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彌勒菩薩所問經論卷第七

ABC_IT_K0551_T_007
015_0161_a_01L미륵보살소문경론 제7권
015_0161_a_01L彌勒菩薩所問經論卷第七


후위 보리류지 한역
015_0161_a_02L後魏天竺三藏菩提流支譯



【문】회향의 뜻을 말하고 방편의 뜻을 말하여야 하리라. 어떤 것이 회향의 뜻이며, 어떤 것이 방편의 뜻인가?
015_0161_a_03L問曰應說迴向義及說方便義云何迴向義云何方便義
【답】만약 다른 곳의 선한 뿌리 공덕을 돌리어[廻] 부처님의 보리에 향(向)하면, 이를 회향이라 한다.
또, 부처님의 보리에 의하여 수행하는 마음을 일으켜 한량없는 여러 가지 문을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선한 뿌리를 모아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하려 하나니, 세속 진리[世諦]의 경계와 반야에 의하여 방편을 회향하며 널리 옮아오게 하기 때문이다.
015_0161_a_05L答曰若迴餘處善根功德向佛菩提是名迴向又依佛菩提起修行心無量種門於一切時於一切處集諸善根爲欲證得一切種智依於世諦境界般若迴向方便普令轉來故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세속 진리의 경계와 반야에 의하여 만약 원인은 결과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면, 한량이 있는 원인을 닦아서 깊은 마음으로 보살의 특수한 도의 공덕 등을 성취하고 훌륭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여 한량없는 과보의 가운데에 놓아두나니, 그러므로 방편을 회향한다고 한다.
015_0161_a_10L此明何義以諸菩薩依於世諦境界般若知因似果修有量因深心成就菩薩不共道功德等增長勝法置於無量果報之中是故名爲迴向方便
또, 같이[同] 또는 훌륭하게[勝] 회향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간략히 말하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두 가지의 회향이 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015_0161_a_14L又以同勝迴向故此明何義以略說菩薩摩訶薩有二種迴向何等爲二
첫째 같이 회향[同廻向]함이며, 둘째 훌륭하게 회향[勝廻向]함이다. 같이 회향한다 함은 온갖 선한 뿌리가 모두 다 살바야 지혜에 회향하는 것이다. 훌륭하게 회향한다 함은 무진의수다라의 보시의 과보[布施果] 중에서 말씀하시기를 “밥을 구하면 밥을 주어서 목숨ㆍ변재ㆍ빛깔ㆍ힘ㆍ즐거움 등을 두루 갖추기 때문이며, 마실 것을 구하면 마실 것을 주어서 목마름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니라.
015_0161_a_16L一者同迴向二者勝迴向同迴向者一切善根皆悉迴向薩婆若智勝迴向者如『無盡意修多羅』布施果中說須食與食具足命辯色力樂故須飮與飮離渴愛故
015_0161_b_01L이와 같이 옷을 보시하면 빛깔을 얻고, 탈 것을 보시하면 즐거움을 얻고, 등불을 보시하면 눈을 얻으며, 음악을 베푸는 이는 깨끗한 하늘 귀를 얻는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골수와 뇌를 베푸는 이는 금강의 몸이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느니라”고 하신, 이와 같은 등과 같다.
015_0161_a_21L如是施衣得色施乘得樂施燈得眼施音樂者得淨天耳如是乃至施髓腦者得金剛身堅固不壞如是等
또, 같이 회향함이라 함은 일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며, 훌륭하게 회향한다 함은 아직 믿는 마음을 내지 못한 이에게 믿는 마음을 내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계율을 깨뜨리는 이가 있으면 계율을 지닐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듣고서 아는 지혜가 없는 이면 듣고서 아는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게으른 이가 있으면 힘써 나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015_0161_b_02L又同迴向者爲與一切衆生樂故勝迴向者未生信心者令生信心故若有破戒者令得持戒故若無聞慧者令得聞慧故若有懈怠者令得精進故
만약 잊기를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기억하여 지닐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마음이 흐트러지고 어지러운 이면 선정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지혜가 없는 이면 지혜를 얻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 아까워하는 이가 있으면 버림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것 등이다.
015_0161_b_06L若有憙忘者令得憶持故若心散亂者令得禪定故若無智慧者令得智慧故若有慳惜者令成就捨故如是等
또, 같이 회향함이라 함은 여섯 가지 바라밀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며, 훌륭하게 회향한다 함은 바깥일을 버리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에게 크게 부귀한 자량을 두루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손발 등의 온갖 뼈마디와 모든 감관을 버리어 일체 중생들에게 모든 감관과 손발 등을 두루 갖추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등의 회향은 온갖 수다라 중에서 자세히 말씀하신 줄 알아야 한다.
015_0161_b_09L又同迴向者爲滿六波羅蜜故勝迴向者謂捨外事故爲令一切衆生具足大富資生故手腳等一切肢節及以諸根爲令一切衆生具足諸根手足等故如是等迴向一切修多羅中廣說應知
또, 모든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려 하여 그 때문에 회향한다. 이 뜻은 무엇인가? 보살이 네 가지의 이치를 깨끗이 하려 하기 때문이니, 보시 등의 모든 큰 법을 부처님의 보리에 회향한다.
015_0161_b_14L又爲欲淸淨諸佛國土是故迴向此義云菩薩爲欲淸淨四種義故檀等諸白法迴向佛菩提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하려 함이며, 둘째 보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려 함이며, 셋째 중생의 마음을 교화하고 순숙(淳熟)하여 깨끗이 하려 함이며, 넷째 온갖 부처님 법을 깨끗이 하려 함이다. 보살은 세간의 지위를 얻기 위하여 회향하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회향하지 않고, 성문과 벽지불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회향하지 않는다.
015_0161_b_17L何謂四種一者欲淸淨諸佛國土二者爲欲淸淨菩提之心三者爲欲教化淳熟淸淨衆生之心四者爲欲淸淨一切佛法菩薩不爲得世閒位故迴向不爲求於自身樂故迴向不爲取聲聞辟支佛地故迴向
015_0161_c_01L또, 베푸는 등의 보시로 다하는 원인을 멀리 여의어 회향함으로써 모든 보살은 일체종지의 원인을 취득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방편에 회향할 줄 잘 안다.
015_0161_b_23L又施等布施遠離盡因迴向以諸菩薩取一切種智因是故菩薩善知迴向方便
또, 보살에 네 가지 일이 있으면 보시 등의 공덕이 다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지 않으며, 둘째 세간의 사람과 하늘에 날 곳을 구하며, 셋째 방편에 회향함이 없으며, 넷째 나쁜 벗을 친히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보살은 온갖 보시 등의 선한 뿌리가 다하여 없어진다.
015_0161_c_02L又菩薩有四種施等功德盡何等爲四一者不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二者求於世閒人天生處三者無迴向方便親近惡知識如是菩薩一切施等善根盡滅
만약 보살이 보시 등을 행할 적에 세 가지 법이 언제나 앞에 나타나면, 보살은 그때에 보시 등의 공덕이 다하는 원인을 멀리 여의고 일체종지를 성취할 수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 보리심을 바르게 두루 앎이며, 둘째 중생을 가엾이 여김이며, 셋째 여래의 말씀과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015_0161_c_07L若菩薩行布施等若三種法常現前者菩薩爾時施等功德遠離盡因能成一切種智何等爲三正遍智菩提心二者憐愍衆生不違如來言教
또, 방편을 섭수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아주 작은 선한 뿌리까지라도 섭수함으로써 넓은 과보를 성취할 수 있다.
곧, 저 보시 등에서 세간의 중생들은 하늘과 사람의 과보를 취득하지만, 저 보시 등에서 모든 보살마하살은 부처님 보리를 취득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방편에 회향함을 성취한다.
015_0161_c_11L又以攝受方便故此明何義以諸菩薩乃至攝取微少善根能成就廣果以卽彼布施等世閒衆生取天人果卽彼布施等諸菩薩摩訶薩取佛菩提是故菩薩成就迴向方便
여래께서 방편의 수다라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방편 지혜[方便智]로써 한 입에 넣을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면, 곧 일체 중생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느니라. 왜 그러한가? 보살은 방편 지혜를 지니기 때문에 한 입에 넣을 음식을 축생에게 베풀어 주는데도 마음이 언제나 일체중생과 같이 여기는 것이어서 그 선한 뿌리는 모두 일체 종지에 회향하기를 원하느니라.
015_0161_c_16L如如來方便修多羅中說善男子菩薩摩訶薩以方便智乃至捨一口食施與一人則能遍滿一切衆生何以故菩薩有方便智慧故以一口食乃至施與畜生而心常共一切衆生以彼善根皆願迴向一切種智
보살의 보시는 두 가지 일을 위하여 일체 중생에게 베풀어 주느니라. 첫째는 일체지의 지위를 구함이며, 둘째는 큰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니라.
015_0161_c_22L菩薩布施爲二種事是故施與一切衆生一者一切智地二者迴向大菩提
015_0162_a_01L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으로써 보시를 할 때에 여섯 가지 바라밀을 모두 다 만족시킨다. 무슨 까닭인가? 모든 보살마하살이 빌고 구하는 사람을 볼 때에 아까워하거나 시샘하는 마음을 거두어 조복하면, 크게 버림의 마음이 더욱 자라기 때문에 곧 보시바라밀을 성취하느니라.
015_0162_a_01L復次男子菩薩摩訶薩以方便力施布施六波羅蜜皆悉滿足何以故以諸菩薩摩訶薩見乞索人時攝伏慳嫉心增長大捨心故卽得成就檀波羅蜜
또, 모든 보살은 자신이 지니는 계율로써 계율 지니는 사람에게 보시하고 모든 계율 깨뜨린 사람에게는 계율을 성취하게 한다. 이를 보살마하살의 계율 지님의 바라밀이라 하느니라.
015_0162_a_05L又諸菩薩以自身持戒布施持戒人所有破戒人令成就持戒是名菩薩摩訶薩尸波羅蜜
또, 모든 보살마하살이 인자한 마음과 성내지 않는 마음과 안정된 마음으로 보시하면, 이를 보살마하살의 인욕바라밀이라 하느니라.
015_0162_a_08L又諸菩薩慈心不瞋心定心布施名菩薩摩訶薩羼提波羅蜜
또, 모든 보살이 거타니(佉陀尼)와 포사니(蒲闍尼) 등의 갖가지 음식을 보시하는 몸ㆍ입ㆍ뜻의 업과 가고 오는 거동은, 이를 보살마하살의 정진바라밀이라 하느니라.
015_0162_a_10L又諸菩薩布施佉陁尼蒲闍尼等種種飮食身口意業去來進止是名菩薩摩訶薩毘離耶波羅蜜
또, 모든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오롯한 마음의 한 생각으로 기뻐하고 산란하지 않고 딴 일을 구하지 않으니, 이를 보살마하살의 선정(禪定)바라밀이라 하느니라.
015_0162_a_13L又諸菩薩施布施時專心一念歡喜不散亂不求餘事是名菩薩摩訶薩禪波羅蜜
또, 모든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법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어 ‘누가 버릴 수 있을까, 누가 받을 수 있을까, 누가 과보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보살이 이와 같이 자세히 살피지만 하나의 법도 보이지 않나니, ‘누가 버릴 수 있을까, 누가 받을 수 있을까, 누가 과보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하는 하나의 법도 보이지 않는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등은 방편의 수다라에서 밝히신 방편에 회향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015_0162_a_15L又諸菩薩施布施時觀察法相誰是能捨是能受誰受果報是菩薩如是觀察不見一法以不見一法誰是能捨是能受誰能受果是名菩薩摩訶薩般若波羅蜜如是等方便修多羅中所明迴向方便應知
015_0162_b_01L【문】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한 회향을 말하여야 하리라. 보시와 같은 것 중에서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이 있다면, 이 회향 중에서도 이와 같은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이 있어야 하리라.
【답】수행으로 인한 결과는 그 밖의 온갖 수다라에서 자세히 말씀한 것과 같은 줄 알아야 한다.
015_0162_a_21L問曰應說淨不淨迴向如布施中有淨不淨此迴向中亦應如是有淨不淨云何淨云何不淨答曰因修行果如餘一切修多羅中廣說應知
【문】인자한 마음[慈心]을 성취한다 함을 묻겠다.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방편에 회향함을 잘 아는 것을 말씀한 뒤에 인자한 마음 성취함을 말씀하셨는가?
015_0162_b_02L成就慈心者問曰何故如來說善知迴向方便後次說成就慈心
【답】계율의 지님과 보시는 바로 마음을 산란시키는 것이어서 도를 닦는 공덕은 결정코 욕심세계의 과보를 받지만, 보살은 방편에 회향하여 결정코 욕심세계의 과보를 거두어 큰 보리를 구하는 것으로 전환시켜 그 과보는 일정하지 않다 함을 나타내 보이고 보살도를 잘 닦고 익힐 수 있음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015_0162_b_04L答曰持戒布施是散亂心修道功德決定感於欲界果報菩薩以迴向方便攝取決定欲界果報轉求大菩提示現彼果不定示現善能修習菩薩道故
또, 계율을 지님과 보시는 바로 삼매의 마음이어서 도를 닦는 공덕은 결정코 선정 자리의 과보를 받지만, 보살은 방편에 회향하여 결정코 선정 자리의 과보를 껴잡아 큰 보리를 구하는 것으로 전환시켜 과보는 일정하지 않다 함을 나타내 보이고 보살도를 잘 닦고 익힐 수 있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방편에 회향함을 말씀하시고 다음에 인자한 마음 성취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015_0162_b_08L又持戒布施是三昧心修道功德決定感於禪地果報菩薩以迴向方便攝取決定禪地果報轉求大菩提示現彼果不示現善能修習菩薩道故是故如來說迴向方便復次說成就慈心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범부는 진실한 법계(法界)를 사실대로 모른다. 끝없는 세상으로부터 무지(無智)를 닦고 익혔으므로 무지 때문에 나[我]와 내 것이라는 법을 멀리 여읠 수 없었고 망령되이 나와 내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빛깔 경계의 애욕의 마음에 얽매이게 된다. 그 때문에 마음은 항상 세간의 과보를 구하고 극악한 행위를 지으며 저절로 세간의 과보가 성취되므로 계율과 보시를 수행하면 결정코 같은 세계의 과보가 성취된다.
015_0162_b_13L明何義以諸凡夫不如實知眞實法無始世來修習無智以無智故不能遠離我我所法以其妄執我我所爲色境界愛心所纏是故心常求世閒果作極惡行自然成就世閒果修行戒施決定成就同界果報
그러나 보살의 마음은 모든 세간에 있는 온갖 허물과 근심들을 보고 열반의 안락한 이익을 보고서 진실한 법계를 잘 깨닫고 알 수 있으며, 인연과 함이 있는 모든 행을 잘 알므로 그 마음은 오직 위없는 보리만을 위하여 계율과 보시 등을 닦아서 세간의 모든 험난한 데 떨어져서 방일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려 한다.
015_0162_b_19L菩薩心見諸世閒所有一切種種過見於涅槃安樂利益善能覺知眞實法界善知因緣有爲諸行其心唯爲無上菩提修戒施等爲欲救度世閒所有墮墜嶮難放逸衆生
015_0162_c_01L 계율을 지니고 보시함이 비록 저 세간의 과보를 취득하지 않더라도 중생들을 위하여 온갖 행을 닦으며 자신을 위하여 과보를 취득하지 않으므로, 닦는 큰 공덕의 힘이 더욱 자라나며, 마음을 껴잡아서 방편에 회향하므로 구하는 곳의 과보가 따르며 성취된다.
015_0162_c_01L持戒布雖不取彼世閒果報而爲衆生修一切行不爲自身取於果報增長所修大功德力心能攝受迴向方便順成就求處果報
【문】네 가지 한량없음[四無量]을 말해야 하리라. 어떻게 보살은 네 가지 한량없음을 성취하는가? 어떤 것이 행(行)이며, 어떤 것이 세상의 변론[世辯]이며, 어떤 것이 바탕[體]이며, 어떤 것이 형상[相]이며, 어떤 것이 자리의 차별[地差別]이며, 어디에 의지하여 머무르며, 어느 경계를 자세히 살피며, 어떠한 법을 자세히 살피며, 어떤 것이 서로 응함[相應]이며, 어떤 것이 얻음[得]이며, 어떤 것이 성취된다는 이치인가?
015_0162_c_05L問曰應說四無量云何菩薩成就四無量云何行云何世辯云何體云何云何地差別依止何處觀何境界觀何法云何相應云何得云何成就
【답】어떻게 보살은 네 가지 한량없음을 성취하는가? 그것이 외도들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외도들이 비록 네 가지 한량없음의 행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애욕의 마음에 적셔지고 집착되었나니, 그러므로 형상세계의 과보를 성취한다.
015_0162_c_10L答曰云何菩薩成就四無量者其不同外道等故此明何義諸外道輩雖復修行四無量行以爲愛心之所潤著是故成就色界果報
또, 성문승의 사람과 벽지불 등은 온갖 선한 뿌리를 모두가 자신을 위하고 그 마음은 항상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기 때문에 열반을 취하며, 번뇌의 뜨거움을 두려워하고 모든 번뇌를 누르기 위하여 한량없음을 수행하는 것이며, 중생을 위함은 아니다.
015_0162_c_13L又聲聞辟支佛等一切善根皆爲自身心常爲自身樂故取於涅槃畏煩惱熱爲伏諸結修行無量非爲衆生
만약 보살마하살들이라면, 그 마음은 언제나 일체 중생을 위하여 모든 행을 수행하여 모두를 다 일체 중생에게 돌려 베풀며,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써 계율과 보시 등을 일으킨다.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려 하여 비록 세간의 극악한 허물과 근심에 핍박을 당한다 하더라도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낱낱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고 마침내 온갖 괴로움을 고요히 없앤다.
015_0162_c_16L諸菩薩摩訶薩等其心常爲一切衆修行諸行皆悉轉施一切衆生慈悲心起戒施等爲欲利益一切衆雖爲世閒極惡過患之所逼惱爲不捨諸衆生故爲滅一一衆生苦畢竟寂滅一切苦惱
015_0163_a_01L한량없는 중생들의 몸과 낱낱의 몸에 한량없는 가지가지의 괴로움과 차별이 있음을 자세히 살피고, 또 하나하나의 방편을 사실대로 알아서 저 한량없이 괴로워하는 중생을 구제하며, 한량없는 시일에 비록 열반의 경계를 보고 한량없는 중생을 자세히 살핀다 하더라도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성취할 수 있나니, 이런 이치 때문에 보살이 한량없음을 성취한다고 한다.
015_0162_c_22L觀察無量諸衆生身一一身有無量種種苦惱差復如實知一一方便救彼無量苦惱衆生以無量時雖見涅槃界觀無量衆生能得成就無量佛法以是義名爲菩薩成就無量
또, 과보를 두루 거두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마하살들은 한량없고 그지없는 행을 수행하기 때문에 인자함[慈] 등이 한량없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한량없음을 성취한다.
015_0163_a_04L又以遍取果故此明何義以諸菩薩摩訶薩等修行無量無邊行故慈等無量是故菩薩成就無量
무진의수다라에서 거룩한 무진의가 사리불에게 말한 것과 같다.
“대덕 사리불이여, 보살이 닦는 인자함 또한 다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보살의 인자함은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이러한 닦는 인자함이야말로 제한이 없으며 중생계(衆生界)와 같습니다.
015_0163_a_07L如『無盡意修多羅』中聖者無盡意告舍利弗言大德舍利弗菩薩修慈亦不可盡以故菩薩之慈無量無邊是修慈者無有限齊等衆生界
보살이 인자함을 닦으면서 내는 마음은 널리 덮어지나니, 사리불이여, 마치 허공이 널리 덮지 아니함이 없는 것처럼 이 보살의 인자함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에게 널리 덮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015_0163_a_11L菩薩修慈發心普覆舍利弗譬如虛空無不普覆菩薩慈亦復如是一切衆生無不普
사리불이여, 마치 중생계가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다할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의 닦는 인자함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다할 수가 없으며, 허공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중생계도 다함이 없고 중생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 닦는 인자함도 역시 다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 등이다.
015_0163_a_14L舍利弗如衆生界無量無邊不可窮盡菩薩修慈亦復如是無量無邊不可窮盡虛空無盡故衆生界無盡衆生無盡故菩薩修慈亦不可盡是等
또, 다른 이를 안온하게 하고 공덕을 주기 위하여 마음을 일으켜 수행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한량없음을 닦지만, 자신을 위함이 아니고 일체 중생을 위함이며 필경에는 일체 중생을 안온하게 하기 위하여 공덕을 주는 마음이니, 그 때문에 성취한다.
015_0163_a_18L又爲安隱他與功德故起心修此明何義菩薩摩訶薩修四無量不爲自身爲一切衆生爲畢竟安隱一切衆生與功德心是故成就
015_0163_b_01L무진의수다라에서 무진의보살이 사리불에게 말한 것과 같다.
“대덕 사리불이여, 이 인자함은 스스로 자기 몸을 옹호할 수 있을뿐더러 이 인자함은 역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며, 이 인자함은 다툼이 없고 이 인자함은 온갖 성냄과 원한을 끊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 등이다.
015_0163_a_21L如『無盡意修多羅』中無盡意菩薩告舍利弗言大德舍利弗是慈能自擁護己是慈亦能利益他人是慈無諍慈能斷一切瞋恚嫌恨如是等
어떤 것이 행이냐 함은 싫어하는 것이 있음을 말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싫어함에 의하여 얻게 되는 세 가지 한량없음이니, 저 초선(初禪)의 자리에 있는 한량없음은 욕심세계를 싫어함에서 얻고, 이와 같이 하여 제4선 중에 이르러 있는 한량없음은 3선을 싫어함에서 얻는다. 그런 뒤에 방편을 짓고 그 뒤에 나타나게 된다.
015_0163_b_02L云何行者謂有所厭此明何義依厭所得四無量者彼初禪地所有無量厭欲界得如是乃至第四禪中所有無量厭三禪得而後時作方便後時現前
【문】무엇을 한량없음이라 하여 방편을 수행하는가?
015_0163_b_07L問曰何等名爲無量故修行方便
【답】인자함은 친한 때에 의하여 일으킨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이 만약 네 가지 한량없음을 닦으려 하면, 그때의 마음에는 일체 중생을 세 가지로 분별한다. 첫째가 친한 부분이며, 둘째가 원망하는 부분이며, 셋째가 친함도 아니고 원망도 아닌 부분이다.
015_0163_b_08L答曰慈依親起此明何義菩薩若欲修四無量彼時心於一切衆生三種分別一者親分二者怨分三者親非怨分
친한 부분 중에서도 다시 세 가지로 나누게 되고, 세 가지로 나눈 뒤에는 그 세 가지 부분 중에서 맨 위의 친한 데서 일어나는 것을 맨 위의 친함과 안온함과 즐거운 마음을 준다. 이른바 부모와 그 밖에 존중하는 여러 스승과 승가이다. 끝없는 동안 오면서 익힌 극악한 마음은 평등하기 어렵나니, 그러므로 이와 같이 분별하여 은혜를 갚으며 친한 신분 중에서는 평등할 수 없으므로 차츰차츰 닦고 익힌다.
015_0163_b_11L於親分中復爲三分作三分已彼三分中於上親所起與上親安隱樂心所謂父母及餘尊重諸師僧等以無始來習極惡心難可平等是故如是分別報恩於親分中不能平等轉轉修習
또, 이에 평등하여 만약 마음이 저와 같이 왕성하게 친한 가운데에서나 원망하는 부분 중에서나 간에 마음이 평등함에 머무르면 부모에게 즐거움을 주는 마음과 같아서 다름이 없으리니, 그때에 인자한 마음을 성취한다고 한다.
015_0163_b_16L又乃平等若心如彼增上親中若怨分中心住平等如與父母樂心無異爾時名爲成就慈心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心]과 기뻐하게 하는 마음[喜心]과 버리는 마음[捨心]도 역시 그와 같은 줄 알아야 하며, 버림의 한량없음[捨無量]은 원망하지도 않고 친하지도 않은 부분 중에서 일으켜야 비로소 성취된다.
015_0163_b_19L悲喜捨心亦復如是應知而捨無量從於非怨非親分中起乃成就
또,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번뇌를 여의지 않고서도 선정 자리를 닦고 모은 방편이 한량없으며, 만약 번뇌를 끊으면 초선을 껴잡음이 한량없나니, 이와 같이 네 가지 한량없음을 차례로 성취하는 줄 알아야 한다.
015_0163_b_21L又諸菩薩摩訶薩等不離煩惱修集禪地方便無量若斷煩惱攝取初禪無量如是四無量次第成就應知
015_0163_c_01L또, 네 가지 한량없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중생관(衆生觀)이며, 둘째 법관(法觀)이며, 셋째 무관(無觀)이다.
처음 보리심을 낸 보살이 아직 중생의 모습[相]을 모르면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의 관(觀)과 같아서 한량없나니, 이를 중생관의 한량없음[衆生觀無量]이라고 한다.
015_0163_c_01L又四無量說有三種一者衆生觀法觀三者無觀初發菩提心菩薩未知衆生相同於外道聲聞辟支佛觀無量是名衆生觀無量
또, 모든 보살이 곧 저 중생관이 한량없다가 차례로 점점 더욱 자라서 뛰어나게 되면 사실대로 중생의 모습을 알고서 보살행을 닦지만, 아직 온갖 함이 있는 법의 모습을 모르므로 거짓으로 이름한 중생의 함이 있는 모든 행에 의하여 중생의 모습과 쓸모없는 의론을 일으켜 곧 이 함이 있는 행을 취하여 중생이라 생각하나니, 법관의 한량없음[法觀無量]이라고 한다.
015_0163_c_05L又諸菩薩卽彼衆生觀無量次第漸漸增長勝上如實知衆生相修菩薩未知一切有爲法相依假名衆生有爲諸行起衆生相戲論卽取此有爲行以爲衆生名爲法觀無量
또, 모든 보살이 사실대로 함이 있는 모습을 알 수 있으면 생멸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를 얻으며, 인자한 마음을 따른 뒤에는 다음에 평등관(平等觀)의 반야를 내나니, 인자한 마음이라고 말하며 무관의 한량없음[無觀無量]이라고 하니, 마치 인자한 마음과 함께 서로 응하는 각분(覺分)과 같다.
015_0163_c_10L又諸菩薩能如實知有爲行相得無生法忍從慈心後次生平等觀般若說名慈心名爲無觀無量如共慈心相應覺分此明何義如慈心後次生擇法覺分而說名慈如是慈無量後次得平等觀般若說名慈無量是名無觀無量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인자한 마음의 뒤에 택법각분(擇法覺分)을 내어도 인자함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서, 이와 같이 인자함이 한량없는 뒤에 평등관의 반야를 얻으면 인자함의 한량없음[慈無量]이라 말하나니, 이를 무관의 한량없음이라고 한다.
015_0163_c_17L又諸菩薩摩訶薩等爲與他樂從慈心故起一切行此明何義以諸菩薩摩訶薩等所起諸行一切皆從慈心而生以爲利益他衆生故以爲安隱他衆生故以得無生法忍菩薩摩訶薩般若從慈心起與一切衆生安隱之樂似於慈心說名爲慈
또,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인자한 마음으로부터 짐짓 온갖 행을 일으킨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일으키는 모든 행은 모두가 다 인자한 마음으로부터 나나니, 다른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다른 중생을 안온하게 하기 때문이다.
015_0164_a_01L又世諦境界法第一義諦境界法共相依增長有力能廣修行成就無說名善淸淨說名慈心
생멸 없는 법의 지혜를 얻는 보살마하살의 반야가 만약 인자한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면, 일체 중생의 안온한 즐거움과 함께 인자한 마음과 흡사하므로 인자함이라 말한다.
015_0164_a_04L云何名爲世諦境界爲般若因以諸菩薩見諸法體依慈悲心觀察衆生所作之事不墮聲聞辟支佛地以是義故不捨衆生所作之事是則名爲世諦境界慈悲等法爲般若因
015_0164_a_01L또, 세속 도리[世諦]의 경계의 법과 첫째가는 진리[第一義諦]의 경계의 법은 서로서로 함께 의지하여 더욱 자라서 힘을 지니니, 널리 수행하여 무관(無觀)을 성취할 수 있다. 좋고 깨끗하다고 말하며 인자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015_0164_a_09L云何名爲第一義諦境界般若爲世諦境界慈悲等以諸菩薩欲淸淨世諦慈悲等法以知依止衆生行相起諸煩惱觀察煩惱深衆生行相以如實知煩惱從衆生行相起
어찌하여 세속 도리의 경계가 반야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가? 모든 보살은 모든 법의 바탕을 보고서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의하여 중생들이 짓는 일을 자세히 살피므로 성문과 벽지불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이치 때문에 중생의 하는 일을 버리지 않나니, 이것을 곧 세속 도리의 경계라고 하며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 등의 법은 반야의 원인이 된다.
015_0164_a_14L是故菩薩遠離慈等不淸淨因一切煩惱是名般若能爲世諦境界法因
어찌하여 첫째가는 진리의 경계인 반야는 세속 도리의 경계인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 등이 원인이 된다고 하는가? 모든 보살은 세속 도리인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 등의 법을 깨끗이 하려 하여 중생의 행과 모습에 의지하여 모든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를 자세히 살피어 깊이 중생의 행과 모습을 앎으로써 사실대로 번뇌는 중생의 행과 모습으로부터 일어나는 줄 안다. 그러므로 보살은 인자함 등의 깨끗하지 못한 원인인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의나니, 이를 반야는 세속 도리의 경계인 법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015_0164_a_16L諸菩薩等如是修行般若方便廣修諸行是故成就無生法忍彼時無觀不捨衆生所作事因淸淨究竟慈心名字慈心說名慈心是名無觀
모든 보살들은 이와 같이 반야의 방편을 수행하고 널리 모든 행을 닦나니, 그 때문에 생멸 없는 법의 지혜를 성취한다. 그때에 무관(無觀)으로 중생의 하는 일인 원인을 버리지 아니하여 마지막의 인자한 마음을 깨끗이 하므로 이름이 인자한 마음이며, 인자한 마음이라 말하므로 이를 무관이라고 한다.
015_0164_a_20L云何世辯者釋彼無量名以能觀察無邊衆生故名無量
어떤 것이 세상의 변론인가 함은 저 한량없음의 이름을 해석하여 그지없는 중생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것이니, 그 때문에 한량없음이라고 한다.
015_0164_a_21L云何體者慈悲心體者不瞋善根是何以故對治瞋法故又對治可瞋處是名爲對治不可瞋處是名爲悲
어떤 것이 바탕인가 함은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바탕은 성내지 않는 선한 뿌리가 그것이다. 왜 그러한가? 성냄을 다스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또 성낼 수 있는 것을 다스리므로 이를 인자함이라고 하며, 성낼 수 없는 것을 다스리므로 이를 가엾이 여김이라 한다.
015_0164_b_01L又對治起捨衆生心是名爲慈對治打衆生心是名爲悲是以求功德故能生無非求過故能生無量
015_0164_b_01L또, 중생을 버리려는 마음을 다스리므로 이를 인자함이라 하고, 중생을 때리는 마음을 다스리므로 이를 가엾이 여김이라 한다. 이는 공덕을 구하기 때문에 한량없음을 낼 수 있고 허물을 구함이 아니기 때문에 한량없음을 낼 수 있다.
015_0164_b_04L何以故以諸菩薩乃至斷善根人若求功德見淨業果乃至阿羅漢邊若覓過失見惡業果
왜 그러한가? 모든 보살은 선한 뿌리를 끊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만약 공덕을 구하면 깨끗한 업의 과보를 보고, 아라한의 주변에 이르기까지 만약 과실을 구하면 나쁜 업의 과보를 보기 때문이다.
015_0164_b_07L何以故以見羅漢現身中受不善業果不見過去餘業不盡謂阿羅漢今身造惡以是義故於阿羅漢不能發起慈悲無量喜心體者謂喜根捨心體者不貪善根是
왜 그러한가? 아라한은 현재 몸의 동안에는 선하지 못한 업의 과보를 받는 것을 보지만 과거의 남은 업이 다하지 않았음을 보지 못하나니, 아라한은 지금의 몸으로 나쁜 것을 지었음을 말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아라한은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의 한량없음을 일으킬 수가 없다.
기뻐하게 하는 마음의 바탕은 기뻐함의 뿌리가 그것이며, 버리는 마음의 바탕은 탐내지 아니함의 선한 뿌리가 그것이다.
015_0164_b_11L問曰若如是者則非貪欲及害根等對治之法答曰不然以不瞋善根相應法故故如是說
【문】만약 그렇다면, 탐욕과 해침의 뿌리 따위는 다스림의 법이 아니리라.【답】그렇지 않다. 성내지 않는 선한 뿌리와 서로 응하는 법이기 때문에 짐짓 그렇게 말한다.
015_0164_b_14L問曰若捨心能對治貪法不淨觀亦對治貪法答曰汝知何等貪法捨能對治何等貪法不淨對治
【문】만약 버리는 마음으로 탐냄의 법을 다스릴 수 있다면 부정관(不淨觀)도 역시 탐냄의 법을 다스리리라.【답】그대는 어떠한 탐냄의 법은 버리는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고, 어떠한 탐냄의 법은 부정관으로 다스릴 수 있음을 아는가?
015_0164_b_16L問曰不知答曰汝聽色貪不淨能斷婬貪捨心能斷此四無量共心展轉五陰爲體
【문】모른다.【답】그대는 들어라. 빛깔의 탐냄은 부정관으로 끊을 수 있고, 음행의 탐냄은 버리는 마음으로 끊을 수 있나니, 이 네 가지 한량없음은 마음과 한가지로 차츰차츰 다섯 가지 쌓임이 바탕이 된다.
015_0164_b_19L云何相者與衆生樂相安隱衆生名慈相拔衆生苦相滅相寂靜相憐愍衆生是名悲相離不樂心相疾妒對治法是名喜相捨愛不愛相利益一切衆生事因相違之法自然縱任是名捨相
015_0164_c_01L어떤 것이 형상인가 함은 중생에게 즐거운 형상을 주어 중생을 편안하게 하고 고요하게 하면 이를 인자한 형상[慈相]이라 하고, 중생의 괴로운 형상을 뽑아서 사라짐의 형상과 고요함의 형상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면 이를 가엾이 여기는 형상[悲相]이라 하고, 즐겁지 아니한 마음의 형상을 버리고 시샘이 다스려지는 법이면 이를 기뻐하게 하는 형상[喜相]이라 하며, 사랑함[愛]과 사랑하지 않는 형상을 버리고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과 원인에 서로 어긋나는 법이면 저절로 멋대로 놓아버리면, 이를 버리는 형상[捨相]이라 한다.
015_0164_c_02L云何地差別者除喜無量餘三無量在六地中應知何等爲六謂未來禪及中閒禪四根本禪是名六地初禪二禪有喜無量餘三無量遍四禪中以喜無量喜根爲體故
어떤 것이 자리의 차별이냐 함은 기뻐하게 함의 한량없음[喜無量]을 제외한 그 나머지 세 가지 한량없음은 여섯 가지 자리[六地] 안에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여섯 가지 자리인가? 미래선(未來禪)과 중간선(中間禪)과 네 가지 근본의 선정이니, 이를 여섯 가지 자리라고 한다. 초선과 2선은 기뻐하게 함의 한량없음이 있고, 나머지 세 가지 한량없음은 네 가지 선정 중에 두루 있으며 기뻐하게 함의 한량없음은 기뻐함의 뿌리로 바탕을 삼기 때문이다.
015_0164_c_07L依止何處者依止欲界以欲界中現起四無量非是餘處何以故以欲界衆生多苦惱故見衆生苦起與樂心見衆生苦起拔苦心以色無色界無苦惱故
어디에 의지하며 머무르는가 함은 욕심세계에 의지하여 머무르나니, 욕심세계 중에서 실제로 네 가지 한량없음이 일어나고 그 밖의 처소는 아니다. 왜 그러한가? 욕심세계 중생은 괴로움이 많기 때문에 중생이 괴로워함을 보고서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이 괴로워함을 보고서 괴로움에서 뽑아 주려는 마음을 일으키지만 형상세계와 무형세계에는 괴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015_0164_c_12L又是惱害等對治法故此明何義以四無量對治害等法故
또, 이는 괴로움과 해침 따위가 다스려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네 가지 한량없음은 해침 따위를 다스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015_0164_c_13L以是義故經中說言修行慈心下中上成就離害心修行悲心下中上成就離瞋心修行喜心下中上成就離不樂修行捨心下中上成就離貪欲害等心色無色界貪欲害等皆悉無有
이런 이치 때문에, 경전에서 말씀하기를 “인자한 마음의 아래와 중간과 위를 수행하면 해침을 여의는 마음을 성취하며,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아래와 중간과 위를 수행하면 성냄을 여의는 마음을 성취하며, 기뻐하게 하는 마음의 아래와 중간과 위를 성취하면 즐겁지 않음을 여의는 마음을 성취하며, 버리는 마음의 아래와 중간과 위를 수행하면 탐욕과 해침 따위를 여의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고 하셨나니, 형상세계의 무형세계에는 탐욕과 해침 따위가 모두 없다.
015_0164_c_18L以是義故在欲界中非色無色雖在欲界唯三天下非鬱單越
이런 이치 때문에, 욕심세계 안에 있고 형상세계와 무형세계는 없으며, 비록 욕심세계에 있기는 하나 오직 3천하일뿐이며, 울단월(鬱單越)에는 제외된다.
015_0164_c_20L觀何境界者謂慈觀樂悲觀拔苦觀喜境界捨觀捨境界
어느 경계를 자세히 살피는가 함은 인자함으로써 즐거움을 살피고, 가엾이 여김으로써 괴로움 뽑아버림을 살피고, 기뻐하게 함으로써 기뻐하는 경계를 살피며, 버림으로써 버리는 경계를 자세히 살핀다.
015_0164_c_22L觀何法者謂觀欲界衆生五陰之身或觀二陰又若共心同類彼則五陰不共心同類彼則二陰或觀無心衆或觀一陰衆生或觀二陰衆生
015_0165_a_01L어떠한 법을 자세히 살피는가 함은 욕심세계 중생의 다섯 가지 쌓임인 몸을 자세히 살피나니, 혹은 두 가지 쌓임[二陰]을 자세히 살피기도 한다. 또, 만약 마음을 한 가지로 하는 같은 무리면 그것은 곧 다섯 가지 쌓임이며, 마음을 한 가지로 하는 같은 무리가 아니면 그것은 곧 두 가지 쌓임이다. 혹은 마음이 없는 중생[無心衆生]을 살피기도 하고, 혹은 한 가지 쌓임[一陰]의 중생을 살피기도 하고, 혹은 두 가지 쌓임의 중생을 살피기도 한다.
015_0165_a_03L問曰有經中說慈悲喜捨普遍一方虛空法界如是乃至遍覆十方世界此中唯說觀於衆生其義云何
【문】어느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인자함, 가엾이 여김, 기뻐하게 함, 버림[慈悲喜捨]은 한 편의 허공 법계에 널리 두루하고, 이와 같이 하여 시방 세계에 이르기까지 두루 덮느니라”고 하셨는데, 이 중에서는 다만 중생 살피는 것만을 말하는가. 그 이치는 무엇인가?
015_0165_a_06L答曰遍十方者謂觀一切依世界住所有衆生故言遍覆十方世界非謂遍覆彼器世閒言普遍者示現依彼器世界住所有衆生
【답】시방에 두루한다 함은 세계를 의지하여 머무는 모든 중생 일체를 살피기 때문이다.
시방 세계를 두루 덮는다 함은 저 기세간(器世間)를 두루 덮는다는 것이 아니며, 널리 두루하다 함은 저 기세간에 의지하여 머무르는 모든 중생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015_0165_a_10L又初禪地無量觀欲界衆生二禪地無量觀欲界及初禪如是乃至四禪地無量觀欲界乃至第三禪
또, 초선의 자리 한량없음[初禪地無量]은 욕심세계 중생을 자세히 살피며, 2선의 자리 한량없음[禪地無量]은 욕심세계와 초선을 자세히 살피며, 이와 같이 하여 4선의 자리 한량없음에 이르러서는 욕심세계와 제3선까지를 자세히 살핀다.
015_0165_a_13L又初禪地無量觀欲界及初禪如是乃至四禪地無量觀欲界乃至第四禪又慈觀欲界乃至三禪何以故以慈心觀樂境界故又樂根從欲界乃至第三禪
또, 초선의 자리 한량없음은 욕심세계와 초선을 자세히 살피며, 이렇게 하여 4선의 자리 한량없음에 이르러서는 욕심세계와 제4선까지를 자세히 살핀다.
또, 인자함은 욕심세계와 3선까지를 자세히 살핀다. 왜 그러한가? 인자한 마음으로써 즐거움의 경계를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며, 또 즐거움의 뿌리는 욕심세계로부터 제3선까지이기 때문이다.
015_0165_a_18L悲觀欲界至初禪何以故以悲心觀苦境界故以欲界衆生多苦惱故又苦根從欲界至初禪故
가엾이 여김은 욕심세계와 초선까지를 자세히 살핀다. 왜 그러한가?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써 괴로움의 경계를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며, 욕심세계 중생은 괴로움이 많기 때문이며, 또 괴로움의 뿌리는 욕심세계로부터 초선까지이기 때문이다.
015_0165_a_20L喜觀欲界乃至第二禪何以故以彼喜心勇悅相故又喜根從欲界乃至第二禪故捨觀欲界乃至四禪何以故以捨捨相觀故又捨根從欲界乃至第四禪
기뻐하게 함은 욕심세계와 제2선까지를 자세히 살핀다. 왜 그러한가? 저 기뻐하게 하는 마음은 매우 기뻐하는 형상이기 때문이며, 또 기쁨의 뿌리는 욕심세계로부터 제2선까지이기 때문이다.
버림은 욕심세계와 제4선까지를 자세히 살핀다. 왜 그러한가? 버림과 버림의 형상[捨相]으로써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며, 또 버림의 뿌리는 욕심세계로부터 제4선까지이기 때문이다.
015_0165_b_02L又有人言一切無量唯觀欲界衆生云何相應者初禪二禪地喜根捨根相應第三禪地樂根捨根相應來禪中閒禪第四禪地捨根相應
015_0165_b_01L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온갖 한량없음은 욕심세계의 중생만을 자세히 살핀다”고 하였다.
어떤 것이 서로 응함인가 함은 초선과 2선 자리에서 기뻐하게 함의 뿌리와 버림의 뿌리가 서로 응하며, 제3선의 자리에서 즐거움의 뿌리와 버림의 뿌리가 서로 응하며, 미래선과 중간선과 제4선의 자리에서 버림의 뿌리가 서로 응하게 된다.
015_0165_b_05L云何得者若生第三第四禪者得三無量除喜無量何以故三禪已上無喜根故
어떤 것이 얻음인가 함은, 만약 제3선, 제4선이 생기면 기뻐하게 함의 한량없음을 제외한 세 가지 한량없음을 얻는다. 왜 그러한가? 3선 이상에서는 기뻐하게 함의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015_0165_b_08L又欲界生離煩惱者及在初禪二禪生者得四無量如如來修多羅中說慈無量者至遍淨處以爲邊悲無量者至虛空處以爲邊畔無量者上至識處以爲邊畔捨無量者無所有處以爲邊畔何以故以根本初禪所攝故
또, 욕심세계에서 번뇌를 여읨이 생기거나 초선과 2선에 있으면서 생기면 네 가지 한량없음을 얻는다. 마치 여래의 수다라에서 말씀한 것과 같나니, “인자함의 한량없음은 변정천(遍淨天)까지를 끝으로 삼고, 가엾이 여김의 한량없음은 허공의 처소[空處]까지를 끝으로 삼고, 기뻐하게 함의 한량없음은 위로 의식의 처소[識處]까지를 끝으로 삼고, 버림의 한량없음은 아무것도 없는 처소[無所有處]까지를 끝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왜 그러한가? 근본인 초선은 포섭되기 때문이다.
015_0165_b_14L此明何義以無量從無邊虛空處以爲邊畔故如是說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한량없음은 그지없는 허공의 처소를 끝으로 삼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015_0165_b_15L有人言彼處聖道以無量名說何以以可化衆生有如是根聞無量名來入聖道故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곳의 거룩한 도[聖道]는 한량없음의 이름으로써 말한다”고 하였다. 왜 그러한가? 교화할 수 있는 중생은 이와 같은 근기가 있으므로 한량없음의 이름을 듣고서 거룩한 도에 와서 들기 때문이다.
015_0165_b_18L復有人言依彼對治覺分菩提分說此明何義以第三禪對治覺分卽彼覺分以慈名說如是乃至無所有處依彼對治以捨名說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저 대치각분(對治覺分)과 보리분(菩提分)에 의하여 말한다”고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제3선이 대치각분으로서 곧 각분은 인자함이라 말하며, 이렇게 하여 아무것도 없는 처소에 이르기까지 저 대치각분에 의하여 버림이라 말하게 된다.
015_0165_b_21L有人言彼相似法此明何義以慈觀樂而樂受乃至第三禪中以悲觀苦無邊虛空處共色相違以喜觀無樂而無邊識處識喜住故以捨觀捨而無所有處捨無所捨說名爲捨
015_0165_c_01L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서로가 비슷한 법이다”라고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인자함으로써 즐거움과 즐거움의 느낌을 자세히 살피고, 이에 제3선까지 가엾이 여김으로써 괴로움과 그지없는 허공의 처소가 빛깔이 같은 것과 서로가 어긋남을 자세히 살피며, 기뻐하게 함으로써 즐거워함이 없음과 그지없는 의식의 처소에서 의식의 기쁨이 머무르는 까닭을 자세히 살피며, 버림으로써 버림과 아무것도 없는 처소에서 버리되 버리는 것이 없음을 버림이라고 말함을 자세히 살핀다.
015_0165_c_04L有餘修多羅中說大德舍利弗初發心菩薩以四無量觀於衆生名衆生菩薩摩訶薩行菩薩行觀己行故名爲法觀菩薩摩訶薩得甚深無生法忍名爲無觀
또, 다른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대덕 사리불이여, 처음 마음을 낸 보살은 네 가지 한량없음으로써 중생을 자세히 살피므로 중생관(衆生觀)이라 하며,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행을 행하면서 자기의 행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법관(法觀)이라고 하며, 보살마하살이 매우 깊은 생멸 없는 법의 지혜를 얻으므로 무관(無觀)이라고 하느니라”고 하셨다.
015_0165_c_09L問曰四無量者觀於衆生云何復言觀法觀無
【문】네 가지 한량없음은 중생을 자세히 살피거늘, 어찌하여 또 법(法)을 자세히 살피고 없음[無]을 자세히 살피는가?
015_0165_c_11L答曰爲他利益一切行等以慈相似法故此明何義菩薩摩訶薩爲諸衆生修一切行皆以般若爲是故般若以慈名說
【답】다른 이를 위하여 이롭게 하는 온갖 행 등이 인자함과 서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온갖 행을 닦으나 모두가 반야로써 근본을 삼는다. 그러므로 반야는 인자함이라 말한다.
015_0165_c_14L以彼慈能樂他相故如是菩薩捨自身樂般若波羅蜜與他樂相是故般若以慈名說是故觀法觀無皆是慈悲般若
저 인자함은 남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형상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보살은 자신의 즐거움을 버리며, 반야바라밀은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형상이므로 반야는 인자함이라 말한다. 그 때문에 법을 자세히 살피고 없음을 자세히 살핌은 모두가 이는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과 반야이다.
015_0165_c_17L復有人言無觀慈心以慈名說此明何義以諸菩薩觀察衆生復爲自身推求遠離煩惱方便觀有爲行得甚深無量心時卽得畢竟般若力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무관(無觀)의 인자한 마음을 인자함이라 말한다”고 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중생을 자세히 살피고, 또 자신을 위하여 번뇌를 멀리 여의는 방편을 추구하면서 함이 있음의 행을 자세히 살피어 매우 깊은 한량없음의 마음을 얻을 때에 곧 마지막 반야의 힘을 얻으며,
015_0165_c_21L作是思惟此諸衆生無智所覆不能如實知見法界我當令彼諸衆生等漸漸次第得入正道
생각하기를 ‘이 모든 중생들은 무지(無智)에 덮여서 사실대로 법계를 알거나 볼 수가 없으니, 나는 장차 그 중생들이 점차로 바른 도에 들 수 있게 하리라’고 한다.
015_0166_a_01L復有餘修多羅中佛告諸比丘過去七年修行慈心世界成壞經由七返不來生此乃至無量百千萬劫作轉輪王等
015_0166_a_01L또, 다른 수다라에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에 7년 동안 인자한 마음을 닦고 행하였더니, 세계가 이루어졌다가 무너지기를 일곱 번을 하는 동안에 여기에 와서 나지 않았으며, 한량없는 백천만겁에 이르기까지 전륜왕 등이 되었느니라.”
015_0166_a_05L問曰若四無量所得果報非欲界者云何如來經中說言修行無量所得果報乃至無量百千萬劫作轉輪王
【문】만약 네 가지 한량없음으로써 얻게 되는 과보가 욕심세계의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여래의 경전 중에서 말씀하시기를 “한량없음을 수행한 과보로 한량없는 백천만 겁에 이르기까지 전륜왕(轉輪王)이 되었느니라”고 하시는가?
015_0166_a_08L答曰彼經中依三地無量作是說此義云何有欲界地果報無量作轉輪王有初禪地果報無量作梵天有二禪地果報無量生少光天
【답】그 경전 중에서는 세 가지 자리[三地]의 한량없음에 의하였으므로, 그런 말씀을 하셨다. 이 뜻은 무엇인가? 욕심세계 자리의 과보로서 한량없음은 전륜왕이 되고, 초선 자리의 과보로써 한량없음은 범천왕이 되고, 2선 자리의 과보로서 한량없음은 소광천(少光天)에 난다.
015_0166_a_11L欲界起心三摩跋提所有果報作帝釋王及轉輪王根本地禪所有果報作梵天王生少光天
또, 욕심세계에서 일으키는 마음의 삼마발제(三摩跋提)5)로서의 온갖 과보는 제석왕과 전륜왕이 되고, 근본자리의 선정으로서의 온갖 과보는 범천왕이 되며 소광천에 나게 된다.
015_0166_a_14L復有餘修多羅中佛告比丘過去世時有外道師名善眼世尊彼外道師善眼世尊獲得神通離欲界煩惱
또, 다른 수다라에서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과거의 세상에 외도의 스승으로서 선안세존(善眼世尊)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신통을 얻었고 욕심세계의 번뇌를 여의었느니라.
015_0166_a_17L比丘彼外道師善眼世尊多有無量聲聞弟子有無量百有無量千有無量萬有無量百千萬
비구들아, 그 외도의 스승 선안세존은 한량없는 성문제자들이 있어서 한량없는 백이 있었고 한량없는 천이 있었고 한량없는 만이 있었고 한량없는 백천만이 있었느니라.
015_0166_a_20L諸比丘彼外道師善眼世尊所有聲聞具足持戒外道人修四梵行離欲界煩惱修四梵行生梵世閒
비구들아, 그 외도의 스승 선안세존의 모든 성문들은 두루 갖추어서 계율을 지녔으며, 그 외도들은 네 가지 맑은 행[四梵行]을 닦아 욕심세계의 번뇌(煩惱)를 여의었는데, 네 가지 맑은 행을 닦았으므로 범세간(梵世間)에 났느니라.
015_0166_a_23L諸比丘彼外道師善眼世尊所有弟子不能具足修四梵彼弟子中或生他化自在天者至人中如是等
015_0166_b_01L비구들아, 그 외도의 스승 선안세존에게 있었던 제자들은 네 가지 맑은 행을 갖추어 닦지 못하였으므로 그 제자들 중에는 혹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나기도 하고 인간 중에 나기까지 하는 등 이러하였느니라.
015_0166_b_03L爾時外道師善眼世尊生如是心我今不是云何乃與弟子一處去一處生作是思惟我依慈心修第二禪生少光天
그때 외도의 스승 선안세존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내었나니, ‘나는 이제 이것이 아니로다. 어떻게 하여야 제자들과 함께 한 처소로 가고 한곳에 나게 될까?’ 하고, 이렇게 생각하고서 ‘나는 인자한 마음에 의하여 제2선을 닦아 소광천에 나리라’고 하였느니라.
015_0166_b_06L諸比丘彼時外道師善眼世尊修上大慈入第二禪生第二禪如是等
비구들아, 그때 외도의 스승 선안세존은 ‘으뜸가는 큰 인자함을 닦아 제2선에 들자 제2선이 생기었느니라’”고 하신, 이와 같은 등이다.
015_0166_b_08L問曰若諸菩薩摩訶薩等爲利益他於諸衆生起平等心何故自生勝心慈心修第二禪生少光天而不爲弟子說生少光天法
【문】만약 모든 보살마하살들이라면 다른 이를 이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거늘 무엇 때문에 스스로가 훌륭한 마음과 인자한 마음을 내어서 제2선을 닦고 소광천에 나는가? 그리고 제자들을 위하여 소광천에 나는 법을 말하지 않았는가?
015_0166_b_12L又復有難彼外道師善眼世尊有所說法勝於佛法以故以彼皆生上善道故而如來聲聞亦有入惡道者
또 다시 따질 것이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저 모두가 으뜸가는 선한 갈래에 났기 때문이니, 여래의 성문들도 나쁜 갈래에 들어가는 이가 있다.
015_0166_b_15L答曰此無過失以故菩薩觀機而說法故此明何義以彼外道婆羅門等長夜思惟初梵天處是究竟處隨順樂心而生彼處不能修行生第二禪四無量行
【답】이것은 과실이 없다. 왜 그러한가? 보살은 근기를 자세히 살펴서 법을 말씀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저 외도 바라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생각하기를, ‘처음 범천의 처소가 마지막 처소다’ 하여, 즐거운 마음을 따르면서 그곳에 나므로 제2선을 내는 네 가지 한량없는 행을 수행할 수 없었다.
015_0166_b_19L以是義菩薩善知彼弟子心故不爲說生第二禪四無量行
이런 이치 때문에 보살은 저 제자들의 마음을 잘 알므로 그들을 위하여 제2선을 내는 네 가지 한량없는 행을 말하지 않았다.
015_0166_b_21L又以無力故此明何義有人說言除佛出世無有外道能具修行二禪無量生第二禪唯除大力諸菩薩等
또, 힘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심을 제외하고, 외도로서는 2선의 한량없음을 갖추 수행하여 제2선을 낼 수 없다. 다만 큰 힘을 지닌 보살들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015_0166_c_01L又言外道法勝佛法者此義不然何以故以外道取世閒果故
015_0166_c_01L또, 외도의 법이 부처님 법보다 훌륭하다고 하는데, 이 이치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외도는 세간의 과보를 취득하기 때문이다.
015_0166_c_03L又以時節故此明何義有如是時有衆生生善道處何況復有無量衆生修行無量又言如來弟子入惡道非如來過
또, 시절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이러한 때에 있어서도 많은 중생들이 선한 갈래의 처소에 나거든, 하물며 다시 한량없는 중생들이 한량없음을 닦고 행하는 것이겠는가?
또, 여래의 제자들도 나쁜 갈래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여래의 허물이 아니다.
015_0166_c_07L復有餘修多羅中說有三種行梵行天行聖行梵行者謂四無量天行者所謂四禪聖行者謂三十七菩提分
또 다른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세 가지 행이 있는데, 맑은 행[梵行]과 하늘의 행[天行]과 거룩한 행[聖行]이니라. 맑은 행이라 함은 네 가지 한량없음이며, 하늘의 행이라 함은 이른바 4선(禪)이며, 거룩한 행이라 함은 서른일곱 가지의 보리분법(三十七菩提分法)이니라”고 하셨다.
015_0166_c_11L以何義故說四無量名爲梵行以四無量梵天因故又以修行者身中可得故又以對治非梵行故
【문】무슨 이치 때문에, 네 가지 한량없음을 맑은 행이라 말씀하셨는가?
【답】네 가지 한량없음은 범천의 원인이기 때문이며, 또 수행하는 이는 몸 안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또 맑은 행 아닌 것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015_0166_c_13L問曰何故色界諸善根中唯說無量以爲福事
【문】무엇 때문에 형상세계의 여러 선한 뿌리 가운데서 오직 한량없음만이 복되는 일이 된다고 말하는가?
【답】다른 이의 이익되는 행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남을 이롭게 하는 가운데서 공덕의 모습이 많이 생기고, 다른 이익 중에서는 생기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015_0166_c_15L答曰以爲起他利益行故此明何義世人多於他利益中生功德相餘利益中不多生故
【문】또, 다른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네 가지 사람이 있어서 범천의 공덕을 낼 수 있느니라. 무엇이 네 가지 사람인가?
【답】첫째 기세간의 땅에 아직 탑이 없는 곳인데 그 가운데 탑을 세우는 이이며, 둘째 동산에 숲을 심어서 사방의 승가에 보시하는 이이며, 셋째 먼저 깨뜨려졌던 승가를 화합시키는 이이며, 넷째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을 낼 수 있는 이이니라”고 하셨다.
015_0166_c_17L問曰復有餘修多羅中說有四種人能生梵功德何等爲四一者器世閒地未有塔處於中立塔二者種植園林施四方僧三者和合先破壞僧能生四無量心
【문】만약 네 가지 한량없음을 닦으면 범천의 과보를 얻으므로 범천의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데, 탑 등을 세우는 세 가지도 범천의 과보를 얻는다면 이 이치는 어떠한 것인가?
015_0166_c_22L問曰若修四無量得梵天果得言成就梵天果者立塔等三得梵天果此義云何
015_0167_a_01L【답】맑은 행에 의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허물이 없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탑 등을 세우는 것으로 범천의 과보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만약 어떤 사람이 맑은 행에 의해 여래의 사리탑을 세우면 그 사람은 맑은 행의 공덕을 낼 수가 있으며, 또 맑은 행을 닦는 이에게 동산과 숲을 보시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보시하는 이는 맑은 복을 성취하게 된다. 또 거룩한 도에 의하여 맑은 행을 닦아 익히고 깨뜨려진 승가를 화합시키면 범천의 과보를 얻게 된다.
015_0167_a_01L答曰依梵行說是故無過此明何義非立塔等成就梵果若有人依梵如來立舍利彼人能生梵行功德又依修梵行者施與園林如是施者成就梵福依聖道修習梵行和合破僧得梵天
또, 그것은 서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탑 등을 세우는 세 가지로 범천의 과보를 성취하지만, 공덕은 한결같이 네 가지 한량없음의 과보와 같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조금씩 서로가 비슷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015_0167_a_07L又以彼相似故此明何義立塔等三成就梵天果報功德非一向同四無量果而彼少分相似義故
마치, 사람이 네 가지 한량없음의 마음을 성취하는 그 사람은 곧 중생을 거두어 받기 위하여 한량없는 이익의 공덕을 성취하는 것처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만약 사람이 그 기세간 가운데서 아직 탑이 없는 처소에서 사리탑을 세우거나 승가에 동산과 숲을 보시하거나 깨뜨려진 승가를 화합시키면 그것은 한량없는 복덕을 성취할 수 있다. 이런 이치 때문에 네 가지 한량없음을 닦는 것과 탑을 세우는 것 등의 세 가지는 서로가 비슷한 이치가 있게 된다.
015_0167_a_09L如人成就四無量心彼人則爲攝受衆生成就無量利益功德此亦如是若人於彼器世閒中未有塔處立舍利塔施僧園林和合破僧彼能成就無量福德以是故言修四無量立塔等三有相似義
【문】맑은 행의 공덕은 그 양이 얼마나 되는가?
015_0167_a_15L問曰梵行功德其量幾何
【답】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떠한 업을 따라서 전륜왕이 되어 4천하에서 임금 노릇을 하며 세력이 자재한 것과 맑은 행의 공덕은 그 양이 그와 같은가?”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떠한 업을 따라서 제석왕이 되며 세력이 자재한 것과 맑은 행의 공덕은 그 양이 그와 같은가?”라고 하며,
015_0167_a_16L答曰有人說言隨何等業得轉輪王王四天下勢力自在梵行功德其量如是復有人言隨何等業得帝釋王勢力自在梵行功德其量如是
015_0167_b_01L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떠한 업을 따라서 악마왕이 되어 욕심세계 안에서 세력이 자재한 것과 맑은 행의 공덕은 그 양이 그와 같은가?”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떠한 업을 따라서 범천에 나게 되는 것과 맑은 행의 공덕은 그 양이 그와 같은가?”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범천이 부처님께 법바퀴 굴리기를 청하여 그에 따라 얻게 되는 복과 맑은 행의 공덕은 그 양이 그와 같다”고 한다.
015_0167_a_20L復有人言隨何等業得作魔王於欲界中勢力自在梵行功德其量如是復有人言隨何等業得生梵天梵行功德其量如是復有人言梵天請佛轉于法輪隨所得福梵行功德其量如是
【문】또, 다른 수다라 중에서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인자한 마음을 능히 성취하면, 그 사람의 공덕은 불이 태울 수 없고 물이 떠내려 보낼 수 없고 칼이 벨 수 없고 독이 해칠 수 없으며 수명은 중간에 죽지 않느니라”고 하셨는데, 어떠한 이치 때문에 이와 같은 말을 하였는가?
015_0167_b_02L問曰復有其餘修多羅中如來說言若有人能成就慈心彼人功德火不能燒水不能漂刀不能割毒不能害命不中夭爲何義故作如是說
【답】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지닌 경계는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일체 선정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온갖 업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나니, 이와 같은 것 등이다.
015_0167_b_06L答曰諸佛如來所有境界不可思議一切禪定不可思議一切諸業不可思議如是等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라도 한량없는 중생에게 한량없는 편안함과 고요함을 줄 수 있다”고 하였나니, 그 때문에 저 바깥의 인연으로써는 해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015_0167_b_09L復有人言若人能與無量衆生無量安隱以是故說彼外因緣不能傷害
또, 그 사람은 형상세계의 네 가지 원소[四大]를 기억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그는 인자한 마음을 닦고 익히는 사람으로서 인자한 마음에 들어갔기 때문에 형상세계에 의한 형상세계의 네 가지 원소의 몸을 성취한다. 이런 이치 때문에 바깥의 여러 인연으로써는 해칠 수 없다.
015_0167_b_11L又彼人憶念色界四大此明何義彼修習慈心之人入慈心故依於色界成就色界四大之身以是義故諸因緣不能傷害
【문】어떠한 이치 때문에, 이 수다라에서는 다만 인자한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수행하면 많은 공덕을 얻는다고만 말하고 기뻐하게 함과 버림은 말하지 않는가?
015_0167_b_15L問曰以何義故此修多羅中唯說修行慈心悲心得多功德不言喜捨
【답】다른 이를 이롭게 하며 수행함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닦아서 즐거움을 부여하고 고통을 뽑아 주며,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에 의하기 때문에 마음을 일으켜 수행하고 버리며 보시하는 따위로 한량없는 복을 얻지만, 기뻐하게 함과 버림 등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
015_0167_b_17L以利益他多修行故此明何義慈悲心與樂拔苦依慈悲故起心修捨布施等得無量福而喜捨等不能如是
이런 뜻은 무엇인가? 저 기뻐하게 함의 마음은 다른 중생을 보고 스스로가 선한 업을 닦고 스스로가 즐거움을 받게 됨으로써 그 사람은 기쁨을 낸다. 그러므로 기뻐하게 함과 버림은 이와 같아서 다른 중생이 스스로가 마음으로 성내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愛心]과 해침이 없는 마음을 분별하므로 버림이라 한다.
015_0167_b_21L此義云何以彼喜心見他衆生自修善業自得受樂彼人生喜是故喜捨亦如是以他衆生自心分別瞋心愛心及無害心故名爲捨
015_0167_c_01L 이런 이치 때문에, 기뻐하게 함과 버림의 복은 적지만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의 복은 많으며,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의 마음으로써 다른 이에게 주는 한량없는 이익과 즐거움을 성취하는 것이며, 이는 기뻐하게 하는 마음과 버리는 마음으로써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015_0167_c_01L是義故喜捨福少慈悲福多以慈悲心成就與他無量利樂非是喜心捨心成就
성내는 마음을 다스리면 인자한 마음이라 하며 성내지 않는 선한 뿌리가 바탕이 되기 때문이니, 가장 훌륭한 이치로써 성냄을 다스린다. 왜 그러한가? 성내는 마음 때문에 중생들을 버리며 일체 중생에게 줄 이익되는 일과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지 않는 일을 다스린다.
이로 인하여, 경전 중에서 다스림을 수행하는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 등을 말씀하셨다.
015_0167_c_04L以對治瞋名爲慈心不瞋善根以爲體故以最勝義對治於瞋以故以瞋心故捨諸衆生與一切衆生利益事相違是故菩薩爲欲利益一切衆生對不利益衆生事因此經中說修行對治慈悲心等
또, 보리심을 내어 모든 선한 행을 닦음은 모두가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근본이 된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곧 이 수다라에서 물러나지 않는 마음은 보리심을 내는 원인을 성취하는 것이라 말하였으며, 그 보리심을 내는 데에 처음 내려고 함에는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근본으로 삼나니, 곧 한량없는 공덕을 닦고 모을 수 있는 것은 기뻐하게 함과 버림 등이 아니다.
015_0167_c_09L又發菩提心修諸善行皆慈悲心以爲根本此明何義卽此修多羅中說不退轉心成就發菩提心因彼發菩提心初始欲生依慈悲心以爲根本能修集無量功德非喜捨等
이런 이치 때문에, 이 수다라에서는 오직 인자함과 가엾이 여김만이 공덕을 많이 낸다는 것을 말하고 기뻐하게 함과 버림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10지(地) 수다라에서 말씀하시기를 “저 보살이 보리심을 내되 이 마음은 크게 가엾이 여김이 근본이 되느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것들은 마침내 크게 인자함과 크게 가엾이 여김의 몸ㆍ업ㆍ뜻의 업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015_0167_c_14L以是義此修多羅中唯說慈悲多生功德不言喜捨是故『十地修多羅』中說菩薩發菩提心是心以大悲爲本是等以畢竟成就大慈大悲身口意業故
015_0168_a_01L 또 이 삼매의 몸ㆍ입ㆍ뜻의 업은 인자함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의하여 일어나며, 즐거움을 주는 것과 서로 응하므로 인자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세간의 원인을 보고 가운데서 결과를 말함은 마치 세간에서 나무로 만들고 그림으로 만드는 원인 가운데서 결과를 말하는 것과 같나니, 해침이 없는 몸ㆍ입ㆍ뜻의 업을 성취함은 가엾이 여기는 것으로써 해치는 마음을 다스리고 남을 괴롭히는 몸ㆍ입ㆍ뜻의 업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015_0167_c_19L又是三昧身口意業依慈悲心起樂相應說名慈心以見世閒因中說譬如世閒木作畫作因中說果就無害身口意業以悲對害心不生他惱亂身口意業故
彌勒菩薩所問經論卷第七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5)범어 samāpanna의 음역으로, 정(定)의 하나로서 등지(等至)라고 한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