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阿毘達磨法薀足論卷第十一

ABC_IT_K0945_T_011
024_1166_b_01L아비달마법온족론 제11권
024_1166_b_01L阿毘達磨法薀足論卷第十一


존자 목건련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024_1166_b_02L尊者大目乾連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20. 다계품 ②
024_1166_b_04L多界品第二十之餘

어떤 것을 욕계(欲界)라 하는가? 욕심[欲]의 경계에 대하여 모든 탐(貪)과 평등하게 탐하며 나아가 탐내는 종류와 탐욕으로 생긴 것을 통틀어 욕계라고 한다.
또 욕탐(欲貪)과 욕탐과 상응하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함께 일으키는 신업(身業)ㆍ어업(語業)과 불상응행(不相應行)을 통틀어 욕계라 한다.
어떤 것을 에계(恚界)라 하는가? 유정에 대하여 손해를 끼치려고 하며 나아가 현재 과환(過患)을 끼치는 것을 통틀어 에계라고 한다.
또 진에(瞋恚)와 진에와 상응하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함께 일으키는 신업ㆍ어업과 불상응행을 통틀어 에계라 한다.
024_1166_b_05L云何欲界謂於欲境諸貪等貪乃至貪類貪生摠名欲界復次欲貪及欲貪相應受想行識幷所等起身業語業不相應行摠名欲界云何恚界於有情欲爲損害乃至現爲過患名恚界復次瞋恚及瞋恚相應受想行識幷所等起身業語業不相應行摠名恚界
어떤 것을 해계(害界)라 하는가? 이른바 손ㆍ흙덩이ㆍ칼ㆍ막대기 등 어떤 고통을 주는 기물로써 유정을 때리고 치는 등 모든 손상과 평등한 손상과 해침과 평등한 해침이며 성을 내어 괴롭히는 일들을 일으키는 것을 통틀어 해계라고 한다.
또 모든 가해(加害)와 가해와 상응하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이 함께 일으키는 신업ㆍ어업과 불상응행을 통틀어 해계라고 한다.
024_1166_b_13L云何害界謂以手塊刀杖等物隨一苦具捶打有情諸損等損害等害瞋恚所起能起苦事摠名害復次諸害及害相應受想行識所等起身業語業不相應行摠名害
024_1166_c_02L어떤 것을 무욕계(無欲界)라 하는가? 욕계(欲界)에 대하여 그 허물을 생각하며 ‘이와 같은 욕계는 바로 착하지 못한 법이며 바로 하천한 것이다. 믿고 이해하거나 받아 지니면 부처님과 그 제자와 어질고 귀한 이와 훌륭한 사람[善士]이 다 함께 꾸짖고 싫어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해치고 다른 이를 해치며 나와 남을 다 같이 해쳐서 지혜를 소멸시키고 그러한 종류를 장애하며 열반을 장애한다. 이 법을 받아 지니면 통혜(通慧)를 내지 않고 보리(菩提)를 이끌지 않으며 열반을 증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서 근(勤)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한 뜻을 멈추지 않으면 이것을 무욕계라고 한다.
024_1166_b_18L云何無欲界謂於欲界思惟過患如是欲界是不善法是下賤者信解受持佛及弟子賢貴善士共所呵厭能爲自害能爲他害能爲俱害能滅智慧能礙彼類能障涅槃受持此法不生通慧不引菩提不證涅槃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欲界
또 욕계(欲界)를 끊기 위하여 무욕계에 대한 공덕을 생각하면서 ‘이와 같은 무욕계는 곧 착한 법이요 바로 높고 뛰어난 것이라고 믿고 이해하거나 받아 지니면 부처님과 그 제자와 어질고 귀한 이와 착한 사람이 다 같이 기뻐하고 찬탄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고 다른 이를 해치지 않고 나와 남을 다 같이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고 그러한 종류를 장애하지 않으며 열반을 장애하지 않는다. 이 법을 받아 지니면 통혜를 내게 되고 보리를 이끌며 열반을 증득하게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으면 이것을 무욕계라고 한다.
024_1166_c_04L復次爲斷欲界於無欲界思惟功德如是無欲界是善法是尊勝者信解受持佛及弟子賢貴善士共所欣讚不爲自害不爲他害不爲俱增長智慧不礙彼類不障涅槃持此法能生通慧能引菩提能證涅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是名無欲界
또 ‘욕계는 마치 질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화살[箭]ㆍ고뇌[惱]ㆍ독해[害]와 같으며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아니며 옮아 움직이고 고달프고 몹시 파리한 것이어서 이것은 곧 잃고 파괴되는 법[失壞法]이다. 날쌔고 빨라서 멈추지 않으며 쇠하여 썩고 한결같지 않아서 보존하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며 바로 변하고 파괴되는 법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서 근과 정진을 일으키는 것을 곧 무욕계라 한다.
또 욕계를 끊기 위하여 ‘저것의 소멸[滅]이야말로 사라진 것이요 여읜 것[離]이다’라고 생각하며 ‘저 도(道)야말로 도요 벗어난 것[出]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며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욕계라 한다.
024_1166_c_11L復次思惟欲界如病如癰如箭惱害無常苦空非我轉動勞倦羸篤是失壞法迅速不停衰朽非恒不可保信是變壞法如是思惟發勤精進是名無欲界復次爲斷欲思惟彼滅是滅是離思惟彼道是道是出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欲界
024_1167_a_02L또 사심정(捨心定)과 도(道)와 사심정과 상응하는 무상정(無想定)ㆍ멸정(滅定)ㆍ택멸(擇滅)을 생각하나니 이와 같이 생각해서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욕계라고 한다.
또 욕심이 없는 것[無欲]과 욕심이 없는 것과 상응하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과 아울러 일으키는 신업(身業)ㆍ어업(語業)과 불상응행을 통틀어 무욕계라 한다.
어떤 것을 무에계(無恚界)라 하는가? 에계(恚界)에 대하여 그 허물을 생각하며 ‘이와 같은 에계는 바로 착하지 않은 법이요 나아가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勤)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에계라고 한다.
024_1166_c_18L復次若思惟捨心定及道捨心定相應幷無想定擇滅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欲界復次無欲及無欲相應受想行識幷所發起身業語業不相應行摠名無欲界云何無恚謂於恚界思惟過患如是恚界是不善法乃至不證涅槃如是思惟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恚界
또 에계를 끊기 위하여 무에계에 대하여 그 공덕을 생각하며 ‘이와 같은 무에계는 곧 착한 법이며 나아가 열반을 증득하게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에계라고 한다.
또 ‘에계(恚界)는 마치 질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나아가 이것은 변하고 파괴되는 법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는 것을 무에계라고 한다.
024_1167_a_03L復次爲斷恚界於無恚界思惟功德是無恚界是善法乃至能證涅槃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名無恚界復次思惟恚界如病如癰乃至是變壞法如是思惟發勤精進是名無恚界
또 에계를 끊기 위하여 ‘저것의 소멸[滅]은 곧 사라진 것이요 곧 여읜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저 도(道)는 곧 도요 벗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에계라 한다.
또 자심정(慈心定)과 도(道)와 자심정과 상응(相應)하는 것을 생각하며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에계라고 한다.
또 성냄이 없는 것[無恚]과 성냄이 없는 것과 상응하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과 아울러 같이 일으키는 신업ㆍ어업과 불상응행을 통틀어 무에계라 한다.
024_1167_a_09L復次爲斷恚界思惟彼滅是滅是離思惟彼道是道是出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名無恚界復次若思惟慈心定及道慈心定相應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恚界復次無恚及無恚相應受想行識幷所等起身業語業不相應行摠名無恚界
어떤 것을 무해계(無害界)라 하는가? 해계(害界)에 대하여 그 허물을 생각하며 ‘이와 같은 해계는 곧 착하지 않은 법이며 나아가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勤)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해계라고 한다.
또 해계를 끊기 위하여 무해계에 대하여 그 공덕을 생각하며 ‘이와 같은 불해계(不害界)는 바로 착한 법이며 나아가 열반을 증득하게 한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해계라고 한다.
또 ‘해계는 마치 질병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나아가 이것은 바로 변하고 파괴되는 법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는 것을 무해계라고 한다.
024_1167_a_16L云何無害界謂於害界思惟過患如是害界是不善法乃至不證涅槃如是思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害界復次爲斷害界於無害界思惟功德如是不害界是善法乃至能證涅槃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害界復次思惟害界病如癰乃至是變壞法如是思惟勤精進是名無害界
024_1167_b_02L또 해계를 끊기 위하여 ‘저것이 소멸[滅]은 곧 사라진 것이요 여읜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저 도(道)는 곧 도요 벗어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해계라고 한다.
또 비심정(悲心定)과 도(道)와 비심정과 상응하는 것을 생각하나니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근과 정진을 일으키되 나아가서는 격려하는 뜻을 멈추지 않는 것을 무해계라고 한다.
024_1167_b_02L復次爲斷害界思惟彼滅是滅是離思惟彼道是道是出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害界復次若思惟悲心定及道悲心定相應如是思惟發勤精進乃至勵意不息是名無害界次無害及無害相應受想行識幷所等起身業語業不相應行摠名無害界
또 해침이 없는 것[無害]과 해침이 없는 것과 상응하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과 아울러 같이 일으키는 신업ㆍ어업과 불상응행을 통틀어 무해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낙계(樂界)라 하는가? 이른바 순락촉(順樂觸)으로 일어나는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平等受]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낙계라고 한다.
또 제3 정려(靜慮)를 닦았을 적의 순락수촉(順樂受觸)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낙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고계(苦界)라 하는가? 이른바 순고촉(順苦觸)으로 일어나는 몸의 괴로움과 불평등한 느낌[不平等受]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계라고 한다.
024_1167_b_10L云何樂界謂順樂觸所起身樂心樂平等受受所攝是名樂界復次脩第三靜慮順樂受觸所起心樂平等受受所攝是名樂界云何苦界謂順苦觸所起身苦不平等受受所攝是名苦界
어떤 것을 희계(喜界)라 하는가? 이른바 순희촉(順喜觸)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기쁨과 평등한 느낌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희근이라고 한다.
또 제2 정려를 닦을 적의 순희촉(順喜觸)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기쁨과 평등한 느낌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우계(憂界)라 하는가? 이른바 순우촉(順憂觸)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근심과 불평등한 느낌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사계(捨界)라 하는가? 이른바 순사촉(順捨觸)으로 일어나는 몸의 평정[捨]과 마음의 평정과 평등한 것도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非平等非不平等受]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계라고 한다.
024_1167_b_16L云何喜界謂順喜觸所起心喜平等受受所攝是名喜界復次脩初二靜慮順喜觸所起心喜平等受受所攝是名喜界云何憂界謂順憂觸所起心憂不平等受受所攝是名憂云何捨界謂順捨觸所起身捨心非平等非不平等受受所攝是名捨界
024_1167_c_02L또 미지정(未至定)ㆍ정려의 중간ㆍ제4 정려와 무색정(無色定)을 닦을 때에 순불고불락촉(順不苦不樂觸)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평정과 평등한 것도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이며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명계(無明界)라 하는가? 이른바 삼계(三界)의 무지(無知)를 무명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수계(受界)라 하는가? 이른바 6수신(受身), 곧 눈의 접촉으로 생긴[眼觸所生] 느낌[受] 내지 뜻의 접촉으로 생긴[意觸所生] 느낌을 수계라고 한다.
024_1167_b_23L復次脩未至定靜慮中間第四靜慮及無色定順不苦不樂觸所起心捨非平等非不平等受受所攝名捨界云何無明界謂三界無知名無明界云何受界謂六受身卽眼觸所生受乃至意觸所生受是名受界
어떤 것을 상계(想界)라고 하는가? 이른바 6상신(想身), 곧 눈의 접촉으로 생긴 생각[想] 내지 뜻의 접촉으로 생긴 생각을 상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행계(行界)라 하는가? 이른바 6사신(思身), 곧 눈의 접촉으로 생긴 조작[思] 내지 뜻의 접촉으로 생긴 조작을 행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식계(識界)라 하는가? 이른바 6식신(識身), 곧 안식(眼識) 내지 의식(意識)을 식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욕계(欲界)라 하는가? 이른바 어떤 모든 법에 욕탐(欲貪)이 따라 더하는[隨增] 것을 욕계라고 한다.
024_1167_c_06L云何想謂六想身卽眼觸所生想乃至意觸所生想是名想界云何行界謂六思身卽眼觸所生思乃至意觸所生是名行界云何識界謂六識身眼識乃至意識是名識界云何欲界謂有諸法欲貪隨增是名欲界復次欲界繫十八界十二處是名欲界
또 욕계에 매인[欲界繫] 18계(界)와 12처(處)와 5온(蘊)을 바로 욕계라고 한다.
또 아래로는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부터 위로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있는 모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욕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색계(色界)라 하는가? 이른바 어떤 모든 법에 색탐(色貪)이 따라 더하는 것을 바로 색계라고 한다.
또 색계에 매인[色界繫] 14계(界)와 10처(處)와 5온(蘊)을 색계라고 한다.
또 아래로는 범중천(梵衆天)으로부터 위로는 색구경천(色究竟天)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있는 모든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색계라고 한다.
024_1167_c_14L復次下從無間地獄至他化自在天於中所有色受想行是名欲界云何色界謂有諸法色貪隨增是名色界復次色界繫十四十處五薀是名色界復次下從梵衆天上至色究竟天於中所有色受想行識是名色界
024_1168_a_02L어떤 것을 무색계(無色界)라 하는가? 이른바 어떤 모든 법에 무색탐(無色貪)이 따라 더하는 것을 무색계라고 한다.
또 무색계에 매인[無色界繫] 3계(界)와 2처(處)와 4온(蘊)을 무색계라고 한다.
또 욕계와 색계와 같은 데서는 처소가 반드시 건립되어 서로가 섞여 혼란스럽지 않지만 무색계에는 이러한 일이 있지 않다. 그러나 선정[定]에서 생긴 뛰어남[勝]과 하열함[劣]의 차별에 의하여 위와 아래가 건립되나니, 아래로는 공무변처(空無邊處)로부터 위로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있는 모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무색계라고 한다.
024_1167_c_20L云何無色界謂有諸法無色貪隨增是名無色界復次無色界繫三界二處四薀是名無色復次如欲色界處定建立不相雜非無色界有如是事然依定生勝劣差別建立上下下從空無邊處至非想非非想處於中所有受想行是名無色界
어떤 것을 색계(色界)라 하는가? 이른바 욕계(欲界)와 색계를 통틀어 색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색계(無色界)라 하는가? 이른바 4무색(無色)을 무색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멸계(滅界)라 하는가? 이른바 택멸(擇滅)과 비택멸(非擇滅)을 멸계라고 한다.
또 모든 형상이 있는 법[有色法]을 통틀어 색계라고 하고 택멸과 비택멸을 제외한 그 밖의 형상이 없는 법[無色法]을 무색계라 하며 택멸과 비택멸을 멸계라고 한다.
024_1168_a_05L云何色界謂欲色界摠名色界云何無色界謂四無色名無色界云何滅界謂擇滅非擇滅是名滅界復次諸有色法摠名色界除擇滅非擇滅餘無色法是名無色擇滅非擇滅是名滅界
어떤 것을 과거계(過去界)라 하는가? 이른바 과거의 5온(蘊)을 과거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미래계(未來界)라 하는가? 이른바 미래의 5온을 미래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현재계(現在界)라 하는가? 이른바 현재의 5온을 현재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열계(劣界)라 하는가? 이른바 착하지 않은[不善] 것과 유부무기(有覆無記)의 법을 열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중계(中界)라 하는가? 이른바 유루의 선[有漏善]과 무부무기(無覆無記)의 법을 중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묘계(妙界)라 하는가? 이른바 무루(無漏)의 착한 법을 바로 묘계라고 한다.
024_1168_a_10L云何過去謂過去五薀是名過去界云何未來界謂未來五薀是名未來界云何現在界謂現在五薀是名現在界何劣界謂不善有覆無記法是名劣云何中界謂有漏善及無覆無記是名中界云何妙界謂無漏善法是名妙界
어떤 것을 선계(善界)라 하는가? 이른바 선(善)의 신ㆍ어업(身語業)과 심ㆍ심소법(心心所法)과 불상응행(不相應行)과 택멸(擇滅)을 선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불선계(不善界)라 하는가? 이른바 불선(不善)의 신ㆍ어업과 심ㆍ심소법과 불상응행을 불선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기계(無記界)라 하는가? 이른바 무기(無記)의 물질[色]과 심ㆍ심소법과 불상응행과 허공(虛空)ㆍ비택멸(非擇滅)을 무기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학계(學界)라 하는가? 이른바 배울 것이 있는 이[學]의 5온(蘊)을 학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학계(無學界)라 하는가? 이른바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5온을 무학계라고 한다.
024_1168_a_17L云何善界謂善身語業心所法不相應行及擇滅是名善界云何不善界謂不善身語業心心所不相應行是名不善界云何無記謂無記色心心所法不相應行虛空非擇滅是名無記界云何學界謂學五薀是名學界云何無學界無學五薀是名無學界
024_1168_b_02L어떤 것을 비학비무학계(非學非無學界)라 하는가? 이른바 유루(有漏)의 5온(蘊)과 허공ㆍ택멸ㆍ비택멸을 비학비무학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루계(有漏界)라 하는가? 이른바 유루의 5온을 유루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루계(無漏界)라 하는가? 이른바 무루의 5온(蘊)과 허공ㆍ택멸ㆍ비택멸을 무루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유위계(有爲界)라 하는가? 이른바 5온을 유위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위계(無爲界)라 하는가? 이른바 허공과 2멸(滅)을 무위계라고 한다.
올타남(嗢拕南)으로 말하리라.
024_1168_a_24L云何非學非無學界謂有漏五薀及虛空擇滅擇滅是名非學非無學界云何有漏界謂有漏五薀是名有漏云何無漏界謂無漏五薀及虛空擇滅非擇滅是名無漏界云何有爲謂五薀是名有爲界云何無爲界謂虛空及二滅是名無爲界嗢拕南曰

계(界)에 62종이 있나니
18계(界)를 첫머리로 하여
셋의 6계(界)와 하나의 4계(界)며
여섯의 3계(界)와 둘의 2계(界)이니라.
024_1168_b_07L界有六十二
十八界爲初
三六一四種
六三兩種二


21. 연기품(緣起品) ①
024_1168_b_09L緣起品第二十一之一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연기(緣起)와 연이생법(緣已生法)을 널리 펴 설하리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지극히 훌륭한 뜻을 지을지니라.
어떤 것을 연기라 하는가?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인하여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기는 것이니, 이를테면 무명(無明)을 반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반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반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반연하여 6처(處)가 있으며, 6처를 반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반연하여 수(受)가 있으며, 수를 반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반연하여 취(取)가 있으며, 취를 반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반연하여 생(生)이 있으며, 생을 반연하여 노사(老死)가 있어서 수(愁)ㆍ탄(歎)ㆍ고(苦)ㆍ우(憂)ㆍ요뇌(擾惱)를 발생하며 이와 같이 하여 곧 순수하고 큰 괴로움의 쌓임[純大苦蘊]을 쌓게 되느니라.
024_1168_b_10L一時薄伽梵在室羅筏住逝多林給孤獨園爾時世尊告苾芻衆吾當爲汝宣說緣起緣已生法汝應諦聽善作意云何緣起謂依此有彼有生故彼生謂無明緣行行緣識識緣名色名色緣六處六處緣觸觸緣受受緣愛愛緣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發生愁歎苦憂擾惱如是便集純大苦薀
필추들아, 알아야 한다. 생(生)을 반연하여 노사(老死)가 있나니,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시거나 나오시지 않거나 간에 이와 같은 연기는 법(法)으로서 법계(法界)에 머무르며 모든 여래는 자연히 통달하고 평등하게 깨달으며 널리 펴 설하고 시설하고 건립하고 분별하고 열어 보여서 그로 하여금 분명히 드러나게 하느니라.
이른바 생을 반연하여 노사가 있듯이 이와 같이 무명을 반연하여 행이 있는 것까지도 그러하나니, 이 안에 있는 모든 법성(法性)ㆍ법정(法定)ㆍ법리(法理)ㆍ법취(法趣)이니, 이것은 곧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며, 이것은 곧 진리[諦]요 여[如]이어서 허망한 것이 아니요 빈 것이 아니며, 뒤바뀐 것이 아니요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연기라 하느니라.
024_1168_b_19L苾芻當知生緣老死若佛出世若不出世如是緣起法住法界一切如來自然通達等覺宣說施設建立分別開示令其顯了謂生緣老如是乃至無明緣行應知亦爾中所有法性法定法理法趣是眞是諦是如非妄非虛非倒非異名緣起
024_1168_c_02L어떤 것을 연이생법(緣已生法)이라 하는가? 이른바 무명ㆍ행ㆍ식ㆍ명색ㆍ6처ㆍ촉ㆍ수ㆍ애ㆍ취ㆍ유ㆍ생ㆍ노사가 그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바로 연이생법이라 하느니라.
필추들아, 알아야 한다. 노사(老死)는 곧 무상하고 유위(有爲)이며, 이것은 만들어지는 것이요 연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緣已生]이며, 다하는 법[盡法]이요 없어지는 법[沒法]이며, 떠나는 법[離法]이요 소멸하는 법[滅法]이니, 생ㆍ유ㆍ취ㆍ애ㆍ수ㆍ촉ㆍ6처ㆍ명색ㆍ식ㆍ행ㆍ무명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필추들아, 알아야 한다. 나의 모든 견문이 많은[多聞] 성현 제자는 이 연기와 연이생법에 대하여 바른 지혜[正慧]로써 사실대로 잘 보고 잘 알며 잘 요별하고 잘 생각하며 잘 통달하느니라.
024_1168_c_03L云何名爲緣已生法謂無明名色六處老死如是名爲緣已生法苾芻當知老死是無常是有爲是所造作是緣已生盡法沒法離法滅法六處名色無明亦爾苾芻當知我諸多聞賢聖弟子於此緣起緣已生法能以正慧如實善見善知善了善思惟善通達
그들은 ‘나는 과거 세상에 일찍이 있었던가, 있지 않았던가. 어떠한 나[我]의 모습으로 일찍이 있었을까, 어찌하여 내가 일찍이 있었을까?’라고 하면서 전제(前際)에 의거한 어리석은 의혹을 일으키지 않고, 또 ‘나는 미래의 세상에 있게 될 것인가, 있지 않게 될 것인가. 어떠한 나[我]의 모습으로 장차 있게 될까, 어찌하여 내가 장차 있게 될까?’라고 하면서 후제(後際)에 의거한 어리석은 의혹도 일으키지 않으며 또한 ‘어떤 것이 나일까, 나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의 소유(所有)일까, 내가 당연히 있다 하면 그 누구일까, 지금의 이 유정은 어디서 왔었고 이곳에서 죽으면 장차 어디로 가야 되는가?’라고 하면서, 안[內]에 의거한 어리석은 의혹도 일으키지 않느니라.
024_1168_c_11L不依前際而起愚惑謂我於過去世爲曾有非有何等我曾有云何我曾有不依後際而起愚謂我於未來世爲當有非有何等我當有云何我當有亦不依內而起愚惑謂何等是我此我云何我誰所我當有誰今此有情從何而來此處沒當往何所
024_1169_a_02L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기 때문에 온갖 세간의 각각 구별되는 견취(見趣), 즉 아론(我論)에 상응하는 것과 유정론(有情論)에 상응하는 것과 명자론(命者論)에 상응하는 것과 길흉론(吉凶論)에 상응하는 것을 빛나게 장식하고 막아 수호하나니, 고집하여 자기[己]가 있다고 여기면 괴로움도 있고 장애도 있으며 재앙도 있고 열(熱)도 있겠지만 그는 그때에 끊었고, 두루 알게 된 것이 마치 나무 뿌리와 다라나무[多羅樹]의 머리를 끊은 것과 같아서 다시는 세력이 없고 뒤에도 영영 생기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나의 견문이 많은 성현 제자는 이 연기법과 연이생법에 대하여 바른 지혜로써 사실대로 잘 보고 잘 알며 잘 요별하고 잘 생각하며 잘 통달하기 때문이니라.”
그때에 모든 필추들은 기뻐하며 공경하여 받았다.
024_1168_c_18L彼如是知如是見所有世閒各別見趣謂我論相應有情論相應命者論相應吉凶論相瑩飾防護執爲己有有苦有礙災有熱彼於爾時得斷遍知如斷樹根及多羅頂無復勢力後永不生以者何謂我多聞賢聖弟子於此緣緣已生法能以正慧如實善見善了善思惟善通達故時諸苾芻歡喜敬受
이 가운데서 연기와 연이생법은 그 체성[體]은 비록 하나라 하더라도 뜻에는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혹은 연기이면서 연이생법이 아닌 것이 있기도 하고 혹은 연이생법이면서 연기가 아닌 것이 있기도 하며 혹은 연기이면서 또한 연이생법이 있기도 하고 혹은 연기도 아니고 또한 연이생법이 아닌 것이 있기도 하다.
혹은 연기이면서 연이생법이 아닌 것이 있기도 하다는 것은 없다.
혹은 연이생법이면서 연기가 아닌 것이 있기도 하다는 것은 바로 무명ㆍ행ㆍ식ㆍ명색ㆍ6처ㆍ촉ㆍ수ㆍ애ㆍ취ㆍ유ㆍ생ㆍ노사가 그것이다.
024_1169_a_04L此中緣起緣已生法其體雖一而義有異謂或有緣起非緣已生法或有緣已生法非緣起或有緣起亦緣已生法或有非緣起亦非緣已生法有緣起非緣已生法者無也或有緣已生法非緣起者謂無明名色六處老死
혹은 연기이면서도 또한 연이생법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른바 ‘생(生)은 반드시 노사(老死)를 낸다’고 하는 그와 같은 생의 갈래[生支]가 반드시 반연이 된다면 이것은 곧 연기의 성품[緣起性]과 연이생법의 성품이니, 이와 같아서 유(有)ㆍ취(取)ㆍ애(愛)ㆍ수(受)ㆍ촉(觸)ㆍ6처(處)ㆍ명색(名色)ㆍ식(識)ㆍ행(行)ㆍ무명(無明)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연기도 아니고 연이생법도 아니라 함은 이른바 앞에서 말한 형상을 제외한 것이다.
또 ‘생을 반연하여 노사가 있다’고 함은 이른바 이 생의 갈래[生支]는 비록 다르게 나고 다르게 없어진다 하더라도 연기(緣起)의 이치는 항시 결정된 것이어서 만일 과거의 생(生)이 노사(老死)의 반연이 아니라면 미래의 생도 또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하고, 만일 미래의 생이 노사의 반연이 아니라면 마땅히 과거의 생도 또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한다.
024_1169_a_11L或有緣起亦緣已生法者謂生定能生於老死如是生支定能爲緣是緣起性及緣已生法性如是有六處無明應知亦爾非緣起非緣已生法者謂除前相又生緣老死者謂此生支雖異生異滅而緣起理恒時決定若過去生非老死緣者應未來生亦非老死緣若未來生非老死緣者應過去生亦非老死緣
024_1169_b_02L만일 과거의 생이 노사의 반연이 아니라면 마땅히 현재의 생도 또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하고, 만일 현재의 생이 노사의 반연이 아니라면 마땅히 과거의 생도 또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하며, 만일 미래의 생이 노사의 반연이 아니라면 마땅히 현재의 생도 또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하고, 만일 현재의 생이 노사의 반연이 아니라면 마땅히 미래의 생도 또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한다.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실 때의 생(生)이 노사(老死)의 반연이 아니라면 마땅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지 않을 때의 생도 역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하며,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지 않을 때의 생이 노사의 반연이 아니라면 마땅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실 때의 생도 또한 노사의 반연이 아니어야 한다.
024_1169_a_20L若過去生非老死緣者應現在生亦非老死若現在生非老死緣者應過去生亦非老死緣若未來生非老死緣者應現在生亦非老死緣若現在生非老死緣者應未來生亦非老死緣佛出世時生非老死緣者應佛不出世時生亦非老死緣若佛不出世時生非老緣者應佛出世時生亦非老
만일 연기의 이치에 뒤바뀜이 있다면 마땅히 두 가지 갈래를 이루어야 하나니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요 마땅히 파괴되어야 하나니 이치가 뒤섞이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마땅히 연기를 시설하지 않았어야 하며 부처님도 마땅히 ‘생을 반연하여 노사가 있다’고 설하시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한 ‘생을 반연하여 노사가 있다’는 이치는 결정된 것이어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의 세상에 부처님께서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일찍이 고치거나 바꾸어짐이 없고 그 법의 성품은 항상 그러하여 숨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기울지도 않고 동요하지도 않나니, 그 이치는 잠연(湛然)하여 예전의 성인이나 뒷날의 성인이 다 같이 거치시는 것이다.
024_1169_b_07L若緣起理有顚倒者應成二分決定故應可破壞理雜亂故若爾應施設緣起佛不應說生緣老死佛所說生緣老死理趣決定去來今有佛無佛曾無改轉法性恒然隱不沒不傾不動其理湛然前聖後聖同所遊履
이것은 곧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며 이것은 진리[諦]요 여(如)이어서 망령된 것이 아니요 헛된 것도 아니며 뒤바뀐 것이 아니요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이 때문에 부처님은 ‘생을 반연하여 노사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와 같아서 유ㆍ취ㆍ애ㆍ수ㆍ촉ㆍ6처ㆍ명색ㆍ식ㆍ행과 ‘무명에 반연하여 행이 있다’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024_1169_b_13L是眞是實是諦是如妄非虛非倒非異是故佛說生緣老如是有六處名色無明緣行亦爾
또 ‘무명을 반연하여 행이 있다’고 함에서 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이른바 전제(前際)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후제(後際)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전후제(前後際)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안[內]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밖[外]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안팎[內外]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업(業)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이숙(異熟)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업과 이숙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착하게 짓는 업[善作業]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악하게 지은 업[惡作業]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착하거나 악하게 짓는 업[善惡作業]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인(因)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인으로 생기는 법[因所生法]에 대하여도 아는 것이 없다.
024_1169_b_16L復次無明緣行者云何無明謂於前際無知後際無知前後際無知於內無知外無知內外無知於業無知熟無知業異熟無知於善作業無知惡作業無知善惡作業無知於因無因所生法無知
024_1169_c_02L또 부처님[佛]ㆍ가르침[法]ㆍ승가[僧]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괴로움[苦]ㆍ괴로움의 원인[集]ㆍ괴로움의 소멸[滅]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착하고 착하지 않은 법[善不善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죄가 있고 죄가 없는 법[有罪無罪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마땅히 닦아야 하고 닦지 않아야 할 법[應修不應修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하열하고 승묘한 법[下劣勝妙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희고 검은 법[白黑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적대가 있는 법[有敵對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인연으로 생겨나는 법[緣生法]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으며, 6촉처(觸處)에 대하여 사실대로 아는 것이 없는 것이다.
024_1169_b_22L於佛法僧無知苦集滅道無知於善不善法無知有罪無罪法無知於應脩不應脩法無知於下劣勝妙法無知於黑白法無知於有敵對法無知於緣生無知於六觸處如實無知
이와 같이 아는 것이 없고[無知] 보는 것이 없으며[無見], 현관이 아니고[非現觀] 몹시 어둡고[黑闇] 어리석고[愚癡] 총명이 없고[無明], 눈이 멀었고[盲冥] 우리에 갇혔고[罩網] 감아 싸였고[纏裏] 미련하고[頑騃] 혼탁하고[渾濁] 가리고 덮였으며[障蓋], 소경이 되게 하고 총명이 없게 하며, 지혜가 없게 하고 하열한 지혜를 일으키며, 선품(善品)을 장애하여 열반을 증하지 못하게 하며, 무명루(無明漏)ㆍ무명폭류(無明暴流)ㆍ무명액(無明軛)과 무명의 독 뿌리[無明毒根]ㆍ무명의 독 줄거리[毒莖]ㆍ무명의 독 가지[毒枝]ㆍ무명의 독 잎[毒葉]ㆍ무명의 독 꽃[毒花]ㆍ무명의 독 열매[毒果]와 어리석고 평등하게 어리석고 극히 어리석으며, 사납고 평등하게 패려궂고 극히 패려궂으며 어리석음의 종류와 어리석음으로 생기는 것을 통틀어 무명(無明)이라 한다.
024_1169_c_03L如是無知無見非現觀黑闇愚癡無明盲冥罩網纏頑騃渾濁障蓋發盲發無明發無發劣慧障礙善品令不涅槃無明無明瀑流無明軛無明毒根無明毒莖無明毒枝無明毒葉無明毒花無明毒果癡等癡極癡欣等欣極欣癡類癡生摠名無明
어떤 것을 ‘무명을 반연하여 행(行)이 생긴다’고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필추들아, 알아야 한다. 무명을 인(因)으로 하고 무명을 연(緣)으로 하기 때문에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어나느니라”고 하셨다. 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의 성품을 바로 ‘무명을 반연하여 행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024_1169_c_10L云何無明緣行謂世尊說苾芻當知無明爲因無明爲緣故貪瞋癡起此貪瞋癡性是名無明緣行
또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필추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명을 앞의 행[前行]으로 하고 무명을 표치[幟]로 삼기 때문에 한량없는 종류의 악한 법[惡不善法]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무참(無慚)ㆍ무괴(無愧) 등이다. 이 무참ㆍ무괴로 말미암아 모든 삿된 소견[邪見]을 일으키고 삿된 소견으로 말미암아 삿된 생각[邪思惟]을 일으키며, 삿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삿된 말[邪語]을 일으키고 삿된 말로 말미암아 삿된 행위[邪業]를 일으키며, 삿된 행위로 말미암아 삿된 생활[邪命]을 일으키고 삿된 생활로 말미암아 삿된 노력[邪勤]을 일으키며, 삿된 노력으로 말미암아 삿된 기억[邪念]을 일으키고 삿된 기억으로 말미암아 삿된 선정[邪定]을 일으킨다”고 하셨다.
이 삿된 소견ㆍ삿된 생각ㆍ삿된 말ㆍ삿된 행위ㆍ삿된 생활ㆍ삿된 노력ㆍ삿된 기억ㆍ삿된 선정을 ‘무명을 반연하여 행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69_c_13L復次如世尊說苾芻當知無明爲前行無明爲幖幟故起無量種惡不善法謂無慚無愧等由無慚無愧故起諸邪見由邪見故起邪思由邪思惟故起邪語由邪語故起邪業由邪業故起邪命由邪命故起邪勤由邪勤故起邪念由邪念故起邪定此邪見邪思惟邪語邪業邪命邪勤邪念邪定是名無明緣行
024_1170_a_02L또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필추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한량없는 종류의 악한 법을 일으키는 것은 온갖 모두가 무명을 근본으로 삼고 무명을 쌓임[集]으로 삼기 때문이니, 이것이 곧 무명의 종류이므로 무명으로부터 생긴다. 무명의 갈래에 떨어지는 이는 착한 법ㆍ착하지 않은 법과, 죄가 있는 법ㆍ죄가 없는 법과, 닦아야 하는 법ㆍ닦지 않아야 하는 법과, 하열한 법ㆍ승묘한 법과, 검은 법ㆍ흰 법과, 적대가 있는 법과, 인연으로 생기는 모든 법을 사실대로 알지 못한다. 이런 모든 법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 삿된 소견ㆍ삿된 생각 나아가 삿된 기억ㆍ삿된 선정을 일으키느니라”고 하셨다. 이것을 바로 ‘무명을 반연하여 행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69_c_21L復次如世尊說苾芻當知起無量種惡不善法一切皆以無明爲根無明爲集是無明類從無明生墮無明趣者如實知善不善法有罪無罪法應脩不應脩法下劣勝妙法黑白法有敵對法緣生諸法不如實知此諸法便起邪見邪思惟乃至邪念邪定名無明緣行
또 『옹유경(瓮喩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福)과 복이 아닌 것[非福]과 부동의 행[不動行]을 짓느니라”고 하셨다.
어떤 것을 복된 행[福行]이라 하는가? 이른바 유루선(有漏善)의 신업(身業)ㆍ어업(語業)과 심ㆍ심소법(心心所法)과 불상응행(不相應行)이니,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모든 이숙과(異熟果)를 부른다. 이 과보를 복이라 하며 또한 복의 과[福果]라 하며 이 복업(福業)의 이숙과 때문에 이것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한다.
024_1170_a_06L復次『瓮喩經』中佛作是無明爲緣造福非福及不動行何福行謂有漏善身業語業心心所不相應行如是諸行長夜能招可愛可樂可欣可意諸異熟果此果名福亦名福果以是福業異熟果故名福行
어떤 것을 복이 아닌 행[非福行]이라 하는가? 이른바 모든 착하지 않은 신업ㆍ어업과 심ㆍ심소법과 불상응행이니,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랑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으며, 기뻐할 수 없고 뜻에 맞지 않는 모든 이숙과를 부른다. 이런 과보를 복이 아니라 하고 또한 복이 아닌 과[非福果]라 하며 이 복이 아닌 업(業)의 이숙과 때문에 이것을 바로 복이 아닌 행이라 한다.
024_1170_a_12L云何非福行謂諸不善身業語業心心所法不相應行如是諸行長夜能招不可愛不可樂不可欣不可意諸異熟果此果名非福亦名非福果是非福業異熟果故是名非福
어떤 것을 부동의 행[不動行]이라 하는가? 4무색정(無色定)의 모든 유루의 선[有漏善]이니, 이것을 부동의 행이라 한다.
어떻게 무명을 반연으로 복이 아닌 행을 짓는가? 어떤 사람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에 마음이 얽매었기 때문에 몸과 말과 뜻이 세 가지 악한 행을 짓는 것이니, 이 세 가지 악한 행을 복이 아닌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떨어지며 거기서 또 복이 아닌 행 등을 짓게 된다.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이 아닌 행을 짓는다고 한다.
024_1170_a_17L云何不動行謂四無色定諸有漏是名不動行云何無明爲緣造非福行謂有一類由貪瞋癡纏縛心故造身語意三種惡行此三惡行名非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墮於地獄於彼復造非福行等是名無明爲緣造非福行
024_1170_b_02L지옥에서의 설명과 같이 방생(傍生)과 귀계(鬼界)에서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된 행을 짓는가? 어떤 사람이 사람 세계[人趣]의 즐거움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希求)하면서 그는 생각하기를 ‘원컨대 나는 장차 사람 세계의 동분(同分)에 태어나서 모든 사람들과 같이 쾌락을 받게 해주소서’라고 한다. 이런 희구로 인하여 사람 세계를 받을 수 있는 몸과 말과 뜻의 묘행(妙行)을 짓게 된다. 이 세 가지 묘행을 복된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사람 세계에 태어나서 모든 사람들과 같이 쾌락을 받게 되며 거기서 또 모든 복된 행 등을 짓게 되나니, 이것을 바로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된 행을 짓는다고 한다.
024_1170_a_23L如說地獄傍生鬼界應知亦爾云何無明爲緣造福行謂有一於人趣樂繫心悕求彼作是念我當生人趣同分與諸人衆同受快因此悕求造能感人趣身語意妙此三妙行名爲福行由此因緣壞命終生於人趣與諸人衆同受快於彼復造諸福行等是名無明爲緣造福行
어떤 이는 마음을 잡아매어 인간의 쾌락을 희구하지 않고 다만 무명의 마음만을 가리고 흔드는 까닭에 몸과 말과 뜻이 세 가지 묘행을 짓게 된다. 이 세 가지 묘행을 복된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사람 세계에 태어나며 거기서 또 모든 복된 행을 짓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된 행을 짓는다고 한다.
사람 세계에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사다천(覩史多天)ㆍ낙변화천(樂變化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서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024_1170_b_08L有不繫心悕求人樂但由無明蔽動心故造身語意三種妙行此三妙行名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於人趣於彼復造諸福行等是名無明爲緣造福行如說人趣大王衆天三十三天夜摩天睹史多樂變化天他化自在天應知亦爾
또 어떤 사람이 범중천(梵衆天)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면서 그는 생각하기를 ‘원컨대, 나는 장차 범중천들의 동분 속에 태어나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런 희구로 인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 욕(欲)과 악한 법[惡不善法]을 떠나 거친 생각[尋]도 있고 세밀한 생각[伺]도 있으며 여읨에서 생긴 희락[離生喜樂]이 있어서 초정려(初靜慮)를 두루 갖추어 머무르게 된다.
024_1170_b_14L復有一類於梵衆天繫心悕求彼作是念願我當生梵衆天衆同分中此悕求勤修加行離欲惡不善法尋有伺離生喜樂初靜慮具足住
이 선정 속에서 모든 몸의 율의[身律儀]ㆍ말의 율의[語律儀]ㆍ생활의 청정함[命淸淨]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범중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서도 또 모든 복된 행 등을 짓게 되나니,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된 행을 짓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잡아매어 거기에 태어날 것을 희구하지도 않고 다만 무명의 마음만을 가리고 움직이는 까닭에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 욕과 악한 법을 떠나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으며 여읨에서 생긴 희락도 있어서 초정려를 두루 갖추어 머무르게 된다.
024_1170_b_18L此定中諸身律儀語律儀命淸淨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梵衆天衆同分中於彼復造諸福行等名無明爲緣造福行有不繫心悕求生彼但由無明蔽動心故勤修加行離欲惡不善法有尋有伺離生喜樂初靜慮具足住
024_1170_c_02L이 선정 속에서 모든 몸의 율의ㆍ말의 율의ㆍ생활의 청정함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범중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서도 또 모든 복된 행 등을 짓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된 행을 짓는다고 한다.
범중천에 대하여 설명한 것과 같아서, 범보천(梵輔天)ㆍ대범천(大梵天)ㆍ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ㆍ극광정천(極光淨天)ㆍ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遍淨天)ㆍ무운천(無雲天)ㆍ복생천(福生天)ㆍ광과천(廣果天)도 그가 바라는 바에 따라 자세한 설명은 역시 마찬가지이다.
024_1170_c_02L於此定中諸身律儀語律儀命淸淨名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梵衆天衆同分中於彼復造諸福行等是名無明爲緣造福如說梵衆天梵輔天大梵天少光無量光天極光淨天少淨天無量淨天遍淨天無雲天福生天廣果天隨其所應廣說亦爾
또 어떤 한 사람이 무상천(無想天)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면서 그는 생각하기를 ‘원컨대, 나는 장차 무상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런 희구로 인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생각[想]은 바로 거칠고[麤] 괴롭고[苦] 막힌다[障]’고 생각하고[思惟] ‘생각이 없는[無想] 것은 곧 고요하고[靜] 미묘하고[妙] 여읜다[離]’고 사유한다.
024_1170_c_09L復有一類於無想天繫心悕求彼作是念願我當生無想天衆同分中因此悕求勤修加思惟諸想是麤苦障思惟無想是靜妙離
이렇게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각을 없애고 생각이 없는 데에 편안히 머무르며, 그가 모든 생각을 없애고 생각이 없는 데에 머무른 때를 바로 무상정(無想定)이라 한다. 이 선정에 들었을 때의 모든 몸의 율의ㆍ말의 율의ㆍ생활의 청정함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무상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서도 또한 조그마한 복된 행을 짓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된 행을 짓는다고 한다.
024_1170_c_13L由此思惟能滅諸想安住無彼諸想滅住無想時名無想定此定時諸身律儀語律儀命淸淨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無想天衆同分中於彼亦能造少福行名無明爲緣造福行
024_1171_a_02L어떤 사람은 마음을 잡아매어 그곳에 태어날 것을 희구하지도 않고 다만 무명의 마음만을 가리고 움직이는 까닭에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생각은 곧 거칠고 괴롭고 막힌다’고 생각하고 ‘생각이 없는 것은 곧 고요하고 미묘하고 여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각을 없애고 생각이 없는 데에 편안히 머무르며 그가 모든 생각을 없애고 생각이 없는 데에 머무른 때를 바로 무상정이라고 한다. 이 선정에 들었을 때의 모든 몸의 율의ㆍ말의 율의ㆍ생활의 청정함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무상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서도 또한 조그마한 복된 행을 짓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복된 행을 짓는다고 한다.
024_1170_c_18L有不繫心悕求生彼但由無明蔽動心故勤脩加行思惟諸想是麤苦障思惟無想是靜妙離由此思惟能滅諸想安住無想彼諸想滅住無想時名無想定入此定時諸身律儀語律儀命淸淨名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無想天衆同分中於彼亦能造少福行是名無明爲緣造福行
어떤 것이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부동의 행[不動行]을 짓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면서 그는 생각하기를 ‘원컨대, 나는 장차 공무변처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게 해주소서’라고 한다. 이런 희구로 인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형상에 대한 생각[色想]을 초월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有對想]을 없애며, 갖가지 생각[種種想]을 사유하지 않고 끝없는 허공[無邊空]에 들어가 공무변처(空無邊處)를 두루 갖추어 머무른다.
024_1171_a_03L云何無明爲緣造不動行謂有一類於空無邊處天繫心悕求彼作是念願我當生空無邊處天衆同分中因此悕求勤修加行超諸色想滅有對想不思惟種種想入無邊空空無邊處具足住
이 선정 속에서 모든 사(思)와 평등한 사[等思]와 현전의 평등한 사[現前等思]와 이사(已思)와 당사(當思)와 사의 성품[思性]과 사의 종류[思類]와 마음과 뜻에서 짓는 업[造心意業]을 부동의 행이라 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공무변처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서도 또 부동의 행을 짓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부동의 행을 짓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잡아매어 그곳에 태어날 것을 희구하지도 않고 다만 무명의 마음만을 가리고 움직이는 까닭에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형상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며 갖가지 생각을 사유하지 않고 끝없는 허공에 들어가 공무변처를 두루 갖추어 머무른다.
024_1171_a_08L於此定諸思等思現前等思已思當思性思類造心意業名不動行由此因身壞命終生空無邊處天衆同分於彼復能造不動行是名無明爲緣造不動行有不繫心悕求生彼由無明蔽動心故勤修加行超諸色想滅有對想不思惟種種想入無邊空無邊處具足住
이 선정 속에서 모든 사(思)와 평등한 사와 현전의 평등한 사와 이사(已思)와 당사와 사의 성품과 사의 종류와 마음과 뜻에서 짓는 업을 바로 부동의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서 공무변처천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서도 또 부동의 행을 짓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을 반연으로 삼아 부동의 행을 짓는다고 한다.
공무변처에 대하여 설명한 것과 같아서, 식무변처(識無邊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024_1171_a_16L於此定中諸思等思現前等思已思當思思性思類造心意業名不動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空無邊處天衆同分中於彼復能造不動行是名無明爲緣造不動行如說空無邊處識無邊處無所有處非想非非想處應知亦爾
024_1171_b_02L이와 같이 모든 행(行)은 무명을 반연[緣]으로 삼고 무명을 의지[依]로 삼으며 무명을 건립(建立)으로 삼는 까닭에 일어나고 평등하게 일어나고 생기며 평등하게 생기고 쌓여 모이며 출현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무명을 반연하여 행이 생긴다’고 한다.
어떤 것을 ‘행(行)을 반연하여 식(識)이 생긴다’고 하는가? 이른바 어떤 사람의 탐냄[貪]ㆍ성냄[瞋]ㆍ어리석음[癡]과 함께 생기는 사(思)를 반연으로 삼기 때문에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과 함께 생기는[俱生] 모든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1_a_22L如是諸行無明爲緣無明爲依無明爲建立故起等起生等生聚集出現故名無明緣行云何行緣識謂有一類瞋癡俱生思爲緣故起貪瞋癡俱生諸識是名行緣識
또 어떤 사람이 탐냄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함께 생기는 사(思)를 반연으로 삼기 때문에 탐냄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함께 생기는 모든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또 눈과 빛깔을 반연으로 삼아 안식(眼識)을 내는데, 이 가운데서 눈은 안[內]에서의 유위의 행[有爲行]이지만 빛깔이라는 밖의 것을 반연하여 안식을 생기게 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곧 ‘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나아가 뜻[意]과 법(法)을 반연으로 삼아 의식(意識)을 내는데, 이 가운데서 뜻은 안에서의 유위의 행이지만 법이라는 밖의 것을 반연하여 의식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이것을 바로 ‘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1_b_04L復有一類無貪無瞋無癡俱生思爲緣故起無貪無瞋無癡俱生諸識是名行緣識復次眼及色爲緣生眼識此中眼是內有爲行色爲外緣生眼識是名行緣識乃至意及法爲緣生意識此中意是內有爲行法爲外緣生意識是名行緣識
또 『옹유경(瓮喩經)』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복과 복이 아닌 것과 부동의 행을 지은 뒤에는 복과 복이 아닌 것과 부동의 행에 따르는 식(識)이 있다”고 하셨다.
어떤 것을 복이 아닌 행[非福行]을 지은 뒤에는 복이 아닌 것에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에 마음이 얽매었기 때문에 몸과 말과 뜻이 세 가지 악한 행을 짓게 된다. 이 세 가지 악한 행을 복이 아닌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서 지옥에 떨어지며 거기에서 식(識)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복이 아닌 행을 지은 뒤에는 복이 아닌 것에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한다.
지옥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방생(傍生)과 귀계(鬼界)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024_1171_b_10L復次『瓮喩經』中佛作是說造福非福不動行已有隨福非福不動識云何造非福行已有隨非福識謂有一類由貪瞋癡纏縛心故造身語意三種惡行此三惡行名非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墮於地獄於彼起識是名造非福行已有隨非福識如說地獄傍生鬼界應知亦爾
어떤 것을 복된 행[福行]을 지은 뒤에는 복을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사람의 세계[人趣]의 즐거움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면서 그는 생각하기를 ‘원컨대, 나는 장차 사람의 세계에 동분(同分)으로 태어나서 모든 사람들과 같이 쾌락을 받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런 희구로 인하여 사람의 세계를 받을 수 있는 몸과 말과 뜻의 묘행(妙行)을 짓게 되며 이 세 가지 묘행을 복된 행이라 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며 거기에 있어서의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곧 복된 행을 지은 뒤에는 그 복에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한다.
024_1171_b_18L云何造福行已有隨福識謂有一類於人趣樂繫心悕求彼作是念願我當生人趣同分與諸人衆同受快樂因此悕求造能感人趣身語意妙行此三妙行名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於人趣於彼起識是名造福行已有隨福識
024_1171_c_02L어떤 사람은 마음을 잡아매어 인간의 쾌락을 희구하지도 않고 다만 무명의 마음만을 가리고 움직이는 까닭에 몸과 말과 뜻이 세 가지 묘행을 짓게 되며 이 세 가지 묘행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며 거기에 있어서의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복된 행을 지은 뒤에는 그 복에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 내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024_1171_b_24L有不繫心悕求人樂但由無明蔽動心故造身語意三種妙行此三妙行名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於人趣於彼起識是名造福行已有隨福識如說人趣四大王衆天乃至他化自在天應知亦爾
또 어떤 사람이 범중천(梵衆天)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며 그는 생각하기를 ‘원컨대, 나는 장차 범중천들의 동분 속에 태어나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런 희구로 인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 욕(欲)과 악한 법을 떠나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으며 여읨에서 생긴 희락[離生喜樂]이 있어서 초정려를 두루 갖추어 머무른다.
이 선정 속에서의 모든 몸의 율의[身律儀]ㆍ말의 율의[語律儀]ㆍ생활의 청정함[命淸淨]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범중천들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에 있어서의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복된 행을 지은 뒤에는 그 복을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한다.
024_1171_c_07L復有一類於梵衆天繫心悕求彼作是念願我當生梵衆天衆同分中因此悕求勤修加離欲惡不善法有尋有伺離生喜初靜慮具足住於此定中諸身律語律儀命淸淨名爲福行由此因身壞命終生梵衆天衆同分中彼起識是名造福行已有隨福識
어떤 사람은 마음을 잡아매어 그곳에 나기를 희구하지도 않고 다만 무명의 마음만을 가리고 움직이는 까닭에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서 욕과 악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생활의 청정함을 바로 복된 행이라 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범중천들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에 있어서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복된 행을 지은 뒤에는 그 복을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한다.
범중천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범보천(梵輔天) 나아가 무상천(無想天)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024_1171_c_14L不繫心悕求生彼但由無明蔽動心故勤修加行離欲惡不善法乃至命淸淨名爲福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梵衆天衆同分中於彼起識是名造福行已有隨福識如說梵衆天輔天乃至無想天應知亦爾
어떤 것을 부동의 행[不動行]을 지은 뒤에는 그 부동에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면 그는 생각하기를 ‘원컨대, 나는 장차 공무변처천들의 동분 속에 태어나게 하소서’라고 한다. 이렇게 기뻐하면서 구함으로 인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형상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며 갖가지 생각을 사유하지 않고 끝없는 허공에 들어가 공무변처를 두루 갖추어 머무른다.
024_1171_c_20L云何造不動行已有隨不動識謂有一類空無邊處天繫心悕求彼作是念我當生空無邊處天衆同分中因此欣求勤修加行超諸色想滅有對想不思惟種種想入無邊空空無邊處具足住
024_1172_a_02L이 선정 속에서의 모든 사(思)ㆍ평등한 사ㆍ현전의 평등한 사ㆍ이사(已思)ㆍ당사(當思)ㆍ사의 성품ㆍ사의 종류 및 마음과 뜻에서 짓는 업[造心意業]을 바로 부동의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공무변처천들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에 있어서의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부동의 행을 지은 뒤에는 그 부동을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한다.
024_1172_a_03L於此定中諸思等思現前等思已思當思思性思類造心意業不動行由此因緣身壞命終生空無邊處天衆同分中於彼起識是名造不動行已有隨不動識
어떤 사람은 마음을 잡아매어 그곳에 나기를 희구하지도 않고 다만 무명의 마음만을 가리고 움직이는 까닭에 가행을 부지런히 닦아서 모든 형상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며 나아가 마음과 뜻에서 짓는 업을 부동의 행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공무변처천들의 동분 속에 태어나며 거기에 있어서의 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부동의 행을 지은 뒤에는 그 부동을 따르는 식이 있다고 한다.
공무변처천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까지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식(識)은 행(行)을 반연[緣]으로 하고 행을 의지[依]로 삼으며 행을 건립(建立)으로 삼기 때문에 일어나고 평등하게 일어나며 생기고 평등하게 생기며 쌓여 모이고 출현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a_07L有不繫心悕求生彼但由無明蔽動心故勤脩加超諸色想乃至造心意業名不動由此因緣身壞命終生空無邊處天衆同分中於彼起識是名造不動行已有隨不動識如說空無邊處天乃至非想非非想天應知亦爾如是諸識行爲緣行爲依行爲建立故等起生等生聚集出現故名行緣識
어떤 것을 ‘식(識)을 반연하여 명색(名色)이 생긴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과 함께 생기는[俱生] 식을 반연하기 때문에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과 함께 생기는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을 일으키는 것을 바로 색(色)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名)이라 하나니, 이것을 ‘식을 반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탐냄이 없고[無貪] 성냄이 없고[無瞋] 어리석음이 없는[無癡] 것과 함께 생기는 식을 반연으로 하기 때문에 탐냄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함께 생기는 신업과 어업을 일으키는 것을 바로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나니, 이것을 ‘식을 반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a_15L云何識緣名色謂有一類貪瞋癡俱生識爲緣故起貪瞋癡俱生身業語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是名識緣名色復有一類無貪無瞋無癡俱生識爲緣故起無貪無瞋無癡俱生身業語業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是名識緣名色
024_1172_b_02L또 『교회나지가경(敎誨那地迦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지가(那地迦)야, 사랑하는 친한 벗에게 변괴(變壞)가 있거나 이별이 있으면 곧 수(愁)ㆍ탄(歎)ㆍ고(苦)ㆍ우(憂)ㆍ요뇌(擾惱)가 생기느니라”고 하셨다. 이 근심[愁]과 함께 생기는 신업과 어업을 일으키는 것을 바로 ‘색’이라 하고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나니, 이것을 ‘식을 반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한다.
또 『교회파륵루나경(敎誨頗勒窶那經)』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되 “파륵루나(頗勒窶那)야, 식(識)을 음식으로 삼기 때문에 후유(後有)가 생기느니라”고 하셨다.
024_1172_a_22L復次『敎誨那地迦經』中佛作是說那地迦所愛親友變壞離散便生愁歎苦憂擾惱此愁俱生識爲緣故愁俱生身業語業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是名識緣名色次『敎誨頗勒寠那經』中佛作是說勒寠那識爲食故後有生起
이 식은 어떤 것인가? 이른바 건달박(健達縛)의 최후의 심(心)ㆍ의(意)ㆍ식(識)이 더욱 자라고 견고히 머물러 아직 끊어지지 않고 아직 두루 알지 못하며 아직 없어지지 않고 아직 변하여 토해내지[變吐] 못하면 이 식은 끊임없이 어머니 태(胎) 속에서 갈랄람(羯剌藍)의 자체(自體)와 화합하게 되나니, 이 갈랄람의 자체와 화합하는 것을 바로 ‘색’이라 하고 곧 그것에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나니, 이것을 ‘식을 반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b_06L此識云謂健達縛最後心心意識增長堅未斷未遍知未滅未變吐此識無閒於母胎中與羯剌藍自體和合羯剌藍自體和合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是名識緣名色
또 『교회사저경(敎誨莎底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세 가지 일[三事]이 화합하여 어머니 태 속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것이 세 가지냐 하면, 첫째는 부모가 어울려서 함께 염심(染心)을 일으키는 것이요, 둘째는 그 어머니가 이때에 수태(受胎)에 알맞아야 하며, 셋째는 건달박이 바로 그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니, 이와 같은 세 가지 일이 화합하여 어머니의 태 속에 들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이 가운데서, 건달박의 최후의 심ㆍ의ㆍ식이 더욱 자라고 굳게 머물러 아직 끊지 못하고 아직 두루 알지 못하며 아직 없어지지 않고 아직 변하여 토해내지 못하여 이 식(識)이 끊임없이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 여기에 의탁하게 되는 태(胎)를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나니, 이것을 ‘식을 반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b_11L次『敎誨莎底經』中佛作是說三事和入母胎藏云何爲三謂父母和合俱起染心其母是時調適及健達縛正現在前如是三事和合入母胎藏此中健達縛最後心意識增長堅住未斷未遍知未滅未變吐此識無閒入母胎藏此所託胎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是名識緣名色
또 『대인연경(大因緣經)』에서 존자 경희(慶喜)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명색(名色)은 반연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연하는 것이 있다. 이것의 반연은 이른바 식(識)이니라.”
부처님은 경희에게 말씀하셨다.
“식이 만일 어머니 태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명색은 갈랄람을 이룰 수 있겠느냐?”
아난타가 말하였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024_1172_b_19L復次『大因緣經』中尊者慶喜問佛色爲有緣不佛言有緣此緣謂識告慶喜識若不入母胎藏者名色得成羯剌藍不阿難陁曰不也世尊
024_1172_c_02L“식이 만일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명색은 이 경계 안[界中]에 생겨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식이 만일 시초에 이미 끊어지고 파괴되었다면 나중에 명색이 더욱 자라게 될 수 있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식이 만일 전혀 없다면 명색이 생긴다는 것을 시설할 수 있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경희야, 온갖 명색은 모두가 식을 반연으로 삼느니라.”
이것을 ‘식을 반연하여 명색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b_23L若不入母胎藏者名色得生此界中不也世尊識若初時已斷壞者時名色得增長不不也世尊識若全爲可施設有名色不不也世尊故慶喜一切名色皆識爲緣是名識緣名色如是名色識爲緣識爲依爲建立故起等起生等生聚集出現故名識緣名色
이와 같이 명색은 식을 반연으로 삼고 식을 의지[依]로 삼으며 식을 건립(建立)으로 삼기 때문에 일어나고 평등하게 일어나며 생기고 평등하게 생기며 쌓여 모이고 출현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식을 반연하여 명색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을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名色緣識]’고 하는가? 눈과 빛깔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眼識)을 내는데 여기서 눈과 빛깔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며 그 가운데서 작의(作意) 등으로 안식을 도와 생기게 하므로 이것을 ‘명색에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c_08L云何名色緣識謂眼色爲緣生眼識此中眼及色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於中作意等能助生眼是名名色緣識
나아가 뜻과 법을 반연으로 하여 의식(意識)을 내는데 여기서 모든 의식으로 아는 물질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며 그 가운데서 작의 등으로 의식을 도와 생기게 하므로 이것을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또 『교회파륵루나경(敎誨頗勒窶那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파륵루나(頗勒窶那)야, 식을 음식으로 삼는 까닭에 후유(後有)를 일으키느니라”고 하셨다.
024_1172_c_12L乃至意法爲緣生意識此中諸意識所了色名爲色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於中作意等能助生意識是名名色緣識復次『敎誨頗勒寠那經』中佛作是說頗勒寠那識爲食故後有生起
이 식(識)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건달박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갈랄람의 자체(自體)와 화합하는 것이니, 이 갈랄람의 자체와 화합하는 것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그때에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非理作意]와 함께 생긴 명색을 반연으로 하여 함께 생긴 의식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을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c_17L此識云何謂健達縛廣說乃至與羯剌藍自體和合此羯剌藍自體和合名爲色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爾時非理作意俱生名色爲緣起俱生識是名名色緣識
024_1173_a_02L또 『교회사저경(敎誨莎底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세 가지 일이 화합하여 어머니의 태 속에 들게 되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이 식이 끊임없이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 여기에 의탁하게 되는 태(胎)를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며 그때에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와 함께 생긴 명색을 반연으로 하여 함께 생긴 식을 일으킨다”고 하셨다. 이것을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2_c_22L復次『敎誨莎底經』中佛作是說三事和合入母胎藏廣說乃至此識無閒入母胎藏此所託胎名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爾時非理作意俱生名色爲緣起俱生識是名名色緣識
또 어떤 사람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에 마음이 얽매었기 때문에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악행(惡行)을 짓게 된다. 이 속에서의 몸과 말의 악행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뜻의 악행을 ‘명’이라 하는데 이 악행의 명색을 반연으로 한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지옥에 떨어지며 거기에 있어서의 식(識)이 일어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a_04L復有一類由貪瞋癡纏縛心故造身語意三種惡行此中身語惡行名爲色意惡行名爲名此惡行名色爲緣身壞命終墮於地於彼起識是名名色緣識
지옥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방생(傍生)과 귀계(鬼界)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사람의 세계[人趣]의 즐거움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며 이 희구로 인하여 사람의 세계를 받을 수 있는 몸과 말과 뜻의 묘행(妙行)을 짓게 된다. 여기서의 몸과 말의 묘행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뜻의 묘행을 ‘명’이라 하는데 이 묘행의 명색을 반연한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며 거기에서 의식이 일어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a_08L如說地傍生鬼界應知亦爾復有一類人趣樂繫心悕求因此悕求造能感人趣身語意妙行此中身語妙行爲色意妙行名爲名由此妙行名色爲緣身壞命終生於人趣於彼起識是名名色緣識
어떤 사람은 마음을 잡아매어 인간의 즐거움을 희구하지도 않고 다만 무명(無明)의 마음만을 가리고 움직이는 까닭에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묘행을 짓게 된다. 여기서의 몸과 말의 묘행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뜻의 묘행을 ‘명’이라 하는데 이 묘행의 명색을 반연으로 한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며 거기에서 의식이 일어나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a_14L有不繫心希求人樂但由無明蔽動心故造身語意三種妙行此中身語妙行名爲色意妙行名爲名由此妙行名色爲緣身壞命終生於人趣於彼起識是名名色緣
024_1173_b_02L사람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 내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범중천(梵衆天)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며 이 희구로 인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아서 욕(欲)과 악한 법을 여의고 나아가 초정려를 두루 갖추어 머무르게 된다.
이 선정 속에서의 몸의 율의[身律儀]ㆍ말의 율의[語律儀]ㆍ생활의 청정함[命淸淨]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것을 반연으로 한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범중천의 동분(同分) 속에 태어나며 거기에서 의식이 일어나는 것이니, 이것을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a_19L如說人趣四大王衆天乃至他化自在天應知亦爾復有一類於梵衆天繫心希求因此希求勤修加行欲惡不善法乃至初靜慮具足住此定中諸身律儀語律儀命淸淨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此爲緣身壞命終生梵衆天衆同分於彼起識是名名色緣識
범중천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범보천(梵輔天) 내지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에 있어서도 그 희망하는 바에 따라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대인연경(大因緣經)』에서 경희(慶喜) 존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식은 반연함이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반연함이 있다. 그것은 곧 명색이니라.”
부처님께서 경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명색이 없다면 모든 식이 옮아가겠느냐?”
아난타가 말하였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024_1173_b_03L如說梵衆天梵輔天乃至非想非非想處其所應當知亦爾復次『大因緣經』中尊者慶喜問佛諸識爲有緣不佛言有緣此謂名色佛告慶喜若無名色諸識轉不阿難陁曰不也世尊
“만일 명색이 의지할 것[所依止]이 없다면 후세(後世)에 받을 생(生)과 노사(老死)와 식(識)은 생길 수 있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명색이 도무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식이 있는 것을 시설할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경희야, 모든 식은 모두가 명색을 반연으로 삼느니라.”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b_08L若無名色爲所依止後世所受生老死識爲得生不不也世尊若諸名色都無所有爲可施設有諸識不不也世尊是故慶喜諸識皆以名色爲緣是名名色緣識
이와 같아서, 모든 식은 명색을 반연으로 삼고 명색을 의지[依]하며 명색을 건립(建立)으로 삼는 까닭에 일어나고 평등하게 일어나며 생기고 평등하게 생기며 쌓여 모이고 출현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명색을 반연하여 식이 생긴다’고 한다.
어떤 것을 ‘명색(名色)을 반연하여 6처(處)가 있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추위에 몹시 시달릴 적에 따뜻한 것을 희구하다가 따뜻한 것을 얻었기 때문에 곧 몸 속에서 따뜻한 것과 함께 하는 대종(大種)이 일어난다. 여기서의 따뜻한 것과 그 따뜻한 것과 함께 하는 대종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 명색으로 말미암아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감관[根]이 모두 더욱 자라게 된다.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b_13L如是諸識名色爲緣名色爲依名色爲建立故起等起生等生聚集出現故名名色緣識云何名色緣六處謂有一類爲寒所逼希求於暖得好暖故便起身中暖俱大種此中若暖若暖俱大種名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由此名色眼耳鼻舌身及意根皆得增長是名名色緣六處
024_1173_c_02L더위에 몹시 시달릴 적에 찬 것을 희구하는 것도 또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배고픔에 몹시 시달릴 적에 먹을 것을 희구하다가 좋은 음식을 얻었기 때문에 곧 몸속에서 음식과 함께 하는 대종이 일어난다. 여기서 음식과 그 음식과 함께 하는 대종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 명색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관이 더욱 자라게 된다.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b_21L爲熱所逼希求於應知亦爾復有一類爲飢所逼希求於食得好食故便起身中食俱大此中若食若食俱大種名爲色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由此名色六根增長是名名色緣六處
또 어떤 한 사람이 목마름에 몹시 시달릴 적에 마실 것을 희구하다가 마실 거리를 얻었기 때문에 곧 몸속에서 마실 것과 함께 하는 대종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마실 것과 그 마실 것과 함께 하는 대종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 명색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관이 더욱 자라게 된다.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c_03L復有一爲渴所逼希求於飮得好飮故便起身中飮俱大種此中若飮若飮俱大種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爲名由此名色六根增長是名名色緣六處
또 어떤 사람이 몹시 고달플 적에 휴식을 희구하다가 안마와 잠으로 뜻을 이루었으므로 곧 몸속에서 그것과 함께 하는 대종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안마 등과 그것과 함께 하는 대종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 명색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관이 더욱더 발달한다.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한창 더울 때에 더위와 목마름에 시달리다가 맑고 시원한 못에 들어가 마음껏 마시고 목욕을 하면 곧 몸속에서 그것과 함께 하는 대종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맑고 시원한 물과 또 그것과 함께 하는 대종을 이름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 명색으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관이 더욱 자라게 된다.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c_08L復有一類勞倦所逼希求止息按摩睡眠由遂意故便起身中彼俱大種此中若按摩等若彼俱大種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由此名色六根增上是名名色緣六復有一類於盛熱時熱渴所逼淸涼池恣意飮浴便起身中彼俱大此中若淸冷水若彼俱大種名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由此名色六根增長是名名色緣六處
또 『교회파륵루나경(敎誨頗勒窶那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파륵루나(頗勒窶那)야, 식을 음식으로 삼기 때문에 후유(後有)를 일으킨다”고 하셨다. 이 식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이른바 건달박(健達縛)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갈랄람의 자체와 화합하는 것이니, 이 갈랄람의 자체와 화합한 것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그때에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非理作意]와 함께 생긴 명색을 반연으로 하여 어머니의 태 속에서 여섯 가지 감관이 일어난다.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c_17L次『敎誨頗勒寠那經』中佛作是說勒寠那識爲食故後有生起此識云謂健達縛廣說乃至與羯剌藍自體和合此羯剌藍自體和合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名爲名爾時非理作意俱生名色爲緣母胎藏中六根生起是名名色緣六處
024_1174_a_02L또 『교회사저경(敎誨莎底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세 가지 일[三事]이 화합하여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가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이 식이 끊임없이 어머니의 태속에 들어가 의탁하게 되는 태(胎)를 바로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명’이라 하는데 그때에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와 함께 생긴 명색을 반연으로 하여 어머니의 태 속에서 여섯 가지 감관이 생긴다”고 하셨다.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3_c_24L復次『敎誨莎底經』中佛作是說三事和合入母胎藏廣說乃至此識無閒入母胎藏此所託胎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名爲名爾時非理作意俱生名色爲緣母胎藏中六根生起是名名色緣六處
또 어떤 사람이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에 마음이 얽매었기 때문에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악행을 짓게 된다. 여기에서 몸과 말의 악행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뜻의 악행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 악행의 명색을 반연으로 한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지옥에 떨어지며 여섯 가지 감관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지옥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방생과 귀계(鬼界)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024_1174_a_07L復有一類由貪瞋癡纏縛心造身語意三種惡行此中身語惡名爲色意惡行名爲名由此惡行名色爲緣身壞命終墮於地獄六根生起是名名色緣六處如說地獄鬼界應知亦爾
또 어떤 사람이 사람의 세계[人趣]의 즐거움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며 이 희구로 인하여 사람의 세계를 받을 수 있는 몸과 말과 뜻의 묘행을 짓게 된다. 여기서의 몸과 말의 묘행을 말하여 ‘색’이라 하고 뜻의 묘행을 바로 ‘명’이라 하는데 이 묘행의 명색을 반연한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며 여섯 가지 감관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4_a_12L復有一類於人趣樂繫心希求因此希求造能感人趣身語意妙行此中身語妙行名爲色意妙行名爲名由此妙行名色爲緣身壞命終生於人趣六根生起是名名色緣六處
사람의 세계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사대왕중천 내지 타화자재천에 있어서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범중천(梵衆天)에 대하여 마음을 잡아매어 희구하며 이 희구로 인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수행하여 욕(欲)과 악한 법을 여의고 나아가 초정려를 두루 갖추어 머무르게 된다.
이 선정 속에서 모든 몸의 율의ㆍ말의 율의ㆍ생활의 청정함[命淸淨]을 바로 ‘색’이라 하고 곧 거기서 생기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을 ‘명’이라 하는데 이것을 반연으로 삼는 까닭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범중천의 동분(同分) 속에 태어나며 여섯 가지 감관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4_a_17L如說人趣四大王衆天乃至他化自在天應知亦爾復有一類於梵衆天繫心希求因此希求勤修加行離欲惡不善法乃至初靜慮具足住於此定中諸身律儀語律儀淸淨名爲色卽彼所生受想行識爲名由此爲緣身壞命終生梵衆天衆同分中六根生起是名名色緣六
024_1174_b_02L범중천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범보천(梵輔天) 내지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에 있어서도 그들이 바라는 바에 따라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하리니, 이것을 바로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이와 같이 6처는 명색을 반연으로 삼고 명색을 의지[依]로 삼으며 명색을 건립(建立)으로 삼기 때문에 일어나고 평등하게 일어나며 생기고 평등하게 생기며 쌓여 모이고 출현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명색을 반연하여 6처가 생긴다’고 한다.
024_1174_b_02L如說梵衆天梵輔天乃至非想非非想處天隨其所應當知亦爾是名名色緣六處如是六處名色爲緣色爲依名色爲建立故起等起生等聚集出現故名名色緣六處
,說一切有部法薀足論卷第十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