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莊嚴經論卷第二

ABC_IT_K0586_T_002
016_0852_a_01L대승장엄경론 제2권
016_0852_a_01L大乘莊嚴經論卷第二


무착보살 지음
016_0852_a_02L無著菩薩造
바라파밀다라 한역
이영무 번역
016_0852_a_03L大唐天竺三藏波羅頗蜜多羅譯


5. 발심품(發心品)
016_0852_a_04L發心品第五

【釋】이와 같이 이미 보살의 종성을 분별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보리심을 낸 모양에 대해 분별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2_a_05L釋曰如是已分別菩薩種性 次分別菩薩發菩提心相 偈曰

용맹과 방편과
이익과 출리(出離),
이 네 가지 큰 것이 나타내는 세 공덕은
두 가지 뜻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016_0852_a_07L勇猛及方便
利益及出離
四大三功德
二義故心起

【釋】보살이 발심하는 데는 네 가지의 큰 것이 있다. 첫째는 용맹이 큰 것이니, 말하자면 큰 서원으로 정진하여서 매우 깊어 짓기 어려운 것을 긴 세월 동안 수순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방편이 큰 것이니, 말하자면 큰 서원의 갑옷을 입고서 항시 방편으로 부지런히 정진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이익이 큰 것이니, 말하자면 모든 때에 자기와 남의 이익을 짓기 때문이요, 넷째는 출리(出離)가 큰 것이니, 말하자면 위가 없는 보리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또는 이 네 가지의 큰 것이 세 가지의 공덕을 나타내 보인다. 첫째와 둘째의 큰 것은 대장부(大丈夫)가 지은 공덕을 나타내 보인 것이요, 세 번째의 큰 것은 큰 뜻의 공덕 지음을 나타내 보였고, 네 번째의 큰 것은 과를 받는 공덕을 나타내 보였으니, 이 세 가지의 공덕은 두 가지의 뜻으로 인연을 삼는다. 즉 하나는 위가 없는 보리요, 또 하나는 모든 중생이다.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서 보리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미 발심하는 상(相)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발심의 차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2_a_09L釋曰菩薩發心有四種大勇猛大謂弘誓精進甚深難作長時隨順故方便大謂被弘誓鉀已恒時方便勤精進故利益大謂一切時作自他利故出離大謂爲求無上菩提 復次此四種大顯示三種功德第二大顯示作丈夫所作功德三大顯示作大義功德第四大顯示受果功德 此三功德以二義爲緣謂無上菩提及一切衆生 由此思故發菩提心 已說發心相 次說發心差 偈曰

믿어 행함과 정의(淨依)와
보로써 얻음과 장애 없음이니
발심하여 여러 지(地)를 의지하는 데는
이 네 가지의 차별이 있다.
016_0852_a_21L信行與淨依
報得及無障
發心依諸地
差別有四種
016_0852_b_02L
【釋】보살이 발심하여 여러 지(地)를 의지하는 데는 네 가지의 차별이 있다. 첫째는 믿고 행하는 발심이니, 말하자면 믿고 행하는 지위이다. 둘째는 정의(淨依)의 발심이니, 말하자면 앞의 7지(地)이다. 셋째는 보(報)를 얻는 발심이니, 말하자면 뒤의 3지이다. 넷째는 장애가 없는 발심이니, 말하자면 여래의 지위이다.
이미 차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마땅히 자세히 해석하고자 한다.
【문】이와 같은 발심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으며, 무엇을 의지하며,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반연하며, 무엇을 타며, 무엇에 머무르며, 어떠한 장애의 어려움들이 있으며, 어떠한 공덕이 있으며, 어떠한 자기 성품이 있으며, 어떠한 것에서 출리(出離)하며, 어떠한 곳에서 끝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2_b_02L釋曰菩薩發心依諸地有四種差別信行發心謂信行地淨依發心謂前七地報得發心謂後三地無障發心謂如來地 已說差別 次當廣釋如此發心以何爲根何所依何所信何所緣何所乘何所住等障難何等功德何等自性何所出何處究竟 偈曰

큰 자비와 중생을 이롭게 함과
큰 법과 장차 종지(種智)를 얻음과
뛰어난 욕심과 또한 크게 보호함과
장애를 받음과 착함을 증장함과
016_0852_b_10L大悲與利物
大法將種智
勝欲亦大護
受障及增善

복과 지혜와 바라밀을 닦음과
지(地)와 지가 차며
처음 근(根)과 나중의 마침에 이르기까지
순서에 따라 해석할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6_0852_b_12L福智與修度
及以地地滿
初根至後竟
隨次解應知

【釋】보살의 발심에는 큰 자비로 근본을 삼고, 중생들을 이롭게 함으로써 의지를 삼으며, 대승의 법으로써 믿음을 삼고, 종지(種智)로써 반연함을 삼는다. 그것들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뛰어난 욕망으로 타는 것을 삼으니, 무상(無上)을 타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게 보호함으로써 머무는 곳을 삼으니, 그것은 보살계(菩薩戒)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를 받음으로써 어려움을 삼으니, 대승과 다른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착함을 증장함으로 공덕을 삼고, 복과 지혜로써 자기의 성품을 삼고, 여러 바라밀을 익힘으로써 출리를 삼으며, 지위를 얻음으로써 구경(究竟)을 삼는다. 지(地)마다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그것들과 더불어 서로 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미 자세히 분별하였으니, 다음에는 세속에 응하여[受] 발심함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2_b_13L釋曰菩薩發心以大悲爲根 以利物爲依止 以大乘法爲所信 以種智爲所緣 爲求彼故 以勝欲爲所乘欲無上乘故以大護爲所住住菩薩戒故以受障爲難起異乘心故 以增善爲功德以福智爲自性 以習諸度爲出 以地滿爲究竟由地地勤方便彼彼相應故 如此已廣分別 次說受世俗發心 偈曰

벗의 힘과 인의 힘과
근본의 힘과 또한 들음의 힘,
이 네 가지의 힘이 합하여 두 가지의 발심을 하니
견고하지 못함과 견고함이다.
016_0852_b_22L友力及因力
根力亦聞力
四力摠二發
不堅及以堅
016_0852_c_02L
【釋】남의 말을 좇아서 깨달음을 얻어 발심하는 것을 세속에 응하여 발심한다고 이른다. 이러한 발심은 네 가지의 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첫째는 벗의 힘으로 발심하거나 혹은 선지식을 얻어 수순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因)의 힘으로 발심하는 것이니, 혹은 과거에 일찍이 발심한 것이 성품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근본의 힘으로 발심하는 것이니, 혹은 과거에 일찍이 여러 선근을 행하여서 원만(圓滿)하였기 때문이다.
넷째는 들음의 힘으로 발심하는 것이니 혹은 곳곳에서 설법할 때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보리의 마음을 발하기 때문이다.
또는 선근을 익힌 자가 혹은 현재에 법답게 항상 듣고 받아 가지는 등이다.
그 네 가지의 힘으로 발심하는 것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견고한 발심이 아닌 것이니, 말하자면 벗의 힘으로 발심하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견고한 발심이니, 말하자면 인(因) 등 세 가지의 힘으로 발심하기 때문이다.
이미 세속의 발심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제일의(第一義)의 발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2_b_24L釋曰若從他說得覺而發心是名受世俗發心 此發心由四力 一者友力發心或得善知識隨順故 二者因力發心或過去曾發心爲性故 三者力發心或過去曾行諸善根所圓滿故四者聞力發心或處處說法時無量衆生發菩提心故 又習善根者或現在如法常聞受持等故 復次彼四力發心摠爲二種 一者不堅發謂友力發心故 二者堅發謂因等三力發心故已說世俗發心 次說第一義發心 偈曰

정변지(正遍知)를 가까이하고
복과 지혜의 무더기를 잘 모아서
법에 있어서 분별이 없으면
가장 위인 참지혜가 생긴다.
016_0852_c_12L親近正遍知
善集福智聚
於法無分別
最上眞智生

【釋】제일의의 발심은 세 가지의 뛰어남이 있음을 나타낸다.
첫째는 교수가 뛰어난 것이니 정변지를 가까이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수순함이 뛰어난 것이니 복과 지혜의 무더기를 잘 모으기 때문이요, 셋째는 과를 얻음이 뛰어난 것이니 무분별의 지혜를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심은 환희지(歡喜地)라고 이르니, 환희의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뛰어남은 무엇으로써 인을 삼습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2_c_14L釋曰第一義發心顯有三種勝授勝親近正遍知故隨順勝善集福智聚故得果勝生無分別智故此發心名歡喜地由歡喜勝故勝以何爲因 偈曰

모든 법과 중생과
짓는 것과 부처님의 체이니
이 네 가지가 평등해지면
그에 따라 환희의 뛰어남을 얻는다.
016_0852_c_19L諸法及衆生
所作及佛體
於此四平等
故得歡喜勝
016_0853_a_02L
【釋】네 가지의 평등이라 함은 첫째로 법이 평등한 것이다. 즉 법이 무아(無我)임을 통달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중생 평등이니, 자기와 남이 평등한 데 이르렀기 때문이다.
셋째로 짓는 것의 평등함이니, 남의 괴로움을 다 없애는 것이 자기의 괴로움을 없애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넷째로 부처님의 체가 평등함이니, 법계(法界)와 내가 구별이 없음을 능히 결정적으로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뛰어난 인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뛰어난 차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2_c_21L釋曰四平等者法平等由通達法無我故衆生平等由至得自他平等故所作平等由令他盡苦如自盡苦故佛體平等由法界與我無別決定能通達故 已說勝因 次說勝差別 偈曰

나는[生] 지위와 원(願)의 지위와
또한 용맹함과 또한 정의(淨依)와
나머지 교묘함과 나머지 출리,
여섯 가지의 뛰어남이 이와 같다.
016_0853_a_04L生位及願位
亦猛亦淨依
餘巧及餘出
六勝復如是

【釋】제일의의 발심에는 다시 여섯 가지의 뛰어남이 있다. 첫째로 태어나는 지위의 뛰어남이요, 둘째로 원(願)의 지위의 뛰어남이요, 셋째로 용맹함의 뛰어남이요, 넷째로 정의(淨依)의 뛰어남이요, 다섯째로 나머지 교묘함의 뛰어남이요, 여섯째로 나머지 출리의 뛰어남 등이다.
【문】이 여섯 가지는 무엇을 일러 뛰어나다고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3_a_06L釋曰第一義發心復有六勝生位願位勝勇猛勝淨依勝餘巧勝餘出勝此六云何勝偈曰

태어남이 뛰어난 것은 네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고
원이 큰 것은 열 가지가 있으며
용맹하여 항상 물러서지 아니하고
정의(淨依)에서 두 가지의 이익이 나오며
016_0853_a_10L生勝由四義
願大有十種
勇猛恒不退
淨依二利生

교묘한 방편으로 나머지의 지위에 나아가고
출리하여서는 잘 사유(思惟)한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도리는
순서대로 여섯 가지의 뛰어남을 이룬다.
016_0853_a_12L巧便進餘地
出離善思惟
如此六道理
次第成六勝
016_0853_b_02L
【釋】‘태어남이 뛰어난 것은 네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첫째는 종자가 뛰어난 것이니 대승의 법을 믿어서 종자를 삼기 때문이요, 둘째는 낳아주는 어머니가 뛰어난 것이니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로 낳아주는 어머니를 삼기 때문이요, 셋째는 태장(胎藏)이 뛰어난 것이니 큰 선정의 즐거움으로 태장을 삼기 때문이요, 넷째는 유모(乳母)가 뛰어난 것이니 큰 자비의 장양(長養)으로 유모를 삼기 때문이다.
‘원이 큰 것은 열 가지가 있다’는 것은 열 가지의 큰 원은 십지경(十地經)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 원을 냄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용맹하여 항상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은 능히 어려운 행을 행하여 길이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정의(淨依)에서 두 가지의 이로움이 난다’는 것은 하나는 자기가 보리에 가까웠음을 아는 것이요, 또 하나는 남을 이롭게 하는 방편을 알기 때문이다.
‘교묘한 방편으로 나머지의 지위에 나아간다’는 것은 더 높은 지위에 나아가는 방편을 얻었기 때문이다.
‘출리하여 잘 사유한다’는 것은 여러 지(地)에 머무는 가운데 건립하는 법을 사유하기 때문이다.
【문】무엇을 일러 사유한다고 합니까?
【답】건립하는 것의 분제(分齊)와 같이 분별하여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별로써 또는 무분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발심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비유를 말하여 이 발심을 나타내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3_a_13L釋曰生勝由四義者種子勝信大乘法爲種子故生母勝般若波羅蜜爲生母故胎藏勝大禪定樂爲胎藏故乳母勝大悲長養爲乳母 願大有十種者十大願如十地經發此願勝故 勇猛恒不退者能行難行永不退故 淨依二利生者自近菩提知利他方便故 巧便進餘地者得趣上地方便故 出離善思惟者思惟住諸地中所建立法故云何思惟如所建立分齊分別知 以是分別亦知無分別故 已說發 次說譬喩顯此發心 偈曰

땅과 같고 깨끗한 금과 같으며
달과 같고 불이 더욱 타오름과 같으며
함장(含藏)과 같고 보배 상자와 같으며
바다와 같고 금강(金剛)과 같으며
016_0853_b_03L如地如淨金
如月如增火
如藏如寶篋
如海如金剛

산과 같고 약왕(藥王)과 같으며
벗과 같고 여의주(如意珠)와 같으며
해와 같고 아름다운 음악과 같으며
임금과 같고 창고와 같으며
016_0853_b_05L如山如藥王
如友如如意
如日如美樂
如王如庫倉

길과 같고 수레나 마차와 같으며
샘과 같고 기쁜 음성과 같으며
흐름과 같고 또한 구름과 같으니
발심의 비유가 이와 같다.
016_0853_b_06L如道如車乘
如泉如喜聲
如流亦如雲
發心譬如是

【釋】이와 같이 발심은 여러 비유들과 더불어 어떠한 뜻에서 서로 같은가?
【답】비유에서 땅과 같다고 함은 최초의 발심이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능히 내고 가지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깨끗한 금과 같다는 것은 서로 응하는 발심이 이와 같이 이익되고 안락(安樂)함에서 물러서고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달과 같다는 것은 부지런한 데 서로 응하여 발심함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착한 법이 점차 더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더욱 타오르는 불과 같다는 것은 극의(極依)와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땔나무를 더하면 불이 치성(熾盛)하듯이 쌓인 행이 극(極)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함장(含藏)과 같다는 것은 단바라밀(보시바라밀)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재물을 두루 주더라도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보배 상자와 같다는 것은 시바라밀(지계바라밀)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공덕의 법보(法寶)가 저기에서 좇아 나오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큰 바다와 같다는 것은 찬제바라밀(인욕바라밀)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온갖 어긋나고 거슬리는 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금강(金剛)과 같다는 것은 비리야바라밀(정진바라밀)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용맹스럽고 단단하여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산왕(山王)과 같다는 것은 선바라밀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물건들에게 동요되지 않아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약왕(藥王)과 같다는 것은 반야바라밀(지혜바라밀)과 서로 응하는 발심이 또한 이와 같아서 미혹[惑]과 지혜의 두 가지 병을 능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016_0853_b_07L釋曰如此發心與諸譬喩何義相似譬如大地最初發心亦如是一切佛法能生持故 譬如淨金依相應發亦如是利益安樂不退壞故 譬如新月勤相應發心亦如是一切善法漸漸增故 譬如增火極依相應發心亦如是益薪火熾積行依極故 譬如大藏檀波羅蜜相應發心亦如是財周給亦無盡故 譬如寶篋尸波羅蜜相應發心亦如是功德法寶從彼生故 譬如大海羼提波羅蜜相應發心亦如是諸來違逆心不動故 譬如金剛毘梨耶波羅蜜相應發心亦如勇猛堅牢不可壞故 譬如山王波羅蜜相應發心亦如是物無能動以不亂故 譬如藥王般若波羅蜜相應發心亦如是惑智二病此能破故
016_0853_c_02L비유에서 착한 벗과 같다는 것은 한량없음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어떤 경우라도 중생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여의주와 같다는 것은 신통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바라거나 나타내고자 함을 따라 능히 성취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작열하는 해와 같다는 것은 4섭법(攝法)과 서로 응하는 발심이 또한 이와 같아서 해가 곡식을 성숙하게 하듯이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같다는 것은 네 가지 걸림이 없는 말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법을 설하고 교화하여서 중생들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국왕(國王)과 같다는 것은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능히 바른 길을 위하여 인을 파괴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창고와 같다는 것은 세 가지 취(聚)와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복과 지혜의 법재(法財)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왕의 길과 같다는 것은 깨달음의 분제와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큰 성인이 먼저 행한 것을 남아 있는 자들이 따라 행하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수레나 마차와 같다는 것은 지(止)와 관(觀)과 서로 응하는 발심이 또한 이와 같아서 두 바퀴가 구족하여 안락하게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솟는 샘물과 같다는 것은 총지(摠持)와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듣는 자가 아무리 많아도 법이 다함없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기쁜 음성과 같다는 것은 법인(法印)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해탈을 구하는 자가 즐겁게 듣는 것이다.
비유에서 강물의 흐름과 같다는 것은 자기 성품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무생인(無生忍)의 도가 자연스럽게 흘러서 뜻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비유에서 큰 구름과 같다는 것은 능히 세계를 이루는 방편과 서로 응하여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이와 같아서 여덟 가지의 상(相)으로 도를 이룸을 나타내 보여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들과 스물두 가지의 비유는 바로 발심에 비유한 것이니, 성자무진혜경(聖者無盡慧經)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미 발심의 비유를 말했으니, 다음은 발심하지 못한 자의 과실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3_b_24L譬如善友無量相應發心亦如是切時中不捨衆生故 譬如如意珠通相應發心亦如是隨所欲現能成就故 譬如盛日攝相應發心亦如是如日熟穀成熟衆生故 譬如美樂相應發心亦如是說法教化攝衆生 譬如國王量相應發心亦如是爲正道不壞因故 譬如倉庫聚相應發心亦如是 福智法財之所聚故如王路覺分相應發心亦如是大聖先行餘隨行故 譬如車乘止觀相應發心亦如是二輪具足安樂去故如涌泉摠持相應發心亦如是聞者雖多法無盡故 譬如喜聲法印相應發心亦如是求解脫者所樂聞故如河流自性相應發心亦如是無生忍道自然而流不作意故 譬如大雲能成世界方便相應發心亦如是現八相成道化衆生故 如此等及二十二譬譬彼發心 如聖者無盡慧經廣說應知 已說發心譬喩 次說不發心過失 偈曰

이로움을 생각함과 방편을 얻음과
뜻을 아는 것과 실지를 증득함,
이와 같은 네 경우의 즐거움들은
적멸에 나아가 향하게 되면 문득 버리게 된다.
016_0853_c_23L思利及得方
解義亦證實
如是四時樂
趣寂則便捨
016_0854_a_02L
【釋】보살에게 네 가지의 즐거움이 있으니, 첫째는 이로움을 생각하는 즐거움이다. 말하자면 남을 이롭게 하기로 생각한 때이다.
둘째는 방편을 얻은 즐거움이다. 말하자면 선교(善巧)의 방편을 얻는 데 이르렀을 때이다.
셋째는 뜻을 아는 즐거움이다. 말하자면 대승의 뜻을 알았을 때이다.
넷째는 실지를 증득한 즐거움이다. 말하자면 인(人)과 법의 무아(無我)를 증득하였을 때이다.
만일 사람이 중생들을 버리고 적멸(寂滅)한 데 나아가 향하게 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보살의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발심하지 못한 것을 꾸짖었다. 그러므로 발심한 자를 마땅히 찬탄해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a_02L釋曰菩薩有四種樂思利樂謂思惟利益他時得方樂謂至得巧方便時解義樂謂解了大乘意時證實樂謂證人法無我時 若人棄捨衆生趣向寂滅應知是人不得菩薩如是四樂 已呵不發心 發心者應讚 偈曰

최초로 큰 마음을 발하였으니
끝없는 악에서 잘 보호하여서
착함이 더하고 자비가 더하기 때문에
즐거워도 기쁘고 괴로워도 기쁘다.
016_0854_a_09L最初發大心
善護無邊惡
善增悲增故
樂喜苦亦喜

【釋】만일 보살이 처음으로 큰 보리의 마음을 내었다면 그때에는 한없는 중생들이 의지한다. 그러기에 잘 보호하여 온갖 악을 짓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악한 길로 물러나 떨어지는 두려움에서 멀리 벗어나게 된다.
또는 착함과 착함을 더함이 있기 때문에 즐거움에 있어서 항상 기뻐하고, 자비와 자비를 더함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에도 항상 기뻐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사람은 착한 길에서 물러나고 마는 두려움을 멀리 벗어나게 된다.
이미 발심을 찬탄하였으니, 다음에는 이 발심으로 인하여 보호를 짓지 않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a_11L釋曰若菩薩初發大菩提心爾時依無邊衆生卽得善護不作諸惡 爲此是人遠離退墮惡道畏 復次由有善及增故於樂常喜由有悲及增故於苦常喜 爲此故是人遠離退失善道畏 已讚發心 次說因此發心得不作護 偈曰

남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여
자기를 잊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자기를 위하여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어찌 착하지 못한 업을 지으리오.
016_0854_a_18L愛他過自愛
忘己利衆生
不爲自憎他
豈作不善業

【釋】간략하게 그 뜻을 보이겠다. 보살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다. 이로 말미암아 자기의 몸과 목숨을 잊고 남을 이롭게 하며,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능히 중생에게 악한 업을 끊게 한다.
이미 보호를 짓지 않음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퇴전하지 않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a_20L釋曰若略示彼義菩薩愛他過於自由此故忘自身命而利於他不爲自利而損於彼由此故能於衆生絕諸惡業 已說得不作護 次說得不退 偈曰
016_0854_b_02L
법을 관찰하기를 환(幻)과 같이 하고
태어남을 관찰하기를 동산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하면
이루어지든지 이루어지지 않든지
미혹[惑]과 괴로움 모두에 두려움이 없어지리.
016_0854_b_02L觀法如知幻
觀生如入苑
若成若不成
惑苦皆無怖

【釋】보살이 모든 법을 관찰할 때에 환인 줄 아는 것같이 하면 그 관이 성취될 때에는 번뇌에 있어서 두려움을 내지 않는다.
그리고 보살이 자신이 나는 곳[生處]을 관찰할 때에 동산에 들어감과 같이 하면 그 관이 성취되지 못했을 때에도 고뇌에서 또한 두려움을 내지 않는다. 만일 이와 같은 자라면 다시 어떤 뜻이 있어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서겠는가? 다시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b_04L釋曰菩薩觀一切諸法如似知幻成就時於煩惱不生怖菩薩觀自生如入園苑若不成就時於苦惱不生怖若如是者更有何意而退菩提心耶 復次偈曰

스스로 꾸밈과 스스로 먹음과
동산의 땅과 희롱하여 기뻐함,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일이 있는데
슬퍼하는 자는 다른 승(乘)이 아닐는지.
016_0854_b_09L自嚴及自食
園地與戲喜
如是有四事
悲者非餘乘

【釋】보살은 자기의 공덕으로써 자신을 장엄하게 꾸미고, 남을 이익되게 하는 기쁨으로써 자신의 식사로 삼으며, 뜻을 지어 나는 곳으로써 동산의 땅을 삼고, 신통과 변화로써 유희와 기쁨을 삼는다.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일은 오직 보살에게만 있고 이승에게는 없다. 보살에게 이미 이러한 네 가지의 일이 있으니, 어떻게 보리심에서 물러서겠는가?
이미 물러서지 않는 마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고(苦)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b_11L釋曰菩薩以自功德而爲自嚴以利他歡喜而爲自食以作意生處而爲園地以神通變化而爲戲喜 如此四唯菩薩有於二乘無 菩薩旣有此四事云何當退菩提心 已說不退心次遮畏苦心 偈曰

매우 부지런히 중생을 이롭게 하니
큰 자비로 성품을 삼기 때문이다.
무간지옥(無間地獄)도 즐거운 곳으로 여기거니와
어찌 온갖 고통 있음을 두려워하리오.
016_0854_b_17L極勤利衆生
大悲爲性故
無閒如樂處
豈怖諸有苦

【釋】보살은 큰 자비로 체를 삼는다. 그러기에 매우 부지런히 남을 이롭게 하여 비록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간다 해도 놀며 즐기는 곳과 같다. 보살은 이와 같은데 다른 고통 속에서 어찌 두려움을 내서 이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물러서겠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b_19L釋曰菩薩以大悲爲體是故極勤利 雖入阿鼻地獄如遊樂處 菩薩如是於餘苦中豈生怖畏因此怖畏退心耶 偈曰

큰 자비를 항상 마음에 두어서
남의 괴로움을 자기 괴로움처럼 여기네.
자연히 지을 것을 지어야 하니
권함을 기다린다면 매우 부끄러울 것이네.
016_0854_b_23L大悲恒在意
他苦爲自苦
自然作所作
待勸深慚羞
016_0854_c_02L
【釋】여러 보살들은 큰 자비가 항상 마음 가운데 있어서 만일 중생들이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스스로 괴로움을 느낀다. 이러한 도리도 마땅히 지을 것을 짓는다. 그러므로 만일 착한 벗이 권해 주게 되면 매우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c_02L釋曰諸菩薩大悲闍梨常在心中見衆生受苦卽自生苦由此道理然作所應作 若待善友勸發深生極重慚羞 偈曰

중생들의 짐을 짊어지고
게으름을 피우면 추하여 뛰어남이 못되니
자신과 남의 결박을 풀기 위해서는
정진하기를 마땅히 백배는 해야 한다.
016_0854_c_06L荷負衆生擔
懈怠醜非勝
爲解自他縛
精進應百倍

【釋】보살이 발심하여 중생들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갈 적에 늦추어 간다면 이는 추한 일이어서 제일 단정한 중생은 되지 못한다.
보살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만일 자기든지 남이든지 가지가지의 급한 결박이 있으니 말하자면 혹업(惑業)으로 생긴다. 이 결박을 풀기 위해서는 마땅히 백 갑절이나 정진하여서 저 성문들 이상으로 마땅히 지을 것을 지어야 한다’고 해야 한다.
「발심품」을 마친다.
016_0854_c_08L釋曰菩薩發心荷負衆生重擔 若去賖緩此是醜事非爲第一端正衆生菩薩應思若自若他有種種急縛惑業生 爲解此縛應須百倍精進過彼聲聞作所應作 發心品究竟

6. 이리품(二利品)
016_0854_c_13L大乘莊嚴經論二利品第六

【釋】이미 발심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이 발심을 의지하여 수순하여 자기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수행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c_14L釋曰已說發心 次說依此發心隨順修行自他利行 偈曰

큰 의지와 큰 행과
큰 과를 순서대로 말하겠으며
크게 취함과 크게 참음과
큰 뜻의 세 가지 일을 이룬다.
016_0854_c_16L大依及大行
大果次第說
大取及大忍
大義三事成

【釋】‘큰 의지’라 함은 큰 보리를 의지하여 발심하기 때문이다. ‘큰 행’이라 함은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행을 발하는 것이다. ‘큰 과’라 함은 위가 없는 보리를 얻게 하기 때문이니 그 순서대로이다.
‘크게 취한다’고 함은 발심할 때에 모든 중생들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크게 참는다’고 함은 행을 발할 때에 모든 큰 괴로움을 참기 때문이다. ‘큰 뜻’이라 함은 과를 얻을 때에 널리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업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이미 순서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자기와 남의 차별이 없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4_c_18L釋曰大依者依止大菩提而發心故大行者爲利自他而發行故 大果者令得無上菩提故 如其次第大取者發心時攝一切衆生故 大忍者發行時忍一切大苦故 大義者得果時廣利一切衆生業就故 已說次第說自他無差別 偈曰
016_0855_a_02L
남과 자신의 마음이 평등하지만
사랑할 때에 그것을 더 뛰어나게 한다.
이와 같이 뛰어난 생각이 있으니
두 가지의 이익을 어찌 차별하겠는가?
016_0855_a_02L他自心平等
愛則於彼勝
如是有勝相
二利何差別

【釋】보살은 남과 자신의 마음이 평등함을 얻는다. 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으니 말하자면 세속의 발심을 할 때이고, 혹은 지혜로 말미암아 얻으니 말하자면 제일의(第一義)의 발심을 할 때이다.
보살에게 비록 이 마음이 있으나 남의 몸 사랑하기를 자기의 몸보다 더하니, 남에게 이미 이와 같은 뛰어난 생각이 있다면 다시는 어느 것이 자기를 이익되게 하고 어느 것이 남을 이익되게 하는지 함께 분별함이 없다.
이미 차별이 없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남을 이익되게 함이 더 뛰어남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5_a_04L釋曰菩薩得他自心平等或由信得謂世俗發心時 或由智得謂第一義發心時 菩薩雖有此心 然愛他身勝自身於他旣有如此勝想則不復分別何者爲自利何者爲他利俱無別故 已說無差別 次說他利勝 偈曰

세상에서 원수 짓는 업이 없고
남을 이롭게 하면서 항상 스스로는 힘겹다.
자비의 성품이 저절로 일어나니
이 때문에 남을 이롭게 함이 뛰어나다.
016_0855_a_10L於世無怨業
利彼恒自苦
悲性自然起
是故利他勝

【釋】보살은 여러 세간에서 오랫동안 원수 짓는 업을 끊었다. 그러기에 항상 남을 이익되게 하여서 자신은 온갖 근고(勤苦)를 받지만 큰 자비를 성취함을 체로 삼아서 저절로 일어난다.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서 남을 이익되게 함이 더 뛰어나게 된다.
【문】이와 같이 남을 이롭게 함을 어떻게 하여 수순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5_a_12L釋曰菩薩於諸世閒久絕怨業是故恒爲成就他利自身受諸勤苦 由大悲爲體自然起故 由此道理則利他爲勝如是利他云何隨順 偈曰

잘 말하며 돌아와 향하게 하고
진리에 들어가게 하며 또한 조복(調伏)하게 하고
도를 이루게 하고 또한 진리에 머물게 하며
도를 깨닫게 하고 해탈하게 하며
016_0855_a_16L善說令歸向
令入亦令調
令成亦令住
令覺令解脫

덕(德)을 모으고 태어나는 집과
수기(授記)를 얻고 아울러 직위를 받아서
여래의 지혜를 이루는 데 이른다.
그러기에 여러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
016_0855_a_18L集德及生家
得記幷受職
至成如來智
以是利群生
016_0855_b_02L
【釋】세 가지의 중생이라 함은, 말하자면 하(下)와 중(中)과 상(上)에 머무는 성품이다. 보살은 그들이 머무는 곳을 따라 섭취(攝取)하여 열세 가지로써 수순하여 이익되게 한다.
첫째는 잘 말함이니 가르침을 따르고 수기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돌아와 향하게 함이니 신통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들어오게 함이니 자기를 향하였으면 그들로 하여금 바른 가르침을 믿어 받게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조복하게 함이니 들어오기를 마쳤으면, 그의 의심을 끊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이루어지게 함이니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착한 뿌리를 성숙하게 함이다.
여섯째는 머물게 함이니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을 머물게 함이다.
일곱째는 깨닫게 함이니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해탈하게 함이니 신통 등의 온갖 뛰어난 공덕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덕을 모으게 함이니 복과 지혜들을 두루 모으기 때문이다.
열째는 태어나는 집이니 부처님의 집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열한째는 수기를 얻음이니 8지(地)에서 수기를 얻기 때문이다.
열두째는 직위(職位)를 받음이니 10지(地)에서 직위를 받기 때문이다.
열셋째는 여래의 지혜를 얻게 함이니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이러한 수순은 어떻게 성립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5_a_19L釋曰三種衆生謂住下中上性菩薩如其所住而攝取之以十三種隨順利益 一者善說由隨教及記心故令歸向由神通力故 三者令入向已能令信受正教故 四者令調入已斷其疑故 五者令成由成熟善根故 六者令住由教授令心住故令覺由得智慧故 八者令解脫得神通等諸勝功德故 九者集德遍集福智故 十者生家由生佛家故十一者得記由八地受記故 十二者受職由十地受職故 十三者得如來由入佛地故如此隨順云何成 偈曰

전도(顚倒)되지 아니하고 높다고 여기지도 아니하며
집착함이 없고 또한 통달하며
능히 참고 조순(調順)하며
멀리 가고 또한 다함이 없으니
마땅히 알라. 이 여덟 가지의 뜻이
저 열세 가지를 성취함을.
016_0855_b_10L不倒及不高
無著亦通達
能忍及調順
遠去亦無盡
應知此八義
成就彼十三

【釋】‘전도되지 않는다’고 함은 만일 사람이 이미 성품에 머물렀으면 보살이 근기를 따라 법을 말하여서 함부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높게 여기지 않는다’고 함은 그들이 돌아와 향하였을 때에는 신통을 믿어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착함이 없다’고 함은 그들이 바른 법에 들어갔을 때에 중생들을 염오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통달한다’고 함은 그들의 의심의 그물을 끊어주기 때문이다.
‘능히 참는다’고 함은 그들을 잘 성숙시키기 때문이다.
‘조순(調順)한다’고 함은 수순하여 가르쳐 주고 조순하지 않는 자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이요, 멀리 간다고 함은 태어나는 집에 수순하여서 멀리 가지 아니하며 그들로 하여금 짓게 하지 아니함이다.
‘다함이 없다’고 함은 보살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여서 모든 때에 원이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성취한다고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문】이 수순을 어떻게 하여야 뛰어난 차별이 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5_b_12L釋曰不倒者若人已住於性菩薩隨機而爲說法不妄授故 不高者彼歸向時不恃神通而自高故 無著者入正法時不染衆生故 通達者斷彼疑網故 能忍者善成熟彼故 調順者隨順教授非不調教授故 遠去者順生家等非不遠去令他能作故盡者菩薩利益衆生一切時願無盡 是名成就應知此隨順云何勝差別 偈曰

습욕(習欲)이 크게 두려움이요,
유애(有愛)는 움직여서 전도된다.
멸(滅)을 좋아하는 것은 번뇌를 끊는 것이며
큰 자비는 부처님의 법을 구하는 것이다.
016_0855_b_22L習欲大可畏
有愛動而倒
樂滅斷煩惱
大悲求佛法
016_0855_c_02L
【釋】‘습욕(習欲)’이라고 함은 이른바 욕계(欲界)의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니, 그들의 몸과 마음의 괴로움이 많고 악취(惡趣)를 향하기 때문이다.
‘유애(有愛)’라 함은 말하자면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사람들이며, ‘움직여서 전도(顚倒)되는 것’이란 그가 무상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며, 움직이고 괴로움을 행하기 때문에 전도된다.
‘멸을 좋아한다’고 함은 말하자면 스스로 이롭게 하는 사람이다. ‘번뇌를 끊는다’고 함은, 번뇌를 가지게 되면 괴로움이 끊어지지 않은 것인데 이제 괴로움을 벗어났다. 그러기에 스스로 번뇌를 끊어서 적멸(寂滅)을 구하는 것이다.
‘큰 자비’라고 함은 말하자면 남을 이익되게 하는 사람이다.
‘부처님의 법을 구한다’고 함은 이 사람은 항상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구하여서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5_b_24L釋曰習欲者謂欲界人 大可畏者心苦多及向惡趣故 有愛者謂色無色界人 動而倒者彼樂無常故動苦故倒 樂滅者謂自利人 斷煩惱者由煩惱所持則苦不斷爲離苦故斷煩惱而求寂滅 大悲者謂利他人求佛法者此人常求一切佛法擬利一切衆生故 偈曰

세간에서 자기의 즐거움을 구하다가
즐겁지 못하면 언제나 몹시 괴로운데
보살은 부지런히 남을 즐겁게 하기에
두 가지의 이익이 최상의 즐거움을 이룬다.
016_0855_c_09L世閒求自樂
不樂恒極苦
菩薩勤樂他
二利成上樂

【釋】세간에서 어리석은 이는 항상 자기의 즐거움을 구하다가 그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도리어 극히 괴로움을 얻는다.
그런데 보살은 그러하지 않아서 항상 남을 즐겁게 하기에 부지런하다. 그래서 두 가지의 이익을 성취하면 다시 제일의 큰 열반의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이 보살의 뛰어난 수순의 차별이다.
이미 남을 이익되게 하는 수순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이 행으로써 중생에게 회향(廻向)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5_c_11L釋曰世閒愚癡常求自樂而不得樂反得極苦 菩薩不爾常勤樂他而二利成就更得第一大涅槃樂 此是菩薩勝隨順差別 已說利他隨順 次以此行迴向衆生 偈曰

다른 근기와 다른 곳에
다르게 짓고 다른 행이 있지만
무릇 여러 짓는 것을
회향하여 중생들을 이익되게 한다.
016_0855_c_16L異根於異處
異作有異行
凡是諸所作
迴以利衆生

【釋】보살의 회향은 눈 등 모든 근(根)의 행을 따라 가지가지의 곳에서 가지가지의 위의와 업행(業行)을 지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한다. 무릇 온갖 행이라는 것은 만일 일이 서로 응하든지 서로 비슷한 것이니, 일체의 중생에게 다 회향하는 것이 행청정경(行淸淨經) 가운데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이미 회향하는 마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참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5_c_18L釋曰菩薩迴向隨眼等諸根行種種處作種種威儀業行利益衆生凡是諸行若事相應及以相似彼皆迴向一切衆生如行淸淨經中廣說 已說迴向心 次遮不忍心 偈曰

중생들은 자재(自在)하지 못하여
항상 온갖 악업(惡業)을 짓지만
보살은 그것을 참고 자비를 더하기 때문에
번뇌가 없고 또한 어긋남도 없다.
016_0855_c_23L衆生不自在
常作諸惡業
忍彼增悲故
無惱亦無違
016_0856_a_02L
【釋】중생들은 번뇌의 시달림을 받아서 마음이 자재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온갖 악업을 짓지만 보살은 지혜로워서 그들에게 항상 크게 참음을 일으키어 큰 자비를 증장한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 번뇌스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또한 수순하지 않는 일을 짓고자 하지 않는다.
이미 참지 못하는 마음을 말했으니, 다음에는 대승에 수순함을 나타내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a_02L釋曰衆生爲煩惱所惱心不自在故作諸惡業 菩薩智慧於彼常起大增長大悲 是故於彼不起惱心不欲作不隨順事 已遮不忍心 次顯隨順大 偈曰

훌륭하게 나옴과 적정과
공덕과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순서대로 네 가지의 뜻에 의지하여
대승에 네 가지가 있음을 말한다.
016_0856_a_07L勝出與寂靜
功德及利物
次第依四義
說大有四種

【釋】여러 보살에게는 네 가지의 수순함에 큰 것이 있으니, 첫째는 훌륭하게 냄이 큰 것이다. 세 가지의 유(有)와 다섯 가지의 취(趣) 가운데서 훌륭하게 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에서 말하기를, “수보리(須菩提)야, 만일 색(色)에 있어서 법이 있고 법이 없다고 설한다면 이는 마하연(摩訶衍)이 능히 일체의 세간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阿修羅)에게 훌륭하게 나지 못함”이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적정(寂靜)의 큰 것이니,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에 따라 향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덕이 큰 것이니, 복과 지혜의 두 무더기가 증장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중생을 이익되게 함이 큰 것이니, 항상 큰 자비에 의지하여 중생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리품(二利品)」을 마친다.
016_0856_a_09L釋曰諸菩薩有四種隨順大 一者出大於三有五趣中而勝出故如般若波羅蜜經說須菩提若色有法無法者是摩訶衍不能勝出一切世閒天人阿修羅故 二者寂靜大隨向無住處涅槃故 三者功德大福智二聚增長故 四者利物大常依大悲不捨衆生故 二利品究竟

7. 진실품(眞實品)
016_0856_a_17L大乘莊嚴經論眞實品第七

【釋】이미 수순의 행을 말하였으니, 다음은 제일의(第一義)의 모양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a_18L釋曰已說隨順修行 次說第一義相偈曰

있음도 아니요, 또한 없음도 아니며
여(如)도 아니고 또한 이(異)도 아니며
생(生)도 아니고 또한 멸(滅)도 아니며
증(增)도 아니고 또한 감(減)도 아니며
016_0856_a_20L非有亦非無
非如亦非異
非生亦非滅
非增亦非減

깨끗함도 아니고 깨끗하지 아니함도 아니니
이 다섯 가지의 차이가 없는 모양,
이를 제일의라고 이른다.
수행하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6_0856_a_22L非淨非不淨
此五無二相
是名第一義
行者應當知
016_0856_b_02L
【釋】두 가지의 뜻이 없다고 함은 제일의(第一義)이며 다섯 가지로 나타내 보인 것이다.
‘있음이 아니다’라고 함은 분별과 의타(依他)의 두 가지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없음이 아니다’라고 함은 진실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여(如)가 아니다’라고 함은 분별과 의타의 두 가지 모습이 하나의 실체(實體)가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다르지 않다’고 함은 그 두 가지의 여(如)가 다른 체가 없기 때문이다. ‘생(生)도 아니고 멸(滅)도 아니다’라고 함은 무위(無爲)이기 때문이요, ‘더함도 아니고 덜함도 아니다’라고 함은 정(淨)과 염(染)의 두 가지가 일어날 때와 멸할 때에 법계(法界)는 바로 이와 같이 머물기 때문이다.
‘깨끗하지 않다’고 함은 자기의 성품은 물듦이 없으니 반드시 깨끗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깨끗하지 않음도 아니다’라고 함은 객진(客塵)번뇌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에 있어서 차별된 모습이 없음은 제일의와 서로 응했음을 알겠다.
이미 제일의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그에 있어서 전도를 일으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a_23L釋曰無二義是第一義五種示現有者分別依他二相無故 非無者實相有故 非如者分別依他二相無一實體故 非異者彼二種如無異體 非生非滅者無爲故 非增非減者淨染二分起時滅時法界正如是住 非淨者自性無染不須淨故 非不淨者客塵去故 如是五種無二相第一義相應知 已說第一義 次遮於彼起顚倒 偈曰

아견(我見)은 나를 봄이 아니며
상이 없음은 인연 없음이 아니어서
두 가지 무아(無我)가 다르니
해탈하여야 오직 미(迷)가 다한다.
016_0856_b_10L我見非見我
無相非無緣
異二無我故
解脫唯迷盡

【釋】‘아견이 나를 봄이 아니다’라고 함은 아상(我相)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아상이란 다만 분별함으로 말미암아 성립되기 때문이다.
‘인연 없음이 아니다’라고 함은 번뇌와 습기가 일어나는 것이 다섯 가지의 수음(受陰)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무아와 다르다는 것에서 두 가지라 함은 아견과 다섯 가지의 수음이니, 또한 이 두 가지와 다르게 아상이 있음이 아니다. 이와 같은 아견은 다만 미혹하여 어긋난 것이고 참으로 아상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해탈하여 오직 미(迷)가 다한다’고 함은 만일 자신을 반연하여 해탈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오직 미가 다하였을 뿐이다. 따로 내가 있어 해탈이라 이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허망한 견해를 막았으니, 다음에는 전도된 것에 대하여 꾸짖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b_12L釋曰我見非見我者無我相故 何以 由我相但是分別故 非無緣者惱習氣所起緣五受陰故 異二無我故者二謂我見及五受陰 亦非異此二種而有我相 如是我見但是迷謬實無我相可得故 解脫唯迷盡者緣自身起解脫亦唯迷盡無別有我名解脫者故 已遮妄見 次訶顚倒 偈曰

어찌하여 아견을 의지하여서
괴로움의 자기 성품은 보지 못하는가?
괴로움에 미혹하고 괴로운 자와
법의 성품과 무성(無性)이다.
016_0856_b_20L云何依我見
不見苦自性
迷苦及苦者
法性與無性
016_0856_c_02L
【釋】어찌하여 아견을 의지하여 괴로움의 자기 성품은 보지 못하는가? 쯧쯧, 세간은 어찌하여 아견을 의지하여 가지가지의 미혹을 일으키고 모든 행이 괴로움의 자기 성품임을 능히 깨달아 통하지 못하여 항상 삿된 것을 따라 좇는가?
괴로움에 미혹하고 괴로운 자와 법의 성품과 무성(無性)에서 ‘괴로움’은 저 괴로움을 받는 것을 말하고, ‘괴로운 자’란 말하자면 괴로움을 끊지 못하여 나와 괴로움이 더불어 서로 응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 일러 괴로운 자라 한다. ‘괴로움에 미혹함’이란 괴로움의 자기 성품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괴로움에 미혹한 자란 무아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법의 성품’이란 유법(唯法)으로서 인(人) 무아로 말미암아 성립하기 때문이다. ‘무성’이라 함은 법이 아니라 법(法) 무아로 말미암아 성립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b_22L釋曰云何依我見不見苦自性者世閒云何依止我見起種種迷能了達諸行是苦自性而常隨逐邪迷苦及苦者法性與無性者苦謂受彼苦觸苦者謂苦不斷非我與苦相名爲苦者 迷苦謂不解苦自性苦者謂不解無我 法性者唯法由人無我故 無性者非法由法無我故 偈曰

무엇을 일러 현견(現見)에서 다른 견해를 내는
연기의 체라 하는가?
어둡기 때문에 유를 보지 못하고
또한 다시 유의 견해가 아니다.
016_0856_c_08L云何緣起體
現見生異見
闇故不見有
亦復不有見

【釋】‘무엇을 일러 현견에서 다른 견해를 내는 연기의 체라 하는가’라고 함은 쯧쯧, 세간에서 어찌하여 현재에 보는 모든 행이 각각 연기를 좇아 일어나는데 이 체를 의지하여 다른 그릇된 견해를 내어서 눈 등의 여러 근(根)의 체가 연기가 아니라고 말하는가? 삿되고 어둡기 때문에 유를 보지 못하고 또한 유를 보지 못하는 것이란 무명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기 때문에 연기의 법은 유임에도 아의 체가 있음을 보지 못하여서 유가 아닌 데서 다시 유를 보는 것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어떻게 하여야 열반을 얻습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c_10L釋曰云何緣起體現見生異見者世閒云何現見諸行各從緣起依此體撗生異見謂眼等諸根體非緣起邪 闇故不見有亦復不有見者無明故緣起之法是有而不見有體不有而復有見若爾云何得涅 偈曰

생사와 열반은
둘이 아니라 조금도 다름이 없고
무아에 잘 머무는 까닭에
생이 다하면 열반을 얻는다.
016_0856_c_17L生死與涅槃
無二無少異
善住無我故
生盡得涅槃

【釋】생사와 열반은 둘이 아니며,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무아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이 무아에 잘 머물러서 착한 업을 닦으면 곧 생사가 문득 다하여 열반을 얻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미 전도를 막았으니, 다음에는 마땅히 그 대치(對治)함을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c_19L釋曰生死涅槃無有二乃至無有少 何以故 無我平等故 若人善住無而修善業則生死便盡而得涅槃如是已遮顚倒 次應說彼對治 偈曰

복과 지혜는 끝없어서
생장함이 다 원만하다.
법을 생각하여 결정하였으니
의류(義類)의 성품에 통달한다.
016_0856_c_23L福智無邊際
生長悉圓滿
思法決定已
通達義類性
016_0857_a_02L
【釋】이 게송은 첫 번째 큰 무더기 자리[大聚位]의 모음을 나타낸 것이다.
‘복과 지혜가 끝없다’고 함은 차별이 셀 수 없고 시절이 끝없기 때문이다.
‘생장함이 다 원만하다’고 함은 보살이 이 큰 무더기를 모아서 저 언덕에 이르기 때문이다.
‘법을 생각하여 결정하여 마친다’고 함은 정(定)의 마음을 의지하여 사유하기 때문이다.
‘의류의 성품을 통달한다’고 함은 생각한 모든 법의 의류를 알아서 다 뜻으로써 말하여 자기의 성품을 삼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6_c_25L釋曰此偈顯第一集大聚位 福智無邊際者由差別無數及時節無邊故生長悉圓滿者菩薩集此大聚到彼岸故 思法決定已者依止定心而思惟故 通達義類性者解所思諸法義類悉以意言爲自性故 偈曰

이미 의류의 성품을 알았고
유심(唯心)의 빛에 잘 머물러서
현재 법계를 본 까닭에
다르게 차별되는 모습[二相]에서 해탈한다.
016_0857_a_07L已知義類性
善住唯心光
現見法界故
解脫於二相

【釋】이 게송은 두 번째의 통달분의 자리[通達分位]를 나타낸 것이다. 일체의 모든 의미는 오직 뜻과 말로써 성품을 삼는다. 그래서 일체의 모든 뜻이 다 마음의 빛임을 요달한다. 보살의 그러한 때를 유식에 잘 머물러서 그를 좇은 뒤에 법계를 나타내 보여서 있는 것의 다르게 차별되는 모습[二相]을 요달하면 곧 능집(能執)과 소집(所執)에서 해탈하게 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7_a_09L釋曰此偈顯第二通達分位 由解一切諸義唯是意言爲性則了一切諸義悉是心光 菩薩爾時名善住唯識從彼後現見法界了達所有二相解脫能執所執 偈曰

마음 밖에 물건이 있지 않고
물건이 없으면 마음 또한 없어서
둘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참 법계에 잘 머무른다.
016_0857_a_14L心外無有物
物無心亦無
以解二無故
善住眞法界

【釋】이 게송은 세 번째의 견도(見道)의 자리를 나타냈으니 그가 법계를 현재 보기 때문에 마음 밖에서는 취할 물건이 없게 되고, 취할 물건이 없기 때문에 또한 취하는 마음도 없다. 그것은 취할 것과 능히 취하는 것을 벗어난다는 두 가지의 모양을 벗어나기 때문이니, 마땅히 법계에 잘 머무는 자기 성품을 알아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7_a_16L釋曰此偈顯第三見道位 如彼現見法界故解心外無有所取物 所取物無故亦無能取心 由離所取能取二相故應知善住法界自性 偈曰

무분별의 지혜의 힘으로써
항상 평등하게 두루 행하여서
허물 무더기의 체를 파괴함이
마치 약이 능히 독을 없애는 것과 같다.
016_0857_a_20L無分別智力
恒平等遍行
爲壞過聚體
如藥能除毒
016_0857_b_02L
【釋】이 게송은 네 번째의 수도하는 자리를 나타낸 것이다. 보살이 제일의(第一義)의 지혜에 들어가서 전의(轉依)하고서 이미 무분별의 지혜로써 항상 평등한 행을 하고 변처(遍處)의 행을 한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의타(依他)의 성품에 의지하여 빽빽한 숲과 같은 허물 무더기의 상을 훈습(熏習)하는 것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문】이 지혜의 힘은 어떠하다고 이릅니까?
【답】비유하면 아가타(阿伽陀:약 이름)라는 명약이 온갖 독을 제거함과 같아서 그 힘이 이와 같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7_a_22L釋曰此偈顯第四修道位 菩薩入第一義智轉依已以無分別智恒平等及遍處行 何以故 爲壞依止依他性熏習稠林過聚相故此智力云譬如阿伽陁大藥能除一切衆彼力如此 偈曰

부처님의 잘 이루어진 법을 인연하면
마음의 뿌리가 법계에 안주한다.
앎의 생각은 오직 분별뿐이니
공덕의 바다를 속히 궁구하세.
016_0857_b_05L緣佛善成法
心根安法界
解念唯分別
速窮功德海

【釋】이 게송은 다섯 번째의 구경(究竟)의 자리를 나타낸 것이다. 부처님의 잘 이루어진 법을 인연한다고 함은 여러 보살들이 부처님의 잘 이루어진 일체의 미묘한 법 가운데서 모두 모인 연을 짓기 때문이다.
【문】무엇을 일러 모두 모인 연이라 합니까?
【답】마음의 뿌리가 법계에 안주하는 것이니, 이는 제일의의 지혜에 들어감을 밝힌 것이다. 이 지혜로 말미암아 법계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마음을 뿌리라고 이른다.
【문】이 뒤에는 다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답】이해한다는 생각은 오직 분별이다. 말하자면 이후를 관하기를 이전을 관했던 것과 같이하여, 경우마다 그 생각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모든 생각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오직 이와 같은 분별뿐이어서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이와 같이 알고서는 어느 지위에 나아가게 됩니까?
【답】속히 공덕의 바다를 궁구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와 같이 불과(佛果)의 공덕의 바다를 알고 나면 능히 피안을 궁구하기 때문이다.
「진실품」을 마친다.
016_0857_b_07L釋曰此偈顯第五究竟位 緣佛善成法者諸菩薩於佛善成立一切妙法作摠聚緣故云何摠聚緣根安法界 此明入第一義智故 由此慧安住法界是故此心名根此後復云何解念唯分別謂此後起觀如前觀事處處念轉解知諸念唯是分別非實有故如此知已得進何速窮功德海謂如是知已佛果功德海能速窮彼岸故 眞實品究竟

8. 신통품(神通品)
016_0857_b_17L大乘莊嚴經論神通品第八

【釋】진실의 뜻을 말하여 마쳤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신통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7_b_18L釋曰說眞實義已次顯菩薩神通相偈曰

일어나고 멸함과 말과 음성과
마음의 행함과 또한 먼저에 머무는 것과
그들을 향함과 떠나 벗어나는 것,
이 여섯 가지의 지혜는 자재하게 통한다.
016_0857_b_20L起滅及言音
心行亦先住
向彼令出離
六智自在通
016_0857_c_02L
【釋】‘일어나고 멸한다’고 함은 말하자면 생사지(生死智)의 경계이다. 그것은 온갖 중생들의 태어나고 죽음을 알기 때문이다.
‘말과 음성’이라 함은 천이지(天耳智)의 경계이다. 저들을 따라 일으키는 언어를 다 듣고 알기 때문이다.
‘마음의 행함’이라 함은 말하자면 타심지(他心智)의 경계이다. 능히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행하는 차별을 알기 때문이다.
‘먼저에 머무른다’고 함은 말하자면 숙명지(宿命智)의 경계이다. 그들의 먼저 머물렀던 착함과 악함의 모이는 곳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을 향한다’고 함은 말하자면 여의지(如意智)의 경계이다. 저들의 곳곳을 따라가서 교화하기 때문이다.
‘나가서 벗어난다’고 함은 말하자면 누진지(漏盡智)의 경계이다. 중생들의 나가고 벗어남을 알아서 응하고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섯 가지의 지혜는 모든 세계에 있어서 여섯 가지 뜻의 차별을 두루 알아서 걸림이 없고 용맹이 자재하니, 이를 보살의 신통의 자기 성품이라 한다.
이미 자기 성품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닦아 익힘을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7_b_22L釋曰起滅者謂生死智境知諸衆生 生死故 言音者謂天耳智境隨彼所起言語悉聞知故 心行者謂他心智能知他人心行差別故 先住者宿命智境知彼先住善惡所集故彼者謂如意智境隨彼處處往教化 出離者謂漏盡智境知彼衆生出離應不應故 如此六智於諸世界義差別遍知無礙勇猛自在是名菩薩神通自性 已說自性 次說修習 偈曰

네 번째의 극히 깨끗한 선(禪)은
무분별의 지혜에 포섭된다.
방편으로 건립되는 것과 같이
깨끗함은 여러 신통을 의지한다.
016_0857_c_09L第四極淨禪
無分別智攝
如所立方便
依此淨諸通

【釋】선에 의지함과 같이 하고 지혜로 포섭함과 같이 하고 방편으로 건립함과 같이 하여 보살의 뜻을 지어 닦아 익히면 최상의 신통을 얻을 것이다.
이미 닦아서 신통 얻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과위 얻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7_c_11L釋曰如所依禪如所攝智如所立方便菩薩作意修習則得最上神通說修通 次說得果 偈曰

세 가지 머무는 것의 머묾은 비교할 수 없다.
머무는 곳에서 잘 공양하여서
그들로 하여금 청정을 얻게 함,
이를 신통의 결과라 말한다.
016_0857_c_14L三住住無比
所住善供養
令彼得淸淨
是說神通果

【釋】신통에는 세 가지의 과보가 있다. 첫째는 뛰어난 데 머무는 과위이다. 이 머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인에 머무는 것이요, 하나는 범천에 머무는 것이요, 하나는 하늘에 머무는 것이다. 얻는 것이 비교할 이가 없고 위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잘 공양한 결과이다. 머무는 곳을 따라 세간의 중생들에게 크게 공양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그들로 하여금 청정을 얻게 한 결과이니, 능히 공양하는 자로 하여금 청정을 얻게 함이다.
【문】 신통에는 여섯 가지 업(業)이 있다. 첫째는 자기의 업이요, 둘째는 남의 업이요, 셋째는 빛나는 업이요, 넷째는 유희(遊戱)의 업이요, 다섯째는 화(化)의 업이요, 여섯째는 청정한 업입니다. 이 신통은 어떠한 업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7_c_16L釋曰神通有三種果 一勝住果此住有三種聖住梵住天住所得無比無上故善供養果隨所住處世閒衆生大供養故令他淸淨果能令供養者得淸淨故神通有六種業自業他業光業戲業化業淨業 此云何 偈曰

세세생생에 이루고 파괴하는 일은
그것들 보기를 마치 환(幻)과 같이 하여야
가지가지 그들의 하고자 하는 것이
자재하게 뜻대로 이루어진다.
016_0857_c_23L世生成壞事
見彼猶如幻
種種他所欲
自在隨意成
016_0858_a_02L
【釋】이 게송 중 두 구는 반은 자기의 업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그것은 모든 세계와 모든 중생이 이루어지든지 파괴되든지 하는 것이 마치 환과 같음을 보기 때문이다.
아래의 두 구는 남의 업을 나타내 보였으니, 말하자면 땅을 움직이고 빛을 놓는 등의 일이 남이 하고자 함을 따라 자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열 가지의 자재함에 대하여는 『십지경(十地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a_02L釋曰此偈上半顯示自業 見諸世界及諸衆生若成若壞猶如幻故 下半顯示他業 謂動地放光等事隨他所自在現故 十種自在如十地經說偈曰

신비한 광명이 악취(惡趣)를 비추어
믿도록 하여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한다.
위력이 천궁(天宮)을 진동시켜
궁전을 뒤흔들어 악마를 두렵게 한다.
016_0858_a_07L神光照惡趣
令信生善道
威力震天宮
動殿令魔怖

【釋】이 게송은 빛의 업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빛의 업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괴로움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악마를 두렵게 하는 것이다.
위의 게송은 괴로움에서 구제함을 밝혔으니, 말하자면 아래로 악도의 중생들을 비추어 신심을 내게 하여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아래의 게송은 악마를 두렵게 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위로 천궁을 비추어서 악마의 궁전을 진동시켜 악마로 하여금 놀라고 두렵게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a_09L釋曰此偈顯示光業 光業二種怖魔 上半偈明救苦謂下照惡道衆生令發信心得生善道故 下半偈明怖魔謂上照天宮動魔宮殿魔驚怖故 偈曰

여러 삼매(三昧)에 노닐어
스님들 가운데 가장 제일이다.
항상 세 가지의 교화를 나타내어
이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
016_0858_a_14L遊戲諸三昧
僧中最第一
恒現三種化
以是利衆生

【釋】이 게송 중 위의 두 구는 유희 신통의 업을 나타내 보였다. 부처님의 대중 가운데서 여러 정(定)에 노닐어 가장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아래의 두 구는 교화하는 업을 나타내 보였다. 교화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업화(業化)이니, 공교(工巧)의 업으로 곳에 따라 자재하게 교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따라 교화하는 것이니, 남이 하고자 함을 따라 자재하게 교화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올라가 교화하는 것이니, 도솔천 등 뛰어난 데 올라가서 교화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교화로써 항상 이익되게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a_16L釋曰此偈上半顯示戲業 於佛衆中遊戲諸定最得自在 下半顯示化業化有三種業化工巧業處自在化隨化隨他所欲自在化故住兜率天等勝上化故 以是三化恒爲利益 偈曰

지혜의 힘이 넓고 자재하여
찰토(刹土)에 원하는 대로 따라 나타나서
부처님이 없는 곳에 부처님 말씀을 들려주어
부처님이 있는 경계로 나아가게 한다.
016_0858_a_22L智力普自在
剎土隨欲現
無佛令聞佛
懸擲有佛境
016_0858_b_02L
【釋】이 게송은 청정한 업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청정한 업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청정한 찰토(刹土)요, 하나는 청정한 중생이다. 위의 게송은 청정한 찰토를 밝혔다. 지혜의 자재함으로 말미암아 원하는 대로 능히 수정(水精)과 유리(琉璃) 등의 청정한 세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아래의 게송은 청정한 중생을 밝힌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없는 세계에서 능히 그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청정한 신심을 일으켜서 부처님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업용(業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서로 응함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a_24L釋曰此偈顯示淨業 淨業二種剎土淨衆生 上半偈明淨剎土由智自在隨彼所欲能現水精琉璃等淸淨世界故 下半偈明淨衆生於無佛世界能令聞佛起淨信心生有佛處 已說業用 次說相應 偈曰

중생의 힘을 성숙시키니
여러 부처님이 칭찬하시네.
말을 하면 믿지 아니함이 없으니
이러한 것을 서로 응한다고 말하네.
016_0858_b_07L成熟衆生力
諸佛所稱譽
發語無不信
如是說相應

【釋】신통과 서로 응하는 것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생(成生)이 서로 응하는 것이니, 비유하면 새의 날개가 처음 성취함을 얻는 것과 같고, 둘째는 칭찬이 서로 응하는 것이니, 항상 여러 부처님의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요, 셋째는 믿어 받음이 서로 응하는 것이니, 무릇 언설(言說)하는 것을 사람들이 다 믿어 받는 것이다.
이미 서로 응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신통을 갖춘 데에 머묾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b_09L釋曰神通相應有三種成生相應譬如鳥翅初得成就稱譽相應得諸佛之所讚歎信受相應凡所言說人皆信受 已說相應 次說住神通具 偈曰

여섯 가지의 지혜와 세 가지의 밝음과
여덟 가지의 해탈과 여덟 가지의 뛰어난 곳과
열 가지의 변만(遍滿)함과 여러 삼매는
용맹스럽게 신통을 돕는다.
016_0858_b_14L六智及三明
八解八勝處
十遍諸三昧
勇猛資神通

【釋】보살이 신통을 갖춰 머무는 데는 여섯 가지의 차별이 있다. 첫째는 여섯 가지의 지혜요, 둘째는 세 가지의 밝음이요, 셋째는 여덟 가지의 해탈이요, 넷째는 여덟 가지의 뛰어난 곳이요, 다섯째는 열 가지의 두루 들어감이요, 여섯째는 여러 가지의 삼매이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뜻은 이것이 신통을 갖춘 차별을 분별한 것이다. 이미 신통을 갖춰 머무는 것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신통이 큰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b_16L釋曰菩薩住神通具有六種差別六智三明八解脫八勝處十遍入諸三昧 如是六義是分別神通具差別 已說住神通具 次說神通大 偈曰

능히 자재(自在)하지 못한 이를 안정되게 하고
항상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데 부지런하여
행동에 두려움이 없어서
용맹하기 사자와 같다네.
016_0858_b_21L能安不自在
常勤於利物
行有無怖畏
勇猛如師子
016_0858_c_02L
【釋】보살의 신통에는 세 가지의 큰 것이 있다. 첫째는 자재함이 큰 것이니, 중생들은 번뇌를 말미암기 때문에 자재함을 얻지 못하지만 보살이 지혜의 힘으로 능히 자재하게 편히 두기 때문이요, 둘째는 기쁨과 즐거움이 큰 것이니, 항상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데 부지런함으로 말미암아 한결같이 즐겁기 때문이요, 셋째는 두려움 없음이 큰 것이니, 3유(有)를 돌아다니는 가운데 극히 용맹스러움을 얻는 것이 사자와 같기 때문이다.
「신통품」을 마친다.
016_0858_b_23L釋曰菩薩神通有三種大自在大衆生由煩惱故不得自在菩薩智力能自在安置故歡樂大由常勤利益衆生一向樂故無畏大行三有得極勇猛如師子故 神通品究竟

9. 성숙품(成熟品)
016_0858_c_05L大乘莊嚴經論成熟品第九

【釋】이미 여러 보살들의 신통에 대해 말하였다. 여러 보살들은 어떻게 해서 자기를 성숙시키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c_06L釋曰已說諸菩薩神通 諸菩薩云何自成熟 偈曰

욕(欲)과 신(信)과 사(捨)와 비(悲)와 인(忍)과
염(念)과 역(力)과 견(堅)과 지(支)를 갖추면
마땅히 자기가 성숙됨을 아는 것이니
이 아홉 가지가 다 상품(上品)이다.
016_0858_c_08L欲信捨悲忍
念力堅支具
應知自成熟
此九皆上品

【釋】보살에게 아홉 가지의 자기 성숙이 있다. 첫째는 욕(欲) 성숙이니 대승의 법을 희구(希求)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둘째는 신(信) 성숙이니 청정한 마음으로 말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사(捨) 성숙이니 번뇌를 멸하여 벗어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넷째는 비(悲) 성숙이니 중생들을 연민(憐愍)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인(忍) 성숙이니 능히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염(念) 성숙이니 일체를 받아 가짐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역(力) 성숙이니 다 능히 통달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견(堅) 성숙이니 악마와 외도들이 능히 뺏지 못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지(支) 성숙이니 선분(善分)을 원만히 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아홉 가지 모든 최상의 지위를 궁구(窮究)한 것을 성숙의 모습이라고 이른다. 이 아홉 가지의 성숙에는 낱낱이 인(因)이 있고 체(體)가 있고 업(業)이 있으니, 이제 마땅히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c_10L釋曰菩薩有九種自成熟 一者欲成 由悕求大法故 二者信成熟由淨心說者故 三者捨成熟由滅離煩惱 四者悲成熟由憐愍衆生故 五者忍成熟由能行難行故 六者念成熟由一切受持故 七者力成熟由皆能通達故 八者堅成熟由惡魔外道不能奪故 九者支成熟由善分圓滿故如此九種窮最上位是名成熟相九成熟 一一有因有體有業今當說偈曰

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듣고 또한 생각하며
뛰어난 용기와 뛰어난 구경(究竟)과
법을 포섭하고 법을 받는 것을
욕(欲)의 성숙한 모습이라고 설한다.
016_0858_c_21L近友聞亦思
勝勇勝究竟
攝法及受法
說欲成熟相
016_0859_a_02L
【釋】착한 벗을 가까이하고 바른 법을 들으며 법답게 사유한다. 이 세 가지가 능히 큰 욕(欲)을 일으키니 이를 욕의 인(因)이라고 이른다.
위로 크게 정진하여 모든 사의(思議)할 수 없는 곳에 마침내 이르러 의심이 없는 것을 욕의 체라고 이른다. 대승의 법에 있어서 재앙(災殃)과 횡액(橫厄)이 있는 곳에서는 능히 보살이 말한 것을 지키고 보호하여 신심으로 받아들이니, 이를 욕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8_c_23L釋曰親近善友聽聞正法如法思惟此三能起大欲是名欲因 上大精進一切不思議處究竟無疑是名欲體於大乘法有災撗處則能守護菩薩所說信心領受是名欲業 偈曰

여래의 복과 지혜의 무더기는
청정한 마음이어서 무너뜨리지 못하고
정(定)과 지혜의 과위를 속히 받는 것을
신(信)의 성숙된 모습이라고 말한다.
016_0859_a_05L如來福智聚
淨心不可壞
速受定智果
說信成熟相

【釋】부처님[婆伽婆]께서 이와 같이 자세히 말씀하신 것, 이를 믿음의 인이라고 이른다. 무너뜨릴 수 없는 청정을 얻으니 이를 믿음의 체라고 이르며, 정과 지혜의 과위를 얻는 것, 이를 믿음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a_07L釋曰婆伽婆如是廣說是名信因不壞淨是名信體 得定智果是名信 偈曰

여섯 가지의 근(根)을 잘 보호하여
악에서 벗어나고 대치(對治)함을 일으키며
즐겨 여러 선법을 닦는 것을
사(捨)의 성숙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016_0859_a_10L善護於六根
離惡起對治
樂修諸善法
說捨成熟相

【釋】염의(念倚) 등으로써 6근(根)을 잘 보호하는 것을 사(捨)의 인(因)이라고 이르고, 착하지 못한 깨달음을 벗어나서 무간도를 일으키는 것을 사(捨)의 체라고 이르며, 모든 선법을 항상 닦아 익히기를 좋아하는 것을 사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a_12L釋曰以念倚等善護六根是名捨因離不善覺起無閒道是名捨體 一切善法恒樂修習是名捨業 偈曰

온갖 중생들의 괴로움을 보고서
애련(哀憐)하여 소승의 마음을 벗어나고
몸으로도 세간에 가장 뛰어난 것을 받는 것
이것을 비(悲)의 성숙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016_0859_a_15L見諸衆生苦
哀憐離小心
受身世閒勝
說悲成熟相

【釋】보살은 중생들의 괴로움을 보니 이를 비(悲)의 인이라고 이르며, 극히 연민함을 일으키어 소승의 마음을 멀리 떠나는 것을 비의 체라고 이르고, 모든 세간에서 가장 뛰어난 여러 지위를 얻어 퇴전하지 않음을 비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a_17L釋曰菩薩見衆生苦是名悲因 起極憐愍遠離小乘心是名悲體 得一切世閒勝諸地不退是名悲業 偈曰
016_0859_b_02L
품성을 지녀 자주 닦아 익히고
극한 괴로움을 능히 편안한 마음으로 인내하여
선근으로 항상 정진을 즐기는 것을
인(忍)의 성숙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016_0859_a_20L持性數修習
極苦能安忍
善根恒樂進
說忍成熟相

【釋】인내(忍耐)를 가진다고 함은, 말하자면 좋은 가문에서 자주 익혀 성품을 이루는 것이니 이를 인(忍)의 인(因)이라고 이르며, 극심한 바람과 추위 등의 괴로움을 능히 받아내는 것을 인(忍)의 체(體)라고 이르며, 뛰어나게 태어나는 곳을 따라 항상 착한 업(業)을 닦는 것을 인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a_22L釋曰謂名門 數習成性是名忍因 能受極風寒等苦是名忍體勝生處恒修善法是名忍業 偈曰

받는 보(報)가 청정함을 따라 잘 수순하고
극히 착하고 악한 언설에 들어가서
능히 큰 반야를 일으키는 것을
염(念)의 성숙한 모습이라고 이른다.
016_0859_b_02L報淨善隨順
極入善惡說
能起大般若
說念成熟相

【釋】청정한 그릇을 얻는 것을 염(念)의 인(因)이라고 이르며, 들은 바에 따라서 착하거나 악한 두 가지 뜻을 설하고, 듣고 생각하고 닦고 나서는 깊이 이해하여서 잊지 않음을 염의 체라고 이르고, 세속을 벗어나는 반야를 능히 내는 것을 염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b_04L釋曰得淸淨器是名念因 隨所聞善惡二義聞思修已深了不忘是名念體 能生出世般若是名念業 偈曰

두 무더기의 경계가 원만하고
결과가 일어남이 최상을 의지하여
세간에서 제일 됨을 얻는 것을
역(力)의 성숙된 모습이라 말한다.
016_0859_b_07L二聚界圓滿
果起依最上
世閒得第一
說力成熟相

【釋】복과 지혜의 두 무더기의 종자가 충만한 것을 역(力)의 인이라고 이르며, 능히 최상의 의지를 얻는 것을 역의 체라고 이르고, 세간에서 제일 됨을 뜻대로 성숙하는 것을 역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b_09L釋曰福智二聚種子充滿是名力因能得最上依止是名力體 世閒第一隨意成熟是名力業 偈曰

미묘한 법의 이치를 깊이 관하여서
여러 악마들이 가히 뺏지 못하고
이부(異部)의 허물을 능히 주는 것을
견(堅)의 성숙한 모습이라고 말한다.
016_0859_b_12L深觀妙法理
諸魔不可奪
能與異部過
說堅成熟相

【釋】미묘한 법의 도리를 마음을 지어 관찰하는 것을 견(堅)의 인이라고 이르며, 악마인 파순(波旬:욕계 제6천의 마왕)이 능히 장애하지 못하는 것을 견의 체라고 이르고, 능히 다른 부(部)와 더불어 과실을 짓는 것을 견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b_14L釋曰妙法道理作心觀察是名堅因惡魔波旬不能障礙是名堅體 能與他部而作過失是名堅業 偈曰

선근 무더기가 있어
그에 의지해 부지런히 능히 일으키고
악에서 벗어나 착함을 닦는 것을
지(支)의 성숙한 모습이라 말한다.
016_0859_b_17L所有善根聚
依勤能發起
離惡及修善
說支成熟相

【釋】스스로 선근의 무더기를 성숙시키는 것을 지(支)의 인이라고 이르며, 이 인을 의지하여 최상의 정진을 일으키는 것을 지의 체라고 이르고, 온갖 착하지 못함을 벗어나서 즐겨 뛰어나게 착함을 닦는 것을 지의 업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b_19L釋曰彼成熟善根聚是名支因 依此能發起上精進是名支體 離諸不樂修勝善是名支業 偈曰

이와 같은 아홉 가지의 물건은
성숙시키고 또한 남도 성숙하게 하여서
착함을 더하고 법신(法身)을 더하여
마치 세상에서 가장 친한 자와 같이 한다.
016_0859_b_22L如此九種物
自熟亦熟他
增善增法身
如世極親者
016_0859_c_02L
【釋】이러한 욕 등의 아홉 가지 물건은 능히 자기를 성숙시키고 또한 남을 성숙하게 하여서 항상 모든 선근을 증장하고 법신을 증장한다. 이 두 가지의 증장으로 말미암아 마치 세간의 제일 친한 자와 같이 한다.
이미 보살이 스스로 성숙하게 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중생들을 성숙하게 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b_24L釋曰欲等九物能自成熟亦成熟他常增長一切善根及增長法身由此二種增故如似世閒第一親者 已說菩薩自得成熟 次說菩薩成熟衆生偈曰

종기가 성숙되면 치료하게 되고
음식이 성숙되면 먹을 만하고
중생이 성숙됨도 또한 그러하여서
2분(分)을 버려서 쓰기 때문이다.
016_0859_c_06L癰熟則堪治
食熟則堪噉
衆生熟亦爾
二分捨用故

【釋】2분이라 함은 첫째는 장분(障分)이요, 둘째는 치분(治分)이다. 장분이 성숙되면 마땅히 버려야 하니, 마치 종기가 성숙되면 째야 하는 것과 같다.
치분이 성숙되면 써야 하니 마치 음식이 성숙되면 먹어야 함과 같다. 이를 성숙에 의지한다고 한다.
이미 성숙에 의지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성숙의 차별에 대하여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c_08L釋曰二分者障分治分 障熟須如癰熟須潰 治熟須用如食熟須 是名成熟依止 已說成熟依止說成熟差別 偈曰

사(捨)와 보(普)와 승(勝)과 수(隨)와 선(善)과
득(得)과 상(常)과 점(漸)이 여덟이 된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성숙하게 하니
이를 차별의 종류를 말한다고 한다.
016_0859_c_12L捨普勝隨善
得常漸爲八
如此諸成熟
是說差別種

【釋】남을 성숙하게 하는 모습에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捨)의 성숙이니 번뇌를 멸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보(普)의 성숙이니 3승(乘)으로써 교화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승(勝)의 성숙이니 외도의 법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넷째는 수(隨)의 성숙이니 근기에 응하여 설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선(善)의 성숙이니 마음으로 공경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득(得)의 성숙이니 거꾸로 알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상(常)의 성숙이니 길이 물러서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점(漸)의 성숙이니 차례로 증장시키기 때문이다.
이미 성숙의 차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성숙하는 마음의 뛰어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c_14L釋曰成熟他相有八種 一者捨成熟令滅煩惱故 二者普成熟化以三乘 三者勝成熟過外道法故 四者成熟應機說故 五者善成熟心恭敬 六者得成熟令不倒解故 七者成熟令永不退故 八者漸成熟令次第增長故 已說成熟差別 次說成熟心勝 偈曰

아들에게 이익되고 어버이에게 이익되며
자기에게 이익되는 세 가지의 이익이 뛰어나다.
보살은 일체를 이익되게 하니
그보다 뛰어나서 뛰어나기를 비할 데 없다.
016_0859_c_22L利子及利親
利己三利勝
菩薩利一切
過彼勝無比
016_0860_a_02L
【釋】비유하면 마치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아들을 편히 즐겁게 하고, 자기의 어버이를 편히 즐겁게 하고, 자신을 편히 즐겁게 하는 이 마음이 가장 뛰어나다.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널리 성숙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그 세 가지의 마음보다 뛰어나서 가히 비길 수가 없다. 그러기에 보살이 중생들을 성숙하게 하는 그 마음이 가장 뛰어나다.
【문】이 뛰어난 것이 어떻게 성립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59_c_24L釋曰譬如世人安樂自子安樂自親安樂自身此心最勝菩薩普欲成熟一切衆生過彼三心不可爲比 是故菩薩成熟衆生其心最勝此勝云何成立 偈曰

세간에서는 자기도 사랑하지 못하거니와
어찌 하물며 남을 사랑하겠는가?
그런데 보살은 자기의 사랑을 버리고
다만 남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016_0860_a_06L世閒不自愛
何況能愛他
菩薩自愛捨
但爲愛他故

【釋】세상 사람들은 비록 자기를 사랑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능히 자기에게 이익되는 곳에 자신을 두지 못한다. 하물며 남을 사랑하여 남에게 이익되는 곳에 두겠는가? 그러나 보살은 그러하지 않아 자기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다만 남을 사랑하기 때문에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 뛰어남이 그보다 뛰어난 것이다.
【문】이 마음의 뛰어남을 써서 어떻게 성숙하게 합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60_a_08L釋曰世人雖欲自愛尚不能自安利況能愛他安他利處 菩薩不爾於自愛但爲愛他 是故成熟衆生勝過於彼用此心勝云何成熟 偈曰

몸과 재물의 모든 것을 버리고
평등하고 싫어함이 없게 하여
모자라는 것을 충족시켜서
선근을 편히 세운다.
016_0860_a_12L身財一切捨
平等及無厭
所乏令充足
安立於善根

【釋】이 게송은 단바라밀(檀波羅蜜:보시바라밀)이 중생을 성숙하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생(資生)의 보시이니, 안팎의 몸과 재물 모두를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는 평등의 보시이니, 모든 보시의 밭은 높고 낮음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셋째는 싫어함이 없는 보시이니, 용맹하게 항상 보시하여 피곤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보시로써 두 세간을 따라 포섭하여서 현재의 세간에서는 모두 충족하게 하고, 미래의 세간에서 선근을 편히 세우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60_a_14L釋曰此偈顯示檀波羅蜜成熟衆生檀有三種資生檀內外身財一切捨故平等檀於諸施田離高下故無厭檀勇猛恒施不疲倦故 以是三檀二世隨攝於現在世皆令充足於未來世安立善根 偈曰

상(常)과 자기 성품과 원만과
스스로 즐김과 방일(放逸)하지 아니함은
계(戒)의 발에 끌어들여서
두 과보가 항상 다함없다.
016_0860_a_20L常與性及滿
自樂不放逸
引入於戒足
二果常無盡
016_0860_b_02L
【釋】이 게송은 시바라밀(尸波羅蜜:지계바라밀)이 중생들을 성숙시킴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보살에게는 다섯 가지의 지계함이 있다. 첫째는 항상한 지계이니, 생생(生生)에 항상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성품의 지계이니, 공용(功用)이 없는 마음으로 진실한 체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셋째는 원만한 지계이니, 열 가지의 착한 업의 길이 다 구족하기 때문으로 『십지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넷째는 자기 즐거움의 지계이니, 항상 자기를 사랑하여 즐겁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방일하지 않는 지계이니, 생각생각이 범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의 지계로써 두 세간을 따라 포섭하여서 현재의 세간에서는 계품(戒品)을 편히 세우고, 미래의 세상에서는 의보(依報)의 두 과의 공덕으로 하여금 끊이지 않게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60_a_22L釋曰此偈顯示尸波羅蜜成熟衆生菩薩有五種尸羅 一者常尸羅生生常有故 二者自性尸羅無功用心眞實體故 三者圓滿尸羅十善業道皆具足故如十地經說 四者自樂尸恒自愛樂故 五者不放逸尸羅念無犯故 以是五種尸羅二世隨攝於現在世安立戒品於未來世令依報二果功德無絕 偈曰

이익되지 않은 데에서 이익되는 생각을 얻어서
극히 참는 것은 방편으로써 이해하는 것이며
자신으로 하여금 수순함과
가지가지 여러 선근을 일으키게 한다.
016_0860_b_08L不益得益想
極忍解方便
令彼起隨順
及種諸善根

【釋】이 게송은 찬제바라밀(提波羅蜜:인욕바라밀)로써 중생들을 성숙시킴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만일 널리 이익되게 하지 못한 일로써 보살에게 와서 향하더라도 보살은 그에게 널리 이익되는 앎을 얻어서 극히 인욕함을 일으킨다. 어찌하여 그런가 하면 그의 수순으로 말미암아 내가 인욕하는 바라밀로 증장함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인욕으로써 두 세간을 따라 포섭하여서 현재의 세상에서는 귀향(歸向)함을 일으키게 하고, 미래의 세상에서는 선근을 심게 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60_b_10L釋曰此偈顯示羼提波羅蜜成熟衆 若他以不饒益事來向菩薩菩薩於彼得饒益解起極忍辱 何以故彼隨順令我忍波羅蜜得增長故以是忍二世隨攝於現在世令起歸於未來世令種善根 偈曰

오랜 시겁(時劫)에 최상의 부지런함을 행하여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 물러서지 아니하고
한 생각 착함을 내게 하거늘
하물며 착함이 한량없게 함이겠는가?
016_0860_b_16L久劫行上勤
利物心無退
令生一念善
況欲善無量

【釋】이 게송은 비리야바라밀(毗梨耶波羅蜜:정진바라밀)이 중생들을 성숙하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보살이 억백천(億百千) 겁에 있어서 가장 위의 정진을 행하여서 끝없는 중생들을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 마음에 후퇴하여 물러남이 없다.
이 정진으로써 두 세간을 따라 포섭하여서 현재의 세상에 다만 한 생각의 착한 마음을 내게 하거든 하물며 미래의 세상에서 한량없는 선근으로 다 증익됨을 얻게 함이랴.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60_b_18L釋曰此偈顯示毘梨耶波羅蜜成熟衆生 菩薩於億百千劫行最上精進爲成熟無邊衆生心無退轉 以是精二世隨攝於現在世但令得生一念善心況於未來令無量善根皆得增益 偈曰
016_0860_c_02L
가장 위인 자재한 선을 얻고
물듦과 아견(我見)과 아만(我慢)을 여의니
현재에서 돌아오게 하여
미래에는 착한 법이 더하게 하는구나.
016_0860_b_24L得上自在禪
離染及見慢
現在令歸向
未來善法增

【釋】이 게송은 선바라밀(禪波羅蜜)이 중생을 성숙하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보살이 얻은 선정은 애견(愛見)과 아만 등을 멀리 벗어났기 때문에 가장 자재하다.
이 선정으로써 두 세간을 따라 포섭하여서 현재의 세상에서는 제일이 되는 미묘한 법에 귀향하게 하고, 미래의 세상에서는 모든 선근을 증장하게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60_c_03L釋曰此偈顯示禪波羅蜜成熟衆生菩薩所得禪定遠離愛見慢等在最上 以是禪定二世隨攝於現在令歸向第一妙法於未來世令增長一切善根 偈曰

참됨을 알고 뜻을 알아서
모든 의심을 능히 끊으며
법에 있어서 공경하게 하여
자기와 남의 공덕이 원만하게 한다.
016_0860_c_08L知眞及知意
能斷一切疑
於法令恭敬
自他功德滿

【釋】이 게송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지혜바라밀)이 중생들을 성숙하게 함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참됨을 안다’고 함은 법을 알아서 전도되지 않은 것이요, ‘뜻을 안다’고 함은 중생들의 마음 행함을 알아서 그들의 의심을 끊어 주는 것이다.
이 지혜로써 두 세간을 따라 포섭하여서 현재의 세상에는 대승의 법을 향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깊이 내게 하고, 미래의 세상에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덕과 남의 몸의 공덕이 다 원만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860_c_10L釋曰此偈顯示般若波羅蜜成熟衆 知眞者解法不顚倒故 知意者達衆生心行斷彼疑故 以是般若世隨攝於現在世令向大法深生恭於未來世令彼自身功德及他身功德皆得圓滿 偈曰

선취(善趣)와 3승(乘)과
큰 자비의 3품(品)이 있어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이와 같이 중생들을 성숙하게 한다.
016_0860_c_16L善趣及三乘
大悲有三品
盡於未來際
如是熟衆生

【釋】이 게송은 크게 성숙한 모습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지위가 큰 것이니, 말하자면 제4의 지위를 다하여 선도와 3승을 세운 것이다. 둘째는 품(品)이 큰 것이니, 자비가 세 가지의 품에 다한다. 하(下)인 자는 신행(信行)하는 것의 지위이고, 중간 것은 초지(初地)로부터 7지(地)까지이고, 상인 자는 8지와 9지와 10지이다. 셋째는 시절이 큰 것이니, 시절이 가이없어서 미래제가 다한다.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니, 이를 크게 성숙한 모습이라고 이른다.
「성숙품」을 마친다.
016_0860_c_18L釋曰此偈顯示大成熟相有三種位大謂窮四位安立善道及以三二者品大悲極三品下者信行地中者初地至七地上者八九十地時大時節無邊盡未來際菩薩如是利益衆生 是名大成熟相 成熟品究竟
大乘莊嚴經論卷第二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