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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0_b_02L금강삼매경론 하권(金剛三昧經論 卷下)
신라국 사문 원효가 서술하다(新羅國 沙門 元曉 述)5) 「진성공품眞性空品」
논 진여법은 모든 공덕과 더불어 모든 수행의 덕을 갖추고 본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진성眞性이라 한다. 이와 같이 진성은 모든 명칭(名)과 형상(相)을 단절해 있으므로 진성공眞性空이라 한다. 또한 이 진성은 상을 떠나 있고 성을 떠나 있는데, 상을 떠나 있다는 것은 허망한 상을 떠나 있는 것이고 성을 떠나 있다는 것은 진성을 떠나 있는 것이다. 허망한 상을 떠나 있으므로 허망한 상이 공하고, 진성을 떠나 있으므로 진성도 역시 공하다. 이런 까닭에 진성공이라 한다. 지금 「진성공품」에서는 이와 같은 두 가지 뜻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 두 가지 뜻으로 품명을 내세운다.개별적으로 일미관행을 설명하는 여섯 부분 가운데 넷째로 허망을 없애고 실제에 들어가는 부분을 마쳤다. 이하는 다섯째로 모든 성행聖行이 진성공에서 나온 것을 설명한다. 이 「진성공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이근자를 위하여 많은 경문(多文)으로 자세하게 설하고, 둘째는 둔근자를 위하여 작은 경문(小文)으로 간략하게 요약한다.
(1) 이근자利根者를 위하여 많은 경문으로 자세하게 설함
첫째, 자세하게 설하는 데 여섯 부분이 있다. 첫째는 삼취정계는 진성으로부터 성취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둘째는 수행 덕목의 실천(道品行)은 진성으로부터 성립되어 있음을 설명하며, 셋째는 여래의 가르침은 진여도리에 맞게 설해진 것임을 설명하고, 넷째는 보살의 계위는 본각리로부터 나온 것임을 설명하며, 다섯째는 대반야는 (원융하고 무이하여) 모든 인연을 단절해 있음을 설명하고, -
001_0650_b_02L金剛三昧經論卷下
001_0650_b_03L
001_0650_b_04L新羅國沙門。元曉述
001_0650_b_05L眞性空品1)第六 [33]
001_0650_b_06L眞如之法。具諸功德。與諸行德。而作
001_0650_b_07L本性。故言眞性。如是眞性。絕諸名
001_0650_b_08L相。以之故言眞性空也。又此眞性。
001_0650_b_09L離相離性。離相者離妄相。離性者
001_0650_b_10L離眞性。離妄相故。妄相空也。離眞
001_0650_b_11L性故。眞性亦空。以之故言眞性空也。
001_0650_b_12L今此品中。顯是二義。故依是義。立
001_0650_b_13L品名也。
001_0650_b_14L爾時。舍利弗。而白佛言。尊者。修菩薩
001_0650_b_15L道。無有名相。三戒無儀。云何攝受。爲
001_0650_b_16L衆生說。願佛慈悲。爲我宣說。
001_0650_b_17L別明觀行。有六分中。第四遣虛入實
001_0650_b_18L分竟。此下第五明諸聖行。出眞性空。
001_0650_b_19L就此品中。大分有二。一爲利根者。
001_0650_b_20L多文廣說。二爲鈍根者。少文略攝。
001_0650_b_21L前廣說中。卽有六分。一者明三聚戒。
001_0650_b_22L從眞性成。二者明道品行。從眞性立。
001_0650_b_23L三者明如來敎。當如理說。四者明菩
001_0650_b_24L薩位。從本利出。五者明大般若。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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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0_c_01L여섯째는 대선정은 모든 명칭과 법수를 초월해 있음을 설명한다.
① 삼취정계는 진성으로부터 성취되어 있음을 설명함
첫째의 삼취정계에 대한 경문에 다섯 부분이 있다. 첫째는 질문하고, 둘째는 간략하게 답변하며, 셋째는 거듭 질문(請)하고, 넷째는 설명해 주며, 다섯째는 이해한다.
가. 질문을 청함
경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보살도를 닦는 데 있어 명칭과 형상이 없다면 삼취정계의 위의가 없을 터인데 어떻게 자신이 섭수하고 또 중생에게 설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써 저희들에게 널리 설해 주십시오.”
논 이는 첫째로 질문이다.“보살도를 닦는 데 있어 명칭과 형상이 없다.”는 것은 모든 수행을 통틀어 언급한 것이다.“삼취정계의 위의가 없다.”는 것은 계행1)을 별도로 말한 것이다. 앞의 「입실제품」에서 말한 “삼취정계에 들어가지만 그에 대한 상이 없습니다.”라는 것에 해당한다. 이것은 곧 삼취정계에 형상(相)이 없고 위의(儀)가 없다면 자신은 어떻게 삼취정계를 섭수하고 또 어떻게 삼취정계를 타인에게 설해 주겠는가 하는 것이다.사리불(身子)은 이미 처음에 대승에 들어가 초발심하여 수행할 때부터 삼취정계를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삼무루학의 처음 행위 곧 계행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또한 사리불은 법신으로부터 발생하였는데 이제 이 「진성공품」에서 모든 수행법이 법신으로부터 발생한 것임을 설한다. 그러므로 사리불에 의거하여 질문한 것이다.
나. 간략하게 답변함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듣거라. 그대에게 설해 주겠다.선남자여, 선법과 불선법은 다 마음으로부터 화생化生한 것이고, 일체의 경계는 뜻(意)과 말(言)에서 분별된 것이다. 일본각一本覺의 도리로 그것을 제지하면 온갖 반연이 단멸된다.선남자여, 왜냐하면 일본각은 기동하지도 않고 삼용三用2)은 시행되지도 않지만 진여의 도리에 머무르고, 육도의 문이 닫히며, 사연四緣3)이 여법하게 이루어지고(如順), 삼취정계가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논 이는 둘째로 간략한 답변이다. 여기에 두 부분이 있다.
가) 통문通問에 답변함
첫째는 통문通問에 답변한 것이다.“선법과 불선법은 다 마음으로부터 화생한 것이다.”라는 것은 삼업의 인행因行이 모두 마음의 작용이기 때문이다.“일체의 경계는 뜻과 말로 분별된 것이다.”라는 것은 육도의 과경果境은 뜻으로 변화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동란을 제어하지 못함을 말미암은 까닭에 인과를 변작하여 고해에 유전한다. 이런 까닭에 고해를 건너려면 보살도를 닦아서 마음을 일여하게 제어하여 온갖 반연을 단멸해야 한다. 그러므로 보살도의 수행에는 명칭과 형상이 없다.
나) 별문別問에 답변함
“왜냐하면” 이하는 둘째로 별문別問에 답변한 것이다. -
001_0650_c_01L諸因緣。六者明大禪定。超諸名數。
001_0650_c_02L初三戒中。文有五分。一問。二答。三
001_0650_c_03L請。四說。五者領解。此卽初問。言修
001_0650_c_04L菩薩道無名相者。通擧諸行。三戒無
001_0650_c_05L儀者。別牒戒行。如前品言。入三聚
001_0650_c_06L戒。不住其相。是卽三戒。無相無儀。
001_0650_c_07L云何自攝受。及爲他說耶。此舍利弗。
001_0650_c_08L旣始入大。初發修行。以戒爲本。故
001_0650_c_09L問三學之中初行。又此身子。從身而
001_0650_c_10L生。今此品中說諸行法。從法身生。
001_0650_c_11L故寄身子而發問也。
001_0650_c_12L佛言。善男子。汝今諦聽。爲汝宣說。善
001_0650_c_13L男子。善不善法。從心化生。一切境界。
001_0650_c_14L意言分別。制之一處。衆緣斷滅。何以
001_0650_c_15L故。善男子。一本不起。三用無施。住於
001_0650_c_16L如理。六道門杜。四緣如順。三戒具足。
001_0650_c_17L此是第二略答。於中有二。先答通問。
001_0650_c_18L善不善法從心化生者。三業因行皆
001_0650_c_19L是心作故。一切境界意言分別者。六
001_0650_c_20L道果境。無非意變故。由心亂動。不
001_0650_c_21L能制故。變作因果。流轉苦海。是故
001_0650_c_22L欲度苦海。修菩薩道。制心一如。衆
001_0650_c_23L緣斷滅。所以菩薩。修無名相。何以
001_0650_c_24L「第六」無{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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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1_a_01L비록 다시 총설했지만 아직 개별적인 수행에 대하여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왜냐하면’ 하고 질문한 것이다.“일본각은 기동하지도 않고”라는 것은 삼취정계의 근본인 일본각은 본래 적정하기 때문에 ‘기동하지 않는다.’고 한다.“삼용은 시행되지도 않지만”이라는 것은 이미 본각에 의하여 삼취정계의 작용이 성취되었지만 그 작용에는 위의로 행해지는 형상을 떠나 있다. 행해지는 것이 없고, 일본각을 따라 머물기 때문에 “진여의 도리에 머무른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진여의 도리에 머물러 삼유의 인을 없앴으므로 “육도의 문이 닫힌다.”라고 한다.일여4)의 도리에 사연의 힘이 갖추어져 있고, 일여의 도리에 따라 삼취정계가 갖추어진다. 때문에 “사연四緣이 여법하게 이루어지고 삼취정계가 갖추어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다. 거듭 질문을 청함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사연四緣이 여법하게 이루어지고 삼취정계가 갖추어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논 이것은 셋째로 거듭 청하는 것이다.
라. 자세하게 설함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사연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택멸擇滅5)을 작용시키는 힘으로 별해탈계를 취하는 연이니, 섭률의계이다. 둘째는 본각의 이익의 청정한 근본의 힘으로 모든 선법을 집기하는 연이니, 섭선법계이다. 셋째는 본각의 지혜인 대비의 힘을 일으키는 연이니, 섭중생계이다. 넷째는 일본각으로 삼취정계를 두루 꿰뚫어보는 지혜력의 연이니, 진여를 따라 머무는 것이다. 이것이 곧 사연이다.선남자여, 이와 같이 네 가지 큰 인연의 힘은 사상事相에 집착하지 않지만 공용이 없지 않고, 일본각의 도리를 떠나 있어서 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선남자여, 이와 같이 일본각(一事)6)은 육행을 통섭하므로 부처님의 보리이고 살반야의 바다이다.”
논 이는 넷째로 자세하게 설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곧장 답변하여 삼취정계의 인연을 설명하고,7) 둘째는 일본각이 일체수행을 통섭함을 드러낸다.8)
가) 곧장 답변하여 삼취정계의 인연을 설명함
첫째에서 “사연”이라 한 것은 일심의 본각리本覺利 가운데 사대연력을 갖추어서 삼취정계의 연을 짓는 것을 말한다. 첫째는 멸의지연滅依止緣이고, 둘째는 생의지연生依止緣이며, 셋째는 섭의지연攝依止緣이고, 넷째는 이의지연離依止緣이다. -
001_0651_a_01L故下。次答別問。雖復摠說。未聞別
001_0651_a_02L行。所以更問何以故也。一本不起者。
001_0651_a_03L三戒之本。是一本覺。本來寂靜。故
001_0651_a_04L曰不起。三用無施者。旣依本覺。成
001_0651_a_05L三戒用。用離威儀施作相故。無施作
001_0651_a_06L故。順住一本。故言住於如理。旣住
001_0651_a_07L如理。消除有因。故言六道門杜。於
001_0651_a_08L一如理。具四緣力。能順一如。卽具
001_0651_a_09L三戒。故言四緣如順。三戒具足。
001_0651_a_10L舍利弗言。云何四緣如順。三戒具足。
001_0651_a_11L此是第三重請。
001_0651_a_12L佛言。四緣者。一謂作擇滅力取緣。攝
001_0651_a_13L律儀戒。二謂本利淨根力。所集起緣。
001_0651_a_14L攝善法戒。三謂本慧大悲力緣。攝衆生
001_0651_a_15L戒。四謂一覺通智力緣。順於如住。是
001_0651_a_16L謂四緣。善男子。如是四大緣力。不住
001_0651_a_17L事相。不無功用。離於一處。卽不可求。
001_0651_a_18L善男子。如是一事。通攝六行。是佛菩
001_0651_a_19L提薩般若海。
001_0651_a_20L此是第四廣說。於中有1)二。 [34] 一者。正
001_0651_a_21L答明戒因緣。二者。乘顯攝一切行。
001_0651_a_22L初中言四緣者。謂於一心本覺利中。
001_0651_a_23L具四力用。作三戒緣。一滅依止緣。
001_0651_a_24L二生依止緣。三攝依止緣。四離依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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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1_b_01L멸의지는 본각 중의 자성이 고요한 공덕이 모든 번뇌의 자성과 상위相違한 것으로, 이 연은 섭률의계를 성취한다. 생의지는 본각 가운데 자성이 선한 공덕은 모든 선근의 자성과 서로 조화로운 것으로, 이 연은 섭선법계를 성취한다. 섭의지는 본각 가운데 자성이 대비의 자성을 성취하여 일체의 중생을 저버리지 않는 것으로, 이 연은 섭중생계를 성취한다. 이의지는 본각 가운데 자성이 반야의 자성을 성취하여 일체의 사상事相을 멀리 벗어난 것으로, 이 인연은 삼취정계로 하여금 사상事相을 멀리 벗어나서 진여에 수순하여 머물게 한다.앞의 세 가지는 개별적인 연이고, 마지막의 한 가지는 총체적인 연이다. 보살이 발심하여 삼취정계를 받을 때 본각의 이익에 수순하여 수지하므로 이 네 가지 연으로 삼취정계를 갖춘다. 대의는 이와 같다.
다음은 경문을 해석한다.“첫째는 택멸을 작용시키는 힘으로 별해탈계를 취하는 연이다.”라는 것은 본각은 본래 번뇌의 계박을 떠나 있어 전체적으로 택멸해탈을 일으켜 그 힘으로 별해탈계를 능취하는 것이다. 마치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는 경우에 그럴 의도가 없어도 저절로 작용하는 것과 같다. 택멸해탈의 도리도 또한 그와 같은 줄 알아야 한다.“둘째는 본각의 이익의 청정한 근본의 힘으로 모든 선법을 집기하는 연이다.”라는 것은 본각은 본래 자성이 청정한 공덕으로 모든 수행공덕의 근본이 되는데, 바로 그 근본 힘을 말미암아 모든 선법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어난 바 모든 선법의 연, 바로 그 연이 섭선법계를 성취한다.“셋째는 본각의 지혜인 대비의 힘을 일으키는 연이니, 섭중생계이다.”라는 것은 본각 가운데 속제를 비추는 지혜는 곧 대비로서 항상 중생을 보살피는데, 이 연은 섭중생계를 성취한다는 것이다.“넷째는 일본각으로 삼취정계를 두루 꿰뚫어보는 지혜력의 연이니, 진여를 따라 머무는 것이다.”라는 것은 -
001_0651_b_01L緣。滅依止者。謂本覺中。性靜功德。
001_0651_b_02L與諸煩惱自性相違。以是緣成攝律
001_0651_b_03L儀戒。生依止者。謂本覺中性善功德。
001_0651_b_04L與諸善根自性相順。以是緣成攝善
001_0651_b_05L法戒。攝依止者。謂本覺中性成大
001_0651_b_06L悲自性。不捨一切衆生。以是緣成
001_0651_b_07L攝衆生戒。離依止者。謂本覺中性
001_0651_b_08L成般若自性。捨離一切事相。以是因
001_0651_b_09L緣。令三聚戒。捨離事相。順如而住。
001_0651_b_10L前三別緣。後一通緣。菩薩發心。受
001_0651_b_11L三戒時。順本覺利。而受持故。以是
001_0651_b_12L四緣。具足三戒。大意如是。次消其
001_0651_b_13L文。一謂作擇滅力取緣者。本覺本
001_0651_b_14L離煩惱繫縛。擧體而作擇滅解脫。有
001_0651_b_15L力能取別解脫戒。如似2)磁 [35] 石引取
001_0651_b_16L於針。雖無作意。而有力用。當知此
001_0651_b_17L中道理亦爾。二謂本利淨根力所集
001_0651_b_18L起緣者。謂本覺本來性淨功德。與諸
001_0651_b_19L行德而作根本。由此根力起諸善法。
001_0651_b_20L爲所集起善法之緣。卽此緣成攝善
001_0651_b_21L法戒。三謂本慧大悲力緣攝衆生戒
001_0651_b_22L者。謂本覺中照俗之慧。卽是大悲
001_0651_b_23L恒潤衆生。以是緣成攝衆生戒。四
001_0651_b_24L謂一覺通智力緣順於如住者。謂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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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1_c_01L본각 가운데 모든 자성을 비추는 지혜로서 삼취정계를 모두 진여를 수순하여 머물게 하는 것을 말한다.이와 같이 사연의 자체는 모든 법계에서 작용하여 만행을 섭수하므로 “큰 인연의 힘”이라 한다. 비록 큰 인연의 힘이 있지만 일미와 마찬가지로 모든 명칭과 형상의 차별적인 작용을 떠나 있기 때문에 “사상에 집착도 없다.”고 한다. 비록 사상事相이 없지만 뛰어난 능력이 있어 출세간의 일체의 수행공덕을 능섭하기 때문에 “공용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이러한 까닭에 본각은 세속법에서는 그와 같은 뜻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본각의 도리를 떠나 있어서 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이상은 삼취정계의 연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나) 일본각이 일체수행을 통섭함을 설명함
여기부터는 일본각이 일체수행을 통섭함을 설명한다.9)처음의 십신十信으로부터 등각等覺에 이르기까지 그와 같은 육행의 계위에 포함된 모든 수행은 다 그 일본각에 섭수되어 성취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일본각(一事)은 육행을 통섭한다.”고 한다.다만 보살의 경우만 이 일본각에 귀일되는 것이 아니라 제불의 원만한 지혜도 마찬가지로 이 일본각의 바다에 귀일되기 때문에 “부처님의 보리이고 살반야의 바다이다.”라고 한다.
마. 사리불이 이해함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사상事相에 집착도 없고 공용이 없는 것도 아니라면 그 법은 진공으로서10) 상·낙·아·정이고, 인아와 법아를 초월한 대반열반이며, 그 마음은 계박이 없는 대력관大力觀11)일 것입니다.
논 이는 다섯째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소순所順의 일여가 곧 법신으로서 사덕四德을 구족하고 인상과 법상을 초월한 대열반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는 능순能順의 일여심이 곧 일여를 수순하여 계박을 벗어나 있어 대자재력이 아닌 경우가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② 수행 덕목의 실천은 진성으로부터 성립되어 있음을 설명함
경 따라서 그 대력관과 대력본각에는 마땅히 삼십칠도품의 법이 갖추어져 있을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다. 삼십칠도품의 법이 갖추어져 있다. 왜냐하면 사념처·사정근·사여의족·오근·오력·칠각분·팔정도 등 -
001_0651_c_01L覺中照通性智。令三聚戒。皆順如住。
001_0651_c_02L如是四緣。體遍法界。用攝萬行。故
001_0651_c_03L言大力。雖有大力。而同一味。離諸
001_0651_c_04L名相差別事用。故言不住事相。雖無
001_0651_c_05L事相。而有勝能。能攝出世一切行德。
001_0651_c_06L故言不無功用。由如是故。只是本覺。
001_0651_c_07L於俗法中。無如是義。故言離於一處
001_0651_c_08L卽不可求。上來別明三聚戒緣。自下
001_0651_c_09L明其通攝萬行。始從十信。乃至等覺。
001_0651_c_10L如是六位。所有諸行。皆是一覺之所
001_0651_c_11L攝成。故言一事通攝六行。非但菩薩
001_0651_c_12L歸此本覺。諸佛圓智。同歸此海。故
001_0651_c_13L言是佛菩提薩般若海。
001_0651_c_14L舍利弗言。不住事相。不無功用。是法
001_0651_c_15L眞空。常樂我淨。超於二我。大般涅槃。
001_0651_c_16L其心不繫。是大力觀。
001_0651_c_17L此是第五領解。於中有二。先領所順
001_0651_c_18L一如。卽是法身。具足四德。超人法
001_0651_c_19L相。是大涅槃。後領能順如心。隨如
001_0651_c_20L離繫。而無不爲大自在力。
001_0651_c_21L是觀覺中。應具三十七道品法。佛言。如
001_0651_c_22L是。具三十七道品法。何以故。四念處。
001_0651_c_23L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 [94]
001_0651_c_24L「二」作「一」{甲}。「磁」作「礠」{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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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2_a_01L여러 가지 명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뜻은 동일하여 불일불이不一不異하기 때문이다. 다만 명칭과 법수이기에 명名과 자字가 있을 뿐이지 그 법은 얻을 수가 없다. 얻을 수 없는 법으로서 동일한 뜻이므로 문文이 없다. 문文이 없는 형상이어야 진실한 공성이다. 공성의 뜻은 여실하고 여여하다. 여여한 도리이기에 일체의 법을 갖추고 있다.선남자여, 그래서 진여의 도리에 머무는 자는 삼고三苦(壞苦·行苦·苦苦)의 바다를 건너간다.”
논 이것은 크게 분류한 가운데 둘째로 수행 덕목(道品)의 수행이 진성으로부터 성립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가. 질문
질문에서 “그 대력관과 대력본각에는”이라 한 것은 수순의 주체인 관과 수순의 객체인 본각이다. 곧 주체와 객체가 평등한 관과 본각 가운데는 마땅히 삼십칠도품의 수행이 갖추어져 있다.
나. 답변
답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정하고, 둘째는 해석한다.
( 가) 인정)
나) 해석
“왜냐하면” 이하는 둘째로 해석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대로 해석하고,12) 둘째는 거듭 드러낸다.13)
(가) 그대로 해석함
첫째에서 “여러 가지 명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뜻은 동일하다.”고 한 것은 삼십칠도품이라는 명목이 가리키는 뜻은 유일하게 관과 본각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불일불이하다.”는 것은 관과 본각이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이다.그리고 불이문不異門에 의거하기 때문에 “그 뜻은 동일하다.”고 한다.
(나) 거듭 드러냄
“다만 명칭과 법수이기에” 아래는 둘째로 거듭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다르다는 뜻을 없애고, 둘째는 동일하다는 뜻을 드러내며, 셋째는 동일하다는 뜻에는 일체법을 갖추고 있음을 설명하고, 넷째는 동일하다는 뜻에는 모든 허물을 떠나 있음을 설명한다.
㉮ 다르다는 뜻을 없앰
첫째에서 “다만 명칭과 법수이기에 명名과 자字가 있을 뿐이지 그 법은 얻을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세간에서 닦는 도품의 수행법은 명칭과 법수에 따르기 때문에 37가지가 있지만 보살의 각혜로 추구해 보면 명목이 가리키는 37가지 법은 모두 불가득하기 때문이다.
㉯ 동일하다는 뜻을 드러냄
둘째에서 “얻을 수 없는 법으로서 동일한 뜻이므로 문文이 없다.”고 한 것은 삼십칠품의 개별적인 법을 추구해도 불가득한데 이 경우 그 법은 일미로서 모든 문언文言을 단절해 있기 때문이다.
㉰ 동일하다는 뜻에는 일체법을 갖추고 있음을 설명함
셋째에서 “문文이 없는 형상이어야 진실한 공성이다.”라고 한 것은 -
001_0652_a_01L八正道等。多名一義。不一不異。以名
001_0652_a_02L數故。但名但字。法不可得。不得之法。
001_0652_a_03L一義無文。無文之相一本相
作義。 [95] 眞實空性。
001_0652_a_04L空性之義。如實如如。如如之理。具一
001_0652_a_05L切法。善男子。住如理者。過三苦海。
001_0652_a_06L此是大分第二明道品行。從眞性立。
001_0652_a_07L於中有二。先問。後答。問中言。是觀
001_0652_a_08L覺中者。是能順觀。所順本覺。能
001_0652_a_09L所平等觀覺之中。應具三十七道品
001_0652_a_10L行。答中有二。先許。後釋。何以故下。
001_0652_a_11L是第二釋。於中有二。直釋。重顯。初
001_0652_a_12L中言多名一義者。三十七品所目之
001_0652_a_13L義。唯一觀覺。無二法故。不一不異
001_0652_a_14L者。觀覺不一而不異故。約不異門
001_0652_a_15L故言一義。以名數故已下重顯。於
001_0652_a_16L中有四。先遣異義。次顯一義。三明
001_0652_a_17L一義具一切法。四明一義離諸過
001_0652_a_18L患。初中言以名數故。但名但字。法不
001_0652_a_19L可得者。謂世間修道品行法隨名數。
001_0652_a_20L故有三十七。菩薩覺慧。求所目義。
001_0652_a_21L三十七法。皆不可得故。第二中言
001_0652_a_22L不得之法。一義無文者。求彼別法不
001_0652_a_23L得之時。是法一味。絕諸文言故。第
001_0652_a_24L三中言無文之相。眞實空性者。不
-
001_0652_b_01L개별적인 법으로서 얻을 수 없는 능관심能觀心은 모든 문언을 떠나 있고 또 모든 차별상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공성의 뜻은 여실하고 여여하다.”는 것은 이 능관심이 모든 분별상과 뜻을 떠나 있어 실상의 여여한 도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본각의 여여한 도리에는 곧 수행으로 성취된 도품 등의 법이 갖추어져 있다. 마치 금을 주조하면 상호의 형상이 갖추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여여한 도리이기에 일체의 법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 동일하다는 뜻에는 모든 허물을 떠나 있음을 설명함
이미 진여의 도리에 머물러서 모든 공덕을 갖추면, 곧 일체의 잡염과 과실을 떠나 있기 때문에 “선남자여, 그래서 진여의 도리에 머무는 자는 삼고의 바다를 건너간다.”고 한다. 이것은 넷째로 모든 허물을 떠나 있음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대략 삼십칠도품의 뜻을 설명한다. 이 가운데서는 사구로 분별하는데, 첫째는 삼십칠품을 요약하여 열 가지 법으로 삼고, 둘째는 열 가지 법을 요약하여 네 가지 법으로 삼으며, 셋째는 네 가지 법을 요약하여 일의一義로 삼고, 넷째는 일의一義에 삼십칠품이 갖추어져 있음을 설명한다.첫째의 삼십칠품을 요약하여 열 가지 법으로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대지도론』에서 “삼십칠품은 열 가지 법을 근본으로 한다. …….”14)고 하였다. 곧 열 가지를 삼십칠품으로 열어놓은 것이니, 그 법체를 논하면 열 가지 법이 있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문) 열 가지는 무엇인가?(답) 계戒·사思·수受·염念·정定·혜慧·신信·근勤·안安·사捨 등이다.15)(문) 열 가지를 열어 삼십칠품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답) 계戒를 열면 정어·정업·정명의 세 가지이다. 사思의 법수는 하나로 내세우니, 정사유이다. 수受도 역시 하나로 내세우니, 희각분喜覺分이다. 염念을 열면 염근·염력·염각·정념의 네 가지이다. 정定을 열면 여덟 가지가 되니, 사여의족·정근·정력·정각·정정이다. 혜慧의 경우도 역시 여덟 가지가 성립되니, 사념처·혜근·혜력·택법각분·정견이다. 근勤의 경우도 역시 여덟 가지가 성립되니, 사정근·정진근·정진력·정진각분·정정진이다. 신信에는 신근과 신력의 두 가지가 성립된다. -
001_0652_b_01L得別法之能觀心絕諸文言。離差別
001_0652_b_02L相故。空性之義。如實如如者。此能
001_0652_b_03L觀心。離諸相義。不異實相如如之理
001_0652_b_04L故。如是本覺如如之理。卽具修成道
001_0652_b_05L品等法。猶如鑄金。具相好像。故言
001_0652_b_06L如如之理。具一切法。旣住如理。具
001_0652_b_07L諸功德。卽離一切雜染過失。故言住
001_0652_b_08L如理者。過三苦海。此是第四離諸過
001_0652_b_09L患也。此中略明道品之義。於中卽以
001_0652_b_10L四句分別。一攝三十七以爲十法。二
001_0652_b_11L攝十法以爲四法。三攝四法以爲一
001_0652_b_12L義。四明一義具三十七。初攝三十七
001_0652_b_13L以爲十法者。智度論云。三十七品
001_0652_b_14L十法爲本。乃至廣說。當知開十立三
001_0652_b_15L十七。論其法體。唯有十法。何等爲
001_0652_b_16L十。謂戒思受念定與慧信勤安捨。云
001_0652_b_17L何開十爲三十七。開戒爲三。正語業
001_0652_b_18L命。思數立一。謂正思惟。受亦立一。
001_0652_b_19L謂喜覺分。開念爲四。念根念力念覺
001_0652_b_20L正念。開定爲八。謂四如意足。定根
001_0652_b_21L定力定覺正定。慧亦立八。謂四念處。
001_0652_b_22L慧根慧力擇法覺分及與正見。勤亦
001_0652_b_23L立八。謂四正勤。精進根精進力精進
001_0652_b_24L覺分及正精進。信中立二。信根信力。
-
001_0652_c_01L안安과 사捨는 각각 하나씩이니, 의각분倚覺分과 사각분捨覺分이다.총체적으로 말하면 다섯 가지 범례가 있다. 첫째는 여덟 가지로 여는 것에 세 경우가 있으니, 정과 혜와 근의 스물네 가지가 이 세 경우에 포함된다. 둘째는 네 가지로 여는 것에 한 경우가 있으니, 염이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는 염 한 가지에 포함된다. 셋째는 세 가지를 여는 것에 한 경우가 있으니, 계이다. 이 세 가지는 계 한 가지에 포함된다. 넷째는 두 가지를 여는 것에 한 경우가 있으니, 신이다. 신은 신근과 신력을 포함한다. 다섯째는 한 가지를 여는 것에 네 경우가 있으니, 사思·수受·안安·사舍는 각각 사·수·안·사라는 자체의 성품을 포함한다. 이와 같이 열 가지 법이 삼십칠품을 포함한다.둘째의 열 가지 법을 요약하여 네 가지 법으로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계戒는 색법에 포함되니, 표색업과 무표색업이다. 두 번째 사捨와 수受는 변행遍行의 심소에 포함된다. 세 번째 염念·정定·혜慧는 개별적인 경계인 심소에 포함된다. 네 번째 신信·근勤·안安·사捨의 네 가지는 선善의 심소에 포함된다.셋째의 네 가지 법을 요약하여 일의一義로 삼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각혜覺慧로 추구해 보면 이와 같은 네 가지 가운데 처음의 한 가지는 색법으로서 방소方所가 있거나 방소가 없거나 모두 무소득이고, 뒤의 세 가지는 심소유로서 시時가 있거나 시時가 없거나 모두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법이 없지는 않지만 유가득의 법이 없어서 평등일미이다. 그러므로 네 가지 법은 그대로 곧 일의一義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여러 가지 명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뜻은 동일하다.”고 말한다.넷째의 일의一義에 삼십칠품이 갖추어져 있음을 설명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주체와 객체가 평등일미의 뜻이라는 입장에서 신身·수受·심心·법法이 공적함을 관찰하는 것은 곧 사념처이고, 모든 해태를 떠나는 것은 사정근이며, 산란한 생각이 적멸해지는 것은 사여의족이고, 불신不信 등을 떠나는 것은 신근信根과 신력信力이며, 무명 등이 소멸되는 것은 칠각분七覺分이고, 팔사법八邪法을 떠나는 것은 팔정도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잡염雜染을 멀리 떠나서 일의一義에 무량한 공덕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대력관과 대력본각에는 마땅히 삼십칠도품의 법이 갖추어져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
001_0652_c_01L安捨各一。謂倚覺分。及捨覺分。摠
001_0652_c_02L而言之。有其五例。一者開八有三。謂
001_0652_c_03L定慧勤。彼二十四。此三所攝。二者
001_0652_c_04L開四有一。謂念。所以彼四。一念所
001_0652_c_05L攝。三者開三有一。謂戒。所以彼三
001_0652_c_06L一戒所攝。四者開二有一。謂信。信
001_0652_c_07L攝彼二。五者立一有四。思受安捨。
001_0652_c_08L各攝自性。如是十法。攝三十七。二
001_0652_c_09L攝十法爲四種者。第一戒者。色法所
001_0652_c_10L攝。謂表無表。第二思受。遍行心所
001_0652_c_11L所攝。第三念定慧。別境心所所攝。
001_0652_c_12L第四信等四。善心所所攝。三攝四法
001_0652_c_13L爲一義者。覺慧推求如是四法。初一
001_0652_c_14L色法。有方無方。俱無所得。後三心
001_0652_c_15L所。有時無時。皆不可得。是則雖非
001_0652_c_16L無法。而不得有可得之法。平等一味。
001_0652_c_17L當知四法。直是一義。以之故言多
001_0652_c_18L名一義。四明一義具三十七者。能所
001_0652_c_19L平等。一味之義。觀身等空。是四念
001_0652_c_20L處。離諸懈怠。是四正勤。散慮寂滅。
001_0652_c_21L是如意足。離不信等。卽是根力。滅
001_0652_c_22L無明等。卽七覺分。離八邪法。卽八
001_0652_c_23L正道。如是遠離一切雜染。一義具足。
001_0652_c_24L無量功德。故言是觀覺中。應具三十
-
001_0653_a_01L또한 “여여한 도리이기에 일체의 법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③ 여래의 가르침은 진여도리에 맞게 설해진 것임을 설명함
이하는 크게 분류한 가운데 셋째로 여래의 가르침은 진여도리에 맞게 설해진 것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가. 질문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일체만법은 모두 언어와 문자입니다. 언어와 문자의 모습은 곧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실한 뜻을 언설로는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래께서는 어찌 설법을 하는 것입니까?”
논 질문에서 “일체만법”이라 한 것은 세간의 언설로 안립한 법이다. 저 언설의 법은 모두 무소득이므로 오직 언설과 문자일 뿐이지 곧 뜻이 아니다. 그러나 제법의 진실한 뜻은 모든 언설을 단절해 있다. 지금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것도 만약 언설과 문자라면 진실한 뜻이 없을 것이고, 만약 설법에 진실한 뜻이 있다면 마땅히 언설과 문자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질문으로 “어찌 설법을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나.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내 설법은 그대와 중생들을 위한 것으로서 있다(在)든가 발생한다(生)고 설한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설하였다.16) 이런 까닭에 그것을 설하자면, 내가 설한 것은 뜻의 언어이지 문자만의 언어는 아니다. 그러나 중생이 설한 것은 문자만의 언어이지 뜻의 언어가 아니다. 뜻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공무空無일 뿐이다.공무의 언어는 뜻을 말할 수가 없다. 뜻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허망한 언어이다. 그러나 진여의 뜻을 가리키는 언어는 실의 경우에도 공하면서 공하지 않고, 공의 경우에도 실이면서 실이 아니므로 공과 실의 두 가지 모습을 떠나 있고, 중간이면서도 중간이 아니므로 중간이 아닌 법은 공과 실과 중간의 세 가지 모습을 떠나 있다. 그래서 처소에 대하여 집착의 견해가 없이(不見) 여여와 똑같이 설법한다.진여는 유를 없애고 만든 무도 아니고, 무를 설정하여 만든 유도 아니다. 그렇다고 진여는 무를 그대로 남겨두어 만든 무도 아니고 유를 그대로 남겨두어 만든 유도 아니다. 이처럼 진여에는 본래 유와 무가 없으므로 없다(不在)고 설한다. 진여에는 유와 무가 없으므로 진여는 유의 진여도 아니고 무의 진여도 아니라고 여법하게 설한다.”
논 이는 둘째로 답변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이유이고, 둘째는 문자와 뜻이 서로 다른 점을 드러낸다.
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이유
첫째에서 “그대와 중생들을 위한 것으로서 있다(在)든가 발생한다(生)고 설한다.”라고 한 것에서 ‘그대’는 사리불이고, 중생들은 일체의 범부이다. -
001_0653_a_01L七道品法。又言如如之理。具一切法。
001_0653_a_02L舍利佛言。一切萬法。皆悉文言。文言 [96]
001_0653_a_03L之相。卽非爲義。如實之義。不可言說。 [97]
001_0653_a_04L今者如來。云何說法。
001_0653_a_05L此下大分第三。明佛言敎。稱如理說。
001_0653_a_06L先問。後答。問中言一切萬法者。世間
001_0653_a_07L言說。所安立法。如言之法。皆無所
001_0653_a_08L得。故唯文言。卽非爲義。諸法實義。
001_0653_a_09L絕諸言說。今佛說法。若是文言。卽
001_0653_a_10L無實義。若有實義。應非文言。是故
001_0653_a_11L問言。云何說法。
001_0653_a_12L佛言。我說法者。以汝衆生。在生說故。
001_0653_a_13L說不可說。是故說之。我所說者。義語
001_0653_a_14L非文。衆生說者。文語非義。非義語者。
001_0653_a_15L皆悉空無。空無之言。無言於義。不言
001_0653_a_16L義者。皆是妄語。如義語者。實空不空。
001_0653_a_17L空實不實。離於二相。中間不中。不中
001_0653_a_18L之法。離於三相。不見處所。如如如說。
001_0653_a_19L如無無有。無有於無。如無有無。有無
001_0653_a_20L於有。有無不在。 [98] 說不在故。 [99] 不在於如。
001_0653_a_21L如不有。如不無。如說。
001_0653_a_22L是第二答。於中有二。先是佛說之由。
001_0653_a_23L後顯文義之異。初中言以汝衆生在
001_0653_a_24L生說故者。汝謂身子。衆生卽是一切
-
001_0653_b_01L무위는 곧 법체에 있다(在)고 설하고, 유위는 곧 법상을 발생한다(生)고 설한다는 것이다.이와 같이 있다든가 발생한다든가 하는 설명으로는 진여의 진실한 뜻을 설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내(여래) 설법은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이런 까닭에 그것을 설하자면”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곧 부처님께서 언교를 통하여 설한 연유이다.
나) 문자와 뜻이 서로 다른 점
다음은 문자와 뜻이 같지 않은 모습을 드러낸다.17) 먼저 두 문장18)으로 설명하고, 나중에 두 문장19)으로 해석한다.
(가) 두 문장으로 설명함
첫째로 “내가 설한 것은 뜻의 언어이지 문자만의 언어는 아니다.”라는 것은 언어가 여실한 뜻에 합당하므로 공허한 문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중생이 설한 것은 문자만의 언어이지 뜻의 언어가 아니다.”라는 것은 언어가 공허한 문자에 그치므로 여실한 뜻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 두 문장으로 해석함
둘째로 해석 중에서는 뒤의 경문을 먼저 해석한다.
㉮ 뒤의 경문을 해석함
“모두 공무일 뿐이다.”라는 것은 그대로 공허한 문자이므로 여실한 뜻이 없다는 것으로, 곧 문자와 언어를 해석한 것이다.“뜻의 언어가 아니다.”라는 것은 여실한 뜻을 설명하지(詮談)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뜻이 없음을 해석한 것이다.아래 총결해서 “모두 허망한 언어이다.”라고 한 것은 비록 문자언어라는 형상(想)으로는 어긋나지 않을지라도 여실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마치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보고서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앞의 경문을 해석함
“그러나 여여의 뜻을” 이하는 앞의 경문을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곧장 해석하고, 둘째는 거듭 드러낸다.
a. 그대로 해석함
첫째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문자가 아님을 해석하고, 둘째는 여실한 뜻임을 해석한다.
a) 문자가 아님을 해석함
문자가 아님을 해석한다는 것은 공허한 문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뜻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여실한 뜻임을 해석한다는 것은 뜻이 언어에 합치되기 때문이고, 언어가 뜻에 들어맞기 때문이다.첫째의 해석에서 “실의 경우에도 공하면서 공하지 않다.”는 것은 진여의 실상도 또한 공하다는 것이다. 마치 저 위에서 말한20) “공상도 또한 공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으므로 “실의 경우에도 공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실상의 도리가 없지 않으므로 “실의 경우에도 공하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상이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공의 경우에도 실이면서 실이 아니다.”라는 것은 진공의 도리는 실이므로 “공의 경우에도 실이다.”라고 하고, 그 진공의 도리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공의 경우에도 실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것은 비록 공이 없지는 않지만 공이 실체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공과 실의 두 가지 모습을 떠나 있고, 중간이면서도 중간이 아니다.”라는 것은 -
001_0653_b_01L凡夫。說於無爲。卽在法體。說於有
001_0653_b_02L爲。卽生法相。如是在生之說。不可
001_0653_b_03L說於實義。我異彼說。是故說之。是
001_0653_b_04L爲佛說言敎之由。次顯文義不同相
001_0653_b_05L中。先標二章。後釋二章。標中言義
001_0653_b_06L語非文者。語當實義故。非直空文故。
001_0653_b_07L文語非義者。語止空文故。不關實義
001_0653_b_08L故。第二釋中。先釋後章。言皆悉空
001_0653_b_09L無者。直有空文而無實義故。是釋文
001_0653_b_10L語也。無言於義者。無詮談於如實之
001_0653_b_11L義故。是釋非義也。下摠結言。皆是
001_0653_b_12L妄語者。雖非違想。而違義故。猶如
001_0653_b_13L不見言見。見言不見等語。如義已下。
001_0653_b_14L次釋前章。於中有二。正釋。重顯。初
001_0653_b_15L中亦二。先釋非文。後釋義語。釋非
001_0653_b_16L文者。謂非空無。非空文故。非無義
001_0653_b_17L故。釋義語者。義合語故。語如義故。
001_0653_b_18L初釋中言實空不空者。謂說眞如
001_0653_b_19L實相亦空。如前說言空相亦空故。
001_0653_b_20L言實空。而不亡其實相之理。故言不
001_0653_b_21L空。雖非有實而非無實故。空實不實
001_0653_b_22L者。謂說眞空之理是實故。言空實。
001_0653_b_23L而不存其眞空之理。故言不實。雖非
001_0653_b_24L無空而非有空故。離於二相中間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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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3_c_01L불공이라는 언어는 공상을 떠나 있고 부실이라는 언어는 실상을 떠나 있기 때문에 “공과 실의 두 가지 모습을 떠나 있다.”고 하고, 공과 실의 두 가지 모습 사이에 그 두 가지가 아닌 중간이 실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중간이면서도 중간이 아니다.”라고 한다.이미 양변을 떠나 있고, 또한 중간에도 떨어지지 않으므로 “공과 실과 중간의 세 가지 모습을 떠나 있다.”고 한다.마음과 말이 작용하는 도리는 공과 실과 중간의 세 가지 모습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부처님의 언어는 그 세 가지 모습을 떠나 있다. 곧 그 가운데 심로心路와 언로言路를 단절해 있으므로 “처소에 대하여 집착의 견해가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언어가 단절된 뜻에 묘하게 계합되어 있는 까닭에 뜻이 없는 문자와는 같지 않다. 이것은 첫째의 문자가 아님을 해석한 것에 해당한다.
b) 여실한 뜻임을 해석함
“여여와 똑같이 설법한다.”는 것은 둘째의 여실한 뜻임을 해석한 것이다. 맨 앞의 ‘여’는 똑같다(契當)는 것이고, 뒤의 ‘여여’는 곧 진여의 뜻과 도리(義理)이다. 곧 앞의 공과 실과 중간의 세 가지 모습을 멀리 떠나 있는 언어를 통하여 여여의 뜻과 도리에 똑같게(契當) 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은 곧 뜻을 드러내는 언어(義語)로서 범부의 언어가 뜻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b. 거듭 드러냄
“진여는 유를 없애고 만든 무도 아니고” 이하는 둘째로 여여의 뜻을 거듭 드러내는 것이다. 첫째는 문자가 아님을 드러내고, 둘째는 진여의 뜻을 가리키는 언어(義語)임을 드러낸다.
a) 문자가 아님을 드러냄
첫째에서 “진여는 유를 없애고 만든 무도 아니고 무를 설정하여 만든 유도 아니다.”라고 한 것은 진여의 도리는 비록 유가 아니라고 해서 진여가 본래 유를 없애고 유가 없는 상태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무법 가운데서 유법을 없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여는 본래 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슨 유를 없애고 무에 떨어진다는 것인가. 이런 까닭에 위의 “실의 경우에도 공하면서 공하지 않다.”는 말에 합치된다.“그렇다고 진여는 무를 그대로 남겨 두어 만든 무도 아니고 유를 그대로 남겨 두어 만든 유도 아니다.”라는 것은 진여의 도리는 비록 무가 아니라고 해서 진여가 본래 무를 남겨 둔 상태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유법 가운데 무법을 남겨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여는 본래 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슨 무를 남겨 두어 유에 떨어진단 말인가. 이런 까닭에 위의 “공의 경우에도 실이면서 실이 아니다.”라는 말에 합치된다.“이처럼 진여에는 본래 유와 무가 없다.”는 것은 진여에는 무를 남겨두지 않으므로 유가 없고, 진여에는 유를 없애지 않으므로 무가 없다는 것이다. -
001_0653_c_01L中者。不空之語。離於空相。不實之
001_0653_c_02L語。離於實相。故言離於二相。然空
001_0653_c_03L實二相之間。不存非二之中。故言中
001_0653_c_04L間不中。旣離二邊。亦不墮中。故言
001_0653_c_05L離於三相。心言行處。不過三相。然
001_0653_c_06L此佛語。遠離三相。卽於其中。心言
001_0653_c_07L路絕。故言不見處所。如是妙契絕言
001_0653_c_08L之義。所以不同無義之文。此釋非文
001_0653_c_09L也。如如如說者。是釋義語。上一如
001_0653_c_10L是契當。下二如是義理。如前遠離
001_0653_c_11L三相之語。契當如如義理而說。所以
001_0653_c_12L佛說。乃是義語。不同凡語之非義也。
001_0653_c_13L如無已下。第二重顯。先顯非文。後
001_0653_c_14L顯義語。初中言如無無有。無有於
001_0653_c_15L無者。謂眞如理。雖非是有。而如本
001_0653_c_16L無令無其有。謂令無有法於無法中。
001_0653_c_17L所以然者。如本非有。無於何有。而
001_0653_c_18L墮無耶。是故合於實空不空之語也。
001_0653_c_19L如無有無。有無於有者。謂眞如理。
001_0653_c_20L雖非是無。而如本無令有其無。謂
001_0653_c_21L令有無法於有法中。所以然者。如本
001_0653_c_22L非無。有於何無。而墮有耶。是故合
001_0653_c_23L於空實不實之語。有無不在者。如無
001_0653_c_24L有無故。有不在。如無無有故。無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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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4_a_01L유와 무가 이미 없는데 어찌 중간이 있겠는가. 곧 이로써 “공과 실과 중간의 세 가지 모습을 떠나 있다.”는 말에 합치된다.진여의 뜻이 이미 그와 같이 진여의 뜻을 가리키는 언어(義語)에 합치되는 까닭에 부처님의 말씀은 여실하여 공허한 문자가 아니다. 이와 같이 공허한 문자가 아니라는 해석을 거듭 드러낸다.부처님께서 설하신 명칭과 언어는 이처럼 도리에 합당하다. 그러므로 후득지後得智로써 이와 같은 명칭을 가지고 진여를 사유하면 곧 진여의 이체理體를 직접 관찰할 수가 있다. 이것은 사구四句21) 가운데 모두 긍정에 해당하는 구구俱句이다.
b) 진여의 뜻을 가리키는 언어임을 드러냄
둘째의 여실한 뜻임을 거듭 해석하는 가운데서 “없다고 설한다. 진여에는 유와 무가 없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은 이미 유와 무가 없음을 설한 까닭에 진여의 도리에는 유와 무가 없다는 것이다.진여에는 유가 없으므로 유의 진여가 아니고, 진여에는 무가 없으므로 무의 진여가 아니다. 곧 유의 진여도 아니고 무의 진여도 아닌 입장에서 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여에는 유와 무가 없으므로 진여는 유의 진여도 아니고 무의 진여도 아니라고 여법하게 설한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앞에서 “여여와 똑같이 설법한다.”고 하였다.이와 같이 진여의 뜻을 말한 해석을 거듭 드러낸다. 크게 분류한 가운데 그 셋째 부분을 마친다.
④ 보살의 계위는 본각리로부터 나온 것임을 설명함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일체중생은 일천제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일천제의 마음이 몇 가지 계위에 주해야 여래지와 여래의 실상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일천제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여래와 여래의 실상에 이르기까지는 다섯 가지 계위의 머묾이 있다.
논 이하는 크게 분류한 가운데 넷째로 보살의 계위는 본각의 이익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가. 질문)
나. 답변
답변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수를 들어 총론적으로 드러내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해석하며, 셋째는 총론적으로 설명한다.
가) 법수를 들어 총론적으로 드러냄
이것은 첫째의 다섯 가지 계위를 총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가지(等)”는 계위를 말한다.“일천제로부터 시작됩니다.”라는 것은 아직 무상보리심을 내지 못한 그 이전은 모두 천제라 하니, 대승의 결정신決定信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천제에는 대략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서원을 일으킨 일천제이니, 항상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 자이다. -
001_0654_a_01L在。二旣不在。何得有中。卽合離於
001_0654_a_02L三相之語。如義旣爾。合於義語。是
001_0654_a_03L故佛語。實非空文。如是重顯非文釋
001_0654_a_04L也。佛說名言。如是當理故。後得智
001_0654_a_05L帶如是名。思惟眞如。卽得親觀眞如
001_0654_a_06L理軆故。在1)句 [36] 之中俱句也。第二重
001_0654_a_07L顯義語中。言說不在故。不在於如者。
001_0654_a_08L佛語旣說有無不在故。不在有無於
001_0654_a_09L眞如理。有不在者。不有如故。無不
001_0654_a_10L在者。不無如故。則當不有如不無如
001_0654_a_11L而說。故言如不有如不無如說。是故
001_0654_a_12L前言如如如說。如是重顯義語之釋。
001_0654_a_13L六分之中。第三分竟。
001_0654_a_14L舍利弗言。一切衆生。從一闡提。闡提
001_0654_a_15L之心。住何等位。得至如來。如來實相。
001_0654_a_16L佛言。從闡提心。乃至如來。如來實相。
001_0654_a_17L住五等位。
001_0654_a_18L此下大分第四明菩薩位。從本利出。
001_0654_a_19L於中有二。先問。次答。答中有三。一
001_0654_a_20L者擧數摠標。二者別解。三者摠明。
001_0654_a_21L此卽摠標。五等位者。等之言階。從
001_0654_a_22L闡提心者。未發無上菩提心前。皆名
001_0654_a_23L闡提。以無大乘決定信故。然一闡提
001_0654_a_24L略有二種。一者發大願一闡提。謂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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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4_b_01L둘째는 대신大信이 없는 일천제이니, 여기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별일천제別一闡提이니, 대사견을 일으켜 선근이 단절된 자이다. 둘째는 통일천제通一闡提이니, 아직 대승심을 일으키지 못하여 대신이 없는 자 내지 이승의 사과四果에 이르기까지 모두 통일천제의 계위에 속한다. 지금 이 경문에서는 여기 최후의 경우(통일천제)에 의거한 까닭에 “일천제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여래와 여래의 실상에 이르기까지는 다섯 가지 계위의 주가 있다.”고 하였으니, 아직 십신에 들어가지 못한 자는 모두 일천제라 하기 때문이다.여기에서 먼저 다섯 가지 계위의 분제에 대하여 설명한다.첫째의 신위信位는 십신행十信行에 해당한다. 비록 불퇴의 경지는 아니지만 대승심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을 『본업경』에서는 신상보살信想菩薩이라 한다.22)둘째의 사위思位는 삼십심三十心(十住心·十行心·十廻向心)에 해당한다. 곧 제법이 유식의 도리임을 사량하지만 아직은 완전하게 무분별수행을 진증眞證한 것은 아니다.셋째의 수위修位는 십지행十地行에 해당한다. 무분별수행을 진증眞證하여 십장十障23)의 대치를 터득하는 것이다.넷째의 행위行位는 등각행等覺行에 해당한다. 인행은 이미 원만하지만 과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다섯째의 사위捨位(佛地)는 묘각행妙覺行에 해당한다. 적멸에도 집착하지 않고 대비로 널리 교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다섯 가지 계위를 건립하는 까닭은 퇴위退位와 불퇴위不退位의 차별, 증위證位와 부증위不證位의 차별, 등위等位와 미등위未等位의 차별, 인위因位의 만위滿位에 대한 차별, 과위果位의 원만圓滿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차제에 따라 다섯 가지 계위를 내세운 것이다.24)총론적으로 드러낸 대의는 이와 같다. 다음으로 해당하는 경문을 해석한다.
나) 개별적으로 해석함
이하는 둘째로 개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가) 신위信位
경 첫째는 신위이다. 이 몸속에 있는 진여종자가 망심에 가려 있지만 그 망심을 벗어나면 청정심이 분명해짐을 믿고, 모든 경계가 의意·언言의 분별임을 아는 것이다.
논 첫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믿음이고, 둘째는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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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4_b_01L不入涅槃者故。二者無大信一闡提。
001_0654_b_02L此亦有二。一者別一闡提。謂起大邪
001_0654_b_03L見斷善根者故。二者通一闡提。謂未
001_0654_b_04L發大心無大信者。乃至二乘四果。皆
001_0654_b_05L入此闡提位。今此文中。約此最後故。
001_0654_b_06L言從一闡提心。乃至如來。有五等位。
001_0654_b_07L未入十信者。皆名闡提故。此中先明。
001_0654_b_08L五位分齊。第一信位。在十信行。雖
001_0654_b_09L未不退。發大心故。本業經。名信相 [100]
001_0654_b_10L菩薩。第二思位。在三十心。思量諸
001_0654_b_11L法。唯識道理。齊未眞證無分別修故。
001_0654_b_12L第三修位者。在十地行。得眞證修
001_0654_b_13L對治十障故。第四行位者。在等覺行。
001_0654_b_14L因行已滿。未至果地故。第五捨位者。
001_0654_b_15L在妙覺地。不取寂滅。大悲普化故。
001_0654_b_16L所以建立五等位者。謂顯退不退位
001_0654_b_17L差別故。證不證位差別故。等未等位
001_0654_b_18L差別故。因滿位差別故。果圓位差別
001_0654_b_19L故。如其次第。立五等位也。大章如
001_0654_b_20L是。次釋其文。
001_0654_b_21L一者信位。信此身中。眞如種子。爲妄
001_0654_b_22L所翳。捨離妄心。淨心淸白。知諸境界。
001_0654_b_23L意言分別。
001_0654_b_24L此下第二別釋。初中有二。先信。後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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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4_c_01L㉮ 믿음
먼저 믿음을 설명한다. 믿음에는 세 가지의 불성이 있다.“이 몸속에 진여종자가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자성에 주하는 불성(住自性佛性)을 믿는 것이다. 진여는 바로 제일의공의 종자로서 아뇩보리 가운데 도종자道種子이다. 곧 자성청정심은 본래 법이연法爾然하기 때문에 ‘진여’라 하고, 삼신의 과와 더불어 정인正因이 되므로 ‘종자’라 말하며, 아직 발심하지 못한 주이므로 ‘자성에 주한다’고 하는데 아직 모든 장애를 벗어나지 못하여 망심에 가려 있다.“그 망심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드러난 불성(引出佛性)을 믿는 것이다. 십신으로부터 등각에 이르기까지 점차 불신과 무지 등의 장애를 벗어남에 따라 거칠고 망령된 분별심을 벗어나는 것이다.“청정심이 분명해짐을 믿는다.”는 것은 곧 도달한 불성(至得佛性)을 믿는 것이다. 깨침에 도달한 후에는 일체의 번뇌를 떠나 있어서 자성청정심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앞에 있는 믿음(信)이라는 글자는 두 구절25)까지 이어진다.
㉯ 아는 것
“모든 경계가 의·언의 분별임을 아는 것이다.”라는 것은 이미 세 가지 불성을 믿고 또한 이미 그것이 유식의 도리임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취하는 일체의 경계도 오직 의언분별이 만드는 것으로, 만약 분별을 떠나면 일체경계의 존재가 없음(無所有)을 아는 것이다.
(나) 사위思位를 설명함
경 둘째는 사위思位이다. 사량한다는 것은 모든 경계가 오직 의意·언言의 분별인데 그 의·언으로 분별되어 의·언에 따라 드러나고 보이는 경계는 나의 근본식이 아님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본식은 법法도 아니고 뜻(義)도 아니며 소취所取도 아니고 능취能取도 아님을 아는 것이다.
논 이는 사위思位에도 또한 두 구절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첫째는 무상無相의 심사관尋思觀26)을 설명하고, 둘째는 무생無生의 여실지如實智를 드러낸다.
㉮ 무상의 심사관尋思觀을 설명함
첫째에서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하고 관찰한다는 것이다.“오직 의·언의 분별이다.”라는 것은 소취의 외부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001_0654_c_01L初明信者。所謂信有三種佛性。信此
001_0654_c_02L身中眞如種子者。信住自性佛性。眞
001_0654_c_03L如正是第一義空種子。卽是阿耨菩
001_0654_c_04L提中道種子。自性淨心。本來法然。
001_0654_c_05L故名眞如。與三身果。而作正因。故
001_0654_c_06L名種子。未發心住。名住自性。未出
001_0654_c_07L諸障。爲妄所翳也。言捨離妄心者。
001_0654_c_08L是信引出佛性。從十信位。乃至等覺。
001_0654_c_09L漸出不信無知等障。隨捨麁妄分別
001_0654_c_10L心故。言淨心淸白者。是信至得佛性。
001_0654_c_11L謂至道後。離一切垢。自性淨心。顯
001_0654_c_12L現淸白故。上句信字。貫下二句故。
001_0654_c_13L知諸境界意言分別者。旣信三種佛
001_0654_c_14L性。亦知唯識道理故。知心所取一切
001_0654_c_15L境界。唯是意言分別所作。若離分別
001_0654_c_16L無所有故。
001_0654_c_17L二者思位。思者。觀諸境界。唯是意言。
001_0654_c_18L意言分別。隨意顯現。所見境界。非我
001_0654_c_19L本識。知此本識。非法非義。非所取非
001_0654_c_20L能取。
001_0654_c_21L此明思位亦有二句。先明無相尋思
001_0654_c_22L觀。後顯無生如實智。初言觀者。思
001_0654_c_23L量觀察。唯是意言者。所取外境。無
001_0654_c_24L「句」上有「四」{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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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5_a_01L“의·언에 따라 드러난다.”는 것은 외부경계의 상분相分은 견분見分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나의 근본식이 아니다.”라는 것은 근본식을 떠나서 이미 외부에 보이는 경계라면 그것은 벌써 나의 근본식은 아니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말한 근본식은 제6식으로 삼유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저 제바보살提婆菩薩이 설한 게송에서는 “의식은 삼유 생사의 근본이고 모든 경계는 의식의 원인이네. 경계는 실유가 아님을 본다면 온갖 경계가 저절로 소멸되네.”27)라고 말한다.이상은 무상의 심사관尋思觀과 여실지如實智를 함께 드러낸 것이다. 이하부터는 무생의 도리를 설명한다.
㉯ 무생의 심사관과 여실지如實智를 함께 드러냄
둘째에서 “그 근본식은 법法도 아니고 뜻(義)도 아니다.”라는 것은 능전能詮의 법도 아니고 소전所詮의 뜻도 아니라는 것이니, 명名과 의義가 서로 대응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소취도 아니고 능취도 아님을 아는 것이다.”라는 것은 소취의 경계가 이미 없으므로 능취의 식도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능취의 뜻은 반드시 소취를 상대해야 하는데 이미 상대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생의 심사관尋思觀과 여실지如實智를 함께 드러낸 것이다.처음의 십해28)로부터 이후 세제일법에 이르기까지 이 심사관과 여실지관을 닦는 가운데 또한 수혜관찰이 있지만 그것은 모두 사찰思察과 분별分別을 떠나 있지 못한 경지다. 그러므로 사위라고 통명한다.
(다) 수위修位를 설명함
경 셋째는 수위修位이다. 수행은 항상 일으키는 것(常起)이다. 그래서 처음에 일으키는 것(能起)과 일으켜지는 것(所起)의 수행은 동시이다. 먼저 가행지加行智29)로 이끌어 모든 장애(障難)를 배제하고 번뇌(蓋纏)를 벗어난다.30)
논 이는 수위를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또한 두 구절이 있다. 첫째는 수행의 경계(相)를 설명하고, 둘째는 수행의 인因을 드러낸다.
㉮ 수행의 경계(相)를 설명함
수행의 경계(相)는 정체지正體智31)이다. 지止와 관觀을 함께 닦는 것으로 출과 입이 따로 없으므로 항상 일으키는 것(常起)이라 한다.“처음에 일으키는 것”은 지止를 능기하는 것이다.그리고 그 지止가 관觀을 능기하므로 다음에 “일으켜지는 것”이라고 하니, 지에 의하여 일어난 관觀이라는 것이다. 지와 관은 떠나 있지 않기 때문에 동시라고 한다. 경계(相)를 그치고 진여를 관찰하는 것은 반드시 동시이기 때문이다.이는 첫째의 수행의 경계(相)를 설명한 것이다.
㉯ 수행의 인因을 드러냄
둘째로 수행의 인因을 드러낸다. -
001_0655_a_01L所有故。隨意顯現者。似外相分。不
001_0655_a_02L離見故。非我本識者。離識已外。所
001_0655_a_03L見境界。旣非我識。故無所有。此中
001_0655_a_04L言本識者。謂第六識。三有本故。如
001_0655_a_05L提婆菩薩所說頌言。意識三有本。諸
001_0655_a_06L塵是其因。若見塵非有。有種自然滅。
001_0655_a_07L上來通顯無相尋思。及如實智。自下
001_0655_a_08L明其無生道理。知此本識。非法非義
001_0655_a_09L者。非能詮法。非所詮義。知名與義。
001_0655_a_10L互爲客故。非所取非能取者。所取塵
001_0655_a_11L旣無。能取不成故。能取之義。必待
001_0655_a_12L所取。旣無所待。卽無能待故。此是
001_0655_a_13L通顯無生尋思。及如實智。始從十解
001_0655_a_14L已上。乃至世第一法。修此尋思如實
001_0655_a_15L智觀。於中亦有修慧觀察。而皆未
001_0655_a_16L離思察分別。所以通名爲思位也。
001_0655_a_17L三者修位。修者常起。能起起修同時。
001_0655_a_18L先以智導。排諸障難。出離蓋纒。
001_0655_a_19L此明修位。亦有二句。先明修相。後
001_0655_a_20L顯修因。言修相者。謂正體智。止觀
001_0655_a_21L雙運。更無出入故。言常起。言能起
001_0655_a_22L者。謂止能起。能起觀故。次言起者。
001_0655_a_23L謂所起觀。止觀不離。故曰同時。止
001_0655_a_24L相觀如。必同時故。是明修相。次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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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5_b_01L지와 관을 함께 닦는 까닭은 먼저 가행을 말미암아 모든 장애를 배제하기 때문이다.“먼저 가행지로 이끈다.”는 것은 가행지加行智인 의意와 언言의 분별은 명칭과 언어를 떠나 있지 않기 때문에 “먼저 가행지로 이끈다.”고 한다. 제7지 이전의 일체 계위에서는 다 가행으로 먼저 장애를 없애기 때문이다.“모든 장애를 배제한다.”는 것은 추중번뇌를 없애는 것이고, “번뇌를 벗어난다.”는 것은 현행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라) 행위行位를 설명함
경 넷째는 행위行位이다. 여기의 행行이란 십지행의 모든 경지를 떠나 있는 것으로, 마음에 취함과 버림이 없어서 지극히 청정하고 근기가 예리하다. 그래서 부동심의 진여이고, 결정적인 실성이며, 대반열반으로서 자성이 공적하고 광대하다.
논 이는 등각위이다. 여기에도 또한 두 구절이 있다. 첫째는 계위의 모습을 설명하고, 둘째는 계위의 수행을 드러낸다.
㉮ 계위의 모습을 설명함
첫째에서 “모든 유위적인 수행의 경지를 떠나 있다.”고 한 것은 수행이 십지를 초월했다는 것이다.“마음에 취함과 버림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부처님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위를 등각행이라 한다.이어서 총결하면서 “지극히 청정하고 근기가 예리하다.”고 한 것은 본각심은 인행이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 계위의 수행을 드러냄
다음은 계위의 수행을 설명하는 것이다.여기서 “부동심의 진여이고, 결정적인 실성이다.”라는 것은 이 계위에서 금강삼매에 들어가기 때문이다.“대반열반으로서 자성이 공적하고 광대하다.”는 것은 적멸의 무위로서 일상一相이고 무상無相이기 때문이다. 『본업경』에서는 “금강삼매에 들어가면 일상이고 무상이며 적멸의 무위가 되므로 무구지라 말한다.”32)고 하였다.
(마) 사위捨位를 설명함
경 다섯째는 사위捨位이다. 사捨는 자성의 공적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정지正智는 자재하게 변역하는 것(流易)이고 대비는 진여상인데, 그 교화하는 모습(相)은 진여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삼먁삼보리에도 마음을 비워 증득조차 없다. 마음에 끝이 없어 처하는 곳을 볼 수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여래지에 이른 것이다.
논 이것은 불지를 설명한 것이다. 여기에도 두 구절이 있다.
㉮ 사捨의 뜻을 설명함
먼저 사捨의 뜻을 설명한다. -
001_0655_b_01L其因。所以得此雙運修者。由先加行
001_0655_b_02L排諸障故。言智導者。謂加行智。意
001_0655_b_03L言分別。不離名言。故名智導。七地
001_0655_b_04L已還。一切地中。皆有加行。在先伏
001_0655_b_05L障故。排諸障難者。損伏麁重故。出
001_0655_b_06L離盖纒者。不起現纒故。
001_0655_b_07L四者行位。行者。離諸行地。心無取捨。
001_0655_b_08L極淨根利。不動心如。決定實性。大般
001_0655_b_09L涅槃。唯性空大。
001_0655_b_10L是等覺位。亦有二句。先明位狀。後
001_0655_b_11L顯其行。初中言離諸行地者。行過十
001_0655_b_12L地故。心無取捨者。解與佛同故。故
001_0655_b_13L說此位名等覺行。次摠結。言極淨
001_0655_b_14L根利者。謂本覺心顯成滿因故。次
001_0655_b_15L明行中。言不動心如。決定實性者。
001_0655_b_16L此位得入金剛三昧故。大般涅槃唯
001_0655_b_17L性空大者。寂滅無爲。一相無相故。
001_0655_b_18L如本業經言。入金剛三昧。一相無相。
001_0655_b_19L寂滅無爲。名無垢地故。
001_0655_b_20L五者捨位。捨者。不住性空。正智流易。
001_0655_b_21L大悲如相。相不住如。三藐三菩提。虛
001_0655_b_22L心不證。心無邊際。不見處所。是至如
001_0655_b_23L來。
001_0655_b_24L此明佛地。亦有二句。先明捨義。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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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5_c_01L곧 세 가지 뜻으로 사捨의 모습을 드러낸다.“자성의 공적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으로 정지는 자재하게 변역하는 것”은 열반의 회신멸지灰身滅智에도 집착이 없지만 정지正智는 불멸하므로 여량지如量智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중생의 근기를 따라 변역하면서 불사를 짓기 때문이다.“대비는 진여상인데 그 교화의 모습은 진여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연대비無緣大悲는 인과 법의 차별상에 집착이 없으므로 ‘진여상’이라 하고, 항상 육도를 오가면서 일찍이 쉰 적이 없으므로 ‘그 교화의 모습은 진여에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삼먁”은 바르다(正)는 것이고, ‘삼’은 평등하다(等)는 것이며, ‘보리’는 깨침(覺)이다. 통틀어 말하면 정등각正等覺이니, 원만한 무상보리이다. 그 가운데서도 마음이 비어 증득했다는 것에도 집착이 없다.이 세 가지 뜻 가운데 앞의 두 가지는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사捨이고, 뒤의 한 가지는 보리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사捨이다.
㉯ 계위의 모습을 설명함
다음으로 계위의 모습을 설명한다.“마음에 끝이 없다.”는 것은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면 심체가 주변周遍하여 시방에 두루하므로 변邊이 없고, 삼세에 두루하므로 제際가 없다는 것이다.비록 삼세에 두루하지만 고금의 차이가 없고, 비록 시방에 두루하지만 피와 차의 처소가 없다. 이런 까닭에 “처하는 곳을 볼 수 없다.”고 한다.이와 같이 극과極果(佛地)는 다른 경지와 똑같지 않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여래지에 이른 것이다.”라고 한다.이상으로 다섯 가지 계위에 대하여 개별적인 설명을 마친다.
다) 총론적으로 설명함
이하는 셋째로 총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곧바로 본각의 도리를 따라야 함을 설명하고, 둘째는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낸다.
(가) 곧바로 본각의 도리를 따라야 함을 설명함
경 선남자여, 다섯 가지 계위는 일본각으로서 본각의 이익을 통해 들어간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을 교화하려면 그 본각의 도리를 따라야 한다.”
논 이는 첫째이다. 다섯 가지 계위의 모든 수행은 본각을 떠나 있지 않아서 모두 본각의 이익으로부터 성취되지 않음이 없다. 수행이 성취되는 경우는 이전 단계에서 이후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들어간다.”고 한다. “들어간다.”는 것은 자리이고, “교화한다.”는 것은 이타이다. 이와 같은 자리행과 이타행은 모두 본각의 도리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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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5_c_01L以三義。顯其捨相。不住性空正智流
001_0655_c_02L易者。不住涅槃。灰身滅智。智不滅
001_0655_c_03L故。量智續流。隨根變易。作佛事故。
001_0655_c_04L大悲如相相不住如者。無緣大悲。不
001_0655_c_05L取人法差別之相。故曰如相。恒涉六
001_0655_c_06L道。未曾停息。故言相不住如。三藐
001_0655_c_07L曰正。三者云等。菩提言覺。摠而言
001_0655_c_08L之。謂正等覺。卽是圓滿無上菩提。
001_0655_c_09L於中無住。虛心不證。此三義中。前
001_0655_c_10L二不住涅槃故捨。後一不取菩提
001_0655_c_11L故捨。次明位狀。心無邊際者。歸一
001_0655_c_12L心源。心軆周遍。遍十方故無邊。周
001_0655_c_13L三世故無際。雖周三世。而無古今
001_0655_c_14L之殊。雖遍十方。而無此彼之處。以之
001_0655_c_15L故言不見處所。如是極果。不與他
001_0655_c_16L共。唯乘如者之所來至。以之故言
001_0655_c_17L是至如來。上來別明五等位竟。
001_0655_c_18L善男子。五位一覺。從本利入。若化衆
001_0655_c_19L生。從其本處。
001_0655_c_20L此下第二 [101] 摠明。於中有二。一者直明
001_0655_c_21L從本。二者往復重顯。此是初門。五
001_0655_c_22L位諸行。不離本覺。莫不皆從本利而
001_0655_c_23L成。成行之時。從前入後。故名爲入。
001_0655_c_24L入者自利。化者利他。如是二行。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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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6_a_01L(나)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냄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그 본각의 도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본래 본각의 도리란 없다. 본각의 도리가 없는 공제에서 실제에 들어가 보리를 일으켜야 불도(聖道)를 원만하게 성취한다. 선남자여,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손으로 저 허공을 잡는 것과 같아서 잡은 것이 없지만 잡지 못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논 이는 둘째로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내는 것이다.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이고, 둘째는 비유이다.
(㉮ 질문)
㉯ 답변
a. 법
첫째의 법에는 네 구절이 있다. 앞의 두 구절은 본각의 도리(處)에 처소(處)가 없음을 설명하고, 뒤의 두 구절은 인과因果의 인因으로부터 과果가 성취됨을 드러낸다.“왜냐하면”은 의심을 일으킨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인데, 그 이유는 “만약 본각의 도리가 없다면 마땅히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들어갈 수 있다면 본각의 도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b. 비유
이와 같은 의심을 없애려는 까닭에 비유를 인용하여 해석한다.“마치 손으로 저 허공을 잡는 것과 같다.”라는 것에서 ‘손으로 잡는다.’는 것은 들어가는 주체의 수행을 비유한 것이고, ‘허공’은 들어가게 되는 대상인 본각을 비유한 것이다.“잡은 것이 없다.”는 것은 허공은 움켜잡을 수 있는 형체가 없는 것이고, “잡지 못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움켜잡은 손안에 허공이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본각의 이익도 또한 그와 같다. 곧 본래 본각의 도리라는 자성이 없기 때문에 잡은 것도 없고, 본각의 도리가 본래 없다는 그것이 없지는 않기 때문에 잡지 못한 것도 없다.
⑤ 대반야는 원융하고 무이하여 모든 인연을 단절해 있음을 설명함
이것은 다섯째로 대반야는 원융하고 무이함을 설명하는 것이다.33)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리불(身子)이 우러러 묻고, 둘째는 여래께서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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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6_a_01L從本處也。
001_0656_a_02L舍利弗言。云何從其本處。佛言。本來
001_0656_a_03L無本處。於無處空際入實。發菩提。而
001_0656_a_04L滿成聖道。何以故。善男子。如手執彼
001_0656_a_05L空。不得非不得。
001_0656_a_06L此是重顯。答中有二。先法。後喩。法
001_0656_a_07L中四句。前1)二 [37] 句。明本處無處。後二
001_0656_a_08L句。顯從成因果。何以故者。擧疑發
001_0656_a_09L起。何者。若本無處。應無得入。若得
001_0656_a_10L入者。非無本處。爲遣是疑。故引喩
001_0656_a_11L釋。手執彼空者。手執喩能入之行。
001_0656_a_12L虛空喩所入之本。不得者。虛空無
001_0656_a_13L形可握故。非不得者。握內不無虛空
001_0656_a_14L故。本利亦爾。本來無本處性故不
001_0656_a_15L可得。無本之本不無故。非不可得
001_0656_a_16L也。
001_0656_a_17L舍利弗言。如尊 [102] 所說。在事之先。取以
001_0656_a_18L本利。是念寂滅。寂滅是如。摠持諸德。
001_0656_a_19L該羅萬法。圓融不二。不可思議。當知。
001_0656_a_20L是法卽是摩訶般若波羅2)蜜。 [38] 是大神
001_0656_a_21L呪。是大明呪。是無上明一本無
明字呪。 [103] 是無
001_0656_a_22L等等呪。
001_0656_a_23L此下第五。明大般若。圓融無二。於
001_0656_a_24L中有二。一者身子仰諮。二者如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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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6_b_01L가. 사리불이 우러러 물음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존자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교화하기에 앞서 먼저 본각의 이익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각의 이익을 취한다는 생각도 적멸하고, 적멸도 곧 여여합니다. 그래서 모든 공덕을 두루 지니고 모든 법을 빠짐없이 담고 있어서 원융하고 불이하여 불가사의합니다. 그런 법이야말로 곧 마하반야바라밀로서 대신주이고 대명주이며 무상명주이고 무등등주34)인 줄을 반드시 알 것입니다.”
논 첫째에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본각의 이익이 원융한 줄을 이해하고, 둘째는 그 본각의 이익이 곧 반야바라밀임을 드러낸다.
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본각의 이익이 원융한 줄을 이해함
“교화하기에 앞서 먼저 본각의 이익을 취해야 합니다.”라는 것은 사리불이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한 것이다. 무릇 설법하여 교화하려 할 때는 매번 먼저 그 본각의 이익을 취해야 한다.35)
나) 본각의 이익이 곧 반야바라밀임을 드러냄
그러나 생사의 생각36)은 본래 적멸하고, 그와 같은 적멸은 곧 진여의 도리이며, 진여의 도리 가운데는 본각과 시각의 모든 공덕이 총섭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생사의 모든 법까지도 빠짐없이 담고 있어서 원융하고 불이이다. 이런 까닭에 심심하고 불가사의하다. 그 가운데 비록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 자체는 곧 본각과 시각이 평등하고 무이하다. 그러므로 “그런 법이야말로 곧 마하반야바라밀이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반야는 ‘본각일심의 근원에 도달하고 본래자성에 사무치는 것(窮源盡性)’이므로, 바라밀 곧 완성이다.바라밀을 분별하면 두 가지 바라밀(倒)이 있다. 등각위에서는 만행의 피안에 도달하는 바라밀이고, 묘각위에서는 만덕의 피안에 도달하는 바라밀이다.등각위에도 다시 두 가지 바라밀이 있다. 첫째는 대신통력大神通力으로 삼마三魔(五陰魔·煩惱魔·天魔)의 원한을 다스리는 것이니, 경문의 “대신주”가 그것이다. 둘째는 대명조大明照로 사안四眼37)의 경계를 두루 관찰하는 것이니, 경문의 “대명주”가 그것이다.묘각위에도 또한 두 가지 바라밀이 있다. 첫째는 사지四智38)를 갖추고 오안五眼39)이 원만하여 법계를 모두 비추어 더 이상 없는 것이니, 경문의 “무상명주”가 그것이다. 둘째는 삼신三身으로 드러낸 무상보리는 더 이상 같은 것(與等)이 없어 제불과 차별이 없으니, 경문의 “무등등주”가 그것이다.주咒는 기원하는(禱) 것이다. 저 세간의 신주神咒에는 대위력이 있어서 주력을 외워 신에게 기원하면 모든 복을 다 초래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이 마하반야바라밀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앞의 사덕四德(等覺位의 두 가지 덕과 妙覺位의 두 가지 덕)을 갖추고 대신통력이 있어서 안으로는 곧 모든 덕을 갖추지 않음이 없고 밖으로는 모든 근심을 떠나 있지 않음이 없다. -
001_0656_b_01L述成。初中亦二。先領佛說本利圓融。
001_0656_b_02L後顯卽是大般若度。言在事之先取
001_0656_b_03L以本利者。是領佛言。凡欲發言作佛
001_0656_b_04L事時。每先取其本覺之利。是生死念。
001_0656_b_05L本來寂滅。如是寂滅。卽是如理。理
001_0656_b_06L中摠攝本始諸德。亦乃該羅生死萬
001_0656_b_07L法。圓融不二。是故甚深。不可思議。
001_0656_b_08L此中雖具無量功德。其體唯是本
001_0656_b_09L覺始覺。平等無二。故言卽是摩訶般
001_0656_b_10L若。如是般若。窮源盡性。故言波羅
001_0656_b_11L蜜。 [39] 別而言之。有二種到。在等覺位。
001_0656_b_12L到萬行之彼岸故。在妙覺時。到萬德
001_0656_b_13L之彼岸故。在等覺位。略有二到。一
001_0656_b_14L者有大神力。降伏三魔之怨。如經是
001_0656_b_15L大神呪故。二者有大明照。遍察四眼
001_0656_b_16L之境。如經是大明呪故。妙覺位中。
001_0656_b_17L亦有二到。一者四智具足。五眼圓滿。
001_0656_b_18L照窮法界。更無可加。如經是無上明
001_0656_b_19L呪故。二者三身所顯。無上菩提。更
001_0656_b_20L無與等。諸佛無差。如經是無等等呪
001_0656_b_21L故。呪者禱也。如世神呪。有大威力。
001_0656_b_22L誦呪禱神。福無不招。禍無不却。今
001_0656_b_23L此摩訶般若波羅蜜。亦復如是。具前
001_0656_b_24L四德。有大神力。內卽無德不備。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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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6_c_01L그러므로 만약 지성심으로 이 명구를 외우고 우러러 기원하면 모든 불·보살·신인이 추구하는 소원을 따라 모두 해결해 준다. 이런 뜻을 말미암은 까닭에 주咒라 한다. 저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이 명구를 외워서 아수라의 군대를 물리친 것과 같다. 여기에서도 그와 상응되는 점을 설한 것이다.
나. 여래께서 설명해 줌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래, 그렇다.40) 진여는 공성이다. 자성이 공한 지혜의 불은 모든 번뇌를 태우고 소멸시켜 평등한 가운데서도 가장 평등한데 이것이 등각의 삼지이다. 그리고 묘각의 삼신은 구식 가운데서 훤칠하고 명정하여 아무런 그림자가 없다.
논 이하는 둘째로 여래께서 설명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인 서술이고, 둘째는 개별적인 서술이며, 셋째는 총체적인 서술로 결론을 맺는 것이다.
가) 총체적인 서술
첫째로 총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그래, 그렇다.”이다.
나) 개별적인 서술
둘째로 개별적으로 서술하는 것에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바라밀의 인이 원만하다는 뜻을 서술하고, 둘째는 바라밀의 과가 원만하다는 뜻을 서술한다.
(가) 바라밀의 인이 원만하다는 뜻을 서술함
첫째에서는 곧 등각의 삼지를 드러내니, 등각의 삼지는 다음과 같다.첫째는 백겁위이고, 둘째는 천겁위이며, 셋째는 만겁위이다. 『본업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불자여, 마니영락이라는 글자는 등각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명칭은 금강혜보살이니, 정적정頂寂定에 주하면서 대원력으로 백겁의 수명 동안 머물면서 천 가지 삼매를 닦아 이미 금강삼매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일체법성과 이제와 일제와 일합상과 동일하다. 다시 천겁의 수명 동안 머물면서 부처님의 위의를 익혀서 내지 부처님 수행의 도리에 들어가 부처님 도량에 앉아서 삼마三魔를 초월한다. 다시 만겁의 수명 동안 머물면서 화현으로 성불하여 내지 옛적의 모든 부처님과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항상 중도를 실천한다. 이에 대락의 무위로서 생멸의 유위와 다르다.41)지금 이 경문에서 “진여는 공성이다.”라고 한 것은 곧 첫째의 백겁위로서 일합상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
001_0656_c_01L卽無患不離。若至誠心。誦此名句。
001_0656_c_02L仰禱諸佛菩薩神人。隨所求願。無不
001_0656_c_03L成辦。由是義故。說名爲呪。如天帝
001_0656_c_04L釋。誦此名句。却修羅軍之事。此中
001_0656_c_05L應說。
001_0656_c_06L佛言。如是如是。眞如空性。性空智火。
001_0656_c_07L燒滅諸結。平等平等。等覺三地。妙覺
001_0656_c_08L三身。於九識中。皎然明淨。無有諸影。
001_0656_c_09L此下如來述成。於中有三。先摠述。
001_0656_c_10L次別述。後卽摠成。摠述成者。如是
001_0656_c_11L如是故。別中亦二。先述到因滿義。
001_0656_c_12L後述到果圓義。初中卽顯等覺三地。
001_0656_c_13L何等名爲等覺三地。一者百劫位。二
001_0656_c_14L者千劫位。三者萬劫位。如本業經言。
001_0656_c_15L佛子摩尼瓔珞字者。等覺性中一人。
001_0656_c_16L其名金剛慧菩薩。住頂寂定。以大願
001_0656_c_17L力。住壽百劫。修千三昧已。入金剛
001_0656_c_18L三昧。同一切法性。二諦一諦一合
001_0656_c_19L相。復住壽千劫。學佛威儀。乃至入
001_0656_c_20L佛行處。坐佛道場。超度三魔。復住
001_0656_c_21L壽萬劫。化現成佛。乃至現同古昔諸
001_0656_c_22L佛。常行中道。大樂無爲。而生滅爲異
001_0656_c_23L故。今此文言。眞如空性者。卽是第
001_0656_c_24L「二」作「一」{甲}。「蜜」作「密」次同{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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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7_a_01L일체 유무의 제법과 동일하다는 것은 곧 이제법을 일제와 동일하게 융합했는데 그 일제는 곧 일합상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진여는 공성이다.”라고 하였다.“자성이 공한 지혜의 불은 모든 번뇌를 태우고 소멸시킨다.”는 것은 곧 둘째의 천겁위로서 삼마三魔를 초월하는 것이다.“모든 번뇌를 소멸시킨다.”는 것은 번뇌마를 소멸하는 것이니, 번뇌를 소멸한 까닭에 오음마五陰魔에 계박되지 않는다. 이처럼 번뇌마와 오음마를 소멸한 까닭에 천마가 스스로 굴복한다. 이에 단지 불가사의한 변역사마變易死魔(煩惱障)만 남아 있을 뿐이다.“평등한 가운데서도 가장 평등하다.”는 것은 곧 셋째의 만겁위로서 항상 중도를 실천하여 양변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평등한 가운데’라 하고, 항상 실천을 드러내기 때문에 거듭하여 ‘가장 평등하다.’고 한다.“이것이 등각의 삼지이다.”라는 것은 앞의 백겁위·천겁위·만겁위의 삼지를 총합한 것이다. 이 가운데서 백겁위와 천겁위는 ‘대신주’를 서술한 것이고, 만겁위는 ‘대명주’를 서술한 것이다.
(나) 바라밀의 과가 원만하다는 뜻을 서술함
“묘각” 이하는 원만한 과果에 도달한 것을 설명한다.“삼신”은 첫째는 법신이고, 둘째는 응신이며, 셋째는 화신이다.일체제불의 삼신은 깨침이 동일하므로 이에 “무등등주”라 서술한다.“구식 가운데서 훤칠하고 명정하여 모든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곧 “무상명주”의 구절을 서술한 것이다. 앞의 등각위에서는 아직 생멸이 남아 있어서 마음의 근원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8식에 해당하지만, 지금 묘각에 도달해서는 영원히 생멸을 떠나 있어 본각인 일심의 근원을 궁구하기 때문에 제9식의 명정한 경지에 들어간다. 또한 앞의 인위에서는 반연攀緣을 따르는 뜻이 있는 까닭에 마음에 영상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지금은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 저 마음의 본질을 체득한 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림자와 같은 일체의 모습이 없다. 이런 까닭에 “모든 그림자가 없다.”고 하였다. 『본업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자여, 수정의 영락은 안팎으로 명철하다. 이처럼 묘각은 항상 담연하고 명정하므로 일체지지라 말한다. 또한 항상 중도에 있으면서 일체법에서 사마四魔를 초월하고, -
001_0657_a_01L一同一合相。謂同一切有無諸法。卽
001_0657_a_02L二諦法。同融一諦。一諦卽是一合相
001_0657_a_03L故。如是名爲眞如空性也。性空智火。
001_0657_a_04L燒滅諸結者。卽是第二超度三魔。滅
001_0657_a_05L諸結者。滅煩惱魔。滅煩惱故。陰魔不
001_0657_a_06L繫。滅二魔故。天魔自伏。但有不思
001_0657_a_07L議變易死魔耳。平等平等者。卽是第
001_0657_a_08L三常行中道。不墮二邊故曰平等。
001_0657_a_09L爲顯常行故。重言平等。等覺三地者。
001_0657_a_10L摠前三地。此中前二。述大神呪。其
001_0657_a_11L第三地。述大明呪也。妙覺已下。明
001_0657_a_12L到圓果。言三身者。一名法身。二者
001_0657_a_13L應身。三者化身。一切諸佛。三身道
001_0657_a_14L同。是述無等等呪句也。於九識中。
001_0657_a_15L皎然明淨。無有諸影者。是述無上明
001_0657_a_16L呪之句。前等覺位。猶有生滅。未盡
001_0657_a_17L心源。故在八識。今到妙覺。永離生
001_0657_a_18L滅。窮歸本覺一心之源。故入第九識
001_0657_a_19L中明淨。又前因位。有仰緣義。所以
001_0657_a_20L其心。影像相現。今歸心源。體彼本
001_0657_a_21L質。由是諸影。一切相盡。以之故
001_0657_a_22L言無有諸影。如本業經言。佛子。水
001_0657_a_23L精瓔珞。內外明徹。妙覺常住。湛然
001_0657_a_24L明淨。名一切智地。常處中道。一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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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7_b_01L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어서 일체상이 없으며, 대각을 온전히 이해하고, 몸소 몸과 마음을 변화시켜 법성신과 응화법신으로서 항상 인연 있는 중생을 교화한다.42)
생각해 보면 『본업경』에서 내세운 이신二身은 첫째는 법성신이고, 둘째는 응화법신이다. 이것은 그 밖의 응신과 법신을 합하여 응화법신으로 삼은 것이다. 지금 이 『금강삼매경』에서 응화법신을 전개하여 응신과 화신으로 간주하였으므로 삼신이라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삼신과 이신은 평등하고 평등하다. 이상은 도피안의 뜻을 개별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다) 총체적인 서술로 결론을 맺음
경 선남자여, 진성법은 인도 아니고 연도 아니니 지혜가 저절로 작용하기 때문이고, 진성법은 움직임도 아니고 고요함도 아니니, 작용의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며, 진성법은 유의 뜻도 아니고 무의 뜻도 아니니 공상空相도 역시 공하기 때문이다.선남자여, 그러므로 만약 중생을 교화하여 저 중생으로 하여금 이 진성의 뜻에 관찰하여 들어가도록 한다면 진성의 뜻에 들어간 자는 곧 여래를 볼 것이다.”
논 이는 원융하고 불이임을 총체적인 서술로 결론을 맺는 것이다. 위에서는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에 들어가는 문에 의거하여 인의 원만과 과의 원만에 차별이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만약 일법의 불이문에 의거하면 곧 인과 과가 다르지 않고 마음과 경계에 차별이 없다.인과 과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인도 아니다.”라고 하고, 마음과 경계에 차별이 없기 때문에 “연도 아니다.”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과·마음·경계는 오직 원만한 지혜가 저절로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저절로 작용하는데, 어찌 인이 있고 연이 있겠는가. 또한 그 지혜의 작용이 등각위에 있으면 조적혜照寂慧라 말하는데, 그것은 생멸의 움직이는 모습을 아직 떠나 있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묘각위에 이르면 적조혜寂照慧라 말하는데, 그것은 이미 제9식의 구경정究竟靜에 돌아가기 때문이다.지금 그것을 불이문에 의거하여 보면 먼저 움직임의 상태였다가 나중에 고요의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고요와 움직임의 작용은 그 작용하는 자성이 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뜻에 의거해서 자성이 공하므로 무無이고 그 결과 움직임과 고요도 무無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므로 “진성법은 유의 뜻도 아니고 무의 뜻도 아니다.”라고 한다. 유有가 아니라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
001_0657_b_01L法上。越過四魔。非有非無。一切相
001_0657_b_02L盡。頓解大覺。窮化體神。二身常住。
001_0657_b_03L爲化有緣。案云。彼經立二身者。一
001_0657_b_04L法性身。二應化法身。合餘二身。爲
001_0657_b_05L一身故。今此經中。開此爲二。故說
001_0657_b_06L三身。三之與二。平等平等。上來別
001_0657_b_07L述到彼岸義。
001_0657_b_08L善男子。是法非因非緣。智自用故。非
001_0657_b_09L動非靜。用性空故。義非有無義非有無一本
作非有非無。 [104]
001_0657_b_10L空相空故。善男子。若化衆生。令彼衆
001_0657_b_11L生。觀入是義。入是義者。是見如來。
001_0657_b_12L此是摠成圓融不二。上約從淺入深
001_0657_b_13L之門。以顯因滿果圓差別。若就一法
001_0657_b_14L不二之門。卽因果不二。心境無別。
001_0657_b_15L因果不二。故言非因。心境無別。故
001_0657_b_16L曰非緣。所以然者。如前所說。因果
001_0657_b_17L心境者。唯一圓智之自用故。旣唯自
001_0657_b_18L用。何因何緣也。又此智用。在等覺
001_0657_b_19L位。名照寂慧。未離生滅之動相故。
001_0657_b_20L至妙覺位。名寂照慧。已歸第九識。
001_0657_b_21L究竟靜故。然今就其不二之門。非先
001_0657_b_22L有動。非後有寂。寂動之用。用性空
001_0657_b_23L故。若就此義。性空是無。無動靜故。
001_0657_b_24L是亦不然。故言非有非無。非有可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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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7_c_01L무無가 아니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상도 역시 공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융하고 불이임을 서술하여 결론 맺는다.“그러므로 만약 중생을 교화하여” 이하는 진성의 뜻에 들어갈 것을 권유한 것이다.
⑥ 대선정은 모든 명칭과 법수를 초월해 있음을 설명함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여래의 뜻43)을 관찰해 보면 모든 번뇌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반드시 사선四禪44)을 떠나 있으며, 유정처를 초월해 있습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다. 왜냐하면 일체법의 명칭과 법수와 네 단계의 선정(四禪)45)까지도 또한 그렇다.46) 만약 여래를 보자면 여래의 마음은 자재하고, 항상 멸진정처에 있으며, 나감(出)도 없고 또한 들어감(入)도 없는데 그것은 내·외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논 이는 크게 분류한 가운데 여섯째로 대선정은 모든 명칭과 법수를 초월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가. 질문
첫째에서 “모든 번뇌”라고 한 것은 삼유三有에 왕환往還하고 유전流轉하느라고 휴식이 없기 때문이다.“유정처”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니, 삼유의 정상頂上이기 때문이다.
나. 답변
둘째의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둘째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가) 간략하게 설명함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간선은 명칭과 법수를 떠나 있지 못함을 설명하고, 둘째는 출세간선은 그 명칭과 법수를 초월해 있음을 드러낸다.
(가) 세간선은 명칭과 법수를 떠나 있지 못함을 설명함
“만약 여래를 보자면”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이 여래의 관찰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여래의 마음은 자재하다.”는 것은 여래의 마음은 모든 계박을 떠나 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나) 출세간선은 그 명칭과 법수를 초월해 있음을 드러냄
“항상 멸진정처에 있다.”는 것은 심心과 심수법心數法이 생기하지 않는 것이다.“나감도 없고 또한 들어감도 없다.”는 것은 마음의 본체는 진여도리로서 기동과 소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감도 없고 들어감도 없는 경지를 터득하는 까닭은 내심과 외경이 평등하기 때문이다.간략하게 경문을 설명하는 것을 마친다.
나) 자세하게 설명함
경 선남자여, 저 모든 선관은 다 본래 분별상의 공정(想空定)일 뿐이다. 그러나 이 진여는 그와 같은 분별상의 공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여로써 여실하게 관찰하지만 관찰하는 진여의 상도 없고 모든 상이 이미 적멸하기 때문이다.적멸이야말로 곧 진여의 뜻이다. 그러나 저 분별상의 선정(想禪定)은 곧 동動이지 선禪은 아니다. 왜냐하면 선의 자성은 모든 동動을 떠나 있어서 -
001_0657_c_01L云何非無者。空相亦空故。如是述成。
001_0657_c_02L圓融不二。若化已下。勸入是義。
001_0657_c_03L舍利弗言。如來義觀。不住諸流。應離
001_0657_c_04L四禪。而超有頂。佛言如是。何以故。一
001_0657_c_05L切法名數。四禪亦如是。若見如來者。
001_0657_c_06L如來心自在。常在滅盡處。不出亦不入。
001_0657_c_07L內外平等故。
001_0657_c_08L此下大分第六。明大禪定。超諸名數。
001_0657_c_09L於中有二。先問。後答。問中言諸流者。
001_0657_c_10L所謂三有。往還流轉。無休息故。有
001_0657_c_11L頂者。謂非想處。三有頂故。答中有
001_0657_c_12L二。摠許別成。別中亦二。略明。廣釋。
001_0657_c_13L略中二句。先明世間禪不離名數。
001_0657_c_14L後顯出世禪超彼名數。若見如來者。
001_0657_c_15L如前所說。入如來觀故。如來心自在。
001_0657_c_16L觀如來心。離諸縛故。常在滅盡處者。
001_0657_c_17L心心數法。不生起故。不出亦不入者。
001_0657_c_18L心體如理。無起滅故。所以能得不出
001_0657_c_19L入者。內心外境。平等觀故。略明文
001_0657_c_20L竟。
001_0657_c_21L善男子。如彼諸禪觀。皆爲故想定一本
作皆
001_0657_c_22L爲想
空定。 [105] 是如非復彼。何以故。以如觀如實。
001_0657_c_23L不見觀如相。諸相。已 [106] 寂滅。寂滅卽如義。
001_0657_c_24L如彼想禪定。是動非是禪。何以故。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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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8_a_01L염染도 아니고 소염所染도 아니며 법法도 아니고 영影도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분별을 떠나 있는 것이야말로 본의本義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47)선남자여, 이와 같은 선정을 진여선이라 한다.”
논 이는 둘째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형상에 대하여 형상을 떠나 있음을 설명하고, 둘째는 움직임(動)에 대하여 움직임을 떠나 있음을 드러내며, 셋째는 진여의 뜻을 결론짓고, 넷째는 진여의 명칭을 결론짓는다.
(가) 형상에 대하여 형상을 떠나 있음을 설명함
첫째에서는 먼저 모든 선이 형상에 집착함을 언급한다.“저 모든 선관”은 세간의 팔선이다.“본래 분별상의 공정일 뿐이다.”라는 것은 옛적의 집착을 떠나지 못하여 무시이래로 망상으로 모든 형상에 집착하는 것이다.이하에서는 진여가 형상을 떠나 있음을 드러낸다.“이 진여는 그와 같은 분별상의 공정이 아니다.”라는 것은 여래가 관찰한 경지에 들어가 누체와 객체가 평등하므로 진여라 하기 때문이다.“진여로써 여실하게 관찰한다.”는 것은 평등지平等智로써 여실하게 통달하는 것이다.“관찰한다는 진여의 상이 없다.”는 것은 능관의 지智와 소관의 진여에 대한 차별상을 보지 않는 평등일미이다.이미 능과 소를 잊어 견분과 상분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모든 상이 이미 적멸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그리고 적멸하여 변이가 없으므로 “적멸이야말로 곧 진여의 뜻이다.”라고 말한다.
(나) 움직임(動)에 대하여 움직임을 떠나 있음을 드러냄
“그러나 저 분별상의 선정은” 이하는 움직임(動)에 대하여 움직임을 떠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먼저 그 움직임을 언급한 것은, 세간선은 형상에 집착하여 마음을 일으키므로 동념動念인데, 동념은 적정이 아니어서 진여선眞如禪이 아니기 때문이다.이하는 진선眞禪이 모든 움직이는 모습을 떠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염染도 아니다.”라는 것은 오염시키는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니, 동념動念이 아니기 때문이다.“소염所染도 아니다.”라는 것은 움직임(動)에 의해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니, 본래적정하기 때문이다.“법도 아니다.”라는 것은 연緣의 주체인 심법이 없는 것이다.“영도 아니다.”라는 것은 드러나는 영상이 없는 것이다. 이런 뜻을 말미암은 까닭에 모든 움직임을 떠나 있다.
(다) 진여의 뜻을 결론지음
“모든 분별을 떠나 있는 것이야말로 본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셋째로 진여의 뜻을 결론짓는 것이다. 곧 분별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형상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본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진여는 움직임의 뜻을 떠나 있음을 결론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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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8_a_01L性離諸動。非染非所染。非法非影。離
001_0658_a_02L諸分別。本義利 [107] 義故。善男子。如是觀
001_0658_a_03L定。乃名爲禪。
001_0658_a_04L此是第二廣釋。於中有四。一者對
001_0658_a_05L相以明離相。二者對動以顯離動。
001_0658_a_06L三者結義。四者結名。初中先擧諸禪
001_0658_a_07L取相。諸禪觀者。世間八禪。言故想
001_0658_a_08L者。不離古執無始妄想。取諸相故。
001_0658_a_09L下顯離相。是如非復彼者。入如來觀。
001_0658_a_10L能所平等。名爲如故。以如觀如實者。
001_0658_a_11L平等之智。達如實故。不見觀如相者。
001_0658_a_12L不見能觀之智。所觀之如。差別之相。
001_0658_a_13L平等一味故。旣忘能所。見相不起。
001_0658_a_14L故言諸相已寂滅。寂滅無異故。卽是
001_0658_a_15L如義也。如彼已下。對動顯離動。先擧
001_0658_a_16L其動。謂世間禪。取相心起。卽是動
001_0658_a_17L念。動念非靜故。非眞禪也。下顯眞
001_0658_a_18L禪。離諸動相。言非染者。謂非能染。
001_0658_a_19L非動念故。非所染者。非動所染。本
001_0658_a_20L來靜故。言非法者。非能緣心法故。
001_0658_a_21L非影者。非所現影像故。由是義故。離
001_0658_a_22L諸動也。離諸分別本義義故者。第三
001_0658_a_23L結義。離分別者。結離相義。由離分
001_0658_a_24L別不取相故。本義義者。結離動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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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8_b_01L(라) 진여의 명칭을 결론지음
“이와 같은 선정을 진여선이라 한다.”는 것은 넷째로 진여의 명칭을 결론짓는 것이다. 형상을 떠나 있고 움직임을 떠나 있으므로 선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선은 정려靜慮48)를 가리킨다. 저 세간정을 선이라 하는 것은 곧 임시적으로 그렇게 부를 뿐이지 진여선眞如禪은 아니다.이 「진성공품」을 크게 나누면 두 부분이다. 그 가운데 첫째로 이근자를 위하여 많은 경문으로 자세하게 설하는 여섯 부분에 대해서는 이상으로 마친다.49)
(2) 둔근자鈍根者를 위하여 작은 경문으로 간략하게 요약함
이하는 둘째로 둔근자를 위하여 작은 경문(少文)으로 간략하게 요약하는 것이다.50) 그러나 이근과 둔근 및 자세한 설명과 간략한 설명에도 두 가지 문이 있다. 만약 탐구하고 이해하는 측면으로 논하자면 이근자에게는 간략하게 설하고 둔근자에게는 자세하게 설하니, 이근자는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알기 때문이고 둔근자는 열 가지를 들어야 비로소 열 가지를 알기 때문이다. 만약 언설로 이해하는 측면으로 든다면 이근자에게는 자세하게 설하고 둔근자에게는 간략하게 설하니, 이근자는 많이 들으면 들은 만큼 많이 이해하지만 둔근자는 적은 부분을 외워서 총괄적으로 수지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경문의 뜻은 후자에 의거한 것이다.경문에는 다섯 부분이 있다. 첫째는 질문하고, 둘째는 답변하며, 셋째는 청하고, 넷째는 설명해 주며, 다섯째는 대중이 설법을 듣고 이익을 얻는다.
① 질문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불가사의합니다. 여래께서는 항상 진여실상으로 중생을 교화하십니다. 이와 같은 실상의 뜻은 여러 경문에 자세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근중생은 가히 닦을 수 있겠지만 둔근중생은 그런 생각을 하는(措意)51) 것이 어렵습니다. 저 둔근중생을 그 실상의 도리에 들도록 하려면 어떤 방편이 필요합니까?”
논 이는 첫째에 해당한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서 설명한 것을 이해하고, 둘째는 의심나는 것을 묻는다.“한다(措)”는 것은 남겨둔다(存)의 뜻이다. 곧 많은 경문과 넓은 뜻에 대하여 둔근자는 재능이 모자라므로 거기에 대한 생각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②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저 둔근자에게 하나의 사구게를 수지하도록 하면 곧 실제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일체의 불법이 하나의 게송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논 이는 둘째 답변이다. 여래께서는 변재가 무애하고 자재하기 때문에 한 게송을 설하여 모든 불법을 섭수한다. 불법의 요체는 바로 이 사구게에 들어 있다. -
001_0658_b_01L由本來靜。不起動故。如是觀定乃名
001_0658_b_02L爲禪者。第四結名。離相離動。乃得
001_0658_b_03L禪名。禪是靜慮之稱故。彼世間定。
001_0658_b_04L名爲禪者。是假號禪。非眞禪故。是
001_0658_b_05L一品內。有二分中。爲利根者。多文
001_0658_b_06L廣說。六分之文。竟在於前。
001_0658_b_07L舍利弗言。不可思議。如來常以如實
001_0658_b_08L而化衆生。如是實義。多文廣義。利根
001_0658_b_09L衆生。乃可修之。鈍根衆生。難以措意。
001_0658_b_10L云何方便。令彼鈍根。得入是諦。
001_0658_b_11L此下第二爲鈍根者。少文略攝。然利
001_0658_b_12L鈍廣略。有二種門。若論探解。利略
001_0658_b_13L鈍廣。利者。聞一以知十故。鈍者聞
001_0658_b_14L十方解十故。若齊言解。利廣鈍略。
001_0658_b_15L利者。多聞而多解故。鈍者。誦少而
001_0658_b_16L摠持故。今此文意。約此後門。文中
001_0658_b_17L有五。一問。二答。三請。四說。五者大
001_0658_b_18L衆聞說得益。此卽初文。於中有二。先
001_0658_b_19L領前說。後問所疑。惜 [40] 者存意。多文
001_0658_b_20L廣義。鈍根狹才。難以存意。
001_0658_b_21L佛言。令彼鈍根。受持一四句偈。卽入
001_0658_b_22L實諦。一切佛法。攝在一一本
作四 [108] 偈中。
001_0658_b_23L此是第二答。如來辯才無㝵自在。故
001_0658_b_24L說一偈攝諸佛法。佛法之要。在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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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8_c_01L그래서 둔근자에게 한 게송을 송지하여 항상 사유하도록 하면 이에 널리 일체의 불법을 알게 된다. 이것을 여래의 선교방편이라 말한다.
③ 청함
경 사리불이 여쭈었다.“그 하나의 사구게란 무엇입니까? 바라건대 저희에게 그것을 설해 주십시오.”
논 이것은 셋째로 청하는 대목이다.
④ 설명함
경 이에 존자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因緣所生義 인연으로 발생한다는 말의 뜻은
是義滅非生 소멸이란 뜻이지 발생은 아니다
滅諸生滅義 일체의 생멸이 소멸한다는 뜻은
是義生非滅 발생이란 뜻이지 소멸은 아니다
논 이는 넷째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사구게의 뜻에는 개별적인 것과 총체적인 것이 있다. 개별적인 것은 곧 두 가지 문52)의 뜻을 설명하고, 총체적인 것은 일심법을 드러낸다. 이와 같이 일심과 이문 속에 일체의 불법이 포섭되지 않음이 없다.
가. 개별적으로 두 가지 문의 뜻을 설명함
이 게송의 뜻은 어떤가.앞의 두 구절은 속제를 융합하여 진제로 삼아 평등의 뜻을 드러낸 것이고, 뒤의 두 구절은 진제를 융합하여 속제로 삼아 차별문을 드러낸 것이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진제와 속제가 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하나를 고수하는 것도 아니다. 둘이 아님을 말미암은 까닭에 곧 일심이고, 하나를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를 들어 둘로 삼는다. 이와 같은 경우를 일심이문一心二門이라 한다. 게송의 대의는 이와 같다.
나. 총체적으로 일심법을 드러냄
다음으로 경문을 해석한다.“인연으로 발생한다는 말의 뜻은”이란 일체 세속제의 모든 법을 언급한 것이다.“소멸이란 뜻이지”는 세속제를 융합하여 진제로 삼는 것이니, 발생한다는 말의 뜻도 본래 적멸하기 때문이다.“발생은 아니다.”라는 것은 그 발생의 뜻이 곧 소멸인 연유를 드러낸 것이다. 그 발생의 뜻은 곧 발생이 아님을 말미암은 까닭에 그 발생을 추구해도 곧 성취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발생의 뜻은 곧 적멸이다.“일체의 생멸이 소멸한다는 뜻은”이란 진제의 적멸법을 언급한 것이다.“발생이란 뜻이지”는 진제를 융합하여 세속제로 삼은 것이니, 적멸법은 연으로부터 생기하기 때문이다.“소멸은 아니다.”라는 것은 -
001_0658_c_01L四句。令鈍根者。誦持一偈。常念思
001_0658_c_02L惟。乃至遍知一切佛法。是名如來善
001_0658_c_03L巧方便。
001_0658_c_04L舍利弗言。云何一四句偈。願爲說之。
001_0658_c_05L是第三請。
001_0658_c_06L於是尊者。而說偈言。
001_0658_c_07L因緣所生義。是義滅非生。滅諸生滅義。
001_0658_c_08L是義生非滅。
001_0658_c_09L是第四說。此四句義。有別有摠。別
001_0658_c_10L則明二門義。摠卽顯一心法。如是一
001_0658_c_11L心二門之內。一切佛法。無所不攝。
001_0658_c_12L是義云何。前之二句。融俗爲眞。顯
001_0658_c_13L平等義。下之二句。融眞爲俗。顯差
001_0658_c_14L別門。摠而言之。眞俗無二。而不守
001_0658_c_15L一。由無二故。卽是一心。不守一故。
001_0658_c_16L擧體爲二。如是名爲一心二門。大意
001_0658_c_17L如是。次釋其文。因緣所生義者。是
001_0658_c_18L擧一切世諦諸法。是義滅者。融俗爲
001_0658_c_19L眞。謂所生義。本來寂滅故。言非生
001_0658_c_20L者。顯其生義是滅之由。由其生義。
001_0658_c_21L卽非生故。求其生義。卽不成故。是
001_0658_c_22L故生義卽寂滅也。滅諸生滅義者。是
001_0658_c_23L擧眞諦寂滅之法。是義生者。融眞爲
001_0658_c_24L俗。謂寂滅法。從緣生起故。言非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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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9_a_01L그 적멸이 곧 발생의 연유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 적멸은 적멸이 아님을 말미암은 까닭에 적멸의 뜻을 추구해도 불가득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적멸은 연으로부터 발생한다. 적멸의 뜻이 곧 발생이라는 것은 불생의 생이다. 그리고 발생의 뜻이 곧 적멸이라는 것은 불멸의 멸이다. 그것을 합하여 말하면 발생이 곧 적멸이지만 적멸을 고수하지 않고, 적멸이 곧 발생이지만 발생에 집착하지 않는다. 발생과 소멸이 둘이 아니고 기동과 적멸이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것을 일심법이라 한다.비록 실제로 둘이 아니지만 하나를 고수하지 않으므로 전체가 연을 따라 발생하고 기동하며 전체가 연을 따라 적멸한다. 이런 도리를 말미암아 발생이 곧 적멸이고 적멸이 곧 발생이며, 막힘도 없고 걸림도 없으며, 똑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이것이야말로 소위 한 게송이 지니고 있는 개별적인 뜻이고 또 총체적인 뜻이다.
⑤ 대중이 설법을 듣고 이익을 얻음
경 그때 대중이 이 게송을 듣고서 모두 크게 환희하고, 다 적멸과 발생의 뜻을 터득하였다. 그 적멸과 발생의 반야는 자성이 공적한 지혜의 바다이다.
논 이는 다섯째로 설법을 듣고 이익을 얻는 것이다. 즉 총체적인 도리와 개별적인 도리로 이해한 것을 드러낸다.“적멸”이라 한 것은 제1구와 제2구에서 발생의 뜻이 곧 소멸임을 증득한 것이고, 다음으로 “발생”이라 한 것은 제3구와 제4구에서 적멸의 뜻이 곧 발생임을 증득한 것이다. 이것은 발생과 소멸의 두 가지 뜻을 터득한 것을 설명한 것이다. “그 적멸과 발생의 반야”라는 것은 적멸과 발생의 두 가지 뜻을 이해한 것을 드러낸 것이니, 이는 개별적인 문에 의해 이익을 얻는 것이다.“자성이 공적한 지혜의 바다이다.”라는 것은, 총체적으로 관찰하면 적멸이든 발생이든 자성을 고수하지 않고, 자성이 공적한 지혜는 깊고 넓어 끝이 없다. 이와 같은 경우를 “자성이 공적한 지혜의 바다”라고 한다. 이는 총체적인 문에 의해 이익을 얻는 것이다.
6) 「여래장품如來藏品」
논 진제와 속제가 둘이 아닌 일실一實의 법은 제불이 돌아가는 곳이니, 이를 여래장이라 한다. -
001_0659_a_01L者。顯其寂滅是生之由。由其寂滅
001_0659_a_02L非寂滅故。求寂滅義不可得故。是故
001_0659_a_03L寂滅。從緣生也。寂滅是生者。不生
001_0659_a_04L之生也。生義是滅者。不滅之滅也。
001_0659_a_05L不滅之滅故。滅卽爲生也。不生之生
001_0659_a_06L故。生卽寂滅也。合而言之。生卽寂
001_0659_a_07L滅。而不守滅。滅卽爲生。而不住生。
001_0659_a_08L生滅不二。動寂無別。如是名爲一心
001_0659_a_09L之法。雖實不二。而不守一。擧體隨
001_0659_a_10L緣生動。擧體隨緣寂滅。由是道理。
001_0659_a_11L生是寂滅。寂滅是生。無障無㝵。不
001_0659_a_12L一不異。是謂一偈。摠別之義。
001_0659_a_13L爾時。大衆聞說是偈。僉大歡喜。皆得
001_0659_a_14L滅生。滅生般若。性空智海。 [109]
001_0659_a_15L此是第五聞說得益。卽顯得解摠別
001_0659_a_16L道理。所言滅者。得上二句生義滅故。
001_0659_a_17L次言生者。得下二句滅義生故。是明
001_0659_a_18L得二義。滅生般若者。是顯得二解。
001_0659_a_19L是依別門而得利也。性空智海者。摠
001_0659_a_20L而觀之。若滅若生。不守自性。自性
001_0659_a_21L空智。深廣無邊。如是名爲性空智海。
001_0659_a_22L是依摠門而得益也。
001_0659_a_23L如來藏品1)第七 [41]
001_0659_a_24L眞俗無二。一實之法。諸佛所歸。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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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9_b_01L지금 이 「여래장품」에서는 무량한 법문과 일체의 수행이 여래장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음을 설명한다. 그러므로 들어가는 대상에 의하여 「여래장품」이라는 명칭을 내세운다.일미관행을 개별적으로 설명한 것에 여섯 부분이 있는데, 일체행이 진성공에서 나온 것을 드러낸 것은 앞의 부분에서 마쳤다. 이하는 그 여섯째로서 무량한 법이 여래장에 들어 있음을 설명한다.53)경문에 두 부분이 있다. 첫째는 제법과 제행은 똑같이 같은 도리에 들어감을 설명하고, 둘째는 수행에 들어가고 지혜에 들어가는 인과 과의 차별을 설명한다.
(1) 제법과 제행은 똑같이 같은 도리에 들어감을 설명함
첫째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법이 일실의一實義에 들어 있음을 설명하고, 둘째는 제행이 일불도一佛道에 들어 있음을 설명한다.
① 제법이 일실의一實義에 들어 있음을 설명함
첫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며, 셋째는 이해이고, 넷째는 서술이다.
가. 질문
질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에서 설한 것을 이해하고, 둘째는 의심나는 것을 질문한다.
가) 앞에서 설한 것을 이해함
경 그때 범행장자가 본각제로부터 일어나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다.“존자이시여, 발생한다는 뜻은 적멸이 아니고 적멸한다는 뜻도 발생이 아닙니다. -
001_0659_b_01L如來藏。今此品中。明無量法。及一
001_0659_b_02L切行。莫不歸入如來藏中。故就所入。
001_0659_b_03L以立名也。
001_0659_b_04L爾時。梵行長者。從本際起。而白佛言。
001_0659_b_05L尊者。生義不滅。滅義不生。如是如義。
001_0659_b_06L卽佛菩提。菩提之性。卽無分別。無分
001_0659_b_07L別智。分別無窮。無窮之相。唯分別滅。
001_0659_b_08L如是義相。不可思議。不思議中。乃無
001_0659_b_09L分別。
001_0659_b_10L別明觀行。有六分中。顯一切行。出
001_0659_b_11L眞性空。竟在於前。此下第六明無量
001_0659_b_12L法。入如來藏。就文有二。一明諸法
001_0659_b_13L諸行。同入一處。二顯入行入智因果
001_0659_b_14L差別。初中亦二。先明諸法入一實
001_0659_b_15L義。後明諸行入一佛道。初中有四。
001_0659_b_16L一問。二答。三領。四述。問中有二。先領
001_0659_b_17L前說。後問所疑。此中問者。名梵行
001_0659_b_18L者。是人形雖俗儀。心住一味。以是
001_0659_b_19L一味。攝一切味。雖涉諸味之穢塵俗。
001_0659_b_20L不失一味之梵淨行。此中顯如是義。
001_0659_b_21L所以令其發問。從本際起者。聞佛所
001_0659_b_22L說。卽入本際。今欲發問。從彼而起。
001_0659_b_23L生義不滅者。是領下半。是義生非滅
001_0659_b_24L故。滅義不生者。是領上半。是義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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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9_c_01L이와 같은 진여의 뜻은 곧 부처님의 보리입니다. 그 보리의 자성은 곧 무분별입니다. 무분별의 지혜는 분별이 무궁할지라도 그 무궁한 분별상은 오직 분별의 소멸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보리의 뜻과 모습(相)은 불가사의합니다. 불가사의한 가운데는 분별이 없습니다.
논 여기에서 질문자의 이름은 범행이다. 이 사람은 겉모습은 세속의 위의를 하고 있지만 마음은 일미에 머물러 그 일미로써 일체미를 섭수한다. 비록 제미諸味의 잡다한 것(穢塵俗)을 경험했지만 일미의 청정범행은 잃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뜻54)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범행장자로 하여금 질문토록 한다.“본각제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곧 본각제에 들어갔는데 지금 질문을 하려고 그 본각제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발생한다는 뜻은 적멸이 아니다.”라는 것은 위의 게송 가운데 제4구의 “발생이란 뜻이지 소멸은 아니다.”를 이해한 것이고, “적멸하다는 뜻은 발생은 아니다.”라는 것은 위의 게송 가운데 제2구의 “소멸이란 뜻이지 발생은 아니다.”를 이해한 것이다.“이와 같은 진여의 뜻”이란 한 게송에서 적멸도 없고 발생도 없다는 것이 둘이 아니라는 뜻을 총체적으로 이해한 것이다.이와 같이 적멸과 발생이 둘이 아닌 뜻은 제불께서 깨친 바 도道이므로 “곧 부처님의 보리입니다.”라고 하고, 깨침은 그 무이無二를 수순하여 분分도 없고 별別도 없으므로 “곧 무분별입니다.”라고 한다.그 분별하는 바가 없음을 말미암아 이에 무분별도 없으므로 “무분별의 지혜는 분별이 무궁할지라도”라고 한다.이에 분별상이 무궁한 것은 단지 모든 분별의 소멸을 말미암은 것뿐이므로 “그 무궁한 분별상은 오직 분별의 소멸일 뿐입니다.”라고 한다.이와 같은 보리의 뜻과 모습은 언설을 떠나 있고 사려분별을 단절해 있으므로 “불가사의합니다.”라고 한다. 불가사의한 경지는 마음과 언설이 단절되어 있으므로 곧 무분별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앞에서 설한 게송의 뜻을 이해한 것이다.
나) 의심나는 것을 질문함
경 존자이시여, 일체의 법수는 무량하고 무변합니다. 그러나 무변한 제법의 실상은 일실의의 자성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오직 일실의의 자성에 머무는 그 수행은 무엇입니까?”
논 이는 의심나는 것을 곧장 질문한 대목이다. 소승의 가르침에는 팔만 가지의 온蘊이 있는데 일온의 분량은 천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금 대승의 가르침은 팔만 가지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법수는 무량하고 무변합니다.”라고 한다. 무변한 교법이 설명하고 있는 뜻(義)과 상相은 다른 갈래가 없이 오직 일실의一實義일 뿐이다. 교법이 무수히 많지만 오직 일실의의 자성일 뿐이라는 그것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그것55)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장자여, 불가사의하다.56) 내가 설한 모든 법은 미혹한 자를 위한 것으로 방편도方便道이지만, 일체의 법상은 일실의의 지혜일 뿐이다. 왜냐하면 비유하자면 한 도시가 사대문을 열어놓으면 그 사대문 안이 그대로 다 한 도시57)로 귀일되어 성의 주민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있는 것과 같다. 갖가지 법미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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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59_c_01L非生故。如是如義者。摠領一偈。不
001_0659_c_02L滅不生。無二義故。如是無二義。諸佛
001_0659_c_03L所覺道故。言卽佛菩提。覺順無二。
001_0659_c_04L不分不別故。言卽無分別。由其無所
001_0659_c_05L分別。乃能無不分別。故言無分別智。
001_0659_c_06L分別無窮。所以分別無窮者。只由滅
001_0659_c_07L諸分別故。言無窮之相。唯分別滅。
001_0659_c_08L如是義相。離言絕慮故不思議。不
001_0659_c_09L思議中。心言絕故。乃無分別。如是
001_0659_c_10L領前所說偈義。
001_0659_c_11L尊者。一切法數。無量無邊。無邊法相。
001_0659_c_12L一實義性。唯住一性。其事云何。
001_0659_c_13L此是正問所疑。小乘敎有八萬法蘊。
001_0659_c_14L一蘊之量。十百之數。今大乘敎。不
001_0659_c_15L唯八萬故。言法數無量無邊。無邊敎
001_0659_c_16L法。所詮義相。更無異趣。唯一實義。
001_0659_c_17L敎法衆多。唯住一性。甚難可解。其
001_0659_c_18L事云何。
001_0659_c_19L佛言。長者。不可思議。我說諸法。爲迷
001_0659_c_20L者故。方便道導 [110] 故。一切法相。一實義
001_0659_c_21L智。何以故。譬如一市。開四大門。是四
001_0659_c_22L門中。皆歸一市。如彼衆庶。隨意所入。
001_0659_c_23L種種法味。亦復如是。
001_0659_c_24L「第七」無{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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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0_a_01L논 이는 둘째 답변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이고, 둘째는 비유이며, 셋째는 합이다.
가) 법
첫째의 법에서 “내가 설한 모든 법”이라 한 것은 삼승교 및 일승교이다.“미혹한 자를 위한 것이다.”라는 것은 일미에 통달하지 못한 자를 위해 설한 것이다.“방편도이다.”라는 것은 모두 일미에 들어가는 방편이다. 정관正觀에 들어갈 경우에는 언설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일체의 법상은 일실의의 지혜일 뿐이다.”라는 것은 모든 교법을 인유하여 들어간 법상은 오직 일실의로서 정관지正觀智일 뿐이다.
나) 비유
비유 가운데서 말한 “한 도시”는 일실의를 비유한다.“사대문을 열어놓는다.”는 것은 네 종류의 가르침이니, 삼승교 및 일승교이다.“그 사대문 안이 그대로 다 한 도시로 귀일된다.”는 것은 네 종류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자는 모두 일실의에 돌아가기 때문이다.“성의 주민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은 근기가 깊고 얕음에 따라 각각의 가르침에 따라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의 도시를 가지고 일실의를 비유한 까닭은 모든 백성이 들어가는 곳이고, 모든 중생이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 합
합에서 “갖가지 법”이라 한 것은 사대문을 합한 것이고, “미味”는 몇 가지 갈래의 맛(味)이 한 도시로 합해지는 것이다.
다. 이해시킴
경 범행장자가 여쭈었다.“일체법이 그와 같다면 저도 일미에 머물러 반드시 일체의 제미諸味를 섭수하겠습니다.”
논 이는 셋째로 이해시키는 것이다.“제미를 섭수하겠습니다.”라는 것은 모든 교법의 맛이 일실의로 돌아감을 섭수하겠다는 것이다.
라. 서술함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래, 그렇다. 왜냐하면 일미실의는 그 맛이 하나의 대해와 같아서 일체의 모든 강물이 흘러들지 않음이 없다.장자여, 일체의 법미는 마치 모든 강물이 명칭과 법수는 다를지라도 그 물이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만약 대해에 머물면 곧 모든 강물을 포괄하는 것처럼 일미에 머물면 곧 제미를 섭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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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0_a_01L是第二答。於中有三。謂法喩合。初
001_0660_a_02L法說言。我說諸法者。謂三乘敎及一
001_0660_a_03L乘敎。爲迷者故者。爲未達一味者說
001_0660_a_04L故。方便道故者。皆入一味之方便故。
001_0660_a_05L入正觀時。不須言敎故。一切法相一
001_0660_a_06L實義智者。因諸敎法所入之相。唯一
001_0660_a_07L實義正觀智故。喩中言一市者。喩一
001_0660_a_08L實義。開四門者。喩四種敎。謂三乘
001_0660_a_09L敎及一乘敎。是四門中。皆歸一市者。
001_0660_a_10L依四敎者。皆歸一實故。如彼衆庶
001_0660_a_11L隨意所入者。隨根淺深隨入一敎故。
001_0660_a_12L所以一市喩一實者。爲是百姓之所
001_0660_a_13L入故。爲諸衆生之所歸故。合中言種
001_0660_a_14L種法者。合於四門。次言味者。謂所
001_0660_a_15L趣味。合於一市。
001_0660_a_16L梵行長者言。法若如是。我住一味。應
001_0660_a_17L攝一切諸味。
001_0660_a_18L此是第三領解。攝諸味者。攝諸敎味。
001_0660_a_19L歸一實故。
001_0660_a_20L佛言。如是如是。何以故。一味實義。味
001_0660_a_21L一本無
味字如一大海。 [111] 一切衆流。無有不入。
001_0660_a_22L長者。一切法味。猶彼衆流。名數雖殊。
001_0660_a_23L其水不異。若住大海。卽括衆流。住於
001_0660_a_24L一味。卽攝諸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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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0_b_01L논 이는 넷째로 서술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체적으로 서술하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서술한다.
( 가) 총체적으로 서술함)
나) 개별적으로 서술함
개별적으로 서술하는 것에도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이다. 둘째는 비유이다. 셋째는 합이다.
((가) 법)
((나) 비유)
(다) 합
합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저 모든 강물에 대한 합이니, 먼저 법으로 합하고, 나중에 비유로 이어받는다. 둘째는 모든 강물을 포괄한다는 것에 대한 합이니, 먼저 그 비유를 들고, 나중에 법으로 합한다.
② 제행이 일불도一佛道에 들어 있음을 설명함
이하는 둘째로 일체행이 일불도一佛道에 들어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가. 질문
경 범행장자가 여쭈었다.“제법은 일미인데 삼승의 깨침에서는 어째서 그 지혜마다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논 이는 지혜의 차이를 물은 것이다.
나.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장자여, 비유하면 저 강江·하河·회淮·해海의 물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고 깊고 얕은 차이가 있는데, 명칭과 글이 다른 것과 같다. 물이 강江에 있으면 강수江水라 말하고, 물이 회淮에 있으면 회수淮水라 말하며, 물이 하河에 있으면 하수河水라 말하고, 그 모두가 바다(海)에 있으면 오직 해수海水라고 말할 뿐이다. 법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두가 진여에 있으므로 오직 불도라고 말할 뿐이다.
논 이는 둘째 답변이니, 비유가 있고, 합合이 있다.
가) 비유
처음의 강·하·회는 삼승의 수행을 비유한 것이고, 마지막의 바다(海)는 불도를 비유한다.“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삼승인의 마음은 넓고 좁음이 있어 같지 않은 것을 비유한 것이고, “깊고 얕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삼승인의 지혜에 우등과 열등의 차이가 있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것은 마음과 지혜의 뜻에 따라서 그 명칭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그 모두가 바다에 있으면 오직 해수라고 말할 뿐이다.”라는 것은 그 삼승이 다함께 십지의 법공진여에 들어가면 오직 불도라는 명칭만 남아 있고, 삼승의 명칭은 없어지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삼승의 차별적인 수행은 모두 십지 이전의 방편도에 해당하지만 끝내 진여의 정관에 들어가지 못함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삼승도 끝내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 마치 모든 교법이 똑같이 일미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나) 합
비유를 합한 언설은 경문에 나타나 있으니, 알 수 있을 것이다.
(2) 수행에 들어가고 지혜에 들어가는 인과 과의 차별을 설명함
이하는 크게 분류한58) 가운데 둘째로서 수행에 들어가고 지혜에 들어가는 인과 과의 차별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행의 차별에 들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지혜의 차별에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는 인의 작용(事用)에 들어가는 것이고, 넷째는 과의 상주법常住法에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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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0_b_01L此是第四述成。於中有二。摠述。別成。
001_0660_b_02L別中有三。謂法喩合。合中有二。一
001_0660_b_03L者。合彼衆流。先以法合。後卽牒喩。
001_0660_b_04L二者。合括衆流。先擧其喩。後以法
001_0660_b_05L合。
001_0660_b_06L梵行長者言。諸法一味。云何三乘道。
001_0660_b_07L其智有異。
001_0660_b_08L此下第二。明一切行。入一佛道。先
001_0660_b_09L問後答。此是問異。
001_0660_b_10L佛言。長者。譬如江河淮海。大小異故。
001_0660_b_11L深淺殊故。名文別故。水在江中。名爲
001_0660_b_12L江水。水在淮中。名爲淮水。水在河中。
001_0660_b_13L名爲河水。俱在海中。唯名海水。法亦
001_0660_b_14L如是。俱在眞如。唯名佛道。
001_0660_b_15L是第二答。有喩有合。初中江河淮者。
001_0660_b_16L喩三乘行。海喩佛道。大小異者。喩
001_0660_b_17L三乘心。寬狹不同。深淺殊者。喩三
001_0660_b_18L乘智。優劣有異。隨前二義。其名各
001_0660_b_19L別。俱在海中。唯名海水者。喩其三
001_0660_b_20L乘。同入十地法空眞如。唯名佛道。
001_0660_b_21L沒三乘名。當知三乘差別行者。皆在
001_0660_b_22L地前方便道中。莫不終入眞如正觀。
001_0660_b_23L所以三乘終無別歸。如諸敎法。同入
001_0660_b_24L一味。合喩之言。在文可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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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0_c_01L① 수행의 차별에 들어감
경 장자여, 일불도에 머무르면 곧 세 가지 수행에 통달한다.”범행장자가 여쭈었다.“세 가지 수행은 무엇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첫째는 수행의 갈래를 따르는 수행(隨事取行)이고, 둘째는 유식을 따르는 수행(隨識取行)이며, 셋째는 진여를 따르는 수행(隨如取行)이다.
논 첫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론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일불도에 머문다.”는 것은 초지 이상에 오른 것을 불도에 머문다고 한다. 삼종지三種智59)를 갖추어 세 가지 수행에 통달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질문이고, 셋째는 답변이다.
(가. 총론적으로 표방함)
(나. 질문)
다. 답변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둘째는 총체적으로 해석한다.
가) 개별적으로 설명함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수행의 갈래를 따르는 수행”이라 한 것은 사성제와 십이연기에 의하여 인과 과를 따라서 삼십칠도품을 취하는 것이다.“유식을 따르는 수행”60)은 중생은 오직 일심의 조작일 뿐으로 유식의 도리를 따라서 사섭수행을 취하는 것이다.“진여를 따르는 수행”은 일체법이 모두 다 평등하므로 평등한 진여를 따라서 육바라밀행을 취하는 것이다. 수행을 섭수하여 마음에 모으기 때문에 취한다고 하는 것이지, 주체와 객체를 분별하여 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 총체적으로 해석함
경 장자여, 이와 같은 세 가지 수행은 모든 수행문을 섭수하므로 일체의 법문이 여기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다. 이러한 수행에 들어가는 자는 공상空相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 들어간 자에 대하여 가히 여래장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여래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 들어감이야말로 들어간 바가 없는 곳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61)
논 이는 세 가지 수행을 총체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수행의 갈래를 따르는 수행은 소승문과 공통되고, 유식을 따르는 수행은 오직 대승문이니, 이 두 가지는 차별문이다. 셋째로 진여를 따르는 수행은 평등문이니, 이 도리를 말미암아 모든 수행문을 총섭한다. 또한 삼십칠도품의 수행은 생사에 머물지 않는 문이고, 사섭법의 수행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 문이며, -
001_0660_c_01L長者。住一佛道。卽達三行。梵行長者
001_0660_c_02L言。云何三行。佛言。一隨事取行。二隨
001_0660_c_03L識取行。三隨如取行。
001_0660_c_04L此下大分。第二入行入智。因果差別。
001_0660_c_05L於中有四。一者入行差別。二者入智
001_0660_c_06L差別。三者入因事用。四者入果常住。
001_0660_c_07L初中有三。一者摠標。住一佛道者。
001_0660_c_08L初地已上。名住佛道。具三種智。達
001_0660_c_09L三行故。二者問。三者答。答中有二。
001_0660_c_10L別明。摠釋。別明中言隨事取行者。
001_0660_c_11L謂依四諦十二緣起。隨因果事。取道
001_0660_c_12L品行故。隨識取行者。謂諸衆生。唯
001_0660_c_13L一心作。隨唯識理。取四攝行故。隨
001_0660_c_14L如取行者。謂一切法。悉皆平等。隨
001_0660_c_15L平等如。取六度行故。攝行屬心。故
001_0660_c_16L名爲取。非謂能所分別之取。
001_0660_c_17L長者。如是三行。摠攝衆門。一切法門。
001_0660_c_18L無不此入。入是行者。不生空相。如是
001_0660_c_19L入者。可謂入如來藏 入如來藏者。入入
001_0660_c_20L不入一本云。入如來
藏者。入不入故。 [112]
001_0660_c_21L此是摠釋三行。隨事行者。共小乘門。
001_0660_c_22L隨識行者。獨大乘門。此二是差別
001_0660_c_23L門。第三是平等門。由是道理。摠攝
001_0660_c_24L衆門。又道品行。不住生死門。其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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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1_a_01L진여에 따르는 육바라밀의 수행은 평등하여 대립이 없는 문이므로 “일체의 법문이 여기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이 수행에 들어가는 자는 공상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진여에 따르는 수행이면서도 항상 수행의 갈래(事)를 따르고 유식에 따르는 수행이기 때문에 공상에 집착하지 않고 적멸에 머문다.“가히 여래장에 들어간다고 말한다.”는 것은 비록 수행의 갈래와 유식에 따르면서도 항상 진여를 따라서 평등수행을 취하므로 가히 여래장해에 들어간다고 한다.“그 들어감이야말로 들어간 바가 없는 곳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그 들어간 마음은 들어간 바가 없는 곳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곧 수행의 주체와 터득된 객체가 평등하고 차별이 없으므로 들어간 바가 없다(不入)고 한다. 비록 다름(別異)은 없을지라도 또한 같지도 않기(一) 때문에 관심에 의거하여 짐짓 들어간 마음(入心)이라 한다. 이처럼 들어간 마음이 들어가 있다는 분별상(相)이 없으므로 여래장에 들어감이야말로 들어간 바가 없는 곳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② 지혜의 차별에 들어감
이하는 둘째로 지혜의 차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가. 질문
경 범행장자가 여쭈었다.“불가사의합니다. 여래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새싹이 과실을 맺는 것과 같습니다. 들어간 바가 없는 것은 본각이 뿌리이고 이익은 힘인데, 이익의 힘이 성취되면 본각이 터득되기 때문입니다.62) 그렇다면 본각의 실제가 터득되면 그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논 질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설명을 이해하고, 둘째는 의심나는 것을 묻는다.“마치 새싹이 과실을 맺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것은 마치 곡식의 새싹이 나서 이삭이 패고 열매를 맺는 경우에 들어가는 주체도 없고 들어간 대상도 없는 것처럼, 곧 여래장에 들어가는 것도 그와 같은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새싹은 본각과 그 이익을 비유하고, 열매는 터득된 본각을 비유한 것이다. 그처럼 곧 여래장에 들어갈 경우에도 평등하여 들어간 곳이 없다.
나. 답변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 지혜는 무궁하다. 그러나 간략하게 말하면 그 지혜에는 네 가지가 있다.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정지定智인데 소위 진여를 따르는 것이다. 둘째는 부정지不定智인데 소위 방편으로 깨뜨리는 것이다. 셋째는 열반지涅槃智인데 소위 전각삼매電覺三昧63)처럼 번뇌를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넷째는 구경지究竟智인데 소위 실제에 들어가 깨침을 구족하는 것이다. -
001_0661_a_01L攝行。不住涅槃門。隨如度行。平等
001_0661_a_02L無二門故。一切法門。無不此入。入
001_0661_a_03L是行者不生空相者。雖隨如行。而恒
001_0661_a_04L隨事隨識行故。不取空相而住寂滅
001_0661_a_05L也。可謂入如來者。雖隨事識。而恒
001_0661_a_06L隨如。取平等行故。可謂能入如來藏
001_0661_a_07L海也。入入不入者。入其入心。於不
001_0661_a_08L入故。能入所入。平等無別。故曰不
001_0661_a_09L入。雖無別異。而亦非一故。約觀心
001_0661_a_10L假名入心。如是入心。不存入相故。
001_0661_a_11L入其入於不入也。
001_0661_a_12L梵行長者言。不可思議。入如來藏。如
001_0661_a_13L苗成實。無有入處。本根利力。利成得
001_0661_a_14L本。得本實際。其智幾何。
001_0661_a_15L此下第二入智差別。先問。後答。問中
001_0661_a_16L有二。先領前說。後問所疑。如苗成
001_0661_a_17L實者。如似穀苗。成穗實時。無能入
001_0661_a_18L者。無所入處。入如來藏。當知亦爾。
001_0661_a_19L苗喩本利。實喩得本。入時平等。無
001_0661_a_20L所入處故。
001_0661_a_21L佛言。其智無窮。略而言之。其智有四。
001_0661_a_22L何者爲四。一者定智。所謂隨如。二者
001_0661_a_23L不定智。所謂方便摧破。 [113] 三者涅槃智。
001_0661_a_24L所謂除電覺一本作慧
除電覺。 [114] 四者究竟智。所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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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1_b_01L장자여, 이와 같은 네 가지 훌륭한 작용은 과거의 제불이 설한 바로서 큰 교량이고 큰 나루터이다. 그러므로 만약 중생을 교화하려면 마땅히 이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
논 이것은 둘째 답변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론적으로 표방하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해석하며, 셋째는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가) 총론적으로 표방함
첫째의 총론적으로 표방한 것 가운데서 “그 지혜는 무궁하다.”라고 한 것은 통달한 바가 끝이 없기 때문에 그 지혜 또한 무궁하다는 것이다. 다만 뜻으로 분류하고 상대하여 총체적으로 그리고 간략하게 설하자면 네 가지가 있을 따름이다.
나) 개별적으로 해석함
둘째의 개별적으로 드러내는 데서 “정지”라고 한 것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서 오직 정관正觀일 뿐이지 방편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정지라 한다.말나식의 아집과 아소집을 대치하고 평등함을 따라 관찰하기 때문에 “진여를 따르는 것이다.”라고 한다.“부정지”는 묘관찰지妙觀察智로서 제6식에서 방편으로 나아가 터득하기(進取) 때문에 부정이라 한다. 방편도의 경우에는 명칭과 수행의 갈래(事) 등 형상의 깨뜨림을 추구하기 때문에 최파라 한다. 이 부정지는 실로 방편 및 정관에 통하지만 다만 정지와 구별하려는 까닭에 간략하게 방편만을 언급할 따름이다.“열반지”는 성소작지成所作智로서 팔상八相을 드러내어 불사를 행하는데, 최후의 모습을 언급하여 열반지라 하였다.전5식前五識을 소멸하고 열반지를 터득한다. 이런 뜻에서 “전각삼매처럼 번뇌를 제거한다.”고 한다. 전각電覺이란, 오식이 잠깐만에 일어났다가 잠깐만에 소멸하는 것이 마치 번갯불과 같기 때문이다.구경지는 대원경지大圓鏡智로서 오직 구경위에서만 이 구경지를 터득하기 때문에 일체의 경계를 궁구하지 못함이 없다. 그래서 일실의에 들어가므로 “실제에 들어간다.”고 하고, 어떤 경계든지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없으므로 “깨침을 구족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다) 총체적으로 설명함
셋째의 총체적으로 설명한 데서 “네 가지 훌륭한 작용”이라 한 것은 작용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제불이 설한 바이다.”라는 것은 제불의 깨침이 똑같다는 것이다.“큰 교량이다.”라는 것은 곧 네 가지 지혜로써 삼승의 수행자들을 싣고 일승의 저 언덕에 도달하는 것이다. -
001_0661_b_01L入實具足道。 [115] 長者。如是四大事用。過
001_0661_b_02L去諸佛所說。是大橋梁。是大津濟。若
001_0661_b_03L化衆生。應用是智。
001_0661_b_04L是第二答。於中有三。所謂摠標。別
001_0661_b_05L釋。摠明。摠標中言其智無窮者。所
001_0661_b_06L達無邊故。其智亦無窮。但以義類相
001_0661_b_07L對。摠略而說。有四而已。別顯中言
001_0661_b_08L定智者。平等性智。唯在正觀。不作
001_0661_b_09L方便。故名定智。對治末那。我我所
001_0661_b_10L執。隨觀平等。故曰隨如。不定智者。
001_0661_b_11L妙觀察智。在第六識。方便進取。故
001_0661_b_12L名不定。方便道時。推求摧破名事等
001_0661_b_13L相。故曰摧破。此智實通方便。正觀
001_0661_b_14L但爲別定智故。略擧方便耳。涅槃智
001_0661_b_15L者。成所作智。能現八相。而作佛事。
001_0661_b_16L擧最後相。名涅槃智。除滅五識。而
001_0661_b_17L得此智。以是義故。名除電覺。電覺
001_0661_b_18L者。謂五識。乍起乍滅。如電光故。究
001_0661_b_19L竟智者。大圓鏡智。唯究竟位。得此智
001_0661_b_20L故。於一切境。無不窮故。入一實義。
001_0661_b_21L故名入實。無境不現。名具足道。摠
001_0661_b_22L明中言四大事用者。用無不周故。
001_0661_b_23L諸佛所說者。諸佛道同故。大橋梁者。
001_0661_b_24L以是四智。載三乘人。令到一乘之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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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1_c_01L“큰 나루터이다.”라는 것은 이 네 가지 지혜를 활용하여 육도를 두루 다니면서 출세간도를 보여 주어 갈애의 물을 건네 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생을 교화하려면 마땅히 이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③ 인의 작용에 들어감
이하는 셋째로 인의 작용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산문(長行)이고, 둘째는 중송重頌이다.
가. 산문(長行)
논 첫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간략하게 설명하고, 둘째는 거듭 드러내며, 셋째는 이해를 시킨다.
가) 간략하게 설명함
경 장자여, 이 훌륭한 지혜의 작용을 활용하는 것에 또 세 가지 대사大事가 있다. 첫째는 세 가지 삼매가 안과 밖으로 서로 부정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대大·의義·과科에서 깨침을 따라서 선을 선택하고 악을 소멸하는 것이다. 셋째는 진여의 지혜와 선정64)에서 자비로써 이익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대사로 보리를 성취한다. 만약 이 세 가지 대사를 실행하지 못하면 곧 저 사지四智의 바다에 흘러들지 못하므로 모든 대마大魔들에게 그 빈틈을 보이고 만다.장자여, 그대들 대중은 성불에 이르기까지 꼭 항상 수습하여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논 첫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론적으로 표방하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해석하며, 셋째는 결론적으로 설명하고, 넷째는 끝으로 권장한다.
(가) 총론적으로 표방함
첫째의 총론적으로 표방한 것에서 “이 훌륭한 지혜의 작용을 활용한다.”고 한 것은 앞에서 설한 사지四智의 훌륭한 지혜를 언급한 것이다. 그 계위는 초지 이상으로부터 불과에 이른다.“또 세 가지 대사가 있다.”는 것은 사지를 성취하는 것에 세 가지 대사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지전의 네 가지 계위65)에 있는 수행이다.이 “세 가지 대사”란 첫째는 정定이고, 둘째는 혜慧이며, 셋째는 정과 혜를 함께 수행하여 대비를 자체로 삼는 것이다.
(나) 개별적으로 해석함
(둘째의 개별적인 해석 가운데서) 첫째의 정은 곧 세 가지 삼매이다. 세 가지 삼매에 대해서는 여러 문파에서 이설이 분분하다. 혹 공·무상·무원이라고도 하고, 혹 무작·무상·공공이라고도 하며, 혹 공·무작·무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므로 모두 무방하다. 세 가지 삼매를 혹 세 가지 해탈이라고도 하는데, 이 경우는 무루에만 통한다. 그러나 세 가지 삼매라고 할 경우는 유루와 무루에 다 통한다. -
001_0661_c_01L岸故。大津濟者。用此四智。遍涉六
001_0661_c_02L道。示出世道。度愛河故。是故化者
001_0661_c_03L應用是智也。
001_0661_c_04L長者。用是大用。復有三大事。一者於
001_0661_c_05L三三昧。內外不相奪。二者於大義科。
001_0661_c_06L隨道擇滅。三者於如慧定。 [116] 以悲俱利。
001_0661_c_07L如是三事。成就菩提。不行是事。卽不
001_0661_c_08L能流入彼四智海。爲諸大魔所得其便。
001_0661_c_09L長者。汝等大衆。乃至成佛。常當修習。
001_0661_c_10L勿令暫失。
001_0661_c_11L此下第三入因事用。於中有二。長行。
001_0661_c_12L重頌。初中有三。略明。重顯。三者領
001_0661_c_13L解。初中有四。一者摠標。二者別解。
001_0661_c_14L三者合明。四者結勸。摠標中言用
001_0661_c_15L是大用者。擧前所說。四智大用。位在
001_0661_c_16L地上。乃至佛果。復有三事者。能成
001_0661_c_17L四智之事有三。此在地前四位中。行
001_0661_c_18L此三事者。初定次慧。第三定慧俱行。
001_0661_c_19L大悲爲體。初言定者。卽三三昧。此
001_0661_c_20L有多門。左右異說。或言空。無相。無
001_0661_c_21L願。或言無作。無相。空空。或言空。
001_0661_c_22L無作。無相。隨1)意 [42] 安立。皆無障碍。
001_0661_c_23L或名三解脫。唯在無漏故。或名三三
001_0661_c_24L「意」作「宜」{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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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2_a_01L세 가지 해탈과 세 가지 삼매가 차별된 뜻은 이하의 경문에서 설명된다.“안과 밖으로 서로 부정되지 않는 것이다.”라는 것은 내식과 외경은 함께 발현하여 모든 선근을 거스르고 따르면서 서로 부정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공적한 줄을 통달하여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대·의·과에서 깨침을 따라서 선을 선택하고 악을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사대(大)와 삼과법문(義)에 대하여 도리에 따라 간택하여 모든 (사대의 거친 번뇌와 음·입·계의 미세한 번뇌의) 집착을 깨뜨림으로써 근본식 내에 있는 무시이래의 희론종자를 없애는 것이다. 앞의 세 가지 삼매는 그 현행하는 번뇌(纏)를 없애는 것이고, 여기의 간택하는 지혜는 희론종자를 물리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사지가 성취될 경우에 희론종자를 없애고 팔식을 전변시킬 수가 있다.“진여의 지혜와 선정에서 자비로써 이익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라는 것은 앞의 지혜와 선정은 모두 진여의 도리를 따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설하여 ‘진여의 지혜와 선정’이라 하고, 거기에서 또한 대비행을 닦아서 자리와 이타에 상응하므로 ‘이익을 갖추어 주는 것이다.’라고 한다. 왜냐하면 만약 대비를 떠나서 그대로 선정과 지혜만 닦으면 이승의 경지에 떨어져 보살도에 장애가 되고, 설령 대비만 일으키고 선정과 지혜를 닦지 않으면 범부의 고통에 떨어져 보살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 결론적으로 설명함
그러므로 세 가지 대사를 닦아야 이승과 범부를 멀리 떠나고, 보살도를 닦아야 무상정각을 성취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세 가지 대사로 보리를 성취한다.”고 한다. 만약 이 세 가지 대사를 모두 수행하지 않으면 곧 생사에 머물고 열반에 집착하여 사지의 대해에 흘러들지 못하므로 사마四魔에게 그 빈틈을 보이고 만다. 이는 셋째로서 결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66)
(라) 끝으로 권장함
이하는 넷째 끝으로 권장하는 것이다.67)
나) 거듭 드러냄
이것은 둘째로 거듭 드러내는 것이니, 두 가지 문답68)으로 두 가지 문을 드러낸다.
(가) 첫째 문답
경 범행장자가 여쭈었다.“세 가지 삼매는 무엇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세 가지 삼매는 공삼매·무작삼매·무상삼매이다. 이것이 세 가지 삼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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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2_a_01L昧。亦通有漏故。於中別義。下文當
001_0662_a_02L說。而言內外不相奪者。內識外境。
001_0662_a_03L共相現發。取違順。相奪諸善根。今
001_0662_a_04L達皆空。不令奪故。於大義科。隨道
001_0662_a_05L擇滅者。謂於四大及三法門。隨理簡
001_0662_a_06L擇。摧破諸相。伏滅本識戱論種子。
001_0662_a_07L前三三昧。伏其現纒。此簡擇慧。損
001_0662_a_08L伏種子。由是遂成四智之時。能拔種
001_0662_a_09L子。得轉八識故。於如慧定。以悲俱利
001_0662_a_10L者。前慧及定。皆順如理。是故說名。
001_0662_a_11L於如慧定。於中亦修大悲相應。自利
001_0662_a_12L利他。故言俱利。所以然者。若離大
001_0662_a_13L悲。直修定慧。墮二乘地。障菩薩道。
001_0662_a_14L設唯起悲。不修定慧。墮凡夫患。非
001_0662_a_15L菩薩道。故修三事。遠離二邊。修菩
001_0662_a_16L薩道。成無上覺。故言如是三事。成
001_0662_a_17L就菩提。若不俱行此三事者。卽住生
001_0662_a_18L死。及着涅槃。不能流入。四智大海。
001_0662_a_19L卽爲四魔所得便也。此是合明。下卽
001_0662_a_20L勸修。爲第四門也。
001_0662_a_21L梵行長者言。云何三三昧。佛言。三三
001_0662_a_22L昧者。所謂空三昧。無作三昧。無相三
001_0662_a_23L昧。 [117] 如是三昧。
001_0662_a_24L此是第二重顯。有二問答。顯前二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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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2_b_01L논 이는 첫째 세 가지 삼매문을 드러낸 것이다. 이 세 가지 삼매의 차별에 각각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체·용·상이고, 둘째는 심·인·과이며, 셋째는 식·견·상이다.첫째의 체·용·상이란, 무릇 일체법은 이 세 가지 삼매를 벗어나지 않는다. 법체가 공하므로 공삼매를 내세우고, 작용이 없으므로 무작삼매를 내세우며, 형상(相狀)이 없으므로 무상삼매를 내세운다.둘째의 심·인·과란, 인과 과가 일어나는 것은 마음의 작용에서 발흥한다. 마음의 작용이 공하므로 공삼매를 내세우고, 모든 인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무작삼매를 내세우며, 모든 과를 얻을 수 없으므로 무상삼매를 내세운다.셋째의 식·견·상이란, 모든 식의 자체가 공하므로 공삼매를 내세우고, 견분을 없애므로 무작삼매를 내세우며, 상분을 없애므로 무상삼매를 내세운다.이 셋째의 문은 위에서 “안과 밖으로 서로 부정되지 않는다.”69)는 경문에 따른 것이다.0)
(나) 둘째 문답
경 범행장자가 여쭈었다.“대·의·과는 무엇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대는 사대이고, 의는 음·계·입 등이며, 과는 근본식이다. 이것이 대·의·과이다.”
논 이는 둘째의 문답을 드러낸 것이다.사대를 개별적으로 내세운 까닭은 처음에 수행할 경우 먼저 성근 경계(麤境)를 간택해야 함을 드러낸다. 즉 제법 가운데서 색법이 가장 성글다. 곧 안으로는 사지와 몸체 등이 있고, 밖으로는 산과 물 등이 있다. 이러한 법은 사대를 떠나 있지 않음을 관찰하고, 사대는 모두 불가득임을 관찰하여, 방소가 있거나 방소가 없거나 모두 성취되지 않는다.이와 같이 간택한 뒤 다음으로 미세한 의義를 관찰하니, ‘음·계·입’을 말한다. 이는 각각 간략한 것·자세한 것·중간적인 것이다. 간략하게 섭수하여 관찰하면 오온이고, 자세하게 관찰하면 십팔계이며, 간략한 것과 자세한 것의 중간으로 관찰하면 십이입이다. 이것이 일체가 불가득임을 관찰하는 것이다.다음으로 말한 “등이며”는 나머지 법문인 십이지연기 등이다. 이와 같이 간택하여 관찰하는 힘 때문에 -
001_0662_b_01L此顯初門。是三差別。略有三義。一
001_0662_b_02L體用相故。二心因果故。三識見相故。
001_0662_b_03L體用相者。凡一切法。莫過此三。法
001_0662_b_04L體空故。立空三昧。無作用故。無作
001_0662_b_05L三昧。無相狀故。無相三昧。心因果
001_0662_b_06L者。因果所起。興於心行。心行空故。
001_0662_b_07L立空三昧。諸因無所有故。立無作三
001_0662_b_08L昧。諸果不可得故。立無相三昧。識
001_0662_b_09L見相者。諸識自體空故。立空三昧。
001_0662_b_10L遣見分故。立無作三昧。遣相分故。
001_0662_b_11L立無相三昧。是第三門。順前內外不
001_0662_b_12L相奪文。
001_0662_b_13L梵行長者言。云何於大義科。佛言。大
001_0662_b_14L謂四大。義謂陰界入等。科謂本識。是
001_0662_b_15L爲 [118] 於大義科。
001_0662_b_16L是顯第二門。所以四大而別立者。爲
001_0662_b_17L顯初修。先擇麁境。謂諸法中。色法
001_0662_b_18L最麁。內支體等。外山河等。觀是等
001_0662_b_19L法。不離四大。觀是四大。皆不可得。
001_0662_b_20L有方無方。俱不成故。如是簡擇已。
001_0662_b_21L次觀微細義。謂陰界入。略廣中故。
001_0662_b_22L略攝觀五。廣觀十八。略廣中間。觀
001_0662_b_23L十二入。觀察一切皆不可得。次言等
001_0662_b_24L者。謂餘法門十二支等。如是簡擇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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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2_c_01L곧 근본식 내에 있는 무시이래의 희론종자 및 명언종자를 물리칠 수가 있다. 처음에는 물리치다가 점차 단멸시켜 버린다. 그러므로 앞에서 “깨침을 따라 택멸하는 것이다.”70)라고 하였다.
다) 이해를 시킴
경 범행장자가 여쭈었다.“불가사의합니다. 그와 같이 지혜로운 행위(智事)71)는 자리이인自利利人으로서 삼계를 초월하고, 열반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보살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제법의 모습(法相)은 곧 생멸법으로서 분별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분별을 떠나면 그 법이야말로 마땅히 불멸일 것입니다.”
논 이는 셋째로 이해를 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관행을 이해시키고, 둘째는 경계를 이해시킨다.
(가) 관행을 이해시킴
“그와 같이 지혜로운 행위”는 정·혜·대비의 세 가지는 사지四智를 성취하는 행위의 작용이다.“자리이인”이란, 정·혜는 자리自利이고, 대비는 이인利人이다.“삼계를 초월한다.”는 것은 앞의 두 가지 곧 정·혜는 범부와 다르기 때문이다.“열반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셋째 곧 대비는 이승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저 범부와 이승을 떠나서 보살도에 들어간다.
(나) 경계를 이해시킴
“그와 같은” 이하는 경계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즉 첫째 선정(定)의 경계는 제식과 견분과 상분이고, 둘째 지혜(智)의 경계는 대·의·과의 법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제법의 상은 모두 생멸법이다. 왜냐하면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 마음의 바다(心海)를 기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고요한 문이므로 그 분별을 떠나면 마음의 바다를 기동시킬 인이 없는데 무엇을 말미암아 생멸이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그 법이야말로 마땅히 불멸일 것입니다.”라고 한다.
나. 중송重頌
이하는 둘째로 게송으로 거듭 찬송하는 것이다.72)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래께서 간략하게 선설하고, 둘째는 장자가 자세하게 찬송하여 연설한다.0)
가) 간략하게 선설함
경 그때 여래께서 이 뜻을 펼치려고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法從分別生 제법은 분별에서 발생하지만
還從分別滅 다시 분별로부터 소멸된다네
滅諸分別法 제분별을 소멸하는 법이라면
是法非生滅 그것은 생멸법칙이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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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2_c_01L察力故。卽能損伏本識之內。無始戱
001_0662_c_02L論名言種子。始時損伏。乃至斷滅。
001_0662_c_03L所以前言隨道擇滅。
001_0662_c_04L梵行長者言。不可思議。如是智事。自
001_0662_c_05L利利人。過三界地。不住涅槃。入菩薩
001_0662_c_06L道。如是法相。是生滅法。以分別故。若
001_0662_c_07L離分別。法應不滅。
001_0662_c_08L此是第三領解。於中有二。先領觀行。
001_0662_c_09L後解境界。如是智事者。如是三種。
001_0662_c_10L能成四智之事用故。自利利人者。前
001_0662_c_11L二自利。第三利人故。過三界地者。
001_0662_c_12L前二定慧。異凡夫故。不住涅槃者。
001_0662_c_13L第三大悲。異二乘故。離彼二邊。入
001_0662_c_14L菩薩道也。如是已下。解彼境界。謂
001_0662_c_15L初定境。諸識見相。次智境界。大義
001_0662_c_16L科法。如是法相。皆生滅法。所以然
001_0662_c_17L者。由妄分別。動心海故。本來靜門。
001_0662_c_18L若離分別。無其所因。何由生滅。以
001_0662_c_19L之故。言法應不滅。
001_0662_c_20L爾時。如來欲宣此義。而說偈言。
001_0662_c_21L法從分別生。還從分別滅。滅諸分別法。
001_0662_c_22L是法非生滅。
001_0662_c_23L此下第二。以偈重頌。於中有二。一
001_0662_c_24L者如來略宣。二者長者廣演。今此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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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3_a_01L논 지금 이 게송에서 “법”이라 한 것은 일심법이다. 만약 허망하게 분별하면 마음이 기동하듯이 생멸의 일체 제상이 다 분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만약 본각의 본래 고요한 문에 나아가면 모든 분별을 떠나 있는 까닭에 그 법은 생멸이 아니다. 즉 본래부터 모든 분별이 소멸되어 생멸의 인이 없으므로 생멸이 없다.만약 생멸이 모두 분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유가론』의 설이 어찌 통용되겠는가. 「사소성지품思所成地品」에서는 “다른 것을 소멸시키는 작용이 없다. 자기를 소멸시키는 작용이 없다. 문 갖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가, 또한 갖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소멸하는가? 답 갖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발생이 다하면 자연히 소멸한다.”73)고 말한다.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찌 화회和會가 되겠는가.이제 이것을 해석하자면, 인연의 도리는 『유가론』의 설과 같고, 유식의 도리는 『금강삼매경』의 설과 같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설은 모두 나름대로 도리가 있다.
나) 자세하게 찬송하여 연설함
논 이하는 범행장자가 자세하게 찬송한 것으로 여덟 개의 게송이 있다. 그 여덟 게송은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로 제1·제2의 두 게송은 앞의 뜻을 곧장 연설하고, 둘째로 제3·제4의 두 게송은 모든 잘못된 견해를 타파하며, 셋째로 제5의 한 게송은 바르게 취했음을 서술하고, 넷째로 제6·제7의 두 게송은 바르게 설한 자에게 예를 드리며, 다섯째로 제8의 한 게송은 아직 듣지 못한 것을 설해 달라고 청한다.
(가) 곧장 연설함
경 그때 범행장자가 이 게송의 설법을 듣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그 뜻을 펼치려고 게송을 설하여 여쭈었다.
諸法本寂滅 제법은 본래부터 다 적멸한데
寂滅亦無生 그 적멸 또한 생긴 것 아니네
是諸生滅法 곧 생겨나고 소멸하는 일체법
是法非無生 그 일체법은 무생이 아니라네
彼卽不共此 생멸법이 적멸법과 다른 것은
爲有斷常故 단견 상견이 있기 때문이라네
此卽離於二 일심법은 단과 상을 떠났지만
亦不在一住 또한 어디에도 머묾이 없다네
논 이것은 첫째로서 앞의 게송을 곧장 연설한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
001_0663_a_01L中所言法者。謂一心法。若妄分別
001_0663_a_02L動心海故。若生若滅。一切諸相。莫
001_0663_a_03L不皆從分別所作。若就本覺。本來靜
001_0663_a_04L門。離諸分別故。是法非生滅。謂從
001_0663_a_05L本來滅諸分別。無生滅因。故非生滅。
001_0663_a_06L若使生之與滅。皆從分別之所作者。
001_0663_a_07L瑜伽所說。云何而通。如彼思所成地
001_0663_a_08L中云。無滅他用。無自滅用。問。如衆
001_0663_a_09L緣有故生。亦衆緣有故滅耶。答。衆
001_0663_a_10L緣有故生。生已自然滅。如是相違。
001_0663_a_11L云何和會。解云。因緣道理。如彼論
001_0663_a_12L說。唯識道理。如此經說。所以二說。
001_0663_a_13L皆有道理。
001_0663_a_14L爾時。梵行長者。聞說是偈。心大欣懌。
001_0663_a_15L欲宣其義。而說偈言。
001_0663_a_16L諸法本寂滅。寂滅亦無生。是諸生滅法。
001_0663_a_17L是法非無生。
001_0663_a_18L彼卽不共此。爲有斷常故。此卽離於二。
001_0663_a_19L亦不在一住。
001_0663_a_20L此下長者廣頌。有八行偈。卽爲五
001_0663_a_21L分。一者二頌。正演前義。二者二頌。
001_0663_a_22L破諸邪解。三者一頌。申1)己 [43] 正取。四
001_0663_a_23L者二頌。禮正說者。五者一頌。請說
001_0663_a_24L未聞。此卽第一正演前偈。於中有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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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3_b_01L첫째의 제1구와 제2구는 저 앞의 게송 가운데 제3구와 제4구를 연설한 것이다. 둘째의 제3구와 제4구는 저 앞의 게송 가운데 제1구와 제2구를 연설한 것이다. 셋째의 한 게송은 적멸과 생멸의 두 가지 뜻을 총체적으로 연설한 것이다.첫째에서 “제법은 본래부터 다 적멸한데”라고 한 것은 음·계·입 등의 법은 본래 적멸하기 때문이다. “그 적멸 또한 생긴 것 아니네.”는 비단 제법은 본래 적멸할 뿐만 아니라 적멸하다는 도리도 또한 무생이기 때문이다.제2의 게송 중 제3구의 “곧 생겨나고 소멸하는 일체법”은 음·계·입 등의 세속법이다.제4구의 “그 일체법은 무생이 아니라네.”는 분별로 기동하여 생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제와 속제가 동일하지 않은 문에 나아가 동動과 정靜이 잡란하지 않은 뜻을 드러낸 것이다.제3의 게송 중 “생멸법이 적멸법과 다른 것은”이란 저 적멸법과 무생법이 이 생멸법과는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단견 상견이 있기 때문이라네.”는 만약 저 적멸법과 무생법이 이 생멸법과 함께한다면 이 생멸법은 단변斷邊이 있는데 저 적멸법과 무생법의 상적常寂은 상변常邊이 있는 꼴이 되어 이승의 경우처럼 중도에 어그러지기 때문이다.그러나 부처님께서 설한 제1의 게송의 뜻은 단변과 상변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심법은 단과 상을 떠났지만”이라 한다. 그러나 동動과 정靜이 없지 않기 때문에 “또한 어디에도 머묾이 없네.”라고 한다.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은 일실의 자성과 일심의 자성을 고수하지 않는 것이고, 양변을 떠나 있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동動하고 정靜하여 두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불가사의한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 잘못된 견해를 타파함
경
若說法有一 제법을 하나뿐이라 설한다면
是相如毛輪 그 한 법의 상은 모륜과 같네74)
如燄水迷倒 아지랑이를 물로 보는 것처럼
爲諸虛妄故 모두 허망한 착각일 뿐이라네
若見於法無 만약 제법을 무라고 간주하면
是法同於空 법을 허공처럼 보는 것이므로
如盲無日倒 맹인이 해가 없다고 하듯이
說法如龜毛 법을 거북 터럭 같다고 설하네
논 이는 둘째로 잘못된 견해(邪解)를 타파하는 것이다. 잘못된 견해는 비록 많지만 크게 잘못된 것에 두 가지가 있다. 곧 심심한 교법에 의하여 말씀한 그대로만 가지고 뜻을 취하여(如言取義) 스스로 그것을 구경으로 간주하는 것은 교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001_0663_b_01L一者二句。演彼下半。二者二句。演
001_0663_b_02L彼上半。三者一頌。摠演二義。初言
001_0663_b_03L諸法本寂滅者。謂陰界等法。本來寂
001_0663_b_04L滅故。寂滅亦無生者。非但諸法本來
001_0663_b_05L寂滅。寂滅之理。亦無生故。第二中
001_0663_b_06L言是諸生滅法者。謂陰界等世俗法
001_0663_b_07L故。是法非無生者。從分別動。有生
001_0663_b_08L起故。是就眞俗非一之門。以顯動靜
001_0663_b_09L不雜亂義。第三中。言彼卽不共此者。
001_0663_b_10L謂彼寂滅無生之法。不與此生滅法
001_0663_b_11L共並故。爲有斷常故者。若彼與此共
001_0663_b_12L並有者。此法生滅。卽有斷邊。彼法
001_0663_b_13L常寂。卽有常邊。同二乘過。乖中道
001_0663_b_14L故。然佛所說一偈之義。不墮斷常故。
001_0663_b_15L此卽離於二。不無動靜故。亦不在一
001_0663_b_16L住。不在一住者。不守一實一心性故。
001_0663_b_17L離於二者。擧體動靜。非二法故。當
001_0663_b_18L知是事不可思議。
001_0663_b_19L若說法有一。是相如毛輪。如2)燄 [44] 水迷
001_0663_b_20L倒。爲諸虛妄故。
001_0663_b_21L若見於法無。是法同於空。如盲無日 [119] 倒。
001_0663_b_22L說法如龜毛。
001_0663_b_23L此是第二破諸邪解。邪解雖多。大邪
001_0663_b_24L有二。依甚深敎。如言取義。自謂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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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3_c_01L첫째는 동과 정이 둘이 아니라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곧 둘이 아니라는 그 하나를 일실과 일심이라고 말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이제의 도리를 비방하고 부정하는 것이다.둘째는 공과 유의 이문二門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두 가지 법만 있고 일실은 없다고 계탁하면서 이로 말미암아 무이의 중도를 비방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잘못된 견해는 약을 복용하다가 병을 얻은 꼴이므로 치유하기가 대단히 어렵다.이제 그 허물을 드러내는데, 여기 두 게송에서 차례로 그것을 드러낸다.처음에 말한 “제법을 하나뿐이라 설한다면”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실이 있다고 계탁하여75) 마치 자기가 계탁한 대로 일법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다.“그 한 법의 상은 모륜과 같네.”는 그가 간주한 일실법의 모습이 마치 눈병에 걸린 사람이 보는 모륜과 같은 것이다.“아지랑이를 물로 보는 것처럼”은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보고 물이라 말하면서 달려가 추구하는 것과 같아서 미혹하게 전도될 뿐이다. 일심이란 것이 있다고 계탁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모두 허망한 착각일 뿐이라네.”는 목마른 사슴이 물로 간주하고, 눈병 걸린 사람이 모륜으로 간주하며, 학사學士가 일심이라고 계탁하는 이와 같은 모든 계탁은 허망한 것이다.다음으로 없다는 견해76)를 타파한다.“만약 제법을 무라고 간주하면”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제만 있고 일심법은 없다고 계탁하는 것이다.“법을 허공처럼 보는 것이므로”는 그들이 일심은 공허한 도리와 같고 공허한 도리 이외에 본래 일실이란 없다고 계탁하는 것이다.“맹인이 해가 없다고 하듯이”는 맹인으로 태어난 빈궁한 걸인이 본래 햇살을 본 적이 없으므로 눈 있는 자가 해가 있다고 설해 주어도 그 맹인은 없다고 하면서 해가 있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전도일 뿐이다. 그들이 계탁하는 것도 또한 그렇다. 그들은 본래 공과 유에 대해서만 배웠기 때문에 무이중도無二中道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무이중도를 설해 주는 사람이 있어도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를 중도에 비유한 까닭은 -
001_0663_c_01L竟。難可化故。一者。聞佛所說動靜
001_0663_c_02L無二。便謂是一。一實一心。由是誹
001_0663_c_03L撥二諦道理。二者。聞佛所說空有二
001_0663_c_04L門。計有二法。而無一實。由此誹撥
001_0663_c_05L無二中道。是二邪解。服藥成病。甚
001_0663_c_06L難可治。今顯彼過。此二頌中。次第
001_0663_c_07L顯之。初言若說法有一者。謂如前說
001_0663_c_08L計有一實。如自所計。說有一法故。
001_0663_c_09L是相如毛輪者。謂彼所計一實法相。
001_0663_c_10L如目曀者所見毛輪故。如燄水迷倒
001_0663_c_11L者。謂如渴鹿。見燄謂水。馳走而求。
001_0663_c_12L直是迷倒。計有一心。亦如是故。爲
001_0663_c_13L諸虛妄故者。渴鹿見水。曀者見輪。
001_0663_c_14L學士計一。如是諸計。齊虛妄故。次
001_0663_c_15L破無見。若見於法無者。謂如前說。
001_0663_c_16L計有二諦。無一心法故。是法同於空
001_0663_c_17L者。彼計一心。同於空理。空理之外。
001_0663_c_18L本無一實故。如盲無日倒者。謂如
001_0663_c_19L生盲貧窮乞兒。本未曾見日輪光明。
001_0663_c_20L其有目者。爲說有日。盲者謂無。不
001_0663_c_21L信有日。直是顚倒。彼計亦爾。由彼
001_0663_c_22L本來唯學空有。而未曾聞無二中道。
001_0663_c_23L雖有說者。不信受故。所以日輪。喩
001_0663_c_24L「己」作「已」{甲}。「燄」作「焰」次同{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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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4_a_01L해는 원만하고 대광명이 있어서 오직 맹인을 제외하고는 보지 못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심의 경우도 또한 그렇다. 두루 원만하고 무결한 본각과 시각의 대광명을 비추어 믿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고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법을 거북 터럭 같다고 설하네.”는 저들 보지 못하는 이들은 일심법이 단지 이름일 뿐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마치 거북이 터럭과 같다고 설하니, 맹인이 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 바르게 취했음을 서술함
경
我今聞佛說 제가 지금에 불법을 듣고 나서
知法非二見 제법은 양변이 아님을 알았고
亦不依中住 중도에도 의지하지 않게 되니
故從無住取 무주를 통해 터득한 것이라네
논 이는 셋째로 바르게 취했음을 서술하는 것이다.“제법은 양변이 아님을 알았고”는 중도법은 유와 무의 견해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 것이다. 곧 위의 둘째에서 해가 없다고 전도된 경우를 떠나 있는 것이다.“중도에도 의지하지 않게 되니”는 비록 양변을 떠나 있지만 중도일실中道一實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곧 위의 첫째에서 모륜과 물의 경우처럼77) 허망한 것을 떠나 있는 것이다.이와 같이 저 양변78)의 과실을 떠나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주의 설법(詮)으로부터 설해진(所詮) 무주의 취지를 이해한다. 그러므로 “무주를 통해 터득한 것이네.”라고 한다.
(라) 설법한 자에게 예를 드림
경
如來所說法 여래께서 설해 주신 가르침은
悉從於無住 모두 무주를 통해서 나온다네
我從無住處 이에 저희도 무주의 도리에서
是處禮如來 그 맘으로 여래께 예배합니다
敬禮如來相 여래가 구비한 진리의 상호가
等空不動智 허공 같아 불변함에 예배하고
不著無處所 처소가 없음에도 집착이 없는
敬禮無住身 머묾 없는 법신에 예배합니다
논 이는 넷째로 설법자에게 예를 드리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의 한 게송은 설하는 사람에게 예배하고, 둘째의 제1구와 제2구는 설하는 사람의 지혜에 예배하며, 셋째의 제3구와 제4구는 설하는 사람의 몸에 예배한다.
㉮ 설하는 사람에게 예배함
첫째에서 “여래께서 설해 주신 가르침은 모두 무주를 통해서 나온다네.”라고 한 것은 부처님의 교법이 무주無住임을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이에 저희도 무주의 도리에서 그 맘으로 여래께 예배합니다.”라는 것은 -
001_0664_a_01L於中道者。日輪圓滿有大光明。唯除
001_0664_a_02L盲者。無不見故。一心亦爾。周圓無
001_0664_a_03L缺。有本始覺大光明照。除不信者。
001_0664_a_04L無不入故。說法如龜毛者。彼無見者。
001_0664_a_05L說一心法。但名無體。猶如龜毛。不
001_0664_a_06L異盲人。謂無日輪也。
001_0664_a_07L我今聞佛說。知法非二見。亦不依中住。
001_0664_a_08L故從無住取。
001_0664_a_09L此是第三自申正取。知法非二見者。
001_0664_a_10L知中道法。非有無解之所見故。卽離
001_0664_a_11L第二無日之倒。亦不依中住者。雖離
001_0664_a_12L二邊。不存中道一實而住。卽離第一
001_0664_a_13L輪水之妄。如是離彼二邊過失故。從
001_0664_a_14L佛敎無住之詮。領解所詮無住之旨。
001_0664_a_15L故言故從無住取也。
001_0664_a_16L如來所說法。悉從於無住。我從無住處。
001_0664_a_17L是處禮如來。
001_0664_a_18L敬禮如來相。等空不動智。不着無處所。
001_0664_a_19L敬禮無住身。
001_0664_a_20L此是第四禮能說者。於中有三。一者
001_0664_a_21L一頌。禮能說者。二者二句。禮能說
001_0664_a_22L智。三者二句。禮能說身。初中言如
001_0664_a_23L來所說法。悉從於無住者。謂佛敎法
001_0664_a_24L順從無住故。我從無住處是處禮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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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4_b_01L가르침에 의하여 무주의 도리를 따른 여래야말로 가장 존중해야 할 분임을 널리 알게 되었으므로 여기에서 설법자에게 예배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무주’라고 한 것은 이제二諦에도 집착하지 않고 중도中道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중도에 있지 않지만 양변을 떠나 있다. 이와 같은 것을 무주의 도리라 한다.
㉯ 설하는 사람의 지혜에 예배함
둘째에서 “여래가 구비한 진리의 상호가”라고 한 것은 상호로써 여래의 모습을 삼은 것이 아니라 부동지로써 여래의 모습을 삼은 것이다.“허공 같아”는 여래의 지혜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 허공계처럼 두루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불변함에”는 일체의 끝이 없는 삼세에 널리 통달한 것인데, 삼세는 흘러가지만 지혜의 작용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 설하는 사람의 몸에 예배함
셋째에서 “집착이 없는”이라 한 것은 법신이 양변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처소가 없음에도”는 중간에도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묾 없는 법신에 예배합니다.”라고 한다.
(마) 아직 듣지 못한 것을 설해 달라고 청함
경
我於一切處 저희들은 일체 온갖 처소에서
常見諸如來 항상 모든 여래를 친견합니다
唯願諸如來 이제 바라건대 오직 여래께선
爲我說常法 저희에게 상법을 설해 주소서”
논 이것은 다섯째로 아직 듣지 못한 것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여기서 제1구와 제2구는 자신이 항상 친견함을 서술하고, 제3구와 제4구는 상법常法을 설해 줄 것을 청한다.자신이 서술한 뜻은 다음과 같다. “제가 모든 변견을 떠나서 무주의 지혜를 터득한 까닭에 낱낱의 미진 속에서 항상 시방의 한량이 없는 제불을 친견합니다. 시방세계의 모든 미진 속에서 한량이 없는 제불을 친견하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일체 온갖 처소에서 항상 모든 여래를 친견합니다.”라고 한다. 『화엄경』에서 “하나의 미진 속에서 빠짐없이 한량이 없는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나의 미진 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미진 속에서도 또한 그렇다.”79)고 하였다.이와 같은 위신력으로 영원한 법(常法)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바라건대 상법을 설해 주심을 듣고자 한다는 것이다.
④ 과의 상주법常住法에 들어감
이하는 넷째로 과果의 상주법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래의 설법이고, 둘째는 장자의 연설이며, 그 셋째는 대중이 획득한 이익이다.
가. 여래의 설법
첫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설법을 허락하고, 둘째는 본격적인 설법이다.
가) 설법을 허락함
경 그때 여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모든 선남자여, 그대들은 잘 듣거라. -
001_0664_b_01L來者。依敎得從於無住處。彌知如來
001_0664_b_02L最可尊重故。於是處禮能說者。此中
001_0664_b_03L言無住者。不住二諦。亦不在中。雖
001_0664_b_04L不在中。而離二邊。如是名爲無住處
001_0664_b_05L也。第二中言如來相者。不以相好爲
001_0664_b_06L如來相。以不動智爲如來相。言等空
001_0664_b_07L者。謂如來智無量無邊。等虛空界
001_0664_b_08L無所不遍故。言不動者。遍達一切無
001_0664_b_09L邊三世。世有遷流。智用不移故。第
001_0664_b_10L三中言不着者。法身離二邊故。無處
001_0664_b_11L所者。中間無所住故。故言敬禮無住
001_0664_b_12L身也。
001_0664_b_13L我於一切處。常見諸如來。唯願諸如來。
001_0664_b_14L爲我說常法。
001_0664_b_15L此是第五問所未聞。於中上半。自申
001_0664_b_16L常對。下之二句。請說常法。自申意
001_0664_b_17L者。我離諸邊。得無住智故。能一一
001_0664_b_18L微塵之中。常見十方無量諸佛。十方
001_0664_b_19L世界諸微塵中。無處不見無量諸佛。
001_0664_b_20L故言一切處常見諸如來。如華嚴經
001_0664_b_21L言。於一微塵中普見無量佛。如一微
001_0664_b_22L塵中一切塵亦然。故有如是力。堪
001_0664_b_23L聞常法。所以願聞說常法也。
001_0664_b_24L爾時。如來而作是言。諸善男子。汝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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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4_c_01L그대들을 위하여 영원한 법(常法)을 설하겠다.
논 이는 설법을 허락한 것이다.
나) 본격적인 설법
경 선남자여, 상법은 상법이 아니다.80) 그래서 언설도 없고 문자도 없으며, 진리도 없고 해탈도 없다. 없는 것도 없고 경계도 없지만 모든 허망과 단멸의 변견을 떠나 있다. 이 상법은 무상도 없지만 모든 상견과 단견을 떠나 있다. 그러므로 분명하게 본다면 분별식이 그대로 상법이 된다. 이에 그 식이 항상 적멸하고 그 적멸도 또한 적멸하다.
논 이하는 둘째로 본격적인 설법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영원한 증과(常果)를 설명하고, 둘째는 영원한 인행(常因)을 설명한다.
(가) 영원한 증과(常果)를 설명함
첫째에 두 구절이 있으니, 법의 영원함(法常)과 부처의 영원함(佛常)이다.
㉮ 법의 영원함
첫째에서 “상법은 상법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께서 사표로 삼은 법신의 자체는 생멸상을 떠나 있으므로 ‘상법’이라 하고, 상주의 자성을 떠나 있으므로 ‘상법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다.“언설도 없고 문자도 없다.”는 것은 설명하는 주체의 명칭과 언어가 없는 것이다.“진리도 없고 해탈도 없다.”는 것은 설명되는 객체의 일실의一實義를 초월한 것이다.“없는 것도 없고 경계도 없지만 모든 허망과 단멸의 변견을 떠나 있다.”는 것은 필경무畢竟無도 없고 또한 만유의 경계도 없는데, 만유의 경계가 없으므로 망집의 경계를 떠나 있고, 무無가 없으므로 단견의 경계를 떠나 있다. ‘변견’은 경계의 다른 명칭이다.“이 상법은 무상도 없지만 모든 상견과 단견을 떠나 있다.”는 것은 무상이 없으므로 모든 단견이 없고, 또한 이것은 상법이므로 모든 상견을 떠나 있다. 곧 상견에 집착된 것은 상법이 아니기 때문이다.이상은 법의 영원함을 설명한 것이다.
㉯ 부처의 영원함
다음은 부처의 영원함을 드러낸다.“분명하게 본다면 분별식이 그대로 상법이 된다.”는 것은 저 영원한 법을 구경에 분명하게 본다면 분명하게 보는 순간 제식이 상常이 된다. 왜냐하면 깨치기 이전에는 무명을 따라 본정심本靜心이 기동했지만, 깨친 이후는 분명하게 봄을 따라 본정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그 식이 항상 적멸하다.”는 것은 -
001_0664_c_01L諦聽。爲汝衆等。說於常法。
001_0664_c_02L此下第四入果常法。於中有三。一如
001_0664_c_03L來說。二長者演。其第三者。大衆得
001_0664_c_04L益。初中有二。許說。正說。此卽許說。
001_0664_c_05L善男子。常法非常法。非說亦非字。非
001_0664_c_06L諦非解脫。非無非境界。離諸妄斷際。
001_0664_c_07L是法非無常。離諸常斷見。了見識爲常。
001_0664_c_08L是識常寂滅。寂滅亦寂滅。
001_0664_c_09L此下第二正說。於中有二。先說常果。
001_0664_c_10L後示常因。初中二句。法常。佛常。初
001_0664_c_11L中言常法非常法者。謂佛所師法身
001_0664_c_12L之體。離生滅相。故曰常法。離常住
001_0664_c_13L性。故非常法。非說亦非字者。絕能詮
001_0664_c_14L名言故。非諦非解脫者。超所詮實義
001_0664_c_15L故。非無非境界。離諸妄斷際者。非
001_0664_c_16L畢竟無。亦非有境。非有境故。離妄
001_0664_c_17L執境。而非無故。離斷見境。際者。境
001_0664_c_18L界之異名也。是法非無常。離諸常斷
001_0664_c_19L見者。非無常故離諸斷見。而是法
001_0664_c_20L故。離諸常見。常見所取非是法故。
001_0664_c_21L已明法常。次顯佛常。了見識爲常者。
001_0664_c_22L於彼常法。究竟了見。了見之時。諸
001_0664_c_23L識爲常。所以然者。前隨無明。動本
001_0664_c_24L靜心。今隨了見。歸本靜故。是識常
-
001_0665_a_01L제식은 본래 생도 없고 멸도 없다. 곧 생멸이 없으므로 제식의 자성이 항상 적멸하다.지금 분명하게 보는 순간, 이와 같은 적멸의 제식까지 영원히 적멸하므로 “그 적멸도 또한 적멸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저 적멸한 제식은 곧 무상법인데 그 무상법을 소멸시켜야 이에 상법이 터득되기 때문이다.이하 「총지품」에서 이 뜻을 이어서 드러낸다. 또한 이 본래 적멸한 자성은 상의 자성(常性)을 고수하지 않으므로 “또한 적멸하다.”고 한다.
(나) 영원한 인행(常因)을 보여 줌
이하는 둘째로 그 영원한 인행(常因)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별적인 설명이고, 둘째는 총체적인 결론이다.
㉮ 개별적인 설명
개별적인 설명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증관眞證觀이고, 둘째는 방편관方便觀이다.
a. 진증관眞證觀
경 선남자여, 제법이 적멸한 줄 아는 자는 마음을 적멸케 하지 않으니, 마음은 항상 적멸하기 때문이다. 적멸을 터득한 자는 마음으로 항상 진증관을 행한다.
논 첫째에서 “제법이 적멸한 줄 아는 자”라고 한 것은 초지 이상에서 일체법이 본래 적멸한 줄을 아는 것이다. 이미 기동이 없는 줄 알기 때문에 마음을 적멸케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을 적멸케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항상 적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지所知의 적멸을 드러낸 것이다.“적멸을 터득한 자는 마음으로 항상 진증관을 행한다.”는 것은 곧 증득의 주체인 마음이 상주하면서 증득의 대상이 되는 도리를 따라 생멸상을 떠나서 항상 진조관眞照觀(眞證觀)을 잃지 않음을 설명한 것이다.
b. 방편관方便觀
경 모든 명칭과 색상은 오직 어리석은 마음에서 일어난 것81)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어리석은 마음의 분별로써 제법을 분별한 것이지 그 밖의 다른 것이 명칭과 색상을 출현시킨 것이 아니다. 제법이 이와 같은 줄 알면 문자 및 언어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마다 진실한 의미에 계합하여 아我를 분별하지 않는다.
논 이는 둘째로 방편관을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식의 심尋과 사思를 설명하고, 둘째는 여실지如實智를 드러낸다.
a) 유식의 심尋과 사思를 설명함
첫째의 “그 밖의 다른 것이 명칭과 색상을 출현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에서 명칭은 사온四蘊(受蘊·想蘊·行蘊·識蘊)이고, 색상은 색온色蘊이다. 모든 불상응법不相應法은 가립된 것으로 이 명칭과 색상을 떠나서 다시는 별도의 체가 없다. -
001_0665_a_01L寂滅者。諸識。本來無生無滅。無生滅
001_0665_a_02L故。性常寂滅。今了見時。永滅如是
001_0665_a_03L寂滅之識。故言寂滅亦寂滅也。所以
001_0665_a_04L然者。彼寂滅識。是無常法。所以滅彼。
001_0665_a_05L乃得常故。至下摠持品。是義當顯。
001_0665_a_06L又此本來寂滅之性。不守常性。故言
001_0665_a_07L亦寂滅。
001_0665_a_08L善男子。知法寂滅者。不寂滅心。心常
001_0665_a_09L寂滅。得寂滅者。心常眞觀。
001_0665_a_10L此下第二示其常因。於中有二。別明。
001_0665_a_11L摠結。別中亦二。先眞證觀。後方便
001_0665_a_12L觀。初中言知法寂滅者者。初地已上。
001_0665_a_13L知一切法。本來寂滅故。旣知無起。故
001_0665_a_14L不滅心。不滅心者。常寂滅故。是顯
001_0665_a_15L所知之寂滅也。得寂滅者心常眞觀
001_0665_a_16L者。是明能證之心常住。隨所證理
001_0665_a_17L離生滅相。而恆不失眞照觀故。
001_0665_a_18L知諸名色。唯是癡心。癡心分別。分別
001_0665_a_19L諸法。更無異事。出於名色。知法如是。
001_0665_a_20L不隨文語。 [120] 心心於義。不分別我。
001_0665_a_21L是第二明其方便觀。於中有二。先明
001_0665_a_22L唯識尋思。後顯其如實智。初中言更
001_0665_a_23L無異事。出於名色者。名謂四蘊。色
001_0665_a_24L是色蘊。諸不相應。皆假建立。離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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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5_b_01L그러므로 모든 유위의 현상은 다 명칭과 색상에 섭수된다. 이와 같이 제법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므로, 마음을 떠나서 경계가 없고 경계를 떠나서 마음이 없다. 이것을 유식의 심尋과 사思라 한다. 『화엄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心如工畫師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畫種種五陰 온갖 오음을 그려 내네
一切世間中 일체의 세계 가운데에
無法而不造 만들어 내지 못함 없네
如心佛亦爾 마음처럼 부처도 그렇고
如佛衆生然 불처럼 중생도 그러하며
心佛及衆生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是三無差別 이 셋은 차별이 없다네82)
故已明尋思 이상은 심과 사를 설명한 것이다.
b) 유식의 여실지如實智를 드러냄
다음으로 여실지를 드러낸다.“제법이 이와 같은 줄 알면 문자 및 언어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은 명名의 심·사에 의해 이끌려 나온 여실지이다.“마음마다 진실한 의미에 계합한다.”는 것은 뜻(義)의 심·사에 의해 이끌려 나온 여실지이기 때문이다. 인아와 법아에는 모두 여실지의 뜻이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아를 분별하지 않는다.
㉯ 총체적인 결론
경 그래서 아我가 가명인 줄 알면 곧 적멸을 터득한다. 만약 적멸을 터득하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한다.”
논 이는 둘째로 앞의 두 가지에 대해 총체적으로 결론83)지은 것이다. 앞의 방편관을 결론지어 진증관을 터득하고, 또한 앞의 진증관을 결론지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를 터득한다.
나. 장자의 연설
이하는 둘째84)로 장자가 연설하는 것이다. 여덟 게송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의 두 게송 반은 부처님 교법의 뜻을 판별하고, 둘째의 다섯 게송은 양변의 집착을 타파하며, 셋째의 마지막 두 구도 또한 무이관無二觀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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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5_b_01L名色。更無別體故。諸有爲之事。皆爲
001_0665_b_02L名色所攝。如是諸法。唯心所作。離
001_0665_b_03L心無境。離境無心。如是名爲唯識尋
001_0665_b_04L思。如華嚴經言。心如工畵師。畵種
001_0665_b_05L種五陰。一切世間中。無法而不造。
001_0665_b_06L如心佛亦爾。如佛衆生然。心佛及衆
001_0665_b_07L生。是三無差別。故已明尋思。次顯
001_0665_b_08L如實智。知法如是不隨文語者。是名
001_0665_b_09L尋思所引如實智故。心心於義不分
001_0665_b_10L別我者。是義尋思所引如實智故。
001_0665_b_11L人法二我。皆無有義。所以於中不
001_0665_b_12L分別故。
001_0665_b_13L知我假名。卽得寂滅。若得寂滅。卽得
001_0665_b_14L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1_0665_b_15L此是第二摠結前二。結前方便而
001_0665_b_16L得眞觀。又結眞觀得菩提果。
001_0665_b_17L爾時長者梵行。聞說是語。而說偈言。
001_0665_b_18L名相分別事。及法名爲三。眞如正妙智。
001_0665_b_19L及彼成於五。我今知是法。斷常之所繫。
001_0665_b_20L入於生滅道。是斷非是常。如來說空法。
001_0665_b_21L遠離於斷常。
001_0665_b_22L此下第二長者演說。於中八頌。卽
001_0665_b_23L有三意。初二頌半。判佛敎意。次有
001_0665_b_24L五頌。破二邊執。最後二句。亦無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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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5_c_01L가) 부처님 교법의 뜻을 판별함
경 그때 범행장자가 이 말씀을 듣고서 게송을 설하여 여쭈었다.
名相分別事 명칭과 색상 및 분별망상의
及法名爲三 이런 법들을 셋이라 말하고
眞如正妙智 진여 및 정묘지까지 합하면
及彼成於五 그것은 모두 다섯이 된다네85)
我今知是法 제가 지금 이해하는 법이란
斷常之所繫 단견과 상견에 얽매여 있고
入於生滅道 생멸의 가르침에 들어 있어
是斷非是常 단멸일 뿐이지 상법 아닌데
如來說空法 여래가 설한 공의 가르침은
遠離於斷常 단상견을 멀리 떠나 있다네
논 첫째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의 두 게송은 양변의 가르침에 떨어지는 것을 설명하고, 둘째로 두 구는 양변의 가르침을 떠나 있음을 드러낸다.
(가) 양변의 가르침에 떨어지는 것을 설명함
첫째에서 “명칭과 색상”이라 한 것은 명名·구句·자字이다. 구는 명으로 성취된 것이고, 자는 명이 의지하는 것이니, 모두 명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이를 합하여 ‘명칭과 색상’이라 한다.“분별망상(分別事)”은 유루의 심과 심법의 행위이다.“이런 법들을”은 앞의 명칭과 색상의 두 가지를 제외한 모든 법상이다. 곧 명名·구句의 소전과 분별의 소연으로서, 십색처十色處 및 법처法處 중의 색불상응 등 모든 법상을 가리킨다.명칭과 색상과 분별망상의 세 가지 법은 같은 부류로서 잡염상雜染相임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별도로 “셋이라 말한다.”고 설한다.“진여”는 정지正智의 경계이다.“정묘지”는 근본지와 후득지의 이지二智이다.“그것은 모두”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를 가리킨다. 그래서 여기 두 가지와 앞의 세 가지를 합하면 다섯 가지가 된다. 이것은 삼승교문의 법상을 언급한 것이다.“제가 지금 이해하는 법이란 단견과 상견에 얽매여 있고”는 저 삼승교문에서 설한 바 다섯 가지가 단견과 상견의 집착에서 떠나 있지 못함을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저 네 가지 법(명칭·색상·분별망상·진여) 가운데 앞의 세 가지 법은 생멸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단견에 집착하는 경계를 떠나 있지 못하고, 또 한 가지 진여법은 상주하는 자성으로서 상견에 집착하는 경계를 떠나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생멸의 가르침에 들어 있어 단멸일 뿐이지 상법 아니다.”라는 것은 앞의 세 가지 및 정묘지正妙智의 법은 모두 사상四相을 지니고 있어 생멸도生滅道에 포함되는 것으로 곧 단견의 입장이므로 상견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점을 별도로 설명한 것이다. 곧 진여는 상유도常有道에 포함되는 것으로 곧 상견의 입장이므로 단견의 입장과는 다르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나) 양변의 가르침을 떠나 있음을 드러냄
“여래가 설한 공의 가르침은 단상견을 멀리 떠나 있다네.”는 일승교에서 설하는 삼공법은 단견과 상견의 과실을 멀리 떠나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저 앞에서 설한 “공상도 또한 공한 것이고, 공공도 또한 공한 것이며, 소공도 또한 공한 것을 말한다.”86)와 같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삼공은 진과 속을 부정하지도 않고, -
001_0665_c_01L觀。初中有二。前二頌。明墮二邊敎。
001_0665_c_02L後二句。顯離二邊敎。初中言名相者。
001_0665_c_03L謂名句字。句是名所成。字是名所資。
001_0665_c_04L皆能表名。合爲名相也。分別事者。
001_0665_c_05L謂諸有漏心心法事。言及法者。謂除
001_0665_c_06L前二所有法相。名句所詮。分別所緣。
001_0665_c_07L謂十色處。及法處中色不相應等諸
001_0665_c_08L法相也。是三一類。明雜染相。所以
001_0665_c_09L別說。名爲三也。言眞如者。謂正智
001_0665_c_10L境。正妙智者。本後二智。言及彼者。
001_0665_c_11L及彼前三。此二及彼三。合成於五事。
001_0665_c_12L是擧三乘敎門法相。我今知是法斷
001_0665_c_13L常之所繫者。明彼敎門所說五事。不
001_0665_c_14L離斷常二見所着。所以然者。彼四種
001_0665_c_15L法。帶生滅相。不離斷見所着之境。
001_0665_c_16L其眞如法。是常住性。不離常見所取
001_0665_c_17L之境。故入於生滅道。是斷非是常者。
001_0665_c_18L別明前三。及正智法。皆帶四相。入
001_0665_c_19L生滅道。直是斷邊。異於常邊。卽顯
001_0665_c_20L眞如。入常有道。直是常邊。異斷邊
001_0665_c_21L也。如來說空法遠離於斷常者。明
001_0665_c_22L一乘敎說三空法。遠離斷常二邊過
001_0665_c_23L失。所以然者。如前所說。空相亦空。
001_0665_c_24L空空亦空。所空亦空。如是三空。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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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6_a_01L진과 속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비록 동動과 정靜을 떠나 있으면서 그 중간에도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단견의 입장과 상변을 멀리 떠나 있다.
나) 양변의 집착을 타파함
이하는 둘째로 양변의 집착을 타파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네 게송은 유견의 입장의 집착을 타파하고, 둘째의 한 게송은 공견의 입장의 집착을 부정한다.
(가) 유견의 입장의 집착을 타파함
첫째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의 두 게송 반은 그 유집을 타파하고, 뒤의 한 게송 반은 저 진공을 보여 준다.
㉮ 그 유집을 타파함
첫째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의 한 게송 반은 인연집을 타파하고, 둘째의 한 게송은 그 밖의 삼연三緣을 타파한다.
a. 인연집을 타파함
경
因緣無不生 인연은 본무로 불생이 되니
不生故不滅 불생인 까닭에 불멸이 되네87)
因緣執爲有 인연을 곧 유라고 집착하면
如採空中華 허공 꽃을 따려는 행위이고
猶取石女子 아이 낳으려는 석녀와 같아
畢竟不可得 필경에 결코 가능하지 않네
논 첫째에서 “인연은 본무로 불생이 되니”라고 한 것은 근본식 중의 일체종자가 이숙식에 즉해 있거나 떠나 있는 것이 모두 불가득이라는 것이다. 즉해 있다면 이숙과 같을 것이고, 떠나 있다면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다. 즉해 있지도 않고 떠나 있지도 않고 또 존재하지도 않아서 마치 물병이나 집처럼 단지 명칭만 있을 뿐이다. 이런 도리를 말미암아 발생도 없고 소멸도 없지만 삼승의 언교에 의거한 학자는 인연종자가 실유實有한 것이라고 굳게 집착한다. 곧 어리석은 자가 허공의 꽃을 따려는 것과 다르지 않고, 또 석녀가 아이를 낳으려는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연의 경우도 영원히 불가득하다. 여기에서 허공의 꽃은 오염된 종자를 비유한 것인데 그것을 따서 없애려 하기 때문이고, 석녀의 아이는 청정한 종자를 비유한 것인데 그것을 낳아서 기르려 하기 때문이다.
b. 그 밖의 삼연三緣을 타파함
경
離諸因緣取 인연으로 생을 취하지 말고
亦不從他滅 거기서 소멸 취함도 안 되며
及於己義大 자기와 의와 사대까지 없어
依如故得實 진여에 의지해 실제를 얻네88)
논 이는 둘째로 그 밖의 세 가지 인연(三緣)을 타파하는 것이다.만약 모든 종자의 인연을 떠났지만 그 밖의 세 가지 인연을 취하고 그로부터 발생한다고 계탁하면 그와 같은 집착은 결코 도리에 맞지 않다. 그래서 경문에서 또한 “거기서 소멸을 취해도 안 되네.”라고 한다. 여기에서 ‘거기서’라고 한 것은 -
001_0666_a_01L壞眞俗。不存眞俗。雖離動靜。不住
001_0666_a_02L中間。所以遠離斷常邊也。
001_0666_a_03L因緣無不生。不生故不滅。因緣執爲有。
001_0666_a_04L如採空中華。猶取 [121] 石女子。畢竟不可得。
001_0666_a_05L此下第二破二邊執。於中有二。一者
001_0666_a_06L四頌。破有邊執。二者一頌。奪空邊
001_0666_a_07L着。初中有二。前二頌半。破其有執。
001_0666_a_08L後一頌半。示彼眞空。初中亦二。初
001_0666_a_09L一頌半。破因緣執。次有一頌。破餘
001_0666_a_10L三緣。初中言因緣無不生者。謂本
001_0666_a_11L識中一切種子。與異熟識。若卽若
001_0666_a_12L離。皆不可得。卽如異熟。離猶兎角。
001_0666_a_13L不卽不離。亦無所有。如甁舍等。但
001_0666_a_14L有名故。由是道理。無生無滅。而依
001_0666_a_15L三乘言敎學者。定執實有因緣種子。
001_0666_a_16L不異愚者。欲採空華。亦如欲取石女
001_0666_a_17L之子。同彼因緣。永不可得。此中空
001_0666_a_18L華。喩於染種。爲採滅故。石女兒者。
001_0666_a_19L喩於淨種。爲取養故。
001_0666_a_20L離諸因緣取。亦不從他滅。及於1)己義
001_0666_a_21L大。依如故得實。
001_0666_a_22L此是破餘三緣。若有離諸種子因緣。
001_0666_a_23L取餘三緣。計從彼生。作如是執。亦
001_0666_a_24L不應理。如經亦不從他滅故。此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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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6_b_01L증상연과 소연연이다. 마치 안식의 발생은 안근이 색경을 반연함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안근과 색경은 안식과 동시이지만 식의 자성은 아니므로 ‘거기서’라고 한다. 그러나 등무간연은 비록 식과 동류일지라도 자체가 이미 소멸한 까닭에 ‘소멸’이라 한다. ‘거기서(증상연과 소연연)’와 ‘소멸’은 모두 자성이 없다. 이런 까닭에 식의 발생도 또한 세 가지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다음에 말한 “자기와 의와 사대까지 없어”는 다시 어떤 사람이 “오온·십팔계·십이입 등의 법은 미래세까지도 각각 자기의 자체가 있으므로 아직은 발현해 있지 않지만 이 자기의 자체로부터 언제든지 그 현재에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 계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자기와 의와 사대까지 없어”라고 한다.제2구의 “(거기서 소멸 취함도) 안 되며(不從)”라는 말은 제3구에까지 걸리는 말이다.89) 여기에서 “의義”라고 한 것은 오음과 십팔계와 십이입이고, “사대(大)”는 지·수·화·풍의 사대이니, 앞서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법을 본유本有의 자체라고 계탁하는 까닭에 “자기와 의와 사대”라 하였다.“진여에 의지해 실제를 얻네.”는 범행장자 자신이 제유諸有에 대한 집착을 타파할 수 있었던 것은 진여의 도리에 의거하여 타파한 것이므로 실제의 뜻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 저 진공을 보여 줌
경
是故眞如法 이와 같은 까닭에 진여법은
常自在如如 늘 자재하고 또 여여하므로
一切諸萬法 일체 모든 삼라만상의 법도
不如識所化 모든 분별식의 변화 아니네90)
離識法卽空 식을 떠나면 제법이 공이니
故從空處說 공의 도리를 따라 설한다네
논 이는 둘째로 저 진공의 법을 보여 주는 것이다.“이와 같은 까닭에”는 앞에서 말한 제유諸有에 대한 집착은 모두 허망하므로 그것을 타파하는 자는 실제를 터득하기 때문이다. 진여는 부동하므로 허망한 법은 성취되지 못한다.“모든 분별식의 변화”는 모든 분별식으로 계탁된 바이다. 분별식으로 계탁된 모습은 도리가 없고 단지 분별의 생각에 따라 있는 것이므로 ‘변화’라고 한다. 곧 제법이 진여가 아니고 모든 분별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분별식을 떠나 있는 제법은 공하여 무소유하다. 이런 까닭에 나(범행장자)는 공의 도리에서 진여를 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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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6_b_01L他者。謂增上緣。及所緣緣。如眼識
001_0666_b_02L生。依眼緣色。如是眼色。與識俱時。
001_0666_b_03L而非識性。故名爲他。等無間緣。雖
001_0666_b_04L是識類。而體已滅。故名爲滅。若他
001_0666_b_05L若滅。皆無自性。是故識生。亦不從
001_0666_b_06L彼。次言及於己義大者。復有計言蘊
001_0666_b_07L界等法。未來世中。各有己體。而未
001_0666_b_08L生現。從此己體。而生現在。爲遮此
001_0666_b_09L計。故言亦不從及於己義大。上句不
001_0666_b_10L從之言。貫於此下句故。此言義者。
001_0666_b_11L謂陰界入。大者四大。如前說故。計
001_0666_b_12L此等法。本有自軆。以之故言。己義
001_0666_b_13L大也。依如故得實者。謂我能破諸有
001_0666_b_14L執者。依如理破。故得實義。
001_0666_b_15L是故眞如法。常自在如如。一切諸萬法。
001_0666_b_16L不如識所化不惑
作非。離識法卽空。故從空
001_0666_b_17L處說。
001_0666_b_18L此是第二示眞空法。言是故者。是
001_0666_b_19L前執有。皆是虛妄。其能破者。得實
001_0666_b_20L之故。眞如不動妄法不成也。識所化
001_0666_b_21L者。謂識所計。彼所計相。理無所有。
001_0666_b_22L直從情有。故名所化。諸法非如識
001_0666_b_23L所化故。離識之法。空無所有。是故
001_0666_b_24L我從空處說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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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6_c_01L(나) 이승이 공견에 집착함을 부정함
경
滅諸生滅法 모든 생멸의 법을 소멸시켜
而住於涅槃 열반의 경지에 머문다 해도
大悲之所奪 대비로써 열반 마음 버리고
涅槃滅不住 열반을 멸하여 머물지 않네
논 위에 나온 경문은 범부가 있음에 집착함을 타파한 것이다. 지금 이 게송도 또한 이승이 공에 집착하는 것을 부정한 것이다. 즉 이승인은 모든 몸과 지혜 등 생멸법을 소멸시켜 열반에 들어가 거기에서 팔만 겁을 머물거나 만겁을 머물지만, 제불의 동체대비를 말미암아 그 열반을 버리고 다시 대비의 마음을 일으킨다. 대비심을 일으킬 때 열반이 곧 소멸된다. 마치 대상大商의 주인이 그 화성化城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그 열반에 다시 머물지 않는다. 이승인들이 무심할 경우91)에는 아직 생멸법을 제대로 타파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불은 그 열반까지도 버리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것을 인유하여 이승인들이 아직 실제에 들어가지 못한 생각을 방지해 주었다.이상은 유와 무의 양변을 타파한 것이다.
다) 무이관無二觀을 보여 줌
경
轉所取能取 소취와 능취를 전변해야 곧
入於如來藏 여래장에 들어갈 수 있다네”
논 이는 셋째로 무이관無二觀을 보여 주는 것이다.이미 범부와 성인의 양변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였으므로, 지금 저 범부와 성인의 두 대중을 전변시켜 주체와 대상이 평등한 무이관에 들도록 한 것이다.이상의 여덟 게송은 범행장자가 연설한 것이다.
다. 대중이 터득한 이익
경 그때 대중이 설법한 그 뜻을 듣고 모두 정명正命을 터득하고 여래와 여래장해에 들어갔다.92)
논 이는 셋째로 대중이 터득한 이익이다.“정명을 터득하였다.”는 것은 유변과 무변을 떠나서 중도의 올바른 혜명을 터득한 것이다.“여래에 들어갔다.”는 것은 여래지혜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여래장해에 들어갔다.”는 것은 본각의 깊고 넓은 뜻에 들어간 것이다.
2. 총체적으로 모든 의심을 해결함(「총지품」)
논 여기 「총지품」에서는 앞의 모든 품의 의문점을 해결하고 요의를 총지하여 잊지 않도록 하였다. -
001_0666_c_01L滅諸生滅法。而住於涅槃。大悲之所奪。
001_0666_c_02L涅槃滅不住。
001_0666_c_03L上文已破凡夫執有。此頌亦奪二
001_0666_c_04L乘住空。謂二乘人。滅諸身智生滅之
001_0666_c_05L法。入於涅槃。於中八萬劫住。乃至
001_0666_c_06L十千劫住。而由諸佛同軆大悲。奪彼
001_0666_c_07L涅槃。令還起心。起心之時。涅槃卽
001_0666_c_08L滅。如大商主。滅其化城。是故於中。
001_0666_c_09L不復住也。彼無心時。不得正破。直
001_0666_c_10L顯諸佛。奪彼涅槃。因是遮彼未入者
001_0666_c_11L志。上來已破有無二邊。
001_0666_c_12L轉所取能取。入於如來藏。
001_0666_c_13L此是第三示無二觀。已破凡聖二邊
001_0666_c_14L之執故。今轉彼凡聖二衆。令入能所
001_0666_c_15L平等之觀。上來八頌。長者演也。
001_0666_c_16L爾時。大衆聞說是義。皆得正命。入於
001_0666_c_17L如來。如來藏海。
001_0666_c_18L此是第三大衆得益。得正命者。離有
001_0666_c_19L無邊。而得中道正慧命故。入如來者。
001_0666_c_20L已入如來智之分故。入如來藏海者。
001_0666_c_21L入於本覺深廣義故。
001_0666_c_22L摠持品2)第八 [45]
001_0666_c_23L此中決前諸品中疑。摠持要義而不
001_0666_c_24L「己」作「已」次同{甲}。「第八」無{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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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7_a_01L그러므로 행하는 것을 따라 ‘총지’라 한다. 또한 지장보살이 이미 문의다라니文義陀羅尼를 터득한 까닭에 모든 품에 들어 있는 경문의 뜻을 총지하고, 대중이 일으킨 의심의 내용을 기억해서 차례대로 질문하여 모든 의심을 잘 해결하였다. 그러므로 묻는 주체의 입장에서 ‘총지’라 한다.93)「정설분」을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미관행을 개별적으로 설명한 것은 이전 품까지 마쳤다. 이하는 둘째로 총체적으로 모든 의심을 해결한 것이다. 경문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청하고, 둘째는 허락하며, 셋째는 해결해 주고, 넷째는 이해시킨다.
1) 청함, 2) 허락경 그때 지장보살이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이르러 합장을 하고 한 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제가 대중을 관찰해 보니 그 마음에 의심하는 것이 있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래께서는 그 의심을 없애 주려 하시니, 제가 대중을 위하여 의심나는 바를 여쭙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써 불쌍하게 여기어 질문을 허락해 주십시오.”9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보살마하살이여, 그대가 이와 같이 중생을 제도하니, 그것은 곧 대비로서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대는 마땅히 자세히 질문하라. 그대를 위해 설법을 해 주겠다.”
논 이는 질문과 답변으로서 곧 청함과 허락이다.여기에서 청하는 자는 지장보살이다. 이 사람은 이미 동체대비同軆大悲를 터득하여 일체중생의 선근을 생장시키니, 마치 대지가 모든 초목을 발생시켜 주는 것과 같다. 또 다라니가 지니고 있는 모든 공덕으로 일체중생에게 끝없이 베풀어 준다. 마치 큰 보배창고(大寶藏)의 진보珍寶가 끝없는 것과 같다. 이 두 가지 뜻을 말미암아 지장이라 한다. 지금 이 「총지품」에서는 모든 의혹을 해결하고, 모든 신해를 발생하며, 모든 것을 결단하는 보배를 나타내어 법을 추구하는 대중에게 베풀어 준다. 이처럼 뜻이 지장이라는 명칭95)에 합당하므로 청문請問할 수 있다.
3) 해결해 줌경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일체의 제법이 어째서 인연으로 발생한 것(緣生)이 아닙니까?” -
001_0667_a_01L忘失。故從所爲。名曰摠持。又地藏
001_0667_a_02L菩薩。已得文義陁羅尼故。摠持諸品
001_0667_a_03L所有文義。及憶大衆起疑之處。次第
001_0667_a_04L發問。善決諸疑。故從能問。名曰摠
001_0667_a_05L持。
001_0667_a_06L爾時。地藏菩薩。從衆中起。至于佛前。
001_0667_a_07L合掌胡跪。而白佛言。尊者。我觀大衆。
001_0667_a_08L心有疑事。猶未得決。今者。如來欲爲
001_0667_a_09L除疑。我今爲衆。隨疑所問。願佛慈悲。
001_0667_a_10L垂哀聽許。佛言。菩薩摩訶薩。汝能如是。
001_0667_a_11L救度衆生。是大悲愍。不可思議。汝當
001_0667_a_12L廣問。爲汝宣說。
001_0667_a_13L正說之內大分有二。別明觀行。竟
001_0667_a_14L在於前。此下第二摠決諸疑。就文
001_0667_a_15L有四。初請。次許。三決。四領。此問
001_0667_a_16L與答。是請及許。此能請者。名地藏
001_0667_a_17L者。是人已得同軆大悲。生長一切衆
001_0667_a_18L生善根。猶如大地生諸草木。以陁羅
001_0667_a_19L尼。持諸功德。惠施一切。而無窮盡。
001_0667_a_20L如大寶藏。珍寶無盡。由是二義。名
001_0667_a_21L爲地藏。今此品中。決諸疑惑。生諸
001_0667_a_22L信解。出諸決斷之寶。以施求法之衆。
001_0667_a_23L義當其名。故能請問。
001_0667_a_24L地藏菩薩言。一切諸法。云何不緣生。
-
001_0667_b_01L그때 여래께서 이 뜻을 설법해 주려고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若法緣所生 “만약 일체법이 인연의 소생이라면
離緣可無法 연을 떠나서는 일체법이 없으리라
云何法性無 본래부터 일체법의 자성이 없는데
而緣可生法 연으로부터 발생할 법인들 있으랴”
논 이하는 셋째로 모든 의심을 곧장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여섯 가지 품의 여섯 가지 의심을 역순으로 해결해 주고, 둘째는 한 가지 품96)의 세 가지 의심을 순차로 없애 준다.
(1) 앞의 여섯 가지 품의 여섯 가지 의심을 역순으로 해결해 줌
첫째에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별적으로 해결해 주고, 둘째는 총체적으로 결정해 준다.
① 개별적으로 해결해 줌
첫째의 개별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은 여섯 가지 의심을 개별적으로 해결해 주는데, 곧 나중 것부터 앞의 것을 향하여 점차 거꾸로 해결해 준다. 그러므로 지금 이 문답은 「여래장품」에서 일어난 의심을 해결해 준다.
가. 「여래장품」에서 일으킨 의심을 해결해 줌
「여래장품」에서 “인연은 본무로 불생이 되니 불생인 까닭에 불멸이 되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주체의 인연이 있다고 집착하여 “그 과보인들 어찌 인연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의심한다. 그러므로 그 의심에 대하여 인연으로 발생한 것(緣生)을 질문한다. 이에 여래께서 한 게송으로 그 의심을 곧장 해결해 준다. 제1구와 제2구는 본래의 집착을 결정해 준 것이다. 제3구와 제4구는 그렇게 인연이 발생한 것을 타파해 준다. 이 뜻을 제대로 나타내면 “인연은 제법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치 토끼의 뿔과 같이 본래 없는 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비량比量을 말미암아 저 의심을 해결해 준 것이다.
나. 「진성공품」에서 일으킨 의심을 해결해 줌
이하는 둘째로 「진성공품」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진성공품」에서 “내 설법은 그대와 중생들을 위한 것으로서 있다(在)든가 발생한다(生)고 설한다. 그러므로 불가설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설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만약 저 경문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설법한 경우가 있으므로 그 설법은 부처님의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 설법을 무생이라 말하는가.”라고 의심한다. 그러므로 이 의심을 없애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
001_0667_b_01L爾時。如來欲宣此義。而說偈言。
001_0667_b_02L若法緣所生。離緣可無法。云何法性無。
001_0667_b_03L而緣可生法。
001_0667_b_04L此下第三正決諸疑。於中有二。一
001_0667_b_05L者。六品六疑却次而決。二者。一品
001_0667_b_06L三疑順次而遣。初中亦1)二。 [46] 一者別
001_0667_b_07L決。二者摠定。初別決中。別決六疑。
001_0667_b_08L從後向前。漸却而決。今此問答。決
001_0667_b_09L如來藏品中起疑。彼言因緣無不生。
001_0667_b_10L不生故不滅。於中執有能生因緣。而
001_0667_b_11L疑其果何不緣生。故乘彼疑。以問緣
001_0667_b_12L生。如來一頌。正決是疑。於中上半。
001_0667_b_13L定彼本執。下半。乘彼。破其緣生。此
001_0667_b_14L意正立緣不生法。望無法故。如望兎
001_0667_b_15L角。由是比量。彼疑決矣。
001_0667_b_16L爾時。地藏菩薩言。法若無生。云何說
001_0667_b_17L法。法從心生。於是尊者。而說偈言。
001_0667_b_18L是心所生法。是法能所取。如醉眼空華。
001_0667_b_19L是法然非彼。
001_0667_b_20L此下第二決眞性空品中起疑。彼
001_0667_b_21L言我說法者。以汝衆生。在生說故。
001_0667_b_22L是故說之。依此疑云。若依彼文。佛
001_0667_b_23L有說法。其所說法。從佛心生。云何
001_0667_b_24L而言法無生耶。爲遣此疑。卽有二重。
-
001_0667_c_01L첫째는 그대로 없애고, 둘째는 거듭 해결한다. 지금 이 문답은 첫째의 그대로 없애는 것이다.
가) 그대로 없애 줌
경 그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제법이 만약 무생이라면 어떻게 설법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 설법은 마음에서 발생한 것이 아닙니까?”이에 존자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是心所生法 “마음으로부터 법이 발생된 것이라면
是法能所取 그 법은 능과 소에 집착한 것이라네
如醉眼空華 술에 취한 눈에 보이는 공화와 같다
是法然非彼 그러나 지금 이 법은 그와 다르다네”
논 “마음으로부터 법이 발생된 것이라면 그 법은 능과 소에 집착한 것이라네.”는 지금 그대(지장보살)가 계탁하고 있는 제법은 곧 망심으로서 능취와 소취이다. 그러므로 저 술에 취한 사람의 눈에 보이는 허공의 꽃과 같다는 것이다.“그러나 지금 이 법은 그와 다르다네.”는 그대가 계탁하여 마음이 발생시킨 제법은 저 공화의 법과 또한 같지만, 저기에서 여래가 설한 제법은 그대가 계탁하여 발생시킨 제법과는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 뜻은 “그대가 계탁한 제법은 공하여 무소유한데, 그것은 마치 공화처럼 소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여래가 설한 제법은 언설을 떠나고 사려를 단절한 것이므로 소취와 능취로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 거듭 해결해 줌
경 그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제법이 만약 그와 같다면 제법은 곧 상대가 없으니 곧 제법은 마땅히 저절로 성취된 것이 됩니다.”이에 존자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法本無有無 “제법은 본래 유와 무가 없는데
自他亦復爾 자상과 타상도 또한 그와 같아97)
不始亦不終 시작도 없고 또한 끝도 없으며
成敗卽不住 형성과 소멸에도 또 집착 없네”
논 이것은 둘째로 거듭 해결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하고, 둘째는 해결해 준다.여기에서 질문한 뜻은 다음과 같다. “만약 부처님께서 설한 언교의 제법은 소취가 아니므로 공화가 필경무인 것과는 같지 않다고 하면 그 제법은 곧 마땅히 저절로 성취된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저 진여와 같다.”이런 질문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이 게송을 설한 것이니, 게송의 뜻은 다음과 같다. “내가 설한 제법은 명언名言을 단절해 있기 때문에 본래 유무·자타·시종도 없고, 형성되었다든가 소멸되었다든가 하는 것에도 집착이 없다. 그런데 어찌 자연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이는 저 인因에 상위과相違過98)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말하자면 “제법은 형성되었다든가 소멸되었다든가 하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상대(待)가 없기 때문이다. 저 소취가 없어 진여와 같다.”는 것이다. -
001_0667_c_01L一者直遣。二者重決。此卽直遣。言
001_0667_c_02L是心所生法。是法能所取者。今汝所
001_0667_c_03L計心所生法。直是妄心能取所取。如
001_0667_c_04L醉酒眼所見空華。是法然非彼者。是
001_0667_c_05L汝所計心所生法。如彼空華。是法亦
001_0667_c_06L然。非彼所說法。同汝所計生。此意
001_0667_c_07L正明。汝所計法。空無所有。是所取
001_0667_c_08L故。猶如空華。我所說法。離言絕慮。
001_0667_c_09L所取能取。皆不可言。
001_0667_c_10L爾時。地藏菩薩言。法若如是。法卽無
001_0667_c_11L待。無待之法。法應自成。於是尊者。而
001_0667_c_12L說偈言。
001_0667_c_13L法本無有無。自他亦復爾。不始亦不終。
001_0667_c_14L成敗卽不住。
001_0667_c_15L此是第二重決。於中有二。先難。後決。
001_0667_c_16L是難意云。若佛所說言敎之法。非所
001_0667_c_17L取故。不如空華畢竟無者。是卽此法。
001_0667_c_18L應自然成。以無待故。猶如眞如。爲
001_0667_c_19L決此難。故說是偈。是偈意言。我所
001_0667_c_20L說法。絕名言故。本無有無自他始
001_0667_c_21L終。若成若敗卽不得住。云何得言
001_0667_c_22L自然成耶。是顯彼因有相違過。謂法
001_0667_c_23L無成敗。以無待故。如無所取。又如
001_0667_c_24L「二」作「一」{甲}。
-
001_0668_a_01L이런 도리를 말미암아 저 지장보살의 질문은 성립되지 못한다. 질문이 성립되지 않으므로 벌써 의심은 해결된 것이다.
다. 「입실제품」에서 일으킨 의심을 해결해 줌
이하는 셋째로 「입실제품」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입실제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 중생심과 중생상의 경우에도 그 상이 또한 여래이듯이 중생의 마음도 여래와 다른 경계가 아니어야 합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중생의 마음은 실로 여래와 다른 경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고, 그 도리로 보면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 경문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본래청정한 마음이 그대로 진여의 도리이고, 본래청정한 자성이 그대로 열반이다. 그런데 만약 열반이 공무空無하다면 그것은 마땅히 사무邪無로서 진여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의심을 없애 주기 위하여 제법을 모두 진여라 설한다.경문에 네 부분이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인정이며, 셋째는 이해시켜 주고, 넷째는 서술한다.
가) 질문, 나) 인정
경 그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일체의 모든 법상은 곧 본래 열반입니다. 열반과 공상도 또한 그와 같으므로 그런 법99)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법은 마땅히 진여이기 때문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래, 그런 제법은 없다. 왜냐하면 이 제법은 진여이기 때문이다.”
논 첫째로 질문한 뜻은 다음과 같다. “만약 공의 뜻으로 보자면 일체 모든 법상은 곧 본래청정한 열반이다. 또 열반과 그 공상이 서로 어우러지면 그것은 곧 열반과 공의 차별이 없는 일미법이다. 이러한 제법이야말로 마땅히 진여일 것이다.”곧 저 위에서 집착한 것을 반론하려는 까닭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둘째로 답변에서는 질문한 바와 같음을 인정한 것이다.
다) 이해시켜 줌
경 지장보살이 여쭈었다.“불가사의합니다. 이와 같은 제법의 진여상은 함께하는 것(共)도 아니고 함께하지 않는 것(不共)도 아니며 의취意取도 아니고 업취業取도 아닌 것으로 곧 모두 공적합니다. 공적한 일심법은 모두 갖추어 취할 수가 없고 또한 마땅히 적멸입니다.”
논 이것은 셋째로 이해시키는 것으로 감추어져 있는 의심(詰難)을 없애는 것이다.앞의 설명을 듣고 다음과 같은 의심(詰難)을 일으킨다. “본래 열반이라면 이미 유일한 진여일 것이다. -
001_0668_a_01L眞如。由是道理。彼難不成。難不成
001_0668_a_02L故。所疑決矣。
001_0668_a_03L爾時。地藏菩薩言。一切諸法相。卽本
001_0668_a_04L涅槃。涅槃及空相亦如是。無是等法。
001_0668_a_05L是法應如。佛言。無如是法。是法是如。
001_0668_a_06L此下第三決。入實際品中起疑。彼言
001_0668_a_07L大力菩薩言。衆生心相。相亦如來。
001_0668_a_08L衆生之心。應無別境。佛言如是衆生
001_0668_a_09L之心。實無別境。何以故。心本淨故。
001_0668_a_10L理無穢故。有依是文。作是念言。本
001_0668_a_11L淨之心。正是如理。本來淸淨。自性
001_0668_a_12L涅槃。若使涅槃。亦空無者。應是邪
001_0668_a_13L無。不爲如理。爲遣是疑。故說皆如。
001_0668_a_14L就文有四。先問。次許。三領。四述。
001_0668_a_15L初問意言。若以空義。一切諸法相。
001_0668_a_16L卽是本來淸淨涅槃。復融涅槃及其
001_0668_a_17L空相。卽無涅槃及空差別。是一味法。
001_0668_a_18L是法應如。反彼所執。故作是問。第
001_0668_a_19L二答中。許如所問。
001_0668_a_20L地藏菩薩言。不可思議。如是如相。非
001_0668_a_21L共不共意取業取。卽皆空寂。空寂心
001_0668_a_22L法。俱不俱一本
作可 [122] 取。亦應寂滅。
001_0668_a_23L此是第三領解。爲遣伏難。有聞前說。
001_0668_a_24L作是難言。本來涅槃。旣是一如。若
-
001_0668_b_01L그런데도 만약 열반과 그 공상이 호융한다면 그것은 제2의 진여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진여는 함께하는 것(共)인가 함께하지 않는 것(不共)인가. 만약 함께하는 것(共)이라면 곧 진여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가 병립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함께하지 않는 것(不共)이라면 곧 공적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일한 진여일 것이기 때문이다.”곧 이러한 의심을 없애려는 까닭에 “함께하는 것(共)도 아니고 함께하지 않는 것(不共)도 아니다.”라고 한다. ‘함께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은 두 가지 진여는 없기 때문이다. ‘함께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은 둘 모두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곧 없앤 것은 비록 둘일지라도 없앤 도리는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심한(詰難) 바는 모두 도리에 맞지 않는다.“의취도 없고 업취도 없어 모두 공적합니다.”라는 것은 곧 둘 모두를 없앴지만, 없어진 도리는 둘이 아님을 드러낸다. ‘의취’는 열반이니, 적멸심을 인연하여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업취’는 생사이니, 모든 번뇌의 업으로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의취와 업취가 모두 공적하다. 공적하므로 둘이 없다.“공적한 일심법은 모두 갖추어 취할 수가 없고 또한 마땅히 적멸입니다.”라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심법은 또한 일심으로 고수할 것이 없다. 곧 생사와 열반이 공적하여 둘이 없는데, 둘이 없는 도리야말로 곧 일심법이다. 이 일심법에도 두 가지 문이 있다. 그러나 만약 두 가지 문을 갖추어 취하는 것이라면 곧 일심을 터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둘은 일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약 두 가지 문을 버리고 갖추어 취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일심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無)은 일심이 아니기 때문이다.”이런 뜻을 말미암은 까닭에 무이無二의 일심법은 모두 갖추어 취할 수가 없고 또한 마땅히 적멸이다.
라) 서술함
경 이에 존자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一切空寂法 “일체의 공적한 법
是法寂不空 이 법은 적멸하나 공하지 않네
彼心不空時 중생의 심이 불공임을 알아야
是得心不有 일심법이 유 아님을 터득하네”100)
논 이는 넷째로 여래께서 서술한 것이다.“일체의 공적한 법”은 생사와 열반의 일체가 공적한 법이다.“이 법은 적멸하나 공하지 않네.”는 둘이 없는 일심법은 아무것도 없는 공무空無의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공무空無의 법은 아니지만 유법有法도 아니다. -
001_0668_b_01L融涅槃及其空相。是第二如。如是二
001_0668_b_02L如。爲共不共。若言共者。卽非如理。
001_0668_b_03L有二並故。若不共者。卽不更空。唯
001_0668_b_04L一如故。爲遣是難。故言非共不共。
001_0668_b_05L非共者。無二如故。非不共者。有雙
001_0668_b_06L遣故。所遣雖雙。遣處無二。故彼所
001_0668_b_07L難。皆不應理。意取業取卽皆空寂者。
001_0668_b_08L是顯雙遣。遣處無二。言意取者。所
001_0668_b_09L謂涅槃。緣寂滅心之所取故。言業取
001_0668_b_10L者。卽是生死。諸煩惱業之所取故。
001_0668_b_11L此二皆空。空寂無二。空寂心法。俱
001_0668_b_12L不俱取。亦應寂滅者。明一心法。亦
001_0668_b_13L不守一。生死涅槃。空寂無二。無二
001_0668_b_14L之處。是一心法。依一心法。有二種
001_0668_b_15L門。然俱取二門。卽不得心。二非一
001_0668_b_16L故。若廢二門。不俱而取。亦不得心。
001_0668_b_17L無非心故。由是義故。無二心法。俱
001_0668_b_18L不俱取。亦應寂滅。
001_0668_b_19L於是尊者。而說偈言。
001_0668_b_20L一切空寂法。是法寂不空。彼心不空時。
001_0668_b_21L是得心不有。
001_0668_b_22L此是第四如來述成。一切空寂法者。
001_0668_b_23L生死涅槃一切空寂之法。是法寂不
001_0668_b_24L空者。無二之心法。非都無法故。雖
-
001_0668_c_01L이런 까닭에 일심법이 공하지 않은 줄 이해할 때에 곧 일심법이 유법有法이 아님을 안다. 그러므로 앞에서 “모두 갖추어 취할 수가 없고 또한 마땅히 적멸입니다.”라고 설한 것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라. 「본각리품」에서 일으킨 의심을 해결해 줌
경 그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이 일심법은 삼제三諦도 아니어서 곧 색제와 공제와 심제101)도 또한 적멸합니다. 삼제법이 본래 적멸할 경우 일심법은 마땅히 적멸할 것입니다.”이에 존자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法本無自性 “삼제법에는 본래부터 자성이 없어
由彼之所生 저것을 말미암아 이것이 발생하네
不於如是處 진여의 도리는 그러하지 않으므로
而有彼如是 본각처에는 진여의 도리가 있다네”
논 이것은 넷째로 「본각리품」에서 일어난 의심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본각리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일체의 경계가 공적하고, 일체의 몸이 공적하며, 일체의 식이 공적하니 본각도 또한 공적할 것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의 본각은 훼손되지도 않고 괴멸되지도 않는 결정성으로서 공도 아니고 불공도 아니며 공이라 말할 수도 없고 불공이라 말할 수도 없다.”
그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의심하여 말한다. “만약 일심도 또한 존재하지(有) 않기 때문에 적멸하다면, 무슨 까닭에 앞에서는 일본각은 불괴不壞이므로 저 색과 심이 공한 것과는 같지 않다고 말했는가.”지금 이런 의심에 대하여 위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이 일심법은 삼제도 아니다.”라는 것은 곧 앞의 게송에서 설한 것처럼 이 일심법에는 색도 없고 심도 없으며 공도 없으므로 삼제가 없다. 그러나 삼제문에도 간략하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색제·심제·제일의제이다. 둘째는 유제·무제·중도제일의제이다. 셋째는 이 「총지품」 중 뒤에서 말한 것102)과 같다.지금 여기에서 질문한 뜻은 첫째의 삼제문 곧 색제·심제·제일의제에 의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곧 색제와 공제와 심제도 또한 적멸합니다.’라는 것은 이 일심법은 이미 삼제법에 섭수되지 않기 때문에 색상이 본래 공하고 심상도 또한 적멸하다. 이 색법과 심법이 본래 적멸할 경우에는 곧 일심법도 마땅히 적멸할 것이므로 곧 앞의 게송에서는 -
001_0668_c_01L非無法。而不是有。是故解心不空之
001_0668_c_02L時。是時得知心之不有。所以前說
001_0668_c_03L俱不俱取皆應寂滅者。不違道理也。
001_0668_c_04L爾時。地藏菩薩言。是法非三諦。色空
001_0668_c_05L心亦滅。是法本滅時。是法應是滅。於
001_0668_c_06L是尊者。而說偈言。
001_0668_c_07L法本無自性。由彼之所生。不於如是處。
001_0668_c_08L而有彼如是。
001_0668_c_09L此是第四決本覺利品中起疑。彼言
001_0668_c_10L無住菩薩言。一切境空。一切身空。
001_0668_c_11L一切識空。覺亦應空。佛言。可一覺者。
001_0668_c_12L不毁不壞。決定性。非空非不空。無
001_0668_c_13L空不空。依此述文。於彼生疑云。若
001_0668_c_14L是一心。亦不是有。故寂滅者。何故
001_0668_c_15L前說。一覺不壞故。不同彼色心之空。
001_0668_c_16L今乘是疑。故作是問。是法非三諦者。
001_0668_c_17L卽前頌說。是一心法。非色心空。故
001_0668_c_18L非三諦。然三諦門。略有三種。一者。
001_0668_c_19L色諦心諦第一義諦。二者。有諦無諦
001_0668_c_20L中道第一義諦。三者。如此品中後
001_0668_c_21L文所說。今此問意。且依初門。色空
001_0668_c_22L心亦滅者。是法旣非三諦攝故。色
001_0668_c_23L相本空。心亦寂滅。是色心法。本
001_0668_c_24L寂滅時。是一心法。應同寂滅。卽前
-
001_0669_a_01L‘일심법이 유 아님을 터득하네.’라고 말했다. 그런즉 앞에서 말한 공空과 같지 않을 것이므로 단지 헛소리(虛談)일 뿐이다.”곧 이와 같이 의심한 것이다. 그러나 게송에서는 이에 대하여 그 의심과 같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삼제법에는 본래부터 자성이 없어”는 색법과 심법은 본래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저것을 말미암아 이것이 발생하네.”는 저 본각심을 말미암아 발생된 것이다. 이처럼 발생된 색과 심은 곧 차별상이지만 저 본각심은 본래부터 상相을 떠나 있고 성性을 떠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차별이 있는 곳에는 저 상相을 떠나 있는 일본각이란 없다. 이런 까닭에 그 색과 심의 차별상이 공적해질 경우에는 본래 상相을 떠나 있는 일본각의 경우처럼 동일하게 차별상을 없앤 경우와 같지는 않다.103) 이러 도리를 말미암아 앞의 설명104)은 빈 말이 아니다.
마. 「무생행품」에서 일으킨 의심을 해결해 줌
경 그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일체의 제법이 무생이고 무멸인데, 어째서 하나가 아닙니까.”이에 존자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法住處無在 “제법은 주도 없고 또 주처도 없으며
相數空故無 법상 및 법수도 공하기 때문에 없네
名說二與法 명칭법 및 언설법의 두 가지는 모두
是卽能所取 능과 소로 집착한 것이기 때문이네”
논 이는 다섯째로 「무생행품」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무생행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이 기동해도 발생이 없고, 연이 사라져도 소멸이 없으며, …… 그래서 처하는 곳이 없어서 머무는 것을 볼 수가 없으니, 결정성이기 때문이다. 이 결정성은 일一도 아니고 이異도 아니다.
이 경문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의심하여 말한다. “색법과 심법 등은 발생도 없고 소멸도 없어서 곧 평등하고 결정적인 일실의자성一實義自性입니다. 이것은 곧 횡적으로는 색법과 심법이 차이가 없고, 종적으로는 발생과 소멸의 차별이 없습니다. 이처럼 차이가 없고 차별이 없으니 마땅히 일미일 것입니다. 다르지 않다는 것은 옳지만 어째서 하나가 아닙니까?”게송에서는 이에 대하여 일심법의 뜻이 아님을 드러내었다.“제법은 주도 없고 또 주처도 없으며”라는 것은 제법의 주와 소주처가 모두 없기 때문이다.“법상 및 법수도 공하기 때문에 없다.”는 것은 색법·심법 등의 법상과 같다·다르다는 법수가 모두 공하기 때문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 법상과 법수가 없으니, 어찌 하나(一)가 있겠는가. -
001_0669_a_01L偈言。心不有故。是卽前說不同空者。
001_0669_a_02L徒爲虛談。如是疑也。頌中對此明其
001_0669_a_03L不同。法本無自性者。色心之法。本無
001_0669_a_04L自性。由1)所 [47] 彼之所生者。由彼本覺
001_0669_a_05L之心所生。所生色心。是差別相。彼
001_0669_a_06L本覺心。離相離性。不於如是差別之
001_0669_a_07L處。而有如彼離相一覺。是故空此色
001_0669_a_08L心差別相時。不得同遣離相一覺。由
001_0669_a_09L是道理。前非虛說。
001_0669_a_10L爾時。地藏菩薩言。一切諸法。無生無
001_0669_a_11L滅。云何不一。於是尊者。而說偈言。
001_0669_a_12L法住處無在。相數空故無。名說二與法。
001_0669_a_13L是卽能所取。
001_0669_a_14L此是第五決無生行品中起疑。彼言
001_0669_a_15L緣起非生。緣謝非滅。在無有處。不
001_0669_a_16L見所住。決定性故。是決定性。不一
001_0669_a_17L不異。有依彼文。而起疑云。色心等
001_0669_a_18L法。無生無滅。卽是平等。決定實性。
001_0669_a_19L是卽橫無色心之差。縱無生滅之別。
001_0669_a_20L無差無別。應是一味。不異可爾。云
001_0669_a_21L何不一。頌中對比顯不一義。法住處
001_0669_a_22L無在者。諸法之住。及所住處。皆無
001_0669_a_23L所有故。相數空故無者。色心等相。一
001_0669_a_24L異等數。悉空故無也。相數旣無。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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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69_b_01L또 색법의 상이 없으므로 심법의 상도 없어서 이미 다름(異)이 없으니, 어찌 하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명칭과 언설의 두 가지 및 설한 법이 있는 것은 곧 능취의 허망한 마음에서 취해진 것일 뿐이지 여실의 뜻에 같음과 다름이 있는 것은 아니다.“명칭법 및 언설법”에서 명칭법은 설명하는 주체의 작용으로서 의식意識이 취한 바이고, 언설법은 어성語聲으로서 이식耳識이 이해한 바이다. 그런데 만약 명칭법과 언설법을 동일한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두 가지의 입장이 있다는 경우이다.105) 그러므로 명칭법과 언설법 가운데는 설명되는 객체의 법 곧 진여가 있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법수의 경우도 또한 허망한 마음에서 취해진 것일 뿐이므로 저 일실의 뜻이 아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법수에 어찌 일미법이 존재하겠는가.
바. 「무상법품」에서 일으킨 의심을 해결해 줌
경 그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일체의 모든 법상은 양 언덕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중간의 흐름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심과 식의 경우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경계가 심식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입니까. 만약 심식이 경계의 발생을 일으키고 그 심식도 또한 경계로부터 발생된 것이라면, 어째서 본래적인 무생의 심식에 능생과 소생이 있겠습니까?”이에 존자께서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所生能生二 “소생과 능생의 이 두 가지
是二能所緣 그 둘은 능연 및 소연이네
俱本名自無 본래 무자성이라 말하는데
取有空華幻 공화와 환상에 집착한다네
識生於未時 심식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境不是時生 경계도 발생되기 이전이고
於境生未時 경계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是時識亦滅 심식도 또한 적멸상태라네
彼卽本俱無 심식 및 경계 본래 없으니
亦不有無有 유도 없고 또 무유도 없네
無生識亦無 무생의 심식조차 없다는데
云何境從有 무엇으로부터 경계 나오랴”
논 이는 여섯째로 「무상법품」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무상법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자이시여, 여래장의 생멸하는 여지慮知의 상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장의 도리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만약 옳고 그름이 있으면 온갖 망념이 발생한다. 그 천만 가지 사려분별이 곧 생멸의 모습이다.”
이제 위의 뒷부분의 말106)에 의거하여 다시 「무상법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심을 갖는다. “만약 심식이 옳고 그른 경계를 발생시키고 경계상도 또한 모든 망념의 심식을 발생시킨다면 그 심식은 유생이고 유멸일 터인데, 어째서 양 언덕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
001_0669_b_01L得有一。又無色故。卽無心相。旣非異
001_0669_b_02L者。如何是一。而有名說之二。及有
001_0669_b_03L所說法者。是卽能取妄心所取。非如
001_0669_b_04L實義。有一二等。言名說者。名是詮
001_0669_b_05L用。意識所取。說是語聲。耳識所了。
001_0669_b_06L若言是一。卽有此二。於中亦有所詮
001_0669_b_07L之法。如是等數。妄心所取。非彼實
001_0669_b_08L義。有如是數。云何於中。存一味耶。
001_0669_b_09L爾時。地藏菩薩言。一切諸法相。不住
001_0669_b_10L於二岸。亦不住中流。心識亦如是。云
001_0669_b_11L何諸境界。從識之所生。若識能有生。
001_0669_b_12L是識亦從生。云何無生識。能生有所生。
001_0669_b_13L於是尊者。而說偈言。
001_0669_b_14L所生能生二。是二能所緣。俱本名一本
作各 [123]
001_0669_b_15L自無。取有空華幻。識生於未時。境不
001_0669_b_16L是時生。於境生未時。是時識亦滅。彼卽
001_0669_b_17L本俱無。亦不有無有。無生識亦無。云何
001_0669_b_18L境從有。
001_0669_b_19L此是第六決無相法品中起疑。彼言
001_0669_b_20L云何生滅慮知相。佛言理無可不。若
001_0669_b_21L有可不。卽生諸念。千思萬慮。是生
001_0669_b_22L滅相。今依後說。還疑彼文。若識能生。
001_0669_b_23L可不之境。境相還生。諸念之識。卽是
001_0669_b_24L心識。有生有滅。云何而言不住二岸。
-
001_0669_c_01L만약 모든 심식이 무생이고 무멸이라면, 어째서 모든 심식이 모든 경계를 발생시키는 것인가.”이런 의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양 언덕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생과 무멸이다. 중간의 흐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같지(一) 않기 때문이다. 심식이 이미 그처럼 무생이고 무멸인데, 어째서 옳고 그른 경계가 심식으로부터 발생되겠는가. 만약 심식이 경계를 발생시킨다면 그 심식도 또한 경계로부터 발생된 것인데, 어떻게 본래무생의 심식에 능생이 있고 소생이 있는 것인가.”이와 같은 의심을 없애기 위하여 세 게송을 설한다.세 게송의 경문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로 위의 한 게송은 그 도리를 보여 주고, 둘째로 뒤의 두 게송은 상相을 발생시키는 집착을 타파한다.
가) 도리를 보여 줌
첫째에서 “그 둘은 능연 및 소연이네.”라고 한 것은 그대(지장보살)가 계탁하는 심식은 발생의 주체이고 경계는 발생된 경계로서 곧 허망하게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을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능생과 소생은 무릇 무자성이라 말한다. 만약 집착하여 그것을 유有라고 간주한다면 마치 공화 및 환상을 취하여 실유라고 간주하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무생이고 무멸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 상相을 발생시키는 집착을 타파함
둘째에서 “심식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경계도 발생되기 이전이고”는 발생하는 주체의 심식이 아직 발생하기 이전에는 발생되는 객체인 경계도 아직 발생되지 않음을 설명한 것이다.“경계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심식도 또한 적멸상태라네.”는 능생의 경계가 아직 발생하기 이전에는 그 경우 소생의 심식도 또한 적멸의 상태임을 설명한 것이다.“적寂”은 적멸이니, 본래부터 없는 것(本來無)이다.“심식 및 경계 본래 없으니 유도 없고 또 무유도 없네.”는 다음과 같다. 곧 저 심식과 경계의 두 가지 발생하는 주체는 본래부터 모두 없다. 그러므로 이미 발생하는 주체가 없어서 또한 소생을 있도록 하지 못하므로 ‘유도 없고’라 하고, 발생되는 객체를 있도록 하지 못하므로 뒤에 발생하는 것이 없으므로 ‘무유도 없네.’라고 한다.“무생의 심식조차 없다는데”라는 것은 이미 무생의 뜻인데 어찌 심식이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곧 심식이 없으므로 경계가 그로부터 존재할(有) 수가 없다. -
001_0669_c_01L若諸心識。無生無滅。云何諸識。能
001_0669_c_02L生境界。乘如是疑。發如是問。不住
001_0669_c_03L二岸者。無生無滅故。不住中流者。
001_0669_c_04L而不是一故。心識旣爾。無生無滅。
001_0669_c_05L云何可不境界。從識之所生耶。若識
001_0669_c_06L能生境。識亦從境生。云何無生識。
001_0669_c_07L能生有所生。爲遣此疑。故說三頌。
001_0669_c_08L三頌之文。卽判爲二。初之一頌。示
001_0669_c_09L其道理。後之二頌。破相生執。初中
001_0669_c_10L言是二能所緣者。謂汝所計。識是
001_0669_c_11L能生。境是所生。直是妄取能緣所緣。
001_0669_c_12L俱是本來。但名無自。若取爲有。如
001_0669_c_13L取空華。及取幻象。以爲實有。是故不
001_0669_c_14L異無生無滅。破中言識生於未時境
001_0669_c_15L不是時生者。明識能生未有之時。所
001_0669_c_16L生境界。于時不生也。於境生未時。
001_0669_c_17L是時識亦滅者。明境能生未有之時。
001_0669_c_18L其所生識。于時亦滅。滅者寂滅。謂
001_0669_c_19L本來無也。彼卽本俱無。亦不有無有
001_0669_c_20L者。彼二能生。本來俱無。旣無能生。
001_0669_c_21L亦不令有。故曰不有。不令有故。後
001_0669_c_22L時無生。故言無有也。無生識亦無者。
001_0669_c_23L旣無生義。何得有識。識無有故。境
001_0669_c_24L「所」無{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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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0_a_01L여기에는 곧 두 가지 비량比量이 들어 있다. 첫째는 다음과 같다. “심식은 발생하지 않는다. 능생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불에 타버린 종자와 같다.” 둘째는 다음과 같다. “경계는 발기되지 않는다. 온 곳(所從)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거북이 터럭에서 나온 것과 같다.”이상은 여섯 품의 의심을 개별적으로 해결해 준 것이다.
② 설법한 것을 총체적으로 결정해 줌
이하는 둘째로 설법한 것을 총체적으로 결정해 주는 것이다. 곧 여섯 가지 의문의 해결은 병이 아니라 약임을 총결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병이 아님을 결정하고, 둘째는 그것이 약임을 결정한다.
가. 병이 아님을 결정함
첫째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살펴서 묻는 것이고, 둘째는 결정해서 인정해 주는 것이다.
가) 살펴서 물음
경 그때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제법의 실상은 그와 같이 안과 밖이 모두 공하고, 경계와 지혜의 두 덩어리는 본래 적멸합니다. 그처럼 여래께서 설하신 실상과 진공의 여시지법107)은 곧 적집된 것이 아닙니다.”
논 질문에서 “제법의 실상은 그와 같다.”라고 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여섯 품의 제법실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한 것이다.“안과 밖”이라고 한 것에서 심식은 안(內)이고 경계는 밖(外)이다.“두 덩어리”라고 한 것은 경계와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곧 적집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한 것은 생·사·잡·염의 근심이 적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악취공이 근심을 적집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 결정해서 인정해 줌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다. 진여의 실제법에는 색상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소집도 없고 능집도 없으며, 의義(五陰·十八界·十二入)도 없고 대大(地·水·火·風)도 없다. 진여의 실제법은 일본각의 과분법이고 심심한 공덕취이다.”108)
논 이는 여래께서 결정해서 인정해 주는 것이다.“색상도 없다.”고 한 것은 유에 집착하는 병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다.“집착도 없다.”는 또한 잘못 공에 집착하는 근심을 떠나 있는 것이다.“소집도 없다.”는 고제苦諦가 공한 것이다.“능집도 없다.”는 집제集諦가 공한 것이다.“의義도 없다.”는 오음·십팔계·십이입의 차별의 뜻이 없는 것이다.“대大도 없다.”는 지·수·화·풍의 만드는 주체의 상을 떠나 있는 것이다.“일본각의 과분법이다.”는 일본각으로서 모든 수행과 모든 공덕을 발생시키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분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잡염의 과분이니, -
001_0670_a_01L不從有。此中卽有二種比量。一識不
001_0670_a_02L生。無能生故。如望燋種。二境不起。
001_0670_a_03L無所從故。如從龜毛。上來六分。別
001_0670_a_04L決疑竟。
001_0670_a_05L爾時。地藏菩薩言。法相如是。內外俱
001_0670_a_06L空。境智二衆。本來寂滅。如來所說。實
001_0670_a_07L相眞空。如是之法。卽非集也。
001_0670_a_08L此下第二摠定所說。摠定六決。非
001_0670_a_09L病是藥。於中有二。先定非病。後定
001_0670_a_10L是藥。初中亦二。審問。定許。問中言
001_0670_a_11L法相如是者。摠領前說六分法相。言
001_0670_a_12L內外者。識內境外故。言二衆者。境
001_0670_a_13L智衆多故。言非集者。非集生死雜染
001_0670_a_14L患故。非如惡取空。還集諸患故。
001_0670_a_15L佛言。如是。如實之法。無色無住。非所
001_0670_a_16L集。非能集。非義非大一本
作文。 [124] 一本科一本
作利 [125]
001_0670_a_17L法。深功德聚。
001_0670_a_18L此是如來定許。言無色者。不生着有
001_0670_a_19L之病故。無住者。亦離惡取空患故。
001_0670_a_20L非所集者。苦諦空故。非能集者。集
001_0670_a_21L諦空故。非義者。離陰界等差別義故。
001_0670_a_22L非大者。離地水等能造相故。一本科
001_0670_a_23L法者。是一本覺。以是爲根。能生諸
001_0670_a_24L行。及諸功德故。然科有二種。一者
-
001_0670_b_01L모든 근본의 심식으로서 그 뜻은 위에서 설한 바와 같다. 둘째는 순정의 과분이니, 일본각으로서 이 경문에서 설한 바와 같다.저 모든 근본의 심식 가운데는 일체의 잡염종자를 적집해 놓았다. 그러나 이 일본각 가운데는 오직 심심한 자성의 공덕취만 있을 뿐, 제법상을 떠나 있고 자성을 떠나 있으므로 “심심하다.”고 한다. 그리고 항하의 모래 수보다 많으므로 “취聚”라고 한다.
나. 그것이 약임을 결정해 줌
이하는 둘째로 그것이 좋은 약임을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살이 살펴서 질문하는 것이다.
가) 보살이 살펴서 질문함
질문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심심한 공덕취를 이해하고, 둘째는 공덕취의 이해를 통하여 깊이 이관에 들어감을 드러내며, 셋째는 양약의 뛰어난 덕을 살펴서 묻는다.
(가) 앞의 심심한 공덕취를 이해함
경 지장보살이 여쭈었다.“불가사의하고 불가사의한 무리입니다. 제7식과 오식은 발생하지 않고, 제8식과 제6식은 적멸하며, 제9식은 공적하여 그 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도 공적하여 없고, 무도 공적하여 없습니다. 곧 존자의 말씀처럼 법法과 의義가 모두 공적합니다. 공적한 경지에 들어가 행한 바가 없으나 제업을 잃지 않고, 아견과 아소견 및 능신견과 소신견이 없어서 안팎의 번뇌가 모두 적정합니다. 그러므로 원願도 또한 작용하지 않는데,109) 이것이 곧 이관理觀으로서 혜와 정의 진여입니다. 존자의 영원한 설법이야말로 진실로 진여의 공적한 법으로서 곧 양약입니다.”
논 첫째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총론적으로 표방하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드러내며, 셋째는 다시 총결한다.
㉮ 총론적으로 표방함
“불가사의한 무리입니다.”라는 것은 법상을 떠나 있고 자성을 떠나 있는 공덕을 총론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 개별적으로 드러냄
개별적으로 드러낸 것에서 먼저 법상을 떠나 있음을 설명하고, 나중에 자성을 떠나 있음을 설명한다.
a. 법상을 떠나 있음을 설명함
처음에 “제7식과 전5식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두 가지 지말식支末識이 공적함을 합해서 설명한 것이다. 항상 작용하는 식 가운데서는 제7식이 지말식이고, 항상 작용하지 않는 식 가운데서는 전5식이 지말식이기 때문이다.“제8식과 제6식은 적멸하다.”라는 것은 두 가지 근본식根本識이 적멸함을 합해서 설명한 것이다. 항상 작용하는 식 가운데서는 제8식이 근본식이고, 항상 작용하지 않는 식 가운데서는 제6식이 근본식이다.
b. 자성을 떠나 있음을 드러냄
다음으로 자성을 떠나 있음을 드러낸다.“제9식은 공적하여 그 상이 없습니다.”라는 것은 제9식의 법상 또한 자성을 고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
001_0670_b_01L雜染之科。謂諸本識。義如上說。二
001_0670_b_02L者純淨之科。謂一本覺。如此文說。
001_0670_b_03L彼本識中。積集一切雜染種子。此本
001_0670_b_04L覺中。唯有甚深性功德聚。離相離性
001_0670_b_05L故名爲深。過恒沙數。故名爲聚。
001_0670_b_06L地藏菩薩言。不可思議。不思議聚。七
001_0670_b_07L五不生。八六寂滅。九相空無。有空無
001_0670_b_08L有。無空無有。如尊者所說。法義皆空。
001_0670_b_09L入空無行。不失諸業。無我我所。能所
001_0670_b_10L身見。內外結使。悉皆寂靜。故諸願 [126] 亦
001_0670_b_11L息。如是理觀。慧定眞如。尊者常說。寔 [127]
001_0670_b_12L如空法。卽良藥也。
001_0670_b_13L此下第二1)審 [48] 定是藥。於中亦二。先
001_0670_b_14L菩薩審問。問中有三。一者。領前深
001_0670_b_15L功德聚。二者。乘顯深入理觀。三者。
001_0670_b_16L審問良藥勝德。初中亦三。摠標。別
001_0670_b_17L顯。後還摠結。不思議聚者。摠標離
001_0670_b_18L相離性功德。別顯之中。先明離相。
001_0670_b_19L後顯離性。初中言七五不生者。合
001_0670_b_20L明二種末識之空。恒行識中。第七是
001_0670_b_21L末。不恒行中。五識爲末故。八六寂
001_0670_b_22L滅者。合明二種本識之寂。恒行識中。
001_0670_b_23L第八是本。不恒行中。第六爲本故。
001_0670_b_24L次顯離性。九相空無者。第九識相。
-
001_0670_c_01L“유도 공적하여 없다.”는 것은 법상을 떠나 있음을 거듭 성취한 것으로, 제8식에서는 유상의 법상도 공적하여 무소유이기 때문이다.“무도 공적하여 없습니다.”라는 것은 자성을 떠나 있음을 거듭 성취한 것으로, 제9식에서는 무상의 자성도 공적하여 무소유이기 때문이다.일심은 이와 같이 법상을 떠나 있고 자성을 떠나 있어 곧 무량한 공덕의 무리이므로 그것을 “불가사의한 무리이다.”라고 한다.
㉰ 법상을 떠나 있고 자성을 떠나 있음을 다시 총결함
“곧 존자의 말씀처럼 법法과 의義가 모두 공적합니다.”라는 것은 셋째로 법상을 떠나 있고 자성을 떠나 있음을 다시 총결한 것이다.
(나) 가르침이 깊이 이관理觀에 들어 있음을 설명함
둘째로 이관을 설명한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개별적인 설명과 총결이다.
㉮ 개별적인 설명
개별적인 설명에는 곧 삼구가 있다.
a. 공삼매
“공적한 경지에 들어가 행한 바가 없으나 제업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공삼매이다. 즉 이관으로 공적에 들어가면 행위의 주체와 행위의 객체가 없고, 주체와 객체가 없지만 육바라밀 등의 행업을 잃지 않는 것이다.
b. 무상삼매
다음으로 무상삼매를 설명한다.“아견과 아소견 및 능신견과 소신견이 없다.”는 것은 곧 견분見分에 속하는 모든 번뇌상을 떠나 있는 것으로, 아견과 아소견의 상 및 능신견과 소신견의 상을 떠나 있기 때문이다.“안팎의 번뇌가 모두 적정하다.”는 것은 곧 애愛에 속하는 모든 번뇌상을 떠나 있는 것으로, 안의 모든 번뇌(結)와 밖의 모든 번뇌(使) 등 삼계의 번뇌의 제상이 공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무상삼매라 말한다.
c. 무원삼매
“원願도 또한 작용하지 않습니다.”라는 것은 곧 무원삼매를 설명한 것이다. 삼계의 제법이 모두 적정하므로 그것을 원願하는 마음도 자연스레 영원히 작용하지 않는다. 이것을 무원삼매라 말한다.
㉯ 총체적으로 결론 맺음
“이것이 곧 이관理觀으로서 혜慧와 정定의 진여입니다.”라는 것은 곧 총체적으로 결론 맺는 구절이다. 앞의 삼삼매三三昧(空三昧·無相三昧·無願三昧)가 모두 곧 이관으로 지止와 관觀에 치우침이 없고 주체와 객체에 둘이 없기 때문이다.
(다) 양약의 뛰어난 덕을 살펴서 질문함
“존자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이와 같은 공적한 제법이야말로 곧 양약일 것입니다.”라는 것은 보살이 살펴서 묻는 가운데 셋째로 양약의 뛰어난 덕을 살펴서 물은 것이다. 곧 이와 같이 공적한 제법은 모든 공덕을 갖추고 모든 번뇌를 다스린다. -
001_0670_c_01L亦不守性故。有空無有者。重成離相。
001_0670_c_02L八識有相之法。空無所有故。無空無
001_0670_c_03L有者。重成離性。九識無相之性。空
001_0670_c_04L無所有故。一心如是。離相離性。卽
001_0670_c_05L是無量功德之聚。如是名爲不思議
001_0670_c_06L聚。如尊所說法義皆空者。第三摠
001_0670_c_07L結離相離性也。次明理觀。於中有二。
001_0670_c_08L別明。摠結。別明之中。卽有三句。入
001_0670_c_09L空無行。不失諸業者。是空三昧。謂理
001_0670_c_10L觀入空而無能所之行。雖無能所。不
001_0670_c_11L失六度等業故。次明無相三昧。無我
001_0670_c_12L我所。能所身見者。是離屬見諸煩
001_0670_c_13L惱相。離我我所相。能見所見相故。
001_0670_c_14L內外結使。悉皆寂靜者。是離屬愛
001_0670_c_15L諸結使相。內門諸結。外門諸使。三
001_0670_c_16L界煩惱諸相空故。如是名爲無相三
001_0670_c_17L昧。故願亦息者。是明無願三昧。由
001_0670_c_18L三界法。皆寂靜故。願求之心。自然
001_0670_c_19L永息。如是名爲無願三昧也。如是理
001_0670_c_20L觀慧定眞如者。是摠結句。如前三種。
001_0670_c_21L皆是理觀。止觀無偏。能所無二故。
001_0670_c_22L尊者常說寔如空法卽良藥也者。
001_0670_c_23L第三審問。如是空法。具諸功德。治
001_0670_c_24L「審」作「番」{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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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1_a_01L이런 까닭에 마땅히 양약이 된다.
나) 결정하여 인정해 줌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다. 왜냐하면 공적하기 때문이다. 공적한 자성이 무생이므로 마음이 항상 무생이고, 공적한 자성이 무멸이므로 마음이 항상 무멸이며, 공적한 자성이 무주이므로 마음이 또한 항상 무주이다. 이처럼 공적한 자성이 무위이므로 마음이 또한 항상 무위이다. 공적한 자성은 나감과 들어감이 없고, 모든 얻음과 잃음을 떠나 있는데, 십팔계·오음·십이입의 경우도 모두 또한 그렇다. 마음에 집착이 없는 것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보살이여, 나 여래는 모든 공을 설하여 제유諸有를 타파하기 때문이다.”
논 이는 여래께서 결정해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세 부분이 있다. 첫째는 총론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가) 총론적으로 인정함
“공적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양약이 되는 까닭은 단지 공적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는 곧 병이 된다.
(나) 개별적으로 인정함
“공적한 자성” 이하는 개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적이라는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유전의 결과라는 근심(果患)을 떠났음을 설명하고, 둘째는 공적이라는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집착의 인행이라는 질병(因病)을 다스림을 드러낸다.
㉮ 유전의 결과라는 근심(果患)을 떠났음을 설명함
첫째에서 “공적한 자성이 무생이므로 마음이 항상 무생이다.”라고 한 것은 공적의 경지에 들어간 마음은 공적과 같아 무생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적의 무멸을 따르므로 마음은 항상 무멸이다. 생과 멸은 곧 무상無常의 뜻이므로 생과 멸을 뒤집어서 상常이라 말한다.“공적한 자성이 무주이므로 마음이 또한 항상 무주이다.”라는 것은 비단 처음과 끝이라는 분별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중간에 집착하는 집착상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세 가지 유위상(三相 : 生·住·滅)을 떠나 있음을 개별적으로 설명한 것이다.“이처럼 공적한 자성이 무위이므로 마음이 또한 항상 무위이다.”라는 것은 저 세 가지 유위상을 떠나 있음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공적이라는 약을 복용하여 무상無常의 질병을 떠났음을 설명한 것이다.
㉯ 집착의 인행이라는 질병(因病)을 다스림을 드러냄
둘째로 집착의 질병을 떠나 있음을 설명한다.“나감 들어감이 없다.”라는 것은 출관과 입관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모든 얻음과 잃음을 떠나 있다.”는 것은 또한 새로운 것을 얻고 옛 것을 잃는 분별상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마음에 집착이 없는 것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라는 것은 관찰하는 주체의 마음도 또한 공적의 도리와 같아서 나감과 들어감과 얻음과 잃음의 분별상에 집착이 없고, 십팔계·오음·십이입 법에도 집착이 없어서 곧 공적이라는 약을 복용하여 집착을 떠났음을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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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1_a_01L諸結使。是故應卽爲良藥耶。
001_0671_a_02L佛言。如是。何以故。法
性空 [128] 故。空性無生。
001_0671_a_03L心常無生。空性無滅。心常無滅。空性
001_0671_a_04L無住。心亦無住。空性無爲。心亦無爲。
001_0671_a_05L空無出入。離諸得失。陰界入 [129] 等。皆悉
001_0671_a_06L亦無。心如不著。亦復如是。菩薩。我說
001_0671_a_07L諸空。 [130] 破諸有故。
001_0671_a_08L此是如來定許。於中有三。一者摠
001_0671_a_09L許。言空故者。所以爲良藥者。只由空
001_0671_a_10L故。有卽生病故。空性已下。第二別
001_0671_a_11L許。於中有二。先明服空藥故。離流
001_0671_a_12L轉之果患。後顯服空藥故。治取着之
001_0671_a_13L因病。初中言空性無生。心常無生者。
001_0671_a_14L入空之心。同空無生故。又隨無滅。
001_0671_a_15L心常無滅。生滅正是無常之義故。翻
001_0671_a_16L彼二名爲常也。心亦無住者。非但無
001_0671_a_17L初後相。亦無中間住相。此是別明離
001_0671_a_18L三相也。心亦無爲者。摠顯離彼三有
001_0671_a_19L爲相。是明服空離無常病。次明亦離
001_0671_a_20L取着之病。無出入者。無有出觀入觀
001_0671_a_21L之異。離得失者。亦離得新失古之相。
001_0671_a_22L心如不着亦如是者。能觀之心。亦如
001_0671_a_23L空理。不取出入得失之相。不着陰界
001_0671_a_24L入等之法。是明服空離取着病也。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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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1_b_01L(다) 다시 총결함
“모든 공을 설하여 제유諸有를 타파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셋째로 다시 총결한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공적의 도리에는 두 가지가 없다.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공五空(無生·無滅·無住·無爲·無出入得失)이나 삼공三空(空三昧·無相三昧·無願三昧) 등의 여러 공을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유有의 병에 집착하는 것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병이 많기 때문에 공적의 도리도 또한 많이 설한다. 또한 공적의 도리에는 실제로 공도 없고 불공도 없지만 단지 유有를 타파하기 위하여 부득불 공적이라 말한 것이지, 공적이라는 말 때문에 공적의 자성을 설정한 것은 아니다.이 두 가지 뜻111)으로 여러 가지 공(諸空)의 가르침을 총결한다.여섯 가지 품의 여섯 가지 의심을 역순으로 해결하였으니, 곧 개별적으로 해결한 것과 총체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이상으로 마친다.
(2) 「여래장품」 한 품의 세 가지 의심을 순차로 없애 줌
이하는 둘째로 한 가지 품의 세 가지 의심을 순차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즉 「여래장품」의 한 품에서 다시 세 가지 의심을 일으키는데, 이를 차례대로 없애기 때문이다.
① 첫째 의심을 없애 줌
가. 질문
경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유는 실제가 아니라 마치 아지랑이를 물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줄 알고, 실제는 공무가 아니라 불의 자성(火性王)이 발생한 것과 같은 줄 안다면, 이와 같이 관찰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것입니까.”
논 첫째의 의심은 다음과 같다. 「여래장품」에서 저 범행장자가 게송으로 “제법을 하나뿐이라 설한다면 (그 한 법의 상은 모륜과 같네) 아지랑이를 물로 보는 것처럼 (모두 허망한 착각일 뿐이라네).”라고 말했고, 또 “만약 제법을 무라고 간주하면 (법을 허공처럼 보는 것이므로) 맹인이 해가 없다고 하듯이 (법을 거북 터럭 같다고 설하네).”라고 말했다. 이 게송의 설에 의해 어떤 사람에게 “장자는 세속인으로서 이렇게 판단하여 말했다. 그것은 망견妄見인가 진지眞智인가.”라는 의심이 생긴다. 이처럼 의심하여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그 의심을 없애 주기 위하여 위의 내용을 언급하여 질문한 것이다. 아지랑이를 물로 착각하는 비유는 앞에서 이미 설한 바와 같다.“실제는 공무가 아니다.”라는 것은 일실의一實義의 자성이 없지 않은 줄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 의심에서 일실의의 자성이 없다고 계탁하는 것은 마치 맹인이 전도되어 해가 없다고 한 것과 같다. 이로써 범행장자는 일실의의 자성이 공무가 아닌 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실제는 공무가 아니라 불의 자성이 발생한 것과 같은 줄 안다.”는 것은 나무의 속에 불의 자성이 있는 것과 같다. 곧 쪼개서 찾아보아도 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실제로 나무 속에 불의 자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무를 뚫고 비벼서 찾아보면 반드시 불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
001_0671_b_01L說諸空破諸有故者。第三結定。就
001_0671_b_02L實而言。空理無二。而說五三等諸空
001_0671_b_03L者。爲破諸人着有病故。隨病衆多
001_0671_b_04L說空亦爾。又復理實非空不空。但爲
001_0671_b_05L破有强說爲空。非空言下存空性也。
001_0671_b_06L以是二意。結諸空敎。
001_0671_b_07L地藏菩薩言。尊者。知有非實。如陽燄
001_0671_b_08L水。知實非無。如火性王一本
作生。 [131] 如是觀者。
001_0671_b_09L是人智耶。
001_0671_b_10L六品六疑。却次而決。別決摠定。竟
001_0671_b_11L在於前。此下第二一品三疑順次
001_0671_b_12L而遣。於中有三。謂如來藏一品之中。
001_0671_b_13L復起三疑。次第遣故。第一疑者。謂
001_0671_b_14L彼梵行長者頌言。若說法有一。如燄
001_0671_b_15L水迷倒。又言若見於法無。如盲無日
001_0671_b_16L倒。有依彼說。而生疑云。長者俗人
001_0671_b_17L如是判說。爲妄見耶。爲眞智耶。作
001_0671_b_18L如是疑。不肯信受。爲遣彼疑。擧彼
001_0671_b_19L事問。燄水之喩。如前已說。知實非
001_0671_b_20L無者。能知一實義性非無。彼說計無
001_0671_b_21L實者。如盲無日倒故。是知長者。知
001_0671_b_22L實非無。非無之義。如火性王。謂如
001_0671_b_23L木中。有火大性。分析求之。不得火
001_0671_b_24L相。而實不無木中火性。鑽而求之。
-
001_0671_c_01L일심의 경우도 그와 같다. 제상諸相을 분석해도 마음의 자성은 획득할 수 없지만 실제로 제법 가운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를 닦아 마음을 추구하면 일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의 자성은 그 모습이 감추어져 있지만 세력이 커서 마치 국왕과 같기 때문에 왕이라 한다.여기서는 “범행장자는 이와 같이 양변을 떠나 관찰하는데, 이 사람은 과연 지혜로운 사람인가?”를 묻고 있다.
나. 여래가 의심을 결단해 줌
이하는 여래께서 의심을 결단해 주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대로 결단해 주고, 둘째는 해석하여 결단해 준다.
가) 그대로 결단해 줌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제대로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일심의 적멸을 관찰하여 상相과 불상不相을 똑같이 공적의 입장에서 취하고, 그로써 공적을 닦기 때문에 부처님을 친견하여 간과한 적이 없으며, 또 부처님을 친견하기 때문에 삼류를 따르지 않는다.
논 “그렇다.”고 한 것은 그 사람이 지혜롭다는 것을 결단한 것이다.“왜냐하면” 이하는 그의 지혜를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간략한 해석이고, 둘째는 자세한 해석이다.
(가) 간략한 해석
첫째에서 “일심의 적멸을 관찰한다.”고 한 것은 일심법이 적멸하다는 뜻을 관찰하는 것이다.“상과 불상을 똑같이 공적의 입장에서 취한다.”는 것은 유상의 세속과 무상의 진제가 다같이 존재하지 않은 줄을 관찰한 까닭에 그것을 합하여 하나로 삼은 것이다.이와 같이 공적을 닦아서 제대로 불심을 따르기 때문에 항상 부처님 몸을 친견하여 일찍이 간과했던 적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친견하여 간과한 적이 없다.”고 한다.항상 부처님을 친견함으로써 더욱더 공관이 증진되고, 공관이 증진되어 제유諸有를 거스른다. 그러므로 “삼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삼류는 삼계의 번뇌를 모두 섭수한 것이니, 욕류欲流·유류有流·무명류無明流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삼류112)의 뜻은 일반적인 설명과 같다.
(나) 자세한 해석
경 대승에서 삼해탈도三解脫道(三三昧)는 일심의 자체로서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으므로 공적하고, 공적하므로 무상이며, 무상이므로 무작이고, 무작이므로 무구이며, 무구이므로 무원이다. 이와 같은 행업이야말로 청정심이다. 그래서 마음이 청정하므로 그대로 보신불을 친견하고, 보신불을 친견하기 때문에 마땅히 정토에 왕생한다. -
001_0671_c_01L火必現故。一心亦爾。分析諸相。不
001_0671_c_02L得心性。而實不無諸法中心。修道求
001_0671_c_03L之。一心顯故。如是火性。相隱勢大。
001_0671_c_04L如似國主。故名王也。長者如是離
001_0671_c_05L二邊觀。是人智耶。如是問也。
001_0671_c_06L佛言。如是。何以故。是人眞觀。觀一寂
001_0671_c_07L滅。相與不相。等以空取。 [132] 以修空故。不
001_0671_c_08L失見佛。以見佛故。不順三流。
001_0671_c_09L此下如來決疑。於中有二。直決。釋決。
001_0671_c_10L言如是者。決是人智。何以故下。釋
001_0671_c_11L其是智。於中有二。略釋。廣演。初中
001_0671_c_12L言觀一寂滅者。觀一心法寂滅義故。
001_0671_c_13L相與不相等以空取者。觀有相俗。與
001_0671_c_14L無相眞。等不存故。融爲一故。如是
001_0671_c_15L修空。正順佛心故。常見佛身。未會
001_0671_c_16L失時故。言不失見佛。以常見佛。彌
001_0671_c_17L增空觀。空觀增進。違逆諸有。故言
001_0671_c_18L不順三流。三流具攝三界煩惱。謂
001_0671_c_19L欲流。有流。及無明流。是謂三流。義
001_0671_c_20L如常說。
001_0671_c_21L於大乘中。三解脫道。一體無性。以其
001_0671_c_22L無性故空。空故無相。無相故無作。無
001_0671_c_23L作故無求。無求故無願。以 [133] 是業 [134] 故淨心。 [135]
001_0671_c_24L以心淨故見佛。 [136] 以見佛故。當生淨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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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2_a_01L보살이여, 이와 같은 심심한 법에서 삼화三化113)를 부지런히 닦아서 혜慧와 정定이 원만하게 성취되면114) 곧 삼계를 초월한다.”
논 이는 둘째로 자세하게 연설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삼해탈도의 뛰어난 이익을 설명하고, 둘째는 삼화를 근수하는 뛰어난 이익을 드러낸다.
㉮ 삼해탈도의 뛰어난 이익을 설명함
첫째에서 “일심의 자체로서 자성이 없다.”라고 한 것은 저 소승의 삼해탈문은 개별적인 자체로서 자성이 있음에 상대하여 대승보살의 관행은 일심의 자체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곧 마음을 관찰하여 자성이 없음을 증득할 경우, 그 뜻에 따라 짐짓 삼해탈을 내세웠을 뿐이다. 즉 자체의 자성을 잊었다는 뜻에 의하여 공해탈을 내세우고, 자체에 즉한 분별상(相)을 잊었다는 뜻에 의하여 무상해탈을 내세우며, 자체에 즉한 작용(用)을 잊었다는 뜻에 의하여 무작해탈을 내세우니 이는 달리 무원해탈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오직 일심의 무분별관이야말로 일체법 자체의 자성(體性)과 분별상(相)과 작용(用)을 없애지 않은 바도 없고, 융합하지 않은 바도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해탈문을 건립한다.“이와 같은 행업이야말로 청정심이다.”라는 것은 일체의 자체·분별상·작용(體·相·用)을 잊은 까닭에 관행을 나타내어 속제에 물들어 가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모든 염착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다. 염착심을 떠나 있으므로 보신불을 친견하고, 보신불을 친견하므로 정토에 왕생한다. 이것이 곧 삼해탈도의 뛰어난 이익이다.
㉯ 삼화를 근수하는 뛰어난 이익을 드러냄
“이와 같은 심심한 법에서 삼화를 부지런히 닦는다.”는 것은 공적한 제법에서 삼공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공상에 대하여 공적한 것이 제일화의 부지런히 닦음이고, 공공에 대하여 공적한 것이 제이화의 부지런히 닦음이며, 소공에 대하여 공적한 것이 제삼화의 부지런히 닦음이다. 그 뜻은 앞의 설명과 같으므로 별도로 논하지 않는다. 삼화를 부지런히 닦으면 곧 일심에 통달한다. 일심에 통달하므로 혜慧와 정定이 원만하게 성취된다. 원만하게 성취된 그 경지가 되면 삼계를 초월한 것이다. 이것이 곧 삼화를 부지런히 닦는 것으로서 그 뛰어난 이익이다.
② 둘째의 의심을 없애 줌
가. 질문
경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여래께서 설하신 무생무멸無生無滅은 곧 무상입니다. -
001_0672_a_01L菩薩於是深法。三化勤修。慧定圓成。
001_0672_a_02L卽超三界。
001_0672_a_03L此是第二廣演。於中有二。先明三解
001_0672_a_04L脫道勝利。後顯三化勤修勝利。初中
001_0672_a_05L言一軆無性者。對彼小乘三解脫門。
001_0672_a_06L別軆有性故。顯大乘菩薩觀行一軆。
001_0672_a_07L觀心證無性時。隨義假說。立三解脫。
001_0672_a_08L約其忘軆性義。立空解脫。忘卽軆相
001_0672_a_09L義門。立無相解脫。忘卽軆用義門。
001_0672_a_10L立無作解脫。亦名無願解脫。爲顯唯
001_0672_a_11L一無分別觀。於一切法軆性相用。無
001_0672_a_12L所不遣。無所不融。是故建立三解脫
001_0672_a_13L門。以是業故。淨心者。以忘一切軆
001_0672_a_14L相用故。能淨出觀涉俗之心。離諸染
001_0672_a_15L着。離染著心。能見報佛。見報佛故。
001_0672_a_16L得生淨土。是爲三解脫道勝利也。於
001_0672_a_17L是深法三化勤修者。謂於空法。勤修
001_0672_a_18L三空。何者。空相亦空。是一化修。空
001_0672_a_19L空亦空。是二化修。所空亦空。是三
001_0672_a_20L化修。義如前說。故不別論。三化勤
001_0672_a_21L修。卽達一心。達一心故。慧定圓成。
001_0672_a_22L圓成之地。卽超三界。是爲三化勤修
001_0672_a_23L勝利也。
001_0672_a_24L地藏菩薩言。如來所說。無生無滅。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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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2_b_01L이 생멸을 소멸하여 생멸이 소멸하면 상常이 되는데, 상常이기 때문에 단절이 없습니다. 이 단절이 없는 제법은 삼계의 모든 동법과 부동법을 떠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위법에서 그 불구덩이를 벗어나려면 어떤 법에 의거하여 스스로 책려해야만 그 적멸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논 이하는 저 「여래장품」의 둘째의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여래장품」에서 “분명하게 본다면 식識이 그대로 상常이 된다. 이에 그 식이 항상 적멸하고 그 적멸도 또한 적멸하다.”라고 하였다.이 경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심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상주하는 적멸법은 비록 기뻐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심오한 도리(希夷)이다. 그런데 중생심은 거칠고 소견이 좁으며 다스리기 어려운데 어떻게 중생심을 다스려서 저 적멸법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이러한 의심 때문에 지장보살이 이와 같이 질문한 것이다. 질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果가 요원함을 들고, 둘째는 인因에 들어감을 묻는다.
가) 과果가 요원함을 물음
첫째에서 “무생무멸은 곧 무상입니다.”라고 한 것은 곧 「여래장품」에서 “그 식이 항상 적멸하다.”고 말한 것을 이해한 것이다. 본래 적멸하기 때문에 곧 무생무멸이다. 그러나 본래 상주하는 것이 아니므로(非常) 곧 무상이다.“이 생멸을 소멸하여 생멸이 소멸하면 상常이 되는데”라는 것은 곧 「여래장품」에서 “그 적멸도 또한 적멸하다.”고 하고, 또 “분명하게 본다면 식識이 그대로 상常이 된다.”고 한 것을 이해한 것이다.
나) 인因에 들어감을 물음
“유위법” 이하는 둘째로 그 적멸문에 들어가는 방편에 대하여 곧장 물은 것이다. 비록 위에서 방편과 정관에 대하여 설했지만 간략하게 설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다시 자세하게 설해 주기를 청한 것이다.
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보살이여, 삼대사三大事에 대하여 그 마음을 책려하고, 삼대제三大諦에 대하여 그 행위에 들어가야 한다.”지장보살이 여쭈었다.“삼대사에 대하여 그 마음을 책려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삼제에 대하여 일행一行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삼사란, 첫째는 인이고, 둘째는 과이며, 셋째는 본식이다. 이러한 삼사는 본래부터 공무하여 자기의 진아가 아니다. 그런데 어찌 그것에 애염愛染을 내겠는가. -
001_0672_b_01L是無常。滅是生滅。生滅滅已。寂滅爲
001_0672_b_02L常。常故不斷。是不斷法。離諸三界。動
001_0672_b_03L不動法。於有爲法。如避火坑。依何等
001_0672_b_04L法。而自呵 [137] 責。入彼一門。
001_0672_b_05L此下遣其如來藏品之第二疑。彼言
001_0672_b_06L了見識爲常。是識常寂滅。寂滅亦寂
001_0672_b_07L滅。有依彼文而生疑云。如是常住之
001_0672_b_08L寂滅法。雖可欣樂。而是希夷。衆生
001_0672_b_09L之心。麁淺難調。如何調心。得趣彼
001_0672_b_10L門。乘如是疑。作如是問。問中有二。
001_0672_b_11L初擧果遠。後問入因。初中言。無生
001_0672_b_12L無滅。卽是無常者。卽領前言。是識
001_0672_b_13L常寂滅。本來寂滅故。是無生無滅。
001_0672_b_14L而本非常故。是無常也。滅是生滅
001_0672_b_15L生滅滅已寂滅爲常者。卽領前言
001_0672_b_16L寂滅亦寂滅。又言了見識爲常。於有
001_0672_b_17L爲法已下。第二正問趣入彼門方便。
001_0672_b_18L前雖有說方便正觀。而略說故。更請
001_0672_b_19L廣說。
001_0672_b_20L佛言。菩薩於三大事。呵責其心。於三
001_0672_b_21L大諦。而入其行。地藏菩薩言。云何三
001_0672_b_22L事。而責其心。云何三諦。而入一行。佛
001_0672_b_23L言。三事 [138] 者。一謂因。二謂果。三謂識。
001_0672_b_24L如是三事。從本空無。非我眞我。云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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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2_c_01L삼사는 번뇌에 계박되고 고해에 표류함을 관찰하여 그것으로써 항상 스스로 책려해야 한다.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보리도이니, 평등제平等諦로서 동등하지 않음이 없다. 둘째는 대각이니, 정지로 터득한 진리(正智得諦)로서 사지邪智로 진리를 터득한 것이 아니다. 셋째는 지혜와 선정이니, 무이행無異行으로 들어가는 진리이지 잡행雜行으로 진리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이 삼제로써 불도를 닦으면 그 사람은 그 법에서 정각을 터득하지 못함이 없고, 정각正覺의 지혜를 터득하여 대극大極의 자비를 유출시켜 자기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여 불보리를 성취한다.”
논 이 경문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하고,115) 둘째는 답변하고, 셋째는 청하고, 넷째는 설명한다.
(나. 답변)
(다. 청함)
라. 설명함
넷째의 설명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책려하고 멀리하게 해 주는 방편을 설명하고, 둘째는 들어가야 할 방편을 보여 준다.
가) 책려하고 멀리하게 해 주는 방편을 설명함
첫째에서 “인이다.”라고 한 것은 오계와 십선의 인이다.“과이다.”라는 것은 인간과 천상의 부귀와 안락의 과이다.“본식이다.”라는 것은 인과 과를 능지하는 것으로 근본식이다. 중생은 근본식을 자내아自內我로 간주하지만 근본식의 자성은 공적하므로 아我가 아니다. 무아의 도리만이 곧 진아이다. 그러므로 아가 아닌 것에 대하여 마땅히 애염愛染해서는 안 된다.“삼사는 번뇌에 계박되고 고해에 표류함을 관찰한다.”는 것은 네 가지 계박을 말미암아 이정理定(無漏定)의 마음을 장애하여 삼사로 하여금 고해에 표류하도록 하는 것이다. 네 가지 계박은 다음과 같다. 『대법론』의 「제품諦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박에 네 가지가 있으니, 탐욕신계貪欲身繫·진에신계瞋恚身繫·계금취신계戒禁取身繫·차실집취신계此實執取身繫이다. 이것은 선정의 의성신意性身116)을 장애하기 때문에 계박이라 한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선정심의 자성신을 장애하기 때문에 계박이라 한 것이지 색신을 장애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네 가지 마음이 산란하게 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
001_0672_c_01L於是。而生愛染。觀是三事。爲繫所飃
001_0672_c_02L一本
作縛。 [139] 飄流苦海。以如是事。常自呵責。
001_0672_c_03L三諦 [140] 者。一謂菩提之道。是平等諦。非
001_0672_c_04L不等 [141] 諦。二謂大覺。正智得諦。非邪智得
001_0672_c_05L諦。三謂慧定。無異行入諦。非雜 [142] 行入諦。
001_0672_c_06L以是三諦。而修佛道。是人於是法。無
001_0672_c_07L不得正覺。得正覺智。流大極慈 1)己 [49] 他
001_0672_c_08L俱利。成佛菩提。
001_0672_c_09L是文有四。初問。次答。三請。四說。
001_0672_c_10L說中有二。先說呵厭方便。後示趣入
001_0672_c_11L方便。初中言因者。五戒十善之因。
001_0672_c_12L果者。人天富樂之果。識者。能持因
001_0672_c_13L果卽是本識。衆生計此。爲自內我。
001_0672_c_14L而是性空故。非是我。無我之理。方
001_0672_c_15L便眞我。故於非我。不應愛染。觀是
001_0672_c_16L三事。爲繫所飃者。謂由四繫。障理
001_0672_c_17L定心。令是三事。飃流苦海故。何等
001_0672_c_18L名爲四繫。如對法論諦品中云。繫有
001_0672_c_19L四種。謂貪欲身繫。瞋恚身繫。戒禁
001_0672_c_20L取身繫。此實執取身繫。以能障礙定
001_0672_c_21L意性身。故名爲繫。所以者何。由此
001_0672_c_22L能障定心自性之身。故名爲繫。非障
001_0672_c_23L色身。何以故。能爲四種心亂因故。
001_0672_c_24L「己」作「已」{甲}。
-
001_0673_a_01L즉 재물 등의 탐애를 말미암아 인이 되어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다툼에 있어 바르지 못한 행이 인이 되어 마음을 산란하게 하며, 난행의 계금취견戒禁取見에 대한 고뇌가 인이 되어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올바른 도리로 경계를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 인이 되어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이다. 저것117)은 각기 다른 견해에 의지하는 까닭에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하여 올바른 도리가 아니라 갖가지로 함부로 헤아리고 그것에 허망하게 집착한다. 즉 오직 이것만이 옳고 다른 것은 모두 어리석고 허망한 것으로 간주하는데 그것을 말미암아 인이 되어 마음을 산란하게 움직인다. 그러면 무엇을 산란하게 움직이는가. 선정심의 여실지견을 산란하게 움직인다.118)
“그것으로써 항상 스스로 책려해야 한다.”는 것은 산란하게 하는 네 가지 계박을 책려하고, 표류하는 삼사를 멀리하는 것이다.이상으로 책려하고 멀리하게 해 주는 방편을 설명하였다.
나) 들어가야 할 방편을 보여 줌
들어가야 할 방편을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삼제에 대하여 그 도리를 살피는 것이다.
(가) 보리도
“첫째는 보리도이니, 평등제로서 동등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깨친 자성청정한 보리는 크게 통하지 못함이 없기 때문에 ‘도’라 하고, 일체의 유정이 모두 도의 자성을 구비하여 그 구경도에 돌아가지 못함이 없기 때문에 ‘평등제로서 동등하지 않음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곧 이승에서 진제와 속제에 별취別趣하는 것을 대치한 것이다.
(나) 대각
“둘째는 대각이니, 정지로 터득한 진리(正智得諦)로서 사지邪智로 진리를 터득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일체지인 대각의 과보는 오직 평등제119)만 증득한 정지로 터득한 것이지 명제冥諦(數論의 주장)와 대유大有(勝論의 주장) 등의 경계를 반연하는 사지邪智로 터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곧 모든 외도의 집착을 대치한 것이다.
(다) 지혜와 선정
“셋째는 지혜와 선정이니, 무이행無異行으로 들어가는 진리이지 잡행雜行으로 진리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정지를 터득하여 평등제에 들어갈 경우, 지혜와 선정이 원융하여 다른 수행의 모습이 없어야 바야흐로 평등제에 바르게 들어가는 것이다. 곧 이것은 세간의 분별심에서 심왕과 심수의 자체를 달리하거나 선정과 지혜를 다른 수행으로 간주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런 잡행으로는 올바른 인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
001_0673_a_01L謂由貪愛財物等爲因。令心散亂。於
001_0673_a_02L鬪諍事不正行爲因。令心散亂。於難
001_0673_a_03L行1)戒禁苦惱爲因。令心散亂。不如
001_0673_a_04L正理。推求境界爲因。令心散亂。由
001_0673_a_05L彼依止各別見故。於所知境。不如正
001_0673_a_06L理。種種推度。妄生執着。謂唯此眞。
001_0673_a_07L餘並愚妄。由此爲因。令心散動。於
001_0673_a_08L何散動。謂於定心。如實智見故。以
001_0673_a_09L如是事。常自呵責者。呵責能飄四繫
001_0673_a_10L而2)厭所流三事故。已說呵厭方便。
001_0673_a_11L云何趣入方便。所謂審諦於三諦故。
001_0673_a_12L一謂菩提之道。是平等諦非不等諦
001_0673_a_13L者。謂佛所證性淨菩提。無不通泰。
001_0673_a_14L故名爲道。一切有情。皆同此性。無
001_0673_a_15L一不歸。是究竟道。故言平等。非不
001_0673_a_16L平等。是卽對治二乘別趣也。二謂大
001_0673_a_17L覺。正智得諦。非邪智得諦者。謂一切
001_0673_a_18L智大覺之果。唯證平等正智所得。非
001_0673_a_19L緣冥諦大有等境邪智所得。是卽對
001_0673_a_20L治諸外道執也。三謂慧定。無異行入
001_0673_a_21L諦。非雜行入諦者。謂得正智入平等
001_0673_a_22L時。慧定圓融。無別行相。方是眞入
001_0673_a_23L於平等諦。非如世間分別之心王數
001_0673_a_24L別體。定慧異行。如是雜行。非眞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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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3_b_01L그러므로 이것은 곧 세간의 관행에서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서도 증득했다고 간주하는 증상만자를 대치한 것이다.이와 같은 세 가지를 통틀어 진리(諦)라고 말한 것은 진리를 살피는 관행이 관찰의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세 가지 각기 다른 집착(異執)을 널리 대치해야만 이에 하나의 불도를 정수正修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삼제로써 불도를 닦는다.”고 한다.다음은 수도하여 터득한 과를 드러낸 것이다.“그 사람은 그 법에서 정각을 터득하지 못함이 없다.”는 것은 곧 자리自利의 지혜와 공덕의 과를 드러낸 것이다. 이 삼제로써 불도를 닦으면 정각의 과를 얻지 못함이 없기 때문이다.“정각의 지혜를 터득하여 대극의 자비를 유출시킨다.”는 것은 이타利他의 은혜와 공덕의 과를 드러낸 것이다. 널리 대극의 무연자비를 널리 유출시켜 법계를 두루 이롭게 하지 못함이 없기 때문이다.“자기와 남을 모두 이롭게 하여 불보리를 성취한다.”는 것은 앞의 자리와 이타의 두 가지를 총결한 것이다. 곧 자리와 이타가 원만해져 등정각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③ 셋째의 의심을 없애 줌
이하는 저 「여래장품」의 셋째의 의심을 없애는 것이다. 저 「여래장품」의 게송 말미에서 “소취와 능취를 전변해야 곧 여래장에 들어갈 수 있다네.”라고 하였다. 이 설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심을 일으킨다. “이 가운데 보리도는 평등제로서 곧 여래장이다. 이것은 인과 연의 힘을 말미암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 능취와 소취를 전변시키는 인을 통하여 여래장법에 들어간다는 것인가.”이러한 의심 때문에 지장보살이 위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가. 질문
경 지장보살이 여쭈었다.“존자이시여, 그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곧 인과 연이 없습니다. 만약 연법이 없다면 인법이 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부동법으로 여래장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논 “곧 인과 연이 없습니다.”라는 것은 평등제이기 때문에 인법과 연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또 평등제이기 때문에 다른 연법이 없다. 이처럼 다른 연법이 없기 때문에 인법이 발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저 기동이 없는 법에 대하여 인연을 작용시켜 여래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인가. -
001_0673_b_01L故。是卽對治世間觀行。未證謂證。增
001_0673_b_02L上慢者。如是三種。通名諦者。審諦之
001_0673_b_03L觀。所觀境故。遍治如是三種異執。
001_0673_b_04L乃能正修於一佛道故。言以是三諦。
001_0673_b_05L而修佛道。次顯修道所得之果。是人
001_0673_b_06L於是法。無不得正覺者。是顯自利智
001_0673_b_07L德之果。於是三法。而修佛道。無有
001_0673_b_08L不獲正覺果故。得正覺智。流大極慈
001_0673_b_09L者。是顯利他恩德之果。普流大極無
001_0673_b_10L緣之慈。遍周法界無不利故。己他俱
001_0673_b_11L利。成佛菩提者。摠結前二。二利圓
001_0673_b_12L滿。成等覺故。
001_0673_b_13L地藏菩薩言。尊者。如是之法。卽無因
001_0673_b_14L緣。若無緣法。因卽不起。云何不動法
001_0673_b_15L一本有
得字入 [143] 如來。
001_0673_b_16L此下遣彼如來藏品第三之疑。如彼
001_0673_b_17L品頌末言。轉所取能取。入於如來藏。
001_0673_b_18L有依此說。而疑彼云。此中菩提之道。
001_0673_b_19L平等之諦。卽是如來藏。不待因緣力。
001_0673_b_20L云何彼轉能所之因。而能得入如來
001_0673_b_21L藏法。有作是疑。故乘彼問。卽無因
001_0673_b_22L緣者。由平等故。不從因緣。又平等
001_0673_b_23L故。卽無餘緣。餘緣無故。因不能起。
001_0673_b_24L云何於彼。無起動法。而用因緣。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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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3_c_01L만약 인법의 힘을 작용하여 여래장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인과 연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부동법은 아닐 것이다.
나. 의심한 것을 여래가 곧장 결단해 줌
이하는 의심한 것을 여래께서 곧장 결단해 주는 것이니, 그 평등하고 부동하여 여래장에 들어가는 뜻을 펼친다. 전체 여덟 게송에는 두 부분이 있다. 앞의 세 게송은 간략한 설명이고, 뒤의 다섯 게송은 자세한 설법이다.
가) 간략한 설명
경 그때 여래께서 그 뜻을 널리 펼치려고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一切諸法相 “일체 모든 법의 진실한 그 모습은
性空無不動 자성이 공무하여 움직임이 없다네
是法於是時 그 법은 현재 여기 있다 할지라도
不於是時起 현재 여기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네
法無有異時 그 법은 과거 및 미래가 없으므로
不於異時起 과거 및 미래에 일어나는 바 없네
法無動不動 그 제법은 동 및 부동이 없으므로
性空故寂滅 자성이 공적한 까닭에 적멸하다네
性空寂滅時 자성이 공적하여 적멸할 경우지만
是法是時現 그 법은 현재 여기에 드러나 있네
離相故寂住 형상 떠나므로 공적에 주할지라도
寂住故不緣 공적에 주한 탓에 연 따르지 않네
논 첫째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의 두 게송은 부동의 뜻을 설명하고, 뒤의 한 게송은 여래장에 들어가는 뜻을 드러낸다.
(가) 부동의 뜻을 설명함
첫째에 세 가지가 있으니, 표방(標)과 해석(釋)과 결론지음(結)이다.
㉮ 표방
제1구와 제2구는 부동의 뜻을 표방한 것이다.
㉯ 해석
다음의 제3구부터 제6구까지는 부동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그 법은 현재 여기 있다 할지라도 현재 여기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네.”에서 ‘현재 여기에 있다 할지라도’는 ‘이 세상’을 가리킨다. ‘이 세상’은 곧 ‘현재’이다. ‘현재’의 시간은 영원히 잠시도 머물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떠나서 그 중간 곧 현재는 없다. 마치 빛과 그림자를 떠나서 중간의 도리가 없는 것과 같다. 때문에 현재라 해도 일어나는 바가 없다.“그 법은 과거 및 미래가 없으므로 과거 및 미래에 일어나는 바 없네.”에서 ‘과거 및 미래가(異時)’는 소위 과거와 미래이다. 미래는 아직 유有가 아니므로 무기無起의 뜻이고, 과거는 이미 없으므로 또한 무기無起의 뜻이다. 이런 도리를 말미암아 제법은 기동이 없다.
㉰ 결론지음
이미 생기生起하는 동動도 없고, 또한 항주恒住하는 부동도 없다. 그러므로 “그 제법은 동 및 부동이 없으므로 자성이 공적한 까닭에 적멸하다네.”라고 한다. -
001_0673_c_01L入如來。若用因力之所入者。卽待因
001_0673_c_02L緣。非不動故。
001_0673_c_03L爾時。如來欲宣此義。而說偈言。
001_0673_c_04L一切諸法相。性空無不動。是法於是時。
001_0673_c_05L不於是時起。法無有異時。不於異時起。
001_0673_c_06L法無動不動。性空故寂滅。性空寂滅時。
001_0673_c_07L是法是時現。離相故寂住。寂住故不緣。
001_0673_c_08L此下如來正決所疑。宣其平等不動
001_0673_c_09L而有得入之義。八行頌中。卽有二分。
001_0673_c_10L前三略說。後五廣宣。略中有二。前
001_0673_c_11L3)三 [50] 頌。明不動之義。後一頌。顯得入
001_0673_c_12L之義。初中有三。謂標釋結。謂初二
001_0673_c_13L句。標不動義。次有四句。釋不動義。
001_0673_c_14L是法於是時。不於是時起者。是時者
001_0673_c_15L謂此世。此世者是現在。現在之時。
001_0673_c_16L永無暫住。細除已未。卽無中間。如
001_0673_c_17L除光陰。無中間處。故於是時。不得
001_0673_c_18L有起。法無有異時。不於異時起者。言
001_0673_c_19L異時者。所謂過未。未來未有。故無
001_0673_c_20L起義。過去已無。亦無起義。由是道
001_0673_c_21L理。法無起動。旣無生起之動。亦無
001_0673_c_22L恒住不動。故言法無動不動。性空故
001_0673_c_23L「戒」作「▼(戈/天)」{甲}。「厭」作「猒」次同{甲}。「三」
001_0673_c_24L作「二」{甲}。
-
001_0674_a_01L곧 이 제7구와 제8구의 두 구는 부동의 뜻을 결론지은 것이다.
(나) 여래장에 들어가는 뜻을 설명함
다음의 한 게송은 여래장에 들어가는 뜻을 설명한다.“자성이 공적하여 적멸할 경우지만”은 자성이 공적함을 요견하여 자성이 적멸한 때 부동한 법이 현현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마음에 현현하므로 여래장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상반의 이 두 구절은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설명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제법이 일체상을 떠나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제상을 떠나 있으므로 적정하게 머물고, 적정하게 머물기 때문에 항상 반연을 따르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비록 여래장에 들어가 있을지라도 반연을 떠나 있다는 뜻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반의 두 구절은 반연의 뜻을 떠나 있음을 드러낸다.
나) 자세한 설법
경
是諸緣起法 곧 인연을 통하여 일어난 모든 법
是法緣不生 제법의 인연은 발생하지 않는다네
因緣生滅無 인과 연은 생과 멸로 본래 없으니
生滅性空寂 생하고 멸하는 자성은 공적하다네
緣性能所緣 연의 자성 그리고 능연 및 소연은
是緣本緣起 본래 반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네
故法起非緣 이 때문에 법의 생기도 연 아니고
緣無起亦爾 반연이 생기하지 않음도 그렇다네
因緣所生法 인연을 말미암아 발생하는 제법은
是法是因緣 그 모든 법은 곧 비록 인연이지만
因緣生滅相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습
彼卽無生滅 그 모습의 자성은 생과 멸이 없네
논 이하는 둘째로 자세하게 설법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앞의 세 게송은 부동의 뜻을 자세하게 널리 설법하고, 둘째는 뒤의 두 게송은 여래장에 들어가는 뜻을 설한다.
(가) 부동의 뜻을 널리 설법함
첫째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앞의 두 게송은 근본을 추구해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부동을 드러내고, 뒤의 한 게송은 지말을 좇아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부동을 드러낸다.
㉮ 근본을 추구해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부동을 드러냄
첫째에 세 가지가 있으니, 표방(標)과 해석(釋)과 결론지음(結)이다.
a. 표방
처음에 “곧 인연을 통하여 일어난 모든 법, 제법의 인연은 발생하지 않는다네.”라고 한 것은 모든 과법은 그 반연이 불생임을 표방한 것이다.
b. 해석
그 다음의 네 구는 불생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인과 연은 생과 멸로 본래 없으니”라는 것은 모든 인연은 생멸로서 머물지 않기 때문에 과의 공능을 발생시키지 못함을 설명한 것이다.“생하고 멸하는 자성은 공적하다네.”는 머물지 않으므로 생멸도 없고, 자성이 공적하므로 또한 과果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연의 자성 그리고 능연 및 소연은”이란 인연으로서의 종자種子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자성이라 말하고, 증상연으로서의 뿌리(根)는 경계를 상대하므로 인연의 주체라 말하며, -
001_0674_a_01L寂滅。是二句者。結不動義。次有一
001_0674_a_02L頌明得入義。性空寂滅時者。了見
001_0674_a_03L性空寂滅之時。不動之法。是時顯現。
001_0674_a_04L顯現於心。故言得入。如是上半。明
001_0674_a_05L得入義。然此顯法離一切相。離諸
001_0674_a_06L相故。寂靜而住。住寂靜故。恒不從
001_0674_a_07L緣。是故雖有入。不廢離緣義。如是
001_0674_a_08L下半。顯離緣義也。
001_0674_a_09L是諸緣起法。是法緣不生。因緣生滅無。
001_0674_a_10L生滅性空寂。緣性能所緣。是緣本緣起。
001_0674_a_11L故法起非緣。緣無起亦爾。因緣所生法。
001_0674_a_12L是法是因緣。因緣生滅相。彼卽無生滅。
001_0674_a_13L此下第二廣宣。於中有二。是前三頌。
001_0674_a_14L廣不動義。其後二頌。宣得入義。初
001_0674_a_15L中亦二。謂前二頌。推本無得。以顯
001_0674_a_16L不動。後之一頌。逐末無得。以顯不
001_0674_a_17L動。初中有三。謂標釋結。初言是諸
001_0674_a_18L緣起法。是法緣不生者。標諸果法
001_0674_a_19L其緣不生。次有四句。釋不生義。因
001_0674_a_20L緣生滅無者。明諸因緣生滅不住。故
001_0674_a_21L無生果之功能也。生滅性空寂者。以
001_0674_a_22L不住故。卽無生滅。性空寂故。亦不
001_0674_a_23L生果。緣性能所緣者。因緣種子。冥
001_0674_a_24L伏名性。增上緣根。能對境界。故名
-
001_0674_b_01L대상인 경계는 뿌리의 대상이므로 소연이라 말한다. 차제연次第緣120)은 제법의 연멸에 해당하므로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121)이와 같이 종자의 자성과 연 및 그 인연의 주체와 대상은 모두 본래 반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 반연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네.”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곧 그 근본이 된다. 그 밖의 모든 연은 또한 앞의 설명과 같이 생멸의 자성이 공적하므로 발생의 작용이란 없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뜻122)을 말미암아 반연은 곧 무생의 뜻이 된다.
c. 결론지음
“이 때문에 법의 생기도 연 아니고”는 과법의 발기는 반연으로 발생한 바가 아님을 결론지은 것이고, “반연이 생기하지 않음도 그렇다네.”는 반연의 무기無起도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을 결론지은 것이다.
㉯ 지말을 좇아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부동을 드러냄
다음의 한 게송은 지말을 좇아도 터득할 수 없다는 것으로써 부동을 드러내는 것이다.“인연을 말미암아 발생하는 제법은 그 모든 법은 곧 비록 인연이지만”은 모든 과법도 또한 인연이 됨을 설명한 것이다. 과법은 뒤에 발생하는 제법에 대하여 그 반연이 되기 때문이다. 곧 모든 과법은 이미 그 인연이 되어 있음은 앞에서 설명한 “생하고 멸하는 자성은 공적하다네.”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습, 그 모습은 곧 생과 멸이 되네.”라고 한다.위에서 간략하게 설명한 대목123)에서는 그대로 과果의 공적함에 대해서만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 자세하게 널리 설법하는 대목124)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인연의 설법에 대하여 제법의 인과가 부동不動한즉 그것이 곧 평등보리의 도리이다. 그러므로 이 법 이외에 별도로 보리를 추구하지 않음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이 게송의 대의이다.”이에 승조 법사는 “도가 어찌 멀리 있겠는가. 부딪치는 것이 모두 진리이다. 성스러움이 어찌 멀리 있겠는가. 그것을 체득하면 곧 신통이다.”125)라고 하였다.
(나)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펼쳐서 설함
경
彼如眞實相 진여제법의 진실한 본래의 모습은
本不於出沒 본래부터 나타나고 숨음도 없다네
諸法於是時 그런데도 제법은 지금의 경우에도
自生於出沒 스스로 발생해 나타나고 숨는다네
是故極淨本 이러한 까닭에 극정본각의 자성은
本不因衆力 애초부터 중력에 의지함이 없다네
卽於後得處 그럼에도 이후에 터득한 도리에서
得得於本得 본래각의 도리를 또다시 터득하네”126)
논 이 두 게송은 여래장에 들어가는 뜻을 펼쳐서 설하는 것이다. 여기에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한 게송은 모든 기동에 대하여 진여의 부동을 드러낸다. 둘째로 두 구절은 -
001_0674_b_01L能緣。所緣境界。根所對故。名爲所
001_0674_b_02L緣。次第緣法。滅故不論。如是種子
001_0674_b_03L性緣。幷其能所二緣。皆是本緣之
001_0674_b_04L所起故。故言是緣本緣起。是卽其
001_0674_b_05L本。諸緣亦同前說。生滅性空。故無
001_0674_b_06L生用。由是三義。緣無生義。故法起
001_0674_b_07L非緣者。結果法起。非緣所生。緣無
001_0674_b_08L起亦爾者。結緣無起。亦同其果。次
001_0674_b_09L有一頌。遂末無得。以顯不動。因緣
001_0674_b_10L所生法。是法是因緣者。明諸果法。
001_0674_b_11L亦爲因緣。望後生法。而作緣故。是
001_0674_b_12L諸果法。旣爲因緣。卽同前說。生滅
001_0674_b_13L性空。故言因緣生滅相。彼卽爲生滅。 [144]
001_0674_b_14L前略說時。直顯果空故。今廣時就
001_0674_b_15L因緣說。欲顯諸法。因果不動。卽是
001_0674_b_16L平等菩提之道。非此法外。別求菩提。
001_0674_b_17L是謂此偈之大意也。如肇法師言。道
001_0674_b_18L遠乎哉。觸事而眞。聖遠乎哉。軆之
001_0674_b_19L卽神矣。
001_0674_b_20L彼知眞實相。本不於出沒。諸法於是時。
001_0674_b_21L自生於出沒。是故極淨本。本不因衆力。
001_0674_b_22L卽於後得處。得得 [145] 於本得。
001_0674_b_23L此二頌。是宣得入義。於中有三。一
001_0674_b_24L者一頌。對諸有動。顯如不動。二者
-
001_0674_c_01L부동은 본래 뭇 반연에 상대하지 않음을 설명한다. 셋째로 두 구절은 반연과 제법을 떠나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설명한다.“그럼에도 이후에 터득한 도리에서”는 도를 닦은 이후의 경지이다. 앞의 간략하게 설명한 것에서 ‘적멸할 그 경우’라고 한 것이 바로 여기에서 ‘그럼에도 이후에 터득한 도리에서’라고 한 것에 해당한다. 이미 적멸한 경지인데 어찌 처소(處)와 시제(時)가 있겠는가. 단지 처소와 시제를 떠나 있는 까닭에 그 처소와 시제에 의거했을 뿐이다.“본각의 도리를 또다시 터득하네.”는 시각始覺이 완성된 까닭에 ‘터득하네.’라고 하니, 이는 터득하는 주체이다. 시각이 완성되면 다시 본각과 동일하기 때문에 ‘본각의 도리’라고 한다.이상으로 「여래장품」의 셋째의 의심을 없앤 부분을 마친다.
4) 지장보살이 이해시킴경 그때 지장보살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이 탁 트였고, 당시의 대중들도 의심하는 자가 없어지자, 대중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게송을 설하여 여쭈었다.
我知衆心疑 “저는 대중의 마음에 있는 의심을 알아
所以殷固問 그 때문에 은근하고 또 간곡히 여쭈니
如來大慈善 여래께선 곧 대자 및 대비의 선심으로
分別無有餘 의심을 분별하시어 남김없이 해 주셨네127)
是諸二衆等 이에 모든 소승 및 대승의 귀의자들을128)
皆悉得明了 모두 남김없이 분명하게 요해하였다네
我今於了處 이제 저도 제가 깨친 경지에 입각하여
普化諸衆生 널리 삼계의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여129)
如佛之大悲 마치 부처님의 대자 및 대비 마음으로
不捨於本願 과거 세상의 본래 서원 저버리지 않네
故於一子地 이에 곧 마치 외아들 돌보는 마음으로
而住於煩惱 중생의 번뇌 속에 들어가 머물겠나이다”130)
논 이것은 넷째로 지장보살이 이해시킨 것이다.131) 이 세 게송에 두 부분이 있다. 앞의 한 게송 반은 앞에서 의심을 해결해 준 이익을 결론 맺은 것이다. 뒤의 한 게송 반은 훗날에 널리 제도할 보살행을 펼친 것이다.“마치 외아들 돌보는 마음으로”는 초지 이상에서 이미 일체중생이 평등함을 증득하였기에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이것을 청정한 증상增上·의락意樂이라 한다. 곧 비유에 의하여 보살의 마음을 나타내어 ‘마치 외아들 돌보는 마음으로’라고 한 것이다.“중생의 번뇌 속에 들어가 머물겠나이다.”는 보살이 비록 제법이 평등한 경지를 터득했지만 방편력으로 번뇌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일체의 번뇌煩惱와 수면隨眠을 버리고 열반에 들어간다면 본원本願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저 『유가론』의 삼마희다를 결택하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001_0674_c_01L二句。明不動本。不待衆緣。三者二
001_0674_c_02L句。明離緣法。有得入義。後得處者。
001_0674_c_03L謂道後處。前略說中言寂滅時。卽是
001_0674_c_04L此言後得之處。旣是寂滅。何有處時。
001_0674_c_05L但離時處。故寄之時處耳。得得於本
001_0674_c_06L得者。始覺究竟。故名爲得。是能得
001_0674_c_07L故。始覺究竟。還同本覺。以之故言。
001_0674_c_08L得於本得。上來第三決疑分竟。
001_0674_c_09L爾時。地藏菩薩聞佛所說。心地快然。
001_0674_c_10L時諸衆等。無有疑者。知衆心已。而說
001_0674_c_11L偈言。
001_0674_c_12L我知衆心疑。所以殷固問。如來大慈善。
001_0674_c_13L分別無有餘。是諸二衆等。皆悉得明了。
001_0674_c_14L我今於了處。普化諸衆生。如佛 [146] 之大悲。
001_0674_c_15L不捨於本願。故於一子地。而住於煩惱。
001_0674_c_16L此是第四領解。此三頌中卽有二分。
001_0674_c_17L前一頌半。結前決疑之利。後一頌半。
001_0674_c_18L申後普化之行。一子地者。初地已上。
001_0674_c_19L已證一切衆生平等。視諸衆生。如視
001_0674_c_20L一子。是名淸淨增上意樂。寄喩表心
001_0674_c_21L名一子地。而住於煩惱者。菩薩雖
001_0674_c_22L得諸法平等。而以方便力。不捨煩惱。
001_0674_c_23L若捨一切煩惱隨眠。便入涅槃。違本
001_0674_c_24L願故。如瑜伽論。三摩呬多。決擇中
-
001_0675_a_01L멸진등지滅盡等至는 마땅히 무루라 해야 한다. 곧 그것은 번뇌와 더불어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번뇌와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반연하는 바가 없다. 때문에 모든 번뇌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출세간의 일체의 이생異生(중생)으로서는 할 수 없는 수행이다. 오직 원행지遠行地(제7지) 이상에 들어간 보살을 제외된다. 왜냐하면 원행지 이상의 보살은 비록 출세간법을 일으켜 이 자리에 현전시킬지라도 선교방편을 말미암은 까닭에 번뇌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132)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번뇌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저 소승의 아라한처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므로 번뇌를 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지, 전혀 번뇌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번뇌를 버리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저 『이장장二障章』에서 설한 것과 같다.번뇌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번뇌 속에 들어가 머물겠나이다.”라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열반에 들어가지 않고 널리 시방세계를 제도하기 때문이다.이 『금강삼매경』에는 세 부분133)이 있는데, 그 둘째인 정설분은 이상으로 마친다.
제3장 유통분1. 보살을 찬탄하여 유통시킴경 그때 여래께서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134)“이 보살들135)은 불가사의하다. 항상 대비로써 중생의 고뇌를 없애 준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금강삼매경』의 설법을 지니고 이 보살의 명호를 지니면 곧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고 일체의 장난障難이 모두 다 소멸된다. 그리고 만약 어떤 중생이 다른 잡념이 없이 오로지 이 『금강삼매경』을 염송하여 여법하게 수습하면 그때 보살이 항상 화신으로 그를 위하여 설법해 주고, 그 사람을 옹호하여 끝내 잠시도 저버리지 않으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터득하게 해 준다.
논 이하는 셋째로 유통분이다. 여기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살을 찬탄하여 유통시키고, 둘째는 대중에게 권장하여 유통시키며, 셋째는 경전의 제명을 내세워 유통시키고, 넷째는 수지하여 유통시키며, 다섯째는 참회시켜 유통시키고, 여섯째는 봉행하여 유통시킨다.
논 이는 첫째로 보살을 찬탄하여 유통시키는 것이다. -
001_0675_a_01L云。滅盡等至。當言無漏。由與煩惱。
001_0675_a_02L不相應故。非相應故。無所緣故。非
001_0675_a_03L諸煩惱之所生故。是出世1)間。 [51] 一切
001_0675_a_04L異生。不能行故。唯除已入遠地菩薩。
001_0675_a_05L菩薩雖能起出世法。令現在前。然
001_0675_a_06L由方便善巧力故。不捨煩惱。案云。
001_0675_a_07L此中言不捨者。非究竟捨。如羅漢等。
001_0675_a_08L故曰不捨。非全不捨。故言不捨。於
001_0675_a_09L中委悉。如二障章說。由不捨故。言
001_0675_a_10L住煩惱。由是不入涅槃。普化十方界
001_0675_a_11L故。此一卷經。有三分中。第二正說。
001_0675_a_12L竟在於前也。
001_0675_a_13L[流通分]讚人流通爾時。如來而告衆言。是菩薩者。不可
001_0675_a_14L思議。恒以大悲一本
作慈。 [147] 拔衆生苦。若有衆
001_0675_a_15L生。持是經法。持是菩薩名。 [148] 卽不墮於
001_0675_a_16L惡趣。一切障難。皆悉除滅。若有衆生。 [149]
001_0675_a_17L一本衆生下。有
持此經者四字。無餘雜念。專念是經。如
001_0675_a_18L法修習。爾時菩薩常作化身。而爲說法。
001_0675_a_19L擁護是人。終不暫捨。令是人等。速得
001_0675_a_20L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1_0675_a_21L此下第三名流通分。於中有六。一
001_0675_a_22L者讃人流通。二者勸衆流通。三者立
001_0675_a_23L名流通。四者受持流通。五者懺悔流
001_0675_a_24L通。六者奉行流通。此卽第一讃人流
-
001_0675_b_01L이 경전을 유통시킬 수 있는 보살의 네 가지 뛰어난 공덕을 찬탄한다. 첫째는 대비로써 일체를 제도하는 공덕이고, 둘째는 이 경전을 수지하는 자에게 개별적인 이익을 주는 공덕이며, 셋째는 화신으로 설법하는 공덕이고, 넷째는 최후의 과보를 터득하게 하는 공덕이다.
2. 대중에게 권장하여 유통시킴경 그대 보살들이 만약 중생을 제도하려면 모두 이와 같은 대승의 결정요의決定了義를 수습해야 한다.”
논 이는 둘째로 대중에게 권장하여 유통시키는 것이다.“결정요의”는 가장 심오하고 가장 궁극적인 것으로 더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낸다.
3. 경전의 제명을 내세워 유통시킴이하는 셋째로 경전의 명칭을 내세워 유통시키는 것이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1) 질문경 그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서 부처님께 여쭈었다.“여래께서 해 주신 설법은 대승의 복취이고, 번뇌를 결정적으로 단제해 주며, 무생과 본각의 이익으로서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의 이와 같은 설법에 대하여 어떤 경전이라 제목을 붙여야 하고, 이 경전을 수지하면 어떤 복덕을 터득합니까. 바라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써 저희들에게 설해 주십시오.”136)
논 질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해이고, 둘째는 질문이다.
(1) 이해
이해 중에서는 이 경전의 네 가지 뛰어난 공능을 드러낸다.첫째의 뛰어난 공능은 수지하는 자로 하여금 무량한 복덕을 터득하게 한다. 경문의 “대승의 복취”가 그것이다.둘째의 뛰어난 공능은 수지하는 자로 하여금 모든 번뇌를 영원히 단제토록 한다. 경문의 “번뇌를 결정적으로 단제해 준다.”가 그것이다.셋째는 설명되는 종지가 곧 본각의 이익이다. 경문의 “무생과 본각의 이익”이 그것이다.넷째는 능전能詮의 교체가 곧 사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문의 “불가사의합니다.”가 그것이다.
(2) 질문
둘째 질문에서는 두 가지를 질문하였다. 첫째는 경전의 제목을 질문하였으니, 경전의 요체를 알기 위해서이다. 둘째는 경전을 수지하는 복덕을 질문하였으니, 복덕을 추구하여 경전을 수지하기 위해서이다.
2) 답변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선남자여, 이 경전의 제목은 불가사의하다. 과거의 제불이 호념한 바이고, 여래의 일체지혜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
001_0675_b_01L通。讃能流通是經菩薩。四種勝德。
001_0675_b_02L一者。大悲普化一切功德。二者。別
001_0675_b_03L益持是經者功德。三者。化身說法功
001_0675_b_04L德。四者。令得極果功德。
001_0675_b_05L[勸衆流通。]汝等菩薩。若化衆生。皆令修習如是大
001_0675_b_06L乘。決定了義。
001_0675_b_07L此是第二勸衆流通。決定了義者。爲
001_0675_b_08L顯最深最極。不可以加矣。
001_0675_b_09L爾時。阿難從座而起。前白佛言。如來
001_0675_b_10L所說。大乘福聚。決定斷結。無生覺利。
001_0675_b_11L不可思議。如是之法。名爲何經。受持
001_0675_b_12L是經。得幾所福。願佛慈悲。爲我宣說。
001_0675_b_13L[立名流通。]此下第三立名流通。先問。後答。問
001_0675_b_14L中亦二。先領。後問。領中卽顯是經
001_0675_b_15L四種勝能。一能令持者得無量福。
001_0675_b_16L如經大乘福聚故。二能令持者永斷
001_0675_b_17L諸結。如經決定斷結故。三者。所詮
001_0675_b_18L之旨。是本覺利。如經無生覺利故。
001_0675_b_19L四者。能詮之敎。難可思量。如經不
001_0675_b_20L可思議故。次問中問二事。先問經
001_0675_b_21L名。爲知經要故。後問持福。求福持
001_0675_b_22L經故。
001_0675_b_23L佛言。善男子。是經名者。不可思議。過
001_0675_b_24L去諸佛之所護念。能入如來一切智海。
-
001_0675_c_01L그러므로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수지하면 곧 일체경전에 대하여 더 이상 희구할 바가 없다. 왜냐하면 이 경전의 설법은 온갖 오미의 법을 총지하고, 제경의 요체를 섭수하며, 제경의 법에서 제법의 종지를 이어주기 때문이다.137) 이에 이 경전의 제목을 『섭대승경』이라 말하고, 또 『금강삼매』라 말하며, 또 『무량의종』이라 말한다.138)
논 이하는 답변으로서 두 가지가 있으니, 차례대로 두 가지 질문에 답변하기 때문이다.
(1) 첫 번째 질문에 답변함
첫 번째의 답변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먼저 제목의 뜻을 찬탄하고, 둘째는 뒤에 그대로 제목을 내세운다.
① 제목의 뜻을 찬탄함
첫째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목을 총체적으로 찬탄하고, 둘째는 개별적으로 뜻을 드러낸다.
(가. 총체적으로 제목을 찬탄함)
나. 개별적으로 뜻을 드러냄
“여래의 일체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하는 개별적으로 뜻을 드러낸 것이니, 곧 세 가지 뜻을 드러낸다.
가) 금강삼매라는 제명의 뜻을 드러냄
“여래의 일체지해에 들어가는 것이다. …… 더 이상 희구할 바가 없다.”는 것은 금강삼매라는 제명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곧 어떤 법도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어떤 도리도 궁구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로 말미암아 여래의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게 하고 이것을 능가하는 것으로 더 이상 희망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 섭대승경이라는 제명의 뜻을 드러냄
“이 경전의 설법은 온갖 오미의 법을 총지하고, 제경의 요체를 섭수한다.”는 것은 섭대승경이라는 제명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 무량의종이라는 제명의 뜻을 드러냄
“제경의 법에서 제법의 종지를 이어주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무량의종이라는 제명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② 그대로 제명의 뜻을 내세움
이 두 가지 제목의 뜻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전자(섭대승경)는 온갖 경전의 뜻을 널리 섭수함을 설명하고, 후자(무량의종)는 온갖 경전의 종지의 궁극임을 드러낸다.다음으로 세 가지 제목을 내세우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위 경문의 두 부문에서 이미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2) 두 번째 질문에 답변함
경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수지하면 곧 백·천의 제불을 수지한다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은 공덕을 비유하면 마치 허공에 끝이 없어 불가사의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 여래가 촉루하는 것도 오직 이 경전뿐이다.”139)
논 이는 두 번째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네 가지 뛰어난 덕을 드러낸다. -
001_0675_c_01L若有衆生。持是經者。卽於一切經中。
001_0675_c_02L無所希求。 [150] 是經典法。摠持衆法。攝諸
001_0675_c_03L經要。是諸經法。法之繫宗。是經名者。
001_0675_c_04L名攝大乘經。又名金剛三昧。又名無量
001_0675_c_05L義宗。
001_0675_c_06L此下答中有二。如其次第。答二問故。
001_0675_c_07L初中亦二。先讃名義。後正立名。初
001_0675_c_08L中亦二。先摠歎名。後別顯義。能入
001_0675_c_09L已下。是別顯義。卽顯三義。能入如
001_0675_c_10L來智海乃至無所希求者。是顯金剛
001_0675_c_11L三昧之名之義。無法不壞。無理不窮。
001_0675_c_12L由是令入如來智海。過是更無所希
001_0675_c_13L望故。是經典法摠持衆法攝諸經
001_0675_c_14L要者。是顯攝大乘經之名之義。是諸
001_0675_c_15L經法。法之繫宗者。是顯無量義宗之
001_0675_c_16L名之義。是二名義有何差別者。前
001_0675_c_17L明廣攝衆經之義。後顯衆經所宗之
001_0675_c_18L極。次立三名。於中委悉者。文前二
001_0675_c_19L門中。已廣說也。
001_0675_c_20L若有人受持是經典者。卽名受持百千
001_0675_c_21L諸佛。如是功德。譬如虛空無有邊際。
001_0675_c_22L不可思議。我所囑累。唯是經典。
001_0675_c_23L此是答第二問。於中卽顯四種勝德。
001_0675_c_24L「間」作「聞」{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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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6_a_01L첫째는 부처를 수지하는 뛰어난 덕이다. 곧 이 경전은 제불의 마음을 섭수하기 때문이다. 경문의 “백천의 제불을 수지한다.”가 그것이다.둘째는 광대하게 뛰어난 덕이다. 경문의 “허공에 끝이 없다.”가 그것이다.셋째는 심심하게 뛰어난 덕이다. 경문의 “불가사의한 것과 같다.”가 그것이다.넷째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덕이다. 경문의 “오직 이 경전뿐이다.”가 그것이다.
4. 수지하여 유통시킴경 아난이 여쭈었다.“어떤 마음으로 봉행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수지할 수 있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선남자여, 이 경전을 수지하면 그 사람은 마음에 득과 실이 없고, 항상 범행梵行을 닦으며, 희론을 마주해서도 항상 고요한 마음을 누리고, 취락에 들어가서도 마음이 항상 선정에 있으며, 속가에 있더라도 삼유에 집착이 없다.
논 이하는 넷째로 수지하여 유통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대로 수지함을 설명하고, 둘째는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낸다.
1) 그대로 수지함을 설명함첫째에도 또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답변이다.
(1) 질문
질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먼저 경전을 수지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질문한다. 둘째는 뒤에 경전을 수지하는 사람의 복리에 대하여 질문한다.
(2) 답변
답변의 대목에서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차례로 답변한다.
① 다섯 가지 마음의 작용을 설명함
첫째의 답변에서는 다섯 가지 마음의 작용을 설명한다.첫째로 “마음에 득과 실이 없다.”는 것은 타인의 장단점을 보지 않는 것이다.둘째로 “항상 범행을 닦는다.”는 것은 안으로 집착을 떠난 청정행을 닦는 것이다.셋째로 “항상 고요한 마음을 누린다.”는 것은 동動에 있으면서도 부동不動한 것이다.넷째로 “마음이 항상 선정에 있다.”는 것은 산란한 곳에 들어가서도 산란하지 않은 것이다.다섯째는 “삼유에 집착이 없다.”는 것은 오염된 곳에 거주해서도 오염되지 않는 것이다.
② 다섯 가지 복리를 터득함
경 그 사람에게는 현세에 다섯 가지 복리가 있다. 첫째는 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둘째는 몸이 횡사하거나 요사하지 않는다. 셋째는 사론邪論에 대해서도 변별하여 답변을 한다. 넷째는 즐거이 중생을 제도한다. 다섯째는 성도에 들어간다.140) 이와 같은 사람이 이 경전을 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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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6_a_01L一者持佛勝德。是經能攝諸佛心故。
001_0676_a_02L如經受持百千諸佛故。二者廣大勝
001_0676_a_03L德。如經無有邊際故。三者甚深勝
001_0676_a_04L德。如經不可思議故。四者無比勝
001_0676_a_05L德。如經唯是經典故。
001_0676_a_06L[受持流通。]阿難言。云何心行。云何人者。受持是
001_0676_a_07L經。佛言。善男子。受持是經者。是人
001_0676_a_08L心無得失。常修梵行。若於戱論。常樂
001_0676_a_09L淨 [151] 心。入於聚落。心常在定。若處居家。
001_0676_a_10L不着三有。
001_0676_a_11L此下第四受持流通。於中有二。一
001_0676_a_12L者正明受持。二者往復重顯。初中亦
001_0676_a_13L二。先問。後答。問中有二。先問受持
001_0676_a_14L經者心行。後問受持經者福利。答中
001_0676_a_15L次第。答此二問。初中卽明五種心行。
001_0676_a_16L一心無得失者。不觀他人之長短故。
001_0676_a_17L二常修梵行者。內修離相之淨行故。
001_0676_a_18L三常樂靜心者。在動不動故。四心常
001_0676_a_19L在定者。入散不散故。五不著三有者。
001_0676_a_20L居染不染故。
001_0676_a_21L是人。現世有五種福。一者衆所尊敬。
001_0676_a_22L二者身不橫夭。三者辯答邪論。四者樂
001_0676_a_23L度衆生。五者能入聖道。如是人者。受
001_0676_a_24L持是經。
-
001_0676_b_01L논 이는 둘째의 질문에 답변한 것이니, 앞의 다섯 가지 행위를 따라 이 다섯 가지 복리를 터득한다.“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대중의 장단점을 보지 않음을 말미암은 것이다.“몸이 횡사하거나 요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항상 분별상을 떠난 행위의 닦음을 말미암은 것이다.“사론에 대해서도 변별하여 답변을 한다.”는 것은 적정한 마음을 누리기 때문이다.“즐거이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산란에 들어가 있어도 항상 선정에 있기 때문이다.“성도에 들어간다.”는 것은 삼유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냄이하는 둘째로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복전의 자체를 설명하고, 둘째는 복덕을 발생시키는 공능을 드러낸다.
(1) 복전의 자체를 설명함
경 아난이 여쭈었다.“그와 같은 사람도 중생을 제도하고 공양을 받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와 같은 사람은 중생을 위하여 대복전이 되고, 항상 대지혜를 실천하는 데 있어 방편과 진실을 함께 연출한다. 이에 사의승四依僧141)으로서 모든 공양 및 머리·눈·골수·뇌까지도 다 받을 수 있는데 하물며 옷과 음식을 공양받지 못하겠는가.선남자여, 그와 같은 사람은 그대들의 선지식이고, 그대들의 교량인데, 하물며 범부가 공양하지 않겠는가.”
논 이것은 그 첫째에 해당한다.“사의승”이란, 제일의는 번뇌의 자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십지 이전의 계위에 속하고, 나머지 제2의·제3의·제4의 등은 지상의 계위에 속한다. 『열반경』에서 자세하게 설한 것과 같다.142)
(2) 복덕을 발생시키는 공능을 드러냄
경 아난이 여쭈었다.“그 사람이 이 경전을 수지할 경우에 그 사람에게 공양하면 어떤 복덕을 받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만약 또 어떤 사람이 성에 금과 은을 가득 채워서 그것을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사구게 하나를 수지한다면 그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
논 이는 둘째로 경전을 수지하는 사람은 많은 복덕을 발생시키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곧 성에 금과 은을 가득 채워서 -
001_0676_b_01L此是答第二問。隨前五行。得此五福。
001_0676_b_02L衆所尊敬者。由其不觀衆之長短故。
001_0676_b_03L身不橫夭者。由其常修離相行故。辯
001_0676_b_04L答邪論者。樂靜心故。樂度衆生者。
001_0676_b_05L入散常定故。能入聖道者。不着三有
001_0676_b_06L故。
001_0676_b_07L阿難言。如彼人者。度諸衆生。得受供
001_0676_b_08L一本供下
有養字 [152] 不。佛言。如是人者。能爲衆生。
001_0676_b_09L作大福田。常行大智。權實俱演。是四
001_0676_b_10L依僧。於諸供養。乃至頭目髓腦。亦皆
001_0676_b_11L得受。何況衣食。而不得受。善男子。如
001_0676_b_12L是人者。是汝知識。是汝橋梁。何況凡
001_0676_b_13L夫。而不供養。
001_0676_b_14L此下往復重顯。於中有二。先明福田
001_0676_b_15L之軆。後顯生福之能。此卽初也。四
001_0676_b_16L依僧者。第一依是具煩惱性。位在
001_0676_b_17L地前。其餘三依位在地上。如涅槃
001_0676_b_18L經之所廣說。
001_0676_b_19L阿難言。於彼人所。 [153] 受持是經。供養是
001_0676_b_20L人。得幾所福。佛言。若復有人。持以滿
001_0676_b_21L城金銀。而以布施。不如於是人所。受
001_0676_b_22L持是經。一四句偈。供養是人一本。無供養
是人四字。有
001_0676_b_23L不可思
議四字。 [154]
001_0676_b_24L此是第二明持經者。能生多福。以滿
-
001_0676_c_01L이 경전을 수지하지 못한 사람에게 보시하여 획득한 복덕이 사구게 하나를 수지하는 사람에게 한 끼 및 한 벌의 옷만을 가지고 공양하여 획득한 복덕만 못하기 때문이다.
5. 참회시켜 유통시킴이하는 다섯째로 참회시켜 유통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참회의 공덕을 찬탄하고, 둘째는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낸다.
1) 참회의 공덕을 찬탄함경 선남자여, 모든 중생에게 이 경전을 수지하게 하는 자는 마음이 항상 선정에 들어 있어 본래심을 잃지 않는다. 설령 본래심을 잃었으면 곧 마땅히 참회해야 한다. 참회하는 법이야말로 곧 청량하기 때문이다.”
논 첫째에서 “청량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에서, 수행에 장애(不善)가 되는 원인인 침탁沈濁을 소멸한 것을 ‘청淸’이라 하고, 생사윤회의 과보인 열뇌熱惱를 떠나는 것을 ‘량凉’이라 한다.
2)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냄경 아난이 여쭈었다.“이전의 죄업을 참회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거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닙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렇다. 마치 어두운 방에 밝은 등불이 비취면 어둠이 곧 소멸되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이전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한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과거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논 이하는 둘째로 왕복하면서 거듭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에 곧 두 번의 문답이 있다. 첫째 문답은 그 참회하는 도리를 드러내고, 둘째 문답은 그 참회하는 수행법을 드러낸다.
(1) 참회하는 도리를 드러냄
여기에서 질문한 뜻은 다음과 같다. “이전의 죄업에 대한 참회를 참회라 말한다면 이전의 죄업은 과거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인가. 만약 이전의 죄업이 현재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에 들어 있는 것이라 한다면 어떻게 있지도 않은 죄업을 참회한다는 것인가.”답변에서 “그렇다.”고 한 것은 그처럼 이전의 죄업이 과거에 들어 있지 않으므로 있지도 않은 죄업에 대하여 참회할 수는 없음을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지은 죄업은 근본식의 종자에 훈습되어 항상 현재까지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도리를 말미암아 과거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또한 지금 참회하여 그 죄업을 다스리는 경우는 그 죄업의 종자를 현재에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001_0676_c_01L城金銀。施不持經者所得之福。不如
001_0676_c_02L一餐一衣。供養持此一四句偈之所
001_0676_c_03L得福故。
001_0676_c_04L善男子。令諸衆生。持是經者。心常在
001_0676_c_05L定。不失本心。若失本心。卽當 [155] 懺悔。懺
001_0676_c_06L悔之法。是爲淸凉。
001_0676_c_07L[懺悔流通。]此下第五懺悔流通。於中有二。先
001_0676_c_08L讃懺悔功德。二者往復重顯。初中言
001_0676_c_09L淸凉者。滅不善因沈濁故淸。離生死
001_0676_c_10L果熱惱故凉。
001_0676_c_11L阿難言。懺悔先罪。不入於過去也。佛
001_0676_c_12L言。如是。猶如暗室。若遇明燈。暗卽滅
001_0676_c_13L矣。善男子。無說悔先。所有諸罪。而以
001_0676_c_14L爲說入於過去。
001_0676_c_15L此下第二往復重顯。於中卽有二番
001_0676_c_16L問答。初番顯其懺悔道理。後番顯其
001_0676_c_17L懺悔行法。此中問意。言懺悔先罪
001_0676_c_18L名懺悔者。先罪不入於過去耶。若先
001_0676_c_19L非今故。入過去者。云何於無罪。而
001_0676_c_20L有懺悔那。答中言知是者。如是先
001_0676_c_21L罪。不入過去故。不於無而有懺悔。
001_0676_c_22L所以然者。先所作罪。熏於本識。種
001_0676_c_23L子恒流。在於現在。由是道理。未入
001_0676_c_24L過去。且今懺悔。能治生時。令彼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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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7_a_01L마치 등불이 발생할 경우, 방의 어둠이 바야흐로 소멸되는 것처럼 죄업의 종자가 지금 현재까지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야 바야흐로 과거에 들어가도록 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므로 이전에 지은 죄업을 참회한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과거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전에 지니고 있던 죄업은 참회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으로 하여금 이전에 지니고 있던 죄업을 없었던 것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에 있었던 죄업으로 하여금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다. 곧 현재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참회의 행위를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번뇌를 단제하는 뜻과는 다르다.저 경우143)는 생멸의 도리에 의한 것이므로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하여금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144)는 상속의 도리에 나아가서 이전에 있던 죄업을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또한 번뇌를 단제하는 경우는 종자를 영원히 단제하는 것이지만, 이전의 죄업을 참회하는 것은 종자가 증강하는 작용을 억제하여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 의하여 과거에 들어간다고 설한 것이다.
(2) 참회하는 수행법을 드러냄
경 아난이 여쭈었다.“참회한다는 것은 어떤 수행을 말하는 것입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이 경전의 가르침에 의하여 진실관행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진실관행에 들어가는 경우에 모든 죄업이 다 소멸되고, 모든 악도를 떠나며, 마땅히 정토에 출생하여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다.”145)
논 이는 둘째로 참회하는 수행법을 드러내는 것이다. 답변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참회하는 수행법을 설명하고, 둘째는 뛰어난 이익을 보여 준다.146)
① 참회하는 수행법을 설명함
첫째에서 “이 경전의 가르침에 의하여 진실관행에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금강삼매의 교지에 의한 제법상의 타파를 ‘진실관행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는 지전地前의 진관眞觀147)과 비슷하다.“일단 진실관행에 들어가는 경우에 모든 죄업이 다 소멸된다.”는 것은 일체의 죄업장은 망상으로부터 발생하는데, 지금 제법상을 타파하여 진실관행에 들어가서 대번에 일체의 망상경계를 타파하기 때문에 모든 죄업장이 일시에 다 소멸되는 것이다.
② 뛰어난 이익을 보여 줌
그 다음은 뛰어난 이익을 보여 주는 대목인데, 여기에 두 구절이 있다.“모든 악도를 떠나며 마땅히 정토에 출생한다.”는 것은 화보華報148)를 설명한다. -
001_0677_a_01L種。不流現在。如燈生時。室暗方滅。
001_0677_a_02L罪種不至於今現故。是時方說令入
001_0677_a_03L過去。而無說悔先所有罪者。先所有
001_0677_a_04L者。非悔所及。不能令彼非先有故。
001_0677_a_05L但其先有。令不至現。不至現者。由悔
001_0677_a_06L所爲。此與斷結之義異者。彼約生滅
001_0677_a_07L道故。令未生者。不至現在。此就相
001_0677_a_08L續道故。令先有者。不至現在。又斷結
001_0677_a_09L者。永斷種子。悔先罪者。損伏種子。
001_0677_a_10L增强之用。不至現在故。約此義。說
001_0677_a_11L入過去也。
001_0677_a_12L阿難言。云何名爲懺悔。佛言。依此經
001_0677_a_13L敎。入眞實觀。一入觀時。諸罪悉滅。離
001_0677_a_14L諸惡趣。當生淨土。速成阿耨多羅三藐
001_0677_a_15L三菩提。
001_0677_a_16L此是第二懺悔行法。答中有二。先明
001_0677_a_17L行法。後示勝利。初中言。依此經敎
001_0677_a_18L入眞實觀者。謂依金剛三昧敎旨。破
001_0677_a_19L諸法相。名入眞實。此是地前相似眞
001_0677_a_20L觀。一入觀時。諸罪悉滅者。一切罪
001_0677_a_21L障。從妄想生。今破諸相。入眞實觀。
001_0677_a_22L頓破一切妄想境界。所以諸罪一時
001_0677_a_23L悉滅。次顯勝利。卽有二句。離諸惡
001_0677_a_24L趣。當生淨土者。是明華報。速成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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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7_b_01L“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다.”는 것은 과보果報를 보여 준다.
6. 봉행하여 유통시킴경 부처님께서 이 경전의 설법을 마쳤다.그때 아난 및 모든 보살과 사부대중이 모두 크게 환희하고, 마음에 결정지혜를 터득하여,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환희하며 받들고 실천하였다.149)
논 이것은 여섯째로 봉행하여 유통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네 구절이 있다.“모두 크게 환희하였다.”는 설법을 듣고 환희한 것이다.“마음에 결정지혜를 터득하였다.”는 모든 의혹을 떠난 것이다.“부처님의 발에 정례하였다.”는 법을 존중하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환희하며 봉행하였다.”는 봉행하는 경우에 더욱더 환희롭다는 것이다.
甚深且微金剛敎 매우 심오하고 미묘한 금강의 가르침
今承仰信略記述 지금 받들어 우러러 믿고 약술합니다
願此善根遍法界 원컨대 이 선근공덕 법계에 두루하여
普利一切無遺缺 널리 일체중생이 모두 이롭게 되소서150)
『금강삼매경론』 하권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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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677_b_01L耨多羅三藐三菩提者。是示果報。
001_0677_b_02L[奉行流通。]佛說是經已。爾時。阿難及諸菩薩。四
001_0677_b_03L部大 [156] 衆。皆大歡喜。心得決定。頂禮佛
001_0677_b_04L足。歡喜奉行。
001_0677_b_05L此是第六奉行流通。於中四句。皆大
001_0677_b_06L歡喜者。聞法歡喜故。心得決定者。
001_0677_b_07L離諸疑惑故。頂禮佛足者。重法敬人
001_0677_b_08L故。歡喜奉行者。行時轉喜故。
001_0677_b_09L甚深且微金剛敎。今承仰信略記述。
001_0677_b_10L願此善根遍法界。普利一切無遣缺。
001_0677_b_11L金剛三昧經論卷下終。
- 1)계행 : 삼무루학三無漏學 가운데 계무루학戒無漏學을 가리킨다.
- 2)삼용三用 : 원효는 삼취정계의 작용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金剛三昧經註解』 권3(X35, 241a)에서는 공空·가假·중中이라 하고,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05bc)에서는 삼해탈三解脫의 작용이라 한다.
- 3)사연四緣 : 작택멸력취연作擇滅力取緣·본리정근력소집기연本利淨根力所集起緣·대혜대비력연本慧大悲力緣·일각통지력연一覺通智力緣을 가리킨다.
- 4)일여 : 일본각의 진여를 가리킨다.
- 5)택멸擇滅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06a)에서는 간택단멸揀擇斷滅의 뜻으로 해석한다. 또한 『金剛三昧經註解』 권3(X35, 241b)에서는 “여기에서의 택擇은 택선擇善으로서 반드시 이와 같이 해야 한다든가 또는 반드시 이와 같이 해서는 안 된다든가 하는 것으로 악의 소멸을 말한다.(故擇謂擇善。 如是應作。 如是不應作等滅惡。 )”고 말한다.
- 6)일본각(一事)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06b)에서는 여래의 칠상주과七常住果로서 보리菩提·열반涅槃·진여眞如·불성佛性·암마라식菴摩羅識·공여래장空如來藏·대원경지大圓鏡智를 언급하면서 그것에 명칭은 일곱 가지가 있지만 그 체體는 본래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 7)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사연이란 다음과 같다. … 이것이 곧 사연이다.”
- 8)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사대연력은 사상에 집착도 없고 무공용도 아니며 일본각의 도리를 떠나 있고 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일본각은 육행을 통섭하므로 부처님의 보리이고 살반야의 바다이다.”
- 9)일본각이 일체수행을 섭수함을 싸잡아서 드러낸다는 것이다.
- 10)사상事相에 집착도~법은 진공으로서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06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상에 집착이 없다고 말한 것은 유위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고, 공용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은 무위법에 집착이 없는 것이다. 그 법이야말로 곧 진성공이다.(言若不住事相。 則不著於有爲。 不無功用。 則不著於無爲。 是法即爲眞性空矣。)” 그러나 『金剛三昧經註解』 권3(X35, 241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상에 집착이 없다.’는 것은 유위법에 집착이 없는 것이고, ‘무공용도 아니다.’라는 것은 유위법에 걸림이 없는 것이다. 유위법에 집착이 없는 것은 곧 진제이고 유위법에 걸림이 없는 것은 곧 속제이다. 진제와 속제가 둘이 아니므로 진공의 법성은 체가 원융하게 더불어 운용된다.(不住事相者。 不著有爲也。 不無功用者。 不礙有爲也。 不著有爲即眞諦。 不礙有爲即俗諦。 眞俗不二。 以眞空法性。 爲體圓融並運。)”
- 11)대력관 : 『金剛三昧經註解』 권3(X35, 241b~c)에 의하면, 상락아정의 사덕四德이 성취되어 이아二我를 초월하고 대안락심을 증득하는데 그 안락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 12)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 불일불이不一不異하기 때문이다.”
- 13)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다만 명칭과 법수이기에 …… 삼고의 바다를 건너간다.”
- 14)『大智度論』 권19(T25, 198b).
- 15)『大智度論』에서 제시하는 열 가지는 신信·계戒·사유思惟·정진精進·염念·정定·혜慧·제除·희喜·사捨인데, 원효는 희喜를 수受로, 정진精進을 근勤으로, 제除는 안安으로 간주하고 있다.
- 16)내 설법은~불구하고 설하였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07c)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하자면 내가 이전에 설한 것은 그대와 일체중생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모두 중생의 입장에서 설한 것이었기 때문에 부득불 방편으로써 그 말할 수 없는 뜻을 설하였다.(言我向所說法者。 以汝與一切衆生。 皆在衆生之中。 而以爲說。 故不得不以方便權巧。 說此不可說之義。)”
- 17)문자와 뜻이~모습을 드러낸다 : 문자와 뜻을 활용함에 있어 여래의 경우와 중생들의 경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가리킨다.
- 18)먼저 두 문장 : “내가 설한 바는 뜻의 언어이지 문자만의 언어는 아니다.” 및 “그러나 중생이 설한 바는 문자만의 언어이지 뜻의 언어가 아니다.”라는 것을 가리킨다.
- 19)두 문장 : “뜻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공무일 뿐이다.” 및 “공무의 언어는 뜻을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 20)저 위에서 말한 : 「入實際品」 가운데 삼공三空을 설명하는 대목을 가리킨다.
- 21)사구四句 : 긍정의 입장인 유구有句, 부정의 입장인 무구無句, 모두 긍정의 입장인 역유역무亦有亦無(俱句), 모두 부정의 입장인 비유비무非有非無(非俱句)를 말한다.
- 22)『菩薩瓔珞本業經』(T24, 1021b).
- 23)보살이 십지十地에서 점차 단제하는 십중장十重障을 가리킨다. 첫째는 이생성장異生性障, 둘째는 사행장邪行障, 셋째는 암둔장闇鈍障, 넷째는 미세번뇌현행장微細煩惱現行障, 다섯째는 어하승반열반장於下乘般涅槃障, 여섯째는 조상현행장粗相現行障, 일곱째는 세상현행장細相現行障, 여덟째는 무상중작가행장無相中作加行障, 아홉째는 이타중불욕행장利他中不欲行障, 열째는 어제법중미득자재장於諸法中未得自在障이다.
- 24)『金剛三昧經註解』 권3(X35, 242a~b)에서는 오위五位를 각각 십신·십주·십행·십회향·십지에 배대하고 있어서 원효의 견해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 25)두 구절 : “이 몸속에 있는 진여종자가 망심에 가려 있다.”는 구절과 “그 망심을 벗어나면 청정심이 분명해진다.”는 구절을 가리킨다.
- 26)심사관尋思觀 : 사심사관四尋思觀을 가리킨다. 사심사관은 혹 사종구四種求라고도 하는데, 사여실관四如實觀(四如實智)과 더불어 가행위加行位에서 수행한다. 사심사관은 명심사관名尋思觀·의심사관義尋思觀·자성가립심사관自性假立尋思觀·차별가립심사관差別假立尋思觀이다.
- 27)『大乘廣百論釋論』 권8(T30, 236a~b)의 내용 요약.
- 28)십해 : 사위思位가 십주·십행·십회향에 해당하므로 그 첫째인 십주를 가리킨다.
- 29)가행지加行智 : 여실지如實智 곧 정체지正體智와 여량지如量智 곧 후득지後得智의 예비 수행에 해당한다.
- 30)모든 장애(障難)를~번뇌(蓋纏)를 벗어난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08b)에서는 장障의 경우 기欺·태怠·진嗔·한恨·원怨의 5종, 개葢의 경우 탐욕貪欲·진에嗔恚·수睡·면眠·의疑의 5종, 전纏의 경우 분에전忿恚纏·부전覆纏·수전睡纏·면전眠纏·종일희희전縱逸嬉戲纏·조동도거전躁動掉舉纏·무참無慚·무괴無愧·간慳·투嫉 등 10종을 말한다.
- 31)정체지正體智 : 여리지如理智와 여량지如量智를 이지二智라 한다. 이 가운데 여리지는 불보살의 진제眞諦인 이실지理實智로서 근본지根本智·무분별지無分別智·정체지正體智·진지眞智·실지實智라고도 하고, 여량지는 불보살의 속제俗諦인 사량지事量智로서 후득지後得智·유분별지有分別智·속지俗智·편지徧智라고도 한다.
- 32)『菩薩瓔珞本業經』 권하(T24, 1018b), “위의가 일체법에 동일하게 나아가고 머무는데, 이것은 백천 가지 삼매에 머무는 것이다. 곧 부처님의 행위로서 금강삼매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일상이고 무상이며 적멸의 무위가 되기 때문에 무구지라 말한다.(威儀進止一切法同。 住是百千三昧中。 如是佛行。 故入金剛三昧。 一相無相寂滅無爲。 故名無垢地。)”
- 33)다섯째로 대반야는 모든 인연을 단절해 있음을 설명하는 것에 해당한다.
- 34)대신주이고 대명주이며 무상명주이고 무등등주 : 반야바라밀법을 찬탄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金剛三昧經註解』 권3(X35, 242c~243a)에서는 “마하반야를 이해하는 자는 일념에 일체의 장애를 초월하는데 그것이 곧 대신주이고, 일체의 무명장애를 타파하는데 그것이 곧 대명주이며, 진성의 공리는 오직 부처님만이 증득하는데 그것이 곧 무상주이고, 세간과 출세간에 비견할 것이 없는 그것이 곧 무등등주이다.”라고 말한다.
- 35)무릇 설법하여~취해야 한다 : 설법을 통하여 교화하려면 우선 교화가 된 결과(果地)를 일러 주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因行)에 대하여 설해 주는 것을 말한다.
- 36)생사의 생각 : 본각의 이익을 먼저 취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37)사안四眼 :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眼·법안法眼을 가리킨다.
- 38)사지四智 : 성소작지成所作智·평등성지平等性智·묘관찰지妙觀察智·대원경지大圓鏡智를 가리킨다.
- 39)오안五眼 : 육안肉眼·천안天眼·혜안慧安·법안法眼·불안佛眼을 가리킨다.
- 40)그래, 그렇다 : 『金剛三昧經註解』 권3(X35, 243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처님이 두 번이나 그렇다(如是)고 말하여 증명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교화하기 이전에 먼저 본각의 이익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고, 둘째는 만덕을 총지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佛以二如是證者。 一以印其得在念先。 一以印其能摠持萬德。)”
- 41)『菩薩瓔珞本業經』 권상(T24, 1012c~1013a)에 의하여 생략된 내용을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불자여, 마니영락보살의 글자는 등각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명칭은 금강혜당보살인데 정적정에 주하면서 대원력으로 백겁의 수명 동안 머물면서 천 가지 삼매를 닦아 이미 금강삼매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일체법성과 이제와 일제와 일합상과 동일하다. 다시 천겁의 수명 동안 머물면서 부처님의 위의를 익혀서 코끼리왕으로서 사자가 노니는 걸음을 관찰한다. 다시 부처님께서 무량하고 불가사의한 신통으로 교화하신 법을 닦는다. 이런 까닭에 일체의 불법이 모두 현전한다. 부처님 수행의 도리에 들어가 부처님 도량에 앉아서 삼마三魔를 초월한다. 다시 만겁의 수명 동안 머물면서 화현으로 성불하여 대적정에 들어가서 등각과 제불과 이제와 계외界外(계내교界內敎에 상대하는 계외교界外敎)와 비유와 비무와 무심과 무색과 인과와 이습二習(성문습聲聞習과 보살습菩薩習으로 소승의 가르침과 대승의 가르침)이 남아 있지 않다. 그리하여 옛적의 부처님(古佛)과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그에 상응하는 명칭이 따로 있어 모든 색과 심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옛적의 모든 부처님(古昔諸佛)과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항상 중도를 실천한다. 이에 대락의 무위로서 생멸의 유위와 다르고, 실제로 부처가 아니지만 부처의 신통력을 드러내면서 항상 본각의 경계에 머문다.(佛子。 摩尼寶瓔珞。 菩薩字者。 等覺性中一人。 其名金剛慧幢菩薩。 住頂寂定。 以大願力住壽百劫。 修千三昧已入金剛三昧。 同一切法性二諦一諦一合相。 復住壽千劫學佛威儀。 象王視觀師子遊步。 復修佛無量不可思議神通化導之法。 是故一切佛法皆現在前。 入佛行處坐佛道場超度三魔。 復住壽萬劫化現成佛。 入大寂定等覺諸佛二諦界外。 非有非無無心無色因果二習無有遺餘。 現同古佛但有應名。 現諸色心敎化衆生。 現同古昔諸佛常行中道。 大樂無爲而生滅爲異。 而實非佛現佛神通常住本境。)”
- 42)『菩薩瓔珞本業經』 권상(T24, 1013a).
- 43)여래의 뜻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10a~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여래란 일심一心·진여眞如·자성自性에서 온 것이다. 또 경전에서는 ‘여래는 곧 법이다.’라고 말한다. 『기신론起信論』에서는 ‘말한 바 법은 곧 중생심이다.’라고 말하고, 또 ‘여如는 부동한 법신의 본각이고, 래來는 보신·화신의 묘각이다.’라고 말한다.(夫如來者。 即一心眞如自性中來。 又經云。 如來。 即是法也。 起信論又云。 所言法者。 即衆生心。 又云。 如者。 即不動法身之本覺。 來。 即報化二身之玅覺也。)”
- 44)사선四禪 : 초선初禪의 이생희락離生喜樂, 제2선의 정생희락正生喜樂, 제3선의 이희묘락離喜妙樂, 제4선의 사념청정捨念淸淨을 가리킨다.
- 45)네 단계의 선정 : 여기에서는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무색계의 사정四定을 가리킨다.
- 46)그렇다 : 세간의 명칭과 법수와 사선四禪과 팔정八定을 초월해 있는 최상승선最上乘禪임을 말한다.
- 47)“본의本義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에서 ‘본의本義’는 『金剛三昧經通宗記』 권9(X35, 310c)에 의하면 ‘본성여의本性如義’이다. 그래서 곧 해석하자면 “본각의 자성은 진여의 뜻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다.
- 48)정려靜慮 : 신역新譯의 용어이고, 구역舊譯에서는 사유수思惟修라 하였다.
- 49)이 「眞性空品」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첫째는 이근자를 위하여 많은 경문으로 자세하게 설하는 부분이고, 둘째는 둔근자를 위하여 작은 경문으로 간략하게 요약하는 부분이다. 이 가운데 첫째로 자세하게 설하는 가운데에 곧 여섯 부분이 있음을 가리킨다.
- 50)「眞性空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는 그 중 둘째 둔근자를 위하여 작은 경문으로 간략하게 요약하는 부분이다.
- 51)그런 생각을 하는(措意) : 조의措意는 조치어의措置於意로서 “그러한 생각을 가지도록 조치하다.”라는 말이다. 곧 중생들로 하여금 수행을 하려는 마음을 가지도록 조치해 주는 것을 가리킨다.
- 52)방편方便과 실상實相, 적멸迹門과 본문本門,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유교有敎와 공교空敎, 진여眞如와 생멸生滅, 소승小乘과 대승大乘 등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방식이다.
- 53)이 「如來藏品」에 대하여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44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에서 해탈보살의 「무상법품」과 심왕보살의 「무생행품」과 무주보살의 「본각리품」과 대력보살의 「입실제품」에서 질문한 것은 중도의 뜻을 드러낸 것이었고, 다음으로 그것을 이어서 사리불의 「진성공품」에서 질문한 것은 진공의 뜻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제 여기에서 범행장자가 「여래장품」에서 질문한 것은 속제와 묘유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前來解脫等菩薩問者。 顯中道義。 次繼之以舍利弗問者。 顯眞空義。 此中長者問者。 顯俗諦妙有義。)”
- 54)이와 같은 뜻 : 범행梵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 55)그것 : 오직 일실의一實義의 자성에 해당하는 교법 곧 수행을 가리킨다.
- 56)불가사의하다 : 장자의 말처럼 진여법의 도리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 57)도시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3a)에 의하면 여기에서 말하는 도시는 성시城市를 가리킨다. 따라서 도시가 그대로 성과 같은 의미이다.
- 58)크게 분류한 : 『金剛三昧經論』의 일곱 품 가운데 제6의 「如來藏品」을 가리킨다.
- 59)삼종지三種智 : 수사취행隨事取行·수식취행隨識取行·수여취행隨如取行을 가리킨다.
- 60)유식을 따르는 수행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3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생은 전7식前七識을 말미암아 모든 현행을 일으켜서 여래장마저도 굴려서 식장識藏으로 삼는다. 그러나 보살은 금강심金剛心 가운데 머물러 무분별지를 터득하여 일체의 미세한 식識의 모습을 분별하여 소멸시키고 삼계의 만법이 유심이고 유식임을 알아서 곧 세간의 일체식심이 모두 각성覺性을 수순하여 연에 상응하면서 중생을 만나고 곳곳에서 종지를 해명하기 때문에 유식을 따르는 수행이라 말한다.(衆生由前七識。 起諸現行。 轉如來藏而爲識藏。 故有顛倒妄想。 菩薩住金剛心中。 得無分別智。 分別一切微細識相令滅。 知三界萬法。 唯心唯識。 則世間一切識心。 皆隨順覺性。 應緣遇物。 處處明宗。 此隨識取行也。)”
- 61)이 대목에 대하여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45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갖가지 수행의 갈래를 따르는 수행은 진여가 자성을 고수하지 않고 인연을 따라 변현하는 것으로 곧 속제의 환유幻有라는 뜻이고(假), 유식을 따르는 수행은 진여가 자성을 잃지 않는 것으로 인연을 따라 변현하지 않는다는 뜻이며(空), 진여를 따르는 수행은 곧 진·속의 불이중도로서 부사의하다는 뜻이다(中). 모든 세간과 출세간은 이 공·가·중의 세 가지 묘문을 벗어나지 않고 섭수되어 남음이 없다. 이 삼문에 들어가면 공상空想을 내지 않고, 불공상不空想도 내지 않으며, 또한 공空·불공상不空想도 내지 않는다. 삼제가 원융하기 때문에 입入이 곧 비입非入이고 비입非入이 곧 입入으로서 부정(遮)·긍정(照)이 자재한데 그것이 곧 여래장의 뜻이다. 경문의 경구는 간략하지만 자세하게 말하면 곧 공여래장, 불공여래장, 공불공여래장이 있다.(隨事取行者。 眞如不守自性。 隨緣變現。 即俗諦幻有義。 隨識取行者。 眞如不壞自性。 隨緣不變義。 隨如取行者。 即眞俗不二中道。 不思議義。 所有世出世間。 不出此空假中三種妙門。 攝盡無餘。 入此三門。 不生空想。 不生不空想。 亦不生空不空想。 三諦圓融。 入即非入。 非入即入。 遮照自在。 是如來藏義。 文經句略。 具言則有空如來藏。 不空如來藏。 空不空如來藏。)”
- 62)본각이 뿌리이고~터득되기 때문입니다 : 이에 대한 원문은 ‘本根利力。 利成得本’이다. 이것은 곧 본각은 시각의 이익을 근본으로 삼고, 시각의 이익이 성취되어 본각을 터득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4a~b)에서는 “본각은 반드시 시각의 이익으로 힘을 삼아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만약 시각의 이익이 성취되면 그 이후에 중생이 자각의 본성을 터득합니다.(必得始覺之利爲力。 若始覺之利已成。 而後乃得衆生自覺之本性矣。)”라고 해석한다.
- 63)전각삼매電覺三昧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4bc)에서는 이와 달리 찰나제삼매刹那際三昧, 전광삼매電光三昧, 금강삼매金剛三昧로서 열반근본지涅槃根本智라고 말한다.
- 64)진여의 지혜와 선정 : 진여에 바탕을 둔 지혜와 진여에 바탕을 둔 선정이라는 뜻이다.
- 65)지전의 네 가지 계위 : 십신·십주·십행·십회향의 네 계위를 가리킨다.
- 66)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이 세 가지 대사를 실행하지 못하면 곧 저 사지의 바다에 흘러들지 못하므로 모든 대마들에게 그 빈틈을 보이고 만다.”
- 67)이에 해당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장자여, 그대들 대중은 성불에 이르기까지 꼭 항상 수습하여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 68)두 가지 문답 : 첫째의 문답은 삼삼매문三三昧門이고, 둘째의 문답은 대문大門·의문義門·과문科門이다.
- 69)안과 밖으로~부정되지 않는다 :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대사大事” 가운데 첫째를 가리킨다.
- 0)ㄴ
- 70)깨침을 따라 택멸하는 것이다 : “세 가지 대사大事” 가운데 둘째를 가리킨다.
- 71)지혜로운 행위 :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지혜 곧 정지定智·부정지不定智·열반지涅槃智·구경지究竟智를 가리킨다.
- 72)게송으로 거듭 찬송한 대목 : 셋째 인의 행위가 작용하는 두 부분 가운데 둘째인 중송重頌 부분에 해당한다.
- 0)ㄴ
- 73)『瑜伽師地論』 권16(T30, 364bc)에 의하여 이 대목에 누락된 내용을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여섯째는 다른 것을 소멸시키는 작용이 없다. 말하자면 제법은 다른 것을 소멸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일곱째는 자기를 소멸시키는 작용이 없다. 말하자면 또한 자기를 소멸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문 갖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가, 또한 갖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소멸하는가? 답 갖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발생이 다하면 자연히 소멸한다.(六無滅他用。 謂法不能滅他。 七無自滅用。 謂亦不能自滅。 問如衆緣有故生。 亦衆緣有故滅耶。 答衆緣有故生。 生已自然滅。)”
- 74)모륜毛輪과 같네 : 눈병 난 사람에게 보이는 헛것으로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 75)일실이 있다고 계탁하여 : 유견有見 내지 상견常見에 빠진 것을 가리킨 것으로 위의 첫째에 해당한다.
- 76)없다는 견해 : 무견無見 내지 단견斷見에 빠진 것을 가리킨 것으로 위의 둘째에 해당한다.
- 77)모륜과 물의 경우처럼 : 눈병에 걸린 사람이 모륜을 보는 경우와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물로 간주한 경우를 가리킨다.
- 78)저 양변 : 첫째에서 동과 정이 무이하다는 말에 일실과 일심으로만 간주하는 것과, 둘째에서 공과 유의 이문에 대한 말을 듣고 일실은 없다고 계탁하는 것을 가리킨다.
- 79)『大方廣佛華嚴經』 권33(T9, 609a).
- 80)상법은 상법이 아니다 : 진제의 상법은 속제의 상법이 아님을 가리킨다.
- 81)명칭과 색상은~일어난 것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7a)에서는 “치심癡心은 곧 망상妄想이고, 명색名色은 곧 명상名相이다.”라고 말한다.
- 82)『大方廣佛華嚴經』 권10(T9, 465c).
- 83)결론 : 앞의 진증관과 방편관의 두 가지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임을 가리킨다.
- 84)둘째 : 중송重頌의 두 부분 가운데 첫째는 여래께서 간략하게 널리 설법한 것이고, 둘째는 장자가 자세하게 연설한 것이다. 그 가운데 둘째인 장자의 연설이 이에 해당한다.
- 85)모두 다섯이 된다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71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오법의 명칭을 드러낸 것이다. 곧 명名과 상相과 망상妄想과 여여如如와 정지正智의 오법이다. 말한 바 분별사分別事는 제7식으로서 곧 망상을 가리킨다. 법法은 곧 명과 상과 망상의 법이다. 그리고 진여眞如와 정묘지正玅智는 곧 여여如如와 정지正智이다.(此顯五法名。 即名相妄想如如正智五法也。 所云分別事。 指第七識。 即妄想。 法即名相妄想之法。 眞如正玅智即如如正智。)”
- 86)공상도 또한~것을 말한다 : 앞의 「入實際品」에서 대력보살이 질문한 삼공三空 부분을 가리킨다. “대력보살이 여쭈었다. ‘그러면 삼공이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공이란 공상도 또한 공한 것이고, 공공도 또한 공한 것이며, 소공도 또한 공한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공은 공상·공공·소공의 삼공에 집착이 없어서 진실하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글과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또 불가사의하다.’”
- 87)인연은 본무로~불멸이 되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7c)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연은 본무로서 불생이다. 그 불생을 인유하는 까닭에 또한 불멸이다.(然因緣本無而不生。 然因不生。 故亦不滅。)”
- 88)이 게송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8上)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대목은 여실如實의 뜻을 설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반드시 모든 인연으로부터 생상을 취하는 것을 떠나야 하고, 또한 인연으로부터 그 멸상을 취해서도 안 되며, 또한 기己와 의義와 대大를 취해서도 안 된다. 기己는 본식本識을 가리키고, 의義는 음陰·계界·입入을 가리키며, 대大는 사대四大를 가리키는데, 저 앞에서 말한 대大·의義·과科가 바로 그것이다.(此明如實之義 言當離諸因緣而取生相。 亦不從因緣取其滅相。 亦不取於己義大。 己謂本識。 義是陰界入。 大是四大。 即前大義科。)”
- 89)제2구의 “안~걸리는 말이다 : “거기서 소멸 취함도 안 되며 자기와 의와 사대까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따라서 취해서도 안 된다(不從)는 말은 제2구와 제3구에 모두 통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90)이 게송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8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게송은 여여한 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또한 그 분별식의 변화를 간별한 것이다. 이미 진여에 의거하여 실實을 터득하였다. 그러므로 진여법은 항상 자재하고 여여하여 변역이 없다. 그러나 만약 일체만법에 대해서 보자면 그것은 모두 제7식이 제8식의 상분과 견분을 집착하여 색色과 심心 등의 제법을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여가 아니라 분별사식分別事識의 변화라고 하는 것일 뿐이다.(此明如如之法。 又揀其識化。 言既依如而得實。 是故眞如之法。 常自在於如如而無變易矣。 若乃一切萬法。 此皆第七執第八相分見分。 而生色心諸法也。 故云非是如。 乃識所化耳。)”
- 91)무심할 경우 : 생멸법을 소멸하여 회신멸지灰身滅智한 경우를 가리킨다.
- 92)그때 대중이~여래장해에 들어갔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0(X35, 318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대목은 설법의 뜻을 듣고 얻은 이익을 결론지은 것이다. 교학에서 말하는 비구의 걸식은 정명식正命食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4종의 사명식邪命食을 타파하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체법을 받았다면 그것은 곧 사명邪命이라 말한다. 그러나 만약 일체법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곧 정명正命이다. 위의 게송에서 설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모두 정명식을 얻었다고 말한다. 여기 대목에서는 자성의 체體와 용用을 설명하고 있다. 곧 여래지에 들어가서 제불의 구경지究竟智와 원만하고 청정한 법신을 터득하는 것이 바로 여래장해如來藏海이다.(此結聞義咸益。 教中謂比丘乞食。 謂之正命食。 以破四種邪命食故。 今此以受於一切法。 即名邪命。 若不受一切法爲正命。 如前偈中所說。 即是此義。 故云皆得正命。 於此明自性體用。 即是入於如來。 得諸佛究竟智。 圓滿清淨法身。 是爲如來藏海也。)”
- 93)‘총지’라 한다 : 「總持品」의 의미에 대하여 말한 대목이다. 첫째는 앞의 전체 경문에 대하여 의심을 해결하고 요의要義를 총지하고, 둘째는 문의다라니文義陀羅尼를 통하여 모든 의심을 해결한다. 이 「總持品」의 대의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1(X35, 318c)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만각분滿覺分으로서 각覺과 행行이 원만圓滿하여 갖가지 법을 총지한 것을 말하는데, 이 『금강삼매경』의 기둥이다. 또한 이 경전은 저 「무상법품」에서는 제6지를 설명하였고, 「무생행품」에서는 제7지를 설명하였으며, 「본각리품」에서는 제8지를 설명하였고, 「입실제품」에서는 제9지를 설명하였으며, 「진성공품」에서는 제10지를 설명하였고, 「여래장품」에서는 등각지를 설명하였으며, 이 「총지품」에서는 지장보살이 대중을 상대하여 분명하게 묘각의 과만果滿을 드러냈다. 그러나 묘각은 원래 앞의 여섯 가지의 품을 떠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제불의 시각이라 말하는데, 이것은 곧 중생의 본각이다. 그래서 본각은 원인이고 시각은 결과이다.(此爲滿覺分。 謂覺行圓滿。 而能摠持衆法。 爲一經之樞紐也。 且夫此經。 如無相法。 發明第六地。 無生行。 發明第七地。 本覺利。 發明第八地。 入實際。 發明第九地。 眞性空。 發明第十地。 如來藏。 發明等覺地。 至此品。 地藏菩薩當機。 分明顯玅覺果滿。 然玅覺原不離前六品法。 所以云諸佛始覺。 即是衆生本覺。 本覺爲因。 始覺爲果。)”
- 94)그때 지장보살이~허락해 주십시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1(X35, 319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지장보살이 대중의 의심을 해결해 주기 위하여 부처님께 허락을 구하는 대목이다. 청법하는 모습은 해탈보살의 경우와 같은데, 이것은 무릇 처음과 마지막이 변하지 않았다는 뜻을 설명한 것이다. 대중 가운데서 일어난 것은 특이한 것이 없음을 설명하고, 부처님 앞에 다다른 것은 묘각의 경우에 행行이 두루하고 과果가 충만하여 불도에 그대로 도달한 것을 표시하며, 마음에 의문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등각의 경우에 묘각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본래부터 후세 중생을 위하여 의심을 없애 주려고 하는데 지장보살도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의문을 해결해 주려고 부처님의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此菩薩爲衆決疑。 求佛聽許也。 其請法之儀。 同於解脫菩薩者。 葢明初後不移之意。 從衆中起。 以明無有特異也。 至於佛前。 表玅覺。 行周果滿。 直達於佛道也。 心疑未決。 等覺未至於玅。 故猶有疑耳。 然佛本欲。 爲後世除疑。 菩薩亦是爲衆生決問。 願佛之聽許也。 )”
- 95)지장이라는 명칭 :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47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능지能持하는 것은 지地와 같고, 소지所持하는 것은 장藏과 같은 까닭에 지장보살이라는 명칭으로 「총지품」을 드러낸다. 또한 능能을 벗어나고 소所를 단절하는 것은 마치 지地가 담고 있는 만물과 같고, 만유를 함육含育하는 것은 마치 지地가 만물을 감추고 있는 것과 같다.(能持如地。 所持如藏。 故地藏菩薩表之也。 又離能絕所。 如地之持物。 含育萬有。 如地能藏也。)”
- 96)한 가지 품 : 「如來藏品」을 가리킨다.
- 97)자상과 타상도~그와 같아 :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48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진법은 과거에는 시작이 없었고 미래에는 끝이 없다. 이미 시·종이 없는데 성·패인들 어찌 있겠는가. 대저 진여의 법성은 허공의 비유를 취해야만 지극히 합당하다.(自他亦復爾。 此之眞法過去無始。 未來無終。 既無終始。 成敗何有。 夫眞如法性。 取譬虗空。 極爲恰當。)”
- 98)상위과相違過 : 주장하려는 내용의 인因과 종宗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오류를 범하고 만다. 이런 모순에 법자상상위인法自相相違因·법차별상위인法差別相違因·유법자상상위인有法自相相違因·유법차별상위인有法差別相違因의 네 가지가 있는데 상위과는 법자상상위인에 해당한다. 가령 종宗·인因·유喩의 삼지작법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장보살의 주장 : 부처님께서 설한 제법은 저절로 성취된 것이다(宗). 상대(待)가 없기 때문이다(因). 소취所取가 없는 진여와 같다(喩). 부처님의 주장 : 제법은 형성과 소멸이 없다(宗). 상대(待)가 없기 때문이다(因). 소취所取가 없는 진여와 같다(喩). 여기에서 지장보살의 주장은 상대(待)가 없는 제법과 저절로 성취된 제법이 동일시되는 오류가 드러난다. 왜냐하면 상대(待)가 없는 제법은 아예 형성과 소멸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장보살의 경우 종과 인 사이에 논리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 99)그런 법 : 상대(待)가 없이 저절로 형성되고 소멸된다는 앞의 내용을 가리킨다.
- 100)중생의 심이~아님을 터득하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1(X35, 320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그들 모든 중생이 자심自心이 불공인 줄 안다면 곧 그들 자심이 본래 불유不有임을 터득한다.(若彼諸衆生。 知自心之不空。 是即得於自心之本不有也。)”
- 101)색제와 공제와 심제 :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48b)에서는 “색제는 속제이고, 공제는 진제이며, 심제는 중도제이다.(色是俗諦。 空是眞諦。 心是中道諦。)”라고 말한다.
- 102)「총지품」 중~말한 것 : 삼대제三大諦로서 평등제平等諦·정지득제正智得諦·무이행입제無異行入諦이다.
- 103)그 색과~같지는 않다 : 저것을 말미암아 발생되는 경우처럼 차별상을 없애고 터득하는 적멸의 경지가 본래부터 차별상이 없는 일본각의 적멸의 경지와 다르다는 것을 가리킨다.
- 104)앞의 설명 : “일체의 제법은 모두 공적한데 제법은 적멸하나 공하지 않네. 중생의 심이 불공임을 알아야 일심법이 유 아님을 터득하네.”라는 앞의 게송을 가리킨다.
- 105)만약 명칭법과~있다는 경우이다 : 여기에서 명칭법과 언설법을 같다고 말하는 경우는 명칭법이 곧 언설법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명칭법과 언설법이 공통적으로 진여의 일실의一實義를 드러내는 설명하는 주체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
- 106)뒷부분의 말 : 「總持品」 가운데 위의 지장보살이 여쭙는 대목을 가리킨다.
- 107)여시지법 :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서 깨침에 계합하고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진여법을 가리킨다.
- 108)이 경문에 대하여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49a)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여의 실제에는 일진一塵도 성립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찌 색상인들 있겠는가. 색상도 오히려 없는데 어찌 방소方所가 있고 방처方處에 주하겠는가. 이미 색상과 방소가 없은즉 주체와 객체의 적집 등 일체가 없다. 문 어찌 일체가 없다고 하는가? 답 소승교 가운데는 문文도 있고 의義도 있기 때문에 다툼이 많다. 그러나 대승의 제일의공에는 의도 없고 문도 없다. 오직 무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근본식에서는 끝내 저 털끝만큼의 명名·상相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에 세간의 적집은 없지만 출세간의 공덕의 적취는 남아 있다.(眞如實際之中。 不立一塵。 豈干色相。 色尚無有。 何有方所。 可住方處。 既無則。 能所積集。 一切泯絕。 何以泯絕耶。 小乘教中。 有文有義。 故多諍訟。 大乘第一義空。 非義非文。 惟有無生。 本識終不容他毫末。 名相。 無世間積集。 有出世間功德積聚也。)” 또한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1(X35, 321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대목은 비집非集으로 성취된 것임을 해석한 것으로 진여의 실제법을 말한 것이다. 본래 청정한 까닭에 색상이 없고, 처소에 집착이 없는 까닭에 집착이 없다. 소집所集이 아닌 것은 외경이 공한 까닭이고, 능집能集이 아닌 것은 심식이 공한 까닭이며, 의義가 아닌 것은 설명으로 드러낼 수 없는 까닭이고, 문文이 아닌 것은 언설로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이에 그 일본각의 대大·의義·과科의 법에 즉하게 되어 진실로 출세간마저 초월하여 깊은 공덕취功德聚가 된다. 본과本科의 두 글자는 앞의 「여래장품」에서 말한 대·의·과이다. 그것은 무릇 본식本識으로써 과목을 삼아서 대·의·과를 통섭하기 때문이다.(此釋成非集。 言眞如實際之法。 本來清淨故無色。 不著處所故無住。 非所集。 外境空故。 非能集。 心識空故。 非義。 不可詮表故。 非文。 言說不及故。 即此一本科法。 眞乃超出世間。 爲淵深功德之聚矣。 本科二字。 即前如來藏品中大義科。 葢以本識爲科目。 而統攝大義等法也。)”
- 109)원願도 또한 작용하지 않는데 : 이 대목을 삼삼매와 결부시키면 “공적한 경지에 들어가 행한 바가 없으나 제업을 잃지 않고”는 공삼매空三昧이고, “아와 아소 및 능과 소의 신견身見이 없어서 안팎의 번뇌가 모두 적정합니다.”는 무상삼매無相三昧이며, “원願도 또한 작용하지 않습니다.”는 무원삼매無願三昧이다.
- 110)공적의 도리에는~가지가 없다 : 위에서 공적의 자성에 대하여 첫째는 공적이라는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유전의 증과라는 근심을 떠났다는 것과 둘째는 공적이라는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집착의 인행이라는 질병을 다스림을 드러낸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방편이라는 것이다.
- 111)두 가지 뜻 : 유有를 타파하기 위하여 공적을 시설한 것과 공적의 도리에는 공과 불공이라는 것도 없다는 것의 두 가지를 가리킨다.
- 112)삼류 :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50a)에서는 소승의 삼류로 해석하고,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1(X35, 322b)에서는 육계류와 색계류와 무색계류로 해석한다.
- 113)삼화三化 : 공상空相·공공空空·소공所空의 삼공三空을 닦는 것을 가리킨다.
- 114)혜慧와 정定이 원만하게 성취되면 :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50a) 및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1(X35, 322c)에서는 모두 혜慧는 반야이고, 정定은 해탈이며, 원만한 성취는 법신이라 말한다.
- 115)해당 경문에는 ‘질문’이 없고 곧장 부처님의 답변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바로 앞에 나온 지장보살의 질문으로 생각된다.
- 116)의성신意性身 : 보살의 화생신으로 의성신意成身·의성색신意成色身·의생신意生身이라고도 한다.
- 117)저것 : 곧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네 가지를 가리킨다.
- 118)『大乘阿毘達磨雜集論』 권7(T31, 724c).
- 119)평등제 : 속제와 진제의 분별제가 아님을 가리킨다.
- 120)차제연次第緣 : 구역에서 사연四緣은 인연因緣·차제연·연연緣緣·증상연增上緣을 말하고, 신역에서는 인연·등무간연等無間緣·소연연所緣緣·증상연을 말한다. 여기에서 차제연은 심心과 심소법心所法이 차제로 무간상속無間相續하는 발생과 소멸을 말한다. 마치 십이지연기의 경우와 같이 차제로 생기하고 소멸하는 관계이다.
- 121)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 여기에서는 불생不生의 측면에 대하여 설명하는 대목이므로 차제연의 연멸緣滅의 측면만 언급한 것이다.
- 122)세 가지 뜻 : 종자가 공적하고, 본래의 연이 공적하며, 능연과 소연이 공적하다는 세 가지를 가리킨다.
- 123)여덟 게송 가운데 평등하고 부동하여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간략하게 설명한 대목에 해당하는 제1·제2·제3의 게송을 가리킨다.
- 124)여덟 게송 가운데 평등하고 부동하여 여래장에 들어간 뜻을 자세하게 설명한 대목에 해당하는 제4의 게송부터 제8의 게송에 이르는 다섯 게송 부분을 가리킨다.
- 125)『肇論』(T45, 153a).
- 126)『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5a)에서는 마지막 게송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말은 본각과 시각이 불이不二임을 말한 것이다. ‘시고是故’라는 두 글자는 이상 설법한 뜻을 총결한 것으로서 이 『금강삼매경』의 종지를 섭수하여 총섭한 것이다. ‘극정본極淨本’의 세 글자는 한 글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구처럼 읽어야 한다. 극은 지극이고, 정은 명정이며, 본은 본각이다. 이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형용한 것으로서 언설로는 다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지극하고 이처럼 명정하여 이것이야말로 소위 본각에 즉한 것이다. 그러나 등각과 묘각으로써 관찰해 보면 자성의 본체가 홀로 드러난 것으로서 본래 갖가지 법의 인연력으로 성취된 것이므로 곧 등각에서 최후로 터득하는 금강심지의 도리이다. 그 소득은 자성에서 터득한 것이므로 곧 본각의 터득이다.(此言本始不二。 是故二字。 摠結如上法義。 以攝一經之旨。 極淨本三字。 當一字作一句讀。 極者至極。 淨者明淨。 本者本覺。 乃滿口形容。 言說難盡之意。 言以是之故。 此至極。 此明淨。 此即所謂本覺。 然以覺玅觀察。 性體獨露。 本不因衆法緣起之力而成。 即於等覺最後所得金剛心地之處。 得其所得於自性本覺之得也。)”
- 127)제1 게송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5b)에서는 법륜을 굴려 줄 것을 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128)제2 게송의 제1구 원문인 ‘是諸二衆等’ 가운데 ‘이중二衆’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5b)에서는 소승과 대승으로 설명한다. “이 게송은 설법의 이익을 흘려서 교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의 「진성공품」에서는 대와 소의 이중으로 나누었는데, 말하자면 대승과 소승이다. 이제 이 이중二衆이 모두 명료해져서 함께 대승에 들어간다.(此明法利流化。 然前眞性空品。 分大小二衆。 謂大乘小乘也。 今此皆得明了。 而同入於大乘矣。)”
- 129)제2 게송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5b)에서는 설법의 이익을 흘려서 교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130)제3 게송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5b)에서는 중생을 이롭게 해 주는 큰 서원이라고 설명한다.
- 131)「總持品」 전체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눈 가운데 그 넷째로서 이해시키는 부분에 해당한다.
- 132)『瑜伽師地論』 권62(T30, 646b), “滅盡等至當言無漏。 由與煩惱不相應故。 非相應故。 無所緣故。 非諸煩惱之所生故。 是出世間一切異生不能行故。 唯除已入遠地菩薩。 菩薩雖能起出世法令現在前。 然由方便善巧力故不捨煩惱。”에 의거하여 누락된 내용을 보충하여 해석하였다.
- 133)본 『金剛三昧經』의 서분과 정설분과 유통분을 가리킨다.
- 134)원효의 『金剛三昧經論』 및 적진의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5b)에서는 이 대목부터 유통분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원징의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51c)에서는 이하의 경문 “그때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후부터 유통분으로 간주하였다.
- 135)「無相法品」의 해탈보살, 「無生行品」의 심왕보살, 「本覺利品」의 무주보살, 「入實際品」의 대력보살, 「眞性空品」의 사리불, 「如來藏品」의 범행장자, 「總持品」의 지장보살 등을 가리킨다.
- 136)원징은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51c)에서는 이하부터 유통분으로 간주한다.
- 137)이 경전의 설법은~이어주기 때문이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6a~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경전의 교법은 비록 일미이지만 오미의 교법을 총지하고 있어서 삼백여 회에 걸친 제경의 강요를 섭수한다. 무릇 맥락이 상속되는 것을 계繫라 말하고, 유파流派에서 소출된 것을 종宗이라 말한다. 그래서 무릇 이 경전이야말로 제경의 교법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모두가 이 금강삼매경법에 계속繫屬되어 있고 이 금강삼매경법 가운데서 유출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저 『반야경』에서 널리 행하는 육바라밀도 바로 이 『금강삼매경』의 「무상법품」 속의 가르침에서 얻을 수가 있다. 또 『금강경』에서는 ‘일체의 제불과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모두 이 『금강경』에서 나왔다.’고 말하는데, 하물며 『금강삼매경』의 교법은 십지를 곧장 초월하고 바로 등각과 묘각에 이르는 것이겠는가.(又言。 是經典法。 雖是一味。 摠持五味之法。 雖是一經。 能攝三百餘會諸經之綱要也。 夫脉絡相屬謂之繫。 流派所出而爲宗。 然凡是諸經之法。 須知皆是此法之繫屬。 而於此法中流出者也。 如般若廣行六度。 祇得此中無相法品中事。 且經云。 一切諸佛。 及諸佛阿耨多羅三藐三菩提皆從此經出。 而況是經之法。 頓超十地。 直至等玅二覺者也。)”
- 138)이 경전의~『무량의종』이라 말한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6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대목은 제명을 말한 것인데 세 가지가 있다. 무릇 ‘섭대승’이란 법法의 측면에서 내세운 제칭으로 곧 반야의 뜻이다. 따라서 진여와 실제로써 그 체를 삼는다. ‘금강삼매’란 용用의 측면에서 내세운 제명으로 법과 비유를 취하여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견고한 것을 꺾고 미혹을 타파하는 것으로 곧 해탈의 뜻이다. 따라서 마음을 해명하는 것과 자성을 보는 것으로 그 용을 삼는다. ‘무량의종’이란 체體의 측면에서 내세운 제명으로 일체법을 능섭한 것이다. 따라서 갖가지 뜻의 종지가 되는 것으로 곧 법신의 뜻이다. 그 법신은 일체의 뜻을 갖추어 섭수하고 일체의 법을 출생한다. 만약 중생이 여래의 법신을 증득한다면 곧 시각과 본각이 불이不二임을 해명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경전은 시각과 본각으로 종지를 삼는다. 지금 이 세 가지 제명을 내세움으로써 삼덕의 비장祕藏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음을 해명하여 열반의 안내로 삼는 것이다.(此約名有三。 夫攝大乘者。 從法上立名。 即般若義。 而以眞如實際。 爲其體也。 金剛三昧者。 從用上立名。 取法喻並彰。 能摧堅破惑。 即解脫義。 而以明心見性。 爲其用也。 無量義宗者。 從體上立名。 能攝一切法。 而爲衆義所宗。 即法身義。 然法身。 能具攝一切義。 能出生一切法。 若衆生證如來法身。 即明始本二覺之不二。 故此經。 以始本二覺爲宗。 今立此三名。 以明圓備三德祕藏。 而爲涅槃之前導也。)”
- 139)나 여래가~이 경전뿐이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6b)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대목은 특별히 촉루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사事로써 부탁하는 것을 촉囑이라 말하고, 사상事相에 연관된 것을 누累라 말한다. 무릇 부처님이 촉루한 뜻을 말하자면, 나 여래가 설법한 일체의 법장은 오직 이 『금강삼매경』을 최고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무릇 여래가 설법한 일체의 경법은 모두 이 금강삼매의 교법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此特申囑累。 以事託付曰囑。 事相緣坐曰累。 夫佛囑累之意。 謂我之所說一切法藏。 唯此經爲最耳。 葢如來說一切經法。 皆爲欲顯此金剛三昧之法也。)”
- 140)첫째는 대중으로부터~성도에 들어간다. :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6b)에서는 첫째와 둘째의 두 가지는 자수용삼매이고, 셋째와 넷째의 두 가지는 타수용삼매인데, 이들 네 가지는 보살의 인행因行이고, 마지막의 다섯째는 보살의 과덕果德이라고 설명한다.
- 141)사의승四依僧 : 법사의法四依·행사의行四依·인사의人四依·설사의說四依·신토사의身土四依의 5종 가운데 본 경문의 경우는 인사의人四依에 해당한다. 이것은 여래의 사자使者가 말세에 경전의 유통을 위하여 인간계와 천상계에서 의지하는 4종의 사람을 말한다. 첫째는 번뇌의 자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으로서 곧 삼현三賢과 사선근四善根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이에 해당하고, 둘째는 수다원須陀洹 곧 예류과預流果와 사다함斯陀含 곧 일래과一來果의 사람이 이에 해당하며, 셋째는 아나함阿那含 곧 불환과不還果의 사람이 이에 해당하고, 넷째는 아라한阿羅漢의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내증內證은 대승보살이지만 짐짓 겉으로 성문의 모습을 드러내어 전법하고 교화하는 것이다. 원효는 『涅槃經宗要』(T38, 251b)에서 불성을 성인위聖人位와 범부위凡夫位로 구분하고, 성인위에 의하여 5종으로 분별한다. 곧 제1위는 전5지, 제2위는 제6·7·8지, 제3위는 제9지, 제4위는 제10지, 제5위는 여래지에 배대한다.
- 142)『大般涅槃經』 권6(T12, 637a~643b). 한편 『金剛三昧經註解』 권4(X35, 252b) 및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7a)에서는 이 사의승四依僧을 대승의 사의四依로만 해석하여 첫째는 법法에 의지하고 인人에 의지하지 않는 것, 둘째는 의義에 의지하고 어語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는 지혜(智)에 의지하고 분별식(識)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143)저 경우 : 번뇌를 단제한다는 뜻을 가리킨다.
- 144)이 경우 : 참회의 행위를 통하여 이전의 죄업을 현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 145)이 대목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8c)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대목은 관행이 들어간 공능을 설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일단 앞에서 설한 것에 의하자면 공·무상·무작의 삼매를 닦아서 진여와 실제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곧 실상의 무생참회이다.(此明入觀之功。 言一依如前所說。 修空無相無作。 而觀於眞如實際。 此即實相無生懺。)”
- 146)참회를 통하여 터득하게 되는 뛰어난 이익을 보여 준다.
- 147)진관眞觀 : 오관五觀의 하나이다. 첫째, 진관眞觀은 진제의 도리를 관찰하여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단제하는 공관空觀이다. 둘째, 청정관淸淨觀은 이미 견혹과 사혹이 단제된 청정한 몸으로 진사혹塵沙惑을 단제하는 가관假觀이다. 셋째, 광대지혜관廣大智慧觀은 무명혹無明惑을 단제하고 광대한 지혜를 터득하는 중관中觀이다. 넷째, 비관悲觀은 이상의 삼관으로 중생을 관찰하여 중생의 고뇌를 없애 주는 것이다. 다섯째, 자관慈觀은 이상의 삼관으로 중생을 관찰하여 중생에게 안락을 주는 것이다.
- 148)화보華報 : 과보를 받기 이전에 받는 과보를 가리킨다.
- 149)이 대목에 대하여 『金剛三昧經通宗記』 권12(X35, 329a~b)에서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 “이것은 법문이 원만하게 성취된 것을 결론지은 대목이다. 이로써 법회대중이 모두 다 들은 교법을 가지고 전지傳持했음을 설명한다. 대저 ‘환희’는 초지의 명칭이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성性·지智를 발명하고 이공을 다 증득하며 자·타를 이롭게 하고 대희大喜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서는 특별히 두 가지의 환희를 설명한다. 첫째는 마음에 결정신을 터득한 것인데, 더 이상 의심이 없어서 불퇴전지에 머물기 때문이다. 둘째는 신명을 바쳐서 받들고 실천하는 것인데, 법으로써 더욱더 이롭게 하여 자신이 원요願樂한 것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사리불이 ‘온 곳으로 다시 또 돌아가 구족한 연후에 나오려 하네.’(『金剛三昧經』 「入實際品」의 게송 참조)라든가, 아난이 능엄회상에서 또한 ‘제가 비록 깨치지는 못했지만 일체중생을 제도하고자 합니다.’(『首楞嚴經』 권6. T19, 131c)라고 말했던 것 등은 모두 환희하고 받들어 실천하는 비원을 발생한 것이다. 무릇 이제 우리들은 대승을 수행하고자 하는 자들로서 반드시 무상승심無上勝心을 내야 한다. 저 『不退轉法輪經』 권4(T9, 246b~c)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때 세 선남자가 보살승을 추구하고자 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 설법에 대하여 믿음을 내고 이해를 내되 의혹은 내지 않습니다. 마치 여래와 같이 말입니다. 그때 제1의 선남자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여쭙되 제가 곧 여래라면 이 말씀은 곧 정설正說일 것입니다. 제2의 선남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여쭙되 제가 곧 세존이라면 이 말씀은 곧 정설일 것입니다. 제3의 선남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사람이 여쭙되 제가 곧 불이라면 이 말씀은 곧 정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들은 이 설법에 대하여 의혹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此結法圓成。 以明在會。 咸皆秉教傳持也。 夫歡喜本是初地之名。 謂初明性智。 具證二空。 能益自他。 生大喜故。 今此特申二種喜。 一者。 心得決定。 無有餘疑。 住於不退轉故。 二者。 拜命奉行。 以法轉利。 而自生願樂故如。 舍利弗。 來所還復來。 具足然後出。 而阿難在首楞嚴會上。 亦云我雖未度。 願度末劫一切衆生。 此皆發歡喜奉行之悲願也。 但今我輩。 欲修行大乘者。 必當發無上勝心。 如不退轉法輪經云。 時有三善男子。 求菩薩乘者。 白言。 世尊。 我等於此法。 能信能解。 不生疑惑。 猶如如來。 爾時第一善男子言。 世尊。 若作是說。 我是如來。 此言便是正說。 第二善男子言。 世尊。 若作是說。 我是世尊。 此言便是正說。 第三善男子言。 世尊。 若作是說。 我是佛。 此言便是正說。 所以者何。 我等於此法。 不生疑惑故。)”
- 150)이 게송은 귀결게歸結偈에 해당한다.
- 1)「第六」無{甲}。
- 1)「二」作「一」{甲}。
- 2)「磁」作「礠」{甲}。
- 1)「句」上有「四」{甲}。
- 1)「二」作「一」{甲}。
- 2)「蜜」作「密」次同{甲}。
- 1)「第七」無{甲}。
- 1)「意」作「宜」{甲}。
- 1)「己」作「已」{甲}。
- 2)「燄」作「焰」次同{甲}。
- 1)「己」作「已」次同{甲}。
- 2)「第八」無{甲}。
- 1)「二」作「一」{甲}。
- 1)「所」無{甲}。
- 1)「審」作「番」{甲}。
- 1)「己」作「已」{甲}。
- 1)「戒」作「▼(戈/天)」{甲}。
- 2)「厭」作「猒」次同{甲}。
- 3)「三」作「二」{甲}。
- 1)「間」作「聞」{甲}。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호귀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