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1_0429_a_01L불설상두정사경(佛說象頭精舍經)
011_0429_a_01L佛說象頭精舍經


수(隋) 천축(天竺) 비니다류지(毘尼多流支) 한역
김철수 번역
011_0429_a_02L隋天竺三藏毘尼多流支譯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011_0429_a_03L如是我聞
어느 때 세존[婆伽婆]께서는 가야성(伽耶城)의 상두정사(象頭精舍)에서 머물고 계셨다. 그 당시에 여래께서는 성불하신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였으나, 족히 천여 명에 달하는 큰 비구(比丘) 대중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모두 과거에는 나계선인(螺髻仙人:大梵天)이었으나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무거운 짐을 버려 오래전에 생사를 여의고 온갖 번뇌를 다하였으며, 평등한 공혜(空慧)1)와 정수(正受:三昧)와 지혜의 마음으로 일체를 깨달아 피안(彼岸)에 이른 아라한(阿羅漢)이었다. 또한 한량없는 큰 보살마하살 무리들과도 함께 계셨다.
011_0429_a_04L一時婆伽婆住伽耶城象頭精舍爾時如來成佛未久與大比丘衆滿足千人皆是過去往昔螺髻仙人所作已辦棄捨重擔久離生死盡諸煩惱平等空慧正受智心一切覺知到於彼岸皆阿羅漢復與無量大菩薩摩訶薩衆俱
그때 세존께서는 홀로 앉아 사유하시며 온갖 삼매에 드시어 두루 법계를 관찰하셨다. 스스로 깨달아 성도(成道)하시어 일체지(一切智)를 갖추셨고, 하셔야 할 일을 다 하여 마치셨고, 모든 무거운 짐을 버리셨으며, 생사의 흐름을 건너시고 간탐(慳貪)을 버리셨으며, 3독(毒)의 가시를 뽑으시고 온갖 갈애(渴愛)를 없애셨다. 큰 법의 배[法船]를 모으셨고, 커다란 법의 북[法鼓]을 쳐 울리셨으며, 커다란 법의 소라[法螺]를 부셨고, 커다란 법의 깃발[法幢]을 세우셨다. 이미 생사를 끊으시고 바른 법을 연설하시어 모든 악취(惡趣)를 닫아 막으시고 선도(善道)의 문(門)을 여시었으며, 악한 국토를 영원히 여의시고, 모든 깨끗한 국토에서 유행(遊行)하셨다.
011_0429_a_10L爾時世尊獨坐思惟入諸三昧遍觀法界自覺成道具一切智所作已訖棄諸重擔度生死流捨離慳貪拔三毒刺盡諸渴愛集大法舩擊大法鼓吹大法蠡建大法幢已斷生死演說正法閉諸惡趣開善道門永離惡土遊諸淨國
“내가 그 법을 관찰하건대 누가 보리(菩提)를 닦으며, 누가 보리를 증득하며, 누가 증득하고자 하지를 과거ㆍ현재ㆍ미래에 누가 증험하겠는가? 그것은 몸으로 증득하는 것[身得]인가, 마음으로 증득하는 것[心得]인가?
011_0429_a_16L我觀彼法誰修菩提誰得菩提誰欲得者過去現在及以未來誰之所證爲是身得爲心得乎
만약 몸으로 증득하는 것이라면 이 몸은 인지 작용이 없으니, 마치 풀이나 나무, 모래나 자갈, 담장이나 벽과 같아 헤아려 아는 작용이 없느니라. 이 몸은 단지 4대(大)가 화합된 것으로 부모가 낳은 것이니, 항상 음식을 먹고 옷을 입으며 목욕하고 어루만져 닦아도 끝내는 패퇴하여 무너지니, 이것이 닳아져 멸하는 법[磨滅法]이니라.
011_0429_a_19L若以身得是身無知猶如草木沙礫牆壁無所覺知四大和合父母所生常須飮食衣服澡浴摩拭終歸敗壞是磨滅法
011_0429_b_02L이 보리라는 것은 단지 공한 명칭만 존재할 뿐, 실체적인 모습이 없고, 소리도 없으며, 색(色)도 없고, 이루어짐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들어감도 없고, 인지함도 없고, 오고 감도 없느니라. 이와 같은 법은 또한 얽어맴[繫縛]도 없으니, 능히 모든 법을 지나고 삼계를 초월해 벗어날 수 있으며, 보이는 바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나[我]도 없고 나의 것[我所]도 없으며, 짓는 자[作者]도 없고 처소나 은신할 굴이나 집도 없느니라. 취착(取着)함이 없고 출입함이 없으며, 바라는 바도 없고 머무는 바도 없으며, 모습이나 모양도 없으며, 저것이나 이것이라는 분별도 없고 보여 나타냄도 없으니, 환술(幻術)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으니라.
011_0429_a_22L是菩提者但有空名而無實相無聲無色無成無見無入無知無去無來如是等法亦無繫縛能過諸法超出三界無見無聞無我我所無作者無處所無窟無取無著無出無入無願無住無貌無彼無此無示猶如幻化
이는 12인연(因緣)에 따라 생하는 것이니 처소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모습을 여의는 것이 마치 허공이 적정(寂靜)함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라. 소리도 없고 음향도 없으며, 문장도 없고 글자도 없으며, 언설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아는 것을 보리라고 하느니라.
011_0429_b_07L十二因緣生無處所不可見離相虛空現寂靜無聲無響無文無字亦無言說如是知者是名菩提
만약 마음으로 증득하는 것이라면 이 마음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니, 마치 환술로 변화를 만들어낸 것과 같으며, 모두가 과거의 망상이 지은 업(業)으로 인해 생긴 것이니, 형태도 없고 잡히는 바도 없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보리는 처소가 없으며,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어서 일체 법이 공(空)하니라. 또한 비록 언설로는 명칭이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으니, 이는 무위법(無爲法)이며 공(空)이며 무상(無相)이며 무작(無作)이니라. 있는 것도 아니고[非有] 없는 것도 아니며[非無] 보여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라.
011_0429_b_10L若以心是心無定猶如幻化皆因過去妄想業生無形無執猶如虛空菩提者無有處所非過去非未來非現在切法空雖復言說有名無實是無爲無相無作非有非無非可示現無說無聞
무릇 보리라는 것은 과거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현재에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3세(世)를 떠나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라. 모습도 없고, 지음[作]도 아니며 짓지 않음[不作]도 아니니, 만약 이와 같이 3세의 법을 깨달아 이해할 수 있으면 이를 보리라 하느니라.”
011_0429_b_16L夫菩提者非過去得非未來得非現在得亦不離三世得無相非作非不作若能如是覺了三世法卽是菩提
그때 문수사리 동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습도 없는 것[無相]이 보리라면 지금 선남자와 선여인은 무엇으로 인하여 의지하고 따라서 보리를 증득할 수 있습니까?”
011_0429_b_19L爾時文殊師利童子白佛言世尊無相是菩提者今善男子善女人等因何而住得成菩提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들이 보리를 배우려면 마땅히 이와 같이 머물러야 하느니라.”
011_0429_b_22L佛告文殊師利諸菩薩等學菩提者應如是住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어떻게 머물러야 합니까?”
011_0429_b_23L文殊師利白佛言世尊諸菩薩等應云何
011_0429_c_02L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보리라는 것은 삼계를 초월해 벗어나고 언설을 뛰어넘으며 모든 문자를 떠나므로 일정하게 머무는 처소가 없느니라.
011_0429_c_02L佛告文殊師利夫菩提者超出三越於言說離諸文字無有住處
또한 문수사리여, 보살마하살은 머무는 바가 없는 곳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요, 집착함이 없는 것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며, 공법(空法)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며, 법성(法性)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며, 일체 법의 실체와 모습이 없는 것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며, 한량없는 믿음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며, 증가하거나 감소함이 없는 것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며, 생각함이 없음에 머무니 이것이 보리에 머무는 것이니라. 머무름[住]이란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으며,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으며, 물 위에 비친 달과 같으며, 뜨거울 때의 불꽃과 같은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이와 같은 법들에 머무는 것이 바로 보리에 머무는 것이니라.”
011_0429_c_03L文殊師利菩薩摩訶薩住無所住是住菩提住無執著是住菩提住於空法是住菩提住於法性是住菩提住一切法無有體相是住菩提住無量信是住菩提住無增減是住菩提住無異念是住菩提住如鏡像如空谷響如水中月如熱時焰文殊師利住如是等法是住菩提
그때 정광염(淨光焰) 천자가 문수사리 동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수행하고 어떤 업들을 짓는 것이 보살행입니까?”
011_0429_c_11L爾時淨光焰天子白文殊師利童子言云何修行以何等業是菩薩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여, 모든 중생에게 큰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보살행입니다.”
011_0429_c_13L文殊師利言於諸衆生起大慈心是菩薩行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모든 보살들은 어떻게 수행해야 크게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011_0429_c_14L子復白文殊師利諸菩薩等云何修起大慈心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여, 아첨하거나 속이는 일이 없는 마음이 보살의 큰 자애로운 마음입니다.”
011_0429_c_16L文殊師利言天子無諂誑心是菩薩大慈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수행해야 아첨하고 속이는 일이 없겠습니까?”
011_0429_c_17L天子復白文殊師云何修行得無諂誑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일체 중생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아첨하고 속이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011_0429_c_18L文殊師利言天子於一切衆生起平等心是無諂諸菩薩等應如是學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수행해야 일체 중생에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011_0429_c_20L天子復白文殊師利菩薩摩訶薩云何修行於一切衆生起平等心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이것과 저것이라는 분별이 없고 온갖 다른 견해가 없는 것이 바로 평등한 행(行)입니다.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011_0429_c_22L文殊師利言無彼無此無諸異見是平等行諸菩薩等應如是學
011_0430_a_02L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또한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닦아야 이것과 저것이라는 분별이 없고, 온갖 다른 견해 없이 일체 중생에 대하여 평등한 행을 일으킵니까?”
011_0429_c_24L天子復白文殊師利菩薩摩訶薩復云何修無彼無此無諸異於一切衆生起平等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선한 마음으로 공경하여 이것과 저것이라는 분별이 없고 온갖 다른 견해가 없어야 평등법에 이르니,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닦아야 합니다.”
011_0430_a_03L文殊師利天子善念恭敬無彼無此無諸異見及平等法諸菩薩等應如是修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선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나아가 이것과 저것이라는 분별이 없고, 온갖 다른 견해가 없게 되는 것은 무엇을 바탕으로 일어납니까?”
011_0430_a_05L子復白文殊師利菩薩摩訶薩善念恭敬乃至無彼無此無諸異見因何而起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선한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은 보리심(菩提心)을 바탕으로 일어납니다. 모든 보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011_0430_a_08L文殊師利言天子善念恭敬發菩提心諸菩薩等應如是學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리심은 무엇을 바탕으로 일어납니까?”
011_0430_a_09L天子復白文殊師利菩提心者因何而起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보리심은 6바라밀(波羅蜜)로부터 일어납니다.”
011_0430_a_10L文殊師利言天子菩提心者從六波羅蜜起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6바라밀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납니까?”
011_0430_a_12L天子復白文殊師利六波羅蜜從何而起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방편과 지혜로부터 일어납니다.”
011_0430_a_13L文殊師利言天子從方便智慧起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의 방편과 지혜는 무엇으로부터 일어납니까?”
011_0430_a_14L天子復白文殊師利菩薩摩訶薩方便智慧從何而起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방편과 지혜는 방일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일어납니다.”
011_0430_a_15L文殊師利言天子方便智慧從不放逸起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방일하지 않음은 다시 무엇으로부터 일어납니까?”
011_0430_a_16L子復白文殊師利不放逸者復從何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방일하지 않음은 세 가지 선업(善業)을 닦음으로써 일어납니다.”
011_0430_a_18L文殊師利言天子不放逸者從修三善業起
천자가 다시 물었다.
“세 가지 선업을 닦는 것은 무엇을 바탕으로 일어납니까?”
011_0430_a_19L天子復問修三善業因何而起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열 가지 선업(善業)을 닦음으로써 일어납니다.”
011_0430_a_20L文殊師利言天子從修十善業
천자가 다시 물었다.
“열 가지 선업을 닦는 일은 무엇을 바탕으로 일어납니까?”
天子復問修十善業因何而起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신(身)ㆍ구(口)ㆍ의(意) 3업(業)을 잘 통섭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납니다.”
011_0430_a_21L殊師利言天子從善攝身口意起
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이 세 가지 선업은 다시 무엇을 바탕으로 일어납니까?”
011_0430_a_22L子復問文殊師利此三善業復因何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선한 생각에서 일어납니다.”
文殊師利言從善思惟起
천자가 다시 물었다.
“선한 생각은 무엇을 바탕으로 일어납니까?”
011_0430_a_24L天子復善思惟者因何而起
011_0430_b_02L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선한 뜻과 관행(觀行)에서 일어납니다.”
011_0430_b_02L文殊師利言從善思觀行起
천자가 다시 물었다.
“선한 뜻과 관행은 무엇을 바탕으로 일어납니까?”
011_0430_b_03L天子復問善思觀行因何而起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기억해 지니어 잊지 않음으로부터 일어납니다.”
011_0430_b_04L文殊師利言從憶持不忘
천자가 다시 물었다.
“기억해 지니어 잊어버리지 않음에는 몇 가지 마음이 있으며, 무엇을 인연으로 과보를 얻습니까?”
011_0430_b_05L天子復問憶持不忘有幾種心何因緣而得果報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시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네 가지 발심(發心)이 있어 인(因)으로부터 과(果)를 얻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초발심이요, 둘째는 관계된 생각을 수행함[係念修行]이며, 셋째는 퇴전하지 않음[不退]이고, 넷째는 선(善)과 함께 생하는 것입니다. 초발심을 바탕으로 하여 관계된 생각[係念]을 얻고, 관계된 생각을 닦음으로써 불퇴전을 얻으며, 불퇴전을 바탕으로 선과 함께 생합니다.
011_0430_b_06L文殊師利言天子菩薩摩訶薩有四種發心從因得果何等爲四一者初發心二者係念修三者不退四者與善同生因初發而得係念因修係念得不退轉不退轉與善同生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이란 마치 종자를 훌륭한 밭에 심는 것과 같으며, 관계된 생각을 수행함이란 마치 싹이 트는 것과 같으며, 수행하여 퇴전하지 않음은 마치 줄기와 가지나 잎이 자라나는 것과 같고, 선과 함께 생함은 마치 꽃이 열매를 맺어 성숙하는 것과 같습니다. 발심과 관계된 생각의 수행과 불퇴전과 그리고 선과 함께 생함 또한 이와 같습니다.
011_0430_b_11L復次天子初發心猶如種子種之良田係念修行如苗生修行不退猶如莖枝葉增與善同生猶如華果結實成熟係念修行不退與善同生亦復如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은 마치 수레를 만드는 장인이 여러 가지 나무에 관해 잘 아는 것과 같고, 관계된 생각의 수행은 마치 나무를 짜 합하는 것과 같으며, 수행하여 퇴전하지 않음은 수레가 완성되는 것과 같고, 선(善)과 함께 생하는 것은 마치 실어 나르는 공용(功用)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발심과 관계된 생각의 수행과 불퇴전과 그리고 선과 함께 생함 역시 이와 같습니다.
011_0430_b_16L復次天子初發心人猶如車匠知衆木繼念修行猶如合木修行不退猶如車成與善同生猶如載用繼念修行不退與善同生亦復如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은 마치 초승달과 같고, 관계된 생각의 수행은 닷새에서 이레의 달과 같으며, 수행하여 퇴전하지 않음은 열흘의 달과 같고, 선과 함께 생함은 열나흘의 달과 같으며, 여래의 지혜는 충분히 가득 차 완전무결하니 보름달과 같습니다. 발심과 관계된 생각의 수행과 불퇴전, 그리고 선과 함께 생함 역시 이와 같습니다.
011_0430_b_20L復次天子初發心者猶如初月念修行如五日月乃至七日月修行不退如十日月與善同生如十四日如來智慧滿足無缺如十五日月發心繼念修行不退與善同生亦復如是
011_0430_c_02L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의 사람은 성문지(聲聞地)를 넘어서고, 두 번째 발심[係念修行]은 벽지불지(辟支佛地)를 넘어서며, 세 번째 발심[不退轉]은 부정지(不定地)를 넘어서고, 네 번째 발심[與善同生]은 정지(定地)를 얻습니다.
011_0430_c_02L復次天子初發心人過聲聞地第二發心過辟支佛地第三發心不定地第四發心得於定地
또한 천자시여, 예컨대 오(噁)나 아(啊) 등의 음이 일체 문자의 근본이듯이 초발심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일체 선의 근본입니다. 예컨대 문자를 배우면 조금이라도 지혜를 얻을 수 있듯이 관계된 생각을 수행함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조금이라도 지혜를 얻습니다. 마치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무량(無量)을 계산해 보고 그 분제(分齊)를 아는 것과 같이 불퇴전심(不退轉心)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퇴전하지 않음을 압니다. 그리고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경론(經論)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처럼, 선과 함께 생하는 선심(善心)의 명료함 역시 이와 같습니다.
011_0430_c_04L復次如噁啊等音悉是一切字之根本初發心者亦復如是悉是一切善之根本如學文字得少分智繼念修行亦復如是得少分智猶如筭師摠計無量知其分齊不退轉心亦復如是知心不退譬如有人明解經論與善同生善心明了亦復如是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은 관계된 생각의 선인(善因)이고, 두 번째 발심은 관계된 생각의 지혜이며, 세 번째 발심은 관계된 생각의 선정(禪定)이고, 네 번째 발심은 관계된 생각의 과(果)입니다.
011_0430_c_11L復次天子初發心者繼念善因第二發心繼念智慧第三發心繼念禪定第四發心繼念於果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은 선인을 수지(受持)하고, 두 번째 발심은 지혜를 수지하며, 세 번째 발심은 선정을 수지하고, 네 번째 발심은 과(果)를 수지합니다.
011_0430_c_14L復次天子初發心者受持善第二發心受持智慧第三發心持禪定第四發心受持於果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은 선인이 성취됨이고, 두 번째 발심은 지혜가 성취됨이며, 세 번째 발심은 선정이 성취됨이고, 네 번째 발심은 정과(正果)가 성취됨입니다.
011_0430_c_16L復次初發心者善因成就第二發心慧成就第三發心禪定成就第四發正果成就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은 선(善)을 바탕으로 도(道)에 들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발심은 지혜를 바탕으로 도에 들게 하는 것이며, 세 번째 발심은 선정을 바탕으로 도에 들게 하는 것이고, 네 번째 발심은 과를 바탕으로 도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011_0430_c_19L復次天子初發心者善入道第二發心因智入道第三發因禪入道第四發心因果入道
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은 마치 의사가 약에 대해서 잘 아는 것과 같고, 두 번째 발심은 약을 잘 분별할 줄 아는 것과 같으며, 세 번째 발심은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과 같고, 네 번째 발심은 복용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011_0430_c_21L天子初發心者如醫識藥第二發善知藥分第三發心隨病授藥四發心令得服行
011_0431_a_02L또한 천자시여, 초발심을 바탕으로 법왕(法王)의 가문에 태어나고, 두 번째 발심을 바탕으로 법왕의 법을 배우며, 세 번째 발심을 바탕으로 법왕의 행을 닦고, 네 번째 발심을 바탕으로 왕위를 충분히 만족시킵니다. 이상을 네 가지의 발심이라고 합니다.”
011_0430_c_24L復次天子因初發生法王家第二發心學法王法三發心修法王行第四發心滿足王是名四種發心
그때 정광염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보리를 증득할 수 있는 신속한 방도이며, 보살이 이 도를 행하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까?”
011_0431_a_04L爾時淨光焰天子白文殊師利何等是菩薩摩訶薩速疾道菩薩行是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여, 보리를 증득할 수 있는 신속한 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도를 증득하면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방편도(方便道)이고, 둘째는 반야도(般若道)입니다. 방편의 지혜를 수지하기 때문에 능히 일체 중생을 관찰할 수 있으며, 반야를 수지하기 때문에 일체 법이 공(空)함을 관찰하여 의혹과 집착을 끊을 수 있습니다.
011_0431_a_07L文殊師利言天子速疾道有二種菩薩摩訶薩乘此二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等爲二一者方便道二者若道受持方便智故能觀一切衆生受持般若故觀一切法空能斷疑執
방편의 지혜로 인해서 온갖 법이 화합하며, 반야로 인해 온갖 법이 화합하지 않습니다. 방편은 인(因)이고, 반야는 과(果)입니다. 방편으로 인해 일체 법을 알고, 반야로 인해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을 압니다. 방편의 지혜로 불국토를 장엄하며, 반야로 인해 모든 불국토가 다 평등하다는 것을 압니다.
011_0431_a_12L以方便智故和合諸法以般若故法不合方便爲因般若爲果以方便知一切法以般若故知諸法空方便智莊嚴佛國以般若故知諸佛皆悉平等
방편으로 인하여 모든 중생의 근기와 성품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며, 반야로 인하여 모든 중생의 근기와 성품이 다 공하다는 것을 압니다. 방편으로 인하여 감로의 맛을 얻고 보리를 증험해 성취하며, 반야로 인하여 모든 부처님의 법이 평등한 바른 도[正道]임을 깨닫습니다.
011_0431_a_17L以方便故知諸衆生根性差別以般若故知諸衆生根性皆以方便故得甘露味證成菩提般若故覺諸佛法平等正道
또한 천자시여, 다시 두 가지 행(行)이 있어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합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유위(有爲)이고, 둘째는 무위(無爲)입니다.
011_0431_a_20L復次復有二行能令菩薩摩訶薩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等爲二有爲二者無爲
011_0431_b_02L 유위는 5바라밀을 통틀어 포섭하고, 무위는 반야바라밀을 통틀어 포섭합니다. 다시 두 가지 행이 있어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빨리 보리를 증득하게 합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유루행(有漏行)이고, 둘째는 무루행(無漏行)입니다. 유루행이란 5바라밀이며, 무루행이란 반야바라밀입니다.
011_0431_a_23L有爲者摠攝五波羅蜜無爲者摠攝般若波羅蜜復有二行能令菩薩摩訶薩疾得菩提等爲二一者有漏行二者無漏行漏行者五波羅蜜無漏行者般若波羅蜜
다시 두 가지 행이 있어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빨리 보리를 증득하게 합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머무는 행[住行]이고, 둘째는 머물지 않는 행[不住行]입니다. 머무는 행이란 5바라밀이고, 머물지 않는 행이란 반야바라밀입니다. 다시 두 가지 행이 있어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빨리 보리를 증득하게 합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유량(有量)이고 둘째는 무량(無量)입니다. 유량한 것은 5바라밀이고, 무량한 것은 반야바라밀입니다. 유량행(有量行)은 유상법(有相法)이고, 무량행은 무상법입니다.
011_0431_b_05L復有二行能令菩薩摩訶薩疾得菩提何等爲二一者住行二者住行住行者五波羅蜜不住行者若波羅蜜復有二行能令菩薩摩訶薩疾得菩提何等爲二一者有量無量有量者五波羅蜜無量者若波羅蜜有量行者是有相法無量行者是無相法
다시 두 가지 행이 있어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빨리 보리를 증득하게 합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지행(智行)이고, 둘째는 정행(定行)입니다. 지혜의 행[智行]이 있기 때문에 초지(初地)로부터 7지에 이르며, 선정의 행[定行]이 있기 때문에 8지로부터 10지에 이릅니다.”
011_0431_b_12L復有二行能令菩薩摩訶薩疾得菩提何等爲二一者二者定行以智行故從初地至七以定行故從八地至十地
그때 불겁약지총지(不怯弱智摠持)보살이 문수사리 동자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뜻[義]을 알며, 어떻게 지혜[智]를 아는 것입니까?”
011_0431_b_15L爾時怯弱智摠持菩薩白文殊師利童子菩薩摩訶薩云何知義云何知智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선남자여, 뜻에는 실체가 없으며, 지혜 역시 실체가 없습니다.”
011_0431_b_17L殊師利言善男子義者無體智亦無
불겁약지총지보살이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뜻에 실체가 없으며, 지혜 역시 실체가 없을 수 있습니까?”
011_0431_b_19L不怯弱智摠持菩薩復問文殊師云何義無體智亦無體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011_0431_b_20L文殊師利
“선남자여, 뜻에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무위(無爲)이고 무작(無作)이며 모습이나 모양이 없고 오고 감이 없으니 이를 뜻하는 것이며, 지혜에 실체가 없다는 것은 정법(定法)도 아니고 부정법(不定法)도 아닌 이것을 지혜라 하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야 합니다. 뜻이란 실체가 없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지혜라는 것도 체(體)가 공하여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야 합니다.
011_0431_b_21L善男子義無體者無爲無作無相無貌無來無去是名爲義智無體者非定法非不定法是名爲智如是受義者無體非有非無智者體空非無無取無捨如是受持
011_0431_c_02L 또한 뜻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정해지지 않은 것도 아니며, 지혜라는 것은 마음의 도[心道]라고 합니다. 마음의 지혜는 평등하여 분별함이 없으니, 이와 같이 받아 지녀야 합니다.
011_0431_c_02L復次非定非非定智者名爲心道心智平等無有分別如是受持
또한 지혜는 선정(禪定)을 체로 삼으니 선정의 지혜는 평등하여 분별함이 없습니다. 방편이 있기 때문에 음(陰:蘊)ㆍ입(入:處)ㆍ계(界)와 12인연과 생사유전(生死流轉)하게 하는 선악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으니, 그것들은 마치 환술로 지어낸 것과 같아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모든 법을 관찰해야 합니다.
011_0431_c_04L復次智者禪爲體禪智平等無有分別以方便故觀陰十二因緣生死流轉善惡之相猶如幻化非有非無菩薩摩訶薩應當如是觀於諸法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열 가지 지혜의 행[智行]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인지(因智)이고, 둘째는 과지(果智)이며, 셋째는 의지(義智)이고, 넷째는 방편지(方便智)이며, 다섯째는 반야지(般若智)이고, 여섯째는 수지지(受持智)이며, 일곱째는 바라밀지(波羅蜜智)이고, 여덟째는 대비지(大悲智)이며, 아홉째는 연민교화중생지(憐愍敎化衆生智)이고, 열째는 불착일체제법지(不着一切諸法智)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열 가지 지혜의 행이라고 합니다.
011_0431_c_08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十種智行何等爲一者因智二者果智三者義智方便智五者般若智六者受持智七者波羅蜜智八者大悲智九者愍教化衆生智十者不著一切諸法是名菩薩十種智行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청정한 행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자신이 스스로 발생시킨 신업(身業)이 청정한 행이고, 둘째는 일체 중생을 위해 발생시킨 신업이 청정한 행이며, 셋째는 자신이 스스로 발생시킨 구업(口業)이 청정한 행이고, 넷째는 일체 중생을 위해 발생시킨 구업이 청정한 행이며, 다섯째는 자신이 스스로 발생시킨 의업(意業)이 청정한 행입니다.
011_0431_c_14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發十種淸淨行何等爲一者自發身業淸淨行二者發一切衆生身業淸淨行三者自發口業淸淨行四者發一切衆生口業淸淨五者自發意業淸淨行
여섯째는 일체 중생을 위해 발생시킨 의업이 청정한 행이며, 일곱째는 일체 중생을 위해 발생시킨 청정한 평등행이고, 여덟째는 일체 중생 이외의 것들을 위해 발생시킨 청정한 평등행이며, 아홉째는 모든 부처님을 위해 발생시킨 청정한 지혜행이고, 열째는 깨끗한 불국토를 발생시켜 성취한 중생행(衆生行)입니다.
011_0431_c_19L六者發一切衆生意業淸淨行七者發一切衆生淸淨平等行八者發一切衆生外淸淨平等行九者發諸佛淸淨智行十者發淨佛國土成就衆生行
011_0432_a_02L 만일 중생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게 되면 그들에게 의약을 나누어 주어 안락하게 해 주고, 번뇌에 매여 있는 이들에게는 무위지(無爲智)로써 교화하여 삼계를 벗어나도록 하여 모두 다 공덕과 지혜와 무위의 도(道)에 만족하도록 하는 이것을 보살이 열 가지 청정한 행을 원만히 갖추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011_0431_c_23L若有衆生遇諸疾病給施醫藥令得安樂具煩惱者以無爲智而教化之令離三界悉令滿足功德智慧無爲之道是名菩薩具足十種淸淨之行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방편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피안방편(彼岸方便)이고, 둘째는 수지(受持)방편이며, 셋째는 지혜(智慧)방편이고, 넷째는 방편(方便)방편이며, 다섯째는 대비(大悲)방편이고, 여섯째는 지만족(智滿足)방편이며, 일곱째는 혜만족(慧滿足)방편이고, 여덟째는 정념(靜念)방편이며, 아홉째는 진실행(眞實行)방편이고, 열째는 일체 중생에 대한 갖가지 애증(愛憎)이 없는 평등한 방편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열 가지 방편이라고 합니다.
011_0432_a_04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方便等爲十一者彼岸方便二者受持方便三者智慧方便四者方便方便大悲方便六者智滿足方便七者慧滿足方便八者靜念方便九者實行方便十者於一切衆生無諸憎愛平等方便是名菩薩十種方便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분별신(分別身)의 다함이 없음[無盡]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사물을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번뇌를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법을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넷째는 갈애를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다섯째는 온갖 견해를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11_0432_a_11L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分別身無盡何等爲十一者分別事物無二者分別煩惱無盡三者分別法無盡四者分別渴愛無盡五者分別諸見無盡
여섯째는 선악을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일곱째는 조작(造作)을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여덟째는 집착함이 없음을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며, 아홉째는 화합을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이고, 열째는 보리지(菩提智)의 원만함을 분별함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열 가지 분별신(分別身)의 다함이 없음이라고 합니다.
011_0432_a_16L六者分別善惡無盡七者分別造作無盡八者分別無執無著無盡九者分別和合無盡十者分別菩提智圓滿無盡是名十種分別身無盡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조복행(調伏行)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조복하여 선(善)을 행함이고, 둘째는 아끼고 탐하는 것을 조복하고 비처럼 베풀어 보시하는 행이며, 셋째는 정진(精進)하지 않는 것을 조복하는 행이고, 넷째는 세 가지 업을 조복하는 행이며, 다섯째는 독심(毒心)을 조복하여 성내거나 화내지 않는 행입니다.
011_0432_a_20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調伏行何等爲十一者調伏善行調伏慳悋捨施如雨行三者調伏不精進行四者調伏三業行五者調伏毒心不瞋怒行
011_0432_b_02L 여섯는 조복하여 자비한 마음과 애민(愛愍)한 마음을 일으키는 행이며, 일곱째는 게으른 마음을 조복하는 행이고, 여덟째는 조복하여 부지런히 불법(佛法)을 닦는 행이며, 아홉째는 착하지 못한 마음을 조복하여 온갖 악을 행하지 않는 행이고, 열째는 조복하여 선정과 해탈이 자재한 행입니다.
011_0432_a_24L六者調伏起慈愍心行七者調伏懶惰心行八者調伏勤修佛法行九者調伏不善心不行諸惡行十者調伏禪定解脫自在行
다시 열 가지 조복행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어리석음[愚癡]과 무지(無智)를 조복하여 파괴하는 행이고, 둘째는 조복하여 방편으로 반야바라밀을 두루 지니는 행이며, 셋째는 번뇌를 조복하는 행이고, 넷째는 조복하여 도(道)를 생하여 일으키는 행이며, 다섯째는 조복하여 신실(信實)함을 두루 지니는 행입니다.
011_0432_b_04L復有十種調伏行何等爲十一者調伏破愚癡無智行二者調伏方便摠持般若波羅蜜行三者調伏煩惱行四者調伏生起道行五者調伏摠持信實行
여섯째는 조복하여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행이며, 일곱째는 착하지 않은 마음을 조복하는 행이고, 여덟째는 조복하여 때와 때가 아닌 경우에 자재한 행이며, 아홉째는 자신(自身)을 조복하는 행이고, 열째는 조복하여 공(空)을 관(觀)하는 행입니다. 이것을 열 가지 조복행이라고 합니다.
011_0432_b_09L六者調伏不墮惡道行七者調伏不善心行八者調伏時非時自在行九者調伏自身行十者調伏觀空行是名十種調伏行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른 것을 조복하는 열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몸의 세 가지 악업[身三惡業]과 입의 네 가지 악업[口四惡業]과 마음의 세 가지 악업[意三惡業]을 조복하여 멀리 여의는 것을 말합니다.
011_0432_b_12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有十種調伏他何等爲所謂調伏遠離身三惡業口四惡意三惡業
다시 내외(內外)의 법을 관찰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열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몸의 내계[身內界]가 다 공하다는 것을 관찰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고, 둘째는 몸의 외계[身外界]도 또한 다 공하다는 것을 관찰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며, 셋째는 내외의 온갖 법이 다 공하다는 것을 관찰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고, 넷째는 일체지(一切智)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며, 다섯째는 수행해야 할 도(道)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고, 여섯째는 모든 성현(聖賢)의 지위[地]를 관찰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입니다.
011_0432_b_15L復有十種內外觀法不起執著何等爲十一者觀身內界皆悉是空不起執著二者觀身外界亦悉是空不起執著三者觀內外諸法皆悉是空不起執著四者於一切智不起執著五者所修行道不起執著六者觀諸賢聖地不起執著
011_0432_c_02L 일곱째는 오랫동안 청정함을 닦아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고, 여덟째는 반야바라밀에 머물러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며, 아홉째는 법을 강론하여 중생을 교화시키는 것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이고, 열째는 모든 중생들을 관찰하여 큰 방편을 일으켜 자비를 내고 애민하되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입니다. 이것을 내외의 법을 관찰하여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열 가지라고 합니다.
011_0432_b_21L七者修淸淨不起執著八者住於般若波羅蜜不起執著九者於講論法教化衆生不起執著十者觀諸衆生起大方便慈悲憐愍不起執著是名十種內外觀法不起執著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견고한 마음을 내어 보리의 도를 닦아야 합니다. 만약 이와 같이 견고한 마음을 내어 보리의 도를 닦지 않는다면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습니다. 견고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몸과 입과 마음의 세 가지 업이 상응하여 서로 위배되지 않는 이것을 견고함이라 합니다. 견고하지 않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몸과 입과 마음의 세 가지 업이 상응하지 못하고 함께 서로 위배되는 이것을 견고하지 않음이라 합니다.
011_0432_c_03L復次善男子薩摩訶薩應如是作堅固心修菩提若不如是堅固菩提不名菩薩何堅固身口意等三業相應不相違背是名堅固云何不堅固身口意等三業不相應共相違背是名不堅固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보리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는 두 가지 바른 행[正行]이 있습니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보리를 바르게 생각[正念]하는 행이고, 둘째는 선정(禪定)을 닦아 온갖 번뇌를 끊는 행이니, 이것들을 보리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는 두 가지 바른 행이라 합니다.
011_0432_c_08L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正堅固菩提心何等爲二一者正念菩提行二者修行禪定斷諸煩惱行是名二種正行堅固菩提心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스스로의 몸을 조어(調御)하는 행이고, 둘째는 중생의 몸을 조어하는 행입니다. 선남자여, 이것들을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라 합니다.
011_0432_c_12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正行堅固何等爲二一者自調身行二者調衆生身行善男子是名菩薩摩訶薩二種正行堅固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부지런히 닦아 익히기 때문에 일체지(一切智)를 얻는 것이고, 둘째는 닦아 익히지 않는 경우에도 일체지를 얻는 것입니다. 이를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라 합니다.
011_0432_c_16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正行堅固何等爲二一者勤修習故得一切智二者不修習故而得一切是名菩薩摩訶薩二種正行堅固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주지방편(住地方便)의 바른 행이 견고함이며, 둘째는 주지부동(住地不動)의 바른 행이 견고함입니다. 이를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라 합니다.
011_0432_c_20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正行堅固何等爲二一者住地方便正行堅固二者住地不動正行堅固是名菩薩摩訶薩二種正行堅固
011_0433_a_02L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오염된 자리[染地]를 멀리 여의는 바른 행의 견고함이요, 둘째는 자리마다 방편으로 자신의 행을 원만하게 하는 바른 행의 견고함입니다. 이를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라 합니다.
011_0432_c_24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正行堅固何等爲二一者遠離染地正行堅固二者於地地方便自行圓滿正行堅固是名菩薩摩訶薩二種正行堅固
또한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성문지(聲聞地)와 벽지불지(辟支佛地)에서 시현(示現)하는 바른 행의 견고함이요, 둘째는 불지(佛地)에서 보리방편(菩提方便)이 퇴전하지 않는 바른 행의 견고함입니다. 이를 보살마하살의 두 가지 바른 행의 견고함이라 합니다.
011_0433_a_06L復次善男子菩薩摩訶薩復有二種正行堅固何等爲二一者於聲聞辟支佛地示現正行堅固於佛菩提方便不退正行堅固名菩薩摩訶薩二種正行堅固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에게는 이와 같은 등의 바른 행의 견고함과 한량없는 방편이 있어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011_0433_a_10L善男菩薩摩訶薩以如是等正行堅固無量方便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
그때 세존께서 문수사리 동자를 찬탄하시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시원스럽게 말을 잘했구나.”
011_0433_a_13L爾時世尊讚文殊師利童子言哉善哉文殊師利快說此語
이 법을 설할 때 문수사리와 한량없는 하늘ㆍ사람ㆍ아수라(阿修羅)ㆍ건달바(乾闥婆) 등 일체 대중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듣고는 믿고 받아들여 머리 숙여 예를 올리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011_0433_a_14L說此法文殊師利無量天阿修羅乾闥婆等一切大衆聞佛說法信受頂禮歡喜奉行
象頭精舍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공(空)의 도리를 관(觀)하는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