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19_0603_a_01L불설수경(佛說數經)
019_0603_a_01L佛說數經
서진(西晋) 사문 법거(法炬) 한역
019_0603_a_02L西晉沙門釋法炬譯
이렇게 들었다.
019_0603_a_03L聞如是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 사위성(舍衛城) 동쪽 동산에 있는 녹강당(鹿講堂)에 계셨다.
019_0603_a_04L一時婆伽婆在舍衛城東園中鹿講堂
그 때 수(數) 바라문이 점심 뒤에 이리저리 거닐다가 세존의 처소에 이르러 서로 안부를 주고 받은 뒤 한편에 물러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으니 저의 물음을 허락해 주소서.”
019_0603_a_05L彼時數婆羅門中食後行彷徉而行至世尊所到已共世尊面相慰勞面相慰勞已卻坐一面彼數婆羅門卻坐一面已白世尊曰此瞿我欲有所問聽我所問
“그대의 물음을 듣겠으니 바라문이여, 마음대로 말하라.”
019_0603_a_09L聽汝問羅門隨意所樂
“구담이시여, 이 녹(鹿)강당은 차례로 짓고 차례로 이루어졌습니다. 구담이시여, 이 녹강당은 처음 사다리를 올라가서 이렇게 2층ㆍ3층ㆍ4층을 차례로 올려 만들었습니다.
019_0603_a_10L此瞿曇此鹿講堂次第作次第成瞿曇此鹿講堂初上減如是二三四瞿曇如是此鹿講堂次第得上
구담이시여, 코끼리를 부리는 자는 차례로 가르치고 차례로 배우게 하니, 이른바 손에 갈고리를 쥐고 하는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말을 타는 자도 차례로 가르치고 차례로 배우니, 이른바 굴레를 쓰는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찰리종(刹利種)도 차례로 가르치고 차례로 배우니, 이른바 활과 화살을 쥐는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이 바라문도 차례로 가르치고 차례로 배우니, 이른바 시(詩)와 글을 배우는 것들입니다.
019_0603_a_13L瞿曇此御象者次第敎授次第學謂手執鉤瞿曇此乘馬者第敎授次第學謂已羈靽此瞿曇剎利種次第敎授次第學謂執弓箭瞿曇此婆羅門次第敎授次第學學詩章
구담이시여, 우리들은 수(數)를 배우는데 수로써 생활을 이어갑니다. 수제자(數弟子)에 어린이가 있으면 처음에 하나 둘을 헤아리도록 하고, 둘ㆍ셋 ㆍ열ㆍ백, 혹은 더욱 그 숫자를 불려 나가며 헤아리게 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우리들은 수를 배우되 수에 생명을 두고 차례로 가르치고 차례로 배우니 이른바 수를 배우는 일입니다.
019_0603_a_18L瞿曇我等學數數以存命數弟子謂有小兒被初一二數之三二三若十若百若增多如是瞿曇我等學數數以存命次第敎授次第謂學數
사문 구담이시여, 이 법과 율에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어떤 것을 배워서 알게 됩니까?”
019_0603_a_22L沙門瞿曇於此法律以何敎授何所學而可知
019_0603_b_01L“그대 수목건련(數目健連)이여, 만약 그대가 차례로 가르치고 차례로 배우느냐고 묻는다면 계(戒)를 행하고 학문을 배운다고 말한다. 목건련이여, 만약 그대가 나의 법과 율에서도 차례로 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법과 율에서도 차례로 가르치나니 차례로 계를 행하며 차례로 배운다.
019_0603_b_01L汝數目犍連作是說爲等說不次第敎授次第學行戒敎學此目犍連若作是說爲次第說不於我法律何以故此目犍連於我法律次第有敎授次第行戒次第學
목건련이여, 어떤 이가 비구가 되어 처음 배워 오래지 않아 이 법과 율에 이르렀으나 또한 아직 여래로부터 가르침의 말을 듣지 못하였을 때 이 비구가 몸의 행(行)을 한가지로 청정하게 행하고 입과 뜻도 한가지로 청정하게 행한다.
019_0603_b_06L此目犍連謂彼爲比丘初學不至此法律亦未從如來敎語之比丘身行等淨其行口意等淨其行
목건련이여, 만약 비구가 몸의 행이 한가지로 청정해지고, 입과 뜻도 한가지로 청정해지면 저 여래 위없는 이는 그를 길들여서 이 비구가 안으로 몸[身]과 몸의 상(相)을 관하고 행하여 머물고, 느낌[痛]과 뜻[意]과 법(法)에 이르기까지 법과 법의 상을 서로 관하여 행하고 머물게 한다.
019_0603_b_08L此目犍連若比丘身行等淨其行意等淨其行彼如來無上御之此比當內身身相觀行止至痛意法法相觀行止
목건련이여, 비구가 안으로 몸과 몸의 상을 관하여 행하고 머물고 느낌과 뜻과 법에 이르기까지 법과 법의 상을 관하여 행하고 머문다면 여래 위없는 이는 그를 더 가르쳐서 이 비구로 하여금 5관(官)을 수호하여 스스로 그 뜻을 수호하고 스스로 그 생각을 수호하여 함께 행하고 정진하게 한다.
019_0603_b_12L此目犍連謂比丘內身身相觀行止至痛意法法相觀行止如來無上御之此比丘當守護根門自護其意護意念俱自行精進
그는 눈으로 색(色)을 보되 생각을 느끼지도 않고 다른 생각도 느끼지 않는다. 증상의 인연인 까닭에 눈의 감각기관[眼根]을 수호하여 부끄럽거나 탐내고 근심하는 뜻이 없으며,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지 않고 그는 안근을 지키며 배우는 가운데에 있게 된다. 이렇게 귀ㆍ코ㆍ혀ㆍ몸과 뜻의 감각기관[意根]에서도 그와 같이 하여 뜻으로 법을 알되 생각을 받지 않고 다른 생각도 받지 않으니 더하는 인연인 까닭이다. 이 뜻의 감각기관에 부끄러움ㆍ탐냄ㆍ근심의 생각이 없고 착하지 않는 법이 뜻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며 그 가운데서 스스로 뜻의 감각기관을 지키며 배운다.
019_0603_b_15L彼眼見色當莫受想莫受他想謂增上因緣故護眼根無恥貪憂慼意不在惡不善法彼在中學護於眼根如是耳鼻舌身意根身意知法莫受想莫受他想謂增上因緣故是意根無恥貪憂慼意不善法不在意住彼在中學自護意根
019_0603_c_01L목건련이여, 비구가 모든 감각기관의 문에서 스스로 그 뜻을 지켜서 뜻에 물듦이 없이 뜻을 수호하고 뜻과 생각을 함께 행해 정진하면 그는 눈으로 색(色)을 보아도 또한 생각을 받지 않고 다른 생각도 받지 않으니 더하는 인연인 까닭이다. 안근(眼根)이 구족하여 부끄러움ㆍ탐냄ㆍ근심의 생각이 없고 착하지 않은 법이 뜻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그 가운데에서 스스로 눈의 감각기관을 수호하며, 이렇게 귀ㆍ코ㆍ혀ㆍ몸과 뜻의 감각기관에서도 그와 같이 하여 법을 알되 또한 생각을 받지 않고, 내지 그 가운데에서 스스로 뜻의 감각기관을 지키며 배우면 저 여래는 그를 가르쳐 더 나아가게 한다. 그리하여 더 나아가서 평등하게 행하며 관(觀)한다.
019_0603_b_22L此目犍連若比丘具足諸根門自護其意意無染護意意與念俱等行精進彼眼見色亦不受想受他想謂增上緣故具足眼根無恥貪憂慼意不在惡不善法彼在中學自護眼根如是耳鼻舌身意知法亦不受至彼在中學自護意根彼如來無上御之
그는 관한 뒤에 몸을 굽히거나 펼 때, 승가리와 발우를 지니고 있을 때, 가고 머물고 앉으며 잠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할 때에도 평등하게 행한다.
019_0603_c_06L此比丘過已過當爲等行觀已觀屈申持僧伽梨衣鉢若行若住若坐若眠若覺若說若默當爲等行
목건련이여, 만약 이 비구가 더 나아간 뒤에 평등하게 행하는 경지에 이르면 여래 무상사는 그를 가르쳐서 이 비구로 하여금 침상에 누워도 자기가 누워있음을 알게 한다.
019_0603_c_08L此目犍連若比丘過已過至行於等彼如來無上御之此比丘知牀臥已而受之
그리고 만약 고요한 곳에 있거나 나무 아래 있거나 빈 산골의 굴 안이나 노지에 풀을 깔고 앉거나 숲속이나 무덤 사이와 같은 고요한 곳에서 그는 니사단을 깔고 가부를 맺고 몸을 바로하고 뜻으로 빌되 뜻을 가장 앞에 두는데, 탐심과 질투의 뜻이 없고 성냄이 없이 머물며 남의 재물을 탐하여 다른 이의 물건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청정해져서 탐내는 뜻이 없고 이렇게 하며 성내거나 게으르거나 졸거나 들뜨거나 부끄러움에 대해서도 그러하며, 의심과 탐냄을 버리고 삿된 견해를 버리고 의심을 버리고 모든 유예법(猶豫法)1)을 버려서 의심의 뜻이 청정해진다.
019_0603_c_11L若在靜處若在樹下空靜山閒窟中露坐草蓐林閒塚閒若在靜處依敷尼師檀結加趺坐身意願意最在前除貪嫉意無瞋恚莫於他財發於貪謂他物令我有淨除貪意如是瞋恚懈怠睡眠調戲羞恥除疑貪離邪離疑離諸猶豫法淨於疑意
그는 5개(蓋)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지혜로워지고 음탕한 마음에서 해탈하여 4선(禪)에 머물게 된다.
019_0603_c_18L彼棄五蓋意著結智慧羸於婬解脫至住四禪
이와 같이 목건련이여, 비구는 음욕에서 해탈하며 4선에서 머문다. 이와 같이 목건련이여, 여래는 처음으로 배우는 비구를 위해서 온갖 많은 이익이 생기게 하니, 이른바 학업을 가르치고 수행을 가르치는 일이다.
019_0603_c_19L如是目犍連丘於婬解脫至住四禪如是目犍連如來爲初學比丘多有所益謂敎學敎行
019_0604_a_01L 목건련이여, 그 모든 비구들이 높고 훌륭한 이며, 모든 왕이 아는 바인데 게으름 없이 머무르며 범행(梵行)을 행하는 이라면 여래 무상사는 이들을 가르치니, 이른바 궁극에 모든 번뇌를 전부 없앤 경지에 이르게 한다. 사문 구담의 모든 제자는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배워서 마침내 열반에 이르지만, 목건련이여, 모두가 다 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는 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행하지 않기도 한다.”
019_0603_c_22L謂目犍連彼諸比丘上尊諸王所識無懈怠住行於梵行如來無上御之謂至竟盡有漏盡一切沙門瞿曇弟子如是敎授如是敎學至竟盡近涅槃此目犍連非一向或一不或一向
“구담이여, 어떤 인(因)이 있고 어떤 연(緣)이 있기에 열반이 있고 열반도를 구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사문 구담께서 가르침을 잘 베풀며 머무시는데 무슨 인연으로 어떤 비구는 이렇게 가르침을 배우고 닦아서 마침내 열반에 나아가고, 또 다른 비구는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까?”
019_0604_a_04L此瞿曇有何因有何緣言有涅槃求涅槃道沙門瞿曇住能敎授或一比丘如是敎授如是敎學至竟盡至竟向涅槃或一不如是
“이런 까닭에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노니 그대 마음대로 대답하라. 목건련이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라열기(羅閱祇)로 가는 길을 잘 아는가?”
019_0604_a_07L是故犍連我還問汝隨汝所樂而還報之於目犍連意云何善知退羅閱祇道路不
“구담이시여, 저는 라열기의 길을 잘 압니다.”
唯瞿曇我善知退羅閱祇道路
“만약 어떤 사람이 라열기 왕의 처소에 가고자 하여 그대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하자.
‘목건련 바라문이여, 수(數)를 잘 아는 이여, 라열기의 길을 아신다기에 내 라열기 왕의 처소에 가고자 하여 길을 묻습니다.’
019_0604_a_10L若有人來欲至羅閱祇到王所到汝所而作是言目犍連婆羅門善知數羅閱祇行道路我欲到羅閱祇至王所而問道路
그러면 그대는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은 이 길로 바로 가시오. 바로 가다가 저 마을에 가고 저 마을에서 어느 곳으로 가시오. 이렇게 해서 그대는 차츰 라열기로 나아가다 도착하는 것이오. 또 라열기는 동산이 쾌락하고 숲이 쾌락하고 땅이 쾌락하고 못이 쾌락하고 강물이 시원해 안온하고 쾌락하니,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하오.’
019_0604_a_14L汝當作是言汝當以此道正而去正去已趣彼村趣彼村已至彼處是故汝次第當至羅閱祇於羅閱祇園地快樂林快樂地快樂池快樂河水流冷安隱快樂當知此當見此
‘그가 만약 그대가 가르치는 대로 곧 그 길로 바로 가라는 가르침을 받고서 바로 그곳에 이르렀다가 도리어 딴 길을 잡아서 제 길에서 어긋나게 간다면 그는 라열기의 동산이 쾌락하고 내지 안온하고 쾌락함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할 것이다.
019_0604_a_19L彼當受汝敎等受其敎受敎已以彼道直至彼直至彼已反取邪道背而行彼於羅閱祇園地快樂至安隱快樂彼亦不知彼亦不見
019_0604_b_01L만약 어떤 사람이 왕에게 일이 있어 라열기에 가고자 하여 그대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목건련 수바라문이여, 수를 잘 아는 이여, 내가 라열기에 가고자 지금 당신에게 길을 묻습니다.’
019_0604_a_22L若有人來有王事欲至羅閱祇而到汝所當作是言目犍連婆羅門善知數羅閱祇道路我欲至羅閱祇我今問汝
그러면 그대는 이런 말을 할 것이다.
‘그대는 이 길로 바로 가시오. 바로 가서 저 마을에 이르고 저 마을에서 다시 어떤 마을에 이를 것이오.’
그는 그 말대로 하여 차츰 라열기로 나아가서 라열기의 동산이 쾌락하고 내지 안온하고 쾌락한 것을 알고 보았다고 하자.
019_0604_b_03L汝當作是言汝以此道直而往至直往已至彼村至彼村已至彼處次第到羅閱祇謂彼羅閱祇園地快樂至安隱快樂彼知彼見
목건련이여, 어떤 인(因)이 있고 어떤 연(緣)이 있어 저 라열기가 있고 라열기의 길이 있어 그대가 가르쳐 주는데, 그 처음 사람은 가르침을 얻어도 가르침대로 얻지 못하고 딴 길을 잡아 등지고 가서 라열기의 동산이 쾌락하고 내지 안온하고 쾌락함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그리고 그 두 번째 사람은 가르침대로 그 가르침을 받아 그 길을 취하여 차례로 라열기에 이르러 라열기의 동산이 쾌락하고 내지 안온하고 쾌락함을 곧 알고 보는 것인가?”
019_0604_b_06L此目犍連何因何緣有彼羅閱祇有羅閱祇道汝住敎授彼初人得敎授亦不受敎授而取邪道背而去謂於羅閱祇園地快樂至安隱快樂彼亦不知彼亦不見彼二人如敎授受其敎取其次第到羅閱祇謂於羅閱祇園地快樂至安隱快樂彼便知彼便見
“구담이시여, 어떻습니까. 저 라열기가 있고 라열기의 길이 있어서 내가 일러 주었는데 그 처음 사람은 가르친 대로 가르침을 받지 않고 딴 길을 잡고 갔으므로 라열기 동산이 쾌락하고 내지 안온하고 쾌락함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으며, 그 두 번째 사람은 가르친 대로 그 가르침을 받고 그 길을 취하여 차례대로 라열기에 이르러 라열기의 동산이 쾌락하고 내지 안온하고 쾌락함을 알고 본 것입니다.”
019_0604_b_13L瞿曇我當如何有彼羅閱祇有羅閱祇道路我住敎授彼初來人如所敎不受敎取邪道反而往謂於羅閱祇園地快樂至安隱快樂彼亦不知彼亦不見彼二人如敎授受其敎取其道次第到羅閱祇謂於羅閱祇園地快樂至安隱快樂彼當知彼當
019_0604_c_01L“이와 같이 목건련이여, 나도 또한 어떤가 하면 저 열반이 있고 저 열반의 길이 있어서 내가 가르쳤는데 혹 한 비구는 가르친 대로 가르침과 같이하여 마침내 열반에 이르고, 또 다른 이들은 그러하지 못하니 이와 같은 것이다. 목건련이여, 그 비구는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고 세존의 대중 안에서 가르침과 수기를 받은 뒤 마침내 번뇌가 다 사라진 궁극적인 경지에 이른다.”
019_0604_b_21L如是目犍連我亦當如何有彼涅有涅槃道我住敎授或一比丘是敎授如是敎令至竟盡近涅槃一不如此此目犍連謂彼比丘於中受敎於世尊衆中受敎授所記謂至竟盡有漏盡
“구담이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구담이시여, 이미 알았습니다. 구담이시여, 마치 매우 좋은 땅에 사라(娑羅)숲이 있고 그 사라숲을 지키는 사람이 부지런해서 게으름이 없이 스스로 힘껏 사라나무의 뿌리가 때로 손상될까 지켜 보고 비료를 그 속에 뿌리고 물을 주는데, 만약 모자라는 것은 흙을 채워 주고 주변의 풀을 뽑아 버리며, 또 넝쿨 풀이 감고 올라가면 굽어지고 곧게 자라지 못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넝쿨도 뽑아 줍니다. 그는 또 막 새로 자라나서 긴 것은 수시로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물을 잘 대 줍니다.”
019_0604_c_03L已過瞿曇已過瞿曇瞿曇極好地有娑羅林樹彼守娑羅樹林者勤修無懈彼自以力俱彼娑羅樹根以時穿毀視之以糞投中以水漑之若有不滿以土滿之若邊有草拔已棄之若邊有蔓草弊惡曲戾不直此所防盡拔已棄之謂彼棄新生極長彼初生隨時水治以糞投中以水漑之
“그와 같이 구담이시여, 좋은 땅의 사라나무 숲은 나중에는 매우 무성해 지는 것처럼, 구담이시여, 어떤 사람이 아첨하고 환(幻)을 짓고 믿지 않고 게으르며 뜻이 어지럽고 정(定)을 닦지 않고 나쁜 지혜로써 뜻이 어지럽고 감각기관의 다스려지지 않고 계행(戒行)을 부지런히 닦지 않으며 사문의 행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사문 구담이시여, 함께 자서도 안 되고 이런 사람과 함께 살아서도 안 됩니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범행(梵行)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019_0604_c_11L如是瞿曇好地娑羅樹林於後時極大轉增如是瞿曇彼人諛諂爲幻不信懈怠亂志不定惡智意亂根不定戒行不勤不極分別沙門行沙門瞿曇不共彼宿不共如此人住何以故瞿曇如是彼人爲壞梵行者
구담이시여, 만약 저 사람이 아첨함이 없고 또한 삿된 뜻이 없으며 믿음으로 행하고 정진하며 뜻이 항상 머무르고 정(定)에 머물며, 지혜롭고 계학(戒學)을 공경하고 사문의 행을 잘 분별한다면, 사문 구담이시여, 그는 집착함이 없으므로 이런 사람과 함께 기거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은 사람은 범행을 함에 있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019_0604_c_17L瞿曇謂彼人無有諛諂無有邪意信行精進意常住應於定智慧順敬戒學多分別沙門行沙門瞿曇爲無所著共如此人宿止何以瞿曇如此人者於梵行者爲應法淸淨
019_0605_a_01L 구담이시여, 비유하자면 모든 뿌리향[桹香] 중에는 가라(迦羅)가 으뜸인 것과 같으니, 저 가라는 모든 뿌리향(香) 중에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구담이시여, 비유하자면 마치 모든 사라(娑羅)향 중에서도 붉은 전단(栴檀)이 으뜸인 것과 같으니, 왜냐 하면 구담이시여, 모든 사라향에서도 붉은 전단향이 가장 낫기 때문입니다. 구담이시여, 비유하자면 마치 온갖 물에서 피는 꽃 중에 푸른 우발(優鉢) 꽃이 으뜸인 것과 같으니, 왜냐 하면 구담이시여, 온갖 물에서 피는 꽃 중에 푸른 우발꽃이 가장 낫기 때문입니다.
019_0604_c_22L猶若瞿曇諸有根香迦羅爲最何以故瞿曇彼迦羅諸根香首瞿曇諸有娑羅香赤栴檀是彼之何以故瞿曇諸娑羅香赤栴檀爲首故猶若瞿曇諸水中華靑憂鉢爲何以故瞿曇諸水華靑憂鉢爲首
구담이시여, 비유하자면 마치 모든 육지(陸地)의 꽃 중에서 구모니파리사(拘牟尼婆利師)가 으뜸인 것과 같으니, 왜냐 하면 구담이시여, 모든 육지의 꽃 중에 파리사가 가장 낫기 때문입니다. 구담이시여, 비유하자면 마치 모든 세상의 논(論) 중에서 사문 구담의 논이 으뜸인 것과 같으니, 왜냐 하면 사문 구담의 논은 일체 이학(異學)을 포섭하기 때문입니다.
019_0605_a_05L猶若瞿曇諸陸地華須牟尼婆利師爲首何以故瞿曇諸陸地華婆利師爲首故猶若瞿曇諸世之論沙門瞿曇論爲最何以故沙門瞿曇論攝一切異學故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스스로 법(法)에 귀의하고 또 비구승에게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우바새의 계를 지키고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살생을 하지 않겠습니다.”
019_0605_a_09L是故唯世尊我今自歸法及比丘僧唯世尊我今持優婆從今日始盡命離殺生今自歸
이렇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에 귀의하고 상수(常數) 목건련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019_0605_a_11L如是說常數目犍連婆羅門聞佛所歡喜而樂
佛說數經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유예법((猶豫法)은 의심[疑]을 말한다. 바른 법을 보고도 분명하게 그렇다고 판단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