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25_0001_a_01L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 권제일
025_0001_a_01L阿毘達磨識身足論卷第一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教序)1)
025_0001_a_02L 大唐三藏聖教序

어제(御製)
御製



대개 내가 듣건대, 하늘과 땅[二儀]은 형상[像]이 있어, 만물을 덮고 실음으로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음이 드러나고, 네 계절[四時]은 형태[形]가 없어,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가며 만물을 기르는 것이 감춰져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하늘과 땅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하늘과 땅이 운행하는 이치의 실마리를 알게 되지만, 하늘과 땅의 이치인 음(陰)과 양(陽)을 명확히 꿰뚫어 보는 데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 변화의 모든 수를 다 아는 것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음에도, 음양의 이치를 쉽게 아는 것은 하늘과 땅이 형상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의 이치가 하늘과 땅에 담겨있을지라도 그 이치를 온전히 다 알기 어려운 것은, 음양의 변화는 형태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025_0001_a_03L蓋聞二儀有像顯覆載以含生四時無形潛寒暑以化物是以窺天鑑地庸愚皆識其端明陰洞陽賢哲罕窮其數然而天地包乎陰陽而易識者以其有像也陰陽處乎天地而難窮以其無形也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파악할 수 있으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되어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이 감춰져 그것을 엿볼 수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미혹되어 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불도(佛道)는 형상이 없이 텅 빈 가르침을 숭상하고, 깊고 현묘한 진리에 오르고 완전한 고요 속의 깨달음을 이끌어서, 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하고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며, 신령한 위엄을 일으키면 위로 그 한계가 없고, 그 신묘한 힘을 억누르면 아래로 그 끝이 없으며, 그 가르침을 거시의 세계로 확장하면 우주에까지 미치고 미시의 세계로 축소하면 터럭까지도 주관하니, 소멸하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어서 천겁(千劫)이 흘렀어도 낡지 않고, 감춰진 듯 드러난 듯 온갖 복[百福]을 주관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도다. 현묘한 도는 그윽하고도 그윽하여서 그것을 아무리 좇아가더라도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부처님의 법이 흘러 그 적멸의 경지에 깊이 잠기니 그 법을 아무리 퍼내어도 그 근원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평범한 사람들과 초라하며 못난 사람들이, 불법의 뜻에 자신을 던지면 이 세상의 어떤 의혹도 없앨 수 있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일어난 것은 서토(西土)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 당나라[漢庭]에 전해져 우리에게 희망의 환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국에 부처님의 빛을 비추어 부처님의 자비가 흐르도록 한 것이다.
025_0001_a_09L故知像顯可徵雖愚不惑形潛莫睹在智猶迷況乎佛道崇虛乘幽控寂弘濟萬品典御十方擧威靈而無上抑神力而無下大之則彌於宇宙細之則攝於毫釐無滅無生歷千劫而不古若隱若顯運百福而長今妙道凝玄遵之莫知其際法流湛寂挹之莫測其源故知蠢蠢凡愚區區庸鄙投其旨趣能無疑惑者哉然則大教之興基乎西土騰漢庭而皎夢照東域而流慈
025_0001_b_01L옛날 온 세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르침이 아직 전해지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으나, 현 시대에는 백성이 부처님의 덕행을 우러러보고서야 따를 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진리의 빛으로 돌아서서 법도가 바뀌고 시대가 변화함에 이르러, 이전에는 부처님 얼굴[金容]의 찬란한 빛이 가려져서 삼천대천세계[三千]를 비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펼쳐지게 되어 단정하신 부처님의 32상[四八之相]을 보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의 정미한 말씀이 널리 전해져서 중생을 삼도(三途)2)에서 구제하였고, 선각자들이 남긴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어 중생을 십지(十地)3)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받들어 따르기 어렵고 그 가르침의 뜻을 하나로 모을 수도 없으나, 세상에 아첨하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따르기가 쉬워서 이에 참과 거짓이 얽히고설키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만물의 실체가 없다는 공론[空]과 모든 현상의 본체가 있다는 유론[有]이 더러는 옛 습속을 따라 시비(是非)를 일으킨 것이고, 대승과 소승이 때때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번갈아 흥하고 망하게 된 것이다.
025_0001_a_19L昔者分形分迹之時言未馳而成化當常現常之世民仰德而知遵及乎晦影歸眞遷儀越世金容掩色不鏡三千之光麗象開圖空端四八之相於是微言廣被拯含類於三途遺訓遐宣導群生於十地然而眞教難仰莫能一其旨歸曲學易遵邪正於焉紛糾所以空有之論或習俗而是非大小之乘乍沿時而隆替
현장(玄奘) 법사라는 분이 있는데, 법문(法門)의 제일가는 스승이다. 그는 어려서 마음이 바르고 배우는 데 민첩하여 일찍 삼공(三空)4)의 마음을 깨달았고, 커서는 그 정신과 뜻이 불교의 가르침에 부합하여 먼저 사인(四忍)5)의 수행을 감당하였다. 소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松風]과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달[水月]도 그의 맑고 아름다움 성품에는 견줄 수 없었으니, 신선이 먹는 이슬[仙露]과 찬란한 구슬[明珠]을 어찌 그의 환하고 넉넉한 모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모든 것을 통달하여 얽매임이 없고, 그의 정신도 모든 것을 헤아리며 막힘이 없어서, 이미 육진(六塵)6)을 초월하고 멀리 벗어나니, 아득한7)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와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닦는 데 모든 마음을 쏟으며, 불교의 정법(正法)이 업신여겨지고 쇠퇴함을 슬퍼하였고, 불문[玄門]을 깊이 고찰하여 불법의 심오한 경문이 잘못 전해짐을 안타깝게 여겨서, 불교 경문을 조리에 따라 이치에 맞게 분석하여 전에 들은 것들을 확장하고, 잘못된 것들은 끊어내고 참된 것들을 잇게 하여, 후학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주고자 하였다.
025_0001_b_07L有玄奘法師者法門之領䄂也幼懷貞敏早悟三空之心長契神情先包四忍之行松風水月未足比其淸華仙露明珠詎能方其朗潤故以智通無累神測未形超六塵而迥出隻千古而無對凝心內境悲正法之陵遲拪慮玄門慨深文之訛謬思欲分條扸理廣彼前聞截僞續眞開茲後學
025_0001_c_01L이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부처님이 계신 곳[淨土]으로 향하게 되어 멀리 서역(西域)으로 떠나게 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떠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여 홀로 여행을 하니, 쌓인 눈이 새벽에 이리저리 날리는데 길에서 갈 곳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저녁에 갑자기 일어남에 텅 빈 밖에서 갈 방향을 잃기도 하였다. 만리(萬里)를 가며 만난 산과 강을 지날 때에도 자욱한 안개와 노을을 헤치고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용감히 나아갔고, 온갖 추위와 더위 속에서도 서리를 밟고 비를 맞으며 묵묵히 앞으로 발을 디뎠다.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고는 가볍게 여기며, 자신의 깊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간곡히 구하여, 서역을 17년 동안 두루 다녔다. 그동안 불도가 전해진 지역을 모두 다니며, 정교(正教)을 묻고 구하였다. 그는 쌍림(雙林)을 지나고 팔수(八水)에 이르러, 부처님의 도를 맛보고 불도의 유풍[風]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녹야원[鹿苑]에 가고 영취봉[鷲峯]에 올라 부처님의 신비하고 기이한 유적들을 우러러볼 수 있었다. 그가 앞선 성인들의 지극한 가르침을 받들고 현인들의 참된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오묘한 법문을 깊이 탐구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정밀하게 궁구하니, 일승(一乘)과 오율(五律)의 도(道)가 마음 밭에서 치달리며 뛰놀게 되었고, 팔장(八藏)과 삼협(三篋)의 문장[文]이 그의 입안에서 파도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나오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지났던 나라들로부터 삼장(三藏)의 핵심 경문을 모두 모아 가지고 왔으니, 모두 657부(部)이다. 그리고 번역된 경문은 중국에 널리 배포되어, 그의 빼어난 공덕이 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025_0001_b_15L是以翹心淨土往遊西域乘危遠邁杖策孤征積雪晨飛途閒失地驚砂夕起空外迷天萬里山川撥煙霞而進影百重寒暑躡霜雨而前蹤誠重勞輕求深願達周遊西宇十有七年窮歷道邦詢求正教雙林八水味道飡風鹿苑鷲峯瞻奇仰異承至言於先聖受眞教於上賢探賾妙門精窮奧業一乘五部之道馳驟於心田八藏三篋之文波濤於口海爰自所歷之國摠將三藏要文凡六百五十七部譯布中夏宣揚勝
그가 서역에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구름을 이끌고 와서 중국에 불법의 비를 내리게 하니, 결함이 있었던 불교가 다시 온전해지고, 죄 가운데 고통 받던 중생이 다시 복(福)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불난 집[火宅]의 활활 타는 불꽃에 물을 뿌려서 다시는 미혹된 길로 가지 않게 한 것이고, 애욕의 캄캄한 파도에 빛을 비춰 피안(彼岸)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악(惡)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업(業)이 생겨 지옥으로 떨어지고, 선(善)을 행하면 그것으로 인해 극락에 오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극락에 오르고 지옥에 떨어지는 실마리는 오직 사람이 행한 것에 근거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025_0001_c_04L引慈雲於西極注法雨於東垂教缺而復全蒼生罪而還福濕火宅之乾焰共拔迷途朗愛水之昏波臻彼岸是知惡因業墜善以緣昇墜之端惟人所託
비유컨대 계수나무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자라므로 구름이 내리는 깨끗한 이슬만이 그 꽃을 적실 수 있고, 연꽃은 맑은 물결 속에서 꽃을 피우므로 날리는 티끌이 그 잎을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연꽃의 본성이 본래 깨끗하거나 계수나무의 바탕이 본래 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이 높기 때문에 탁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요, 연꽃이 의지한 곳이 맑은 물속이기 때문에 지저분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 무릇 풀과 나무가 지각이 없을지라도 오히려 좋은 조건에 의지하여 선(善)을 이루는데, 하물며 사람은 지각이 있어 복된 조건을 가지고 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지금 이 경(經)이 널리 전해져서 해와 달처럼 다함없이 이어지고, 이 복(福)이 멀리 펼쳐져서 하늘과 땅과 함께 영원하고 광대하기를 바라노라.
025_0001_c_08L譬夫桂生高嶺露方得泫其花蓮出淥波飛塵不能污其葉非蓮性自潔而桂質本貞由所附者高則微物不能累所憑者淨則濁類不能沾夫以卉木無知資善而成善況乎人倫有識不緣慶而求慶方冀茲經流施將日月而無斯福遐敷與乾坤而永大


황태자신치술성기皇太子臣治述聖記8)
025_0001_c_15L皇太子臣治述聖記



무릇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전함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면 그 가르침[文]을 널리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요, 불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받들어 분명히 밝히는 것도, 현명한 사람이 아니면 그 뜻[旨]을 정확히 확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 진여(眞如)의 성스러운 가르침은 모든 불법의 궁극적 근원이요, 모든 불경이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그 담긴 내용은 너무나 넓고 크며 그 오묘한 뜻은 너무나 아득하고 깊어서, 공(空)과 유(有)의 정밀하고 미묘한 이치도 완전히 꿰뚫게 하고, 삶과 죽음의 가장 핵심적인 진리도 체득하게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너무 많고 복잡하며 그 도리는 너무 다양하고 넓어서, 불법을 찾는 자가 그 근원을 다 탐구하기 어렵고, 그 경문은 세상에 드러났어도 그 의미는 깊이 감추어져 있어, 불법을 실행하려는 자가 불법의 극의를 분명히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025_0001_c_16L夫顯揚正教非智無以廣其文崇闡微言非賢莫能定其旨蓋眞如聖教諸法之玄宗衆經之軌躅也綜括宏遠奧旨遐深極空有之精微體生滅之機要詞茂道曠尋之者不究其文顯義幽履之者莫測其際
025_0002_a_01L 그러므로 부처님의 성스런 자비가 덧입혀져야 모든 중생의 업(業)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부처님의 신묘한 교화가 펼쳐져야 모든 세상의 인연[緣]에서 악(惡)이 끊어짐을 알게 되어, 불법의 그물[法網]이 넓게 펼쳐지고 육바라밀[六度]의 올바른 가르침이 널리 베풀어져, 모든 중생이 도탄(塗炭)에서 구원받고, 삼장(三藏)의 비밀스런 빗장[秘扃]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오래도록 세상에 전해졌고, 부처님의 도(道)는 뿌리가 없어도 영원히 견고하게 박혔으며, 부처님의 도와 이름으로 세상에 전해진 축복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감동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는 겁이 흘러도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025_0001_c_22L故知聖慈所被業無善而不臻妙化所敷緣無惡而不翦開法網之綱紀弘六度之正教拯群有之塗炭啓三藏之秘扃是以名無翼而長飛道無根而永固道名流慶歷遂古而鎭常赴感應身經塵劫而不朽
새벽의 종소리[鍾]와 저녁의 게송 소리[梵], 이 두 가지 소리가 영취봉[鷲峯]에서 어우러지고, 부처님의 지혜의 빛[慧日]과 불법의 맑은 물[法流]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돌아가 녹야원[鹿苑]에서 전해졌으니, 공중으로 치솟은 보개(寶蓋)9)는 떠도는 구름[翔雲]과 함께 나는 듯하였고, 들판의 무성한 봄 숲[春林]은 천화(天花)10)와 더불어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였다.
025_0002_a_05L晨鍾夕梵交二音於鷲峯慧日法流轉雙輪於鹿苑排空寶蓋接翔雲而共飛莊野春林與天花而合彩
엎드려 생각건대, 황제폐하께서는 불교의 깊은 이치를 숭상함으로 복(福)을 받아, 옷을 늘어뜨리고 손을 꽂은 채로 있어도 온 세상이 다스려졌고, 그 덕(德)이 온 백성에게 입혀져, 공손히 옷깃을 여미고만 있어도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고 조공을 바쳤으며, 그 은혜가 죽은 자에까지 이르러 무덤에도 불교경전이 들어가게 되었고, 그 은택이 곤충에까지 미치어 금궤에도 불교의 게송이 담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뇩달수(阿耨達水)11)가 중국의 중심12)에 흐르는 팔천(八川)13)과 통하게 되었고, 기사굴산(耆闍崛山:영취산)이 숭산과 화산[嵩華]의 푸른 봉우리와 맞닿게 되었다.
025_0002_a_08L伏惟皇帝陛下上玄資福垂拱而治八荒德被黔黎斂衽而朝萬國恩加朽骨石室歸貝葉之文澤及昆蟲金匱流梵說之偈遂使阿耨池水通神甸之八川耆闍崛山接嵩華之翠嶺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법의 본성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온전히 불법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혜의 대지는 깊고 그윽하여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에만 감응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니, 어찌 칠흑 같은 혼돈의 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요, 화마가 휩쓰는 아침에 내리는 불법의 은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모든 하천은 다르게 흘러도 모두 함께 바다로 모이고, 모든 만물의 이치는 나누어졌어도 결국 모두 만물의 실재를 이루니, 어찌 탕왕[湯]과 무왕[武]의 우열을 비교하며, 요임금[堯]과 순임금[舜]의 성덕을 서로 견주겠는가.
025_0002_a_13L竊以法性凝寂靡歸心而不通智地玄奧感懇誠而遂顯豈謂重昏之夜燭慧炬之光火宅之朝降法雨之澤於是百川異流同會於海萬區分義摠成乎實豈與湯武挍其優劣舜比其聖德者哉
현장(玄奘) 법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담백하고 소박한 삶에 뜻을 두었으며, 정신은 어린 나이에도 한없이 맑았고, 신체도 세상 사람들보다 빼어났다. 선방[定室]에서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깊은 바위산[幽巖]에 자취를 숨겼으며, 삼선(三禪)14)의 세계에 오르고, 십지(十地)의 수행을 차례로 수행하였으며, 육진(六塵)15)의 경계를 초월하여 홀로 부처님의 땅[迦維:인도)을 밟고, 일승(一乘)의 뜻[旨]을 깨달아 그 근기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였다.
025_0002_a_19L玄奘法師者夙懷聰令志夷簡神淸齠齔之年體拔浮華之凝情定室匿迹幽巖拪息三禪遊十地超六塵之境獨步迦維會一乘之旨隨機化物
025_0002_b_01L 현장은 중국에는 의거할 진경[眞文]이 없어 인도의 불경을 찾아서, 멀리 항하(恒河:갠지스 강)를 건너 불경을 가져오길 늘 바랐고, 이에 여러 차례 설산[雪嶺]을 넘어가 불경을 가져왔다. 도(道)를 물으며 인도에서 돌아오기까지 17년 세월 동안 불교 경전을 다 깨달아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에만 마음을 두게 되었다. 때문에 정관(貞觀) 19년 2월 6일 홍복사(弘福寺)에서 조칙[勅]을 받들어, 성교(聖教)의 중요한 문장을 번역하니, 모두 657부(部)이다. 이는 대해(大海)의 법류(法流)를 끌어다가 세속의 노고를 씻어서 마르지 않게 한 것이요, 지혜의 등불[智燈]을 전하여 세속의 어둠을 비춰 항상 밝게 한 것이니, 스스로 오랜 동안16) 좋은 인연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어찌 불법의 뜻을 이렇게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17) 이것은 법상(法相)18)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 해ㆍ달ㆍ별[三光]의 광명처럼 분명하고, 우리 황제폐하의 복덕이 이 세상에 오는 것이 하늘ㆍ땅[二儀]의 견고함처럼 확실함을 말한 것이다.
025_0002_a_23L以中華之無質印度之眞文遠涉恒河終期滿字登雪嶺更獲半珠問道往還十有七備通釋典利物爲心以貞觀十九年二月六日勅於弘福寺飜譯聖教要文凡六百五十七部引大海之法流洗塵勞而不竭傳智燈之長焰皎幽闇而恒明自非久植勝緣何以顯揚斯旨所謂法相常住齊三光之明我皇福臻同二儀之固
엎드려 황제폐하께서 지으신 여러 경론의 서문을 보니, 옛일을 비추어 현재를 뛰어넘게 한 것으로, 그 이치는 금석(金石)과 같이 웅장한 소리를 담고 있고, 그 문장은 풍운(風雲)이 뿌리는 은택을 간직하고 있다. 나(治:고종의 이름)는 이에 가벼운 티끌을 거대한 산악에 덧붙이듯, 이슬을 떨어뜨려 강물에 첨가하듯 내 글을 폐하의 서문에 덧붙임으로, 간략하게 그 대강(大綱)을 들어서 이 기문을 짓는다.
025_0002_b_10L伏見御製衆經論序照古騰今理含金石之聲文抱風雲之潤治輒以輕塵足墜露添流略擧大綱以爲斯記
























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19) 제1권
025_0002_b_13L阿毘達磨識身足論卷第一


제바설마(提婆設摩)20) 지음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025_0002_b_14L提婆設摩阿羅漢造
三藏法師玄奘奉 詔譯


1) 초귀예찬송(初歸禮讚頌)
025_0002_b_16L初歸禮讚頌

대각(大覺)이시며 깨달은 이 가운데 왕[覺中王]과
각왕(覺王)께서 주신 삼계(三界)의 해[日]21)
해탈(解脫)과 묘법(妙法)과 지혜[智]가 귀착(歸着)하는 데와
지혜 있는 이가 귀의할 모든 성인들께 머리 조아립니다.
025_0002_b_17L稽首大覺覺中王
覺王所供三界日
解脫妙法智所歸
智者所依諸聖衆

아비달마(阿毘達磨)의 바다는 건너기 어렵고
부처님 입에서 흐르는 못물을 천 명의 성인이 마시며
경계[境]22)의 큰 어둠[巨溟]을 잘 풀어주시니
저는 지성으로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025_0002_b_19L阿毘達磨海難渡
佛口池流千聖飮
於境巨溟能善決
故我至誠今頂禮

밝은 해로 인간을 비춰 주시지 않으신다면
빽빽한 숲의 어두움을 누가 밝히겠으며
만일 아비달마론(阿毘達磨論)이 없다면
지혜로 알바의 어두움을 누가 없애버리리까.
025_0002_b_21L朗日不擧照人閒
稠林昏翳孰能遣
若無阿毘達磨論
智所知冥誰殄滅
025_0002_c_01L
아비달마라는 바른 법의 등불은
마음속의 청정한 눈이요 지혜의 근본이며
알아야 할 숲 속의 해요 사론(邪論)을 [벨] 칼이며
개사(開士)23)의 위력이요 여래장(如來藏)24)입니다.
025_0002_b_23L阿毘達磨正法燈
心中淨眼智根本
所知林日邪論劍
開士威力如來藏

삼계를 비추는 광명이요 혜안(慧眼)의 도(道)이며
온갖 법의 등불이요 부처님 말씀의 바다이며
능히 뛰어난 지혜 일으키고 모든 의심 깨뜨리는
이것은 모든 성현의 법다운 길이옵니다.
025_0002_c_02L三界照明慧眼道
一切法燈佛語海
能發勝慧破諸疑
是諸聖賢法衢路

지혜로운 이의 지혜의 물이며 큰 못이요
지(智)ㆍ용(勇)ㆍ예(銳)ㆍ승(勝)을 구하는 기본이니
이 뛰어난 법을 깨달아 알면 총명에 이르고
이 거룩한 가르침을 깨치면 참다운 불자(佛子)입니다.
025_0002_c_04L智者慧水大陂池
求智勇銳勝基本
了此勝法至聰明
悟斯聖教眞佛子

2) 총올타남송(總嗢拕南頌)25)
025_0002_c_06L摠嗢拕南頌

처음은 목건련온(目乾連蘊)이요
다음은 보특가라(補特伽羅)26)이며
인(因)ㆍ소연(所緣)ㆍ잡(雜)27)이요
사구(四句)가 맨 나중이다.
025_0002_c_07L初目乾連蘊
次補特伽羅
因所緣雜類
四句最爲後

1. 식신족론(識身足論) 목건련온(目乾連蘊)28)

1) 올타남송(嗢拕南頌)
025_0002_c_09L識身足論目乾連蘊第一之一第一嗢拕南頌

근(根)ㆍ악행(惡行)ㆍ상(想)과
심(尋)ㆍ사(思)ㆍ계(界)ㆍ누(漏)와
화(火)ㆍ애(愛)ㆍ소유(所有)와
구(垢)ㆍ박(縛)이니 모두 세 가지씩이다.
025_0002_c_10L根惡行想
尋思界漏
火愛所有
垢縛皆三

사문 목련(目連)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無爲)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契經)29)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善語]과 좋은 문체[善詞]로 설하시되 ‘세 가지 불선근[三不善根]이 있나니, 탐내는 불선근이요 성내는 불선근이며 어리석은 불선근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그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2_c_12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三不善根貪不善根瞋不善根癡不善根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그에게 물으리라.
“어떤 이는 탐내는 불선근에 대하여 이것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미 관(觀)하였고 지금도 관하고 있으며 앞으로 관할 것이니, 그대는 그것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2_c_16L彼答復問彼言汝然此不謂有能於貪不善根已觀今觀當觀是不善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관한다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관한다고 한다면, 마땅히‘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고 또한 ‘과거는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2_c_18L答言爲何所觀過去耶未來耶在耶若言觀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
만일 미래의 것을 관한다고 한다면, 마땅히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요 또한 ‘미래는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2_c_21L若言觀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025_0003_a_01L만일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한다면, ‘하나의 보특가라(補特伽羅)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非前非後] [한 찰나(刹那) 동안에] 하나는 곧 관할 대상이 되고 하나는 곧 관하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고,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바로 관할 대상이 되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관하는 자인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곧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025_0002_c_23L若言觀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是所觀一是能觀此不應理若不說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是所觀一是能觀則不應說觀於現在言觀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관하지 않는다 하면 곧 탐내는 불선근에 대하여 ‘이것은 바로 선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미 관하였거나 지금 관하거나 앞으로 관할 것이 없으며, 만일 관할 수 없다면 이는 곧 이미 싫어하였거나[已厭] 지금 싫어하거나[今厭] 앞으로 싫어할[當厭] 것이 없다.
025_0003_a_05L若言不觀過未來現在則無能於貪不善根已今觀當觀是不善若無能觀則無能已厭今厭當厭
만일 싫어할 수 없다면, 곧 이미 잡염을 여의었거나[已離染] 지금 잡염을 여의거나[今離染] 앞으로 잡염을 여읠[當離染] 것이 없으며, 만일 잡염을 여읠 수 없다면 곧 이미 해탈하였거나[已解脫] 지금 해탈하거나[今解脫] 앞으로 해탈할[當解脫] 것이 없다. 만일 해탈할 것이 없다면, 곧 이미 반열반(般涅槃)30)하였거나 지금 반열반하거나 앞으로 반열반할 것이 없다.”
025_0003_a_08L若無能厭則無能已離染今離染當離染若無能離染則無能已解脫今解脫當解脫若無能解脫則無能已般涅槃今般涅槃當般涅槃
착하지 못한 것과 같아서 결(結)ㆍ박(縛)ㆍ수면(隨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과 버릴 대상[所棄]과 등질 대상[所捨]과 끊을 대상[所斷]과 두루 다 아는[遍知] 것도 그러하다.
다시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어떤 이가 탐내는 불선근에 대하여 ‘후세에 괴로움[苦]의 이숙(異熟)을 받는다’라고 이미 관하였고 지금 관하며 앞으로도 관하리라는 것을 그대는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관한다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025_0003_a_12L如不善如是結隨眠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亦爾問彼言汝然此不謂有能於貪不善根已觀今觀當觀後世感苦異熟答言爲何所觀過去耶未來耶在耶
만일 과거의 것을 관한다고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또한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관한다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또한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3_a_17L若言觀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觀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025_0003_b_01L만일 현재의 것을 관한다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역시 업(業)을 짓고 또한 곧 이 업의 이숙을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고,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역시 업을 짓고 또한 곧 이 업의 이숙을 받아들인다’고 말하지 않으면 곧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나니,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3_a_20L若言觀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亦能造業亦卽領受此業異熟此不應理若不說一補特伽羅非前非後亦能造業亦卽領受此業異熟則不應說觀於現言觀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관하지 않는다 하면, 곧 탐내는 불선근에 대하여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는다’고 이미 관하였거나 지금 관하거나 앞으로 관할 것이 없다. 만일 관할 수 없다 하면, 곧 이미 싫어하였거나 지금 싫어하거나 앞으로 싫어할 것이 없으며, 만일 싫어할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잡염을 여의었거나 지금 잡염을 여의거나 앞으로 잡염을 여읠 것이 없다. 만일 잡염을 여읠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해탈하였거나 지금 해탈하거나 앞으로 해탈할 것이 없으며, 만일 해탈할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반열반하였거나 지금 반열반하거나 앞으로 반열반할 것이 없을 것이다.”
025_0003_b_02L若言不觀過未來現在則無能於貪不善根已今觀當觀後世感苦異熟若無能則無能已厭今厭當厭若無能厭則無能已離染今離染當離染若無能離染則無能已解脫今解脫當解若無能解脫則無能已般涅槃般涅槃當般涅槃
탐내는 불선근에서와 같이, 성내는 불선근ㆍ우치의 불선근도 그러하다.
몸의 악행[身惡行]과 말의 악행[語惡行]은 곧 착하지 못한 것[不善]이면서 결(結)이 아니며 박(縛)도 아니며 수면(隨眠)도 아니며 수번뇌(隨煩惱)도 아니며 전(纏)도 아니다. 이것은 버릴 대상[所棄]이요 등질 대상[所捨]이요 끊을 대상[所斷]이요 두루 다 아는 것[遍知]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3_b_09L如貪不善根如是瞋不善根癡不善根亦爾身惡行惡行是不善非結非縛非隨眠非隨煩惱非纏是所棄所捨所斷遍知於後世感苦異熟
뜻의 악행[意惡行]은 곧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요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3_b_13L意惡行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能於後世感苦異熟
욕상(欲想)ㆍ에상(恚想)ㆍ해상(害想)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이 아니요 박도 아니며 수면도 아니요 수번뇌도 아니며 전도 아니요 이것은 버려야 할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요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3_b_15L欲想恚想想是不善非結非縛非隨眠非隨煩非纏是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욕심(欲尋)ㆍ에심(恚尋)ㆍ해심(害尋)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이 아니요 박도 아니며 수면도 아니요 이것은 수번뇌이고 전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3_b_18L欲尋恚尋害尋是不非結非縛非隨眠是隨煩惱非纏是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025_0003_c_01L욕계(欲界)ㆍ에계(恚界)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해계(害界)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이 아니며 박도 아니요 수면도 아니며, 이것은 수번뇌이고 전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3_b_21L欲界恚界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害界是不善非結非非隨眠是隨煩惱非纏是所棄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욕루(慾漏)와 무명루(無明漏)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유루(有漏)는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025_0003_c_02L無明漏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有漏非不善是結隨眠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탐의 화[貪火]ㆍ진의 화[瞋火]ㆍ치의 화[癡火]와 욕애(欲愛)는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025_0003_c_07L貪火瞋火癡火及欲愛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無色愛非不善是結隨眠隨煩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탐의 소유[貪所有]ㆍ진의 소유[瞋所有]ㆍ치의 소유[癡所有]와 탐의 구[貪垢]ㆍ진의 구[瞋垢]ㆍ치의 구[癡垢]와 탐의 박[貪縛]ㆍ진의 박[瞋縛]ㆍ치의 박[癡縛]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3_c_12L貪所有瞋所有癡所有瞋垢癡垢貪縛瞋縛癡縛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2) 올타남송(嗢拕南頌)
025_0003_c_15L識身足論目乾連蘊第一中第二嗢拕南頌

폭(瀑)과 액(軛)과 취(取)와 개(蓋)와
하(下)와 상(上)과 재(栽)와 구애(拘礙)와
견(見)과 애(愛)와 수면(隨眠)과
사지(邪支)와 결(結)과 업도(業道)이다.
025_0003_c_16L瀑扼取繫蓋
下上栽拘㝵
見愛與隨眠
邪支結業道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네 가지의 폭류가 있으니, 욕폭류(欲瀑流)와 유폭류(有瀑流)와 견폭류(見瀑流)와 무명폭류(無明瀑流)31)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그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3_c_18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四種瀑流欲瀑流有瀑流見瀑流無明瀑流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어떤 이가 욕폭류에 대하여 이것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미 관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관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관하리라는 것에 대하여 그대는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3_c_22L答言復問彼言汝然此不謂有能於欲瀑流已觀今觀當觀是不善
025_0004_a_01L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관한다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관한다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는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관한다 하면, ‘미래는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는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4_a_01L答言爲何所觀過去耶未來耶在耶若言觀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觀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의 것을 관한다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바로 관할 대상[所觀]이요 하나는 곧 관하는 자[能觀]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고,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바로 관할 대상이요 하나는 곧 관하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곧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관한다는 말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4_a_06L若言觀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是所觀一是能觀此不應理若不說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是所觀一是能觀則不應說觀於現言觀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관하지 않는다 하면, 곧 욕폭류에 대하여 ‘이것은 바로 선하지 않다’라고 이미 관하였거나 지금 관하거나 앞으로 관할 것이 없으리니, 만일 관하는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싫어하였거나 지금 싫어하거나 앞으로 싫어할 것이 없으며, 만일 싫어하는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잡염을 여의었거나 지금 잡염을 여의고 있거나 앞으로 잡염을 여읠 것이 없다. 만일 잡염을 여읠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해탈하였거나 지금 해탈하고 있거나 앞으로 해탈할 것이 없으며, 만일 해탈할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반열반하였거나 지금 반열반하고 있거나 앞으로 반열반할 것이 없다.”
025_0004_a_11L若言不觀過未來現在則無能於欲瀑流已觀今觀當觀是不善若無能觀則無能已厭今厭當厭若無能厭則無能已離染今離染當離染若無能離染無能已解脫今解脫當解脫若無能解脫則無能已般涅槃今般涅槃般涅槃
마치 선하지 않다고 하는 것과 같아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과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요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도 그러하다.
다시 그에게 물으리라.
“어떤 이가 욕폭류에 대하여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는다’라고 이미 관하였거나 지금 관하거나 앞으로 관할 것을 그대는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4_a_18L如不善如是結隨眠隨煩所棄所捨所斷遍知亦爾復問彼言汝然此不謂有能於欲瀑流已今觀當觀後世感苦異熟
025_0004_b_01L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관한다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관한다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관한다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4_a_21L彼答言爲何所觀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觀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觀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의 것을 관한다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역시 업을 짓고 또한 곧 이 업의 이숙을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역시 업을 짓고 또한 곧 이 업의 이숙을 받아들인다’고 말하지 않으면, 곧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관한다고 함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4_b_03L若言觀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亦能造業亦卽領受此業異熟此不應理若不說一補特伽羅非前非後亦能造業亦卽領受此業異熟則不應說觀於現在觀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관하지 않는다 하면, 곧 욕폭류에 대하여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는다’라고 이미 관하였거나 지금 관하거나 앞으로 관할 것이 없을 것이다. 만일 관하는 것이 없다면, 곧 이미 싫어하였거나 지금 싫어하거나 앞으로 싫어할 것이 없으며, 만일 싫어할 것이 없다면, 곧 이미 잡염을 여의었거나 지금 잡염을 여의거나 앞으로 잡염을 여읠 것이 없다. 만일 잡염을 여읠 수 없다 하면, 곧 이미 해탈하였거나 지금 해탈하거나 앞으로 해탈할 것이 없고 만일 해탈할 것이 없다 하면, 곧 이미 반열반하였거나 지금 반열반하거나 앞으로 반열반할 것이 없다.
025_0004_b_08L若言不觀過去現在則無能於欲瀑流已觀今觀當觀後世感苦異熟若無能觀則無能已厭今厭當厭若無能厭則無能已離染今離染當離染若無能離染則無能已解脫今解脫當解脫若無能解脫則無能已般涅槃今般涅槃當般涅槃
마치 욕폭류에서와 같아서 견폭류(見瀑流)와 무명폭류(無明瀑流)도 그러하다.
유폭류(有瀑流)는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면서 이것은 바로 결(結)ㆍ박(縛)ㆍ수면(隨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과 버릴 대상[所棄]이요 등질 대상[所捨]이요 끊을 대상[所斷]이요 두루 다 아는 것[遍知]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異熟)을 받는 것이 아니다.
025_0004_b_15L如欲瀑流如是見瀑流明瀑流亦爾有瀑流非不善是結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폭류에서와 같이 액(扼)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모든 취(取) 가운데서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요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4_b_18L如瀑流扼亦爾於諸取中欲取見取戒禁取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025_0004_c_01L아어취(我語取)는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바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와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요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계(繫)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4_b_21L我語取非不善是結隨眠隨煩惱所棄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繫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모든 개(蓋) 가운데서 탐욕의 덮개[貪慾蓋]와 성냄의 덮개[瞋恚蓋]와 의심의 덮개[疑蓋]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4_c_02L於諸蓋中貪欲蓋瞋恚蓋疑蓋是不隨眠隨煩惱所棄所捨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혼침수면의 덮개[惛沈睡眠蓋]와 도거악작의 덮개[掉擧惡作蓋]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이 아니며 박이 아니고 수면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수번뇌요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4_c_05L惛沈睡眠蓋掉擧惡作蓋是不善非結非縛非隨眠是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하분결(下分結) 중의 살가야견(薩迦耶見)32)은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4_c_08L下分結中薩迦耶見非不善是結隨眠隨煩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그 밖의 하분결33)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4_c_11L餘下分結是不善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於後世感苦異熟
상분결[上分結] 중의 도거결(掉擧結)은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요 결이 아니며 박이 아니요 수면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수번뇌요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025_0004_c_13L上分結中掉擧結非不善非結非縛非隨眠是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그 밖의 나머지 상분결34)은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다.
025_0004_c_16L餘上分結非不善是結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오심근재(五心根栽)과 오심구애(五心拘礙)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4_c_18L五心根栽五心拘㝵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모든 소견[見] 가운데서 살가야견(薩迦耶見)과 변집견(邊執見)은 착하지 못한 것은 아니며, 이것은 바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025_0004_c_20L諸見中薩迦耶見邊執見非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025_0005_a_01L사견(邪見)과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4_c_23L邪見見取戒禁取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모든 신애(身愛)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03L諸身愛是不善隨眠隨煩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모든 수면(隨眠)35) 중의 유탐수면(有貪隨眠)은 착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025_0005_a_05L諸隨眠中有貪隨眠非不是結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非於後世感苦異熟
그 밖의 수면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07L所餘隨眠是不善隨眠隨煩惱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
모든 사지(邪支)36) 중의 사견(邪見)은 곧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10L諸邪支中邪見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사어(邪語)와 사업(邪業)과 사명(邪命)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이 아니며 박이 아니고 수면이 아니며 수번뇌가 아니고 전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12L邪語邪業邪命是不非結非縛非隨眠非隨煩惱非纏是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그 밖의 사지(邪支)37)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이 아니며 박이 아니요 수명이 아니며, 이것은 수번뇌이고 전이 아니며, 이것은 바로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15L所餘邪支是不善非結非縛非隨眠是隨煩惱非纏是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모든 결(結) 가운데서 질투하는 결[嫉結]ㆍ간탐하는 결[慳結]은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이요 박이요 수면이 아니며, 이것은 수번뇌요 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17L於諸結中嫉結慳結是不善非隨眠是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於後世感苦異熟
그 밖의 모든 결도 곧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20L所餘諸結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025_0005_b_01L모든 업도[十業道] 중 앞의 일곱 가지 업도는 바로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도 아니며 박도 아니고 수면도 아니요 수번뇌도 아니며 전도 아니고 이것은 곧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a_22L諸業道中前七業道是不善非結非縛非隨眠非隨煩惱非纏是所棄所捨所斷遍能於後世感苦異熟
나중의 세 가지 업도도 곧 착하지 못한 것이면서 결ㆍ박ㆍ수면ㆍ수번뇌ㆍ전이며 버릴 대상이요 등질 대상이며 끊을 대상이요 두루 다 아는 것이니, 후세에 괴로움의 이숙을 받게 한다.
025_0005_b_02L後三業道是不善隨眠隨煩惱所棄所捨所斷遍知能於後世感苦異熟

3) 올타남송(嗢拕南頌)
025_0005_b_04L識身足論目乾連蘊第一中第三嗢拕南頌

결(結)ㆍ개(蓋)ㆍ각지(覺支)ㆍ심(心)ㆍ수(受)ㆍ의(意)와
조련(調練)과 타견(陀堅)이 맨 뒤이다.
025_0005_b_05L結蓋覺支心受意
調練陁堅最爲後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안으로 눈의 결[內眠結]이 있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눈의 결이 있다고 깨달아 알 것이요, 만일 안으로 눈의 결이 없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눈의 결이 없다고 깨달아 알아서 이와 같은 눈의 결이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 생기면 생긴 뒤에는 끊어지게 하고 끊어진 뒤에는 앞으로 다시는 생기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여실히 안다’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5_b_06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若有內眼如實了知我有內眼結若無內眼如實了知我無內眼結如此眼結未生而生生已令斷斷已當來不復更生亦如實知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안다고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말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안다고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말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5_b_13L彼答言爲何所知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知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知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의 것을 안다고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알아야 할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아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을 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고,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곧 알아야 할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곧 아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면,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함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5_b_17L言知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知一是能知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知一是能知不應說言知於現在言知現在不應道理
025_0005_c_01L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이것은 곧 경 가운데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안으로 눈의 결이 있으면 ≺나에게는 안으로 눈의 결이 있다≻ 고 여실하고도 분명히 알고, 만일 안으로 눈의 결이 없으면 ≺나에게는 안으로 눈의 결이 없다≻고 여실하고도 분명히 안다. 이와 같은 눈의 결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가 생기면 생긴 뒤에는 끊어지게 하고 끊어진 뒤에는 앞으로 다시는 생기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여실히 안다’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계경을 비방하거나 어기고 거역함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마치 눈의 결[眠結]과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결도 또한 그러하다.
025_0005_b_23L若言不知過去未來現在是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若有內眼如實了知我有內眼結若無內眼如實了知我無內眼結如此眼結未生而生生已令斷斷已當來不復更生亦如實知如是契經世尊所說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不應道理如眼結如是耳鼻舌身意結亦爾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 한다.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안으로 탐욕의 덮개[貪慾蓋]가 있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탐욕의 덮개가 있다≻라고 깨달아 알 것이요, 만일 안으로 탐욕의 덮개가 없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탐욕의 덮개가 없다≻라고 깨달아 알아서, 이와 같은 탐욕의 덮개가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 생기면 생긴 뒤에는 끊어지게 하고 끊어진 뒤에는 앞으로는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여실히 안다’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5_c_09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於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若有內貪欲蓋如實了知我有內貪欲蓋若無內貪欲蓋如實了知我無內貪欲蓋如此貪欲蓋未生而生生已令斷已當來不復更生亦如實知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안다고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안다고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5_c_16L彼答言爲何所知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知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知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025_0006_a_01L만일 현재의 것을 안다고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알아야 할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아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알아야 할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알려고 하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면,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안다는 말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5_c_21L若言知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一是能知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一是能知則不應言知於現在知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알지 못한다 하면, 이것은 곧 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안으로 탐욕의 덮개가 있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탐욕의 덮개가 있다≻라고 깨달아 알 것이요, 만일 안의 탐욕의 덮개가 없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탐욕의 덮개가 없다≻라고 깨달아 알아서, 이와 같은 탐욕의 덮개가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 생기면, 생긴 뒤에는 끊어지게 하고 끊어진 뒤에는 앞으로는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여실히 안다’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에서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함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6_a_03L若言不知過去現在是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若有內貪欲蓋如實了知我有內貪欲蓋若無內貪欲蓋如實了知我無內貪欲蓋如此貪欲蓋未生而生生已令斷斷已當來不復更生亦如實知如是契經世尊所說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不應道理
마치 탐욕의 덮개에서와 같아서 진에개(瞋恚蓋)ㆍ혼침수면개(惛沈睡眠蓋)ㆍ도거악작개(掉擧惡作蓋) 및 의개(疑蓋)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025_0006_a_11L如貪欲蓋如是瞋恚惛沈睡眠掉擧惡作疑蓋亦爾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안으로 염등각지(念等覺支)가 있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염등각지가 있다≻고 깨달아 알 것이요, 만일 안의 염등각지가 없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염등각지가 없다≻고 깨달아 알아서 이와 같은 안의 염등각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생기게 하고 생긴 뒤에는 머무르고 잊지 않고 닦아 익히고 완성시키며 더욱더 늘리고 광대하게 하면서 지혜로써 증득케 하는 것도 또한 여실히 안다’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6_a_13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於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若有內念等覺支如實了知我有內念等覺支若無內念等覺支如實了知我無內念等覺支如此念等覺支未生令生生已令住不忘修習圓滿倍復增廣智作證亦如實知
025_0006_b_01L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안다고 말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안다고 말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6_a_21L彼答言爲何所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知過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不應道理若言知未來應說有未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하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알아야 할 대상[所知]이요, 다른 하나는 아는 자[能知]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알아야 할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아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곧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6_b_02L若言知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知一是能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知一是能則不應言知於現在言知現在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알지 못한다 하면, 이것은 곧 경 가운데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안으로 염등각지가 있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염등각지가 있다≻라고 깨달아 알 것이요, 만일 안으로 염등각지가 없으면, 여실히 ≺나에게는 안으로 염등각지가 없다≻라고 깨달아 알아서 이와 같은 염등각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생기게 하고 생긴 뒤에는 머무르고 잊지 않고 닦아 익히고 원만하게 하며 더욱더 늘리고 광대하게 하면서 지혜로 증득하는 것도 또한 여실히 안다’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에서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6_b_08L若言不知過去未來現在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若有內念等覺支如實了知我有內念等覺若無內念等覺支如實了知我無內念等覺支如此念等覺支未生令生生已令住不忘修習圓滿倍復增廣智作證亦如實知如是契經世尊所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不應道
마치 염등각지에서와 같아서 택법등각지(擇法等覺支)와 정진등각지(精進等覺支)와 희등각지(喜等覺支)와 경안등각지(輕安等覺支)와 정등각지(定等覺支)와 사등각지(捨等覺支)도 또한 그러하다.
025_0006_b_17L如念等覺支如是擇法等覺支進等覺支喜等覺支輕安等覺支等覺支捨等覺支亦爾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탐이 있는 마음[有貪心]이면 여실히 이것은 바로 탐이 있는 마음이라고 깨달아 알며, 만일 탐을 여읜 마음[離貪心]이면 여실히 이것은 바로 탐을 여읜 마음이라고 깨달아 안다’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6_b_19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若有貪心如實了知是有貪心若離貪心如實了知是離貪心
025_0006_c_01L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무엇을 안다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안다고 하면 ‘과거는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안다고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6_c_01L彼答言爲何所知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知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知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의 것을 안다고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알아야 할 대상[所知]이요, 다른 하나는 아는 자[能知]로서 두 개의 마음의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알아야 할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아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라고 한다면, 곧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6_c_05L言知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知一是能知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知一是能知則不應言知於現在言知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알지 못한다 하면, 이것은 곧 경 가운데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만일 탐이 있는 마음이면, 여실히 이것은 바로 탐이 있는 마음이라고 깨달아 알며, 만일 탐을 여읜 마음이면, 여실히 이것은 바로 탐을 여읜 마음이라고 깨달아 안다’라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에서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한다면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6_c_11L若言不知過去未來現在是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若有貪心如實了知是有貪心若離貪心如實了知是離貪心如是契經世尊所說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不應道理
마치 탐심이 있는 마음과 탐심을 여읜 마음에서와 같아서 진이 있는 마음[有瞋心]ㆍ진을 여읜 마음[離瞋心]과 치가 있는 마음[有癡心]ㆍ치를 여읜 마음[離癡心]과 거두어진 마음[略心]38)ㆍ산란한 마음[散心]과 위축된 마음[沈心]ㆍ뽐내는 마음[擧心]과 들뜬 마음[掉動心]ㆍ들뜨지 않은 마음[不掉動心]과 고요하지 않은 마음[不寂靜心]ㆍ고요한 마음[寂定心]ㆍ안정되지 않은 마음[不定心]ㆍ안정된 마음[定心]과 닦지 않은 마음[不修心]ㆍ닦은 마음[修心]과 해탈하지 않은 마음[不解脫心]ㆍ해탈한 마음[解脫心]을 여실하고도 분명히 아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025_0006_c_16L如有貪心離貪心如是有瞋心離瞋有癡心離癡心略心散心沈心擧掉動心不掉動心不寂靜心寂靜不定心定心不修心修心不解脫心解脫心如實了知亦爾
025_0007_a_01L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느낌[受]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하나는 몸의 느낌[身受]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의 느낌[心受]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6_c_21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受有二種一者身受二者心受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具壽)39)여, 만일 어느 때에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을 받아들인다면 그때에는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면 ‘미래는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a_02L彼答言具壽若時領納身受心受爾時當言在何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在過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不應道理若言在未來應說有未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몸의 느낌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의 느낌으로서 두 개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몸의 느낌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의 느낌으로서 두 개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곧 현재에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a_07L若言在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前非後領納二受一者身受二者心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前非後領納二受一者身受二者心則不應言在於現在言在現在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경 가운데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느낌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하나는 몸의 느낌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의 느낌이다’라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에서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한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a_13L若言不在過去未來現在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受有二一者身受二者心受如是契經世尊所說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應道理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 가운데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느낌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즐거운 느낌[樂受]이요, 둘째는 괴로운 느낌[苦受]이며, 셋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다’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7_a_18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受有三種一者樂受二者苦受三者不苦不樂
025_0007_b_01L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만일 어느 때에 즐거운 느낌 등 세 가지의 느낌을 받아들인다면, 그때에는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또한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a_23L彼答言具壽若時領納樂等三爾時當言在何世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在過去應說有過去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在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첫째는 즐거운 느낌이요, 둘째는 괴로운 느낌이요, 셋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라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첫째는 즐거운 느낌이요, 둘째는 괴로운 느낌이며, 셋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세 가지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곧 현재에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b_05L若言在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領納三受一者樂受二者苦受三者不苦不樂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前非後領納三受一者樂受二者苦三者不苦不樂受則不應言在於現在言在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 이것은 경 가운데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말씀하시되 ‘느낌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즐거운 느낌이요, 둘째는 괴로운 느낌이며, 셋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라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에서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한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b_11L若言不在過去未來現在是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受有三種一者樂受二者苦受三者不苦不樂受如是契經世尊所說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應道理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뜻[意]과 법(法)을 반연으로 하여 의식(意識)이 발생한다’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7_b_17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法爲緣發生意識
025_0007_c_01L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만일 어느 때에 의식이 일어난다면, 그 의식은 그때에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b_21L彼答言具壽若時意識現起意於爾時當言在何世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在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若言在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뜻과 의식의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뜻과 의식의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곧 현재에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c_03L若言在現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意及意識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及意識則不應言在於現在言在現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뜻과 법을 반연으로 하여 의식이 발생한다’라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에서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한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c_08L若言不在過去未來是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法爲緣發生意識如是契經世尊所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不應道理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착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이[齒]로써 이를 부지하고 혀끝을 잇몸에 붙이며, 다시 그 마음으로써 그의 마음을 항복받고 붙잡아 지니고[執持] 조련하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7_c_13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以齒持齒舌端著齶復以其心降伏執持調練其心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어느 것을 조련하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만일 과거의 것을 조련한다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조련한다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c_18L何所調練過去耶未來耶現在若言調練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調練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未來無不應道理
025_0008_a_01L만일 현재의 것을 조련한다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조련하는 대상[所調練]이요, 다른 하나는 조련하는 자[能調練]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조련하는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조련하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곧 현재의 것을 조련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조련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7_c_22L若言調練現在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一所調練一能調練此不應理言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一所調練一能調練則不應言調練現在言調練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조련하지 않는다 하면, 이것은 곧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이[齒]로써 이를 부지하고 혀끝을 잇몸에 붙이며, 다시 그 마음으로써 그의 마음을 항복받고 붙잡아 지니고 조련하라’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한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a_04L若言不調練過去未來現在是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以齒持齒舌端著復以其心降伏執持調練其心是契經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應道理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저 구수 보색게라사리(補穡揭羅娑利) 필추에게 ‘열여덟 가지의 의근행[十八意近行]이 있는 것을 일컬어 사부(士夫)40)라 한다’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8_a_10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爲彼具壽補穡揭羅娑利苾芻說有十八意近名爲士夫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만일 어느 때에 눈이 물질[色]을 본 뒤에 기쁜 곳[喜處]을 따르는 모든 물질의 근행[色近行]이 있으면 그때에 열일곱 가지의 나머지 의근행(意近行)은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a_15L彼答言復問彼言具壽若時眼見色已隨順喜處諸色近爾時十七餘意近行當言在何世過去耶未來耶現在耶若言在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在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025_0008_b_01L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열여덟 가지의 의근행이 동시에 현행(現行)하는 일이 있다’고 말해야 하나,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열여덟 가지의 의근행이 동시에 현행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곧 현재에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a_21L言在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有十八意近行同時現行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有十八意近行同時現行則不應言在於現在言在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하면, 이것은 곧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저 구수 보색게라사리 필추를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열여덟 가지 의근행이 있는 것을 일컬어 사부라 한다’고 하신 이와 같은 계경에서의 세존의 말씀을 그대는 곧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이와 같이 세존께서 하신 말씀의 계경을 비방하고 어기고 거역한다면 그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b_03L若言不在過去未來現在是則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爲彼具壽補穡揭羅娑利苾芻說有十八意近行名爲士夫如是契經世尊所說汝便誹謗違越拒逆若汝誹謗違越拒逆如是世尊所說契經不應道理

4) 올타남송(嗢拕南頌)
025_0008_b_09L識身足論目乾連蘊第一中第四嗢柁南頌初

무소연(無所緣)과 정려(靜慮)와
이생(異生)과 대사(大士)와 수(羞)와
유정들의 거처[有情居]를 널리 펴 설하는 것과
식(食)과 성제(聖諦)와 누를 끊는 것[斷漏]이다.
025_0008_b_10L無所緣靜慮
異生大士羞
宣說有情居
食聖諦斷漏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無所緣心]이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필추는 요별(了別)하나니, 요별하기 때문에 일컬어 식(識)이라 한다. 어느 것을 요별하느냐 하면, 이른바 물질[色]을 요별하고 소리[聲]ㆍ내음[香]ㆍ맛[味]ㆍ촉감[觸]ㆍ법[法]을 요별하느니라’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8_b_12L沙門目連作如是說有無所緣心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苾芻了別了別故名爲何所了別謂了別色了別聲香味觸法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주어야 하리라.]
“그대는 이미 논의에 지고 있다[墮負]. 만일 그대가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 한다면 곧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필추는 요별하나니, 요별하기 때문에 일컬어 식이라 한다. 어느 것을 요별하느냐 하면, 이른바 물질을 요별하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을 요별하느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았어야 하나니, 이와 같은 말씀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b_17L彼答言汝聽墮負若汝說有無所緣心則不應言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苾芻了別了別故名爲識何所了別謂了別色了別聲香味觸法作如是言不應道理
025_0008_c_01L그대는 지금 만일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되 ‘필추는 요별하나니, 요별하기 때문에 일컬어 식이라 한다. 어느 것을 요별하느냐 하면, 이른바 물질을 요별하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을 요별하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인정한다면, 곧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b_21L汝今若言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芻了別了別故名爲識何所了別了別色了別聲香味觸法則不應說有無所緣心言有無所緣心不應道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란 반드시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그것이냐 하면, 이른바 과거를 반연하기도 하고 혹은 미래를 반연하기도 하는 것이다.”
025_0008_c_03L彼作是言無所緣心決定是有者是耶謂緣過去或緣未來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본래 어부였던 사저(沙底) 필추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필추야, 저 여러 가지의 인(因)으로 말미암고 저 여러 가지의 연(緣)으로 말미암아 식(識)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저 여러 가지의 범주[數]에 떨어지나니, 눈과 물질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안식(眼識)의 범주에 떨어지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그리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의식(意識)의 범주에 떨어진다’ 하셨는데, 그대는 그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8_c_04L應問彼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爲本魚師莎底苾芻說言芻由彼彼因由彼彼緣發生於識旣生已墮彼彼數由眼及色發生於識旣生已墮眼識數由耳鼻舌身意及法發生於識識旣生已墮意識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주어야 하리라.]
“그대는 논리에 지고 있다. 만일 그대가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반드시 있다고 한다면 곧 이른바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본래 어부였던 사저 필추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필추야, 저 여러 가지의 인으로 말미암고 저 여러 가지의 연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며, 식이 생긴 뒤에는 저 여러 가지의 범주에 떨어지나니, 눈과 그리고 물질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안식의 범주에 떨어지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그리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의식의 범주에 떨어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야 하니,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c_11L彼答言汝聽墮負若汝說言無所緣心決定是有則不應言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爲本魚師莎底苾芻說言苾芻由彼彼因由彼彼緣發生於識識旣生已墮彼彼數眼及色發生於識識旣生已墮眼識由耳鼻舌身意及法發生於識旣生已墮意識數作如是言不應道
025_0009_a_01L그대가 이제 만일 이른바 계경에서 세존께서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본래 어부였던 사저 필추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필추야, 저 여러 가지의 인으로 말미암고 저 여러 가지의 연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저 여러 가지의 범주에 떨어지나니, 눈과 그리고 물질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안식의 범주에 떨어지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그리고 [소리ㆍ내음ㆍ맛ㆍ촉감]ㆍ법으로 말미암아 식을 일으키고 식이 생긴 뒤에는 의식의 범주에 떨어진다’고 하신 말씀을 인정한다면, 곧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은 반드시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반드시 반연할 대상이 없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8_c_19L汝今若言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爲本魚師莎底苾芻說言由彼彼因由彼彼緣發生於識旣生已墮彼彼數由眼及色發生於識旣生已墮眼識數由耳鼻舌身意及法發生於識識旣生已墮意識則不應說無所緣心決定是有決定有無所緣心不應道理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만일 나쁜 짓 한 것을 부끄러워하고[慚羞]ㆍ애락(愛樂)을 막아 수호하고 배운 것에 오래오래 있으면서 잘 머물면[善處] 세간의 네 가지 정려를 증득한다고 하니, 그것을 그대는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9_a_03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若有慚羞惡作防護愛樂所學久居善處證得世閒四種靜慮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저 구수(具壽)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는 여러 가지로 도리에 밝으며 범행을 같이한 어떤 이가 와서 말하기를 ‘구수여, 그대 스스로가 증득한 바를 기별(記別)해야 합니다’고 하면, 그는 말하기를 ‘구수여, 나는 지금 이미 세간의 네 가지 정려를 증득하였습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대에게 묻겠다. 곧 저 구수는 언제 증득한 것을 기별하는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025_0009_a_07L彼答言卽彼具壽臨終時分有諸識達同梵行者來詣問言具壽當記自所證得彼作是言具壽我今已得世閒四種靜慮應問彼言卽彼具壽記何所證過去未來耶現在耶
만일 과거의 것을 기별한다고 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의 것을 기별한다고 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9_a_12L若言記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記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
만일 현재의 것을 기별한다고 하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바로 기별할 대상[所記]이요, 다른 하나는 바로 기별하는[能記]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하며, 또 선정 가운데 있어서는 특이한 말[異語]을 해야 하나니,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바로 기별할 대상이요, 다른 하나는 곧 기별하는 자로서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또 선정 가운데 있어서의 특이한 말을 하지 않으면, 곧 현재의 것을 기별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의 것을 기별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9_a_15L若言記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記一是能記又在定中應說異語此不應理若不說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是所記一是能記又在定中不說異語則不應言記於現在言記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것을 기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빈 것이어서 남보다 뛰어난 법[勝過人法]이 없으면서도 자칭 ‘있다’고 말할 뿐이니, 그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025_0009_a_22L若言不記過去未來現在是則空無勝過人法自稱言有彼應毀壞
025_0009_b_01L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의 근(根)이 있으니, 이른바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이니라.
025_0009_a_23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有五種根所謂信根精進根念根定根慧根
필추야, 만일 이 다섯 가지의 근이 있으면 상품(上品)에 해당하며, 맹렬하고 날카로우며[猛利] 고르고 좋으며[調善] 원만하기 때문에 아라한(阿羅漢)ㆍ구분해탈(俱分解脫)41)을 이루나니,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혜해탈(慧解脫)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래로 더 내려가면 한층 더 미약하고 둔해져서 신증(身證)을 이루며,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또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견득(見得)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또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신해탈(信解脫)을 이루며,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수법행(隨法行)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더 한층 미약하고 둔해져서 수신행(隨信行)을 이루느니라.
025_0009_b_04L若有於此五根由上品故由猛利由調善故由圓滿故成阿羅漢俱分解脫自斯已降轉微轉鈍成慧解自斯已降轉微轉鈍成於身證斯已降轉微轉鈍成於見得自斯已轉微轉鈍成信解脫自斯已降微轉鈍成隨法行自斯已降轉微轉成隨信行
필추야, 이와 같이 근바라밀다(根波羅密多)42)를 반연하여 과바라밀다(果波羅密多)43)가 시설된 줄 알아야 하며, 과바라밀다를 반연하여 보특가라(補特伽羅)44) 바라밀다가 시설된 줄 알아야 하니, 이와 같이 하면 다섯 가지의 근은 헛되이 버려짐이 없느니라.
비구야, 만일 이 다섯 가지의 근에 대하여 일체가 다 무아(無我)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생(異生)45)을 벗어난 곳[外異生品]에 머무른다≻고 하느니라.’
025_0009_b_12L苾芻如是根波羅蜜多爲緣果波羅蜜多施設可知果波羅蜜多爲緣補特伽羅波羅蜜多施設可知如是五根無有唐捐苾芻若有於此五根一切皆無我說彼住外異生品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유학(有學)46)이 번뇌에 얽힌 마음[纏心]을 일으킬 때에 이 다섯 가지의 근은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9_b_17L彼答言具壽有學現起纏心爾時此五根當言在何世過去耶來耶現在耶若言在過去應說有過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在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言未來無不應道理
025_0009_c_01L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배우는 마음[學心]이요, 다른 하나는 번뇌의 마음으로서 이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해야 하나, 이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한 보특가라에게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한 찰나 동안에] 하나는 배우는 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번뇌의 마음으로서 이 두 개의 마음이 화합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곧 현재에 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에 있다고 말함은 도리에 맞지 않다.
025_0009_b_22L若言在現在應說有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者學心二者纏心此不應理若言無一補特伽羅非前非後二心和合一者學心二者纏心則不應言在於現在言在現在不應道理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곧 배울 것 있는 이가 번뇌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바깥[外]이라 말해야 하고, 또는 이생(異生)이라 말해야 하며, 바깥이자 이생의 부류에 머물러 있다고 말해야 한다.”
025_0009_c_04L若言不在過去未來現在是則有學現起纏心應言是外應言異生應言住在外異生品
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구수 무멸(無滅)47)을 위하여 사람[大士]의 거친 생각[尋思]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욕탐심이 적은 것은 곧 법이지만 욕탐이 많은 것은 법이 아니니라[非法]’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9_c_07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爲具壽無滅於大士尋思中說少欲是法大欲非法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욕탐이 적은 것은 곧 무슨 법인가? 이것은 심소유법[心所有法]이어서 마음과 상응한다[心相應]. 구수여, 만일 아라한이 몸은 욕계(欲界)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滅定)에 들었다면 이와 같이 욕탐이 적은 것은 어느 세상에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025_0009_c_12L彼答言具壽少欲是何法心所有法與心相應具壽若阿羅漢身在欲界現入滅定如是少欲當言在何世過去耶未來耶現在耶
만일 과거에 있다고 한다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한다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한다면 곧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 이것은 곧 아라한의 몸이 욕계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에 들어있을 때는 조금의 욕탐도 없어야 한다.”
025_0009_c_15L若言在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過去無不應道理若言在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若言在現在卽不應說現入滅言現入滅定不應道理若言不在過去未來現在是則阿羅漢身在欲界現入滅定應無少欲
025_0010_a_01L사문 목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와 미래는 없고 현재와 무위는 있다.”
그에게 물어야만 하리니, “계경에서 세존께서는 훌륭한 말씀과 좋은 문체로 설하시면서 구수 라호라(羅怙羅)48)를 위하여 말씀하시되, ‘라호라야’ 만일 바르게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남에게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거나 그런 짓을 한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가 나쁜 업을 짓지 않음이 없다고 말하리라’라고 하셨는데, 그대는 이 말씀을 옳다고 여기는가?”
025_0009_c_22L沙門目連作如是說過去未來無在無爲有應問彼言汝然此不謂契經中世尊善語善詞善說爲具壽羅怙羅說羅怙羅若有正知而說妄語無羞無慚無有惡作我說彼無惡業不造
그가 대답하기를 “그렇다”고 한다면, [다시 물어야 하리라.]
“구수여, 남에게 부끄러워하고 자신에게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바로 어떠한 법인가? 이것은 심소유법(心所有法)이어서 마음과 상응한다고 하면, 구수여 만일 아라한이 몸은 욕계(欲界)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滅定)에 들어 있을 때는 저 부끄러움은 어느 세상에 있어야 하는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현재인가?
025_0010_a_05L彼答言具壽羞慚是何法心所有法與心相應具壽若阿羅漢身在欲界現入滅定羞慚當在何世過去耶未來耶現在耶
만일 과거에 있다고 말하면 ‘과거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과거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과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미래에 있다고 말하면 ‘미래가 있다’고 말해야 하고, ‘미래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현재에 있다고 말하면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지 않아야 하리니, ‘현재 멸정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 이것은 곧 아라한의 몸이 욕계에 있으면서 현재 멸정에 들어 있을 때는 응당 부끄러움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025_0010_a_08L若言在過去應說有過去不應無過去言過去無不應道理若言在未來應說有未來不應無未來言未來無不應道理言在現在則不應說現入滅定言現入滅定不應道理若言不在過去現在是則阿羅漢身在欲界現入滅定應無羞慚
說一切有部識身足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㓮造




  1. 1)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운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를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는데, 태종이 작성한 서문이 바로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이다.
  2. 2)죄를 지은 결과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세 가지 길로, 곧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3. 3)성문ㆍ연각ㆍ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를 말한다.
  4. 4)삼해탈(三解脫),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아공(我空), 법공(法空), 아법구공(我法俱空)을 가리키기도 하고 삼공해탈(三空解脫), 무상해탈(無相解脫), 무원해탈(無愿解脫)을 가리키기도 한다.
  5. 5)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인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이 있다.
  6. 6)인간의 심성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경계로,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육경(六境)을 말한다.
  7. 7)원문에는 ‘척(隻)’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맞지 않아 ‘형(夐)’으로 교정하여 번역하였다.
  8. 8)당(唐)의 현장 법사가 새로 불경 번역을 완성하자, 이것을 기념하여 태종과 고종이 서문과 기문을 작성하였다. 황제술성기는 바로 고종이 기문을 썼다는 의미이다.
  9. 9)『유마경(維摩經)』「불국품(佛國品)」에 나오는 보옥(寶玉)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상이나 탑의 상부를 장엄하게 꾸미는 데 사용된 덮개를 말한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으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10. 10)고승이 불경을 강론할 때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1. 11)향취산(香醉山)의 남쪽, 대설산(大雪山)의 북쪽에 있다는 상상의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물이다. 이 연못은 둘레가 8백 리이며, 여기에 용왕이 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려 섬부주(贍部州)를 비옥하게 한다고 전해진다.
  12. 12)경기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기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으로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지역을 말한다. 즉 나라의 중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13. 13)중국 고대 관중지방에 흐르는 8개의 하천을 말한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이 바로 이 관중지방에 있다.
  14. 14)색계의 네 가지 단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세계로, 물질세계는 존재하나 감각의 욕망에서는 벗어난 청정(淸淨)한 세계를 말한다.
  15. 15)마음을 더럽히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16. 16)원문에는 ‘치(夂)’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구(久)’로 번역하였다.
  17. 17)원문에는 ‘양(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따라 ‘양(揚)’으로 번역하였다.
  18. 18)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이나 상태를 말한다.
  19. 19)해당하는 범문 제명은 Abhidharma-vijñakāya-pāda-śāstra. 본 논에서는 6식신(識身)에 관한 언급이 주로 행해지고 있는 데서 논의 제목을 이처럼 붙였다고 여겨진다.
  20. 20)범어로는 Devaśarmān. 의역하여 천적(天寂)ㆍ현적(賢寂)이라고도 한다.
  21. 21)세존의 가르침, 곧 법장(法藏)을 말한다.
  22. 22)6근(根)의 대상으로서의 6경(境)을 말한다.
  23. 23)중생들의 무지를 열어줄 불ㆍ보살을 가리킨다.
  24. 24)범어로는 tathāgata-garbha. 일체 중생의 번뇌의 몸 가운데에 감추어져 있는 본래 청정하고 영원불변한 본성을 말한다.
  25. 25)올타남(嗢拕南)은 범어 udāna의 음역어. 달리 우다나(優陀那)ㆍ울다나(鬱陁那) 등으로 음역하거나 자설(自說)ㆍ무문자설(無問自說)ㆍ현응(玄應)ㆍ찬탄경(讚嘆經)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26. 26)범어 Pudgala의 음역어. ‘사람’을 뜻한다.
  27. 27)각각 인온(因蘊)ㆍ소연온(所緣蘊)ㆍ잡온(雜蘊)을 말한다.
  28. 28)범어로는 Maudgalyāyana-skandha. 여기에서 온(蘊, skandha)이란 ‘부분’을 의미한다.
  29. 29)범어로는 sūtra. 계(契)란 ‘도리에 합치하는 것’을 뜻한다.
  30. 30)범어로는 parinirvāṇa. ‘완전한 열반’이라는 뜻이다.
  31. 31)폭류(瀑流, ogha)란 ‘번뇌의 세력’을 마치 거친 물살에 비유하는 표현이다.
  32. 32)살가야(薩迦耶)는 범어 satkāya의 음역어. 살가야견이란 유신견(有身見, satk āya-dŗṣṭi)을 말한다.
  33. 33)5하분결 중 유신견을 제외한 욕탐ㆍ성냄ㆍ계금취ㆍ의심의 넷을 말한다.
  34. 34)5상분결 중 도결을 제외한 색탐ㆍ무색탐ㆍ만ㆍ무명의 넷을 말한다.
  35. 35)7수면(隨眠)을 말한다.
  36. 36)8사지(邪支)를 말한다.
  37. 37)사사유(邪思惟)ㆍ사정진(邪精進)ㆍ사념(邪念)ㆍ사정(邪定)을 말한다.
  38. 38)취심(聚心)이라고도 한다.
  39. 39)범어로는 āyuṣmat. 대덕(大德)ㆍ명자(命者)ㆍ혜명(慧命)ㆍ정명(淨命)ㆍ장로(長老)ㆍ장자(長者)ㆍ존자(尊者)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40. 40)범어로는 puriṣa. 사람 혹은 남자를 가리킨다.
  41. 41)구분(俱分, sāmānya-viśeṣa)이란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고 특수한 것이기도 한 것을 말한다.
  42. 42)범어로는 indriya-pāramitā.
  43. 43)범어로는 phala-pāramitā.
  44. 44)범어로는 Pudgala-pāramitā.
  45. 45)범어로는 pṛthag-jana. 범부를 말한다.
  46. 46)범어로는 śaikṣa.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상태로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고인(苦忍)에서 아라한과에 이르기 직전의 3과(果) 4향(向)의 7종의 학인을 말한다.
  47. 47)범어로는 Aniruddha.
  48. 48)범어로는 Rāhula. 혹은 라후라(羅喉羅)라고 하거나 의역하여 복장(覆障)이라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