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정토보서(淨土寶書) / 淨土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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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보서淨土寶書

백암 성총栢庵性聰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인지因地(阿彌陀佛因地)4)
『 비화경悲華經』에 말하였다.
옛날 전륜왕轉輪王은 이름이 무쟁념無諍念5)으로 4천하四天下6)를 다스렸다. 신하인 보해寶海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출가하여 성불하니 보장불寶藏佛이시다. 왕이 공양 올리기를 청하자 부처님께서 삼매에 들어 대광명大光明을 놓아 시방세계를 비추니 그 가운데는 정토도 있고 예토도 있었다.
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슨 이유로 세계에 정토도 있고 예토도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의 원력으로 청정토淸淨土를 취하기도 하고 부정국不淨國을 취하기도 하느니라.”
왕이 여쭈었다.
“나 이제 발원하노니, 내가 성불할 때 국토에 삼악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중생들이 모두 금색이며 갖가지로 장엄하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서방으로 1항하사 아승기겁7)을 지나가면 그 세계를 안락安樂이라 할 것이니, 그대는 이때에 성불하여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8)가 되리라.”
『고음왕경鼓音王經』에 말하였다.
과거 묘희국妙喜國에 교시가憍尸迦 왕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청태국왕淸泰國王, 아버지는 월상전륜왕月上轉輪王, 어머니는 수승묘안殊勝妙顔이었다. 세 아들의 이름은 첫째는 월명月明, 둘째는 교시가憍尸迦, 셋째는 제중帝衆이었다. 이때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으니 세자재왕世自在王이시다. 교시가가 도를 닦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나라를 버리고 출가하니 바로 법장法藏 비구이시다. 법장 비구는 사십팔 대원을 세우고 만약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시니, 이때 대지가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묘화妙華가 내렸으며, 공중에서는 합창하며 찬양하기를 “반드시 성불하리라.” 하였다.


008_0485_a_01L淨土寶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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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485_a_03L
1)栢庵性聰集

008_0485_a_04L阿彌陀佛因地

008_0485_a_05L
悲華經曰昔有轉輪王名無諍念
008_0485_a_06L四天下有臣名寶海生子出家成佛
008_0485_a_07L號寶藏佛王請供養佛入三昧放大
008_0485_a_08L光明現十方世界或淨或穢王白佛
008_0485_a_09L何故世界有淨有不淨佛言菩薩
008_0485_a_10L以願力故取淸淨土復有菩薩以願
008_0485_a_11L力故取不淨國王言我今發願願成
008_0485_a_12L佛時國無三惡道皆眞金色種種莊
008_0485_a_13L佛告王言汝於西方過一恒河沙阿
008_0485_a_14L僧祗劫是時世界轉名安樂汝當作
008_0485_a_15L號無量壽如來

008_0485_a_16L
又鼓音王經曰過去有國妙喜王名憍
008_0485_a_17L尸迦祖淸泰國王父月上轉輪王
008_0485_a_18L殊勝妙顏有三子長曰月明次曰憍
008_0485_a_19L尸迦三曰帝衆時有佛出名世自在
008_0485_a_20L憍尸迦心發道意棄國出家號曰
008_0485_a_21L法藏發四十八願若不爾者誓不成
008_0485_a_22L是時大地震動天雨妙華空中同
008_0485_a_23L聲讃言決定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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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에 말하였다.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때에 열여섯 명의 왕자가 일시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나중에 모두 성불하였다. 그중 아홉째 왕자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대승방등총지왕경大乘方等緫持王經』에 말하였다.
무구염칭기왕불無垢焰稱起王佛 때에 어떤 청정 비구가 경전 14억 부를 모두 가지고 중생의 서원을 따라 널리 설법하였다. 그 비구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현겁경賢劫經』에 말하였다.
운뢰후雲雷吼 여래 때에 정복보중음淨福報衆音이라는 왕자가 부처님을 공양하였는데, 그 왕자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또 『현겁경賢劫經』에 말하였다.
금룡결광불金龍決光佛 때에 무한량보음행無限量寶音行이라는 법사가 경법을 힘써 홍포하였는데, 그 법사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 말하였다.
공왕불空王佛 때 마음에 번뇌가 가득 덮여 있는 네 비구가 있었다. 공중에서 부처님을 관觀하라는 가르침이 있어 마침내 염불삼매를 얻었다. 그 셋째 비구가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여환삼마지무량인경如幻三摩地無量印經』에 말하였다.
사자유희금광師子遊戱金光 여래 때에 승위존중勝威尊重이라는 국왕이 그 부처님을 공양하고 선정행禪定行을 닦으셨다. 그 국왕이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일향출생보살경一向出生菩薩經』에 말하였다.
옛날 한 태자가 이 미묘한 법문을 듣고서 받들어 지니고 정진하여 다시 팔천만억 사람을 교화하고 불퇴전을 얻었다. 그 태자가 바로 지금의 아미타불이시다.
이상에서 아홉 권의 경전만 대략 소개했지만 다겁의 세월에 여러 가지 인因을 쌓은 것에 의거해 보면 그 응함이 한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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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法華經大通智勝佛時十六王子
008_0485_b_02L俱時出家常說法華經後悉成佛
008_0485_b_03L2)苐九王子今阿彌陀佛是也

008_0485_b_04L
又大乘方等緫持王經云無垢熖稱起
008_0485_b_05L王佛時有淨比丘緫持諸經十四億部
008_0485_b_06L隨衆生願廣爲說法彼比丘者今阿
008_0485_b_07L彌陀如來是也

008_0485_b_08L
又賢劫經云雲雷吼如來時有王子
008_0485_b_09L名淨福報衆音供養彼佛彼王子者
008_0485_b_10L今阿彌陀佛是也

008_0485_b_11L
又彼經云金龍決光佛時有一法師
008_0485_b_12L名無限量寶音行力弘經法彼法師者
008_0485_b_13L今阿彌陀是也

008_0485_b_14L
又觀佛三昧經云空王佛時有四比丘
008_0485_b_15L煩惱覆心空中敎令觀佛遂得念佛三
008_0485_b_16L彼苐三比丘今阿彌陀佛是也

008_0485_b_17L
又如幻三摩地無量印經云師子遊戱
008_0485_b_18L金光如來時有國王名勝威尊重
008_0485_b_19L養彼佛修禪定行彼國王者今阿彌
008_0485_b_20L陀佛是也

008_0485_b_21L
又一向出生菩薩經云昔有太子聞此
008_0485_b_22L微妙法門奉持精進復敎化八千萬億
008_0485_b_23L得不退轉彼太子者今阿彌陀佛
008_0485_b_24L是也上雖畧擧九經若其
多劫多因即應無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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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인지因地(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因地)
『비화경悲華經』에 말하였다.
이때 보장寶藏 여래께서 다시 제1 불순不眴 태자즉 앞에 소개한 전륜왕의 태자이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를 관세음觀世音이라 부를 것이니, 그대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 열반涅槃한 후에 불도를 이루어 보광공덕산왕普光功德山王 여래라고 불릴 것이다.”
또 제2 니마尼摩9) 태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관세음보살 다음에 부처가 되어 선주공덕보왕善住功德寶王 여래라 불릴 것이니, 그대가 원력으로 청정토淸淨土를 취한다면 그대를 대세지大勢至라 부르리라.”10)
정토기신문淨土起信文
부처님과 보살은 중생이 고해에서 깊이 빠져 나올 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스스로 서원하기를 ‘위력으로 사람들에게 정토에 나기를 권하리라’ 하였으나, 다만 사람들이 믿지 않을까 걱정하여, 만약 믿는 마음으로 기꺼이 왕생하려 한다면 비록 죄악이 있더라도 왕생하지 못하는 이가 없게 하였다. 대개 자비롭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 없고,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부처가 될 수 없으며, 큰 위력이 없으면 부처가 될 수 없다. 자비를 행하기 때문에 중생이 괴로움에 빠진 것을 보고 제도할 생각을 하며, 위력이 있기 때문에 제도하려는 마음을 이룰 수 있고 제도하는 공을 완성할 수 있나니, 이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까닭이다.
무릇 믿음은 일념一念이다. 사람이 살아갈 때, 마음이 가고자 하면 몸이 따라가고, 마음이 머물고자 하면 몸도 따라 머무나니, 몸은 항상 생각을 따르기 때문이다. 몸이 죽을 때에도 오직 일념一念일 따름이다. 일념一念이 정토에 있으면 반드시 정토에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불보살이 사람들을 왕생하도록 이끌어 줌에 있어서랴.
『화엄경』에 말하였다.
믿음은 손이다.

008_0485_c_01L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因地

008_0485_c_02L
悲華經曰爾時寶藏如來復告苐一不
008_0485_c_03L眴太子即前轉輪
王太子也
今當號汝爲觀世音
008_0485_c_04L量壽佛般涅槃後當成佛道號普光
008_0485_c_05L功德山王如來又告苐二摩尼太子
008_0485_c_06L當作佛號善住功德寶王如來汝以願
008_0485_c_07L取淸淨土復號汝爲大勢至

008_0485_c_08L

008_0485_c_09L淨土起信文

008_0485_c_10L
佛與菩薩憫念衆生沉淪苦海無由得
008_0485_c_11L故自誓願威力勸人生淨土唯恐
008_0485_c_12L人之不信若信心肯徃雖有罪惡
008_0485_c_13L無不生盖不慈悲不足爲佛不度衆
008_0485_c_14L不足爲佛不有大威力不足爲佛
008_0485_c_15L爲慈悲故見衆生沉苦而欲濟渡
008_0485_c_16L威力故能遂濟渡之心能成濟渡之功
008_0485_c_17L此所以爲佛也盖信者一念也若人
008_0485_c_18L生時心念要去身則隨去心念要住
008_0485_c_19L身則隨住是身常隨念若身壞時
008_0485_c_20L一念而已是以一念在淨土則必生淨
008_0485_c_21L况佛菩薩又引人徃生乎

008_0485_c_22L
又華嚴經中說信爲手如人有手
008_0485_c_23L撰者名依序文補入{編}「苐」通用「第」以下
008_0485_c_24L倣此不更加註{編}

008_0486_a_01L사람이 손이 있으면 보배 있는 곳에 이르러 마음대로 집어 가질 것이나, 손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법에 입문하는 자는 신심信心의 손으로 마음껏 불법(道法)의 보배를 집어 가지지만, 만약에 신심이 없으면 얻는 바가 없을 것이다.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큰 성城에 들어가면 반드시 먼저 편히 쉴 곳을 찾은 다음 나가서 일을 보고, 저물녘에 어둠이 밀려오면 투숙할 곳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쉴 곳을 찾는다는 것은 정토를 닦는 것을 말한다. 저물어 어둠이 밀려온다는 것은 큰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음을 말한다. 투숙할 곳이 있다는 것은 연꽃 가운데 태어나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 비유하건대, 봄에 먼 길을 갈 때 미리 비옷을 준비하는 것은 소나기가 갑자기 내릴 때 흠뻑 적셔 낭패당하는 근심을 겪지 않으려 하는 것과 같다. 미리 비옷을 준비하는 것은 정토를 닦는 것을 말한다.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는 것은 대명大命이 장차 다할 것을 말한다. 흠뻑 젖는 낭패의 근심이 없다는 것은 악취에 흠뻑 빠져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먼저 편안히 쉴 곳을 찾는다면 맡은 일을 방해받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것이고, 미리 비옷을 준비한다면 먼 행로를 방해받지 않고 갈 수 있을 것이니, 정토업을 닦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믿음의 원(信願)을 일으켜야 한다.
옛날에 명침明琛은 뱀을 잘 그린 사람으로 상산의 뱀 형세(常山蛇勢)11)를 그렸다. 사론蛇論을 하기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이 살아 있는 몸으로 뱀이 되었다. 이백시李伯時는 말을 잘 그린 사람으로, 채찍질하여 달려가는 말의 형세(打輥馬勢)를 그리자 말의 형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 두 가지 일을 통해 염불하면 결정코 성불하며 일심으로 정토를 믿으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정토업 닦을 것을 권함(勸修淨土之業)
참선하여 크게 깨달으면 마침내 생사윤회를 벗어날 것이다. 이는 실로 좋은 방법이지만 여기에 이르는 자는 백 명 중에 두세 명도 안 된다. 그러나 서방西方 정토업을 닦으면

008_0486_a_01L於寶所隨意採取若能無手空無所
008_0486_a_02L如是入佛法者有信心手隨意採
008_0486_a_03L取道法之寶若無信心空無所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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譬如人入大城中必先覔安下處却出
008_0486_a_05L幹事抵暮昏黑則有投宿之地覔安
008_0486_a_06L下處者修淨土之謂也抵暮昏黑者
008_0486_a_07L大限到來之謂也有投宿之地者生蓮
008_0486_a_08L華中不落惡趣之謂也又如春月遠行
008_0486_a_09L先備雨具驟雨忽至則無淋漓狼狽之
008_0486_a_10L先備雨具者修淨土之謂也驟雨
008_0486_a_11L忽至者大命將盡之謂也無淋漓狼狽
008_0486_a_12L之患者不至沉淪惡趣受苦之謂也
008_0486_a_13L先覓安下處者不害其幹事也先備雨
008_0486_a_14L具者不害其遠行也修淨土者必先
008_0486_a_15L起信願也

008_0486_a_16L
昔有明琛能畫蛇作常山蛇勢及爲
008_0486_a_17L蛇論生身變作蛇李伯時畫馬作打
008_0486_a_18L輥馬勢活現馬形驗此二事顯明念
008_0486_a_19L決定成佛一心信淨土必生淨土
008_0486_a_20L

008_0486_a_21L

008_0486_a_22L勸脩淨土之業

008_0486_a_23L
叅禪大悟遂脫生死輪廻固爲上矣
008_0486_a_24L然至於此者百無二三若修西方

008_0486_b_01L윤회에서 빨리 벗어나 생사에 구애받지 않을 것은 너무 분명하여 만 명 중에 한 명도 빠뜨림이 없을 것이다. 만약 서방 정토업을 닦지 않으면 업연業緣을 따라가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청초당靑草堂 계선사戒禪師12) 진여철眞如喆 같은 이들도 모두 윤회에 빠졌으니, 실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다리를 수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리를 허무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천당과 지옥에 가는 작은 원인이 된다. 그리고 가마를 타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천당과 지옥의 작은 결과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니, 항상 이렇게 마음을 보존하여 정토를 닦는다면 상품상생上品上生을 어찌 다시 의심하겠는가.
서방을 찬탄하는 책13)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계선사戒禪師의 후신은 소동파(蘇子瞻), 청초당青草堂의 후신은 증노공曾魯公, 손장로遜長老의 후신은 이시랑李侍郎, 남암주南庵主의 후신은 진충숙陳忠肅, 지장승知藏僧의 후신은 장문정張文定, 엄수좌嚴首座의 후신은 왕귀령王龜㱓이다. 그 다음으로 승선사乘禪師는 한씨의 아들(韓氏子), 경사승敬寺僧은 기왕의 아들(歧王子)이 되었다. 또 그 다음으로 선민善旻은 동사호의 딸(董司戶女), 해인海印은 주방어의 딸(朱防禦女)이 되었고, 더욱이 안탕雁蕩의 승려는 진씨 아들 회(秦氏子檜)가 되었다.’
이들은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 악업을 지었던 사람들이니, 만약 정토를 정성껏 구했더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생각해 보건대, 대원大願과 대력大力으로 영수靈樹14) 같은 이는 여러 번 스님의 몸을 받아 태어났고, 운문雲門15) 같은 이는 세 번씩이나 국왕이 되었지만 마침내 신통력을 잃었다. 백대 이후 운문 같은 이는 몇 사람이나 있겠으며, 더군다나 영수 같은 사람은 몇이나 있겠는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여인이 되고, 악인이 되어 점점 더 근기 낮은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니, 훌륭한 신하는 또한 계획하더라도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실로 서방에 태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이 널리 선업을 닦으나 성취하기 어려운 것은 스스로의 힘에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008_0486_b_01L徑出輪廻生死自如萬不漏一若不
008_0486_b_02L修西方淨土之業不免隨業緣去雖如
008_0486_b_03L靑草堂戒禪師眞如喆皆汨沒輪廻
008_0486_b_04L可畏也

008_0486_b_05L
世有修橋人有毁橋人此天堂地獄之
008_0486_b_06L小因也有坐轎人荷轎人此天堂地獄
008_0486_b_07L之小果也觸類長之皆可見矣常如
008_0486_b_08L是存心以脩淨土上品上生復何疑
008_0486_b_09L

008_0486_b_10L
讃西方者記戒禪師後身爲蘇東坡
008_0486_b_11L靑草堂後身爲曾魯公遜長老後身
008_0486_b_12L爲李侍郞南庵主後身爲陳忠肅
008_0486_b_13L藏僧後身爲張文定嚴首座後身
008_0486_b_14L王龜㱓其次乘禪師爲韓氏子敬寺
008_0486_b_15L僧爲歧王子又其次善旻爲董司戶女
008_0486_b_16L海印爲朱防禦女又甚而雁蕩僧爲秦
008_0486_b_17L氏子檜居權要造惡業此數公者
008_0486_b_18L使精求淨土則焉有此事余謂大願大
008_0486_b_19L如靈樹生生爲僧而雲門三作國
008_0486_b_20L遂失神通百世而下如雲門者
008_0486_b_21L有幾人况靈樹乎爲常人爲女人
008_0486_b_22L惡人則展轉下劣即爲諸名臣亦非
008_0486_b_23L計之得也甚哉西方之不可不生

008_0486_b_24L
衆生泛修善業唯依自力故難成就

008_0486_c_01L만약 정토를 닦아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한다면 성취하기 쉬울 것이다. 비유하자면 두 사람이 큰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데, 한 사람은 반드시 배를 만들어서 가려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방편선(便船)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자력으로 수행하는 자와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는 자가 서방에 태어나는 것도 이와 같다.
훌륭하도다, 아미타불이시여. 두 보살과 함께 큰 서원의 배를 타고 이 사바, 탁악濁惡한 세상에 와서 일체 중생을 불러 이끌고 생사 바다를 넘어 서방 피안에 도착함이여. 이 얼마나 편리한가.
석지石芝16) 대사가 말하기를, 염불 중생은 반드시 세 가지 힘을 가져야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중생본유불성력衆生本有佛性力17)즉 본훈력本熏力이고, 둘은 미타자광섭취력彌陀慈光攝取力18)이며, 셋은 신원염불공훈력信願念佛功勳力19)둘과 셋은 외연신훈력外緣新熏力이다. 이 세 가지 힘은, 마치 세 가닥의 줄을 한 가닥으로 합하여 무거운 물건들을 이끌 수 있는 것과 같아서, 서방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또 ‘본래 지니고 있는 것(本有)’은 배와 같고, ‘염불’은 돛과 같으며, ‘부처님의 자비를 섭취하는 것(佛攝)’은 바람과 같으니, 이 세 가지가 두루 원만하면 반드시 피안에 오를 것이다.
염불법문念佛法門
불법을 배우는 이는 겉모습을 꾸미는 데(莊嚴形迹) 사로잡히지 말고, 진실한 수행(眞實修行)20)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재가거사在家居士는 꼭 치의緇衣를 입고 도건道巾을 쓸 필요는 없다. 머리가 긴 사람은 평상복으로 염불해도 좋고 꼭 목어를 두드리고 북을 칠 필요는 없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요히 말없이(寂黙) 염불해도 좋고 여럿이 모임을 만들 필요는 없다. 소심한 사람은 문을 닫고 염불하면 되고 반드시 절에 들어가 경을 들을 필요는 없다. 글을 아는 이는 교敎에 의지해서 염불하면 될 것이다. 천리 밖의 절에 가서 향을 사르는 것보다 집에 편안히 앉아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삿된 승려에게 공양하기보다는 부모에게 효순하며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정법을 방해하는 친구를 여럿 사귀는 것보다는 혼자 몸으로 청정하게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008_0486_c_01L若修淨土依佛願力得易成就譬如
008_0486_c_02L二人欲渡大海一必造船以徃一候
008_0486_c_03L便船自力修行與依佛願力得生西
008_0486_c_04L方者亦復如是大哉阿彌陀佛與二
008_0486_c_05L菩薩乘大願船就此娑婆濁惡之鄕
008_0486_c_06L呼引一切衆生越生死海到西方彼岸
008_0486_c_07L何其便哉石芝云念佛衆生必具三
008_0486_c_08L種力得生淨土一衆生本有佛性力
008_0486_c_09L即本
熏力
二彌陀慈光攝取力三信願念佛
008_0486_c_10L功勳力後二即外
緣新熏力
此三種力如三條繩
008_0486_c_11L紏合爲一能牽重物至西方也又本
008_0486_c_12L有如船念佛如帆佛攝如風三事周
008_0486_c_13L必登彼岸矣

008_0486_c_14L

008_0486_c_15L念佛法門

008_0486_c_16L
夫學佛者無取莊嚴形迹只貴眞實修
008_0486_c_17L在家居士不必定要緇衣道巾
008_0486_c_18L髮之人自可常服念佛不必定要㪣魚
008_0486_c_19L伐鼓好靜之人自可寂嘿念佛不必
008_0486_c_20L定要成羣聚會怕事之人自可閉門念
008_0486_c_21L不必定要入寺聽經識字之人
008_0486_c_22L可依敎念佛千里燒香不如安坐家舍
008_0486_c_23L念佛供養邪師不如孝順父母念佛
008_0486_c_24L廣交魔友不如獨身淸淨念佛習學外

008_0487_a_01L불교 아닌 다른 외도의 글을 읽는 것보다 일자무식으로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망령되이 선의 본령을 깨달았다고 스스로를 높이는 것보다는 성실하게 계율을 지키며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요귀들과 감응하여 통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인과를 바로 믿어 염불하는 것이 더 낫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마음을 바로잡아 악을 없애고 이와 같이 염불하는 이를 선인善人이라 부르며, 마음을 가다듬어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이와 같이 염불하는 이를 현인賢人이라 부르며, 마음을 깨우쳐 의혹을 끊은 채 이와 같이 염불하는 이를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진실한 염불(眞實念佛)

『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에 말하였다.
고성高聲으로 염불하고 송경誦經하는 데 열 가지 공덕이 있다. 첫째, 졸음을 쫓을 수 있다. 둘째, 파순마왕(天魔)21)이 놀라고 두려워한다. 셋째, 소리가 시방에 두루 퍼진다. 넷째, 삼악도三惡途의 괴로움이 없어진다. 다섯째, 바깥의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섯째,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일곱째, 용맹정진하게 한다. 여덟째, 모든 부처님이 매우 기뻐한다. 아홉째, 삼매三昧가 눈앞에 나타난다. 열째, 정토에 왕생한다.
『대집십장경大集十藏經』에 ‘작은 염불로는 작은 부처를 볼 것이요 큰 염불로는 큰 부처를 볼 것이다’라고 하며, 풀이하기를 ‘큰 염불은 큰 소리로 염불하는 것이고 작은 염불은 작은 소리로 염불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는 세상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염불하면 삼매를 쉽게 이루고 작은 소리로 염불하면 결국 여러 갈래로 산만해진다는 것을 권계한 것이다. 이는 지혜로운 자라야 알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출전은 귀원직지歸元直指

불보살의 명호를 수지하는 법에는 일정한 원칙이 없다.
큰 소리로 염하거나(高聲念) 낮은 소리로 염하며(低聲念), 물이 흐르듯이 염하거나(流水念) 정례頂禮22)하면서 염하며(頂禮念), 수를 세면서 염하거나(記數念) 세지 않고 염하며(不記數念), 걸어가면서 염하거나(行步念) 똑바로 선 채 염하며(住立念), 조용히 앉아서 염하거나(靜坐念) 옆으로 누워서 염하며(側臥念), 소리 내지 않고 염하거나(黙念) 눈을 뜬 채 염하며(明念), 입술과 혀를 조금 움직이면서 염하거나(微動唇舌念), 숨 한 번 쉬는 동안 여러 번 소리를 내어 염하며(一氣數聲念), 병들고 두려울 때 숨을 따라 호흡하면서 염하며(病怯隨氣呼吸念), 자기 혼자서 염하거나(獨自念) 여러 사람과 함께 염하는(與衆同念) 방법들이 있다. 이 방법들은 모두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예불을 할 때에는 ‘내 몸은 연꽃에서 경건하게 예배하고,

008_0487_a_01L家文書不如一字不識念佛妄以禪理
008_0487_a_02L自高不如老實持戒念佛希求妖鬼靈
008_0487_a_03L不如正信因果念佛以要言之
008_0487_a_04L心滅惡如是念佛號曰善人攝心除
008_0487_a_05L如是念佛號曰賢人悟心斷惑
008_0487_a_06L是念佛號曰聖人 實念佛

008_0487_a_07L
業報差別經曰高聲念佛誦經有十種
008_0487_a_08L功德一能排睡魔二天魔驚怖三聲
008_0487_a_09L徧十方四三塗息苦五外聲不入
008_0487_a_10L令心不散七勇猛精進八諸佛歡喜
008_0487_a_11L九三昧現前十徃生淨土

008_0487_a_12L
大集十藏經云小念見小佛大念見大
008_0487_a_13L釋云大念者大聲念佛也小念者
008_0487_a_14L小聲念佛也奉勸世人勵聲念佛
008_0487_a_15L昧易成小聲念佛遂多馳散智者方
008_0487_a_16L非常人所能曉也 出歸元直指

008_0487_a_17L
持名之法亦無定則或高聲念或低
008_0487_a_18L聲念或流水念或頂禮念或記數念
008_0487_a_19L或不記數念或行步念或住立念
008_0487_a_20L靜坐念或側臥念或默念或明念
008_0487_a_21L微動唇舌念或一氣數聲念或病怯隨
008_0487_a_22L氣呼吸念或獨自念或與衆同念
008_0487_a_23L盡在令心不亂

008_0487_a_24L
當禮佛時觀想己身在蓮華中恭虔

008_0487_b_01L부처님은 연꽃에서 나의 예배를 받아 주신다’는 생각을 관觀하라.
염불할 때에는 ‘내 몸이 연꽃에서 결가부좌하고 부처님은 연꽃에서 나를 접인接引하신다’는 생각을 관한 후에 일심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수지受持하라.
옛날에 두 스님이 연꽃이 피었다 지는 생각을 일으켜 마침내 왕생하였다. 하물며 여기에 부처님의 명호를 수지한다면 어찌 왕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념할 때 관상하는 법(禮念時觀想法)

재계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마음을 맑혀 생각을 고요하게 하라. 서쪽을 향해 말없이 앉아 눈을 감고 관상觀想하되, ‘순금으로 빛나는 아미타불이 칠보 연못의 연꽃 위에 앉아 계신다. 키는 1장丈 6척尺이고, 눈썹 사이에 위로 향하여 난 백호白毫 한 가닥이 있다. 팔각의 백호는 가운데가 비었으며, 오른쪽으로 다섯 번 꼬여 투명하게 빛나 부처님 얼굴을 비춘다’는 생각을 관하라. 백호에 생각을 집중하여 조금의 잡념도 없어야 하며, 눈을 뜨나 감으나 언제나 그 광경을 떠올리도록 하라. 이렇게 오래도록 하여 염하는 마음(念心)이 무르익으면 저절로 감응하여 부처님의 전신全身을 볼 것이니, 이것이 염불의 여러 방법 중 최상의 방법이다.
‘마음으로 부처님을 떠올리면 이 마음이 곧 부처다’23)라고 말했으니, 관상하는 염불은 또한 입으로 하는 염불보다 나은 것이다. 관상 염불하는 사람은 후에 반드시 구품연화대의 상품上品에 왕생하리라. 당나라의 계방啓芳과 원과圓果 두 사람이 관상법觀想法을 하였는데 단지 다섯 달 만에 자신들의 몸이 정토에 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듣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부처님의 백호를 관하는 법(觀佛白毫法)

앉아 있을 때 먼저 내 몸이 원광圓光 가운데 있음을 관상하고, 코끝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出入息)을 관상하라. 한 번 숨을 쉴 때마다 아미타불 한마디를 속으로 염불하고,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적당히 숨을 고르면 마음과 호흡이 같아진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을 따라 걷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모두 이를 행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항상 스스로 밀지密持24)하고 점점 나아가 선정禪定에 깊이 들어가면 호흡과 생각을 다 잊을 것이다. 이에 오래도록 익숙해지면 마음의 눈(心眼)이 시원히 열리고 삼매가 현전現前하리니, 이것이 곧 유심정토唯心淨土이다.
호흡을 세며 염불하는 법(數息念佛法)


008_0487_b_01L作禮佛在蓮華中受我禮敬當念佛
008_0487_b_02L觀想己身在蓮華中結跏趺坐
008_0487_b_03L坐蓮華中接引於我然後一心持名
008_0487_b_04L昔有二僧作蓮華開合想遂得徃生
008_0487_b_05L况加之以持名有不徃生者耶 禮念時
008_0487_b_06L觀想法

008_0487_b_07L
齋戒潔己淸心靜慮面西默坐閉目
008_0487_b_08L觀想阿彌陀佛眞金色身在七寶池中
008_0487_b_09L蓮華上坐身長丈六眉間向上白毫
008_0487_b_10L一條八稜中空右旋五遭光明瑩澈
008_0487_b_11L照映金面注想白毫不得妄有分毫他
008_0487_b_12L閉眼開眼悉皆見之如是久久
008_0487_b_13L心成熟自然感應見佛全身此爲最
008_0487_b_14L謂心想佛時此心即佛又過於口
008_0487_b_15L念也身後必生上品唐啓芳圓果二人
008_0487_b_16L作觀想法只五月自覺身到淨土
008_0487_b_17L佛聞法 觀佛白毫法

008_0487_b_18L
凡坐時先想己身在圓光中默觀鼻
008_0487_b_19L想出入息每一息默念阿彌陀佛一
008_0487_b_20L方便調息不緩不急心息相依
008_0487_b_21L其出入行住坐臥皆可行之勿令間
008_0487_b_22L常自密持乃至深入禪定息念兩
008_0487_b_23L久久純熟心眼開通三昧現前
008_0487_b_24L是唯心淨土 數息念佛法

008_0487_c_01L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서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옥구슬·금강·목환으로 숫자를 헤아리는 염주로 삼지만,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으로 염주를 삼는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한 숨에 따라 부처님이 있으니, 어찌 한 호흡(一息)이 돌아오지 않아 죽을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움직이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사이에 항상 이 ‘염주’를 사용한다. 저녁에 잘 때에도 부처님 명호를 머금은 채 잠을 자고, 잠이 깨면 다시 계속한다. 반드시 꿈속에서도 저 부처님을 뵐 것이고 이러한 꿈을 계속 꾸어 삼매를 이룰 것이니, 직접 부처님의 옥호玉毫를 뵙고 친히 수기를 받는 것은 만에 하나도 예외가 없는 일이다.
호흡을 세며 염불하는 법(數息念佛法)

무릇 염불하는 사람이 참선하여 견성見性하고자 한다면 조용한 방에 단정히 앉아 인연으로 얽매인 것(緣累)을 쓸어 없애고 정의 번뇌(情塵)를 끊어 버리도록 하라. 밖으로는 경계(境)에 집착하지 말고 안으로는 정定에 머무르지 말라. 지혜의 빛을 돌려 한 번 비추어(回光一照)25) 안과 밖이 다 고요해진 후에 밀밀密密히26) 나무아미타불을 열다섯 번 염불하고, 지혜의 빛을 돌려 스스로 보고(看) 말하라. “견성見性하면 성불하리니, 결국 무엇인가? 나의 본성인 아미타불이로다.” 다시 또 스스로 보는 것을 비추어 보되(覷看), 지금 들어서 염하고 있는 이 일념은 어디서부터 일어나는가를 보고, 이 일념이 사라지는 것을 보라. 다시 또 이 일념이 사라지는 것을 보되, 보고 있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한참 동안 참구하라. 또 아미타불을 염불하고 반복해서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참구하되, 급하고 간절하게 하여 끊어지게 하지 말고 성성불매惺惺不昧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하라.
가고 머무르며 앉고 눕는 사이에 이와 같이 염불하고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참구하면, 홀연히 가고 머무르며 앉고 눕는 곳에서 소리를 듣고 사물을 바라볼 때에 시원하고 통쾌하게 깨우쳐 본성인 미타를 직접 보고 안팎의 마음과 몸이 동시에 투탈透脫27)하리니, 이것이 바로 곧장 나아가는 수행의 바른 길이다.
불법을 참구함(參究佛法)

홍무(洪武, 1368~1398년)와 영락(永樂, 1403~1424년) 연간에 공곡空谷, 천기天奇, 독봉毒峯 대사가 모두 염불에 대하여 거론하였다. 천기와 독봉은 다 염불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간看하도록 가르쳤는데,

008_0487_c_01L
寶王論云世人多以珠玉金剛木槵
008_0487_c_02L數珠余則依出入息爲數珠焉稱佛
008_0487_c_03L名號隨之於息有大恃怙安懼一息
008_0487_c_04L不還屬後世哉余於四儀常用此珠
008_0487_c_05L縱令昏寐含佛而寢覺即續之
008_0487_c_06L於夢中得見彼佛夢之不已三昧
008_0487_c_07L成焉面覩玉毫親蒙授記萬無一失
008_0487_c_08L同上

008_0487_c_09L
夫念佛人若欲叅禪見性端坐靜室
008_0487_c_10L掃除緣累截斷情塵外不着境內不
008_0487_c_11L住定回光一照內外俱寂然後密密
008_0487_c_12L擧念南無阿彌陀佛三五聲回光自看
008_0487_c_13L見性則成佛畢竟那箇是我本性
008_0487_c_14L阿彌陀佛却又照覷看只今擧底這一
008_0487_c_15L從何處起覷破這一念復又覷破
008_0487_c_16L這覷底是誰叅良久又擧念阿彌陀佛
008_0487_c_17L又如是覷如是叅急切做工夫勿令間
008_0487_c_18L惺惺不昧如雞抱卵四威儀中
008_0487_c_19L是擧如是看如是叅忽於行住坐臥處
008_0487_c_20L聞聲見色時割然明悟親見本性彌陀
008_0487_c_21L內外身心一時透脫即此是直捷修行
008_0487_c_22L正道 叅究佛法

008_0487_c_23L
洪永間有空谷天奇毒峯三大老
008_0487_c_24L論念佛天毒二師俱敎人看念佛是誰

008_0488_a_01L오직 공곡은 “다만 염念만 하라. 그래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두 견해는 각기 근기에 따라 편의적으로 한 것이므로 모두 옳다. 그러나 공곡은 다만 염念만 해도 좋다고 하였을 뿐이지 참구參究가 그르다고 하지는 않았다. 어떤 이는 의심하기를, 참구는 견성見性을 위주로 하므로 오로지 부처님 명호를 수지守持해야만 절대적으로 왕생할 것이라고 하여 참구하는 것을 폐지하고 수지하는 것만 일삼으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경전에는 다만 ‘명호를 집지하라’고만 설하였지 참구하라는 설은 없다고 말한다. 이 논리는 매우 일리가 있어 이에 따라 수행한다면 반드시 왕생하겠지만, 이것은 두고 저것은 폐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대개 염불하는 사람이 견성하면 이는 바로 상품상생上品上生의 일이니, 오히려 왕생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그러므로 옛 사람이 두 가지를 그대로 두고 근기에 따라 선택하였던 것이니 의심하지 말기 바란다.
참구와 염불을 변증함(辨參究念佛)

정토에 왕생하는 데 일념一念이 옳습니까, 십념十念이 옳습니까?정토에 왕생하는 데 일념一念이 옳습니까, 십념十念이 옳습니까?
오로지 일념으로 왕생하여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地)28)에 머문다면 일념이 옳은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부처를 비방하고 경을 훼손하여 오역사중죄五逆四重罪29)를 범하는 것은 모두 일념의 악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이들이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화살처럼 빠를 것이다. 이제 염불하여 정토에 나는 것 또한 일념의 선업으로 이룬 것이니, 곧 극락왕생이 팔을 폈다 오므렸다 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전前 일념에 오음五陰30)이 사라지고 후後 일념에 오음이 생기니, 마치 밀초 도장으로 도장을 찍으면 도장은 녹아 없어지되 무늬는 남는 것과 같다. 전후의 두 염念도 필요가 없는데 어찌 반드시 십념까지 가겠는가. 또 경에서 밀락(酪)31)을 좋아하던 사미가 일념의 탐애심을 내어 후에 밀락 속의 벌레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는 모두 일념이지 십념이 아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말하는 십념은 대개 병들고 야윈 사람, 힘이 약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을 위한 것으로 아미타불을 열 번 불러 그 염念을 도와준 것이다. 만약 마음이 건강하고 어둡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념으로 왕생한다. 이는 마치 머리카락 같은 가는 묘목이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로 자라는 것과 같다.
일념으로 왕생하는 것을 변증함(辨一念往生)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리한 근기를 가진 사람들은 염불을 경시하여 어리석은 사람들(愚夫愚婦)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다만 우부愚夫가 입으로는 부처님 명호를 외우나

008_0488_a_01L唯空谷謂只直念去亦有悟日此二各
008_0488_a_02L隨機宣皆是也而空谷但言直念亦可
008_0488_a_03L不曰叅究爲非也疑者謂叅究主於見
008_0488_a_04L單持乃切徃生欲癈叅究而事單持
008_0488_a_05L言經中止云執持名號曾無叅究之說
008_0488_a_06L此論亦甚有理依而行之決定徃生
008_0488_a_07L但欲存此癈彼則不可盖念佛人見性
008_0488_a_08L正上品上生事反憂其不生耶故古人
008_0488_a_09L兩存而待擇請勿疑焉 辨叅究念佛

008_0488_a_10L
問一念十念徃生淨土何者爲正
008_0488_a_11L但一念徃生住不退地此爲正也
008_0488_a_12L佛說謗佛毁經五逆四重皆一念惡業
008_0488_a_13L墮無間獄猶如箭射今念佛生淨
008_0488_a_14L亦一念善業成即登極樂猶如屈
008_0488_a_15L前一念五陰滅後一念五陰生
008_0488_a_16L蠟印印泥印壞文成尙不須兩念
008_0488_a_17L必至十念哉又如經云愛酪沙彌
008_0488_a_18L一念愛心後生酪中作虫斯皆一念
008_0488_a_19L非十念也觀經十念盖爲遘疾尩羸
008_0488_a_20L力微心劣故十稱彌陀以助其念
008_0488_a_21L心盛不昧一念生焉亦猶栽植毫髮
008_0488_a_22L其茂至百圍也 辨一念徃生

008_0488_a_23L
世之稍利根者便輕視念佛謂是愚夫
008_0488_a_24L愚婦勾當彼徒見愚夫口誦佛名心游

008_0488_b_01L마음은 천리 밖에 노니는 것만 볼 뿐이며, 이것은 독불讀佛이지 염불이 아니라는 것은 모른다.
염念은 마음을 따르는 것이니, 마음에 생각하고 기억하여 잊지 않기 때문에 ‘염’이라 한다. 이를 유학자에 비유해 보자. 유학자가 끊임없이 공자를 마음에 담아 두면 공자에 거의 가깝게 되지 않겠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생각마다 오욕五欲을 떠올리면서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염불을 그르다 여긴다. 아, 이처럼 일생을 헛되이 보내니 어찌 그리 말 그대로 ‘어리석은 사람들(愚夫愚婦)’이 아니겠는가. 애석하도다. 염불은 지혜로운 이가 할 수 있는 것이요, 어리석은 이는 할 수 없는 것이로다.
염불을 멸시하는 것을 변증함(辨蔑視念佛)

요즘 사람들을 보니 염불하는 이는 많으나 서방에 나서 성불하는 이는 적으니 왜 그러한가?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입으로는 염불하나 마음이 착하지 못하여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둘은 입으로는 염불하나 마음에 잡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여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셋은 입으로는 염불하나 마음으로는 다만 부귀 얻을 생각만 하여 왕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당부하노라. 염불하는 사람은 확고한 신념으로 서방에 나기를 구해야 하며, 혹시 왕생치 못할까 의심하지 말라. 성현들은 모두 이와 같이 하였으며 보통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대가 어찌 서방에 나지 않는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겠느냐. 문득 광대한 마음을 내고 견고한 뜻을 세워 서원하기를 ‘왕생하여 부처님 뵈옵고 법문을 들어 무상과無上果를 얻은 후 중생을 널리 구제하겠다’라고 다짐하라. 이와 같이 해야 비로소 진정한 염불인이 되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염불하여 왕생한 이가 적다는 것에 대해 변증함(辨念佛往生者少)
부처님께서 보이신 염불의 열 가지 공덕(佛示念佛十種功德)
어떤 사람이 한 부처님의 명호를 수지하면 현세에 틀림없이 열 가지의 공덕과 이익을 얻을 것이다.
 1.모든 하늘의 큰 힘을 가진 신장神將과 그 권속들이 형체를 숨겨 밤낮으로 항상 염불하는 사람을 지켜 보호하신다.

008_0488_b_01L千里而不知此等是名讀佛非念佛
008_0488_b_02L念從心心思憶而不忘故名曰念
008_0488_b_03L試以儒喩儒者念念憶孔子其去孔子
008_0488_b_04L不亦庶幾乎今人念念思五欲不以爲
008_0488_b_05L反以念佛爲非噫 似此一生空過
008_0488_b_06L何如作愚夫愚婦耶惜乎智可能也
008_0488_b_07L不可能也 辨蔑視念佛

008_0488_b_08L
或問今見世人念佛者多生西方成佛
008_0488_b_09L者少何也荅此有三故一者口雖念
008_0488_b_10L心中不善以此不得徃生二者口
008_0488_b_11L雖念佛心中胡思亂想以此不得徃生
008_0488_b_12L三者口雖念佛心中只願求生富貴
008_0488_b_13L此不得徃生奉勸世人凡念佛者
008_0488_b_14L意求生西方休得疑惑聖賢盡是凡夫
008_0488_b_15L做得來安知你不生西方也便可發廣
008_0488_b_16L大心立堅固志誓願徃生見佛聞法
008_0488_b_17L得無上果廣度衆生如此方是念佛之
008_0488_b_18L定得成佛 辨念佛徃生者少

008_0488_b_19L

008_0488_b_20L佛示念佛十種功德

008_0488_b_21L
若人受持一佛名號者見世當獲十種
008_0488_b_22L功德利益

008_0488_b_23L
一晝夜常得諸天大力神將并諸眷屬
008_0488_b_24L隱形守護

008_0488_c_01L
 2. 관음보살 같은 25대보살과 일체 보살이 항상 보호하신다.
 3. 모든 부처님이 밤낮으로 항상 호념 護念하시고 아미타불은 항상 광명을 놓으셔서 섭수攝受하신다.
 4. 야차나 나찰 같은 일체의 악귀들이 전혀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고, 모든 독사나 독룡이나 독약들도 다 해를 끼치지 못한다.
 5. 일체의 화재, 수재, 원적寃賊의 칼과 화살, 감옥에서의 횡사를 당하지 않는다.
 6. 이전에 지은 죄가 모두 소멸되고, 살인의 억울한 운명을 벗어나며, 더 이상 죄목을 다그침 당하는 일이 없다.
 7. 잠잘 때 좋은 꿈만 꾸며 때때로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미타불의 형상을 본다.
 8. 마음이 항상 기쁨으로 차 있고 얼굴은 빛이 나며 기력은 왕성하여 하는 일에 행운이 있고 이롭다.
 9. 언제나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부처님처럼 공경과 공양과 예배를 받는다.
 10. 임종할 때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바른 생각(正念)이 나타나며,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들이 금대金臺를 손에 들고 서방정토에 왕생하도록 손잡고 인도하고, 미래의 시간 이 다하도록 빼어나게 오묘한 즐거움을 누린다.32)
염불과 송경으로 왕생한 이야기(念佛兼誦經往生)
양나라 도진道珍 법사는 『 열반경』을 강의하였는데, 천감天監 연간(502~519년)에 여산廬山에 머무르며 혜원 대사의 정토업淨土業을 흠모하였다. 좌선하는 중에 홀연히 바다 위에서

008_0488_c_01L
二常得二十五大菩薩如觀音等及一
008_0488_c_02L切菩薩常護

008_0488_c_03L
三常爲諸佛晝夜護念彌陀常放光明
008_0488_c_04L攝受此人

008_0488_c_05L
四一切惡鬼若夜叉羅刹皆不能害
008_0488_c_06L一切毒蛇毒龍毒藥悉不能害

008_0488_c_07L
五一切火難水難寃賊刀箭牢獄橫死
008_0488_c_08L悉皆不受

008_0488_c_09L
六先所作罪皆悉消滅所殺寃命
008_0488_c_10L蒙解脫更無質對

008_0488_c_11L
七夜夢正直或復夢見阿彌陀佛勝妙
008_0488_c_12L色身

008_0488_c_13L
八心常歡喜顏色光澤氣力充盛
008_0488_c_14L作吉利

008_0488_c_15L
九常爲一切世間人民恭敬供養禮拜
008_0488_c_16L猶如敬佛

008_0488_c_17L
十命終之時心無怖畏正念現前
008_0488_c_18L見阿彌陀佛并諸菩薩聖衆手持金臺
008_0488_c_19L接引徃生西方淨土盡未來際受勝妙
008_0488_c_20L

008_0488_c_21L

008_0488_c_22L念佛兼誦經徃生

008_0488_c_23L
梁道珍法師講涅槃經天監中憇錫
008_0488_c_24L廬山慕遠公淨業禪坐中忽見海上

008_0489_a_01L수백 명의 사람이 보배로 장식한 배를 타고 순항하는 것을 보았다. 법사가 그들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그들은 극락으로 간다고 하였다. 법사는 그들에게 함께 타고 가자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법사께서는 강경을 잘 하시지만 『 미타경』을 외우지 않았으니, 어찌 함께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법사는 드디어 강경講經을 그치고 염불하며 『미타경』 외우기를 한 해가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임종하기 28일 전 한 밤(四鼓)에 서쪽에서 은대銀臺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하늘이 대낮처럼 밝았다. 그때 “그대는 어서 대에 올라 타 왕생하시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의 대중들이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훌륭한 비구 1250인과 함께 계셨다. 함께한 이들은 모두 위대한 아라한阿羅漢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들이었다. 장로長老 사리불舍利弗, 마하摩訶 목건련目乾連, 마하 가섭迦葉, 마하 가전연迦栴延, 마하 구치라拘絺羅, 이바다離婆多, 주리반타가周梨槃陀迦, 난타難陀, 아난다阿難陀, 라후라羅睺羅, 교범바제憍梵波提, 빈두로파라타賓頭盧頗羅墮, 가루타이迦留陀夷, 마하 겁빈나劫賓那, 박구라薄俱羅, 아누루타阿樓馱와 같은 훌륭한 제자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인 문수사리文殊師利 법왕자法王子, 아일다阿逸多보살, 건타하제乾陀訶提보살, 상정진常精進보살 등과 같은 위대한 보살들, 그리고 석제환인釋提桓因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늘의 대중들이 자리를 함께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장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極樂이라 한다. 그 불국토에 부처님이 계시니 이름을 아미타阿彌陀라 하며 현재에도 설법하고 계신다. 사리불이여,

008_0489_a_01L數百人乘寶舫前邁師問何之答徃
008_0489_a_02L極樂國因求附載報云法師雖善講經
008_0489_a_03L然未誦彌陀經豈得同徃師遂廢講念
008_0489_a_04L誦彌陀經歷年不輟將終四七日
008_0489_a_05L夜四鼓見西方銀臺來至空中皎
008_0489_a_06L如白日聲云法師當乘此臺徃生時衆
008_0489_a_07L咸聞

008_0489_a_08L

008_0489_a_09L佛說阿彌陀經

008_0489_a_10L
如是我聞一時佛在舍衛國祗樹給孤
008_0489_a_11L獨園與大比丘僧千二百五十人俱
008_0489_a_12L是大阿羅漢衆所知識長老舍利弗
008_0489_a_13L摩訶目犍連摩訶迦葉摩訶迦旃延
008_0489_a_14L摩訶俱絺羅離婆多周利槃陀伽
008_0489_a_15L阿難陀羅睺羅憍梵婆提賓頭羅
008_0489_a_16L頗羅墮迦留陀夷摩訶劫賓那薄拘
008_0489_a_17L阿㝹樓䭾如是等諸大弟子并諸
008_0489_a_18L菩薩摩訶薩文殊師利法王子阿逸多
008_0489_a_19L菩薩乾陀訶提菩薩常精進菩薩
008_0489_a_20L如是等諸大菩薩及釋提桓因等無量
008_0489_a_21L諸天大衆俱

008_0489_a_22L
爾時佛告長老舍利弗從是西方過十
008_0489_a_23L萬億佛土有世界名曰極樂其土有
008_0489_a_24L號阿彌陀今現在說法舍利弗

008_0489_b_01L저 불국토를 무슨 까닭에 극락이라 이르는가? 그 나라의 중생들은 아무런 괴로움이 없고, 다만 여러 가지 즐거움만 누리므로 극락이라 이름한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에는 일곱 겹의 난간과 일곱 겹의 그물과 일곱 겹의 가로수가 모두 네 가지 보배(금·은·유리·파려)로 장식되어 빙 둘러싸여 있으므로 나라 이름을 극락이라 한다.
또 사리불이여, 극락세계에는 칠보 연못이 있어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춘 물이 그 안에 가득하다. 연못 바닥은 순전히 금모래만 깔려 있고, 연못가 사방의 섬돌은 금·은·유리琉璃· 파려玻瓈로 이루어져 있다. 그 위에는 누각이 있어 금·은·유리·파려·자거(硨磲)·붉은 구슬(赤珠)·마노瑪瑙로 장엄하게 꾸며져 있다. 연못의 연꽃은 크기가 수레바퀴만한데, 푸른 꽃에서는 푸른 빛이, 노란 꽃에서는 노란 빛이, 붉은 꽃에서는 붉은 빛이, 흰 꽃에서는 흰 빛이 나며, 아름답고 향기롭고 깨끗하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는 이러한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또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에는 항상 하늘 음악이 울리고, 황금 땅에는 밤낮 쉼없이 만다라 꽃비가 내린다. 그 나라 중생들은 새벽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을 바구니에 담아 다른 곳의 10만억 부처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공양할 때가 되면 바로 극락으로 돌아와 공양을 하고 산책을 한다. 사리불이여, 극락세계는 이러한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그리고 사리불이여, 저 나라에는 항상 여러 가지 아름답고 울긋불긋한 빛깔의 새들이 있다. 흰 고니, 공작, 앵무새, 사리, 가릉빈가, 공명조 등 갖가지 새들이 밤낮으로 항상 듣기 좋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오근五根,33) 오력五力,34) 칠보리분七菩提分,35) 팔성도八聖道36) 등의 법을 소리 내어 읊는다. 저 국토의 중생들은 이 소리만 들어도

008_0489_b_01L土何故名爲極樂其國衆生無有衆
008_0489_b_02L但受諸樂故名極樂

008_0489_b_03L
又舍利弗極樂國土七重欄楯七重
008_0489_b_04L羅綱七重行樹皆是四寶周匝圍繞
008_0489_b_05L是故彼國名爲極樂

008_0489_b_06L
又舍利弗極樂國土有七寶池八功
008_0489_b_07L德水充滿其中池底純以金沙布地
008_0489_b_08L四邊階道金銀琉璃玻瓈合成上有樓
008_0489_b_09L亦以金銀琉璃玻瓈硨磲赤珠瑪瑙
008_0489_b_10L而嚴飾之池中蓮華大如車輪靑色
008_0489_b_11L靑光黃色黃光赤色赤光白色白光
008_0489_b_12L微妙香潔舍利弗極樂國士成就如
008_0489_b_13L是功德莊嚴

008_0489_b_14L
又舍利弗彼佛國土常作天樂黃金
008_0489_b_15L爲地晝夜六時雨天曼陀羅華其土
008_0489_b_16L衆生常以淸旦各以衣裓盛衆妙華
008_0489_b_17L供養他方十萬億佛即以食時還到本
008_0489_b_18L飯食經行舍利弗極樂國土成就
008_0489_b_19L如是功德莊嚴

008_0489_b_20L
復次舍利弗彼國常有種種奇妙雜色
008_0489_b_21L之鳥白鶴孔雀鸚鵡舍利迦陵頻伽
008_0489_b_22L共命之鳥是諸衆鳥晝夜六時出和雅
008_0489_b_23L其音演暢五根五力七菩提分八聖
008_0489_b_24L道分如是等法其土衆生聞是音已

008_0489_c_01L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며 스님들을 생각한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이 새들이 실로 죄를 지은 과보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말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저 불국토에는 삼악취三惡趣37)가 없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그 불국토에 삼악도라는 이름도 없는데, 어떻게 삼악도가 실제로 있겠는가. 여러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께서 법음法音을 널리 베풀고자 화현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에 미풍이 살짝 불면 갖가지 보배 나무와 보배 그물이 미묘한 소리를 내는데, 마치 백천 가지 악기가 함께 울리는 것과 같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며 스님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는 이러한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사리불이여, 그대는 저 부처님을 무슨 이유로 아미타불이라 부른다고 생각하는가? 사리불이여, 저 부처님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 시방 세계를 비추어도 걸림이 없는 까닭에 아미타불이라 부른다. 또 사리불이여, 저 부처님과 사람들의 수명이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인 까닭에 아미타불이라 부른다. 사리불이여, 아미타불께서 성불하신 지 이미 10겁劫의 세월이 지났느니라.
또 사리불이여, 저 부처님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문聲聞 제자들이 있어, 모두 아라한의 깨달음을 이루었는데, 그 수는 셈하여 알 수 있을 정도가 아니다. 여러 보살들도 이와 같다. 사리불이여, 저 불국토는 이와 같은 공덕과 장엄으로 이루어져 있느니라.
또 사리불이여,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모두 불퇴전의 지위(阿鞞跋致)38)에 있는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는 일생보처一生補處39)에 오른 이들이 많으며, 그 수효가 매우 많아 셈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다만 한량없고 가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이라 말할 뿐이다.
사리불이여, 이 설법을 듣는 중생들은 마땅히 서원을 세워 저 나라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같은 가장 선량한 사람들과

008_0489_c_01L皆悉念佛念法念僧舍利弗汝勿謂此
008_0489_c_02L實是罪報所生所以者何彼佛國
008_0489_c_03L無三惡道舍利弗其佛國土尙無
008_0489_c_04L惡道之名何况有實是諸衆鳥皆是
008_0489_c_05L阿彌陀佛欲令法音宣流變化所作

008_0489_c_06L
舍利弗彼佛國土微風吹動諸寶行
008_0489_c_07L及寶羅網出微妙音譬如百千種
008_0489_c_08L同時俱作聞是音者自然皆生念
008_0489_c_09L佛念法念僧之心舍利弗其佛國土
008_0489_c_10L成就如是功德莊嚴

008_0489_c_11L
舍利弗於汝意云何彼佛何故號阿彌
008_0489_c_12L舍利弗彼佛光明無量照十方國
008_0489_c_13L無所障礙是故號爲阿彌陀又舍利弗
008_0489_c_14L彼佛壽命及其人民無量無邊阿僧祗
008_0489_c_15L故名阿彌陀舍利弗阿彌陀佛
008_0489_c_16L佛已來於今十劫又舍利弗彼佛有
008_0489_c_17L無量無邊聲聞弟子皆阿羅漢非是筭
008_0489_c_18L數之所能知諸菩薩衆亦復如是
008_0489_c_19L利弗彼佛國土成就如是功德莊嚴

008_0489_c_20L
又舍利弗極樂國土衆生生者皆是
008_0489_c_21L阿鞞跋致其中多有一生補處其數甚
008_0489_c_22L非是算數所能知之但可以無量
008_0489_c_23L無邊阿僧祗說

008_0489_c_24L
舍利弗衆生聞者應當發願願生彼
008_0489_c_25L所以者何得與如是諸上善人

008_0490_a_01L한곳에 모여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작은 선근과 복덕의 인연으로는 저 나라에 왕생할 수 없느니라.
사리불이여,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이름을 마음 깊이 새겨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나 나흘이나 닷새나 엿새, 혹은 이레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수명이 다할 때 아미타불께서 여러 성인들과 함께 그 앞에 나타나신다. 그 사람은 죽을 때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곧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 사리불이여, 나는 이와 같은 이익을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나니, 이 설법을 들은 중생들은 마땅히 저 국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한 것처럼 동방 세계에도 아촉비불阿閦鞞佛, 수미상불須彌相佛, 대수미불大須彌佛, 수미광불須彌光佛, 묘음불妙音佛 등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계신다. 이분들은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廣長舌相)40)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護念41)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남방 세계에는 일월등불日月燈佛, 명문광불名聞光佛, 대염견불大焰肩佛, 수미등불須彌燈佛, 무량정진불無量精進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서방 세계에는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상불無量相佛, 무량당불無量幢佛, 대광불大光佛, 대명불大明佛,

008_0490_a_01L會一處舍利弗不可以少善根福德因
008_0490_a_02L得生彼國舍利弗若有善男子善
008_0490_a_03L女人聞說阿彌陀佛執持名號若一
008_0490_a_04L日若二日若三日若四日若五日若六日
008_0490_a_05L若七日一心不亂其人臨命終時
008_0490_a_06L彌陀佛與諸聖衆現在其前是人終
008_0490_a_07L心不顚倒即得徃生阿彌陀佛極樂
008_0490_a_08L國土舍利弗我見是利故說此言
008_0490_a_09L有衆生聞是說者應當發願生彼國土
008_0490_a_10L舍利弗如我今者讃歎阿彌陀佛不可
008_0490_a_11L思議功德之利東方亦有阿閦鞞佛
008_0490_a_12L彌相佛大須彌佛須彌光佛妙音佛
008_0490_a_13L如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
008_0490_a_14L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
008_0490_a_15L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
008_0490_a_16L一切諸佛所護念經

008_0490_a_17L
舍利弗南方世界有日月燈佛名聞
008_0490_a_18L光佛大燄肩佛須彌燈佛無量精進
008_0490_a_19L如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
008_0490_a_20L出廣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
008_0490_a_21L實言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
008_0490_a_22L功德一切諸佛所護念經

008_0490_a_23L
舍利弗西方世界有無量壽佛無量
008_0490_a_24L相佛無量幢佛大光佛大明佛寶相

008_0490_b_01L보상불寶相佛, 정광불淨光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북방 세계에는 염견불焰肩佛, 최승음불最勝音佛, 난저불難沮佛, 일생불日生佛, 망명불網明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하방 세계에는 사자불師子佛, 명문불名聞佛, 명광불名光佛, 달마불達摩佛, 법당불法幢佛, 지법불持法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상방 세계에는 범음불梵音佛, 숙왕불宿王佛, 향상불香上佛, 향광불香光佛, 대염견불大焰肩佛, 잡색보화엄신불雜色寶華嚴身佛, 사라수왕불娑羅樹王佛, 보화덕불寶華德佛, 견일체의불見一切義佛, 여수미산불如須彌山佛이 계신다. 이러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여러 부처님들이 제각기 그 나라에서 넓고 긴 혀를 내밀어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덮고 진실한 말씀으로 “너희 중생들은 마땅히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이 경을 믿으라.”고 하신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슨 까닭에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경(一切諸佛所護念經)’이라 이르는가?

008_0490_b_01L淨光佛如是等恒河沙數諸佛
008_0490_b_02L於其國出廣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
008_0490_b_03L說誠實言汝等衆生當信是稱讃
008_0490_b_04L不可思議功德一切諸佛所護念經

008_0490_b_05L
舍利弗北方世界有燄肩佛最勝音
008_0490_b_06L難沮佛日生佛網明佛如是等恒
008_0490_b_07L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長舌相
008_0490_b_08L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汝等衆
008_0490_b_09L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一切諸
008_0490_b_10L佛所護念經

008_0490_b_11L
舍利弗下方世界有師子佛名聞佛
008_0490_b_12L名光佛達摩佛法幢佛持法佛
008_0490_b_13L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長
008_0490_b_14L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
008_0490_b_15L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
008_0490_b_16L一切諸佛所護念經舍利弗上方世界
008_0490_b_17L有梵音佛宿王佛香上佛香光佛
008_0490_b_18L燄肩佛雜色寶華嚴身佛娑羅樹王佛
008_0490_b_19L寶華德佛見一切義佛如須彌山佛
008_0490_b_20L如是等恒河沙數諸佛各於其國出廣
008_0490_b_21L長舌相徧覆三千大千世界說誠實言
008_0490_b_22L汝等衆生當信是稱讃不可思議功德
008_0490_b_23L一切諸佛所護念經

008_0490_b_24L
舍利弗於汝意云何何故名爲一切諸

008_0490_c_01L사리불이여, 만약 이 경을 듣고 마음 깊이 새기거나(受持) 여러 부처님의 명호를 듣는 선남자 선여인들은 모든 부처님이 함께 호념하시며, 또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42)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는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내 말과 여러 부처님들의 말씀을 믿어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이미 발원하였거나, 지금 발원하거나, 장차 발원하여 아미타불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이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어 저 국토에 이미 왕생하였거나 지금 왕생하거나 또 장차 왕생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사리불이여,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내 가르침을 믿는 이들은 마땅히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여러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함과 같이 저 부처님들도 나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찬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으로 어렵고 희유한 일을 하셨도다. 사바세계의 오탁악세五濁惡世-겁탁劫濁·견탁見濁·번뇌탁煩惱濁·중생탁衆生濁·명탁命濁-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고,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세상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법’을 말씀하셨도다.”
사리불이여,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 나는 이 오탁악세에서 어려운 일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모든 세상 사람들을 위해 이처럼 믿기 어려운 법을 설하느니라.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일진저!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말씀하셨다. 사리불과 여러 비구들, 모든 세상의 천신과 인간, 아수라 등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믿어 마음에 새긴 채 예경하고 물러났다.

008_0490_c_01L佛所護念經舍利弗若有善男子善女
008_0490_c_02L聞是經受持者及聞諸佛名者
008_0490_c_03L諸善男子善女人皆爲一切諸佛之所
008_0490_c_04L護念皆得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
008_0490_c_05L菩提是故舍利弗汝等皆當信受我語
008_0490_c_06L及諸佛所說

008_0490_c_07L
舍利弗若有人已發願今發願當發
008_0490_c_08L欲生阿彌陀佛國者是諸人等
008_0490_c_09L得不退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8_0490_c_10L彼國土若已生若今生若當生是故
008_0490_c_11L舍利弗諸善男子善女人若有信者
008_0490_c_12L應當發願生彼國土

008_0490_c_13L
舍利弗如我今者稱讃諸佛不可思議
008_0490_c_14L功德彼諸佛等亦稱讃我不可思議
008_0490_c_15L功德而作是言釋迦牟尼佛能爲甚
008_0490_c_16L難希有之事能於娑婆國土五濁惡世
008_0490_c_17L劫濁見濁煩惱濁衆生濁命濁中得阿
008_0490_c_18L耨多羅三藐三菩提爲諸衆生說是一
008_0490_c_19L切世間難信之法舍利弗當知我於
008_0490_c_20L五濁惡世行此難事得阿耨多羅三藐
008_0490_c_21L三菩提爲一切世間說此難信之法
008_0490_c_22L是爲甚難佛說此經已舍利弗及諸
008_0490_c_23L比丘一切世間天人阿脩羅等聞佛所
008_0490_c_24L歡喜信受作禮而去

008_0491_a_01L
염불로 현응한 이야기(念佛現應)
천축天竺 계두마사雞頭摩寺의 오통보살五通菩薩이 신통력으로 안락국에 가서 아미타불을 뵙고 아뢰었다.
“사바세계 중생들이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나 부처님의 형상(儀形)을 뵈올 수 없으니 강림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응답하셨다.
“네가 먼저 가면 내가 너를 따라 그곳에 나타나리라.”
오통보살이 돌아와 보니 부처님의 형상(聖儀)이 벌써 도착하였는데, 한 분의 부처님과 50보살이 각기 나뭇잎 위의 연꽃에 앉아 계셨다. 오통보살은 이를 그려 유포하였다.
부처님의 형상을 청하다(請佛形儀)43)

장로 종색長蘆宗賾 선사禪師는 여산 혜원이 남겨 놓은 가르침을 따라 연화승회蓮花勝會를 만들어 널리 염불을 권장하였다.
어느 날 저녁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검은 두건에 흰 옷을 입었고 풍채와 얼굴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가 읍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연화승회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부디 제 이름도 적어 주소서.” 종색 선사가 이름을 물어 보자 보혜普慧라고 대답하였다. 이름을 적자, 그는 다시 그 형인 보현普賢의 이름도 함께 적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종색 선사가 꿈을 깨고 나서 『화엄경』을 찾아보니 이세간품離世間品에 두 보살의 이름이 있어 결국 연화승회의 머리(會首)44)로 삼았다.
연화승회에 이름을 적다(勝會書名)45)

당나라 혜일慧日이 큰 배를 타고 바다 건너 천축국에 이르러 선지식들을 찾아뵙고 요법要法에 이르는 지름길을 여쭈었는데 모두 정토를 찬미하였다.
건다라국健馱羅國에 갔을 때 큰 산에 관음상이 있어 혜일은 7일 동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예경하였다. 또 목숨이 마칠 때까지 단식하기로 기약하였는데, 이레가 되는 날 홀연히 자금색 몸으로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뵈었다. 관음보살은 손을 내려 정수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네가 법을 전하여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하거든 극락세계 아미타불만 염念하라. 마땅히 정토문이 다른 모든 수행보다 뛰어남을 알 것이다.” 보살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혜일은 장안으로 돌아와 널리 염불을 권하였다.
염불법문이 가장 뛰어나다(法門最勝)46)


008_0491_a_01L
佛說阿彌陀經

008_0491_a_02L

008_0491_a_03L念佛現應

008_0491_a_04L
天笁雞頭摩寺五通菩薩以神力
008_0491_a_05L安樂國見阿彌陀佛陳云娑婆衆生
008_0491_a_06L願生淨土無佛儀形請垂降許佛言
008_0491_a_07L汝應先行尋當現彼五通還聖儀已
008_0491_a_08L一佛五十菩薩各坐蓮華在樹葉
008_0491_a_09L遂寫流布 請佛形儀

008_0491_a_10L
長蘆宗賾禪師遵遠祖遺範建蓮華勝
008_0491_a_11L普勸念佛一夕夢一人烏巾白衣
008_0491_a_12L半貌淸美揖而曰欲入公蓮華勝會
008_0491_a_13L乞書一名賾問何名荅曰普慧書已
008_0491_a_14L又云家兄普賢亦乞併書賾覺而檢華
008_0491_a_15L離世間品有二菩薩名遂以爲會
008_0491_a_16L首云 勝會書名

008_0491_a_17L
唐慧日泛舶渡海達天笁叅訪知識
008_0491_a_18L咨禀捷經要法天笁學者皆讃淨土
008_0491_a_19L健䭾羅國大山有觀音像日乃七日叩
008_0491_a_20L又斷食畢命爲期至苐七日夜
008_0491_a_21L見觀音現紫金身坐寶蓮華垂手摩頂
008_0491_a_22L汝欲傳法自利利人惟念極樂世
008_0491_a_23L界阿彌佛當知淨土一門勝過諸行
008_0491_a_24L已忽滅日回長安普勸念佛 法門最勝

008_0491_b_01L
송나라 갈제지葛濟之는 구용句容 사람으로 치천稚川47)의 후손이다. 당시 사람들이 선학仙學에 힘쓸 때 부인 기씨紀氏는 홀로 염불에 정성을 쏟았다.
원가元嘉 13년(436년) 기씨가 베틀에 앉아 있을 때 홀연히 공중이 밝아지는 것을 깨닫고는 북을 놓고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四表)을 바라보았다. 서방의 부처님이 현신하여 보개寶蓋48)와 당번幢幡49)이 하늘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고, 기씨는 기뻐서 경에 말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바로 이 분이시다 하면서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였다. 갈제지가 놀라고 기이한 생각이 들어 다가가니 부인이 부처님 계신 곳을 가리켰다. 갈제지 역시 부처님의 반신을 보았는데 조금 후에 사라졌다.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이로부터 불법에 귀의하는 자가 많았다.
부부가 부처님을 뵙다(夫婦見佛)50)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나찰羅剎이 사는 곳과 이웃하였다. 나찰이 제멋대로 사람을 잡아먹자 왕은 이제부터 나라 안에 한 집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보내 줄 것을 약속하며 함부로 죽이지 않도록 하였다.
불법을 믿는 집안인데 아들이 하나만 있는 집에서 보낼 차례가 되었다. 그 부모가 슬피 울며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도록 아들에게 당부하였다. 나찰은 부처님의 위력 때문에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다음 날 새벽에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찰의 근심이 이 때문에 마침내 그쳤다.
귀신이 감히 잡아먹지 못하다(鬼不敢噉)51)

망강望江의 진기陳企는 일찍이 멋대로 사람을 죽여 귀신 앞에 끌려갔다. 그가 두려워 황급히 아미타불을 염念하자 귀신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고, 염불을 그치지 않자 귀신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후에 항상 염불하였으며 앉은 채로 임종하였다.
반년이 흐른 후 손녀 묘광妙光에게 붙어서(附)52) 이르기를 “나는 염불을 한 덕으로 이미 극락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는데, 거동과 언어가 평소와 다름없었다. 이삼 일 지나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단정한 모습이 평소와 같았다. 유독 얼굴이 더 젊어 보인 것은 서방 세계에서는 장생불로長生不老하기 때문이다. 그 머리가 부처님의 소라머리53)와 같았는데 이는 곧 성불의 조짐이었다.
염불하여 귀신을 물리치다(念佛却鬼)54)

수나라 남악南嶽 혜사 대사慧思禪師55)는 정성된 마음으로 부처님을 섬겼다. 이에 아미타불이 나타나 그에게 설법하는 꿈을 꾸었다. 이때부터 총명함과 지혜가 남들보다 뛰어났으며 설법하는 재능에 걸림이 없었다.

008_0491_b_01L
宋葛濟之句容人稚川後也世事仙
008_0491_b_02L妻紀氏獨精誠念佛元嘉十三年
008_0491_b_03L方在機杼忽覺空中淸明因投杼仰瞻
008_0491_b_04L四表見西方有佛現身寶盖幢幡
008_0491_b_05L蔽雲漢喜曰經言無量壽佛其即此耶
008_0491_b_06L面佛作禮濟之驚異就之紀氏指示佛
008_0491_b_07L濟之亦見半身俄而隱沒親里自
008_0491_b_08L多歸佛法 夫婦見佛

008_0491_b_09L
佛世有一國隣于羅刹羅刹食人無度
008_0491_b_10L王約自今國中家以一人次苐送與
008_0491_b_11L弗得枉殺有奉佛家止生一子次當
008_0491_b_12L充行父母哀號囑令至心念佛以佛
008_0491_b_13L威力鬼不得近明晨還家羅刹之患
008_0491_b_14L由此遂止 鬼不敢噉

008_0491_b_15L
望江陳企甞妄殺人後見鬼現企畏
008_0491_b_16L急念阿彌陀佛鬼不敢近企念佛
008_0491_b_17L不已鬼遂不現後常念佛臨終坐化
008_0491_b_18L後半年附本家孫女妙光云我因念佛
008_0491_b_19L已生極樂擧動言語一如平日至兩
008_0491_b_20L三日企遂現儼然如平生唯面帶少
008_0491_b_21L盖西方長生不老其頭如佛之螺䯻
008_0491_b_22L蓋成佛之漸也 念佛却鬼

008_0491_b_23L
南岳慧思大師精心事佛因夢阿彌陀
008_0491_b_24L與之說法自是聰慧過人辯才無

008_0491_c_01L
염불하여 총명과 변재를 얻다(念佛聰辯)56)

송나라 진강鎭江의 장계조張繼祖는 서방정토를 독실하게 믿었다. 그의 유모가 죽자 염불하여 추천追薦하였는데 어느 날 밤 꿈에 유모가 나타나 사례하며 말하기를 “그대의 염불 덕에 이미 선취善趣57)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다.
염불하여 천도하다(念佛薦亡)58)

송나라 회령현懷寧縣 영전장營田庄에 완념삼阮念三의 형수가 있었다. 두 눈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늘 아미타불을 염念하여 마침내 눈이 밝아졌다.
염불하여 눈이 밝아지다(念佛眼明)59)

송나라 진강鎭江 금단현金壇縣의 장蔣씨 노파는 70세의 나이로 죽어 지옥에 가게 되었으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아 되돌아오게 되었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는 불경을 염송할 수 있겠느냐?”
노파가 잘 하지 못한다고 대답하자 염라대왕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 좋겠다.”
돌아온 후에 노파가 생각하기를, 염라대왕이 나에게 염불을 가르쳐 주었으니 다시 의심할 것 없겠다 하고 언제나 염불을 계속하였다. 노파는 백이십 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정토에 왕생하였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염라왕이 노파에게 권하다(閻王勸婆)60)

송나라 유중혜劉仲慧는 호주湖州 장흥長興 사람이다. 밤에 무서운 꿈을 자주 꾸어 근심하자 친구가 염불을 권하였다. 유중혜는 지극한 정성으로 소리 높여 백팔 번 염불한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 밤 비로소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이때부터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잠자리가 편안해지다(睡寢得安)61)

송나라 진강晉江 소표邵彪의 자는 희문希文이다. 선비로 있었을 때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소표가 어느 관부에 이르자 사람들이 모두 “편안히 위무하시오(按撫).”라 하였다. 다가가 그들 앞에 이르러서 한 관리
를 보았는데, 그는 “당신이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이유를 압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모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관리는 소표를 데리고 가서 끓는 물에서 고통 받는(大鑊煮)62) 조개를 보여 주었다. 조개들은 소표를 보고 사람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소표는 곧바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는데, 염불 소리를 한 번 내자마자 조개들이 모두 황작黃雀이 되어 날아갔다.
소표는 후에 과연 급제하여 안무사按撫使63) 벼슬에 이르렀다. 이를 통해 보면 살생은 사람의 앞길을 막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크고 넓은 부처님 위력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음도 알 수 있다.

008_0491_c_01L念佛聰辯

008_0491_c_02L
宋鎭江張繼祖篤信西方其乳母死
008_0491_c_03L爲念佛追薦一夜夢母謝云荷君念佛
008_0491_c_04L已生善趣 念佛薦亡

008_0491_c_05L
宋懷寧縣營田庄有阮念三嫂患兩目
008_0491_c_06L將盲常念阿彌陀佛遂得開明 念佛眼明

008_0491_c_07L
宋鎭江金壇縣蔣婆年七十死至陰府
008_0491_c_08L命未盡當還閻王問云汝能念經否
008_0491_c_09L對曰不能王曰汝可念阿彌陀佛旣放
008_0491_c_10L婆謂王敎我念佛更無可疑故常
008_0491_c_11L念佛百二十歲方終其生淨土斷可
008_0491_c_12L必矣 閻王勸婆

008_0491_c_13L
宋劉仲慧湖州長興人患夜夢多恐惧
008_0491_c_14L友勸念佛仲慧至誠高聲念百八徧
008_0491_c_15L然後就寢其夜神魂晏然自是繼念不
008_0491_c_16L睡寢得安

008_0491_c_17L
宋晋江邵彪字希文爲士人時夢至
008_0491_c_18L一官府人皆稱安撫行至前見一官
008_0491_c_19L問曰汝知汝未及苐因否對云不知
008_0491_c_20L引彪去見一大鑊煮蛤蜊見彪乃作
008_0491_c_21L人言呌其姓名彪遂念阿彌陀佛
008_0491_c_22L念一聲蛤蜊皆變作黃雀飛去彪後果
008_0491_c_23L及苐至安撫使以此見殺生阻人前程
008_0491_c_24L不可不戒又見佛力廣大不可不敬也

008_0492_a_01L
염불하여 어려움을 벗어나다(念佛脫難)64)

송나라 왕용서王龍舒65)가 배를 타고 진강鎭江에 이르렀다. 수문의 물이 부족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가까운 금산사에서 불경을 빌렸는데 곧 『아미타경』이었다. 그는 책을 교감하고 판에 새겨 널리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붓을 들 때 오른손에 풍기가 있어 손이 저절로 떨렸다. 그는 글씨 쓰기가 불편하여 손가락을 들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몇 차례 염불하면서, 풍기를 없애어 사경공덕을 성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기도를 마치자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고 책을 완성할 때까지 아무 탈이 없었다. 이를 통해 보면 불보살은 바로 눈앞 가까이에 있는데 다만 사람들의 신심이 이르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염불하여 병을 고치다(念佛止疾)66)

한 늙은 아낙네가 두 눈이 멀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다녔는데 항상 아미타불을 염念하였다. 어느 날 썩어 가는 낡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집이 기우뚱 무너졌다. 어린아이는 뛰쳐나왔으나 늙은 아낙네는 나오지 못하였다. 마침 나무 기둥 두 개가 맞부딪쳐 아낙네 머리 위에서 보호해 주어 압사를 당하지 않았다.
염불하여 죽음을 면하다(念佛免死)67)

송나라 이자청李子清은 오랫동안 학질에 시달렸다. 용서 거사龍舒居士는 그에게 병 기운이 올라올 때마다 오로지 염불에만 뜻을 둔 다음에 약을 먹으라는 처방을 주었다. 이를 따라 했더니 그날 고통이 반으로 줄었고 다음 날은 또 그 반으로 줄어 마침내 완쾌되었다. 이때부터 염불을 독실하게 믿었다.
염불하여 병이 낫다(念佛辟痁)68)

송나라 장주贑州 염廉 중대부中大夫69)의 부인이 장육신丈六身 아미타불을 수놓았는데 반쯤 완성했을 때 갑자기 채색 비단에서 사리가 나왔다. 온 집안이 다 놀라고 찬탄하였다.
사리가 나오다(舍利迸現)70)

진주眞州에 사는 종리소사鍾離少師의 임任씨 부인이 서방정토업을 닦으면서 아미타불상을 조각하였다. 길이는 4촌 8푼이고 모셔 두는 감실의 장식이 매우 장엄하였다. 항상 머리에 이고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상의 눈썹 사이에서 사리가 나왔다. 사리는 기장쌀만한 크기였고 광채가 나와 사람들을 비추었다.
사리가 나오다(舍利迸現)71)

송나라 수주秀州에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여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는데

008_0492_a_01L念佛脫難

008_0492_a_02L
宋王龍舒舟行至鎭江于金山寺
008_0492_a_03L佛經即彌陀經欲勘校刻梓廣傳
008_0492_a_04L筆之時右手有風其指自掉寫字不
008_0492_a_05L便乃擧指念阿彌陀佛與觀世音菩薩
008_0492_a_06L數聲禱除風疾以成就寫經禱畢
008_0492_a_07L遂不掉以至終帙無恙以此見佛菩薩
008_0492_a_08L只在目前但人信心不至 念佛止疾

008_0492_a_09L
有一老婦雙瞽令小兒牽行常念阿彌
008_0492_a_10L陀佛一日息于杇屋之下忽傾倒
008_0492_a_11L兒走出老婦在下乃有二木相拄
008_0492_a_12L于老婦之上得不壓死 念佛免死

008_0492_a_13L
宋李子淸久苦痁疾龍舒居士授之
008_0492_a_14L一方臨發時專志念佛然後服藥
008_0492_a_15L淸從之當日減半次日復如是遂全
008_0492_a_16L自是篤信念佛 念佛辟痁

008_0492_a_17L
宋贑州廉中大夫恭人繡丈六身阿彌
008_0492_a_18L陀佛方及半忽有舍利現綵縷中
008_0492_a_19L家驚嘆 舍利迸現

008_0492_a_20L
眞州鍾離少師任氏夫人修西方
008_0492_a_21L阿彌陀佛像長四寸八分龕飾甚嚴
008_0492_a_22L常頂戴行道其像眉間忽迸舍利
008_0492_a_23L如黍米光彩照人 同上

008_0492_a_24L
宋秀州一僧常念阿彌陀佛爲人治病

008_0492_b_01L낫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그 고을 사람들이 그를 부처님처럼 존경하고 믿었다.
병을 고쳐 낫게 해주다(治病得愈)72)

송나라 진강鎭江 어느 마을에 한 노인이 살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꼭 합장한 손을 이마 위로 올리면서 아미타불을 염念하였다. 두세 살쯤 된 손자가 노인을 따라 밭에 이르렀는데 문득 아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노인이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는데 며칠 뒤 어떤 사람이 시내 저편에 있다고 알려 주어 찾을 수 있었다. 아이의 발자취가 물가 곳곳에 있었다. 그 시내는 매우 깊었는데 아이가 어떻게 강을 건넜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 오랫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사람들은 그 노인이 지성으로 염불하여 감응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이가 어려움을 면하다(兒孫免難)73)

원나라 지정至正 연간(1341~1367년)에 장사성張士誠이 호주湖州를 공략하여 강절승상江浙丞相과 교전하였다. 40명의 포로를 잡아 함거檻車에 가두어 보내 죽이려 하던 중 밤이 되어 서호西湖 조과사鳥窠寺에 유숙하였다.
이때 마침 대유 모大猷謀 선사가 회랑 아래를 거닐고 있었다. 포로들이 구해 달라고 하자 대사는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구고구난아미타불南無救苦救難阿彌陀佛’을 염불하라고 하였다. 그 중 세 명이 대사의 말을 믿고 받아들여 입으로 염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날이 밝아 출발할 때 족쇄를 바꿔 채우는데, 그 세 사람에 이르러서는 형구가 부족하여 밧줄로만 묶어놓았다. 이후 심문할 때 양민으로 잡혀온 자라는 것이 밝혀져 결국 풀려날 수 있었다.
염불하여 형틀을 벗다(念佛脫械)74)

명나라 해창海昌의 촌민으로 한 노파가 있었다. 죽은 뒤 가족에게 붙어서, 살았을 적에 행한 일과 저승에 가서 받은 인과응보를 상세하게 이야기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 한 사람이 문득 마음을 집중하여(攝心) 염불하였다.
노파가 말하였다.
“네가 항상 이와 같이 하면 어찌 불도를 이루지 못할까 걱정하겠느냐?”
이유를 묻자 대답하였다.
“네 마음이 아미타불을 염念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일자무식이었으나 별안간 한번 염불하여 오히려 귀신의 공경을 받았다. 하물며 오래도록 닦고 익힌 사람에게는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염불공덕은 불가사의한 것이다.
염불하여 귀신이 공경하다(念佛鬼敬)75)


008_0492_b_01L無不痊愈州人敬信如佛 治病得愈

008_0492_b_02L
宋鎭江村落有一老人每有事必合
008_0492_b_03L掌至額念阿彌陀佛其孫方二三歲
008_0492_b_04L因隨至田野忽失之老人尋訪不見
008_0492_b_05L後數日人告云在溪外果尋得之
008_0492_b_06L跡徧于灘上其溪甚深不知此兒
008_0492_b_07L緣過彼又久而無恙人以爲其祖
008_0492_b_08L誠念佛所感也 兒孫免難

008_0492_b_09L
元至正中張士誠攻湖州江浙丞相
008_0492_b_10L與戰擒四十人囚檻送戮夜宿西湖鳥
008_0492_b_11L窠寺適大謀禪師徐步廊下囚因
008_0492_b_12L求救師敎至心念南無救苦救難阿彌
008_0492_b_13L陀佛中有三人信受其語念不絶口
008_0492_b_14L天曉發囚易枷鎻至三人刑具不足
008_0492_b_15L惟繫以繩旣以審鞫知良民被虜者
008_0492_b_16L遂得釋 念佛脫械

008_0492_b_17L
明海昌村民有老媼死附家人言平
008_0492_b_18L生事及陰府報應甚悉鄕人環而聽之
008_0492_b_19L有一人在衆中忽攝心念佛媼謂曰
008_0492_b_20L汝常如此何患不成佛道問何故
008_0492_b_21L汝心念阿彌陀佛故問何以知之曰見
008_0492_b_22L汝身有光明故村民不識一字瞥爾一
008_0492_b_23L尙使鬼敬况久脩習者乎是故念
008_0492_b_24L佛功德不可思議 念佛鬼敬

008_0492_c_01L
청나라 항군杭郡 왕삼관王三官의 모친이 청상과부로 늙었다. 매일 오직 염불에 힘썼고 저금한 돈 10여 금을 모두 영은사에 시주하였다. 강희康熈 원년(1662년) 5월에 병으로 죽었다가 반나절 만에 살아나서 말하였다. “내가 어느 사내아이의 탯줄로 들어갔는데 아직 태어날 때가 안 되어서 되돌아와 너희들에게 이야기한다.” 다시 반나절 정도 쉬다가 숨을 거두었다.
여자가 남자 몸이 되다(女轉男身)76)

청나라 유행민兪行敏의 부인 탁씨는 평소 성품이 곧고 마음이 자애로웠다. 불법을 독실하게 믿어 옥림玉林 대사와 구덕具德 대사를 존경하여 예로 대하였고 틈틈이 재물도 보시하였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만나면 불쌍히 여겼고 법에 의지하여 정토업을 닦았다. 염불을 일과로 하였고 『미타경』을 염송하였다. 6년이 지난 강희康熙 정미년(1667년)에 가볍게 앓다가 편안하게 앉아 입적하였다. 염습할 때 안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기뻐하는 얼굴이 생생해서(歡容可挹) 대중들이 모두 찬탄하였다. 35일째 되는 날 밤에 며느리 꿈에 나타나 “당시에 천신天神이 나를 영접하여 바로 따라갔다.”고 하였다.
염불하여 극락에 나다(念佛生天)77)

일과염불課念佛
송나라 장륜張掄은 날마다 염불을 만 번씩 하였다.
송나라 손량孫良은 날마다 부처님 명호를 만 번씩 소리 내어 외웠다.
송나라 육원도陸沅道는 날마다 『법화경』을 한 번 염송하였고, 염불을 소리 내어 만 번씩 하였다.
명나라 주강朱綱은 날마다 염불을 3만 번씩 소리 내어 하였다.
송나라 승려 용흠用欽도 염불을 매일 3만 번씩 하였다.
당나라 승려 회옥懷玉은 부처님 명호를 5만 번씩 불렀다.
당나라 승려 보상寶相은 6만 번을 한도로 염불하였다.
당나라 승려 도작道綽은 7만 번을 한도로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영명 수永明壽 선사는 매일 아미타불을 10만 번씩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승현僧衒은 90세에 매일 천 배를 하였다.

008_0492_c_01L
太淸杭郡王三官之母孀居年老日唯
008_0492_c_02L念佛所積十餘金悉施靈隱康熙元
008_0492_c_03L年五月病死半日復蘇曰我去投一
008_0492_c_04L男胎因彼處生時未到故我轉來
008_0492_c_05L你說更憇半餉而沒 女轉男身

008_0492_c_06L
太淸兪行敏妻卓氏平生性直心慈
008_0492_c_07L信佛法尊禮玉林具德兩大師間亦捨
008_0492_c_08L遇貧病人必矜恤之依法脩淨業
008_0492_c_09L日課念佛誦彌陀經經六載康熙丁
008_0492_c_10L示微疾安然坐逝及殮時顏色如
008_0492_c_11L歡容可挹衆咸嘉嘆至五七之夜
008_0492_c_12L託夢兒媳云前者天神迎我故我即去
008_0492_c_13L念佛生天

008_0492_c_14L

008_0492_c_15L日課念佛

008_0492_c_16L
宋張掄日課念佛萬徧 1)◆宋孫良
008_0492_c_17L誦佛號萬聲 ◆宋陸沅道日誦法華經
008_0492_c_18L一徧念佛萬聲 ◆明朱綱日念佛三
008_0492_c_19L萬聲 ◆宋僧用欽亦課念三萬徧 ◆
008_0492_c_20L唐僧懷玉課呼佛號五萬聲 ◆唐釋寶
008_0492_c_21L六萬聲爲限 ◆唐釋道綽以念佛
008_0492_c_22L七萬聲爲限 ◆永明壽禪師日念彌陀
008_0492_c_23L佛十萬聲 ◆僧衒年九十日禮千拜

008_0492_c_24L底本附號各異{編}

008_0493_a_01L
역대의 존숙(歷代尊宿)78)
여산 혜원廬山慧遠79) 조사는 마하반야摩訶般若80)의 깊은 뜻을 깨달아 동방호법보살東方護法菩薩이라 불린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종일 염불하여 세 번이나 부처님 얼굴(聖容)을 뵈었고 정토에 왕생하였다.
천태 지자天台智者81) 대사는 『 법화경』의 요체를 깊이 깨달은 분으로 교관敎觀으로 일가를 이루어 만대의 종조宗祖82)가 되었다. 앉을 때면 서쪽을 향하였으며, 「십종의十種疑」를 변증하고 『 십육관경十六觀經』을 주석하여 정토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백장 대지百丈大智83) 선사는 마조馬祖의 적통을 이은 분으로 천하의 총림이 모두 종조로 삼았다.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고 입적한 스님을 천도하여 모두 정토에 돌아가도록 하였다.
영명 연수永明延壽84) 선사는 걸림 없는 변재辯才를 얻어 종문宗門의 주춧돌이 된 분이다. 서방의 상품상생上品上生을 두루 찬양하여 명부冥府에서도 공경을 받았다.
사심 오신死心悟新85) 선사는 황룡黃龍 선사86)의 법석을 이어 종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정업淨業에 간절하게 뜻을 두고 염불을 권하는 글을 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애긍심을 발하여 믿음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진헐 청료眞歇淸了87) 선사는 단하 순공丹霞淳公을 계승한 분으로 동하종洞下宗88)이 대사에 이르러 크게 드러났다. 탁암卓庵 보타암補陀庵에서 오로지 서방에 뜻을 두었다. 『정토집淨土集』이 세상에 전한다.
자수 회심慈受懷深89) 선사는 장로 신공長蘆信公 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오로지 염불에 마음을 쏟았다. 수행의 지름길은 정토보다 뛰어난 것이 없다고 여겨 서방도량西方道場을 세워 대중들에게 간절히 염불을 권하였다.
원조 종본圓照宗本90) 선사는 천의天衣 선사의 도맥을 이은 분으로 설두雪竇 선사의 종지를 홍포하여 불법의 우렛소리(法雷)91)가 땅을 흔들었고 두 왕조에 걸쳐 사표師表가 되었다. 정업을 함께 닦아 상품上品에 이름을 올렸다.
석지효石芝曉 법사는 월당 순공月堂洵公의 대를 이은 분으로 교학에 훤히 통달하였고, 정업淨業으로 대중을 교화하였다. 일찍이 대장경의 여러 책들을 집성하였는데 그중에 『낙방문류樂邦文類』가 세상에 유포되었다.


008_0493_a_01L歷代尊宿

008_0493_a_02L
廬山遠祖師悟摩訶般若深旨號東方
008_0493_a_03L護法菩薩而六時念佛三覩聖容
008_0493_a_04L生淨土

008_0493_a_05L
天台智者大師妙悟法華一家敎觀
008_0493_a_06L萬代宗祖而坐則面西辯十種疑
008_0493_a_07L十六觀極談淨土

008_0493_a_08L
百丈大智禪師馬祖嫡嗣天下叢林
008_0493_a_09L共宗而祈禱病僧化送亡僧悉歸淨土

008_0493_a_10L
永明延壽禪師得無礙辯才柱石宗門
008_0493_a_11L而徧讃西方上品上生敬及冥府

008_0493_a_12L
死心悟新禪師繼席黃龍宗風大振而
008_0493_a_13L切意淨業著勸念佛文令人發哀起信
008_0493_a_14L眞歇淸了禪師嗣丹霞淳公洞下一宗
008_0493_a_15L至師大顯而卓庵補陀專意西方
008_0493_a_16L淨土集行世

008_0493_a_17L
慈受懷深禪師得法于長蘆信公專心
008_0493_a_18L念佛而謂修行捷徑無越淨邦建西
008_0493_a_19L方道場苦口勸衆

008_0493_a_20L
圓照宗本禪師道續天衣宗弘雪竇
008_0493_a_21L法雷震地師表兩朝而淨業兼脩
008_0493_a_22L名上品

008_0493_a_23L
石芝曉法師嗣月堂洵公洞徹敎部
008_0493_a_24L以淨業化人甞集大藏諸書有樂邦文

008_0493_b_01L
적당 원寂堂元 선사는 밀암 함걸密庵咸傑92)의 대를 이은 분으로 염불삼매를 독실하게 행하였다. 금빛 갑옷을 입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감득하였고, 홍련화가 땅에서 솟아나는 꿈을 꾸었다. 이로 말미암아 온 세상(十洲)에 연종蓮宗이 크게 퍼졌다.
중봉 명본中峯明本93) 선사는 고봉 원묘高峯原妙의 법통을 이은 분으로 대중들이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존경하였다. 말하기를 선은 정토의 선이요, 정토는 선의 정토라 하였다. 「정토를 그리는 시(懷淨土詩)」 백 수를 지어 대중들에게 염불을 권하였다.
우담 종주優曇宗主94)는 여산盧山 동림사東林寺의 선법당善法堂에 주석하여 『연종보감蓮宗寶鑑』을 지었다. 임금의 뜻을 받들어 판각 유통시켜 정토 중흥의 계기가 되었다.
연지 대사蓮池大師95)가 말하였다. “혜원 조사로부터 우담 종주에 이르기까지 역대 존숙으로서 정토를 높이 받들지 않은 이가 없다. 근기 낮은 범부들이여, 어찌 의심을 끊고 결심하여 용맹스럽고 날카롭게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96)
정토과험淨土果驗
스님이 왕생한 이야기
 1.97) 진晉 혜영慧永은 하내河內 사람으로 12세에 출가하여 원공遠公98)과 함께 안安 법사에 의지하였다. 태원太元 초에 여산에 주석하였는데, 자사刺史 도범陶範이 집을 희사하여 서림사西林寺99)로 삼고 거처하며 속세에 뜻을 끊고 안양에 마음을 두었다. 후에 병을 보이고서 문득 옷을 여미고 신을 신으며 일어서려 하자 대중들이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 혜영은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시기 때문이네.”라 하며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다. 당 현종이 각적覺寂 대사라는 시호를 내렸다.100)
 2. 송宋 담감曇鑒은 평소에 작은 선업을 행할 때마다 서방에 회향하며 부처님 뵙기를 서원하였다. 하루는 삼매 중에 아미타불을 뵈었는데 부처님이 담감의 낯에 물을 뿌리며 말하기를

008_0493_b_01L行世

008_0493_b_02L
寂堂元禪師嗣密庵傑篤行念佛三昧
008_0493_b_03L感金甲神自天而降夢紅蓮華從地
008_0493_b_04L而出由是十洲蓮宗大行

008_0493_b_05L
中峯本禪師得法高峯人仰如山斗
008_0493_b_06L而云禪者淨土之禪淨土禪之淨土
008_0493_b_07L有懷淨土詩百首勸人念佛

008_0493_b_08L
優曇宗主居盧山東林善法堂著蓮宗
008_0493_b_09L寶鑑奉旨板行爲淨土中興

008_0493_b_10L
蓮池大師曰自遠祖至優曇歷代尊宿
008_0493_b_11L無不崇奉淨土下劣凡夫安可不斷疑
008_0493_b_12L決志勇猛銳進哉

008_0493_b_13L

008_0493_b_14L淨土果驗晋遠法師倡修淨土嗣後徃生
不一而足至於叔季世愈下
008_0493_b_15L而徃愈寡上代之徃生者人或稔聞熟知故
取二三自宋以下人皆寡聽故十取其九云

008_0493_b_16L沙門徃生類

008_0493_b_17L
晋慧永河內人十二出家旣而與遠公
008_0493_b_18L同依安法師太元初駐錫廬山刺史陶
008_0493_b_19L捨宅爲西林以居之絕志塵囂
008_0493_b_20L心安養後示疾忽歛衣求屣欲起
008_0493_b_21L驚問荅曰佛來迎我言訖而化唐玄
008_0493_b_22L追謚覺寂大師

008_0493_b_23L
宋曇鍳平生片善廻向西方誓願見
008_0493_b_24L一日定中見阿彌陀佛水洒其面曰

008_0493_c_01L“너의 번뇌(塵垢)를 털어내고 마음(心念)과 몸과 입(身口)의 업을 씻어 모두 엄정하고 정결케 하노라.” 하고 나서 병 속의 연꽃을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선정에서 일어나 절의 스님들과 작별을 고하고 밤이 깊도록 홀로 행랑을 걸으며 염불하였다. 오경이 되자 염불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다음 날 제자가 평소처럼 문안드리러 와서 보니 이미 가부좌한 채 입적한 뒤였다.101)
 3. 제齊 승유僧柔는 방등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배웠으나 정업淨業만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 입적하던 날 1천 좌의 응화불應化佛102)을 뵈었고, 방 안팎에서 모두 신이한 향기가 났다. 이에 서쪽을 향하여 예경하고 입적하였다.103)
 4. 수隋 법희法喜는 평소에 방등참법方等懺法104)을 행하였다. 어느 날 꿩 한 마리가 법희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자(索命) 어떤 신인神人이 꾸짖어 말하기를 “법사께서는 마땅히 정토에 왕생할 분인데, 어찌 너의 목숨을 대신하겠는가?”라고 하였다. 후에 병이 들어 발원하기를 “한평생 행한 업을 서방에 회향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불보살이 맞이하러 오는 것을 뵙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105)
 5. 수隋 도유道喻는 아미타불을 염念하여 밤낮 그치지 않았다. 그가 불상을 만들었는데 겨우 세 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후에 선정에 들었을 때 부처님께서 물었다. “그대가 만든 나의 상은 왜 그리 작은가?” 대답하였다. “마음이 크면 불상도 크고, 마음이 작으면 불상도 작습니다.” 말을 마치고 부처님 몸을 보니 허공에 가득 차 있었다.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어서 깨끗이 씻어 청정하게 하라. 내일 새벽에 그대를 맞이하러 가겠다.”라고 하였다. 때가 되자 과연 부처님께서 오셔서 광명이 방에 가득하였다. 마침내 앉은 채로 입적하였다.106)
 6. 수隋 문주汶州 땅에 두 사미가 있어 염불에 뜻을 함께 하였다. 큰 사미가 갑자기 죽어 정토에 이르렀다. 부처님을 뵙고 말씀드리기를 “함께 정토업을 닦던 동생 사미가 있습니다. 함께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그대에게 권하였기 때문에 그대가 비로소 발심하였으니 돌아가서 더욱 정업에 힘쓰도록 하라. 3년 후에 마땅히 함께 이곳에 올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어 두 사람은 함께 부처님께서 맞이하러 오시는 것을 뵈었다. 그때 대지가 진동했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둘은 같은 시간에 입적하였다.107)


008_0493_c_01L滌汝塵垢浴汝心念及汝身口皆悉
008_0493_c_02L嚴淨又于缾中出蓮花授之定起
008_0493_c_03L與寺僧叙別夜深獨步廊下念佛至五
008_0493_c_04L其聲彌厲及明弟子依常問訊
008_0493_c_05L坐已逝矣

008_0493_c_06L
齊僧柔學方等諸經惟以淨業爲懷
008_0493_c_07L之日見化佛千數室內外俱聞異香
008_0493_c_08L向西敬禮而化

008_0493_c_09L
隋法喜常行方等懴法忽一雉索命
008_0493_c_10L神人呵曰法師當徃生淨土豈償汝命
008_0493_c_11L後病中發願以一生行業廻向西方
008_0493_c_12L至心念佛見佛菩薩來迎端坐而化

008_0493_c_13L
隋道喩念阿彌陀佛日夜不廢造像
008_0493_c_14L僅三寸後于㝎中見佛謂曰汝造我
008_0493_c_15L像何小喩曰心大即大心小即小
008_0493_c_16L見像身遍滿虛空告曰汝當澡浴
008_0493_c_17L淸淨明晨我來迎汝至時果見佛來
008_0493_c_18L光明滿室遂坐而化

008_0493_c_19L
隋汶州二沙彌同志念佛長者忽亡至
008_0493_c_20L淨土見佛白言有小沙彌同修可得
008_0493_c_21L生否佛言由彼勸汝汝方發心汝今
008_0493_c_22L可歸益勤淨業三年之後當同來此
008_0493_c_23L至期二人俱見佛來地震雨華一時
008_0493_c_24L同化

008_0494_a_01L
 7. 당唐 선주善胄는 무덕武德 3년(620년)에 병이 깊어져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생을 바르게 믿었으니 정토에 틀림없이 날 것을 믿는다.”라고 하였다. 곧 방을 청결하게 하고 향을 피워 엄정하게 기다렸다. 병이 오래되어 누워 있다가(委臥) 갑자기 일어나 합장하며 시자에게 말하기를 “세존께서 앉으실 자리를 마련하라.” 하였고, 또 스스로 참회의 말을 하였다. 잠시 후 “세존께서 떠나신다.”고 하며 몸을 낮춰 보내는 것처럼 하였다. 그리고 다시 누워 “방금 전에 아미타불께서 오셨는데 너희들도 보았느냐? 머지않아 나는 마땅히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입적하였다.108)
 8. 당唐 유안惟岸은 병주并州 사람으로 오로지 십육관十六觀법을 닦았다. 이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공중에 출현하여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유안은 정례頂禮하며 눈물을 빗물처럼 흘리며 탄식하기를 “요행히 육안으로 성인의 얼굴(聖容)을 뵈었으나 후세에 전할 길이 없음이 한스럽다.”라고 하였다. 홀연히 화공畵工이라 자칭하는 두 사람이 나타나 순식간에 성인의 형상을 다 그리고 마친 뒤에 사라졌다.
제자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이에 대해 여쭈었다. 유안이 말하였다.
“이분들이 어찌 화공이겠느냐. 나는 지금 왕생하노라. 누가 함께 가겠느냐?”
작은 동자가 말하였다.
“스님을 따라 왕생하고 싶습니다.”
유안이 말하였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말씀드려라.”
그 부모는 이를 듣고서 비웃으며 아이를 꾸짖었다. 동자는 절로 돌아와 향탕香湯에 목욕하여 아미타불상 앞에 결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유안은 등을 어루만지며 “어린아이가 어찌 먼저 가노?”라고 한 후 분향하고 보살 그림 앞에서 게송을 썼다.

觀音助遠接    관세음보살은 미타님 도와 멀리 오셔서 접인하고
勢至輔遙迎    대세지보살은 미타님 도와 멀리 오셔서 영접하네.
寶瓶冠上顯    보배로 수놓은 병109)은 관冠 위에 드러나고
化佛頂前明    화현하신 부처님110)은 머리맡에 빛나네.
俱遊十方剎    모두 시방의 국토에 노닐며
持華候九生    꽃 들고 구생九生111)을 구제하시네.
願以慈悲手    바라옵나니 자비로운 손길로
提獎共西行    서방으로 함께 가자 이끌어 주시길.

드디어 제자들에게 조성염불助聲念佛112)을 하도록 하였고, 눈을 들어 서쪽을 보며 입적하였다.113)
 9. 당唐 대행大行은 보현참법普賢懺法을 닦았는데 3년 만에 보현보살이 현신하는 것을 감득感得하였다. 늦은 나이에 대장각大藏閣에 들어가 서원을 말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골라 『아미타경』을 얻었다.

008_0494_a_01L
唐善胄武德三年病草謂門人曰
008_0494_a_02L一生正信不慮淨土不生即令拂拭房
008_0494_a_03L燒香嚴待病久委臥忽起合掌
008_0494_a_04L侍人曰安置世尊令坐又自陳懺悔
008_0494_a_05L良久曰世尊去矣低身似送因臥曰
008_0494_a_06L向者阿彌陀佛來汝等還見否不久
008_0494_a_07L吾當去耳少頃而逝

008_0494_a_08L
唐惟岸并州人專修十六觀因出見
008_0494_a_09L觀音勢至二菩薩現于空中良久不滅
008_0494_a_10L岸頂禮雨淚而嘆曰幸以肉眼得見聖
008_0494_a_11L所恨後世無傳忽有二人自稱畫
008_0494_a_12L未展臂間聖相克就已而人亦不
008_0494_a_13L弟子怪問之岸曰此豈畫工哉
008_0494_a_14L曰吾今徃生誰偕行者小童云願從
008_0494_a_15L師徃岸曰可歸告父母父母聞而笑罵
008_0494_a_16L童乃歸寺香湯沐浴于彌陀像前
008_0494_a_17L趺坐而化岸撫其背曰小子何乃先去
008_0494_a_18L遂焚香向所畫菩薩前書偈云觀音
008_0494_a_19L助遠接勢至輔遙迎寶缾冠上顯
008_0494_a_20L佛頂前明俱遊十方刹持華候九生
008_0494_a_21L願以慈悲手提奬共西行遂令弟子
008_0494_a_22L助聲念佛仰目西顧而亡

008_0494_a_23L
唐大行修普賢懺法三年感大士現身
008_0494_a_24L晩歲入大藏陳願隨手取卷得彌陀經

008_0494_b_01L밤낮 외우고 읊기를 21일 동안 하여 유리지琉璃地 위에 계신 부처님과 두 보살의 현신을 보았다. 희종 황제僖宗皇帝가 그 이야기를 듣고 궁궐에 들어오라 하여 상정진보살常精進菩薩이라는 호를 내렸다. 1년 후 유리지琉璃地가 다시 나타났고 그날 바로 입적하니 이채로운 향기가 열흘 넘게 났고 육신은 썩지 않았다.114)
 10. 송宋 오은晤恩은 13세에 『미타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출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하루 한 끼만 먹고 옷과 발우를 항상 지니고 있었으며 재물 보화를 쌓아 두지 않았다. 누울 땐 반드시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앉을 때는 반드시 결가부좌하였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서방의 정토업을 닦을 것을 가르쳤다. 옹희雍熙 2년(985년) 8월 초하룻날 밤에 밝은 빛이 우물에서 나왔다. 문인들에게 “나는 장차 떠나련다.” 하고 곡기를 끊은 채 말을 하지 않았다. 일심으로 염불하여 25일에 이르러 설법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입적하였다. 사람들이 요령과 목탁 소리가 공중에서 낭랑하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115)
 11. 송宋 본여本如는 호가 신조神照로서 동산東山 승천사承天寺에 주석하면서 군수 장순張郇과 결사를 결성하였다. 하루는 법석에 올라 설법할 때 대중들과 결별을 고한 뒤 물러나 앉아서 입적하였다. 이때 강가의 어부가 구름 끝으로 한 스님이 서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이듬해 탑을 열었는데 얼굴과 모습이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연꽃이 탑 앞에서 솟아났다.116)
 12. 송宋 기 법사基法師는 보운寶雲 스님에게 배웠으며 염불에 정성을 다하였다. 하루는 몸이 편찮았는데 제자를 위해 설법하던 중 대중들이 문득 서방에 빛이 나는 것을 보았고 공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대사가 말씀하기를 아미타 부처님과 두 보살께서 모두 오셨다 하였고, 곧 오른쪽 옆구리를 서쪽을 향하여 돌아가셨다. 문인들 중에는 꿈에 아미타 부처님께서 수기하여 초세여래超世如來로 삼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고, 또 꿈에 대사께서 청연화대靑蓮花臺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사람도 있었다.117)
 13. 송宋 약우若愚는 운천雲川 선담仙潭에 살았다. 무량수불각을 세우고 승속을 막론하고 염불을 권장하기를 30년이나 하였다. 도잠道潛과 칙장則章 두 대사를 벗으로 사귀었는데 도잠은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났다. 약우는 칙장과 함께 오직 진실한 수행(實行)에 힘썼다.

008_0494_b_01L晝夜誦咏至三七日覩琉璃地上
008_0494_b_02L及二大士現身僖宗聞其事詔入內
008_0494_b_03L賜號常精進菩薩後一年琉璃地復現
008_0494_b_04L即日而終異香經旬肉身不壞

008_0494_b_05L
宋晤恩年十三聞誦彌陀經遂求出家
008_0494_b_06L終日一食不離衣鉢不畜財寶臥必
008_0494_b_07L右脅坐必跏趺徧誨人以西方淨業
008_0494_b_08L雍熙二年八月朔日夜覩白光自井而
008_0494_b_09L謂門人曰吾將逝矣絶粒禁言
008_0494_b_10L心念佛至二十五日說法畢端坐而
008_0494_b_11L人聞鈴鐸之音嘹喨空中

008_0494_b_12L
宋本如號神照住東山承天寺與郡
008_0494_b_13L守張郇結社一日升座說法與衆訣別
008_0494_b_14L退而坐逝時江上漁人見雲端有僧西
008_0494_b_15L明年啓塔顏䫉如生蓮生塔前

008_0494_b_16L
宋基法師學于寶雲精意念佛一日
008_0494_b_17L示疾爲弟子說法衆忽見西方現光
008_0494_b_18L空中奏樂師曰阿彌陀佛與二大士俱
008_0494_b_19L即右脇向西而化門人夢阿彌陀佛
008_0494_b_20L授記爲超世如來又夢師坐靑蓮華臺
008_0494_b_21L

008_0494_b_22L
宋若愚居雲川仚潭建無量壽佛閣
008_0494_b_23L勸道俗念佛精勤三十年與道潜則章
008_0494_b_24L二師爲友潜能詩近名愚與章惟務

008_0494_c_01L입적할 때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말하기를 “너의 동학 칙장이 보현행원普賢行願 삼매를 얻어 이미 정토에 나서 바로 자네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하였다. 약우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대중에게 『관무량수경』을 외우도록 하였고, 단정히 앉아 말없이 있다가 갑자기 “정토가 눈앞에 펼쳐지니 나는 지금 가야겠다.”라고 하였다. 게를 쓰고 입적하였는데 게는 이렇다.

空裏千華羅網   허공 속엔 천 송이 꽃 비단 그물 있고
夢中七寶蓮池   꿈속에선 칠보로 된 연못 보았네.
踏得西方路穩   밟아 나가면 서방의 길 평탄해지리니
更無一點狐疑   다시 한 점의 의심도 하지 말기를.118)

 14. 송宋 수진守眞은 영흥永興 사람으로 『기신론起信論』 법계관法界觀을 강의하였다. 항상 한밤중에 무량수불왕생비밀인無量壽佛往生秘密印을 맺고 서방에 생각을 집중하였다. 어느 날 저녁 하늘이 밝아지더니 스스로 몸이 정토에 오르는 것을 깨닫고 눈을 들어 부처님을 보았다. 이에 부처님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48대원으로 능히 나를 제도하실 분이시여!”라고 하였다. 이에 향과 꽃을 잡고 전殿에 들어가 공양하였는데 앉자마자 입적하였다.119)
 15. 송宋 유엄有嚴은 숭선사崇善寺에 주석하신 분으로 신조神照 대사에 의지하여 천태교天台教를 배웠다. 만년에 명자나무 아래 띠집을 얽어 호를 사암樝菴이라 했다. 평소에 독실하게 정토를 닦아 「안양 고향을 그리는 시懷安養故鄉詩」를 남겼고 당시에 널리 전해졌다. 임종할 때 보배 연못의 큰 연꽃과, 하늘 음악을 네 줄로 서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 「정토에 돌아가며 전별하는 시餞歸淨土詩」를 지어 대중에게 보였다. 7일 뒤에 결가부좌한 채 열반하였다. 탑 위에 달같이 환한 빛이 나타나 사흘 뒤에야 사라졌다.120)
 16. 송宋 사찬師贊은 옹주雍州 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스님이 되었다. 14세에 염불을 그치지 않았는데 병이 들어 갑자기 죽었다. 조금 후에 다시 소생하여 스승과 부모에게 말씀드리기를 “아미타 부처님이 여기에 오셔서 저는 따라가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공중에 보배 장식의 좌대와 오색의 이채로운 빛이 서쪽을 향하여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121)
 17. 송宋 지례知禮의 호는 법지法智이다. 『묘종초妙宗鈔』라는 책을 저술하여 관심觀心과 관불觀佛의 요지를 크게 현창하였다. 매해 2월 보름에 염불시계회念佛施戒會를 열었는데 항상 만 명이 넘었다. 후에 새해 첫날에는 광명참光明懺을 열었는데

008_0494_c_01L實行將順世夢神人告曰汝同學則
008_0494_c_02L得普賢行願三昧已生淨土彼正
008_0494_c_03L待汝愚沐浴更衣命衆諷觀經端坐
008_0494_c_04L默然忽云淨土現前吾當行矣書偈
008_0494_c_05L而化偈曰空裡千華羅網夢中七寶蓮
008_0494_c_06L踏得西方路穩更無一點狐疑

008_0494_c_07L
宋守眞永興人講起信論法界觀常於
008_0494_c_08L中夜結無量壽佛徃生秘密印繋念西
008_0494_c_09L一夕天曉自覺身登淨土擧目見
008_0494_c_10L因伏像前忽曰四十八願能度我
008_0494_c_11L乃持香華入殿供養就坐而化

008_0494_c_12L
宋有嚴住崇善寺依神照學天台敎
008_0494_c_13L晩年結茆樝木之下號曰樝菴平生篤
008_0494_c_14L修淨土有懷安養故鄕詩爲時所傳
008_0494_c_15L將終見寶池大蓮華天樂四列乃作
008_0494_c_16L餞歸淨土詩示衆後七日跏趺而化
008_0494_c_17L上有光如月三夕方隱

008_0494_c_18L
宋師賛雍州人爲僧童年十四念佛
008_0494_c_19L不絶忽遇疾暴亡俄而復甦謂師及
008_0494_c_20L父母曰阿彌陀佛來此兒當隨行
008_0494_c_21L人見空中寶臺五色異光向西而沒

008_0494_c_22L
宋知禮號法智述妙宗鈔大彰觀心
008_0494_c_23L觀佛之旨每歲二月望日建念佛施戒
008_0494_c_24L動逾萬人後於歲旦建光明懺

008_0495_a_01L5일에 이르러 대중 설법 중에 부처님 명호를 수백 번이나 한꺼번에 소리 내어 부르다 갑자기 입적하였다. 청헌공淸獻公 조변趙抃이 그 탑에 명銘을 썼다.122)
 18. 송宋 지렴智廉은 화도사化度寺에 주석하였다. 젊었을 때는 종문宗門123)을 참구하다가 만년에는 오로지 서방정토에만 뜻을 두었다. 경원慶元 연간(1195~1200년)에 대중과 작별하며 말하였다. “꿈에 아미타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 설법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여러 선인들이여, 마땅히 정토업 닦는 데 전념하여 나의 국토에 왕생토록 하라’고 하셨다. 나는 아미타불의 빼어난 모습을 보았으니 왕생은 틀림없을 것이다.”라 하면서 게를 썼다.

雁過長空     기러기 너른 창공 지나갈 때
影沉寒水     그림자 늦가을 강물에 빠져드누나.
無滅無生     소멸도 없고 태어남도 없으리
蓮華國裏     연화국 안에서는.

게를 다 쓴 후 서쪽으로 몸을 돌려 수인手印을 맺고 입적하였다.124)
 19. 송宋 처겸處謙은 정토를 정성으로 닦은 분이다. 어느 날 저녁에 『미타경』을 다 외우고 정토를 찬미하며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무생법인無生法印으로써 정토에 왕생한다.” 하고는 선정에 들어간 듯이 홀연히 입적하였다.125)
 20. 송宋 회의懷義는 온주溫州 악청樂淸 사람이다. 아버지는 어부였다. 어렸을 때 뱃고물에 앉아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면 몰래 물속에 던져 살려 주었다. 아버지가 화를 내고 회초리를 때려도 후회하지 않았고 결국엔 부모를 하직하고 출가하였다. 천성天聖 연간(1022~1031년)에 경전시험을 보아 도첩度牒을 얻었고 취봉翠峰 선사에게 법을 전해 받았다. 모두 다섯 번 도량에 머무르며 오직 대중에게 염불을 권하여 『권수정토설勸修淨土說』을 남겼다. 입적하던 날 저녁에 지재智才라는 문도가 “탑 쌓는 것은 이미 마쳤습니다. 어떤 것이 필경의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대사는 주먹을 세워 보이고 베개를 밀치고 입적하였다.126)
 21. 송宋 원조 율사元照律師는 영지사靈芝寺에 주석한 분으로 율학律學을 널리 폈고 정토업에 돈독한 뜻을 두어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제자에게 『관무량수경』과 「보현행원품」을 외우라고 한 후에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서호의 어부들이 모두 공중에서 풍악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127)
 22. 송宋 희담晞湛은 산음山陰 사람이다. 어려서는 유생儒生이었는데 홀연히 세상에 싫증을 내어 출가하였다.

008_0495_a_01L五日召大衆說法驟稱佛號數百聲
008_0495_a_02L奄然坐逝淸獻公趙抃銘其塔

008_0495_a_03L
宋智廉居化度寺初叅宗門晩節一
008_0495_a_04L意西方慶元中別衆曰我夢中見阿彌
008_0495_a_05L陀佛大衆圍遶說法佛云諸善人等
008_0495_a_06L當須專心淨業來生我國我見勝相
008_0495_a_07L徃生必矣乃書偈曰鴈過長空影沉
008_0495_a_08L寒水無滅無生蓮華國裡書畢回身
008_0495_a_09L向西結印而逝

008_0495_a_10L
宋處謙精修淨土一夕誦彌陀經畢
008_0495_a_11L稱讃淨土告衆曰吾以無生而生淨土
008_0495_a_12L如入禪定奄然而化

008_0495_a_13L
宋懷義溫州樂淸人父業漁義穉時
008_0495_a_14L坐船尾隨父得魚私投水中父怒
008_0495_a_15L撻無悔遂辭親出家天聖中試經得
008_0495_a_16L禀法于翠峰凡五住道場唯化衆
008_0495_a_17L念佛有勸修淨土說示寂之夕其徒
008_0495_a_18L智才問壘塔已畢如何是畢竟事
008_0495_a_19L竪拳示之推枕而逝

008_0495_a_20L
宋元照律師住靈芝弘律學篤意淨
008_0495_a_21L念佛不輟一日令弟子諷觀經及
008_0495_a_22L普賢行願品趺坐而化西湖漁人
008_0495_a_23L聞空中樂聲

008_0495_a_24L
宋睎湛山陰人少爲儒生忽厭世出

008_0495_b_01L형행瑩行 사람과 함께 완두阮杜에 무량수불전을 짓고 오로지 정토업을 닦았다. 앉을 때에는 서쪽을 등지는 일이 없었고, 관불삼매를 오래도록 하여 항상 부처님과 두 보살의 상호를 보았다. 어느 날 저녁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고 입적하였다.128)
 23. 송宋 승장僧藏은 분주汾州 사람으로 일생 동안 승속 간에 예법에 따른 인사를 받지 않고 오로지 정토업만 닦았다. 임종할 때 하늘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보살들이 차례로 내려와 맞이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서방 부처님이 이르러서야 대중과 작별하고 입적하였다.129)
 24. 송宋 지원智圓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서 주석하였다. 여러 경전에 널리 능통하였으나 정토를 마음에 새겨 『미타소彌陀疏』와 『서자초西資鈔』를 지었고 이를 통해 왕생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권하였다. 임종할 때 무덤에 도기陶器를 묻었는데 15년 뒤 장맛비에 산이 무너졌다. 도기를 열어 보니 용모가 옛 모습 그대로였고 손톱과 터럭이 길게 자라 있었다.130)
 25. 송宋 사정思淨은 성은 유喻씨이고 자호는 정토자淨土子다. 일찍이 영 법사瑛法師를 시봉하였으며 『법화경』을 강의하였다. 후에는 염불에만 오롯이 마음을 두었다. 틈만 나면 불상을 그렸는데 그림을 그릴 때면 반드시 깨끗한 방에서 삼매에 들어가 미타의 광명을 뵙고서야 그리기 시작하였다. 소흥紹興 정사년(1137년)에 7일을 단정히 앉아 있다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하고 입적하였다.131)
 26. 송宋 태미太微는 전당錢塘의 안 법사安法師를 따라 출가한 분이다. 처음에 『미타경』을 전수받았는데 외우기를 잘했다. 구족계를 받고서는 문을 닫고 틀어박혀 부지런히 염불에 정진하였다. 항상 뒷산 산보하기를 즐겼는데 홀연히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듣고 시원하게 깨우쳤다. 이때부터 그는 피리 하나를 지니고 다니며 스스로 즐겨 하였다.
능감부凌監簿라는 이가 정토업에 뜻을 같이하였는데 그는 태미를 정토향의 어른이라 불렀다. 하루는 문을 두드리며 “정토향의 아우가 형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하자 태미는 “내일 정토에서 만나려면 지금은 열심히 염불을 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였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대사가 미음을 먹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가서 보니 피리와 발우와 의자를 불사르고 땅바닥에 가부좌한 채 열반해 있었다.132)
 27. 송宋 형가瑩珂는 삽천霅川 요산瑤山에게 수업한 분이다. 술과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었는데

008_0495_b_01L與瑩行人建無量壽佛殿于阮杜
008_0495_b_02L專修淨業坐不背西久之常見佛及二
008_0495_b_03L菩薩相一夕面西念佛而化

008_0495_b_04L
宋僧藏汾州人一生不受道俗禮拜
008_0495_b_05L專修淨土將終天樂次苐來迎皆不
008_0495_b_06L及西方佛至別衆而化

008_0495_b_07L
宋智圓居西湖孤山廣解諸經刻心
008_0495_b_08L淨土造彌陀䟽及西資鈔勸發徃生
008_0495_b_09L將終以陶哭合瘞後十五年積雨山
008_0495_b_10L啓視陶哭形質儼然爪髮俱長

008_0495_b_11L
宋思淨喩姓自號淨土子早侍瑛法
008_0495_b_12L講法華後專心念佛暇則畫佛像
008_0495_b_13L凡畫必于淨室寂想見佛光時乃下
008_0495_b_14L紹興丁巳端坐七日一心念佛而
008_0495_b_15L

008_0495_b_16L
宋太微投錢塘安法師出家初授彌陀
008_0495_b_17L便能背誦及受具扃門念佛精進
008_0495_b_18L不怠常縱步後山忽聞笛聲豁然開
008_0495_b_19L因畜一笛自娛有凌監簿者同志
008_0495_b_20L淨業稱微爲淨土鄕長一日叩門曰
008_0495_b_21L淨土鄕弟相見微曰明當相見于淨土
008_0495_b_22L今誦佛正冗耳翌朝人怪其不赴粥
008_0495_b_23L視之見笛鉢禪椅已焚跏趺地上而化

008_0495_b_24L
宋瑩珂受業霅川瑤山酒炙無擇

008_0495_c_01L문득 계율을 지키지 않아 윤회 유전할까 두려워하여 계주 선사戒珠禪師가 펴낸 『왕생전往生傳』을 읽었다. 『왕생전』 한 편을 읽으면 머리를 한 번 끄덕였다.
방안에서 서쪽을 향해 참선하는 의자에 앉아 음식을 끊고 염불하였다. 사흘째가 되자 꿈에 부처님이 말하기를 “너는 10년을 더 살 것이니 마땅히 스스로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형가는 말하기를 “더 일찍 안양 땅에 나서 여러 성인들을 받들어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의 뜻이 이와 같으니 사흘 후에 너를 맞이하겠노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에 이르러 곧 말하기를 “부처님이 오셨다.”라고 하고 조용히 입적하였다.133)
 28. 원元 선주善住의 자는 운옥雲屋으로 소주蘇州 사람이다. 하루 종일 문을 잠그고 염불하였다. 오랜 병에도 이를 바꾸지 않아 임종할 때 이채로운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안양전安養傳』과 『곡향집谷響集』이 세상에 전한다.134)
 29. 원元 묘문妙文은 아홉 살에 출가하였다. 30세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가 자유자재로 설법함에 걸림이 없었으니 마치 산골짜기 물이 거꾸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후에 오로지 염불삼매를 닦아 임종 시에는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 여러 제자들에게 아미타불을 소리 높여 부르도록 하고서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135)
 30. 원元 반곡盤谷은 용모는 볼품이 없었으나 뜻과 기상이 활달하고 호방하였다. 산수를 좋아하여 항상 말하기를 “나의 발자취는 세상의 반을 밟을 것이요, 시의 명성은 세상에 가득하리라.”고 하였다. 당시에 고려 심왕瀋王136)이 대사의 덕망을 듣고 초빙하여 『화엄경』을 강의하도록 하였다. 모든 승려와 신도들이 진심으로 감복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후에 송군(松郡: 개경)에 이르러 정사精舍를 짓고 정토업에 힘썼다. 염불을 일과로 삼았고 70년을 질병 없이 살다가 떠날 때를 예고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137)
 31. 원元 천여 유칙天如惟則은 중봉中峰 화상의 법을 이은 분으로 신묘한 깨달음이 남달랐다. 소성蘇城에 사자림보리정종사師子林菩提正宗寺를 지었는데 와설당臥雪堂과 입설당立雪堂 두 거처가 있어 매일 그곳에서 염불하였다. 『정토혹문淨土或問』을 지어 사람들에게 권장하였는데, 임종할 때 상서로운 감응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138)
 32. 원元 조휘祖輝는 사명군四明郡 성불각城佛閣에 거주한 분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008_0495_c_01L自念梵行虧缺恐從流轉取戒珠禪師
008_0495_c_02L徃生傳讀之讀一傳一首肯室中面
008_0495_c_03L西設禪椅絶食念佛越三日夢佛告
008_0495_c_04L汝尙壽十年且當自勉珂曰願早
008_0495_c_05L生安養奉事衆聖佛言汝志如是
008_0495_c_06L三日迎汝至期乃曰佛來寂然而化

008_0495_c_07L
元善住字雲屋蘇州人掩關六時念
008_0495_c_08L病久不易終時異香滿室有安養
008_0495_c_09L谷響集行世云

008_0495_c_10L
元妙文九歲出家三十始出世縱無
008_0495_c_11L礙辯若峽倒川奔後專修念佛三昧
008_0495_c_12L臨預知時至命諸弟子高稱阿彌陀
008_0495_c_13L面西趺坐而蛻

008_0495_c_14L
元盤谷狀貌不揚而志氣超邁性耽
008_0495_c_15L山水甞云足跡半天下詩名滿世間
008_0495_c_16L時高麗瀋王聞師德望聘講華嚴
008_0495_c_17L衆傾服王大悅後至松郡搆精舍
008_0495_c_18L修淨業日倮念佛年七十無疾預告
008_0495_c_19L以時端坐而寂

008_0495_c_20L
元天如惟則得法中峰妙悟出人
008_0495_c_21L師子林菩提正宗寺于蘇城有臥雪立
008_0495_c_22L雪二室日坐其中念佛又著淨土或問
008_0495_c_23L勸人終時瑞應非一

008_0495_c_24L
元祖輝住四明郡城佛閣逢人俱云

008_0496_a_01L다만 ‘아미타불설역설부득阿彌陀佛說亦說不得’이라 하여 사람들이 호를 ‘설부득說不得 화상’이라 하였다. 은현鄞縣의 위왕尉王 용향用享 부부가 공경으로 대하였다. 하루는 집에 가면서 특별히 말하기를 “내일 떠난다.”고 하였는데 다음 날 정말로 세상을 떠났다.139)
 33. 명明 초기楚琦는 촉蜀 사람으로 서방극락을 독실하게 믿은 분이다. 연경燕京에 이르러 누각에서 치는 북소리를 듣고 크게 깨우쳤다. 후에 집을 지어 당호를 서재西齋라 하고 정토업淨土業에 전일하게 뜻을 두었다. 일찍이 큰 연꽃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미타불이 중앙에 계시고 여러 성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돌아가실 때에 임종게를 써서 대중에게 보이고 입적하였다.140)
 34. 명明 보주寶珠는 일찍이 항군杭郡 가화嘉禾 근처에서 떠돌이로 지냈다. 더우나 추우나 한 벌 옷으로 지냈으며 걸식으로 살아갔고 일정한 거처가 없었다. 다만 평소에 염불 소리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들이 부를 때 잠깐 응대할 뿐 곧바로 염불 소리를 이어 냈고 다시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루는 대중에게 알리기를 “나는 가노라.” 하고 삭발과 목욕을 마친 후에 입적하였다.141)
 35. 명明 혜일慧日의 호는 동명東溟이요, 성은 가賈씨다. 송나라 재상 가사도賈似道의 손자이다. 가사도가 귀양 갔을 때 대사는 아직 어렸으나 출가에 뜻을 두었다. 지정至正 연간에 하천축사下天竺寺142)에 화재가 나 중신重臣인 고납린高納麟이 대사에게 중건하도록 청하였다. 홍무 2년(1369년)에 봉천전奉天殿에서 임금을 알현하였는데 붉은 얼굴 흰 눈썹으로 갖추어 말하는 바가 임금의 뜻에 잘 들어맞았다. 태조가 주변의 여러 승려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들은 어찌하여 여러 불경의 깊은 뜻을 백미 법사白眉法師에게 물어보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임금에게 알현할 때에는 백미 대사로 불렸다. 그 후 상축사에 돌아와 날마다 미타참彌陀懺을 닦아 정토업을 지극하게 닦았다. 어느 날 저녁에 푸른 연꽃이 네모난 땅143)에서 피어나는 꿈을 꾸고 깨어서 대중에게 말하기를 “내가 정토에 나는 상서로운 광경을 보았다.”고 하였다. 나흘 후 합장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144)
 36. 명明 진청眞青은 십구 세에 출가하여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하다가 배가 나루에 닿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후에는 화정華頂 천주봉天柱峯으로 옮겨 대·소미타참大小彌陀懺을 닦아

008_0496_a_01L阿彌陀佛說亦說不得人因號說不得
008_0496_a_02L和尙鄞縣尉王用享夫婦敬事之
008_0496_a_03L日詣其家別云吾明日行矣及明果化
008_0496_a_04L明楚琦蜀人篤信西方因抵燕京
008_0496_a_05L樓鼓聲大徹後築室號西齋一意淨業
008_0496_a_06L甞見大蓮華充滿世界彌陀在中
008_0496_a_07L聖圍繞將示寂書偈示衆而逝

008_0496_a_08L
明寶珠常遊杭郡嘉禾間冬夏一衲
008_0496_a_09L乞食自活宿無恒居平時惟念佛不絶
008_0496_a_10L人喚之纔應對即連聲念佛更無
008_0496_a_11L雜語一日告衆曰吾行矣索浴畢
008_0496_a_12L

008_0496_a_13L
明慧日號東溟姓賈氏即宋相似道
008_0496_a_14L之諸孫似道謫戌時師尙幼志求出
008_0496_a_15L至正間下天笁災元臣高納麟
008_0496_a_16L師新之至洪武二年上召見奉天殿
008_0496_a_17L朱顏白眉備奏稱旨大祖顧謂衆僧曰
008_0496_a_18L爾等何不質諸經奧義於白眉法師
008_0496_a_19L後召見但以白眉呼之後歸上笁
008_0496_a_20L修彌陀懺以臻淨業一夕夢靑蓮生方
008_0496_a_21L地中寤告衆曰吾生淨土之祥見矣
008_0496_a_22L後四日合爪趺坐而化

008_0496_a_23L
明眞靑十九出家叅無字語聞舟觸
008_0496_a_24L岸聲有省後遷華頂天柱峯修大小

008_0496_b_01L꿈에 서방의 세 성인을 보았다. 만력 계사년(1593년) 정월에 임종을 고하였는데 이때 대중들이 묻기를 “스님은 어느 품에 왕생하시겠습니까?”라고 하자 답하기를 “계율의 향만 쐬었기 때문에(戒香145)所熏) 중품中品에 그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씀을 마치고는 바로 열반하였다.146)
 37. 명明 조향祖香은 강서江西 신유인新喻人으로 산동山東 용담사龍潭寺에서 정토업을 정성으로 닦았다. 왕걸王傑이라는 거사가 절을 짓고 대사를 초빙하였는데 얼마 있다가는 “몇 월 며칠에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대중들이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조향은 “안양의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에 자리를 펴고 서쪽을 향하여 앉은 채 숨을 거두었다. 관을 들고 산에 들어가자 혼불이 저절로 몸을 태웠다.147)
 38. 명明 연지 대사蓮池大師의 휘는 주굉袾宏이고 자는 불혜佛慧이며 항주杭州 심沈씨이다. 약관의 나이에 불법(佛乘)에 뜻을 두어 가정嘉靖 연간 병인년(1566년)에 무문 성천無門性天을 은사로 하여 머리를 깎았다. 얼마 후에 구족계를 받았고 바리때 한 벌과 신발 한 켤레로 선지식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당시에 판융辨融 대사와 소암笑巖 대사가 선종禪宗에서 가장 이름이 났는데 나아가 참구하자 서로 맞아떨어지는 바가 많았다. 북쪽으로는 오대산에 유람하여 문수보살이 방광放光하는 것을 감응하였다. 신미년(1571년)에는 운서산雲棲山의 풍광이 깊고 고요한 것을 보고 띠집을 지어 마칠 때까지 머물렀다. 온 산에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 일이 많았는데 대사가 경을 읽어 시식施食하자 그런 일이 사라졌다. 가뭄이 든 해에는 밭을 돌며 염불하였는데 발길이 닿는 데를 따라서 때마침 비가 내려 적셨다. 이때부터 교화가 널리 퍼졌다.
대사는 홀로 염불 정토문을 열었는데, 삼장三藏을 두루 융회하여 일심으로 돌아가도록 지도하였다. 사방의 승속들이 예를 표하여 도를 들으러 왔고, 이름난 벼슬아치들도 마음으로 감복하여 귀의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또한 성 안팎의 모든 산에 방생하는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자성태후慈聖太后가 환관을 보내 불법을 묻고 자주색 가사148)와 황금을 하사하였다. 사자가 돌아가자 금은 상주물常住物149)로 보내 버리고 가사는 높은 누각에 모셔 두고는 한 번도 몸에 걸치지 않았다.
염불삼매로써 삼근三根150)을 널리 아울렀으며 『미타소초彌陀疏鈔』와 『운서법휘雲棲法彚』 등 20여 종을 남겼다.

008_0496_b_01L彌陀懺夢見西方三聖萬曆癸巳正月
008_0496_b_02L告終衆曰和尙徃生何品曰中品中生
008_0496_b_03L胡不上品生耶曰吾戒香所熏
008_0496_b_04L止中品言畢而化

008_0496_b_05L
明祖香江西新喩人於山東龍潭寺
008_0496_b_06L精修淨業有居士王傑築庵延之
008_0496_b_07L幾語傑云某日當歸家衆苦留香云
008_0496_b_08L歸安養家耳及期敷座西向坐逝擧龕
008_0496_b_09L入山化火自焚

008_0496_b_10L
明蓮池大師諱袾宏字佛慧杭州沈
008_0496_b_11L弱冠棲心佛乘嘉靖丙寅依無門
008_0496_b_12L性天薙染尋具戒單瓢隻履遍歷知
008_0496_b_13L時辨融笑巖兩禪宗最著就叅多
008_0496_b_14L所契合北遊五臺感文殊放光辛未
008_0496_b_15L見雲棲山水幽寂遂結茆終焉環山多
008_0496_b_16L虎災師爲諷經施食虎患以寧歲旱
008_0496_b_17L循田念佛隨足所至時雨添澍自此
008_0496_b_18L化道大行師獨闢念佛一門融會三藏
008_0496_b_19L指歸一心四方緇白頂禮聞道名公
008_0496_b_20L巨卿靡不心折歸依又城內外山中
008_0496_b_21L俱置放生池慈聖太后遣中貴詢法
008_0496_b_22L賜紫衣黃金使者出金歸常住衣奉
008_0496_b_23L高閣未甞掛體以念佛三昧普攝三
008_0496_b_24L著彌陀䟽鈔雲棲法彙二十餘種

008_0496_c_01L임종하기 보름 전에 성에 들어가 친구와 제자들에게 “나는 곧 그곳에 왕생한다.” 하며 작별하였고 산을 돌며 대중들과 마찬가지로 작별을 고하였으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헤아리지 못하였다. 때가 되자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였고 단정히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연종蓮宗의 8대조151)라 부른다.152)
 39. 명明 불석佛石의 별호는 법우 노인法雨老人이다. 어머니가 한 스님이 가사(伽黎)로 몸을 덮는 태몽을 꾼 후 태어났다. 어릴 때는 생선 비린내 맡기를 싫어하였고 열네 살에 출가하여 열여덟 살에 연지 대사蓮池大師에게 구족계를 받았으며 30세에 금릉에서 자백 선사紫栢禪師를 뵙고 친히 수기授記를 받았다.
대사는 고고(孤卓)한 품성을 지녔으며 세상 인연을 맺지 않았다. 만년에는 손님과 응대하지 않고 이를 피해 무림봉의 정상으로 거처를 옮겨 방 한 칸을 얽고 구덩이를 하나 파고 말하기를 “살았을 제 가히 지낼 만하고 죽을 제 가히 묻을 만하구나.”라 하였다. 오랜 후에 병색을 드러내었다. 제자가 게송을 청하자 대사가 휘둘러 쓰기를,

一句彌陀五十年  ‘미타불’ 한 구절로 오십 년을 살았으니
分明掘地討靑天  분명히 땅을 뚫고 하늘을 쳤겠구나.
而今好箇眞消息  지금 이 한 구절 참다운 소식이니
半夜鍾聲到客船  한밤의 종소리 여객선에 이르도다.

하고 붓을 던진 후 입적하였다.153)
 40. 명 황주黃州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승려가 있었다. 그는 아미타불에 전념하여 밤낮 그치지 않았고 눈으로 보는 것마다 모두 아미타불이라 불렀다. 숭정 연간(1628~1644년)에 황주의 총융總戎인 정鼎이 황주성을 지키는데 대사가 염불하는 소리가 길에 시끄럽게 들리자 그를 붙잡아 두었다. 마침 장헌충張獻忠이 황주를 공격할 때 대사 역시 성 위에 머물러 있다가 야간에 염불하여 자주 시끄럽게 잠을 깨우자 군사들이 매우 싫어하여 묶어서 성 아래로 던져 버렸다. 그러나 조금 후에 다시 성위에서 염불하기를 네 차례나 반복하자 총융이 비로소 예로써 공경하였다.
이때 황주에 큰 기근이 있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사가 성 밖으로 나가자 굶주린 백성들이 칼을 들고 대사의 몸을 희사하기를 요구하였다. 대사는 옷을 벗어 대중에게 보여 주며 말하기를 “내가 염불을 천 번 할 동안 기다린 후에 나를 먹으시오.”라고 하였다. 염불을 3백 번 정도 했을 때 대중들이 갑자기 칼로 베고자 하였다. 이때 불현듯 병마兵馬가

008_0496_c_01L行世臨終半月前入城別故舊弟子等
008_0496_c_02L吾將他徃還山與衆詬別亦如之
008_0496_c_03L衆皆莫測至期面西念佛端坐而逝
008_0496_c_04L世稱蓮宗八祖云

008_0496_c_05L
明佛石別號法雨老人母夢僧以伽黎
008_0496_c_06L覆體而生幼時惡聞腥羶十四剃染
008_0496_c_07L十八受具於蓮池大師三十謁紫栢禪
008_0496_c_08L師於金陵親承授記師性孤卓不事
008_0496_c_09L世緣晩歲謝客避居於武林峰頂
008_0496_c_10L一室開一壙曰吾生可棲死可葬
008_0496_c_11L久示疾弟子請留偈師走筆書曰
008_0496_c_12L句彌陀五十年分明掘地討靑天而今
008_0496_c_13L好箇眞消息半夜鍾聲到客船投筆而
008_0496_c_14L

008_0496_c_15L
明黃州有無名僧專念阿彌陀佛
008_0496_c_16L夜不撤隨其所見皆稱阿彌陀佛
008_0496_c_17L禎間黃總戎鼎守郡城師大聲念佛
008_0496_c_18L衝其道執之適張獻忠攻黃州師亦
008_0496_c_19L留城上夜間念佛且頻呼醒睡軍士
008_0496_c_20L恨之縛投城下未幾復在城上念佛
008_0496_c_21L如是四次總戎始敬禮焉時黃州大飢
008_0496_c_22L人相食師出城外飢民持刀乞師捨
008_0496_c_23L師解衣示云俟我念佛千聲即食
008_0496_c_24L念至三百聲衆急欲加刃忽有兵

008_0497_a_01L공중에서 내려와 굶주린 사람들이 놀라 흩어졌는데 대사는 이미 성안에 들어와 있었다.
산속에 사냥꾼이 큰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았다. 대사는 이를 사들여 방생하려 하였다. 사냥꾼이 30금을 달라 하였으나 대사는 넉 돈의 금만 가지고 있었다. 사냥꾼이 말하기를 “스님께서 호랑이 귀를 잡고 세 바퀴 돌리되 호랑이가 스님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 호랑이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는 마침내 호랑이에게 수기授記를 주고 귀를 잡아 세 번 돌리고 달아나게 하였다. 그러나 호랑이는 대사에게 귀의하여 떠나가지 않아 둘이 함께 황마산黃麻山 금강동金剛洞에 머물렀다.
내상內相154) 노구덕盧九德이 병사들을 감독하러 황주를 지날 때 산에 이르러 호랑이를 보고자 하였다. 대사는 호랑이에게 다만 머리만 밖으로 내보이도록 하였으나, 노구덕이 호랑이 전신을 보려 하자 호랑이는 크게 소리 지르며 뛰쳐나갔다. 노구덕 역시 불법佛法에 귀의하였다.
대사가 하루는 거리를 걷던 중에 닭 한 마리를 보고 고성으로 염불하자 닭 역시 그 소리를 따라 염불하였다. 신이하기가 이와 같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경인년(1650년)에155) 대사가 무림武林으로 가다가 길에서 전공錢公을 만났는데 대사에게 수행의 요체를 알려달라고 간청하였다. 대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아미타불을 외우라고 하며 다시 말하기를 “내가 떠난 후에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각랑覺浪에게 물어보라. 그 사람은 눈이 밝은 사람(明眼人)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염불하고 앉아 입적하였다.156)
 41. 청淸 구종具宗 스님은 무석無錫 사람이다. 염불삼매로 대중을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다. 순치順治 기해년(1659년)에 병색을 보이다가 스스로 기약한 시간에 목욕하고 한쪽 신만 신었는데, 이는 외짝 신발로 서쪽으로 돌아가는 뜻(隻履西歸)157)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미타경』을 다 염송하고 아미타불을 열 번 소리 내어 염불하였으며, 큰 글씨로 ‘공허하고 신령스럽게 텅 비어(廓落靈虛) 갈 곳도 없고 올 곳도 없다(無往來處)’라고 쓴 후 붓을 던지고 입적하였다.158)
 42. 청淸 신심新心의 휘는 대진大眞이다. 어려서 무림武林 연거암蓮居菴에 출가한 분으로 소각紹覺 대사의 법을 이어 반주삼매般舟三昧159)를 행하였다. 임종할 때에 여러 제자들이 같은 꿈을 꾸었는데 허공에 가득한 천신이 향과 꽃을 들고 말하기를 “신심 대사가 서방에 태어날 것이므로 맞이하러 왔다.”고 하였다. 아침이 되자 제자들이 모여 안부를 물었는데, 몸 건강히 염불하고 있는 대사의 모습이 전과 다름없었다. 사흘이 지난 후

008_0497_a_01L從空中來飢民驚散而師已在城
008_0497_a_02L中矣山中獵人得一大虎師募之放
008_0497_a_03L獵人索三十金師止得四金獵人
008_0497_a_04L汝能執虎耳三匝而不傷汝則與
008_0497_a_05L汝虎師遂授記虎執虎耳三匝縱之
008_0497_a_06L虎歸依師不去師與虎同住黃麻
008_0497_a_07L山金剛洞中內相盧九德督兵過黃州
008_0497_a_08L詣山欲見虎師令虎止出頭于外
008_0497_a_09L欲見全身虎大呌躍出盧亦歸依焉
008_0497_a_10L師一日行街中見一鷄高聲念佛
008_0497_a_11L亦隨聲而念神異如是非一唐寅師之
008_0497_a_12L武林道遇錢公公懇示修行之要
008_0497_a_13L云一心念彌陀復云我行後有所疑
008_0497_a_14L問覺浪此明眼人也後念佛坐化

008_0497_a_15L
太淸釋具宗無錫人以念佛三昧
008_0497_a_16L人不倦順治己亥示疾約時沐浴
008_0497_a_17L著一履密表隻履歸西之意誦彌陀經
008_0497_a_18L念阿彌陀佛十聲擧筆書大字云
008_0497_a_19L廓落靈虗無徃來處擲筆而化

008_0497_a_20L
太淸新 諱大眞童身出家武林蓮居
008_0497_a_21L受紹覺師之法行般舟三昧終時
008_0497_a_22L諸弟子同夢見滿空天神執持香華
008_0497_a_23L唱云迎新大師生西方及旦弟子
008_0497_a_24L聚而候之師身康念佛相見如常

008_0497_b_01L홀연히 앉은 채 입적하였다.160)
 43. 청淸 임곡林谷은 소흥紹興 사람으로 나산羅山의 서쪽에 주석하였다. 해진 가사와 미투리 차림으로 남들에게 염불을 권하는 것을 제일 중요한 일로 생각하였다. 임종할 때에 흰 구름 위에 서 계신 부처님이 오셔서 영접하는 것을 뵙고 입적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그 암자를 고쳐 백운암이라 하였다.161)
 44. 청淸 도추道樞는 인화仁和 사람으로 언제나 사람들에게 염불을 길잡이(前茅)162)로 삼도록 하였다. 평소에 염불에 용맹 정진하였고 세상 인연에 얽매이지 않았다. 순치順治 을미년(1655년)에 신령한 스님과 함께 옥병봉 정상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병신년(1656년) 6월에 병색을 보였다. 26일 아침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지난밤 꿈에 신령한 스님이 나를 맞으러 오셨는데 아마도 옛날 옥병봉에 같이 올라갔던 분이 아닌가 싶다.”라고 하였다. 술시(오후 7~9시)에 홀연 일산이 하늘에 가득하고 연꽃이 땅에 뿌려지는 것을 보고 곧바로 가부좌하고 합장하여 아미타불을 백여 번 염송한 뒤 편안하게(安詳)163) 입적하였다. 관에서 기이한 향기가 났다.164)
 45. 청淸 만연萬緣의 속성은 교喬씨로 장흥長興 사람이다. 사람됨이 우둔하여 평소에 꾸짖어도 화를 내지 않고 칭찬해도 기뻐하지 않으며 오직 아미타불 명호만 수십 년간 지송持誦하였다. 강희 2년(1663년) 6월 아픈 기색 없었는데 홀연 스스로 풀로 엮은 감실을 만들었다. 9월 초엿새에 스스로 그곳에 들어가 가부좌하고 입적하였다.165)
 46. 청淸 항군杭郡 장가사張家寺의 본충 선사本冲禪師는 평소에 법석法席166)에만 전념하여 여러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도를 펴신 분이다. 강희康熙 11년(1672년) 9월에 병색을 보이고 말하기를 “나는 죽는다.”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다시 살아나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평소에 염불 공부를 하지 않아 지금 가보니 앉을 자리가 없었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나를 도와 염불해 달라.”고 하여 대중들이 합장하여 칭념稱念167)하자 바로 입적하였다.
이를 보면 염불법문은 범속함을 뛰어넘어 성인에 이르는 것으로 그 이익이 범상치가 않으니 절대로 조금이라도 늦추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168)

008_0497_b_01L三日忽坐化

008_0497_b_02L
太淸林谷紹興人住羅山之西界
008_0497_b_03L衲麻鞋唯勸人念佛爲要務至終時
008_0497_b_04L見白雲立佛來迎而化土人改其菴曰
008_0497_b_05L白雲

008_0497_b_06L
太淸道樞仁和人每勸人以念佛爲前
008_0497_b_07L平居勇猛念佛不勤世緣順治乙
008_0497_b_08L夢與神僧登玉屏峰頂丙申六月
008_0497_b_09L示疾二十六日蚤語衆曰夜夢神僧
008_0497_b_10L來迓豈即昔之登玉屏峯者邪至戌時
008_0497_b_11L忽見幡盖盈空蓮華布地即趺坐合掌
008_0497_b_12L念彌陀佛號百餘聲安詳而逝龕有異
008_0497_b_13L

008_0497_b_14L
太淸萬緣俗姓喬長興人爲人愚鈍
008_0497_b_15L平日詈之弗嗔譽之不喜專持彌陀佛
008_0497_b_16L號數十年康熈二年六月無疾忽自
008_0497_b_17L縛草龕九月初六日自入草龕趺坐
008_0497_b_18L而逝

008_0497_b_19L
太淸杭郡張家寺禪師本冲素專法席
008_0497_b_20L開道羣蒙康熈十一年九月示疾云亡
008_0497_b_21L有頃復甦謂大衆曰我平日缺念佛工
008_0497_b_22L今去無坐位汝等當助我念佛
008_0497_b_23L爲合掌稱念逾時而逝觀此則知念佛
008_0497_b_24L法門超凡入聖利益非常斷斷不可

008_0497_c_01L
왕과 신하가 왕생한 이야기
 1. 오장국왕烏長國王169)은 나랏일 보는 여가에 평소 불법佛法을 신봉하였다. 일찍이 시봉하는 신하에게 말하기를 “내가 비록 국왕의 복락을 누리고 있으나 무상無常을 면치는 못한다. 듣자하니 서방정토가 있는데 정신을 깃들일 만한 곳이라 한다. 내 마땅히 저 극락에 나기를 발원하리라.” 하고 이때부터 밤낮으로 염불 수행하였다. 매번 부처님께 공양하고 승려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에는 왕과 왕비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는데, 이를 30년 동안 그치지 않았다. 임종할 때에 얼굴빛이 기쁜 빛을 띠었으며 응화하신 부처님(아미타불)이 내려와 맞이하셨다. 상서로운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170)
 2. 송宋 위세자魏世子의 부자父子 세 명은 함께 정토업을 닦았는데 오직 아내만이 닦지 않았다. 딸이 열네 살에 죽었다가 7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제가 서방 세계의 칠보七寶 연못을 보니 아버지와 오빠 세 분은 이미 연화 위에 있으니 돌아가시면 마땅히 극락세계에 날 것입니다. 오직 어머니만 자리가 없어 제가 어머니를 뵙고 알려드리려고 잠시 왔습니다. 부디 유념하소서.”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딸의 말에 느낀 바가 있어 바로 신심을 펴 염불에 힘썼다. 후에 목숨을 마칠 때 또한 안양安養에 왕생하였다고 한다.171)
 3. 진晉 장항張抗은 선행을 많이 한 분이다. 부처님께 대비심다라니大悲心陀羅尼를 매일같이 10만 번 외우겠다고 서원하여 서방에 왕생하고자 하였다. 60여 세에 병이 들어 누웠는데 한마음으로 염불하였다.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서방정토가 바로 집 서쪽 방안에 있다. 아미타 부처님이 연화 위에 앉아 계시고 옹아翁兒는 연화 연못 금모래 땅에서 예불을 드리며 즐겁게 놀고 있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조금 있다가 염불하면서 입적하였다. 옹아翁兒는 곧 세 살 때 숨진 장항의 손자 이름이다.172)
 4. 당唐 마자운馬子雲은 효렴孝廉173)으로 천거되어 경읍涇邑의 읍위邑尉174)가 된 인물이다. 세곡稅穀을 감독하여 서울로 운송하던 중

008_0497_c_01L須臾緩矣

008_0497_c_02L

008_0497_c_03L王臣徃生類

008_0497_c_04L
烏長國王萬機之暇雅好佛法甞謂
008_0497_c_05L侍臣曰朕爲國王雖享福樂不免無
008_0497_c_06L聞西方淨土可以棲神朕當發願
008_0497_c_07L求生彼國于是六時行道念佛每供佛
008_0497_c_08L飯僧王及夫人躬自行膳三十年不
008_0497_c_09L臨崩容色愉悅化佛來迎祥瑞不
008_0497_c_10L

008_0497_c_11L
宋魏世子父子三人俱脩西方惟妻不
008_0497_c_12L有女十四死七日更生啓母云
008_0497_c_13L見西方七寶池上父兄三人已有蓮華
008_0497_c_14L沒當生彼母獨無是以暫歸相告
008_0497_c_15L母留意母感女言頓發信心念佛不
008_0497_c_16L後命終亦生安養云

008_0497_c_17L
晋張抗積善向佛誓課大悲心陀羅尼
008_0497_c_18L十萬徧願生西方年六十餘寢疾
008_0497_c_19L心念佛謂家人云西方淨土只在堂
008_0497_c_20L屋西間之內阿彌陀佛坐蓮華上
008_0497_c_21L兒在蓮華池金沙地上禮佛嬉戱言訖
008_0497_c_22L良久念佛而逝翁兒乃孫子名方三
008_0497_c_23L歲而亡矣

008_0497_c_24L
唐馬子雲擧孝廉爲淫邑尉押租赴京

008_0498_a_01L풍랑으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관아에 구속되었다. 이에 전일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5년 만에 사면된 후 남릉南陵의 산사山寺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하루는 말하기를 “내가 일생 동안 염불에 힘써 서방의 업이 이루어졌으니 이제 안양에 왕생하려 한다.”고 하였다. 다음 날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합장하였다. 신이한 향기가 집안에 가득한 가운데 기뻐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신다.”하고는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다.175)
 5. 당唐 백거이白居易는 관직이 중대부태자소부中大夫太子少傅에 이른 분이다. 집을 희사하여 향산사香山寺를 세우고 호를 향산 거사香山居士라 하였다. 녹봉으로 받은 3만 전을 내어 서방극락세계도西方極樂世界圖를 그리고 정례頂禮하고 발원하며 매일같이 그림을 향해 염불하였다. 게偈를 지어 찬송하였다.

極樂世界淸淨土     극락세계 청정한 국토는
無諸惡道及衆苦     모든 악도와 고통 없다네.
願如我身老病者     원하오니, 나처럼 늙고 병든 이들
同生無量壽佛所     무량수불 처소에 함께 나게 하소서.

또 다른 게偈를 지었다.

余年七十一       내 나이 칠십하나
不復事吟哦       다시는 시를 읊지 않으리.
看經費眼力       경전을 보는 데 안력 허비하고
作福畏奔波       복을 지음에 고생을 두려워한다면,
何以度心眼       무엇으로 마음의 눈을 헤아려서
一聲阿彌陀       한 번 소리 내어 아미타불 염불하리.
行也阿彌陀       걸을 때도 아미타불
坐也阿彌陀       앉아서도 아미타불
縱饒忙似箭       화살처럼 바쁠지라도
不廢阿彌陀       미타염불 그치지 않으리.

어떤 이인異人이 봉래산에 ‘낙천’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전하자 공은 사양하며 게를 지었다.

海山不是吾歸處     바다에 있는 산은 나의 귀의처 아니니
歸即須歸兠率天     귀의한다면 반드시 도솔천에 귀의하리.
今復捨兠率而求生淨土  이제 다시 도솔천 버리고 정토에 나길 구하리니
豈所謂愈擇而愈精者耶  이는 가릴수록 더욱더 정밀해진다 함이로다.

임종 시에 편안하게 앉아서 입적하였으니, 이는 왕생의 징조가 분명하다.176)
 6. 송宋 장적張廸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벼슬이 조교助教에 이르렀다. 원정 율사圓淨律師에게 보살계를 받았고 정토법문을 묻고는 돈독한 뜻으로 수지하여 안양에 나기를 서원하였다. 매번 염불할 때 소리를 높여 용맹하게 하였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원정 율사에게 이르기를 선정禪定에 들어 백색 가릉빈가가 앞에서 춤추며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3년 후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고 입적하였다.177)


008_0498_a_01L遭風舟溺被繫乃專心念佛五年遇赦
008_0498_a_02L入南陵山寺隱居一日謂人曰吾一生
008_0498_a_03L精勤念佛今西方業成行且徃生安養
008_0498_a_04L明日沐浴新衣端坐合掌異香滿戶
008_0498_a_05L喜曰佛來迎我言已而逝

008_0498_a_06L
唐白居易官中大夫太子少傅捨宅爲
008_0498_a_07L香山寺號香山居士出俸錢三萬
008_0498_a_08L西方極樂世界圖發願頂禮日日向之
008_0498_a_09L念佛以偈賛曰極樂世界淸淨土
008_0498_a_10L諸惡道及衆苦願如我身老病者同生
008_0498_a_11L無量壽佛所又偈曰余年七十一不復
008_0498_a_12L事吟哦看經費眼力作福畏奔波
008_0498_a_13L以度心眼一聲阿彌陀行也阿彌陀
008_0498_a_14L坐也阿彌陀縱饒忙似箭不廢阿彌陀
008_0498_a_15L有異人傳蓬萊有樂天名公辭以偈云
008_0498_a_16L海山不是吾歸處歸即須歸兠卛天
008_0498_a_17L復捨兠卛而求生淨土豈所謂愈擇而
008_0498_a_18L愈精者耶臨終安然坐逝徃生有明
008_0498_a_19L驗矣

008_0498_a_20L
宋張迪錢塘人官助敎從圓淨律師
008_0498_a_21L受菩薩戒咨問淨業法門篤志修持
008_0498_a_22L誓生安養每念佛時揚聲勇猛至失
008_0498_a_23L音猶不已一日謂圓淨曰㝎中見白色
008_0498_a_24L頻伽鳥飛舞於前又三年西向端坐

008_0498_b_01L
 7. 송宋 강공망江公望은 조대釣臺 사람으로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질박한 음식을 먹으며 청정한 수행을 하였고, 『보리문菩提文』, 『염불방편문念佛方便文』을 저술하여 승속 간에 염불을 권하였다. 일찍 죽은 아들이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도를 닦으셔서 공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또 명부冥府에 금으로 새긴 편액이 있는데, ‘엄주부嚴州府에 사는 강공망은 몸은 간의대부로 있었으나 마음으로 불법을 사모하고 몸으로는 수행을 닦아 마음에 애욕이 없으며 행함에 불법을 어기지 않고, 말함에 있어서 불교의 종풍에 적절하게 부합하였다. 이름을 이미 염부제閻浮提에서 빼냈으니 몸은 반드시 정토에 돌아가리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선화宣和 연간 말에 광덕군廣德軍을 맡았다. 어느 날 아침 아픈 곳 없이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178)
 8. 송宋 갈번葛繁은 징강澄江 사람이다. 소년에 등과하여 관직이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이르렀다. 관청에서나 집에서 반드시 정실淨室을 마련해 두고 불상을 안치하였다. 일찍이 입실하여 예송하는데 사리가 공중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정토업을 널리 권장하였는데 승속 간에 여러 사람들이 그의 교화를 받았다.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어 정토에서 거닐다가 갈번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후에 아픈 곳 없이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179)
 9. 송宋 왕일휴王日休는 용서龍舒 사람으로 벼슬이 국학國學의 진사進士에 이르렀다. 경전과 역사서에 매우 해박하였으나 하루는 이를 버리고서 말하기를 ‘이는 모두 업을 익히는 것일 뿐 궁극적인 법이 아니다. 내 장차 서방으로 돌아갈 업을 쌓으리라’ 하고 이때부터 염불에 정진하였다. 나이 60에 옷과 식사를 검소하게 하며 매일 천배를 하였고 밤중에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정토문」을 지어 격렬하고 간절하게 염불을 권하였다. 임종하려 할 때 홀연 아미타불을 큰 소리로 외쳤으며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신다.”고 하면서 서 있는 나무처럼 우뚝 서서 입적하였다. 집집마다 그의 초상을 그려 그 일을 숭상하였다고 한다. 승상丞相 익국공益國公인 주필대周必大가 찬을 지었고 장자호張子湖가 서문을 썼다.180)
 10. 송宋 왕중회王仲回는 관직이 광주 사사 참군光州司士參軍에 이르렀다. 그가 무위자無為子 양공楊公에게 물었다.
“경전에는 정토에 왕생하기를 구하라 가르치는데,

008_0498_b_01L念佛而化

008_0498_b_02L
宋江公望釣臺人官諫議蔬食淸修
008_0498_b_03L述菩提文念佛方便文以勸道俗
008_0498_b_04L子早亡託夢云大人修道功業已成
008_0498_b_05L冥府有金字額題云嚴州府江公望
008_0498_b_06L居言責志慕苦空躬事熏修心無愛
008_0498_b_07L動靜不違佛法語默時契宗風
008_0498_b_08L已脫乎閻浮身必歸于淨土宣和末
008_0498_b_09L知廣德軍一旦無疾面西端坐而化

008_0498_b_10L
宋葛繁澄江人少登科第官朝散
008_0498_b_11L公署私居必營淨室設佛像甞入室
008_0498_b_12L禮誦舍利從空而下平時以淨業普勸
008_0498_b_13L道俗多服其化有僧㝎中神遊淨土
008_0498_b_14L見繁在焉後無疾面西端坐而化

008_0498_b_15L
宋王日休龍舒人國學進士愽極經
008_0498_b_16L一旦捐之曰是皆業習非究竟法
008_0498_b_17L吾其爲西方之歸自是精進念佛年六
008_0498_b_18L布衣蔬食日課千拜夜分乃寢
008_0498_b_19L淨土文勸世激切懇到將卒忽厲聲稱
008_0498_b_20L阿彌陀佛唱言佛來迎我屹然立化
008_0498_b_21L如植木矣家家肖像崇事云丞相益國
008_0498_b_22L公周必大作賛張子湖作序

008_0498_b_23L
宋王仲回官光州司士叅軍問無爲子
008_0498_b_24L楊公曰經中敎人求生淨土而祖師云

008_0498_c_01L조사들은 마음이 곧 정토니 다시 구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양공이 대답하였다.
“시험 삼아 헤아려보건대, 만약 부처의 경계에 있다면 정토도 없고 예토도 없나니 어찌 왕생하기를 구하겠느냐? 만약 중생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어찌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여 예토를 버리고 정토에 나기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왕중회는 깨달은 바가 있어 뛸 듯이 기뻐하고 물러났다. 2년 후 양공이 단양丹陽의 태수로 있을 때 홀연 꿈에 왕중회가 나타나 말하기를 “그때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어 이제 왕생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찾아와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며칠 뒤 왕중회가 임종 7일 전에 미리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가 전해졌다. 이는 꿈에 나타났던 바로 그때였다.181)
 11. 송宋 이병李秉은 소흥紹興의 중관中官182)으로 어약원御藥院183)을 관할하였다. 처음에는 정자 휘공淨慈輝公에게 선을 배워 깨달음을 얻었고 만년에는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을 읽어 부처님 명호 외기를 일과로 하였다. 각장閣長184)인 원미元美와 전장殿長인 임사문林師文 등 수십 명과 더불어 전법사傳法寺에서 정토회淨土會를 결사하였다. 홀연히 앓다가 아미타 부처님이 금빛 원광을 머리에 이고 있는 광경을 꿈꾸었다. 7일이 지나자 또한 금빛이 방안에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보고 친속들을 불러 작별을 고하고 바르게 앉아 수인手印을 맺고 입적하였다.185)
 12. 송宋 호인胡闉은 관직이 선의宣義에 이른 분으로 평소에 비록 불교를 믿었으나 정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84세에 병이 위급해지자 그 아들이 청조 율사清照律師를 맞이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청조 율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알고 있는가?”
호인이 답하였다.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가 청정합니다.”
청조 율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스스로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마음에 잡념으로 더럽혀진 때가 있었는가?”
호인이 답하였다.
“이미 이 세상에 살면서 어찌 잡념이 없을 수 있겠습니 까?”
청조 율사가 말하였다.
“이와 같으니, 어찌 마음이 청정하여 국토가 청정한 경지 를 얻을 수 있겠는가?”
호인이 여쭈었다.
“한 번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으로 어떻게 80억 겁이나 되는 생사의 무거운 죄를 멸할 수 있겠습니까?”
청조 율사가 답하였다.
“아미타불은 널리 서원하신 신통력이 있어 한 번 그 명호 를 부르기만 해도 능히 한량없는 죄를 소멸하시니 이는 마치

008_0498_c_01L心是淨土不必更求如何楊公荅曰
008_0498_c_02L試自忖量若在佛境則無淨無穢
008_0498_c_03L用求生若未出衆生境安可不至心念
008_0498_c_04L舍穢土而求生淨土乎司士感悟
008_0498_c_05L欣躍而去後二年楊公守丹陽忽夢
008_0498_c_06L司士云向蒙指示今已得生特來致
008_0498_c_07L數日而訃至言司士七日前預知
008_0498_c_08L時至與宗黨言別而化正感夢時也

008_0498_c_09L
宋李秉紹興中官也領御藥院初學
008_0498_c_10L禪于淨慈輝公有省晩閱龍舒淨土文
008_0498_c_11L遂日課佛號與閣長元美殿長林師文
008_0498_c_12L等數十人結淨會于傳法寺忽有疾
008_0498_c_13L夢阿彌陀佛以金圓光戴其首越七
008_0498_c_14L又見金光滿房乃囑別親屬端坐
008_0498_c_15L結印而終

008_0498_c_16L
宋胡闉官宣義平日雖信佛乘而未
008_0498_c_17L諳淨土年八十四疾革其子迎淸照律
008_0498_c_18L乞垂誨示照謂闉曰公知安身立
008_0498_c_19L命處否闉曰心淨則佛土淨照曰公自
008_0498_c_20L平昔時中有雜念染汚否闉曰旣
008_0498_c_21L處世間寧無雜念照曰如是則安得心
008_0498_c_22L淨土淨闉曰一稱佛名云何能滅八十
008_0498_c_23L億劫生死重罪照曰阿彌陀佛有弘誓
008_0498_c_24L神力是以一稱其名滅無量罪猶如

008_0499_a_01L빛나는 태양이 눈서리를 녹이는 것과 같다. 이를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호인이 드디어 깨닫고는 그날로 바로 스님을 초대해 염불 하였다. 다음 날 청조 율사가 다시 오자 호인이 여쭈었다.
“스님께서 어찌 이리 늦게 오셨는지요? 두 보살께서 강림 하신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청조 율사는 이에 대중을 이끌어 소리 높여 염불하도록 하 였다. 호인은 이에 합장한 채 입적하였다.
호인의 왕생에 대해 살펴보면 청조 율사를 알고 모신 이는 아들이니 어찌 큰 효도가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작은 애정에 집착하여 어버이가 재계齋戒하는 것을 깨뜨리는 자는 잘못이 더욱 크다.186)
 13. 송宋 문로공文潞公의 휘는 언박彥愽이다. 낙양의 태수로 있을 때 일찍이 재를 올리려고 용산사龍山寺에 갔다. 공이 예불하려고 법당에 들어갈 때 홀연 불상이 무너져 땅에 떨어지자 소홀히 하고 예경을 드리지 않았다. 어떤 스님이 예경하지 않는다고 질책하자 “불상이 이미 부서졌는데 우러러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스님은 말하기를 “불상은 새롭거나 낡은 것이 없고 도道는 생겨남도 사라짐도(生滅)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이 이 말을 듣고 깨닫고는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그는 발원할 때마다 말하기를 “원하오니, 늘 정진하여 일체의 선을 부지런히 닦으리. 원하오니, 심종心宗을 요달하여 모든 중생(含識)187)을 널리 제도하리라.” 하며 매번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염불을 권하였다. 후에 정엄 법사淨嚴法師를 찾아뵙고 십만 명을 모아 정토회를 열어 널리 염불을 권하였다. 여여 거사如如居士가 찬을 지어 이를 기렸다.

知公膽氣大如天  그대의 담력과 기상, 크기가 하늘 같으니
願結西方十萬緣  원을 세워 십만 명이 서방 왕생하는 인연 맺게 했네.
不爲一身作活計  제 한 몸 위해 살 궁리 마련하지 않고
大家齊上渡頭舩  수많은 중생들을 모두 배에 실어 건네주었네.

임종할 때는 편안하게 염불하며 입적하였다.188)
 14. 송宋 마우馬圩의 자는 동옥東玉이며 시랑189)을 역임하였다. 원풍元豊 연간(1078~1085년)에 광익廣益 스님이 『천태십의론天台十疑論』을 건네주자 공은 매우 기뻐 말하기를 “종지宗旨로 삼을 만한 것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조부 충숙공忠肅公이 항주 태수로 있을 때 자운 참주慈雲懺主190)가 염불을 권하여 온 집안이 받들어 행하였고, 마우도 지극한 마음으로 25년간 염불하였다. 숭녕崇寧 연간(1102~1106년)에 작은 병이 있어 옷을 갈아입고 앉은 채 입적하였는데 이때 푸른 덮개 같은 기운이 창에서 나와 하늘로 날아갔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마우가 상품上品에 왕생하는 꿈을 꾸었다.191)


008_0499_a_01L赫日消於霜雪復何疑哉闉遂省悟
008_0499_a_02L即日延僧念佛次日照復至闉曰師來
008_0499_a_03L何暮二大士降臨已久照於是率衆厲
008_0499_a_04L聲念佛闉乃合掌而逝按闉徃生
008_0499_a_05L於淸照而迎淸照者子也豈非大孝歟
008_0499_a_06L世有執小愛而破親齋戒者誤亦甚矣

008_0499_a_07L
宋文潞公諱彥愽守洛陽日甞致齋
008_0499_a_08L徃龍山寺禮佛入殿忽見像壞墜地
008_0499_a_09L略不加敬有僧詰之公曰像旣壞矣
008_0499_a_10L瞻望何益僧云像無新故道不生滅
008_0499_a_11L公聞之有省作禮而出每發願曰
008_0499_a_12L我甞精進勤修一切善願我了心宗
008_0499_a_13L廣度諸含識每見一切人則勸以念佛
008_0499_a_14L後叅淨嚴法師集十萬人爲淨土會
008_0499_a_15L普勸念佛如如居士有頌賛曰知公
008_0499_a_16L膽氣大如天願結西方十萬緣不爲一
008_0499_a_17L身作活計大家齊上渡頭舩臨終安然
008_0499_a_18L念佛而化

008_0499_a_19L
宋馬圩字東玉歷官侍郞元豊中
008_0499_a_20L廣益授以天台十疑論公大喜曰
008_0499_a_21L所宗矣厥祖忠肅公守杭日慈雲懺
008_0499_a_22L敎令念佛擧家宗奉圩至心念佛
008_0499_a_23L二十五年崇寧中小疾易衣坐逝
008_0499_a_24L氣如靑盖出戶騰空而去家人皆夢圩

008_0499_b_01L
 15. 송宋 종리근鍾離瑾은 함평咸平 3년(1000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용도각龍圖閣 대제待制192)에 이르렀다. 절서성浙西省에 제형提刑 안찰사로 있을 때 자운 참주慈雲懺主를 만나 정토를 독실하게 신봉하였다. 후에 개봉開封을 맡았을 때 나가서는 나랏일에 힘을 다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잠을 자지 않고 염불하였다. 어느 날 밤 문득 가족을 깨워 일어나게 한 후 머리를 감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앉은 채 입적하였다. 종리근이 푸른 연화를 타고 있고 하늘음악(仙樂)이 영접하여 서방으로 가는 것을 온 가족이 보았다.193)
 16. 송宋 염방영閻邦榮은 지주池州 사람으로 20년 동안 왕생주往生呪를 지송하고 염불하였다. 임종할 때 가족들이 꿈에 부처님이 빛을 발하시며(放光) 영접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염방영은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하였다가 홀연히 일어나 몇 걸음 가서 말하기를 “나는 간다.”라고 하고 미소를 지으며 우뚝 섰다. 아내가 놀라 그를 부축하였으나 바로 입적하였다.194)
 17. 송宋 왕충王衷은 가화嘉禾 사람이다. 서호西湖에서 결사를 하였는데 지식이 있건 없건 신분이 높건 낮건 승속을 가리지 않고 왕생을 원하는 이가 있으면 결사에 들어오도록 널리 청하였다. 그가 지은 『권수문勸修文』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후에 아픈 곳 없이 서쪽을 향해 앉아서 입적하였다.195)
 18. 송宋 종리 경융鍾離景融은 관직이 조청대부朝請大夫에 이른 분으로 항상 『관무량수경』을 외우며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관직을 물러나서는 의진儀眞의 동원東園 곁에 띠집을 짓고 항상 말하기를 “미타를 알지 못할 때 미타는 서방 저편에 계셨으나 미타를 알고 나니 미타는 다만 우리 집에 있도다.”라고 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 묘응妙應 스님에게 「보현행원품」을 외우도록 하고서 향을 사르며 경청하다가 두 손으로 인印을 맺고 입적하였다.196)
 19. 송宋 전상조錢象祖는 호가 지암止菴으로 금릉金陵의 태수로 있을 때 정토를 진실하게 닦을 것을 염원하였다. 일찍이 향주鄉州에서 접대하는 곳 열 곳을 세우고 모두 ‘정토’ ‘극락’ 등의 명칭으로 이름하였다. 지암고승료止菴高僧寮를 세워서는 스님을 초대하여 도를 이야기하는 곳으로 삼았다. 좌승상에서 물러난 뒤에는 정토업에 더욱 나아갔다.

008_0499_b_01L徃生上品

008_0499_b_02L
宋鍾離瑾咸平三年登第官至龍圖閣
008_0499_b_03L待制提刑浙西日遇慈雲懺主遂篤
008_0499_b_04L信淨土後知開封出則盡瘁國事
008_0499_b_05L則不寐念佛忽夜促家人起索浴更衣
008_0499_b_06L坐逝擧家見瑾乘靑蓮華仙樂迎引
008_0499_b_07L西去

008_0499_b_08L
宋閻邦榮池州人二十年持徃生呪
008_0499_b_09L念佛將終家人夢佛放光迎榮及曉
008_0499_b_10L榮西向趺坐忽起行數步曰我去也
008_0499_b_11L微笑而立妻驚扶之逝矣

008_0499_b_12L
宋王衷嘉禾人結社西湖不問賢愚
008_0499_b_13L貴賤僧俗但願徃生者普請入社
008_0499_b_14L勸修文行世後無疾西向坐化焉

008_0499_b_15L
宋鍾離景融官朝請大夫常誦觀經
008_0499_b_16L念佛不輟掛冠結茅儀眞東園側
008_0499_b_17L曰不識彌陀彌陀更在西方外識得彌
008_0499_b_18L彌陀秪在自己家一夕命僧妙應
008_0499_b_19L誦普賢行願品炷香敬聽兩手作印而
008_0499_b_20L

008_0499_b_21L
宋錢象祖號止菴守金陵日以淨土
008_0499_b_22L眞修爲念嘗于鄕州建接待十處
008_0499_b_23L以淨土極樂等名之創止菴高僧寮
008_0499_b_24L延僧談道之所自左相辭歸益進淨

008_0499_c_01L가정嘉定 4년(1211년) 2월 경미하게 앓던 중 게를 썼다.

菡蓞香從佛國來  연꽃 향낸 불국토에서 풍겨 나오고
琉璃池上絶纖埃  유리 연못 위엔 티끌 하나 없네.
我心淸淨超于彼  내 마음 청정하여 저 극락에 태어나리니
今日遙知一朶開  오늘 한 송이 꽃 피어남을 멀리서 알겠네.

3일 후 한 스님이 안부를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사는 것을 욕심내지 않으니 죽음도 두렵지 않다. 하늘에 나지도 않고 사람이 되지도 않으리라. 오직 정토에 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한 후 말을 마치고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후에 어떤 사람의 꿈에 공중에서 “전상조 승상께서 이미 서방의 연궁蓮宮에 왕생하셔서 자제보살慈濟菩薩이 되셨다.”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197)
 20. 송宋 구정국咎定國의 호는 성재省齋로 고을의 학유學諭198)를 지냈다. 항상 염불을 하였고 정토에 관한 여러 경전을 읽었다. 매월 24일에는 승속을 모아 소리 내어 경을 외고 염불을 하였다. 가정嘉定 4년(1211년)에 꿈속에서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부처님께서 당신을 불러오라 하십니다. 3일 후면 저 극락에 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자 목욕을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며 앉은 채 입적하였다.199)
 21. 송宋 풍즙馮檝은 호가 제천濟川으로 수령遂寧 사람이다. 태학太學에 급제한 이후 처음에는 선림禪林에서 도를 찾다가 만년에는 오로지 정토업을 숭상하여 「서방문西方文」과 「미타참의彌陀懺儀」를 지었다. 후에 급사중給事中200)으로서 노남瀘南 지방에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해서는 승속을 모아 계념회繫念會를 만들었다. 공주邛州를 맡아서는 뒤쪽 청사에 높은 자리를 만들고 대궐을 향해 정중하게 절한 후(肅拜)201) 승복 차림으로 자리에 올라 관리들에게 사직 인사하고 주장자를 비껴 잡고 무릎 위에 놓고 입적하였다.202)
 22. 송宋 왕고王古의 자는 민중敏仲인데, 동도東都 사람으로 예부시랑禮部侍郎을 지냈다. 사람됨이 자애롭고 인자하여 만물을 사랑함이 선禪의 종지에 깊이 계합하였다. 또한 정토법문이 뛰어남을 깨닫고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 3권을 지었다. 평소에 염불을 정성껏 했으며 염주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움직이고 머물고 앉고 눕는 모든 일상에서 서방정관西方淨觀203)으로 불사佛事를 삼았다.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어 정토에서 거닐다가 왕고가 갈번葛繁204)과 함께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이는 분명 왕생의 징조인 것이다.205)


008_0499_c_01L嘉定四年二月微疾書偈曰菡蓞
008_0499_c_02L香從佛國來琉璃池上絶纖埃我心淸
008_0499_c_03L淨超于彼今日遙知一朶開後三日
008_0499_c_04L僧有問疾者公曰我不貪生不怖死
008_0499_c_05L不生天不爲人惟求生淨土耳言訖
008_0499_c_06L跏趺而逝後有人夢空中云錢丞相
008_0499_c_07L已生西方蓮宮爲慈濟菩薩

008_0499_c_08L
宋咎㝎國號省齋爲州學諭常念佛
008_0499_c_09L讀淨土諸經每月三八集僧俗諷經念
008_0499_c_10L嘉定四年夢靑衣童告曰佛令召
008_0499_c_11L三日當生彼國至日沐浴更衣
008_0499_c_12L佛向西坐化

008_0499_c_13L
宋馮檝號濟川遂寧人由太學登第
008_0499_c_14L初訪道禪林晩年專崇淨業作西方文
008_0499_c_15L彌陀懺儀後以給事中出帥瀘南
008_0499_c_16L道俗作繫念會及知邛州于後廳設高
008_0499_c_17L望闕肅拜着僧衣登座謝官吏
008_0499_c_18L柱杖按膝而化

008_0499_c_19L
宋王古字敏仲東都人官禮部侍郞
008_0499_c_20L慈仁愛物深契禪宗又悟淨土法門之
008_0499_c_21L著直指淨土決疑集三卷平生精勤
008_0499_c_22L念佛數珠未嘗去手行住坐臥悉以
008_0499_c_23L西方淨觀爲佛事有僧神遊淨土
008_0499_c_24L古與葛繁同在焉徃生有明驗矣

008_0500_a_01L
 23. 송宋 소식蘇軾의 호는 동파東坡이며, 관직은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남으로 좌천될 때(南遷) 아미타상 한 축軸을 그려서 항상 곁에 차고 다녔다. 남들이 물어보면 답하기를 “이는 내가 서방에 왕생하는 공적인 증거물이다.”라 하였다. 어머니 정程씨가 돌아가시자 호석胡錫이라고 하는 공인工人에게 유물인 비녀와 귀고리에 미타상을 그리도록 하여 왕생천도往生遷度 하였다. 또한 동파의 부친인 노천老泉은 일찍이 극락원極樂院에 장육보살상(丈六菩薩像)을 조성하였다.206) 소식 집안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이 이처럼 정성스러웠다.207)
 24. 송宋 위문진韋文晉은 행동거지가 맑고 지조가 있어208)정업도량淨業道場을 세우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였다. 6월 어느 날 홀연히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하고 합장 염불하면서 입적하였다. 신이한 향기가 안팎에서 풍겨났다.209)
 25. 송宋 가순인賈純仁은 삽천霅川 사람으로 관직이 영주郢州 수령에 이르렀다. 정토업에 마음을 쏟아 늘 재계하고 염불하였다. 병을 조금 앓다가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머리 위로 밝은 원상圓相이 빛났고 신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했으며 밤이 지나도록 흩어지지 않았다.210)
 26. 송宋 오자재吳子才의 자는 신수信叟이다. 벼슬을 그만두고 미리 관 하나를 만들어 밤에 그 안에 들어가 누웠다. 동자에게는 관을 치며 “오신수는 돌아가리라. 삼계가 평안치 않으니 머물 수 없도다. 서방정토에 연태蓮胎211)가 있으니 때가 되면 머리 돌려 돌아가리라.”라는 가사를 노래 부르도록 하였고 자신도 이를 따라 불렀다. 인연이 익었을 때212) 병색 없이 입적하였다.213)
 27. 송宋 장유張揄는 관직이 양절兩浙의 도총관都總官에 이르렀다. 정토에 왕생하기를 서원하여 각고의 노력으로 염불하였고 온 집안의 어른이나 아이들이 모두 따라해서 교화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못을 파서 연꽃을 심었고, 매일 처자를 거느리고 부처님 명호를 만 번 부르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효종孝宗 황제가 친히 ‘연사蓮社’ 두 글자를 써서 하사하셨다.214)
 28. 명明 만력萬曆 연간(1573~1620년)의 고공 보당顧公寶幢의 휘는 원源으로 정토업을 닦는 데 뜻을 두었다. 병세가 위독해지자 승속을 다 모아 놓고 아미타불을 열 번 염송하도록 하였다. 염불 소리가 이어지는 매우 짧은 시간에 신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 차올랐다. 공은 자신의 몸이 연꽃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고,

008_0500_a_01L
宋蘇軾號東坡官翰林學士南遷日
008_0500_a_02L畫彌陀象一軸行且佩帶人問之
008_0500_a_03L曰此軾生西方公據也母夫人程氏歿
008_0500_a_04L以簮珥遺貲命工胡錫繪彌陀像
008_0500_a_05L薦徃生又老泉曾於極樂院造六菩
008_0500_a_06L薩像盖蘇氏之歸心三寶素矣

008_0500_a_07L
宋韋文晋立行孤潔建淨業道場
008_0500_a_08L度含識六月某日忽面西跏趺合掌
008_0500_a_09L念佛而化異香內外皆聞

008_0500_a_10L
宋賈純仁霅川人官郢州倅潜心淨
008_0500_a_11L長齋念佛因微疾西向宴坐而逝
008_0500_a_12L頂上白光圓相異香滿室經宿不散

008_0500_a_13L
宋吳子才字信叟致仕之後預作一
008_0500_a_14L夜臥其中令童子擊棺而歌曰
008_0500_a_15L信叟歸去來三界無安不可住西方淨
008_0500_a_16L土有蓮胎及早回頭歸去來自亦從而
008_0500_a_17L和之緣熟時無疾而化

008_0500_a_18L
宋張揄官兩浙都緫管期生淨土
008_0500_a_19L勵念佛闔門長幼靡不從化 池栽
008_0500_a_20L日率妻子課佛萬徧孝宗皇帝
008_0500_a_21L書蓮社二字賜焉

008_0500_a_22L
明萬曆間顧公寶幢諱源志修淨業
008_0500_a_23L疾篤集僧俗十念阿彌陀佛唱和相續
008_0500_a_24L須臾間衆忽聞異香滿室公自見身坐

008_0500_b_01L아들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공이 타이르기를 “너희들은 내가 어느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느냐. 어느 곳이 곧 이곳이니라. 제불諸佛이 나를 맞이하여 삼경(밤11~1시)에 나를 데리고 가실 것이다. 나의 서원은 이미 이루어졌고, 너희들의 서원도 위무해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시간이 되자 미소를 머금고 입적하였다. 소종백少宗伯215) 은추명殷秋溟공이 전傳을 지었다.
연화 대사蓮華大師는 말한다. 몸이 연꽃 속에 앉아 있다는 것은 새로 태어났으되 반드시 왕생극락하였다는 것이요, 어느 곳이 곧 이곳이라고 한 것은 떠나갔으되 실제로는 떠나가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이는 근래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 눈 밝은 사람은 참작하기 바란다.216)
 29. 명明 해염海鹽의 주원정朱元正이 제생諸生217)으로 있을 때 공맹孔孟의 학문을 강의하였는데 단정하고 방정하며 구차하지 않은 성품(端方不苟)을 지니고 있었다. 60세가 넘어서는 선정의 즐거움(禪悅)에 깊이 들어 집 뒤에 세 칸짜리 허름한 집을 지어 놓고 문을 잠그고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문 위에는 ‘내가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하라譬如我已死了’라는 여섯 글자를 써서 붙였다. 매일 공과功課로 오전에 『법화경』을 한 권 외고 오후에는 천 번을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경신년 7월에 아픈 곳이 없었는데 홀연 아들에게 말하기를 “여기서는 더 이상 아무 일이 없으니 떠나야겠다.”라고 하였다. 아들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 묻자 서방으로 간다고 하였다. 아들과 손자가 강하게 만류하자 허락하여 머물렀다.
섣달 초하루에 병을 보이고 음식을 먹지 않았다. 가족들이 놀라고 당황하여 장례 준비를 하자(治後事)218) 공은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달 8일 밤중에 가족에게 미리 경계하기를 “갈 때가 되었으니 부녀자는 오지 못하게 하고, 두세 시간이 지나서 오게 하라. 또한 곡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때가 되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이때 자유자재로 왕래함이 이와 같았다.219)
 30. 명明 대백호戴百戶와 도백호陶百戶는 판사辦事로서 순무巡撫220)의 휘하에 있었다. 이때 전당강錢塘江에 만강홍滿江紅이라는 살인을 일삼는 큰 도적이 있었다. 그 무리의 세력이 매우 강성해서 관리들이 감히 체포하지 못하자 순무가 두 사람을 몰래 불러 직접 패牌 하나를 주면서 만강홍을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두 사람은 몸을 던져 도적 떼에 들어가 여러 방법으로 꾀어 잡아왔다. 만강홍은 형벌을 당할 때 두 사람을 통렬하게 원망하면서 반드시 목을 베어 버리겠다고 맹세하였다.

008_0500_b_01L蓮華中諸子悲戀不勝諭曰汝等謂我
008_0500_b_02L徃何處何處即此處諸佛迎我三鼓
008_0500_b_03L啓行我願旣遂汝等之願亦慰矣
008_0500_b_04L期含笑而去少宗伯殷秋溟公作傳
008_0500_b_05L蓮華大師曰身坐蓮華中生則決㝎生
008_0500_b_06L何處即此處去則實不去也此近
008_0500_b_07L時實事明眼人叅之

008_0500_b_08L
明海鹽朱元正爲諸生時講孔孟之學
008_0500_b_09L端方不苟六十後深入禪悅于宅後
008_0500_b_10L敝屋三楹閉關不與家事門上題
008_0500_b_11L如我已死了六字每日功課午前諷法
008_0500_b_12L華經一卷午後念佛千聲庚申七月無
008_0500_b_13L忽謂子曰吾在此無事可行矣
008_0500_b_14L問何處去曰西方去子及孫固留
008_0500_b_15L至臘月朔示疾不食家人倉皇治
008_0500_b_16L後事公曰勿忙此臘八半夜事也
008_0500_b_17L誡家人臨行時勿令婦女來過二三
008_0500_b_18L時來亦勿哭及期端坐而逝爾時來
008_0500_b_19L去自由如此

008_0500_b_20L
明戴百戶與陶百戶共辦事巡撫麾下
008_0500_b_21L時錢塘江有殺人巨盜號滿江紅者
008_0500_b_22L黨勢熾盛官吏不敢捕巡撫潜召二人
008_0500_b_23L手給一牌令捕滿江紅二人身入賊
008_0500_b_24L多方誘致臨刑痛恨二人誓必索命

008_0500_c_01L두 사람은 두려워하여 관직을 그만두고 재계하며 경을 외고 염불하여 맺힌 원한을 풀어 주었다. 대백호는 친척들과 미리 작별하고 때가 이르자 앉아서 입적하였다. 조금 있다가 깨어나 말하기를 “도형(백호)이 임종할 때에221) 정념正念이 한 번 어긋나 길가로 내달렸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주러 왔을 뿐이오. 나는 내일 떠날 것이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일찍 다시 앉아서 입적하였는데, 코에서 옥주玉柱222)가 나오고 신이한 향이 방에 가득 차 흩어지지 않았다.223)
 31. 명明 정명등丁明登은 호가 검홍劍虹으로 강포江浦 사람이다. 만력萬曆 기유년(1609년)에 운서 대사雲棲大師에게 귀의하여 정토법문을 독실하게 믿고 호를 연려蓮侶라 고쳤다. 만력 병진년(1616년)에 등과하였고 온릉溫陵에서 벼슬을 할 때 언제나 출세대사出世大事224)를 말하여 승속을 교화하니 감동하고 깨우친 이가 많았다.
처음에 천주泉州의 사리司理225)로 부임하여, 법에 따라 죄를 가리고 문책(憲批枷責)226)함에 있어서 공정하게 법을 세웠다. 쌀을 내어 죄를 대신하려는 자의 청을 들어주어 그 쌀을 가지고 굶주린 죄수를 넉넉하게 먹였으며 의원을 불러 병을 돌보도록 하였다. 또한 염주 백십 관을 사서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고 염불하도록 하며 항상 말하기를 “사람이 환난 중에 처하면 발심하는 이가 많다. 나는 그러한 회한悔恨을 틈타서 염불을 권장하는 것이니 다행히 감옥에서 나가거든 선량한 백성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집안의 부녀자들이 불법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선사禪師를 초빙해 대승大乘을 연설하도록 하고 휘장 안에서 듣도록 하였다. 가족들 중 동시에 삭발 출가한 이가 네 명이나 되었다.
을유년(1645년) 겨울에 병이 심하여 11월 초하룻날 소疏를 갖추고 부처님께 고하면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간구하였다. 그렇게 매일 소疏 하나를 태우고 10일째 되는 날, 음식은 보통 때처럼 먹었고 얼굴은 빛과 윤기가 났으며 간절하게 함께 서방에 왕생하자고 친지들에게 널리 권하고서 탑상 끝에 잠시 눕는 듯하더니 조용히 입적하였다. 『고향소식故鄉消息』, 『연루청음蓮漏清音』, 『담화淡話』 등의 책을 펴냈는데 모두 정토에 관한 중요한 책들이다.227)
 32. 만력萬曆 연간(1573~1620년)에 변융 선사辨融禪師는 근거 없이 떠도는 말로 인해 감옥에 들어갔다. 옥졸이 대사의 명성이 높아 금이 많은 줄 알고 잘 봐주는 대가로 많은 돈을 요구하였으나

008_0500_c_01L二人懼棄職持齋誦經念佛以解此
008_0500_c_02L寃結戴百戶忽豫別親屬至期坐脫
008_0500_c_03L良久又醒謂曰陶凡臨時正念差錯走
008_0500_c_04L路頭故我來與汝等說耳明日我當去
008_0500_c_05L次早復坐脫鼻垂玉柱異香滿室不散

008_0500_c_06L
明丁明登號釼虹江浦人萬曆己酉
008_0500_c_07L歸依雲棲大師篤信淨土法門改號蓮
008_0500_c_08L萬曆丙辰登第宦遊溫陵每以出
008_0500_c_09L世大事開化緇素感悟甚多初任泉
008_0500_c_10L州司理憲批枷責公立法願納米者
008_0500_c_11L用以贍獄貧擇醫視病更買素珠
008_0500_c_12L百十串散衆囚使念佛恒語人曰
008_0500_c_13L在患難發心者多吾乘其悔恨導之
008_0500_c_14L念佛幸而出獄爲良民矣憫念室中
008_0500_c_15L閨流不聞佛法請禪師演說大乘
008_0500_c_16L于幃內聽之眷屬一時披剃者四人
008_0500_c_17L酉冬病劇十一月朔具䟽告佛決意
008_0500_c_18L願求徃生日焚一䟽至十日粥飮如
008_0500_c_19L面色光潤諄諄以同生西方普勸
008_0500_c_20L親知就榻稍臥寂爾長徃輯有故鄕
008_0500_c_21L消息蓮漏淸音淡話等皆淨土要書
008_0500_c_22L

008_0500_c_23L
萬曆間辨融禪師以蜚語下獄獄卒以
008_0500_c_24L師名重必多金厚索其酬辨公曰

008_0501_a_01L변공은 절집 어디에서 돈이 나오겠냐고 말하였다. 옥졸은 갑상匣床228)을 꺼내 그를 가두었다. 변공이 공중을 향해 “대방광불화엄경”을 부르자 화엄회상 불보살이 갑상匣床 가득히 시끄럽게 메아리를 울려 자물쇠가 끊어지고 갑상이 부서졌다. 소문이 감옥(提牢)을 넘어 결국 임금에게까지 들렸고 임금은 조서를 내어 출옥하도록 하였다.229)
 33. 숭정崇禎 연간(1628~1644년)에 대로大老230)들 중에 하옥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가령 국경(封疆)231)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죽음(大辟)232)을 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때 산동山東지방 순무군巡撫軍 여집생余集生 대성大成이 옥에서 먼저 큰소리로 염불을 하면 따라 염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결할 기한이 되어 서로 모여 염불하고 밤낮 그치지 않았다. 홀연히 벽 가득찬 불상을 보았는데 빛이 번쩍번쩍 빛나 대중들이 모두 놀라 예경하였다. 이에 곧 감형하라는 조서를 받게 되었다. 여집생余集生과 심언위沈彦威는 둘 다 국경을 담당한 이들로서 참수되려다가 모두 수자리 하는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233)
 34. 순치順治 6년(1649년)에 각랑 선사覺浪禪師는 판에 글을 새기다가 맡은 일을 그르쳐서 태평太平의 감옥에 하옥되었다. 각랑 선사는 옥중의 사람들에게 염불을 하게 하고 권선의 말로 교화하였다. 옥졸들은 회심하여 재계하고 염불하였다. 매일 초경(7~9시)에 선사는 작은 북채를 잡고 옥졸들은 장향長香을 쥐고서 ‘대중들은 일심으로 염불하라’고 외치면 죄수들이 모두 울먹이며 염불하였다. 사람들이 보시를 하면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베풀어 주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상관이 태평부에 이르러 감옥에 출두하여 몸소 선사를 석방하였다. 이로 인하여 감옥의 죄인을 잘 다스려 죄를 덜어 석방되는 이가 많았다.234)
 35. 명明 당의지唐宜之의 휘는 시時로 호주湖州 사람이다. 연지 대사蓮池大師를 찾아뵙고 정토업을 부지런히 닦았다. 처음에 명경明經235)과에 급제하여 수양壽陽 땅에서 별가別駕236)를 역임하였고 이어서 양국襄國을 보좌하였다. 온 집안이 모두 삼보에 귀의하여 새벽이면 각자 경문經文을 수지 독송하였고 저녁이면 함께 모여 염불을 하였다.
숭정崇禎 신사辛巳년(1641년) 2월에 이자성의 반란군(闖賊)237)이 양양襄陽을 격파하자 공은 단례문端禮門 왼쪽 우물에 투신하였다.

008_0501_a_01L家何處得錢獄卒以强盜匣床匣之
008_0501_a_02L辨公向空唱云大方廣佛華嚴經華嚴
008_0501_a_03L會上佛菩薩滿匣床聒聒作响鎻斷
008_0501_a_04L床碎事聞提牢遂達御前奉詔請出

008_0501_a_05L
崇禎間大老下獄甚多若事關封彊
008_0501_a_06L無有免于大辟者時山東撫軍余集生
008_0501_a_07L大成在獄首唱念佛諸公多從之
008_0501_a_08L決届期相聚念佛晝夜不絶滿壁忽
008_0501_a_09L覩佛像光明閃爍衆悉驚禮旋奉恩
008_0501_a_10L詔末減余集生沈彥威皆以封彊擬斬
008_0501_a_11L俱獲遣戌出獄

008_0501_a_12L
順治六年覺浪禪師因刻書忤當事
008_0501_a_13L太平獄浪公敎獄中人念佛善言勸化
008_0501_a_14L獄卒回心亦持齋念佛每至一更
008_0501_a_15L執小擊獄卒執長香呼云大衆一心念
008_0501_a_16L犯人莫不號泣念佛人餽布施
008_0501_a_17L周貧乏不數月上官臨太平府入獄
008_0501_a_18L躬釋浪公因之淸理監犯輕罪多得宥
008_0501_a_19L

008_0501_a_20L
明唐宜之諱時湖州人叅蓮池師
008_0501_a_21L修淨業初以明經別駕壽陽繼輔襄
008_0501_a_22L擧家眷屬悉歸三寶晨則各持經
008_0501_a_23L夕則同集念佛崇禎幸巳仲春
008_0501_a_24L賊破襄陽公投端禮門左井中家人掖

008_0501_b_01L가족들이 겨드랑이를 잡아 구출하였는데 숨이 이미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임금의 명에 따라 자세히 조사를 받은 후 관대하게 처분되었다. 곧바로 휴가를 청하여 마을로 돌아왔는데 양양이 12월 5일에 다시 도적들에게 포위되었다. 처음에는 도적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이어 우물에 빠졌어도 죽지 않았으며 마침내는 법으로도 죽음을 당하지 않았으니, 이 어찌 대자대비께서 남모르게 도와주신 불가사의한 공덕이 아니겠는가? 공은 스스로 말하기를 몇 년 동안 부처님과의 감응(感應道交)238)이 있었다고 하였다.
정해년(1647년) 12월 8일 장간사長干寺에서 염불하며 불탑에 예배하다가 탑의 광채 속에서 부처님 상호를 뵈었는데, 불상은 황금색이요 그 빛은 백설이나 얼음이나 깨끗한 거울과 같았다고 한다. 무자년(1648년) 7월 5일에는 선당禪堂에서 염불하다가 창문을 여는 순간 문득 종산鍾山이 큰 바다 위에 떠 있는 광경을 보았다. 금빛 부처님이 우뚝 서 있고 상서로운 빛이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는데, 지붕과 담장, 큰 나무(喬木)와 숲(叢林)은 모두 텅 비어 보이지 않았다.239)
무릇240) 보통사람들은 서방 극락세계가 10만억 불국토를 지나서 있다는 말을 듣고 문득 멀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확인한 것으로 볼 때 10만억 불국토는 곧 눈앞 바로 그 자리에 있다. 목숨을 마치면 아주 잠깐 사이에 왕생하나니 어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주극복周克復241)이 말하기를, 거사로서 불지견佛知見242)을 증득한 이는 근세에 오직 당의지 한 사람뿐이라고 하였다.
 36. 청清 김광전金光前은 병사 출신(起身戎伍)243)으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옳은 일이면 반드시 마음을 집중하여 행하였다. 아내 공龔씨는 여주廬州 효렴孝廉244) 집안의 딸로 전해지는데 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혼란스러운 때를 만난 것을 애통하게 여겨 서방에 귀의하였다. 또 경서나 역사서를 대략 읽을 줄 알았고 무릇 불경을 보면 아침저녁으로 지송持誦하였다. 광전은 아내의 행위에 감동하여 독실하게 믿게 되었다.
순치順治 계사년(1653년) 겨울 정벌을 명 받고 집에도 들르지 않고 부부가 함께 민閩땅에 가게 되었다. 무림武林을 나설 때에 구덕 화상이 영은사에서 설법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로부터 염불에 더욱 간절하고 굳은 뜻을 가졌다.
신축년(1661년) 여름에 서울로 돌아와 전당錢塘 강간江干에 주둔할 때(駐節) 김공이 갑자기 병이 들자 아내는 의원을 부르려 했으나

008_0501_b_01L之而出氣已絕復甦奉旨提究得從
008_0501_b_02L寬典旋請假歸里而襄陽季冬五日
008_0501_b_03L再圍矣初不死于寇繼不死于井
008_0501_b_04L亦不死于法豈非慈悲默祐功德不可
008_0501_b_05L思議者耶公自述數年來感應道交
008_0501_b_06L丁亥臘八於長干寺念佛禮塔見佛
008_0501_b_07L相於塔光佛黃金色光則如雪如氷
008_0501_b_08L如明鏡戊子七月五日念佛于禪堂
008_0501_b_09L開䆫忽見鍾山浮巨海中金佛巍巍
008_0501_b_10L光燐爍瓦礫墻垣喬木叢林盡空不
008_0501_b_11L夫恒人見說西方極樂過十萬億佛
008_0501_b_12L輒以爲遠今由所見觀之十萬億
008_0501_b_13L佛土即在目前畢命彈指而生詎非
008_0501_b_14L生于方寸心哉周克復曰以居士而證
008_0501_b_15L佛知見者近世惟公一人而已

008_0501_b_16L
太淸金光前起身戎伍目不識字
008_0501_b_17L見有義之事則必銳意爲之其妻龔氏
008_0501_b_18L傳是盧州孝廉之女痛遭離亂歸心西
008_0501_b_19L且粗知書史凡遇梵典晨夕持誦
008_0501_b_20L光前爲之感動而篤信焉順治癸巳冬
008_0501_b_21L奉討不庭相攜入閩道出武林聞具
008_0501_b_22L德和尙說法靈隱同徃叅問親承開
008_0501_b_23L自此潜心念佛愈切愈堅辛丑夏
008_0501_b_24L還京駐節錢塘江干金忽示疾龔爲

008_0501_c_01L광전이 말리며 말하기를 “내가 예전에 당신과 함께 영은사에 갔었고, 이제 바로 여기에서 몸을 바꾸는 활계(轉身之活計)245)를 이루어 화상이 설법하신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을 따름이오. 어찌 약을 쓰겠소?”라고 하였다. 아내는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이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를 줄 몰랐습니다.”라 하고 드디어 거처를 옮겨 숭성암崇聖菴으로 들어갔으니 남편이 세상을 떠날 장소를 얻으려 한 것이다. 암자에 10일 머물다가 아내는 관 두 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와 남편이 함께 갈 것입니다만, 돌아보건대 공을 위해서 뒷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저는 뒷일을 마친 후 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광전이 이 말을 듣고 기쁜 빛을 띠며 입적하였다. 아내는 일을 마친 후 하루 종일 먹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하루는 몸이 점점 피곤함을 느끼고 관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잠시 후에 깨어나서 “때가 되었다.”라 말하고 단정하게 입적하였다. 얼굴빛이 생기가 있었다.246)
선비와 백성이 왕생한 이야기
 1. 진晉 장야張野는 심양潯陽 사람으로 한학과 불경에 능통하였다. 또한 문장을 잘 써 무재茂才247)로 천거되어 여러 번 산기상시散騎常侍248)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한 번도 부임하지 않았고 여산廬山의 연사蓮社249)에 들어가 정토업을 닦았다. 의희義熈 14년(418년)에 가족과 작별하고 방에 들어가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250)
 2. 진晉 궐공칙闕公則은 혜원慧遠 대사의 백련결사白蓮結社에 참여한 사람이다. 세상을 떠난 뒤에 친구가 동경東京의 백마사白馬寺에서 기제忌祭를 올려 주었는데 홀연히 나무숲과 전각이 모두 금색으로 변하고 공중에서는 “나는 궐공칙이오. 극락 보국 왕생의 기원이 이미 이루어졌소. 이를 알리러 온 것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말을 마치고는 사라졌다.251)
 3. 진晉 장전張銓은 장야張野의 조카로서 빼어난 성품으로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농사일을 하는 틈에도 경서를 놓지 않았으며 여러 번 발탁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열庾悅252)은 그를 가난하다고 여겨

008_0501_c_01L延醫光前止之曰我昔與汝親叩靈
008_0501_c_02L今正欲于此作轉身之活計求和
008_0501_c_03L尙一證明耳何以藥爲龔大笑曰
008_0501_c_04L意光前亦得到此田地遂徙帳入崇聖
008_0501_c_05L盖欲夫死得其所也菴居旬日
008_0501_c_06L造二棺謂人曰妾與金公偕行矣
008_0501_c_07L無人爲公畢後事耳事畢我當徃矣
008_0501_c_08L前聞之即怡然長逝龔事畢屏絶飮食
008_0501_c_09L晝夜不臥一心念佛一日覺身稍倦
008_0501_c_10L倚棺而眠少頃醒曰時至矣端然趨
008_0501_c_11L顏色如生

008_0501_c_12L

008_0501_c_13L士民徃生類

008_0501_c_14L
晋張野居潯陽兼通華梵尤善屬文
008_0501_c_15L擧茂才屢徵散騎常侍俱不就入廬
008_0501_c_16L山蓮社修淨業義熈十四年與家人
008_0501_c_17L入室端坐而逝

008_0501_c_18L
晋闕公則遠公白蓮社中人已亡友人
008_0501_c_19L于東京白馬寺爲作忌祭忽林木殿宇
008_0501_c_20L皆金色空中有聲云我是闕公則
008_0501_c_21L祈徃生極樂寶國今已達矣故來相報
008_0501_c_22L言訖不見

008_0501_c_23L
晋張銓野之族子也高逸好學耕鋤
008_0501_c_24L帶經不釋屢徵不就庾悅以其貧

008_0502_a_01L심양의 현령(潯陽令)으로 천거하였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옛 사람은 무릎이나 넣을 만한 좁은 방도 편안히 여겼습니다. 뜻을 굽혀 벼슬길에 나가는 것이 무슨 영화로움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고는 바로 여산에 들어가 혜원 대사의 백련결사白蓮結社에 의지하였다. 경전을 깊이 탐구하였고 여러 번의 깨우침(悟入)253)이 있었다. 송 경평景平 원년(423년)에 병 없이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며 편안히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254)
 4. 송宋 주속지周續之는 안문鴈門 사람으로 12세에 오경五經과 오위五緯255)에 통달하여 십경동자十經童子라 불렸다. 뜻을 기르며 한가로이 살면서 공경이 차례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 여산의 혜원 법사를 모시고 백련결사에 참여하였다. 송 문제文帝가 왕위에 올라 그를 불러 소대召對256)하였을 때 명쾌하게 분석하니 왕이 매우 기뻐하였다. 어떤 이가 묻기를 “신분이 처사處士인데 자주 그렇게 궁중에 출입해도 됩니까?”라고 하자 그는 “마음이 조정에 있는 자는 몸이 강호에 있더라도 그곳이 굴레가 되며, 정과 이치(情致)가 다 사라진 자는 몸이 저자나 조정에 있더라도 그곳은 곧 바위 토굴일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때 통은 선생通隱先生이라 불렸으며 후에는 종산鍾山에 머물렀다. 염불에 전념했으며 나이가 들수록 더욱 매진하였다. 하루는 하늘을 보며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영접하러 오신다.”라고 하며 합장한 채 입적하였다.257)
 5. 양梁 유선庾銑은 신야新野 사람으로 무제武帝가 황문黃門의 시랑侍郎으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밤낮으로 염불하였는데 어느 날 저녁 자칭 원공願公이라는 도인이 나타나 상행 선생上行先生이라 부르며 향을 주고 떠났다. 4년 뒤에 그 도인이 다시 나타나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공중에서 말하기를 “상행 선생은 이미 안양에 왕생하였다.”고 하였다.258)
 6. 양梁 고호상高浩象은 동평東平 사람이다. 문을 닫고 고요히 앉아 오로지 『무량수경無量壽經』만 독송하였다. 일찍이 관觀을 하던 중 자신이 연못의 붉은 연꽃에 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부처님이 보이지 않았는데 꽃 위로 나아가 마음을 다해 예불하며 멀리 부처님 상호를 떠올리자 광채가 멀리서 비쳤다. 어느 날 저녁 여러 보살들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뵙고 바로 세상을 떠났다.259)
 7. 수隋 송만宋滿은 상주常州 사람이다. 콩을 세며 염불하여 30석石을 쌓았다.

008_0502_a_01L擧爲潯陽令笑曰古人以容膝爲安
008_0502_a_02L志就祿奚榮之有乃入廬山依遠公
008_0502_a_03L蓮社硏窮內典多有悟入宋景平元
008_0502_a_04L無疾西向念佛安坐而卒

008_0502_a_05L
宋周續之鴈門人十二通五經五緯
008_0502_a_06L號十經童子養志閒居公卿交辟
008_0502_a_07L不就事廬山遠法師預蓮社文帝踐
008_0502_a_08L召對辨析帝大悅或問身爲處士
008_0502_a_09L時踐王庭可乎答曰心馳魏闕者以江
008_0502_a_10L湖爲桎梏情致兩亡者市朝亦巖穴耳
008_0502_a_11L時稱通隱先生後居鍾山專心念佛
008_0502_a_12L愈老愈篤一日向空云佛來迎我
008_0502_a_13L掌而逝

008_0502_a_14L
梁庾銑新野人武帝召爲黃門侍郞
008_0502_a_15L不赴六時念佛一夕見道人自稱願
008_0502_a_16L呼銑爲上行先生授香而去後四
008_0502_a_17L願復至遂化去空中言上行先生
008_0502_a_18L已生安養矣

008_0502_a_19L
梁高浩象東平人杜門靜坐專誦無
008_0502_a_20L量壽經嘗在觀中覺自身泛紅蓮于池
008_0502_a_21L初未見佛乃即華上傾心禮佛
008_0502_a_22L想金容光輝遠映一夕見衆菩薩來迎
008_0502_a_23L即時化去

008_0502_a_24L
隋宋滿常州人計荳念佛積三十石

008_0502_b_01L개황開皇 8년(588년) 9월에 반승飯僧을 마치고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 사람들이 신이한 향기를 가득 풍기는 하늘 꽃이 허공을 날아 서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260)
 8. 당唐 정목경鄭牧卿은 형양滎陽 사람으로 온 집안이 염불을 하였다. 개원開元 연간(713~741년)에 병세가 심해졌는데 생선이나 고기를 차려 올리면 결코 입에 대지 않았다. 향로를 붙잡고 왕생을 기원하였는데 홀연히 이상한 향이 가득했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외삼촌인 상서尚書 소정蘇頲의 꿈에 정목경이 보배 연못의 활짝 핀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261)
 9. 당唐 장원상張元祥은 평소에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가족들에게 재촉하며 말하기를 “서방의 성인께서 나를 기다리신다. 재를 마치고 함께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재를 마친 후 분향하고 가부좌한 채 서쪽을 향하여 세상을 떠났다.262)
 10. 당唐 원자재元子才는 윤주潤州 관음사觀音寺에 살면서 『미타경』을 독송하며 염불하였다. 갑자기 작은 병이 들었는데 밤에 공중에서 향기가 나고 풍악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마치 어떤 사람이 ‘거친 음악 소리가 지나가고 부드러운 가락이 이어 오면 그대는 떠나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염불하며 세상을 떠났는데 신이한 향내가 며칠 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같은 절의 원자평元子平도 후에 공중의 음악 소리를 듣고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263)
 11. 당唐 이지요李知遙는 장안長安 사람으로 정토교를 좋게 여겨 오회염불五會念佛264)을 하였는데 대중들의 사범이 되었다. 후에 병이 들어 홀연히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고 하면서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향로를 피우고 방을 나서며 정례하였는데 공중에서 게偈를 말하기를 “그대 이지요에게 이르노니, 염불한 공덕으로 내가 왔노라. 그대를 이끌어 정토에 나게 하고 금으로 된 다리(金橋)265)에 오르게 하리라.” 하였다. 침상에 나아가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이 다 신이한 향내를 맡았다.266)
 12. 당唐 분양 노인汾陽老人은 법인산法忍山에서 방 한 칸을 빌려 살며 밤낮으로 염불하였다. 정관 5년(631년) 목숨을 마칠 때 커다란 빛이 나타나 두루 비추었고 서쪽을 향하여 세상을 떠났는데, 사람들은 그가 연화대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267)


008_0502_b_01L開皇八年九月飯僧畢坐逝人見天
008_0502_b_02L華異香滿乘空西去

008_0502_b_03L
唐鄭牧卿榮陽人擧家念佛開元中
008_0502_b_04L病篤有勸進魚肉者確乎不許手執
008_0502_b_05L香爐願求徃生忽異香充蔚奄然而
008_0502_b_06L舅尙書蘇頲夢寶池蓮開牧卿坐
008_0502_b_07L其上

008_0502_b_08L
唐張元祥居常念佛不輟一日促家人
008_0502_b_09L西方聖人待我齋畢同徃齋事訖
008_0502_b_10L焚香跏趺面西而化

008_0502_b_11L
唐元子才居潤州觀音寺誦彌陀經念
008_0502_b_12L忽小疾夜聞空中香氣樂音似有
008_0502_b_13L人言粗樂已過細樂續來君當行矣
008_0502_b_14L念佛而化異香數日不散同寺元子平
008_0502_b_15L後亦聞空中音樂即西向坐化

008_0502_b_16L
唐李知遙長安人善淨土敎五會念
008_0502_b_17L爲衆師範後因疾忽云佛來迎我
008_0502_b_18L洗漱更衣索香壚出堂頂禮乃聞空
008_0502_b_19L中說偈云報汝李知遙功成果自招
008_0502_b_20L引君生淨土將爾上金橋就牀端坐而
008_0502_b_21L衆聞異香

008_0502_b_22L
唐汾陽老人于法忍山借一空房止宿
008_0502_b_23L晝夜念佛貞觀五年命終時大光徧照
008_0502_b_24L面西而逝人見乘蓮華臺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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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당唐 방저房翥가 갑자기 죽어 저승에 이르러 염라대왕을 만났다. 왕이 말하기를 “문서를 보니 그대가 일찍이 한 노인에게 염불을 권하여 이미 정토에 나게 했으니, 그대도 이 복을 따라 정토에 나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였다. 방저는 “먼저 『금강경』 만 권과 오대산을 순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직 왕생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응답하였다. 왕은 “순례하고 경을 독송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어서 빨리 정토에 나는 것만 못하다.”라 하였으나, 그 뜻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알고 돌려보냈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염불을 닦도록 권하는 사람은 다만 왕생할 뿐만 아니라 저승까지도 감동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268)
 14. 송宋 손량孫良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은거하며 대장경을 읽고 또한 화엄의 요지를 깨달았다. 대지 율사大智律師에게 보살계를 받고 매일 만 번씩 부처님 명호를 독송하기를 20년 동안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가족들에게 스님을 모시고 염불로써 왕생을 도와달라고 청하자 스님들이 모여 염불하였다. 반나절쯤 하늘을 향해 합장한 후 말하기를 “부처님과 보살이 이미 강림하셨다.”라 하며 물러나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269)
 15. 송宋 왕전王闐은 사명四明 사람으로 호는 무공수(無功叟: 공 없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선종과 천태교에 다 통달하여 『정토자신록淨土自信錄』을 지었다. 만년에는 염불에만 마음을 써 서쪽을 향하여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신이한 향내가 자욱했으며 감실을 태울 때 콩알만한 사리 8개가 나왔다.270)
 16. 송宋 범엄范儼은 인화仁和 사람이다. 세상일에 관심을 끊고 자식이 집안을 다스리지 않아도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는 나그네일 뿐이다.”라 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고 마음을 집중하여 부지런히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다. 어느 날 문득 상아가 여섯 개 난 흰 코끼리(六牙白象)271)를 타고서 금색 빛을 발하는 보현보살을 뵈었다. 보살은 범엄에게 “내일 묘시(卯時: 새벽 5~7시)에 갈 것이다.”라 하였다. 하룻밤 지난 후 불보살이 와서 영접하자 나아가 앉아 합장하고 세상을 떠났다.272)
 17. 송宋 육원도陸沅道는 호가 성암 거사省菴居士로 명明의 횡계橫溪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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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房翥暴死至陰府見閻羅王王曰
008_0502_c_02L據案簿君曾勸一老人念佛已生淨土
008_0502_c_03L君承此福亦合生淨土翥曰先許金剛
008_0502_c_04L經萬卷巡禮五臺未欲徃生王曰巡
008_0502_c_05L禮誦經固爲好事不如早生淨土
008_0502_c_06L知志不可奪放還以此知勸人修者
008_0502_c_07L非徒徃生又感動幽冥也

008_0502_c_08L
宋孫良錢塘人隱居大藏尤得華
008_0502_c_09L嚴之旨依大智律師受菩薩戒日誦
008_0502_c_10L佛萬聲二十年不輟忽一日命家人
008_0502_c_11L請僧念佛助徃生僧集念佛方半餉
008_0502_c_12L望空合掌云佛及菩薩已荷降臨退
008_0502_c_13L坐而化

008_0502_c_14L
宋王闐四明人號無功叟禪宗及台
008_0502_c_15L無不洞達著淨土自信錄晩年專
008_0502_c_16L心念佛西向坐化異香芬郁焚龕時
008_0502_c_17L獲舍利如菽者八粒

008_0502_c_18L
宋范儼仁和人絶心世務子不治家
008_0502_c_19L儼不之顧但云我是寄客耳日誦法華
008_0502_c_20L念阿彌陀佛專心不懈忽見普賢乘六
008_0502_c_21L牙白象放金色光報儼云明日卯時
008_0502_c_22L當行越一夕佛菩薩來迎就坐合掌
008_0502_c_23L而逝

008_0502_c_24L
宋陸沅道號省庵居士住明之橫溪

008_0503_a_01L새벽이면 일어나 향을 사르고 가부좌하였다. 눈을 조금도 다른 곳에 돌리지 않고 먼저 게를 읊었다.

盥手淸晨貝葉開  맑은 새벽 손 씻삽고 패엽경을 펼치오니
不求諸福不禳災  이 복 저 복 구하지 않고 재앙 물리치기 원치 않네.
世緣斷處從他斷  세상 인연 단절된 곳 그로부터 끊어지니
刼火光中舞一迴  겁화273)의 빛 속에서 춤추며 한 번 도네.

그 후 염송을 하되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하였으며 소리는 마치 시를 읊는 것(貫珠) 같았다. 매일 『법화경』 한 편을 독송하고 미타 명호를 만 번 소리 내어 부르되 오로지 서방 왕생에만 뜻을 두었다. 85세가 되어 목욕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세상을 떠났다. 염습할 때 홀연히 자욱한 연꽃 내음을 맡았으나 어디서 풍겨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가까이서 맡아 보고는 모두 입에서 나온 것을 알았다.274)
 18. 송宋 손충孫忠은 사명四明 사람으로 일찍이 서방을 연모하여 군성郡城 동쪽에 암자를 짓고 염불하였다. 후에 병이 들자 스님 백 명을 청하여 계념繫念275)을 하였다. 홀연히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면서 기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온 성 사람들이 하늘음악과 신이한 향기가 서쪽으로 향하여 사라지는 것을 들었다. 두 아들이 서로 이어 염불하였으며, 이들 역시 앉은 채 세상을 떠났다.276)
 19. 송宋 심전沈銓은 전당錢塘에서 장가를 들었다. 아내 시씨施氏와 함께 오직 한마음으로 염불하였고 많은 선업을 닦아 모두 회향하였다. 아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임종할 때 모두 아미타 부처님께서 석장을 지니고 접인하는 것을 감응하고 세상을 떠났다.277)
 20. 송宋 당세량唐世良은 회계會稽 사람이다. 계율을 잘 지키고 염불에 힘썼다. 나이 들고 병이 났어도 눕지 않고 『미타경』 십만 편을 독송하였다. 어느 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라 하고 말을 마친 후 예불하고 바로 앉아서 세상을 떠났다.278) 이利라고 하는 행인이 당시 도미산道味山에 있다가 꿈을 꾸었는데, 서방에서 이상한 빛이 나고 화려한 기가 펄럭이고 하늘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공중에서 ‘당세량은 이미 정토에 갔다’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21. 송宋 계공計公은 동전을 만드는 장인인데 70세에 눈을 잃었다. 마을 사람 구학유咎學諭279)는 벽과도擘窠圖280)를 찍어 널리 배포하고 염불을 권하였다. 계공은 처음에 그림 하나를 완성하면서 36만 번이나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이렇게 염불하여 그림 네 개가 완성되었을 때 두 눈이 밝아졌다. 이와 같이 하여 3년이 지나자 그림이 17개가 되었다. 하루는 염불하다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는데, 반나절 후 다시 깨어나 말하기를

008_0503_a_01L晨起焚香趺坐目不他瞬首倡偈曰
008_0503_a_02L盥手淸晨貝葉開不求諸福不禳災
008_0503_a_03L緣斷處從他斷劫火光中舞一迴然後
008_0503_a_04L念誦不緩不急聲如貫珠每日法華一
008_0503_a_05L彌陀萬聲一意西馳年八十五
008_0503_a_06L浴整衣而逝洎殮忽聞蓮華馥郁之氣
008_0503_a_07L皆不知來處近挹之盖出自口中

008_0503_a_08L
宋孫忠四明人早慕西方于郡城東
008_0503_a_09L築菴念佛後因病請僧百人繫念
008_0503_a_10L仰空合掌怡然而化闔城聞天樂異香
008_0503_a_11L漸向西沒二子相繼念佛亦坐化

008_0503_a_12L
宋沈銓家錢塘同妻施氏專心念佛
008_0503_a_13L所脩諸善悉用回向及妻前後命終
008_0503_a_14L皆感化佛持錫接引而去

008_0503_a_15L
宋唐世良會稽人持戒念佛年老疾
008_0503_a_16L猶不就枕誦彌陀經十萬遍謂家
008_0503_a_17L人云佛來接我言訖作禮即便坐逝
008_0503_a_18L利行人時在道味山夜夢西方異光
008_0503_a_19L旛華天樂空中聲云唐世良已歸淨土

008_0503_a_20L
宋計公錢工也年七十喪明里中咎
008_0503_a_21L學諭以擘窠啚印施勸人念佛計公
008_0503_a_22L初授一圖念滿三十六萬聲念至四圖
008_0503_a_23L兩目瞭然如是三載念滿十七圖
008_0503_a_24L日念佛忽氣絶半日復蘇曰佛令分

008_0503_b_01L“부처님께서 그림 여섯 개를 나누어 구학유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는 염불을 권장한 첫 번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림 하나는 이이공李二公에게 주도록 하셨다. 그는 그림을 나누어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라 하며 아들을 시켜 찾아가서 사례하도록 하였다. 말을 마치고 목욕한 후 서쪽을 향하여 세상을 떠났다.281)
 22. 송宋 심삼랑沈三郎은 만년에 회심하여 염불하였다. 병이 들자 스님을 청하여 『미타경』을 염송하도록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무릎을 오므리고 일어서려는 자세로 숨을 거두었다. 두 아들이 유교(名敎)282)에 구애받은 탓에 감실로 바꾸는 것을 어렵게 여겨 정강이를 끌어당겨 반듯하게 폈다. 심삼랑은 염습할 때 홀연 머리를 수의 밖으로 내더니 갑자기 나와 앉았다. 온 집안이 크게 놀라고 두 아들은 서둘러 앞에서 부축하고 팔꿈치로 받치게 했다. 아들이 말하기를 “좌탈坐脫하도록 도울 뿐이다.”라 하였다. 마침내 가부좌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다비할 때 백학 29마리가 구름 밖으로 울며 날다가 한참 후에 서쪽으로 갔다.283)
 23. 송宋 육준陸俊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젊어서 관청에서 일하였다. 오래 지나서는 관직을 그만두고 정토를 업으로 삼아 매일 부처님께 참회하며 크게 울었다. 도반들을 만나면 정토 인연을 이야기하였는데 겨우 열 마디만 해도 문득 슬피 울며 느꺼워하였다. 임종할 때 원정 율사圓淨律師에게 서방 세계를 보여 주기를 청하였다. 율사가 『관무량수경』을 염송하다가 상품上品을 설명한 부분에 이르러 “이제 떠날 만하다.”고 하자 그는 “여러 성인들께서 아직 준비가 안 되었으니 잠시 기다립시다.”라고 하였다. 잠시 후에 갑자기 일어나 대나무 침상에 나아가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은 채 세상을 떠났다.284)
 24. 송宋 서육공徐六公은 가흥嘉興 사람으로 농사일에 힘썼다. 부부가 함께 채식을 하였고 40년을 정성스레 염불에 전념하였다. 미리 감실 하나를 만들어 놓고 임종할 때 베옷으로 갈아입고 짚신을 신고 그 안에 들어가 단정히 앉았다. 조금 지난 후 “부처님께서 맞이하러 오신다.” 하고는 바로 세상을 떠났다.285)
 25. 송宋 황공黃公은 담주潭州 사람이다. 본래 군인이었는데 대장간 일로 생업을 꾸려 갔다. 매번 항쇄와 철퇴를 만들 때마다 입에서 염불이 떠나지 않았다. 하루는 이웃 사람에게 게송을 적어 달라고 하며 부르기를 “땅땅땅땅 쇠를 오래 불려 강철 되네.

008_0503_b_01L六圖與咎學諭是勸導之首分一圖
008_0503_b_02L與李二公是俵圖之人囑其子徃謝之
008_0503_b_03L言訖沐浴向西而化

008_0503_b_04L
宋沈三郞晩歲回心念佛因病請僧
008_0503_b_05L念彌陀經易衣而終縮膝欲起二子
008_0503_b_06L局于名敎以易龕爲難曳其脛直之
008_0503_b_07L將入殮忽擧首出衣被矍然而坐
008_0503_b_08L家大驚二子急前扶衛乃以肘節捶之
008_0503_b_09L子曰助父坐脫耳竟坐逝茶毘有白
008_0503_b_10L鶴二十九隻飛鳴雲表久之西去

008_0503_b_11L
宋陸俊錢塘人少事公門久之棄去
008_0503_b_12L以淨土爲業每對佛懺悔垂淚交頥
008_0503_b_13L道友相見說淨土因緣纔十餘句便
008_0503_b_14L悲咽感歎臨終請圓淨律師開示西方
008_0503_b_15L諷觀經至上品淨曰可以行矣俊曰衆
008_0503_b_16L聖未齊姑待之少頃忽起就竹牀
008_0503_b_17L西端坐而逝

008_0503_b_18L
宋徐六公者嘉興人務農爲業夫婦
008_0503_b_19L蔬食精勤念佛四十年預作一龕
008_0503_b_20L終易布衣草履入龕端坐頃之曰
008_0503_b_21L來迎我即化去

008_0503_b_22L
宋黃公潭州人本軍伍以打鐵爲生
008_0503_b_23L每鉗鎚時念佛不輟口一日無疾
008_0503_b_24L鄰人爲寫頌云叮叮噹噹久鍊成鋼

008_0503_c_01L태평나라 가까워지니 나 서방에 왕생하리라.” 하고는 병이 없었는데 입적하였다. 이 노래가 호남지방에 널리 전파되어 염불하는 이가 많았다.286)
 26. 원元 하담적何曇迹은 18세에 보살계를 수지하고 염불하였다. 어느 날 사경(새벽 1~3시)에 일어나자마자 염송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이르지 않느냐고 묻자 이에 “금빛 상호의 부처님께서 일산을 쓰고 와 맞이하시는 것을 뵈었다.”라고 대답하고는 세상을 떠났다.287)
 27. 명明 화華 거사는 강간江干 사람으로 순박하고 거짓이 없었으나 남들과 다정하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중년의 나이에 가업을 아들에게 맡기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온종일 부지런히 염불만 하였다. 후에 임종할 때에는 때가 이르렀음을 스스로 알고 의관을 바로잡고 단정히 앉아 대중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에 아들이 만든 관이 있었는데 이를 감실로 바꾸어 스님들이 입적할 때 하는 것과 같이 했다. 상여 나가는 날에 구경하는 이가 담장처럼 늘어섰으며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해 마지 않았다.288)
 28. 명明 연화태공蓮華太公은 월越 지방 사람이다. 일생을 소박하게 살았는데 오직 밤낮으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후 관에서 연꽃 한 줄기가 홀연히 피어나니 마을 사람들이 경탄해 마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이름을 연화태공이라 불렀다 한다.289)
 29. 명明 곽대림郭大林은 탕음湯陰 사람이다. 평소 단아하고 정갈한 성품으로 세상에서 벗어날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염불을 가르치는 스님을 만나 일심으로 정토업을 닦았다. 76세 때 하루는 아픈 곳이 없었는데도 자식들에게 “내일 정오에 떠난다.” 하며 작별하고 때가 되자 앉아서 입적하였다.290)
 30. 명明 당담糖擔291) 노인은 항성杭城 안에 살면서 설탕을 팔아 생업을 유지했는데 입에서 염불이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설탕을 짊어지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어서 빨리 이 설탕을 가져다 잡수시오. 저는 곧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몇몇 아는 사람 집에 가서는 “미안하지만 내일 와서 내 관을 들어 주시오. 저는 돌아가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지인들이 의아하게 여겨 반신반의하였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대접하라고 하였다. 식사 때에 지인들이 모두 오자

008_0503_c_01L太平將近我徃西方即化去其頌盛
008_0503_c_02L傳湖南人多念佛

008_0503_c_03L
元何曇迹年十八持菩薩戒念佛
008_0503_c_04L霄四鼓即起念誦人云太早答云見
008_0503_c_05L佛金相旛華來迎遂脫去

008_0503_c_06L
明華居士江干人醇朴無僞與人不
008_0503_c_07L款曲中年屬業諸子獨處一室不涉
008_0503_c_08L世事朝暮惟孜孜念佛而已後將卒
008_0503_c_09L自知時至更衣正冠端坐別衆而逝
008_0503_c_10L其子先已作棺于是易龕如沙門故事
008_0503_c_11L擧龕之日觀者如堵遠近嚮慕焉

008_0503_c_12L
明蓮華太公者越人一生拙朴惟晝
008_0503_c_13L夜念佛不絶命終之後棺上忽生蓮華
008_0503_c_14L一枝親里驚歎因號蓮華太公云

008_0503_c_15L
明郭大林湯陰人平生端潔雅素
008_0503_c_16L世爲懷遇僧敎以念佛遂一心淨土
008_0503_c_17L年七十六一日無疾與子別云明午
008_0503_c_18L當去至時坐脫

008_0503_c_19L
明糖擔老人住杭賣糖爲生口中念
008_0503_c_20L佛不絕忽一日挑糖擔出見人便曰
008_0503_c_21L汝早喫我糖我當歸去也更至數相識
008_0503_c_22L約曰煩你明日來擡我棺我要歸
008_0503_c_23L識者訝之且信且疑次早謂其妻
008_0503_c_24L可偹飮食以待來人餉時識者皆

008_0504_a_01L노인은 관을 들고 집에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에게 절하며 “내가 스스로 관속에서 잠들어 여러분을 수고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오.”라 하면서 관에 들어가 앉은 후 기쁜 표정으로 잠들어 결국 먼 길을 떠났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신기해 했다.292)
 31. 명明 유통지劉通志는 서울 사람으로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염불을 하였는데, 52세에 병환을 얻게 되자 더욱 절실하게 염불하였다. 이웃에 사는 이백재李白齋가 먼저 죽었는데, 통지도 숨을 거두었다가 정오가 되어 다시 살아났다. 가족에게 말하기를 “마침 정토로 가는 배 한 척을 보았단다. 배에는 서른여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백재도 있었지.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 그런데 내 옷이 깨끗하지 못하고 게다가 염주를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려서 다시 왔단다. 옷을 갈아입고 염주를 가져오라는 명을 받고서. 지금 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라고 하였다. 가족들이 급하게 옷을 갈아입히고 목에 염주를 걸어 주자 통지는 잠시 후에 세상을 떠났다.293)
 32. 명明 당정임唐廷任은 난계蘭溪 사람으로 호는 체여 거사體如居士이다. 효성스럽고 우애하며 또한 성실하였는데 다 천성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소년 시절 학교에 다닐 때에는 명성이 자자했으나 이윽고 세상의 무상함을 깨닫고 오직 한마음으로 도에 이르고자 하였다. 운서雲棲 대사에게 나아가 염불삼매를 배워 힘을 다해 수행하였다. 13년을 하루같이 독실하게 서방에 뜻을 두었다. 만력 계묘(1603년) 11월, 60세 되는 날 아침 홀연히 자식들에게 이르기를 “내년 봄 11일에 나는 돌아갈 것이다.”라 하였다. 예정한 날로부터 수일 전에는 평소와 같이 예송하였다. 그날이 되자 손을 씻고 양치하고 옷을 단정히 입은 후 앉아 손으로 인을 맺으며 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떠났는데, 마치 선정에 든 것 같았다.294)
 33. 명明 양가위楊嘉禕295)는 자가 방화邦華로 태화泰和 사람이며 세가世家296)의 자제이다. 열세 살에 불살계不殺戒를 지켜 벼룩과 이도 죽이지 않았다. 23세에 남옹南雍297)에서 수업하였는데 갑자기 병이 나서 만력 을사년(1605년)에 숨을 거두었다. 죽기에 앞서 지옥 명부전에서 지장보살을 만나는 꿈을 꾸었는데,

008_0504_a_01L老人引令擡棺到家沐浴更衣
008_0504_a_02L手語衆曰我當自寢于棺不勞汝等
008_0504_a_03L將身坐棺中怡然就寢遂長徃矣
008_0504_a_04L咸驚異

008_0504_a_05L
明劉通志京都人精懇念佛年五十
008_0504_a_06L得疾念益切鄰人李白齋先卒
008_0504_a_07L志氣絕自旦至午復甦謂家人曰
008_0504_a_08L見一舟云徃淨土乘舟三十六人
008_0504_a_09L齋與焉我亦一數但衣未鮮潔又忘
008_0504_a_10L帶念珠命我易衣取珠舟艤相待
008_0504_a_11L人急爲易衣珠掛其項須臾而逝

008_0504_a_12L
明唐延任蘭溪人號體如居士孝友
008_0504_a_13L醇慤出自天性少遊黌校有聲已而
008_0504_a_14L覺世無常傾心至道叅雲棲受念佛
008_0504_a_15L三昧遂力行之凡十三年如一日
008_0504_a_16L志西方萬曆癸卯仲冬六十壽旦
008_0504_a_17L謂諸子曰新春十一日吾歸矣數日
008_0504_a_18L禮誦如平時至期盥漱整衣端坐
008_0504_a_19L手結印口稱佛名含笑而逝如入禪
008_0504_a_20L

008_0504_a_21L
明楊嘉禕字邦華泰和人世家子也
008_0504_a_22L 年十三持不殺戒蚤風無所傷二十
008_0504_a_23L三肄業南雍俄疾作以萬曆乙巳卒
008_0504_a_24L卒之先夢遊地獄見地藏大士于冥陽

008_0504_b_01L꿈을 깬 후 살아 있는 것을 모두 방생했으며 스님을 초빙해 불경을 독송하고 염불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는 곧 떠날 것이다. 청련화가 내 앞에 보이니 어찌 정토의 광경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하면서 드디어 밤낮으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또 촛불을 끄도록 하고는 “여러분들은 촛불이 있어야 밝힐 수 있지만 나는 촛불이 없어도 항상 광명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중들이 무엇이 보이냐고 묻자 네 가지 색깔의 연꽃이 보인다고 하였고, 미타를 뵈었는지 묻자 천 길 몸으로 현신한 미타불을 뵈었다고 하였으며, 관음보살을 뵈었는지 묻자 현신이 미타와 똑같다고 하였다. 대세지보살을 묻자 뵙지 못했다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갑자기 뛸 듯이 일어서서 향을 집고 이어 말하기를 “『미타경』의 공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난 벌써 상품上品 왕생했다.”라 하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둘째 형인 가조嘉祚는 이 일을 전하면서 “맹세코 내 말이 거짓이라면 발설지옥298)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그 겪은 것이 진실하고, 전하는 말이 절실한 것 아니겠는가. 정토를 믿지 않는 자들은 생각해 볼 따름이다.299)
 34. 명明 학희재郝熈載는 전당錢塘 사람이다. 평소에 마음이 올곧고 진실하여 덕행으로 학교에서 이름이 났다. 만년에 불교에 귀의해 경전을 지송하여 아침저녁으로 게으르지 않았다. 만력 신해년(1611년) 봄에 병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내가 꿈에 산에서 부처님을 뵙고자 했는데 부처님은 뵙지 못하고 무수한 새들이 모여 있는 것만 보았다.”라고 하였다. 이후에도 같은 말을 며칠간 하였는데 27일째에는 공양 시에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서 아들 세한에게 말하기를 “오늘 작별함이 하나의 운명(乾坤)이로다.”라고 하였다. 삼경이 되자 홀연 “동자가 와서 맞이하는구나. 연화대에 앉으신 부처님께서 내 앞에 현전하셨으니 나는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부좌(吉祥)300)하여 세상을 떠났다.301)
 35. 명明 과이안戈以安의 법명은 광태廣泰로 전당錢塘 사람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평소 선행을 쌓았으나 깊이 스스로 감추어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정성껏 불법을 신봉하여 현소玄素 스님과 함께 봄가을로 결사를 맺어 염불하고 경을 독송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죽을 날이 장차 이를 것이니

008_0504_b_01L殿覺而放諸生命延僧誦經念佛
008_0504_b_02L人曰吾將逝矣靑蓮華現吾前得非
008_0504_b_03L淨土境乎遂晝夜念佛不輟命息燭曰
008_0504_b_04L汝軰假燭爲明吾不須燭常在光明中
008_0504_b_05L問何所見曰蓮開四色問見彌陀
008_0504_b_06L曰見彌陀現千丈身問觀音曰身
008_0504_b_07L與彌陀等問勢至曰不見也言訖忽
008_0504_b_08L躍起拈香連聲語曰彌陀經功德
008_0504_b_09L可說不可說不可說吾已得上品矣
008_0504_b_10L然而逝仲兄嘉祚傳其事而矢之曰
008_0504_b_11L予所誑語墮拔舌獄其亦見之眞而言
008_0504_b_12L之切與不信淨土者可思已

008_0504_b_13L
明郝熈載錢塘人生平忠信不欺
008_0504_b_14L德行稱于黌校晩歸佛持誦夙夜匪懈
008_0504_b_15L萬曆辛亥春得疾每睡覺云吾夢於山
008_0504_b_16L求見佛佛未見見百鳥叢集如是
008_0504_b_17L累日至二十七食時忽擧首視窓外
008_0504_b_18L謂其子世翰曰今日別是一乾坤矣
008_0504_b_19L鼓忽云有童子來迎佛坐蓮華臺
008_0504_b_20L吾前吾徃矣吉祥而逝

008_0504_b_21L
明戈以安法名廣泰錢塘人性至孝
008_0504_b_22L素積善行而深自韜晦不求人知
008_0504_b_23L歲精誠奉佛與僧玄素結春秋二社
008_0504_b_24L念佛誦經忽謂人曰吾大限將至

008_0504_c_01L마땅히 서방으로 돌아가는 양식을 마련해야겠다.”라고 하고 드디어 홀로 방에서 일과로 염송하기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섣달 21일로 돌아갈 기한을 미리 정하였는데, 이틀 전 저녁에 부인과 자식들이 빙 둘러 앉아 슬피 흐느꼈다. 거사는 웃으며 말하기를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 것이거늘 어찌 슬퍼하리오. 내 바야흐로 정신을 정토에 맺어서 직접 아미타 부처님을 뵈올 것이니 그대들은 정애情愛로 나의 정념正念을 어지럽히지 마시오.”라고 하며 간곡하게 현소 스님에게 조념염불助念念佛302)을 당부하고 다른 말이 섞이지 않도록 하였다. 기한이 되어 세상을 떠났다.303)
 36. 명明 손숙자孫叔子는 법명이 대우大玗로 어릴 적부터 민첩하고 단정하고 굳세었다. 열두 살에 부친 경오공鏡吾公을 따라 사십팔 대서원을 세운 미타상을 모셨다. 운서雲棲 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오계를 받았고 돌아와서는 오신채五愼菜와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왕래도 끊었으며 잡담도 그치고 오직 염불에만 뜻을 두었다. 그리고 금대金臺에 오르기를 맹세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비구가 연꽃을 쥐고 있는 모습을 보았으니, 일심으로 정토에 마음을 두고 있음을 인가한 것이었다. 다시 화인化人304)을 보았고, 『금강경』을 하루 밤낮 독송하다가 깜짝 놀라(矍然)305) 일어나 말하기를 “미타와 관음보살이 함께 나를 맞이하러 오신다.”라 하고 아미타불을 몇 번 크게 소리 내어 부르면서 담담하게(泊然) 입적하였다. 때는 만력 신해(1611년) 11월 11일이었다. 「정토십이시가淨土十二時歌」가 있어 세상에 전한다.306)
 37. 청清 한승산韓承山은 평호현平湖縣 사람이다. 사람됨이 정성스럽고 소박하였으며, 농업과 잠업에 힘써 가업을 쌓았다. 밭과 과수원으로 천여 금을 모았으나 평소에 오직 계율을 지키고(持齋)307) 염불을 할 따름이었다.
81세 때인 강희 원년(1662년) 4월에 문득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일 친족들을 두루 청하여 오라. 작별인사를 해야겠다.”라고 하였다. 아들이 시킨 대로 청하여 오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저는 다만 칠 일 간 세상에 머물 뿐이오. 일부러 여러분과 함께 작별하고자 불렀소.”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자녀들에게 모두 둘러 앉아 염불하도록 하고 자신도 염불하였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아 가까이 가서 보니 이미 세상을 떠난(委蛻)308) 뒤였다.309)


008_0504_c_01L爲西歸資粮遂自室課誦昕夕不輟
008_0504_c_02L預定歸期于臘月二十一前二夕母子
008_0504_c_03L環視悲哽居士笑曰生必有滅奚悲
008_0504_c_04L吾方凝神淨域面覲彌陀若等愼
008_0504_c_05L勿以情愛亂我正念諄諄囑玄素助念
008_0504_c_06L無間雜語至期而逝

008_0504_c_07L
明孫叔子法名大玗自幼警敏端確
008_0504_c_08L年十二隨父鏡吾公奉四十八願彌陀
008_0504_c_09L入雲棲因受五戒歸斷葷血息交
008_0504_c_10L遊罷呫嗶矢志念佛誓取金臺勤苦
008_0504_c_11L不惜身命俄見兩比丘持蓮華以一
008_0504_c_12L心淨土印可復見化人誦金剛經一晝
008_0504_c_13L乃矍然起坐曰彌陀觀音皆來迎
008_0504_c_14L大呼阿彌陀佛數聲泊然而寂
008_0504_c_15L萬曆辛亥仲冬十一日有淨土十二時
008_0504_c_16L傳世

008_0504_c_17L
太淸韓承山平湖縣人爲人誠朴
008_0504_c_18L務農桑積累家業田園約千餘金
008_0504_c_19L恒惟持齋念佛而已年八十一康熈元
008_0504_c_20L年四月忽謂子曰明日汝可徧請親族
008_0504_c_21L我欲與之話別子依敎請至對衆
008_0504_c_22L我止有七日住世特與汝等作別
008_0504_c_23L至期沐浴更衣端坐悉令子女環坐念
008_0504_c_24L自亦念佛良久不動近視之已委

008_0505_a_01L
 38. 청淸 교충아喬忠我는 장흥長興 사람이다. 대그릇을 팔아 생업으로 삼았는데, 두 손으로 대나무를 다듬을 때마다 입으로 염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오첨 보문烏瞻普聞 화상을 예경하여 매번 첨산瞻山에서 결제結制할 때마다 선당에 들어갔다. 강희 원년(1662년) 3일 전 친구와 자녀들에게 미리 말하기를 “나는 곧 돌아가리라.” 하였다. 10월 초하루가 되자 옷을 갈아입고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였는데,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염불하여 왕생을 돕도록(助念) 부탁하였다. 같은 도를 닦는 스님들에게는 “여러분과 오늘은 헤어지지만 연지蓮池에서 꼭 다시 만날 것입니다.”라 하였고 말을 마치자 조용히 입적하였다.310)
 39. 청清 적몽리翟夢鯉의 법명은 정진淨震으로 임강臨江 사람이다. 평소에 행실이 성실하고 꾸밈이 없어 정토를 독실하게 믿어 열 번 염불(十念)하는 것을 거스르지 않았고 『금강경』을 독송하였다. 70세가 넘어도 정신은 또렷(矍鑠)311)하였다. 강희 무신년(1668년) 7월에 문득 병세를 드러내었다. 8월 13일에 승속의 친구들이 모두 병문안을 하러 왔다. 말하기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感蒙垂顧).312) 꼭 염불하여 나의 왕생을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손으로는 혼자서 염주를 돌리고 있었고 조금도 힘들어하는 표정이 없었다. 잠깐 있다가 “내일 아침 떠납니다.”라고 하였다. 약속한 날이 되어 염불하고 입적하였다.313)
 40. 청清 심양소沈養素의 법명은 지은智恩으로 임강臨江 사람이다. 오로지 정업淨業을 닦아 더울 때나 추울 때에도 쉬지 않았다. 76세가 되어도 험한 곳을 평지처럼 지나다녔다. 항상 부처님 명호를 불렀으며 『금강경』을 독송하였고 일찍이 『법화경』 30여 부를 펴냈다. 강희 무신년(1668년) 8월 작은 병환이 있어 말하기를 “내 마땅히 적몽리翟夢鯉를 뒤따라가리라.” 하고, 아들에게는 “9월 15일에 돌아간다.”고 하였다. 아들이 “15일은 길일이 아니니 16일이 좋겠습니다.”라 하자 성난 목소리로 “차라리 앞으로 당길지언정 뒤로 물리지 말라.” 하였다. 14일이 되자 염불하며 입적하였는데 몸에서 신이한 향내가 나 며칠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008_0505_a_01L蛻矣

008_0505_a_02L
太淸喬忠我長興人鬻竹器爲生
008_0505_a_03L手削竹口中念佛不輟禮烏瞻普聞和
008_0505_a_04L每瞻山結制亦入禪堂康熈元年
008_0505_a_05L三日前預告親朋子女曰我將歸去
008_0505_a_06L至十月朔更衣向西正坐念佛有來
008_0505_a_07L視者令念佛相助對同道師僧曰
008_0505_a_08L今一別當于蓮池中相會也言訖悠然
008_0505_a_09L而逝

008_0505_a_10L
太淸翟夢鯉法名淨震臨江人素行
008_0505_a_11L誠樸篤信淨土七十念無違兼誦金
008_0505_a_12L年踰古希精神矍鑠康熈戊申七
008_0505_a_13L忽示疾至八月十三日緇素親友
008_0505_a_14L皆來探視乃謂衆曰感蒙垂顧須念
008_0505_a_15L佛助我徃生手自輪珠毫無倦意
008_0505_a_16L云明早去矣届期念佛而逝

008_0505_a_17L
太淸沈養素法名智恩臨江人耑脩
008_0505_a_18L淨業寒暑靡間年登七十六涉險如
008_0505_a_19L時稱佛號誦金剛嘗展法華三十
008_0505_a_20L餘部康熙戊申八月偶抱小恙曰
008_0505_a_21L當追蹤翟夢鯉也謂子曰九月十五
008_0505_a_22L我歸去矣子云十五欠利十六好
008_0505_a_23L聲曰寧可上前莫使退後至十四日
008_0505_a_24L念佛而逝身有異香數日不散此與

008_0505_b_01L그는 적몽리와 함께 한 마을에서 수행(熏修)314)하였는데, 이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가서 가고 머무름을 자유롭게 하였으니, 이와 같은 사람들은 참 보기 드문 경우라 할 것이다.315)
 41. 청清 대동자戴童子의 이름은 공렬公烈이며 휴읍休邑 사람이다. 당서塘棲 진수鎮水의 북쪽 변방에 옮겨 살았다. 유학자의 집에서 태어났으나 두 살 때 모친을 잃었다. 어린 시절 놀 때에도 예법을 어기지 않았다. 열두 살에 과거공부(擧子業)316)를 시작하여 빼어나게 두각을 나타냈고, 13세에는 더욱 영민하여 하는 행동이 어른 같았다.
그러나 타고난 체질이 맑고 약해서 홍역을 치료하다 그만 위가 상하고 말았다. 오문吳門에게 치료 받으러 갔는데 머물던 곳에 연지 대사의 『죽창수필竹窗隨筆』 몇 종種이 있어 매번 그 책을 가져다가 여러 번 자세히 읽었는데 마치 마음에 부합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 7월 6일 홀연히 단정히 앉아 할아버지에게 이르기를 “저를 도와 염불해 주세요.”라고 하고 마침내 낭랑하게 부처님 명호를 소리 내어 불렀다. 할아버지도 이를 따라 했다. 처음엔 소리가 높았으나 점점 소리가 낮아져 마침내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입술은 움직였는데 조금 후에는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때는 강희康熙 계축년(1673년)이었다.317)
비구니가 왕생한 이야기
 1. 수隋 비구니 대명大明은 뜻이 높고 청정한 수행을 한 분이다. 정토에 나기를 기원하여 언제나 법당에 들어가 예념하였다. 예념할 때는 먼저 정갈한 옷을 입고 입에는 침향沈香318)을 머금었는데 문제후文帝后가 그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임종하는 날 대중들은 홀연히 방에 가득한 침향의 향을 맡았고, 갑자기 구름 같은 밝은 빛이 뭉게뭉게(隱隱)319) 서쪽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320)
 2. 당唐 비구니 오성悟性은 여산廬山에 주석하였는데, 조照 대사(闍黎)321)가 발원 염불할 것을 권하여 주야로 정진하였고 마음을 집중하여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대력大曆 6년(771년) 갑자기 전염병에 걸렸는데, 음악 소리가 서쪽 공중에서 들려오는 것을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혼이 극락에서 노니는데 이미 중품상생中品上生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입적하였는데 얼굴은 황금빛을 띠었다. 당시 나이 24세였다.322)


008_0505_b_01L翟公同里熏脩今乃前後接踵去留
008_0505_b_02L自由若此之流甚爲希有也

008_0505_b_03L
太淸戴童子名公烈休邑人流寓塘
008_0505_b_04L棲鎭水北界生自儒門週齡失母
008_0505_b_05L兒戱時不踰禮法年十二始習擧子
008_0505_b_06L英英露頴十三益聦敏動止類成
008_0505_b_07L然賦質淸弱因醫㿀疹致傷胃氣
008_0505_b_08L乃就醫吳門寓所有蓮池大師竹窓隨
008_0505_b_09L筆數種每取其書反覆細閱若有會
008_0505_b_10L七月初六忽端坐謂其祖曰助我
008_0505_b_11L念佛遂朗稱佛號其祖和之始則聲高
008_0505_b_12L漸至聲低終乃無聲尙見唇動頃之
008_0505_b_13L唇亦不動兀然而化時康熙癸丑歲也

008_0505_b_14L

008_0505_b_15L尼衆徃生類

008_0505_b_16L
隋尼大明志尙淸脩誓生淨土每入
008_0505_b_17L室禮念先着淨衣口含沉香文帝后
008_0505_b_18L甚重之將終之日衆忽聞沉香滿室
008_0505_b_19L俄而光明如雲隱隱向西沒焉

008_0505_b_20L
唐尼悟性居廬山遇照闍黎敎以發
008_0505_b_21L願念佛六時精進一心不亂大曆六
008_0505_b_22L忽染疾聞空中音樂西來謂左右
008_0505_b_23L我神遊極樂已得中品上生言已
008_0505_b_24L而逝面現黃金色時年二十四

008_0505_c_01L
 3. 송宋 비구니 능봉能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정토업을 전일하게 닦았다. 일찍이 꿈에 부처님 광명이 몸을 비추고 공중에서 좋은 말로 타일러 위로하는(開慰)323) 말을 듣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제가 왕생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조금 후 능봉이 매우 크게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능봉은 합장하고 서쪽을 향해 앉아 입적한 뒤였다. 신이한 향내가 방에 가득했고 음악 소리는 서쪽으로 사라졌다.324)
 4. 송宋 비구니 법장法藏은 금릉金陵에 주석하였다.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고 열심히 염불하였는데, 매년 1월·4월·7월·10월 초하루가 되면 동지들을 모아 경을 읊고 다라니를 외웠다(持呪). 신심 깊은 대가大家들이 오순도순(翕然)325) 교화를 잘 따랐다. 입적하던 날 밤에 불보살의 금빛 형상이 방안에 나타나고 광명이 절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326)
 5. 명明 비구니 무위無為는 소산蕭山 내씨來氏의 딸로 어릴 적 시집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염불을 하였다. 20세에 머리를 깎고 초막을 짓고 정토업을 전일하게 닦았다. 30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학업을 탐구하였는데 지나는 곳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자가 있으면 병자의 상태에 따라 진단을 해서 탕약을 끓여 먹여 낫게 하였다.
가정嘉靖 연간(1522~1566년)에 궁중에 돌림병이 있었다. 궁에서도 소문을 듣고 무위를 불러 치료하니 효험이 있었다. 이에 무위심無為心 선사라는 호를 내려주고 옛 집으로 돌려보냈다. 임종할 때 한 신승神僧이 초막에 투숙하려 했다. 무위는 두세 차례 거절하였으나 신승은 타이르며 들어와서 제 마음대로 선상禪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보니 보이지 않아 비로소 신승임을 알았다. 문득 일어나 앉아 게偈를 읊었다.

六十四年活計   육십사 년 동안의 살림
今朝撤手歸西   오늘 아침 손 놓고 서쪽으로 돌아가네.
得箇菩提三昧   보리 삼매 얻고 보니
依然明月淸風   여전히 밝은 달이요 시원한 바람이네.

게를 읊고는 입적하였다. 다비할 때 사리 한 과가 나왔으며, 탑은 관산冠山에 세웠다.327)
 6. 청清 비구니 월랑月朗은 송강松江의 세족世族인 오씨吳氏의 딸이다. 부모가 배필을 정하려 하였으나 완강히 반대하여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17세에 화연化緣328) 재승齋僧329)인 항주의 비구니 천강千江을 만나 간절히 출가하고자 하였다. 이듬해 봄

008_0505_c_01L
宋尼能奉錢塘人專脩淨業嘗夢佛
008_0505_c_02L光照身及聞空中善言開慰告其徒曰
008_0505_c_03L吾徃生時至少頃聞奉念佛聲甚厲
008_0505_c_04L徃視之則合掌面西坐逝矣異香滿室
008_0505_c_05L樂音西邁

008_0505_c_06L
宋尼法藏居金陵戒德甚嚴勤苦念
008_0505_c_07L每歲四孟月朔集同志諷經持呪
008_0505_c_08L大家善信翕然從化示寂夜見佛菩
008_0505_c_09L薩金像現其室中光明炤寺端坐脫
008_0505_c_10L

008_0505_c_11L
明尼無爲蕭山來氏女幼誓不嫁蔬食
008_0505_c_12L念佛年二十薙髮結茆專脩淨業
008_0505_c_13L十遊方叅學凡所曆處有病苦者
008_0505_c_14L物取與煎湯服之即愈嘉靖間宮中
008_0505_c_15L時疫風聞于朝召赴有驗賜無爲心
008_0505_c_16L禪師之號送歸故廬將終日有神僧
008_0505_c_17L投宿無爲却之再三神僧勸誠而進
008_0505_c_18L權宿禪牀睡醒不見知是神僧便起
008_0505_c_19L偈云六十四年活計今朝撤手歸
008_0505_c_20L西得箇菩提三昧依然明月淸風
008_0505_c_21L逝茶毘一團舍利塔于冠山

008_0505_c_22L
太淸尼月朗松江世族吳氏女父母
008_0505_c_23L欲爲擇配力阻弗擇年十七遇杭州
008_0505_c_24L尼千江化緣齋僧懇求出家次年春

008_0506_a_01L할머니와 온 가족을 따라 천축사에서 향을 올리고 그 틈에 천강암千江庵에 가서 발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뜻이 없음을 보였다.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권했으나 굳게 다짐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가족들은 함께 돌아가기 어려움을 알았다.330) 빠진 글이 있다.
부녀자가 왕생한 이야기
 1. 수隋 문제文帝의 황후 독고獨孤씨는 비록 왕궁에 있었으나 여자인 것을 매우 싫어하여 항상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다. 8월 갑자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영안궁永安宮 북쪽에서는 갖가지 음악이 저절로 울려나오고 신이한 향기가 공중으로부터 와서 방안을 가득 채웠다. 문제가 사제사나闍提斯那에게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라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정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이름을 아미타라 합니다. 황후께서 쌓은 업이 높아서 저 극락국에 올라가므로 이 상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331)
 2. 당唐 요姚 할머니는 범행范行 노파의 권유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다. 후에 임종할 때 불보살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뵈었다. 부처님께 고하기를 “아직 범행 노파와 작별하지 못했으니 잠시 공중에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범행 할머니가 이르자 요 할머니는 선 채로 입적하였다.332)
 3. 송宋 의인宜人333) 육陸씨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조청朝請334)인 왕여王璵의 아내이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고 정토에 돈독한 뜻을 두어 예참을 한 번 할 때마다 만 번씩 소리 내어 염불하기를 30년이나 하였다. 작은 병환이 있었는데 문득 하늘 북이 저절로 울리는 것을 들었다. 남들이 바야흐로 놀라 이상하게 여겼다. 곧 서쪽을 마주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35)
 4. 송宋 호장胡長 할머니인 이李씨는 상우上虞 사람이다. 남편이 죽은 뒤 밤낮으로 고성염불高聲念佛하고 『미타경』을 10여 년 동안 독송하였다. 하루는 붉은 비단 일산을 쓴 한 스님을 보았는데 “그대는 15일 자시子時에 왕생할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스님에게 누구인지 묻자 “그대가 염念하던 사람이오.”라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드디어 친척들과 작별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자 이채로운 향기와 광명이 있었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7일 후에 다비를 하였는데 이는 백옥 같고, 혀는 붉은 연꽃 같고,

008_0506_a_01L隨祖母諸眷屬天笁進香乘便至千江
008_0506_a_02L庵住足示無歸意咸徃勸之歸決志
008_0506_a_03L不允衆知不可 有闕文

008_0506_a_04L

008_0506_a_05L婦女徃生類

008_0506_a_06L
隨文帝后獨孤氏雖處王宮深厭女質
008_0506_a_07L常念阿彌陀佛以八月甲子命終時永
008_0506_a_08L安宮北種種音樂自然震响異香滿
008_0506_a_09L從空而至帝問闍提斯那是何祥
008_0506_a_10L對曰淨土有佛號阿彌陀皇后業
008_0506_a_11L超登彼國故現斯瑞耳

008_0506_a_12L
唐姚婆因范行婆勸令念佛後臨終
008_0506_a_13L見佛菩薩來迎告佛言未與范行婆別
008_0506_a_14L請佛暫住空中范至姚婆立化

008_0506_a_15L
宋宜人陸氏錢塘人朝請王璵妻也
008_0506_a_16L嘗誦法華篤意淨土禮懺一會念佛
008_0506_a_17L萬聲凡三十年因微疾忽聞天鼓自
008_0506_a_18L人方驚異即面西端坐而逝

008_0506_a_19L
宋胡長婆李氏上虞人夫喪後日夜
008_0506_a_20L高聲念佛及誦彌陀經凡十餘年
008_0506_a_21L日見有僧覆以緋盖曰汝十五日子時
008_0506_a_22L徃生問師何人曰是汝所念者婆遂
008_0506_a_23L別諸親至期有異香光明端坐而逝
008_0506_a_24L七日焚化齒如白玉舌如紅蓮睛如

008_0506_b_01L눈동자는 포도 같았는데 모두 살아 있을 때처럼 견정堅精하여 문드러지지 않았으며 사리는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다비한 곳에서 흰 양귀비 같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336)
 5. 송宋 전당錢塘의 공龔씨는 밤낮으로 염불하고 『미타경』을 독송하였다. 후에 병환이 있어 형亨 율사를 모셔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다. 설법이 끝나기 전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늙은 첩인 우于씨 또한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꿈에 공씨가 “나는 이미 정토에 왕생했소. 당신도 왕생할 것이오.”라고 하였다.337)
 6. 송宋 정鄭씨는 전당錢塘 사람으로 『관음경』을 일과로 읽었고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후에 병환 중에 머리를 깎고 목욕한 후 서쪽을 향해 앉아 가족에게 말하기를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의 여러 성인들께서 장차 오시려 한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합장하고 기뻐하여 말하기를 “불보살께서 오신다. 관음보살님은 손에 금대金臺를 쥐고 여래께선 나를 접인하여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라 하며 조용히 입적하였다.338)
 7. 송宋 황黃씨는 사명四明 사람으로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부친의 집에 돌아와 정토업을 정성으로 닦았다. 임종할 때에 부처님께서 와서 맞이하신 것을 뵙고 인印을 맺고 천천히 걸어가다 갑자기 선 채로 입적하였다. 가족들이 땅에다 재를 체로 쳐서 왕생처를 표시하였는데 한 송이 연꽃이 재 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339)
 8. 송宋 삽천霅川 주朱씨는 염불을 30년이나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음식을 끊고 40일 동안 물만 먹으며 염불하였다. 꿈에 세 스님이 각각 연꽃을 쥐고 말하기를 “내가 먼저 그대를 위해 이 꽃을 심으니, 이제 마땅히 왕생하리라.” 하였다. 잠에서 깬 후에 스님을 청해 조념助念 염불을 하도록 하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40)
 9. 송宋 항項씨의 법명은 묘지妙智로 은현鄞縣 사람이다. 과부살이를 하였으며 두 딸을 모두 스님으로 출가시키고 염불에 정성과 수고를 다하였다. 하루는 문득 말하기를 “나는 앉은 채 입적하고 싶은데 관을 만드는 것은 어긋난 일이다.”라 하였다. 딸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도 금으로 만든 관을 쓰셨으니 꺼릴 것이 없습니다.”라 하자 기뻐하였다. 갑자기 이채로운 향이 방안에 가득하였고, 서쪽을 향하여 입적하였다.341)
 10. 송宋 분양汾陽 배裴씨의 딸은 염불에 전일하게 뜻을 두었다. 업보가 다한 날을 알리고

008_0506_b_01L葡萄皆堅精不壞舍利不可數計
008_0506_b_02L日焚處生一華如白1)粟云

008_0506_b_03L
宋錢塘龔氏晝夜念佛誦彌陀經
008_0506_b_04L有疾請亨律師指示陳說未終端坐
008_0506_b_05L而化老妾于氏亦念佛不輟夢龔氏
008_0506_b_06L告云我已生淨土汝亦當生

008_0506_b_07L
宋鄭氏錢塘人日課觀音經念佛不
008_0506_b_08L後病中索浴西向坐問家人云
008_0506_b_09L磬聲乎淨土諸聖且至已而合掌喜曰
008_0506_b_10L佛菩薩來觀音手執金臺如來接我登
008_0506_b_11L遂奄然而化

008_0506_b_12L
宋黃氏四明人早喪夫因歸父舍
008_0506_b_13L修淨業臨終見佛來迎結印徐行
008_0506_b_14L然立化家人篩灰于地以驗生處
008_0506_b_15L蓮華一朶生灰中

008_0506_b_16L
宋霅川朱氏念佛三十年忽絕食四十
008_0506_b_17L唯飮水念佛夢三僧各執蓮華謂
008_0506_b_18L吾先爲汝種此華今當徃生旣寤
008_0506_b_19L請僧助念端坐而逝

008_0506_b_20L
宋項氏法名妙智鄞縣人寡居悉令
008_0506_b_21L二女爲尼精勤念佛一日忽曰我欲
008_0506_b_22L坐脫錯與作棺女曰佛用金棺無嫌
008_0506_b_23L母喜俄而異香滿室向西而逝

008_0506_b_24L
宋汾陽裴氏女專志念佛報盡日

008_0506_c_01L향불을 사르면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나를 맞이하러 오시니 마땅히 왕생하리라.” 하였다. 이윽고 하늘에서 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편안히 앉아 입적하였다.342)
 11. 송宋 심沈씨는 자계慈谿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염불을 하였다. 장章씨에게 시집가서 한마음으로 변하지 않았고, 시주미를 베풀고 이불을 주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후에 병이 있어 염불에 더욱 힘을 쏟았다. 홀연히 불보살들이 모두 눈앞에 나타나고 등불 천 개가 빛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지개 다리 같았다. 바로 그날 상서로움을 보이고 입적하였다.343)
 12. 송宋 루樓씨는 사부寺簿 주원경周元卿의 아내이다. 항상 『전등록』을 읽어 깨달음의 지견을 높여 갔다. 더욱이 정토업을 진실한 수행이라 여겨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만년에는 병환이 있었는데, 문득 연화대에 응화불이 무수히 많은 것을 보았고, 신이한 향이 방안에 가득하자 가족들에게 어서 염불하라고 말한 뒤에 바로 입적하였다.344)
 13. 송宋 주周씨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卿의 딸이다. 어머니가 연화대에 왕생하는 상서로움에 감동하여 독실하게 염불에 뜻을 두고 안양에 왕생하기를 기약하였다. 병환 중에 스님을 청해 예참을 행하였는데, 스스로 정갈한 옷(淨衣)345)을 입고 누각에서 예를 갖추어 염불하는 모습을 보이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부지런히 정토업을 닦아 서방에서 만납시다.”라고 하며 오른쪽 옆구리를 서쪽으로 향하여 입적하였다.346)
 14. 송宋 진秦씨 정견淨堅은 송강松江으로 시집을 갔는데, 여자 된 몸을 싫어하였고 남편과 다른 거처에서 살면서 재계齋戒347)를 엄정하게 지켰으며 『화엄경』 등 여러 경전을 자세히 읽어 허비하는 날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미타참을 닦아 천 배를 올렸는데 오래되자 광명이 방안에 들어오는 상서로움이 있었다. 서쪽을 향하여 편안히 앉아 생을 마쳤다.348)
 15. 송宋 가화嘉禾 땅의 종鍾 노파는 『미타경』을 염송하고 염불하기를 20년 동안 일과로 삼았다. 하루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흰 연꽃이 무수히 많고, 여러 성인들이 이곳에 계시는 게 보인다.”라고 하며 단정히 앉아 몸을 세운 채 입적하였다.349)
 16. 송宋 전당錢塘의 손孫씨는 항상 염불하고 다라니를 지송하였다. 병이 들어 청조清照

008_0506_c_01L火焚香言佛來迎我我當徃生已而
008_0506_c_02L天華飛墜安坐而逝

008_0506_c_03L
宋沈氏慈谿人自幼蔬食念佛歸章
008_0506_c_04L一心不變施米貸被以濟飢凍
008_0506_c_05L有疾念佛尤力忽見佛菩薩普現目
008_0506_c_06L燈光千㸃狀若虹橋即日吉祥而逝

008_0506_c_07L
宋樓氏適寺簿周元卿嘗閱傳燈
008_0506_c_08L明見地尤以淨業爲眞修念佛不輟
008_0506_c_09L晩年被疾忽見蓮臺化佛無數異香
008_0506_c_10L滿室語家人亟令念佛頃刻而化

008_0506_c_11L
宋周氏妙聰元卿之女因感其母
008_0506_c_12L臺徃生之瑞篤志念佛期生安養
008_0506_c_13L中請僧行懺自見身着淨衣在樓閣上
008_0506_c_14L作禮念佛謂家人曰勤修淨業西方
008_0506_c_15L相待右脇西向而逝

008_0506_c_16L
宋秦氏淨堅家松江厭惡女身與夫
008_0506_c_17L別處精持齋戒閱華嚴諸經無虛日
008_0506_c_18L晨昏修彌陀懺禮佛千拜久之有光明
008_0506_c_19L入室面西安坐而終

008_0506_c_20L
宋嘉禾鍾婆誦彌陀經念佛二十年
008_0506_c_21L爲常課一日語子曰見白蓮華無數
008_0506_c_22L衆聖在此端坐聳身而化

008_0506_c_23L
宋錢塘孫氏常念佛持呪因病請淸照
008_0506_c_24L」疑「罌」{編}

008_0507_a_01L율사를 초청해 이르기를 “오랜 병으로 세상이 싫어졌습니다. 왕생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정토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자 매우 기뻐하였다. 밤에 꿈을 꾸었는데, 대사가 준 약 한 사발을 마시자 땀이 흐르고 마음과 몸이 경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3일 후 대중에게 말하기를 “가섭 존자께서 이곳으로 오셔서 금빛 연꽃 좌대로 반기신다.”라고 하며 눈을 감고 입적하였다.350)
 17. 송宋 양梁씨 딸은 분양汾陽에 살았는데 두 눈이 모두 멀었다. 한 스님을 만났는데 염불을 권하였다. 3년이 지나 두 눈이 밝아졌고 후에 불보살이 일산을 들고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 그날로 세상을 떠났다.351)
 18. 송宋 조산潮山의 황黃 노파는 『금강경』과 『법화경』을 지송하고 전일한 마음으로 염불하였다. 그런데 돌연 이질을 앓게 되어 물만 마시고 밥은 먹지 못하였다. 이웃에 있는 절의 선수善修 스님 꿈에 노파가 나타나 “장차 서방에 왕생하려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틀이 지나 노파는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염불하며 입적하였는데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노파의 집 위에 붉은 노을이 덮이는 것을 보았다.352)
 19. 송宋 길안吉安의 왕王씨는 매일 『미타경』을 독송하고 염불하여 제도받기를 구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염습했는데도 유혈이 낭자하여 서원하기를 “제 효심이 부처님을 감응한다면 더러운 기운을 그치게 하소서.”라고 하자 피가 그쳤다. 아버지가 둘째 부인을 들였는데 그와 함께 정토를 닦았다. 임종할 때에 스님을 청해 정토 관법을 설법하도록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吉祥)하였다가 누워서 대자대비 부처님이 쥐고 계신 번幡을 잡고 조용히 입적하였다.353)
 20. 송宋 동평東平 양梁씨의 유모인 최崔 노파는 치주淄州 사람이다. 평소에 채식을 하였고 너무 어리석어 동년배들과 길고 짧음도 다투지 못하였다. 양씨의 친어머니인 조晁 부인은 선학禪學에 뜻을 두었는데 최 노인은 아침저녁으로 그 곁에서 아미타불만 염송할 뿐이었다. 잠깐이라도 그침이 없었는데, 염주도 없어서 몇 천만 번을 했는지도 몰랐다. 72세가 되어 병을 얻었으나 침상에 눕지 않았으며 더욱 독실하게 염불을 하였다. 홀연히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008_0507_a_01L律師至謂曰久病厭世願求徃生
008_0507_a_02L爲談淨土因緣大喜夜夢師授藥一盞
008_0507_a_03L服之流汗身心輕快三日後語人曰
008_0507_a_04L迦葉尊者來此好金蓮華座即瞑目而
008_0507_a_05L

008_0507_a_06L
宋梁氏居汾陽兩目俱盲遇沙門
008_0507_a_07L令念佛越三年雙目開明後見佛菩
008_0507_a_08L薩幡盖來迎即日命終

008_0507_a_09L
宋潮山黃婆持金剛法華專心念佛
008_0507_a_10L忽患痢疾但飮水不食隣庵僧善修夢
008_0507_a_11L婆謂曰將徃西方越二日婆西向端
008_0507_a_12L念佛而化遠近皆見紅霞覆婆屋

008_0507_a_13L
宋吉安王氏日誦彌陀經念佛求度
008_0507_a_14L母死旣殮流血淋瀝誓云若我孝心感
008_0507_a_15L願穢氣不作言訖血止父娶繼室
008_0507_a_16L與之同修淨土女臨終請僧說淨土觀
008_0507_a_17L更衣吉祥而臥攬大悲所執幡
008_0507_a_18L然化去

008_0507_a_19L
宋東平梁氏乳媼崔婆淄州人平生
008_0507_a_20L茹素極愚不能與同軰爭長短主母晁
008_0507_a_21L夫人留意禪學崔朝夕在傍但誦阿
008_0507_a_22L彌陀佛不少輟不持素珠莫知其幾
008_0507_a_23L千萬徧年七十二得疾不下床然持
008_0507_a_24L念愈篤忽若無事時倡偈曰西方一

008_0507_b_01L
西方一路好修行  서방 한 길은 수행하기 좋은 길
上無條嶺下無坑  위로는 험한 고개 없고 아래로는 웅덩이 없어
去時不用着鞋襪  그곳에 갈 때는 신과 버선 신을 필요 없고
脚踏連華步步生  발걸음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리.

노래가 입에서 끊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누구의 말이냐고 묻자 노파는 자신이 지었다고 하였다. 또 노파에게 어느 때에 왕생할 것인가 묻자 신시申時에 갈 것이라고 답하였는데 또 과연 그러하였다. 스님의 예법에 따라 화장하였다. 혀는 타지 않았는데 마치 연꽃과 같았다.354)
 21. 원元 정鄭씨 정안淨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염불함에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병을 얻었을 때 공중에서 “그대 떠날 날이 정해져 있으니 게으름 부리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 금빛 부처님 몸을 보자마자 즉시 떨쳐 일어나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출가한 아들 의수義修를 불러 『미타경』을 읊도록 한 뒤 홀연히 입적하였다. 딸의 꿈에 어머니가 말하기를 “나는 이미 정토에 왕생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출가한 의수 스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355)
 22. 원元 도陶씨는 상숙常熟 사람이다. 26세에 과부가 되어 자식이 없었다. 정토에 나기를 서원하여 항상 『미타경』과 『관세음경』을 수지하고 외웠다. 홀연히 흰 옷 입은 사람이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먹으라고 주는 꿈을 꾸었다. 깨어난 후 마음과 정신이 자못 평소와 달랐다. 이어서 작은 전각 하나를 꾸며 서쪽을 향하여 경을 읽고 염불하였다. 3년째 되는 날 부처님이 광명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는데, 경을 보관하는 궤 위에 탄알 같은 불덩이가 타올랐다. 도씨는 경이 탈까 걱정되어 급히 손으로 쳐서 결국 사리 하나를 얻었다. 임종할 때 응화불이 와서 맞이하였다.356)
 23. 원元 은현鄞縣 보당시寶幢市의 주周 노파는 정토업을 정성껏 닦았다. 연초가 되면 남과 말하지 않고 밤낮 앉아 있다가 한 달이 다 되어서야 그치곤 하였다. 음력 6월이 되면 차를 달여 베풀기를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꿈에 큰 연잎이 마을 전체를 덮었는데 자기 몸에 염주를 지니고 연꽃잎 위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의 꿈을 꾸었다. 얼마 후 가벼운 병을 앓았는데 이웃 사람이 당번幢幡과 보개寶葢가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보니 노파는 이미 염불하며 입적한 뒤였다.357)


008_0507_b_01L路好修行上無條嶺下無坑去時不用
008_0507_b_02L着鞋襪脚踏蓮華步步生咏不絕口
008_0507_b_03L人問誰語曰我所作曰婆何時行
008_0507_b_04L申時去果然用僧法焚之舌獨不化
008_0507_b_05L如蓮華然

008_0507_b_06L
元鄭氏淨安錢塘人念佛日無虛度
008_0507_b_07L得疾聞空中聲曰汝行有期無得自怠
008_0507_b_08L又見佛身金色卽奮起面西端坐召其
008_0507_b_09L出家子義修諷彌陀經倐然而化
008_0507_b_10L女夢母報曰吾已得生淨土可聞諸修
008_0507_b_11L師云

008_0507_b_12L
元陶氏常熟人年二十六寡居無子
008_0507_b_13L願生淨土恒持念彌陀觀世音經忽夢
008_0507_b_14L白衣人挈蓮華一朶與食之覺後心
008_0507_b_15L神頗異嗣裝一小閣西向誦經念佛
008_0507_b_16L甫三年見佛現光明經凾上有火團如
008_0507_b_17L彈子陶恐燒經急以手撲乃得舍利
008_0507_b_18L一顆臥終時化佛來迎

008_0507_b_19L
元鄞縣寶幢市周婆精修淨土遇歲首
008_0507_b_20L持不語晝夜常坐盡月而止遇暑月
008_0507_b_21L則施茶湯歷久不廢一夕夢大荷葉
008_0507_b_22L覆一市覺自身持數珠行道葉上
008_0507_b_23L而微疾隣人見幢盖入其家黎明婆已
008_0507_b_24L念佛而逝

008_0507_c_01L
 24. 명明 설薛씨는 무당武塘 세족世族의 딸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샛별(長庚)358)이 몸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후에 주생周生에게 시집가 아들 다섯을 낳고 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수절하면서 몸소 관음보살께 향불을 공양하고 서원하자 향 연기가 연꽃에 서려 사람들이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정토업에 전일한 마음을 가지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게으르지 않았고 15년 동안 한결같이 염불을 하였다.
만력 정해년(1587년) 5월에 병을 얻었는데도 곡기와 약을 물리쳤다. 9월 6일에는 스님을 청해 예참을 행하며 말하기를 “4일이면 내 일을 마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곧 서쪽을 향하여 미타상을 마주하고 밤낮 계념繫念359)하며 여러 아들에게 부탁하여 찬송을 도우라고 하였다. 깨끗한 옷(淨衣)을 입고 지공의 모자(誌公帽)360)를 쓰고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찬불게를 염송하며 삼귀의를 불렀다. 또 염주를 굴리며 백팔 번을 염불하였다. 정오가 되어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는데 연꽃 향이 방안에 가득했다.361)
 25. 명明 우于 노파는 창평주昌平洲 소촌邵村 사람 우귀于貴의 어머니로, 오랫동안 염불 공덕을 쌓았다. 하루는 옷을 빨아 지극히 정결하게 하고서 아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곧 정토에 날 것이다.”라 하였으나 아들은 믿지 않았다. 기한이 되자 궤几362)를 뜰 가운데 놓고 그 위에 앉아 입적하였다. 기이한 향과 하늘음악이 이웃에 다 퍼졌다.363)
 26. 명明 방方씨는 제생諸生 오응도吳應道의 아내이다. 삼십에 과부가 되어 수절하였으며, 불교에 귀의하여 정토를 전일하게 닦았다. 어떤 노파 또한 재계齋戒하면서 방 씨와 서로 의지하였다. 그런 지 거의 20년이 흘러 만력 을유년(1585년), 나이 50세에 때 작은 병이 있어 노파를 불러 서로 마주하고 염불을 그치지 않았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른 일도 하지 않았다. 죽기 하루 전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향을 피우며 예불하였다. 둘은 평상에 마주 앉아 함께 세상을 떠났다. 아들 용선用先은 진사에 오른 사람으로 성품이 곧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 일을 적어 명銘에 새기기를 부탁했다고 한다.364)
 27. 명明 장모張母 도陶씨는 장수長水의 수령인 약約 거사의 둘째 부인이다. 거사가 불법을 받들자 부인도 교화되어 염송을 일과로 하였는데 거르는 일이 없었다. 거사가 보타사普陀寺에 예불하러 나간 사이 부인은 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시심작불 시심시불是心作佛 是心是佛’365)이라는

008_0507_c_01L
明薛氏武塘世族女也生時母夢長庚
008_0507_c_02L入懷後歸周生五子而寡秉節自誓
008_0507_c_03L供觀音香煙結蓮華人異之專心淨
008_0507_c_04L好施不倦念佛十五年如一日
008_0507_c_05L曆丁亥五月得疾遂絶粒屏藥至九月
008_0507_c_06L六日延僧禮懴且曰四日足吾事畢矣
008_0507_c_07L乃西向對彌陀像晝夜繫念囑諸子翊
008_0507_c_08L着淨衣戴誌公帽長跪佛前念讃
008_0507_c_09L佛偈唱三歸依輪珠念佛一百八徧
008_0507_c_10L逮午趺坐而化蓮華香滿室中

008_0507_c_11L
明于媼昌平州邵村于貴之母久積念
008_0507_c_12L一日浣衣甚潔謂其子曰予將生
008_0507_c_13L淨土子未信至期取几置庭心坐几
008_0507_c_14L上脫去異香天樂比隣皆聞

008_0507_c_15L
明方氏諸生吳應道室三十寡守志
008_0507_c_16L歸佛專修淨土一老媼亦齋戒相隨
008_0507_c_17L逐二十年萬曆乙酉年五十矣小疾呼
008_0507_c_18L老媼相對念佛不輟無一語及他務
008_0507_c_19L卒前一日沐浴更衣然香禮佛還坐
008_0507_c_20L一榻而逝子用先第進士質直不妄語
008_0507_c_21L狀其事乞傳銘云

008_0507_c_22L
明張母陶氏爲長水守約繼室居士奉
008_0507_c_23L氏化之日課誦無間居士出禮普
008_0507_c_24L母謂二子曰吾平日叅是心作佛

008_0508_a_01L두 마디 말을 참구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초나흘에 나는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약한 날이 되어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거사가 돌아와 염을 하였는데 갑자기 관에서 청련화 다섯 송이가 피어 올라 크게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아내의 도행道行이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겼다.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이를 보거나 듣고서 찬탄하여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366)
 28. 명明 중관中官 손명지孫名之의 어머니는 일생을 재계齋戒하고 염불하였다. 나이가 들어 작은 병이 있었는데 스스로 죽을 때를 미리 알아 아들에게 좌탈하겠노라고 말하였다. 아들이 흐느끼며 만류하였으나 막지 못하여 곧 감실을 만들었다. 약정한 날에 감실에 들어가 편안히 앉아 입적하였다.367)
 29. 명明 육모陸母 서徐씨는 청상과부로 정토업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 남편이 빌려준 돈 1천 금이 있었으나 차용증을 태우고 받지 않았으며 화장대와 장식한 옥경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언제나 불당에서 예송을 그치지 않았는데 이를 10년 동안이나 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는 홀연 시자를 불러 말하기를 “동쪽에서 빛이 나는 것을 보았느냐? 내가 기다렸던 왕생할 순간이 왔다. 너희들은 나를 도와 큰 소리로 염불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합장하며 입적하였다.368)
 30. 명明 유도융劉道隆의 어머니 이李씨는 사십 세로, 오랫동안 재계(長齋)369)하고 염불하며 조용한 방370) 한 칸을 마련해 두고 불보살상에 공양하며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였다. 매번 생일에 며느리에게 잔치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 동안 오직 예참371)을 하였는데, 이를 25년 동안이나 하였다. 임종하기 1년 전에 스님을 초대해 7일간 예참을 올렸다. 꿈에 보살(大士)이 염주 한 꾸러미를 잡고 보여 주며 “이를 너에게 주노라. 염주의 수는 곧 왕생의 기약이니라.” 하였다. 꿈속에서 세어 보니 53개였으나 그 뜻을 헤아릴 수는 없었다. 경자년 5월 13일이 되자 느닷없이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오늘 떠날 것이다. 온 가족이 큰 소리로 염불하여 나의 서방 왕생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였고 단정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372)
 31. 명明 진모陳母 주朱씨는 오군吳郡 사람으로 준천濬川 거사의 부인이다. 효성스럽고 자애로운 성품으로

008_0508_a_01L是心是佛二語今始悟初四日吾行矣
008_0508_a_02L及期端坐而逝次日居士歸成殮
008_0508_a_03L棺上出靑蓮華五朶居士大駭異自愧
008_0508_a_04L不知其道行如此遠近見聞無不嘆慕
008_0508_a_05L明中官孫名之母一生齋戒念佛年老
008_0508_a_06L微恙自知時至告其子欲坐脫子哀
008_0508_a_07L止之不得乃爲作龕至期入龕
008_0508_a_08L坐化去

008_0508_a_09L
明陸母徐氏孀居刻志淨業未有千
008_0508_a_10L金出貸焚券不取奩飾罄以施人
008_0508_a_11L于佛所禮誦不輟如是十載一夕忽
008_0508_a_12L呼侍人曰看東方光發否我待徃生時
008_0508_a_13L至矣汝軰可助我高聲念佛合掌而逝

008_0508_a_14L
明劉道隆母李氏年四十長齋念佛
008_0508_a_15L修靜室一間供佛菩薩像朝夕稱禮
008_0508_a_16L每誕日誡子婦母設慶席惟禮懴一
008_0508_a_17L日或三日如此者二十五年將終前一
008_0508_a_18L延僧禮懴七晝夜夢大士持素珠一
008_0508_a_19L示之曰以此授汝珠數乃徃生期
008_0508_a_20L夢中數之五十三顆不解其義
008_0508_a_21L庚子五月十三日忽告家人曰吾今日
008_0508_a_22L行矣可擧家大聲念佛助我西行
008_0508_a_23L面西念佛端坐而逝

008_0508_a_24L
明陳母朱氏吳郡人濬川居士室也

008_0508_b_01L평소에 삼보를 가까이하였다. 81세 되던 해 아들이 운서 대사의 설법에 참여하고 돌아와서 염불왕생을 인도하여 마침내 정토업淨土業에 뜻을 두었다. 두 해가 지난 후 병을 보였는데, 죽기 사흘 전 집 앞에서 어머니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람이 셋이 있었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푸른 옷을 입은 동자373) 두 명이 이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이때 병이 더욱 심해졌는데 갑자기 뛸 듯이 일어나 허리를 세우고 단정히 앉았다. 여러 아들이 누워 쉬도록 권하였는데 곧 가부좌(吉祥)한 채 입적하였다. 중당中堂374)에 시신을 안치하여 반듯이 눕히자 시신이 저절로 굴러 서쪽을 향하였다. 순간 사람들이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375)
 32. 명明 종鍾씨는 인화仁和 장후계張後溪의 둘째 부인이다. 40세에 남편을 잃고 그 뒤로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을 독실하게 믿기를 40여 년이나 하였다. 평시에는 항상 하늘음악이 공중에서 울리는 것을 들었고 밤에는 항상 문 밖에서 크게 나는 부처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문을 열어 보면 아무 자취가 없었다. 이와 같은 신이한 징조가 여러 번 나타났다. 태창 원년(1620년) 12월 16일 병이 들어 다음 해 새해 첫날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방 가득히 연꽃이 보이고 또 번개幡蓋376)가 침상 앞에 매달려 있다.”고 말하고는 염불하며 입적하였다.377)
 33. 명明 예장豫章 사람 양선일楊選一의 부인은 서른 살에 아들을 낳은 후 남편과 별거하였다. 그 후 첩을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로부터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하기를 기축년까지 15년간 하였다. 8월에 문득 등에 병이 나서 심한 통증이 뼛속까지 들어왔다. 그때 한 악귀가 칼로 등쪽 살을 자르자 큰 힘을 지닌 신(大力神)이 쫓아버리는 광경을 보았는데, 아픈 것이 씻은 듯 나은 듯했다. 남편에게 말하기를 “저는 이제 떠납니다. 동자 네 명이 맞이하러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남편은 병중의 잠꼬대인 줄 알고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이에 서방으로 간다고 말하고는 바로 입적하였다.378)
 34. 명明 강령江寧의 도인道人 탕湯 공보公甫의 어머니는 81세로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재계(長齋)하고 염불하였다. 매일 일과로 아침저녁으로 만 번 소리 내어 염불하였다. 경인년 새해 첫날 공보가 융오融悟와 관여觀如 두 계사戒師를 초빙하여 경건하게 대미타참大彌陀懺을 닦았다.

008_0508_b_01L孝慈天植素向三寶年八十一其子
008_0508_b_02L叅雲棲歸導以念佛徃生遂篤志淨業
008_0508_b_03L越二載示疾卒之前三日堂前大呼母
008_0508_b_04L名者三母云有二靑衣在此時病久孱
008_0508_b_05L忽躍起竪脊端坐諸子勸其寢息
008_0508_b_06L乃吉祥而逝迎尸中堂仰臥之尸自
008_0508_b_07L轉向西一時人以爲駭異焉

008_0508_b_08L
明鍾氏仁和張後溪之繼室年四十夫
008_0508_b_09L遂持長齋篤信念佛者四十餘載
008_0508_b_10L居常聞天樂鳴空又夜常聞戶外佛聲
008_0508_b_11L浩浩啓視杳無人跡如是異徵屢屢
008_0508_b_12L槩見泰昌元年臈月十六日臥病次年
008_0508_b_13L元旦謂家人曰見徧室蓮華并有幡
008_0508_b_14L縣于床前念佛而化

008_0508_b_15L
明豫章人楊選一妻三十生子後即與
008_0508_b_16L夫別居聽其置妾自日長齋念佛
008_0508_b_17L己丑十五年矣八月忽生發背痛楚入
008_0508_b_18L見一惡鬼以刀割其背肉有大力
008_0508_b_19L駈之去苦若脫謂夫曰吾將行矣
008_0508_b_20L有童子四人相迎夫疑病中囈語問何
008_0508_b_21L荅曰徃西方遂化

008_0508_b_22L
明江寧湯道人公甫母八十一歲向來
008_0508_b_23L長齋念佛每晨夕萬聲爲課庚寅元旦
008_0508_b_24L公甫請融悟觀如兩戒師虔修大彌陀

008_0508_c_01L초나흘 오경에 단壇에 나아갔는데 당 도인唐道人이라는 자가 단 밖에서 죽음을 알리는 종을 쳤다. 해 뜰 무렵 백학 수십 마리가 지붕 위를 빙빙 돌았다. 단 안에 있던 승속의 사람들이 모두 연꽃이 부처님 자리에서 피어나고, 금빛이 안팎으로 허공을 비추며, 산하와 대지가 떨어지거나 막힘없이 확 뚫려 보여 단 아래에서 바야흐로 흩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이것은 모두 탕 어머니가 정토를 정성껏 닦은 결과 나타난 징표들이다. 그분이 상품上品에 왕생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당의지唐宜之가 본 바를 적어 놓았다가 실을 책을 구하였다.379)
 35. 청清 여요餘姚의 서徐씨는 오산烏山의 호진악胡振嶽에게 시집가 살았다.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두었고 40여 세에 남편을 잃었다. 그 뒤로 집안일을 자식들에게 맡기고 규방에 깊이 들어가 지극한 마음으로 미타불을 천 번 소리 내어 예념하기를 20여 년 동안 하였다. 하루는 아무런 병이 없었는데 문득 가족을 불러 말하기를 “금빛 동자(金童) 여럿이서 보개寶蓋를 들고 나를 맞이하는구나. 사흘 뒤에 함께 갈 것이다.”라 하였다. 약속한 날 가족들을 불러 작별 인사할 때, 사람은 마땅히 염불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른 자세로 앉아 입적하였다.380)
 36. 청清 항군杭郡의 태군太君381)인 강江씨는 인공엄訒公嚴 선생의 계비繼妃요 도련都諫 호정공灝亭公 항沆의 생모이다. 태군은 명망 있는 집안 출신으로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정숙했으며 인자하였다. 15세에 인공에게 시집가서 웃어른을 효성으로 섬기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기를 무릇 50여 년간 하였다. 처음에 인공이 연지蓮池 대사에게 귀의하여 정토를 독실하게 믿자 청년이었던 태군 또한 가르침을 받들어 경건하게 닦았다. 매일 닭이 울 때 일어나 부처님 앞에 몸을 펴서 무릎을 길게 꿇고(長跪), 경을 염송하며 염불을 소리 내어 천 번씩 하였다. 언제나 저녁 일에 노비를 깨우지 않았고, 어떤 이가 사서 고생하지 말라 하니, “이만한 일로 너희들에게 누를 끼친다면 어찌 불도를 배우는 사람이라 하겠느냐.”라고 하였다. 강희 무신년(1668) 3월 6일 새벽에 일어나 여느 때와 같이 예불을 하고서 아침이 되자 병으로 누웠다. 문득 큰 소리로

008_0508_c_01L以初四日五鼓進壇有唐道人者
008_0508_c_02L在壇外打報鍾平明見白鶴數十旋繞
008_0508_c_03L屋上壇內緇素悉見蓮華生佛座下
008_0508_c_04L內外金光覆空山河大地了無隔礙
008_0508_c_05L下壇方散此皆湯母虔修淨土之現證
008_0508_c_06L其徃生上品必矣唐宜之目擊
008_0508_c_07L已求書

008_0508_c_08L
太淸餘姚徐氏適烏山胡振嶽擧四子
008_0508_c_09L一女年四十餘夫喪遂託委家事
008_0508_c_10L居閫內至心禮念彌陀佛千聲如是者
008_0508_c_11L二十餘載一日無疾忽謂家人曰
008_0508_c_12L有金童執寶盖迎接越三日當與偕
008_0508_c_13L届期呼家人囑訣曰人當念佛
008_0508_c_14L坐而逝

008_0508_c_15L
太淸杭郡太君江氏訒公嚴先生繼配
008_0508_c_16L都諫灝亭公抗之生母也太君產於望
008_0508_c_17L賦質賢淑秉性仁慈年十五適訒
008_0508_c_18L孝以承先慈以逮下凡五十餘年
008_0508_c_19L初訒公歸依蓮池大師篤信淨土太君
008_0508_c_20L方靑年亦奉敎虔修每鷄鳴輙起
008_0508_c_21L跪佛前誦經念佛千聲凡諸夜役
008_0508_c_22L呼睡婢或勸無自苦曰以此累若軰
008_0508_c_23L豈學道人所宜康熙戊申三月六日
008_0508_c_24L課一如平時達且仍寢疾忽大聲曰

008_0509_a_01L“관음보살님이 오신다.” 하고 목욕하여 몸을 정결케 한 후 잠이 든 채 세상을 떠났다.382)
 37. 청清 심이생沈易生의 부인 부傅씨는 법명이 덕련德蓮으로 평소 믿음이 돈독하여 계율을 지키고(持齋) 염불을 하였다. 심이생은 소경으로 점을 쳐 얻은 것을 모두 스님에게 공양하였다. 사방의 떠돌이 스님들(瓢衲)이 소문을 듣고 모두 찾아왔는데 부씨는 귀찮게 여기지 않고 정성스레 공양하기를 16년이나 하였다. 강희 임자년(1672년) 7월에 가벼운 병이 들었다. 윤7월 초하룻날 머리를 깎고 목욕한 후 옷을 갈아입고 친척들에게 말하기를 “이곳에 어떤 금동金童이 나를 맞이하러 온다.”고 하였다. 부축하여 몇 발짝 가다가 다시 앉아 합장하고 염불하며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 첨산瞻山의 법경法慶 화상이 그를 위해 게를 지었다.

老婆弘願自剛强  노파의 큰 서원 굳고 굳세어
典座行堂一力當  전좌典座383)와 항당行堂384) 일 혼자 해냈네.
大道本無男女相  깨달음(大道)은 본래 남녀 차별상 없고
眞心不落斷常坑  진심은 단견斷見 상견常見의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는다네.
生前夙植華開日  생전에 일찍 심은 연꽃 피는 날
展臂高超徃上方  팔 벌려 저 높이 상품에 오르리니
豈讓靈昭能撒手  어찌 영소靈昭385)를 양보하고 손 놓을(撒手)386) 수 있으리오.
蓮生火內更馨香  연꽃이 불꽃 속에서 피어 향기까지 풍기네.387)

악인이 왕생한 이야기
 1. 당唐 유공惟恭은 법성사法性寺에 살면서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아랫사람을 깔보며 비행을 일삼는 사람들과 친하였고, 술 좋아하는 무리와 성문 근처에서 모여 어울렸다. 다만 여가에는 염불을 하였다. 그 절 영규靈巋 스님이 악한 짓을 같이 하며 어울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영규가 악을 짓고 유공이 따라 하니 천 길 지옥에 함께 빠져도 부족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유공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나는 비록 악업을 쌓아 죄를 피할 수 없어도 정토의 교주 아미타불께서 허물을 가엾게 여겨 도탄지옥에서 빼 주시리니 어찌 악도에 떨어질 수 있겠느냐.”라고 하였다.
건녕乾寧 2년(895년)에 유공의 병이 깊어졌다. 영규가 밖에서 돌아올 때 화려한 옷을 입은 나이어린 영인伶人388) 몇 명을 보았다. 그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유공 스님을 맞이하러 서쪽에서 왔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 품 안에서

008_0509_a_01L觀音菩薩來矣湯浴淨體就枕而逝

008_0509_a_02L
太淸沈易生妻傅氏法名德蓮素敦
008_0509_a_03L信向持齋念佛沈以瞽者賣卜所得
008_0509_a_04L悉以飯僧四方瓢衲聞風沓至傅氏
008_0509_a_05L不憚勞苦而虔供者十有六載康熙
008_0509_a_06L壬子七月小疾至閏七月初一索浴更
008_0509_a_07L謂親屬曰此有金童來相接引
008_0509_a_08L行數步復坐合掌念佛瞑目而逝
008_0509_a_09L山法慶和尙爲說偈曰老婆弘願自剛
008_0509_a_10L典座行堂一力當大道本無男女相
008_0509_a_11L眞心不落斷常坑生前夙植華開日
008_0509_a_12L臂高超徃上方豈讓靈昭能撒手蓮生
008_0509_a_13L火內更馨香

008_0509_a_14L

008_0509_a_15L惡人徃生類

008_0509_a_16L
唐惟恭住法性寺慢上凌下親狎非
008_0509_a_17L酒徒愽侶交集于門暇則念佛
008_0509_a_18L僧靈巋者同惡相濟里人爲之語曰
008_0509_a_19L靈巋造惡惟恭繼跡地獄千重莫厭
008_0509_a_20L雙入恭聞曰我雖積業罪無所逃
008_0509_a_21L賴淨土敎主憫我愆尤拔我塗炭
008_0509_a_22L墮惡道耶乾寧二年病革巋自外還
008_0509_a_23L見伶人數軰少年麗服問所從來
008_0509_a_24L曰西來迎恭上人耳一人懷中出金

008_0509_b_01L금으로 된 병을 꺼내는데 주먹처럼 오므려져 있던 병 속의 연꽃이 갑자기 쟁반처럼 커지며 광채가 섞여 비추었다. 영인들은 절 쪽으로 빠르게 향해 가더니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영규가 절에 이르자 종소리가 들려왔는데 유공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389)
 2. 당唐 장선화張善和는 소 잡는 일을 생업으로 하였다. 임종할 때 소 떼가 인간의 말로 내 목숨 자리를 내어놓으라고 하였다. 선화가 크게 놀라 아내에게 이르기를 “어서 빨리 스님을 청해 나를 위해 참회해 주시오.”라고 하였다. 스님이 이르러 깨우쳐 주기를 “『십육관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임종할 때 지옥이 보이면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라. 그리하면 정토에 왕생할 것이다’라 하였소.”라고 하였다. 선화가 곧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향로를 취할 시간이 없어 왼손으로 불을 높이 들고 오른손으로 향을 쥐고 서쪽을 마주하고 오로지 미타를 간절하게 염송하였다. 염불을 열 번도 하기 전에 “아미타불께서 서방에서 오셔서 나에게 보좌를 주신다.”라고 하면서 말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390)
 3. 송宋 중명仲明은 산음山陰 보은사報恩寺에 살았는데 평소 계를 지키지 않았다. 병이 들어 동학인 도녕道寧에게 “지금 내 마음(心識)이 산란하니 무슨 약으로 고칠 수 있을까?”라고 묻자 도녕은 수식염불隨息念佛391)을 가르쳐 주었다. 중명은 알려준 대로 7일 동안 하여 힘이 떨어져 피곤하였으나, 도녕은 다시 눈앞에 불상이 있는 광경을 관상하도록 하였다. 이를 오랫동안 하자 갑자기 두 보살과 부처님을 뵙고서 눈을 감은 채 세상을 떠났다.392)
 4. 송宋 오경吳瓊은 임안臨安 사람으로 승려가 된 후 환속한 인물이다. 두 부인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는데 짐승을 잡고 술을 파는 일을 가리지 않았다. 매번 주방에서 닭이나 오리 등을 잡을 때면 곧 손으로 잡은 채 부르기를 “아미타 부처님, 이 몸 벗고 떠나기 원합니다.”라 하며 부처님 명호를 계속 불렀다. 이어 칼을 빼어 고기를 자를 때마다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그 후 눈에 계란 같은 혹이 났는데, 이를 매우 두려워하여 초암草庵을 얽어 만들고 아내와 자식과 헤어진 후, 염불하고 예참하기를 늘 부족한 듯이 열심히 하였다. 소흥 23년(1153년)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008_0509_b_01L瓶中蓮華其合如拳俄增大如盤
008_0509_b_02L光彩交映望寺疾馳而不見巋至寺
008_0509_b_03L聞鍾聲恭已逝矣

008_0509_b_04L
唐張善和殺牛爲業臨終見羣牛
008_0509_b_05L人語索命善和大恐告妻云急請僧
008_0509_b_06L爲我懴悔僧至而諭之曰十六觀經中
008_0509_b_07L若人臨終地獄相現至心十稱南
008_0509_b_08L無阿彌陀佛即得徃生淨土善和云
008_0509_b_09L便入地獄也不暇取香爐即以左手擎
008_0509_b_10L右手拈香面西專切念彌陀未滿
008_0509_b_11L十聲乃云我見阿彌陀佛從西方來
008_0509_b_12L與我寶座言訖而逝

008_0509_b_13L
宋仲明居山陰報恩寺素行踰檢
008_0509_b_14L感疾謂同學道寧曰我今心識散亂
008_0509_b_15L何藥可治寧敎以隨息念佛明如所敎
008_0509_b_16L至七日力已困憊寧又令想目前佛像
008_0509_b_17L久之忽見二菩薩次復見佛瞑目而逝

008_0509_b_18L
宋吳瓊臨安人先爲僧退道返俗
008_0509_b_19L後兩娶生二子屠沽之事靡所不爲
008_0509_b_20L常庖厨殺雞鴨等則持而唱云阿彌陀
008_0509_b_21L子好脫此身去連稱佛號乃施刃
008_0509_b_22L每切肉念佛不輟後目上生瘤如雞
008_0509_b_23L1)遂大悕搆草庵散妻子念佛禮
008_0509_b_24L懴如不及紹興二十三年告人云

008_0509_c_01L“나는 내일 술시(戌時, 저녁 7~9시)에 떠날 것이다.”라 하자 남들이 다 웃었다. 다음 날 늦게 베옷을 술로 바꿔 다 마신 뒤에 게송을 썼다.

似酒皆空     술처럼 모든 것은 공空하니
問甚禪宗     선종禪宗이란 무엇인가 묻노라.
今日珎重     오늘 유의해 보라
明月淸風     맑은 달과 시원한 바람이니라.

그 후 단정히 앉아 염불하고 “부처님이 오신다.”라고 하며 입적하였다.393)
이러한 작용을 갖추었다면 마군의 경지에 들어갈 수도 있고 부처의 경지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니, 이는 큰 근기를 지닌 사람이다.
 5. 송宋 금석金奭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고기잡이였다. 문득 크게 반성하고 지계持戒하여 정진하였다. 일과로 부처님 명호를 만 번 불렀고 이를 오랫동안 변함없이 하였다. 후에 아픈 곳이 없었는데 가족에게 말하기를 “아미타부처님과 두 보살이 함께 나를 영접하러 오셔서, 나는 정토로 돌아간다.”라고 하며 향을 사르고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394)
 6. 송宋 상우上虞 사람 풍민馮珉은 어릴 적 사냥을 좋아하여 큰 뱀을 보면 창으로 쫓아가서 찔렀다. 언젠가 뱀이 바위 밑에 있다가 송아지를 물려고 할 때 풍민이 바위를 밀어 깔려죽게 하였다. 뱀의 혼령이 자주 재앙을 끼치자 풍민은 예참을 닦아 염불하였고, 해가 지나도록 뱀이 해치지 못하였다. 하루는 스님을 청하여 『미타경』을 독송하도록 한 뒤에 합장하고 입적하였다.395)
축생이 왕생한 이야기
 1.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의 이야기다. 어떤 용이 금시조金翅鳥에게 말하기를 “나는 본래 용으로 태어났으나 한 번도 살생을 해본 적이 없다. 좋은 물에 살면서(觸嬈水性)396) 수명을 마친 후 마땅히 아미타 부처님 나라에 나리라.” 하였다.397
 2. 당唐 정원貞元 연간(785~805년)에 하동河東의 배裴 씨는 앵무새를 길렀는데, 그 새는 항상 염불하며 정오가 넘으면 먹지 않았다. 임종할 때 십념十念을 하고 숨이 끊어졌다. 화장하여 사리 십여 개를 얻었는데 찬란하게 눈을 비추었다. 혜관慧觀 스님이 옹기로 탑을 세워 신이함을 밝혔고 성도成都의 윤위고尹韋臯가 기記를 지었는데 “무념無念에서 공상空相을 깨달았고 죽은 자리에서 진골眞骨을 남겼네.”라는 구가 있다.398)


008_0509_c_01L來日戌時去也人皆笑之次晩以布衫
008_0509_c_02L換酒飮畢書頌云似酒皆空問甚禪
008_0509_c_03L今日珎重明月淸風端坐念佛
008_0509_c_04L云佛來也即化去具此作用可以入魔
以入佛是大根器人

008_0509_c_05L
宋金奭會稽人網魚爲業忽猛省持
008_0509_c_06L戒精進日課佛號萬聲久而弗替
008_0509_c_07L無疾語家人云阿彌陀佛與二菩薩
008_0509_c_08L俱來迎我我歸淨土焚香端坐而化

008_0509_c_09L
宋上虞民馮珉少事游獵見巨蛇
008_0509_c_10L矟徃刺之時蛇在巖下欲噬黃犢
008_0509_c_11L推巖壓之至死蛇屢爲祟珉修懴念佛
008_0509_c_12L經年蛇不能害一日請僧誦彌陀經
008_0509_c_13L合掌而化

008_0509_c_14L

008_0509_c_15L畜生徃生類

008_0509_c_16L
菩薩處胎經云有一龍子謂金趐鳥曰
008_0509_c_17L我自受龍身未曾殺生觸嬈水性
008_0509_c_18L終之後當生彌陀佛國

008_0509_c_19L
唐貞元中河東裴氏畜鸚鵡常念佛
008_0509_c_20L過午不食臨終十念氣絕火化之
008_0509_c_21L舍利十餘粒烱然耀目僧慧觀用陶
008_0509_c_22L甓建塔以㫌其異成都尹韋皐爲之
008_0509_c_23L有了空相於無念留眞骨於已斃之
008_0509_c_24L「卯」一疑「卵」{編}

008_0510_a_01L
 3. 송宋 황암黃巖 정등사正等寺의 관觀공은 구관조(鴝鵒)399)를 길렀는데 그 새는 말도 할 줄 알아 항상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선 채로 죽어 구덩이를 파고 묻었는데 갑자기 혀끝에서 자주빛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영지靈芝 율사가 이를 위하여 찬을 지었는데, “새가 죽어 새장 닫는 것이야 평범한 일이지만, 자색 연꽃 피어남은 크게 기이한 일이네.”라는 구가 있다.400)
 4. 옛적 담주潭州의 한 스님이 구관조를 길렀는데, 시골에서는 ‘빠거(八哥兒)’라고 불렀다. 이 새는 항상 염불하였으므로 죽었을 때 관에 넣어 장사를 지내 주었는데, 홀연 연꽃 한 송이가 입에서 나왔다. 이에 기리는 노래(頌)를 지었다.

有一靈禽號八哥  팔가八哥라 불리는 영험한 새 한 마리
解隨僧口念彌陀  스님 말 알아듣고 미타를 염불했지
死埋平地蓮華發  죽어 땅에 묻을 때 연꽃이 피어나니
人不回心爭奈何  사람들 회심하지 않고 어찌 하리오.

삼가 아미타 세존의 말씀을 살펴보면 서원하신 중에 “내 이름을 부르는 중생이 있으면 반드시 나의 국토에 태어나게 하리라.”고 하였다. 무릇 중생이라는 것은 위로는 천인天人401)으로부터 아래로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보면 곧 이 구관조는 반드시 서방에 나서 가릉빈가 등과 함께 법음을 함께 부를 것이니, 어찌 사람이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 일은 『담주지潭州誌』에 실려 있고, 아직까지도 그 성문의 이름을 ‘빠빠(八八)’라 부른다고 한다.402)
 5. 명明 숭정崇禎 연간(1628~1644년)에 오설애吳雪崖 공은 복주福州의 사리司理403)였다. 평생 여래를 정성껏 받들어 개원사開元寺에 갈 때마다 예불하고 경을 읽었다. 평소에 성省의 승려들 중에 파 마늘을 먹는 자가 많고 심지어 본사에서는 가축을 도축하는 자까지 있다는 말을 듣고, 오공은 독무督撫404)를 청하여 입석을 엄정하게 표시하여 그러한 행위를 금지하였으나 완고한 풍습을 다 바꿀 수는 없었다.
하루는 공이 선당에서 염불할 때 닭 한 마리가 염불 소리를 듣고 따라하였다. 공은 “너희들이 절에 오랫동안 가축을 기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닭소리가 나느냐?”라고 꾸짖고 닭을 찾아내었다. 공이 염불하면 닭도 따라 염불하니 이에 승려들을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이제 보니 짐승들도 오히려 불성이 있거늘, 너희 승려라 하는 것들이 파계를 하고 있으니 정말로 짐승보다 못하도다.

008_0510_a_01L句云

008_0510_a_02L
宋黃巖正等寺觀公畜鴝鵒能言常念
008_0510_a_03L佛不輟一日立化穴土葬之俄舌端
008_0510_a_04L出紫蓮華一朶靈芝律師爲之讃
008_0510_a_05L立亡籠閉渾閑事化紫蓮花也大奇句

008_0510_a_06L
昔潭州僧有養鴝鵒者土號八哥兒
008_0510_a_07L常念佛旣斃以棺葬之忽生蓮華一
008_0510_a_08L自其口出有頌云有一靈禽號八
008_0510_a_09L解隨僧口念彌陀死埋平地蓮華發
008_0510_a_10L人不回心爭奈何謹按彌陀世尊有誓
008_0510_a_11L願云衆生念我名者必生我國凡言
008_0510_a_12L衆生者上自天人下至昆蟲皆是
008_0510_a_13L此觀之則此鴝鵒必生西方與頻伽
008_0510_a_14L唱和法音可以人而不如鳥乎
008_0510_a_15L載潭州志至今以八八名其城門云

008_0510_a_16L
明崇禎間吳雪崖公爲福州司理
008_0510_a_17L平虔奉如來每徃開元寺禮佛諷經
008_0510_a_18L素聞省僧多茹葷而本寺尤有蓄牲宰
008_0510_a_19L殺者公爲請督撫嚴示立石以禁止
008_0510_a_20L頑風未能盡革一日公在禪堂念佛
008_0510_a_21L一雞聞之亦念佛公詰曰汝軰云
008_0510_a_22L中久不蓄牲矣如何有雞索得之
008_0510_a_23L念佛雞仍念佛乃痛責僧曰今觀畜
008_0510_a_24L尙有佛性汝軰薙髮破戒不若畜

008_0510_b_01L지옥에 떨어질 것을 어찌 의심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승려들이 모두 울며 참회하고 사죄하며 말하기를 “저희들은 이제부터 큰 서원을 세워 성실하게 재계齋戒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성省의 모든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서 지극히 조심하였고 승려들도 이 때문에 크게 변하였다.
공은 이 닭을 관청에서 길렀는데 여전히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후에 관직이 바뀌어 닭을 가지고 단양丹陽에 이르러서 해회암海會庵에 보내었는데 이는 멀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닭이 해회암에 다다른 날 바로 염불하고 선 채로 죽으니 공이 나무 탑을 세워 기록하였다. 당의지唐宜之의 『건어승巾馭乘』에 나온다.405)
 6. 명明 강서江西 추자윤鄒子尹의 할아버지는 광동廣東의 병헌兵憲이 되었는데 참장參將 중에 삼세의 인연을 아는 이가 있었다. 그는 1세는 뱀이고, 2세는 서생書生이며, 3세는 곧 지금의 관직이라 하였다. 참장이 병사를 이끌고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러 갈 때 어느 산을 지나면서 군사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전생에 이 산의 뱀이었다. 이제 이 산을 지나면서 옛 무리를 보고자 하니 너희들은 절대 놀라지 말라.” 하였다. 동굴에 들어가 보니 뱀들이 무수히 많았다. 참장은 뱀이 알아듣는 말로 “나는 옛날 너희들과 같이 여기에서 살았는데 다만 염불 한 마디를 할 줄 알아서 사람으로 태어나 지금은 대장이 되었다. 너희들은 어찌 염불하여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뱀들은 머리를 숙여 가르침을 받는 모양을 지었다. 싸움에 이겨 돌아오는 날 다시 동굴에 들어가 보니 수많은 뱀이 다 죽어 있었으니, 염불에 응하여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추공이 듣고서 신기하게 생각하여 일의 내막을 적어 전하였다.406)
 7. 청清 항군杭郡 보자사普慈寺의 천일天一 스님은 개 한 마리를 길렀다. 매번 연사蓮社에서 대중들이 모여 경을 독송하고 염불하면 개는 곧 웅크리고 엎드려 조용히 듣기를 몇 년간 하였다. 강희 5년(1666년) 6월 6일 세속의 예에 따라 고양이와 개를 함께 목욕시키고 관습대로 이 개를 못에서 목욕시켰는데 다음 날 새벽에 변소에서 죽었다. 스님들이 불쌍히 여겨 삼귀의를 설하고 주문을 외며 화장하려 하였는데, 개가 갑자기 일어서서 법음을 다 듣고는 다시 앞발을 모으고

008_0510_b_01L生多矣墮落何疑僧皆涕泣懴謝曰
008_0510_b_02L某等從此發大誓願誠實齋戒矣通省
008_0510_b_03L聞風至儆沙門爲之一變公養此雞于
008_0510_b_04L署中恒念佛不輟後轉官携至丹陽
008_0510_b_05L送入海會庵爲其使遠近生信也雞至
008_0510_b_06L庵日卽念佛立化公爲樹塔誌焉
008_0510_b_07L唐宜之巾馭乘

008_0510_b_08L
明江西雛子尹祖爲廣東兵憲有叅將
008_0510_b_09L自知三世因一世爲蛇二世爲書生
008_0510_b_10L三世即今職因提兵征洞蠻過一山
008_0510_b_11L諭軍士曰我夙世曾於此山爲蛇今欲
008_0510_b_12L進山視舊屬汝軰勿驚怖也入見洞中
008_0510_b_13L蛇無數叅將作蛇語謂之曰我昔與
008_0510_b_14L並生于此只因我能念佛一聲
008_0510_b_15L得生人中今爲大將爾等何不念佛
008_0510_b_16L求脫此苦耶蛇俯首作受敎狀凱旋日
008_0510_b_17L復入洞察之則萬蛇皆死應以念佛
008_0510_b_18L化去矣雛公聞而異之述其事以傳

008_0510_b_19L
太淸杭郡普慈寺僧天一畜一犬每遇
008_0510_b_20L蓮社衆信齊集誦經念佛犬即蹲伏
008_0510_b_21L而靜聽者有年矣康熙五年六月六日
008_0510_b_22L俗例猫犬同浴徇例浴此犬于池次早
008_0510_b_23L死于圊側僧衆憐之爲說三歸依
008_0510_b_24L呪欲焚犬忽起立聽法音竟復合前

008_0510_c_01L합장하는 것처럼 엎드리니 대중들이 놀라 찬탄하였다. 개가 이러한 신이함을 보인 것으로 보아, 평소 웅크리고 엎드릴 때는 반드시 정성을 다해 믿고, 비록 말은 하지 못하나 마음으로는 스스로 묵묵히 염念하였을 것이다. 안양국에 왕생하여 상선인上善人이 되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개도 오히려 이렇게 감응을 나타내는 신기한 자취가 있는데, 사람으로서 정토를 닦지 않는 자는 다시 또 어찌할 것인가?
천일이 이를 기려 노래하였다.

荒荒古苑半蘼蕪  거칠어진 옛 동산엔 궁궁이(蘼蕪)407)만 무성한데
幸有靈尨義未辜  다행히 신령스런 개가 있어 의리 저버리지 않았구나.
踏徧苔蘚迎善客  이끼 두루 밟으면서 선업 쌓는 손님들 맞이하고
吠殘蘿月警頑夫  달을 보고 짖어대어 어리석은 이 놀라게 하네.
遺駭自把眞心顯  껍데기 남기던 날 참된 마음 드러내니
公案誰參佛性無  개는 불성 없다는 말 그 누구의 공안인가?
多載盡誠緣忽謝  오래토록 정성 다하다가 인연 따라 홀연히 몸을 바꾸니
茶毗莫異海山狐  다비는 해산의 여우408)와 다름없이 하리라.

특별히 기록하건대, 이 개의 행적은 앵무새, 구관조와 함께 모두 영원토록 전할 것(垂不朽)이다. 그러나 두 새는 오히려 염불 소리가 입에서 나왔지만 개는 오직 묵지黙持하였으니 이는 실로 예로부터 매우 드문 이적이로다.409)
남은 이야기
요주饒州 군전軍典 정린鄭隣이 잘못 쫓겨 가서 저승에 이르렀다가 다시 풀려 돌아올 때 염라대왕이 말하였다.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서 힘써 착한 일을 하라. 만약 남들이 살생하는 것을 보거든 다만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라. 그리하면 죽은 것들도 왕생할 것이고 너는 복을 얻으리라.”
이를 미루어 보면,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진실로 죽은 이도 천도할 수 있고 복과 수명을 늘일 수 있으니, 후생에 서방에 왕생하는 효험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겠다.410)
왕생정토다라니
나모아미다바야 南無阿彌多婆夜  (一)
다타가다야 哆他伽哆夜      (二)
다지야타 哆地夜他        (三)
아미리도바비 阿彌利都婆毗    (四)
아미리다 阿彌利哆        (五)

008_0510_c_01L而伏如合掌然一衆驚嘆犬旣現
008_0510_c_02L此神異則知平日蹲伏時必竭誠信向
008_0510_c_03L口雖不能言而心自默念其徃生安養
008_0510_c_04L作上善人無疑矣犬尙有此現應奇跡
008_0510_c_05L人而不修淨土者更當何如耶天一爲
008_0510_c_06L之頌曰荒荒古苑半蘼蕪幸有靈尨義
008_0510_c_07L未辜踏徧苔蘚迎善客吠殘蘿月警頑
008_0510_c_08L遺骸日把眞心顯公案誰叅佛性無
008_0510_c_09L多載盡誠緣忽謝茶毘莫異海山狐
008_0510_c_10L錄之以與鸚鵡雊鵒並垂不杇然二
008_0510_c_11L猶能出口犬則惟是默持實亘古
008_0510_c_12L希有之異云

008_0510_c_13L

008_0510_c_14L拾遺

008_0510_c_15L
饒州軍典鄭隣誤追至陰府放還
008_0510_c_16L王告云汝還人間勉力爲善汝見人
008_0510_c_17L殺生但念阿彌陀佛與觀世音菩薩
008_0510_c_18L彼得受生汝亦得福由此推之足以
008_0510_c_19L見念阿彌陀佛誠可薦拔亡者增延福
008_0510_c_20L不獨後生西方也

008_0510_c_21L

008_0510_c_22L徃生淨土多羅尼

008_0510_c_23L
南無阿彌多婆夜 哆他伽哆夜
008_0510_c_24L地夜他 阿彌利都婆毗 阿彌利哆

008_0511_a_01L싯담바비 悉耽婆毗        (六)
아미리다 阿彌利哆        (七)
비가란제 毗伽蘭帝        (八)
아미리다 阿彌利哆        (九)
비가란다 毗伽蘭哆        (十)
가미니 伽彌膩          (十一)
가가나 伽伽那          (十二)
기다가례 枳哆伽利        (十三)
사바하 莎婆訶          (十四)

『용서정토문龍舒淨土文』에 말하였다.
“이 주문을 외우는 자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그 정수리에 항상 머무셔서 원한 맺힌 집의 해를 당하지 않고 현세에 안온하고 목숨이 다할 때 뜻대로 왕생케 하신다. 만약 20만 번을 채우면 보리의 싹이 움틀 것이요, 30만 번을 채우면 머지않아 아미타 부처님을 직접 뵐 것이다.”411)
연지蓮池 대사는 “이 주문은 여러 책에 구두句讀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번에 고본古本을 참고하여 바로잡았다.”라고 하였다.412)
강희康熙 25 병인년(1686) 초하初夏
전라도全羅道 낙안樂安 금화산金華山 징광사澄光寺 개간開刊
각수刻手 - 도준道俊 만원萬源 여감麗瑊 문찬文粲
화사化士 - 인희印熙

008_0511_a_01L 悉耽婆毗 阿彌利哆 毗伽蘭帝
008_0511_a_02L 阿彌利哆 毗伽蘭哆 伽彌膩

008_0511_a_03L伽伽那
枳哆价利
莎婆訶

008_0511_a_04L
龍舒淨土文曰誦此呪者阿彌陀佛
008_0511_a_05L常住其頂不令寃家爲害現世安穩
008_0511_a_06L命終任意徃生若滿二十萬遍即菩
008_0511_a_07L提芽生三十萬遍不久面見阿彌陀
008_0511_a_08L蓮大師云此呪諸本句讀稍異
008_0511_a_09L今依古本以正

008_0511_a_10L
淨土寶書終

008_0511_a_11L
008_0511_a_12L
康熈二十五年丙寅初夏全羅道樂安
008_0511_a_13L華山澄光寺開刊

008_0511_a_14L
刻手道俊萬源麗瑊文粲

008_0511_a_15L
化士印熈
  1. 4)인지因地 : 전생담. 부처가 되기 위한 원인으로서의 수행의 자리. 성불하기 전 불도를 수행하는 지위를 말한다. 성불한 지위, 즉 부처님의 지위를 과지果地, 과상果上이라 하는 것과 상대적인 표현이다.
  2. 5)무쟁념無諍念 : 아미타불이 과거세에 전륜왕이었을 때의 이름이다.
  3. 6)4천하四天下 : 사대주四大洲라고도 한다. 수미산의 사방에 4개의 대주大洲가 있다. 남을 섬부주贍部洲, 동을 승신주勝身洲, 서를 우화주牛貨洲, 북을 구로주瞿盧洲라 한다.
  4. 7)항하사 아승기겁恒河沙阿僧祇劫 : 항하사는 항하의 모래라는 뜻. 무량 무수의 큰 수를 표현하는 말이다. 아승기겁이란 겁의 수가 아승기라는 말이다. 아승기는 셀 수 없이 큰 수를 말한다.
  5. 8)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 : 아미타불. 전륜성왕과 보해가 모두 보장여래에게 성불하려는 발원을 하였는데, 전륜성왕은 청정장엄세계에서 성불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를 발원하고 정토 극락세계에서 성불하여 아미타불이 되고, 보해는 오탁고뇌세계에서 성불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를 발원하고 예토 사바세계에서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이 되었다.
  6. 9)원문에는 마니摩尼 태자로 나와 있으나 『정토전서』(X62, 147a06)에 따라 니마尼摩로 정정한다.
  7. 10)전륜성왕의 제1태자는 불순不眴이니 곧 관세음보살이고, 제2태자는 니마尼摩이니 곧 대세지보살이다. 제3왕자는 왕중王衆이니 곧 문수보살이고, 제8왕자는 민도泯圖이니 곧 보현보살이다.
  8. 11)상산사常山蛇 :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응하여 구원한다는 전설상의 뱀. 이 뱀의 머리를 치면 꼬리가,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비고,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응하여 서로 돕는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수미가 상응하는 진세陣勢를 비유한다.
  9. 12)계선사戒禪師 : 초당 때의 스님. 천자의 명을 받들어 한 달 30일을 매일 부처님 명호를 한 분씩 나누었는데, 초하룻날의 정광불에서부터 그믐날의 석가여래까지 매일 불보살 명호를 예배하여 인천人天의 복보福報를 닦았다.
  10. 13)서방을 찬탄하는 책 : 운서 주굉의 『운서법휘雲棲法彚』 기록이다. 『연지대사전집운서법휘蓮池大師全集雲棲法彙』의 『종범宗範』 권1에 “운서법휘기雲棲法彚記”로 나와 있다.
  11. 14)영수靈樹 : 영수 여민(靈樹如敏, ?~920년). 오대五代의 선승. 복건성 민천閩川에서 태어나 출가 후 복주福州의 장경 대안長慶大安에게 참예하고 그 법을 이었다. 후에 광동廣東 소주韶州 영수선원靈樹禪院을 세우고 남한국왕南漢國王 유엄劉龑의 귀의를 받았다.
  12. 15)운문雲門 : 운문 문언(雲門文偃, ?~949년). 당말 오대唐末五代의 선승. 운문종雲門宗의 시조. 중국의 고소姑蘇 가흥嘉興 사람. 처음 목주睦州의 도명道明을 찾고,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에게 참배하여 크게 깨달았다. 소주韶州 운문산 광태원光泰院에 있으면서 종요宗要를 말했다.
  13. 16)석지石芝 : 석지 종효(石芝宗曉, 1151~1214년). 중국 남송 때의 승려. 저서에 『낙방문류樂邦文類』 등이 있다.
  14. 17)중생본유불성력衆生本有佛性力 : 중생이 본래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는 힘.
  15. 18)미타자광섭취력彌陀慈光攝取力 :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의 광명을 섭취하는 힘. 자광慈光은 중생을 지켜 이끄는 자비의 빛이다.
  16. 19)신원염불공훈력信願念佛功勳力 : 믿음과 서원과 염불의 공덕이 주는 힘.
  17. 20)진실한 수행眞實修行 : 뜻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수행.
  18. 21)천마天魔 : 마왕魔王. 욕계의 꼭대기에 있는 제6천의 주인으로 이름을 파순波旬이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네 권속들을 없애고 궁전을 파괴할 것이라 생각하고 마군을 이끌어 수행하는 이를 시끄럽게 하며 정토를 방해하므로 천마라 한다.
  19. 22)정례頂禮 : 오체투지. 엎드려 머리를 땅에 붙이고 발밑을 우러러 절하는 방법.
  20. 23)『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佛經』(T12, 343a20).
  21. 24)밀지密持 : 비밀히 수지함.
  22. 25)회광일조回光一照 : 관련된 표현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가 있다. 이는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하여 수도하는 것. 자신의 지혜의 빛을 발하여,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진실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23. 26)밀밀密密히 : 고요하고 정밀하게. 비밀히.
  24. 27)투탈透脫 : 벗어난다는 뜻. 깨달음·해탈의 의미다.
  25. 28)불퇴지不退地 : 아비발치. 곧 불퇴의 지위를 말한다. 보살 초지初地의 지위를 말한다. 주 38 참조.
  26. 29)오역사중죄五逆四重罪 : 오역은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가장 중한 죄. 오역은 어머니를 살해하는 것,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 성자(아라한)를 살해하는 것, 부처님의 신체를 상처 입혀 출혈하게 하는 것, 교단의 화합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것. 사중은 여성과 통하는 것, 타인의 소유물을 훔치는 것, 사람을 죽이는 것, 자신이 성자라고 하며 거짓말을 하는 것.
  27. 30)오음五陰 : 오온五蘊.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28. 31)밀락(酪) : 우유를 발효시켜 마시기 쉽게 한 것. 힌두교에서는 오미五味의 하나로 사용한다.
  29. 32)『정토혹문淨土或問』(T47, 300c14~301a02).
  30. 33)오근五根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다섯가지의 힘. 신근信根·정진근精進根·염근念根·정근定根·혜근慧根.
  31. 34)오력五力 : 깨달음을 얻기 위한 다섯 가지의 힘. 신력信力·정진력精進力·염력念力·정력定力·혜력慧力.
  32. 35)칠보리분七菩提分 : 깨달음을 얻기 위해 유용한 7가지의 사항이라는 뜻. 칠각지七覺支와 같다.
  33. 36)팔성도八聖道 : 팔정도八正道와 같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여덟 가지 수행 방법. 바른 견해正見·바른 생각正思惟·바른 언어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바른 의식正念·바른 선정正定을 말한다.
  34. 37)삼악취三惡趣 : 악업을 행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 받는 곳인 지옥·아귀·축생을 말한다.
  35. 38)아비발치阿鞞跋致 : 불퇴, 무퇴, 불퇴전이라고 한역한다. 퇴보하지 않는다는 뜻. 보살 계위의 명칭으로 보살은 부처가 되는 것이 결정되어 있고, 다시 악취나 성문 연각 또는 범부의 자리로 밀려나 전락하지 않고, 또 깨달은 법을 퇴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36. 39)일생보처一生補處 : 다음 생에 태어날 때에 부처로서 태어나는 것이 약속되어 있는 지위이다.
  37. 40)광장설상廣長舌相 : 대설상大舌相이라고도 한다. 큰 혀. 부처님의 32상의 하나. 혀가 길고 넓어 얼굴을 덮을 수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이를 통해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둘은 변설이 무궁하여 다른 사람들이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38. 41)호념護念 : 불·보살·하늘이 수행자를 염려하여 마음에 명심하여 지키는 것.
  39. 42)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 부처님의 깨달은 경지를 나타내는 말.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나고 바른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을 말한다.
  40. 43)『정토전서』(X62, 185a18).
  41. 44)회수會首 : 모임의 대표자. 주관자.
  42. 45)『정토전서』(X62, 185a23).
  43. 46)『정토전서』(X62, 185b06).
  44. 47)치천稚川 : 진晉 갈홍葛洪의 자字. 갈홍은 신선술을 좋아하여 죽어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 치천은 지명으로 도가 전설상의 선도仙都이기도 하다.
  45. 48)보개寶蓋 : 보옥으로 장식한 하늘을 가리는 일산 같은 것. 부처님의 머리 위에 덮어 비와 먼지를 피하는 것으로 원래 천인天人이 공양한 것이고, 또 부처님의 머리 위에 드리우는 것이므로 천개天蓋라 하기도 한다.
  46. 49)당번幢幡 : 불전佛殿을 장엄하게 하는 데 쓰이는 당과 번을 말한다. 당幢은 기다란 장대 끝에 용머리 모양을 만들고 깃발을 드린 것이다. 번幡은 부처님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한 장엄의 도구이다.
  47. 50)『정토전서』(X62, 185b13). 『왕생집往生集』(T51, 151c13~19).
  48. 51)『정토전서』(X62, 185b20). 『왕생집』(T51, 151b21~27).
  49. 52)붙어서(附) : 죽은 이의 혼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빌려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50. 53)소라머리 : 나계螺髻. 소라껍데기 모양으로 틀어 올린 머리. 원문에는 ‘나고螺䯻’로 되어 있다.
  51. 54)『정토전서』(X62, 185c02). 『서방휘정西舫彙征』(X78, 380c08~14). 『용서증광정토문龍舒增廣淨土文』(T47, 277a04~13).
  52. 55)혜사慧思 : 515~577년. 천태종 제2조. 남북조南北朝 때 남예주南豫州 무진武津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출가하여 『법화경』을 전공하고 혜문慧文의 가르침을 받아 일심으로 연구 정진한 공으로 드디어 법화 삼매를 얻었다. 그 뒤에 그의 이름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강력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곳곳에서 『법화경』을 강하다가, 568년 남악에 들어가 강석을 펴고 선양하였다. 도사道士들의 참소를 여러 번 받다가 진陳 태건太建 9년(577년) 6월에 63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대승지관大乘止觀』 2권, 『사십이자문四十二字門』 2권, 『안락행의安樂行儀』 1권, 『남악원문南岳願文』 1권, 『무쟁행문無諍行門』 2권 등이 있다.
  53. 56)『정토전서』(X62, 185c10). 『왕생집』(T51, 151b29~c01).
  54. 57)선취善趣 : 악취惡趣의 반대말. 좋은 업인業因에 대한 과보로 중생이 태어나는 곳. 6취 중 인간·천상의 2취趣. 혹은 아수라·인간·천상의 3취를 들기도 한다.
  55. 58)『정토전서』(X62, 185c13).
  56. 59)『정토전서』(X62, 185c16). 『용서증광정토문』(T47, 277b02~05). 『왕생집』(T51, 152a10~12).
  57. 60)『정토전서』(X62, 185c19). 『용서증광정토문』(T47, 277b06~13).
  58. 61)『정토전서』(X62, 186a01). 『용서증광정토문』(T47, 277a25~b01).
  59. 62)대확자大鑊煮 : 솥에 삶아 죽이는 혹형.
  60. 63)안무사按撫使 : 벼슬 이름. 수나라 때 처음 설치한 벼슬로 당나라 때는 지방에 수해가 있을 경우에 백성을 안무하였고, 송나라 때는 군정과 민정의 일을 맡아보아서 경락안무사라고도 하였다.
  61. 64)『정토전서』(X62, 186a05). 『용서증광정토문』(T47, 277b14~23).
  62. 65)왕용서王龍舒 : 왕일휴王日休. 중국 남송 때 스님. 여주용서廬州龍舒에서 출생하였고 고종高宗 때 국학진사國學進士가 되었다. 후일에 염불을 하며 날마다 천 번씩 절하였다. 1169년(소홍 30년)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을 교정하였고 『용서증광정토문』 10권을 지었다.
  63. 66)『정토전서』(X62, 186a14).
  64. 67)『정토전서』(X62, 186a21).
  65. 68)『정토전서』(X62, 186b01).
  66. 69)중대부中大夫 : 관직명. 한漢나라의 관직명으로 자문과 응대의 역할을 하였다.
  67. 70)『정토전서』(X62, 186b05).
  68. 71)『정토전서』(X62, 186b08).
  69. 72)『정토전서』(X62, 186b12).
  70. 73)『정토전서』(X62, 186b15).
  71. 74)『정토전서』(X62, 186b21).
  72. 75)『정토전서』(X62, 186c04).
  73. 76)『정토전서』(X62, 186c11).
  74. 77)『정토전서』(X62, 186c17).
  75. 78)존숙尊宿 : 뛰어난 사람. 수행의 경력이 길고 역량도 뛰어난 노승.
  76. 79)여산 혜원廬山慧遠 : 335~417년. 중국 동진 때 스님. 여산 백련사 개조開祖. 안문雁門 누번樓煩 사람. 13세에 이미 육경을 연구하였고 특히 노장학에 정통하였다. 21세에 향산정 도안道安을 찾아가서 수행 정진하였고. 373년(전진 건원 9년) 부비苻丕가 양양襄陽을 공격하여 도안을 데리고 돌아가자 제자 수십 인과 함께 남 형주로 갔다. 뒤에 나부산으로 가는 길에 여산廬山을 지나다가, 그곳에 혜영慧永의 힘을 빌려 동림사東林寺를 짓고 주석하면서, 123인과 함께 백련사白蓮社를 창설하고 염불수행을 하였다.
  77. 80)마하반야摩訶般若 : 위대한 지혜. 마하반야밀은 위대한 지혜의 완성이라는 의미이다.
  78. 81)천태 지자天台智者 : 538~597년. 천태종의 개조. 575년 절강성의 천태산에 들어가 천태 교학을 확립하고 후에 고향인 형주에 옥천사를 창건하여,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을 강설하였다.
  79. 82)종조宗祖 : 각 종파의 개조開祖. 시조始祖.
  80. 83)백장 대지百丈大智 :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년. 당대唐代의 스님. 백장은 주석하던 산의 이름. 20세에 서산 혜조에게 출가, 남악의 법조 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사천성 여강에서 대장경을 열람하고 마조 도일에게 참구하여 인가를 얻었다.
  81. 84)영명 연수永明延壽 : 904~975년. 5대말代末 송초宋初의 스님. 어려서 출가에 뜻을 두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관리가 되었다가 28세때 설봉 의존의 법을 이은 취암 영참에게서 득도하였다. 그후 천태 덕소의 법을 이어 법안종 3세가 되었다.
  82. 85)사심 오신死心悟新 : 황룡 오신黃龍悟新. 생몰연대 미상. 소주 출신으로 황룡 조심黃龍祖心에게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83. 86)황룡黃龍 선사 : 황룡 조심黃龍祖心, 1025~1100년. 송대의 스님. 임제종 황룡파.
  84. 87)진헐 청료眞歇淸了 : 1089~1151년. 송대의 스님. 조동종. 18세에 구족계를 받고 성도 대자사에서 경론을 수학하였다. 그 후 단하 자순丹霞子淳을 만나 참학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85. 88)동하종洞下宗 : 조동曹洞의 문하. 동산 양개洞山良价의 법계를 총칭하여 이른다.
  86. 89)자수 회심慈受懷深 : 혜림 회심慧林懷深, 1077~1132년. 송대의 스님. 운문종雲門宗. 14세에 삭발하여 장로 숭신長蘆崇信에게 참학하고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87. 90)원조 종본圓照宗本 : 혜림 종본慧林宗本, 1020~1099년. 송대의 스님. 운문종.
  88. 91)법뢰法雷 : 부처님의 설법을 천둥소리에 비유한 말.
  89. 92)밀암 함걸密庵咸傑 : 천동 함검天童咸傑. 1118~1186년. 남송대 스님. 임제종 양기파(楊岐派) 호구(虎邱) 문하. 저서로 『밀암화상어密庵和尙語』 1권이 있다.
  90. 93)중봉 명본中峯明本 : 1263~1323년. 남송말 원초元初 스님. 임제종 양기파楊岐派. 어려서 천목산 사자암의 고봉 원묘高峰原妙(1238~1295년)에게 출가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음.
  91. 94)우담 종주優曇宗主 : 보도普度, ?~1330년. 원나라의 스님. 약관의 나이에 여산 동림사에 출가하였고 여러 스승을 찾아다녔다. 후에 단양丹陽 묘과사妙果寺와 동림사東林寺 선법당善法堂에서 염불삼매에 전념하였다. 1305년에 『연종보감蓮宗寶鑑』 10권을 찬술하였는데, 무종武宗이 연종蓮宗을 금하자(1308년) 대사는 부흥시킬 계획을 가지고 그가 찬술한 『연종보감』을 임금에 바쳤다. 인종仁宗이 즉위하자 다시 상소를 올려 연종을 부흥하도록 요청하였다. 1312년 인종은 칙령으로 『연종보감』을 유통시키도록 하고 대사를 연종의 교주로 삼았다. 시호를 호계존자虎溪尊者라 하였다. 세상에서는 우담 종주, 혹은 연종의 중흥조라 부르기도 했다.
  92. 95)연지 대사蓮池大師 : 주 2 참고.
  93. 96)『정토전서』(X62, 187b08~0187c08).
  94. 97)번역문의 일련번호는 번역의 편의상 역자가 기입한 것이다.
  95. 98)원공遠公 : 여산 혜원 선사. 주 79 참고.
  96. 99)서림사西林寺 : 여산廬山에는 동림사, 서림사, 천불사, 개선사 등이 있다. 동림사는 혜원이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하여 염불 수행했던 곳이다. 서림은 동림의 반대쪽에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97. 100)『정토전서』(X62, 163a05).
  98. 101)『정토전서』(X62, 164a02).
  99. 102)응화불應化佛 : 변화불變化佛. 중생의 근기와 소질에 따라 갖가지 형상으로 변하여 나타나는 불신佛身. 응신應身, 변화신變化身과 같은 말이다.
  100. 103)『정토전서』(X62, 164a08).
  101. 104)방등참법方等懺法 : 방등참회方等懺悔. 방등삼매方等三昧를 행하고 육근六根의 죄장罪障을 참회하는 것.
  102. 105)『정토전서』(X62, 164c06).
  103. 106)『정토전서』(X62, 164c10).
  104. 107)『정토전서』(X62, 165a03).
  105. 108)『정토전서』(X62, 166a05).
  106. 109)보배로 수놓은 병(寶瓶) : 아미타불의 오른편 보처補處 보살인 대세지보살을 말한다. 이 보살의 형상은 정수리에 보배병을 얹고, 염불하는 수행자를 맞아 갈 때에는 합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07. 110)화현하신 부처님(化佛) : 아미타불의 왼쪽 보처補處 보살인 관세음보살을 말한다. 이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나타내시는 33신身이 있다.
  108. 111)구생九生 : 육도 중생과 성문·연각·보살을 말한다.
  109. 112)조성염불助聲念佛 : 임종할 때에 옆에서 함께 염불 소리를 내어 왕생을 도와주는 방법.
  110. 113)『정토전서』(X62, 166b18).
  111. 114)『정토전서』(X62, 167a09).
  112. 115)『왕생집』(T51, 133c07).
  113. 116)『정토전서』(X62, 168b07).
  114. 117)『정토전서』(X62, 168b11).
  115. 118)『정토전서』(X62, 168b17).
  116. 119)『정토전서』(X62, 168c01).
  117. 120)『정토전서』(X62, 168c06).
  118. 121)『정토전서』(X62, 168c12).
  119. 122)『왕생집』(T51, 135a14).
  120. 123)종문宗門 : 여기서는 선문禪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121. 124)『정토전서』(X62, 168c16).
  122. 125)『정토전서』(X62, 169a14).
  123. 126)『정토신종』(X62, 89b21).
  124. 127)『왕생집』(T51, 136b14).
  125. 128)『정토전서』(X62, 169b10).
  126. 129)『정토전서』(X62, 169b14).
  127. 130)『정토전서』(X62, 169b17).
  128. 131)『정토전서』(X62, 169b21).
  129. 132)『정토전서』(X62, 169c02).
  130. 133)『정토전서』(X62, 184a14).
  131. 134)『정토전서』(X62, 169c23).
  132. 135)『정토전서』(X62, 170a02).
  133. 136)『정토전서』에는 ‘駙馬高麗瀋王’으로 되어 있다. 원나라는 심양지방에 살고 있던 고려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1296년에 심양로를 설치하였는데, 이는 이후 심왕제가 실시되는 배경이 되었다. 1307년 무종武宗을 옹립한 공으로 고려의 충선왕을 심양왕에 책봉하여 이 지역의 통치를 담당하게 하였다. 이듬해 충렬왕이 죽자 충선왕은 고려왕위까지 계승하였다. 원나라는 1310년에는 심양왕을 심왕으로 개봉改封하고 심양지역의 실질적인 통치권은 심양행성行省으로 이관하였다. 이후의 심왕은 고려왕위를 계승할 수 없도록 하여 그 지위는 대폭 축소되었다. 심왕제는 1307년에서 1376년까지 70년간 실시되었다.
  134. 137)『정토전서』(X62, 170a20).
  135. 138)『정토신종』(X62, 90a22).
  136. 139)『정토전서』(X62, 170b18).
  137. 140)『정토전서』(X62, 170b23).
  138. 141)『정토전서』(X62, 170c05).
  139. 142)하천축사下天竺寺 : 절강성 항주 천축산天竺山에 있던 절 이름. 천축산에는 상·중·하의 천축사가 있어 합하여 삼천축三天竺이라 불렸다.
  140. 143)원문에는 ‘地’로 나와 있으나 『정토전서』에는 ‘池’로 되어 있다.
  141. 144)『정토전서』(X62, 170c11).
  142. 145)계향戒香 : 계율이 티끌세상의 더러움을 씻어 내리므로 향에 비유한 것.
  143. 146)『정토전서』(X62, 170c22).
  144. 147)『정토전서』(X62, 171c11).
  145. 148)자주색 가사(紫衣) : 당 측천무후가 법랑 등 아홉 명에게 자주색 가사와 은 어대魚袋를 내린 것이 승려에게 자색 가사를 내린 시초이다. 임금의 총애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쓰였다.
  146. 149)상주물常住物 : 사원에 소속된 밭이나 여러 기물 등 승려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
  147. 150)삼근三根 : 상·중·하의 세 가지 근기.
  148. 151)『정토전서』에는 연종8조蓮宗八祖라 하였으나 『서방휘정』에는 9조九祖라고 비정하였다.
  149. 152)『서방휘정』(X78, 372b09). 『정토전서』(X62, 171a08).
  150. 153)『정토전서』(X62, 171b16).
  151. 154)내상內相 : ①한림학사翰林學의 별칭. ② 궁중태감宮中太監.
  152. 155)원문에 唐寅으로 되어 있으나 『정토신종』에는 庚寅으로 되어 있다. 『정토신종』을 따른다.
  153. 156)『정토신종』(X62, 90c14).
  154. 157)척리서귀隻履西歸 : 달마 대사가 외짝 신발을 들고 서역으로 돌아간 일을 말한다.
  155. 158)『정토전서』(X62, 171c16).
  156. 159)반주삼매般舟三昧 : 7일이나 혹 90일 미리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그 동안에 몸·입·뜻의 3업業을 가다듬어 온전히 하고, 정행正行을 하면서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삼매를 닦으면 눈앞에서 모든 부처님을 뵙고 교화를 받는다고 한다.
  157. 160)『정토전서』(X62, 171c22).
  158. 161)『정토전서』(X62, 172a03).
  159. 162)전모前茅 : 행군 시의 척후병. 앞서 가는 사람.
  160. 163)안상安詳 : 안온하고 미묘한 모습. 편안하고 조용한 상태를 말한다.
  161. 164)『정토전서』(X62, 172a07).
  162. 165)『정토전서』(X62, 172a15).
  163. 166)법석法席 : 불법을 강설하는 장소. 여기서는 불법을 강설하는 것.
  164. 167)칭념稱念 :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는 것.
  165. 168)『정토전서』(X62, 172a22-23).
  166. 169)『정토전서』에는 오장국왕烏萇國王으로 소개되어 있다.
  167. 170)『정토전서』(X62, 172b07).
  168. 171)『정토전서』(X62, 172b13).
  169. 172)『정토전서』(X62, 172c12).
  170. 173)효렴孝廉 : 관리를 임용하는 과목科目의 한 이름. 관직의 하나. 한 무제가 각 군국郡國에서 해마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한 사람을 한 사람씩 추천하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171. 174)읍위邑尉 : 현위縣尉. 각 현의 치안을 맡아보는 현령縣令 아래에 있는 직위.
  172. 175)『정토전서』(X62, 172c18).
  173. 176)『정토신종』(X62, 91c19). 『정토전서』(X62, 172c24).
  174. 177)『정토전서』(X62, 173b11).
  175. 178)『정토전서』(X62, 173a23).
  176. 179)『정토전서』(X62, 173b06).
  177. 180)『정토신종』(X62, 92a09).
  178. 181)『정토전서』(X62, 173b16).
  179. 182)중관中官 : 환관宦官.
  180. 183)어약원御藥院 : 관서의 이름. 궁중의 의약을 담당하였다.
  181. 184)각장閣長 : 조정에서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던 차관次官.
  182. 185)『정토전서』(X62, 173c01).
  183. 186)『정토전서』(X62, 173c07).
  184. 187)함식含識 : 의식이 있고 감정이 있는 생물, 즉 중생을 말한다.
  185. 188)『정토전서』(X62, 173c18). 『정토신종』(X62, 92b17).
  186. 189)시랑侍郎 : 진한秦漢 때 궁중의 호위를 맡은 벼슬. 당대唐代의 중서中書·문하門下·상서尙書 등 삼성三省의 부관副官. 명·청 때는 정2품으로 각 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87. 190)자운 참주慈雲懺主 : 준식遵式, 964~1032년. 중국 송나라 스님. 천태종. 자는 지백知白. 선혜禪慧 또는 자운 참주慈雲懺主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선을 배우면서 계율을 함께 닦았다. 뒤에 천태산 국청사의 보현보살상 앞에서 한 손가락을 태워 천태교학天台敎學 연구하기를 맹서하여 사명산 보운 의통寶雲義通에게 천태교를 배웠다. 28세에 의통의 강석講席을 전해 받아 『법화경』·『유마경』·『열반경』·『금광명경』 등을 강의하였다. 1000년(송 함평 3년) 가뭄이 심해지자 비를 빌어 영험이 있었다. 그 뒤 천태산 서편에 암자를 짓고 대중과 함께 염불삼매를 닦고, 1024년 조정에 주청하여 천태의 교문敎文을 대장경에 넣게 하였다.
  188. 191)『정토전서』(X62, 174a02).
  189. 192)대제待制 : 당송 이래의 벼슬 이름. 문물을 맡아보는 벼슬로 학사의 지위에 해당한다.
  190. 193)『정토전서』(X62, 174a06).
  191. 194)『정토전서』(X62, 174a10).
  192. 195)『정토전서』(X62, 174a13).
  193. 196)『정토전서』(X62, 174a16).
  194. 197)『정토전서』(X62, 174a21).
  195. 198)학유學諭 : 송대에 국자감과 현의 학교에 설치했던 학관의 명칭.
  196. 199)『정토전서』(X62, 174b13).
  197. 200)급사중給事中 : 수隋·당唐 이래 문하성門下省에 속하여 주상奏上의 사무와 시종侍從을 겸하던 벼슬.
  198. 201)숙배肅拜 : 두 손을 마주잡고 허리를 굽혀 절함. 혹은 무릎을 꿇고 절함. 임금에게 공손히 절하는 예.
  199. 202)『정토전서』(X62, 174b17).
  200. 203)서방정관西方淨觀 : 서방 정토를 떠올리는 관법.
  201. 204)갈번葛繁 : 『정토보서』의 왕신왕생류王臣往生類에 소개된 인물이다.
  202. 205)『정토전서』(X62, 174b22).
  203. 206)『왕생집』(T51, 141a22~23)의 찬을 보면 소동파의 부친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천도하기 위해 극락원에 장육보살상을 조성한 것으로 나와 있다. “老泉為薦先亡 曾於極樂院 造六菩薩像 …”
  204. 207)『정토신종』(X62, 93a12). 『왕생집』(T51, 141a18).
  205. 208)입행立行 : ①행위 거동.②덕을 세우고 수행하는 것.
  206. 209)『정토전서』(X62, 174c20).
  207. 210)『정토전서』(X62, 174c23).
  208. 211)연태蓮胎 :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이 연꽃에 싸여 태어나는 것이 마치 모태母胎와 같으므로 연태라 한다.
  209. 212)인연이 익었을 때 : 죽게 되었을 때.
  210. 213)『정토전서』(X62, 175a03). 『정토신종』(X62, 93a07).
  211. 214)『정토전서』(X62, 175a08).
  212. 215)소종백少宗伯 : 벼슬이름. 주대의 육경의 하나. 종묘의 제사 등을 맡아 보았다. 후세의 예부에 해당하므로 예부상서를 대종백 또는 종백이라 하고, 예부시랑을 소종백이라 하였다.
  213. 216)『정토신종』(X62, 93a22).
  214. 217)제생諸生 : 명청시대에 성에서 시행하는 각종 시험을 거쳐 부·주·현의 학교에 입학한 여러 생원들.
  215. 218)후사後事 : 장례를 치르는 일.
  216. 219)『정토신종』(X62, 93b10).
  217. 220)순무巡撫 : 순찰과 안무安撫를 담당한 관직명.
  218. 221)원문에는 도범임시陶凡臨時로 되어 있으나, 『정토전서』에는 도형임시陶兄臨時로, 『서방휘정』에는 도형임거陶兄臨去로 되어 있다. 『정토전서』를 따른다.
  219. 222)옥주玉柱 : 수도자가 죽은 후 코에서 나오는 분비물. 성도成道의 징표로 알려져 있다.
  220. 223)『정토전서』(X62, 175a17). 『서방휘정』(X78, 383a13).
  221. 224)출세대사出世大事 : 석존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일대사一大事 인연. 곧 성불할 가능성이 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성불케 하는 일. 이 인연을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오셨다고 한다.
  222. 225)사리司理 : 옥사와 소송 및 형벌을 관장하는 벼슬.
  223. 226)헌비가책憲批枷責 : 헌비憲批는 상급 기관에서 내리는 공문, 가책枷責은 형틀을 갖추어 심문하고 죄를 밝히는 일.
  224. 227)『정토신종』(X62, 93c01).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X78, 292b14).
  225. 228)갑상匣床 : 감옥에서 사용하던 형구의 하나로 나무 침상과 비슷하다. 죄수를 위를 보며 눕게 하고 손발을 묶어 꼼짝 못하게 하여 매우 심한 고통을 주는 도구이다.
  226. 229)『정토신종』(X62, 93c22).
  227. 230)대로大老 : 덕이나 나이 및 지위가 가장 높은 사람. 훌륭한 노인. 늙은 현인.
  228. 231)봉강封疆 : 경계. 국경. 명청 시대에는 총독순무總督巡撫를 지칭하였다.
  229. 232)대벽大辟 : 옛날의 다섯 가지 형벌五刑의 하나. 사형. 죽음을 이름.
  230. 233)『정토신종』(X62, 94a03).
  231. 234)『정토신종』(X62, 94a08).
  232. 235)명경明經 :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 과목의 하나.
  233. 236)별가別駕 : 한나라 때에 설치된 벼슬의 이름. 지방 행정 감독관인 자사刺史를 보좌하는 자리.
  234. 237)틈闖은 명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켰던 이자성(1606~1645)의 이름이다.
  235. 238)감응도교感應道交 : 중생의 감感과 부처님의 응應이 서로 통하여 융합하는 것. 불심佛心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고, 중생은 이를 느껴 교감하는 것.
  236. 239)『서방휘정』(X78, 382b06).
  237. 240)이 대목은 성총의 부연설명으로 보인다.
  238. 241)주극복周克復 : 청나라의 승려. 찬집한 저술로 『정토신종』, 『화엄경지험기』, 『법화경지험기』, 『관음경지험기』, 『금강경지험기』 등이 있다.
  239. 242)불지견佛知見 : 제법 실상의 이치를 깨닫고 비춰보는 부처님의 지혜.
  240. 243)융오戎伍 : 군대
  241. 244)효렴孝廉 : 주 173 참조.
  242. 245)몸을 바꾸는 활계(轉身之活計) : 여기서는 극락에 왕생한다는 의미.
  243. 246)『정토전서』(X62, 175b05).
  244. 247)무재茂才 : 수재秀才. 명청 시대에 부나 주나 현의 학교에 입학한 생원을 수재, 무재라 불렀다.
  245. 248)산기상시散騎常侍 : 관직명. 황제 곁에서 정사의 과실을 살피고 간의하며 고문에 응하는 벼슬.
  246. 249)연사蓮社 : 진晉대 여산 동림사 혜원이 세운 염불결사. 즉 백련결사白蓮結社. 주 79 참조.
  247. 250)『정토전서』(X62, 175c16).
  248. 251)『정토전서』(X62, 175c20).
  249. 252)유열庾悅 : 진나라 때 강주자사江州刺史를 지낸 인물.
  250. 253)오입悟入 : 우주의 진리에 깨우쳐 들어감.
  251. 254)『정토전서』(X62, 176a01).
  252. 255)오경五經 오위五緯 : 유가의 주요 경전인 10경經을 말한다. 詩經 書經 禮記 易經 春秋. 詩緯 書緯 禮緯 易緯 春秋緯.
  253. 256)소대召對 : 왕명으로 입궐하여 정사에 관한 의견을 말함. 경연經筵의 참찬관參贊官 이하를 불러 임금이 몸소 글을 강론함.
  254. 257)『정토전서』(X62, 176a07).
  255. 258)『정토전서』(X62, 176a14).
  256. 259)『정토전서』(X62, 176a18).
  257. 260)『정토전서』(X62, 176a23).
  258. 261)『정토전서』(X62, 176b02).
  259. 262)『정토전서』(X62, 176b06).
  260. 263)『정토전서』(X62, 176b09).
  261. 264)오회염불五會念佛 : 당 대력 4년(769년)에 법조法照가 시작한 염불 수행의 한 의식. 5음의 곡조에 따라 느리고 급한 차례로 염불을 하는 것.
  262. 265)금교金橋 : 선인은 죽으면 금교로 간다고 전해진다. 극락을 이르는 말이다.
  263. 266)『정토전서』(X62, 176b14).
  264. 267)『정토전서』(X62, 176b19).
  265. 268)『정토전서』(X62, 176b22).
  266. 269)『정토전서』(X62, 176c04).
  267. 270)『정토전서』(X62, 176c09).
  268. 271)육아백상六牙白象 : 여섯 개의 상아는 여섯 가지 신통력을 표시한다. 코끼리는 큰 위력이 있지만 그 성품이 유순하므로, 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올 때는 6아牙의 흰 코끼리를 타거나 혹은 스스로 흰 코끼리로 변화하여 마야부인의 태胎에 들어간다고 한다.
  269. 272)『정토전서』(X62, 176c13).
  270. 273)겁화劫火 : 겁소劫燒·겁진화劫盡火라고도 하는 대삼재大三災의 하나. 세계가 괴멸하는 괴겁壞劫 때에 일어나는 큰 화재.
  271. 274)『정토전서』(X62, 176c18).
  272. 275)계념繫念 : 한곳에 생각을 집중하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
  273. 276)『정토전서』(X62, 177a01).
  274. 277)『정토전서』(X62, 177a06).
  275. 278)『정토전서』(X62, 177a09).
  276. 279)『정토전서』(X62, 177a14)에는 잠학유昝學諭로 소개되어 있다.
  277. 280)벽과擘窠 : ①글자를 쓰거나 전각할 때 글자의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가로 세로로 칸을 고르게 나눈 것. ② 큰 글자.
  278. 281)『정토전서』(X62, 177a14).
  279. 282)명교名敎 : 노장老莊의 무명교無名敎에 대하여 유교를 이르는 말. 바른 명분을 중시하는 예교.
  280. 283)『정토전서』(X62, 177a21).
  281. 284)『정토전서』(X62, 177b03).
  282. 285)『정토전서』(X62, 177b09).
  283. 286)『정토전서』(X62, 177b13).
  284. 287)『정토전서』(X62, 177b18).
  285. 288)『정토전서』(X62, 177b24).
  286. 289)『정토전서』(X62, 177c06).
  287. 290)『정토전서』(X62, 177c19).
  288. 291)당담糖擔 : 설탕을 맨다는 의미.
  289. 292)『정토전서』(X62, 177c23).
  290. 293)『정토전서』(X62, 178a07).
  291. 294)『정토전서』(X62, 178a13).
  292. 295)『정토전서』(X62, 178a21)에는 양가위楊嘉褘로 소개되었다.
  293. 296)세가世家 : 대대로 많은 녹을 받는 집안.
  294. 297)남옹南雍 : 명나라 때 세운 남경南京의 국자감國子監.
  295. 298)발설지옥拔舌地獄 : 입으로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떨어지는 지옥.
  296. 299)『정토전서』(X62, 178a21). 『정토신종』(X62, 95a21), 『서방휘정』(X78, 382c05).
  297. 300)길상吉祥 : 길상좌吉祥坐. 앉는 법의 한 가지. ① 먼저 왼쪽 발로 오른쪽 정강이를 누르고, 다음엔 오른쪽 발로 왼쪽 정강이를 누르고 앉는 것. 이때 손바닥은 왼쪽을 아래로 하고 오른쪽을 위에다 둔다. 부처님이 설법할 때 앉는 방법으로, 밀교에서는 연화좌蓮花座라고도 한다. 이와 반대로 앉는 것은 항마좌降魔坐이다. ② 오른쪽 다리를 왼편 넓적다리 위에 놓는 것으로, 이른바 반가부좌. 밀교에서는 이 반가부좌를 길상좌라고도 한다.
  298. 301)『정토전서』(X62, 178b08).
  299. 302)조념염불助念念佛 : 사람이 운명할 때 주위의 가족과 친척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염불이다. 임종할 때 여러 친족들이 교대로 염불하여 염불소리가 운명할 사람의 귀에 들리게 하며 운명할 때까지 계속한다. 극락왕생을 도와주는 것이다.
  300. 303)『정토전서』(X62, 178b16).
  301. 304)화인化人 :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일부러 모양을 변해서 사람의 몸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302. 305)확연矍然 : 두리번거리는 모양. 놀라서 보는 모양.
  303. 306)『정토전서』(X62, 178c01).
  304. 307)지재持齋 : 계율을 지키며 절식하는 것. 정오를 넘어 먹지 않는 것을 재齋라 하며 지재는 그 상태를 말한다.
  305. 308)위태委蛻 : 죽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306. 309)『정토전서』(X62, 178c21).
  307. 310)『정토전서』(X62, 179a05).
  308. 311)확삭矍鑠 : 노인의 눈빛이 형형하고 정신이 건강하고 왕성한 모양.
  309. 312)수고垂顧 : ①마음에 둠. 마음을 씀. ②남의 방문을 높이는 말. 光臨.
  310. 313)『정토전서』(X62, 179a18).
  311. 314)훈수熏修 :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
  312. 315)『정토전서』(X62, 179b01).
  313. 316)거자업擧子業 : 거업擧業. 과거에 대비한 학문.
  314. 317)『정토전서』(X62, 179b10).
  315. 318)침향沈香 : 향나무의 일종.
  316. 319)은은隱隱 : 성한 모양. 많은 모양. 가려져 있는 모양.
  317. 320)『정토전서』(X62, 179c10).
  318. 321)사리闍黎 : 승려에게 몸소 덕행을 가르치는 스승. 모범이 되는 승려. 고승의 칭호.
  319. 322)『정토전서』(X62, 179c19). 『정토신종』(X62, 95c13).
  320. 323)개위開慰 : 널리 이해하고 편안하게 위로함.
  321. 324)『정토전서』(X62, 179c23).
  322. 325)흡연翕然 : 화합하는 모양. 일체 합동하는 모양.
  323. 326)『정토전서』(X62, 180a04). 『정토신종』(X62, 95c22).
  324. 327)『정토전서』(X62, 180a07).
  325. 328)화연化緣 : 시주하여 절에 쓸 비용을 마련하는 스님.
  326. 329)재승齋僧 : 재를 올리는 스님.
  327. 330)『정토전서』(X62, 180a16).
  328. 331)『정토전서』(X62, 180a22).
  329. 332)『정토전서』(X62, 180b04).
  330. 333)의인宜人 : 남편이나 자식으로 인하여 받는 부인의 봉호封號 중의 하나. 명·청 때는 5품관의 어머니와 부인이 받았다.
  331. 334)조청朝請 : 제후가 황제를 알현함. 혹은 그 관직.
  332. 335)『정토전서』(X62, 181a16).
  333. 336)『정토전서』(X62, 181a20).
  334. 337)『정토전서』(X62, 181b03).
  335. 338)『정토전서』(X62, 181b07).
  336. 339)『정토전서』(X62, 181b12).
  337. 340)『정토전서』(X62, 181b16).
  338. 341)『정토전서』(X62, 181b20).
  339. 342)『정토전서』(X62, 181b24).
  340. 343)『정토전서』(X62, 181c03).
  341. 344)『정토전서』(X62, 181c08).
  342. 345)정의淨衣 : 비구가 받아서 지장이 없는 옷. 청정한 옷.
  343. 346)『정토전서』(X62, 181c12).
  344. 347)재계齋戒 : 식사와 행동하는 것을 삼가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함. 8재계의 준말.
  345. 348)『정토전서』(X62, 181c17).
  346. 349)『정토전서』(X62, 181c21).
  347. 350)『정토전서』(X62, 181c24).
  348. 351)『정토전서』(X62, 182a05).
  349. 352)『정토전서』(X62, 182a08).
  350. 353)『정토신종』(X62, 96b23).
  351. 354)『정토전서』(X62, 182a12).
  352. 355)『정토전서』(X62, 182a21).
  353. 356)『정토신종』(X62, 96c08).
  354. 357)『정토전서』(X62, 182b02).
  355. 358)장경長庚 : ①태백성太白星 명성明星. ②혜성彗星.
  356. 359)계념繫念 : 한곳에 생각을 집중하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
  357. 360)지공의 모자(誌公帽) : 스님이 겨울에 쓰는 모자. 중국에서는 6세기 무렵부터 지공誌公이 처음 쓰기 시작한 이래 지공의 모자誌公帽라 부른다. 지공 보지誌公寶誌는 중국 남조의 승려로 송나라와 양나라 때 불가사의한 일을 많이 나타내고 예언을 한 인물이다.
  358. 361)『정토전서』(X62, 182b08).
  359. 362)궤几 : 안석. 제향에 쓰는 기구로 희생을 올려놓는다.
  360. 363)『정토전서』(X62, 182b20).
  361. 364)『정토신종』(X62, 96c17).
  362. 365)시심작불 시심시불是心作佛 是心是佛 : 이 마음이 부처를 만들고 마음이 곧 부처 그 자체라는 뜻.
  363. 366)『정토전서』(X62, 182b24).
  364. 367)『정토전서』(X62, 182c07).
  365. 368)『정토전서』(X62, 182c11).
  366. 369)장재長齋 : 오랜 세월을 두고 계율을 굳게 지켜서 하루에 낮 한때만 먹는 등의 율행을 하는 것. 후에는 오랜 세월 소식素食하는 것을 이르는 경우가 많다.
  367. 370)원문에 정실靜室로 되어 있으나 『정토전서』에는 정실淨室로 되어 있다.
  368. 371)예참禮懺 : 부처나 보살 앞에 예배하고 죄과를 참회함을 말한다.
  369. 372)『서방휘정』(X78, 388b05).
  370. 373)푸른 옷을 입은 동자(靑衣童子) : 금강동자. 서방 무량수불의 화신.
  371. 374)중당中堂 : 대청의 가운데.
  372. 375)『정토전서』(X62, 182c16).
  373. 376)번개幡蓋 : 번幡과 개蓋를 말한다. 번은 불보살의 위덕을 표시하는 장엄도구인 깃발이다. 개는 불상을 덮은 일산이다. 이것은 비나 먼지 같은 것을 막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는 천으로 만들었던 것이나 후세에는 금속이나 목재로 조각하여 만든 것이 많으며, 이것을 천정에 달아 놓기도 하고 또는 위가 구부러진 긴 장대에 달기도 한다.
  374. 377)『정토전서』(X62, 183b16).
  375. 378)『서방휘정』(X78, 388b18).
  376. 379)『정토신종』(X62, 97b12). 『서방휘정』(X78, 388b23).
  377. 380)『정토전서』(X62, 182c23).
  378. 381)태군太君 : 관원의 어머니에게 내리는 봉호封號의 하나.
  379. 382)『정토전서』(X62, 183a08).
  380. 383)전좌典座 : 절에서 대중의 음식, 자리, 침구 등을 맡은 소임.
  381. 384)항당行堂 : 절에서 모든 일용의식에서 대중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고 찻물을 나르는 소임.
  382. 385)영소靈昭 : 신령스러운 밝음. 여기서는 극락을 의미한다.
  383. 386)살수撒手 : 손을 놓음. 이별함. 죽음을 완곡하게 일컫는 말이다.
  384. 387)『정토전서』(X62, 183b02).
  385. 388)영인伶人 : 음악을 맡은 사람. 악사·악인·배우 혹은 심부름하는 사람.
  386. 389)『정토전서』(X62, 184a04).
  387. 390)『정토전서』(X62, 183b24).
  388. 391)수식염불隨息念佛 : 숨을 따라 염불하는 것. 수식문隨息門은 숨 헤아리기를 그치고, 미세한 마음으로 들이쉴 적에는 들어감을 알고, 내쉴 적에는 나가는 것을 알아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관문觀門을 말한다.
  389. 392)『정토전서』(X62, 184a22).
  390. 393)『정토전서』(X62, 184b03).
  391. 394)『정토전서』(X62, 184b12).
  392. 395)『정토전서』(X62, 184b17).
  393. 396)원문에는 氷으로 되어 있으나 『정토전서』에 따라 水로 해석한다.
  394. 398)『정토전서』(X62, 184c02).
  395. 399)구욕鴝鵒 : 구관조九官鳥. 중국에서는 빠거(八哥)라고도 한다. 찌르레깃과의 새. 크기는 비둘기만 한데 온몸이 검고 자줏빛 광택이 나며 날개에는 커다란 흰 무늬가 있다. 잡식성으로 사람의 말을 잘 흉내 내어 애완용으로 사육한다. 인도, 말레이시아, 중국 남부 등지에 분포한다.
  396. 400)『정토전서』(X62, 184c07).
  397. 401)천인天人 : 천상의 유정들. 허공을 날아다니며 음악을 하고 하늘 꽃을 뿌리기도 하며 항상 즐거운 경계에 있지만 그 복이 다하면 5쇠衰의 괴로움이 생긴다고 한다.
  398. 402)『정토전서』(X62, 184c12).
  399. 403)사리司理 : 송사와 형벌을 주관하는 관리.
  400. 404)독무督撫 : 총독과 순무巡撫의 병칭. 명청 대의 최고 지방관으로 군정軍政과 형옥刑獄을 관장했다.
  401. 405)『정토신종』(X62, 98b08).
  402. 406)『서방휘정』(X78, 391b03).
  403. 407)미무蘼蕪 : 미나리과에 속하는 궁궁이의 싹.
  404. 408)해산의 여우(海山狐) : 백장야호百丈野狐. 백장 대지가 상당上堂할 때마다 한 노인이 법을 듣고, 대중을 따라나가곤 하였다. 하루는 법을 듣고도 가지 않음에 백장이 “거기 서 있는 이가 누구냐?” 하니, 노인이 “내가 과거 가섭불 때에 이 산에 있었사온데, 그때 어느 학인이 ‘대수행大修行하는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하고 묻기에 ‘불락인과不落因果니라’ 대답했더니, 뒤에 5백 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습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 저를 대신하여 일전어一轉語를 내려 여우의 탈을 벗겨 주소서.” 하였다. 백장이 “불매인과不昧因果니라.” 하자, 노인이 깨닫고 예배하면서 “내가 여우의 몸을 벗어 이 산 뒤에 두겠사오니 죽은 스님네의 전례대로 하여 주소서.” 하였다. 백장이 유나를 시켜 대중에게 말하고 산에 가서 여우를 화장하였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405. 409)『정토전서』(X62, 184c22).
  406. 410)『서방휘정』(X78, 390c08).
  407. 411)『정토자량전집』(X61, 594b22).
  408. 412)『정토자량전집』(X61, 594c17).
  1. 1)撰者名。依序文補入{編}。
  2. 2)「苐」通用「第」以下倣此不更加註{編}。
  3. 1)底本附號各異{編}。
  4. 1)」疑「罌」{編}。
  5. 1)「卯」一疑「卵」{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