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색온인가. 네 가지 원소[四大種] 및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모든 물질을 말한다.
017_0637_a_06L云何色薀?謂四大種及四大種所造諸色。
어떤 것이 네 가지 원소인가. 지계(地界)와 수계(水界)와 화계(火界)와 풍계(風界)를 말한다. 어떤 것이 지계인가. 굳고 강한 성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수계인가. 흐르고 젖어드는 성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화계인가. 따스하고 마르는 성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풍계인가. 경(輕) 등의 움직이는 성질을 말한다.
어떤 것이 안근인가. 색을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어떤 것이 이근인가. 소리를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어떤 것이 비근인가. 냄새를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어떤 것이 설근인가. 맛을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어떤 것이 신근인가. 닿는 것을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어떤 것이 색인가. 눈의 경계가 되는 현색(顯色)과 형색(形色) 및 표색(表色) 등이다. 어떤 것이 소리인가. 귀의 경계가 되는, 집수(執受)의 대종(大種)을 원인으로 삼는 소리와 비집수(非執受)의 대종을 원인으로 삼는 소리와 두 가지의 대종을 함께 원인으로 삼는 소리이다.1) 어떤 것이 냄새인가. 코의 경계가 되는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 그리고 그 밖의 나머지 냄새이다. 어떤 것이 맛인가. 단맛ㆍ신맛ㆍ짠맛ㆍ매운맛ㆍ쓴맛ㆍ싱거운 맛 등이다.
017_0637_b_01L어떤 것이 촉의 일부분인가. 몸의 경계로서 네 가지 원소를 제외한 그 밖의 소조촉(所造觸)인 미끄러운 성질과 깔깔한 성질과 무거운 성질과 가벼운 성질과 차가움과 굶주림과 목마름 등이다. 어떤 것이 ‘무표색 등’인가. 유표업(有表業) 및 삼마지(三摩地)에서 생겨난 색 등의 무견무대(無見無對)2)를 말한다. 어떤 것이 수온인가. 세 가지의 영납(領納: 받아들이어 감각하는 것)을 말하니, 첫째 괴로움이고, 둘째 즐거움이고, 셋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다. 즐거움이란 사라질 적에 화합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로움이란 생겨날 적에 분리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이란 이 두 가지 욕망이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상온인가. 경계에 대해 갖가지 상(相)을 취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행온인가. 수온과 상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심소법[心法] 및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이다. 어떤 것이 나머지 모든 심소법인가. 마음과 상응하는 저 모든 법을 말한다. ‘저 모든 법’은 또 어떠한 것인가.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ㆍ상(想)ㆍ사(思)ㆍ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삼마디[三摩地]ㆍ혜(慧)ㆍ신(信)ㆍ참(慚)ㆍ괴(愧)ㆍ무탐(無貪)선근ㆍ무진(無瞋)선근ㆍ무치(無癡)선근ㆍ정진(精進)ㆍ경안(輕安)ㆍ불방일(不放逸)ㆍ사(捨)ㆍ불해(不害)ㆍ탐(貪)ㆍ진(瞋)ㆍ만(慢)ㆍ무명(無明)ㆍ견(見)ㆍ의(疑)ㆍ분(忿)ㆍ한(恨)ㆍ부(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광(誑)ㆍ첨(諂)ㆍ교(憍)ㆍ해(害)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혼침(惛沈)ㆍ도거(掉舉)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망념(忘念)ㆍ산란(散亂)ㆍ부정지(不正知)ㆍ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이다.
017_0637_c_01L어떤 것이 촉(觸)인가.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분별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작의(作意)인가. 마음이 잘 발오(發悟)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사(思)인가.공덕과 과실과 두 가지가 아닌 것에 대해 마음을 조작하게 하는 의업(意業)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욕(欲)인가. 애락 할 만한 일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승해(勝解)인가. 결정할 일에 대해 분명히 아는 바대로 인가(印可)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염(念)인가. 관습적인 일에 대해 마음이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삼마지인가. 관찰해야 할 일에 대해 마음을 경계에 전일하게 만들어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혜(慧)인가. 저것에 대해 (자상과 공상 등의) 법을 간택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니, 혹 이치에 맞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이치에 맞지 않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두 가지가 아니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어떤 것이 신(信)인가. 업(業)과 과(果), 모든 진리[諦]와 보배[寶] 등에 대해 지극히 바르게 부합하여 마음이 청정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참(慚)인가. 자신의 증상(增上)함에 있어서나 또는 법의 증상함에 있어서 죄짓는 것을 부끄럽게 여김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괴(愧)인가. 세간의 증상함에 있어서 죄 짓는 것을 부끄럽게 여김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무탐(無貪)인가. 이는 탐욕을 대치(對治)하는 것이니, 그것을 깊이 싫어하고 근심으로 여겨 집착하지 않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무진(無瞋)인가. 이는 진심(瞋心)을 대치하는 것이니, 자애로운 마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무치(無癡)인가. 이는 우치를 대치하는 것이니, 진실대로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정진(精進)인가. 이는 게으름을 대치하는 것이니, 마음이 선품(善品)에 대해 용맹스럽고 힘찬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경안(輕安)인가. 이는 추중(麤重)의 번뇌를 대치하는 것이니, 몸과 마음이 순조롭고 화창하여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017_0638_a_01L어떤 것이 불방일(不放逸)인가. 이는 방일을 대치하는 것이니, 곧 무탐에서 정진에 이르기 까지 여기에 의지하기 때문에 선하지 않은 법을 버리고 곧 방일을 대치하는 선한 법을 닦는 것이다. 어떤 것이 사(捨)인가. 무탐에서 정진에 이르기 까지 여기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마음의 평등한 성품과 마음의 정직한 성품과 마음의 발오(發悟) 없는 성품을 얻게 되고, 또 이로 말미암아 이미 제거한 염오법(染汚法)에서오염 없이 안주하게 된다. 어떤 것이 불해(不害)인가. 이는 해(害)를 대치하는 것이니, 연민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탐(貪)인가. 오취온(五取蘊)에 대해 애착하고 탐착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瞋)인가. 이를테면 유정(有情)들에게 손해 끼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만(慢)인가. 이른바 일곱 가지 만이 있다. 첫째는 만(慢)이고, 둘째는 과만(過慢)이고, 셋째는 만과만(慢過慢)이고, 넷째는 아만(我慢)이고, 다섯째는 증상만(增上慢)이고, 여섯째는 비만(卑慢)이고, 일곱째는 사만(邪慢)이다. 어떤 것이 만인가. 열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수승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과만인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수승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수승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만과만인가. 수승한 이에 대해 자기가 보다 더 수승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아만인가. 오취온에 대해 따라서 관찰하여 나라고 여기거나, 혹은 내 것이라고 여겨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증상만인가. 증득해야 할 훌륭하고 수승한 법을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도 내가 이미 얻었다고 여겨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비만인가. 월등히 수승한 이에 대해 자기가 그보다 조금 못하다고 계교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사만인가. 실지 공덕이 없으면서 자기가 공덕이 있는 것으로 여겨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017_0638_b_01L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업과 과보와 진리와 보배에 대해 지혜가 없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에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구생(俱生)으로 일어난 것과 분별(分別)로 일어난 것이다. 또 욕계에 매인 탐과 진, 그리고 욕계에 매인 무명을 세 가지 불선근(不善根)이라고 하니, 탐(貪)불선근과 진(瞋)불선근과 치(癡)불선근을 말한다. 어떤 것이 견(見)인가. 이른바 다섯 가지 견이 있으니, 첫째 살가야견(薩迦耶見)이고, 둘째 변집견(邊執見)이고, 셋째 사견(邪見)이고, 넷째 견취견(見取見)이고, 다섯째 계금취견(戒禁取見)이다. 어떤 것이 살가야견인가.오취온을 따라 관찰하여 아로 여기거나 혹은 아소로 여기는 것이니, 염오의 지혜를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변집견인가. 저 살가야견의 증상의 힘으로 말미암아 (취해진 것을) 따라 관찰하여 영원하다거나 혹은 단멸되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니, 염오의 지혜를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을 사견이라 하는가. 혹 인(因)을 비방하기도 하고, 혹 과(果)를 비방하기도 하고, 혹 작용(作用)을 비방하기도 하고, 혹 선한 일을 비방하기도 하는 것이니, 염오의 지혜를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견취견인가. 앞의 세 가지 견 및 그것이 의지하는 모든 온을 따라 관찰하여 가장 훌륭하고 뛰어나고 지극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니, 염오의 지혜를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계금취견인가. 계율[戒]과 금제[禁] 및 그것이 의지하는 모든 온을 따라 관찰하여 청정하고 해탈하고 출리(出離)의 것이라 여기는 것이니, 염오의 지혜를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의(疑)인가. 진리에 대해 주저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여러 번뇌 가운데 뒤의 세 가지 견과 의혹은 분별로 일어남[分別起]이고, 나머지는 선천적으로 일어남[俱生起]과 분별로 일어남에 통한다. 어떤 것이 분(忿)인가. 현전에 요익(饒益)되지 않는 일을 만날 적에 마음이 손실되고 괴로워짐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한(恨)인가. 원한을 맺어 버리지 못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부(覆)인가. 스스로의 죄를 숨겨 감추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뇌(惱)인가. 포악한 말을 내뱉어 (타인을) 능멸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질(嫉)인가. 남의 잘되는 일에 대해 마음으로 질투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간(慳)인가. 보시(布施)와 상위하는 것으로, 마음이 인색한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광(誑)인가. 남을 속이기 위해 거짓으로 진실하지 않는 일을 나타내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첨(諂)인가. 자기의 허물을 덮어 감추려고 방편을 꾸미는 왜곡된 마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교(憍)인가. 자신의 왕성한 일에 염착하여 거만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믿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3) 어떤 것이 해(害)인가. 여러 유정들을 손상시키고 괴롭히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017_0638_c_01L어떤 것이 무참(無慚)인가.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가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어떤 것이 무괴(無愧)인가. 지은 죄에 대해 남에게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혼침(惛沈)인가. 마음이 순조롭고 화창하지 못하여 감당할 능력이 없어 무지몽매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도거(掉擧)인가. 마음이 고요하지 못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불신(不信)인가. 이는 믿음[信]으로 대치(對治)되는 것이니, 업과 과보 등을 바르게 믿고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청정하지 않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해태(懈怠)인가. 이는 정진으로 대치되는 것이니, 여러 선품에 대해 마음이 용맹스럽지 않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방일(放逸)인가. 이는 곧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고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모든 번뇌를 방지하지 못하고, 모든 선품을 능히 닦지 못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실념(失念)인가. 염오(染汚)된 생각으로 인해 여러 선한 법을 분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산란(散亂)인가.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마음을 분리시켜 유전하고 방탕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부정지(不正知)인가. 몸과 업과 뜻이 현전에 행해지는 가운데 바르게 의지하여 머물지 못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악작(惡作)인가. 마음이 변하여 후회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수면(隨眠)인가. 마음이 자재하게 움직이지 못하여 지극히 어둡고 단순한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심(尋)인가. 능히 심구(尋求)하는 것이니, 의언(意言)의 분별과 사혜(思慧)의 차별을 통해 마음으로 하여금 거칠게 분별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사(伺)인가. 능히 사찰(伺察)하는 것이니, 의언의 분별과 사혜의 차별을 통해 마음으로 하여금 세밀하게 분별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이른바 마음이 상응하지 않는 지어감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물질과 마음과 마음 법의 한계와 위치에 의하여 다만 시설할 수 없는 결정적인 다른 성질과 다르지 않는 성질을 가정으로 세움이다. 저것이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를테면 얼음[得]과 생각 없는 선정[無想等至]과 아무것도 없는 선정[滅盡等至]과 생각 없는 하늘[無想所有]과 또는 생명의 뿌리[命根]와 중동분(衆同分)과 나기와 늙음과 머뭄과 그 덧없음과 명신(名身)과 구신(句身)과 문신(文身)과 범부의 성품[異生性] 이러한 등류들이다.
017_0639_a_01L어떤 것을 얻음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획득한다거나 성취한다는 뜻이라, 이것이 또 세 가지이니, 이른바 종자라든가, 자유라든가, 현전(現前)에 응하는 바 그대로인 얻는 것이다. 어떤 것을 생각 없는 선정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이미 변정천(遍淨天)의 탐심은 여의었지만 아직 최상천(最上天)의 탐심을 여의지 못한 것이다. 벗어날 생각에의 뜻 지음을 먼저 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현행(現行)하지 않는 마음과 마음의 법이 없어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아무것도 없는 선정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이미 아무것도 없는 곳의 탐심까지를 여의고서 제1의 존재[有]를 따라 다시 수승한 전진을 구하는 것이다. 지식(止息)할 생각에의 뜻 지음을 먼저 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현행하지 않거나 또는 항상 현행하는 조그마한 마음과 마음의 법도 다 없어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생각 없는 하늘이라 하는가. 이른바 생각 없는 선정의 결과로서 생각 없는 유정의 하늘 가운데 태어나면 항상 현행하지 않는 마음과 마음의 법이 없어지나니 이것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뿌리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중동분 가운데 과거세의 업에 끌리어서 머무를 때가 결정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중동분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중생들의 자기 등류와 서로 비슷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나기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모든 지어감이 본래 없었지만 지금 있게 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늙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곧 이러한 모든 지어감이 서로 계속하여 변하고 달라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머묾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곧 이러한 모든 지어감이 서로 계속하여 수시로 유전해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017_0639_b_01L덧없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곧 이러한 모든 지어감이 서로 계속하여 없어져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명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법의 제 성품[自性]에 대해 말을 더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구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법의 차별에 대해 말을 더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문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문자로써 그 성품이 되는 것이라. 능히 앞의 두 가지를 표창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하나니, 명신ㆍ구신의 의지가 되고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도한 자신(字身)이라고도 하나니, 차별문(差別門)의 변해 바꿔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부의 성품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성인들의 법을 얻지 못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등류로써 지어감의 쌓임을 이미 설하였다.
다음, 어떤 것을 의식의 쌓임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반연하는바 경계를 분명히 분별하는 것으로써 그 성품이 됨이다. 한편 이것을 마음이라고도 하고 뜻이라고도 하나니, 마음으로 채집(採集)하기 때문이고, 뜻으로 섭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수승한 마음이란, 이른바 아뢰야식(阿賴耶識)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 아뢰야식 가운데 모든 지어감의 종자를 다 채집하기 때문이다. 또 이 지어감의 반연을 분명히 분별할 수 없는 것은 앞뒤로 동일한 종류가 서로 계속하여 유전하기 때문이다. 또 이식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없는 선정[滅盡等至]과 생각 없는 선정[無想等至]과 생각 없는 하늘[無想所]로부터 일어나는 그 분명히 분별된 경계를 이르되, 의식의 도로 나는 것이라고 하나니라. 이른바 반연하는 그 반연의 차별을 기다려 유전하기 때문이고 자주자주 간단하다가도 다시 도로 유전하기 때문이며, 또 생사로 하여금 그 유전을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아뢰야식이란, 이를테면 모든 종자를 거둬 간직하기 때문이고, 또 능히 내라는 교만[我慢]의 모양을 거둬 간직하기 때문이다. 또 몸은 반연하여 경계를 삼기 때문이니 곧 이것을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 하나니, 능히 몸을 잡아 간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수승한 뜻이란, 이른바 아뢰야식을 반연하여 경계를 삼음이니, 항상 나라는 어리석음[我癡]과 나라는 소견[我見]과 나라는 교만[我慢]과 나라는 애착[我愛] 등 상응하는 의식과 더불어 앞뒤로 동일한 종류가 서로 계속하여 따라 유전하는 것이다. 다만 아라한의 과위[阿羅漢果]와 성인의 도와 아무것도 없는 선정 등 현전의 지위를 제외하고서 말이다.
【답】쌓아 모은다는 뜻에서 온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세간에 서로 계속되는 품류(品類)의 그 갈래와 처소와 차별된 물질 등을 통틀어 섭수하기 때문이다.
017_0639_b_19L 答:“以積聚義說名爲薀。謂世相續品類趣處差別色等摠略攝故。”
017_0639_c_01L다시 십이처(十二處)가 있으니, 이를테면 눈의 대경이고 빛의 대경인 것과 귀의 대경이고 소리의 대경인 것과 코의 대경이고 냄새의 대경인 것과 혀의 대경이고 맛의 대경인 것과 몸의 대경이고 닿음의 대경인 것과 뜻의 대경이고 법의 대경이 그것이다. 눈 등 다섯 가지 대경과 빛ㆍ소리ㆍ냄새ㆍ맛의 대경은 앞서 이미 해석한 그대로이고,닿임의 대경이란, 이른바 네 가지 원소[四大]와 또는 앞에 설한 바 닿는 것의 한 부분이다. 뜻의 대경이란, 바로 이 의식의 쌓임이다. 법의 대경이란, 이른바 느끼고 생각하고 지어가는 쌓임의 표색(表色) 없는 것들과 또는 함이 없는 것이다.
함이 없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허공의 함이 없음과 비택멸(非擇滅)의 함이 없음과 택멸(擇滅)의 함이 없음과 진여의 함이 없음 따위이다. 어떤 것을 허공이라 하는가. 마치 허공이 모든 물질을 다 용납해 받아들이는 것과 같음이다. 어떤 것을 비택멸이라 하는가. 열반과 같고 얽매임을 여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무슨 말인가. 이를 테면 번뇌의 대치(對治)를 여의어 모든 쌓임이 필경 나지 않기 때문이다. 택멸이란 어떤 것인가. 만약에 택멸이라면 이는 얽매임을 여의는 것이다. 이것이 또 무슨 말인가. 이를테면 번뇌를 대치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쌓임이 필경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여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법과 법의 성품은 그 법이 ≺나≻라는 성품이 없는 것이다.
다시 열여덟 가지 경계가 있으니, 이른바 눈의 경계이고, 빛의 경계이고, 눈 알음알이의 경계인 것과 귀의 경계이고, 소리의 경계이고, 귀 알음알이의 경계인 것과, 코의 경계이고, 냄새의 경계이고, 코 알음알이의 경계인 것과, 혀의 경계이고, 맛의 경계이고, 혀 알음알이의 경계인 것과, 몸의 경계이고, 닿임의 경계이고, 몸 알음알이의 경계인 것과, 뜻의 경계이고, 법의 경계이고, 뜻 알음알이의 경계인 것이다.
017_0640_a_01L눈 등 여러 경계와 빛 등 여러 경계는 대경 가운데 설한 바 그대로이고, 여섯 알음알이의 경계란, 이른바 눈 등 여러 감관이 빛 등 여러 경계를 반연하여 요별(了別)하는 것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뜻의 경계란, 이른바 저 알음알이가 간단되거나 소멸되지 않는 것이니, 여섯째의 뜻 알음알이를 나타내 보임과 동시에 널리 열여덟 가지 경계를 성립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물질의 쌓임은 곧 열 가지 대경과 열 가지 경계와 또는 법의 대경과 법의 경계 한 부분이다. 의식의 쌓임은 곧 뜻의 대경과 또는 일곱 가지 마음 경계이다. 나머지 세 가지 쌓임과물질 쌓임의 한 부분과 그 밖의 함이 없는 것은 곧 법의 대경이고 법의 경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열여덟 가지 경계 가운데, 형상 있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열 가지 경계의 한 부분이 곧 물질 쌓임의 제 성품이다. 형상 없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그 나머지 경계이며, 견(見)이 있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하나의 물질 경계이다. 견이 없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그 나머지 경계이며, 상대 있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형상 있는 열 가지 경계이니, 이 대경에 장애가 있는 그것이 바로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상대 없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그 나머지 경계이다. 번뇌가 있는 것에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열다섯 가지 경계와 최후 세 가지 경계의 적은 부분이니, 이 대경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또는 지어 감을 나타내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번뇌가 없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최후 세 가지 경계의 적은 부분이며, 욕심 세계에의 얽매임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일체의 것이며, 형상 세계에의 얽매임이 몇 가지인가 하면, 냄새ㆍ맛ㆍ코ㆍ혀의 알음알이를 제외한 이른바 열 네 가지이다. 무형 세계에의 얽매임이 몇 가지인가 하면, 최후 세 가지이다.
017_0640_b_01L얽매이지 않은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저 번뇌 없는 경계가 바로 그것이다. 쌓임이 해당함이 몇 가지이냐 하면, 함이 없음[無爲]을 제외한 것이며, 잡음의 쌓임[取蘊]에 해당한 것이 몇 가지냐 하면, 샘이 있음[有漏]인 것이다.선한 것이 몇 가지이고 불선한 것이 몇 가지이고 선하지도, 불선하지도 않는 것[無記]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열 가지 경계는 이 세 가지에 공통되는 것이고, 일곱 가지 마음의 경계ㆍ빛ㆍ소리와 법의 경계, 이 여덟 가지는 선하지도 않고 불선하지도 않는 것이다.
또 안의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빛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과 법의 경계를 제외한 그 나머지 열두 가지 경계이고, 바깥의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제외된 여섯 가지가 곧 그것이다. 반연 있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일곱 가지 마음의 경계와 법의 경계 적은 부분과 또는 심소(心所)법이 그것이다. 반연 없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나머지 열 가지 경계와 법의 경계 적은 부분이 그것이다. 분별 있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뜻의 경계와 뜻 알음알이의 경계와 법의 경계 적은 부분이 그것이다. 집착해 느끼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다섯 가지 안의 경계와 또는 빛ㆍ냄새ㆍ맛ㆍ닿임 등 네 가지 경계의 적은 부분이 그것이다. 집착해 느끼지 않는 것이 몇 가지인가 하면, 그 밖의 아홉 가지와 네 가지 경계의 적은 부분이 그것이다. 동분(同分)이 몇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다섯 가지 안의 형상 있는 경계이니, 제 알음알이 따위의 경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저 동분이 몇 가지인가 하면, 곧 저 스스로의 알음알이가 ≺공≻할 적에 자신과 더불어 그 유(類)가 동등하기 때문이다.
1)집수(執受)의 대종이란 감각이 있는 유정물의 지수화풍의 4대종으로 사람의 목소리 등을 가리키고, 비집수의 대종이란 감각이 없는 무정물의 4대종으로 천둥소리 등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의 대종을 모두 원인으로 삼는 사례로는 손으로 북을 칠 때 나는 소리 등을 들 수 있다.
2)색을 유견유대(有見有對), 무견유대(無見有對), 무견무대(無見無對)의 셋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유견유대는 현색(顯色) 등을 가리키고, 무견유대는 안근(眼根) 등을 가리키며, 무견무대는 무표색을 가리킨다. 이 중 무표색은 유표업과 삼매에서 생겨난 선율의(善律儀)와 불선율의(不善律儀) 등의 업을 가리킨다.
3)교(憍)는 자신의 장수(長壽) 등과 같은 유루(有漏)의 일에 대해 염착하여 여러 선업(善業)을 닦으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