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持世經卷第四

ABC_IT_K0146_T_004
010_0569_c_01L지세경 제4권
010_0569_c_01L持世經卷第四


요진 구마라집 한역
김달진 번역
010_0569_c_02L姚秦龜茲三藏鳩摩羅什譯


8. 팔성도분품(八聖道分品)
010_0569_c_03L持世經八聖道分品第八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능히 도를 잘 안다고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도(道) 가운데 안주한다. 무엇이 도인가? 이른바 8성도분(聖道分)으로서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이다.
010_0569_c_04L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能知道薩摩訶薩安住道中何等爲道所謂八聖道分正見正思惟正語正業正精進正念正定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8성도분을 행한다고 이름하여 말하는가? 무엇을 이름하여 8성도분의 방편을 얻는다고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정견(正見)을 얻고 정견에 안주(安住)하여 일체의 견해를 끊기 위한 까닭에 도를 행하고, 일체의 모든 견해를 끊기 위한 까닭에 도에 안주하며, 나아가 열반에 대한 견해와 부처님에 대한 견해를 끊는다. 무슨 까닭인가? 지세야, 일체의 모든 견해는 모두 이름하여 삿되다 한다. 나아가 열반에 대한 견해와 부처님에 대한 견해와 일체의 탐착하는 모든 견해를 파괴하는 까닭에 이름하여 바른 견해[正見]라고 한다. 또 모든 견해는 없는 것이며, 모든 견해를 취함이 없으며, 일체의 모든 견해를 염(念)하지 않으며 탐착하지 않으며 반연하지 않으며 행하지 않으며 분별하지 않는 것, 이를 바른 견해라고 이름한다. 이 바른 견해로 무엇들을 보는가? 일체의 세간(世間)은 허망하고 전도되어 모든 견해에 묶여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볼 때, 이름하여 일체의 견해를 끊음에 안주한다고 한다. 또 이 바른 견해에 있어서, 나아가 열반에 대한 견해와 부처님에 대한 견해를 염하지 않고 보지 않고 탐착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아 일체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한 까닭에 행한다.
010_0569_c_08L持世何謂菩薩摩訶薩名爲行八聖道分何謂名爲得八聖道分方便菩薩摩訶薩得正見安住正見爲斷一切見故行道斷一切諸見故安住於道乃至斷涅槃見佛見何以故持世一切諸見皆名爲邪乃至涅槃見佛見破壞一切貪著諸見故名爲正見又無諸見無取諸見不念不貪著不緣不行不分別一切諸見是名正見以是正見爲見何等見一切世閒虛妄顚倒爲諸見所縛如是見時名爲安住斷一切見於是正見亦不念不見不貪著分別乃至涅槃見佛見爲不起一切見故
010_0570_a_02L무엇을 이름하여 바른 견해라고 하는가? 일체의 법은 적멸한 염상(念相)이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열반과 같다. 또 이와 같이 이 일체의 법을 염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다. 염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현재의 앞에 있지 않으며 바르지 않고 삿되지 않고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는 것, 이것을 출세간(出世間)의 바른 견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에 이름하여 출세간의 바른 견해라고 하는가? 이 사람은 세간을 얻지 않고 출세간을 얻지 않으며, 세간을 건너기를 마쳐 분별하는 바가 없다. 이 까닭에 이름하여 출세간의 바른 견해라고 한다. 바른 견해라고 하는 것은 세간을 지견하는 것과 같이 출세간도 이와 같다. 이 사람은 또 ‘이것은 세간이다, 이것은 출세간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모든 생각과 분별을 끊는 것을 이름하여 출세간의 바른 견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삿된 것을 보지 않고 바른 것을 보지 않으며, 일체의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끊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견해라고 한다. 또 바른 견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 중에서 다시 차별함이 없고, 이런 까닭에 설하여 바른 견해라고 이름한다. 또 바른 견해란 것은 여실하게 모든 삿된 견해의 뜻을 안다. 또 바른 견해란 모든 삿된 견해가 곧 평등하다고 관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바른 견해에 안주한다고 이름한다.
010_0569_c_22L云何名爲正見一切法寂滅念相不生不滅同於涅槃如是亦不念不分別是一切法不念不分別不現在不正不邪不取不捨是名出世閒正見何故名爲出世閒正見是人不得世閒不得出世閒度世閒已無所分別是故名爲出世閒正見正見者如知見世閒出世閒亦如是是人不復分別是世閒是出世閒斷諸憶想分別名爲出世閒正見是人不見邪不見正斷一切心所念名爲正見正見者於諸法中更無差別是故說名正見又正見者如實知諸邪見義又正見者觀諸邪見卽是平等是名菩薩摩訶薩安住正見
010_0570_b_02L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바른 견해 중에 머물러서 여실하게 바른 사유[正思惟]를 알고 이러한 생각을 한다.
‘일체의 사유는 모두 삿된 것이다. 나아가 열반에 대한 사유와 부처님에 대한 사유는 모두 삿된 사유이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분별을 끊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사유라고 한다. 분별하는 바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분별이라고 한다. 분별을 끊는 것이 바른 분별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모든 사유의 상을 지견해 마치면 곧 삿됨이 없다. 이 사람은 다시는 ‘이것을 이것이다, 이것을 저것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바른 분별 가운데 머물러 다시는 혹은 바르다, 혹은 삿되다고 하는 모든 분별을 얻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모든 분별을 떠나고 모든 분별을 지나는 까닭에 설하여 바른 사유라고 이름한다. 바른 사유란 것은 곧 일체의 분별은 모두 허망하고 거짓되며 실답지 않아서 전도됨을 좇아 일어난다고 분별하여 지견하는 것이다. 모든 분별 중에는 분별함이 없다. 이 사람은 바른 사유에 안주하여 다시는 혹은 바르다, 혹은 삿되다고 하는 분별을 얻지 않는다. 모든 분별을 떠나고 모든 분별을 지나고 모든 분별을 끊는 까닭에 설하여 바른 분별이라고 이름한다. 이 사람은 이때 일체의 분별 중에 있으나 묶이고 얽매이는 바가 없고 모든 분별의 성품은 다 평등하다고 지견하는 까닭에 이것을 바른 사유에 안주한다고 이름한다.
010_0570_a_15L持世菩薩摩訶薩住正見中如實知正思惟作是念一切思惟皆爲是邪乃至涅槃思惟佛思惟皆是邪思惟何以故斷諸分別名爲正思惟無所分別名爲正分別斷分別是正分別何以故是人知見一切思惟相已則無有邪是人更不分別是此是彼如是正分別中更不得諸分別若正若邪如是之人離諸分別過諸分別說名正思惟正思惟者卽是分別知見一切分別皆虛誑不實從顚倒諸分別中無有分別是人安住正思惟更不得分別若正若邪離諸分過諸分別斷諸分別故說名正分是人爾時於一切分別中無所繫知見諸分別性皆平等故是名安住正思惟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바른 말[正語]을 부지런히 모은다. 이 사람은 일체의 언어는 허망하고 실답지 않아 전도됨을 좇아 일어나며 다만 생각과 분별은 뭇 인연으로부터 있는 것이라고 보아 이러한 생각을 한다.
‘이 언어의 상(相)은 언어 가운데 불가득이다. 일체의 말을 없애고 여실하게 일체의 구업(口業)을 아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말이라고 한다. 이 언어는 좇아오는 곳이 없고 또 가는 곳도 없다. 능히 이와 같이 보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말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이때 실상 가운데 안주하고 있는바 언어는 모두 바른 말인 것이다. 이 까닭에 바른 말 가운데 안주한다고 설한다. 이 사람은 제일(第一)의 청정한 구업에 머무름을 얻는다. 또 모든 구업의 상을 지견한다. 또 일체의 언어에 통달한다. 이 사람이 설하는 바는 끝내 삿됨이 없다. 이 까닭에 설하여 바른 말에 머문다고 이름한다.
010_0570_b_09L持世菩薩摩訶薩勤集正語是人見一切語言虛妄不實從顚倒起但憶想分別從衆因緣有作是念是語言相語言中不可得滅一切語如實知一切口業名爲正語是語言無所從來亦無所去能如是見者名爲正語是人爾時安住實相中有所語言皆是正語是故說安住正語中是人得住第一淸淨口業亦知見諸口業相亦通達一切語言是人所說終不有是故說名住於正語
010_0570_c_02L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말의 업은 그 모두가 삿된 업이라고 잘 안다. 일체의 모든 업은 허망하여 있는 바가 없고 짓지 않고 일어나지 않는다고 안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업 중에는 하나의 결정적인 것도 없고 일체의 업을 멸하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업이라고 한다. 바른 업[正業]이란 것은 업에 있어서 혹은 바르다, 혹은 삿되다고 분별하지 않음이다. 모든 업의 평등함에 드는 까닭에 업의 혹은 바르고, 혹은 삿됨을 분별하지 않는다. 이 까닭에 설하여 바른 업이라고 이름한다. 또 바른 업이란 것은 곧 3계(界)에 묶이지 않는다는 뜻이며, 여실하게 지견한다는 뜻이며, 여실하게 평등함 중에서 다시는 이것은 바르고 이것은 삿되다고 분별함이 없는 것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바른 업을 행하고 여실하게 일체의 업을 지견하는 까닭에 여실하게 법에 있어서 취함이 없고 버림이 없다. 이 까닭에 설하여 바른 업을 행한다고 이름한다. 바른 업 가운데는 삿된 업이 없다. 이 사람은 여실하게 지견하는 까닭에 설하여 바른 업 가운데 머문다고 이름한다.
010_0570_b_20L持世菩薩摩訶薩善知一切語業是邪業知一切諸業虛妄無所有不作不起何以故諸業中無一決定一切業名爲正業正業者於業不分別若正若邪入諸業平等故不分別業若正若邪是故說名正業又正業則是不繫三界義如實知見義實平等中更無分別是正是邪菩薩行如是正業如實知見一切業故實於法無取無捨是故說名行正業正業中無有邪業是人如實知見故說名住於正業中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일체의 모든 목숨[命]은 다 삿된 목숨이라고 잘 안다 말하는가? 무슨 까닭에 혹은 목숨의 상, 법의 상, 취(取)의 상, 나아가 열반의 상, 부처의 상, 나아가서는 청정한 불법의 상이 있고, 이 가운데 머물러 청정한 목숨을 짓는 것 모두가 삿된 목숨이라고 이름하는가? 바른 목숨[正命]이란, 모든 자생(資生)48)하는 것에 집착함을 버리고, 모든 판매(販賣)를 끊어 분별하지 않으며 희론(戱論)하지 않음이다. 일체의 희론을 지나는 것, 이를 바른 목숨이라고 이름한다. 바른 목숨 가운데 다시는 이는 삿된 목숨이다, 이는 바른 목숨이라고 분별하지 않으면 곧 일체의 청정한 목숨을 얻는다. 이 까닭에 설하여 청정한 바른 목숨을 얻는다고 이름한다. 또 일체의 모든 목숨은 다 불생(不生)으로 삿됨과 바름이 없다. 이 사람을 이름하여 청정한 목숨을 얻는다고 한다. 바른 길에 안주하여 희론함이 없으며, 이 바른 목숨 가운데 머물러 바른 목숨을 취하지 않고 삿된 목숨을 버리지 않는다. 이 까닭에 설하여 바른 목숨 가운데 머문다고 이름한다. 이 사람은 이때 바른 것에 머문다고 이름하지 않으며, 삿된 것에 머문다고 이름하지 않는다. 청정하고 평등한 목숨을 얻어 목숨의 상을 떠나고 움직임이 없고 지음이 없고 목숨을 염(念)하지 않으며 목숨 아닌 것을 염하지 않으며, 다만 이름하여 여실히 아는 자[如實知者]49)ㆍ여실히 보는 자[如實見者]라고 한다. 이 까닭에 설하여 바른 목숨 가운데 머문다고 이름한다.
010_0570_c_09L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知一切諸命皆是邪命何以故若有命相法相取相乃至涅槃相佛相乃至淸淨佛法相住於是中作淸淨命皆名邪命正命者捨諸資生所著斷諸販賣分別不戲論過一切戲論是名正命正命中更不分別是邪命是正命得一切淸淨命是故說名得淸淨正又一切諸命皆不生無有邪正人名爲得淸淨命安住正道無有戲住是正命中不取正命不捨邪命是故說名住正命中是人爾時不名住正不名住邪得淸淨平等命離於命相無動無作不念命不念非命名爲如實知者如實見者是故說名住正命中
010_0571_a_02L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바른 정진[正精進]을 잘 안다고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바른 정진에 머물고, 혹은 보살이 모든 정진의 길을 끊고자 하는 까닭에 이름하여 바른 정진에 머문다고 한다. 무슨 까닭에 일체의 정진은 모두가 삿되다고 하는가? 모든 내는 것이 있고 지음이 있고 행이 있는 것을 이름하여 삿되다고 한다. 무슨 까닭에 일체의 법은 모두가 삿된 지음인가? 내고 짓는 것이 있으면 이 모두는 허망한 것이다. 만약 허망하다면 이는 곧 삿된 것이다. 바른 정진이란 냄이 없고 지음이 없고 행이 없고 원(願)이 없는 것으로서 모든 법 가운데서 유(有)50)의 짓는 바[所作]를 끊는다. 이 보살은 일체의 법 중에서 유의 짓는 바를 끊고, 나아가 열반의 상과 부처님의 상 중에서 유의 짓는 상을 생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일체의 짓는 바는 모두가 허망한 것이라고 잘 알며, 짓는 바가 없기 위해서 도(道)를 행한다. 혹 이 바르다[正]고 하는 것은 곧 짓는 바가 없음이며, 일체의 법은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것으로서 짓는 바가 없고 짓는 바의 상을 지난다. 이 보살은 정진이 정진의 길이 아니라고 잘 알아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기 때문에 설하여 바른 정진에 머문다고 이름한다. 바른 정진이란 이는 곧 모든 정진이 불가득이란 뜻이다. 이는 곧 모든 법을 여실하게 지견하는 뜻이다. 이른바 바른 정진을 이와 같이 보는 자는 다시는 ‘이것은 삿된 정진이다, 이것은 바른 정진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이 까닭에 설하여 바른 정진이라고 이름한다.
010_0571_a_02L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知正精進菩薩摩訶薩住正精進若菩薩爲斷一切精進道故名爲住正精進何以一切精進皆爲是邪諸有所發有作有行皆名爲邪何以故一切法皆是邪作有所發作皆是虛妄若虛妄者卽亦是邪正精進者無發無作無行無願一切法中斷有所作是菩薩於一切法中斷有所作乃至涅槃相佛相中不生有所作相是人善知一切所作皆爲虛妄爲無所作故行道若是正者則無所作一切法平等無差別無有所作過所作相是菩薩善知精進非是精進道不取不捨故說名住正精進正精進者卽是諸精進不可得義卽是諸法如實知見義謂正精進如是見者不復分別是邪精進是正精進是故說名正精進
010_0571_b_02L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바른 생각[正念]을 잘 안다고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생각은 모두가 삿된 생각이며 모든 염처(念處)는 이 모두가 삿된 생각이라고 지견한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생각은 곧 삿된 생각이며, 만일 속한 곳에서 생각이 생하면 이 모두는 삿된 생각인 것이다. 기억함이 없고 생각함이 없는 것,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생각은 허망한 인연을 좇아 일어난다. 이런 까닭에 생각을 내는 곳이 있으면 모두 삿된 생각이다. 만약 속한 곳에서 생함이 없고 멸함이 없으면 이를 바른 생각이라고 이름한다. 속한 곳에서 생각의 업이 일어나지 않는 것, 이를 청정한 생각 가운데 안주한다고 이름한다. 속한 곳으로서 삿된 생각의 생함이 없다. 이 사람은 일체의 법은 모두가 삿된 것이라고 지견하고 이 바른 법 가운데는 생각함이 없다. 이 까닭에 바른 생각 가운데 안주한다고 설한다.
010_0571_a_20L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知正念薩摩訶薩知見一切念皆是邪念所念處皆是邪念何以故一切念是邪念若於處所念生皆是邪念無憶無念是名正念何以故一切念從虛妄因緣起是故有生念處皆爲邪念若於處所無生無滅是名正念無有處所起念業是名安住淸淨念中處生邪念是人知見一切法皆爲是是正法中無念是故說安住正念中
또 바른 생각이란 법에 있어서 이것은 바른 생각이다, 이것은 삿된 생각이라고 분별함이 없다. 이 사람은 일체의 생각은 모두가 생각이 없는 상이라고 통달하여 항상 여섯 가지 평등한 마음[六捨心]을 행하는 까닭에 설하여 바른 생각에 머문다고 이름한다. 이 사람은 다시는 즐거움을 탐함이 없고, 또 이는 무념(無念)이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모든 법이 평등한 것으로써 일체의 생각에 통달한다. 이 사람은 여실하게 일체의 생각을 지견하는 까닭에 혹은 생각과 혹은 생각이 아닌 것을 취하는 일이 없으며 버리는 일도 없다. 이런 까닭에 바른 생각 가운데 안주한다고 설한다. 이 사람의 생각하는 바는 다시는 이것은 평등하다, 이것은 평등하지 않다고 분별하지 않는다. 생각과 생각이 아닌 것에 따르지 않고 반연하지도 않는다. 반연함이 없는 까닭에 일체의 생각과 생각이 아닌 것을 안다. 혹 생각이라든가, 혹 생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또한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바른 생각에 안주하는 까닭에 설할 수 없고 나타내 보일 수가 없다. 일체의 언어를 끊고 일체의 언어를 떠나 여실하게 일체의 언어를 알아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지 않는 까닭에 설하여 바른 생각에 안주한다고 이름한다.
010_0571_b_07L又正念者於法無有分別是正念是邪念是人通達一切念皆無念相行六捨心故說名住正念是人更無所貪樂亦不分別是無念以諸法平等通達一切念是人如實知見一切念故若念若非念無取無捨是故說安住正念中是人所念更不分別是等是不等於念非念不隨不緣以無緣故知一切念非念若念若非念不復在心是人安住正念故不可說不可示斷一切語言離一切語言如實知一切語言不分別此彼故說名安住正念
010_0571_c_02L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바른 선정[正定]에 안주한다고 말하는가?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선정은 모두 삿된 선정이라고 관한다. 무슨 까닭인가? 무릇 모든 법 가운데는 취할 바 연(緣)으로서의 선정의 상과, 취할 바 아는 것으로서의 선정의 상과, 취할 바 삼매와 희론(戱論)51)의 선정의 상을 모두 이름하여 삿되다고 한다. 삿되다는 것은 곧 탐착의 뜻이며, 이 선정은 그렇지 않다. 반연하는 바의 상을 취함과 같이 상을 취하지 않고 구함이 없고 희론이 없으며 생각함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바른 선정이라고 한다. 만약 탐착하지 않고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지 않으며, 탐착의 기쁨을 끊어 버리고 선정의 맛을 느끼지 않고 취하는 선정의 상을 무너뜨려 마음이 머무를 곳이 없는 것,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고 이름한다. 또 바른 선정이란, 일체의 선정 가운데 의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희론하지 않는다. 여실하게 법의 본체에 통달하여 선정의 상을 잘 알고 마음에 탐착하지 않는다. 피차(彼此)의 생각의 길을 깨뜨리고자 하고 이와 같은 말로 또한 분별하지 않는다. 일체의 분별을 끊는 까닭에 이름하여 바른 선정이라고 한다.
010_0571_b_20L持世何謂菩薩摩訶薩安住正定薩摩訶薩觀一切定皆是邪定何以凡諸法中所取緣定相所取知定所取三昧戲論定相皆名爲邪者卽是貪著義是定不爾如所緣取相不取相無求無戲論無憶念名爲正定若不貪著不分別此彼斷貪著喜不受定味壞取定相心無所住名正定又正定者不依止一切定中而不戲論如實通達法之本體善知定相心不貪著欲破彼此念道如是語亦不分別斷一切分別故名爲正定
또 바른 선정 중에 다시는 삿되고 바르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일체의 생각[想]을 깨뜨리고 일체의 생각을 끊고 일체의 생각을 없애는 까닭에 이름하여 바른 선정이라 한다. 바른 선정이란 삿되고 바른 것을 내지 않고 삿되고 바름을 분별하지 않는다.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이 보살은 모든 선정의 방편에 통달하여 이 바른 선정 가운데 머문다. 또 혹은 선정과, 혹은 선정의 상에 묶이지 않는다. 모든 선정의 상을 지났기 때문에 설하여 바른 선정이라고 이름한다. 바른 선정은 법에 있어서 희론함이 없는 것을 이름한다. 모든 법의 평등 가운데는 이른바 이는 바르고, 이는 삿되다고 하는 희론이 없다. 바른 선정이란, 이는 곧 모든 법은 평등하다는 뜻이다. 바른 선정이란 능히 모든 선정과 3계의 모든 유위법(有爲法)을 내고, 능히 여실하게 모든 5도(道)에 나고 죽는 것을 지견하는 뜻이다. 지세야, 이것을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선정 중에 머문다고 이름한다. 이름하여 바른 선정의 방편을 얻는다 하고, 이름하여 도(道)를 잘 안다고 하며, 도의 방편을 잘 안다고 한다. 이른바 여실(如實)하게 지견하여 능히 열반의 도에 이른다.”
010_0571_c_09L正定中更不生邪正想破一切想一切想滅一切想故名爲正定正定不生邪正不分別邪正是名正定何以故是菩薩通達諸定方便住是正定中不復爲若定若定相所繫過諸定相故說名正定正定名於法無所戲論諸法平等中無有戲論所謂是正是邪正定者卽是諸法平等義正定者能出諸禪定三界一切有爲能如實知見一切五道生死義是名諸菩薩摩訶薩住如是定中名爲得正定方便名爲善知道善知道方便所謂如實知見能至涅槃道

9. 세간출세간품(世間出世間品)
010_0571_c_22L持世經世閒出世閒品第九
010_0572_a_02L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잘 안다고 말하고, 무엇을 세간과 출세간의 법의 방편을 얻음이라고 말하는가?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바르게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관한다.
010_0571_c_23L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知世閒出世閒法何謂得世閒出世閒法方便持世菩薩摩訶薩正觀世閒出世閒
무엇을 세간의 법이라 하는가? 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무릇 모든 법의 생각과 분별은 전도됨을 좇아 일어나고 뭇 인연을 낳고 허망한 연(緣)에 묶이고 두 개의 상을 쫓아 일어나며 공하여 있는 바가 없어 무지개의 여러 가지 섞인 빛깔과 같으며, 또 화륜(火輪)과 같아 범부를 속인다. 파괴의 뜻이기 때문에 잠시 세간이라 이름한다.’
이 까닭에 세간이라 이름한다. 모든 세간의 법은 모두가 실(實)이 아니다. 허망한 연을 좇아 일어나 부작(不作)ㆍ불기(不起)의 상이다. 다만 음(陰)ㆍ계(界)ㆍ입(入)과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ㆍ법(法)에 인하는 까닭에 설하고 명색에 인하는 까닭에 설한다. 범부 사람의 마음이 탐착하는 바에 따르고, 또 갖가지 탐착과 삿된 견해에 따라 헝클어진 실에 실마리가 없음과 같이, 띠[茅]의 뿌리와 넝쿨풀이 서로 잇고 붙어 있는 것과 같이, 전도된 것을 따라 상응하는 까닭에 설하여 세간의 법이라고 이름한다.
010_0572_a_04L何等爲世閒法菩薩作是念凡所有法憶想分別顚倒起衆因緣生繫虛妄緣從二相空無所有如虹雜色亦如火輪誑於凡夫破壞義故假名世閒是名世諸世閒法皆非是實從虛妄緣起不作不起相但因陰界入色聲香味觸法故說因名色故說隨凡夫人心所貪著又隨種種貪著邪見如亂糸無緖如茅根蔓草互相連著隨顚倒相應故說名世閒法
무엇을 출세간의 법이라고 하는가? 이와 같은 세간의 법은 본래부터 여실한 성품을 떠난 것이며, 이것을 출세간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지혜로운 자는 세간의 법을 구함에 불가득이고, 출세간의 법을 구하여도 불가득이며, 세간은 없고 출세간도 없으며, 이 가운데 처하여 ‘이는 세간이다, 이는 출세간이다’라고 분별함이 없다. 다만 세간으로 해서 출세간을 설할 뿐이며, 세간의 실상은 곧 이 출세간인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세간에는 얻을 수 있는 정해진 상이 없고, 세간의 상은 본래부터 항상 공한 것이다. 세간의 법은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간은 본래부터 곧 적멸(寂滅)의 상이다.
010_0572_a_14L何等爲出世閒如是世閒法從本已來如實性離是名出世閒何以故智者求世閒法不可得求出世閒法不可得無世閒無出世閒處是中無分別是世閒出世閒但爲世閒故說出世閒世閒實相卽是出世閒何以故世閒無定相可得世閒相從本已來常空世閒法不決定故世閒從本已來是寂滅
010_0572_b_02L 이 보살은 이와 같이 세간과 출세간을 관함에 세간을 얻지 못하고, 또 출세간에 탐착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세간과 출세간을 염(念)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세간과 다투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지혜로운 자는 세간은 곧 허망한 상이라고 통달하여 세간의 실상(實相)을 보는 까닭에 다시는 ‘이는 세간이다, 이는 출세간이다’라고 분별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지세야, 세간은 곧 다섯 가지 느낌이 쌓인 것이라는 뜻이다. 일체 세간의 법 모두가 그중에 거두어 있고 지혜로운 자는 쌓임[陰]을 구하나 쌓임을 얻지 않는다. 쌓임의 성품도 얻지 않는다. 쌓임이 오는 곳을 얻지 않고 머무는 곳을 얻지 않으며 가는 곳을 얻지 않는다. 다섯 가지 쌓임과 열두 가지 입(入)과 열여덟 가지 성품도 없으며, 분별함이 없고 명자(名字)가 없고 성품이 없고 상(相)이 없고 행이 없는 것을 곧 출세간이라 이름한다.
010_0572_a_23L是菩薩如是觀世閒出世閒不可得世閒亦不貪著出世閒是人不念不著世閒出世閒故不與世閒諍訟何以故智者通達世閒是虛妄相世閒實相故更不分別是世閒是出世閒何以故持世世閒者卽是五受陰義一切世閒法皆攝在中智者求陰不得陰不得陰性不得陰來處得住處不得去處無五陰十二入十八性無分別無名字無性無相無行卽名出世閒
지세야, 보살은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관할 때, 세간과 출세간이 합하는 것을 보지 않고 출세간이 세간을 떠나는 것을 보지 않는다. 이 사람은 세간을 떠나 출세간을 보지 않으며, 또 출세간을 떠나 세간을 보지 않는다. 이 사람은 다시는 이른바 ‘이는 세간이다, 이는 출세간이다’라고 하는 두 가지 행을 반연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지세야, 세간의 여실한 상은 곧 출세간인 것이다. 세간 중에 세간의 상은 얻을 수 없고, 세간의 법 중에서 세간의 법은 불가득이다. 있는 바가 없는 까닭에 이 법은 곧 출세간이라고 통달한다.
010_0572_b_10L持世菩薩觀世閒出世閒法時不見世閒與出世閒合不見出世閒離世是人不離世閒見出世閒亦不離出世閒見世閒是人不復緣於二行所謂是世閒是出世閒何以故持世世閒如實相卽是出世閒世閒中世閒相不可得世閒法中世閒法不可以無所有故通達是法卽是出世
010_0572_c_02L지세야, 만일 세간과 출세간이 다르다고 하면 모든 부처님은 세상에 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모든 부처님은 일체의 세간은 불가득이며, 일체의 세간은 나지 않는 것으로서 여실하게 일체의 세간을 지견한다고 설하지 않을 것이다. 지세야, 만약 세간을 얻지 않고 세간을 취하지 않으면 곧 이는 출세간이다.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실하게 세간을 지견하면 세간의 불가득에 통달하는 까닭에 곧 출세간을 설한다. 이런 까닭에 모든 부처님은 세간에 나왔고, 일체의 모든 법이 혹은 세간이며, 혹은 출세간이라고 하는 둘이 아니고 분별하지 않음으로써 여실하게 지견함을 깨닫는 까닭에 곧 이 출세간의 법을 설한다.
010_0572_b_19L持世若世閒與出世閒異者諸佛不出於世諸佛亦不說一切世閒不可得一切世閒不生如實知見一切世閒持世若不得世閒不取世閒是出世閒是故當知如實知見世閒通達世閒不可得故卽說出世閒故諸佛出於世閒一切諸法若世閒若出世閒以不二不分別證如實知見故卽是說出世閒法
지세야, 이와 같이 세간은 매우 깊어서 근저(根底)를 얻기가 어렵다. 세간의 법에 의지하는 자와 세간의 법을 얻는 자와 출세간의 법을 희망하는 자와 세속의 말에서 제일의(第一義)의 상을 내는 자와 두 가지 법에 머물러 있는 자는 이와 같은 법 가운데 들 수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세간을 알지 못하고 출세간을 알지 못하여 이는 모두가 두 가지 법을 행하는 자이다. 지세야, 두 가지 법을 행하는 자는 세간과 출세간에 통달할 수가 없다.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잘 알고, 또 세간과 출세간의 법의 방편을 얻는다.”
010_0572_c_04L持世如是世閒甚深難可得底依世閒法者得世閒法者悕望出世閒法者於世俗語生第一義相者住在二法者不能得入如是法中何以故是人不知世閒知出世閒是皆行二法者持世行二法者不能通達世閒出世閒持世薩摩訶薩如是善知世閒出世閒法亦得世閒出世閒法方便

10. 유위무위법품(有爲無爲法品)
010_0572_c_12L持世經有爲無爲法品第十

“지세야,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법을 잘 알고 유위와 무위의 법의 방편을 얻었다고 말하는가?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유위와 무위의 법을 바르게 관찰하고 선택한다. 무엇이 바르게 관찰하고 선택함인가? 이 유위의 법은 짓는 자가 없으며 받는 자도 없다. 이 유위의 법은 스스로 생하고 스스로 수(數)52)의 가운데 떨어진다. 이러한 까닭에 유위의 법이라고 이름한다. 이 유위의 법은 허망한 인연으로 화합하여 행한다. 무엇을 행이라 하는가? 스스로 수(數)의 가운데 떨어지는 것이다. 두 가지 상의 연으로써 아는 까닭에 유위의 법이 생한다고 이름한다. 이 법은 짓는 자가 없으며 부리는 자도 없다. 이 법은 스스로 생하며, 능히 일으키고 짓는 자가 없다. 이 까닭에 설하여 유위의 법이라고 이름한다.
010_0572_c_13L持世何謂菩薩摩訶薩善知有爲無爲法得有爲無爲法方便持世菩薩摩訶薩正觀擇有爲無爲法云何爲正觀擇是有爲法無有作者無有受者是有爲法自生自墮數中是故名有爲法是有爲法以虛妄因緣和合行何爲行自墮數中以二相緣知故有爲法生是法無有作者無使作者是法自生無能起作者是故說名有爲法
010_0573_a_02L이 모든 유위의 법은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으며 중간에 있지도 않다.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 않으며 허망한 근본과 분별을 좇아 일어나고 무명의 인연 때문에 모두가 있는 바가 없다. 다만 모든 행의 힘으로 해서 작용이 있을 뿐이다. 이 법은 짓는 자가 없으며 일으키는 자도 없다. 이를 유위(有爲)라고 이름한다.
유위라고 하는 것은 곧 묶였다는 뜻이며, 범부의 전도되어 탐착한 바를 따라 설한다. 지혜로운 자는 통달하여 유위의 법을 얻지 않고 유위가 거두는 법을 얻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수(數)하지 않는 바이기 때문에 유위의 법이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지혜로운 자는 유위의 분별을 얻지 않는다. 범부는 세속의 거짓 이름 때문에 이를 유위라고 분별한다. 현성(賢聖)은 일체 모든 법의 이름과 수[名數]를 따르지 않는다. 모든 현성은 모든 법의 이름과 수를 떠난다. 이 까닭에 무위(無爲)를 얻는 자라고 설하며 이름하여 현성이라고 한다.
010_0572_c_23L是諸有爲法不在內不在外不在中閒不合不散從虛妄根本分別無明因緣故皆無所有但以諸行力故有用是法無有作者無有起者是名有爲有爲者卽是繫義隨凡夫顚倒所貪著說智者通達不得有爲不得有爲所攝法智者所不數故名有爲法何以故諸智者不得有爲分爲凡夫世俗假名故分別是有爲聖不隨一切諸法名數諸賢聖離諸法名數是故說得無爲者名爲賢聖
010_0573_b_02L지혜로운 자는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은 모두가 곧 무위라고 통달한다. 이런 까닭에 다시는 모든 업을 일으키고 짓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모든 유위법의 일어나는 상이 허망하고 거짓된 망상임을 지견한다. 이 까닭에 다시는 유위를 일으키고 짓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유위법은 정해진 성품이 없다.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 성품이 없고 일어남과 지음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지세야, 행이 있는 유위의 연(緣)은 없고 그럼으로써 능히 무위에 통달한다. 무위에 통달하면 다시는 유위를 반연하지 않는다. 무엇을 통달이라 하는가? 지혜로운 자는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가 허망하여 근본이 없으며 묶이고 속하는 곳이 없다고 보아 수(數) 가운데 떨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관할 때, 또 다시 유위의 연에 탐착하지 않고, 또 유위의 법을 취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지세야, 유위를 떠나서 무위를 얻을 수 없고 무위를 떠나서 유위를 얻을 수가 없다. 유위의 여실한 상을 곧 무위라고 이름한다. 무슨 까닭인가? 유위 가운데 유위가 없으며 무위 가운데 무위는 없다. 다만 전도되어 상응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유위의 법을 지견하게 하기 위한 까닭에 분별하여 이는 유위의 법이다, 이는 무위의 법이다, 이는 유위의 상이다, 이는 무위의 상이라고 설한다. 이 가운데서 무엇을 유위의 상이라 하는가? 이른바 생하고 멸하고 머물고 변하는 것이다. 무엇을 무위의 상이라 하는가? 이른바 생이 없고 멸이 없고 머무름이 없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유위의 상이며 무위의 상이다. 다만 범부를 인도하고자 하는 까닭에 설한다.
010_0573_a_10L者通達一切有爲法皆是無爲是故不復起作諸業智者知見一切有爲法起相虛誑妄想是故不復起作有何以故有爲法無有定性一切有爲法皆無性無起作何以故持世有行有爲緣而能通達無爲通達無爲者更不復緣有爲云何爲通達者見一切有爲法皆虛妄無有根本無所繫屬不墮數中如是觀時不復貪著有爲緣亦不取有爲法何以故持世非離有爲得無爲非離無爲得有爲有爲如實相卽名無爲何以故有爲中無有爲無爲中無無爲但爲顚倒相應衆生令知見有爲法故別說是有爲法是無爲法是有爲相是無爲相於是中何等爲有爲相所謂生滅住異何等爲無爲相所謂無生無滅無住異是有爲相無爲相但爲引導凡夫故說
지세야, 유위의 법은 생의 상이 없고, 멸의 상이 없고, 머물고 변하는 상이 없다. 이 까닭에 생과 멸과 머무름과 변하는 것의 상은 무상(無相)이며 무생(無生)이라고 설한다. 만약 이 유위의 법에 결정코 세 가지 상이 있다면 부처님은 마땅히 ‘이와 같은 상은 곧 생이며, 이와 같은 상은 곧 멸이며, 이와 같은 상은 곧 머무름이고 변함’이라고 결정적으로 설할 것이다.
지세야, 여래는 일체의 법은 이 모두가 상이 없다고 설한다. 지세야, 생이 없는데 만약 마땅히 상이 있고, 멸이 없는데 만약 마땅히 상이 있으며, 머물고 변함이 없는데 만약 마땅히 상이 있다면, 부처님은 마땅히 결정코 ‘이는 무위의 상’이라고 설할 것이다.
010_0573_b_06L持世有爲法無生相無滅相無住異相是故說生滅住異相無相無生若是有爲法定有三相佛當決定說如是相是生如是相是滅是相是住異持世如如來說一切法皆是無相持世無生若當有相無滅若當有相無住異若當有相佛應決定說是無爲相
지세야, 만약 무위에 상(相)이 있고 설(說)함이 있으면 곧 무위가 아니다. 설함과 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범부는 수법(數法)53)인 까닭으로 해서 유위의 세 가지 상, 이른바 생과 멸과 머물고 변하는 것과 무위의 세 가지 상, 이른바 생이 없고 멸이 없고 머물고 변함이 없는 것을 설한다. 지세야, 만약 사람이 유위와 무위의 법에 통달하고 지견하면 이 사람은 다시는 생하고 멸하고 머물고 변하는 일이 없다. 이 까닭에 무위를 얻는 자라고 설한다.
010_0573_b_13L持世若無爲有相有說卽非無爲以說相故但凡夫以數法故說有爲三相所謂生滅住異無爲三相所謂無生無滅無住異若人通達知見有爲無爲法是人更不復有生滅住異是故說得無爲
010_0573_c_02L지세야, 생멸이란 것은 곧 모였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본다는 뜻이다. 만약 법에 모이는 일이 없으면 사라지는 일도 없다. 만약 모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곧 물러나는 일도 없다. 또한 머물고 변하는 일도 없다. 지세야, 이것을 유위를 여실하게 지견한다고 이름한다. 만약 사람이 여실하게 유위를 지견하면 곧 수(數) 가운데 떨어지지 않는다. 이른바 생(生)과 멸(滅)과 머무름[住]과 변함[異]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유위와 무위의 법을 사유하면 유위의 법이 무위의 법과 합하는 것을 보지 않는다. 또 무위의 법이 유위의 법과 합하는 것을 보지 않으며, 다만 이러한 생각을 한다.
‘유위법(有爲法)의 여실한 상이 곧 무위이니 다시는 분별할 바가 없다. 만약 유위와 무위의 법을 분별하지 않으면 이는 곧 무위법(無爲法)이다.’
만약 이는 유위이다, 이는 무위이다 분별하면 곧 무위에 통달할 수가 없다. 일체의 분별을 끊는 것, 이것을 무위에 통달한다고 이름한다. 여실하게 연의 성품에 통달하여 모든 연을 끊는 까닭에 수(數)에 있지 않고 수가 아님[非數]에도 있지 않다.
010_0573_b_19L持世生滅者卽是見集沒義若法無集則無有沒若不起集則不有退亦無住異持世是名有爲如實知見若人如實知見有爲則不墮數中謂生滅住異菩薩如是思惟有爲無爲法不見有爲法與無爲法合亦不見無爲法與有爲法合但作是念爲法如實相卽是無爲則更不復有所分別若不分別有爲無爲法卽是無爲法若分別是有爲是無爲則不能通達無爲斷一切分別是名通達無如實通達緣性斷諸緣故不在數不在非數
지세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유위와 무위의 법의 방편이라고 이름한다. 이른바 모든 법에 있어서 머무르는 곳이 없고 묶이는 곳이 없으며, 또 혹은 유위와 혹은 무위의 법을 탐착하여 받지 않는다.”
010_0573_c_08L持世是名菩薩摩訶薩有爲無爲法方便所謂於諸法無所住無所繫亦不貪受若有爲若無爲法

11. 본사품(本事品)
010_0573_c_10L持世經本事品第十一

“지세야, 만약 보살마하살이 능히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쌓임[五陰]을 잘 알고, 열여덟 가지 성품[十八性]을 잘 알며, 열두 가지 입[十二入]을 잘 알고, 12인연(因緣)을 잘 알고, 4념처(念處)를 잘 알고, 5근(根)을 잘 알고, 8성도분(聖道分)을 잘 알고,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잘 알고, 유위와 무위의 법을 잘 알면 마땅히 모든 법의 실상을 잘 알게 된다. 또 일체 법의 글과 말과 글귀를 잘 분별하며, 또 염력(念力)54)을 얻어 이 염력으로써 몸을 변화시켜[轉身] 끊이지 않는 염(念)55)을 성취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010_0573_c_11L持世若菩薩摩訶薩能如是善知五善知十八性善知十二入善知十二因緣善知四念處善知五根善知八聖道分善知世閒出世閒法善知有爲無爲法當得善知諸法實相善分別一切法文辭章句亦得念力以是念力轉身成就不斷念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010_0574_a_02L지세야, 과거 무량한 아승기겁의 그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염부단금수미산왕(閻浮檀金須彌山王)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셨다. 지세야, 이 염부단금수미산왕부처님은 수명이 다섯 겁으로서 무량한 성문의 무리가 있었다. 그 부처님의 국토는 청정하게 장엄되어 있고 풍요하고 안락하고 안온하였다. 그곳의 모든 중생들은 쾌락을 구족하였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적었고, 교화하기가 쉬웠으며 제도하기가 쉬웠고 깨끗하게 하기가 쉬웠다.
010_0573_c_19L持世過去無量阿僧祇劫爾時有佛號閻浮檀金須彌山王如來應供遍知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世尊持世是閻浮檀金須彌山王佛壽命五劫有無量聲聞衆其佛國土淸淨嚴飾豐樂安隱其諸衆生具足快樂少於貪欲瞋恚愚癡易化易度易淨持世是閻浮檀金須彌山王佛爲諸菩薩亦說是斷衆生疑菩薩藏經
지세야, 이 염부단금수미산왕부처님은 모든 보살을 위하여 역시 이 ‘중생의 의혹을 끊는 보살장경(菩薩藏經)’을 설하였다. 지세야, 이때 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을 보광(寶光)이라 하였다. 이 음(陰)과 계(界)와 입(入)과 연(緣)과 4념처(念處)와 5근(根)과 8성도분(聖道分)과 세간과 출세간과 유위와 무위의 법의 방편을 듣고 즉시 정진을 내어 20억 년 끝에 나쁜 마음과, 혹은 탐욕과 혹은 성냄과, 혹은 어리석음과 혹은 이양(利養)과, 혹은 음식과, 혹은 의발(衣鉢)을 내지 않았다. 다만 이와 같은 법의 방편문에 들기 위해서 항상 정진에 힘썼다.
010_0574_a_06L持世時有菩薩名曰寶光聞是陰界入四念處五根八聖道分世閒出世閒有爲無爲法方便卽時發於精進二十億歲終不生惡心若貪欲若瞋恚若愚癡若利養若飮食若衣鉢但爲入如是法方便門故常勤精進
지세야, 이 보광보살은 염부단금수미산왕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그 형체와 수명이 다하기까지 항상 범행(梵行)을 닦고 목숨이 다한 뒤에는 다시 그 부처님 국토의 사람 가운데 나고, 나이 어려서 목숨이 다하고는 곧 다시 그 부처님 계신 곳에 났으며 범행을 닦아 하나하나의 겁에 있어서 5백의 생사(生死)가 있었다. 최후에 염부단금수미산왕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자 할 때 태어났다.
010_0574_a_12L持世是寶光菩於閻浮檀金須彌山王佛所盡其形壽常修梵行命終之後還生其佛國土人中年少命終卽復還生於其佛所修行梵行於一一劫五百生死最後生閻浮檀金須彌山王佛欲涅槃時
다섯 번째 겁에서 이와 같은 다문(多聞)의 법을 성취하였다. 또 이와 같은 모든 법의 실상의 방편을 얻어서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모든 법을 모두 능히 기억하였다. 이와 같이 염력(念力)을 얻었기 때문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제가 모든 법을 널리 연설하도록 하소서. 곧 그 세상 중에서 무량하고 무변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길 안에 머물게 하겠습니다.’
010_0574_a_18L在第五劫成就如是多聞法得如是諸法實相方便所從佛聞諸法皆能憶念得如是念力故白佛言聽我廣演諸法卽於其世中度脫無量無邊衆生令住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中
010_0574_b_02L이 염부단금수미산왕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법을 지니기 위해서 보광보살을 호념(護念)56)하여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법이 1겁을 머물렀다. 이 사람은 이 1겁 동안의 5백 세(世) 중에 항상 인간으로 태어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으며, 또 항상 이 모든 법의 실상에 있어서 스스로 증장(增長)함을 얻었으며, 또 다시 무량하고 무변한 중생을 이익되게 하였다.
010_0574_a_23L是閻浮檀金須彌山王佛入涅槃時爲持法故護念寶光菩薩佛滅度後法住一劫是人於是一劫五百世中常生人閒出家學道亦常於是諸法實相得自增長亦復利益無量無邊衆生
지세야, 이 보광보살은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만억(萬億)의 모든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고 끝에 가서는 무량광(無量光)부처님이 그를 위하여 수기하기를, 아승기겁을 지나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아승기겁 중에 다시 백천만억(百千萬億) 나유타(那由他)의 모든 부처님을 만날 것이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성불할 것이니, 명호를 일체의결정장엄(一切義決定莊嚴)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라 할 것이며,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보살 대중과 무량한 성문승(聲聞僧)이 있고, 부처님의 수명은 2겁(劫)이며, 그 부처님의 국토는 풍요롭고 즐겁고 안온한 것으로 두루 모두 장엄될 것이라고 하였다.
010_0574_b_05L持世是寶光菩薩是展轉得値萬億諸佛末後無量光佛爲其授記過阿僧祇劫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於阿僧祇劫中更値百千萬億那由他諸佛後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成佛號一切義決定莊嚴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世閒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世尊有無量無邊阿僧祇菩薩衆無量聲聞僧佛壽二劫其佛國土豐樂安隱普皆莊嚴
지세야, 이 까닭에 보살이 만약 이와 같은 법 가운데서 방편을 잘 알고자 하면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부지런히 구하고 독송하여 이와 같은 법을 닦아 모아야 한다. 또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모든 법의 방편을 얻고자 하는 까닭에 네 가지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한다. 무엇을 넷이라 하는가? 하나는 출가(出家)이고, 둘은 홀로 수행함이며, 셋은 지계(持戒)가 청정함이며, 넷은 게으른 마음[懈怠心]을 없애는 것이다. 이것을 넷이라 한다. 보살에게는 이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다문(多聞)을 부지런히 구하고 인욕에 안주하면 마땅히 신속하게 네 가지 법을 만날 수가 있게 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나는 염부제(閻浮提)의 한 복판에 나는 것이며, 둘은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며, 셋은 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며, 넷은 죄업의 장애를 없애는 것이다. 이것을 넷이라 한다.
010_0574_b_15L持世是故菩薩若欲得如是法中善知方便當勤行精進勤求讀誦修集如是之法又復菩薩摩訶薩欲得如是諸法方便故四法中勤行精進何等爲四一者出二者獨行三者持戒淸淨四者除懈怠心是爲四菩薩有是四法勤求多聞安住忍辱當疾得値遇四法等四一者生中閻浮提二者得値佛三者隨法行四者除罪業障是爲四
010_0574_c_02L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법 중에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여 마땅히 청정한 보시의 힘과 청정한 지계와 청정한 인욕과 청정한 정진과 청정한 선정과 청정한 지혜의 힘을 얻는다. 보살마하살은 이 법 중에 머물러 속히 이와 같은 방편의 힘을 얻는다.
010_0574_b_24L又復持世菩薩摩訶薩如是法中勤行精進當得淸淨布施力淸淨持淸淨忍辱淸淨精進淸淨禪定淨智慧力菩薩摩訶薩住是法中疾得如是方便力
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비록 두타(頭陀)57)의 자세한 법을 행한다 하여도 능히 항상 중생에 대한 대비심(大悲心)이 있다. 이 사람은 대비심에 들어 이 법의 방편 중에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한다.
010_0574_c_06L持世菩薩摩訶薩雖行頭陁細法亦能常於衆生有大悲心是人入大悲心於是法方便中勤行精進
지세야, 또 보살마하살이 있어서 이와 같은 법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에 들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해야 한다. 무엇을 다라니의 문에 드는 까닭에 부지런히 정진을 행한다 하는가? 이른바 일체 법의 무량한 연을 잘 관하고, 일체 법의 무량한 방편을 관하고, 또 무량한 방편이 일어나는 것을 관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삼매문(三昧門)의 방편으로써 모든 법문의 무량한 연(緣)에 잘 들고, 또 무량한 방편에 들며, 또 무량한 방편이 일어나는 것에 든다. 이 법 중에서 힘을 얻는 까닭에 모든 법의 실상을 잘 알며, 또 일체의 글과 말과 글귀를 잘 분별한다. 또 염력(念力)을 얻고, 또 몸을 변화시켜 끊이지 않는 염(念)과 물러서지 않는 법을 성취함을 얻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010_0574_c_09L持世復有菩薩摩訶薩欲得如是法當入諸陁羅尼門勤行精進何謂爲入陁羅尼門故勤行精進所謂善觀一切法無量緣觀一切法無量方便亦觀無量方便起如是觀時以三昧門方便善入諸法門無量緣亦入無量方便亦入無量方便起於是法中得力故善知諸法實相亦善分別一切文辭章句亦得念力得轉身成就不斷念不退法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다라니의 문에 드는 까닭에 일체 모든 법의 마땅함을 따르는 인연에 통달하고, 하나의 인연으로 능히 천 가지 인연에 들며, 지혜의 힘에 따라서 모든 법의 방편을 얻는다.
010_0574_c_20L又復持世薩摩訶薩入諸陁羅尼門故通達一切諸法隨宜因緣以一因緣能入千種因緣隨智慧力得諸法方便
010_0575_a_02L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법 중에서 부지런히 정진하는 까닭에 일상문(一相門)의 삼매(三昧)58)에 들고 일상문의 삼매를 얻는 까닭에 무량한 상문(相門)의 삼매에 든다. 이와 같이 들기를 마치고서 갖가지 인연의 방편인 까닭으로 해서 능히 이 모든 법의 문에 든다. 이와 같이 모든 보살은 일체의 모든 법의 문에 들기를 마치고서 마땅히 일체의 모든 법의 방편을 얻는다.
010_0574_c_23L又復菩薩摩訶薩如是法中勤精進故入一相門三昧得一相門三昧故無量相門三昧如是入已以種種因緣方便故能入是諸法門如是諸菩薩入一切諸法門已當得一切諸法方便
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많은 지혜를 행하는 까닭에 모든 선정의 상을 잘 알고, 또 무연(無緣)삼매를 잘 알며, 이 삼매의 힘 때문에 능히 무량한 연과 무량한 선정이 일어나는 것을 잘 안다. 이 보살은 이 지(地) 중에 머물러 능히 일체의 모든 법의 실상의 방편을 얻는다.
010_0575_a_06L又復持世菩薩摩訶薩多行智慧故善知諸禪定相亦善知無緣三昧是三昧力故能善知無量緣無量禪定起是菩薩住此地中能得一切諸法實相方便
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항상 세간의 연의 방편을 관하고, 항상 유위법의 연의 방편을 관하며, 항상 세속의 진리[世諦]의 연의 방편을 관한다. 또 항상 무너지고 흩어지는 일체 법의 연(緣)의 방편을 부지런히 행하고, 또 탐착하는 곳이 없다.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법을 닦아 모아 속히 모든 법의 실상의 방편을 얻는다.
010_0575_a_10L又復持世菩薩摩訶薩常觀世閒緣方便常觀有爲法緣方便常觀世諦緣方便亦常勤行壞散一切法緣方便亦無貪著處是菩薩修集如是法疾得諸法實相方便
또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여 방편의 힘을 일으키고, 또 그리하여 항상 모든 법의 실상을 관하여 세속의 즐거움에 의지하지 않고 또 세간의 법을 잡되게 행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법을 성취하면 속히 모든 법의 실상을 얻는다. 또 일체 법의 글과 말과 글귀를 잘 분별하고, 또 염력을 얻고, 또 몸을 변화시켜 끊이지 않는 염을 성취함을 얻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010_0575_a_15L又復持世菩薩摩訶薩勤行精進起方便力而亦常觀諸法實相依止世樂亦不雜行世閒之法成就如是法者疾得諸法實相亦善分別一切法文辭章句亦得念力亦得轉身成就不斷念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지세야, 이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모든 법의 피안(彼岸)으로 건너는 것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이 법에 있어서 설함과 같이 수행해야 한다. 지세야, 너희들이 이 법 중에서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면 너희들은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이 법에 있어서 걸림이 없는 지혜를 얻을 것이다.
010_0575_a_21L持世是故菩薩摩訶薩欲得度如是諸法彼岸當於是法如說修行持世汝等於是法中勤行精進汝等不久當於此法得無㝵智慧
010_0575_b_02L지세야, 과거 무량하고 무변하고 불가사의한 아승기겁의 그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명호는 무량광덕고왕(無量光德高王)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조어장부ㆍ천인사ㆍ불세존이셨다. 이 무량광덕고왕부처님의 수명은 1겁이며, 그 부처님의 국토는 7보(寶)의 비단으로 그 위를 덮고 7보의 온갖 다라수(多羅樹)59)로 널리 세계를 장엄하였다. 이 모든 다라수는 또한 다시 7보의 비단으로 그 위를 덮고 하나하나의 나무 아래에 사자좌를 폈으며, 모든 다라수는 모두가 하늘 옷을 내고 모든 자리는 다 보배 유리와 염부단금(閻浮檀金)60)과 붉은 진주로 이루어졌다. 모든 다라수는 네 변이 모두 향나무와 꽃나무로 둘러싸여 장엄되어 있었다. 하나하나의 나무 아래에는 각각 못이 있는데 여덟 가지 공덕의 물이 그 안에 충만하였다. 모든 못은 다 파리(頗梨)와 차거(車渠)와 붉은 진주로 이루어졌으며, 모든 못의 물 위에는 푸르고 붉고 희고 빨간 연꽃이 있어 남김없이 물위를 덮고, 모든 못은 다 7보로 난간을 하였다.
010_0575_a_24L持世過去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祇劫爾時有佛號無量光德高王如來正遍知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調御丈夫天人師世尊是無量光德高王佛壽命一劫其佛國土以七寶網羅覆其上普以七寶諸多羅樹莊嚴世界是諸多羅樹亦復以七寶網羅覆其上一一樹下敷師子座多羅樹皆出天衣諸座皆以琉璃寶閻浮檀金赤眞珠所成諸多羅樹四邊皆有香樹華樹圍繞莊嚴一一樹下各各有池八功德水充滿其中池皆以頗梨車璖赤眞珠所成諸池水上皆有靑赤白紅蓮華遍覆水上諸池皆以七寶爲欄楯
지세야, 그 부처님의 국토는 모두가 이와 같은 온갖 보배로 세계를 장엄하고 있었다. 사방에는 또 보배 나무가 있고, 도리천(忉利天)의 파리야다라가(波利耶多羅迦)와 지비타라(持毘陀羅)의 나무와 같았다. 이와 같은 천만억 수의 보배 나무가 세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모든 보배 나무의 광명은 모든 해와 달의 광명을 덮어 가리고 또 나타나지 않게 하였다.
010_0575_b_16L持世彼佛國皆以如是衆寶莊嚴世界四邊復有寶樹如忉利天波利耶多羅迦持毘陁羅樹如是寶樹千萬億數圍繞世界是諸寶樹光明障蔽一切日月光明不復現
지세야, 모든 다라수와 모든 보배 그물은 자연히 모두 갖가지 묘한 음성을 내었는데, 마치 하늘의 기녀(伎女)가 노래하는 소리와 같았다. 그 부처님 국토는 항상 이와 같은 미묘한 음성을 내었고, 3악도가 없었으며, 또 3악도라는 이름도 없었다.
010_0575_b_21L持世諸多羅樹及諸寶自然皆出種種妙音如天伎女歌頌之聲其佛國土常出如是微妙音無三惡道亦無三惡道名
010_0575_c_02L지세야, 이 무량광덕고왕부처님은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많이 설하였다. 이른바 반야바라밀과 보살장(菩薩藏)으로서 일체 중생의 의혹을 끊고 일체 중생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경이다.
010_0575_b_24L持世無量光德高王佛爲諸衆生多說如是之法所謂般若波羅蜜及菩薩藏斷一切衆生疑喜一切衆生心經
지세야, 그 무량광덕고왕부처님이 법을 설할 때, 하루 동안에 무량 백천만억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나서 발심한 자는 모두 보리를 돕는 법[助菩提法]을 구족함을 얻었다.
010_0575_c_04L其無量光德高王佛說法時一日之中無量百千萬億衆生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已發心者皆得具足助菩提法
지세야, 이 무량광덕고왕부처님은 이 인연으로써 교화하여 무량하고 무변한 중생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게 하였다. 그 부처님의 국토에는 보살마하살의 수가 매우 많았다.
010_0575_c_08L持世是無量光德高王以是因緣教化成就無量無邊衆生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其佛國土菩薩摩訶薩其數甚多
지세야, 그 부처님이 멸도(滅度)한 뒤, 법이 머물기를 반 겁이었다. 이 무량광덕고왕부처님이 멸도한 뒤 법이 다하고자 할 때, 아래쪽으로 열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 보살이 있었는데 무량의(無量意)라고 이름하였다. 목숨이 다하여 와서 태어나 나이 열여섯에 비로소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무량광덕고왕부처님의 법이 없어지고자 할 때에 이 보살마하살의 음(陰)ㆍ계(界)ㆍ입(入)의 방편을 해설한 경을 들었다. 이 무량의보살은 이 경을 듣고 나서 큰 정진을 발하여 이 법 중에서 다하고 그 끝에 이르렀으며 깊은 방편의 힘을 성취하였다. 이 보살은 선근(善根)의 인연 때문에 그 목숨이 다하여 20억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고, 모두 이와 같은 법을 성취할 수 있었다. 항상 숙명을 알고 어려서 출가하고 범행을 수행하여 항상 염력을 얻고 세세(世世)에 이 같은 법을 떠나지 않았다. 세세에 끊이지 않는 염(念)을 성취하고, 그런 뒤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어 명호를 무량광장엄왕(無量光莊嚴王)부처님이라고 하였다.
010_0575_c_11L持世彼佛滅後法住半劫是無量光德高王佛滅度之後法欲盡時下方過十佛世有菩薩名無量意命終來生始年十六出家學道於無量光德高王佛法欲滅時聞是菩薩摩訶薩解說是陰界入方便經是無量意菩薩聞此經已發大精進於是法中盡到其邊成就深方便力是菩薩善根因緣故於彼命終得値二十億佛皆得成就如是之法常識宿命童眞出家修行梵行常得念力世世不離如是之法世世成就不斷念然後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號無量光莊嚴王佛
010_0576_a_02L지세야, 이 까닭에 보살마하살이 만약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고, 만약 속히 일체의 지혜를 구족함을 얻고자 하면 내가 멸도한 뒤, 뒤의 5백 세[後五百歲] 때인 나쁜 세상에서도 마땅히 부지런하게 지키고 지녀 큰 서원을 발해야 한다. 마땅히 대욕(大欲)과 대정진(大精進)과 큰 방일하지 않음[大不放逸]을 내어야 한다. 후세에 있어서 항상 마땅히 이와 같은 경들을 지키고 지녀야 한다.”
010_0575_c_24L持世是故菩薩摩訶薩若欲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若欲疾得具足一切智慧於我滅後後五百歲惡世之中當勤護持發大誓願應生大欲大精進大不放逸於後世中常當護持如是等經
이때 발타바라가라가달다(跋陀婆羅伽羅訶達多)보살 등이 상수(上首)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뒤의 5백 세에 법이 멸하려고 할 때, 마땅히 이와 같은 경들을 수호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독송하고 듣고 받겠습니다. 또 마땅히 다시 남을 위하여 널리 설하겠습니다.”
010_0576_a_07L爾時跋陁婆羅伽羅訶達多菩薩等爲上首從坐而起向佛合掌白佛言世尊我等於佛滅後後五百歲法欲滅時我等當爲守護如是等經勤行精進讀誦聽受亦當復爲他人廣說
또 약간의 천(千) 수의 보살이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존안(尊顔)을 우러러보면서 이러한 원을 발하여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후세의 뒤의 5백 세에 이 서원을 짓겠습니다. 이와 같은 매우 깊고 오염됨이 없는 모든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서 능히 보살의 모든 선한 공덕을 낳고, 능히 모든 보살의 보리를 돕는 법을 구족할 수 있도록 하소서. 저희들은 마땅히 함께 지키고 지니며, 이와 같은 법을 듣겠습니다. 마땅히 크게 청정하여 그 마음은 환희하고 전심(專心)으로 부지런히 구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겠습니다.”
010_0576_a_12L復有若干千數菩薩從坐而起合掌向佛瞻仰尊顏發是願言世尊我等後世後五百歲作是誓願於如是等甚深無染污諸佛所聽能生菩薩諸善功德能具足諸菩薩助菩提法我等當共護持聞如是法當大淸淨其心歡喜專心勤求受持讀誦
부처님께서 문득 미소 지으셨다. 곧 이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는 무량한 광명이 그 안에 가득 차고, 삼천대천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이때 아난(阿難)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지금 미소 지으셨으며 땅이 크게 진동하였습니까?”
010_0576_a_19L佛便微笑卽時三千大千世界無量光明遍滿其中三千大千世界六種震動爾時阿難從坐而起偏袒右肩右膝著地合掌白佛言世尊何因緣故今者微笑地大震動
010_0576_b_02L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들 보살이 큰 서원을 발하여 후세에 이와 같은 매우 깊고 오염됨이 없는 법을 지키고 지니는 것을 보느냐? 아난아, 이 모든 보살은 다만 금세(今世)에서만 이 서원을 발한 것이 아니다. 아난아, 내가 기억하기에는 이 모든 보살은 무량하고 무변한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이와 같은 서원을 발하고 세 때[三時]61)에 모든 부처의 법을 지키고 지니며, 또 능히 무량한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지금도 역시 세 때에 나의 법을 지키고 지닌다. 지금 현재와 내가 멸도한 뒤 법이 멸하려고 할 때에도 역시 무량한 중생을 크게 이익되게 한다. 지세도 발타바라(跋陀婆羅) 등과 같이 세 때에 나의 법을 지키고 지니며, 또 이 현겁(賢劫) 중에서 세 때에 모든 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지니며, 또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세 때에 이와 같은 법을 지키고 지닐 것이다.
010_0576_a_24L佛告阿難汝見此等菩薩發大誓願後世護持如是甚深無染污法不阿難是諸菩薩非但今世發是誓願阿難我念是諸菩薩於無量無邊諸佛所發如是誓願三時護持諸佛之法亦能利益無量衆生今者亦復三時護持我法於今現在及我滅後法欲滅時亦大利益無量衆生持世如跋陁婆羅等三時護持我法亦復於此賢劫之中三時護持諸佛之法亦於未來諸佛所三時護持如是之法
아난아, 내가 지금 이 사람이 이와 같은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을 찬탄하여 설하지만 설해도 다함이 없으니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이익되게 하며 안온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내가 이 사람의 이와 같은 공덕을 모두 설하면 사람들은 믿지 못할 것이다. 만약 사람이 부처님의 말을 믿지 않으면 이 사람은 긴 밤 동안에 이익을 잃을 것이며, 모든 고뇌를 받아서 나쁜 길에 떨어질 것이다.
010_0576_b_12L阿難我今讚說是人成就如是無量功德說不可盡憐愍利益安隱衆生阿難若我悉說是人如是功人不能信若人不信佛語是人長夜失於利益受諸苦惱墜墮惡趣
아난아, 내가 지금 이들 보살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대강 설하면,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중생이 모두 큰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어도 그중에 한 사람이 있어 모든 중생에게,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이제 너희들 하나하나를 대신해서 이 큰 지옥의 괴로움을 받겠다’라고 말하면, 이 사람은 즉시 지옥으로부터 중생을 구출하고, 하나하나 모두를 위하여 천만(千萬) 세 동안 지옥의 괴로움을 받는다.
아난아, 네 뜻에 어떠하냐? 이 사람은 크게 이익되고 크게 안락하겠느냐?”
010_0576_b_16L我今粗說是等菩薩利益衆生使如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皆墮大地獄中中有一人語諸衆生汝等莫怖我今一一代汝受此大地獄苦是人卽時出地獄衆生一一皆爲多千萬歲受地獄苦阿難於汝意云何是人爲大利益大安樂不
아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크게 이익되고 크게 안락하겠습니다.”
010_0576_b_23L阿難言爲大利益大安樂
010_0576_c_02L“아난아, 이 사람은 모든 중생을 구출해 내고서 그 힘을 나타내어 모두로 하여금 세간에서 제일가는 쾌락을 성취하게 한다. 아난아, 이 사람을 능히 은혜가 있고, 능히 중생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하겠느냐?”
010_0576_b_24L阿難是人出諸衆生已現其力勢皆使令得成就世閒第一快樂阿難是人爲能有恩能與衆生樂不
아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익되게 하는 것은 말로 설할 바가 아닙니다.”
010_0576_c_04L阿難言世尊是人所利非言所說
“아난아, 내가 지금 실로 이 발타바라가라가달다보살 등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설하면, 이 사람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은 이익되고 안락한 이 두 가지 일이 산수(算數)나 비유(譬喩)로는 비할 수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 사람이 즐겁게 하는 도구는 모두가 이 유위와 서로 어긋나는 법으로서 싫증나거나 만족함[厭足]을 위하지 않는 까닭이며, 욕심을 떠난 것[離欲]을 위하지 않는 까닭이며, 지혜를 위하지 않는 까닭이며, 사문의 과(果)를 위하지 않는 까닭이며, 열반을 위하지 않는 까닭이다.
010_0576_c_05L阿難我今實說是跋陁婆羅伽羅訶達多菩薩等利益衆生是人利益衆生是二利益安樂之事筭數譬喩不可爲比何以故阿難人樂具皆是有爲相違之法不爲厭足故不爲離欲故不爲智慧故不爲沙門果故不爲涅槃故
아난아, 이 모든 보살들은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위없는 즐거움을 주며, 모든 지혜로운 사람이 즐겨 불도를 구하는 것을 위하여 모든 불사(佛事)를 짓고, 아직 바른 지위[正位]에 들지 못한 자에게는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얻게 하고 불법(佛法)으로써 모든 보살을 교화하고 가르침을 보여 이익되고 기쁘게 한다.
아난아, 이 모든 보살은 능히 가르침을 보여 이익되고 기쁘게 하며, 모든 보살의 무리는 부처님의 씨[佛種]를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지혜의 씨[一切智種]를 지키기 위한 까닭에 세간에 머문다.
010_0576_c_11L阿難是諸菩薩等利益衆生與無上樂一切智人樂爲求佛道者皆作佛事未入正位者令得聲聞辟支佛地以佛法化諸菩薩示教利喜阿難是諸菩薩能示教利喜諸菩薩衆爲不斷佛種故守護一切智種故住於世閒
010_0577_a_02L아난아, 이 사람은 과거에 본래 보살의 길을 행할 때, 무량한 백천만억 나유타 겁에 모두 부처님이 있게 하였으며 단절되지 않게 하였다. 또 미래의 무량한 백천만 나유타 겁에도 모두 부처님이 있게 하고 또 단절되지 않게 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 모든 보살은 본래 보살의 길을 행할 때, 이미 무량한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불도에 머물게 하였고, 이 모든 보살은 세세(世世)에 지키고 지녀 교화하였으며 백천만억의 모든 부처님을 성취하였으며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였다. 이로부터 이후, 또 다시 무수한 백천만억의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머물게 하였다. 교화의 힘 때문에 불법(佛法)을 구족하고, 또 모두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010_0576_c_17L阿難人過去本行菩薩道時無量百千萬億那由他劫皆使有佛不令斷絕於未來無量百千萬那由他劫皆使有佛亦不斷絕何以故阿難是諸菩薩本行菩薩道時已令無量諸佛住於佛道是諸菩薩世世護持教化成就百千萬億諸佛皆使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從是以後亦復教化無數百千萬億衆生令住佛道教化力故具足佛法亦皆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난아, 이 발타바라 등은 중생에게 부처님의 즐거움과 일체 지혜의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까닭에 부지런히 정진을 행한다. 아난아, 만약 사람이 ‘실로 누가 이 모든 보살의 부모로서 사의주(舍依洲)를 구제하여 모든 보살을 낳는가?’라고 말하면, 마땅히 이 발타바라가라가달다 등의 5백 보살이 이들이라고 말해야 한다.
010_0577_a_05L阿難是跋陁婆羅等爲與衆生佛樂一切智慧樂故勤行精進阿難若人實說何等是諸菩薩父母諸菩薩當說是跋陁婆羅伽羅訶達多等五百菩薩是
아난아, 만약 사람이 ‘실로 누가 이 모든 보살의 씨앗인가?’고 물으면, 마땅히 발타바라가라가달다 등의 5백 사람이 이들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은 선남자들은 부처님의 씨를 끊지 않고 일체의 지혜의 씨를 끊지 않게 하기 위한 까닭에 세간에 머문다. 이 선남자들은 또 후세의 뒤의 5백 세에 이 교화 방편의 힘인 까닭에 즐거움의 인연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3악도(惡道) 중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또 무량한 백천(百千)의 중생으로 하여금 보살승(菩薩乘)에 머물게 한다.
010_0577_a_10L阿難若人實問等是諸菩薩種當言跋陁婆羅伽羅訶達多等五百人是如是善男子等不斷佛種不斷一切智慧種故住於世閒是善男子等亦於後世後五百以是教化方便力故以樂因緣令諸衆生不墮三惡道中亦令無量百千衆生住菩薩乘
아난아, 약간의 천 부처님이 이 선남자들의 공덕을 설한다 해도 다함을 얻을 수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이 선남자들은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010_0577_a_17L阿難若干千佛說是善男子等功德不可得盡何以故是善男子等成就如是不可思議功
아난아, 내가 무량한 백천만억의 아승기겁에 모은 법장(法藏)을 이 선남자들이 능히 받아 지키고 지닐 것이다. 아난아, 나는 지금 이 무량한 억(億) 겁에 모은 법보(法寶)를 이 사람에게 부촉[囑累]한다. 이 선남자들은 무량한 아승기의 국토 중에 현재하는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는 바가 될 것이다.
010_0577_a_20L阿難我於無量百千萬億阿僧祇劫所集法藏是善男子等能受護持阿難我今以是無量億劫所集法寶囑累是人是善男子等爲無量阿僧祇國土中現在諸佛之所護念
010_0577_b_02L아난아, 이 선남자들은 모든 하늘과 사람과 세간의 예(禮)를 받음에 합당하다.
아난아, 이 사람을 시방의 천 부처님이 법을 설할 때, 항상 찬탄할 것이다.
010_0577_a_24L阿難是善男子等一切天人世閒所應禮阿難是人十方千佛講說法時常所讚嘆
아난아, 나는 이미 인가하였다. 일체 중생의 의혹을 끊기 위한 까닭이다. 만약 사람이 뒤의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이해하고 사람을 위하여 널리 설하면, 마땅히 알라. 이 선남자와 선여인은 일체종지(一切種智)62)에 가까이 이른다. 어떤 사람이 뒤의 말세에 내지 이와 같은 깊은 경을 들을 수 있어 믿고 이해하고 서원을 발하면 나는 모두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記)를 줄 것이다. 만약 후세의 뒤의 5백 세에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이 경을 지키고 지니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나는 지금 또한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으로써 이에 부촉할 것이다. 만약 성문(聲聞)의 사람이 이와 같은 깊은 법을 믿고 받아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으면 나는 수기를 주리라. 뒤에 마땅히 미륵부처님의 회상(會上)을 만날 것이라고. 만약 불도를 구하는 자가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받아 지니고 믿고 이해하면, 이 사람들 모두는 미륵불에게서 수기를 받고 본원(本願)으로 해서 출가하여 도를 배울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만약 후세의 뒤의 5백 세 때에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의 선근은 매우 날카로우리라.”
010_0577_b_04L阿難我已印可爲斷一切衆生疑故若人於後末世受持是經讀誦通利爲人廣說當知是善男子女人近一切種智有人於後末世乃至得聞如是深經信解而發誓願皆與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於後世後五百歲生信解心勤行精進護持是經是善男子善女人我今亦以是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而囑累之若聲聞人信受如是深法無違逆我與受記後當得値彌勒佛若求佛道者聞如是法受持信解人皆爲彌勒佛所授記以本願故出家學道阿難當知是善男子善女人若於後世後五百歲時於是法中勤行精進當知是人善根猛利

12. 촉루품(囑累品)
010_0577_b_19L持世經囑累品第十二

이때 지세(持世)보살마하살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을 이익되게 하기 위한 까닭에 이 경을 호념(護念)하여 주십시오. 보살마하살이 만약 후세에서 이 법을 들을 수 있으면 마음이 청정하고 기쁘고 즐거울 것입니다. 또 이와 같은 법을 구족하고자 하는 까닭에 부지런히 정진을 행할 것입니다.
010_0577_b_20L爾時持世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惟願利益諸菩薩摩訶薩故護念是菩薩摩訶薩若於後世得聞是法心淨喜樂亦爲具足如是法故勤行精進
010_0577_c_02L이때 세존께서는 이 경을 호념하셨다. 즉 신력(神力)으로써 이 삼천대천세계로 하여금 향기가 충만하게 하셨으며, 아직 일찍이 없었던 곳에서 일체 중생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서로 마주하였다. 부처님께서는 호념하기를 마치시고서 지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세야, 나는 이제 이 『법인품경(法印品經)』을 호념하였다. 일체의 의혹을 끊는 까닭이다. 지세야, 만일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는 자가 있으면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일체의 지혜를 얻으리라. 오직 본원을 없앤다. 나는 이제 또 이 사람에게 수기를 주리라. 속히 일체의 지혜를 구족함을 얻는 까닭이다.
010_0577_c_02L爾時世尊護念是經卽以神力令此三千大千世界香氣遍滿所未曾有一切衆生慈心相向佛護念已告持世菩薩持世我今護念是法印品經斷一切疑故持世若有能受持讀誦是經者不久當得一切智慧除本願我今亦與是人受記疾得具足一切智慧故
지세야,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 『법인품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사유하고 사람을 위하여 널리 설하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속히 5음(陰)의 방편과 12입(入)과 18계(界)와 12인연(因緣)과 4념처(念處)와 5근(根)과 8성도분(聖道分)과 세간과 출세간의 법과 유위와 무위의 법의 방편을 얻는다. 또 속히 모든 법의 실상을 얻고, 또 속히 일체 법의 글귀를 분별함을 얻는다. 또 속히 염력을 얻고, 또 속히 몸을 변화시켜 끊이지 않는 염(念)을 성취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010_0577_c_09L持世菩薩摩訶薩若受持讀誦是法印品經思惟廣爲人是人不久當疾得五陰方便十二十八界十二因緣四念處五根聖道分世閒出世閒法有爲無爲法方便亦疾得諸法實相亦疾得分別一切法章句亦疾得念力亦疾得轉身成就不斷念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지세야, 이 경은 후세에 능히 중생을 위하여 큰 법의 빛이 되고 큰 지혜의 빛이 되고 복덕(福德)의 인연이 된다. 또 능히 모든 보살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돕는 법을 구족하게 한다.
010_0577_c_17L持世是經後世能與衆生作大法明大智慧光福德因緣亦能與諸菩薩具足助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
010_0578_a_02L 지세야, 모든 보살이 만약 뒤의 말세에 이 경과 나머지 다른 깊은 경을 만날 수 있게 되면 보살의 갈무리[菩薩藏]에 거두는 바가 되어 모든 바라밀(波羅蜜)과 상응한다. 이 사람은 악마의 일로 덮이지 않고 업장 때문에 고뇌를 받지 않는다.
지세야, 만약 이 사람이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지 못하였으면 나는 수기를 주어 장차 올 세상의 두 번째, 세 번째 부처님에게서 마땅히 무생법인을 얻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무생법인을 얻으면 일체의 법 중에서 속히 자재한 힘을 얻고, 속히 깨끗한 부처님 국토를 얻으며, 속히 무량한 성문(聲聞) 대중을 얻고, 속히 무량한 보살의 무리를 얻을 것이다. 지세야, 나는 지금 이 법인(法印)을 설한다. 후세의 모든 의혹을 끊기 위한 까닭이다.
010_0577_c_20L持世若諸菩薩於後末世時得値是經及餘深經菩薩藏所攝諸波羅蜜相應是人不爲魔事所覆不爲業障所惱持世若是人未得無生法忍者我與受記於當來世第二第三佛當得無生法忍已得無生法忍者於一切法中疾得自在力疾得淨佛國土疾得無量聲聞衆疾得無量菩薩衆持世我今說是法印爲斷後世一切疑故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이익을 보는 까닭에 뒤의 말세에서 이와 같은 경들을 지키고 지니며 서원을 발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나는 마땅히 속히 무량하고 무변한 공덕을 얻고, 또 중생들로 하여금 큰 선근을 생하게 하며, 또 모든 부처님을 위하여 정법을 지키고 지니며, 또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을 지니는 사람이 되고, 또 무량한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는 바가 될 것이다.’
이것을 넷이라 이름한다.
010_0578_a_06L持世菩薩摩訶薩見四利故於後末世護持如是等經而發誓願何等爲四諸菩薩作是念當疾得無量無邊功德亦令衆生生大善根亦爲諸佛護持正法亦作諸佛持法藏人亦爲無量諸佛所見讚是名四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다시 네 가지 이익을 보고 뒤의 말세에서 이 경을 지키고 지니며 서원을 발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모든 보살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뒤의 두렵고 나쁜 세상에서 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까닭에 큰 정진을 행하고, 뒤의 나쁜 세상에서 바른 법이 무너지려고 할 때, 능히 법장(法藏)을 지니며 이 어려운 일을 위하고, 뒤의 나쁜 세상 가운데서 법이 어지럽고 중생이 어지러울 때에 우리들은 법을 수호하는 까닭에 그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으며, 이때 마땅히 인욕을 구족하여 성냄이 없는 도(道)로써 법을 수호할 것이다.’
이것을 넷이라 이름한다.
010_0578_a_12L持世菩薩摩訶薩復見四於後末世護持是經而發誓願等爲四諸菩薩作是念我等於後恐怖惡世守護法故行大精進於後惡世正法壞時能持法藏爲此難事後惡世中法亂衆生亂時我等守護法故其心不亂爾時當得具足忍辱以無瞋道守護於法是名四
지세야, 보살마하살은 이 네 가지 이익을 보는 까닭에 뒤의 악세(惡世)에서 이와 같은 깊은 경들을 지키고 지녀 서원을 발한다.”
010_0578_a_19L持世薩摩訶薩見是四利故於後惡世持如是等深經而發誓願
010_0578_b_02L발타바라가라가달다 등 5백의 보살과 나머지 다른 보살들은 이 『법인품경』을 들을 수 있게 되어 부처님 앞에 합장하고 뒤의 악세에서 ‘이 깊은 법을 지키고 지니는 자가 되리라’고 발원(發願)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오른손으로 그 모두의 머리를 어루만지시고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모든 선남자야, 내가 무량한 아승기겁 동안에 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큰 법보(法寶)의 갈무리는 매우 어렵게 모은 것이다. 온갖 무량하고 무변한 근심과 슬픔과 고뇌를 받고 또 무량하고 무변한 환희와 쾌락을 버렸었다. 이제 이것으로써 너희들에게 부촉한다. 뒤의 말세에 마땅히 이 무량한 겁 동안에 모은 법장(法藏)을 사람을 위하여 잘 열라. 널리 4부 대중[四衆]을 위하여 분별하고 해설해서 이 정법(正法)의 씨로 하여금 단절되지 않게 하라. 너희들은 또 마땅히 큰 법의 횃불을 태워야 한다. 모든 선남자야, 여래는 지금 너희들에게 청한다. 불자야, 부처님이 머무는 곳에 머물러 내가 이 무량한 백천만억의 아승기겁에 모은 법보의 갈무리를 모든 하늘과 사람을 위하여 널리 펴고 유포시키라.”
010_0578_a_21L跋陁婆羅伽羅訶達多等五百菩薩及餘菩薩得聞是法印品經佛前合掌於後惡世發願護持是深法者佛以右手皆摩其頭作如是言諸善男子我於無量阿僧祇劫所集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法寶藏甚爲難集受諸無量無邊憂悲苦惱亦捨無量無邊歡喜快樂今以囑累汝等於後末世當以是無量劫所集法藏善開與人廣爲四衆分別解說此正法種令不斷絕汝等還當然大法炬諸善男子如來今者請汝等佛子住佛所住我於是無量百千萬億阿僧祇劫所集法寶爲諸天人廣宣流布
이때 발타바라가라가달다 등이 곧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저희들은 힘이 미치는 대로, 또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서 마땅히 후세에 이 법보의 갈무리를 널리 펴고 유포하겠습니다.”
010_0578_b_12L卽時跋陁婆羅伽羅訶達多等卽禮佛足作如是我等隨力所能亦承佛威神當於後世廣宣流布是法寶藏
이 『법인품경』을 설하실 때, 무량하고 무변한 아승기의 일생(一生)의 모든 보살은 선근을 성취하였으며, 또 무량한 백천만억의 중생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서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기(記)를 받았다.
010_0578_b_15L說是法印品經時無量無邊阿僧祇一生諸菩善根成就亦有無量百千萬億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畢定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시자, 지세보살과 발타바라가라가달다 등과 나머지 다른 보살과 그리고 모든 4부 대중과 일체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阿修羅) 등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였다.
010_0578_b_19L佛說是經已持世菩薩及跋陁婆羅伽羅訶達多等及餘菩薩幷諸四衆一切天阿修羅等聞佛所說皆大歡喜
持世經卷第四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48)어떠한 직업에 따라서 생활함.
  2. 49)부처님의 덕호(德號).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을 잘못됨이 없이 관찰하는 사람.
  3. 50)항상하지 않고 늘 변천하여 유동(流動)하는 존재.
  4. 51)무의미한 언어.
  5. 52)상응하지 않는 행의 하나. 상응하지 않는 행에는 스물세 가지가 있다.
  6. 53)상응하지 않는 작용.
  7. 54)다라니(陀羅尼)의 힘. 다라니는 총지(總持), 즉 기억하여 잊지 않음.
  8. 55)심소(心所)의 이름.
  9. 56)부처님이나 보살이나 제천(諸天) 등이 수행하는 사람을 지켜 장애가 없도록 하는 것.
  10. 57)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
  11. 58)일상문의 삼매는 진여삼매(眞如三昧) 또는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도 한다. 즉 진여법계는 평등하며 일상(一相)이라고 관하는 것.
  12. 59)나무 이름. 이 나무는 그 줄기를 자르면 다시 싹이 나지 않는다. 이에 경에서는 비구가 바라이(波羅夷)의 중죄를 범하는 것을 비유해서 이 나무의 줄기를 자른다고 한다.
  13. 60)金의 이름. 빛이 적황(赤黃)으로서 자연(紫煙)의 기운을 띄고 있다. 이 금은 염부수(閻浮樹) 아래를 흐르는 강, 즉 염부단(閻浮檀)에서 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주어졌다.
  14. 61)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정법(正法)이 존속하는 시기를 셋으로 나누었는데, 정법시(正法時)ㆍ상법시(像法時)ㆍ말법시(末法時)이다.
  15. 62)능히 하나의 지혜로써 일체의 길을 알고 일체의 씨앗을 알고 일상(一相)이 적멸(寂滅)의 상임을 알고 온갖 행위를 능히 이해하는 능력으로 부처님만이 지닌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