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7_0809_a_01L
제바보살파능가경중외도소승사종론(提婆菩薩破楞伽經中外道小乘四宗論)


제바(提婆) 지음
보리류지(菩提流支) 한역
유옥영 번역


【문】 외도가 주장하는 네 가지 비불법설[非佛法]이란 어떤 것인가?
【답】 일체법은 같은 것[一]이다. 일체법은 서로 다른 것[異]이다.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俱].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不俱]는 주장이다.
【문】 일체법은 같은 것이고, 다른 것이고,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 어떤 외도들은 일체법은 같은 것이라고 하고, 어떤 외도들은 일체법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외도들은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하며, 어떤 외도들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한다. 이것은 외도들이 허망한 법에 대하여 각각 집착하여 실제로 그러한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 어떤 외도들이 일체법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가?
【답】 일체법은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외도 승거(僧)1) 논사의 말이다. 일체법은 다르다고 하는 것은 외도 비세사(毘世師)2) 논사의 말이다.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은 외도 니건자(尼犍子)3) 논사의 말이다.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외도 약제자(若提子) 4) 논사의 말이다.
【문】 승거 논사는 왜 일체법은 같다고 말하는가?
【답】 승거 외도는, “나(我)와 앎[覺] 두 가지 법은 같다. 왜냐하면 두 가지 법은 차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문】 왜 두 가지 법은 차별할 수 없는가?
【답】 소나 말과 같이 다른 법은 두 가지의 차이를 볼 수 있고 얻을 수 있어, ‘이것은 소다’, ‘저것은 말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앎을 떠나 나를 얻을 수 없고, 나를 떠나 앎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은 내가 경에서, “나와 앎의 본질[體相]은 불[火]과 뜨거움[熱]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두 가지 법은 차별할 수 없다.
【문】 왜 차별할 수 없는 건가?
【답】 그 법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흰 무명에 대해, ‘이것은 희다’, ‘이것은 무명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두 가지 법의 차별은 흰 무명과 같다. 모든 원인과 결과도 또한 이와 같다.
【문】 비세사 외도는 왜 일체법이 다르다고 하는가?
【답】 다르다고 한 것은 나와 앎이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것[異法]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왜 다른 법이라고 말하는가?
【답】 마치 ‘이것은 희다’, ‘이것은 무명이다’, ‘이것은 천덕(天德)이다’, ‘이것은 천덕의 무명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나’와 ‘앎’이 다른 것도 이와 같아서, ‘이것은 나[我]다’, ‘이것은 앎[智]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문】 어떤 차별이 있기에 그들 법을 같다고 말할 수 없는가?
【답】 예를 들면, 흰 무명에 대해, ‘이것은 희다’, ‘이것은 무명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모든 원인과 결과는 각기 달라서 같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니건자는 왜 일체법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하는가?
【답】 일체법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것은 마치 나와 앎을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음과 같다. 또 다른 뜻으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어떻게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가?
【답】 마치 나와 수명[命]의 작용[用]과 모양(相)이 다르고 방편(方便)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고, 마치 탐ㆍ진ㆍ치 등이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등불[燈]과 밝음[明]을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기 때문에 같다고 할 수 있고, 등불은 다른 것이고 밝음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등불과 밝음, 원인과 결과, 하얀 것과 무명과 같이 일체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한 것이다.
【문】 약제자 외도는 왜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하는가?
【답】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일체법은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의 극단은 과실이 있기 때문이다.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하는 논사들에게는 모두 과실이 있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을 주장하지 않는다.
【문】 어떠한 과실이 있는가?
【답】 만약 흰 것을 떠나 따로 무명포가 있지 않다면 흰 것이 소멸될 때 무명포도 역시 소멸되어야 한다. 만약 흰 것과는 달리 무명포가 있다면, 마땅히 무명포가 있을 때 흰 것이 없고 흰 것이 있을 때 무명포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등의 법을 모두 주장하지 않는다.
【문】 비록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無]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답】 이것은 외도들의 허망분별(虛妄分別)로 사견상(邪見相)이지 지혜상[智相]이 아니며, 모두 불선(不善)에 속한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또 같다[一]는 등의 법은 허망분별이다. 그들 법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법이 같다고 하면 ‘병(甁)’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병이 같다고 하면, 모든 병은 곧 다 같이 똑같은 병이 되기 때문에 역시 다른 법이라고 할 수 없다. 다른 법은 같기 때문에 병과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무명은 같기 때문에 병과 서로 다르다. 무명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법은 다른 법을 여읜다. 다른 법은 같을 수도 없고 다를 수도 없으므로 다른 법은 다른 법으 이룰 수 없고, 다른 법은 다른 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만약 두 가지 법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한다면, 그 두 가지 법은 같다고 하거나, 다르다고 해야 한다. 만약 같다고 하지 않거나 다르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허망분별이다. 만약 그 두 가지가 같다면 그 법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만약 두 가지가 다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과 법은 서로 의지하여 이루어지므로 세속제[世諦]의 허망분별에 의거한 것이다. 제일의제(第一義諦)에는 이러한 외도의 허망분별이라는 희론(戱論)에 의한 과실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네 가지 외도들이 말하는 사견상(邪見相)에 대한 총체적인 대답이다.
이제부터는 네 가지 외도들의 각각의 주장에 대해 대답하겠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 관찰하면 가비라(迦毘羅)5)ㆍ우루거(憂樓佉)6) 등의 외도들이 갖는 허망분별은 의미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일체법은 같다[一]는 말은 맞지 않다. 소멸하면 소멸해야 하고[以滅應滅], 소멸하지 않으면 소멸하지 않아야 하니[不滅不應滅], 함께 소멸하고 함께 소멸하지 않는다.[俱滅俱不滅]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대는 나와 앎에 모양[相]의 차별이 없다고 말하였다. 마치 ‘흰 무명’에서처럼 나는 이것을 파척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말한 것은 모든 경과 논에서 말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가 말하는, ‘모든 법은 차별이 없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손[手]과 손톱[爪]이라는 그들 두 가지 법이 서로 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마치 손톱ㆍ손가락ㆍ손바닥을 손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이 세 가지가 달라서 손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이와 같이 흰 것과 무명포가 같다는 것도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세 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앎이 같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흰 것과 무명포가 같을 수 없다. 마치 손ㆍ손가락ㆍ손바닥의 관계처럼, 만약 이것이 소멸된다면 저것도 반드시 소멸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흰 것이 소멸된다면 저것도 반드시 소멸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약 흰 것이 소멸된다면 무명포도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손이 잘리면 손가락과 손바닥도 잘리는 것과 같다. 흰 것이 소멸되어도 무명포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대의 주장이라면 그것은 맞지 않는다. 만약 무명포가 소멸되지 않으면 흰 것도 역시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마치 손을 잘랐는데도 손가락과 손바닥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손가락을 잘랐는데도 손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대의 주장이 푸른색[靑]ㆍ노란색[黃]ㆍ붉은색[赤] 등이 오직 흰색만을 소멸하고 무명포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어떻게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등의 색깔은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명포가 소멸되지 않는다면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등의 색깔도 역시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문】 내가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 등이 흰색을 가리는 것이지 흰색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어떠한가?
【답】 무명포도 역시 이와 같아서 무명포를 가리는 것이지 무명포를 소멸시키지는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옳지 않다. 무명포를 빨면 다시 흰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명포도 이와 같아서 무명포를 가리는 것은 무명포를 소멸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흰 것이 곧 무명포이고 무명포가 곧 흰 것이다. 만약 무명포가 소멸되면 푸른색ㆍ노란색ㆍ붉은색ㆍ흰색 등의 색깔은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만약 그대의 주장이 흰색의 소멸은 가려지는 것으로 소멸이 아니며, 무명포가 소멸되어도 무명포를 가리는 것으로 흰 것을 소멸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어떤 법은 소멸되고 가려지지만 어떤 법은 소멸되지도 가려지지도 않게 되는데, 어떻게 일체법은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같다고 하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외도인 승거 논사의 ‘일체법은 같다’고 하는 주장에 대한 비판을 마친다.
【문】 가나타(迦那陀)7) 외도 논사는 일체법은 다르다고 말한다. 나와 앎은 다르다. 다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앎이다’라고 하는 것은 마치 흰 무명포에 대해, ‘이것은 흰 것이다’, ‘이것은 무명포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답】 이 주장은 옳지 않다.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들이 이것은 손이고 이것은 손가락과 손바닥이라고 말할 때처럼 그 사람들은 비록 이런 말을 하고는 있지만 다른 것을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앎이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마치 흰 무명포와 같이 세간을 볼 때 두 가지의 차별이 잇기 때문이다. 두 가지 차별이란 첫째는 모양[相]이고, 둘째는 장소[處]이다. 모양의 차별이란 색깔[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은 다르지 않고 모양이 서로 다른 모양을 갖고 지니기 때문이다. 장소의 차별은 곡식, 콩 등이 지닌다. 흰 무명포가 다르지 않으면서 모양의 차별을 갖고 있는 것은 그러한 색깔ㆍ냄새ㆍ맛ㆍ감촉과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네 가지의 과실이 있게 된다. 이는 무슨 뜻인가? 흰 것이 소멸하면 무명포도 역시 소멸된다. 그러한 색깔ㆍ냄새ㆍ맛ㆍ감촉과 같이, 비유하면 불과 화합하여 타는 병은 붉은색이 되었다가 다시 푸른색이 된다. 냄새와 맛도 또한 그러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색깔ㆍ냄새ㆍ맛ㆍ감촉도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그와 같이 흰 것과 무명포는 다를 수 없다. 만약 흰색이 소멸하면 무명포도 소멸되어야 하고 무명포가 소멸하지 않으면 흰색도 소멸되지 않아야 한다.
【문】 이 주장은 옳지 않다. 그것에 의지해 이것이 있는 것이다. 비유하며 벽 그림에서 벽에 의지해 그림이 있는 것과 같다. 벽이 소멸되면 그림도 역시 소멸된다. 그러나 그림이 소멸되어도 벽은 소멸되지 않는다. 내가 말한 흰 것이 소멸되어도 무명포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역시 이것과 같다.
【답】 그대의 이러한 비유는 그 경우가 같지 않다. 벽이 먼저 있었고, 그림은 나중에 그린 것이다. 그러나 흰 무명포의 생김에는 시간적인 전후(前後)가 없으므로 흰 색이 먼저 있고 무명포가 나중에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외도 위세사(衛世師) 논사의 ‘일체법은 다르다’라는 주장에 대한 답변을 마친다.
【문】 니건자(尼犍子) 외도논사는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한다. 가비라(迦毘羅) 등의 논사들에게는 모두 과실이 있다. 일체법은 같다고 하거나, 다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면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고 말한다. 비유하면, 등불과 밝음에서와 같이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으며, 그리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지고, 저것이 없어지면 이것이 없어진다. 마치 등불이 있으면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등불이 있으며, 등불이 없으면 밝음이 없고 밝음이 없으면 등불이 없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은 밝히는 것[能照:등불]과 밝혀지는 것[所照:밝음]이다. 등불이 다른 곳이고 밝음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나와 앎, 흰 것과 무명포 등과 같이 또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비유하면 흰 것은 무명포 가운데 다른 것이어서 ‘이것은 흰 것이다’, ‘이것은 무명포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세간에서 ‘이것은 소다’, ‘이것은 말이다’ 따위로 말하는 것처럼, 흰 무명포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다르다고도 하지 않고, 같다고도 하지 않는다. 만약 같다고 한다면 흰색이 소멸되면 무명포도 소멸되어야 한다. 또 만약 같다고 한다면 붉은 무명포ㆍ검은 무명포 따위를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어떠한가?
【답】 이 주장은 맞지 않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승거(僧佉)ㆍ비세사(毘世師) 논사들의 과실과 다름이 없다. 승거 논사는 무슨 뜻에서 같다고 주장하였으며, 비세사 논사는 어떤 뜻에서 다르다고 주장하였는가? 이들이 주장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등불과 밝음이 같다는 것은 등불이 곧 밝음이요, 밝음이 곧 등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법수[數]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뿐이지 의미가 다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등불이 밝음이어야 하고, 밝음도 역시 등불이어야 한다. 만약 이들 두 가지 법이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서로 다른 부분[處]이 있을 수 있는가? 마치 손과 손가락과 손바닥에 차별이 없는 것과 같다. 발과 손에는 차별이 있으며, 손과 손가락과 손바닥에는 차별이 없다. 만약 모두 같다면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외도 니건자 논사의 ‘일체법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을 마친다.
【문】 약제자(若提子) 논사는 승거 등의 논사들이 ‘일체법은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는 주장은 모두 과실이 있다. 나 약제자 논사는, ‘일체법은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논(論) 속에서 말했듯이 나는 그러한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오직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만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승거 논사들과 같은 과실이 없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주장은 어떠한가?
【답】 그 주장은 옳지 않다.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할 수 없다는 것은 세속제에는 이와 같은 법이 있으나 제일의제에는 이와 같은 모습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말한 주장이 성립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이 없으면 곧 이것이 없고, 그것의 실체[體]가 없으면 이것의 실체 역시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것이 될 수 없고, 저것은 이것이 될 수 없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저것이 아니고, 저것도 역시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아니다. 흰색은 무명포가 아니고, 무명포는 흰색이 아니다. 이것이 소멸한다고 해서 저것이 소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다[一]고 한다면 흰 것이 무명포이고, 무명포가 곧 흰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멸하는 것을 소멸하고, 소멸하지 않는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왜 허망분별이라고 하는가? 그들 법이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한다면 무명포는 무명포가 아닐 것이기도 하고, 무명포가 아닌 것도 아니어야 한다. 흰 것도 역시 흰 것이 아니기도 하고, 흰 것이 아닌 것도 아니어야 한다. 무명포는 무명포이고, 흰 것은 곧 흰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포는 무명포가 아니고, 흰 것은 흰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흰 것이 아닌 것은 흰 것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같다, 다르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모두 허망분별이니 오직 말만 있고 참다운 의미는 없다. 이와 같이 나는 원인과 결과 등의 이치를 이해한다. 이것으로 외도 약제자 논사의 ‘일체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는 주장에 대한 답변을 마친다.
017_0809_a_01L提婆菩薩破楞伽經中外道小乘四宗論提婆菩薩造後魏北印度三藏菩提流支譯問曰外道所立四宗法非佛法者何者是答曰謂一異俱不俱 問曰云何言一異俱不俱答曰有諸外道言一切法一有諸外道言一切法異有諸外道言一切法俱有諸外道言切法不俱是諸外道於虛妄法中各執著以爲實有物故 問曰何等外道說一切法一答曰言一切法一者外道僧佉論師說言一切法異者道毘世師論師說言一切法俱者外道尼犍子論師說言一切法不俱者外道若提子論師說 問曰云何僧佉人說一切法一答曰僧佉外道言我覺二法是一何以故二相差別不可得故 問曰云何二相差別不可得答曰如牛馬異法二相差別可見可取言此是牛此是馬而我離覺我不可得離我覺不可得如我經中說我覺體相如火與熱二法差別不可得 問曰云何差別不可得答曰彼法不可說異故譬如白疊不可說言此是白此是疊二法差別如白疊一切法因果亦如是 問曰云何毘世師外道說一切法異答曰所言異我與覺異何以故以說異法問曰云何名說異法答曰如說此是此是疊此是天德此是天德疊與覺異亦如是此是我此是智故問曰有何差別彼法不可說一答曰譬如白疊此是白此是疊如是一切因果各異不可說一故 問曰云何尼乾子說一切法俱答曰言一切法俱者如我與覺不可說一不可說異復有異義可說一可說異故 問曰云何不一不異亦一亦異答曰如我與命用相有異方便異故言如貪癡等得言有異譬如燈明得說言一得說言異以有此有彼無此無彼得言一燈異處明異處故得言異如燈明因果白疊一切法亦如是亦得說一亦得說異故言俱也 問曰云何若提子外道說一切法不俱答曰俱者謂一切法不可說一不可說異以二邊見過故以說一異俱論師等皆有過失故智者不立如是三法問曰云何過失答曰若離白別無疊者白滅疊亦應滅若異白更有疊者應有疊非白有白非疊是故一異俱等法我俱不立雖然一異俱等一切法不可得言無答曰此諸外道虛妄分是邪見相非是智相皆是不善義云何又一等法虛妄分別以不得卽彼法彼法一不得言缾缾一以缾卽是缾故亦不得異法異法一以不得言缾共疊一以缾相異疊相異以異法離異法異法不得一不得異以異法不成異法以異法不得言異若二法說一說異彼二法應說一應說異若不說一不說異者此是虛妄分別若彼二法是一者不得言彼法是異若無二者云何言一以彼法相待成故依世諦虛妄分別第一義諦中無彼外道虛妄分別戲論過故此是摠答四種外道邪見之相自此已下別答四義如是一一觀察迦毘羅憂樓佉等外道虛妄分別義不成此義云何言一切法一者此義不以滅應滅不滅不應滅俱滅俱不滅此義云何汝向說我與覺相差別不可得如白疊我破此義何以故此義不與諸經論相應故汝說諸法差別不可得者此義不然如手爪彼法二相差別不可得故此明何義如爪指掌名之爲手若異此法手不可如是白疊一不可得何以故無異法故我覺一不可得如是白疊一不可得如手與指掌若此滅者彼亦應此義云何若白滅者疊應滅故截手卽截指掌汝意若謂白滅疊不滅者此義不然若疊不滅白亦不應如截於手指掌應在如截指掌手亦應在故汝意若謂靑赤等唯滅白色不滅疊者云何言一若不爾者靑黃赤等色不應滅不爾疊不滅者黃白等色亦不應滅 問曰我靑黃赤等覆白色而不滅白此義云何答曰疊亦如是覆疊而不滅疊又此義不然洗疊已還見白色故疊亦如是覆疊不滅疊是故白卽是疊疊卽是白若疊滅者白等色云何若汝意謂白滅覆非滅疊應滅覆疊不應滅白若爾有法滅覆有法不滅不覆云何言一是故一義不成答外道僧佉論師一切法一竟問曰迦那陁外道論師言一切法異我與覺異以說異法故此是我是覺如白疊此是白此是疊故答曰此義不然以無譬喩故如人說言此是手此是指掌彼人雖說此語不能說異法是故不得言我覺異如白疊以見世閒有二種差別故一者相二者處相差別者味觸不異相異相故處差別者如穀豆等有白疊不異相有差別如彼色香味若不爾者有四種過此義云何白滅疊亦如彼色譬如火和合燒缾成赤色已又爲靑色香味亦爾若不爾者色香味觸亦不應滅如彼白疊異不可得若白滅者疊亦應滅疊不滅者白亦不應滅 問曰此義不然依彼法有此法譬如畫壁依壁有畫壁滅畫亦滅畫滅壁不滅我白滅疊不滅義亦如是答曰汝此譬喩事不相似壁是先有畫是後作而彼白疊無前後不可得言此白先有疊是後作已答外道衛世師論師一切法異義竟 問曰尼揵子外道論師言一切法俱迦毘羅等論師皆有過失以說一異故是故我說俱而不俱如燈明有此有彼有彼有此無此無無彼無此如有燈有明有明有燈無燈無明無明無燈異者能照所照以燈異處明異處是故說異如我覺白疊等亦得說一亦得說異譬如白於疊中別處不可得言此是白此是如世閒此是牛此是馬等白疊不是故我不說異亦不說一若一者白滅疊應滅又若一者亦不應說赤黑疊等是故我言得說一得說異此義云何答曰此義不然如向說僧佉毘世師等過失與此無異以何等義僧佉一如向說以何等義毘世師異如向說云何向說如向說言燈明一者燈卽是明明卽是燈此唯有別而無別義若爾燈亦應明明亦應若此二法一者云何異處如手與指掌無差別手有差別手指掌無差別若一者云何言異是故不得言一言異此一異義不成已答外道尼犍子論師一切法俱竟 問曰若提子論師言僧佉等論師說一切法一異俱皆有過失我若提子不說一切法一如我論中不許此義唯許不俱是故我無僧佉等過失雖然不得說言無不俱此義云何答曰此義不然以無譬喩故以無譬喩者我說世諦有如是法第一義諦中無如是相是故此成我所說義此明何義以無彼法卽無此法無彼法體亦無此法體以此法不成彼法彼法不成此以此法畢竟非彼法彼法亦畢竟非此法以白非疊以疊非白以滅不應滅以一者卽白是疊疊卽是白爾者滅是滅不滅者不滅若爾云何虛妄分別彼法是一異俱不俱若爾疊亦應非疊非不疊白亦應非白不白以疊卽是疊白卽是白是故疊非疊白非白是故非白不得白如是不俱皆是虛妄分別唯有言說無有實義如是我覺因果等義如是故已答外道若提子論師一切法不俱竟提婆菩薩破楞伽經中外道小乘四宗論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수론파(數論派)인 Sāṃkhya학파를 말한다.
  2. 2)승론파(勝論派)인 Vaiśeṣika학파를 말한다. 위세사(衛世師)라고도 음역(音譯)한다.
  3. 3)범어 Nirgrantha의 음역이며, 계박을 여의었다[離繫]는 의미를 갖는다. 인도의 고대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하나로, 후세에는 자이나(Jaina)교도라 불렸다.
  4. 4)범어로는 Jñātiputra로 표기한다. 갖춘 이름은 니건타약제자(尼乾陀若提子, Nirgranthajñātaputra)이다. 니건자(尼乾子) 외도의 하나, 인도 육사외도의 하나이며 자이나교의 개조이다.
  5. 5)범어로는 Kapila로 표기하며, 수론파(數論派)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6. 6)범어로는 Ulūka로 표기하며, 승론파(勝論派)으 창시자이다.
  7. 7)범어로는 Kaṇāḍa로 표기하는 승론파의 창시자로, 낮에는 산에 숨어서 경서를 읽고, 밤에는 다니면서 설법을 하였기 때문에 올빼미 같다고 하여, 우루거(憂樓佉)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