

012_0754_a_13L海南郡北平面天台山七星庵重建
012_0754_a_14L上樑文癸亥四月

012_0754_a_15L
恭唯七曜運於帝車炳若乾象之懸幹
012_0754_a_16L六度揭乎佛䭘昭感人事之秉彝爰謀
012_0754_a_17L粧點龕燈迺攸彌綸宇宙睠玆七星
012_0754_a_18L庵者海之南面之北山接麻姑之芳
012_0754_a_19L雲之西水之東庵得牛斗之聖號
012_0754_a_20L未考文獻誰知剏占之代年不吿前因
012_0754_a_21L莫悟修建之幾個重巒含碧秘護千年
012_0754_a_22L之寶坊絕澗瀉寒遠控九曲之玉籟
012_0754_a_23L曼陀樹花嬋妍解笑紅餘長春之香風
012_0754_a_24L摩尼珠雲繽紛無言光含瀛海之皎月

012_0754_b_01L하물며 다시 동혼銅渾1012)의 아름다운 거울로 천경天經을 징험하여 환히 빛나고, 옥두玉斗와 주형珠衡1013)은 지기地紀를 관할하여 은밀히 정하도다. 삼륜三輪1014)을 고르게 하고 칠정七政1015)을 가지런히 하니 위엄 있게 재앙을 소멸시키는 분이고, 만복을 이루고 온갖 마장을 물리치니 혹시 치성광熾盛光1016) 신성이겠지요. 그러나 겁파에 쓸리어 아직도 복을 비는 장소가 없고, 단신檀信(신도)이 귀의하나 목마르게 우러르는 예물(珪幣)이 없었습니다.
‘붕명鵬溟 대덕’이란 분이 있어서, 바야흐로 구름 날개를 펼치니 곤이가 변하여 붕새가 되었고, 장차 단문檀門에 고하니 바다가 넘쳐서 대해가 될 것입니다. 보응을 깊이 진술하나니 한 번 소리침에 바람처럼 달리고, 창설하고 수리함에 온갖 구멍1017)의 풀들이 눕습니다. 이에 청련靑蓮의 옛터를 개척하니 구슬 먼지들이 흩어져 빛을 발하고, 백옥의 새 기초를 놓으니 보배로운 빛이 발하고 상서로움을 드날립니다. 동쪽 끝에서 옥간玉簡1018)을 자르니 목성(木宿)이 정채를 띠고, 상방에 범자梵字를 날리니 장성匠星이 일을 합니다.1019) 사대부四大夫1020)를 떨어져 세우니 중려仲呂(4월) 10일(澣初)을 이미 선택했고, 상장군上將軍1021)이 날아오르니 다시 중건重乾(4월) 보름 후를 기약했습니다. 바람을 날리며 도끼를 움직이니 일꾼의 기량이 높디높고, 땀방울 흘려 옷을 적시니 공수工倕1022)의 감독이 부지런합니다.
가타伽陀(게偈)의 노래가 필요한데 어찌 아랑兒郞1023)의 가사가 없겠습니까.

東        동
剌桐華映木蘭紅  엄나무 꽃에 붉은 모란이 비치니
試觀月出峯頭月  월출봉 위 달을 바라보라
一穗天香襲寶宮  한 줄기 천향이 보궁(절)에 스미리

西        서
萬里鏡湖天欲齊  만 리 거울 호수에 하늘도 나란하니
如今安得平和術  이제 어찌하면 평화의 도술 얻어서
水陸同歸一馬蹄  물과 바다 함께 마제馬蹄1024)로 돌아갈까

南        남
萬仞頭崙眼底叅  만 길 두륜산이 눈 밑에 있으니
那向漢拏尋別地  어찌 한라산이나 다른 곳을 찾으랴
水雲千載拜瞿曇  구름 바다에 천 년 동안 석불에 참배하네

北        북
無極其形成太極  무극의 그 형체가 태극을 이루어
滿天風雨尙非晴  하늘 가득한 풍우가 아직도 개지 않았네
何日群生多慶福  어느 날에나 중생에게 복이 많을까

上        상
紫紺宮中星宿朗  자감궁紫紺宮1025)에 별들이 찬란하여
終日乾乾不息行  종일토록 끊임없이 쉬지 않으니
加行一度尤无像  한층 운행을 더해 더욱 형상 없으라

下        하
滿城佛子談般若  온 성의 불자들이 반야를 말하며
遲日茶銚生紫烟  지일遲日1026)에 다기에서 연기 피어오르니

012_0754_b_01L況復銅渾瑶鏡可徵天經而炳瑩玉斗
012_0754_b_02L珠衡常管地紀而㝠隲平三輪齊七
012_0754_b_03L儼然消災障之尊成萬福攘千魔
012_0754_b_04L倘是熾盛光之聖然而刼波所泐尙闕
012_0754_b_05L祝釐之壇場檀信歸依原無渴仰之珪
012_0754_b_06L曰有鵬溟大德方展雲翼鯤已化而
012_0754_b_07L爲鵬將吿檀門海欲溢而成溟深陳
012_0754_b_08L報應一叫而風馳剏營建修萬竅之
012_0754_b_09L草偃於是乎拓靑蓮之舊址珠塵散
012_0754_b_10L而放光銓白玉之新礎寶熖發而颺瑞
012_0754_b_11L折玉簡於東極木宿動精飛梵字於上
012_0754_b_12L匠星赴役四大夫之離立旣差仲
012_0754_b_13L呂之澣初上將軍之飛騰更占重乾之
012_0754_b_14L望後風生運斧匠氏之伎倆嵬嵬
012_0754_b_15L滴作衣 [126] 倕之蕫督役役旣要伽陀之
012_0754_b_16L盍無兒郞之辭剌桐華映木蘭
012_0754_b_17L試觀月出峯頭月一穗天香襲寶宮
012_0754_b_18L西萬里鏡湖天欲齊如今安得平和術
012_0754_b_19L水陸同歸一馬蹄萬仞頭崙眼底叅
012_0754_b_20L那向漢拏尋別地水雲千載拜瞿曇
012_0754_b_21L無極其形成太極滿天風雨尙非晴
012_0754_b_22L日群生多慶福紫紺宮中星宿朗
012_0754_b_23L終日乾乾不息行加行一度尤无像
012_0754_b_24L滿城佛子談般若遲日茶銚生紫烟

012_0754_c_01L更招黃鶴奏鳴珂  다시 황학을 불러 명가鳴珂1027)를 연주하리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후에 경사스런 별빛이 임하며 삼원三元(일월성)이 궤도를 따라, 불법의 구름(曇雲)이 비추어 육기六氣1028)가 제대로 펼쳐지며, 아사리阿闍梨(스승)의 단 앞에 옥게玉偈를 부르니 패엽梖葉(불경)이 길이 푸르고, 대단월大檀越의 집에는 온갖 재앙이 흩어져 만복이 몰려드소서.
4월 15일 상량.
보성군 벌교 포구의 송명교당 상량문5월 2일 상량(寶城郡筏橋浦松明校堂上樑文五月二日己未上梁)
보건대, 불일佛日이 동쪽에서 비추어 요일堯日1029)과 함께 밝음을 다투고, 혜풍慧風이 서쪽에서 불어 순풍舜風1030)과 함께 소리를 다툽니다. 탕망湯網1031)의 삼면을 풀고 우문禹門1032)의 9층을 쪼개며, 도야桃野1033)에 바람이 소리 내어 울리니 다른 풍속의 노래에 응하며, 접수鰈水1034)의 호수에 파도가 이니 이역異域의 문명에 나아갑니다. 누가 혁명의 장부가 아니리오, 모두 개화開和 세계(의 장부)입니다.
우리 송명교당은 원래 처음부터 불교를 포교하는 단체로 요컨대 결국엔 민족 교육의 장소입니다. (이곳은) 낙주樂州1035)의 시문市門으로서 보성의 항구에 속합니다. 부사浮槎1036) 옛 군郡을 없애니 한나라 사신의 문물이 적막하고, 돌 뗏목(石筏)1037)을 가설하여 다리를 놓으니 진나라 동자들의 거마가 크게 울렸습니다. 온 천지에 노래와 춤이 가득하니 풍조風潮에 따른 추이가 어찌 없겠습니까, 전 세계의 풍류에 노래(歌誦)를 화합하여 부르길 도모합니다.
터전은 서씨徐氏의 옥토를 점하니 수달다須達陀가 황금을 던져 동산 구입한 것과 같고, 재목은 조계산(曺山)의 삼림을 나르니 기타 태자祗陀太子가 발원하여 나무 보시한 것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진나라 채찍1038)을 빌려 감독하니 삼장군과 오대부1039)가 머리를 들어 스스로 이르고, 하나라 수레를 몰아 운반하니 긴 서까래와 짧은 평고대들이 꼬리를 흔들며 모여듭니다. 장성匠星을 뜰 아래로 부르니 목성이 빛을 발하고, 기초(礎山)를 기둥 사이에 정하니

012_0754_c_01L招黃鶴奏鳴珂伏願上樑之後慶星光
012_0754_c_02L三元順軌曇雲影照六氣敍綸
012_0754_c_03L闍梨壇前玉偈誦而梖葉長翠大檀越
012_0754_c_04L家裡千災散而萬福鼎臻四月十五日
012_0754_c_05L上梁

012_0754_c_06L

012_0754_c_07L寶城郡筏橋浦松明校堂上樑文
012_0754_c_08L月二日己未上梁

012_0754_c_09L
觀夫佛日東照并堯日而爭明慧風西
012_0754_c_10L與舜風而競吼解湯網之三面
012_0754_c_11L禹門之九層桃野風鳴響應殊俗之歌
012_0754_c_12L鰈水湖動波進異域之文明誰非
012_0754_c_13L革命丈夫盡是開和世界唯我松明校
012_0754_c_14L原始佛宗布敎之社要終民族養育
012_0754_c_15L之堂以樂州之市門屬寶城之巷口
012_0754_c_16L廢浮槎之舊郡漢使之文物寥寥架石
012_0754_c_17L筏而爲橋秦童之車馬▼(車+急)▼(車+急)渾天地歌
012_0754_c_18L盍無推移之風潮盡世界風流
012_0754_c_19L謀唱和之歌誦基銓徐氏之沃野便同
012_0754_c_20L須達陀擲金買園材輸曺山之森林
012_0754_c_21L異祗太子發願施樹借秦鞭而蕫役
012_0754_c_22L將軍五大夫矯首而自臻驅夏車而運
012_0754_c_23L長椽吏短梠徒搖尾而爭聚招匠
012_0754_c_24L星於庭下木宿以之放光定礎山於楹

012_0755_a_01L황금 줄로 먹을 찍어 표시합니다. 옥루玉樓에 해가 비치니 노을 용마루가 연기와 먼지의 세계를 벗어나고, 보개寶盖(닫집)가 허공에 걸리니 구름 평고대가 색과 모양의 세계를 초월합니다. 귀부龜趺를 옥섬돌에 놓으니 하늘 꽃이 무수히 날리고 안주鴈柱1040)를 보배 섬돌에 나열하니 바다구름이 은은히 비칩니다. 서로 맞물려 올리니 순임금이 교당을 창시한 듯하고, 장인(倕範)이 가다듬으니 완연히 범왕梵王1041)이 정사精舍에 다시 모인 듯합니다. 비록 염부주閻浮洲(인간 세상) 접역鰈域(조선)에 있어도 사가라沙迦羅 용궁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위로 봉방蜂房(승방)을 여니 추노鄒魯1042)의 군자들이 편안해하고, 가운데 안탑鴈塔1043)을 나열하니 나라의 학생들(諸生)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정원 큰 나무의 그늘이 머니 환퇴桓魋1044)의 도끼가 어찌 관계되겠습니까. 들판엔 면체綿蕝1045)의 예가 가까우니 매번 노나라 성읍의 송현誦絃1046)을 듣습니다. 노을 봉우리에 기댄다면 동화사(桐寺) 금암金庵의 종과 경쇠 소리를 들을 것이요, 구름 시내를 굽어본다면 신기루와 용궁(蛟宮)의 건성乾城1047)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철산鐵山1048)이 떠 오니 여섯 자라가 삼신섬1049)을 짊어지고, 은포銀浦1050)를 둘러 가니 쌍무지개가 온갖 하천을 삼킵니다. 아침 바다에 구름이 자욱하니 천 길 규룡의 등에 올라탄 듯하고, 저녁 시장에 안개가 자욱하니 만국의 화천貨泉1051)을 서로 바꿉니다.
그 취지를 보자면, 범자梵字(불경)와 영문英文ㆍ체조의 과정이니 불선佛仙의 도인導引1052) 하는 화학化學1053)을 모방하고, 산학算學과 지리ㆍ산술의 규칙이니 황노黃老의 형명刑名1054)이 남긴 줄기를 추출함입니다. 이미 애써 두루 도모하였으니 이에 아랑兒郞의 노래1055)를 엮습니다. 때는 중구절重九節이 아니니 왕王 학사學士1056)의 사운시四韻詩를 기다리지 않고, 계절이 단오(端陽)이니 마땅히 굴屈 대부大夫1057)의 육위부六偉賦1058)를 불러야 합니다.

東        동
雙虹飛入梵王宮  쌍무지개가 범왕梵王의 궁전으로 날아들고
日輪輾出扶桑路  일륜日輪은 부상扶桑(동해)의 길로 굴러 나오니
五彩沸騰天地紅  다섯 색채가 천지를 붉게 물들이며 끓어오르네

南        남
鐵山如秀帶蒼嵐  철산이 수려하게 푸른 안개를 띠었는데
祝融何事貪珠玉  축융祝融1059)은 무슨 일로 구슬을 탐하나
滄海無潮碧似藍  창해에 파도 없어 쪽처럼 파랗도다

西        서
金華山寂鳥空啼  금화산은 적막한데 새가 공연히 울고
曦仲轉輪且莫速  희중曦仲1060)의 바퀴 굴림이 또한 빠르지 않은데

012_0755_a_01L金繩爲之點墨玉樓曜日霞棟出
012_0755_a_02L煙塵之寰寶盖懸空雲梠超色相之界
012_0755_a_03L龜趺錯於玉砌天花繽紛鴈柱列於
012_0755_a_04L瑶堦海雲隱映杈枒交揭疑然舜帝
012_0755_a_05L之剏始校堂倕範侈磨完是梵王之
012_0755_a_06L重會精舍雖在閻浮洲鰈域不愧沙迦
012_0755_a_07L羅龍宮上啓蜂房可安鄒魯之君子
012_0755_a_08L中列鴈榻 [127] 能容郡國之諸生庭遠大樹
012_0755_a_09L之陰何關桓魋之荷斧野近綿蕝之禮
012_0755_a_10L每聞魯城之誦絃若以却倚霞岑
012_0755_a_11L聞桐寺金庵之鍾磬俯壓雲澗多見蜃
012_0755_a_12L樓蛟宮之乾城鐵山浮來六鰲負三神
012_0755_a_13L之島銀浦匝去雙虹呑百川之河
012_0755_a_14L海雲擁可跨千尋之虬背夕市霧集
012_0755_a_15L交易萬國之貨泉其趣則梵字英文
012_0755_a_16L操科程模倣於佛仙導引之化學算學
012_0755_a_17L地理數術䂓則抽出於黃老刑名之餘
012_0755_a_18L旣周拮据之圖載綴兒郞之頌
012_0755_a_19L非重九莫待王學士之四韻詩節啓端
012_0755_a_20L宜唱屈大夫之六偉賦雙虹飛
012_0755_a_21L入梵王宮日輪輾出扶桑路五彩沸騰
012_0755_a_22L天地紅鐵山如秀帶蒼嵐祝融何
012_0755_a_23L事貪珠玉滄海無潮碧似藍西金華
012_0755_a_24L山寂鳥空啼曦仲轉輪且莫速天鴉唱

012_0755_b_01L天鴉唱罷夕陽低  고니(天鴉)가 노래 마치니 석양이 낮게 깔리네

北        북
望美天涯心欲極  망미산1061) 하늘 가에 마음은 끝없이 가고
大野茫茫地盡頭  너른 들 아득하여 땅은 끝을 다하는데
古城雉堞皆荒落  옛 성의 성가퀴들 모두 황망히 스러졌네

上        상
紫微宮裏開雲幌  자미궁 안에 구름 휘장을 열치는데
玉帝尙今夢未惺  옥황상제는 아직도 꿈이 깨지 않으니
是知乾道唯元象  건도乾道는 원상元象임을 알겠네1062)

下        하
電燭煌煌不見夜  전등불이 휘황하여 어둠을 보지 못하고
鼛鼓長鳴六偉終  북을 오래도록 울려 육위송을 끝내니
萬民咸樂齊聲賀  만민이 함께 즐거이 한 목소리로 축하하네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사계절에 하늘 음악이 육률六律1063)의 훈지塤箎1064)를 조화롭게 하고 상하사방의 신명이 사민四民의 사업을 보호하소서. 우담바라가 기수祗樹1065)에 다시 피어나니 사자좌獅子座 위에 남종과 북종의 높은 스승들이 자재自在하고, 바다 구름이 송문松門(송명교당)에 다시 모이니 용 같은 무리(龍兒徒)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큰 철학을 많이 산출하소서.
곡성군 봉두산 동리사 능파각의 중수 상량문5월 18일(谷城郡鳳頭山桐裡寺凌波閣重修樑文五月十八日)
보건대, 곡성군 남쪽으로 1유순由旬1066) 남짓에 ‘봉두산鳳頭山’이 있고, 산의 서남쪽(坤) 10리 남짓에 ‘동리사桐裡寺(태안사)’가 있습니다. 밖을 감싸고 안으로 중첩되니 오동잎이 층층이 겹쳐진 듯하고, 왼쪽으로 비밀스럽고 오른쪽으로 감추니 봉황이 잠자코 엎드린 듯합니다.1067) 혜철국사慧徹國師1068)께서 창건하시고 동파桐坡 스님이 중수하셨습니다.
그 중에 ‘능파각凌波閣’이란 것은 어떤 선인이 창건하셨는지 기록을 보지 못하였고 다만 원선遠禪이 중수하였다는 구절만 있습니다. 이어서 건륭乾隆 31년 병술년(1766)에 태윤太允 대사(士)가 정교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가경嘉慶 14년 기사년(1809)에 영혜永惠 옹翁이 창의倡義1069)하셨습니다. 함풍咸豊 11년 신유년(1861)에 일노日老 선사가 다섯 번째 중창하셨고, 대정大正 12년 계해년(1923)에 영월映月 주지께서 여섯 번째 중창하셨습니다. 지금까지 20세기도 채우지 못하였는데 5, 6차례 중수를 겪은 것입니다. 훗날에 지금을 보면 생각건대 태안사의 불후하고 고상한 자취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요,

012_0755_b_01L罷夕陽低望美天涯心欲極大野
012_0755_b_02L茫茫地盡頭古城雉堞皆荒落
012_0755_b_03L微宮裏開雲幌玉帝尙今夢未惺是知
012_0755_b_04L乾道唯元象電燭煌煌不見夜
012_0755_b_05L鼓長鳴六偉終萬民咸樂齊聲賀伏願
012_0755_b_06L上樑之後四時天樂調六律之塤箎
012_0755_b_07L六方神祗護四民之事業曇華重開於
012_0755_b_08L祗樹獅子座上自在南北宗之高等師
012_0755_b_09L海雲再會於松門龍兒徒中多產東西
012_0755_b_10L洋之大哲學云爾

012_0755_b_11L

012_0755_b_12L谷城郡鳳頭山桐裡寺凌波閣重修
012_0755_b_13L樑文五月十八日

012_0755_b_14L
觀夫郡之南由旬許有山曰鳳頭山之
012_0755_b_15L坤十里餘有寺曰桐裡外抱而內疊
012_0755_b_16L如桐葉之疊層左秘而右藏似鳳子之
012_0755_b_17L藏伏以徹國老之剏點及桐坡師之重
012_0755_b_18L就中凌波閣者不見先人剏始之文
012_0755_b_19L但有遠禪重修之句繼以乾隆卅一丙
012_0755_b_20L戌歲太允士之巧能嘉慶十四己巳年
012_0755_b_21L永惠翁之倡義咸豊十一辛酉役幸日
012_0755_b_22L老禪五重大正十二癸亥修映月住持
012_0755_b_23L六剏迄今未滿二十世紀以經五六重
012_0755_b_24L後之視今想不孤泰安寺不朽之高

012_0755_c_01L지금으로서 옛날을 보자면 아직도 능파각의 뛰어난 경광을 논할 만합니다. 용과 범이 머리를 섞으니 교룡을 가설하여 복종시키는 듯하고,1070) 온갖 하천이 다투어 모이니 병 입구를 기울이듯 세차게 흐릅니다. 비 없이 치는 맑은 우레에 물을 건너는 무지개가 꿈틀대고, 바람 없이 나는 상쾌한 소리에 은하수 걸터앉은 비각飛閣이 날아오를 듯합니다. 그 외 사계절의 눈과 달, 바람과 꽃들은 어찌 삼산三山의 장생長生1071) 일월에 그치리오. 삼세(三際)의 공덕을 논했으니 육위六偉의 짧은 노래를 불러야 마땅합니다.

東        동
一路上房通    한 줄기 길이 상방上房1072)으로 통하니
竹樹淡蒼裡    대나무 숲 맑고 푸른 가운데
鳳兒捿碧桐    봉황이 푸른 오동에 머문다네

南        남
蒼龍頭若蠶    창룡의 머리가 누에 같아
從此如高響    여기서 높이 소리 내면
能招鳳瑞庵    봉서암1073)을 부를 수 있겠네

西        서
雙峽與天齊    두 골짜기가 하늘과 나란하여
九曲如相渡    아홉 굽이를 건널 듯이
桐溪見鳳溪    동계桐溪에서 봉계鳳溪를 보노라

北        북
鷹峙開長谷    솔치(鷹峙)에 긴 골짜기 열려
欲見廣慈師    광자廣慈1074) 스님을 보려고
行尋碑碣石    비석을 찾아가네

上        상
何時見玉皇    언제나 옥황상제를 보려나
天津閣道邊    은하수(天津) 각도閣道1075) 옆에서
牛斗逢貪狼    우두牛斗1076)가 탐랑貪狼1077)을 만나네

下        하
迅波忘晝夜    빠른 파도는 밤낮을 잊고
蟠石欲相穿    서린 바위를 뚫고자
激湍壺口瀉    거센 물살이 병을 기울이듯 쏟아지네

엎드려 바라건대, 만겁의 티끌 재앙을 물로 씻어 버리고 삼청궁1078)의 선객仙客으로 교량에 오르소서. 용과 범이 싸움을 멈추고 삼보三寶의 용 후손을 항상 보호하고, 봉황 산등성이에 잉태하사 겹눈동자1079)의 봉황 후손을 길이 보양하소서.
태안사 대지전1080)을 새로 창건하는 상량문6월 22일(泰安寺大持殿新剏建上樑文六月二十二日)
살펴보건대, 석제釋帝1081)께서 강림하시어 기관騎官 위치의 거사車肆1082)를 처음 진설하시고 각황覺皇(부처)께서 다스리심에 봉향각奉香閣의 천주天厨1083)를 먼저 차지하셨습니다. 천시天床와 시루市樓1084)의 기미(機)가 수레에 실을 정도라고 논하며, 전단향과 침향(沈水)1085) 물품이 말(斗)로 헤아릴 정도라 합니다. 이 모두 기관騎官의 주당周堂1086)이니 봉향각의 관건이 아님이 없습니다.
이 전각은 원래 높여서 ‘향로전’이라 하고

012_0755_c_01L今之視昔尙可論凌波閣勝賞之景
012_0755_c_02L龍虎交頭架蛟龍而禁伏百川爭
012_0755_c_03L傾壺口而激湍不雨晴雷渡水之
012_0755_c_04L虹霓蝘蜿無風爽籟跨漢之飛閣飄然
012_0755_c_05L其餘四時之雪月風花何止三山之長
012_0755_c_06L生日月旣論三際之功德宜唱六偉之
012_0755_c_07L短詞一路上房通竹樹淡蒼裡
012_0755_c_08L兒捿碧桐蒼龍頭若蠶從此如高
012_0755_c_09L能招鳳瑞庵西雙峽與天齊九曲
012_0755_c_10L如相渡桐溪見鳳溪鷹峙開長谷
012_0755_c_11L欲見廣慈師行尋碑碣石何時見
012_0755_c_12L玉皇天津閣道邊牛斗逢貪狼
012_0755_c_13L波忘晝夜蟠石欲相穿激湍壺口瀉
012_0755_c_14L伏願水滌萬刼之塵殃橋登三淸之仙
012_0755_c_15L龍虎停鬪常護三寶之龍孫鳳崗
012_0755_c_16L孕胎長養雙瞳之鳳子

012_0755_c_17L

012_0755_c_18L泰安寺大持殿新剏建上樑文六月
012_0755_c_19L二十二日

012_0755_c_20L
原夫釋帝降臨初陳騎官位之車肆
012_0755_c_21L皇御宇先占奉香閣之天厨天床市樓
012_0755_c_22L之機動論車載栴檀沈水之品景抱
012_0755_c_23L斗量盡是騎官之周堂莫非奉香之
012_0755_c_24L關犍唯是殿者原是香爐殿之尊號

012_0756_a_01L혹은 일반적으로 ‘대지전’이라 칭합니다. 사찰을 창건할 초기에 이 전각이 없을 수 없고, 부처님을 받드는 날에 또한 이 건물이 어찌 없을 수 있습니까. 그 중대하고 존귀함을 논하자면 대웅전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그 연혁을 돌아보면 당나라 원화元和 갑오년신라 헌종1087) 6년(814)에 혜철 국사慧徹國師가 비로소 창건하셨고, 844년에 이르러 명明 주지가 이어서 중수하셨고, 청나라 순치順治 정유년조선 효종 8년(1657)에 신信 화주化主가 중창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265년(1923)에 이르러 영월映月 주지가 일신하여 창건하셨습니다.
설선당說禪堂 위에 법중法衆(승려)이 즐비하니 범인과 성현이 서로 참례함에 상응하고, 국사전 앞에 사리闍梨(고승)들이 융성하니 용과 뱀들이 뒤섞여 있는 듯합니다. 업경대業鏡臺 아래 염라왕이 안건을 결정한다면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대복전大福田에서 성중聖衆이 진리에 응하니 모습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가람의 규모가 아님이 없으니 총림의 법도(軌模)라고 누가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겁파劫波가 찾아와서 연기와 먼지로 더럽혀짐을 탄식하게 되고, 바람과 서리가 몰아침에 기둥과 들보가 상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이에 거듭 새롭게 하기를 도모하여 남풍藍風1088)에 기와를 날리고, 복구하기를 도모하여 겁우刼雨에 구슬의 먼지를 씻어 냅니다. 터전에 옛 규모를 헤아려 구름바위(雲石)를 잘라 주춧돌로 놓고, 장인이 새 재목을 다듬어 바람도끼(風斧)를 휘둘러 치수대로 깎아 냅니다. 밤을 새워 솟아나니 제석천이 장대를 세워 놓은 듯하고, 맑은 아침에 날아갈 듯하니1089) 원래 용궁(虬宮)에서 사찰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천풍天風1090)의 저녁에 시작하여 천지天地1091)의 볕(陽)에 복궤覆簣1092)합니다. 넓고 넓은 신의 공덕이 아니라면 참으로 밝고 밝은 귀부鬼符1093)일 것입니다. 부종鳧鍾1094)이 고래처럼 울리니 포뢰蒲牢1095)의 입술에 벼락 치고, 하고河鼓1096)가 천둥처럼 울리니 천부天桴1097)의 소매에 번개가 번쩍입니다. 백련사(蓮社)1098)의 바람을 이미 맺었으니, 아랑兒郞의 노래를 도우려고 향화香火의 붓을 꺼내 가타伽陀(게송)의 노래를 엮습니다.

東        동
一竿紅日掛蒼桐  한 발 솟은 붉은 해가 푸른 오동나무에 걸려
諸君回顧閻羅國  제군이 염라국을 돌아보게 되니
果果因因本不空  결과와 인연들은 본래 공하지 않구나


012_0756_a_01L或稱大持殿之常名剏寺之初不可無
012_0756_a_02L此殿奉佛之日亦盍闕是堂若論其重
012_0756_a_03L且尊比肩乎大雄殿稽其沿革則唐
012_0756_a_04L元和甲午新羅憲
宗六年
徹國師始剏至於八百
012_0756_a_05L四十四年明住持爲先次重修淸順治
012_0756_a_06L丁酉朝鮮孝
宗八年
信化主剏修迄今二百六十
012_0756_a_07L五年映月住持卽一新剏建說禪堂
012_0756_a_08L法衆濟濟想應凡聖交叅國師殿
012_0756_a_09L闍梨隆隆怳然龍蛇混雜若以業
012_0756_a_10L鏡臺下閻王結案毫釐不差大福田
012_0756_a_11L聖衆應眞形影莫忒此莫非伽藍
012_0756_a_12L䂓度孰不曰叢林軌模然而刼波相尋
012_0756_a_13L堪嗟烟塵之漫漶風霜交擊奈若棟樑
012_0756_a_14L之朽傷爰謀重新飛瓦礫於藍風
012_0756_a_15L圖復舊滌珠塵於刼雨基銓舊度
012_0756_a_16L雲石而安磌匠礱新材運風斧而削墨
012_0756_a_17L罔夜湧出倘是釋天之幻化竪竿淸朝
012_0756_a_18L [128] 原非虬宮之造物建刹濫觴於天
012_0756_a_19L風之夕覆簣於天地之陽若非神功之
012_0756_a_20L浩浩寔是鬼符之昭昭鳧鍾鯨吼
012_0756_a_21L靂蒲牢之唇河鼓雷轟電閃天桴之袖
012_0756_a_22L旣結蓮社之願迺助兒郞之詞敢抽香
012_0756_a_23L火之毫載綴伽陀之頌一竿紅日
012_0756_a_24L掛蒼桐諸君回顧閻羅國果果因因本

012_0756_b_01L南        남
中祖峯前聖祈庵  중조봉 앞의 성기암聖祈庵1099)
初地若知彈指境  처음에 만약 손가락 튕기는1100) 경지 안다면
奈何詢友百城叅  어찌 1백 성읍의 친구들을 찾아가랴

西        서
鵝殿崔嵬羅殿低  높다란 아전鵝殿(법당)과 낮은 나전羅殿1101)
從此一線通彼岸  이로부터 한 줄기가 피안으로 통하니
蓮花故國路何迷  연꽃 나라로 가는 길을 어이 헤매랴

北        북
國師殿上彌陀國  국사전 위에 미타국彌陀國이라
轉身一陟坐鳳頭  몸을 돌려 한 번에 봉두산에 올라앉으니
不勞擧手摩天極  힘들이지 않고 손을 들어 하늘(天極) 만지노라

上        상
終日乾乾不息强  종일토록 씩씩하게 쉬지 않고 강건하게
天花亂落吉星臨  하늘 꽃이 어지러이 떨어지고 길성이 빛나며
帝網重重雲錦帳  제망帝網1102)이 구름 같은 비단 휘장에 겹겹이로다

下        하
罔明入定觀般若  망명罔明1103)이 선정에 들어 반야를 관찰하니
風輪攪動大香湖  풍륜風輪이 커다란 향호香湖를 어지럽혀
無數魚龍皆變化  무수한 어룡들이 모두 변화하도다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후에 칠중七衆1104)이 만세루萬歲樓 위에 모여들고 팔부八部1105)가 일주문一柱門 앞을 에워싸며, 향적香積1106) 주방에서 향기로운 음식을 차려 보리의 오묘한 과보를 증명하고, 범종루 아래 칼 숲을 기울여 연꽃 고향을 드러내소서.
조계산 송광사 칠성각을 새로 지으려 터를 닦는 축문사천 (군수) 김학모가 창건함.(曹溪山松廣寺七星閣新建開基祝金泗川學模剏建)
계해년(1923) 8월 20일 병오에 김학모金學模가
산신 국사局司1107)와 토지 신명께 밝게 아뢰나니
노여워 마시고 근심하지 마시고, 신령하고 진실하사
금 같은 땅의 터를 닦으려고, 옥 같은 밭을 살펴서
정밀하게 세 기둥을 세워, 칠성(七元)을 봉안하려고
먼저 옥 같은 쌀을 찌고, 거듭 운문雲門1108)을 자르니
용안龍眼과 천근天根이 수북합니다.1109)
이에 울창주를 바치고, 이름난 향을 사르며
삼가 맑은 술을 드리노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기둥을 세우는 축문9월 9일(立柱祝九月九日)
화엄 바다 같은 모임에, 신령한 무리들이
부처와 법을 호위하여,

012_0756_b_01L不空中祖峯前聖祈庵初地若知
012_0756_b_02L彈指境奈何詢友百城叅西鵝殿崔
012_0756_b_03L嵬羅殿低從此一線通彼岸蓮花故國
012_0756_b_04L路何迷國師殿上彌陀國轉身一
012_0756_b_05L陟坐鳳頭不勞擧手摩天極終日
012_0756_b_06L乾乾不息强天花亂落吉星臨帝網重
012_0756_b_07L重雲錦帳罔明入定觀般若風輪
012_0756_b_08L攪動大香湖無數魚龍皆變化伏願上
012_0756_b_09L梁之後七衆駢闐於萬歲樓上八部擁
012_0756_b_10L衛於一柱門前香積厨中饌香飯而證
012_0756_b_11L菩提之妙果梵鍾樓下傾釰樹而現蓮
012_0756_b_12L花之故鄕

012_0756_b_13L

012_0756_b_14L曹溪山松廣寺七星閣新建開基祝
012_0756_b_15L金泗川學
模剏建

012_0756_b_16L
癸亥八月二十日丙午金學模敢昭吿
012_0756_b_17L于山神局司土祗靈神勿嗔勿恤
012_0756_b_18L靈唯眞爰開金地迺銓玉田精建三
012_0756_b_19L奉安七元先蒸玉粒再割雲門
012_0756_b_20L鬪龍眼釘釘天根玆傾薦鬯載爇名
012_0756_b_21L謹以淸酌伏唯尙亭

012_0756_b_22L

012_0756_b_23L立柱祝九月九日

012_0756_b_24L
華嚴海會靈祗等衆護佛護法旣嚴

012_0756_c_01L엄하고 중하니
모래와 자갈을 치우고, 땅을 쓸고 북돋아
옥을 잘라 주춧돌 놓고, 계수 잘라 기둥을 세우니
토공土公과 사록司祿1110)은, 장성匠星으로 언덕에 나열하여
태산처럼 안정되고, 금성金城처럼 견고하리니
사보四輔1111)가 떨어져 서고, 삼태三台1112)가 호종하여
방죽에 주막 깃발 나열하고, 주막에 하늘 술동이 늘어서며
바다 해산물을 지지고, 하늘 곳간 음식을 잘라 내니
음식물이 비록 소박하지만, 정성에 감응하시고
대략 다과를 진설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칠성각 상량문10월 5일에 올리다.(七星閣上梁文十月初五日上)
우러러 보건대, 자미원紫微垣1113) 안에 어궁御宮과 제좌帝座1114)가 엄중하고, 적도륜赤道輪에 칠요七曜와 삼태三台가 빛납니다. 천선天船과 각도閣道1115)는 이필二弼과 문성文星1116)의 양문陽門1117)이요, 천주天厨와 내계內階1118)는 사보四輔와 여사女史1119)의 부로附路1120)입니다. 전사傳舍와 구진句陳1121)의 방향이 자재하고, 화개華盖와 음덕陰德1122)의 지위가 여전합니다.
이 산은 지역상 청구靑邱의 남쪽에 접해 있고 별자리로는 각角ㆍ항亢1123)의 구역(紀)입니다. 천전天田1124)의 분야로서는 옛 승평昇平(순천)의 군문軍門1125)이요, 지축地軸의 구역으로는 지금 순천의 토사土司1126)입니다. 그 가운데 항지亢池1127)의 갈래가 아득한데 근원은 대조계산 남쪽에서 발원하였고, 고루庫樓1128)의 기둥이 높아 문은 옛 길상사1129)의 명칭(榜)으로 통합니다. 태미원(太微)1130) 9경卿의 길성이 내리 비추고, 주정周鼎1131) 5후侯의 섭제攝提1132)가 균형을 잡습니다. 16조사의 해탈도는 팔곡八穀1133)과 팔미八微의 정령이며, 육감정六鑑亭의 우화각(羽化虹)1134)은 천진天津1135)과 천문天門의 교각입니다. 어찌 다만 수명과 부귀를 연장하는 첩경일 뿐이겠습니까, 실로 자손을 구하는 복전입니다.
이에 대단신大檀信(시주)은 말하자면 금천씨金天氏1136)의 선류璿流1137)로서 삼한의 갑주甲胄1138)로 일컬어집니다. 대대로 승평의 옥부玉府1139)에 거하여 특별히 오색구름의 정관丁冠1140)을 썼습니다. 관로는 형통하여 사주泗州(사천)의 직함1141)을 몸에 지니고, 바다처럼 복이 넓어 집안에 산과 호수처럼 금은을 모았습니다.

012_0756_c_01L旣重沙礫廣拓淨土埵封删玉安礎
012_0756_c_02L折桂竪棟土公司祿匠星列陵安夫
012_0756_c_03L岱嶺固彼金城四輔離立三台護從
012_0756_c_04L羅堰酒旗列肆天樽敢煎海錯載切
012_0756_c_05L天囷物雖菲薄䖍誠感應略陳茶菓
012_0756_c_06L伏以尙饗

012_0756_c_07L

012_0756_c_08L七星閣上梁文十月初五日上 [129]

012_0756_c_09L
仰觀紫微院 [130] 御宮帝座之嚴嚴赤道
012_0756_c_10L輪中七曜三台之昭昭天船閣道二弼
012_0756_c_11L文星之▣門天厨內階四輔女史之附
012_0756_c_12L傳舍句陳之方自在華盖陰德之位
012_0756_c_13L猶存唯玆▣▣地接靑邱之离星分
012_0756_c_14L角亢之紀天田分野古昇平之軍門
012_0756_c_15L𨋀列區今順天之▣▣就中亢池派遠
012_0756_c_16L源出大曹溪之山陽庫樓柱高門通古
012_0756_c_17L吉祥之寺榜▣▣九卿之吉星照臨
012_0756_c_18L鼎五候 [131] 之攝提秤衡十六祖解脫道
012_0756_c_19L糓八微之精▣六鑑亭羽化虹天津天
012_0756_c_20L門之橋閣豈但延壽貴之捷徑實乃求
012_0756_c_21L子孫之▣田爰有大檀信曰族降金天
012_0756_c_22L之璿流儘稱三韓之甲胄世居昇平之
012_0756_c_23L玉府峙▣五雲之丁冠宦路亨通
012_0756_c_24L佩泗州之印綬福海廣博家藏湖山之

012_0757_a_01L그러하니 수명과 부귀의 영광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많은 자손에게 경사가 이어지길 바라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가만히 칠원七元의 영험한 살핌에 대해 듣고서 이에 삼생의 선근善根을 심게 되었습니다.
길성吉星의 좋은 땅을 고르고자 하니 어찌 길상사 도량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이에 수달須達이 동산 산 것을 흠모하여 코끼리에 실은 황금을 아끼지 않고, 기타祗陀가 보시한 나무를 베니 소 덮을1142) 기둥을 걱정함이 없습니다. 우림羽林1143)에서 부월斧鉞1144)을 휘두르니 쇠사슬 같은 괴강魁罡1145)이 천혼天溷1146)에서 모습을 감추고, 천시天市1147)에서 장성匠星을 부르니 종정宗正1148) 대부大夫가 신궁神宮1149)에서 향응합니다. 미축未丑1150)에 터전을 살펴 남두南斗와 북추北樞(북두칠성)로 군신의 위치를 정하고, 을신乙辛1151)에 걸쳐 보필하니 동정東井1152)과 서함西咸1153)이 주인과 손님의 방위를 호위합니다. 첩벽疊壁을 잘라 섬돌을 들이니 토공土公이 사록司祿1154)이 되고, 여석礪石1155)에 갈아 제방을 나열하니(羅堰)1156) 귀부龜趺가 능선에 나열합니다. 10기둥을 장원長垣과 영대靈臺1157)에 세우니 소미小微1158)가 와서 비추고, 9깃발1159)을 도사屠肆와 명당明堂1160)에 나열하니 태존太尊1161)이 와서 임합니다. 천폭天幅1162)에 달이 생기니 삼기叅旗 제왕諸王1163)이 부이附耳하여 권설卷舌1164)하고, 천가天街1165)에 달이 오르니 거기車騎1166) 장군이 돈완頓頑하고 절위折威1167)합니다. 그리하여 주기酒旗가 천준天樽1168)에 거꾸러지니 헌원軒轅의 기관騎官1169)이 방불하고, 천부天桴가 하고河鼓1170)를 울리니 뇌전雷電의 벽력霹靂1171)과 유사합니다. 천사天社의 천창天倉1172) 문은 구령鈎鈴의 대약大鑰1173)을 굳게 잠그고, 누고樓庫의 누시樓市 가게에는 기부器府1174)의 사공司空을 항상 진열합니다. 별鱉1175)이 꼬리를 천강天江1176)에서 흔들고, 어魚1177)가 비늘을 거사車肆1178)에 놓습니다. 관삭貫索1179)을 이미 짰으니 호분虎賁1180)의 긴 들보를 들고, 연도輦道1181)에 끌려고 하니 상서尙書1182)의 짧은 명銘을 바칩니다. 노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東        동
紅日輾來天秤宮  붉은 해가 천칭궁天秤宮1183)에 굴러 오르니
明川十里從何到  맑은 냇물이 십 리에 걸쳐 어디서 오는가
水石名亭土司空  수석의 이름난 정자는 토사공土司空1184) 몫이라

南        남
帝字峰頭畢觜參  제자봉 꼭대기에 필畢ㆍ자觜ㆍ삼參1185) 보이니
五十三尊星若列  53존1186)의 별들이 나열하여
華藏世界拈香叅  화장세계에서 향 들고 참여한 듯하네

西        서

012_0757_a_01L金銀雖不▣壽富貴之光榮最唯恨多
012_0757_a_02L子孫之餘慶竊聞七元之靈鑑爰種三
012_0757_a_03L生之▣根欲選吉星之勝地盍歸吉祥
012_0757_a_04L之道場於是慕須達之買園不惜駄▣
012_0757_a_05L之金銑伐祗陀之施樹無慮蔽牛之棟
012_0757_a_06L運斧鉞鉞於羽林鐵鎻魁罡▣形
012_0757_a_07L於天溷招匠星於天市宗正大夫
012_0757_a_08L應於神宮銓未丑而爲基南斗北樞
012_0757_a_09L君臣之位伴乙辛而輔弼東井西咸
012_0757_a_10L護主賓之方斫疊壁而納階土公爲之
012_0757_a_11L司祿磨礪石而羅堰龜趺以之列陵
012_0757_a_12L十柱立於長垣靈臺小微來照九旗列
012_0757_a_13L於屠肆明堂大尊降臨天幅月生
012_0757_a_14L旗諸王附耳而卷舌天街月上車騎
012_0757_a_15L將軍頓頑而折威以故酒旗倒於天樽
012_0757_a_16L軒轅騎官之彷彿天桴動於河鼓
012_0757_a_17L雷電霹靂之依俙天社之天倉門健閉
012_0757_a_18L鈎鈴之大鑰樓庫之樓市肆常陳器附 [132]
012_0757_a_19L之司空鱉尾搖於天江魚鱗錯於車肆
012_0757_a_20L貫索旣織載擧虎賁之脩樑輦道將牽
012_0757_a_21L迺獻尙書之短銘頌曰紅日輾來
012_0757_a_22L天秤宮明川十里從何到水石名亭土
012_0757_a_23L司空帝字峰頭畢觜參五十三尊
012_0757_a_24L星若列華藏世界拈香叅西師子嶝

012_0757_b_01L師子嶝尻舊曹溪  사자고개 꽁무니 옛 조계에
弦月初生山鳥愕  초승달 막 생기나니 산새가 놀라고
金烏飛盡浴咸池  금오는 함지로1187) 목욕하러 날아가네

北        북
離宮聖德長相億  이궁離宮1188)의 성덕을 길이 기억하노니
河鼓一聲霹靂馳  하고河鼓 일성에 벽력霹靂이 치달아
天綱回電風塵熄  천강天綱1189)의 번개에 풍진이 사라지네

上        상
貪狼星邊分角亢  탐랑성貪狼星 가에 각角ㆍ항亢1190)이 나뉘어
若借牽牛織女機  견우와 직녀 베틀을 빌려서
大梁飛到非非想  큰 들보가 비비상천1191)에 날아오르는 듯

下        하
大陸洪荒唯一馬  넓고 큰 대륙에 오직 말 하나1192)
水際風輪接鐵圍  물가 풍륜風輪1193)이 철위산을 접하고
漸臺列肆誰能跨  점대漸臺1194) 나열한 가게에 누가 걸터앉으랴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구신九辰1195)이 추극樞極(중추)의 음덕을 내리시고, 칠원七元은 천주天厨의 양문陽門을 여소서. 천음天陰1196) 월정月精은 남아를 많이 잉태하게 하시어 순씨荀氏 팔룡八龍1197)의 후손들이 번성하게 하시고, 태양太陽 일색日色은 수역壽域(장수)의 경사를 비추어 주공周公 구령九齡1198)의 흰머리와 두터운 눈썹이 화려하게 하소서.
대시주 사천泗川 군수 김학모金學謨 경신년(1860) 생生
묵암 선사의 비석을 세우는 제문갑자년(1924) 3월 15일(默庵禪師立石祭文甲子三月十五日)
대화엄종주 현顯 묵암 선사시여, 여래께서 부리시어 보살이 거듭 출현한 것이로다.
팔영산에 기운이 모여, 신령이 장사촌(沙邨)1199)에 강림하니
향나무(栴檀) 영험한 싹이, 공문空門에 옮겨 심어져
금화산에서 꽃이 피고, 풍암楓巖 노숙에게 과실을 맺고서
영천암1200)에서 법당法幢을 세우고, 송광사에서 주미麈尾를 세워
인천의 안목을 열고, 불조의 마음에 도달하여
화장세계의 바다에 헤엄치며, 공덕의 숲을 길이 기르더니
교화의 인연이 두루 미치자, 법의 기둥이 문득 스러지도다.
법신은 비록 공하지만, 후손들은 추모하여
진영이 방장산에 서리고, 탑(鴈塔)이 운근雲根(돌)에 솟았네.
외경하는 크나큰 공적을, 옥에 거듭 새기길 도모하여
받침돌이 사찰(金地)에 자리하고, 용머리가 하늘(雲衢)로 오르니
용 허리에 전서가 살아 꿈틀대고, 보주(麽尼)를 옥구玉球에 흩은 듯
귀신이 보호하며 도와, 높이 푸른 벽이 버텨 섰네.
근원을 탐색하고 결말을 알아차려서, 일을 마치고

012_0757_b_01L尻舊曹溪弦月初生山鳥愕金烏飛盡
012_0757_b_02L浴咸池離宮聖德長相億河鼓一
012_0757_b_03L聲霹靂馳天綱回電風塵熄貪狼
012_0757_b_04L星邊分角亢若借牽牛織女機大梁飛
012_0757_b_05L到非非想大陸洪荒唯一馬水際
012_0757_b_06L風輪接鐵圍漸臺列肆誰能跨伏願上
012_0757_b_07L樑之後九辰降樞極之陰德七元啓天
012_0757_b_08L厨之陽門天陰月精孕多男之胎
012_0757_b_09L氏八龍之子枝孫葉蒼翠太陽日色
012_0757_b_10L壽域之慶周公九齡之鶴鬚狵眉縞華
012_0757_b_11L大施主泗川郡守金學謨庚申生

012_0757_b_12L

012_0757_b_13L默庵禪師立石祭文甲子三月十五日

012_0757_b_14L
大華嚴宗主顯默庵禪師如來使之也
012_0757_b_15L菩薩重現歟氣鍾八影靈降沙邨
012_0757_b_16L檀靈芽移植空門開花於金華結果
012_0757_b_17L於楓老樹幢於靈泉竪塵 [133] 於松社
012_0757_b_18L人天之眼達佛祖之心游泳華藏之海
012_0757_b_19L長養功德之林化緣旣周法棟俄墜
012_0757_b_20L法身雖空雲仍追慕眞影蟠于方丈
012_0757_b_21L鴈塔聳於雲根畏豊功之礓礫謀重刻
012_0757_b_22L之琅玕龜趺踞乎金地蛟首騰於雲衢
012_0757_b_23L龍腰活於篆額麽尼撒於玉球鬼護神
012_0757_b_24L高撑翠壁原始要終乃竣創役

012_0757_c_01L다과를 배설하여, 존령께 바치며
투박한 음식이나마 진설하고, 향을 사르며
삼가 제호醍醐를 따르니, 흠향하소서.
애감계 서문(哀感契序)
미물인 까마귀와 까치도 반포지효를 알고, 미미한 개와 말도 또한 주인에게 보답할 마음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반포지효나 보답할 마음을 아는 미물보다 못하다면 어찌 타당하겠는가.
이제 조계산의 청년 수십 명이 성이 다른 형제지간을 맺어 같은 몸을 나눈 형제 되어 부모와 사부의 상사喪事에 힘닿는 대로 부조하며 같은 마음으로 슬퍼한다는 뜻을 의논으로 결정하였다. 또한 세상 도리를 따르자면 재물 없이는 성사되기 어려우므로 쌀을 갹출하여 자본을 모으고 이자를 내어 일에 따라 돕기로 하니, 안팎으로 부조하는 도라 하겠다.
그래서 이에 한마디 말로 동지들을 권면한다. 오직 실제 참된 정성으로 위를 공경하고 아래에 공손하며 효도하고 우애 있어 화목하고 유순하면 비단 애감계의 일원으로 반포하고 보답하는 이치를 알 뿐 아니라 또한 만물의 영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음이 오직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힘쓸지어다.
곡성군 도림사 시왕나한전의 중수기4월 8일谷城郡道林寺十王羅漢殿重修記四月八日
호남에 아름다운 산과 물이 많지만 간혹 웅장하나 수려하지 않은 경우 또는 수려하나 웅장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는데 유독 웅장하며 특히 수려한 것이 동악산動樂山이로다. 순강鶉江(섬진강)이 그 북쪽을 에워싸 띠를 이루고 봉악鳳岳이 남쪽에 서서 옷깃을 이루며, 방장산이 동쪽에 있으니 때때로 신선의 풍모를 보고,

012_0757_c_01L設茶饋庸獻尊靈陳設菲薄竪鬯爇
012_0757_c_02L謹酌醍醐伏唯尙享

012_0757_c_03L

012_0757_c_04L• 哀感契序

012_0757_c_05L
夫以烏鵲之微物而能知反哺以犬馬
012_0757_c_06L之微畜而亦知報主之心以况人之靈
012_0757_c_07L於萬物者不若微物之反報則豈可得
012_0757_c_08L乎哉以今溪山之靑年十數員結異姓
012_0757_c_09L之昆季斷同體之兄弟至於父母師傅
012_0757_c_10L之喪事也隨力相賻同心哀感之意
012_0757_c_11L議匠旣決亦從世諦之道無物難成
012_0757_c_12L略醵斗米存本出利隨事補助可謂
012_0757_c_13L內外相賻之道也故玆一言以勸諸同
012_0757_c_14L唯以實地眞誠上敬下恭且孝且
012_0757_c_15L敦睦和順則非但以一契之人
012_0757_c_16L知反報之義而已亦不媿萬物之靈
012_0757_c_17L存於斯矣唯諸君勉旃

012_0757_c_18L

012_0757_c_19L谷城郡道林寺十王羅漢殿重修記
012_0757_c_20L四月八日

012_0757_c_21L
湖南多佳山水或雄而不秀者或秀而
012_0757_c_22L不雄者有之而獨雄而特秀者唯動樂
012_0757_c_23L山歟鶉江繞其北而爲帶鳳岳立其南
012_0757_c_24L而作衿方丈在東時見仙子之風

012_0758_a_01L설산雪山1201)이 서쪽에 있으니 흔히 인초忍草1202)의 향기를 맡는다. 이것이 묘길상(문수보살)의 유허1203)가 아니겠는가. 원효 노옹이 처음 자리를 잡았도다. 그리하여 다섯 봉우리 정상의 강선대降仙臺에 바둑바위(碁嵓)1204)가 존재하고, 10리 긴 골짝의 거울 반석(鏡面磐)에 맑은 물이 쉬지 않고 흐른다. 물소리는 음악 같고 도심道心은 숲 같아서 산 이름과 사찰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이리니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
사찰의 창건은 신라ㆍ고려 시대에 이루어져 여러 차례 보수를 했으나 거의 쓰러진 지가 오래되었다. 불자(승려) 눌봉訥峯이 조계산에서 와 주지로 6, 7년 있으면서 호불護佛의 믿음을 매섭게 발휘하여 중창의 바람을 문득 일으켰다. 경신년(1920) 봄에 법우法宇를 일신하고 다시 1천 문의 단연檀緣(시주)을 모아 다시 나한 양전兩殿을 보수하니 갑자년(1924) 2월 20일에 시작하여 4월 욕불1205) 저녁에 마쳤다. 썩은 것을 거듭 새롭게 하고 무너진 것을 정돈하여 낮은 것은 높이고 새는 곳은 기와를 얹으니, 크고 찬란하였다. 아전鵝殿(법당)은 높다랗고 앙실鴦室은 날아갈 듯하니, 빠른 붕새가 구름 같은 날개를 펼쳐 남해로 옮겨 가며 3개월 동안 내려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남은 힘으로 누청1206) 몇 간과 객료客寮 몇 동棟을 상황에 따라 보수하였다. 바위 샘물이 이로써 다투어 쏟아지고 안개 구름이 이로써 상서로운 빛을 띠니 동악산의 새로운 면모가 눌봉을 기다려 거듭 찬란하고 도림사의 옛 가풍이 길상과 함께 다투어 울리는도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보제루1207)를 함께 수리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화 인연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요, 필시 왕성한 운을 기다려야 옳은 것이로다.
아, 현재 말세의 운수로 저 수전노들이 복전福田에 선한 씨앗을 내리지 않고 그저 티끌 이익을 구할 즈음에 백천 가지 방편으로 교화의 문을 유람하면서 티끌 모아 산을 이루고 터럭 맺어 공을 만들 듯 불우佛宇를 중흥하고 성당聖堂을 보수하여 이처럼 끝을 잘 맺으니, 모르겠다, 우리 눌 공訥公 같은 이는 혹시 묘길상이 거듭 현현하신 것인가, 원효 노옹의 원력이런가.

012_0758_a_01L山在西多聞忍草之香無乃妙吉祥之
012_0758_a_02L遺墟元曉翁之剏占也所以五峯頂崖
012_0758_a_03L降仙臺碁嵓自存十里長谷鏡面磐
012_0758_a_04L淸流不息泉聲如樂道心如林山名
012_0758_a_05L寺號之所以然其然而非然耶寺之剏
012_0758_a_06L旣在羅麗累經修葺而幾傾覆者
012_0758_a_07L有日矣佛子訥峯自曹溪來住持六
012_0758_a_08L七年酷發護佛之信頓起重剏之願
012_0758_a_09L庚申春一新法宇復鳩千門之檀緣
012_0758_a_10L葺十羅兩殿而始甲子二月之念終四
012_0758_a_11L月浴佛之夕朽敗者重新傾覆者整頓
012_0758_a_12L低者高之 [134] 者瓦之輪焉奐焉鵝殿
012_0758_a_13L崔嵬鴦室翬飛翼然如快鵬之展雲
012_0758_a_14L翼徙南溟而三月不下者也推餘力而
012_0758_a_15L樓廳數間客寮數棟逐旋補葺泉石
012_0758_a_16L以之爭瀉煙雲以之禎彩動樂之新面
012_0758_a_17L待訥峯而重煥道林之舊家風
012_0758_a_18L吉祥而爭鳴但小恨者普樓之未暇并
012_0758_a_19L然而非無化緣而然矣必待旺運而
012_0758_a_20L是歟伊今末運彼守錢奴不下善
012_0758_a_21L種於福田只求塵利之際以百千方便
012_0758_a_22L優遊化門聚塵成山結毛成毬重興
012_0758_a_23L佛宇修葺聖堂如是要終未知若吾
012_0758_a_24L訥公者倘妙吉祥之重現乎元曉翁之

012_0758_b_01L눌 공은 이 사찰에 대해서 가히 대공덕주大功德主라 하여도 실로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는 이에 쓰노라.
조계산 화엄전, 오십전,1208) 나한전의 불상 중수기4월 8일(曹溪山華嚴五十羅漢三殿佛像重修記四月八日)
법신法身은 형상이 없는데 어떤 형상으로 만들 수 있는가. 진리는 말이 없는데 어떤 말로 말할 수 있는가. 형상이 없는데 형상을 드러냄은 여래께서 방편문을 스스로 여심이요, 말이 없는데 말로 표현하시니 보살의 자비 바다가 더욱 깊도다. 그리하여 삼신三身1209) 가운데 흐름을 따르는 몸을 혹 드러내시거나 삼승 가운데 영향影響의 무리를 많이 드러내시니, 이 모두는 불보살이 진리를 따라 변화를 일으키는 원력이로다.
이제 조계산 세 전각의 불상은 이른바 형상이 없는 가운데 형상을 드러냄이니 불조佛祖의 몸을 드러내거나 성문聲聞의 몸을 드러냄이다. 기록에, “청나라 강희康熙 23년 이조 숙종 10년 갑자(1684)에 화주(化士) 재오再悟가 화엄 50불상을 새로 만들었다.”라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231년 전이다. 그리고 “금나라 태화泰和 4년 고려 신종 7년 갑자(1204)에 16성상聖像을 만들었고, 393년 지나서 명나라 만력萬曆 25년 선조 30년 정유(1597)에 병화로 손상되었고, 27년 지나 천계天啓 4년 갑자(1624)에 대중이 수리하였다.”라고 하니 이것이 불상을 만들고 보수한 과정(緣起)이다. 이제 301년이 지나 대정大正 13년 갑자(1924)에 산승 영운榮雲 선사가 보수하고 불신佛身에 분을 바르고 성상에 채색하기를 2월 27일에 시작하여 4월 초파일에 마쳤다. 그렇다면 불상을 만든 지 231년에 한 번 분칠하고, 성상을 만든 지 721년에 두 번 채색했던 것이다.

012_0758_b_01L願力耶以若訥公之於此寺可謂大功
012_0758_b_02L德主實不爲過言余於是乎書

012_0758_b_03L

012_0758_b_04L曹溪山華嚴五十羅漢三殿佛像重
012_0758_b_05L修記四月八日

012_0758_b_06L
法身無相何相可相眞理無言何言
012_0758_b_07L可言無相而現相如來方便門自開
012_0758_b_08L無言而發言菩薩慈悲海益深所以三
012_0758_b_09L身中或現隨流之身三乘中多現影響
012_0758_b_10L之衆是皆佛菩薩從眞起化之願力歟
012_0758_b_11L今曹溪山三殿佛像者所謂無相中現
012_0758_b_12L或現佛祖身或現聲聞身者是也
012_0758_b_13L有記云淸康熙二十三李朝肅宗十年甲
012_0758_b_14L化士再悟新造華嚴五十佛像
012_0758_b_15L今二百三十一年也又金泰和四年麗
012_0758_b_16L朝神宗七年甲子剏造十六聖像
012_0758_b_17L越三百九十三年明萬曆二十五年宣
012_0758_b_18L祖三十丁酉兵燹壞傷越二十七年
012_0758_b_19L天啓四年甲子大衆重修此佛聖剏修
012_0758_b_20L之緣起也迄今三百一年大正十三年
012_0758_b_21L甲子山之榮雲禪師重修而粉於佛身
012_0758_b_22L彩於聖像始於二月念七終於四月初
012_0758_b_23L然則佛剏之二百三十一年一粉之
012_0758_b_24L聖剏之七百二十一年二彩之盖以成

012_0758_c_01L완성되고 파괴되고 파괴되었다가 완성되니, 형상 있는 것들은 모두 그러하다. 완성과 파괴 가운데 파괴되지 않는 진신이 절로 있음을 누가 알 것인가.
아, 불상이 만들어진 것은 이미 갑자년(1684)에 있었고, 성상을 만들고 보수한 것이 또한 갑자년(1924)에 이루어졌다. 불사의 인연이 왜 갑자년을 기다려 결과를 맺었는가. 이와 같은 4갑자는 불상이 형상을 드러내는 운수가 상원上元(대보름) 화갑花甲에 편중되어 그러한 것이 아닌가. 또는 사찰의 방위가 갑경甲庚1210)으로 정해져서 그러한가.
이제 영운榮雲 공公은 즉 원력을 다시 드러냄인가. 네 번의 불사가 반드시 갑자년을 기다려 성취되었으니 의아해하고 싶지 않으나 그럴 수 있는가. 그저 신성의 살핌이 밝고 밝음에 부칠 따름이다. 두 전각 불상의 은은함은 여러 옥들이 자줏빛 비단 휘장에 날아 떨어지는 듯하고, 16성상의 찬란함은 비단 형상(錦軀)이 흰 은쟁반에 나열되어 있는 듯하다. 과일을 받들어 부처님께 드리거나 향을 살라 성상에 예배한다. 사룡獅龍을 다루며 마니주를 희롱하고 방울(麈鈴)을 흔들어 대중을 경각시키며, 선정에 들어 공空을 보거나 손가락을 세워 잠을 깨우는데, 어렴풋하고 희미하게 엄연히 예전에 영취산에서 꽃을 들고 미소 짓던 진풍경이 여기에 있는 듯하도다. 아아, 영운 공의 마음이 형상 없는 가운데 형상을 드러냄에서 솟아나와 특별히 묵은 재산이 없는데도 문득 무상심(無常)을 발휘하여 왕년에 염불회에서 종을 걸었고 이제 또 주머니를 털어서 세 전각의 법사法事를 크게 마련하여, 장애 없이 성취하고 기쁘게 회향하니 좋구나. 당堂에 올라 경의를 표하는 자마다 누군들 백열栢悅1211)의 느낌이 없으며 따라서 기뻐하는 생각이 없겠는가.
나 또한 말 없음의 말로 대략 시말을 기록하여 대중에게 널리 고하노라.
조계산 송광사 극락교, 청량각 상량문4월 17일 상량曹溪山松廣寺極樂橋淸凉閣上梁文四月十七日上梁

012_0758_c_01L而壞壞以成有相皆然誰知成壞中
012_0758_c_02L自有不壞之眞身哉佛之剏造
012_0758_c_03L在甲子而聖像剏修亦以甲子成之
012_0758_c_04L佛事因緣何待甲子以結果如是四甲
012_0758_c_05L無乃佛像現相之運偏重於上元花
012_0758_c_06L甲而然乎抑寺之向背以甲庚定局而
012_0758_c_07L然乎今榮雲公卽願力重現耶四番
012_0758_c_08L佛事必待甲子以成就不欲無訝而得
012_0758_c_09L只付聖鑑之昭昭而已以其兩殿佛
012_0758_c_10L像隱然若群玉之飛落於紫羅帳裡
012_0758_c_11L六聖像燦然如錦軀之列錯於白銀盤
012_0758_c_12L或奉果而獻佛或焚香以禮聖
012_0758_c_13L獅龍而戱珠振塵鈴而警衆或入定觀
012_0758_c_14L或竪指覺睡依俙然彷彿焉儼然
012_0758_c_15L若昔日靈山拈花微笑之眞風其在玆
012_0758_c_16L吁吁雲公之心湧出於無相中現
012_0758_c_17L特無宿產而頓發無常徃年掛鍾
012_0758_c_18L於念佛會今又傾槖宏設三殿法事
012_0758_c_19L無障成就歡喜回向善哉陞堂致敬
012_0758_c_20L誰無栢悅之感隨喜之想哉余亦
012_0758_c_21L以無言之言略記始末普吿大衆

012_0758_c_22L

012_0758_c_23L曹溪山松廣寺極樂橋淸凉閣上梁
012_0758_c_24L四月十七日上梁

012_0759_a_01L
보건대, 수국水國의 광한전廣寒殿은 용왕이 거닐며 재능을 부리고, 천궁의 은하수 다리는 까마귀와 까치가 애써 공덕을 쌓은 것이니, 인천人天의 아름다운 약속이 모이고, 수륙의 정교한 기술이 모인 것입니다. 이제 극락교는 인천을 초월한 명칭으로 수륙에 의거한 모임입니다. 신기루(蜃樓)가 방장산의 달을 토하니 광한전의 광명을 바라지 않고, 교룡의 등(극락교)이 조계산의 구름을 잉태하니 은하수 다리의 색상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처음을 돌아보아 시작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옹정雍正 8년 경술(1730) 봄에 탁근卓勤이 창설하였는데 함풍咸豊 4년 갑인(1854) 가을에 홍수로 무너졌습니다. 그 후 통하기 어렵던 흙다리를 북돋우고 판교板橋를 더하였으나 건너기 어려웠습니다. 산승 한붕漢朋 공이 건너기 매우 어려움을 개탄하여 이전 토목 공사를 고치니, 병진년(1916)에 시작하여 거의 이루어졌는데 잘못된 기술자 때문에 파괴되었습니다. 정사년(1917)에 다시 지을 때 솜씨 있는 장인을 불러 거듭 완성하였는데, 다만 이 누각은 같은 해에 마치지 못하고 갑자년(1924)을 기다려 거듭 공사하였습니다.
이에 장성匠星을 다리 아래 가두니 목수木宿(목성)가 재목을 가리고, 주춧돌을 규룡 머리에 누르니 금정金精의 빛이 일렁이네. 거령巨靈1212)이 도끼를 휘두르니 반般ㆍ수倕1213)에게 정교한 생각을 발휘하게 하고, 대장장이(大冶)가 화로를 작동시키니 거푸집에 기이한 지혜를 사용하네. 푸른 새우가 꼬리를 드리우니 채색 무지개가 태미성의 빛을 마시고, 붉은 무지개가 머리를 드니 검은 자라가 봉래섬을 등지는도다. 은하수(天津)를 건너고자 하니 붉은 누각이 안개 속에 드러나고, 연도輦道1214)를 겨우 오르니 푸른 누각이 구름 끝에 서 있도다. 물고기는 옥 기와에 비단 비늘을 엮고 기러기는 옥 섬돌에 치아를 나열했네, 옥녀가 창에 임하니 그림자가 난새 두 마리 그려진 거울에 빠지고,1215) 신선이 기둥에 있으니 기운이 채색 봉황의 향기에 취하도다. 연하鷰賀1216)의 정성을 펴고자 봉의鳳儀1217)의 잔치를 마련하도다. 학의 등1218)에 기린 고기 반찬을 쌓아 두니 고갯마루의 구름을 잘게 잘랐고, 용의 눈1219)에 봉황 간의 술을 쏟으니 못 바닥의 달을 가볍게 치도다. 비단 주머니에서 새로운 말을 내어

012_0759_a_01L
觀夫水國之廣寒殿龍王之逍遙幹能
012_0759_a_02L天宮之銀漢橋烏鵲之劬勞功德人天
012_0759_a_03L之佳約鼎集水陸之巧術咸臻今極樂
012_0759_a_04L橋者超人天之名稱據水陸之際會
012_0759_a_05L蜃樓吐方丈之月不願廣殿之光明
012_0759_a_06L背孕曹溪之雲無愧漢橋之色相欲稽
012_0759_a_07L剏始可考濫觴雍正八年庚戌春
012_0759_a_08L勤之所剏也咸豊四年甲寅秋洪水之
012_0759_a_09L所圮歟厥後培土圯之艱通加板橋而
012_0759_a_10L難陟山之釋漢朋公慨步涉之極艱
012_0759_a_11L改土木之前功始丙辰而幾成仍匪工
012_0759_a_12L而破壞越丁巳而改築招善匠而重成
012_0759_a_13L但是樓也在同年而未終待甲子而重
012_0759_a_14L於是囚匠星於橋底木宿掄材
012_0759_a_15L礎砥於虬頭金精動色巨靈運斧
012_0759_a_16L巧思於般倕大冶鎔爐用奇智於錘範
012_0759_a_17L碧蝦垂尾彩虹飮太微之光赤霓矯頭
012_0759_a_18L墨鰲負蓬萊之島天津欲渡彤閣出於
012_0759_a_19L煙中輦道纔登翠樓架於雲表魚絹
012_0759_a_20L鱗於玉瓦雁列齒於瑶階玉女臨窓
012_0759_a_21L影沈雙鸞之鏡仙人在棟氣醉彩鳳之
012_0759_a_22L欲展鷰賀之誠爰設鳳儀之宴
012_0759_a_23L背飣獜脯之饌細切嶺頭之雲龍眼瀉
012_0759_a_24L鳳肝之醪薄批潭底之月要進錦囊之

012_0759_b_01L보물 누대의 장엄한 광경을 남겨 둬야 하는데, 쌍무지개처럼 긴 들보를 이미 올렸으니 육위六偉의 짧은 노래를 부르노라.

拋樑東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渴獅哮吼飮虬宮  목마른 사자가 포효하며 용궁을 마시고
大明初到扶桑下  큰 밝음이 부상扶桑 아래 처음 도달하니
萬縷彤霞嶺日紅  만 가닥 붉은 노을과 고개 넘어 해가 붉도다

南        남
帝字峰前現優曇  제자봉 앞에 우담바라 나타나서
若把一枝贈善財  한 가지 잡아 선재동자에게 준다면
百城巡友禮三三  100성을 다니며 수행승1220)에게 절하리

西        서
蓮花開處百禽啼  연꽃 피어난 곳에 온갖 새들 지저귀니
我若能跨天馬背  내가 천마 등에 탈 수 있다면
昂昂不問路高低  높디높아 길의 높낮이를 묻지 않으리

北        북
溟鯤何日化雲翼  바다 곤어1221)는 언제나 구름 날개로 변하려나
翹足暫踞倉庫峰  발돋움하여 창고봉倉庫峰에 잠시 기대고
手長一尺摩樞極  손이 한 자 자라 추극樞極1222)을 만지리

上        상
紫微宮裡開雲帳  자미궁 안에 구름 장막 걷고서
回首若證天耳通  머리 돌려 천이통1223)을 증득한다면
應聞織女支機響  응당 직녀의 베틀 소리를 듣겠지

下        하
迦羅藏海談祗夜  용왕(迦羅) 바다에서 기야1224)를 말하노니
曹溪一帶與天長  조계산 일대가 하늘처럼 유장하여
無數魚龍皆變化  무수한 어룡들이 모두 변화하리라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은하수 별들이 길상의 오운五雲을 내리고 수궁水宮의 용들이 마니주 칠보를 보내리라. 관리와 유자들1225)이 누각(청량각)에 올라 법을 보호하여 한나라와 당나라의 문물로 소요하는 풍류를 짓고, 용상龍象 비구들이 다리(극락교)에 올라 허공을 바라봄에 중생을 널리 제도하여 자유의 본색이 되소서.
위와 함께 기둥 세우는 축문(同立柱祝文)
무지개가 장공에 누우니, 기초가 용 뿔처럼 우뚝하고
광한전의 풍류와, 은하수의 별들이
광한전과 극락교를 장엄하고, 재목(漢栢)을 잘라 옮겨
공수工倕를 부르니, 장석匠石1226)이 분주하도다.
길일(穀日)을 택하여, 이에 낭간琅玕1227)을 세우니
어찌 오대부1228)이리오, 실로 십장군이라.
산해진미를 마련하고, 바다 음식을 거듭 끓이며
명차를 삼가 따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012_0759_b_01L新語留作瑶臺之壯觀旣騰雙虹之脩
012_0759_b_02L載唱六偉之短頌拋樑東渴獅哮
012_0759_b_03L吼飮虬宮大明初到扶桑下萬縷彤霞
012_0759_b_04L嶺日紅帝字峰前現優曇若把一
012_0759_b_05L枝贈善財百城巡友禮三三西蓮花
012_0759_b_06L開處百禽啼我若能跨天馬背昂昂不
012_0759_b_07L問路高低溟鯤何日化雲翼翹足暫
012_0759_b_08L踞倉庫峰手長一尺摩樞極紫微
012_0759_b_09L宮裡開雲帳回首若證天耳通應聞織
012_0759_b_10L女支機響迦羅藏海談祗夜曹溪
012_0759_b_11L一帶與天長無數魚龍皆變化伏願上
012_0759_b_12L樑之後銀河星宿降吉祥之五雲
012_0759_b_13L宮龍兒輸麽尼之七寶縉紳章甫
012_0759_b_14L樓而護法以漢唐文物作逍遙之風流
012_0759_b_15L龍象比丘陟橋而觀空以廣濟衆生
012_0759_b_16L爲自由之本色

012_0759_b_17L

012_0759_b_18L同立柱祝文

012_0759_b_19L
虹卧長空礎突虬角廣寒風流漢河
012_0759_b_20L列宿莊嚴廣橋斫輸漢栢旣招工錘 [135]
012_0759_b_21L載奔匠石差于穀日迺竪琅玕豈五
012_0759_b_22L大夫實十將軍爰設山珍再爇海香
012_0759_b_23L謹酌茗茶伏唯尙享

012_0759_c_01L
부인상을 당한 사마 송염재를 위문하는 편지(問宋司馬念齋喪配書)
한 번 헤어진 후로 네 번 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에 비람풍에 맞아 천주天柱가 먼저 무너지고 겁파刼波에 쓸려 내실內室(부인)이 또 무너졌군요. 아이들이 의지할 바 없음은 살펴볼 것도 없는데, 하물며 존후尊候께서 타향에 행차하셨음에랴.
긴 채찍 휘둘러 만류萬類 가운데 여우 자취1229)를 내몰다가 짧은 겉옷(短褐) 입고 일신의 거북 수명1230)을 기약하여, 감당할 수 없는 계율을 지키더니 이제 삭발(剗草) 허락을 들었습니다.
아아, 예전 사마司馬1231) 객客께서 오늘 까마귀 쫓는(驅烏)1232) 이를 어찌 알겠습니까. 장남이 일본 서울로 들어간 지 이미 4년이 지났고, 차남은 거주지를 아직 모르고, 셋째는 생각건대 슬하에 있으리니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저(拙生)는 동리사(桐)로 옮긴 다음 해에 우연히 풍습風濕1233)으로 다리 한쪽이 무겁고 정강이가 부어서 거의 허리만 하게 되었습니다. 20개월을 침상에 누워 신음하는데 온갖 치료가 효과 없고, 작년 가을에 우연히 본원의 청이 있었으니 또한 학과學科의 어려운 바가 됩니다. 눈웃음을 돌아보지 않고 육족六足1234)에 의지하여 본원으로 돌아오니, 다만 수십 명이 주미麈尾를 만지작거릴 따름이었습니다. 이에 병마를 빌미로 삼아 아직까지 풍파의 참상慘喪에 예의를 하지 못하였으니 송구함이 어찌 다하겠습니까. 진실로 바다 같은 도량을 바랄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존체尊體 평안하시고 교편敎鞭을 휘두르는 곳에 말없이(木訥) 고개를 끄덕이며 강송講頌할 때 면절綿蕞1235)하여 의례를 바치오며, 나머지는 예를 갖추지 못하고 줄이옵니다.
용운1236) 대종사 비음기글쓴이로 기록에 참여하였으므로 이 글을 사용하지 않음.1237)(龍雲大宗師碑陰記書名叅記。故不用此文。)
음과 양의 줄고 늚은 천지의 이치이고 불행과 행복1238)의 쇠하고 성함은 인도人道의 운수이다. 화상께서 중창한 공업1239)과 충효도덕, 검소한 행장은 조 공趙公1240)의 필적에 갖추어 기재되어 있으니 덧붙이지 않는다. 이전 갑오년(1894)에 세운 비석이 견고하지 않아 새기지 못하고

012_0759_c_01L問宋司馬念齋喪配書

012_0759_c_02L
一自拜別四花開落毘嵐所擊天柱
012_0759_c_03L先崩刼波所蕩內室更頽兒孫之無
012_0759_c_04L已無可診而况尊候之動駕於異域
012_0759_c_05L者乎揮長鞭而驅萬類之狐蹤着短褐
012_0759_c_06L而期一身龜齡曾守無敢之戒今聞剗
012_0759_c_07L草之諾嗚呼盡是昔年司馬客誰知
012_0759_c_08L今日驅烏君長胤旣入日京已過四年
012_0759_c_09L次胤未知所住三胤想在膝下爲之涓
012_0759_c_10L涓處也拙生移桐之明年偶因風濕
012_0759_c_11L一足之重一脛之大幾如腰矣二十
012_0759_c_12L個月在床叫楚萬般治療不得差快
012_0759_c_13L昨秋偶有本院之請亦爲學科之所艱
012_0759_c_14L不顧目笑賴六足而還本但以十數輩
012_0759_c_15L點麈而已這仍病魔爲祟尙闕風波慘
012_0759_c_16L喪之禮悚悶何極固當海量伏唯尊
012_0759_c_17L體萬康敎鞭振處木訥點頭講頌唱
012_0759_c_18L綿蕞獻儀餘唯不備

012_0759_c_19L

012_0759_c_20L龍雲大宗師碑陰記書名叅記
不用此文

012_0759_c_21L
陰陽之消長天地之理也丕泰之衰盛
012_0759_c_22L人道之運也若和尙之重剏功業忠孝
012_0759_c_23L道德節儉行李備載趙公之筆而不贅
012_0759_c_24L前甲午所剏之碑石不固而莫鎸

012_0760_a_01L다만 율암栗庵1241) 공公의 음기陰記만 기재하였기에 항상 탄식한 지 오래되었다. 다행히 갑자년(1924) 봄에 문손門孫 영우靈佑 등이 혈심血心으로 남포藍浦1242)에서 바위를 잘라 와서 이전의 명銘을 기재하였다. 거울 같은 표면의 비단 같은 송가는 옥쟁반에 진주를 흩뿌린 듯하여, 화상의 진의眞儀(모습)가 노룡老龍이 상서로운 구름에 오르는 듯하다. 이 어찌 살아 계시듯 느끼는 문손의 정성이 불행과 행복의 줄고 느는 가운데 특별히 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에 기록한다.
아사 조종현1243)에게 보내는 답서(答趙雅士鍾鉉書)
엎드려 생각건대 빈도貧道는 왕대인王大人(조부)의 문에 발을 들여놓아, 한 말씀 하사하시어 서신書紳1244)의 훈계로 삼기를 바랐는데 다만 아끼고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음으로 대인大人(부친)의 처마에서 구했는데 역시 얻지 못하고 물러나니, 슬퍼함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상원上元의 초여름에 몇몇(三三) 개사開士들이 즐거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형체 바깥의 친분1245)이 있는 듯이 산중으로 방문하셨습니다. 게을리 응하고 느긋하게 접대하다 보니 왕년에 뵈었던 한곡閒谷 고 왕존장王尊長(조부)의 영손令孫인 조趙 학사學士셨습니다. 그래서 공경히 하례하고 정성껏 대했으나 결국 이포伊蒲1246)의 만남을 하지 못하고 다만 관람의 바람만 부응하니, 즉 도 군陶君1247)이 말한 바, “산속에 무엇이 있나, 고개 위에 흰 구름 많도다. 그저 절로 기뻐할 뿐, 그대에게 주지 못하네.”라는 구절을 틈나는 대로 읊기를 마치고 그럭저럭 지나갔습니다. 재미를 깨닫기도 전에 갑자기 사문沙門(승려)을 전별電別1248)하니 옥대 풀어 산에 머무는1249) 자취를 얻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지금 뜻밖에 한 통 편지(郵凾)가 누추한 문에 날아 떨어지기에, 바삐 펼쳐 읽어 보니 기쁨이 먼저 눈썹을 솟구치게 하고 거듭(圭復)1250) 완미하다 보니 바야흐로 종이 보풀이 일어납니다. 어떤 편지(咸狀)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것인가요? 이에 책을 덮고 탄식하길, “구하면 필시 얻으리니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고,

012_0760_a_01L但載栗庵公陰記而常所嘆惜者久矣
012_0760_a_02L幸甲子春門孫靈佑等血心斫石於藍
012_0760_a_03L芿載前銘鏡面錦頌如玉盤之撒
012_0760_a_04L眞珠和尙眞儀若老龍之騰瑞雲
012_0760_a_05L豈非門孫之誠如存之感特出於丕泰
012_0760_a_06L消長之中也哉余於是乎記之

012_0760_a_07L

012_0760_a_08L答趙雅士鍾鉉書

012_0760_a_09L
伏以貧道曾躡足於王大人之門願賜
012_0760_a_10L一言爲書紳之戒而但愛之不肯許
012_0760_a_11L次索於大人之軒而亦不能得而退之
012_0760_a_12L悵然久矣忽於上元之初夏有三三開
012_0760_a_13L欣欣然飄飄然若有知舊於形外
012_0760_a_14L叩推於山中倦然而應悠然而接
012_0760_a_15L徃年所陪叅閒谷故王尊長之令孫趙
012_0760_a_16L學士也雖敬賀而禮歎之卒未能伊蒲
012_0760_a_17L之遇而只副觀覽之願卽陶君所謂山
012_0760_a_18L中何所有嶺上多白雲只可自怡悅
012_0760_a_19L不堪持贈君之句隨暇唱罷因循放過
012_0760_a_20L不覺滋味倐忽電別於沙門恨未得玉
012_0760_a_21L帶鎭山之績矣以今料表一朶郵凾
012_0760_a_22L飛落陋扄忙手披讀喜先聳眉圭復
012_0760_a_23L玩味方覺紙毛何等感狀從天墮地耶
012_0760_a_24L乃掩卷而嘆曰有求必得如影隨形

012_0760_b_01L바라면 필시 이루어지리니 메아리가 소리를 전함과 같다고 하더니 진실로 의심할 게 없구나. 왕년에 구하다가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 문득 한 통 편지(琅凾)가 삼교三敎(유불선)의 깊은 의미를 다했으니, 가히 산과 바다에 가지 않고도 보물을 얻는다는 말이 정녕 거짓이 아니로다. 어찌 왕년에 구한 정성이 오늘 얻은 효험에 그윽이 부합함이 아니리오. 이미 삼교의 뜻을 받았으니 삼교의 이치로 답변하지 않을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부처의 인연과 노자의 자연과 공자의 강상綱常은 그 도가 오래되었고 그 이치가 현묘하여 서로 의지함이 솥이 세 발로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떨어지지 못함은 이자伊字1251)의 점과 같으니, 이름은 비록 셋이지만 근원은 하나입니다. 한나라와 당나라 이후로 지금까지 성하거나 쇠함이 강상의 치란 여하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강상이 한 번 어지러워지면 자연의 도와 인연의 법이 그 사이에서 어떻게 행해지겠습니까. 현재 동서에 세파가 비등하고 상하에 강상이 문란하여 사람들이 각기 자유하고 사물이 각기 자임하여 옷이 그 옷이 아니고 음식이 그 음식이 아니며 행동이 그 도리가 아니고 앉음이 그 자리가 아니거늘 아침저녁으로 평화로운 정치를 어찌 기대하겠습니까. 다만 각자 본지本地를 세우고 각자 본심을 편안히 하여 임시방책을 따라 실제를 취하고 때에 맞게 진심(眞)을 지키면 삼교의 진리가 허공 뼈 사이에 갈무리되어 자재自在함으로써 사라지지 않고, 기회를 기다려 인연에 따라 일어서 자연히 서게 될 것입니다. 강상이 됨을 어찌 정돈하지 않고 얻겠습니까. 서로 의지하며 떨어지지 못하고 솥의 발이나 이자 같다는 것이 이러합니다.
필로筆路가 막혀서 길게 제시하지 못하니 일단 이와 같을 뿐입니다.
용운 선사의 비를 세우는 제문갑자년(1924) 9월 29일에 세움.(龍雲禪師立碑祭文甲子九月二十九日立)

012_0760_b_01L有願必遂如響傳聲信無疑歟徃年
012_0760_b_02L欲求而未果今忽一𨋀琅凾說盡三敎
012_0760_b_03L之幽趣可謂不山不海而得寶者正不
012_0760_b_04L誣也豈非徃年求之之誠暗符今日
012_0760_b_05L得之之効乎旣荷三敎之趣不可不以
012_0760_b_06L三敎之理答之佛之因緣老之自
012_0760_b_07L孔之綱常其道古遠其理玄妙
012_0760_b_08L相資也如鼎足之立其不離也如伊
012_0760_b_09L字之點名雖有三其源則一也自漢
012_0760_b_10L唐以今或盛或衰唯關於綱常之治亂
012_0760_b_11L如何也綱常一亂自然之道因緣之
012_0760_b_12L安行於其間哉現今世波沸騰於東
012_0760_b_13L西綱常紋亂於上下人各自由物各
012_0760_b_14L自任衣不其衣食不其食行不其道
012_0760_b_15L坐不其席安期治平於朝暮乎哉
012_0760_b_16L各立本地各安本心從權取實順時
012_0760_b_17L守眞則三敎之眞理藏在於虛空骨中
012_0760_b_18L自在不滅第待際會因緣而起自然
012_0760_b_19L而立其爲綱常者何不整而得乎
012_0760_b_20L謂相資不離如鼎足伊字者是也筆路
012_0760_b_21L茅塞未能長提而姑如是已已

012_0760_b_22L

012_0760_b_23L龍雲禪師立碑祭文甲子九月二十九
012_0760_b_24L日立

012_0760_c_01L
교팔도규정승풍敎八道糾正僧風 도승통都僧統 부종수교扶宗樹敎 전불심인傳佛心印 선교양종禪敎兩宗 도총섭都摠攝 중창 대공덕주重剏大功德主 고故 용운龍雲 대종사大宗師 존령尊靈이시여.

정법淨法 세계의 몸은, 본래 출몰이 없으나
큰 자비원력으로, 왕래를 두었네.
화장세계1252) 옮기지 않고, 사바세계에 그림자 떨어지니
이씨(仙李)1253) 귀족으로, 효령대군파 후손이라
태백太白1254)의 옛 영령과, 통명산1255)의 성스런 계파로
용계촌에 뿌리를 서리고, 조계산에서 잎이 무성했도다.
일곱 사찰을 중창하고, 팔도(八垓)를 바로잡으며1256)
교종을 일으켜 세우고,1257) 중생을 제도하여
기율을 통제하고, 승단 풍속을 호령하니
사람 가운데 용과 코끼리요, 허공 속의 구름 무지개라
교화 인연이 다하자, 힘든 생이 어두워졌네.
후손 대중들이, 그 공덕을 추모하여
바위 잘라 세우고, 옥을 다듬어 명銘을 새기니
구슬을 은쟁반에 뿌린 듯, 용이 구름 장벽에 오르는 듯
푸른 벽이 높이 서니, 처음을 밝히고 결과를 요약했네.
이에 다과를 갖추어, 존영(尊幌)에 바치고
삼가 소밀酥蜜1258)을 따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개운산 동화사 선당의 중창 상량문11월 16일(開雲山桐華寺禪堂重剏上樑文十一月十六日)
서술하노니, 악주樂州의 옛 현에 의거하다가 순천이라는 새 부府에 속하여, 별자리로는 각항角亢의 분야요, 지역으로는 패영貝瀛의 마을1259)을 접하도다. 악주의 동쪽에 ‘개운산’이 있고, 산 아래에 ‘동화사’가 있다. 처음을 돌아보면, 고려 선종 3년(1086)에 대각국사(大覺國老)가 보방寶坊(절)에 주석하였다. 그 중수를 고찰하면 명나라 숭정崇禎 기해년(1659)에 법홍法弘 선사가 정찰淨刹(절)에서 결사하여 규정癸丁1260)으로 방향을 잡고 임금과 신하의 고저를 정하며, 을신乙辛1261)을 당겨 옷깃과 소매로 주인과 손의 차례를 자리 나누었다. 각황씨覺皇氏(부처)가 선당禪堂과 승당僧堂을 둔 것은

012_0760_c_01L
敎八道糾正僧風都僧統扶宗樹敎傳佛
012_0760_c_02L心印禪敎兩宗都摠攝重剏大功德主故
012_0760_c_03L龍雲大宗師尊靈淨法界身本無出沒
012_0760_c_04L大悲願力以有去來不移華藏影落
012_0760_c_05L娑婆仙李貴族孝寧遠裔太白古靈
012_0760_c_06L通明聖系根蟠龍溪葉繁曹溪重剏
012_0760_c_07L七寺糾正八垓扶樹敎宗度濟群迷
012_0760_c_08L統制綱紀號令僧風人中龍象空裡
012_0760_c_09L雲虹化緣旣息勞生將矇雲仍大衆
012_0760_c_10L追慕厥功斫石爲趺磨玉勒銘珠撒
012_0760_c_11L銀盤龍騰雲屛高撑翠壁原始要終
012_0760_c_12L爰設茶菓庸獻尊幌謹酌酥蜜伏維
012_0760_c_13L尙享

012_0760_c_14L

012_0760_c_15L開雲山桐華寺禪堂重剏上樑文
012_0760_c_16L一月十六日

012_0760_c_17L
述曰據樂州之舊縣屬順天之新府
012_0760_c_18L列角亢之分野地接貝瀛之襟隣州之
012_0760_c_19L東有山曰開雲山山之下有寺曰桐華
012_0760_c_20L稽其剏始麗宣宗三年大覺國老
012_0760_c_21L之憇錫寶坊考厥重修明崇禎己亥
012_0760_c_22L法弘禪師之結社淨刹以癸丁而向背
012_0760_c_23L位定君臣之高低控乙辛而衿袂坐分
012_0760_c_24L主賓之倫次疑是覺皇氏有禪僧堂者

012_0761_a_01L어찌 대성전1262)에서 상재庠齋와 서재序齋1263) 명칭을 엶이 아니겠는가.
이제 건물들(殿宇)이 기울어지지 않음이 없지만 유독 선당이 가장 급히 무너졌다. 그러나 머리카락으로 바위를 운반하듯 일은 크고 힘은 모기만하니 어찌하랴. 터럭 모아 공을 만들듯 인연을 넓혀 재물을 모아 수많은 가옥에 권선(唱化)하고 선남선녀에게 인연을 구하였다. 그리하여 중양重陽(9월) 초에 시작하여 복양復陽(11월) 보름에 복궤覆簣1264)하였다. 그 규모를 보면, 기와들은 소탕하고 이전대로 기초를 두어 용마루와 서까래를 날라서 기둥들을 혁신하였다. 날을 정해 성취하였으니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도움이라. 불시에 공적을 고하게 되니 귀신의 도움이 아니런가. 이에 선당과 승당이 병렬하니 이지러진 달이 다시 원만하게 되고, 상재와 서재가 나뉘어 부러진 날개가 나아 활짝 펼친 듯하다. 용신이 이로써 환희하고, 산천이 이로써 빛을 더한다. 이에 긴 들보를 들어 짧은 노래를 부르노라.

東        동
日輪輾碧空    둥근 해가 푸른 하늘에 구르니
一色海天外    동일한 빛인 바다와 하늘 밖에
五雲彩發紅    오색구름이 붉음을 펼치누나

南        남
八影碧如藍    팔영산 푸름이 쪽빛 같고
老星朝暮現    노인성1265)이 아침저녁으로 보이니
佛壽後三三    불수佛壽는 후삼삼後三三1266)이라

西        서
雲開月欲低    개운산의 달이 지려 하는데
不知祖宗旨    조사의 종지를 모르겠거든
回首問曹溪    고개 돌려 조계산에 물어보라

北        북
樞星臨北極    추성樞星1267)이 북극에 임하니
何日天風和    언제나 하늘 바람이 조화로워
萬民蒙聖德    만민이 성덕을 입을까

上        상
天理在元亨    천리는 원형元亨1268)에 있어
乾乾終日行    부지런히(乾乾) 종일 행하니
一度又加向    한 번(度) 또 더하도다

下        하
溪舌談般若    시냇물이 반야를 말하노니
曲終人極歡    노래 끝나자 사람들이 환희하고
我亦倍秪夜    나도 기야秪夜(노래)를 더하도다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지혜 구름이 열려 달이 보이고 동백꽃(桐花)이 피어 향기 나기를. 청정한 납승은 비구와 사미를 막론하고 아침저녁으로 바다처럼 나아 오고, 돈독한 믿음의 단월檀越들은 선남선녀를 가리지 않고 멀거나 가깝거나 구름처럼 달려오리라.
송광사 심검당의 변혁에 관한 기문계해년(1923) 11월(松廣寺尋釰堂變革記癸亥十一月日)

012_0761_a_01L豈非大成殿開庠序齋名今者雖殿宇
012_0761_a_02L之非無頽斜唯禪堂之最急傾覆然而
012_0761_a_03L引髮運石奈事巨而力蚊結毛成毬
012_0761_a_04L必緣廣而財𩾥 [136] 唱化於千門萬戶求緣
012_0761_a_05L於信女善男濫觴於重陽之初 [137] 簣於
012_0761_a_06L復陽之望其制度也掃蕩瓦礫依舊
012_0761_a_07L安礎運輸棟椽革新列柱克日成就
012_0761_a_08L非人力而天陰不時吿功倘鬼扶而神
012_0761_a_09L於是禪僧并列如缺月之重圓
012_0761_a_10L序齊分似折翔之雙擧龍神以之歡喜
012_0761_a_11L山川以之增輝爰擧脩梁載唱短頌
012_0761_a_12L日輪輾碧空一色海天外五雲彩
012_0761_a_13L發紅八影碧如藍老星朝暮現
012_0761_a_14L壽後三三西雲開月欲低不知祖宗
012_0761_a_15L回首問曹溪樞星臨北極何日
012_0761_a_16L天風和萬民蒙聖德天理在元亨
012_0761_a_17L乾乾終日行一度又加向溪舌談
012_0761_a_18L般若曲終人極歡我亦倍秪夜伏願
012_0761_a_19L上樑之後慧雲開而見月桐花發而聞
012_0761_a_20L淸淨衲僧無論比丘沙彌而朝暮
012_0761_a_21L海進敦信檀越不問信男善女而遐
012_0761_a_22L邇雲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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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1_a_24L松廣寺尋釰堂變革記癸亥十一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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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세계의 장엄한 수용受用1269)이 각기 다르고 사바세계 의정依正1270)의 청정과 더러움이 절로 다르니 까닭은 무엇인가. 종찰種刹1271)의 같지 않음과 보화報化1272)의 좋고 나쁨, 몸과 국토의 거칠고 섬세함, 시기와 군주의 변천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아도 절로 그렇게 되니 어찌 괴이하겠는가.
이제 본사 사무실은 창건 연대를 고찰하지는 못하고, 건륭乾隆 10년 을축(1745) 동지 영조 21년에 본래 심검당尋釰堂으로 명명해서 납승들이 쉴 수 있는 승당으로 삼았다고 하며, 몇백 년 동안 그대로 안도할 따름이었다. 도광道光 임인년(1842)에 이르러 큰 화재(回祿) 이후에 33전殿을 보수할 겨를이 없어서 33탱화를 그렇게 그 당堂에 걸었으니 이리하여 즉 승당이 조당祖堂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69년 지나 경술년(1910) 봄에 풍조를 혁신함에 따라 학교를 이 당堂에 설치하고 조사들 탱화를 동쪽 방장으로 이안하니,1273) 이리하여 조당이 학당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13년 지난 계해년(1923) 겨울에 일층 개혁하여 대청 벽을 없애 버리고 부엌 굴뚝을 넓게 수리하고 문달門闥(문)을 유리 거울로 장식하고 관추關樞(돌쩌귀)를 은과 옥으로 감쌌다. 기둥을 칠하고 벽에 무늬를 넣어 일본 동경의 채색(灰彩)을 바르고, 복도를 깔고 문을 수놓아 서양 방식의 기술로 분칠을 했다. 쌓고 수선을 마치고는 사무실로 정하고 학교를 면 소재지로 옮겼다. 이리하여 학당이 공실公室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한즉 승려가 조사가 된 것은 실로 납승으로서 변하여 성인의 지위를 이룬 것이니 괴이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학당이 변하여 공실이 되었으니 즉 인간세계에서 배움으로 말미암아 도로 들어가는 과정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학문의 업은 이로 말미암아 더욱 소홀해지고 수도의 인연은 이로 말미암아 더욱 어두워졌다. 사람들의 지혜가 어두워지지 않으려 하나

012_0761_b_01L

012_0761_b_02L
華藏莊嚴之受用各異娑婆依正之淨
012_0761_b_03L穢自殊其故何也職由種刹之不同
012_0761_b_04L報化之勝劣身土之麁細時主之遷變
012_0761_b_05L故也不欲然而自然烏可恠哉今本
012_0761_b_06L寺事務室者未考剏始年代而乾隆十
012_0761_b_07L年乙丑至冬英宗二十一年本以尋釰
012_0761_b_08L堂命名爲衲僧捿息之僧堂云幾百
012_0761_b_09L年依舊安堵而已矣迄道光壬寅大回
012_0761_b_10L祿後卅三殿未暇建修故卅三幀
012_0761_b_11L掛其堂是卽僧堂變爲祖堂也越六
012_0761_b_12L十九年庚戌春因風潮之革新設學校
012_0761_b_13L於玆堂祖幀移安于東方丈是乃祖堂
012_0761_b_14L變爲學堂也又十三年癸亥冬一層改
012_0761_b_15L而蕩破廳壁洞治竈堗粧門撻 [138]
012_0761_b_16L琉璃之鏡鎻關樞以銀玉之寶漆棟紋
012_0761_b_17L塗糊日京之灰彩棧道繡闥粉點
012_0761_b_18L洋制之工技築着而修繕了以定事務
012_0761_b_19L移學校于本面所是亦學堂變爲
012_0761_b_20L公室也然則僧變爲祖實是衲僧之革
012_0761_b_21L凡成聖之位次容或無恠也而至若學
012_0761_b_22L變設公卽乃人界之由學入道之階
012_0761_b_23L果安在乎學問之業由是而益踈
012_0761_b_24L修道之緣由是而尤昧人智之不欲昧

012_0761_c_01L어찌 가능하겠는가.
산승 인봉印峯 장로가 재물(貨泉)이 고갈되는 것을 생각하고는 자기 재물 70원圓을 덜어서 일부 재물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다. 비록 큰 창고의 곡식 한 알과 같다 하더라도 태산을 이루는 흙 한 덩어리가 됨을 어찌 사양하겠는가. 이에 이 당堂이 이처럼 변했음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이노라.
송광사 천자암 중수기11월 3일松廣寺天子庵重修記十一月三日
하룻밤에 이루는 것은 거미의 그물이요 열흘에 버리는 것은 누에의 고치이며 6개월에 옮기는 것은 제비의 둥지(窠)요 10개월에 빼앗는 것은 까치의 집(巢)이며 백 년 동안 전하는 것은 사람의 집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경영할 때는 뱃속에서 꺼내어 그물을 엮거나 실을 토하여 고치를 얽거나 진흙을 다져서 집을 짓거나 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는데, 곤충과 새들의 일이 길고 짧음과 솜씨 있고 서툶이 조금 다르지만, 지어서 안거하는 방책이 어찌 사람과 다르겠는가.
이 암자는 옛 기록을 살펴보니, 보조국사께서 본사를 창건한 후에 이어서 지은 것이며 금나라 황제가 셋째 아들 담당湛堂을 보내 머물게 하였기 때문에 존귀한 편액을 걸었던 것이다. 351년 지나 명나라 만력萬曆 원년 계유년(1573)에 영묵 태운靈默太雲이 중수重修하였고 또 201년 지나 청나라 옹정雍正 8년 경술년(1730)에 자원 이제自願以濟가 중수하였고, 다시 67년 지나 가경嘉慶 2년 정사년(1797)에 두월斗月 장로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제 131년이 되는 대정大正 13년 갑자년(1924) 겨울에 삼림을 내어(出賚森林) 이설월李雪月1274)이 시작하고 김율암金栗庵1275)이 지키는 근간이 되며 해은 재선海隱栽善1276)이 일을 감독하고, 포봉 정인抱鳳正印이 재물을 주관하여

012_0761_c_01L而焉可得乎有山之釋印峯長老顧念
012_0761_c_02L貨泉之枯渴捐家貲七十圓庶補一隅
012_0761_c_03L之資雖云如太倉之一粟何辭泰山之
012_0761_c_04L一壤也哉於是乎記此堂之如是變革
012_0761_c_05L以示于後

012_0761_c_06L

012_0761_c_07L松廣寺天子庵重修記十一月三日

012_0761_c_08L
一夜而成者蛛之網也十日而棄者
012_0761_c_09L蠶之繭也六月而移者燕之窠也
012_0761_c_10L月而奪者鵲之巢也百年而傳者
012_0761_c_11L之室也然而方其營也或抽腸而結網
012_0761_c_12L或吐絲而纒繭或搏泥而築窠或含枝
012_0761_c_13L而作巢雖昆虫微禽之修短巧拙小殊
012_0761_c_14L其所營搆安居之策何異於人也哉
012_0761_c_15L庵者考諸古記國師剏本寺之後
012_0761_c_16L而營建者而且使金帝第三子湛堂始
012_0761_c_17L居之故揭以尊扁者也越三百五十一
012_0761_c_18L明萬曆元年癸酉靈默太雲重修
012_0761_c_19L又距二百一年淸雍正八年庚戌自願
012_0761_c_20L以濟重修又越六十七年嘉慶二年丁
012_0761_c_21L斗月長老重修云迄今一百三十一
012_0761_c_22L大正十三年甲子冬出賚森林
012_0761_c_23L雪月爲始發之囮金栗庵作仍守之幹
012_0761_c_24L海隱栽善督其役抱鳳正印幹其財

012_0762_a_01L9월 초에 시작해서 두 달이 되지 않아 일을 마쳤다. 이것이 네 번째 중수에 해당한다.
암자에는 쌍향수雙香樹1277)가 성스런 자취의 영험함을 보이며 암자 동무東廡에 있다. 1칸 조실과 연결하여 향나무 아래 봉향奉香하는 곳으로 삼은 지가 몇 년 되었다. 그러나 굴뚝이 여전히 가까워서 식자識者들의 꺼리는 바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동무를 허물고 조실을 전각 앞으로 옮겨 후원에 서까래 더한 것을 제거하고 무너진 것은 지탱하고 기운 것은 바로잡으며, 썩은 것은 뽑아 버리고 낮은 것은 높게 하였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창건한 본전이 완전하게 우뚝 서서 찬란히 빛나며 아스라이 훌쩍 구름 하늘 밖으로 멀리 벗어난 듯하고 쌍향수의 상서로운 향기가 칠요七曜1278)의 궁전까지 퍼지는(浮動) 듯하며, 만홀萬笏 청산1279)이 삼보의 탑에 인사를 하는 듯하다.
아아, 천 년이 되지 못하는 사이에 창건하고 중수하여 겁파刼波를 몇 번이나 지났도다. 오늘 중수한 이는 창건한 이가 거듭 나타난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옛날 창건한 이는 오늘 중수함의 발원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백 년을 말미암아 전하였으니 그물이나 고치ㆍ둥지ㆍ집(巢)에 비교하면 길고 짧은 것이 다르지만 짓는 것은 동일하다. 이전과 이전의 수리한 것을 기록하여 뒤와 뒤에서 잇는 무리들에게 보이노니, 여기에 머무는 이들은 절실하게 힘쓸지어다.
조계산 송광사 용화당의 중수 상량문12월 8일(曹溪山松廣寺龍華堂重修上樑文十二月八日)
공경히 생각건대, 도솔천(兜率陀) 내원궁內院宮은 원래 삼재三災1280)의 이뤄지고 머물고 무너지고 없어짐이 없는데 염부제閻浮提(이승) 가운데 인도印度엔 팔난八難1281)의 괴로움과 즐거움ㆍ성함과 쇠함이 어찌 많은가. 석존의 임시 형체가 스스로 코끼리를 타고 와 학수鶴樹1282)의 모습을 드러내심이 아닌가. 자씨慈氏(미륵)의 복력福力으로

012_0762_a_01L自九月初始役不兩月而覆簣此卽第
012_0762_a_02L四重修也庵以雙香樹爲聖蹟之靈異
012_0762_a_03L在庵之東廡聯結一間祖室使得香樹
012_0762_a_04L下奉香之室以來有年矣然烟堗尙逼
012_0762_a_05L常爲知識之所忌故今壞其廡而移祖
012_0762_a_06L室於殿前拔後院之加椽頽者撑之
012_0762_a_07L猗者正之杇者拔而低者高之唯以最
012_0762_a_08L剏本殿完而突立輪焉奐焉嵬嵬然
012_0762_a_09L翼翼然逈出雲宵之表雙香瑞氣
012_0762_a_10L動於七曜之宮萬笏靑山拱揖於三寶
012_0762_a_11L之塌嗚呼未滿千年之內剏之修之
012_0762_a_12L幾經刼波也今日修之者安知非剏者
012_0762_a_13L之重現昔日剏之者安知非今日修
012_0762_a_14L之之發願也由是百年而傳之者較諸
012_0762_a_15L網之繭之窠之巢之者修短雖殊營搆
012_0762_a_16L則一也所以記前前之修葺以示後後
012_0762_a_17L繼繕之徒居乎此者切須勉旃

012_0762_a_18L

012_0762_a_19L曹溪山松廣寺龍華堂重修上樑文
012_0762_a_20L十二月八日

012_0762_a_21L
恭唯兜率陀內院宮原無三災之成住
012_0762_a_22L壞空閻浮提中印度何多八難之苦樂
012_0762_a_23L盛衰疑是釋尊之權形自現象駕鶴樹
012_0762_a_24L之物色莫非慈氏之福力必待獜瑞龍

012_0762_b_01L기린의 상서로움과 용화龍華1283)의 풍광을 기다림이 아닐 수 없다. 겁운刼運1284)의 순환을 누가 피하리오, 이치의 왕복이 가장 두렵도다.
이 송광사는 도솔천의 아래 염부제의 동쪽 모퉁이에 있다. 나라로 나라를 보자면 근역槿域 3천 리에 큰 길상吉祥의 복지요, 고을에서 고을로 이르자면 바닷가(桑海) 3백 고을의 작은 강남 별천지로다. 우리 혜린慧璘1285) 조사가 창건하시고 보조 노스님이 확장하셨도다. 법신은 소멸하지 않으니 사자좌가 설법전에 우뚝하고, 지혜의 눈이 길이 밝으니 용화회龍華會1286)가 법계도法界圖 위에 엄숙하도다. 나무 매1287)와 잎사귀 호랑이의 신이한 변화를 듣자 하니 위사韋史1288)의 필담에 기재되어 있고, 향나무 매화 아이1289)의 괴이함을 보자 하니 연천淵泉1290)이 유람하여 과장하였도다. 지팡이 던져 나무로 자라남은 부석사의 선비화仙扉花에서 증명되고,1291) 먹은 것을 토해 물고기 됨은 또한 원효(元翁)의 오어사吾魚寺에서 징험되었도다.1292) 기타 오묘한 술법이 어찌 허탄하다 하리오.
이제 이 용화당은 시초를 고찰할 수 없어 옛 자취에 어둡고, 주먹 펴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누가 이전 인연을 고하리오.1293) 들보 뒤와 기와 머리에 다만 ‘홍치弘治 3년(1490)에 미륵전을 조성했다’는 글자만 보이고, 지면에 용화당을 언제 지었다는 기원紀元의 말이 없다. 그러나 현재 건물 전신을 보노라면 고황에 든 중병이 통탄스럽다. 옆으로 바람과 위로 비가 들이치고 박쥐들이 낮에 침입함을 더욱 미워하고, 좌로 기울고 우로 스러져 족제비가 밤에 울어 댐을 어이하리오. 어찌 다만 거처하는 승려들의 얼굴만 붉어지겠는가, 실로 부끄럽게도 유람하는 선비들의 마음도 한심스러워했도다. 이로 말미암아 대중의 좋은 계책을 모아 비상하고 신이한 처방을 헤아려서, 진주알과 유리 부스러기는 토산이 아니니 생각하지 말고 백미탕白米湯과 황금방黃金方은 있는 대로 더욱 힘썼네.
이에 바람 도끼와 달 도끼로 장석匠石의 지휘 아래 분분히 휘두르고, 산악 신과 개울 영령이 비구(苾蒭)의 혀 아래 명령을 듣네. 들보와 기둥을 뒤섞으니

012_0762_b_01L華之風光誰免刼運之循環最畏理數
012_0762_b_02L之徃復唯玆松廣寺者兜率陀之下院
012_0762_b_03L閻浮提之東陲以國觀國兮槿域三千
012_0762_b_04L大吉祥之福地從鄕至鄕也桑海
012_0762_b_05L三百州小江南之別區毉我慧璘祖之
012_0762_b_06L剏占普照老之大闢法身不滅獅子
012_0762_b_07L座嵬嵬於說法殿中慧目長明龍華會
012_0762_b_08L儼儼乎法界圖上聞諸木鷹葉虎之神
012_0762_b_09L說盡韋史之筆談觀彼香樹梅童之
012_0762_b_10L恠奇誇張淵泉之遊步杖投生幻樹
012_0762_b_11L旣證於浮石之仙扉花食吐化爲魚
012_0762_b_12L驗於元翁之吾魚寺其餘妙術何歸誕
012_0762_b_13L今玆堂者未考濫觴自昧舊蹟
012_0762_b_14L悟申拳誰吿前因樑背瓦頭只見弘
012_0762_b_15L治三年彌勒殿成造之字紙面筆舌
012_0762_b_16L無紀元何日龍華堂剏修之言然而現
012_0762_b_17L觀堂殿之全身方痛膏肓之重病傍風
012_0762_b_18L上雨堪憎蝙蝠之晝侵左傾右斜
012_0762_b_19L奈鼯鼬之夜叫奚但居僧之赤面實愧
012_0762_b_20L遊士之寒心由是而集大衆之良謀
012_0762_b_21L非常之神劑眞珠丸琉璃散非土產而
012_0762_b_22L莫論白米湯黃金方隨所有而益辦
012_0762_b_23L肆以風斤月斧紛揮於匠石之指頭
012_0762_b_24L神澗靈聽令於苾蒭之舌底杗楹錯落

012_0762_c_01L모습이 진나라 채찍1294)의 바람을 전하는 듯하고, 여러 북을 울리니 소리가 범패 음률을 울리도다. 자(䂓矩)와 먹줄(繩墨)로 고래와 미꾸라지의 꼬리와 머리에 줄을 긋고, 도끼와 칼을 갈아서 용과 봉황의 콧구멍을 잘라 새기도다. 저것을 자르고 이것을 끊으니 모두 헤아리는 목수의 재간이요, 톱의 꼬리와 도끼의 머리가 결묵結墨1295)의 제작에 부응하네. 기둥과 들보, 도리 등이 줄 맞춰 종횡으로 자리 잡고, 서까래와 문빗장 등을 차례대로 다듬어서 잘라 내네. 이에 보니, 병丙1296)을 등지고 임壬1297)을 향해 삼재의 재앙을 제압하고, 오른쪽 갑甲1298)과 왼쪽 경庚1299)으로 또한 칠살七殺1300)의 장애를 진압하네. 사방의 노을 지는 산들은 술해戌亥1301)의 입구에 다투어 모이고, 백 리의 은빛 강물은 축인丑寅1302)의 바다 입구로 다투어 달려가네. 이에 눈빛 재목(雪材)의 노을빛이 인초忍草의 향풍에 떠 움직이고, 무늬 초석(紋礎)의 태양빛이 보림寶林1303)의 서리 달을 비추었다. 금옥의 끈들이 천 길 구름사다리에 걸려 있고, 구름 노인과 원숭이 손자가 7리里 금지金地에서 기뻐 뛰누나.
난亂1304)은 다음과 같다.

而已       그만이로다
魯一變而至於道  노나라가 한 번 변하면 도에 이름을
慣聞娑婆穢土   사바세계 예토穢土에서 익숙히 들었으니
三變爲諸佛淨宮  세 번 변하면 제불諸佛의 정궁淨宮이 될 텐데,
魯還變而返於齊  노나라가 도리어 변하여 제나라로 돌이키니
誰知彌勒樓閣   미륵의 누각이 세 번 변하여
三變爲縉紳旅舘  관리들의 여관이 될지 뉘 알았으리

이에 육위六偉1305)의 긴 노래를 울리고 7결闋의 짧은 명銘을 짓노라. 가사는 다음과 같다.

阿郞偉拋梁東   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져라
稽首慈陰十八公  자음당1306) 18공께 머리 조아리고
欲請三師爲證眼  세 스님을 증안證眼으로 청하려 하는데
却逢行解普賢童  문득 행해당1307)에서 보현동자1308) 만나네

南        남
丙丁峯高曰有庵  병정봉1309) 높이 암자가 있으니
百城知識要相見  온갖 성城의 지식인들을 보고자
善財拈香次第叅  선재가 향을 들고 차례로 참례하네

西        서
峰如帝宇壓曹溪  황제 같은 봉우리1310)는 조계를 압도하여
花花草草皆禪話  꽃마다 풀마다 모두 선을 말하는데
黃老底緣問木犀  황노黃老는 어이타 목서木犀를 묻는가1311)

北        북
梵鐘樓接大藏閾  범종루가 장경각 영역에 인접하고
先刼道成今尙空  선겁에 도를 이루어 지금 여전히 공하니
石泉印月待彌勒  석천1312)에 비친 달은 미륵을 기다리누나

上        상
兜率宮中開錦帳  도솔천 궁의 비단 휘장을 열어

012_0762_c_01L影轉秦鞭之風鼛鼓騰撞聲動梵唄之
012_0762_c_02L䂓矩繩墨點尺鯨鰌之尾頭揩礱
012_0762_c_03L釿刀斫刻龍鳳之鼻孔截於彼斷於
012_0762_c_04L都料杍之幹能鉅之尾斧之頭
012_0762_c_05L結墨之裁制柱㭼檁㭿枅梲依行列
012_0762_c_06L而安立縱橫桷棍槾楗榱椽從次第
012_0762_c_07L而磨鍊斫削乃觀背丙而向壬可壓三
012_0762_c_08L災之餘殃右甲而左庚亦鎭七殺之宿
012_0762_c_09L四圍霞嶂爭聚戌亥之閈門百里
012_0762_c_10L銀江競奔丑寅之海口於是雪材霞色
012_0762_c_11L浮動於忍草之香風紋礎日光暉映
012_0762_c_12L於寶林之霜月金繩玉索揭揚於千仞
012_0762_c_13L雲梯雲叟猿孫抃躍於七里金地
012_0762_c_14L曰而已魯一變而至於道慣聞娑婆穢
012_0762_c_15L三變爲諸佛淨宮魯還變而返於
012_0762_c_16L誰知彌勒樓閣三變爲縉紳旅舘
012_0762_c_17L爰騰六偉之長唱載綴七闋之短銘
012_0762_c_18L阿郞偉拋梁東稽首慈陰十八公
012_0762_c_19L欲請三師爲證眼却逢行解普賢童
012_0762_c_20L丙丁峯高曰有庵百城知識要相見
012_0762_c_21L財拈香次第叅西峰如帝宇壓曹溪
012_0762_c_22L花花草草皆禪話黃老底緣問木犀
012_0762_c_23L梵鐘樓接大藏閾先刼道成今尙空
012_0762_c_24L泉印月待彌勒兜率宮中開錦帳

012_0763_a_01L龍華何日見慈氏  언제 용화수 자씨(미륵)를 뵈려나
帝網重重分角亢  제망帝網1313)이 중중무진으로 각항角亢에 나뉘었네

下        하
大地茫茫唯一指  망망한 대지는 오직 손가락 하나1314)
上堂禪子帶刀眠  상당上堂 선자禪子1315)가 칼 차고 자니1316)
蜂房何人非結社  승방의 누군들 결사를 하지 않으랴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 올린 후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이 조계의 물에 씻겨나가고 십마백장十魔百障1317)이 길상吉祥의 바람에 흩날려 가게 하소서. 자씨慈氏(미륵) 궁중의 모든 상선인上善人들이 용화당에 운집하고, 석존 집안의 청정한 법중法衆들이 사자좌 앞에 바다처럼 모이게 하소서.
조계산 송광사 화엄전, 불조전의 석축과 노전1318) 중창기(曹溪山松廣寺華嚴佛祖兩殿石築爐殿重剏記)
삼변정토三變淨土1319)에 대해 일찍이 취령鷲嶺의 지극한 말씀을 들었고 오취잡거五趣襍居1320)에 대해 또한 나계천주螺䯻天主1321)에게 들었다. 그러므로 정토와 예토가 달리 변하고 무너짐과 이뤄짐이 절로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두 불전 앞에 2각閣과 1루樓가 있으니 월조각月照閣ㆍ명성각明星閣과 화장루華藏樓이다. 옛 기록을 살펴보니, 우리 왕조 인조 11년 계유년(1633)에 성性ㆍ현玄 두 스님이 법우法宇(사찰)를 창건하고 경판을 보관하였고, 겸하여 월조각을 창건하셨다. 숙종 10년 갑자년(1684)에 득오得悟 상인이 불조 석상을 만들었으니, 불전을 지은 것은 아마도 선천先天1322)이리라. 15년 지나 기사년(1689)1323)에 우계 전익友溪雋益1324)이 명성각과 화장루를 창건하였고, 영조 4년 무신년(1728) 가을에 춘선春善 장로가 화엄전 동서 협실과 정문을 보수하였다. 순조 원년(1800)에 윤수允修 도감都監1325)이 화엄전을 중수하였고, 철종 12년 신유년(1861)에 용운龍雲1326) 선사가 화장루를 세 번째 중수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3백 년이 되지 않아서 거듭 수리를 하였는데, 지금 허물어진 것은 운수이니 어찌할 것인가.
을축년(1925)에 주지 율암 찬의栗庵贊儀1327)

012_0763_a_01L龍華何日見慈氏帝網重重分角亢
012_0763_a_02L大地茫茫唯一指上堂禪子帶刀眠
012_0763_a_03L房何人非結社伏願上梁之後三災八
012_0763_a_04L蕩滌於曹溪之水十魔百障飛颺
012_0763_a_05L於吉祥之風慈氏宮中諸上善人
012_0763_a_06L集於龍華堂上釋尊家裡淸淨法衆
012_0763_a_07L海會於獅子座前

012_0763_a_08L

012_0763_a_09L曹溪山松廣寺華嚴佛祖兩殿石築
012_0763_a_10L爐殿重剏記

012_0763_a_11L
若曰三變淨土曾見鷲嶺極談五趣襍
012_0763_a_12L亦聞螺䯻天主所以淨穢異變
012_0763_a_13L成自在今兩殿之前有二閣一樓
012_0763_a_14L月照曰明星曰華藏也按古記我朝
012_0763_a_15L仁祖十一年癸酉性玄二師剏法宇而
012_0763_a_16L藏經板兼剏月照閣肅宗十年甲子
012_0763_a_17L得悟上人造佛祖石像剏殿疑在先天
012_0763_a_18L越十五年己巳友溪雋益剏明星
012_0763_a_19L閣華藏樓英祖四年戊申秋春善長老
012_0763_a_20L華嚴殿東西夾室與正門修補純祖元
012_0763_a_21L允修都監華嚴殿重修哲宗十二
012_0763_a_22L年辛酉龍雲禪師華藏樓三重修云
012_0763_a_23L然則未滿三百年再經修葺而以今傾
012_0763_a_24L頽者理數之奈何歲乙丑住持栗庵贊

012_0763_b_01L동지들에게 중창을 약속하기를, “사원의 허물어짐이 이와 같을 수는 없다. 앉아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어찌 우리들의 직분이겠는가.”라고 하고는, 삼림을 베고 재물을 구하여 장인을 불러 일을 시작했다. 월조각을 허물고 북으로 옮겨(退北) 칠성전의 향각香閣으로 삼으니 이 전殿과 각閣은 김학모金學模1328) 공이 보시하여 세운 것이다. 명성각이 무너져 앞으로 옮겨(退前) 두 전殿의 향사香社로 삼고, 화장루가 무너져 중앙에 세우니 세 전의 정문이 되었으며, 밖으로 사방 담장을 두르니 안으로 천 명을 수용할 만큼 규모가 널찍하고 담 안(序闥)이 밝았다. 이는 삼림을 방매한 비용으로 해은海隱 공公이 주관하였다. 그러나 가장 부족한 것은 석축 한 가지였다. 이 때문에 해은 공이 스승 용암龍嵓 노스님에게 고하기를, “몸 밖의 티끌 재물은 흑업黑業(악업)을 늘리기만 하니, 바라건대 선한 씨를 내려 장래 즐거운 과보를 얻고자 하는데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용암 노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조리 기구가 될 터이니 네가 맛을 맞출 수 있겠느냐?” 드디어 재산을 모두 기울여 나머지 3백 원을 내었다.
다음 해 봄에 우부禹斧1329)를 빌려 벼랑을 깎고 진편秦鞭1330)을 휘둘러 바위를 질책하여 3개월이 못 되어 완성하니 천인天人의 도움이요 기산綺山 공公1331)의 감독이 아니겠는가. 이에 사방의 계단이 유리 빛으로 변하였고 두 전殿의 섬돌은 옥돌(琅玕)1332) 테두리(唇)를 자른 듯하다. 또한 7처의 중해衆海1333)가 시주(檀氏)의 청정한 마음 그릇에 은은히 현현하고, 3천의 불조佛祖들이 화주(化士)의 훌륭한 혀 위에 용솟음치도다. 인도한 공적이 시주(檀惠)의 덕보다 낮지 않고, 감독의 공력 또한 공덕의 지위보다 낮지 않도다. 공덕의 마침이 중창을 약속한 시작을 넘어서지 않도다. 그래서 이에 공과 덕의 성함을 내거니 겁석刼石이 민멸되도록 길이 보존되고 별과 달이 밝듯이 길이 비추리라.

012_0763_b_01L令同志剏約曰寺院之頹圮者
012_0763_b_02L此若也而坐待傾伏豈吾輩之職分哉
012_0763_b_03L仍以伐森求財招匠始役月照閣壞而
012_0763_b_04L退北爲七星殿之香閣此殿與閣
012_0763_b_05L金公學模之施建者也明星閣壞而退
012_0763_b_06L爲兩殿之香社華藏樓壞而建中
012_0763_b_07L三殿之正門而外環四墻內容千人
012_0763_b_08L䂓度宏剏序闥洞彰此乃放森林之費
012_0763_b_09L海隱公之幹督也然而最欠者
012_0763_b_10L築一款也由是而海隱公吿其師龍嵓
012_0763_b_11L老曰身外塵財徒增黑業願下善種
012_0763_b_12L將獲樂果伏唯何若龍老莞爾諾曰
012_0763_b_13L我爲調具汝能調味耶遂傾槖和盤
012_0763_b_14L而出餘三百圓越明年春借禹斧而斫
012_0763_b_15L揮秦鞭而叱石未三月而竣工
012_0763_b_16L天人之所助綺山公之監蕫也於是乎
012_0763_b_17L四邊階道變成琉璃之光兩殿砌級
012_0763_b_18L斫斷琅玕之唇亦復七處衆海隱現於
012_0763_b_19L檀氏淨心器中三千佛祖湧出於化士
012_0763_b_20L善巧舌上所以化導之功不下於檀惠
012_0763_b_21L之德蕫監之力亦不下於功德之位
012_0763_b_22L功德之要終莫越乎剏約之權輿故玆
012_0763_b_23L揭芳啣之功之德刼石泯而長存
012_0763_b_24L月明而永照云爾

012_0763_c_01L
해청당을 부수는 축문병인년(1926) 1월 12일 갑신(海淸堂破屋祝文丙寅一月十二日甲申)
토지를 수호하는, 가람의 큰 신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신령한 신들이시여
영산회상 당시에,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같이 함께 발심하니, 가람을 수호하리라.
사찰을 따라, 사원을 가리지 않고
고독원이나 기수祗樹,1334) 녹원鹿苑1335)과 학림鶴林1336)
이와 같은 곳들을, 지키지 않음이 없으니
바람을 질책하고 비에 소리쳐, 상서롭지 못함을 금했네.
오늘 이 해청당은, 오래되어 무너지니
길일을 택하여, 이에 일을 시작합니다.
바라건대 신령이시여, 화내지 말고 걱정 말고
잠시 허공 건물에 오르시어, 안도하고 보호하사
보호하는 생각을 도와서, 장애 없이 일하게 하소서.
정성껏 다과를 갖추고, 술을 마련하여
삼가 맑은 술과 함께, 여러 음식과 울향鬯香1337)을 드리노니굽혀 이 술을 받으시고,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보조국사 사리탑 축대가 무너져 세우는 축문(普照國師舍利塔築臺壞成祝)
병인년(1926) 8월 27일 을축에 주지 찬의贊儀가 원력수생願力受生1338)하신 해동海東의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 존령尊靈께 밝히 아룁니다.
청정한 법계의 몸은, 본래 생사가 없으나
큰 자비의 원력으로, 비로소 왕래가 있어
뜻에 따라 몸을 받아, 사바세계에 나시니
혜풍惠風이 남국에 불고, 불일佛日이 동방에 비쳐
업보의 인연이 송악1339)에 깊고, 조사의 밀인密印을 선종에 내걸어
도력은 9산의 장벽을 융화시키고,1340) 자리는 삼보의 이름에 참여했네.1341)
변화로 법계를 마치고, 탑을 조계에 두었으니
9층 안탑鴈塔과, 백 층의 치대鴟臺1342)
구역은 오래되었으나, 개축이 새로우니
본지本地는 무너지지 않으나, 잔도棧道1343)가 막혀
사방의 계단을, 옥빛으로 가다듬고
무덤에서 편안하시도록, 여러 겹 옥돌로 지탱하니

012_0763_c_01L

012_0763_c_02L海淸堂破屋祝文丙寅一月十二日
012_0763_c_03L甲申

012_0763_c_04L
土地守護伽藍大神不知名位靈祗等
012_0763_c_05L靈山當時受佛付囑同共發心
012_0763_c_06L護伽藍隨逐佛舍不擇寺庵獨園祗
012_0763_c_07L鹿苑鶴林如是等處莫不護從
012_0763_c_08L風喝雨呵禁不祥于今此堂年久傾
012_0763_c_09L選差糓日爰擧剏役唯冀靈祗
012_0763_c_10L嗔勿憂暫駕空廈安堵護祐傍助護
012_0763_c_11L剏事無障精修茶菓玆設尊楹 [139]
012_0763_c_12L以淸酌庶羞鬯香俯歆斯尊伏唯尙
012_0763_c_13L

012_0763_c_14L

012_0763_c_15L普照國師舍利塔築臺壞成祝

012_0763_c_16L
歲次丙寅八月二十七日乙丑住持贊
012_0763_c_17L敢昭吿願力受生海東佛日普照國
012_0763_c_18L師尊靈淨法界身本無出沒大悲願
012_0763_c_19L始有去來隨意受生影落娑婆
012_0763_c_20L風扇於南國佛日照於東方報緣深於
012_0763_c_21L松岳祖印揭於禪宗道融九山之壁
012_0763_c_22L位叅三寶之名化終法界塔鎻曹溪
012_0763_c_23L九層鴈塔百級鴟臺封疆旣舊改築
012_0763_c_24L維新本地不壞棧道乃堙四邊階道
012_0763_c_25L攻治璘垠安堵窀穸祇撑層珉至靈

012_0764_a_01L지극히 영험한 존령이시여, 놀라지 말고 화내지 마시고
신령으로 돕고 보호하사, 재앙을 없애고 길상을 내리시길
이에 울향을 올리며, 존령께 우러러 아뢰나니
음식은 소박하지만, 양식을 받으시고
삼가 차를 따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송광사 사천왕의 다섯 번째 중수기병인년(1926) 9월 9일 봉안(松廣寺四天王第五剏修記丙寅九月九日奉安)
붉은 호랑이 해(丙寅, 1926) 중구일重九日에 운雲 사미가 책을 들고 와서 말했다.
“지금 하는 불사佛事의 거문고 판 위에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명나라 숭정崇禎 원년 무진년(1628)에 희옥熙玉1344)이 증명하고 응원應圓1345)이 그렸고, 청나라 강희康熙 59년 경자년(1720)에 이제以濟가 증명하고 일기一機1346)가 그렸고, 청나라 가경嘉慶 11년 병인년(1806)에 서홍瑞弘1347)이 증명하고 도일度溢1348)이 그렸고, 광서光緖 17년 신묘년(1891)에 윤문倫文이 증명하고 천희天禧1349)가 그렸고, 대정大正 15년 병인년(1926)에 찬의贊儀가 주지住持를 맡고 문성文性1350)이 그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처음 창건한 연대에 사천왕의 위치와 손에 들고 있는 것, 발로 밟고 있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상세히 듣고 싶습니다.”
“명나라 무진년(1628)은 지금부터 303년이라 오래되지 않았는데 다섯 번 수선을 하였으니 어찌 그리 빠른가. 형상 있는 것은 무상하다는 것이 진실로 속임이 없도다.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동방호세東方護世 건달바乾達婆의 군주 제두뢰타提頭賴吒1351)는 이곳 말로 ‘지국천왕持國天王’이라 하는데 거문고를 안고 음악을 연주한다. 남방호세南方護世 구반다鳩般茶의 군주 비류륵차毘留勒叉1352)는 이곳 말로 ‘증장천왕增長天王’이라 하는데 칼을 들고 사귀를 물리치거나 탑을 받들어 병화를 물리친다. 서방호세西方護世 대룡大龍의 군주 비루박차毘樓博叉1353)는 이곳 말로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 하는데 용을 호령하며 구슬을 희롱한다. 북방호세北方護世 대야차大藥叉의 군주 비사문毘沙門1354)은 이곳 말로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 하는데

012_0764_a_01L至尊勿警勿嗔鬼扶神護消災降祥
012_0764_a_02L玆庸薦鬯仰籲尊靈物雖菲薄俯歆
012_0764_a_03L斯粻謹以茶酌伏唯尙饗

012_0764_a_04L

012_0764_a_05L松廣寺四天王第五剏修記丙寅九
012_0764_a_06L月九日奉安

012_0764_a_07L
歲赤虎之重九日雲沙彌挾册而進曰
012_0764_a_08L今見佛事所有琴板上所記大明崇禎
012_0764_a_09L元年戊辰熙玉證明應圓畫之大淸
012_0764_a_10L康熙五十九年庚子以濟證明一機畫
012_0764_a_11L大淸嘉慶十一年丙寅瑞弘證明
012_0764_a_12L度溢畫之光緖十七年辛卯倫文證明
012_0764_a_13L天禧畫之大正十五年丙寅贊儀住持
012_0764_a_14L文性畫之云初剏年代四王位置
012_0764_a_15L手所持足所履者是何等物名詳悉
012_0764_a_16L願聞乎大明戊辰今爲三百三年之
012_0764_a_17L未遠而五重修繕何其太速歟有相
012_0764_a_18L之無常信不誣矣諸般文不云乎
012_0764_a_19L方護世乾達婆主提頭賴吒此云持國
012_0764_a_20L天王抱琴奏樂南方護世鳩般茶主
012_0764_a_21L毘留勒叉此云增長天王執釰驅邪
012_0764_a_22L或奉塔退兵西方護世爲大龍主毘樓
012_0764_a_23L博叉此云廣目天王喝龍弄珠北方
012_0764_a_24L護世大藥叉主毘沙門此云多聞天王

012_0764_b_01L깃발을 들고 중생을 영도한다. 이들 모두 귀신을 제압하고 사귀를 쫓아 불길한 것을 금하고 불법을 수호하며 가람을 보호하니, 우리 부처님이 부탁하신 것이다. 지금 경영하면서 대중들이 갹출하고 산림 채벌한 비용을 합한 8백여 원圓으로 8월 20일에 시작하여 9월 10일에 마치니, 찬란하게 선명하고 장애 없이 회향回向1355)하였다. 이에 네 신체의 엄숙한 형상이 방위를 따라 늘어서니 오색구름이 골짜기 입구에서 빛을 더하고, 여덟 눈동자의 번개 광선이 때를 다투어 맑게 빛나니 해와 달이 하늘 거리에서 빛을 가리도다. 다섯 마귀는 몸을 감출 곳이 없으니 1백 귀신이 어디로 도망하리오.”
운雲 사미가 머리를 조아리니, 기록하여 후인(可畏)들에게 보이노라.
조계산 불일보조국사의 감로탑을 개축하는 기문병인년(1926) 9월 20일 봉안식(曹溪山佛日普照國師甘露塔改築記丙寅九月二十日奉安式)
우리 국사께서 고려 희종 8년1356) 경오(1210)에 입적하셨고 다음 해에 사찰 북쪽 기슭에 탑을 세웠다. 그 후 세 번 나가고 세 번 들어온 자취는이 책 1권 7장丈에 보인다.1357) 묵암默庵 노스님의 필체로 다 기술되어 있으니 덧붙이고 싶지 않다.
717년 후 대정 15년 병인(1926)에 본사 지주 찬의贊儀가 문득 발원을 하여 티끌 재물을 아끼지 않고 1,020여 원圓을 들여서 5월 보름에 시작하여 일꾼들을 불러 일을 감독하니 우부禹斧(도끼) 소리 가운데 황석공黃石公과 장석군匠石君1358)이 조각조각 잘라서 진편秦鞭(채찍)의 그림자 아래 긴 대열의 돌(長隊石)과 짧게 쌓은 돌이 구르고 굴러 도착하였다. 이에 8월 27일 탑을 열고 9월 3일에 구멍을 뚫으니 자기 단지 하나와 성골聖骨 1백 조각이 속에 가득히 안치되어 있어 쟁쟁 옥이 떨치듯 찬란히 금이 빛나듯 하였다. 그래서 자기磁器높이는 1척 남짓이요, 둘레가 작은 동이를 설법전 사자좌 위에 봉안하고

012_0764_b_01L建旗領衆皆壓鬼逐邪訶禁不祥
012_0764_b_02L佛護法守護伽藍吾佛之所囑也
012_0764_b_03L之營之以大衆醵金山林採伐費八百
012_0764_b_04L餘圓金而始於八月念終乎九月旬
012_0764_b_05L煥然鮮明無障回向於是乎四躬嚴像
012_0764_b_06L隨方并列五雲增彩於洞門八眼電光
012_0764_b_07L競時瞪睛雙曜掩映於天衢五魔竄
012_0764_b_08L身無地百鬼遁形何處耶雲沙彌稽首
012_0764_b_09L記之以示可畏云爾

012_0764_b_10L

012_0764_b_11L曹溪山佛日普照國師甘露塔改築
012_0764_b_12L丙寅九月二十日奉安式

012_0764_b_13L
唯我國師高麗熙宗八年庚午示寂
012_0764_b_14L明年立塔于寺之北麓而其後三出三
012_0764_b_15L入之蹟見此卷
初七丈
備盡於默老之筆不欲
012_0764_b_16L贅焉越七百十七年後大正十五年丙
012_0764_b_17L寅夏本住持贊儀忽發剏願不惜塵
012_0764_b_18L費一千二十餘圓金濫觴於五月望
012_0764_b_19L招工蕫役禹斧聲中黃石公匠石君
012_0764_b_20L片片而斷截秦鞭影下長隊石短築石
012_0764_b_21L轉轉而到着於是開塔於八月二十七
012_0764_b_22L穿邃於九月初三日一瓿磁器
012_0764_b_23L片聖骨滿中安然錚錚然玉振之
012_0764_b_24L燦然金融焉仍奉磁器高尺餘也
周小盆也
于說法

012_0764_c_01L향을 사르며 목탁을 울리고 온 대중이 절하며 바라보고 모든 입으로 경축을 올렸다. 그런데 30매枚 사리 가운데 1알(粒)이 보이지 않으니,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인가. 미친놈이 삼켜 버린 것인가? 삼칠일 동안 향 공양으로 엄호하면서 차례대로 수도隧道1359)를 수선하였다. 9월 18일에 이르러 본 자리에 봉안하고 회를 칠하고 덮었으니, 인寅을 등진 신申 방향1360)이다. 새로 3층을 쌓아 내렸으니, 높이 드러내고자 함이요, 그 위에 옛 탑을 그대로 쌓았으니 예전대로 편하게 함이라. 합하여 9층이 된다. 사방 계단을 본 터에 따라 설치했으니 넓지도 좁지도 않다. 그 뒤를 쌓아서 담장을 두르고 그 앞을 통하여 경사지게 하니 30층 계단(棧)이 되었다. 그것은 사리 30매를 표현한 숫자인가. 엎드려 살피면 여산驪山1361)의 잔도棧道 같고, 우러러 바라보면 천극天極1362)의 각도閣道1363) 같도다.
아아, 우리 말세의 보잘것없는 인생이 어떤 선근으로 717년 전의 성골을 여기서 대면하여 알현하게 되었나. 또한 오늘 시주(檀氏)의 인연이 긴 세월 속에 어떤 기이한 인연을 심어서 위없는 복전에 썩지 않는 뿌리를 심었는지 모르겠다.
정묘년(1927) 가을에 대중(介衆)1364)이 발의하여 그 공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돌을 다듬어 명銘을 새기도록 했다.

法乳長曹溪    법유法乳가 조계에 영원하고
檀功隆松嶺    단공檀功1365)이 송광사 산에 높아라
佛日明法界    불일佛日이 법계에 밝고
甘露沾禪境    감로가 선경禪境을 적시누나

나는 국사의 법파法波에 외람되이 목욕하여 이에 자라나고 여기서 늙었는데 마음 밭에 한 터럭 선善이 부족하거늘 마침 이에 참여하여 친히 성골을 뵙고 개축 사업을 목도하니, 우러러 칭송하는 바람이 가슴에 가득하여 나도 몰래 붓을 꺼내 한 줄기를 기록함이 이와 같고 이와 같다.
본사에서 염불당을 혁파함에 감상을 적은 설(本寺革罷念佛堂感想說)

012_0764_c_01L殿獅子座上焚香鳴鐸一衆拜觀
012_0764_c_02L口慶祝而三十枚舍利不見一粒
012_0764_c_03L是壬亂所失耶眞若狂夫所呑耶三七
012_0764_c_04L日間香供嚴護第待修治邃 [140] 至九
012_0764_c_05L月十八日奉安于本座灰塗而盖覆之
012_0764_c_06L乃寅坐申向也新疊下三層意欲高顯
012_0764_c_07L而其上仍疊古塔依舊安堵合九層也
012_0764_c_08L四階依本址而不廣不俠築其後而垣
012_0764_c_09L通其前而隊之爲三十級而成棧
012_0764_c_10L疑是舍利三十枚之表數耶俯而察之
012_0764_c_11L若驪山之於棧道仰而望之象天極之
012_0764_c_12L於閣道歟嗚呼噫嘻唯吾末葉殘生
012_0764_c_13L何幸善根面謁乎七百十七年前聖骨
012_0764_c_14L於此乎况復今日檀氏之緣不知浩刼
012_0764_c_15L植何奇緣而以種不朽根於無上福田
012_0764_c_16L越丁卯秋介衆發議恐泯厥功
012_0764_c_17L石勒銘曰法乳長曹溪檀功隆松嶺
012_0764_c_18L佛日明法界甘露沾禪境予叨沐國師
012_0764_c_19L之法波長於玆老於斯而乏一毫善於
012_0764_c_20L心田適叅于玆親拜聖骨目醉剏役
012_0764_c_21L賛仰之願塞乎胷次不覺抽毫記諸
012_0764_c_22L一線如是如是

012_0764_c_23L

012_0764_c_24L本寺革罷念佛堂感想說

012_0765_a_01L
『산해경山海經』에 이르길, “산에 ‘학’이라는 새가 있는데 목이 길고 다리 또한 그러해서 당당하게(軒軒) 날며 크게(嘎然) 울어 대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 구고九臯1366)의 구름 속 소나무 꼭대기가 아니면 머물지 않는다. 물에 ‘물오리(鳬)’라는 새가 있는데 목이 짧고 다리 또한 그러해서 문득 잠수하고 표연히 떠오르니 또한 삼강三江1367)의 안개 낀 물결 속이 아니라면 헤엄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 모두 조물주와 천진天眞이 그렇게 한 것이로다. 문득 강마을의 그물질 하는 이가 주살로 모두 잡아서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이으니, 이윽고 긴 것과 짧은 것 모두 아파하고 자른 것과 이은 것 모두 병이 나서, 새 족보 바깥으로 모두 버리게 되었다. 이것은 조물주를 거역하고 천진을 잃은 변고가 아니겠는가. 어찌 그리 긴 것에 소원하고 짧은 것에 친하여 책망하여 자르고 은혜롭게 이음이 이처럼 심한가.
이제 조계산에 안팎의 교육이 있으니 안으로 선종과 교종ㆍ염불종이요 밖으로 소학교(小校)와 중학교(中校)ㆍ대학교(大校)의 명칭이 있다. 그런데 3종은 사찰의 창건 이래로 모두 겸하여 시행되었으니 솥의 발처럼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 3교는 혁신한 이후로 아래로부터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누각 층계처럼 점차 오르는 것이다. 누각에 오르는 이가 흥과 힘에 따라 1층에 올라 그치기도 하고 2층에 올라 그치기도 하고 3층에 오르기도 하고 설혹 끝까지 오르기도 한다. 다만 형외形外를 방랑하며 세계를 고무鼓舞하고 눈을 두리번거리며 회포를 펼치면서 세계(球宇)를 삼킬 마음과 성현을 평가할 뜻이 세상과 함께 부침하여 끝내 우리 집안의 물건이 되지 않는 것이 누각을 오르는 근본 뜻이다. 솥처럼 서 있는 경우는 대소를 막론하고 세 발을 같이 들어야지 하나라도 없으면 서지 못한다. 금이나 철이나 구리나 일시에 주조하여 죽을 끓이고 밥을 지어서 네 부처를 삶고 네 조사를 삶아 마침내 우리 집안의 본색 납자가 되는 것,

012_0765_a_01L
山海經云山有鳥曰鶴其頸長其脛
012_0765_a_02L亦然軒軒以飛嘎然而鳴聲聞于天
012_0765_a_03L若非九兜 [141] 雲松之頂莫可捿息水有鳥
012_0765_a_04L曰鳬其項短其足亦然忽焉以潛
012_0765_a_05L然而浮亦非三江烟波之心莫與游泳
012_0765_a_06L此皆造物天眞之使然也忽有江村網
012_0765_a_07L弋以并得之斷其長而續乎短者
012_0765_a_08L尋之長短俱痛之斷續同病焉并棄
012_0765_a_09L於禽譜之外此無乃逆造物喪天眞之
012_0765_a_10L變乎哉何其踈於長而親於短咎而斷
012_0765_a_11L恩而續之若是之甚乎今曹溪山
012_0765_a_12L有內外敎育內以禪宗敎宗念佛宗也
012_0765_a_13L外以小校中校大校名焉然而三宗
012_0765_a_14L自剏寺以來并擧兼行如鼎足而闕一
012_0765_a_15L不可者三校則至革新以後自下至高
012_0765_a_16L如樓梯而漸陟者也如登樓者隨其
012_0765_a_17L興力或一級而止者或二級而止者
012_0765_a_18L或三級而登者設或終級登者但放浪
012_0765_a_19L形外鼓舞世界遊目聘懷并呑球宇
012_0765_a_20L之心黜陟賢聖之意與世沈沒終不
012_0765_a_21L作吾家之物是其登樓者之本旨也
012_0765_a_22L立鼎者不論大小三足并擧廢一不
012_0765_a_23L或金或鐵或銅一時并鑄煎於粥
012_0765_a_24L作乎飯烹而佛烹而祖終作吾家之

012_0765_b_01L이것이 솥을 세우는(立鼎) 본분이다.
이제 이른바 ‘혁신’이란 솥발의 금이나 철ㆍ구리를 단박에 잘라 내고 누각(樓級)의 계단이나 섬돌ㆍ층계를 만드는 것이니, 그렇다면 끝내 오르는 몇 사람이 사원의 영광을 장쾌히 볼 것인가. 아아, 솥발은 이미 잘려서 구렁에 넘어져 있으니 끝내 요리하는 집안에 쓸모없으리라. 허물이 어느 곳에 있게 될는지 나는 알 수 없도다. 솥발을 빌려 누각에 오르는 이가 영광이 없다면 도리어 솥을 솥으로 하여 발로 삼고 누각을 누각으로 하여 계단(級)으로 오르게 하여, 각자 본색으로 위치에 편안하여 마땅하고 당연한 것만 못하다. 어찌하여 솥발을 잘라 층계를 지탱하고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잇겠는가. 주살이나 그물의 정교하거나 졸렬함으로 같은 병을 앓는 새 두 마리를 소생시킬 수 없으니 혁신자의 권한으로 본래 지위를 돌이켜 솥으로 만들 수 있는가. 같은 병으로 폐물이 됨을 어찌 기다리며 앉아 보리오. 여러분들이 증명하시라.
함호1368) 화상이 유촉1369)하는 글(𦴻湖和尙遺囑文)
말하노니, 너희 제자들아 내 말을 들어라.
저 세월(光陰)은 화살 같아 내 이와 머리는 실 같아졌다. 해는 다그쳐 벌써 엄자산崦嵫山1370)에 있고 석양은 산에 있어, 무상하고 신속하니 무엇이든 보호하기 어렵다. 이 몸이 길이 있을 것을 어찌 기대하겠는가. 한숨도 멈추지 않고 백 년이 훌쩍 지나니 혹 불행해도 사후의 비판(雌黃)1371)을 누가 변론하겠는가. 일생에 모은 약간의 물건인 동산과 부동산을 사람들 앞에서 화반탁출和盤托出1372)하여 종류별로 나누고 나열하여 사심 없이 나누고 먼저 불량佛粮1373)과 선사위토先師位土1374)를 제외하고 나서 다음에 공公과 사私, 진眞과 속俗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나누도록 하라.

012_0765_b_01L本色衲子此乃立鼎者之本分也而今
012_0765_b_02L所謂革新者頓斫鼎足之金鐵銅反作
012_0765_b_03L樓級之階隥梯然則終登者有幾人而
012_0765_b_04L壯觀光榮於寺院乎嗚呼鼎足旣折
012_0765_b_05L顚伏於丘壑終無用於烹飪之家吾莫
012_0765_b_06L知其爲咎之所以存於何地也若以借
012_0765_b_07L鼎足而登樓者旣無榮光反不如鼎其
012_0765_b_08L鼎而足之樓其樓而級之各自本色
012_0765_b_09L以安其位宜之當之如之何而斫鼎足
012_0765_b_10L而撑梯斷其長而續短乎以若弋網者
012_0765_b_11L之巧拙旣莫能甦同病之二鳥若以革
012_0765_b_12L新者之幹權猶能還其本位足以鼎之
012_0765_b_13L何待坐見同病之廢物耶唯諸君
012_0765_b_14L證明也

012_0765_b_15L

012_0765_b_16L𦴻湖和尙遺囑文

012_0765_b_17L
曰爾徒弟等聽吾一言彼光陰若矢
012_0765_b_18L我齒髮如絲日迫奄嵫夕陽在山
012_0765_b_19L常迅速有物難保安期此身之長存哉
012_0765_b_20L一息不停百年忽爾如或不幸誰能
012_0765_b_21L卞身後雌黃乎所以一生鳩聚略干之
012_0765_b_22L動不動產和盤托出於諸人面前
012_0765_b_23L條分鱸列均公無私先除佛粮及先
012_0765_b_24L師位土次至公私眞俗略略分計爲旀

012_0765_c_01L몇 가지 의발 같은 것은 또한 있는 대로 희사하도록 하나하나 왼쪽에 기록하니, 너희들은 이에 따라 준행하여 목을 빼고 치혁鴟嚇1375)하지 않도록 하고 다만 족함을 알고 마땅하게(烏誼)1376) 하라. 무궁하게 길이 전하여 나로 하여금 눈 감고 서쪽 안락세계로 돌아가게 하라. 너희들은 힘쓸지어다.
관음전 불량을 들이고자 하는 기문무진년(1928) 1월 길일(觀音殿佛粮願入記戊辰一月吉日)
‘관음’이란 세상 사람의 소리를 들음이니, 듣는 성품을 돌이켜 보는 것을 일러 관음이라 한다. 귀는 원통圓通하여 두루 듣고, 몸은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다. 그 말씀은 설하지 않으면서 설하고, 그 마음은 생각지 않으면서 생각하니, 그 지혜를 생각할 수 없고 신통을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서 이른바 사생四生1377)의 부친이라 하니, 뭇 왕들이 왕으로 여기며 실로 자비희사의 스승(導師)이로다. 그렇다면 본전本殿(관음전)의 지킴을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그러나 혁신 초기라 풍조가 변함에 향화香火는 연기 없고 공양(齋供)은 풍부하지 않아 푸른 원숭이가 발우를 씻고 흰 새가 꽃을 머금으니 산이 적적하고 물이 잔잔히 흐름에 거승居僧들이 안타까워하고 유람하는 이들이 탄식하니, 달빛이 교교하고 바람이 쓸쓸하여, 거리 의논이 분분하고 물의가 떠들썩한 지 10여 년이 되었도다.
마침 이에 대단신大檀信 함호菡湖 공公께서 주머니를 털어서 10마지기 토지를 원통圓通의 복전福田에 받들어 헌납하셨다. 밭 갈고 김매지 않아도 보리의 씨앗이 절로 자라고 찧고 불 때지 않아도 옥 같은 쌀밥이 완성되었다. 향적香積 주방의 한 발우 밥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아도 수북하게 많고,1378) 사자좌 위 향로의 향이 땅에서 솟지 않아도 하늘하늘 자욱하니, 시주(檀氏)의 한 조각 붉은 정성에서 유출된 것인가. 아, 복전複殿1379)이 용처럼 서린 아래에서 용을 항복시킨 발우1380)를 원숭이가 받들고, 경루磬樓가 봉황처럼 우뚝한 가운데 안개와 구름의 공양을 새가 말하네.
이에 흰 눈썹의 고선枯禪1381)

012_0765_c_01L如干衣鉢之物亦隨所有而喜捨一一
012_0765_c_02L左記唯諸人等依此遵施俾母延頸
012_0765_c_03L而鴟嚇唯以知足而烏誼永傳無窮
012_0765_c_04L使吾瞑目而西歸安樂世界爾等勉旃

012_0765_c_05L

012_0765_c_06L觀音殿佛粮願入記戊辰一月吉日

012_0765_c_07L
觀音者聞世人音反觀聞性之謂觀音
012_0765_c_08L其耳則圓通普聞其身則無處不現
012_0765_c_09L其辯也無說而說其心也不念而念
012_0765_c_10L智慧不思議神通沒可量世所謂四生
012_0765_c_11L之父衆王以之王實慈悲喜捨之導師
012_0765_c_12L然則本殿之守衞安敢忽諸然而革新
012_0765_c_13L之初風潮之變香火無烟齋供不豊
012_0765_c_14L靑猿之洗鉢白鳥之含花山寂寂水
012_0765_c_15L滚滚居僧之寒心遊士之嗟嘆月皎
012_0765_c_16L皎風凄凄 [142] 議紛紛物論喧喧者
012_0765_c_17L餘年矣適玆有大檀信菡湖公傾槖搜
012_0765_c_18L惠以十斗土奉獻圓通福田不耕
012_0765_c_19L不耘菩提種自長非舂非炊玉粒饌
012_0765_c_20L已成香積厨中一鉢飯不從天而鬪鬪
012_0765_c_21L飣飣師子座上一爐香不從地而裊裊
012_0765_c_22L撲撲秪從檀氏一片丹誠而流出歟
012_0765_c_23L複殿龍蟠下猿擎降龍之鉢磬樓鳳峙
012_0765_c_24L鳥說烟雲之供於是乎白眉枯禪

012_0766_a_01L기쁜 얼굴로 즐거워하고, 푸른 눈의 납승이 가락에 맞춰 찬송하네.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님이 어찌 환희하지 않으랴. 사람의 정이 신과 같으니 신이 어찌하여 지킬 마음이 없으랴. 시주(檀越) 옹翁의 발원하는 소리가 천둥처럼 관자재觀自在(관음)의 이근耳根에 쏟아지고, 선남자의 수희隨喜하는 즐거움이 구름처럼 원통전 보문普門1382)에 모이리라.
지으신 공덕으로 널리 모두 회향하니 무진년 원단元旦(설)에 공양 올림을 시작한다.
천태암 불답 기문(天台庵佛畓記)
사람이 남에 하늘에서 명을 받고, 그 죽음에 혼이 지부地府로 돌아간다. 지부의 주인을 ‘명왕㝠王’이라 하고 명왕의 주인을 ‘지장대성地藏大聖’이라 한다. 큰 자비심이 봄날 햇살의 사심 없음과 같아서 정성을 바치는 이가 있으면 명왕의 판결에 관계없이 곧장 극락으로 가게 하니 어찌 공경하지 않으랴.
이제 조도수趙道洙1383) 공은 돌아가신 부친을 위해 극락으로 천도하고자 2마지기 토지로 천태암 지장대성 앞에 받들어 바쳐 길이 공양의 자료로 삼으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대성께서는 시주(檀氏)의 미약한 정성을 밝히 살피사 이 망령亡靈으로 하여금 속히 연화세계에 오르게 하시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엎드려 바라옵니다.무진년(1928) 3월 일
석존 탄신에 결사하는 글무진년(1928) 4월 8일(釋尊誕辰結社文戊辰四月八日)
엎드려 듣건대, 제불諸佛이 출현하실 때 모두 부모에 의탁하여 생을 받으시고 만물이 성장(興生)할 때 모두 천지(覆載)를 빌려 양육되는데, 오직 우리 석가씨만은 도솔천에서 화신을 거두어 대술大術1384)의 태 안에서 신운身雲1385)을 내리사,1386) 사바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시니 소천小千 세계 안에 국토(刹境)를 거두셨다. 청정과 더러움에 장애 없으니 원래 보답할 수 있는 인연이 아니요, 크고 작음에 자유로우니 모두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이라네.

012_0766_a_01L怡顏而悅可靑眼衲僧協律而贊頌
012_0766_a_02L凡心卽佛佛何不歡喜人情如神
012_0766_a_03L豈無護念哉檀越翁之發願音如雷
012_0766_a_04L於觀自在之耳根善男子之隨喜樂若
012_0766_a_05L會於圓通殿之普門所作功德普皆
012_0766_a_06L回向戊辰元旦上供爲始

012_0766_a_07L

012_0766_a_08L• 天台庵佛畓記

012_0766_a_09L
人之生也受命于天其死也魂歸於
012_0766_a_10L地府府之主曰㝠王王之主曰地藏大
012_0766_a_11L聖也大慈悲心如春日之無私若有
012_0766_a_12L獻誠者不管㝠王之決案直徃樂方
012_0766_a_13L豈不欽哉今趙公道洙爲其亡父
012_0766_a_14L薦樂國以二斗土奉獻于天台庵地藏
012_0766_a_15L大聖前以爲永年供資伏願大聖明
012_0766_a_16L鑑檀氏1) [25] 使此亡靈速登蓮國
012_0766_a_17L心伏乞者戊辰三月日

012_0766_a_18L

012_0766_a_19L釋尊誕辰結社文戊辰四月八日

012_0766_a_20L
伏聞諸佛出現皆托父母而受生萬類
012_0766_a_21L興生盡假覆載而養毓唯我釋迦氏
012_0766_a_22L收化兜率降身雲於大術胎中現形娑
012_0766_a_23L納刹境於小千界內淨穢無碍
012_0766_a_24L非實報酬因大小自由盡是度生方便

012_0766_b_01L
주나라 소왕昭王 23년 계축 7월 8일은 신령이 내려온 좋은 때요 갑인(B.C. 1027) 4월 8일은 탄생하신 길일이라네. 일륜日輪을 띠고 코끼리를 타시니 널리 광명을 비추시고, 각수覺樹1387) 아래 용처럼 앉으시니 초연히 상서로운 모습이라. 무우수無憂樹1388) 아래 연꽃 가지를 발로 밟으시고, 룸비니 동산에서 사자좌에 앉으셨네. 계속해서(乾乾) 일곱 걸음 걸으시고 웅얼웅얼 몇 마디 하시며,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니 삼계에 홀로 존귀한 성인이심을 알겠고 9룡이 물을 뿜으니 사해의 물로 정수리에 부음을 구하지 않도다. 철수鐵樹1389)에서 꽃이 피고, 우담바라가 열매 맺는구나. 노나라 들판에서 기린을 잡으니 성군 이르시길 기대하고,1390) 번산(樊岑)에서 표범을 잡으니 꼬리 세움을 기뻐하겠네.1391) 그러나 기린과 봉황이 가시나무에 서식하지 않는데 교룡과 곤어가 도랑물에 숨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8일 밤에 동궁(春城)을 넘어 6년 동안 설산에 머물다가, 나무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시키니 용과 귀졸들이 자취를 감추고, 새벽별 전에 깨달으니 천지가 상서로운 징조를 보였도다. 이에 각장覺場에서 화엄을 설하시어 법계의 일곱 곳을1392) 나열하고, 녹원鹿苑에서 4제諦를 보이시어1393) 3승의 교종을 나열하셨네. 세 풀의 꽃다운 언덕은 세 수레로 유람하고 한 본성의 진실(眞際)은 일승의 지향(指歸)이라. 삼계三界의 스승(導師)일 뿐만 아니라 실로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시로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하여 어찌 기념을 잊으리오. 갚을 수 없는 덕을 갚고자 백련사의 맹세를 맺고, 보답하기 어려운 은혜를 보답하고자 도원桃園의 형제가 되노라. 엎드려 바라건대 모임에 참여한 도반들이 신근을 발휘하여 문중에 재물을 보시하여 유루有漏1394)의 티끌 재물을 넉넉히 은혜롭게 하고, 향사香社 대청 위에서 연기 없는 심향心香을 함께 사르니, 재보를 희사할 때에 사바세계와 화택지옥의 괴로움을 단박에 뛰어넘고, 향연이 끊어진 곳에 즉시 도솔천 연태蓮胎1395)의 극락에 오르게 하사, 함께 증명하고 함께 종지種智1396)를 원만히 하게 하소서.

012_0766_b_01L周昭王二十三年癸丑七月初八日
012_0766_b_02L神之良辰甲寅四月初八辰誕生之吉
012_0766_b_03L日輪象駕遍照光明覺樹龍盤
012_0766_b_04L然瑞相無憂樹下足承蓮花之枝
012_0766_b_05L尼園中身跨師子之座乾乾七步
012_0766_b_06L哦數聲一手指天可知三界之獨尊聖
012_0766_b_07L九龍吐水不求四海之灌頂波鐵樹生
012_0766_b_08L曇蕚結果曰若獲獜魯野將期邸
012_0766_b_09L獵豹樊歲方歡竪尾然而猉獜鸞
012_0766_b_10L猶非枳棘之所捿蛟龍鯤鵬况是
012_0766_b_11L溝瀆之所隱由是踰春城於八夜棲雪
012_0766_b_12L嶺於六年樹下降魔龍鬼以之遁跡
012_0766_b_13L星前悟道天地以之徵祥於是覺場之
012_0766_b_14L說華嚴羅七處於法界鹿苑之示四諦
012_0766_b_15L列三乘之敎宗三草芳原卽三車之遊
012_0766_b_16L一性眞際乃一乘之指歸非特三
012_0766_b_17L界導師實乃四生慈父然則當是日之
012_0766_b_18L良吉何紀念之相忘欲報莫報之德
012_0766_b_19L宜結蓮社之盟心將酬難酬之恩爰搆
012_0766_b_20L桃園之昆季伏願叅社道伴頓發信根
012_0766_b_21L財施門中優惠有漏之塵財香社堂上
012_0766_b_22L共爇無煙之心香財寶捨時頓超娑婆
012_0766_b_23L火宅之苦趣香烟斷處卽登兜率蓮胎
012_0766_b_24L之樂方同垂證明同圓種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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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화엄경) 글자수 분별의 결의’에 대한 변론무진년(1928) 6월 일(大經字數卞決疑辨戊辰六月日)
무릇 고금의 역사가의 서술은 반드시 옛것을 고찰하는 것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지침이 정확하지 않으면 방향(線途)이 어지럽고 방향이 한번 어지러우면 행인이 길을 잃는다. 하물며 가르침의 바다로 이치(義理)를 담은 성현들의 경전經典이 어찌 옛것을 고찰하지 않고 유통되겠는가.
이제 불교사보佛敎社報를 보니, ‘불교결의佛敎決疑’ 제목 아래 이른바 ‘동국경원東國經院의 물음’이라 하였다.1397)약본略本 『화엄경』의 자수字數에 대해 오직 묵암默庵 고로古老의 『화엄품목華嚴品目』1398) 가운데 자수를 가리켜 정하였고, 이 노스님 이전에는 전하는 바가 없었으니 허탄함이 매우 심하다고 하였다. 본 사주社主 퇴경씨退耕氏가 그 경개에 대해 풀어 답변했다.“이것은 종전從前으로도 많은 의심의 구름을 쌓아 왔다.”부터 “생겨난 바가 없는데 자수를 계산하였다.”라고 하였고, 말미에 “일없이 일 좋아하는 어떤 노장老長님이 『화엄경』 등의 경전 자수를 계산 발표했다.”라고 하였다. 경원經院에서 말한 ‘이 노스님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나 사주社主가 말한 ‘일없는 노장이 자수를 계산했다’는 말은 같은 모양의 허물이요 똑같이 귀양 보낼 일1399)임이 명백하도다.
그 문답 가운데 허다한 갈등과 인아人我1400)의 말들은 모두 박식하여 과장하는 쭉정이 더미로 부쳐 버려야 한다. 다만 ‘보이지 않다’라거나 ‘일없다’는 두 언급(線路)에 대해서는 차례로 논변해야 한다. 왜 그런가. 『치문경훈』1401) 중권 34장 9줄에 ‘수주隨州 대홍산大洪山 수선사遂禪師가 『화엄경』을 예찬한 글(隨州大洪山遂禪師禮華嚴經文)’이 있다.남무南無 비로교주毘盧敎主 화엄자존華藏慈尊. 보배 게송의 황금 문장을 부연하고, 보배 함의 옥 문장을 펼치노니, 티끌마다 섞여 들고 국토마다 원융한 10조9만5천48자 일승원교一乘圓敎 대방광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여. 문 군文君은 어이하여 보지 못하였나? 군이 보지 못하였다고 묵암 노스님도 본 게 없다고 하면 그 인아의 좁은 견해는 이미 논변할 거리도 없다. 묵암 노스님이 본 게 없다는 말에 이르러 경원經院의 본 바가 없음에 귀결되니 또한 누누한 갈등이 어떠한지 기다릴 것도 없다. 만약 ‘수선사의 자수 발표’라고 한다면 사주가 비록 ‘일없는 노장’이라 말하더라도 이것이 일없이 나와서 교화문(化門)에 온 것인가. 경전에, 제불의 현신이 무량하니

012_0766_c_01L大經字數卞決疑辨戊辰六月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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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古今史筆之下手必以稽古爲指針
012_0766_c_03L而針若不的線途必亂線途一亂
012_0766_c_04L人迷津而况敎海義理之聖經賢典
012_0766_c_05L無稽古而流通乎今見佛敎社報中
012_0766_c_06L敎決疑題下所謂東國經院問目云略本
華嚴
012_0766_c_07L經字數唯獨默庵古老華嚴品目中字數定指
而此老以前相傳無見浮虛誕妄滋甚云

012_0766_c_08L社主退耕氏解答其槩云從來疑雲貯來云
乃至無所生而
012_0766_c_09L字數計算云末後好事無事者何某
老長主華嚴等經字數計算發表云
經院所謂
012_0766_c_10L此老以前無見之說社主所謂無事老
012_0766_c_11L長字數計算之說一狀領過一道行遣
012_0766_c_12L必矣盖其問答中許多葛藤人我
012_0766_c_13L之說都付于博識誇張之浮粃堆中
012_0766_c_14L以無見無事之二端線路次第論之
012_0766_c_15L緇門中卷三十四丈上九行隨州大
012_0766_c_16L洪山遂禪師禮華嚴文云南無毘盧敎主華藏
慈尊演寶偈之金
012_0766_c_17L布琅凾之玉軸塵塵混入刹刹圓融十兆九
萬五千四十八字一乘圓敎大方廣佛華嚴經云

012_0766_c_18L君何無見以君之無見欲被於默老之
012_0766_c_19L無見者其人我之管見已無可論也
012_0766_c_20L至於默老之無見早歸於經院之無見
012_0766_c_21L亦不待葛藤之累累如何矣若曰遂禪
012_0766_c_22L師字數發表社主雖曰無事老長云
012_0766_c_23L此其無事而出來化門耶經云諸佛現
012_0766_c_24L「迷」疑「微」{編}

012_0767_a_01L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보살의 몸으로 드러낸다거나 내지는 같거나 다른 부류의 몸으로 나타내신다고 했는데, 이는 석가가 화현하여 조사 문중의 수수守遂1402) 선사에게 들어간 것이다. 선사는 대홍산 보은報恩 화상을 이었으니 즉 달마 18세손으로, 일에 응하여 격외格外와 의리義理1403)를 드러내고 장애 없이 자재自在한 대불사의大不思議1404)의 조사 문중에서 짐을 꾸린 것이다. 어찌 의미가 없이 심상하게 비로자나의 깊은 세계(毘盧藏海)의 의리 구절과 게송 가운데 서술하리오. 금강신金剛神의 죽이거나 살리는 몽둥이와 꾸짖음을 어찌 면하리오. 반드시 증명하고 본 바가 없지 않아 분명하게 서술한 것이다. 어찌 의심하겠는가. 그렇다면 묵암 노스님의 서술은 필시 수守 스님에게 의지한 것이요, 수 스님의 계산은 필시 대불사의하고 사사무애事事無碍한 해탈 경계 가운데서 흘러나온 것인데, 어찌 썩은 지식과 좁은 소견으로 망령되이 오래된 조사 문중의 쇠를 끊을 만한 몽둥이(活椎)1405)가 어떻고 어떻다 헤아리는가. 이른바 ‘허망하고 떠 있는 마음은 모두 괴상한 견해라’1406) 한 것이 이런 것이다. 다만 이렇게만 지적해도 묵암 노스님이 근거한 것이 허탄하지 않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
달리 말할 게 있으면 거듭 들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본 바가 없다’라거나 ‘일없다’는 허다한 갈등의 말을 문답하는 이의 두 어깨 위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돌이켜 부담시키고 싶지는 않다. 오직 바라건대, 두 대가께서는 굳이 사과하지 말고 즉시 짐을 싸 짊어지고 평등실平等室 해탈문 안에서 정좌(安坐)하면 매우 다행이겠다.
함호 화상의 진영1407)에 대한 찬무진년(1928) 8월 17일(湖和尙影贊戊辰八月十七日)
吁遮一𨋀尊影   아, 이 한 폭의 존영은
摹寫七分面目   일곱 분의 얼굴1408)을 옮겨 그렸으니
眉宇端嚴玩瑚   눈썹과 이마는 산호(玩瑚)처럼 단엄하고
眼堂殊特珪瑑   안당眼堂은 홀(珪瑑)처럼 빼어나도다.
噫眞身在什麽處  아, 진정한 몸은 어디에 있는가.
覔之轉失難睦   찾으려 하면 더욱 잃어버려 가까이 하기 어렵네.
碧𦴻萏裡幻容   푸른 연꽃(菡) 속의 환영이요

012_0767_a_01L身無量爲度衆生或現菩薩身乃至
012_0767_a_02L同異類身云此乃釋迦化現權入祖門
012_0767_a_03L之守遂禪師嗣大洪山報恩和尙卽達
012_0767_a_04L摩十八世應迹示現格外義理無碍自
012_0767_a_05L大不思議之祖門行李也豈可以無
012_0767_a_06L義味尋常下筆於毘盧藏海義理句偈
012_0767_a_07L之中而安敢免金剛神殺活之棒喝哉
012_0767_a_08L必不無所證所見處而昭著下筆也
012_0767_a_09L足疑乎然則默老之下筆必稽乎守師
012_0767_a_10L守師之計算必以大不思議事事無碍
012_0767_a_11L解脫境界中流出安可以腐識管見
012_0767_a_12L擬於古老祖門之截鐵活椎之如何若何
012_0767_a_13L可謂虛妄浮心多諸恠見者此矣
012_0767_a_14L以如此指點剩得乎默老之所據非誕
012_0767_a_15L而已更有說不妨重聽然而向所云無
012_0767_a_16L見無事之許多葛藤之說不欲反擔於
012_0767_a_17L問答家之雙肩無奈何之地也唯冀二
012_0767_a_18L大家無固而謝之卽荷而擔之安坐
012_0767_a_19L於平等室解脫門中幸甚

012_0767_a_20L

012_0767_a_21L菡湖和尙影贊戊辰八月十七日

012_0767_a_22L
遮一𨋀尊影摹寫七分面目眉宇
012_0767_a_23L端嚴玩瑚眼堂殊特珪瑑眞身在
012_0767_a_24L什麽處覔之轉失難睦碧菡萏裡幻容

012_0767_b_01L香湖波心空谷   향기 호수(湖)의 물결 가운데 텅 빈 골짜기로다.
咄        쯔쯧.
또(又)
天眞不染塵汚   천진은 티끌에 물들지 않아
𦴻萏華生鏡湖   연꽃이 거울 호수에 피어났네.
一片心藏玉壺   한 조각 마음 담은 옥병은
精工如吸醍醐   정교하여 제호醍醐를 들이켠 듯하네.
만일당 삼불의 개금과 불량답에 대한 기문(萬日堂三佛改金與佛粮畓記)
저포苧袍의 은혜1409)도 죽백(帛)1410)에 기록하고 채소 음식(蒲饌)의 은혜도 솥(鼎)에 새기는데 하물며 황금으로 감싸고 토지로 반찬을 마련하여 굶주림과 추위를 면하게 함에랴.
이제 이 당堂은 이전 염불당이었는데 폐지된 지 오래되어 염불하는 승려가 없고 종소리도 적막하였다. 주지 율암栗庵1411) 노옹이 대중의 청에 따라 복구하였는데 불의佛衣가 해지고 승려들 공양이 부족하여 굶주림과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본산의 대덕大德 함호菡湖 대화상께서 문득 신심을 발휘하여 황금 30속束을 사서 옷을 입히고, 토지 17석을 납입하여 공양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만일재萬日齋 쌀과 지장보살 탄신일 공양과 은사와 자기의 위토位土, 기타 각전各殿의 불량佛粮 원입願入과 장례 비용 7백 냥兩, 그리고 재齋에 소용되는 물건들을 조목별로 균등히 배열하여 말로 부탁하고 글로 기록하였다.
이후 이달 9일에 개금불사를 시작하였고 15일에 이르러 회향하고 봉안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포시晡時(오후 4시경)에 태연히 앉아서 입적하셨다. 세수世壽 76세요 승랍僧臘 61세이다.
이에 불상은 옷을 입어 빛을 발하고 승려들은 공양을 얻어 염불하며 종이 울려 음악을 연주하니, 용천龍天이 기뻐하여 상서로움을 내렸다. 풍부한 공적과 두터운 덕에 대해 어찌 솥에 새기고 죽백에 기록하는 이어짐이 없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아래에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이노라.

012_0767_b_01L香湖波心空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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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7_b_04L
天眞不染塵汚菡萏華生鏡湖一片心
012_0767_b_05L藏玉壺精工如吸醍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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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7_b_07L萬日堂三佛改金與佛粮畓記

012_0767_b_08L
夫以苧袍之恩猶能錄帛以蒲饌之惠
012_0767_b_09L尙或銘鼎而况金以袍之土以饌之
012_0767_b_10L能免飢寒者乎今是堂者以前念佛堂
012_0767_b_11L廢止久而僧無誦念鍾鼓寂寂也
012_0767_b_12L持栗庵翁仍衆請而復舊然佛衣弊陋
012_0767_b_13L僧供艱乏莫堪飢寒矣本山大德菡湖
012_0767_b_14L大和尙頓發信心買金三十束而衣之
012_0767_b_15L納土十七石而供之以永萬日齋米
012_0767_b_16L藏誕供恩師及自己位土其他各殿佛
012_0767_b_17L粮願入及葬費七百兩齋所用物
012_0767_b_18L列均排言以囑之筆以書之後今月
012_0767_b_19L初九日改金佛事始役至十五日
012_0767_b_20L向而奉安之又明日晡時奄然坐化
012_0767_b_21L壽七十六臘六十一於是乎佛著衣而
012_0767_b_22L放光僧得供而念佛鍾鼓鳴而動樂
012_0767_b_23L龍天悅而降祥其於豊功厚德那無銘
012_0767_b_24L鼎錄帛之續乎哉由是而記于左
012_0767_b_25L諸以后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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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군 초천면 개운산 동화사 중수기(順天郡草川面開雲山桐華寺重修記)
부처의 궁전은 서천西天(인도)의 기원정사(祗桓精舍)에서 비로소 들렸고, 승가僧伽의 사원은 동토東土(중국)의 홍려시鴻臚寺1412)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즉 수달다須達多(Sudatta)가 지은 것으로 축법란竺法蘭1413)이 머물렀고, 해동에 이르면 고구려 때에 승가 명칭이 있었고 신라에는 부처 사원이 많았다. 어찌 다만 국민이 마음을 돌이킬 뿐이겠는가, 또한 상선上仙이 몸을 의탁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안찰鴈刹(절)이 구름처럼 배열되어 좁은 틈도 없을 지경이요 경부鯨桴(종)1414)가 천둥처럼 울려 하늘에 닿았다.1415) 삼한 시대에 이미 풍미한 바 있고 고려 시대에 더욱 풀이 눕는 듯하였고, 이어서 이조 시대에 이르러 3천 비보裨補1416) 사원이 나열되니, 삼보 종찰의 명칭이 특별히 정해졌다. 호남의 옛날 승평昇平 땅에 이르면 개운산이 바닷가(海甸)에 떨어져 있다. 바다 색깔은 담백하여 구름 하늘로 용솟음치고 구름 빛이 산의 남쪽을 열거나 막는데, 거기 동화사가 있다. 웅장한 형세는 아니지만 원래 화려한 모습이다.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師가 창건하셨는데 당시에 동백꽃(桐華)이 눈 속에 흐드러지게 피었기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이후 수백 년 뒤에 법홍法弘 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불상에 감응이 있고 승려들은 계율을 어기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 번 겁파刼波(세월)를 지나게 되자 법우法宇(사찰)는 황량해지고 불상은 더럽혀져서 아침저녁으로 재앙을 걱정하게 되었다. 주지 우송友松1417) 공이 조계산에서 와서 주석하고서 다음 해 대정大正 7년(1918) 무오년에 복구하겠다는 발원을 내서 권선문을 소매에 넣고 다니며 보시를 권하였다. 터럭 모아 공을 만들고 티끌 모아 산을 이루는 격이었는데, 길일을 정하여 감독하니 1년이 되지 않아 완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갈라沙迦羅1418) 용궁이 바다 입구에서 용솟음치고 도솔천(兜史陀) 내원內院1419)이 구름 산에 내려온 듯하니,

012_0767_c_01L順天郡草川面開雲山桐華寺重修
012_0767_c_02L

012_0767_c_03L
佛陀宮殿始聞於西天之祗桓精舍
012_0767_c_04L伽寺院更見於東土之大鴻臚寺卽須
012_0767_c_05L達多之所剏乃竺法蘭之所捿以至海
012_0767_c_06L則句麗方有僧伽之名新羅多列佛
012_0767_c_07L陀之院豈但國民之歸心亦有上仙之
012_0767_c_08L投身所以鴈刹雲排將無隙地鯨桴
012_0767_c_09L雷震不遠諸天韓代旣有風靡麗朝
012_0767_c_10L尤可草偃延及李朝三千裨補之院齊
012_0767_c_11L三寶宗刹之名特定至於湖南古昇
012_0767_c_12L平之坤有山曰開雲落在海甸海色
012_0767_c_13L淡泊聳出雲霄雲光開遮山之南
012_0767_c_14L寺曰桐華雖非雄傑之勢原是華麗之
012_0767_c_15L剏在麗朝大覺國師所占而于時桐
012_0767_c_16L華爛開於雪裡故仍名焉以後幾百年
012_0767_c_17L法弘大師重修云自是佛有感應僧無
012_0767_c_18L破律邇來累經刼波法宇荒落佛面
012_0767_c_19L添漏慮有朝夕之禍福矣住持友松公
012_0767_c_20L自曹溪來住之又明年大正七年戊午
012_0767_c_21L頓發復舊之願袖疏行檀聚毛成毬
012_0767_c_22L合塵爲山涓吉日蕫督不朞年吿功
012_0767_c_23L因以沙迦羅虬宮湧出於海口兜史陀
012_0767_c_24L內院降臨於雲山疑是達多重成祗桓

012_0768_a_01L수달다가 거듭 기원정사를 이루고 축법란이 다시 홍려시에 이른 것인가 의아할 정도였다.
아아, 현재 사람이 과거 사람이 다시 온 것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아름다운 발자취가 사라질까 염려되어 대략 기록한다.
용화당 중수기龍華堂重修記
현재 용화당은 옛날 미륵전이니 즉 자씨보살慈氏菩薩이 용화회龍華會에 강림하기 때문에 이름 붙인 것인가. 옛 기록들을 고찰하면 이 당은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창시하시어 ‘식당食堂’이라 하고서 미륵불을 봉안하였다고 하니, 이 당은 이로 말미암아 미륵전이라 이름 붙인 것인가.
홍치弘治 3년 경술(1490) 6월에 신매信梅 스님이 미륵전을 조성하였고, 건륭乾隆 7년 임술(1742)에 성하性荷 스님이 용화당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는 미륵불의 하생下生을 일컫는 것인가. 광서光緖 10년 갑신(1884)에 용운龍雲1420) 화상이 수선하여 관리들의 숙소로 삼았으니, 이후로 ‘장소방丈所房’이라 칭하며, 사찰의 노장이 항상 주석하였다. 대정大正 13년 갑자(1924) 가을에 주지 율암栗庵 공이 중건하려는 계획을 세워 10월 26일에 시작하여 12월 21일에 마쳤다. 그중에 정당正堂 5칸과 서쪽 1칸을 증건하고 주루사문厨樓沙門 수십 칸을 부수고, 썩은 기둥은 절반을 교체하고 서까래는 모두 바꾸었다. 나머지 기운 것은 바로 세우고 낮은 것은 높이고서, 서울 기술자를 불러 단장하게 하며, 한성漢城의 문란門蘭을 구하고 경도京都의 회칠을 발랐다. 문에는 ‘용화당’ 판액을 걸고 장대에는 ‘응접應接’ 글자를 내걸었다.
고귀한 손님들이 등림하니 선재동자가 미륵누각에 들어선 듯하고, 호탕한 선비들이 걸터앉으니 용맹龍猛1421)이 가라규궁迦羅虬宮(용궁)에 유람하는 듯하다. 홍려시鴻臚寺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면 화자관華資舘의 자태인가. 새김에 정교함을 다하였으니 도성의 누각(樓觀)에 비견되고 웅걸하게 치장하였으니 궁문의 누대(臺榭)와 나란함을 다투리라.

012_0768_a_01L法蘭更到鴻臚耶嗚呼誰知非現在人
012_0768_a_02L是過去人重來哉恐泯芳躅略記于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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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8_a_04L龍華堂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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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龍華堂者古彌勒殿卽慈氏菩薩
012_0768_a_06L當降龍華會故稱歟考諸古記此堂卽
012_0768_a_07L普照國師剏始而名曰食堂安彌勒佛
012_0768_a_08L疑是堂由此以命名耶弘治三年庚
012_0768_a_09L戌六月信梅師彌勒殿成造云乾隆七
012_0768_a_10L年壬戌性荷師重修龍華堂云此是彌
012_0768_a_11L勒下生之稱謂耶越光緖十年甲申
012_0768_a_12L雲和上修繕爲官使下處自此恒稱丈
012_0768_a_13L所房寺長常住也迄大正十三年甲子
012_0768_a_14L住持栗庵公爰起重建之謀十月
012_0768_a_15L二十六日始十二月二十一日終就中
012_0768_a_16L正堂五間西一間增建厨樓沙門幾十
012_0768_a_17L間破壞朽柱半改換椽梠全改新
012_0768_a_18L餘猗者正而低者高之招京匠而粧之
012_0768_a_19L求漢城之門蘭塗京都之灰漆門揭龍
012_0768_a_20L華之額竿掛應接之字高賓登臨
012_0768_a_21L善財之入彌勒樓閣豪士跨軒如龍猛
012_0768_a_22L之遊迦羅虬宮若非鴻臚寺之壯麗
012_0768_a_23L是華資舘之體態至若彫龔罄巧
012_0768_a_24L肩於都城樓觀宏傑粧餙爭衡於宮門

012_0768_b_01L이 모두 주지住持 옹翁과 감무監務 공公의 일처리와 녹림군綠林君(재목)과 백탄자白炭子(숯) 재원 덕분이다. 당시에 일을 맡아 수고한 크고 작은 이름(芳啣)들이 천 년 후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해청당 중건기海淸堂重建記
‘해청’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즉 법성당法性堂 위 약사광불藥師光佛이 영산靈山에서 한 묘련 법문妙蓮法門을 바다처럼 모인 맑은 대중(海會淸衆)이 상주하여 듣는다는 말인가.
숭정崇禎 13년 경진(1640) 3월에 희안熙安과 옥청玉淸 등이 해청海淸ㆍ원융圓融ㆍ법성法性 당을 같은 날 중건했다고 한다. 대정大正 15년 병인(1926) 봄에 이르러 본(송광사) 주지 율암栗庵 노옹이 동지들과 계획하길, 이 당이 퇴락하여 아침에 저녁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앉아서 무너지길 보느니 예방하는 게 낫지 않은가 하였다. 정월 20일에 시작하여 썩은 기둥은 보완하고, 오래된 서까래는 새것으로 교체하고, 동청東廳 두 칸을 늘렸다. 3월 17일에 들보를 올렸는데 본채는 넓지만 자는 방은 비좁아서, 1정町(밭두둑)의 동쪽 개울로 물려 7칸의 남랑南廊을 새로 세우고, 대청(廳堂)을 설치하여 단장하니 자고 먹는 데 편리하고, 사면을 둘러 담장을 세우니 작은 성의 성가퀴 같았다.
감불龕佛1422)은 원래 보조암普照庵의 금불상이요 종(軒鍾)은 대개 대웅전의 동철銅鐵로 걸려 있던 것들이다. 본당에 쌓은 금액은 다만 1,908원圓인데 사중寺中이 쓴 금액은 7,003원이 넘어 합계 8,900여 원이 소비되었다. 아아, 물질의 이뤄지고 무너짐은 본래 금액의 줄고 늚에 관계되니 무엇이 괴이하랴.
동쪽 개울이 길게 쏟아지듯 흐르고 서쪽 봉우리의 반달 같은 경치에 대해서는 보고 듣는 이들이 스스로 얻으리니 번거롭게 기술하고 싶지 않다.

012_0768_b_01L臺榭是皆爲住持翁監務公之幹能
012_0768_b_02L林君白炭子之財源當時執務劬勞之
012_0768_b_03L巨細芳啣不欲泯於千載之下如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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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8_b_06L海淸堂重建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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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若海淸而名者何也卽法性堂上藥
012_0768_b_08L師光佛靈山妙蓮法門海會淸衆常住說
012_0768_b_09L聽之謂耶按崇禎十三年庚辰三月
012_0768_b_10L安玉淸等海淸圓融法性同日重建云
012_0768_b_11L迄大正十五年丙寅春本住持栗庵翁
012_0768_b_12L與同志謀此堂之頽圮朝不慮夕
012_0768_b_13L見傾覆孰與預防乎自正月二十日始
012_0768_b_14L朽柱者補之舊椽者新之東廳二間增
012_0768_b_15L同三月十七日上樑以其正堂雖廣
012_0768_b_16L宿室甚狹退築一町之東溪新建七間
012_0768_b_17L之南廊架廳堂而粧修宜眠食之穩便
012_0768_b_18L環四偶而墻垣若小城之雉堞龕佛原
012_0768_b_19L是普照庵之金像軒鍾多掛大雄殿之
012_0768_b_20L銅鐵本堂貯金但一千九百八圓
012_0768_b_21L中費金越七千三圓合八千九百餘圓
012_0768_b_22L費盡嗚呼物質之成壞本管於金額
012_0768_b_23L之消長也何足恠哉至於東溪之長瀉
012_0768_b_24L西峰之半輪聽覽者自得不欲煩瀆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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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료의 본채 중수기(法性寮正堂重修記)
세상에 형체가 있으니 ‘천지’라 한다. 천지라는 큰 덩어리로도 오히려 무너지고 이뤄짐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이 어찌 면하겠는가.
이제 이 건물은 형체 없음으로부터 형체가 생겼으니 물질에 속하여 겁파刼波를 몇 번 겪었다. 숭정崇禎 13년 경진(1640)에 희안熙安이 중건重建하였고 강희康熙 64년 을사(1726)에 풍담風湛이 중수하였고, 건륭乾隆 56년 신해(1791)에 근민謹珉이 공루空樓를 고쳐 완성(重成)하였고, 도광道光 19년 기해(1839)에 만잠萬岑이 본채를 중건하였고, 광서光緖 10년 갑신(1884)에 경언敬彥이 북쪽 3칸을 증설하였다고 한다.
이제 소화昭和 2년 정묘(1927) 가을에 주지 율암栗庵 공公이 대중과 중건하기를 계획하고 회성당檜城堂에게 감독하게 하였다. 8월부터 시작하여 체실體室 7칸 중에 남쪽 1칸을 늘리고 동청棟廳과 조실祖室에 대해 셋을 부수고 둘을 이루었다. 주방 1칸을 부수고 시청柴廳1423)을 만들고, 누각은 간간이 수리하였다. 12월 20일에 마쳤다. 들어간 금액은 본래 스스로 마련한 게 아니고 전부 사중寺中의 바람과 도움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강원을 설치하니 청풍납자淸風衲子들이 경전을 펼쳐 들고 가르침을 청하고, 새로 범종을 설치하니 법계의 중생들이 소리를 듣고 괴로움을 덜었다. 시냇물 소리의 연주와 누각의 모습은 이 건물의 경치 아님이 없다. 이에 사찰 신이 춤을 추고, 보는 이들이 손뼉을 치니, 가히 ‘제나라가 변하여 노나라 되고 노나라가 변하여 도에 이른다1424) ’고 한 것이 이런 것이다.
무릇 여럿이 계획하고 감독한 공덕이 이뤄지고 무너지는 구덩이에 사라질까 염려되어 이와 같이 기록해서 후인들에게 보이노라.
곡성군 옥과면 설산 수도암 기문(谷城郡玉果面雪山修道庵記)
옛날 인도의 설산에서 실달悉達(Siddhattha) 태자가 도를 닦아 바르게 깨달았고,

012_0768_c_01L法性寮正堂重修記

012_0768_c_02L
世之有形者曰天地以天地之大塊
012_0768_c_03L未免壞成而况間於天地者烏可免哉
012_0768_c_04L今是堂者自無形而形者屬於物質
012_0768_c_05L而幾經刼波稽古崇禎十三年庚辰
012_0768_c_06L安重建康熙六十四年乙巳風湛重修
012_0768_c_07L乾隆五十六年辛亥謹珉空樓重成
012_0768_c_08L光十九年己亥萬岑正堂重建光緖十
012_0768_c_09L [143] 年甲申敬彥北三間增架云今昭和
012_0768_c_10L二年丁卯秋住持栗庵公與衆謀重建
012_0768_c_11L令檜城堂蕫役自八月始體室七間中
012_0768_c_12L南一間增棟廳及祖室破三成二
012_0768_c_13L [144] 一間壞作柴廳樓則間修至十二
012_0768_c_14L月二十日畢所入金非本自辦全恃寺
012_0768_c_15L中願助也仍設講院淸風衲子橫經
012_0768_c_16L請益新掛梵鍾法界群生聞聲歇苦
012_0768_c_17L溪舌之奏響樓影之隱映莫非此堂之
012_0768_c_18L勝賞也於是乎伽神舞蹈覽者抃躍
012_0768_c_19L可謂齊變爲魯魯變爲道者此也
012_0768_c_20L諸謀之監之之功恐沒於成壞之坑
012_0768_c_21L是記之示諸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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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68_c_23L谷城郡玉果面雪山修道庵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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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印度之雪山悉達太子修道而正覺

012_0769_a_01L이제 옥과면 설산에서 민수敏洙 납자가 절을 짓고 이름 붙였으니 그 뜻이 어떠하겠는가. 즉 온갖 바위가 지극히 아름답고 빛깔이 눈 같아 그렇게 붙인 것이리라.
산의 남쪽(离)에 정씨鄭氏 초당이 있었는데 지키며 기르니 나무들이 울창하고 기이하고 빼어나 기틀(基局)이 서려 있으니, 원래 속인이 더럽힐 바가 아니요 실로 석자釋子(승려)들의 수도 장소라 하겠다. 그래서 민 공敏公이 조계산에서 점차 이리로 와서 동지인 신녀信女 김씨金氏와 함께 발원하고 재물을 모았고 게다가 정씨 산장을 얻어 이에 암자를 지었다. 소화昭和 원년(1926) 가을에 시작하여 3년(1928) 봄에 마치고, 그해 4월 8일에 완성(落成)하였다. 이에 한 채의 범궁梵宮이 하나의 초당 가운데 환영처럼 솟아나고 삼보의 복전福田이 삼신산三神山의 바깥에 찬란히 드러났다.
아, 산 이름과 암자 이름이 그렇게 붙은 까닭은 실로 월방月邦(인도)1425)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 어찌 그저 그러할 뿐인가. 산 모습이 탈속하고 샘물이 달며 뜰 가의 목탑이나 시야의 들판 색깔은 보는 이들이 스스로 얻을 뿐이다. 정씨의 산장과 단나檀那(시주)의 은혜와 화주(化士)의 바람과 창건주의 인연이 혹 천 년 후에 사라질까 염려되어, 산과 암자의 이름과 뜻을 먼저 분별하고 다음에 성함을 열거한다.
보제당 석정 기문(普濟堂石井記)
주나라 솥1426)은 나라의 보배이고 장주莊周의 표주박1427)은 집안의 소장품이지만 필시 물을 담는 쓰임새는 없다. 물을 담아 마실 수 있는 기구는 석정石井만 한 게 없다.
이제 신녀信女 박춘정朴春庭은 본래 영남 사람인데 보성군 벌교리에 살게 되었다. 기사년(1929) 봄에 이 산에 나들이 와서는 이 건물에 우물이 없음을 보고, 스스로 바람과 믿음을 내어 천금千金을 기부했다. 바위를 뚫어

012_0769_a_01L今玉果之雪山敏洙衲子剏寺而名庵
012_0769_a_02L其意奚若卽千巖竟秀其色如雪
012_0769_a_03L故稱之歟山之离有鄭氏之草堂守而
012_0769_a_04L養之林木蔚茂奇而秀之基局盤結
012_0769_a_05L原非凡俗之所累寔乃釋子之修道處
012_0769_a_06L故玆敏公來自曹溪轉到于此
012_0769_a_07L同志信女金氏發願鳩材又得鄭氏之
012_0769_a_08L山庄爰剏寺庵始於昭和元年秋
012_0769_a_09L乎三年春同四月八日落成了於是一
012_0769_a_10L區梵宮幻出於一草堂之中三寶福田
012_0769_a_11L煥現於三神山之外山名庵號之所
012_0769_a_12L以爲稱者實不愧於月邦之名義矣
012_0769_a_13L徒然哉若其山容之脫累林泉之美甘
012_0769_a_14L庭際之木塔眼界之野色覽者自得而
012_0769_a_15L至於鄭氏之庄檀那之惠化士之
012_0769_a_16L剏主之緣恐或泯於千載之下
012_0769_a_17L卞山庵之名義次列芳啣於左

012_0769_a_18L

012_0769_a_19L普濟堂石井記

012_0769_a_20L
夫周鼎之國寶莊瓠之家藏必無用於
012_0769_a_21L貯水者而貯水飮啄之器莫此石井
012_0769_a_22L若也今信女朴春庭本嶺南人寓於
012_0769_a_23L寶城郡筏橋里己巳春遊于玆山觀此
012_0769_a_24L堂之無井也自發願信惠千金穿一

012_0769_b_01L물을 담아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한 우리들 갈증도 풀게 하는 것이 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에 산 바깥에서 바위를 얻어 2월 26일에 시작해서 4월 4일에 마쳤다. 뜰 앞에 설치하고 물을 담아 공양하니 한결같이 단씨檀氏(시주)의 바람대로 되었다. 보배와 소장품으로 삼는 것이 어찌 솥이나 표주박으로 비견할 뿐이겠는가. 이어 다음과 같이 기린다.

刼石滅而寶珉利貞  겁석刼石이 사라지더라도 보배 옥돌은 날래고 곧으며
香海渴而德水淸淨  향해香海가 마르더라도 덕의 물은 맑고 깨끗하리라
원화 대사의 수시 서문(圓華大師壽詩序)
고흥의 동쪽에 ‘팔영산八影山’이 있고 팔영산 위에 ‘팔선八仙’이 있으며 팔선 아래에 ‘능가사楞伽寺’가 있다. ‘능가’를 번역하면 ‘가기 어렵다(難往)’가 된다. 사찰 안에 ‘성진性眞’이란 이가 있으니, ‘성진’이란 사람의 참된 본성이다. ‘팔선’이란 사람의 여덟 가지 식정識情1428)이다. 깨달음을 ‘참된 본성’이라 하고, 미혹함을 ‘식정’이라 한다. 미혹과 깨달음이 비록 다르나 본체로 보면 하나다. 이 식정을 깨달아 본성을 이루게 되므로 ‘성진性眞’이라 한 것인가. 생각건대 팔영八影의 기운은 성진이 그 영험함을 얻어 세상에 드러냈으니 그 이름 붙인 까닭이 어찌 그저 그러하겠는가.
성진은 동진童眞1429)으로 이 산에 들어와 여기서 자라며 경전을 배우고 여기서 늙으며 업을 윤택하게 하면서 선조의 남긴 법을 전하여 ‘원화圓華’라는 호를 얻었다. 또한 어찌 팔식八識을 돌이켜 일진一眞을 이룸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좋구나, 이름이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참을 닦아 본성을 깨닫고 필시 원만한 과보를 얻게 하면 만행화萬行華1430)가 팔영산 위에 자연히 드러나서 팔선을 이끌고 참된 본성의 바다 가운데 유희하리니 누군들 흠모하지 않겠는가.
스님은 동치同治 8년 기사(黃蛇, 1869)의 5월에 태어났으니 나보다 9년 뒤인데 함께 공부방(黌海)을 다니며 나이를 잊은 사귐을 맺었다. 인연 따라 남쪽으로 가서도 간간이 소식을 통하였다.

012_0769_b_01L貯水供佛亦解吾人渴情是所願
012_0769_b_02L余仍玆而得石於山外二月二十六
012_0769_b_03L日始四月初四日終運掛於庭前
012_0769_b_04L水供養一如檀氏之願其所爲寶藏者
012_0769_b_05L豈特以鼎瓠比肩也哉仍以頌言曰
012_0769_b_06L石滅而寶珉利貞香海渴而德水淸淨

012_0769_b_07L

012_0769_b_08L圓華大師壽詩序

012_0769_b_09L
高興之東有山曰八影八影之上有仙
012_0769_b_10L曰八仙八仙之下有寺曰楞伽楞伽此
012_0769_b_11L云難往寺內有人曰性眞性眞者
012_0769_b_12L之一眞性也八仙者人之八識情也
012_0769_b_13L悟之名眞性迷之名識情迷悟雖殊
012_0769_b_14L其體則一也悟此識而成其性故云性
012_0769_b_15L眞歟想是八影之氣性眞得其靈而現
012_0769_b_16L於世其所以名者豈徒然哉性眞童
012_0769_b_17L入玆山長於此而學經老於斯而
012_0769_b_18L潤業傳先祖之遺法得其號曰圓華
012_0769_b_19L亦豈非轉八識成一眞之謂耶善哉名
012_0769_b_20L若使此人修眞悟性必得圓果
012_0769_b_21L行華自現於八影之上携八仙而遊戱
012_0769_b_22L眞性海中孰不欽哉師生於同治八年
012_0769_b_23L黃蛇之五月日與余踞九年之後共遊
012_0769_b_24L黌海自結忘年之交隨緣落南間通

012_0769_c_01L세월(光陰)이 무상하여 홀연 소화昭和 4년 기사(屠維荒落, 1929) 석류꽃의 계절(5월)이 되니 즉 그대의 61년이 처음 돌아오는 경사스런 날이다. 잔치 자리의 오락을 알면서도 병마에 시달려서 갈 수 없으니 통절하도다.
상족上足(제자) 영현永玄 상인上人이 귀인ㆍ군자들의 보배롭고 축원하는 문장을 소매에 넣어 와서 보여 주고 서문(辯言)을 간절히 구하였다. 나는 말하길, “그대의 스승은 바로 나의 막역한 벗이다. 이러한 경사에 이르러 어찌 문장을 짓지 못한다고 사양하겠는가.”라고 하고는 즉시 황잡한 말을 끄집어 내어 다만 팔영산의 성진 원화性眞圓華의 이름과 호가 이러이러함을 기록하노라.
눌산 수좌가 은혜를 구하는 글(訥山首座求惠文)
엎드려 듣건대, 석존께서 발우를 지니고 성에 들어가 일곱 집의 음식을 구걸하였고, 공성孔聖(공자)은 학문을 일으켜 진陳나라에 갔다가 7일 동안 식량이 끊겼다고 한다. 복과 지혜가 구족하고도 방편으로 규칙(軌)을 보이심이요 도와 덕이 높지만 실상은 곤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법왕法王과 대성大聖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불자납승佛子衲僧이 어려움에 임하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이제 아무개는 어려서 정훈庭訓(가정교육)을 받고 일찍이 불교 가르침에 젖었다. 비록 고담을 하는 이름난 승려를 알현하였으나 장자長者의 오묘한 진리를 들어 보지 못하였다. 문자 찌꺼기로 삼시三時 선열禪悅의 맛을 삼고, 밀주진언密呪眞言으로 일생의 근거지(窟宅身)를 삼았다. 그러나 세속(世諦)의 생활 방법을 알지 못하고 인간 세상의 산업과 이익(物利)에 전혀 어둡다. 이로 말미암아 전해 오던 토지 몇 십 두斗가 온통 부모(親慈)를 구황救荒1431)하는 데 들어갔고, 현재 채장債帳1432) 수백 원이 동료와 교제한 가운데 돌출하였다.
아아, 청빈한 납자는 자기 생활을 온갖 산의 솔잎에 부치므로 두려워할 게 없으나, 혼탁한 세상의 호걸은 나와 남을 구별하며 빚을 삼리三利1433) 도장(符印)에 부치니

012_0769_c_01L信息矣光陰無常忽到昭和四年屠維
012_0769_c_02L荒落榴花之節卽吾君六一初度佳辰
012_0769_c_03L應知一宴上娛樂爲病魔所戱而難
012_0769_c_04L徃痛切矣有上足永玄上人袖貴君子
012_0769_c_05L之寶唾嘏詞而示之求以辯言恳之
012_0769_c_06L曰君之師卽吾之莫逆友也到此嘉慶
012_0769_c_07L安敢以不文辭哉卽抽荒辭只紀八影
012_0769_c_08L山性眞圓華之名號如是如是

012_0769_c_09L

012_0769_c_10L訥山首座求惠文

012_0769_c_11L
伏聞釋尊持鉢而入城乞七家之飯
012_0769_c_12L聖興文而遊陳絕七日之粮或福慧足
012_0769_c_13L而方便示軌或道德高而實相困窮
012_0769_c_14L其法王大聖尙或如此况以佛子衲
012_0769_c_15L臨難奈何今某幼蒙庭訓早霑釋
012_0769_c_16L雖謁名僧之高談未聞長子 [145] 之妙諦
012_0769_c_17L每以文字糟粕爲三時之禪悅味但以
012_0769_c_18L密呪眞言爲一生之窟宅身然而不知
012_0769_c_19L世諦之生活方法專昧人間之產業物
012_0769_c_20L由是流來土地幾十斗盡入於親慈
012_0769_c_21L救荒之中現前債帳數百圓突出於賓
012_0769_c_22L侶交際之上吁吁淸貧衲子自己生
012_0769_c_23L付諸千山之松葉旣無可畏濁世
012_0769_c_24L豪夫彼我債擔屬於三利之符印

012_0770_a_01L어찌하겠는가. 그래서 세 치(혀)의 짧은 말을 가지고 많은 가문의 장자 집안에 고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군자들께서 몇 방울의 물을 기울여 목마른 붕어를 살리시고, 주머니 속 많은 돈을 넉넉히 베푸사 물외物外의 납자를 살리소서. 엎드려 바라건대 밝히 살피소서.
경운1434) 화상의 찬에 답하는 글(答擎雲和尙賛文)
보정(鼎, 필자)이 근래 석향후石鄕侯 즉묵공卽墨公1435)과 갈고 다듬는 교분1436)을 딱 끊자 저선생楮先生ㆍ중산군中山君1437) 역시 사귀어 맺는 길이 없어져서, 쓸쓸히 배우자를 잃은 듯 울타리에 버려진 물건이 됨을 달갑게 여겼다. 문득 한 통의 경함瓊凾(편지)이 천궁天宮에서 떨어지기에 공손히 손으로 받들어 보니 진실로 신선세계 대강헌大講軒 노고추老古錐1438)의 글(寶唾)1439)임을 깨달았다. 감사(感頌)함이 어떻겠는가.
그 도덕은 봄 햇볕의 따사로움 같고 그 범행梵行1440)은 가을 물의 청결함 같으며, 그 말씀은 하늘의 꽃을 감동시키고 그 필설은 용의 정기를 감동시킬 만했다. 그래서 불찰佛刹(사찰)에서 금경金經을 옮겨 쓰니 노란 담비가 꼬리를 바치고, 선정仙亭에서 옥게玉偈를 부르니 흰 연꽃이 솟아나는 경사스러움이 자재하도다. 이는 근거 없는 황탄한 말이 아니요 원래 고찰할 바 있는 실제 자취로다. 이와 같은 위대하고 빛나는 행적이 이미 사람들의 입과 죽백竹帛(서적)에 실려 있는데 어찌 둔하고 졸렬한 필체로 만에 하나라도 찬양할 수 있겠는가.
이제 본사 강생講生들의 단체 행동으로 인해 발길을 돌려 수많은 보배 구슬을 적막한 물가에 흩뿌리시니, 공경하는 마음으로 봉독하고 말없이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풀 냄새 나는 글 하나 함부로 엮어서 화수정花樹亭 선원璿源1441)의 처마 밑에 바칩니다. 바라건대 질정하여 물리치소서. 마음이 혼미하고 손이 떨리며 문방사우가 갖추어지지 않아 소사小師1442)에게 시켜서 기록하여 바칩니다.

012_0770_a_01L若何哉故將三寸之短篇說敢吿千門
012_0770_a_02L之長子家伏唯僉君子傾數滴之水
012_0770_a_03L活一痼 [146] 之鮒優惠囊中之百金文以活
012_0770_a_04L物外之一衲子伏唯照鑑

012_0770_a_05L

012_0770_a_06L答擎雲和尙賛文

012_0770_a_07L
鼎近與石鄕候 [147] 卽墨公頓絕磨琢之分
012_0770_a_08L楮先生中山君亦無交締之道索然如
012_0770_a_09L喪偶者甘作芭蘺邊物矣忽一朶瓊
012_0770_a_10L殞自天宮恭手奉覽信覺仙界大
012_0770_a_11L講軒老古錐之寶唾也何等感頌哉
012_0770_a_12L道德也如春日之和融其梵行也
012_0770_a_13L秋水之淸潔其說也能感天花其筆
012_0770_a_14L能動虬精所以佛刹之寫金經
012_0770_a_15L鼦獻尾仙亭之唱玉偈白蓮出頭之慶
012_0770_a_16L祥自在此非無據之荒辭原是有稽之
012_0770_a_17L實績若此景行犖蹟旣載口碑竹帛
012_0770_a_18L安可以鈍詞拙筆之所可攅仰之萬一哉
012_0770_a_19L今仍本講生之團行回躅惠以萬斛瓊
012_0770_a_20L俯撒於寂莫之濱敬心奉讀不可以
012_0770_a_21L無言在座故妄搆蔬荀一關敢呈于花
012_0770_a_22L樹亭璿源之軒下幸須斤正而退之
012_0770_a_23L昧手戰四友未具倩小師而記呈

012_0770_b_01L
모후산1443) 유마사 염불당을 새로 짓고 천 일 기도를 결사하는 글(母後山維摩寺新剏念佛堂千日祈禱結社文)
엎드려 듣자니, 제불諸佛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의 백천 가지 문門 가운데 염불문이 최상이다. 왜 그러한가. 이 말엽 시대는 신근信根이 천박하여 대승 선법禪法으로는 깨달아 들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염불문이 최상이라 한다.
이제 유마사維摩寺는 고려 공민왕이 피란하던 곳이다. 그래서 ‘모후산母后山’이라 했고, 유마거사가 도를 얻었던 곳이라서 제월천濟月泉1444)이 길이 흐르고 도마치逃馬峙1445)와 사자봉獅子峰이 동서로 에워싸니 골짜기는 깊숙하고 봉우리들이 첩첩이라. 은거하는 인사가 아니면 실로 납자衲子가 머무는 곳이다. 천 년 동안 꽃비가 내리는 보방寶坊(사찰)이 어이하여 하룻 밤에 겁파刼波로 인해 옮긴 바가 되었는가.
광서光緖 5년(1879)에 이르러 서울 스님(京師) 김경담金景潭과 관찰사 김규홍金奎弘1446)이 보수하기로 같이 계획하였고, 기미년(1919)에 이르러 조계산 김영운金榮雲이 마을의 대부大夫들과 함께 단문檀門(시주)들의 재물을 모아 섬돌 아래 주당厨堂(부엌)을 세웠다. 그런데 비좁아서 무진년(1928) 봄에 이르러 주지 오호연吳浩然이 발원하고 소리쳐서 법당 앞에 승료僧寮 9칸을 만들었다. 찬란히 새롭게 되니 가히 ‘환영 같은 누각’이라 하겠다. 또한 밤이나 대추와 감 등 갖가지 과일 나무를 재배한 것이 수만 그루가 되고, 새로 개간한 밭이 또한 많았다.
이와 같을 뿐만이 아니다. 이어서 염불당을 마련하여 천 일 기도를 시작하였고, 뜻 있는 신도들과 모임을 맺고 마음을 닦아 극락에 함께 가고자 하는 결심으로 결안結案1447)하여 널리 아뢴다. 엎드려 바라건대 선군자善君子와 신여인信女人들은 신심信心을 단박에 발휘하여 같이 사안社案에 참여하소서. 옛말에, 한 무제의 옥당玉堂(궁궐)에 먼지가 자욱하고 석숭石崇의 금곡金谷1448)에 물만 그저 흐른다고 했으니, 상 위에 있는 술 살 돈을 아끼지 마시고 미타彌陀1449) 염불문으로 속히 들어오시오.

012_0770_b_01L母後山維摩寺新剏念佛堂千日祈
012_0770_b_02L禱結社文

012_0770_b_03L
伏聞諸佛渡生方便百千門中念佛一
012_0770_b_04L門最上何者唯此末葉信根淺薄
012_0770_b_05L乘禪法難可悟入故念佛門最上云
012_0770_b_06L今維摩寺者麗恭王避亂地故山名曰
012_0770_b_07L母后維摩居士得道處故濟月泉長流
012_0770_b_08L逃馬峙獅子峰東西擁衛洞府深邃
012_0770_b_09L峰巒層疊若非隱逸之士實是衲子之
012_0770_b_10L捿止其一千年花雨之寶坊何一夕間
012_0770_b_11L刼波之所遷迄光緖五年京師金景潭
012_0770_b_12L與觀察使金奎弘恊謀剏葺越至己未
012_0770_b_13L曹溪山金榮雲與郡大夫鳩財檀門
012_0770_b_14L剏立厨堂於階下陜陋難容故至戊辰
012_0770_b_15L住持吳浩然發願叫化剏僧寮九
012_0770_b_16L間於法堂前奐然一新可謂幻住樓閣
012_0770_b_17L亦復栗棗柿等各色果木耽爲栽培者
012_0770_b_18L幾萬株新懇 [148] 田地亦是夥多不但若
012_0770_b_19L此而已仍設念佛堂千日祈祝始作
012_0770_b_20L與有志信士結社修心同徃極樂之決
012_0770_b_21L結案普吿伏願善君子信女人
012_0770_b_22L發信心同叅社案古云漢武玉堂塵已
012_0770_b_23L石崇金谷水空流云莫惜床頭沽酒
012_0770_b_24L速入彌陀念佛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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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금산면 풍악산 송광암 중수와 개금 기문1450)(高興郡錦山面楓岳山松廣庵重修及改金記)
엎드려 듣건대, 잎사귀 하나로 부처님을 덮어 준 덕택으로 십륜十輪의 왕위를 얻었고, 동전 셋을 스님에게 보시하고 5리의 보배(寶藏)를 얻었다1451)고 하는데, 하물며 전각을 수리하여 불상을 안치하고 10속束의 금으로 불상에 옷을 입혔으니 어찌 왕위와 보장으로 논할 뿐이겠는가.
이 사찰은 바로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창건하셨다. 그 지역이 수려하고 그 불상은 신령하여 간절히 기도하면 즉시 응답하시니 종이 두드림을 기다림과 같고, 바람을 구하면 즉시 이루어지니 달이 강에 비침과 같다. 그 신령한 자취는 마을의 구비口碑(구전)에 자재하니 번거롭게 거듭할 필요 없다. 옛 기록을 고찰하면 가경嘉慶 11년 병인(1806)에 양개良盖 비구가 여섯 번째 중수重修하였고, 함풍咸豊 6년 병진(1856)에 증천證天 비구가 중수하니 고故 선극모宣克模 공이 공덕주가 되었고, 건양建陽 원년 병신(1896)에 우화又和가 중수하니 승지承旨 선영홍宣永鴻1452) 공이 또 공덕주가 되었고, 소화昭和 2년 정묘(1927)에 주지 경봉景鳳이 모화募化(탁발)하여 중수하니 참봉 선남훈宣南熏 공이 또 대공덕주가 되었다. 경오(1930) 봄에 개금改金 불사를 하였고, 참봉 공이 금산면 면장 장 공張公1453)ㆍ사키(佐木)1454) 등 여러 군자들과 함께 좋은 인연을 같이 맺어 불사를 성취하니 불당(佛宇)이 찬란해졌다. 썩은 평고대와 어긋난 기와들이 금강 보전寶殿으로 변하였고, 검은 칠을 한 신체는 광명 금체金體로 바뀌었다. 이로부터 불심佛心이 영험하여 복을 내리고 천룡이 환희하여 재앙을 소멸하리라.
아, 선 공宣公이 3대에 걸쳐 복을 지으니 십륜의 왕위와 화華의 3축祝1455)은 논할 것도 없고, 같이 참여하여 인연 맺은 군자들도 5리의 금과 순荀의 8룡1456)이 필시 감응 있으리라. 화주化主가 단씨檀氏들의 좋은 인연을 규합하였으니 정업淨業을 같이 닦아서 종지種智를 같이 원만히 이룰 것에 의심이 없다.

012_0770_c_01L高興郡錦山面楓岳山松廣庵重修
012_0770_c_02L及改金記

012_0770_c_03L
伏聞一葉覆佛感得十輪之王位三錢
012_0770_c_04L施僧尙得五里之寶藏而况修一殿而
012_0770_c_05L安佛銑十束而衣佛者豈特以王位寶
012_0770_c_06L藏論之哉今玆寺者卽普照國師所剏
012_0770_c_07L其地也秀麗其佛也神靈恳禱卽
012_0770_c_08L如鍾待叩求願卽遂如月印江
012_0770_c_09L神異靈蹟自在閭里之口碑不足煩之
012_0770_c_10L考其古記嘉慶十一年丙寅良盖比丘
012_0770_c_11L爲六重修咸豊六年丙辰證天比丘重
012_0770_c_12L故宣公克模作功德主建陽元年
012_0770_c_13L丙申又和重修承旨宣公永鴻又作
012_0770_c_14L功德主昭和二年丁卯住持景鳳
012_0770_c_15L化重修叅奉宣公南熏又作大功德
012_0770_c_16L庚午春改金佛事叅奉公與本面長南 [149]
012_0770_c_17L及佐木等諸君子同結良緣成就
012_0770_c_18L佛事煥然佛宇杇梠脫瓦變成金剛
012_0770_c_19L寶殿㓒身烏躬改作光明金體從此
012_0770_c_20L而佛心靈而降福天龍歡而消災
012_0770_c_21L宣公三代之作福十輪王華三祝已無
012_0770_c_22L可論諸君叅同之結緣五里金荀八
012_0770_c_23L龍必有感應以其化主之叫合檀氏之
012_0770_c_24L良緣同修淨業同圓種智之無疑也

012_0771_a_01L아름다운 자취가 사라질까 걱정되어 시말을 대략 기록해서 그 덕이 영원하기를 바라노라.
제자들에게 촉루1457)하는 글(囑累徒弟文抄)
아, 너희 제자들아. 나의 최후 한마디 말을 들어라.
인생 일세에 백년 광음이 얼마나 되는가. 나는 올해 엄자산崦嵫山1458)에 가까워졌다. 납일臘日1459)이 점차 도래하여 하룻밤 멈추지 않으면 바로 설날(元旦) 일월이라. 이러한 경우에 이르러 힘은 비록 산을 뽑을 만해도 염라대왕(閻老)의 몽둥이를 당할 수 없고, 약이 비록 신명하다 해도 찰귀刹鬼1460)의 운명을 살릴 수 없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세간의 티끌 재산을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그래서 약간의 유물인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和盤) 왼쪽에 나누어 벌여 놓되 먼저 조상 위토位土를 쓰고 다음에 자기 위토와 진속眞俗의 상좌上佐와 손자들 이름 아래 배열하노니, 배열에 따라 준행하여 무궁하게 전하도록 하라. 그리고 티끌 재산이란 뜬구름 같으니 항상 족함을 알아 각기 분수를 지키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여 분수 밖의 것을 구하지 말고 도탑고 화목한 마음으로 수신제가修身濟家하면 이를 일러 ‘화목한 가풍’이라 칭하리니, 나는 이것을 부탁하고 또 부탁하니 너희들은 진중하라.
소화昭和 5년 경오(1930) 음력 2월에 금명錦溟 사문沙門이 임종 시에 선례先例인 진제眞諦 조사의 자손기子孫記1461)를 손으로 들다.

012_0771_a_01L恐泯芳蹟略記始末以永厥德云尒

012_0771_a_02L

012_0771_a_03L1)囑累徒弟文抄 [26]

012_0771_a_04L
諮爾徒弟等아 聽我最後一言하라 人
012_0771_a_05L生一世에 百年光蔭이 能有幾許오
012_0771_a_06L我今年迫崦嵫에 臘日이 看看到來하
012_0771_a_07L야 一夜不停이면 卽是元旦日月이라
012_0771_a_08L到此境遇하야 力雖拔山이나 不能當
012_0771_a_09L閻老之捧하고 藥雖神明이나 不可活
012_0771_a_10L刹鬼之命이라 當此時也에 世間塵財
012_0771_a_11L를 將安用哉아 所以若干遺物動不動
012_0771_a_12L產을 和盤分列于左하되 先以祖上位
012_0771_a_13L土하고 次列自己位土及眞俗佐孫等
012_0771_a_14L名下하노니 依列遵施하야 以傳無窮
012_0771_a_15L之地하라 且以塵財난 如浮雲하니
012_0771_a_16L常以知足하야 各守其分하며 安貧樂
012_0771_a_17L道하야 勿求分外하고 以篤睦之心으
012_0771_a_18L로 修身濟家하면 是可謂和睦家風이
012_0771_a_19L라 稱하리니 吾以是로 囑之又囑하
012_0771_a_20L니 汝等은 珍重하라

012_0771_a_21L
昭和五年庚午陰二月日

012_0771_a_22L
錦溟沙門臨終手提

012_0771_a_23L
先例眞諦祖師子孫
012_0771_a_24L

012_0771_b_01L
선先 조사祖師 지봉당智峰堂 7과 선先 법은사法恩師 금련당金蓮堂 8 : 송광면松光面 장안리壯安里 1582. 논 2두斗. 쌀 15두.
원元 재주財主 위토 : 문덕면文德面 곡천리曲川里 975. 논 3마지기(斗落).
맏(長) 상좌上佐 제자第資 : 송광면 신평리新坪里 742, 207. 논 5마지기.
다음 상좌 제자 : 송광면 구룡리九龍里 4854 3두. 984 2두. 5마지기.
염불당 원입願入 : 송광면 신평리 728. 논 2마지기.
장례 비용 : 송광면 신평리 209. 논 2마지기.
차례로 속가俗家 조부와 현고비顯考妣 양주兩主의 위토 : 주암住岩 비룡리飛龍里 273. 논 2두.
형님의 손자 : 주암 비룡리 273. 논 1두.
둘째 형의 손자 : 주암 풍교리楓橋里 165. 논 1두 3되(升).
막내의 손자 : 주암 비룡리. 1두.
부록附錄
[부록 1附錄一]
행록초1)行錄草
법휘法諱는 보정寶鼎이요 자字는 다송茶松이니, 금명錦溟은 호號이고 또한 ‘첨화添華’라고도 한다.

012_0771_b_01L先祖師智峰堂七先法恩師金蓮堂八
012_0771_b_02L松光面壯安里一五八二畓貳斗米十
012_0771_b_03L五斗元財主位土文德面曲川里九七
012_0771_b_04L五畓參斗落

012_0771_b_05L
長上佐第資松光面新坪里七四二
012_0771_b_06L○七畓五斗落

012_0771_b_07L
次上佐第資松光面九龍里四八五四
012_0771_b_08L三斗九八四貳斗五斗落

012_0771_b_09L
念佛堂願入松光面新坪里七二八畓
012_0771_b_10L二斗落

012_0771_b_11L
葬費松光面新坪里二○九畓二斗落
012_0771_b_12L次列俗家祖
012_0771_b_13L顯考妣兩主位土住岩飛龍里二七三畓
012_0771_b_14L二斗

012_0771_b_15L
伯氏孫子住岩飛龍里二七三畓一斗
012_0771_b_16L仲氏孫子住岩楓橋里一六五畓一斗
012_0771_b_17L參升

012_0771_b_18L
季氏孫子住岩飛龍里一斗

012_0771_b_19L
012_0771_b_20L

012_0771_b_21L[附錄]
2)〔附錄一〕 [27]

012_0771_b_22L

012_0771_b_23L行錄草

012_0771_b_24L
法諱寶鼎字茶松錦溟其號亦名添

012_0771_c_01L곡성군谷城郡 운룡리雲龍里 사람이다. 성은 김씨로 옛 가락국 왕의 70대 후예이고, 이조 인종 때의 공신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2)의 11세 적손嫡孫이다. 조부는 자헌대부資憲大夫 김환태金煥泰이고 부친은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상종金相宗이다. 모친은 완산完山 이씨李氏로서 회임할 때 비단 같은 채색 구름 아래 개울이 넘쳐 바다가 되는 꿈을 꾸었다. 함풍咸豊 11년 신유년(1861) 1월 19일 축시丑時3)에 태어났다. 정수리는 높고 코는 똑바르니 골상이 길고 풍부했다.
나이 겨우 5세 때 스스로 이름을 ‘영준英俊’이라 하였으니, 이웃 노인들이 비상하다고 여겼다.
11세 때 입학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 독서한 지가 4년이 되는데 모친의 병이 위독하자 자신이 병수발을 맡아서 대소변 그릇을 들고 무수히 출입하면서 싫증 내지 않았다. 눈밭에서 영지를 캐고 진흙에 빠지며 조개를 구하는 데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렇게 20개월에 이르러 모친의 병환이 조금 차도가 있었지만 집안은 완전히 기울어서 자식 넷이 각자 흩어져 갈 곳이 없었다. 부친의 말씀에 따라 출가하게 되니, 모자간의 정이 어떠했겠는가.
15세 을해년(1875) 12월 20일에 어버이를 떠나 출발하여 순천군 송광산松廣山에 이르러 금련金蓮 화상에 의지하여 득도得度(출가)하고 경파景坡 대사에게 절하고 계를 받았다. 하루는 문득 마음이 슬프고 모골이 쭈뼛하여 모친을 뵙고 싶어서 스승께 고하고 달려갔더니 모친의 병환이 다시 심해져 목숨이 경각에 있었다. 병수발을 한 지 3일 만에 영결하게 되니 즉 병자년(1876) 5월 21일이었다.
18세 때 계사戒師를 모시고 유학遊學하여 경붕景鵬4)ㆍ구련九蓮5)ㆍ혼해混海6)ㆍ원화圓華7)ㆍ원해圓海8)ㆍ범해梵海9)ㆍ함명菡溟10) 등 대종사를 참학하였다. 8, 9년 사이에 그 조박糟粕11)의 맛을 배불리 얻었다.
무자년(1888) 1월 18일에

012_0771_c_01L谷城郡雲龍里人也姓金氏古迦
012_0771_c_02L洛國王七十代裔李朝仁廟時功臣鶴
012_0771_c_03L城君完之十一世嫡孫也資憲大夫
012_0771_c_04L煥泰通政大夫相宗完山李氏
012_0771_c_05L妊誕之夢彩雲如錦溪漲成溟咸豊
012_0771_c_06L十一年辛酉一月十九日丑時生頂高
012_0771_c_07L鼻直骨相修豊年甫五歲自言名
012_0771_c_08L曰英俊隣老以爲非常云十一歲入學
012_0771_c_09L日耕夜讀者僅四年慈母病篤自任
012_0771_c_10L侍湯大小便器無巡出入心不厭惡
012_0771_c_11L雪中採芝沒泥求蛤莫不竭力以至
012_0771_c_12L二十箇月後慈恙雖小差家道悉蕩敗
012_0771_c_13L四子各散無處可徃依父敎令出家
012_0771_c_14L母子之情狀當如何哉十五歲乙亥十
012_0771_c_15L二月二十日乃謝親發行至順天郡松
012_0771_c_16L廣山依金蓮和尙得度拜景坡大師受
012_0771_c_17L一日忽心慘毛竪思欲見母吿師
012_0771_c_18L馳徃慈恙更發命在呼吸纔侍湯三
012_0771_c_19L日永訣卽丙子五月二十一日十八歲
012_0771_c_20L陪戒師遊學叅于景鵬九蓮混海圓華
012_0771_c_21L圓海梵海菡溟等諸大宗師八九年之
012_0771_c_22L飽得其糟粕之味戊子一月十八日
012_0771_c_23L「囑累徒弟文抄」別紙流通編者移置於此
012_0771_c_24L「附錄一」三字編者補入

012_0772_a_01L엄군嚴君(부친)의 영서永逝(죽음)에 곡을 했다. 같은 해 2월에 은사의 유촉(恩囑)을 받들어 허주虛舟12) 선사를 여산厲山 땅에서 참학하였다. 은사恩師의 선호禪號 ‘금련당金蓮堂’을 받고 돌아와 은사에게 고하자, 은사가 말했다.
“나의 생전 바람을 네가 이제 완성시켰구나.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병상에 있어서 전할 만한 물건이 없으니, 너는 다른 가문에서 법을 구하는 게 좋겠다.”
“10년 가르쳐 길렀으니 본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만 심법心法을 전함이 오직 우리의 가풍家風입니다. 물건이 있고 없고를 어찌 말하겠습니까.”
“말인즉 옳지만 내 어찌 차마 하겠느냐.”
은사의 병이 더욱 심해져서 대소변을 치우게 되었는데 병수발하면서 괘념하지 않았다. 기축년(1898) 7월 26일에 입적하였다. 오호, 망극하도다. 탄식하며 시 하나를 지었다.

雙親恩傅俱看病  어버이와 은사 스님 모두 간병하여
大小糞穢手自摩  대변과 소변을 손수 직접 처리했지
雪芝泥蛤皆常事  눈밭의 영지와 진흙 밭 조개는 일상사
最恨無能斫脂蘇  손가락 피 내어 소생시키지 못함이 한이네

30세 경인년(1890) 2월에 금련당金蓮堂 아래에서 건당建幢13)하였고 보조실普照室에 주석하였으니 즉 부휴浮休14) 종파의 14세 문파門派라 하겠다.
신묘년(1891) 봄에 본암本庵(보조암)을 수선하고 서각제西閣祭15)의 폐해(苦瘼)를 혁파하였다.
임진년(1892) 2월에 능가산 서불암西佛庵16)에 들어가 관음상에 7일 동안 기도했다.
갑오년(1894)에 동학 난을 막았고 서울 군대(京師)의 노략을 맞아 사찰과 승려를 지켰다.
을미년(1895)에 본사 청진실淸眞室에 주석하였다.
병신년(1896) 봄에 방장산(지리산) 화엄사에서 요청하여, 갔다. 당시 걸출한 수재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
정유년(1897) 1월에 본산의 요청이 있어서 광원실廣遠室17)에 주석했으니 즉 국사께서 결사結社하셨던 도량이다. 법중法衆이 많고 많아서 방장이 좁았다. 같은 해 가을에 보조암普照庵의 요청에 따라 갔는데 마침 법을 전한 인연이 있었다. 납월(12월) 8일에 문하제자 눌봉訥峯18)에게 전강傳講하니 이것이 첫 번째 전심傳心이다.
무술년(1898) 봄에 심우心友19) 도량道良이 방장산에 들어왔다. 즉시 금강산으로 향하여 처음에는

012_0772_a_01L哭嚴君之永逝同年二月奉恩囑而叅
012_0772_a_02L虛舟禪師於厲山地受恩師禪號曰金
012_0772_a_03L蓮堂歸來吿恩恩曰吾之生願汝今
012_0772_a_04L成矣然吾久在病床無物可傳汝求
012_0772_a_05L法他門可乎答曰十年敎養本意安在
012_0772_a_06L但傳心法唯吾家風物之有無何足
012_0772_a_07L道之恩曰言卽是矣吾何忍乎恩病
012_0772_a_08L尤甚大小便除滌侍湯之情不忍掛
012_0772_a_09L至己丑七月二十六日奄寂嗚呼
012_0772_a_10L罔極哉嘆成一關曰雙親恩傅俱看病
012_0772_a_11L大小糞穢手自摩雪芝泥蛤皆常事
012_0772_a_12L恨無能斫脂蘇三十歲庚寅二月建幢
012_0772_a_13L於金蓮堂下住席於普照室中卽浮休
012_0772_a_14L宗十四世門派云辛卯春修繕本庵
012_0772_a_15L革罷西閣祭苦瘼壬辰二月入楞伽山
012_0772_a_16L西佛庵祈觀音像七日甲午拒東之亂
012_0772_a_17L接京師之掠寺僧保安乙未住本寺淸
012_0772_a_18L眞室中丙申春赴方丈山華嚴寺請
012_0772_a_19L時宏傑秀才盡萃于此丁酉一月有本
012_0772_a_20L山之請住廣遠室中卽國師結社之道
012_0772_a_21L法衆濟濟方丈自隘同年秋赴普
012_0772_a_22L照庵請適有傳法之緣臘月八日
012_0772_a_23L講于訥峯門弟此第一傳心也戊戌春
012_0772_a_24L心友道良入方丈山卽向金剛山

012_0772_b_01L원종찰圓宗刹 장경藏經에 참례하고 다음에 불종찰佛宗刹 불묘佛廟에 참례하였다. 홀연 가뭄 피해를 입자 계림군鷄林郡 사불산과 속리산ㆍ계룡산을 거쳐 돌아왔다. 비 올 때 방장산(화엄사 만일암) 구층대九層臺에 앉아 염불하고 눈 올 때 조계산(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서 결제結制20)했다.
기해년(1899) 1월에 해인사의 대장경을 인간하는 불사 모임에 들어가 교정과 편집의 책임을 맡았고, 일부 경전을 본사에 봉안하였다. 퇴재退齋를 모시고 진상하기 위해 역마를 타고 상경하였다가 돌아왔다. 칙명을 받들어 남여籃輿21)의 폐해를 혁파하였다. 대중(介衆)이 시왕十王 각부各部의 탱화를 새로 조성할 때 화주를 맡겨 2천여 금을 구하니, 며칠 되지 않아 성사시켰다. 다음 해 2월 15일에 이르러 일을 마치고 봉안하였다.
경자년(1900) 1월에 본군 통인通引22)이 혼란을 일으키자, 총섭의 임무를 담당하여 사원의 존폐를 염려하고 직무를 맡아 공무를 행하여 즉시 태상시太常寺23)에 보고하였다. 서울에서 포교를 보내 두 통인을 붙잡아 경무청警務廳24)으로 보냈다. 특별히 처분을 내려 엄형嚴刑을 가해 추방하였고, 또한 칙지勅旨 계판啓板25)을 내려 관청 폐해(官瘼)의 일을 혁파하게 하였다. 이에 사찰이 안정되었다.
신축년(1901)에 해남군 대흥사의 화재 이후 불사소佛事所에 나아가 증명단證明壇26) 40축軸의 복장腹藏27)을 장애 없이 성취하였다. 봉안하는 날 저녁에 상서로운 구름이 하늘에 서렸다.
임인년(1902)에 해인선원에서 하안거를 맺었다. 상궁 천씨千氏가 금강계단과 대구품大九品28) 승가리僧伽梨29) 모임을 마련하니 증명석에 참여하였다. 하안거 해제 후에 천씨를 모시고 본사로 돌아와 불전에 은혜롭게 보시하니, 번거롭지 않았다.30) 같은 10월에 기로사(耆社) 원당願堂 일로 대내大內31)에서 공문을 보내 해당 승려를 부르자, 자원하여 상경하였다. 마침 대내가 편치 않아서 화엄회를 동대문 바깥 원흥사元興寺32)에 마련하니 13도의 고승들이 모여들었다. 또한 그 모임에 참여하여 현요玄要를 이야기하였다.
해랍解臘33)

012_0772_b_01L叅圓宗刹藏經次禮佛宗刹佛廟忽爲
012_0772_b_02L旱魃之所害由鷄林郡四佛山俗離山
012_0772_b_03L鷄龍山而還雨際坐方丈之九層臺念
012_0772_b_04L雪際結曹溪之三日庵己亥一月
012_0772_b_05L入海印寺印大藏經佛事會爲較正編
012_0772_b_06L集之任一部經奉安于本寺奉退齋進
012_0772_b_07L乘馹上京而還奉勅革袪藍轝之瘼
012_0772_b_08L介衆以十王各部幀新成化主責之
012_0772_b_09L財二千餘金不日成功至明年二月十
012_0772_b_10L五日畢奉安也庚子一月本郡通引之
012_0772_b_11L作亂以㧾攝之任擔之自念寺院之存
012_0772_b_12L佩印行公卽報于太常寺自京發
012_0772_b_13L捉上二通引于警務廳特下處分
012_0772_b_14L嚴刑放下亦下勅旨啓板革罷官瘼
012_0772_b_15L之役寺乃安堵辛丑赴海南郡大興寺
012_0772_b_16L回祿後佛事所證明壇四十軸腹藏
012_0772_b_17L障成就奉安之夕瑞雲蟠空壬寅結
012_0772_b_18L夏於海印禪院尙宮千氏設金剛戒壇
012_0772_b_19L及大九品僧伽梨會叅證明席解夏後
012_0772_b_20L陪千氏還本寺佛前惠施不煩同年
012_0772_b_21L十月以耆社願堂事自大內發關
012_0772_b_22L該事僧自願上京適因大內不寧
012_0772_b_23L華嚴會於東門外元興寺十三道高僧
012_0772_b_24L會集亦叅其會談說玄要解臘後

012_0772_c_01L계묘년(1903) 5월 초에 이르자 내하금內下金34) 1만 관貫을 탁지부度支部에서 환척換尺하여 정명원鄭明源35)과 함께 수레를 타고 본사로 돌아왔다. 날을 정해 일을 감독하니 12월에 마치게 되었다. 그동안 손수 지은 것이 세 번, 상언上言한 것이 세 번이며, 성城에 들어가 두루 도모한 일이 일일이 들 수 없을 정도다. 혹자가 “불자佛子(승려)가 본업에 힘쓰지 않고 서울에 출몰하니 명예와 이익을 구함이 아닌가?”라고 하자, “불자 또한 신하이다. 군주를 위하는 마음이 본래 부처를 위하는 마음에 있으니 우리들의 군주에 대한 충성이 어찌 부처님에 대한 공경과 다르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또 본사 섭리攝理의 책임을 맡았다가 갑진년(1904) 가을에 이르러 병마 때문에 사임하고 물러나 만일암 방장실로 돌아왔다가 다시 무등산 원효암으로 가서 결랍結臘36)하였다.
을사년(1905) 3월에 회광晦光37) 선사가 전경轉經38) 불사 때문에 오자, 그 가운데 입승立繩39)과 검경도감檢經都監의 직임을 맡았다. 또 계단戒壇을 마련하여 갈마羯摩40)의 지위로 참여하였다.
병오년(1906) 3월에 본本 시왕계十王契에 예수預修41) 무차회無遮會를 마련하여 화주의 직임을 맡아서 단문壇門(시주)을 모집(鳩化)하여 영靈들을 천도했다.
무신년(1908)에 청진암淸眞庵42)에 자취를 숨겼다. 의병(義酋)43)들이 산에 가득했고 일본 병사들이 항거하였다. 4월 18일에 이르러 동암東庵과 보조암이 일시에 화재를 당했는데 본 암자는 편안히 화재를 면했다.
기유년(1909) 봄에 익우益友44) 한둘이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이런 세상에서 몸을 보호하는 계책은 초야에 숨는 게 제일인데 어찌하여 같이 가지 않는가?”라고 하자, “두 형이 어찌 그러함을 알리오. 나는 이미 산에 들어와 불자가 되었고 산을 내려가지 않겠다고 맹세했소. 산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을지언정 끝내 불자의 이름을 바꾸지는 않겠소. 오직 형들은 삶을 잘 도모하시오.”라고 답했다.
경술년(1910)에 풍조가 일변하자 신학문을 위해 학교를 설치하여 교육하였는데 한문과 불교 과목의 스승으로 추대하니, 교편을 사양하지 못하고 몇 년간 교편을 잡았다.
임자년(1912) 4월 8일에

012_0772_c_01L至癸卯五月初內下金一萬貫自度支
012_0772_c_02L部換尺與鄭明源乘輪還本克日蕫
012_0772_c_03L至十二月吿功這間手製三度
012_0772_c_04L言三度入城周圖事不能枚擧或曰
012_0772_c_05L佛子不務本業出沒京都無乃釣名求
012_0772_c_06L利耶曰佛子亦臣子爲君之心本在
012_0772_c_07L爲佛吾徒之忠君何異於敬佛乎
012_0772_c_08L年十二月又責以本寺攝理之任至甲
012_0772_c_09L辰秋以病魔謝任退歸萬日方丈室
012_0772_c_10L又赴無等山元曉庵結臘也乙巳三月
012_0772_c_11L晦光禪師以轉經佛事來以會中
012_0772_c_12L繩及檢經都監之任又設戒壇叅羯摩
012_0772_c_13L之位丙午三月本十王契中設預修
012_0772_c_14L無遮會推擔化主之任鳩化壇門而薦
012_0772_c_15L戊申隱迹于淸眞庵義酋遍山
012_0772_c_16L兵抗拒至四月十八日東普兩庵
012_0772_c_17L時衝燹而本庵安然免禍己酉春一兩
012_0772_c_18L益友前牽後推曰此世保身之計
012_0772_c_19L若野隱何不偕行乎曰兩兄安知其然
012_0772_c_20L吾旣入山以爲佛子誓不下山寧爲
012_0772_c_21L山氓所害終不改佛子之名唯兄等善
012_0772_c_22L自圖生也庚戌風潮一變乃以新學之
012_0772_c_23L𧨕設校敎育而推以漢文及佛敎師
012_0772_c_24L故不辭敎鞭數年敎授壬子四月八日

012_0773_a_01L금강계단을 장경전藏經殿에 마련하니 화상和尙과 아사리阿闍黎45) 계율을 받은 이들이 백 명에 달했다. 7월 15일에 응암應庵46) 선조의 영정을 마련하여 당堂에 걸었다.47)
갑인년(1914) 2월에 (송광사) 보제당普濟堂에 강원講院을 마련하여 강석講席에 부임하니 사자 무리들이 즐비하여 사람을 무는 경우가 많았다.48)
을묘년(1915) 3월에 방장산 천은사泉隱寺에 가서 또한 크게 모임을 여니 화산華山의 학도들이 점차 출몰하였다. 이에 좌주座主가 치혁鴟嚇49)하는 혐의가 없지 않아서, 겨우 1납臘(년)을 넘겼다.
병진년(1916) 1월 15일에 해남군 대흥사로 가니 바로 12종사께서 교화를 밝히신 곳이다. 사찰의 풍조는 융화하고 법중法衆이 번창하였다.
정사년(1917) 1월 13일에 다시 본산의 요청에 따라 가니, 실로 이른바 “푸른 봄에 고향으로 돌아가기 좋다.”50)라는 격이었다.
무오년(1918) 3월에 해은당海隱堂에서 전강傳講51)하니, 이것이 두 번째 전심傳心이다.
경신년(1920) 4월 초에 태안사泰安寺 선원으로 옮겨서 하안거를 마치고 또 봉서암鳳瑞庵 염불당에서 결랍結臘하였다.
신유년(1921) 1월 19일은 바로 61번째 생일(初度)이었다. 제자(徒弟)들이 1당堂에 다회茶會를 마련하여 수시壽詩52) 1권을 만들어 기념하고자 했다. 5월 15일에 본사에서 주지 직임을 세 번 청하였으나 다음과 같이 굳이 사양하였다. “내가 벌써 두 번이나 직임(印綬)을 맡아 산수(水土)의 은혜에 보답하였습니다. 이제 직임을 맡는다면 누진漏盡53)의 기롱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9월에 우연히 각기脚氣54)로 고통하며 신음한 지 10개월이 지나 조금 나았다.
임술년(1922) 7월에 또 본산 강원의 요청이 있어서 행각을 거두고 돌아왔다. 그리하여 보제당에 주석하였다. 물러나고자 하였으나 그렇지 못해서 연이어 7년을 주석하면서 강론(佔畢)55)하였다.
무진년(1928) 2월에 강원을 법성료法性寮로 옮기자 역시 자리를 옮겨 주석하였다. 3월에 해은당海隱堂에서 전강傳講하니 바로 세 번째 전심傳心이다. 보제당 염불회念佛會로 돌아와 정토업淨土業을 지었다.

012_0773_a_01L設金剛戒壇于藏經殿爲和尙阿闍黎
012_0773_a_02L戒徒盈百七月十五日以應庵先祖影
012_0773_a_03L幀剏新掛于堂甲寅二月設講院於
012_0773_a_04L普濟堂赴任講席獅徒濟濟咬人者
012_0773_a_05L多矣乙卯三月赴方丈山泉隱寺
012_0773_a_06L大會而華山學徒稍稍出沒座主不無
012_0773_a_07L鴟嚇之嫌僅過一臘丙辰一月十五日
012_0773_a_08L赴海南郡大興寺卽十二宗師闡化之
012_0773_a_09L寺風和融法衆繁昌丁巳一月十
012_0773_a_10L三日又赴本山之請實所謂靑春好還
012_0773_a_11L鄕者也戊午三月傳講于海隱堂
012_0773_a_12L第二傳心▣▣▣▣▣▣移 [150] 住泰安寺
012_0773_a_13L禪院解夏又結臘於鳳瑞庵念佛堂
012_0773_a_14L酉一月十九日卽六一初度也徒弟等
012_0773_a_15L設茶會一堂壽詩一𢎥以欲紀念之表
012_0773_a_16L五月十五日自本寺以住持之任三請
012_0773_a_17L而固辭曰吾旣再秉印綬以報水土之
012_0773_a_18L今若佩印安堪漏盡之譏耶九月
012_0773_a_19L偶以脚氣苦痛吟呻十箇月小差壬戌
012_0773_a_20L七月又有本山講院之請卽收脚還山
012_0773_a_21L仍住普濟堂欲退不得連住七年而佔
012_0773_a_22L戊辰二月講院移定於法性寮
012_0773_a_23L移席住之三月傳講海隱堂卽第三處
012_0773_a_24L傳心也返于普濟堂念佛會以做淨土

012_0773_b_01L8월 15일에 삼존불三尊佛을 개금하였다. 본당本堂의 벽화 구품도九品圖56)를 사람을 시켜 결말 짓고자 했으니 미타불彌陀佛57)인 까닭이다. 찬란하게 수리하였으니 바로 함호菡湖58) 선사가 보시한 것이다.
그 저술로는 시고詩稿 3권ㆍ문고文稿 2권ㆍ『불조찬영佛祖贊詠』 1권ㆍ『정토백영淨土百詠』 1권이 있고, 편록編錄으로는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 1권ㆍ『저역총보著譯叢譜』 1권ㆍ『석보약록釋譜略錄』 1권ㆍ『삼장법수三藏法數』 1권ㆍ『염불요해念佛要解』 1권ㆍ『속명수집續名數集』 1권ㆍ『십지경과十地經科』ㆍ『능엄경과도楞嚴經科圖』ㆍ『대동영선大東咏選』ㆍ『질의록質疑錄』ㆍ『수미산도須彌山圖』가 있다. 그 개당開堂하여 설회設會한 것이 모두 8처處 10회會이니, 일생 사업이 이와 같을 뿐이다.
[부록 2附錄二]
금명 강백의 61세 수시 서문(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
서창으로 해가 질 때 우연히 의산義山의 시를 읽다가 “석양이 한없이 좋은데 다만 황혼이 가깝구나.”59)라는 구절에 이르러 나도 몰래 허허 감탄하면서 뜰의 나무를 바라보며 방황하였다. 문득 주완섭朱完燮 생도의 편지를 받았으니, 주朱 생도는 에도(江戶, 도쿄)에서 유학하는 사람인데, 편지로 그의 사부인 금명 강백의 61세 수시壽詩에 대한 서문을 삼가 청하는 것이었다.
금명 강백은 남쪽의 석덕碩德 가운데 백미로서 나이(齒髮)가 한영漢永60)보다 10년 많다. 그윽이 30년 전을 회상하니 처음 금명 강백을 보았을 때의

012_0773_b_01L八月十五日三尊佛銑金本堂壁
012_0773_b_02L畫九品圖使人欲結彌陀佛故也奐然
012_0773_b_03L修理卽菡湖禪師所施也其著述者
012_0773_b_04L詩稿三文稿二佛祖贊詠一淨土百
012_0773_b_05L詠一編錄者曹溪高僧傳一著譯叢
012_0773_b_06L譜一釋譜略錄一三藏法數一念佛
012_0773_b_07L要解一續名數集一十地經科楞嚴
012_0773_b_08L經科圖大東咏選質疑錄須彌山圖
012_0773_b_09L其開堂設會凡八處十會一生事
012_0773_b_10L如是而已

012_0773_b_11L
012_0773_b_12L
012_0773_b_13L

012_0773_b_14L1)〔附錄二〕 [28]

012_0773_b_15L

012_0773_b_16L2)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 [29]

012_0773_b_17L
012_0773_b_18L
落日西窓偶讀義山詩至夕陽無限好
012_0773_b_19L只是近黃昏不覺歔欷感歎觀庭樹
012_0773_b_20L以彷徨輒承朱生完燮書朱生方留
012_0773_b_21L江戶上人也書中勤請其師父錦溟
012_0773_b_22L講伯六十一壽詩序錦溟伯南中碩德
012_0773_b_23L之白眉而齒髮長於漢永者十有春秋
012_0773_b_24L緬憶三十年前初見錦溟伯時勝

012_0773_c_01L성대한 만남이 문득 새벽 일 같은데 지금 세월이 쓸쓸히 또 도도히 흘러감이 어찌 이리 빠른가. 나는 겨우 약관弱冠(20세)에 학문에 뜻을 두어 백양산(羊山)과 조계산(曹溪) 사이로 뛰어난 학자들을 두루 방문하였다. 금명 강백은 보조普照 난야蘭若(절)에서 새로 개당開幢하였고 월하月荷 공公 또한 자정慈靜 도량61)에서 휘주揮麈62)하였으니, 모두 꽃다운 나이의 이름난 분들로 영걸한 모습이 타인을 감동시켰고 지혜는 태양을 쏠 만했다. 자리를 둘러 배우기를 청하는 이들이 항상 수십 인이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나란히 대열을 이루던 이들 가운데 ‘제봉찬霽峰讃’,63) ‘금봉림錦峰林’,64) ‘진응찬震應璨’,65) ‘금파호琴巴湖’66)가 가장 경외하는 벗이었다.
당시 해외의 문운文運이 날마다 왕성하였으니 호상毫相이 동쪽을 비춤67)과 같을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한국을 돌아보건대 흑산黑山 아래로 치달리는 귀졸鬼卒이나 여우 무리 같아서 볼 만한 정교政敎가 없으니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들의 세상 밖 영활靈活은 천하 국가를 멀리 벗어났다. 나의 궤선軌線은 오직 천석泉石(산수)에 정을 붙이고 구름과 달을 관리하며 둘도 없는 진제眞諦를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따름이 막역하였으니, 길이 좋아하여 역매驛梅68)를 주기도 하고 흥이 일면 설도雪棹69)를 요리하기도 했다. 옛사람이 말한 바 “만남에 기뻐서 늙음이 이르는 줄도 몰랐다.”70)라는 격이다. 이후 10년이 지나 금명 강백과 화산華山 능파淩波 공公은 동쪽으로 바다와 산악을 유람하다가 속리산 수정봉 아래 있는 나를 방문하셨다. 환한 얼굴에 말씀(詞稜)이 원만(朗圓)하니 도 있는 분의 기상을 더욱 볼 수 있었다. 하룻밤 가르침을 들으니, 친한 벗을 다시 만난 감회를 깊이 펼 수 있었다.
다시 10년이 지나 융마戎馬(전란)가 혼란하고 풍운이 몰아치는 세상에 산중 사람 또한 도를 지키기 어려웠다.

012_0773_c_01L會事恍然如隔一晨而至今落落復滚
012_0773_c_02L一何斯極余甫弱冠志於學問
012_0773_c_03L訪名宿于羊山曹溪之間錦溟伯新開
012_0773_c_04L幢於普照蘭若月荷公亦揮塵於慈靜
012_0773_c_05L道場俱以芳年名士英姿動人慧頴
012_0773_c_06L射日繞座請益者常數十人也又與
012_0773_c_07L余比肩同隊者曰霽峰讃曰錦峰林
012_0773_c_08L曰震應璨曰琴巴湖其最畏友也
012_0773_c_09L是時外洋之文運蒸蒸日上不啻若
012_0773_c_10L毫相之東照顧吾韓邦徒馳黑山下鬼
012_0773_c_11L卒狐輩無有政敎之可觀尙忍言哉
012_0773_c_12L然吾輩之方外靈活則逈脫天下國
012_0773_c_13L之軌線唯以寄情泉石管領雲月
012_0773_c_14L無二眞諦故其從莫逆也永好而或投
012_0773_c_15L贈驛梅興會而或料理雪棹古人所謂
012_0773_c_16L欣於所遇曾不知老之將至耳嗣後十
012_0773_c_17L錦溟伯與華山淩波公東遊海岳
012_0773_c_18L次訪我於俗離山水晶峰下韶顏充然
012_0773_c_19L詞稜朗圓尤見其有道者氣像聽誨一
012_0773_c_20L使我深發再逢親友之感矣又十年
012_0773_c_21L戎馬搶攘風雲人世山中人亦難守道
012_0773_c_22L「附錄二」三字編者補入{底}松廣寺所藏筆
012_0773_c_23L寫本此詩集本以別行本流通此非茶松子
012_0773_c_24L之撰述故編者以爲附錄

012_0774_a_01L그래서 나는 한용운韓龍雲 공과 새로운 가르침에 주력하였다. 바야흐로 충청도와 경상도 이남에 공무가 있어서 금명 강백을 삼청각三淸閣에서 뵈었는데 두 눈동자가 여전히 빛이 나고 안색도 이전보다 주름이 없는데 머리카락은 더 창백蒼白했다.
다시 10년이 지나니 우리의 도가 불행함인가, 균천鈞天71)에 사람이 없도다. 제봉霽峰과 금봉錦峰ㆍ능파淩波ㆍ금파琴巴 등의 상인上人들이 차례로 신선(仙侶)이 되고, 월하月荷 공公과 진응震應 공公이 모두 별천지를 개척하여 왕래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용운 공은 대비大悲를 드러냄으로써 근래에 삼매의 바다에 들어갔는데72) 홀로 나는 보잘것없이 오래도록 한강의 객이 되어 끝내 내세울 만한 일이 없다. 비 오면 눕고 눈을 반찬으로 삼아 누구와 같이 꿈을 꿀까. 아아, 슬프도다. 돌아가는 기러기를 눈으로 송별하며 밝은 달이 완연한데 어찌 거듭 원만하길 바라리오. 지난 시절 우리들이 맑게 노닐었던 것을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이에 풍파가 놀라운 시대라 다시 지난날의 화평했던 시절이 아니로다. 왕왕 촉급하고 비린 먼지가 바람을 따라 고요한 산창山窓에게까지 난입하니, 노스님(老古錐)이 말씀하신 바 “눈여겨봐야 할 시절”이라. 그러나 금명 강백은 능히 중정中正하고 건실한 모습으로 지주砥柱73)를 지탱하여 세우고 초복初服74)을 다시 닦아 조산曹山과 동호桐湖 어름에서 소요하면서 아스라이 높은 관을 쓰고 찬란한 패옥을 차시어, 옛 걸음을 잃어버린 나로 하여금 진실로 우러러보게 하니 얼마나 위대하신가.
마침 신유년(1921) 봄에 금명 강백의 고령(邵齡)이 이미 화갑 고개 위에 오르셔서, 문하의 용상龍象(대덕)으로 완섭完燮 상인上人 같은 경우 이제 청년으로 가장 빼어난 영재가 되었으니 진실로 가히 이른바 ‘석양의 풍경이 진실로 무한히 좋지 않음이 없다’ 하리라.
나 같은 이 또한 머리칼이 이미 창연蒼然75)해지고 생애가 점차 고담苦淡 지경으로 들어감에 금명 강백의 말광末光(여광)을 공경히 바라보면서 흠모와 감송感頌76)이 없겠는가. 이러므로 30년 동안 느꼈던 정회를 대략 서술하여

012_0774_a_01L故余與龍雲公力主新敎方有公事
012_0774_a_02L於湖嶺以南得拜錦溟伯于三淸閣中
012_0774_a_03L雙瞳尙烱烱顏容未皺於前日鬢毛加
012_0774_a_04L蒼白焉又復十年吾道之不幸歟 [151]
012_0774_a_05L天之無人歟霽峰錦峰淩波琴巴諸上
012_0774_a_06L次第化仙侶月荷公震應公皆拓
012_0774_a_07L別寰至不相徃來龍雲公用現大悲
012_0774_a_08L近入三昧海獨余無狀久客漢上
012_0774_a_09L無一事建竪雨卧雪餐與誰同夢
012_0774_a_10L嘻悲夫目送歸鴻明月宛在寧欲重
012_0774_a_11L曩時吾輩淸遊安所可幾乎哉
012_0774_a_12L玆風波驚刼非復昔日之昭代熙和
012_0774_a_13L徃噍殺之腥塵隨風亂入于涔寂山窓
012_0774_a_14L老古錐所云著眼時節也然錦溟伯
012_0774_a_15L能以中正健相撑立砥柱復修初服
012_0774_a_16L盤旋於曹山桐湖之交岌岌峨冠陸離
012_0774_a_17L瓊珮令吾猶失故步者允所瞻仰
012_0774_a_18L其偉歟適於辛酉春錦溟伯之邵齡
012_0774_a_19L已登花甲嶺上而門下龍象如完燮上
012_0774_a_20L人者爲今靑年英材之最秀則眞可謂
012_0774_a_21L夕陽景象洵非無限好者哉如余者亦
012_0774_a_22L已鬂髮蒼然生涯漸入苦淡一境聳觀
012_0774_a_23L錦溟伯之末光能無企羨且感頌者乎
012_0774_a_24L是以略叙三十年感舊之情懷聊以復

012_0774_b_01L완섭 상인에게 답장할 뿐이다.
 불기佛紀 2948년 신유(1921) 1월 30일 영호 한영映湖漢永이 삼가 쓰다.
금명 대사 수시錦溟大師壽詩
보정의 원래 시(寶鼎原韻)
金鷄唱曉借天靈  금계77)가 새벽을 알려 하늘 영을 빌리는
六一今朝未慧惺  61세 오늘 아침에도 지혜를 깨치지 못하니
去益昏迷難點石  갈수록 더욱 혼미하여 교화하기78) 어려우나
疲能隨喜但飜經  피곤해도 능히 기뻐하며 다만 불경 뒤적이네
堪羞鬂髮無爲白  머리칼이 일없이 백발 됨을 부끄러워하고
可愛庭蘭漸自靑  뜰의 난초가 점차 절로 푸르름을 좋아하네
幾訪曹溪多少路  조계산의 많은 길들을 몇 번이나 방문했나
謾觀水月坐松亭  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송정에 앉노라
삼가 원래 시에 차운하다(謹次原韻)
兄我同年禀一靈  형과 나는 같은 해에 영혼을 받아서
養身敎海夢初惺  가르침의 바다에 몸을 길러 꿈을 깨고
循友歷叅深翰墨  벗을 따라 두루 참학하여 필묵이 깊고
開人眼目悟眞經  사람의 안목을 여는 참 경전을 깨달으니
宴會東風窓梅白  잔치 모임의 동풍에 창가 매화는 희고
詩融和氣壽山靑  시 짓는 화락한 기운에 수산79)이 푸르니
如今再得齊瓶鉢  지금 제나라 발우를 다시 얻는다면
回甲桐林樂滿亭  동림80)의 회갑에 즐거움이 정자에 가득하리
 화옹花翁 양영월梁映月81)

道骨儼然南嶽靈  도의 골격이 의젓한 남악의 영령이여
纖塵不動石頭惺  가는 먼지도 날리지 않게 석두를 깨치네
桐山留月照新曲  동산82)에 머무는 달은 새로운 노래 비추고
鴨水生春飜古經  압수83)에 봄기운 나니 옛 경전 들추네
自笑狂氛天下赤  미친 기운에 천하가 붉어짐을 웃어 대나니
最憐芳草磵邊靑  방초가 계곡 옆에 푸름이 가장 사랑스럽네
心香一瓣憑鴻爪  심향 한 가닥을 홍조84)에 기대니
雲樹依微漢上亭  구름 낀 숲은 어렴풋이 한강 위 정자 같구나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85)

주완섭朱完燮 군이 그의 스승 금명 화상의 61번째 생신인

012_0774_b_01L完燮上人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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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紀二九四八年辛酉一月三十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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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湖漢永謹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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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4_b_05L1)錦溟大師壽詩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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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4_b_07L2)寶鼎原韻

012_0774_b_08L
金鷄唱曉借天靈六一今朝未慧惺

012_0774_b_09L去益昏迷難點石疲能隨喜但飜經

012_0774_b_10L堪羞鬂髮無爲白可愛庭蘭漸自靑

012_0774_b_11L幾訪曹溪多少路謾觀水月坐松亭

012_0774_b_12L

012_0774_b_13L謹次原韻

012_0774_b_14L
兄我同年禀一靈養身敎海夢初惺

012_0774_b_15L循友歷叅深翰墨開人眼目悟眞經

012_0774_b_16L宴會東風窓梅白詩融和氣壽山靑

012_0774_b_17L如今再得齊瓶鉢回甲桐林樂滿亭

012_0774_b_18L
花翁梁映月

012_0774_b_19L
道骨儼然南嶽靈纖塵不動石頭惺

012_0774_b_20L桐山留月照新曲鴨水生春飜古經

012_0774_b_21L自笑狂氛天下赤最憐芳草磵邊靑

012_0774_b_22L心香一瓣憑鴻爪雲樹依微漢上亭

012_0774_b_23L
石顚朴漢永

012_0774_b_24L
朱君完燮爲其師錦溟和尙六十一初

012_0774_c_01L신유년(1921) 정월 19일을 위하여 사방의 군자들에게 글을 구하였다. 주 군은 해외에서 유학하던 차라 나에게 편지를 보내 알렸다. 나는 화상과 이별한 지 해가 지났는데 듣자하니 이번 봄에 동리선방桐裡禪房86)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 도모道貌를 생각하니 늙어갈수록 더욱 맑아서 당연히 삼매세계에 들었으리라. 두 집안의 정리를 붙잡고 주 군의 효성에 감격하여 삼가 원운에 차운하여 하례한다.

一入名山養性靈  한번 명산에 들어가 성령을 기르니
弧辰風味益惺惺  생일의 풍미가 더욱 또렷하구나
六旬春早茶松室  60세 되는 이른 봄의 다송실에서
十重恩深玉笈經  열 겹의 은혜 깊은 옥급87) 경전
想裡曹溪緣最熟  생각 속에 조계의 인연은 가장 무르익고
定中桐嶽眼俱靑  선정 속에 동악의 눈은 모두 푸르도다
朱君遙獻無量祝  주 군이 멀리서 무량한 축하를 드리니
日下天長海上亭  해 아래 긴 하늘의 바다 위 정자라네
 사생社生88) 호산壺山 송태회宋泰會89)

승평부昇平府(순천) 조계산에 한 화상이 있으니 성은 김씨, 호는 금명錦溟이라. 어려서 출가하여 경전을 읽어 박식하고 커서 입참入叅하고 상당上堂90)하여 대중에게 설법하니 선문의 기둥이요 티끌 바다의 보배 선박이로다. 아아, 광음이 물과 같아 백 년이 찰나이니, 이에 화상의 화갑이 돌아왔도다. 이 날에 향풍이 가득하고 법우法雨가 뒤섞여 내리는데 두타頭陀91)들이 숲처럼 와서 하례하고 사미沙彌들이 줄을 지어 절하고 춤추는도다. 비록 인간 세상의 행위지만 천상의 음악 같도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가 빠졌으니 화상이 가장 사랑하는 소좌小佐(제자) 완섭完燮이 화연華筵(잔치)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섭은 바로 나의 종제從弟92)인데 14개월을 뱃속에 있다가 태어났다. 그래서 온 집안이 비범하다고 일컬었다. 14세 때 티끌세상을 자못 싫어하여 애써 출가를 구하였다. 처음에 조계산에 들어가

012_0774_c_01L在辛酉正月十九日乞文于四方君
012_0774_c_02L朱君方遊學海外寄書示余余別
012_0774_c_03L和尙已年聞今春叅于桐裡禪房想其
012_0774_c_04L道貌老而彌淸當入三昧界也攬兩
012_0774_c_05L家之誼感朱君之孝謹次其原韻而賀
012_0774_c_06L

012_0774_c_07L
一入名山養性靈弧辰風味益惺惺

012_0774_c_08L六旬春早茶松室十重恩深玉笈經

012_0774_c_09L想裡曹溪緣最熟定中桐嶽眼俱靑

012_0774_c_10L朱君遙獻無量祝日下天長海上亭

012_0774_c_11L
社生壺山宋泰會

012_0774_c_12L
昇平府曹溪山中有一和尙姓金氏
012_0774_c_13L號錦溟幼年出家閱經廣識壯歲入
012_0774_c_14L上堂說衆禪門之棟樑塵海之寶
012_0774_c_15L嗟呼光陰如水刹羅百年於是乎
012_0774_c_16L和尙之花甲週回是日也香風靄靄
012_0774_c_17L法雨紛紛頭陀如林而來賀沙彌作列
012_0774_c_18L而拜舞雖是人間做疑是天上樂
012_0774_c_19L有一缺于此和尙最愛小佐完燮未叅
012_0774_c_20L於華筵故也完燮卽吾之從弟而此君
012_0774_c_21L孕十四月而生一門相謂非凡年纔十
012_0774_c_22L頗厭塵寰苦求出家初入曹溪山
012_0774_c_23L此題名編者補入「寶鼎」二字編者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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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775_a_01L화상께 의탁하고는 그렇게 사제관계를 맺었다. 스승은 이로부터 은혜가 자못 깊고 깨우쳐 일러 주니, 밤낮으로 슬하에서 잠시도 허비하지 않았다. 세상에 변화가 많아 물살이 도도하고 혁신의 북소리가 울려 공문空門(사찰)까지 미쳤다. 스승은 부득이 에도가와(江戶川)93)로 보내 유학하도록 하였다. 스승의 화갑이 마침 입학 시기에 해당하니, 학업을 폐하고 돌아온다면 사부의 여러 겹 바람을 저버림이 된다. 그래서 주저하며 단행하지 못하고, 꽃을 꽂고 복숭아 드리는94) 정성을 수행하지 못하고서 그저 구름을 바라보고 축강祝崗95)하는 절을 올릴 뿐이었다. 완섭의 안타까움만이 아니라 또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고 감동하여 말로 표현하니 대략 만분의 하나라도 축원을 표시하고자 한다. 축원은 다음과 같다.

眞僧不世出    불세출의 참된 승려
年老道無盡    나이 늙어도 도는 다함 없네
數計恒沙盡    항하 모래가 다하도록
無量壽無盡    무량한 수명 다함 없으리
六一年高修一靈  61년 동안 높이 닦은 하나의 영
靈臺臺上獨來惺  영대96) 대 위에서 홀로 깨었네
牛回羊化無非道  소 돌아감과 양의 변화, 도 아님 없으니
蟬噪鶯歌㧾是經  매미 울고 꾀꼬리 노래함 모두 경전이지
江戶邊雲鵬趐遠  에도의 구름에 붕새가 멀리 날고
山樓半日鶴衫靑  산 누각에 걸린 해에 학 날개 푸르네
聊知和尙心如月  화상의 마음이 달과 같음을 알리니
遍照百千萬億亭  백천만억의 정자를 두루 비추네
 취은翠隱 주영찬朱榮璨

강 이름으로 금강錦江은 있는데 금명錦溟은 없다. 명溟이란 바다의 이름인데 또한 금해錦海도 없다. 삼보 가람 가운데 김金 상인上人 보정寶鼎은 호를 금명으로 받았는데 그 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금錦이란 베틀의 실 가운데 최고이고, 명溟이란 푸른 바다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이다. 최고의 비단과 가장 깊은 바다로서 어찌 범상한 물건과 태생을 비교하겠는가.
김 상인이 호를 얻음은 진실로 우연이 아니다. 또한 비단은 남방의 본색에 속하므로 금명은 남명南溟이다. 남명이란 천지天池이다. 또한 어찌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곳이 아니리오. 알지 못하겠다. 또는 김보정金寶鼎이 관음보살의 제자가 되길 원하였던가.

012_0775_a_01L投依於和尙仍結師佐師自此恩慈頗
012_0775_a_02L示喩密悟日夕膝下寸陰不虛
012_0775_a_03L世多飜波浪滔滔革新一鼓動及空門
012_0775_a_04L師不得已乃命送于江戶川留學師之
012_0775_a_05L花辰適値入學期也如廢學歸來
012_0775_a_06L負師父積累之望故週貯未斷未遂揷
012_0775_a_07L花獻桃之誠徒勞望雲祝崗之拜非惟
012_0775_a_08L完燮之結恨且令聞者多感感而發言
012_0775_a_09L略表萬一之祝祝曰眞僧不世出
012_0775_a_10L老道無盡數計恒沙盡無量壽無盡

012_0775_a_11L六一年高修一靈靈臺臺上獨來惺

012_0775_a_12L牛回羊化無非道蟬噪鶯歌㧾是經

012_0775_a_13L江戶邊雲鵬趐遠山樓半日鶴衫靑

012_0775_a_14L聊知和尙心如月遍照百千萬億亭

012_0775_a_15L
翠隱朱榮璨

012_0775_a_16L
盖有江名錦而無錦名溟溟是海之名
012_0775_a_17L而亦無錦名海也三寶伽藍中金上人
012_0775_a_18L寶鼎受號以錦溟莫詳其所據而然
012_0775_a_19L而錦是機絲之無上溟是滄溟之甚深
012_0775_a_20L以其無上之繡甚深之洋安可擬比於
012_0775_a_21L凡物凡胎哉金上人之得號誠非偶然
012_0775_a_22L而且想錦屬南方本色則錦溟卽南溟
012_0775_a_23L南溟者天池也亦豈非觀世音現化處
012_0775_a_24L不識不知抑或金寶鼎願爲觀音菩薩

012_0775_b_01L감히 관견管見으로 수시晬詩97) 끝에 붙인다.

賀君精進感神靈  그대 정진하여 신령 감동시킴을 축하하노니
不昧心燈了慧惺  마음 등불에 어둡지 않아 지혜롭게 깨었도다
衣鉢將傳誰守戒  의발을 전함에 누가 계를 지킬 것인가
色觀俱滅只餘經  모습이 모두 사라져도 경전만은 남으리
壽長南極星辰耀  남극성처럼 장수하여 빛나시기를
夢覺前庭栢樹靑  꿈을 깨니 뜰의 잣나무가 푸르도다
一派錦溟源有自  한 줄기 금명은 본래 근원이 있으니
曹溪山氣立亭亭  조계산 기운이 정정하게 서 있네
 소파小坡 조정현趙晶鉉

신유년(1921) 음력 정월 19일은 법은야法恩爺98) 금명錦溟 대강사大講師의 현호懸弧99) 길일(嘉辰)이니 인간의 영화로운 경사가 이날보다 더함이 없다. 그러나 마침 이 때에 완섭完燮은 학해學海에 이름을 도적질하여 에도(江戶)에 몸이 정체되었으니, 절구를 가는100) 공력이 부족하지만 죽을 나눠 먹는 의지를 결정하였다. 황향黃香101)이 부친의 베개에 부채질하는 정성은 간절하지만 노래자老萊子102)가 색동옷 입고 춤을 추던 예절이 결여되었다. 아, 조용히 무릎 꿇고 엎드려 생각건대 과거는 꿈과 같고 현재는 감개무량이니 공문空門(사찰) 10년 동안 중후한 은혜를 받았도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르치고 길러 주시며 모든 이理와 사事에 있어 진실로 가르치시고 이끌어 주시니 사은四恩103)에 있어 무거움이 태산 같아 삼생三生에 증명하더라도 만에 하나라도 보답할 수 없도다. 스승이 제자(資)를 생각하고 제자가 스승을 우러름에 길은 만 리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한 줄로 통하여 생각마다 끊이지 않고 때마다 잊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 61세 화갑을 맞음에랴. 진실로 황공하여 유장한 안타까움을 해소할 길 없다. 이에 여러 방면 대군자大君子들의 주옥같은 글을 축사(嘏詞)로 구하여, 축하하고 기념하는 재료로 삼게 했다. 그리고 푸성귀 같은 말이나마 바쳐서 명령榠欞104)의 복을 비느라 우둔함을 헤아리지 않고 대략 서술한다.

六旬道氣百磨靈  육순의 도력으로 백 번이나 영을 다듬으니
風貌超然儼獨惺  풍모가 초연하게 엄연히 홀로 깨었도다
定中心照桐山月  선정 중에 마음을 비추는 동산의 달
境上塵晴法海經  지경의 먼지도 맑은 법해의 경전이라네
齎慶嘏詞雲朶白  경사를 담은 축사로 구름 꽃이 희고
供歡祝盞篆烟靑  축하드리는 잔에 향연이 푸르구나

012_0775_b_01L弟子歟敢以管見并尾晬詩

012_0775_b_02L賀君精進感神靈不昧心燈了慧惺

012_0775_b_03L衣鉢將傳誰守戒色觀俱滅只餘經

012_0775_b_04L壽長南極星辰耀夢覺前庭栢樹靑

012_0775_b_05L一派錦溟源有自曹溪山氣立亭亭

012_0775_b_06L
小坡趙晶鉉

012_0775_b_07L
辛酉陰正月十九日爲法恩爺錦溟大
012_0775_b_08L講師懸弧嘉辰而人間榮慶莫此日
012_0775_b_09L若也然適玆燮方盜名學海滯身江
012_0775_b_10L工欠磨杵志決割粥雖切黃香扇
012_0775_b_11L枕之誠旋缺老萊斑舞之禮靜跪
012_0775_b_12L伏念過去夢幻現在感慨空門十載
012_0775_b_13L厚蒙重恩自幼迄今以敎以育凡於
012_0775_b_14L理事洵諄訓導在四恩而重若泰山
012_0775_b_15L證三生而莫報萬一也師之念資資之
012_0775_b_16L仰師路隔萬里心通一線念念不斷
012_0775_b_17L時時難忘况値此六之一花甲乎哉
012_0775_b_18L惶誠恐長恨莫消于是乞得諸方大君
012_0775_b_19L子瓊琚嘏詞俾作祝賀紀念之次謹將
012_0775_b_20L菲蔬之詞替獻榠欞之福以故不揣愚
012_0775_b_21L聊敍大略

012_0775_b_22L六旬道氣百磨靈風貌超然儼獨惺

012_0775_b_23L定中心照桐山月境上塵晴法海經

012_0775_b_24L齎慶嘏詞雲朶白供歡祝盞篆烟靑

012_0775_c_01L恨身萬里江湖外  안타까운 것은 몸이 만 리 강호 바깥이라
獻壽無能滯旅亭  장수 기원의 잔 못 올리고 여관에 묶임이라
 에도 여관에서 소좌 완섭이 삼가 절하고 쓰다.(時在江戶旅舍小佐完燮謹拜稿)

空門龍象老逾靈  공문의 용상대덕이 늙을수록 영험하니
出世初年已慧惺  세상에 나온 초년에 이미 지혜로웠지
牀前雲集三千衆  단상 앞에 구름처럼 모인 삼천 대중들
胷裡燈明八萬經  가슴속 등불을 밝히는 팔만대장경
淋漓蕉葉毫端墨  흥건한 파초 잎들은 붓끝에서 먹색이요
㶑灎蓮花鉢底靑  물결 위의 연꽃은 발우 밑에서 푸르네
願借露牛超火宅  바라건대 노지 백우로 화택을 넘길105)
共君閑話六鑑亭  그대와 함께 육감정106)에서 이야기하네
 남파南坡 김효찬金孝燦107)

曹溪自古最稱靈  조계는 예로부터 가장 신령하다 하여
韵釋從生有佖惺  글 짓는 승려가 생겨나 깨었도다
化流鰈域三千里  교화가 한반도 삼천리에 흐르고
緣熟龍宮八萬經  인연이 용궁의 팔만대장경에 깊도다
百年夢裡雙鬂白  백 년은 꿈처럼 지나 귀밑머리 하얀데
四節春間一面靑  사계절이 봄이라 얼굴은 청춘이라네
謹將壽句遙呈禮  삼가 생신 축하 시를 멀리서 드리나니
可賀鶴來華表亭  축하하는 학이 화표108) 정자로 오리라
 백취운白翠雲109)

宿刼親因繫鷲靈  숙겁의 친한 인연이 영취산에 매여
幾多醉夢一場惺  수많은 취한 꿈을 한바탕 깨고 나서
寸心不漏塵沙佛  작은 마음에 수많은 부처 놓치지 않고
半句能揚海墨經  절반 구절로 바다 같은 경전 칭양했네
壽酒松間凌雪碧  생신 술잔이 솔 사이의 눈보다 맑고
賀箋梅下入琴靑  축하 글은 매화 아래 거문고로 푸르니
曹山祗樹深雲雨  조계산의 기수110)에 구름과 비가 깊고
法水溶溶滿石亭  법수가 흥건하여 바위 정자에 가득하네
 송만암宋曼庵111)

壽國晬春放化靈  장수 나라의 생신 봄에 화령을 내니
回頭物物入惺惺  머리 돌리니 존재마다 깨달음에 드네
吐呑日月三千世  일월을 토하고 삼킨 삼천 대천 세계
呼答風雲八萬經  풍운을 부르고 답한 팔만대장경
大地香烟凝夢白  대지의 향기로운 연기에 엉긴 꿈은 희고
滿天淑氣拂衿靑  하늘 가득 맑은 기운 스치는 옷깃 푸르네
曹溪不老今猶古  조계는 영원하여 오늘도 옛스러우니
度此迷倫樂此亭  미혹한 이들 구제하고 이 정자에서 즐기네
 이석암李石庵

曹溪淑氣毓英靈  조계의 맑은 기운이 영령을 기르고
天遣吾師早證惺  하늘이 우리 스승 보내 일찍 깨달으니
書法傳家今古帖  서법은 집안에 전하는 고금의 첩이요
宗風繼世萬千經  종풍은 대대로 이어진 만천 권 경전이라

012_0775_c_01L恨身萬里江湖外獻壽無能滯旅亭

012_0775_c_02L
時在江戶旅舍小佐完燮謹拜稿

012_0775_c_03L
空門龍象老逾靈出世初年已慧惺

012_0775_c_04L牀前雲集三千衆胷裡燈明八萬經

012_0775_c_05L淋漓蕉葉毫端墨㶑灎蓮花鉢底靑

012_0775_c_06L願借露牛超火宅共君閑話六鑑亭

012_0775_c_07L
南坡金孝燦

012_0775_c_08L
曹溪自古最稱靈韵釋從生有佖惺

012_0775_c_09L化流鰈域三千里緣熟龍宮八萬經

012_0775_c_10L百年夢裡雙鬂白四節春間一面靑

012_0775_c_11L謹將壽句遙呈禮可賀鶴來華表亭

012_0775_c_12L
白翠雲

012_0775_c_13L
宿刼親因繫鷲靈幾多醉夢一場惺

012_0775_c_14L寸心不漏塵沙佛半句能揚海墨經

012_0775_c_15L壽酒松間凌雪碧賀箋梅下入琴靑

012_0775_c_16L曹山祗樹深雲雨法水溶溶滿石亭

012_0775_c_17L
宋曼庵

012_0775_c_18L
壽國晬春放化靈回頭物物入惺惺

012_0775_c_19L吐呑日月三千世呼答風雲八萬經

012_0775_c_20L大地香烟凝夢白滿天淑氣拂衿靑

012_0775_c_21L曹溪不老今猶古度此迷倫樂此亭

012_0775_c_22L
李石庵

012_0775_c_23L
曹溪淑氣毓英靈天遣吾師早證惺

012_0775_c_24L書法傳家今古帖宗風繼世萬千經

012_0776_a_01L爲設壽筵山雪白  수연을 마련한 산에 남은 눈은 희고
親迎故友澗松靑  친구들 친히 맞는 개울가 소나무 푸르네
數句蕪詞遙寄頌  몇 마디 무잡한 말로 멀리서 송시 부치고
未能獻祝枕溪亭  개울 위 정자에서 축하를 드리지 못하네
 안창위安暢尉

五鳳翩翩瑞氣靈  다섯 봉황이 훨훨 날아 영험한 기운에
洞天性月竟惺惺  동천112)의 성월은 끝내 깨어 있나니
靜思仙母安心術  서왕모의 안심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朗讀梵王長壽經  범천왕의 『장수경』113) 낭랑히 읽노라
閱盡空華鬂髮白  허공 꽃을 다 보아 머리칼은 하얗고
談來公案眼波靑  공안을 이야기하는 눈동자 푸르도다
萬年觴裡顏逾少  만 년의 술잔 속에 얼굴은 더욱 젊어
高卧南山松竹亭  높이 남산 송죽 정자에 누웠네
 정황진鄭晄震114)

鍊來利刃最威靈  단련한 날카로운 칼날이 가장 영험하니
方接群昏莫不惺  혼미한 군생들 맞아 깨우치지 않음 없네
始越南城唯問法  처음에 남쪽 성 넘어 오직 법을 물었고
終遊敎海已叅經  끝내 가르침 바다에 노닐어 경전 익혔네
春廻古圃荊花赤  봄이 묵은 밭에 돌아오니 형화115) 붉고
日㬉仙階寶樹靑  해가 신선 계단에 비치니 보수116) 푸른데
壽祝霞盃兼賀篤  장수 비는 노을 잔에 축하가 돈독하고
飄然華髮獨亭亭  흩날리는 백발이 홀로 정정하구나
 용암龍巖 최진수崔振秀

風儀卓爾氣虛靈  풍채 탁월하고 기운은 영험하여
萬彙坐中獨自惺  만인이 앉은 가운데 홀로 깨었구나
滿篋新詩幽興在  책상 가득한 시는 그윽한 흥취 있고
一樽淸酌幾巡經  한 동이 맑은 술은 몇 순배 돌았나
胸懷廓落乾坤白  가슴은 드넓어 천지가 하얗고
公案圓成栢樹靑  공안 원만히 성취하니 잣나무 푸르다117)
南極明星垂鳳峙  밝은 남극성이 봉두산에 드리울 제
靄瑞遠及六鑑亭  상서로운 아지랑이 멀리 육감정에 미치네
 이설월李雪月118)

大地曹溪人巨靈  대지는 조계산이요 사람은 거령119)이라
終朝如愚反惺惺  아침 내내 바보 같으나 도리어 깨어서
落花芳草隨行道  지는 꽃과 풀들을 따라 도를 행하고
明月淸風已轉經  밝은 달 맑은 바람에 벌써 독경했네
不許獰龍蟠水碧  사나운 용이 푸른 물에 서림을 허용 않고
但看癯鶴翹松靑  마른 학이 푸른 솔에 날아 앉음만 보네
想應春到深山雪  봄이 와도 깊은 산의 눈을 생각하노니
壽酒顚狂六鑑亭  장수 기원하는 술로 육감정에서 취하리
 백학명白鶴鳴

天色推福降斯靈  하늘빛이 복을 주려 이 영령을 내리시니
辛酉春風物再惺  신유년 봄바람에 만물이 거듭 깨었네

012_0776_a_01L爲設壽筵山雪白親迎故友澗松靑

012_0776_a_02L數句蕪詞遙寄頌未能獻祝枕溪亭

012_0776_a_03L
安暢尉

012_0776_a_04L
五鳳翩翩瑞氣靈洞天性月竟惺惺

012_0776_a_05L靜思仙母安心術朗讀梵王長壽經

012_0776_a_06L閱盡空華鬂髮白談來公案眼波靑

012_0776_a_07L萬年觴裡顏逾少高卧南山松竹亭

012_0776_a_08L
鄭晄震

012_0776_a_09L
鍊來利刃最威靈方接群昏莫不惺

012_0776_a_10L始越南城唯問法終遊敎海已叅經

012_0776_a_11L春廻古圃荊花赤日㬉仙階寶樹靑

012_0776_a_12L壽祝霞盃兼賀篤飄然華髮獨亭亭

012_0776_a_13L
龍巖崔振秀

012_0776_a_14L
風儀卓爾氣虛靈萬彙坐中獨自惺

012_0776_a_15L滿篋新詩幽興在一樽淸酌幾巡經

012_0776_a_16L胸懷廓落乾坤白公案圓成栢樹靑

012_0776_a_17L南極明星垂鳳峙靄瑞遠及六鑑亭

012_0776_a_18L
李雪月

012_0776_a_19L
大地曹溪人巨靈終朝如愚反惺惺

012_0776_a_20L落花芳草隨行道明月淸風已轉經

012_0776_a_21L不許獰龍蟠水碧但看癯鶴翹松靑

012_0776_a_22L想應春到深山雪壽酒顚狂六鑑亭

012_0776_a_23L
白鶴鳴

012_0776_a_24L
天色推福降斯靈辛酉春風物再惺

012_0776_b_01L雙蘭膝下無窮樂  두 난초는 슬하의 무궁한 즐거움이요
十尺棚頭大藏經  10척의 시렁 위에 놓인 대장경 보니
鶴髮爭新華首白  학발이 새롭길 다투어 머리는 하얗고
龜齡占得壽椿靑  거북 나이로 대춘120)처럼 장수하여
傳敎傳禪能事畢  교와 선을 전하는 일을 마치고
優遊靜坐哲翁亭  조용히 앉은 철학자의 정자로다
 석호錫虎 임형순林炯珣121)

溪山千載最仙靈  천 년의 산과 물에 가장 뛰어난 영령이니
肯說師翁夢復惺  노스님 꿈을 다시 깨었다고 어찌 말하랴
月照蓮花心契理  달 비치는 연꽃에 마음은 이치와 합하고
風飜貝葉口傳經  바람 날리는 패엽에 입으로 경전 전하네
雲孫能述家行古  후손이 능히 오래된 가행을 계승하고
鶴壽宜增浩氣靑  수명122) 증가하며 호탕한 기운 청춘이라
六十春秋大事畢  육십의 춘추로 일대사를 마쳤으니
香醪佳頌鳳凰亭  향기로운 술과 노래로 봉황정에서 즐기네
 겸호兼湖 도진호都鎭鎬123)

列星抱送嶽鍾靈  뭇 별들이 산악의 정령을 안아 보내니
玉雪精神萬事惺  옥설 같은 정신으로 만사를 깨우쳤네
弧矢何年曾設宴  호시124)로 어느 해 잔치를 베풀었나
晬盤今日又來經  생일상을 오늘에 또 와서 겪는구나
筆頭雲起雙蛟黑  붓끝에서 구름 일듯 쌍룡이 검고
塵末風生兩眼靑  티끌에 바람 불어 두 눈이 푸르네
亂酌無巡紅燭屹  어지러운 술잔에 붉은 촛불 아스라이
繡屛荷盖更亭亭  휘장과 연잎 일산이 더욱 정정하도다
 강철월姜哲月

年高德邵性其靈  나이 많고 덕이 아름답고 성품 신령해
龜父文章使世惺  거북 아비의 문장이 세상을 깨우네
鬂爲嗜書已半白  머리칼은 책을 좋아해 이미 반백이나
眼因擇友猶常靑  눈은 벗을 가리느라 여전히 푸르네125)
鳳鳴歧處奏新樂  봉황 우는 기산126)에 새 음악 연주되고
鶴翼南時誦古經  학이 남으로 올 때 옛 경전 외우네
竟捧壽庵祈遐籌  수암을 받들어 장수를 기원하노니
伐毛洗髓捿仙亭  털 뽑고 골수 씻어127) 선정에 머무소서
 춘당春堂 이규한李圭翰

泰安寺裡降仙靈  태안사 안에 강림한 선령이시여
挺松鶴骨更惺惺  솔과 학의 자태로 더욱 성성하도다
壯時名遍三千刹  젊은 시절 명성이 삼천리 사찰에 퍼졌고
老去心空八萬經  늙어갈수록 마음 비워 팔만대장경뿐이네
毛髮無爲從古白  모발은 일없이 예로부터 하얗고
眼瞳自若至今靑  눈동자는 태연히 지금까지 파랗도다
六十年來何所有  육십 년 동안 무엇을 소유하였나
二蘭春色一書亭  두 난초의 봄빛과 하나의 정자라네
 만취晩翠 최평담崔平澹128)


012_0776_b_01L雙蘭膝下無窮樂十尺棚頭大藏經

012_0776_b_02L鶴髮爭新華首白龜齡占得壽椿靑

012_0776_b_03L傳敎傳禪能事畢優遊靜坐哲翁亭

012_0776_b_04L
錫虎林炯珣

012_0776_b_05L
溪山千載最仙靈肯說師翁夢復惺

012_0776_b_06L月照蓮花心契理風飜貝葉口傳經

012_0776_b_07L雲孫能述家行古鶴壽宜增浩氣靑

012_0776_b_08L六十春秋大事畢香醪佳頌鳳凰亭

012_0776_b_09L
兼湖都鎭鎬

012_0776_b_10L
列星抱送嶽鍾靈玉雪精神萬事惺

012_0776_b_11L弧矢何年曾設宴晬盤今日又來經

012_0776_b_12L筆頭雲起雙蛟黑塵末風生兩眼靑

012_0776_b_13L亂酌無巡紅燭屹繡屛荷盖更亭亭

012_0776_b_14L
姜哲月

012_0776_b_15L
年高德邵性其靈龜父文章使世惺

012_0776_b_16L鬂爲嗜書已半白眼因擇友猶常靑

012_0776_b_17L鳳鳴歧 [152] 處奏新樂鶴翼南時誦古經

012_0776_b_18L竟捧壽庵祈遐籌伐毛洗髓捿仙亭

012_0776_b_19L
春堂李圭翰

012_0776_b_20L
泰安寺裡降仙靈挺松鶴骨更惺惺

012_0776_b_21L壯時名遍三千刹老去心空八萬經

012_0776_b_22L毛髮無爲從古白眼瞳自若至今靑

012_0776_b_23L六十年來何所有二蘭春色一書亭

012_0776_b_24L
晩翠崔平澹

012_0776_c_01L仁壽誠難六一靈  인자함과 장수를 겸한 61세 영령이여
弧筵幻夢獨能惺  생일잔치의 환몽을 홀로 깨었도다
畫縑星色輝天極  비단의 별빛이 하늘 끝에 빛나고
舞彩風光轉孝經  색동옷 춤129)의 풍광이 『효경』 읽는 듯
方綻梅腮三逕白  막 피어난 매화 뺨이 세 길130)에 희고
始萌柳眼一簾靑  새로 싹튼 버들의 주렴 가득 파랗구나
衆芳盈室春猶返  뭇 꽃들이 방에 가득하니 봄이 돌아온 듯
坐久餘香襲客亭  오래 앉아 있노라니 향이 객정에 스미네
 취암翠庵 오귀일吳歸一

先生此日岳降靈  선생의 이날에 산악이 신령 내려131)
初度重回大夢惺  첫돌이 거듭 돌아와 큰 꿈을 깨시니
遠壑雪風猶吼吼  먼 골짜기 풍설은 아직도 울어 대는데
北山霜栢也靑靑  북산의 서리 맞은 잣나무는 푸르디 푸르네
禪林襲跡常登座  선림의 스민 자취로 항상 자리에 오르나
敎海溺身不輟經  교해에 빠진 몸이라 경전을 쉬지 않았지
耆少厭遊眞喜會  노소간에 진정 즐거운 모임 실컷 노닐어
淸茶晩盛夕陽亭  맑은 차가 저물녘 정자에 가득하구나
 석암石 김수경金袖鯨132)

一生光景到今靈  일생의 광경이 지금까지 영험하여
謾抽花筵老皓惺  화연을 펼치니 늙도록 깨었구나
偉矣播名山影白  위대하도다, 명성 퍼진 산 그림자 희고
猗哉托跡海紋靑  아름답도다, 자취 남긴 바다 물결 푸르네
性窮寥廓天中月  본성을 다하니 텅 빈 하늘의 달 같고
心活叅商物外經  마음 활발하니 삼상133)은 물외의 경이라
吾兩此幽緣百刼  우리 둘의 이 그윽함은 백겁의 인연이요
壽餘更望鶴松亭  장수하고서 다시 학송정을 바라보네
 국천掬泉 조하담曺荷淡

花開鐵樹草堂靈  꽃이 철수134)에 피어난 초당 영험하니
南極老星夢覺惺  남극노성의 꿈에서 깨어났도다
瑶桃進祝三千甲  보배 복숭아 드리며 3천 년 장수 기원하니
八百榠欞歲復經  8백 명령135) 나무 나이를 거듭 누리시길
了知水月蘇仙學  물과 달을 안 건 소 신선의 배움이요136)
歸去田園晋紀靑  전원으로 돌아감은 진 역사에 푸르네137)
斑衣牙琴奉獻壽  색동옷과 거문고138)로 장수를 축원하노니
歌罷酒醒送客亭  노래 마치고 술 깨어 객정에서 송별하네
 우송友松 황선명黃善明

曹溪靈嶽始降靈  영험한 조계산에 처음 영령이 강림하니
心月惺惺事又惺  달 같은 마음 성성하여 만사도 성성하네
默坐深庵猿獻蜜  묵묵히 앉은 암자에 원숭이가 꿀 드리고
久誦淨榻虎聽經  오래도록 읊은 탑에 호랑이도 경을 듣네
鶴叟道骨零星白  학 같은 노인의 도골은 별처럼 희고
鳳頂神眸帶紺靑  봉황 같은 신령한 눈동자는 감청색이네
辛酉春風周六一  신유년 봄바람에 맞은 61세
更高慧命壽山亭  지혜가 더욱 높은 수산정이라네
 

012_0776_c_01L
仁壽誠難六一靈弧筵幻夢獨能惺

012_0776_c_02L畫縑星色輝天極舞彩風光轉孝經

012_0776_c_03L方綻梅腮三逕白始萌 [153] 柳眼一簾靑

012_0776_c_04L衆芳盈室春猶返坐久餘香襲客亭

012_0776_c_05L
翠庵吳歸一

012_0776_c_06L
先生此日岳降靈初度重回大夢惺

012_0776_c_07L遠壑雪風猶吼吼北山霜栢也靑靑

012_0776_c_08L禪林襲跡常登座敎海溺身不輟經

012_0776_c_09L耆少厭遊眞喜會淸茶晩盛夕陽亭

012_0776_c_10L
石𢈪金袖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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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光景到今靈謾抽花筵老皓惺

012_0776_c_12L偉矣播名山影白猗哉托跡海紋靑

012_0776_c_13L性窮寥廓天中月心活叅商物外經

012_0776_c_14L吾兩此幽緣百刼壽餘更望鶴松亭

012_0776_c_15L
掬泉曺荷淡

012_0776_c_16L
花開鐵樹草堂靈南極老星夢覺惺

012_0776_c_17L瑶桃進祝三千甲八百榠欞歲復經

012_0776_c_18L了知水月蘇仙學歸去田園晋紀靑

012_0776_c_19L斑衣牙琴奉獻壽歌罷酒醒送客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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友松黃善明

012_0776_c_21L
曹溪靈嶽始降靈心月惺惺事又惺

012_0776_c_22L默坐深庵猿獻蜜久誦淨榻虎聽經

012_0776_c_23L鶴叟道骨零星白鳳頂神眸帶紺靑

012_0776_c_24L辛酉春風周六一更高慧命壽山亭

012_0777_a_01L추담秋潭 송기영宋基榮

誰知世務箇中靈  누가 알랴, 세상일 속의 영령을
師亦通明理事惺  스님 또한 통찰하여 이치와 일에 깨었네
蓬矢四方違素約  사방에 봉시139) 날림은 평소 약속 어긋나고
蓼莪三復報書經  육아140) 시를 세 번 읊어 서경에 보답하네
秋到六旬毛鬂白  가을에 이른 육순에 모발이 하얗게 되고
春回萬樹葉枝靑  봄이 돌아온 온갖 나무 나뭇잎들 푸르다
遙想宴筵來會客  멀리 잔치 자리에 오는 손님들 생각하니
或吟或酌更登亭  시 읊거나 술 마시며 다시 정자 오르겠지
 이담해李湛海141)

鐵花多發感春靈  철수화 많이 피어142) 봄 영령에 감동하니
未鬪風幡意自惺  바람인가 깃발인가143) 싸우지 않고 깨치네
眞方細透長生術  참다운 방법으로 장생술에 세밀히 통하고
閒夢圓叅大藏經  한가로운 꿈에 대장경을 원만히 살폈네
千江水月眉含白  온 강물에 비친 달처럼 눈썹은 백색이요
一塢煙霞衿帶靑  한 마을의 연기와 노을에 옷깃이 푸르구나
捿鶴樓頭吹笛客  학이 깃든 누각에서 손님이 피리 부니
南飛曲罷立亭亭  남쪽으로 날다가 곡이 끝나자 우뚝 서네
 회정悔亭 윤준尹準

翛然龜鶴老彌靈  초연히 거북과 학144)처럼 늙을수록 신령해
四大都空五內惺  사대육신 모두 공하고 오장이 깨어
慧月隨人常遍照  지혜 달은 사람 따라 항상 두루 비추고
名山無處不曾經  이름난 산 어디든 가 보지 않은 곳 없어
秋深舊社蓮花白  가을 깊은 옛 절에 연꽃이 희고
夜靜玄譚梖葉靑  밤 고요히 현묘한 대화에 패엽 푸르네
多少江南蘭菊伴  다소간 강남에서 난초와 국화가 짝하니
弧辰遙壽喚仙亭  환선정145) 생신 잔치 멀리서 축하드리네
 우재愚齋 손면일孫冕一

認難人皆物中靈  사람들 모두 신령하다 하기는 어려우나
錦老六旬寂裡惺  금명 노스님은 육순에 성성적적하여
頭戴不移濟世佛  머리에는 세상 구하는 부처를 이고
胸懷自有洗心經  가슴에는 마음 씻는 경전 품었도다
晩秋鳳入桐山碧  늦가을에 봉황이 드니 동리산 푸르고
千歲龜遊蓮葉靑  천 년 거북이 노니 연잎이 파랗도다
憐君從此還多事  그대가 이로부터 일 많아짐 애달프니
總管松風水月亭  솔바람 수월정을 모두 관리해야 하리
 소송小松 임영주林永周

高卧紺園養性靈  사찰에 높이 누워 성령을 기르니
空空一理妙能惺  공하고 공한 이치를 오묘하게 깨쳤네
容顏似玉塵無浼  얼굴은 옥처럼 티끌이 묻지 않고
鬂髮如銀歲幾經  머리칼은 은 같으니 몇 해를 지냈나
路遶名山春雪白  길은 명산을 둘러 봄눈이 희고
日臨初度瑞霞靑  해는 생신에 임해 상서로운 놀 푸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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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潭宋基榮

012_0777_a_02L
誰知世務箇中靈師亦通明理事惺

012_0777_a_03L蓬矢四方違素約蓼莪三復報書經

012_0777_a_04L秋到六旬毛鬂白春回萬樹葉枝靑

012_0777_a_05L遙想宴筵來會客或吟或酌更登亭

012_0777_a_06L
李湛海

012_0777_a_07L
鐵花多發感春靈未鬪風幡意自惺

012_0777_a_08L眞方細透長生術閒夢圓叅大藏經

012_0777_a_09L千江水月眉含白一塢煙霞衿帶靑

012_0777_a_10L捿鶴樓頭吹笛客南飛曲罷立亭亭

012_0777_a_11L
悔亭尹準

012_0777_a_12L
翛然龜鶴老彌靈四大都空五內惺

012_0777_a_13L慧月隨人常遍照名山無處不曾經

012_0777_a_14L秋深舊社蓮花白夜靜玄譚梖葉靑

012_0777_a_15L多少江南蘭菊伴弧辰遙壽喚仙亭

012_0777_a_16L
愚齋孫冕一

012_0777_a_17L
認難人皆物中靈錦老六旬寂裡惺

012_0777_a_18L頭戴不移濟世佛胸懷自有洗心經

012_0777_a_19L晩秋鳳入桐山碧千歲龜遊蓮葉靑

012_0777_a_20L憐君從此還多事總管松風水月亭

012_0777_a_21L
小松林永周

012_0777_a_22L
高卧紺園養性靈空空一理妙能惺

012_0777_a_23L容顏似玉塵無浼鬂髮如銀歲幾經

012_0777_a_24L路遶名山春雪白日臨初度瑞霞靑

012_0777_b_01L曹溪贈別飜疑夢  조계산에서 이별한 지가 꿈속인 듯
茶罷相思獨倚亭  차로 그리움 달래며 홀로 정자에 기대네
 월파月坡 장순환張舜煥

名山幾處服芝靈  명산 몇 곳에서 영지를 복용했나
六十年高萬化惺  육십 년 동안 온갖 변화를 깨우쳤네
祈壽永希千歲佛  기도하여 천 년의 부처 길이 바라고
燒香朗讀八陽經  향 사르며 『팔양경』146) 낭랑히 읽네
庵前泉湧心俱白  암자 앞 솟는 샘처럼 마음도 희고
塵外人來眼更靑  티끌 바깥의 사람 오니 눈길 푸르다147)
思與智仙携酒去  지선148)과 술 가지고 갈 생각 해 보나
忌歸日上醉翁亭  돌아오는 날에 취옹정 오르길 꺼리네149)
 백천栢泉 장훈민張熏玟

澹泊冲虛老更靈  담백하고 허허롭게 늙을수록 신령하니
佛燈徹夜道惺惺  불등으로 밤새도록 도력이 성성하구나
楓林理屐雲初捲  단풍숲에서 나막신 고쳐 매니 구름 개고
蕭寺尋僧雨忽經  사찰에서 승려 찾으니 비 문득 지나네
枳子花傍寒圃綠  탱자꽃 옆의 찬 밭은 푸르스름하고
蒲葵香滿壽觴靑  부들 향 가득히 생신 축하 술잔이 푸르네
何方渾脫緣塵去  어디에서 인연 티끌을 온통 벗을까
茶果行臨近水亭  다과를 가지고 물 가까운 정자로 가네
 국포菊圃 정만조鄭萬朝150)

物外超然得氣靈  세상 밖에 초연히 영험한 기운 얻어
曹溪明月獨惺惺  조계산 밝은 달이 홀로 깨어 있구나
短笻遊遍三千域  짧은 지팡이로 삼천리 전역을 다니고
皓首能窮八萬經  흰머리로 팔만대장경 다 공부했지
流水觀心虛映白  흐르는 물에 마음 보니 비어 하얗고
高山齊壽仰彌靑  산처럼 장수하여 우러를수록 푸르시길
天涯佐燮歸期晩  천애 멀리서 수좌 완섭은 기약 늦어
夢斷扶桑覊旅亭  동쪽 나그네 정자에서 꿈이 끊겼구나
주완섭 군을 천은산방151)에서 만났었는데, 마음가짐과 조예가 평범한 승려가 아님을 알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더욱 이 스님과 이 상좌를 공경하게 되므로 마지막 구절에 언급하였다.(朱君完燮。嘗邂逅於泉隱山房。持心造詣。知非凡侶。今焉遡流。尤欽是師是佐。故末句玆及之。)
 교라喬羅 양태기梁泰基

桐山秀氣降仙靈  동리산 수려한 기운에 선령이 내려
中有茶翁獨自惺  그 속에 다송 노인 홀로 깨어 있네
遯世身遊十方佛  세상 피해 시방 부처 찾아 유람하고
叅禪心藏數凾經  참선하는 마음에 수십 권 경전 담았네
鳳頭萬業花蘭茁  봉황 머리 만 가지 일에 난초 싹트고
鶴髮餘齡松竹靑  학 머리칼의 나이에 송죽이 푸르도다
纔過六旬春又復  육순을 지나자마자 봄이 또 돌아오니
願從日日淩波亭  원컨대 날마다 능파정에서 종유하리라
 미초嵋樵 조주현趙周鉉

桐山木石發精靈  동리산 나무와 바위가 정령을 펼쳐 내
中有高僧意更惺  그 속에 고승 있어 뜻이 더욱 깨어 있네

012_0777_b_01L曹溪贈別飜疑夢茶罷相思獨倚亭

012_0777_b_02L
月坡張舜煥

012_0777_b_03L
名山幾處服芝靈六十年高萬化惺

012_0777_b_04L祈壽永希千歲佛燒香朗讀八陽經

012_0777_b_05L庵前泉湧心俱白塵外人來眼更靑

012_0777_b_06L思與智仙携酒去忌歸日上醉翁亭

012_0777_b_07L
栢泉張熏玟

012_0777_b_08L
澹泊冲虛老更靈佛燈徹夜道惺惺

012_0777_b_09L楓林理屐雲初捲蕭寺尋僧雨忽經

012_0777_b_10L枳子花傍寒圃綠蒲葵香滿壽觴靑

012_0777_b_11L何方渾脫緣塵去茶果行臨近水亭

012_0777_b_12L
菊圃鄭萬朝

012_0777_b_13L
物外超然得氣靈曹溪明月獨惺惺

012_0777_b_14L短笻遊遍三千域皓首能窮八萬經

012_0777_b_15L流水觀心虛映白高山齊壽仰彌靑

012_0777_b_16L天涯佐燮歸期晩夢斷扶桑覊旅亭

012_0777_b_17L朱君完燮嘗邂逅於泉隱山房持心造詣知非
凡侶今焉遡流尤欽是師是佐故末句玆及之

012_0777_b_18L
喬羅梁泰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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桐山秀氣降仙靈中有茶翁獨自惺

012_0777_b_20L遯世身遊十方佛叅禪心藏數凾經

012_0777_b_21L鳳頭萬業花蘭茁鶴髮餘齡松竹靑

012_0777_b_22L纔過六旬春又復願從日日淩波亭

012_0777_b_23L
嵋樵趙周鉉

012_0777_b_24L
桐山木石發精靈中有高僧意更惺

012_0777_c_01L忘世生涯千結衲  세상 잊은 생애는 천 번 기운 가사
終身誦念一凾經  종신토록 외운 건 한 질의 경전이지
老人星現塵障絶  노인성이 드러나 티끌 장애 끊어지고
曇鉢花明佛髮靑  우담바라 피어 부처의 머릿결 푸르네
六十年來桑海變  육십 년 동안 상전벽해 변했는데
愛君仙標獨亭亭  그대의 신선 풍채 홀로 정정함을 아끼네
 이종현李鍾現

天挺人豪鍾地靈  하늘이 낸 인걸이요 땅 기운의 정령이라
托身淨土骨還惺  몸을 정토에 의탁하니 골격은 깨어 있고
三千大界曾修道  삼천 대천 세계에서 도를 닦았고
六十龕燈長抱經  육십 년 동안 감등에 경전 품었네
休恠鏡中眉鬂白  거울 속 눈썹 희다고 괴히 여기지 마라
始看樽側眼眸靑  술동이 옆에 눈동자 푸름을 비로소 보네
仍稱壽斝爭酬酌  이어서 생신 술잔이라 다투어 따르노니
詩滿箱筐客滿亭  시는 상자에, 손님은 정자에 가득하네
 춘곡春谷 이회혁李會赫

鳳舞桐山昔降靈  봉황 춤추는 동리산에 정령 내려서
前生水月夢初惺  전생의 물과 달에 꿈을 비로소 깨니
戱圖兼寫蓮花帖  장난삼아 연꽃첩을 겸하여 필사하고
善禱重繙貝葉經  잘 기도하며 거듭 패엽경 펼쳐 보네
顧我衰頽羞鬂白  나의 노쇠함을 보니 백발이 부끄럽고
愛君歡喜滿眸靑  그대 눈동자 가득한 푸름을 기뻐하네
茂如翠栢推人悅  무성함이 잣나무 같아 기쁘게 하니152)
尋路今朝上錦亭  길 찾은 오늘 아침 비단 정자에 오르네
 금석錦石 안용섭安容燮153)

久喫靈區藥草靈  오래도록 먹은 영험한 곳의 약초 신령해
列仙喚伴大師惺  신선들 불러 함께하는 대사 성성하구나
寒梅雪逕淸修道  눈길의 찬 매화처럼 맑게 도를 닦고
明月松堂靜說經  송당의 명월처럼 고요히 경전을 읽었네
法水源深僧足白  법의 샘은 근원이 깊어 스님의 발 희고
壽山層立佛頭靑  장수산 층층이 서니 불상 머리 푸르네
滿座賓朋和氣溢  자리 가득한 벗들은 화기가 넘치고
瑞日玲瓏午影亭  상서로운 해 영롱해 정자에 그림자 드네
 안인섭安仁燮

强康藉福佛爲靈  건강한 복 받으니 부처는 신령하고
慧眼無埃了自惺  지혜의 눈은 티끌 없어 절로 성성하네
初地煙霞躋壽域  초지154)의 연기와 놀이 장수 영역 오르고
半簾花雨洗心經  반쯤 걷은 주렴의 꽃비는 마음 씻는 경전
日星又返先天曜  해와 별이 또 돌아와 선천에 빛나고
眉鬢重生舊歲靑  눈썹과 귀밑머리 다시 나니 옛 청춘이라
欲畫上人塵表像  상인의 세상 벗어난 모습 그리고자 하니
鷄群野鶴立亭亭  여러 닭 속의 학처럼 꼿꼿하게 서 있구나
 춘사春史 유광묵柳匡默


012_0777_c_01L忘世生涯千結衲終身誦念一凾經

012_0777_c_02L老人星現塵障絕曇鉢花明佛髮靑

012_0777_c_03L六十年來桑海變愛君仙標獨亭亭

012_0777_c_04L
李鍾現

012_0777_c_05L
天挺人豪鍾地靈托身淨土骨還惺

012_0777_c_06L三千大界曾修道六十龕燈長抱經

012_0777_c_07L休恠鏡中眉鬂白始看樽側眼眸靑

012_0777_c_08L仍稱壽斝爭酬酌詩滿箱筐客滿亭

012_0777_c_09L
春谷李會赫

012_0777_c_10L
鳳舞桐山昔降靈前生水月夢初惺

012_0777_c_11L戱圖兼寫蓮花帖善禱重繙貝葉經

012_0777_c_12L顧我衰頽羞鬂白愛君歡喜滿眸靑

012_0777_c_13L茂如翠栢推人悅尋路今朝上錦亭

012_0777_c_14L
錦石安容燮

012_0777_c_15L
久喫靈區藥草靈列仙喚伴大師惺

012_0777_c_16L寒梅雪逕淸修道明月松堂靜說經

012_0777_c_17L法水源深僧足白壽山層立佛頭靑

012_0777_c_18L滿座賓朋和氣溢瑞日玲瓏午影亭

012_0777_c_19L
安仁燮

012_0777_c_20L
强康藉福佛爲靈慧眼無埃了自惺

012_0777_c_21L初地煙霞躋壽域半簾花雨洗心經

012_0777_c_22L日星又返先天曜眉鬢重生舊歲靑

012_0777_c_23L欲畫上人塵表像鷄群野鶴立亭亭

012_0777_c_24L
春史柳匡默

012_0778_a_01L早入招提養本靈  일찍 절에 들어가 본령을 기르면서
澹然惟願衆均惺  담백하게 바라는 건 중생들 깨어남이라
桐山歲晩移仙仗  동리산 늦은 나이에 석장을 옮겨서
海寺春深輯道經  바닷가 절 깊은 봄에 도경을 모았네
昏夜引燈分墑埴  어둔 밤에 등불 당겨 더듬어 가고
虛空描畫沒丹靑  허공에 그림 그리는데 단청이 없구나
祝君此世渾無礙  축원하노니 그대는 이생에 장애 없길
風滿高臺月滿亭  바람 가득한 높은 누대에 달 가득해라
 경헌敬軒 김인초金仁初

天賦茶翁性質靈  하늘이 낸 다송 노인은 성품 영험해
昭昭佛訓覺蔥惺  밝은 부처 교훈을 깨달아 성성하도다
着袈戴衲鬚眉白  가사 입은 머리와 눈썹이 희고
學古知今道眼靑  온고지신의 도안이 푸르구나
逢談俗客多閒日  속객 만나 대화하는 한가한 날 많고
壽獻諸僧誦法經  장수 축원하는 승려들은 법경 외고
然然六十一年過  그러그러하게 육십일 년을 지나오니
高上泰安最好亭  높은 태안사에서 가장 좋은 정자라
 풍계豊溪 김정섭金貞燮

雪月桐林夜氣靈  동리산의 눈과 달에 밤공기 영험한데
茶翁鬂髮若新惺  다송 노인의 머리칼은 새로 성성하구나
年朋對話星霜白  나이 든 벗들과 대화하니 성상155) 희고
春屬分居湖海靑  봄이 속한 지역에 호수와 바다 푸르네
現地梅花思見道  현재 매화를 보며 견도156)를 생각하고
多時蕉葉笑飜經  여러 날 파초 잎에 경전 번역을 웃노라
雲遊倍感蓬弧日  구름처럼 다니느라 생일 감동이 더하니
南望迢迢六鑑亭  남쪽으로 멀리 아득히 바라보는 육감정
 동산東山 이종안李鍾安

世間孰謂佛無靈  세상 누가 말했나 부처가 영험 없다고
早使茶翁得慧惺  일찍 다송 노인에게 지혜를 얻게 하였지
觀道怳生虛室白  도를 보니 빈 방에 흰 빛이 생겨나고157)
題名恰取長官靑  이름 지으니 장관이 푸름을 얻은 듯
春深香社同修契  봄 깊은 향사158)에서 같이 계모임 하고
夜久承庵獨抱經  밤새도록 암자에서 홀로 경전 읽었네
老去逾多山水樂  늙어갈수록 산수의 즐거움 많아지니
勸君須作智仙亭  권하노니 그대는 지선정159) 지어야 하리
 단산丹山 조해규趙海奎

早識名山自秘靈  일찍 안 명산은 절로 영험함 감추지만
上人緣業獨心惺  상인은 인연 따라 홀로 마음 깨었네
裘笛入門春酒㬉  갖옷과 피리로 들어가니 봄 술 따뜻하고
圖書授子夜燈靑  도서를 주니 밤 등불이 파랗구나
飮啄從容看鶴瘦  조용히 마시는 학처럼 마른 노인 보니
吸噓安穩做熊經  평온히 호흡하며 웅경160)을 하네
聞說昇平詩社好  순천의 시 모임이 좋다고 들었더니
白蓮幻作菊蘭亭  백련 핀 듯한 국화 난초의 정자로다
 

012_0778_a_01L
早入招提養本靈澹然惟願衆均惺

012_0778_a_02L桐山歲晩移仙仗海寺春深輯道經

012_0778_a_03L昏夜引燈分墑埴虛空描畫沒丹靑

012_0778_a_04L祝君此世渾無礙風滿高臺月滿亭

012_0778_a_05L
敬軒金仁初

012_0778_a_06L
天賦茶翁性質靈昭昭佛訓覺蔥惺

012_0778_a_07L着袈戴衲鬚眉白學古知今道眼靑

012_0778_a_08L逢談俗客多閒日壽獻諸僧誦法經

012_0778_a_09L然然六十一年過高上泰安最好亭

012_0778_a_10L
豊溪金貞燮

012_0778_a_11L
雪月桐林夜氣靈茶翁鬂髮若新惺

012_0778_a_12L年朋對話星霜白春屬分居湖海靑

012_0778_a_13L現地梅花思見道多時蕉葉笑飜經

012_0778_a_14L雲遊倍感蓬弧日南望迢迢六鑑亭

012_0778_a_15L
東山李鍾安

012_0778_a_16L
世間孰謂佛無靈早使茶翁得慧惺

012_0778_a_17L觀道怳生虛室白題名恰取長官靑

012_0778_a_18L春深香社同修契夜久承庵獨抱經

012_0778_a_19L老去逾多山水樂勸君須作智仙亭

012_0778_a_20L
丹山趙海奎

012_0778_a_21L
早識名山自秘靈上人緣業獨心惺

012_0778_a_22L裘笛入門春酒㬉圖書授子夜燈靑

012_0778_a_23L飮啄從容看鶴瘦吸噓安穩做熊經

012_0778_a_24L聞說昇平詩社好白蓮幻作菊蘭亭

012_0778_b_01L우재愚齋 조종신趙鍾信

早托禪房養性靈  일찍 선방에 의탁하여 성령을 길렀으니
六旬無恙自惺惺  육순에 병 없이 절로 성성하도다
得來何處文章手  어디서 얻은 건가, 문장 수법은
精妙應從釋氏經  정묘함은 응당 불경에서 온 것이지
老栢無知千歲碧  늙은 잣나무는 모르지만 천 년 푸르고
種松可待十圍靑  소나무 심어 열 아름 푸르길 기다리네
散在弟兄今只尺  흩어진 형제들이 지금 지척에 있어
鯨音節節月亭亭  종소리161) 절절하고 달은 뚜렷하도다
 금원錦園 박제훈朴齊薫

回甲山中講佛靈  회갑 맞아 산중에서 불경 강독하는 영령
空空世事夢還惺  공허한 세상일에 꿈을 깨었도다
早年勝地三千界  이른 해부터 명승지 삼천 대천 세계에서
白首眞工八萬經  백수 노인 되도록 참된 공부 팔만대장경
倍憶萱堂勞日至  더욱 훤당162) 그리는 생일163) 오니
優看蘭室寶林靑  넉넉히 난실 보니 보림164)이 푸르도다
酬君我亦星星髮  그대에게 술 따르는 나도 머리 희끗하고
纔別沙門出野亭  사문을 이별하고서 들판의 정자 나서네
 오산五山 강영림姜永琳

春風回甲有明靈  봄바람에 회갑 맞은 밝은 영령이여
萬物榮光世盡惺  만물의 영광이 대대로 모두 깨었도다
仙鶴來遊成道友  선학이 놀러 오니 도를 이룬 친구요
天花感得說眞經  하늘 꽃이 감동하게 경전을 말하네
壽山高遠長年碧  장수산이 아스라이 오래도록 푸르고
智海廣深眼定靑  지혜 바다 넓고 깊어 눈길 정녕 파랗네
永斷塵緣無下俗  티끌 인연을 길이 끊어 하속이 없고
一生晦跡白雲亭  일생 동안 자취를 백운정에 감췄구나
 김화성金華性

行正心眞又智靈  행위 바르고 마음 참되며 또 지혜로워
此身空寂獨先惺  이 몸이 텅 비어 홀로 먼저 깨었도다
梅窓月滿登禪榻  매화 창에 달 가득히 참선 자리에 오르고
雲洞鍾鳴轉法經  구름 골에 종소리 울려 경전을 전독하네
松裡鶴飛千載白  솔 사이로 학 날아 천 년 동안 희고
巖頭松立四時靑  바위 끝에 소나무 서서 사계절 푸르네
春來詩咏花園閣  봄이 와 시를 읊조리는 화원 누각
秋日楓林菊玩亭  가을 단풍 숲에서 국화를 감상하는 정자
 김주흔金湊欣

正當春日降神靈  봄날을 당하여 신령이 강림하시니
天送智人物有惺  하늘이 지혜 사람을 보내 만물 깨우네
靜室蒲團禪一杖  고요한 방의 방석과 석장 하나
香淸案上兩凾經  향 맑은 책상 위에 경전 둘
明心此月窓前白  마음 밝히는 이 달은 창 앞에 희고
節氣彼松雪裡靑  절개 있는 저 솔은 눈 속에 푸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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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齋趙鍾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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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托禪房養性靈六旬無恙自惺惺

012_0778_b_03L得來何處文章手精妙應從釋氏經

012_0778_b_04L老栢無知千歲碧種松可待十圍靑

012_0778_b_05L散在弟兄今只尺鯨音節節月亭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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錦園朴齊薫

012_0778_b_07L
回甲山中講佛靈空空世事夢還惺

012_0778_b_08L早年勝地三千界白首眞工八萬經

012_0778_b_09L倍憶萱堂勞日至優看蘭室寶林靑

012_0778_b_10L酬君我亦星星髮纔別沙門出野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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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山姜永琳

012_0778_b_12L
春風回甲有明靈萬物榮光世盡惺

012_0778_b_13L仙鶴來遊成道友天花感得說眞經

012_0778_b_14L壽山高遠長年碧智海廣深眼定靑

012_0778_b_15L永斷塵緣無下俗一生晦跡白雲亭

012_0778_b_16L
金華性

012_0778_b_17L
行正心眞又智靈此身空寂獨先惺

012_0778_b_18L梅窓月滿登禪榻雲洞鍾鳴轉法經

012_0778_b_19L松裡鶴飛千載白巖頭松立四時靑

012_0778_b_20L春來詩咏花園閣秋日楓林菊玩亭

012_0778_b_21L
金湊欣

012_0778_b_22L
正當春日降神靈天送智人物有惺

012_0778_b_23L靜室蒲團禪一杖香淸案上兩凾經

012_0778_b_24L明心此月窓前白節氣彼松雪裡靑

012_0778_c_01L處世無爲塵跡事  세상에 처하여 티끌 일은 하지 않고
唯遊與鶴百花亭  오직 학과 함께 백화정에서 노니네
 김병연金丙淵

茶松遐壽必由靈  다송165)의 장수함은 신령에서 비롯하니
性器雍容慧且惺  성품은 화목하고 지혜롭게 깨었도다
眞緣穩做三生夢  참된 인연 지으니 삼생이 꿈이요
法語淸藏五戒經  법어를 맑게 담으니 오계의 경전이라
佛前衲着雲光白  불전에 납의 입으니 구름빛으로 희고
庭際烟深篆影靑  뜰에 향 연기 깊어 그 모양 푸르다
花甲回春如許好  화갑 맞은 봄이 얼마나 좋은가
淨軒雙樹立亭亭  청정한 집에 두 나무 정정하게 서 있네
 죽포竹圃 신申

老星南極降精靈  남극노인성이 정령을 내렸더니
鍾此胡僧壽且惺  이 승려에게 모여 장수하고 깨었구나
一寺宿齋爭供味  온 사찰이 재계하여 다투어 공양하고
票賓致賀各封經  빈객들이 하례하고 각기 경전 대하네
晬回六甲桑弧久  생일 육갑이라 상호桑弧166) 오래되고
花見重春鐵樹靑  꽃이 핀 봄이라 철수167) 푸른데
雅分雖無瞻仰遠  평소 교분 없어 멀리서 우러러보니
醉仙完在碧桃亭  취한 신선이 완연히 벽도정에 있도다
 남강南岡 정鄭

天降星精會地靈  하늘이 내린 별의 정령이 땅에 모여
胡僧壽福賴心惺  승려의 장수함은 마음이 깨어 있기 때문
喜看鐵樹開花日  철수에 꽃 피어난 날 기쁘게 바라보나
哀感蓼蕭懷母經  모친 생각나게 하는 육소168) 슬프구나
滿地雲霞商峀白  대지 가득한 구름 노을에 상산169) 희고
供盤藥果海桃靑  접시에 담은 약과와 바다 복숭아 파랗네
衆賓致賀來如市  여러 손님들 축하하러 오니 시장인 듯
係馬杉松處處亭  말 매어 놓은 소나무가 곳곳에 우뚝하네
 봉헌鳳軒 정鄭

上人遐壽卽仙靈  상인의 긴 수명은 바로 신선의 영험함
爲問梵音惺未惺  묻노니 범음을 깨쳤는가, 그렇지 않은가
身外渾忘烟火累  몸 밖의 연기와 불의 누추함 온통 잊어
胷中倒誦楞嚴經  가슴속의 능엄경을 거꾸로 외우는도다
荷擎沆瀣泉通白  연잎의 밤이슬처럼 샘이 희게 솟고
茶沸旗槍雪映靑  뾰족한170) 차 끓어 눈에 푸르게 비치네
瘦似古梅淸似鶴  파리하게 매화 같고 맑음은 학 같아
老年風骨益亭亭  노년에 풍채 있는 모습 더욱 정정하네
 조재操齋 양기묵梁箕默

幼來塵世老仙靈  어려서 진세 떠나 온 늙은 선령이여
六十年間刼夢惺  육십 년 동안 겁몽을 깨었구나
泉鳴雲綴朝蒔藥  샘 소리 구름 맺히는 아침에 약초 심고
鍾落燈深夜誦經  종소리 등불 깊은 밤에 경전 외우네

012_0778_c_01L處世無爲塵跡事唯遊與鶴百花亭

012_0778_c_02L
金丙淵

012_0778_c_03L
茶松遐壽必由靈性器雍容慧且惺

012_0778_c_04L眞緣穩做三生夢法語淸藏五戒經

012_0778_c_05L佛前衲着雲光白庭際烟深篆影靑

012_0778_c_06L花甲回春如許好淨軒雙樹立亭亭

012_0778_c_07L
竹圃

012_0778_c_08L
老星南極降精靈鍾此胡僧壽且惺

012_0778_c_09L一寺宿齋爭供味 [154] 賓致賀各封 [155]

012_0778_c_10L晬回六甲桑弧久花見重春鐵樹靑

012_0778_c_11L雅分雖無瞻仰遠醉仙完在碧桃亭

012_0778_c_12L
南岡鄭

012_0778_c_13L
天降星精會地靈胡僧壽福賴心惺

012_0778_c_14L喜看鐵樹開花日哀感蓼蕭懷母經

012_0778_c_15L滿地雲霞商峀白供盤藥果海桃靑

012_0778_c_16L衆賓致賀來如市係馬杉松處處亭

012_0778_c_17L
鳳軒鄭

012_0778_c_18L
上人遐壽卽仙靈爲問梵音惺未惺

012_0778_c_19L身外渾忘烟火累胷中倒誦楞嚴經

012_0778_c_20L荷擎沆瀣泉通白茶沸旗槍雪映靑

012_0778_c_21L瘦似古梅淸似鶴老年風骨益亭亭

012_0778_c_22L
操齋梁箕默

012_0778_c_23L
幼來塵世老仙靈六十年間刼夢惺

012_0778_c_24L泉鳴雲綴朝蒔藥鍾落燈深夜誦經

012_0779_a_01L法界幢竿心已赤  법계의 당간에 마음이 벌써 붉고
卷中貝葉眼常靑  책 속의 패엽에 눈은 항상 푸르네
闍梨無言相慶賀  스님들 말없이 서로 경사스레 축하하니
龜蓮十丈立亭亭  열 길 구련171)이 우뚝하게 서 있구나
 운사雲史 조철규趙哲奎

心惟是佛佛惟靈  마음이 부처이고 부처는 영험하니
早向溪山寺上惺  일찍 산에 가서 사찰에서 깨쳤도다
求方偃仰三千甲  방법 구해 위아래 살핀 삼천갑자
叅法融通八萬經  법을 참구해 통달한 팔만 경전
鶴飛捿閣同吾白  학이 날아 머무는 누각은 나처럼 희고
鳳晩尋巢降彼靑  봉황 늦게 찾는 자리는 저렇게 푸르네
遙羡諸天花雨裡  하늘에서 꽃비 내림 멀리서 부러워
薫衣幾拂短長亭  향기 옷 몇 번이나 떨쳤나 단장정172)에서
 봉계鳳溪 이종익李鍾翊

積翠郡南鍾地靈  푸른 산 남쪽 마을에 땅의 정령 모여
此中溟老也惺惺  이 가운데 금명 노승이 깨어 있으니
慈悲心徹三千界  자비심으로 삼천 대천 세계를 꿰고
玄妙眼過八萬經  현묘한 안목으로 팔만대장경 보았네
物外點頭維石白  세상 밖 머리 끄덕이던 돌173)은 희고
世間知己是山靑  세상에서 자기 알아주는 산은 푸르니
羽仙今日非君耶  우화등선한 신선이 오늘 그대 아닌가
五色雲晴鳳瑞亭  오색빛의 구름이 맑은 봉서정이라네
 배헌拜軒 조영선趙泳善174)

納納玄門大慧靈  거두고 거두는 현묘한 문에 지혜 정령
恒河沙裡了蔥惺  항하사 모래 속에 깨우쳤구나
曇花雨露重三骨  우담바라는 비와 이슬 속 삼짇날 돋고
貝葉魚山八萬經  어산175)의 패엽은 팔만대장경 되었네
溟海珠沈身有彩  깊은 바다의 구슬처럼 몸이 빛나고
星圖日㬉眼生靑  성도의 따스한 햇빛에 눈동자 푸르네
誰知今日分章意  뉘 알랴, 오늘 이별하는 글의 뜻이
只在淸秋話別亭  다만 가을 이별 말하는 정자에 있음을
 동송東松 조趙

古寺有人地最靈  옛 사찰에 지상의 가장 신령한 이 있어
錦溟六一一心醒  금명은 61년을 한마음으로 깨었네
寒知桐葉秋成算  차가운 오동잎에 가을이 옴을 헤아리고
妙入蓮花日誦經  연화세계 들어가 날마다 경전 외는구나
鬂許中年公道白  귀밑머리는 중년이라 공정히 하얗고176)
盃如初度子襟靑  술잔은 처음처럼 옷깃에 파랗네
諸天復降無量佛  하늘에서 다시 무량불을 내리셨으니
石下孤菴水上亭  바위 아래 외론 암자 물 위의 정자라네
 행산杏山 정인성鄭寅成

桐山迢遞近仙靈  동리산 아득히 신선에 가깝더니
中有高僧道慧惺  그 속에 고승 있어 지혜롭게 깨었구나

012_0779_a_01L法界幢竿心已赤卷中貝葉眼常靑

012_0779_a_02L闍梨無言相慶賀龜蓮十丈立亭亭

012_0779_a_03L
雲史趙哲奎

012_0779_a_04L
心惟是佛佛惟靈早向溪山寺上惺

012_0779_a_05L求方偃仰三千甲叅法融通八萬經

012_0779_a_06L鶴飛捿閣同吾白鳳晩尋巢降彼靑

012_0779_a_07L遙羡諸天花雨裡薫衣幾拂短長亭

012_0779_a_08L
鳳溪李鍾翊

012_0779_a_09L
積翠郡南鍾地靈此中溟老也惺惺

012_0779_a_10L慈悲心徹三千界玄妙眼過八萬經

012_0779_a_11L物外點頭維石白世間知己是山靑

012_0779_a_12L羽仙今日非君耶五色雲晴鳳瑞亭

012_0779_a_13L
拜軒趙泳善

012_0779_a_14L
納納玄門大慧靈恒河沙裡了蔥惺

012_0779_a_15L曇花雨露重三骨貝葉魚山八萬經

012_0779_a_16L溟海珠沈身有彩星圖日㬉眼生靑

012_0779_a_17L誰知今日分章意只在淸秋話別亭

012_0779_a_18L
東松趙

012_0779_a_19L
古寺有人地最靈錦溟六一一心醒

012_0779_a_20L寒知桐葉秋成算妙入蓮花日誦經

012_0779_a_21L鬂許中年公道白盃如初度子襟靑

012_0779_a_22L諸天復降無量佛石下孤菴水上亭

012_0779_a_23L
杏山鄭寅成

012_0779_a_24L
桐山迢遞近仙靈中有高僧道慧惺

012_0779_b_01L澗畔遊麕晨掃逕  시냇가 노루들 새벽에 길 청소하고
樓前歸鶴夜聽經  누각 앞의 학이 밤새 경전 소리 듣네
一樽酒熟弧辰㬉  술동이의 술 익는 생일날 따스하고
數磬聲殘佛宇靑  경쇠들의 소리 잦아드는 사찰 푸르네
昔自儂家情地厚  예로부터 우리들의 정이 두터웠으니
相思幾度倚孤亭  몇 번이나 그리웠나 외론 정자에 기대
 초와樵窩 장용민張鎔玟

六旬衣鉢保心靈  육순의 의발은 심령을 보호하고
道入玄門覺脫惺  도에 들어가는 현문에서 깨달았네
一生甘老三千界  일생 늙음이 달가운 삼천 대천 세계
百刼都灰八萬經  백겁에 모두 재가 되는 팔만대장경
頓遣雅懷桐月白  평소 회포 풀어 낸 동리산 달은 밝고
笑看浮影洛雲靑  웃노니, 뜬 그림자 서울 구름 파랗네
居山淸福能如許  산에 사는 맑은 복은 어떠한가
晩景猶餘水石亭  만년의 경치 수석정에 남음 있네
 호송湖松 김권용金權容

芥納須彌佛有靈  겨자씨에 수미산을 넣는 부처 영험하고
錦溟開士自惺惺  금명 고승은 스스로 깨어 있다네
曹溪夜靜聞天籟  조계산 고요한 밤에 하늘 소리 듣고
貝葉春深講古經  패엽의 봄 깊어 옛 경전을 강독하네
弧矢門前槎月素  문 앞의 활과 화살은 달뗏목177)처럼 희고
曇花影裡晋山靑  우담바라 그림자 속에 진산이 푸르도다
西風倦客來吹笛  서풍에 게으른 손이 피리를 부는
鳳瑞樓如放鶴亭  봉서루는 방학정178)과 비슷하도다
 임천壬川 장기혁張基赫

有星南極最爲靈  별 가운데 남극성이 가장 신령한데
降此溟翁世獨惺  금명 노옹에게 내려 세상에 홀로 깨었네
壽限遲遲遊佛界  수명은 느릿느릿 불계에서 노닐고
生涯淡淡讀仙經  생애는 담담하여 신선 경전을 읽었는데
公道不悲雙鬂白  공도는 자비 없어 귀밑머리 희고
棣園無恙數枝靑  형제들 탈 없어 여러 가지들 푸르네
獻祝觴前多弟子  축하하는 술잔 앞에 여러 제자들
競呼萬歲立亭亭  다투어 만세를 부르며 우뚝하게 섰네
 학사鶴沙 김성찬金聖贊

六旬安過賴神靈  육순을 편히 지냄은 신령에 의지함이라
老去人情夢若惺  늙어갈수록 인정은 꿈을 깨는 듯하네
入山前日忘千刼  산에 들기 전에 천겁을 잊었고
護道當年守一經  도를 수호하던 당시 한 부 경전 지켰네
三生佛界中心素  삼생의 불계 가운데 마음이 희고
萬壑春光分內靑  만학의 봄빛은 분수에 따라 푸르네
從此康寧多究煉  이로부터 평안히 연단179)을 연구하리니
乾乾思默坐雲亭  건건180)이 생각하며 구름 정자에 앉았네
 김두영金斗永


012_0779_b_01L澗畔遊麕晨掃逕樓前歸鶴夜聽經

012_0779_b_02L一樽酒熟弧辰㬉數磬聲殘佛宇靑

012_0779_b_03L昔自儂家情地厚相思幾度倚孤亭

012_0779_b_04L
樵窩張鎔玟

012_0779_b_05L
六旬衣鉢保心靈道入玄門覺脫惺

012_0779_b_06L一生甘老三千界百刼都灰八萬經

012_0779_b_07L頓遣雅懷桐月白笑看浮影洛雲靑

012_0779_b_08L居山淸福能如許晩景猶餘水石亭

012_0779_b_09L
湖松金權容

012_0779_b_10L
芥納須彌佛有靈錦溟開士自惺惺

012_0779_b_11L曹溪夜靜聞天籟貝葉春深講古經

012_0779_b_12L弧矢門前槎月素曇花影裡晋山靑

012_0779_b_13L西風倦客來吹笛鳳瑞樓如放鶴亭

012_0779_b_14L
壬川張基赫

012_0779_b_15L
有星南極最爲靈降此溟翁世獨惺

012_0779_b_16L壽限遲遲遊佛界生涯淡淡讀仙經

012_0779_b_17L公道不悲雙鬂白棣園無恙數枝靑

012_0779_b_18L獻祝觴前多弟子競呼萬歲立亭亭

012_0779_b_19L
鶴沙金聖贊

012_0779_b_20L
六旬安過賴神靈老去人情夢若惺

012_0779_b_21L入山前日忘千刼護道當年守一經

012_0779_b_22L三生佛界中心素萬壑春光分內靑

012_0779_b_23L從此康寧多究煉乾乾思默坐雲亭

012_0779_b_24L
金斗永

012_0779_c_01L天降奇才最粹靈  하늘이 낸 재주라 가장 순수 신령하고
色空至理子惟惺  색즉시공의 이치를 그대가 깨쳤구려
祝融峰明寧古有  축융봉 밝은 달은 옛날에도 있었지만
曹溪山影更今靑  조계산의 빛깔은 오늘 다시 푸르구나
花開淸晨行月榭  꽃이 핀 맑은 새벽에 달 정자에 가서
白雲閑塔講仙經  구름이 한가로운 탑에서 신선 경전 읽네
遙憐爲說百年事  백 년의 일 말함을 멀리서 애달파하니
歸則必歸兜率亭  돌아오면 필시 도솔정으로 돌아오리
 노암蘆巖 서영수徐英洙

尊師禀性本虛靈  대사의 품성은 본래 비어 신령하니
學道無疑道自惺  배움의 도에 장애 없어 절로 깨닫네
晩與交隣香茗足  늦게 이웃과 사귀어 향기로운 차 좋고
賢宜同譜竹山靑  어질어 족보가 같고 죽산181)이 푸르네
全忘世慮常思佛  세상 근심 온통 잊고 항상 염불하며
優得閒情暗誦經  한가함 넉넉히 얻어 경전을 외는구나
寂寞諸天花雨裡  적막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중에
千江印月映高亭  온 강에 스민 달 높은 정자에 비치네
 석포石圃 김영배金英培

望七斯翁覺性靈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의 성품 신령해
松形鶴骨獨惺惺  솔 형상 학 골격으로 홀로 깨어 있네
慧光逈徹三千界  지혜의 빛 멀리 삼천 대천 세계 퍼지고
道力精通八萬經  도력은 정밀하게 팔만대장경을 통했네
爲賀處身溫玉白  하례하노니 처신이 따스한 백옥 같고
自慚塵世饜煙靑  세속에서 부끄럽나니 파란 연기 물리네
夏臘仙家無量算  선가의 하랍182)은 헤아릴 수 없으니
籛鏗遐壽益亭亭  전갱183)의 나이 들수록 더욱 정정하네
 선승호宣昇浩

山是淸凉水亦靈  산은 청량하고 물 또한 신령한데
一生眞趣箇中惺  일생 참된 취미는 그중에 깨어 있음이라
瑞氣第觀回鐵樹  상서로운 기운을 보나니 철수 두르고
暮年猶切講金經  모년에도 여전히 금강경 강독하네
好結因緣蓮社白  인연을 잘 맺었으니 백련사요
將傳心印法蘭靑  심인184)을 전할 법란이 푸르구나
種德修功如許大  덕을 심고 공을 닦음이 얼마나 큰가
伽藍爲此立亭亭  가람이 이 때문에 정정하게 서 있네
 청사靑史 김양현金良現

先生性癖耽區靈  선생의 성격이 영험한 곳 좋아하여
潛跡曹溪頓悟惺  조계산에 자취 감추고 돈오하여 깨었네
鐵樹花間留錫杖  철수의 꽃 핀 곳에 석장을 머물고
長庚星下誦金經  장경성185) 아래에서 금강경 외는구나
厚情臨事常心赤  두터운 정으로 일하여 항상 마음 붉고
和氣對人每眼靑  화사한 기운으로 타인 대해 푸른 눈길
十戒淸淨增壽福  십계로 청정하니 장수와 복이 증가하고
紅顏白髮益亭亭  홍안에 백발로 더욱 정정하도다

012_0779_c_01L
天降奇才最粹靈色空至理子惟惺

012_0779_c_02L祝融峰明寧古有曹溪山影更今靑

012_0779_c_03L花開淸晨行月榭白雲閑塔講仙經

012_0779_c_04L遙憐爲說百年事歸則必歸兜率亭

012_0779_c_05L
蘆巖徐英洙

012_0779_c_06L
尊師禀性本虛靈學道無疑道自惺

012_0779_c_07L晩與交隣香茗足賢宜同譜竹山靑

012_0779_c_08L全忘世慮常思佛優得閒情暗誦經

012_0779_c_09L寂寞諸天花雨裡千江印月映高亭

012_0779_c_10L
石圃金英培

012_0779_c_11L
望七斯翁覺性靈松形鶴骨獨惺惺

012_0779_c_12L慧光逈徹三千界道力精通八萬經

012_0779_c_13L爲賀處身溫玉白自慚塵世饜煙靑

012_0779_c_14L夏臘仙家無量算籛鏗遐壽益亭亭

012_0779_c_15L
宣昇浩

012_0779_c_16L
山是淸凉水亦靈一生眞趣箇中惺

012_0779_c_17L瑞氣第觀回鐵樹暮年猶切講金經

012_0779_c_18L好結因緣蓮社白將傳心印法蘭靑

012_0779_c_19L種德修功如許大伽藍爲此立亭亭

012_0779_c_20L
靑史金良現

012_0779_c_21L
先生性癖耽區靈潛跡曹溪頓悟惺

012_0779_c_22L鐵樹花間留錫杖長庚星下誦金經

012_0779_c_23L厚情臨事常心赤和氣對人每眼靑

012_0779_c_24L十戒淸淨增壽福紅顏白髮益亭亭

012_0780_a_01L 묵은默隱 최묵현崔默鉉

修鍊神心道至靈  마음을 수련하여 도는 지극히 신령하고
兜天花雨夢難惺  도솔천의 꽃비에 꿈을 깨기 어렵네
鬂生鶴睫幻僊骨  귀밑머리에서 학 눈썹 생겨 선골 되고
眼瀉秋波穿釋經  눈에서 추파를 쏟아 내 불경을 꿰뚫네
南極星躔增動彩  남극성의 자리에 빛이 더욱 움직이고
上元鐵樹復回靑  상원에 철수는 다시 푸름을 회복하네
聊知受福無疆界  복을 받음이 경계 없음을 알지니
鮐背龜紋獨立亭  복어 등 거북 무늬186)로 홀로 정자에 서네
 만운晩雲 최진국崔珍國187)

曹溪淑氣降仙靈  조계산 맑은 기운이 선령으로 강림하여
不染俗塵道味惺  속진에 물들지 않아 도를 깨우쳤네
圓明性慧通三寶  원만하고 밝은 성품으로 삼보에 통하고
種好身光藏八經  80종호188) 몸의 빛은 팔만대장경 담았네
煩惱心淸如水白  번뇌의 마음 맑아 물처럼 희고
是非言默學山靑  시비의 말이 없이 푸른 산을 배웠네
無關榮辱方回甲  영욕에 관련 없이 바야흐로 회갑이요
鳳舞桐兮人賀亭  봉황 춤추는 오동나무에 축하하는 정자
 산사山史 서창영徐昌英

鳳頭山下降仙靈  봉두산 아래 선령이 강림하여
瑞月三更夢復惺  달 뜬 삼경의 꿈을 다시 깨었구나
曾年送我雲中別  일찍이 나를 구름 속에서 송별하고
今日訪君雪裡經  오늘 그대를 방문하느라 눈 속 지나니
梖多寶葉手端老  패다라엽이 손끝에서 늙어 가고
栢樹禪心春外靑  잣나무 참선 마음이 봄 밖에 푸르네
然雖壽筵叅未得  비록 생신 축하연에 참여하지 못하나
斷金猶勝結蘭亭  쇠 끊음이 난초 맺는189) 정자보다 나으리
 국은菊隱 김사룡金士龍

聞道曹溪毓地靈  듣자니, 조계산이 땅의 정령 길러
淨蓮如錦夢圓惺  청정한 연꽃이 비단 같아 꿈을 깨고
生涯雲竈茶三椀  생애는 구름 부엌의 차 세 잔이요
居處花宮案一經  거처는 꽃집이라 책상에 경전 하나
催玆流歲頭盈白  흐르는 세월 재촉하여 머리는 가득 희고
捿彼深山眼對靑  저 깊은 산에 깃들어 눈이 마주함 푸르네
始識仁人能至壽  인자한 이는 장수함을 비로소 알지니
茂如松栢獨亭亭  무성함이 솔과 잣처럼 홀로 정정하도다
 춘사春史 이종택李鍾宅190)

名山秀麗護神靈  명산이 수려하여 신령을 보호하니
錦溟上人閒夢惺  금명 상인이 한가한 꿈을 깨었구나
澗戶蒼苔猿獻果  개울가 이끼 낀 집 원숭이가 과일 드리고
古壇松樹鶴聽經  소나무 오래된 단상에서 학이 경전 듣네
雲邊飛錫斜陽遠  구름 가에 석장 날리는 석양이 멀고
燈下看書兩眼靑  등불 아래 책을 보는 두 눈동자 푸르네

012_0780_a_01L
默隱崔默鉉

012_0780_a_02L
修鍊神心道至靈兜天花雨夢難惺

012_0780_a_03L鬂生鶴睫幻僊骨眼瀉秋波穿釋經

012_0780_a_04L南極星躔增動彩上元鐵樹復回靑

012_0780_a_05L聊知受福無疆界鮐背龜紋獨立亭

012_0780_a_06L
晩雲崔珍國

012_0780_a_07L
曹溪淑氣降仙靈不染俗塵道味惺

012_0780_a_08L圓明性慧通三寶種好身光藏八經

012_0780_a_09L煩惱心淸如水白是非言默學山靑

012_0780_a_10L無關榮辱方回甲鳳舞桐兮人賀亭

012_0780_a_11L
山史徐昌英

012_0780_a_12L
鳳頭山下降仙靈瑞月三更夢復惺

012_0780_a_13L曾年送我雲中別今日訪君雪裡經

012_0780_a_14L梖多寶葉手端老栢樹禪心春外靑

012_0780_a_15L然雖壽筵叅未得斷金猶勝結蘭亭

012_0780_a_16L
菊隱金士龍

012_0780_a_17L
聞道曹溪毓地靈淨蓮如錦夢圓惺

012_0780_a_18L生涯雲竈茶三椀居處花宮案一經

012_0780_a_19L催玆流歲頭盈白捿彼深山眼對靑

012_0780_a_20L始識仁人能至壽茂如松栢獨亭亭

012_0780_a_21L
春史李鍾宅

012_0780_a_22L
名山秀麗護神靈錦溟上人閒夢惺

012_0780_a_23L澗戶蒼苔猿獻果古壇松樹鶴聽經

012_0780_a_24L雲邊飛錫斜陽遠燈下看書兩眼靑

012_0780_b_01L修道入山今又甲  도 닦느라 산에 든 지 이제 또 회갑이라
斷崖嘉木自成亭  벼랑에 아름다운 나무 절로 정자 이뤘네
 노은路隱 현응무玄應武

禮雲古寺問神靈  상운의 오래된 사찰에서 신령을 물으니
爭道錦溟也獨惺  금명이 홀로 깨었다고 다투어 말하네
蓮葉千年龜獻算  연잎 천 년 되어 거북이 셈을 바치고
松燈半夜鶴聽經  솔등불 켠 한밤중에 학이 경전 듣네
心通流水來來白  마음은 흐르는 물에 통해 갈수록 희고
顏借高山去去靑  얼굴은 높은 산을 빌려 갈수록 푸르네
幸得同庚仙侶在  다행히 동갑의 신선 같은 벗들이 있어
椒樽雙擧月亭亭  산초술191) 쌍으로 드니 달이 정정하네
 난해難海 유영柳泳

桐山淑氣毓精靈  동리산 맑은 기운이 정령을 길러 내니
一夢沙門子獨惺  한 꿈의 사문에서 그대 홀로 깨었구나
在昔前身明月好  예전 전신은 밝은 달을 좋아하였고
幻今流水刼塵經  오늘은 흐르는 물로 겁진192)을 거쳤네
羨君名譽香茶潔  그대 명예가 청결한 차 같음 부러우니
信彼光陰鐵竹靑  저 광음에도 쇠와 대나무 푸름 믿겠네
櫛枇伽藍春不老  즐비한 가람은 봄에도 늙지 않고
低回南極夜垂亭  낮게 휘도는 남극성이 정자에 드리우네
 병곡屛谷 유선묵柳善默

一生修道養心靈  일생 수도하여 심령을 기르니
淡泊胷襟怳若惺  담백한 가슴이 깨어난 듯하네
五鳳爲誰呈瑞彩  다섯 봉황은 누굴 위해 상서로움 드리나
二僧居住讀玄經  두 승려가 거주하여 경전을 읽는구나
莫將世態禪門醉  세태를 가지고 선문에서 취하지 말라
詔示人間佛眼靑  세상에 보이노니 부처 눈은 푸르다네
千歲遊龜知在此  천 년 노니는 거북이 여기 있음 알지니
十方蓮葉出亭亭  시방의 연잎이 정정하게 솟는도다
 성헌省軒 최홍선崔洪善

泰安寺古鳳山靈  태안사 오래되고 봉두산 신령하니
晩有僊人獨自惺  느지막이 신선 있어 홀로 깨었구나
泉石光陰添鶴算  샘과 바위의 세월에 학의 나이 더하고
案箱貝葉聽鵝經  책상의 패엽경을 거위193)가 듣네
三乘遙界禪雲白  삼승의 먼 세계에 선운이 하얗고
一鉢浮香佛飯靑  발우 하나에 향기로운 불반 파랗네
最是錦溟仁且壽  바로 금명이니 인자하고 장수하여
晬詩猶似昔旗亭  생일 축하시가 옛 술집과 비슷하네
 용성산인龍城散人 윤주섭尹胄燮

鳳有貞祥錦有靈  봉황의 상서로움 있고 비단 정령 있는
其人如鶴意惺惺  그 사람은 학처럼 뜻이 깨어 있어
六旬遁跡塵間世  육순 동안 티끌 세상에 자취 숨기고
一甲觀心解脫經  회갑 동안 해탈 경전에서 마음 보았네

012_0780_b_01L修道入山今又甲斷崖嘉木自成亭

012_0780_b_02L
路隱玄應武

012_0780_b_03L
[156] 雲古寺問神靈爭道錦溟也獨惺

012_0780_b_04L蓮葉千年龜獻算松燈半夜鶴聽經

012_0780_b_05L心通流水來來白顏借高山去去靑

012_0780_b_06L幸得同庚仙侶在椒樽雙擧月亭亭

012_0780_b_07L
難海柳泳

012_0780_b_08L
桐山淑氣毓精靈一夢沙門子獨惺

012_0780_b_09L在昔前身明月好幻今流水刼塵經

012_0780_b_10L羨君名譽香茶潔信彼光陰鐵竹靑

012_0780_b_11L櫛枇伽藍春不老低回南極夜垂亭

012_0780_b_12L
屛谷柳善默

012_0780_b_13L
一生修道養心靈淡泊胷襟怳若惺

012_0780_b_14L五鳳爲誰呈瑞彩二僧居住讀玄經

012_0780_b_15L莫將世態禪門醉詔示人間佛眼靑

012_0780_b_16L千歲遊龜知在此十方蓮葉出亭亭

012_0780_b_17L
省軒崔洪善

012_0780_b_18L
泰安寺古鳳山靈晩有僊人獨自惺

012_0780_b_19L泉石光陰添鶴算案箱貝葉聽鵝經

012_0780_b_20L三乘遙界禪雲白一鉢浮香佛飯靑

012_0780_b_21L最是錦溟仁且壽晬詩猶似昔旗亭

012_0780_b_22L
龍城散人尹胄燮

012_0780_b_23L
鳳有貞祥錦有靈其人如鶴意惺惺

012_0780_b_24L六旬遁跡塵間世一甲觀心解脫經

012_0780_c_01L鐵樹分香溟月白  철수는 향 나눠 바다의 달이 희고
彌山入芥目眉靑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 미목 파랗네
淩波閣上前秋夢  능파각194)에서 가을 꿈이 앞서니
俗客無嚴憇短亭  속객이 무엄하게 단정195)에서 쉬는구나
 서순경徐舜卿

南鮮叢林法藥靈  남쪽의 총림에 법약이 영험하여
譚塵隨處敎人惺  세상 이야기로 곳곳에서 각성시키니
文章黼黻花中錦  문장이 화려하여 꽃 중의 비단이요
道德玲瓏海裒經  도덕이 영롱하니 바다의 경전이라
月圓鶴壽藐椿白  달처럼 원만하고 학 나이로 대춘처럼 희고
風動龜齡堯艸靑  바람처럼 움직이며 거북 나이로 풀처럼 푸르네
秦童遺業今安在  진나라 아이들196)의 남은 일 지금 어디 있나
不老晏開瑞鳳亭  불로초가 늦게 서봉정에 피었는데
 허용許鏞

弧南瑞彩降神靈  호남197)이 상서로운 빛으로 신령 내리니
鍾出溟公慧且惺  그렇게 나온 금명 공은 지혜롭고 깨어
蓬桑朝日重廻白  생일198) 아침 해는 거듭 돌아와 희고
蒲柳春光一夢靑  갯버들 봄 풍경에 꿈은 푸르구나
善道修來眞聖道  선한 도를 닦은 이래 성인의 도 참되고
玄經讀盡復黃經  현묘한 경전 읽고 다시 황정경 읽네
獻賀觴前歌壽算  축하의 잔 올리기 앞서 장수 노래 부르니
高崗松栢秀亭亭  높은 산등 솔과 잣이 수려하게 정정하네
 운강雲岡 이병호李炳昊

壽星南極降精靈  남극 수성199)이 정령으로 강림하여
古甲先天夢已惺  회갑에 선천의 꿈을 벌써 깨었네
閒居身世超塵俗  한가로운 신세는 속진을 초월하고
普濟心工誦法經  널리 구제하는 마음 공부로 법경을 외네
奏笛嵋山蘇鶴白  피리 부는 아미산의 소학200)이 희고
獻圖凾谷李牛靑  도서 바친 함곡관의 이우201)가 파랗구나
八果福田春不老  여덟 과일의 복전이 봄에 늙지 않고
明花鐵樹立亭亭  밝은 꽃의 철수가 정정하게 서 있구나
 옥뢰玉瀨 김영성金永誠

惟人最大物之靈  사람이 가장 위대하니 만물 중 신령해
六一茶翁道夢惺  61세 다송 노인은 꿈을 깨었구나
儉食無憂徒素饌  검소한 식사로 근심 없이 소찬만 하고
淸虛養性尙玄經  청허하게 본성 길러 현묘한 경전 높이네
印月澄江頭已白  맑은 강가에 비친 달은 희고
曇雲幻界眼重靑  흐린 구름 세상에서 눈동자 거듭 푸르네
今朝倍切思親孝  오늘 아침 더 절실하게 어버이 그리나니
悔入禪房老此亭  선방에 들어감 후회하며 정자에서 늙네
 성석醒石 김주현金周鉉

丰彩英姿始降靈  아름답고 뛰어난 이 비로소 강림하여
泰平生長卓然惺  태평하게 자라 탁월하게 깨었구나

012_0780_c_01L鐵樹分香溟月白彌山入芥目眉靑

012_0780_c_02L淩波閣上前秋夢俗客無嚴憇短亭

012_0780_c_03L
徐舜卿

012_0780_c_04L
南鮮叢林法藥靈譚塵隨處敎人惺

012_0780_c_05L文章黼黻花中錦道德玲瓏海裒經

012_0780_c_06L月圓鶴壽藐椿白風動龜齡堯艸靑

012_0780_c_07L秦童遺業今安在不老晏開瑞鳳亭

012_0780_c_08L
許鏞

012_0780_c_09L
弧南瑞彩降神靈鍾出溟公慧且惺

012_0780_c_10L蓬桑朝日重廻白蒲柳春光一夢靑

012_0780_c_11L善道修來眞聖道玄經讀盡復黃經

012_0780_c_12L獻賀觴前歌壽算高崗松栢秀亭亭

012_0780_c_13L
雲岡李炳昊

012_0780_c_14L
壽星南極降精靈古甲先天夢已惺

012_0780_c_15L閒居身世超塵俗普濟心工誦法經

012_0780_c_16L奏笛嵋山蘇鶴白獻圖凾谷李牛靑

012_0780_c_17L八果福田春不老明花鐵樹立亭亭

012_0780_c_18L
玉瀨金永誠

012_0780_c_19L
惟人最大物之靈六一茶翁道夢惺

012_0780_c_20L儉食無憂徒素饌淸虛養性尙玄經

012_0780_c_21L印月澄江頭已白曇雲幻界眼重靑

012_0780_c_22L今朝倍切思親孝悔入禪房老此亭

012_0780_c_23L
醒石金周鉉

012_0780_c_24L
丰彩英姿始降靈泰平生長卓然惺

012_0781_a_01L氷桃剩進三千壽  빙도202) 남아 삼천 세에 나아가고
宇量能藏八萬經  도량은 능히 팔만대장경을 담네
仙骨淨淸雙耳屹  청정한 신선 골격에 두 귀 우뚝하고
庭蘭玉立二枝靑  옥 같은 뜰의 난초 두 가지 푸르네
也應不食煙霞味  응당 불에 익힌 음식 먹지 않으리니
却世登臨慧月亭  속세 떠나 혜월정에 오르도다
 봉재鳳齋 전종호全宗鎬

瑞日回週再毓靈  상서로운 해 돌아와 다시 영령 기르니
沙門道骨主翁惺  사문의 도인 주인옹이 깨었구나
延年知易叅禪術  나이 늘림이 쉬움 알지니 참선술이요
繼世蹉難敎子經  세대 이음 어려우니 자식 가르치는 경전
澹靜心師雲水白  맑고 고요한 마음의 스승은 운수처럼 희고
劬勞恩感蓼莪靑  애쓰신203) 은혜 느끼는 다북쑥204) 파랗네
叉手闍梨來獻壽  합장한 아사리들이 와서 장수 기원하니
桐之山下月之亭  동리산 아래 달이 뜬 정자에서라네
 김영하金永夏

古甲主翁精且靈  회갑 맞은 주인옹 정치하고 영험하니
仙耶人否卓然惺  신선인가 인간인가 탁월하게 깨었구나
籌屋盈盈添壽海  주옥205)이 차서 수명의 바다 더하고
寶花落落講華經  보배 꽃 떨어지는 화엄경 강독 자리
鳳瑞惟羞霜鬂白  봉서는 서리처럼 하얀 머리 부끄럽고
太行應啖石泥靑  태항은 푸른 석니206)를 탐하리라
六旬重到劬勞日  육순에 거듭 돌아오는 생일날
祝賀延笻客上亭  축하하러 지팡이 짚은 객이 정자 오르네
 김병우金炳祐

庚同鐵樹始生靈  동갑의 철수가 비로소 신령을 낳아
默識玄圓慧正惺  말없이 현묘 원만함 아는 지혜로 깨었네
獻幅蠡圖驚耳目  여도207)를 바쳐서 이목을 놀라게 하니
着斕蠡子繡丹靑  채색 옷 입은 범려가 단청을 수놓네
夙離棣戶恒修道  일찍 형제 떠나 항상 도를 닦았고
倍感蘭湯解誦經  난탕208)에 느낌 더하여 경전 외는구나
桐裏眞源應菊水  동리산 참 근원은 응당 국화 물이리니
飮多此日老亭亭  이날 많이 마시면 늙어도 정정하리
 김영교金永敎

英年卓錫駐斯靈  꽃다운 나이에 높이 주석을 세운 정령
宿世證緣可以惺  전생의 인연을 증명하여 깨우쳤구나
間從來客吟驚句  간간이 손님 따라 경구를 읊나니
欲度餘生講法經  여생을 제도하려 경전을 강독하네
願深慈海娑婆小  바람 깊은 자비 바다에 사바세계 작고
春滿壽山鐵樹靑  봄 가득한 장수산에 철수가 푸르구나
六十苦行何盡說  육십 년 고행을 어찌 다 말하리
濟功無量祗園亭  구제한 공 무량하니 기원과 같도다
 우사愚史 김성렬金性烈


012_0781_a_01L氷桃剩進三千壽宇量能藏八萬經

012_0781_a_02L仙骨淨淸雙耳屹庭蘭玉立二枝靑

012_0781_a_03L也應不食煙霞味却世登臨慧月亭

012_0781_a_04L
鳳齋全宗鎬

012_0781_a_05L
瑞日回週再毓靈沙門道骨主翁惺

012_0781_a_06L延年知易叅禪術繼世蹉難敎子經

012_0781_a_07L澹靜心師雲水白劬勞恩感蓼莪靑

012_0781_a_08L叉手闍梨來獻壽桐之山下月之亭

012_0781_a_09L
金永夏

012_0781_a_10L
古甲主翁精且靈仙耶人否卓然惺

012_0781_a_11L籌屋盈盈添壽海寶花落落講華經

012_0781_a_12L鳳瑞惟羞霜鬂白太行應啖石泥靑

012_0781_a_13L六旬重到劬勞日祝賀延笻客上亭

012_0781_a_14L
金炳祐

012_0781_a_15L
庚同鐵樹始生靈默識玄圓慧正惺

012_0781_a_16L獻幅蠡圖驚耳目着斕蠡子繡丹靑

012_0781_a_17L夙離棣戶恒修道倍感蘭湯解誦經

012_0781_a_18L桐裏眞源應菊水飮多此日老亭亭

012_0781_a_19L
金永敎

012_0781_a_20L
英年卓錫駐斯靈宿世證緣可以惺

012_0781_a_21L間從來客吟驚句欲度餘生講法經

012_0781_a_22L願深慈海娑婆小春滿壽山鐵樹靑

012_0781_a_23L六十苦行何盡說濟功無量祗園亭

012_0781_a_24L
愚史金性烈

012_0781_b_01L弧節重回此地靈  생일이 거듭 돌아온 이 지역의 정령
沙門德齒自今惺  사문의 덕과 나이로 이제 절로 깨니
家聲金海王孫系  집안은 김해 왕손의 후예이고
禪派曹溪六祖經  불교로는 조계 육조의 정맥이라네
生涯無着雲山白  생애는 집착 없어 구름산처럼 희고
道氣淡如鏡水靑  도는 담백하여 거울물처럼 푸르네
度算盈室仍爲壽  산가지가 방에 가득 그렇게 장수하여
爲賀詩箋盡日亭  축하시 적은 종이 종일토록 쌓이네
 남사南史 김성조金性祚

六十安居法界靈  육십 년 안거한 법계의 정령
黃顏白髮獨惺惺  누런 얼굴에 백발로 홀로 깨었구나
中年桐岳惟修性  중년에 동리산에서 본성을 닦았고
曾歲松燈且閱經  일찍이 솔불로 또한 경전 읽었지
風停胷海心花發  바람이 그친 가슴 바다에 심화 피고
雨過壽山鐵樹靑  비 지나는 장수산에 철수가 푸르네
高賓齊賀終無散  고귀한 손님들 축하하며 흩어짐 없고
日落小焉月上亭  해 저물고 잠시 후 달이 정자에 오르네
 김봉준金鳳準

萬水千山不匿靈  온갖 물과 산이 정령을 숨기지 않아
緇衣白拂已惺惺  승복에 흰 불자 떨쳐 이미 깨었구나
尋常施設兼人術  평소 베푸는 게 뛰어난 방법인데
何必云爲救國經  하필 나라 구할 경전을 말하리오
明月心神光復潔  밝은 달에 마음은 빛나고 청결하며
春風梵相色添靑  봄바람에 범상209)은 푸른색 더하도다
曹溪一派滔滔下  조계 한 줄기가 도도하게 흘러내리는데
愧我無緣獻壽亭  부끄럽게도 생일 축하 정자에 인연 없네
 만암曼庵 송종헌宋宗憲210)

逸老巖溪降瑞靈  일로암 시냇물에 정령이 강림하여
師傅用壽尙惺惺  사부는 장수하고도 여전히 깨었구나
仙年丹龜灰塵刼  신선 나이의 붉은 거북은 진겁 다하고
磬夜香燈鑑道經  밤새 등 켜고 진리 경전 살펴보네
紺院芝蘭向春馥  사찰의 지초와 난초가 봄에 향기롭고
交庭竹栢入冬靑  뜰의 대나무 잣나무는 겨울에도 푸르러
龜蓮嚥氣肥鳬藻  연잎의 거북 연기211)하고 물오리212) 살지니
影裏寒潭水月亭  그늘진 찬 연못에 수월정이로다
 국헌菊軒 조홍근趙洪根

罄鍾聲裏養心靈  경쇠와 종소리로 심령을 기르고
坐演三車意自惺  앉아서 삼거213) 보니 뜻이 절로 깨어
初度春還花鐵樹  생일 봄이 돌아오니 철수에 꽃 피고
此生說去道禪經  이 생애에 말한 것은 참선 경전이로다
盤龍藏鉢恒水澄  용이 서린 발우는 항하사처럼 맑고
舞鶴登庭壽山靑  학이 오르는 뜰의 장수산 푸르구나
魚戱萬波同月印  물고기 노는 물결에 달이 비치고
紺園貝葉蔭成亭  사찰의 패엽 그늘이 정자 이루네

012_0781_b_01L
弧節重回此地靈沙門德齒自今惺

012_0781_b_02L家聲金海王孫系禪派曹溪六祖經

012_0781_b_03L生涯無着雲山白道氣淡如鏡水靑

012_0781_b_04L度算盈室仍爲壽爲賀詩箋盡日亭

012_0781_b_05L
南史金性祚

012_0781_b_06L
六十安居法界靈黃顏白髮獨惺惺

012_0781_b_07L中年桐岳惟修性曾歲松燈且閱經

012_0781_b_08L風停胷海心花發雨過壽山鐵樹靑

012_0781_b_09L高賓齊賀終無散日落小焉月上亭

012_0781_b_10L
金鳳準

012_0781_b_11L
萬水千山不匿靈緇衣白拂已惺惺

012_0781_b_12L尋常施設兼人術何必云爲救國經

012_0781_b_13L明月心神光復潔春風梵相色添靑

012_0781_b_14L曹溪一派滔滔下愧我無緣獻壽亭

012_0781_b_15L
曼庵宋宗憲

012_0781_b_16L
逸老巖溪降瑞靈師傅用壽尙惺惺

012_0781_b_17L仙年丹龜灰塵刼磬夜香燈鑑道經

012_0781_b_18L紺院芝蘭向春馥交庭竹栢入冬靑

012_0781_b_19L龜蓮嚥氣肥鳬藻影裏寒潭水月亭

012_0781_b_20L
菊軒趙洪根

012_0781_b_21L
罄鍾聲裏養心靈坐演三車意自惺

012_0781_b_22L初度春還花鐵樹此生說去道禪經

012_0781_b_23L盤龍藏鉢恒水澄舞鶴登庭壽山靑

012_0781_b_24L魚戱萬波同月印紺園貝葉蔭成亭

012_0781_c_01L 신규환申圭桓214)

南嶽降生早毓靈  남악에 강생하여 일찍 정령 기르고
出家悟道喚惺惺  출가하여 도를 깨치니 성성하도다
劬勞多感蓼莪句  부모 노고 감동하는 육아의 구절
淸靜誦傳般若經  청정하게 외어 전하는 건 반야경
好結名流蓮社白  명사들과 인연 맺은 백련사 희고
貯看法界苾蒭靑  우두커니 법계 바라보는 비구 푸르네
弧辰續在上元後  생일이 상원 이후에 이어졌으니
春水臨高六鑑亭  봄물이 높이 육감정에 이르도다
 운초雲樵 김종응金鍾應

現世之初已秀靈  현생 초기에 이미 빼어나고 영특하여
靈臺未必喚而惺  영대215)를 환기하지 않고도 깨었구나
生平度了蓮花界  평생 연화세계를 헤아렸으니
骨相淸於貝葉經  골격이 패엽경보다 맑도다
蓼莪劬勞春雪白  육아의 애쓴 노고는 봄눈처럼 희고
螟蛉敎誨夜燈靑  명령216) 가르침은 밤 등불처럼 푸르네
踵門賀客知多小  방문하는 축하 손님들이 많아서
不憚長亭與短亭  먼 거리 짧은 거리 꺼리지 않는구나
 소파小波 송명회宋明會217)

禀得曹溪一氣靈  조계의 영험한 기를 타고나서
自從現世已惺惺  현생 나면서부터 이미 깨었도다
玄談在口終爲法  현담이 늘 입에 있어 마침내 법이 되고
妙悟由心不待經  깨달음이 경전 없이 마음에서 우러났네
流水光陰雙髩白  흐르는 물 같은 광음에 귀밑머리 희고
名山宿業兩瞳靑  명산의 숙업218)으로 두 눈동자 푸르네
弧辰又合淸寒像  생일이 또한 청한한 모습에 합당하니
梅雪新晴月滿亭  눈 속 매화가 달 가득한 정자에 새롭네
 만사晩士 김명수金命洙

금옹의 수첩을 읽은 후 감동하여(謹讀錦翁壽帖後感)
有是明星有地靈  이 밝은 별이 있고 대지의 정령 있어
古今有幾等持惺  고금에 몇 번이나 깨달음 지녔나
神光已會蓮華智  신이한 광채로 이해한 연꽃의 지혜인데
眼界何煩貝葉經  눈앞에 어찌 패엽경이 번거로우랴
儀範乘雲天上樂  규범 있게 구름 타니 천상의 즐거움이요
芳名載石海東靑  아름다운 이름을 돌에 실은 해동 푸르네
嗟乎未得師子乳  아, 사자후를 얻지 못하였으니
心事如登勞勞亭  심사가 노로정219)에 오른 듯하네

012_0781_c_01L
申圭桓

012_0781_c_02L
南嶽降生早毓靈出家悟道喚惺惺

012_0781_c_03L劬勞多感蓼莪句淸靜誦傳般若經

012_0781_c_04L好結名流蓮社白貯看法界苾蒭靑

012_0781_c_05L弧辰續在上元後春水臨高六鑑亭

012_0781_c_06L
雲樵金鍾應

012_0781_c_07L
現世之初已秀靈靈臺未必喚而惺

012_0781_c_08L生平度了蓮花界骨相淸於貝葉經

012_0781_c_09L蓼莪劬勞春雪白螟蛉敎誨夜燈靑

012_0781_c_10L踵門賀客知多小不憚長亭與短亭

012_0781_c_11L
小波宋明會

012_0781_c_12L
禀得曹溪一氣靈自從現世已惺惺

012_0781_c_13L玄談在口終爲法妙悟由心不待經

012_0781_c_14L流水光陰雙髩白名山宿業兩瞳靑

012_0781_c_15L弧辰又合淸寒像梅雪新晴月滿亭

012_0781_c_16L
晩士金命洙

012_0781_c_17L

012_0781_c_18L1)謹讀錦翁壽帖後感 [31]

012_0781_c_19L
有是明星有地靈古今有幾等持惺

012_0781_c_20L神光已會蓮華智眼界何煩貝葉經

012_0781_c_21L儀範乘雲天上樂芳名載石海東靑

012_0781_c_22L嗟乎未得師子乳心事如登勞勞亭

012_0781_c_23L此詩底本在「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文之
012_0781_c_24L編者移置於此

012_0782_a_01L 계미년(1943) 가을에 후학 임보극220)이 삼가 쓰다.(癸未秋日後學任普極謹題)

[부록 3附錄三]
금명 선사 비명 병서錦溟禪師碑銘并序
사람이 어려서는 효도로 이름이 나고 자라서는 가르침으로 유명하여, 들고 남에 걸림이 없고 일과 이치를 같이 닦는 것은 위대한 도사導師(스승)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 내가 방외方外로 사귀는 금명錦溟 선사가 거의 그렇다.
선사의 휘諱는 보정寶鼎이고 호는 금명이며 속성은 김씨金氏로서 가락국 왕의 후예이고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221)의 후손이다. 중세中世에 영암靈巖에서 곡성谷城으로 이주하였다. 부친의 휘는 상종相宗이고 모친은 이씨이다. 임신 중에 채색 구름이 개울에 만연하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철종 신유년(1861) 정월 19일에 태어나니, 두각頭角(정수리)이 뾰족하고 지혜가 뛰어났다.
5세 때 스스로 이름을 ‘영준英俊’이라 하였다.222)
11세 때 배우기 시작하니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 책을 들고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모친의 병을 간호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눈밭을 헤치고 약초를 캐고 땅을 파서 조개를 구하니, 신명이 감동하여, 모친이 회복하게 되었다. 당시 14세였다.
성동成童(15세)에 부친이 출가하라 명하여 송광사 금련金蓮 화상에게 의지하여 삭발하고 비로소 향수해香水海223)를 읽었는데 한 번에 암송하였다. 하루는 홀연 마음이 동하여 스승께 고하고 급히 집으로 가니 모친의 병세가 이미 위독하였다.
17세 때 경파景坡 화상에게 계를 받았다. 이후로 사방을 다니며 공부하여 대종장大宗匠, 즉 원해圓海224)ㆍ범해梵海225)ㆍ원화圓華ㆍ함명涵溟226) 같은 분들을 두루 참학하니, 그분들이 마음을 기울이지 않음이 없었고 가르침에 나이를 잊고 칭찬하였다.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으로부터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등 여러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섭렵하였다. 글씨는

012_0782_a_01L
癸未秋日後學任普極謹題

012_0782_a_02L
012_0782_a_03L

012_0782_a_04L1)〔附錄三〕 [32]

012_0782_a_05L

012_0782_a_06L2)錦溟禪師碑銘并序 [33]

012_0782_a_07L
曰有人焉幼而以孝名長而以敎著
012_0782_a_08L出入無礙事理雙修非大導師不能
012_0782_a_09L以吾方外之交惟錦溟禪師庶幾
012_0782_a_10L師諱寶鼎號錦溟金其姓駕洛王
012_0782_a_11L鶴城君完后也中世自靈巖寓谷
012_0782_a_12L父曰相宗母李氏有娠夢彩雲溪
012_0782_a_13L漲之異哲宗辛酉正月十九日師生
012_0782_a_14L頭角嶄然慧識迢邁五歲自言名英俊
012_0782_a_15L十一歲就學晝執鉏夜抱書矻矻不
012_0782_a_16L侍母病積二年須臾不離側踏雪
012_0782_a_17L採芝穿土得蛤感神明而復矧翔
012_0782_a_18L十四歲也成童因父命出家依松廣寺
012_0782_a_19L金蓮和尙剃染始讀香水海一回便誦
012_0782_a_20L一日忽心動吿師急歸家母病已㞃矣
012_0782_a_21L十七受戒于景坡和尙自後遊學四方
012_0782_a_22L歷叅大宗匠如圓海梵海圓華菡 [157] 溟諸
012_0782_a_23L莫不傾心敎誨忘年推詡自六經
012_0782_a_24L四子以至老莊諸家一皆涉獵筆法

012_0782_b_01L자못 힘차고 성품은 근검하고 치밀하여 헌 종이나 낡은 붓이라도 글 쓰는 데에 사용하고, 밤에는 실 두 가닥을 합쳐 등불 심지로 삼으니, 학우들이 웃어 댔지만, 태연자약했다.
허주虛舟 선사를 참학하고 금련 스승의 호號를 받았다. 금련 스승이 병으로 누워 고생하게 되자 다른 문사門師에게 법을 구하라 명하니, 고하길 “10년의 은혜가 중한데 저의 유무가 어찌 대단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간혹 이익으로 유도하곤 하였으나 그때마다 “이익으로 법을 구함은 나의 본분이 아닙니다.”라고 하니, 듣는 이들이 옳게 여겼다. 스승의 질병을 간호함에 의사를 찾고 약을 구하여 하루 밤낮에 2백 리를 왕복하였고, 팔영산八影山227)에 들어가 만병초萬病艸를 메고서 당일에 돌아오기도 했다. 금련 스승이 입적함에 시를 지어 슬픔을 표하였다.

親疴傅病敢言苦  어버이와 스승의 질병에 감히 힘들다 하랴
手淈尿糞身自扶  손으로 오줌과 똥을 살피고 몸을 부지하여
雪芝泥蛤皆常事  눈 속의 지초와 진흙의 조개 캠이 일상이라네
恨未當時咋指蘇  한스러운 건 손 깨물어 소생시키지 못함이라

그리고는 건당建幢한 후에 초빙을 받아 전경轉經228)하였다. 본사本寺(송광사)의 보조암이나 광원암廣遠菴,229) 그리고 지방의 학림學林과 방장산의 화엄사ㆍ천은사泉隱寺, 해남의 대흥사, 곡성의 태안사泰安寺 등 이르는 곳마다 다투어 맞이하니, 발이 부르터 머물기도 하고 안거하며 참구叅究하기도 하였다. 선원 계단戒壇에 빈자리 없이 강마講劘하여 훈도薫陶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영남과 호남의 재주 있는 이들이 문하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서각西閣(뒷간)의 잡스런 제사들을 혁파하고 가마(藍輿) 적폐를 없애며 행패 부리는 관리를 징치함에 있어서는 과감하였다. 해인사의 장경藏經을 가지고 (송광사로) 돌아가 성수전聖壽殿을 창건하며 대흥사에서 크게 불사를 조성함에 있어서는 근면하였다. 갑오년(1894)과 정유년(1897)에 산 전체가 병화를 혹독하게 입었는데 위험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하려 하였으니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광무光武 병술년230)에 선종과 교종 양쪽에서 자헌대부를 수여하고 본사 도총섭都㧾攝을 맡은 게 네 번이고 해인사 선의禪議가 된 게 한 번이다.
61세 생일에 스스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去益昏迷難點石  갈수록 더욱 혼미하여 교화하기 어려우나

012_0782_b_01L頗遒健性勤儉緻密雖廢紙退筆
012_0782_b_02L資書寫夜以合兩線爲燈炷學友或
012_0782_b_03L笑之而顧自如也叅虛舟禪師受蓮
012_0782_b_04L師號及蓮師委疾且窘跲命求法他門
012_0782_b_05L吿曰十年恩重物何足有無或有以
012_0782_b_06L利誘之輒曰以利求法非吾本分
012_0782_b_07L者韙之侍師疾也尋醫求藥一晝夜
012_0782_b_08L徃還二百里入八影山擔曳萬病艸
012_0782_b_09L當日還山及蓮師沒賦詩識哀曰

012_0782_b_10L親疴傅病敢言苦手淈尿糞身自扶

012_0782_b_11L雪芝泥蛤皆常事恨未當時咋指蘇

012_0782_b_12L因建幢後被聘轉經若本寺之普照廣
012_0782_b_13L遠諸菴地方學林及方丈之華嚴泉隱
012_0782_b_14L海南之大興谷城之泰安所至爭迎
012_0782_b_15L或重趼留連或安居叅究禪院戒壇
012_0782_b_16L殆無虛席莫不講劘薫陶嶺湖才俊
012_0782_b_17L多出門下至若罷西閣雜祭袪藍輿積
012_0782_b_18L懲官隷悖亂其果敢也賚歸海印
012_0782_b_19L之藏經剏建聖壽之殿大興之大造佛
012_0782_b_20L其勤勞也午酉之歲一山酷被兵
012_0782_b_21L見危不怖誓欲殉敎其信念也
012_0782_b_22L武丙戌以禪敎兩宗授資資憲爲本
012_0782_b_23L寺都㧾攝者四爲海印寺禪議者一
012_0782_b_24L十一生朝自題有云去益昏迷難點石

012_0782_c_01L疲能隨喜但翻經  피곤해도 능히 기뻐하며 다만 불경 뒤적이네

승려나 일반인이나 여기에 화답하는 이가 매우 많았다. 나는 일찍이 그 진영에 다음과 같은 찬讃을 붙였다.

有爛其眼     빛나는 눈동자
有頎其容     헌걸찬 모습
卽之嫣然可掬   다가서면 아름다워 움켜잡을 만하고
望之儼然可敬   바라보면 의젓하니 공경할 만하도다
詞華則五色紋錦  아름다운 말은 오색 빛깔의 비단 같고
胷海則萬里滄溟  바다 같은 가슴은 만 리에 푸르도다
盖記實也     이 언급은 실제를 기록한 것이다.

경오년(1930) 2월 13일에 입적하였으니 세수世壽 70이요 법랍은 55세다. 몇 권의 문집과 『향사열전鄕師列傳』이 있다. 편록編錄한 것으로는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과 『저역총보著譯叢譜』, 『석보약록釋譜略錄』, 『삼장법수三藏法數』, 『불조찬송佛祖讃頌』, 『정토백영淨土百詠』, 『염불요해念佛要解』, 『십지경과十地經科』 등 수십 종이 있다.
상족上足(수제자)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은 일찍 청출어람이라는 명예를 자부하고 나에게 유학을 공부하였다. 기군紀羣의 사귐231)으로 여러 번 명문銘文을 청하였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사의 깨달은 경지는 내가 헤아릴 수 없으나 그 지극한 행실에 대해서는 쓸 것이 많다. 이것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어버이 섬김을 미루어 스승 섬김을 효라고 한다
뜻을 세워 사물에 응함을 이치라고 한다
효와 이치를 앎에 출입에 방해가 없고 일과 이치를 같이 닦았다 하리라
게다가 오색 빛깔의 화려한 말과 만 리 바다 같은 마음이
참으로 용상龍象 대덕이요 말세의 사표로다
아, 세상에 선과 교를 말하는 이들이 그저 껍데기만 맛볼 뿐이니
몽둥이로 고함만 일삼는 이들이여 어찌 선사에게 구하지 않는가
염재거사念齋居士 송태회宋泰會232)가 짓다.

012_0782_c_01L疲能隨喜但翻經緇素和之者甚多
012_0782_c_02L嘗讃其影曰有爛其眼有頎其容
012_0782_c_03L之嫣然可掬望之儼然可敬詞華則五
012_0782_c_04L色紋錦㐫海則萬里滄溟盖記實也
012_0782_c_05L庚午二月十三日入寂世壽七十法臘
012_0782_c_06L五十五有集若干卷鄕師列傳其編
012_0782_c_07L錄者曹溪高僧傳著譯叢譜釋譜略
012_0782_c_08L三藏法數佛祖讃頌淨土百詠
012_0782_c_09L佛要解十地經科等數十種上足朱龍
012_0782_c_10L隱完燮早負靑藍之譽而學儒書于余
012_0782_c_11L者也以紀羣之交屢謁銘文余曰
012_0782_c_12L之悟境非吾可測而其至行實事
012_0782_c_13L書者多是不可以不銘銘曰

012_0782_c_14L
推事親而事師曰孝也以立志而應物
012_0782_c_15L曰義也惟孝且義故曰出入無礙
012_0782_c_16L理雙修加之以五色詞華萬里胸海
012_0782_c_17L可爲龍象之大德而像季之師表也
012_0782_c_18L世之說禪說敎徒然啜糟粕而事棒喝
012_0782_c_19L盍於師而求之

012_0782_c_20L
念齋居士宋泰會撰

012_0782_c_21L「附錄三」三字編者補入「錦溟禪師碑銘
012_0782_c_22L幷序」及「錦溟大宗師碑陰記」各各別紙流通
012_0782_c_23L者收集而於此載之

012_0783_a_01L
금명 대종사 비음기錦溟大宗師碑陰記
제방諸方(각지)의 선지식이 벼와 삼과 대와 갈대처럼 많아서 아직 두루 참학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이치에 통하나 일에 막히기도 하고 선정이 깊으나 지혜가 건조하기도 하여, 모두 의논할 바가 있을 수 있다. 오직 금명 노스님은 이런 게 없이 고로古老의 풍모가 있다. 나는 어릴 적 불사로 인해 송광사에 약 반 년 머물렀는데, 맡은 일이 매우 바빠서 경전을 읽고 답을 청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기뻐하여 성심으로 (스님께) 감복하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생각하길, 갑오년(木馬)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리라 하였다. 어느덧 40년이 지났건만, 나는 다시 남쪽으로 가지 못하고 노스님은 이미 서방정토로 가셨다. 어그러지기는 쉽고 만나기는 어려움이 이와 같도다. 제자(神足)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 공公이 명銘을 가지고 서울로 와서 내게 보이며 말했다.
“스님께서 우리 스님에 대해 아시는 게 있음을 아는데 어찌 일전어一轉語233)를 내려 주어 비음기를 장식하지 않으십니까.”
“네, 아닙니다. 염재念齊(송태회)의 명銘이 충분합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알기에, 노스님께서 일생 동안 가르침을 자상하게 하셨고 때마다 다시 좌선을 편히 하시고 염불에 근면하신 지 또한 여러 해입니다. 계율을 근엄하게 지키셔서 제방의 모범이 되신 고로 명치明治 임자년(1912)과 소화昭和 병인년(1926)에 두 번 계단戒壇을 마련하시니 돌아와 걸계乞戒234)한 이가 매번 천 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또 붓을 잡는 데 근면하고 간절하여 그 저술한 바가 모두 후학이 보배로 삼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참선에 전력하지 않고도 선정 힘이 크고 무無에 들어가지 않고도 처사가 명백하였으니 진속眞俗을 아울러 융통하지 않은 이라면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입적하신 지 이미 1기紀(12년)가 지났다. 용은은 덕업이 혹시 민멸될까 걱정하여 개인 재산을 털어서 정민貞珉(비석)을 도모하였다. 송광사와 태안사, 관음사, 대흥사, 백양사, 화엄사, 천은사泉隱寺 등이 모두 공재公財를 보조했다.

012_0783_a_01L錦溟大宗師碑陰記

012_0783_a_02L
諸方之善知識如稻麻竹葦未曾遍叅
012_0783_a_03L然以余所觀或通乎理而滯乎事或深
012_0783_a_04L於定而乾於慧皆可以有以議惟錦溟
012_0783_a_05L老師無是也有古老風焉余少時因
012_0783_a_06L佛事留朽 [158] 廣者約半年所幹孔劇
012_0783_a_07L未能橫經請答然心則已悅而誠服矣
012_0783_a_08L事濟而歸自以謂木馬餘緣更續
012_0783_a_09L匆匆十年 [159] 余不復南行老師已西化
012_0783_a_10L蹉跎之易會遇之難有如是夫令其
012_0783_a_11L神足龍隱燮公齎銘入洛而示於余
012_0783_a_12L且曰知師之於吾師有知焉盍下一轉
012_0783_a_13L以侈其陰乎曰唯唯否否念齊之
012_0783_a_14L盡之矣復何爲哉然吾知其老師
012_0783_a_15L一生諄諄於敎誨而時復安於坐禪
012_0783_a_16L於念佛者亦累夏矣持律謹嚴爲諸
012_0783_a_17L方矜式故明治壬子昭和丙寅兩設戒
012_0783_a_18L而回來乞戒者每盈千指又復勤
012_0783_a_19L懇於秉筆故其所著述皆後學之可寶
012_0783_a_20L者也不專禪而定力大不入無而處事
012_0783_a_21L非眞俗雙融者其孰能與於此哉
012_0783_a_22L師殁已一紀矣龍隱懼其臨 [160] 業之或泯
012_0783_a_23L盡罄私槖乃謀貞珉松廣泰安觀音大
012_0783_a_24L興白羊華嚴泉隱諸寺皆以公財助之

012_0783_b_01L그 문하에 있는 제자들과 게를 받았거나 한마디 말을 들은 이들이 모두 정성을 기울이고 힘을 다해서, 그 일의 성공을 고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노스님의 교화를 앙모해서가 아니며, 더욱이 주완섭 공의 정성과 힘에 감동함이 아니겠는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잊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안다.

운양雲陽 사문沙門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235) 쓰다.
계보 : 부휴浮休 7세世 풍암楓巖, 응암 낭윤應庵朗允, 영암 등찬影庵等讃, 성월 서유聖月瑞薷, 지봉 지안智峰之安, 벽련 인성碧蓮仁性,236) 금련 경원金蓮敬圓, 금명 보정錦溟寶鼎.

수업문생受業門生 대표 : 만암 종헌曼庵宗憲,237) 석호 형순錫虎炯珣,238) 해은 재선海隱栽善,239) 기산 석진綺山錫珍.
제자弟資 : 용은 완섭龍隱完燮, 백은 종택栢隱鍾宅.240)
계제자戒弟子 : 동하東夏, 동식東植, 천경天鏡, 종출鍾出.
손제자孫弟資 : 봉길鳳吉, 동희東熙.
직원 : 주지住持 기산 석진綺山錫珍, 감무監務 용은 완섭龍隱完燮, 법무法務 금당 재순錦堂在順, 교무敎務 청은 순홍淸隱淳弘, 감사監事 모곡 재영暮谷再榮, 재무財務 등곡 병렬藤谷丙烈,241) 서기書記 영은 일오靈隱日五, 서기 춘고 병렬春臯炳烈, 강사講師 석호 형순錫虎炯珣, 강사 인산 상정仁山相禎, 염불원念佛院 화주化主 대우 금추大愚錦秋.
영건營建 :

012_0783_b_01L其在門弟子之列者與夫受一偈承一
012_0783_b_02L語者莫不傾誠竭力以吿厥成此豈
012_0783_b_03L非慕老師之臨化而尤感於燮公之誠
012_0783_b_04L力也耶吾知其愈久而人之不能忘也
012_0783_b_05L雲陽沙門退耕相老識

012_0783_b_06L
系譜

012_0783_b_07L
浮休七世楓巖應庵朗允影庵等讃
012_0783_b_08L聖月瑞薷智峰之安碧蓮仁性金蓮
012_0783_b_09L敬圓錦溟寶鼎

012_0783_b_10L
012_0783_b_11L
受業門生代表

012_0783_b_12L
曼庵宗憲錫虎炯珣海隱栽善綺山
012_0783_b_13L錫珍

012_0783_b_14L
弟資

012_0783_b_15L
龍隱完燮栢隱鍾宅

012_0783_b_16L
戒弟子

012_0783_b_17L
東夏東植天鏡鍾出

012_0783_b_18L
孫弟資

012_0783_b_19L
鳳吉東熙

012_0783_b_20L
職員

012_0783_b_21L
住持綺山錫珍監務龍隱完燮法務錦
012_0783_b_22L堂在順敎務淸隱淳弘監事暮谷再榮
012_0783_b_23L財務藤谷丙烈書記靈隱曰 [161] 書記春
012_0783_b_24L臯炳烈講師錫虎炯珣講師仁山相禎
012_0783_b_25L念佛院化主大愚錦秋

012_0783_b_26L
營建

012_0783_c_01L용은 완섭.
별좌別座 : 백은 종택.
속질俗姪 : 김재두金在斗, 재규在圭, 재수在守.
시중時衆242) 2백여 명, 도서실 주무主務 학담 득수鶴潭得秀.
불기佛紀 2969년(1942) 임오.
찬조기賛助記 : 송광사중松廣寺中, 태안사중泰安寺中, 관음사중觀音寺中, 대흥사중大興寺中, 화엄사중華嚴寺中, 천은사중泉隱寺中, 수업문생受業門生과 유지有志 60인.
비석 : 남포藍浦243)에서 산출.
제작 : 경성석물미술공업사京城石物美術工業社.
각공刻工 : 김창웅金昌雄,244) 이경구李庚求, 정한경鄭漢景.
석공石工 : 조소근曺小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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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隱完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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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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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隱鍾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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俗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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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在斗在圭在守

012_0783_c_06L
時衆二百餘圖書室主務鶴潭得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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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紀二千九百六十九年壬午月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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賛助記

012_0783_c_09L
松廣寺中泰安寺中觀音寺中大興
012_0783_c_10L寺中華嚴寺中泉隱寺中

012_0783_c_11L受業門生與有志六十人

012_0783_c_12L石出藍浦

012_0783_c_13L製作京城石物美術工業社

012_0783_c_14L刻工金昌雄李庚求鄭漢景

012_0783_c_15L石工曺小根
  1. 1)구단具檀 : ‘보시를 갖춤’을 뜻하는 듯함. 단檀은 보시(dãna)를 가리킴.
  2. 2)권화權化 :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여 세상에 나타나는 것.
  3. 3)사생四生 : 생명체를 출생 방식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한 것. 모태에서 태어나는 태생胎生, 알에서 깨어나는 난생卵生, 습한 곳에서 생기는 습생濕生, 어느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업력業力으로 태어나는 화생化生.
  4. 4)십지十地 : 보살의 열 가지 수행 단계. 『華嚴經』에서 천명한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십지와 천태종의 통교通敎 십지가 있다.
  5. 5)권현權現 :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일부러 신으로 변하여 나타나는 것.
  6. 6)미타영중彌陀影衆 : 아미타불이 관음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하므로, 관음보살을 미타영중이라 일컬음.
  7. 7)다라多羅 : ⓢ Tārā. 다라관음多羅觀音. 다라는 눈을 뜻함. 관음의 눈에서 나오는 광명으로부터 여인의 모습을 한 다라관음이 화현하였다고 한다.
  8. 8)삼제三際 :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전세, 현세, 내세.
  9. 9)의정依正 :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부처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을 의보,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을 정보라고 함.
  10. 10)가라迦羅 : 용왕. ⓢ Sāgara. 사갈라沙竭羅.
  11. 11)보타락가補陀落迦 : ⓢ potalaka. 관세음보살이 거주하는 산. 광명光明ㆍ소수만장엄小樹蔓莊嚴ㆍ해도海島라 번역.
  12. 12)사주泗洲의 성승聖僧 : 708년 당나라 황제의 초청을 받은 범승 승가僧伽 대사가 사주泗州 보광왕사普光王寺에서 주로 머물며 포교 활동을 하였는데 어느 때는 몸을 크게도 나투고 어느 때는 작게도 나투고 또는 십일면 관세음보살의 얼굴로도 나투고 하여 그 기이한 행동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가 입적하자 중종이 탑을 짓고 ‘사주대성泗洲大聖’으로 추대하였는데, 그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하였다.
  13. 13)섬부陝部의 선녀仙女 : 섬부 지역의 음란한 풍속을 그치게 하려고 관음보살이 선녀로 나타나 금쇄골을 남겼다고 한다.
  14. 14)육진六塵 : 인간의 본성을 흐리게 하는 여섯 가지 경계. 곧, 육근이 작용할 때 그 대상이 되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15. 15)팔풍八風 : 수행인의 마음을 흔들어 시끄럽게 하는 여덟 가지 종류의 경계를 바람에 비유한 표현.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ㆍ칭稱ㆍ기譏ㆍ고苦ㆍ낙樂을 말한다.
  16. 16)나찰羅刹 : ⓢ raksasa. 가외可畏, 속질귀涑疾鬼, 호자護者. 공중을 날아다니며 언제나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다고 함.
  17. 17)원통회圓通會 : 관음 법회. 『楞嚴經』에 나오는 25가지 수행법 중에 이근원통耳根圓通을 관음보살이 사용하였다고 하여, 관음보살을 원통교주圓通敎主라 칭한다.
  18. 18)선경禪經 : 선정禪定에 관한 경전.
  19. 19)화사化士 : 중생을 교화 인도하는 아미타불이나 석가여래 같은 성인.
  20. 20)백도伯道 : 진晉나라 등유鄧攸의 자. 등유가 하동태수일 때 석륵石勒의 난을 피하는 중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없게 되자 조카를 데리고 가고 자기 자식을 버렸다. 『世說新語』.
  21. 21)안회顏回 : 공자의 제자로 칭찬을 많이 받았으나 일찍 죽어 공자가 안타까워했다.
  22. 22)월화 장로月和長老 : 본 책의 「월화당 학계 서문」 참조.
  23. 23)자황䧳黃 : 시비나 선악에 대한 평가. 옛날 누런 종이에 글을 쓰고 잘못된 글이 있으면 노란색의 채료彩料 자황을 칠하여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썼으므로 전하여 자구字句의 첨삭添削이나 비평을 뜻한다.
  24. 24)욕천浴川 : 전라남도 곡성谷城의 옛 이름.
  25. 25)명찰(名藍) : 원문의 ‘藍’은 가람伽藍(사찰, ⓢ samghārāma)을 뜻한다.
  26. 26)노고魯誥(유교 경전)를 어려서~되어 토론하셨습니다 : 원문 ‘髫詮魯誥’와 ‘冠討竺墳’은 당나라 종밀宗密이 쓴 『圓覺經大疏』의 서문에 있는 “髫專魯誥。冠討竺墳。”을 활용한 것이다.
  27. 27)구용九容 : 아홉 가지 태도와 몸가짐.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擊蒙要訣』에 나오는 말이다. ① 발걸음을 진중하게 한다(足容重), ② 손동작을 공손하게 한다(手容恭), ③ 시선을 단정하게 한다(目容端), ④ 필요하지 않을 때는 입을 다문다(口容止), ⑤ 목소리를 조용히 한다(聲容靜), ⑥ 고개를 똑바로 한다(頭容直), ⑦ 기운을 엄숙하게 한다(氣容肅), ⑧ 바로 서서 점잖은 태도를 갖는다(立容德), ⑨ 안색을 바르게 한다(色容莊).
  28. 28)십과十科 : 수행 십과. ① 신심견고信心堅固, ② 조석예불朝夕禮佛, ③ 간경구법看經求法, ④ 염불선정念佛禪定, ⑤ 참회발원懺悔發願, ⑥ 보시이타布施利他, ⑦ 지계청정持戒淸淨, ⑧ 인욕수순忍辱隨順, ⑨ 용맹정진勇猛精進, ⑩ 전법도생傳法度生.
  29. 29)사심四心 : 문헌마다 다른데 『禪源諸詮集都序』의 경우 육단심肉團心ㆍ연려심緣慮心ㆍ집기심集起心ㆍ견실심堅實心이라 했고, 『淨土論』에서는 지혜심智慧心ㆍ방편심方便心ㆍ무장심無障心ㆍ승진심勝眞心이라 했다.
  30. 30)구준衢樽 : 성현의 도. 성인의 도는 길거리 복판에 술통을 놓아 둔 것과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적당히 자기 양대로 떠서 마시면 된다고 하였다. 『淮南子』.
  31. 31)푸줏간 문에서 질겅질겅 씹어 : 원문은 ‘大嚼屠門’. 본래는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배불리 먹는다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32. 32)소리 들음을 돌이켜 들음(反聞聞性) : 이근원통耳根圓通의 수행법. 귀로 듣는 소리를 자각하는 수행법. 『楞嚴經』.
  33. 33)집중執中ㆍ시중時中 : 집중은 치우치지 않게 중용의 도리를 행함이요, 시중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처신함이다. 『中庸』.
  34. 34)염拈 : 요지를 제시함. 예로 선문염송禪門拈頌.
  35. 35)화광동진和光同塵 : 빛을 감추고 티끌과 같이 함.
  36. 36)응기접물應機接物 : 듣는 이의 수준과 역량에 맞게 진리를 해설함.
  37. 37)비파를 놓은(捨琴) 인연 : 미상.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이 비파를 놓고 말하였다는 구절이 『論語』 「先進」에 있으니, 자기 뜻을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뜻하는 듯하다.
  38. 38)흰 이(瓠犀) : 원문 ‘瓠犀’는 박의 씨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미인의 고르고 하얀 치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그저 ‘이’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이가 드러난다’는 것은 상대방이 편지를 보고 웃을 것임을 뜻한다.
  39. 39)훈지塤箎 : 서로 가락이 잘 맞는 두 개의 관악기로서 보통 형제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詩經』 「小雅」 ≺何人斯≻에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 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塤。仲氏吹篪。)”라고 하였다.
  40. 40)원화圓華 : 덕주德柱(1839~1893)의 호. 성은 정씨鄭氏, 전라남도 담양 출신.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중이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斗月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본 책의 「지리산 대화엄사 임제종 36세 적손 원화 대선사의 행장 초고」 참조.
  41. 41)근기에 맞추고 : 원문 ‘逗機’는 ‘투기投機’라고도 함. 설법 따위를 근기에 맞게 함.
  42. 42)부휴浮休 : 선수善修(1543~1615)의 호. 속성은 김씨. 지리산의 신명信明에게 출가하여 부용 영관芙蓉靈觀의 법을 이어받았다.
  43. 43)벽암碧嵓 : 각성覺性(1575~1660)의 호. 지리산 화엄사를 중창하였으며 승병을 이끌었다.
  44. 44)영해影海 : 약탄若坦(1668~1754)의 호. 자는 수눌守訥. 고흥 능가사楞伽寺에 출가하여 득우得牛와 수연秀演에게 경론經論을 배운 후 참선 수행함.
  45. 45)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46. 46)우담優曇 : 홍기洪基(1822~1880). 함명과 함께 조계산의 종장으로 꼽힘.
  47. 47)함명涵溟(1824~1902) : 호는 태선太先. 『緇門警訓私記』 1권이 현존한다.
  48. 48)복성福城의 아이 : 『華嚴經』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두루 다니다가 복성 동쪽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났다고 한다.
  49. 49)나찰의 말 : 보살 법당을 수호하는 나찰귀왕羅刹鬼王이 선재동자 위에 꽃을 뿌리자 선재동자가 어디서 선지식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고, 이에 나찰은 시방에 두루 예배하고(敬禮十方) 모든 경계를 바른 생각으로 사유하고(正念思惟一切境界), 용맹하고 자재하게 시방에 두루 노닐어(勇猛自在。遍遊十方。) 선지식을 구하고, 몸과 행위가 꿈같고 번개 같음을 앎으로써(知身知行。如夢如電。) 선지식에게 나아가라 하였다. 『華嚴經』 「入法界品」.
  50. 50)의례 : 원문의 ‘讓’은 오기인 듯함.
  51. 51)법당法幢 : 불법을 표시하는 깃발.
  52. 52)근본지根本智 :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함. 모든 분별이 끊어진 지혜.
  53. 53)만행화萬行華 : 모든 생명이 만 가지 자비를 행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공양하는 꽃.
  54. 54)해회海會 : 많은 불보살이 모인 자리.
  55. 55)감인계堪忍界 : ⓢ sahā-loka-dhātu. 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 세상. 사바세계娑婆世界와 같음.
  56. 56)팔해八垓 : 팔방의 극한.
  57. 57)뱀을 마신 것 : 원문 ‘飮蛇’. 뱀 그림자가 비친 술을 마셨다는 뜻으로, 공연히 오해하여 의심함을 말한다. 진晉나라 악광樂廣이 친구와 술을 마실 적에 그 친구가 술잔 속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오인하고는 병이 들었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병이 절로 나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권43 「樂廣列傳」.
  58. 58)여래의 삼전三傳한 곳 : 녹야원鹿野園. 사르나트Sarnāth. 부처님이 5비구를 찾아 처음 법을 설하신 곳.
  59. 59)혜가惠可 : 혜가慧可(481~593). 남북조南北朝 시대 달마 대사의 제자. 선종의 2조.
  60. 60)침개針芥의 인연 : 개자투침봉芥子投針鋒의 준말. 바늘에 겨자씨를 던져 꿰듯 극히 만나기 어려운 일을 말함. 북본北本 『涅盤經』 권2.
  61. 61)청량淸凉의 ‘오지성인五地聖人으로~마음을 일으킴’이요 : 화엄종의 제4조인 청량 징관清涼澄觀이 당나라 승려로서 궁궐에서 역경 사업을 한 후에 오대산 화엄사에 들어가 오지성인으로서 세속의 마음을 일으켜 온갖 학문에 두루 통했다는 기록이 있다. 『佛祖歷代通載』 권14. 오지五地란 보살의 수행 단계인 십지 가운데 다섯 번째로서 ‘박지薄地’라고 한다. 이는 수다원에서 사다함행을 하는 것으로 욕계의 9종 번뇌를 일정 부분 끊어 냈기 때문이요, 보살에게는 아비발치지阿鞞跋致地를 뛰어넘었으나 아직 불도佛道를 성취하지 못한 것으로 온갖 번뇌는 끊어 내었으나 그 밖의 무의식으로 된 무명無明에 의한 불선업의 응어리가 남아 있고 무명도 얇게 남아 있는 단계이다. 아비발치는 ‘avivartika’의 음사. 불퇴不退ㆍ불퇴전不退轉이라 번역. 수행으로 도달한 경지에서 다시 범부의 상태로 후퇴하지 않음. 즉 다시 범부의 상태로 후퇴하지 않는 경지.
  62. 62)도안道安의 ‘풍속이~없다는 말’이 : 도안은 동진東晉 시대의 걸출한 불교학자. 풍속이 다른 타지의 말도 통했다는 기록은 명교 설숭明教契嵩의 「尊僧篇」에 나온다. 『緇門警訓』 권1.
  63. 63)점설漸說 : 차례대로 설명함.
  64. 64)구족九族 : 아홉 범주의 친족. 고조高祖, 증조, 조부, 부친父親, 자기, 아들, 손자, 증손, 현손玄孫.
  65. 65)육친六親 : 부모父母, 형제兄弟, 처자妻子.
  66. 66)삼도사생三途四生 : 삼도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사생은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67. 67)팔난구유八難九有 : 팔난은 불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가지 어려움을 뜻하는 말로 지옥ㆍ아귀ㆍ축생ㆍ장수천長壽天ㆍ변지邊地ㆍ맹롱음아盲聾音啞ㆍ세지변총世智辯聰ㆍ불전불후佛前佛後를 이른다. 구유는 구거九居라고도 하며 삼계의 유정중생이 사는 아홉 곳.
  68. 68)팔부천룡八部天龍 : 불법을 지키는 신장神將들. 곧 천天, 용龍, 야차夜叉(Yaksa), 건달바乾達婆(Gandharra), 아수라阿脩羅(Asura), 가루라迦樓羅(Garuda), 긴나라緊那羅(Kimnara), 마후라가摩喉羅伽(Mahoraga).
  69. 69)혜명慧命 : 불법의 명맥.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수행자.
  70. 70)백양산白羊山 : 전라남도 장성군과 전라북도 순창군에 걸쳐 있는 산. 일명 백암산白巖山.
  71. 71)구토九土 : 구주九州. 전국을 가리킴. 우禹가 홍수를 다스리고 나서 천하를 구주로 나누어 다스렸다.
  72. 72)육시六時 : 하루를 여섯 등분한 것. 신조晨朝(아침)ㆍ일중日中(한낮)ㆍ일몰日沒(해질녘)ㆍ초야初夜(초저녁)ㆍ중야中夜(한밤중)ㆍ후야後夜(한밤중에서 아침까지).
  73. 73)하나로 돌이켜 셋을 모음입니다 : 원문은 ‘歸一會三’. 『法華經』 28품 가운데 앞 14품의 요지를 드러낸 말. 세존께서 『法華經』을 설하기 이전에는 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三乘에 대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설하였지만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모두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는 뜻.
  74. 74)보토報土 : 애써서 수행한 결과로 얻은 불토.
  75. 75)용산龍山 : 용악龍岳 장로가 있는 산을 가리키는 듯함.
  76. 76)사대四大 : 물질의 구성 요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종류를 가리킴.
  77. 77)강동江東의 저녁~나무에 쓸쓸합니다 :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요, 강동의 저물녘 구름이로다. 어느 때 한 동이 술로, 거듭 더불어 세세히 글을 논할까.(渭北春天樹。江東日暮雲。何時一樽酒。重與細論文。)”라고 하였다. 위북은 두보가 머문 곳이요, 강동은 이백이 가는 곳이다.
  78. 78)사화四花 : 석가모니가 『法華經』을 설법할 때 서조瑞兆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백련화白蓮華ㆍ대백련화大白蓮華ㆍ홍련화紅蓮華ㆍ대홍련화大紅蓮華의 네 가지 꽃.
  79. 79)세 번 옮긴 : 어린 맹자孟子의 교육을 위해 모친이 세 번 집을 옮겼다.
  80. 80)벼루 동쪽과 등불 남쪽(硯東燈南)에서 : 등불을 켜고 편지를 쓰는 상황을 말하는 듯함.
  81. 81)연야演若 : 연야달다演若達多. 『楞嚴經』에서 부루나富樓那가 부처님께 망상의 원인에 대해 묻자, 실라성室羅城의 연야달다가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 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미쳐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원인이 없다고 하셨다.
  82. 82)물 양지와 산 북쪽(水陽山北) : 송광사의 위치를 말하는 듯함. 송광사는 보성강의 동남쪽 아래 조계산의 북쪽에 있다.
  83. 83)친구의 구슬 : 친구는 부처님을 뜻함. 부처님이 말씀하신 비유로,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친구 집에 찾아가서 대접을 받고 잠들었는데 친구가 보배 구슬을 옷 속에 매 놓고 말없이 떠났다고 함. 『法華經』 「五百弟子受記品」.
  84. 84)단술과 같지 않고 : 이익을 따지는 소인의 사귐이 아니라는 뜻. 『莊子』 「山木」에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 술과 같다.(君子之交淡若水。小人之交甘若醴。)”라고 하였다.
  85. 85)순주鶉咮 : 순월鶉月이 5월이므로 5월 초를 말함.
  86. 86)땅에 던지시니 쇳소리 남 : 원문은 ‘擲地金聲’. 훌륭한 시문을 뜻한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이 ≺天台山賦≻를 짓고 벗 범영기范榮期에게 “이 글을 땅에 던져 보았더니 쇳소리가 나더라.”라고 하기에, 범영기가 읽어 보고는 과연 칭찬이 입에서 끊이지 않았다 한다. 『晉書』 권56 「孫綽傳」.
  87. 87)철주掣肘 : 남의 팔꿈치를 옆에서 끈다는 뜻으로, 남의 일에 참견하여 못하게 방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기서는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실력을 가리킴. 원문 ‘書慚掣肘’는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에 나옴.
  88. 88)황양월黃楊月 : 미상.
  89. 89)개사開士 : 불도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사부라는 뜻으로, ‘보살’ 또는 ‘고승’을 달리 이르는 말.
  90. 90)규복圭復 : 백규白圭를 삼복三復한다는 뜻으로, 가슴에 새기며 재차 반복해 읽는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抑≻에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尙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라고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자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해 주었다.(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하였다.
  91. 91)횡해黌海 : 학사學舍를 이름. 학문의 길이 바다같이 넓음을 비유하는 말.
  92. 92)돌이 말함에 거북이가 돌아보는 : 자신의 말이 거북이가 등진 비석에 새겨짐을 뜻함.
  93. 93)꽃부리를 씹고~따는 것 : 원문은 ‘嚼英采花’. 훌륭한 글을 가리킴. 당나라 한유韓愈의 「進學解」에 “향기 짙은 문장에 흠뻑 젖고 그 꽃술을 입에 머금고 씹어서 문장을 지으니 그 책이 집안에 가득하다.(沈浸醲郁。含英咀華。作爲文章。其書滿家。)”라는 표현이 나온다.
  94. 94)마니摩尼 : ⓢ maṇi의 음사. 주珠ㆍ보주寶珠라고 번역.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컬음.
  95. 95)오개五盖 : 다섯 가지 장애. ① 탐욕(lobha), ② 성냄(dosa), ③ 해태(thina)와 혼침(middha), ④ 들뜸(uddhacca)과 후회(kukucca), ⑤ 의심(vicikiccha).
  96. 96)수증修證 : 수행을 쌓아서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수인증과修因證果.
  97. 97)경도京島 : ‘경도莖島’를 가리키는 듯함.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
  98. 98)기를 모으고 : 원문은 ‘氣鍾’. 태어남을 가리킴.
  99. 99)경운擎雲(1852~1936) : 강백講伯ㆍ사경사寫經師. 속성은 김씨. 경상남도 웅천熊川에서 태어나 17세 때 출가하여, 구례군 연곡사鷰谷寺 환월幻月의 제자가 되었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대승강원大乘講院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뒤에는 직접 강의를 담당하여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순천의 환산정喚山亭을 매입하여 새로운 포교당을 설립하고 포교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100. 100)원화圓華(1839~1893) : 덕주德柱의 호. 자는 수미守微이며 전라남도 담양 출신이다.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중이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斗月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본 책의 「지리산 대화엄사 임제종 36세 적손 원화 대선사의 행장 초고」 참조.
  101. 101)청출어람이라 : 원문은 ‘茜絳藍靑’. ‘茜絳’도 ‘藍靑’, 즉 ‘靑出於藍’과 같은 뜻이다. 원문은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보인다.
  102. 102)수증修證 : 방편을 닦아 깨달음.
  103. 103)우연히 만났으니 : 원문은 ‘傾盖’. 수레를 멈추고 일산을 기울인다는 것인데, 길에서 잠깐 만남을 뜻한다. 『史記』 「魯仲連鄒陽列傳」에 “속어俗語에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귀어도 처음 사귄 듯하고, 수레를 멈추고 잠깐 만났어도 오래 사귄 듯하다.(白頭如新。傾蓋如故。)’고 하였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서로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104. 104)순수鶉首 : 순월鶉月이 5월이므로 5월 초를 말함.
  105. 105)강루降婁(9월) : 강루는 별 이름으로 규루奎婁라고도 함. 12지 가운데 술戌에 해당함.
  106. 106)비파를 놓은 : 공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물었을 때 증점이 비파를 놓고 말하였다는 구절이 『論語』 「先進」에 있으니, 자기 뜻을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뜻하는 듯하다.
  107. 107)발섭跋涉 :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먼 길을 돌아다니는 것을 말함.
  108. 108)갱장羹墻 : 어진 이를 사모한다는 뜻. 『後漢書』 「李固傳」에, “순舜이 요堯를 사모하여, 앉아 있을 적에는 요임금을 담장에서 뵙는 듯하고, 밥 먹을 적에는 요임금을 국에서 뵙는 듯했다.”라고 하였다.
  109. 109)주정周鼎이 크니~강호康瓠가 작으니 : 주정은 주나라 때 왕권을 상징하던 구정九鼎으로, 하나라 우왕禹王이 구주九州에서 금을 모아 만든 솥이다. 강호는 깨진 질그릇이다. 한나라 가의賈誼의 「弔屈原賦」에서 “주정은 버려 두고 강호를 보배로 여기네.(斡棄周鼎兮寶康瓠)”라고 하였다.
  110. 110)삼제三際 : 삼세三世, 즉 과거와 현재, 미래.
  111. 111)사대四大 : 물질의 구성 요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종류를 가리킴.
  112. 112)사대를 조화하여~역의 괘이고 : 지, 수, 화, 풍 가운데 화, 풍이 만나 정괘鼎卦를 만듦.
  113. 113)물 긷고 땔감 나르니 : 원문은 ‘運水搬柴’. ‘평범한 일상사’를 말함인데 수행이 일상사 외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할 때 자주 사용된다.
  114. 114)사구四句 : 사구백비四句百非를 가리키는 듯함. 유有(긍정), 무無(부정), 역유역무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전개해 나가는 것을 사구라고 하고, 이 사구를 몇 번이고 또 계속 부정해 나가는 것을 백비百非라고 한다.
  115. 115)부처와 조사를 삶으니 : 부처나 조사라는 이상적인 인격체가 고정되어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수행자의 선병禪病을 치료하기 위한 법문. 『祖堂集』 9.
  116. 116)삼선三禪 : 운문雲門 선사가 대중을 교화한 삼자선三字禪으로, 나를 돌아보는 ‘고顧’, 남을 비춰 보는 ‘감鑑’, 일체를 초월하여 자적自適하는 ‘이咦’를 말한다.
  117. 117)향해香海 :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향수 바다.
  118. 118)오명五明 : 명明은 학문을 뜻함. 고대 인도의 다섯 가지 학문. 성명聲明은 언어ㆍ문학ㆍ문법에 대한 학문, 인명因明은 논리학, 내명內明은 종교의 취지를 밝히는 학문, 의방명醫方明은 의술에 대한 학문, 공교명工巧明은 공예ㆍ기술에 대한 학문.
  119. 119)유순由旬 : ⓢ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실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약 8km로 간주함.
  120. 120)후위後魏 : 북위北魏. 386년부터 534년을 가리킨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선비족鮮卑族 탁발씨가 세운 북조 정권 가운데 하나.
  121. 121)탁발씨拓跋氏 13년(399) : 탁발씨는 북위의 태조 탁발규拓跋珪(재위 386~409)를 가리킴.
  122. 122)산막山幕 : 사냥꾼 또는 약초를 캐거나 숯을 굽는 사람이 쓰려고 산속에 임시로 간단히 지은 집.
  123. 123)우매산牛埋山 :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우미산인 듯함.
  124. 124)마복산馬伏山 : 고흥군 포두면에 있다.
  125. 125)동해상 구계朐界에~진나라 동문東門 : 『史記』 권6 「秦始皇本紀」에 “동해의 구계에 돌을 세워서 진나라 동문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구계는 구현朐縣의 경계이다. 구현은 강소성江蘇省 동해현東海縣의 남쪽에 있다. 진시황 35년에 동쪽을 순수하여 돌을 구현 경계 가운데 세워서 동쪽의 문으로 삼았던 것이다.
  126. 126)여기서 조금~유구琉球의 태자이고 : 유구 태자가 표류하다 능가사에 오게 되었는데 관음보살께 기도하여 7일 만에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127. 127)의희義熙 13년(417)~눌지왕 3년(419) : 두 연도 표기가 일치하지 않으니 착오가 있는 듯하다.
  128. 128)아도阿度(357~?) : 고구려 출신으로 16세 때 사신을 따라 아버지 아굴마阿掘摩가 있는 위나라로 넘어가 출가해 아도라는 도첩을 받고 현창玄暢에게 아도我道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후 19세 때 귀국해 어머니의 뜻을 따라 눌지왕(417~457)이 다스리는 신라로 넘어와 포교하였다.
  129. 129)신유년 당~정관貞觀 원년(627) : 정관 원년은 정해년이므로 착오가 있는 듯하다.
  130. 130)월지月支(月氏) : 서역에 있던 나라의 이름으로 원래 둔황 지역에 있었으나 한나라 때에 흉노에게 쫓겨나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부근에 정착하였다.
  131. 131)익실翼室 : 본채의 좌우 양쪽에 있는 방.
  132. 132)사겁四刼 : 세상이 성립했다가 소멸하고 다시 생성되는 성겁成劫ㆍ주겁住劫ㆍ괴겁壞劫ㆍ공겁空劫의 네 과정.
  133. 133)광서光緖 4년 경진(1880) : 광서 4년은 1878년인데 경진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134. 134)눈처럼 흰~새로 발랐다 : 수倕는 목수, 노猱는 미장이로 유명한 전설의 인물이다. 원문 “雪梯而倕材架嶮。霜塗而猱堊粘新。”은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만 ‘猱堊粘新’이 최치원의 글에는 ‘夔堊黏香’으로 되어 있다.
  135. 135)선부제鮮浮提 : 조선과 염부제閻浮提를 결합한 개념인 듯함. 염부제 또는 남섬부주南贍部洲는 ⓢ jambu-dvīpa의 음사. ‘jambu’는 나무 이름, ‘dvīpa’는 주洲로, 수미산 남쪽에 있다는 대륙. 여기에 잠부 나무가 많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함.
  136. 136)도사타兜斯陁 : 도솔타兜率陀. ⓢ Tuṣita. 상족上足ㆍ묘족妙足ㆍ선족善足ㆍ지족知足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수미산 꼭대기로부터 12만 유순 위에 있는 하늘. 욕계 6천 중에 제4천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천상의 정토.
  137. 137)제호醍醐 : 우유에 갈분葛粉을 타서 미음같이 쑨 죽. 최상급의 음식.
  138. 138)선불장選佛場 : 부처를 뽑는 장소라는 뜻으로 수행승이 좌선하는 곳.
  139. 139)굴窟 안팎의 결집(部藏) : 석가모니께서 입적한 후에 500여 명의 비구가 왕사성 칠엽굴七葉窟에 모여 경經과 율律을 결집한 것을 ‘굴내결집’이라 하고, 굴내결집에 참가하지 못한 비구들이 모여 따로 굴 밖에서 결집한 것을 ‘굴외결집’이라 함.
  140. 140)삼도三途 :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141. 141)권형權衡 : 권權은 저울추를, 형衡은 저울대를 말하며, 합쳐서 저울 또는 저울질을 의미함.
  142. 142)선불장選佛場 : 부처를 뽑는 장소라는 뜻. 수행승이 좌선하는 곳.
  143. 143)보리좌菩提座 : 깨달음의 자리.
  144. 144)보리좌를 옮기지~나아간 것 : 『華嚴經』 「如來名號品」에 “그때 세존께서 마갈제국의 고요한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광명전普光明殿의 연화장蓮華藏 사자좌師子座에 앉아 계셨다.(佛在摩竭提國寂滅道場。初始得佛。普光法堂。坐蓮華藏師子座上。)”라는 서술이 나온다. 『大正新脩大藏經』 9책.
  145. 145)도독고塗毒鼓 : 표면에 독을 발라 놓은 북인데 그 북소리를 듣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한다. 『涅槃經』에서 “나의 교법의 뜻은 도독고와 같아서 한 번 울리면 멀고 가까운 곳에서 듣는 이 모두가 죽느니라.”라고 하였다.
  146. 146)수라취修羅趣 : 아수라취阿修羅趣, 아수라도阿修羅道. 늘 싸움만을 일삼는 무리들의 세계로, 수미산 옆의 바다 밑에 있다고 한다.
  147. 147)진각眞覺 : 혜심慧諶(1178~1234)의 호.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송광사)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저서로는 『禪門拈頌集』 등이 있다.
  148. 148)청진淸眞 : 몽여夢如(?~1252)의 호. 수선사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 이규보李奎報와 교유.
  149. 149)16노추老錐 : 노추는 노고추老古錐의 준말. ‘노고’는 존경한다는 뜻이고 ‘추’는 송곳처럼 예민함을 뜻하여, 덕이 높고 선기禪機가 예민한 승려를 이르는 말.
  150. 150)부휴浮休 : 선수善修(1543~1615)의 호. 지리산의 신명信明에게 출가하여 부용 영관芙蓉靈觀의 법을 이어받았다.
  151. 151)벽암碧嵓 : 각성覺性(1575~1660)의 호. 선수善修의 제자. 지리산 화엄사를 중창하였으며 승병을 이끌었다.
  152. 152)종유宗猷 : 종문宗門에서 걸출한 자, 또는 그 도를 추존推尊함을 가리킴.
  153. 153)법려法侶 : 불법을 함께 배우는 벗.
  154. 154)백암栢庵 : 성총性聰(1631~1700)의 호. 13세 때 출가하여 지리산 수초守初 밑에서 불경을 배웠고 많은 불서를 간행하였다.
  155. 155)무용無用 : 수연秀演(1651~1719)의 호. 19세 때 조계산 송광사로 출가하여 혜관惠寬의 제자가 되었고, 혜공慧空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선암사仙巖寺의 침굉枕肱을 찾아가서 선의 진수를 물어 대오大悟하였다. 조계산 은적암隱寂庵의 백암을 찾아가서 다시 깨달음을 인정받았다. 1692년에는 선암사에서 화엄회華嚴會를 열었으며, 1700년 7월에는 백암의 뒤를 이어 조실祖室이 되었다.
  156. 156)침명枕溟 : 한성翰醒(1801~1876)의 호. 16세 때 팔영산八影山 선계암仙界庵으로 가서 권민權敏을 은사로 하여 삭발하였다. 춘파春坡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긍선亘璇에게 선과 참법懺法을 배운 다음 혁원奕謜의 법을 이었다.
  157. 157)우담優曇 : 홍기洪基(1832~1881)의 호. 초명은 우행禹幸, 성은 권權이다. 『禪門證正錄』을 지어 긍선亘璇(1767~1852)의 『禪文手鏡』을 논박했다.
  158. 158)영해影海 : 약탄若坦(1668~1754)의 호. 자는 수눌守訥. 고흥 능가사楞伽寺에 출가하여 득우得牛와 수연秀演에게 경론經論을 배운 후 참선 수행함.
  159. 159)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160. 160)응암應庵 : 낭윤朗允(1718~1794)의 호. 본문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 참조.
  161. 161)칠중七衆 :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일곱 부류의 사람.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예비 비구니)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가리킨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162. 162)항룡발降龍鉢 : 용을 항복시킨 발우. 육조대사 당시 못에 물을 마구 휘젓고 다니며 바람을 일으키는 용이 있어서, 육조대사께서 “너 이놈, 몸을 키우고 재주를 부릴 줄은 알지만 몸을 작게 나툴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법문을 하자 그 용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몸을 작게 해서 육조대사 앞에 나타났다. 이때 육조대사께서 발우로 딱 덮어서 용의 항복을 받은 일이 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163. 163)팔굉八紘 : 팔방. 온 세상.
  164. 164)해호공解虎笻 : 범 싸움을 말린 석장. 제齊나라 승려 혜조慧稠가 회주懷州 왕옥산王屋山에 있다가 두 마리 범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석장으로 말렸다고 하며, 또 수隋나라 때 담순曇詢이란 승려가 산길을 가다가 두 마리 범이 여러 날 동안 싸우는 것을 보고, 석장을 들어 두 마리를 갈라 놓았다고 한다. 영가 현각永嘉玄覺의 「證道歌」에 “용을 항복시킨 발우요, 범 싸움을 풀어 놓은 석장(降龍鉢而解虎錫)”이라 하였다.
  165. 165)오고 감이~실을 정도입니다 : 원문 “無去來之說。競抱斗量。散花談經。不生滅之言。動論車載。”은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서 “無去無來之說。競抱斗量。不生不滅之談。動論車載。”를 활용한 것이다.
  166. 166)연하煙霞 : 안개와 노을. 고요한 산수 경치.
  167. 167)보탑寶塔 : 불구류에 속하는 공예 소탑들의 총칭.
  168. 168)현기懸記 : 부처가 미래 일에 대하여 미리 말하여 둔 일.
  169. 169)불일佛日 : 지눌知訥의 시호가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이다.
  170. 170)패엽貝葉 : 패다라엽貝多羅葉. ⓢ pattra. 인도에서 여기에 경문經文을 썼기에 경전을 뜻하게 됨.
  171. 171)흙덩이를 바쳐~덕승德勝 아이의 : 『阿育王傳』에 실려 있는 아소카 대왕의 전생담이다. 아소카 대왕이 과거 생에 덕승德勝이라는 동자였는데 무승無勝이라는 동자와 함께 길에서 흙 장난을 하고 있었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가 길을 지나갔는데 덕승은 부모가 보시하는 모습을 흉내 내어 석가모니 부처의 발우에 흙을 공양하면서 자신이 미래세에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공양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발원하였다. 이에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이 열반한 지 백 년 뒤에 이 아이가 전륜성왕이 되어 자신의 사리를 나누어 8만 4천 개의 보탑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수기하였다. 결국 이 아이는 다음 생에 아소카 대왕으로 태어나 인도를 통일하고 불법을 수호하게 되었다.
  172. 172)수달다須達多 : ⓢ sudatta. 사위성舍衛城의 부호이자 파사닉왕波斯匿王의 신하.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구입한 동산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석가모니에게 바침.
  173. 173)옥호玉毫 : 부처의 미간에 있는 흰 털.
  174. 174)네게서 나온~네게로 돌아온다 : 원문은 ‘出爾反爾’. 이 문장은 공자가 아니라 제자 증자曾子의 말로 『孟子』 「梁惠王」에 “出乎爾者。反乎爾者也。”라고 하였다.
  175. 175)청부아안靑鈇鵝眼 : 동전을 말함. 청부는 남방의 매미 비슷한 수충水虫이다. 그 새끼만 잡아 오면 어미가 저절로 날아오므로, 그것을 이용하여 한쪽 동전에는 어미의 피를, 다른 쪽 동전에는 새끼의 피를 발라서, 새끼의 피를 바른 동전은 가지고 있고 어미의 피를 바른 동전으로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면 그 돈이 저절로 돌아온다고 한다. 『淮南子』 「萬畢術」에 나온다. 아안은 남북조南北朝 시대 송宋나라 폐제廢帝 이후에 주조된 구멍이 뚫린 엽전이다. 매우 얇고 작아서 1천 전錢의 길이가 3촌寸이 채 안 되었고, 매우 가벼워서 물에 가라앉지 않았으며,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정도로 조잡하였다고 한다. 후대에 악전惡錢의 대명사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엽전의 의미로 쓰였다.
  176. 176)허리에 찬~탄 선비의 : 이루기 힘든 환상을 말함. 어떤 이는 재물을 많이 갖고 싶다고 하고, 어떤 이는 양주 자사揚州刺使가 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이는 학을 타고서 노닐고 싶다고 하였는데, 이때 한 사람이 나서서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날아가고 싶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淵鑑類函』 ≺鳥3 鶴3≻.
  177. 177)용화삼회龍華三會 : 미래불인 미륵이 용화수 아래 3회의 설법으로 미래의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법회.
  178. 178)요명堯蓂 : 요堯임금이 명엽蓂葉이라는 풀을 보고 달력을 만든 데서 나온 말인데 여기서는 임금의 수명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 달 주기로 1일부터 15일까지 한 잎씩 피어나다가 15일 이후부터 한 잎씩 지기 시작해 30일이 되면 다 떨어졌으므로 요임금이 그것을 보고 월력을 만들었다. 『竹書紀年』.
  179. 179)사민四民 : 사농공상. 곧 선비, 농부, 장인, 상인 등 모든 백성.
  180. 180)순금舜琴 : 순임금이 처음으로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했는데,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성냄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이 풍부하리로다.(南風之薰兮。可以解吾民之慍兮。南風之時兮。可以阜吾民之財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禮記』 「樂記」.
  181. 181)성산각星山閣 : 사찰에서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이었던 칠성, 산신, 독성獨聖을 봉안한 곳.
  182. 182)권형權衡 : 저울.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임시적인 정당성을 가지는 행위 규범인 ‘권도權道’의 의미로 사용된 듯함.
  183. 183)와룡卧龍이 병진兵陣에서 복을 기도했으니 : 제갈공명이 남병산南屛山에 칠성단을 설치하고 동남풍이 불기를 기도하여 적벽대전에서 성공하였다. 소설 『三國志演義』 49회 「七星壇諸葛祭風三江口周瑜縱火」에 나옴.
  184. 184)우리 태조께서~계봉鷄峰에 우뚝합니다 : 이성계가 함경도 안변에 있을 때 꿈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나오다가 거울 깨지는 소리에 꿈을 깨었다. 이 꿈을 설봉산 승려가 왕이 될 징조라고 해석해 주자 사찰을 세우고 ‘석왕사’라고 하였다. 계봉은 송악산 뒤쪽에 있는데, 계봉 너머에 태조의 조부 작제건作帝建의 옛 집터가 있다.
  185. 185)담당湛堂 : 성징聖澄의 자. 호는 월계越溪이며 송광사 16국사 중 제9번째 국사이다. 행적은 전하지 않으며, 그에 얽힌 설화가 『松廣寺誌』에 전한다. 원래 금나라의 태자였는데 고려에 와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186. 186)물화物華 : 산과 물 따위의 자연계에서의 아름다운 현상.
  187. 187)사자師資 : 스승으로 삼고 의지함. 또는 스승과 제자.
  188. 188)주천성군周天星君과 열악산령列嶽山靈 : 온 하늘의 별들과 여러 산의 신령들.
  189. 189)공명孔明의 감응(蒙熏) :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화공을 위해 남동풍이 불도록 하늘에 기도하니 한겨울에 남동풍이 불었다고 한다.
  190. 190)원우상元禹常(1839~?) : 1871년에 영일현감迎日縣監을 지냈으며, 1881년에는 선기장善騎將에 올랐다. 그 후 경상좌도병마절도사(1882), 평안도병마절도사(1885) 등 외직으로 있다가 1888년에 경직인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듬해 별군직別軍職을 맡았다. 1890년에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거쳐서 1896년 중추원 1등의관 칙임관 2등과 함경북도 관찰사 칙임관 3등, 1897년 중추원 1등의관 칙임관 2등을 역임하였다. 1898년에 정2품이 되었다. 이에 대한 의법 처리로 지도군智島郡 고군산古群山에 귀양 3년에 처해졌으나 곧 특별 석방되었다. 1904년에는 육군참령陸軍參領에서 참장參將으로 승진하여 경무사 칙임관 2등, 유행병예방위원장流行病豫防委員長, 헌병사령관, 중추원의관 칙임관 2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이 되었다.
  191. 191)편작扁鵲 : 전국戰國시대의 의술인. 거의 죽을 뻔한 괵국虢國 태자를 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192. 192)진주가 돌아온다는~합포合浦의 백성에게만 : 후한後漢 때 합포에서 진주가 생산되었는데, 탐관오리가 조개를 무리하게 채취하게 하니 진주가 나오지 않다가, 맹상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정사를 행하자, 다시 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後漢書』 「孟嘗傳」.
  193. 193)범이 건너갔다는 : 후한 때 유곤劉昆이 홍농弘農의 태수가 되었다. 이전에 홍농에선 호환虎患이 많았는데 유곤이 선정을 베풀자 호랑이가 새끼를 업고 황하를 건너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한다.
  194. 194)예상翳桑의 보답 : 예상은 지명인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을 뜻한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영첩靈輒이 이곳에서 굶주려 쓰러져 있는데 조돈趙盾이 지나다 보고 먹을 것을 주어 구제해 주었다. 그 뒤에 영첩이 진나라 영공靈公의 갑사甲士가 되어, 위험에 처한 조돈을 구제해 주었다. 『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
  195. 195)이면상李冕相(1846~?) :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규聖圭. 이종영李種永의 아들로 종정경 이승수李升洙에게 입양되어 완원군完原君 이유명李惟命의 손자가 되었다. 1892년 전라도 암행어사가 되어, 백성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는 수령구임법守令久任法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계방촌契防村을 혁파할 것 등을 건의하였다.
  196. 196)삼초三草 : 『法華經』 「藥草喩品」에 있는 비유로서 소초小草는 인승人乘과 천승天乘, 중초中草는 성문과 연각, 상초上草는 장교藏敎(소승교)의 보살을 비유함.
  197. 197)상대霜臺 : 어사대御史臺. 사헌부의 별칭. 여기서는 수의어사를 가리킴.
  198. 198)선보仙譜 : 신선의 계보. 여기서는 왕족 계보를 가리킴.
  199. 199)북궐北闕(대궐)의 근심을 나누어 : 지방 관리가 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전라도 수의어사가 됨을 가리킴.
  200. 200)인을 갑옷으로 의를 투구로 : 원문 ‘甲仁胄義’는 최치원의 「無染和尙碑銘」에 나온다.
  201. 201)육도六度의 으뜸이요 : 육도는 육바라밀六波羅蜜. 그 첫째는 보시이다.
  202. 202)삼귀三歸 : 삼귀의三歸依. 불법승에 귀의함.
  203. 203)이안移安 :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
  204. 204)귀부龜趺 :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205. 205)해당 기문記文 : 뒤에 있는 「조계산 불일보조국사의 감로탑을 개축하는 기문」을 가리킴.
  206. 206)세제世諦 : 세간의 이치를 기준으로 할 때 타당한 진리.
  207. 207)영호映湖 : 정호鼎鎬(1870~1948)의 호. 성은 박씨朴氏, 자는 한영漢永, 또 다른 호는 석전石顚. 19세 때 전주 태조암太祖庵으로 출가하여 금산錦山의 제자가 되었고, 21세 때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환응幻應에게 4교敎를 배우고, 선암사仙巖寺의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배운 뒤, 구암사龜巖寺에서 처명處明의 법을 이어받았다. 금봉錦峯ㆍ진응震應과 함께 근대 불교사의 3대 강백講伯으로 추앙받았으며, 경사자집經史子集과 노장학설을 두루 섭렵하고 서법書法까지도 겸통한 고승으로 평가받았다.
  208. 208)삼양三陽이 엎드리고 육음六陰이 승한데 : 곤괘坤卦에 해당하는 10월을 가리킴.
  209. 209)은우恩憂 : 은사恩師의 상喪을 가리키는 듯함.
  210. 210)약(刀圭) : 도규刀圭는 칼처럼 생긴 약 숟가락인데 대개 의약이나 의술을 가리킨다.
  211. 211)고개 위~강가의 나무를 :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의 시 ≺春日憶李白≻에 “위수 북쪽 봄날의 나무요, 강동의 저물녘 구름이로다. 어느 때 한 동이 술로, 거듭 더불어 세세히 글을 논할까.(渭北春天樹。江東日暮雲。何時一樽酒。重與細論文。)”라고 하였다.
  212. 212)시편(瓊琚) : 원문 ‘瓊琚’는 보배로운 구슬로 상대방의 시문에 대한 미칭美稱이다. 『詩經』 「衛風」 〈木瓜〉에 “나에게 목과를 주거늘 경거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報之以瓊琚。)”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213. 213)여러 번 반복하여(圭復) : 『詩經』 「大雅」 〈抑〉의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거니와,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尙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라고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로, 상대방의 시문을 정성스럽게 읽는 것을 말한다. 『論語』 「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거늘,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해 주었다.(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하였다.
  214. 214)은과 쇠의 사슬 : 글씨가 뛰어남을 가리킴. 원문 ‘銀銕之索’은 ‘銀鉤鐵索’의 변용.
  215. 215)등불의 남쪽이요 벼루의 북쪽에서 : 저녁 때 글을 짓는 상황을 말함.
  216. 216)연참鉛槧 : 연필과 종이. 연鉛은 연분필을, 참槧은 목판을 말한다. 『西京雜記』에, “양자운揚子雲이 항상 연필을 품고 목판을 들고 다녔다.”라고 하였다.
  217. 217)효빈效嚬 : 자기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남의 흉내를 내는 것.
  218. 218)할머니 적삼을~절하는 것이라 : 원문 ‘借婆衫拜婆年’은 『金剛經註解』의 ‘借婆衫子拜婆年’을 차용한 것으로, 상대방에게 맞게 답변함을 말한다. 『卍新續藏』 24책 785면.
  219. 219)불모佛母 : 제불諸佛을 낳는 어머니라는 뜻인데, 불화나 불상을 조성한 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220. 220)준제 오도準提吳道 : 오도는 탱화를 잘 그린 당나라 화자 오도자吳道子. ‘준제’는 ⓢ Cundi의 음역으로, 준제準提ㆍ준제准提ㆍ준지准胝ㆍ준니准尼로 표기되는데,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불화를 조성한’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221. 221)만월滿月의 진용眞容 : 지장보살을 가리킴. 「地藏請」에 “仰唯。地藏大聖者。滿月眞容。澄江淨眼。”이라 하였다.
  222. 222)기로소耆老所 원당願堂 : 기로소는 나이 많은 임금이나 정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문신들이 일흔이 넘으면 들어갈 수 있는 조선 시대 최고위층들의 친목 기구였다. 조선 시대에 기로소에 입소한 왕은 태조와 숙종, 영조, 고종 네 명에 불과했다. 기로소 원당은 사찰을 단순히 왕실 원당으로 지정한 것만이 아니었다. 조정에서 돈과 물자를 내려 유교식 사당 형태의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왕의 어첩과 전패를 모셨으며, 기로소의 대표가 직접 공문을 내려 가장 지체가 높은 승려를 원장과 판사로 각각 임명하고, 원장과 판사가 직접 왕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안녕을 발원할 것을 지시했다. 기로소 원당은 왕을 상징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사찰 경내는 물론 금표 안의 산림에조차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기로소 원당이 설치된 것은 영조와 고종대 두 차례로, 1744년 영조가 기로소에 든 것을 기념해 의성 고운사에 연수전이 설치된 것이 최초이며, 1902년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해 순천 송광사에 성수전이 설치된 것이 두 번째이다. 탁효정, 「고운사」, 『불교신문』, 2013.08.20 참조.
  223. 223)상언上言 : 조선 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문서 양식.
  224. 224)기로소 존엄尊嚴 : 1902년 51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들어간 고종을 가리킨다.
  225. 225)까마귀의 정성과 견마犬馬의 정성 : 임금이나 나라에 바치는 충성을 표현하는 말.
  226. 226)혜린惠璘 :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 말에 혜린 선사가 사찰을 지어 길상사吉祥寺라 하였는데 건물은 겨우 1백여 칸이었으며 승려 수는 30~40명 정도였다고 한다.
  227. 227)진휼賑恤 : 곤경에 처한 백성을 도와줌.
  228. 228)삼조三朝 : 하루에 세 번 뵘. 주周 문왕文王이 세자로 있을 적에, 왕계王季에게 하루에 세 차례씩 문안을 올렸다고 함.
  229. 229)구작九爵 : 구작례九爵禮. 정조正朝ㆍ동지冬至ㆍ탄일誕日 등이나 왕실의 행사에서 조하朝賀할 사안이 있을 경우 하례賀禮하는 잔치를 베푸는데, 이때 임금ㆍ세자ㆍ중궁 등에게 술잔을 아홉 번 올리는 예.
  230. 230)비제批題 : 임금의 비답批答 기록.
  231. 231)팔상성도八相成道 :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 강도솔상降兜率相, 탁태상託胎相, 출태상出胎相, 출가상出家相, 항마상降魔相, 성도상成道相, 전법륜상轉法輪相, 열반상涅槃相.
  232. 232)청문請文 : 여러 부처ㆍ보살ㆍ성중聖衆ㆍ혼령 등을 청하여 공양하는 법식.
  233. 233)유치由致 : 부처나 보살을 청할 때 그 까닭을 먼저 말하는 일.
  234. 234)작법作法 : 불교 의례.
  235. 235)도솔타천兜率陀天 : 도솔천兜率天. ⓢ Tusita-deva. 욕계 6천의 넷째 하늘에 해당한다. 도사다覩史多ㆍ도솔타兜率陀ㆍ도술兜術이라고도 쓰며, 수미산 꼭대기로부터 12만 유순 위에 있는 하늘이라고 한다. 여기에 내원內院ㆍ외원外院이 있으니, 외원은 일반 천중天衆의 욕락처欲樂處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를 말한다. 사바세계에 나는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이 하늘에 계시다가 성불한다고 한다.
  236. 236)가비라국迦毘羅國 : ⓢ Kapila. 카필라. 중인도에 있던 마가다Magadha국의 비호를 받던 코살라Kosala국의 보호령이었다.
  237. 237)일체의성一切義成 :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붓다의 출가 전 이름인 싯다르타(ⓢ siddhārtha)를 번역한 말.
  238. 238)금단천자金團天子 : 호명보살이 도솔천에서 일체 중생을 교화하려는 생각을 내고는 금단천자에게 분부하여 태어날 만한 곳을 고르라 하였다. 『本行經』.
  239. 239)백정반왕白淨飯王 : ⓢ Suddhodana. 백정왕白淨王, 수두단輸頭檀, 수도타나首圖駝那, 설두屑頭라고도 함.
  240. 240)대술大術 : 석가모니의 모친 마야부인摩耶夫人(마하마야摩訶摩耶). 대환大幻ㆍ대술大術ㆍ대지모大智母ㆍ천후天后라고 번역한다.
  241. 241)금륜왕金輪王 : 사천하四天下를 다스리는 사륜왕四輪王 가운데 하나. 금륜왕은 수미須彌 사주四洲인 네 천하, 곧 동녘의 불바제弗婆提, 서녘의 구타니瞿陁尼, 남녘의 염부제閻浮提, 북녘의 울단월鬱單越을 다 다스렸음. 전륜왕轉輪王 가운데에서 가장 수승한 윤왕輪王.
  242. 242)욕락欲樂 : 색ㆍ성ㆍ향ㆍ미ㆍ촉 오욕의 즐거움. 일체 번뇌의 근원. 『本行經』에 “태자가 궁에 있을 때 오욕이 충분했고 즐거움이 자재하며 10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243. 243)최후 수승한 몸 : 현재 생에 그치고 다시 후유後有를 받지 않으므로 일컫는 말이다.
  244. 244)보리수 도량 : 마가다국摩竭陀國 니련하泥蓮河 서남쪽 10리에 보리수가 있다고 『西城記』에 나옴.
  245. 245)금강보좌金剛寶座 : 보리수나무 아래를 말함. 굳은 도리에 일정하게 드는 삼매의 자리이기에 그렇게 부름.
  246. 246)마군魔軍이 자비로운~모습으로 바뀌었다 : 부처님께서 보리수 밑에 계실 때 악마 파순波旬이 딸들을 보내 부처님을 유혹하려 했으나, 딸들이 추하고 파리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정심定心에 든 마음 앞에 감화되어 꽃을 바쳐 용서를 구하였고, 이후 파순은 80억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부처님의 도를 부수려고 위협하였으나 실패했다.
  247. 247)도리천忉利天 제석帝釋 : 도리천은 33천이라고도 한다. 욕계 6천의 제2천에 해당한다.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있는 선견천善見天이라는 궁전에 제석천帝釋天이 머무르면서 사방 32성의 신神들을 지배한다.
  248. 248)계왕界王 : 대범천왕大梵天王. 색계 초선천의 제3천인 대범천에 있으며 사바세계를 다스린다는 왕.
  249. 249)18범梵 : 초선의 3천天(범중梵衆, 범보梵輔, 대범大梵), 2선의 3천(소광少光, 무량광無量光, 광음光音), 3선의 3천(소정少淨, 무량정無量淨, 편정遍淨), 4선의 9천(소엄식小嚴飾, 무량엄식無量嚴飾, 엄식과실嚴飾果實, 무상無想, 무조無造, 무열無熱天, 선견善見, 대선견大善見天, 아가니타阿迦尼吒)을 말함.
  250. 250)이마를 땅에~예를 갖추어(頭面作禮) : 두면예족頭面禮足ㆍ접족정례接足頂禮ㆍ접족작례接足作禮라고도 함. 상대편 앞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두 손을 내밀어 손바닥 절반으로 상대편의 발을 받들어 자기 머리에 대는 동작.
  251. 251)녹야원鹿野苑(鹿林園) : 석가가 불도를 닦아 처음 설법한 곳.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동산. 중부 인도 파라나국派羅奈國 북쪽 성 밖에 있던 동산.
  252. 252)5인 : 최초로 석가에게 귀의한 다섯 명의 비구. 콘단냐(ājñāta-kauṇḍinya; 倧蓮如; 阿若憍陳如)ㆍ아사지Assaji(阿說示)ㆍ마하나마Mahanama(摩訶男)ㆍ밧디야Bhaddhiya(婆提)ㆍ바파Vappa(婆頗).
  253. 253)사덕四德 : 열반의 과果, 즉 상常, 락樂, 아我, 정淨.
  254. 254)삼이三伊 : 열반의 체體, 즉 반야, 해탈, 법신. 범어의 이伊는 점. 위의 한 점은 법신, 아래 왼쪽 점은 반야, 오른쪽 점은 해탈을 가리킨다.
  255. 255)유위법有爲法 : 세제법世諦法.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256. 256)학림鶴林 : 석가모니가 입멸한 쿠시나가라kuśinagara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숲을 말함. 석가모니가 입멸할 때, 그 숲이 학과 같이 희게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함.
  257. 257)일진一眞 : 우주 만유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평등 무차별한 절대의 진리.
  258. 258)청정한 법계의~성품을 회복하셨다 : 이 부분은 당나라 왕발王勃의 「釋迦如來成道記」를 초략한 것이다.
  259. 259)우두향(牛首香) : 마라야摩羅耶산에서 나는 전단향의 이름. 그 향을 몸에 바르면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40권본 『華嚴經』 14권.
  260. 260)삼청三請 : 범패의 곡명.
  261. 261)나무(南無) : ⓢ Namasa를 음사音寫한 말로 귀명歸命이라 번역한다. 귀명이란 글자 그대로 신명身命을 던져 돌아가 의지함을 뜻한다.
  262. 262)마가다국(摩竭提國) : ⓢ magadha, 마갈타국摩竭陀國. 지금의 비하르Bihar의 남쪽 지역에 있던 고대 국가로, 도읍지는 왕사성王舍城.
  263. 263)본사本師 : 근본 스승.
  264. 264)룸비니Lumbini(藍毘尼) : 중인도 가비라성의 동쪽에 있던 꽃동산.
  265. 265)기악妓樂 : 기생의 풍류. 여기서는 그저 ‘음악’이라는 뜻으로 사용함.
  266. 266)갑인년 사월 초파일에 : 석가탄신일은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갑인년은 『周書異記』를 인용한 당나라 법림法琳의 『辯正論』 등에 따른 것이다.
  267. 267)사문沙門의 모습이~현신現神함을 만나니 : 석가모니가 성을 나오자 수행자로 변한 정거천인淨居天人이 오른손엔 석장을 짚고 왼손엔 발우를 들고 나타났다.
  268. 268)사산四山 : 생로병사 네 가지의 고통을 산에 비유한 표현.
  269. 269)불타佛陀 : 부처. 붓다(buddha)의 음역.
  270. 270)조병천자澡甁天子가 깨닫게~얼굴을 드러내고 : 석가모니의 출가를 막으려고 부왕이 기악을 늘려서 즐겁게 하려고 하자 매일 밤 정거천인淨居天人 조병澡甁이 와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기녀들이 잘 때에 의상을 흩어서 부정하게 하여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증가시켰다.
  271. 271)정거천인淨居天人 :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성자들이 태어나는 천상인 정거천淨居天의 사람. 『佛本行集經』에서는 태자가 건척을 타고 궁문을 향해 나가자 야차들이 허공 가운데 각각 손으로 말의 네 발을 받들고 조용히 걸어 궁 안 어떤 이들도 말굽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本行經』.
  272. 272)찬다카(車匿) : ⓢ Chandaka. 천탁가闡鐸迦라고도 음역. 실달 태자가 성을 넘어서 고행의 첫 길을 떠날 때에 백마 건척揵陟을 끌던 마부의 이름.
  273. 273)건척揵陟 : ⓢ kanthaka. 건덕犍德, 간척干陟, 건특骞特, 가차가迦磋迦라고도 함.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탄 말의 이름.
  274. 274)팔부八部 : 여덟 종의 신장神將. 천天, 용龍, 야차夜叉, 가루라迦樓羅(금시조金翅鳥), 아수라阿修羅, 마후라가摩睺羅迦(음악의 신), 긴나라緊那羅(가무의 신), 건달바乾闥婆(식향食香).
  275. 275)팔난八難 : 여덟 가지의 재난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그저 ‘여러 곤란함’을 뜻한다.
  276. 276)칼을 휘둘러~천궁에서 일어나고 : 석가모니께서 삭발하니 제석帝釋이 머리카락을 받아 도리천에 가서 탑을 세워 기념하였다.
  277. 277)용굴 : 용왕 가다迦茶는 오랜 시절을 살아 구루손불拘樓孫佛과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과 가섭불迦葉佛의 성도를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석가모니의 성도한 모습을 보고 권속과 함께 향기로운 꽃과 풍악과 깃발과 가리개를 들고 공양을 드렸다. 여기서는 아직 석가모니의 깨달음이 완전하지 않다는 맥락으로 바꾸어 기술하고 있다.
  278. 278)연하連河 : ⓢ nerañjarā. 니련하尼連河. 고행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달은 석가모니는 니련하에 가서 몸을 씻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갖가지 화향花香이 뿌려졌다.
  279. 279)정려靜慮 : ⓢ dhyāna. 선나禪那, 정定.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은 상태.
  280. 280)죽을 받아 드시고 : 우유 짜는 여인 난타바라難陀波羅(Nandabala)는 죽을 쑤어 수신樹神에게 제사 지내려던 참에 정거천자가 허공에서 하는 말을 듣고 니련수尼連水 물가로 가서 죽을 바쳤다.
  281. 281)총목방叢木房 : 설산에 있는 진귀조사眞歸祖師의 거처. 부처님은 출가한 후 6년간의 수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런데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이 궁극적 경지가 아님을 자각하고 수십 개월 동안 진귀조사를 찾아 유행을 했다고 한다. 진귀조사설은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전해지는 독특한 설이다. 이것은 선불교를 중국에 전한 달마가 2조 혜가에게 전했다는 게송에서 기인한다. 시의 내용은 이렇다. “진귀조사가 설산에 있으면서 석가가 오기를 총목방에서 기다렸네. 임오년에 조사의 심인心印을 전하니, 동시에 마음으로 조사의 종지를 얻었다네.” 이 게송은 『禪門寶藏錄』에서 『達摩密錄』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전하고 있는 내용인데, 이 책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다. 이일야, 「사굴산문-진귀조사설의 속내」, 『불교신문』, 2014.10.6 참조.
  282. 282)파순波旬 : 욕계 제6천의 임금인 마왕의 이름.
  283. 283)10종의 마궁魔宮이 홀연 무너지도다 : 외도의 무리인 도제수나闍提首那 등 십선十仙, 즉 10명의 바라문婆羅門 무리가 열반회상에서 각자 주장을 펼치며 여래께 힐난하자 여래가 하나하나 논파하셨다고 『涅槃經』 「憍陳如品」에 나온다.
  284. 284)십신十身 : 『華嚴經』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갖춘 열 가지 몸. 보리신菩提身, 원신願身, 화신化身, 주지신住持身, 상호장엄신相好莊嚴身, 세력신勢力身, 여의신如意身, 복덕신福德身, 지신智身, 법신法身.
  285. 285)방등경方等經 : 방등시에 설해진 경전들. 부처님께서 경전을 설하시던 시기별로 나눌 때 다섯 시기가 있는데, 첫 번째는 화엄시(성도후 3.7일), 두 번째 아함시(12년), 세 번째 방등시(8년), 네 번째 반야시(21년), 다섯 번째 법화열반시(8년)이다. 초기의 설법이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인 줄 모르고, 소승의 낮은 깨달음을 부처님의 깊은 깨달음과 동일시하여 여기에 만족하고 머물려고 하는 자들에게 소승은 방편일 뿐이고 부처님의 본 뜻은 대승에 있다고 가르쳐 이들의 잘못된 견해를 타파하는 시기가 방등시에 해당된다. 여기에는 『維摩經』, 『勝鬘經』, 『楞伽經』, 『思益經』, 『楞嚴三昧經』, 『金光明經』 등이 포함된다.
  286. 286)반야경般若經 : 최초로 대승大乘을 선언한 경전. 반야경은 계통을 달리하는 10종 이상의 경전 군群을 형성했는데, 각 계통은 적어도 600년 정도의 기간에 걸쳐 증광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287. 287)유루有漏 : ⓢ sâsrava. 번뇌가 있음을 뜻하는 말.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에 상대되는 말이다. 여기서 누漏는 누설漏泄이란 말로 번뇌를 의미한다.
  288. 288)구시라성拘尸羅城(Kusinagar) : 북부 인도의 성. 지금의 쿠시나가르 성.
  289. 289)사라수沙羅樹 : ⓢ sala. ‘단단한 나무’라는 뜻이다.
  290. 290)7일 동안~법칙을 기다리고 : 쿠시나가라 성의 백성들이 부처님의 관을 자기들 성에 안치한 공덕으로 자신들만 복을 받으려고 하자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부처님은 스스로 관을 허공으로 떠올려 성안으로 날아가 쿠시나가라 성 곳곳을 돌았다. 성안의 백성들은 온갖 향, 꽃, 영락을 갖고 다비하는 장소로 가서 비애에 젖은 목소리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다. 수많은 천인들 역시 향과 꽃을 공양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의 관이 허공을 타고 다비하는 장소로 날아와 천천히 평상 위로 내려왔다.
  291. 291)두 발의 뒤꿈치(玉趺)를 보이시어 : 마가다국에서 포교하던 제자 마하가섭은 오백 제자와 함께 쿠시나가라로 오던 도중에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들었다. 부처님의 관에 이르러 가섭은 스승의 열반과 임종을 보지 못한 서러움에 대성통곡을 했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천이통으로 가섭이 온 것을 알고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밀었다. 고대 인도에는 스승이나 손님을 맞는 방법 중 하나가 발 씻을 물을 내서 발을 씻겨 주는 것이었다. 부처님이 발을 내민 것은 임종을 보지 못해 서럽게 우는 제자에 대한 배려였다.
  292. 292)안장眼藏 : 선악을 명확히 분별하는 심안으로 일체 사물을 밝혀 내 갈무리한다는 의미.
  293. 293)감칙甘飭 :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로 감결甘結(공문)을 보내어서 신칙함.
  294. 294)체임遞任 : 정해진 임기가 차서 그 벼슬을 해임함.
  295. 295)가결전加結錢 : 잡세. 면적 단위로 부과되던 토지의 세율을 원래보다 높여서 부당하게 받아 내던 세금.
  296. 296)체거遞去 : 벼슬을 내놓고 물러감.
  297. 297)선소창船所倉 : 배와 관련된 창고.
  298. 298)택일기擇日記 : 큰일을 치를 때 좋은 날짜를 골라 기록한 것.
  299. 299)독봉督捧 : 조세 또는 빌려준 돈이나 물건을 독촉하여 거두어들임.
  300. 300)출척黜陟 : 등용과 추출.
  301. 301)예폐禮幣 : 공경의 뜻을 표하기 위해 예로써 주는 물건.
  302. 302)옥백玉帛 : 옥과 비단.
  303. 303)윤용선尹容善(1829~1904) : 자는 경규景圭, 호는 자유재自有齋,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해평海平. 이조 참판 윤치의尹致義의 아들. 1885년(고종 22) 문과에 급제하여 문명文名을 떨쳤다.
  304. 304)이순익李淳翼 : 1857년(철종 8)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여 급제하였다. 이후 규장각 직각 등을 역임하고 1902년 정1품 보국輔國에 올랐다.
  305. 305)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제자이며 속성은 밀양 박씨, 전라남도 순천 출생. 어린 나이에 출가해 당대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306. 306)33세世 아래이자 5종파의 위로서 : 석가모니부터 계산하면 혜능은 33조사가 되고, 혜능 이후 다섯 종파로 나뉘는데 임제종이 으뜸이다.
  307. 307)임제臨濟의 아래이자 태고太古의 후예로서 :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普愚는 임제종의 18대손인 원나라 석옥 청공石屋淸珙(1272~1352)에게 배웠다.
  308. 308)환해幻海 : 법린法璘(1749~1820)의 호. 16세 때 능가사로 출가, 송광사 묵암默庵에게 배움.
  309. 309)건륭乾隆 연간 : 1736년부터 1796년을 이른다.
  310. 310)벽담碧潭 : 행인幸仁(1721~1788). 풍암 세찰의 제자.
  311. 311)청오靑烏 : 풍수ㆍ지관地官을 말함. 풍수지리학의 원조인 한나라의 청오자靑烏子가 자신의 학문을 요약하여 묘 터를 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여 『靑烏經』이란 책을 펴낸 데서 유래함.
  312. 312)회계會溪 : 벽담碧潭의 제자. 법명은 휘종輝宗. 1835년 11월 9일 입적하여 송광사 북쪽 기슭에 탑을 세우고 동각에 진영을 모심.
  313. 313)보처補處 : 본래는 주불의 좌우에 모신 보살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풍암의 좌우를 말함.
  314. 314)소목昭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함.
  315. 315)두 암자 : 은적암隱寂庵과 보조암普照菴을 가리킴. 본문 「은적암과 보조암의 화재 기문」 참조.
  316. 316)안탑鴈塔 : 절 탑. 인도의 왕사성王舍城에서 승려들이 기러기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희롱하는 말로 “우리들이 배가 고프니, 몸으로 보시하라.”라고 하였더니, 기러기가 스스로 죽어서 떨어졌다. 이에 승려들이 감동하여 기러기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당나라 현장玄奘의 『大唐西域記』 「摩揭陀國」.
  317. 317)광서光緖 41년 : 광서는 34년으로 끝나고 이 해는 선통宣統 5년에 해당한다.
  318. 318)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 1908년 송광사 판사직判事職에 취임, 1911년에 송광사 주주에 취임, 1913년에 대종사 법계를 받음.
  319. 319)진주가 합포合浦로 돌아오니 : 후한後漢 때 합포에서 진주가 생산되었는데, 탐관오리가 조개를 무리하게 채취하게 하니 진주가 나오지 않다가, 맹상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정사를 행하자, 다시 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後漢書』 「孟嘗傳」.
  320. 320)겁석劫石 : 겁劫의 무한한 시간을 비유한 말. 곧, 가로ㆍ세로ㆍ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 (약 8km)인 큰 반석을 솜털로 짠 베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321. 321)권퇴경權退耕 : 권상로權相老(1879~1965).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원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에 『朝鮮佛敎略史』 등이 있다.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퇴경退耕.
  322. 322)귀좌貴座 :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말.
  323. 323)운석韵釋 : 시를 잘 짓는 승려.
  324. 324)구곡龜谷 : 각운覺雲의 호. 고려 말의 승려. 보우普愚의 법통을 이어 남원 만행산 승련사勝蓮寺에 있었으며, 『傳燈錄』에 심취하여 30여 년간 연구하였다.
  325. 325)조계산 진각국사眞覺國師가~또한 주소를 : 주소는 조계산 송광사를 가리킨다. 본문 「광원암 중수 화문」에 “진각국사가 여기서 염송拈頌을 모아 훌륭한 명예를 중화中華(중국)보다 빛나게 했고, 구곡龜谷 선사는 여기서 설화를 기록하여 동방에 아름다운 풍습이 고무되도록 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326. 326)조趙 : 보조국사 지눌의 속성은 정鄭이다.
  327. 327)미천자彌天子의 향산香山~재판이다.의 간행 : 미천노彌天老가 향산사香山寺에서 『禪門拈頌說話』를 간행했다. 「重刊拈頌說話序」 참조. 『韓國佛敎全書』 5, 3면.
  328. 328)설파雪坡 : 본명 이상언李尙彥(1707~1791). 19세 때 승려가 되어 33세 때 용추사龍湫寺 판전板殿에서 불법을 강의하였다. 후에 해인사에 들어가 『大經抄』를 교정하고 금강산과 두류산ㆍ묘향산으로 다니면서 좌선하였다. 1770년(영조 46) 징광사澄光寺에 불이 나서 『華嚴經』 판목板目이 타 버리자 사재私財를 털어 다시 새겨 영각사靈覺寺에 두었다.
  329. 329)신주神州 : 전국시대 사람 추연騶衍이 중국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한 것에서 대개 ‘중국’을 가리킨다. 그러나 백암이 중국에 간 기록은 없고 전라도 신안 임자도에 표류한 중국 선박에서 경전을 다수 얻어서 이를 간행하였다.
  330. 330)『화엄경소은과華嚴經疏隱科』 : 당나라 청량淸凉이 찬술한 『疏科華嚴經疏鈔』가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불명확해서 학자들이 어려워했던 내용 하나하나를 회암晦庵이 해석하고 상정詳定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
  331. 331)회암晦庵 : 정혜定慧(1685~1741)의 호. 1685년 경상남도 창원 출생. 9세 때 범어사로 출가하였고, 설암 추봉에게 수학하고, 가야산으로 돌아가 교학에 매진함. 이후 금강산에 들어가 좌선하고 석왕사 등에서 강석을 열었다. 만년에 청암사에 주석하였고 현재 청암사에 탑비가 전한다.
  332. 332)백파白坡 : 긍선亙璇(1767~1852)의 호. 1767년에 선운사禪雲寺 시헌詩憲의 제자가 되었고, 연곡蓮谷에게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21세 때 상언尙彦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선의 지침서인 『禪門手鏡』을 저술했다. 평소에 교유가 깊었던 김정희는 초상화를 그린 후 그를 ‘해동의 달마(達磨)’라고 격찬하였다.
  333. 333)백암 노스님이~간행한 업적 : 백암 성총이 『大乘起信論筆削記會編』을 편찬함.
  334. 334)구준衢樽 : 성현의 도. 성인의 도는 길거리 복판에 술통을 놓아 둔 것과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적당히 자기 양대로 떠서 마시면 된다고 하였다. 『淮南子』.
  335. 335)쇠를 뽑고~끊을 정도로 : 굳건하고 과감하여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음을 가리킴. 원문 ‘拔鐵截釘’은 『景德傳燈錄』 권17에 나오는 ‘斬釘截鐵’과 같음.
  336. 336)천은자天隱子 : 미상. 『禪門拈頌說話』에 서문을 더하였다.
  337. 337)승국勝國 : 바로 이전 왕조. 여기서는 고려.
  338. 338)도원道原 : 송나라 승려. 경덕景德 원년元年(1004)에 『景德傳燈錄』을 찬술함.
  339. 339)입원入院 : 새로 한 사원의 주지住持에 임명되어 그 사원에 들어감.
  340. 340)엄관掩關 : 문을 닫고 참선에 드는 것.
  341. 341)글(寶唾) : 보배로운 침이란 뜻으로 훌륭한 글귀를 가리킴.
  342. 342)개당開堂 : 새로 주지가 되어 처음으로 설법하는 의식.
  343. 343)당사堂司 : 승당僧堂의 사무를 맡은 유나維那가 있는 곳.
  344. 344)선사繕寫 : 잘못을 바로잡아 베껴 씀.
  345. 345)사원비嗣院碑 : 조선 숙종 4년(1678)에 조종저趙宗著(1631~1690)가 짓고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가 쓰고 낭원군朗原君 이간李偘이 전액을 쓴 「順天松廣寺嗣院事蹟碑」. 송광사 소장 『曹溪山松廣寺史庫』 상(건물부).
  346. 346)청장請狀 : 오라고 청하는 글.
  347. 347)영체領軆 : 상대방이 사찰을 영솔하는 지위에 있을 때 일컫는 말인 듯함.
  348. 348)죽은 말의~올 것입니다 : 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에게 곽외郭隗가 “죽은 말 한 마리의 뼈를 500금金에 사들였더니, 1년도 채 안 되어서 살아 있는 천리마 세 마리가 찾아왔다.”라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기부터 우선 대우를 잘해 주면 천하의 현사들이 저절로 모여들 것이라고 말하자, 소왕이 연경燕京에 황금대를 세우고 인재를 초빙하니, 악의樂毅와 극신劇辛 등의 명사가 대거 찾아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
  349. 349)길에서 꼬리를 끌며 : 『莊子』 「秋水」에 나오는 표현. 장자가 초나라 왕의 초빙을 거절하면서 죽어서 존귀하게 되기보다는 살아서 진흙 밭에서 꼬리를 끌며 살겠다고 하였다.
  350. 350)김환경金喚鯨 : 환경 대현喚鯨大鉉(1890~1917). 순천 별량면 출신. 11세 때 송광사로 출가하여 상주 남장사 용성龍城에게 배우고 다시 호붕과 금명에게 배웠다.
  351. 351)상빈上賓 : 지위가 매우 높은 손님이나 윗자리에 모셔 대접할 만한 손님.
  352. 352)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 제자 안회顔回가 일찍 죽자 공자가 탄식한 말. 『論語』 「先進」.
  353. 353)시력을 잃는 아픔 :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는 아들이 죽자 크게 상심하여 시력을 잃었다. 『禮記』 「檀弓」.
  354. 354)이포伊蒲 : 이포새伊蒲塞. ⓢ Upāsaka. 우바새優婆塞의 이역異譯. 속세에 있으면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신도를 말한다.
  355. 355)참사叅事 : 종9품 관직.
  356. 356)복천福川 : 전라남도 화순군 지역에 있었던 동복현同福縣의 옛 이름.
  357. 357)본지풍광本地風光 : 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부처의 성품. 어떠한 미혹도 번뇌도 없는 부처의 경지.
  358. 358)비야毘耶의 근심 : 병을 일컬음. 유마거사維摩居士는 비야리성毗耶離城에서 늘 칭병稱病하고 누워서 문병 오는 불제자들에게 침묵으로 설법했음. 『維摩詰小說經』.
  359. 359)도로都盧 : 희극.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인데, 그곳의 사람들은 몸이 가벼워 나무를 잘 오르므로 장대 연희를 가리킨다.
  360. 360)비야에서 질병~것이 어떨지 : 이 시는 김정희金正喜의 문집 『阮堂全集』 권10에 있는 ≺戲題示優曇 曇方踝腫≻이다.
  361. 361)천진교天津橋는 선녀의 흥취이며 : 천진교는 낙수洛水에 있는 교량. 선녀는 복비宓妃. 복비가 낙수에 다리를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고자 부잣집 자제들에게 은자銀子를 던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362. 362)완화교浣花橋 : 두보杜甫의 초당이 있던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의 교량.
  363. 363)예양豫讓이 다리에~임금께 보답하고 : 전국시대 진晉나라의 예양은 지백智伯의 신하였다. 지백이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자 복수를 하기 위해 몸에 옻칠을 하여 벙어리 행세를 하며 기회를 노렸다. 조양자가 외출할 때 다리 밑에 숨었다가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발각되어 칼로 자결하였다.
  364. 364)자방이 교량에서~스승을 기다리고 : 진秦나라 말기에 흙다리 위에서 한 노인이 장량張良과 만나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장량에게 주워 오게 하였다. 장량이 신발을 주워 노인이 시키는 대로 신겨 주자 며칠 뒤에 병서兵書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읽으면 왕자王者의 스승이 될 것이다. 13년 후에 네가 나를 제북濟北에서 만날 것인데, 곡성산穀城山 아래 누런 돌이 바로 나일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史記』 「留侯世家」.
  365. 365)미생尾生이 교량에~친구를 기다렸고 : 미생은 옛날의 미더운 선비로서 일찍이 여자와 더불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는 오지 아니하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홍수가 밀어닥쳤다. 그래도 미생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다리 기둥을 안고 죽었다. 『莊子』 「盜跖」.
  366. 366)설옹薛翁(원효)은 교량에서~궁宮에 들어갔으니 : 원효는 월성 주변을 흐르는 월정교月淨橋를 건너다가 일부러 물에 빠졌고 이를 보고 신하들이 원효를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가 있는 요석궁으로 데려갔다.
  367. 367)화주化主 : 세상을 교화하는 주인, 곧 부처님을 말하나, 일반적으로는 가방화주街坊化主, 또는 가방街坊 공양주供養主를 말함. 즉 거리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시물施物을 얻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게 하는 동시에, 그 절에서 쓰는 비용을 마련하는 스님을 말함.
  368. 368)대정大正 6년 병진(1916) : 병진년은 대정 5년에 해당하므로 착오가 있는 듯함.
  369. 369)호중별계壺中別界 : 호리병 속의 별세계란 뜻으로 신선세계를 가리킨다. 『後漢書』 「方術傳」의 기록으로, 후한 시대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사람이 약장수 할아버지를 따라 호리병 속의 신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370. 370)보림寶林 : ‘보배 숲’이라는 뜻으로 육조대사 혜능이 머물렀던 사찰 이름이기도 하다.
  371. 371)선의禪衣 : 선승이 입는 옷.
  372. 372)계정밀행戒定密行 : 계戒는 몸을 절제함, 정定은 마음을 고요히 함, 밀행은 오로지 불도 수행에만 힘씀.
  373. 373)고갯마루에서 신발~짝을 끌어 : 달마 대사가 열반에 들어 웅이산熊耳山에 장사한 지 3년 만에 위魏나라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총령蔥嶺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손에 신을 한 짝 들고 가고 있었다. 이에 송운이 어디로 가는지 묻자, 답변하길 서역으로 간다고 했다. 송운이 돌아와서 복명을 마치고 그 일을 자세히 보고했더니, 황제가 무덤을 열게 했는데 빈 관에 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374. 374)마가다국에서 문을~본보기를 보이셨습니다 :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서 성도한 다음 문을 닫고 삼칠일 동안 설법을 하지 않은 인연을 ‘마갈엄실摩竭掩室’ 또는 ‘마갈엄관摩竭掩關’이라 한다.
  375. 375)동방 1만 8천 여래 : 『法華經』 「序品」에, 동방에 1만 8천 불국토가 있다고 하였다.
  376. 376)치미齒眉 : 부처님 32상 가운데 ‘이가 40개나 된다’와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는 등의 특징을 일컫는 듯하다.
  377. 377)족륜足輪 : 부처님 발바닥에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고 거기서 빛이 나왔다 한다.
  378. 378)마명馬鳴과 용수龍樹 : 마명은 간다라에서 불법을 크게 선양하고 『佛所行讚』과 『大乘起信論』을 저술하였고, 용수는 대승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하여 『中論』 등을 저술하였다.
  379. 379)금강장金剛藏 : 금강장보살. ⓢ Vajragarbha. 금강계金剛界의 현겁賢劫 16존尊 중의 한 분. 『華嚴經』 「十地品」에서 상수보살上首菩薩로 삼았고, 『十地經論』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찌하여 금강장이라 하는가. 장은 곧 견고함을 이름이니 비유하면 수장樹藏과 같다. 나무가 매우 단단하면서도 꽃과 잎을 갈무리하고 때가 이르면 꽃과 잎을 돋우어 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380. 380)십지十地 : 보살의 열 가지 수행 단계. 『華嚴經』에서 천명한 52위 중 제41에서 제50까지의 십지와 천태종의 통교通敎 십지가 있다.
  381. 381)나무를 잡고~가풍을 보임이라 : 승찬僧璨(?~606)은 선불교 제3대 조사. 601년 사리친견법회에서 “글자와 말은 소용없는 사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고, 한쪽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선 채로 입적하였다. 그가 남긴 「信心銘」은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로다(言語道斷。非去來今。)”라는 게송으로 끝마치는데, 중국 초기 선의 중심 문제인 불성을 중도의 공사상에 입각해 설명하고 있다.
  382. 382)권행權行 : 형편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행하거나 대행함.
  383. 383)납승衲僧 : 납자衲子. 납의衲衣(누더기 옷)를 입은 승려.
  384. 384)적전嫡傳 : 정통의 혈통에서 정통으로 이어받음.
  385. 385)허주虛舟 : 덕진德眞(1806~1888)의 호. 조계산 송광사에 들어가 삭발하고 홀로 선정을 닦으며 도학을 성취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불러 국가를 위하여 철원 보개산寶蓋山 지장암地藏庵과 고산高山 운문사雲門寺에서 기원하게 하였다.
  386. 386)벽안碧眼 : 달마 대사. ‘벽안호승碧眼胡僧’이라 불림.
  387. 387)방행放行 : 수행자를 속박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 두어 교도하는 방법.
  388. 388)조백棗栢 : 당나라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의 호. 3년 동안 매일 대추 열 개와 숟가락만한 잣잎떡 하나를 먹으면서 『新花嚴經』에 대한 논을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389. 389)생명生明 : 달이 생김을 뜻하는 말로 초사흘을 가리킨다.
  390. 390)색양色養 : 안색을 기쁘게 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것 또는 부모의 안색을 살펴 받드는 것인데 여기서는 육신을 뜻하는 말로 쓰임.
  391. 391)사유闍維 : 팔리어 ‘jhāpeti’의 음사. 소연燒然ㆍ분소焚燒라고 번역. 시체를 불살라 장사 지내는 일.
  392. 392)약목若木 : 고대 신화에 나오는 나무 이름으로, 서방의 해가 지는 곳에서 자라는 큰 나무라고 한다.
  393. 393)광명으로 깨닫게 함(光明覺) : 『華嚴經』 9권에 「光明覺品」이 있음.
  394. 394)여래께서 모습을 드러냄(現相品) : 『華嚴經』 6권에 「如來現相品」이 있음.
  395. 395)유루有漏 : ⓢ sâsrava. 번뇌가 있음을 뜻하는 말.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에 상대되는 말이다. 여기서 ‘루漏’는 누설漏泄이란 말로 번뇌를 의미한다.
  396. 396)당송唐宋 이래~뛰어난 이들 : 주로 고문古文으로 뛰어난 당송팔대가, 즉 당나라의 한유韓愈ㆍ유종원柳宗元,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ㆍ소순蘇洵ㆍ소식蘇軾ㆍ소철蘇轍ㆍ증공曾鞏ㆍ왕안석王安石을 일컫는다. 본문에 일컬은 이백은 여기에 속하지 않으니 착오가 있는 듯하다.
  397. 397)선조禪祖 : 선불교의 시조. 대개는 달마 대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부휴 대사를 그만큼 높여 일컬은 것이다.
  398. 398)비음기碑陰記 : 비석 뒷면에 새기는 글.
  399. 399)송염재宋念齋 : 송태회宋泰會(1872~1942).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며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 한일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 능주, 순천, 고창 등에서 한문과 서화 등을 가르쳤다.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서 입선한 후 글씨와 사군자에서 모두 9회에 걸쳐 입선하였다. 본서의 「범해 선사 시집의 발문」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400. 400)황하가 맑아지는 : 황하는 백 년을 기다려도 맑아지지 않는다는 백년하청百年河清이라는 말이 있다.
  401. 401)윤지綸旨의 아름다운 명 : 부휴 선사가 광해군 때 두류산에 있었는데 어떤 미친 승려의 무고 때문에 투옥되었다가 무죄가 판명되자, 광해군이 내전으로 초빙한 다음 설법을 청하여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가사 한 벌과 푸른 비단장삼 한 벌, 푸른 비단바지 한 벌, 금강석 염주 하나와 진완珍玩을 주었다. 또 봉인사奉印寺에 재齋를 설하여 그를 증명으로 삼았다. 선사가 입적하자 광해군은 ‘부휴당부종수교변지무애추가홍각대사선수등계존자浮休堂扶宗樹敎辯智無礙追加弘覺大師善修登階尊者’라는 시호를 내렸다.
  402. 402)『원각경』의 선천先天에~앞선 인연의 : 부휴 선사가 무주 구천동에서 『圓覺經』을 외우고 있을 때 큰 뱀이 나타나서 계단 아래에 누웠다. 『圓覺經』을 다 외운 다음 뱀에게 가서 한 발로 그 꼬리를 밟자 뱀이 머리를 들고 물러났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절하고는 “화상의 설법의 힘을 입사와 이미 고신苦身을 여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403. 403)금송錦頌 : 비단처럼 아름다운 노래.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재주는 금송에 뒤져서 글을 짜내기 어렵도다.(才輸錦頌文難織)”라는 시구가 있음.
  404. 404)귀부龜趺 :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405. 405)백곡白谷 : 처능處能(1617~1680)의 호. 성은 김씨, 자는 신수愼守. 12세 때 의현義賢에게 글을 배우다가 불경을 읽고 그 깊은 이치에 감동하여 출가를 결심하였고, 15세 때 승려가 된 뒤 다시 신익성申翊聖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의 각성覺性을 찾아가 23년 동안 수선修禪과 내전內典을 익혀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찰은 대둔사大芚寺의 안심암安心庵이었다. 한편, 현종의 척불정책에 대하여 전국 승려를 대표하여 「諫廢釋敎疏」를 올렸고, 1680년 금산사金山寺에서 대법회를 열고 그해 7월에 입적하였다.
  406. 406)옛 명銘 : 『柏谷集』에 「追加弘覺登階碑銘幷序」가 있다.
  407. 407)욕불浴佛 : 관불灌佛. 초파일날 애기 부처님을 모셔 놓고 물을 붓는 의식.
  408. 408)전액篆額 : 전자篆字로 쓴 비갈碑碣이나 현판의 제액題額.
  409. 409)곡斛 : 분량 단위. 1곡은 10말(斗).
  410. 410)네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無念爾祖) : 『詩經』 「大雅」 ≺文王≻의 구절.
  411. 411)무리가 실로 많도다(寔繁有徒) : 『書經』 「仲虺之誥」의 구절인데 최치원의 「善安住院壁記」에도 쓰였다.
  412. 412)황우송黃友松 : 우송友松 황선명黃善明. 1917년 송광사에서 순천 동화사桐華寺로 가서 주지를 역임함. 그러므로 이 글은 동화사와 관련됨.
  413. 413)곡일穀日 : 곡단穀旦. 좋은 날. “날씨 좋은 날 남쪽의 원씨를 찾는구나.(穀旦于差。南方之原。)” 『詩經』 「陳風」 ≺東門之枌≻.
  414. 414)울창주 : 울금향鬱金香을 넣어 빚은 향기 나는 술. 제사의 강신降神에 씀.
  415. 415)국사局師 : 형국形局, 즉 해당 자연 환경을 지키는 신.
  416. 416)제운霽雲 : 해징海澄(1719~1804)의 호.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제자.
  417. 417)기인起仁 : 경종 3년 계묘(1723) 4월 16일에 송광사 주지로서 영해影海 선사의 명에 따라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옛터로 봉안하였다고, 본서 「조계산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이안한 연기와 평」에 기록되어 있다.
  418. 418)통정첩通政帖 : 통정대부의 첩지.
  419. 419)세 번~대사께 이르렀습니다 :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나오는 표현이다. 뒤 문장 ‘필만의 이후를 징험할 수 있다’는 표현도 같은 글에 나온다.
  420. 420)필만畢萬 :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람. 필공고畢公高의 후예로, 진헌공晉獻公을 섬겼다. 헌공을 도와 경耿나라와 곽霍나라, 위魏나라를 멸망시켰다. 위지魏地에 봉해져서 대부大夫가 되었다. 이후 위魏ㆍ한韓ㆍ조趙가 진나라를 삼분三分했다.
  421. 421)처마 아래 빛을 감추고 : 외출하지 않고 집에 머문다는 의미로 썼는데, 본래는 옥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처마 밑에 버려둔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위나라 농부가 들에서 밭을 갈다가 지름이 한 자 되는 옥을 얻고도 그것이 옥인 줄 모르고 이웃 사람에게 말하자, 이웃 사람이 “이는 괴석怪石이니, 놔두면 집안에 이롭지 않다.”라고 하였다. 농부는 의심스러워하면서도 망설이다가 돌아가 처마 밑에 두었는데, 그 옥이 온 집을 환하게 밝히자 몹시 두려워 황급히 먼 들판에 버렸다. 이에 이웃 사람이 그 옥을 가져다가 위왕에게 바치니, 위왕이 옥공을 불러 옥을 감정하도록 하였다. 옥공이 옥을 바라보고는 재차 절을 하고 하례하기를 “대왕께서 천하의 보옥을 얻으셨습니다. 신은 아직 이런 옥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값을 묻자, 옥공이 “이는 합당한 값이 없으니, 다섯 성이 있는 도시를 가지고도 겨우 한 번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라고 하였다. 위왕이 옥을 바친 사람에게 천금을 하사하고 길이 상대부의 봉록을 받게 해 주었다. 『尹文子』 「大道」 上.
  422. 422)호리병 속 : 신선세계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산속을 가리킴. 후한後漢 때 선인仙人 호공壺公이 시장에서 약을 팔다가 장이 파하면 문득 병 속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이를 본 비장방費長房이 한 번은 그를 따라 병 속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 엄연한 별천지別天地가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後漢書』 권82.
  423. 423)처마 아래~덕을 숨겨 : 원문은 “鞱光廡下。匿德壺中。”으로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나온다.
  424. 424)조의祖意 : 조사祖師들이 전한 선禪의 참뜻.
  425. 425)간고幹蠱 : 자식이 부모의 사업을 이어받아 잘 조처하여 바로잡는 것을 뜻함. 『周易』 「蠱卦」에 “초육初六은 아버지의 잘못을 주관함이니,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게 된다.(初六。幹父之蠱。有子。考无咎。)”라고 하였다.
  426. 426)경해鏡海 : 관일官一(1844~1928)의 법호. 속성은 엄씨, 순천 태생. 20세 때 경잠敬岑에게 출가하였고 우담優曇에게 계를 받았다. 35세 때 응허應虛의 법을 잇고 송광사 자정암과 관원암에 주석하였다.
  427. 427)경봉景鳳 : 축정竺靜(1864~1941)의 법호.
  428. 428)인봉印峰 : 창율昌律(1859~1942)의 법호.
  429. 429)남포藍浦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이곳의 벼룻돌이 특산물일 정도로 좋은 돌이 많은 곳이다.
  430. 430)겁석劫石 : 겁劫의 무한한 시간을 비유한 말. 곧, 가로ㆍ세로ㆍ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을 솜털로 짠 베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431. 431)정민貞珉 :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 여기서는 비석을 말함.
  432. 432)육부삼사六府三事 : 육부는 수水, 화火, 금金, 목木, 토土, 곡穀이고 삼사는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을 말함. 『書經』 「大禹謨」.
  433. 433)우禹 임금의 솥 : 우 임금이 치수 사업을 마치고 천하에서 바친 청동을 모아 아홉 개의 솥을 만들었다. 훗날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치고 나서 이 구정九鼎을 주나라 수도로 옮겼다고 한다.
  434. 434)장자莊子의 표주박 :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위왕魏王이 나에게 큰 표주박을 주었는데, 너무 커서 쓸 데가 없다.”라고 말하자, 장자가 “그렇다면 강이나 호수에 띄워 배를 만들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그리 걱정을 하느냐.”라고 말하였다. 『莊子』 「逍遙遊」.
  435. 435)물과 불이~해치지 않는 : 『周易』 「說卦傳」에 “천天과 지地가 자리를 정하고 산山과 택澤이 기를 통하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물과 불이 서로 해치지 않아 팔괘가 서로 교착交錯한다.(天地定位。山澤通氣。雷風相薄。水火不相射。八卦相錯。)”라는 말이 있다.
  436. 436)석수石髓 : 석종유石鍾乳. 즉 돌 고드름의 이명異名인데, 선인仙人들이 이것을 복용한다고 한다. 『本草』 「石髓」. 여기서는 돌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가리킴.
  437. 437)벽담碧潭 : 행인幸仁(1721~1788).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제자. 해남 대흥사의 13대 강사에 속한다.
  438. 438)회계會溪 : 법명은 휘종輝宗. 벽담의 제자.
  439. 439)현선顯先 : 입적하신 분을 일컫는 말.
  440. 440)화장세계 :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 비로자나불이 있는 공덕 무량, 광대 장엄의 세계.
  441. 441)소목昭穆 :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 왼쪽 줄을 소昭라 하고, 오른쪽 줄을 목穆이라 함.
  442. 442)실로 많은 무리가 있어(寔繁有徒) : 『書經』 「仲虺之誥」의 구절인데 최치원의 「善安住院壁記」에도 쓰였다.
  443. 443)영식靈識 : 영혼, 또는 신령스러운 의식.
  444. 444)대록大麓 : 큰 산기슭. 『書經』 「舜典」에 “큰 산기슭에 들어가게 하시니 열풍烈風과 뇌우雷雨에 혼미하지 않으셨다.(納于大麓。烈風雷雨弗迷。)”라고 한 말이 보인다.
  445. 445)자리를 빼앗는 : 법석에서 논쟁할 때 상대를 설복시켜 방석을 빼앗았다는 뜻.
  446. 446)풍암楓岩 : 세찰世察(1688~1765)의 호.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제자. 속성은 밀양 박씨이며 전라남도 순천 출생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해 당대 화엄학으로 이름이 높던 무용 수연無用秀演과 영해 약탄影海若坦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다 무용이 입적한 후 영해의 제자가 되어 부휴 문중의 정맥을 계승했다.
  447. 447)노숙老宿 : 불도佛道에 지식이 많은 승려.
  448. 448)보처존補處尊 : 주불主佛의 좌우에서 모시는 보살.
  449. 449)대한 융희隆熙개국~방화를 당하여 : 해당 사건은 본서의 「은적암과 보조암의 화재 기문」에 자세하다.
  450. 450)곤명昆明 : 연못 이름인데 여기서는 재난을 당한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됨. 한漢 무제武帝 때 곤명지昆明池 밑바닥에서 나온 검은 재에 대하여, 인도 승려 축법란竺法蘭이 “바로 그것이 겁화를 당한 재(劫灰)”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高僧傳』 권1 「竺法蘭」.
  451. 451)스투파(窣堵) : ‘率堵波’라 적는다. ⓢ stūpa의 음사. 탑塔.
  452. 452)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 명진학교 2회 졸업.
  453. 453)산을 빛내고~아름답게 했다 : 원문 ‘山輝而川媚’는 진晉나라 육기陸機가 지은 「文賦」의 “돌이 옥을 감추고 있으면 그 때문에 산이 빛나고, 물이 진주를 품고 있으면 내가 그 때문에 아름답게 된다.(石韞玉而山輝。水懷珠而川媚。)”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文選』 권17. 최치원의 「無染和尙碑銘」에 보인다.
  454. 454)자음당慈蔭堂 : 송광사 국사전의 별칭.
  455. 455)화주化主 : 가방화주街坊化主, 또는 가방街坊 공양주供養主. 거리에 나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시물施物을 얻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게 하는 동시에, 그 절에서 쓰는 비용을 마련하는 스님을 말함.
  456. 456)진락대眞樂臺 :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鴟)를 날려 보냈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앉았다. 그래서 그 뒷등을 치락대鴟落臺(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한다. 이 치락대를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1226~1292)가 진락대라고 했다 한다.
  457. 457)중국을 접한 태고太古(보우普愚) : 태고 보우는 원나라에 가서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잇고 다음 해에 돌아왔다.
  458. 458)두 계수나무를 기른 부용芙蓉 : 부용 영관芙蓉靈觀이 벽송 지엄碧松智嚴으로부터 태고 보우의 법통을 계승하여 청허 휴정淸虛休靜과 부휴 선수浮休善修에게 전해 주었다.
  459. 459)광서光緖 11년 병술(1886) : 병술년은 광서 12년에 해당하므로 착오가 있는 듯하다.
  460. 460)도성당道成堂 : 송광사 승보전 뒤편에 위치. 1938년 중건.
  461. 461)용운당龍雲堂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용운당에 대해서는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고.
  462. 462)광서光緖 원년 병자(1876) : 병자년은 광서 2년에 해당하므로 착오가 있는 듯하다.
  463. 463)화재(崑炎) : 원문 ‘崑炎’은 곤륜산의 불꽃으로, 『書經』 「胤征」의 “곤륜산에 불이 나 옥석이 모두 탄다.(火炎崑岡。玉石俱焚。)”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464. 464)새롭거나 오래되거나~함께 이루어진다 : ‘새롭거나 오래되거나 여럿이’는 미상인데 후반부, 즉 ‘은미하거나 드러나거나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은 『華嚴經』 십현문十玄門의 하나인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465. 465)삼변정토三變之淨土 : 『法華經』 「見寶塔品」에서 세 번의 변화를 통해 보여 준 정토.
  466. 466)회차會茶 : 모여서 차를 마심.
  467. 467)벽암헌碧嵓軒과 호월皓月과~앉아서 회차하던 : 『禪門綱要集』 「三聖章」에 나오는 장면인데, 벽암碧菴 노숙老宿의 송헌松軒에서 호월 상인이 묻고 청풍 장로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임제의 삼구三句ㆍ삼현三玄ㆍ삼요三要의 위치와 성격을 밝히는 대목이다. ‘둘’이 회차한 것인데 다송은 ‘셋’으로 파악하고 있다.
  468. 468)법신보살法身菩薩 : 보살이 거듭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인 오십이위五十二位 가운데 초지初地에서 십지十地까지의 보살을 말함.
  469. 469)선승당禪僧堂 : 참선하는 선당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승당을 아울러 이르는 말.
  470. 470)담당湛堂 : 성징聖澄의 자. 호는 월계越溪. 송광사 16국사 중 아홉 번째 국사이다. 행적은 전하지 않으며, 그에 얽힌 설화가 『松廣寺之』에 전한다. 원래 금나라의 태자였는데 고려에 와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471. 471)청운당靑雲堂 :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파괴되어 사라짐.
  472. 472)축성전祝聖殿 : 본문 「축성전 창건기」 참조.
  473. 473)백설당白雪堂 :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파괴되어 사라짐.
  474. 474)자음당慈蔭堂 : 송광사 대웅전 남동쪽에 있는 현재 국사전.
  475. 475)진여문眞如門 : 설법전 앞에 있다.
  476. 476)진각眞覺 : 혜심慧諶(1178~1234).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송광사)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저서로는 『禪門拈頌集』 등이 있다.
  477. 477)고봉高峯 : 법명은 법장法藏(1350~1428). 속성은 김씨, 본관은 신주愼州이며 다른 호는 지숭志崇이다. 송광사 16번째 국사. 고봉국사는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20세 때 출가하여 나옹懶翁을 스승으로 삼고 법맥을 이었다. 30년 동안 국내 명산을 찾아다닌 끝에 송광사에 머물렀다. 16국사 중 마지막 국사이며, 1428년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신찬信贊ㆍ혜성惠性ㆍ상제尙濟ㆍ홍인洪仁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高峰法藏歌集』과 「普濟尊者三種歌」가 있다. 고봉국사가 소지했던 불감佛龕 ‘주자원불廚子願佛’이 전한다.
  478. 478)태고太古 : 보우普愚(1301~382). 태고는 호, 시호는 원증圓證. 1347년 중국 호주湖州 천호암天湖庵에서 석옥石屋에게 도를 인정받고, 「太古庵歌」의 발문과 가사를 받았다. 1371년 공민왕이 국사로 봉하였다.
  479. 479)부용芙蓉 : 영관靈觀(1485~1571)의 당호. 자는 은암隱庵, 법호는 연선蓮船. 지리산의 지엄智儼을 만나 비로소 불법을 대오하고, 보우普愚의 법통을 계승, 이를 휴정休靜과 부휴浮休에게 전수하였다.
  480. 480)십홀방장十笏方丈 : 사방으로 1장丈 되는 방. “당나라 현경顯慶 연간에 장사長史 왕현책王玄策을 칙사로 보냈는데, 인도로 향하는 길에 정명淨名(유마힐)의 집에 들러 홀笏로 그 터를 재어 보니 겨우 10홀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방 1장의 집(方丈之室)이라 불렀다.(於大唐顯慶年中。勅使衛長史王玄策。因向印度過淨名宅。以笏量基。止有十笏。故號方丈之室也。)”라고 석도세釋道世의 『法苑珠林』 권29에 나온다.
  481. 481)사자좌(獅座) : 고승이 앉는 자리.
  482. 482)정명淨名 : ⓢ vimalakīrti. 『維摩經』의 주인공인 유마힐維摩詰의 번역어. 무구칭無垢稱이라고도 함.
  483. 483)이범진李範晋(1852~1911) : 자는 성삼聖三, 본관은 전주. 1879년(고종 16) 문과에 급제, 왕비 민씨의 사랑을 받아 궁중에 출입, 친로파 안경수安駉壽 등과 같이 궁중 세력을 잡고 친일파를 몰아내고 일본 장교에게 훈련을 받은 훈련대를 해산하는 등 일본색 일소에 노력하였다.
  484. 484)어천문於千門 : 천운川雲 이범진의 글씨다.
  485. 485)우로雨露 : 비와 이슬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은혜를 비유하는 말.
  486. 486)명량明兩 : 왕과 왕세자. 『周易』 이괘離卦 상사象辭의 “밝은 것이 두 번 일어남이 이괘의 상이다. 대인은 그것으로 밝음을 이어 사방을 비춘다.(明兩作離。大人以繼明照於四方。)”라는 말에서 유래.
  487. 487)송악松岳 : 송광사가 있는 산.
  488. 488)세파가 뽕나무밭을 뒤흔들어 : 상전벽해桑田碧海, 즉 큰 변화를 가리킴.
  489. 489)오유향烏有鄕 : ‘어찌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없음’을 가리킨다.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子虛賦」.
  490. 490)제나라가 변하면~행하게 된다 : 『論語』 「雍也」의 “齊一變。至於魯。魯一變。至於道。”를 말함.
  491. 491)점다點茶 : 차를 끓이는 법의 한 가지로, 마른 찻잎을 그릇에 담고 끓는 물을 부어 우림. 여기서는 차를 마셨다는 의미로 사용함.
  492. 492)인묘寅卯 : 동쪽. 인寅은 정동에서 북으로 30도 위쪽. 묘卯는 정동.
  493. 493)병정丙丁 : 남쪽. 병丙은 정남에서 15도 동쪽, 정丁은 정남에서 15도 서쪽.
  494. 494)곤신경유坤申庚酉 : 남서쪽. 곤坤은 남쪽과 서쪽의 정중앙이고, 15도 서쪽으로 옮겨서 신申, 다시 서쪽으로 15도 옮겨서 경庚, 다시 서쪽으로 15도 옮기면 정서 방향이 된다.
  495. 495)건해乾亥 : 서북쪽. 건乾은 서북쪽 중심이고 해亥는 건에서 북쪽으로 15도 가까움.
  496. 496)호령봉號令峰 : 송광사 쪽 굴목재의 안쪽 산봉우리.
  497. 497)대장봉大將峰 : 천자암 뒤 산봉우리.
  498. 498)조계봉曹溪峰 : 화엄전 뒤 산봉우리.
  499. 499)갑인甲寅 : 동북쪽. 갑은 정동에서 15도 북쪽이고 인寅은 정동에서 북으로 30도 위쪽.
  500. 500)축계자임丑癸子壬 : 북쪽. 축丑은 정북에서 30도 동쪽으로 치우쳐 있고 자子는 정북, 그 사이에 계癸가 있고, 임壬은 정북에서 서쪽으로 15도 치우쳐 있음.
  501. 501)술해戌亥 : 서북쪽. 술戌은 정서에서 30도 북쪽으로 치우치고 해亥는 정북에서 30도 서쪽으로 치우침.
  502. 502)학봉鶴峰 : 감로암 뒤 산봉우리.
  503. 503)입수入首 : 산줄기가 혈로 이어지는 곳.
  504. 504)갑묘甲卯 : 동북쪽. 묘卯는 정동, 갑甲은 북쪽으로 15도 치우침.
  505. 505)묘을卯乙 : 동남쪽. 을乙은 남쪽으로 15도 치우침.
  506. 506)인갑寅甲 : 동북쪽. 인寅은 갑甲보다 15도 북쪽으로 치우침.
  507. 507)손사巽巳 : 동남쪽. 손巽은 동쪽과 남쪽의 정중앙이고 사巳는 손보다 15도 남쪽으로 치우침.
  508. 508)간인艮寅 : 동북쪽. 간艮은 동쪽과 북쪽의 정중앙이고, 인寅은 간보다 15도 동쪽으로 치우침.
  509. 509)중조봉中祖峰 : 태조봉太祖峰으로부터 뻗어 나온 산맥에서 다시 일어난 봉우리.
  510. 510)행룡行龍 : 높았다 낮았다 하며 멀리 뻗어 나간 산맥.
  511. 511)바람에 나부끼는 비단 띠(風吹羅帶) : 풍수지리 용어.
  512. 512)갑경병임甲庚丙壬 : 갑甲은 정동에서 15도 위쪽이고, 이와 등져서 경庚은 정서에서 15도 아래쪽이다. 병丙은 정남에서 15도 오른쪽이고, 이와 등져서 임壬은 정북에서 15도 왼쪽이다.
  513. 513)진술축미辰戌丑未 : 진辰은 정동에서 30도 아래쪽이고, 술戌은 정서에서 30도 위쪽이며, 축丑은 정북에서 30도 오른쪽이고, 미未는 정남에서 30도 왼쪽이다.
  514. 514)4고장庫葬 : 고장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가두어진 상태.
  515. 515)수구水口 : 풍수지리에 있어서 물이 흘러들어 가는 곳.
  516. 516)장쇄藏鎻 : 기운이 누설되지 않도록 산세가 꽉 짜여 있는 것을 말함.
  517. 517)득파得破 : 물이 흘러들어 오는 곳을 ‘득得’, 흘러 나가는 곳을 ‘파破’라고 함.
  518. 518)군옥부群玉府 : 옥이 보관된 창고. 군옥은 본래 옥이 난다는 선산이기도 하다.
  519. 519)각노覺老에 대해 구옹龜翁은 : 각노는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으로 『禪門拈頌集』을 편찬했고, 구옹은 구곡 각운龜谷覺雲으로 고려 말에 『禪門拈頌說話』를 편찬했다.
  520. 520)우담자優曇子 : 홍기洪基(1832~1881). 우담은 법호. 초명은 우행禹幸, 성은 권權이다.
  521. 521)화장華藏 : 연화장장엄세계해蓮華藏莊嚴世界海. 한량 없는 공덕과 광대장엄廣大莊嚴을 갖춘 불국토.
  522. 522)제(不佞) : 원문 ‘不佞’은 재주가 없다는 뜻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523. 523)개미처럼 사모하여 : 『莊子』 「徐無鬼」에 “양고기가 개미를 좋아하지 않아도 개미들이 좋아서 달려드는 것처럼(蟻慕羊肉) 순임금이 노린내 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舜有羶行) 백성들이 좋아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524. 524)언우齴齲 : 뻐드렁니에 충치투성이. 달마 대사를 가리킴. 삼교노인三教老人이 쓴 「碧巖錄序」에 “齴齲來東。單傳心印。”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525. 525)최예운崔猊雲 : 최동식崔東植(1851~?). 예운 산인猊雲散人으로 법명은 혜근惠勤이다. 최치원의 후손으로 집안은 대대로 호남에 살았다. 조계산 선암사에서 출가 득도하였으며 경붕 익운景鵬益運(1836~1915) 대사 밑에서 공부하였다. 1913년에 간행된 『禪門證正錄』 서문에 “猊雲散人惠勤。識于木覓山琵琶館。”이라는 문구가 있다.
  526. 526)보필報筆 : 월보月報의 필진筆陣.
  527. 527)이번에 선생께서~알뜰하고 부지런하여 : 1914년 3월 『海東佛報』 5호에 예운 산인猊雲散人이 쓴 「敬答松廣寺金錦冥講伯書」가 게재되었다. 금명 보정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내용이다.
  528. 528)간담이 땅에 떨어지니 : 원문은 ‘肝膽塗地’. 참혹하게 죽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만큼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였다.
  529. 529)추기樞機 : 중추가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나 자리, 또는 기관.
  530. 530)세상 추기를~현변玄辯(이치)을 다하여 : 원문 “竭世樞機。窮諸玄辯。”은 『佛祖綱目』 권32 「崇信禪師傳法宣鑒」 등에 보임.
  531. 531)『해동불보海東佛報』 : 『朝鮮佛敎月報』의 후신으로서, 1913년 11월 20일자로 창간되어 1914년 6월 20일 통권 8호로 종간되었다. 창간호의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박한영朴漢永, 인쇄자 오종렴吳鍾濂, 인쇄소 창문사昌文社, 발행소 해동불보사(서울ㆍ북부 전동磚洞 2통 1호), A5판 76면, 정가 10전이다.
  532. 532)대방大方 : 학문과 식견이 높은 사람.
  533. 533)시순時順 : 태어나고 죽는 사람의 일생. 『莊子』 「養生主」의 “마침 그때에 태어난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요, 마침 이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선생이 갈 때가 된 것이니 시운을 편안히 여기고서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슬픔과 기쁨 따위의 감정이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適來。夫子時也。適去。夫子順也。安時而處順。哀樂不能入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534. 534)조계 보조普照의~잇지 않으니 : 1914년 『海東佛報』 5호에 「大覺國師墓誌銘」(記者 選)이 게재되었다.
  535. 535)화담華潭 : 경화敬和(1786~1848)의 호.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선승. 1815년(순조 15)부터 여러 강원에서 조실祖室로 있으면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주관하였는데, 55군데에서 83회나 열어 대중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저서로는 『天地八陽神呪經註』와 『偈頌六十七品』 등이 있다.
  536. 536)함명涵溟(1824~1902) : 호는 태선太先. 호남의 대표적 강백이었다. 그가 찬술한 『緇門警訓私記』 1권이 현존한다.
  537. 537)김군수金君綏 :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설당雪堂. 아버지는 김돈중金敦中이며, 할아버지는 김부식金富軾이다. 1210년(희종 6) 공주지사公州知事 재임 시에 「松廣寺普照國師碑銘」을 찬술하였다.
  538. 538)여하정呂荷亭 : 여규형呂圭亨(1849~1922).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사원士元, 호는 하정荷亭. 경기 양근楊根에서 출생했다. 시詩, 서화書畫, 불경佛經에 모두 능통하였고 오세창 등과 『大東詩選』을 편집하였다. 여규형이 찬술한 「華嚴宗主函溟堂大禪師碑銘幷序」가 『海東佛報』 6호(1914년 4월)에 게재되었다.
  539. 539)이유원李裕元(1814~1888) :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 호는 귤산橘山ㆍ묵농默農. 1882년 전권대신으로서 일본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제물포조약에 조인하였다. 학문에 능하여 『林下筆記』와 『嘉梧藁略』ㆍ『橘山文稿』를 남겼으며, 예서에 능하였다. 「華潭大師浮屠碑銘」을 찬술하였다.
  540. 540)죽백竹帛 : 사서史書. 종이가 없었던 시대에 청죽靑竹으로 만든 간찰簡札이나 비단 헝겊에 글자를 쓴 데서 서책書冊을 지칭하였고, 역사라는 뜻으로도 사용함.
  541. 541)서까래처럼 큰 붓 : 원문은 ‘如椽之筆’. 다른 사람의 문장이나 서법이 뛰어나다고 칭찬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의 서예가 왕순王珣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542. 542)광충교廣冲橋 : 약칭 광교廣橋. 서울 청계천의 여섯 번째에 있었다고 해서 육교六橋라고도 하였다. 광교는 후에 이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543. 543)수표교水表橋 : 원래는 청계 2가 수표다리길 사거리에 있었으나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철거되었다가 현재는 장충단奬忠壇 공원 입구의 개천 위에 놓여 있다.
  544. 544)비단 마음과 수놓은 입 : 원문 ‘錦心繡口’. 짓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
  545. 545)물고기 눈을~만든 것이라 : 물고기 눈(魚目)과 연석燕山(연산에서 나는 돌)은 진주처럼 보이지만 진주가 아니므로 가짜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투박한 것을 표현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평범한 바위(碌石)’라고 하였는데 문맥상 ‘연석’의 뜻으로 사용한 듯하다.
  546. 546)『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 : 우담 홍기優曇洪基(1832~1881)가 백파 긍선白坡亘旋의 『禪文手鏡』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자 1874년에 찬술하여 1913년에 송광사에서 간행함. 본문의 「『선문증정록』을 인쇄하기 위해 베껴 쓰고 난 후의 발문」 참조.
  547. 547)선생의 글을 : 1913년에 간행된 『禪門證正錄』에는 예운산인猊雲散人의 서문이 있는데 여기에 우담 홍기의 강연에 참석한 지 40년 후에 천 리 바깥에서 서문을 쓴다는 표현(予曾叅曇老講筵。晨夕茶甌香篆之間。頗論箇事。髣髴皓月淸風之會于碧巖松軒。爾四十年後。落筆於千里雲海之中。)이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경월거사擎月居士’는 ‘예운산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548. 548)혜감慧鑑 : 지혜로운 상대방이 잘 살펴 달라는 뜻으로 편지에서 쓰는 투식어.
  549. 549)괴군蒯君이 한신韓信을 설득함에 : 괴군은 제나라 사람 괴통蒯通. 그는 한신에게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도 삶는다는 토사구팽을 언급하며 “군주가 위협을 느낄 정도의 용기와 지략이 있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라는 경고의 말을 하였다.
  550. 550)음식을 미루어~ 않다’는 말 : 한신韓信이 제나라를 점령하자 항우項羽가 그에게 유방劉邦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했는데 한신이 거절하며 “한왕漢王은 나를 중용했을 뿐만 아니라 나를 대장군에 봉하여 수만의 군대를 지휘하게 했으며, 아울러 나에게 관심을 가져 ‘옷을 벗어 나를 입혔고, 음식을 미루어 나를 먹였고, 말을 하면 들어 주고 계책을 채용해 주었는데 내가 배반하면 좋지 않다.(解衣衣我。推食食我。言聽計用。我倍之不祥。)”라고 했다. 『史記』 「淮陰侯列傳」.
  551. 551)석숭石崇 : 서진西晋의 대부호大富豪. 낭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552. 552)윤왕輪王 : 윤보輪寶를 굴리면서 세계를 통치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약칭.
  553. 553)붉은 모래(丹砂) : 연단鍊丹을 해서 단약丹藥을 만들어 내는 광물의 이름이다. 옛날 도사道士들은 단사를 원료로 하여 불로장생의 비약祕藥을 구워 냈다.
  554. 554)용맹龍猛(150~250) : 나가르주나Nagarjuna, 용수龍樹. 밀교密教에서는 ‘용맹’이라고 나타내기도 한다.
  555. 555)사가라沙迦羅 : ⓢ Sāgara. 사갈라沙竭羅. 사가라는 ‘큰 바다’라는 뜻.
  556. 556)4천하 : 우주의 중심 수미산의 사방에 있는 4대주大洲. 염부주는 4대주 가운데 남쪽에 있다.
  557. 557)삼장법사 : 경율론 삼장에 통달한 불교 학자를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현장玄奘(602~664)을 가리킨다. 현장은 스승과 경전을 찾아 16년간 중앙아시아 지역과 인도 등을 여행했다. 645년 현장법사는 여행을 마치고 많은 경전과 율律, 논論, 불상, 사리 등을 가지고 당나라로 돌아왔다. 이듬해 당 태종이 그에게 구법 여행을 기록할 것을 명하자 열두 권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여행한 138개국의 지리, 기후, 산물, 정치, 교통, 언어, 전설 등과 사찰ㆍ승려의 수, 인물 등 불교적 상황을 자세히 기록한 『大唐西域記』를 편찬했다.
  558. 558)원감국사圓鑑國師 : 충지冲止(1226~1293). 법호는 법환法桓ㆍ복암 노인宓庵老人, 시호는 원감圓鑑, 속명은 위원개魏元凱. 원나라 세조의 흠모를 받았으며, 원오圓悟의 법을 이어 수선사修禪社 제6세 국사가 되었다.
  559. 559)해은海隱 공公 : 해은 재선海隱栽善. 금명 보정에게 수업을 받은 승려.
  560. 560)군지軍持 : ⓢ kuṇḍikā의 음사. 물병. 그러나 여기서는 소지품을 가리킴.
  561. 561)용왕 턱 밑에서 진주를 : 『莊子』 「列禦寇」에 “천금의 구슬이 깊은 연못 여룡의 턱 밑에 있다.(夫千金之珠。必在九重之淵。而驪龍頷下。)”라고 하였다.
  562. 562)육당 학인六堂學人 최 공崔公 : 최남선崔南善(1890~1957). 본관은 동주東州, 아명은 창흥昌興, 자는 공육公六이다. 호는 육당六堂 등. 1906년 신문관新文館을 설립하고 1908년 11월 잡지 『少年』을 출판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중 하나이다. 1910년 3월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의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냈고, 같은 해 10월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해 조선의 고서古書를 발간하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고자 하였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대표 48인 중 하나였지만, 이어 친일 활동을 하였다.
  563. 563)합포合浦의 진주가 돌아왔고 : 합포는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구슬의 산지이다. 탐욕스런 태수가 부임하자 구슬이 나오지 않다가 뒤에 맹상孟嘗이라는 청렴한 관리가 오자 다시 나왔다고 한다. 『後漢書』 「孟嘗傳」.
  564. 564)화씨和氏의 구슬이 완전해졌도다 :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초나라 변화卞和가 초산楚山에서 얻은 구슬 화씨벽和氏璧을 소유하게 되었다.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이 소문을 듣고 조에 사신을 보내어 15성城과 화씨벽을 바꾸자고 청하였다. 혜문왕의 명을 받고 인상여印相如가 화씨벽을 일단 소양왕에게 바쳤으나 15성 이야기는 조금도 비치지 않자, 인상여는 구슬에 흠집이 있어 가르쳐 드리겠다고 속여서 구슬을 돌려받고는, 왕이 15성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구슬은 가져가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와 이 구슬을 부숴 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 소양왕은 할 수 없이 인상여를 정중하게 놓아 보냈다. 『史記』 「印相如傳」.
  565. 565)기궐씨剞劂氏 : 판목版木을 새기는 사람.
  566. 566)저옹돈장著雍敦牂 : ‘무오’에 해당하는 고갑자.
  567. 567)아랑위兒郎偉 : 상량문에서 시 첫 부분에 쓰는 말. 대개 ‘어기여차’의 뜻으로 봄.
  568. 568)도솔타兜率陀 : 도솔천兜率天. ⓢ Tusita-deva. 욕계 6천의 넷째 하늘에 해당한다. 도사다覩史多ㆍ도솔타ㆍ도술兜術이라고도 쓰며, 여기에 내원內院ㆍ외원外院이 있으니, 외원은 일반 천중天衆의 욕락처欲樂處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를 말한다.
  569. 569)색구경色究竟 : 아가니타阿迦尼吒(阿迦膩吒). ⓢ akaniṣṭha. 색계 17천天 가운데 가장 위에 있으므로 색구경이라 번역. 형상에 얽매여 있는 경지의 가장 위에 있으므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함.
  570. 570)비상계非想界 : 비상비비상계非想非非想界. 무색계의 넷째 하늘.
  571. 571)의정依正 :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부처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을 의보,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을 정보라고 함.
  572. 572)내원㮈園 : 바라내국波羅㮈國(Bārāṇasī)의 녹야원鹿野苑. ⓢ mṛgadāva. 석가모니불이 성도 후 최초로 설법한 성지.
  573. 573)개산開山 : 절을 처음 창건함.
  574. 574)산은 ‘모후산母后山’이니~이름을 바꾸었고 :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쳐들어 왔을 때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전라남도 화순군까지 피난을 왔는데, 수려한 산세에 반한 왕이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여 남짓 머물렀다고 한다. 그 후 원래 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 이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575. 575)제월천濟月泉의 좋은 인연 : 제월천은 유마사 계곡에 흐르는 물. 당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 유마운維摩雲이 관직을 버리고 화순 동복군으로 건너와 유마사를 창건하여 머물다가 죽었고 그의 딸 보안普安이 혼자 머무는데, 자기를 사모하여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승려에게 ‘달을 건져 내면 내 몸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하는 등의 방편을 써서 정욕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576. 576)뻐꾸기(布穀) : 뻐꾸기 울음소리 ‘포곡布穀’을 모내기를 재촉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풍년을 점친다고 한 것이다.
  577. 577)돌다리 : 보안교普安橋. 보안普安이 치마폭으로 싸 놓은 다리라고 한다.
  578. 578)삼불三佛 : 극락세계에 있다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大勢至보살을 일컫는 말.
  579. 579)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580. 580)십주十州 : 신선이 산다는 열 개의 섬 ‘십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581. 581)군옥부群玉府 : 군옥산群玉山은 서왕모西王母가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산仙山인데, 뒤에 제왕의 장서각藏書閣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는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穆天子傳』.
  582. 582)응진당應眞堂 : 나한전羅漢殿.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을 듣고 깨달음을 이루어 아라한이 된 부처님의 큰 제자를 모신 법당이다. 주불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을 때는 영산전靈山殿이라 하고 열여섯 분의 아라한阿羅漢들만 모셨을 때는 응진전應眞殿, 나한전 또는 응진당이라고 한다.
  583. 583)광서光緖 5년 신사(1881) : 신사는 광서 7년에 해당한다. ‘신사’를 기준으로 서력을 표시했다.
  584. 584)김규홍金奎弘(1845~?) : 본관은 청풍淸風이고, 자는 화일華一이며 서울 출신이다. 1889년 전라도 관찰사, 1891년 형조판서, 1892년 예조판서, 1893년 공조판서ㆍ경기도 관찰사, 1894년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585. 585)금용金容 : 불타와 보살의 황금빛 얼굴.
  586. 586)할향喝香 : 부처님께 향을 살라 올리며 부르는 노래.
  587. 587)헌재獻齋 : 재를 올림.
  588. 588)모자茅茨 : 띠로 이어 만든 지붕.
  589. 589)당우堂宇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일컫는 말.
  590. 590)대량월大梁月 : 미상. 원문을 보면 ‘夾鍾’에 점을 찍고 ‘大梁’이라고 표기하였다. 협종은 2월을 가리킨다. 2월은 대장월大壯月이라고도 하니 대장월의 오기일 수도 있다.
  591. 591)진송秦松 : 진시황秦始皇이 봉선을 행하러 태산泰山에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는 그 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592. 592)사대부四大夫 : 미상. ‘오대부五大夫’의 오기가 아닐까.
  593. 593)한백漢柏 : 한 무제가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비유했고, 태산에 여섯 그루를 심었는데 아직도 네 그루가 있다고 한다.
  594. 594)육위六偉 : 상량할 때 사방과 상하 여섯 방위로 노래함을 뜻함.
  595. 595)왕은 어느~소리를 들을까 : 촉蜀나라 망제望帝인 두우杜宇가 임금 자리를 내 주고 도망칠 때에 자규, 즉 두견이가 울었는데, 그 뒤로 촉 땅 사람들이 두견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망제를 생각한 나머지 비감에 사로잡혀 마치 자규가 “어째서 빨리 돌아가지 않는가.(不如歸去)”라고 하며 울어 대는 것처럼 들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太平御覽』 권166.
  596. 596)심향心香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향을 불살라서 부처에게 바치는 결재潔齋(심신을 깨끗이 하는 것)하는 마음.
  597. 597)담제禫祭 : 대상大祥을 치른 다음다음 달 하순의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
  598. 598)자미궁紫微宮 : 자미성紫微星의 별자리를 천자天子의 자리로 삼아 일컫는 말. 옥황상제가 거하는 곳을 말하기도 함.
  599. 599)요일堯日 : 요임금의 해라는 뜻으로 태평시대를 뜻하는 말이다. 『史記』 권1 「五帝本紀」의 “제요라는 분은 방훈이니, 어질기는 하늘과 같고 아는 것은 신과 같으며, 가까이 나아가면 태양과 같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과 같다.(帝堯者放勳。其仁如天。其知如神。就之如日。望之如雲。)”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600. 600)비상천非想天 :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 무색계의 넷째 하늘.
  601. 601)순풍舜風 : 순舜임금의 풍화風化. 즉 순임금 시대와 같은 교화라는 뜻으로 찬양한 것임. 순임금이 오현금五弦琴을 만들어 남풍南風을 노래하였다고 한다.
  602. 602)계의契誼 : ‘친분’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계契’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603. 603)열반묘심湼槃妙心 :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오묘한 깨달음의 마음.
  604. 604)마하가섭摩訶迦葉 : ⓢ mahākāśyapa의 음사. 대음광大飮光이라 번역.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 용맹정진의 두타행頭陀行이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을 받은 상수제자上首第子.
  605. 605)삼승교법三乘敎法 : 성문聲聞, 연각緣閣, 보살菩薩에 대한 세 가지 교법敎法.
  606. 606)일념회광一念廻光 : 청정일념으로 자기의 본래면목을 되돌아본다는 뜻. 일념회광하면 자기의 본성이 그대로 부처임을 알게 된다.
  607. 607)삼기三祗 :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 아승기(ⓢ asanga, asaṃkhya)는 무수無數를 의미. 보살이 발심發心한 뒤 수행을 완성하여 부처가 될 때까지의 수행 기간. 이 수행의 기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이라 함. 세 부분으로 나눈 수행의 기간은 경론經論마다 설이 일정하지 않다. 보살의 50계위를 3기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나누기도 한다. ① 제1아승지겁 : 10신信ㆍ10주住ㆍ10행行ㆍ10회향回向의 40위位. ② 제2아승지겁 : 10지地 가운데 초지初地(환희지)부터 7지까지. ③ 제3아승지겁 : 8지(부동지)부터 10지(법운지)까지.
  608. 608)일대장교一大藏敎 : 방대한 경전.
  609. 609)요의了義 : 불법의 이치를 끝까지 규명하여 분명하게 설명해서 나타냄.
  610. 610)고야산姑射山의 선인仙人은~않게 하고 : 『莊子』 「逍遙遊」에 나오는 이야기.
  611. 611)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구름을 탔다 : 유안이 『八老丹經』 36장을 받아 단약丹藥을 단련하여 이를 먹고 대낮에 승천하였는데, 개와 닭이 솥 속에 남아 있던 단약을 핥아 먹고 또 승천하여, 닭은 천상에서 울고 개는 구름 속에서 짖었다고 한다. 『神仙傳』.
  612. 612)불종佛種 : 불과佛果를 내는 종자. 보살의 수행을 말함.
  613. 613)듣고도 믿지~복을 더한다 : 「永明智覺禪師唯心訣」의 글이다. 『大正新脩大藏經』 권48, 996면.
  614. 614)반야 위에~공부가 없다 : 원문 ‘般若上無虛棄之功夫’와 유사한 ‘般若無虛棄之功’ 구절이 『雪關禪師語錄』 권10 「與錢機山相國」에 보인다. 설관 선사는 명나라 승려로서 법명은 지은智誾(1584~1637) 또는 도은道誾이다. 『嘉興藏』 권27, 514면.
  615. 615)본문 앞부분에는 3월 31일에 쓴 축문 「제운당 비석을 세우는 축문」이 있다.
  616. 616)지인은 사사로움이~공적이 없거늘 : 지인은 도를 체득한 자를 말하며, 이 구절은 『莊子』 「逍遙遊」에 나온다. 대덕은 덕이 높은 스님.
  617. 617)알가閼伽 : ⓢ argha의 음사. 불전에 바치는 청정한 물, 또는 그것을 담는 그릇.
  618. 618)벽담碧潭 : 행인幸仁(1721~1788).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제자. 해남 대흥사의 13대 강사에 속한다.
  619. 619)각령覺靈 : 입적한 고승을 높여 이르는 말.
  620. 620)덕산德山 : 당나라의 선승禪僧으로 행사行思 밑에서 제5조가 되었다. 엄격한 수행으로 유명하고 제자를 가르칠 때 몽둥이를 잘 썼으므로 ‘임제臨濟의 할喝, 덕산의 몽둥이’라는 말이 나왔다. 본문에서 ‘덕산의 할’이라고 한 것은 착오인 듯하다.
  621. 621)열여덟 분(公)의 당堂 : 송광사의 ‘송松’은 ‘十八公’으로 파자된다. 열여덟 분의 큰 스님이 불법을 널리 펴는(廣) 사찰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라는 전설이 있다.
  622. 622)금송錦頌 : 비단처럼 아름다운 노래.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재주는 금송에 뒤져서 글을 짜내기 어렵다.(才輸錦頌文難織)”라는 구절이 있음.
  623. 623)운근雲根 : 구름이 생겨 나는 밑뿌리라는 뜻인데 돌이나 바위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비석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함.
  624. 624)학사學肆 : 경론經論을 배우고 익히는 곳.
  625. 625)걸桀ㆍ주紂와 유幽ㆍ려厲 : 폭군들.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걸과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 주周나라 때의 폭군인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626. 626)예천醴泉 : 단맛이 나는 물이 솟는 샘. 태평한 시대에 상서祥瑞라고 함. 『禮記』 「禮運」.
  627. 627)창의氅衣 : 벼슬아치가 평상시 입던 웃옷. 직령으로 된 포의 하나로, 도포와 두루마기의 중간 형태임.
  628. 628)삼불후三不朽 : 세 가지 (영원히) 썩지 않을 일. 입덕立德ㆍ입공立功ㆍ입언立言. 『春秋左傳』.
  629. 629)상족上足 : 뛰어난 제자.
  630. 630)타니대수拖泥帶水 : 진흙과 물을 끌어 온다는 뜻으로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몹시 수고로움을 뜻한다.
  631. 631)대훈위大勳位 : 나라나 군주를 위하여 드러나게 세운 공로와 벼슬의 등급인 훈위의 최고 단계.
  632. 632)이태왕李太王(1852~1919) : 고종을 가리킴. 조선 제26대 왕.
  633. 633)선가仙駕 : 돌아가신 분을 일컫는 말.
  634. 634)폭원여도幅員輿圖 : ‘폭원’과 ‘여도’ 둘 다 강토를 뜻함.
  635. 635)동관彤管 : 대에 붉은 칠을 한 붓. 옛날 여사女史가 궁중에서 기록을 할 때 붉은 칠을 한 붓대를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역사’를 가리키는 듯함.
  636. 636)선어仙馭 : 신선이 타고 오르는 수레. 곧 임금이 세상을 떠남을 말함.
  637. 637)기사耆社 : 기로소耆老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
  638. 638)법인法忍 : 진리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거기에 안주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음.
  639. 639)칠정七政 : 일日ㆍ월月과 오성五星, 즉 화火ㆍ수水ㆍ금金ㆍ목木ㆍ토土.
  640. 640)삼기三奇 : 사주 내에서 삼기는 3살殺의 것이라고도 하며 재관인財官印을 뜻한다. 삼기는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복록수福祿壽를 아울러 관장하는 신으로 일日을 주로 하고 사주가 순順하면 길운, 역逆의 것은 흉운으로 한다.
  641. 641)임자생 : 고종이 태어난 해가 임자년(1852)이다.
  642. 642)제8평등왕平等王 : 명부전 시왕 가운데 여덟 번째로서 사후 100일을 담당한다고 한다.
  643. 643)망륙望六의 나이 :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으로 51세를 가리킨다. 고종은 1902년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644. 644)불번佛幡 : 예로부터 경계를 알리는 순수한 깃발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장례의식의 도구 혹은 불교의 장엄구로 사용된다.
  645. 645)탁의卓衣 : 승려가 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법의法衣.
  646. 646)장병帳屏 : 천으로 만든 칸막이. 병풍 등을 가리킨다.
  647. 647)배수拜手 : 두 손을 들어 마주 잡고 절을 함.
  648. 648)원요原要 : 원시요종原始要終. 일의 시작을 깊이 궁구하고 일의 마지막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이다.
  649. 649)화장華藏 : 연화장蓮華藏세계. 비로자나불이 있는 공덕 무량功德無量, 광대 장엄廣大莊嚴의 세계.
  650. 650)사바娑婆ㆍ염부제閻浮提 : 둘 다 인간 세상을 가리킴.
  651. 651)찰찰원융刹刹圓融하고 진진혼입塵塵混入하니 : 찰토와 찰토가 원융무애하고 티끌과 티끌이 혼융한다는 뜻으로 『華嚴經』의 세계를 형용하는 말.
  652. 652)광장설상廣長舌相 : 넓고 긴 부처님의 혀 모양. 이는 허망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는 상相. 『法華經』에 세존世尊이 대신력大神力을 보인 것은 광장설과 청정법신淸淨法身에서 나왔다 했다.
  653. 653)보림寶林 조계 : 육조 혜능이 소주韶州 조계曹溪에 있는 보림사寶林寺에 머물렀던 것을 말함.
  654. 654)아란야阿蘭若 : ⓢ araṇya. 수행처. 마을에서 떨어져 수행자들이 머물기에 적합한 곳.
  655. 655)고봉高峯(1350~1428) : 법명은 법장法藏, 속성은 김씨, 본관은 신주愼州이며 다른 호는 지숭志崇. 송광사 16번째 국사. 고봉국사는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20세 때 출가하여 나옹懶翁을 스승으로 삼고 법맥을 이었다. 30년 동안 국내 명산을 찾아다닌 끝에 송광사에 머물렀다. 16국사 중 마지막 국사이며, 1428년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신찬信贊ㆍ혜성惠性ㆍ상제尙濟ㆍ홍인洪仁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高峰法藏歌集』과 「普濟尊者三種歌」가 있다.
  656. 656)세 화상 : 나옹 혜근懶翁慧勤이 공민왕으로부터 왕사 책봉을 받은 후 수선사(송광사)에 머물며 1371년부터 1373년까지 사주를 역임했고, 이어서 제자인 무학 자초無學自超(1373~1375)와 환암 혼수幻庵混修(1375~1376)가 사주를 역임했다.
  657. 657)백암栢庵 : 성총性聰(1631~1700)의 호. 13세 때 출가하여 지리산 수초守初 밑에서 불경을 배웠고 많은 불서를 간행하였다.
  658. 658)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조.
  659. 659)진락대眞樂臺 :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위해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鴟)를 날려 보냈더니 지금의 송광사 국사전 뒷등에 앉았다. 그래서 그 뒷등을 치락대鴟落臺(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는데 후에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가 진락대라고 했다 한다.
  660. 660)갑경甲庚 : 갑은 정동에서 15도 북으로 올라간 방향이고, 경은 반대로 정서에서 15도 남으로 내려간 방향이다.
  661. 661)임병丙壬 : 임은 정북에서 15도 서쪽으로 기울고, 병은 반대로 정남에서 15도 동쪽으로 기운 방향이다.
  662. 662)동림東林 18현인 : 동림사는 진晉나라 혜원慧遠 법사가 머물던 여산廬山의 사찰. 이곳에서 당시 유명했던 18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였다.
  663. 663)진당眞堂 : 영각影閣. 초상을 모신 건물.
  664. 664)십승지十勝地 : 조선 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10여 곳의 장소. 전통적 이상향의 하나이다.
  665. 665)도선道詵(827~898) :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과 풍수지상법風水地相法을 담은 『道詵秘記』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666. 666)현릉玄陵 : 고려 공민왕의 능.
  667. 667)해동 제일의~현릉이 칭찬하였습니다 : ‘송광사는 동방 제일의 도량이므로 나옹 혜근懶翁惠勤에게 왕명으로 거주토록 하였다’는 기록이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문」에 보인다. 이지관,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 가산문고, 1997.
  668. 668)먹은 것을~비늘을 흩뿌리고 : 보조국사가 송광사 터에 사찰을 세우려고 그곳에 머물던 도둑들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니 그들이 국사의 신통력을 시험하려고 살아 있는 물고기를 공양하였는데, 국사가 이를 받아 삼켰다. 도둑들이 국사의 파계 행위를 비난하며 해하려 하자, 국사가 물가로 가서 물고기들을 모두 산 채로 뱉어 냈다. 그것이 지금 송광사 능허교 아래에서 노니는 물고기 떼의 원조라고 한다.
  669. 669)단향목 : 송광사의 향나무 두 그루 쌍향수는 천연기념물 88호로 지정되어 있다.
  670. 670)군옥부群玉府 : ‘옥이 보관된 창고’라는 뜻으로 경치 좋은 곳을 뜻한다. 군옥산群玉山은 서왕모西王母가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산仙山이다. 『穆天子傳』.
  671. 671)가정嘉靖과 천계天啓 : 가정은 명나라 세종 때의 연호로서 1522년부터 1566년이고, 천계는 명나라 희종 때의 연호로서 1621년부터 1627년이다.
  672. 672)입계入啓 : 임금에게 상주上奏하는 글월을 올리거나 또는 직접 아뢰는 일.
  673. 673)이설월李雪月 : 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동국대학교의 전신으로 1906년에 개교한 명진학교明進學校 2회 졸업.
  674. 674)정당政堂 : 지방 관아. 여기서는 (건축) 업무를 주관하는 곳을 말함.
  675. 675)기수祇樹 : 기타수祇陁樹, 곧 기타祇陁 소유의 수풀. 기타는 중인도中印度 사위성舍衛城 파사닉왕波斯匿王의 태자 이름임.
  676. 676)내원㮈園 : 바라내국波羅㮈國(Bārāṇasī)의 녹야원鹿野苑. 석가모니불이 성도 후 최초로 설법한 성지.
  677. 677)수재倕材 : 좋은 재목을 가리킴. 수倕는 요堯임금 때 뛰어난 목수. 춘추시대 말기의 공수반公輸班과 함께 유명한 교장巧匠으로 알려졌다. 『莊子』 「達生」.
  678. 678)대량춘大樑春 : 미상. 문맥상 1월을 가리키는 듯함.
  679. 679)복궤覆簣 : 삼태기로 흙을 날라 쌓음.
  680. 680)택천澤天과 고선姑洗(3월) : 택천쾌澤天夬 괘는 3월에 해당하고, 고선은 12율律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니 둘 다 3월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681. 681)황폐한 섬돌을~음악이 울리고 : 이 부분은 대체로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을 활용하였다.
  682. 682)가라궁迦羅宮 : 사가라沙迦羅궁을 가리키는 듯함. 사가라는 8대 용왕의 하나로서 고대로부터 비를 내려 주는 신으로서 널리 숭앙받고 있으며, 특히 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해 주는 대표적인 호법신이다. 수많은 불경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683. 683)사은四恩 : 『心地觀經』에 따르면 부모의 은혜, 중생의 은혜, 국왕의 은혜, 삼보의 은혜를 들고, 일체의 중생은 모두 사은을 진 존재라고 함.
  684. 684)만수사리曼殊舍利 :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동쪽 부동지불不動智佛의 금색 세계’에 있는 보살이다.
  685. 685)당노堂老 : 해당 건물의 노스님.
  686. 686)고추古錐 : 노선사에 대한 경칭. 선기가 예민하기가 날카로운 송곳과 같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687. 687)각수覺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남방 무애지불無碍智佛의 묘색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688. 688)재수財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서방 멸암지불滅暗智佛의 연화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689. 689)삼일명천三日明泉 : 삼일영천三日靈泉.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송광사 삼일암 옆의 예천醴泉을 마시면서 선정을 닦아 사흘 만에 견성하였으므로 이 암자를 ‘삼일암’이라 하고 샘을 ‘삼일영천三日靈泉’이라 했다.
  690. 690)보수寶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북방 위의지불威儀智佛의 담복화색薝蔔華色 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오는데, 북방에 연화장 사자좌를 화작化作하여 결가부좌한다고 하였다.
  691. 691)현수賢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상방 관찰지불觀察智佛의 평등색 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692. 692)도솔천과 야마천 : 도솔천은 욕계 6천 중 제4천으로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천상의 정토이고, 야마천은 욕계 6천 중 제3천이다.
  693. 693)파리玻璃 : 칠보 중의 하나.
  694. 694)지수智首 : 보살 이름. 『華嚴經』 「如來名號品」에서 ‘아래쪽 범지불梵智佛의 파리색세계’에 있는 보살로 나온다.
  695. 695)찰번刹幡 : 사찰 앞의 찰간刹竿, 즉 당간幢竿에 달려 있는 깃발로서, 사찰에서 설법이나 특별한 의식 행사가 있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696. 696)화장찰해華藏刹海 : 『華嚴經』의 세계, 즉 연화장세계를 말함.
  697. 697)학성군鶴城君 : 김완金完(1577~1635). 본관 김해, 자는 자구子具. 인조 2년(1624)에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학성군에 봉해졌고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698. 698)소요逍遙 : 태능太能(1562~1649)의 호. 담양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백양사에서 출가하고 부휴 선수浮休善修로부터 장경을 배우고 서산대사에게 선지禪旨를 깨달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군僧軍에 가담하였고 후에 지리산 연곡사燕谷寺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699. 699)가산迦山 : ⓢ potalaka.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 관음보살의 상주처. 『華嚴經』 「入法界品」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보타락가산에 도착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바다에 접한 아름다운 곳이라 하였다.
  700. 700)금송錦頌 : 비단처럼 아름다운 노래.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재주는 금송에 뒤져서 글을 짜내기 어렵다.(才輸錦頌文難織)”라는 구절이 있음.
  701. 701)기봉奇峰 : 장오藏旿(1776~1853)의 호. 침명枕溟ㆍ인파印波ㆍ성암惺庵과 함께 4대 종장宗匠으로 일컬어졌고,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龍雲堂이 1829년에 기봉 대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이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에 나온다.
  702. 702)화주和州 : 함경남도 영흥.
  703. 703)묵암默庵 : 최눌最訥(1717~1790)의 호. 본관은 밀양이고, 성은 박씨이며 자는 이식耳食이다. 전라도 흥양현興陽縣 장사촌長沙村 출신. 풍암 세찰楓巖世察의 법을 이었다.
  704. 704)두월斗月 : 우홍禹洪(1744~1816)의 호. 1797년에 제운霽雲과 함께 송광사 천자암을 중건하였다. 본문 앞쪽에 「두월 화상의 문계 서문」이 있다.
  705. 705)선서善逝 : 깨달음에 잘 이르렀다는 뜻, 곧 부처를 일컫는데 여기서는 ‘입적’이란 뜻으로 쓰임.
  706. 706)많은 무리들이~생각하지 않겠습니까 : “무리가 실로 많도다.(寔繁有徒)”라는 『書經』 「仲虺之誥」의 구절과 “네 조상을 생각하지 않느냐.(無念爾祖)”라는 『詩經』 「大雅」 ≺文王≻의 구절을 합친 표현으로 최치원이 「智證和尙碑銘」에서 “無念爾祖。寔繁有徒。”라고 한 것을 차용한 표현이다.
  707. 707)유순由旬 : ⓢ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실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약 8km로 간주함.
  708. 708)호령봉號令峰 : 881m. ‘효령봉’이라고도 하는데 현재 ‘연산봉’이라 불림.
  709. 709)시루봉(甑峯) : 왼쪽이 ‘관재’와 ‘망수봉’으로 뻗어 내리는 송광사의 백호 줄기로 Y자형 삼거리인 곳.
  710. 710)축간丑艮(동북) : 간艮은 동북, 축丑은 동북에서 북으로 15도 위쪽.
  711. 711)경태庚兌(서쪽) : 태兌는 정서, 경庚은 정서에서 남으로 15도 아래쪽.
  712. 712)김군수金君綏 :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설당雪堂. 아버지는 김돈중金敦中이며, 할아버지는 김부식金富軾이다. 1210년(희종 6) 공주지사公州知事 재임 시에 「松廣寺普照國師碑銘」을 찬술하였다.
  713. 713)청진국사淸眞國師 : 고려 승려 몽여夢如(?~1252)의 시호. 수선사修禪社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 이규보李奎報와 교유.
  714. 714)연화緣化 : 불사佛事를 경영하여 시주의 연분을 구하고 사업을 설계함.
  715. 715)날아갈 듯 : 원문 ‘翬飛’는 『詩經』 「小雅」 ≺斯干≻에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으며, 꿩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如鳥斯革。如翬斯飛。)”에서 나온 말이다.
  716. 716)하탑下榻 : 걸상을 내린다는 뜻으로, 손님을 맞아 극진히 대접함을 이르는 말. 후한의 진번陳蕃이 높은 선비였던 주구周璆를 위하여 특별히 안석案席을 마련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717. 717)간고幹蠱 : 주 425 참조.
  718. 718)천의天衣 : 보살이나 천인이 입는 얇은 옷으로 무봉의無縫衣라고 한다.
  719. 719)승국勝國 : 바로 이전 왕조. 여기서는 고려.
  720. 720)거조사居祖寺 : ‘거조암’이라고도 함.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팔공산에 있는 절. 693년(효소왕 2) 원효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고려 시대에는 지눌知訥이 송광사에 수선사修禪社를 세워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룩하기 전에 각 종파의 고승들을 맞아 몇 해 동안 수행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721. 721)신석희申錫禧 :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사수士綬이며, 호는 위사韋史이다. 1848년(헌종 14) 5월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49년(철종 즉위년) 오정수吳正秀ㆍ박규수朴珪壽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으며, 1854년에는 순천부사順天府使로서 수재水災 수습에 진력하였다. 글씨에 능하여 광화문의 상량문을 썼으며, 저서에 『東狹紀』가 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722. 722)구봉九峰 : 혜흔慧昕의 호. 경남 산청군의 대원사를 1890년에 크게 중창했던 기록이 있다.
  723. 723)금나라 황제의~데리고 왔다 : 금나라 장종章宗이 불법을 시험하려 하자 고려의 보조국사께서 허공을 날아 금나라에 가서 시험에 응하니 제천諸天이 꽃비를 내렸다. 이에 장종이 스승의 예로 영접하고 예우하다가, 국사가 귀국하자 세 번째 왕자를 제자로 보냈으니 이가 후에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9세 담당국사가 되었다고 한다.
  724. 724)화덕군火德君 : 화덕진군火德眞君. 불을 맡은 신령으로 축융祝融이라고도 한다.
  725. 725)구화군救火軍 : 불 끄는 일꾼.
  726. 726)주먹을 펼~깨닫지 못한 : 보시할 인연을 깨닫지 못함을 뜻함. 어떤 장자長者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주먹을 펴지 못하는 아들을 데리고 천축天竺의 24조祖인 사자 존자師子尊者를 찾아와서 하소연하자, 존자가 찬찬히 살펴보다가 “내 구슬을 돌려다오.”라고 말하니, 그 아들이 주먹을 펴고 구슬을 돌려주었는데, 이는 존자가 전생에 승려의 신분으로 서해西海 용왕재龍王齋에 참석했을 때 동자에게 맡겨 둔 구슬이었다는 이야기가 『聯燈會要』 권2 「二十四祖師子尊者」에 나온다.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莫悟申拳’ 구절이 나온다.
  727. 727)『영월집詠月集』 : 영월 청학詠月淸學(1570~1654)의 문집. 영월의 자는 현주玄珠 또는 수현守玄, 속성은 홍洪, 어머니는 강씨姜氏. 13세 때 가지산 보림사寶林寺로 출가하였다. 이후 지리산에 가서 부휴 선수浮休善修 밑에서 배웠고, 다시 묘향산의 청허 휴정淸虛休靜에게 배워 그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산에서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728. 728)신종 7년(1204) 갑자년이다 : 뒤에 나오는 393년을 기준으로 하면 보조국사가 입적한 희종熙宗 6년(1210) 경오년이 되어야 하므로 오기인 듯하다.
  729. 729)길금吉金 : 길씨吉氏 선여인이 보시한 금액을 말하는 듯함. 본문 「조계산 국사전의 중창에 따른 상량 명과 서문」을 보면 1916년에도 4백 원을 보시한 기록이 있다.
  730. 730)회차會茶 : 모여서 차를 마심.
  731. 731)간고幹蠱 : 주 425 참조.
  732. 732)관산冠山 : 천관산이 있는, 전라남도 장흥군 남부에 있는 읍.
  733. 733)포금布金 : 황금을 땅에 깐다는 뜻으로, 사원 건립 기금을 시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석가의 설법을 듣고 매우 경모한 나머지 정사精舍를 세워 주려고 기타 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을 구매하려고 하자, 태자가 장난삼아서 “황금을 이 땅에 가득 깔면 팔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수달 장자가 집에 있는 황금을 코끼리에 싣고 와서 그 땅에 가득 깔자, 태자가 감동하여 그 땅을 매도하는 한편 자기도 원중園中의 임목林木을 희사하여 마침내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건립했다는 ‘기원포금祇園布金’의 고사가 전한다. 『大唐西域記』 권6.
  734. 734)쿠리야마(栗山)와 기코(木子) : 쿠리야마 준이치(栗山俊一両)는 총독부의 명으로 1916년에 총독부 고적 일반 조사를 하였고 기코 토모타카(木子智隆)는 평양 보통문을 수리하고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등을 수축하였으며 석굴암을 복원하고 불국사 다보탑의 모습을 되돌려 놓았다고 한다.
  735. 735)일전어一轉語 : 미혹한 마음을 싹 바꿔 깨달음에 들게 하는 간단명료한 한마디 말.
  736. 736)기묘삭己卯朔 : 8월 1일의 갑자가 기묘라는 뜻.
  737. 737)한붕漢鵬(漢朋, 1864~?) : 고흥 출신으로 속성은 안씨安氏요, 자는 성학聖鶴이라고 본문 「승평군 조계산 극락교 기문」에 소개되어 있다. 현재 송광사 종고루鐘鼓樓 옆 약수터에 ‘漢朋和尙’이라 새겨져 있다.
  738. 738)두월斗月 : 우홍禹洪(1744~1816)의 호. 본문 앞쪽에 「두월 화상의 문계 서문」이 있다.
  739. 739)금천金天 : 김씨. 『三國史記』 41, 열전 1 「金庾信」에 신라인들이 스스로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의 후손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740. 740)원화圓華 : 덕주德柱(1839~1893)의 호. 자는 수미守微. 전라남도 담양 출신.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승려가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본 책의 「지리산 대화엄사 임제종 36세 적손 원화 대선사의 행장 초고」 참조.
  741. 741)쌍기雙奇 : 기봉 장오奇峰藏旿(1776~1853)와 기운 설환奇雲說還을 가리킴.
  742. 742)사걸四傑 : 풍암楓巖 아래 4대 걸인으로 묵암 최눌默庵最訥과 응암 낭윤應庵朗允과 제운 해증霽雲海澄과 벽담 행인碧潭幸仁이 있었다고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에 기록되어 있다.
  743. 743)천자암天子庵(天庵) : 두월은 1797년에 제운霽雲과 함께 송광사 천자암을 중건하였다.
  744. 744)응신應身 : 과거세에 수행한 보과報果로 얻는 몸.
  745. 745)지혜의 가지~갑자기 쓰러지니 : 원문 “慧柯方秀。法棟俄折。”과 유사한 표현 “慧柯方秀。法棟俄墮。”가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나온다.
  746. 746)안개 속 넝쿨은 초췌하고 : 원문 ‘煙蘿憔悴’가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나온다.
  747. 747)울금鬱金 : 식물 이름인데 여기서는 울금향鬱金香을 넣어 빚은 향기 나는 술 울창주를 가리킴.
  748. 748)이 옹李翁 : 이병휘李秉輝(1851~?). 본관은 광주廣州. 1883년(고종 20) 선공감繕工監 감역관監役官으로 관직에 들어가, 1886년 별군직, 1888년 진해현감을 거쳐, 1889년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1895년 북한산성 관성장管城將, 1896년 경상남도 시찰관을 거쳐 평리원平理院이 개편된 고등재판소 검사, 법부 형사국장, 지방제도가 23부제로 개편된 뒤 제주부 관찰사로 있다가, 1896년 지방제도가 다시 13도제로 바뀌고 전라남도 산하에 제주목이 설치되자, 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재임 중인 1898년에 일어난 제주농민항쟁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면직되어 1901년 태笞 100의 선고를 받았다. 1906년 법부 한성재판소 수반판사로 복직되었고, 1907년 영암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에 한일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총독부 관리로 이동하였다. 조선총독부 군수로서 순천군, 곡성군, 진도군에서 근무하였다.
  749. 749)역로驛路 : 역마驛馬를 바꿔 타는 곳과 통하는 길.
  750. 750)하교河橋의 근심과 강수江樹의 부끄러움 : 하교와 강수는 이별하는 장소를 뜻하는 상투어. 강수의 부끄러움이란 전송을 하지 못한 마음을 가리킴. 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問이 두심언杜審言과 이별하며 지은 시 ≺別杜審言≻(『全唐詩』 권52)에 “병들어 누워 인사도 못하는데, 아, 그대 만 리 길 떠나시는가. 하수 다리에서 전송도 못하다니, 강가의 나무에 멀리 정이 어렸네.(臥病人事絶。嗟君萬里行。河橋不相送。江樹遠含情。)”라고 하였다.
  751. 751)낙강洛江 : 송광사 앞의 보성강을 가리키는 듯함. 송광사 근처에 ‘낙수리’라는 지명이 있다.
  752. 752)헌병軒屛 : 마루의 난간과 방안에 둘러친 병풍이라는 뜻으로, 어른의 가까운 곁을 이르는 말이다.
  753. 753)비야毘耶 : 지명. 여기서는 질병을 뜻함. 유마 거사維摩居士가 비야리성毗耶離城에서 늘 칭병稱病하고 누워서 문병 오는 불제자들에게 병을 가지고 설법했음.
  754. 754)연야演若 : 연야달다演若達多. 『楞嚴經』에서 부루나富樓那가 부처님께 망상의 원인에 대해 묻자, 실라성室羅城의 연야달다가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 만하다고 좋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미쳐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원인이 없다고 하셨다.
  755. 755)영주瀛洲 : 바다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데 여기서는 진도를 빗대어 표현함.
  756. 756)응암應庵 : 낭윤朗允(1718~1794)의 호. 자字는 퇴옹退翁, 곡성군谷城郡 통명리通明里 출신이다. 속성은 초계草溪 최씨崔氏로 부친은 봉의鳳儀, 모친은 이씨李氏이다. 17세 때 용담龍潭 대덕에게 구족계를 받고, 18세 때(1735) 조계산 풍암 강백楓嵓講伯을 방문하여 공부하고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전하고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닦았다.
  757. 757)조정祖庭 : 조사가 머무는 뜰, 곧 선종을 뜻함.
  758. 758)설파雪坡 : 상언尙彥(1707~1791)의 호. 19세 때 고창 선운사에 투신하여 운섬雲暹 장로에게 머리 깎고 연봉蓮峯과 호암 체정虎巖體淨 두 화상에게 게송을 받았다. 또 회암 정혜晦菴定慧에게 배웠다. 서산西山에게 7세손이 되고 환성 지안喚醒志安에게 손자가 된다. 33세 때 용추사龍湫寺 판전板殿에서 불법을 강의하였다. 후에 해인사에 들어가 대경초大經抄를 교정하고 금강산과 두류산ㆍ묘향산으로 다니면서 좌선하였다. 1770년(영조 46) 징광사澄光寺에 불이 나서 『華嚴經』 판목板目이 타 버리자 사재私財를 털어 다시 새겨 영각사靈覺寺에 두었다.
  759. 759)회당晦堂 : 회암 정혜晦菴定慧(1685~1741). 숙종 37년(1711)에 율사栗寺에서 첫 강석講席 이후 석왕사와 명봉사, 청암사, 벽송사 등에서 활발하게 강석을 펼친 화엄종장으로 만년에는 김천 청암사에 주석했다. 부휴 선수浮休善修→벽암 각성碧巖覺性→모운 진언募雲震言→보광 원민葆光圓旻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했으며 청암사와 쌍계사를 중심으로 해인사와 직지사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760. 760)호암虎嵓 : 호암 체정虎巖體淨(1687~1748). 환성 지안喚惺志安(1664~1729)의 제자임. 환성의 문인 가운데 함월 해원은 북쪽에서, 호암 체정은 남쪽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다고 『山史畧抄』에 기록됐다. 조선 후기 호남과 영남에서 호암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호암을 비롯해 그의 문하로 만화 원오, 연해 광열, 영곡 영우, 연담 유일 등이 대흥사 12대 종사와 12대 강사로 불리고, 제자들은 호암이 표훈사 원통암에서 입적하자 추모 불사를 일으켰다.
  761. 761)관옥冠玉 : 모자를 장식한 아름다운 옥을 말하는데, 미남으로 소문났던 한漢나라 진평陳平에 대해서 주발周勃과 관영灌嬰 등이 “진평이 비록 외모는 잘생겨서 관을 장식한 옥과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속마음까지 꼭 그렇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平雖美丈夫。如冠玉耳。其中未必有也。)”라고 평한 기록이 보인다. 『史記』 권56 「陳丞相世家」.
  762. 762)범석范石 : 범려范蠡와 석숭石崇. 범려는 춘추시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을 보좌하여 당시의 대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월나라의 패업을 이루었다. 구천이 패업을 이룩한 후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기고 월나라를 떠나 상인으로 성공했다. 석숭은 서진西晉 발해渤海 남피南皮 사람으로 사치를 좋아해 일찍이 귀척貴戚 왕개王愷와 함께 거부로 어깨를 겨루었다.
  763. 763)단금斷金 :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 『周易』 「繫辭」 上 “二人同心。其利斷金。”
  764. 764)향사香社 : 당나라 백거이白居易가 향산香山의 승려 여만如滿과 함께 결성한 향화사香火社의 준말. 결사結社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함.
  765. 765)노령蘆嶺 : 노령산맥에 붙어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에서 전라북도의 정읍으로 넘어가는 고개. 갈재.
  766. 766)무악毋岳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과 남면, 전라남도 순천시와의 경계에 있는 모후산母后山을 가리키는 듯함.
  767. 767)철위산(輪圍) : 세계의 가장 끝에 있는 산. 철륜위산鐵輪圍山 또는 금강산金剛山ㆍ금강위산金剛圍山이라고도 한다. 불교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의 한가운데에는 수미산이 있고, 아홉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가 이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다. 이를 ‘구산팔해九山八海’라 하는데, 이 중 가장 바깥쪽에 있는 산을 이르는 말이다.
  768. 768)소선蘇仙 : 송나라 시인 소식蘇軾을 신선에 빗댄 표현. 소식이 7월 기망旣望(16일)에 적벽 아래서 배를 띄우고 놀면서 「赤壁賦」를 지었다.
  769. 769)남극성 : 도교에서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수성인壽星人’, ‘수노인壽老人’으로 불리며 인간의 행복과 장수를 주관한다고 한다.
  770. 770)헌수獻壽 : 환갑이나 잔치 같은 때 오래 살기를 비는 뜻으로 주인공에게 술잔을 올림.
  771. 771)서석瑞石 : 무등산을 ‘서석산’이라고도 함.
  772. 772)사사四事 : 의복, 음식, 탕약, 와구臥具(침구류). 와구 대신 방사房舍(거주처)를 넣기도 함.
  773. 773)옛 성현 : ‘일미칠근一米七斤’, 즉 쌀알 하나를 만들려면 농부가 7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표현은 진晉나라 도안道安이 제자들에게 남긴 글에 보인다. 『緇門警訓』 권2.
  774. 774)칼을 차고 잠을 자며 : 잠을 잘 때도 번뇌를 자르는 칼을 차고 잔다는 뜻으로 수련에 매진함을 가리킨다. 『緇門警訓』 권3에 “帶刀而眠。離諸夢想。”이라 하였다.
  775. 775)김해강金海岡 : 해강은 김규진金圭鎭(1868~1933)의 호. 자는 용삼容三, 다른 호는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ㆍ무기옹無己翁. 서화 연구회를 창설하여 근대 한국 서화 미술 발전에 공헌하였다. 산수화로는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의 벽화가 유명하며, 저서에 『海崗蘭竹譜』와 『六體筆論』 따위가 있다.
  776. 776)안죽농安竹儂 : 죽농은 안순환安淳煥(1871~1942)의 호. 조선 음식 전문가. 대한제국의 궁중잔치 음식을 도맡았던 전선사典膳司의 책임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요릿집인 명월관明月館을 설립한 조선 음식 전문가이다.
  777. 777)청요직淸要職 : 청직淸職과 요직要職을 합한 말로, 지위가 높고 귀하며 맡은 직무가 중요한 관직을 가리킨다.
  778. 778)30본사本寺 : 1911년 6월 3일 일제가 「朝鮮寺刹令」을 공포하고, 같은 해 9월 1일 동시행규칙을 발표하였다. 이 법령은 일제의 식민지 종교 정책의 하나로 시행된 것으로, 삼십본산三十本山을 정하여 전국의 1,300여 사찰을 분할 관리하게 하고, 본사와 말사末寺에는 주지를 두되, 본사의 주지는 총독의 인가를, 말사의 주지는 각 도지사의 인가를 얻어서 취임하도록 규정하였다. 1924년 11월 20일 사찰령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전라남도의 화엄사華嚴寺가 본산으로 승격되었고, 이때부터 31본사가 되었다.
  779. 779)복천福川 : 동복현(지금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ㆍ이서면ㆍ북면ㆍ남면 일대)의 별호.
  780. 780)여항閭巷 : 서민이 사는 마을.
  781. 781)청전靑氊 : 선대로부터 전해진 귀한 유물.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할 적에, 그가 “도둑아,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는 것이 좋겠다.(偸兒。靑氈我家舊物。可特置之。)”라고 하자, 도둑이 질겁하고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晉書』 권80.
  782. 782)사승師僧 : 사표가 되는 승려를 이르는 말.
  783. 783)의정義淨(635~713) : 자字는 문명文明. 어려서 출가하고, 671년에 광동성廣東省 광주廣州에서 바닷길로 인도에 가서 25년 동안 순례하면서 대소승을 배운 후 많은 범본梵本을 가지고 광주廣州를 거쳐 695년에 낙양洛陽에 돌아옴. 낙양 불수기사佛授記寺, 남경南京 복선사福先寺, 장안長安 서명사西明寺ㆍ대천복사大薦福寺 등에서 『金光明最勝王經』 등 56종 230권을 번역함. 저서로 『南海寄歸內法傳』과 『大唐西域求法高僧傳』이 있다.
  784. 784)혜교惠皎(495~554) : 남조 양梁나라 승려. 『高僧傳』을 지음.
  785. 785)보창寶唱 : 남조 양나라 승려. 18세 때 승우僧祐의 문하에 가서 경률을 배우고, 뒤에 장엄사莊嚴寺에 있으면서 여러 글을 찾아보아 이치를 짐작했다. 처사 고도顧道, 광려曠呂와 승지僧智 등에게서 경서와 역사, 장자, 주역을 연구했다. 그 뒤부터 역경 사업에 종사하여 여러 스님들의 저서를 찬탄, 또 여러 가지 책을 저술했다. 저서도 대단히 많은데 『比丘尼傳』 4권, 『名僧傳抄』 1권 등이 있다.
  786. 786)찬영贊寧(919~1002) : 호는 통혜通慧. 천태산天台山에서 구족계를 받고 경ㆍ율ㆍ논 삼장三藏을 널리 공부했는데, 특히 남산율南山律에 정통하였다. 유교나 노장 사상 등에도 해박하고 담론에도 뛰어나 왕후 귀족과 지식인의 존경을 받았다. 만년에 칙명으로 『宋高僧傳』 30권, 『大宋僧史略』 3권을 지었다.
  787. 787)도선道宣(596~667) : 당나라 승려. 현장玄奘이 645년에 귀국하여 홍복사弘福寺에서 역경譯經할 때 필수筆受와 윤문潤文을 맡음. 658년에 서명사西明寺가 완성되자 칙명으로 그 절의 상좌上座가 됨. 저서로 『續高僧傳』과 『廣弘明集』, 『釋迦氏譜』 등이 있다.
  788. 788)각훈覺訓 : 고려 고종 때 활동한 화엄종 승려. 호는 고양취곤高陽醉髠, 각월覺月이다. 흥왕사興王寺와 영통사靈通寺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엄종 고승이다. 일찍부터 이인로李仁老ㆍ이규보李奎報와 교유하였으며, 유학과 문장에도 능하였다. 1215년(고종 2) 영통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왕명으로 『海東高僧傳』을 저술했는데 그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789. 789)시반(師蠻, 1625~1710) : 일본 승려. 1702년에 『本朝高僧傳』(일본 고승전)을 저술. 1678년에는 선승禪僧에 관한 전기인 『延寶傳燈錄』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은 일반 승려는 물론, 선인ㆍ성인ㆍ신 등에 관한 전기도 싣고 있다.
  790. 790)범해梵海 : 각안覺岸(1820~1896)의 호. 자 환여幻如, 속성 최崔, 전라남도 완도 출생. 14세 때 해남 대흥사로 출가하여 호의縞衣를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16세 때 초의草衣에게 구족계를 받은 뒤, 불경과 함께 유서儒書도 익혔다. 27세 때 호의의 법法을 이어받고 진불암眞佛庵에 머물며 선禪과 교학敎學을 가르쳤다. 화엄학華嚴學과 선ㆍ계율에 모두 통했으며, 유ㆍ불ㆍ도 3교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저서에 『東師列傳』과 『梵海禪師遺稿』 등이 있다.
  791. 791)통방정안通方正眼 : 모든 곳에 통하는 바른 안목.
  792. 792)다섯 종파의 유파 : 육조 혜능 이후로 발생한 임제종, 위앙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을 말한다.
  793. 793)구산九山 :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선승들이 세운 선종의 아홉 산문. 『禪門祖師禮懺儀文』은 구산의 명칭과 장소, 개산조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각 선풍의 특성을 칠언사구의 시로 나타낸 문헌이다.
  794. 794)가외可畏(후인) : 『論語』 「子罕」 편에 “後生可畏(뒤에 난 사람이 두려워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795. 795)원질原帙 : 당나라와 송나라의 『高僧傳』 같은 체재를 갖춘 책을 가리키는 듯함.
  796. 796)정축頂祝 : 이마를 땅에 대고 축하함.
  797. 797)일성一星 : ‘일성지화一星之火’의 줄임말. 불똥, 화재를 뜻함. 『明心寶鑑』 「省心篇」.
  798. 798)신산新山 : 새로운 묘.
  799. 799)현고顯考 통정대부通政大夫 부군府君 신위神位 : 현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고, 통정대부는 정3품 상계의 품계이며, 부군은 돌아가신 자기 아비나 가까운 조상에 대한 높임말이다.
  800. 800)삼망三望 : 후보 셋을 올려서 그중에 선택하는 방식.
  801. 801)행룡行龍 : 풍수지리에서, 높았다 낮았다 하며 멀리 뻗어 나간 산맥.
  802. 802)임任을 향하고 병丙을 등지며 : 임은 정북에서 서쪽으로 15도 기운 방향. 병은 그 반대로 정남에서 동쪽으로 15도 기운 방향.
  803. 803)진辰과 경庚으로 : 진은 정동에서 30도 남쪽 방향이고, 경은 정서에서 15도 남쪽 방향.
  804. 804)파정破汀 : 묏자리를 팠다는 뜻인 듯함.
  805. 805)오황五黃 : 오행五行 가운데 토는 중위에 있으며, 이에 색을 배당하면 황黃이 된다.
  806. 806)금정金精 : 태백성太白星.
  807. 807)현비顯妣 숙부인淑夫人 : 현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고, 숙부인은 정3품 당상관인 문무관의 처에게 주는 작위이다.
  808. 808)후토后土 : 토지의 신.
  809. 809)경태庚兌 : 경庚은 정서에서 남으로 15도 아래 방향이고, 태兌는 정서 방향.
  810. 810)낙맥落脉 : 산의 기복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뻗어 내리는 것.
  811. 811)유酉를 등지고 묘卯를 향해 : 유는 정서, 묘는 정동 방향.
  812. 812)병丙에서 득得하고 진辰으로 파하며 : 병은 정남에서 동으로 15도 기운 방향이고, 진은 정동에서 남으로 30도 기운 방향. 득은 양기가 시작하는 방향, 파는 양기가 나가는 방향을 뜻함.
  813. 813)오석烏石 : 바탕이 단단하지 아니하고 빛이 검은 파리 광택의 바윗돌.
  814. 814)호승胡僧 : 외국 승려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저 승려라는 말로 쓰인 듯함.
  815. 815)개금開金 : 관을 묻기 위하여 ‘정井’ 자 모양의 나무틀을 놓고 구덩이를 파는 개금정開金井의 의미인 듯함.
  816. 816)사토莎土 : 무덤의 잔디와 흙.
  817. 817)망주望柱 : 능묘 앞에 세우는 석주石柱. 석망주石望柱라고도 함.
  818. 818)신좌神坐 : 신위판神位版을 놓는 자리.
  819. 819)태뢰太牢 : 소ㆍ양ㆍ돼지 세 짐승의 고기를 모두 쓴 요리.
  820. 820)갱장羹墻 : 국과 담장의 의미로,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함을 이르는 말. 『後漢書』 「李固傳」에 “옛날 요堯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임금이 3년 동안 사모하여, 앉았을 적에는 요임금이 담장(墻)에 보이고 식사할 때는 국(羹)에서 보였다.”라고 하였다.
  821. 821)띠풀 : 원문 ‘茅’는 ‘苞茅’로, 제사용 술을 거를 때 쓰는 청모菁茅이다. 『春秋左傳』 ‘희공僖公 4년’.
  822. 822)북위北魏 : 선비족의 탁발부拓跋部가 중국 화북 지역에 세운 북조 최초의 왕조(386~534). 승우는 남조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저자의 착오라 하겠다.
  823. 823)승우僧佑(445~518) : 남조 제량齊梁 시대의 불교 사학가. 불교의 전적과 사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出三藏記集』과 『弘明集』, 『釋迦譜』 등을 저술함.
  824. 824)찰리刹利 구담瞿曇 감자甘蔗 : 찰리는 찰제리刹帝利, 즉 ⓢ kṣatriy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성四姓 가운데 둘째 계급으로, 왕족ㆍ귀족ㆍ무사 그룹. 구담은 ⓢ Gotama의 음사. 석가釋迦 종족의 성. 감자는 ⓢ ikṣuvāku의 번역어. 일종日種ㆍ선생善生이라고도 번역함. 음사는 의마懿摩. 석가족釋迦族의 시조.
  825. 825)종기鍾氣 : 정기가 한데 뭉침.
  826. 826)30권 : 『釋迦譜』는 내용상 34품으로 나뉘고, 권수는 5권이다.
  827. 827)기야송祇夜頌 : 게송. ⓢ geya의 음사. 응송應頌ㆍ중송重頌이라 번역. 십이부경十二部經의 하나. 경전의 서술 형식에서, 산문체로 된 내용을 다시 운문체로 설한 것.
  828. 828)아견我見 :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
  829. 829)완섭完燮 :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
  830. 830)전문불교 : 불교사범학교를 말하는 듯함. 1906년 5월 불교계에서 동대문 밖 원흥사元興寺에 세운 명진학교가 1910년 불교사범학교, 1914년 불교고등학교, 1915년 중앙학림中央學林으로 개칭하였다.
  831. 831)여학驪壑 : 턱 밑에 귀한 구슬을 가지고 있는 검은 용(驪龍)이 있는 깊은 바다. 『莊子』 「列禦寇」.
  832. 832)일주一炷 심향心香 : 주炷는 향을 세는 단위이고 심향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다. 즉 향을 불살라서 부처에게 바치는 결재潔齋(심신을 깨끗이 하는 것)하는 마음.
  833. 833)사리闍梨 : 모범이 되어 제자의 행위를 바로잡는 고승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그저 승려를 뜻함.
  834. 834)그 즐거움을~즐기고자 했다 : 원문 ‘將自適其適矣’는 『莊子』 「騈拇」의 “남이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지 못하는 자(適人之適而不自適其適者)”를 인용한 것이다.
  835. 835)진각국사眞覺國師 : 혜심慧諶(1178~1234). 지눌知訥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송광사)의 제2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저서로는 『禪門拈頌集』 등이 있다.
  836. 836)향해香海 :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향수 바다.
  837. 837)『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 고려 후기의 승려 각운覺雲이 스승인 진각국사 혜심이 저술한 『禪門拈頌』에 대하여 핵심어를 뽑고, 거기에 다시 설화를 붙인 주석서.
  838. 838)무의자無衣子 : 진각국사 혜심의 호.
  839. 839)함치含齒 : 대발함치戴髮含齒. 머리칼과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동물과 다른 사람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840. 840)현릉玄陵이 말한~도량이다’라는 것은 : 현릉은 고려 공민왕이고 그의 말은 『懶翁禪師語錄』의 「塔銘」에 나온다.
  841. 841)도는 사람이 넓히는지라 : 원문 ‘道以人弘’은 『論語』 「衛靈公」의 ‘人能弘道’를 변용한 것.
  842. 842)환해幻海 : 법린法璘(1749~1820)의 호. 16세 때 능가사로 출가, 송광사 묵암默庵에게 배움.
  843. 843)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15세 때 송광사로 출가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고.
  844. 844)곡탑鵠塔 : 곡림鵠林의 탑이라는 뜻인데 일반적인 탑의 의미로 사용함. 곡림은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쌍림雙林 또는 사라쌍수沙羅雙樹라고도 하며, 곡탑에는 석가모니의 사리舍利가 간직되어 있음.
  845. 845)귀비龜碑 : 거북을 닮은 용 비희贔屭 모양의 석좌石座 위에 비석을 세워 놓은 것.
  846. 846)백곡白谷이 찬술한 명銘 : 백곡 처능白谷處能(1617~1680)이 쓴 「追加弘覺登階碑銘幷序」가 『白谷集』에 실려 전한다.
  847. 847)복궤覆簣(마침) : 흙 한 삼태기를 부어 산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일을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論語』 「子罕」의 “비유하자면, 산을 만들 적에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을 붓지 않아 산을 못 이루고서 중지하는 것도 내 자신이 중지하는 것과 같으며, 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부어 산을 만들기 시작해서 점점 만들어 나가는 것도 내가 해 나가는 것과 같다.(譬如爲山。未成一簣。止。吾止也。譬如平地。雖覆一簣。進。吾往也。)”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848. 848)부휴당浮休堂 : 부휴 선수浮休善修(1543~1615). 서산대사의 사제로 전통적인 격외선格外禪을 계승하였다. 해인사ㆍ송광사ㆍ칠불암ㆍ백장사白丈寺 등에 부도가 세워졌고, 광해군은 ‘부휴당부종수교변지무애추가홍각대사선수등계존자浮休堂扶宗樹敎辯智無礙追加弘覺大師善修登階尊者’라는 시호를 내렸다.
  849. 849)사중四衆 : 불문佛門의 네 가지 제자인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를 통틀어 이르는 말.
  850. 850)명나라 사신의~머무르게 하였고 : 가야산 해인사에 머물렀을 때 명나라 장수 이종성李宗城이 찾아와서 법문을 듣고 며칠 동안 옆에서 모셨다.
  851. 851)바다 오랑캐의 칼을 복종시켰도다 : 임진왜란이 일어나 덕유산 초암에 은신하고 있던 중 왜적 수십 명을 만났는데, 차수叉手를 하고 선 그의 앞에서 왜적이 칼날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였으나, 그가 태연부동하게 있었으므로 왜적들이 크게 놀라 절한 뒤 물러갔다.
  852. 852)남관南冠 : 포로. 남쪽 지방 초楚나라의 관冠으로 포로를 지칭하는 말. 『春秋左傳』 ‘성공成公 9년’에 “초나라의 종의鍾儀가 남관을 쓰고 포로로 잡혔다.”라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임.
  853. 853)미친 승려의~모범을 드러내고 : 광해군 때 두류산에 있었는데 어떤 미친 승려가 무고하여 투옥되었다가 무죄가 판명되어, 광해군이 내전으로 초빙한 다음 설법을 청하여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가사 한 벌과 푸른 비단 장삼 한 벌, 푸른 비단 바지 한 벌, 금강석 염주 하나와 진완珍玩을 주었다.
  854. 854)뜰의 이무기는~듣고 변화하였네 : 무주 구천동에서 『圓覺經』을 외우고 있을 때 큰 뱀이 나타나서 계단 아래에 누워 있었다. 『圓覺經』을 다 외운 다음 뱀에게 가서 한 발로 그 꼬리를 밟자 뱀이 머리를 들고 물러났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절하고는 “화상의 설법의 힘을 입사와 이미 고신苦身을 여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855. 855)겸추鉗鎚 :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단련하는 집게와 망치. 선승禪僧의 엄격한 지도력을 비유함.
  856. 856)신훈新熏 :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이르는 말.
  857. 857)기봉機鋒 : 선승禪僧의 예리한 말이나 동작.
  858. 858)수족을 펴 보이니 : 원문은 ‘啓手足’. 죽음을 뜻함. 본래는 부모가 임종에 하는 유언을 뜻하는 말로, 효도를 다한다는 뜻도 됨. 즉 사람이 아무런 상처 없이 죽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증자曾子가 죽으면서 제자들을 불러 모아, 발과 손을 펴 보도록 하면서(啓予手。啓予足。) 항상 부모님이 물려준 몸을 조심히 가질 것을 유언으로 남긴 데서 나온 말로 『論語』 「泰伯」에 보임.
  859. 859)칠순이 지났도다 : 부휴는 72세를 누렸다.
  860. 860)세제世諦 : 세간의 이치를 기준으로 할 때 타당한 진리.
  861. 861)해회海會 : 모든 물줄기가 바다에서 만나는 것처럼 장엄하게 열리는 불교의 성대한 집회를 뜻한다.
  862. 862)무봉탑無縫塔 : 하나의 돌을 달걀 모양으로 조각한 탑.
  863. 863)하수와 낙수에 웅크린 듯하고 : 하수와 낙수는 중국의 강 이름인데 ‘하도낙서河圖洛書’로 유명하다.
  864. 864)환해幻海 : 법린法璘(1749~1820)의 호. 16세 때 능가사로 출가, 송광사 묵암默庵에게 배움.
  865. 865)「환해 화상의 비를 세우는 제문」은 1919년 호붕 진홍浩鵬振弘이 썼고, 1920년 3월에 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866. 866)팔영산 :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산.
  867. 867)비로장해毘盧藏海 : 비로자나불이 있는 연화장세계의 바다.
  868. 868)지혜의 가지가~느닷없이 쓰러지니 : 원문 ‘慧柯方秀’와 ‘法棟俄墜’는 최치원의 「眞監和尙碑銘」에 나온다.
  869. 869)이포伊蒲 : 이포새伊蒲塞. ⓢ Upāsaka. 우바새優婆塞의 이역異譯. 속세에 있으면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신도를 말한다.
  870. 870)청오靑烏 : 풍수, 지관地官을 말함. 풍수지리학의 원조인 한나라의 청오자靑烏子가 자신의 학문을 요약하여 묘 터를 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하여 『靑烏經』이란 책을 펴낸 데서 유래함.
  871. 871)인신寅申 : 인寅은 정동에서 북으로 30도 위쪽이고 신申은 그 반대로 정서에서 남으로 30도 아래쪽 방향이다.
  872. 872)정계丁癸 : 정丁은 정남에서 서쪽으로 15도 기울고 계癸는 반대로 정북에서 동으로 15도 기운 방향이다.
  873. 873)익실翼室 : 본 건물의 좌우에 날개처럼 첨가하여 건축한 건물.
  874. 874)기북驥北 : 기주冀州의 북쪽. 준마가 많이 나는 곳으로 훌륭한 인재가 모이는 곳을 말한다.
  875. 875)사문沙門 : 승사僧舍를 가리키는 듯함.
  876. 876)동무東廡 : 정전의 동쪽 건물.
  877. 877)봉황이 오동과~날아와 춤추었다 : 원문 ‘鳳凰來儀’는 『書經』 「益稷」에 나온다.
  878. 878)가득하다 : 원문 ‘押揲’은 미상인데 문맥상 ‘가득하다’로 해석했다.
  879. 879)좌하坐夏 : 수행승들이 여름에 일정한 기간 동안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것.
  880. 880)칼을 차고 자며 : 잠을 잘 때도 번뇌를 자르는 칼을 차고 잔다는 뜻으로 수련에 매진함을 가리킨다. 『緇門警訓』 권3에 “帶刀而眠。離諸夢想。”이라 하였다.
  881. 881)축건竺乾 : 인도. 천축天竺 서건西乾.
  882. 882)10조 95,048자 : 「새벽 종송」에 “十兆九萬五千四十八字。一乘圓敎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 하였으니 이 구절은 『緇門警訓』 「隨州大洪山遂禪師禮華嚴經文」 등에 나옴.
  883. 883)삼업三業 : 몸과 입과 마음의 세 가지 욕심으로 인하여 저지르는 죄업의 총칭.
  884. 884)보개산寶盖山의 남호南湖 : 보개산은 강원도 천원군에 있는 산. 남호 영기南湖永奇(1820~1872) 선사는 소疏를 갖춘 『阿彌陀經』을 쓰는데, 글자 한 자를 쓸 때마다 세 번 절하고 세 번 염불을 하며 『阿彌陀經』을 써서 부처님께 바쳤다. 그 글씨의 목각판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十六觀經』과 『蓮宗寶鑑』을 써서 목각하여 양주군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 두었다. 그리고 서울 뚝섬 건너 봉은사奉恩寺에서 8권의 『華嚴經』 판을 목각하고 판전板殿이라는 법당을 지어 봉안하였다. 고종 원년(1864)에는 대장경을 인출하였다. 『奉恩寺藏經刻版記』.
  885. 885)나은懶隱 : 보욱保郁의 호. 1861년(철종 12)에 건봉사 연사蓮社에서 「無量壽經重刊序」를 지었고, 1862년에 『佛說大目蓮經』에 서문을 썼고, 1871년에는 고려 후기 민지閔漬가 찬술했던 『金剛山楡岾寺事蹟記』를 보유하여 간행했다.
  886. 886)경운擎雲(1852~1936) : 경상남도 웅천熊川에서 태어나 17세 때 출가하여, 구례군 연곡사鷰谷寺 환월幻月의 제자가 되었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대승강원大乘講院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뒤에는 직접 강의를 담당하여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910년 서울에서 중앙포교당이 설립되자 포교당의 교화 사업에 힘을 기울였고, 1911년 조선불교임제종운동이 일어났을 때 임시 관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917년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이 창립되었을 때 최고직인 교정敎正에 추대되었다. 또한 근대의 대표적인 사경승으로, 1880년 명성황후의 발원으로 『金字法華經』을 서사書寫하였다. 이때 쓴 『金字法華經』 한 질은 양산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필적이 매우 뛰어남을 볼 수 있다. 1896년부터는 선암사에서 『華嚴經』의 사경을 시작하여 6년 만에 완성하였는데, 『華嚴經』의 한 글자를 끝낼 때마다 일배一拜를 하면서 서사하였다.
  887. 887)설경說經 : 경전을 해설함.
  888. 888)종설宗說 : 스스로 체득한 깨달음 그 자체와 그것을 말로 표현한 가르침.
  889. 889)동악산動樂山 도림사道林寺 : 전라남도 곡성에 있다. 660년(태종무열왕 7)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였다고 한다.
  890. 890)수희隨喜 : 남의 좋은 일을 보고 함께 기뻐함. 남의 선행을 칭찬함.
  891. 891)수달須達 : ⓢ sudatta. 사위성舍衛城의 부호. 파사닉왕波斯匿王의 신하.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구입한 동산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석가모니에게 바침.
  892. 892)항사겁恒沙刼 : 항하사겁.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893. 893)미진계微塵界 : 미진수세계. 티끌의 수처럼 한량없이 많은 세계를 말함.
  894. 894)신사信士 : 불교 신자인 남자.
  895. 895)무주상無住相 : 상相에 집착하지 않음.
  896. 896)곡우穀雨 : 청명과 입하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 양력 4월 20일 무렵이다.
  897. 897)한백漢栢과 진송秦松이~따라 올라가고 : 재목들이 저절로 자리를 잡는 듯하다는 뜻으로, 진시황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하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晉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898. 898)남풍藍風 : 비람풍毘嵐風. ⓢ vairambhaka의 음사, 신맹迅猛이라 번역. 우주가 성립될 때나 파괴되어 끝날 때, 맹렬하게 휘몰아친다는 폭풍.
  899. 899)공수工倕 : 요堯임금 때의 훌륭한 장인. 『莊子』 「達生」.
  900. 900)기환정사祇桓精舍 : 기원정사祇園精舍. 석존釋尊과 같은 때 사위성에 살던 부호富豪 수달장자須達長者가 지어 부처님께 드린 절. 기환祇桓의 기祇는 기타祇陁이고, 환桓은 숲이니, 기타수祇陁樹와 같음.
  901. 901)오량五樑 : 보를 다섯 줄로 놓은 집.
  902. 902)육위六偉의 노래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903. 903)개사開士 : 성불할 수 있는 정도를 열어 중생을 인도하는 사부라는 뜻으로 보살 또는 고승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재가 신도를 가리킴.
  904. 904)통명通明 : 도림사를 중심으로 북쪽에 동악산이 있고, 남서쪽으로 통명산이 있다.
  905. 905)묘길상 봉우리 가지런하지 않고 : 도림사 서쪽으로 길상암 약수터가 있는 봉우리를 말하는 듯함.
  906. 906)성출봉聖出峰 : 동악산의 봉우리인데, 이 봉우리 중턱에 도림사가 있다.
  907. 907)신선 내린~신이한 덕德이로다 : 신선 내린 대(降仙臺)는 동악산 신선바위를 가리키는 듯하고, 신이한 덕과 관련해서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여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이후 원효가 도림사로 개칭하였다는 말이 있다.
  908. 908)탐랑貪狼 :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뒤에 나오는 자미궁에는 여와女媧 옥황상제가 거하여 북두칠성에게 지시하여 티끌 먼지에 이르기까지 관계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 『七星經』.
  909. 909)냇물 소리 : 도림사 아래에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시냇물이 있다.
  910. 910)길상암吉祥庵 : 처익處翼(1813~1888)이 창건하였다고 『東師列傳』에 보이는데,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911. 911)팔룡구령八龍九齡 : 동한 시대 순숙荀淑에게 뛰어난 여덟 아들이 있어 사람들은 그들을 여덟 마리의 용龍, 즉 팔룡八龍이라고 불렀다. 법화경에 등장하는 팔룡은 모두 선善한 용이다. 구령은 『禮記』 「文王世子」에 주 무왕이 꿈에 천제께서 90세를 주었다는 이야기.
  912. 912)금어옥대金魚玉帶 : 금어는 관인官人이 관복官服에 찼던 치레걸이(佩飾). 3질 이상의 높은 벼슬아치들이 자줏빛 관복에 매달았다고 함. 당唐나라에서 3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금제金製 어형魚形 치레걸이를 찼던 것에서 비롯하였음. 옥대는 띠돈을 옥으로 만든 대.
  913. 913)오중五衆 : 출가자를 다섯 종류로 나눈 것.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식차마나式叉摩那ㆍ사미沙弥ㆍ사미니沙弥尼.
  914. 914)육도六度와 십신十信 : 육도는 육바라밀. 십신은 보살이 수행하는 단계로서 오십이위五十二位 가운데 처음의 십위.
  915. 915)환화幻化 : 우주 만물이 환상과 같이 변화함. 모든 형상과 심상은 환화라고 한다.
  916. 916)삼성三聖 : 신라 시대 원효와 의상ㆍ윤필尹弼을 말함.
  917. 917)수놓은 두공枓栱이~맞물려 놓은 : 이 부분은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의 “수놓은 두공에는 가지가 옹위하듯 서로 맞물려 있는데(繡栭枝擁而杈枒)” 부분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918. 918)행화行化 : 자기의 수행과 남의 교화를 아울러 하는 일.
  919. 919)웅장하고 화려하며 : 원문 ‘鳥革翬飛’는, 『詩經』 「小雅」 ≺斯干≻에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으며, 꿩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如鳥斯革。如翬斯飛。)”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朱熹의 『詩經集傳』에 “그 동우棟宇가 높게 일어남은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고, 처마가 화려하고 높으며 날아갈 듯함은 꿩이 날아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 대개 그 건물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다.(其棟宇峻起。如鳥之驚而革也。其簷阿華采而軒翔。如翬之飛而矯其翼也。蓋其堂之美如此。)”라고 하였다.
  920. 920)크고 아름다웠다 : 원문 ‘輪焉奐焉’은 진나라 헌문자獻文子가 집을 짓자 장로가 송축하기를, “아름답다, 윤輪이여. 아름답다, 환奐이여.(美哉輪焉。美哉奐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윤환輪奐은 집이 크고 아름다운 것을 말한다. 『禮記』 「檀弓」 下.
  921. 921)복전複殿 : 여러 층의 전각.
  922. 922)보광전普光殿 :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삼존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923. 923)보제루普濟樓 : 도림사의 강당. 계곡을 끼고 높은 축대를 따라 들어서 있다.
  924. 924)‘완성’과 ‘파괴’ : 원문 ‘曰成曰壞’는 사겁四劫, 즉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을 말한다.
  925. 925)계획하고 도모함 : 원문 ‘經之營之’는 『詩經』 「大雅」 ≺靈臺≻에 “영대를 처음으로 경영하여 헤아리고 도모하시자, 백성들이 달려들어 하루도 못 되어 완성했네.(經始靈臺。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에서 인용한 것이다.
  926. 926)처음에 묘길상妙吉祥(문수보살)을~한 것인가 : 도림사에 있는 「길상암 나한전 유적 중수기」에 “원효와 의상ㆍ윤필 세 분 선사께서 수도하실 때에 성출봉에 있는 바위굴에서 16나한과 옥으로 빚은 불상이 차례대로 솟아나올 즈음에 윤필 법사의 꿈속에 나타나 가르쳐 주시면서 어서 빨리 봉안하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지시하신 봉우리 바위굴을 찾아서 가보니 불상들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불은 빛을 발하며 솟아오른 바위굴 속 끝에서 말없이 편안하게 앉아 계시었다. 윤필 법사는 큰 빛을 발하는 그 존상을 뵙고 한없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 수없이 엎드려 예배를 올린 후 등에 업고 봉안하였다. 날마다 즐거이 등에 업고 모신 분이 열다섯 분이었는데……날마다 등에 업은 듯이 공경하며 봉안할 때에 하늘에서 천상선인께서 즐거운 음성으로 찬탄하면서 앞뒤에서 길을 가리키고 인도하실 때에 허공이 진동하였기 때문에 동악산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927. 927)가신伽神 : 가람(사찰)의 신, 또는 동악산과 관련하여 가릉빈가迦陵頻伽로 해석될 수 있음.
  928. 928)오늘 아침~함께 맛보는구나 : 이 시는 「曹溪山第六世贈謚圓鑑國師碑銘」에 따르면 41세 때 김해현 감로사甘露社 주지를 할 때 어떤 승려의 청에 따라 쓴 것이라 한다.
  929. 929)임병壬丙 : 임은 정북에서 15도 서쪽으로 기운 방향이고 병은 반대로 정남에서 15도 동쪽으로 기운 방향.
  930. 930)갑경甲庚 : 갑은 정동에서 15도 북으로 기운 방향이고 경은 정서에서 15도 남쪽으로 기운 방향.
  931. 931)총섭㧾攝 : 넓은 의미에서는 도총섭都摠攝까지 포함되나, 일반적으로는 현재의 본사本寺 주지급主持級에 주어졌던 직책명이다.
  932. 932)대흥사 : 미상. 1909년에 기록한 「곡성 태안사에 십륙존을 봉안한 연기 기문」에는 ‘隣郡太興寺’로 되어 있다.
  933. 933)10년 : 뒤의 계사년을 기준으로 하면 ‘20년’이 되어야 한다.
  934. 934)정려淨侶 : 계율을 지키는 데 힘써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승려.
  935. 935)아미산峨嵋山 천태굴天台窟 : 아미산은 태안사 서쪽인 곡성 목사동면 신전리에 있는 588m의 산이고 천태굴은 아미산 520m에 있는 천태암의 석굴이다.
  936. 936)성기암聖祈庵 : 태안사의 암자.
  937. 937)익실翼室 : 본채의 좌우 양편에 달린 방.
  938. 938)일하一夏 :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의 90일간, 곧 하안거夏安居 기간을 말함.
  939. 939)정수頂手 : 미상.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경의를 표하는 모양.
  940. 940)겁몽刼夢 : 오랜 시간의 꿈.
  941. 941)삼화三花를 겪고~일랍一臈을 더하니 : 삼화는 꽃 피는 계절인 봄의 세 달을 가리키는 듯하고, 일랍은 승려가 된 햇수인 승랍僧臘을 가리키는 듯함.
  942. 942)주생朱生 : 금명 보정의 제자 용은龍隱 주완섭朱完燮. 당시 동경 유학 중이었다.
  943. 943)얼음을 깨어 약을 만들고 : 미상. 진나라 왕상王祥이 모친을 위해 고기를 잡으려고 겨울철에 얼음을 뚫으려 하자 얼음이 저절로 풀리고 잉어가 튀어나왔다는 고사를 말하는 듯함. 『晉書』 권33 「王祥列傳」.
  944. 944)미생尾生과 효기孝己 : 미생은 옛날의 미더운 선비로서, 일찍이 여자와 더불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는 오지 아니하고 갑작스러운 폭우로 홍수가 밀어닥쳤다. 그래도 미생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다리 기둥을 안고 죽었다. 『壯子』에 보임. 효기는 은殷나라 고종의 아들인데, 어질고 효성스러웠다. 부왕이 후궁의 말만 듣고 그를 내쫓아도 끝내 원망하지 않았다고 함.
  945. 945)분단생사分段生死 : 삼계三界에서 태어나고 죽는 일을 되풀이하는 범부의 생사. 각자 과거에 지은 행위에 따라 신체의 크고 작음과 목숨의 길고 짧음이 구별된다고 하여 분단分段이라 함.
  946. 946)무기년戊己年 :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정미7조약과 고종의 양위,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의병투쟁이 전개되었는데, 이에 대해 일본은 1908년 5월 경기도ㆍ충청도ㆍ강원도 일부 지방에 제6사단의 보병 제23연대를, 서울ㆍ평안도ㆍ황해도에 제7사단의 보병 27연대를 각각 파견하여 의병 탄압에 주력하였다. 그에 따라 전국적인 의병 활동이 위축되었지만 호남 지역은 유지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 사령부는 1909년 9월 1일부터 약 2개월간 ‘남한대토벌작전’을 지휘하며 호남 의병을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무신년은 1908년, 기유년은 1909년이다.
  947. 947)함호菡湖(?~1928) : 송광사의 승려.
  948. 948)관중사걸關中四傑 : 구마라집의 제자들 가운데 특히 뛰어난 도융道融과 승예僧叡, 승조僧肇, 도생道生을 가리킴.
  949. 949)집 공什公(구마라집, 344~413) : ⓢ Kumārajīva. 구자국龜玆國(현재의 신장 쿠차에 속함) 출신의 불교 사상가. 한자 표기는 구마라시바鳩摩羅時婆, 구마라기바拘摩羅耆婆이고 줄여서 나집羅什, 집什, 의역하여 동수童壽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한 4대 역경가들 가운데 가장 정평이 나 있다.
  950. 950)『불조록찬송佛祖錄讃頌』 : 서천西天 28조사祖師부터 조계종사曹溪宗師에 이르기까지 인도, 중국, 한국에서 이름을 떨쳤던 스님들의 행적과 찬송이 실려 있다고 한다. 「佛祖錄讃頌小引」 참조.
  951. 951)일전어一轉語 : 미혹한 마음을 싹 바꿔 깨달음에 들게 하는 간단명료한 한마디 말.
  952. 952)입성入聲 : 『信心銘』 첫째 구절의 ‘擇’이 ‘陌’ 운으로 입성이다.
  953. 953)평성平聲 : 『信心銘』 마지막 글자 ‘今’이 ‘侵’ 운으로 평성이다.
  954. 954)제창提唱 : 종지宗旨의 대강大綱을 제시하여 설법함.
  955. 955)백암栢庵 : 성총性聰(1631~1700)의 호. 13세 때 출가하여 지리산 수초守初 밑에서 불경을 배웠고 많은 불서를 간행하였다.
  956. 956)게이잔(瑩山) : 게이잔 조킨(瑩山紹瑾, 1268~1325). 일본 조동종의 중흥조. 조동종의 사상과 의례에 토착적 요소를 도입.
  957. 957)염제拈提 : 염고拈古. 고칙古則을 제시하여 이를 평창評唱함. 문제를 드러내어 해설하고 비평함.
  958. 958)진헐眞歇 : 송나라 승려 청료淸了(1088~1151)의 호. 사천성 성도成都 대자사大慈寺에서 경론經論을 배움. 그 후 단하 자순丹霞子淳(1064~1117)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고 여러 지역을 편력하면서 조동종을 전파함.
  959. 959)수증修證 : 수행하여 진리를 증오證悟함.
  960. 960)감응(機感) : 중생의 근기가 부처의 교화를 받아들임.
  961. 961)우송友松 : 속명은 황선명黃善明.
  962. 962)가라장迦羅藏 : 미상. 용궁인 듯함. 가라迦羅, 즉 사갈라沙竭羅는 용왕을 말함.
  963. 963)단상檀像 : 전단栴檀ㆍ백단白檀 등을 재료로 하여 조각한 불상.
  964. 964)자미궁紫微宮 : 옥황상제가 거하는 별자리. 큰곰자리를 중심으로 170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
  965. 965)불지견佛知見 : 제법실상의 진리를 남김없이 깨달아 조견照見하는 부처님의 지혜.
  966. 966)개오開悟 : 지혜를 얻어 진리를 깨달음.
  967. 967)도원道源의 『전등록傳燈錄』 : 송나라 고승 도원이 황제의 명에 따라 1004년(경덕 원년)에 지은 『景德傳燈錄』 30권 1700칙.
  968. 968)화정華亭의 『통재록通載錄』 : 『景德傳燈錄』 14권에 화정 선자華亭船子가 나오는데 『通載錄』을 지었다는 기록은 없다. 본문 바로 뒤에 언급된 염상이 화정華亭 사람이고 『佛祖通載』를 찬술하였으니 ‘염상의 『歷代錄』’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됨.
  969. 969)염상念常의 『역대록歷代錄』 : 염상은 원나라 승려. 『歷代錄』은 『佛祖通載』를 가리킴.
  970. 970)여직汝稷의 『지월록指月錄』 : 명나라 학자 구여직瞿汝稷이 1692년에 찬술한 『指月錄』 30권.
  971. 971)준욱遵勗의 『광등록廣燈錄』 : 송나라 임제종 이준욱李遵勗이 천성 7년(1029)에 찬술한 『天聖廣燈錄』.
  972. 972)유백惟白의 『속등록續燈錄』 : 송나라 법운사法雲寺의 주지 불국 유백佛國惟白이 1101년에 지은 『建中靖國續燈錄』.
  973. 973)지반志磐의 『통기統記』 : 송나라 천태종의 승려 지반이 찬술한 『佛祖統紀』.
  974. 974)보제普濟의 『회원會元』 : 송나라 승려 보제(1178~1253)가 기존의 『景德傳燈錄』과 『天聖廣燈錄』, 『燃燈會要』, 『建中靖國續燈錄』, 『嘉泰普燈錄』 등을 정리ㆍ재편집한 『五燈會元』.
  975. 975)공진拱辰의 『통록通錄』 : 북송 시대 11세기 말엽에 공진이 찬술한 『祖源通錄』 24권.
  976. 976)무착無着의 섭론송攝論頌 : 인도의 논사 무착이 지은 『攝大乘論』에 나오는 게송을 말함.
  977. 977)현수 청량賢首淸凉의 구회송九會頌 : 현수는 당나라 때 화엄종 제2조祖 지엄智儼의 뒤를 이어 화엄종을 대성시킨 사람이고, 청량은 당나라 화엄종 제4조 징관澄觀의 호. ‘구회송’은 『華嚴七處九會頌釋章』을 가리키는 듯함. 이 책은 ‘청량산清涼山 대화엄사大華嚴寺 사문沙門 징관澄觀 찬술撰述’로 되어 있음. 앞의 ‘현수’는 오기인 듯함.
  978. 978)선부善傅와 야보冶父의 금강송金剛頌 : 남송의 야보(1127~1279)는 호가 도천道川으로 임제의 6세손이다. 그가 지은 금강경송金剛經頌이 『金剛經五家解』에 나온다. 규장각에 야보 천노冶父川老의 송頌과 주석이 첨부된 『金剛經』(古 1730~1784)이 있고 이 책에 숭승 무궁崇勝無窮 선사 선부善傅의 송頌이 첨가된 『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이 합본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부와 『金剛經』을 관련지은 것은 착오이다.
  979. 979)규산圭山의 진망송眞妄頌 : 당나라 중종 때 복례 법사複禮法師가 찬술한 『眞妄頌』이 있는데 규산과의 관련은 알 수 없다.
  980. 980)이문二門 : 불교를 교리상 두 종류로 나눈 분류법. 비문悲門과 지문智門, 본문本門과 적문迹門, 섭수문攝受門과 절복문折伏門, 억지문과 섭취문, 유문有門과 공문空門,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사문과 이문, 진제문과 속제문 등. 『大乘起信論』에서는 진여문과 생멸문을 말한다.
  981. 981)삼대三大 : 진여 자체와 진여의 공덕, 진여의 작용.
  982. 982)사신四信 : 신근본信根本ㆍ신불信佛ㆍ신법信法ㆍ신승信僧. 『大乘起信論』 「修行信心分」.
  983. 983)오행五行 :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
  984. 984)일심一心의 명수를~오행 등 : 일심부터 오행까지의 나열은 『大乘起信論』에 나온다.
  985. 985)흙덩이를 쫓는 : 원문 ‘逐塊’. 『傳燈錄』에 나오는 “韓獹逐塊。師子咬人。”을 뜻한다. 사람이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쫓아가지만,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는 뜻이다.
  986. 986)현수賢首와 장수長水ㆍ원정圓靜ㆍ적조寂照ㆍ일여一如 : 현수는 당나라 때 화엄종을 대성시킨 법장法藏, 장수는 『大乘起信論筆削記』 등을 찬술한 송나라 자선子璿, 원정ㆍ적조는 미상. 일여는 『大明三藏法數』 50권을 찬술한 명나라 승려.
  987. 987)제승諸乘 :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모든 교리, 다시 말해 모든 진리를 가리키는 말.
  988. 988)주미麈尾 : 고라니의 꼬리는 먼지가 잘 털린다 하여 이것으로 만든 먼지떨이를 승려나 청담을 하던 사람들이 많이 가졌음. 여기서는 법문을 가리키는 듯함.
  989. 989)경전 : 해당 경전은 『法華經』 「如來壽量品」이다.
  990. 990)혜명慧命 : 불법의 명맥.
  991. 991)종휘宗輝 : 사굴산파闍崛山派에 속하는 승려. 보조국사가 8세 때 종휘를 은사로 하여 출가했다고 한다.
  992. 992)득도得度 : 불교 신자가 되어 부처의 제도濟度를 얻음.
  993. 993)거조사居祖寺 : 738년(효성왕 2)에 승려 원참元旵이 창건하였다. 거조암이라고도 함.
  994. 994)콧구멍을 밟아 버리고 : 근본을 타파한다는 뜻. 모태에서 콧구멍이 제일 먼저 생긴다는 데서 나온 말.
  995. 995)조종祖宗 : 조사가 전한 선禪의 요지.
  996. 996)경절문經截門 원돈圓頓 : 지눌이 정립한 3종 선문禪門인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과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경절문經截門 가운데 경절문은 방편을 무시하고 직관에 의해 빨리 질러가는 것이며, 원돈은 처음부터 곧바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주시하여 원만하게 단박 깨달음을 뜻함.
  997. 997)정토문淨土門 염불念佛 : 정토문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부처가 되기를 가르치는 교문이고, 수행 방법이 염불이다.
  998. 998)겉만 훑는 : 원문 ‘膚受’는 『論語』에서 ‘膚受之愬’라고 하여 ‘참언讒言이나 중상中傷 따위를 살을 에는 듯이 절실하게 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달리 사용되었다.
  999. 999)글만 읽으며 : 원문 ‘鑚紙’는 『傳燈錄』에 “신찬神瓚 선사가 하루는 벌이 창지窓紙를 뚫고 나가려는 것을 보고서 말하기를 ‘세계가 저렇게 광활한데 선뜻 나가지 못하고 오래된 종이만 뚫는구나.’라고 하였다.”라는 데서 유래함.
  1000. 1000)기산綺山 : 석진錫辰(1892~1968)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성은 임林씨. 아버지는 원오元悟이고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1905년 송광사 천자암天子庵에서 취월翠月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호붕浩鵬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송광사 보통과를 이수하고, 그해 4월 금명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1001. 1001)오일午日 : 날짜를 천간 지지天干地支와 맞추어 놓은 것 가운데에서 지지가 오午 자로 된 날. 무오일戊午日ㆍ경오일庚午日ㆍ임오일壬午日 등을 말한다. 말날(午日)에는 말을 소중하게 여겨 팥떡을 해서 마구간 앞에 놓고 말의 무병과 건강을 비는 풍속이 있다. 방위로는 정남방, 오행으로는 화火, 색깔로는 적색이며, 시간으로는 오전 11시~오후 1시이며, 정오가 오시의 중간이다.
  1002. 1002)승국勝國 : 바로 이전 왕조. 여기서는 고려.
  1003. 1003)9산 : 신라 말 고려 초의 선문 종파.
  1004. 1004)자정국사慈靜國師(?~?) : 「松廣寺嗣院事蹟碑」에 따르면, 법명은 일인一印이며 1293년부터 1301년(충렬왕 19~27) 사이에 수선사주修禪社主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1005. 1005)호념護念 : 늘 염두에 두고 보호함.
  1006. 1006)상퇴 : 송나라 사마상퇴司馬向魋. 공자가 가는 길에 숨어 있다가 나무를 쓰러뜨려 공자를 죽이려 했으나 공자는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論語』 「述而」.
  1007. 1007)항우項羽 : 항우는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함락한 뒤 3세 황제를 처형하고 아방궁을 불살랐다고 한다.
  1008. 1008)천제의 수레를 움직이니 : 원문 ‘運於帝車’는 『史記』 「天官書」의 “斗爲帝車。運于中央。”과 관련된다.
  1009. 1009)마고麻姑 : 마고할미. 해남, 옹진, 강화 등 주로 해안 도서 지방에서 신모적神母的 창조주로서 전승되고 있다.
  1010. 1010)우두牛斗 : 28수宿 가운데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1011. 1011)만다라曼陀羅(曼茶羅; maṇḍala) : 만다라는 원圓을 뜻한다. 둥글게 두루 갖춤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어떤 것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나 부분이 단 하나라도 빠짐이 없이 완전하게 구비된 상태를 나타낸다. 불법의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를 이르는 말,
  1012. 1012)동혼銅渾 : 당나라 때 물의 힘을 이용하여 천문을 관측하던 기구.
  1013. 1013)옥두玉斗와 주형珠衡 : 옥두는 여기서 북두칠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혼천의를 뜻할 때도 있다. 왕발王勃이 지은 「夫子廟碑序文」에는, “주형과 옥두는 떳떳한 하늘 도수에 따라 상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星湖僿說』 권6 「玉斗」.
  1014. 1014)삼륜三輪 : ① 전륜성왕의 정법수레에 비유하여 부처님 교화의 세 가지를 일컫는 신륜身輪ㆍ구륜口輪ㆍ의륜意輪. ② 수미산 아래의 대지 밑에서 사바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풍륜風輪ㆍ수륜水輪ㆍ금륜金輪.
  1015. 1015)칠정七政 : ① 일日, 월月과 오성五星인 화火ㆍ수水ㆍ금金ㆍ목木ㆍ토土. ② 북두칠성.
  1016. 1016)치성광熾盛光 : 치성광여래. 불교에서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1017. 1017)온갖 구멍 : 원문 ‘萬竅’는 『莊子』 「齊物論」에 “저 거대한 흙덩어리인 대지가 기운을 내뿜으면 우리가 그것을 바람이라고 하는데, 이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불었다 하면 만 개의 구멍이 일제히 울부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其名爲風。是唯無作。作則萬竅窺怒呺。)”라는 구절의 의미를 차용한 듯함.
  1018. 1018)옥간玉簡 : 백간白簡. 도교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고하는 문서.
  1019. 1019)동쪽 끝에서~일을 합니다 : 원문 “折玉簡於東極。木宿動精。飛梵字於上方。匠星赴役。”은 신광수申光洙(1712~1775)의 「海南頭輪山大芚寺八相殿鐵鏡樓重修上樑文」(『石北集』 권13)의 “飛梵書於上仙。匠星赴役。折玉簡於東極。木宿動精。”에서 가져온 것이다.
  1020. 1020)사대부四大夫 : 진시황이 소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했던 고사를 인용한 표현으로, 소나무로 만든 네 기둥을 가리킴.
  1021. 1021)상장군上將軍 : 한무제가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비유한 고사를 인용한 표현으로, 측백나무로 만든 들보를 가리킴.
  1022. 1022)공수工倕 : 요堯임금 때의 훌륭한 장인. 『莊子』 「達生」.
  1023. 1023)아랑兒郞 : 아랑위兒郎偉. 상량문에서 시 첫 부분에 쓰는 말. 대개 ‘어기여차’의 뜻으로 봄.
  1024. 1024)마제馬蹄 :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말하는 듯함. 『莊子』 「馬蹄篇」.
  1025. 1025)자감궁紫紺宮 : 자감전紫紺殿. 자줏빛 궁전.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 위에 있는 궁전. 나한전 주련에 “紫紺宮中星若列。十六大阿羅漢衆。”이라 했다.
  1026. 1026)지일遲日 : 봄날을 뜻한다. 『詩經』 「豳風」 ≺七月≻의 “봄날이 더디고 더디다.(春日遲遲)”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1027. 1027)명가鳴珂 : 귀인들이 타는 말에 장식한 옥기를 가리키는데, 악기의 뜻으로도 사용함.
  1028. 1028)육기六氣 : 풍風, 한寒, 서暑, 습濕, 조燥, 화火 등 여섯 가지 기氣를 말한다.
  1029. 1029)요일堯日 : 요堯임금의 해. 태평성대를 가리킴.
  1030. 1030)순풍舜風 : 순舜임금의 바람. 태평성대를 가리킴. 순임금이 궁중에서 거문고를 탔는데, 그 곡조 이름을 후세에 남훈곡南薰曲이라고 이름 지었고, 그 거문고의 화평한 음조로 인해 온 세상 사람이 다 화평한 심정으로 안락한 생활을 즐겼다 한다.
  1031. 1031)탕망湯網 : 탕湯임금이 들에 나가서 그물을 쳐 짐승을 잡는 사람이 사면에 모두 그물을 치고는 상하 사방의 짐승이 모두 나의 그물로 들어오라고 축원하는 것을 보고, 그 삼면에 친 그물을 제거하고는 ‘왼쪽으로 달아날 놈은 왼쪽으로 달아나고 오른쪽으로 달아날 놈은 오른쪽으로 달아나라. 다만 달아나기 싫은 놈만 내 그물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史記』 「殷本紀」.
  1032. 1032)우문禹門 : 우禹임금이 9년 홍수를 다스릴 때 험한 지역을 개척하여 황하黃河의 물을 통하게 했다는 곳인 용문龍門을 말한다.
  1033. 1033)도야桃野 : 동방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조선을 가리킴. 중국 동남쪽에 하늘 높이 치솟은 도도桃都라는 이름의 거목巨木이 있고 그 위에 천계天雞라는 닭이 서식하는데, 해가 떠오르면서 이 나무를 비추면 천계가 울고 그러면 천하의 닭들이 따라 운다는 전설이 있다. 『述異記』.
  1034. 1034)접수鰈水 : 가자미가 많이 잡히는 동해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조선을 가리킴.
  1035. 1035)낙주樂州 : 벌교의 고려 때 명칭. 이후 ‘낙안樂安’으로 불림.
  1036. 1036)부사浮槎 : 낙안의 옛 이름.
  1037. 1037)돌 뗏목(石筏) : 벌교천에 있는 홍교虹橋. 벌교천에 처음엔 뗏목 모양으로 목재 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강물에 휩쓸려 가자 돌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1038. 1038)진나라 채찍 : 진시황秦始皇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했다. 그러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1039. 1039)삼장군과 오대부五大夫 : 삼장군은 측백나무, 오대부는 소나무. 진시황이 봉선을 행하러 태산泰山에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는 그 나무를 오대부에 봉했던 고사가 전하고, 한 무제가 측백나무를 선장군先將軍에 비유했으며, 태산에 여섯 그루를 심었는데 아직도 네 그루가 있다고 한다. “五大夫之秦松……三將軍之漢栢”이란 표현이 본문에 등장한다.
  1040. 1040)안주鴈柱 : 기러기 발 모양의 기둥.
  1041. 1041)범왕梵王 : 범천왕. 호법신의 하나.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왕.
  1042. 1042)추노鄒魯 : 추나라의 맹자孟子와 노나라의 공자孔子.
  1043. 1043)안탑鴈塔 : 절 탑. 인도의 왕사성王舍城에서 승려들이 기러기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희롱하는 말로 “우리들이 배가 고프니, 몸으로 보시하라.”라고 하였더니, 기러기가 스스로 죽어서 떨어졌다. 이에 승려들이 감동하여 기러기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당나라 현장玄奘의 『大唐西域記』 「摩揭陀國」.
  1044. 1044)환퇴桓魋 : 성姓은 상向이므로 상퇴向魋라고도 함. 공자가 송나라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아래에서 예를 익히고 있는데, 환퇴가 공자를 죽이고자 하여 그 나무를 뽑았다고 함.
  1045. 1045)면체綿蕝 : 야외에서 예의를 익히는 것. 면綿은 노끈을 잇고, 체蕝는 띠(茅)를 묶어 위치를 표하는 것으로, 대나무를 죽 이어서 세우고 거기에 띠로 꼰 새끼를 둘러서 존비尊卑의 위차를 표시한 것을 말함. 한고조漢高祖 때 박사博士 숙손통叔孫通이 제자 1백여 인과 함께 야외에서 면체를 베풀고 예를 익혔음. 『史記』 권99 「叔孫通傳」.
  1046. 1046)송현誦絃 : 시가를 송독誦讀함. 예악 교화를 가리킴. 『禮記』 「文王世子」 “春誦夏弦”.
  1047. 1047)건성乾城 : 건달바가 음악과 향기로 허공에 교묘하게 쌓은 성. 공空ㆍ허구ㆍ허망ㆍ일시적 존재 등을 비유함. 건달바乾達婆(ⓢ gandharva-nagara)는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金剛窟에 살며, 제석천帝釋天의 아악雅樂을 맡아보는 신.
  1048. 1048)철산鐵山 : 철위산鐵圍山. 세계의 가장 끝에 있는 산. 철륜위산鐵輪圍山 또는 금강산ㆍ금강위산金剛圍山이라고도 한다.
  1049. 1049)삼신섬 : 삼신산. 신선들이 사는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洲山.
  1050. 1050)은포銀浦 : 달빛이 비쳐서 은빛과 같은 갯물. 은하수를 가리키기도 함.
  1051. 1051)화천貨泉 : 화폐. 왕망王莽 때 만든 화폐의 이름.
  1052. 1052)도인導引 : 고대부터 전해지는 건강 체조를 말한다. 원래 고대의 신선가가 이용하였던 불로장생을 위한 양생법의 하나로, 후에 의사도 치료법으로서 안마와 함께 채용하였다.
  1053. 1053)화학化學 : 여기서는 불로장생의 약으로 믿었던 단丹을 만드는 연단술을 가리킴.
  1054. 1054)황노黃老의 형명刑名 : 황노는 도가에서 시조로 받드는 황제黃帝와 노자. 형명은 형벌과 명분. 『史記』 「韓非列傳」.
  1055. 1055)아랑兒郞의 노래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1056. 1056)왕王 학사學士 : 당나라 한림학사 출신의 왕유王維. 당나라 개원 9년(721)에 진사가 되어 감찰어사監察御使, 좌보궐左補闕, 문부랑중文部郞中 등을 역임했고 안녹산의 난 이후 벼슬을 버리고 산야에 묻혀 불교에 귀의했다. 그가 17세 때 지은 시 ≺9월 9일 산동의 형제를 생각하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가 유명하다.
  1057. 1057)굴屈 대부大夫 : 전국시대 초나라 대부 굴원屈原.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라는 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5월 5일에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 단오의 유래이다.
  1058. 1058)육위부六偉賦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1059. 1059)축융祝融 : 여름을 맡은 신, 또는 남쪽 바다를 맡은 신이나 남방의 신을 가리키는 말.
  1060. 1060)희중曦仲 : 태양의 신. 『書經』 「堯典」에, 희씨羲氏와 화씨和氏 양가의 희중과 희숙羲叔, 화중和仲과 화숙和叔의 네 명이 각각 동남서북의 대지 끝에서 태양의 운행과 춘하추동의 계절을 조정하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
  1061. 1061)망미산 : 보성읍 보성리 동륜마을에 망미산성望美山城이 있었는데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1062. 1062)건도乾道는 원상元象임을 알겠네 : 『周易』 건괘乾卦에 “건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정하다.(乾。元亨利貞。)”라고 하였다.
  1063. 1063)육률六律 : 십이율十二律 중 양성陽聲에 속하는 여섯 가지 소리. 음성에 속하는 소리를 육려六呂라고 하며, 여기서 육률은 육률과 육려를 함께 지칭하는 듯하다.
  1064. 1064)훈지塤箎 : 형제 혹은 친구 사이의 화목과 조화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으로, 『詩經』 「小雅」 ≺何人斯≻의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 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壎。仲氏吹篪。)”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1065. 1065)기수祗樹 : 파사익 왕의 태자였던 기타祗陀가 심은 나무들.
  1066. 1066)유순由旬 : ⓢ yojana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실제 거리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약 8km로 간주함.
  1067. 1067)밖을 감싸고~엎드린 듯합니다 : 봉황이 서식하는 나무가 오동나무이고 동리사를 둘러싼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동리산’이라 불렀으며 둘러싼 주변 산세의 최고점을 봉황의 머리, 즉 ‘봉두산’이라 부른다.
  1068. 1068)혜철 국사慧徹國師 : ‘惠哲’이라고도 함. 자字는 청보淸寶이며, 속성은 박朴씨이고 신라 시대 경주에서 출생하였다. 당나라에 들어가 서당 지장西堂智藏 선사의 법을 이어받았다. 경문왕景文王이 ‘적인寂忍’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東師列傳』.
  1069. 1069)창의倡義 : 대개는 국난을 당하였을 때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권선하여 중수했다’는 의미인 듯함.
  1070. 1070)용과 범이~복종시키는 듯하고 : 「泰安寺鳳瑞庵重剏記」에 “능파각凌波閣이 물 입구에 걸터앉은 것은 용과 범이 서로 건너는 모양이다.(凌波閣之跨乎水口者。所以爲龍虎之相渡。)”라고 했다.
  1071. 1071)삼산三山의 장생長生 : 봉래산蓬萊山ㆍ방장산方丈山ㆍ영주산瀛洲山의 세 산에는 선인들이 살며 불로불사의 약이 있다고 한다.
  1072. 1072)상방上房 : 선종禪宗에서 주지를 일컫는 말. 본디 산상山上의 절을 일컫던 말인데, 주지가 거처하는 곳이 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으므로 훗날 주지를 지칭하는 말로 변하였음.
  1073. 1073)봉서암 : 동리사의 암자. 본문 앞쪽에 「봉두산 동리사 봉서암의 개와 권선문」과 「태안사 봉서암 중창기」가 있다.
  1074. 1074)광자廣慈(864~945) : 법명은 윤다允多, 자는 법신法信. 대안사의 2대조사. 대사의 탑이 950년(광종 1)에 건립되어 태안사에 전한다.
  1075. 1075)각도閣道 : 북두北斗의 축성軸星인데, 임금의 궁宮을 뜻한다.
  1076. 1076)우두牛斗 : 견우성牽牛星과 북두성北斗星. ‘牛頭’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1077. 1077)탐랑貪狼 : 북두칠성의 하나. 추성樞星이라고 부르는데 하늘의 원기에 짝이 된다고 한다. 『五洲衍文長箋散稿』 「옥추경에 대소 두 경이 있다는 변증설」.
  1078. 1078)삼청궁 : 도교에서 신봉하는 옥청원시천존玉淸元始天尊과 상청영보도군上淸靈寶道君, 태청태상노군太淸太上老君의 거처. 『通俗編』 「釋道」.
  1079. 1079)겹눈동자 : 원문 ‘雙瞳’은 ‘重瞳’과 같음. 순 임금과 항우가 겹눈동자였다고 한다.
  1080. 1080)대지전大持殿 : 봉향각奉香閣, 응향각凝香閣. 불전이나 법당을 관리하는 지전持殿 혹은 노전爐殿이 거처하는 곳.
  1081. 1081)석제釋帝 : 욕계 6천의 제2천으로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忉利天의 제왕帝王인 제석천帝釋天을 달리 일컫는 말.
  1082. 1082)기관騎官 위치의 거사車肆 : 기관은 29수 가운데 동방에 있는 저수氐宿 아래에 있는 27개의 붉은 별을 가리킴. 거사는 천시원天市垣에 딸린 별자리 이름으로 수레와 가마 따위의 교통수단을 주관하는데, 여기서는 기관의 아래쪽에 있는 거기車騎나 진거陣車 등의 별자리를 가리키는 듯함.
  1083. 1083)천주天厨 : 대궐의 부엌을 가리키기도 하고 별자리 이름이기도 하다. 별자리로서는 기본적으로 ‘성대한 연회’를 뜻한다.
  1084. 1084)천시天床와 시루市樓 : 천시는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며 하늘나라 임금이 잠을 청하는 침소 별자리를 말하는데, 여섯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시루도 별자리 이름이다.
  1085. 1085)침향(沈水) : 침향나무가 단단하고 무거워서 물에 가라앉는다고 하여 ‘침수’라고 한다.
  1086. 1086)주당周堂 : 점술에서 말하는 흉살凶殺의 일종으로 이사와 신행新行, 가취嫁娶, 안장安葬 등을 꺼림.
  1087. 1087)헌종(재위 809~826) : 헌덕왕을 가리킴. 신라의 제41대 왕.
  1088. 1088)남풍藍風 : 비람풍毘嵐風. ⓢ vairambhaka의 음사이며 신맹迅猛이라 번역. 우주가 성립될 때나 파괴되어 끝날 때, 맹렬하게 휘몰아친다는 폭풍.
  1089. 1089)날아갈 듯하니 : 원문 ‘翬飛’는, 『詩經』 「小雅」 ≺斯干≻에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으며, 꿩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如鳥斯革。如翬斯飛。)”에서 나온 말이다. 주희朱熹의 『詩經集傳』에 “그 동우棟宇가 높게 일어남은 새가 놀라 낯빛이 변함과 같고, 처마가 화려하고 높으며 날아갈 듯함은 꿩이 날아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 대개 그 건물의 아름다움이 이와 같다.(其棟宇峻起。如鳥之驚而革也。其簷阿華采而軒翔。如翬之飛而矯其翼也。蓋其堂之美如此。)”라고 하였다.
  1090. 1090)천풍天風 : 천풍구괘天風姤卦. 오월午月. 5월.
  1091. 1091)천지天地 : 천지비괘天地否卦. 7월.
  1092. 1092)복궤覆簣 : 삼태기 흙을 붓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모아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고, 여기서는 완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1093. 1093)귀부鬼符 : 귀신이 신표로 가지고 다니는 부절符節.
  1094. 1094)부종鳧鍾 : 종을 가리킴. 부씨가 종을 만들었다는 데서 나온 말. 『周禮』 「考工記」 “鳧氏爲鍾”.
  1095. 1095)포뢰蒲牢 : 종을 매다는 용뉴龍鈕. 원래는 용의 셋째 아들인데 고래를 두려워하여 크게 운다고 하여 포뢰의 모습을 종鐘 위에 만들어 놓고 고래의 형상을 종 치는 나무, 즉 당목撞木에 새긴다.
  1096. 1096)하고河鼓 : 별자리. ‘하늘 북’이라는 뜻인데 우수牛宿에 속한다.
  1097. 1097)천부天桴 : 별자리. ‘하늘 북채’라는 뜻인데 우수에 속하며, 북을 두드리는 일과 시간을 알리는 일을 맡는다고 한다.
  1098. 1098)백련사(蓮社) : 진晉의 고승 혜원慧遠이 여산廬山에서 만든 불교 모임.
  1099. 1099)성기암聖祈庵 : 태안사의 암자.
  1100. 1100)손가락 튕기는 : 아래쪽의 ‘하’ 노래에 나오는 망명 보살의 고사를 말하는 듯함.
  1101. 1101)나전羅殿 : 아라한을 모신 나한전羅漢殿을 가리키는 듯함.
  1102. 1102)제망帝網 : 보망寶網, 인다라망因陀羅網. 제석帝釋이 살고 있는 궁전을 덮고 있는 거대한 그물로, 그 마디마디에 달려 있는 무수한 보배 구슬이 빛의 반사로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고, 그 반사가 또 서로를 반사하여 무궁무진하다고 함. 걸림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끝없이 작용하면서 어우러져 있는 장엄한 세계를 비유함.
  1103. 1103)망명罔明 : 초지初地 보살. 분별적 지성을 극복했다는 선종의 불립문자를 상징함. 문수보살이 여러 부처들이 모인 곳에 이르렀을 때, 여러 부처들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직 한 명의 여인만이 석가모니 자리 가까이에서 삼매에 들어 있어서, 문수가 세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세존은 여자를 깨워 삼매의 경지에서 나오게 해서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문수는 여인의 주변을 세 번 돌고서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기고는 신통력을 다하여 깨우려고 했으나 깨우지 못했다. 그러자 세존은 말하길, “설령 수백 수천의 문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여자를 삼매의 경지에서 나오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래로 내려가 12억이라고 하는 갠지스강 모래알의 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면, 이 여자를 삼매에서 꺼낼 수 있는 망명보살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순간 망명 대사가 땅에서 솟아 나와 세존에게 예배를 하였다. 세존은 망명에게 여인을 삼매로부터 꺼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망명이 여인 앞에 이르러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기자, 여인은 바로 삼매의 경지에서 빠져나왔다. 『無門關』 42칙 「女子出定」.
  1104. 1104)칠중七衆 :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일곱 부류의 사람.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예비 비구니)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가리킨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1105. 1105)팔부八部 : 여덟 종의 신장神將. 천天, 용龍, 야차夜叉, 가루라迦樓羅(금시조金翅鳥), 아수라阿修羅, 마후라가摩睺羅迦(음악의 신), 긴나라緊那羅(가무의 신), 건달바乾闥婆(식향食香). 인도에 예로부터 전하여 내려오던 신들 가운데 여덟 신을 하나의 군으로 수용해서 불교의 수호신으로 삼아 조성한 상을 말한다.
  1106. 1106)향적香積 : 중향衆香 나라의 부처 이름. 사찰 음식을 가리킴. 『維摩詰經』 「香積品」.
  1107. 1107)국사局司 : 국사단局司壇. 절의 구역 안을 맡아본다는 신명.
  1108. 1108)운문雲門 : 떡을 말하는 듯함. 어떤 이가 운문에게, 어떤 것이 불조를 초월한 말이냐고 물으니 호떡이라고 답했다. 『碧巖錄』 77칙.
  1109. 1109)용안龍眼과 천근天根이 수북합니다 : 음식을 수북이 진설함을 말함. 용안과 천근은 미상. 원문 ‘釘釘’은 ‘飣飣’의 오자인 듯하다. ‘鬪鬪飣飣’이란 말이 『高峰原妙禪師禪要』 「晚參」에 나옴.
  1110. 1110)토공土公과 사록司祿 : 토공은 북방 벽수壁宿에 속하는 별자리. 사록 성군司祿星君은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남두육성의 하나로서 북방 허수虛宿에 속하는 별자리.
  1111. 1111)사보四輔 : 삼원三垣 가운데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별자리. 천제天帝의 좌우 전후에서 천제를 보좌하는 네 사람의 벼슬아치라는 뜻.
  1112. 1112)삼태三台 : 삼원 가운데 태미원太微垣에 딸린 별자리. 삼공三公, 즉 천제를 보필하는 신하의 역할을 뜻한다.
  1113. 1113)자미원紫微垣 : 동아시아의 별자리인 삼원三垣의 하나이다. 삼원 중 두 번째에 해당되며, 천구의 북극을 포함한다. 서양 별자리에서 큰곰자리의 일부가 해당되며, 작은곰자리, 용자리를 포함한다.
  1114. 1114)제좌帝座 : 삼원 가운데 천시원天市垣에 딸린 별자리. 천제의 자리를 뜻한다.
  1115. 1115)천선天船과 각도閣道 : 천선은 서방 위수胃宿에 속하는 것으로 수로를 잘 통하게 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한다. 각도는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것으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씌워 만든 집 사이의 통로를 뜻한다.
  1116. 1116)문성文星 : 문운文運을 주관하는 별.
  1117. 1117)양문陽門 : 동방 항수亢宿에 속하며, 궁성 동남쪽에 있는 문을 뜻한다.
  1118. 1118)천주天厨와 내계內階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천주는 하늘의 부엌이라는 뜻을 지닌 별자리. 내계는 천황天皇의 뜰에 해당하는 별자리.
  1119. 1119)사보四輔와 여사女史 : 삼원 가운데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1120. 1120)부로附路 :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별자리. 비바람이 몰아치는 재해나 병란으로 인해 은하수 큰길 별자리인 각도閣道로 다니지 못할 경우 이용하는 샛길이다.
  1121. 1121)전사傳舍와 구진句陳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전사는 숙소를 뜻하고, 구진은 천자를 둘러싸 호위함을 뜻함.
  1122. 1122)화개華盖와 음덕陰德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들. 화개는 덮개를 뜻한다.
  1123. 1123)각角ㆍ항亢 : 동방 7수宿에 속하는 별들.
  1124. 1124)천전天田 : 동방 각수角宿 또는 북방 우수牛宿에 속하는 별자리.
  1125. 1125)군문軍門 : 남방 진수軫宿에 속하는 별자리.
  1126. 1126)토사土司 : 외딴 지방. 원元나라 이후 서남 지역의 만족蠻族을 다스리던 지방관으로 그 지역민들의 회유 수단으로 그들의 추장들을 임명하여 세습시켰음. 전하여 만족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음. 토사공土司空일 수도 있음. 토사공은 진수軫宿에 속하는 별자리.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토사공도 있다.
  1127. 1127)항지亢池 : 동방 저수氐宿 중에 속하는 것으로 현재 목동자리의 일부임.
  1128. 1128)고루庫樓 : 동방 각수角宿에 딸린 별자리 이름. 병거兵車와 무기를 보관하는 곳을 상징한다.
  1129. 1129)옛 길상사 : 송광사의 창건 당시 이름이 길상사였다.
  1130. 1130)태미원(太微) : 별자리 이름.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궁정으로, 5제가 거처하고, 12제후의 부서가 됨, 따라서 명령을 정비하고 집행함.
  1131. 1131)주정周鼎 : 동방 각수角宿의 제일 위쪽에 있는 세 개의 별. 천하 패권을 차지하는 천자의 상징.
  1132. 1132)섭제攝提 : 대각大角 별자리 양 옆에 세 개씩 짝지어 대각을 보좌하는 별자리.
  1133. 1133)팔곡八穀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현재의 마차부자리, 기린자리, 살쾡이자리의 일부에 걸쳐 있음.
  1134. 1134)우화각(羽化虹) : 송광사 육감정 옆에 놓인 교각. 우화란 말은 우화등선의 줄임말이고, 홍虹은 무지개 모양의 다리를 뜻함.
  1135. 1135)천진天津 : 북방 여수女宿에 속하는 별자리. 하늘 나루터라는 뜻.
  1136. 1136)금천씨金天氏 : 김씨. 신라인들은 스스로를 황제黃帝의 아들인 소호少昊 금천씨의 후손으로 여겼다는 기록이 『三國史記』 「金庾信列傳」에 전한다.
  1137. 1137)선류璿流 : 선원璿源으로부터 흘러내려 오는 줄기, 즉 왕손王孫이라는 뜻.
  1138. 1138)갑주甲胄 : 갑옷과 투구. 여기서는 삼한을 지탱하고 보호하는 큰 성씨라는 뜻으로 사용됨.
  1139. 1139)옥부玉府 :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비옥한 토지를 뜻한다.
  1140. 1140)정관丁冠 : 미상인데 정자관程子冠이 아닐까. 정자관은 사대부들이 쓰던 관모의 하나로, 서당의 훈장들이나 양반들이 평상시 집에서 썼다.
  1141. 1141)사주泗州(사천)의 직함 : 시주자인 김학모金學模가 사천泗川 군수이다.
  1142. 1142)소 덮을 : 원문은 ‘蔽牛’. 소를 가릴 만큼 큰 나무를 말한다. 『莊子』 「人間世」에 “장석이 제나라로 가는 길에 곡원에 이르러 사당의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그늘이 소 수천 마리를 가릴 수 있었고 둘레는 백 아름이나 되었다.(匠石之齊。至於曲轅。見櫟社樹。其大蔽數千牛。絜之百圍。)”라고 하였다.
  1143. 1143)우림羽林 : 북방 실수室宿에 속한 별자리.
  1144. 1144)부월斧鉞 : 도끼. 부월鈇鉞은 실수에 속한 별자리.
  1145. 1145)괴강魁罡 : 북두칠성의 제1성인 두괴斗魁와 천강성天罡星을 합칭한 말이다. 여기서는 괴강살魁罡殺을 뜻함.
  1146. 1146)천혼天溷 :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것으로 현재 고래자리의 일부임.
  1147. 1147)천시天市 : 북극을 중심으로 중앙에 있는 삼원三垣의 하나로서, 하늘의 도시라는 뜻이다. 태미원太微垣과 마찬가지로, 황도黃道가 천시원의 바로 남쪽을 지난다. 봄과 여름에 잘 보이는 별자리이다.
  1148. 1148)종정宗正 : 천시원天市垣에 속하는 별자리. 왕실의 친인척을 관리하는 벼슬을 뜻한다.
  1149. 1149)신궁神宮 : 동방 미수尾宿에 속하는 별자리.
  1150. 1150)미축未丑 : 미는 남서에서 남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고, 축은 반대로 동북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다.
  1151. 1151)을신乙辛 : 을은 정동에서 남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고, 신은 반대로 정서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이다.
  1152. 1152)동정東井 : 남방에 속하는 별자리 정수井宿는 동쪽 우물이라는 뜻으로 ‘동정’이라 불린다.
  1153. 1153)서함西咸 : 동방 방수房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방수의 서쪽 사립문에 해당한다.
  1154. 1154)토공土公이 사록司祿 : 토공은 북방 벽수壁宿에 해당하고, 사록은 북방 허수虛宿에 속하는 별자리.
  1155. 1155)여석礪石 : 서방 묘수昴宿에 속하는 별자리로서 숫돌이라는 뜻이다.
  1156. 1156)제방을 나열하니(羅堰) : 원문 ‘羅堰’은 북방 우수牛宿에 속하는 별자리이기도 하다.
  1157. 1157)장원長垣과 영대靈臺 : 장원은 태미원에 속하며 장성이라는 뜻이고, 영대도 태미원에 속하며 천문대를 뜻한다.
  1158. 1158)소미小微 : 태미원에 속하며 옛날 사대부를 뜻한다.
  1159. 1159)9깃발 : 휘호徽號나 등급의 다름을 표시하기 위한 아홉 가지 종류의 깃발로, 상常, 기旂, 전旜, 물物, 기旗, 여旟, 조旐, 수旞, 정旌 등을 말한다.
  1160. 1160)도사屠肆와 명당明堂 : 도사는 삼원 가운데 천시원에 속하며 정육점이라는 뜻이고, 명당은 태미원에 속한다.
  1161. 1161)태존太尊 : 자미원에 속하며 임금의 친척을 뜻한다.
  1162. 1162)천폭天幅 : 동방 저수氐宿에 속하는 별자리.
  1163. 1163)삼기叅旗 제왕諸王 : 삼기는 서방 삼수參宿에 속하는 별자리이고, 제왕은 서방 필수畢宿에 속하는 별자리.
  1164. 1164)부이附耳하여 권설卷舌 : 부이는 귀에 가까이 소곤거린다는 뜻인데 서방 필수畢宿에 속하고, 권설은 혀를 만다는 뜻으로 놀라서 말을 못하는 모습인데 서방 묘수昴宿에 속하는 별자리이다.
  1165. 1165)천가天街 : 서방 필수에 속하는 별자리.
  1166. 1166)거기車騎 : 동방 저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기마 부대를 이끄는 장군을 뜻한다.
  1167. 1167)돈완頓頑하고 절위折威 : 돈완은 동방 항수亢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감옥의 간수를 뜻하고, 절위는 항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죄인을 처벌하여 위엄을 세운다는 뜻이다.
  1168. 1168)주기酒旗가 천준天樽 : 주기는 남방 유수柳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주막 깃발을 뜻하고, 천준은 남방 정수井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술)동이를 뜻한다.
  1169. 1169)헌원軒轅의 기관騎官 : 헌원은 남방 성수星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황제黃帝를 가리키고, 기관은 동방 저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병사를 뜻한다.
  1170. 1170)천부天桴가 하고河鼓 : 둘 다 북방 우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부는 북채, 하고는 북을 뜻함.
  1171. 1171)뇌전雷電의 벽력霹靂 : 뇌전은 북방 실수室宿에 속한 별자리로 번개를 뜻하고, 벽력은 북방 벽수壁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둥을 뜻한다.
  1172. 1172)천사天社의 천창天倉 : 천사는 남방 귀수鬼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음식 준비하는 곳이고, 천창은 서방 누수婁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창고를 뜻한다.
  1173. 1173)구령鈎鈴의 대약大鑰 : 구령은 동방 방수房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열쇠를 뜻하고, 대약은 큰 자물쇠라는 뜻이다.
  1174. 1174)기부器府 : 남방 진수軫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병기를 관리하는 관청을 뜻한다.
  1175. 1175)별鱉 : 북방 두수斗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자라를 뜻한다.
  1176. 1176)천강天江 : 북방 실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하늘의 강을 뜻한다.
  1177. 1177)어魚 : 동방 미수尾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물고기를 뜻한다.
  1178. 1178)거사車肆 : 천시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수레를 팔고 수리하는 가게를 뜻한다.
  1179. 1179)관삭貫索 : 천시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동전 꿰는 끈을 뜻한다.
  1180. 1180)호분虎賁 : 태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의 친위대 대장을 뜻한다.
  1181. 1181)연도輦道 : 북방 우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가마가 가는 길을 뜻한다.
  1182. 1182)상서尙書 : 자미원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의 비서관을 뜻한다.
  1183. 1183)천칭궁天秤宮 : 별자리에서, 황도黃道 12궁의 일곱째인 처녀자리의 위치.
  1184. 1184)토사공土司空 : 서방 규수奎宿에 속하는 별자리로 토목 공사 담당 관리를 뜻한다.
  1185. 1185)필畢ㆍ자觜ㆍ삼參 : 서방 7수宿에 속하는 별자리들.
  1186. 1186)53존 : 53존불. 『觀藥王藥上二菩薩經』에 53불佛이 나오는데, 이 53불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곳마다 시방의 여러 부처님을 만날 수 있고,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 사중四重 오역죄五逆罪가 없어져서 깨끗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 유점사에 53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1187. 1187)금오金烏는 함지로 : 금오는 태양의 이명異名이다. 태양 속에 발 세 개가 달린 까마귀가 있다는 전설에 기인한 것이다. 함지는 해가 멱 감는다는 하늘 위의 못으로 해가 지는 곳, 즉 서쪽 바다를 뜻한다. 『淮南子』 「天文訓」.
  1188. 1188)이궁離宮 : 북방 실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의 별장을 뜻한다.
  1189. 1189)천강天綱 : 북방 실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천제가 사냥 가서 세우는 천막을 뜻한다.
  1190. 1190)탐랑성貪狼星 가에 각角ㆍ항亢 : 탐람성은 북두칠성의 첫째 별. 각ㆍ항은 동방 7수에 속하는 별들.
  1191. 1191)비비상천 :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處天. 무색계 가운데 가장 높은 곳.
  1192. 1192)말 하나 : 원문은 ‘一馬’. 『莊子』 「齊物論」에 “손가락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만 같지 않고, 말을 가지고 말이 말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 말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만 같지 않으니, 하늘과 땅은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以指喩指之非指。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以馬喩馬之非馬。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라는 말이 나온다.
  1193. 1193)풍륜風輪 : 수미산 둘레에 있는 구산팔해九山八海와 사주四洲 밑에는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세 원통형의 층層이 있는데, 위층을 금륜金輪, 중간층을 수륜水輪, 아래층을 풍륜이라 함.
  1194. 1194)점대漸臺 : 북방 우수에 속하는 별자리로 은하수의 누각을 뜻한다.
  1195. 1195)구신九辰 : 북두칠성 가운데 제6 무곡성 주변의 별 두 개인 내필성內弼星과 외보성外輔星을 합쳐 이르는 말.
  1196. 1196)천음天陰 : 서방 묘수昴宿의 별자리로 저녁 노을과 밤하늘을 뜻한다.
  1197. 1197)순씨荀氏 팔룡八龍 : 한나라 말엽 순숙荀淑이 낳은 여덟 명의 훌륭한 아들을 일컬음. 그중 순곤荀緄은 제남상濟南相을 역임했고, 조조曹操를 보필한 순욱荀彧을 낳았다.
  1198. 1198)주공周公 구령九齡 : 장수함을 뜻함. ‘주공’은 주나라의 오기인 듯함. 『禮記』 「文王世子」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문왕이 무왕에게 말하기를 “너는 무슨 꿈을 꾸었느냐?”라고 하니, 무왕이 답하기를 “꿈에 천제께서 저에게 구령을 주셨습니다.”라고 했다. 문왕이 “너는 그것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니 무왕이 “서방에 아홉 나라가 있으니 군왕께서 마침내 진무鎭撫하실 듯합니다.”라고 했다. 문왕이 “아니다. 옛날에는 나이를 령齡이라 말했으니 이(齒)도 또한 령이다. 내 수명은 100세이고 네 수명은 90세니 내가 너에게 세 살을 주겠다.”라고 하였다. 문왕은 97세에 임종하고 무왕은 93세에 임종하였다.
  1199. 1199)장사촌長沙村(沙邨) : 묵암은 전라도 흥양현興陽縣 장사촌 출신이다.
  1200. 1200)영천암靈泉庵 : 순천 대광사의 암자. 응암應庵이 26세 때인 계해년(1743) 봄에 (순천) 대광사大光寺 영천암에서 풍암楓岩의 강헌講軒을 다시 따랐고 묵암이 동일한 장소에서 법당法幢을 세웠다는 기록이 본문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에 있다.
  1201. 1201)설산雪山 : 곡성 옥과면 설옥리에 있는 산.
  1202. 1202)인초忍草 : 『緇門警訓』에 ‘雪山忍草’라는 표현이 있다.
  1203. 1203)묘길상(문수보살)의 유허 :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1204. 1204)강선대降仙臺에 바둑바위(碁嵓) : 동악산 정상 부근 신선바위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놀던 자리라고 전한다.
  1205. 1205)욕불浴佛 : 부처님 오신 날에 향을 넣어 달인 물을 불상의 머리부터 끼얹어 씻기는 일.
  1206. 1206)누청樓廳 : 돌출한 누각.
  1207. 1207)보제루普濟樓(普樓) : 보제루는 도림사의 강당으로서, 계곡을 끼고 높은 축대를 따라 들어서 있다.
  1208. 1208)오십전五十殿 : 불조전. 과거 7불과 미래 천불의 불조인 53불을 모셨다.
  1209. 1209)삼신三身 : 불신을 세 가지 종류로 표현한 교리. 즉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
  1210. 1210)갑경甲庚 : 갑은 정동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경은 이와 반대로 정서에서 15도 남쪽으로 치우친 방향.
  1211. 1211)백열栢悅 : ‘송무백열松茂栢悅’의 준말로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동료가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1212. 1212)거령巨靈 : 물의 신. 고려 이인로李仁老의 시 ≺穿石≻에서 거령이 청산을 쪼갰다고 했다. “巨靈含意擘靑山。蓬島樓臺第幾間。”
  1213. 1213)반般ㆍ수倕 : 노魯나라 목수장인 공수반公輸般과 요임금 때의 공수工倕.
  1214. 1214)연도輦道 : 우수牛宿. 직녀성職女星의 서쪽에 있는 오성五星.
  1215. 1215)장성匠星을 다리~거울에 빠지고 : 이 부분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의 「廣寒殿白玉樓上樑文」에서 인용한 것이다. 조금 표현을 달리한 부분이 있으니,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囚匠星於屋底。木宿掄材。壓鐵山於楹間。金精動色。坤靈揮鑿。騁巧思於般倕。大冶鎔鑪。運奇智於錘範。靑赮垂尾。雙虹飮星宿之河。赤霓昂頭。六鼇戴蓬萊之島。璇題燭日。出彤閣於煙中。綺綴流星。架翠廊於雲表。魚緝鱗於玉瓦。雁列齒於瑤階。微連捧旂。下月節於重霧。鳧伯樹纛。設蘭幄於三辰。金繩結綺戶之流蘇。珠網護雕欄之阿閣。仙人在棟。氣吹彩鳳之香臺。玉女臨窓。水溢雙鸞之鏡匣。”
  1216. 1216)연하鷰賀 : 축하한다는 뜻. 『淮南子』 「說林訓」에 “목욕할 채비가 갖추어지면 이들이 서로 슬퍼하고, 큰 집이 이루어지면 제비와 참새들이 서로 축하한다.(湯沐具而蟣蝨相弔。大厦成而燕雀相賀。)”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본디 제비와 참새가 사람의 집을 자기들의 깃들 곳으로 삼아 서로 축하한다는 뜻에서, 흔히 남이 새로 집을 지은 것을 축하하는 말로 쓰이며, 또는 일반적인 축하의 뜻으로도 쓰인다.
  1217. 1217)봉의鳳儀 : 순임금이 소韶 음악을 연주하자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일을 가리킴.
  1218. 1218)학의 등 : ‘학이 그려진 쟁반 위’라는 뜻으로 보임.
  1219. 1219)용의 눈 : 용의 눈이 그려진 술잔인 듯함.
  1220. 1220)수행승 : 원문 ‘三三’은 ‘前三三後三三’의 준말인 듯함.
  1221. 1221)곤어 : 북쪽 바다에 사는 곤어는 크기가 몇천 리나 되는데 새로 탈바꿈하면 붕새가 되어 남쪽 바다로 날아간다고 한다. 『莊子』 「逍遙遊」.
  1222. 1222)추극樞極 : 두추斗樞와 북극성. 두추는 북두칠성의 첫째 별이며 천구天樞라고 한다.
  1223. 1223)천이통天耳通 :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불가사의하고 자유자재한 능력.
  1224. 1224)기야祗夜 : ⓢ geya. 중송重頌, 응송應頌.
  1225. 1225)관리와 유자들 : 원문은 ‘縉紳章甫’. 진신縉紳은 관리들이 허리띠에 꽂는 홀과 띠를 말하고, 장보章甫는 유자들이 쓰던 관.
  1226. 1226)장석匠石 : 고대의 유명한 장인匠人. 『莊子』 「人間世」.
  1227. 1227)낭간琅玕 : 청녹색의 비취. 여기서는 기둥을 가리킴.
  1228. 1228)오대부五大夫 : 진시황秦始皇이 봉선을 행하러 태산泰山에 올라갔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는 그 나무를 오대부에 봉했던 고사가 전한다. 『史記』 「秦始皇本紀」.
  1229. 1229)여우 자취 : 의심 많은 여우가 확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비유하는 듯함.
  1230. 1230)거북 수명 : 원문은 ‘龜齡’. 장수를 뜻함.
  1231. 1231)사마司馬 : 송태회宋泰會(1872~1942)를 가리킴.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고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 16세 때 형 재회在會와 함께 최연소로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동몽진사童蒙進士’로 불렸다. 시문詩文과 서예에 뛰어났고 『매일신보』 기자로 잠시 활동하였다. 한일 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 능주, 순천, 고창 등에서 한문과 서화 등을 가르쳤다.
  1232. 1232)까마귀 쫓는(驅烏) : 구오驅烏 사미. 음식을 보고 날아드는 까마귀나 쫓는 일을 맡았다고 하여 7세에서 13세에 이르는 사미를 가리키는 말.
  1233. 1233)풍습風濕 : 습한 곳에서 사는 까닭으로 습기를 받아서 뼈마디가 저리고 아픈 병.
  1234. 1234)육족六足 : 말과 마부.
  1235. 1235)면절綿蕞 : 야외에서 예禮를 익히기 위해 띠(茅)를 베어 묶어서 죽 늘어세워 존비尊卑의 차례를 표시한 것을 가리키는데, 한고조漢高祖 초기에 숙손통叔孫通이 이 방법을 통하여 조정의 의례를 새로 제정했던 데서 온 말이다. 절蕞은 절蕝과 같다. 면綿은 면으로 만든 끈을 설치해서 연습하는 곳을 만든 것이고, 절蕞은 대나무를 세우고 띠를 세워서 존비의 차례를 만든 것이다. 『歷代史選』 권6 「漢紀」.
  1236. 1236)용운龍雲(1813~1888) : 법명은 처익處益. 송광사를 중창한 승려.
  1237. 1237)송광사에 있는 용운대종사비에는 당시 주지 직임을 맡은 율암 찬의栗庵讃儀가 지은 「重修陰記」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금명 보정은 글씨를 썼는데 “자헌대부 겸법종찰선의 승종찰도섭리 금명보정 서資憲大夫兼法宗刹禪議僧宗刹道攝理錦溟寶鼎書”라 하였다.
  1238. 1238)불행과 행복 : 원문 ‘丕泰’는 『周易』의 비괘와 태괘를 가리킴.
  1239. 1239)중창한 공업 : 송광사는 1842년(헌종 8) 낙하당落霞堂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과 소장품들이 소실되었다. 이듬해 기봉奇峰과 용운이 대웅전과 명부전ㆍ응향각凝香閣ㆍ법왕문法王門 등을 차례로 중건하였는데, 1856년(철종 7)까지 14년이 걸렸다. 그 뒤 율암栗庵이 1924년에서 1928년 사이에 용화당龍華堂과 명성각明星閣ㆍ사감고寺監庫ㆍ장탄문墻坦門 등을 신축, 증축하였다.
  1240. 1240)조 공趙公 : 조성희趙性喜. 고종 때에 동복 현감同福縣監, 임실 현감任實縣監, 태인 현감泰仁縣監, 옥천 군수沃川郡守, 무주 부사茂朱府使 등을 지냈다. 비문에 ‘통훈대부 행무주부사 적상진 수성장 겸토포사 함안 조성희通訓大夫行茂朱府使赤裳鎭守城將兼討捕使咸安趙性喜’라 하였다. 『梅泉集』에 교유시와 만시가 보인다.
  1241. 1241)율암栗庵 : 율암 찬의栗庵讃儀(1867~1929). 범해梵海 선사의 제자.
  1242. 1242)남포藍浦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이곳의 벼룻돌이 특산물일 정도로 좋은 돌이 많은 곳이다.
  1243. 1243)조종현趙鍾鉉 : 조경한趙擎韓(1900~1993). 본관은 옥천玉川이고 이명은 안훈安勳ㆍ안일청安一靑ㆍ조종현이며 호는 백강白岡이다. 전라남도 순천 출생의 독립운동가이다. 선암사 출신인 조종현趙宗玄(1906~1989)과는 다른 인물이다.
  1244. 1244)서신書紳 : 큰 띠에 적는다는 뜻으로 잊지 않겠다는 의미. 『論語』 「衛靈公」에 자장子長이 공자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커다란 띠에 기록하였다는 것에서 유래함.
  1245. 1245)형체 바깥의 친분 : 외형적인 것은 상관하지 않고, 서로 마음으로써 사귐을 말함. 망형지교忘形之交.
  1246. 1246)이포伊蒲 : 이포새伊蒲塞의 준말인 듯함.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승려.
  1247. 1247)도 군陶君 : 도굉경陶宏景을 가리킴. 남북조시대 사람. 제齊 고제高帝의 부름에 답한 시 ≺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이 있다. 홍경弘景이라고도 함. 『南史』.
  1248. 1248)전별電別 : 뇌봉전별雷逢電別. 갑자기 벼락처럼 만나고 곧 번개처럼 헤어진다.
  1249. 1249)옥대玉帶 풀어 산에 머무는 : 원문은 ‘玉帶鎭山’. 요원 불인了元佛印 선사가 금산사를 찾아온 소동파에게 말하기를, 일전어一轉語에 대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학사의 몸에 띤 옥대를 풀어 산문山門에 두라고 했다. 『金山志』.
  1250. 1250)거듭(圭復) : 원문 ‘圭復’은 백규白圭를 삼복三復한다는 뜻으로, 가슴에 새기며 재차 반복해 읽는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抑≻에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尙可磨也。斯言之玷。不可爲也。)”라고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자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南容三復白圭。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하였다.
  1251. 1251)이자伊字 : 범어梵語의 ‘∴’ 자.
  1252. 1252)화장세계 : 연화장세계. 우주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정토. 이 부처는 천 개의 잎을 가진 연화좌蓮華座에 앉아 있는데, 그 잎 낱낱은 낱낱의 세계를 상징하며, 그 낱낱의 세계에 100억 국토가 있고 그 국토에 보신불報身佛이 출현한다고 함.
  1253. 1253)이씨(仙李) : 노자老子가 이수李樹 아래에서 태어나서 성을 이李로 했다는 전설이 있는데, 당나라 왕실에서 노자의 후손이라고 자처하였으므로 그 종족을 선리라고 지칭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1254. 1254)태백太白 :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자.
  1255. 1255)통명산 : 용운 처익의 조부가 곡성 통명산 아래 용계촌으로 옮겨 거주한 것을 말한다.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조.
  1256. 1256)팔도(八垓)를 바로잡으며 : 용운의 직책 가운데 일부인 ‘교팔도규정승풍敎八道糾正僧風’을 언급한 것이다.
  1257. 1257)교종을 일으켜 세우고 : 용운의 직책 가운데 일부인 ‘부종수교扶宗樹敎’를 언급한 것이다.
  1258. 1258)소밀酥蜜 : 우유와 꿀을 섞은 것.
  1259. 1259)패영貝瀛의 마을 : 꼬막이 많이 나는 벌교를 가리키는 듯함.
  1260. 1260)규정癸丁 : 규는 정북에서 동으로 15도 기운 방향, 정은 반대로 정남에서 서로 15도 기운 방향.
  1261. 1261)을신乙辛 : 을은 정동에서 15도 남쪽으로 기운 방향, 신은 반대로 정서에서 북으로 15도 기운 방향.
  1262. 1262)대성전大成殿 : 문묘 안에 있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전각.
  1263. 1263)상재庠齋와 서재序齋 : 상재는 성균관을 뜻하는데 문맥상 성균관의 동재와 서재를 가리키는 듯함. 동재는 강당이고 서재는 기숙사이니 동재는 선당, 서재는 승당에 비유할 만하다.
  1264. 1264)복궤覆簣 : 삼태기로 흙을 날라 쌓는다는 뜻인데 일을 마친다는 의미로 사용함.
  1265. 1265)노인성 :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수명을 관장함.
  1266. 1266)후삼삼後三三 : 당나라 무착無着 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오대산에 갔다가 어떤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대중이 몇이나 되냐고 묻자, 노인이 ‘前三三後三三’이라 답하였다. 여기서는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사용함.
  1267. 1267)추성樞星 : 북두칠성의 머리 쪽에 있는 네 개의 별 가운데 첫째 별.
  1268. 1268)원형元亨 : 원형이정元亨利貞. 『周易』 「乾卦」에 나오는 사덕四德. 원元은 만물이 처음 태어나는 것으로, 봄에 해당된다. 형亨은 만물이 성장하는 것으로, 여름에 해당된다. 이利는 만물이 성숙하는 것으로 가을에 해당한다. 정貞은 만물이 수렴되는 것으로 겨울에 해당한다.
  1269. 1269)수용受用 : 삼신三身의 하나. 수용신에는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이 있다. 자수용신은 다른 보살이 보고 들을 수 없는 불신佛身으로서, 자기가 얻은 법락法樂을 자기만이 즐겨 하는 몸이요, 타수용신은 십지十地의 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이 볼 수 있고, 자기가 받는 법락을 다른 보살에게도 주는 불신이다. 이를 법신法身ㆍ응신應身에 배당하여 자수용신을 법신, 타수용신을 응신이라 하고, 또는 2신身을 모두 보신이라 하는 등 여러 학설이 있다. 『攝大乘論』에, “수용신이란 제불諸佛이 갖가지 국토國土와 보살대중의 법회에 현현하는 불신으로서, 그것은 법신을 의지依止로 삼는다. 그리하여 제불의 청정불토淸淨佛土와 대승의 법락法樂을 수용하는 인因이 된다.”라고 하였다.
  1270. 1270)의정依正 :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부처나 중생의 몸이 의지하고 있는 국토와 의식주 등을 의보, 과거에 지은 행위의 과보로 받은 부처나 중생의 몸을 정보라고 함.
  1271. 1271)종찰種刹 : 종족과 찰토, 즉 국토.
  1272. 1272)보화報化 : 보신報身(수용受用)과 화신化身.
  1273. 1273)경술년(1910) 봄에~방장으로 이안하니 : 본문 「칠전의 동쪽 방장이 고금에 이름이 다름에 대한 변증」에 같은 내용이 기유년(1909)의 일로 기재되어 있다.
  1274. 1274)이설월李雪月 : 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동국대학교의 전신으로 1906년에 개교한 명진학교明進學校 2회 졸업생.
  1275. 1275)김율암金栗庵 : 율암 찬의栗庵讃儀(1867~1929). 범해梵海 선사의 제자.
  1276. 1276)해은 재선海隱栽善 : 금명 보정에게 수업을 받은 승려. 법명은 오천梧泉, 이름은 재선栽善.
  1277. 1277)쌍향수雙香樹 : 송광사 천자암에 1세 보조국사와 9세 담당국사湛堂國師가 꽂은 향나무 지팡이가 자라서 두 그루 향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88호.
  1278. 1278)칠요七曜 : 일日, 월月 및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의 다섯 별.
  1279. 1279)만홀萬笏 청산 : 온 산이 홀笏(관리가 임금 앞에 조회할 때 들던 수판手板)을 세운 듯하다는 뜻.
  1280. 1280)삼재三災 : 도병재刀兵災ㆍ질역재疾疫災ㆍ기근재飢饉災와 세계를 파계破戒하는 수재水災ㆍ화재火災ㆍ풍재風災.
  1281. 1281)팔난八難 : 부처를 볼 수 없고 불법을 들을 수 없는 여덟 가지 곤란. 곧 지옥, 축생, 아귀, 장수천長壽天, 귀머거리와 장님, 정토의 변지邊地, 세지변총世智辯聰, 불전불후佛前佛後.
  1282. 1282)학수鶴樹 : 부처님께서 북인도의 구시라拘尸羅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물가의 사라수 여덟 그루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자리를 깔고 열반에 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서 그것을 학림鶴林 또는 학수라 한다.
  1283. 1283)용화龍華 : 용화수龍華樹. 미래에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3회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1284. 1284)겁운刼運 : 재앙이 낀 운수.
  1285. 1285)혜린慧璘 : 신라 법흥왕 원년에 혜린 선사가 사찰을 지었다고, 본문 「조계산 국사전의 중창에 따른 상량 명과 서문」에 기재되어 있다.
  1286. 1286)용화회龍華會 : 미륵이 도솔천에서 이 세상에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 후에 행하는 설법 모임.
  1287. 1287)나무 매 : 보조 선사가 나무로 만든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한 마리가 추월산에 내려앉아 암자를 짓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1288. 1288)위사韋史 : 신석희申錫禧(1808~1873)의 호. 1848년(헌종 14) 5월 증광시增廣試 병과 급제. 1850년(철종 1) 3월 18일 황해도 암행어사로 김상우 등을 탄핵하고, 규장각직각ㆍ도청응교都廳應敎 등을 역임하였으며, 1854년에는 순천 부사로서 수재 피해 수습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松廣寺之』 부록 「題詠」 편에 천자암 찬시가 실려 있다.
  1289. 1289)향나무 매화 아이 : 홍석주가 송광사에 갔을 때 관음전 기둥 위에 아이 모양의 나무 조각이 있길래 물어보니, 1797년의 일이라고 하면서 승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삼청각에 화재가 났으나 승려들은 잠이 들어 모르던 차에 마당에서 불이 났다는 외침이 들렸다. 승려들이 나가 보니 아이가 외치면서 관음전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화재를 진압하고 이를 기이하게 여겨 향나무로 동자상을 만들어 봉안했다. 이 무렵 선암사에도 화재가 났는데 그 말을 듣고 동자상을 선암사로 가져갔다. 그러자 동자가 꿈에 나타나 자신을 돌려다 놓으라고 했고, 선암사에는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영험이 없다고 생각한 선암사 승려들이 동자상을 계곡에 버렸고, 동자상 꿈을 꾼 송광사 승려들이 동자상을 찾아 나한전 처마 사이에 봉안하였다. 이 상을 ‘매산梅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淵泉翁遊山錄」.
  1290. 1290)연천淵泉 : 홍석주洪奭周(1774~1842)의 호.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백成伯. 약관에 모시毛詩ㆍ경례經禮ㆍ자사子史ㆍ육예백가六藝百家의 글을 모두 읽어 일가를 이루었다. 충청도 관찰사를 지낼 무렵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淵泉翁遊山錄」 현판이 송광사 우화각에 있고, 문집에는 이와 다른 「松廣遊記」가 있다.
  1291. 1291)지팡이 던져~선비화仙扉花에서 증명되고 : 의상 대사가 부석사에 꽂은 지팡이가 나무 선비화로 자라났다고 한다.
  1292. 1292)먹은 것을~오어사吾魚寺에서 징험되었도다 : 혜공 선사와 원효 대사가 깨달음을 겨루기 위해 물고기를 각각 잡아먹었다가 다시 살려 내는 내기를 했다. 그러나 살아난 고기가 한 마리밖에 없자 두 스님이 ‘나의 고기(吾魚)’라고 말한 데서 사찰명이 유래되었다.
  1293. 1293)주먹 펴는~인연을 고하리오 : 옛날 어떤 비구가 법화경을 외는데 항상 ‘애체靉靆’ 두 글자를 잊었다. 스승이 말하길, 네가 전생에 법화경을 수지할 때 이 두 글자가 좀먹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傳燈錄』에 25조 사야다가 항상 왼손을 주먹 쥐고 있다가 사자존자를 뵙고는 주먹을 펼치자 구슬이 있었고, 사자가 숙세 인연을 말하고 출가를 권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먹 펴기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인연이 없어서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에 나온다.
  1294. 1294)진나라 채찍 : 진시황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하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1295. 1295)결묵結墨 : 재목을 다듬을 때 먹으로 치수를 표시하는 일.
  1296. 1296)병丙 : 정남에서 동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1297. 1297)임壬 : 정북에서 서로 15도 치우친 방향.
  1298. 1298)갑甲 : 정동에서 북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1299. 1299)경庚 : 정서에서 남으로 15도 치우친 방향.
  1300. 1300)칠살七殺 : 십간 오행의 일곱 번째는 각각 양은 양의 극, 음은 음의 극이 되는 작용이다.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에는 각각 음양이 있고, 갑甲에서 계癸에 이르는 열 종류의 간干은 모두 이들 오행의 어느 것인가에 소속이 되는데, 예를 들어 갑목甲木은 무토戊土를 목극토木剋土로 극하고 을목乙木도 기토己土를 마찬가지로 극한다. 그리고 무토에서 차례로 헤아려 일곱 번째의 갑이 양은 양의 극, 기토에서 헤아려 을목은 일곱 번째의 음끼리의 극이 된다. 10간은 각각 일곱 번째의 간에서 극을 받는 상이 되며 이것을 일컬어 칠살이라 한다. 고독, 박명, 색난, 실권, 병재, 이별의 일곱 가지 흉의를 내포하므로 칠살이라 부름.
  1301. 1301)술해戌亥 : 술은 정서에서 30도 북으로 치우친 방향이고, 해는 정북에서 서로 30도 치우친 방향.
  1302. 1302)축인丑寅 : 축은 정북에서 동으로 30도 치우친 방향이고, 인은 정동에서 30도 북으로 치우친 방향.
  1303. 1303)보림寶林 : ‘보배 숲’이란 뜻으로 육조대사 혜능이 조계曹溪에 지어서 36년 동안 가르침을 편 사찰명이기도 하다.
  1304. 1304)난亂 : 마무리. 초사楚辭의 종장終章이 ‘난왈亂曰’로 시작하는 데서 유래함.
  1305. 1305)육위六偉 : 상량할 때 부르는 노래. 동ㆍ서ㆍ남ㆍ북ㆍ상ㆍ하로 여섯 번 ‘아랑위兒郞偉’라는 말이 들어간다.
  1306. 1306)자음당慈陰堂 : 국사전의 이칭. ‘자음’은 16국사의 은덕을 뜻함.
  1307. 1307)행해당行解堂 : 본문 「행해당을 중건하는 화문」에 위대한 왕사王師 세 분의 진영이 있는 충사忠祠로 소개되었다.
  1308. 1308)보현동자 : 보현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
  1309. 1309)병정봉 : 조계산의 봉우리. 높이 532미터.
  1310. 1310)황제 같은 봉우리 : 조계산 제자봉帝字峯.
  1311. 1311)황노黃老는 어이타 목서木犀를 묻는가 : 송나라 문인 황정견黃庭堅이 황룡 회당黃龍晦堂 선사에게 법을 물었더니, 선사는 “목서 꽃의 향기를 맡았는가?”라고 물었고, 맡았다고 하니 “나는 네게 숨긴 게 없다.”라고 하였다. 『釋氏稽古略』 권4.
  1312. 1312)석천石泉 : 석천에 대해서는 「종과 밥솥, 석천을 시주한 공덕에 대한 기문」에 보인다.
  1313. 1313)제망帝網 : 인다라망因陀羅網. 인도의 신들 중 제왕에 해당하는 인드라신이 하늘을 다스리는 무기. 그물의 크기가 하늘을 덮는다. 그물망의 한 코마다 구슬이 달려 있는데 하나의 구슬에 수많은 다른 구슬이 비쳐서 다함없이 상대방을 비추는 불교의 무한 법계 사상을 내포한다.
  1314. 1314)망망한 대지는~손가락 하나 : 『莊子』 「齊物論」의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天地一指也。萬物一馬也。)”라고 한 데서 온 말.
  1315. 1315)선자禪子 : 선禪을 닦는 이.
  1316. 1316)칼 차고 자니 : 잠을 잘 때도 번뇌를 자르는 칼을 차고 잔다는 뜻으로 수련에 매진함을 가리킨다. 『緇門警訓』 권3에 “帶刀而眠。離諸夢想。”이라 하였다.
  1317. 1317)십마백장十魔百障 : 십마는 10종의 번뇌를 마군에 비유한 것으로, 욕欲ㆍ우수憂愁ㆍ기갈飢渴ㆍ애愛ㆍ수면ㆍ포외怖畏ㆍ의疑ㆍ함독含毒ㆍ이양利養ㆍ고만高慢. 백장은 온갖 장애.
  1318. 1318)노전爐殿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을 맡아보는 사람의 숙소. 향각香閣.
  1319. 1319)삼변정토三變淨土 : 석존께서 분신分身 제불諸佛을 수용하기 위해 세 번 국토를 바꾸어 청정하게 한 것. 첫째로 사바세계를 청정하게 하였으나 그것으로 다 수용하기 어렵게 되자 두 번에 걸쳐 예토를 청정하게 바꾸었다. 『法華經』 「見寶塔品」.
  1320. 1320)오취잡거五趣襍居 : 욕계에 여러 중생들이 모여서 함께 살고 있음을 말한다. 오취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간ㆍ천상의 중생들.
  1321. 1321)나계천주螺䯻天主 : 대범천왕大梵天王의 머리카락이 소라같이 되었다 하여 그를 나계범왕螺髻梵王이라고 일컫는데, 여기서는 석가불釋迦佛을 가리킴.
  1322. 1322)선천先天 : 후천後天에 대비되는 말인데 여기서는 단지 ‘옛날’이라는 의미로 쓰인 듯함.
  1323. 1323)15년 지나 기사년(1689) : 기사년이 맞다면 앞의 15년은 ‘5년’의 오류로 보인다.
  1324. 1324)우계 전익友溪雋益 : 백암 성총栢庵性聰(1631~1700)의 제자.
  1325. 1325)도감都監 : 돈이나 곡식을 관리하는 직책.
  1326. 1326)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15세 때 송광사로 출가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고.
  1327. 1327)율암 찬의栗庵贊儀(1867~1929) : 휘는 찬의贊儀, 자는 남계藍溪. 1882년(고종 19) 선암산에서 월주 대사月宙大師에게 머리를 깎았으며, 남쪽으로 유향하여 두륜산에서 범해梵海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참고로 금명 보정이 율암 찬의 입적 3개월 전에 쓴 「栗庵大禪師眞贊」이 전한다.
  1328. 1328)김학모金學模 : 사천 군수를 지냈다. 본문 「조계산 송광사 칠성각을 새로 지으려 터를 닦는 축문」(1923) 참조.
  1329. 1329)우부禹斧 : 도끼. 우禹가 천하의 하천을 개척할 때 용문산龍門山을 도끼로 끊었다 한다.
  1330. 1330)진편秦鞭 : 채찍. 진시황이 석교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것을 보려 했다. 그러자 신인神人이 돌을 굴려 바다를 메우는데, 돌이 빨리 구르지 않자 채찍으로 돌을 때리니 돌에서 피가 났다 한다. 진 복심伏深의 『三齊略記』.
  1331. 1331)기산綺山 공公 : 석진錫辰(1892~1968)의 호. 전라남도 순천 출생, 성은 임林씨. 아버지는 원오元悟이고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1905년 송광사 천자암天子庵에서 취월翠月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호붕浩鵬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송광사 보통과를 이수하고, 그해 4월 금명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1332. 1332)옥돌(琅玕) : 낭간은 청록색의 반투명 비취를 말한다.
  1333. 1333)중해衆海 : 중생의 바다. 많은 사람을 뜻함.
  1334. 1334)고독원이나 기수祗樹 : 원문은 ‘獨園祗樹’. 파사닉왕의 태자인 기타祇陀가 소유한 원림園林을 급고독장자가 사서 정사를 지어 석가모니불께 바치고, 기타는 그 수풀을 바쳤으므로,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하여 ‘기수급고독원’이라 한다. 여기서는 둘을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1335. 1335)녹원鹿苑 : 녹야원鹿野苑의 준말. 석가가 불도를 닦아 처음 설법한 곳.
  1336. 1336)학림鶴林 : 중인도 구시나가라 밖 니련선하 가에 있던 사라쌍수沙羅雙樹의 숲. 석가모니불이 입적한 곳.
  1337. 1337)울향鬯香 : 술. 기장으로 빚은 술에 울금鬱金으로 조화시킨 것이다.
  1338. 1338)원력수생願力受生 : 원력으로 몸을 받음.
  1339. 1339)송악 : 송광사가 있는 산을 가리킴.
  1340. 1340)도력은 9산의 장벽을 융화시키고 : 지눌은 8세 때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闍崛山派에 속했던 종휘宗暉를 은사로 승려가 되었는데, 선교합일의 이론을 정립하여 ‘선교합일 회교귀선會敎歸禪’이라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수한 종지를 창도하였다.
  1341. 1341)자리는 삼보의 이름에 참여했네 : 지눌의 가르침을 따라 절제된 수행 생활을 하는 승려들로 인해 송광사는 삼보 중의 하나인 승僧을 대표하는 절로 알려졌다.
  1342. 1342)치대鴟臺 : 치락대鴟落臺. 보조국사가 송광사 절터를 잡을 때 나복산羅葍山(현재의 모후산母后山)에서 나무로 만든 솔개(木鴟)를 날렸더니 국사전國師殿의 뒷등에 떨어져 앉았으므로 이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라 했는데, 후에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가 진락대眞樂臺라고 했다.
  1343. 1343)잔도棧道 : 험한 산의 낭떠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를 놓듯이 하여 낸 길인데, 여기서는 송광사 관음전 뒤편 보조국사 사리탑이 있는 언덕에 설치한 계단을 말한다.
  1344. 1344)희옥熙玉 : 송광사 소장 『大方廣佛華嚴經疏』를 각성覺性 등과 함께 1635년에 간행했다고 한다.
  1345. 1345)응원應圓 : 인균印均(仁均)과 함께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승.
  1346. 1346)일기一機 : 1718년에 안성 칠장사七長寺 원통전圓通殿의 목조木造 관음삼존상觀音三尊像을 제작하기도 했다.
  1347. 1347)서홍瑞弘 : 1799년에 송광사에서 『妙法蓮華經』을 쓰고 교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1348. 1348)도일度溢 : 사천왕상을 개채할 때 홍태弘太와 함께 화승으로 참여하였다.
  1349. 1349)천희天禧 :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이다. 당호는 용선당龍船堂이다. 천희天喜(天熙)가 제작에 참여한 불화는 1873년 향림사 ≺七星圖≻를 비롯해 총 8점이 알려져 있다. 1891년 향호당香湖堂 묘영妙英이 주도하였던 송광사 사천왕상의 개채改彩 불사에 참여하였다.
  1350. 1350)문성文性(1867~1954) :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활동했던 화승이다. 당호는 보응당普應堂이다. 속성은 김씨, 속명은 계창桂昌. 마곡사에서 화풍을 크게 떨치던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 문하에 입문하여 본격적으로 화원의 수업을 닦았다. 연파당蓮波堂 화인華印ㆍ향호당香湖堂 묘영妙英과 같은 전라도와 경상도 등지에서 활동했던 화승들과 더불어 작업하며 기량을 닦았다. 1903년에는 순천 송광사에서 고종황제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하는 원당을 설치하고 단청을 하였는데, 문성은 묘영ㆍ천희와 더불어 초본을 담당하였다. 이때 그려진 벽화가 현재 송광사 관음전 내부에 남아 있다.
  1351. 1351)제두뢰타提頭賴吒 : ⓢ Dhṛtarāṣṭra의 음사. 지국持國이라 번역. 수미산의 동쪽에 살면서 건달바揵闥婆와 부단나富單那를 거느린다. 부단나는 ⓢ pūtana의 음사이며 취아귀臭餓鬼 또는 열병귀熱病鬼로 번역된다.
  1352. 1352)비류륵차毘留勒叉 : ⓢ Virūḍhaka. 수미산 남쪽에 살면서 구반다鳩槃茶와 벽려다薜荔多를 거느린다. 구반다는 ⓢ kumbhāṇḍa의 음사이며, 옹형甕形으로 번역되는데 그늘진 모습이 항아리 같기 때문이며 염매귀厭魅鬼라고도 한다. 벽려다는 ⓢ preta의 음사이며 아귀餓鬼로 번역된다.
  1353. 1353)비루박차毘樓博叉 : ⓢ Virūpākṣa. 수미산 서쪽에 살면서 용과 비사사毘舍闍를 거느린다. 비사사는 ⓢ piśāca의 음사로, 사람과 오곡의 정기를 먹는다고 한다.
  1354. 1354)비사문毘沙門 : ⓢ Dhanada 또는 vaiśravaṇa. 수미산 북쪽에 거주하며 야차藥叉(ⓢ yakṣa)와 나찰羅刹(ⓢ rākṣasa)을 거느린다.
  1355. 1355)회향回向 : 회전취향回轉趣向. 자신이 쌓은 선근과 공덕을 타인에게 돌려 자타가 함께 불과佛果의 성취를 기하려는 것. 불사의 마지막 단계가 회향이므로 일의 마침을 뜻함.
  1356. 1356)8년 : 6년의 오류.
  1357. 1357)이 책~7장丈에 보인다 : 본문 「조계산 보조국사의 감로탑을 이안한 연기와 평」을 말함.
  1358. 1358)황석공黃石公과 장석군匠石君 : 바위와 관련한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황석공은 한漢나라의 개국 공신 장량張良이 흙다리 위에서 만난 노인인데, 노인이 일부러 다리 밑으로 내던진 신발을 주워 준 인연으로 태공太公의 병법을 전수했고, 장석군은 『莊子』 「人間世」에, 사당에 있는 아름드리 거목巨木을 보고는 쓸모없는 산목散木이라고 여겨 그냥 지나쳤다는 도목수 장석匠石을 가리키는 듯함.
  1359. 1359)수도隧道 : 묘도墓道. 무덤으로 통하는 굴길.
  1360. 1360)인寅을 등진 신申 방향 : 인은 정동에서 30도 북쪽으로 치우친 방향이고 신은 그 반대로 정서에서 30도 남쪽으로 치우친 방향이다.
  1361. 1361)여산驪山 :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산.
  1362. 1362)천극天極 : 북극성 또는 하늘을 뜻함.
  1363. 1363)각도閣道 : 대개 지붕을 씌워 만든 집 사이의 통로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잔도棧道를 뜻함.
  1364. 1364)대중大衆(介衆) : 『歷代史選』 권3 주나라 경왕敬王 2년 협주에 “개중介衆은 대중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1365. 1365)단공檀功 : 시주의 공덕.
  1366. 1366)구고九臯 : ‘깊은 구덩이’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하늘’의 뜻으로 사용함. 『詩經』 「小雅」 ≺鶴鳴≻에 “학이 구고에서 우니 소리가 하늘까지 들리네.(鶴鳴于九臯。聲聞于天。)”라는 구절이 있다.
  1367. 1367)삼강三江 : 곤산현崑山縣 남쪽 9리 되는 곳에 있다. 우공이 세 갈래의 강물을 바다로 흘러들어 가게 하자 태호가 일정해졌다. 당대 중초仲初의 「吳都賦」 주에 송강 70리에서 갈라져 흐르다 동북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루강婁江, 동남으로 흐르는 것을 동강東江이라 했는데, 송강과 합하여 삼강이라고 한다.
  1368. 1368)함호菡湖(?~1928) : 송광사의 승려.
  1369. 1369)유촉遺囑 :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
  1370. 1370)엄자산崦嵫山 : 해가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산의 이름으로, 만년晚年 또는 노년老年의 비유로 쓰인다.
  1371. 1371)비판(雌黃) : 옛날 누런 종이에 글을 쓰고 잘못된 글이 있으면 자황을 칠하여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썼던 데서 나온 말이다.
  1372. 1372)화반탁출和盤托出 : 음식물을 소반에 차려서 들고 나온다는 뜻으로, 일체 남기지 않고 드러냄을 이름.
  1373. 1373)불량佛粮 : 불공에 쓰는 곡식.
  1374. 1374)선사위토先師位土 : 돌아가신 스승의 제사를 관리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
  1375. 1375)치혁鴟嚇 : 자기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봐 으르다.
  1376. 1376)마땅하게(烏誼) : ‘오烏’는 의미 없이 치혁과 대비되게 하기 위해 쓴 말.
  1377. 1377)사생四生 :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1378. 1378)수북하게 많고 : 원문은 ‘鬪鬪飣飣’. 『高峰原妙禪師禪要』 「晚參」에 나옴.
  1379. 1379)복전複殿 : 여러 층의 전각.
  1380. 1380)용을 항복시킨 발우 : 육조대사 당시 못에 물을 마구 휘젓고 다니며 바람을 일으키는 용이 있어서, 육조대사가 “너 이놈, 몸을 키우고 재주를 부릴 줄은 알지만 몸을 작게 나툴 줄은 모르는구나.”라고 법문을 하자 그 용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몸을 작게 해서 육조대사 앞에 나타났다. 이때 육조대사가 발우로 딱 덮어서 용의 항복을 받은 일이 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1381. 1381)고선枯禪 : 세상사 다 잊고 앉아서 참선만 하는 승려.
  1382. 1382)보문普門 : 원만하고 완전한 가르침.
  1383. 1383)조도수趙道洙 : 본관 옥천. 삼탄三灘 조대춘趙大春이 순천시 주암면 궁각리 매우 부락에 세운 양벽정漾碧亭을 1927년에 중건한 바 있다. 정청주, 「조선 후기 전남지역 사족의 누정 건립」, 『湖南文化硏究』 24, 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1996년 참조.
  1384. 1384)대술大術 : 석가모니의 모친. 마하 마야摩訶摩耶. 대환大幻ㆍ대지모大智母ㆍ천후天后라고도 번역한다.
  1385. 1385)신운身雲 : 갖가지 몸을 나타내는 것이 구름과 같음을 말함.
  1386. 1386)도솔천에서 화신을~신운을 내리사 : 석가모니는 흰 코끼리 형상으로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의 태 속에 드셨다.
  1387. 1387)각수覺樹 : 석가모니가 그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나무라는 뜻으로 보리수를 일컫는 말.
  1388. 1388)무우수無憂樹 : ⓢ aśoka. 근심이 없는 나무란 뜻으로, 보리수를 일컫는 말. 석가모니가 룸비니 동산의 이 나무 아래서 탄생할 때 마야부인이 이 나무를 잡았다 함.
  1389. 1389)철수鐵樹 : 잎은 향포香蒲와 같고 자색紫色을 띤 나무인데, 소철蘇鐵이라고도 하고, 해송海松이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다만 이 나무는 원래 열대 식물인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므로,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무심無心,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에 비유하여 사려와 분별을 단절하는 수행의 법칙으로 삼는다.
  1390. 1390)노나라 들판에서~이르시길 기대하고 : 『春秋』 ‘애공哀公 14년조條’에 “서쪽으로 사냥을 나가 기린을 잡았다.(西狩獲麟)”라고 하였는데, 성왕聖王의 시대에나 출현하는 기린이 난세에 나와 잡혔기 때문에 공자가 절필하였다고 한다.
  1391. 1391)번산(樊岑)에서 표범을~세움을 기뻐하겠네 : 옛날에 제왕이 행차할 때 따르는 행렬의 맨 마지막 수레에는 표범 꼬리를 매달아서 위용을 과시했다고 한다.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무창武昌의 번산樊山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어떤 노파가 무엇을 잡았느냐고 묻기에 표범 한 마리를 잡았다고 했더니, 그 노파가 “어째서 표범 꼬리를 수레에 매달아 세우지 않느냐.(何不豎豹尾)”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淵鑑類函』 권429 표豹 1. 이 구절은 최치원의 「大嵩福寺碑銘」에서 인용함.
  1392. 1392)화엄을 설하시어~일곱 곳을 : 석가모니께서 『華嚴經』을 설한 장소가 일곱 곳이라는 말. 인간 세상에서 네 군데, 천상에서 세 군데. 칠처구회七處九會.
  1393. 1393)녹원鹿苑에서 4제諦를 보이시어 :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를 상대로 처음 설법한 것이 고집멸도 사제의 가르침이다.
  1394. 1394)유루有漏 : ⓢ sâsrava. 번뇌가 있음을 뜻하는 말. 번뇌가 없는 무루無漏에 상대되는 말이다.
  1395. 1395)연태蓮胎 : 연꽃을 통해 서방정토에 태어남을 가리킨다. 『觀經』.
  1396. 1396)종지種智 : 일체 만물의 각각 다른 상을 낱낱이 정밀하게 아는 부처의 지혜.
  1397. 1397)불교사보佛敎社報를 보니~물음’이라 하였다 : 불교사에서 1928년에 발행한 잡지 『佛敎』 49호 「佛敎決疑」의 33회에 ‘금강산 유점사 동국경원’에서 질문한 ‘大經字數卞’과 이에 대해 답변한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의 글이 실려 있다. 『佛敎』 52호에는 김해은金海隱의 글 「佛敎決疑第三三回問書를 닑고-특히 楡岾寺東國經院」이 실려 있는데 본문과 견해가 일치한다. 해은은 호, 법명은 오천梧泉, 이름은 재선栽善. 『茶松詩稿』 권2에 칠언율시 「강단을 연 김오천에게 화답하다(和金梧泉開講)」가 있는데 협주로 “이름은 재선栽善, 호는 해은海隱이다. 정사년(1917) 겨울에 건당하기 전에 대원사로부터 왔는데, 도중에 쌍계사 강주의 요청으로 그대로 주실하여 개당하였다가 다음 해에 본사로 돌아가서 건당하고 주실하였다.(名栽善。號海隱。未建幢。自大原寺來。路爲雙溪寺講主請。仍住室開堂。明年還本。建幢住室。)”라고 하였다.
  1398. 1398)『화엄품목華嚴品目』 : 조선 후기의 승려 묵암 최눌默庵最訥이 『華嚴經』의 요지를 도표화하여 저술한 책. ‘화엄과도華嚴科圖’라고도 함.
  1399. 1399)같은 모양의~보낼 일 : 원문은 “一狀領過。一道行遣也。” ‘領過’는 ‘처리하다’로, 이때 ‘過’는 어조사로 여긴다. 또는 ‘領過’를 범죄 사실을 심문하여 기록한 문서로 보기도 한다. 이 구절은 『書狀』의 「答江給事少明」에 보임.
  1400. 1400)인아人我 : 인아지상人我之相. 나와 남을 갈라 놓고,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남을 경시하는 마음.
  1401. 1401)『치문경훈』 : 원元의 지현智賢이 승려들에게 경책과 교훈이 될 만한 글들을 모은 책. 조선 후기 백암 성총栢庵性聰(1631~1700)이 주석을 붙인 『緇門警訓』이 상중하로 나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위창 古 1798-7).
  1402. 1402)수수守遂 : 속성은 장章씨이며 호는 정자凈慈이고 수령遂寧 봉계蓬溪(현 사천성四川省) 출신으로, 1135년에 수주隨州의 대홍산大洪山 정암사凈巖寺에 거주하였으며 『四十二章經註』와 『潙山警策註』, 『遺教經補註』 등이 전함.
  1403. 1403)격외格外와 의리義理 : 격외는 일반적인 가르침의 형식을 벗어난 것이요, 의리는 말의 가르침을 통해 전달되는 이치라 할 수 있다.
  1404. 1404)대불사의大不思議 :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인데, 화엄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1405. 1405)몽둥이(活椎) : 사람을 죽이는 용도가 아니라 잘못을 깨닫게 하는 몽둥이라는 뜻으로 ‘活’을 쓴 것으로 보인다.
  1406. 1406)허망하고 떠~괴상한 견해라 : 원문 ‘虛妄浮心多諸恠見’은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의 ‘虛妄浮心多諸巧見’에서 ‘巧’를 ‘恠’로 바꾼 것이다.
  1407. 1407)함호菡湖 화상의 진영 : 화승畵僧 김예식金禮植이 그렸다고 함. 김정희, 「조선 후기 화승의 진영상」, 『강좌미술사』 35, 한국미술사연구소, 2010, 71쪽 참조.
  1408. 1408)일곱 분의 얼굴 : 정면이 아니라 좌우로 고개를 조금 돌린 얼굴 그림을 가리킴.
  1409. 1409)저포苧袍의 은혜 : 저苧와 관련해서는 춘추시대 오나라 계찰季札이 정나라 자산子産에게 호대縞帶를 선물하고 자산은 계찰에게 저의紵衣를 선물했다는 고사가 『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9년’에 있고, 포袍와 관련해서는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수가須賈가 친구 범저范雎(혹은 범수范睢)가 주취에 떠는 것을 보고 제포綈袍를 주었던 고사가 있다. 『史記』 「范睢蔡潭列傳」. 여기서는 범저의 고사를 말하는 듯함.
  1410. 1410)죽백(帛) : 종이가 없었던 시대에 청죽靑竹으로 만든 간찰簡札이나 비단 헝겊에 글자를 쓴 데서 서책書冊을 지칭하였고, 역사라는 뜻으로도 쓰임.
  1411. 1411)율암栗庵(1867~1929) : 법명은 찬의讃儀. 범해梵海 선사의 제자. 송광사 주지를 맡음.
  1412. 1412)홍려시鴻臚寺 : 후한 명제 때 서역에서 불경을 싣고 온 흰 말이, 의전을 담당하는 관청 홍려시에 머물렀고 추후 절을 세워 백마사白馬寺라 이름 지었다. 관청 명칭이 불교의 절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1413. 1413)축법란竺法蘭 : 후한後漢 시대에 처음으로 중국에 불교를 전한 대월지국大月氏國의 승려이자 역경가譯經家. 67년 가섭마등迦葉摩騰과 함께 낙양洛陽으로 와서 백마사白馬寺에 머물며 포교에 힘썼다.
  1414. 1414)경부鯨桴(종) : 종의 윗부분에 음통과 포뢰浦牢(용)가 있는데 용의 목 부분에 종의 걸쇠가 걸려 있는 이 부분을 용뉴龍紐라고 부른다. 포뢰는 용의 아들인데 고래를 보면 무서워서 크게 운다고 한다. 그래서 종 치는 방망이에 고래를 새겨 넣어 경부라 한다.
  1415. 1415)안찰鴈刹(절)이 구름처럼~하늘에 닿았다 : 이 부분은 최치원의 「智證和尙碑銘」을 인용한 것이다.
  1416. 1416)비보裨補 : 풍수지리상으로 돕고 보완한다는 뜻.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의 비보사탑설에서 비롯함.
  1417. 1417)우송友松 : 우송 황선명黃善明. 본문 「밭을 개간하기 위해 터를 닦는 축문」과 「낙안군 동화사 승당의 불상 개금과 탱화를 조성한 기문」 참조.
  1418. 1418)사갈라沙迦羅 : ⓢ Sāgara. 큰 바다.
  1419. 1419)도솔천(兜史陀) 내원內院 : 도솔천은 욕계 6천의 넷째 하늘로서 이곳은 다섯 가지 욕망을 마음껏 누리며 만족한 삶을 살기에 지족천이라고 한다. 그곳의 내원궁에 미륵보살이 거주한다.
  1420. 1420)용운龍雲 : 처익處益(1813~1888)의 호. 속성은 전주 이씨. 15세 때 송광사로 출가함. 본문 「송광사 대공덕주 용운당 대선사 행장」 참조.
  1421. 1421)용맹龍猛 : 용수龍樹. Nagarjuna. 남인도의 승려로서 대승불교를 일으킨 주역. 용수 보살이 어떤 늙은 비구의 인도로 용궁에 들어가 많은 경전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용수 보살은 한없이 많은 화엄경 범본梵本 가운데서 하본下本 화엄경을 지상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1422. 1422)감불龕佛 : 불상을 모시기 위해 만든 집인 불감佛龕에 모신 불상.
  1423. 1423)시청柴廳 : 땔감 놓는 곳을 말하는 듯함.
  1424. 1424)제나라가 변하여~도에 이른다 : 『論語』 「雍也」의 “齊一變。至於魯。魯一變。至於道。”를 변용함.
  1425. 1425)월방月邦(인도) : 『首楞嚴義疏注經』에 따르면 인도가 별처럼 작은 나라들에 비하여 달처럼 크므로 월방이라 한다고 했다.
  1426. 1426)주나라 솥 : 주정周鼎. 주나라 왕권을 상징함. 우禹임금이 구주九州의 쇠붙이를 모아 주조했다는 큰 솥.
  1427. 1427)장주莊周의 표주박 : 『莊子』 「逍遙遊」에서 양梁나라의 재상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하길, “위魏왕이 내게 큰 박씨를 주었습니다. 이것을 심었더니 그 박은 나중에 다섯 섬 무게만큼 커졌습니다. 여기에 물을 부었더니 박이 튼튼치 않아서인지 들면 모두 부서지기에 그것을 두 쪽으로 쪼개 표주박을 만들었다오. 하지만 너무 편편하고 얕아서인지 많은 물을 담을 수 없었소이다. 아무리 큰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소용이 없으므로 나는 그것을 깨뜨려 버렸소이다.”라고 하니 장자는 큰 것을 사용할 줄 모른다고 하면서 “다섯 섬 무게의 박이 있다면, 왜 커다란 술통을 만들어 허리에 차고 강호에 띄워 유유히 놀아 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각 난 바가지가 편편하고 낮아서 쓸모없으리라는 걱정만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의 마음 쓰는 것이 너무 각박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1428. 1428)식정識情 : 마음. 식심.
  1429. 1429)동진童眞 : 승려가 될 뜻을 가지고 절에 와서 불도를 배우면서 아직 출가하지 않은 사내아이.
  1430. 1430)만행화萬行華 : 자비를 기반으로 한 만 가지의 행을 꽃에 비유한 표현.
  1431. 1431)구황救荒 : 기근을 구제함.
  1432. 1432)채장債帳 : 남에게 빌린 돈의 금액을 적는 장부.
  1433. 1433)삼리三利 : ‘고리대’를 뜻하는 듯함. 『周易』 「說卦」에 “시가의 세 배에 가까운 이득이 된다.(爲近利市三倍)”라는 구절이 있음.
  1434. 1434)경운擎雲(1852~1936) : 강백講伯ㆍ사경사寫經師. 속성은 김씨. 경상남도 웅천熊川에서 태어나 17세 때 출가하여, 구례군 연곡사鷰谷寺 환월幻月의 제자가 되었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대승강원大乘講院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뒤에는 직접 강의를 담당하여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순천의 환산정喚山亭을 매입하여 새로운 포교당을 설립하고 포교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1435. 1435)석향후石鄕侯 즉묵공卽墨公 : 벼루를 가리킨다. 당나라 문숭증文嵩曾이 벼루를 의인화하여 지은 「即墨侯石虛中傳」에서, 남포藍浦의 석허중이 석향후로서 부절을 가지고 즉묵군卽墨郡 일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즉묵공은 ‘먹’의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다.
  1436. 1436)갈고 다듬는 교분 : 갈고 다듬는다는 표현은 벼루와 먹의 관계를 말하고 원문 ‘磨琢’는 또한 친구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1437. 1437)저선생楮先生ㆍ중산군中山君 : 저선생은 종이, 중산군은 붓을 가리킴. 당나라 한유韓愈의 「毛穎傳」에서 비롯됨.
  1438. 1438)노고추老古錐 : 노선사에 대한 경칭. 선기의 예민함이 날카로운 송곳과 같다는 뜻.
  1439. 1439)글(寶唾) : 보배로운 침이란 뜻으로 훌륭한 글귀를 가리킴.
  1440. 1440)범행梵行 : 불도 수행. 범梵은 청정을 뜻함. 음욕淫欲을 끊고 계율을 지키는 청정한 수행.
  1441. 1441)선원璿源 : 왕실 족보. 여기서는 그저 족보를 높여 이름.
  1442. 1442)소사小師 :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지 10년이 안 된 비구.
  1443. 1443)모후산母后山 :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왕과 왕비는 태후를 모시고 이곳까지 피난 왔다가 수려한 산세가 좋아서 왕이 1년 남짓 머물렀다. 그 후 원래 명칭인 나복산을 모후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444. 1444)제월천濟月泉 : 유마사 계곡에 흐르는 물. 당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 유마운維摩雲이 관직을 버리고 화순 동복군으로 건너와 유마사를 창건하여 머물다가 죽었고 그의 딸 보안普安이 혼자 머무는데 자기를 사모하여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승려에게 ‘달을 건져 내면 내 몸을 허락하겠다’고 제안하는 등의 방편을 써서 정욕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1445. 1445)도마치逃馬峙 : 유마사 왼쪽 편의 높이 486m 봉우리.
  1446. 1446)김규홍金奎弘(1845~?) :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화일華一, 서울 출신. 1889년 전라도 관찰사, 1891년 형조판서, 1892년 예조판서, 1893년 공조판서ㆍ경기도 관찰사, 1894년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1447. 1447)결안結案 : 문안을 작성함.
  1448. 1448)석숭石崇의 금곡金谷 : 진晉나라 무제 때 부자 석숭이 낙양洛陽 서북쪽 계곡에 지은 별장 금곡원金谷園. 「綠珠傳」에 따르면 계곡에 금수金水가 흐르기 때문에 금곡이라 했다고 전한다.
  1449. 1449)미타彌陀 : 아미타불의 약칭.
  1450. 1450)이 글은 권1의 「고흥군 금산면 풍악산 송광암 중수기」와 거의 일치한다.
  1451. 1451)동전 셋을~보배(寶藏)를 얻었다 : 옛날 악생왕惡生王이 동산에서 황금 고양이를 보고는 사람을 보내 땅을 파 보니, 3섬들이 구리쇠 독을 하나 얻었는데 거기에는 금전이 가득 차 있었다. 좀 더 깊이 파다가 또 독 하나를 얻었다. 이렇게 하여 세 개의 독을 얻었는데 또 곁으로 파다가 거기서도 구리쇠 독을 얻었다. 쉬지 않고 자꾸 파서 5리에 이르는 동안 모두 구리쇠 독을 얻었는데 거기에도 금전이 가득 차 있었다. 악생왕은 매우 이상히 여겨 곧 존자 가전연迦栴延에게 가서 그 돈을 얻은 내력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과거의 그 인이 뭐냐고 물었다. 존자는 대답하였다. “자세히 들으십시오. 먼 옛날 91겁 전 비바시불毘婆尸佛의 끼친 법이 있을 때 여러 비구들이 네거리에 높고 큰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발우를 얹어 두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상에 누가 이 든든한 창고 안에 돈을 넣겠는가? 이 창고에 넣은 돈은 물도 띄울 수 없고 불도 태울 수 없으며, 왕도 빼앗을 수 없고 도둑도 겁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어떤 가난한 사람이 마침 나무를 팔아 돈 세 전을 얻은 것이 있었는데, 그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그 돈을 모두 발우에 넣고 성심으로 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을 향해 5리쯤 걸어오면서 걸음마다 기뻐하고, 집 문에 이르러서는 보시한 그곳을 향해 진심으로 발원하고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그 가난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왕입니다. 왕은 과거에 세 전을 보시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세상마다 존귀하여 그런 세 개의 돈 항아리를 얻었으며, 5리 동안 걸음걸음마다 기뻐한 인연으로 항상 5리 안에 그런 돈이 있게 된 것입니다.” 왕은 전생의 인연을 듣고 기뻐하면서 떠나갔다. 『雜寶藏經』 9권 103 ‘金猫因緣’.
  1452. 1452)선영홍宣永鴻(1861~1924) : 본관 보성. 고흥 도양면 관리(현 도덕면)에서 태어나 거금도 지역인 금산면을 기반으로 부를 이루었다. 충남 보은군에 「前秘書卿宣永鴻施惠碑」가 세워져 있다.
  1453. 1453)장 공張公 : 장남박張南搏. 거금도 고흥군 금산면 신촌리에 장남박 면장의 행적을 기념하는 비가 1941년에 세워져 전해진다.
  1454. 1454)사키(佐木) : 앞의 글에는 사사키(佐佐木)로 되어 있다.
  1455. 1455)화華의 3축祝 : 요堯임금 때에 화 땅의 봉인封人(관직)이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 세 가지로써 임금을 위해 축도祝禱했다. 화봉삼축華封三祝. 『莊子』 「天地」.
  1456. 1456)순荀의 8룡 : 한나라 말엽 순숙荀淑이 낳은 여덟 명의 훌륭한 아들을 일컬음. 자손이 번창하리라는 뜻.
  1457. 1457)촉루囑累 : 타인에게 고하고 의뢰함.
  1458. 1458)엄자산崦嵫山 : 해가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했던 산의 이름으로, 만년晚年 또는 노년老年의 비유로 쓰인다.
  1459. 1459)납일臘日 : 동지로부터 세 번째의 미일未日. 납일 때가 되면 대개 음력으로 연말 무렵이 되므로 여기서는 ‘죽을 때’라는 의미로 사용됨.
  1460. 1460)찰귀刹鬼 : 사람 잡아먹는 귀신.
  1461. 1461)진제眞諦 조사의 자손기子孫記 : 권2에 있는 「함호 화상이 유촉하는 글」을 가리킴.
  1462. 1)행록초行錄草 : ‘행록行錄’은 사람의 말이나 행실을 적은 글이며 ‘초草’는 초고라는 뜻.
  1463. 2)김완金完(1577~1635) : 정유재란을 당하여 남원의 진사 조경남과 정사달 등과 함께 거병하여 현재의 구례군 산동면 원촌들에서 왜적과 대결하여 크게 이겼고, 이것을 기념하여 후손 및 지방의 사민들이 합력하여 1887년에 그 격전장에 「金完將軍戰勝遺墟碑」를 세웠다.
  1464. 3)축시丑時 : 새벽 1시부터 3시까지를 말한다.
  1465. 4)경붕景鵬 : 익운益運(1836~1915)의 호. 다송은 1878년에 송광사 광원암에서 경붕에게 『起信論』을 배웠다.
  1466. 5)구련九蓮 : 다송은 1881년에 송광사 보조암에서 구련에게 『懸談』을 배웠다.
  1467. 6)혼해混海 : 다송은 1880년 봄에 지리산 법화암에서 혼해에게 다시 『起信論』을 배웠다.
  1468. 7)원화圓華 : 덕주德柱(1839~1893)의 호. 성은 정씨鄭氏, 전라남도 담양 출신. 17세 때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하여 서우西藕를 은사로 모시고 승려가 되었으며, 그 뒤 선을 배우고 두월斗月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다송은 1880년 가을에 화엄사 구층암으로 찾아가 『圓覺經』을 배웠다.
  1469. 8)원해圓海 : 다송은 원해에게 1883년에 광원암에서 『十地經』을 배웠다.
  1470. 9)범해梵海 : 다송은 범해에게 1886년에 대흥사에서 고문古文과 사산비명四山碑銘 등을 배우고 구족계를 받았다.
  1471. 10)함명菡溟 : 다송은 1909년에 함명에게 선암사 대승암에서 『禪門拈頌』을 배웠다.
  1472. 11)조박糟粕 : 술찌꺼기라는 뜻으로 고인이 남긴 글을 가리키는데, 곧 고인의 진면목을 추구하지 않고 껍데기만 익힘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겸칭으로 사용함.
  1473. 12)허주虛舟 : 덕진德眞(1806~1888)의 호. 조계산 송광사에 들어가 삭발하고 홀로 선정을 닦으며 도학을 성취하였다. 흥선대원군이 불러 국가를 위하여 철원 보개산寶蓋山 지장암地藏庵과 고산高山 운문사雲門寺에서 기원하게 하였다.
  1474. 13)건당建幢 : 법을 전하는 스승에게서 법맥法脈을 이어받는 일.
  1475. 14)부휴浮休 : 선수善修(1543~1615)의 호. 서산 대사의 사제로 전통적인 격외선格外禪을 계승하였고, 일념회기一念回機ㆍ일념회광一念回光ㆍ회광반조回光返照를 강조하여 임진왜란 이후의 불교계를 정비하였다. 저서로는 『浮休堂大師集』이 있다.
  1476. 15)서각제西閣祭 : 서각은 뒷간을 말함. 우리나라 집들이 남향이기 때문에 뒷간이 통풍이 잘 되는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각제는 측신廁神을 모시는 제의. 측신은 성현成俔의 『慵齋叢話』 5권에, 인간에게 화禍를 주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1477. 16)서불암西佛庵 : 고흥 팔영산 능가사의 암자. 본문 「흥양군 팔영산 능가사 서불암 기문」 참조.
  1478. 17)광원실廣遠室 : 광원암인 듯함. 광원암은 고려 시대 진각 혜심眞覺慧諶이 주석하면서 『禪門拈頌集』 30권을 펴내어 광원유포廣遠流布한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짐.
  1479. 18)눌봉訥峯 : 금명 보정이 활동하던 시기에 송광사와 도림사 등에서 활동했던 승려.
  1480. 19)심우心友 : 마음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
  1481. 20)결제結制 : 안거를 시작할 때 행하는 의식. 동안거 결제를 결동結冬이라고도 함.
  1482. 21)남여籃輿 : 뚜껑이 없는 의자 비슷한 작은 가마. 앞뒤 각각 두 사람이 어깨에 메게 되어 있는데 양반들의 행차를 위해 승려들이 메곤 했다.
  1483. 22)통인通引 : 수령守令의 신변에서 호소呼召ㆍ사환使喚에 응하던 이속.
  1484. 23)태상시太常寺 : 제사와 증시贈諡를 맡아보던 관청.
  1485. 24)경무청警務廳 : 조선 말기의 경찰 업무를 관장하던 관청. 1894년 갑오경장으로 관제가 개편됨에 따라 내무아문內務衙門에 소속된 관청의 하나로, 종래의 좌ㆍ우 포도청을 합쳐 설립한 것이다.
  1486. 25)계판啓板 : 승정원에서 주의사항을 써 걸어 놓았던 게시판의 일종.
  1487. 26)증명단證明壇 : 재단齋壇 가운데 비로자나불 등의 신격을 모신 상단을 말함.
  1488. 27)복장腹藏 : 불상을 조성할 때 불상의 배 안에 사리와 불경 등을 넣는 일.
  1489. 28)대구품大九品 : 가사 여든한 벌을 만드는 일.
  1490. 29)승가리僧伽梨 : 삼의三衣의 하나. 중의重衣ㆍ합의合衣라 번역. 대의大衣라고도 함. 설법할 때 또는 마을에 나가 걸식할 때 입는 옷.
  1491. 30)번거롭지 않았다 : 문맥상 이 부분에 결락이 있는 듯함.
  1492. 31)대내大內 : 임금을 비롯하여 왕비, 왕대비들이 거처하는 곳을 두루 이르는 말. 여기서는 왕비를 뜻함.
  1493. 32)원흥사元興寺 :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던 절. 1899년에 창건하여 조선불교의 총종무소總宗務所로 하고, 1902년에 대법산大法山에 지정되어 국내의 중심 사찰이 됨.
  1494. 33)해랍解臘 : 동안거 해제.
  1495. 34)내하금內下金 : 임금이 사사로이 내려 준 돈.
  1496. 35)정명원鄭明源 : 당시 정3품 벼슬아치. 송광사에 원당願堂 세우는 일을 감독하였다. 본문 「성수전의 제반 집물을 전장하는 서문」 참조.
  1497. 36)결랍結臘 : 동안거 결제.
  1498. 37)회광晦光(1862~1933) : 법명은 사선師璿, 성은 이씨, 강원도 양양 출신. 19세 때 설악산 신흥사神興寺로 출가하여 정함定含의 제자가 되었고, 24세 때 간성 건봉사乾鳳寺에 있는 본엽本葉의 법맥을 받았다. 29세 때 건봉사에서 개강開講하여 불경을 가르치다가, 1904년에 홍월초洪月初 등이 명진학교明進學校를 설립하자 명진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08년에 각 도의 사찰대표 52명이 원흥사元興寺에 모여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조직하였을 때 대종정大宗正으로 추대되었으며, 191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동맹을 체결하였다. 그 뒤 조선사찰령朝鮮寺刹令이 반포되어 30본산제도가 실시되었을 때 해인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1499. 38)전경轉經 : 경전의 내용을 이해함과 동시에 불덕을 찬탄 공양하여 선근공덕을 쌓는다고 하는 목적과 불보살의 가호에 의하여 복을 구하려 하는 기도의 목적을 겸하여 행하는 독경 의식.
  1500. 39)입승立繩 : 기강을 맡은 직임.
  1501. 40)갈마羯摩 : 갈마아사리羯摩阿闍梨. 계 받는 취지를 대중에게 알리는 표백表白과 갈마문羯摩文을 읽는 스승.
  1502. 41)예수預修 : 예수재預修齋. 현생에 공덕을 쌓아 사후에 극락왕생하고자 행하는 의례.
  1503. 42)청진암淸眞庵 : 송광사 암자. 본문 「조계산 송광사 청진암의 네 번째 창건기」 참조.
  1504. 43)의병(義酋) : 1907년에 들어와 일제의 헤이그 특사 사건을 기화로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이어 ‘정미7조약’을 강제해 군대까지 해산케 했다. 이에 대한제국의 병사들은 스스로 의병 부대를 조직해 일제에 투쟁하거나 기존의 의병 부대에 투신해 일제에 항전함으로써 의병전쟁을 국민전쟁으로 발전시켜 갔다.
  1505. 44)익우益友 : 유익한 친구.
  1506. 45)아사리阿闍黎 : ⓢ Ācārya. 자신을 바르게 하여 제자의 품행을 규정糾正하는 승려, 즉 승도僧徒의 스승.
  1507. 46)응암應庵 : 낭윤朗允(1718~1794)의 호. 자字는 퇴옹退翁, 곡성군谷城郡 통명리通明里 출신이다. 속성은 초계草溪 최씨崔氏로 부친은 봉의鳳儀, 모친은 이씨李氏이다. 17세 때 용담龍潭 대덕에게 구족계를 받고, 18세 때(1735) 조계산 풍암 강백楓嵓講伯을 방문하여 공부하고 선禪과 교敎를 겸하여 전하고 선정과 지혜를 고르게 닦았다.
  1508. 47)응암 선조의~당堂에 걸었다 : 본문 「응암 선조의 행장 초고」와 「응암 선사의 진영을 새로 조성하는 기문」 참조.
  1509. 48)사자 무리들이~경우가 많았다 :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傳燈錄』에 “한로축괴韓獹逐塊 사자교인獅子咬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개(韓獹)에게 돌을 던지면 개는 구르는 돌덩이를 쫓아가 입으로 문다. 그러나 사자에게 돌을 던지면 사자는 구르는 돌을 쫓지 않고 돌을 던진 인간을 찾아 문다는 뜻이다.
  1510. 49)치혁鴟嚇 : 자기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봐 으른다는 뜻. 『莊子』 「秋水」에 남방에 원추鵷鶵라는 새가 있어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갈 적에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단물이 나오는 샘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데, 이때 올빼미는 썩은 쥐를 물고 있으면서 마침 그 위를 날아가는 원추를 보고는 제 썩은 쥐를 빼앗길까 봐 꿱 하고 을러 댔다고 한다.
  1511. 50)푸른 봄에~돌아가기 좋다 : 원문 “靑春好還鄕”은 당나라 두보杜甫의 칠언율시 ≺관군이 하남과 하북을 수복했다는 소문을 듣고(聞官軍收河南河北)≻의 구절 “靑春作伴好還鄕”을 차용한 것이다.
  1512. 51)전강傳講 : 강맥講脈을 전수함.
  1513. 52)수시壽詩 : 생일 축시.
  1514. 53)누진漏盡 : 종명누진鍾鳴漏盡. 늙어서도 벼슬이나 명리에 연연함을 이르는 말이다. 삼국시대에 위魏나라의 전예田豫가 “나이가 칠십이 넘어서도 자리에 있는 것은 비유하면 종이 울리고 누각이 다하였는데도 밤길을 쉼 없이 가는 것과 같으니, 이는 죄인입니다.(年過七十而以居位。譬猶鐘鳴漏盡而夜行不休。是罪人也。)”라고 하였다. 『三國志』 권26 「魏書」 ‘田豫傳’.
  1515. 54)각기脚氣 : 영양실조의 하나로, 처음 발병하면 말초신경 실조증 때문에 다리 부위가 나른하고 입 주위ㆍ손끝ㆍ발끝 등에 저린 감이 오며 심한 경우 무릎에 힘이 빠져 엉금엉금 기게 됨.
  1516. 55)강론(佔畢) : 점佔은 본다는 뜻이요, 필畢은 간독簡牘(책)이다. 『禮記』에 “요즘 가르치는 이들은 그 점필을 음풍吟諷할 따름이다.(今之敎者。呻其佔畢。)”라고 하였다.
  1517. 56)구품도九品圖 : 아홉 단계로 분류된 극락정토.
  1518. 57)미타불彌陀佛 : 서방 정토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한다는 부처.
  1519. 58)함호菡湖(?~1928) : 송광사의 승려.
  1520. 59)석양이 한없이~황혼이 가깝구나 :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 ≺樂游原≻의 구절. 의산義山은 이상은의 자.
  1521. 60)한영漢永 : 영호 정호映湖鼎鎬(1870~1948)의 자. 성은 박씨朴氏, 또 다른 호는 석전石顚. 19세 때 전주 태조암太祖庵으로 출가하여 금산錦山의 제자가 되었고, 21세 때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환응幻應에게 사교四敎를 배우고, 선암사仙巖寺의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배운 뒤, 구암사龜巖寺에서 처명處明의 법을 이어받았다. 금봉錦峯ㆍ진응震應과 함께 근대 불교사의 3대 강백講伯으로 추앙받았으며, 경사자집經史子集과 노장학설을 두루 섭렵하고 서법書法까지도 겸통한 고승으로 평가받았다.
  1522. 61)자정慈靜 도량 : 송광사 산내암자. 고려 때 자정국사慈靜國師(1293~1301)가 창건했다고 함. 1975년 법정法頂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 편액을 걸었다.
  1523. 62)휘주揮麈 : 고라니 꼬리털(麈尾)을 매단 불자拂子를 손에 쥔다는 뜻인데, 먼지떨이처럼 생긴 그 불자는 위진魏晉 시대 때 청담을 즐기던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다녔으며, 승려들도 애용하였다.
  1524. 63)제봉찬霽峰讃 : 제봉 영찬霽峰永讚. 경운擎雲(1852~1936)의 제자.
  1525. 64)금봉림錦峰林 : 금봉錦峰 장기림張基林(1869~1915). 법명은 병연秉演, 아호는 향엄香嚴이며 경운이 법부法父이다. 전라남도 여수 출생이고 부친은 장건하張建廈, 모친은 영성靈城 정씨丁氏이다. 15세 때 출가하여 원화圓化(구례 화엄사), 경운(순천 선암사), 범해梵海(해남 대흥사), 원응圓應(해남 대흥사)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사집과 사교ㆍ『拈頌』 등을 배웠다. 이 밖에도 이밀제李蜜齊ㆍ황매천黃梅泉 등과 토론을 벌일 만큼 외전外典에도 밝았다. 1895년(을미년) 3월 선암사 대승암 강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13년 선암사 주지에 취임했고, 순천 환선정喚仙亭에 포교당을 개설하는 등 산중 불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1526. 65)진응찬震應璨 : 진응 혜찬震應慧燦. 경운(1852~1936)의 제자.
  1527. 66)금파호琴巴湖 : 금파 경호琴巴竟湖(1868~1915). 전라북도 김제 출생. 임실 상이암上耳庵에서 출가하였고, 21세 때 경봉景峰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은 뒤 전국의 유명한 강원講院들을 다니면서 불경 공부에 몰두하였다. 특히, 벽송사碧松寺ㆍ대원사大源寺ㆍ화엄사ㆍ백양사ㆍ동학사 등에서 불교의 근본 경전들을 깊이 연구하였다. 그 뒤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불경을 가르치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항상 수백 명의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았다.
  1528. 67)호상毫相이 동쪽을 비춤 : 호상은 석가 32상相 중의 하나. 미간眉間에 백모白毛가 있는데 이것을 펴면 한 길 다섯 자가 되며 평소에는 오른쪽으로 말려 있다. 『法華經』 「序品」 제1에 “爾時。佛放眉間白毫相光。照東方萬八千世界。靡不周徧。”이라 하였다.
  1529. 68)역매驛梅 : 역사驛使 편에 부치는 매화로,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육개陸凱가 강남에 있을 때 교분이 두터웠던 범엽范曄에게 매화 한 가지를 부치면서, “매화를 꺾다 역사를 만났기에 농두 사는 그대에게 부치오. 강남에는 아무것도 없어 애오라지 한 가지 봄을 보낸다오.(折梅逢驛使。寄與隴頭人。江南無所有。聊贈一枝春。)”라는 시를 함께 부친 데서 유래한다.
  1530. 69)설도雪棹 : 진晉나라 때 왕휘지王徽之가 타고 갔던 배. 왕휘지는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눈이 내리는 한밤중에 개자 친구인 대규戴逵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에 즉시 밤을 새워 배를 타고 가 대규가 사는 집 문 앞까지 갔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任誕」.
  1531. 70)만남에 기뻐서~줄도 몰랐다 : 원문 “欣於所遇。曾不知老之將至。”는 동진 시대 왕희지王羲之의 「蘭亭集序」 “當其欣於所遇。暫得於己。快然自得。曾不知老之將至。”를 인용한 것이다.
  1532. 71)균천鈞天 : 구천九天의 하나로서 하늘의 한 중앙에 위치한 상제上帝의 궁전.
  1533. 72)한용운 공은~바다에 들어갔는데 : 한용운이 1920년 만세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아 3년 동안 옥살이를 한 것을 가리킴.
  1534. 73)지주砥柱 : 역경에도 의연하게 절개를 지키는 이를 비유하는 말. 중국 황하 중류에 있는 기둥 모양의 돌인데, 격류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서 절개를 지키는 이를 비유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다.
  1535. 74)초복初服 : ‘관리 노릇을 하기 전의 복장’이란 뜻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본분사를 가리키는 듯함.
  1536. 75)창연蒼然 : 흐릿함. 여기서는 머리칼이 희끗희끗함을 표현함.
  1537. 76)감송感頌 : 깊이 느껴 기림.
  1538. 77)금계金鷄 : 신유년의 신은 오행五行에서 금에 해당한다.
  1539. 78)교화하기 : 원문은 ‘點石’. 동진東晉 때 도생道生(355~434) 화상이 소주蘇州의 호구산虎丘山에서 돌을 모아 놓고 『涅盤經』을 강하면서 “내가 말하는 법이 불심에 들어맞는가?”라고 하니 모든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를 ‘완석점두頑石點頭’라고 한다.
  1540. 79)수산 : 대개 ‘수산복해壽山福海’라고 하여 장수를 축하하는 말로 쓰임.
  1541. 80)동림桐林 : 금명 보정이 1921년경에 주석하던 봉두산鳳頭山 동리사桐裏寺의 숲을 가리킴.
  1542. 81)양영월梁映月 : 1921년경에 봉두산 동리사(즉 태안사) 주지를 맡았다. 「태안사 봉서암 중창기」 참조.
  1543. 82)동산桐山 : 동리사桐裏寺의 산, 즉 봉두산을 가리키는 듯함.
  1544. 83)압수鴨水 : 태안사 북쪽으로 섬진강과 보성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하여 합록合綠으로 불리다가 오리과 철새들이 많이 날아드는 것에 따라 압록이라 불렸다고 한다.
  1545. 84)홍조鴻爪 : 기러기가 눈이나 진흙 위에 남기는 발자국. 돌아가는 기러기가 다시 돌아올 때의 안표로 눈이나 진흙 위에 남기는 발자국이 이내 자취 없이 사라진다는 뜻에서, 인세人世의 여로旅路의 자취, 또는 그 자취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1546. 85)박한영朴漢永 :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이다. 주 60 참조.
  1547. 86)동리선방桐裡禪房 : 금명 보정이 당시 주석하던 봉두산鳳頭山 동리사桐裏寺.
  1548. 87)옥급玉笈 : 대개 도교의 비서秘書를 감춘 상자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불경을 담은 상자를 가리킴.
  1549. 88)사생社生 : 향촌에 설립된 학교인 사학社學의 생도.
  1550. 89)송태회宋泰會(1872~1942)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사평리 출생.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ㆍ호산壺山. 시문詩文과 서예에 뛰어났고 매일신보 기자로 잠시 활동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군 사립 보성학교, 능주군 사립 육영학교, 순천군 송광사에 있었던 사립 보명학교 등에서 한문을 가르쳤다. 문장과 서예에 두루 뛰어나 지역 고승과 문인들의 비문과 현판 등을 많이 써서 영암 도갑사,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구례 천은사 등 전남 지방의 유명 사찰에 남아 있다.
  1551. 90)상당上堂 : 설법하기 위해 법당에 올라감.
  1552. 91)두타頭陀 : ⓢ dhuta. 의식주에 관한 탐욕을 제거하기 위한 수행. 여기서는 수행승을 가리킴.
  1553. 92)종제從弟 : 아버지 친형제의 아들딸 가운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아우.
  1554. 93)에도가와(江戶川) : 일본 간토, 도쿄 도都 23행정구의 하나.
  1555. 94)복숭아 드리는 :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 선인仙人인 서왕모西王母가 3천 년에 한 번 열리는 천도복숭아를 바친다는 제목의 정재呈才 「獻仙桃」가 있다.
  1556. 95)축강祝崗 : 장수를 기원함. 『詩經』 「天保」의 “하늘이 왕을 보호하고 안정시켜 흥성하게 하지 않음이 없으니, 산 같고 언덕 같으며 산마루 같고 구릉 같으며 냇물이 한창 이르는 듯 불어나지 않음이 없네.(天保定爾。以莫不興。如山如阜。如岡如陵。如川之方至。以莫不增。)”에서 나온 것이다.
  1557. 96)영대靈臺 :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
  1558. 97)수시晬詩 : 생일을 축하하는 시.
  1559. 98)법은야法恩爺 : 법의 은혜를 끼친 분이라는 뜻. 야爺는 남자의 존칭.
  1560. 99)현호懸弧 : 생일. 『禮記』 「內則」에 “자식을 낳음에 남자일 경우는 문 왼쪽에 뽕나무 활을 걸고, 여자일 경우는 문 오른쪽에 수건을 건다.(子生男子。設弧於門左。女子。設帨於門右。)”라고 하였다.
  1561. 100)절구를 가는 : 원문 ‘磨杵’는 ‘마저성침磨杵成針’의 준말. 쇠로 만든 다듬이 방망이를 갈아서 침을 만든다는 뜻.
  1562. 101)황향黃香 : 후한後漢 시대의 인물. 여름에 더울 때는 아버지가 자고 있는 잠자리나 베개를 부채질하고, 추울 때는 자신의 체온으로 아버지가 앉을 자리를 따뜻하게 해서 아버지를 앉게 했다. 『蒙求』.
  1563. 102)노래자老萊子 : 춘추시대 말기 초楚나라 인물. 늙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려고 70이 넘은 나이에 어린애가 입는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일화가 유명하다.
  1564. 103)사은四恩 : 『心地觀經』에 따르면 부모의 은혜, 중생의 은혜, 국왕의 은혜, 삼보의 은혜를 들고, 일체의 중생은 모두 사은을 진 존재라고 함.
  1565. 104)명령榠欞 : 장수. ‘명령冥靈’과 같은 뜻으로, 오래 산다는 남국南國의 나무 이름. 『列子』 「湯問」에 “초나라 남쪽에 명령이라는 나무가 있으니, 500년을 봄으로 삼고, 500년을 가을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1566. 105)노지 백우로 화택을 넘길 : 노지 백우는 일승 묘법을 가리킴. 한 부호가 집에 불이 났는데도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 집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양거羊車ㆍ녹거鹿車ㆍ우거牛車로 유인하여 그들이 노지로 나오자 희고 큰 소가 끄는 멋진 수레를 각각 선물했다. 『法華經』 제3 「譬喩品」 ‘火宅喩’.
  1567. 106)육감정六鑑亭 : 송광사 임경당에서 계곡물 쪽으로 난 정자.
  1568. 107)김효찬金孝燦 : 자는 대겸大兼, 호는 남파南坡, 순천 출신이다. 조선 시대 말기 중추원中樞院 소속의 관직 중추원의관을 지냈으며, 1913년 순천 군수 이병휘李秉輝와 함께 난국음사蘭菊吟社를 창설해 근고루近古樓와 연자루燕子樓ㆍ선암사仙巖寺 등에서 많은 시문을 남겼다. 저서에 『南坡詩集』이 있다.
  1569. 108)화표華表 : 여기서는 장수를 뜻함. 요동遼東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와서는 요동 성문의 화표주華表柱 위에 내려앉았는데, 소년 하나가 활을 쏘려고 하자 허공으로 날아올라 배회하면서 “옛날 정 영위가 한 마리 새가 되어,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이제 처음 돌아왔소.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은 모두 바뀌었나니, 신선술 왜 안 배우고 무덤만 이리도 즐비한고.(有鳥有鳥丁令威。去家千年今始歸。城郭如故人民非。何不學仙冢纍纍。)”라고 탄식하고는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搜神後記』 권1.
  1570. 109)백취운白翠雲 : 1910년대 대흥사 주지. 당시 교종으로서 강학을 위주로 한 인물로 『朝鮮佛敎通史』에 기재되어 있다.
  1571. 110)기수祗樹 : 파사닉(波斯匿; Prasenajit)왕의 태자였던 기타祗陀(Jeta)가 심은 나무들. 여기서는 숲을 가리킴.
  1572. 111)송만암宋曼庵(1876~1957) : 법휘는 종헌宗憲.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며 목양산인牧羊山人이라고도 한다. 11세 때 어머니가 죽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백양사白羊寺로 출가하여 취운翠雲 화상의 제자가 되었다. 16세 때 구암사龜巖寺 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박한영朴漢永 강백에게 수학하고 다시 운문암雲門庵의 환응幻應 강백에게 수학하여 불교경전을 익혔다. 23세 때 환응 강백에게서 전강傳講을 받아 개강開講하였으며, 1905년 이후에는 청류암靑流庵ㆍ백련암白蓮庵ㆍ천진암天眞庵ㆍ해인사 강원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910년에 나라를 잃게 되자 다시 백양사로 돌아와서 광성의숙廣成義塾을 설립하고 이전의 강원 제도를 혁신하였다. 당시에 그는 100여 명의 학승들에게 불경뿐만 아니라 외전外典도 함께 배우게 했으며, 일제에 의해 금지되었던 교재인 국사國史와 지리, 기타 민족정신을 심어 줄 수 있는 모든 교과목을 지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양사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출입하게 되었으며, 단순한 사찰의 기능을 넘어선 민족정신 함양 도량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1911년에 백양사에서 대오견성大悟見性하여 수백 명의 수좌首座들에게 선을 지도하였다. 1928년부터 3년 동안 현재의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에는 광주에 정광중학교淨光中學校를 설립하여 7년 동안 교장직을 역임하는 한편, 호남고불총림湖南古佛叢林을 결성하여 불교정화작업을 시작하였다. 그 뒤 1952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제2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5년 동안 재직하였다.
  1573. 112)동천洞天 : 신선이 사는 곳. 경치 좋은 계곡.
  1574. 113)『장수경』 : 원제는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佛說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
  1575. 114)정황진鄭晄震(1890~?) : 필명 사후생. 쌍계사에 출가하여, 1910년대 일본 조동종계 대학에 유학하였다. 귀국 후 1925년에 창립한 불교총서간행회 활동을 하였으며, 자신의 연구 논문은 물론 일본 학자의 논고를 많이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였다. 원효의 「晉譯華嚴經疏序」를 1918년에 『朝鮮佛敎叢報』 12호에 기송記送한 기록이 있는 등 원효의 저서를 집성한 인물이다.
  1576. 115)형화荊花 : 자형화紫荊花. 형제의 비유. 『續齊諧記』 「紫荊樹」에 남조南朝 양梁나라 경조京兆 사람인 전진田眞 삼형제가 재산을 똑같이 나누고 나니, 오직 자형수紫荊樹 한 그루만 남았으므로, 이것을 셋으로 쪼개서 나누자고 의논하고서 다음날 그 나무를 베러 가 보니, 나무가 이미 말라 버렸다. 그래서 전진이 크게 놀라 아우들에게 말하기를, “이 나무의 뿌리가 하나인지라, 장차 쪼개서 나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마른 것이니, 우리는 나무만도 못하다.”라고 하고는, 나누었던 재산을 다시 합하여 형제간에 아주 화목하게 살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
  1577. 116)보수寶樹 : 극락정토에 일곱 줄로 벌여 서 있는 보물 나무.
  1578. 117)공안 원만히~잣나무 푸르다 : 공안 가운데 유명한 ‘정전백수庭前柏樹’를 예로 들어 공안, 즉 화두를 성취했음을 표현했다.
  1579. 118)이설월李雪月 : 설월 용섭雪月龍燮(1868~1938). 동국대학교의 전신으로 1906년에 개교한 명진학교明進學校 2회 졸업.
  1580. 119)거령巨靈 : 황하黃河의 신으로, 화산華山을 손으로 쳐서 쪼개어 황화의 흐름을 틔웠다 한다. 장형張衡의 「西京賦」.
  1581. 120)대춘大椿 : 매우 오래 산다고 일컬어지는 나무. 『莊子』 「逍遙遊」에 대춘이 8천 년을 봄으로 하고 8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하였다.
  1582. 121)임형순林炯珣 : 곡성군谷城郡 도림사道林寺 주지를 역임함. 『조선총독부관보』 1932년 6월 1일자 참조.
  1583. 122)수명 : 원문은 ‘鶴壽’. 삼국시대 오나라 육기陸璣의 모시소毛詩疏에, “학은 천 년을 산다.”라고 하였음. 학을 선금仙禽이라 하여 축수祝壽하는 데 많이 사용한다.
  1584. 123)도진호都鎭鎬(1889~1986) : 1920년 조선불교청년회를 발기. 1930년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불교청년대회에 조선 대표로 파견.
  1585. 124)호시弧矢 :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남자의 출생 또는 대장부의 원대한 포부를 말한다. 옛날에 남자아이가 출생하면 상목桑木으로 활을 만들고 봉초蓬草로 화살을 천지 사방에 대고 쏨으로써 사방에 뜻을 둔 남자의 기상을 상징하였다. 『禮記』 「內則」.
  1586. 125)눈은 벗을~여전히 푸르네 : 원문 ‘靑眼’은 누군가를 반가워하는 눈길을 뜻한다. 삼국시대 위魏나라 완적阮籍이 속된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 즉 흰 눈자위를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 즉 검은 눈동자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낸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簡傲」.
  1587. 126)봉황 우는 기산 : 주周나라가 일어날 적에 봉황이 기산에서 울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길상吉祥의 조짐을 의미한다. 『國語』에 주나라 내사內史 과過가 “주나라가 흥기할 때 기산에서 봉황새가 울었다.”라고 하였다.
  1588. 127)털 뽑고 골수 씻어 : 환골탈태와 같은 의미.
  1589. 128)최평담崔平澹 : 천은사 부도군에 있는 월봉당유운선사유혜비月峯堂裕雲禪師遺惠碑가 1918년에 세워졌는데 비석에 새겨진 제자弟資 명단에 보인다.
  1590. 129)색동옷 춤 : 부모에게 효도함을 뜻한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인 노래자老萊子는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어, 일흔 살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의 놀이를 하여 어버이를 기쁘게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小學』 「稽古」.
  1591. 130)세 길 : 은자의 거처를 말한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歸去來辭」에 “(정원의) 세 길이 거칠어졌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남아 있네.(三逕就荒。松菊猶存。)”라는 표현이 있다.
  1592. 131)산악이 신령 내려 : 원문 ‘岳降靈’은 『詩經』 「大雅」 ≺崧高≻의 “維嶽降神”에서 온 것으로, 산악의 신령한 정기로 위인을 낳았다는 뜻이다.
  1593. 132)김수경金袖鯨 : 1912년에 곡성군 태안사 주지를 맡음. 『조선총독부관보』 1595호.
  1594. 133)삼상叅商 :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삼성參星은 동쪽 하늘에 있고 상성商星은 서쪽 하늘에 있어서, 각각 뜨고 지는 시각이 다른 관계로 영원히 서로 만날 수가 없는 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春秋左傳』 ‘소공昭公 원년元年’.
  1595. 134)철수鐵樹 : 잎은 향포香蒲와 같고 자색紫色을 띤 나무인데, 소철蘇鐵이라고도 하고, 해송海松이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다만 이 나무는 원래 열대 식물인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므로,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무심無心,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에 비유하여 사려와 분별을 단절하는 수행의 법칙으로 삼는다.
  1596. 135)명령榠欞 : 매우 오래 산다고 일컬어지는 나무. 『莊子』 「逍遙遊」에, 초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 있는데 5백 년을 봄으로 하고 5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하였다.
  1597. 136)물과 달을~신선의 배움이요 : 소 신선은 송나라 소식을 가리킴. 물과 달은 「赤壁賦」의 내용 “擊空明兮泝流光” 등을 말한다.
  1598. 137)전원으로 돌아감은~역사에 푸르네 : 「歸去來辭」를 지은 도연명陶淵明은 동진東晋 시대 문인이다.
  1599. 138)거문고 : 원문 ‘牙琴’은 춘추시대 종자기鍾子期가 잘 들었던 백아伯牙의 거문고를 뜻한다. 『列子』 「湯問」.
  1600. 139)봉시蓬矢 : 쑥대로 만든 화살. 여기서는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쓰임.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살을 천지사방에 쏘아서 성공을 축원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뜻이 바뀌어 남자가 큰 뜻을 세움을 비유하는 말로 쓰임.
  1601. 140)육아蓼莪 : 『詩經』 「小雅」의 한 편명으로, 부모가 돌아가신 후 그 은혜를 기리며 효도를 다하지 못했음을 슬퍼하는 내용.
  1602. 141)이담해李湛海 : 범어사의 승려.
  1603. 142)철수화 많이 피어 : 극히 실현되기 어려움을 비유함. 철수는 열대 지방의 나무로 꽃이 잘 피지 않음. 명나라 왕제王济의 『君子堂日詢手鏡』에 “吳浙間嘗有俗諺云。見事難成。則云須鐵樹花開。”라 하였다.
  1604. 143)바람인가 깃발인가 : 인종印宗 법사가 열반경 강의를 하고 있을 때, 두 승려가 바람과 깃발을 가지고 다투길,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또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였다. 이를 듣고 혜능이 그것은 바람이나 깃발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 하니, 놀란 인종은 혜능의 제자가 되었다.
  1605. 144)거북과 학 : 장수를 상징한다.
  1606. 145)환선정喚仙亭 : 전라남도 순천시 조곡동稠谷洞 죽도봉공원竹島峰公園 내에 있다. 원래 환선정은 매곡동 둑실로 건너가는 다리 머리에 있었는데 1962년 8월 28일 수해로 유실되면서 1988년에 현재 자리에 복건했다.
  1607. 146)『팔양경八陽經』 : 당나라 삼장법사 의정義淨이 한역한 『佛說天地八陽經神呪經』. 천지 음양의 여덟 가지 이치와 혼인, 해산, 장례법을 설한 경전.
  1608. 147)눈길 푸르다 : 손님을 반갑게 맞음을 뜻함.
  1609. 148)지선智仙 : 송나라 문인 구양수歐陽脩와 교유한 승려. 취옹정을 지은 인물로 「醉翁亭記」에 등장한다.
  1610. 149)꺼리네 : 문맥이 순조롭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해당 부분의 원문 ‘忌’는 ‘忘’의 오자로 보인다.
  1611. 150)정만조鄭萬朝(1858~1936) :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대경大卿, 호는 무정茂亭. 대한제국기에는 규장각 부제학을 지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동사문회 부회장, 경학원 대제학, 조선사편수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612. 151)천은산방 : 지리산 천은사泉隱寺인 듯함. 보정은 을묘년(1915) 3월에 방장산 천은사에 가서 또한 크게 모임을 열었다. 「行錄草」 참조.
  1613. 152)무성함이 잣나무~기쁘게 하니 : 송무백열松茂栢悅의 의미.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으로, 동료가 잘되는 것을 기뻐함을 비유.
  1614. 153)안용섭安容燮(1860~1923) : 자는 경중敬仲, 호는 금석錦石. 『錦石遺稿』가 전한다.
  1615. 154)초지初地 :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인 52위 가운데 십지十地의 첫 단계, 즉 환희지歡喜地.
  1616. 155)성상星霜 : 세월을 뜻하는데, 이 구절 뒤에 ‘희다’고 한 것은 서리와 별의 의미를 살린 것이다.
  1617. 156)견도見道 : 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여 견혹見惑을 끊는 단계. 이 이상의 단계에 이른 사람을 성자라고 함.
  1618. 157)빈 방에~빛이 생겨나고 : 방이 비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환하게 밝아진다는 뜻. 마음이 무상무념이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비유함. 『莊子』 「人間世」.
  1619. 158)향사香社 : 당나라 때 백거이白居易가 향산香山의 승려 여만如滿과 함께 결성한 모임인 향화사香火社의 준말로, 여기서는 육감정을 비유한 것이다.
  1620. 159)지선정智仙亭 : 지선은 송나라 구양수歐陽修의 「醉翁亭記」에 나오는, 취옹정을 세우고 구양수와 교유한 승려 이름이다.
  1621. 160)웅경熊經 : 도인술導引術의 하나로, 곰이 나무에 기어 올라가는 자세. 새가 목을 늘여 먹을 것을 구하는 자세인 조신鳥伸과 같이 언급됨. 『莊子』 「刻意」.
  1622. 161)종소리 : 원문은 ‘鯨音’. 종의 윗부분에 음통과 포뢰浦牢(용)가 있는데 용의 목 부분에 종의 걸쇠가 걸려 있는 이 부분을 용뉴龍紐라고 부른다. 포뢰는 용의 아들인데 고래를 보면 무서워서 크게 운다고 한다.
  1623. 162)훤당萱堂 :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1624. 163)생일 : 원문 ‘勞’는 ‘劬勞’를 뜻함. 이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수고로움을 뜻함. 『詩經』 「小雅」 ≺蓼莪≻에 “슬프다 우리 부모, 날 낳고 고생 많으셨지.(哀哀父母。生我劬勞。)”라는 구절이 있다.
  1625. 164)보림寶林 : ‘보배 숲’이라는 뜻으로 육조대사 혜능이 머물렀던 사찰 이름이기도 하다.
  1626. 165)다송茶松 : 필자 금명 보정錦溟寶鼎의 호.
  1627. 166)상호桑弧 : 뽕나무로 만든 활.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로 만든 활로 쑥대로 만든 살을 천지 사방에 쏘아서 성공을 축원한 풍속으로, 출생을 뜻함.
  1628. 167)철수鐵樹 : 잎은 향포香蒲와 같고 자색紫色을 띤 나무인데, 소철蘇鐵이라고도 하고, 해송海松이라고도 하나 자세하지 않다. 다만 이 나무는 원래 열대 식물인데,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맺지 않으므로,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무심無心, 무작無作의 묘용妙用에 비유하여 사려와 분별을 단절하는 수행의 법칙으로 삼는다.
  1629. 168)육소 : 『詩經』 「小雅」의 편명. 육소蓼蕭는 크게 자란 쑥으로, 잘 자란 쑥이 이슬에 촉촉이 젖어 있는 것처럼 풍신이 좋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잔치하며 화락하게 노는 모습을 노래한 것.
  1630. 169)상산 : 원문은 ‘商峀’. 상산사호商山四皓로 유명한 곳. 진시황 때에 난리를 피하여 은거한 이들인데, 여기서는 덕망이 높은 은거자의 거처를 뜻하는 말로 쓰였고, 다송을 상산사호에 비유한 것이다.
  1631. 170)뾰족한 : 원문의 ‘旗槍’은 노란빛ㆍ붉은빛의 작은 기를 단 단창短槍인데 여기서는 찻잎의 뾰족한 모양을 가리킴.
  1632. 171)구련龜蓮 : 장수를 뜻함. 송나라 주희朱熹가 어머니의 생신날 축수한 시 ≺壽母生朝≻의 “구련을 올려 천 년의 장수를 기원하고, 영원히 부조로 하여금 한 집안을 풍요롭게 하네.(願上龜蓮千歳壽。永令鳬藻一家肥。)”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로, 천 년을 사는 거북이가 연잎 위에서 논다는 뜻인 ‘구련’은 장수를 상징한다.
  1633. 172)단장정 : 행인의 휴식이나 전별 장소용으로 길거리에 설치한 휴게소. 단정은 5리里이고 장정은 10리에 설치함.
  1634. 173)머리 끄덕이던 돌 : 동진東晉 때 도생道生(355~434) 화상이 소주蘇州의 호구산虎丘山에서 돌을 모아 놓고 『涅盤經』을 강하면서 “내가 말하는 법이 불심에 들어맞는가?”라고 하니 모든 돌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를 ‘완석점두頑石點頭’라고 한다.
  1635. 174)조영선趙泳善(1879~1931) : 호는 배헌拜軒, 자는 이경而慶, 본관은 옥천이고 곡성谷城 사람이다. 저서로 『拜軒集』이 있다. 1906년(광무 10)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일으킨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최익현과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1636. 175)어산魚山 : 범패梵唄 수도장의 발상지. 인도는 이민달라산, 중국은 어산이 범패의 발상지라고 한다. 불경의 게송에 곡을 붙인 노래를 범패라 한다.
  1637. 176)귀밑머리는 중년이라 공정히 하얗고 : 두보의 시 ≺送隱者≻에 “세간의 공정한 도리는 오직 백발이라.(公道世間唯白髮)”라 하였다.
  1638. 177)달뗏목 : 요堯임금 때 서해西海에 광휘光輝를 발하는 큰 뗏목 하나가 떠서 언뜻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그 광휘가 마치 성월星月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 같았는데, 이 뗏목은 항상 사해四海를 떠돌아서 12년 만에 천체天體를 일주하곤 했으므로 이 뗏목을 관월사貫月楂 또는 괘성사挂星楂라고 불렀다. 『拾遺記』.
  1639. 178)방학정放鶴亭 : 송나라 은자隱者 장사후張師厚가 서주徐州 운룡산雲龍山에 은거하면서 동산에 정자를 짓고 학을 길렀다. 소식이 그것을 보고 그 정자 이름을 방학정이라고 불렀으며 방학정을 제목으로 하여 「放鶴亭記」를 지었다. 『東坡全集』 『古文觀止』.
  1640. 179)연단鍊丹 : 신선이 되는 단약丹藥을 제조하는 비법.
  1641. 180)건건乾乾 : 두려워하고 수성修省한다는 뜻. 『周易』 「乾卦」에, “군자는 종일 건건한다.(君子終日乾乾)”라고 하였다.
  1642. 181)죽산 : 곡성군 죽산리에 있는 산 이름. 김영배는 다송과 동성동본이고 역시 곡성 출신인 듯함.
  1643. 182)하랍夏臘 : 승려의 나이. 승려가 90일간의 하안거夏安居를 지낸 햇수. 법랍法臘이라고도 함.
  1644. 183)전갱籛鏗 : 팽조彭祖의 이름. 요임금 때 사람으로 팽성彭城에 봉하였기 때문에 팽조라고도 하는데, 767살이 되었어도 노쇠하지 않았다 한다. 『列仙傳』.
  1645. 184)심인心印 :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부처의 깨달음의 내용.
  1646. 185)장경성長庚星 : 금성, 샛별, 계명성啓明星, 태백성太白星.
  1647. 186)복어 등 거북 무늬 : 복어의 반점 같은 얼룩이 있는 등은 장수하는 노인을 가리키고, 거북은 장수를 상징한다.
  1648. 187)최진국崔珍國(1862~?) : 자는 태여泰汝, 호는 만운晩雲, 본관은 전주. 기송사奇松沙를 종유從遊하여 경서經書의 뜻을 연마하였다. 문집文集이 있고 문생門生들이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였다.
  1649. 188)80종호種好 : 32상相 80종호. 부처님이 몸에 갖추신 뛰어난 묘상妙相 혹은 상호相好를 작게는 32가지, 크게는 80가지의 특징으로 나타낸 것이다.
  1650. 189)쇠 끊음이 난초 맺는 : 쇠를 끊음(斷金)이나 난초 맺음(結蘭) 모두 우정을 뜻한다. 『周易』 「繫辭上傳」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취가 난향과 같다.(二人同心。其利斷金。同心之言。其臭如蘭。)”라고 하였다.
  1651. 190)이종택李鍾宅 : 육봉六峯 이종택(1865~1942)인 듯함. 육봉 이종택은 영암 출신으로 본관은 함풍. 『六峯遺集』이 있음.
  1652. 191)산초술 : 산초술은 향이 좋아 신神에게 바치고 정월 초하룻날 축하주로도 사용하였음.
  1653. 192)겁진刼塵 : 천지가 온통 뒤집힐 때 일어나는 먼지.
  1654. 193)거위 : 진晉나라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좋은 거위를 기르고 있다는 산음山陰의 한 도사道士를 찾아갔는데, 그 도사가 왕희지에게 『道德經』 한 권을 붓으로 써 주면 주겠다고 하자, 왕희지가 흔쾌히 승낙하고 그 경문經文을 써 준 다음에 그 대가로 거위를 가지고 왔다는 고사가 있다. 『晉書』 「王羲之傳」.
  1655. 194)능파각 : 태안사의 금강문으로 누각을 겸한 일종의 다리 건물.
  1656. 195)단정短亭 : 행인들의 휴게소로서, 5리里마다 단정을 설치하고 10리마다 장정을 설치하였다.
  1657. 196)진나라 아이들 : 진시황이 서불徐市에게 동남동녀를 데리고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보냈다.
  1658. 197)호남弧南 : 남극노인성老人星의 별칭.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
  1659. 198)생일 : 원문 ‘蓬桑’은 상봉호시桑弧蓬矢의 준말. 뽕나무로 만든 활과 쑥대로 만든 살. 예전에는 남자가 태어나면 이 두 가지를 만들어서 천지 사방에 쏘아 큰 뜻을 이루기를 비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1660. 199)수성壽星 : 노인성의 별칭.
  1661. 200)피리 부는 아미산의 소학 : 아미산은 사천성四川省 남서쪽에 있는 산. 아미산 부근에 삼소사三蘇祠, 즉 송나라 소순과 소식蘇軾ㆍ소철의 거주지에 세운 사당이 있다. 소식의 「赤壁賦」에 퉁소를 부는 대목이 있고(客有吹洞簫者), 「後赤壁賦」에 학이 등장한다. “適有孤鶴。橫江東來。”
  1662. 201)도서 바친 함곡관의 이우 : 이이李耳, 즉 노자가 청우靑牛를 타고 함곡관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수문장 윤희尹喜의 요청으로 『道德經』을 써 주었다고 한다.
  1663. 202)빙도 : 1만 년 만에 열리는 복숭아. 『拾遺記』에 이르기를, “부상扶桑으로 5만 리쯤 가면 방당磅磄이라는 산이 있고 이 산 위에는 1백 아름드리나 되는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이 복숭아는 1만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 그리고 울수鬱水라는 물은 방당산 동쪽에 있는데, 여기에는 1천 상常(1상은 16척尺)이나 되는 연뿌리가 난다.”라고 하였다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전한다.
  1664. 203)애쓰신 : 원문 ‘劬勞’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수고를 뜻하는 말로 『詩經』 「小雅」 ≺蓼莪≻에 “애달파라 우리 부모님, 나를 낳아 애쓰셨도다.(哀哀父母。生我劬勞。)”라고 하였다.
  1665. 204)다북쑥 : 원문 ‘蓼莪’는 『詩經』 「小雅」의 편명으로, 부모가 돌아가신 후 그 은혜를 기리며 효도를 다하지 못했음을 슬퍼하는 내용임.
  1666. 205)주옥籌屋 : 옛날 세 노인이 함께 만난 자리에서 어떤 자가 나이를 물었다. 세 노인 모두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고 대답하였는데, 그중 한 노인이 “바다가 뽕밭으로 변하면 그때마다 산가지 한 개를 놓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하나씩 놓은 산가지가 열 칸의 집에 이미 가득 찼다.(水變桑田時。吾輒下一籌。邇來吾籌已滿十間屋。)”라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東坡志林』 권2.
  1667. 206)석니石泥 : 돌가루와 진흙의 혼합물. 봉선封禪할 때 봉니封泥용으로 사용되었다.
  1668. 207)여도蠡圖 : 춘추시대 범려范蠡가 월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벼슬을 버리고 오호五湖에 은둔한 내용을 그린 것.
  1669. 208)난탕蘭湯 : 향기로운 난초를 넣어서 끓인 물. 불상不祥한 것을 물리칠 수 있다 하여 난탕으로 목욕재계를 했다고 한다. 『大戴禮記』 「夏小正」에 의하면 “단오일에는 난탕으로 목욕을 한다.(午日以蘭湯沐浴)”라고 하였다.
  1670. 209)범상梵相 : 범梵은 맑다는 뜻으로 일체의 번뇌, 일체의 죄과를 완전히 벗어난 상태이다.
  1671. 210)송종헌宋宗憲(1876~1957) : 전라북도 고창 출신으로 1886년 11세 때 백양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구암사龜岩寺로 옮겨 박한영 문하에서 경전을 배워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 25세부터 32세까지 7년 동안은 운문선원雲門禪院에서 오로지 참선을 통한 정진에 전념했다. 1898년 무렵부터 강사 생활을 시작해서 1907년부터 해인사에서 강의를 이어 가고, 1910년 백양사로 돌아왔다. 사립 광성의숙廣成義塾 측량강습소를 설립(1910)하여 본격적인 후진 양성을 시작하였다. 또 광주시 광산구에 정광 중ㆍ고등학교와 서울에 불교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를 설립해 첫 학장에 취임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신식 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했다.
  1672. 211)연기嚥氣 : 양생법養生法의 하나. 입 안에 있는 공기를 배에 들어가게 삼키는 것.
  1673. 212)물오리 : 원문 ‘鳬藻’는 물오리가 조류藻類를 보면 기뻐한다는 뜻으로, 몹시 기뻐서 떠듦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그저 물오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1674. 213)삼거三車 : 『法華經』 「譬喩品」에서 말하는 양거羊車, 녹거鹿車, 우거牛車의 세 수레.
  1675. 214)신규환申圭桓 : 본관은 고령, 고흥 출신. 임진왜란 때 훈련원부정으로 왕을 의주로 호가하였던 영해榮海의 후손으로, 문학에 밝았다.
  1676. 215)영대靈臺 :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
  1677. 216)명령螟蛉 : 벌레의 유충인데, 『詩經』 「小宛」에 나나니벌이 명령을 물어다가 자기의 새끼로 기른다는 내용이 있어, 양자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제자들을 자식처럼 대했음을 말한다.
  1678. 217)송명회宋明會(1872~1953) : 자는 남일南一, 호는 소파小波, 본관은 여산礪山, 출신지는 전라남도 보성군 원당리元堂里이다. 1893년(고종 30)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으로부터 사사하였다. 1898년(광무 2)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배알하였는데 그 재주를 보고 자기 제자처럼 아꼈다. 1900년(광무 4)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다음 해 매천梅泉 황현黃玹을 찾았는데 매천과는 며칠을 함께 시를 논하며, 시문을 지어 서로 주고받았다. 동강東江 김영한金寧漢은 “호남의 시가詩家로서 ‘매천’ 이후에 소파가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1679. 218)숙업宿業 : 지난 세상에서 지은 선악善惡의 행업.
  1680. 219)노로정勞勞亭 : 오吳나라 때 세웠던 정자로 이별 장소였다. 그 터가 현재 강소성江蘇省 강녕현江寧縣 남쪽 15리에 있다. 이백의 시 ≺勞勞亭≻에 “天下傷心處。勞勞送客亭。”이라 하였다.
  1681. 220)임보극任普極 : 향봉 향눌香峰香訥(1901~1983). 일본 대학에서 공부한 향봉 스님은 출가 후에는 교와 선을 겸비하고 오직 수행 정진에 몰두했다. 1950년대 중반 경주 오봉산 사주암에 주석. 부산 범어사 선원에서 입승을 볼 때 엄격하게 수좌들을 지도했다. 노년에 조계총림 방장 구산九山(1909~1983) 스님의 권유로 송광사로 돌아왔다.
  1682. 221)김완金完(1577~1635) : 무과에 급제한 뒤 경상방어사 고언백高彦伯의 진중으로 가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 남원의 궁장현弓藏峴에서 적병을 만나게 되어 남원의 진사 조경남과 정사달 등과 함께 거병하여 현재의 구례군 산동면 원촌들에서 왜적과 대결하여 승전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선무원종공신이 되었다.
  1683. 222)5세 때~‘영준英俊’이라 하였다 : 실제 비명에는 이 부분이 없다.
  1684. 223)향수해香水海 : 수미산을 둘러싼 바다. 『華嚴經』에 나오므로 『華嚴經』을 지칭하는 듯하다.
  1685. 224)원해圓海(?~?) : 성은 음씨陰氏, 법명은 문주文周, 전라남도 순천 출신. 어려서 조계산 송광사로 출가하여 원만圓滿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비구계와 보살계를 각안覺岸으로부터 받았으며, 전국의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불경을 배운 뒤, 송광사로 돌아와서 후학들에게 강의하였다.
  1686. 225)범해梵海(1820~1896) : 법명은 각안. 1833년(순조 33) 두륜산 대둔사大芚寺로 가서 출가하였고, 1835년 호의縞衣를 은사로 삼고 하의荷衣에게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초의草衣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1846년에 호의의 법을 이어 진불암眞佛庵에서 『華嚴經』과 『梵網經』을 강설하고 선리禪理를 가르쳤다.
  1687. 226)함명涵溟(1824~1902) : 호는 태선太先. 『緇門警訓私記』 1권이 현존한다.
  1688. 227)팔영산八影山 :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산.
  1689. 228)전경轉經 : 경전의 글귀를 소리 내어 읽거나 읊조림.
  1690. 229)광원암廣遠菴 : 순천 송광사에서 약 600m 떨어진 곳에 있는 송광사의 산내 암자이다.
  1691. 230)광무光武 병술년 : 광무 연간에 병술년은 없다. 금명 생애로 보아 병술년은 1886년이다.
  1692. 231)기군紀群의 사귐 : 기군은 후한後漢의 명사인 진기陳紀와 그의 아들 진군陳群을 가리킨다. 자신의 나이가 상대방 부자의 중간임을 말한 것이다. 노魯 지방의 공융孔融이 먼저는 진기와 벗하고 뒤에는 진군과 벗하였으므로, 후대에 여러 대에 걸쳐 교분을 맺는 것을 기군의 사귐이라 하였다.
  1693. 232)송태회宋泰會(1872~1942) : 전라남도 화순 출신. 사호沙湖 송수면宋修勉의 조카이며, 자는 평숙平淑, 호는 염재念齋. 시문詩文과 서예에 뛰어났고 매일신보 기자로 잠시 활동하였다. 한일 합방 이후 낙향하여 보성, 능주, 순천, 고창 등에서 한문과 서화 등을 가르쳤다.
  1694. 233)일전어一轉語 : 미혹한 마음을 싹 바꿔 깨달음에 들게 하는 간단한 한마디 말.
  1695. 234)걸계乞戒 : 계를 청함.
  1696. 235)권상로權相老(1879~1965) : 경상북도 문경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18세 때인 1896년 출가해 문경 김룡사金龍寺에서 서진瑞眞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었으며, 이회광李晦光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乾鳳寺에서 설립한 봉명학교鳳鳴學校 운영에 관여하였고, 김룡사 경흥학교慶興學校와 성의학교聖義學校 강사를 역임했다. 이회광의 주도로 불교계 대표들이 모여 창설된 종단인 원종圓宗에서 1909년 종무 편집부장으로 활동했다. 1911년 문경 대승사大乘寺의 주지가 되었다. 1912년 조선불교월보사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취임해 『조선불교월보』를 발행했으며, 1931년부터 1944년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1940년 혜화전문학교로 변경,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 교수로 재직했다.
  1697. 236)벽련 인성碧蓮仁性 : 성은 장씨張氏, 전라남도 순천 출신. 지안之安 선사의 법을 계승하였으며, 개당開堂하여 설법할 때 경전에 나오는 인과의 이치를 잘 설명하여 불도佛道를 널리 선양할 인물로 기대를 모았다.
  1698. 237)만암 종헌曼庵宗憲 : 송종헌(1876~1957). 주 210 참조.
  1699. 238)석호 형순錫虎炯珣 : 임형순. 곡성군谷城郡 도림사道林寺 주지를 역임함.
  1700. 239)해은 재선海隱栽善 : 법명은 오천梧泉, 이름은 재선栽善. 『茶松詩稿』 권2에 칠언율시 ≺강단을 연 김오천에게 화답하다(和金梧泉開講)≻가 있는데 협주로 “이름은 재선, 호는 해은이다. 정사년(1917) 겨울에 건당하기 전에 대원사로부터 왔는데, 도중에 쌍계사 강주의 요청으로 그대로 주실하여 개당하였다가 다음 해에 본사로 돌아가서 건당하고 주실하였다.(名栽善。號海隱。未建幢。自大原寺來。路爲雙溪寺講主請。仍住室開堂。明年還本。建幢住室。)”라고 하였다.
  1701. 240)백은 종택栢隱鍾宅 : 미상. 송광사에 머물다가,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외나로도로 흘러가서 시계 수리공으로 생활하며 환속하고, 결혼하였다. 이후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 덕암산 중턱의 봉래사蓬萊寺에 안거하던 벽운 성범碧雲性梵이 입적하자 그 후임으로 봉래사에 주석하였다.(백기란, 「茶松子 茶詩 고찰」,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1702. 241)등곡 병렬藤谷丙烈(1905~1959) : 송광사에 주석.
  1703. 242)시중時衆 :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
  1704. 243)남포藍浦 :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이곳의 벼룻돌이 특산물일 정도로 좋은 돌이 많은 곳이다.
  1705. 244)김창웅金昌雄 :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1929년에 세워진 「한미산 흥국사 만일회비(漢美山興國寺萬日會碑記)」에도 각공으로서 참여했다.
  1. 1)「卷」一字。編者補入。
  2. 2)「文」一字。編者補入。
  3. 1)此• 標者。撰者親筆原稿(底本)中。加漆「删」字及削除線處標示也。其「删」字及削除線處。此書撰者。意中不合。以爲削除。然而編者。不削而全載。以ㆍ標示之。以下倣此。
  4. 1)「八」底本傍註曰「六」{編}。
  5. 2)「庚午」底本傍註曰「距今七百十七年」{編}。
  6. 3)「肅宗十三」底本傍註曰「距今二百四十年」{編}。
  7. 4)「癸卯」底本傍註曰「距今二百四年」{編}。
  8. 5)「乙卯」底本傍註曰「距今二百六十七年」{編}。
  9. 6)「庚寅」底本傍註曰「距今一百五十年」。
  10. 1)「券」疑「卷」{編}次同。
  11. 1)「碧潭」底本頭註曰「臨濟三十三世」{編}。
  12. 1)「曹」下疑脫「溪」{編}。
  13. 1)此文上底本頭註曰「自國師入寂熙宗庚午。至萬曆二十五年丁酉三百八十八。自國師入曹溪庚申。至大正十二年。自天啓三年癸亥。至大正十二年癸亥三百一年。合七百二十五年也」{編}。
  14. 1)此序文。旣載於曹溪高僧傳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三八一頁上段){編}。
  15. 2)此序文旣載於著譯叢譜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四三五頁中段){編}。
  16. 1)此引文。旣載於佛祖錄賛頌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三一六頁上段) 然與佛祖錄賛頌序小異{編}。
  17. 1)此跋文。旣載於念佛要門科解篇(韓國佛敎全書第十二册四三四頁下段){編}。
  18. 1)「迷」疑「微」{編}。
  19. 1)「囑累徒弟文抄」別紙流通。編者移置於此。
  20. 2)「附錄一」三字。編者補入。
  21. 1)「附錄二」三字。編者補入。
  22. 2){底}松廣寺所藏筆寫本。此詩集。本以別行本流通。此非茶松子之撰述故。編者以爲附錄。
  23. 1)此題名。編者補入。
  24. 2)「寶鼎」二字。編者補入。
  25. 1)此詩。底本在「錦溟講伯六十一壽詩」序文之前。編者移置於此。
  26. 1)「附錄三」三字。編者補入。
  27. 2)「錦溟禪師碑銘幷序」及「錦溟大宗師碑陰記」各各別紙流通。編者收集而於此載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