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07_1201_a_01L
불설무언동자경(佛說無言童子經) 상권
007_1201_a_01L佛說無言童子經卷上


서진(西晉) 월지(月支)삼장 축법호(竺法護) 한역
이진영 번역
007_1201_a_02L西晉月支三藏竺法護譯


이와 같이 들었다.
007_1201_a_04L聞如是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열기(羅閱祗)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1,250비구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보살마하살들과 함께 계셨다.
007_1201_a_05L一時佛遊羅閱祇耆闍崛山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訶菩薩無央數
그때 왕사성에 사자장군(師子將軍)의 첫째 부인이 산기가 있더니 덕 있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007_1201_a_07L爾時城中師子將軍第一夫人孕有德男
때마침 허공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자여, 너는 마땅히 불도의 가르침[道敎]에 뜻을 두고 경전을 생각할 뿐, 부디 세간의 말과 이야기는 선설하지 말아라. 방편으로 세간 제도하는 법을 환하게 깨달을 것이니 함부로 말하지 말고 세속[方俗]의 일을 버리며, 마땅히 올바른 이치로 돌아갈 것이지, 화려한 말이나 꾸며대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라.”
007_1201_a_08L天虛空唱大音聲而告之曰童子汝當懷抱道教思惟經典愼莫宣說世之言談曉了方便度世之法少言尟辭捨方俗事歸正義不取美辭嚴飾之說
동자는 멀리서 들리는 이러한 가르침의 소리를 듣고는 아예 울거나 어떤 말소리도 내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어린 아이의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았고, 7일이 지나자 그 얼굴에 기쁨이 가득할 뿐 조금도 초췌한 기색이 없었다.
007_1201_a_12L童子遙聞如是音教未曾啼泣亦不出聲不自現嬰兒之相至于七日顏貌悅豫無有顦顇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한없이 쳐다보았고, 한쪽에선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 아이는 말도 못하는데 길러서 무엇하랴?”
007_1201_a_15L衆人來觀視之無厭有人言此兒無聲用爲育養
그러자 아이의 부모가 답하였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우리가 길러야만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 이 아이의 단정한 얼굴과 헤아릴 수 없이 당당하고 뛰어난 미묘한 모습을 보니, 평범한 아이가 따라올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다.”
007_1201_a_16L父母答是非隨宿吾當育之所以者何觀此兒威容顏貌端正姝妙巍巍難非是凡庶之所能及實不虛妄
007_1201_b_03L그리고는 부모ㆍ친척과 여러 친지들이 이 아이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곧 ‘무언(無言)’이라고 이름하였다. 이에 무언 동자는 점점 자라나 여덟 살이 되었고,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관찰하고자 하는 이가 계속 끊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에도 어떤 곳에서 이치를 분별하는 법회가 있을 때면 동자는 그 법회에 나아가서 설법을 듣되 역시 고요히 생각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007_1201_a_19L時父母親屬知識見兒無聲因共字之號曰無言於是無言童子漸遂長大至于八歲四方衆人來觀察者無有懈厭其有方面或有法會分別義者輒詣其所諮受法言寂然靜思亦無所說
어느 날 동자는 평소와 다르게 그의 부모ㆍ가까운 친척[五種親屬]ㆍ친구ㆍ친지들과 함께 가사굴산으로 갔다. 그는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편으로 세 번 돌고는 세존 앞에 합장하고 서서, 무수한 시방 세계로부터 모여든 억백천 해의 보살들이 각각 장엄되고 청정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였고 곧 착한 마음이 생겼다.
007_1201_b_04L時彼童子而於異日與其父母五種親屬朋友知識至耆闍崛山而詣佛所首足下右繞三帀於世尊前叉手而睹無央數十方世界諸菩薩會億百千姟各各處于嚴淨之座心大歡然善意生焉
그때 사리불(舍利佛)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말씀드렸다.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이 무언 동자는 바로 사자장군의 아들이며 그 단정한 얼굴과 헤아리기 어렵게 뛰어난 모습이 이와 같지만 아무런 말을 못하오니, 이 동자는 전생의 어떤 재앙이 남아 있기에 태어날 때부터 말이 없고 또 말을 하지 못하나이까?”
007_1201_b_10L時舍利弗前白佛言天中天是無言者師子將軍之子正姝好威光難量巍巍如此離於言談而無所說其人前世有何餘殃無有聲又不能言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대답하셨다.
“그만 두라. 무언 동자를 함부로 업신여기지 말아라. 왜냐 하면 이 동자는 바로 과거세의 보살마하살로서 이미 과거 부처님들께 온갖 공덕의 뿌리를 심어 그 무수한 모든 부처님ㆍ정각(正覺)들에게 공양하고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여 물러서지 않는[不退轉] 지위를 얻었으므로, 곧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성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007_1201_b_14L佛告舍利弗止止勿得輒慢無言童子所以者何此人則是菩薩大士於過去佛殖衆德本供養無數諸佛正覺稽首足下得不退轉當成無上正眞之道
그리고 동자가 처음 태어났을 때에 허공에서 큰 소리로 외치기를, ‘동자여, 너는 앞으로 불도에 뜻을 두어 경전을 생각할 뿐 세속의 말은 하지 말아라’ 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이 보살이 지금까지 조용하게 말이 없었던 것이다. 또 유순(柔順)하게 가르침을 받은 지 여덟 살이 될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그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네 가지 선정[四禪]을 받들어 행하였노라.”
007_1201_b_18L初生之時天於虛空宣揚大音童子汝當抱道思惟經典勿有世談以是之故此菩薩寂然不言受柔順教於茲八一心結舌而無所說以斯憺怕奉行四禪
세존은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 어떤 중생이라도 만약 이 무언보살을 보고서 이와 같이 불도의 가르침만 따르고 세속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러한 인연으로 곧 지금의 큰 법회에서라도 경전의 법을 선설(宣說)하여 한량없고도 말할 수 없는 인민들을 모두다 교화시켜 이롭게 인도할 것이니라.”
007_1201_b_23L世尊復告舍利弗言其有衆若能睹無言菩薩悉順道教由此無言以是之故今有大會當說經法開化導利於無央數不可稱人民之衆
007_1201_c_02L이에 무언보살은 곧 그 모습대로 삼매에 들어 상서로운 모습을 나타내었고, 모든 성문ㆍ보살들을 비롯한 천룡(天龍)ㆍ귀신(鬼神)ㆍ건답화(揵沓和)ㆍ아수륜(阿須倫)ㆍ가류라(伽留羅)ㆍ진다라(眞陀羅)ㆍ마후륵(摩睺勒)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 등 일체 대중 각각의 오른 손바닥에 수레바퀴와 같이 큰 연꽃을 화생(化生)시켰다.
007_1201_c_02L於是無言菩薩卽如其象三昧正受而現瑞應令諸聲聞及衆菩薩鬼神揵沓和阿須倫伽留羅眞陁羅摩睺勒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一切衆會各於右掌化生蓮華大如車輪
그 미묘하고도 선명한 갖가지 빛깔과 한량없는 향내에 보는 이마다 마음으로 기뻐하였으며, 또 그 연꽃 위에는 자연스럽게 화생한 보살들이 서른두 가지 상호로 그 몸매를 장엄하여 결가부좌하고 있었다.
007_1201_c_09L其色若干微妙鮮好其香難量見者心歡彼蓮華上則有自然諸化菩薩結加趺坐三十二相莊嚴其身
무언보살이 이러한 큰 신족통(神足通)을 나타내어 세존께 머리 조아려 거듭 귀명하자 그 연꽃 위에 앉은 모든 보살들도 함께 합장하고 몸을 굽혀서 세 번 스스로 귀의하였다.
007_1201_c_11L無言菩薩見大神足稽首世尊重自歸命其蓮華上諸坐菩薩叉手卑身亦三自歸
무언보살이 머리 조아려 귀명하는 것을 입으로 선창하자 때맞추어 항하 강변의 모래알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가 저절로 여섯 가지로 진동할 정도로 그 큰 음성은 널리 울려 퍼졌고, 허공에선 찬탄하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고, 온갖 꽃이 흩뿌려지고 공후(箜篌) 따위의 악기들이 연주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울렸다.
007_1201_c_14L無言菩薩口適宣此稽首歸命應時自然恒邊沙等諸佛世界六反震動大音普聞天於空中歎若雷震則雨衆華箜篌樂器不鼓自鳴
이에 무언보살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 그의 큰 서원을 성취하여 땅에서 공중으로 네 길[丈] 아홉 자[尺] 높이만큼 솟아올랐고, 다른 대보살들도 그렇게 하였다. 무언대사(無言大士)는 그 공중에서 여러 보살들과 함께 이구동성으로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007_1201_c_17L無言菩薩承佛威神大願所致踊在空中去地四丈九尺大菩薩衆亦復如是無言大士而於中與菩薩異口同音以偈讚佛

형체가 없이 형체를 나타내지만
또한 빛깔에 머물지 않고
단지 중생을 열어 교화하기 위해
그 몸을 나타내고 가르치시네.
부처님께선 본래 색신이 없고
유위법에도 집착하지 않지만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도사(導師)께선 일부러 몸을 나타내시네.
007_1201_c_21L無形而現形
亦不住於色
欲以開化衆
現身而有教
佛者無色會
亦不著有爲
皆度一切數
導師故現身

서른두 가지 상호를 나타내고
기묘한 여든 가지 종호(種好)로써
그 신체를 장엄하시고는
중생을 위해 법을 강설하시네.
007_1201_c_24L顯相三十二
奇好八十種
以嚴其身體
爲衆講說法
007_1202_a_02L
법이란 아무런 형상이 없고
어떤 음향(音響)도 없나니
음향이 없으므로 얻을 것 없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고요하고도 미묘하여라.
007_1201_c_25L法者則無相
亦無有音響
無聲不可得
無念寂微妙

부처님께선 이러한 법을 깨달으시어
보리수 아래 앉아 계시니
그 도는 바로 말없는 가르침이라
어떤 언사로도 말할 수 없다네.
007_1202_a_04L佛法覺了法
處在佛樹下
彼道無言教
言辭無所說

그 법은 형상 없는 법이라
형상을 구하려해도 구할 수 없나니
형상 없는 그러한 법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으랴?
007_1202_a_05L其法無形法
求相不可得
以無相之法
安可有所說

중생을 가엾이 생각하심이
곧 부처님의 큰 은혜라
얻을 것 없는 법을 분별하시어
때를 놓치지 않고 선설하시네.
이 얻을 것 없음을 훤히 깨달으시고
얻을 것 없는 공(空)을 깨달으시어
이와 같이 길러내시니
부처님의 이치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네.
007_1202_a_06L愍傷於群生
此佛之大恩
分別無所獲
所說不失時
曉了無所得
解空無所獲
能如此養者
佛義無名字

유위의 말로써 가르침이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이 법 또한 아무것도 없고
무위이고 자연조차 없다네.
007_1202_a_09L有爲之言教
諸佛因所說
彼數無所有
無爲無自然

이처럼 덧없는 형색(形色)으로
도사께선 인연 따라 그 모습 보여주시고
이 법 아무것도 없다는 것
중생 위해 이 경(經)을 말씀하시네.
007_1202_a_10L如無常形色
導師緣見象
此法無所有
爲衆說此經

처음 태어나 여덟 살이 되기까지
입으로 아예 말하지 않음은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하늘이 큰소리로 외쳤기 때문이네.
007_1202_a_12L又始至八歲
口未曾有言
我初生之時
諸天唱大音

‘경전을 생각하라’ 하였기 때문에
귀로도 소리를 듣지 않고
이와 같이 도업(道業)에만 뜻을 두어
입으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네.
007_1202_a_13L以入惟經典
其耳不聞聲
如是懷道業
口亦無所說

가령 말하지 않음[無言]에 어떤 가르침이 있다면
말로서 드러낼 것이 없으니
말로서 해설할 수 있는 것이라면
청정하고 미묘하고 밝을 것이리라.
이러한 서원으로 불도를 생각하되
그 뜻을 대승(大乘)에 두고서
마땅히 높은 가르침을 받들어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부처가 되리다.
007_1202_a_14L無言假有教
辭語無所暢
以言謂有說
淸淨妙光曜
念誓願佛道
志在於大乘
當宣于尊教
得佛人中上

불도의 마음이란 얻을 수 없고
말 없고 형상도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불도는 공하여
얽매임을 풀고 빛나는 광명을 이룬다 한다네.
007_1202_a_17L道心不可獲
無言無相念
是故曰道空
解結成暉曜

이에 동자가 그 법회의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불도[道]와 언교(言敎)는 평등하여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볼 수 없고 가질 수도 없습니다. 볼 수 없다고 말함은 입으로 그 도를 말할 뿐 형상이 없기 때문이고, 가질 수 없다고 말함은 사람이 그 도를 구하기는 하여도 처소가 없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007_1202_a_18L於是童子謂諸衆會道與言教等無有異不可見不可持所可說無能睹口說志道人計於道而有所求其所處願斯無所有
처소가 없으므로 머무는 곳이 없고, 머무는 곳이 없는 곳에 머무는 그것이 바로 도의 머묾입니다. 모든 도무극(度無極:波羅蜜多)이 또한 이와 같고 그 밖의 무수한 공덕의 뿌리도 모두다 이와 같아서, 언교를 말하더라도 말할 것이 없기 때문에 언교란 다만 음성을 빌린 것이고 실지로는 언사가 없는 것입니다.
007_1202_a_22L不可得處則無所住如是住者道之所立也諸度無極亦復如是及餘無數衆德之本說於言教亦無所說但是音聲無有言辭
007_1202_b_02L뿐만 아니라 보시를 말해보더라도 보시하는 이와 보시 받는 이와 보시[惠與]에 회향하는 곳이 있어서 도가 일체에 평등하게 머물게 되니, 가엾이 여기는 말을 하거나 불도의 가르침을 베풀어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는 그 도의 자연스럽고 평등함이 저 허공과 같습니다.
007_1202_a_25L說布施者以施當施者惠與有所向道住一切等口說愍哀施道教亦行其道爲自然平均如虛空
마음의 깨달음에 따라 말하여야만 그 말의 모든 것이 다 청정함을 헤아릴 수 있고, 그 도가 허공과 같이 상서롭기가 이와 같습니다. 몸의 행과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이 보시한다거나 보시 받는다는 온갖 번뇌를 모두다 버려야만 시도무극(施度無極:布施波羅蜜多)이라 할 수 있으니, 힘써 행해야 할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007_1202_b_05L心所曉了有所說計彼一切悉爲淸淨其道爲普虛端如是身行口言心有所思捨施施斯一切塵勞是乃名曰施度無極所可勸助亦復如
보시는 도의 은혜가 아니라고 하든가 도는 보시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두 가지 일이 단지 음성을 빌린 것뿐이며, 진실로 아무런 집착이 없고 어떤 형상도 없는 것입니다.
007_1202_b_09L是布施非是道之恩惠有計道者不依布施是二事者但假聲耳永無所著亦無形像
가령 이와 같이 도와 언교를 받아 간직한다면 보살행이라 할 수 있고 또한 시도무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니, 왜냐 하면 보시하는 시주가 청정하여 그 보시한 것에 대한 갚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1202_b_11L假使如是受道教者爲菩薩行彼乃名曰施度無極於布施主則爲淸淨有所惠與不想報故
그리고 귀로 계율[禁戒]에 대해 듣고서 색(色)에 집착하지 않으면 생겨나는 것이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으니, 이를 계율이라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계율을 닦는 자도] 그 몸과 입과 마음으로 하는 일이 모두 조작함이 없고 모두 소유하지 않으며, 또한 분별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007_1202_b_14L耳聞禁戒不住於色則無所生亦無所滅是爲戒者亦復如是身口心事若無所造悉無所有而反分別
강설함에 있어서 어떤 인연은 서로 합하여 이루어졌다고 입으로 말하는 그 명칭을 곧 계율이라 하거나 또는 입으로 말하는 그대로가 바로 계율이라 하거나 이 두 가지 일은 모두다 형상이 없습니다.
007_1202_b_17L所講說因緣合成口有所說因名曰戒如口所說戒亦如是此二事者俱無形像
그러므로 모든 계율의 업이란 그 일체가 다만 언어를 빌렸을 뿐이고 아무런 장구(章句)가 없는 것이며, 또 도를 헤아려본다고 하더라도 어떤 말로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입으로 드러내 말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몸으로 업을 지어도, 이 계율은 도덕을 힘써 돕는 것이니, 계율을 도라고 말하고 말로서 계율을 밝히려는 그 일체가 모두 형상이 없어서 마치 저 허공과 같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닫는다면 이것으로써 그 매우 깊고도 미묘한 도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007_1202_b_19L諸禁戒業一切假言語無章句計於道者無所言說其口所暢及心意以業是禁戒勸助道德言戒爲道欲曜於戒一切無像猶如虛空能曉了此是謂獨步報行禁戒所可遊志超絕無侶入平等覺亹亹深妙難及之道
이에 동자가 다시 게송을 읊어 찬탄하였다.
於是讚曰
007_1202_c_02L
말과 마찬가지로 도(道) 또한 그러하여
간직할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한 말에서도 볼 것이 없는 것이
내가 선설하는 불도라네.
007_1202_b_25L如言道亦然
無持不可見
所說無所睹
我宣者佛道

서원을 세워 도를 구하지만
그 바라는 것도 머묾이 없으므로
머묾도 없고 있는 곳도 없으니
도가 존재하는 곳 또한 이와 같다네.
007_1202_c_04L誓願求於道
所願無所住
無住無處所
道所立亦然

모든 도무극(度無極:波羅蜜多)도 그와 같고
모든 공덕을 짓는 것도 그러하여
언사(言辭)란 다만 음성을 빌린 것일 뿐
말한다해도 아무런 말할 것 없는 것이네.
007_1202_c_05L諸度無極然
及所作衆德
言辭託音聲
所說無所說

보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보시해야 마땅한 곳에 보시하는 것이니
그래야 비로소 보시 받는 이가
모두 평등한 도에 머물게 되리라.
007_1202_c_06L所可謂布施
所施當所施
方當所憲者
悉住平等道

입으로 보시를 드날리고
불도의 일을 설명한다면
그 도는 또한 자연 그대로
저 허공처럼 평등하리라.
007_1202_c_08L口所暢布施
敷演於道事
彼道亦自然
等猶如虛空

만약 마음을 훤히 깨칠 수 있다면
입으로 선설하는 것
그 모두가 다 청정하고
청정함을 듣는 자도 모두 도에 나아가리라.
007_1202_c_09L若能曉了心
口之所說者
彼一切淸淨
聞淨皆至道

몸과 입과 마음에서
온갖 번뇌를 모두 버리고
남에게 권하기를 또한 그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도무극(施度無極)이네.
007_1202_c_10L身口及心念
捨一切塵勞
所勸亦如斯
是施度無極

보시는 도에 귀착되지 않고
도가 보시를 의지하지 않으니
이 두 가지는 모두 이름을 빌렸을 뿐
집착도 없고 형상도 없는 것이라네.
007_1202_c_12L布施不歸道
道不倚於施
此二者假名
無著亦無象

만약 의지하는 바가 없고
도를 받아들임 또한 그렇게 하며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것을 바로 보시라 하네.
007_1202_c_13L若無所依倚
其受道若斯
若不望想報
是名曰布施

가령 계율을 들음에 있어서도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아서
일으키지도 않고 멸할 것도 없으면
이것이 바로 계율의 모습이라네.
007_1202_c_14L而假聞禁戒
不住於形色
不起無所滅
是爲戒之相

계율을 행하지 않음도 이와 같아서
몸ㆍ입ㆍ마음에 다름이 없으며
지음도 없고 소유한 것도 없이
임시로 말이 존재할 뿐이네.
007_1202_c_16L不行戒亦爾
身口心無異
無作無所有
假有言說耳

인연이 합쳐져 말이 있고
이름을 붙여서 계율이라 할 뿐
나의 계율은 바르고 평등하니
이 두 가지 일은 번뇌가 없다네.
007_1202_c_17L因緣合有辭
說號禁戒耳
如吾戒正等
此二事無漏

계율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모두가 말을 빌린 것일 뿐
도의 이치를 얻은 자로선
말도 없고 업도 없다네.
007_1202_c_18L諸可禁戒事
一切假於言
道義所獲者
無言亦無業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계율로써 도의 이치를 힘써 권하는 것
계율과 불도의 가르침을 생각함이
모두가 저 허공과 같다네.
만약 이것을 훤히 깨우친다면
그는 곧 홀로 뛰어나 널리 계율에 들어
도에 노닐고 머물게 되리니
그 깊고 오묘한 장구(章句)를 깨닫게 되리라.
007_1202_c_20L口說心所作
禁戒勸助道
計戒及道教
一切如虛空
若曉了此者
獨步普入戒
則遊居於道
深妙難解句

그때에 동자가 또 그 법회에 온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인욕의 가르침이란 또한 하나의 언사이고 공(空)과 공의 이치를 깨달아야만 비로소 인욕이라 할 것이니, 인욕은 바로 평등과 같아서 3계도 이와 같고, 인욕을 말하는 것은 어떠한 부류의 형상도 없는 것이어서 볼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이 평등한 마음을 인욕이라 합니다.
007_1202_c_22L童子又謂諸來會者所可謂言忍辱教者亦是言辭解空空義乃爲忍辱忍如平等三界亦如說忍形類無像無見等心於此乃名曰忍
007_1203_a_02L 만약 텅 비어 고요한 것을 인욕의 근본이라 한다면, 소리와 냄새ㆍ맛 따위는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것은 어떤 것도 아니고 그저 문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욕이란 말을 선창하는 것입니다.
007_1203_a_02L若能虛靜爲忍辱根音聲香味因緣合成彼無所有但文字耳是故宣暢言忍辱矣
여래ㆍ정각께서 세 가지의 인욕을 말씀하셨으니, 몸의 행과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이요, 이러한 인욕을 훤히 깨달은 자라야만 인욕을 수행한다 할 것입니다. 가령 그 몸뚱이를 자르고 팔ㆍ다리를 갈래갈래 찢어버린다 하더라도 성내는 마음과 몸뚱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그 몸뚱이를 마치 장벽(墻壁)처럼 본다면 그것이 바로 몸에 대한 인욕입니다.
007_1203_a_05L如來正覺說有三忍心念若能曉了此忍辱者是曰爲忍解斷其身節節離散心無瞋恚恩愛及身譬如牆壁察身如是爲忍辱
아무리 나쁜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듣더라도 모두 참아 견디어 내고, 모든 언사에 있어서 그 말을 마음에 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입에 대한 인욕입니다. 온갖 더러움 속에 뒤섞이더라도 마음이 고요하여 우울하지 않고 마음으로 모든 문자를 잘 분별한다면 그것이 바로 마음에 대한 인욕입니다. 이러한 인욕을 수행하되 몸의 행과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이 함께 일치되어야만 비로소 인욕의 도(道)라고 합니다.
007_1203_a_09L遠聞惡口所暢說若能堪任於諸言辭不味所說乃爲忍辱若復遊志一切瑕穢其心靜然而無憂結意能分別諸文字者心乃入於忍辱計如忍道亦如此口意俱同爾乃名曰道
성교(聖敎)를 널리 전하고 여러모로 힘써 돕는 자는 가장 훌륭한 것이건 보잘것없는 것이건 또 보통의 것이건 온갖 정진을 억 겁이 다하도록 하여, 얻지 못할 것도 성취합니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정진하더라도 미칠 수가 없고, 도덕에 대해 생각하더라도 또한 얻을 것이 없는 것, 이것을 바로 정진이라 합니다.
007_1203_a_14L宣傳於聖教多所勸助者一切精進上妙細微諸中閒億劫合集而不可得至於成假使精進不可逮得計於道德亦無所獲不得諸法是曰精進
닦는 정진을 설령 이와 같이 하더라도 겁내지 않고 공포를 느끼지도 않는다면, 대정진을 최고로 잘 통달한 용맹스러운 보살로서 인의(仁義)를 다 갖추었다고 할 것입니다.”
007_1203_a_18L所修精進設能如是不懷怯弱亦無恐懅謂極上通大精進猛勇菩薩仁義備
이에 동자가 거듭 게송을 읊었다.
於是童子重頌曰

인욕의 가르침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입으로 선창하는 것이고
공과 공의 이치를 깨달아야만 인욕이라 하며
그 인욕은 3세에 평등하다네.
007_1203_a_21L可所謂忍辱
口之所宣暢
空空義故忍
如忍等三世

아무리 인욕의 모습을 말하더라도
모습이 없어 볼 수 없으니
평등한 마음을 가져야만
비로소 인욕이라 할 수 있다네.
007_1203_a_23L說於忍色像
不貌不可見
若心等於斯
爾乃名曰忍

인욕은 텅 비고 고요한 것이라
소리와 냄새ㆍ맛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
거기에 어떤 문자도 없는 것
이것을 인욕이라 한다네.
007_1203_a_24L忍類爲空靜
緣合聲香味
彼無有文字
此乃名曰忍
007_1203_b_02L
세존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인욕
그 몸의 행과 입의 말과 마음의 생각을
누구라도 훤히 깨달아 널리 편다면
인욕이라 말할 수 있다네.
007_1203_a_25L講宣此三忍
身口及心念
若人曉了此
暢乃名曰忍

가령 온몸 마디마디를 잘라버리더라도
마음에 성내는 마음을 품지 않고
몸뚱이를 마치 장벽처럼 본다면
이것을 몸에 대한 인욕이라 한다네.
007_1203_b_04L節節解其身
而心不懷恚
身受如牆壁
是爲身忍辱

아무리 나쁜 말을 듣더라도
그 욕하는 말에 보복하지 않고
모든 언사를 다 참아 낸다면
실로 그 말에 머물 수 있네.
007_1203_b_05L遠聞有惡言
不報于罵辭
入此音乃忍
悉能住所說

어떠한 더러움 속에 뒤섞이더라도
마음이 고요하여 우울하지 않고
그것이 공한 이치를 깨닫는다면
마음에 대한 인욕이라 한다네.
007_1203_b_06L若於諸瑕疵
心不懷愛結
設能了字空
是心入忍辱

인욕의 도 또한 그러므로
몸과 입과 마음을 이와 같이 한다면
그것을 곧 도라고 하며
불도를 힘써 돕는 것이라 하리라.
007_1203_b_08L如忍道亦然
身口意如是
此乃名曰道
名所而勸助

모든 정진을 다하여
최상이건 보통이건 보잘것없는 것이건
억천 겁이 지나도록
얻지 못한 것을 성취하리라.
007_1203_b_09L若諸所精進
最上中微下
合集億垓劫
不得便成就

정진으로 얻을 수 없고
도덕으로도 잡을 수 없어
일체법에 미칠 수 없다면
그야말로 정진이라 하리라.
007_1203_b_10L精進不可得
道亦無所獲
不逮一切法
是曰爲精進

만일 온 힘을 다해 이를 행하며
겁내지 않고 어렵게 여기지도 않는다면
그를 곧 뛰어나게 정진하는
용맹스러운 보살이라 하리라.
007_1203_b_12L若勤力行此
無怯不懷難
彼則大精進
爲猛勇菩薩

이에 동자가 다시 법회에 온 여러 대중에게 말하였다.
“이른바 선정[禪思]이란 생각하는 것도 없고, 선정을 헤아려보아도 또한 머무르는 곳이 없어서 모든 생각을 버려야만 곧 적도무극(寂度無極:禪定波羅蜜多)이라고 합니다. 고요하고도 맑고 깨끗하여 말이 없고 게으름도 없이 모든 번뇌를 여의어 없애버려야만 곧 적도무극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모든 법에 대해서 버리지도 왔다갔다하지도 않아 마음에서 마음을 여의어야만 이것을 적도무극이라 합니다.
007_1203_b_13L童子復謂諸來會者所謂禪思亦不有念計於禪者亦無所住棄一切想是乃名曰寂度無極則能寂然澹泊無言無放逸離諸漏而燒滅一切塵是名曰寂度無極
그리고 마음과 선정이 불도를 향한 마음에 이르러서도 늘 평등하게 온갖 일을 관찰합니다. 만일 평등할 수 있다면 모든 관찰에 있어서 삿됨도 올바름도 없으리니, 이것이 이른바 불도는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007_1203_b_18L心於諸法不遣往於心離心是則名曰寂度無極及禪定常至道意恒以平等觀此衆若能平等於諸所觀無有邪正謂佛道不爲難得
문자도 없고 말할 것도 없으며, 끝이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며, 게으름도 없고 제 멋대로 하는 일도 없어야 이를 곧 지도무극(智度無極:智慧波羅蜜多)이라 합니다. [생사의] 이 언덕도 없고 [열반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도 않습니다.
007_1203_b_22L無有文字亦無所不可究竟亦無所有無有放逸亦不自恣此乃曰智度無極無有此際不度彼岸
007_1203_c_02L 또한 이쪽 저쪽에 머묾이 없고, 법계를 바르게 건립하지만 머묾도 없고 또한 집착도 없으며, 문자도 없고 선포할 것도 없으며, 문자가 없으므로 다시는 일체의 생각을 거론하지도 빌리지도 않습니다. 만일 이러한 법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를 곧 지도무극이라 합니다.
007_1203_b_25L又於此彼而無所住正立法界以無所住亦無所著亦無文字所頒宣無文字已不復擧假一切思若能啓受於此法者爾乃名曰智度無極
6도무극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이치를 평등하게 관찰한다면 일체 모든 법에 평등할 수 있고 또한 모든 중생에게도 평등할 수 있으며, 만약 일체 모든 법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면 모든 중생에게 평등할 수 있습니다.
007_1203_c_06L六度無極亦復如是假使有人等觀此義則能均平一切諸法能等於一切衆生若能同象一切諸則能均平一切衆生
만약 모든 중생에게 평등할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께 평등할 수 있으니, 모든 부처님께 평등하였다면 그는 일체지(一切智)를 잘 받들어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두려움 없는 용맹이 이와 같다면 바로 끝없는 지혜라고 이름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가르침의 명령[敎命]에 순종할 수 있다면 곧 불가사의한 법안(法眼)을 얻게 될 것입니다.”
007_1203_c_09L若能平均一切衆生則能平等一切諸佛等諸佛則能奉修於一切智是故菩薩勇猛無畏猶斯名曰無極智慧若能順從此教命者則順法眼不可思議
이에 동자가 거듭 게송을 읊었다.
007_1203_c_13L是童子以偈頌曰

선정이란 생각하는 것 없고
오롯한 마음으로 머무르는 곳 없이
일체의 모든 생각을 다 끊어야만
적도무극이라고 이름한다네.
007_1203_c_14L禪行無所思
專心不有住
斷一切諸想
名寂度無極

고요하고도 맑고 깨끗하게
게으르지 않고 번뇌도 없이
온갖 더러운 번뇌를 다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적도무극이네.
007_1203_c_16L寂然而澹泊
不逸無諸漏
棄捐衆塵勞
是寂度無極

또 그 마음이 일체의 법에
버림도 또 가고 되돌아옴도 없이
무심한 마음으로 그 마음을 벗어나야만
고요히 저 열반의 언덕에 닿는다네.
007_1203_c_17L其心一切法
未曾遣往反
無心脫於心
寂然度彼岸

마음과 도를 따져보고
그것을 관찰해보면 모두가 평등하니
만약 평등하게 관찰할 수 있다면
불도는 얻기 어려운 것 아니라네.
007_1203_c_18L計心及與道
觀之悉平等
若能察平等
佛道不難得

문자를 버리고 말도 없이
근본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기뻐하지도 않고 방자하지도 않아야만
이를 지혜라고 한다네.
007_1203_c_20L捨文字無言
無本無所有
不樂不自恣
乃名爲智慧

이 언덕도 없고 저 언덕으로 건너지도 않고
이쪽 저쪽에도 머물지도 않으며
법계를 올바르게 건립하되
머물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네.
007_1203_c_21L無此不度岸
不住彼此際
正立於法界
不住無所著

문자로서 선포할 것이 없어
모든 생각과 함께 하지 않으니
이렇게 모든 법을 받아들여야만
이를 지혜라고 한다네.
007_1203_c_22L文字無班宣
不與一切想
以是受諸法
乃名曰智慧

모든 도무극이 다 그러하므로
동일한 이치로서 관찰한다면
모든 법에 평등하고
모든 중생에게도 평등할 수 있다네.
007_1203_c_24L諸度無極然
所見一同類
則能等諸法
平均於衆生

모든 법에 평등할 수 있다면
모든 중생에게 평등할 수도 있고
모든 법에 평등할 수 있다면
곧 일체지와 똑같다네.
007_1203_c_25L以能等諸法
則能等衆生
亦等於諸法
便等一切智
007_1204_a_02L
그러므로 큰 지혜로
보살이 용맹하게
이 가르침의 명령을 따를 수 있다면
불가사의한 법안을 얻게 되리라.
007_1204_a_02L是故大智慧
菩薩其勇猛
能隨此教令
法眼不可議

그곳의 모든 정사(正士)에게 이 장구(章句)를 설하여 그 모든 갈래를 분별하자 1,200대중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겠다는 마음을 일으켰고, 6만의 보살들이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無生法忍)을 얻었다.
007_1204_a_05L彼諸正士說此章句分別所趣以千二百人皆發無上正眞道意六萬菩薩得無所從生法忍
그때 연꽃 위에 앉았던 모든 보살들이 곧 연꽃으로부터 내려와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다시 무언보살에게 예배하고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언보살이시여, 저희들도 성사(聖師)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정성껏 바른 법을 좋아하고 경전을 받들어 섬기며, 효순(孝順)하게 수행하기를 반복해서 하겠습니다.”
007_1204_a_08L時蓮華上諸坐菩薩尋卽退下稽首佛足及復禮於無言菩薩俱共啓白無言菩薩吾等以報聖師之恩欽樂正法奉事經典修行孝順而有反復
이때 현자 사리불(舍利佛)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여러 보살들은 무엇 때문에 입으로 여래에게 ‘저희들도 효순하게 수행하기를 반복해서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선포합니까?”
007_1204_a_12L賢者舍利弗前白佛言唯然世尊此諸菩薩何故口宣如來言辭吾等孝順而有反復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대답하셨다.
“이는 모두가 무언보살이 여러 보살들에게 마음을 일으키도록 권해 그들에게 불도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과 인의예절(仁義禮節)의 행동과 위없이 바르고 참된 대승의 교법을 연설함으로서 그 듣지 못한 자를 개화하여 불도를 향한 마음을 일으키게 한 것이니라.
007_1204_a_14L告舍利弗此諸菩薩悉是無言菩薩大士之所勸發令宣道教演于恩慈仁義禮節無上正眞大乘之教開化未聞令發道意
이것이 바로 효순하게 수행하기를 반복해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이므로 이제 일부러 여기에 와서 공양의 공덕을 행하고, 또 이 법회의 대중들이 부처님을 받들고서 경전에 대한 설법을 듣는 그 광경을 보려고 한 것이니라.”
007_1204_a_18L是爲孝順而有反復報師之恩今者故來行供養德亦欲睹見於此大會奉覲佛聖聽省經典諮受所聞
이에 무언보살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제가 의심되는 것이 있어서 이제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 말씀드려 여쭙고자 하오니, 제 청을 받아 주신다면 곧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007_1204_a_21L於是無言菩薩白世尊曰我欲啓問如來至眞等正覺所懷疑結設見聽乃敢自陳
부처님께서 무언보살에게 대답하셨다.
“무엇이든지 분명히 알지 못한 것이 있거든 마음대로 질문하여라. 여래가 낱낱이 드러내어 남아있는 의심을 없애고 너의 마음을 기쁘게 하리라.”
007_1204_a_24L世尊卽告無言菩薩意所問諸不了者如來一一當爲發可悅其心令無餘疑
007_1204_b_02L그때에 사리불이 무언보살에게 말하였다.
“족성자여, 그대는 말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여래에게 그 이치를 질문하려고 합니까?”
007_1204_b_02L時舍利弗語無言菩薩汝族姓子不能語言云何欲問如來義乎
무언보살이 대답하였다.
“일체 모든 법은 모두 문자가 없고 언사(言辭)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 중생은 모두 자연 그대로로서 어떤 말의 가르침도 온갖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007_1204_b_05L無言答曰一切語法悉無文字亦無言辭所以者何一切衆生皆悉自然無諸言教及衆想念
사리불이시여, 마음의 생각을 따라서 입으로 말하게 됩니다. 만약 생각하는 것이 없다면 말할 것이 없을 것이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도 모두 허망하여 진실함이 없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습니다. 질문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그 집착된 생각은 모두 존재하지 않고 문자도 없는 것이며, 그 허무하다는 것 역시 생각이 없는 것이고 또한 문자의 설명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007_1204_b_07L唯舍利弗因心所念口說言辭若無所思則無所言心所念者悉虛無實言不可說不可示人亦不可得諮問行念其想著者悉無所有而無文字其虛無者亦無想念亦不宣暢文字之說
그 모든 마음먹음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제가 문자의 설명으로 드러내려고 하지만 그 문자는 어떤 생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거나 문자의 설명을 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닙니다.
007_1204_b_13L其諸行念不自想言吾當宣布文字之說文字不念當行想念暢文字說
사리불이시여, 12연기는 매우 깊고도 다다르기 어려워서 위대하고 위대하기가 이와 같으며, 모두 인연으로 생겨나는 것이니, 그것은 곧 저절로 그러해서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을 뿐입니다. 가령 스스로 그러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면 저 도는 성취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007_1204_b_15L唯舍利弗十二緣起深奧難逮巍巍如是因緣所生彼則自然了無所有假使自然無所有者彼則無有逮成道者
사리불이시여, 일체 모든 법은 성취할 것도 없는 인연의 일입니다. 머무는 바 없는 것에 의지하여 조작이 있고 인연의 화합을 말미암기 때문에, 그 인연은 일으켜 건립하는 것이 없습니다.
007_1204_b_18L唯舍利弗一切諸法無所成因緣之事依無所住有所造作於緣合是故因緣無所興立
사리불이시여, 일체 모든 법에는 다 주재자가 없습니다. 저 임금[君長]들도 무상한 주재자이어서 아무런 의지와 생각이 없지만, 자기들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대부분 함부로 날뛰고 어떤 상대하는 것을 말미암아 온갖 생각을 일으키며, 그 잘못 뒤집혀진 생각의 무더기들이 이것을 따라 생겨납니다.
007_1204_b_20L唯舍利一切諸法悉無有主而君長亦無常主無有志念因己思想多所馳騁從對有念處於衆想顚倒之黨從其起生
그들이 만약 이 질문하는 것을 보고 묻는다면 ‘생각해서 알고 있는 일체 모든 법은 생각 있고 생각 없는 것이 모두 한 가지 모습이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저렇게 물음으로서 보살은 큰 자비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07_1204_b_24L彼若有問見難問者所想知切此法有想無想悉爲一相謂無有彼所以問是爲菩薩行於大哀
007_1204_c_02L사리불이시여, 제가 이 때문에 큰 자비를 일으켜 여래께 여쭙는 것일 뿐, 언어와 음성으로서 말과 언교(言敎)에 의지하여 여쭙는 것은 아니고, 큰 자비에 머무는 보살의 질문입니다.“
007_1204_c_02L舍利弗吾以是故興發大哀諮問如不以言辭聲音問事倚口言教於大哀菩薩所問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족성자여, 만약에 중생이 없고 사람도 없다면 무엇 때문에 보살이 그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007_1204_c_06L舍利弗問若族姓設無衆生無有人物何因菩薩而於衆生興大哀乎
무언보살이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시여, 설령 중생이 그들이 성취하여 다다를 도를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살로서는 그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중생에게도 중생이란 집착[想]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이 중생들에 대해서 큰 자비를 일으키는데 있지만, 설령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큰 자비에 반대되는 것이니, 일체의 다섯 갈래[五趣]가 모두 허깨비[幻化]와 같기 때문입니다.
007_1204_c_08L無言答曰唯舍利設使衆生不求成就至於道者乃菩薩不於衆生興發大哀然而衆無有衆生起衆生想是故菩薩處於衆生興發大哀設說有人則反逆一切五趣猶如幻化
아, 슬프군요. 모든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여 중생이란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보살이 경전의 도를 강설하며, 나 없고 본말(本末)이 모두 공함을 알게 하기 위해 보살이 모든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는 것이며, 파괴할 것도 없고 가진 것을 훼손하지도 않고 나[我]ㆍ사람[人]ㆍ수(壽)ㆍ명(命)이란 생각을 무너트리지 않으면서 보살이 그 큰 자비에 들어가 중생들을 이롭게 인도합니다.
007_1204_c_13L嗚呼痛哉諸人顚倒無有衆生想是故爲彼講說經使無我本末皆空由是菩薩爲諸衆生興發大哀無所破壞不毀所有不壞吾我及人壽命故曰菩薩入於大哀導利衆生
진리를 드날리고 공한 현상을 분별함으로서 모든 객진(客塵)번뇌에 물들어 더럽혀진 중생들을 일체의 물질에 평등하게 들어가 노닐도록 하며, 스스로가 본래의 청정함을 관찰하게 하기 위해서 보살이 그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007_1204_c_18L見暢審如分別空事爲諸客塵之所霑污所可遊入等一切色而自觀見本悉淸淨是故菩薩而於衆生興發大哀
그때에 사리불이 무언보살을 칭찬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족성자여, 사실 그대의 말과 같이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번 어진 이의 그 강설하는 뛰어난 말재주[辯才]를 들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꺼내려 한 것이고, 앞으로는 정사(正士)께서 선설하시는 이 불가사의한 법을 받아 듣겠습니다.
007_1204_c_21L時舍利弗讚無言菩薩曰善哉善哉族姓子實如所云一無有異又從仁賢向者聽者講辯才故欲發問當從正士啓受如是不可思議
007_1205_a_02L 만약 이 질문에 대한 설법을 널리 유포한다면 마군들이 틈을 엿보지 못하고 여래의 법이 오래도록 존립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이 법회의 천룡ㆍ귀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다라ㆍ마후륵 등 사람인 듯하면서도 사람 아닌 듯한 무리들까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도법(道法)의 광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007_1204_c_25L所班宣法設問所說令弊魔不得其便使如來法得久存此諸衆會乾沓和阿須倫加留羅眞陁羅摩睺勒等人非人得無量道法光明
이에 무언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바른 견해를 닦는 되는 데에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남에게서 음성을 듣거나 그 수행을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대성(大聖)이시여, 원하옵건대 여래ㆍ지진ㆍ정각께서 이것을 분별하여 잘 말씀해 주소서. 보살이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란 어떤 것이고 그 수행을 생각함이란 어떤 것이며, 또 현성(賢聖)의 바른 견해란 어떤 것입니까?”
007_1205_a_06L於是無言菩薩前白佛言世尊常說修正見者有二因從他聞音思惟其行善哉大聖願如來至眞正覺分別宣揚何謂菩薩承於他音何謂思惟何賢聖之正見也
부처님께서 무언보살에게 대답하셨다.
“족성자여,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이제 분별하여 해설할 것이다. 마치 보살이 남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으로 인해 생각함으로서 현성의 올바른 견해를 받들어 순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007_1205_a_11L佛告無言菩薩族姓子諦聽思念之今當分別猶如菩薩承他音因而思惟奉順賢聖之正見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기를 원합니다.”그리고는 무언보살이 법회의 대중들과 함께 가르침을 받아 들였다.
007_1205_a_13L善哉世尊願樂欲聞無言菩薩與大衆會受教而聽
부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만약 어떤 보살이 다른 중생을 힘써 교화하여 불도에 들어오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보살로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가령 불도를 향한 마음을 평등하게 관찰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a_15L佛言族姓子若有菩薩化衆生入於佛道是爲菩薩承於他設令其人心不懷亂是爲思惟使等觀於道意者是爲賢聖之正見
또한 불도의 법에 유순하여서 듣고서 잘 살핀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부처님 불도의 이치를 받들어 간직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보살의 도를 받들어 행함으로서 법인(法忍)을 얻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니라.
007_1205_a_19L又若聽省柔順道法此承他音能奉持佛之道義是爲思惟若能奉行菩薩之道逮得法忍是爲賢聖之正見也
또한 무언보살이여, 만약 미묘한 지혜와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듣고서 들은 그대로를 선설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가령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이치를 통달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의지와 성품이 청정하여 아첨하는 일이 없이 넓은 업을 일으킨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a_22L復次無言若能宣于所聞微妙之慧無上正眞承此他音假使能通達不計吾我是爲思惟志性淸淨無有諛諂發起洪業是爲賢聖之正見也
007_1205_b_02L 또 이치를 들은 그대로 수순하여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온갖 공덕의 근본을 닦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그 소행이 미묘하여 도를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또 전일한 마음으로 받아 듣는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아주 뛰어난 이치를 구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불도를 향한 마음을 힘써 도와서 언제나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b_02L聞順義而不違法是承他音修衆德本是爲思惟所行微妙勸助於道爲賢聖之正見也專精聽受是承他求殊特義是爲思惟勸助道意未曾忘捨是爲賢聖之正見也
또 유순한 생각으로서 응하는 대로 불도를 향한 마음을 힘써 돕되 현성을 평등하게 관찰하여 아예 그만두거나 물러서지 않고, 모든 듣고 생각하는 것을 놓아버리는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가지고 있는 모든 소중한 물건을 과감히 모두 다 보시하되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보시하고 나서 그 과보를 바라지 않고 도를 탐하거나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대승에 이른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b_08L順念如應勸助道意初不廢退等觀賢聖捨一切所可聞念是承他音一切所有敢可尊敬悉能施與無所愛惜爲思惟不望其報不貪著道至於大是爲賢聖之正見也
또 계율의 드넓고 올바른 가르침을 듣는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계율을 지키되 계율로 말미암아 관습에 젖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계율을 수행함이 없이 지진(至眞)을 독실하게 믿어 불도를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b_13L聞於禁戒弘雅之教此承他音所執戒心無所習是爲思惟戒無所行篤信至眞勸助於道是爲賢聖之正見也
또 듣고 살피는 모든 일에 인욕하는 마음으로 인의(仁義)를 닦고 대자비를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그러면서도 중생을 가엾이 여겨 해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끝까지 한가롭고 고요해서 모든 법을 믿되 불도를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b_16L聽省忍辱仁義大慈此承他音而懷愍傷無有害心是爲思惟究竟閑靜信諸法盡勸助佛道是爲賢聖之正見也
또 듣고 살피는 모든 일에 정진을 다하여 수순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그 마음이 게으름이나 더러운 번뇌에 물들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합쳐짐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며 어겨서 잃는 것도 없이 정성껏 정진하여 불도를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b_19L省精進則而順之是承他音其心不住懈怠垢穢是爲思惟無合無散無所違失慇懃精進以勸助道是爲賢聖之正見也
또 선정과 세 가지 해탈문을 들음으로서 그 삼매에 든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마음이 하는 일에서 얻을 수 없는 마음의 뿌리를 관찰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선정을 닦으면서 잘못 뒤바뀐 생각에 떨어지지 않고 불도를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b_23L令聞禪定三脫之門三昧正受此承他音心所爲事而不可觀察心本是爲思惟所修禪定不墮顚倒勸助佛道是爲賢聖之正見也
007_1205_c_02L 또 지혜를 듣고서 그 지혜를 몸의 뿌리로 삼아 꽃과 열매를 무성하게 키운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법을 듣고서 본말(本末)에 귀의하며 나아가 갈래를 관찰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모든 생사의 흐름과 온갖 열반의 언덕을 다 버리고서 중생을 열어서 교화하는 마음의 근원에 다다른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c_02L聽聞智慧身根華實此承他音所聞法觀察本末之所歸趣是爲思惟捐諸流衆崖底源開化之意是爲賢聖之正見
또 네 가지 은혜[四恩]1)를 보이고 들은 것을 모두 다 거두어들이지만 조금도 집착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네 가지 은혜의 가르침을 버리거나 없앤 적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구제해야 할 중생들에게 은혜를 베풀되 이 평등한 이치에 따라 온갖 지혜에 입각해서 제도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c_07L示以四恩聽攝所聞了無所著此承他音未曾放廢四恩之教是爲思惟所可救濟恩及衆生斯平等義開度立之於一切智是爲賢聖之正見也
또 자심[慈]ㆍ비심[悲]ㆍ희심[喜]ㆍ사심[護]의 네 가지 범행(梵行)을 닦는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사랑함으로서 파괴하거나 훼방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기의 명성을 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공무(空無)한 이치를 따라 즐기기는 하지만 중생을 위해 자비심을 닦고 법을 위해 기쁜 마음을 내는 이 두 가지 과보를 생각하여 도덕을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c_11L修四梵行慈悲喜護此承他音而不壞除愍愛衆類亦無所毀所可奉行不求名稱是爲思惟遵樂空無爲衆生故而修愍哀以法之故而行歡悅爲二報故勸助道德是爲賢聖之正見也
또 듣고 살피는 모든 일을 네 가지 분별하는 뛰어난 말재주로써 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모든 법을 관찰하여 위의와 예절을 갖춘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평등한 법의 이치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불도를 향한 마음을 힘써 일으키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c_16L設令聽省四分別辯此承他音觀察諸法威儀禮節是爲思惟從法義等於平均所行具足勸發道意是爲賢聖之正見也
또 미묘하여 중생을 이롭게 인도하는 일을 듣고서 당연하게 받들어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수순하는 행을 잘 다스려 기억하며 그 행을 멀리 여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수행을 생각함이며, 법문의 장구(章句)와 불도의 자취[道跡]에 따라 그 처소마다 불도를 선포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5_c_19L若聞所當奉行微妙導利之事此承他音御順行而不遠離是爲思惟章句道所由處所宣布佛道是爲賢聖之正見也
007_1206_a_02L 또 37정각(正覺)의 법을 듣는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의지(意止:念處)를 수행함으로서 모든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단의(斷意:意斷)를 수행하여 일찍이 한번도 착하지 않은 것을 따라 미혹되지도 않으며 항상 덕의(德義)의 뜻에 순종하여 그 신족과 정진ㆍ선정의 힘을 얻어 겁내거나 약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다시 이 같은 독실한 신심으로 법문의 구절을 분명히 알아 물러나지 않으며 그 지혜로써 낱낱이 관찰하여 대할 수 있어서 마음이 법력을 말미암아 번뇌에 끌리지 않고 법의 깨달음에 들어가 도심(道心)과 더불어 평등하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다.
007_1205_c_23L若能令聞三十七品正覺之此承他音修於意止悉不憒亂於斷意未曾惑隨不善之心而常順從德義之志其神足者精進禪定不懷怯弱篤信如是明解章句而不退慧能尋對一一觀察心由力不行塵勞入覺意法等於道心是爲思惟
가령 의지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어 그 4의지(意止:念處)에서 일어나지도 없어지지 않고 4의단(意斷)으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4신족(神足)으로 진리[眞諦]와 같이 살피고 이같이 환히 깨달아서 이와 같이 올바르게 나아가되 지혜의 칼을 잡고 온갖 번뇌를 끊어 그 정욕(情慾)에 끄달리지 않고 바른 법에 들어가서 각의(覺意)에 두 가지 일이 없음을 평등하게 관찰하여 모든 귀착하는 지름길마다 도심(道心)을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6_a_06L假使無意無所思念於四意止不起不滅於四意斷柔和身心於四神足審如眞諦曉了如是所趣若斯執智慧刀截斷衆垢情欲不散入于正法而於覺意下入等觀無有二事所歸徑路勸助道心是爲賢聖之正見也
또 4성제(聖諦)를 듣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5음(陰)의 괴로운 환란과 사랑[恩愛]의 재난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인연의 습기를 모두 없앰으로서 올바른 지름길로 들어간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비록 모든 괴로운 환란에 처해 있더라도 그 지혜를 일으킴이 없고, 모든 훈습을 하더라도 지혜는 훈습됨이 없고 모든 다함이 있는 것에도 지혜는 구경에 다하며 모든 지름길에도 지혜로서 집착하지 않고 큰 도(道)를 힘써 일으킨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6_a_12L若使聽聞四聖諦者此承他音五陰苦患恩愛之難滅盡所習因緣之報入於徑路是爲思惟雖處諸苦慧無所起於諸所習慧無所習於諸所盡慧究竟盡由于徑路慧無所著勸發大道是爲賢聖之正見也
또 세 가지 해탈문을 듣고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공(空)을 돈독하게 믿고 상(相)이 없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원(願)이 없음에 마음으로 구하는 곳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공한 수행을 생겨나게 하지도 않고서 모든 소견을 열어서 교화하고 상(相)없는 마음을 일으켜 일체 중생을 가르치고 이끌어서 모든 상에 원 없는 마음을 일으켜 수행하여 지극한 정성을 자라나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6_a_18L若以聽受於三脫門此承他音篤信於空不畏無相而於無願無所志求是爲思惟不生空行開化諸見興於無相教導一切諸所相行發于無願所生至誠是爲賢聖之正見也
또 처음 발심할 때부터 큰 대업에 순종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보살행을 닦아서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물러서지 않는 지위에서 정각(正覺)을 성취하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6_a_23L令初發意順從大業此承他音修菩薩行不捨一切是爲思惟不退轉地當成正覺是爲賢聖之正見也
007_1206_b_02L 또 선지식을 얻어 그 가르침을 따른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세존을 뵙고서 스스로 성인의 길을 묻고 따라 나아간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입으로 말한 그대로를 실행하여 말에 어긋남이 없어서 몸과 입의 행이 서로 걸맞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또 강설하는 법을 듣고서 미혹함과 어지러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모든 법의 이치가 귀결(歸結)됨을 관찰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법의 이치를 받들어 행함으로서 불도의 가르침을 잃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6_b_02L得善知識而從其教此承他音目見世尊諮受聖路是爲思惟如口所言不違所言身口相應是爲賢聖之正見也聽所講法等於惑亂此承他音觀察諸法義之所歸是爲思惟奉行法義不失道教是爲賢聖之正見也
또 여래에게 친근하여 그 선설하시는 말씀을 받들어 묻고서 간직한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불도의 마음을 분별할 줄 알아서 큰 가르침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열어서 교화해야 할 일을 다 받들어 행하여 그대로 성취하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6_b_09L親近如來諮受所宣此承他音識分別道心不捨大猷爲思惟受奉行有所開化能使成就是爲賢聖之正見也
또 8만4천의 모든 도품법(道品法)을 듣고서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8만4천의 모든 부처님의 수행문을 분별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제각기 근기가 다른 8만4천의 중생들에게 그들에게 맞도록 설법한다면 이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다.
007_1206_b_12L設能聽受八萬四千諸道品法此承他音曉了分別八萬四千諸佛之行也是爲思惟萬四千衆生之類各異根者如應說是爲賢聖之正見也
또 어느 곳에서나 아무런 탐하고 집착하는 일 없이 공덕심을 일으킨다면 이것이 바로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가령 공덕을 일으키고 나서 마음에 항상 공덕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이러한 공덕심으로서 오롯하게 일체의 지혜를 힘써 돕는다면 이것이 바로 성현의 바른 견해이니라.
007_1206_b_16L在在所由悉無所樂發功德心此承他音假使其心不捨功德是爲思惟以是德心專精勸助於一切智是爲賢聖之正見
족성자여, 이와 같이 수순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는 오래 살 것이고, 끝나지 않는 수명을 누리면서 성현의 올바른 견해를 얻을 것이니라. 왜냐 하면 성현의 바른 견해로서 다섯 갈래[五趣]에 자유로이 맴돌기 때문이라. 그 다섯 갈래에 맴도는 것이 마치 허깨비[幻化]와 꿈과 그림자와 메아리와 아지랑이와 물 속의 달과 파초와 같으므로 이것을 훤히 깨닫는 것이 곧 남의 음성을 이어받음이고, 일체의 법이 모두다 평등하여 치우침과 삿됨이 없으므로 이것을 깨닫는 것이 곧 그 수행을 생각함이며, 여기에 평등함을 이룩해야 할 것을 깨닫는 것이 곧 성현의 바른 견해이니, 이를 사유(思惟)라 하느니라.
007_1206_b_20L此族姓子設隨順念則爲長命壽不可極無始無終賢聖正見所以者五趣周旋如幻野馬芭蕉曉了若斯是承他音一切諸法悉爲平等而無偏邪是爲思惟致平等乃爲賢聖之正見也名曰思
007_1206_c_02L높고 낮음이 없이 일체의 법에 대해 호응하는 것도 호응하지 않는 것도 없고, 나아가는 것도 나아가지 않는 것도 없으며, 머무는 것도 머물지 않는 것도 없고, 행하는 것도 행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기억하는 것도 기억하지 않는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뜻하는 것도 뜻하지 않는 것도 없고, 관찰하는 것도 관찰하지 않는 것도 없으며, 마음도 의식도 가르침도 없는 그것을 상대적 차별 없는[不二] 법문에 드는 것이라 하느니라.
007_1206_c_02L不擧不下於一切法無應不應進不進無處不處無行不行無念不無想不想無意不意無惟不惟心意教是爲名曰不二入法門
또 동일한 법품(法品)을 환하게 깨달음으로서 모이는 것도 흩어지는 것도 없고, 어기는 것도 따르는 것도 없이 본래 성품이 청정한 것을 환하게 깨달아서 깊이 생각하고 널리 강설하되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며 흐림도 없고 맑음도 없을 것이니라.
007_1206_c_06L曉了一品無合無散無違無順曉了深念本性淸淨極爲顯曜而當講說無冥無明無濁無淸
어떤 단계나 차례[品第]도 없는 그러한 이치를 분명히 나타낸다면 법계는 파괴되지도 않고 법의 근본경지에서 흔들리지도 않으며, 나아가서는 근본 없는 경지에 들어가 3세에 머물러도 머물 곳도 없으므로 나[我]ㆍ사람[人]ㆍ수(壽)ㆍ명(命)이라는 생각도 없고 모든 음성과 문자를 벗어나 그 이치에 아무런 얻을 것이 없으며, 어떤 재업(財業)도 없고 끝나는 곳도 없어서 모든 꾀하는 것을 얻을 것이니라.
007_1206_c_09L無有品第則爲法界無所破壞而於本際不爲動搖入於無本處于三世而無所處無我無人無壽無命無音無聲等諸文字義無所獲無有財業無所畢置得諸所盡
일체 행하는 것에 있어서 그 온갖 기억도 없고 모든 생각을 여의어 게으른 일을 모두 끊어버림으로서 어떠한 행에도 집착함 없이 뛰어나고 내지 여래의 칭찬을 받을 만큼 무위(無爲)의 경지에 들어가 온갖 생각을 모조리 제거하는 것을 평등이라 하느니라.
007_1206_c_13L一切所行無有衆念離一切想皆悉斷於放逸之事滅除一切諸所惟行而無所著捨諸所著巍巍乃至如來所歎無爲之事刈去衆想是爲平等
이것은 어떠한 모양도 없이 한결같이 진리에 응함에 따라 사유하느니라. 가령 어떤 수행하는 이가 삼매로부터 일어나 이러한 법으로써 중생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한다면, 그는 곧 이 법의 근본을 추구(推求)하여 호응하는 그대로 생각하여 중생들의 병을 치료하되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큰 자비심을 세우는 현성의 바른 견해라고 하느니라.”
007_1206_c_17L無有形貌一如應思惟假使行者從三昧起則以此法而爲衆生及他人便於其所推求斯本如應思惟而療治之無所動搖是爲名曰立於大哀賢聖正見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현성의 바른 견해를 말씀하실 때에 1만의 보살들이 곧 현성의 올바른 견해를 얻었다. 이에 사리불이 무언보살에게 말하였다.
“어진 족성자여, 그대는 누구로부터 법을 듣고 지금 이러한 성현의 바른 견해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까?”
007_1206_c_22L佛說賢聖正見之時萬菩薩尋卽逮得賢聖正見於是舍利弗謂無言菩薩仁族姓子從何聞乃能興此賢聖正見
007_1207_a_02L무언보살은 대답하였다.
“사리불이시여, 제가 듣기로 법은 조작이 없으므로 과거의 마음으로부터 도에 다다른 것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또한 현재도 아닌 평등한 3세에 일체의 법이 평등하여 나아가는 것이 있지만 귀착하는 곳이 없어서 마침내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평등한 것마저 있는 것이 아닙니다.
007_1206_c_25L無言答曰舍利弗吾所從聞法無所造不從過去心得至於道亦不當來亦不現在平等三世等一切法有所有趣者而無所歸亦無有法亦無所等
또 제가 그에게 듣기로 법은 유위(有爲)도 아니고 무위(無爲)도 아니어서 알음알이도 없고 머묾도 없으며, 심(心)ㆍ의(意)ㆍ식(識)도 없고 일체의 법을 받들지 않음도 없으며, 모든 중생의 마음을 제지하여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므로 그 이치를 얻을 수 없고 흔들리지도 않고 힘써서 해를 끼침도 없고 집착도 없습니다.
007_1207_a_06L吾從於彼而聽聞法不有爲不無爲無識無住無心意識於一切法莫有所奉止一切衆生之心可悅諸人義無所獲亦不動搖於無力毒而無著
제가 올바로 그에게서 법을 들었다면 세상에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생겨나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일체의 법은 일어나지도 않은 것 같아서 아무리 분별하려하여도 근본이 없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007_1207_a_10L吾正從彼而聽聞法見生於世者不生不一切法若不所興分別無本而無所說
또 제가 올바로 그에게서 법을 들었다면 그 대하는 법의 경계는 평등하게 사람의 경계를 제어하며, 법의 경계와 사람의 경계와 허공의 경계가 모두다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 평등한 모든 경계에는 생겨나는 것이 없고 아무런 조작이 없습니다.
007_1207_a_13L吾正從彼而聽聞法其住法界等御人界法界人界及虛空界不以差別平等諸界而無所生不造若干
또 제가 올바로 그에게서 법을 들었다면 어떤 도량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보리수 아래 앉아 있는 것도 아니며, 경행(經行)하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이 되는 것도 아니며, 도(道)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세속을 버리는 것도 아니며, 모두에 집착하지 않게 하고 인민(人民)들이 ‘여래께서 도를 얻으심은 또한 그 도를 얻음이 아니고 상호(相好)를 갖추심도 그 상호를 갖춤이 아니며, 이치를 증명하심도 그 이치를 증명하심이 아니라 모두 본래 청정한 자연의 성품을 따름이다’라고 마음으로 생각하게 할 뿐입니다.
007_1207_a_15L吾正從彼而聽聞法不處道場不坐樹下亦不經行亦不得佛不倚於道不捨於俗不令諸著人民之等作是念心如來得道亦不得道得於相好若不得相作證不作證悉從本淨自然之性
사리불이시여, 또 법이란 가질 수 없고 붙잡을 수 없으므로 어떤 몸뚱이가 없으며, 몸뚱이가 없으므로 성취할 것도 없고, 성취할 것이 없으므로 생겨날 것도 없으며, 생겨나는 것이 없으므로 일어날 것도 없고, 일어나는 것이 없으므로 끝내 사라질 것도 없으며, 끝내 사라지는 것이 없으므로 집착할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므로 흔들릴 것도 없으며, 흔들리는 것이 없으므로 조작할 것도 없고, 조작하는 것이 없으므로 빠르게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007_1207_a_21L唯舍利弗法者無持而不可捉則無有身以無有身無所成就無所成就則無所生以無所生則無所起以無所起則無終沒以無終沒則無所著以無所著則不動搖以不動搖則無所作以無所作則游駛水
007_1207_b_02L 이미 빠르게 흐르는 물 같으므로 아무런 얻을 것이 없고, 이미 얻을 것이 없으므로 몸이 피안(彼岸)에 다다르며, 이미 피안에 다다랐으므로 내릴[下] 것이 없고, 내릴 것이 없으므로 그 그릇[器]이 아니며, 이미 그릇이 아니므로 대응할 것이 없고, 이미 대응할 것이 없으므로 애욕을 여의며, 이미 애욕을 여의었으므로 아무런 생각이 없고, 이미 생각이 없으므로 온갖 혼란을 끊습니다.
007_1207_b_02L已游駛水則無所得已無所得身度彼岸已度彼岸無下不下則無有器已無有器則無所應已無所應則離愛欲已離愛欲則無有想已無有想則斷衆亂
이미 온갖 혼란을 끊었으므로 본래 성품이 청정하고, 본래 성품이 청정한데 이르렀으므로 더러움이 없으며, 이미 더러움이 없으므로 번뇌[塵勞]가 없고, 이미 번뇌가 없으므로 똑같은 형상이 없습니다.
007_1207_b_08L已斷衆亂本性淸淨以至淸淨則無有垢已無有垢則無塵勞已無塵勞則無同像
똑같은 형상이 없으므로 평등에 머물고, 평등에 머물므로 움직임이 없으며, 움직임이 없으므로 구할 것이 없고, 구하는 것이 없으므로 진리[眞諦] 그대로입니다.
007_1207_b_10L以無同像則住等以住本平等則立無動以立無動則無所求以無所求則如眞諦
이미 진리 그대로이므로 진실 되게 살피고, 진실 되게 살핌으로 소유함이 없으며, 소유함이 없으므로 모든 인연에 연연할 것이 없고, 모든 인연에 연연하는 것이 없으므로 경계를 건너며, 경계를 건넘으로 일어나는 것이 없고, 일어나는 것이 없으므로 들 것도 없으며, 들 것이 없으므로 내릴 것도 없고, 내릴 것이 없으므로 문(門)이 없습니다.
007_1207_b_12L如眞諦則如審實以如審實則無所以無所有則於諸緣而無有緣於諸緣無有緣者則度境界以度諸界所起無起則無所擧以無所擧則無所下以無所下則無有門
문이 없으므로 곧 언교(言敎)를 여의고, 언교를 여의었으므로 문자의 구절[識句]을 초월하며, 문자의 구절을 초월하므로 다시 되돌아오지 않고,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므로 처소가 없으며, 처소가 없으므로 처할 곳이 아니고, 처할 곳이 아니므로 씨를 뿌릴 수 없으며, 씨를 뿌릴 수 없으므로 뿌리와 싹이 없고, 뿌리와 싹이 없으므로 무위입니다.
007_1207_b_17L以無有門便離言教以離言教則度識句度識句則不復還以不復還則無有以無有處則無非處以無非處則無種稷以無種稷則無根芽以無根芽則無爲
모든 의식의 자취를 벗어나 고요하게 되며, 고요하게 되었으므로 끝내 맑고 깨끗해지고, 이미 맑고 깨끗한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그렇거나 그렇지 않을 것이 없으며, 그렇거나 그렇지 않을 것이 없으므로 한(恨)이 없고, 끝내 한이 없으므로 분명히 깨닫는 경지에 이르며, 분명히 깨닫는 경지에 이르므로 다시 더 일으킬 것이 없고, 다시 더 일으킬 것이 없으므로 평등한 무위(無爲)의 도로 돌아가니, 이것이 법이라는 것입니다.
007_1207_b_22L超度諸識之迹寂之然至寂然究竟澹泊已至澹泊則至無惟然以無惟然究竟無恨已至無恨則至了意以至了意不復更興以不復興則歸平等無爲之道是爲法
007_1207_c_02L사리불이시여, 일체의 법이 이러하고 경전의 법을 설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인데, 그 바른 견해란 어떤 모습입니까? 그 바른 견해란 곧 자기의 몸부터 평등하게 관찰하는 것이니, 자기의 몸을 평등하게 관찰함으로서 합쳐져 이루어진 모든 것을 여의며, 또 합해져 이루어진 모든 것을 여읨으로서 그 평등한 것에 있어서도 평등이라 보지 않고, 바라보는 모든 소견에서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아야 합니다. 사리불이시여, 이것이 법률(法律)을 드날리는 현성의 올바른 견해라고 하는 것입니다.”
007_1207_c_02L舍利弗法如是比說經如茲其正見者爲何像類其正見者等於己身等己身則離合會以離合會於諸平等不見平等睹諸所見若無所想舍利弗宣暢法律賢聖正見
무언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리불이시여, 만약 무명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집착에 평등한 것이거나 또한 혜명(慧明)으로 해탈의 일에 평등한 것이거나, 멸도(滅度)에 평등한 것이거나 이러한 평등을 이룩함에 있어서 조작함도 없고 조작하지 않음도 없는 이것이 바로 평등하게 도달하는 현성의 올바른 견해이고, 거기에 어떤 보이는 것이 있더라도 다른 견해를 갖지 않는 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입니다.
007_1207_c_08L無言菩薩謂舍利弗如等無明恩愛之著亦等慧明解脫之事等於滅度無作不作是爲等致賢聖正見若有所睹不取異見是爲賢聖之正見也
또 다음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사리불이시여, 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모습에 평등할 수 있거나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해탈문의 해탈의 모습에 평등한 것은 곧 똑같은 모습이 되며, 모습 없이 돌아가고 이미 돌아갈 수 있다면 이것이 평등한 일이니, 곧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입니다.
007_1207_c_12L復次念舍利弗若能等於婬怒愚癡亦等於空無相無願解脫之相則爲一相謂歸無相已能歸此平等事者是爲賢聖之正見也
또 바른 견해에 처한다는 것은 모든 평등함에 처하여 두 가지 일을 일으키지 않고, 이미 두 가지 일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서로 호응함에 머물지 않으며, 이미 서로 호응이 없으므로 모든 법을 얻는다고 해도 머무르지 않고, 일체에 평등하여 특별하게 여기거나 차별을 두지 않는 그것이 바로 현성의 올바른 견해입니다.
007_1207_c_16L復次處正見者於諸平等不造二事已無二事不住相應已無相應不有所住逮得諸法一切平等而無差特是爲賢聖之正見也
또 두 가지 없이 평등함이란 곧 중생에게 평등한 것이고, 곧 모든 부처님께 평등한 것이며, 곧 모든 법에 평등한 것입니다. 이미 모든 법에 평등하다면 곧 모든 국토에 평등하고, 모든 국토에 평등하다면 저 허공계와 평등한 것입니다. 이러한 평등에서 움직이지 않고 이러한 평등에 머무를 수 있다면 닦는 처소가 따로 있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성현의 바른 견해입니다.
007_1207_c_20L復次等無二者則等衆生則等諸佛則等諸法已等諸法則等國土已等國土則等虛空其於此等若不轉移能於此等平等住者修無所處是爲賢聖之正見也
007_1208_a_02L그러므로 사리불이시여, 여법한 모습으로 듣는 것도 또한 그러할 것이니, 이른바 올바른 견해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또 사리불이시여, 어르신[耆年]께서 이제 바른 견해를 일으키려 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디로부터 법을 듣고 그 소견은 어떠한 부류입니까?”
007_1207_c_24L是故舍利弗法像類聽者亦然正見若茲舍利耆年爲興正見乎從何聞法所見何類
사리불은 대답하였다.
“내가 이제 족성자에게 설법을 들은 대로 그 이치의 귀결점을 살펴보건대, 어떤 강설(講說)도 모두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007_1208_a_04L舍利弗答曰如我於今族姓子聞所說法察其義歸有所講說皆墮短乏
무언보살이 대답하였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기는 하였지만 모두다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007_1208_a_06L無言答曰如是如是舍利弗有言辭皆顧短乏
사리불이 또 물었다.
“족성자여, 여래ㆍ지진께선 그 헤아릴 수 없는 복된 법회에서 많은 법문을 드날리셨는데, 여래의 말씀이야 어찌 모자라고 부족하겠습니까?”
007_1208_a_07L舍利弗又問族姓如來至眞無量福會有所宣暢所說者豈墮短乏
무언보살이 대답하였다.
“이와 같이 설하셨지만 설하신 것 없으니 모자라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여래ㆍ지진께선 그 명예와 공덕을 일으키려 하지 않으시고, 또 최상의 복을 희망하지도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여래란 공덕도 없고 명칭도 없으며, 여래라는 이치마저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1208_a_09L無言答曰如是說者而無所說不墮短乏所以者何來至眞不興名德不當慕於如來上所以者何其如來者無德無稱如來義無本
여래 또한 그와 같아서 근본이 없는 데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여래의 최상의 공덕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이를 희망하는 것이 바로 평등함이 없는 것이고, 또한 욕심이 있고 욕심이 없음에도 치우침이나 삿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희망하는 것이 있다면 곧 모자라거나 부족한 것입니다.”
007_1208_a_13L如來亦復如是在於無本而不動轉若有不欲如來上德所慕者則無平等亦無偏邪於欲無有所慕者則墮短乏
사리불은 다시 물었다.
“족성자여, 설법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007_1208_a_16L舍利弗問族姓子何謂於法而無短乏
무언보살이 대답하였다.
“4대(大)와 5음(陰)과 6입(入)이 없으므로 받들어 받아들이지[頂受] 않고, 불러서 이룩할[招致] 것도 없고 행할 어떤 것도 없으며, 언사도 없고 가르침[誨]도 가르치지 않음도 없습니다. 그리고 도법에 대해 심(心)ㆍ의(意)ㆍ식(識)이 일어나지 않아야만 그 법은 모자람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심ㆍ의ㆍ식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곧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됩니다.
007_1208_a_17L無言答無大五陰六入不以頂受無所招悉無所行不有言辭無誨不誨於道法令心意識無所起生是法無假使有起心意識者則墮短乏
만일 모든 법에 조작함이 있거나 조작함이 없다면 곧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고, 만일 모든 법에 조작함도 조작하지 않음도 없다면 곧 모자람과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또 모든 법에 대해 분별할 것이 있고 제거해야 할 것도 있으며 행할 것이 있고 증득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곧 모자라고 부족한 것입니다.
007_1208_a_21L於諸法有作無作則墮短乏設於諸法無作不作乃無短乏復次若於諸法有所分別有所蠲除而有所行所造證則墮短乏
007_1208_b_02L 만약 훤히 깨칠 것도 없고 제거해야 할 것도 없으며 또한 행할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다면 곧 모자람과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들을 것도 설할 것도 없는 법에서 어떤 소견을 가져 교화하고 도달해야 할 것이 있다하여 알음알이를 일으킨다면 곧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고, 모든 세계에 행할 것이 없다면 곧 모자람과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1208_a_25L若無曉了無除所亦無所行不有造證乃無短乏有所見無所聞說教化獲致識知所則墮短乏於一切界而無所行無短乏
또 어떤 공덕과 결함을 분별하여 본다면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고, 만일 그 소행에 결함이 없고 공덕이나 칭찬도 없고 또 소견도 없다면 곧 모자람과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1208_b_06L其有睹見功德瑕穢則墮短設使所行無有瑕穢無有德稱亦無所見乃無短乏
그때 부처님께서 무언보살을 칭찬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그 누구라도 법을 강설하려고 한다면 이와 같이 강설해야 할 것이니라.”
007_1208_b_08L時佛嗟嘆無言菩善哉善哉族姓子若欲講法當作是說
그때 1만 2천의 보살들이 설법을 듣고 무소종생법인(無所從生法忍:無生法忍)을 얻었다.
007_1208_b_10L是時萬二千菩薩逮得無所從生法忍
무언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여래께서 여러 보살들에게 강설하신 4력(力)을 제가 기억하건대, 첫째는 믿음의 힘이고, 둘째는 정진의 힘이며, 셋째는 의지의 힘이고, 넷째는 지혜의 힘이라고 하셨나이다. 원컨대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이 네 가지 힘을 자세히 분별하여 말씀해 주소서. 보살이 그 믿음과 정진과 의지와 지혜의 힘을 독실히 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007_1208_b_11L無言菩薩復白佛言我識如來爲諸菩薩講說四力一曰信力二曰精進三曰意力四曰智力唯如來至眞正等正覺廣分別說此四品力何謂菩薩篤信精進智慧力
부처님께서 무언보살에게 대답하셨다.
“자세히 듣고서 잘 기억하여라.”
007_1208_b_16L佛告無言菩薩諦聽善念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즐거이 듣고자 하나이다.”
善哉世尊願樂欲聞
무언보살은 분부를 받들어 설법을 들었다.
007_1208_b_17L無言菩薩受教而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가령 보살이 모든 불법을 믿되 기꺼이 사랑하고 순종하여 의심하지 않고 주저하지도 않는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도를 구할 때 이 경전에 뜻을 두어 사모하고, 게으르지 않고 겁내거나 약해지거나 물러서지 않는다면 곧 정진의 힘이니라.
007_1208_b_18L佛言族姓子使菩薩信諸佛法愛樂順從不懷狐亦無猶豫是爲信力諸佛精進本求道時志慕此典不以懈廢不懷怯弱亦不退轉是爲精進力
그 뜻을 거두고 공덕의 뿌리를 모아서 잊어버릴 것이 없고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아 불도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않으며 진정한 마음을 일으켜 도를 힘써 돕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일체의 법에 대해 밝은 지혜를 닦아서 다른 지혜를 기다릴 필요 없이 자유로움을 얻고 지혜가 거리낌이 없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8_b_22L若攝其志合集德本無所忘失其意不亂不捨道心所可興廢眞正之心勸助於道是爲意力所修智明於一切法不須他慧而得自在慧無所㝵是爲智慧力
007_1208_c_02L부처님께서 또 다시 무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성현을 믿음으로서 3계에서 홀로 뛰어나 의심되거나 어려운 일이 없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정근(精勤)을 베풀어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순종한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마음으로 현성이 선설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하여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성현을 따라 지혜와 경전의 근본을 듣는다면 받들어 행할 수 있으니,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8_c_02L佛復告無言菩薩信於賢聖獨步三界無所疑難是爲信力所施精勤恭敬奉順是爲精進力心之所念常思賢聖之所班宣未曾忘捨是爲意力若從至聖所聞智慧經典之本則能奉行是爲智力
또 가령 죄복(罪福)의 과보를 독실히 믿어 의심을 품지 않는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수행하면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일으키는 업을 끝까지 그만두지 않을 것을 생각한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죄와 복에 대한 갚음을 깨달아 일체의 법을 분별한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8_c_09L復次假使篤信罪福之報而不疑亂是爲信力若能勤行不當作而不爲之是爲精進力念所興業終無腐朽是爲意力若能曉了無有罪福報應有能分別一切諸法是爲智力
부처님께서 다시 무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보살의 그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어서 그 마음을 감싸안아 불도의 가르침에 수순할 수 있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이끌어서 받아들이는 마음을 잘 길러낸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그 마음을 항상 전일한 마음에 순응하게 한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마음으로 일체 모든 법을 허깨비처럼 관찰한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8_c_14L佛復告無言菩薩假使其心淸澄無能攝其意順道教者是爲信力所啓受而將養之是精進力若令其心常順志一是爲意力心觀諸法一切如幻是爲智力
또 일체의 법을 모두 다 공하다고 믿는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정진을 닦음으로서 모든 얽매인 소견에서 벗어난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안팎의 공한 이치를 듣고서도 두려운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끝내 공하고 본말(本末)이 모두 공함을 관찰한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8_c_19L復次信一切法皆悉爲空是爲信力所修精進解諸見縛是爲精進力於內外空不懷恐怖爲意力觀究竟空本末悉空爲智慧
007_1209_a_02L 또 상(相)도 없고 원(願)도 없어서 일체의 법에 조작하려는 행이 없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이러한 도법(道法)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해 분별하여 해설한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가령 모든 법에 이렇게 생각하되 하는 행동이 편안하고 자상하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과거에 강설한 일체의 법에서 올바르고 선창(宣暢)해야 할 것을 함께 해서 선창하며, 추구하는 어떤 것도 영원히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8_c_23L無相無願於一切法無所造行爲信力以此道法而爲他人分別說是精進力設使於此念于諸法所行安詳是爲意力昔所講說方當宣暢令班宣者一切推求永不可得爲慧力
또 일찍이 모든 대도에서 마음으로 가진 것을 스스로 버리고자 하여 믿고서 보시하기를 생각한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버릴 것이 있지만 게으름을 품지 않는다면 이를 정진의 힘이라 하며,2) 겁내거나 어긴 적이 없고 내 것을 버려서 남에게 보시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힘써 돕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보시하는 자도 없고 보시 받는 자도 없으며 그 갚음을 바라지 않는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a_05L一切所有心自當思欲以放捨信布施處是爲信力有所放捨不懷懈倦未曾怯劣大道未曾違捨施與發布施又勸助道意是爲意力得施者亦無受者不蒙想報是智慧
또 계율을 받들어 행하되 진정한 계율의 과보가 실재함을 믿고서 성취한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정진을 닦음으로서 파계하려는 마음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언제나 도심(道心)을 기억하여 잊지 않음으로서 계율을 존중하되 모두 일체지(一切智)를 힘써 돕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몸은 그림자와 같고 말은 메아리와 같고 마음은 허깨비와 같다고 보며, 계율에 대해서도 아무런 할 것이 없다고 관찰한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a_10L奉順禁戒成就眞正信戒果實爲信力以所精進滅除諸毀戒之心是爲精進力若以道心念之不忘尊禁戒皆以勸助於一切智是爲意觀身如影言如呼響心如幻化於禁戒而無所行是爲智力
또 인욕을 성취하되 인욕에 대한 위세(威勢)를 믿는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정진을 행하기 위해 온갖 생각을 용납하지 않고, 거친 말을 연출하여 남에게 퍼부으려 하거나 삿된 길을 따르지 않으며, 설령 온몸의 살과 팔다리가 갈기갈기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인욕의 힘을 모아 조금도 성내지 않고 더욱 자비로운 마음으로 인욕한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인욕을 행함과 동시에 인욕하는 마음으로 일체지를 힘써 돕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몸에 대한 의식이 없음으로써 마침내 몸과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a_15L成就忍辱信於威勢是爲信力所行精進聽衆想不演麤辭欲加於人從邪徑假使令支解割截身肉集忍辱力曾懷瞋慈心忍辱是爲精進力所行忍辱則以勸助於一切智是爲意力無身意識不得身心是智慧力
007_1209_b_03L 또 도법을 위해 정진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이 도법을 믿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돈독한 신심을 일으킨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잠시라도 정진을 버리지 않고서 항상 정진을 행하되 집착하는 일 없이 다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올바른 경전을 옹호하고 온갖 공덕의 뿌리를 심으며,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을 받들어 공양하고 수순하며, 불국토를 청정하게 장엄하고 치장하며 명칭과 공덕을 갖춘다면 곧 정진의 힘이니라.
007_1209_a_21L道爲精進不爲懈怠信於此者而心歡樂興盛篤信是爲信力常行精進不捨須臾亦無所著用化衆生將護正典殖衆德本奉事於佛供養隨順皆爲一切衆生之故修治佛土莊嚴淸淨名德之稱是精進力
모든 중생의 성냄과 미워함과 게으름과 더러움을 모두다 깨끗이 제거하기 위해 공덕의 갑옷[德鎧]을 입고서 정진을 닦아 곧 일체지를 힘써 돕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도에 대한 생각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도 위의와 예절의 올바름을 잃지 않고, 법을 선택하여 정진함으로서 일체 모든 법의 처소에서 거리낌이 없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b_04L蠲除一切衆生瞋恚懈怠垢穢以被德鎧所修精進則以勸助於一切智是爲意力若不慇懃妄想於道不失威儀禮節之正選擇精進不得一切諸法處所是智慧力
또 고요한 처소에 홀로 있기를 좋아하고 온갖 모임을 좋아하지 않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선정을 일으킨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정진을 행하고 선정을 닦아서 해탈문의 삼매에 든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어떤 처소에 있더라도 선정을 닦음에 있어서 동요하지 않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니라.
007_1209_b_09L樂於閑居宴靜獨處不慕衆會發興悅力是爲信力所行精進修於禪定興發脫門三昧正受是精進力因由所從致禪思者而不動搖是爲意力
모든 상대하는 외부 경계에 오롯한 마음으로 관찰하되 덧없음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깨달아 선정을 어지럽히지 않고 선정을 가볍게 업신여기지도 않고 선정에서 물러서지도 않으며 훌륭한 방편으로 알맞게 한다면 그것이 곧 훌륭한 방편으로 이끌고 나아가 지혜의 힘을 이룩함이니라.
007_1209_b_13L於彼一心觀於無常非身而不亂禪不輕慢禪不退轉禪曉了善權方謀宜適是爲善權方便誘進牽致至於智力
또 모든 도무극(度無極)과 도품(道品)의 법을 듣고서 들은 그대로 믿는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들은 일체를 잊지 않고 굳게 간직했다가 다른 사람을 위해 방편을 찬탄하고 법을 베풀어주되 만약 잘 받들지 않는 이면 잘 받들고 따르도록 하여 스스로 본말(本末)을 살피도록 한다면 곧 정진의 힘이니라.
007_1209_b_16L聞於一切諸度無極道品之法若能信此是爲信力一切所聞執持不忘能爲他人嗟歎方便於彼法若能奉遵若不奉遵自察本是精進力
중생계에 처해서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애욕 속에 노닐면서도 연꽃처럼 더럽혀짐 없이 일체 중생을 교화한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3계가 공함이 마치 물거품과 파초와 아지랑이와 그림자와 메아리와 허깨비와 같다고 관찰하여 듣지 못한 이들에게 열어서 보여준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b_20L處於衆生其心不亂於愛欲譬如蓮華教化一切是爲意察三界空猶如泡沫芭蕉野馬開示未聞是爲智力
007_1209_c_02L 또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자비롭게 중생들을 대해 그 인자함이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크고 자비한 마음을 믿어서 마음으로 일으키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곧 정진의 힘이며, 마음으로 바른 경전을 좋아하여 법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고서 항상 받들어 행한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마음에 집착이 없어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지 않고 차별을 두지 않고 스스로가 정진도 정진 아님도 없이 고요한 관찰로서 바른 법을 수행한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b_23L以淸澄心慈向衆生仁靡不周是爲信力於大哀心所興造不以懈怠是精進心好正典不捨法樂常執奉行爲意力心無所著而不懷害不造有無進不進逮得靜觀修行正法智慧力
또 사람의 몸을 생각하되 ‘몸이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온갖 악과 번뇌로 더럽혀지고 황폐하고 어지러운 온갖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영구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인데도 독용이나 독사와 같은 이 몸에 공양하고 그런 몸으로 삿된 행을 일으킨다’고 이렇게 훤히 깨닫는다면 곧 믿음의 힘이고, 금방 온갖 고통의 환란에 빠지고 온갖 번뇌에 헤매는 것이 바로 생사의 이치임을 깨달아 불법을 관찰한다면 곧 정진의 힘이니라.
007_1209_c_06L思惟人身以無央數衆惡瑕穢荒亂衆力不得久存供養於此𢤱悷蛇蚖因由邪行曉了如此是爲信若速衆沒苦痛之患衆惱竝至則爲是死生之義觀察佛法是精進
가령 마음이 착하지 않은 곳을 따라 변하려 하더라도 끝내 착하지 않은 곳을 따르지 않고 마음으로 성문ㆍ연각도 따르지 않으며 마음이 더러운 욕심과 탐욕과 질투에 따르지도 않고 마음이 파계한 자나 나쁜 지혜를 지닌 자를 다르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곧 의지의 힘이고, 법의 지혜에 들어가 지혜의 구절을 분별하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지혜를 선창(宣暢)하고 몸으로 깨닫는다면 곧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c_11L假使心變在於不善終不聽從亦不隨聲聞緣覺又心不隨塵欲貪心亦不從毀戒惡智是爲意力入法慧分別慧句入於宣暢體解之過去當來今現在慧是爲智力
또 환희심을 내는 것이 믿음의 모습이고 물러나지 않는 것이 정진의 모습이며 올바르게 관찰하는 것이 의지의 모습이고, 이치를 모두다 깨닫는 것이 지혜의 모습이다. 믿음의 힘을 실천하고 정진의 힘을 버리지 말며, 의지의 힘을 잃지 말고 지혜의 힘을 닦아 병에 맞게 약을 주듯 사람들에게 설법하라.
007_1209_c_15L樂爲信相不退精進相觀爲意相了爲智相行於信力不捨進力不失意力修智慧力爲人說法應病與藥
모든 장애를 훤히 깨닫는 것이 돈독한 믿음이고, 모든 장애를 건너는 것이 정진이며, 다시 집착할 것 없는 것이 의지이고, 장애를 잘 살펴서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불법을 좋아하여 독실한 믿음을 일으키고 돈독한 믿음을 일으킴으로서 도를 구하는 의지를 일으키는 것이 믿음의 힘이고, 온갖 행을 닦아서 도품(道品)의 법을 쌓는 것이 정진의 힘이니라.
007_1209_c_18L曉了罣㝵則爲篤信度諸罣㝵而爲精進無所復著是名曰意而審曉㝵則爲智慧好喜佛法興于篤信以興篤信卽發道意是爲信力奉修衆行合集積累道品之法是精進力
007_1210_a_03L 법인에 유순(柔順)한 것이 의지의 힘이고, 무소종생법인을 얻게 된다면 지혜의 힘이니라. 믿음의 뿌리가 바로 믿음의 힘이고,3) 정진의 뿌리가 바로 정진의 힘이며, 의지의 뿌리가 바로 의지의 힘이고, 선정의 뿌리로 대성(大聖)의 뿌리를 두루 통달하지 않음이 없게 되는 것이 바로 지혜의 힘이니라.”
007_1209_c_23L柔順法忍則爲意力設使逮得無所從生法忍是則智力信根爲忍則爲意力設使逮得無所從生法忍是則智力信根爲信力進根爲精進力意根爲意力禪思伏根大聖達根靡不周至是智慧力
부처님께서 이 네 가지 힘을 말씀하시자 그때 8천 보살은 무소종생법인을 얻고 4만 2천 사람들은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겠다는 마음을 일으켰다.
007_1210_a_06L佛說是時八千菩薩逮得無所從生法忍四萬二千人皆發無上正眞道意
無言童子經卷上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수행자가 입은 네 가지의 은혜로, 부모ㆍ국왕ㆍ중생ㆍ3보의 은혜를 말한다.
  2. 2)신수대장경의 각주를 참조하여 대교본인 3본과 궁(宮)본에 따라 “시정진력(是精進力)”을 넣어서 번역하였다.
  3. 3)신수대장경 각주에 따르면 고려대장경에서 반복되고 있는 “爲忍… 信根”의 22자가 대교본인 원(元)본과 명(明)본에는 없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생략하고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