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서 대비구(大比丘) 대중과 함께 계셨다. 비구는 5백 인이고 보살은 8천 인이었는데, 모두 대성(大聖)으로서 신통에 이미 통달하였고, 이미 총지(總持)에 이르러 변재(辯才)에 걸림이 없었으며, 무소외(無所畏)와 불기인(不起忍:無生法忍)을 획득하고, 수없는 부처님을 받들어 모든 공덕의 근본을 심었다. 모두 대승(大乘)에 뜻을 두고 불퇴전(不退轉)에 이르러 널리 번뇌 없이 시방을 구제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공무보살(空無菩薩)ㆍ지토(持土)보살ㆍ지인(持人)보살ㆍ지사신(持祠身)보살ㆍ관의(觀意)보살ㆍ정의(淨意)보살ㆍ상의(上意)보살ㆍ신락의(信樂意)보살ㆍ지의(持意)보살ㆍ증념의(增念意)보살ㆍ희견(喜見)보살ㆍ선견(善見)보살ㆍ가의견(可意見)보살ㆍ보리가견(普利可見)보살ㆍ미륵(彌勒)보살과 널리 일체의 현겁(賢劫)보살이었는데, 모두 와서 회중에 함께 앉아 있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왕사성(王舍城)에 계시면서 한 나라를 제도하셨는데, 국왕ㆍ대신ㆍ백관(百官)의 많은 관리들과 장자(長者)ㆍ범지(梵志)와 일반 백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봉사(奉事)하며 공양하되 의복ㆍ음식ㆍ의약ㆍ평상ㆍ침구 등 모두 편안하게 해드린 것에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다.
011_0257_b_01L이때 현자(賢者) 수보리(須菩提)가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分衛]을 행하고자 하여 성문에 들어가기 전에 부처님 계시는 곳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발아래 예배한 뒤 물러나 한쪽에 머물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대성(大聖)이시여, 저는 밤에 자다가 이미 꿈에서 보았습니다. 보리수 아래에 앉아 계시는 여래를 보았으며 발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서 한쪽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자금색(紫金色) 손으로 저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면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야, 오늘 옛날부터 듣지 못한 법을 듣게 될 것이다. 오직 성인(聖人)께서 불쌍히 여겨 이러한 뜻을 설법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다면 어떠한 길한 조짐을 먼저 내리실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법전(法典)이 있는데 이름을 순권방편(順權方便)이라고 한다. 모든 족성자(族姓子)나 족성녀(族姓女)가 반드시 받들어 행해야 한다. 이러한 비상(比像)으로써 먼저 상서로운 조짐을 나타낼 것이며, 그대[仁者]는 마땅히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법을 듣게 될 것이다.”
이때 장자의 집에 한 여인이 있었는데, 몸에는 구슬과 영락(瓔珞)으로 두루 장엄하고 전단향(栴檀香) 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자금(紫金)의 보배로 그 몸을 장식했는데, 단정하고 아름다운 위의(威儀)가 빛이 났다. 그 광택은 제일로 깨끗하여 마치 연꽃과 같았다. 그녀는 방에서 나와서 수보리에게 물었다. “현자(賢者)께서는 무슨 인연으로 문 안의 뜰에 서 계십니까?”
여인이 말했다. “지금 수보리께서는 본래부터 걸식할 생각을 품었습니까, 먹는다는 생각을 끊었습니까?”
011_0257_b_20L其女答曰:“今須菩提,故復懷抱分衛想 乎?斷思食耶?”
011_0257_c_01L수보리가 대답했다. “누이여, 먹는다는 생각을 이미 끊은 것에 대해 알고자 하십니까? 이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태 안에 싸여 있을 때부터 음식으로 양육하여 생장하게 된 것이니, 습관이 된 지 오래되어 먹는 것을 떠날 수 없습니다.”
수보리가 대답했다. “멸정(滅定)이라는 것은 널리 살펴보면, 일으켜 세우는 것이나 몸의 현달(顯達)을 쉬는 것이지 다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011_0257_c_09L須菩提答曰:“其滅定者,當普觀之,休息興立,興立顯身亦復非造。”
여인이 또 물었다. “그 멸정이라는 것은, 정(定)을 행함이 있다면 멸도(滅度)가 아닙니다.”
011_0257_c_11L女又問曰:“其滅定者,所在定行,則不滅度?”
대답했다. “멸정이라는 것은 생기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011_0257_c_12L答:“以滅定則無所生,亦無所滅。”
여인이 또 물었다. “만약 생기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다면, 어찌하여 현자께서는 몸을 떠난 걸식을 하되, 평안하고 온화하게 하지 않습니까?”
011_0257_c_13L女又問曰:“若無所生、無所滅者,云何賢者,離身分衛,不以安和?”
수보리가 대답했다. “여래와 성문(聲聞)이 걸식을 행할 때 몸을 버리겠습니까?”
011_0257_c_15L須菩提答曰:“如來聲聞行分衛時,爲捨身耶!”
여인이 또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현자가 공(空)을 행하는 것이 성문 가운데 제일이라고 찬탄하셨습니다. 공에 처소[處]가 있겠습니까?”
011_0257_c_16L女又問曰:“佛歎賢者於聲聞中行空第一,空有處耶?”
수보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누이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011_0257_c_17L須菩提答曰:“然如姊來言。”
여인이 또 물었다. “공을 행하는 것에 어찌 가고 돌아옴이 있겠습니까?”
011_0257_c_18L女又問曰:“其所行空,豈往反乎?”
수보리가 대답했다. “공을 행함에는 가고 돌아옴이 없습니다.”
011_0257_c_19L須菩提答曰:“其行空者,無有往反。”
여인이 또 물었다. “가령 공을 행함에 가고 돌아옴이 없다면, 현자는 무슨 까닭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걸식을 합니까?”
011_0257_c_20L女又問曰:“假使空行無有往反,賢者何故,周旋行來,而分衛乎?”
수보리가 대답했다. “비록 걸식을 행하지만 몸을 양육함에 집착한 것은 아닙니다. 아프고 가려운 괴로움을 쉬게 하려는 까닭에 걸식을 행합니다.”
011_0257_c_22L須菩提答曰:“雖行分衛,不貪養身,欲以休息痛痒苦故,而行分衛也。”
여인이 또 물었다. “현자여, 아프고 가려움[痛痒]이 있어 많은 액난(厄難)을 품는다는 것입니까?”
011_0257_c_23L女又問曰:“賢者,復有痛痒、懷惱、衆難、厄乎?”
011_0258_a_01L수보리가 대답했다. “아프고 가려움이 없다면 많은 어려움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굶주림과 허기의 고통을 쉬게 하려는 까닭에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011_0258_a_02L須菩提答曰:“無痛痒不懷衆難,又欲休息飢虛痛痒,故行分衛。”
여인이 말하였다. “현자여, 지금 행하는 것이 공업(空業)과는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을 행하는 자는 아프고 가려움으로 괴로움과 환난을 삼지 않습니다. 모든 삼계(三界)가 소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공을 향하는 자는 몸과 마음에도 의지하지 않고, 몸과 마음이라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또한 물드는 바도 없고, 즐거움과 즐겁지 않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공을 행하는 자는 모두 제법(諸法)이 없으므로 고요한 곳에 삽니다.”
011_0258_b_01L그 여인이 대답했다. “말이란 없다는 것이 곧 사문의 법입니다. 만약 말이 없게 되면 전도됨이 없습니다. 전도됨이 없다는 것은 쟁송이 없는 것이며, 쟁송이 없는 것이 곧 사문의 법입니다. 이 법에 이른 자는 길이 두 가지 행[二行]을 여의며, 이를 일법(一法)이라 하고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생각도 생각 아님도 없어 길이 모든 생각을 고요히 하면 이를 사문이라 하며, 무산(無散)됨도 없고 합산(合散)도 멀리 여의어서 삿된 자취를 초월하여 평등의 도(道)에 들어가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경토(境土)도 없고 분계(分界)를 여의고 멸도(滅度)를 위함도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만족을 알고 도속(道俗)을 탐내지 않으며, 길이 집착하는 바가 없어 평탄하고 흔적이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으며 또한 해탈도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또한 마음에 생각함이 없고 마음에 의식(意識)을 제거하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항상 적당한 한도를 알고 욕심이 적고 일을 줄여서 희망하는 바가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탐욕심을 소멸해 버려 바라는 바가 없으며, 뜻이 태산(太山)과 같아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욕락(欲樂)을 버리고 마음으로 헛되이 갈구하지 않으며, 삼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분계(分界)와 시방 경토(十方境土)를 여의고 모든 행하는 일이나 일으켜 세우는 것이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5음마(陰魔)와 형체 있는 것을 버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없고, 번뇌가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마계(魔界)를 뛰어넘어 탐욕이 소멸되고 마음에 생기는 것이 없고, 또한 바삐 달리지 않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사마(死魔)를 초월하여 집착함이 없고 망상(妄想)을 품지 않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천마(天魔)를 사모하지 않아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없고 뜻이 마치 대지와 같은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011_0258_c_01L내가 있다고 집착하지 않고 일체의 공(空)을 알아서 고요하고 담박(淡泊)한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마음에 의지하는 바가 없으며 생각이 없는 행으로 보탬도 줄어듦도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망상을 버림으로써 마음에 원하는 바가 없어서 취하고 버림이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삼계에서 자적하되 행하는 바에 많은 의망(疑網)을 맺는 것이 없음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여러 입무(入無)를 소멸하고 모든 쇠퇴함이 없고 음개(陰蓋)를 길이 소멸하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조소하고 희롱하는 것을 버리고 방일(放逸)함을 두지 않아 그 마음을 항복받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성냄을 품지 않고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아 그 뜻을 적막한 데에 두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고 부족함이 있지 않으며 마음에 합회(合會)가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두 가지 행[二行]이 없고 이미 두 가지 업(業)을 버려서 물상(物像)과 동등하게 하여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들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두 가지 일을 버림으로써 행하되 집착하는 바가 없고 걸리는 것이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속된 업을 끊어 없애고 여러 가지 덮고 가리는 것을 물리치고 4대(大)를 탐하지 않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5음(陰)의 여러 종류는 본래부터 제입(諸入)이 없음을 분별하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일체의 시방 법계는 경토(境土)가 없음을 널리 알리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제입(諸入)은 자연의 환화(幻化)와 같아서 본래 처소가 없음을 깨달아 아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자연의 공(空)과 같아서 무위(無爲)에 통달하고 유의(有爲)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영원히 일체의 헤아림을 버려 취하거나 버림이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스스로 몸을 이롭게 하되 만족할 줄 알아 쟁송(諍訟)이 없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마음으로 일체에 나타나 있는 중생과 화합하여 평등하게 인욕(忍辱)을 행하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잃어버리는 것이 없고 마음에 잊거나 버리지 않고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마음이 이미 해탈하여 믿는 바가 없어진 뒤에 적막하게 되는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마치 허공을 비유할 수 없듯이 짝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을 사문의 법이라 합니다.”
여인이 이 사문의 법을 행하는 것을 말할 때 모든 천자(天子)들이 문 앞 뜰에 모여 있었는데, 40천자는 번뇌[塵垢]를 멀리 여의고 법안정(法眼淨)을 얻었으며, 5백의 천자는 찬탄하며 깊은 믿음으로 미묘한 상법(上法)을 듣고는 마음이 온화하고 고상함에 이르러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無上正眞道意]을 내었다.
이때 그 여인은 수보리의 마음과 생각의 본말을 알고 수보리에게 말했다. “지금 현자께서 알고 있는 바를 잘 관찰하십시오. 사문의 법은 분계(分界)를 떠나고 경토(境土)가 없으며,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으며, 또한 해탈도 없습니다.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여래의 화현이다’라고 하였는데, 진실로 말한 바와 같습니다. 지금 내가 관찰하니 여래가 화현하여 여자의 모습을 나타내었으나 모두가 본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래ㆍ지진(至眞)께서 근본이 없음을 밝게 아시니 나의 몸도 근본이 없어 평등하기가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의 화현이라 합니다. 여래의 색(色)이 본래 없으면 나의 색도 본래 없으니 두 가지가 없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여래의 화작(化作)에는 고통ㆍ행(行)ㆍ식(識)이 모두 본래 없는 것입니다. 5음(陰)이란 본래 자연과 같아 넓고 끝이 없어서 모두 본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의 화작(化作)이라 합니다.
여래가 본래 없으니 일체 중생도 본래 없으며, 모든 성현(聖賢)도 본래 없으며 나의 몸도 본래 없는 것이 그와 같아서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의 화작이라 합니다. 여래가 본래는 없으며 모든 법도 역시 본래 없으며 일체의 도의(道義) 또한 본래 없으며, 몸 또한 본래 없고 몸은 자연과 같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의 화작이라 합니다. 여래는 본래 없으니 모두 생기는 바도 없고 처소도 없습니다. 여래는 본래 없으니 모두 생기는 바도 없고 소멸함도 없으며, 나의 몸도 본래 없으니 일어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의 화작이라 합니다.
011_0259_b_01L여래가 본래 공(空)하여 일체 환(幻)과 같으며, 나의 몸도 본래 없고, 본래 없음이 자연과 같아서 본래 공(空)하여 일어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의 화작이라 합니다. 여래의 화작은 일체가 본래 없어서 일체 중생은 처소가 없으며, 모든 법도 본래 없어서 근본 진실을 찾아도 진실은 본래 없고 평등하기가 다름이 없이 모두 비어서 형상이 없습니다. 또 수보리여, 요점을 들어 말하자면 모든 법은 다 본래 없이 머뭅니다. 나는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의 화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수보리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지금 누이께서는 어떻게 부처님의 성스런 위신력(威神力)으로써 내 마음의 생각을 아신 것입니까? 자신의 힘으로써 밝게 본 것입니까?”
011_0259_b_07L時須菩提問其女言:“云何?今姊以佛聖威,知我心念?爲以己明見之耶?”
그 여인이 대답했다. “지금 수보리께서는 타인과 중생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압니까? 성문ㆍ연각이나 모든 보살의 무리나 다섯 가지에 신통한 선인(仙人)이나 불교 이외의 학문인 이법(異法)은 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때에 맞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 존자 수보리가 타인이나 중생의 마음과 생각을 알게 된다면 이러한 까닭으로 역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그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천하의 모든 중생이 일월(日月)이나 큰 횃불이나 등불, 시방의 많은 불길로 인하여 여러 광명이 있게 되어 이를 연유로 모든 색(色)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허공에서 자연히 소리가 있어 이 말을 찬탄하였다. 여인은 이 말을 하며, 수보리로 하여금 멀리 허공의 자연히 울리는 소리를 듣게 하고는 널리 퍼뜨리며 대답했다. “인자께서 ‘나는 학업도 아니며, 또한 범부도 아니며, 또한 나한도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어떤 법을 가지고 행하기에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삼매에 이르고 나한에 이르렀습니까?”
수보리가 대답했다. “나는 나한도 아니며 모든 번뇌도 다하지 못했으며, 또한 공을 행하지도 않고 제일이라고 찬탄하지도 않습니다.”
011_0259_c_22L須菩提答曰:“吾非羅漢,諸漏不盡,亦不行空,不歎第一。”
011_0260_a_01L여인이 또 물었다. “현자여, 마음의 즐김을 감당하겠습니까? 어째서 스스로 과오를 저질러 거짓말을 합니까?”
011_0259_c_23L女又問:“賢者心樂堪任,云何自誤而竊妄語?”
수보리가 대답했다. “가령 나의 견해가 모든 법을 알고 통달해서 이미 나한을 얻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세존께서 공을 행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찬탄하신다고 한다면, 이것이 곧 내가 거짓말과 두 가지 말을 하는 것[兩舌]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법도 알지 못하고, 있는 바도 보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며, 지극한 정성으로 말한 것입니다.”
011_0260_b_01L이때 모든 천자가 문 아래에 모여 있으면서 이 여신(女身)의 미묘한 업(業)을 보고는 여인에게 머리를 숙이고, 수보리에게 예를 올리고 입으로 그 말을 선양하였다. 수보리가 직접 이 여인을 보고 그 변재를 듣고는 각자 찬탄하며 말했다.
“선리(善利)와 끝없는 경사[慶]를 얻었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듣고 독실한 믿음으로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다시 만나기 어려운데, 하물며 좋아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는 것이겠습니까? 그 덕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여인이 다시 수보리에게 말했다. “만약 이 대지(大地)와 같이 한다면 참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함, 깨끗한 향내와 더러운 냄새도 더하거나 감소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행자(行者)가 평등한 마음을 닦으려면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을 참고 나아가거나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마치 깨끗한 물이 씻어내지 않는 것이 없지만,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행자(行者)도 이와 같아서 마음을 물과 같이 하여 여러 가지 악과 세 가지 때[垢]의 더러움을 씻어 제거하되, 선악에 있어서 보태거나 덜어내는 것을 쓰지 않아야 합니다. 마치 불길이 있는 곳을 다 태워도 거취(去就)하는 바가 없듯이, 행자도 그와 같이 화복(禍福)을 소멸하여 없애고 두 가지 어려움을 만나도 평등하여 더하거나 덜어냄이 없어야 합니다. 마치 바람이 일고 있는 곳에 회오리치더라도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듯이, 행자도 그와 같아서 만약 괴로움과 즐거움, 현명함과 어리석음, 깨끗함과 더러움을 만나더라도 더하거나 덜어내지 않아야 합니다.
비유하면 허공은 참지 않는 것이 없으나 허공은 참는다, 참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행자도 이처럼 마음이 평등하여 허공이 더하거나 덜어냄이 없는 것처럼 선과 악을 만나더라도 기뻐하거나 화내지 않아야 합니다. 마치 교량이나 배[船]는 모든 사람들이나 왕자(王者)ㆍ소인(小人),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 다 그것을 경유하여 건너가도 분별하는 바가 없듯이, 평등한 마음을 행하는 자도 역시 그와 같아서, 뜻을 교량이나 배같이 하여 성내거나 기뻐함이 없고, 원수나 벗의 차별[二]이 없어야 합니다.
011_0260_c_01L밝은 지혜의 현사(賢士)는 범부에게 인욕하며 성스러운 지혜로 마음이 편하고 고요하여 마음에 두 가지를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수보리여, 성내고 싫어하며 원한의 마음이 일어나면 학사(學士:비구)와 같이 모두 그것을 참고 분노로 갚지 않음으로써 성냄과 원한을 없애는 것이 마치 불이 타오를 때 기회를 찾아 그것을 소멸시켜 왕성하지 않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수보리여, 만약 탐욕과 번뇌가 타오르면 그 마음을 제어하고 조복시켜 달아나지 않게 해야 이에 올바른 선정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현자 수보리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떠한 뜻을 구하기에 이와 같은 사자후(師子吼)를 합니까?”
011_0260_c_03L爾時,賢者須菩提問其女曰:“汝何志求,而乃如是師子吼乎?”
그 여인이 대답했다. “만약 뜻을 구하는 것이 있다면 사자후를 펼 수가 없습니다. 뜻을 구함이 없기에 사자후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하는 바가 있으면 전도(顚倒)에 떨어지고, 전도에 떨어지면 사자후는 없습니다. 뜻을 구하는 바가 있으면 곧 몸을 탐내는 것이어서 문득 제견(諸見)에 떨어지므로 사자후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현자께서 ‘당신은 어떤 뜻을 구하기에 이와 같은 사자후를 합니까?’라고 물었는데, 현자께서는 무엇을 구하기에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해탈한 것입니까?”
011_0261_a_01L여인이 말했다. “현자여, 대승이라는 것은 걸리는 바가 없고 지혜에 가리고 덮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 밝음에는 두 가지가 없다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해와 달이 모든 하늘에서 쉬지 않고 운행해도 스스로는 자유로워 걸리는 것이 없고 가리는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허공에 머물면서 빠르게 운행하여 천하를 유람하고 두루 4역(域)을 편력하면서 염부제(閻浮提)를 비추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밝음을 받게 해 골고루 은혜를 입지 않음이 없게 합니다. 대승도 이와 같아서 보살[正士]이 널리 배워서 걸리는 바가 없고 능히 가리는 것이 없는 것은 그 마음이 평등에 머물되 머무는 바 없이 머물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6바라밀[六度無極]을 봉행하면서 시방에 나타내 보여 일체의 법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승이라 합니다.
전륜왕(轉輪王)이 유행(遊行)하는 처소인 4역(域)에 거처할 때 보살ㆍ대사(大士)와 약간의 종성(種姓)이 이르지만 중생류 가운데 사행(邪行)을 하는 무리가 있으나 평등하게 자비심을 닦습니다. 그 대정사(大正士)도 이와 같이 이르는 곳마다 능히 홀로 걸으며 사문(沙門)ㆍ범지(梵志)ㆍ제천(諸天)의 백성과 군국(郡國)ㆍ현읍(縣邑)ㆍ주역(州域)ㆍ대방(大邦)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보살은 항상 4은(恩)의 업을 행하여 일체를 섭수하여 구제하며 약간의 경(敬)을 닦기 때문에 대승이라 합니다.
모든 천(天)과 용신(龍神)ㆍ건답화(揵沓惒:건달바)ㆍ아수륜(阿須輪:아수라)ㆍ가류라(迦留羅:가루라)ㆍ진타라(眞陀羅:긴나라)ㆍ마휴륵(摩休勒:마후라가)ㆍ제석(帝釋)ㆍ범천(梵天)ㆍ사천(四天)ㆍ밝은 지혜의 현성(賢聖)과 보살이 모든 평등하고 바른 행의 근원을 총명하게 이루어 진제(眞諦)에 이르러 성취했기 때문에 보는 이마다 받들어 존경하므로 대승이라 합니다.
011_0261_b_01L그 대승이라는 것은 오직 수보리여, 다함도 없고 태어남도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삼보(三寶)의 교훈을 끊지 않고, 물어서 부처님의 지혜와 도법(道法)의 업을 받고, 성중(聖衆)을 따르고 받들어서 큰 지혜의 밝음으로 중생을 교화하며, 넓은 묘리(妙理)를 잘 갖추고 잡다한 행이 없으며, 참되고 바르게 짓는 일을 깨달아서 모두 6바라밀을 갖추어야 하며, 4은(恩)의 행으로써 위난(危難)과 재액(災厄)을 거두어 구제하고 고요한 도량에서 8정도(正道)와 의지(意止)ㆍ의단(意斷)을 닦고, 받들어 자비가 다함이 없게 하고, 닦아서 번뇌와 슬픔이 없게 하여 견고하게 대도(大道)에 머물며, 일체지(一切智)에서 영원히 두려움과 어려움을 버리고, 많은 악마를 항복받고, 모든 어리석음을 버리고 밝은 지혜를 드러내어 모든 공덕의 근원을 풍부하게 합니다.
모든 행이 구족되어 모든 하늘ㆍ백성ㆍ아수륜(阿須倫)이 보고 귀의하며, 많은 악마와 외도[外學]가 항복하지 않음이 없으며, 일체의 성문이나 모든 연각들은 당할 자가 없습니다. 믿지 않는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즐거운 법을 믿게 하며, 자비와 가엾이 여기는 생각으로 모든 성냄과 해치는 이를 품어 안고, 보시로써 인색하고 탐하는 이를 다스리고, 지계(持戒)로써 범금(犯禁)을 다스리고, 인욕으로써 성내는 이를 다스리며, 정진으로써 게으름을 다스리고, 일심(一心)으로써 어지러운 뜻을 다스리며, 지혜로써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재보(財寶)로써 가난을 다스리며, 편안하고 온화함으로써 괴로움과 근심을 다스리고, 환희로써 지혜를 따르기 때문에 대승이라 합니다.”
011_0261_c_01L여인이 다시 대답했다. “현자여, 다시 들으십시오. 여래ㆍ지진께서는 스무 가지 일로써 법의(法儀)를 관찰하고 걸식을 행합니다. 무엇을 스무 가지라 하면, 첫 번째 몸을 나타내되 색신(色身)의 형상이 미묘하고 단정함이고, 두 번째 여래를 순종하며 걸식의 법을 배우기 때문이며, 세 번째 만약 중생이 있다면 위엄 있는 부처님의 32상(相)을 익히려 하기 때문이고, 네 번째 여래의 몸에 장엄이 구족되었음을 보기 때문이며, 다섯 번째 여법하게 신상(身相)에 80종호가 갖추어졌기 때문이고, 여섯 번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無上正眞道意]을 내게 하기 때문이며, 일곱 번째 여래를 생각하며 걸식하되 여법하게 그것을 본받기 때문이고, 여덟 번째 만약 여래께서 군국(郡國)이나 현읍(縣邑)에 들어가시면 군국ㆍ현읍이 널리 안온함을 얻기 때문이며, 아홉 번째 눈 먼 자는 눈을 얻어 모두가 온갖 색상을 보기 때문이고, 열 번째 귀머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열한 번째 마음이 어지럽고 미혹된 자는 그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이고, 열두 번째 벌거벗은 자는 자연히 옷을 얻기 때문이며, 열세 번째 굶주린 자는 식량을 얻기 때문이고, 열네 번째 목마른 자는 물을 얻기 때문이며, 열다섯 번째 병자는 병이 낫기 때문이고, 열여섯 번째 분노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기 때문이며, 열일곱 번째 탐욕도 없고 질시도 없기 때문이고, 열여덟 번째 원한도 품지 않으며 화내지도 않고 자만심도 없기 때문이며, 열아홉 번째 마음에 번뇌를 품지 않고 널리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고, 스무 번째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종류를 부모의 몸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스무 가지라 합니다. 여래께서 군국이나 현읍이나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행하시는 것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보고 듣는 것을 있게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모든 천ㆍ용신ㆍ제석ㆍ범천ㆍ사천왕이 여래를 공양하고 여래의 몸을 보고는 도(道)의 밝음이 끝이 없으므로 고요한 도량에서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여래ㆍ지진께서 밝히신 정전(正典)을 우리들이 받아 가져서 경법(經法)을 받드는 것이 즐거워서 스스로 귀의하게 하려고 여래ㆍ지진께서는 대도심(大道心)을 내셨다. 이런 연유로 걸식을 행하시는구나’라고 합니다.
오직 수보리여, 관리를 원하고 벼슬을 탐내거나 재물을 좋아하고 부호[豪]에 뜻을 두거나 단정한 모습[色]을 구하거나 권속이 많기를 바라는 수많은 자들이 불세존(佛世尊)께서 전륜왕(轉輪王)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부처님을 뵈니 큰 슬픔[大哀]으로 가난한 집에 이르러 걸식을 행하신다. 세상의 영화와 관직을 버리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신다’라고 합니다.
오직 수보리여, 모든 대존신(大尊神)과 천자(天子)ㆍ범천(梵天)이 부처님의 위신을 이어 여래를 관찰하여 보고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여래께서는 충족하셔서 일찍이 굶주리거나 목마른 적이 없었다. 중생을 가엾이 여기므로 권속과 더불어 걸식을 행하신다. 우리들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진하여 정각을 이루는 것을 원하고 즐거워하여 권속과 함께 걸식을 행해야겠다’라고 하고는 대도(大道)의 마음을 내게 됩니다.
오직 수보리여, 모든 불존(佛尊)을 뵙게 되면 끝내 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음향(音響)을 듣고 보게 되면 순식간에 도의 근본을 생각하게 되어 구경(究竟)의 깨달음으로 인하여 멸도(滅度)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족성자(族姓子)ㆍ족성녀(族姓女)가 만약 여래의 공훈(功勳)의 덕을 듣는다면 명칭을 찬탄하며 나아가 그 이름을 부르며, 받들어 여래에게 별미의 음식이나 의복ㆍ이불ㆍ상(牀)ㆍ와구(臥具)와 기타 다른 것으로 공양을 올리지만, 부모ㆍ형제ㆍ자매나 부녀자와 자손들을 부양해야 한다든지, 인연이 없는 자는 짐짓 가서 여래를 받들어 뵈올 기회가 없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군국이나 현읍에 들어가셔서 걸식을 행하시게 되면 마음으로 뛸 듯이 기뻐하며 공양을 바치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오직 수보리여, 사천왕(四天王)이 여래의 발우를 받들면, 만약 가난한 무리들이 재보(財寶)가 적어서 적게 보시하더라도 여래의 발우를 보면 자연히 가득 차 있고, 큰 부자가 많이 보시하더라도 여래의 발우가 비어 있음을 보게 되니, 스스로 부처님을 받들어 보시하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냅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수보리여, 가령 여래께서 약간의 음식을 취해도 다 가지런히 합착(合著)되며, 백천억의 발우도 다시 한 발우에 합착되지만 섞이지 않는 것은 각각 모두 본래와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무수한 모든 천(天)과 용신ㆍ건답화ㆍ아수륜ㆍ가류라ㆍ진타라ㆍ마휴륵이 여래께서 나타내 보이는 변화를 보고는 일찍이 없었던 선한 마음을 내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011_0262_c_01L오직 수보리여, 여래의 몸은 금강(金剛)의 무량한 복이 모였습니다. 여래의 몸은 생장(生藏)과 숙장(熟藏)이 없으며, 또한 부정(不淨)한 대소변도 없으며, 굶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으신 데도 걸식을 행하며, 현재 먹고 있어도 들어가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래의 밝고 큰 지혜와 진정한 법을 보고는 모두 도심을 내게 됩니다.
또 수보리여, 어떤 중생이 여래에게 음식을 베풀되, 많거나 적거나 거칠거나 부드럽거나, 감미롭거나 좋지 못하거나, 바치는 음식은 여래에게 덕의 근본을 심고 복을 세우는 것도 한량이 없고 끝이 없는데, 하물며 중우(衆祐:부처님)가 다함이 없이 멸도(滅度)에 이름이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 한결같이 삼매정수(三昧正受)에 들면 무수한 신존(神尊)과 모든 천자들과 많은 범천왕과 색행천자(色行天子)가 여래께서 걸식하는 것을 보고는 삼매를 버리지 않고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는 것이지 굶주리거나 궁핍해서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제천(諸天)과 백성들이 그 뜻과 이익을 보고는 모두 도심을 내는 까닭에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항상 현성(賢聖)의 자재함을 생각하여 걸식을 행하며, 탐욕도 질투도 없고 또한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모든 신자(信者)를 위하여 경도(經道)를 널리 펴서 출가하여 교화를 배우려는 족성자ㆍ족성녀 때문에 걸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먹고 마신 적이 없고 굶주린 자는 스스로 도덕(道德)에 이르지 못하므로 이들로 하여금 소원하는 바를 빠짐없이 갖추게 하려고 걸식을 나타낸 것입니다.
011_0263_a_01L또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미래 세상의 변방 땅의 모든 나라를 가엾이 생각하기 때문에 걸식을 행하여 후세에 도법(道法)을 믿지 않는 자가 없게 합니다. 장자(長者)나 범지(梵志)가 마음에 스스로 ‘이들 성사(聖師)께서는 걸식을 행하지 않았는데, 제자들은 무슨 까닭으로 함부로 걸식을 하는가?’라고 생각하고는 모든 비구와 비구니를 보고는 화를 내며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부처님께서 걸식을 나타내 보이면, 마음에 스스로 ‘부처님께서는 위없이 존귀하신 분이신데도 중생을 가엾이 여겨 걸식하시니 제자도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고는, 공양하는 것을 찬탄하며 손으로 스스로 짐작하여 비구에게 보시합니다. 이들 학사(學士)가 부처님의 지극한 가르침을 이어서 걸식을 행하게 되면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든 비구와 비구니에게 공양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수보리여, 모든 제왕이나 태자ㆍ장자ㆍ범지ㆍ대신ㆍ백관과 모든 자식들이 위없이 바르고 진실하신 여래께서 걸식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되면, 만약 많은 사람이 도법(道法)을 즐겨 믿어서 집을 버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행하여 사문이 되어도 ‘우리들 가문의 성(姓)은 호족의 존귀한 출신으로 사문이 되었는데 도리어 서민이나 가난한 집이나 비천한 이들에게 걸식할 수 있겠는가?’ 하며 걸식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여래께서 걸식을 행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스스로 ‘여래 대덕께서는 마치 허공과 같으신 데도 가엾이 여겨 걸식을 행하시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모든 하열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걸식을 행하는 것을 즐겨하게 됩니다.
또 수보리여, 여래께서는 널리 세상의 습속(習俗)을 따라서 그들을 교화합니다. 그 즐거움을 권하려는 까닭으로 각 중생을 따라서 마땅히 변화하는 법의 이치를 받게 하여 도의 가르침을 줍니다. 여래께서 각자를 따라서 그것을 건립(建立)하되 그 방편으로 말미암아 일찍이 굶주리거나 허기짐이 없고, 여러 가지 재앙이나 기갈의 어려움이 없었으며, 지치는 일도 없고, 인색하거나 질시함도 없으며, 모든 악이 없고 모든 의혹을 끊었습니다. 이와 같이 수보리여, 여래의 이러한 한량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구제하려는 까닭에 걸식을 행하여 어둡고 막힌 것을 제도하여 도의 밝음을 보게 한 것입니다.”
수보리가 대답했다. “누이여,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치 일체의 들여우ㆍ토끼ㆍ사슴들ㆍ작은 벌레들은 백수(百獸)의 왕인 사자를 감당할 수 없어 혼자 걸어가도 그 앞에 나타나서 사자후를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승은 여래의 위신ㆍ예절과 선권방편(善權方便)을 감당할 수 없는데 어찌 일체의 대자대비를 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