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553_T_001
-
015_0222_a_01L보계경사법우바제사
보계경사법우바제사번역기[寶髻經四法憂波提舍飜譯之記] - 015_0222_a_01L寶髻經四法憂波提舍翻譯之記
-
보계경은 『대방등대집경[大集]』 가운데의 한 품[集]이다.
그 종지인 4법이 아득하고 깊고 오묘하며 비밀스럽기에 천친보살이 그 이해의 문을 정리해 열었다. 그 때문에 우바제사(優波提舍)라고 한 것이데, 성스럽고 자재한 힘으로 이를 실행한 그 옛날의 사람과 처소와 모임에 대한 기록이 여기에 나온다.
때는 흥화 3년 세차(歲次) 신유년 9월 초하룻날 아침 경오(庚午) 일에 오장국(烏萇國) 사람이며 찰리왕(剎利王) 종족인 삼장법사 비목지선(毘目智仙), 중천축국 바라문 구담류지(瞿曇流支), 호법대사(護法大士) 위(魏)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어사중위(御史中尉) 발해(勃海) 고중밀(高仲密), 법을 아끼는 사문 담림(曇林) 등 도속(道俗)이 함께 업성(鄴城)의 금화사(金華寺)에서 번역하였으니 4,997자(字)이다. - 015_0222_a_02L寶髻經者,是大集中之一集也。其宗四法,玄深奧密,天親菩薩略開其門,是故名爲憂波提舍。聖自在力行之,彼古時人,處會出於此。今興和三年歲次辛酉九月朔旦庚午之日,烏萇國人剎利王種三藏法師毘目智仙,中天竺國婆羅門人,瞿曇流支,護法大士魏驃騎大將軍,開府儀同三司御史中尉勃海高仲密,愛法之人沙門曇林,道俗相假於鄴城內金華寺譯四千九百九十七字。
-
보계경사법우바제사(寶髻經四法憂波提舍) - 015_0222_a_13L寶髻經四法憂波提舍一卷
-
천친(天親) 지음
비목지선(毘目智仙) 한역
이미령 번역 -
015_0222_a_14L天親菩薩造
元魏烏萇國三藏毘目智仙 譯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015_0222_a_16L如是我聞:
-
015_0222_b_01L어느 때 바가바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대비구승과 대보살의 무리들과 함께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 보계보살에게 이르셨다.
‘선남자여, 보살의 네 가지 발기정진(發起精進)1)은 보시를 여의지 않는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모든 중생들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이요, 둘째는 일체불법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이요, 셋째는 구경상(究竟相)과 수형호(隨形好)의 발기정진이요, 넷째는 불세계(佛世界)를 깨끗하게 하는 발기정진이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정진과 나아가 이 수다라를 모두 설하려 한다. - 015_0222_a_17L一時婆伽婆住王舍城耆闍崛山中,與大比丘僧大菩薩衆俱。爾時世尊告寶髻菩薩言:善男子!菩薩四種發起精進不離布施。何等爲四?一者滿足一切衆生發起精進;二者滿足一切佛法發起精進;三者究竟相隨形好發起精進;四者淸淨佛之世界發起精進。如是四種發起精進,乃至盡此修多羅說。
-
이와 같은 보살의 네 가지 올바른 법은 대승경에서 모든 보살행을 섭수하여 증명하는 말씀이니, 이것을 지금 해석하려고 한다.
무슨 까닭에 저 헤아릴 수 없고 깨끗한 정근과 흔들리지 않는 가장 훌륭하고 견고한 정진의 큰 힘을 두루 갖추는 것일까?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으니, 이 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015_0222_b_03L如是菩薩四種正法,大乘經攝諸菩薩行證明說。此今解釋。以何義故,彼不可量無垢精勤不動最勝堅固精進大力具足?如是世尊而說此經。偈言:
-
세존이신 모니왕은
한량없이 정진하시고
티 없는 정근으로 움직임 없어서
가장 훌륭하신 정진력으로
이 수다라를 설하시나니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
015_0222_b_07L世尊牟尼王,
不可量精進,
無垢勤不動,
最勝精進力,
說此修多羅,
爲何所饒益。
-
또한 무슨 까닭에 이름을 세존이라고 하는가? 무슨 이익이 있어 왕사성에 계시는가? 무슨 까닭에 세존께서는 저 보계(寶髻)보살에게 이르시는가? 무슨 까닭에 그 보살을 이름하여 보계라고 하는가? ‘선남자여, 보살의 네 가지 발기정진은 보시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할 때 이와 같은 보살은 어떤 종성인가? 이 뜻을 해석하고자 한다.
무슨 까닭에 네 가지 정진을 일으키되 그 수가 더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것인가? 무엇이 보시이고 몇 가지 보시가 중생의 발기정진을 만족케 하는가? 이것을 해석하려 한다. - 015_0222_b_09L又復何義名爲世尊?何所饒益在王舍城?以何義故世尊告彼寶髻菩薩?何故菩薩名爲寶髻?彼善男子菩薩四種發起精進不離布施,如是菩薩是何種姓?此義須釋。何故發起四種精進不多不少?何者布施?幾種布施滿足衆生發起精進?此應解釋。
-
무엇이 중생인가? 있다고 해야 하는가, 없다고 해야 하는가? 만약 중생이 있다면 모든 법은 중생을 여읜다는 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만약 중생이 없다면 더구나 모든 중생들을 만족케 한다고 말한 것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보살의 보시는 모든 중생들을 만족하게 하는가? 만족하게 하지 못하는가? 만약 모두가 만족한다면 어떤 인연으로 일체 중생들은 자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가? 마치 세존께서 그러한 말씀을 용왕에게 “만약 내가 설한 네 가지 법이 이미 중생을 취했다면 저 모든 중생들은 모두 다 나의 설법을 알 것이다”라고 설하신 것과 같다. 만일 만족하지 못했다면 설해진 수다라의 말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다. - 015_0222_b_16L何者衆生爲有爲無?衆生若有,一切諸法離衆生說,云何可避?衆生若無,而言滿足一切衆生則不相應。菩薩布施爲當滿足一切衆生、爲不滿足?若皆滿足,何因緣故一切衆生不覺不知?如世尊說彼言:“龍王!若我四法已取衆生,彼諸衆生一切皆應知我說法。”若不滿足,自違所說修多羅言。
- 015_0222_c_01L만약 일체 불법을 만족하는 발기정진을 말씀한다면, 그 말씀에서는 무엇을 이름하여 불법이라고 하는가? 또 어떻게 보살이 보시해야 이와 같은 일체 불법을 만족시키는가? 왜 6바라밀을 다시 설해야 하는가? 만약 저 보시가 이와 같이 일체 불법을 만족시킨다면 다섯 가지 바라밀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여섯이 있다고 하면 설해진 수다라의 말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다.
- 015_0222_c_01L若說滿足,一切佛法發起精進,彼說何者名爲佛法?又復云何菩薩布施如是滿足一切佛法,何須更說六波羅蜜?若彼布施如是滿足,是則無有五波羅蜜;若有六者,自違所說修多羅言。
-
만일 구경상(究竟相)과 수형호(隨形好)의 발기정진을 설한다면, 상(相)과 수형호의 뜻에서 무엇이 상호(相好)인지 말해야 한다. 또한 이 뜻은 세존께서 이미 설하셨다. 만일 세존께서 구경상호(究竟相好)와 발기정진의 시(尸) 바라밀을 설하신다면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신다.
“만일 어떤 보살이 상과 수형호를 희망하여 얻고자 해서 보시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하니, 그는 바로 집착을 취하는 보살이다.”
왜 그러한가? 여기서는 시라(尸羅:持戒)바라밀을 따라서 설하였는데 저 처소에서는 이와 같은 인연을 막으니, 이 뜻을 반드시 설해야만 한다. - 015_0222_c_07L若說究竟相隨形好,發起精進相隨形好,此義須說何者相好?又復此義世尊已說,若世尊說究竟相好,發起精進尸波羅蜜。佛如是說,若有菩薩悕望欲得相隨形好而布施者,當知彼是取著菩薩。以何義故?此中隨說尸波羅蜜,彼處則遮如是因緣。此義須說。
-
015_0223_a_01L 만일 청정 불세계의 발기정진을 설한다면, 모든 불세계 가운데 몇 종류가 청정하고 몇 종류가 부정한가? 이 뜻을 반드시 설해야만 한다.
또 이 세존석가모니불의 세계는 청정한가, 청정하지 않은가? 만일 모두 청정하다면 『아미타장엄경』의 설과 어긋나나니, 그 경에서 여래께서 설하시기를 “나는 이제 오탁악세에 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청정하지 않다면 무슨 까닭에 이렇게 말씀하시겠는가?
보살의 네 종류의 발기정진이 보시를 여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뜻을 반드시 설해야만 한다. 요컨대 무엇이 일체중생의 발기정진을 이와 같이 만족시키고 나아가 무엇이 청정불세계의 발기정진인가? 세존께서 이미 설하신 이 모든 것이 의문이다. - 015_0222_c_15L若說淸淨佛之世界發起精進,諸佛世界幾種淸淨、幾種不淨?此義須說。又此世尊釋迦牟尼佛之世界,爲是淸淨、爲不淸淨?若皆淸淨,違『阿彌陁莊嚴經』說。於彼經中如來說言:“我今出於五濁惡世,阿耨多羅三藐三菩提覺。”若不淸淨,何故此說菩薩四種發起精進不離布施?此義須說。以要言之,何者滿足一切衆生發起精進如是,乃至何者淸淨佛之世界發起精進,世尊已說?此皆是難。
- 이와 같은 가장 무구청정(無垢淸淨)하고 훌륭한 수다라는 의문들에 대해서 그 뜻을 이제 설한다. 이 설한 법의 뜻은 무엇인가? 무슨 뜻이기에 저 걸림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더러움을 여읜 뛰어난 지혜가 불가사의한데다 훌륭한 몸과 입과 뜻이 으뜸이어서 천인과 아수라들의 공양을 받으며 고요하고 뛰어난 행이 불가사의할까? 견줄 바 없는[無等等] 빛인 여래께서는 이미 설하셨으니, 이 경의 게송에서는 말한다.
- 015_0223_a_03L如是第一無垢淸淨勝修多羅,如所問難,彼義今說。此所說法,其義云何?以何義故?彼無障礙不可稱量,離垢勝慧不可思議,勝身口意第一,天人阿修羅衆之所供養,寂靜勝行不可思議,無等等光已說。此經偈言:
-
걸림 없이 광활하고 한량이 없이
수승한 지혜는 삼계의 위이시며
몸은 불가사의하시고
입과 뜻 역시 그러하여 -
015_0223_a_09L無㝵廣無量,
勝慧三界上,
身不可思議,
口意亦如是。
-
천인과 아수라
온갖 무리에게 공양을 받는데,
무슨 까닭으로
이 위없고 때[垢)를 여읜 행을 설하십니까? -
015_0223_a_11L天人阿修羅,
衆等所供養,
何義故說此,
無上離垢行。
-
바른 가르침을 부처님께서 이미 설하셨으니
적정의 으뜸가는 행에
불가사의함이 있으시고
견줄 바 없는 광명이 있도다. -
015_0223_a_12L正教佛已說,
寂靜第一行,
有不可思議,
無等等光明。
-
015_0223_b_01L
이 뜻을 이제 의심 있는 자에게 설해서 의심을 끊고 요익케 하고자 한다. 큰 모임에는 하늘도 있고 사람도 있고 아수라도 있지만, 만일 용이나 야차, 구반다 등이라면 불세존께서 보살에게 “음식이나 수레, 의복과 장식하는 갖가지 진귀한 보배와 또는 말이나 코끼리, 그리고 수도할 곳, 동산이나 놀이터, 성읍이나 취락,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 혹은 물가의 땅, 아내나 자식, 머리와 눈, 손과 발, 심장과 피부 그리고 살점과 피와 골수와 상반신 등을 나누어서 보시하라”라고 설하시는 가르침을 듣고 나면 ‘보살이 얼마나 발기정진하여야 이 같은 갖가지 행하기 어려운 보시를 하겠는가?’ 하고 의심을 일으킨다.
여래께서 그들에게 의심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여 아시고 그 의심을 끊기 위하여 “선남자여, 보살의 네 가지 정진은 보시를 여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고는 이 경을 말씀하셨다.
일체지인(一切智人:여래)께서는 이미 이 법을 설하셨으니, 이른바 보살은 보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네 가지 발기정진에는 이와 같은 이익이 있다. - 015_0223_a_13L此義今說,爲有疑者斷疑饒益。於大會中有天有人,有阿修羅、若龍、夜叉、鳩槃茶等,聞佛世尊爲菩薩說,飮食車乘衣服莊嚴、種種珍寶若馬若象、修道之處園林戲處、城邑聚落多人住處,或以洲埏妻子頭目手足心皮肉血骨髓上身等分以用布施。聞此說已生於疑心:菩薩幾許發起精進,如是種種難行布施?如來觀知彼生疑心,斷彼疑故爲說此經,言:“善男子!菩薩四種發起精進不離布施。”一切智人已說此法,非謂菩薩懈怠布施,是故四種發起精進如是饒益。
-
또 여래께서는 어떤 이익되는 바가 있어 이와 같은 단(檀:布施)바라밀의 시행청정(施行淸淨)함을 설하시는가?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단바라밀의 시행청정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자 한다’고 억념(憶念)하면 듣고 나서 이익을 얻는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듣고자 하는가? 내가 지금 설하고자 한다.
이른바 보계 등의 여러 보살이 이와 같은 대성(大聖) 보살들과 함께 선응세계(善應世界)로부터 이곳에 이르러 갖가지 수승하고 묘한 것으로 세존께 공양하였다. 공양하기를 마치고 나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직 보살에게 몇 가지의 정행(淨行)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부디 세존께서 들려주십시오. 저희들은 지금 듣고자 합니다.“ - 015_0223_b_03L又復如來何所饒益而說如是檀波羅蜜施行淸淨?有人憶念:欲聞佛說檀波羅蜜施行淸淨,聞已饒益。何人欲聞?此我今說。所謂:“寶髻諸菩薩等,如是大聖菩薩衆俱,善應世界而來至此,種種勝妙供養世尊。供養已訖,問言:世尊!未知菩薩幾種淨行?願世尊說,我今欲聞。
-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은 네 가지 정행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바라밀의 정행이고, 둘째는 보리분법(菩提分法)의 정행이고, 셋째는 통지구경(通智究竟)의 정행이고, 넷째는 중생순숙(衆生淳熟)의 정행이다.
어떤 것이 보시바라밀의 정행인가? 그분은 어떻게 설하시는가? 세존께서는 보살의 네 가지 발기정진이 보시를 여의지 않는다고 설하신다. 이와 같은 것 등에는 이와 같은 요익이 있다. - 015_0223_b_11L世尊說言:善男子!菩薩具有四種淨行。何等爲四?一者波羅蜜淨行;二者菩提分法淨行;三者通智究竟淨行;四者衆生淳熟淨行。”何者布施波羅蜜淨行?彼云何說?彼世尊說菩薩四種發起精進不離布施如是等,如是饒益。
- 또한 이 뜻에는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것을 내가 지금 설하고자 한다. 이 뜻은 자신뿐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한다.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인(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자기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인을 나타내 보이셨다. 이런 까닭에 이 수다라를 설하셨다.
- 015_0223_b_17L又復此義何所利益?此我今說。爲自利益、爲他利益。不知自他利益因故,如來示彼自他利因,是故爲說此修多羅。
- 015_0223_c_01L일체지인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나타내 보이셨는가? 어떤 사람이 보리심을 발한 뒤에 네 가지 발기정진으로 보시하면 그 사람은 자신과 남의 이익을 구족하니, 오직 구경상호의 발기정진만을 억념해서 불법의 발기정진을 만족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까닭에 보시는 스스로 이익을 얻어서 중생의 발기정진을 만족하고 불세계의 발기정진을 청정케 한다. 이런 까닭에 보시는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얻게 하는데 이와 같이 요익케 한다.
- 015_0223_b_21L一切智人何以故示?有人起發菩提心已,四種發起精進布施,彼人自他利益具足,非唯憶念。究竟相好發起精進,滿足佛法發起精進,是故布施得自利益滿足。衆生發起精進,淨佛世界發起精進,是故布施得他利益如是饒益。
- 또한 어떤 다른 이익이 있는가? 이제 이 뜻을 설하고자 한다. 만일 어떤 보살이 시지(施智)를 배우지 않았다면 그 보살로 하여금 시지를 배우게 하나니, 이와 같은 요익을 일체지인께서는 나타내 보인다. 만일 어떤 보살이 시지를 배우지 않고도 보시를 행한다면, 시(施)라고 이름할 수 있어도 바라밀은 아니다. 세존께서 단바라밀을 설하시면서 그 가운데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항하사 겁 동안 보시를 하였어도 시지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보살은 시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어도 바라밀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 015_0223_c_04L又復更有何所饒益?此義今說。若有菩薩不學施智,令彼菩薩學施智故,如是饒益。一切智示若有菩薩不學施智而亦行施,得名爲施,非波羅蜜。如世尊說檀波羅蜜,彼中說言:“若人恒伽河沙等劫修行布施不學施智,如是菩薩得名爲施,非波羅蜜。”
-
또 다시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제 이 뜻을 설하고자 한다. 만일 어떤 보살이 조금 보시를 행하고 많은 과보를 얻고자 한다면, 어떤 방편을 저 불학인(不學人)에게 써야겠는가? 일체지인께서 훌륭하신 방편(方便)으로 저 불학인을 배우게 해서 그를 이롭게 하기 때문에 이 경을 설하신다. 일체지인께서는 네 가지 방편을 나타내 보이셨으니, 이 방편으로 조금 보시를 행하고도 많은 과보를 얻는다. 이는 『선방편수다라』에서 이렇게 설한 것과 같다.
“선방편(善方便) 보살은 조금 보시하여 널리 짓는다. 널리 짓기가 무량하니 이와 같은 요익함이 있다.” - 015_0223_c_11L又復更有何所饒益?此義今說。若有菩薩欲少行施多得果報,以何方便?彼不學人,一切智人善方便學,彼不學人饒益彼故爲說此經,一切智人四種示現。以此方便,少行布施多得果報。如善方便修多羅說,善方便菩薩少施作廣,廣作無量。如是饒益。
-
015_0224_a_01L또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제 이 뜻을 설한다. 만일 어떤 보살이 원지(願智)를 여의고 있으면 그 보살로 하여금 원지와 화합케 한다. 이와 같은 이익을 일체지인께서는 나타내 보이시는데, 보살이 원하지 않으면 곧 보시하지 않는다.
또한 이와 같이 ‘내가 지금은 음식 등의 보시를 만족하나니, 원하건대 미래세에는 위없는 법으로 보시하여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所畏]과 불공법 등을 만족할지어다. 이와 같이 부처의 법과 상과 수형호를 모두 증득하면 나는 선정불(善淨佛)의 세계를 얻으리라’고 원해서 이와 같은 이익이 있다. - 015_0223_c_18L又復更有何所饒益?此義今說。若有菩薩離於願智,令彼菩薩願智和合。如是饒益。一切智示,菩薩無願則不布施。又如是願:我今食等布施滿足,願未來世以無上法布施,滿足力無所畏不共法等。如是佛法相隨形好皆悉證得,我得善淨佛之世界。如是饒益。
-
또 어떤 이익이 있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보살이 네 가지 구족을 구하면서 그 인(因)을 배우지 않으면, 인을 배우는 이익을 일체지인께서 나타내 보이신다. 만일 네가 네 가지 구족을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네 가지 발기정진을 행하여 보시를 해야만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중승(衆僧)구족, 둘째는 지(智)구족, 셋째는 신(身)구족, 넷째는 불세계(佛世界)구족이니, 일체지인께서 나타내 보이신다. 만일 그대가 네 가지 구족을 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네 가지 발기정진을 행하여 보시를 행해야 한다. 만일 일체 중생이 만족하는 것을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중승구족을 얻고, 만일 일체 불법이 만족함을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지구족을 얻고, 만일 구경상과 수형호를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신구족을 얻고, 만일 청정불의 세계를 설한다면 발기정진이 불세계구족을 얻는다. 이와 같은 이익으로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까닭에 이 경을 설한다. - 015_0224_a_03L又復更有何所饒益?此義今說。菩薩求於四種具足不學其因、學因饒益。一切智示,若汝欲求四種具足,應行四種發起精進行於布施。何等爲四?一者衆僧具足;二者智具足;三者身具足;四者佛世界具足。一切智示,若汝欲求四種具足,應行四種發起精進行於布施。若說滿足一切衆生發起精進,得僧具足。若說滿足一切佛法發起精進,得智具足。若說究竟相隨形好發起精進,得身具足。若說淸淨佛之世界發起精進,得佛世界具足。如是饒益。自他利益,故說此經。
-
015_0224_b_01L또 어떤 뜻이 있어서 세존이라고 이름하는가? 어떤 이익되는 바가 있어서 왕사성에 계시는가? 이 두 가지 의문은 『보리심(菩提心)우바제사』에서와 같으니, 그 설을 알아야만 한다.
무슨 까닭에 보살을 보계라고 이름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이와 같이 무량무수 백천아승기겁에 선근(善根)이 완성되어서 주보계(珠寶髻)를 얻었고 실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7보를 만났으니, 이런 까닭에 저 성현을 이름하여 보계라고 하였다. 비유하면 손에 금강저를 지닌 까닭에 금강수(金剛手)보살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상투 속에 보배구슬이 있기 때문에 이름하여 보계라고 하였으니, 『삼선구족(三善具足)우바제사』의 그 설을 모름지기 알아야 한다. - 015_0224_a_16L又復何義名爲世尊?何所饒益在王舍城?此之二難,如菩提心憂波提舍彼說應知。何故菩薩名寶髻者,彼義今說。如是無量無數百千阿僧祇劫,善根究竟得珠寶髻,直十三千大千世界滿中七寶,是故彼聖名爲寶髻。譬如以手執金剛故名金剛手,如是髻中有寶珠故名爲寶髻。三善具足憂波提舍彼說應知。
- 무슨 까닭에 네 가지 정진을 일으키되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것일까?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이 네 가지 발기정진을 사념(思念)으로 인(因)함으로써 사념의 요익을 구족하여 구경(究竟)에 이른다. 저것에는 어떤 물건이 있어서 사념의 요익이 되는가? 이에 내가 지금 설하겠으니,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저것은 많아서도 안 되고 또한 적어서도 안 된다. 또 사념을 요익해서 구경에 이르는 것은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네 종류를 세존께서는 이미 설하셨다. 비유하면 대장부가 두 다리로 길을 갈 때는 다리가 많아도 필요 없고 다리가 하나만 있어서도 갈 수 없다. 이것 또한 이와 같다.
- 015_0224_b_03L何故發起四種精進,不多不少?彼義今說。以思念因此之四種發起精進,思念饒益具足究竟。彼有何物思念饒益?此我今說。自他利益,彼不須多亦不得少;又復思念饒益究竟不得說少。如是四種,世尊已說,譬如丈夫兩腳得行,更不用多,一不得行。此亦如是。
-
무엇이 보시인가? 몇 종류의 보시가 있는가? 이 두 가지의 의문은 『삼선구족우바제사』의 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중생인가? 중생은 있는가, 없는가? 『보리심우바제사』에서와 같으니, 그 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살의 보시는 일체 중생을 만족케 하는가, 만족케 하지 못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보살은 어떻게 만족케 하는가? 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두루 마음이 평등해서 모든 물건을 희사하여 널리 중생에게 보시하나니, 모든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케 하는 까닭이다. 보살은 어떻게 모든 물건과 자신이 지닌 안팎의 모든 물건을 희사하는가? 일체 중생의 해탈을 염원해서 청정심으로 희사하여 구하고, 바라는 사람이 오면 자기의 물건처럼 생각하도록 하니, 모든 중생들의 평등한 마음을 취하기 때문이다.
만일 보살의 보시가 나와 남이라는 허물을 여의고 옷과 음식 등을 보시하면, 이는 모든 중생들을 만족시킨다. 만일 취하지 않으면 이는 보살의 허물이 아니다. - 015_0224_b_11L何者布施?幾種布施?此二種難,三善具足憂波提舍彼說應知。何者衆生爲有爲無?如菩提心優婆提舍彼說應知。菩薩布施爲當滿足一切衆生、爲不滿足?彼義今說。菩薩滿足,云何滿足?菩薩普於一切衆生心皆平等,捨一切物普施衆生,滿足一切衆生願故。菩薩云何捨一切物?所有一切內外之物,願令一切衆生解脫,淸淨心捨。乞求人來,如自己物自物想,取一切衆生平等心故。若菩薩施,離彼我過捨衣食等,布施滿足一切衆生;若不取者,非菩薩過。
-
015_0224_c_01L보살이 모든 구하는 자에게 마음을 베푸는 것은 마치 용왕과 같다. 비유하면 용왕이 일체를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지만,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왕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용왕이 대밀운(大密雲)을 일으켜 허공을 덮고 평등하게 비를 내리면, 약초와 숲, 나무가 자라나고 산비탈이나 연못이 모두 만족하지만 높은 곳은 받아들이지 않나니, 이것은 용왕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은 모든 구하는 사람에게 평등하게 두루 베풀지만 만일 받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해도 이것은 보살의 허물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의 바람을 만족하게 하기 위하여 보살은 보시할 때에 이와 같은 소원을 짓는다.
“내가 일체 중생의 위없는 즐거움을 만족케 하기 위하여 갖가지 물건을 태어나는 모든 곳마다 베풀어 항상 모든 중생들을 만족케 할지어다.”
이런 까닭에 보살이 소원을 지어서 보시하면 태어나는 곳곳마다 커다란 부귀와 안락함을 얻으며, 그의 원력과 보시력의 훈습으로 인하여 태어나는 곳곳마다 갖가지로 보시하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두 다 만족한다. 살생 등의 갖가지 불선(不善)을 여의면 이것이 바로 두려움 없는 보시라서 모든 중생들이 두루 다 만족하나니, 세존께서 “살생을 그치게 하는 까닭에 이것이 바로 보시이니, 일체 중생이 두려워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만약 그들을 위하여 필경 열반을 나타내 보이면 한량없는 중생들이 열반의 즐거움에 안주한다. 모든 보살들이 부처의 수기를 받은 후에야 보살은 스스로 열반을 취하니, 이러한 인연으로 괴로움을 버리고 즐거움을 얻어서 이와 같이 일체중생을 만족케 한다. - 015_0224_c_01L菩薩心施一切乞者,猶如龍王。譬如龍王,一切求者皆悉等與;若不受者,非龍王過。譬如龍王興大密雲覆於虛空平等降雨,藥草叢林樹木生長,陂池悉滿;高處不受,非龍王咎。如是菩薩平等普施一切乞者,若有不受,非菩薩過,滿足一切衆生願故。菩薩布施作如是願:我爲滿足一切衆生無上樂故,種種物施一切生處,我常滿足一切衆生。是故菩薩作願布施,一切生處得大富樂,以彼願力布施力熏,生生處處種種布施,無量衆生皆悉滿足。離殺生等種種不善是無畏施,一切衆生皆悉滿足。如世尊說:“止殺生故是則布施,一切衆生不畏不憎”如是等故。如爲示現畢竟涅槃,無量衆生住涅槃樂,爲諸菩薩授佛記已,然後菩薩自取涅槃。如是因緣捨苦得樂,如是滿足一切衆生。
- 어떤 것이 불법(佛法)인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법신은 열 가지 힘[十力]과 두려움 없음[無畏]과 부처님만이 지닌 법[不共法] 등에 의지하니, 이것이 바로 불법이다. 저 일체법이 모두 불지(佛知)이니, 그런 까닭에 불법이라고 이름한다. 저 성자 문수사리가 게송에서 설한 것과 같다.
- 015_0224_c_20L何者佛法?彼義今說。法身依止十力、無畏、不共法等,此是佛法。彼一切法皆是佛知,故名佛法。如彼聖者文殊師利所說偈言:
-
015_0225_a_01L
불가사의한 정각과
헤아릴 수 없는 여래는
성문 연각 등으로서는
측량할 수 없는 바이거늘 -
015_0225_a_01L不思議正覺,
不可量如來,
緣覺聲聞等,
所不能測量。
-
하물며 일체중생이
어찌 저 여래를 알 수 있으랴.
범부는 희론을 하지만
여래께는 희론이 없다. -
015_0225_a_03L況一切衆生,
能知彼如來,
凡夫戲論行,
如來無戲論。
-
오직 부처만이 부처를 잘 알며
부처는 법행(法行)에 의지하니,
스스로 그러한 몸과 마음과 지혜[自然身心智]는
부처님이 아니고서는 능히 깨닫는 이 없으리. -
015_0225_a_04L唯佛能知佛,
佛法行依止,
自然身心智,
除佛無能解。
-
015_0225_b_01L
또한 보살은 어떻게 보시해야 이와 같은 일체의 불법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왜 6바라밀을 설해야만 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실제로 여섯 가지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오직 보시만을 말하는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이것은 바로 보살의 선방편의 뜻이다. 선방편 보살의 보시는 곧 능히 6바라밀을 만족시키는 것과 같으니, 『선방편(善方便)수다라』의 설과 『욱가라문(郁伽羅問)수다라』의 설에서와 같다. 재가 보살의 보시는 6바라밀을 만족시키는데, 어떻게 만족시키는가?
이른바 보살이 가지각색의 물건을 구하러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다 베풀어 주되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이것을 단(檀:布施)바라밀이라고 한다. 보리심에 의해서 보시를 수행하면 이것을 시(尸:持戒)바라밀이라고 한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화내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면 이것을 찬제(羼提:忍辱)바라밀이라고 한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면서 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힘이 있으면, 이것을 비리야(毘梨耶:精進)바라밀이라고 한다. 만일 와서 구걸하는 자가 있을 때 물건을 주는데, 주고 나서 아까워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선한 뜻과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을 선(禪)바라밀이라고 한다.
만약 보시하고 나서 모든 법에 대해 마음으로 얻는 바가 없고 과보를 바라지 않아서 저 힐혜(黠慧:반야)로 사소한 법에도 탐착하거나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 것과 같다면, 즉 이와 같이 집착하지 않으며 오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소원한다면 이것을 반야(般若:智慧)바라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6바라밀에 만족하는 것이니, 요약하여 말하자면 모든 것을 구족하는 것이다. 또 세존께서 대승경에서 무량한 구족을 설하신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이 속에 섭수된다. - 015_0225_a_05L又復云何菩薩布施如是滿足一切佛法,何須說六?彼義今說。實有六種。以何意故唯說布施?此義今說。此是菩薩善方便意,如善方便菩薩布施,則能滿足六波羅蜜。如善方便修多羅說、郁伽羅問修多羅說,在家菩薩布施滿足六波羅蜜。云何滿足?所謂菩薩,異異種物,彼彼求者皆悉施與,心不分別,如是名爲檀波羅蜜。依菩提心修行布施,如是名爲尸波羅蜜。於乞求者不瞋不動,如是名爲羼提波羅蜜。若布施他,我何所用,無如是心、有如是力,如是名爲毘梨耶波羅蜜。若有來乞,若施施已不熱不悔,自心喜樂善意心生,如是名爲禪波羅蜜。若布施已,於一切法心無所得不望果報,如彼黠慧無有少法貪著喜樂,如是不著,唯願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是名爲般若波羅蜜。如是滿足六波羅蜜,以要言之一切具足。又如世尊大乘經說無量具足,如是一切皆此中攝。
- 또 대지에 머무는 모든 보살들에게는 이와 같은 뜻이 있다. 저 대지에 머무는 모든 보살들의 뜻은 보시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만족시키는 것이며, 또 모든 중생들을 대치(對治)하기 때문에 세존께서 법을 설하신다. 어떤 중생에게는 보시문(布施門)으로 설하여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만족시키며, 또 어떤 중생에게는 혜문(慧門)으로까지 설하신다.
- 015_0225_b_04L又住大地諸菩薩等,有如是意。彼住大地諸菩薩意,布施滿足一切佛法。又復對治諸衆生故,世尊說法。或有衆生以布施門,爲說滿足一切佛法。或有衆生乃至慧門。
-
또 보살의 소원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니, 보살은 구걸하는 사람의 뜻을 만족케 하면서 이와 같이 소원한다.
“내가 그와 같이 구하는 자의 뜻을 만족케 할 것이며, 이 선근으로 일체 불법을 만족케 하기를 염원하노라.”
이렇게 설하면 곧 허물이 없다. - 015_0225_b_08L又復爲示菩薩願故。菩薩滿足乞求者意,作如是願:如我滿足彼求者意,以此善根,願令滿足一切佛法。如是說者,則無有過。
-
무엇이 상호인가? 이제 그 뜻을 설한다.
32상이란 손과 발에 바퀴 무늬가 있고, 발바닥이 평평하여 지면에 밀착되게 안주할 수 있고, 손가락 사이에 얇은 그물막이 있고, 손과 발이 부드럽고, 일곱 곳이 평평하고 원만하고, 손가락이 길고 몸집이 넉넉하고, 몸이 크고 반듯하며, 목덜미가 마치 조개와 같고, 몸의 털이 위로 감겨져 있고, 장딴지가 사슴의 발꿈치 같고, 넓적다리와 팔뚝이 평평하고, 남근이 말이나 코끼리의 것처럼 몸속에 내밀히 감추어져 있으며, 피부색이 묘한 금색이고, 털구멍 하나에 털이 하나이고, 미간에 백호가 있어 얼굴에 나타나고, 사자의 윗몸과 같고, 어깨의 앞뒤가 둥글고, 등이 평평하고 반듯하고, 맛 중의 으뜸가는 맛을 얻으며, 신체가 원만한 것이 니구타(尼拘陀)와 같고, 정수리 위가 높고 둥글고, 키가 크고 혀가 길고, 미묘한 범천의 음성이고, 사자의 뺨과 턱과 같고, 치아는 희고 고르고 평평하고 촘촘하며, 마흔 개의 치아가 있고, 눈썹은 감청색이며, 소의 왕과 같은 눈이다. - 015_0225_b_12L何者相好?彼義今說。三十二相,所謂手足皆有輪文善安平住,手網縵指,手足柔軟,七處平滿,指長身寬,正直大身,項則如貝,身毛上靡,因尼鹿踹䏶平臂平,陰馬王藏,皮妙金色,一孔一毛,眉閒則有白毫顯面,師子上身肩前後圓,其背平正,味中上味,身體圓滿,如尼拘陁頂上高圓,脩廣長舌妙梵音聲,師子頤頰,齒則鮮白齊平而密,有四十齒,目睫紺靑牛王眼。
- 015_0225_c_01L80종호는 손톱이 두툼하고 붉으며, 지문의 무늬가 둥글고, 힘줄이 깊어서 보이지 않고, 손발의 복사뼈가 평평하고, 뼈마디가 단단하며, 두 발등이 평평하고, 발바닥의 무늬가 길고, 손발이 평정(平正)하며, 지문이 깊고 매끄럽다. 혀는 차례대로 말을 하며, 입술의 색은 빈바과(頻婆果)처럼 붉고 보기 좋으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혀가 붉고 부드럽고 작은 것이 백상왕의 혀와 같으며, 목소리가 우레와 같아서 듣기 좋으며, 그 음성은 마치 문수의 메아리와 같다. 모든 상호를 만족하고 양 어깨가 평평하며, 몸이 정결하고 의상 또한 그러하며, 넓은 몸은 부드럽고 모든 부분이 동등하며, 차례로 선밀(善密)하고, 몸의 마디마디가 좋으며, 마디마디가 넓고 넉넉하며, 훌륭한 좌석이 원만하다. 혀는 올바르고 바른 말을 하며, 말씀은 차제가 있고, 혀를 가지런히 함이 모두 깊고, 비밀을 행하는 선왕(仙王)이 두루 기뻐할 만하며, 가장 착하고 청정하다. 어둠을 여읜 것이 번갯불과 같아서 두루 광명을 비추고, 사자우왕과 용왕 같고, 거위의 걸음처럼 오른쪽으로 돌아서 간다. 혀가 길지도 짧지도 않고 원만하고 보기 좋으며, 배와 옆구리가 튀어나오지 않고, 사악한 탐욕을 여의었으며, 몸은 검지 않고, 티끌과 악함이 없으며, 밖은 둥글고도 날렵하며, 또한 앞다리는 높이 솟아올라 있지 않고, 깨끗해서 티끌과 더러움이 없으며, 미소를 지으시니 너그러우시고, 눈은 푸른 연꽃 같고, 바라야(婆羅耶)에 머물며, 웃음은 법답고, 눈썹이 얼굴에 자리한 곳은 차례대로 상응하고, 눈썹이 반듯해서 삿되지 않고,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지라 모든 허물을 여의어서 비난을 할 수 없고, 모두가 싫어할 수 없으며, 모든 감각기관이 뛰어나고 좋다. 이마 한가운데는 원만하고 으뜸가서 기뻐할 만하고, 얼굴과 이마는 서로 비슷하며, 윗몸은 평평하고 원만하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갖가지 향기가 있고, 단단하지 않고 탁하지도 않으며, 차례대로 팽팽하고, 뛰어나고 미묘한 문장으로 난제선발타마나(難提旋跋陀摩那)가 있고, 몸의 형체가 양에 적당하고, 머리카락이 가지런하여 뒤섞이지 않았다.
- 015_0225_b_22L八十種好,隆赤膩甲圓指錦文,脈深不見,手足踝平,骨節堅密,二足趺平足下文長,手足平正文深膩潤,舌次第語脣色赤好,如頻婆果不高不下,舌赤軟少白象王舌,雷吼雲聲善美音聲如文殊響,滿足衆好兩臂平等,身體淨潔衣裳亦爾,普身柔軟衆分皆等,次第善密身分分善,分分寬博善坐圓滿,舌正美言語論次第齊舌皆深,行密仙王普皆可憙第一善淨,離闇電光普遍光明,師子牛王龍王鵝步右旋轉行,舌不長短舌則圓美,腹脅不卓離於惡欲,身無黑黶無有垢惡外圓而利,又不前卻高隆而淨無有垢穢,笑微而緩,目如靑葉居婆羅耶,笑則如法,眉面處所次第相應,眉正不邪不少不多,皆悉離過不可毀呰皆不可嫌,諸根善勝額中善滿第一可喜,面額相類上身平滿,不白不黑有種種香,不堅不濁次第善緊,勝妙文章有難提旋跋陁摩那,應量身形髮順不亂。
-
015_0226_a_01L부처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이 중에서 상호구경 시바라밀을 가르쳐 보이시는가? 거기에서는 문득 차단했지만 이제 그 뜻을 설하리니, 초업(初業) 보살이 상호를 억념해서 그를 요익함을 얻고자 희망했기 때문에 방편으로 가르쳐 보이신 것이다. 그가 아직 오래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호를 사랑해서 요익을 버리고 여의더라도 비심(悲心)으로 보시하면 요익에 상응하게 되니, 이와 같기 때문에 차단한 것이다.
또 다시 만일 어떤 사람이 미묘한 색의 구경상호에 탐착하여 억념을 희망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차단이 된다.
만일 어떤 중생을 성숙하고 요익케 하려면 그에게 모름지기 가르쳐 보여야 한다.
여기에 어떤 중생이 여래 몸의 상호의 장엄을 보고 보리심을 발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설하나니 『전여신(轉女身)수다라』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다시 아직 보리심을 발하지 않은 자에게는 요익을 가르쳐 보이고, 또한 오래 전에 보리심을 발한 자에게는 공(空)과 동등하게 상응하는 요익 때문에 차단한다. 또 복덕만족의 요익을 갖추니, 이런 까닭에 지혜가 만족의 요익을 구족함을 가르쳐 보이기 때문에 차단한다. 또 세존의 32상과 80수형호의 만족구경(滿足究竟)을 구해서 집착을 취하는 까닭에 차단한다. 또한 희락(喜樂)을 탐착하는 등의 허물을 적정으로 요익해서 그를 위하므로 차단한다. 이와 같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 경에서는 상호구경의 요익을 차단하지 않은 것이다. - 015_0225_c_21L佛何以故,此中教示相好究竟尸波羅蜜,彼中便遮此義?今說初業菩薩憶念相好,悕望欲得。饒益彼故,方便教示;彼未久行,故愛相好捨離饒益,悲心布施相應饒益如是故遮。又復若人貪著妙色究竟相好,悕望憶念,爲彼人遮;若有衆生成熟饒益,彼須教示,此有衆生見如來身相好莊嚴發菩提心,故如是說,如轉女身修多羅說。又復未發菩提心者饒益教示,又復久發菩提心者,空等相應饒益故遮。又具福德滿足饒益,是故教示智具;滿足饒益故遮。又求世尊相隨形好滿足究竟;取著故遮。又復貪著喜樂等過,寂靜饒益;爲彼故遮。如是因緣此經不遮。
-
015_0226_b_01L모든 불세계 가운데 몇 종류가 청정하고 몇 종류가 부정한가? 그 의미를 설하지 못한다. 그 청정하지 않은 것에는 요컨대 두 종류가 있다.
무엇이 두 종류인가? 하나는 중생상(衆生相)이고, 둘은 행상(行相)이다. 중생상은 중생의 허물이고, 행상은 행의 허물이다. 중생의 허물의 악행이란 중생이 갖가지 허망한 견해들에 의지(依止)하는 것이다.
행의 허물이란 구덩이와 흙무더기, 가시 등의 허물이다. 이와 같이 땅은 많은 음식이나 의복이나 보배 등을 수용하는 데 모두 갖추지 않는다. 이와 같이 중생의 공덕과 행공덕을 상대(相對)하기 때문에 세계가 청정하다.
그는 다시 보살의 무량한 갖가지 원력의 자재함이 마땅히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부처님세계의 공덕은 가없고, 보살의 원력이 자재함도 가없고, 정진을 일으키는 것 또한 가없으니, 이와 같은 갖가지를 이루 다 설할 수 없다.
또 이는 모든 불세계의 청정함 가운데 오직 일부분만을 설하였으니, 나머지는 세존의 설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열두 가지의 모든 공덕장(功德場)이 화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면, 그 청정한 자각이이 부처의 세계를 얻는다. 무엇이 열둘인가?
첫째는 겁장(劫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공덕장으로 얻는 것이 모두 구경이다.
둘째는 시장(時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법행(法行) 등으로 얻는 것이 때[時]를 지나치지 않는다.
셋째는 중생장(衆生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법지(法智)로써 얻는다.
넷째는 세계장(世界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선정(善淨)으로써 얻는다.
다섯째는 조어중생장(調御衆生場)이 화합하여 모이는 까닭에 수레를 묶는 가죽이 없는 것으로 얻는다.
여섯째는 승장(乘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일행(一行)으로써 얻는다.
일곱째는 다라니장(陀羅尼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나머지 물건이 없음으로써 얻는다.
여덟째는 불법장(佛法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일체 외도법이 없음으로써 얻는다.
아홉째는 공덕장(功德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아첨하지 않음으로써 얻는다.
열째는 직심심심장(直心深心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본성이 맑고 태어남이 맑고 중생(衆生)의 처소가 맑음으로써 얻는다.
열한째는 성장(聖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복전을 여의지 않음으로써 얻는다.
열두째는 도량(道場)이 화합하여 모인 까닭에 앞의 부처님께서 타신 수레를 탐으로써 얻는다.
다시 이 세존 석가모니불의 세계는 청정한가, 청정하지 않은가?
이제 청정하다고 말하나니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세존의 마음이 선하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제 마음이 청정하지 않아서 이 불세계를 청정하지 않다고 본다면, 이는 그의 뜻에 의지하는 까닭이다. 세존께서는 “내가 지금의 오탁악세에 출현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는다”라고 말씀하셨으니, 마치 『무구칭수다라』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는 것과 같다.
“보살이 불세계를 청정하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하나니, 그 마음의 청정함에 따라서 불세계가 청정해진다. 이때 혜명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서 이런 의심을 일으킨다.
‘만일 보살의 마음이 청정해야 불세계가 깨끗해진다면, 지금 우리 세존 석가모니불께서 보살행을 하실 때 마음이 일찍이 깨끗하지 못하여서 지금의 블세계가 이렇게 부정하다는 말인가?’ - 015_0226_a_14L諸佛世界幾種淸淨幾種不淨?彼義不說。彼不淸淨,要有二種。何者爲二?一者衆生相;二者行相。衆生相者,謂衆生過。言行相者,所謂行過。彼衆生過,惡行衆生依止種種虛妄諸見。彼行過者,坑坎堆阜蕀刺等過。如是地多食飮衣服寶等受用皆不具足。如是相對衆生功德,行功德故世界淸淨。彼復菩薩無量種種願力自在,應如是知。諸佛世界功德無邊,菩薩願力自在無邊,發起精進是亦無邊,如是種種不可盡說。又此諸佛世界淸淨,唯說少分,餘者應知。如世尊說,有十二種諸功德場和合聚集,彼淸淨覺得佛世界。何等十二?一者劫場和集故得,以功德場皆究竟故。二者時場和集故,得以法行等不過時故。三者衆生場和集故得,以法智故。四者世界場和集故得,以善淨故。五者調御衆生場和集故得,以無䩛故。六者乘場和集故得,以一行故。七者陁羅尼場和集故得,以無餘物故。八者佛法場和集故得,以無一切外道法故。九者功德場和集故得,以不諂故。十者直心深心場和集故得,以本性淨生淨衆生處淨故。十一者聖場和集故得,以不離福田故。十二者道場和集故得,以乘前佛所乘來故。又此世尊釋迦牟尼佛之世界,爲是淸淨、爲不淸淨?今說淸淨。何以知之?以世尊心善淸淨故。若復有人心不淸淨故,見此佛世界不淨。依彼意故,世尊說言:“我今出於五濁惡世,阿耨多羅三藐三菩提覺。”如無垢稱修多羅說:“菩薩欲得淨佛世界,當淨其心。隨其心淨,佛世界淨。爾時慧命舍利弗,承佛威神作是疑念:若菩薩心淨佛世界淨者,今我世尊釋迦牟尼,行菩薩時意豈不淨,而佛世界不淨若此?
-
015_0227_a_01L이때 세존께서 혜명 사리불의 생각을 아시고 그에게 물으셨다.
‘사리불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 사리불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해와 달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맹인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혜명 사리불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맹인의 잘못이지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중생도 그러하다. 지혜가 없는 죄 때문에 여래세계의 청정함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여래의 허물이 아니다. 사리불이여, 나의 세계는 언제나 스스로 청정하지만 네가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러자 나계범왕이 혜명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시여, 그대의 뜻으로 이 불세계를 일컬어 청정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세존 석가모니의 세계는 청정합니다.’
혜명 사리불이 범왕에게 물었다.
‘이 불세계가 어떻게 청정하다는 말입니까?’
나계범왕이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비유하자면 타화자재천궁의 장엄이 아주 뛰어나고 묘한 것처럼, 제가 보건대 우리 세존 석가모니의 세계도 청정한 공덕으로 장엄된 모습이 그와 같습니다.’
혜명 사리불이 다시 범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 불세계가 다만 구릉이나 구덩이, 가시와 모래와 자갈과 흙과 돌, 그리고 산들과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 찬 것으로만 보입니다.’
나계범왕이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여, 그대가 그런 마음이기에 언덕과 구덩이 같은 더러운 것이 있습니다. 믿음이 청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불세계의 더러운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덕 사리불이여, 만일 능히 일체중생의 마음이 모두 평등하여 심심(深心)이 청정하다면 곧 이 불세계의 청정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때 세존께서 발가락으로 대지를 누르시자 즉시 삼천대천세계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의 진귀한 보배들로 모두 장엄된 모습이 나타났다. 그 모습은 비유하자면 보장엄불의 무량공덕승묘진보장엄세계와도 같았는데, 이때의 삼천대천세계도 그와 같았다.
대중들이 모두 그것을 보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찬탄하였다. 게다가 자신들이 저절로 보배연꽃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세존께서 혜명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너는 지금 나의 불세계가 한량없는 공덕으로 훌륭하게 장엄된 것을 보는가?’
혜명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세존의 불가사의한 장엄세계의 청정함이 모조리 드러나 있는 것을 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우리 불세계의 청정함은 이와 같지만 하열한 중생은 부정한 모습만을 볼 뿐이다. 사리불이여, 비유하자면 모든 하늘이 같은 보배그릇으로 식사할 때 그 업력에 따라서 밥이 같지 않은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리불이여, 중생은 똑같이 하나의 부처세계에 태어나지만 마음이 깨끗하면 세존의 세계가 깨끗한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지금 이 수다라를 가늠하여 청정함을 설명하였다. - 015_0226_c_07L爾時世尊以知慧命舍利弗念,而問之言:舍利弗!於意云何?汝舍利弗勿作是念。日月豈不淨耶?而盲者不見。慧命舍利弗言:不也。世尊。是盲者過,非日月咎。佛言:舍利弗!衆生如是。無智罪故,不見如來世界淸淨,非如來咎。舍利弗!我此世界常自淸淨,而汝不見。爾時蠡髻梵王語慧命舍利弗言:大德舍利弗!仁意莫謂此佛世界爲不淸淨;今此世尊釋迦牟尼世界淸淨。慧命舍利弗問梵王言:此佛世界云何淸淨?蠡髻梵言:大德舍利弗!譬如他化自在天宮莊嚴殊妙,我見世尊釋迦牟尼世界淸淨功德莊嚴亦復如是。慧命舍利弗復言梵王:我今唯見此佛世界,丘陵坑坎蕀刺沙礫、土石諸山穢惡充滿。螺髻梵言:大德舍利弗!仁者如是心有丘陵坑坎等穢,信不淸淨故,見此佛世界不淨。復次大德舍利弗!若有能於一切衆生心皆平等深心淸淨,則見此佛世界淸淨。爾時世尊足指按地,卽時三千大千世界,無量百千不可計數功德珍寶具足莊嚴,譬如寶莊嚴佛無量功德勝妙珍寶莊嚴世界。時此三千大千世界亦復如是。大衆皆見歎未曾有,而皆自見坐寶蓮華。爾時世尊告慧命舍利弗言:舍利弗!汝今爲見我佛世界無量功德勝莊嚴不?慧命舍利弗言?我見。世尊。本所不見、本所不聞,今見世尊不可思議莊嚴世界淸淨悉現。佛言:舍利弗!我佛世界淸淨如是,下劣衆生見不淨耳。舍利弗!譬如諸天共寶器食,隨其業力飯則不同。如是舍利弗!衆生共生一佛世界,若心淨者則見世尊世界淸淨。”我今以此修多羅量故說淸淨。
- 015_0227_b_01L요점을 말하자면 중생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은 일체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시현하고, 불법을 만족시키는 발기정진은 자증(自證)으로 시현하고, 구경상호 발기정진은 곧 보현의 의지(依止)를 시현하고, 청정세계 발기정진은 일체중생에게 즐거움과 부(富)를 시현한다.
- 015_0227_a_21L以要言之,滿足衆生發起精進,一切衆生等心示現;滿足佛法發起精進,自證示現;究竟相好發起精進,此則示現;普賢依止淸淨世界發起精進,一切衆生富樂示現。
-
또 이런 뜻이 있다. 첫째는 병을 싫어하는 것과 같고, 둘째는 약에 대해 듣는 것과 같으며, 셋째는 약을 바라는 것과 같고, 넷째는 병자가 사는 집과 같다.
또 다시 시현하나니, 첫째는 대비력이고, 둘째는 시지력(示智力)이고, 셋째는 신심력(身心力)이고, 넷째는 직심심심수력(直心深心修力)으로서 이와 같이 시현한다. - 015_0227_b_03L又復有義:初如厭病;二如聞藥;三如悕藥;四如病人所居舍宅。又復示現:初大悲力;二示智力;三身心力;四者直心深心修力。如是示現。
- 또 이런 뜻이 있다. 첫째는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을 것을 설하고, 둘째는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불공법(不共法) 등의 일체 불법을 얻으며, 셋째는 부처님 몸의 상호에 대해 혐오하지 않음을 얻으며, 넷째는 부처님이신 위없는 법왕(法王)이 상응하는 세계를 얻는다.
- 015_0227_b_07L又復有義:初說不捨一切衆生;二者得力、四無所畏、不共法等一切佛法;三者得身著不可嫌;四者得佛無上法王相應世界。
- 또 이런 뜻이 있다. 중생을 만족케 하는 발기정진은 단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을 시현하고, 부처님의 법을 만족시키는 발기정진은 반야바라밀과 지바라밀을 시현하고, 구경상호의 발기정진은 찬제바라밀과 방편바라밀을 시현하며, 부처님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발기정진은 시바라밀과 선바라밀을 이와 같이 시현한다.
-
015_0227_b_11L又復有義:滿足衆生發起精進,檀波羅蜜、毘梨耶波羅蜜爲示現故;滿足佛法發起精進,般若波羅蜜、智波羅蜜故;究竟相好發起精進,羼提波羅蜜、方便波羅蜜故;淨佛世界發起精進,尸波羅蜜、禪波羅蜜。如是示現。
寶髻經四法憂波提舍一卷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발기(發起)란 어떤 물체가 처음으로 생기는 것 또는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워서 어떤 일을 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발기정진(發起精進)은 발근정진(發勤精進)이라고도 하는데, 부지런히 노력을 일으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