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集大虛空藏菩薩所問經 卷第二

ABC_IT_K1339_T_002
037_0007_c_01L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 제2권
037_0007_c_01L大集大虛空藏菩薩所問經 卷第二


개부의동삼사 특진시 홍려경 숙국공으로 식읍이 삼천호요,
자의를 하사 받고 사공에 추증되었으며, 시는 대감정이고
호는 대광지인 대흥선사 삼장 사문 불공 받들어 한역
이진영 번역
037_0007_c_02L開府儀同三司特進試鴻臚卿肅國公食邑三千戶賜紫贈司空謚大鑑正號大廣智大興善寺三藏沙門 不空奉 詔譯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허공장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은 계율바라밀을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네 가지 법이란, 몸뚱이가 그림자와 같은 것임을 아는 것이 첫째이고, 음성이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은 것임을 아는 것이 둘째이고, 마음이 허깨비와 같은 것임을 아는 것이 셋째이고, 지혜가 허공과 같은 것임을 아는 것이 넷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허공처럼 계율바라밀을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07_c_04L爾時世尊復告大虛空藏菩薩摩訶薩言善男子菩薩成就四法修行淨戒波羅蜜多猶若虛空云何爲四知身如影像知聲如谷響知心如幻化知慧如虛空是爲菩薩成就四修行淨戒波羅蜜多猶若虛空
또 보살은 계율바라밀을 청정이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 바 그 여덟 가지 법이란, 계율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보리의 마음을 여의지 않는 것이 첫째이고, 한량없는 마음을 얻어 계율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성문ㆍ연각의 마음을 여의는 것이 둘째이고, 그 지혜를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학문을 여의지 않는 것이 셋째이고, 서원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인식 대상을 초월하는 것이 넷째이고, 수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방일하거나 지어서 꾸미지 않는 것이 다섯째이고, 수행에 방해가 되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 여섯째이고, 번뇌를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마음의 열뇌(熱惱)를 없애는 것이 일곱째이고, 보리를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큰 서원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 여덟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계율바라밀을 청정이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07_c_10L若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淨戒波羅蜜多云何爲八所謂不離菩提戒淸淨故離聲聞緣覺心得無限量心戒淸淨故不捨一切學處慧淸淨故於一切處受生願淸淨故於戒不緩任運無作行淸淨故迴向菩提魔羅心淸淨故心無熱惱煩惱淸淨故大願圓滿菩提淸淨故是爲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淨戒波羅蜜多
037_0008_a_01L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청정한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청정한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더러움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더러움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고요하여 어지럽지 않은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고요한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그 끝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그 끝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얽매임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얽매임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집착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집착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에 무엇을 쌓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에 아무런 쌓임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그 성품을 여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계율의 성품을 여의지 않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그 성품에 언제나 머무는 것처럼 보살이 계율에 언제나 머무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구경(究竟)과 같아 다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다함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아무런 형상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형상을 여의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가고 오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동요하지 않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희론(戱論)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희론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모든 번뇌를 멀리 여읜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번뇌가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지음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지음이 없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변하지 않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분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분별을 취하지 않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일체의 처소를 두루 덮어 주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일체의 유정들을 두루 덮어 주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파괴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파괴하지 않는 것도 그러하며, 허공이 높고 낮음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평등함도 그러하며, 허공의 성품이 물들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계율이 물들지 않는 것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바로 보살이 계율바라밀을 허공처럼 닦는 것이니라.”
037_0007_c_20L善男子譬如虛空淸淨菩薩持戒淸淨亦爾譬如虛空無有垢穢薩持戒無垢亦爾譬如虛空寂靜不菩薩持戒寂靜亦爾譬如虛空無有邊際菩薩持戒無邊亦爾譬如虛空無有繫屬菩薩持戒無繫亦爾譬如虛空無有執著菩薩持戒離著亦爾譬如虛空無可積集菩薩持戒無積亦爾譬如虛空不離於性菩薩持戒不離亦爾譬如虛空其性常住菩薩持戒常住亦爾譬如虛空究竟無盡菩薩持戒無盡亦爾譬如虛空無有形相菩薩持戒離相亦爾譬如虛空無有來菩薩持戒無動亦爾譬如虛空無有戲論菩薩持戒離戲亦爾譬如虛空遠離諸漏菩薩持戒無漏亦爾譬如虛空無所爲作菩薩持戒無爲亦爾譬如虛空無有變易薩持戒不變亦爾譬如虛空無有分菩薩持戒無取亦爾譬如虛空遍一切處菩薩持戒周遍亦爾譬如虛空無有破壞菩薩持戒無犯亦爾譬如虛空無有高下菩薩持戒平等亦爾譬如虛空性離於染菩薩持戒無染亦爾善男子是爲菩薩修行淨戒波羅蜜多猶若虛空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爾時世尊說伽他曰
037_0008_b_01L
계율을 지켜 마음에 더러움이 없어야
능히 일체의 번뇌를 제거할 수 있고
몸ㆍ입ㆍ뜻의 업에 하자가 없어야만
일체의 위의를 구족할 수 있느니라.
037_0008_a_23L護戒寂靜心無垢
能除熱惱無所得
身語意業無瑕疵
一切律儀皆具足

지혜로운 자는 교만하지 않아
마음이 고요하여 산란함이 없고
언제나 보리의 마음에 의지하여
그 마음과 뜻이 물들지 않느니라.
037_0008_b_02L智者不以戒憍逸
內心恒寂而無亂
智者常依菩提心
而於心意不染著

모든 업을 여의고 상념이 없어
온갖 분별을 내지 않는가 하면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색상을 여의듯
또한 온갖 물질에 머무르지 않느니라.
037_0008_b_04L遠離諸業無思慮
如是不生諸分別
旣離靑黃及赤白
亦不住於名色中

계율은 취함도 버림도 물듦도 없으니
마치 허공이 걸림이 없는 것과 같고
또한 계율 자체로서 찬탄을 받지
구절의 뜻에 찬탄 받지 않느니라.
037_0008_b_06L無取無捨無染心
譬如虛空無障礙
此戒智者所稱讚
不見所讚諸句義

계율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므로
역시 모든 번뇌를 고요하게 하고
모두 지관(止觀)의 경계를 얻어서
해탈을 나타내 보이게 하느니라.
037_0008_b_08L是戒能令心寂靜
亦能寂靜諸煩惱
悉得止觀之邊際
了然顯現得解脫

성스러움으로 모든 속박을 풀어서
모두 계율에 편히 머물게 하니
계율이 뛰어난 해탈이 되고
또한 보리의 근본 구절이 되느니라.
037_0008_b_10L解脫諸縛之聖者
悉皆安住於尸羅
是故戒爲勝解脫
亦爲菩提根本句

온갖 두타(杜多)1)로 수행처에 머물되
탐욕을 끊어 바라는 것 없이 족하며
번잡함을 멀리 여의고 선정에 머물되
마음이 편안하여 번뇌를 여의느니라.
037_0008_b_12L諸有杜多居蘭若
小欲喜足絕貪求
遠離憒鬧而住禪
心獲輕安離煩惱

이와 같이 계율이 근본이 되니
고요히 해탈의 구절을 사유하고
이로 말미암아 계율을 장엄하니
일체의 처소가 안락한 길이 되느니라.
037_0008_b_14L如是戒是爲根本
思惟寂靜解脫句
是故尸羅爲莊嚴
一切處爲安樂道

또한 모든 번뇌와 소견을 끊고
흩어버려서 멀리 여의게 하고
자비로움이 허공처럼 두루하고
청정하게 하여 그것에 머물게 하느니라.
037_0008_b_16L亦令遠離於散動
斷諸煩惱及諸見
慈心遍布如虛空
能靜邊執令淸淨

반드시 보리를 버리지 않기에
보리에 대해 분별함도 없으니
지혜로운 자가 이 같은 공덕을 갖추는 것은 다
계율로 말미암아 피안(彼岸)에 이르기 때문이네.
037_0008_b_18L決定不捨菩提故
而於菩提無分別
智者若具如是德
皆由於戒到彼岸
037_0008_c_01L
“선남자여,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네 가지 법이란, 다른 사람으로부터 욕설을 듣더라도 그 말을 허공처럼 알아서 보복하지 않는 것이 첫째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타를 당하더라도 그 몸뚱이를 허공처럼 알아서 보복하지 않는 것이 둘째이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사더라도 그 마음을 허공처럼 알아서 보복하지 않는 것이 셋째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희롱을 당하더라도 그 뜻을 허공처럼 알아서 보복하지 않는 것이 넷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08_b_20L善男子若菩薩成就四法修行忍辱波羅蜜多猶若虛空云何爲四所謂他罵不報知語如虛空他打不報身如虛空他瞋不報知心如虛空戲不報知意如虛空是爲菩薩成就四法修行忍辱波羅蜜多猶若虛空
또 보살은 인욕바라밀다를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여덟 가지 법이란,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모든 유정들에게 허공처럼 그 마음이 걸림이 없는 것이 첫째이고,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허공처럼 모든 이익에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둘째이며,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모든 유정들에게 허공처럼 그 이익을 평등하게 하는 것이 셋째이고,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허공처럼 그 몸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넷째이며,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허공처럼 모든 의혹과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다섯째이고,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허공처럼 모든 법과 경계에 대한 관찰을 여의는 것이 여섯째이며,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허공처럼 모든 법의 성품이 생함도 멸함도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 일곱째이고, 인욕을 닦아 청정함을 얻기 위해 허공처럼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를 자비로운 마음으로 두루 덮어주는 것이 여덟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허공처럼 인욕바라밀다를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08_c_03L復次若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忍辱波羅蜜多云何爲八所謂於諸有情心無限礙猶若虛空修行忍辱得淸淨故於諸利養不生貪著猶若虛修行忍辱得淸淨故於諸有情利益平等猶若虛空修行忍辱得淸淨心無壞猶若虛空修行忍辱得淸淨故離諸惑結猶若虛空修行忍辱得淸淨故離所觀境猶若虛空行忍辱得淸淨故觀諸法性不生滅猶若虛空修行忍辱得淸淨故無色以慈遍緣猶若虛空修行忍辱得淸淨故是爲菩薩成就八法淨修行忍辱波羅蜜多猶若虛空
037_0009_a_01L선남자여, 보살은 또 법의 지혜를 자세히 관찰하고 인욕바라밀다를 닦아 여덟 가지의 법을 성취하느니라. 그 여덟 가지의 법이란, 첫째가 성공(性空)인욕으로 일체의 공의 견해를 무너뜨림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가 무상(無相)인욕으로 상을 떨쳐버림이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무원(無願)인욕으로 보리(菩提)를 버림이 없기 때문이고, 넷째는 무행(無行)인욕으로 함이 있는 것에 다함이 없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무생(無生)인욕으로 함이 없는 것에 머묾이 없기 때문이고, 여섯째는 무기(無起)인욕으로 생멸에 머묾이 없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무유정(無有情)인욕으로 몸의 성품을 무너뜨림이 없기 때문이고, 여덟째는 여여(如如)인욕으로 3세(世)를 무너뜨림이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바로 보살이 법의 지혜를 자세히 관찰하고 인욕바라밀다를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08_c_17L男子復有八法能諦觀察修行忍辱波羅蜜多云何爲八所謂性空忍辱不壞諸見故無相忍辱不遣於相故無願忍辱不捨菩提故無行忍辱盡有爲故無生忍辱不住無爲故起忍辱不住生滅故無有情忍辱壞體性故如如忍辱不壞三世故善男子是爲八種諦察法忍能修忍辱波羅蜜多
다시 선남자여, 보살이 인욕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떤 이가 자신을 헐뜯고 모욕하더라도 이를 참고 받아들이되, 만약 ‘이것이 나의 인욕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욕 바라밀이 아니니라. 또 모욕하는 자를 보거나 그 모욕하는 방법이 어떠하던 간에 이를 다 참고 받아들이되, 만약 ‘이것이 나의 인욕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욕바라밀다가 아니니라. 또 다툼이 없는 행을 닦되, 만약 ‘그 말을 참는 것이 나의 인욕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인욕바라밀다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수행을 거듭하여 서로가 다 공(空)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만약에 ‘이렇게 서로 인욕하는 것은 다 덧없는 것이다’라든지 또는 ‘이렇게 인욕하는 것은 인욕을 베푸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욕바라밀다가 아니니라.
그러므로 선남자여, 수행자는 수행하는 것을 반드시 보이지 않아야 하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저 사라수(娑羅樹) 숲속에 들어가서 가지와 잎을 베더라도, 사라수는 ‘누가 나무를 벤다’거나 또는 애증을 갖지 않으니, 이러한 생각을 끝내 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이 인욕바라밀다를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애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분별하거나 분별할 것이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인욕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니라.”
037_0009_a_03L善男子行忍辱波羅蜜多時若有毀罵於我我當忍受名我忍辱非忍辱波羅蜜多若見罵者及以罵法我當忍受名我忍辱非忍辱波羅蜜多住無諍行是音聲忍辱非忍辱波羅蜜多作是加行彼我俱思惟忍受彼我無常思惟忍受名施設忍辱非忍辱波羅蜜多善男都不見有能行所行譬如大娑羅若復有人手持利斧入彼林中斫其枝葉彼樹終無一念之心彼爲能此爲所斫不生憎愛善男子菩薩摩訶薩行忍辱波羅蜜多時亦復如是無有憎愛無能分別無所分別爲菩薩修行忍辱波羅蜜多猶若虛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爾時世尊說伽他曰

청정한 무생법인을 성취해야만
그 지혜가 경계에 물들지 않고
안팎이 고요하여 의지하는 것이 없어야만
저 인욕의 마음이 허공처럼 청정하니라.
037_0009_a_18L盡智無生淸淨忍
於境不染意成就
內外寂靜無所依
心淨忍辱虛空等

이 몸은 그림자나 초목과 같고
이 마음은 허깨비와 같아 진실이 없고
이 법의 성품은 공(空)하여
몸과 마음에 차별이 있음을 볼 수 없네.
037_0009_a_20L是身如影如草木
心形如幻無眞實
是法性空無所見
心變異等於彼

결과야 어떻든 기쁨도 성냄도 없고
분별도 없으며 높고 낮음도 없으니
땅과 문지방과 같이 인욕을 알아서
그 가르침대로 유정을 제도하느니라.
037_0009_a_22L設有毀譽無喜
無所分別無高下
知忍如地如門閫
依教忍辱度有情
037_0009_b_01L비록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함을 알더라도
나[我]ㆍ사람[人]ㆍ수명(壽命)에 대한 생각이 없더라도
저 인연과 지음에 어긋나지 않아야만
그 인욕이 바로 최상의 진실한 행이니라.
037_0009_b_01L雖知一切法性空
無人無我無壽命
不違因緣及造作
此忍最爲眞實行

그러므로 어떤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 말을 허공처럼 알아 성내지 않고
몸과 마음도 다 허공처럼 그렇게 닦으며
유정을 위해 이 청정한 인욕을 닦느니라.
037_0009_b_03L聞彼惡言不瞋恚
知語言性如虛空
修習身心空亦然
當淨有情修此忍

“선남자여, 보살이 정진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은 정진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네 가지 법이란, 첫째 자신의 선근(善根)을 부지런히 닦는 것으로 일체의 법을 아직 성취하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고, 둘째 모든 부처님께 큰 공양을 올리는 것으로 여래의 몸이 평등함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며, 셋째 항상 유정들을 성취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정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고, 넷째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바른 법을 받아 지니는 것으로 그 법을 싫어하거나 여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정진 바라밀을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09_b_05L善男子云何菩薩修行精進波羅蜜多猶若虛空若菩薩成就四法修行精進波羅蜜多猶若虛空云何爲四勤修善根知一切法未成就故諸佛所作大供養了知如來身平等常樂成就無量有情知諸有情無所得故從諸佛所受持正法不見諸法所厭離故是爲菩薩成就四法行精進波羅蜜多猶若虛空
037_0009_c_01L다시 선남자여, 보살은 정진바라밀다를 청정이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여덟 가지 법이란, 첫째 몸을 장엄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그 몸이 그림자와 같아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둘째 말을 장엄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그 말이 이슬과 같아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셋째 마음을 장엄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여 선정을 성취하는 것으로 그 마음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넷째 모든 바라밀을 갖추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그 반복하여 닦는 것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다섯째 일체 보리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그 보리의 성품과 모습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생각하기 때문이고, 여섯째 일체의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그 불국토가 허공과 같아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일곱째 일체의 들은 것을 다 받아 지니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그 들은 법이 메아리와 같아서 끝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여덟째 일체의 부처님 법을 성취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으로 그 모든 법계가 평등한 한 가지 상(相)이어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정진바라밀다를 청정이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09_b_14L復次男子若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精進波羅蜜多云何爲八由莊嚴身行精進知身如影像無所得故由莊嚴語勤行精進知語如露性無所得由莊嚴心勤行精進得致於定心無所得故爲具諸波羅蜜分勤行精進展轉修習思惟無所得故由成就一切菩提分法勤行精進菩提性思惟無所得故爲淨佛土勤行精知諸佛國等於虛空無所得故成就一切所聞悉皆能持勤行精進知所聞法猶如響應究竟無所得故爲成就一切佛法故勤行精進知諸法界平等一相思惟無所得故是爲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精進波羅蜜多
선남자여, 보살에게는 또 두 가지 정진하는 법이 있으니, 가행(加行) 정진과 한제(限齊) 정진이 그것이니라. 가행 정진으로써 몸ㆍ입ㆍ뜻을 채찍질하는 것은 그 일체의 선한 법을 수습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얻을 것이 없음을 관찰하기 때문이고, 한제 정진으로써 마땅히 머물러 드나들지 않는 것은 가고 오는 것 없이 법계에 수순하여 허공처럼 얻을 것이 없음을 관찰하기 때문이니라. 다시 말하면, 저 허공이 물질이 없이 모든 유정들의 일을 성취시켜 주는 것처럼, 보살의 정진이 일체의 부처님 법에 의지하여 유정들의 일을 성취시켜 주는 것도 그러하니라. 또 허공이 일체의 색상을 다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보살의 정진이 일체의 유정들을 다 거두어들이되 그 모든 소견을 여의는 것도 그러하니라. 또 허공이 일체의 초목을 다 길러내되 머묾과 집착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정진이 일체의 부처님 법을 길러내되 나[我]라는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그러하니라. 또 허공이 일체의 처소에 두루 편만하되 동요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정진이 일체의 선한 법에 두루 편만하되 흔들리는 모습이 없는 것도 그러하니라. 또 허공이 갖가지 물질을 평등하게 나타내는 것처럼, 보살의 정진이 유정들을 위해 갖가지 일을 평등하게 닦되 얻을 것이 없음을 아는 것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바로 보살이 정진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니라.”
037_0009_c_07L善男子菩薩復有二種精進加行精進限齊精進以加行精進策身修習成就一切善法無有所住思惟無所得故以限齊精進應住不出不入隨順法界無所去來如虛空無所得故如虛空無色於諸有情成就所作菩薩精進亦復如是諸佛法成就一切有情事故如虛空含容一切色菩薩精進含容一切有離一切見亦復如是如虛空一切草木生長無根無住菩薩精進生長一切佛法不住我見亦復如是如虛空遍一切處無所動搖菩薩精進遍一切善法無所動相亦復如是如虛空等現種種色菩薩精進等爲有情示現修習平等思惟皆無所得亦復如是善男子是爲菩薩修行精進波羅蜜多猶若虛空
그 때에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爾時世尊說伽他曰
037_0010_a_01L
용맹하게 정진의 힘을 내어
몸과 목숨과 재물을 아끼지 않고
위덕(威德)의 큰 보리를 갖추어야만
모든 유정을 이롭게 할 수 있느니라.
037_0010_a_01L勇猛所生精進力
無悋於身及命財
能行威德大菩提
於諸有情恒利益

전생부터 닦은 온 그 공덕을
항상 닦되 싫증을 내지 않으며
모든 유정들을 해탈시키고자 하여
모든 여래에게 항상 공양하느니라.
037_0010_a_03L往昔所修功德利
不生厭倦常修習
愛樂解脫諸有情
於諸如來常供養

한량없는 불국토를 다니면서
일체의 마군을 다 항복 받고
일체 인민들에 보시하기를 좋아하되
항상 이 청정한 계율을 옹호하느니라.
037_0010_a_05L願遊無量諸佛剎
推伏一切諸魔羅
常樂給施一切人
常樂護持於淨戒

자비로운 모습과 생각이 상응하여서
모든 선근(善根)을 부지런히 모으고
한량없는 선정에 들어가기 위하여
큰 지혜로써 이치를 관찰하느니라.
037_0010_a_07L常樂大慈相應忍
常樂勤集諸善根
思惟無量禪定心
以大智慧常觀察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성냄을 버리고
공덕의 이익을 올바르게 닦되
몸과 목숨까지도 아낌이 없이
모든 번뇌로부터 능히 해탈하느니라.
037_0010_a_09L無量慈心捨瞋恚
功德利益正修行
於身於命無所慳
善能解脫諸煩惱

무아(無我)ㆍ공(空)ㆍ해탈을 닦음으로써
온갖 모습을 여의어 큰 위덕을 갖추고
일체의 소견을 끊고 보리를 닦아서
아지랑이처럼 법의 성품을 관찰하느니라.
037_0010_a_11L常修無我空解脫
離相無相大威德
永離諸見修菩提
如幻陽焰觀自性

세간에서 일체의 경전을 청정이 읽고
공한 법은 상념이 없음을 널리 설하며
또 법에 둘이 없음을 관찰하되
음성과 문자를 버리지 않느니라.
037_0010_a_13L樂說空法無思慮
依世淨行讀諸經
於法無法二俱亡
不捨音聲及文字

세간에서 항상 모든 경전을 설하고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함 역시 끝이 없고
그 유정들의 마음과 행도 한량이 없으니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크게 정진하느니라.
037_0010_a_15L於世常說諸經典
讚佛功德亦無邊
有情心行旣難量
智者應生大精進

한량없는 유정들을 깨우치고
남도 나지 않음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가없는 정진의 마음으로써 능히
유정을 제도하고 청정한 법을 닦느니라.
037_0010_a_17L悟於無量有情性
不滯於生及不生
能以無邊精進心
常習度生諸淨法
037_0010_b_01L
“선남자여, 보살이 선정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은 선정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네 가지 법이란, 마음을 안에서부터 안정시켜 그 안의 마음으로 하여금 소견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것이 첫째이고, 마음을 바깥에서부터 억제시켜 그 바깥의 마음으로 하여금 얻을 것이 없게 하는 것이 둘째이며, 자신의 마음이 평등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유정들의 마음도 본래 평등한 것임을 아는 것이 셋째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다 평등함을 앎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의 자체가 허깨비와 같음을 증득하는 것이 넷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선정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10_a_19L善男子云何菩薩修行禪定波羅蜜多猶若虛空若菩薩成就四法修行禪定波羅蜜多猶若虛空云何爲四所謂安心於內內心無所見制心於外心無所得由自心平等故知一切有情心亦平等彼心及平等思惟證知皆如幻化是爲菩薩成就四法修行禪定波羅蜜多猶若虛空
다시 선남자여, 보살은 선정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여덟 가지 법이란, 5온(蘊)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첫째이고, 12처(處)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둘째이며, 18계(界)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셋째이고, 현재 세간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넷째이며, 다른 세간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다섯째이고, 욕계(欲界)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여섯째이며, 색계(色界)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일곱째이고, 무색계(無色界)에 의지하지 않고 선정을 닦는 것이 여덟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선정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10_b_04L復次善男子若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禪定波羅蜜多云何爲八所謂不依蘊而修禪定不依處而修禪定不依界而修禪定不依現世而修禪定依他世而修禪定不依欲界而修禪不依色界而修禪定不依無色界而修禪定是爲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禪定波羅蜜多猶若虛空
037_0010_c_01L선남자여, 보살은 또 그 마음을 선정에 집중함으로써 청정함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선정에 집중함이란, 일체 법의 명자(名字)를 더하거나 덜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동과 차별과 손익(損益)이 없고 취함도 버림도 어둠도 밝음도 없으며, 분별이 없는가 하면 분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가 하면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며, 하나ㆍ둘이 없는가 하면 하나ㆍ둘이 없는 것도 아니고, 행동도 사색도 희론(戱論)도 없으며, 적취(積聚)도 없고 적취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일체의 상(相)을 벗어나 그 마음에 머묾이 없는 것을, 선정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다시 말하면, 선정에 집중하는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으로써 눈에 대한 물질과 물질에 대한 안식(眼識)을 멀리 여의어서 본래의 모습이 청정하니라. 또 선정에 집중하는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관찰함으로써 귀에 대한 소리와 귀에 대한 이식(耳識)을 멀리 여의어서 본래의 모습이 청정하니라. 또 선정에 집중하는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으로써 코에 대한 냄새와 코에 대한 비식(鼻識)을 멀리 여의어서 본래의 모습이 청정하니라. 또 선정에 집중하는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으로써 혀에 대한 맛과 혀에 대한 설식(舌識)을 멀리 여의어서 본래의 모습이 청정하니라. 또 선정에 집중하는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으로써 몸에 대한 감촉과 몸에 대한 신식(身識)을 멀리 여의어서 본래의 모습이 청정하니라. 또 선정에 집중하는 그 마음이 흩어지지 않음으로써 뜻에 대한 법과 뜻에 대한 법의 인식을 멀리 여의어서 본래의 모습이 청정하니라.
037_0010_b_12L復次善男子菩薩以專注心禪定淸云何專注於法名字不除不加無變無差別無損無益無取無捨無暗無明無分別非不分別無想無作意無一無二亦無無一二無動無思戲論無積聚亦無無積聚不思惟一切相心無所住名爲專注專注心不流散於色色識遠離故自相淸淨觀行專注心不流散於聲聲識遠離故自相淸淨專注心不流散於香香識遠離故自相淸淨專注心不流於味味識遠離故自相淸淨注心不流散於觸觸識遠離故自相淸淨專注心不流散於法法識遠離故自相淸淨
선남자여, 마치 허공에 겁화(劫火)가 일어나더라도 그 겁화에 타버리지 않고, 수재(水災)가 일어나더라도 그 수재에 휩쓸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닦는 선정도 그와 같으니라. 일체의 번뇌의 불길에 타버리지 않고 일체 외도의 물길에 빠지지 않음은 물론, 해탈의 평등함에 이르러 언제나 유정들을 안정시켜서 동요하지 않게 하느니라. 또 보살이 스스로 선정에 편히 머묾으로써 선정에 들더라도 애착의 맛을 내지 않고, 선정에서 나오더라도 다시 장애가 없이 그 모든 성인들에게 항상 고요함을 나타내니, 성인들이 힘써 성취하는 것과는 다르니라.
뿐만 아니라 보살은 항상 그 선정의 마음에 평등하게 머물게 하니, 평등하지 못한 자를 교화하기 위해 평등하게 연설하되 그 평등함과 평등하지 않음을 보지 않느니라. 평등함과 평등하지 않음 역시 다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이 걸림이 없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닦는 선정이라고 하고, 수승한 지혜의 선정이라고 하고, 인식에 집착하지 않는 선정이라고 하느니라. 이러한 선정으로 말미암아 보살이 저 허공처럼 머묾이 없는 선정을 얻게 되느니라.”
037_0010_c_04L善男子譬如虛空於劫燒時不爲所燒於水災時不爲所濕如是菩薩修習禪定不爲一切諸煩惱火之所焚燒一切解脫等持等至諸禪定水之所漂溺常無閒雜令散動有情安住禪定而於禪定不生愛味出定亦然無復障礙於諸聖人常現寂靜非聖人所勤成就之令定心住於平等不平等者說法化不見平等及不平等於等不等亦不相違心無有礙猶如虛空是故名爲修禪定者亦名勝慧修禪定者名不住識修禪定者由此定故而彼菩薩獲得如是無住禪定猶若虛空
그 때에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037_0010_c_17L爾時世尊說伽他曰

감관을 잘 단속하여 선정을 닦되
항상 유정들에게 집착함이 없이
세간을 평등하게 제도하여 이끌며
안팎으로 항상 편히 머무느니라.
037_0010_c_18L善護諸根修靜慮
常定不著於有情
等引平等度世閒
於內於外常安住

5온ㆍ12처ㆍ18계에 의지하지 않고
경계를 멀리 여의어 고요함에 머무니
지혜로운 자는 그 마음이 선정에 있고
평등과 평등 아님 없이 다 평등하니라.
037_0010_c_20L不依於蘊及處界
遠離境界住寂靜
智者其心常在禪
於等不等皆平等

법계의 높고 낮음 없이 통달하여
그 마음과 뜻이 언제나 고요하고
세간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선정에 따른 모든 변화와
037_0010_c_22L達於法界無高下
見心與意皆寂靜
爲令世閒成就故
示現諸禪及變易
037_0011_a_01L
변화 없는 선정을 나타내 보이되
자재로운 마음으로 항상 그러하고
욕계ㆍ색계ㆍ무색계에도
그와 같이 나타내느니라.
037_0011_a_01L彼無變易及禪定
自在心趣亦復然
現境無色禪定中
示現欲界亦如是

유정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일 뿐
또한 유정들에게 집착하지 않으니
그 경계가 허공이나 허깨비나 아지랑이나
물 속의 달이나 꿈이나 구름 같으니라.
037_0011_a_03L皆爲有情成就故
彼復不著於有情
境界如空如幻化
陽炎水月夢及雲

선정과 세간을 이미 알아서
마음을 돌려 지혜를 성취하니
그 마음을 덮을 이가 없기에
곧 자재로운 마음을 얻느니라.
037_0011_a_05L已知禪定及世閒
卽轉世心成智慧
不能覆蔽於心故
則得生於自在心

선정과 신통을 환히 깨우쳐
억천의 불국토를 두루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께 널리 공양하고
무명과 장애를 다 제거하느니라.
037_0011_a_07L了達禪定及神通
遊歷遍於俱胝剎
普能供養於諸佛
無知惑障悉斷除

모든 감관을 조복함으로써
분별없는 사마타(奢摩他)2)에 들어가
세간의 뜻까지 다 청정하게 하고
지혜의 힘을 얻어 항상 고요하니라.
037_0011_a_09L諸根調伏意寂然
度奢摩他無分別
世閒及意俱淸淨
常恒智力寂亦然

얻을 것 없는 평등함에 머물면
상(相)없이 두루 평등하다고 하며
평등함에 머묾이 없으면
선정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037_0011_a_11L以無所得住平等
故名平等遍無相
若於平等無所住
是故名爲得定者

“선남자여, 보살이 반야(般若)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네 가지의 법이란, 허공의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유정들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첫째이고, 지혜의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인식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둘째이며, 법계의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나ㆍ유정ㆍ수명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셋째이고, 이치의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일체 문자의 청정함에 들어가는 것이 넷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11_a_13L善男子云何菩薩修行般若波羅蜜多猶若虛空若菩薩成就四法修行般若波羅蜜多猶若虛空云何爲四所謂由虛空淸淨故入一切有情淸由智淸淨故入一切識淸淨由法界淸淨故入我有情壽者淸淨義淸淨故入一切文字淸淨是爲菩薩成就四法修行般若波羅蜜多猶若虛空
037_0011_b_01L다시 선남자여,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느니라. 이른바 그 여덟 가지 법이란, 일체의 선한 법을 부지런히 모으되 상견(常見)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첫째이고, 일체의 선하지 않은 법을 부지런히 끊되 단견(斷見)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둘째이며, 12연기(緣起)의 법을 앎으로써 무생법인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셋째이고, 4무애(無礙)를 나타냄으로써 4변재(辯才)3)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넷째이며, 4오타남(鄔馱南)4)을 잘 결정하여 분별하되 덧없음ㆍ괴로움ㆍ나 없음ㆍ고요함에 빠지지 않는 것이 다섯째이고, 업의 과(果)를 널리 설하되 그 업의 과가 없는 것에 머물러 흔들리지 않는 것이 여섯째이며, 희론(戱論)이 없는 지혜로써 항상 일체 법의 구절의 갖가지 모습을 널리 설하는 것이 일곱째이고, 일체의 청정한 법의 광명을 얻음으로써 모든 유정들에게 청정한 법을 널리 설하여 다른 법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 여덟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청정한 반야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아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037_0011_a_22L復次善男子若菩薩成就八能淨修行般若波羅蜜多云何爲所謂勤集一切善法不著常見斷一切不善法不著斷見知緣起法而不違於無生法忍現四無礙解而不著於四辯善能決擇四鄔馱南見無常無我寂靜善說業果而亦不動於無業果住無戲論智常顯說一切法句差別之相善得一切淨法光明於諸有情說於淸淨及雜染法是爲菩薩成就八法能淨修行般若波羅蜜多
037_0011_c_01L선남자여,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청정한 법의 구절인 것은 모든 악한 소견을 부수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변화가 없는 법의 구절인 것은 자체의 모습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분별이 없는 법의 구절인 것은 한정할 수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사실 그대로의 법의 구절인 것은 그 성품이 진실하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진리의 법의 구절인 것은 동요함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성실한 법의 구절인 것은 허망한 속임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지혜로운 법의 구절인 것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만족스러운 법의 구절인 것은 성스러운 공덕을 갖추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통달한 법의 구절인 것은 모든 것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으뜸가는 이치의 법의 구절인 것은 아무런 언설(言說)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평등한 법의 구절인 것은 아무런 차별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견고한 법의 구절인 것은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변동이 없는 법의 구절인 것은 의지함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금강의 법의 구절인 것은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유정을 제도하는 법의 구절인 것은 해야 할 일을 이미 성취하였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청정한 법의 구절인 것은 성품이 물듦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어둡지 않은 법의 구절인 것은 얻을 바 없는 광명이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둘이 아닌 법의 구절인 것은 아무런 차별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모든 것이 다한 법의 구절인 것은 구경(究竟)의 적멸함이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다함이 없는 법의 구절인 것은 항상 머묾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함이 없는[無爲] 법의 구절인 것은 생멸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공(空)의 법의 구절인 것은 가장 청정하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허공의 법의 구절인 것은 아무런 장애가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허공의 도(道)의 구절인 것은 그 행적(行跡)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얻을 바 없는 법의 구절인 것은 그 성품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지혜로운 법의 구절인 것은 지혜와 인식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고, 반야 바라밀이 바로 견줄 바 없는 법의 구절인 것은 대치(對治)를 여의기 때문이고, 반야 바라밀이 바로 형상이 없는 법의 구절인 것은 전도됨이 없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인 법의 구절인 것은 그 모든 괴로움에 대해 알고 벗어나기 때문이고, 반야 바라밀이 바로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인 법의 구절인 것은 모든 탐욕을 없애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증득하는 법의 구절인 것은 끝내 생멸이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를 증득하는 법의 구절인 것은 둘이 아닌 길에 들기 때문이고, 반야바라밀다가 바로 불타(佛陀)의 법의 구절인 것은 바른 깨우침을 능히 내기 때문이고, 반야 바라밀이 바로 달마(達摩)의 법의 구절인 것은 끝내 모든 욕심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법의 구절의 이치가 다 지혜의 광명으로 말미암아 나타남으로써 다른 데에 얽매이지 않고, 또 그 법의 구절을 설함에 있어서도 도무지 분별과 분별하는 것이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037_0011_b_10L善男子當知般若是淸淨句能摧惡覺故是無變異句自相淸淨是無分別句無可限齊故是如實性眞實故是諦句無動搖故是誠實句無虛誑故是聰慧句解諸縛故是滿足句聖者功德故是通達句能觀察故是第一義句無所言說故是平等句無差別故是堅牢句不可壞故是不動句無所依故是金剛句能穿鑿故是濟度句所作已辦故淸淨句性無染故是無暗句明無所得故是無二句無有建立故是盡句究竟盡滅故是無盡句無爲常住故是無爲句非生滅所攝故是空句淸淨故是虛空句無障礙故是虛空道句無行迹故是無所得句自性無是智句識無二故是無摧句對治故是無身句無轉易故是苦遍知句離遍計苦故是集斷句害貪欲是證滅句究竟無生故是修道句入無二道故是佛陁句能生正覺故是達摩句究竟離欲故善男子如是等類句義差別智慧光明不屬於他於所說法隨入少分都無分別及所分是名修行般若波羅蜜多猶若虛爾時世尊說伽他曰

밝은 지혜는 번뇌의 습기를 끊어
모든 인연의 업을 나타내 보이니
나ㆍ유정ㆍ수명이라는 견해와 상에
의지하거나 머무르지 않느니라.
037_0011_c_12L明慧能斷煩惱習
示現作業及因緣
不依我見及有情
不住壽者幷人相

나ㆍ나 없음의 둘을 함께 버림으로써
반야바라밀다의 참된 근원에 도달하니
반야는 능히 모든 존재를 벗어나고
모든 난폭한 흐름을 건너가느니라.
037_0011_c_14L於我無我二俱離
顯說般若到眞源
般若能摧於所有
般若能度於瀑流

반야는 청정한 인(因)을 일으키고
수승한 해탈을 얻어 능히 안락하며
맑은 지혜는 모든 얽매임을 여의고
5온ㆍ12처ㆍ18계를 두루 아느니라.
037_0011_c_16L般若能作淸淨因
般若能安勝解脫
淨慧能離諸纏蓋
於蘊界悉遍知

밝은 지혜로 삼계의 공함을 비추어
능히 그 모든 상(相)에서 해탈하게 하니
반야의 행을 닦아 청정하게 하면
일체의 세간에 집착함이 없느니라.
037_0011_c_18L明慧照曜三界空
於能所相皆解脫
修行般若令淸淨
一切世閒無所著

항상 반야의 행을 닦아 통달하게 되면
그 지혜의 광명이 진공(眞空)을 비추고
다섯 눈과 감관이 청정하게 되니
5취(趣)ㆍ5온(蘊)을 제거하느니라.
037_0011_c_20L通達能行般若行
常修淨慧照眞空
五眼淸淨五根明
能除五趣淨五蘊

피안에 이르러 항상 안락하게 머무르고
법계에 들어서도 그러하고
마치 큰 허공처럼 평등하여
크나큰 부처님의 지혜에 수순하느니라.
037_0011_c_22L至於彼岸常安住
入於法界亦復然
平等猶若大虛空
高廣善順於佛智
037_0012_a_01L
얻을 것과 얻을 바 없는 둘을 다 여의어
중도(中道)의 감로문(甘露門)을 보여주고
모든 성인들의 분별과
분별 없음에 수순하느니라.
037_0012_a_01L於得無得二俱離
能示中道甘露門
隨順聖人之所行
善能分別無分別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앎으로써
탐심과 애욕을 끊어 함이 없음을 나타내며
진실된 지혜의 광명을 성취함으로써
3세(世)의 가고 옴이 없음을 깨닫느니라.
037_0012_a_03L能知苦集斷貪愛
修道示滅顯無爲
成就實智慧光明
故了三世無來

모든 불국토의 평등함을 아는가 하면
모든 법의 고요함을 깨닫는 것도 그러하고
나ㆍ유정ㆍ수명이 없는 것까지도 깨우치니
이것이 곧 참된 지혜를 닦는 것이니라.
037_0012_a_05L於諸剎土皆平等
諸法寂靜等亦然
了諸有情無我
是則眞修智慧者

“선남자여, 보살이 복덕을 허공처럼 닦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그 일체 법의 성품이 허공과 같기 때문이고, 보리의 마음으로 종자를 삼으니 그 복덕의 더미를 닦음에 있어서 언제나 보리의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고, 선근(善根)을 쌓되 다 살바야(薩婆若)5)의 바다에 회향하니 그 지혜로 말미암아 허공처럼 한량없는 복덕을 얻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은 마땅히 이러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니, 저 허공이 한량이 없기에 복덕의 쌓임을 성취함도 한량이 없고, 그 뜻이 한량이 없기에 복덕을 얻음도 한량이 없느니라. 보살은 저것에 대해 응하여서 이렇게 관찰해야 하느니라.
037_0012_a_07L善男子云何菩薩修行福德猶若虛善男子一切法性猶如虛空以菩提心而爲種子所修福聚皆不捨離於菩提心積集善根而皆迴向薩婆若海由是獲得無量福德皆如虛空善男子菩薩應當發如是心虛空無量故感招福聚亦復無量何以故意無量故福亦無量菩薩於彼應作是
037_0012_b_01L선남자여, 다시 열 가지 한량이 없는 장엄을 갖추어야만 보살은 이와 같은 복덕의 쌓임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느니라. 이른바 그 열 가지란, 첫째 한량없는 몸을 장엄함은 그 상호를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고, 둘째 한량없는 말을 장엄함은 그 청정한 법륜(法輪)을 널리 설하기 때문이며, 셋째 한량없는 마음을 장엄함은 그 일체 유정들의 마음을 통달하기 때문이고, 넷째 한량없는 행의 몸을 장엄함은 그 한량없는 유정들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며, 다섯째 한량없는 행의 모습을 장엄함은 그 한량없는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고, 여섯째 한량없는 복덕으로 선정(禪定)의 정진을 장엄함은 그 한량없는 부처님의 위의를 원만히 성취하기 때문이며, 일곱째 한량없는 보리의 큰 도량을 장엄함은 그 일체의 상(相)과 행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이고, 여덟째 한량없는 보시로써 광명을 장엄함은 그 한량없는 부처님의 백호(白毫)의 모습을 원만히 성취하기 때문이며, 아홉째 한량없는 나 없음[無我]의 경지를 장엄함은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여래의 정수리의 모습을 우러러 보기 때문이고, 열째 한량없는 선정의 장엄을 끊임없이 수행함은 그 한량없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왜곡됨이 없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열 가지 한량없는 장엄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니, 보살이 이 허공과 같은 크나큰 마음을 내는 것은 곧 허공과 같은 복덕을 얻기 때문이니라.
037_0012_a_16L善男子復有十種無量莊嚴菩薩應滿如是福聚云何爲十所謂無量身莊嚴相好圓滿故無量語莊嚴說法輪皆淸淨故無量心莊嚴通達一切有情心故無量行智莊嚴成熟無量諸有情故無量行相莊嚴淨無量佛剎故無量福德禪定精進莊嚴滿無量佛威儀故無量大菩提場莊應滿一切相及行故無量無遮施會莊嚴成滿無量佛毫相故無量恭敬無我莊嚴成滿如來無見頂相故無量無閒定心莊嚴成滿無量無諂曲心順淨意故善男子是爲十種無量莊嚴菩薩若能如是發廣大心猶如虛空所獲福德如虛空故
037_0012_c_01L선남자여, 보살이 지혜를 허공과 같이 닦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은 그 일체 유정들의 마음을 두루 관찰하여서 욕심이 있고 없음을 여실히 알고, 성내는 마음이 있고 없음도 여실히 알며, 어리석은 마음이 있고 없음도 여실히 알고, 번뇌로 물든 마음이 있고 없음을 여실히 아느니라. 그러므로 스스로가 욕심을 여의어서 다시 다른 유정[補特伽羅]들을 위해 그 욕심을 조복하는 법을 널리 설하고, 스스로가 성내는 마음을 여의어서 다시 다른 유정들을 위해 그 성내는 마음을 조복하는 법을 널리 설하고, 스스로가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어서 다시 다른 유정들을 위해 그 어리석은 마음을 조복하는 법을 널리 설하고, 스스로가 번뇌로 물든 마음을 여의어서 다시 다른 유정들을 위해 그 번뇌로 물든 마음을 조복하는 법을 널리 설하느니라.
또한 그렇다고 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번뇌를 여의지 못한 자를 하찮다고 생각하거나, 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번뇌를 여읜 자를 가장 수승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은 그 차별 없는 법계(法界)의 청정한 법문에 따라 유정들의 마음을 환히 알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법계가 바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이고, 이러한 법계가 바로 번뇌의 물듦을 여의는 것이니, 이 법계가 곧 일체의 법에 서로 드나들어, 이 법계가 곧 일체의 법이고 일체의 법이 곧 법계로서 두루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나의 경계를 아는 자라야만 곧 법계를 알게 되니, 나의 경계와 법계가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다시 말하면, 나의 경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법계가 청정하고, 이러한 일체의 법계가 청정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느니라. 또 일체의 상(相)이 있고 상이 없음을 여의기 때문에 의지하거나 걸림이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으니, 이 걸림 없는 지혜로 말미암아 일체의 법을 깨우쳐서 아무런 장애가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지혜를 허공처럼 닦는 것이니라.
037_0012_b_07L善男子云何菩薩修行智慧猶如虛若菩薩遍緣一切有情有欲心欲心如實知有瞋心無瞋心如實知有癡心無癡心如實知有雜染心雜染心如實知自旣離欲復能爲他補特伽羅說調伏欲法自旣離瞋能爲他補特伽羅說調伏瞋法自旣離癡復能爲他補特伽羅說調伏癡自離雜染復能爲他說調伏一切諸煩惱法不見有貪癡煩惱者爲下劣心離貪癡煩惱者爲勝上心何以故以彼菩薩於不二法界淸淨法門以證知故如是法界卽貪如是法界卽離染界是故法界與一切法互相涉入法界卽法法卽法無所不遍若知我界卽知法界我界無有二故所以者何我淸淨故法界淸淨如是一切法淸淨故顯容受亦無容受離於一切相無相無所安立猶如虛空名無礙智無礙智了一切法無所障礙是爲菩薩修行智慧猶如虛空
선남자여,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印可)하신 부처님을 수념(隨念)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번뇌가 없는 계율을 염(念)하는 것은 이 계율로써 부처님을 수념하기 때문이고, 일체의 법에 평등하고도 산란하지 않은 선정을 염하는 것은 이 선정으로써 부처님을 수념하기 때문이고, 일체법에 분별함이 없는 지혜를 염하는 것은 이 지혜로써 부처님을 수념하기 때문이고, 두 마음에 머물지 않는 해탈을 염하는 것은 이 해탈로써 부처님을 수념하기 때문이고, 일체의 지혜에 집착하지 않는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염하는 것은 이 해탈지견으로써 부처님을 수념하기 때문이고, 3세(世)에 평등한 흔들리지 않는 힘을 염하는 것은 이 흔들리지 않는 힘으로써 부처님을 수념하기 때문이고, 일체의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는 그 두려움 없는 힘을 염하는 것은 이 두려움 없는 힘으로써 부처님을 수념하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마땅히 부처님을 수념하는 것은, 그 일체의 공덕이 다 부처님을 수념함으로써 성취되고 법계의 평등함과 분별없는 지혜를 얻기 때문이니라.
037_0012_c_06L善男子云何菩薩佛所印可佛隨念所謂念無漏戒是戒佛隨念一切法平等不散是定佛隨念一切法無所分別是慧佛隨念不住於二心是解脫佛隨念不著一切智是解脫知見佛隨念三世平等不動是力佛隨念不住一切漏是無所畏佛隨念如是當念佛身所有一切功德皆是佛隨法界平等無所分別
또 부처님을 수념하는 것에 있어서, 부처님의 모든 색상(色相)을 염하는 것은 그 성품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색상의 성품을 청정하게 보기에 상념 없이 지혜에 이르게 되는 것이고, 내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의 성품을 청정하게 보기에 상념 없이 지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라. 12처(處)와 18계(界)도 또한 다 그러하니, 이른바 일체 법의 성품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지혜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니라. 곧 가장 수승한 지혜로써 일체의 일을 이루어내고 일체의 얽매인 소견에서 벗어나 아무런 더러움과 흐름이 없느니라.
037_0012_c_15L復次佛隨念念佛所有色自性淸淨由見色自性淸淨故無念智隨至乃至受見識自性淸淨故無念智隨至如是十二處十八界亦復如是由一切法自性智故最殊勝慧一切作意遠離一切見纏遠離如是知色無垢濁無垢濁是謂佛所印可佛隨念
037_0013_a_01L 또 부처님을 수념하는 것에 있어서, 부처님께서 걸으시고 머무시고 앉으시고 누우시는 그 일체의 위의를 염하되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그 고요한 이치를 염하되 역시 집착하거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상념도 없고 지음도 없고, 뜻도 아니고 색상도 아니고 법도 아니고 법이 아닌 것도 아니어서 일체의 상념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부처님을 수념하는 것이니라.
037_0012_c_22L復次佛隨念謂念於佛行臥一切威不生執著於佛說法於佛寂嘿不生執著亦不執著念與非念所以者佛無念無作意非色非相非法非法由一切相緣慮不現行故善男是名佛所印可佛隨念
선남자여, 또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법을 수념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욕심을 여읜 법을 염하는 것은 어떤 법에도 물듦이 없기 때문에 역시 다른 법을 수념함이 없고, 아뢰야식(阿賴耶識)이 없는 법을 염하는 것은 어떤 법에도 몰입함이 없기 때문에 역시 다른 법을 수념함이 없고, 고요한 법을 염하는 것은 어떤 법에도 마음과 의식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역시 다른 법을 수념함이 없고, 상(相)이 없는 법을 염하는 것은 어떤 법에도 상으로 말미암아 의식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역시 다른 법을 수념함이 없고, 함이 없는[無爲] 법을 염하는 것은 어떤 법에도 시설(施設)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역시 다른 법을 수념함이 없느니라.
037_0013_a_05L善男子云何菩薩佛所印可法隨念法名離欲於法無染故亦無法隨念法名無阿賴耶於法無隱沒故亦無法隨念法名寂靜以無心識染著亦無法隨念法名無相於法無隨相識故亦無法隨念法名無爲於法無施設住故亦無法隨念
다시 말하건대, 법을 수념하는 것이란, 그 법을 끊임없이 수념하되, 법에 대한 상념을 일으키지 않아야만 곧 바른 지위에 들어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할 수 있느니라. 또 일체의 법이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에 어떤 법을 증득할 것조차 없음을 관찰해야만 곧 올바른 보리의 지위에 나아갈 수 있느니라. 곧 이것이 일체의 유학(有學)ㆍ무학(無學)이나 연각(緣覺)ㆍ보살(菩薩)들이 증득한 해탈의 법이고 그 법 또한 본래의 성품이 없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법을 수념하는 것이니라.
037_0013_a_12L復次法隨若念無閒斷不起法想卽入正位證無生忍觀一切法本來不生無法可證卽是一切學無學緣覺菩薩等菩提所證之處如是一切聖所證解脫法亦無自性是爲菩薩佛所印可法隨念
선남자여, 또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스님들[僧伽]을 수념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함이 없는 스님들이란, 그 모든 일에 조작이 없으므로 몸ㆍ입ㆍ뜻의 업에 따라 나타내는 행이 없고 다만 시설(施設)로 인하여 행을 나타낼 뿐이니, 이 함이 없는 스님들은 모든 시설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온갖 언론(言論)을 다 초월하기 때문이니라.
037_0013_a_18L善男子云何菩薩佛所印可僧伽隨念僧名無爲彼不可以造作而作而無現行身意業但是施設而有所行無爲僧離施設住超諸言論善男子是爲佛所印可僧伽隨念
037_0013_b_01L 선남자여,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스님들을 수념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또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버림[捨]을 수념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버림이란, 일체의 의지하는 자구(資具)을 다 버리고 그 법까지 버림으로써 더 버릴 것이 없는 것을 가장 수승한 버림이라고 하느니라. 그 일체의 법에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고 구하는 것도 없으며,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있지도 없지도 않고, 심행(心行)과 시설(施設)이 없으므로, 인식에 머물지도 않고 마음에 머물지도 않아 그 일체의 머무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를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버림이라고 하느니라.
다시 말하건대, 보살이 그 버림을 수념하는 것이란, 모든 수행을 평등한 일체지(一切智)의 지혜에 회향함으로써 보리를 깨치기 위해 수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일체의 지혜에 회향하는 것이 저 보리를 수념하는 성품과 둘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법과 지혜는 서로 상응하니, 이것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버림을 수념하는 것이니라.
037_0013_a_23L善男子何菩薩佛所印可捨隨念所謂捨於一切所依資具及捨於法亦無所捨此名最勝捨於一切法無取無捨亦無所求無有緣慮非無緣慮彼無心行亦無施設亦不住於識不生於心以無住心故名爲佛所印可捨隨念菩薩捨隨念者以所修行迴向平等薩婆若智不見菩提爲所隨念何以故以薩婆若與彼隨念性無二善男子如是法智相應是名菩薩佛所印可捨隨念
선남자여, 또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계율을 수념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함이 없는 계율이란, 번뇌와 장애가 없음으로써 공용(功用)6)을 영원히 그치고 일체의 금계(禁戒)를 성취하는 것이며, 인식과 형상이 없음으로써 집착을 영원히 벗어나 삼마지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최승의 계율이니, 청정한 지혜의 근본을 내고 모든 희론(戱論)과 해탈의 상(相)까지도 여의어서 두 가지 분별하는 상이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색상이 없음을 찬탄하여 온갖 번뇌와 시설의 집착을 없애고, 안락하게 수행하여 일체의 대립과 분별이 없느니라. 보살은 항상 이와 같이 계율을 수행하여 더러움에 물듦이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계율을 수념하는 것이니라.
037_0013_b_11L善男子云何菩薩佛所印可戒隨念戒名無爲無漏永息功用成就一切禁戒無識相亦不住心作三摩地最勝所依亦是發生淨慧根本離於戲論及解脫亦無二種分別之相智者所讚無有現色能息煩惱亦無施設安樂隨行亦無對治一切分別菩薩常於如是類戒無有垢濁是名菩薩佛所印可戒隨念
선남자여, 또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하늘을 수념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하늘에는 두 하늘이 있어 이를 수념하니, 첫째 5정거천(淨居天)을 수념하는 것은 성자(聖者)들이 머물기 때문이고, 둘째 사다천(史多天)을 수념하는 것은 보살이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지위에 이르러 저 하늘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니라.
037_0013_b_20L善男子云何菩薩佛所印可天隨念應隨念二種天一者五淨居天有聖者故二者睹史多天以一生補處菩薩在彼天故
037_0013_c_01L 다시 일생보처의 지위에 이르러 하늘의 궁전에 머무를 수 있는 보살은 열 가지 으뜸이 되는 법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바 열 가지란, 일체의 바라밀에 있어서 반야바라밀다를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첫째이고, 일체의 신통에 있어서 물러나지 않는 신통을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둘째이며, 일체의 지위에 있어서 관정(灌頂)의 지위를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셋째이고, 일체의 보리의 법에 있어서 물러나지 않는 바른 소견으로 수승한 삼마지(三摩地)에 드는 것을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넷째이며, 일체의 걸림이 없는 견해에 있어서 옳은 변재의 걸림이 없는 것을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다섯째이고, 일체의 지혜에 있어서 집착과 장애가 없는 지혜를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여섯째이며, 일체의 근기에 있어서 상ㆍ중ㆍ하의 차별을 아는 걸림이 없는 지혜로운 근기를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일곱째이고, 일체의 힘에 있어서 밝게 지혜에 들어가는 두려움 없는 힘을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여덟째이며, 일체의 눈에 있어서 부처님의 눈으로 모든 법을 마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분명히 관찰하는 것을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아홉째이고, 일체 보리의 도량에 앉아서 정각(正覺)을 성취하되 한 찰나도 그 마음을 바로 지혜에 상응하게 하는 것을 그 으뜸으로 삼는 것이 열째이니라. 보살이 이 열 가지 으뜸이 되는 법을 수념해야만 그 어떤 번뇌에도 얽매이지 않고 모든 희론(戱論)을 벗어날 수 있으며 번뇌의 더러움이 없게 되니, 마땅히 보살은 이와 같이 저 하늘을 수념해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은 바로 보살이 부처님께서 인가하신 하늘을 수념하는 것이니라.
037_0013_c_01L復次此一生補處菩薩住彼天宮有十種頂法何者爲十一切波羅蜜中般若波羅蜜多而爲其頂一切神通之中不退神通而爲其頂一切地中唯灌頂地而爲其一切菩提分法之中不退正見勝三摩地而爲其頂一切無礙解中辯無礙而爲其頂一切智中無著無礙智而爲其頂一切根中知上根無礙智而爲其頂一切力無畏中照耀隨入智而爲其頂一切眼中眼觀察一切佛法了如掌內而爲其坐菩提場中當成正覺一剎那心相應正慧而爲其頂是爲十種頂法之相應隨念之若菩薩得是念已則不亂隨眠纏不亂作意戲論亂於如是類念無垢濁應當如是隨念彼天善男子是名菩薩佛所印可天隨念
037_0014_a_01L 선남자여, 또한 보살이 모든 행을 열반처럼 평등하게 수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열반이란 고요한 것으로서, 일체의 번뇌를 다 제거하고 일체의 느낌을 없애며 일체의 인연을 여의어 5온(蘊)ㆍ12처(處)ㆍ18계(界)를 벗어나는 것이니라. 저 보살이 열반의 평등함을 얻는 것은 바로 그의 본래의 원력으로써 큰 자비심에 머물고 방편의 지혜로써 여래의 가호를 받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지혜를 잘 닦고 청정이 하여 오묘한 삼마지에 머문다면, 그는 곧 유정들의 생사 번뇌가 다 허깨비와 같은 것임을 알아, 몸을 받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사의 얽매임을 끊어서 더러워지거나 물드는 일이 없느니라. 이것을 일컬어 열반이라고 하느니라. 나아가서는 이 열반의 자유를 얻음으로써 생사가 있지도 없지도 않는 동시에 항상 열반에 놓여 있어 생사를 끊지 않고서도 유정들을 끊임없이 성숙시킬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이른 바 대비와 방편의 두 지혜문(知慧門)이니라. 보살이 이 지혜문에 머문다면 곧 열반의 평등함을 얻어 보살의 행을 행할 수 있느니라.
037_0013_c_19L善男子云何菩薩所行諸行等於涅涅槃名寂靜悉除一切煩惱滅一切受離一切所緣出蘊卽彼正士獲得涅槃平等以本願力遊戲大方便智慧得如來加持故善修智慧意樂淸淨住於如幻妙三摩地知有情煩惱生死皆如幻化示現受由此能斷諸生死縛無所染污曰涅槃旣得自在不生而生無所不生亦無所生常在涅槃不斷生死成熟有情無有休息善男子此名菩薩大悲方便雙智慧門若菩薩住此門者獲得涅槃平等行菩薩行
037_0014_b_01L선남자여, 또한 보살이 일체 유정들의 행의 상을 잘 아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8만 4천에 달하는 그 행의 근본이 되는 오타남(鄔馱南)의 구절과 유정들의 행의 상을 잘 아는 것이니라. 그러나 이러한 유정들의 행은 너무나 한량이 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에, 부처님만이 아시고 저 성문ㆍ연각ㆍ보살들로서는 알 수 없느니라. 보살은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과 자신의 지혜의 힘에 힘입어 일체 유정들의 행의 상을 따라 알게 되느니라. 이른 바 일체의 지혜를 갖추어 조복시킬 수 없는 상을 제외하고는, 유정들 본래의 성품의 상ㆍ행의 상ㆍ인연의 상ㆍ지음의 상ㆍ화합의 상ㆍ갖가지 욕심을 여읜 상ㆍ탐욕의 상ㆍ성냄의 상ㆍ어리석음의 상ㆍ지옥의 상ㆍ축생의 상ㆍ아귀의 상ㆍ하늘의 상ㆍ사람의 상ㆍ성문 니야마(尼夜摩)의 상ㆍ연각 니야마의 상ㆍ부처 니야마의 상ㆍ원인(遠因)의 상ㆍ중인(中因)의 상ㆍ근인(近因)의 상 등, 이러한 유정들의 갖가지 상을 다 여실히 알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바로 보살이 일체 유정들의 행의 상을 잘 아는 것이니라.”
037_0014_a_09L善男子云何菩薩善知一切有情行善男子菩薩有八萬四千行是於根本鄔馱南句有情行相無量差別不可思議不可言說唯佛能知非諸聲聞緣覺所了亦非菩薩之所能了彼菩薩蒙佛加持及自智力隨知一切有情行相所謂如是自性相如是行相如是因相如是緣相如是作相如是和合相或種種相離相欲相癡相等分相地獄相傍生相琰魔界相天相人相或聲聞尼夜摩相緣覺尼夜摩相或佛尼夜摩相或遠因相中因相近因相如是有情一切行相如實知之除一切智不被摧伏善男子是爲菩薩善知一切有情行相
大集虛空藏菩薩所問經 卷第二
丙午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의ㆍ식ㆍ주 세 가지에 탐욕과 집착을 버리는 수행을 말한다.
  2. 2)지(止)ㆍ적정(寂靜) 등을 뜻하는 말임.
  3. 3)네 종류의 걸림없는 변재로 법(法)ㆍ의(義)ㆍ사(辭)ㆍ낙설(樂說)무애가 있다.
  4. 4)부처님이 제자의 물음을 기다리지 않고 여실히 설하시는 경문을 말한다.
  5. 5)일체를 아는 지혜, 즉 일체지(一切智)를 말하는 것임.
  6. 6)신(身)ㆍ구(口)ㆍ의(意)로 짓는 작용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