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阿差末菩薩經卷第五

ABC_IT_K0070_T_005
007_0989_c_01L아차말보살경 제5권
007_0989_c_01L阿差末菩薩經卷第五


서진 월지국 삼장 축법호 한역
이진영 번역
007_0989_c_02L西晉月氏國三藏竺法護譯



아차말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보살의 신통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란, 과거ㆍ미래ㆍ현재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다 통달해 아는 것입니다. 또한 보살은 마음이 허깨비와 같은 것임을 알아, 수시로 중생들에게 이것을 가르치고 응보(應報)로 받게 되는 화와 복에 대해서도 설합니다.
007_0989_c_03L阿差末言舍利弗菩薩神通知他心念亦不可盡何謂知心達諸群黎過去所念當來所思現在所想又其菩薩知心如幻則隨時宜勸誨衆生說報應行禍福所趣--
그래서 누구는 마음이 선하기 때문에 선한 응보를, 누구는 그 수행의 정도가 보통이기 때문에 보통의 응보를, 누구는 그 수행의 정도가 낮기 때문에 낮은 응보를 받게 됨을 설합니다. 또 누구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의 6도무극을, 누구는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좋아하고, 누구는 대승(大乘)을, 누구는 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을 닦는 것을 좋아함을 알려 줍니다.
007_0989_c_08L某人心和所報善德某人行中得中閒報某人行劣得劣弱報某人志性心喜布施某人好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某人志性愛樂慈心悲哀喜護某人志性慕學大乘某人志性好學聲聞緣覺之
또 누구는 몸과 마음으로 심은 종자가 각기 달라 같지 않음을 말해 줍니다. 또 누구는 공덕이 있어서 어떤 약으로 치료해야 할지 알려 주고, 누구는 박복하기 때문에 미천한 곳에 태어날 것임을 알려 줍니다. 또 누구는 수행은 청정하지만 마음이 맑지 못하고, 누구는 마음이 청정하여 행도 청정하고, 누구는 마음이 청정하여 행도 선정에 듦을 말해 줍니다.
007_0989_c_14L某人體性本殖所種各異不同人德本當以某藥而療治之用修薄福故生賤處某行淨德心性不明人心淨所行不淸某人心淨所行了
이와 같은 비유들은, 중생들이 과거에 마음으로 생각한 것이 다르고 행동한 것이 같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보살은 중생들의 그러한 행으로 말미암아 설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보살의 신통인 것입니다.
007_0989_c_18L如是比類悉知衆生古昔世時心所念異所修不同因其所行而爲說是則名曰知他心念
007_0990_a_02L뿐만 아니라 미래 중생들의 생각하는 마음까지 알아서, 누구는 미래에 계율을 지킴으로 인하여 어떠한 응보를 받고, 보시로 인하여 어떠한 응보를 받고 내지 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로 인하여 어떠한 응보를 받고, 누구는 속된 업을 지음으로써 속된 업의 응보를 받고, 누구는 대승을 배워서 그 수행의 위의와 예절에 따른 응보를 받고, 그밖에 중생들의 행동거지와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과 위의의 모든 업이 마음에 따라 각기 달라서 미래에 받을 과보에 대해서도 환히 압니다.
007_0989_c_20L佛知當來衆人所懷某人當來因奉禁戒報應如布施所報亦復如是忍辱精進智慧其亦若茲所行俗業得俗事某人來世修學大乘所行法則禮節報應如是衆生當來擧動威儀諸業心念各異後當報受所種果實悉曉了之
또 누구는 마음과 수행이 다 맑지 못함으로 인해 전도된 온갖 환란에 떨어질 것을 앎으로써 그 마음과 수행으로 깨달을 수 있는 법기(法器)에 따라 설법하여서, 끝내 전도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게 병에 알맞은 약을 줍니다.
007_0990_a_07L某人志性行不淳當隨顚倒衆患之難因其所知心行則解從其法器而爲演法所宣法者終不倒錯應病與藥
만약 설법할 때에는 생각을 놓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중생들이 생각하는 마음의 옳고 그름을 환히 살펴서 다 통달하여 앎으로써 누가 탐욕이 있고, 누가 성내고, 누가 어리석은지 알고, 누가 탐욕이 없고, 누가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지 압니다.
007_0990_a_10L若演法時無所置思咸復達睹現在衆生心念是審諦明了--知於某人懷貪欲心性多瞋某挾癡冥知某無欲某無瞋愚騃之心--
또 보살은 번뇌로 인하여 자포자기하는 중생들의 생각을 다 알아서 그 번뇌에 따라 설법하여 각기 깨우쳐 줍니다. 때로는 대중의 모임에 나아가 그 대중들의 마음을 관찰하여서 각자의 병에 알맞은 약을 주어 널리 설합니다.
007_0990_a_14L因其塵勞心性馳逸解此等衆生所念緣其勞穢而爲說各令解達所詣衆會察其心本病與藥各爲宣暢
가령 대중 가운데 어떤 이가 마음의 결정을 얻지 못해 주저하거나, 미혹되어 있거나, 미쳐 날뛰거나, 비록 나아가고 물러남은 있지만 의심으로 가득 차 있거나, 지혜가 밝지 못함으로 인해 나쁜 행을 저지르거나, 다가올 일을 생각하기는 해도 끝내 풀지 못하거나 할 때, 마음을 깨쳐서 번뇌를 제거해 줍니다.
007_0990_a_17L假使衆人心懷猶志不自決迷惑馳騁雖有進退抱沈疑不明智慧惑心惡行行來所念不能卒解覺了心性斷除塵勞
또한 온갖 장애와 더러움을 여의게 하고 청정한 광명을 비추니, 받을 것도 없고 지을 것도 없어 허물을 버리게 됩니다. 또 보살은 법의 광명으로 일체 중생들의 마음과 행을 비추고 때때로 가르침에 들어 설법하여서 중생들을 다 해탈하게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다함 없는 세 번째 신통입니다.”
007_0990_a_20L去罣㝵離垢淸淨光明顯曜而無所無所造立捨於瑕疵以法光明照於一切衆生心行隨時入教而爲說法悉令普達是爲菩薩知他心念無盡神通第三之業
007_0990_b_02L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또 과거의 일을 아는 보살의 신통은 다함이 없습니다. 보살은 그 과거의 근본을 다 기억하고 생각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공덕을 입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래의 성지(聖旨)대로 법계에 굳게 머물러 그 참다운 진리가 언제나 동요되지 않고, 선정을 원만히 갖춤에 따라 그 성품이 난폭하지 않아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바라는 일없이 진리를 잘 살피고,
007_0990_a_25L阿差末言菩薩念往古知不可盡崇山可憶念思逮了本群黎之類皆悉荷蒙如來聖旨堅住法界熟惟眞宜而不可動性不卒暴備悉禪定不懷怨望住而審諦
십 세ㆍ오십 세ㆍ백 세ㆍ천 세의 헤아릴 수 없는 세간사와 내지 하늘과 땅이 이루어지고 사라지는 것과 합쳐지고 흩어지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에 대해 다 알고, 일 겁ㆍ십 겁ㆍ백 겁ㆍ천 겁 내지 무수한 억백천 겁 동안의 이름ㆍ종성(種姓)ㆍ언어ㆍ음식과 그 밖의 지나온 온갖 고락(苦樂)에 대해서도 다 압니다.
007_0990_b_07L知十五十百世千世不可計億載世事天地成敗合散進退一劫十劫百劫千劫了無數億百千姟劫名字種姓言語飮食所更苦
다시 말하면, 보살은 스스로 근본 유래를 알아 온 중생계를 보며, 과거로부터의 온갖 공덕과 중생들의 선근의 공덕에 대해서 이미 분별하여 다 압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도를 권하고 중생들의 마음을 비추어서 그들로 하여금 선의 근본을 알게 하고 도에 뜻을 일으키게 하며, 전생부터 겪어 온 고락과 안위(安危)의 그 모든 것이 다 덧없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없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007_0990_b_11L自知本原見他衆際古昔從來別已種德衆生善本身所立功勸助佛道照衆生心使識善本勸發道意世宿命苦樂安危忽已悉過皆歸無非身
또 어리석은 중생들이 미혹으로 인하여 물질과 세력과 권속을 믿고서 스스로 훌륭한 체하고 혼란을 일으키거나 지위를 탐하여 제석ㆍ범천ㆍ사천왕ㆍ전륜성왕을 부러워하거나, 또는 5취(趣) 세간의 온갖 애욕과 명예를 좋아하여서 자신의 안락만을 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고 할 때에는, 그들이 과거세에 행한 본말과 현재세의 일을 살펴서 그 덧없음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가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007_0990_b_15L愚者迷惑以色自倚高勢富憍恣眷屬荒亂自大恃怙貴貪釋梵職慕四天王轉輪聖帝諸所趣終如五旋好于愛欲尊高之喜爲己身求想安隱緣是欲得化於他人設慕世位當察非常暢過去劫所行本末其現在事無有處所
나아가서 보살은 자신의 생명을 버릴지언정 올바르지 못한 일을 범하지 않고, 과거세에 세운 공덕을 다 중생들에게 권하되 큰 도를 갖추어 현재의 선근이 자라나게 중생들을 이끌어 줍니다.
007_0990_b_22L寧失身命不犯非義古昔所立功德之本咸用勸助悉具大道在善本執御衆生棄邪行業
또 3보(寶)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삿된 업을 버리고 부처님의 법에 따라 일체의 지혜를 발휘하게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과거세의 일을 알고 스스로 증명하는 네 번째 신통의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90_b_24L不斷三寶佛法聖衆發一切智是爲菩薩知往古世而自證明第四神通不可盡誼
007_0990_c_02L또 보살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통을 이미 통달하여 다함이 없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보살은 먼저 자기 마음을 살펴서 정진하되 법전(法典)을 받아 지니고, 업행을 닦아 문득 능히 성취하며, 항상 4신족(神足)을 몸소 받들어 행하기에 눈앞에서 모든 신통을 남김 없이 다 통달하고,
007_0990_c_02L何謂菩薩神足飛行神通已達不可盡者自察己心而好精進攝受法典所修業行輒能成就恒得由己常諦奉行於四神足現在目前諸通悉達無所復爲
그 무수한 종류의 신족을 나타내어 한량없는 위신(威神)의 변화를 일으키니 하나의 몸을 무수한 몸으로 화하기도 하고 무수한 몸을 다시 하나의 몸으로 화하기도 하는가 하면, 빠르게 날아오른 그 몸은 한 찰나에 어떠한 장벽 없이 저 철위산(鐵圍山)을 통과합니다. 마치 새가 하늘을 날거나 허공에 머물거나 물 위를 스쳐 지나가거나 땅 위를 걸어 다니거나 간에 대문 없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과 같습니다.
007_0990_c_07L以無數品顯現神足威變無量則以一身化無數身以無數身還復一體飛行飄疾如一念頃不㝵牆壁鐵圍山川經自通過如鳥遊空坐於虛空如處地上履水而行如在陸土出入無閒如無門戶
보살은 이러한 신족으로 중생들의 근기를 관찰하여 교화하되, 깨우침을 주어야 할 것에 따라 신족을 나타냄으로써 때로는 견줄 데 없는 단정한 얼굴빛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털구멍으로부터 큰 광명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위신(威神)을 세워 그 형태와 종류에 따라 제도하기도 하고, 또 병에 알맞은 약을 주어 각기 처소를 얻게 하고,
007_0990_c_12L以是神足觀察人根而開化之從其衆生因可訓誨而顯神足爲現端正顏色無比或因毛孔而演大光或立威神隨其形類而開度之應病與藥各令得所
혹은 성문ㆍ연각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혹은 부처님으로 현현하여 교화하기도 하고, 혹은 제석ㆍ범천의 형상을 드러내기도 하고, 혹은 사천왕ㆍ전륜성왕과 그 밖의 온갖 모습으로 교화하기도 하고, 혹은 축생 따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등, 뭇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에 따라 각각 설법하여 그들을 길러냅니다.
007_0990_c_16L或聲聞緣覺像色貌立之或現佛身而開化之或現釋梵色像形貌亦如四鎭轉輪聖王種種異形教誨群生或現畜生形貌像類從其衆人之所好喜各爲說法因而將養
007_0991_a_02L그 중에 자신의 강한 세력만을 믿고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하는 자나,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자가 있을 때에도 그 마땅한 바에 따라 자비심을 베풀어줍니다. 혹 사방을 정복할 수 있는 큰 힘을 보여주거나, 혹은 반 구쇄(鉤鎖) 혹은 온전한 구쇄의 힘을 갖추었거나, 혹 높이 336만 리의 저 수미산을 마구 흔드는 한량없는 힘과 넓고도 긴 바다를 뛰어 넘는 그러한 힘을 가진 자가 있더라도, 그들을 다 한 손가락으로 퉁겨서 멀리 다른 불국토에 던지기를 마치 과일 하나를 던지는 것과 같이 하니, 보살의 힘은 끝내 소모되지 않습니다.
007_0990_c_21L勢力堅强多懷毒害瞋恚盛者因其所宜而闡慈心或顯大力或四征力或半鉤鎖或具鉤鎖力其力無極勢不可限彌山王甚大巍巍--高三百三十六萬廣長入海其數亦等--以一指擎擎之挑擲他方佛國如投一果其菩薩力終不損耗
또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에 가득한 물체와 아래로는 땅 밑까지 위로는 32천(天)에 닿을 정도의 넓고도 긴 물체를 오른손 바닥에 얹어서 오랜 겁 동안 들고 있더라도 보살은 조금도 지치지 않습니다.
007_0991_a_05L又此三千大千世界廣長無邊--下盡地際極於上方三十二天--擧著右掌於若干劫擎之不勞
나아가서는 이 신족의 힘을 세움에 있어서 성스러운 지혜를 나타내고 다시 위덕(威德)을 이룩하여 모든 것을 하고 싶은 뜻에 따라 자유자재로 하기에, 큰 바다를 들어 하나의 소 발자국에 던지더라도 그 소 발자국이 좁지 않고 다시 소 발자국을 큰 바다로 만들어도 큰 바닷물이 남거나 새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007_0991_a_07L神足力顯其聖慧以此威德聖慧所致恣意所欲能擧大海投之牛迹於牛迹亦不逼迮亦不漏逸能變牛迹以成大海
가령 큰불이 일어나서 온 천지가 무너지려는 경우라도 보살이 위신(威神)의 변화를 세운다면 홍수를 일으킬 수 있으니, 도로써 교화하라는 성지(聖旨)에 따라 마음대로 화재(火災)를 수재(水災)로 변경시킬 수 있습니다.
007_0991_a_11L假使劫燒天地欲壞立威神變爲洪水道化聖旨成爲水欲使爲火輒如意念
간략히 말하면, 보살이 나타내는 신통 변화는 그 어느 것에도 가려지거나 걸림이 없어서, 마치 요술처럼 상ㆍ중ㆍ하의 법에 따라 하고 싶은 뜻대로 다 성취함으로써 방해받거나 동요됨이 없습니다.
007_0991_a_13L取要言之所顯示無一蔽㝵令變爲幻法如意所欲無不成者無能動移妨廢之者
또 제석ㆍ범천ㆍ마천(魔天) 등의 그 밖의 외도들도 다 경전의 가르침에 따르기 마련이며, 부처님 도의 그 다함이 없는 위신을 제외하고는 천상과 세간에 보살의 이러한 공덕을 일으킬 자가 없습니다.
007_0991_a_16L釋梵天及與他方所作如法輒從經教捨諸佛道威神無盡餘衆人--天上世閒--無能作威移菩薩
이 위신의 힘으로써, 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해 갖가지 변화를 나타내되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경전의 도를 선포하는 한편, 온갖 마군의 경계와 더러운 번뇌를 벗어나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서 그 뭇 사람들의 모자람을 구제하여 제각기 처소를 얻게 합니다. 전생 때부터 지어 온 이러한 공덕의 근본이야말로 저 마군의 권속들이 감히 헐뜯을 수 없는, 보살만이 일으키는 신족의 변화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보살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다섯 번째 신통의 다함 없는 것입니다.”
007_0991_a_19L以此威力爲諸民庶顯若干變豫功勳頒宣經道有是神足其心堅强未曾退還度魔境界塵勞之穢佛境土不煩擾人應其所乏各令得往古宿世所造德本諸魔官屬不能毀之是爲菩薩神足變化第五神通而不可盡
007_0991_b_03L아차말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또 번뇌를 끊는 보살의 신통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보살은 함이 있는[有爲] 법이나 함이 없는[無爲] 법에 머무르지 않으니 오직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기 때문이고, 생사를 짓지 않는 것도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기 때문이니 열반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007_0991_b_03L阿差末復謂舍利弗言菩薩漏盡神通要者不住有爲不處無爲以大慈故不造生死以大悲故不住滅度
또한 도의 공덕을 성취하기 위해 그 끝과 시작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기 위해 열반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길 뿐 세간의 번뇌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007_0991_b_06L成道德不著終始欲現佛身不住滅顧戀一切不迷塵欲
나아가서는 시방을 교화하되 교화한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고,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다 행하되 행할 때에는 스스로가 이익을 얻으리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훌륭한 방편을 행하되 함이 없는 법을 연모하지 않으며, 본래 서원을 세운 그대로 청정한 뜻을 갖추어서 도(道)의 지혜에 어긋나지 않고,
007_0991_b_08L化度十方不取滅度行施精進一心智慧隨時不惑流潤行㩲方便不慕無爲具本願志性淸淨不違道慧方便開
방편을 다해 중생들을 교화할 뿐 생사의 5취(趣)와 함이 없는 6신통과 내지 4등(等)ㆍ4은(恩)ㆍ4변(辯)ㆍ37품(品) 등의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영원히 생ㆍ노ㆍ병ㆍ사를 벗어나 부처님의 도를 장엄 청정하게 성취하되, 모든 것을 평등한 저 허공처럼 관찰하여서 나아감도 물러남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다함 없는 여섯 번째의 신통인 것입니다.”
007_0991_b_12L在於生死五道坦明不樂無爲六通平正不難五趣六度四等四恩三十七品療生死成其佛土淨三場不處有無生死無爲皆觀自等如虛空無進無退是爲菩薩第六神通而不可盡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보살의 4은(恩) 또한 다함이 없으니, 첫째가 보시(布施), 둘째가 인애(仁愛), 셋째가 이익(利益), 넷째가 등여(等與)입니다. 보시에는 두 가지 품(品)이 있으니, 의복ㆍ음식ㆍ금은ㆍ보배ㆍ가마ㆍ시종 따위를 보시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경전의 법을 널리 유포하지 않음이 없는 법의 보시가 다른 하나입니다.
007_0991_b_17L阿差末言舍利弗菩薩大士有四恩行而不可盡何謂爲四一曰布施二曰仁愛三曰利益四曰等與其布施者謂有二品一曰珍寶人從二曰法施廣布經典靡不周流
인애 역시 두 가지 품이 있으니, 무엇을 요구하면 요구하는 대로 다 주는 것이 그 하나이고, 경전의 법을 들으려고 하면 그 경전의 법을 설해 주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이익 역시 두 가지 품이 있으니, 스스로 자신의 계행을 성취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사람의 원을 들어주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007_0991_b_23L其仁愛者亦有二品若有求者恣意與之欲聽經者爲講說法其利益者亦有二品自成己行具他人願
007_0991_c_02L 등여 역시 두 가지 품이 있으니,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공덕을 세우되 의복ㆍ음식 따위를 요구하는 자에게 모자람 없이 다 주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여 도의 업(業)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007_0991_b_25L其等與者亦有二品如自己身所念思惟建立功德來求衣諸所可乏悉施與之加復勸人令住道業
또한 보시라는 것은 구걸하는 자를 보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니, 얼굴빛이 싫어하는 색으로 변하지 않은 채 기뻐하는 것입니다. 또 인애라는 것은 구걸하는 자를 보게 되면 마치 갓난아이처럼 가엾이 여기는 것입니다. 또 이익이라는 것은 구걸하는 자를 권유하여 기탄 없이 평등한 지위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또 등여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몸ㆍ입ㆍ뜻에 지닌 결함을 보고서 그를 훈계하여 이 세 가지를 올바르게 닦아 대승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007_0991_c_05L又所謂施見乞求者踊躍與之面色不變益加熙怡彼仁愛者見來乞求愍如赤子彼利益者勸諸來求令住坦然平等之地彼等與者假使有人身行口言心念缺漏訓之令護三事相副令入大乘
다시 탐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그것이 곧 보시이고, 인자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정진한다면 그것이 곧 인애이고, 이익을 도모하되 성품이 청정하고 온화하여 끝내 후회하지 않아야만 그것이 곧 이익이고, 조그마한 뜻에 떨어지지 않고 대승에 들어가게끔 권유해야만 그것이 곧 등여입니다.
007_0991_c_11L復次捨心貪嫉則曰布施精進不斷名曰仁愛有所利益志性淸和後不懷恨乃曰利益勸入大乘不墮小意是曰等與
다시 인자한 마음으로 궁핍한 이를 따른다면 그것이 곧 보시이고, 환희심을 내어 서로가 용서하고 화해한다면 그것이 곧 인애이고, 큰 자비심을 일으키되 계율의 공덕의 갑옷을 입고 중생들을 위해 온갖 고통을 참아야만 그것이 곧 이익이고, 모든 행을 길러 해가 되지 않게 함과 동시에 일체의 지혜를 권유해야만 그것이 곧 등여입니다.
007_0991_c_14L復次慈心順窮則曰布施興發歡悅懷恕戀心乃曰仁愛興大悲哀被戒德鎧爲群黎故而忍衆苦名曰利益養護諸行令不損耗勸一切智是曰等與
다시 법을 구하는 자에게 아낌없이 그 법을 베푼다면 그것이 곧 보시이고, 모든 베풂에 있어서 법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그 마음을 평탄하게 해야만 그것이 곧 인애이고,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나 항상 도로써 교화한다면 그것이 곧 이익이고, 일체 중생을 위해 도의 마음을 일으키되 모든 지혜를 통달해야만 그것이 곧 등여입니다.
007_0991_c_18L復次若求法者亦能惠與無所悋惜則曰布施其仁愛者有所施與兼以法教使得坦然其利益者亦爲己身復爲他人興隆道化其等與者爲一切故尋發道意諸通慧心
007_0992_a_02L다시 안팎으로 지닌 모든 것을 다 내어놓되 망령된 생각을 갖지 않아야만 그것이 곧 보시이고, 일체 공덕의 지혜를 찬탄하되 스승과 벗에 어긋나지 않아야만 그것이 곧 인애이고, 자신의 안락을 버리고서 다른 사람의 일을 같이 걱정해야만 그것이 곧 이익이고, 온갖 고뇌를 겪으면서도 법을 부지런히 닦아 지혜를 관찰하고 도를 성취하되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통달하여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등여입니다.
007_0991_c_23L復次內外所有皆能放捨不懷妄想則曰布施稱譽一切功勳之慧不違師友乃曰仁愛捨身之安所便身誼念憂他人名曰利益合集要行若住苦惱旣自勤修思慧成道觀之如掌以惠他人不懷悒悒是曰等與
다시 자기가 들은 법 그대로를 다른 사람을 위해 널리 설한다면 그것이 곧 법의 보시이고, 법을 널리 설하되 의복ㆍ음식 따위의 이로움을 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인애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수시로 경전의 법을 읽되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만 그것이 곧 이익이고, 언제나 일체 지혜의 마음을 어기지 않고 법의 가르침에 따라 근심하지 않아야만 그것이 곧 등여입니다.
007_0992_a_05L何謂法施如己聞法爲他人說興仁愛者若有所演不貪衣利養之業彼利益者若教他人諷誦經法隨時而授未曾勞惓何謂等與未曾違遠一切智心常隨法訓不以爲患
다시 보시라고 하는 것은 법을 좋아하는 자에게 의복ㆍ음식을 모자라지 않게 주는 것이고, 인애라고 하는 것은 빈궁한 자와 병든 자에게 발우ㆍ신발ㆍ침구ㆍ약품 따위를 주는 것이고,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성품을 관찰하여 각기 처소를 얻게끔 설법해 주는 것이고, 등여라고 하는 것은 온갖 사람들에게 베풀고 세 도량(道場)을 청정하게 할 뿐 그 과보를 바라지 않고 위없는 정각(正覺)의 마음을 권하는 것입니다.
007_0992_a_10L何謂布施愛喜法者不乏衣食鉢器履屣諸牀臥具病瘦醫藥所當得者他人所乏輒能與之觀其志性尋爲說法各使得所其等與者能加施人淨三道場不望想報則用勸助無上正眞最正覺心
다시 보시라고 하는 것은 모든 보시 가운데 법의 보시가 가장 으뜸임을 관찰하여 그것을 일으키는 것이고, 인애라고 하는 것은 순박한 마음으로 중생들에게 그 가엾이 여기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도의 이치를 생각할 뿐 형식과 의식에 따르지 않는 것이고, 등여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을 선포하여 도의 지혜를 구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007_0992_a_15L復次其法施者於諸施中最第一尊作是察已乃興法施其仁愛者斯心質朴顯愍哀義其利益者念道義理不取嚴飾其等與者班宣佛法道慧具足
다시 보시라고 하는 것은 모든 도무극을 원만하게 갖추는 것이고, 인애라고 하는 것은 계율을 성취하여 인도무극(忍度無極)을 얻는 것이고,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진도무극(進度無極)을 닦아 전도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고 그 허물을 바로 잡는 것이고, 등여라고 하는 것은 선정을 닦아 지도무극(智度無極)을 넓히는 것입니다.
007_0992_a_19L復次其布施者具足備悉諸度無極其仁愛者成於戒禁忍度無極其利益者進度無極不墮顚倒退思補過其等與者廣大禪思智度無極
007_0992_b_02L다시 보시라고 하는 것은 초발심한 그대로 보살행을 닦는 것이고, 인애라고 하는 것은 바른 수행으로 보살의 근본 서원에 수순하는 것이고,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법의 가르침을 성취하는 것이고, 등여라고 하는 것은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지위에 이르게 되는 보살의 본래 업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007_0992_a_23L復次其布施者則應初發菩薩心行其仁愛者奉修正行順菩薩本其利益者成不退轉菩薩法教其等與者則謂一生補處菩薩之基業也
다시 보시라고 하는 것은 도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고, 인애라고 하는 것은 마치 무성한 나무가 줄기ㆍ가지ㆍ잎을 다 갖추는 것처럼 모든 법의 가르침을 자라나게 하는 것이고,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나무가 무성함으로써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기는 것처럼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더욱 빛내는 것이고, 등여라고 하는 것은 마치 무성한 나무가 열매를 얻는 것처럼 도의 공덕의 업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4은(恩)인 것입니다.”
007_0992_b_04L復次其布施者立道根本其仁愛者喩於備悉牙枝葉稍成道教其利益者喩於道法究竟華茂芬葩熾盛其等與者究竟果實道德之業是爲名曰菩薩四恩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4변재(辯才) 역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첫째가 의변(義辯)이고, 둘째가 법변(法辯)이고, 셋째가 응변(應辯)이고, 넷째가 사변(辭辯)입니다.
007_0992_b_08L阿差末言舍利弗菩薩大士有四辯才亦不可盡何謂爲四一曰義辯二曰法辯三曰應辯四曰辭辯
의변(義辯)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보살은 모든 법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그 응보(應報)에 대한 지혜를 통달하되 언제나 화합할 뿐 그것을 스스로가 닦은 공훈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시 인연의 지혜에 들되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음으로써 그 본래의 청정함을 깨달아 아무 것도 없는 본래의 경계에 머무는가 하면, 끝내 그 본래의 경계마저 없음을 깨달아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해탈문(解脫門)에 듭니다.
007_0992_b_11L何謂義辯曉於諸法眞諦之義明己所達識報應慧所知和雅不自修功入因緣慧不壞法界悉達本淨入於無本悉解本無了住本際永無有際曉解空義奉修無想在於無願
한편으로 구할 것도 없고 행할 것도 없는 위치에서 한 가지 지혜문[慧門]에 들어가되,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라는 그 모든 생각을 초월하여 도와 지혜가 일치된 진정한 경지에 머뭅니다. 이로써 과거세의 무수한 겁(劫)을 기억하고, 미래세의 끝없는 일을 통달하며, 현재세의 중생들의 마음과 행을 관찰합니다.
007_0992_b_16L曉無所求立無所行明諸行者入一慧門不計有人不見吾我無壽無命道智則一遊正眞慧知於過去無央數劫曉於當來無邊際義識於現在一切衆行
007_0992_c_02L보살은 5음(陰)이 허깨비와 같고 4대(大)가 독사와 같고 모든 6입(入)이 허공과 같음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적멸하여 안팎의 행이 헛되이 거닒이 없으니, 모든 국토는 그 경계가 없고 마음은 이르고자 하는 모양과 처소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또 진리의 성품을 관찰하되 심오한 진리를 깨우쳐서 고뇌가 없고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것을 짓지 않습니다. 나아가서는 적멸한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깨달아 그 길에 들어서며,
007_0992_b_20L悉解五陰猶如幻化四種如蚖諸入若空滅寂內行外無所遊解諸國土無有境界心意無形其所行至爲無所到觀其志性明識審諦苦無處所於諸所習而無所造其滅盡者自然之相曉入徑路
모든 법구(法句)의 이치를 분별하고 감관과 5력(力)을 통달하여서 고요한 가운데, 모든 물질이 마치 파초(芭蕉)와 아지랑이와 그림자 같기도 하고, 꿈꾸는 것과 같기도 하고, 산중의 메아리와 물 속의 달과 같기도 하여 다 허망하고 진실된 것이 없음을 분명히 관찰합니다.
007_0992_c_03L分別諸法句義所趣通入諸根暢達五力建立寂然明察所觀一切所有如幻芭蕉野馬形影夢中所見山中之響水中之月悉虛無實
다시 이러한 관찰로 말미암아 모든 상(相)에서 진리의 상을 알 수 있으니, 만나는 것은 반드시 헤어지고 지금은 비록 기쁘더라도 나중에는 근심거리가 생깁니다. 그래서 보살은 음성을 따르는 성문승(聲聞乘)과 12연기(緣起)를 따르는 연각승(緣覺乘)을 앎으로써 진리의 상으로 돌아가 대승의 배움을 드높이고, 일체의 공덕의 근본을 쌓아서 곧 큰 도를 성취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의변(義辯)입니다.
007_0992_c_07L以若干相了爲一相知合會者必當別離今欣欣者後會憂慼曉聲聞乘因音而解知緣覺乘從十二緣寂靜歸一暢大乘學積累無量一切德本乃成大道是謂義辯
다시 말하면, 그 의변이라는 것은 오직 이치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체의 법은 다 이치에 의지하기는 하되 결국 의지하는 바가 없습니다.
007_0992_c_11L復次其義辯者唯歸仰義一切諸法皆趣於義亦無所歸
왜냐 하면 일체의 법이 의지하는 바가 다 공(空)이므로 공 자체가 바로 이치이고, 일체의 법이 다 무상(無相)이므로 무상 자체가 바로 이치이고, 일체의 법이 다 무원(無願)이므로 무원 자체가 바로 이치이고, 일체의 법이 다 담박하므로 그 담박함 자체가 바로 이치이고, 일체 법이 다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란 생각이 없으므로 그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란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법을 이와 같이 깨달아 분별한다면, 이것이 이른바 의변입니다.
007_0992_c_13L所以者何一切諸法所歸趣者悉皆空空是謂爲義一切諸法悉無有想其解無想是謂爲義一切諸法悉無有願其無有願是謂爲義一切諸法悉歸澹泊其澹泊者是謂爲義一切諸法悉無有人無壽無命其無壽命是謂爲義若曉諸法分別如此是謂義辯
또 법을 연설하는 것이 또한 처소에 따라 다 알맞아서 끝내 다함이 없고, 연설하는 변재를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다 성스러운 지혜를 널리 설하도록 돕고, 진리 역시 다함이 없고 아무런 결함이 없으므로, 이것이 이른바 의변입니다.
007_0992_c_20L其講說法無所處當言有處所彼土所講則不可盡所演辯才無能障翳諸佛世尊之所言教悉遙勸助所宣聖慧眞諦無異無有罪舋是謂義辯
007_0993_a_02L법변(法辯)이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보살은 모든 법을 환히 깨우쳐서, 선악ㆍ화복ㆍ공덕ㆍ죄과ㆍ번뇌의 있고 없음ㆍ세간을 벗어난 것과 벗어나지 못한 것ㆍ고락(苦樂)ㆍ위해(危害)ㆍ진한(瞋恨) 등의 갖가지 품류(品類)에 대해 수시로 설법하며, 생사에 들거나 열반에 머물러 법계와 세속의 업을 분별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법변입니다.
007_0992_c_24L何謂法辯若了諸法隨時而入--善惡禍福興德罪舋有漏無漏在世度世苦樂危害塵勞瞋恨各有品類--入於生死若處泥洹分別法界方俗之業是謂法辯
다시 법변이라는 것은, 보살이 모든 사람들의 탐욕과 마음 속에 있는 연모의 정에 대해 분명히 깨우침으로써, 누구는 색을 좋아하고 누구는 음욕이 성하고 누구는 탐욕이 강하고 누구는 그러한 욕심이 적다거나, 누구는 욕심을 제거할 수 있고 누구는 그 욕심을 제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각각 그들에게 어떠한 약으로 치료해야 할 지를 관찰하여서 설법하는 것입니다.
007_0993_a_06L復次其法辯者曉諸貪欲--心所戀慕某人好色--知當何藥而療治之某婬泆盛某貪欲强或有少欲某可除欲某不可除
또 누구는 과거세의 음욕에 따라 현재세에 그러하고, 누구는 현재세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미래세에도 그러하고, 누구는 현재세의 습기로 말미암아 음욕과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거나, 어떤 사람은 안으로 탐욕이 있기에 밖으로 은애(恩愛)가 없고, 어떤 사람은 밖으로 탐욕이 있기에 안으로 은애가 없고, 어떤 사람은 안팎이 다 탐욕이 있기에 은애가 없다거나, 어떤 사람은 얼굴빛만 보아도 정욕(情欲)이 발동하는 반면 음성을 듣고는 발동하지 않고,
007_0993_a_09L或從往本欲應欲來或當來世習貪欲相或於現世習貪欲相或復有人內懷貪欲外無恩愛或復有人外抱貪欲內無恩愛或復有人內外有欲或復有人睹其顏色而發情欲聞聲不動
어떤 사람은 음성만 들어도 탐욕이 발동하는 반면 얼굴빛을 보고는 발동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음성과 얼굴빛으로 인하여 비로소 정욕이 발동하거나, 어떤 사람은 냄새ㆍ맛ㆍ감촉으로 인하여 탐욕을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물질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에 대해 전혀 탐욕이 없는 것을 환히 압니다.
007_0993_a_14L或復有人聞其音聲而興貪欲不以色動或復有人因其聲像而興色欲或復因香諸味細滑由心諸法而起貪欲或復有人無色聲香味細滑之念是爲貪
그래서 보살은 탐욕이 있는 일체 중생들의 행에 들어가 그것을 없애기 위해 설법합니다. 혹은 탐욕이 2만 천 가지이고, 혹은 성내는 행이 2만 천 가지이고, 어리석은 행이 2만 천 가지이고, 혹은 분별하는 행이 2만 천 가지이기에,
007_0993_a_19L衆生所行當作是入其貪欲門所習或欲二萬一千其瞋恚行亦二萬一千其愚癡行亦二萬一千其等分行亦二萬一千
007_0993_b_02L 이 8만 4천 가지 중생들의 행에 들어가 때때로 교화하되 아무런 손해가 없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자를 권유하여서 다 법에 나아가 절차를 잃지 않게 하고, 각자의 근기에 대해 알아서 가장 근기가 낮은 자들은 법을 널리 설해 주어서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법변입니다.
007_0993_a_22L若能解了於此諸行八萬四千便能隨時而開化之無有損耗其不入慧誘進令前不失其節解知應器殊特下劣有所頒宣無所侵抂是謂法辯
응변(應辯)이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보살은 일체 중생의 음성에 널리 들어가되, 모든 천인ㆍ세간 사람들의 음성과 그 밖의 천룡(天龍)ㆍ귀신(鬼神)ㆍ건답화(揵沓★)ㆍ아수륜(阿須倫)ㆍ가유라(迦留羅)ㆍ진타라(眞陀羅)ㆍ마후륵(摩睺勒)ㆍ사람이고 사람 아닌 것과 5취(趣) 중생들의 음성을 다 듣고서 그 음성에 따라 경전의 법을 연설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응변입니다.
007_0993_b_03L何謂應辯若能普入一切音詞諸天之聲世閒人聲諸龍鬼神揵沓和須倫迦留羅眞陁羅摩休勒人與非人所有音聲悉能得聞五趣衆生所說之響隨其音響而爲黎庶講說經是謂應辯
또 이와 같이 중생들의 온갖 음성에 수순하여 법을 연설하되, 경전과 문자를 환히 깨침과 동시에 그 이치에 들어가서 품류에 따라 한 가지 말로 열 가지, 백 가지 말을 알기도 하고, 남자ㆍ여자의 말과 어른ㆍ아이들의 말을 알기도 하고, 내지 과거ㆍ미래ㆍ현재 글자의 뜻을 다 알기도 하고, 때로는 한 글자로 두 글자의 이치를 터득하기도 하고, 유일무이하게 한 글자에 대해 알아서 비할 데가 없는데도 두 글자를 알아서 더욱 비할 데가 없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응변입니다.
007_0993_b_09L如是隨順而爲演法則應辯曉了經典知其文字觀所入如是品類解一種言十種百種男女言大小嬰孩亦知過去當來在文字所趣亦解一字又了二字之所入處亦知一字獨而無侶亦知二字而無有伴是謂應辯
또 그 말이 진리와 상응하여 번뇌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환히 깨쳐서 그릇되거나 어눌하거나 막힘 없이 이치를 다 갖추니, 듣는 사람마다 그 말에 대해 기뻐하여 원망하는 이가 없습니다.
007_0993_b_15L應於眞諦言無缺漏了了分明而無誤失訥隧之言義理備悉所在衆人皆悅其辭無怨望者
나아가서는 깊은 이치를 널리 설하시는 그 말이 순박하고 안팎의 이치와도 합치되는가 하면, 스스로 그 마음을 관찰함과 동시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중생들의 성품을 살펴서 그들로 하여금 깨달아 뛸 듯이 기뻐하게 하며 각각의 처소를 얻게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응변입니다.
007_0993_b_18L頒宣深義文辭至質合宜文自察其心從佛之教觀於衆生志性所趣而爲應義使心開解歡然踊躍各得其所是謂應辯
사변(辭辯)이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보살의 말은 적절하여 어지럽거나 끊어지지 않으므로 누구도 억제할 수 없습니다. 또 말하는 이치가 막힘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갑자기 질문을 받더라도 묻는 그대로 곧 대답합니다. 지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차를 잃거나 묻는 자의 뜻을 어기지 않으므로 그 변재(辯才)에 다툼이 없습니다.
007_0993_b_21L何謂辭辯所說應時辭不亂錯言不中止無能制者所可說義無能障塞卒問尋對應機飄疾答不遲晩如所問報不失應節不違問者辯才無諍
007_0993_c_02L 나아가서는 그 변재가 참된 법을 따르고 인욕의 힘을 세워 갖가지 깊고도 미묘한 이치를 널리 설하는가 하면,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차례로 빠짐없이 다 성취하여 일체 법구(法句)의 뜻을 분별함과 동시에 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5신족통(神足通)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를 널리 설합니다.
007_0993_c_02L所說辯才應眞諦法立忍辱力所宣深妙演若干義辯才次第不越來意布施持戒忍辱精進一心智慧分別一切章句義理講說意止意斷神足覺意
또 본래 발심한 그대로 도를 성취하여 고요한 경지를 관찰함으로써 일체의 해탈문(解脫門)과 삼매문(三昧門)을 깨닫고, 성스러운 지혜에 들어 3승(乘)을 분별합니다. 또 일체의 중생들이 바라는 대로 즐겁게 해주되, 그 말이 항상 온화하여 더럽거나 거칠거나 이치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없고, 갑작스럽거나 희미하거나 나쁜 가르침이 없음은 물론, 더욱더 자상하고 성실하여 수시로 사리(事理)를 따져서 잘못을 바로잡아 줍니다.
007_0993_c_07L發心成道觀察寂然解暢一切禪思脫門三昧正受入于聖慧剖判三乘悅可一切衆生所念言詞和雅語無瑕穢亦無麤言不合義者口不卒暴舌不迷荒惡言之教所語柔耎淸淨無病言語徐詳無不實詞隨時事義所傳輒正
또 모든 자유로운 방편에 따라 뜻대로 말하되 그 말이 치우치거나 너무 가늘거나 남의 말을 도용하거나 숨기거나 높은 소리로 떠들지 않고 한결같이 안온하게 하므로, 누구도 단점을 찾아낼 수 없을 뿐더러 뭇 현성(賢聖)들의 찬탄하는 소리가 널리 다른 국토에까지 퍼집니다.
007_0993_c_13L不卒不暴方便隨意無有異詞亦無細言竊微盜語所語列路無屛處言極高擧聲言詞安隱有所說者無能得短諸賢聖衆所共咨嗟所稱揚者通流他國
또 범천(梵天)의 음성처럼 미묘한 음성으로 가르침을 어기지 않고, 일체 중생들의 근본을 관찰하여서 그 생각하는 바에 따라 설법하기 때문에 설법을 듣는 이마다 곧 평등한 그 말에 따라 온갖 고뇌와 환란을 끊게 됩니다. 이것이 이른바 보살의 다함 없는 사변입니다.
007_0993_c_17L其音微妙亦如梵聲聞者悉達口所言詞不違法教皆見一切衆生根本應其心念而爲說法其聞法者輒隨平等斷苦惱患是爲菩薩詞辯無盡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변재에는 또 네 가지 다함 없는 것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첫째가 이치에 의지할 뿐 의식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가 지혜에 의지할 뿐 의식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가 경전을 취하더라도 미혹되지 않는 것이고, 넷째가 법에 의지할 뿐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007_0993_c_21L阿差末言舍利弗菩薩辯才復有四事而不可盡何謂爲四一曰取義不取識二曰歸慧不取所識三曰歸於要經而不迷惑四曰自歸於法而不取人
007_0994_a_03L어떤 것이 이치이고 어떤 것이 의식인가 하면, 세간의 법에 드는 것이 의식이고 세간의 법을 벗어나는 것이 이치입니다. 또 의식은 보시하되 마음을 조율하여 지혜롭고 평온하게 하는 것이고, 이치란 교화하되 적막하고도 담박한 경지에서 성스러운 지혜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007_0993_c_25L何謂爲義何謂爲識入於世法是謂識著度世之法乃謂爲義所謂識者布施調意明智安庠所謂義者化於調定寂寞澹泊歸于聖慧
또 의식이란 생사를 찬탄하여 근심하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이고, 이치란 비록 생사 속에 있더라도 전도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근심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 의식이란 열반을 찬탄하여 그 공덕을 세우려는 것이고, 이치란 일체 법이 본래 청정하고 적멸한 것임을 깨달아 조금도 바라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94_a_06L所謂識者咨嗟生死而不患厭所謂義者雖在生死不處顚倒悉能越度終始之患所謂識者咨嗟泥洹功德之勳所謂義者一切諸法本淨滅度不懷望想
또 의식이란 그 근본이 되는 승(乘)을 따라 분별하는 것이고, 이치란 한 가지 일체 법의 지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의식이란 소유한 것을 아낌없이 다 보시하려는 것이고, 이치란 세 도량을 청정이 하여 큰 도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007_0994_a_10L所謂識者隨其本乘而爲分別所謂義者入一法慧所謂識者一切所有皆能布施無所愛惜所謂義者淨三道場歸一大道
또 의식이란 몸ㆍ입ㆍ뜻을 닦기 위해 널리 계율을 배워서 더 없는 공덕의 행을 세우려는 것이고, 이치란 몸ㆍ입ㆍ뜻을 닦되 지음이 없기에 얻을 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니 이것이 계율을 능히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007_0994_a_14L所謂識者護身普學禁戒嘆譽止足功德之行所謂義者護身解不可得悉無所作是謂禁戒能爲淸淨
또 의식이란 훌륭한 체하거나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성내고 독기가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그를 위해 안온함과 인욕의 덕에 대해 연설해 주는 것이고, 이치란 스스로가 무생법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007_0994_a_17L所謂識者見諸貢高自大憍慢放恣懷瞋含毒之士爲演安庠忍辱之德所謂義者行能自致無所從生法忍
또 의식이란 힘써 정진하여 일체 공덕의 근본을 분별하는 것이고, 이치란 상응함도 상응하지 않음도 없고 견줄 바도 견줄 바가 없는 것도 없어서 정진하여 머무름이 없는 것입니다.
007_0994_a_20L所謂識者慇懃精進分別一切德本之義所謂義者無應不應無雙無隻所行精進而無所住
007_0994_b_02L 또 의식이란 해탈문과 삼매문에 들어가려는 것이고, 이치란 적멸(寂滅)의 해탈문과 삼매문 그대로를 환히 아는 것입니다. 또 의식이란 일체의 들은 것을 곧 지혜로써 도의 근본으로 받아 지니는 것이고, 이치란 지혜로 관찰하여 처소도 없고 얻을 것도 없음을 환히 아는 것입니다.
007_0994_a_23L所謂識者解脫禪思脫門安三昧正受所謂義者曉了滅盡意正受所謂識者一切所聞輒能受持智慧道原所謂義者觀於智慧無了元有處所亦不可得
또 의식이란 37조도품(助道品)의 도의 이치를 널리 설하는 것이고, 이치란 모든 부처님의 법을 받들어서 그 과보로 말미암아 도의 과위(果位)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또 의식이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ㆍ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분별하는 것이고, 이치란 적멸함에 이르러 그 담박한 경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007_0994_b_04L所謂識者頒宣於斯三十七品道義之訓所謂義者行遵修諸佛道法因諸報應致道果所謂識者剖判苦諦及習盡道謂義者至於滅寂證明澹泊
또 의식이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생ㆍ노ㆍ병ㆍ사의 고통을 제거하려는 것이고, 이치란 무명과 생ㆍ노ㆍ병ㆍ사가 없으므로 영원히 제거할 것마저 없는 것입니다. 또 의식이란 법을 연설하여 그 고요한 근본의 귀결을 관찰하는 것이고, 이치란 그 지혜로움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어 마침내 미묘한 지혜에 이르는 것입니다.
007_0994_b_08L所謂識因其所生悉由無明至老謂義者以滅無明及老死亦無永所謂識者講說所觀寂然之本根原所歸所謂義者因其慧明而得解脫至微妙智
또 의식이란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온갖 것들로는 깨우칠 수 없음을 아는 것이고, 이치란 온갖 악과 모든 생각을 영원히 버리는 것이며 한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의식이란 5음(陰)과 법의 장애에서 벗어나려는 것이고, 이치란 걸림 없이 해탈문(解脫門)과 지혜문(智慧門)에 들어가 노니는 것입니다.
007_0994_b_13L所謂識者解婬數適等本不可別所謂義者以得永消衆惡諸想不念懷恨所謂識者脫一切諸陰蓋法罣㝵之難所謂義遊無蔽㝵解脫慧門
또 의식이란 3보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는 것이고, 이치란 모든 욕심을 여의고 3보의 공덕 그대로를 받드는 것입니다. 또 의식이란 보살이 초발심에서부터 계율의 아름다운 명칭을 항상 찬탄하는 것이고, 이치란 모든 것을 깨달아 곧 일체의 지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007_0994_b_17L所謂識者嗟三寶功德無量所謂義者以離於不與欲合奉宣功勳所謂識者有菩薩從初發意常歎開士一切禁戒名稱之美所謂義者一心念頃皆能曉了尋得成就一切敏慧
요약하여 말하면, 8만 4천 가지의 모든 법을 널리 선포하고 설하는 것이 의식인 반면, 모든 문자에 아무런 집착이 없어서 얻을 것도 없고 처소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이치입니다.
007_0994_b_22L取要言悉能講宣八萬四千諸品法藏謂爲識於諸文字諸所識著解無所義無處所是謂爲義
007_0994_c_03L또 어떤 것이 지혜이고 어떤 것이 의식이겠습니까?
그 의식에 머무는 것에는 네 가지의 것이 있으니, 첫째는 의식이 물질에 머물러 마음의 처소도 그 가운데 있는 것이고, 둘째는 망령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속박되고 집착하는 것이고, 셋째는 생사에 머물러 의식이 맴도는 것이고, 넷째는 미혹으로 말미암아 집착된 의식을 스스로가 뽑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의 것입니다.
007_0994_b_25L何謂爲慧何謂爲識住於識者則有四事一曰識在於色心處其中二曰而懷妄想處在縛著三曰遊於生死識在周旋四曰迷惑識著不能自拔是謂爲四
지혜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 의식이 머무는 5음(陰)에 머물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다 끊는 것이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땅ㆍ물ㆍ불ㆍ바람의 4대(大)를 깨달아 분별하는 것이 의식이고, 이 4대에 머물지 않음으로써 법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007_0994_c_07L何謂爲慧其識不處住五陰地斷諸陰蓋--色識--是謂爲復次所謂識者曉了四大地假使識行不住四種識不馳騁壞法界是謂爲慧
또 눈에 대한 물질ㆍ귀에 대한 소리ㆍ코에 대한 냄새ㆍ혀에 대한 맛ㆍ몸에 대한 감촉ㆍ마음에 대한 법에 집착하는 것이 의식이고, 눈에 대한 물질 내지 마음에 대한 법을 다 벗어나 바깥 대상을 모두 소멸함으로써 그 일체 법에 대해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이 지혜입니다. 또 의지하고 집착하거나 바라는 것에 따라 구하는 것이 많으면 그것이 곧 의식이고, 생각도 바라는 것도 없어서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연모하지 않고 과보를 바라지도 않으면 그것이 곧 지혜입니다.
007_0994_c_11L復次所云識者耳聲鼻香舌味身觸心法所識之著是謂爲識設使消除外不遊逸之所導於一切法無所悕望是謂爲有所猗著則生識矣亦從想念多求而生識矣是謂爲識若無所受亦無悕望心不懷念無所慕樂不望報是謂爲慧
또 함이 있는 법을 행한다면 그것이 곧 의식에 머무는 것이고, 함이 없는 법을 행하여 어느 곳에도 머묾이 없다면 그것이 곧 지혜입니다. 또 분별과 생멸에 집착한다면 그것이 곧 의식이고, 생멸과 분별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그것이 곧 지혜인 것입니다.
007_0994_c_18L有爲行法則住於修無爲行識無所住奉無爲明謂爲慧若住起分名謂爲識不起識無所住乃謂爲慧
또 어떤 것이 경전의 이치를 취하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에서 취하는 것이란, 모든 경전의 이치를 힘껏 구하는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경전의 이치를 구하여 도의 과(果)에 들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을 닦아 뭇 행을 성취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의 처음과 끝을 능히 분별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007_0994_c_21L何謂爲取經義何謂爲取慇懃元元求諸經典是謂爲取若於經典致入道果是謂取義若於諸經成就衆行是謂爲取若能分別諸經本末是謂取義
007_0995_a_02L 만약 경전의 이치를 깨우쳐 모든 수행의 업을 성취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수행의 업으로 말미암아 죄와 복을 다 초월하여 번뇌를 영원히 제거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에서 지혜를 찾아 다른 사람을 위해 번뇌의 업을 널리 설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을 환히 아는 지혜로써 청정한 법구를 다 분별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007_0995_a_02L若在諸經入造行業是謂爲取若於諸經滅盡罪福永除塵勞是謂取義若於諸經採取要慧而爲他人說塵勞業是謂爲取若於諸經了了分別淸淨章句是謂取義
만약 모든 경전을 닦아 생사의 고난과 근심을 다 벗어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에서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님을 관찰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의 온갖 법구와 엄숙한 가르침을 널리 설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의 심오한 뜻을 탐구하며 함이 없는 평등한 경지를 이루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007_0995_a_07L若於諸經厭生死難愁慼不樂是謂爲取其於諸經觀察生死及與滅度不以爲二是謂取義若於諸經但宣雜句嚴飾之教是謂爲取若於諸經愛樂深義鉤奧致遠坦然無爲是謂取義
만약 모든 경전을 닦아 무수한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내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을 닦아 선지식(善知識)들의 마음을 알아내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경전을 닦아서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바라는 것도 없고 처음과 끝을 따질 것도 없고 어떤 주장을 세울 것도 없으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007_0995_a_12L若於諸經想識無數心念衆生是謂爲取若於諸經喜於識知心無所生是謂取義若於正經計吾我人及與壽命含血之類懷可不可造立悕望所可說者悉無有主强立本末君長之主是謂爲取
만약 모든 경전을 닦아서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법을 깨닫고, 생기하지도 나지도 않아 지음도 없고,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3해탈문을 널리 설하면, 이것을 일컬어 이치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007_0995_a_18L其於諸經解空無想無願之法不起不生悉無所行不計吾我及與壽命講三脫門是謂取義
또 어떤 것이 법이고 어떤 것이 사람이겠습니까?
만약 법을 수행하기보다 사람을 따르면 이것이 사람에 의지하는 것이고, 만약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모든 법을 버리지 않고서 그 법의 경계에 머무르면 이것이 법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007_0995_a_20L何謂爲法何謂爲人若著人者何從修法是謂爲人若在於人不捨諸法而住境界是謂取法
007_0995_b_02L 다시 말하면, 사람이란, 범부(凡夫)의 성품과 행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범부라도 독실한 믿음을 지니고 경전을 받들어 지니는 참된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그밖에 물러나지 않는 사람과 집착이 없는 사람과 내지 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사람이 있습니다.
007_0995_a_23L復次所謂人者云諸凡夫凡庶性行乃謂爲人若於凡夫奉眞人義修於篤信執持經典合八等人道迹人往來人不還人無著人緣覺人菩薩人
만약 어떤 사람이 세간에 출현하여서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겨 다 평온하게 하고 삼계(三界)의 천상ㆍ세간 사람들과 3악취(惡趣)의 중생들까지 다 구제한다면 그를 일컬어 여래라고 합니다.
007_0995_b_03L復有一人出現於世多所愍傷多所安隱慈哀三界--諸天世人及三惡趣--莫不蒙濟名曰如來
여래는 일체 중생을 널리 안온하게 할 뿐 아니라 바른 길을 나타내 보여 저 범부들을 다 도의 이치에 들어가게 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의지하거나 집착하게 되면 곧 옹호함이 없게 되니,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보살은 미혹된 이를 교화하려는 것입니다. 이에 법에 의지해야지 사람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007_0995_b_05L如來正眞普安一切顯示徑路化於黎庶使入道義假使有人依猗著求則無有護因欲開化此等迷惑故爲說是當歸於法莫取於人
뿐만 아니라, 법을 헤아리는 이는 만듦도 없고 인연도 없고 지음도 짓지 않음도 없고 내지 그 근본마저 없습니다. 또 널리 평등하게 행하여 가장 바르고 참된 경지에 이르러서 끝내 삿된 것과 바른 것까지의 차별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고 행도 없는 일체의 법을 저절로 체득합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모습은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이것을 법이라고 합니다.
007_0995_b_09L計於法者無所造作無有同像無作不作住無所住亦無根本普行平等等於正眞亦等邪業以邪等正以正等邪邪正無二無所悕望悉無所行於一切法逮致自然其相究竟猶如虛空是謂爲法
보살은 그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 역시 은덕(恩德)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 법문의 이치에 들게 되면, 일체의 법을 관찰하여 다 도의 법을 성취하고 그 모든 법을 이끌게 되며 게으르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이치에 의지하는 보살의 다함 없는 네 가지의 것입니다.”
007_0995_b_15L所開導法亦不思念以爲恩德若入於此法門義者觀一切法皆爲道法悉御諸法不以勞惓是諸菩薩四歸之義而不可盡
阿差末菩薩經卷第五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