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0_0379_a_01L
지심범천소문경(持心梵天所問經) 제1권
일명 장엄불법제의(莊嚴佛法諸義) 또는 불설등어제법경(佛說等御諸法經)이라고도 한다.
010_0379_a_01L持心梵天所問經卷第一
一名莊嚴佛法諸義又名佛說等御諸法經


서진(西晉) 월지(月氏) 축법호(竺法護)한역
최봉수 번역
010_0379_a_02L西晉月氏三藏竺法護譯


1. 명망보살광품(明網菩薩光品)
010_0379_a_03L明網菩薩光品第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0_0379_a_04L聞如是
한때에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에 있는 가린죽원(加隣竹園)에서 큰 비구 승단과 함께하셨으니, 6만 4천 명의 비구와 7만 2천 명의 보살과 함께 지내셨다. 모두가 위대한 성인으로서 신통에 이미 통달하였고, 총지(總持)를 깊이 얻었으며, 변재(辯才)가 걸림이 없고 삼매에 이미 깊이 들었다. 지혜에 있어 걸림이 없고 모든 법의 자연스런 행상에 대하여 환히 깨달았으며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010_0379_a_05L一時佛遊王舍城加鄰竹園與大比丘衆俱比丘六萬四千薩七萬二千——一切大聖神通已達得摠持辯才無閡三昧已定慧無所畏曉了諸法自然之行得不起法忍——
그 이름은, 박수(溥首) 동진(童眞)ㆍ보사(寶事) 동진ㆍ보인수(寶印手) 동진ㆍ보수(寶首) 동진ㆍ공장(空藏) 동진ㆍ발의전법륜(發意轉法輪) 동진ㆍ명망(明網) 동진ㆍ제제음개(除諸陰蓋) 동진ㆍ일체시(一切施) 동진ㆍ승장(勝藏) 동진ㆍ연화행(蓮華行) 동진ㆍ사자(師子) 동진ㆍ월광(月光) 동진ㆍ존의(尊意) 동진ㆍ자엄(自嚴) 동진이다.
010_0379_a_10L其名曰溥首童眞寶事童眞寶印手童眞寶首童眞空藏童眞發意轉法輪童眞明網童眞除諸陰蓋童眞一切施童眞勝藏童眞蓮華行童眞師子童眞月光童眞尊意童眞自嚴童眞
또한 현호(賢護) 등 열여섯의 보살[正士]이 있었는데, 이들은 곧 현호ㆍ보사(寶事) ㆍ은시(恩施)ㆍ제천(帝天)ㆍ수천(水天)ㆍ현력(賢力)ㆍ상의(上意)ㆍ지의(持意)ㆍ증의(增意)ㆍ선건(善建)ㆍ불허견(不虛見)ㆍ불치원(不置遠)ㆍ불손의(不損意)ㆍ선도(善導)ㆍ일장(日藏)ㆍ지지(持地)이니, 이와 같은 부류가 7만 2천 명 있었던 것이다.
010_0379_a_15L賢護之等十六正士賢護寶事恩施帝天水天賢力上意持意增意善建不虛見不置遠不損意善導持地如是之類七萬二千
또한 사대천왕(四大天王)과 천제석(天帝釋)과 제석(帝釋)을 따르는 무리들과 도리천(忉利天)의 여러 천신과 염천(焰天)과 도솔천[忉利諸天]과 불교락천(不憍樂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도 있었고, 또한 여러 범천(梵天) 등과 범신천(梵身天)과 남은 여러 천 및 다른 용과 귀신ㆍ건달바[揵沓和]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摩睺勒]와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010_0379_a_18L四大天天帝釋帝釋翼從忉利諸天焰天兜術天不憍樂天他化自在天諸梵天等梵身天及餘諸天幷龍鬼神沓和阿須倫迦留羅眞陁羅摩睺勒人與非人悉來集會
010_0379_b_02L그때 세존께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천 무리의 권속들에 둘러싸인 채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다. 그때 명망(明網)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단정히 꿇어앉고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부처님 발에 대면서 예를 올렸다. 그리고는 이윽고 삼천대천세계를 진동시키고 두루 온갖 꽃비를 내리어 그 모임 위에 흩뿌리며 세존께 말씀드렸다.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시여,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그러하니, 만일 듣는 이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감히 제가 진술하는 것을 허락해주시옵소서.”
010_0379_b_02L彼時世尊與無央數百千之衆眷屬圍繞而爲說法於是明網菩薩卽從坐起偏袒右肩長跪叉手稽首佛足尋時感動三千大千世界普雨雜花散衆會上白世尊曰惟問正覺愚癡所趣若哀聽者乃敢自陳
부처님께서 명망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뜻대로 질문하라. 여러 현혹된 자를 위하여 여래ㆍ지진(至眞)은 마땅히 해설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겠다.”
010_0379_b_08L佛告明網恣所欲問諸眩惑者如來至眞當爲解說悅可爾心
이에 명망보살은 들어주시겠다는 허락을 받고는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위의를 갖추신 모습에서 나오는 빛은 널리 비추어 감당하기 어려우니, 태양의 광명보다 억백천 배를 초월하십니다. 자태와 안색의 위엄은 이를 데가 없으며, 위로 지극하고 아래로 궁극적이어서 능히 이를 감당할 수가 없으며, 준수하고 굳세게 닦으신 바는 능히 헤아리거나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만일 어떤 중생이 지진(至眞)의 용모와 몸을 보고 그 행상을 사유하고 관찰한다면, 그것은 모두 위대한 성인이신 부처님의 위신력이 닿은 까닭이니, 문득 영원한 안식을 일으키고 그것에 이르는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010_0379_b_09L明網菩薩得聽所啓卽白佛言唯然世尊如來儀像光曜難當超於日明億百千倍姿顏威嚴而不可逮極上窮下無能諦瞻遵建所修莫能計量我自念其有得見至眞容體思察所行皆佛大聖威神所接有所興發輒到永
세존께서 명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네가 말한 그대로이다. 여래의 몸을 본다면 반드시 뜻하는 서원을 얻을 것이며, 바라는 것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만일 질문하는 바가 있어도 역시 그와 같다.”
010_0379_b_16L世尊告曰明網菩薩誠如所云如來身必獲志願不失所僥若有所亦復如是
그리고 명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중우(衆祐)에게는 ‘고요한 언사[寂然言事]’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면 여래를 보고 그 형색을 관찰하여 안근이 명철(明哲)해진다. 그리고 일찍이 어두웠던 것이 없어진다. 또 여래에게는 ‘두려움 없는 변재[辯才無畏]’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여래에게 변재가 전개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질문하게 된다.
010_0379_b_18L則謂明網衆祐有光曰寂然言事假使衆生値斯光明見如來者觀察形色眼根明徹未曾晦又如來光名辯才無畏設値斯光堪問如來諮難所趣
010_0379_c_02L 또한 여래에게는 ‘선한 덕의 모음[積善德]’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전륜성왕이 덕을 행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청정한 요지[淸淨了]’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제석천신으로 태어나는 것을 획득하게 되는 원인과 일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위엄 있게 불타는 등불을 얻음[逮威然錠]’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범천의 일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010_0379_b_22L又如來光名積善德設値斯光能啓問佛轉輪聖王諸所德行又如來光名淸淨了設値斯光能啓問佛獲致帝釋所因生事又如來光名逮威然錠設値斯光啓問佛生梵天事
또한 여래에게는 ‘애욕과 티끌의 문을 벗어남[脫欲塵門]’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성문승(聲聞乘)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오로지 담담한 행을 준수함[專一遵澹泊行]’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연각승(緣覺乘)에 대하여 질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일체지를 간직하고 찬탄하고 용납함[一切慧持讚容]’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능히 부처님에게 대승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부처님의 지혜에 대하여 질문하게 된다.
010_0379_c_04L又如來光名脫欲塵門設値斯光能啓問佛聲聞之乘又如來光名曰專一遵澹泊行設値斯光能啓問佛緣覺之乘又如來光名一切慧持讚容設値斯光能啓問佛大乘之慧正覺佛慧
또한 여래에게는 ‘다른 걸음을 옮길수록 즐겁게 간직함[樂持異步]’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여래가 노닐며 거닐고 경행할 때 보호하는 안온한 광명이니, 만일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목숨이 다하면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장엄된 일체의 청정한 영락[嚴一切淸淨瓔珞]’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여래가 성에 들어와서 이 광명을 놓아 이 광명을 만나는 자는 모두가 안온함을 얻게 되며, 그때에 그 성의 대중은 보배 영락으로 자연히 장엄한다.
010_0379_c_09L又如來光名曰樂持異步設値斯光如來遊步經行普獲安隱壽終之後得生天上又如來光名嚴一切淸淨瓔珞如來入城若放光明設値斯光一切獲安應時彼城衆寶瓔珞自然莊嚴
또한 여래에게는 ‘부수고 제외함[壞除]’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여래는 이 광명으로써 능히 한량없고 이루 다 잴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다. 요점을 말하면, 다시 명망아, 여래에게는 ‘안온함을 쌓음[積安]’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지옥의 부류들이 이 광명을 만나면 온갖 고뇌와 근심이 자연히 쉬고 그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초월적인 사랑[超慈]’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금수(禽獸)의 부류가 이 광명을 만나면 서로 악의를 일으켜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지 못하게 된다.
010_0379_c_14L又如來光名壞除假使如來演斯光者感動無量不可稱限諸佛世界擧要言之明網如來光明名曰積安若地獄類値斯光者衆惱苦患自然休止如來光名曰超慈若禽獸類値斯光未曾興惡轉相危害
또한 여래에게는 ‘만들어진 것을 제도함[濟所造]’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아귀(餓鬼)와 아수라[儔倫]가 이 광명을 만나면 다시는 배고파하거나 목말라하지 않는다. 또한 여래에게는 ‘더러움을 떠남[離垢]’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눈먼 이가 이 광명을 만나면 눈을 뜨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귀로 들음[耳聞]’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귀먹은 자는 들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뜻이 있음[有志]’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산란한 자는 정상 상태가 된다.
010_0379_c_20L又如來光曰濟所造餓鬼儔倫値斯光者不復飢渴又如來光名曰離垢假使盲者値斯光明逮得眼目又如來光名曰耳聞値斯光者聾者得聽又如來光名曰有志設値斯光亂者得正
010_0380_a_02L 또한 여래에게는 ‘즐거운 등불[樂錠]’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자연히 악한 것을 고치고 열 가지 선한 것이 확립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벗어남의 문[脫門]’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삿된 견해를 지닌 자는 바른 견해를 획득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천상으로 나아감[趣天]’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아끼고 탐착하는 부류가 은혜로운 보시를 선호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극심한 고뇌가 없음[無熱惱]’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죄악을 범한 자들이 모두 금기와 계율을 받들어 간직하게 된다.
010_0380_a_02L又如來光名曰樂錠設値斯光自然改惡修立十善又如來光名曰脫門値斯光明令邪見者逮獲正見又如來光名曰趣天値斯光者令慳貪類好喜惠施又如來光名無熱惱設値斯光其犯惡者奉持禁戒
또한 여래에게는 ‘지키는 마음[持心]’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성냄과 원한을 지닌 자는 인욕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은근함[慇懃]’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게으르고 나태한 자는 정진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바른 정[正定]’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방일하는 자가 선정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뚜렷하게 비춤[顯曜]’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여러 지혜가 모자란 자는 영리함과 지혜를 얻게 된다.
010_0380_a_08L又如來光名曰持心諸瞋恨者逮得忍辱又如來光名曰慇懃其懈怠者逮得精進又如來光名曰正定其放逸者獲致禪定又如來光名曰顯曜諸惡智者逮得黠慧
또한 여래에게는 ‘맑고 깨끗함[淸澄]’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여우처럼 의심이 많은 자는 돈독한 믿음을 얻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모두 간직함[總持]’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아는 것이 적은 자는 많이 들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준수할 만한 구절의 흔적[遵句跡]’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자는 부끄러워하고 미안해 할 줄 알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소멸하고 제거함[滅除]’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탐착심을 지니고 음탕한 자들이 연정을 느끼는 상태를 멸하고 제거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안락(安樂)’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진에심(瞋恚心)을 가진 자는 분노하고 해치려는 뜻이 없게 된다.
010_0380_a_13L又如來光名曰淸澄其狐疑者逮得篤信又如來光名曰摠持其少智者令得博聞又如來光名遵句迹其無慚愧逮得知羞恥又如來光曰滅除其貪婬者洒釋情態又如來名曰安樂使瞋恚者無有怒害
또한 여래에게는 ‘밝게 빛남[照曜]’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어리석은 성향을 지닌 자가 우둔함과 어두움을 제거하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두루 존재함[普存]’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이 광명을 만나면 등분(等分)하는 자는 등분을 빠짐없이 버리게 된다. 또한 여래에게는 ‘두루 형체를 지닌 몸을 보여줌[普現色身]’이라고 이름하는 광명이 있다. 만일 중생이 이 광명을 만나면 모든 여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습을 보게 되고, 계산할 수 없이 많은 백천 가지 형상을 보게 된다.”
010_0380_a_18L如來光名曰照曜令癡行者除去愚又如來光名曰普存令等分行悉捨等分又如來光名曰普現色身使衆生値斯光明見諸如來無央數不可計數百千形像
010_0380_b_02L부처님께서 명망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나는 너를 위하여 대략적으로 요점만 든 것이다. 만일 1겁 또는 1겁이 넘도록 여래의 광명에 대해서 물은 것을 강설한다거나 경의 법을 논하고 천명한다고 해도 여래의 광명과 광명의 명호에 대해서 능히 다할 수 없다.”
010_0380_a_23L佛告明網今吾爲汝粗擧其要耳使一劫若復過劫咨嗟講說如來光論闡經法不能究盡如來光明光明名號
명망보살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일찍이 없었던 일입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여래의 몸은 한량없고, 높고 높은 덕은 불가사의하고, 시의적절(時宜適切)한 방편으로 경의 법을 부연하셨습니다. 저는 과거에서부터 일찍이 이러한 것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 가피를 입었습니다. 만일 어떤 보살이 있어 이러한 광명의 명호를 듣고 환희하고 즐거이 믿는 자는 모두 반드시 여래의 몸과 같은 것을 얻어 우뚝 솟은 덕을 구족할 것입니다.
010_0380_b_04L明網菩薩白世尊曰至未曾天中之天如來之身不可限量巍之德不可思議隨宜方便敷演經昔所未聞今乃被蒙其有菩薩聞說斯光名號歡喜而信樂者皆當逮得如如來身巍巍具足
또한 세존께서 연설하신 여래 부처님께서 소유하신 광명 중 ‘권하여 교화함[勸化]’이라는 광명의 이름을 듣고서 다른 방위의 다른 국토에서 노닐고 있는 보살 대사들이 서로 돌아가며 끌고 나아가게 하십시오. 서로 끌고 나아가서 빠짐없이 이 인계(忍界:娑婆世界)에 와서 모이게 하십시오.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는 보살이 여래께 와서 경에 대해 의심나는 것을 여쭙게 하시고 그것에 대해 강설해 주십시오.”
010_0380_b_09L又聞世尊演出如來佛所有光名曰勸化諸所遊在他方異國菩薩大士轉相誘進相誘進已盡令來會於斯忍界其有菩薩欲所諮啓便詣如來講問經疑
그때 세존께서는 명망보살이 여쭙는 청을 받아들이시어 곧 그와 같은 모습의 광명을 몸에서 방출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와 한계를 잴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두루 비추셨다. 또한 그 광명은 셀 수 없는 억천의 보살들을 부르고 청하여 인계를 찾아 모이게 하였다.
010_0380_b_13L爾時世尊見明網菩薩所可諮請如其像放身光明普照無量佛土不可稱限諸佛世界又其光明招請無數億千菩薩尋會忍界
그때 동방으로 7만 2천의 여러 부처님 세계를 지나가면 한 국토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청정(淸淨)이었고, 부처님의 명호는 일월여래(日月如來)였다. 당시 그 부처님 국토에는 한 범천이 있었는데, 이름이 지심(持心)이었다. 그는 보살 대사로서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머물렀다. 성스러운 지혜를 갖추고 신족(神足)의 힘으로 스스로 오락을 즐겼다.
010_0380_b_17L於時東方去是七萬二千諸佛世界國名淸淨號月明如來其佛之土而有梵天曰持心菩薩大士而不退轉聖慧神足力自娛樂
그때에 그 광명을 만났는데 나아가기를 권하므로 곧 스스로 일월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의 처소를 찾아와서 머리를 발에 대고 예를 올린 뒤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인계에 가서 능인(能仁)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받들고 친견하고자 합니다.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공양하고 모시고서 질문하고 싶은 것을 여쭙고 배우고자 합니다. 인계의 성스럽고 존귀한 분께서도 저희들을 보고자 하십니다.”
010_0380_b_21L時彼光明適勸進已自往詣月明如來至眞等正覺所首禮足而白佛言唯然世尊欲至忍界奉見能仁如來至眞等正覺稽首供侍諮受所問忍界聖尊欲得見我
010_0380_c_02L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거라, 범천아.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알아라. 셀 수 없이 많은 수억의 여러 보살 대중들과 함께 인계를 방문하도록 하라.”
010_0380_c_02L其佛告曰便往梵天宜知是時與無數億諸菩薩衆尋至忍界
또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비록 인계에 간다 하더라도 너는 마땅히 이 열 가지의 의도와 성품의 행[十志性行]을 받들어 행해야 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좋게 들리는 것과 나쁘게 들리는 것, 착한 것과 착하지 않은 것을 마땅히 수용하는 것이 첫째이다. 그런 것에 대해 슬픔과 애절함으로 행하는 것이 둘째이다. 하천한 자와 중간인 자와 높은 자에 대하여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셋째이다. 자신을 가벼이 여기는 경우나 자신을 공경하는 경우에 한마음으로 향하는 것이 넷째이다. 타인의 모자라는 점을 꼬집지 않고 그 허물을 밝혀내지 않는 것이 다섯째이다.
010_0380_c_04L又謂梵天雖至忍界卽當奉行十志性行何謂爲十當受言無言善聞惡聞善與不而行悲哀而等治療下賤中若輕易恭敬則一心向不見他闕不求瑕穢
여러 가지 승(乘)에 대해서 일미(一味)로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여섯째이다. 악취(惡趣)에 관한 소리를 듣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일곱째이다. 여러 보살들에 대하여 중우(衆祐)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여덟째이다. 다섯 가지가 탁한 세상[五濁世]에 대해 부처님 국토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홉째이다. 여래ㆍ정등각을 친견하듯이 하는 것이 열 번째이다. 이것이 곧 열 가지 일이다.”
010_0380_c_09L等以一味於若干而恐畏惡惡趣之聲於諸菩薩興衆祐想於五濁世佛之國土想如見如來等正覺是爲十事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 의도와 성품의 행을 부수지 말고 그 국토에서 유행할 수 있어야 한다.”
010_0380_c_12L梵天懷此志性可遊彼土
그러자 지심 범천이 그 정등각자께 말씀드렸다.
“저는 감히 부처님의 면전에서 사자후(師子吼)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인연이 되는 행에 있어서 특기할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이 의도와 성품의 행을 청정하게 닦고자 합니다. 그리고 동등하게 선정의 뜻을 확립하고 그 세계에서 유행하겠습니다.”
010_0380_c_13L於是持心白其正覺我於佛前不敢發音爲師子吼不於緣行現奇特相唯欲淨修志性之行等立定意乃遊彼土
그때 월명부처님 국토에 있던 여러 남은 보살들이 찬송하며 말씀드렸다.
“저희는 훌륭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세계에 태어나지 않은 것은 경하할 만한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곳 중생의 근심과 어려움과 노고가 모인 것이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010_0380_c_16L月明佛諸餘菩薩而歎頌曰吾得善唯然世尊爲獲嘉慶不生彼界生患難勞集乃然
월명세존께서 여러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족성자야, 그러한 말은 하지 마라. 왜냐하면 나의 국토에서 백천 겁 동안을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다 해도 인계에서 아침부터 식사할 때까지 해치려는 마음을 행하지 않은 것만 못하니, 그것이 더 수승(殊勝)한 것이다.”
010_0380_c_19L月明世尊告諸菩諸族姓子勿作斯言所以者何吾之土設百千劫淨修梵行不如忍界從且至食不行害心斯爲殊勝
그때 그 국토에 있던 1만 2천 보살이 함께 서원을 세워 말씀드렸다.
“저희들도 마땅히 청정한 의도와 성품을 구족하고, 각자 또는 함께 간직하면서 범천 대사를 호위하며, 능인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친견하고자 합니다.”
010_0380_c_22L時彼土萬二千菩薩俱誓願曰吾當具足淸淨志性各共侍衛梵天大士造覲能仁如來至眞等正覺
010_0381_a_02L그리하여 지심 범천은 1만 2천 보살과 함께 용맹한 장부가 오른팔을 굽혔다 펴는 정도의 짧은 시간에 그 부처님 국토에서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곧 인계에 나타나서 능인부처님을 받들고 친견하였다. 그리고 땅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린 뒤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010_0381_a_02L持心梵天卽與萬二千菩薩如勇猛士屈申右臂斯須之頃於其佛土忽然不現則立忍界奉見能仁稽首于地退住一面
그때 세존께서 명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지심 범천을 보았는가?”
대답하였다.
“이미 보았습니다.”
010_0381_a_06L於是世尊告明網曰汝乃睹見持心梵天乎對曰已見
위대한 성인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이 지심이라는 자는 방편을 환하게 요달하였고, 질문하는 바가 그윽한 곳에 머물고 있다. 존귀한 법을 분별하고, 변재가 훌륭하고 미묘하니, 이름이 나 있는 최상의 보살 대중들 가운데서도 최상인 자이다. 자애로움과 애절함과 지극한 정성으로 도의 이익을 권하고 교화하여 그가 노닐고 거주하는 곳마다 즐거워할 만한 것이 많은 자이다.”
010_0381_a_07L大聖卽言持心者曉了方便諮啓幽滯分別尊法辯才善妙名冠開士衆會之最哀至誠道利勸化遊居所在多所悅
그때 지심은 1만 2천 보살과 함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각자의 위신력으로 변화로 자리를 만든 다음에 스스로 그 위로 갔다. 지심 범천은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씀드렸다.
010_0381_a_11L於時持心萬二千菩薩稽首禮畢繞佛三帀各以神力則化作座自處其上持心梵天叉手白佛以頌讚曰

그 미묘한 음성이
통하고 도달한 곳에는
위덕(威德)이 흐르고 천명되니
시방에 두루 들립니다.
010_0381_a_13L其妙音聲
所在通達
威德流闡
聞于十方

소리가 들리는 국토마다
가장 뛰어나신 분들을 뵙게 되니
위대한 성인의 행상에 대해
그 모든 분께 여쭈옵니다.
010_0381_a_15L在所國土
見諸最勝
一切咨嗟
大聖之行

저는 다른 국토에 거처하오니
그곳은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그 세계는 악취(惡趣)의 이름조차
있지 않은 곳이옵니다.
010_0381_a_16L我處異土
淸淨無垢
其界無有
惡趣之名

그런 곳을 버리고 떠난 뒤
이러한 부처님 국토를 찾아
제례[濟]를 닦고자 하고 매우 애절히 여기어
그런 까닭에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010_0381_a_17L尋而捨離
如斯佛土
修濟大哀
故來到此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는
터럭만큼도 손상되는 바가 없으니
어떤 여래이시건
모두 빠짐없이 평등합니다.
010_0381_a_19L佛之聖慧
無有損耗
一切如來
皆悉平等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
악을 항복받는 의도와 성품[志性]으로
여러 부처님 국토를
이와 같이 보호하려 합니다.
010_0381_a_20L來今往古
降伏志性
將護如是
諸佛國土

설령 저에게 크게 다른 행상이 있다 하여도
일체가 청정하고
장엄되어 있으며 수습하고 계율을 지키고
항상 범행(梵行)을 준수합니다.
010_0381_a_21L恢設異行
一切淸淨
嚴修至戒
常遵梵行

저에게 해치려는 뜻을 품은 자가 있으면
오히려 자비로 보답하오니
마음과 의지가 이와 같아서
수승하고 특이한 것입니다.
010_0381_a_23L其懷害者
報之以慈
心意如是
而有殊特

세 종류의 업을
능히 청정하게 함으로써
몸과 입과 마음의 뜻을
장차 순응하고 보호할 것입니다.
010_0381_a_24L以能淸淨
三品之業
而順將護
身口心意
010_0381_b_02L
3악취(惡趣)의 근심과 힘듦
그리고 괴로움과 여러 번뇌는
현재에 법을 위하는 까닭에
모두 그것으로 멸진합니다.
010_0381_b_02L三趣之患
勤苦諸惱
現在爲法
皆以滅盡

만일 여러 보살이
이 인계에 태어난다면
이들은 위험과 두려움을
결코 품지 않습니다.
010_0381_b_04L若諸菩薩
其生於斯
此等未曾
懷貯危懼

지은 바 업이
악취에 이른다 하여도
위로 아래로 도의 발[道足]을 나타내시어
모두 단멸하고 제거합니다.
010_0381_b_05L所造之業
至於惡趣
上下道足
皆已斷除

그 보살의 마음에
설사 근심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해도
장차 이 바른 법을
제어하고 옹호합니다.
010_0381_b_06L其有菩薩
心設患厭
將御擁護
于斯正法

이들은 나중 세상의
거처하는 곳마다
그 뜻을 잃지 않으며
지혜를 떠나지 않습니다.
010_0381_b_08L此等後世
所處之地
不失其志
不離智慧

그들의 욕구는 온갖 결박을
단절하고 자르고자 하는 것이니
가령 티끌과 때를
깨끗이 제거하려는 욕구가 있다면
부처님 국토의 법을
마땅히 장차 보호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고
여러 신통과 지혜를 얻습니다.
010_0381_b_09L其欲斷截
衆結之縛
假使淨除
塵垢之欲
則當將護
佛土之法
則便超越
至諸通慧

설령 다른 부처님 국토에서
셀 수 없는 억 겁 동안을
바른 법을 파악하고 간직하고
그리고 강설한다 하여도
인계(忍界)에서 경을 설하되
식사하는 시간까지만 설하여도
이것이 더 수승하나니
이야말로 가장 존귀한 일입니다.
010_0381_b_12L設異佛土
無數億劫
執持正法
若講說者
不如忍界
說經至食
是爲殊勝
則第一尊

저도 역시
미묘하고 즐거운 세계를 보고
또한 다시
안락한 국토를 성찰합니다.
010_0381_b_14L吾亦睹見
妙樂世界
及復省察
安樂佛土

이 가운데는 고뇌가 없으며
온갖 근심에 관련된 소리조차 없으며
설령 그곳에서 선행을 지어도
총족되지 않는 것이 본성입니다.
010_0381_b_16L彼無苦惱
衆患音聲
設若修善
不足爲性

설령 집안에 있는 온갖 티끌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어리석고 흉악하고 해치려는 뜻을 지닌 자는
참는 것조차 대단한 일인데
010_0381_b_17L假使蠲除
衆塵堂室
愚兇害人
常忍所加

마땅히 이 경의 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교화하여
높은 도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마땅히 그에게 머리 숙입니다.
010_0381_b_18L當以經法
勸化他人
令至上道
此乃甚難
當稽首彼

위없이 존귀한 분께서는
불쌍함과 애절함으로 행하시어
힘들고 괴로운 법을 벗어나게 하시니
이것은 일찍이 없었던
여래의 행상이라
마음에 독을 품은 자도
법으로써 열어 교화하시니
설령 어떤 모임에 있다 하더라도
인도하는 스승이 되십니다.
010_0381_b_20L無上之尊
行于愍哀
脫勤苦法
斯未曾有
如來所行
心懷毒者
開化以法
設入衆會
則爲導師

시방세계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보살은
법을 듣되 큰 바다와 같이
걸림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그 보살을 위하여
이러한 부처님 도를 설하십니다.
010_0381_b_23L是菩薩者
十方聞名
於法無㝵
猶如巨海
故爲彼說
斯佛之道
010_0381_c_02L
제석천과 범천과
호세천(護世天)과
여러 천신과 용신과
아수라와 건달바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모두 와서
이곳에 모여
경의 의미를 구하고자 하니
뜻하는 바에 따라서 해설해 주십시오.
010_0381_c_02L帝釋梵天
及護世者
諸天龍神
須倫眞陁
無數悉來
等集于斯
欲求經義
從志解說

비구와 비구니와
청신사와 청신녀 등
모두가 두루
이 모임에 와서 청합니다.
010_0381_c_05L比丘丘尼
淸信士女
普皆來臻
於此衆會

원하오니 이 대중들에게 부처님께서
두루 경의 의미를 강설해 주십시오.
만일 듣는 바가 있는 자는
가는 곳이 길하고 좋을 것입니다.
010_0381_c_06L願佛爲普
講說經法
若有聞者
所趣吉祥

가령 뜻으로 원하고
믿음이 훌륭하다면
인도하는 스승이시여
성문의 무리이든 연각이든
능인께서는 빠짐없이 요지하시어
뜻에 따라 교화하고 다스리십니다.
오직 이 무리를 위하여
일체의 의혹을 결정지어 주십시오.
010_0381_c_07L假使志願
信好導師
聲聞之衆
及與緣覺
能仁悉了
隨志化治
惟爲斯黨
決一切疑

지금 저희는 나아가시길 권하오니
법의 왕에게 질문하오며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부처님의 도를 뜻으로 구하오니
부처님의 말씀 위에 확립되어
단절되는 일이 없으며
자비의 마음을 닦음으로써
한량없는 보배로 삼습니다.
010_0381_c_10L今吾勸進
諮啓法王
爲衆生故
志求佛道
其立佛言
而不斷絕
以修慈心
爲無量寶

가령 시방세계에 계신
부처님의 명성과 덕망을 들은 자는
용맹하게 정진하고
한량없는 지혜를 얻습니다.
010_0381_c_13L假使十方
聞佛名德
勇猛逮得
無量之慧

그러므로 이들을 위하여
비할 데 없는 행을 설하십시오.
그 행은 중생의 아는 바와
뜻의 흔적을 따르는 것이니
이는 여러 성문 제자들의
경지도 아니고
일체의 연각이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010_0381_c_14L當爲斯等
說無比行
隨其衆生
所知志迹
非諸聲聞
弟子之地
一切緣覺
所不能及

저희들은 즐거이 믿는 까닭에
가장 수승하게 건널 수 있지만
그러나 세존의 지혜는
불가사의하옵니다.
010_0381_c_17L余等信樂
最勝所度
世尊之慧
不可思議

비루한 저희들은 귀의하오며
세간을 인도하는 스승께
그 의미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자 지금 원하오니
위대한 성인이시여,
설령 싫으신 바가 있고
마음에 악함과 수고로움과 근심이 있다 해도
오직 부처님의 요긴한 도를
해설해 주십시오.
010_0381_c_18L鄙自歸命
於世導師
今願諮問
大聖此義
假使有厭
心惡勞患
唯爲解說
佛之要道

2. 사법품(四法品)
010_0381_c_21L四法品第二
010_0382_a_02L
그때 지심 범천은 이 게송을 설하며 부처님을 찬탄하고 난 뒤에 무릎을 꿇고 합장한 뒤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어떻게 해야 보살의 의도와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하여 그 뜻에 나태하거나 싫어함이 없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말한 것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그 언사에 고뇌와 뜨거움이 없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지은 덕의 근본이 여러 중생을 넘어서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의 위의가 안온하고 길상하여 졸속으로 갑작스럽게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청정하고 깨끗한 법을 늘리고 더하는 것이 많겠습니까?
010_0381_c_22L於是持心梵天說此偈讚佛已長跪叉手前白佛言何謂菩薩志性堅强意不懈厭何謂菩薩所言柔和辭無惱熱何謂菩薩所造德本超諸衆生何謂菩薩威儀安詳而不卒暴何謂菩薩於淸淨白法多所長益
어떻게 해야 보살이 국토와 대지에서 노닐고 거닐어 궁극에까지 이르게 됩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중생들에게 권화(勸化)와 방편(方便)을 행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그들을 잘 분별하고 교화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능히 도의 마음을 보호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오로지 중생에게 있으면서도 그 마음이 잡스런 행동이 없도록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열심히 선의 근본을 구하고 법을 논의하며 머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생각하는 것을 환하게 요달하며 믿음을 버리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괴롭고 수고로운 부분에 대해서 열어서 교화할 수 있겠습니까?
010_0382_a_05L何謂菩薩所至土地遊步究縛何謂菩薩在於衆生行㩲方便何謂菩薩於彼等倫分別教化何謂菩薩能護道心謂菩薩專在衆生心不憒亂何謂菩薩務求善本存在法議何謂菩薩曉了所念而不捨信何謂菩薩於諸塵勞部分開化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여러 대중의 모임에 참여하여서 권화와 방편을 행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법을 크게 천명하고 보시하고 유포하고 연설하고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과보와 상응하는 힘을 알며, 덕의 근본을 잃어버린 자를 알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중생의 일어나지 않는 지혜와 6바라밀[度無極]에 대해서 환히 깨닫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선정에 존재하는 방편을 창달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여러 부처님의 법에서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보살이 여러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대하여 위배되거나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010_0382_a_12L何謂菩薩所入衆會能行㩲便何謂菩薩恢闡法施流演剖何謂菩薩知報應力失德本者謂菩薩曉於衆生不起之慧六度無何謂菩薩暢達方便存於禪定謂菩薩於諸佛法而不退轉何謂菩薩未常違疑諸佛言教
그때 세존께서 지심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능히 여래에게 이와 같은 일에 대해 질문하고 있구나. 잘 듣고 잘 들어라. 그리고 그것을 잘 생각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기꺼이 듣길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지심 범천은 가르침을 받아 귀 기울였다.
010_0382_a_18L佛告持心梵天善哉善哉乃能諮問如來如斯之議諦聽諦聽善思念之甚哉世尊願樂欲聞持心梵天受教而聽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있어 그 의도와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하여 그 뜻에 나태하거나 싫어함이 없게 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정진함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며, 끝나고 시작하는 것을 꿈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에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a_22L佛告梵天菩薩有四事法志性堅强而不懈厭何謂爲四愍哀衆生不厭精進終始如夢平等佛慧是爲
010_0382_b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으니, 이로 인해 말한 것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그 언사에 고뇌와 뜨거움이 없게 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보살은 오로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여러 법을 분별하며, 보살은 오로지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할 일체 모든 취(趣)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보살은 오로지 대승(大乘)을 찬양하며, 보살은 오로지 청정한 업을 강설하고 깨끗한 업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02L復有四事所言柔和辭無惱熱謂爲四菩薩專一以一人故分別諸菩薩專一不樂一切諸趣所生薩專一讚揚大乘菩薩專一講說淸淨不失淨業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지은 덕의 근본이 여러 중생을 넘어선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계율을 지키는 것이며, 많이 듣는 것이며, 보시하는 것이며, 출가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 네 가지이다.
010_0382_b_06L又有四事所造德本超諸衆生何等四禁戒博聞捨家是爲四
다시 네 가지 법이 있다. 그것으로 위의가 안온하고 길상하여 졸속하거나 난폭하지 않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익이 없음이며, 명예가 없음이며, 명성이 없음이며, 고뇌가 없음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08L又有四事威儀安詳而不卒暴何等四無利無譽無名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청정한 법에서 공덕의 근본을 늘리고 더하는 것이 많아진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수행과 신앙을 구족하도록 권하는 것이며, 설령 보시를 하더라도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며, 법을 증장하게 하고 수호하는 것이며, 여러 보살들을 위하여 지혜의 땅에서 널리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10L又有四事於淸淨法多所長益功德之本何等四具足行信勸於他人假使布施不望其報將養護爲諸菩薩廣說慧地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국토와 대지에서 노닐고 거닐어 궁극에까지 이른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덕의 근본을 일으키는 것이며, 여러 가지 과오와 허물을 버리는 것이며, 권화와 도움을 환하게 아는 것이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13L又有四事所至土地遊步究縛何等四起德本棄諸瑕穢曉了勸助慇懃精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중생들에 대하여 권화와 방편을 행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중생에 수순하고 따르는 것이며, 덕의 근본으로 권하고 교화하는 것이며, 과오를 후회하고 죄를 제거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일을 해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16L又有四事在於衆生行㩲方便何等爲四順從衆生勸化德本悔過罪舋解說佛事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그들을 잘 분별하고 교화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사람들을 매우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자신의 안락을 포기하는 것이며, 인욕하고 안온하게 있는 것이며, 겸손하여 교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18L又有四於彼等倫分別教化何等四愍傷人物習己安隱忍辱安詳謙不憍慢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능히 도의 마음을 보호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뜻으로 항상 부처님을 억념(憶念)하는 것이며, 일체 덕의 근본이 항상 도의 마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며, 선한 벗을 가까이 익히는 것이며, 대승에 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21L又有四事能護道心何等四意常念佛一切德本至於道心習近善友咨嗟大乘是爲四
010_0382_c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오로지 중생에게 있으면서도 그 마음이 잡스런 행동이 없도록 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성문의 마음을 떠나는 것이며, 연각(緣覺)의 마음을 떠나는 것이며, 법을 구함에 싫어함이 없는 것이며, 법을 들은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b_23L又有四事在衆生心不憒亂何等爲四不爲聲聞心若緣覺心求法無厭如所聞法爲他人說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열심히 선의 근본을 구하고 법을 논의하며 머물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일체의 괴롭고 수고로운 병을 제거하여 치유하니, 의왕(醫王)과 같은 것이며, 덕의 근본에 순응하여 위배하거나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것이며, 여러 가지 도에 관해 논의하고 생각하여 온갖 많은 괴로움을 멸하는 것이며, 열반[泥洹]에 대해 사의(思議)하려는 의도를 지니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c_03L又有四事務求善本存在法議何等四除去一切塵勞之病猶如醫王順於德本而不違失諸議道想滅群黎苦志泥洹議是爲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환히 요달하여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불기인(不起忍)을 일으키는 것이며, 불멸인(不滅忍)을 초월하는 것이며, 연기와 과보의 인(忍)을 얻는 것이며, 무소주(無所住)의 인을 얻는 것이니 왜냐하면 다른 마음이 상속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c_07L又有四事曉了所念而不捨信等四興不起忍超不滅忍忍緣起報忍無所住亦無異心汲汲之事是爲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괴롭고 수고로운 부분에 대해서 열어서 교화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사의[議]에 순응하여 억념하는 것이며, 앞으로 금기와 계율을 보호하는 것이며, 여러 법의 힘을 환히 아는 것이며, 홀로 떨어져 거처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c_10L又有四事於諸塵勞部分開化謂四所念順議將護禁戒曉諸法力樂處燕居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여러 대중의 모임에 들어가서 권화와 방편을 행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법에 뜻을 두고 다른 사람의 단점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이에게 공경을 받더라도 교만하지 않는 것이며, 선한 덕을 구하고 찾되 스스로에게 베풀지는 않는 것이며, 지은 바 덕의 근본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기를 권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c_12L又有四事所入衆會能行㩲便何等四志樂法議不求他短而行恭敬無有憍慢求索善德不爲己施所造德本勸施他人是爲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법을 크게 천명하고 보시하고 유포하고 연설하고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바른 법을 수호하는 것이며, 스스로와 남을 교화하여 지혜에 들어가는 것이며, 보살[正士]의 업을 닦는 것이며, 번뇌와 수고로움과 분노와 원한의 결박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c_16L又有四事恢闡法施流演剖判等四將護正法化己及彼使入智慧修正士業示現塵勞瞋恨之結是爲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과보와 상응하는 힘을 알며 덕의 근본을 잃어버린 자를 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타인의 결점과 모자라는 점을 끝내 보지 않는 것이며, 여러 성내고 화내는 사람에 대해서 항상 자애로운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며, 상응하는 과보를 천명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법에 관련된 일에서 항상 도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c_19L又有四事知報應力失德本者等四終不睹見他人瑕闕奉行慈心攝諸瞋怒顯揚報應於諸法事常念道心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중생에 대해 일어나지 않는 지혜와 육바라밀에 대해서 환히 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보시로써 사람들의 무리를 위하는 것이며, 아울러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며, 네 가지 은혜를 잘 알아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며, 심오한 법을 선호하고 즐겨서 경전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2_c_22L又有四事曉於衆生不起之慧六度無極何等四則以布施如爲黨幷化他人曉了四恩化於衆生好喜深法順於經典是爲四
010_0383_a_02L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선정에 존재하는 방편을 창달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마음의 일을 분별하고 죄와 복이 가는 곳을 분별하는 것이며, 정진의 힘을 덕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중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며, 지혜와 방편을 잘 닦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3_a_02L有四事暢達方便存於禪定何等四分別心事罪福所趣勤力德本不捨衆生修行㩲慧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부처님 법에 대하여 물러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장차 한량없는 생사의 근심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받들어 모시는 것이며, 한량없이 자애로운 마음을 준수하고 수행하는 것이며, 한량없는 부처님의 지혜를 환히 알고 요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3_a_05L又有四事諸佛法而不退轉何等四將護無量生死之患供養奉侍無數諸佛而常遵修無限慈心曉了無際諸佛之慧是爲四
다시 네 가지 일이 있다. 그것으로 여러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대하여 위배하거나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본래의 지혜로부터 물러서지 않는 것이며, 말한 것과 행동이 상응하는 것이며, 무거운 탐욕을 버리는 것이며, 건립하는 것이 있다면 본성에 거처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 가지이다.”
010_0383_a_09L又有四事未曾違疑諸佛言何等四不釋本慧言行相應捐棄重貪若建立者處於本性是爲四
세존께서 이러한 네 가지의 일에 대해 전하고 설하셨을 때 항하(恒河)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수의 여러 천자들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진실한 도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5천 명의 사람들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이 여러 보살들은 각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 국토에서 이 모임에 온 이들로서, 세존을 공양하였으니 주변의 삼천대천세계가 두루 빠짐없이 꽃이 무릎까지 쌓였다.
010_0383_a_11L尊發遣說四事時二江河沙諸天子皆發無上正眞道意五千人得不起法忍此諸菩薩各從無數佛國來會者供養世尊三千大千世界皆悉周遍華至于膝

3. 분별법언품(分別法言品)
010_0383_a_16L分別法言品第三

그때 명망보살이 지심 범천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미묘하고 존귀한 사의(思議)에 순응하며 환히 요달한 보살 방편의 지취(旨趣)를 질문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이를 분별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보살이 질문한 일입니까?”
010_0383_a_17L於是明網菩薩謂持心梵天曰仁者乃問順妙尊議曉了菩薩方便之趣佛分別說何謂菩薩有所問事而應順議
사의한 바에 순응하여 지심이 답하였다.
“나에게 동등하게 그 일에 대해 질문한다면 이것이 사의에 순응하는 질문입니다. 타인이 행하는 것을 부릴 만하여도 그것을 동등하게 질문하면 그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법의 형상에 대해 동등하게 질문한다면 그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010_0383_a_21L持心答曰等於吾我而問事者爲順議問等問他人行之所操爲應順也等問法像爲應順也
010_0383_b_02L또한 명망이여, 나라고 헤아리지 않고 동등하게 하며, 남이라고 헤아리지 않고 동등하게 하며, 법이라고 헤아리지 않고 동등하게 하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또한 생기하는 것으로 질문하고,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으로 질문하고, 거처하는 곳에 대해 질문한다면 그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령 질문이 있어도 법에는 일어나는 것이 없고 멸진하는 것도 없고 거처하는 장소의 행상도 없으니,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면 이것은 더럽고 수고스러운 욕심에 불과합니다. 만일 싸움과 다툼과 뒤바뀐 것에 대해 질문하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010_0383_a_23L明網計吾等不計他等不計法等是爲應順也其問起生其問滅盡若問處爲應順也設有問者法無所起及與滅盡處所之行爲應順也若問他人塵勞之欲若有問鬪諍顚倒爲應順也
생사에 대해서 질문하고 생사를 건너는 것에 대해서 질문하고 무위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럽고 수고스러운 것을 질문한 것이 아니고, 전도된 것을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나고 죽는 것을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생사로부터 건너는 것을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열반에 관한 질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법(諸法)을 관찰해 보면 그것은 고요한 것도 아니고 애욕과 더러움과 뒤바뀜과 생사와 무위를 제거하는 것도 아니니, 그것이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010_0383_b_06L其問生死問度生死問於無爲爲應順也其不問塵勞亦不顚倒不生死亦不度生死亦無泥洹爲應順也所以者何察諸法者亦不寂然不除欲垢顚倒生死無爲爲應順也
또한 그 질문에 획득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설령 다시 질문이 있고 증득하는 바가 있고 약속된 바가 있고 제거하고 단절하는 바가 있고 행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또한 획득하고 수용하고 증득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으며, 온갖 상념으로 약속하는 일이 없을 때 집착하는 바도 없고, 단절하고 제거하는 생각도 없고, 행하고 보는 것도 없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010_0383_b_10L其問所獲爲應順也設復有問有所造證若有約時有所除斷若有所行爲應順也若有不問所得受證衆想之念不以約時而無所著無斷除想亦無行見爲應順也
일체를 위하는 까닭에 이 질문을 일으켰을 뿐 마음으로 집착하는 바가 없고 자신의 의도도 질문에 있지 않으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어떤 질문이 온갖 덕과 선에 대한 것이라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하거나 덕스럽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속의 일이고 저것은 세간을 제도하는 것이며, 이것은 죄 되는 일이고 저것은 죄의 업이 아니며, 이것은 여러 가지 번뇌이고 이것은 있는 것이고 저것은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두 가지 일을 만들어서 질문하는 자는 이 일체를 헤아렸지만 순응하는 것이 못 됩니다. 두 가지 일이 없으니 두 가지 질문을 보지 않는 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010_0383_b_15L爲一切故而發是問心無所著志不存問爲應順也其有而問斯衆德善爲如應順斯不善德爲不如應斯爲俗事斯爲度世斯爲罪事斯無罪業斯爲諸漏斯爲所有斯無所有其有作是二事問者此一切爲不應順也其不二事不見二問爲應順也
010_0383_c_02L 어떤 사람이 여러 부처님을 약간 본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며, 법을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며, 성스러운 대중을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중생을 약간 헤아리고 국토를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도(道)와 승(乘)을 약간 헤아리고 생각하지 않음을 약간 헤아린다면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에는 소속된 것이 없으니 그 약간조차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로 사의하여 질문해야 하니, 이것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입니다. 일체 법은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면서도 또한 일체 법은 그렇게 순응함이 없는 것입니다.”
010_0383_b_22L其有若干視諸佛者爲如應順計法若干爲如應順聖衆若干爲如應順衆生若干國土若干爲如應順道乘若干不想若干爲如應順法無所屬無有若干而問一議爲如應順一切法如應一切法無應
다시 범천에게 질문하였다.
“어찌하여 일체의 제법이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면서 또한 일체의 제법은 순응함이 없는 것입니까?”
010_0383_c_04L問梵天何謂一切諸法如爲應順一切諸法爲不應順
답하였다.
“일체의 제법을 능히 분별하는 자는 제법이란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령 마음이라는 법이 있고 그 마음이 정진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순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의 법을 헤아리되 제법의 모습은 고요하고 공성(空性)이고 무소유라고 헤아린다면 이것이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요한 법을 흔쾌히 즐기지 않는 자가 또한 순응하는 자입니다. 오로지 한결같이 마땅히 지어야만 할 업을 짓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는 교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지은 바가 있고 그와 같이 행하는 자라면 이것이 또한 순응하는 것입니다.”
010_0383_c_06L答曰能分別者一切諸法諸法如應假使心法其心精進彼不應順計一切法諸法相寂空無所有應順也其不欣樂寂然法者爲應順也此專精業所當造者斯在憍慢斯有所作如斯行者亦復如應
다시 질문하였다.
“어떤 것을 일컬어 제법에 관찰되는 바가 있다고 합니까?”
“이미 성품이 고요하고 애욕의 끝을 떠났으면 이것을 제법을 관찰한 것이라고 합니다.”
010_0383_c_11L又問何謂諸法有所觀察答曰己性寂然離欲之際爲觀諸法
다시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그와 같이 순응하지 않는 것을 요해할 부류는 적겠습니다. 애욕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도에 대한 사의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010_0383_c_13L又問梵天少有是類了不應者不離於欲而順道議
답하였다.
“명망이여, 많은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가 애욕의 끝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도를 사의하는 법에 대해 그렇게 순응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이미 들어간 자도 있고 앞으로 마땅히 들어갈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지혜의 법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얻은 바도 없고, 또한 이미 들어간 사람도 없고, 앞으로 들어갈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크게 불쌍히 여기시는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010_0383_c_14L答曰明網多族姓子族姓女不離欲際順如應道議之法令已入者甫當入則於其人不入智法亦無所得無有人亦無當入所以者何大哀世尊不有云乎
만일 부처님께서 그렇게 설하신 법을 듣고 수행하고 정진한다면 그것이 곧 마땅히 설한 대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곳의 땅으로도 돌아가지 않으며, 존재하거나 얻을 수 있는 어떤 취(趣)로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또한 다시는 생사도 없으며, 열반에도 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생사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열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환히 아셨기 때문입니다.”
010_0383_c_19L其聞於佛所說法者若行精進便當如說而奉行之不復歸於土地處所有所獲致其不歸趣無復生死不至泥洹所以者何世尊所了無有生死亦無泥洹
다시 질문하였다.
“범천이여, 부처님께서는 생사의 업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닙니까?”
답하였다.
“세존께서 정녕 어찌 다시 ‘나는 생사를 제도한다.’고 스스로 설하셨겠습니까?”
010_0383_c_23L又問梵天佛者不度生死業而說法乎世尊寧復自說吾度生死乎
010_0384_a_02L명망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족성자여. 그 때문에 부처님 세존께서는 생사를 버리지도 않으시며 열반을 구하지도 않으십니다. 만일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생각을 가진 자라면 그는 제도될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생사가 없으니, 무엇이 제도되겠습니까? 그리하여 열반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어찌하여 생사와 열반이 평등하지 않겠습니까?”
범천이 답하였다.
“나고 죽지도 않으며 또한 열반도 없는 것입니다.”
010_0384_a_02L答曰不也故族姓子佛世尊者不捨生死不求泥洹設有生死泥洹之想則不度二彼無生死何所度者不得泥洹所以者何不等生死至泥洹乎梵天答曰亦不生死亦無泥洹也
그때 세존께서 지심 범천을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범천아. 설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그렇게 설해야 하고, 나아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성취해야 한다.”
010_0384_a_07L於是世尊讚持心梵天曰善哉善哉梵天欲有所說當作斯說乃爲是說
이렇게 순응하는 것에 관하여 설할 때에 2천 명의 비구가 번뇌가 다하였으며 마음으로 그 뜻을 이해하였다.
“범천아, 또한 생사를 얻을 수 없고 열반도 없다. 여래께서 나고 죽는 일을 보이며 말한다고 하여도 윤회하는 자도 없고 멸도(滅度)하는 자도 없고 슬퍼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사람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범천아, ‘멸도한 자가 있다’고 누군가 사의한다고 하여도 실제로 그 사람에게는 생사의 법도 없고 열반의 법도 없는 것이다.”
010_0384_a_09L說是應順語時二千比丘漏盡意解梵天不復得於生死亦無泥洹如來說言示有生死無周旋者亦無滅度亦無所憂亦不見人有滅度者設使梵天入此議者則於其人無生死法無泥洹法
그때 대중의 모임 가운데 있던 5백의 비구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개인적인 견해에 사로잡혀 떠나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보는 바로는 청정하게 범행을 닦는 것이 있다. 그리하여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말하기를, ‘마땅히 멸도를 얻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멸도를 얻은 자가 없다’고 하시니, 이 도를 구하고 배우려고 의도했던 것이 다 공허한 것인가? 그렇다면 안정되게 지혜를 성취하겠는가!”
010_0384_a_15L於是衆會五百比丘卽從坐起私竊而去而說此言吾等見中淨修梵行心自念言當得滅度而無有人得滅度者空復志求學斯道乎安成慧耶
그때 명망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법이 생기하는 것을 욕구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에게는 생사의 어려움을 초월하고 건넌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그 사람은 열반을 보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010_0384_a_19L於是明網菩薩前白佛言唯然世尊假使欲令法起生者則於其人佛不興彼不超度生死之難也天中天見泥洹故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열반이란 일체의 상념을 제거하는 것이며, 또한 상속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신통과 지혜에 있어서 수승하고 특이한 것입니다. 만일 이들을 해석한 비구가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속인 것이 됩니다.
010_0384_a_23L唯天中天所謂泥洹蠲除一切衆想之念亦不汲汲於諸通慧爲殊異也若所釋是等比丘卽爲自欺也
010_0384_b_02L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이 바른 법과 율에서 출가하여 외도의 사견에 떨어진 자가 있으니, 그가 열반의 장소를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유하면 삼 풀[麻]에서 기름이 나오는 것과 같으며, 낙(酪)에서 소(酥) 및 제호(醍醐)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제법을 멸진하고, ‘세존께서는 빠짐없이 영원히 멸도시키시니 그는 영원히 멸도한다’고 한다면, 저는 곧 그를 매우 교만한 자라고 일컫겠습니다.
010_0384_b_03L天中天於正法律而行出家外邪見而以志睹泥洹之處譬如麻油酪酥醍醐然卽滅盡諸法世尊永悉滅度其永滅度吾則謂之爲甚慢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수행자에게는 닦은 바가 없으며, 평등함에 이른 자에게는 마침내 일으킬 만한 법을 만들어 세우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멸진에 대해서도 역시 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법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평등함이 없는 것입니다.”
010_0384_b_07L唯天中天其修行者則無所修平等者終不造立所起之法及與滅盡亦無有求欲得法者亦無平等
이에 명망보살이 지심 범천에게 말하였다.
“범천이여, 이것이 설해질 때 5백의 비구가 설해지는 법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개인적인 견해에 사로잡혀 허망하게 떠나갔습니다. 이들 부류의 의지의 움직임에 대해서 알아서 어찌 그들로 하여금 법에 들어가도록 하지 않습니까? 즐거이 믿는 자가 있다면 그것으로써 여러 견해의 그물에서 제도하여 해탈시키시오.”
010_0384_b_09L於是明網菩薩謂持心梵天梵天說五百比丘聞所說法卽從坐起私竊亡去知斯等類意之所趣何不入其有信樂若以度脫於諸見網
지심이 답하였다.
“족성자여, 그대가 항하의 모래알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의 국토를 노닐며 지내 왔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만한 수의 겁 동안을 구하고 찾는다 하여도 떠남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아서 형상적인 법에는 또한 해탈이 없습니다. 비유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허공을 두려워하여 버리고 도망가는데 머무는 곳, 이르는 장소마다 허공을 떠나지는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비구들 역시 그러합니다. 도달하고 행하는 그 한계를 측정할 수가 없다 해도 공성(空性)의 모습이 자연스러우며, 무상(無想)의 모습 역시 자연스러우며, 무원(無願)의 모습 역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010_0384_b_13L心答曰族姓子汝往遊至江河沙等諸佛國土劫數求索不能得離如是像法亦無有脫譬如癡子畏於虛空而馳逬走在所至趣不能離空此比丘等亦復如是正使達行不可稱限空相自然無想之相亦復自然無願之相亦復自然
또한 비유하면 허공을 구하려는 두 번째 사람과 같습니다. 여덟 방향으로 그리고 위와 아래로 허공을 얻으려고 하여 ‘나는 허공을 얻고자 한다. 나는 허공을 얻고자 하여 욕구하는 대로 노닐고 나아가고자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지만, 그 사람은 입으로 스스로 허공을 말할 뿐이지 허공을 알지 못합니다. 말하는 것처럼 그 몸이 허공에서 나아가면서도 허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010_0384_b_20L猶如復有第二士夫求於虛空八方上下欲得於空心自念言我欲得空我欲得空所欲遊至口自說空而不知空言與其身行於空中而不睹空
010_0384_c_02L이와 같이 족성자여, 이 여러 비구도 멸도를 구하고 열반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멸도를 구하지만 이해하여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른바 멸도(滅度)를 얻었다고 말하는 자는 단지 거짓된 명칭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허공과 같으니, 만일 허공에서 다니고 허공에서 노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역시 공허한 것입니다. 그 열반이란 임시로 짐짓 만든 말일 뿐입니다.”
010_0384_b_24L如是族姓子斯諸比丘求於滅度行於泥洹而求滅度解所入所以者何所謂言曰得滅度但假號耳猶如虛空若有行空經遊虛空所言亦空其泥洹者假託言
그때 5백 비구는 이렇게 설하는 말을 듣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으로 해탈하고 신통력(神通力)을 얻었다. 그리고는 각자 찬송하여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온갖 법이 모두 빠짐없이 멸도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멸도를 구하고자 하면 그 사람에게는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위대한 성인이시여, 저희들은 지금 범부가 아닙니다. 유학(有學)도 아니고 무학(無學)도 아닙니다. 나고 죽는 것에도 있지 않고, 열반에도 있지 않으니, 멸도가 없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또한 여러 신통과 지혜에 있어서 저희들은 이미 존재하던 도와 지혜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처님의 법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010_0384_c_06L於是五百比丘聞說是語漏盡意解逮得神通各歎頌曰唯然世尊切諸法皆悉滅度假使有人求滅度則於其人佛不興世我等大聖爲凡夫亦無所學亦無不學不生死不泥洹無滅度法所以者何又諸通我等已離所有道慧興諸佛法
그때 존자 사리불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미 만들고 확립하여 이 지혜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까?”
“저희들은 이미 더럽고 피로한 것을 만들고 그것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짓는 것은 없습니다.”
010_0384_c_12L尊者舍利弗謂諸比丘曰仁等已得造立入於斯慧自獲利耶答曰等已入造於塵勞而無所作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설합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설령 더럽고 피로한 것을 단절했다 하더라도 문득 애욕의 티끌에 들어가게 되니 멸도를 욕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저희들은 이미 들어가는 것을 얻었다고 말할 뿐입니다. 더럽고 피로한 것을 만들었지만 짓는 것은 없습니다.”
010_0384_c_15L又問故說此諸比丘曰唯舍利弗設斷塵勞便入欲塵不欲滅度由是之故等說言已得入矣造於塵勞而無所
사리불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족성자여, 마땅히 이러한 것을 질문하니 그대들이 서 있는 곳은 중우(衆祐)의 땅입니다.”
010_0384_c_19L舍利弗言善哉善哉族姓子當咨嗟之諸仁所立衆祐之地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세존께서도 오히려 중우의 땅을 정화하지 못하시는데 어찌 하물며 저희들이 청정한 경지에 이르겠습니까?”
010_0384_c_20L諸比丘曰唯舍利弗仁者世尊亦復是卿不淨衆祐何況我等至淸淨乎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법계가 본래 빠짐없이 청정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010_0384_c_22L又問此言何謂諸比丘曰佛知諸法界本悉淸淨
010_0385_a_02L이때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누구를 일컬어 세간의 중우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법으로 미혹해지지 않는 자이고, 세간의 법으로 수치스러워지지 않는 자이다.”
010_0384_c_23L於是持心梵天白世尊曰唯然世尊何謂世之衆祐佛告梵天不爲世法之所迷惑不恥世法
다시 질문을 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중우의 일을 마침내 정화합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법에 있어 취착하지 않는 자이니라.”
010_0385_a_03L又問世尊云何淨畢衆祐之事乎答曰若於諸法無所受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누가 세간의 복전입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도를 잃지 않는 자이니라.”
010_0385_a_05L又問誰爲世閒之福田乎若有不失佛道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중생의 좋은 벗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010_0385_a_06L又問何謂衆生之善友答曰不捨一切群黎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누가 여래에게 다시 보답합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요청을 거스르거나 의심하지 않는 자이니라.”
010_0385_a_07L又問誰於如來有反復乎答曰其不違疑佛教命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여래를 받들고 섬긴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어남이 없는 궁극적 존재에 대해 환히 요해(了解)하기 때문이다.”
010_0385_a_09L又問何謂奉事如來乎其曉了解不起際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여래의 행에 친근히 하는 것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비록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금기와 계율을 훼손하지 않는 까닭이다.”
010_0385_a_10L又問何謂親近如來行乎答曰寧失身命不毀禁戒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여래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설령 나아가는 자라고 하더라도 장차 여러 감관을 잘 보살피기 때문이다.”
010_0385_a_12L又問何謂恭敬於如來者乎設使行者將養諸根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서 큰 재산을 지닌 부유한 자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7보를 가득 채우고 구족했기 때문이다.”
010_0385_a_13L又問何謂世閒大財富乎答曰七寶滿具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서 만족함을 아는 자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세간을 건너는 지혜를 이미 획득했기 때문이다.”
010_0385_a_14L何謂於世知厭足者乎答曰其已逮得度世智慧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환히 요달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삼계 중에서 원하는 바가 결코 없기 때문이다.”
010_0385_a_16L又問何謂曉了乎答曰其於三界悉無所願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 간언하는 비유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결박을 휴식시키기 때문이다.”
010_0385_a_17L又問謂諫喩於世乎答曰其有休息一切結縛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세간에 처하여도 안온하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탐착이 없고 재물에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a_19L又問何謂處世而安隱乎其不貪者無受財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탐착하지 않는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수행에 장애[陰蓋]가 없기 때문이다.”
010_0385_a_20L又問何謂不貪乎答曰無有陰蓋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여의었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여섯 가지 입처(入處)를 버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010_0385_a_21L又問何謂離於陰蓋乎答曰捨於六入亦無所釋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이미 지나갔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도와 지혜를 통달하고 요해했기 때문이다.”
010_0385_a_23L又問何謂己過乎答曰曉了道慧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보시의 주인이 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의 무리들을 권하고 교화하여 여러 신통과 지혜의 마음에 들게 하기 때문이다.”
010_0385_a_24L又問何謂菩薩爲布施主乎答曰勸化一切衆生之類入諸通慧心故
010_0385_b_02L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금기와 계율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b_02L又問何謂禁戒乎答曰不捨道心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인욕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멸진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010_0385_b_03L又問何謂爲忍乎答曰見心滅盡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정진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을 구하여도 얻을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010_0385_b_04L何謂精進乎答曰若求於心不得處所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한마음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휴식하기 때문이다.”
010_0385_b_06L又問何謂一心乎答曰心休息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지혜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법에서 음성이 없기 때문이다.”
010_0385_b_07L又問何謂智慧乎答曰於一切法無音聲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자비를 행하는 자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여러 가지 생각과 행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b_08L又問何謂菩薩行慈者乎答曰不隨一切諸想行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슬퍼함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법에 관한 상념이 없기 때문이다.”
010_0385_b_09L又問何謂菩薩行哀者乎答曰無諸法念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기쁨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자아를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b_10L何謂菩薩行喜者乎答曰不計吾我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능히 평정[護]을 행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남과 자기에 관해 생각하거나 헤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b_12L又問何謂菩薩行護者乎答曰不計彼我想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믿음에 넓고도 확고하며 독실하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청정하고 순백한 모든 법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b_13L又問何謂菩薩博立篤信乎答曰不捨諸法淸白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보살이 널리 듣고서 공(空)에 안주한다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일체의 음성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b_14L又問何謂菩薩博聞住空者乎答曰不猗一切音聲故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스스로에게 부끄러움[慚]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안의 법을 환히 알고 요달하여 제거하기 때문이다.”
010_0385_b_16L又問何謂爲慚答曰了內法蠲除故也
다시 질문을 드렸다.
“무엇 때문에 남에게 부끄러움[愧]이라고 일컫습니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밖의 일을 익히지 않기 때문이다.”
010_0385_b_17L又問何謂爲愧不習外事故也
다시 질문을 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합니까?”
010_0385_b_18L又問世尊何謂菩薩普無不入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답하셨다.
於是世尊以頌答曰

그 몸이 청정하여
온갖 악한 짓을 범하지 않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청정하여
항상 지극한 정성으로 말하고
아울러 의지가 청정하여
항상 자비의 마음을 실천하면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b_19L其身淸淨
不犯衆惡
口言淸淨
常說至誠
秉意淸淨
常行慈心
斯謂菩薩
普無不入

자비로운 행을 준수하고 수행하고
오염된 티끌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애련하게 여기는 행이 있어서
분노하거나 해치려는 바가 없네.
010_0385_b_22L遵修慈行
不猗染塵
專於哀行
無有恚害

어짊과 평정함을 더하고
어리석음도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b_23L加以仁護
無有愚癡
斯謂菩薩
普無不入
010_0385_c_02L
취락(聚落)에서 노닐어도 그러하고
한가하게 거주해도 그러하며
도시나 마을 등 복잡한 곳이나
대중의 모임에서도 차이 없다네.
010_0385_c_02L若遊聚落
閑居亦然
縣邑燕處
衆會無差

일찍이 위의와 예절을
위배하거나 잃어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03L未曾違失
威儀禮節
斯謂菩薩
普無不入

여러 부처님의 바른 법을
빠짐없이 두루 모두 믿고
자아가 없음을 설하는 경전을
또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네.
010_0385_c_04L皆悉遍信
諸佛正法
又常樂憙
無我之典

기쁨에 찬 성스러운 대중에게는
논의하는 바가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06L悅喜聖衆
無所有議
斯謂菩薩
普無不入

색에 대한 애욕을 벗어 던졌으나
그 행하는 바를 알 수 없으며
진에(瞋恚)와 분노를 건넜으나
역시 건넌 바가 없네.
010_0385_c_07L脫於色欲
不知所行
度於瞋怒
亦無所度

온갖 행상이 돌아갈 곳을
환히 아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08L曉了衆行
之所歸趣
斯謂菩薩
普無不入

애욕의 세계에 대해서도
만들어 집착하는 것이 없고
형태 있는 세계에 대해서도
역시 안주하여 확립하는 일이 없네.
010_0385_c_10L亦不造著
於欲之界
亦不住立
於形之界

형태 없는 세계에 집착하지 않는 것도
모두 역시 그러하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11L不著無形
皆亦如是
斯謂菩薩
普無不入

제법이 모두 빠짐없이 공(空)이니
그것을 믿고 즐거워하네.
그런데 중생들은 이리저리 내달리고
사유하고 생각한다네.
010_0385_c_12L信樂諸法
一切悉空
然而衆生
馳騁思想

그런 까닭에
모든 번뇌를 멸진하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14L由是之故
不盡諸漏
斯謂菩薩
普無不入

방편을 환히 알아
연각승(緣覺乘)에 대해서도
음성으로 보여 주어
그것으로 그들을 교화하네.
010_0385_c_15L方便曉了
緣一覺乘
示以音聲
而教化之

그러면서 부처님과 대승에 대하여
요달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16L於佛大乘
靡不達了
斯謂菩薩
普無不入

마땅히 이르는 곳마다
일체 것을 알고
인도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일찍이 위배하거나 잃어버리지 않았네.
010_0385_c_18L一切皆知
所當至處
未曾違失
導師之教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항상 평등한 마음으로 행하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19L常行等心
於諸憎愛
斯謂菩薩
普無不入

일찍이 과거의 법을
상념하지 않고
미래와 현재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네.
010_0385_c_20L未曾想念
過去之法
當來現在
亦復如是

일체의 노닐고 거주한 것에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바 없으니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두루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네.
010_0385_c_22L一切遊居
無所猗著
斯謂菩薩
普無不入
010_0386_a_02L
그때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무엇을 두고 보살이 세간법을 건넌다고 하며, 세간법에 처하지 않는다고 하며, 현재 세간법에 들어간다고 합니까? 그리고 세간법에 있어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시킨다고 하며, 세간을 평등하게 보이고 드러낸다고 합니까? 또한 세간법에 인연하여 세간에서 노닐고 비록 세간에 처하더라도 세간의 법을 파괴하지 않고 도의 법을 잃지 않는다고 일컫습니까?”
010_0385_c_23L於是持心梵天白世尊曰何謂菩薩度於世法不處世法現入於世度脫衆生於世閒法示現世閒平等世法因緣遊世雖處於世不壞世法不失道法
그러자 그때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게송으로 지심에게 대답하셨다.
於是世尊尋時歎頌答持心曰

5음(陰)이 곧 세간이라고 나는 설하지만
세간에서 집착할 것이란 없네.
세간에 탐착하지 않으면서도
세간법을 버리지 않아야 하네.
010_0386_a_05L吾說世五陰
於世無所著
以不貪著世
不捨世閒法

보살은 능히 그것을 요달하여
세간의 자연스러움을 이해하고 아네.
여러 음(陰)에는 근본이 없기에
세간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네.
010_0386_a_07L菩薩能了彼
解知世自然
諸陰爲無本
不著世閒法

이익이 있든 이익이 없든
찬탄을 받든 비방을 받든
명성이 있든 명성이 없든
세간의 즐겁고 괴로운 법을 수치스러워하네.
010_0386_a_08L有利若無利
嗟歎若謗毀
有名若無名
恥世苦樂法

그는 큰 지혜를 사용하여
비록 세간법에서 노닐지만
세간에서 탐착할 만한 것을 보지 않으니
도에 대한 뜻은 흔들리지 않네.
010_0386_a_09L彼用大智慧
雖遊於世法
不見世所貪
道意不可動

이익을 얻어도 즐거워하지 않으며
포기하고 손해를 봐도 슬퍼하지 않으며
태산과 같이 굳건하게 머무니
능히 그를 동요시킬 자 없네.
010_0386_a_11L得利不以悅
棄捐亦不慼
堅住如太山
無能動搖者

찬탄을 받거나 비방을 받아도
그 뜻은 항상 평등하며
명성이 있든 없든 괴롭든 즐겁든
평등한 마음에 굳건히 머문다네.
010_0386_a_12L嗟歎若毀呰
其志常平等
名無名苦樂
堅住於等心

세간은 본래 전도(顚倒)됨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환히 알아서
세간에 집착하지 않으며
밝게 통달하고 홀로 노닐고 거니네.
010_0386_a_13L曉知世自然
因從顚倒興
不生於世閒
明達獨遊步

만일 세간에 들어간다면
이르는 곳마다 모두 요달하니
그런 까닭에 속된 것을 따라 익히며
중생의 괴로움을 제도하고 해탈시키네.
010_0386_a_15L若入於世俗
綜了所至處
是故隨習俗
度脫衆生苦

용맹하니 비록 세간에서 노닐며
세간에 있다 해도 마치 연꽃과 같아
세속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법의 성품을 분별하고 요지하네.
010_0386_a_16L勇猛雖遊世
在俗如蓮花
不破壞世俗
分別了法性

가령 세간에서 다니고 머문다 해도
세간의 법을 분별하지 않으니
그런 까닭에 그 세간에서 노닐어
세간의 모습을 궁극적으로 알아낸다네.
010_0386_a_17L假使行在世
不分別世法
故遊於彼閒
究縛世俗相

세간의 모습은 허공과 같으니
거처할 곳도 없는 공허한 모습이라.
이미 이것을 이해하고 요달하니
곧 세속에 집착하지 않는다네.
010_0386_a_19L世相如虛空
亦無處空相
已能解了此
則不著世俗

지방의 풍속에 따라 아는 바가 있으니
그것에 수순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세간의 자연적 본성을 관통하고 통달하니
세속을 훼손시키거나 허물지 않네.
010_0386_a_20L隨方俗所知
順而化衆生
貫達世自然
不毀敗於俗

5음(陰)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세간이 지니는 자연의 본성이니
그것을 환하게 알지 못하면
항상 세속에 의지한다네.
010_0386_a_21L設無有五陰
斯謂世自然
其不曉了者
常倚於世俗

만일 여러 가지 음(陰)을 능히 버리어
일어나는 것도 존재하는 것도 없으면
비록 세간에 있다고 해도
속된 것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네.
010_0386_a_23L若能捨諸陰
不起無所有
雖現於世閒
於俗無所著

세간의 법을 그렇게 요해하지 않으면
불타오르듯이 다투고 싸우며
속이고 허망하고 성실함이 없으며
항상 상대적 관점을 세워 머무네.
010_0386_a_24L其不了世法
熾然於諍訟
斯虛妄無誠
常立處二相
010_0386_b_02L
나는 일찍이 세간 일에 간여치 않았노라 하고
다투고 싸우는 바도 없다고 하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도에 입각하시어
자연의 본성에 해당하는 법을 분별하시네.
010_0386_b_02L吾未曾預世
亦無所諍訟
佛以是之故
部分自然法

법이란 다투는 바가 없는 것이라
여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는
세간의 평등함을 환히 아는 것이니
허무하지 않고 지극히 정성스럽네.
010_0386_b_04L法者無所諍
諸佛之所說
通了世平等
不虛無至誠

이간질을 하든 참된 진리이든
그 모두를 가르치고 명령하는 것이니
가령 독(毒)의 해악으로 비유하자면
외도와 비교하여 다를 것이 없네.
010_0386_b_06L兩舌若誠諦
逮得於教命
假使爲毒害
與外道無異

제법을 성실하게 판단해 보면
알맹이도 없고 허망함도 없어라.
그런 까닭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둘이 없는 법으로 세간을 제도한다 하시네.
010_0386_b_07L諸法誠審者
無實無有虛
是故世尊說
度世無二法

내가 통달한 세간의 지혜는
곧 세속의 법이 되니
허망한 것도 없고 성실함도 없어라.
있다는 것은 세간의 죄악이라 보기에
세간의 광명이 되어
이에 큰 명성을 성취하여
부처님은 세간을 열고 요지하였으니
청정하여 허물과 티끌이 없네.
010_0386_b_08L吾所達世惠
斯爲方俗法
則無虛無實
見世之罪惡
爲世之光明
逮成大名聞
佛所開了世
淸淨無瑕穢

만일 세속을 관찰하되
몸으로써 자연의 본성을 본다면
그것은 곧 등정각(等正覺)이
시방에 드러나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
010_0386_b_11L假有觀俗者
身以睹自然
則見等正覺
現在十方者

제법은 인연에 의한 것이므로
제법에는 자연의 본성이 없다고 알아서
만일 인연을 세밀히 분석한다면
법의 이치에 통달하는 것이라.
010_0386_b_12L知諸法因緣
諸法無自然
若剖扸因緣
則能綜理法

그가 법을 이해하고 통달한다면
공성(空性)에 대해 환히 알게 되며
공성을 이해하고 식별한다면
인도하는 스승을 분별하리라.
010_0386_b_14L其能解達法
則能曉了空
設能解識空
則能別導師

설령 세간을 분별하고 강설할 때
그 음성을 구한다고 하면
비록 세간의 일을 행한다 하여도
세간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네.
010_0386_b_15L設分別講世
而求於音聲
雖行世閒事
不與世閒俱

만일 여러 견해에 떨어지거나
모든 것이 이것에 미치지 않으면
짐짓 이름으로 세간에 노닐어도
세속의 일에 집착하지 않네.
010_0386_b_16L若墮於諸見
一切不及此
假名遊於世
而不著俗事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이러한 인(忍)을 즐거워하는 자가 있다면
부처님은 곧 그 사람을 위하여
인도하는 스승이 되어 법신을 드러내시네.
010_0386_b_18L佛滅度之後
其樂於忍者
於彼佛現在
導師之法身

만일 이러한 법을 간직한다면
곧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 되고
세간에 처해 있을 때에는
인도하는 스승이신 세존께서 아시네.
010_0386_b_19L若持如此法
則爲供養佛
處世爲世尊
導師之所知

폐악무도(弊惡無道)한 악마 파순(波旬)이라도
만일 사람 사이에 머물면서
이 경을 자세히 설하는 이에겐
능히 그 기회를 얻지 못하네.
010_0386_b_20L設弊魔波旬
不能得其便
若在於人閒
廣說斯經者

이러한 이는 큰 지혜를 가진 것이며
일체를 보시하는 시주이며
계율과 금기를 구족한 것이며
인도하는 스승이신 부처님을 밝게 아는 이라.
010_0386_b_22L是黨大智慧
主布施一切
戒禁爲具足
曉佛導師者

그는 인욕의 힘으로 용맹스럽게 건너고
정진하면서 노닐고 거닐며
선정에 대하여 총명하게 통달하고 즐기고
세간을 분별하네.
010_0386_b_23L斯度忍力勇
遊步於精進
聰達樂禪定
分別於世閒
010_0386_c_02L
부처님의 공하고 없는 법을 설하니
이러한 것들을 듣는다면
그 대장부는 다시 오래지 않아
도량에서 악마를 항복받으리.
010_0386_b_24L說佛空無法
其聞斯等類
大士不復久
處道場降魔

4. 해제법품(解諸法品)
010_0386_c_03L解諸法品第四

부처님께서 다시 지심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이미 세간의 경계를 건넜기에 세속을 보여 주고, 세속에 대해 습기[習]와 즐거움[樂]을 가르치며, 또한 세속의 즐거움을 건너고 세속을 멸진하고자 한다. 이것을 일컬어 세간의 5음(陰)이라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세간과 자아를 벗어나야 세간을 멸진하니, 5음을 구해야 한다’고 하며, 도(道)에서 노니는 자가 있다면 이름하여 ‘두 가지 어긋난 길을 걷는 자[二所慕之徑]’라고 한다.
010_0386_c_04L佛復告持心梵天如來已度世閒境示世俗教習樂於俗欲度於世樂滅方俗是謂世閒之五陰也其自念世我所度滅盡於世求於五陰於道者則名曰二所慕之徑
다시 범천아, 이렇게 5음이라 이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5음이란 세속의 말일 뿐이다. 여러 견해를 구하는 까닭에 세속을 버리기도 하고 수용하기도 하니, 그 보는 견해는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멸진이라고 하는 것이다. 멸진을 향하는 도는 여러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세속의 욕망을 멸하는 것이며 바른 도를 향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범천아, 부처님은 이에 대해 이르시길 ‘세간에는 삼자(三刺)의 문과 삼중(三重)의 부담이 있으니, 세간에서 풍속을 익히는 것과 세간을 멸진하는 것과 세간을 멸진하여 해탈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010_0386_c_09L復次所以名曰五陰者何其五陰者方俗言耳求諸見故捨受方俗其所見者自然之想斯則名曰爲滅盡也盡向道不受諸見則爲滅俗欲向正是故梵天佛說斯言世有三刺之門及三重擔習俗於世滅於世滅於世閒而求度脫
그때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가령 여래께서 4제(諦)의 일을 말씀하셨는데 진리란 무엇에 귀착됩니까?”
010_0386_c_16L於是持心梵天白世尊曰假使如來說四諦事諦何所歸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諦]이며, 집기에 대한 습제(習諦:集諦)라고 하지만, 그것이 성스러운 진리[聖諦]는 아니다. 이것이 멸진에 대한 진리[盡諦]이며, 멸진을 향하는 도에 대한 진리[向道之諦]라고 하지만, 그것도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만일 온갖 괴로움이 곧 성스러운 진리라면 일체의 소ㆍ말ㆍ당나귀ㆍ개ㆍ돼지 등의 축생도 모두 마땅히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획득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010_0386_c_18L佛告梵天是爲苦諦習諦斯非聖諦是爲盡諦向道之諦斯非聖諦所以者何假使諸苦爲聖諦者一切牛馬騾驢犬豕畜生伴黨悉獲聖諦
010_0387_a_02L 만일 온갖 갈애(渴愛)와 집착이 곧 성스러운 진리라면 5취(趣)에 태어나서 존재하는 일체의 중생이 마땅히 성스러운 진리를 획득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만일 괴로움의 멸함이 성스러운 진리라면 일체의 중생이 단멸하는 일을 보거니와 그들은 모두 마땅히 멸함의 성스러운 진리를 지닌다고 해야 한다. 만일 도가 곧 진리라면 일체 유위(有爲)의 도에 의존하는 자도 모두 빠짐없이 마땅히 현성의 도라는 세력 있는 성스러운 진리를 획득한다고 해야 한다.
010_0386_c_22L若以諸習爲聖諦者一切五趣所生群黎當獲聖諦若以苦盡爲聖諦者一切衆生見斷滅事便當悉除獲致聖諦至由道諦一切有爲悉當獲致賢聖之道勢力聖諦
이러한 까닭으로 범천아,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를 성스러운 진리로 관찰할 때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곧 괴로움이란 일어나는 일이 없다고 환히 아는 이것을 일컬어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며, 그 사람이 갈애와 집착을 행하는 것은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 멸진의 법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일컬어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그리고 일체의 제법이 평등하여 둘이 없이 모든 길에 동등하게 대한다면 이것이 슬기롭고 성스러운 진리인 것이다.”
010_0387_a_03L以是之故梵天觀察苦習盡道以爲聖諦其有曉了苦無所起斯謂聖諦其人行習者不爲聖諦其滅盡法不起不滅斯謂聖諦假使平等一切諸而無有二等於徑路斯賢聖諦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진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허위가 없다는 것인데 무엇을 일컬어 허위라고 하는가? 스스로 몸이 있다고 헤아리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영혼이 있다고 집착하고 목숨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에 집착하고 3유(有)에 의지한다. 소유한 것을 떠난다 해도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멸하는 것에 의지하고 생사를 수용하고 열반을 믿는다면 이것을 일컬어 허위라고 한다.
010_0387_a_08L告梵天所以曰諦無有虛者何謂爲自計有身而念有人而備有壽言有命著於男女猗於三有離於所恃於所起依於所滅受於生死於泥洹是謂爲虛
이 여러 가지 수용되는 것은 여러 가지 수용되는 것에 있어 의지하는 바가 없고, 또한 구하는 바도 없다. 이것을 일컬어 진리라고 한다. 괴로움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이것을 일컬어 허위라고 한다. 집기한 것을 멸하고자 한다면 이것도 역시 허위이다. ‘나는 마땅히 모두 증득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도 허위이다. 도를 수행한다고 하여도 이것 또한 허위이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교화하시기 위해 세운 여덟 가지 도의 품목이 있는데, 예를 들어 4의지(意止)라면 이것도 역시 허위라고 일컫는다.”
010_0387_a_13L此諸所受於諸所無所依倚亦無所求斯謂爲諦除苦者則名曰虛滅於習者斯亦爲吾當盡證是亦爲虛修行徑路亦復爲虛所以者何佛所教化八道品者若四意止斯亦謂虛
범천이 다시 질문하였다.
“무엇을 일컬어 부처님의 교화이며 마땅히 사유하는 바라고 하는 것입니까?”
010_0387_a_18L又問何謂佛之所教所當思者
“뜻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으니 일체의 제법도 그와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부처님의 교화이며 마땅히 사유하는 바라고 하는 것이다. 4의지는 곧 머무는 바가 없으니, 여러 생각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이처럼 일체의 생각에도 이미 머물지 않는다면 곧 궁극적인 진실에 머무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실에 머문다면 이것은 곧 머무는 바가 없는 것이며, 뜻에 거처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뜻에 머무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곧 실제가 아니니, 이름하여 허위라고 한다.
010_0387_a_19L答曰無意無念一切諸法亦復如是斯乃名曰佛之所教所當思者爲四意止則無所住不處諸想已不住於一切想者則住眞際已住眞際則無所住意無所處意有所住則爲不實名曰爲虛
010_0387_b_02L그런 까닭에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한다. 실제도 없고 허위도 없는 것이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리고 관찰하는 것이 진리인데, 이른바 진리란 생겨나는 것도 없고 진리다운 것도 없는 것이다. 여래가 비록 출현하였다고 하나 일어난 바가 없으니 여래는 법의 성품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 또한 항상 진리로서 관찰하여 정해진 생사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스러운 진리에는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기 때문이다.”
010_0387_a_24L以是之故當作斯觀無實無虛乃爲聖諦審者爲諦所謂諦者無所生無所諦如來雖興爲無所起如來不住於法性及與泥洹也亦無生死常審諦定所以者何其聖諦者無有生死亦無泥洹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에 순응하는 바가 있을 때에는 이 4제(諦)를 증득할 것이니, 이름하여 바른 진리라고 한다.”
010_0387_b_06L佛言梵天若有順時證斯四諦名曰正諦
다시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내세에 어떤 비구가 있으리니, 그는 능히 몸을 삼가지 못하고, 금기와 계율을 지키지 못하고, 능히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정밀한 지혜를 갖추지 못하면서 버젓이 강설하기를, ‘발생하는 것이 괴로움의 진리이고, 여러 갈래로 나아가는 것을 일컬어 집제(集諦)라고 한다.’고 하며, 또 ‘이곳에서 달리고 뛰며 여러 중생이 생하는 장소인 3유(有)를 파괴하는 것과 마땅히 길을 구하여 행하는 것, 이것을 일컬어 두 가지 진리라고 하니, 그 행상에서 달리고 뛰어야 한다.’고 설한다.
010_0387_b_08L佛告梵天將來之世當有比丘不能愼不護禁戒不能制心不精智慧當講說發生苦諦謂趣習諦馳騁於壞於三有諸所生處又說當求行於徑路是謂二諦馳騁其行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나는 그를 이름하여 외도의 무리라고 하니,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며 나의 성문도 아니다. 그 뜻은 나쁜 길로 나아갔으며, 바른 진리를 파괴한 것이며, 스스로 방일한 것이다. 내가 도량에 있는 불수(佛樹) 아래 앉아 있을 때 참된 진리[誠諦]에 귀착하지 못하였으나 허망함이란 없었다. 그리고 부처님은 여러 법에서 또한 나아가는 바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여래의 법을 구하되 두 가지로 보아서는 안 된다.
010_0387_b_13L是等愚吾則名之異學伴黨非佛弟子我聲聞志趣邪徑破壞正諦而自放吾處道場佛樹下時不歸誠諦無虛妄佛於諸法亦無所趣以是之求如來法勿觀二事
또한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하물며 두 가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느냐?”
범천이 말하였다.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늘 중의 하늘[天中天]이시여.”
010_0387_b_18L勿言有二二問也白曰不敢也天中天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도되고 미혹된 길이다. 능히 일체의 나아가는 바를 제거할 수 없다.”
010_0387_b_19L答曰爲顚倒迷惑之道不能蠲除一切所趣
010_0387_c_02L이에 지심 범천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여래의 법에는 전도된 것이 없으며 또한 얻는 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성불(成佛)에 이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호칭을 ‘절대 평등한 깨달음의 지혜를 얻은 자[平等覺者]’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그렇게 일컬었던 것입니까?”
대답하셨다.
“범천아,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보이느냐? 내가 설한 법은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실제의 것이냐, 허위인 것이냐?”
대답하였다.
“허위입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또한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스러운 것에 편안히 이르러 머무는 것입니다.”
010_0387_b_20L於是持心白世尊曰如來之法而無顚倒亦無所得所以者何如來逮成佛時所號名曰平等覺者爲何謂耶答曰於梵天意所察云何佛所說法爲有爲無爲實爲虛答曰爲虛天中無所有也安住至聖
다시 질문하셨다.
“범천아, 그 허무한 법에는 머무는 바가 있다고 하느냐, 머무는 바가 없다고 하느냐?”
대답하였다.
“천존이시여, 그 허무한 것에는 머무는 것도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없습니다.”
010_0387_c_03L又問梵天虛無法爲有所住爲無所住答曰其虛無者亦無所住亦無不住
다시 질문하셨다.
“범천아, 어찌하여 제법에는 머무는 것이 있지도 않고 머무는 것이 없지도 않은가?”
대성인(大聖人)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또한 어떻게 도를 얻는가?”
대답하였다.
“도를 얻는 것이란 없습니다.”
010_0387_c_05L云何梵天而於諸法亦不有住不無住大聖報曰云何得道答曰無得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여래가 나무 아래에 앉아 도량에서 머무를 때 애욕은 전도된 것일 뿐 본래 항상 청정한 것이며, 공이며, 저절로 본성이 없다고 환히 알았다. 그런데 환히 알았다는 것은 환히 안 바가 없는 것과 같고, 또한 환히 알지 않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로 내가 환히 안 법과 체득한 바른 깨달음이라는 것은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수용하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고, 또한 자취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일체의 모든 성품을 초월함으로써 말도 없고 언사도 없고, 글자도 없고 구절도 없으며, 또한 말로 가르치는 것도 없다. 이와 같이 범천아, 제법은 허공과 같은데 제법을 얻으려고 할 수 있겠는가?”
010_0387_c_08L告曰梵天如來坐於樹下在道場曉了欲塵所處顚倒本常淸空無自然所曉了者如無所了不不了所以者何以是之故吾所了逮正覺者無見無聞無念無知受無著亦無所趣皆以超越一切諸無言無辭無字無句亦無言教梵天諸法如空而爾欲得逮諸法
대답했다.
“아닙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또한 다시 세존이시여, 위대한 성인이신 여러 부처님은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으신 분입니다. 일찍이 없었던 일로서 성실한 진리의 법을 구족하셨습니다.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는 큰 자비[大哀]를 지니시고, 고요한 법을 분별하고 환히 깨달으시어 문자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하십니다. 그리고 여래께서 설하시는 법을 즐거이 믿는 자는 여러 덕의 근본을 세우고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구족하였던 자입니다. 이 중생들은 여러 부처님에 대하여 죄 되는 것이나 허물이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체 세간이 빠짐없이 함께 그를 믿는다 해도 그의 뜻에는 집착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010_0387_c_16L答曰不也天中天又復世尊諸佛大聖甚不可及至未曾有具誠諦法諸佛世尊至有大哀分別曉了寂然之法而以文字爲他人說其有信樂如來說法立諸德本具足所當斯等衆生則於諸佛無有罪咎所以者何一切世閒悉共信之志無所著
010_0388_a_02L또한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세간의 사람들은 법을 믿는데 법은 곧 자아의 소유입니다. 세속에 의지하고 법에 집착하지만 법에는 실제도 없고 허위도 없으며,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세속의 사람들은 열반에 의지하고 기대지만 이것을 관찰해 보면 끝도 없고 처음도 없으며, 또한 열반도 없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선한 것과 덕스러운 것에 기댑니다. 그러나 선한 것도 없고 덕스러운 것도 없으며, 아울러 선하지 않은 것도 없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안락한 것에 기댑니다. 그러나 괴로운 것도 없고 즐거운 것도 없습니다. 세속 사람들은 부처님에 기대고 부처님의 출현에 기댑니다. 그러나 역시 생하시는 일도 없고, 멸도하시는 일도 없습니다.
010_0387_c_22L中天世人信法法是我所倚俗著法法無實無虛無法非法而世俗人依倚泥洹於斯察之無有終始亦無泥俗倚善德無有善德亦無不善倚安樂無苦無樂俗倚佛興佛亦不生亦不滅度
또한 다시 법이 있고 마땅히 세심하게 살피고 드러내고 선양하는 성스러운 대중이 있다고 설하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살피는 것은 무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경전을 세간에서 가히 믿는다는 것은, 비유하면 물에서 불이 일어나고 불에서 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인연의 화합입니다.”
010_0388_a_05L又復說法當得審諦顯揚聖衆以無爲事而爲審諦其經典者於世可信譬如假喩從水生火火出水悉因緣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티끌 같은 애욕이 곧 부처님의 도를 이룬다는 것을 깨닫고 요지해야 하니, 이는 인연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번뇌와 괴로움을 깨닫고 요지하는 것을 바탕으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이지만 그러면서도 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은 없다. 이미 설한 것이 있다 하더라고 그 형체를 보지는 못하고 또한 생각하는 바도 없다. 또한 두 가지를 만들지도 못하고 증득하는 바도 없고 멸도를 얻지도 못하고 고요함도 없는 것이다.”
010_0388_a_08L佛言如是覺了塵欲則成佛道所由因緣所以者何來所因覺了塵勞成正覺者無逮正旣有所說而不見色亦無所念不造二亦無所證不得滅度亦無寂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와 같은 법을 환히 알고 믿는 자가 있다면 여러 견해로부터 벗어나서 해탈을 얻을 것이니, 이와 같은 이는 머리를 조아리고 귀의하고 예를 올릴 만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부처님 여래를 받들었으니 이미 여러 가지 행을 실천한 자입니다. 그리고 선한 벗들이 보고 섭수하고 보호하니, 그의 의지는 즐거우면서도 미묘합니다. 온갖 덕의 근본을 심고 나서 안온한 진리의 곳간을 얻은 자입니다.
010_0388_a_13L唯然世尊若族姓子族姓女設有曉了信斯法者則能蠲除一切諸見而得解脫當爲稽首歸命作禮奉若如來於過去佛已爲造行則爲善友所見攝護志樂微妙殖衆德本已爲逮得安諦之藏
온갖 법을 관람하고 간직하여 온갖 죄를 멸한 자입니다. 도의 업을 건립하여 귀한 종성을 성취한 자입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것 중에서 으뜸이 되는 것을 다 간직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큰 보시를 삼는 자입니다. 집착과 번뇌를 내버렸으니, 곧 계율을 지키는 힘을 지닌 자입니다. 애욕을 없애는 힘을 지녔으니, 곧 인욕의 힘을 지닌 자입니다. 또한 불길한 것이 없고 화내는 일이 없고 용맹한 정진력을 지녔으니, 나태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없는 자입니다. 선정의 힘으로 죄업을 내던지고 제거한 자입니다. 지혜의 힘으로 삿된 견해를 버리고 여읜 자입니다. 그리하여 일체의 모든 악마가 움직이고 흔드는 것이 불가능하며, 적과 원수가 능히 그를 이길 수 없으니, 끝내 속이고 미혹하게 할 수 없는 자입니다.
010_0388_a_18L攬持法府則滅衆罪立道業則致貴姓摠持如來言教之宗則爲大施放捨塵垢則護戒力無愛欲力則致忍力無疆恚勇爲精進力而無懈厭爲禪定力棄除罪業爲智慧力捨離邪見一切諸魔莫能迴動仇敵怨讎無能得勝終不誑惑
010_0388_b_02L 세간 사람들이 말한 것에 대해 지극한 정성으로 강설하는 자입니다. 제법이 본래 청정함을 환히 아니 진실한 자입니다. 또한 구경의 법을 설하니 그는 곧 여래가 섭수하고 보호하는 자이며, 즐겁고 어질고 온화하게 안온한 곳에서 노닐고 거주하는 자이며, 슬기롭고 성스러운 업으로 재물이 많고 부귀한 자이며, 슬기롭고 성스러운 행으로 만족함을 아는 자입니다. 훌륭하게 돌보고 오래 보살피며 은근히 공양하고 섬기니, 곧 마땅히 보고 믿어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뜻으로 벗어나려는 자를 격려하는 자입니다.
010_0388_a_24L於世閒人所言至誠講說曉了諸法本淨則爲眞實說究竟法則爲如來之所攝護則樂仁和遊居安處則爲財富於賢聖業則知止足於賢聖行善見長養慇懃供事則當見信度於彼岸爲志脫者而勖勵之
즐거이 해탈을 얻으려는 자를 열심히 제도하는 자입니다. 의지할 데가 없는 자로 하여금 기대게 하는 자입니다. 무위를 즐기는 자로 하여금 열반을 얻게 하는 자입니다. 도를 즐기는 자에게 넓고 큰 것을 갖추게 하는 자입니다. 초월하는 것을 사모하는 자에게 그것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자입니다. 여러 방면의 의술에 있어서 의왕(醫王)인 자입니다. 일체의 병든 자에게 좋은 약을 지어 주는 자입니다. 지혜에 이르려는 자에게 힘을 지원해 주는 자입니다. 세력을 얻으려는 자를 즐겁게 하여 그것으로 자재함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따르지도 수용하지도 않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삼가거나 두려워하여 옷이나 털이 곤두서지 아니함이 없는 자입니다.
010_0388_b_07L樂得脫者卽令勉濟無所依者而使憑附樂無爲者從得泥曰樂於道者爲具敷弘慕超越者而爲示現又諸方術則爲醫王一切病者爲設良藥致於智慧則爲力援逮獲豪勢以爲歡樂得出自在不依因人亦不從受無有恐懼衣毛不豎
또한 사자의 걸음과 같이 미묘한 수레를 얻은 자입니다. 천신이나 용과 같이 그 마음이 안온하고 조화로운 자입니다. 비유하면 잘 훈련된 코끼리와 같이 대중들 가운데서 머물고 노닙니다. 마치 신선과 같은 용맹함에 도달한 자입니다. 원한 맺힌 적들에게 항복받고 큰 모임에서 노니는 자입니다. 뜻이 강하여 두려움이 없으니 결과적으로 뜻대로 하여도 무서워하는 것이 없는 자입니다. 바른 진리를 설하되, 그 어떤 것에서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더럽고 수고스러운 법을 제거하여 보름달과 같은 자입니다. 지혜와 광명의 횃불이 멀리 비추는 것과 같은 자입니다. 해가 떠오를 때처럼 비추지 못하는 것이 없는 자입니다. 온갖 어둠을 멸진하고 제거하는 것이 밝혀 놓은 등불과 같은 자입니다. 또한 여러 집착을 떠나되 늘어나거나 줄어든 것이 없는 자입니다.
010_0388_b_14L如師子步致得妙乘爲如神龍安和其心猶如調象遊在衆中若如神仙則致勇猛降伏怨敵遊于大會志强無懼意果自恣而無所畏所說正諦悉無有難蠲塵勞法如月盛滿智慧光明如炬遠照如日之昇無所不耀滅除衆冥若如錠燎離於諸著無有增減
010_0388_c_02L 온갖 행을 지니되 땅과 같아서 중생들이 그를 우러르고 살아가는 것이 마치 좋은 밭에 백 가지 곡식을 윤택하게 심어 놓은 것과 같은 자입니다. 일체의 더러운 것을 세탁하는 것은 비유하면 물과 같은 자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멸진하고 제거하는 것이 마치 불과 같은 자입니다. 일체 법에 집착하는 것이 없으니 마치 바람과 같은 자입니다. 흔드는 것이 불가능하니 수미산과 같은 자입니다. 뜻과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한 것이 마치 금강 철위산과 같은 자입니다. 여러 외도와 이교도가 능히 당해내지 못하는 자입니다. 성문과 연각이 능히 미치지 못하는 자입니다.
010_0388_b_21L持行如地衆生仰活猶若良田百穀滋殖洗一切垢譬若如水滅除諸想猶若如火於一切法而無所著猶若如風不可動搖如須彌山志性堅强猶若金剛鐵圍之山諸外異學莫能當者聲聞緣覺無能及者
법에 대해 동등한 맛이니 바닷물의 맛이 한맛[一味]인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곧 제도하는 스승이 되는 자입니다. 또한 일체의 더러움과 피로함의 갈증을 제거하는 자입니다. 경의 법을 사모하고 구하여 만족하는 일이 없는 자입니다. 그는 곧 지혜에 있어 흘러넘치는 일이 없는 자입니다. 그는 곧 성스러운 제왕이 되어 법륜을 굴리는 자입니다. 얼굴과 용모가 수승하고 기이한 것이 제석천과 같은 자이며, 마음으로 자재를 얻는 것이 범천과 같은 자입니다. 법을 연설하는 것이 하늘에서 벼락과 우레가 치는 것과 같은 자입니다. 감로의 법을 내리는 것이 때맞춰 내리는 비와 같은 자입니다.
010_0388_c_03L以法等味譬若如海則爲度師蠲除一切塵勞之渴慕求經法未曾厭足則於智慧而無充溢則爲聖皇而轉法輪顏貌姝特如天帝釋心得自在有如梵天演法雷震猶如天陰爲雨甘露如澍洪澤
또한 그는 5근(根)과 5력(力) 그리고 7각지(覺支:覺意)를 능히 더욱 늘릴 수 있는 자입니다. 그는 생사의 근심을 초월하여 건널 수 있는 자입니다.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에 문득 들어갈 수 있는 자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도에 접근해 도달할 수 있는 자입니다. 마땅히 널리 듣는 것을 획득하였으니, 필적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측량할 수 있는 한계를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한량이 없는 자입니다. 지혜와 변재에 있어서 동등한 반려가 없는 자입니다. 다라니(陀羅尼)를 얻었으며, 뜻과 성품이 견고하고 강건한 자입니다. 의지가 총명하여 중생들의 성품을 보는 데에 도달한 자입니다.
010_0388_c_09L則得長益根力覺意則得超度生死之患便得進入於佛聖慧則得逮近致佛正道當獲博聞無有倫匹以過於量悉無有量智慧辯才而無等侶逮得摠持志性堅强意達聰明睹群生性
두루 여러 법을 관찰하되, 그 의도가 결과적으로 선양되는 자입니다. 세간에 사는 사람에게 항상 자비와 불쌍하고 애절히 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 자입니다. 세속의 일을 초월하는 것을 이미 얻은 자입니다. 집착하는 바가 없이 행함이 비유하면 연꽃과 같은 자입니다. 세속 법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는 자입니다. 밝은 지혜를 가진 여러 사람들이 빠짐없이 사랑하고 공경하는 자입니다. 식견이 넓은 사람들이 깊이 믿고 따르는 자입니다. 온갖 지혜 있는 장부들이 항상 공경하고 순응하는 자입니다. 여러 천신과 세상 사람들이 빠짐없이 받들고 섬기는 자입니다. 선정의 사유에 든 여러 대중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는 자입니다. 슬기롭고 성스러운 여러 대중들이 모두 와서 으뜸으로 모시는 자입니다.
010_0388_c_14L偱觀諸法其志果暢常行慈愍哀世閒人已得超度世俗之事無所著猶如蓮華不爲俗法之所染污諸明智者悉愛敬之諸博聞者多信從爲衆智士常所恭順諸天世人悉奉事之諸禪思衆稽首爲禮諸賢聖衆咸來宗侍
010_0389_a_02L 성문과 연각이 함께 흠모하고 축하하는 자입니다. 토지의 행상을 멀리 떠나는 것을 좋아하니,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 없고 이익을 탐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 위신이 우뚝 솟아 슬기롭고 성스러운 이의 자취를 밟는 자입니다. 단정하고 수승하고 단아하고 색이 좋은 용모가 미치기 어려운 자입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 궁극적으로 칭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는 상호를 갖추어 스스로 장엄하는 자입니다. 그는 능히 부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파악하고 간직하는 자입니다. 그는 여러 교법과 교훈과 귀감이 되는 것에 능히 순응하고 보호하는 자입니다. 슬기롭고 성스러운 대중들에게 중생 제도를 장려하는 자입니다. 여러 부처님의 바른 깨달음을 항상 보는 자입니다.
010_0388_c_20L聲聞緣覺所共欽嘉則好遠離土地之行則無諂飾不貪利養神巍巍履賢聖迹端正殊雅色貌難威曜光光不可稱究則以相好而自莊嚴則能執持佛之言教則能順護諸法訓典亦能獎濟賢聖之衆便常逮見諸佛正覺
마땅히 여러 부처님의 눈을 속히 성취할 원인을 지닌 자입니다. 여러 부처님께서 보시고 기별[記]을 주게 되는 자입니다. 그는 마땅히 세 가지 인[三忍]을 획득하고 구족하는 자입니다. 마땅히 부처님의 나무 아래를 찾아가 앉을 자입니다. 능히 악마와 그 관속을 항복시킬 자입니다. 여러 신통과 지혜를 얻어 법륜을 굴리는 자입니다. 여러 부처님 일을 능히 일으키고 세우고 만들어서 깊은 법으로 나아가는 자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010_0389_a_03L因當速成諸佛之而爲諸佛所見授決則當獲致具足三忍尋當得坐於佛樹下便能降伏魔及官屬得諸通慧而轉法輪能興發造諸佛事趣於深法不恐不畏不難不懅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제가 1겁 또는 1겁 이상 그와 같은 바른 장부들에 대해서 묻고 드러내고 선양하여도 마지막까지 그 행한 바로 도달하게 되는 복덕의 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실로 여러 부처님의 도가 심오하고 미묘한 것은 그와 같으니 수용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보는 것이 불가능하고, 환히 알기 어렵고, 요지하기 어렵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것을 수용하고 간직하고 읊고 암송하고 읽으며, 또한 받들어 행한다면, 그리고 만일 능히 널리 펴고 두루 시행하게 하고 나누어 베풀며, 다른 사람에게 법을 설한다면, 대중들에게 제일가는 돈독한 믿음을 확립시킬 것입니다.”
010_0389_a_08L唯天中天吾於一劫若復過劫咨歎顯揚斯正士等不能究竟得其邊際所行至德諸佛之道深妙若茲難受難解不可睹見難曉難若有受持而諷誦讀便復奉行能廣演普分布者於彼法說則能立衆第一篤信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여러 바른 대장부에 대해 묻고 답한 것에는 그들의 지극히 진실한 덕이 능히 안온하게 궁극적으로 다 파악되어 있다. 그러나 부처님이 궁극적으로 파악한 것은 능히 알지 못하고, 그것에도 능히 미치지 못한다. 여래는 걸림 없는 지혜로써 그 덕을 펴고 창달한다. 그리하여 그 궁극적인 내용을 모두 통달하고 요지한다.
010_0389_a_14L佛告梵天仁所咨嗟諸正士者至眞之德安能究盡不能及知如佛所究如來則以無閡之慧申暢其德爾乃達了究盡之耳
여래가 설한 구절과 의미와 취지와 의취(意趣)를 그 여러 바른 장부는 빠짐없이 마땅히 요달할 것이다. 그리고 두루 순종하여 거역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하는 바가 지극히 정성스러워 미혹해 하지 않는다. 빠짐없이 바른 의미와 의도를 건립하여 아무 곳으로나 뛰고 달리지 않는다. 장엄하고 장식하는 일에 있어서 밝으니, 상응하는 언사에 있어서와 같다. 곧 여래가 자세히 말하고 가르치는 바와 같아서 비유하자면 위대한 성인이 정성스러운 진리의 법을 강설하는 것과 같다.
010_0389_a_18L如來所說句議旨趣斯諸正士悉當了達而普順從不爲逆亂所爲至誠不爲迷惑悉建正議志不馳騁於嚴飾事曉如應辭猶若如來所演言教譬若大聖講誠諦法
010_0389_b_02L또한 만일 여래가 법을 설하면 다시 이것을 초월하여 문장과 구절을 장엄하고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능히 존재하는 것에 순응하는 것도 없고, 거스르는 것도 없고, 제어하는 것도 없고, 통달하는 것도 없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모두 깨닫거나 요달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통달하고 식별하고 불방일(不放逸)하다. 그리하여 장엄하고 장식하는 데 있어 언사로써 알게 된 바를 따르지 않는다. 만일 언사가 없다면 그것이 곧 여래가 설법하는 언사이다. 여래가 가히 강설하는 경이라는 것은 방편으로 법을 선양하는 것이다. 여래는 끝이 없는 슬픔을 일으켜 중생을 위하여 경전을 널리 진술한 것이다.”
010_0389_a_22L又若如來所說法者復超於此嚴飾章句不能究盡覺了所有無循無逆無制無通爾乃達識而不放逸在於嚴飾不循言辭之所知也設無言辭則是如來說法之辭如來所可講說經者方便宣法如來加以興無極哀而爲衆生敷陳經典
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능히 여래의 5력(力)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치료하는 것에 대해 분별하고 요지한다면 이것을 보살이라고 하니, 능히 여러 부처님의 일을 건립하고 만들 수 있다.”
010_0389_b_06L佛告梵天假使菩薩能分別了如來五力所因療治是爲菩薩則能建立造諸佛事
다시 질문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일컬어 여래께서 5력으로 치료한 것이라고 합니까?”
010_0389_b_08L又問世尊何謂如來五力所療
위대한 성인께서 답하여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법에 관련된 언사가 있고, 상응하는 바에 따라서 설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잘 권하는 방편이 있고, 법을 밝게 드러내어 구절의 의미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도의 자취를 분별하여 큰 자비에 들어가는 것이 있다.”
부처님께서 다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여래가 5력으로 치료하는 것이라고 하니,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 등이 능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010_0389_b_09L大聖答曰謂法言辭入如應說善㩲方便光顯於法不失句義分別道迹入於大哀佛言梵天是爲如來五力所療一切聲聞緣覺之等所不能及
다시 질문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언사로써 여래께서는 가르침을 연설하십니까?”
010_0389_b_13L又問世尊何言辭如來演教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가르침이 있다. 애욕에 더럽혀진 말이 있고, 전도된 말이 있다. 세속적인 말이 있고, 세속을 건넌 말이 있다. 유루(有漏)에 관한 말이 있고, 무루에 관한 말이 있다. 집착하는 것에 관한 말이 있고, 집착이 없는 것에 관한 말이 있다. 유죄의 말이 있고, 무죄의 말이 있다. 존재하는 것에 관한 말이 있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말이 있다. 자아와 인간과 수명(壽命)이라는 조작되어 증득된 언사가 있다. 생사윤회 또는 멸도에 관한 언사가 있다.
010_0389_b_14L世尊告曰過去當來現在之教欲塵之語顚倒之言俗度世有漏無漏所著無著有罪無所有無有我人壽命逮造證辭旋生死滅度之辭
범천아, 이것이 여러 가지 언설이요, 온갖 언사라는 것이다. 언사를 허깨비와 같이 관찰해야 하니,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언사를 꿈과 같이 관찰해야 하니, 실제가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언사를 되돌아오는 메아리와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소리에 의존하고 대하는 까닭이다. 언사를 그림자와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인연이 화합한 존재가 드러난 까닭이다. 언사를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비치어서 나타나는 까닭이다. 언사를 흔적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도장을 찍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언사를 불꽃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전도된 채로 보는 까닭이다. 언사를 빈 것과 같다고 관찰해야 하니, 존재하는 것이 다해 버린 까닭이다. 언사를 말이 없는 것이라고 관찰해야 하니,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010_0389_b_18L是爲梵天諸所言說斯衆辭者觀辭如幻無所成故觀辭如夢見無實故觀辭如響報應緣對聲故觀辭如影現緣合有故辭如鏡像照現故觀辭如形印之有觀辭如㷿顚倒見故觀辭如空所有盡故觀辭無言不可得故
010_0389_c_02L부처님께서 범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이 이 제법의 언사를 환하게 안다면 이 보살은 제법의 언사를 강설할 수 있다. 또 제법에 대해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 없으니, 기대는 것이 없기 때문에 걸림 없는 변재를 능히 얻게 된다. 걸림 없는 변재를 능히 얻게 됨으로써 그는 여러 걸림이 있는 대중을 위해 평등한 것을 밝게 드러낼 수 있다. 또한 똑같은 곳에서 경의 법을 강설해도 걸리는 일이 없다. 일체의 언사에 있어서 법의 성품을 부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언사에서 노닐지만 그것은 부서져야 할 것이기에 어느 것에도 기대는 일이 없다.
010_0389_b_24L佛語梵假使菩薩能曉了此諸法言辭菩薩者乃能講說諸法言辭又於諸法無所依倚以無所倚則能逮得無㝵辯才以能逮得無㝵辯才則能爲諸罣閡之衆顯曜平等亦與同處講說經法而不質閡於一切辭不壞法遊諸言辭及所破壞悉無所倚
범천아, 설사 여래가 설한 것이라 하더라도 언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곧 법을 강설하는 것이 된다. 범천은 어느 곳에서 보살이 여래에 대하여 참된 진리의 일을 행하는 것인지와 그에 대해 선하게 권하는 방편에 대해 알고자 하였다. 범천아, 여래는 번뇌에 결박[結]과 한(恨)이 있음을 드러낸다. 또한 결박과 한에 더러움과 피로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보살은 마땅히 빠짐없이 그러한 거취를 환하게 알아야 한다.
010_0389_c_08L使梵天如來所說顯無言辭則爲講梵天欲知何所菩薩而於如來行誠諦事善㩲方便于斯梵天如來於塵而現結恨又於結恨而現塵勞薩悉當曉了彼趣
범천아, 무엇을 여래가 더러움에서 결박과 한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느냐? 더러움과 피로함은 자연적으로 평등하여 차별이나 특이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결박과 한에 더러움과 피로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결박과 한에 의지하여 은혜와 보시와 열반과 청정함을 행한다. 말하자면 여러 어리석은 자들은 온갖 번뇌가 지닌 근심을 환히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010_0389_c_13L何謂梵天如來於塵而現結恨塵勞自然等無差特故又於結恨而現塵勞依於結恨而行惠施泥洹淸淨謂諸愚戇不能曉了衆惱之患故
또한 그 보살은 온갖 보시할 만한 일에 대해서 환히 안다. 그것은 나중 세상에서 큰 보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취가 없다. 거취가 없는 것은, 말하자면 무위의 금기(禁忌)이니 참된 열반이다. 그들에게는 모두 존재하는 것도 없으며, 해당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010_0389_c_17L又彼菩薩曉了所有布施之事後世大寶故則無所趣無所趣者則曰無爲禁誡泥洹悉無所有亦無所行故
010_0390_a_02L인욕(忍辱)은 무위이니, 허위이며 무소유이기 때문이다. 정진(精進)도 무위이니, 뜻을 준수하고 닦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정(禪定)도 무위이니, 즐거워할 바가 없는 까닭이다. 지혜(智慧)도 무위이니, 모습을 잡고 얻은 까닭이다. 탐욕에 대해서는 탐욕을 떠나는 것이 본래의 실제이니 법의 성품에는 애욕이 없는 까닭이며, 진에(瞋恚)을 여의는 것이 본래의 실제이니 법의 성품에는 결박과 한이 없다고 헤아리는 까닭이다. 어리석음을 여의는 것이 본래의 실제이니 법의 성품에는 어리석음이 없다고 헤아리는 까닭이다. 생사가 무위의 본래의 실제라는 것은 생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위라는 것은 생사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정성스러움을 허망함이라고 하는 것은 언사를 본 것에 불과하며, 허망함을 지극히 정성스러움이라고 한 것은 곧 교만함과 방자함에 이른 것이다.
010_0389_c_20L忍辱無爲虛無所有故精進無爲遵修意故禪思無爲無所悅故智慧無爲逮得相故於欲離欲之本際者法性無欲故瞋恚本際計於法性無結恨故愚癡本際計於法性無愚癡故生死無爲之本際者則無所生其無爲者不倚生死至誠虛妄所見言辭虛妄至誠則致慢恣
다시 범천아, 여래는 차례대로 진실한 진리를 원인으로 하고, 그 인연을 따르기에 상주하는 것이 있다고 헤아린다. 또한 나의 자아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을 배제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또한 삿된 견해를 가진 자임을 자처하기도 하고 돈독한 믿음이 없는 자임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것은 반대되는 업을 일으키고 만들어서 반대되고 되풀이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곧 믿음이 없는 것을 제거하고 소원을 빠짐없이 제거한다. 삿된 견해를 가진 자를 여래는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을 위하여 분별하고 설한다. 상응하는 것을 보는 자가 있으니 여래는 그를 위하여 참된 진리의 가르침을 설한다. 가령 중생이 버릴 점이 많고 손상된 자이면서 스스로 위대한 일을 하는 자라는 교만을 지니어 스스로를 높이면 여래가 곧 참된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그에게 강설하는 것이다.
010_0390_a_04L梵天如來次第而因眞諦隨其因緣而計有常知有吾我則爲蠲除非議之事其邪見者而無篤信興造反業令知反復去於無信悉除所願邪見身者如來悉知便爲斯等分別說之見所應者如來則爲說誠諦教假使衆生棄捐貢高自大事者如來則以已誠諦教而講說之
범천아, 이것이 여래ㆍ지진(至眞)이 하는 일이니, 지진은 보살에게 그것에 관하여 말하고 가르친다. 그러면 마땅히 보살은 그 방편의 행을 깨달아 알게 되니, 만일 이 모든 설한 것으로 권화와 방편에 돌아가게 하면 여래를 만난 자는 문득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사악하지 않은 일에 대해 돈독하게 믿는 자는 곧 여러 색신의 과보와 상응하는 바를 보아 중생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문득 여래로 인하여 해탈을 얻게 된다.
010_0390_a_12L是爲梵天如來至眞至眞言教菩薩於彼則當曉了斯方便行設使歸此一切所說㩲方便者如來興者便得解脫於非邪事而篤信者則見諸色之所報應而起衆生便因如來得解脫也
만일 법신을 연설하면 문득 여래의 진실한 진리[眞諦]의 언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사악한 법에서 해탈하여 강한 믿음을 행하게 된다. 법으로 말미암아 문자를 공경하고 헤아리는 자는 중생의 무리이니, 그들을 위하여 그것을 설할 수 없다. 삿된 견해의 법에서 해탈하고 일찍이 이것을 믿은 적이 없으며, 또한 얻은 바도 없고 차별하는 것도 없다.
010_0390_a_17L若演法身便爲如來眞諦之辭解脫邪法而行篤信因法而度敬文字者生之類不爲說此解邪見法未曾信亦無所得亦無差別
010_0390_b_02L열반이 있다고 말하면 곧 잘못된 믿음이 된다. 전도된 더러움과 피로함에 거처하는 것은 무위이며 멸도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믿고 해탈을 얻는 것이다. 생하는 바가 없는 법은 여러 법을 부수지 않는다. 또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잘못된 믿음이 된다. 고요함에 들어가 건너려고 하지만 문득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잘못된 자는 곧 스스로 진실한 진리의 일에서 벗어난 것이다.
010_0390_a_21L言有泥洹則爲邪信處於顚倒塵勞無爲無有滅斯則爲信而得解脫無所生法不壞諸法言有人者則爲邪信入於寂然而欲度者便無有人其邪信者卽自解脫眞諦之事
그러므로 범천아, 이것에 있어서 보살이 진실한 진리의 언사가 권화(權化)이고 방편(方便)임을 능히 통효하여 알면1) 일체의 소리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도 무서워하는 것도 없다. 그리고 한량없는 사람과 중생의 무리를 위하여 열어 주고 인도하고 이롭게 한다.
010_0390_b_03L是故梵天於斯菩不能曉了眞諦言辭㩲方便者一切音無所恐畏爲無量人衆生之開導利義
그에 있어서 범천아, 여래ㆍ지진은 어떤 방편으로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가? ‘보시하는 자는 큰 부귀함을 얻으며, 계율을 간직한 자는 천상에 태어나며, 인욕하는 자는 단정해지며, 정진하는 자는 밝음을 얻는다. 만일 선정에 드는 자는 희열에 도달하고 산란하지 않다. 지혜를 배운 자는 더러움과 피로함과 애욕에의 집착을 멸진하고 제거한다. 많이 들은 자는 빠르게 지혜를 얻고 열 가지 선을 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천상에 있게 되거나 인간에 머물게 된다. 자비와 기쁨과 평정을 실천하여 범천에 오르게 된다. 고요하고 담백한 것을 관찰하여 결과를 획득하고 유학(有學)의 경지에 도달하고, 나아가 무학(無學)의 경지와 연각(緣覺)의 경지와 청정한 부처님 중우(衆祐)의 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설한다. 그리하여 시현한 지혜는 그 끝이 없고 열반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대하여 일체의 괴로움을 멸진한다.”
010_0390_b_06L于彼梵天如來至眞以何方便爲衆生說法其布施者得大富有持戒生天忍辱端正精進獲明禪思者致悅不亂學智慧者滅除塵勞愛欲之著若博聞者疾逮智慧於十善乃得處天及在人閒行慈悲喜護致昇梵天觀察寂然澹泊獲果致逮學地得不學地緣覺之地淸淨衆祐佛之道地所示現慧無有邊際等於泥洹滅一切苦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나는 곧 그때 훌륭한 권화와 방편을 쓴 것이니, 여러 중생을 위하여 베풀고 알리고 드러내어 보인 것이다. 그와 같은 것이 상법(像法)이니, 여래는 일찍이 마음으로 온갖 생각을 품어서 나의 자아와 사람과 수명(壽命)을 헤아린 적이 없는 것이다.
010_0390_b_15L佛言梵天吾則應時善㩲方便爲諸衆生布告顯示如是像法如來未曾心懷衆想計吾我人壽命也
여래가 행한 바는 또한 얻은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인색하고 탐착하는 것이 없고, 또한 베푸는 것도 없다. 또한 계율을 간직하는 것도 없고, 금기를 어기는 것도 없다. 또한 인욕하는 것도 없고, 화내는 것도 없다. 또한 정진하는 것도 없고, 게으른 것도 없다. 또한 선정에 드는 것도 없고, 그 뜻이 산란한 일도 없다. 또한 지혜도 없고 어리석은 일도 없다. 또한 도가 있다는 것도 없고, 멸도하는 것도 없다. 안락해 하는 것도 없고, 온갖 근심도 없다.”
010_0390_b_18L如來所行亦無所得不慳貪亦無所施亦不持戒亦不毀亦不忍辱亦不瞋恚亦不精進亦不懈怠亦不禪定亦不亂意亦不智慧亦不愚癡亦無有道亦不滅度無所安亦無衆患
010_0390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아, 중생을 교화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고, 오로지 닦고 받들어 행하게 한다.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고 오로지 닦고 받들어 행하게 한 것을 원인으로 하여 마땅히 이 법에 들어가야 하니, 본래 의도한 서원과 같아야 한다. 혹은 예류과[預流果:道跡, 須陀洹)ㆍ일래과[一來果:往來, 斯陀含]ㆍ불환과(不還果:阿那含)ㆍ무착(無著:阿羅漢)과 연각(緣覺)에 이르기까지 획득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성취하는 데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무위(無爲)에 이르러 건너는 경우도 있다.
010_0390_b_23L佛言梵天教化衆生使令精勤專修奉行所因精勤專修奉行當入斯法如本志願或有獲致道迹往來不還無著至於緣覺若復得入逮成無上正眞之道至無爲度
범천아, 이것은 여래ㆍ지진의 훌륭한 권화와 방편이니, 중생을 위하여 경전을 부연하고 진술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보살이 마땅히 중생을 위하는 훌륭한 권화와 방편이니, 큰 자비를 일으켜서 항상 바른 법으로 그런 것을 권장하고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
010_0390_c_05L是爲梵天如來眞善㩲方便而爲衆生敷陳經典又菩薩當爲衆生善㩲方便興設大常以正法而獎濟之
“무엇을 일컬어 여래가 설한 것이라고 합니까?”
“법에는 눈이 없으니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도 또한 이와 같으니, 벗어나는 일이란 없다. 왜냐하면 눈은 곧 공이니 나[我]가 있지도 않고, 또한 나의 소유[我所]도 없어 곧 모두가 본래 청정한 것이다.”
010_0390_c_08L何謂如來之所說者法無有眼亦無有脫耳鼻口身意亦復如是無有脫者所以者何眼者則空而無有吾亦無我所則悉本淨耳鼻口身意亦復如是彼則爲便無有吾亦無我所則悉本淨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이 일체는 모두 해탈의 범주에 돌아간다. 그리고 그 돌아가는 곳은 현혹되는 곳이 아니다.2)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이 여섯 가지가 또한 그러하다.
일체의 법은 모두 빠짐없이 공이고 무상(無想)이고 무원(無願)이며, 일어나는 것이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또한 머무는 것도 없고 머물지 않는 것도 없다. 말하자면 뜻에 머무는 일이 없이 생하는 것이니, 본래 청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담백한 것이며, 고요한 것이다.”
010_0390_c_13L梵天是爲一切悉歸脫門有所歸趣爲之眩惑色聲香味細滑法其六事者亦復如是一切諸法皆悉爲空無想無願無起無滅亦無有住亦不不住所可謂者意不住生本淨自然澹泊寂寞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여래는 일체의 문자로써 해탈의 범주를 연설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문구를 원만하게 제어함으로써 두루 문자에 수순하여 마음으로 마땅히 그것을 관찰하니, 그것이 진실한 진리의 가르침인 것이다. 여래는 일체의 분별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탈에 이르게 한다. 감히 설하셨던 것은 모두 참된 진리의 구절들이다. 여래가 경을 설하면 티끌이나 수고스러운 것이 없다. 연설한 법은 모두 해탈에 들어가고3) 멸도로 돌아간다. 이것이 바로 여래가 설한 전적(典籍)이다.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이라고 한다.”
010_0390_c_19L佛言梵天如來一切悉以文字演爲脫門或以等御癡騃之句普順文字心當觀之爲眞諦教如來一切所可分別悉至解脫敢可說者悉誠諦句如來說經無有塵勞所演法者皆無解脫歸滅度也爲如來所說典籍斯謂菩薩所當學者
010_0391_a_02L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여래ㆍ지진은 어떤 방편에 입각하여 두루 큰 자비를 닦는 것이며, 중생을 위하여 법을 강설하는 것인가?
여래는 곧 서른두 가지 일로써 일으키고 전달하니, 큰 자비를 더하여 중생을 제도한다. 어떤 것이 서른두 가지인가?
010_0391_a_03L佛告梵天如來至眞以何方便遍修大哀而爲衆生講說法乎如來則以三十二事有所發遣而加大哀濟于衆生何爲三十二
첫째, 나의 자아란 없으니, 일체 법에서 중생의 부류로 하여금 몸이 없음을 이해하고 믿게 해야 한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둘째, 일체 법에서 중생은 사람이 있지도 않은데 반대로 사람이 있다고 한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셋째, 일체의 제법에는 명근(命根)이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명근이 있다고 헤아린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넷째, 일체의 제법에는 수명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수명이 있다고 헤아린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010_0391_a_06L無有吾於一切法令衆生類解信無身來於彼而興大哀於一切法衆生無受而反有人如來於彼興發大哀一切諸法則無有命而衆生反計有如來於彼興顯大哀一切諸法而無有壽而衆生反計有壽如來於彼興顯大哀
다섯째, 일체의 제법은 무소유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처소가 있다고 헤아린다. 여래는 여기에서 큰 자비를 일으킨다. 여섯째, 일체의 제법은 도무지 의지할 바가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의지하고 집착할 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곱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허무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즐길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덟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나[我]라는 자아가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나라는 자아가 있다고 헤아린다.
010_0391_a_13L一切諸法爲無所有而衆生反計有處所如來於彼興顯大哀一切諸法都無所而衆生反有所倚著一切諸法悉爲虛無而衆生反志有所樂一切諸法悉無吾我而衆生反計有吾我
아홉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주인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오로지 뜻으로 탐착하고 받아들인다. 열째, 일체의 제법은 수용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모습에 의지하고 기댄다. 열한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생겨난 일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생겨나는 것에 집착한다. 열두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 없는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생사에 탐착한다.
010_0391_a_19L一切諸法悉無有主而衆生反專志貪受一切諸法悉無可受而衆生反依倚形貌一切諸法悉無所生而衆生反著於所生十一一切諸法悉無有沒而衆生反貪於生死十二
010_0391_b_02L열셋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애욕의 티끌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티끌과 더러움에 빠지고 잠긴다. 열넷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탐착과 욕심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오염되어 있다. 열다섯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성냄과 노여움을 떠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분노를 품고 원한에 맺힌다. 열여섯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어리석음을 떠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미혹하게 된다.
010_0391_a_24L一切諸法悉無欲塵而衆生反沒溺塵垢十三一切諸法悉無貪欲而衆生反爲所染污十四一切諸法悉無恚而衆生反懷愶結恨十五一切諸法悉無愚癡而衆生反爲之迷惑十六
열일곱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온 곳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나아가는 것을 즐기고 그것에 기댄다. 열여덟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가는 곳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끝과 처음이라는 것에 의지한다. 열아홉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짓고 행하는 것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열심히 수행할 것을 건립한다. 스무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방일함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방종하고 방자하게 뛰고 달린다.
010_0391_b_05L切諸法悉無所從來而衆生反樂倚所趣十七一切諸法悉無所趣而衆生反依于終始十八一切諸法悉無造行而衆生反務建所修十九一切諸法悉無放逸而衆生反馳騁縱恣二十
스물한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공이며 청정한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본 것에 머문다. 스물두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생각함이 없는 것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행하여 그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스물셋째, 일체의 제법은 모두 바람이 없는 것[無願]인데도 중생들은 반대로 요행으로 얻는 것에 뜻을 둔다. 스물넷째, 이미 멀리 떠났는데도 몇 가지 일에 집착하는 바가 있는 자에게는 세속은 괴롭고 분노하는 곳이며 원한을 맺는 곳이어서 근심하고 싫어하는 것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원수 및 적과 함께하지 않으려고 하나 모이고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여러 참을 수 없는 곳에서 어질게 화합해야 한다.
010_0391_b_10L一切諸法悉爲空靜而衆生反處於所見二十一一切諸法悉爲無想而衆生反想行爲上二十二一切諸法悉無有願而衆生反志于所僥二十三已爲遠離若干種有所受者世俗所怙瞋怒結恨獲患厭不與怨敵而集會也及諸不忍處於仁和二十四
스물다섯째, 전도된 것을 준수하고 닦으니 세간에서 익히는 것은 사악한 길에서 노니는 것이다. 그에게 능히 태어나야 할 곳을 포기하고 제거하게 해야 한다. 스물여섯째, 그는 길을 살피는 일 없이 나아가니 세속에서 의지하는 바인 재물과 이익에 의하여 괴롭게 된다. 그러면서도 뜻으로 모든 자산과 사업을 그리워한다. 그를 마땅히 억제하여 욕심내는 일이 없도록 하여 슬기롭고 성스러운 재화를 구족하게 하고, 믿음[信]ㆍ계율[戒]ㆍ부끄러움[慚愧]ㆍ들음[聞]ㆍ보시[施]ㆍ지혜(智慧)를 건립하여 이에 일곱 가지 재산을 구족하게 한다.
010_0391_b_17L遵修顚倒爲世所習遊於邪徑則能棄除所生之處二十五則無有審道所趣則爲煩憒得于財利世俗所依則而志慕一切資業以抑制諸無厭欲卽使具足賢聖之信戒慚愧聞施智慧建立於此具足七財二十六
010_0391_c_02L스물일곱째, 나는 중생을 은혜와 사랑의 노예라고 일컬으니, 중생들은 그것들이 견고하지도 요긴하지도 않은데 견고하고 요긴하다는 생각을 한다. 재산과 사업과 집과 거처와 처자가 있어 즐겁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편안한 것이 못된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일컬어 은혜와 사랑의 노예라고 한 것이다. 중생들은 견고하지도 요긴하지도 않은데 견고하고 요긴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을 위하여 강설하니 상주하는 것이 있다고 헤아리는 자에게 무상함을 드러내어야 한다. 스물여덟째, 중생이란 재산과 이익과 사업을 구하지만 그것은 원수라고 나는 일컫는다. 그러나 중생들은 반대로 그것이 친한 벗이라고 하니, 나는 친한 벗의 행을 건립하고 드러내어 힘들고 괴로운 근심을 제거하고 궁극적인 멸도를 성취하게 한다.
010_0391_b_23L吾謂衆生爲恩愛傼以無堅要爲堅要想財業家居妻子之娛便無有安所以謂之爲恩愛僕衆生之類無有堅要爲堅固想當爲講說計有常者爲現無常二十七吾謂衆生求財利業則爲仇怨而反謂之爲是親吾爲建立顯親友行而爲蠲除勤苦之患究竟滅度二十八
스물아홉째, 중생이란 반대로 사악한 업으로 생계를 꾸려간다고 나는 일컫는다. 그리고 각각 몇 가지 말과 가르침에서 머문다. 이들을 위하여 마땅히 청정하고 미묘한 무업(無業)의 명령을 강설하고 분별하고 설법한다. 서른째, 중생이란 여러 가지 티끌과 더러움에 있으면서 오염된 것을 나타낸다고 나는 일컫는다. 집에서 거주하는 일에는 근심과 손해가 많고 힘든 사무도 많다. 이들을 위하여 삼계를 벗어나고 일제히 함께 건널 수 있도록 설법한다.
010_0391_c_07L吾謂衆生以反邪業各各處於若干言教當爲講說淸淨微妙無業之命分別說法二十九謂衆生爲諸塵垢而現污染於家居事多有患害擾攘之務而爲說法當令出去等度三界三十
서른한째, 일체의 제법이 지어지는 곳에 거처하니, 그것은 탐욕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나고 머문다. 온갖 인연들이 거처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세워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곳에서 닦기를 게을리 한다. 그리하여 이들을 위하여 성스러운 해탈에 이르도록 설법하고 정진을 권하여 견고하고 긴요한 것으로 건너게 하고, 경의 법을 설하여 빠짐없이 안락함을 획득하게 한다. 또한 여기에 더하여 다시 반대로 걸림 없는 지혜를 버린다. 서른두째, 하천한 성문과 연각에 대하여 가장 존귀한 멸도라고 뜻을 둔다. 그리하여 마땅히 이들을 위하여 미묘한 행을 드러내고 보여 주려 한다. 여래는 이로 인하여 중생에게서 큰 자비를 일으키고 천명하는 것이다.”
010_0391_c_12L處於所作一切諸法因貪起住衆緣所處諸立之相衆生於彼而修懈廢當爲說法至聖解脫勸令精進爲度堅要而說經法悉使獲安又加於是而復反捨無閡之慧三十一最尊滅度志于下賤聲聞緣覺當爲顯示微妙之行如來因此則於衆生興闡大哀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이것이 서른두 가지 일이니 여래가 중생을 열어서 인도하고 수순하고 교화하며 큰 자비를 널리 펴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여래가 큰 자비를 행한다고 한다.”
010_0391_c_19L佛告梵天是爲三十二事如來開導順化衆生敷弘大哀斯爲如來謂行大哀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범천아, 만일 보살로서 이러한 서른두 가지 일을 받들어 행하고 큰 자비를 합하고 모으는 자가 있다면 이러한 보살은 위대한 중생[大士]으로서 이름하여 큰 복전이며 큰 위신력을 지닌 자라고 한다. 그는 우뚝 솟은 것을 좋아하여 불퇴전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필요한 행을 만들어 세운다.”
010_0391_c_21L佛告梵天若有菩薩奉行於斯三十二事合集大哀如是菩薩爲大士者名大福田爲大威神樂於巍巍至不退轉爲衆生故而造立行
010_0392_a_02L부처님께서 이러한 큰 자비에 관한 법문의 품을 설하셨을 때 3만 2천 사람이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에 마음을 일으켰고, 3만 2천의 보살이 불기법인(不起法忍)을 얻었다.
010_0392_a_02L佛說此大哀法門品時萬二千人發無上正眞道意三萬二千菩薩得不起法忍
持心梵天所問經卷第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원문에는 “환히 알지 못하면[不能曉了]”이라고 되어 있으나 이역본(異譯本)인 구마라집이 한역한 『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에는 ‘불(不)’자가 없다. 문맥상 없어야 하므로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2. 2)원문에는 “현혹되는 것이다[爲之眩惑]”로 되어 있지만 『사익범천소문경』에 의거하여 부정문으로 번역하였다.
  3. 3)원문에는 “해탈함이 없다[無解脫]”로 되어 있으나 『사익범천소문경』에 의거하여 “해탈로 들어간다[入解脫]”고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