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145_T_002
- 010_0521_c_01L 지인보살경 제2권
- 010_0521_c_01L持人菩薩經卷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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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축법호 한역
김진철 번역 - 010_0521_c_02L 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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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시왕품(持施王品)3) - 010_0521_c_03L持人菩薩經持施王品第四闕第三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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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지인(持人)에게 말씀하셨다.
“지난 과거 무앙수 겁에, 다시 이것을 더 넘어 헤아릴 수 없는 겁을 더한 그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의보옥왕(意普玉王)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이셨다. 그 부처님 세상에 80억해 사문과 대중이 있었으니, 모두 아라한으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였으며 배우지 못한 것을 배워 익힌 아나함ㆍ사다함ㆍ수다원도 다시 이와 같이 각각 80억 해였고, 모든 보살 84억 조(兆)ㆍ재(載)4)가 부처님 처소에 모였다.” - 010_0521_c_04L佛告持人:“乃往過去無央數劫,加復越是不可計劫,爾時有佛號意普玉王如來、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爲佛、世尊。其佛世時,有八十億姟沙門衆,皆阿羅漢,諸漏已盡習學不學,阿那含、斯陁含、須陁洹,亦復如是各八十億姟,諸菩薩八十四億兆載,集會佛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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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인아, 그때 여래의 수명은 8만 세였다. 그때 세상에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지타(持陁)5)였고, 2만 나라의 임금으로 백성이 번성하고 바람과 비가 때를 맞추었으며, 오곡이 풍요로워 만백성이 편안하였다. 왕이 사는 성은 가로 세로가 각각 480리로 그 성은 모두 진기한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으며, 그 담장은 일곱 겹이며, 나무와 참호 난간이 둘러 있어서 각각 다시 일곱 겹이었다. 구슬과 영락의 그물로 얽어 각각 다시 일곱 겹이며 모든 담장 벽 위에 여러 나무가 늘어섰으며, 모두 네 가지 보배로 서로 섞어 이슬 같은 장막을 둘러 덮었다. - 010_0521_c_13L佛言:“持人!彼時如來壽八萬歲時。世有王名曰持陁,君二萬國,民人熾盛,風雨時節五穀豐饒,萬姓安隱。王所居城,廣長正方各四百八十里,其城皆以琦珍四寶成之;其牆七重,樹木深塹欄楯周帀各復七重,網縵珠珞各復七重。諸牆壁上及諸行樹,皆以四寶交露帳幔而圍繞覆。
- 010_0522_a_02L그 2만 나라에는 각각 5백의 군(郡)과 현(顯)이 속하였다. 또 그 나무에는 모두 좋은 옷이 열렸는데, 자연스러운 칠보와 여러 가지 올이 촘촘한 옷이었다. 하나하나의 연못물에는 각각 5백의 목욕하는 연못이 딸려 있었다. 또 그 목욕하는 연못은 다 칠보로 이루어졌고 칠보의 연꽃이 피었는데 청ㆍ홍ㆍ황ㆍ백색이 그 못 속에 가득하였으며, 그 꽃은 크기가 수레바퀴 같았다. 이 연못의 물은 자연히 여덟 가지 맛이 났고, 그 땅의 국왕에게는 8만 4천의 부인과 채녀(婇女)가 있었다. 중궁(中宮)의 정후(正后:중전)에게 두 태자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름이 무한의(無限意)며, 둘째는 이름이 무한계(無限界)라 하였다. 그 태자들은 각각 16세였다.
- 010_0521_c_20L其二萬國,各有五百郡縣屬之。又其樹上皆生好衣,自然七寶諸細被服。一一池水各有五百浴池從之。又其浴池皆七寶成,生七寶蓮華,靑紅黃白滿其池中,其華大如車輪,斯池中水自然八味。其土國王,有八萬四千夫人婇女,中宮正后有二太子:一名無限意、二名無限界,其太子各十六。
- 두 태자가 마침 누워서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여래의 모습을 뵈었는데, 단정하고 아름다운 자마금색(紫摩金色)이며 상호가 장엄하고 위덕이 엄숙하며, 한량없는 광명이 시방에 비추었다. 꿈속에서 이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뛸 듯이 기뻐서 기쁨이 한량없었다. 두 태자는 꿈에서 깨어나니 마음이 평탄하여 각각 잠잘 때를 기억하여 도가 바르고 참됨을 알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 010_0522_a_07L時二太子適臥寐,於夢中見如來形像端正姝好,紫摩金色相好莊嚴,威德巍巍不可限量,光照十方。夢中見是,心中踊悅欣然無量。其二太子,從夢覺已心中坦然,各以宿懷識道正眞,而歎頌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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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밤 꿈에 뵈었네.
하늘과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이를
몸은 자마금색
온갖 복으로 그 모습 이루었어라. -
010_0522_a_13L我今夜夢見,
天人中最勝,
體紫摩金色,
百福成其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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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 계셨지만
일체 공덕 보았고
존안(尊顔)을 뵈오니
기쁨 한량없었네. -
010_0522_a_15L以在其夢中,
觀一切功勳,
以得覲尊顏,
懷悅豫無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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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럽고 신령한 광명 보니
마치 태양빛이 펼쳐 있듯
마음 매우 기쁘고 즐거워
일체 모든 것 초월하였네. -
010_0522_a_16L 觀聖神光明,
猶日演暉曜,
意中甚歡樂,
超越一切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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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의 빛 지극히 높아
마치 보배산왕 같으셨네.
눈으로 그 모습 볼 것 같으면
기쁨 품지 않을 수 없으리. -
010_0522_a_17L威光極高峻,
猶如寶山王,
若目睹其形,
靡不抱欣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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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522_b_02L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그 두 태자는 이 상서로움이 상응함을 보고 부모에게 가서 이 뜻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저희들 형제가 오늘 밤 꿈속에서 여래ㆍ지진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아뢰고 나서 여래께 나아가 받들고자 합니다. 현재 세상에 나오셔서 교화하신 지 오래되셨으나 우리들은 방일하여 다섯 가지 하고자 하는 데에 빠져 부처님께서 나오심을 알지 못하고, 5음(陰)에 결박되어 모든 악의 그물에 가리고 덮였으며, 스스로 커서 공손하고 삼감이 없고 이에 미혹하여 여래를 뵙고 도의 지혜를 여쭈어 받지 못하였습니다.’
부모는 그렇다고 여겼다. - 010_0522_a_19L佛告持人:“其二太子見是瑞應,往見父母具說此意:‘我等兄弟今日夜夢中,目見如來、至眞,故啓二親欲往奉詣。如來興現在世,教化以來久矣,我等放逸沒五所欲不覺佛興,而爲五陰之所縛結,諸惡羅網之所覆蔽。在於自大無恭恪心,以斯迷惑,不見如來諮受道慧。’二親然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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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태자는 부모님에게 말하고 나서 의보옥왕(意普玉王)여래의 앞에 나아가 발에 머리 숙여 예를 드리고 세존께 아뢰었다.
‘죄의 덮개에 덮여 세상의 영화와 행복에 미혹되고 삿된 지위[邪位]에 유혹되어 제때에 받들어 뵙고 여쭈어 가르치심을 받잡지 못하였으니 부끄럽습니다. 세존께서는 크게 불쌍히 여기시고, 위엄의 빛을 비추시어 어리석음의 어둠을 열어주셔서 이에 받들어 뵙게 되었습니다. 지금 부처님과 보살 성중(聖衆)께 청하오니, 석 달 동안 음식과 의복ㆍ평상ㆍ와구(臥具)ㆍ병들었을 때 의약을 공양 올려 일체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 010_0522_b_04L時,二太子啓父母已,往詣意普玉王如來所,前稽首足,白世尊曰:‘罪蓋所覆迷世榮祿,邪位所惑不時奉覲,諮受訓誨慚愧形顏。世尊大哀!威光見照,開發愚冥乃得奉覲。今欲請佛菩薩聖衆,盡斯三月供以飮食衣服牀臥具病瘦醫藥一切所安。’
- 저 큰 성의 정원에 높은 대와 누각은 부왕이 살던 곳으로 아름답게 꾸며서 비단 깃대와 일산을 달았으며, 목욕하는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 부모에게 말하고 여래께 바쳐 올리고, 모든 보살과 모든 성문들, 부처님 성중에게 석 달이 다하도록 일체가 편안하게 공양하였다. 부모도 같은 마음으로 또한 모두 그를 가상하게 여겼다. 그때가 다하도록 공양올리고는 그 부모님을 하직하고 여래의 처소에서 믿음으로 집을 생각하지 않고 출가하여 청정한 수행을 배우는 사문이 되었다.
- 010_0522_b_11L其彼大城園觀樓閣,父王所居嚴飾莊挍,懸繒幢蓋浴池蓮華,啓其二親貢上如來、諸菩薩學、諸聲聞等,供佛聖衆見盡三月一切所安。父母同心亦皆哀之,供養盡節辭其二親,在如來所信無慕家,出家學淨行作沙門。
- 010_0522_c_02L그때 의보옥왕 여래ㆍ지진께서 두 태자가 나라를 버리고 출가하는 것을 보시고, 그 뜻과 성품을 살펴 곧 두 사람인 무한의(無限意)와 무한계(無限界)를 위하여 펼쳐 보살의 오음쇠품(陰衰品)을 밝게 깨닫도록 하셨다. 두 태자가 다 같이 깨우쳐 주심을 듣고 받아 8만 4천 년을 일찍이 잠자지 않고, 또한 먹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다시 누워서 잠자지 않고 오직 앉아서 뜻을 생각하고 걷거나[經行] 소리 내어 경을 외웠다. 8만 4천 년을 일찍이 생각을 일으키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항상 바른 정진만을 생각하며 ‘펼쳐진 다섯 가지 치성한 음[五盛陰:5온]은 허무한 것이며 근본과 지말이 황홀하고 모두 공하여 진실하지 않으며, 존재가 뒤바뀐 이것이 5성음이다’ 하였다. 이와 같이 알아도 깨닫지 못한 이는 그 가운데에서 미혹되니, 마땅히 범행(梵行)을 닦고 이 법을 생각하고 나서 깊은 이치를 알아 통달하여도 무성한 음이 돌아가고 나아갈 것을 보지 못하여, 뜻은 대유(大猷)에 두고 바라는 것이 없었으나 죽은 뒤에 도술천(兜術天:도솔천)에 태어났다.
- 010_0522_b_17L時意普玉王如來、至眞,見二太子捨國出家,察其志性,則爲二人無限意無限界,班宣於斯曉了菩薩五陰衰品,二太子聞咸共啓受。八萬四千歲未曾睡寐,亦不思食復不寢臥,唯坐思義經行諷誦。八萬四千歲未曾起想有他異念,常正精思暢五盛陰了之虛無,本末慌惚悉空不實,存在顚倒。是五盛陰以解如是,不能覺者迷惑其中,當修梵行,思是法已解達深義,不見盛陰之所歸趣,志存大猷無所希冀,壽終之後生兜術天。
- 그때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에 도술천에서 내려와 세간 염부리(閻浮利:염부제)의 땅 큰 장자의 집에 환생하여 나이 16세가 되었다. 어느 날 밤 꿈에 여래의 모습을 뵙고 꿈 가운데서 다시 여래를 따라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보살의 이 오성음제종입품(五盛陰諸種入品)을 밝게 깨달았다. 꿈에서 깨어나 마음에 기쁘고 슬픈 마음을 품고 1만 년 동안 범행을 청정하게 닦으니, 다시 이 오성음제종입품을 분별하여 알아 끝나면 다시 시작하여 수명이 끝난 뒤에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다.태어나 이윽고 다시 죽어서 세간 범지(梵志)의 집에 환생하여 보니 본래 숙세에 의보옥왕의 최후 말세에 정법의 가르침이 남아 천 년 동안 머물렀다. 숙세의 본래 덕으로 믿고 집을 사모하지 않고 출가하여 도를 구했으며, 널리 배우고 자세히 들어 지혜가 큰 바다와 같았으며, 성음(盛陰)ㆍ제종(諸種)ㆍ쇠입(衰入)을 깨달아 알아서 그 근본과 지말을 찾아 깨달으니 진제(眞諦)와 같았다.
- 010_0522_c_05L其時如來滅度之後,從兜術天下,還生世閒閻浮利地大長者家,至年十六,夜臥夢中見如來像,在於夢中復從如來聞如是法,曉了菩薩斯五盛陰諸種入品。從夢覺起心懷悲喜,於一萬歲淨修梵行,復分別了是五盛陰諸種入品。終而復始,壽終之後生忉利天。適生尋復終沒,還生世閒在梵志家,見本宿世意普玉王,最後末世餘正法訓留一千歲,以宿本德,信不慕家出家爲道,博學廣聞智如大海,曉了盛陰諸種衰入,求其本末覺如眞諦。
- 이때 방편을 세워 권하여 2만의 세간 사람과 2만억의 하늘 사람들이 다 위없이 바른 참된 도에 뜻을 내었다. 이 인연으로 그 두 태자는 보살의 업을 행하여 함께 화합(和合)하여 십억해의 모든 부처님 세존을 뵈었고, 최후 말세에 생겨나는 것이 없는 법인[無生法忍]을 얻었으며, 다시 또 억ㆍ해ㆍ조(兆)ㆍ재(載)의 모든 여래 대중을 만나 공양하였다. 두 사람이 함께 한 겁 동안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어서 최정각(最正覺)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무량음(無量音)이며, 둘째의 이름은 무량광(無量光)이었다.
- 010_0522_c_18L時方便勸立,二萬世閒人,二萬億天人,皆發無上正眞道意,以是因緣,其二太子行菩薩業俱共和同,見十億姟諸佛世尊,最後末世逮得無所從生法忍,更復値供億姟兆載諸如來衆。二人俱等,於一劫中逮得無上正眞道爲最正覺,一號無量音,二號無量光。
- 010_0523_a_02L이런 까닭으로 지인아, 만약 보살이 빨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어 최정각이 되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은 상전(像典)을 부지런히 배우고 닦아 여래께서 펼치신 모든 음(陰)ㆍ입(入)ㆍ종(種)과 있고 없는 모든 법이 없음을 분별해야 한다.”
- 010_0523_a_02L是故,持人!若有菩薩疾欲得成無上正眞道爲最正覺,當勤修學如是像典,如來所暢諸陰入種,分別有無諸法之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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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십팔종품(十八種品) - 010_0523_a_05L持人菩薩經十八種品第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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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요소[諸種]를 밝게 알았다고 하는가? 만약 능히 열여덟 가지 모든 요소를 분별하고서 따라 사유하고 식별하여 본다면 눈이라는 요소[眼種]에서 본말은 곧 눈의 경계[眼界]가 없고, 모두 공하여 나와 내 것이 없으며 들어감[入]은 오래 존재하지 않고 눈이라는 요소는 허무하여 곧 자연이라 말한다. 눈[眼]이 자연인 까닭에 진실하지 않다고 말하며, 미혹한 생각[思想]으로 인해서 합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라, 눈은 이루어진 것도 없고 식(識)이 행하는 것을 얻을 수 없어 허공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마치 허공이 다 이룬 바가 없고 다 있는 것이 없으며, 또한 처소도 없는 것과 같이, 눈은 안과 밖이 없고 또 중간도 없으며, 속이는 업으로 진실함이 없으며, 보호하여 지니지도 못한다. 인연으로부터 생겨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으니, 곧 자연으로 본래 청정하고 형태가 없다. 죄와 복이 이루어짐은 뒤바뀜[顚倒]에서 일어난 것이다. 현재 인연으로 보는 것에 얽매이니, 그런 까닭에 눈이 공하여 경계를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 010_0523_a_06L佛告持人:“何謂菩薩曉了諸種?若能分別十八諸種,而順思惟識別于觀。眼種本末則無眼界,悉空無我我所,入不久存,眼種虛無則曰自然。用眼自然故曰不眞,因迷惑思想而合成,眼無所成不得識行爲虛空形,猶如虛空悉無所成,悉無所有亦無處所。眼無內外亦無中閒,欺詐之業無有眞實不可護持,從因緣生無去來今,則爲自然,本淨無形。罪福所成從顚倒興,爲現在緣之所見轉,故曰眼空界不可見。
- 눈을 헤아리면 경계가 없으나 식은 그 속에서 노닐며, 그로 인하여 눈의 경계라 말한다. 눈이라는 감각기관[眼根]은 청정하며 그 빛깔[色]은 빛나고 빛나 의근(意根)과 합하여 인연으로 얽히니, 세 가지 일이 합하여 모인 것이다. 눈과 빛깔과 식이 모인 눈의 경계는 공하고 그 눈의 경계는 경계가 이루어진다거나 경계가 없다고 할 수 없으며, 그 지혜가 밝은 자라야 이에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보살은 눈의 경계를 분별하여 참된 진리를 알고 빛깔의 근본을 알아 곧 있는 바가 없는데, 어떻게 빛깔이 경계가 없음을 안다고 말하는가?
- 010_0523_a_18L計於眼者則無有界,識遊其中因曰眼界,眼根淸淨、其色晃燿,合于意根,因緣所縛三事合會,眼色識集眼界空,其眼界不成界無界,其明智者乃覺知,是故菩薩分別眼界解了眞諦,以了色本則無所有。何謂以了色無有界?
- 010_0523_b_02L빛깔과 더불어 모이지도 않고 또한 떠난 것도 아니다. 생장하는 것이 없어 비록 빛깔의 경계를 말하나 곧 있는 바도 없고 빛깔은 있는 곳도 없다. 무슨 까닭에 빛깔이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가? 빛깔은 있는 것이 없고, 빛깔은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허무(虛無)에 서 있어서, 그 생각으로 인하여 눈으로 빛깔의 빛[色光]을 보며, 눈의 요소는 청정하여 좋은 빛깔을 보며, 거짓 이름으로 빛깔이라 하나 있는 곳을 얻을 수 없다. 마치 밝은 거울에서 그 얼굴 모습[面像]을 보면 때[垢] 없이 청정하나 도리어 빛깔이 있다고 생각하며, 비록 거울 속에 형색을 나타내지만 그 영상은 안으로부터 나왔거니와 밖에서 들어간 것이 아니며, 밖의 형상을 비추어서 거울 안에 나타난 것과 같다. 눈 또한 이와 같아 청정함을 사용함이 비록 빛깔을 말미암았으나 거울을 봄에 그 얼굴 모습을 보는 것이다. 빛깔의 공함을 보는 것이 빛깔의 자연(自然)이니 경계가 없으며, 취할 수도 없고 다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 010_0523_a_24L不與色會亦不離矣,無所生長,雖說色界則無所有、色無處所。何以故云色無有界?色無有色,無內無外亦無中閒,立存虛無,因其思想眼睹色光。眼種淸淨以見好色,假號曰色,無得有處,猶如明鏡見其面像,無垢淸淨反想有色,雖現鏡中有形色,其影乃從內出不從外入。用外形照內鏡現,眼亦如是,以用淸淨雖由于色,爲之見鏡睹夫面像,以見色空色之自然,無有境界而不可取悉無所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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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색상(色想)이란 것은 본래 생긴 바도 없다. 중생은 알지 못하고 마침 빛깔을 보고 나서 빛깔을 아나 경계는 생기는 바도 없으니 곧 경계가 없음이며, 빛깔의 경계[色界]를 알고 빛깔의 본말을 깨달음에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이 허무하여 자연이며, 빛을 읊고 찬탄함은 인연의 모임을 말함이다.
빛깔의 경계가 이와 같음을 눈의 인식[眼識]으로써 알기 때문에 참된 진리를 보는 자는 경계가 없음을 알 것이나 어떻게 그것을 볼 것인가? 눈의 인식의 요소[眼識種]도 없고 그 눈과 빛깔은 곧 있는 곳도 없으니, 본래 청정한 소치로 눈과 빛깔을 얻지도 못하여 모두 없는 것이다. 안식은 법도 없고 거짓 이름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안식은 화합하는 것도 아니고 진실한 형상도 없다. 안식의 경계는 뒤바뀜으로 인하여 섞여 숙세에서 이루어져 현재 인연의 보는 것에 얽매인 것이며, 인연과 더불어 모임을 이름하여 안식이라 하니, 중생이 전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 010_0523_b_12L其色想者本無所生,衆生不解。適見色已,其以解色,界無所生則無有界,以解色界了色本末,無去來今虛無自然,歎詠光斯緣合所謂也,色界如是,以眼識故。眞諦觀者知之無界。云何觀之?無眼識種,其眼色者則無處所,本淨所致眼色叵得悉無所有,眼識無法假號現耳,眼識不合無眞實形,眼識之界因顚倒雜,從宿世成,現在因緣之所見縛,與因緣會號曰眼識,用衆生在顚倒。
- 010_0523_c_02L만약 성인의 견해[聖見]에 이르러 이것을 분별하면 안식은 경계가 없음을 안다. 왜냐하면 눈은 이룰 것이 없고, 12인연이 일어나 상대하여 화합해 생긴 것으로 만들어진 것에 의탁하여 이름을 빌려서 안식이라 한다. 식의 행함을 사모하고 즐겨, 익힌 행을 일으켜서 합하여 식을 이루었다. 비록 보는 것이 있어도 다 허무하여 진실하지 않으며, 있는 형상에 의탁하여 인연이 나타난 것일 뿐이다.
- 010_0523_b_22L若至聖見分別了之,眼識無界。所以者何?眼無所成,十二因緣起對合生,託於所作假號眼識,慕樂識行起所習行合成于識,雖有所睹皆虛不眞,託有形相因緣現耳!
- 안식을 선설(宣說)하여 중생이 알게 하였고, 여래가 온갖 형상을 드러내어 분별하였다. 모든 생각이 합하여 이루어진 까닭으로 식(識)이라 말하나 눈은 이룬 것이 없고 청정한 식의 본래 모습은 행을 인하여 취향(趣向)하는 것이니, 그래서 보는 것[所見]이라 한다. 비록 안식을 익힌다 하나 그래서 경계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눈은 이것을 구하지 못하고 나는 안식을 얻었다는 것과 더불어 이것을 얻거나 알지 못하니, 빛깔과 식은 얻을 수 없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임시로 말에 의탁하여 이 뜻을 나타내어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위태로운 액난을 구제하여 거두어들인다.
- 010_0523_c_04L宣說眼識使衆生了,如來班宣分別衆形,諸想合成故曰識無所成。眼以淸淨識之本相因行所趣,故曰所見,雖習眼識故曰無界。所以者何?眼不求斯我得眼識,及與不得。了之色識無獲令自然。所以者何?無所成故也。假託有言而現斯義,爲衆生故救攝危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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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본래 행하는 바는 뜻[意念] 이것이 바탕[地]이며, 식의 모양[識相]은 자연이다.
눈의 경계[眼界]ㆍ빛깔의 경계[色界]ㆍ식의 경계[識界] 세 가지 일이 합하여 이루어지며, 모든 계(界)가 모이고 인연 업상(業相)은 모든 법이 모인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눈과 빛깔과 식에 의탁함이 있으니, 이와 같이 헤아려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득 중생에 들어가 저 눈이 없고 빛깔의 경계가 없고 또한 식의 경계가 없음을 통달할 것이다. 이와 같이 가르친 대로 모든 집착을 끊어 없애라. - 010_0523_c_11L眼本所行意念是地,識相自然眼界色界識界,三事合成諸界集會,因緣業相宣諸法會,故有託眼色識。如是計惟,是以便入衆生達彼無眼,無有色界亦無識界,如是所教斷除諸著。
- 만약 능히 여래가 통달한바 깨달음의 온갖 방편을 알면 곧 능히 일체 3계(界)는 경계가 없는 것을 밝게 알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경계를 헤아림에 실로 경계가 없어 빛깔을 얻을 수 없고, 귀와 소리와 식의 경계도 이와 같다. 코와 냄새와 식, 혀와 맛과 식, 몸과 감촉과 식, 뜻과 법과 식을 비교하여 헤아려 보아도 이루어짐이 없다. 뜻의 경계도 허무하여 진실하지 않고 다 있는 바가 없다.
- 010_0523_c_16L若能有了如來所達覺衆方便,則能曉解一切三界則無有界。所以者何?計於諸界實無有界,色不可得,耳聲識界亦復如是。鼻香識,舌味識,身觸識,意法識,計挍思惟觀無所成,意界虛無不有眞實悉無所有。
- 010_0524_a_02L또 이 종자라는 것도 곧 이루어진 것이 없으니, 마치 어떤 사람이 땅에 종자를 심어 점점 자라는데 물이 인연이 되고 햇빛이 그것을 비추니, 그 종자와 싹은 만드는 것이 없고 그 종자는 싹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종자로 인하여 싹이 생기니 종자는 싹을 여의지 않고 싹은 종자를 여의지 않은 것이다. 뜻의 경계도 이와 같아 그 뜻의 업에서 종자가 나타나므로 뜻의 경계가 있다. 뜻은 생각을 여의지 않고 생각은 뜻을 여의지 않으며, 뜻과 경계가 비록 다르나 인연이 합하여 이루어지니, 그 뜻의 경계란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뜻은 중간도 없고 다 숙명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행이 세워진 것이며, 다 뜻의 업[意業]으로 말미암은 경계로 인해 합하여 모이고 현재의 인연이 합하여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말하여 뜻이라 한다. 자기의 부분[所部]에서 죄와 복이 생기며 12연기로 드러나면 펼 것이 있으므로 의계(意界)라 한다.
- 010_0523_c_22L又是種者則無所成,猶如有人下種在地稍稍生牙,水爲因緣日光照之,其種所牙無所造行,其種不與牙共合成,因種生牙,種不離牙牙不離種,意界如是,從其意業顯現種矣!故有意界,意不離念,念不離意,意界雖別因緣合成,其意界者無內無外意無中閒,皆由宿命本行所立,悉由意業因界合會,現在因緣之所合生,故假曰意。從己所部罪福所生,十二緣起顯有所宣,故曰意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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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으로 그것을 말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그 본말을 알게 하려 함이지, 구경에는 그것을 찾아도 실제로 본말이 없어 그것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스스로 방일하여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니, 있는 바의 식에 이르러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도 그 뜻의 경계에는 참된 진리가 없다.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으니, 밝은 자는 훤히 알 것이다. 뜻의 경계는 경계가 없고 법의 경계[法界]도 없는 것을, 어떻게 관찰한단 말인가?
법계는 자연이라 다 있는 바가 없고 얻을 수도 없다. 법계는 이룸도 없고 형상도 얻지 못하며, 오직 뒤바뀌어 세워진 것이다. 사람 수명이란 것도 없고, 허망하고 거짓된 데서 생겨난 것을 식(識)이 받은 것이므로 법계라 말한다. - 010_0524_a_09L方便說之欲令衆生解其本末,究竟求之實無本末不可得之。所以者何?心自放逸無處所故。所有至識柔軟言辭,其意界者悉無眞諦,無有過去當來現在,明者曉了意界無界法界無有。何謂觀察法界自然,悉無所有而不可得?法界無成不得形像,唯顚倒立無有人壽,從虛僞生興受識矣,故曰法界。
- 왜 법계가 없는데 그 경계가 드러나고 나타남을 밝게 안다고 말하는가? 왜냐하면 그 법계란 곧 있는 바가 없이 인연에서 생긴 것이며, 인연에서 생긴 까닭으로 경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을 경계라 하는 까닭은 인연으로 합하여 이루어지고 뒤바뀌어 이루어진 것이나 여래ㆍ지진은 중생계(衆生界)를 안다. 그런 까닭으로 법계라 말하니, 모인 데 의탁하여 거짓 이름을 붙인 것이다. 법계는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또 중간도 없다. 그러나 합하여 얽힘에 머물러 착하고 착하지 않은 법[善不善法]을 없애고, 일체의 모든 뜻[義]을 끊고 도의 가르침[道敎]을 선포하는 까닭으로 받들어 행한다고 말한다.
- 010_0524_a_17L何謂曉了法界之無顯現其界?所以者何?其法界者則無所有,從因緣生,以因緣生故曰無界。所以其界因緣合成轉成顚倒,如來、至眞解衆生界,故曰法界。託集假號,法界無內亦無有外亦無中閒,然住合結除善不善法,斷一切諸義,宣布道教,故曰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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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524_b_02L있는 것이 없는 법계는 허공이라 형상이 이루어진 것도 없고 거짓 이름만 있을 뿐이다. 법 또한 이와 같아 형상을 이룬 것이 없다. 법이라는 생각을 끊고, 나타난 것을 취하여 요점만 말하면 다 경계가 없는 까닭으로 먼저 그것을 탄식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으나 현재의 인연에서 얽매임을 보며, 인연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에서 중생이 알지 못하나 밝은이는 밝게 알아 증명한다. 법계는 경계가 없고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으나 곧 방편으로 인하여 법계라 말한다. - 010_0524_a_24L論無所有法界虛空,無成就形假有號耳。法亦如是無所成像,以斷法想取現要說,悉無境界故先歎之。無去來今爲現在緣而見繫縛,從緣合成,衆生不解。明者曉了而證明,法界無界不多不少,則以方便因言法界。
- 그 법계를 알면 일체 3계에 생긴 것은 다 없어지고 모든 법이 끊어져서 법계라 말할 수 없으며, 말을 인연하여 모든 법[諸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경이라고 말한다. 밝은이는 ‘생긴 모양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법계의 모양은 다 이룬 것이 없고 법계는 처소가 없고 처소가 없으니 처소가 아니며, 합하여 머무는 곳도 없고 또 머물지 않음도 없기 때문이다. 법계를 관찰하여 알면 영원히 머무는 곳이 없고, 법계는 생김도 없다. 능히 하는 자[能者]도 없고, 합하여 모인 곳도 없으며,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다. 법을 만든 것도 없고, 또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능히 이와 같이 법계를 보는 자는 곧 의식(意識)을 관찰하되 식(識)은 없으니 마땅히 어떤 관(觀)을 지으랴.
- 010_0524_b_07L其了法界,皆除一切三界所生,以斷諸法無說法界,因緣言相用處諸法,故曰究竟。明者宣曰無所生相。所以者何?法界之相悉無所成,法界無處,無處非處,無合住處,亦無不住。察了法界永無所住,法界無生,無能者,無合會處,無合無散,法無所造亦不成就,以能如是觀法界者,則察意識而無有識,當作何觀?
- 경계가 생긴 것이 없음을 곧 말하되 식계(識界)라 한다. 왜냐하면 그 의식(意識)을 헤아리면 있는 것이 없는 까닭이며, 허위여서 진실하지 않고 뒤바뀜과 합한 것이라 뜻과 생각[意念]으로부터 있는 까닭에 의식이라 말하며, 어리석고 어두움으로 인연하여 범부들이 행하는 것이다. 오직 현성(賢聖)들의 통달한 견해만이 그것을 알 뿐이다. 두 가지 일로써 펴고 의식이 인연하는 것으로 중생의 부류들이 사용하되 능히 알지 못하나 밝은 자는 허무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별한다. 참되고 바른 생각에서 의식이 생긴 것이 아니며, 그 의식의 경계도 특수함이 없고, 구경(究竟)에는 임시로 의탁한 말을 중생이 빌려 씀을 안다. 의식의 본말(本末)과 경계가 없음을 알지 못하며, 인연으로 모인 것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이 없다.
- 010_0524_b_16L無生界則曰識界。所以者何?計其意識無所有故,虛僞不實合于顚倒,從意念有故曰意識,由因愚冥凡夫所行,唯賢聖達見知之耳。以二事宣意識所緣,用衆生類不能解了,明者所別從虛無,不眞正想所生有意識。其意識界無有殊特,班宣究竟假託有言,借于衆生,不解意識本末無界,因緣所集輪轉無際。
- 010_0524_c_02L모든 현성(賢聖)들은 식의 경계[識界]를 찾지 않는다.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중간도 없으니, 밝은 자는 그 의식이라는 것이 의식임을 보지 못함을 밝게 안다. 모두 인연에서 일어나고 뒤바뀜에서 일어난다. 두 가지 인연으로 중생이 있으니, 참된 생각이 아닌 허위를 받아서 마음에서 생겨 세속의 모양[俗相]을 따라 의식이 있을 뿐이다.
- 010_0524_b_24L諸賢聖等不求識界,無內無外無有中閒,明者曉了其意識者不睹意識,皆從緣起從顚倒興,以二因緣而有衆生,不眞思想受於虛僞,從心行生,隨俗相有意識耳。
- 중생의 본심은 이 인연에서 나타나지만 의식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다. 의식의 근본을 헤아림에 또한 집착한 바도 없으며, 의식의 있는 곳은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서 있는 곳도 없으며, 뜻[意]은 머무는 곳이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본래 청정하여 곧 둘이 없고 모양도 없기 때문에 서 있는 곳을 볼 수가 없으니, 밝은 자는 의식을 이와 같이 밝게 안다. 그 의식이라는 것은 법으로 설할 수도 없고, 합하여 모인 것도 없으며, 또 떠나 여읜 것도 없고 생기는 바의 생각도 없으며, 말로 가르칠 모양도 없으니, 홀로 현성(賢聖)만이 안다.
- 010_0524_c_06L衆生本心從是緣現,意識無去當來現在,意識計本亦無所著,意識所在無去無來無所存立,意無所住。所以者何?意識本淨則無有二無相無二,所在立處而不可見,明者曉了意識如是。其意識者無有法說,無合會亦無離別,無所生想無言教相,獨賢聖了。
- 무엇을 식계(識界)라 하는가? 따라온 것이라는 것은 온 곳이 없고 인연이 없다. 왜냐하면 그 의식계는 인연에서 생기므로 그 본말을 관찰하면 보는 자[見者]도 없기 때문이다. 밝은 자는 뜻이 이와 같이 이루어짐을 알 것이다. 본래 지은 것이 없이 중생이 만들었으며, 모두 생긴 것이 없다. 중생이 나타낸 바의 모양도 생긴 것이 없다.”
- 010_0524_c_13L何謂識界?從所來者無所從來,無有因緣。所以者何?其意識界從因緣生,察其本末無有見者,明者曉了意成如是,本無有作,衆生自造悉無所生,衆生所出相無所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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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인아, 만약 어떤 보살이 마땅히 이런 관을 지으면 의식을 밝게 아니, 곧 식(識)에 집착함이 없다.” - 010_0524_c_17L佛言:“持人!若有菩薩當作是觀,曉了意識則無識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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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효삼계품(曉三界品) - 010_0524_c_19L持人菩薩經曉三界品第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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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525_a_02L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대사가 의식(意識)을 밝게 알면, 곧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집착하지 않는다. 마땅히 이런 관을 지으면 비록 3계에 있더라도 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보지 않으며, 이미 이 계(界)에 있어도 모두 계가 없음[無界]을 통달하여 광명이 훤히 나타날 것이다. 중생의 본말은 욕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나타내 보이고, 색계ㆍ무색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나타내 보이며, 이 모든 계에 있으면서 계가 없음을 나타낸다. 대략 요점만 말하면 모든 법을 밝게 알면 자연이어서 계가 없으니, 3계의 일은 모양도 없고 있는 곳도 없으며, 인연에서 생겨 3계에 유전하여 돌고 돌아 끝이 없다. - 010_0524_c_20L佛告持人:“菩薩大士以曉意識,則不著欲界色界及無色界。當作是觀,雖存三界,不見欲色無色之界。旣有是界,悉暢無界,班宣光顯衆生本末,在於欲界而自示現,在色無色而自示現,在是諸界現無有界,粗示要說,曉了諸法自然無界,三界之事無形無處,從因緣生,流於三界輪轉無際。
- 지혜로운 이는 3계에 있는 바의 경계가 다 있는 것이 없음을 분별하니, 허무를 좇아 합하여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능히 깨달아 알면 곧 허위이고 자연이며 영원히 없음을 알아서 문득 생사를 버린다. 중생이 뒤바뀐 업을 제거함으로써 곧 3계를 버리는 것을 여래ㆍ지진께서 3계에 펼쳐 보이시니, 중생이 있는 곳은 모두 경계가 없다. 지혜가 없는 습기에 미혹하여 이것을 만든 것이니, 본래 청정한 자연으로 경계가 없고 3계에 의지함도 없다. 밝은 자는 이것을 알 것이니, 이것은 경계가 없다.
- 010_0525_a_05L智者分別三界所有境界悉無所有,從虛無合顚倒而有,是能覺了則解虛僞,自然永無便捨生死。衆生以除顚倒之業便棄三界,如來、至眞頒宣三界,衆生所在悉無有界,無智習之迷惑作是,本淨自然而無有界,不猗三界,明者解之,此無有界。
- 이 3계를 보면 중생에게도 계가 없고 자기 몸도 허공이라 조금도 없으며, 모든 법은 인연에서 생긴 것으로서 뒤바뀜으로부터 합하여 거짓 이름이 있을 뿐, 곧 이루어진 것이 없이 비어서 지은 것도 없고 자연히 청정하여 허공같이 맞아들인다. 일체 계(界)에 다 있는 것이 없고, 마치 허공 같아서 다 있는 것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구경에는 영원히 고요하며, 허공은 본래 청정하여 얻을 수가 없으니, 일체의 계도 이와 같다.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중간도 없으며, 계(界)에는 계가 없고 다 집착할 것이 없고 다 생긴 것도 없다. 모든 지혜에 밝은 자는 생기는 바도 없고 또 얻은 바도 없으며, 머묾도 없고 머물지 않음도 없으며, 같지도 않고[不等] 삿되지도 않으며, 본래 청정하여 얻을 수 없다.
- 010_0525_a_12L觀是三界衆生無界,己身虛空無有若干,一切諸法從因緣生,從顚倒合假有號耳。則無所成空而無作,自然淸淨等御虛空,於一切界悉無所有,猶如虛空悉無所有。所以者何?究竟永寂,虛空本淨而不可獲,一切諸界亦如是矣!無內無外無有中閒,界無有界,悉無所著皆無所生,諸明智者不有所生亦無所得,無住無不住、不等不邪本淨無獲。
- 010_0525_b_02L지혜로운 이는 밝게 안다. 임시로 의탁함을 얻지도 못하고, 생각도 없고 능하지도 못하다. 이를 말미암아 지혜로운 이는 모든 계를 경계로 여기지 않는다. 모양도 생긴 것이 없으니 세속을 따라 이름할 뿐이다. 분별할 것도 없고 생긴다는 생각도 없다. 만약 이것을 없애고 나면 일체 계가 없고, 거짓 이름만 있을 뿐이다. 본말을 궁구하여 찾아도 다 알 수 없으며 그러므로 일체가 또한 그러하니, 밝은 자는 볼 것이다.”
- 010_0525_a_22L智者明了,不獲假託無念不能,由是智者不以諸界爲境界也,相無所生隨俗名耳。無所分別以無生想,若滅是已無一切界,假有言耳。究暢本末悉不可知,以不可知一切亦然,明者所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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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인아, 만약 어떤 보살이 이와 같이 훤히 알아 18종(種) 및 3계 중생의 계(界)를 알면, 자기 몸의 계와 위로 허공계가 평등함을 통달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보면 곧 마땅히 평등하여 경계임을 보지 못할 것이며, 보는 것이 없으므로 일체 계가 임시로 말에 의탁한 것임을 알 것이다. 일체의 계는 다 계가 없으니, 좋아서 기쁘게 되어 도에 들어가 모든 계를 밝게 알 것이다. 해탈과 중생은 그 모양이 둘이 없으며, 둘이 없음을 봄으로써 아울러 모든 계를 볼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중생에게 펴 보임이니, 12인연이 일어남도 임시로 말에 의탁하여 중생을 깨우쳐 교화하며, 구경의 뜻에 들어가 모든 견을 내는 지혜[見慧]로 일체 계를 통달하게 하한다. 그러므로 형상이 없다[無形]고 말한 것이다. - 010_0525_b_04L佛言:“持人!若有菩薩暢了如是,解十八種及與三界,衆生之界及己身界、上虛空界達之平等,以觀如是則應平等不見境界,以無所見解一切界,假託言矣!一切諸界悉無有界,好喜入道曉了諸界,解脫衆生其相無二,以見無二竝見諸界,以權方便頒宣示衆,十二因起假託有言,開化衆生入究竟義,以暢見慧一切諸界,故曰無形。
- 왜냐하면 지인아, 여래ㆍ지진은 일체 법의 처소를 얻지 못하니 또한 얻음이 없는 것도 아니며, 망실한 것도 없고 평등하게 사유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체득한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영원히 있는 것이 없고, 본래 모두 자연이어서 이루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계는 다 공하고 진실로 공하여 없는 것을 보며 평등하여 공과 같아 생긴 모양도 없다. 여래는 이와 같이 일체 계를 안다. 여래는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계는 자연이어서 계가 없고 형상도 없다. 왜냐하면 그 있는 것이 없으니 억지로 있다고 하지 못하며, 있는 것이 없으니 곧 자연임을 알 것이다.
- 010_0525_b_13L所以者何?持人!如來、至眞不得一切諸法處所亦非無得,無所亡失平等思惟,逮得無上正眞之道。所以者何?一切諸法永無所有,本悉自然無成就者,諸界皆空睹實空無,以等如空無所生相,如來如是解一切界。如來不云諸界自然無界無形。所以者何?其無所有不可强有,以無所有則知自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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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525_c_02L지인아, 여래가 설한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모든 법의 온 곳을 밝게 알면 그 보살대사(大士)는 곧 능히 일체 중생의 경계의 본말을 분별할 것이며, 본말을 알고는 크고 작은 것[麤細]을 분별하며 모든 계가 합하고 흩어지는 뜻을 펴고 모든 계에 들어간 것이 없고 자연임을 깨달아 일체 계와 허공계가 도리어 스스로 타버려 계가 없고 들어감도 없으나 임시로 말에 의탁하여 있을 뿐 영원히 얻을 수 없는데 중생이 알지 못하는 까닭에 이것이 있다고 할 뿐이다.
마치 요술쟁이[幻師]인 장인이 그 기술을 배워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약간의 변화를 나타내 보이나 나타난 여러 가지 변화는 형상을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다. 어떤 종류의 사람은 능히 알지 못하고 그 변화된 것을 들어서 믿고 진실로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훤히 아는 자는 요술[幻]도 자연임을 안다. - 010_0525_b_21L持人!當知如來所說,若有曉諸法所來,其菩薩大士便能分別一切衆生境界本末,以解本末分別麤細,頒宣諸界合散之義,諸界所入曉無自然,一切諸界虛空界,還自燒然無界無入,假託有辭永不可得,衆生無知故有是耳。猶如幻師工學其術,爲諸衆生現若干變,以現諸化不可計形。若干種人不能知者,聞信所化謂之實有;其曉知者知幻自然。”
- 부처님의 말씀도 이와 같아 만일 능히 요술로 변화한 것[幻化]은 허무인데 중생이 속고 미혹됨을 깨달아 안다면, 만약 밝은 지혜가 있어 스스로 자기 몸이 마치 요술로 변화한 것임을 알면, 그것이 임시로 의탁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세상도 이와 같이 자연이어서 요술임을 알 것이다. 만약 어떤 보살이 깨달아 여기에 들어가면 요술은 자연임을 통달하여 스스로 그러함을 알 것이다. 세상에 사는 것도 다시 요술과 같아서 임시방편으로써 중생의 부류를 위하여 일체가 모두 요술로 변화한 것과 같다고 나타내어 말한다.
- 010_0525_c_08L佛言:“如是,若能曉了幻化虛無衆生欺惑,若有明智,自解己身猶如幻化,了之假託,是世若斯自然知幻。若有菩薩曉了入是,暢幻自然以解自然,世之所居亦復如幻,以權方便爲衆生類,現說一切悉如幻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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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보고 듣고서 요술의 법[幻法]은 모두 있는 바가 없음을 깨달아 알면 이에 바르고 참됨에 이르겠지만, 그 어리석고 어두운 자는 능히 그것을 통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펴서 일체 법을 통달하게 한 것이다.
만약 모든 법이 요술과 같음을 알고 이 뜻에 들어가고자 하여 곧 마땅히 배우는 자는 깊고 중요한 법에 물질[色]을 구하고 얻지 않는다. 물질을 얻지 않으면 곧 끊어 없애지도 않을 것이다. 그 일체 계(界)를 끊어 없애지 않는다고 말함은 모두 임시로 의탁한 것이다. 모두 합하고 흩어짐을 말하여 모든 계를 분별하며, 임시방편을 펴서 만들어진 인연의 근원과 본말의 참된 진리를 분석하여 판단하며, 현세(現世)ㆍ도세(度世)ㆍ유위(有爲)ㆍ무위(無爲)ㆍ유순(有順)ㆍ무순(無順)과 모든 상응하거나 상응하지 않음도 임시방편을 펴서 구경에는 다 말하여, 뜻이 있거나 뜻이 없거나 펼친바 인연 처소가 있거나 처소가 없음을 분별하여 말하니, 모두 마땅히 이 일체가 환(幻)과 같음을 통달한다.” - 010_0525_c_13L若有聞見解了幻法皆無所有乃至正眞,其愚冥者不能達之,故爲頒宣暢一切法。若了諸法一切如幻,欲入是義便當學者,深要之法不求得色,以不得色便不斷除,說其不斷除一切界,皆爲假託。演諸合散分別諸界,宣權方便所造因緣,根元本末剖判眞諦,現世度世有爲無爲,有順無順諸應不應,宣權方便究竟盡言,有義無義所暢因緣,而說分別處所無處,皆當達是一切如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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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입품(諸入品) - 010_0525_c_24L持人菩薩經諸入品第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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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526_a_02L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살이 모든 입[諸入]을 환히 안다고 하겠느냐?
이 보살은 12입(入)을 관하고 그 본말을 아는데, 어떻게 그것을 관하는가? 관할 수 있는 자는 눈이 들어갈 곳을 보지 못하니, 눈은 이룬 것이 없고 모두 있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 인연을 따라 서로 상대하며, 뒤바뀜에서 일어난다. 색(色)의 얽힌 것이고 인연이 일어나 합한 것으로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안입(眼入)이며 둘째는 서로 따라 마주하는 것이다. - 010_0526_a_02L佛告持人:“何謂菩薩曉了諸入?於斯菩薩觀十二入解其本末。云何觀之?所可觀者得不見眼之所入處,眼無成就悉無所有。所以者何?眼所入者,皆從緣對、從顚倒興,色之所縛、緣起所合。有二事因:一曰眼入;二曰從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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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생긴 까닭으로 안입이라 말한다.
이와 같이 눈과 색, 둘이 붙어 있어 눈과 색이 들어감에 색은 이 눈의 품목[眼品]이며, 스스로 색을 보고는 환(幻)으로써 문을 삼는다. 그러므로 제입(諸入)이라 말하며 곧 가득하고 받아들임[受]이 생기나, 눈은 색에 붙어 있지 않고 색은 눈에 붙어 있지 않으며, 색은 색에 붙지 않고 눈은 눈에 붙어 있지 않으며, 다 인연에서 일어나 색으로써 인연을 삼는 까닭으로 색에 들어간다고 이름하며, 스스로 인연의 대상을 보는 까닭으로 모습[相]이 있다고 말하며, 들어감으로써 업을 삼는다. - 010_0526_a_08L坐色故曰眼入,如是眼色有二猗著,眼色所入、色是眼品,自見色已以幻爲門,故曰諸入。則盈生受,眼不著色、色不著眼,色不著色、目不著目,皆從緣起。以色爲緣故號色入,自以見緣對,故曰有相,以入爲業。
- 무엇을 들어가는 업[入業]이라 하겠느냐? 뒤바뀜을 말미암아 풍요하여 최후까지 같이하니,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모든 색은 없고 그 지혜가 밝은이는 모든 입(入)을 구하지 않고 문득 참된 진리를 본다. 뒤바뀜으로부터 합하여졌거니와 어리석고 어두운 범부에게는 두 가지 모양이 있다. 눈이 색에 들어가면 곧 진리에 들어감이 나타나며, 이미 참된 진리를 알면 색이 눈에 들어가니,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중간도 없다. 그 눈의 온갖 색은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다. 현재 눈으로 색을 보며, 현재 눈으로 색을 보면 곧 탐하여 받아 가지니 어리석고 어두운 범부가 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밝은 지혜로 그것을 통달하면 허무하여 진실됨이 없고, 생각[思想]이 뒤바뀌어 곧 제입(諸入)을 이룬다. 제입이 자연인데 어떻게 있다고 하겠는가?
- 010_0526_a_14L何謂入業?由以顚倒用以豐饒以如究竟,不得入眼諸色之無,其明智者不求諸入便見眞諦。從顚倒合愚冥凡夫有二相矣。眼以入色便顯入諦,已解眞諦色入於目,無內無外無有中閒。其眼衆色無去來今,現目睹色,現目睹色則貪受取,愚冥凡夫所行不可。明智達之虛無無眞,思想顚倒便成諸入,諸入自然云何有乎?
- 010_0526_b_02L그 들어옴은 모양이 없고 다 인연에서 일어나는 까닭으로 제입(諸入)이라 말한다. 여래가 제입이 허무하다고 말함은 다 뒤바뀜에서 의탁한 것으로, 인연은 모든 지음[作]도 없고 짓게 하는 자도 없다. 눈은 색을 부르지 않고 색은 눈을 부르지 않으며, 또한 아는 것도 없으며 각각 고요하다. 눈과 색과 제입은 다 담박(淡泊)하여 짓는 자[作者]도 없다. 인연에서 일어나는데 어리석고 어두운 범부는 마음[心處]이 뒤바뀌었고, 현성(賢聖)은 이것을 통달했다. 그래서 생긴 것도 없고 멸할 것도 없다.
- 010_0526_a_23L其無入相皆從緣起,故曰諸入。如來曰諸入虛無,悉從顚倒託於因緣,無有諸作無使作者,眼不召色色不召眼,亦無所知各各寂然。眼色諸入俱共淡泊,無有作者從因緣起,愚冥凡夫心處顚倒,賢聖達之,然無所生無所滅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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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눈[眼]과 색과 제입에 눈이 눈을 끊지 못하고, 눈(目)이 눈(目)을 생각하지 못하고 색이 색을 버리지 않으니, 곧 자연임을 알아 색은 색을 생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각각 공한 까닭이며, 각각 담박하여 자연임을 아는 까닭이다. 눈은 눈에 의지하지 못하고 색은 색을 알지 못하니, 자연인 까닭이다. 눈과 색이 자연이어서 이루는 것이 없다.
눈이 눈을 찾지 못하고 또한 합하거나 흩어지지도 않고, 각각 공하여 없다. 눈은 눈을 익히지 못하니 이것이 나의 눈이라는 것이다. 색이 색을 익히지 못하니 색은 나의 것[我所]으로 요술[幻]이며 자연의 모양이다. 눈과 색은 허무하니 곧 자연이라고 말하며, 임시로 말에 의탁하였을 뿐이다. - 010_0526_b_06L無來無去,眼色諸入眼不斷眼,目不想目、色不捨色,便知自然。色不想色。所以者何?各各空故,各各淡泊知自然故。眼不猗眼、色不知色,自然之故。眼色自然無成就者,眼不求眼亦不合散,各各空無,目不習目是我所眼,色不習色色是我所,幻自然相,眼色虛無則曰自然,假託言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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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와 소리ㆍ코와 냄새ㆍ혀와 맛ㆍ몸과 감촉ㆍ마음과 법도 얻을 수 없으니, 다 있는 바가 없고 또 이룬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인연으로 일어나서 뒤바뀜에 살고 있되 두 가지 원인으로 성립되어 있으면서 마음과 법에서 일어나 모든 품목[諸品]이 들어오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제입(諸入)이라 말한다.
법의 인연으로 임시로 들어가는 문에 의탁한 것이니, 법은 마음에 붙어 있지 않고 마음은 법에 붙어 있지 않으며, 법이 법에 붙어 있지도 않고 마음이 마음에 붙어 있지도 않으며, 집착은 인연에서 일어나 법의 일[法事]을 세우며, 마음에 인연하여 모양[相]을 보니 들어가는 법[入法]을 얻지 못한다. 지혜가 밝은이는 이것을 통달할 것이다. - 010_0526_b_14L耳聲、鼻香、舌味、身更、心法而不可得,悉無所有亦無所成。所以者何?從因緣起,處在顚倒,立在二因,從心法興諸品入故,故曰諸入。以法因緣假託入門,法不著心,心不著法,法不著法,心不著心,著從緣起以立法事,因心見相不得入法,明智達之。
- 010_0526_c_02L제입의 근본을 찾아 참된 진리를 보면 다 뒤바뀜에서 모여진 것인데, 어리석고 어두운 범부는 두 가지 모양이 있음을 본다.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마음이 법에 들어가지 않고 법이 마음에 들어가지 않는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으니, 다 인연에서 생긴 것,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나 지혜가 밝은이는 이것을 통달한다. 왜냐하면 다 있는 바가 없고 자연히 있는 까닭이다. 뜻이 법에 들어갈 수 없고 참된 모양도 없으며, 이루는 것도 얻지 못하고 임시로 의탁하여 나타날 뿐이다.
- 010_0526_b_21L求諸入本睹見眞諦,皆顚倒合,愚冥凡夫見有二相,無內外亦無中閒,心不入法法不入心,無去來今,皆從緣生,愚者不了,明智達之。所以者何?悉無所有處自然故,無意入法無有眞相,不得成就假託現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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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지인아, 보살은 모든 곳에 여러 가지 들어옴을 이와 같이 깨닫고 알아서 곧 열두 가지 제입을 알지만, 집착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고 곧 제입을 끊으며, 제입이 만들어진 것을 입증하되 입의 모든 것을 분별하여 일어나는 것이 없게 하고 모양이 없음[無相]을 훤히 안다. 마치 흐르는 물이 모여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은 널리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한다. - 010_0526_c_03L如是,持人!菩薩以得曉了若斯諸所衆入,便了一切十二諸入,不著不縛便斷諸入,以造立證入諸分別使無所起,曉了無相猶如流水在所合矣!故曰水普無所不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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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2입(入)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 말한바 안과 밖이 다 인연을 따른다. 그 물은 흘러가 이루는 것이 많으니, 비록 자연이며 처소를 얻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얽매이고 집착하는 까닭으로 그 제입이라는 것은 번뇌의 문을 향하여, 어리석고 어두운 범부는 번뇌를 끊지 못한다. 그러므로 들어오는 문[入門]이라고 말하니, 눈은 색에 집착하고 귀ㆍ코ㆍ입ㆍ몸ㆍ마음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돌아갈 곳이 없다.
보살대사는 자연임을 밝게 알아 제입(諸入)을 분별하며, 이미 입(入)을 분별하고는 다 온갖 얽힘을 제거한다. 이와 같이 지인아, 보살대사는 제입을 밝게 안다.” - 010_0526_c_08L其十二入亦復如是,所云內外皆從因緣,其水流至,所成就。雖言自然不得處所,以見縛著,其諸入者向塵勞門,愚冥凡夫不斷塵勞,故曰入門。眼著于色,耳鼻口身心亦復如是,無所歸趣。菩薩大士曉了自然分別諸入,已分別入悉除衆結。如是,持人!菩薩大士曉了諸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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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십이연품(十二緣品) - 010_0526_c_15L持人菩薩經十二緣品第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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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527_a_02L
부처님께서 지인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제입(諸入)인 12연기를 펴서 열두 가지를 관찰함을 밝게 안다고 말하며, 어떻게 그것을 관하겠느냐?
모든 법은 쓰는 것이 다 무명(無明)의 업이기 때문에 어리석음이라 이름하고, 처소가 없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무명이라 말하며, 모든 법을 알지 못하여 무명이 생긴다. 그러므로 어리석다고 말한다. 이것을 알지 못한다고 왜 무명이라 하겠느냐? 무명을 연(緣)하기 때문에 행이 있으며, 만약 법을 통달하지 못하면 이 법을 행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명을 연하기 때문에 문득 행이 있다고 말한다. 행을 연함이 있는 까닭으로 그 식(識)이 생긴다. 그러므로 행을 좇아서 식을 이룬다고 말하며, 그 두 가지 모양이 있어 명색(名色)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을 연하여 명색이 생기고 명색을 따라 곧 6입(入)이 생긴다. 그러므로 명색을 연하여 6입을 이룬다고 말하며, 인하여 다시 아픔이 있으므로 6입을 연하여 곧 감촉[所更]이 생긴다고 말한다. - 010_0526_c_16L佛告持人:“何謂曉了班宣諸入?十二緣起觀十二。以何觀之?以用諸法悉無明業,故名曰癡;不了無處,故曰無明;不解諸法有生無明,故曰爲癡。以不了是何故無明?無明緣故有行,若不達法不行是法,故曰無明緣故便有行。有行緣故生其識,故曰從行致識。有其二相致名色矣,故從識緣而生名色。從名色便生六入,故曰從名色緣得致六入。因有更痛,故曰從六入緣便生所更。
- 아프고 가려움[痛痒]이 있음을 인한 까닭으로 감촉을 연하여 아프고 가려움이 있게 된다고 말하며, 곧 은혜와 사랑이 생긴다. 그러므로 아프고 가려움을 연하여 곧 은혜와 사랑이 생긴다고 말하며, 은혜와 사랑을 연하여 받아들임[所受]이 생긴다. 그러므로 은혜와 사랑의 인연에서 곧 받아들임이 생긴다고 말하며, 받아들임에서 곧 존재[所有]가 생긴다. 그러므로 받아들임을 연하여 곧 존재가 생긴다고 말하고, 존재에서 곧 태어남[所生]을 이룬다. 그러므로 존재를 연하여 곧 태어남이 이루어지고, 태어남을 연하여 곧 늙고 병들어 죽고 울고 근심함이 있게 되니, 뜻의 법[意法]이 옳지 않으면 큰 근심과 괴로움이 모임이다. 그러므로 생(生)에서 약간의 괴로움이 생긴다.
- 010_0527_a_04L因有痛痒,故曰從所更緣致有痛痒。則生恩愛,故曰從痛痒緣便生恩愛。從恩愛緣生所受,故曰從恩愛緣便生所受。從所受便生所有,故曰從所受緣便致所有。從所有便致生矣,故曰從所有緣便致所生。從所生緣便有老病死啼哭愁慼不可意法大患苦會,故曰從生致若干苦。
- 어떠한 까닭으로 이 온갖 고뇌가 모이는가? 무명 때문에 모든 뒤바뀜을 익히고, 은혜와 사랑의 행으로 탐욕을 즐기고 곳곳에 그 마음을 사모하여 즐기고 버리지 않으니, 이것이 곧 세속의 12종류의 연기가 있어 스스로 문을 닫으니 눈 없는 애꾸며 무명의 그물이다. 뜻을 악창과 문둥병에 두고 깊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는 데는 무명이 으뜸이 된다. 12연기를 이와 같이 관하면 이 무명이 허망하고 거짓되며 진실하지 않음을 알 것이다.
- 010_0527_a_12L以何等故合是衆惱?以無明故。習諸顚倒,從恩愛行忻樂貪欲,其心在在樂慕不捨,是則世俗十二品有緣起自閉,盲冥無目無明羅網,志存疽癩入於幽闇。無明爲首,十二緣以觀如是,了斯無明虛僞不眞。
- 또 그 본제(本際)에서 알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모른다, 모른다라고 하는 것은 밝음[明]에 이르지 못하는 까닭이다. 무명으로써는 그 생(生)의 본제를 알 수 없으니, 만약 밝은 지혜가 있으면 마땅히 그것을 관찰할 것이며, 본제를 밝게 알면 곧 끝이 없음[無際]을 통달하여 사상(思想)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며 곧 온갖 생각을 끊으니, 온갖 생각을 끊은 까닭으로 무명에 의지하지 않으며, 일체 모든 법은 무명을 어기지도 않고 이 모든 법이란 것은 무명의 스스로 큰마음을 버리지도 않는다.
- 010_0527_a_17L又其本際而不可知。何以故不可知?不可知,不逮明故。用無明故,其生本際而不可知。若有明智當觀察之,曉了本際則達無際,不起思想亦不無想,便斷衆想。以斷衆想不猗無明,一切諸法不違無明。是諸法者不去無明自大之心。
- 010_0527_b_02L왜냐하면 무명을 놓아버림으로써 일체 모든 법을 다 무명이라고 이름한다. 능히 일체 모든 법이 다 무명이라고 깨달아 아는 자는 곧 밝은 업을 통달하고 다시 밝은 업을 이루지 않는다. 무명이 없어짐으로써 곧 밝은 업[明業]이라 말하니, 무엇을 무명을 없앤다고 말하는가? 일체 법이 다 있는 것이 없음을 알면 일체 모든 법은 다 허무하여 진실하지 않고 뒤바뀌어 있어 있는 것이 없으며 임시로 의탁하여 있을 뿐이다.
- 010_0527_a_24L所以者何?以捨無明,以故曰名一切諸法皆爲無明矣!以能覺了一切諸法皆無明者,則達明業不更致明,以消無明則曰明業。何謂消無明者,解一切法悉無所有,一切諸法皆虛不眞,處存顚倒法無所有,假託有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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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곧 이름하여 무명을 끊는다고 말하며 또한 밝음도 끊으니 명(明)과 무명(無明)이 다 허무하여 진실하지 않으며 말하는 바의 무명이란 밝음이 없음을 쓰는 까닭으로 온갖 행업(行業)이 있어 곧 열두 가지를 이룬다. 어리석고 어두운 범부는 능히 통달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삿되고 어두움에 던져서 다 있는 것이 없는 것을 도리어 있다고 만든다. 그러므로 행(行)이라고 말한다. 처소도 없고 말도 없으며 말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밝고 또한 어둡지 않으며 모든 행의 업은 다 본래 공하여 없는 것이니 법이란 것은 없는 것이나 도리어 있는 것을 행한다.
그러므로 무명의 연이 모든 행을 이루니, 그 행은 무상하지만 옳고 그른 업을 따라 온갖 행이 오게 된다. - 010_0527_b_07L是則名曰以斷無明,亦斷有明。明與無明悉虛不眞,所曰無明,用無明故有衆行業,便致十二,愚冥凡夫所不能達自投邪冥,悉無所有反造所有,故曰爲行。無處無言不言不知,明亦不冥,諸行之業悉本空無,所法無有反行所有,故曰無明之緣使成諸行。其行無常,從是非業致衆行來。
- 또 온갖 행을 관찰함에 과거ㆍ미래ㆍ현재도 없으며, 그 무명은 공하나 무명을 분별한다. 모든 행은 본래 공하고 행은 다 자연이며 행은 집착하는 바가 없으나 그 무명으로 인한 까닭에 모든 행이 생기니, 그 무명이라는 것도 모든 행에 집착하지 않고 밝은 행을 끊지도 않으면 무명이 곧 사라져서 행이 행을 없애지 않는다. 이 행이 무명이면 곧 어두움이 나와 덮어 뒤바뀜에 처해 있으나 무명을 얻지 않으면 곧 자연이라고 말하니, 행도 얻지 못하고 또한 자연이라고 말한다. 깊은 어두움을 사용하여 막히므로 무명이라 말하고 어두운 무명으로써 곧 행을 건립할 뿐이다.
- 010_0527_b_15L又察衆行無去來今,其無明空分別無明。諸行本空行悉自然,行無所著,因其無明故生諸行,其無明者不著諸行,明行不斷無明便消,行不除行,是行無明則發闇弊,處存顚倒無明叵得,則曰自然行不可得,亦曰自然。用幽冥塞,故曰無明,用冥無明便立行耳。
- 010_0527_c_02L만약 법에 무명이 없고 있는 바도 없으면 허위의 법으로 곧 무명을 이루며, 행식(行識)의 행에 집착함이 없이 행하면 식의 행을 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은 행을 알지 못하고 무유법(無有法)을 행하여 이르게 되는 것이다. 행에서 식(識)이 생기고 온갖 뒤바뀜을 이루니 그 행(行)과 식은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또한 중간도 없으며 식을 일으키는 것도 없고 행이 방일함으로써 그 식이 생길 뿐이다.
- 010_0527_b_22L若法無無明無所有,以虛僞法便成無明,行識行無所著行,不起識行。所以者何?行不知行,行無有法所可至奏,從行識生衆顚倒。其行與識,無內無外亦無中閒,無起識者,以行逸生其識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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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약 밝은 지혜라면 식을 찾아도 얻지 못할 것이며, 식은 생긴 바가 없으며, 또한 볼 것도 없어 식(識)ㆍ명색(名色)ㆍ6입(入)ㆍ소갱(所更:觸)의 아프고 가려움을 분별하지 못하고, 수(受)ㆍ애(愛)ㆍ취(取)ㆍ유(有)ㆍ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ㆍ근심과 슬픔ㆍ눈물을 흘림ㆍ통곡은 뜻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큰 고통(苦陰:蘊)이 모여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없이 생사가 끊어지지 않으며, 다섯 강[五江]과 넷의 작은 강[四瀆] 사이에 던져져 능히 스스로 구제하지 못한다. 근본이 없음을 깨달으면 다 집착할 것이 없고 이룸도 없고 다함도 없는 평등한 업으로 12연기를 관함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이것을 밝음이고 둘이 없음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체 모든 법을 찾을 것이며 모든 법을 사모함으로 생각과 생각하지 않음도 없으면 이것이 유순하게 12연기에 들어감을 밝히는 것이다. - 010_0527_c_04L彼若明智求識不得,識無所生亦無所見,不別於識,名色、六入、所更、痛痒、受、有、生、老病死憂慼啼哭痛不可意大苦陰會,輪轉無際生死不斷,投于五江四瀆之閒不能自濟。曉了無根悉無所著,無致無極平等之業,觀十二緣亦復如是,斯名曰明無二,故勤精進求一切諸法,以慕諸法無想不想,是柔順明入十二緣。
- 이것이 지인을 위하여 모든 보살 대중이 열두 가지 연기가 일어나 모여 있는 연(緣)과 생겨 일어나는바 분별은 모임이 없다는 것을 밝게 깨달아 반선(頒宣)하는 것이다. 이것을 생기는 바가 없는 앎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연기를 훤히 알아 12인연을 관하는 것이다. 마땅히 생겨남을 관찰하지 않으면 방편의 지혜[權慧]에 이르지 못한다. 만약 능히 12연기가 생기는 것이 없음을 통달하여 알면 이에 생함이 없는 지혜[無生慧]를 밝게 알았다고 말할 것이다.
- 010_0527_c_13L是爲,持人!諸菩薩衆曉了頒宣十二緣起在合會緣有所生起,分別無會,是曰逮得解無所生,曉了緣起觀十二緣,不當察生不至權慧,若能達知十二緣起無所生者,乃曰曉了逮無生慧。
- 이런 까닭에 지인아, 보살대사가 생함이 없는 지혜에 들어가서 증명하여 일으키고자 하면 마땅히 12연기를 분별하여 펴서 받들어 행할 것이며, 다른 모든 연기도 생기는 바가 없음을 받들어 행할 것이며, 이런 관(觀)을 지으면 이에 생기는 바가 없는 지혜를 얻음에 이르렀다고 말할 것이며, 능히 생기는 바가 없는 지혜를 얻음에 이름을 세우고 증명한 것이다. 이에 생기는 바가 없는 도의 지혜[道慧]를 훤히 아는 데 이르렀다고 말한다.
- 010_0527_c_18L是故,持人!菩薩大士欲入無生慧建立證明,當分別暢十二緣起而奉行之,以餘奉行於諸緣起而無所生,以作是觀,乃謂逮得無所生慧,以能逮得無所生慧,造立證明,乃曰逮得無所從生曉了道慧。
- 010_0528_a_02L이런 까닭에 지인아, 보살대사가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생기는 바의 인연에서 생기는 바가 없으며 3계(界)를 다 끊어 인연을 증명하여 생기는 바가 없음을 관(觀)한다. 만약 보살이 생함이 없는 모양[無生相]에 이르면 곧 빠르게 생기는 바가 없는 법인을 얻음에 이르고 문득 보살의 행에 친근함을 얻을 것이다. 자기 몸을 받들며 눈앞에 여러 부처님을 인연하여 도의 수기를 받아 마땅히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러 최정각(最正覺)이 될 것이며, 수기[決]를 얻고 오래지 않아 받은 수기에 가까워질 것이다.
- 010_0527_c_23L是故,持人!菩薩大士如是行者,於所生緣而無所生,悉斷三界,因緣證明觀無所生。若有菩薩至無生相,便疾逮得無所從生法忍,輒得親近菩薩之行,己身所奉面緣諸佛而受道決,當逮無上正眞之道爲最正覺,得決不久以近受決。
- 또 자기가 이와 같은 색신[色像]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할 것이며, 이 모든 정사(正士:보살)는 곧 각각 수기를 받아 믿는 마음이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일체 세간의 모든 법을 분별하여 방속(方俗)을 제도하고 12연기의 근원을 밝게 알아 연기를 통달할 것이며, 모든 부처님 세존의 목전에서 다시 모든 마왕 파순(波旬)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현재 육지나 수중을 보아 일체 모든 만물이 나고 죽음을 보고 이미 온갖 액난을 제도하고 무명의 뿌리를 뽑으며, 이와 같은 비상(比像)으로 영원히 편안함을 얻고 정사(正士)를 볼 것이다.”
- 010_0528_a_07L又以自己如是色像奉行佛教,是諸正士各便受決得許信樂,分別一切世閒諸法以度方俗。曉了十二緣起之元以達緣起,諸佛世尊現在目前,不復恐懼諸魔波旬。若見現在陸地水中,一切諸物睹見生死,已度衆厄拔無明根,如是比像永得安隱睹見正士。”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인아,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깨달으면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은 다 인연한 까닭이다’라고 안다. 만약 이것을 들으면 12연기의 본말을 훤히 알 것이며, 모든 여래께서 이루신 바의 근원을 즐겁게 믿어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오래지 않아 수기를 받아 생겨나지 않는 법인을 얻을 것이며, 수기를 받은 근본으로써 오래지 않아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곧 도의 수기[道決]를 얻어서 마땅히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러 최정각이 될 것이다.” -
010_0528_a_14L佛言:“持人!若有菩薩如是解了,吾我所有皆因緣故,若有聞是曉了十二緣起本末,信樂不疑,諸如來所成其根元,不久受決,得無所從生法忍,以受決本如來不久,諸如來便得道決,當逮無上正眞之道爲最正覺。”
持人菩薩經卷第二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 3)세 번째 품(品)이 빠져 있다.
- 4)조(兆) 다음의 단위.
- 5)‘타(陁)’는 ‘시(施)’의 잘못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