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실 때였다. 당시 한 범지(梵志)가 기수(祇樹) 안에 큰 논을 가지고 있었는데, 벼가 이미 익어 조만간 수확해야 할 형편이었다. 범지는 새벽에 일어나 논으로 가서 멀리 벼이삭들을 보고 마음에 기쁨이 넘쳤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바람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벼를 보고 있는 것이 너무도 좋아 논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부처님께서 이때 비구들과 함께 걸식하시려 성으로 들어가시다가 멀리서 범지가 이처럼 기쁨에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도 이 범지를 보느냐?” 비구들이 모두 본다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성으로 돌아가셨고, 걸식을 마친 다음 비구들은 저마다 정사(精舍)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 그만 하늘에서 큰 우박이 내려 논의 벼가 모두 죽고 범지의 하나뿐인 외동딸마저 이날 밤 죽고 말았다. 범지는 이 때문에 근심과 번민에 젖어 슬피 통곡하며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다음 날 비구들이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러 성으로 들어갔다가 범지가 이러한 재해를 입고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매우 비통해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사문(沙門)과 범지 및 백성들로서는 누구도 그의 근심을 풀어줄 수 없었다. 비구들은 걸식을 마치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돌아와서 예배를 올리고, 범지의 마음이 이렇게 근심에 잠겨 있음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마침 말이 끝나자 범지가 슬피 울며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와서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곁에 앉았다.
019_1012_c_02L 부처님께서는 범지가 근심하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다섯 가지 피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일이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 일인가? 모든 존재는 사라지기 마련이니 사라지지 않게 하려해도 어찌 할 수 없으며, 없어지기 마련이니 없어지지 않게 하려 해도 어찌 할 수 없으며, 병들게 마련이니 병들지 않게 하려해도 어찌 할 수 없으며, 늙게 마련이니 늙지 않게 하려해도 어찌 할 수 없으며, 죽기 마련이니 죽지 않게 하려해도 어찌 할 수 없는 법이다.
보통 사람들은 도가 없고 지혜가 없는 탓에 사라져가고, 없어져버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보면 곧 근심과 슬픔을 일으켜 넙적다리를 치고 애를 태우며 자신의 몸을 손상시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째서인가? 진리가 이러함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지여, 내가 들은 바로는 진리를 얻은 이는 사라져가고, 없어져버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보아도 근심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이미 진리가 이러함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유만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존재가 모두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날 때부터 필연적으로 사라져가게 되어 있는데, 나만 어찌 유독 예외일 수 있겠는가?” 지혜롭게 생각하며 자세히 헤아려 보자. 나의 소유가 지금 이미 사라졌다고 해서 설사 근심에 잠긴 채 음식을 먹지 않아 파리하게 여위고 얼굴이 수척해진다고 하자.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기뻐하고, 나와 친한 사람들은 근심하게 만들 뿐, 아무리 슬퍼하며 없어진 가산(家産)과 딸에 미련을 두더라도 다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와 같이 살핀다면 사라져가고, 없어져버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끝내 다시는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근심에 잠겨 슬피 울지 말지니 이미 잃은 것을 찾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슬퍼해도 소용이 없나니 나의 원수들만 좋아라 할 뿐이네.
019_1012_c_18L不以憂愁悲聲 多少得前所亡?
痛憂亦無所益 怨家意快生喜。
진실로 지혜롭게 살펴볼 수 있는 이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근심치 않나니 원수들이 기뻐 하기는 커녕 번민에 잠겨 환희에 찬 나의 얼굴을 보게 된다네.
019_1012_c_20L至誠有慧諦者 不憂老病死亡
欲快者反生惱 見其華色悅好。
날아다니는 음향도 무상엔 못 미치는데 진귀한 보배로 죽지 않기를 구하네. 덧없음을 알게 되면 다시는 근심하지도, 추구하지도 않으리니 정행(正行)을 생각함이 세간의 보배보다 낫네.
019_1012_c_22L飛嚮不及無常 珍寶求解不死
知去不復憂追 念行致勝世寶。
019_1013_a_02L추구해도 소용 없음을 진실로 알아라. 세상 사람, 나와 그대 모두 마찬가지
근심을 멀리하고 정행을 생각할지니 근심한들 이 세상에 무슨 이익 있으리.
019_1012_c_24L諦知是不可追 世人我卿亦然
遠憂愁念正行 是世憂當何益?
부처님께서 다시 범지를 위해 바른 법을 자세히 말씀하시고는 이어 보시와 지계(持戒)를 말씀하시고, 천상에 태어나는 길을 보여주어 선행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범지의 악업(惡業)은 본래 그다지 견고한 것이 아니었다. 부처님께서는 범지의 마음이 누그러져 정도(正道)로 향하여 문득 사성제(四聖諦)를 보게 된 것을 아셨다. 범지는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어 마치 깨끗한 명주천에 물감을 들이면 곧 좋은 빛을 띠듯이 제일구항도(第一溝港道)를 얻었다. 그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배하고 손을 모아 말하였다. “저는 이제서야 마치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보듯 진리를 알았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신명을 다해 부처님께 귀의하고 비구승께 귀의하오니, 저를 청신자(淸信者)로 받아 주신다면 오계(五戒)를 받들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깨끗히 지키고 범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범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주위를 세 번 돌아 예를 올리고 떠났다.
이에 비구들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통쾌하십니다, 범지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시어 이처럼 기뻐하여 웃으면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019_1013_a_12L衆比丘便白佛言:“快哉!解洗梵志意,乃如是至。”便喜笑而去。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금생에만 이 범지의 근심을 풀어준 것이 아니다.” 이어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과거 아주 오랜 옛날, 이 염부리(閻浮利:염부제)에는 다섯 왕이 살고 있었다. 그 중 한 왕은 걸탐(桀貪)이란 이름을 가졌는데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였다. 이에 대신(大臣)과 백성들이 모두 왕이 하는 짓을 근심한 나머지 함께 모여 집집마다 병사를 내기로 모의하였다. 그리하여 병사가 모집되자 왕 앞에 이르러 함께 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 자신이 한 일이 바르지 못하고 탐욕을 부려 온 백성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정녕 스스로 아십니까? 급히 이 나라를 떠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시해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왕은 말을 듣고 크게 놀라고 두려워 전율하여 의복과 모발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이리하여 왕은 수레를 타고 나라를 떠나 고생스럽게 풀을 엮어 방석 따위를 만들어 팔아 근근히 생계를 꾸려갔다. 한편 대신과 백성들은 왕의 아우를 새왕으로 삼았는데, 새왕은 정치를 잘하여 백성들에게 억울한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019_1013_b_02L옛왕 걸탐은 자기 아우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기뻐하며 생각했다. ‘내가 아우에게 청하면 넉넉히 생활할 수 있으리라.’ 걸탐은 편지를 보내 생활할 수 있도록 고을 하나를 달라고 청하자, 새왕이 그의 곤궁한 형편을 불쌍히 여기고는 즉시 주었다. 걸탐은 이번에는 고을을 잘 다스리고 다시 두 고을을 달라고 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네 다섯 고을에서 열 고을, 스물ㆍ서른ㆍ사십ㆍ오십 고을에서 백 고을, 이백 고을에서 오백 고을에 이르고, 다시 나라의 반에 해당하는 고을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왕은 즉시 주었고 걸탐은 나라를 잘 다스렸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자 걸탐은 곧 욕심이 생겨 나라의 반에 해당하는 자신의 영토에서 병력을 동원하여 아우의 나라를 공격하여 이기고 옛나라를 되찾았다. 그러자 다시 욕심이 생겨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찌 일국(一國)의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 두 나라, 세 나라, 네 나라를 치지 않으리요.’ 걸탐은 곧 이웃 나라들을 공격하여 모두 승리를 거두고 다시 빼앗은 네 나라를 잘 다스리고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내가 어찌 네 나라의 병력을 동원하여 다섯째 나라를 치지 않으리요.’ 걸탐은 곧 공격하여 또 승리를 거두었다. 이리하여 당시 사해(四海) 안의 모든 땅이 걸탐 왕의 영토가 되자, 걸탐은 호를 고쳐 스스로 대승왕(大勝王)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왕이 만족할 줄 아는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제석천(帝釋天)이 구이(驅夷)라는 성(姓)을 가진 어린 범지로 변하였다. 범지로 변한 제석천은 왕을 만나기 위하여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금으로 된 지팡이를 짚고 금으로 된 병을 들고 궁궐 앞에 서 있었다. 그러자 문지기가 왕에게 말씀드렸다. “밖에 구이라는 성을 가진 범지가 왕을 뵙고자 합니다.” 이에 왕이 흔쾌히 허락하고 불러들이라고 하였다. 제석천은 궁궐로 들어와 서로 인사를 마친 다음 뒤로 물러나 왕에게 말하였다. “제가 마침 바닷가로부터 오다가 한 대국(大國)을 보았는데, 풍요롭고 백성이 많으며 진귀한 보배가 많아 정벌할 만했습니다.” 왕은 지금껏 만족하고 있다가 다시 이 나라를 얻고 싶은 욕심이 생겨 “이 나라가 몹시 탐이 난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제석천이 말했다. “함선(艦船)을 더 준비하고 군사를 일으켜 기다리십시오. 칠 일 후에 왕을 모시고 그 나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는 제석천은 사라져버렸다.
019_1013_c_02L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되어 왕은 크게 군사를 일으키고 함선을 많이 준비했으나, 온다던 범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왕은 번민에 잠겨 슬퍼하면서 넙적다리를 치며 말하였다. “원통하다. 나는 이제 이 대국(大國)을 잃고 말았구나. 구이를 만났을 때 꼭 붙잡아 둘 것을 기한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다니.” 이때 온 나라의 백성들이 왕을 향해 둘러 앉아 있었는데, 왕은 울고 또 울고 번민하고 또 번민하며 근심에 잠겨 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왕은 한 게송을 듣고 번쩍 정신이 들어서 말하였다.
욕심을 채울 생각을 내면 낼수록 또 다시 다른 욕심이 생기게 마련 날마다 성대하게 기쁜 일을 행하면 이로 인하여 자재(自在)함을 얻게 되리.
019_1013_c_06L增念隨欲, 已有復願, 日盛爲喜,
從得自在。
왕은 뭇 사람들을 위하여 게송의 뜻을 말해 주고 싶어, 이 게송의 뜻을 풀 수 있는 이가 있으면 일천 냥의 금전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그 자리에는 울다(鬱多)란 이름의 한 소년이 있었다. 울다는 곧 왕에게 말했다. “제가 이 뜻을 풀 수 있습니다. 칠 일의 여유를 주시면 돌아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7일째가 되자 울다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왕이 계신 곳으로 가서 왕의 근심을 풀어드리려 합니다.” “아들아, 가지 말거라. 제왕을 섬기기란 타오르는 불을 섬기기만큼 어렵고 그 가르침은 예리한 칼과도 같아 가까이 할 수 없단다.” “어머님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스스로 왕의 게송의 뜻을 풀 수 있는 힘이 있으니, 후한 사례를 받아 마음껏 즐겁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울다는 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제가 이제 왔으니 게송의 뜻을 대답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서 게송을 읊었다.
동자께서 만약 좋으시다면 존귀한 지위로 세상을 편안케 하소서. 욕심에 대한 설법이 매우 통렬하니 그대의 지혜가 이와 같구려.
019_1014_a_08L童子若善, 以尊依世, 說欲甚痛,
慧計乃爾。
그대가 여덟 수의 게송을 설하셨으니 천 냥의 상금을 드리나이다. 모쪼록 이를 대덕(大德)께 바치노니 뜻을 설명하심에 매우 슬펐습니다.
019_1014_a_10L汝說八偈, 偈上千錢,
願上大德, 說義甚哀。
울다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019_1014_a_11L鬱多以偈報言:
이러한 보배는 필요치 않으니 스스로 자급해 살아가면 그뿐 마음에 욕락을 멀리하고저 끝으로 게송을 설하노니
019_1014_a_12L不用是寶, 取可自給, 最後說偈,
意遠欲樂。
그러나 대왕이여, 저의 모친이 쇠약한 몸의 노인이신지라 모친을 봉양하고픈 마음뿐이니 천 냥의 금전을 저에게 주시어 모친을 봉양할 수 있게 하소서.
019_1014_a_14L家母大王, 身羸老年,
念欲報母, 與金錢千, 令得自供。
대승왕은 곧 금천 천 냥을 울다에게 주어 늙은 모친을 봉양하게 하였다.
019_1014_a_15L大勝王便上金錢一千,使得供養老母。”
이야기를 마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때의 대승왕은 바로 벼를 심었던 범지이고, 동자 울다는 나의 전신이다. 나는 이때도 이 범지의 슬픔과 근심을 풀어주었고, 지금 역시 이 범지의 슬픔과 근심을 모두 끊어 주어 마침내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게 한 것이다.”
욕심 채울 생각을 내면 낼수록 또 다시 다른 욕심이 생기게 마련 날마다 더욱 기쁜 일을 행하면 이로 인하여 자재함을 얻게 되리.
019_1014_a_23L增念隨欲, 已有復願, 日增爲喜,
從得自在。
019_1014_b_02L세상의 욕락을 탐내게 되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
이미 잃은 것을 얻고자 한다면 독화살이 자신의 몸에 꽂힌다네.
019_1014_b_02L有貪世欲, 坐貪癡人,
旣亡欲願, 毒箭著身。
모쪼록 욕심을 멀리 해야 하리니 마치 몸에 뱀의 대가리가 달라붙은듯이 세상의 욕락을 멀리 떠나 마땅히 선정을 행해야 하리.
019_1014_b_03L是欲當遠,
如附蛇頭, 違世所樂, 當定行禪。
밭에 진귀한 보배를 심어 놓고 어리석게 소와 말로 기르듯이 그대가 욕심에 매여 있는 탓에 어리석은 행동이 몸을 침범하네.
019_1014_b_04L田種珍寶、 牛馬養者, 坐女繫欲,
癡行犯身。
약한 이를 이겨 사납고 포악한 짓을 하면 죄를 받고 원한만 깊어져 저승에 가서 고통을 받게 되나니 배가 바닷속에서 부서지듯 하네.
019_1014_b_06L倒羸爲强, 坐服甚怨,
次冥受痛, 舩破海中。
그러므로 말하노니, 마음을 가다듬어 욕심을 멀리하여 범하지 말지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해탈을 구하면 배를 타고서 피안에 이르리.
019_1014_b_07L故說攝意,
遠欲勿犯, 精進求度, 載舩至岸。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환희에 찼다.
019_1014_b_08L佛說是義足經竟,比丘歡喜。
2. 우전왕경(優塡王經)
019_1014_b_09L優塡王經第二
이와 같이 들었다.
019_1014_b_10L聞如是: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한 비구가 구삼국(句參國)의 바위 사이의 토굴에 살았는데 머리카락과 수염과 손톱은 자랄 대로 자라고 몸에는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다. 한 번은 우전왕이 아적산(我迹山)으로 유람을 가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시자(侍者)가 즉시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길과 다리를 고쳐 놓고서는 돌아와 왕에게 말하였다. “길을 고쳐 놓았으니 왕께서 외출하셔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에 왕은 미인과 기생들만 데리고 말을 타고서 아적산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걸어서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미인이 험한 산 속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바위 사이의 토굴 속에서 머리카락과 수염과 손톱은 자랄 대로 자라고 다 떨어진 옷을 걸쳐 마치 귀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비구를 보았다. 미인은 놀라 소리치며 왕을 불렀다. “이곳에 귀신이 있습니다. 이곳에 귀신이 있습니다.” 왕이 멀리서 물었다. “어디냐?” “가까운 바위 사이의 토굴 속에 있습니다.”
019_1014_c_02L왕은 즉시 칼을 뽑아 그곳으로 달려가 미인이 말한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구를 만났다. 왕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석가(釋迦)의 사문(沙門)입니다.” “그대는 아라한[應眞]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선(四禪)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아닙니다.” “삼선(三禪)이나 이선(二禪)의 경지에 이르렀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선(一禪)의 경지에는 이르렀는가?” “그렇습니다. 실로 일선(一禪)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왕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풀리지 않아 사자인 내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음탕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 이 사문은 범속한 사람이어서 참된 수행이 없는데, 어떻게 나의 미인을 보았단 말인가?” 그리고는 시자에게 분부했다. “속히 현악기의 줄을 끊어와 이 자를 묶어라.” 사자는 즉시 줄을 끊으러 갔다. 이때 산신(山神)이 ‘이 비구는 아무 잘못도 없이 이제 원통하게 죽게 되었으니, 내가 보살펴서 이 액운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곧 큰 멧돼지로 변하여 천천히 왕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에 시자가 왕에게 말했다. “멧돼지가 곁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즉시 비구를 버려두고 칼을 뽑아 멧돼지를 뒤쫓아 갔다. 비구는 왕이 멀리 떠나버린 것을 보고 곧 달아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러, 비구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의 전말을 말하였다. 비구들은 즉시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이때 이 근본 인연에 따라 뜻을 변화시켜서 비구들로 하여금 경전의 말을 자세히 알게 하시는 한편 후세 사람들을 위해 뜻을 밝힘으로써 우리 경법(經法)이 길이 머물도록 하셨다.
019_1015_b_02L이때 범지들은 그들의 강당에 모여 앉아 함께 이렇게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본래 국왕과 대신과 백성들과 벼슬아치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았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우리는 팽개쳐 버리고 다시는 등용을 하지 않으며 도리어 사문(沙門) 구담(瞿曇)과 그의 제자들을 섬기고 있다. 이제 우리들은 함께 방법을 강구하여 구담과 그의 제자들을 패배와 절망에 빠뜨리도록 하자.” 그리고 다시 다음과 같이 의논을 모았다. “이제 우리들의 무리 가운데 가장 얼굴이 단정한 여인을 뽑아서, 이 여인을 우리가 함께 죽이고 그 죽은 시체를 기수(祇樹)에 묻어 놓기로 하자. 이렇게 한 다음 사문 구담과 그의 제자들을 비방하여 나쁜 소문이 멀리 퍼지게 되면, 대우하던 이들이 그들을 멀리하여 다시는 공경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담에게서 배우는 이들 모두가 의복과 음식을 얻지 못한 나머지 다 함께 우리들에게 와서 섬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세상의 존경을 받고 구담을 물리쳐 세상에 우리를 이길 상대가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즉시 계획을 실행에 옮겨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好首]에게 말했다. “너는 정녕 우리가 지금 국왕과 대신과 백성과 벼슬아치들에게 버림을 받아 다시는 등용되지도 못하여 도리어 사문 구담이 그들의 스승이 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너는 정녕 이 사실에 분개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로운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이로운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너의 목숨을 버리고 죽는 것일 뿐이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네가 할 수 없다면, 이제부터 다시는 너를 우리들 속에 넣어주지 않겠다.” 여인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괴로워한 나머지 말하였다. “좋습니다. 이는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에 무리들이 장하다고 하고 이 여인에게 지시했다. “이제부터 아침 저녁으로 부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주 기수(祇樹)에서 거닐도록 하라. 그리하여 모든 백성들이 너의 이같은 행동을 보도록 한 다음 우리가 너를 죽여 기수에다 묻고서 구담으로 하여금 비방을 받게 할 것이다.” 여인은 지시를 받고 자주 사문(沙門)들이 사는 곳을 왕래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여인의 이같은 행동을 알도록 하였다. 그러자 범지들은 여인을 죽여 기수에 묻었다.
무리를 지어 왕궁의 문으로 가서 이렇게 원망하였다. “우리들 중 이 여인이 유난히 얼굴이 단정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녀가 있는 곳을 알 수 없습니다.” “여인이 평소 잘 다니던 곳이 어디인가?” 범지들이 함께 대답했다. “늘 사문 구담이 사는 곳을 왕래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희들이 그곳으로 가서 찾아보도록 해라.” 범지들이 왕에게 병사를 청하자, 왕이 즉시 주었다. 이렇게 하여 여인을 찾아 다니다가 기수(祇樹)에 이르러, 땅 속에서 죽은 여인의 시체를 찾아내어 평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범지들은 함께 여인의 시체를 가지고 사위국의 사방을 고을마다 다니면서 원망하는 말을 퍼뜨렸다. “사람들은 사문인 구담 석가를 보고 늘 덕망과 계행(戒行)이 더없이 높고 크다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몰래 여인과 간통하고는 죽여서 땅에 묻었단 말입니까? 이러고서 무슨 법이 있으며, 무슨 덕이 있으며, 무슨 계행이 있겠습니까?”
식사할 때가 되어 비구들이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자, 벼슬아치와 백성들이 멀리서 보고 욕하였다. “이 사문들아, 스스로 법과 덕과 계행을 갖추었다고 말해 놓고서 너희들이 이와 같은 짓을 한단 말이냐? 무슨 선(善)이 있어서 어떻게 또 의복과 음식을 공양 받을 수 있느냐?” 비구들은 이러한 말을 듣고 빈 발우를 들고 성을 나와 손발을 씻고 발우를 갈무리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예배를 올리고 모두 앉지 않고 선 채로 성에서 겪은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
019_1015_c_02L제멋대로 지껄이는 망령된 말일랑 생각조차 말지니 무리지어 싸우다 화살에 맞아 고통을 참는 격일세.
무릇 착한 말이나 악한 말을 들을 적에는 비구들은 참아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라.
019_1015_b_24L無想放意妄語, 衆鬪被箭忍痛,
聞凡放善惡言, 比丘忍無亂意。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러한 비방을 받는 기간은 칠 일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이때 유염(惟閻)이라고 하는 청신녀(淸信女)가 있었다. 그녀는 성 안에서 비구들이 걸식하러 왔다가 모두 빈 발우를 들고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몹시 측은하게 생각한 나머지 급히 기수로 가서 부처님께로 가 얼굴을 발에 대고 예배하고 부처님의 주위를 돌고는 한 쪽에 앉았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경법(經法)을 자세히 말씀하셨다. 유염은 경을 다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컨대 부처님과 비구들께서는 저희 집으로 가서 칠 일 동안 공양을 들도록 하십시오.” 부처님께서 묵묵히 수락하시자, 유염은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서 떠났다. 칠일 째가 되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비구들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사방 마을의 거리를 다니면서 이 게송을 읊도록 해라”라고 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악을 저지르면 그곳에 이르나니 뜻과 행동이 바르지 않기 때문 아귀 지옥은 그 수가 십만이라네.
019_1015_c_19L惡有道致彼, 坐意行不正, 欺咤有十萬。
아난은 즉시 분부를 받고 비구들과 함께 성으로 들어가 사방 마을의 거리를 다니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송을 읊었다. 그러나 사위국의 백성들과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석가는 실로 아무런 악한 행동이 없다. 석가에게 법을 배웠는데 끝내 삿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019_1016_a_02L이때 다른 범지들은 강당에 모여 범행에 가담한 범지들을 성토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대들의 소행은 탄로나고 말았다. 밖에 나도는 소문대로라면 그대들 이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을 죽이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원망한 것이 아닌가?” 대신(大臣)이 이 말을 듣고 곧 궁궐로 들어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즉시 범지들을 불러 물었다. “그대들이 스스로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을 여럿이서 죽였는가?” “사실입니다.” 왕은 노하여 말했다. “그대들에게 중벌을 내리겠다. 어떻게 내 나라 안에서, 스스로 도를 닦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을 살해할 마음을 가졌단 말인가?” 왕은 곁에 있던 신하에게 명하여 범행에 가담한 범지들을 모두 잡아다 사위성 마을마다 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이고 나라 밖으로 내쫓게 했다.
부처님께서 식사 때가 되어 비구들과 함께 발우를 들고 성으로 들어가셨다. 이때 아수리(阿須利)라고 하는 청신사(淸信士)가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 즉시 달려와 예배하고는 소리 높여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사방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을 두고 마음이 매우 슬프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 들어오던 경법(經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나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 이는 전생에 악연(惡緣)이 있었던 것일 뿐이다.”
말을 적게 해도 비방을 받지만 말을 많이 해도 비방을 받으며 충직한 말을 해도 비방을 받나니 세상의 악은 가리지 않고 비방하네.
019_1016_a_15L亦毀於少言, 多言亦得毀, 亦毀於忠言,
世惡無不毀。
과거는 지나가고 미래는 다가오며 현재 역시 실재하는 것은 아닌데 누구건 수명을 다하도록 비방을 받아 밝혀내기 어렵고 공경받기도 어렵네.
019_1016_a_17L過去亦當來, 現在亦無有,
誰盡壽見毀? 盡形尚敬難。
부처님께서는 아수리를 위해 경법을 말씀하시고 수달(須達)의 집으로 가셔서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으셨다. 수달은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손을 모아 말했다. “저희들은 슬픕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부처님께 듣던 경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나는 마치 전쟁에 나간 코끼리마냥 아무리 상처를 입어도 개의치 않는다네. 오직 마음 속으로 참고 또 참을 뿐 세상 사람들은 다들 근심에 잠겨 있네.
019_1016_a_23L我如象行鬪, 被瘡不著想, 念我忍意爾,
世人無喜念。
019_1016_b_02L내 손에 아무런 상처가 없기에 손으로 독물(毒物)을 잡아도 그만
상처가 없으면 독물도 소용 없듯이 선행에는 악한 자들도 어쩔 수 없다네.
019_1016_b_02L我手無瘡瘍, 以手把毒行,
無瘡毒從生, 善行惡不成。
부처님께서는 수달을 위해 경을 말씀해 주신 다음 유염의 집으로 가서 자리에 바른 자세로 앉으셨다. 유염은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손을 모아 말했다. “저희들은 슬픕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부처님께 듣던 경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이때 사위국왕인 파사닉(波私匿)이 시종관을 거느리고 말을 타고 왕의 위의를 갖추고서 성을 나와 기수에 당도하였다. 왕은 부처님을 뵙기 위해 왔으므로 말을 타고 가지 않고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갔다. 왕은 멀리서 부처님을 뵙고는 즉시 일산(日傘)을 치우고 왕관을 벗고 시종들을 물리치고 금으로 된 신발을 벗고 부처님께 다가가 예배를 올리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손을 모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들은 정말 슬픕니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며, 부처님께 듣던 경법을 다시는 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원통하게 악한 누명을 썼다고들 합니다.”
삿된 생각으로 남의 잘못만 말하지만 진리를 알고 보면 선행만을 말한다네. 입이 정직하면 점차 존귀하게 되나니 선악을 버려서 두고 근심하지 않네.
019_1016_b_20L邪念說彼短, 解意諦說善, 口直次及尊,
善惡捨不憂。
실행으로 어떻게 버려야 하는가. 세상 욕심 다 버려 대자유를 누리네. 지극한 덕을 지니고 흔들리지 않건만 욕심을 제어함에 사람들이 힐란하네.
019_1016_b_22L以行當那捨, 棄世欲自在,
抱至德不亂, 制欲人所詰。
019_1016_c_02L사위국의 백성들은 모두 의아한 마음을 가졌다. ‘부처님과 비구스님들께서 대체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나쁜 소문에 시달리는 액운을 겪는단 말인가?’ 그러나 모두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보니 매우 크고 우뚝하여 마치 뭇 별들 가운데 달이 떠 있는 것과 같기에, 감히 따지고 묻지 못하였다.
만약 계행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묻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해 주었으리. 의심을 두면 벌써 정법의 도가 아니니 나에게 와서 배워 자신을 맑히길 바란다.
019_1016_c_04L如有守戒行人, 問不及先具演,
有疑正非法道, 欲來學且自淨。
단지 세상에 구애되지 않는 것으로 늘 계행을 굳게 지킨다 스스로 말하지만 이 도법(道法)은 총명해야 믿는 법이니 화려한 행실을 드러내지 않고도 세상을 가르치네.
019_1016_c_06L以止不拘是世, 常自說著戒堅,
是道法黠所信, 不著綺行敎世。
법은 숨김도 없고 길이 변치 않는 말이니 나를 비방해도 기쁘지도 두렵지도 않네. 스스로 행실을 봄에 삿됨이 없으니 개의치 않거늘 무엇을 성내고 기뻐하리.
019_1016_c_08L法不匿不朽言, 毀尊我不喜恐,
自見行無邪漏, 不著想何瞋憙?
나의 소유를 점차 버려서 정법을 밝혀 잘 지켜 갈지니 바른 이익을 구하면 반드시 공(空)을 얻나니 공한 법이 본해 공함을 생각한다네.
019_1016_c_10L所我有以轉捨, 鱻明法正著持,
求正利得必空, 以想空法本空。
어디에고 집착이 없고 나의 소유란 없어 삼계 그 어디에도 태어남을 원치 않네. 캄캄한 어리석음을 모두 끊어 버렸거니 어찌 나의 심행(心行)에 처소가 있으리.
019_1016_c_12L不著餘無所有, 行不願三界生,
可瞑冥悉已斷, 云何行有處所?
가진 것은 마땅히 모두 버리고서 어디에고 애착이란 없다고 말하네. 이미 애착이 없고 애착을 떠났나니 수행하여 없애고 모두 버린다네.
019_1016_c_14L所當有悉裂去, 所道說無愛著,
已不著亦可離, 從行拔悉捨去。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다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환희에 찼다.
019_1016_c_16L佛說是義足經竟,比丘歡喜。
4. 마갈범지경(摩竭梵志經)
019_1016_c_17L摩竭梵志經第四
이와 같이 들었다.
019_1016_c_18L聞如是: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때 마갈(摩竭)이라고 하는 한 범지가 강당에서 갑자기 죽었는데, 동학(同學)들이 시신을 평상 위에 올려 놓고 함께 들고 사위국의 사방 거리를 다니면서 소리 높여 말했다. “마갈을 보는 사람은 모두 해탈을 얻나니, 지금 그의 죽은 시체만 보아도 해탈을 얻고 뒤에 그의 이름만 들은 사람도 해탈을 얻게 된다오.”
019_1017_a_02L비구들이 식사 때가 되어 발우를 들고 성으로 들어가 걸식하다가 때마침 범지들이 마갈의 공덕을 이처럼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구들은 걸식을 마치고 발우를 깨끗이 씻은 다음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돌아와서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가서 성에서 본 일의 전말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로 해서 이 경을 말씀하시어, 우리 제자들로 하여금 모두 듣고 이 일의 원인을 알게 하시고, 후세 사람들을 위해 뜻을 밝힘으로써 우리 경법(經法)이 길이 머물도록 하셨다. 이에 『의족경』을 말씀하셨다.
나는 보나니 깨끗하여 병이 없는 이는 진리를 보아 스스로 깨끗이 할 수 있음을 믿네. 이들을 모두 제도될 수 있음을 아나니 나쁜 습관을 끊고 본연의 진리를 증득하네.
019_1017_a_06L我見淨無有病, 信見諦及自淨,
有知是悉可度, 苦斷習證前服。
좋은 사람을 보면 깨끗하다 여기니 지혜로운 수행이 있고 고통을 떠났기 때문 지혜로우면 재앙을 없애고 맑은 길을 보나니 자신의 소견을 끊고 지극히 맑음을 증득하네.
019_1017_a_08L見好人以爲淨, 有慧行及離苦,
黠除兇見淨徑, 斷所見證至淨。
이도(異道)를 따르면 해탈을 얻을 수 없나니 정법을 보고 듣고 계행을 지켜야 해탈을 얻는다네.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죄와 복도 모두 끊어 버리고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네.
019_1017_a_10L從異道無得脫, 見聞持戒行度,
身不污罪亦福, 悉已斷不自譽。
지난 일은 모두 잊고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이러한 수행이 있으면 온 세상을 건지리. 곧바로 나아가 괴로움을 걱정하지 않나니 생각함이 있으면 마음이 곧 묶이게 되네.
019_1017_a_12L悉棄上莫念後, 有是行度四海,
直行去莫念苦, 有所念意便縛。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계행을 지켜 상행(上行)을 실천하고 남의 괴로움을 생각하네. 바른 생각을 잊지 않고 차츰 수행해 나가면 헛된 말을 하지 않고 분명코 지혜가 있네.
019_1017_a_14L常覺意守戒行, 在上行想彼苦,
念本念稍入行, 不矯言審有黠。
일체의 법에 전혀 의심이 없어 지극히 보고 들으며 생각도 하네. 자세히 보고 듣고 힘써 실행해 가는데 뉘라서 이 세상에 육쇠(六衰)가 있다고 했나.
019_1017_a_16L一切法無有疑, 至見聞亦所念,
諦見聞行力根, 誰作世是六衰?
자신도 생각하지 않고 존귀함도 생각하지 않고 수행하여 청정함에 이르는 것조차 바라지 않나니 은혜와 원한 모두 끊고 집착하지 않으며 세상 바램도 모두 끊고 집착하지 않는다네.
019_1017_a_18L不念身不念尊, 亦不願行至淨,
恩怨斷無所著, 斷世願無所著。
가진 것이 없어야 범지라 할 수 있는데 법을 보고 들으면 곧 집착하고 마네. 음란하건 않건 더러운 음란에 집착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깨끗함에 집착하네.
019_1017_a_20L無所有爲梵志, 聞見法便直取,
婬不婬著污婬, 已無是當著淨。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
019_1017_a_22L佛說是義足經竟,比丘悉歡喜。
5. 경면왕경(鏡面王經)
019_1017_a_23L鏡面王經第五
이와 같이 들었다.
019_1017_a_24L聞如是:
019_1017_b_02L부처님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비구들이 식사 때가 되어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려 하다가 스스로 생각했다. ‘지금 성에 들어가면 때가 너무 이르다. 우리들이 어찌 이교도(異敎徒)인 범지의 강당에 갈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비구들은 서로 위로하면서 각자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이때 범지들은 자신들끼리 언쟁이 붙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점차 서로 이렇게 비방하고 원망했다. “우리는 이러한 법을 아는데 너희는 무슨 법을 아느냐? 우리가 아는 법은 도에 합치되지만 너희가 아는 법은 무슨 도에 합치되느냐? 우리의 법은 훌륭히 수행할 수 있지만 너희의 법은 친밀하기 어렵다. 앞의 말을 할 때는 뒤의 말에 집착하고, 뒤의 말을 할 때는 앞의 말을 번복하며, 많은 설법을 하여 참으로 역량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실행에 옮기기 어렵게 한다. 너희에게 뜻을 말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한다. 너희는 분명 법에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 터이니, 너희는 도무지 어떻게 대답하려느냐?” 이렇게 범지들은 설전(舌戰)을 벌여 점차 서로 상대방을 해쳐 하나의 피해를 입으면 셋으로 갚아 주었다.
비구들은 이들이 이렇게 다투는 소리를 듣고 말했다. “이와 같은 행동도 옳지 않다. 그대의 말 또한 도를 안 것이 아니다. 그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라.” 비구들은 사위성(舍衛城)에 이르러 걸식하여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챙긴 다음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와서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 모두 한 쪽에 앉아 성에서 겪은 일을 부처님께 사실대로 모두 말씀드렸다. “이 범지들이 배우는 도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때나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범지들은 이 일생(一生)에 있어서만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랜 과거에 이 염부리(閻浮利)에는 경면(鏡面)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왕은 어느 날 사자(使者)에게 명하여 자기 나라 안에 사는 눈이 없는 장님들을 모두 대궐로 데려 오게 했다. 사자는 분부를 받고 즉시 길을 떠나 장님들을 대궐로 데려 와서 왕에게 보고하였다.
019_1017_c_02L왕은 대신에게 명하여 장님들을 데리고 가서 코끼리를 보여 주게 하였다. 대신은 장님들을 코끼리가 있는 우리로 데리고 가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하였다. 그러자 발을 만지는 사람, 꼬리를 만지는 사람, 꼬리의 밑둥치를 만지는 사람, 배를 만지는 사람, 옆구리를 만지는 사람, 등을 만지는 사람, 귀를 만지는 사람, 머리를 만지는 사람, 어금니를 만지는 사람, 코를 만지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렇게 코끼리를 모두 보여 준 다음 왕에게 데리고 갔다.
왕이 모두에게 물었다. “너희들도 코끼리를 잘 보았느냐?” “저희들은 잘 보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생겼더냐?” 그러자 발을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기둥 같더라고 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빗자루 같더라고 하고, 꼬리 밑둥치를 만진 사람은 지팡이 같더라고 하고, 배를 만진 사람은 둑과 같더라고 하고, 옆구리를 만진 사람은 벽과 같더라고 하고, 등을 만진 사람은 높은 언덕 같더라고 하고, 귀를 만진 사람은 큰 키[箕]와 같더라고 하고, 머리를 만진 사람은 절구와 같더라고 하고, 어금니를 만진 사람은 뿔과 같더라고 하고, 코를 만진 사람은 동아줄과 같더라고 했다. 이렇게 왕에게 모두 대답한 뒤 장님들은 서로 코끼리는 내가 말한 것과 같다느니 하면서 언쟁을 벌였다.
어리석은 이가 자신은 옳고 남은 그르다 하니 날로 어리석음에 빠져 어느 때에 해탈하겠느냐. 스스로 도가 없으면서 배움은 다 이렇다 하니 참된 수행 없이 갈팡질팡 어느 때에 해탈하겠느냐.
019_1017_c_18L自冥言是彼不及, 著癡日漏何時明?
自無道謂學悉爾, 但亂無行何時解?
늘 스스로 깨어 있어 존귀한 행(行)을 얻으며 스스로 진리를 보고 들어 수행이 비길 데 없네. 이미 세상의 오택(五宅)에 떨어진 신세이니 스스로 훌륭한 수행으로 저들보다 나아야 하느니라.
019_1017_c_20L常自覺得尊行, 自聞見行無比,
已墮繫世五宅, 自可奇行勝彼。
어리석고 음란하면서 선행을 하려 하고 삿된 도를 배우면서 해탈을 얻으려 하네. 보고 들은 대로만 옳다고 받아들이니 비록 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옳다 할 수 없다네.
019_1017_c_22L抱癡住婬致善, 已邪學蒙得度,
所見聞諦受思, 雖持戒莫謂可。
019_1018_a_02L세상 사람들 행실을 보니 모두 수행하지 않아 총명한 이들조차 범지들의 행(行)을 닦네.
그러나 저들의 수행에도 공경히 대하여 나보다 못하다 낫다 생각해서는 안 된다네.
019_1017_c_24L見世行莫悉修, 雖黠念亦彼行,
興行等亦敬待, 莫生想不及過。
이런 집착 저런 집착 모두 끊어버리고 나만이 훌륭한 수행이라는 생각도 버려 스스로 지혜로운지조차 알지 못해도 그 보고 들음 오직 진리만 본다네.
019_1018_a_03L是已斷後亦盡, 亦棄想獨行得,
莫自知以致黠, 雖見聞但行觀。
양 극단에 대하여 애착이 전혀 없어 나고 나지 않음 멀리 여의어 버렸네. 양변(兩邊)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진리를 보아 정도(正道)에 머문다네.
019_1018_a_05L悉無願於兩面, 胎亦胎捨遠離,
亦兩處無所住, 悉觀法得正止。
보고 들은 바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되 삿된 마음일랑 조금도 지니지 말라. 지혜로 진리를 보아 마침내 뜻을 아니 이로부터 세속을 버리고 공(空)을 얻었다네.
019_1018_a_07L意受行所見聞, 所邪念小不想,
慧觀法竟見意, 從是得捨世空。
스스로 어떤 법도 행하지 않으면서 본래 법을 행하여 진리를 구한다네. 단지 계행을 지키고 진리를 구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건져 해탈을 얻게 하여라.
019_1018_a_09L自無有何法行? 本行法求義諦,
但守戒求爲諦, 度無極衆不還。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
019_1018_a_11L佛說是義足經竟,比丘悉歡喜。
6. 노소구사경(老少俱死經)
019_1018_a_12L老少俱死經第六
이와 같이 들었다.
019_1018_a_13L聞如是:
부처님께서 바소국(婆掃國) 성 밖 안연수(安延樹) 아래에 계셨다. 한 사람이 수레를 몰고 성을 나와 안연수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중에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았다. 이 사람은 수레에서 내려 길 한 모퉁이에 시름에 잠긴 채 앉아 있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발우를 들고 아난을 데리고 걸식하러 성으로 들어가던 길에 수레는 바퀴가 부서지고 수레 주인은 시름에 잠긴 모습으로 길 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우단경(優檀經)을 말씀하셨다.
길에서 수레를 몰고 갈 적에 평지를 버려 두고 험한 길로 간다면 험한 길에선 걱정거리가 생기나니 이처럼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았네.
019_1018_a_19L如行車於道, 捨平就邪道, 至邪致憂患,
如是壞轂輪。
정법을 멀리함도 이와 마찬가지 삿된 길에 집착하면 고통을 받게 마련 어리석은 이는 생사의 고통을 받나니 수레바퀴 부서진 경우와 같느니라.
019_1018_a_21L遠法正亦爾, 意著邪行痛,
愚服死生苦, 亦有壞轂憂。
019_1018_b_02L그리고 부처님께서는 곧바로 성으로 들어가셨다. 성 안에는 이때 한 범지가 죽었는데 그의 나이는 백스무 살이었고, 또 한 장자의 아들이 죽었는데 이 아이의 나이는 일곱 살이었다. 이 양쪽 집에서 죽은 사람을 운상(運喪)하는데 모두 오색 깃발을 들고 여자와 어린이들은 모두 머리를 풀어헤쳤으며, 친족들은 슬피 울며 통곡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 광경을 보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어떠한 사람들이 모여서 저렇게 슬피 울고 있는 것이냐?”
사람의 몸뚱이는 목숨이 짧아 백 년이 못가서 죽고 만다네. 비록 백 년을 넘긴다 하더라도 늙으면 죽음을 어찌 면하리.
019_1018_b_07L是身命甚短, 減百年亦死, 雖有過百年,
老從何離死?
마음에 근심을 일으킴으로 해서 죽지 않고자 애착하는 마음 생기네. 사랑도 미움도 모두 버릴지니 이것을 보더라도 즐거운 가정이란 없네.
019_1018_b_09L坐可意生憂, 有愛從得常,
愛憎悉當別, 見是莫樂家。
죽음의 바다엔 누구나 빠지게 되니 전생의 탐욕과 애착, 아집 때문일세. 지혜로 진리를 보아 이를 생각할지니 본래 나도 없고 집착할 대상도 없는 법.
019_1018_b_10L死海無所不漂, 宿所貪愛有我,
慧願觀諦計是, 是無我我無是。
이 세상 즐거움이란 꿈 속같은 것 꿈에서 깨어나면 무엇을 볼 수 있으랴. 세상에 대한 탐욕도 이와 마찬가지 심식(心識)이 없어지면 또 무엇을 보랴.
019_1018_b_12L是世樂如見夢, 有識寤亦何見?
有貪世悉亦爾, 識轉滅亦何見?
이것 저것 듣는 것도 모두 여의어 버리고 선도 악도 이제는 보지 않는다네. 이 세상 버리면 그 어디에 이를까? 식신(識神)이 떠나니 이름만 남을 뿐.
019_1018_b_14L聞是彼悉已去, 善亦惡今不見,
悉捨世到何所, 識神去但名在。
슬퍼하고 근심하고 서로 시기하더니 또다시 탐욕과 애착을 버리지 못하네. 존귀한 이는 애착을 끊어 버려서 두려움을 여의고 편안한 곳을 보나니
019_1018_b_16L旣悲憂轉相嫉, 復不捨貪著愛,
尊故斷愛棄可, 遠恐怖見安處。
비구들이여, 망념(妄念)하지 말지니 욕심을 멀리하라. 육신은 죽기 마련 마음에 욕심을 그치고 뜻을 관찰할진대 이미 말했다네! 그칠 곳이 없는 진리를.
019_1018_b_18L比丘諦莫妄念, 欲可遠身且壞,
欲行止意觀意, 已垂諦無止處。
그칠 곳이 없으면 또한 존귀한 수행 애착하건 하지 않건 또한 질투하건 슬퍼하고 근심하고 또한 질투하건 연꽃과 같이 물들지 않는다네.
019_1018_b_20L無止者亦尊行, 愛不愛亦嫉行,
在悲憂亦嫉行, 無濡沾如蓮花。
이미 집착하지 않고 아무런 바램도 없어 삿된 것을 보고 들어도 나는 애착이 없네. 또한 해탈조차도 바라지 않나니 음욕에 물들지 않거니 무엇을 탐착하랴.
019_1018_b_22L已不著亦不望, 見聞邪吾不愛,
亦不從求解脫, 不污婬亦何貪?
019_1018_c_02L마치 연꽃인 양 탐욕이 없어 물 속에 살아도 물이 더럽히지 못하네.
존귀한 이가 세상에 삶도 이와 같아 보고 들음에 전혀 물들지 않네.
019_1018_b_24L不相貪如蓮花, 生在水水不污,
尊及世亦爾行, 所聞見如未生。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
019_1018_c_03L佛說是義足經竟,比丘悉歡喜。
7. 미륵난경(彌勒難經)
019_1018_c_04L彌勒難經第七
이와 같이 들었다.
019_1018_c_05L聞如是:
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 다조죽원(多鳥竹園)에 계셨다. 연로한 비구들이 강당에 앉아 내사(內事)를 행하며 서로 법을 물었다. 채상자(采象子) 사리불(舍利弗)도 그 자리에 있다가 내사(內事)가 율법을 말하는 것을 듣고 질문을 했는데, 율법에 따라 질문하지 않고 예의를 갖추어 공경하지도 않았다. 이때 현자(賢者) 대구사(大句私)도 그 자리에 있다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공손하지 못하구나. 연로한 비구들이 계신 곳에서 의심이 든다고 하여 마음대로 말하지 말고, 선배를 공경해야 할 것이다.” 말을 마친 대구사는 사리불을 위해 정의경(定意經)을 설해 주었다. “어진 이가 발심한 채 오랫동안 집에 살다가 마음을 일으켜 다시금 깨끗한 법을 생각하고 머리털과 수염을 깎은 다음 세상일을 버리고 법의를 걸치고 사문이 되었다 하자. 그후 정진하여 정도를 가까이 하고 사도를 멀리 하여, 이미 진리를 증득(證得)하여 수행한다면 스스로 이미 제도된 줄 알게 될 것이다.”
이때 현자 미륵(彌勒)이 사리불의 집에 당도하자 사리불이 미륵에게 예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이에 미륵이 율법에 맞게 질문을 하였으나 사리불은 이러한 율법에 캄캄하여 대답할 수 없었다. 미륵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나 성으로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발우를 깨끗이 씻은 다음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아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음욕은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대도(大道)는 어리석음의 뿌리를 끊네. 원컨대 부처님께서 정하신 계율을 받아 가르치신 대로 행하여 악을 멀리함 얻고자
019_1018_c_21L婬欲著女形, 大道解癡根, 願受尊所戒,
得敎行遠惡。
마음에 음란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남에 부처님께서 내리신 가르침 잊고 말았네. 정도를 잊고 잠들어 눕고 마니 이러한 짓은 수행의 순서를 잃은 것.
019_1018_c_23L意著婬女形, 亡尊所敎令,
亡正致睡臥, 是行失次第。
본디 홀로 수행하여 진리를 찾다가 뒤에는 도리어 여색에 탐착하여 어지러웠네. 치달리는 수레가 바른 길을 잃은 양 도무지 정사(正邪)를 버릴 줄 모르네.
019_1018_c_24L本獨行求諦,
後反著色亂, 犇車亡正道, 不存捨正耶?
019_1019_a_02L존경해야 할 분을 만나게 되자 어찌할 줄 몰라 착한 이름만 잃고 마네. 진리를 보고 도를 배우길 생각하면 음란한 일일랑 멀리 여의어야 하리.
019_1019_a_02L坐値見尊敬, 失行亡善名, 見是諦計學,
所婬遠捨離。
여색의 좋고 나쁨을 생각했다면 이미 율법을 범했거니 어찌할건가. 지혜로운 이가 경계하는 말 듣고서야 통렬히 뉘우치며 다시 스스로 생각하네.
019_1019_a_04L且思色善惡, 已犯當何致,
聞慧所自戒, 痛慚卻自思。
항상 행동이 지혜와 부합한다면 홀로 있을지라도 음란하지 않다네. 여색에 집착하여 음란한 마음 일으킨들 세력이 없을 뿐더러 그럴 용기도 없다네.
019_1019_a_05L常行與慧合,
寧獨莫亂俱, 著色生邪亂, 無勢亡勇猛。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두려운 마음 생겨 잘못을 저지름에 남들에게 위축되기 마련 애착 때문에 죄의 그물에 걸리고서도 속임수를 부려 간사한 변명을 늘어 놓네.
019_1019_a_06L漏戒懷恐怖, 受短爲彼負, 已著入羅網,
便欺出奸聲。
저지른 인연이 악한 것임을 보았다면 육체를 취하더라도 스스로 부끄러울 것 없네. 견고한 수행으로 홀로 행동하며 현명함을 취하고 어리석음을 익히지 않네.
019_1019_a_08L見犯因緣惡, 莫取身自負,
堅行獨來去, 取明莫習癡。
멀리 외진 곳에서 홀로 살아가노니 진실로 이것이 최상의 수행일세. 수행을 쌓아 스스로 교만하지 않으면 열반도 의지 못할 등급이라네.
019_1019_a_09L遠可獨自處,
諦見爲上行, 有行莫自憍, 無倚泥洹次。
원대한 생각으로 진리의 먼 길 생각하나니 여색이건 여색 아니건 애욕이 없다네. 고통을 여의었다고 말은 잘해도 세상 사람들은 음욕에 스스로 잡아 먹히네.
019_1019_a_10L遠計念長行, 不欲色不色, 善說得度痛,
悉世婬自食。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
019_1019_a_12L佛說是義足經竟,比丘悉歡喜。
8. 용사범지경(勇辭梵志經)
019_1019_a_13L勇辭梵志經第八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석 달을 머물며 기수급고독원에서 한 때를 보내고 계셨다. 타사국(墮沙國) 장자(長者)의 아들들이 용사(勇辭)라고 하는 한 범지에게 품삭을 주어 부처님과 논쟁을 벌여 이기면 금전 오백 냥을 주겠다고 했다. 범지 역시 부처님과 같이 석 달 안거 중이었는데, 오백여 가지나 되는 어려운 질문거리를 가지고 있는데다 각각의 질문 중에는 변통(變通)할 수단이 준비되어 있어, 논쟁에 관한 한 자기를 이길 사람은 없다고 자처하는 터였다.
019_1019_b_02L부처님께서는 석 달의 안거를 마치고 비구들을 거느리고 타사국을 향해 출발하셨다. 그리하여 이 고을 저 고을 다니며 경전을 말씀하시다가 타사국 원숭이 시내[猿溪] 곁에 있는 높은 누각에 이르셨다. 장자의 아들들은 부처님과 비구들이 자기 나라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백여 명이 함께 모였다. 이때 범지가 말하였다. “부처님이 이미 우리나라에 당도하였다니, 어서 가서 질문을 하여 꼼짝 못하게 해야겠다.” 범지는 곧 장자의 아들들을 데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앉았다. 장자의 아들 중에는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는 이도 있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는 이도 있고, 묵묵히 있는 이도 있었다. 장자의 아들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범지가 부처님을 자세히 보니 위신력(威信力)이 매우 크고 우뚝하여 도저히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에 범지가 두려운 마음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니, 부처님께서 범지와 장자의 아들들의 음모를 모두 아시고 『의족경』을 말씀하셨다.
행동과 생각이 이르면 명성은 나게 마련 마음 속에서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네. 대장과 함께 군대의 일을 의논하니 반딧불이 온 세상을 비추려 하는 것과 같네.
019_1019_c_05L行億到求到門, 意所想去諦思,
與大將俱議軍, 比螢火上遍明。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
019_1019_c_07L佛說是義足經竟,比丘悉歡喜。
9. 마인제녀경(摩因提女經)
019_1019_c_08L摩因提女經第九
부처님께서 구유국(句留國)의 실작법(悉作法)이란 고을에 계셨다. 마인제(摩因提)라고 하는 한 범지가 세상에 둘도 없이 잘 생긴 딸을 낳았다. 그리하여 전후로 국왕과 태자 및 대신 장자(長者)들이 찾아와서 혼인을 청했으나 아버지는 모두 거절하면서 말했다. “내 딸만한 사람이 있으면 아내로 주겠다.”
부처님께서 때마침 발우를 들고 고을로 들어가 걸식하여 식사를 마치고 발우를 깨끗이 씻어 갈무리를 한 다음, 성을 나와 숲 속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계셨다. 이때 마인제가 식사를 마친 뒤 전원을 거닐면서 숲 사이를 지나다가 금색의 몸에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춘, 마치 일월(日月)과도 같은 모습의 부처님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딸을 이 훌륭하신 분에 비긴다면 이는 평범한 사람을 내 딸에 비기는 것과 같다.’ 마인제는 곧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는가? 우리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소. 이제 우리 딸보다 훨씬 훌륭한 사윗감을 찾았다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온갖 보석과 영락(瓔珞)으로 딸을 잘 치장하였다. 그런 다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딸을 데리고 성을 나왔다. 어머니가 부처님의 발자국을 보니 무늬가 분명하기에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공연히 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끝내 사위를 찾을 수 없으니 어째서인가요?” 말을 마친 어머니는 게송을 읊었다.
음란한 사람은 뒤꿈치를 끌며 걷고 성급한 사람은 발을 움츠려 걷고 어리석은 사람은 종종걸음을 치나니 이 발자국의 주인은 천상과 인간 중의 존귀한 분이로다.
019_1019_c_23L婬人曳踵行, 恚者斂指步, 癡人足踝地,
是迹天人尊。地恐弛之錯
019_1020_a_02L아버지가 말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딸을 위해 근심일랑 하지 마소. 딸은 반드시 남편감을 얻게 될 것이오.”
019_1020_a_02L父言:“癡人!莫還爲女作患,女必得壻。”
그리고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왼손으로 어깨를 잡고 오른손으로 물병을 잡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제 제 딸을 드릴 테이니 첩으로 삼아주시기 바랍니다.” 딸이 부처님을 보니 모습이 더없이 단정하여 삼십이상을 갖추었고 몸을 감고 있는 영락(瓔珞)은 마치 명월주(明月珠)처럼 빛났다. 딸은 그만 부처님을 연모하는 음란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에 연정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을 알고 이에 『의족경』을 말씀하셨다.
019_1020_c_02L부처님께서 왕사국(王舍國) 다조죽원(多鳥竹園)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국왕과 대신ㆍ장자(長者)ㆍ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음식과 의복과 이부자리, 침상과 의약품 등을 이들이 모두 바쳤다. 이때 범지(梵志)들 중 여섯 존자(尊者)가 있었으니, 불란가섭(不蘭迦葉)ㆍ구사마각리자(俱舍摩却梨子)ㆍ선궤구타라지자(先跪鳩墮羅知子)ㆍ계사금피리(稽舍今陂梨)ㆍ라위사가차연(羅謂娑加遮延)ㆍ니언약제자(尼焉若提子) 등이었다. 이 여섯 존자는 다른 범지들과 강당에 모여 의논하였다. “우리들은 본디 세상의 존경을 받아, 국왕과 백성들로부터 공경스런 대우를 받아 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어찌된 셈인지 이들이 우리를 거들떠 보지 않고 도리어 사문(沙門) 구담(瞿曇)과 그의 제자들을 섬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석가 구담은 나이가 어리고 학문한 기간도 얼마 되지 않으니, 어찌 우리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 함께 시험하여 승부를 겨뤄보기로 하자. 구담이 한 가지 변화를 부리면 우리는 두 가지 변화를 부리고, 구담이 열여섯 가지 변화를 부리면 우리는 설흔두 가지 변화를 부려서, 그보다 배로 변화를 부리기로 하자.” 의논을 마친 이들은 함께 빈사왕(頻沙王)의 측근 대신(大臣)에게 정중하게 말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왕에게 전달해 주길 청하였다. 대신이 왕에게 그대로 아뢰자 왕이 듣고 크게 노하였다. 대신에게 여러 차례 부탁을 한 뒤 자기들의 마을의 숙소로 돌아갔다.
범지들은, 부처님께서 홀로 우뚝이 공경스런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곧 대궐문으로 가서 부처님과 실력을 겨뤄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왕은 곧 범지들의 여섯 존자를 만나 보고는 크게 화를 내었다. 왕은 이미 진리를 보아 과위(果位)를 증득했기 때문에 끝내 이학(異學:異敎)에 현혹되지 않았다. 왕은 곁에 있던 신하에게 “속히 이 범지들을 데리고 나가 나라 밖으로 쫓아내라”고 명령하였다. 쫓겨난 범지들은 서로 무리지어 사위국(舍衛國)으로 갔다.
부처님께서는 왕사국에서 교화를 마치시고 비구들을 모두 거느리고 여러 고을들을 돌아다니다가 사위국 기원(祇洹)으로 돌아오시게 되었다. 범지들은 부처님께서 우뚝히 존경받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여섯 스승이 모여 다른 이학(異學)들과 함께 파사닉왕(波私匿王)에게로 가서 부처님과 실력을 겨뤄보겠다고 하였다. 이에 왕은 곧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말을 타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왕은 부처님의 발에 얼굴을 대어 예배한 다음 한쪽으로 가서 앉더니 손을 모아 부탁을 드렸다. “세존께서는 도덕이 깊고 오묘하여 신통 변화를 나타낼 수 있으시니, 아직 듣고 보지 못한 이들은 신심을 내고, 이미 듣고 본 이들이 거듭 의혹을 풀게 하시고, 이교도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칠 일 후에 신통 변화를 나타내겠다고 말씀하셨고, 왕은 그 말씀을 듣고 기뻐서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아 경의를 표하고 돌아갔다.
019_1021_a_02L왕은 약속한 날이 되어 부처님을 위하여 십만 개의 좌상(坐床)을 만들고, 불란가섭 등 범지들을 위해서도 십만 개의 좌상을 만들었다. 이때 사위국의 백성들은 모두 성을 비우고 나와 구경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위신(威神)이 넘치는 모습을 나타내시고, 범지들도 저마다 자기 자리로 가서 앉자 왕이 일어나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자리에 앉아 위신력(威神力)을 보이소서.” 이때 반식귀(般識鬼) 장군(將軍)이 마침 이곳에 와서 부처님께 예배드리던 차에 범지들이 부처님과 도를 겨루려 한다는 말을 듣고 세찬 비바람을 몰아 범지들의 자리로 보내고, 다시 모래와 자갈을 비처럼 퍼부어 범지들의 무릎과 다리에 떨어지게 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조금 위신력을 내어 부처님의 자리가 온통 불꽃에 휩싸이고 그 불길이 팔방(八方)을 진동하게 하셨다. 불란가섭 등은 부처님께서 앉아 계신 자리가 이처럼 화염에 휩싸인 것을 보고 모두 기뻐하며 자신들의 신통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위신력을 거두시자 불꽃도 따라서 사라졌다. 범지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신통력 때문이 아닌 줄을 알고 마음 속으로 근심하고 후회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사자좌(獅子座)에서 일어나셨다. 이때 좌중(座中)에 신족통(神足通)을 갖춘 한 청신녀(淸神女)가 있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몸소 수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이학(異學) 범지들과 신통을 겨루어 보겠습니다.” “그럴 것 없으니 자리에 가서 앉도록 해라. 내가 직접 신족통을 보이겠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청신사(淸信士) 수달(須達)의 딸이 전화색(專華色)이란 이름의 사미(沙彌)로 변하여 목건란(目蘭:목련)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몸소 위신력을 보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가 이제 저들과 도를 겨뤄보겠습니다.” “그럴 것 없으니 자리로 돌아가도록 해라. 내가 직접 신족통을 보이겠다.”
019_1021_b_02L부처님께서는 직접 신통력을 보임으로써 뭇 사람들에게 안온한 복을 얻게 하고, 인간과 천상을 불쌍히 여겨 해탈을 얻게 하고, 범지들을 항복시켜 후세의 배우는 사람들을 위해 지혜를 밝히고, 우리 불도(佛道)가 미래에 영원히 존속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신족통을 크게 펼치셨다. 그리하여 사자좌에서 날아 올라 동쪽 허공으로 가서는 걷다가 다리를 펴고 앉았다가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하고 누우셨다. 그런 다음 곧 화정신족통(火定神足通)을 나타내시니, 오색 광명을 쏟아 온갖 빛으로 휘황찬란하게 뒤섞인 가운데 하반신에서는 불이 나오고 상반신에서는 물이 나왔다가 다시 상반신에서는 불이 나오고 하반신에서는 물이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는 모습을 감추었다가 남쪽에서 나타나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서쪽에서 나타나고,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가 북쪽 허공에 머무셔서는 또 위와 같은 온갖 변화를 보이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허공에 앉아 계시는데, 양쪽 어깨에는 각각 일백 잎의 연꽃이 솟고 머리 위에는 일천 잎의 연꽃이 솟아 꽃마다 그 위에는 부처님께서 좌선하고 계시고, 광명이 시방 세계를 두루 비추었다. 이에 천인(天人)들이 공중에서 부처님의 머리 위로 꽃을 뿌리며 “장하십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은 시방을 모두 진동시킵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신족통을 거두고 사자좌로 돌아가셨다.
범지들은 모두 졸고 있는 비둘기처럼 아무 말 없이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화이철(和夷鐵:金剛杵)을 들고 허공에 날아 올라 환하게 화염을 내뿜어 매우 위엄 있는 모습을 나타내셨는데, 이 모습은 범지들만 볼 수 있게 하셨다. 이에 범지들은 옷과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크게 두려워 떨며 저마다 흩어져 달아났다.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을 위하여 감로비를 내리어 경법(經法)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리하여 보시를 하고 계율을 지키면 천상에 태어나는 반면 애욕을 지니면 고통을 받게 마련이라고 하시고, 아울러 애욕이란 재난의 원천이요 견고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지혜로운 생각으로 대중들의 뜻을 아시고 사성제(四聖諦)를 말씀하셨다. 그러자 대중 가운데는 온 몸을 바쳐 부처님께 귀의하는 사람, 진리에 귀의하는 사람, 비구승께 귀의하는 사람, 무릎을 끊는 사람, 계율을 받는 사람, 구항(溝港)을 얻은 사람, 빈래과(頻來果:斯陀含)를 얻은 사람, 불환과(不還果)를 얻은 사람 등이 있었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마음 속으로 ‘무슨 이유로 해서 집을 버리고 떠나 도를 닦는가’라는 의심이 생겨 다시 언쟁을 벌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들이 의심하는 줄 알고 신통력으로 삼십이상(三十二相)을 갖추고 법의를 걸친 또 한 분의 단정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들어 내셨으며, 제자들도 신통력으로 사람을 만들어 내었다. 만들어 낸 사람이 말을 하면 제자도 말을 하고,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만들어 낸 사람은 묵묵히 있고, 만들어 낸 사람이 말을 하면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계셨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으로 바른 생각을 가진 제자들이 만들어 낸 사람을 곧바로 건지는 셈이 되기 때문에 상호간에 의문이나 질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