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7_1161_a_01L
자재왕보살경(自在王菩薩經) 상권
007_1161_a_01L自在王菩薩經卷上


요진(姚秦) 삼장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이진영 번역
007_1161_a_02L姚秦三藏鳩摩羅什譯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007_1161_a_03L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성(舍衛城) 기타(祇陀)숲에 큰 비구들 2만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로는 미륵보살(彌勒菩薩)ㆍ득대세보살(得大勢菩薩)ㆍ사자의보살(獅子意菩薩)ㆍ사자상보살(獅子相菩薩)ㆍ대상보살(大相菩薩) 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한 생만 채우면 부처가 되는 보살[一生補處]들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상수(上首) 제자 만 명과 함께 계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대중에게 공경히 에워싸여 대승(大乘)을 닦겠다고 마음먹은 중생을 위하여 경전을 연설하셨다.
007_1161_a_04L一時佛在舍衛城祇陁樹林給孤獨園與大比丘衆二萬人俱菩薩摩訶薩皆是一生補處其名曰彌勒菩薩得大勢菩薩師子意菩薩師子相菩薩大相菩薩如是上首一萬人俱爾時世尊大衆圍繞恭敬發大乘意衆生演說經典
그때 대중 가운데 자재왕(自在王)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그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는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다고 허락하신다면 말씀드리겠나이다.”
007_1161_a_10L爾時衆中有菩薩名自在王從坐而起偏袒右右膝著地合掌白佛言尊欲有所問若蒙聽許乃敢發言
부처님께서 자재왕에게 말씀하셨다.
“물을 것이 있거든 부처는 다 들어줄 것이니, 마음대로 질문하여라. 너를 위해 해설하여 이해시켜주겠다.”
007_1161_a_13L佛告自在諸有所問佛無不聽隨意所問爲汝說令汝得解
들어 주시겠다는 허락을 받고 자재왕보살은 한량없이 기뻐하며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대승법에서 자재행(自在行)을 얻어 남을 위해 이 법을 연설하는 것이라 하며, 무엇을 자재한 힘으로 모든 마군과 증상만(增上慢)1)에 빠진 자와 모든 외도(外道)와 어떤 견해를 내서 집착하는 자를 조복시켜 그들이 대승에 머물러 큰 원(願)을 구족하고 계행(戒行)을 성취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는 것이라 하나이까?”
007_1161_a_15L自在王菩薩得蒙聽許喜悅無量白佛言世尊云何菩薩摩訶薩於大乘法中得自在行能爲人演說此法以自在力摧伏諸魔增上慢者及諸外道有所見得諸貪著者令住大乘具足大願成就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7_1161_b_02L부처님께서 자재왕보살에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네가 부처님께 이 뜻을 물었구나. 너를 위하여 설하겠으니, 한마음으로 자세히 듣고 모든 보살이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에 머물러 큰 원을 구족하고 계행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는가를 잘 생각하도록 하여라.”
자재왕보살은 가르침을 받들었다.
007_1161_a_21L佛告自在王菩薩善哉善哉汝能問佛是義當爲汝說一心諦聽善思念之諸菩薩云何能令衆生得住大乘具足大願成就戒行得阿耨多羅三藐三菩自在王菩薩受教而聽
부처님께서 자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에게는 네 가지 자재법(自在法)이 있는데, 이 법으로 자재행(自在行)을 하여 모든 중생을 대승에 머물게 한다.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첫째는 계자재(戒自在), 둘째는 신통자재(神通自在), 셋째는 지자재(智自在), 넷째는 혜자재(慧自在)이다.
007_1161_b_05L佛告自在菩薩摩訶薩有四自在法以是法能自在行令諸衆生得住大乘等四一者戒自在二者神通自在者智自在四者慧自在
계자재(戒自在)라 하는 것은 보살마하살이 구족계(具足戒)를 실천하여 파괴하지도 않으며, 빼먹지도 않으며, 어긋나지도 않으며, 흐리게 하지도 않으며, 얻었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후회하지도 않으며, 꾸짖지도 않으며, 뜨거운 번뇌를 두지도 않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칭찬한 바를 도에 따라서 순종하는 계(戒)와 중생을 가르치는 계와 법을 보호하는 계와 기뻐하는 계와 사는 곳에 의지하지 않은 계와 일정하게 머무는 계와 지혜를 따르는 계와 깊은 법을 이해하고 믿는 계와 신통에서 물러나지 않는 계와 비어 모양 없고 지음 없는 계와 멸(滅)하여 고요한 계와 부처님 법을 포섭하는 계와 부처님 법을 설하는 계와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는 계와 자비로 보호하는 계와 대비(大悲)에 근본하는 계와 믿음이 깨끗한 계와 위의를 흐뜨리지 않는 계와 두타(頭陀:청정한 행)를 미세하게 실천하는 계와 복 밭을 따르는 계와 끝까지 깨끗한 계와 부처의 종자를 끊지 않는 계와 법의 종자를 보호하는 계와 성현(聖賢)의 무리를 보여주는 계와 보리의 마음에 편안히 머무는 계와 6바라밀(波羅蜜)을 돕는 계와 4념처(念處)2)를 닦는 계와 4정근(正勤)3)ㆍ4여의족(如意足)4)ㆍ5근(根)5)ㆍ5력(力)ㆍ7보리분(菩提分)6)ㆍ8성도분(聖道分)을 닦는 계와 보리법을 돕는 모든 것을 내는 계이다.
007_1161_b_09L戒自在者薩摩訶薩行具足戒不毀不缺不穿不濁不有所得不悔不訶不有熱惱智所稱讚隨順道戒教衆生戒護法歡悅戒不依生處戒住定戒隨慧信解深法戒不退神通戒空無相無作戒寂滅戒攝佛法戒說佛法戒不捨一切衆生戒慈護戒大悲根本信淨戒不轉儀式戒頭陁細行戒隨順福田戒畢竟淨戒不斷佛種戒護法種戒示聖衆戒安住菩提心戒助六波羅蜜戒修四念處戒修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菩提分八聖道分戒能生一切助菩提法戒
007_1161_c_02L자재왕아, 보살마하살이 이런 계를 지니면 계가 갖추어져서 원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된다. 보살이 이와 같이 깨끗한 계를 지닌다면 삼천대천(三千大天)세계의 겁(劫)이 다하여 불이 탈 때 불을 끄고자하여 ‘불이여, 꺼져라’ 하면 불이 곧 꺼진다.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물로 변화시키고자 하거나,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많은 꽃비가 내리게 하고자 하거나,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보배로 만들고자 하거나, 갠지스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세계의 수미산을 합하여 하나의 산을 만들고자 하거나, 갠지스강의 모래와 같이 많은 세계의 큰 바다를 합하여 하나의 바다가 되게 하고자 한다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계를 지닌 힘 때문에 원하는 바를 모두 얻으며, 부리는 신통력이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은 계에 확실히 자리잡으면 이와 같이 자재한 힘을 얻나니, 깨끗한 계를 지니기 때문에 결국은 깊은 원을 모두 이루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007_1161_b_22L在王若菩薩摩訶薩能持如是戒戒則具足所願皆得若菩薩持如是淨戒三千大千世界劫盡燒時願欲滅言火當滅火卽爲滅欲令三千大千世界皆變爲水欲令三千大千世界普雨衆華欲令三千大千世界皆爲珍寶欲令如恒河沙世界諸須彌山合爲一山欲令如恒河沙世界大海合爲一海卽皆如意無不成者戒力故所願皆得所爲神力無不稱菩薩安立如是戒中得如是自在持淨戒故深願畢成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자재왕아, 지난 과거세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나서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그 이름이 정명광왕(淨明光王) 여래(如來)ㆍ응(應)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였다.
그때 금강제(金剛齊)라는 보살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계를 지니는 힘을 얻어 깨끗한 계를 실천했기 때문에 항상 한가한 곳 수풀 사이를 거닐었다. 부처님 법을 갖추고자 했기 때문에 올바른 법을 익히고 닦았으며 올바른 법을 닦아 마치고는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007_1161_c_12L自在王乃往古世過無量阿僧祇劫有佛名淨明光王如來正遍知明行足善逝世閒解無上調御丈夫天人師世尊爾時有菩薩比丘名金剛齊得持戒力行淨戒故常在閑處林中經行欲具佛法故修習正行修正行已作如是念
007_1162_a_02L‘모든 법을 얻지 않는 것이 계이다. 모든 법을 탐하지 않는 것이 계이며, 모든 번뇌를 멸한 것이 계이며, 거울 속 형상과 같이 몸을 관찰하는 것이 계이며, 모든 말을 메아리 같이 여기는 것이 계이며, 마음의 모양을 꼭두각시 같다고 관찰하는 것이 계이다.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이 둘도 없으며 다름도 없다고 아는 것이 계이다. 탐욕을 없애기 위해 몸이 깨끗하지 않다고 관찰하는 것이 계이며, 성냄을 없애기 위해 자비로운 마음을 내는 것이 계이며, 지혜로 어리석은 그물을 파괴하는 것이 계이며, 탐욕의 근본과 성냄의 근본을 찾을 수 없다고 아는 것이 계이다. 법에 대해 관찰과 표상과 분별이 없는 것이 계이다.
007_1161_c_18L得一切法是則名戒不貪一切法是則名戒滅一切結是則名戒觀身如鏡中像是則名戒於諸言辭如呼聲響是則名戒觀心相如幻是則名戒善不善法無二無別是則名戒爲貪欲故觀身不淨是則名戒爲瞋恚故生於慈心是則名戒以智慧破癡網是則名戒不得貪恚本是則名戒法無觀無想分別是則名戒
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어느 만큼의 수명을 산다는 생각ㆍ남이라는 생각ㆍ항상하다는 생각ㆍ없어진다는 생각 등이 없는 것이 계이다. 모든 법을 조작하지도 않고 일으키지도 않는 것이 계이다. 마음에 두려운 바가 없는 것이 계이며, 삼계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 계이다. 남이 없는[無生] 법을 믿는 것이 계이며, 남이 없는 법에 대해 믿음과 이해를 내서 확실히 아는 것이 계이다. 물질적인 이익을 탐내지 않는 것이 계이다. 모든 법이 공하다는 사실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든 상(相)을 파괴하거나 떠나지도 않으며 모든 원(願)을 없애지 않는 것이 계이다.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이 계이다.
007_1162_a_05L無我見無衆生見無壽者見無人見無常見無滅見是則名戒於一切法不作不起是則名戒心無所畏是則名戒依三界是則名戒信無生法是則名信解無生法忍是則名戒不貪利養是則名戒於諸法空心不驚畏離諸相蠲除諸願是則名戒戒無所念是則名戒
자기를 높이고 상대방을 경멸하지 않는 것이 계이다. 6입(入:六根)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계이며, 다섯 가지 욕심[五欲]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계이다. 모든 음(陰)이 법의 음[法陰]과 같은 줄을 확실히 아는 것이 계이며, 모든 성품이 법의 성품과 같은 줄 확실히 아는 것이 계이다. 즐거워서 말다툼 없는 것이 계이며, 착한 법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실천하는 것이 계이다. 모든 법은 반드시 적멸(寂滅)하다는 것을 알고, 그런 줄을 몸소 증득하는 것이 계이다.’
007_1162_a_13L不自高不輕彼是則名不著諸入是則名戒不起五欲是則名戒了知諸陰同於法陰是則名了知諸性同於法性是則名戒無諍訟是則名戒於善法中不捨勤行是則名戒知一切法必寂滅相而以身證是則名戒
자재왕아, 금강제비구는 이와 같이 계에 안주하여 거룩한 법을 익히고 닦아 올바른 생각에서 전도된 적이 없었다.
007_1162_a_19L自在王金剛齊比丘如是安住於戒修習聖法正念無
007_1162_b_02L그때 장애(障碍)라는 마군이 있었다. 그는 금강제비구가 이와 같이 계를 지니고 성인의 법을 익히고 닦아 올바른 생각에서 전도됨이 없는 것을 보고 8만 4천 마군과 그 권속과 함께 갑옷을 입고 무기를 지니고 그의 처소에 이르러 자신들의 몸을 숨기고 이 비구의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관찰하였다. 이렇게 천년토록 따라서 쫓아 다녔으나 한 생각, 한 마음도 흩어져 번뇌로 파괴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자 마군과 권속들은 그들의 마군의 몸을 나타내어 칼과 창을 잡고 비구의 앞에서 공포를 주려 하였는데, 비구가 마군의 무리들이 무기를 가지고 공포를 주려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이 서원 하였다.
007_1162_a_21L時有魔子名曰障㝵見金剛齊比丘如是持戒修習聖法正念無倒八萬四千諸魔及其眷屬貫鉀持兵來到其所自隱其身觀是比丘心在何行千歲隨逐乃至不見一念心散可得惱壞於是魔子及與眷屬現其魔身執持刀鉾在比丘前欲以相怖比丘見魔大衆兵仗欲以相怖作是誓言
‘만일 나의 계가 깨끗하여 성인의 법을 닦아 바른 행이 전도되지 않았다면 이 인연으로 마군 무리의 무기는 모두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색이 뒤섞인 연꽃으로 변하며, 수만나화(須曼那華)와 파리사화(波犁師華)와 기이하고 묘하고 이름난 꽃으로 영락(瓔珞)이 되며, 이때 마군은 그 권속과 함께 내몸 같은 형색과 거동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007_1162_b_06L若我戒淨習於聖法正行不倒以是緣故魔衆兵仗皆當變成靑黃赤白雜色蓮華須曼那華婆梨師華奇妙名華以爲瓔珞是時魔子與其眷屬形色儀法皆如我身
자재왕아, 금강제비구가 이 말을 하자 마군 무리의 무기가 모두 미묘한 빛깔의 꽃으로 변하여 특이하고 묘하며 깨끗한 향기를 머금은 영락(瓔珞)이 되었으며, 마군들 모두 자기 몸이 저절로 이 비구와 같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물들인 가사를 입은 것을 보았다. 마군은 비구가 큰 신통력 나타내는 것을 보고 이제껏 없었던 일이라 괴이하게 여겨 희유하다는 마음을 내어 권속과 함께 그의 발에 예를 올리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그대는 무슨 법을 얻었기에 이런 힘이 있습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이 힘은 얻어지는 일이 있는[有所得] 데서 난 것도 아니며, 몸과 입과 뜻이나 모든 법을 의지해서 난 것도 아니다. 이 힘은 모양에 머물기 때문에 난 것이 아니고 머무는 곳이 없기 때문에 얻은 것이다.’
마군은 말하였다.
‘비구여, 내가 천년토록 그대 마음이 가는 곳을 찾았으나 그 곳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007_1162_b_10L自在王剛齊比丘說是語時魔衆兵仗卽皆變成妙色之華殊妙香潔以爲瓔珞一切諸魔皆自見身如此比丘剃除鬚髮著染袈裟魔子見比丘現大神怪未曾有發希有心與其眷屬俱禮其足作如是言汝得何法乃有是比丘言此力不從有所得生亦不依於身口意及一切法生是力不以住相故生以無住處故魔言比丘於千歲求汝心行不能知處
비구가 말하였다.
‘그대가 갠지스강 모래와 같은 겁(劫)토록 찾았어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않으며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요술로 만들어낸 허깨비의 마음이 가는 곳을 알 수 있는가?’
마군이 대답했다.
‘요술로 만들어낸 허깨비는 마음조차 있지 않은데 하물며 마음가는 곳이 있겠습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은 공하여 요술로 만들어낸 허깨비 같다 하셨는데, 이런 중에는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는 것이다.’
007_1162_b_20L比丘言汝若以恒河沙劫求之亦不能得以故是心不在內不在外不在中寧能得幻化人心所行處不答言化之人尚無有心況心行處比丘言如來說一切法空皆如幻化此中亦無心無思
007_1162_c_02L마군이 말하였다.
‘만일 마음도 생각도 존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오고 감이 있고 말이 있습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요술로 만들어낸 허깨비 사람이 가고 오고 말하듯, 내가 가고 오고 말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007_1162_c_02L魔言若不得心不得思何有來去有言說比丘言幻人去來言說我去來言說亦如是
마군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렇게 정진수행하여 계에 머물고 성인의 법을 닦아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십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나아가도 나아가는 일이 없다.’
007_1162_c_05L魔言汝以是進行住於持戒修習聖法爲何所比丘言趣無所趣
마군이 말하였다.
‘무엇을 나아가도 나아가는 일이 없다 합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이 가운데는 과거에 간 일도 없으며, 현재 가는 일도 없으며, 미래에 갈 일도 없는 것이다. 나아갈 바가 없는 것이 곧 지음 없는 해탈의 문이다. 그대는 내게, 이렇게 정진 수행하여 계에 머물고 성인의 법을 닦아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색(色)에 나아가 나지도 않으며, 색에 나아가 없어지지도 않으며, 색에 나아가 머물지도 않는다. 또한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 나아가 없어지지도 않으며 수ㆍ상ㆍ행ㆍ식에 나아가 머물지도 않는다. 모든 법에 나아가 나지도 않으며 나아가 없어지지도 않으며 나아가 머물지도 않으니 이것을 올바르게 나아간다[正趣]고 한다.
마군이여, 올바르게 나아간다는 것은 색을 취하지도 않으며 수ㆍ상ㆍ행ㆍ식을 취하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보는 바 없는 법이 바로 내가 나아가는 것이며, 내가 나아가는 것이 바로 모든 성인께서 나아가는 것이다.’
007_1162_c_07L魔言云何趣無所趣比丘言是中無先去無今去當去無所趣者卽是無作脫門汝問以是進行安於戒修習聖法何所趣我不趣色生不趣色滅不趣色住不趣受想行識滅不趣受想行識住於一切法亦不趣生亦不趣滅亦不趣住是名正趣魔子正趣者名不取不取受想行識無所見法是我所我所趣者不取色不取受想行識我所趣者是諸聖所趣
마군이 말하였다.
‘비구여, 이런 법에 어떻게 나아감이 있습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모든 범부의 법과 모든 부처님의 법은 한 법이여서 둘도 없고 다름도 없다. 배우는 지위에 있는 자의 법과 아라한(阿羅漢)의 법과 벽지불(辟支佛)의 법과 부처님 법이 한가지로 이 모든 법에 둘도 없고 다름도 없다. 과거법과 미래법과 현재법이 한 가지로 한 법이어서 둘도 없고 다름도 없으니 나옴도 없고 남도 없는 평등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모든 법이 평등한 모양을 버리지 않는 것은 이 법을 중생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나아가는 것을 바르게 나아간다고 한다.
007_1162_c_17L魔言比丘是法中云何有趣比丘言諸凡夫法及諸佛法同是一法無二無別學法阿羅漢法辟支佛法佛法同是一切法無二無別若過去法若未來法現在法同是一法無二無別無出無生以等相故不捨如是諸法等相者欲以是法示衆生故而爲說法如是趣者名爲正趣
007_1163_a_02L마군이여, 바르게 나아가는 자는 욕계(欲界)에 나아가지 않으며, 색계(色界)에 나아가지 않으며, 무색계(無色界)에 나아가지 않는다. 평등한 법에 머무는 자는 모든 법의 실제 모습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물러나지도 않으니 이것을 두고 바르게 나아간다고 한다.
여여(如如)하게 나아가듯 모든 법에도 이렇게 나아가며, 법의 성품에 나아가듯 모든 법에도 이렇게 나아가며, 실제(實際)에 나아가듯 모든 법을 이렇게 구해야 한다. 이와 같이 나아가는 자는 모든 나아감에 염두에 두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니 이것을 두고 바르게 나아간다고 한다.’
007_1162_c_25L魔子夫正趣者不趣欲界不趣色界不趣無色界住等法於法實相不動不退是名正趣如趣一切法趣亦如是如法性趣切法趣亦如是如實際趣一切法趣亦如是求如是趣者亦不念不著諸是名正趣
마군이 금강제비구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 바른 행동으로 무슨 법을 얻고자 하십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이와 같은 바른 행으로 모든 법을 분별하는 데서 떠나며, 생각 없고 분별 없는 이것 때문에 완전한 평등을 얻는다. 그대는 내게 무슨 법을 얻느냐고 물었는데, 이 바른 실천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으며,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여기는 증상만(增上慢)도 없다. 이 바른 행으로는 아무 법도 얻을 것이 없으니, 바른 행이란 다름 아닌 행이 없다는 뜻이다.’
007_1163_a_08L魔子語金剛齊比丘以是正行爲得何法答言我以是正行得離諸法分別以是無念無分別具足等相汝問得何法是正行中無有得相無增上慢以是正行於法無所得正行者卽是無行義
마군이 물었다.
‘금강제비구여, 그대는 이 계(戒)로써 어떠한 법을 얻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나는 이 계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아무리 적은 법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007_1163_a_13L魔子問金剛齊比丘汝以此戒當得何法我以此戒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乃至小法不可得故
마군이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 보리를 얻습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색이 평등하면 보리를 얻고 수ㆍ상ㆍ행ㆍ식이 평등하면 보리를 얻고 모든 법이 평등하면 보리를 얻는다.’
007_1163_a_16L魔子言何得菩提比丘言色等則是得菩提受想行識等則是得菩提一切法等則是得菩提
마군이 말하였다.
‘이와 같은 보리는 어느 곳에서 구합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내가 성품을 보는 가운데서 구하게 된다.’
007_1163_a_19L魔子言如是菩提於何處求比丘言當於我見性中求魔子云何而求比丘言求時不起菩提
마군이 말하였다.
‘어떻게 구합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구할 때 보리라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007_1163_a_22L魔言比丘汝師是誰誰所教誨辯乃如是比丘言不壞我見性而得菩是則我師不在垢不在淨是則我若識不在有爲不在無爲是則我若不從他聞於諸法不住不捨能度諸流是則我師若遍知一切法而不至一切法是則我師若一切所說音聲言辭於不可說諸法相中而不動轉是則我師若一切法不生不起不出而能轉聖法輪是則我師不住此岸不在彼岸不在中流是則我師若一切法不生故生是則我師若一切法不滅故滅是則我師我隨如是師教故辯如是
007_1163_b_02L마군이 말하였다.
‘비구여, 그대의 스승은 누구이며, 누가 가르쳤기에 이렇게 언변이 좋으십니까?’
비구가 말하였다.
‘나를 파괴하지 않고 성품을 보아 보리를 얻는다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더러움에 있지도 않고 깨끗함에 있지도 않다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유위(有爲)7)에 있지도 않고 무위(無爲)8)에 있지도 않음을 안다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남에게서 들은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모든 법에 머물지도 않고 모든 법을 버리지도 않고 생사의 모든 흐름을 건넌다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모든 법을 빠짐없이 알면서도 모든 법에 이르지 않는다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설하는 모든 음성이나 말이 설할 수 없는 법의 실상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모든 법이 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고 나오지도 않지만 성인의 법바퀴를 굴려낸다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이 언덕에도 머물지 않고 저 언덕에도 머물지 않으며 중간의 흐름에도 머물지 않으면 이것이 나의 스승이다. 모든 법이 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것이 나의 스승이며, 모든 법이 멸하지 않기 때문에 멸하는 것이 나의 스승이니, 나는 이런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언변이 이러한 것이다.’
007_1163_b_12L魔子言如來以何而轉法輪答言如來於色不轉不還色法色空色無相色無作色滅色無生色相色性亦不轉不還想行識不轉不還識如識法識空無相識無作識滅識離識無生識相識性亦不轉不還如來以是一切法不轉故轉於法輪如是法輪若轉若不轉於無量法性終不出過若能解此轉法輪者是人則能轉於法輪
마군이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무엇으로 법바퀴를 굴리십니까?’
대답하였다.
‘여래는 색(色)을 굴리지도[轉, 流轉] 돌이키지도[還, 還滅] 않는다. 색의 여여(如如)함ㆍ색의 법ㆍ색의 빔ㆍ색의 모양 없음ㆍ색의 지음 없음ㆍ색의 멸함ㆍ색의 떠남ㆍ색의 남이 없음ㆍ색의 모양ㆍ색의 성품에 대해서도 굴리거나 돌이키지 않는다.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굴리거나 돌이키지 않는다. 식(識)의 여여(如如)함ㆍ식의 법ㆍ식의 빔ㆍ식의 모양 없음ㆍ식의 지음 없음ㆍ식의 멸함ㆍ식의 떠남ㆍ식의 남이 없음ㆍ식의 모양ㆍ식의 성품에 대해서도 굴리거나 돌이키지 않는다.
여래께서는 이 모든 법에 구르지 않기 때문에 법바퀴를 굴리신다. 이와 같은 법바퀴를 굴리거나 굴리지 않거나 한량없는 법의 성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법바퀴 굴리는 것을 이렇게 이해한 사람은 법 바퀴를 굴릴 수 있다.’
007_1163_b_21L時魔子及其眷屬皆爲金剛齊比丘作弟子發是言我從今日歸依於師比丘言汝莫歸依我當歸依淨明光王佛我所說者是佛所教
그때 마군과 그의 권속들이 금강제비구에게 제자가 되어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오늘부터 스승께 귀의하겠습니다.’
비구가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에게 귀의하지 말고 정명광왕(淨命光王) 부처님께 귀의하여라. 내가 말한 것은 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007_1163_b_25L魔子言共詣佛時金剛齊比丘與魔子及八萬四千魔衆俱詣淨明光王佛所面禮佛足合掌恭敬在一面立淨明光王佛因其淨戒及聖法行爲說如是法皆得不退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7_1163_c_02L마군이 말하였다.
‘함께 부처님께 갑시다.’
그리하여 금강제비구가 마군과 8만 4천 마군의 무리와 함께 정명광왕 부처님 처소에 가서 머리를 부처님 발에 대고 예를 올리고 합장하고 공경히 한쪽에 서 있었다. 정명광왕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깨끗한 계를 지니고 성인의 법을 실천하므로 그들을 위해 이와 같은 법을 설하셨는데,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었다.
007_1163_c_08L自在王彼時金剛齊比丘豈異人乎汝身是也障㝵魔子者持地菩薩是自在王是名菩薩摩訶薩戒自菩薩得是戒自在者能示衆生不思議願力教化無量衆生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能自降魔怨疾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자재왕아, 그때의 금강제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바로 너의 몸이며, 장애 마군은 바로 지지(持地)보살이다.
자재왕아,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계자재(戒自在)라 한다. 이 계자재를 얻는 보살은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원력을 보여주며, 한량없는 중생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교화하며, 또한 저절로 마군이나 원수의 항복을 받고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007_1163_c_14L佛告自在王何謂菩薩摩訶薩神通自在謂天眼天耳他心智宿命智意足
부처님께서 자재왕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신통자재(神通自在)라고 하는가? 천안(天眼)ㆍ천이(天耳)ㆍ타심지(他心智)ㆍ숙명지(宿命智)ㆍ여의족(如意足)을 말한다.
007_1163_c_17L自在王何謂菩薩天眼自在也若菩薩眼根不爲牆壁山林須彌鐵世界中閒之所障㝵是名天眼自菩薩以是無㝵眼根見十方無量阿僧祇佛土爲一佛土何以故空相無別異故而諸佛土彼此雖別而不合不異
자재왕아, 무엇을 보살의 천안자재(天眼自在)라 하는가? 보살의 안근(眼根)이 벽이나 산림이나 수미산이나 철위산이나 세계 어느 곳에든 막히고 걸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천안이 자재하다고 한다. 보살은 이 걸림 없는 안근으로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불국토를 하나의 불국토로 본다. 왜냐 하면 빈 모양은 구별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각각의 불국토가 이곳과 저곳으로 구별되나 합하지도 않으며 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007_1163_c_23L又見諸佛大衆圍遶皆爲一佛以法性不壞相故以見一佛淨故見一切佛淨以一切佛淨故見自身淨自身淨故見一切法淨於自身淨諸淨之中不生二相又見諸佛弟子異見佛淨菩薩以見弟子正見見佛以見佛正見見弟子
007_1164_a_02L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에워싸여 계신 것을 보고 한 부처님으로 여기는데, 법의 성품은 파괴되는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부처님의 깨끗함을 보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깨끗함을 보며, 모든 부처님의 깨끗함을 보기 때문에 자기 몸의 깨끗함을 보며, 자기 몸이 깨끗하기 때문에 모든 법의 깨끗함을 보아 자기 몸의 깨끗함과 모든 법의 깨끗함에 대해 두 모양을 내지 않는다. 또한 모든 부처님 제자를 부처님의 깨끗함과 다르지 않게 보며, 보살이 제자를 보는 바른 견해로 부처님을 보며, 부처님을 보는 바른 견해로 제자를 본다.
또한 보살이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에서 무색계를 제외한 지옥ㆍ축생ㆍ아귀ㆍ인간ㆍ천상의 모든 중생이 나고 죽는 갈래와 선악을 행하는 곳을 천안으로 볼 수 있으며, 중생이 업을 짓고 보를 받는 것을 안다.
007_1164_a_06L又菩薩於十方無量阿僧祇世界所有衆生若地獄若畜生若餓鬼若人若天除無色界卽以天眼悉皆能見生死所趣善惡之處又知衆生行業及報
보살은 중생을 본다 할지라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데, 나라는 테두리가 없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중생이 업을 짓고 보를 받는 것을 본다 할지라도, 보살은 모든 법에 업도 없고 과보도 없는 줄을 안다.
보살은 이 천안으로 모든 색이 색의 상이 없음을 보는 것은 모든 법이 있다고 할 것이 없음을 믿기 때문이며, 모든 형색이 다 허망하여 본래 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의 천안이라 이름한다.
보살은 이 천안의 지혜력을 얻었기 때문에 수량을 갖는 색이나 수량을 갖지 않는 색이나 무엇을 보든지 간에 보지 않는 바가 없다.
보살은 백천만 종류의 중생 속에 있더라도 선정과 배사(背捨)9)와 삼매에 들어 내지는 한 중생이 있는 것도 보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보살은 모든 법이 실체가 없어 여여하다는 것을 통달했기 때문이다.
007_1164_a_10L菩薩雖見衆生不取衆生相何以故信無我際雖見行業及報而知一切法無業無報菩薩以是天眼見一切色皆無色相信一切法無所有故知諸形色皆是虛妄本來不生故是名菩薩天菩薩得是天眼智力故隨所能見或見有數色或見無數色或無所不菩薩雖在百千萬種衆生之中能入於禪定背捨三昧乃至不見有一衆生何以故菩薩達諸法無我如
이 보살은 색계(色界) 모든 하늘의 깨끗하고 미묘한 형상 앞에 그 몸을 나타내어 모든 천자로 하여금 보게 하고 이 보살도 모든 하늘의 몸을 본다. 보살이 모든 하늘에게 자신의 몸을 보게 하지만 모든 하늘은 스스로 몸을 보지 못하며, 혹은 모든 하늘로 하여금 스스로 그 몸을 보게 하지만 보살의 몸을 보지 못한다.
자재왕아, 이것을 보살의 천안(天眼)이 자재하다고 한다.
007_1164_a_21L是菩薩於色界諸天淨妙形前現其身令諸天子見而是菩薩亦見諸天身菩薩又能令諸天見其身諸天不自見身或令諸天自見其身而不見菩薩身自在王是名菩薩天眼自在
007_1164_b_02L자재왕아,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천이자재(天耳自在)라 하는가.
보살이 이 천이(天耳)를 얻었다면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에 있는 모든 소리, 즉 하늘 소리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의 사람인 듯 하면서 사람이 아닌 것들의 소리를 모두 듣는다.
007_1164_b_02L自在王何謂菩薩摩訶薩天耳自在若菩薩得是天耳於十方無量阿僧祇世界所有諸聲天聲夜叉乾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非人聲悉皆得聞
보살은 이 소리를 들을 때 모든 소리에 대해 분별이 없는데, 그 어떤 소리도 형상을 통해 설명할 수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또 이 소리를 듣고 나라는 생각ㆍ중생이라는 생각ㆍ음성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그 어떤 소리도 본래 형상을 통해 설명하지 못함을 통달하여 이 소리는 머무는 때가 없음을 믿고 아는데, 보살은 이성(耳性)ㆍ이식성(耳識性)이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리를 들을 때 소리의 실제 뜻을 이해하는 자는 모든 소리를 설명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멸하는 특성 때문에 실제의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뜻에 의지하고 소리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모든 법에 생겨나는 특성이 없기 때문이다.
007_1164_b_08L聞是聲時於諸聲中無所分別信一切聲是不可說相又聞是聲不生我相衆生相及音聲達一切聲本來不可說相信知是聲無有住時菩薩耳性耳識性無有㝵故聞是聲時解其實義者一切聲不可說是滅相故以是實義而依於義不依於聲一切法無生相故
또한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에서 현재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데 걸림이 없으며, 들은 것을 간직하며 간직하고 나서는 잊지 않는다. 왜냐 하면 보살은 한 구절도 알지 못하고서 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007_1164_b_15L又聞十方無量阿僧祇現在諸佛之所說而無有㝵如所聞能持持已不忘何以故菩薩乃至無有一句不知而
보살은 들은10) 법이 있다. 즉 유루와 무루ㆍ유위와 무위ㆍ세간법과 출세간법ㆍ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ㆍ죄 있는 법과 죄 없는 법ㆍ성문승(聲聞乘)과 벽지불승(辟支佛乘)과 불승(佛乘)을 말한다. 보살은 이들 법을 한 성품의 맛에 들게 하는데, 자기 성품을 떠났기 때문이다. 들은11) 바가 있다 할지라도 여섯 가지 대상[六塵]12)에 집착하지 않으며, 법을 듣는다 할지라도 어떤 생각에도 머물지 않는다.
007_1164_b_19L菩薩有所問法若有漏若無漏有爲若無爲若世法若出世法若善若不善若有罪若無罪若聲聞乘辟支佛乘若佛乘能令是法入一性謂離自性雖有所問不著六塵復聞法不住諸相
007_1164_c_02L보살은 법을 귀하게 여기므로 법에 의지하며, 법 아닌 것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이 법인가? 물듦을 떠난 것을 법이라 하며, 모양 없음을 법이라 하며, 함이 없음을 법이라 하며, 돌아 갈 곳이 없음을 법이라 하며, 생겨남도 일어남도 얻음도 없음을 법이라 하며, 견줌이 없음을 법이라 한다. 이러한 법 가운데 모양으로 분별하여 취하고 버리며 희론한다면 이 것을 법이 아니라고 한다.
007_1164_b_24L菩薩貴法依法不依非法何等爲法法名離染法名無法名無爲法名無歸處法名無生無起無得法名無比於是法中以相分別取捨戲論是名非法
자재왕아, 보살은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으며, 말을 여의지 않고 뜻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법을 들어야 한다.
무엇을 뜻에 들어가는 마음이라 하는가? 빈 뜻에 떨어지지 않는 뜻의 견해며, 모양 없는 뜻의 견해며, 조작 없는 뜻의 견해니 이것을 뜻에 들어가는 마음이라 한다. 보살은 뜻에 들어가는 이 마음으로 법을 들으며 뜻에 의지하는데, 이 뜻은 얻을 수 없으며 얻지 못한다는 그것도 얻지 못한다.
007_1164_c_05L自在王薩依於義不依語不離語入義心聽云何名入義心不墮空義見無相義見無作義見是名入義心菩薩以是入義心聽法依於義是義不可得不可得亦不可得
또 자재왕아,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을 듣는다면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며 불요의경(不了義經)에는 의지하지 않는다.
요의경이란 뜻을 끝까지한 모든 경이니, 뜻에 의지했기 때문이며, 모든 법이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와 같이 하면 요의경에 의지했다고 한다. 반면 어떤 사람이 모든 경에 있어서 이와 같이 뜻에 의지하지 않으면 이것을 불요의라 한다. 무엇 때문에 불요의라 하는가? 이 사람은 뜻을 끝까지하지 못해서 때묻고 더러운 길에 항상 끌려가기 때문이다. 무엇에 끌려가는가? 소리에 끌려간다. 뜻을 끝까지한 자는 소리를 따르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 뜻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살은 모든 법을 알아서 요의의 모습이 아닌 갖가지 치우침을 떠난다.
자재왕아, 이와 같이 뜻에 의지해서 법에 나아가는 자는 보는 경이 다 요의경이 되며, 이와 같이 의지하지 않는 자는 모든 경이 다 불요의가 된다.
007_1164_c_10L又自在王菩薩若能如是聽諸佛法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了義經者一切諸經皆是了以依義故一切法不可說故菩薩如是名爲依了義經若人於一切經不能如是依義是名不了義何故名不了是人不了義故行塵垢道常爲所牽爲誰所牽爲聲所牽了義者不隨於聲何以故其義不可說故菩薩知一切法離諸邊非了相自在王如是義趣法者一切諸經皆是了義不如是依者一切諸經皆是不了義
007_1165_a_02L또한 자재왕아, 보살은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서 법을 들을 때 식(識)에 의지하지 않고 지혜에 의지한다. 왜냐 하면 보살은 식이 허망하여 허깨비와 같은 줄 알고, 모양을 떠났으므로 성품도 없고,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고, 상대적인 것도 없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식의 특성을 이렇게 안다면 그것을 식이라 하지 않고 지혜라 한다.
보살이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에 식을 따르지 않으면, 저 식 또한 식이 아닌 줄 안다. 그러므로 식여(識如)에 집착하지 않고 따라서 지여(智如)라고 말한다.
자재왕아, 지혜에 의지하는 보살은 식에 의지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의 식을 알아서 법을 설할 수 있는 것이다.
007_1164_c_21L又自在王菩薩於諸佛所聽受法時依於智不依識何以故菩薩知識虛如幻離相無性無色無形無對不可識如是知識相卽名爲智不名爲菩薩依智故不隨識知他識亦不是識是故不著識如故說智如自在依智菩薩不住於識能知他說而爲說法
또한 자재왕아, 보살이 법을 설할 때 중생의 이름을 설하나 법에 의지하고 중생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나와 법 가운데 실제로 중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마침내 깨끗함도 없고 이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재왕아, 모든 법에는 끝내 나도 없고 중생도 없다. 여래께서는 세간법에 따라서 중생이 있다고 설하시지만 모든 법에는 실제로 중생이 없다. 그러므로 보살이 법에 의지하고 중생에게 의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007_1165_a_06L又自在王菩薩說法時雖說衆生名而依於法不依衆生何以故若於我法中實有衆生者終無淨無是故自在王一切法畢竟無我無衆生如來以世法故說有衆生諸法實無衆生是故菩薩依於法不依衆
법이란 법의 성품을 뜻한다. 법의 성품이란 생겨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은 필경에 일어나지도 않으며 조작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뜻이란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 하면 말로 법을 설명하지만 법은 말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로 뜻을 보이지만 보이고 설명할 바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말이 아니고 설명이 아니다. 분별할 바가 있고 설명할 바가 있다면 부처님 법이 아니니, 분별이 없고 설명할 바가 없다면 이것이 부처님 법이다. 그러므로 설함 없는 이것을 부처님 법이라 한다.
007_1165_a_12L法者卽是法性義法性者是不生性義不生者是畢竟不起不作義者是不可說義何以故以語說法不在語中是故以語示義有所示說皆非語非說有所分別有所說者非佛法無分別無所說卽是佛法故言無說是佛法
만일 부처님 법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들어가야 하고 말로써 중생을 설해야 한다. 법을 설한다해도 견해를 내지 않아야 한다. 만일 둘이 있다면 부처의 말씀이라 하지 못하며, 둘도 없고 분별도 없다면 그것이 부처님 말씀이다. 말소리가 있다면 부처님 법이 아니며, 의논이나 설명이 있다면 부처님 법이 아니다. 말소리도 없고 의논이나 설명이 없다면 이것을 부처님 법이라 한다.
그러므로 자재왕아, 보살이 부처님 법 가운데 들어가면 이와 같은 천이(天耳)를 얻어 모든 소리로 제법의 실상에 따라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자재왕아, 이것을 보살의 천이(天耳)가 자재하다고 한다.
007_1165_a_18L若人欲入佛法應如是入而以語說衆生若說法不應生見若有二者不名佛語無二無分別卽是佛語若有言聲卽非佛法有論說亦非佛法若無言聲亦無論說是名佛法是故自在王若菩薩入佛法中則得如是天耳以一切聲諸法實相行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自在王是名菩薩天耳自在
007_1165_b_02L자재왕아,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타심지자재(他心智自在)라고 하는가? 타심지자재를 얻은 보살은 자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서 가는 곳마다 대중을 위해 법을 설한다. 먼저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여 이 중생이 얼마나 깊은 마음을 가졌는지, 어떤 행을 닦는지, 어떤 원인을 심었는지, 어떤 모양이 있는지를 알아서 그에 따라 설하는데, 보살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의 깨끗한 마음에 들어간다.
007_1165_b_02L自在王何謂菩薩摩訶薩他心智自若菩薩得他心智自在者以己心知他心所至之處爲衆說法先觀衆知是衆生有何深心何行何因何相隨而爲說菩薩自心淨故入一切衆生心淨
자재왕아, 마치 밝은 거울이 모든 형상과 빛깔을 비출 때 길든 짧든, 크든 작든, 거칠든 미세하든 더하거나 덜함 없이 본래 모양대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 거울은 분별하는 일 없이 밝고 깨끗하기 때문에 모든 모양을 나타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보살도 깨끗한 자기 마음의 법성으로 밝게 비추기 때문에 중생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마음법을 걸림 없이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007_1165_b_09L自在王譬如明鏡照諸形相貌長短大小麤細隨其本形皆有像現不增不減鏡無分別以明淨故能示諸像菩薩亦如是以自心淨法性照明故衆生所起心心數法能得知而無所礙
대중 가운데 욕심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보살은 그 마음을 알고 욕심을 여의는 모양도 본다. 왜냐 하면 마음의 모양은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 가운데 화가 많고, 어리석음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보살은 그의 마음을 알며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는 모양을 본다. 왜냐 하면 마음의 모양은 성내지도 않으며, 어리석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중 가운데 성문승(聲聞乘)을 즐기는 사람이 있으면 보살은 그가 실천하는 도의 법성(法性)이 소승이 되지 않음을 알며, 대중 가운데 벽지불(辟支佛)의 도를 즐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실천하는 도의 법성이 중승이 되지 않음을 알며, 대중 가운데 대승(大乘)을 즐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실천하는 도의 법성이 대승이 되지 않음을 안다.
007_1165_b_14L若是衆中有多欲能知其心亦見離欲相何以故相非染故若衆中有多恚多癡有能知其心亦見離恚離癡相何以故相非恚非癡故若衆中有樂聲聞乘知其行道法性不作小若衆中有樂辟支佛道者知其行道法性不作若衆中有樂大乘者知其行道法性不作大
007_1165_c_02L보살은 중생의 심성을 알아서 그에 맞게 법을 설하나 마음의 모양을 취하지 않으며, 모든 승(乘)을 알아서 법을 설하나 법의 성품을 파괴하지 않으며, 법의 성품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성품을 파괴하지 않고 그리하여 중생이 행하는 바를 안다.
보살은 자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되 자기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에 맞고 안 맞는 것이 없으며, 또한 중생의 마음이 끊임없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안다. 또한 마음의 성품이 바로 법의 성품인줄 안다. 자재왕아, 이것을 보살의 타심지자재(他心智自在)라고 하며, 이 자재를 얻었기 때문에 하늘 위나 사람 가운데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
007_1165_b_22L菩薩隨知衆生心性而說法不取心相雖知諸乘而爲說法不壞法性不壞法性故不壞一切性而知衆生所行菩薩自以心觀他心自心他心無違無順亦知衆生心相續又知心性卽是法性自在王是名菩薩他心智自在以是自在故於天上人中無不知識
자재왕아,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숙명지자재(宿命知自在)라고 하는가? 숙명지자재를 얻은 보살은 기억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리고 정(定)을 얻은 근(根)이 날카롭기 때문에, 자기 일이든 남의 일이든 전생에 겪었던 갠지스강 모래와 같은 겁의 일을 기억한다. 그리하여 남에게 자신이 저 곳에서 어떤 이름을 가졌었고, 얼마나 오래 살았으며 어떤 고락을 받았는지를 설명해준다. 뿐만 아니라 지난 세상[宿世]에 선근을 심은 중생, 인(因)의 힘이 있는 자, 연(緣)의 힘이 있는 자를 알며, 이 사람은 성문의 인(因)이 있고, 이 사람은 벽지불의 인이 있고, 이 사람은 대승의 인이 있는 줄을 안다. 보살은 그 중생이 지난 세상에 뿌린 씨를 알고 그에 맞게 법을 설한다.
007_1165_c_06L自在王何謂菩薩摩訶薩宿命智自在若菩薩得宿命智自在以念力强故定根利故憶本所生自身他身恒沙劫事而爲他說我於彼處如是種類姓名壽命受如是苦樂又知衆生宿世所種善根因力者有緣力者是人有聲聞因人有辟支佛因是人有大乘因知其先世所因如是隨其所應而爲說法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를 얻었기 때문에 전생에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태어나 모든 선근을 심은 줄을 스스로 안다. 만일 지난 세상에 선근을 심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그 선근을 보리에 회향한다.
007_1165_c_14L菩薩得是宿命智故自知本生於諸佛所種諸善根若先世有善根而不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今當以是善根迴向
007_1166_a_02L보살은 숙명을 안다 할지라도 지난 세상의 법이 오는 일이 없음을 안다. 법이 지난 세상으로부터 뒷세상에 이르는 것을 보지 않으며, 지금 세상이 지난 세상에 이르는 것도 보지 않는다. 모든 법은 어디로부터 오는 바도 없고 어디로 가는 바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를 생각하지만 먼저라는 견해를 내지 않으며, 뒷 시간에 대해서도 중간[中]이라는 견해나 끝[邊]이라는 견해를 내지 않으니, 모든 법은 끝이나 중간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보살은 중생의 숙명을 기억하지만, 과거의 색(色)이 모양을 떠난 줄 알며 과거의 수ㆍ상ㆍ행ㆍ식이 모양을 떠났음을 안다. 과거 5음(陰)이 모양을 떠난 것이 바로 뒤의 5음이 모양을 떠난 것이며, 뒤의 5음이 모양을 떠난 것이 바로 현재 5음이 모양을 떠난 것이다. 보살은 과거 모든 법의 성품이 빈 줄을 알고 현재 모든 법의 성품이 빈 줄을 알며, 미래 모든 법의 성품이 빈 줄을 안다.
007_1165_c_18L菩薩雖知宿命亦知先世法無有來者不見法從先世至後世亦不見今世至先世知一切法無所從來亦無所去又念先際不生先見亦不生後際中見邊見知一切法無邊無中菩薩雖念衆生宿命知先際色離相知先際受想行識離先際五陰離相卽是後際五陰離後際離相卽是現在離相菩薩知先際一切法性空知現在一切法性空知後際一切法性空
자재왕아, 보살이 이와 같이 숙명을 알 때 선근이 자라나서 지난 세상의 죄업인연(罪業因緣)을 다 멸한다. 왜냐 하면 보살은 모든 법에 새로운 모양도 낡은 모양도 없음을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를 이루고서는 모든 유위법이 다 공하여 꿈과 같은 줄 이해하고 믿는다.
자재왕아, 꿈속에서 나고 죽고 괴롭고 즐거운 것을 보듯이, 보살이 유위법을 이해하고 믿는 것도 그러하다.
이렇게 믿고 이해하는 자는 생사에 오가면서도 피곤하다거나 권태롭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중생 속에서 자비심을 내며, 모든 법에서 짐짓 모양을 지어낸다.
007_1166_a_05L自在王菩薩如是知宿命時善根增長先世罪業因緣滅盡何以故菩薩達一切法相無新無故成如是智已信解一切有爲法皆空如夢自在王譬如夢中見生死苦樂菩薩信解一切有爲法亦如如是信解者往來生死心不疲倦於衆生中而生悲心於一切法生假作相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몇천만억 겁토록 생사에 오가지만 그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중생도 생사에 오가지만 그 역시 허망하여 실제가 아니다. 실제의 이름은 4대(大)를 일으키지 않으니 4대란 허망한 법이기 때문이다.’
007_1166_a_13L菩薩作是念如我若干千萬億劫生死往來皆虛妄無所有一切衆生亦如是生死往來虛妄不實實名不起四大四大是虛妄法
자재왕아, 보살이 숙명을 볼 때는 모든 유위법이 다 허망함을 본다. 어째서 그런가. 보살은 과거 전륜왕(轉輪王)의 즐거움도 모두 덧없이 변화하는 모양이라 생각하며 제석(帝釋)의 즐거움도 다 덧없이 변화하는 모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보살은 장엄하고 깨끗한 모든 부처님의 세계와 장엄하고 깨끗한 성문들의 세계와 장엄하고 깨끗한 보살들의 세계와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의 장엄함과 깨끗함을 보며, 또한 색신이 구족하신 모든 부처님이 법륜을 굴리는 것도 모두 다 덧없이 변화하는 모양으로 본다.
이렇게 생각할 때 유위법에 탐내고 아까워할 것이 없다. 왜냐 하면 보살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국토와 모든 부처님의 색신도 덧없이 다 없어지는데 하물며 내가 집착하는 것들이겠는가.’
007_1166_a_16L自在王薩見宿命時諸有爲法皆是虛妄以故菩薩念先世轉輪王樂皆悉無常變異之相念帝釋樂亦皆無常變異之相亦見諸佛嚴淨世界聲聞衆嚴淨菩薩衆嚴淨所用諸物嚴淨念諸佛色身具足而轉法輪皆悉無常變異之相如是念時於有爲法無所貪惜何以故菩薩作是念如是淨土諸佛色身無常滅盡況我所著
007_1166_b_02L그리고는 바로 나가 없는 가운데, 나의 것이 없는 가운데 들어가 덧없이 변화하는 모양에 의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유위법은 다 덧없는데 중생이 여기에서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는구나.’
그리고는 중생에게는 큰 자비심을 내며, 모든 법에 대해서는 놓아버려야한다는 생각을 낸다. 자재왕아, 이것을 보살이 숙명지자재(宿命智自在)를 얻었다고 한다. 이 자재를 얻은 보살은 모든 법이 덧없다는 사실을 믿지만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몸을 받는다. 그러나 받지 않기 위해 받으며, 취하지 않기 위해 취하니, 다만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007_1166_a_25L入無我無我所法中依於無常變異之相作如是念諸有爲法皆悉無常衆生於此而生常想卽於衆生生大悲心於一切法生放捨想自在王爲菩薩宿命智自在菩薩得是自在信一切法無常而爲成衆生故受身不受故受爲不取故取但爲教化一切衆生故
자재왕아, 무엇을 보살마하살이 여의족자재(如意足自在)를 얻었다 하는가? 여의족자재를 얻은 보살은 마음이 자재하기 때문에 성인의 모양을 따라서 여의족(如意足), 하고자 하는 힘, 정진해 나아가는 힘, 결탄코 실천하며 믿고 이해하는 힘을 낸다. 보살이 이 여의족을 이해하고 믿으면 조작하거나 일어나지 않아도 갠지스강 모래와 같은 세계 어디에든 가고자 한다면 한 생각 사이에 갈 수 있으며, 그곳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다 그가 오는 것을 본다. 자신은 본래 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지만, 저들은 그가 설법하는 것을 보며, 이곳에서도 여전히 설법을 계속한다. 자재왕아, 이것을 보살의 여의족이 자재하다고 한다.
007_1166_b_10L自在王何謂菩薩摩訶薩如意足自在若菩薩心自在故從聖相生如意足欲力進力斷行信解力菩薩得是信解如意足非作非起欲普至恒沙世界一念之頃皆能得彼諸衆生皆見其來而自於先本處不動彼見說法而於此處說法不自在王是名菩薩如意足自在
보살은 이 여의족의 자재한 힘이 있기 때문에 여의족으로 제도할 중생이 있으면 여의족으로 제도하며, 항상한 모습에 집착하는 하늘중생이 있으면 겁(劫)이 타는 것을 보여주어 이 모든 중생에게 삼천대천세계가 다 타서 없어져도 이 세계는 손상되거나 줄어든 일이 없음을 보게 한다. 교만한 마음을 스스로 키워가는 중생이 있다면 보살은 금강을 잡은 신이 되어 불꽃이 타오르는 금강저(金剛杵)를 잡아 그들에게 보여주므로써 두렵게 하여 교만한 마음을 없애고 스스로 귀의하여 공경히 예를 올리게 한다.
007_1166_b_17L薩以是如意足自在力若有衆生應以如意足度者以如意足度之若諸天人著常相者示其劫燒是諸衆生見三千大千世界普皆燒盡而是世界無所損減若有衆生慢心自大作執金剛神執火焰金剛杵而以示令生恐畏除其慢心自歸禮敬
007_1166_c_02L전륜왕의 형상을 즐기는 중생이 있으면 전륜왕의 몸으로 법을 설하고 석제환인(釋帝桓因)의 형상을 즐기는 자가 있으면 석제환인의 몸으로 법을 설하며, 범천왕의 형상을 즐기는 자가 있으면 범천왕의 몸으로 법을 설하며, 마왕의 형상을 즐기는 자가 있으면 마왕의 몸으로 법을 설한다. 부처님 몸을 보기를 즐기는 자가 있으면 부처님 몸으로 나타나 법을 설한다.
007_1166_b_24L有衆生樂轉輪王形者以轉輪王身而爲說法若有衆生樂釋提桓因形以釋提桓因身而爲說法若有衆生樂梵天王形者以梵天王身而爲說法若有衆生樂魔王形者以魔王身而爲說法若有衆生樂見佛身者則現佛身而爲說法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혹은 허공 속에 머물며 가부좌를 맺고 몸에서 빛을 내며 법을 설하기도 한다. 엄숙하고 깨끗한 세계를 즐기는 중생이 있으면 삼천대천세계를 장엄하여 비단 번(幡)과 일산을 달며, 모든 기를 세우고 보배 그물로 그 위를 다 덮고 이름 난 갖가지 향을 사르며 모든 음악을 연주한 뒤에 법을 설하기도 한다. 중생을 위하여 삼천대천세계를 하나의 바다 물로 만들어 나타내고 그 위를 푸르고, 빨갛고, 붉고, 흰 갖가지 연꽃으로 덮고, 그 물 중간에 설법좌를 나타내어 자기 몸을 그 위에 앉히고 법을 설하기도 한다.
007_1166_c_08L菩薩或爲衆生住於空中結加趺坐身放光明而爲說法或有衆生樂嚴淨世界者則爲莊嚴三千大千世界懸繒幡蓋豎諸幢幡以寶羅網遍覆其上燒諸名香作衆伎樂然後說法或爲衆生現三千大千世界爲一海水靑紅赤白種種蓮華遍覆其上於其水中現師子身處其上而爲說法
중생을 위하여 스스로 몸을 나타내어 수미산 꼭대기에 앉아서 법을 설하는데 그 소리가 범천에 이르기도 하며, 중생을 위하여 몸은 나타내지 않고 음성으로만 법을 설하기도 하며, 중생을 위하여 건달바 몸을 나타내어 여러 음악소리로 법을 설하기도 하며, 중생을 위하여 용왕의 몸을 나타내어 구름과 우레를 일으켜 큰 번갯불을 놓으며, 또는 큰비를 적셔 법을 설하기도 한다.
배고프고 목말라 매우 궁핍한 중생이 있으면 하늘 음식을 주어 몸을 충만케 하고 부족함 없이 기쁘게 하여 법을 설하기도 하며, 고뇌에 쫒기고 시달리는 중생이 있으면 신통한 힘으로 지옥의 불을 끄고 하늘의 정기로 그들의 털구멍까지 모두 안락을 얻게 하고 법을 설하기도 한다.
007_1166_c_16L或爲衆生自現其身坐須彌山頂而爲說法聲至梵天或爲衆生不現其身但以音聲而爲說法或爲衆生現乾闥婆身衆樂音而爲說法或爲衆生現龍王起雲雷震放大電光又霔大雨而爲說法或有衆生飢渴逼切則與天食身得充滿具足悅樂而爲說法有地獄衆生苦惱逼迫而以神力滅地獄火以天精氣令其毛孔皆得安樂而爲說法
007_1167_a_02L눈 먼 자가 있으면 뜻대로 하는 신통한 힘으로 그에게 천안(天眼)을 주어 밝게 보게끔 하고 법을 설하며, 귀머거리가 있으면 뜻대로 하는 신통한 힘으로 그에게 이근(耳根)을 주어 소리를 듣게 하고 법을 설하며, 갖가지 병에 든 자가 있으면 신통한 힘으로 그의 병이 낫게 하여 법을 설한다.
죄를 짓고 죽을 곳에 이른 자가 있으면 뜻대로 하는 신통한 힘으로 사람이 되어 그를 대신하여 죄를 면해 마음을 편케 하고 법을 설한다. 손발이 잘려졌거나 귀와 코가 잘려나가 남은 몸이 추하고 더러워 항상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마음이 물러난 중생이 있으면, 뜻대로 하는 신통한 힘으로 불구를 복구시켜 법을 설한다.
피ㆍ똥ㆍ오줌 등 깨끗하지 못한 태 속에 들어앉은 중생이 있으면 뜻대로 하는 신통한 힘으로 보배 집과 누각을 지어 그를 그 속에 거처하게 하며, 또한 의식(意識)을 이루게 하여 법을 설한다. 처음 태어나서 모든 근(根)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으면 뜻대로 하는 신통한 힘으로 다 갖추게 하여 그가 법을 들을 능력을 가진 뒤에 법을 설한다. 자재왕아, 이것을 두고 보살이 여의족(如意足)을 성취했다고 하며, 이렇게 불가사의한 갖가지 신통력으로 법을 설한다.
007_1167_a_02L若有盲者如意神力以天眼與令得開明而爲說法若有聾如意神力與其耳根令得聞聲而爲說法若有種種病自以神力令其除愈而爲說法若有犯罪送至死處如意神力化人代之令得免罪心得安樂而爲說法若有衆生刖足斬手刓截耳鼻形殘醜陋常自愧恥而心退沒如意神力皆令完具而爲說法若有衆生在於胎中藏血屎尿不淨之處如意神力化作寶臺樓閣令處其中亦成意識而爲說法若其始生諸根未成如意神力令其具足堪任聽受而爲說法自在王是名菩薩成如意足以如是等種種不思議神力而爲說法
보살에게는 뜻대로 하는 신통한 힘이 있기 때문에, 일월중생(日月衆生)을 섬기고 받들어 제도하기 위하여 삼천대천세계를 그의 오른 손바닥에 놓고 멀리 타방(他方)의 한량없는 세계로 던져 모든 중생이 다 그것이 가는 것을 보게 하지만 그러나 이 세계는 움직이지 않게 한다. 또한 갠지스강 모래수와 같은 세계를 한 털구멍에 들어가게 하여 범천까지 들고 가서 타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던져 놓지만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가고 온다는 생각이 없게 한다.
갠지스강 모래와 같이 무량한 세계가 겁이 다하여 불에 탈 때 한 입에 불을 끄기도 하고, 두 손으로 해와 달을 가리고 몸에서 빛을 내어 모든 세계를 비추고서 법을 설한다.
007_1167_a_18L菩薩如意神力故爲度奉事日月衆生以三千大千世界置其右掌遠擲他方無量世界令諸人衆皆見其去而此世界本處不動又以恒河沙世界入一毛孔擧至梵天置他方無量世界令諸衆生無去來若恒河沙無量世界劫盡火燒一吹令滅或以兩手障蔽日月身出光明照諸世界而爲說法
007_1167_b_02L자재왕아, 이 보살이 모든 부처님 앞에 앉아 부처님께 공양하고자 하여 한 움큼의 꽃을 수미산 같이 하여 부처님의 몸 위에 뿌리면 꽃이 몸의 반에 이르며, 또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초목으로 모두 횃불을 만들어 세계에 가득 채우면 그 불이 비오듯 떨어진다.
007_1167_b_02L自在王菩薩或坐諸佛前若欲供養佛以一掬華如須彌山散佛身上華至半身又三千大千世界一切草木皆成爲遍滿世界火落如雨
자재왕아, 이 보살은 모든 중생이 귀하게 여기는 형상을 따라 제석이나 범천이나 성문의 형상이나 벽지불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보살의 신통이 자재하다고 한다. 즉 천안(天眼)을 얻어 보는 것이 걸림이 없기 때문이며, 천이(天耳)를 얻어듣는 것이 장애가 없기 때문이며, 타심지(他心智)를 얻어 일체 마음과 마음에 관계된 법을 통달했기 때문이며, 숙명지(宿命智)을 증득하여 과거의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기억하기 때문이며, 여의족(如意足)을 얻어 모든 형색에 있어서 마음대로 보여주고 나타내기 때문이다.
007_1167_b_07L自在王是菩薩隨諸衆生所貴形色皆悉爲現釋若梵若聲聞形若辟支佛形是名菩薩神通自在謂天眼見無㝵故天耳聞無障故得他心智達一切心心心法故證宿命智憶過去無量阿僧祇劫故得如意足於一切形色隨意示現故
자재왕아, 신통이 자재한 자는 모든 부처님의 일을 모든 중생에게 보이며, 모든 중생의 근기가 날카로운지 둔한지를 잘 알고 분별한다. 성문승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며, 벽지불승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며, 대승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가운데 대중이 그를 알며, 중생을 성숙시켜주기 때문에 대중이 그를 알며, 착한 법 가운데 출가하여 도를 실천하기 때문에 대중이 그를 알며, 방편의 힘을 쓰기 때문에 대중이 그를 안다. 보시바라밀로 회향하기 때문에 대중이 그를 알며, 계바라밀과 인욕바라밀과 정진바라밀과 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로 회향하기 때문에 대중이 그를 알며, 모든 마군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이 착한 뿌리를 심게 하기 때문에 신통이 자재하다고 한다.
007_1167_b_14L自在王神通自在者能以一切佛事示諸衆生亦能了達分別衆生諸根利鈍能以聲聞乘度衆生支佛乘度衆生大乘度衆生故於生死中衆所知識成衆生故衆所知識於善#法中出家行道故衆所知識方便力故衆所知識檀波羅蜜迴向故衆所知識尸羅波羅蜜羼提波羅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迴向故衆所知識降伏諸魔令種善根故名爲神通自在
007_1167_c_02L그리고 자재왕아, 보살은 이 자재한 신통을 얻었기 때문에 몸의 힘과 명예와 칭송과 좋은 가문ㆍ좋은 성씨ㆍ재물ㆍ권속과 백성들이 다 뛰어나 대중이 그를 알므로 신통이 자재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재왕아, 보살이 이 자재한 신통을 얻었기 때문에 대중이 그를 안다. 즉 모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긴나라ㆍ가루라ㆍ마후라가 등의 사람인 듯 하면서 사람이 아닌 것들ㆍ제석ㆍ범왕ㆍ세상을 보호하는 모든 이들ㆍ바르게 깨달은 모든 부처가 그를 알기 때문에 많이 안다[多識]고 한다. 자재왕아, 보살은 이 신통한 힘 때문에 근본 맹서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많은 일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007_1167_b_24L又自在王菩薩得是神通自在故色身之力聞稱讚家姓財物眷屬人民普皆殊勝衆所知識是故名爲神通自在自在王菩薩得是神通自在故衆所知識謂諸天夜叉乾闥婆阿修羅緊那羅迦樓羅摩睺羅伽人非人梵王諸護世者諸佛正遍知者皆所知識是故說名多識自在王菩薩以是神通不退本誓而能示現一切衆事
자재왕아, 무엇을 보살마하살의 지자재(智自在)라 하는가. 음지(陰智)ㆍ성지(性智)ㆍ입지(入智)ㆍ인연지(因緣智)ㆍ제지(諦智)이다.
007_1167_c_11L自在王何謂菩薩摩訶薩智自在陰智性智入智因緣智諦智
자재왕아, 무엇을 5음을 아는 지혜[陰智]라 하는가? 색(色)이 전 찰나에도 비었으며 후 찰나에도 비었으며 중간 찰나에도 빈 줄을 아는 것이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전 찰나에도 비었으며 후 찰나에도 비었으며 중간 찰나에도 빈 줄을 알아서 5음(陰)이 결국은 비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음지라 한다.
007_1167_c_13L自在王何謂陰智色前際空後際空中亦空受想行識前際空後際空中亦空陰畢竟空是名陰智
007_1168_a_02L자재왕아, 무엇을 법성을 아는 지혜[性智]라 하는가? 땅의 성품이 법의 성품이며, 물의 성품이 법의 성품이며, 불의 성품이 법의 성품이며, 바람의 성품이 법의 성품임을 아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네 성품이 법의 성품에 들어가면 다 하나의 성품이 되기 때문인데 그것을 빈 성품이라 이름한다. 빈 성품과 법의 성품이 다 같이 성품이 없는 것이니 이 가운데는 땅의 성품도 없고, 물의 성품도 없고, 불의 성품도 없고, 바람의 성품도 없다.
왜냐 하면 파괴되지 않는 성품이 법의 성품이며, 둘 없는 성품이 법의 성품이며, 생겨남 없는 성품이 법의 성품이며, 때가 없는 성품이 법의 성품이며, 깨끗함 없는 성품이 법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법의 성품과 마찬가지로 수명의 성품ㆍ중생의 성품ㆍ나고 죽는 성품ㆍ열반의 성품ㆍ하고자하는 성품ㆍ색(色)의 성품ㆍ색 없는 성품ㆍ작위가 있는 성품ㆍ작위가 없는 성품도 그러하다. 성품을 아는 이런 지혜는 딴 데서 얻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성지(性智)라 한다.
007_1167_c_16L自在王何謂性地性是法性水性是法性火性是法性風性是法性何以故四性入於法性皆爲一性謂之空性空性法性同一無性此中無地性無水性無火無風性何以故不壞性是法性二性是法性無生性是法性無垢性是法性無淨性是法性如法性壽性衆生性生死性涅槃性亦如是如涅槃性欲性色性無色性有爲性無爲性亦如是如是性智不隨他得是名性智
자재왕아, 무엇을 감관을 아는 지혜[入智]라고 하는가? 눈은 본래부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조작도 없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본래부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조작도 없다.
007_1168_a_04L自在王何謂入智眼從本來生不起無有作者耳鼻舌身意從本已來不生不起無有作者
자재왕아, 눈은 주재가 없으니 이 속에는 보는 자가 없으며, 귀는 주재가 없으니 이 속에는 듣는 자가 없으며, 코는 주재가 없으니 이 속에는 냄새 맡는 자가 없으며, 혀는 주재가 없으니 이 속에는 맛보는 자가 없으며, 몸은 주재가 없으니 이 속에는 촉각을 느끼는 자가 없으며, 뜻은 주재가 없으니 이 속에는 아는 자가 없다.
007_1168_a_06L自在王無有主是中無有見者耳無有主中無有聽者鼻無有主是中無有嗅舌無有主是中無有嘗者身無有是中無有覺者意無有主是中無有識者
자재왕아, 눈의 성품은 색을 보지 못하며, 귀의 성품은 소리를 듣지 못하며, 코의 성품은 냄새를 맡지 못하며, 혀의 성품은 맛을 알지 못하며, 몸의 성품은 접촉을 알아차리지 못하며 뜻의 성품은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눈은 조작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조작하는 바가 없어 풀이나 나무, 흙이나 돌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007_1168_a_11L自在王眼性不能見色耳性不能聽聲鼻性不能嗅香舌性不能知味身性不能覺觸意性不能識法何以故眼無所作與草木土石無異耳鼻舌身意亦無所作與草木土石無異
자재왕아, 눈은 바깥경계에 물들지도 않고 성품을 떠나 있지도 않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물들지도 않고 떠나 있지도 않다. 어째서 그런가? 눈은 본래부터 모양을 떠났기 때문이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본래부터 모양을 떠났기 때문이다.
자재왕아, 모든 감관을 이렇게 알고서 욕심을 떠날 수 있다면 이것을 입지(入智)라 한다.
007_1168_a_16L自在王眼不染不離耳鼻舌身意不染不離何以故眼從本來是離耳鼻舌身意從本已來是離相在王若能如是知一切入則能離欲是名入智
자재왕아, 보살은 모든 음(陰)ㆍ성(性)ㆍ입(入)이 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아 결국은 멸한다는 것을 안다. 멸하고 나서는 다시 태어나고 물러나 없어져서 음과 성과 입을 받을지라도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데, 이것을 지자재(智自在)라 한다. 무슨 말인가? 음과 성과 입을 알고, 음과 성과 입의 특성을 알지만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서 삼계(三界)에 나타나지만 어떤 번뇌에도 머물지 않으며, 태어나고 멸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태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이것을 지자재(智自在)라 한다는 것이다.
007_1168_a_20L自在王菩薩如是知諸陰性入不生不起以畢竟滅滅已而受生退沒雖受陰性入而不捨陰性入是名智自在謂知陰性入知陰性入相而能不捨現於三界而不住諸示有生滅而不生不滅是名智自
007_1168_b_02L자재왕아, 무엇을 연을 아는 지혜[緣智]라 하는가? 무명(無明)은 행(行)을 반연하지만 무명은 내가 행을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행은 식(識)을 반연하지만 행은 내가 식을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식은 명색(名色)을 반연하지만 식은 내가 명색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명색은 육입(六入)을 반연하지만 명색은 내가 육입을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육입은 촉(觸)을 반연하지만 육입은 내가 촉을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촉은 수(受)를 반연하지만 촉은 내가 수를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수는 애(愛)를 반연하지만 수는 내가 애를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애는 취(取)를 반연하지만 애는 내가 취를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취는 유(有)를 반연하지만 취는 내가 유를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유는 생(生)을 반연하지만 유는 내가 생을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생은 노사(老死)를 반연하지만 생은 내가 노사를 일으킨다 생각하지 않으며, 노사는 근심[憂]ㆍ슬픔[悲]ㆍ고뇌(苦惱)를 반연하지만 노사는 내가 근심ㆍ슬픔ㆍ고뇌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007_1168_b_02L自在王何謂緣智無明緣行無明不作是念我起行行緣識行不作是念我起識識緣名色識不作是念我起名色名色緣六入名色不作是念我起六入六入緣觸六入不作是念我起觸觸緣受觸不作是念我起受受緣愛受不作是念我起愛愛緣取愛不作是念我起取取緣有取不作是念我起有有緣生有不作是念我起生生緣老死生不作是念我起老老死緣憂悲苦惱老死不作是念我起憂悲苦惱
자재왕아, 이와 같이 열두 가지 인연(因緣)을 관찰해내는 보살은, 모든 것은 없어진다거나 모든 것은 항상하다거나 하는 그 어떤 견해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보살은 ‘법은 많은 인연에 속해 있으므로 많은 인연을 미루어 구한다면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열두 가지 인연에서 참다운 지혜를 얻는다.
007_1168_b_14L自在王若菩薩能如是觀十二緣者不墮諸見若斷見常見菩薩作是念法屬衆緣推求衆緣則不可得卽於十二緣而得眞智
무엇을 참다운 지혜[眞智]라 하는가? 열두 가지가 연하여 생기는 법은 생겨남 없음과 같으며, 생겨남 없음은 비고 성품 없고 작위 없음과 같으며, 비고 성품 없고 지음 없음은 많은 인연으로 생겨나는 법과 같음을 아는 것이다.
여래께서는 작용을 하셨다 하면 평등히 일체 법을 얻는데, 이 법은 열두 가지가 연하여 생기는 법과 같으며, 열두 가지가 연하여 생기는 법은 법이 생겨나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하여 생겨나는 열두 가지 법은 생기는 일이 없는 법임을 꼭 봐야한다고 설하며, 연하여 생기는 열두 가지 법은 생겨나는 일이 없음을 아는 지혜가 바로 열두 가지가 연하여 생겨남을 아는 지혜라고 설한다.
007_1168_b_17L何謂眞智知十二緣生法同於無生無生同空無相無作空無相無作同衆緣生法如來所用等得一切法法同十二緣生法十二緣生法無有法生是故說應見十二緣生無生二緣無生智卽是十二緣生智
007_1168_c_02L자재왕아, 밝음[明]과 밝지 않은 것[無明]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행(行)과 행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식(識)과 식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명색(名色)과 명색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육입(六入)과 육입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촉(觸)과 촉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수(受)와 수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애(愛)와 애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취(取)와 취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유(有)와 유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생(生)과 생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노사(老死)와 노사 아닌 것이 다르지 않으니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안다.
007_1168_b_23L自在明無明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行非行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識非識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名色非名色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六入非六入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觸非觸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受非受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愛非愛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取非取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有非有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生非生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老死非老死無二知如是者則知緣生法
연에서 생겨난 것은 옳은 곳이 없으며, 연에서 생겨난 것은 실체[我]가 없으니 그러므로 공하다. 연에서 생겨난 것은 옴도 없고 감도 없으며, 연에서 생겨난 것은 진실이 아니며, 연에서 생겨난 것은 하나의 제성품도 없으며, 연에서 생겨난 것은 행하는 바가 없다. 이와 같이 아는 것을 연하여 생김을 아는 지혜[緣生智]라 한다. 연하여 생긴다는 것을 보는 자는 무명(無明)을 보지 않으며, 행(行)을 보지 않으며, 식(識)을 보지 않으며, 명색(名色)을 보지 않으며, 육입(六入)을 보지 않으며, 촉(觸)을 보지 않으며, 수(受)를 보지 않으며, 애(愛)를 보지 않으며, 취(取)를 보지 않으며, 유(有)를 보지 않으며, 생(生)을 보지 않으며, 노사(老死)를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법을 보지 않는 자’는 연하여 생하는 법을 본다고 하며, 연하여 생하는 법을 본다면 이것을 법을 본다고 한다.
007_1168_c_13L從緣生者無有是從緣生則是無我則是空也從緣生者則是無來無去從緣生者則非眞實從緣生者則無一相從緣生者則無所行如是知者是名緣生智緣法者不見無明不見行不見識見名色不見六入不見觸不見受見愛不見取不見有不見生不見老若不見如是法者是名見緣生法若見緣生法是名見法
007_1169_a_02L무엇을 법을 본다 하는가? 무엇을 물들음을 떠난 법을 본다 하는가? 무엇을 물들음을 떠난 행이라 하는가? 모든 법을 볼 때 물들음을 떠났기 때문에 물들음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물들음을 떠난 법을 본다고 설한다.
무엇을 본다고 하는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아서 움직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이와 같이 보아서 법성을 파괴하지도 않고 합하는 것을 보지도 않으며, 법성과 함께 하면서 파괴하지도 않고 합하지도 않는다면 이와 같이 보는 자는 실제를 파괴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보는 자는 본다고 할 수 없으니,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천안(天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며 혜안(慧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육안은 무작(無作)이 없기 때문에 보지 않으며, 천안은 지어 모양을 일으키기 때문에 무위법을 보지 않으며, 혜안은 분별하는 특성이 없기 때문에 보지 않는다.
007_1168_c_22L云何見法離染法云何離染行者於一切法離染見故名爲離染是故說見離染法云何爲見不爲增不爲減如是見如不動不著如是見如不壞法性亦不見合如與法性不壞不合如是見者不毀實際如是見者亦不見非以肉眼見非以天眼見非以慧眼見何以肉眼無無作故不見天眼作起相故不見無爲法慧眼無分別相無分別故不見
자재왕아, 이와 같이 일체 법을 보는 보살이 있다면 그는 부처를 본다. 색(色)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보며,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보며, 갖가지 모양으로도 보지 않기 때문에 보며, 법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보며, 계(戒)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보며, 정(定)과 혜(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智見)13)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보며, 과거로 보지 않기 때문에 보며, 미래나 현재로도 보지 않기 때문에 본다. 이와 같이 보는 자는 부처를 본다고 한다.”
007_1169_a_09L自在王若菩薩能如是見一切法則能見佛不以色故見不以受想行識故見不以諸相故見不以法故見不以戒故見不以定解脫知見故見不以過去故見不以未來現在故見如是見者是名見佛
자재왕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많은 인연이 있는데,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을 본다면 부처님을 볼 수 있습니까?”
007_1169_a_14L自在王菩薩白佛言世尊頗有所緣菩薩見如是諸法而能見佛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다. 어째서 그런가? 색은 다해 없어지는 양상을 가지며 생겨나지 않는 성품을 갖는다. 색을 이렇게 본다면 여래를 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수ㆍ상ㆍ행ㆍ식은 다해 없어지는 양상을 가지며 생겨나지 않는 성품을 갖는다. 수ㆍ상ㆍ행ㆍ식을 이렇게 본다면 여래를 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계(戒)는 하염없고, 조작없고, 일어나는 모양이 없다. 이와 같이 계를 본다면 여래를 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정과 혜와 해탈과 지견에 대해서도 이렇게 본다면 여래를 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자재왕아, 내가 과거 연등부처님[燃燈佛] 때 부처님의 청정함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때 연하여 생겨나는 법을 보았기 때문에 법을 보았으며, 법을 보았기 때문에 여래를 보았다.”
007_1169_a_16L佛言何以故色是盡相性無生故能見色如是是名見如來受想行識是盡性無生故能見識如是是名見如戒是無爲無作無起相能見戒如是名見如來定慧解脫知見等亦如是是名見如來自在王我於過去燃燈佛時得見佛淨我於爾時見緣生法故見法以見法故見如來
자재왕이 아뢰었다.
“연등부처님 이전에는 어떻게 모든 부처님을 보셨나이까?”
007_1169_a_24L自在王言於燃燈佛已前云何見諸佛
007_1169_b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색신의 모양으로 보았기 때문에 보았으며, 둘이 아닌 법신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았다.14)
지금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내가 처음 발심해서부터 이제까지 부처님을 본 적이 없다. 왜냐 하면 색상(色相)으로 보지 않았으므로 부처를 본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재왕아, 보살이 부처를 보고자 한다면 내가 연등 부처님을 본 것과 같이 해야할 것이니, 모든 법은 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 모양인가? 내 몸과 같이 연등부처님의 몸도 이와 같으며, 연등 부처님과 같이 내 몸도 이와 같다. 한 몸이기 때문에 둘이 아닌 것, 다르지 않은 것으로 한 법의 모양에 들어간다. 이것을 연하여 생겨나는 법을 본다고 한다. 연하여 생겨나는 법을 보기 때문에 법을 본다 하고, 법을 보기 때문에 부처를 본다고 한다.
보살이 한 생각 속에서 멸제[滅]를 증득해도 실제로 멸제를 증득한 일이 없으며, 태어나고 죽는 것을 찾을 수 없되 방편의 지혜를 쓰기 때문에 멸제를 증득하는 일과 생사에 빠지는 일을 보인다면 이것을 보살의 지혜가 자재하다[智自在]고 한다.”
007_1169_a_25L佛言以色身相見故見不以不二法身見故見今爲汝說我從初發心未曾見何以故不以色相見故名爲見佛是故自在王若菩薩欲得見佛應如我見燃燈佛以諸法一相故云何一如我身燃燈佛身亦如是如燃燈佛身亦如是一身故以不二不別入一法相是名見緣生法以見緣生法名爲見法以見法故名爲見佛若菩薩能於一切念中證滅而不實滅死不可得而以方便智故示是名菩薩智自在
自在王菩薩經卷上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자신이 가장 훌륭한 법을 얻었다고 아만심을 일으키는 것. 즉 성도(聖道)를 얻지 못한 이가 성도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
  2. 2)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 네 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
  3. 3)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네 가지 바른 노력. ① 이미 생긴 악은 없애려고 노력함[斷斷]. ②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미리 방지함[律儀斷]. ③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함[隨護斷]. ④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커지도록 노력함[修斷]. 이 각각을 단(斷)이라 하는 것은 이러한 노력이 나태함과 나쁜 행위를 끊을 수 있기 때문임.
  4. 4)사신족(四神足)이라고도 하며, 뜻대로 되는 뛰어난 선정에 들기 위한 네 가지 기반. ① 뜻대로 되는 선정에 들기를 원함[欲神足]. ② 뜻대로 되는 선정에 들려고 노력함[精進神足]. ③ 뜻대로 되는 선정에 들려고 마음을 가다듬음[心神足]. ④ 뜻대로 되는 선정에 들려고 사유하고 주시함[思惟神足].
  5. 5)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다섯 가지 뛰어난 능력. ① 부처의 가르침을 믿음[信根]. ② 힘써 수행함[精進根]. ③ 부처의 가르침을 명심하여 잊지 않음[念根]. ④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흐트러지지 않게 함[定根]. ⑤ 부처의 가르침을 꿰뚫어봄[慧根]. 이 다섯 가지 자질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활동을 5력(力)이라 함.
  6. 6)7각지(覺支), 7각분(覺分), 7각의(覺意)라고도 하며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일곱 가지 수행. ① 가르침을 명심하여 잊지 않음[念覺支]. ② 지혜로써 바른 가르침만 선택하고 그릇된 가르침은 버림[擇法覺支]. ③ 바른 가르침을 사유하면서 수행함[精進覺支]. ④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평온한 기쁨이 생김[喜覺支]. ⑤ 평온한 기쁨이 생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이 경쾌해짐[輕安覺支]. ⑥ 몸이 경쾌한 수행자가 정신을 집중 통일시킴[定覺支]. ⑦ 집중 통일된 마음을 평등하게 잘 응시함[捨覺支].
  7. 7)허망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마음작용.
  8. 8)허망분별이 일어나지 않는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탐ㆍ진ㆍ치가 소멸된 열반의 상태. 허공이나 진여 등이 무위법에 속함.
  9. 9)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 8해탈이라고도 함. ① 마음 속에 있는 색상(色相)을 버리기 위해 바깥 대상의 색상에 대해 부정관(不淨觀)을 닦음. ② 마음 속에 색상은 이미 없어졌으나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부정관을 계속 닦음. ③부정관을 버리고 바깥 대상의 색상에 대하여 청정한 방면을 주시해도 탐욕이 일어나지 않고, 그 상태를 몸으로 완전히 체득해 들어감. ④ 형상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허공은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선정으로 들어감. ⑤ 허공은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선정을 버리고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주시하는 선정으로 들어감. ⑥ 앞의 선정은 버리고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주시하는 선정으로 들어감. ⑦ 앞의 선정은 버리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선정으로 들어감. ⑧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선정으로 들어감. 이 여덟 가지 선정은 앞 단계를 등지고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배사(背捨)라 함.
  10. 10)원문에는 물을 문(問)이나 문맥상 들을 문(聞)으로 읽었다.
  11. 11)마찬가지로 원문의 물을 문(問)을 들을 문(聞)으로 읽었다.
  12. 12)6근(根)의 대상인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13. 13)이상 다섯 가지는 부처와 아라한이 갖춘 공덕으로서 5분법신(分法身)이라고 함. ① 행동과 말이 청정함[戒身]. ②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생기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관조하는 공삼매(空三昧)와 대립적인 차별은 없다고 관조하는 무상삼매(無相三昧)와 원하고 구할 것은 없다고 관조하는 무원삼매(無願三昧)를 성취함[定身]. ③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앎[慧身]. ④ 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지혜를 갖추어 무지에서 벗어남[解脫身]. ⑤ 자신은 이미 사제를 체득했다고 아는 진지(盡智)와 자신은 이미 사제를 체득했기 때문에 다시 체득할 필요가 없다고 아는 무생지(無生智)를 갖춤[解脫知見身].
  14. 14)고려대장경 1169쪽 상단 끝부분에 원문이 잘못된 듯하다. 색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볼 수 있었고 둘 아닌 법신으로 보았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고 해야 맥락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