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033_0996_b_01L보리행경(菩提行經)1) 제1권


용수(龍樹) 집송2)
천식재(天息災) 한역3)
김용표 번역


1. 찬보리심품(讚菩提心品)4)

부처님의 가없는 묘법(妙法)의 근원에
불자(佛子)는 정심(正心)으로 귀명(歸命)의 예를 올립니다.
부처님은 감로계(甘露戒)를 드리워 보호하시니
저는 지금 설법을 찬탄하며 모든 법에 귀의합니다.

이 설법은 이제까지 없었던 미증유의 것
나는 스스로 독단하여 설하지는 않는다.
나와 남이 없는 이와 같은 때에
스스로 사유하고 깊이 관찰한다.

이와 같이 발심하여 관찰할 때에
나로 하여금 선(善)을 능히 증장하게 하나니,
항상 이와 같이 보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사람들도
저 불세존(佛世尊)과 같이 되리라.

이 세계는 찰나(刹那)라 생을 얻기 어려우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스스로 경하[慶]할 일이다.
그런데도 만일 보리심(菩提心) 여의기를 생각한다면
어찌 다음 생에 사람의 몸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구름에 가려 밤이 칠흑같이 어두운데
번쩍이는 번개의 광명이 찰나에 드러난 것과 같다.
부처님의 위덕(威德)의 이로움도 이와 같아
찰나에 뜻을 발하여 중생은 복을 얻는다.

이런 까닭에 선(善)은 적고 노력이 미약하여도
능히 큰 악(惡)의 업력(業力)을 깨뜨린다.
이와 같이 보리심을 발한다면
이 선은 용맹스럽게 전진하여 능히 악을 뛰어넘을 수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끝없는 겁(劫) 동안 사유에 잠기시어
위대하신 부처님은 이 진실을 보고 설하셨다.
만약 괴로움에서 쾌락을 얻게 된다면
끝없는 중생을 한없이 구제하리라.

모든 유정(有情)이 있는 곳의 온갖 고통과
백천의 번뇌와 공포를 여의고
갖가지 안락과 쾌락을 누리기 원한다면
항상 보리심을 여의지 않아야 한다.

욕망의 사슬에 얽매인 가련한 사람도
윤회 속에 있으나, 애착(愛著)하는 마음을 떠나
찰나에 보리심을 일으킨다면
인간과 천상(天上)이 모두 기뻐하며 귀명할 것이다.

부정(不淨)한 몸을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불보상(佛寶像)과 같이 아무런 가치가 없을 것이다.
견고한 보배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는 영약과 같은
미묘한 보리심을 지니고 닦아야 한다.

보리심의 보배스러운 영험은 끝이 없어
그 가치는 세간(世間)에 비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인들과 반려(伴侶)들은
이를 잘 수지하고 간직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파초(芭蕉)는 부실하니, 열매를 맺기는 하나
열매를 맺은 후 소멸하여 버린다.
그러나 보리심의 나무는 늘 청정하여
항상 수승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도 소멸하지 않는다.

이미 무거운 여러 죄업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보리심에 의지한다면 찰나에 그 업에서 벗어난다.
용맹하게 보리심을 일으키면 모든 공포가 사라지는데
저 어리석은 유정은 어찌하여 의지하지 않는가?

비유하면 겁(劫)이 다할 때의 큰 불과 같이
찰나에 죄업의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다.
자비로우신 세존의 무량한 말씀을 찬양한다면
착하고 지혜로운 이라고 불리울 것이다.

이러한 모든 깨달음의 마음은
바른 지혜이며 평등심이다.
보리에 대한 서원(誓願)의 마음으로
보리행을 실천하라.

떠난 자가 행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리심[彼]을 분별하여 설하는 것이다.
지혜로 분별하여 설한 뒤에
행한 바는 지혜의 쓰임과 같다.

보리를 바라는 마음만 지녀도
윤회의 세계에서 큰 열매는 얻으니
그 복(福)은 끊어지지 않듯이
보리도를 실천하는 이의 공덕도 또한 그러하리라.

만약 그들이 끝이 없는
유정계(有情界)를 해탈케 하기 위해
그 마음 평등하게 한다면
보리의 서원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잠자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미혹에 깊이 취하면
복의 흐름이 끊어지니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허공처럼 된다.

묘한 팔[妙臂]을 지닌 이5)가 이에 대해 물은 것은
열등한 유정(有情)도
해탈의 생을 얻어 스스로
여래(如來)가 되라고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사유하고 고뇌하는
유정을 치료하라.
설사 고뇌를 다한 뒤에라도
끝없는 복을 받게 할 수 있다.

유정의 끝없는 고통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하나하나 안락하게 하여
끝없는 공덕을 얻게 하리라.

무엇으로 부모를 이롭게 하고
권속들도 그와 같이 할 것인가?
하늘의 신이나 선인(仙人)뿐 아니라
깨끗한 행실의 바라문도 이러한 복이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이 이 유정들은
과거에 꿈을 꾸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원하지 않고
오직 다른 사람이 이익되기를 바랐다.

유정들 가운데 최고 수승한 보배인
보살은 어떻게 희유(希有)한 생을 얻는가?
갖가지 뜻으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자신의 이익을 홀로 얻으려 하지 않는다.

환희(歡喜)는 세간의 종자(種子)이며
정진(精進)은 세간의 약(藥)이다.
마음의 보배와 복이여,
그 공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 유정이
일체의 안락을 얻고
보리심을 발하여
여래를 공양하게 할 것인가?

애요(愛樂)와 쾌락에 빠지는 것을
원통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다.
멀리 여의는 것과 수행(隨行)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마음이 쾌락을 구하여
고뇌의 종자가 끝이 없다면
모든 쾌락에 빠져
번뇌의 고통을 영원히 끊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혹의 원인을 깨뜨리게 해 주는
선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선지식을 가까이하면
큰 복을 얻게 되리라.

이익을 지어 회향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찬탄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선을 지어 이익을 구하지 말라.
이것을 설하여 보살이라고 한다.

만약 적은 양의 밥을 보시하고
선을 닦아 세간에 공양한다면
보시의 크기는 모기나 파리와 같다.
반나절의 쾌락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능인(能仁)6)의 법을 얻을 것인가?
끝없는 유정을 제도하고
원하는 모든 소원을 성취케 하고
일체의 지혜를 구하여 스스로 원만케 해야 한다.

불자는 생각을 고요히 하라.
만약 번뇌가 일어나면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라.
많은 번뇌와 의심을 생기게 하지 말라.
부처님은 이러한 중생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설하셨다.

불자가 보리심을 발하면
큰 죄의 힘을 소멸하고 수승한 과보를 얻으리라.
나는 지금 보배스러운 보살의 마음에 귀명하여
일체 유정을 구제하여 모두 안락을 얻게 하리라.

2. 보리심시공양품(菩提行經菩提心施供養品)7)

이 보배의 마음인 경건한 마음으로
여래께 지심으로 공양을 올립니다.
또한 청정하고 미묘한 법보와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의 바다에 지성으로 공양합니다.

세간에 있는 많은 묘한 꽃과
묘한 과일과 탕약,
보석과 같은 맑고 깨끗한 물
이들은 실로 받들어 공양하기 적합하도다.

산에 있는 보배와 여러 보물
숲의 적정처에서 만나 기쁘고
나무를 장엄한 넝쿨 꽃은 광명으로 빛나고
열매 맺은 가지 아래로 휘어졌도다.

인간과 천상의 향(香)과 도향(塗香)
그리고 겁(劫)의 나무와 보배 나무
연못의 물은 청정하고
기러기와 거위 소리가 아름답도다.

곡식은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생하니
따로따로 장엄하여 공양한다.
허공계와 같이 그 넓이가 광대하니
이 모든 것은 실로 받아들이기 적합하도다.

저는 지금 자식까지 헌납하여
수승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공양드립니다.
저를 어여삐 여기시어 크신 대자비로
이 지극한 공양을 받으소서.

나는 복 없고 아주 가난하여
이밖에 따로 공양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나와 남을 위해 생각하오니
부처님께서는 힘껏 한 보시를 받아들이시길 원하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모두 부처님께 남김없이 바치오니
이 몸으로 일체에 두루하여
내가 지은 공덕으로 유정이 가피를 입고
유정은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하소서.

내가 여래의 가피를 얻어
유정을 이익되게 하고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리라.
과거의 죄업은 다 멀리 여의고
앞으로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리라.

보배로 빛나는 처소는 기쁨으로 충만하며
천개(天蓋)로 장엄하여 진여를 받든다.
물은 고요하고 청정하여 다시 빛나며,
갖가지 묘한 향으로 목욕하도다.

큰 보배 병은 향수로 가득 차
다시 뜻에 맞는 여러 묘한 꽃을 꽂는다.
여래의 청정한 몸을 씻기니
내가 마땅히 찬탄의 노래를 바치리라.

청정한 향, 극히 묘한 옷에 향기를 쏘인
덮개로 저 훌륭하신 몸을 덮으오리다.
제가 지금 이 아름다운 옷을 바치니
부처님께서는 자비심으로 받으시옵소서.

갖가지 가볍고 아름다운 천상의 옷
그 장엄 가운데 최상이로다.
여래와 보현보살,
그리고 문수와 관자재보살8)께 공양합니다.

3. 호계품(護戒品)9)

계를 지니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니
계를 보호하고 견고하게 하라.
이 마음이 수호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능히 계를 지킬 수 있겠는가?

이는 술에 취한 코끼리를 항복시키지 못하고
괴로운 통증을 다스리지 않는 것과 같다.
방심하는 것은 취한 코끼리와 같으니
아비(阿鼻)10)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의 끈을 항상 잡고
심상(心象)을 조복하여 잡아매면
방일(放逸)의 두려움을 여의고
일체의 안락을 얻을 것이다.

만약 능히 일심(一心)을 잡아 매면
이것을 따라 일체를 잡아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스스로 일심을 항복받으면
일체가 저절로 다 조복될 것이다.

사자ㆍ곰ㆍ호랑이ㆍ이리와
야차(夜叉)11)ㆍ나찰(羅刹)12)
일체 지옥의 무리가
모두 다 그의 원수로 여긴다.

일체의 원수를 두려워하면
끝없는 고뇌가 쌓이니
이 모든 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세존이신 부처님은 바르게 설하셨다.

지옥의 많은 고통의 그릇과
뜨거운 철구슬 등은
누가 만들고 어디에 태어나는가?
이것들은 탐진치(貪瞋癡)가 만든다.

저 모든 죄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은 여러 세간에 태어나시니
그러므로 삼계의 마음이 소멸되면
두려움도 사라지리라.

만약 일찍이 보시[檀施]를 행했다면
이 세상에서 가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난하다 하여 번뇌하지 말라.
과거를 후회하여 무엇하겠는가?

만약 사람의 마음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을 행하여라.
이러한 까닭에 과보를 설하는 것이니
일체의 보시를 행하라.

만약 사람이 마음으로 계를 받아 지닌다면
누구를 싫어하여 죽이려 할 것인가?
노여운 마음으로 원망한다고
허공과 같은 이 모든 것을 어찌 다 죽일 수 있으랴?

대지는 헤아릴 수 없는데
무슨 가죽으로 능히 덮을 수 있을 것인가?
약간의 가죽을 사용하여 만든 가죽신은
다니는 곳곳만을 덮을 뿐이다.

외아(外我:外界)의 성품 또한 그러하니,
누가 능히 권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자신의 마음을 권하면
외아는 스스로 조복(調伏)할 것이다.

몸은 가난하여 복이 없으니
그 과보는 행한 바와 같다.
만약 마음으로 한 벌의 옷을 베풀면
그 과보는 복을 반드시 증장한다.

모든 행을 닦고 지녔다면
마음으로 생각하여 버리지 말라.
일체의 이익이 없는 마음은
헛되고 거짓된 것이니,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한다.

일체 심법(心法)의 재화를
비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것은 고를 여의어 안락을 얻고
세간을 초월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수행하는가?
수행은 오직 마음을 수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마음을 잘 성찰하여
항상 수호하려고 노력한다.

원숭이가 몸에 부스럼이 있으면
일심(一心)으로 이를 보호하는 것처럼
사람의 악심(惡心)도 이와 같으니
항상 마음을 수호해야 한다.

고통의 상처를 두려워하여
나는 일심으로 이를 항상 보호한다.
중합지옥(衆合地獄)을 파괴하면
마음의 상처는 곧 두려움 없으리.

항상 이와 같이 행하면
사람 가운데 악을 행하지 않는다.
사람 가운데 죄를 범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두려움이 없어질 것이다.

나는 몸과 목숨을 다하여
이로운 행으로 공양하고자 한다.
온갖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선한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리라.

나는 마음을 수호하고자
합장하나니, 이제 오롯이 합장하여
마음이 끊이지 않는 생각 가운데
일체 방편으로 보호한다.

중병에 걸린 사람은
모든 행동이 편안하지 않은 것처럼
산란한 마음도 또한 그러하여
여러 일에 견디지 못한다.

마음이 산란하여 안정되지 않으면
듣고 사유하고 관찰하라.
그릇에서 물이 새면
물은 채워지지 않는다.

가르침을 많이 들은 이가
믿음이 깊고 방편으로 노력해도
허물이 있을 수 있나니,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적정하지 않아 죄를 얻게 된다.

마음이 결정되지 않은 까닭에
미혹(迷惑)의 적(賊)은
소유한 복과 선을 얻나니,
사람들은 마침내 악취에 떨어진다.

번뇌라는 여러 도적의 무리들에는
마라(魔羅:악마)가 붙어 방편을 얻나니
그로 말미암아 마라는 일어나
선한 생명을 파괴한다.

그러나 뜻의 감관을 잘 보호하면
악이 강제로 끌고 갈 수 없다.
그 죄의 고통을 생각하여
원래로 되돌아와 안주해야 한다.

착하도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착한 생각 내는 것을 획득하라.
가르침과 스승을 받들고
마땅히 일심으로 공양하라.

제불과 보살은
찰나에도 마음이 결정되어 있으니,
마땅히 두려워하고 기억하면,
자애(慈愛)로써 앞에 현전하리라.

번뇌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가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능히 뜻의 감관을 지키고
그것을 보호하여 머무르면 흩어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이 마음을 지켜
항상 이와 같이 머무르는 것은
비유하면 나무에 뿌리가 없어
나쁜 가지와 잎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눈으로 색상(色相)을 관하여
헛되고 거짓이며 실답지 않음을 알라.
여러 사물을 항상 체관(諦觀)하니,
그러므로 집착하지 않는다.

보는 것에 기인하여 관찰하고
그것을 관찰하여 의혹을 내지 않는다면
온 것을 관찰하여 본 뒤에
어찌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를 두려워하겠는가?

다니고자 하여도 길을 모르면
사방을 둘러보고 두려움을 낸다.
그러므로 결정코 방향을 알아야 한다.
마음을 관하여 행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지혜로운 자의 행위는
앞과 뒤를 사유하고
이것은 선이고 이것은 악이라고
사물을 잘 분별하여 실수하지 않는다.

이 몸에 머무르지 않고
이것을 여의어 다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이 몸에 머무르는가?
마땅히 다시 중간(中間)을 관해야 한다.

속마음을 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여서
여러 방편을 사용한다.
법으로 큰 기둥을 삼고
그것을 얽어 벗어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땅히 이와 같은 뜻으로
나의 곳곳을 관하라.
여러 의식도 모두 이와 같으니
잘 거두어 찰나에도 머물게 하라.

만약 업력을 두려워하거나
쾌락을 구하는 이들은
단(檀)바라밀과 계(戒)바라밀,
나아가 크게 버림[大捨] 등을 닦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보리의 인을 닦을 때는
다른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하나니,
마땅히 이와 같은 견해를 일으켜야 한다.

이와 같이 여러 선을 닦으면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나니,
모든 번뇌가
결정코 증장하지 않을 것이다.

갖가지 바른 말로 설하고
현재 잡다한 많은 일들을
관람하여 모두 요지(了知)하고
의심의 그물을 깨뜨려 열매를 얻어야 한다.

풀이 끊겨지는 것과 같이
부처님 계(戒)를 생각하여 능히 견디라.
찰나에 이 행을 행하면
수승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

여러 바른 설법에서
실로 통달(通達)할 수 있다.
마땅히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고
항상 정진을 닦아야 한다.

비유하면 나무가 감정이 없고
말이 없으며 짓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도 역시 그러하니
결정코 이와 같게 하라.

마음이 경솔하고 자만심을 내는 자는
미혹되고 취한 사람이다.
자신의 예찬을 생각하고 구하는 이는
수행자라 할 수 없다.

만약 다른 이가 나에 대하여
비방하고 훼방을 하면
이는 성냄과 어리석음 등이니,
마음은 항상 나무처럼 묵묵히 머물러야 한다.

나무가 자신의 이익과 신분과 칭호를
분별하지 않는 것처럼
역시 권속이나 승사(承事) 등을
구하지 말라.

남에게는 이익되고 나에게는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다만 일체를 위하여 행하고자 하면
이러한 까닭에 나의 마음은
항상 나무처럼 굳건히 머문다고 하리라.

일심(一心)으로 나무와 같이 머무르니
부모나 친구
또는 삼업(三業)에 대하여
미움과 애정의 두려움이 생하지 않는다.

번뇌를 관찰함에
허공과 같이 집착하지 말라.
마땅히 용맹하고 견고하게
항상 받아 지니라.

선(善)함이 없음은 부끄럽고 가히 두려워할 만한 일이니
마땅히 일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라.
청정하게 삼매에 머물면
다른 이가 존중하리라.

비록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지위에 머무르더라도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지 말고
자신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화내지 말라.
자비로써 항상 이와 같이 하라.

나는 선나(禪那)를 받아 지니고
뜻을 항상 고요하게 한다.
일체의 유정을 위하여
항상 죄가 없는 곳에 머무른다.

잠시 동안임을 항상 기억하라.
오랜 시간 중에 가장 좋은 기회이니
이와 같이 마음을 받아 지녀
수미산(須彌山)같이 움직이지 말라.

독수리가 고기를 탐하기 싫어하지 않듯
사람이 선을 구하는 것 또한 그러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몸과 뜻을 보호하여
모든 때에 스스로 근면하겠는가?
그대들은 어떤 행을
각각 열심히 전념할 것인가?

미혹하고 어리석어 제어하지 않고
나무로 만든 몸과 같은 것[木身]을 그릇되게 탐한다.
이 몸은 부정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어찌 애욕에만 연연해하는가?

뼈는 살과 매어져 붙어 있고
외피로 장식되어 있다.
스스로 깨달아 탐하지 않고
지혜의 칼로 해탈한다.

여러 몸의 부분을 잘라서
가령 그 가운데서 정수(精髓)를 본다면,
자세하게 관찰하고 사유한다 해도
어찌 사람이 있음을 보겠는가?

일심으로 이와 같이 관하고
깊이 살펴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어찌 그대는 부정한 몸을
탐애하고 수호하려 하는가?

태에 들어서는 부정한 것을 먹고
태에서 나와서는 피로 만들어진 젖을 마신다.
이와 같이 먹고 마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 몸을 만들었겠는가?

승냥이와 독수리 등은 먹이를 탐하여
선과 악을 구분할 줄 모른다.
요컨대 똑같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업의 누(累)를 수용하여 성취한다.

다만 이와 같이 몸을 보호하여도
죽음에 이르면 자비와 인내가 없다.
승냥이와 독수리도 이와 다르지 않으니
그대는 항상 이것을 명심할 것이다.

몸이 죽으면 의식은 머물지 않는데
옷과 음식이 어찌 머물 수 있겠는가?
몸이 다하면 의식은 반드시 떠나는데
수용하여 무엇을 탐할 것인가?

그러므로 지금의 뜻을 잘 지어
이와 같은 것을 탐하지 말라.
이를 멀리 여의지 않는다면,
여러 불선(不善)만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이 몸에 팔다리가 생겨
완성되는 것과 같이
몸을 받고 지혜가 증장되지 않으면
윤회에 돌아와 스스로 어려움을 겪는다.

세상에서 친한 이든 친하지 않은 이든
기쁜 얼굴로 먼저 위로하여 달래라.
이와 같이 항상 자신을 제어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버리지 말아야 한다.

웃고 높은 소리로 떠들지 말고
장난삼아 좌구(坐具)를 던지지 말라.
손을 가볍게 하여 다른 이의 문을 두드리고
항상 스스로의 집착을 살피라.

도적이나 고양이와 독수리가
사물을 구할 때 소리 없이 행하듯이
수행하는 마음도 또한 이와 같아
마땅히 거칠고 사나운 것을 여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바는
옳은 이익이 아니니 말하지 말라.
항사 여러 제자를 얻어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존중하고 아끼라.

일체의 설하는 것,
그것을 들으면 선(善)을 칭찬하게 하고
그들이 복된 일을 짓는 것을 보면
칭찬하여 기뻐하게 하라.

진심으로 사사로이 그의 덕을 말하면
그가 듣고는 반드시 즐거워하리라.
찬탄하여 말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의 덕행을 먼저 보라.

여러 환희로운 일을 닦아도
그 성실한 마음을 얻는 것이 어렵다.
이타의 덕을 부지런히 닦으면
마땅히 쾌락의 과볼르 받을 것이다.

애증의 고통은 모름지기 버려야 한다.
더 큰 고통을 생하기 때문이다.
이 고통에 내가 머무르지 않는다면
다음에 큰 쾌락을 얻을 것이다.

좋은 말은 소리가 유연하며
자비가 근본이 되어 들으면 기쁨을 낸다.
그들이 적절한 뜻으로 일을 드러내면
마땅히 진실한 말을 믿어야 한다.

항상 유정을 자비로 생각하기를
자신의 눈(眼)을 아끼는 것과 같이 하라.
유정을 위하여 진실에 머물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그러한 진실의 성취를 얻어
이것으로 친구를 이롭게 하고,
찰나에 공덕을 닦아
고통을 여의어 큰 안락을 얻는다.

공덕을 부지런히 닦고
항상 지어서 스스로 얻는다.
드러내지 않고 숨기지도 않으면서
누가 여러 일들을 말하는가?

보시바라밀 등은
수승하고 오묘한 최상의 것이다.
달리 행하는 것[別行]은 최상이 아니니,
이로움이 적은 것은 멀리하고 여의어라.

부처님께서 이같이 타인의 이익을
항상 중요하게 여기시니,
여래의 가르침 가운데
저 자비로움을 보아라.

삼계(三界)의 스승이 입멸(入滅)하신 후
출가신을 분별함에
옳고 옳지 않음을 분별해야 하고
삼의(三衣) 등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장차 오묘한 법신(法身)을 구하여
중생이 고뇌하지 않도록 하라.
중생에 대해 이와 같이
뜻에 따라 원만함을 획득해야 한다.

쓸데없이 생명을 버려서는 안 된다.
버리는 것은 요컨대 평등해야 하나니
연민의 마음은 마땅히 청정해야 하고
그 과보는 스스로 원만해야 한다.

깨끗한 마음으로 법을 중요시 하고
그릇이나 몽둥이 등을 집지 않고
머리를 우산으로 가리지 않았으며
교만함이 없는

남자와 여인을 위하여
깊고 광대하게 법을 설해야 하나니
사람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광대하지 않은 법은
법행(法行)이 아니다.
이들을 멀리 여의어 경배하지 말고
대승(大乘)을 즐거이 설하라.

치목(齒木)13) 및 콧물과 침을
깨끗한 땅에 버리지 말고
맑은 물과 깨끗한 곳에
대소변을 보지 말라.

음식을 먹으면서 입 안에 가득 넣지 말고
먹으면서 소리를 내지 말라.
음식을 먹을 때 말하지 말고
또한 입을 크게 벌리지 말라.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앉지 말고
걸을 때에도 또한 어깨를 흔들지 않는다.14)
여자와 함께 동승하지 않고
또한 같이 앉거나 눕지 않는다.

모든 율(律)에 맞지 않는 일은
사람들이 보면 기뻐하지 않나니
모든 사람이 본 뒤에는
멀리하고 공경하지 않는다.

사람이 길을 물어도
한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고
두 손으로 그것을 가리켜
그 길이 이르는 곳을 알려주라.

모든 곳에 행보할 때
팔로 장난하지 말고 소리를 내지 말며
또한 헛되이 손가락을 튀기지 말라.
위의를 이와 같이 지켜야 한다.

스승이 비록 이미 돌아가셨더라도
사의(四儀)를 마땅히 배워야 한다.
계행을 받들어 가벼이 여기지 않으면
틀림없이 성스러운 과보를 얻을 것이다.

보살의 행은 헤아릴 수 없으며
설하는 바는 그 끝이 없다.
마땅히 청정심으로
굳게 받들어 행하여라.

하루를 밤낮으로 시간을 나누어
각 세 번씩
도를 행하고 널리 참회하여
부처님의 보리심에 머물러야 한다.

보리심에 스스로 머물고
또한 다른 이로 하여금 획득하게 하라.
불자(佛子)는 학처(學處)에 머물러
일심(一心)으로 이를 호지해야 한다.

부처님의 계체(戒體)는 청정하여
티끌 하나도 보이지 않나니
항상 이와 같은 행을 한다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무시(無始)로 유정을 위하여
행하고, 행하되 분별하지 말라.
이와 같이 유정을 위하여
교화하여 일체를 깨닫게 하라.

마땅히 선지식을 알고
목숨과 같이 버리지 말라.
보살계는 최상이며
대승법도 또한 그러하다.

해탈은 스승에 의지하여 배우니
능히 길사(吉祥)을 생하도다.
모든 부처님들은 지혜의 경전을 설하시니
그것을 읽어 계법(戒法)을 보라.

만약 사람이 마음으로 계(戒)를 보호한다면
행하는 것이 이미 모두 보인다.
몸이나 마음의 상태를
마땅히 미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입으로 염송하고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는 마치 중병을 앓는 사람이
헛되이 약의 힘을 말하는 것과 같다.

『허공장경(虛空藏經)』15) 가운데
모라바저(謨羅波底)16)를 설하였으니,
계정(戒定) 모은 것을 보라.
자세한 것은 경에 설해져 있다.

성자인 용수(龍樹)보살이
일심(一心)으로 모은 것을
어디에 머물든지
부지런히 항상 펴고 공양하라.
033_0996_b_01L菩提行經卷第一聖龍樹菩薩集頌西天中印度惹爛馱囉國密林寺三藏明教大師賜紫沙門臣天息災奉詔譯讚菩提心品第一如佛妙法體無邊 佛子正心歸命禮佛甘露戒垂覆護 我今讚說悉依法此說無有未曾有 亦非自我而獨專我無自他如是時 乃自思惟觀察作如是發心觀察時 能令我此善增長時見如是娑婆界 此乃是彼佛世尊此界剎那難得生 得生爲人宜自慶思惟若離菩提心 復次此來何以得如雲覆蔽夜黑暗 閃電光明剎那現佛威德利亦復然 剎那發意人獲福是故善少力雖劣 能破大惡之業力如是若發菩提心 此善勇進能超彼思惟無量無邊劫 見佛咸說此眞實若不快樂得快樂 增長救度無邊衆爲諸有情處衆苦 令離百千諸苦怖受多快樂百千種 爲恒不離菩提心彼善逝子處纏蓋 行在輪迴無所愛若剎那說菩提心 人天歡喜悉歸命若有受持不淨像 喩佛寶像而無價如藥變化徧堅牢 等修持妙菩提心菩提心寶驗無邊 價直世間無可喩調御行人伴侶等 悉使受持而堅牢芭蕉不實而生實 生實芭蕉而身謝菩提心樹而淸淨 恒生勝果而不盡已作暴惡衆罪業 依菩提心剎那脫勇猛依託無大怖 彼癡有情何不依譬如劫盡時大火 剎那焚燒罪業薪若讚慈尊無量言 是曰善哉之智者彼種種覺心 正智而平等 菩提誓願心而行菩提行 喩去者欲行 彼之分別說智分別說已 所行如智用 菩提之願心大果如輪迴 福故不間斷 亦如彼行意若彼等無邊 有情界解脫 與彼心平等菩提願不退 彼等好睡眠 亦復多迷醉間斷於福流 喩空無所有 妙臂而問此劣意之有情 於解脫得生 爲自爲如來乃思惟療除 苦惱之有情 使苦惱盡已獲得無邊福 有情無邊苦 云何而療治使一一安樂 獲無邊功德 何以利父母如是及眷屬 得天及仙人 淨行婆羅門如是彼有情 乃過去睡夢 不願於自利唯願生利他 有情最勝寶 希有何得生種種意利他 不獨於自利 歡喜世間種精進世間藥 心寶與有福 而彼云何說云何諸有情 得一切快樂 爲發菩提心供養於如來 迷愛樂快樂 乃喩於冤嫌遠離與隨行 悉從於自意 若彼求快樂苦惱種無邊 積諸善快樂 諸苦惱消除破壞迷惑因 善哉云何得 親彼善知識彼福如是得 作利若迴向 彼必返讚歎作善不求利 說彼是菩薩若有布施於少食 修善供養於世間所施大小如蚊蚋 亦獲快樂得半日云何獲得於能仁 要度無邊有情盡有情無盡若虛空 一切智求自圓滿佛子靜念而思惟 若煩惱生自心作數生煩惱復生疑 佛說此人墮地獄佛子若發菩提心 滅大罪力得勝果我今歸命摩尼心 救度有情得快樂菩提行經菩提心施供養品第二端彼摩尼恭敬心 用奉供養於如來及彼淸淨妙法寶 佛功德海量無邊世間所有諸妙花 乃至妙菓及湯藥所有珍寶澄淸水 悉皆奉供而適意山中之寶及衆寶 適悅樹林寂靜處蔓花莊嚴樹光明 結菓低垂枝𣘨橠人間天上香塗香 乃至劫樹及寶樹池水淸淨復莊嚴 鵝鴻好聲極適意穀自然生非所種 別別莊嚴而供養等虛空界量廣大 此一切有悉受用我今所獻幷子等 供養最上佛牟尼爲我不捨於大悲 受彼最上之供養我以無福大貧窮 更無纖毫別供養我今思惟爲自他 願佛受斯隨力施我自身施一切佛 以自身等徧一切加被我作上有情 有情恒常佛教化我得如來加被已 化利有情無怖畏過去罪業悉遠離 未來衆罪不復作寶光明處甚適悅 天蓋莊嚴奉眞如水精淸淨復光明 種種妙堂香浴作大寶甁滿盛香水 復著適意諸妙花洗浴如來無垢身 我當讚詠獻歌樂淸淨香薰上妙衣 用蓋覆彼最上色我今獻此上衣服 願佛慈悲哀納受種種柔軟妙天衣 彼莊嚴中而最上供養如來幷普賢 及彼文殊觀自在菩提行經護戒品第三持戒爲護心 護之使堅牢 此心不能護云何能護戒 喩醉象不降 不患於疼痛放心如醉象 當招阿鼻等 念索常執持繫縛於心象 得離放逸怖 獲一切安樂若能繫一心 一切皆能繫 若自降一心一切自降伏 師子熊虎狼 夜叉羅剎等一切地獄卒 皆悉是其冤 若怖一切冤無邊苦惱集 皆因心所得 佛世尊正說地獄衆苦器 及熱鐵丸等 誰作復何生貪嗔癡所有 由彼諸罪心 佛生諸世間三界心滅故 是故無怖畏 若昔行檀施今世而不貧 今貧勿煩惱 過去云何悔若人心少分 行檀波羅蜜 是故說果報同一切布施 若人心持戒 嫌誰而牽殺嗔心之冤家 殺盡等虛空 大地量無邊何皮而能蓋 履用皮少分 隨行處處覆外我性亦然 所有誰能勸 但勸於自心外我而自伏 身貧而無福 彼果同所行若心施一衣 感果而增福 諸行若修持心念恒不捨 一切無利心 虛假宜遠離一切心法財 宜祕密觀察 離苦獲安樂彼得超世間 我云何修行 修行唯護心是故我觀心 恒時而作護 喩獼猴身瘡一心而將護 人中惡如是 恒常而護心怖苦惱之瘡 我一心常護 破壞於衆合心瘡乃無怖 常作如是行 不行人中惡人中罪不犯 自然而不怖 我欲盡身命利行而供養 別別身命盡 善心而不退我欲守護心 合掌今專作 心念念之中一切方便護 喩於重病人 諸事不寧忍散亂心亦然 不堪諸事業 心散亂不定聞思惟觀察 如器之滲漏 於水不能盛由多聞之人 於信方便等 過失心不定獲不寂靜罪 心不決定故 迷惑賊所得所有之福善 偸墮於惡處 煩惱衆盜賊魔著故得便 由魔羅發起 破壞善生命守彼意根門 惡不能牽去 念彼罪苦惱次復獲安住 善哉隨師教 獲得善念生奉於教誨師 當一心供給 於諸佛菩薩剎那心決定 當怖畏憶念 慈哀現面前塵心而不定 去去不復還 若能守意門護之住不散 我今護此心 恒常如是住喩木之無根 不生惡枝葉 眼觀於色相知虛假不實 物物恒諦觀 是故而不著因見而觀察 觀之令不惑 所來觀見已安畏以善來 欲行不知道 望四方生怖決定知方已 觀心行亦然 智者之所行思惟於前後 是善是惡等 如是事不失不住於此身 離此復何作 云何住此身當復觀中間 觀內心亦然 而用諸方便以法爲大柱 縛之令不脫 當以如是意觀我之所在 諸識皆如是 攝令剎那住若怖因業力 能趣求快樂 修彼檀戒度乃至大捨等 若修菩提因 彼別不思惟一向修自心 當起如是見 如是修諸善不起於怖畏 而令諸煩惱 決定不增長種種正言說 見在而甚多 觀覽悉決了破疑網得果 如草被割截 念佛戒能忍剎那行此行 獲得殊勝果 欲於諸正說皆悉得通達 當觀照自心 常修於精進喩木之無情 無言無所作 見自心亦然決定令如是 心起於輕慢 如彼迷醉人惟求自讚譽 非彼修行者 若他人於我而生於毀謗 謂是嗔癡等 住心恒似木如木不分別 利養尊卑稱 亦不爲眷屬乃至承事等 利他不自利 但欲爲一切是故說我心 堅住恒如木 一心住如木於尊親朋友 乃至於三業 不生憎愛怖觀察於煩惱 如空而不著 當勇猛堅牢受持爲恒常 無善慚可怖 當一心求他淸淨住三昧 爲他所尊重 雖居童稚位不使他瞋惱 自亦不瞋他 慈悲恒若此我受持禪那 使意恒寂靜 爲一切有情恒居無罪處 念念須臾間 多時爲最勝如是受持心 不動如須彌 鷲貪肉不厭人貪善亦然 身心不修行 云何能出離云何護身意 一切時自勤 汝等何所行各各專一心 迷愚不自制 妄貪如木身此身不淨作 云何返愛戀 骨鎖肉連持外皮而莊飾 自覺令不貪 解脫於慧刃割截諸身分 令見中精髓 審觀察思惟云何見有人 一心如是觀 審諦不見人云何不淨身 貪愛而守護 處胎食不淨出胎飮血乳 不如是食飮 云何作此身豺鷲等貪食 不分善與惡 要同人愛身受用成業累 但如是護身 至死無慈忍與豺鷲無別 汝何恒此作 身死識不住衣食寧可留 身謝識必往 受用云何貪是故今作意 不貪如是事 如是不遠離得彼諸不善 如似人生身 肢體求成就受身智不增 輪還徒自困 於世親非親悅顏先慰喩 如是常自制 心念恒不捨笑不得高聲 不戲擲坐具 輕手擊他門諦信恒自執 如盜如猫鷺 求事行無聲修心亦如此 當離於麤獷 他人之所嫌無義利不說 恒得諸弟子 言上而尊愛一切所言說 聞之使稱善 觀彼作福事稱讚令歡喜 衷私說彼德 彼聞心必喜欲讚說彼時 先觀彼德行 修諸歡喜事難得彼誠心 勤修利他德 當受快樂報憎愛苦宜捨 來生大苦故 此苦我不住來生大快樂 善言聲柔軟 悲根聞生喜顯彼適意事 當信眞實語 恒悲念有情愛護如愛眼 爲彼住眞實 必當得成佛彼眞實得成 各此利朋友 剎那修功德離苦大安樂 功德殷勤修 恒作而自得不衒不覆藏 誰云諸事等 檀波羅蜜等殊妙而最上 別行非最上 利下無遠離佛如是利他 恒常之所切 如來之教中見彼慈悲事 三界師入滅 分別出家人食有可不可 不離三衣等 將求妙法身不苦惱衆生 於衆生如是 隨意獲圓滿捨非須盡命 彼捨要平等 悲心當淸淨果報自圓滿 淨心而重法 不執器杖等不持傘蓋頭 無諸輕慢事 爲男子女人說法深廣大 不分人勝劣 令彼重平等法之不廣大 乃及非法行 遠離不敬禮樂說於大乘 齒木及涕唾 不棄於淨地淨水及淨舍 勿得棄便痢 喫食勿滿口食勿令有聲 食時不語言 亦勿大開口坐不得垂足 行亦不挑臂 不與女同乘亦不同坐臥 諸所不律事 人見心不喜一切人旣睹 遠離而不敬 人問於道路不得一手指 雙手而指之 示其道所至凡所諸行步 不弄臂作聲 亦勿妄彈指威儀如是守 師雖已化滅 四儀應當學奉戒行不輕 決定獲聖果 菩薩行無量所說無有邊 當以淸淨心 決定而奉行於一晝一夜 分之各三時 行道普懺悔住佛菩提心 菩提心自住 亦令他獲得佛子住學戒 一心如是持 佛戒體淸淨不見有纖毫 恒作如是行 彼福無有量無始爲有情 行行而不別 如是爲有情化令一切覺 當知善知識 如命不可捨菩薩戒最上 大乘法亦爾 解脫依師學而能生吉祥 佛佛說智經 讀之見戒法若人心護戒 所行悉已見 若身若心位當微細觀察 口誦身不行 當得何所喩譬如重病人 空談於藥力 虛空藏經中說謨羅波底 如見集戒定 廣如經所說聖龍樹菩薩 一心之所集 隨所住之處勸恒伸供養菩提行經卷第一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명은 Bodhiscaryāvatāra. 한역 『보리행경』은 범본 『보리행경』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고 또한 천식재의 한역은 뜻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다.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 있어서는 범본을 많이 참고하였다.
  2. 2)한역은 용수(龍樹)의 저작이라고 되어 있으나 범본이나 서장역본 등은 모두 적천(寂天, Ṥāntideva)의 작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을 용수의 저작이라고 할 만한 문헌적ㆍ사상적 근거는 극히 미약하다. 왕자였지만 문수사리보살(Mañjuśrī)과 여신 타라(多羅, Tārā)에 인도되어 왕위를 버리고, 비구가 되었다. 그의 저작으로 『대승집보살학론』ㆍ『경집론(經集論:Sūtrasamuccaya)』ㆍ『보리행경(菩提行經)』 등이 있다.
  3. 3)한역자 천식재(天息災)는 북인도의 카시미르 야란타라(惹爛馱羅, Jalandhara)의 사문으로, A.D. 980년에 중국에 도착하였고, 역경에 종사하였다. 982년에 명교대사(名敎大師)의 칭호를 받았으며, A.D. 1,000년에 입적하였다. 그의 추호(追號)는 혜변법사(慧辯法師)였다. 열여덟 개의 경(經)을 그가 역출(譯出)하였다. 그 가운데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聖觀自在菩薩一百八名經)』ㆍ『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 Dharmapada)』ㆍ『불설십호경(佛說十號經)』 등이 있다. 『보리행경』은 북송(北宋:960~1,127) 때, 980년부터 1,001년 사이에 한역되었다.
  4. 4)범어로 Bodhicittānuśaṃsā이다.
  5. 5)「선비보살경(善臂菩薩經)」(『대보적경』 제26회에 해당)을 가리킨다.
  6. 6)석가모니부처님을 말함.
  7. 7)범어로 pāpadeśana(罪業懺悔品)이다.
  8. 8)보현보살(Samantabhadra)은 제불의 이덕(理德)ㆍ정덕(定德)ㆍ행덕(行德)의 주체로 문수의 지혜ㆍ증덕(證德)과 상대된다. 문수와 함께 석가모니불의 협시 보살이 된다. 문수는 사자와 함께 부처님의 왼쪽에서 보살피며, 보현은 흰 코끼리를 타고 부처님의 오른쪽에 있다. 이것은 이지상즉(理智相卽), 행증상응(行證相應)하여 삼매와 반야를 완전하게 한 것이다. 관자재(觀自在, Avalokiteśvara)는 광세음(光世音), 관세음(觀世音)이라고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그 보살의 이름을 부를 때 이를 관하여 구하는 것을 도와주는 까닭에 관세음이라고 하고, 세계를 관하여 고통을 없애주는 즐거움을 주는 까닭에 관자재라고 말한다. 관세음보살에는 33응신이 있다.
  9. 9)V.Samprajanyarkṣana. 범본에는 제3장이 「보리심전지품」, 4장은 「보리심불방일품」으로 되어 있다. 본 한역본에는 이 두 품이 없다. 범봄의 제5인 「인식수호품(認識守護品)」이 한역의 「호계품」에 해당된다.
  10. 10)아비(avīci)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을 말한다.
  11. 11)야차는 복신(福神, yakṣa)인 kuvera를 섬기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이다.
  12. 12)나찰(rakṣasa)은 사람과 짐승을 죽여서 먹는 귀신이다.
  13. 13)범어로 danta-kaṣtha. 이를 닦는 작은 나무.
  14. 14)고려대장경 원문엔 조(挑)자로 되어 있으나 원(元)ㆍ명(明)본에는 도(掉)자로 되어 있다. 계율의 한 조목으로서 도(掉)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15. 15)범어로 Akasa-sūtra. 『허공장보살경(虛空藏菩薩經)』의 약칭으로 1권이며 요진(姚秦)의 불타야사(佛陀耶舍)가 한역하였다.
  16. 16)범어로 mūlāpati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