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463_T_001
- 013_1211_a_01L불설마역경(佛說魔逆經)
- 013_1211_a_01L佛說魔逆經
-
서진(西晋) 삼장 축법호(竺法護) 한역 - 013_1211_a_02L西晉三藏竺法護譯
-
이렇게 들었다. - 013_1211_a_03L聞如是:
-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 무리 1천2백50명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보살마하살 및 욕계천(欲界天)ㆍ색계천(色界天)ㆍ정거천(淨居天)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은 수없는 대중 권속(眷屬)에게 몇 겹으로 둘러싸여 경법을 말씀하시고 계셨다. 좌중에 한 천자가 있었으니 이름은 대광(大光)인데, 문수사리(文殊師利)를 곁에서 따르고 있었다.
이에 대광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부처님 말씀에 ‘모든 보살이 마사(魔事)가 있다’고 하셨는데, 무엇을 마사라고 합니까?” - 013_1211_a_04L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與大比丘衆俱千二百五十,摩訶菩薩不可計,及欲行天、諸色行天、淨居天人。彼時世尊與無央數衆會眷屬周帀圍繞而說經法。有一天子,名曰大光,在於座中,翼從文殊師利而侍衛焉。於是大光白文殊師利:“所可謂言諸菩薩衆有魔事者,何謂魔事?”
-
문수가 대답하였다.
“일으키는 업이 있고 하는 일이 있다면 마사가 된다. 만일 뜻[志願]을 받아 가지거나 빼앗는 데 둔다면 마사가 되고, 가령 애욕과 생각[思想]에 집착하고 의식하여 구하고 바란다면 마사가 된다.
또한 그대여, 치우치고 집착한 보살이 뜻을 일으켜 도(道)에 이르려 한다면 마사가 되며, 마음이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일심(一心)에 기대고, 그리고 지혜에 의지한다면 마사가 되며, 보시를 의식하여 생각하며, 지계에 망상(妄想)하고, 인욕에 대하여 느낌이 있고, 정진에 방탕하고 게으르며 선정에 기대고 오로지 지혜에 지나친다면 곧 마사(魔事)가 된다. - 013_1211_a_11L文殊荅曰:“有所興業而有所作則爲魔事。若使志願有所受取而有所奪則爲魔事。假令所欲思想、諸著、識念、求望則爲魔事。復次,仁者!倚著菩薩志欲至道則爲魔事。心倚布施、持戒、忍辱、精進、一心而依智慧則爲魔事。識念布施、妄想持戒、受於忍辱、放逸精進、及倚禪定、專惟智慧則爲魔事。
-
013_1211_b_01L또한 그대여, 마음이 한가함을 좋아하되 관법(觀法)을 얻고자 행한다면 마사가 되고, 만일 만족할 줄을 알아서 혼자 있되 명예와 공덕에 한계를 긋기를 생각한다면 마사가 된다.
만일 공무(空無)를 행하고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에 의지하여 게으름 없음을 수행하면서, 여래께서 말씀하신 언교(言敎)에 머문다면 마사가 된다.
그대여, 설령 생각하고 의식하고 기억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있으며, 뜻이 응하는 곳에 머물며, 듣고 기억하고 알면서 경전을 분별하면 모두 마사가 된다.” - 013_1211_a_19L復次,仁者!心樂閑居、行得於觀則爲魔事。若使想念止足獨處、節限名德則爲魔事。若行空無,依無相願,修無放逸,住於如來所說言教則爲魔事。假使仁者思想、識念有所受取,志在所應見聞念知、分別經典,皆爲魔事。”
-
대광이 문수에게 물었다.
“그 마사는 어느 곳에 머뭅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정진에서 머문다.”
또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정진에서 머뭅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정진이란 모든 마(魔)가 그 편리함을 구하는 곳이 되기 때문이니, 만약 게으른 자라면 저 마파순(魔波旬)인들 제가 어떻게 하겠는가.” - 013_1211_b_02L大光問文殊曰:“其魔事者爲住何所?”文殊荅曰:“住於精進。”又問:“以何等故住於精進?”文殊荅曰:“其精進者,乃爲諸魔求其便耳;若懈怠者,彼魔波旬當奈之何!”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서 보살이 정진하되 응하지 않는다고 합니까?”
문수가 대답하였다.
“가령 내가 정진을 했다고 헤아려서 말한다면 응하지 않음이 된다. 왜냐 하면 자신이 정진을 하였다고 해서 응할 바를 헤아린다면 곧 세간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여, ‘정진을 알고자 한다면 평등히 따라 수행하라’는 말은 이것을 일컫는다.
평등하게 정진한다면 평등하여서 응하여 나아가는 바도 없다고 이르나니, 이미 응하는 바 없으면 게으름이 없게 마련이다. - 013_1211_b_07L又問:“何謂菩薩精進而不應者?”文殊荅曰:“假使計言:‘我身精進’則爲不應。所以者何?己身精進,計有所應,則依倚世。仁者!欲知爲精進者,等遵所修此之謂也。以等精進則曰平等無所應進,已無所應則無放逸。
- 그대여, 설령 눈이 응하는 바 없고 색(色)에서 행하지 않는다면 이를 평등한 정진이라 이르며, 귀가 응하는 바 없고 소리에 행하지 않고, 코가 응하는 바 없고 여러 냄새에서 행하지 않고, 혀가 응하는 바 없고 여러 맛에서 행하지 않고, 몸이 응하는 바 없고 촉감[細滑]에서 행하지 않고, 뜻이 응하는 바 없고 모든 법에서 행하지 않으면 이를 평등한 정진이라 말한다.
- 013_1211_b_12L假使仁者眼無所進,不行於色,是則名曰平等精進;耳無所進不行音聲,鼻無所進不行衆香,舌無所進不行衆味,身無所進不行細滑,意無所進不行諸法,是則名曰平等精進。
-
013_1211_c_01L또한 그대여, 설령 일체 번뇌를 짓지 않아서 중생의 애욕과 더러움을 끊게 한다면 이를 보살의 평등한 정진이라 이르며, 만일 삼계에서 짓는 바 없이 삼계 중생의 모든 번뇌로 인한 환난을 구제한다면 이것이 보살의 평등한 정진이 된다.
보시를 행하되 생각하는 바 없이 4은(恩)을 행하여 모든 욕심과 인색한 이를 거두어들이며, 계율을 행하되 생각하는 바 없이 모든 악을 범한 중생을 거두어들이며, 인욕을 행하되 생각하는 바 없이 모든 성내는 사람들을 거두어들이며, 정진을 행하되 생각하는 바 없이 모든 게으른 이를 거두어들이며, 선정을 행하되 생각하는 바 없이 모든 어지러운 뜻을 거두어들이며, 지혜를 행하되 생각하는 바 없이 모든 나쁜 지혜를 거두어들이면, 이것이 보살의 평등한 정진이 된다.” - 013_1211_b_17L復次,仁者!假使不行一切塵勞,而以斷除衆生愛欲垢穢,是則名曰菩薩所行平等精進。若於三界而無所行,救濟三界,倚著衆生諸惱之患,是爲菩薩平等精進。行於布施無所想念,修以四恩攝諸慳貪;行於禁戒而無想念,攝諸犯惡衆生之類;行於忍辱而無所想,攝諸瞋恚人民之衆;行於精進無所想念,攝諸懈怠;行於禪定無所想念,攝諸亂意;行於智慧無所想念,攝諸惡智。是爲菩薩平等精進。”
-
문수사리가 다시 대광에게 말하였다.
“그 공무(空無)의 지혜를 환히 깨우치고도 공무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이 생각[思念]이 되며, 정진하여 공을 행하면서도 모든 견해에서 노닐며, 모든 견해를 모조리 관찰하면서도 보는 바가 없으며, 모든 삿된 견해를 관찰하면서도 공무를 떠나지 않으면 이것이 공을 행함[行空]이다.
이른바 공이란 곧 모든 견해가 곧 공이니, 이것을 배우는 까닭에 공공(空空)이라 이르고, 이 공공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공이 되고, 이 공을 반연한 까닭에 모든 법이 모두 공하다. 설령 이 지혜를 환히 깨우치고도 스스로 큰 체 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의 평등한 정진이라 한다. - 013_1211_c_05L文殊師利復謂大光:“其有曉了空無慧行,不想空無是爲思念;精進行空遊於諸見,悉察諸見而無所見,觀諸邪見不離空無,是爲行空。所謂空者,諸見則空。以空之故,故曰空空。由是空空,故曰爲空。因是空故,諸法皆空。假使曉了此慧明者而不自大,是謂菩薩平等精進。
- 또한 천자여, 이 상착(想着)하는 바 없음을 수행하면서 생각[想]함이 없음을 기억하지 않고, 모두 일체 여러 기억과 함께 노닐되 뭇 기억들을 버리지 않으며, 여러 기억하는 것을 두지 않아서 기억하는 바에 생각함이 없고, 생각하는 바에 기억함이 없되 모든 생각과 일체 기억에 평등해야 한다. 만일 능히 이 지혜로 일체 생각과 기억을 환히 깨우치고도 지혜로써 교만하지 않는 이는 게으르지 않으므로 이것이 보살의 정진행이 된다.”
- 013_1211_c_13L復次,天子!修行於此無所想著,不念無想,皆與一切衆念俱遊。不捨衆念,不有所念;所念無想,不想所念,等於諸想及一切念。若能曉了一切想念,設於此慧不以知慧而憍慢者,無所逸樂,是爲菩薩精進之行。”
-
문수사리는 다시 대광에게 말하였다.
“그 원 없음[無願]을 행하여 마음 따라 나[生]는 것과 바라는 것을 마음에 집착한 바 없으며, 그 원과 여러 갈래[趣]의 나는 바를 행하지 않아서, 모든 견해와 거세게 흐르는 물을 이미 떠나며, 이 두 가지를 버려서 몸이 있다거나 내가 없다고 헤아리지 않고 평등하게 처음과 끝, 태어남과 죽음을 없애나니, 능히 이 같은 정진을 행한다면 이것은 보살의 평등한 정진이 된다.” - 013_1211_c_18L文殊師利復謂大光:“其行無願隨心所生,有所志慕心無所著,不行所願其趣所生,已離諸見及衆駛水,捨於二事,不計有身亦無吾我,而等除去,終始生沒。其有能行如是精進,是爲菩薩平等精進。”
-
013_1212_a_01L문수사리는 다시 대광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언제나 평등으로써 수행하고 그 지혜와 현성의 밝음[聖明]의 통달에서 수행하는 바 없이 훌륭한 방편을 알아 모든 덕의 근본을 거둬들여야 한다. 분별하는 지혜[分別慧]란, 나[我]도 없고 남[人]도 없고 수(壽)도 없고, 명(命)도 없으니, 훌륭한 방편으로 정진하여 일체 중생을 깨우치고 인도함이다. 현성의 밝음의 통달이란 일체 법에 응함도 응하지 않음도 없고 청정함도 청정치 않음도 없는 것이요. 훌륭한 방편을 환히 안다는 것은 정진하여 일체 바른 법을 거둬들이는 것이요, 지혜로 나아감이란 일체 무너지지 않는 법계(法界)를 모두 다 환히 아는 것이다. - 013_1212_a_01L文殊師利復謂大光:“菩薩修業常以平等,其於智慧聖明之達無所修行;曉了善權,將攝一切衆德之本。分別慧者,無我、無人、無壽、無命;則以善權精進開化一切衆生。聖明達者,於一切法無應不應,無淨不淨;曉善權者,精進攝於一切正法。進智慧者,悉了於一切,不壞法界;
- 훌륭한 방편을 환히 안다는 것은 수없는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이요, 지혜를 통달한다는 것은 거룩한 무위(無爲)법에 나아가는 것이며,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은 일체 문자(文字)의 갖가지 다른 점을 널리 펼치는 것이며,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부처님 몸을 수행하여 번뇌[漏]가 없음을 아는 것이요, 훌륭한 방편을 아는 것이란 32대인상을 얻어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다.
- 013_1212_a_08L了善權者,供養奉事無央數佛。達智慧者,進聖無爲;曉善權者,宣暢一切文字之教種種別異。智慧聖者,修行佛身,了無穿漏;解善權者,三十有二大人之相而自莊嚴。
-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모든 나고 죽는 이로 하여금 나지 않게 함이며,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은 언제나 생각하는 바가 중생에게 향하는 것이요,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공과 무상과 무원을 수행하는 것이고, 훌륭한 방편을 아는 것이란 62소견의 집착과 뜻에 구하는 바 있는 것을 끊어 없애기를 선포하는 것이며,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정진하기를 권유하여 6신통에 이르는 것이고, 훌륭한 방편을 아는 것이란 신통한 변화로 구제하는 바가 많은 것이다.
- 013_1212_a_13L智慧聖者,使諸生死而無所生;解善權者,則爲所念常向衆生。智慧聖者,修行於空、無相、無願;曉善權者,頒宣斷除六十二見衆想之著,志有所求。智慧聖者,勸助精進至於六通;解善權者,神通變化多所救濟。
- 013_1212_b_01L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정진하여 모든 음(陰)과 입(入)의 온갖 쇠퇴하는 액난을 보지 않는 것이며, 훌륭한 방편을 아는 것이란, 모든 음(陰)과 입(入)의 중생을 붙잡아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며,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열반의 청정한 본성을 수행하는 것이며,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은 모든 중생을 위하여 마땅히 수행해야 할 위없이 바르고 참다운 도를 깨달아 가르치는 것이며,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혜안(慧眼)을 얻어 보는 바가 끝이 없는 것이며,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은 천안(天眼)을 얻어 모든 집착한 이를 개화하는 것이다.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정진을 해야 할 법을 얻지 않는 것이요,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도 문자를 펼쳐 법을 강설하는 것이다.
- 013_1212_a_19L智慧聖者,精進不見諸種陰入、衆衰之難;解善權者,執持將護諸種陰入。智慧聖者,遵修泥洹本性淸淨;解善權者,爲諸衆生開化導示無上正眞所當修行。智慧聖者,謂得慧眼,所睹無極;解善權者,逮致天眼,化諸著者。智慧聖者,不得諸法所行精進;解善權者,敷演文字而講說法。
-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모든 법의 이치의 갈래를 분별하는 것이고,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은 자재(自在)한 변재혜(辯才慧)로써 연설하는 것이며,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모든 근기가 각기 다르고 마음이 똑같지 않음을 환히 아는 것이며,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완전하게 법을 설하는 것이고 지혜가 성스럽다는 것은 8만 4천 모든 행을 식별하여 통달하는 것이고, 훌륭한 방편을 안다는 것은 능히 일체 중생을 위하여 8만 4천 품(品)의 모든 법장(法藏)을 선포하고 가르쳐 보여 주는 것이니, 이것이 보살이 평등히 수행하는 정진이 되는 것이다.”
- 013_1212_b_03L智慧聖者,分別諸法義之所趣;解善權者,宣暢如應辯才之慧。智慧聖者,曉了諸根各各別異、心念不同;解善權者,究盡衆人如應說法。智慧聖者,識達八萬四千諸行;解善權者,能爲一切頒宣,指示八萬四千諸品法藏。是爲菩薩平等之業精進行也。”
-
문수사리가 이 평등한 정진을 분별하여 설명해서 모인 대중에게 보이자 때에 8천 명의 천자는 곧 위없이 바르고 참다운 도의 뜻을 일으켰고 5백 명의 천자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세존께서 곧 문수사리를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장하구나. 그대는 이 모든 보살의 갖가지 평등한 행을 거침없이 말하였도다.” - 013_1212_b_10L文殊師利分別說此平等精進示衆會時,八千天子尋發無上正眞道意,五百天子逮得無所從生法忍。世尊卽讚文殊師利曰:“善哉,善哉!仁快說此諸菩薩衆平等之行!”
-
이에 대광은 문수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그대를 칭찬하시니 뛸듯이 기쁘십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만약 요술로 만들어진 사람[化人]이 요술 부리는 사람[化者]에게 칭찬받는다면, 그 만들어진 이가 과연 뛸 듯이 기뻐하겠는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만들어진 사람은 걸리는 바도 집착하는 바도 없고 또한 받아들이는 바도 없기 때문입니다.” - 013_1212_b_15L於是大光白文殊曰:“如來讚仁,寧踊躍乎?”文殊荅曰:“卿意云何?假使化人讚於化者,又其化者寧踊躍乎?”荅曰:“不也!其化人者無所係著亦無所受。”
-
013_1212_c_01L대답하였다.
“그렇다. 모든 법의 자연(自然)의 모양은 모두 다 허깨비[幻化]와 같으며, 여래의 모양도 또한 그와 같거늘, 내가 무슨 까닭에 뛸듯이 기뻐하겠는가.
마치 울리는 메아리가 좋고 나쁜 소리에 관계되는 바도 없고 또한 받아들이는 바도 없듯이 모든 법도 또한 그와 같다. 울리는 메아리가 본래 모두 다 청정하듯이 여래와 문수도 그 청정함이 또한 같거늘 내가 무슨 까닭에 뛸 듯이 기뻐하겠는가.”
대광은 또 물었다.
“무슨 까닭에 여래께서 당신을 칭찬하셨습니까?” - 013_1212_b_19L報曰:“如是!一切諸法自然之相悉如幻化,如來之相亦復如此。吾當何因而踊躍乎?譬如呼響,於善惡聲無所是在亦無所受;一切諸法亦復如是,猶如呼響本悉淸淨。如來、文殊其淨亦如吾,當何因而踊躍乎!”大光又問:“何故如來讚於仁者?”
-
문수는 대답하였다.
“그 선포하는 데 있어 지혜를 내세운 바 없었으므로 이에 여래에게서 칭탄을 받은 것이다.
모든 말에 걱정과 슬픔을 품지 않고 또한 더하고 감함이 없으며, 모든 중생에게 중생이라는 생각이 없고, 일체 법에 법이라는 생각이 없으며, 열반에 뜻을 두고 생사를 대치(對治)하되 마사를 깨우쳐 불도(佛道)의 업을 알며, 마사에서 진리를 환히 깨달아 불법과 마사를 분별하여 마사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법에도 의지하지 않나니, 이같이 행하는 이는 곧 여래의 칭찬을 받게 된다.” - 013_1212_c_02L文殊荅曰:“其有頒宣無所立慧,乃爲如來所見嗟歎;於諸言說不懷憂慼亦無增減,於諸衆生無衆生想,於一切法無諸法想。若志泥洹,修治生死,曉了魔事,解佛道業;以於魔事覺了眞諦,分別佛法及與魔事;不畏魔事,不依佛法。如是行者,則爲如來之所嗟歎。”
-
또 문수에게 물었다.
“그대가 이 같은 법을 받들어 행하신 까닭에 여래께서 찬탄하신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저 평등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치우치거나 무리 짓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저 평등하다는 것이 치우치지 않습니까?” - 013_1212_c_09L又問文殊:“仁爲奉行如此法乎?所以如來而嗟歎之!”荅曰:“其平等者終無偏黨。”又問:“其平等者不與偏乎?”
-
대답하였다.
“이른바 평등이란 모든 거스름[逆]에도 평등하고 또한 나[吾]에도 평등하고 모든 4대(大)에도 평등하고 또한 견해에도 평등하므로, 나(문수)의 평등함도 또한 그와 같으며, 모든 쌓임에도 평등하고 네 가지 뒤바뀜에도 평등하므로 나도 평등함이 또한 그러하며, 순조롭지 않고 어긋나는 일과 얻으려고 애쓰는 것에도 평등한 것처럼 나의 평등함도 또한 그와 같다.
생사에 평등하고 근본과 끝에 평등한 까닭에 행(行)과 원(願)에도 평등하고, 생사의 근본과 열반의 근본에도 평등하며, 열반의 근본에 평등한 까닭에 모든 근본에도 평등하다는 것이다. - 013_1212_c_12L荅曰:“所謂平等,等於諸逆,亦等吾我;等諸四大,亦等住見;吾所等者亦復若茲。如諸種等、四顚倒等,吾等亦如。如等不順反戾之事及欲所得,吾等亦如;如等生死,等及與本際;如等行原,等生死本及泥洹本。以用泥洹本等等之故,因此故曰本際平等。
- 013_1213_a_01L근본이 평등한 까닭에 나에도 평등하며, 이미 나에 평등한 까닭에 또한 무명(無明)과 은애(恩愛)의 근본에 평등하며, 무명과 은애의 근본에 평등한 까닭에 또한 밝고 환한 해탈(解脫)의 근본에도 평등하다. 밝은 해탈의 근본에 평등한 까닭에 또한 음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음에도 평등하며, 이 3독(毒)에 평등한 까닭에 또한 공과 무상과 무원에도 평등하며, 이 3해탈에 평등한 까닭에 또한 유위(有爲)의 근본에도 평등하며, 유위의 근본에 평등한 까닭에 또한 무위의 근본에도 평등하며, 무위법의 근본에 평등한 까닭에 문수의 평등함도 또한 그와 같다.
- 013_1212_c_19L如本際等,故吾我等;已等吾我,亦等無明恩愛之本;如等無明恩愛之本,亦等明徹解脫之本。若以平等明脫之本,亦等貪婬、瞋恚、愚癡;以等三垢,亦復等於空、無相、願;已等三脫,亦等有爲之本;以等有爲本,亦等無爲本;以等於無爲之本,文殊所等其亦若茲。
-
대광이여, 그러므로 이 평등한 이는 모든 법에도 다 평등한 것이다.
내가 지금 선포하고 연설하다가 부처님에게 찬탄받은 것이다.
모든 법은 다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나니, 허공은 반듯하고 평등하여 치우침도 없으며, 허공은 헤아릴 수도 없고 또한 행위하는 바도 없는 것이다. 만약 그대들이 여기에 나아가 익히고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 때문에 여래께서는 그대를 찬탄하실 것이다.” - 013_1213_a_03L是故大光!以此平等,諸法皆等。其以說者今所頒宣,方當演說而見嗟歎,一切此法皆悉平等,猶如虛空。虛空正等而無偏黨,虛空無數亦無所爲。若有趣斯方欲習入,是故如來讚歎于彼。”
-
대광은 또 물었다.
“어찌 착한 법[善哉法]과 착하지 않은 법[非善哉法]을 말씀하십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보살의 착한 법은 진실한 뜻과 소원에서 나오니 아첨하여 솔직함이 없고 행위가 게으르면 착하지 않은 것이다. 중생을 위하여 매우 불쌍히 여겨서 버리지 않으면 착하다고 말하고, 만일 인자(仁慈)함을 품지 않아 중생을 해치려고 생각한다면 착하지 않은 것이 된다. 만일 능히 일체 중생을 가엾고 불쌍히 여긴다면 착하다 이르고, 성냄을 품어 인욕을 떠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만일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계율을 따르며 잘못이 있을 때 진실하게 자수하여 숨기지 않는다면 착하다 이르고, 잘못을 가려서 드러내지 않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 013_1213_a_08L大光又問:“寧可宣暢善哉之法、無善哉法乎?”文殊荅曰:“菩薩善哉從志願出;諛諂無質,所行放逸,爲不善哉。用衆生故,不捨大哀,故曰善哉;若不懷仁,念害衆生,則非善哉。若能愍傷一切衆生,乃爲善哉;瞋恚懷結,離于忍辱,爲不善哉。若不醉亂又隨律教,已有罪過自首歸誠而不藏匿,則爲善哉;隱蔽殃舋而不發露,則非善哉。
- 자신의 나쁜 것을 보고 능히 고친다면 착하다 이르고 만일 남에게서 흠집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만일 자신을 반성하고 은혜 입을 것을 알고서 마음에 해치려는 생각을 품지 않고 효순(孝順)하고 인(仁)을 행한다면 착하다 이르고, 자신을 돌이키지 않고 마음에 항상 해치려는 뜻을 품고, 돌이킴을 떨어뜨려 효순을 행하지 않고 은혜 갚을 줄을 알지 못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능히 따라 행한다면 착하다 이르고, 만일 경전을 듣고도 공경하고 따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 013_1213_a_17L自見身惡能改除者,則爲善哉;假使志求他人瑕闕,則非善哉。若行返復而知恩好,心不懷害,孝順行仁,則爲善哉;無有返復,心常懷害,欲危返復,不奉孝順,不知報恩,則非善哉。聞佛道教尋能遵修,乃爲善哉;若聞經典不肯敬順,則非善哉。
- 013_1213_b_01L계율을 받들어 행하되 빠뜨리거나 거스린 적이 없으면 착하다 이르고, 만일 계율을 받고도 순종치 않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항상 고요한 곳에 머물러 그 마음이 고요해지면 착하다 이르고, 만일 시끄러운 곳을 좋아하여 제멋대로 방탕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한가한 곳에 머물러 몸과 목숨을 버리더라도 애착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면 착하다 이르고, 만일 자기의 몸과 목숨에 탐애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 013_1213_b_01L奉行禁戒,未曾缺漏,乃爲善哉;若受於戒,失不順從,則非善哉。常處閑靜,其心寂寞,乃爲善哉;設慕憒鬧、自放恣者,則非善哉。在於閑居,捨身壽命而不戀恨,乃爲善哉;假使貪愛己身壽命,則非善哉。
- 4현성(賢聖)의 법을 닦고 만족하며 그치고 조절할 줄 안다면 착하다 이르고, 나아가고 물러갈 줄을 알지 못하며 구하는 것이 많고 악한 일을 좋아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사람됨은 생겼어도 능히 인욕을 한다면 착하다 이르고, 만일 해치려는 마음으로 여러 사람에게 향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모든 욕심을 스스로 능히 조절한다면 착하다 이르고, 사람됨이 느슨하여 능히 삼가지 못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 013_1213_b_06L修四賢聖,止足知節,乃爲善哉;不知進退,多所志求,慕樂惡事,則非善哉。爲人羸劣、能忍辱者,乃爲善哉;若以害心向於衆人,則非善哉。諸所欲度能自節限,則爲善哉;爲人舒緩,不能謹勅,則非善哉。
- 귀의해야만 할 것을 한번도 잊어버리거나 저버리지 않는다면 착하다 이르고, 본래 귀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위의(威儀)와 예절(禮節)의 바름을 환히 깨우쳐 행위가 진실하고, 하는 일이 말과 같아 마음과 행위가 서로 부합한다면 착하다 이르고, 일체 세간을 속이고 미혹시킨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바른 법을 받들어 옹호하고 떳떳한 경전을 어기지 않는다면 착하다 이르고,
- 013_1213_b_12L所可歸命未曾忘捨,乃爲善哉;本有所歸遺棄不念,則非善哉。曉了威儀禮節之正,所行至誠,所作如言,心口相應,乃爲善哉;欺詐迷惑一切世間,則非善哉。將護正法不違雅典,乃爲善哉;
- 경전을 비방하고 바른 이치를 어긴다면 착하지 않다고 한다. 만약에 들은 경전을 비방하지 않고 아무리 스승에게 배우지 않았어도 교법을 선포하되 아무것도 바라는 바 없다면 착하다 이르고, 경법을 사랑하고 아껴서 스승이라 자칭하고, 경법을 말할지라도 항상 망상을 품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권방편을 가져 중생을 개화한다면 착하다 이르고, 중생을 보호하지 않거나 권방편이 없거나 네 가지 은혜를 행하지 않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 013_1213_b_17L誹謗經道,違失正理,則非善哉。假使所聞不謗經典,雖不師受,頒宣道教無所希冀,乃爲善哉;愛惜經法自稱爲師,若說經法常懷妄想,則非善哉。執權方便開化衆生,乃爲善哉;不護衆生,無權方便,不行四恩,則非善哉。
- 013_1213_c_01L만일 능히 6바라밀[度無極]을 따라 수행하여 은근히 사모하고 구한다면 착하다 이르고, 만일 6바라밀을 버린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지혜로운 업을 지어 거룩한 도를 이룬다면 착하다 이르고, 잘난 체하여 멋대로 방탕하고 교만한 업을 짓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굳건한 자비를 행하여 중생을 가엾고 딱하게 여긴다면 착하다 이르고, 자심(慈心)을 빨리 행하려고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바가 넓지 못하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 013_1213_b_23L若能遵修六度無極、慇勤慕求,乃爲善哉;若復棄捐六度無極,則非善哉。造行慧業,自致聖道,乃爲善哉;貢高自恣,爲憍慢業,則非善哉。行牢强慈,愍傷衆生,乃爲善哉;趣爾行慈,所愍不弘,則非善哉。
- 10선(善)을 받들어 행하여 큰 도를 어기지 않는다면 착하다 이르고, 멋대로 희롱하고 스스로 방탕하여 10악을 행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며, 만일 능히 모든 악을 버린다면 착하다 이르고, 모든 악과 법 아닌 일을 따른다면 착하지 않다 이른다.
- 013_1213_c_05L奉行十善,不違大猷,乃爲善哉;翫習自恣,行十惡事,則非善哉。若能棄捐一切衆惡,乃爲善哉;順從諸惡非法之事,則非善哉。
- 대광이여, 출가(出家)의 법을 알려고 하면서 뒤바뀌어져서 행을 따르지 않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고, 공과 무상과 무원을 좋아하여 구족하고 성취한다면 착하다 이르며, 억지로 높은 사자좌(師子座)에 앉아 잡된 구절과 세간의 이야기를 연설하여 세속을 따라 같이 한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고, 만일 보살의 비밀스런 경전[篋藏之典]을 얻어서 익히고 행하여 사자좌에 올라 교법을 선포하고 연설한다면 착하다 이른다.
- 013_1213_c_08L大光!欲知出家顚倒不順行者,則非善哉;好樂空、無相、無願,具足成就,乃爲善哉。强上高牀師子之座,而演雜句世閒之談,隨俗同塵,則非善哉;若得菩薩篋藏之典修習遵行,昇師子座,頒演道教,乃爲善哉。
- 계율을 헐고도 신도들의 보시를 받는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고, 계율을 맑고 깨끗이 받들어 행하면서 모든 공양의 이익을 받는다면 착하다 이르며, 스스로 잘난 척하고 교만을 부리며 경법을 시샌다면 착하지 않다 이르고, 자신을 낮추고 공손하여 거만하거나 방자함을 품지 않고 남의 덕을 칭찬한다면 착하다 이르며, 보살의 훌륭한 행을 시샘하면 착하지 않다 이르고, 여러 보살을 보고 공경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한다면 착하다 이른다.
- 013_1213_c_14L毀於禁戒,受信施食,則非善哉;奉順戒法淸淨鮮潔,應服一切供養之利,乃爲善哉。貢高自大,憎妒經法,則非善哉;謙下恭順,不懷慢恣,嗟歎人德,乃爲善哉。嫉妒菩薩,憎其高行,則非善哉;見諸菩薩敬之如佛,乃爲善哉。
-
013_1214_a_01L대광이여, 그러므로 만일 부처님의 말씀하신 그 법대로 행하는 이를 그릇되었다고 하여 멀리하여 훌륭한 지혜에 이르지 못한다면 모두 착하지 않다 이르고, 여래의 가르침을 순종한다면 착하다고 하는 것이다.”
대광은 또 물었다.
“무슨 까닭에 법을 찬탄하기를 착하다고 합니까? 법에는 착한 것과 착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나는 모든 법에 대하여 착함을 행하지도 않고 또한 착하지 않음을 행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전부 합하는 바도 없고 또한 나도 없기 때문이다.” - 013_1213_c_20L是爲大光!如佛所說,其行法者則爲非遠,不至大慧,皆非善哉;其有順從如來教者乃爲善哉。”大光又問:“以何等故讚法善哉?法在善哉、非善哉乎?”文殊荅曰:“吾於諸法不行善哉,亦復不行非善哉也。所以者何?一切諸法悉無所合,亦無吾、我。”
-
또 문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착한 법과 화합하지 않았습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나는 착한 법과 화합하지도 않고 또한 악한 법과 화합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집착을 몹시 억측한다면 유위법이라 부르고 그 집착이 없으면 무위법이라 이르며, 덧없는 것임에도 억측한다면 이에 또한 유위법이니 스스로 몸이 있다고 억측하여 본래없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013_1214_a_03L又問文殊:“仁者!不與善法合乎?”文殊荅曰:“吾則不與善法俱合,亦復不與惡法共合。所以者何?計極著者謂有爲矣,其無著者謂無爲矣;計無常者亦是有爲,自計有身不了本無。”
-
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당신의 지극한 덕 또한 유위법이며, 내가 있다고 억측합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만일 내가 유위법을 억측하여 몸이 내 것이라고 한다면 곧 두려움에 떨어질 것이다.”
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당신은 유위법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대답하였다.
“만약 유위법을 보아 마지막을 성취하고 영원히 있어 멸진(滅盡)이 없다면 나는 그것을 두려워한다.” - 013_1214_a_08L又問:“文殊師利!仁者至德亦是有爲,計有吾、我。”文殊荅曰:“假使吾計有爲,身是我所,則墮恐懼。”又問:“文殊師利!仁者不畏於有爲乎?”報曰:“假使見於有爲、究竟成就、永存無滅盡者,我乃恐懼。”
-
또 문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유위법을 보지 않고도 성취합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무위법도 보지 않고서 성취하는데, 하물며 유위법을 보고서 성취하겠는가.”
또 문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유위입니까, 무위입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유위도 아니요 또한 무위도 아니다. 왜 그러는가. 만약 유위라면 곧 어리석은 범부(凡夫)와 같을 것이고, 무위라면 곧 성문(聲聞)ㆍ연각(緣覺)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 013_1214_a_13L又問:“文殊!仁者不見有爲之事而成就乎?”荅曰:“吾尚不見無爲之事而在成就,況當復睹有爲之事而成就也!”又問:“文殊!仁爲有爲,若無爲乎?”荅曰:“仁者!吾不有爲亦不無爲。所以者何?設使有爲,則與愚癡凡夫同塵;假使無爲,則與聲聞、緣覺同等。”
-
또 문수에게 물었다.
“만일 당신이 유위도 아니고 또한 무위도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가르침을 지나겠습니까?”
대답하였다.
“비유하자면 요술로 만들어진 이가 생겨나게 된 것처럼 법을 지니고자 하는 자는 또한 그와 같아야 한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의 신식(神識)은 어느 곳에 머무는가? 색(色)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아닙니다.” - 013_1214_a_20L又問:“文殊!設使仁者亦不有爲,復不無爲,今我云何執持此教?”荅曰:“譬如化人之所興爲,欲持法者亦當如彼。於天子意所志云何?如來神識爲住何所?立在色乎?”荅曰:“非也!”
-
013_1214_b_01L“그렇다고 느낌[痛癢: 受]과 생각[思想: 想]과 생사(生死: 行)와 의식[識]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삼계(三界)에 머무는 것인가?”
“아닙니다.”
“유위법이나 무위법에 머울러 있는 것인가?”
“아닙니다.” - 013_1214_b_01L“爲復立在痛癢、思想、生死識乎?”報曰:“非也!”又問:“住三界乎?”荅曰:“非也!”“住在有爲若無爲乎?”荅曰:“非也!”
-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여래의 신식은 어느 곳에 머무는 것인가?”
대답하였다.
“문수시여, 여래의 신식은 영원히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만일 여래의 신식이 머무는 곳이 없다면, 그대는 마땅히 그가 머무는 바와 같이 받아 지녀야 한다.”
그러자 다시 문수에게 물었다.
“그대가 바로 이 여래이십니까?” - 013_1214_b_04L又問:“如來神識爲何所住?”報曰:“文殊!如來神識永無所住。”荅曰:“如來神識設無所住,卿當執持如彼所住!”又問:“文殊!仁者則爲是如來乎?”
-
대답하였다.
“천자여, 그 본래 없는 것은 옴도 없고 감도 없고 주선(周旋)함도 없나니, 내가 말미암아서 온 곳 또한 이와 같다. 그러므로 나의 온 바도 또한 여래와 같고, 여래의 오신 바처럼 또한 나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나도 여래가 되는 것이며, 여래가 머무는 것처럼 또한 나의 머무는 것도 그와 같으니 그러므로 나도 여래가 되는 것이며, 여래도 본래 없고 문수사리 또한 본래 없는 까닭에 ‘본래 없다’고 이르나니, 이런 까닭에 나도 여래가 되는 것이다.” - 013_1214_b_07L荅曰:“天子!其無本者,無來無去無所周旋,吾所由來亦復如是;以是之故吾爲如來,所來亦如;如佛所來吾亦如之,以是之故吾爲如來。如如來住,吾住亦如;以是之故吾爲如來。如來無本,文殊師利亦復無本,故曰無本。以是之故,吾爲如來。”
-
또 문수에게 물었다.
“그 본래 없는 것이란 마땅히 어디로부터 구하여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천자여 그 본래 없는 것이란 마땅히 62견 속에서 구해야 한다.”
“62견은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여래의 해탈 속에서 구해야 하며 성냄을 품지 않는 데서 구하는 것이다.”
“여래의 해탈과 성냄을 품지 않는 것은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중생의 뜻과 행 속에서 구해야 한다.” - 013_1214_b_14L又問:“文殊!其無本者,當從何求?”荅曰:“天子!其無本者,當於六十二見中求。”又問:“六十二見當於何求?”荅曰:“當於如來解脫中求,不懷瞋法而求之矣!”又問:“如來解脫不懷瞋法,當於何求?”荅曰:“當於衆生志行中求。”
-
“중생의 뜻과 행은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여래의 성스러운 지혜 속에서 구해야 한다.”
“여래의 성스러운 지혜는 어디서 구해야 합니까?”
“중생의 모든 근기가 각기 다른 근본을 분별하는 가운데서 구해야 한다.” - 013_1214_b_19L又問:“衆生志行當於何求?”荅曰:“當於如來聖慧中求。”又問:“如來聖慧當於何求?”荅曰:“當於衆生諸根各異,分別原際而於中求。”
-
013_1214_c_01L또 물었다.
“문수사리시여, 지금 하신 말씀은 저는 알지 못하겠으며, 이해하지 못하니 분별하지 못하겠고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대답하였다.
“여래의 지혜는 능히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다.” - 013_1214_b_23L又問:“文殊師利!今者所說吾不能了。其不解者不能分別則當愕然!”荅曰:“如來之慧無能分別。”
-
“무슨 까닭입니까?”
“여래의 지혜는 걸림도 없고 또한 생각도 없으며 이루 얻을 수도 없고 말씀도 없고 또한 행도 없으며, 마음과 뜻과 의식도 없고 말과 가르침에서 떠나있으니, 이런 까닭에 능히 아는 이도 없고 분별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 013_1214_c_02L又問:“何故?”荅曰:“如來慧者,無所罣礙亦無想念,不可逮得,無有言辭亦無所行,無心、意、識,離於言教,以是之故無能知者,不可分別。”
-
다시 또 문수에게 물었다.
“만일 여래의 지혜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모든 성문들은 어떻게 환히 깨우쳤다고 하며, 무슨 까닭에 보살은 물러서지 않는 자리에 머물렀다고 합니까?” - 013_1214_c_06L又問:“文殊!設如來慧不可分別,諸聲聞衆云何曉了?何因菩薩而得住於不退轉地?”
-
대답하였다.
“천자여, 여래 지진(至眞:부처님)은 훌륭한 권방편을 내어 때에 따라 문자(文字)와 말씀으로도 법을 널리 펴시며, 그 지혜란 문자가 없으니 마치 물 속에서는 불이 나오지 않고 나무를 비벼야지만 불을 구할 수 있고, 또한 화경(火鏡)을 비춰야 불이 나오는 것과 같다.
여래는 이렇듯 위신(威神)이 거룩하고 도의 지혜가 그지없어 본무(本無)의 지혜를 자세히 분별하고 해설하지만 능히 여래의 거룩한 지혜를 아는 이가 없다. 여래의 거룩한 지혜는 모든 어리석고 어두우며 우매한 초목들을 불태워 다시 자라나지 않게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리켜 어리석고 어두우며 우매한 초목들을 불태워 없앤다고 하는가. 모든 분별하는 뭇 행의 마음으로 도법품(道法品)과 6바라밀(波羅蜜)과 모든 도무극을 널리 펴는 것이다.” - 013_1214_c_08L荅曰:“天子!如來至眞善權方便,因時頒宣文字之說。又其慧者無有文字,譬如不從水中而生火矣,鑽木求火及照陽燧乃出火耳!如來若此,威神聖旨道慧無邊,廣分別說本無之慧,無有能知如來聖慧。如來聖慧燒諸愚癡闇昧草木,令不復生。彼則何謂燒諸愚癡闇昧草木?一切分別衆行之心演道品法、六波羅蜜諸度無極。”
-
또 물었다.
“풀과 나무도 없고 더러움도 없으며, 또한 질병(疾病)도 없을진대 다시 무엇을 설해 주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연설하는 바는 연기분(緣起分)도 아니고, 설해지는 바는 훼손되지도 않고 화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며, 선포된 바는 생사를 설한 것도 아니요, 열반법의 기르침도 아니며, 제거되는 것도 없고 끊어짐도 없고 증과(證果)에 나아감도 없고 준수하여 닦음도 없고 얻음도 없고 돌아감도 없나니, 이 같은 말이 이에 적정하고 요긴한 말씀인 것이다.” - 013_1214_c_17L又問:“文殊!無有草木不生瑕穢亦無瘡病,云何說之?”荅曰:“所暢說者,無緣起分,所言無毀,無合無散。所頒宣者,不說生死,無泥洹教,無所蠲除亦無所斷,不有造證,無所遵修,無得無歸。此所言者,乃爲寂寞堅要之辭。”
-
013_1215_a_01L천자는 아뢰었다.
“미치기 어렵고 미치기 어려우며 전에 없었던 것입니다. 문수사리시여, 지금 말씀하신 것은 미묘하고 거룩하고 끝이 없는 지혜로서 이렇듯 범상치 않으니 저 마파순이 행패를 부리러 여기에 오지 않겠습니까?”
마침 이 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파순이 허공에 나타나 큰 구름과 비를 일으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가 널리 일체 대중의 모임에까지 들리자 그곳에 모인 이들은 각기 속으로 생각하였다.
‘대체 무슨 소리가 이렇게 흘러나오는가?’ - 013_1214_c_23L天子報曰:“難及,難及,至未曾有!文殊師利!今所說者微妙巍巍,無極之慧超異如是!而魔波旬不來至此,欲廢亂之,行於逆乎?”適說是語須臾未久,時魔波旬在於虛空,興大雲雨,謦揚大音,其音普聞一切衆會。時衆會者各心念言:“此何等聲流溢乃爾?”
-
이때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 마가 일으키는 행패를 보고만 있는가?”
“알겠습니다. 천중천(天中天)이시여.”
문수사리는 바로 여기상(如其像)삼매의 사유에 들어 마파순으로 하여금 저절로 묶여져 아래로 떨어지게 하였다. 그러자 그는 큰소리로 원망하며 분노에 가득 차 욕을 퍼부었다.
“문수사리여, 이제 어찌 쇠사슬로 나의 몸을 묶어 놓았는가?” - 013_1215_a_07L爾時世尊告文殊師利“仁寧見魔所興亂乎?”荅曰:“唯然,天中天!”文殊師利卽如其像三昧思惟,令魔波旬自然見縛。尋便墮地,喚呼稱怨,恚恨罵詈:“文殊師利!今當杻械鎖縛我身!”
-
문수는 대답하였다.
“가엾다. 마파순이여, 이보다 더 견고하여 쉽게 풀지 못하는 속박에 지금 묶여 있거늘 너는 깨닫고 있지 못하구나. 무엇이 견고한 속박인가. 나라는 것과 뒤바뀜과 애욕과 모든 삿된 견해의 속박과 인연의 속박을 말함이니, 그대는 항상 이런 쇠사슬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구나.”
마는 다시 여쭈었다.
“그저 바라오니 저를 풀어 주소서.”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가 불사(佛事)를 짓는다면 내가 그대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겠노라.” - 013_1215_a_12L文殊荅曰:“咄,魔波旬!復有繫縛堅固難解,踰過於此!今者所被,如卿不覺。何謂堅縛?”謂言:“吾我、顚倒、恩愛、諸邪見縛、因緣繫縛。卿常爲此枷鎖所縛,不自覺知!”魔又啓曰:“唯見原赦,使得解脫!”文殊師利曰:“汝當興造行作佛事,我能令卿從繫得解!”
-
마는 곧 대답하였다.
“저는 불법을 방해한 일도 없고 또한 파괴한 일도 없는데 무슨 까닭에 불사를 지으라고 하십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마파순이여, 만일 불사를 짓는다면 이에 보살의 지혜와 변화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가 불사를 짓는다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요, 마가 불사를 지어야 기특한 일이 되는 것이다.” - 013_1215_a_18L魔卽對曰:“我於佛法無所妨廢亦無所壞,已當何因興作佛事?”文殊荅曰:“波旬!欲知興作佛事修行,乃爲菩薩智慧變化。假使如來興作佛事不足爲難,魔作佛事斯乃爲奇!”
-
013_1215_b_01L이에 문수사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여기상삼매의 사유에 들어 마파순으로 하여금 부처님 모양처럼 변화시키고 32상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사자 좌에 앉혀 지혜와 변재로써 말하는 바가 부처님과 같게 한 뒤에 이런 말을 하게끔 하였다.
“묻고 싶은 것이 있는 중생이라면 누구나 모든 의심스러운 점을 마음껏 말하라. 내가 마땅히 그를 위하여 의심을 없애 주겠노라.” - 013_1215_a_23L於是文殊師利卽如其像三昧思惟,使魔波旬變作佛像——三十二相莊嚴其身,坐師子牀,智慧辯才所說如佛——而宣此言:“所欲問者,一切衆生諸所狐疑,自恣所啓,當爲發遣!”
-
때에 대가섭(大迦葉)이 마파순에게 물었다.
“비구의 수행에 무엇을 속박이라고 하는가?”
마는 곧 대답하였다.
“가섭이여, 내가 선정을 한다고 굳이 헤아려서 뜻을 고요하게 만들며,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데는 공의 생각으로 주인을 삼으려 하며, 여러 소견을 헐어 버리는 데는 무상(無相)의 생각으로 주인을 삼으려 하며,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데는 무원(無願)의 생각으로 제어하려 하며, 모든 원하는 것을 품는 데는 열반의 생각으로 제어하려 하여 무위법을 좋아하고 생사의 생각을 헐어 버리려 하니 이것이 수행하는 비구의 속박이다. - 013_1215_b_05L時大迦葉問魔波旬:“比丘修行以何爲縛?”魔尋荅曰:“計我禪定而志寂然,則是有想、無想品第;想空爲要,毀衆見想;想於要想,興於衆念御無願想;懷諸所願爲泥洹想;而樂無爲毀生死想。是爲迦葉!修行比丘之繫縛也。
- 왜냐하면 가섭이여, 알아야 한다. 굳이 모든 견해를 헐어 버리고서 공(空)을 행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니, 이른바 공이란 모든 견해가 전부 공한 것이다. 굳이 생각[想]을 헐어 버리고서 무상을 구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니, 왜냐 하면 그 생각하던 바가 죄다 무상이 되기 때문이다. 굳이 원을 헐어 버리고서 무원을 구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니, 원하던 바가 또한 모두 무원이 되기 때문이다. 굳이 생사를 헐어 버리고서 열반을 구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니, 생사가 얻지 못하는 경계임을 환히 깨우치면 곧 열반이기 때문이다.
- 013_1215_b_11L所以者何?迦葉當知,不當毀壞諸所往見因而行空也。所謂空者,諸見皆空;不當毀念求於無想。所以者何?敢可所念,悉爲無想。不當毀願而求無願,其所願者悉亦無願。不當毀生死而求泥洹,曉了生死不可得處則爲泥洹。
- 가섭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열반이란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또한 여러 집착도 일어나지 않아 이미 파괴되고 멸진한 것이니, 열반은 본래 청정하니 나고 일어나는 바가 없으면 이에 무위법이 된다.”
- 013_1215_b_17L迦葉當知,其行泥洹不起思想,當於衆著令無所起。毀壞滅盡泥洹本淨,無所起生乃爲無爲。”
-
이렇게 말할 때 5백 비구는 마음이 청정해졌다.
그때 수보리(須菩提)가 여러 비구들에게 물었다.
“누가 여러 현자(賢者)들을 일깨워 주었던가?”
5백 명의 사람이 말하였다.
“저 얻음[得]도 없고 정각(正覺)도 이루지 못한 이가 우리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무엇을 일깨워 주었는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니 이 같은 것을 환히 깨우쳤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그 지혜가 항상 머무는 것입니다.” - 013_1215_b_19L說是語時,五百比丘心逮淸淨。時須菩提問諸比丘:“誰爲開化諸賢者等?”五百人曰:“其無所得,不成正覺,開化吾等。”又問:“云何開化?”荅曰:“不來不去,曉了如是;不起不滅,其慧常住。”
-
013_1215_c_01L이를 말할 때, 2백 비구는 깨끗한 눈을 얻었다.
때에 수보리가 마파순에게 물었다.
“무엇을 일러 비구가 으뜸가는 중우(衆祐:세존)가 된다고 하는가?”
마는 곧 대답하였다.
“보시를 받는 바도 없고 끝내 청정함도 없으면서 믿음이 돈독하여 부처님 법을 좋아하는 자로부터 보시를 받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일 비구가 보시를 받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면, 그 보시하는 이는 이 비구 보기를 마치 허깨비처럼 여기고, 그 보시를 받는 이도 생각하기를 그림자처럼 여겨서 생겨남도 없고 받아들임도 없으며 마음에 집착된 바도 없고 마음에 일어나지 않음도 없으리니, 그리하면 곧 세간에 으뜸가는 중우가 되는 것이다.” - 013_1215_c_01L說是語時,二百比丘逮淸淨眼。時須菩提問魔波旬:“何謂比丘爲最衆祐?”魔卽對曰:“若無所受亦無畢淨,而從篤信愛樂佛法受飮食饌,如須菩提。若有比丘不受不捨——其施與者,觀彼比丘猶如幻化;其受施者,意念如影,無有生者亦無受者——心無所著,無心不起,彼則於世爲最衆祐。”
-
때에 사리불(舍利弗)이 마파순에게 물었다.
“무엇을 일러 삼매가 물들지도 어지럽지도 않다고 하는가?”
마는 대답하였다.
“생각 끊는[滅盡]삼매는 끊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다 끊어지고 생겨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지 못하게 되며, 모든 욕마는 다 태워 버려 근본과 끝이 청정하고 아무것도 생겨나는 바 없으며, 또한 어리석지 않아서 경과[更歷]하지 않고도 모든 법의 청정함을 환히 깨우치며 평등한 정수(正受)로써 적멸(寂滅)을 수행하여 모든 경과한 일을 관찰하고 멸진삼매에 바로 들어 관찰함도 관찰하지 않음도 없고, 또한 소견도 없게 되나니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삼매가 바로 물들지도 어지럽지도 않은 것이다.”
대목건련(大目揵連)이 마파순에게 물었다.
“무엇을 일러서 비구가 마음의 자재를 얻는다고 하는가?” - 013_1215_c_09L時舍利弗問魔波旬:“何謂三昧而不穢亂?”波旬荅曰:“於三昧盡,如無所盡,悉令都盡。其無生者不令興起,燒盡衆欲本末淸淨。悉無所生令不復愚,無所更歷一切諸法,曉了淸淨平等正受,遵修寂滅察諸所更,滅盡三昧而以正受,無觀不觀亦無所見,如是三昧乃無穢亂。”大目揵連問魔波旬:“何謂比丘心得自在?”
-
013_1216_a_01L마는 대답하였다.
“만일 비구가 일체를 환히 깨우쳐서 사람의 마음과 모든 법은 전부 해탈의 모양임을 끝까지 추구하여, 모든 법은 전부 해탈의 모양임을 널리 설하되 의지하는 바와 마음에 품어 두는 바가 없으며, 알려는 바도 없고 또한 생각하려는 바도 없으며, 마음에 색욕(色欲)이 없어 일체 색을 보고도 마음에 머무는 바 없으며, 모든 법도 머무는 곳이 없음을 환히 깨치며, 마음은 가히 얻어질 수도 없으며 모든 법 또한 가질 수 없음을 환히 깨우치니, 마음은 마음을 알지 못하며, 마음이 저절로 청정하여지고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여 저절로 청정하여지며, 법계도 청정하여져 움직이거나 구르지 않나니, 다른 인연으로 눈앞에 바로 6신통과 4신족(神足)을 구족하여 스스로 즐거워한다. 비구가 이와 같으면 마음의 자재를 얻는 것이다.” - 013_1215_c_17L波旬荅曰:“假使比丘曉了一切,究暢人心及與諸法悉解脫相,宣說諸法悉解脫相;無所依倚所懷來心,亦無所解亦無所懷;心無色欲,見一切色心無所住;曉了諸法亦無處所,心不可護。曉於諸法、亦不可持,心不知心。心者自然則爲淸淨,諸法亦然自然淸淨,法界淸淨得不動轉。以他因緣現在目前,備六神通、四神足念而自娛樂,比丘如是心乃自在。”
-
빈뇩문타니불(邠耨文陀尼弗)이 마파순에게 물었다.
“무엇을 일러 비구가 법을 말하는 것이 청정하다고 하는가?”
마는 대답하였다.
“만일 비구가 일체 법이 모두 바라밀임을 보고 중생의 마음이 각기 다름을 두루 보아서 그 모두에 집착하는 바 없다면, 일체 생각하는 바가 같은 모양이 없다. 그 이치를 분별하고 해설하며, 일체 소리와 말씀과 이야기와 논의가 마치 산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음을 환히 깨우치며, 모든 강설하는 법을 보기를 마치 요술로 만들어 낸 사람과 같다고 관찰하며, 스스로의 알음알이도 또한 물속의 달과 같이 보이며, 만일 모든 번뇌와 생각이 여러 기억[念]하는 것으로 조차 일어남을 분별한다면 법을 받아들임도 없고 또한 놓음도 없이 삼매에 든다. - 013_1216_a_03L邠耨文陁尼弗問魔波旬:“何謂比丘說法淸淨?”波旬答曰:“假使比丘見一切法皆度無極,而悉遍見衆心各異,悉無所著。一切所念則無同像,旨分別說,曉了一切音聲、言說、談語、論議如山呼響,觀諸講法亦如幻人,身所識知如水中月。別諸塵勞、思想、衆念所從起立;無受法者亦無捨者,得入三昧。
- 법을 널리 퍼뜨리고 평등히 해탈을 얻는다면 곧 네 가지 분별변재(分別辯才)를 알아서 마음에 무엇을 바라는 바가 없으므로 사람이 모두 착하다고 칭찬한다.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의 그 마음이 청정하다면 일체 사람의 마음도 청정하게 하므로, 본래가 깨끗하고 맑고 때[垢] 없음을 환히 깨우치고 번뇌는 모두 더러움뿐임을 알아서, 모든 음마(陰魔)를 보아도 완전히 고요해지고 사마(死魔)는 머무름에 처음과 끝이 없고, 천마(天魔)는 모두 일체의 의지하고 집착된 가르침을 없앤다. 일체 중생의 마음이 깨끗함이 이와 같으니 그러므로 비구가 이에 널리 도법을 보고 청정히 경전을 연설하는 것이다.”
- 013_1216_a_11L若頒宣法,等獲超度,則以逮知四分別辯才,心無所冀。讚言善哉,不懷狐疑。淨其己心,則能淸淨一切人心。曉了本淨鮮潔無垢,解知塵勞悉瑕疵矣。見諸陰魔悉爲閑靜,其死魔者住無終始,其天魔者皆除一切倚著之教,一切衆生心淨如是;如是比丘乃爲淸淨,普見道法演布經典。”
-
013_1216_b_01L기년(耆年) 우바리(優波離)가 마파순에게 물었다.
“무엇을 일러 비구가 법과 율을 받들어 지닌다고 하는가?”
마는 대답하였다.
“능히 모든 법을 환히 깨우쳐서 모든 사람을 일깨워 주고, 모든 죄(罪)가 본래 적막함을 안다. 그리하여 망설이는 이를 가르치되, 혹 비방을 받을지라도 의심하지 않고 또한 속에 맺혀 두지도 않으며, 또한 일찍이 모든 법에 마음을 내지 않고 조어(調御)하는 바 있으며, 항상 능히 모든 거스르는 이를 제도하나니, 어찌 하물며 소소한 계율을 범한 이를 제도하지 않겠는가. - 013_1216_a_19L耆年優波離問魔波旬:“何謂比丘奉持法律?”波旬荅曰:“其能曉了一切諸法,悉被開化,識知衆罪本際寂寞,教授猶豫。若見誹謗,不以狐疑亦不懷結;彼於諸法未曾生心而有所御;常能化度諸有逆者,何況小小犯禁戒乎!
- 번뇌를 생각에 품어 두지 않으며, 뭇 애욕이란 안도 없고 밖도 없고 안팎의 사이에도 없음을 설하려, 번뇌[塵勞]는 무각(無覺)으로부터 오며, 애욕을 품지 않으면서 또한 권화(勸化)하지도 않고, 애욕이 없는 경계에 이르러도 일어나는 바 없음을 환히 깨닫는다. 애욕을 억측함은 마치 비구름과도 같으니, 거룩한 지혜를 관찰하고 마땅히 선포할 것을 환히 깨우침으로써 설해진 바는 마치 바람이 구름을 흩어 버리듯 머무는 곳이 없다.
- 013_1216_b_02L體解塵勞靡所不別,諸客塵勞不以堅要懷思想也。說衆愛欲無內、無外、不處兩閒;曉了塵勞由從無覺,不壞愛欲亦不勸化,至於無欲亦無所起,計於塵欲猶如雲雨;觀於聖慧曉了頒宣,所可說者如風散雲,悉無所住。
-
번뇌란 마치 물 속의 달과 같아서 생각을 반연하여 일어나는데 그 모양이 나타나려고 하는 것은 어둠을 말미암으니, 마땅히 지혜로써 환히 비쳐야 한다. 마치 밝은 거울에 얼굴을 비치듯이 그 모양이 귀신이나 나찰(羅刹)과 같음을 살피어, 그 생각에 끌리는 데는 소견 없애기를 관(觀)함으로써, 영원히 애욕을 버리고 여러 더러움을 더하지 않아 곧 공혜(空慧)와 무상과 무원으로써 궤도에 벗어나는 바 없나니, 그 애욕을 이같이 환히 깨우친 것이다.
가사 애욕에 집착한다면 중생에게 자애(慈哀)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니, 중생은 아[我]도 없고 몸[身]도 없으니 또한 나에 망상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관하는 이는 율법을 진실히 지닌 것이다.” - 013_1216_b_08L有塵勞者如水中月,緣想念起,欲現面像由於闇冥,當得智慧以爲明照,欲如明鏡見其面像,其色如鬼、羅剎之形;其順念者觀無所見,求捨塵欲不益衆穢,則以空慧無相、無願、無所越度;其有曉了愛欲如是。設復有著於愛欲者,則於衆生不興慈哀;衆生無我而無有身,亦不望想於諸吾我,如是觀者審諦持律。”
-
때에 큰 제자 5백 사람이 각기 자신이 알아야 할 바를 물었으며, 마파순은 각기 분별하여 설명해 주었다.
이에 제천(諸天) 가운데 수심(須深)이라 이름하는 천자가 마파순에게 물었다.
“아까 문수사리께서 모든 마사를 강의하고 설명해 주셨는데 그대가 그 이치를 되풀이하여 주겠는가. 무엇을 보살의 마사라고 하는가?” - 013_1216_b_17L其尊弟子五百人等,各各自問己身所知。時魔波旬各各分別而發遣之。於是諸天衆中有一天子,名曰須深,問魔波旬:“文殊師利屬者講說諸魔事業,仁豈堪任重復義理,何謂菩薩之魔事?”
-
013_1216_c_01L때에 마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마땅히 알지어다. 보살의 마사는 스무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생사를 두려워하여 해탈을 얻고자 해서 부처님의 바른 법을 준수하여 익히고 닦으며 머리 굽혀 귀의하면서도 망상을 두면 곧 마사가 되며, 공무(空無)를 관하면서도 중생이 있다고 보면 곧 마사가 되며, 무위를 관하되 유위의 좋은 덕본(德本)을 싫어하면 곧 마사가 되며, 선정(禪定)에 들었으되 한결같은 마음을 구하지 않고 이미 물러가면 곧 마사가 되며, 법을 널리 펴면서도 듣는 이를 위하여 크게 가련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마사가 되며, 계율을 구하고 중우(衆祐)를 공경하면서도 성내며 계율을 헐면 곧 마사가 된다. - 013_1216_b_22L時魔荅曰:“天子當知,菩薩魔事則有二十。何謂二十?恐畏生死,欲得解脫,遵修翫習於佛正法,稽首歸命而有望想則爲魔事業一。觀於空無而察衆生則爲魔業二。觀於無爲而厭有爲善德之本則爲魔業三。禪定正受不求一心,而已退轉則爲魔業四。若頒宣法,不爲聽者興發大哀則爲魔業五。求諸禁戒有德衆祐,瞋恨毀戒則爲魔業六。
- 성문과 연각의 한 가지 일은 연설하면서도 대승법을 묻는 데 크고 세밀한 것을 분별하지 않으면 곧 마사가 되며, 심묘한 법을 열어 주거나 받으면서도 법을 싫어하고 잡된 말을 하면 곧 마사가 되며, 6바라밀을 구하면서 스스로 보살이라고 부르면 곧 마사가 되며, 적정하고 담연(淡然)한 일을 묻고 찬탄하면서도 중생을 교화하는 데 권방편이 없으면 곧 마사가 되며, 여러 덕의 근본을 쌓으면서도 도의 마음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곧 마사가 되며, 쉬임없이 부지런히 적관법(寂觀法)을 수행하면서도 관하는 바가 중생이 있다고 보면 곧 마사가 되며, 애욕을 완전히 끊어 숨김없이 하고 생사의 언덕 건너기를 구하면서도 애욕을 두려워하면 곧 마사가 된다.
- 013_1216_c_08L暢演聲聞緣一覺事,諮問大乘不別巨細則爲魔業七。啓受深說,憎道雜言則爲魔業八。求度無極,自號菩薩則爲魔業九。咨嗟寂滅澹怕之事,所化衆生無權方便則爲魔業十。積衆德本,不親道心則爲魔業十一。慇勤遵修寂觀之事,所觀察者見有衆生則爲魔業十二。求盡塵欲使無有餘,度生死岸惡畏愛欲則爲魔業十三。
- 지혜를 수행하고 항상 의지하여 구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것에 의지하면 곧 마사가 되며, 권방편이 없이 일체 덕의 근본을 보려고 하면 곧 마사가 되며, 보살의 비밀한 법을 구하려고 뜻하지 않고 세속에 떠도는 말만 좋아하여 그것은 일삼으면 곧 마사가 되며, 여러 가지 부분(部分)에 있어 널리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도 거취(去就)를 두면 곧 마사가 되며, 만일 부유하고 풍요로워서 재물이 넉넉하고 호사스럽고 존귀한 신분이어서 위력이 대단한데도 그에 탐착(貪着)하며 널리 들은 이를 받들지 않으면 곧 마사가 된다.
- 013_1216_c_16L修行智慧常樂猗求,依於大哀則爲魔業十四。無權方便而已皆見一切德本則爲魔業。十五。不進志求菩薩篋藏,慕於世俗方類之言,以此爲務則爲魔業十六。各各分部博聞師教,而有去就則爲魔業十七。設使得爲富樂饒財、豪貴大威而貪著之,不奉博聞則爲魔業十八。
- 013_1217_a_01L설령 세상에서 높고 귀한 신분이 되었거나 부유한 이나 석범(釋梵)의 지위가 되었을지라도 훌륭한 법을 익히지 않으면 곧 마사가 되며, 보살 법사(法師)와 가까이하여 법을 들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성문ㆍ연각과 좋아하고 같이 이야기 하면서 법을 듣고자 하지 않고 멋대로 방탕하며 제 마음대로 노닐면 곧 마사가 되나니, 이 스무 가지가 보살의 마사인 것이다.”
- 013_1216_c_23L設爲尊豪、君子、長者、釋、梵之位,不習大法則爲魔業十九。不與菩薩、法師相從,藉受所聞,反與聲聞、緣覺相習,樂共談言;不欲聞法、自恣放逸、所遊搪揬,則爲魔業二十。是爲二十菩薩魔事。”
-
“아주 훌륭하구나. 이에 보살의 마사를 잘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법론(法論)을 듣고 살펴 받들어 행하면서 마(魔)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부처님의 훌륭한 도법을 얻고 경전을 강설하여 스무 가지 일을 이룰 것이다.
무엇이 스무 가지인가. 큰 사랑[大慈]ㆍ큰 슬픔[大哀]ㆍ생사에 빠지지 않음ㆍ항상 선지식을 만남ㆍ태어나는 곳마다 곧 부처님 세계를 만남ㆍ6바라밀을 받음ㆍ모든 보살로 권속을 삼음ㆍ총지(摠持)를 얻음ㆍ말재주를 갖춤ㆍ5신통의 지혜를 얻음ㆍ만나지 못하였던 법을 들음ㆍ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항상 도의 마음을 품음ㆍ - 013_1217_a_05L於時世尊讚魔波旬:“善哉,善哉!快說於斯菩薩魔事!假使有人論此法事,聽省奉行不從魔教,其人則逮佛大道法,講說經典,獲致二十事。何謂二十?大慈一,大哀二,不厭生死三,常見善友四,所生之處輒遭佛世五,得有啓受諸度無極六,以諸菩薩用爲眷屬七,逮得摠持八,具足辯才九,五通之慧十,所未遇法而得聞之十一,世世所生常懷道心十二,
- 마땅히 출가하여 사문(沙門)이 됨ㆍ한가함을 이루고 분주하지 않음ㆍ끝까지 널리 들음ㆍ훌륭한 방편인 지혜를 얻음ㆍ네 가지 은혜로 중생을 개화시킴ㆍ바른 법을 받들어 보호함ㆍ항상 솔직함을 행하여 아첨함이 없음ㆍ일체 보배를 아끼지 않고 또한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중생을 향하지 않음이니, 이 스무 가지로써 경전을 얻고 부처님의 훌륭한 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013_1217_a_14L當得出家而爲沙門十三,致閑不懅十四,究竟博聞十五,善權智慧十六,開化衆生導以四恩十七,將護正法十八,常行質直而無諛諂十九,一切所珍而不愛悋、不懷害心向於衆生二十。是爲二十,逮得經典,至佛大道。”
-
이에 수심천자는 마파순에 물었다.
“지금 여래의 칭찬을 받았으니, 좋은 이익을 얻은 셈이니 참 기분이 좋겠소.”
때에 마는 말하였다.
“나는 좋은 이익을 얻었다고 해서 좋지 않소. 마치 남자(男子) 귀신이 깃들었을 때 말하고 있는 것이 모두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라 귀신이 말한 것으로 알아야 하는 것처럼, 그대여,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말한 것은 문수사리께서 일으켜 주신 것이니, 나의 말이라고 선전하지 마시오.” - 013_1217_a_19L於是須深天子問魔波旬:“快哉,善利!乃爲如來之所嗟歎!”時魔報曰:“吾身不用快哉、善利!譬如男子鬼神著之,當可所說;計實不是其人所語,鬼神所言也。如是仁者!今吾所說,文殊師利之所發動,不當宣傳言是我說!”
-
013_1217_b_01L천자는 또 물었다.
“지금 그대가 몸을 변화하여 겉모습이 부처님같이 되었으니 즐겁지 않은가? 또한 상호로 그 몸을 장엄하고 사자좌에 앉아 경법을 강설하니 즐겁지 않은가?”
마는 다시 말하였다.
“그대들은 내가 상호로 몸을 장엄했다고 하지만, 내가 자신을 보자니 오히려 쇠사슬에 묶인 듯하오.” - 013_1217_b_02L天子問曰:“今仁變成爲佛身形,不以歡乎?又復相好莊嚴其身,坐師子牀講說經法,不以樂耶?”魔復報曰:“卿等見我相好嚴身,我還自睹枷鎖繫縛。”
-
천자는 충고하였다.
“파순이여, 스스로 문수사리께 귀의하여 엎드려 잘못과 죄를 뉘우치면, 문수사리께서 위신력을 나타내어 그대를 용서하여 주실 것이오.”
마는 대답하였다.
“자수하고 뉘우칠 뿐 아니라 대승의 보살 대사(大士)에게 배워야 하겠소.
왜냐 하면 보살을 행하는 이는 번뇌와 더러움의 경계를 보지 않지만 성냄을 일으키는 이는 언제나 원한을 품기 때문에 이에 마땅히 스스로 뉘우치고 머리 조아려 귀의하겠소.” - 013_1217_b_05L天子告曰:“波旬!自歸悔過,伏罪文殊師利。文殊師利威神原赦波旬!”波旬荅曰:“不當首悔學於大乘菩薩大士。所以者何?行菩薩者,不見缺漏瑕穢之界;興瞋恚者設懷怨恨,乃當對悔稽首自歸。”
-
천자는 또 물었다.
“보살의 인욕(忍辱)은 어떤 종류가 있는가?”
마는 말하였다.
“보살의 인욕은 열두 가지가 있소.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성질의 인욕이니 성냄이 없는 것이요, 뜻의 인욕이니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요, 아첨 없는 인욕이니 중생을 속이지 않는 것이요, 궁핍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인욕이니 지혜가 모자라 도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이를 가엾게 여기는 것이요, 수행하는 인욕이니 말한 대로 실천하여 물러가지 않는 것이요, - 013_1217_b_11L天子又問:“菩薩忍辱爲何等類?”其魔報曰:“菩薩忍辱有十二事。何謂十二?志性忍辱而無瑕疵一;其意忍辱,心不懷害二;忍辱無諂,不欺衆生三;忍辱愍窮哀傷一切貧於智慧、不及道者四;修忍辱事,所行如言則不退轉五;
- 공(空)의 인욕이니 일체의 의심과 삿된 소견을 여의는 것이다. 법을 오로지 생각하는 인욕이니 모든 법을 잘 길들이는 것이요, 미묘한 인욕이니 나[我]라고 억측하지 않는 것이요, 바르게 생각하여 법을 깨닫은 인욕이니 여러 현성(賢聖)들의 지혜로 돌아가는 것이요, 진제(眞諦)의 인욕이니 연기(緣起)에 어지럽지 않은 것이요, 어지럽거나 뒤바뀌지 않는 인욕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하는 것이요, 뜻이 일어나지 않는 인욕이니 방편으로 인하여 생멸이 없는 법인(法忍)을 얻는 것이오. 이것이 보살의 열두 가지 인욕이오.”
- 013_1217_b_16L其空忍者離於一切猶豫邪見六;專惟法忍,導御諸法七;深妙忍者不計吾我八;柔順法忍而從歸趣衆賢聖慧九;眞諦忍者不亂緣起十;不錯亂忍,順從一切衆生之心十一;意不起忍,因便逮得無所從生法忍十二。是爲菩薩十二事忍。”
-
013_1217_c_01L이때 수심천자는 마파순에게 물었다.
“그대가 방금 스무 가지 일에서 시작하여 열두 가지 인욕까지 설하였으니, 어찌 뛸듯이 기쁘지 않겠소.”
대답하였다.
“참으로 기쁘오.”
수심천자는 곧 문수사리에게 청하였다.
“어진이시여, 마파순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 013_1217_b_22L於是須深天子問魔波旬:“卿若尋說此二十事,至十二忍寧踊躍乎?”荅曰:“歡喜!”須深卽啓文殊師利:“仁者!原赦魔波旬罪!”
-
문수는 마에게 물었다.
“누가 그대를 묶어 놓았는가?”
답하였다.
“누가 저를 묶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파순이여, 그대는 남에게 결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으로 결박된 것이니 일체 어리석은 범부 또한 이와 같다. 마음이란 본래 모두 청정하여 생각이 없는 것인데, 뜻이 집착을 두므로 덧없음을 알지 못하여 덧 있다고 생각하고, 괴로움을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며, 몸이 없는데 몸이 있다고 억측하며, 깨끗하지 못한 것을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색(色)이 없는데 색이라고 생각하며, 느낌[痛癢]과 생각[思想]과 생사의 식별[識]이 없는데 5음(陰)을 생각한다.
파순이여, 지금처럼 결박당한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면서 무슨 인연으로 벗어날 수 있겠는가.” - 013_1217_c_02L文殊問魔:“誰爲繫汝?”報曰:“不知誰爲縛我?”荅曰:“波旬!卿不被縛,自想爲縛。一切愚癡凡夫之士其亦若茲!心本悉淨,無所思念,志在想著——不知無常,計有常想;苦爲樂想;無身計身;不淨,淨想;無色,色想;無痛癢、思想、生死識而想五陰。如今波旬!惡畏繫縛何因得脫?”
-
마는 또 여쭈었다.
“그렇다면 저는 다시는 해탈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 파순이여, 이미 해탈을 얻은 이는 다시 해탈할 것이 없는데, 무슨 연유로 해탈을 얻으려 하겠는가. 다만 허망한 생각을 말미암아 속박을 이루었으니, 그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해탈이라 이른다.”
이에 문수사리는 나타냈던 위신력의 감응을 놓아서 곧 마파순으로 하여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해 주었다.
때에 대가섭이 마파순에게 말하였다.
“파순이여, 불사를 지었으므로 이렇게 된 것이다.” - 013_1217_c_10L又曰:“今我不復得解脫乎?”荅曰:“如是波旬!已得脫者不復更脫。何因得脫?由緣從於虛僞之想而致繫縛,蠲除此穢名曰解脫。”於是文殊師利捨所建立,威神感動,令魔波旬卽復如故。時大迦葉謂魔波旬:“波旬以爲興作佛事!”
-
마는 대답하였다.
“문수사리의 경계로 감응한 바이니, 내가 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오.”
수심천자는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그 불사란 어디에서 구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중생의 애욕 가운데서 불사를 구해야 한다.”
또 문수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 013_1217_c_16L其魔荅曰:“文殊師利境界所感,不當觀之是我所爲!”須深天子問文殊曰:“其佛事者當於何求?”荅曰:“當於衆生愛欲之中求於佛事。”又問文殊:“何故說此?”
-
013_1218_a_01L대답하였다.
“중생에게는 번뇌가 있어 수고롭게 하기 때문에 애욕을 받아들인다. 애욕이 없다면 불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니, 마치 병이 없으면 의사가 필요치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여, 중생에게 애욕이 없다면 부처가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부처님은 무슨 일로 세상에 나오셨습니까?”
대답하였다.
“부처님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목숨을 마치는 우환에 기인한 까닭에 나오신 것이다. 왜냐 하면 삼계에는 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게 된 것이다.” - 013_1217_c_20L荅曰:“以於衆生塵勞之故,受於愛欲。設無愛欲不興佛事,譬如無疾則不用醫。如是行者,假使衆生無有愛欲則不用佛。”又問:“以何所生,佛興於世?”荅曰:“起生、老、病、終沒之患,故佛興出。所以者何?三界有是生、老、病、死,故佛現世。”
-
또 물었다.
“문수시여, 여래께서 도를 얻으셨으면 무슨 법을 일으켜 나타내셨고 무엇을 멸하여 제거하셨습니까?”
대답하였다.
“천자여, 여래께서 얻은 도의 법은 일어난 곳도 없고 또한 멸한 곳도 없다. 왜냐 하면 부처님은 세간에 나오심에 생겨난 곳도 없고 또한 잃어진 곳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출현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법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세간을 따라 몸을 나타내시지만, 본래 저절로 청정하니 그러므로 평등하여 나는 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 013_1218_a_03L又問文殊:“如來得道興顯何法?滅除何所?”荅曰天子:“如來得道,法無所起亦無所滅。所以者何?佛興出世則無所生,亦無所失。所可謂言佛興出者,假有此辭隨俗現身,自然本淨,則云平等無所生者。”
-
또 문수에게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은 뜻을 건립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법의 얻을 바 없는 데에서 온갖 소견인 62가지 의혹의 그물에 묶이는 처지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서 본래가 청정하다고 합니까?” - 013_1218_a_08L又問文殊:“何謂菩薩建立志性?”荅曰:“於一切法無所得者,不墮諸見、六十二疑繫縛羅網。”又問:“何謂本淨?”
-
대답하였다.
“안과 바깥 법에 집착하는 바 없음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서 보살은 보시의 주인(主人)이 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자신의 번뇌는 버리고 일체 중생의 애욕은 버리지 않는 것이다.” - 013_1218_a_11L荅曰:“於內外法無所著。”又問:“何謂菩薩爲布施主?”荅曰:“捨身塵勞,不捨一切衆生愛欲。”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서 계율을 구족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고요한 경계를 분별하여 환히 깨우치고 일체 중생의 모든 악을 제거하여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인욕을 다 갖추었다고 합니까?” - 013_1218_a_13L又問:“何謂禁戒具足?”荅曰:“分別曉了寂然之界,蠲除一切衆生諸惡,不捨道心。”又問:“何謂備悉忍辱?”
-
대답하였다.
“모든 법을 끝까지 보아 중생의 원한과 더러움과 성냄의 고난을 제거하며, 일체 지혜와 신통력이라는 훌륭한 덕의 갑옷[鎧]을 어기거나 버리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끝까지 정진한다고 합니까?” - 013_1218_a_16L荅曰:“究盡諸法見一切法,除去衆生結恨、厭穢、瞋恚之難,而不違捨一切智通至德之鎧。”又問:“何謂究竟精進?”
-
대답하였다.
“정진에 기인하는 모든 법을 더 없이 바르고 참다운 도에 이르기까지 다 살펴보고 중생의 게으름이라는 번뇌를 베어 없애며 정진을 따라서 수행하는 것이다.”
천자는 또 물었다.
“문수사리시여, 무엇을 일러 선정의 끝에 도달하였다고 합니까?” - 013_1218_a_19L荅曰:“菩薩所因可精進者,悉見諸法,至於無上正眞之道,刈除衆生懈怠之穢,遵修精進。”天子復問:“文殊師利!何謂究竟於禪定已?”
-
013_1218_b_01L대답하였다.
“일체 법은 모두 본래 청정하고 평등한 정수(正受)뿐인데 일체 중생이 집착에 반연하여 생겨남이 있음을 보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이 지혜를 성취하였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행동에서 일체 방탕한 일을 제거하며, 중생의 우물거리는 삿된 소견을 베어 없애고 거룩한 지혜를 따라서 수행하면 이것을 보살이 지혜를 성취한다고 한다.” - 013_1218_a_23L荅曰:“見一切法本悉淸淨,平等正受。一切衆生,因有所著而興生矣!”又問:“何謂菩薩成就智慧?”荅曰:“於諸所行不得所行。蠲除一切放逸之事,刈去衆生沈吟邪見,遵修聖達。是爲菩薩成就智慧。”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자(慈)를 행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법은 모두 다 영구히 멸도하는 것임을 보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비(悲)를 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은 짓는 자도 없고 또한 그에 응하는 과실 없음을 환히 깨우치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희(喜)를 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에 좋아함을 일으키는 것도 없고, 또한 행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 - 013_1218_b_05L又問:“何謂行慈?”荅曰:“見一切法永悉滅度。”又問:“何謂爲哀?”荅曰:“曉了諸法無有作者亦無報應。”又問:“何謂爲喜?”荅曰:“若於諸法無所興樂亦不無行。”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호(護)를 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법에 두 가지 일을 짓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은 진리에 충실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법 분별하기를 마치 허깨비와 같이 여기니, 모든 생겨나는 데에서 생겨나는 바도 없고 존재하는 것도 없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대사(大士)라고 합니까?” - 013_1218_b_09L又問:“何謂爲護?”荅曰:“於一切法不造二事。”又問:“何謂菩薩至誠眞諦?”荅曰:“分別一切諸法猶如幻化,於諸所生而無所生、悉無所有。”又問:“何謂大士?”
-
대답하였다.
“모든 중생에게서 중생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거룩한 사람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법을 굳이 받아 지닐 수 없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이다.”
또 물었다.
“문수시여, 무엇을 일러 보살이 훌륭한 덕의 갑옷을 입었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법을 평등하게 보되 허공과 같이 여기며 승나(僧那)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 013_1218_b_13L荅曰:“觀諸衆生而無衆生。”又問:“何謂尊人?”荅曰:“睹一切法不可受持而不恐懼。”又問文殊:“何謂菩薩被大德鎧?”荅曰:“觀一切法等如虛空,不捨僧那。”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인화(仁和)하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훌륭한 자비를 행하되 중생을 멀리하지도 않고 또한 가까이하지도 않으면서 번뇌와 애욕의 집착을 열고 교화시키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머무는 곳에서 편안하다고 합니까?” - 013_1218_b_17L又問:“何謂爲仁和乎?”荅曰:“行於大哀,不遠衆生亦不親近,開化塵勞、恩愛之著。”又問:“何謂所止宿安?”
-
대답하였다.
“몸과 입과 뜻으로 남을 번거롭게 하지도 않으며 나와 남을 얻지도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가르침을 따른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법을 들은 대로 능히 받들어 행하고, 또한 말하는 바가 진리인 것이다.” - 013_1218_b_19L荅曰:“不以身、口及與心念煩嬈他人,不得吾、我及與他人。”又問:“何謂順教?”荅曰:“如所聞法,能奉行者,所言眞諦。”
-
013_1218_c_01L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은 여러 사람들이 복종하고 귀의하는 바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능히 다섯 길[五趣]의 중생을 따라 설법하되 그 말씀이 무너지지 않으며, 자기의 마음을 따라 일체를 교화하되 실수가 없는 것이다.” - 013_1218_b_22L又問:“何謂衆人之所歸伏?”荅曰:“能隨五趣衆生言教,不壞其辭將順己心,因化一切無所違失。”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부끄러움을 알기를 갖추었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안으로는 능히 스스로 고요하게 노닐고 밖으로는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은 믿음[信]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걸림 가운데 노닐면서도 집착이 없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이 굳건한 자비를 행한다고 합니까?” - 013_1218_c_02L又問:“何謂具足知恥?”荅曰:“能內自寂,遊行於外,化導衆生。”又問:“何謂爲信?”荅曰:“遊諸罣㝵而無所著。”又問:“何謂菩薩行牢强慈?”
-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종하여 무너뜨리거나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되풀이[反復]한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지었던 덕의 근본을 잃어버린 적이 없이 응하는 대로 언제나 즐기는 것이다.” - 013_1218_c_05L荅曰:“順從佛教無所毀壞。”又問:“何謂反復?”荅曰:“所造德本未曾違失,常樂如應。”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절제할 줄을 안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번뇌 속에 뜻대로 노닐면서도 애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은 만족한 줄을 안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거룩한 지혜를 사모하고 모든 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 013_1218_c_08L又問:“何謂知節?”荅曰:“志遊一切塵勞之欲,已不樂欲。”又問:“何謂知足?”荅曰:“慕智慧聖,不樂諸法。”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만족하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설령 세간을 제도할 지혜를 만족하였어도, 모든 세간 법을 범하거나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분별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번뇌의 욕망을 보지 않아 중생의 모든 더러움을 끊는 것이다.” - 013_1218_c_10L又問:“何謂滿足?”荅曰:“假使滿足度世智慧,於諸世法無所犯負。”又問:“何謂分別?”荅曰:“不見一切塵勞之欲,斷除衆生諸垢瑕穢。”
-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보살이 자재(自在)를 얻었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생겨나는 것을 보고도 몸에 이루는 바가 없고 지혜가 자재로워서 애욕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널리 듣는다고 합니까?” - 013_1218_c_14L又問:“何謂菩薩而得自在?”荅曰:“見諸所生,身無所成;於慧自在,不從塵欲。”又問:“何謂博聞?”
-
대답하였다.
“듣지 말아야 할 것은 듣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매우 고요함을 얻었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모든 하는 일을 보고도 있는 것도 없고 또한 버리는 것도 없으며, 모든 법을 다루지 않으면서 또한 생각함도 없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행(行)에 머문다고 합니까?” - 013_1218_c_16L答曰:“不應聞者而不聽之。”又問:“何謂得至靜然?”荅曰:“見諸所作而無所有,亦無所捨;不御諸法亦無所念。”又問:“何謂住行?”
-
대답하였다.
“공의 행에서 분별하여 교화하지 않고 중생의 그 마음을 관찰하여서 하되, 나라거나 남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말재주를 다 지니고 갖추었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일체 들은 것을 모두 다 지녀 중생의 돌아가는 근원을 분별하며 모든 음성(音聲)에서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천자여, 이것은 보살이 말재주를 모두 지니고 얻은 것이라고 한다.” - 013_1218_c_19L荅曰:“不於空行分別教化,觀察衆生其心所行,不起吾我及他人想。”又問:“何謂摠持備悉辯才?”荅曰:“一切所聞悉能執持;分別衆生根原所歸,於諸音聲而無所著。是爲,天子!菩薩摠持逮得辯才。”
-
013_1219_a_01L이에 대광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누가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습니까?”
문수는 대답하였다.
“선지식의 보살핌을 입고, 또한 전생에 미묘함을 구족하고 덕의 근본을 갖춘 이의 양육을 받는 자라야만 이런 뜻의 말씀을 환히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또 물었다.
“무엇을 즐기며, 성질은 어떠합니까?” - 013_1219_a_02L於是大光菩薩問文殊師利:“誰當啓受如斯言教?”文殊荅曰:“爲善知識所見將護,及往宿世微妙具足善德之本所見養育,乃能曉了此義說耳!”又問:“何所欣樂?志性如何?”
-
대답하였다.
“미묘한 것을 사랑하고 좋아하며, 성질은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스스로 거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
또 물었다.
“무엇을 일러 비구가 스스로 거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만약 비구가 몸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 자연히 대승법을 오롯하게 구할 것이요, 몸의 저절로 그러함을 안다면 저절로 자신을 탐착하지 않고, 분별[二]에 머물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이 비구가 스스로 거만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무명(無明)과 애욕과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고 명(明)의 해탈을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해탈된 것이다. 무명과 애욕과 어리석음이 모두 다 근본이 없는 것임을 환히 깨우치리니, 이것이 비구가 스스로 거만한 마음을 품지 않음이다.” - 013_1219_a_06L荅曰:“愛樂深奧,志性柔和,不懷自大。”又問:“何謂比丘不懷自大?”荅曰:“假使比丘不自見身,自然志求專一大乘;了身自然而於自然不貪己身,不住於二。如是比丘不懷自大,求捨無明;無冥恩愛不志明脫;明脫自然,曉了無明;因愛癡冥,皆悉無本。是爲比丘不懷自大。”
-
문수가 거듭 천자에게 일렀다.
“만약 비구가 탐욕을 떠나고 탐욕의 근본을 이해하며 탐욕을 떠나 청정해지며 저 탐욕행의 근본조차도 없음을 안다면, 또한 성냄을 떠나고 성냄의 근본을 깨우쳐서 성냄의 근본을 떠나 모두 청정해지며, 근본과 지말이 선명해진다면 또한 어리석음의 근본을 떠나고 어리석음을 알고 어리석음을 버려서 본래 모두가 청정하여 어리석음의 근본조차도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을 비구가 스스로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 013_1219_a_13L文殊復謂其天子曰:“假使比丘離於貪婬,解欲本際;離欲淸淨,解於貪欲;行無本際,離瞋恚本;曉瞋恚本,離於瞋恚;本悉淸淨,本末鮮明;離愚癡本,了於愚癡;捨於愚冥,本悉淸淨;曉了愚癡無有根原。如是比丘不懷自大。”
-
013_1219_b_01L문수사리는 다시 천자에게 일렀다.
“만약 비구가 여러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집기[集]를 끊지 못하면 증과(證果)를 이루지 못하나니 모든 집기된 바에서 삿된 길로 가지 않고 여러 괴로움을 환히 깨우쳐 생겨나는 바 없다면 네 가지 진리에 들게 된다. 만일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으면 집기가 없고 이미 집기가 없으면 멸함도 없나니, 이 괴로움이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삿된 길을 걷지 않게 된다.” - 013_1219_a_19L文殊師利復謂天子:“假使比丘不了衆苦,不斷於習而不造證,於諸所習不行徑路;曉了衆苦而無所生,入于四諦。設使於苦無所生者則無有習;已無有習則無盡滅;設使於苦無所生者,則於彼人無行徑路。”
-
이때 마파순이 마음속에 슬픔을 품고 눈물을 비처럼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경전이 유포되는 곳에는 모든 마파순이 자기의 편리함을 얻지 못할 것이며, 만약 받아 지닌다면 마사를 아주 끊어 버릴 것이다.”
마(魔)는 이렇게 말하고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대광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지금 저희들이 그대께서 말씀하신 이치의 경과를 관찰하자니 만일 사람이 스스로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출가하여 배움을 구족하는 복(福)을 되풀이하지 않고, 수행하는 정진의 업(業)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 법을 듣고 두려움을 품어서 받지 않는다면 여래를 거룩한 스승으로 여기지 않는 자인 것이요, 만일 비구ㆍ비구니와 우바새ㆍ우바이가 이 법을 듣고서 기뻐하고 관찰한다면 마땅히 해탈을 얻을 것입니다.” - 013_1219_b_02L爾時魔波旬心懷憂慼,泣淚如雨而說此言:“若此經典所流布處,諸魔波旬不得其便。設有受持,斷絕魔事。”魔說此語則便沒去。於是大光問文殊師利曰:“如今仁者所可講說,吾等觀察義之所歸:假使有人不懷自大,不復具學出家之福,不畏所行精進之業,若聞此法而懷恐懼,亦不啓受,不以如來爲聖師矣!若有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聞是法言而歡喜樂,則當觀之得解脫也!”
-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보살도 이를 말미암아 법인(法忍)을 얻고 수기를 받으며, 이 법인으로 인하여 성문ㆍ연각의 지위에 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물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경전을 무엇이라 이름해야 하며 어떻게 받들어 행하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역(魔逆)이라 이름해야 하니 파순을 항복받고 교화하였기 때문이요, 이 경전을 받들어 지녀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문수사리와 대광천자 및 일체 여러 모인 이들과 하늘ㆍ용ㆍ귀신과 건달바ㆍ아수라와 세간의 사람들이 이 경을 들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갔다. - 013_1219_b_13L佛言:“如是!如爾所說,菩薩由此得忍受決,因斯所忍得生聲聞、緣覺之地。”又問:“唯然,世尊!今此經典當名何等?云何奉行?”佛言:“名曰‘魔逆降化波旬’當奉持之。”佛說如是,文殊師利、大光天子、一切衆會——天、龍、鬼神、揵沓和、阿須輪、世間人——聞經歡喜,作禮而退。
- 013_1219_c_01L 이 고(羔)함의 『마역경』은 법호가 한역한 것이다. 『개원록(開元錄)』을 살펴보니 단권으로 번역한 경으로 단(丹)본과 향(鄕)본이 비록 처음과 끝이 다름이 없지만 송본과는 저 문장의 뜻이 완전히 다르다. 반드시 하나는 옳고 하나는 잘못이니 무엇이 진짜 『마역경』인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송나라 경전을 살펴보니 전부 뒤의 염(念)함 가운데의 『문수사리회과경(文殊師利悔過經)』이 맞다. 송나라 장경의 착오로 『마역경』이라 이름하고 여기에서 거듭 편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송본을 버리고 향본을 취하니 진짜 『마역경』이다. 후현(後賢)들이 지금 버린 경이 어떤 것인지 의심이 난다면 염함의 『문수사리회과경』을 보기를 바란다. 곧 전체가 바로 이것이다.
-
013_1219_c_01L佛說魔逆經一卷
此羔函『魔逆經』,法護譯者,按『開元錄』是單譯經,而丹鄕二本雖始終無異,宋本與彼文義全別,則必有一是一非,未知孰是眞『魔逆經』耶?今撿宋經,全是後念函中『文殊師利悔過經』耳。宋藏錯亂,名“魔逆經”,重編於此。故今去宋取鄕,爲眞『魔逆經』焉。後賢若疑今所去經是何等者,請見念函『文殊師利悔過經』,卽全是爾。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