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莊嚴經論卷第十三

ABC_IT_K0586_T_013
016_0940_a_01L대승장엄경론 제13권
016_0940_a_01L大乘莊嚴經論卷第十三


무착보살 지음
016_0940_a_02L 無著菩薩造
바라파밀다라 한역
이영무 번역
016_0940_a_03L大唐天竺三藏波羅頗蜜多羅譯


23. 행주품(行住品)
016_0940_a_04L行住品第二十三

【釋】이미 보살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다섯 가지의 모양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a_05L釋曰已說菩薩功德次說菩薩五種偈曰

속마음에 연민(憐愍)함이 있고
친하고 다정한 말을 하며 용감하고 건실하며
손을 벌리고 아울러 뜻을 해석함이니
이 다섯 가지가 보살의 모양이다.
016_0940_a_07L內心有憐愍
愛語及勇健
開手幷釋義
此五菩薩相

【釋】보살에게 다섯 가지의 모양이 있으니, 첫째는 연민이요, 둘째는 친하고 다정한 말이요, 셋째는 용감하고 건실함이요, 넷째는 손을 벌리는 것이요, 다섯째는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연민한다’고 함은 보리의 마음으로써 중생들을 거두어 이롭게 함이다.
‘친하고 다정한’이라 함은 부처님의 법에서 바른 믿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용감하고 건실하다’고 함은 어려운 행과 괴로운 행에도 굴복하여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손을 벌린다’고 함은 재물로써 포섭하기 때문이다.
‘뜻을 해석한다’고 함은 법으로써 포섭하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의 모양을 마땅히 알겠으니, 처음의 하나는 마음이요, 뒤의 네 가지는 행이다.
이미 보살의 다섯 가지 모양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재가와 출가의 분수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a_09L釋曰菩薩有五種相憐愍愛語三勇健開手釋義憐愍者以菩提心攝利衆生故愛語者令於佛法得正信故勇健者難行苦行不退屈開手者以財攝故釋義者以法攝此五種相應知初一是心後四是已說菩薩五種相次說菩薩在家出家分偈曰

보살은 일체의 때에
항상 전륜의 지위에 있으면서
중생의 작업을 이롭게 하니,
재가의 분(分)이 이와 같다.
016_0940_a_17L菩薩一切時
恒居輪王位
利益衆生作
在家分如此

【釋】보살이 세속의 집에 있을 때에는 항상 전륜왕이 되어서 교화하여 열 가지의 착함을 행하게 하고, 열 가지의 악을 벗어나게 하는 이익을 짓는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a_19L釋曰菩薩在家恒作輪王化行十善離於十惡此是利益偈曰

얻음을 받고 법을 얻고
나타내 보임으로써 이룬다.
이 세 가지는 출가의 분(分)이니
일체의 지(地)에 있다.
016_0940_a_21L受得及法得
及以示現成
三種出家分
在於一切地
016_0940_b_02L
【釋】보살이 출가함에는 세 가지의 분(分)이 있으니, 첫째는 ‘얻음을 받는 분’으로서 이른바 남의 애호를 받는 것이다. 둘째는 ‘법을 얻는 분’이니 이른바 무류(無流)의 보호를 얻는 것이다. 셋째는 ‘나타내 보이는 분’이니 이른바 변화를 짓는 것이다.
얻음을 받는 분은 신행지(信行地)에 있고, 법을 얻는 분과 나타내 보이는 분은 대지(大地)에 들어간 이를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b_02L釋曰菩薩出家有三分受得分從他受護法得分謂得無流護示現分謂變化作受得分謂信行地法得分及示現分謂入大地偈曰

마땅히 알아라. 출가의 분은
한량없는 공덕을 갖추어서
재가한 분과 비교하고자 하면
가장 뛰어나서 비할 수가 없다.
016_0940_b_06L應知出家分
無量功德具
欲比在家分
最勝彼無等

【釋】재가의 분과 출가의 분을 나누어 비교하여 보니 출가의 분이 뛰어나다. 그것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였기 때문이다.
016_0940_b_08L釋曰二分挍量出家分勝由無量功德具足故
이미 보살의 재가와 출가의 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다섯 가지 극히 큰마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b_10L已說菩薩在家出家分說菩薩五種極大心偈曰

애호하는 과(果)와 선근과
열반을 얻고자 함과
청정하지 못함과 청정함과 극히 청정함은
이른바 여러 지(地) 가운데 있다.
016_0940_b_11L愛果及善根
涅槃欲令得
未淨淨極淨
謂在諸地中

【釋】다섯 가지의 극히 큰마음이라 함은, 첫째는 즐거움이 극히 큰마음이요, 둘째는 이로움이 극히 큰마음이요, 셋째는 청정하지 못함이 극히 큰마음이요, 넷째는 이미 청정함이 극히 큰마음이요, 다섯째는 극히 청정함이 극히 큰마음이다.
‘애호하는 과’라 함은 이른바 즐거움이 극히 큰마음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뒷세상에 애호하는 과를 얻게 함이다.
‘선근’이라 함은 이른바 이익이 극히 큰마음이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현재에 여러 착함을 행하고 열반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청정하지 못하다’고 함은 이른바 청정하지 못한 것의 극히 큰마음이니 곧 신행지의 보살이다.
‘청정하다’고 함은 이른바 이미 청정함이 극히 큰마음이니 곧 초지로부터 7지에 이르기까지의 보살이다.
‘극히 청정하다’고 함은 이른바 극히 청정하고 극히 큰마음이니 곧 뒤의 세 가지 지위의 보살이다.
016_0940_b_13L釋曰五極大心者樂極大心極大心未淨極大心已淨極大極淨極大心愛果者謂樂極大令諸衆生得後世愛果故善根者謂利極大心令諸衆生現行諸善及得涅槃故未淨者謂未淨極大心信行地菩薩淨者謂已淨極大心初地至七地菩薩極淨者謂極淨極大心卽後三地菩薩
이미 보살의 다섯 가지의 극히 큰마음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네 가지로 중생을 거둠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b_22L已說菩薩五種極大心次說菩薩四種攝衆生偈曰

욕락과 평등과
증상(增上)과 도중(徒衆)의
네 가지의 마음은 여러 지(地)에서
일체의 중생을 거두어들인다.
016_0940_b_23L欲樂及平等
增上與徒衆
四心於諸地
攝受一切生
016_0940_c_02L
【釋】네 가지로 중생을 거둔다고 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욕락하는 마음으로 거둠이니 보리의 마음으로 거둠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둘째는 평등한 마음으로 거둠이니 초지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남이 평등한 마음으로 거두기 때문이다. 셋째는 증상하는 마음으로 거둠이니 주체가 되는 지위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자재한 힘으로 거두기 때문이다. 넷째는 도중(徒衆)의 마음으로 거둠이니 거둠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제자를 이루기 때문이다.
016_0940_c_02L釋曰四種攝衆生者欲樂心攝以菩提心攝故平等心攝由入初得自他平等心攝故增上心攝由居主位以自在力攝故徒衆心由攝成自弟子故
이미 보살의 네 가지 중생을 거둠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네 가지의 생을 받음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c_07L已說菩薩四種攝衆生次說菩薩四種受生偈曰

업의 힘과 원(願)의 힘과
선정의 힘과 또한 신통의 힘
이 네 가지의 힘을 의지하여
보살이 생을 받는다.
016_0940_c_08L業力及願力
定力亦通力
依此四種力
菩薩而受生

【釋】네 가지의 생을 받는다 함은, 첫째는 업의 힘으로 태어나고, 둘째는 원의 힘으로 태어나고, 셋째는 선정의 힘으로 태어나고, 넷째는 신통의 힘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업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신행지의 보살이니, 업의 힘이 자재하여 하고 싶은 곳을 따라 생을 받기 때문이다.
‘원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큰 지위에 들어간 보살이다. 원의 힘이 자재하여 남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축생들의 몸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선정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선정을 얻은 보살이다. 선정의 힘이 자재하여서 위의 세계를 버리고 아래로 생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신통의 힘으로 태어난다’고 함은 이른바 신통을 얻은 보살이다. 신통의 힘이 자재하여서 능히 도솔천(兜率天) 등에 여러 모양을 나타내 보이면서 생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016_0940_c_10L釋曰四種受生者業力生願力定力生通力生業力生者信行地菩薩業力自在隨所欲處受生故願力生者謂入大地菩薩力自在爲成熟他受畜生等生故力生者謂得定菩薩定力自在捨於上界下受生故通力生者謂得神通菩薩通力自在能於兜率天等示現諸相而受生故
이미 보살이 네 가지의 생을 받아 남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열한 가지로 머무는 모양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0_c_19L已說菩薩四種受生次說菩薩十一住相偈曰

공(空)을 증득하고 업의 과[業果]를 증득하고
선정에 머물고 깨달음의 분(分)에 머물고
제(諦)를 관하고 연기(緣起)를 관하고
무상(無相)이고 무공용(無功用)이고
016_0940_c_20L證空證業果
住禪住覺分
觀諦觀緣起
無相無功用

교화의 힘이고 두 문을 청정히 하고
보리를 청정히 함이니
이 여러 가지로써 말한 것은
입지(立地)와 서로 응하는 것임을 알라.
016_0940_c_22L化力淨二門
及以菩提淨
以此諸所說
立地相應知
016_0941_a_02L
【釋】열한 가지로 머문다고 함은 곧 열한 가지의 지위이다. 머문다고 함은 지(地)를 이르기 때문이다.
‘공을 증득한다’고 함은 처음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인(人)과 법의 두 가지 무아에 머물기 때문이다.
‘업의 과를 증득한다’고 함은 두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업을 증득하고 과가 무너지지 않아 능히 계를 보호함을 나타낸 것이다.
‘선정에 머문다’고 함은 세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능히 욕계에 태어나면서도 선정에서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분에 머문다’고 함은 네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능히 생사에 들어가면서도 깨달음의 분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諦)를 관한다’고 함은 다섯 번째의 머무는 상을 나타낸 것이다. 명확한 가르침으로써 번뇌를 교화하니 오직 번뇌의 마음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연기(緣起)를 관한다’고 함은 여섯 번째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염오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연기를 의지하여 생을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다.
‘무상(無相)’이라고 함은 일곱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행은 비록 공용이지만 위로는 한 가지 길로 모여들고 주로 무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무공용(無功用)’이라고 함은 여덟 번째의 머무는 상을 나타낸 것이다. 비록 부처님의 국토를 청정히 하지만 일어나고 지음이 없어서 공용이 없는 데 많이 머물기 때문이다.
‘교화의 힘’이라고 함은 아홉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네 가지의 말이 자재하여서 능히 일체의 중생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두 문을 청정히 한다’고 함은 열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삼매의 문과 다라니의 문이 극히 청정하기 때문이다.
‘보리를 청정히 한다’고 함은 열한 번째의 머무는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일체지의 장애를 끊어 궁극에 이르기 때문이다.
016_0940_c_23L釋曰十一住者卽十一地住者名地證空者顯初住相多住人法二無我故證業果者顯第二住相證業及果不壞能護戒故住禪者顯第三住能生欲界而不退禪故住覺分者顯第四住相能入生死而不捨覺分觀諦者顯第五住相以明教化唯惱心以我無故觀緣起者顯第六住相能不起染心而依緣起受生故無相者顯第七住相行雖功用而上參一道多住無相故無功用者顯第八住相雖淨佛土而無起作多住無功用故化力者顯第九住相四辯自能成熟一切衆生故淨二門者第十住相三昧門陁羅尼門極淸淨淨菩提者顯第十一住相一切智障斷究竟故
이미 보살의 열한 가지의 머무는 모양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의지하는 지위를 따라 이름을 세움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1_a_17L已說菩薩十一住相說菩薩依地立名偈曰

처음의 셋은 세 가지의 행이 청정하고
다음의 셋은 세 가지의 아만이 끊어지고
뒤의 셋은 각(覺)과 사(捨)와 화(化)이며,
열 번째에 네 가지의 이름이 있다.
016_0941_a_18L初三三行淨
次三三慢斷
後三覺捨化
第十有四名
016_0941_b_02L
【釋】10지(地) 가운데서 열 가지의 보살의 이름을 건립한 것이다.
‘처음의 셋은 세 가지의 행이 청정하다’고 함은 초지(初地)는 견(見)이 청정하니, 보살이 인과 법의 두 소견을 대치하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요, 제2지(地)는 계가 청정하다고 이르니, 보살이 미세하게 범한 때가 길이 체가 없음이요, 제3지는 선정이 청정하다고 이르니, 보살이 여러 선의 삼매에서 물러서지 않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음의 셋은 세 가지 아만이 끊어졌다’고 함은 제4지는 법문이 다르다는 아만을 끊는 것이다. 보살이 여러 경의 법에 있어서 차별의 만심(慢心)이 일어남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제5지는 서로 계속함이 다르다는 만심을 끊는 것이다. 보살이 열 가지의 평등한 마음에 들어가면 일체 서로 계속되는 데서 평등을 얻기 때문이다. 제6지는 염오와 청정이 다르다는 만심을 끊는다. 보살은 여(如)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객진(客塵) 번뇌이기에 염오되어도 능히 연기법에 머무니, 여(如)는 검고 흰 차별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뒤의 셋은 각(覺)과 사(捨)와 화(化)’라 함은 제7지는 깨달음[覺]을 얻었다고 이른다. 보살이 무상(無相)에 머물면 힘이 능히 염념(念念) 가운데 서른일곱 가지 깨달음의 갈래를[三十七學分] 얻기 때문이다. 제8지는 행사(行捨)라고 이른다. 보살이 공용이 없고 상이 없는 데 머물기 때문이다. 또는 정토(淨土)라고 이르니 보살의 방편의 행이 불퇴지(不退地)의 보살과 합하기 때문이다. 제9지는 중생을 교화한다고 이르니 보살이 능히 일체 중생들을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열 번째에 네 가지의 이름’이 있다고 함은 다음과 같다. 첫째의 이름은 큰 신통이다. 보살이 큰 신통을 얻기 때문이다. 둘째의 이름은 원만한 법신이다. 보살이 한량없는 삼매의 문과 다라니의 문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셋째의 이름은 능현신(能現身)이다. 보살이 도솔천에 머무는 등 모양의 몸을 보였기 때문이다. 넷째의 이름은 직(職)을 받는 것이다. 보살은 부처님의 처소에서 직을 받기 때문이다.
016_0941_a_20L釋曰於十地中建立十菩薩名初三三行淨者初地名見淨菩薩得人法二見對治智故第二地名戒淨菩薩微細犯垢永無體故第三地名定淨菩薩諸禪三昧得不退故次三三慢斷第四地名斷法門異慢菩薩於諸經法破起差別慢故第五地名斷相續異慢菩薩入十平等心於一切相得平等故第六地名斷染淨異慢菩薩如性本淨客塵故染能住緣起法如不起黑白差別見故後三覺化者第七地名得覺菩薩住無相力能念念中修三十七覺分故第八地名行捨菩薩住無功用無相故亦名淨土菩薩方便行與不退地菩薩合第九地名化衆生菩薩能成熟一切衆生故第十有四名者名大神菩薩得大神通故名滿法身薩具無量三昧門陁羅尼門故能現身菩薩住兜率天等示相身故名受職菩薩於諸佛所得受職故
이미 보살이 지(地)를 의지하여 이름 세움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를 따라 배움을 닦는 것과 배움의 과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1_b_18L已說菩薩依地立名次說菩薩隨地修學及學果偈曰

순서를 따라 앞의 여섯 지(地)는
성품을 보며 세 가지의 학을 닦고
순서를 따라 뒤의 네 지는
과를 얻는 데 네 가지가 있다.
016_0941_b_20L隨次依前六
見性修三學
隨次依後四
得果有四種
016_0941_c_02L
【釋】‘순서를 따라 앞의 여섯 지는 성품을 보며 세 가지의 학을 닦는다’고 함은 보살이 초지에서 진여를 통달하고 제2지에서 증상의 계학(戒學)을 배우고 제3지에서 증상의 심학(心學)을 배우고 제4지와 제5지와 제6지에서 증상의 혜학을 배운다는 것이다.
지혜에는 두 가지의 경계가 있다. 하나는 법의 진실이니 이른바 고제(苦諦) 등의 네 가지 제와 두 가지의 연기로서, 이른바 역(逆)과 순(順)으로 열두 가지의 인연을 관하는 것이다. 두 번째의 경계는 또한 제2지와 제3지 가운데도 있다. 그러기에 그 지(地)에서도 또한 증상의 혜학을 건립한다. 그러나 제4지 가운데 보리의 분(分)에 혜의 증상이 있고, 제5지 가운데 제(諦)의 관찰에서도 혜의 증상이 있으며, 제6지 가운데 연기에서도 혜의 증상을 관한다. 그러기에 이 세 가지의 지에 증상 혜학을 건립하는 것이다.
‘순서를 따라 뒤의 4지는 과를 얻는 데 네 가지가 있다’고 함은 제7지를 의지하여 상은 없고 공용은 있는 머묾을 얻어서 제1의 과가 되고, 제8지를 의지하여 상도 없고 공용도 없는 머묾을 얻어서 제2의 과가 되며, 제9지를 의지하여 중생을 성숙하게 함을 얻어서 제3의 과가 되고, 제10지를 의지하여 두 문이 성숙됨을 얻어서 제4의 과가 된다.
016_0941_b_22L釋曰隨次依前六見性修三學者薩於初地通達眞如第二地學增上第三地學增上心第四第五第六地學增上慧慧有二境法實謂苦等四諦緣起謂逆順觀十二因緣此二境亦在第二第三地中是故彼地亦增上慧建立然第四地中菩提分慧增上第五地中諦觀慧增上六地中緣起觀慧增上故此三地建立增上慧學隨次依後四得果有四種者依第七地得無相有功用住第一果依第八地得無相無功用住爲第二果依第九地得成熟衆生第三果依第十地得二門成熟爲第四果
이미 지(地)를 따라 배움을 닦는 것과 배움의 과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를 따라 무류(無流)의 5음(陰)을 닦아 익힘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1_c_14L已說隨地修學及學果次說菩薩隨地修習無流五陰偈曰

성품을 보고 세 가지의 몸을 청정히 함은
또한 앞의 여섯 가지의 지(地)에 있고
나머지 지에서는 나머지 둘을 청정히 하여
다섯 가지의 장애를 멀리 여의었다.
016_0941_c_15L見性淨三身
亦在前六地
餘地淨餘二
遠離五障故
016_0942_a_02L
【釋】초지에서 성품을 보는 것은 앞의 해석과 같다. 제2지에서 계의 몸이 청정해지고, 제3지에서 선정의 몸이 청정해지고, 제4지와 제5지와 제6지에서 지혜의 몸이 청정해지고, 뒤의 네 지와 부처님의 지위에서는 해탈의 몸과 해탈지견의 몸이 청정해졌다. 그것은 다섯 가지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의 장애’라 함은 제7지 가운데서는 상에 집착하는 무지(無知)로써 장애가 되고, 제8지 가운데서는 공용의 무지로써 장애가 되며, 제9지에서는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는 무지로써 장애가 되고, 제10지에서는 두 문을 청정히 못함으로써 장애가 되며, 부처님의 지위에서는 장애의 무지로써 장애가 되는 것이다. 이른바 이 무지가 능히 성문과 연각의 지혜를 장애하기 때문이다.
여러 부처님은 일체의 경계가 걸림이 없음을 알아서 이 장애를 해탈하기 때문이다.
016_0941_c_17L釋曰初地見性如前解第二地中身淸淨第三地中定身淸淨第四第六地中慧身淸淨後四地及佛解脫身解脫知見身淸淨由離五障故五障者第七地中以執相無知爲第八地中以功用無知爲障第九地中以不能化生無知爲障第十地以未淨二門無知爲障佛地中㝵障無知爲障謂此無知能㝵聲聞緣覺境界智諸佛知一切境無㝵解脫此障故
이미 보살이 지(地)를 따라 무류의 5음(陰)을 닦음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를 따라 성취되고 성취되지 못함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2_a_05L已說菩薩隨地修無流五陰次說菩薩隨地成就未成就偈曰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과
성취된 것에 다시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
지(地)와 같이 지(知)를 건립하니
분별과 무분별이다.
016_0942_a_06L未成就成就
成復未成成
如地建立知
分別無分別

【釋】‘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이라 함은 신행지는 성취되지 못하였고 나머지의 여러 지는 성취되었음을 이른다.
‘성취된 것에 다시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이 있다’고 함은 앞의 성취된 지(地) 가운데서 다시 성취되지 못한 것과 성취된 것이 있다는 것이다. 7지(地) 이전은 성취되지 못했다고 하겠으니 그것은 공용이 있기 때문이요, 8지 이상은 이를 성취된 것이라 하겠으니 그것은 공용이 없기 때문이다.
전에는 환희지(歡喜地)도 또한 성취라고 말하였으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지(地)와 같이 지(知)를 건립하였다. 분별과 무분별이라 함은 지(地) 가운데 건립한 앎은 오직 분별인데 이 분별이 또한 무분별이니, 소집(所執)과 능집(能執)이 함께 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에 따랐기에 성취라고 이른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2_a_08L釋曰未成就成就者彼信行地是未成就自餘諸地是名成就成復未成成者於前成就地中復有未成就七地已還名未成就有功用故地已上是名成就無功用故前說歡喜地亦是成就此義云何如地建立知分別無分別此由於地建立知唯分別於此分別亦無分別執能執俱無體故約此義故說名成偈曰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러 지(地) 가운데
닦아 익힘과 성취는
이 두 가지를 사의(思議)할 수 없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016_0942_a_18L應知諸地中
修習及成就
此二不思議
諸佛境界故

【釋】보살이 여러 지(地) 가운데 각각 닦아 익힘과 성취가 있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지마다 다 사의할 수 없음이 있으니, 그것은 여러 보살이 안에서 스스로 증득하여 깨닫는 것이다. 이는 모든 부처님께서 아시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경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016_0942_a_20L釋曰菩薩於諸地中各有修習及成應知地地皆不可思議由諸菩薩內自證覺是諸佛所知非餘人境界
이미 보살이 지를 따라 성취되고 성취되지 못함이 있음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의 모양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2_a_24L已說菩薩隨地成就未成就次說菩薩入地十種相偈曰
016_0942_b_02L
밝게 믿고 하열함이 없으며
겁냄이 없고 또한 기다림이 없으며
통달하고 평등하며
치우침을 여의고 또한 집착을 여의며
016_0942_b_02L明信及無劣
無怯亦無待
通達及平等
離偏亦離著

방편을 알아서
또한 성인의 무리에 태어난다.
이와 같은 열 가지의 모양을
지마다 다 원만히 한다.
016_0942_b_04L及以知方便
亦在聖衆生
如此十種相
地地皆圓滿

【釋】지(地)에 들어가는 보살은 지마다 다 열 가지의 모양이 있다.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믿음을 밝힘이요, 둘째는 하열함이 없음이요, 셋째는 겁냄[怯]이 없음이요, 넷째는 기다림이 없음이요, 다섯째는 통달함이요, 여섯째는 평등함이요, 일곱째는 치우침을 여읨이요, 여덟째는 집착을 여읨이요, 아홉째는 방편을 앎이요, 열째는 성인의 무리에 태어나는 것이다.
‘밝게 믿는다’고 함은 자기의 지위에서 밝음을 얻고 여러 법 가운데서 무지를 제거함이다. 그러기에 다른 지에서도 믿음을 얻어 뒤에 여러 지에 있어서 태어나기를 원하고 즐기는 것이다.
‘하열함이 없다’고 함은 깊고 미묘한 법을 듣고서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겁냄이 없다’고 함은 어려운 행을 행하여서 행이 극히 용맹하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없다’고 함은 자기 지위의 행을 일으켜서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통달한다’고 함은 다른 지위의 방편을 능히 일으키기 때문이다.
‘평등하다’고 함은 널리 중생에 있어서 자기의 마음과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치우침을 여읜다’고 함은 귀로 헐뜯고 칭찬함을 들었을 때에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집착에서 벗어난다’고 함은 전륜왕 등의 지위를 얻어도 애착하고 염오됨이 없기 때문이다.
‘방편을 안다’고 함은 모든 법이 얻을 수 없음을 알아서 부처님의 방편으로 삼기 때문이다.
‘성인의 무리에 태어난다’고 함은 모든 부처님의 도중(徒衆)에 항상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의 열 가지의 모양을 지마다 다 갖추어야 함을 마땅히 알겠다.
016_0942_b_05L釋曰入地菩薩地地皆有十相何者爲十明信無劣無怯無待通達平等離偏離著方便聖衆生明信者於自地得明於諸法中除無知故於他地得信後諸地生願樂故無劣者聞深妙法不驚怖故無怯者行難行行極勇猛無待者起自地行不待教故通達他地方便能起故平等者普於衆同自心故離偏者耳聞毀譽無高下故離著者得輪王等位無愛染故知方便者知諸法不可得爲佛方便聖衆生者諸佛徒衆恒在生故等十相地地皆具應知
이미 보살이 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의 모양에 대해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지 가운데서 얻는 열 가지 바라밀의 모양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2_b_19L已說菩薩入地十種相次說菩薩地中十度相偈曰

욕망이 있고 여섯 가지의 장애가 없으며
그 다음에는 어지러운 지혜가 없고
표류(漂流)하지 않고 또한 돌지 아니하며
벗을 섬기고 공양을 올리고
016_0942_b_20L有欲無六障
其次無亂慧
不漂亦不迴
事友及供養

회향을 하고 장차 뛰어난 데 태어나며
착함을 닦고 유희 신통을 하여
공덕장(功德藏)이 이와 같은 것이
불자(佛子)의 열여섯 가지의 모양이다.
016_0942_b_22L迴向將生勝
修善與戲通
功德藏如是
佛子十六相
016_0942_c_02L
【釋】모든 보살이 여러 지(地) 가운데 열 가지의 바라밀을 얻는 데 열여섯 가지의 모양이 있다. 어떤 것들을 열여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욕망이 있으니 여러 바라밀을 즐겨 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간탐이 없으니 보시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어김이 없으니 계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넷째는 성냄이 없으니 인욕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게으름이 없으니 정진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자비이니 선정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자비는 능히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 주니, 이 성냄의 번뇌를 대치하는 데는 선정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악한 지혜가 없는 것이니 지혜의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악한 지혜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자기 성품의 분별과 억념(憶念)을 따르는 분별과 나타내 보이는 분별들인데 이를 능히 끊어 주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어지러움이 없는 지혜이니 다른 승(乘)의 마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표류하지 않음이니 사람과 하늘의 뛰어난 즐거움이 그의 마음을 취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째는 돌아오지 않음이니 성취되지 않는 괴로움과 행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위해서 그의 마음을 물러서지 않게 함이다.
열한째는 벗을 섬김이니 부처님께서 보여 주신 선지식을 의지하여 대승을 듣기 때문이다.
열두째는 공양이니 삼보(三寶)에게 공양 올리기 때문이다.
열셋째는 회향이니 착하고 교묘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열넷째는 뛰어난 데 태어남이니 이는 원(願)바라밀의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여덟 가지의 어려운 곳을 여의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열다섯째는 착함을 닦는 것이니, 이는 역(力)바라밀의 모양을 나타낸 것이어서 사이 없이 온갖 선근을 닦기 때문이다.
열여섯째는 유희신통이니 이는 지혜바라밀의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여러 큰 신통의 공덕에 유희하기 때문이다. 보살이 만일 이 모양을 얻으면 일체의 무리 가운데 상수(上首)가 된다. 이를 불자의 열여섯 가지의 모양이라고 이른다.
016_0942_b_23L釋曰諸菩薩於諸地中得十度有十六相何者十六有欲樂行諸度故無慳離施障故無違離戒障故無恚離忍障故無懈離進障故慈悲離定障故慈悲能與樂拔苦是瞋惱對治由定得故無惡慧慧障故惡慧有三謂自性分別隨憶分別顯示分別此能斷故無亂慧離異乘心故不漂不爲人天勝樂醉其心故不迴不爲不成就苦難行苦退其心故十一事友依佛所示善知識聞大乘故十二供養供養三寶故十三迴向善巧方便故十四生勝此顯願波羅蜜相離八難處不離諸佛菩薩故十五修善此顯力波羅蜜無閒修諸善根故十六戲通此顯智波羅蜜相遊戲諸大神通功德故菩薩若得此相則爲一切衆中上首是名佛子十六相
이미 보살이 지(地) 가운데 닦는 열 가지 바라밀의 모양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바라밀마다 얻는 다섯 가지의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2_c_19L已說菩薩地中十度相次說菩薩度度五功德偈曰

지(地)마다 승진할 때에
바라밀마다 다섯 가지의 덕이 있으며
두 가지와 두 가지와 한 가지는
마땅히 지(止)와 관(觀)과 함께 함을 알아야 한다.
016_0942_c_20L地地昇進時
度度有五德
二及二及一
應知止觀俱
016_0943_a_02L
【釋】‘지(地)마다 승진할 때에 바라밀마다 다섯 가지의 덕이 있다’고 함은 보살이 하나하나의 지에서 하나하나의 바라밀을 닦을 때에 다 다섯 가지의 공덕을 갖춘다는 것이다. 어떤 것들을 다섯이라 하는가? 첫째는 멸습(滅習)이요, 둘째는 득의(得猗)요, 셋째는 원명(圓明)이요, 넷째는 상기(相起)요, 다섯째는 광인(廣因)이다.
멸습(滅習)이라 함은 하나하나의 찰나마다 의지하는 가운데 습기(習氣)의 무더기를 멸하여 제거하기 때문이다.
득의라 함은 가지가지 모양을 여의고 법의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원명(圓明)이라 함은 일체의 종자를 두루 알아서 분단(分段)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상기(相起)라 함은 큰 지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분별이 없는 모양이 생기기 때문이다.
광인(廣因)이라 함은 모든 종류의 법신을 원만히 하고 청정히 하기 위해서 복 무더기와 지혜의 무더기를 섭수하여 증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와 두 가지와 한 가지는 마땅히 지와 관과 함께 함을 알아야 한다’고 함에서 이 가운데 마땅히 알 것은 처음 두 가지의 공덕은 사마타(奢摩他:止)의 분(分)이요, 다음 두 가지의 공덕은 비발사나(毗鉢舍那:觀)의 분이며, 제5의 공덕은 함께 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016_0942_c_22L釋曰地地昇進時度度有五德者薩於一一地修一一度於一一度具五種功德何者爲五滅習圓明相起廣因滅習者一一剎那滅除依中習氣聚故得猗者離種種相得法樂故圓明者遍知一切種不作分段故相起者由入大地無分別相生故廣因者爲滿爲淨一切種法身福聚智聚攝令增長故及一應知俱者此中應知初二功德是奢摩他分次二功德是毘鉢舍那分第五功德是俱分
이미 보살이 바라밀마다 얻는 다섯 가지의 공덕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10지의 이름을 풀이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3_a_11L已說菩薩度度五功德次釋菩薩十地名偈曰

참을 보고 중생을 이롭게 함을 보니
이곳에서 환희를 얻는다.
범하는 것을 벗어나고 달리하는 마음을 벗어나니
이것을 이구지(離垢地)라 이른다.
016_0943_a_13L見眞見利物
此處得歡喜
出犯出異心
是名離垢地

법을 구하고 법의 힘을 가지며
명(明)을 짓기에 명이라 이른다.
혹(惑)의 장애와 지혜의 장애의 땔나무를
태우는 것이 염혜(焰慧)이다.
016_0943_a_15L求法持法力
作明故名明
惑障智障薪
能燒是焰慧

어려움을 물리치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능히 물리치기에 난승(難勝)이라 이른다.
두 법의 관(觀)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나타나기에 현전(現前)이라 이른다.
016_0943_a_16L難退有二種
能退故難勝
不住二法觀
恒現名現前

잡된 길은 하나의 길에 이웃했기에
멀리 떠난다. 그래서 원행(遠行)이라 이른다.
상(相)을 생각하고 무상을 생각하여
움직임이 없기에 부동지(不動地)이며
016_0943_a_17L雜道鄰一道
遠去名遠行
相想無相想
動無不動地

네 가지의 변재(辯才)와 지혜의 힘이 교묘하여
말을 잘하기에 선혜(善慧)라 이른다.
두 문이 구름같이 두루 가득하여
법을 내리기에 법운(法雲)이라 이른다.
016_0943_a_19L四辯智力巧
說善稱善慧
二門如雲遍
雨法名法雲
016_0943_b_02L
【釋】‘참을 보고 중생을 이롭게 함을 보니 이곳에서 환희를 얻는다’고 함은 보살이 초지 가운데서 하나의 진여를 보는 것이니, 이른바 자기의 이익을 보는 것이다. 옛적에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가 이제 처음 보는 것으로서 이는 보리와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다. 또 하나는 중생을 이롭게 함을 보는 것이니, 이른바 남을 이롭게 함을 보는 것으로서 한 찰나에 능히 일백 중생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봄으로 말미암아 뛰어난 환희를 일으킨다. 그러기에 환희지(歡喜地)라고 이른다.
016_0943_a_20L釋曰見眞見利物此處得歡喜者薩於初地中見眞如謂見自利曾未見今時始見去菩提近故利物謂見利他一一剎那能成熟百衆生故由此二見起勝歡喜故名歡喜地
‘범하는 것을 벗어나고 달리하는 마음을 벗어나니 이를 이구지(離垢地)라 한다’고 함은 보살이 2지 가운데서 두 가지의 때를 벗어나는 것이니, 하나는 계를 범하는 때를 벗어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승의 마음을 일으키는 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때를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이구지라고 부르니, 『십지경』에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일체 종지를 마땅히 얻고 마땅히 청정해야 하기에 부지런히 정진한다”고 하였다.
‘법을 구하고 법의 힘을 가지며 명(明)을 짓기에 명이라 이른다’고 함은 보살이 3지 가운데서 삼매의 자재한 힘을 얻었기에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에서 능히 구하고 능히 가져서 큰 법명(法明)을 얻고 남을 위하여 명을 지어서 능히 법으로써 스스로를 밝히고 남을 밝혀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명지(明地)라고 이른다.
‘혹(惑)의 장애와 지혜의 장애의 땔나무를 능히 태우는 것이 염혜(焰慧)이다’라 함은 보살이 제4지 가운데서 보리분의 지혜로써 불꽃의 자기 성품을 지어서 혹과 지혜, 두 가지의 장애에 땔나무의 자기 성품이 된다는 것이다. 이 지의 보살은 능히 지혜의 불꽃을 일으켜서 두 가지 장애하는 땔나무를 태우기에 염혜지(焰慧地)라고 이른다.
‘어려움을 물리치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능히 물리치기에 난승(難勝)이라 한다’고 함은 보살이 제5지 가운데 두 가지의 어려움이 있으니, 하나는 중생을 부지런히 교화하려는 마음이 없기에 번뇌하는 어려움이요, 또 하나는 중생이 따르지 않아 교화를 받으려는 마음이 없어 번뇌하는 어려움이다. 이 지의 보살은 능히 두 가지의 어려움을 물리쳐서 어려운 데서 이김을 얻기에 난승지(難勝地)라고 이른다.
‘두 법의 관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나타나기에 현전(現前)이라 이른다’고 함은 보살이 제6지 가운데서 지혜의 힘을 의지하기에 능히 생사와 열반의 두 법에 머물지 아니하고 이와 같은 관의 지혜가 항상 앞에 나타나 있다. 그러기에 현전지(現前地)라고 이른다.
‘잡된 길은 하나의 길에 이웃했기에 멀리 떠난다. 그래서 원행(遠行)이라 이른다’고 함은 보살이 제7지 가운데서 1승(乘)의 도에 가깝기 때문에 원거(遠去)라고 이른다는 것이다.
누가 멀리 갑니까?
공용과 방편과 구경(究竟)이 능히 먼 데로 간다. 이 멀리 감으로 말미암기에 원행지(遠行地)라고 이른다.
016_0943_b_03L出犯出異心是名離垢地者薩於二地中出二種垢出犯戒垢出起異乘心垢由出二垢故名離垢地如十地經說我等應得應淨一切種智故勤精進求法持法力作明名明者菩薩於三地中得三昧自在力於無量佛法能求能持得大法爲他作明由能以法自明明他故名明地惑障智障薪能燒是焰慧者菩薩於四地中以菩提分慧爲焰自以惑智二障爲薪自性此地菩薩能起慧焰燒二障薪故名焰慧地退有二種能退故難勝者菩薩於五地中有二種難勤化衆生心無惱衆生不從化心無惱難此地菩薩能退二難於難得勝故名難勝地不住二法觀恒現名現前者菩薩於六地中依般若力能不住生死涅槃二法如此觀慧恒現在前故名現前雜道鄰一道遠去名遠行者菩薩於七地中近一乘道故名遠去是遠去功用方便究竟此遠能去由此遠去故名遠行地
016_0943_c_02L‘상(相)을 생각하고 무상을 생각하여 움직임이 없기에 부동지(不動地)’라 함은 보살이 제8지 가운데서 유상의 생각과 무상의 생각과 유공용(有功用)의 생각의 두 생각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부동지(不動地)라고 이른다.
‘네 가지의 변재와 지혜의 힘이 교묘하여 말을 잘하기에 선혜(善慧)라 일컫는다’고 함은 보살이 제9지 가운데서 네 가지의 걸림이 없는 지혜가 가장 뛰어남이 되어서 한 찰나의 지음으로써 삼천세계에 있는 사람과 하늘 등과 다른 종류와 다른 음성과 다른 뜻과 다른 물음들을 이 지위의 보살이 능히 한 음성으로써 여러 물음에 두루 대답하여서 온갖 의심을 끊어 준다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말을 잘하기에 선혜지(善慧地)라고 이른다.
‘두 문이 구름 같이 두루 가득하여 법을 내리기에 법운(法雲)이라 이름한다’고 함은 보살이 제10지 가운데서 삼매의 문과 다라니의 문으로써 일체의 들음을 섭수하여서 훈습(熏習)한 인이 아뢰야식에 두루 차기를 비유하면 뜬 구름이 허공에 두루 가득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듣는 훈습의 구름이 하나하나의 찰나와 하나하나의 모양과 하나하나의 상호와 하나하나의 털구멍에 한량없고 가없는 법의 비를 내려서 모든 교화할 만한 중생에게 충족하는 것이 능히 구름과 같이 법의 비를 내린다. 그러기에 법운지(法雲地)라고 이른다.
016_0943_c_02L相想無相想動無不動地者菩薩於八地中有相及無相有功用想二想俱不能動無此動故故名不動地四辯智力巧說善稱善慧者菩薩於九地中四無㝵慧最爲殊勝於一剎那頃三千世界所有人天異類異音異義異問地菩薩能以一音普答衆問遍斷衆由此說善故名善慧地二門如雲遍雨法名法雲者菩薩於十地中三昧門及陁羅尼門攝一切聞熏習遍滿阿梨耶識中譬如浮雲遍滿虛空能以此聞熏習雲於一一剎那於一一相於一一好於一一毛孔無量無邊法雨充足一切可化衆生由能如雲雨法故名法雲地
【문】 하나하나의 이름을 풀이하였거니와 무엇을 일러 머문다고 이르며, 무엇을 일러 지(地)라고 이릅니까?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3_c_17L釋別名已云何名住云何名地偈曰

여러 선근을 모으기 위하여
즐겨 머물기에 머문다고 말하며
자주자주 여러 번 하여 두려움이 없기에
다시 지(地)로써 이름한다.
016_0943_c_18L爲集諸善根
樂住故說住
數數數無畏
復以地爲名
016_0944_a_02L
【釋】‘여러 선근을 모으기 위하여 즐겨 머물기에 머문다고 이른다’고 함은 여러 보살들이 가지가지 선근을 성취하기 위하여 언제나 일체의 지에 머물기를 즐긴다. 그러기에 여러 지(地)에 머문다고 이른다.
‘자주자주 여러 번 하여 두려움이 없기에 다시 지(地)로써 이름한다’고 함은 걷는 것[步]이 가득하기[彌耶]에 지라고 이른다는 것이니, 걷는다는 것은 자주자주의 뜻이요, 가득하다[彌]는 것은 실수(實數)의 뜻이요, 야(耶)라는 것은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보살이 위의 지위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지 가운데서 자주자주 장애를 끊고 자주자주 공덕을 얻어야 하니, 이를 자주자주라고 이른다. 지(地)는 열[十]의 수로써 양을 삼는다.
여러 보살이 하나하나의 지 가운데서 그만한 장애를 끊을 줄 알고 그만한 공덕을 얻을 줄 알아서 이를 아는 것이 헛되지 않음을 실수(實數)의 뜻이라고 이른다.
위의 지는 두려움이 없는 곳이다. 여러 보살들이 자기의 지위 가운데서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퇴실할 것을 두려워하여 윗자리에 나아가기를 구하는 것을 두려움이 없는 뜻이라 한다. 이 세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기에 지라고 이른다.
016_0943_c_20L釋曰爲集諸善根樂住故名住者菩薩爲成就種種善根於一切時住一切地是故諸地說名爲住數數無畏復以地爲名者步彌耶名爲步者數數義彌者實數義耶者畏義諸菩薩欲進上地於一一地中數數斷障㝵數數得功德是名數數地以十數爲量諸菩薩於一一地知斷爾所障㝵知得爾所功德此不虛是名實數義上地是無畏處諸菩薩畏於自地中退失自他利功進求上地是名無畏義由此三義名爲地
이미 보살의 열 가지 지의 이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이 네 가지로 지를 얻는 차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4_a_10L已說菩薩十地名次說菩薩四種得地差別偈曰

믿음으로 말미암고 행으로 말미암으며
통달함으로 말미암고 또한 이룸으로 말미암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러 보살이
지(地)를 얻는 데 네 가지가 있다.
016_0944_a_11L由信及由行
由達亦由成
應知諸菩薩
得地有四種

【釋】‘네 가지로 지(地)를 얻는다’고 함은 첫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고, 둘째는 행으로 말미암아 얻고, 셋째는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얻고, 넷째는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믿음으로써 여러 지(地)를 얻는 것이니, 믿음의 지에서 말한 것과 같다.
‘행으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바른 행으로써 여러 지를 얻기 때문이다. 여러 보살은 대승법에서 열 가지의 바른 행이 있다. 첫째는 쓰고 베끼는 것이요, 둘째는 공양 올리는 것이요, 셋째는 유통하여 전하는 것이요, 넷째는 듣고 받드는 것이요, 다섯째는 돌아가면서 읽는 것이요, 여섯째는 남을 가르치는 것이요, 일곱째는 익혀 외우는 것이요, 여덟째는 풀어 말하는 것이요, 아홉째는 생각해서 선택하는 것이요, 열째는 닦아 익히는 것이다.
이 열 가지의 바른 행은 능히 한량없는 공덕의 무더기를 내기에 이 행이 지를 얻는다. 그러기에 행으로 얻는다고 이른다.
‘통달’이라고 함은 제일의제를 통달하여 7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성취를 얻었다’고 함은 제8지로부터 부처님의 지위까지를 성취를 얻는다고 이른다.
016_0944_a_13L釋曰四種得地者由信得由行由通達得由成就得由信者以信得諸地故如信地中說由行者以正行得諸地故諸菩薩於大乘法有十種正行書寫供養流傳聽受轉讀教他習誦思擇修習此十正行能生無量功德聚此行得地故名行得通達通達第一義諦乃至七地名通達成就者八地至佛地名成就得
이미 보살이 네 가지로 지를 얻는 차별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의 네 가지의 수행하는 차별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4_a_23L說菩薩四種得地差別次說菩薩四種修行差別偈曰
016_0944_b_02L
여러 바라밀과 여러 깨달음의 분과
여러 신통과 여러 섭(攝)과
대승을 위하고 또한 소승을 위해서
함께 들어가고 또한 함께 이룬다.
016_0944_b_02L諸度諸覺分
諸通及諸攝
爲大亦爲小
俱入亦俱成

【釋】총체적으로 일체 보살의 행을 말하면 네 가지에 지나지 않으니, 첫째는 바라밀의 행이요, 둘째는 보리분의 행이요, 셋째는 신통의 행이요, 넷째는 섭생(攝生)의 행이다.
바라밀의 행은 대승을 구하는 중생을 위하여 말한 것이고, 보리분의 행은 소승을 구하는 중생을 위하여 말한 것이며, 신통의 행은 두 가지의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기 위하여 말한 것이며, 섭생의 행은 두 가지의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을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 말한 것이다.
016_0944_b_04L釋曰摠說一切菩薩行不過四種波羅蜜行菩提分行神通行攝生行說波羅蜜行爲求大乘衆生說菩提分行爲求小乘衆生說神通行爲令二種衆生得入佛法說攝生爲令二種衆生成熟佛法
「행주품(行住品)」을 마친다.
016_0944_b_10L行住品究竟

24. 경불품(敬佛品)
016_0944_b_11L大乘莊嚴經論敬佛品第二十四

【釋】이미 보살의 행과 머묾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부처님을 예배하는 공덕에 대해 말하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4_b_12L釋曰已說菩薩行住次說禮佛功德偈曰

합하는 마음과 여의는 마음과
여의지 아니함과 이롭게 하는 마음으로써
여러 중생들을 연민(憐愍)하여
세상을 구제하시는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4_b_14L合心及離心
不離利益心
憐愍諸衆生
救世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한량없는 뛰어난 공덕을 예배하는 것이다.
‘합하는 마음’이라 함은 자(慈)의 마음이니 즐거움을 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여의는 마음’이라 함은 비(悲)의 마음이니 괴로움을 없애 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여의지 않는 마음’이라 함은 희(喜)의 마음이니 항상 즐거움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롭게 하는 마음’이라 함은 사(捨)의 마음이니 염오됨이 없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4_b_16L釋曰此偈禮如來無量勝功德合心是慈心由與樂故離心者是悲心由拔苦故不離心者是喜心由恒悅利益心者是捨心由無染故偈曰

일체의 장애를 해탈하고
일체의 세간에 뛰어나며
일체의 곳에 변만(遍滿)하여
마음이 해탈하신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4_b_20L一切障解脫
一切世閒勝
一切處遍滿
心脫我頂禮
016_0944_c_02L
【釋】이 게송은 여래의 세 곳의 뛰어난 공덕에 예배하는 것이다.
‘일체의 장애를 해탈하였다’고 함은 해탈의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일체의 혹장(惑障)과 일체의 지장(智障)에서 해탈을 얻었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일체의 세간에 뛰어나다’고 함은 제입(制入)의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자재함으로 말미암아 그 반연하는 바에 따라 뜻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일체의 곳에 변만하다’고 함은 두루 들어감이 뛰어남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일체의 경계 가운데 지혜가 변만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세 곳에서 해탈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마음의 해탈이라고 말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4_b_22L釋曰此偈禮如來三處勝功德一切障解脫者顯解脫勝由一切惑障切智障得解脫故一切世閒勝者制入勝由心自在隨其所緣隨意轉一切處遍滿者顯遍入勝由一切境中智遍滿故由此三義心於三處而得解脫故說心解脫偈曰

능히 혹(惑)이 일어남을 막으며
또한 능히 혹을 해친다.
염오된 여러 중생들은
자비로운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4_c_06L能遮彼惑起
亦能害彼惑
染污諸衆生
悲者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다툼이 없는 뛰어난 공덕을 예배하는 것이다.
‘능히 혹이 일어남을 막는다’고 함은 일체 중생들은 마땅히 번뇌를 일으키나 여래께서 무릇 짓는 업을 능히 그들로 하여금 일어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능히 혹을 해친다’고 함은 혹이 이미 일어난 것은 여래께서 또한 그로 하여금 대치의 방편을 일으키게 하시고, 만일 다른 사람에게 다툼이 없으면 다만 남의 인연으로 자기에게 번뇌를 일어나지 않게 할 뿐이고, 능히 남으로 하여금 대치를 일으키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다툼이 없으시다. 그렇기에 다만 그로 하여금 일으키지 않게 할 뿐 아니라 또한 능히 그로 하여금 대치를 일으키게 한다. 그러기에 뛰어남이 된다.
‘염오된 모든 중생들은 자비로운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라고 함은 여래의 다툼이 없는 삼매는 일체의 염오된 중생에게 두루 연민을 일으킨다. 그러기에 자비로운 분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4_c_08L釋曰此偈禮如來無諍勝功德能遮彼惑起者一切衆生應起煩惱如來凡所作業能令不起亦能害彼惑者彼惑若已起如來亦能令起對治方便若餘人無諍但能令他緣自不起煩惱而不能令他起對治如來無諍則不爾非但令彼不起亦能令彼起對治是故爲勝染污諸衆生悲者頂禮者如來無諍三昧於一切染污衆生偏起憐愍是故於彼名爲悲者偈曰

공용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걸림이 없고 항상 적정하며
일체의 의심을 능히 풀어 주시니
뛰어난 지혜를 지닌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4_c_19L無功用無著
無㝵恒寂靜
能釋一切疑
勝智我頂禮
016_0945_a_02L
【釋】이 게송은 여래의 원과 지혜가 뛰어난 공덕임을 예배하는 것이다. 여래의 원과 지혜에는 다섯 가지 일의 뛰어남이 있으니, 첫째는 일어남에 있어서 공용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경계에 있어서 집착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가운데 있어서 걸림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항시 적정한 것이고, 다섯째는 여러 의심을 풀어 주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의 뜻으로 말미암는다. 그러기에 뛰어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원과 지혜는, 첫째는 무공용이 아니니 뜻을 지어 일어나기 때문이요, 둘째는 집착함이 없음이 아니니 거짓된 선정의 힘을 빌리기 때문이요, 셋째는 걸림 없음이 아니니 소분(少分)의 지혜이기 때문이요, 넷째는 항상 고요함이 아니니 항상 선정에 듦이 아니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의심을 풀어 주지 못하는 것이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4_c_21L釋曰此偈禮如來願智勝功德如來願智由五事勝於起無功用境不著於中無㝵恒時寂靜能釋衆疑由此五義是故爲勝餘人願智非無功用作意起故非無假定力故非無㝵少分知故非恒靜非常定故不釋疑有無知偈曰

소의(所依)와 능의(能依)와
말과 지혜에서
설하는 자의 걸림이 없는 지혜로
잘 말씀하시는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5_a_06L所依及能依
於言及於智
說者無㝵慧
善說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걸림이 없는 뛰어난 공덕에 예배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소의(所依)로서 이른바 법이요, 또 하나는 능의(能依)로서 이른바 뜻이다.
말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방언(方言)이요, 또 하나는 교묘한 지혜이다. 여래께서는 이 말하는 방법과 말하는 방법에 지혜가 항상 걸림이 없다. 그러기에 뛰어난 것이 된다.
말하는 자는 곧 걸림이 없는 업을 나타내서 열어 보이는 것에 방도(方道)가 있다. 그러기에 잘 말한다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5_a_08L釋曰此偈禮如來無㝵勝功德所說有二種所依謂法二能依謂義具有二種方言巧智如來於此所說及說具慧常無㝵是故爲勝卽顯無㝵業開示有方故名善說偈曰

능히 가고 능히 들으며
행을 알고 오고 감을 알아서
출리(出離)를 얻도록
교수하시는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5_a_14L能去及能聞
知行知來去
令彼得出離
教授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신통(神通)이 뛰어난 공덕임을 예배하는 것이다.
‘능히 간다’고 함은 여의의 신통[如意通:神足通]이다. 능히 그와 그곳에 가기 때문이다.
‘능히 듣는다’고 함은 하늘 귀의 신통[天耳通]이다. 능히 그와 그 음성을 듣기 때문이다.
‘행을 안다’고 함은 남의 마음을 아는 신통[他心通]이다. 능히 그 사람의 마음의 행함의 차별을 알기 때문이다.
‘옴을 안다’고 함은 숙명의 신통[宿命通]이다. 능히 그 사람의 전세(前世)는 이로부터 옴을 알기 때문이다.
‘감을 안다’고 함은 태어나고 죽음의 신통[生死通]이다. 능히 그 사람의 지금 생은 이 인으로써 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로 하여금 출리(出離)를 얻게 한다’고 함은 누(漏)가 다 없어진 신통[漏盡通]이니, 능히 여실하게 그를 위하여 설법하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5_a_16L釋曰此偈禮如來神通勝功德能去是如意通能往彼彼所故能聞者是天耳通能聞彼彼音故知行者他心通能知彼人心行差別故知來是宿住通能知彼人前世從此因來故知去者是生死通能知彼人今世從此因去故令彼得出離者是漏盡通能如實爲彼說法故偈曰
016_0945_b_02L
중생이 만일 보는 이가 없어서
결정코 이 분이 대장부인 줄 알아서
깊이 청정하게 믿는 마음을 일으키기에
방편에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5_a_24L衆生若有見
知定是丈夫
深起淨信心
方便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상호(相好)가 뛰어난 공덕임을 예배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만일 봄[見]이 있으면 곧 여래께서 대장부(大丈夫)이심을 아는 것이요, 여래에게 청정한 믿음의 업을 일으키리니, 이 상호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5_b_03L釋曰此偈禮如來相好勝功德一切衆生若有見者卽知如來是大丈夫及於如來起淨信業由以相好爲方便故偈曰

취(取)와 사(捨)와 주(住)와 변화와
정(定)과 지혜와 자재함을 얻음,
이와 같이 네 가지가 청정하니
세존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5_b_07L取捨住變化
定智得自在
如此四淸淨
世尊我頂禮

【釋】 이 게송은 여래의 청정함이 뛰어난 공덕임을 예배하는 것이다. 청정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이 청정한 것이고, 둘째는 연(緣)이 청정한 것이고, 셋째는 마음이 청정한 것이고, 넷째는 지혜가 청정한 것이다.
‘취(取)와 사(捨)와 주(住)라고 함은 몸의 청정을 나타낸 것이니, 능히 자기 몸의 수명 가운데서 만일 취하든지 만일 버리든지 만일 머무를 때에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변화한다’고 함은 연(緣)의 청정함을 나타낸 것이니, 능히 모든 경계를 전하여 변화하여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정(定)’이라 함은 마음의 청정을 나타낸 것이다. 능히 모든 정에 있어서 나가고 들어감에 자재를 얻기 때문이다.
‘지혜’라 함은 지혜의 청정을 나타낸 것이다. 능히 모든 경계가 걸림이 없음을 알아서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5_b_09L釋曰此偈禮如來淸淨勝功德淸淨四種身淸淨緣淸淨心淸淨智淸淨住者顯身淸淨能於自身壽中若取若捨若住得自在故變化者顯緣淸淨能於諸境轉變起化得自在故定者顯心淸淨能於諸出入得自在故智者顯智淸淨知諸境無礙得自在故偈曰

방편과 귀의(歸依)와
청정과 더불어 출리,
이 네 가지의 속임을 깨뜨리시고
마(魔)를 항복시킨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5_b_17L方便及歸依
淸淨與出離
於此破四誑
降魔我頂禮
016_0945_c_02L
【釋】이 게송은 여래의 힘이 뛰어난 공덕임을 예배한 것이다.
마(魔)는 네 가지의 일을 의지하여 중생을 파괴한다. 무엇을 네 가지의 일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방편을 써서 중생들을 속이고 미혹하게 말하기를 “다섯 가지의 진(塵)을 수용하여 좋은 곳에 태어남을 얻어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귀의를 써서 중생들을 속이고 미혹하게 하여 말하기를 “자재천(自在天) 등이 귀의할 곳이요, 다른 데는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셋째는 청정을 써서 중생들을 속이고 미혹하게 하여 말하기를 “세간의 여러 정(定)에서 오직 이것이 청정하고 다른 것은 청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넷째는 출리를 써서 중생들을 속이고 미혹하게 하여 말하기를 “소승의 도과(道果)만이 오직 이 출리요, 대승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마가 말하는 네 가지의 일을 깨뜨리기 위해서 10력을 나타내신 것이다.
첫째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혜의 힘으로써 마의 제일의 일을 깨뜨린다. 그것은 알맞은[善] 방편으로 말미암아야 하늘에 태어나게 되며 맞지 않는[惡] 방편으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업의 지혜의 힘을 쓴다. 이는 마의 제2의 일을 깨뜨린다. 자기의 업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태어나고 자재천들의 힘을 의지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는 선정의 지혜의 힘으로써 마의 제3의 일을 깨뜨린다. 선정과 해탈과 삼매와 삼마발제(三摩跋提)를 갖추어 앎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넷째는 뒤의 일곱 가지의 지혜의 힘으로써 마의 제4의 일을 깨뜨린다. 낮은 근기의 사람들로 하여금 벗어나게 하고 높은 근기의 사람들로 하여금 편히 두게 함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5_b_19L釋曰此偈禮如來力勝功德魔依四破壞衆生何者四事依方便誑惑衆生言受用五塵得生善道不墮惡道依歸依誑惑衆生言自在天等是歸依處餘處則非依淸淨誑惑衆生言世閒諸定唯此淸淨餘非淸淨依出離誑惑衆生言小乘道果唯此出離非有大乘佛爲破魔四事顯己十力以是非智力破魔第一事由善方便可得生天非惡方便以自業智力破魔第二事由自業生天非依自在天等力故以禪定智力破魔第三事由具知禪定解脫三昧三摩跋提故四以後七智力破魔第四事由下根等令離上根等安置故偈曰

지혜에 있어서와 또한 끊음에 있어서,
벗어남에 있어서와 또한 장애에 있어서
능히 자기와 남의 이익을 말하여
삿된 것을 꺾으시는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5_c_12L於智亦於斷
於離亦於障
能說自他利
摧邪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두려움 없는 뛰어난 공덕에 예배하는 것이다.
‘지혜에 있어서’라고 함은 일체지의 두려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끊음에 있어서’라 함은 번뇌[漏]가 다한 두려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벗어남에 있어서’라 함은 괴로움의 길이 다한 두려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장애에 있어서’라 함은 장애의 길이 두려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서 지혜에 있어서와 끊음에 있어서라 함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공덕을 말한 것이요, 벗어남에 있어서와 장애에 있어서라 함은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을 나타낸 것이다.
만일 외도들이 힐난하여 말하기를 “구담(瞿曇:釋尊)은 일체의 지혜를 갖춘 이도 아니고 일체의 번뇌[漏]를 다한 이도 아니다. 도를 말하지만 능히 고(苦)를 다 없애지 못하였고, 장애를 말하지만 능히 도를 방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여래께서는 이 네 가지의 힐난을 능히 꺾어 굴복시켰다. 그러기에 두려움이 없다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5_c_14L釋曰此偈禮如來無畏勝功德於智是說一切智無畏於斷者是說漏盡無畏於離者是說盡苦道無畏障者是說障道無畏此中智及斷是說自利功德離及障是說利他功德若諸外道難言瞿曇非具一切智盡一切漏說道不能盡苦說障不能妨道如來於此四難而能摧伏故名無畏偈曰

무리에 있어서 심하게 벌주어 다스리고
스스로는 보호하는 것이 없고
두 가지의 물듦을 벗어나 바로 머무니
무리를 거두시는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5_c_23L在衆極治罰
自無所護故
離二染正住
攝衆我頂禮
016_0946_a_02L
【釋】‘무리에 있어서 심하게 벌주어 다스리고 스스로는 보호하는 것이 없다’고 함은 여래의 보호가 없음의 뛰어난 공덕을 예배한 것이다. 만일 스스로 보호함이 있으면 무리에 있어서 능히 심하게 벌을 주어 다스림을 설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두 가지의 물듦을 벗어나 바로 머문다’고 함은 여래의 염처(念處)가 뛰어난 공덕을 예배한 것이다. ‘두 가지의 물듦을 벗어났다’고 함은 기쁨과 근심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머문다’고 함은 염함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의 공덕이 뛰어남으로 말미암기에 능히 모든 무리들을 포섭하니, 이가 곧 업(業)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6_a_02L釋曰在衆極治罰自無所護故者禮如來不護勝功德若自有所護衆不能說極治罰故離二染正住者此禮如來念處勝功德離二染者喜憂故正住者不忘念故由此二種功德勝故能攝於一切徒衆此卽是偈曰

일체의 곳에 행하고 머무름이
일체의 지혜 아님이 없다.
일체의 습기를 끊음으로 말미암아
진실한 뜻을 가진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6_a_09L行住一切處
無非一切智
由斷一切習
實義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습기(習氣)를 끊는 뛰어난 공덕을 예배하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행하고 머무는 등의 일이 일체 지혜의 위의(威儀) 아님이 없다. 그것은 일체 번뇌의 습기를 갖추어 끊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만일 일체의 지혜가 없는 자라면 번뇌가 비록 다하여도 습기는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하고 머물 때에 혹은 달리는 차와 날뛰는 말을 만나면 곧 손해를 입을 것이니, 일체 지혜의 위의로 말미암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래는 이러한 일이 없으니 실제로 일체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6_a_11L釋曰此偈禮如來斷習勝功德如來於一切處一切時行住等事無非一切智威儀由具斷一切煩惱習故無一切智者煩惱雖盡而習不盡行住時或逢奔車逸馬卽被損害非一切智威儀故如來無此事由實有一切智故偈曰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일은
때를 따르고 때를 지나지 않으며
짓는 것이 항상 그릇됨이 없으니
잊지 않는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6_a_18L利益衆生事
隨時不過時
所作恒無謬
不忘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잊지 않는 뛰어난 공덕에 예배하는 것이다. 여래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지을 때에 항상 그 시기를 얻고 그의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이는 법의 업을 잊지 아니함이다. 여래께서 지으시는 일체의 때는 다 진실하여서 헛되지 않으니, 이것이 잊지 않는 법의 자기 성품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6_a_20L釋曰此偈禮如來不忘勝功德如來作利益衆生事恒得其時不過其時此是不忘法業如來所作一切時皆實不虛此是不忘法自性偈曰
016_0946_b_02L
낮과 밤의 여섯 때로
일체의 중생계를 관하시니
큰 자비가 구족하기 때문이다.
이롭게 하려는 뜻을 가진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6_a_24L晝夜六時觀
一切衆生界
大悲具足故
利意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대비(大悲)의 뛰어난 공덕을 예배하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대비하시기 때문에 낮과 밤의 여섯 때에 중생들이 누가 물러서고 누가 나가는지를 관찰하셔서 아직 선근을 일으키지 않은 자에게는 일어남을 얻게 하시고, 이미 선근을 일으킨 자에게는 증진하게 하신다.
비록 여섯 때라고 하지만 실은 일체의 때에 항상 법륜을 굴리면서 대비가 구족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비의 업이 일체의 중생에게 항상 이롭게 하겠다는 뜻을 일으킨 것이니, 이를 대비의 자기 성품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6_b_03L釋曰此偈禮如來大悲勝功德如來以大悲故晝夜六時觀察衆生誰退誰進未起善根者令其得起已起善根者令其增進雖日六時而實一切恒轉法輪由大悲具足故此卽大悲業於一切衆生常起利益意此是大悲自性偈曰

행으로 말미암고 얻음으로 말미암으며
지혜로 말미암고 업으로 말미암아서
일체의 2승들보다
가장 위인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6_b_10L由行及由得
由智及由業
於一切二乘
最上我頂禮
016_0946_c_02L
【釋】이 게송은 여래의 함께 할 수 없는 뛰어난 공덕을 예배하는 것이다. 여래에게 여덟 가지의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첫째는 몸에 잃음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입에 잃음이 없는 것이요, 셋째는 생각에 잃음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요, 다섯째는 정하지 않은 마음이 없는 것이요, 여섯째는 알지 아니함이 없어 이미 버림이요, 일곱째는 욕망이 감(減)함이 없는 것이요, 여덟째는 정진이 감함이 없는 것이요, 아홉째는 생각이 감함이 없는 것이요 열째는 지혜가 감함이 없는 것이요, 열한째는 해탈이 감함이 없는 것이요, 열두째는 해탈지견이 감함이 없는 것이요, 열셋째는 지혜로 과거를 알아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는 것이요, 열넷째는 지혜로 미래를 알아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는 것이요, 열다섯째는 지혜로 현재를 알아 집착이 없고 걸림이 없는 것이요, 열여섯째는 신업이 지혜의 행을 따르고 열일곱째는 구업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것이요, 열여덟째는 의업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것이다.
이 가운데 ‘행으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처음 절의 여섯 가지가 함께 하지 않는 것을 섭한 것이고, ‘얻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제2절의 여섯 가지가 함께 하지 않음을 섭한 것이며, ‘지혜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제3절의 세 가지가 함께 하지 않음을 섭한 것이고, ‘업으로 말미암는다’고 함은 제4절의 세 가지가 함께 하지 않음을 섭한 것이다.
모든 성문과 연각은 나머지의 모든 중생의 위가 되는데 여래는 이 네 가지의 함께 하지 않는 것 때문에 2승들의 위에 다시 위가 된다. 그러기에 가장 위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6_b_12L釋曰此偈禮如來不共勝功德如來有十八不共法身無失口無失念無失無異想無不定心無不知已捨欲無減精進無減念無減慧無減十一解脫無減十二解脫知見無減十三智知過去無著無礙十四智知未來無著無礙十五智知現在無著無㝵十六身業隨智慧行十七口業隨智慧行十八意業隨智慧行此中由行者攝初節六不共由得者攝第二節六不共智者攝第三節三不共由業者攝第四節三不共一切聲聞緣覺於餘一切衆生爲上如來由此四事不共故於彼上復上故名最上偈曰

3신(身)은 큰 보리라서
일체 종지를 얻기 때문에
중생들의 여러 곳의 의심을
능히 없애 주시기에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6_c_04L三身大菩提
一切種得故
衆生諸處疑
能除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일체 종지가 뛰어난 공덕임을 예배하는 것이다.
‘3신(身)’이라 함은 첫째는 자기 성품의 몸이요, 둘째는 수용하는 몸이요, 셋째는 화신이니, 여기서 말한 일체 종지는 자기의 성품이다.
【문】이 지혜는 일체의 경계에서 일체의 종지를 아는 것입니까? 다시 무엇이라 합니까?
【답】일체의 중생들이 일체의 처소에서 생겨나는 의심을 이 지혜가 능히 끊는다. 이것을 일체 종지의 업이라고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6_c_06L釋曰此偈禮如來種智勝功德三身自性身受用身化身此說種智自性此智於一切境知一切種復云何一切衆生於一切處此智能斷此說種智業偈曰

집착이 없고 허물이 없으며
더러움이 없고 또한 쉼이 없으며
움직임이 없고 희론(戱論)이 없는
청정한 분께 이마를 땅에 대어 예배합니다.
016_0946_c_11L無著及無過
無穢亦無息
無動無戲論
淸淨我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바라밀이 가득한 뛰어난 공덕에 예배하는 것이다.
‘집착이 없다’고 함은 여러 자산과 재물에 있어서 물듦이 없기 때문이다.
‘허물이 없다’고 함은 몸 등의 업이 길이 때가 없기 때문이다.
‘더러움이 없다’고 함은 세간의 법의 온갖 괴로움이 마음을 흐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쉼이 없다’고 함은 조금 얻은 것이 있어도 그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움직임이 없다’고 함은 마음이 항상 적정하여서 흩어지고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다.
‘희론(戱論)이 없다’고 함은 일체의 법 가운데 있는 것의 분별을 다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래께서는 이 여섯 가지를 원만하게 갖추어 여섯 가지의 장애를 떠났기에 청정이라고 이른다.
게송으로 말한다.
016_0946_c_13L釋曰此偈禮如來度滿勝功德無著於諸資財無所染故無過者於身等業永無垢故無穢者世法諸苦不濁心故無息者少有所得不卽住故無動者心恒寂靜不散亂故無戲論一切法中所有分別皆不行故如來此六圓滿具離六障故名淸淨偈曰

제일의(第一義)를 성취하여서
일체의 지(地)에서 출리하여
남보다 높고 극함을 얻었고
모든 중생들을 해탈하게 하였네.
016_0946_c_20L成就第一義
出離一切地
於他得尊極
解脫諸衆生

다함없는 등의 공덕을
현재에 다 구족하여
세상이 보고 무리가 또한 보았지만
인간과 천상들은 보지 못한다.
016_0946_c_22L無盡等功德
現在皆具足
世見衆亦見
不見人天等
016_0947_a_02L
【釋】이 두 게송은 여래 부처님의 상호(相好)가 뛰어난 공덕임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간략하게 말한 부처님의 상호가 여섯 가지 있으니, 첫째는 체(體)요, 둘째는 인(因)이요, 셋째는 과(果)요, 넷째는 업(業)이요, 다섯째는 서로 응함이요, 여섯째는 차별이다. 이 여섯 가지의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부처인 줄 안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상호라고 말한다.
‘제일의를 성취하였다’고 함은 그 체상(體相)은 진여의 가장 청정한 제일의로 말미암아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지(地)에서 출리하였다’고 함은 인(因)의 모양이니, 일체의 보살의 지에서 출리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남보다 높고 극함을 얻었다’고 함은 이것은 과(果)의 모양이다. 일체 중생들 가운데서 제일을 얻었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을 해탈하게 한다’고 함은 업의 모양이니, 능히 일체의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다함없는 등의 공덕을 현재에 다 구족하였다’고 함은 서로 응하는 모양이다.
‘세상이 보고 무리가 또한 보지만 인간과 천상들은 보지 못한다’고 함은 차별의 모양이다. ‘세상이 본다’고 함은 이른바 가지가지의 세계가 다 보는 것이니, 이는 화신(化身)이다. ‘무리가 또한 본다’고 함은 이른바 부처님의 큰 제자들이 또한 보는 것이니, 이는 수용신(受用身)이다. ‘보지 못한다’고 함은 이른바 사람과 하늘들이 일체의 때에 보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자기 성품의 몸이다. 이는 곧 3신의 차별이다.
「경불품(敬佛品)」을 마친다.
016_0946_c_23L釋曰此二偈禮如來佛相勝功德中略說佛相有六種相應差別由此六種表知是佛故說佛相成就第一義者此是體相由眞如最淸淨第一義成就故出離一切地者此是因相由出離一切菩薩地故於他得尊極者此是果由於一切衆生中得第一故解脫諸衆生者此是業相由能令一切衆生得解脫故無盡等功德現世皆具足者此是相應相世見衆亦見不見人天等者此是差別相世見者謂種種世界皆見此是化身衆亦見者佛大弟子衆亦見此是受用身不見謂人天等一切時不見此是自性此卽三身差別敬佛品究竟
『대승수다라장엄론』을 매우 청정한 때에 설하여 마친다.
016_0947_a_16L大乘修多羅莊嚴論極淸淨時說已究竟
大乘莊嚴經論卷第十三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