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阿差末菩薩經卷第三

ABC_IT_K0070_T_003
007_0976_b_01L아차말보살경 제3권
007_0976_b_01L阿差末菩薩經卷第三


서진 월지국 삼장 축법호 한역
이진영 번역
007_0976_b_02L西晉月氏國三藏竺法護譯


부처님께서 아차말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진 이여, 이제 일체 중생을 다 포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차말보살이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성스러운 뜻을 이어 받는다면 다 포섭할 수 있습니다.”
007_0976_b_03L佛告阿差末仁者於今爲能苞裹一切衆生乎阿差末言承佛聖旨具悉任受
이에 아차말보살이 곧 삼매(三昧)에 들어가니, 때를 같이 하여 그 모임에 있던 일체 대중들의 색신(色身)과 그들이 공양한 꽃ㆍ향ㆍ일산ㆍ깃발 따위가 모두 아차말보살의 배꼽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그 몸은 그렇다고 해서 늘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007_0976_b_06L阿差末菩薩適入三昧應時一切諸有色身供養華香繒蓋幢幡皆入臍中其身如故不增不減
때마침 대정(大淨)이란 보살이 아차말보살에게 물었다.
“지금 그 삼매는 어떤 것이기에 변화를 나타내어 일체의 색신과 꽃ㆍ향ㆍ깃발ㆍ일산을 다 넣고도 몸이 늘거나 줄어들지 않는 것입니까?”
아차말보살은 말하였다.
“이 삼매의 명칭은 보수색신(普受色身)이란 것입니다.”
007_0976_b_08L有一菩薩號曰大淨問阿差末所入三昧名曰何耶顯現變化乃能悉受一切色華香幡蓋其身如故而不增減差末曰其定號名普受色身
대정보살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 삼매가 이 정도의 색신 만을 받아들일 뿐입니까? 혹은 다른 색신을 더 받아 드릴 수 있습니까?”
아차말보살은 대답하였다.
“온 삼천대천(三千大千) 국토의 색신을 다 몸 안에 넣더라도 어느 구석에 있는지 볼 수 없으니, 왜냐 하면 위신력(威神力)으로 말미암아 그 몸이 늘지도 줄지도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007_0976_b_12L大淨復是三昧者但能受此復受餘乎差末曰三千大千國土悉入於身見所在所以者何以威神故無所增
이때에 보살ㆍ성문을 비롯한 여러 천인들이, 마치 오랫동안 목말랐던 나머지 물을 바라는 것처럼, 다 아차말보살의 신통변화를 보려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대중의 마음을 아시고 아차말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대중을 위해 이 삼매에 신변을 나타내는 것이 좋으리라.”
아차말보살이 아뢰었다.
“즉시 그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007_0976_b_16L時諸衆會諸天人民菩薩聲聞皆各有念猶如久渴望想飮矣欲見大士所化神變佛知衆心語阿差末一切人現是三昧阿差末曰輒奉聖
007_0976_c_02L이때 시방에서 모여든 불ㆍ보살과 스님들은 다 자신의 몸뚱이가 아차말보살의 배꼽 속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아차말보살의 배꼽 속에 현현한 그 국토의 명호가 보장엄(普莊嚴)이었기에 여러 보살의 의복 또한 마치 보장엄 국토의 보살들과 같았다. 배꼽 속에 있을 때에는 갖가지 장엄한 모습을 나타내 보였지만, 이러한 신변이 끝났을 때에는 역시 대중 속에 앉아 있던 본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에 대정보살이 아차말보살에게 찬탄하여 말하였다.
“이 삼매가 성스러운 은혜로 말미암아 그 위덕(威德)을 나타내니, 이같이 뛰어나고 황홀합니다.”
007_0976_b_20L應時十方諸會菩薩佛及衆僧自見身坐阿差末臍阿差末臍現有國土名普莊嚴諸菩薩服如莊嚴國衆菩薩也亦復皆現在其臍中所顯大應普嚴巍巍如是現威變已衆會各坐續復如故大淨菩薩報阿差末三昧聖恩威德超殊光光乃爾
아차말보살이 답하였다.
“이러한 것은 말할 것도 못됩니다. 왜냐 하면 온 삼천대천세계의 하늘ㆍ땅ㆍ산ㆍ언덕을 다 받아들이고 강ㆍ모래ㆍ흙덩이를 모두 받아들여도 좁지 않거늘, 하물며 그밖에 다른 것이겠습니까? 이 색신 따위를 수용하는 것은 하찮은 것에 속할 뿐입니다.”
007_0976_c_06L阿差末曰是不足言所以者何三千大千天地山陵悉受色身爲微末耳受江沙土不以爲迮況其餘耶
아차말보살이 인욕(忍辱)의 법품을 연설하고 이어 신통을 보이자, 70억에 달하는 인화(仁和)한 대중들이 큰 도의 마음을 일으키고, 만 2천 명의 보살들이 다 무생법인을 얻었다. 이때 사리불이 아차말보살에게 물었다.
“원컨대, 보살의 그 다함이 없는 정진을 듣고자 합니다.”
007_0976_c_09L說忍辱品演神足時七十姟仁和善人發大道心二千菩薩皆得無所從生法忍舍利弗問阿差末願樂復聞菩薩精進而不可盡
아차말보살이 대답하였다.
“보살의 정진에는 여덟 가지 다함이 없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 여덟 가지란, 큰 서원과 공덕의 갑옷을 입는 것이 첫째이고, 모든 정진에 힘써 물러나지 않는 것이 둘째이며, 부지런히 배워 일체의 공덕을 길러 내는 것이 셋째이고, 항상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려는 것이 넷째이며,
007_0976_c_13L阿差末曰菩薩有八精進無盡何謂爲八一曰被于弘誓大德之鎧是爲精進而不可盡二曰集精進而無所退三曰勤學長養一切功德四曰常欲養育普及衆生
무량한 복이 되고 경사가 되는 근본을 마련하는 것이 다섯째이고, 마음을 다해 모든 도무극을 닦는 것이 여섯째이며, 끝없는 지혜를 깨닫는 것이 일곱째이고, 일체의 법을 남김 없이 다 갖추려는 것이 여덟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함이 없는 여덟 가지 정진이라는 것입니다.”
007_0976_c_17L造立無數福慶之原六曰心元無求諸度無極七曰曉了智慧而無窮八曰欲得備悉一切佛法以故無是八精進而不可盡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이것을 일컬어 큰 서원의 갑옷을 입는 것이라고 하니, 생사로써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겁(劫)을 지나더라도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고 약간의 겁에서조차도 보살의 업을 행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007_0976_c_21L阿差末曰以名曰被弘誓鎧不以生死用爲勞苦故所以者何不計劫數當成佛道亦不思念於若干劫行菩薩業
007_0977_a_02L또 이것을 일컬어 큰 서원이라고 하니, 한량없이 길고 긴 무량의 겁 동안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다만 일체의 근본을 위하여 하루 내지 보름ㆍ한 달 ㆍ한 해ㆍ만 세ㆍ십만 세ㆍ백천 만 세에 이르도록 마음을 일으켜서 도를 구합니다.
007_0976_c_24L所以名曰爲弘誓者不限長遠無量劫故菩薩猶爲一切之本方俗所更始數大應一日至十五日若三十日合爲一月十二月爲一歲如是轉進至十萬歲若百千萬歲發意求道
또 한 분 부처님에서부터 항하사[江河沙]와 같은 부처님을 뵐 때까지 그 마음을 쉬지 않으며, 한 중생에서부터 항하사와 같은 중생을 포섭할 때까지도 그렇게 하여 내지 헤아릴 수 없는 항하사와 같은 부처님을 공양한 뒤에야 시도무극(施度無極)을 갖추며, 계율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와 37조도품(助道品)1)을 갖추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007_0977_a_06L悉卻是數猶若干載乃見一佛如是比數諸江河初發意等一切衆人各皆發心悉包容江河沙等諸菩薩亦如是央數不可計一切人悉發意意所知裁及一事其未所知不可稱計猶如供養江沙等佛然後乃具施度無極戒忍精進一心智慧三十七品亦復若斯
보살은 그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고 큰 서원과 공덕의 갑옷을 버리지 않아야만 이 덕을 모아 대인(大人)의 모습을 구족할 수 있습니다. 대인이란 곧 보살을 이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큰 서원을 버리지 않기에 다함이 없는 큰 서원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007_0977_a_14L菩薩聞是其心不懈不捨弘誓大德之鎧江沙等人皆發道意合集此德乃能具足一大人相一切如是各如前功乃悉周備諸大人相--其大人者謂菩薩也--菩薩聞是不以爲勞所以者何未曾違捨弘誓鎧故是爲菩薩被弘誓鎧而不可盡
007_0977_b_02L또 더욱 정진하는 것이 다함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보살은 법을 듣기 위해서라면 멀거나 가까운 것을 헤아리지 않고 물과 불을 싫어하지 않으니, 법을 듣기 위해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고, 공덕을 쌓되 물러남이 없고 뭇 공덕을 권하기 때문이며, 중생들을 다 교화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깨쳐서 열반에 들게 하기 때문이며, 열반에 들되 나태하지 않은 견고한 마음으로 항상 공덕을 쌓게 하기 때문이고, 공덕을 쌓되 언제나 큰 자비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더욱 힘쓰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7_a_20L何謂增長精進而不可盡若有菩薩勤欲聞法不計遠近不惡水火所以者何無懈惓故菩薩增長合集功德不用退卻合會勸助衆功德故何故合會欲以開化衆生之故令其度脫使入泥洹故而般泥洹不以懈慢堅固心無能迴者常求功祚不用厭恒住大哀故曰合集
또 보살은 걸어 다니거나 앉아 있거나 일어나거나 간에 도의 마음을 잊지 않으니, 한 찰나 사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을 옹호하되 그것을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더욱 힘쓰는 것이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7_b_05L菩薩所至坐起不忘道心如一念頃念佛法護於一切不以爲煩故曰合集而不可盡
또 일체의 정진을 길러내는 것이 다함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보살은 공덕을 세우되 그 뜻을 항상 신통의 지혜에 두기 때문에, 이것을 일컬어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뭇 용(龍)들이 큰 바다에 비를 퍼부었을 때 그 빗방울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이 일으키는 신통의 공덕도 그러하므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7_b_08L何謂長養一切精進而不可所立功德志願常存於諸通慧故名曰爲不可盡猶如衆龍還雨大不可別知渧數多少計之無盡通慧者功德如是至不可盡
또 무수한 공덕을 짓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보살이 마음을 쓰는 것은 일체 중생을 위해 항상 평등한 뜻을 지니기 때문이며, 공덕을 짓되 신통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복된 서원을 닦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다 은혜를 입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무수한 공덕을 짓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7_b_12L何謂造立無數功德所作用心爲一切故常懷等意所立功祚不離通慧所修福願欲使衆生皆共蒙恩以故名曰立無數德
또 마음을 다해 모든 도무극을 닦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중생들의 4천하는 모두 다함이 없으니, 헤아릴 수 없는 수가 이것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보살은 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그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을 다 제도하는가 하면 보다 더 많은 백 배ㆍ천 배ㆍ만 배ㆍ억 배ㆍ억만 배의 중생을 맡아 한량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을 제도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서 계속 정진을 거듭하여 모든 도무극을 닦기에, 이것을 일컬어 무수한 공덕을 짓는 것이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7_b_16L何謂心求諸度無極衆生四大悉不可盡不可數者入此諸數曰悉教三千大千世界衆生之類是比像不可稱載阿僧祇人皆開化無限如斯百倍千倍萬倍億倍億萬倍不可計喩所教度者爲少少聞是不恐亦不畏懅爲應精進謂造立無數功德而不可盡
007_0977_c_02L또 끝없는 지혜를 깨닫는 것이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보살의 공덕은 본래 다함이 없기 때문에 그 중생을 위해 일체의 공덕을 일으키는 지혜도 끝이 없기 마련입니다. 내지 도(道)의 자취에서 물러나지 않고 연각(緣覺)에 집착함 없이 다만 이 공덕을 힘써 모으되, 부처님의 한 터럭의 구멍의 공덕에서부터 신체의 온갖 터럭의 구멍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뭇 공덕을 성취하고 내지 양 미간(眉間) 사이의 모습을 성취합니다.
007_0977_b_23L何謂曉了智慧而無窮極菩薩功德不可盡如是悉計一切普知諸衆生本所作功德乃及道迹往來不還無著皆合此德乃成於佛一毛功德集計是各各悉成體諸毛孔巍巍衆乃能成佛兩眉閒相
이 미간 사이에 천 배의 복이 있게 되면 곧 정수리의 모습을 성취하니, 천상ㆍ천하에 누구도 부처님의 정수리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살은 그 끝없는 공덕으로 지혜 또한 끝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7_c_06L若斯眉閒千倍之福乃成頂相所以者何天上天下無能堪任見佛頂故以是故曰德不可盡慧無窮極
다시 그 끝없는 지혜란 무슨 뜻이겠습니까?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을 돈독히 믿게 하여서 이와 같은 믿음이 1백 배가 되더라도 부처님을 믿어 받드는 자와 그 공이 같고, 가령 부처님을 믿어 받드는 자가 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 그 지혜가 1백 배가 되더라도 8등인(等人)에는 미치지 못하며,
007_0977_c_09L又復何謂慧無窮正使三千大千世界衆生悉篤信如是信佛其信百倍乃與奉信者同等功耳設奉信等周滿三千大千世界其智百倍不及八等人
가령 8등인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 그 지혜가 1백 배가되더라도 도의 자취와 같지 못하고,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사람 가운데 도의 자취를 구하여 왕래하는 자나 돌아옴이 없는 자나 집착함이 없는 자의 지혜가 1백 배가 되더라도 한 사람의 연각(緣覺)의 지혜와 같지 못하며,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연각으로 가득 차더라도 보살이 초발심을 일으킨 지혜와 같지는 못하고,
007_0977_c_13L若八等人滿三千大千世界其智百倍不如道迹若三千大千世界充滿中人求道迹業往來不還及與無著其智百不如一緣覺智若三千大千世界滿中緣覺猶不如一發意菩薩之智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초발심의 보살로 가득 차게 하여 그 지혜가 백 배가 되게 하더라도 아유월(阿惟越)2)에는 이르지 못하며,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다 물러서지 않는 지위를 성취하게 하여 그 지혜가 백 배가되더라도 하나의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의 지혜와 같지는 못하고,
007_0977_c_18L正使三千大千世界充滿其中初發意菩薩其智百倍不如阿惟越致使三千大千世界衆生悉成不退轉其智百倍猶不如一一生補處菩薩之智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중생들이 일생보처에 이르고 그 지혜가 1백 배가 되더라도 여래 지위의 지혜의 힘을 얻어 그 힘을 합해 두려움 없이 부처님의 법에 드는 지혜와 같지는 못합니다.
007_0977_c_23L正使三千大千世界衆生爲一生補處其智百倍不如一如來處處慧力合諸力無所畏入佛法遊要慧
007_0978_a_02L 왜냐 하면 그 일체의 지혜가 다 부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것을 듣고 겁내거나 두려워하거나 어렵게 여기지 않으니, 이것을 끝없는 지혜를 닦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끝없는 지혜를 닦아 다함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일체 중생의 마음을 운용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7_c_25L所以者何其一切智悉入佛意菩薩聞是不恐不懼不畏不難是則名曰習無窮慧而不可盡何故習無窮慧而不可盡用入一切衆生心故
또 보살은 중생들의 마음을 한없게 하여 도(道)에 대한 뜻을 일으키니, 한 사람일지라도 깨치게 합니다. 또 이러한 모든 과거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 모든 중생들을 평등하게 대하니, 한 사람일지라도 그와 같이 합니다. 보살의 이와 같은 모습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007_0978_a_06L正使過去衆生心念無限其發道意一人明解悉曉了知此諸過去衆生心念等於衆生猶如一人如斯比像不可稱計
보살은 중생의 무리들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덮여 있거나 또 단 한 명이라도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혼란 속에 빠져서 뭇 번뇌로 허덕이더라도, 항상 자신의 도의 지혜로써 마음을 일으켜 중생들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혼란을 압니다. 이것을 넓고도 밝은 지혜라고 합니다.
007_0978_a_10L衆生之黨皆婬癡之所覆蓋復有一人入婬癡惑亂之中而爲衆塵見憒迷荒菩薩發意恒以道慧皆知衆生婬癡亂是曰慧明之聖弘智
가령 모든 중생들이 다 각기 마음을 일으켜서 선악의 인연에 따라 생하고 멸한다고 합시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이는 비록 그 가운데 머무르게 되더라도 마음이 번거롭지 않아 허공처럼 모든 것을 꿰뚫으니, 그 허공이란 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성스러운 지혜를 지닌 자는 마음을 밝게 깨쳐서 마땅히 3세(世)의 중생들에게 이르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지혜는 끝이 없고 다함도 없는 것입니다.
007_0978_a_14L若諸衆生悉各發意--善惡因緣因緣所爲起者滅者--如是慧者雖處其中心不以煩皆能暢達猶如虛空其虛空者無不空處聖慧者然心所明解三世衆生靡所不達故名曰慧而無窮極亦不可盡
또 일체 부처님의 법 또한 다함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6도무극을 다 갖추어 일체 부처님의 법을 끝없이 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살이 초발심에서부터 방편을 닦은 뒤에 내지 보리수 아래에 앉게 되면 발심한 공덕이 헤아릴 수 없게 되고, 널리 구족하여 부처님의 법을 다 성취하게 됩니다.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일체 부처님의 법을 다 갖추어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78_a_19L何謂一切佛法亦不可盡悉具一切六度無極求諸佛法若有菩薩從初發意所修方便然後乃致坐佛樹下發心功德不可稱計普悉具足皆成佛法故曰菩薩合諸佛法而不可盡
007_0978_b_02L또 이밖에 보살이 힘껏 정진하는 것도 다함이 없습니다. 몸으로 공덕을 세우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고 입으로 공덕을 베푸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뜻으로 부지런히 닦아서 그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를 다 정진하니, 이것이 바로 으뜸이 됩니다.
007_0978_a_24L復有菩薩合集精進亦不可盡身所立德不以爲難口演功祚亦不以惓意惟勤修其身心三事精進則是元首
이른바 뜻의 정진이란 그 뜻을 태연(泰然)하게 하는 것이고, 태연하게 하는 것이란 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것이란 그 마음을 넓고 크고 고요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것을 일으키는가 하면 뜻을 일으켜서 합니다. 이른바 도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것이 곧 보살의 큰 자비심입니다.
007_0978_b_05L何謂意精進其意泰然何謂泰用求佛道用求佛道爲何謂也弘其心寂無所爲何謂發是發是意者謂發道心是此則菩薩之大哀也
어떤 것이 보살의 지위인가 하면 나가 없음을 믿는 것이니, 이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것을 일으키는가 하면 저것이 이것을 일으켜 일체의 중생들을 다 거두어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왜 보살의 지위인가 하면 모든 법을 다 갖추어 얻어서 생사에 허덕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저것이 이것을 일으키는 것은 삼계(三界)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 몸을 애석하게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007_0978_b_08L何謂菩薩地信樂無我是曰爲忍謂發是其發是者悉能摠攝一切衆生故何謂爲處用得備悉具諸法故不以生死爲勤勞也其發是者不著三界其發是者身諸所有無所愛悋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보시를 행한다고 해서 자신의 공덕을 선전하지 않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계율을 지킨다고 해서 자신의 수행을 자랑하거나 자만해 하지도 않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온갖 고통을 참는다고 해서 그 업에 대해 교만한 마음을 품지도 않는 것이고,
007_0978_b_13L又其處者所可施與不嘆宣已有斯德行所謂處者不以禁戒而自稱嘆意存自大又其處者忍衆苦惱不以是業而懷憍慢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날마다 공덕을 더하여 거룩하고도 한량없는 공덕을 얻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해탈에 뜻을 두어 마음을 다스리고 보시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학문을 좋아하여 법에 따라 가르침을 닦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이치를 들은 그대로 받들어 행할 뿐 고치거나 다른 뜻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8_b_17L所謂其處所獲功德轉曰增益巍巍無量所謂處者是志度脫不離布施伏心制意所謂處者學問無厭如法習教所謂處者如所聞義奉行不改無有異意
007_0978_c_02L또 그 지위라는 것은 배우지 못할 법이 없다고 생각하여 부지런히 배우고 어떠한 방편이라도 어렵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바라는 것 없이 닦아 법을 선포하는 것이고, 배우고 닦아 그 이치의 근원을 분명히 깨치되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며, 완전히 배우고 닦되 그 과보를 바라지 않은 것이니, 이 네 가지가 바로 보살이 닦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능히 이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옹호하는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007_0978_b_21L所謂處者習學思惟不可講法㩲謀方便不以爲難習無悕望所頒宣法翫習諷誦念察曉了其義之所歸趣不用勞厭而懈廢也學修元元無所想報是有四事是爲菩薩之所修行所以者何其能發此慈悲喜護
또 그 지위라는 것은 관찰함에 있어 큰 자비심을 널리 품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이러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5신통을 구족하여 무생법인을 닦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4의지(意止)3)를 얻어 이치에 수순하되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007_0978_c_04L又其處者所瞻察意普懷大哀又其處者緣是之故具足五通習無生死又其處者得四意止逮于順理不當所思而不惟之
또 그 지위라는 것은 4의단(意斷)4)을 알아 공덕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또한 박복한 사람들을 억누르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중도(中道)의 행을 닦기 때문입니다.
007_0978_c_07L又其處者知四意斷不廢功德亦不抑制無福慶人所以者何修中閒行
또 그 지위라는 것은 신통을 배우되 부처님 법의 가르침대로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뛰어난 덕을 닦음으로써 모든 감관이 어지럽지 않아 올바르지 못한 법을 능히 다 분별하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가장 뛰어난 10력(力)을 갖추어 성스러운 지혜를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모든 행을 일으킴과 동시에 뭇 법의 이치에 들어가되 자만하지 않고 7각의(覺意)5)를 성취하는 것이며,
007_0978_c_09L又其處者神足所習如佛法教無所悕望又其處者習學善德諸根不亂無限非法悉能分別又其處者謂十種力無有能勝心懷聖智又其處者欲求佛覺諸興造行入衆法義而不自大成七覺意
또 그 지위라는 것은 이 도덕을 구하기 위해 가고 오고 머무른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고 다른 생각 역시 하지 않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그 뜻을 엄숙하고도 고요하게 하기 위해 온갖 어지러움을 다 없애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바른 관찰을 얻기 위해 모든 법을 분명히 살펴서 그 이치를 구하는 것이며,
007_0978_c_15L又其處者求斯道德不念諸來及住去者亦無所想又其處者慕求肅敬寂靜其志而無憒亂又其處者欲得正觀明察諸法求其所存
또 그 지위라는 것은 항상 널리 듣고서 들은 그대로를 닦고 배우되 법대로 몸의 덕행을 닦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법의 몸을 구하기 위해 세속의 온갖 망상을 버려서 그 형상 없음을 통달하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항상 음성을 장엄하기 위하여 수시로 시방에 두루 연설하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도의 법에 따라 즐기되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시켜 영원한 안락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007_0978_c_19L又其處者曾所博聞便能修習常如法住務修身德行又其處者于法身而損衆俗妄想之著信達無又其處者謂彼音聲常欲莊嚴時暢出通于十方又其處者樂如道脫不脫者使至永安
또 그 지위라는 것은 4마(魔)와 화합하는 것도 비호하는 것도 아니니, 어떤 것이 4마인가 하면, 몸의 마ㆍ번뇌의 마ㆍ죽음의 마ㆍ자재천의 마입니다.
007_0978_c_24L又其處者不合非勸化四魔何謂四魔一曰二曰罪塵魔三曰死魔四曰天魔
007_0979_a_03L또 그 지위라는 것은 온갖 나쁜 습기를 버리고 덕의 근본을 닦아서 고요히 어지럽지 않은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널리 도의 지혜로써 바라보아 온갖 인연의 일어남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며, 또 그 지위라는 것은 온갖 세속의 업을 짓되 방편에 따라 그 모든 것을 제도하는 것이고, 또 그 지위라는 것은 도의 법에 비추어 수시로 교화하는 것이니, 이러한 뜻으로 정진하기에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9_a_03L又其處者離諸惡習修衆德本諸穢寂然而不興亂又其處者普見道慧察衆緣起又其處者見諸所入世俗所作消息方便因濟度之又其處者咸睹道法而隨時化是意精進而不可盡
만약에 이러한 일체의 지위를 구족한다면, 끝내 장애가 되는 것이 없고 하는 일마다 다 해결되며 망령된 생각으로 지혜를 행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그 뜻이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일체의 소행이 다 지혜를 여의지 않게 됩니다.
007_0979_a_09L若有能具一切處者終無諸難所作悉解不以妄想住所行慧亦不動轉一切所行皆不離慧
어떻게 보살의 행이 지혜를 여의지 않는가 하면, 그 행이 이러한 법에 따라 다 공덕을 행하여 항상 일체 중생을 위해 끝없는 자비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다시 그 끝없는 자비로 세속을 제도하되 부처님의 도의 지혜에 근본을 두어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의 다함 없는 정진인 것입니다.”
007_0979_a_11L何謂菩薩行不離慧所行功德悉因是法常爲一切興無極慈無極慈者不盡世俗因佛道慧不隨無爲是名菩薩無盡精進
그가 이 다함 없는 정진에 대해 연설하자 96억의 모든 천인들이 다 위없이 진실한 도의 마음을 내었고 3만 2천의 천자들도 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007_0979_a_15L宣說精進不可盡時九十六垓諸天世人皆發無上正眞道意三萬二千天子悉得無所從生法忍
사리불이 다시 아차말보살에게 물었다.
“시도무극(施度無極)의 그 다함 없는 이치는 또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007_0979_a_17L舍利弗復問阿差末菩薩言豈復有施度無極不可盡乎
아차말보살은 대답하였다.
“이른 바 성문ㆍ연각으로서 미칠 수 없는 보살의 시도무극이 열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열여섯 가지인가 하면, 첫 번째는 보시할 때 다른 마음을 갖지 않고 여래의 법 보시만을 구족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시할 때 ‘내가 이 보시로 말미암아 복된 과보를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며, 세 번째는 보시할 때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보시할 때 삼매를 얻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니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기보다는 항상 인간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9_a_19L阿差末曰十六事而不可盡聲聞緣覺所不能何謂十六一曰所施不懷異心而悉具足如來法施二曰所施不興斯吾緣是故當獲福報三曰所施普愍一切不懷異心四曰所施不念望得三昧正受所以者何不樂生于淨居天上常好人閒
007_0979_b_03L 다섯 번째는 보시할 때 중생들의 마음의 행을 다 통달해 아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보시할 때 그 마음이 맑고 부드러운 것이니, 마음으로 하여금 생각한 대로 따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몸도 마음이 생각한 대로 따르게 합니다. 일곱 번째는 보시할 때 보시 받는 자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니, 색천(色天)과 무색천(無色天)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여덟 번째는 보시할 때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한 것이니, 모든 성문ㆍ연각의 법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007_0979_b_03L五曰所施皆能達知衆生心行六曰所施其意淸和以者何欲使其心隨己計故亦令其身從心所念七曰所施如受者意以者何其德以過色無色天八曰施與寂寞俱亦復恬怕所以然者諸聲聞緣覺上故
아홉 번째는 보시할 때 후회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니, 보시 받는 자로 하여금 마음을 크게 펼쳐서 성취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열 번째는 보시할 때 위신력이 거룩하여 누구라도 능히 방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열한 번째는 지혜로운 보시로써 중생들을 다 평등이 제도하는 것이며, 열두 번째는 보시하는 자가 보시 받는 자의 마음을 기쁘고 안락하게 하는 것입니다.
007_0979_b_09L九曰所施不協恨所以者何欲使究暢至成就故所施威神巍巍無能制斷十一曰以智慧施普等衆生立度一切十二其所施者所施與人隨意喜樂惠救之心常正安所以者何能御意
열세 번째는 보시를 베풂으로써 3보(寶)를 끊지 않는 것이니, 여래(如來)ㆍ지진(至眞)의 종자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네 번째는 보시할 때 항상 분명하게 하여서 어떤 의심이나 미혹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열 다섯 번째는 보시할 때 항상 법의 가르침에 따라 수순하는 것이니, 그 행이 이치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열여섯 번째는 보시할 때 지혜의 근본을 일으키고 즐기는 것을 모르는 것이 없는 것이니, 그 지혜를 한없이 크고 끝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열여섯 가지 시도무극의 일로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9_b_15L十三曰其所施與不斷三寶所以者何不捨如來至眞之種十四曰施常明不懷猶豫而不迷惑十五曰所施與者順如法教所以者何所行隨義十六曰所施與無所不知有所興造樂智慧本所以者何欲令其智無有窮極甚廣大故是爲菩薩十六事業施度無極而不可盡
그리고 선정이 무엇인가 하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고, 신통이 무엇인가 하면 지혜를 구족하게 하는 것이며, 다시 그 지혜를 구족한 신통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물질을 물질이라고 보게 되면 신통이 아니므로 물질을 보되 물질에 빠지지 않고 그 지혜를 다해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 물질을 취하지 않고 중도를 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007_0979_b_22L何謂爲禪心寂靜故何謂神通慧具足故何謂爲慧所見諸色是則不通睹諸色盡其意不隨此名曰通所以者何而不中道行取證故
007_0979_c_03L또 그것에 대해서 들을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신통이 아니므로 음성까지도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중생들의 마음의 행(行)을 다 깨달아 안다고 생각한다면 신통이 아니므로 그 마음의 행을 벗어나 지혜를 다하되 아라한(阿羅漢)을 취하지 않아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007_0979_c_03L其所聽聞皆在不通諸可有音悉無逮得此名曰通悉能曉知衆生心行是則不通心除此智不以盡心而造證矣所以者何不取羅漢此名曰通
또 스스로가 그 유래의 근본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신통이 아니므로 3세(世)에 걸쳐 아무런 걸림이 없어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국토에 편재(遍在)한다고 생각한다면 신통이 아니므로 비록 모든 국토에 편재하더라도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 찰토(刹土)라는 생각이 없어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법을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신통이 아니므로 그 모든 법을 믿되 법의 본말을 다 통달해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007_0979_c_07L能自知本因所從來是則不通不於三世而有罣㝵此名曰通遍諸國土是則不通雖遍諸國解無所有無剎土想此名曰通信向諸法是則不通達見一切諸法本末此名曰通
또 일체의 하는 일에 한 치의 망상이라도 있다면 신통이 아니므로 중생들을 깨우치되 바라는 것이 없어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정토에 왕생하기를 희망하여 제석ㆍ범천ㆍ사천왕 등을 본받는다면 신통이 아니므로 보살이 일체 성문(聲聞)ㆍ연각(緣覺)의 지혜를 다 알고 모든 것을 포섭해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최상의 법을 깨달은 원수(元首)라야만 신통이라 할 수 있고 신통의 지혜라야만 그 공덕이 바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79_c_12L一切所作有妄想意是則不通曉了衆生無所悕望此名曰通樂欲往生若過諸天釋梵四王是則不通菩薩皆知一切聲聞緣覺所修聖慧悉能摠攬此名曰通爲衆元首--所曰元首在於諸法最上之故--因是名曰通慧功德而不可盡
아차말보살은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보살은 모든 산란한 마음을 스스로 다스려서 닦기 때문에 이것을 일컬어 선정이라 하고, 그 수승한 지혜로써 뭇 악을 다 버리기 때문에 선정이라고 합니다. 또 보살은 선정에 머물러 닦음으로써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으니, 왜냐 하면 선정에 머물러 6도무극을 닦고 6도무극을 닦아서 바른 법을 깨닫고 바른 법으로 모든 법을 바르게 닦기 때문입니다.
007_0979_c_18L阿差末菩薩復謂舍利弗言因諸亂意菩薩以故習自伏心是曰爲禪智慧者悉捨衆惡是曰禪定又菩薩行習住定意則無變心所以者何修正住修正住故習六度無極正諸法故習諸法者用正故學
007_0980_a_03L이른바 보살의 행이란,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베푸는 것이고 평등한 마음이란 곧 평등한 법이고 평등한 법이란 곧 보살의 마음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의 마음이 중생들의 지조(志操)를 알고 중생들의 지조를 알면 모든 법을 알게 되므로, 이것을 일컬어 일체의 중생들을 수습하는 평등한 법이라고 합니다. 일체의 법이 다 평등하여 옳거나 옳지 않음이 없이 평등하게 머무니, 이것을 일컬어 선정의 바른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007_0979_c_24L習菩薩行等心衆生已等衆生便等諸法已等諸法知菩薩心已知菩薩則能暢解衆生志操知衆生已則知諸法是名曰習弘等一切衆生之類悉等諸法而無適莫等住諸法是名曰定意爲正受矣
다시 말하면 공(空)하고 상(相)이 없고 원(願)이 없는 것이 생사의 평등함인 동시에 생사의 평등함이 곧 모든 법의 평등입니다. 또 평등하고 치우침 없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들의 마음까지를 다 평등하게 하므로, 이것을 일컬어 넓은 평등이라고 합니다.
007_0980_a_07L空無想願謂等生死等生死者便等諸法其已平等坦無偏黨普等者等衆生心等衆生心已乃謂平等故曰普等
그 마음의 행은 마치 허공처럼 평등하고 땅ㆍ물ㆍ불ㆍ바람처럼 사랑하거나 미워함이 없습니다. 평등한 마음은 근심도 기쁨도 없으며, 애착이 없는 몸은 이미 순식간에 불국토에 머물고 삼매에 들어 근본 경지에 머묾으로써 아첨도 교만도 어리석음도 사악함도 없고 번잡한 말을 하지도 않으며, 다만 그 알맞은 시기를 따라 법의 근원을 깨닫기 위해 힘쓸 뿐입니다.
007_0980_a_10L其心所行平若虛空如地無有愛憎其心等者無喜其身已住不眴佛土定若三不以諛諂如本際住而不自大亦不賤己不癡不惡亦不多辭唯欲曉了法之本原是時非時常隨時宜
또 세속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세속의 이로움과 손해와 헐뜯음과 칭찬과 괴로움과 즐거움과 명성과 명성을 여의는 것을 다 초월하여서, 함이 있는 법[有爲法]과 번잡함을 버리고 이 법에 따라 행하여 삼매를 여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온 천하의 모든 행은 다 이 삼매를 닦아야 알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보살의 훌륭한 방편이라고 합니다.
007_0980_a_15L從一切世俗之穢越世八事--利有名失稱--捨諸有爲不好憒隨是法者不離三昧所以者何見天下所造立行隨其所行續在三昧莫能知者是曰菩薩善㩲方便
또 다함이 없는 지혜와 적도무극(寂度無極)에 들어 삼매의 힘으로써 중생들의 마음을 다스리면 극단적인 슬픔과 그러한 인연에 얽매임이 없게 되니, 중생들을 제도하기 때문으로, 이것을 일컬어 훌륭한 방편이라고 합니다.
007_0980_a_20L入智慧寂度無極若欲三昧執御其由無極哀而隨因緣所以者何衆生故斯義名曰善㩲方便
007_0980_b_02L 그러므로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 삼매의 업을 닦아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그 삼매의 업을 닦아 부처님의 지혜에 귀의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모든 법에 대해 아무 것도 구하는 것이 없어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삼매를 받드는 그 공덕으로 모든 법을 옹호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그 마음이 담담하여 법의 몸[法身]을 무너뜨리지 않아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007_0980_a_23L寂然恬怕三昧之業此爲聖慧已如三昧所建立者依仰佛慧是曰善㩲而於諸法永無所求是曰智慧奉執定意又大應以功德化護諸法是曰善㩲其心坦不壞法身是曰智慧
삼매에 머물러 부처님 몸의 그 모든 상호를 염원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삼매를 닦는 넓고 큰 서원으로 항상 법의 몸을 염원해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삼매 속에 있되 부처님의 모든 음성이 마치 범성(梵聲)과 같음을 기억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모든 법은 언사(言辭)가 없는 것이라고 관찰해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007_0980_b_05L以三昧定住念佛身諸相種好是曰善㩲弘恩元元念佛法身是曰智慧於三昧中念佛諸音猶如梵聲是曰善㩲思知諸法無有言辭是曰智慧
삼매에 머물되 그 마음이 금강처럼 견고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삼매에 들더라도 세속의 중생을 잊지 않아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삼매에 들어 있으면서도 본래의 서원을 갖추고 그 처소와 시기에 따라 일체 중생을 길러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선정에 들되 중생에게는 다 나란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007_0980_b_09L住於三昧如金剛是曰善㩲雖獲禪定不忘世衆生群黨是曰智慧而於三昧念備本願長育一切是爲處處隨時善又於禪思解于衆生悉無吾我是曰智慧
삼매에 머물더라도 모든 법을 버리지 않아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모든 법이란 그 본말도 없고 근원도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삼매를 닦되 모든 불국토가 다 청정한 것임을 생각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그 모든 불국토가 어떤 것도 없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007_0980_b_14L遊于三昧不捨諸法是曰善曉無本末亦無根原是曰智慧于三昧思諸佛土悉爲淸淨是曰善解諸佛土都無所有是曰智慧
삼매에 머물되 항상 보리수의 장엄함을 닦아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그 몸이 온갖 욕심을 버리고 더러움을 없애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삼매에 머물되 법륜(法輪)을 굴릴 것을 염원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하며, 선정을 행하되 굴림이 없는 법륜을 굴려야만 이를 올바른 지혜라 하고, 삼매에 들되 보살의 장엄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고자 해야만 이를 훌륭한 방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007_0980_b_17L三昧住惟有佛樹修之莊嚴是曰善身離衆欲而無穢濁是曰智慧在三昧念轉法輪是爲善㩲遵行禪轉無所轉是曰智慧住于三昧見菩薩以相莊嚴是曰善㩲
또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 번뇌가 없는 것이 여래의 선정이니, 여래의 선정은 일체의 법을 깨달아 영원히 탐욕과 더러움을 벗어나고 모든 즐거움에 대해 알며 법이라는 생각조차 없는 것이므로, 이를 선정이라고 합니다.
007_0980_b_22L以濟衆無有煩惱是如來禪如來禪者了一切法永不貪欲不想塵勞知諸情除衆法想名曰禪思
007_0980_c_02L 이것은 보살의 지혜를 낳는 바탕이므로 보살이 전일한 마음을 닦아 비로소 세속적인 것에 혼동되지 않으면, 이를 바로 다함이 없는 선정이라고 합니다. 어떠한 마군도 그 틈을 엿보지 못하고 선정을 닦는 그 자체가 곧 바른 깨달음과 법의 그릇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 선정이야말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0980_b_25L是爲菩薩所生地慧開士大士以諸一心與法不大應同塵是乃名曰不可盡禪不爲一切衆魔得便則爲正覺造諸法器所以者何靡不含容
아차말보살이 이 다함이 없는 적도무극(寂度無極)에 대해 연설할 때에 4만의 보살들이 다 일명(日明)삼매를 얻었다. 어떠한 것이 일명삼매인가 하면, 마치 태양이 솟아오를 때에 등불ㆍ횃불ㆍ별ㆍ달 따위의 광명이 다 덮여 사라지는 것처럼, 보살들이 이 삼매를 얻음으로써 그들의 광명도 다 덮여 버렸다. 일체 성문ㆍ연각들의 광명도 다 덮여 버렸으니, 일광삼매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보살들은 이미 적도무극에 머묾으로써 그 밖의 여러 삼매를 다 체득하게 되었다.
007_0980_c_06L正士說此寂度無極不可盡時四萬菩薩得日明三昧謂日明三昧定者猶日出時燈火炬星宿月光闇蔽無明菩薩已逮是三昧者一切衆聖咸爲覆蔽所以者其慧巍巍明弘廣故一切聲聞覺智明皆爲覆蔽以故名曰日明三菩薩已住寂度無極悉能逮成諸三昧定
이에 대략 그 체득한 삼매를 든다면, 조명(照明)삼매ㆍ월광(月光)삼매ㆍ장엄(莊嚴)삼매ㆍ엄요(嚴燿)삼매ㆍ수엄(修嚴)삼매ㆍ무극휘맹복(無極暉猛伏)삼매ㆍ기명소명(其明消冥)삼매ㆍ여제법교(如諸法敎)삼매ㆍ성광명(成光明)삼매ㆍ무소우(無所憂)삼매ㆍ입견고(立堅固)삼매ㆍ등여태산(等如太山)삼매ㆍ
007_0980_c_14L粗擧都較取要言之演諸三昧名有三昧名曰照明有定名月光有定名莊嚴有定名嚴燿有定名修有定名無極暉猛伏有定名其明消冥有定名如諸法教有定名成光有定名無所憂有定名立堅固定名等如太山
법명(法明)삼매ㆍ법어(法御)삼매ㆍ법군(法君)삼매ㆍ법혜순교(法慧順敎)삼매ㆍ감법보(感法寶)삼매ㆍ법성총지어(法城總持御)삼매ㆍ지인의행(知人意行)삼매ㆍ당영기중번가(幢英棄衆煩苛)삼매ㆍ역제사마(力制四魔)삼매ㆍ이성십력(已成十力)삼매ㆍ
007_0980_c_20L有定名法明有定名法御有定名法君有定名法慧順教有定名感法寶有定名法城摠持御有定名知人意行有定名幢英棄衆煩苛有定名力制四魔有定名已成十力
007_0981_a_02L단제괘애(斷諸罣閡)삼매ㆍ조등광(造燈光)삼매ㆍ견주약지(堅住若地)삼매ㆍ여수미(如須彌)삼매ㆍ유안명(猶安明)삼매ㆍ지행광요(智行光燿)삼매ㆍ지불가계수구교(智不可計隨具敎)삼매ㆍ심교유연(心敎柔軟)삼매ㆍ무소구탈(無所求脫)삼매ㆍ여수일월광(如水日月光)삼매ㆍ유여불신(猶如佛身)삼매ㆍ등제무아(等諸無我)삼매ㆍ조상수교(調象隨敎)삼매ㆍ견득제불념(見得諸佛念)삼매ㆍ법의무애(法意無礙)삼매ㆍ
007_0980_c_25L有定名斷諸罣閡有定名造燈有定名堅住若地有定名如須彌有定名猶安明有定名智行光燿定名智不可計隨具教有定名心教柔軟有定名無所求脫有定名如水日月光有定名猶如佛身有定名等諸無我有定名調象隨教有定名見得諸佛念
무퇴불전(無退不轉)삼매ㆍ중독소정여월(衆毒消淨如月)삼매ㆍ입공적(立空寂)삼매ㆍ효중상(曉衆相)삼매ㆍ무원(無願)삼매ㆍ주일심(住一心)삼매ㆍ여금강(如金剛)삼매ㆍ무극광막능당(無極光莫能當)삼매ㆍ자재정(自在淨)삼매ㆍ네제노번진(內諸勞煩盡)삼매ㆍ광대여공(廣大如空)삼매ㆍ입일체업(入一切業)삼매ㆍ
007_0981_a_09L有定名法意無㝵有定名無退不轉有定名衆毒消淨如月定名入空寂有定名曉衆想有定名無願有定名住一心有定名如金剛有定名無極光莫能當有定名自在有定名內諸勞煩盡有定名廣大如空有定名入一切業
심사득혜(心思得慧)삼매ㆍ혜열인무진(慧悅人無盡)삼매ㆍ성성혜(成聖慧)삼매ㆍ총무소망(總無所忘)삼매ㆍ명보견명개다락(冥普見明皆多樂)삼매ㆍ자행(慈行)삼매ㆍ심본정대애(心本淨大哀)삼매ㆍ입제호(入諸護)삼매ㆍ심등입무소애탈(心等入無所礙脫)삼매ㆍ법법주(法法住)삼매ㆍ
007_0981_a_15L有定名心思得慧有定名慧悅人無盡有定名成聖慧有定名摠無所忘有定名冥普見明皆多樂有定名慈行有定名心本淨大哀有定名入諸護有定名心等入無所㝵脫有定名法法住
지명달(智明達)삼매ㆍ해창(解暢)삼매ㆍ불가수(不可數)삼매ㆍ충포중(充飽衆)삼매ㆍ무불료(無不了)삼매ㆍ탈혜수화중(脫慧隨化衆)삼매ㆍ금강연화(金剛蓮華)삼매ㆍ요무상(了無常)삼매ㆍ존지혜(尊智慧)삼매ㆍ용복(勇伏)삼매ㆍ제불념(諸佛念)삼매ㆍ수교명탈(隨敎明脫)삼매ㆍ엄불토(嚴佛土)삼매ㆍ
007_0981_a_20L有定名智明達有定名解暢有定名不可有定名充飽衆有定名無不了定名脫慧隨化衆有定名金剛蓮華有定名了無常有定名尊智慧有定名勇伏有定名諸佛念有定名隨教明脫有定名嚴佛土
007_0981_b_02L개벽정제국(開闢靜諸國)삼매ㆍ입중생심희(入衆生心喜)삼매ㆍ정진직(正眞直)삼매ㆍ이보살도육도무극엄(以菩薩道六度無極嚴)삼매ㆍ각해결(覺解結)삼매ㆍ각의화(覺意華)삼매ㆍ시탈약천약(施脫若天藥)삼매ㆍ광무불주(光無不周)삼매ㆍ명무주불(明無住佛)삼매ㆍ심심묘(甚深妙)삼매ㆍ적보여해(積寶如海)삼매ㆍ
007_0981_b_02L有定名開闢靜諸國有定名入衆生心喜有定名正眞直有定名以菩薩道六度無極嚴有定名覺解結有定名覺意華有定名施脫若天藥有定名光無不周定名明無住佛有定名甚深妙有定名積寶如海
여산방면(如山方面)삼매ㆍ신족심광무불총(神足甚廣無不總)삼매ㆍ견무수불(見無數佛)삼매ㆍ총제학(總諸學)삼매ㆍ여탄지경무불지(如彈指頃無不知)삼매ㆍ지불가한계여대해(智不可限計如大海)삼매들이었으니, 보살이 그 적도무극(寂度無極)에 머묾으로써 이러한 억백천의 삼매를 다 널리 갖추게 된 것이었다.
007_0981_b_09L有定名如山方面有定名神足甚廣無不摠有定名見無數有定名摠諸學有定名如彈指頃無不知有定名智不可限計如大海如是等定億億巨姟菩薩以住寂度無極普備斯定
아차말보살은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지도무극(智度無極)의 그 다함 없는 것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지혜를 들은 그대로 다 수행에 옮기기 때문에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에 여든 가지가 있으니, 그 여든 가지란, 들은 대로 지혜에 수순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들은 대로 지혜를 곧 수행에 옮기는 것이 두 번째이며, 가르침에 따라 배우고 닦는 것이 세 번째이고, 좋은 벗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네 번째이며,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는 것이 다섯 번째이고,
007_0981_b_14L阿差末菩薩復謂舍利弗言智度無極而不可盡爲何謂也如所聞慧輒建立行故曰不可盡應如斯行有八十事何謂八十順所聞尋如意如教習從善友命不自大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 것이 여섯 번째이며, 언제나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일곱 번째이고, 경전의 업에 종사하는 것이 여덟 번째이며, 경전의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아홉 번째이고, 자주 지혜를 닦는 것이 열 번째이며,
007_0981_b_20L所作不忘常恭恪從經業如言從數習智
마음을 다해 받들고 지니는 것이 열한 번째이고, 그 절차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열두 번째이며, 들은 일을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 열세 번째이고, 항상 그 뜻을 산란하게 하지 않는 것이 열네 번째이며, 3보에 대한 존경을 일으키는 것이 열다섯 번째이고,
007_0981_b_21L勤心受不失節不忘念意不亂興寶意
가르침을 약으로 생각하는 것이 열여섯 번째이며, 병을 제거하는 약이 곧 법의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열일곱 번째이고, 인욕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열여덟 번째이며, 진리에 따라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열아홉 번째이고, 지혜로써 올바른 관찰에 들어가는 것이 스무 번째이며,
007_0981_b_22L顯藥志除諸病是意器樂忍辱思樂諦入慧意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 스물한 번째이고, 보시하되 그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 스물두 번째이며, 보시하되 좋거나 나쁨을 가리지 않는 것이 스물세 번째이고, 항상 들은 대로 진리를 사색하는 것이 스물네 번째이며, 환희심을 내어 받들어 지니는 것이 스물다섯 번째이고,
007_0981_b_24L學無厭施無所慕施無適莫所聞諦思歡喜啓受
그 마음을 즐겁게 함과 동시에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스물여섯 번째이며, 그 뜻이 맑고 온화하여 번뇌를 없애는 것이 스물일곱 번째이고, 근본에 따라 배움에 힘쓰는 것이 스물여덟 번째이며, 설법을 듣고 항상 기뻐하는 것이 스물아홉 번째이고, 올바른 도에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서른 번째이며,
007_0981_b_25L心悅身輕其意淸和而無煩苛所學如本常喜說法聞欲向道
007_0981_c_02L 스스로 법을 준수하는 것이 서른한 번째이고, 바른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서른두 번째이며, 삿된 학문에 뜻을 두지 않는 것이 서른세 번째이고, 오직 지도무극(智度無極)을 받들고 지녀 『보살방등경(菩薩方等經)』을 체득하는 것이 서른네 번째이며, 오직 『보살방편경(菩薩方便經)』을 듣고자 하는 것이 서른다섯 번째이고,
007_0981_c_02L大應法自守者好聞正不在異學唯受雅智度無極逮於菩薩方等經但慕聽㩲方便經
4등심(等心)6)을 닦기를 좋아하는 것이 서른여섯 번째이며, 신통이란 헛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서른일곱 번째이고, 처음 발심한 그대로 다른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서른여덟 번째이며, 마음을 진리에 두되 훌륭한 방편에 힘쓰는 것이 서른아홉 번째이고, 생사가 없는 법을 듣고자 하는 것이 마흔 번째이며,
007_0981_c_06L又好聞習四等心復察解了無神通如初意耳無異念心務於諦善方便唯欲聽之無生法
모든 관찰에 있어서 탐욕을 버리는 것이 마흔한 번째이고, 무릇 인자한 마음으로 기뻐하는 것이 마흔두 번째이며, 12연기(緣起)를 깨닫는 것이 마흔세 번째이고, 무상함을 깨닫는 것이 마흔네 번째이며, 괴로움에 대해 아는 것이 마흔다섯 번째이고,
007_0981_c_08L不貪觀但悅慈了十二緣達無常知於苦
나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 마흔여섯 번째이며, 적정(寂靜)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마흔일곱 번째이고, 공(空)에 대해 분별하는 것이 마흔여덟 번째이며, 상(相)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 마흔아홉 번째이고, 원(願)이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 쉰 번째이며,
007_0981_c_10L暢無我欲知寂分別空解無相體無願
생사를 깨닫는 것이 쉰한 번째이고,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 쉰두 번째이며, 중생의 마음을 통달해 아는 것이 쉰세 번째이고, 중생의 마음을 알고서 잊지 않는 것이 쉰네 번째이며, 말을 엄격히 하는 것이 쉰다섯 번째이고,
007_0981_c_11L曉生死了功德達衆生知無忘嚴其音
성곽처럼 굳게 하여 들은 것을 힘써 지니는 것이 쉰여섯 번째이며, 경전의 법보를 듣기 좋아하는 것이 쉰일곱 번째이고,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쉰여덟 번째이며, 마음에 둔 것을 깨우치는 것이 쉰아홉 번째이고, 방편의 도를 반려(伴侶)로 삼는 것이 예순 번째이며,
007_0981_c_12L若城郭所聞勤執樂聽經寶在俗知俗啓於中意以爲伴侶
외도의 말을 듣고서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예순한 번째이고, 온갖 불사를 일으키는 것이 예순두 번째이며, 항상 안정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예순세 번째이고, 모든 법에 대해 깊이 들어가는 것이 예순네 번째이며, 지혜의 빈궁함을 끊기를 바라는 것이 예순다섯 번째이고,
007_0981_c_14L欲聞降伏諸事業常志思僥普入諸法慕斷貧乏--所云貧乏謂智不足
지혜로써 신통을 부리는 것이 예순여섯 번째이며, 지혜를 닦아 기쁜 마음으로 바른 도를 받아 지니는 것이 예순일곱 번째이고, 지혜 없는 자를 깨우치는 것이 예순여덟 번째이며, 그들을 교화하여 바른 법을 알게 하는 것이 예순아홉 번째이고, 항상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일흔 번째이며,
007_0981_c_16L念解遵通曉解聖慧悅受正道曉無智者悉化使知了常遭苦
빈궁한 자에게 부족한 것을 주는 것이 일흔한 번째이고, 일체의 삿된 업을 여의는 것이 일흔두 번째이며, 공덕 없는 자에게 공덕의 업을 일으키는 것이 일흔세 번째이고, 일체의 업에 대해 그 선악의 근본을 분명히 아는 것이 일흔네 번째이며, 나쁜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일흔다섯 번째이고,
007_0981_c_18L給不足者別離一切無功德業明識其本衆惡不爲
몸소 올바른 행을 닦아 더욱 이롭게 하는 것이 일흔여섯 번째이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일흔일곱 번째이고, 깨달음을 얻어 안온하게 행하는 것이 일흔여덟 번째이며, 남에게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 일흔아홉 번째이고, 지존(至尊)을 섬겨 모든 부처님의 법을 염원하는 것이 여든 번째입니다.
007_0981_c_20L暢益身義達利衆生解安隱行樂不懷恨欲別至尊
이 모든 것은 지도무극(智度無極)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들은 그대로 다 수행에 옮기는 보살의 지혜는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0981_c_21L無極之事念諸佛法所因獲致是爲名曰如所聞慧輒建立行
007_0982_a_02L아차말보살은 계속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또 보살은 수시로 지혜에 드니, 그것에 서른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서른 두 가지란, 음향(音響)에 따라 지혜에 드는 것이 첫 번째이고, 관(觀)하여 지혜에 드는 것이 두 번째이며, 마음의 행에 따라 지혜에 드는 것이 세 번째이고, 자신의 해탈을 위해 지혜에 드는 것이 네 번째이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지혜에 드는 것이 다섯 번째이고,
007_0981_c_23L阿差末菩薩謂舍利弗言菩薩有三十二事所入隨時何謂三十二隨音響入欲入於觀入心所行入身求脫而濟衆生
없다는 소견도 있다는 소견도 없이 지혜에 드는 것이 여섯 번째이며, 집착함이 없이 지혜에 드는 것이 일곱 번째이고, 짓는 대로 인연에 따라 지혜에 드는 것이 여덟 번째이며, 나라는 생각 없이 지혜에 드는 것이 아홉 번째이고, 사람이란 생각 없이 지혜에 드는 것이 열 번째이며,
007_0982_a_03L入不斷無常入無所著入隨因緣所可作爲所入無人入於無壽
수명에 대한 생각 없이 지혜에 드는 것이 열한 번째이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처소에 머물며 지혜에 드는 것이 열두 번째이며, 공덕의 업으로 지혜에 드는 것이 열세 번째이고, 나태함 없이 공(空)의 지혜에 드는 것이 열네 번째이며, 무상(無相)의 지혜에 드는 것이 열다섯 번째이고,
007_0982_a_05L入於無命十一入去來今之所住處十二入功德業十三入空不懈十四入于無想十五
부지런히 닦아 무원(無願)의 지혜에 들고 공ㆍ무상ㆍ무원의 지혜에 들되 취하거나 옹호하거나 타락함이 없는 것이 열여섯 번째이며, 삼매에 들어 그 삼매를 성취하되 이로써 무색천(無色天)에 나려고 하지 않으니 삼매에 이르는 것을 옹호하기 때문으로 이것이 열일곱 번째이고, 모든 신통지(神通智)의 근본에는 들더라도 파멸의 길에는 들지 않는 것이 열여덟 번째이며, 생사가 없는 지혜에 들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열아홉 번째이고, 진리의 저변에 들어 그 이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스무 번째입니다.
007_0982_a_07L而入無願不廢勤修不以空取證無想不願已不墮十六欲入三昧而修正受悉向成就三昧正受以故不生無色天以者何擁護所致十七又入諸通智慧之原雖爾不入盡滅之徑十八又入無生濟諸所生十九復入本際思惟其義二十
또 진리의 저변에 들되 취함이 없으니 마땅히 진리에 드는 것을 옹호하기 때문으로 옹호함이 없는 것이야말로 곧 성문(聲聞)입니다. 이것이 스물한 번째입니다. 중생계에 들어가 나가 없음을 깨닫고 큰 자비심을 버리지 않는 것이 스물두 번째이며, 일체의 두려움과 생사의 고난을 벗어나는 것이 스물세 번째이고, 생사의 세간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 생사가 없는 것이 스물네 번째이며, 뭇 번뇌를 제거하여 지혜에 드는 것이 스물다섯 번째이고,
007_0982_a_14L欲入無際而不取證所以者何將護故所云無護則爲聲聞二十一入衆生解無吾我不捨大哀二十二入一切畏生死之難二十三所可遊入雖有生死無爲生故二十四又入所厭衆諸塵勞二十五
번뇌를 제거함으로써 깊은 지혜에 들되 타락하지 않으니 이를 취하지 않기 때문으로 이것이 스물여섯 번째이며, 다른 탐욕을 내지 않는 동시에 법을 저버리지도 않는 것이 스물일곱 번째이고, 법을 범하거나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는 것이 스물여덟 번째이며, 방편의 지혜에 들어가니 중생들의 탐심과 애욕을 교화하기 위함으로 이것이 스물아홉 번째이고, 서른 번째는 본문에 빠져 있다.
007_0982_a_19L入厭欲者亦不墮落所以者何不中取證二十六又入不思貪欲之黨入不捨法二十七入諸犯法而不爲非二十八入㩲方便所以者何由因衆生意墮貪愛欲開化故二十九本闕三十
중생을 가르치되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이 서른한 번째이고, 보살이 중생을 제도함에 있어서 각각 그 처소를 얻게 하는 것이 서른두 번째입니다.
007_0982_a_23L所入教授應病與藥三十一菩薩所度各得其所三十二
007_0982_b_02L이 서른 두 가지는 다 그 일에 따라 지혜에 드는 것이니, 절차를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성(城)에 들어가려면 그 성문부터 들어가야 하고, 뭇 인연을 통달하려면 직접 눈으로 그 업을 잘 관찰해야 하며, 그 인연의 업을 깨달아 다툼을 없애려면 스스로가 인욕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말없는 것이 좋은 것을 알려면 말하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니,
007_0982_a_24L是爲三十二事所導如所以者何不失節故猶欲入城從門入欲暢衆緣當眼察之解緣業者則不諍訟欲令無爭莫如自守知無言爲佳快者不如莫語
왜냐 하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은 곧 자신의 입을 단속하기 때문이고, 함부로 머물지 않음은 그 처소를 가리기 때문이며, 함부로 움직이지 않음은 그 행동을 삼가기 때문이고, 바라는 것이 없음은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평등한 것입니다.
007_0982_b_05L所以者不喜語者自護身口不欲所止勿在彼居不欲動者愼勿得轉無悕望者亦無所想是故曰等
또 물질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바르고 굳게 머물러야 하니 굳게 머무는 자만이 그것을 체득할 수 있기 때문이고, 동요하지 않으려면 항상 스스로 근신해야 하니 고요함을 좋아하는 자만이 그 자신을 길러낼 수 있기 때문이며, 겸손한 덕을 지니려면 스스로를 받들지 않아야 하니 교만하지도 아첨하지도 않는 자만이 그 바른 법을 구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07_0982_b_08L欲不迷色當正堅住已堅住者爾乃達至不樂令變常自謹愼若慕寂靜將養己者勿得稱己不欲下者莫自矜高不高下具足正法
이와 같이 그 더함과 덜함을 기뻐하지 않는 자로서 아무런 나무랄 것이 없거나 방편을 좋아하는 자로서 하는 일에 잘못이 없다면, 그는 곧 의심이 없기 때문이고 의심이 없다는 것은 그 모든 법의 근본이 없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3세(世)가 다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것이며, 3세가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에 늘어남도 덜함도 없는 것입니다.
007_0982_b_12L不喜損者無有能譴樂便安所作無失無所失者則無有無有疑者解無本故便無所失於三世而無差特等三世者無所增
뿐만 아니라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머물지 않으므로 차별이 없고, 눈에 대한 물질과 귀에 대한 소리와 코에 대한 냄새와 혀에 대한 맛과 몸에 대한 감촉과 뜻에 대한 법의 의식에도 머무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본래 청정한 진리의 법에 따르므로 이를 지혜라고 합니다.
007_0982_b_16L不住於色亦無殊特見色識則無所住耳聲識鼻香識味識身軟識意法識悉無所住從本淨行如法如慧
또 진리 그대로를 수행하여 모든 법의 행에 따를 뿐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 없기에 이를 지혜라 하고, 그 모든 존재가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근본조차 없는 것임을 깨닫기에 이를 지혜라 하며, 몸의 위의를 꾸며서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기에 지혜라 하고, 보살이 닦는 바르고 참된 지혜로써 일체의 중생들을 위해 언제나 마음으로 모든 법을 버리거나 여의지 않기에 보살이 닦는 지혜라고 합니다.”
007_0982_b_19L如審諦行如無吾我見諸法行無我曰慧解諸所有皆無所有亦悉無本是名曰慧不以身綺而懷自大是名曰慧知於菩薩習正眞慧達爲一切衆生之故衆生故者心常不捨不離諸法是乃名曰菩薩習慧
阿差末菩薩經卷第三
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한 서른 일곱 가지의 실천 수행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신족(神足)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가 그것이다.
  2. 2)불퇴전(不退轉)의 지위를 말한다.
  3. 3)관법(觀法)으로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을 뜻한다. 구역(舊譯)에서는 4념처(念處)라고 하고 신역(新譯)에서는 4념주(念住)라고 한다.
  4. 4)4정근(正勤)의 구역(舊譯)으로 4정단(正斷)이라고도 한다. 그 네 가지는 이미 생긴 악을 없애려고 힘쓰는 것과, 악이 생기지 않도록 힘쓰는 것과, 선이 생기도록 힘쓰는 것과, 이미 생긴 선을 늘리도록 힘쓰는 것이다.
  5. 5)지념각(志念覺)ㆍ법해각(法解覺)ㆍ정진각(精進覺)ㆍ애희각(愛喜覺)ㆍ일향각(一向覺)ㆍ유정각(惟定覺)ㆍ행호각(行護覺)이 그것이다.
  6. 6)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4무량심(無量心)과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