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사경지험기(四經持驗紀) / 四經持驗紀卷二

ABC_BJ_H0175_T_003

008_0527_a_01L
사경지험기四經持驗紀 권2
백암 성총 모음(栢庵性聰集)
금강경지험기金剛經持驗紀
수隋의 조문약趙文若은 개황開皇 초(581)에 병으로 죽었다. 7일이 경과한 후 집안사람들이 염을 하려다가 갑자기 한쪽 발을 움츠리기에 곧 멈추었다. 그가 깨어나서 한 이야기다.
“한 사람에게 추포되어 명부의 성으로 들어가자 왕이 ‘살아서 어떤 공덕을 지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금강경』을 수지하였다’고 대답했더니, 왕이 ‘그것이 제일가는 공덕이지. 수명이 비록 다했지만 연장해 주마’ 하였다. 그리고는 또 ‘여러 죄 중에 살생이 가장 무거운 죄인데 경卿은 매일 돼지고기와 양고기로 부엌을 채웠구나’ 하고는 사령을 파견해 고초를 겪는 곳으로 데려가게 하였다. 북쪽으로 가자 담장 아래에 굴이 나왔고, 그 굴을 통과해 나가서 높은 언덕에 올랐는데 사방을 둘러보니 아득히 넓었다. 그곳에 성 하나가 까마득히 솟아 있었고,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맞닿고 슬피 부르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문약은 귀를 막고 눈을 감고는 벗어나기를 바랐으나, 심장이 터지는 듯하였고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사자가 그를 데리고 돌아와 왕을 알현하자 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고기 먹는 걸 좋아했으니 가벼운 벌을 면할 수 없다.’
곧 기다란 못 다섯 개를 찾아 머리와 양쪽 손발에 못질하였는데 그 쓰라린 통증은 여태까지 느껴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육식을 끊고 경전을 수지하였다. 후에 공적인 일로 역관驛館에 이르렀다가 홀연히 푸른 옷을 입은 한 여인이 구해 달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래서 역관의 관리에게 물었다.
“먹을 것이 뭐가 있는가?”
“포동포동 살찌고 연한 양 한 마리가 있습니다.”
가서 살펴보니 바로 푸른빛 암컷이었다. 문약은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고는 결국 값을 치르고 풀어 주었다.
수隋의 목언통睦彦通은 무뢰읍武牢邑을 다스리며 매일같이 『금강경』을 지송하였는데, 이밀李密의 도적 떼가 봉기하자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의로운 깃발에 호응하여 언통이 결국 성 아래로 몸을 던지자 도적들이 칼을 뽑아 들고서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그때 앞쪽에 깊은 계곡이 있기에 결국 그곳으로 뛰어들었는데,

008_0527_a_01L

008_0527_a_02L1)四經持驗紀卷二

008_0527_a_03L栢庵性聰集

008_0527_a_04L金剛經持驗紀

008_0527_a_05L
隋趙文若開皇初病亡經七日家人
008_0527_a_06L將殮忽縮一足遂停旣蘇云被一人
008_0527_a_07L追入冥城王問在生有何功德答持金
008_0527_a_08L剛經王曰此第一功德筭雖盡可延
008_0527_a_09L又曰諸罪更重殺生卿每以猪羊充庖
008_0527_a_10L遣使領至受苦處北行墻下有穴從此
008_0527_a_11L穴出登高阜四望遙濶一城極峻
008_0527_a_12L火接天備聞哀號聲文若閉耳目求出
008_0527_a_13L仍覺心破口中出血使者引回見王曰
008_0527_a_14L汝好啖肉薄罰難免索長釘五枚
008_0527_a_15L頭及兩手足痛楚異常從此絕肉持經
008_0527_a_16L後因公事至驛忽夢一靑衣女求救
008_0527_a_17L問驛吏有何物食報云一羊甚肥軟
008_0527_a_18L視之則靑牸也文若云我不食肉
008_0527_a_19L贖放之

008_0527_a_20L
隋睦彥通宰武牢邑日持金剛經
008_0527_a_21L密盗起人欲殺之以應義旗彥通遂
008_0527_a_22L投身城下賊拔刀逼殺前有深澗

008_0527_b_01L공중에서 금강신金剛神이 나타나 손으로 언통의 팔을 잡고 반석에 내려놓아 전혀 다친 곳이 없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경을 염송하는 너에게 감복하여 이렇게 찾아와 구해 주는 것이다.”
언통은 집으로 돌아왔고 금강신이 잡았던 오른쪽 팔에서는 기이한 향기가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후에 그 지위가 방백方伯에 이르렀으며, 어느 날 병 없이 지내다 목욕하고는 붓을 찾아 게송을 쓰고 서거하였다.
수의 두지량杜之亮은 인수仁壽 연중(601~604)에 한왕漢王 량諒의 막부의 참군叅軍이 되었다. 후에 량은 병주并州에서 거병하여 모반을 일으켰지만 패배하였고, 량과 그 막료들이 모두 잡혀 투옥되었다. 그렇게 눈물로 밤낮을 보내는데 홀연히 어느 날 밤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가 『금강경』을 염송하기만 하면 이 액난에서 벗어나리라.”
새벽이 밝자 경전을 가져다 온 정성을 다해 읽고 외웠다. 주동한 무리를 끌어다 도륙할 때에 이름이 호명된 자는 모두 죽었는데, 유독 두지량의 이름만 없었다. 주동자는 모두 벌을 받았지만 얼마 뒤에 그는 사면되었다. 후에 현경顯慶 연중(656~661)에 황주 자사黃州刺史를 지내다 죽었다.
당 무덕武德 연간(618~626)의 일이다. 장안의 부호 소인흠蘇仁欽은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면서 사람을 삶아 죽이고 태워 죽였다. 죽임을 당한 자들이 저승의 사령에게 원통함을 호소하자 혼령을 추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인흠은 중병으로 세월을 보내다 수명이 줄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명부의 왕이 말하였다.
“너는 전생에 선을 닦은 덕분에 현세에서 부귀를 누렸지만 마음대로 살생한 업이 무거우니 혹독한 과보로 갚아야 하리라.”
그리고는 곧 지옥으로 끌고 가라고 명령하자 인흠이 두려움에 떨며 슬피 애원하였다.
“살면서 비록 선한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금강경』 한 권을 부탁해 이미 천화한 안국사安國寺 승려 신경神敬에게 수지하도록 준 일이 있습니다. 그 스님이 비록 천화하셨지만 대질하면 증명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기이한 향기가 가득 풍기면서 한 스님이 경을 들고 대전에 이르러 말하였다.
“오래전에 인흠과 함께 수지한 반야의 공이 있습니다.”
왕이 곧 합장하고 돌아가도록 풀어 주자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이 일로 『법화경』 100부와 『금강경』 천 권을 인쇄하여 보시하고,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지내 중생을 제도하였다. 그러자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 문충文忠이 나타나 말하였다.
“나는 부자가 되고도 어질지 못하여 생명을 죽이고 해쳤다. 그래서 늙어서는 변소에 떨어지고

008_0527_b_01L躍入空中見金剛神以手接彥通臂
008_0527_b_02L置盤石上都無傷損呼曰感汝念經
008_0527_b_03L故來相救彥通還家所接右臂奇香
008_0527_b_04L累日不散後位至方伯一日無病
008_0527_b_05L浴索筆書偈而逝

008_0527_b_06L
隋杜之亮仁壽中爲漢王諒府叅軍
008_0527_b_07L諒於并州擧兵反而已敗諒與僚屬
008_0527_b_08L皆繫獄日夜涕泣忽夜夢一僧曰
008_0527_b_09L但念誦金剛經此厄可度至曉取經
008_0527_b_10L專誠習念及主者引衆就戮唱者俱死
008_0527_b_11L唯無亮姓名主者皆坐罰俄以赦免
008_0527_b_12L顯慶中卒於黃州刺史

008_0527_b_13L
唐武德間長安富豪蘇仁欽恣意宰割
008_0527_b_14L烹炮被殺者陳訴陰司追魂繫獄
008_0527_b_15L欽重病經年減筭夭亡冥王曰緣汝
008_0527_b_16L前生修善現世富饒恣殺業重惡報
008_0527_b_17L當償即令駈至地獄欽惶怖哀告
008_0527_b_18L生雖未作善曾請金剛經一卷捨與安
008_0527_b_19L國寺已化僧神敬受持僧雖遷化
008_0527_b_20L以對證須臾異香芬馥一僧執經至殿
008_0527_b_21L久與仁欽受持有般若功王即合掌
008_0527_b_22L放還得再生因印施法華經百部
008_0527_b_23L剛經千卷修水陵大齋濟衆夢亡父文
008_0527_b_24L忠曰我爲富不仁殺生害命老墮厠

008_0527_c_01L죽어서는 지옥에 빠졌는데, 네가 공덕을 닦은 덕분에 천상 세계에 태어났다.”
당 무덕 연간에 강릉江陵 사람 진소陳昭가 『금강경』을 염송하며 오랜 세월 공덕행을 쌓았다. 어떤 큰 구렁이가 매일 곁에서 경을 듣다가 독경이 끝나면 물러갔는데 겁 없고 사나운 이웃 사람 역창力昌이 요물이라 의심하여 그걸 때려죽였다. 뱀이 명부에 호소하자 역창을 추포해 뱀으로 하여금 온몸을 칭칭 감고 깨물게 하였다. 그러자 아내의 꿈에 나타나 호소하였다.
“뱀이 경을 100권 듣겠다고 원을 세웠다고 하오. 그러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데 겨우 일곱 권이 모자랄 뿐이었소. 내가 그것도 모르고 그를 죽여 지금 고통과 재앙을 받고 있으니, 스님을 청해 『금강경』 일곱 권을 사경하여 참회하고 나를 구해 주시오.”
아내는 지독한 가난으로 그렇게 할 수 없어 다섯 살짜리 아이를 두 관貫에 팔아 스님을 청해 사경하였다.
당의 진문달陳文達은 처현郪縣 사람이며 항상 『금강경』을 지송하였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8만 4천 권을 염송하기에 이르자 여러 차례 상서를 보았고, 사람들에게 경을 읽어 주면 질병과 액난이 모두 사라졌다. 동산銅山 사람 진약陳約이 저승의 사령에게 잡혀갔다가 지하에서 대臺를 쌓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반야대般若臺는 진문달이란 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가 저승에서 존경받은 것이 이와 같았다.
당의 백인철白仁哲이 용삭龍朔 연중(661~663)에 괵주虢州 주양위朱陽尉가 되어 쌀을 요동遼東으로 운반하게 되었다. 그때 바다를 건너다가 강풍을 만났는데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캄캄하였다. 인철은 향을 사르고 급히 『금강경』을 염송하였다. 그렇게 몇 번 염송하자마자 홀연히 꿈결처럼 공중에서 한 범승梵僧이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가 참된 경을 염송하기에 일부러 찾아와 그대를 구해 준다.”
그러자 잠깐 사이에 바람이 멎고 80여 명이 모두 구제되었다.
당의 진리빈陳利賓은 회계會稽 사람으로 약관弱冠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시와 문장을 잘 지었으며, 처음 벼슬길에 올라 장성위長城尉가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금강경』을 염송하여 액난을 만났을 때 여러 차례 그 도움을 받았다. 개원開元 연중(713~741)에 진리빈이 회계강會稽江에서 동양東陽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008_0527_c_01L死陷地獄汝修功德得生天界矣

008_0527_c_02L
唐武德間江陵人陳昭讀金剛經
008_0527_c_03L積功行有大蠎每日在側聽經畢即
008_0527_c_04L退隣人力昌勇悍疑爲妖擊殺之
008_0527_c_05L訴冥府追攝力昌令蛇纒身噬囓
008_0527_c_06L託夢告妻曰蛇願聽經百卷便可昇騰
008_0527_c_07L只欠七卷耳我語殺之今受苦厄
008_0527_c_08L僧寫金剛經七卷懴悔救我妻貧甚不
008_0527_c_09L能爲有五歲兒賣得錢兩貫請僧寫
008_0527_c_10L

008_0527_c_11L
唐陳文達郪縣人常持金剛經爲亡
008_0527_c_12L父母誦至八萬四千卷多見祥瑞
008_0527_c_13L人轉經疾厄皆免銅山人陳約曾追
008_0527_c_14L赴陰司見地下築臺曰此般若臺
008_0527_c_15L陳文達者其爲冥司所敬如此

008_0527_c_16L
唐白仁哲龍朔中爲虢州朱陽尉運米
008_0527_c_17L遼東過海遇罡風四望昏黑仁哲焚
008_0527_c_18L急念金剛經纔數遍忽如夢寐
008_0527_c_19L空中有一梵僧謂曰汝念眞經故來
008_0527_c_20L救汝須臾風定八十餘人俱濟

008_0527_c_21L
唐陳利賓會稽人弱冠擢第善屬詩
008_0527_c_22L釋褐長城尉少誦金剛經遇厄多
008_0527_c_23L獲其助開元中賓自會稽江赴東陽
008_0527_c_24L{1}此題名及撰者名補入{編}

008_0528_a_01L하늘에서 오래도록 비가 내려 강물이 그득히 불어나 있었다. 동행하는 20여 척의 선박이 바람을 타고 돛을 올리자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폭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석두石竇 인근 지역에 다다르자 상류에서 급류가 쏟아져 파도가 거세게 때려 정박할 수가 없었다. 앞서 가던 20여 척의 배는 석두 입구에 다다라 모두 파손되었고, 배에 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때 진리빈이 급히 『금강경』을 염송하자 급류가 흐르는 곳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붉은 용과 비슷한 형상의 한 동물이 강을 가로지르며 나타나 배를 지탱하였다. 덕분에 육지에 오를 수 있었으니, 모두들 경을 염송한 공덕이라 하였다.
당의 왕령망王令望은 어려서부터 『금강경』을 지송하였는데, 공주卭州 임계臨溪로 돌아가다가 매우 험한 길에서 갑자기 맹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급히 이 경을 염송하자 맹수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꼬리를 내리고 사라졌다. 한번은 안주安州 판사判司에 임명되어 양자강楊子江을 건넌 적이 있었다. 밤에 폭풍이 일어 정박했던 배 100척이 줄줄이 수몰되었는데 유독 왕령망의 배만 온전하였다. 후에 호주毫州 초령譙令을 지내다 세상을 마쳤다.
당의 위순魏恂은 좌서자左庶子 상덕尙德의 아들이며 『금강경』을 지송하였다. 신공神功 초(697)에 감문위 대장군監門衛大將軍이 되었는데, 당시 어떤 점치는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가 며칠 후 소생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처음 명부의 관아에 이르렀을 때 일이다. 관리가 사람을 추포해 오지 못했다며 그 사자使者를 매질하려 하자 그 사자가 말하였다.
‘위장군은 『금강경』을 지송합니다. 선신들이 옹호해 추포할 수 없었습니다.’
곧 다른 사자를 보내 다시 추포하게 하였지만 잠시 후 돌아와 똑같이 보고하였다. 그러자 명부의 관리가 ‘그럼 추포를 그만두라’고 하였다.”
위순이 이 말을 듣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다.
당의 여문전呂文展은 개원 3년(715)에 낭중현승閬中縣丞에 임명되었다. 불전佛典을 매우 좋아하였고, 특히 온 마음을 다해 『금강경』을 지송하였다. 그 횟수가 3만여 번에 이르자 기이한 영험이 나타났으니, 이미 쇠잔한 노년의 나이라 어금니 세 개가 동시에 빠졌는데 홀연히 어금니가 솟아나 예전과 같아졌다.
또 랑閬에 있을 때 심한 가뭄이 이어져 자사刺史 유준劉浚이 비를 청하는 기도를 하게 한 일이 있었다. 이에 한 번 읽자마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또 지독한 장마가 이어지자

008_0528_a_01L天久雨江水瀰漫同行二十餘船
008_0528_a_02L風掛帆須臾天晦風烈至界石竇
008_0528_a_03L水急流而下波濤衝擊不得泊前二
008_0528_a_04L十餘舟皆至竇口敗舟人恐懼無措
008_0528_a_05L利賓急誦金剛經至急流所忽有一物
008_0528_a_06L狀如赤龍橫出扶舟因得上咸謂誦
008_0528_a_07L經之功

008_0528_a_08L
唐王令望少持金剛經還卭州臨溪
008_0528_a_09L路極險阻突遇猛獸急念此經猛獸
008_0528_a_10L熟視曳尾去曾任安州判司過楊子江
008_0528_a_11L夜暴風起泊船百艘相接盡沒惟令
008_0528_a_12L望船獨全後終毫州譙令

008_0528_a_13L
唐魏恂左庶子尙德之子持金剛經
008_0528_a_14L神功初爲監門衛大將軍時有蔡策者
008_0528_a_15L暴亡數日方蘇云初至冥司官以追
008_0528_a_16L人不得將撻其使者使者云魏將軍
008_0528_a_17L持金剛經善神擁護追之不得即別
008_0528_a_18L遣使復追須臾還報並同冥官曰
008_0528_a_19L罷追恂聞之更加精進

008_0528_a_20L
唐呂文展開元三年任閬中縣丞
008_0528_a_21L好佛典尤專心持誦金剛經至三萬餘
008_0528_a_22L靈應奇異年旣衰暮三牙並落
008_0528_a_23L牙生如舊在閬時屬亢旱刺史劉浚
008_0528_a_24L令祈雨纔一遍遂獲沛然又苦霖潦

008_0528_b_01L별가別駕가 다시 경을 염송해 비가 그치도록 기도하게 하였는데, 그렇게 하자마자 맑게 개었다. 앞뒤에 증험한 일들은 다 거론할 수 없을 정도이다.
당 임안臨安의 진철陳哲은 여항餘杭에 터를 잡고 살던 집안 사람으로서 정밀하고 한결같이 행을 연마하면서 『금강경』을 지송하였다. 광덕廣德 초(763)에 무강武康의 도적 송담宋潭이 여항을 노략질하였다. 진철은 재산이 많았기에 이사하여 난을 피하려 하였는데 도적이 곧바로 들이닥쳤다. 진철은 그들을 관군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도적이 지금 어디쯤 왔습니까?”
도적들이 크게 화를 내며 “이 늙은 종놈은 또 뭐기에 감히 우리를 모욕한단 말인가?” 하고는 다투어 검으로 그를 찔렀다. 그러나 검으로 한 번 내려칠 때마다 지름이 5내지 6척쯤 되는 오색의 둥근 빛이 진철의 몸을 덮어 그를 찌를 수가 없었다. 이에 도적이 놀라고 감탄하면서 참회하고는 그를 풀어 주고 도망갔다.
당 정화政和1) 연중의 일이다. 진주眞州의 석장石匠 손 옹孫翁은 매일 『금강경』 세 권을 지송하였다. 하루는 20여 명과 함께 산에 들어가 돌을 캐다가 산이 무너져 모두 몰살하고 손씨만 돌 틈에서 살아남았다. 12년이 흐른 뒤 아들이 돌을 깨고 산을 뚫어 단정히 앉아 있는 손 옹을 발견했는데 용모가 예전과 같았다. 아들이 놀라며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떻게 살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손 옹이 말하였다.
“항상 『금강경』을 지송했지.”
“배고프진 않으셨습니까?”
“처음에 소병酥餅을 하나 먹었는데 지금까지도 배가 고프지 않구나.”
또 손 옹이 말하였다.
“내가 예전에 염송하던 경은 여전히 있느냐?”
“그대로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경을 가져다 살펴보니, 경에 소병 크기와 흡사한 둥근 구멍이 하나 나 있었다.
당의 육강성陸康成이 일찍이 경조부京兆府 법조연法曹掾에 부임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강압을 피하지 못해 공은 은퇴하였다. 그런데 죽은 아전이 공문 수백 장을 안고 홀연히 나타나 확인을 부탁하기에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상을 떠났는데 왜 이곳을 찾아왔는가?”
“이것은 유부幽府의 장부입니다.”
강성이 살펴보니 사람 이름만 있고 다른 것은 적혀 있지 않았다.
아전이 말하였다.
“모두 내년에 병난으로 죽을 사람들입니다.”
“나도 있는가?”
아전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놀라며 말하였다.
“옛날에 아전이었으면서 이리 무정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일부러 찾아와 공께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오직 『금강경』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명단에서 뺄 수 있습니다.”
강성은 드디어 『금강경』을 매일 수십 번씩 독송하였다.

008_0528_b_01L別駕又令誦經祈晴應時開霽前後證
008_0528_b_02L不能遍擧

008_0528_b_03L
唐臨安陳哲家住餘杭精一練行
008_0528_b_04L金剛經廣德初武康賊宋潭冠餘杭
008_0528_b_05L哲富於財將移徙避之賊尋至哲謂
008_0528_b_06L是官軍問賊今近遠賊大怒曰何物
008_0528_b_07L老奴敢辱我爭以1) [2] 刺之每下一*釰
008_0528_b_08L有五色圓光經五六尺蔽哲身不能中
008_0528_b_09L賊驚嘆慚悔捨之去

008_0528_b_10L
唐政和中眞州石匠孫翁每日持金剛
008_0528_b_11L經三卷一日同二十餘人入山鑿石
008_0528_b_12L山崩盡沒唯孫在石鏬處歷十二年
008_0528_b_13L子孫鑿石穿山見翁端坐容㒵如故
008_0528_b_14L子驚拜問何以得生翁曰常持金剛經
008_0528_b_15L問饑否曰初啖一酥餅至今不饑
008_0528_b_16L曰我昔所誦之經尙在否子曰尙在
008_0528_b_17L家取經祖之經上有一圓孔恰如餅大

008_0528_b_18L
唐陸康成甞任京兆府法曹掾不避强
008_0528_b_19L公退忽見亡吏抱案數百紙請押
008_0528_b_20L問曰汝去世何得來此曰此幽府文簿
008_0528_b_21L康成視之但有人姓名無他事吏曰皆
008_0528_b_22L來年兵刃死者問曰有我乎吏曰有
008_0528_b_23L因大駭曰舊吏得無情乎曰故來啓明
008_0528_b_24L公耳惟金剛經可解即失之康成遂

008_0528_c_01L다음 해 주차朱泚가 반란을 일으키고는 그를 어사御史로 임명하자 강성이 질책하며 말하였다.
“적신賊臣이 감히 나라의 선비를 욕보이는구나.”
주차가 진노하여 수백의 기병에게 그를 에워싸고 활을 쏘도록 명하였다. 그때 강성이 묵묵히 『금강경』을 염송하자 화살이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주차는 “선비는 충신忠信으로 갑옷을 삼는다더니 정말이구나.” 하고는 그를 풀어 주고 떠났다. 강성은 결국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며 다시는 벼슬 하지 않았다.
당의 최녕崔寧은 대력大曆 초(766)에 서촉西蜀에 진군하였다. 이때 양림楊林이 반란을 일으켜 건아健兒 장국영張國英과 함께 싸웠다. 그러다 배에 화살을 맞았는데 화살촉이 깊이 박혀 빠지지 않았다. 의사가 “하룻밤 안에 분명 죽을 것이다.”라고 하여 집안사람들은 장례 도구를 준비하였고, 같은 부대 사람들과 눈물로 이별하였다. 국영은 항상 『금강경』을 지송하였는데 밤이 되자 꿈에 서역의 승려가 나타나 환약 하나를 그에게 투여하였다. 아침이 되자 화살촉이 흘러나왔고, 상처가 곧바로 아물었다.
당 대력大曆 연중(766~779)에 태원太原에서 말을 훔친 도둑이 옛날의 원한으로 왕효렴王孝廉과 내통했다고 무고하였다. 고문이 열흘째 이어지자 효렴은 고통이 극심해 억지로 복종하고 말았지만 조사관이 그의 억울함을 의심하고는 판결을 미루고 감옥에 두었다. 효렴은 오로지 『금강경』만 지송하였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애절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밤낮으로 그치지 않자 홀연히 공중에서 대나무 한 조각이 떨어졌는데 양쪽에 마디가 있었다. 감옥에 떨어질 때 왕효렴 바로 앞에 있었는데, 다른 죄수들이 그걸 서로 가지려고 싸웠다. 옥졸이 놀라며 무슨 일인가 하여 모든 사람들 앞에 서 쪼개어 보았다. 거기엔 『금강경』에 수록된 게송의 반인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는가.”2)라고 쓰여 있었는데 필체가 매우 뛰어났다. 도둑은 자수하고는 슬피 뉘우쳤고, 효렴은 풀려날 수 있었다.
감옥은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곳인데 이 대나무가 어디에서 왔을까? 양쪽에 마디가 있는데 이 경이 어디로 들어갔을까? 어찌 생각으로 미칠 수 있겠으며, 어찌 도둑을 슬피 뉘우치게 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
당 대력大曆 11년(776)의 일이다. 위주衛州 별가別駕인 주백옥周伯玉은 매일 『금강경』을 수지하고 염송하며 공적인 일에서건 사적인 일에서건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홀연히 범승이 찾아온 것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어떤 존자십니까?”
“내가 바로 반야회상般若會上의 수보리須菩提이다.

008_0528_c_01L讀金剛經日數十遍明年朱泚反
008_0528_c_02L爲御史康成叱曰賊臣敢干國士
008_0528_c_03L震怒命數百騎環射之康成默念金剛
008_0528_c_04L矢不能傷泚曰儒以忠信爲甲胄信
008_0528_c_05L乃捨去康成遂隱終南山不復仕

008_0528_c_06L
唐崔寧大曆初鎭西蜀時楊林反
008_0528_c_07L兒張國英與戰射中腹鏃沒不出
008_0528_c_08L曰一夕必死家人將備葬具與同伍泣
008_0528_c_09L國英常持金剛經至夜夢胡僧
008_0528_c_10L一丸藥投之及旦瀉箭鏃出瘡便合瘥

008_0528_c_11L
唐大曆中太原偸馬賊以舊怨誣王孝
008_0528_c_12L廉同情拷掠旬日苦極强服推吏疑
008_0528_c_13L其寃未即成獄孝廉專持金剛經
008_0528_c_14L極哀切晝夜不息忽空中墮竹一段
008_0528_c_15L兩頭有節墜獄中正在王前他囚爭
008_0528_c_16L取之獄卒驚疑對衆劈視乃金剛經
008_0528_c_17L中半偈云法尙應捨何况非法書蹟
008_0528_c_18L甚工賊首悲悔孝廉得釋獄不通風
008_0528_c_19L此竹從何處來兩頭有節此經從何處
008_0528_c_20L豈思議所能及安得不令賊人悲悔

008_0528_c_21L
唐大曆十一年衛州別駕周伯玉日持
008_0528_c_22L念金剛經公私不易其心一日忽見梵
008_0528_c_23L僧來問曰是何尊者答曰吾是般若會
008_0528_c_24L{1">「釰通」用「釖」{編}次同

008_0529_a_01L그대가 여러 해 경을 염송하고는 있지만 애석하게도 육식을 끊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정말 지극한 마음으로 불도를 구한다면 오래도록 재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백옥은 이때부터 채식을 하며 경을 염송하였다. 그 뒤로는 앞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았다. 나이 90에 앉아서 천화하였다.
당의 강백달强伯達이 원화元和 9년(814)에 겪은 일이다. 그의 집안은 방주房州에 있었는데 대대로 악질惡疾이 전해진 지 200년이나 되었다. 백달은 겨우 관을 쓸 나이에 나병을 앓게 되어 아버지와 형에게 부탁하였다.
“병석에서 분명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후환을 남길까 걱정입니다.”
아버지와 형은 양식을 챙겨 그를 황량한 산 바위 아래에 남겨 두고 울면서 떠났다. 먹을 것이 떨어지고 오래지 않아 홀연히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가 그를 불쌍히 여겨 말하였다.
“네가 『금강경』에 있는 4구 게송을 외운다면 혹 이 고통에서 벗어날지도 모르겠구나.”
백달은 가르침을 받아들여 입으로 염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홀연히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다가왔다. 너무도 두려워 그저 눈만 감고 지극 정성으로 게송을 염하였다. 그러자 호랑이가 그의 종기를 구석구석 핥았는데 마치 전설 속 약처럼 시원하고 다른 고통이 전혀 없었다. 호랑이가 떠나고 종기는 점차 가라앉았다. 다음날 아침 스님이 다시 찾아와 산기슭에서 새파란 풀을 한 주먹 뜯어 그에게 주면서 계곡으로 가서 풀을 물에 적셔 종기를 씻으라 하였다. 백달이 목메어 울면서 감사의 절을 올리자 스님은 사양하고는 떠났다. 스님이 떠난 후에 상처를 씻자 나병이 허물을 벗듯 나았다. 돌아가 아버지와 형을 뵙자 놀라며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이 없었고, 이때부터 그 질병도 드디어 사라지게 되었다.
당의 사공司空 엄수嚴綬3)가 원화元和 연중(806~820)에 강릉江陵에 있을 때 일이다. 잠양진涔陽鎭의 장수 왕면王沔이 항상 『금강경』을 지송하였다. 그는 주州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러 돌아가다가 타탄咤灘에 이르러 배가 파손되고 다섯 사람과 함께 물에 빠졌다. 왕면이 물에 잠기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장대 하나를 주는 듯하였다. 그는 물살을 따라 나왔다 잠겼다 하면서 300여 리를 떠내려갔고, 하류의 뇌진牢鎭에 이르러서야 언덕에 닿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서야 손에 있는 물건을 보았더니 『금강경』을 수지하고 있었다.
당의 오가구吳可久는 월나라 사람이다. 원화 15년(820)에 가구는 장안長安에 살며 마니교摩尼敎를 신봉하였고, 아내 왕王씨 역시 그를 따랐다. 그해 겨울에

008_0529_a_01L上須菩提也汝誦經數年惜未斷肉
008_0529_a_02L若果至心求佛非長齋不可伯玉自此
008_0529_a_03L蔬食誦經後預事前知至九十坐化

008_0529_a_04L
唐强伯達元和九年家房州世傳惡
008_0529_a_05L二百年矣伯達纔冠即患風癩
008_0529_a_06L父兄曰疾必不起慮貽後患父兄裹
008_0529_a_07L置之空山巖下泣而去絕食未幾
008_0529_a_08L忽有僧過傷之曰汝可念金剛經內偈
008_0529_a_09L四句或脫斯苦伯達受敎念不絕口
008_0529_a_10L數日間忽見一虎至懼甚但瞑目至
008_0529_a_11L誠念偈虎徧䑛其瘡氷冷如傳藥
008_0529_a_12L無他苦虎去而瘡漸差矣明旦僧復至
008_0529_a_13L於山邊拾靑草一握授之令就澗水
008_0529_a_14L浸草洗瘡伯達嗚咽拜謝僧推之背去
008_0529_a_15L去後洗之風癩如脫皈見父兄無不
008_0529_a_16L驚異從此其疾遂止

008_0529_a_17L
唐嚴司空綬元和中在江陵時涔陽
008_0529_a_18L鎭將王沔常持金剛經因皈州勘事回
008_0529_a_19L至咤灘船破五人同溺沔入水若有
008_0529_a_20L授竹一竿隨波出沒三百餘里
008_0529_a_21L下牢鎭着岸不死視手中物乃受持
008_0529_a_22L金剛經也

008_0529_a_23L
唐吳可久越人元和十五年可久居
008_0529_a_24L長安奉摩尼敎妻王氏亦從之歲餘

008_0529_b_01L아내가 갑자기 죽었고, 3년이 지난 후 꿈에 나타나 남편에게 말하였다.
“저는 사견邪見 탓에 뱀이 되어 황자파皇子坡 부도浮圖 아래 있는데 내일 아침 죽을 것입니다. 부디 스님을 초청해 그곳으로 찾아와 『금강경』을 전독轉讀하여 업보를 벗겨 주십시오.”
가구가 꿈속에서 그를 꾸짖자 아내가 성을 내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놀라서 깨어 보니 얼굴에 종기가 나 있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아내는 다시 남편의 형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동산에서 용설초龍舌草를 꺾어다 그것을 찧어 전해 주십시오.”
잠에서 깬 형이 그걸 꺾어다 주자 그 동생은 곧 치유되었다. 이튿날 아침 형제는 스님을 초청해 경을 전독하였다. 그러자 큰 뱀이 탑에서 나와 머리를 치켜들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독경이 끝나자 죽었다. 이 일로 가구의 온 집안이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정성을 다해 이 경을 받들었다.
당의 사공司空 곽쇠郭釗가 촉蜀을 떠나던 해에 있었던 일이다. 조안趙安이란 백성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금강경』을 염송한 사람이었다. 그는 야외를 거닐다가 묘지 옆에 소박한 옷 한 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조안은 주인이 없는 것이라 여겨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웃 사람이 조안이 물건을 훔쳤다고 고발하여 붙잡혀 현으로 송치되었다. 조안이 인정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 큰 빗장을 정강이에 끼우자 세 조각으로 부러졌고, 그 다음 몽둥이로 등을 내려치게 하였는데 내려치자마자 몽둥이가 부러져 버렸다. 현령이 다른 술수를 부린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오직 『금강경』을 염송했을 뿐입니다.”
이를 곽 사공에게 보고하였고, 곽 사공 역시 이를 기이하게 여겨 결국 방면하도록 판결하였다.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말했다.
“어느 날 경함經凾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는데 겁이 나서 감히 열어 보지 못했습니다.”
조안이 달려가 살펴보니 둘렀던 띠가 끊어지고 축軸이 부러졌으며 종이가 모조리 찢겨 있었다.
당 건부乾符 연중(874~879)에 있었던 일이다. 연주兗州 절도사節度使 최상서崔尙書는 법령이 준엄하였다. 한 장군이 아참衙參4)에 도착하지 않자 곧바로 좌우에 명하여 그를 참수하게 하였는데, 참수한 후에도 그의 안색이 변하지 않아 대중이 모두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그날 밤 3경에 그가 집에 돌아오자 아내와 자식이 귀신인가 의심하였다. 그러자 장군이 말하였다.
“처음 목이 베일 때 취한 듯 꿈인 듯 고통을 몰랐는데, 밤에 깨어 보니 거리에 쓰러져 있었다. 그래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음날 아침 관아에 들어가 사죄하자 최상서가 질타하며 말하였다.
“네가 환술을 부리느냐?”

008_0529_b_01L妻暴亡經三載見夢其夫曰某坐邪
008_0529_b_02L見爲跎在皇子坡浮圖下明朝當死
008_0529_b_03L願請僧就彼轉金剛經脫免業報可久
008_0529_b_04L夢中叱之妻怒唾其面驚覺面腫痛
008_0529_b_05L不可忍妻復夢於夫之兄曰可於園中
008_0529_b_06L取龍舌草搗傳之兄寤取授其弟立
008_0529_b_07L詰旦兄弟請僧轉經有大蛇從塔
008_0529_b_08L中出擧首徧視經終而斃可久擧家
008_0529_b_09L皈佛誠奉此經

008_0529_b_10L
唐郭司空釗離蜀之年有百姓趙安
008_0529_b_11L甞念金剛經行野外見衣一檏遺墓側
008_0529_b_12L安以無主遂持還隣人告趙盗物
008_0529_b_13L送縣怒安不承以大關挾脛折三段
008_0529_b_14L後令杖脊杖下輒折令疑有他術問之
008_0529_b_15L荅云惟念金剛經及申郭郭亦異之
008_0529_b_16L遂判放還其妻云某日聞經凾中震裂
008_0529_b_17L數聲懼不敢發安馳視之帶斷軸折
008_0529_b_18L紙盡破裂

008_0529_b_19L
唐乾符中兗州節度使崔尙書法令嚴
008_0529_b_20L一軍將衙叅不到即令左右斬之
008_0529_b_21L斬後顏色不變衆咸驚異是夜三更皈
008_0529_b_22L妻子疑爲鬼軍將曰初被斬時
008_0529_b_23L醉如夢不知痛苦夜覺身倒街中
008_0529_b_24L起還家耳明旦入謝崔咤曰爾有幼術

008_0529_c_01L
“본래 환술 같은 것은 부릴 줄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금강경』을 매일 세 번씩 읽을 뿐입니다. 어제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독경이 예정 시간을 넘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참에 빠졌던 것입니다.”
최상서가 물었다.
“참수되던 때가 기억나는가?”
“처음 극문戟門 밖으로 붙잡혀 나갈 때부터 문득 취하거나 꿈을 꾼 것처럼 도무지 기억나질 않습니다.”
최상서가 물었다.
“경전은 어디에 있는가?”
“집에 있는 불감佛龕의 함 속에 있습니다.”
급히 가져오게 하여 함을 열어 보였는데 경은 이미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최상서는 크게 놀라며 후회하고 두 번 세 번 위로하며 달랬고, 그에게 옷을 한 벌 하사하였다. 그리고 은으로 이 경을 100권 사경하여 독송하고 공양하였다. 더불어 연주兗州 연수사延壽寺 문밖에다가 잡아 죽였던 장면과 경전을 벤 형상을 그리게 하여 신비한 자취를 널리 알렸다. 장군은 104세까지 수명을 누렸다.
당 진국두陳國竇 공의 부인 노盧씨는 예관芮寬 공의 여동생이다. 평소 죄와 복을 믿어 항상 『금강경』을 독송하였는데, 어느 날은 미처 끝내기도 전에 홀연히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밤이 되자 더욱 심해졌다. 혼자 생각에 ‘갑자기 죽으면 권을 마저 끝낼 수 없다’ 하고는 서둘러 촛불을 찾았는데 불이 모두 꺼진 상태였다. 그때 홀연히 횃불이 나타나 차례차례 당의 섬돌을 오르더니 곧장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 횃불은 든 사람도 없이 땅에서 세 척 남짓 떨어져 있었고 밝기가 대낮 같았다. 부인은 놀라고 기뻐하며 경전을 가져다 독송하였다. 얼마 후 집안사람들이 부싯돌을 비벼 불을 피우자 촛불의 광명은 곧 사라졌다. 이때부터 병이 나아 매일 다섯 권을 염송하였다. 어느 날 예 공이 죽을 무렵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 여동생이 경전을 자세하고 각별히 염송하였기에 명부의 사령이 그 이름을 기록하고 수명을 늘려 준 것이다.”
그 후 나이 90에 병 없이 죽었다.
당의 요등관廖等觀이 선화현善化縣의 지사로 있을 때 일이다. 어떤 노파가 매일 『금강경』을 염송하며 거리와 시장에서 걸식하다가 밤이면 산비탈로 돌아가 잠을 잤는데, 갑자기 며칠 동안 보이질 않았다. 까마귀 떼가 그가 머물던 곳에 시끄럽게 모여 있기에 사람들이 다투어 찾아가 살펴보았더니, 노파는 『금강경』을 품은 채 바위 곁에서 죽어 있었고, 까마귀 떼가 흙을 물어다 그를 덮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까마귀가 장사지내 준 노파(鴉葬婆)’라 부르게 되었다.

008_0529_c_01L荅云素無幻術自少至今讀金剛
008_0529_c_02L日三徧昨日失曉誦經過期故悞
008_0529_c_03L衙叅崔問記斬時否云初押出戟門外
008_0529_c_04L便如醉夢都不記憶崔問經在何處
008_0529_c_05L云在家中佛龕凾內急令取到開凾
008_0529_c_06L經已兩斷矣崔大驚悔慰諭再三賜衣
008_0529_c_07L一襲銀書此經百卷誦讀供養仍令
008_0529_c_08L於兗州延壽寺門外圖書就戮之處
008_0529_c_09L斬經之像以顯靈跡軍將壽至百四歲

008_0529_c_10L
唐陳國竇公夫人盧氏芮公寬娣素信
008_0529_c_11L罪福常誦金剛經未竟忽頭痛至夜
008_0529_c_12L逾甚自念儻死不得終卷矣力疾索
008_0529_c_13L而火悉滅忽見燭炬漸升堂陛
008_0529_c_14L入臥內去地三尺許無人執持光明
008_0529_c_15L若晝夫人驚喜取經讀誦有頃家人
008_0529_c_16L鑚燧得火燭光即滅自此病痊日誦
008_0529_c_17L五卷一日芮公將死謂夫人曰吾娣
008_0529_c_18L誦經精恪冥司記注姓名增遐壽矣
008_0529_c_19L後年至九十無疾終

008_0529_c_20L
唐廖等觀知善化縣時有婆每日誦
008_0529_c_21L金剛經於街市乞食夜則皈宿山阿
008_0529_c_22L忽數日不見群鴉噪集於其止處人爭
008_0529_c_23L徃視之則懹金剛經傍巖而化羣鴉
008_0529_c_24L含土以覆之遂名鴉葬婆

008_0530_a_01L
당 정관貞觀 말년(649)의 일이다. 승려 명도明度는 자비로 구제할 마음을 먹고 부지런히 정토의 업을 닦았으며, 매일 『금강경』 염송으로 과업을 삼았다. 어떤 비둘기가 집 기둥에 둥지를 틀고 새끼 두 마리를 키우자 명도는 매일같이 남는 죽을 먹여 주었다. 그리고 “내가 독경한 경의 힘을 빌려 날개가 얼른 자라거라.” 하고 축원하였다. 그러나 새끼가 어느 날 갑자기 날갯짓을 배우다 땅에 떨어져 둘 다 죽고 말았다. 명도는 이들을 가엾이 여겨 장사까지 지내 주었다. 10여 일 후 꿈에 두 소년이 나타나 말했다.
“저희는 본래 난생卵生의 몸을 받았지만 상인上人께서 양육해 주시고 지송한 공덕을 회향해 주신 덕분에 지금 다행히도 몸을 바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동쪽 10리에 있는 아무개 집이 그곳입니다.”
명도가 묵묵히 이를 기억해 두었다가 그해가 지나고 그 집으로 찾아가 묻고 살폈더니 과연 쌍둥이 아들이 태어나 있었다. 명도가 “비둘기 새끼야!” 하고 부르자 쌍둥이가 서로 쳐다보며 방긋 웃었는데 마치 잘 아는 사이 같았다.
당 영휘永徽 원년(650)의 일이다. 석명준釋明濬이 갑자기 죽자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인도하였고, 명부의 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한평생 무엇을 익혔습니까?”
“『금강경』만 염송했습니다.”
왕이 “훌륭하십니다. 염송을 10만 번 채운다면 내년에는 분명 정토에 왕생할 것이니, 제자는 스님을 뵙지 못하겠군요.” 하고는 풀어 주며 돌려보냈다. 명준은 더욱 열심히 정진하다가 영휘 2년(651) 3월에 앉아서 천화하였는데 모두가 기이한 향기를 맡았다. 경에서 “경을 독송하며 염송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게 할 수만 있다면 저절로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5)고 한 것이 이것이다.
당 건원乾元 연중(758~760)의 일이다. 광주廣州의 승려 건혜虔慧는 어려서부터 『금강경』을 수지하며 추위와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후에 10여 명과 함께 바닷길로 남안도호부南安都護府로 가다가 바람과 파도가 거세게 일어 배가 전복되어 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직 건혜만은 파도에 휩쓸리다가 우연히 쑥 다발 하나를 만나 손으로 그것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사흘 밤낮을 파도에 휩쓸리다가 해안에 다다라 손을 풀고 살펴보니 쑥 다발 속에 『금강경』 한 권이 있었다. 건혜는 절을 하고 그것을 수지하며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다. 나이 130세에 이르러 단정히 앉아 운명하자 그 경전에서 저절로 향 연기가 피어올라 점점 오색구름이 되더니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대중 스님과 태수와 관료 등 모두가 이를 목격하였다.

008_0530_a_01L
唐貞觀末僧明度慈濟爲心勸修淨
008_0530_a_02L日誦金剛經爲課有鴿巢於屋楹
008_0530_a_03L乳抱二雛度每以餘粥哺之復呪曰
008_0530_a_04L乘吾經力羽翼速成雛忽學飛墜地
008_0530_a_05L皆殞度憫瘗畢旬餘夢二小兒曰
008_0530_a_06L等本受卵生蒙上人育養誦持回向
008_0530_a_07L今幸轉生人道距此東十里某家是也
008_0530_a_08L度默誌之約過歲餘徃其家詢視
008_0530_a_09L雙生二子度號爲鴿兒二子相祖嘻笑
008_0530_a_10L如熟識

008_0530_a_11L
唐永徽元年釋明濬暴死見二靑衣
008_0530_a_12L引見冥王問一生何藝荅但誦金剛經
008_0530_a_13L王曰善哉若誦十萬遍明年必生凈土
008_0530_a_14L弟子不見師也乃放還濬愈加精進
008_0530_a_15L至二年三月坐化咸聞異香經云誦經
008_0530_a_16L但能念聲相續自得徃生凈土是也

008_0530_a_17L
唐乾元中廣州僧虔慧自幼受持金剛
008_0530_a_18L無間寒暑後與十數人泛海徃南
008_0530_a_19L安都護府風濤大作舟人覆沒惟虔
008_0530_a_20L慧在浪中偶遇蓬蒿一叢以手緊抱
008_0530_a_21L隨浪三日夜得至岸解視蒿中則金
008_0530_a_22L剛經一卷慧拜持彌進年至百三十歲
008_0530_a_23L端坐告終其經本自出香煙漸成五
008_0530_a_24L色雲徐徐上天僧衆與太守官僚

008_0530_b_01L
당 장경長慶 초(821)에 있었던 일이다. 승려 회종會宗이 일찍이 회충에 감염되어 살이 빠지고 뼈만 남은 상태였다. 그는 『금강경』을 염송하며 죽음을 맞이하기로 발원하였다. 그렇게 500번을 염송하기에 이르렀을 때였다.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입을 벌리라고 하더니 목구멍에서 머리카락 10여 가닥을 끄집어내었다. 밤에 또 길이가 1주肘 남짓한 큰 회충을 토하는 꿈을 꾸고는 얼마 후 병이 나았다. 형산荆山의 승려 행견行堅이 그 일을 목격하였다.
당 강릉江陵 반야원般若院의 승려 법정法正이 매일 『금강경』을 21번씩 지송하다가 나이 60에 병을 얻어 죽어서 명부에 이르렀다. 왕의 힐문에 『금강경』을 염송하였다고 답하자, 왕이 읍하며 대전으로 올라와 곱게 수놓은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 자리에서 경을 일곱 번 염송하자 시위侍衛하던 이들이 모두 합장하고는 섬돌 아래에서 고문하고 논박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염송이 끝나자 관리를 파견해 모시고 돌아가게 하였고, 왕이 섬돌을 내려와 전송하며 말했다.
“상인께서는 다시 30년을 인간 세상에 머무실 것입니다. 독송하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생사에서 벗어나십시오.”
관리를 따라 수십 리를 가다가 하나의 큰 구덩이에 다다르자 관리가 뒤에서 밀었는데, 마치 허공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가 죽은 지 7일 만이었는데 얼굴이 여전히 식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향년 80살이 넘었고, 형주荊州의 승려 상정常靖이 그 일을 직접 목격하였다.
당 천보天寶 연간(742~756)에 있었던 일이다. 장무시張無是가 포정방布政坊에 살고 있었는데 저녁에 돌아오니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큰 다리 아래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밤중에 홀연히 기병 몇 명이 다리에 이르러 말하였다.
“한 사람은 포정방으로 가서 장무시의 아내와, 같은 동네에 사는 왕씨 노인을 잡아와라. 또 한 사람은 아무개 곳으로 가서 누구누구를 잡아와라.”
무시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잠시 후 잡으러 갔던 자가 돌아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은 다 잡아왔지만 무시의 아내만은 『금강경』을 염송해 선신善神들이 보호한 탓에 잡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잡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자 모두들 대답했다. 무시는 평소 왕 노인과 아는 사이였는데 대답하는 소리가 딱 그 목소리였다. 잠시 후 말발굽 소리가 끊겼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살펴보니 여전히 단정히 앉아 경을 염송하고 있었다.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당신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기에 겁이 나서

008_0530_b_01L見之

008_0530_b_02L
唐長慶初僧會宗甞中蠱體削骨存
008_0530_b_03L發願念金剛經以待盡至五百遍晝夢
008_0530_b_04L有人令開口喉中引出髮十餘莖夜又
008_0530_b_05L夢吐大蚘長一肘餘病尋愈荆山僧
008_0530_b_06L行堅見其事

008_0530_b_07L
唐江陵般若院僧法正日持金剛經三
008_0530_b_08L七遍年六旬得病卒至冥司王詰問
008_0530_b_09L答念金剛經王揖上殿令登繡座念經
008_0530_b_10L七遍侍衛悉合掌階下拷掠論對
008_0530_b_11L停息聽誦畢遣吏引還王下階送云
008_0530_b_12L上人更得三十年在人間勿廢讀誦
008_0530_b_13L出生死隨行數十里至一大坑吏自
008_0530_b_14L後推之若隕空焉死已七日惟面不
008_0530_b_15L今享年八十餘矣荆州僧常靖
008_0530_b_16L見其事

008_0530_b_17L
唐天寶間張無是居布政坊暮歸門閉
008_0530_b_18L蹲伏大橋下夜半忽數騎至橋云一騎
008_0530_b_19L至布政坊取張無是妻及同谷王叟
008_0530_b_20L又一騎徃某處取數人無是聞之大驚
008_0530_b_21L俄取者至云諸人盡得惟無是妻
008_0530_b_22L金剛經善神護之故不得唱所得人名
008_0530_b_23L皆應無是素識王叟聲亦應俄鼓絕
008_0530_b_24L急皈見妻猶端坐誦經妻曰吾恐汝犯

008_0530_c_01L경을 염송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남쪽 이웃집에서 곡소리가 들렸고, 왕 노인이 과연 죽었다.이것은 「선여인감응편善女人感應篇」에 들어가야 합당하다.
송 소흥紹興 연중(1131~1162)의 일이다. 수주秀州에 사는 송승신宋承信이 번위翻胃의 질환을 앓았는데 수년 동안 백약이 무효였다. 그러다 꿈에 한 범승이 나타나 말하였다.
“당신은 숙세의 원한으로 금생에 이런 병고를 겪는 것입니다. 무릇 세간에서 질병이 온몸을 얽어매어 오랜 세월 베개에 엎드려 지내면서 죽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 그 혼魂이 저승에 잡혀 전생과 금생에 저지른 죄악을 조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금강경』을 받들어 보시하거나 직접 또는 남을 시켜 사경하거나 평생토록 수지한다면 마음에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바로 음부陰府의 관조官曹에 감응하여 먼저 혼백魂魄을 몸으로 돌려보낼 것이며, 다음엔 양의良醫를 만나 그 병도 곧 치유될 것입니다.”
승신은 잠에서 깨어나 깊이 반성하였고, 다음날 아침 아내에게 향을 사르게 하고 발원하였다.
“그 경을 천 권 보시할 것을 약속하고, 또 굳건한 마음으로 수지하겠습니다.”
그러자 꿈에 금강신金剛神이 환약 한 알을 주며 삼키게 하였다. 다음날 병이 덜하더니 한 달쯤 후에는 완전히 나았다. 이를 목격하고 소문을 들은 이들은 찬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송 소주蘇州의 주朱 진사進士는 평생 거자擧子6)의 업을 배우며 불법은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호구사虎丘寺를 유람하다가 불인佛印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들었는데, “일체 유위법은……” 하는 사구게四句偈7)에 이르러 일찍이 없던 희열이 솟았고, 이 일로 경 전체의 뜻을 연구하고 싶어졌다. 우연히 낮잠을 자다가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다섯 사람을 압송하고 주 진사가 뒤를 따르는 꿈을 꾸게 되었다. 2리 남짓을 가자 어떤 큰 거리에 다다랐고, 드디어 마을 문 안쪽에 푸른 베로 발을 친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부엌에 이르자 통 안에 탕이 있었고, 다섯 사람이 모두 그걸 마시기에 주 진사 역시 마시려 하였다. 그러자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이 고함을 쳤다.
“불법을 들은 사람은 마셔선 안 된다.”
결국 놀라서 깨어났다. 그는 꿈을 믿고 걸어서 큰 거리를 찾아갔고, 마을로 들어서자 과연 인가가 있었는데 꿈에서와 똑같았다. 주 진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주인이 자세히 말해 주었다.
“부엌에서 강아지 여섯 마리가 태어났는데 한 마리는 죽은 놈이었습니다.”

008_0530_c_01L誦經相待忽聞南隣器聲則王叟
008_0530_c_02L果死矣此應入善女人

008_0530_c_03L
宋紹興中宋承信居秀州患翻胃疾
008_0530_c_04L數年百藥無効夢一梵僧謂曰汝有宿
008_0530_c_05L今生受此病苦凡世間疾病纒身
008_0530_c_06L經歲伏枕求死不得者其魂多攝在陰
008_0530_c_07L考較前生今世所作罪惡若能奉
008_0530_c_08L施金剛經或自他書寫或畢世受持
008_0530_c_09L纔擧心念遂感陰府官曹先放魂魄附
008_0530_c_10L次遇良醫其病即愈承信睡覺省
008_0530_c_11L明旦令妻焚香發願許施其經千卷
008_0530_c_12L復志心受持夢金剛神賜藥一丸
008_0530_c_13L呑之次日病減月餘全瘳見聞者
008_0530_c_14L不賛歎

008_0530_c_15L
宋蘇州朱進士平生學擧子業未聞佛
008_0530_c_16L偶遊虎丘寺聞佛印講金剛經
008_0530_c_17L一切有爲法四句喜未曾有因欲究全
008_0530_c_18L經旨義偶午睡夢靑衣押五人朱隨
008_0530_c_19L後行二里許至一大街竟入巷門內
008_0530_c_20L掛靑布簾人家至厨房桶內有湯
008_0530_c_21L人皆飮朱亦將飮靑衣喝曰聽佛法
008_0530_c_22L不得飮遂驚覺乃信步行至大街
008_0530_c_23L入巷果有人家與所夢合朱叩門入
008_0530_c_24L主人具言厨房生六犬內有一死者

008_0531_a_01L
깜짝 놀란 주 진사는 두려움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불법을 듣지 못했다면 개의 뱃속으로 들어갔겠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이 일로 때때로 『금강경』을 염송하였고, 수명 89세에 이르러 천화하였다.
송 순희淳熈 원년(1174)의 일이다. 양주부楊州府 승국承局 주흥周興은 어려서부터 매일 『금강경』을 한 권 염송하였다. 태수 막호莫濠가 그를 폐물 천여 관貫을 지니고 가는 사신으로 파견하여 조정 귀인께 장수를 기원하는 선물을 갖다 드리게 하였다. 그는 과주瓜州에 이르러 나루터 욱郁씨 셋째 아들의 객점에 투숙하였는데, 셋째와 형인 욱씨 둘째 아들이 재물이 탐이 나 그를 죽이고는 객점에서 5리쯤 떨어진 길가에 매장하였다. 주흥이 기한을 어김으로 인해 그의 아내와 아들은 1년을 구금되어 질책을 당하였고, 태수 역시 소환되었다. 태수가 부름을 받아 조정으로 가던 길에 과주에 닿을 즈음이었다. 길가에 연꽃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문득 보고는 시종에게 그것을 꺾어 오라 하였다. 하지만 꺾어도 끊어지지 않아 네다섯 자를 파 내려가다가 그 꽃이 죽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시체는 눈동자가 여전히 움직일 수 있어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바로 주흥이었다. 부축하고 돌아온 다음날에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어 객점에서 모의해 살해한 사실을 낱낱이 진술하였는데, 땅에 묻힌 지 18개월이나 되었다. 태수가 물었다.
“어떻게 죽지 않고 배고프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피살되어 매장될 때 꿈처럼 혼미하였는데 한 금강신이 나타나 연꽃을 입에 꽂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깊이 잠들었습니다.”
태수가 감탄하며 말하였다.
“이 경에 불가사의한 공덕이 있다는 건 일찍이 들었다. 내 부끄럽게도 그대의 아내와 자식을 구금하였다. 또 생각건대 평소 처리했던 공안公案에 어찌 조금도 잘못이 없었다 하겠는가?”
그는 곧 양주楊州 관부府官로 편지를 보내 주흥의 아내와 자식을 석방하게 하고, 욱씨 둘째와 셋째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였다.
송의 범문정范文正 공은 원적原藉이 사천四川 성도成都이나 소주 부윤蘇州府尹으로 출사해 결국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1일째 되던 날 꿈에 나타나 울면서 말하였다.
“이 어미는 이승에서 죄를 지어 태산부군泰山府君에게 끌려가 아침저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고 있다. 효순한 우리 아들아, 제발 공덕이 있는 경을 한 장藏 염송하여 어미의 죄를 없애다오. 늑장 부리거나 의심하여 어미가 한 번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히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없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또 부탁하였다.
“공덕이 있는 경은 곧 『금강경』이란다.”

008_0531_a_01L驚怖流汗自謂若不聞佛法入犬胎矣
008_0531_a_02L因時念金剛經壽至八十九歲遂化去

008_0531_a_03L
宋淳熈元年楊州府承局周興自幼日
008_0531_a_04L誦金剛經一卷太守莫濠差齎幣千餘
008_0531_a_05L徃行在壽朝貴至瓜州渡郁三店
008_0531_a_06L投宿三與兄郁二謀財害命埋離店
008_0531_a_07L五里路傍興因違限妻子禁責一年矣
008_0531_a_08L及太守被召赴行在將抵瓜州路傍
008_0531_a_09L忽見蓮華一朶令從者折之斫之不斷
008_0531_a_10L掘四五尺見花從死人口中出眼猶能
008_0531_a_11L熟視之乃興也掖皈次日方能言
008_0531_a_12L具述客店謀害埋地十八月矣守問何
008_0531_a_13L以不死不飢荅曰謀死被埋昏迷如夢
008_0531_a_14L見一金剛神將蓮華揷口中沉睡至今
008_0531_a_15L守嘆曰甞聞此經有不可思議功德
008_0531_a_16L自愧禁其妻子且念平日所理公案
008_0531_a_17L盡無枉耶即移牃楊州府官釋興妻子
008_0531_a_18L拘郁二郁三處死

008_0531_a_19L
宋范文正公原藉四川成都仕蘇州府
008_0531_a_20L遂居焉母亡三七夢泣告曰母以
008_0531_a_21L陽世造罪爲泰山府君所羇日夕受苦
008_0531_a_22L難言吾兒孝順乞誦功德經一藏
008_0531_a_23L拔母罪幸勿遅疑使母一入地獄便
008_0531_a_24L永遠不得超生矣復囑云功德經即金

008_0531_b_01L
공은 새벽에 깜짝 놀라 통곡하다가 잠이 깨었다. 그는 곧 목욕재계하고 절로 찾아가 스님들을 초대하고는 7일 동안 경을 풍송諷誦하게 하였다. 6일째 되던 날 밤에 또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우리 아들의 지극한 정성과 예참禮懺에 감동하여 백의대사白衣大士8)께서 강림해 무려 경을 반 권이나 지송해 주셨다. 죄를 소멸했을 뿐 아니라 다시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 모두가 부처님의 힘이란다. 내일 네가 경당經堂에 들어가 물어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공은 법사法事가 끝나기를 기다린 뒤에 대중 스님들에게 갖가지 예물로 후하게 보답하였다. 그러면서 6일째 풍송하던 사람 중에 반 권만 지송한 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중이 아연실색하며 대답하였다.
“경전에 예참하기를 모두가 함께하였고, 숫자도 완전히 채웠습니다. 어찌 반 권만 지송하는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러자 곁에 있던 한 스님이 조용히 말하였다.
“어제 대중들이 경을 염송할 때 산승도 곁에 서서 묵묵히 간경看經하였습니다. 그러다 제16분分에 이르러 갑자기 대인大人께서 향을 사르러 오셨기에 곧바로 주방으로 돌아가 일을 했습니다. 이제 질문하시니 감히 사실대로 답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문정 공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자 그 스님은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하더니 홀연히 허공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공은 이 일로 막막선당莫莫禪堂을 창건하고 영험한 이적을 기록하였다.
송의 풍시어馮侍御는 매일 『금강경』을 세 권 염송하였다. 28세에 이르러 남의 일로 상소를 올렸는데, 그날 밤 4경에 홀연히 두 사자가 나타나 추포하여 명부로 데려갔다. 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수명은 79세에 이르고 관직은 추부樞府에 이르러야 합당하다. 그러나 그대의 상소로 인해 백성에게 손해를 끼쳤으니 녹祿을 깎고 수명을 덜어야겠다.”
풍시어가 경악하며 말하였다.
“이승의 수명이 기왕 다하지 않았다면 제발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맹세코 죽는 날까지 경을 지송하여 음덕을 열심히 쌓겠습니다.”
왕이 훈계하여 말하였다.
“무릇 권세를 잡은 자들은 장부 하나를 곁에 두고서 낮에 한 일들을 밤이면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 기록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다시는 짓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이다. 백성을 사랑하고 만물을 동정하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반드시 수명과 복이 늘어날 것이며, 각박한 마음을 품자마자 상제上帝가 엄히 꾸짖을 것이다.”
다시 살아난 풍시어는 음덕을 매일같이 쌓았다. 그는 수명이 98세에 이르렀고, 관직이 승상丞相에 올랐다. 하루는 병이 들어 누웠는데,

008_0531_b_01L剛經也公眛旦驚哭而醒即沐浴齋戒
008_0531_b_02L徃寺延僧諷經七日至第六日夜
008_0531_b_03L夢母曰緣兒至誠禮懴感白衣大士降
008_0531_b_04L凡持經半卷不但消罪更得生天
008_0531_b_05L佛力也明辰兒入經堂詢之自知
008_0531_b_06L候法事畢備襯厚酬衆僧因問第六日
008_0531_b_07L諷經內有只持半卷者衆惧失色
008_0531_b_08L曰所禮經典俱如數完豈有持半卷之
008_0531_b_09L傍有一僧從容告云昨日大衆念
008_0531_b_10L山僧倚立默看至第十六分倐大
008_0531_b_11L人至拈香便皈厨作務今承問敢不
008_0531_b_12L直對公稽首下拜僧言莫莫忽騰空
008_0531_b_13L不見公因創莫莫禪堂以誌靈異

008_0531_b_14L
宋馮侍御日誦金剛經三卷至二十八
008_0531_b_15L有他事奏䟽是夜四更忽見兩使
008_0531_b_16L追入冥府王曰汝壽合至七十九
008_0531_b_17L官至樞府緣汝奏劄損民當絕祿除筭
008_0531_b_18L馮驚愕告曰某旣陽壽未盡乞使再生
008_0531_b_19L誓當畢世持經力行陰隲王誡曰
008_0531_b_20L當權柄可置一簿日間作事夜必書
008_0531_b_21L旣不可書必不可作此延年術也
008_0531_b_22L纔擧善念惠民恤物必增福壽稍懷
008_0531_b_23L刻剝上帝嚴譴矣馮旣再生陰德日
008_0531_b_24L壽至九十八官拜丞相一日臥疾

008_0531_c_01L방년 11세의 아홉째 아들이 대청을 나서다가 소머리에 말의 얼굴을 한 자들이 무수히 있는 것을 보았다. 깜짝 놀라 어디에서 왔냐고 묻자, 귀신 사자들이 대답하였다.
“저희가 염마천자閻摩天子를 맞이하러 특별히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본 것을 아버지에 아뢰자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살아서는 상주국上柱國9)이 되고 죽어서는 염마왕閻摩王이 되니, 이것이 나의 직위니라.”
송의 시주柴注는 청주靑州 사람이다. 그가 수춘군壽春郡 사리司理가 되어 모의를 추궁하고 투옥시킬 때, 어떤 죄수가 한 말이다.
“저는 성 밖 30리 떨어진 곳에서 나그네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나그네가 휴대한 주머니가 무겁거나 혼자 투숙할 때마다 야밤에 그를 죽이고 시체를 백사하白沙河에 던지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인 사람이 앞뒤로 모두 몇 명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직 한 노파만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시주가 그 까닭을 캐묻자 죄수가 대답하였다.
“그 나이 많은 노파는 혼자 찾아와 투숙하였습니다. 저와 형제들은 그녀의 여장이 가볍지 않음을 보고 밤이 깊어지자 맏아들을 보내 문을 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참 있다가 돌아와서는 마치 누가 문을 막고 있는 것처럼 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믿기지 않아 칼을 들고 직접 찾아가 문구멍과 벽 틈새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붉은 광명 속에서 방을 위아래로 꽉 채울 만큼 몸집이 큰 사람이 문을 등지고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며 거의 기절할 뻔하였습니다. 날이 밝아 문이 열렸는데 노파는 머리를 단정히 빗고서 경전 염송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경이냐고 묻자 『금강경』이라 대답하였고, 그때서야 간밤의 신들이 금강신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송 덕우德祐 병자년(1276)의 일이다. 화우華友는 항상 『금강경』을 지송하였는데 영험이 매우 많았다. 그해 원나라 군사가 들이닥치자 화우는 난을 피하기 위해 남몰래 부처님께 기도하였다. 그러자 그날 밤 금강신이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는 전생에 사람을 죽이고 그 죗값을 아직 갚지 못했다. 그 사람이 금생에 화주和州에 태어났는데 성은 왕王이고 이름은 이二이며, 현재는 군대에 있다. 그대는 그의 손에 죽을 것이니, 어떤 수로도 그대를 구할 수 없고 도망가도 소용없다.”
화우는 다음날 단정히 앉아 경전 염송을 멈추지 않았다. 정오 무렵이 되자 두 사람이 들어와 화우를 포박하려 하자

008_0531_c_01L其第九子方十一歲出廳前見牛頭
008_0531_c_02L馬面無數駭問何來鬼吏答曰吾等
008_0531_c_03L特來迎接閻摩天子子以所見白父
008_0531_c_04L父笑曰生爲上柱國死作閻摩王
008_0531_c_05L吾職也

008_0531_c_06L
宋柴注靑州人爲壽春郡司理因鞠
008_0531_c_07L謀命獄一囚言離城三十里歇客爲生
008_0531_c_08L每過客携囊重獨宿夜分殺之投屍於
008_0531_c_09L白沙河中前後不知若干人惟謀一老
008_0531_c_10L嫗不得注問其故囚曰是年老嫗
008_0531_c_11L來投宿某與兄弟見其行李不薄
008_0531_c_12L更深遣長子推戶久乃還云若有人
008_0531_c_13L抵戶不可啓某不信携刀自行及門
008_0531_c_14L穴壁窺之見紅光中一大人與房上下
008_0531_c_15L等背門而立某驚懼失聲幾於顚仆
008_0531_c_16L天明門啓嫗理髮誦經不已問何經
008_0531_c_17L曰金剛經也乃知昨夜神人盖金剛神
008_0531_c_18L

008_0531_c_19L
宋德祐丙子華友常持金剛經甚有靈
008_0531_c_20L是歲元軍至友以避難密禱於佛
008_0531_c_21L是夜金剛神賜夢云爾前生殺人未償
008_0531_c_22L其人今托生和州姓王名二現在軍中
008_0531_c_23L爾當死其手數不能救趍避無益友次
008_0531_c_24L日端坐誦經不輟近午有二人入

008_0532_a_01L“왕이 상공王二相公” 하고 크게 부르며 말하였다.
“나는 당신 손에 죽을 것이 분명하오. 한 번 죽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경전 염송이나 마저 끝내게 해 주시오. 그러고 나서 바로 죽이시오.”
군사가 어떻게 내 성과 이름을 아느냐고 묻자 화우가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왕이가 말하였다.
“이미 금강신께서도 꿈에 나타나셨으니 나와 그대의 전생 원한을 풀어 버리는 것은 어떻겠소?”
그리고는 또 옷까지 남겨 두고 이별을 고하며 떠났다. 화우는 결국 경전을 여러 권 염송하다가 홀연히 앉아서 죽었다.
송 강릉江陵 이현종李玄宗의 딸이 열세 살 되던 해 꿈을 꾸었는데, 한 범승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선근善根이 있는데 왜 『금강경』을 수지하지 않느냐?”
또 말하였다.
“세간의 선남자와 선여인이 매일 깨끗한 마음으로 한 권씩 염송한다면 이승에서 사는 동안에는 수명이 늘어날 것이며, 목숨을 마치면 곧 하늘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만약 반야를 끝까지 궁구한다면 곧장 피안에 이를 것이다. 혹 경의 뜻을 통달하지 못하더라도 죽은 뒤에 음부陰府에 가면 그를 구속할 수 없을 것이고, 분명 부유하고 귀한 집안에 태어나 온갖 수승한 과보를 받을 것이다.”
딸이 그 말을 믿고 매일 『금강경』을 세 권 염송하였다. 그리고 나이 스물넷에 결혼을 원하지 않다가 홀연히 병들어 사흘 만에 죽었다. 명부의 왕이 자세히 조사해 보았더니 죄가 없었고, 또 여자의 머리 위에 부처님께서 나타나신 것을 목격하였다. 왕은 “이 여인에게는 반야의 공덕이 있으니 바로 돌려보내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혼을 풀어 줄 때 왕이 당부하였다.
“너의 아버지는 업을 지어 이미 이승에서의 수명을 20년이나 깎아 먹었다. 그러니 오래지 않아 추포되어 그 증거와 대면할 것이다. 너의 아버지가 산 물고기를 잡아 회를 뜨는 걸 좋아한 까닭에 지금 물고기 7천 여 마리가 상소를 올려 그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다. 돌아가거든 너의 아버지에게 물어보라. 매일 밤 그물에 걸리는 꿈을 꾸고 낮이면 두통에 시달릴 것이니, 그것은 물고기들이 앙갚음하려는 것이다.”
딸이 혼이 돌아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아버지는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결국 딸과 함께 천녕사天寧寺로 찾아가 승려 100명에게 공양을 올렸고, 훈채와 술을 끊고는 손수 『금강경』 49권을 사경하였다. 사경이 끝났을 때 현종의 꿈에 수천 명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절을 하면서 말했다.
“저희는 당신에게 살육당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그대의 목숨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경의 공덕을 힘입어 모두들 그 선근의 힘 덕분에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좋은 세계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008_0532_a_01L友縳之大呼王二相公我當死汝手
008_0532_a_02L一死不爭容誦經畢便就戮軍問何
008_0532_a_03L以知我姓名友以夢告王二曰旣金剛
008_0532_a_04L神托夢我與汝解却宿寃如何復留衣
008_0532_a_05L別去友遂誦經數卷忽坐亡

008_0532_a_06L
宋江陵李玄宗女十三歲時夢一梵僧
008_0532_a_07L汝有善根何不持金剛經又云世
008_0532_a_08L間善男子善女人每日淨心能誦一卷
008_0532_a_09L陽間增壽命終即生天界若能究竟般
008_0532_a_10L直到彼岸即或未達經意死去陰
008_0532_a_11L亦不能拘錄當生富貴家受諸勝
008_0532_a_12L女信之遂日誦金剛經三卷年二
008_0532_a_13L十四不願有家忽患疾三日卒冥王
008_0532_a_14L照勘無罪及見女子頭上有佛現王云
008_0532_a_15L此女有般若功即放還魂臨放時王囑
008_0532_a_16L汝父造業致先減陽壽二紀不久
008_0532_a_17L追來對證因汝父好取生魚切鱠今有
008_0532_a_18L魚七千餘頭狀訴索命皈問汝父
008_0532_a_19L夜夢落網中晝則頭痛此魚求報也
008_0532_a_20L女還魂白父父驚無措遂偕女徃天
008_0532_a_21L寧寺齋百僧斷除葷酒手書金剛經
008_0532_a_22L四十九卷書畢玄宗夢數千靑衣童子
008_0532_a_23L拜曰我等被君殺戮訴寃索命今蒙
008_0532_a_24L寫經功德咸乘善力出苦趣生善道

008_0532_b_01L당신은 이미 원한에서 풀려났고, 거기다 수명까지 아득히 늘었습니다.”
그 후로 현종은 지송하기를 더욱 정성껏 하였고, 수명이 120세에 이르렀다.
송의 왕적공王迪功 아내는 매일 『금강경』을 염송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선善을 추구하였지만, 적공은 매 사냥으로 생명 해치는 것을 좋아하였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그의 아내가 경을 염송하고 있었다. 아내의 권유로 적공은 제15분인 「공덕분功德分」을 함께 염송하였지만 권의 끝까지 염송하지는 않았다. 적공은 결국 주방으로 가서 고기를 찌고 구워서 먹었다. 그리고 5년 뒤 적공은 풍에 걸려 한 해가 다 가도록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자가 목숨을 거두러 온 것을 직접 보고 죽었다. 염라왕을 알현하자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는 작위와 복록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왜 복을 더욱 늘리지는 않고 도리어 생명 해치는 걸 좋아해서 수명을 깎아 먹고 복록이 끊기게 하였느냐?”
그러고는 지옥의 관리에게 확탕鑊湯으로 끌고 가라 하였다. 그때 귀신 관리가 장부를 검토하더니 왕에게 아뢰었다.
“이 사람은 살생한 업이 무겁기는 하나 생전에 일찍이 아내와 함께 『금강경』 한 분分을 염송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몇 장에 불과하지만 무겁기가 언덕이나 산과 같으니, 죄를 면하고 풀어 주어 돌려보내야 합당합니다.”
왕은 확탕에서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떠다가 등에다 뿌려 주의를 주라고 명하였다. 이 일로 다시 살아난 뒤에 등창을 앓아 살이 문드러지고 고통이 극심했는데 백약이 무효였다. 그는 아내를 불러 “감히 다시는 생명을 손상하지 않겠다.”고 부처님 전에서 대신 맹세하게 하였고, 또 손수 『금강경』을 사경하여 재계하며 늘 수지하겠다고 원을 세웠다. 그러자 적공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손으로 그의 등을 세 차례 쓰다듬어 주었고, 날이 밝자 그 등창은 곧바로 나았다.
송 소흥紹興 9년의 일이다. 명주明州의 왕王씨는 매일 『금강경』을 지송하였다. 그는 아기를 잉태한 지 28개월이나 되었지만 심히 우려스럽게도 출산을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우연히 문을 기대고 서 있는데, 기이한 스님이 그를 보더니 말하였다.
“당신은 선근이 있습니다. 왜 『금강경』을 천 권 인쇄하여 보시하지 않습니까?”
왕씨는 그 숫자만큼 인쇄해 보시하고, 또 천 명의 승려에게 공양하였으며, 『금강경』을 천 권 염송하였다. 그러자 그날 밤 3경에 금강신이 나타나 금강저로 왕씨의 임신한 배를 가리켰다. 깨어나 보니 이미 아들 둘이 태어나 침상에 놓여 있었다.

008_0532_b_01L君旣釋寃又添遐算後玄宗持誦益虔
008_0532_b_02L壽至百二十歲

008_0532_b_03L
宋王迪功妻日誦金剛經至心向善
008_0532_b_04L迪功好鷹獵害生命一日獵罷歸家
008_0532_b_05L値其妻念經因勸迪功同誦功德分第
008_0532_b_06L十五分未及終卷迪功竟詣厨房
008_0532_b_07L炮飮啖後五年迪功中風經年臥床
008_0532_b_08L一日自見二使者追命而卒見閻王
008_0532_b_09L怒責曰汝受爵祿何不福上增修
008_0532_b_10L却好殺害生命減算絶祿令獄吏駈入
008_0532_b_11L鑊湯鬼吏檢簿告王此人殺業雖重
008_0532_b_12L生前曾與妻同念金剛經一分雖片紙
008_0532_b_13L重如丘山合免罪放還王敕於鑊湯內
008_0532_b_14L取一杓湯淋背使知警戒因得再活
008_0532_b_15L後患背疽潰爛痛椘百藥不治呼妻
008_0532_b_16L佛前代誓不敢再傷物命且願手書金
008_0532_b_17L齋素受持迪功夢一僧手摩其背
008_0532_b_18L三匝天明其疽即痊

008_0532_b_19L
宋紹興九年明州王氏日持金剛經
008_0532_b_20L懷孕二十八月深憂難產偶倚門立
008_0532_b_21L異僧示之曰汝有善根何不印施金剛
008_0532_b_22L經千卷王氏印施如數又齋千僧
008_0532_b_23L金剛千卷至夜三更見金剛神以杵
008_0532_b_24L指王氏腹及覺已生二男在床矣

008_0532_c_01L왕씨는 이에 재를 받들어 올리고 수지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나이 61세에 병 없이 죽었다. 두 사자가 나타나 그들의 인도로 명부의 왕을 알현하자, 그녀는 직접 수지하던 『금강경』을 받들어 올렸다. 그러자 왕은 답례로 황금 평상을 하사하며 대전 옆에 앉도록 명하였다. 그녀가 한 번 낭송하자 명부의 쓰라린 고통이 일시에 멈추고 쉬었다. 그리고 또 왕이 물었다.
“왜 주문은 염송하지 않습니까?”
“세간에 그런 책은 없습니다.”
왕은 관리에게 주문이 붙어 있는 책을 창고에서 가져오라 명하고는, 왕씨에게 주면서 부탁하였다.
“당신이 이승으로 가 널리 유통시키십시오. 절대로 유실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당신은 향후 수명이 다하면 곧장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이니,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왕씨는 14일 만에 혼이 돌아왔고, 그 후 나이 91세까지 살다가 병 없이 앉아서 천화하였다.
원의 무문총無聞聦 선사는 여수汝水 향산香山 사람이다. 지원至元 신사년(1281)에 자복사資福寺 무애無礙 장로가 스님에게 『금강경』 32분을 주해하도록 청하였다. 자주색 구름이 절을 덮었고 주해를 마치자 뜰 앞에 오색의 지초가 여러 포기 자라났다. 주해한 경은 지금까지 유통되고 있다. 총 스님은 매 분分마다 주해 외에 각각 송을 지어 인천人天의 안목을 열어 주고 금강산을 꿰뚫었다. 자줏빛 구름의 서상이 있었던 것은 당연하고, 또 경을 판각하자 경판에서 사리가 흘러나온 일이 있었다.
명의 엄강嚴江은 상성相城의 피혁장이였다. 중년에 직업을 버리고 절에다 재齋를 지내는 음식을 날랐는데, 길을 가면서 오로지 『금강경』을 수지하고 아울러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나이 예순 남짓에 갑자기 곡기를 끊고 한 달 동안 물만 마시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몇 날 몇 시에 갈 것이다.”
약속한 날이 되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더니 가부좌하고 천화하였다. 화장하자 사리가 여러 홉 나왔고, 그 혀는 쇠나 돌처럼 단단해 두드리면 소리가 났으니, 정덕正德 13년(1518)에 있었던 일이다. 지극히 부드럽기로 혓바닥만 한 것이 없지만 마음이 견고하면 혀도 견고해지는 것이니, 이것은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실증實證이다.

008_0532_c_01L氏遂奉齋受持不輟年至六十一無疾
008_0532_c_02L而卒見二使引見冥王自供持金剛
008_0532_c_03L王賜金床命坐殿側朗誦一遍辛酸
008_0532_c_04L之苦一時停歇王又問何不念呪
008_0532_c_05L云世間無本敕吏於藏中取呪本付王
008_0532_c_06L氏囑曰汝至陽間展轉流通切勿遺
008_0532_c_07L汝向後壽終徑生極樂世界不復
008_0532_c_08L來此矣王氏二七日還魂後至九十一
008_0532_c_09L無疾坐化

008_0532_c_10L
元無聞聦禪師汝水香山人至元辛巳
008_0532_c_11L資福寺無礙長老請師註解金剛經三
008_0532_c_12L十二分有紫雲覆寺旣畢庭前產五
008_0532_c_13L色芝數本所註經流通至今聰師每分
008_0532_c_14L註解外各綴頌語開人天眼透金剛
008_0532_c_15L宜有紫雲之瑞亦有刻經而板中
008_0532_c_16L流出舍利

008_0532_c_17L
明嚴江相城皮工也中年棄業於佛
008_0532_c_18L寺擔齋飯在路專持金剛經併念阿彌
008_0532_c_19L陀佛不絕聲年六十餘忽絕粒飮水一
008_0532_c_20L乃言曰我當以某日某時去至期
008_0532_c_21L沐浴更衣跏趺而化焚之得舍利數合
008_0532_c_22L其舌堅如金石扣之有聲時正德十三
008_0532_c_23L年事也至柔莫如舌心堅則舌堅
008_0532_c_24L金剛不壞之實證

008_0533_a_01L
명 가정嘉靖 연간(1522~1566)에 소보少保 척계광戚繼光 공은 부총副總이 되었다. 이때 왜란倭亂으로 병사들을 거느리고 삼강三江을 방어하게 되었다. 그는 평소에도 『금강경』을 지송하였고, 행군하는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저녁 꿈에 진陣에서 죽은 자기 병사 아무개가 말하였다.
“내일 아내를 공에게 보내겠습니다. 제발 『금강경』 한 권을 염송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다음날 아침 병사의 아내가 과연 찾아와 호소하였으니, 꿈속의 말과 같았다. 공은 다음날 새벽에 재계하고 그를 위해 평소처럼 경전 염송을 하였다. 그러고 나자 병사의 아내 꿈에 또 그 남편이 나타나 말하였다.
“주수主帥께서 나를 위해 경전을 염송한 것은 감사한 일이오. 다만 그 가운데 ‘불용不用’이라는 두 글자가 섞여 공덕을 온전히 못했던 까닭에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오.”
병사의 아내가 다음날 아침 다시 꿈 내용을 호소하자 공은 크게 놀랐다. 기억해 보니 경을 염송할 때 부인이 하녀 편에 차와 떡을 보내 왔는데, 공이 멀리서 보고는 손을 휘저어 거절한 적이 있었다.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으로 ‘필요하지 않다(不用)’고 말한 것이다. 공은 당시 이를 군막에서 말하였고, 객사客事에 의해 결국 이 말이 전해지게 되었다. 전철 용滇徹庸 선사가 말하였다.
“내가 병들었을 때 꿈을 꾸었는데, 신인神人이 장부 하나를 들고서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경을 염송하며 잡된 생각을 한 자들의 죄과를 기록한 것이다.’
내가 받아서 살펴보았더니 경을 염송하며 잡되고 속된 생각이 끼어들었던 사람들의 성명과 죄과가 모두 적혀 있었다. 나 역시 그 끝머리에 적혀 있어 그것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
명 통주通州의 사마司馬10) 고양겸顧養謙은 뛰어난 재주에 대범하고 당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부인이 먼저 죽자 널리 불사를 행하였다. 수년 후 공의 첩이 갑자기 죽었다가 하룻밤 지나 다시 살아났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공이 까닭을 묻자 대답하였다.
“첩이 죽어 명부에 들어가 부인을 만났는데 어느 캄캄한 방에 갇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에 갇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니, 급히 공덕을 지어 나를 구해다오.’
그래서 첩이 말했습니다.
‘부인께서 돌아가신 후 상공相公께서 좋은 일을 크게 지었는데 전혀 이익이 없었단 말입니까?’
그러자 부인이 ‘경전의 참회로 천도되는 것은 주인의 재계와 지극한 정성에 달린 일이다. 그래야 죄를 없애고 복을 늘릴 수 있다. 지난날 사문이 당堂에서 지송할 때 상공은 방에서 차나 마시며 바둑이나 두었으니, 무슨 이익이 있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008_0533_a_01L
明嘉靖間少保戚公繼光爲副揔
008_0533_a_02L以倭亂提兵守禦三江素持金剛經
008_0533_a_03L雖在行間不廢一夕夢陣亡親兵某云
008_0533_a_04L明日當令妻詣公乞爲誦金剛經一卷
008_0533_a_05L以資度脫旦日兵妻果來籲如夢中語
008_0533_a_06L公次晨齋素爲誦經訖又兵妻夢夫
008_0533_a_07L語曰感主帥爲我誦經但其中來雜不
008_0533_a_08L用二字功德不全尙未得脫苦耳
008_0533_a_09L妻明旦復以夢籲公大訝因憶誦經
008_0533_a_10L夫人遣婢送茶餅至公遙見揮手
008_0533_a_11L却之口雖不言而意中云不用也
008_0533_a_12L時以語幕客事遂傳焉滇徹傭禪師曰
008_0533_a_13L予病中作夢神人持一簿云此是錄誦
008_0533_a_14L經雜念者罪過余接按之皆書誦經攙
008_0533_a_15L雜俗念人等姓名并罪過也余亦在末
008_0533_a_16L讀已凜然

008_0533_a_17L
明通州顧司馬養謙爲人高才倜儻
008_0533_a_18L人先卒廣修佛事數年後公有妾㬥亡
008_0533_a_19L經宿甦哭不止公問之答曰妾死入
008_0533_a_20L冥府見夫人閉一暗室云我在此 [4]
008_0533_a_21L不可言急作功德救我妾曰夫人亡後
008_0533_a_22L相公大作善事都無益耶夫人曰
008_0533_a_23L懴薦度在主者齋戒至誠乃能滅罪增
008_0533_a_24L向者沙門持誦堂上相公飮奕室

008_0533_b_01L
공이 이 말을 듣고 역시 크게 통곡하고는 지계와 덕망이 뛰어난 스님들을 선택해 청정하고 엄숙하게 사흘 낮밤 도량을 만들었다. 이는 도장경屠長卿이 목격하고 기록한 것이다. 차를 마시거나 바둑을 두어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이겠는가.
명 가정嘉靖 연간(1522~1566)의 일이다. 귀안歸安 모록문茅鹿門의 품팔이 노동자 풍근馮勤은 일자日者11)가 그의 요절을 점치자 한 노스님에게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노스님이 말하였다.
“하인으로서 공덕을 쌓을 힘이 없으면 글자가 쓰인 종이를 주워서 태워라. 그러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경을 염송하면 아마도 단명은 면하리라.”
풍근이 생명을 연장하는 경을 묻자 노승이 말하였다.
“그건 『금강경』이다.”
이에 대나무 집게와 대나무 통 두 가지를 마련해서는 매일같이 거리와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면서 더러워지거나 글자를 잘못 쓴 종이가 있으면 모두 집어 통에 담았다. 그것을 향기로운 물로 세척해 바짝 말리고 태워 재를 만들어서는 싸서 맑은 물에 흘려보내면서 비록 한 글자라도 감히 빠트리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면 돌아와 무릎을 꿇고 『금강경』 한 권을 염송해 회향하였다. 해마다 늘 이렇게 하자 후에는 점점 글자를 알고 문장의 뜻을 통하게 되었다. 녹문鹿門마저 그를 예로 대접하고 집안도 풍요로워졌으며, 그는 아들 둘에 손자 넷을 두고 나이 95세에 병 없이 천화하였다.
명의 안광유顔光裕는 대대로 유학儒學을 업으로 삼는 집안 사람이었다. 하루는 같은 마을의 관직을 지낸 노인들과 같이 금강회金剛會에 들어가 경전을 듣고 강론하게 되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펄쩍펄쩍 뛰면서 탄복하였고, 그 종지를 궁구하고 싶었지만 시험 준비를 하느라 겨를이 없었다. 그 후 태화현太和縣 지사로 임명되었다가 갑자기 병을 앓게 되었다. 꿈에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를 잡아 음부陰府(명부)로 들어갔는데, 그 풍경이 어둡고 캄캄했으며 삼엄하고 처참했다. 잠시 후 왕을 알현하자 장부를 든 관리가 말했다.
“광유는 이승의 수명이 이미 다했습니다. 살았을 때 지은 업이 무거우니, 살생을 좋아해 마음대로 삶고 지졌으며 또 소고기와 개고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무수한 생명체들이 그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왕은 기름불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곳으로 압송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소머리를 한 야차가 그를 펄펄 끓는 솥에 집어넣자 곧 연꽃이 나타나 그의 몸을 감쌌고, 끓어오르던 물이 맑고 깨끗해졌다. 귀신 판관이 이를 왕에게 보고하자 합장하고 그를 만나길 청하였다.

008_0533_b_01L何益之有公聞之亦大哭擇戒德
008_0533_b_02L名僧淸淨嚴肅作道場三書夜此屠
008_0533_b_03L長卿目覩而筆之者飮奕且不可况酒
008_0533_b_04L肉乎

008_0533_b_05L
明嘉靖間歸安茅鹿門傭僕馮勤日者
008_0533_b_06L占其夭問一老僧何以延年老僧曰
008_0533_b_07L若爲下人無力積德惟拾焚字紙
008_0533_b_08L念續命經庶免短折勤問續命經
008_0533_b_09L僧曰即金剛經也乃置竹鑷竹簏兩事
008_0533_b_10L日間遍歷街巷凡穢惡字紙悉鑷簏中
008_0533_b_11L滌以香水曝乾焚灰包送淸流雖隻
008_0533_b_12L不敢遺忽夜歸跪念金剛經一卷回
008_0533_b_13L歲以爲常後漸知書通文義鹿門
008_0533_b_14L禮貌之家道豊裕子二孫四壽九十
008_0533_b_15L無疾而化

008_0533_b_16L
明顏光裕世襲業儒一日同鄕紳耆老
008_0533_b_17L入金剛會聽經講論至暮而歸踴躍嘆
008_0533_b_18L欲究其旨以赴銓未暇後任太和
008_0533_b_19L縣事忽病夢二靑衣拘入陰府景象
008_0533_b_20L晦冥森嚴悽慘少頃見王執簿吏曰
008_0533_b_21L光裕陽壽已盡在生業重好殺恣意烹
008_0533_b_22L且好食牛犬即有無數生靈對執
008_0533_b_23L索命王判押赴油火煎煉牛頭叉入沸
008_0533_b_24L祗見蓮花遮體滾沸澄淸鬼判禀

008_0533_c_01L그리고 ‘과연 무슨 공덕이 있기에 이런 죄업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하고는 선업을 적은 장부를 자세히 살피게 하였다. 거기엔 하루 동안 반야를 논한 공덕밖에 없었다. 그것이 금강처럼 파괴되지 않는 몸을 얻게 한 것이었다. 왕이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그대의 수명과 복록을 늘려 주리라. 혼이 돌아가거든 세상 사람들에게 받들어 지니라고 널리 권하라.”
혼이 돌아와 보니 이미 7일이 경과한 후였다. 그 후로 염송을 과업으로 삼아 그치지 않았고, 『금강경』 6천 권을 새겨 보시하였으며, 관직은 대참大叅까지 역임하였다. 나이 70에 이르러 죽음에 다다르자 향기가 마을과 거리에 풍겼으며, “자손 대대로 최상의 경전을 수지하라.”라고 간곡히 훈계하고는 말이 끝나자 서거하였다. 안자顔子의 66대 손이다. 박사博士 백렴伯廉이 기록하였다.
명 곤산崑山의 주소악周少岳은 휘가 지정之程이다. 나이 50에 눈이 멀고 그 동자가 뒤집어져 푸르스름한 색이 되었다. 낮이 캄캄한 밤과 같아지자 그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유폐시키고, 일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며 숙세의 허물을 씻었다. 매일 맑은 새벽에 『금강경』 세 권을 장엄하게 염송하였는데, 염송할 때는 큰소리로 찬양하며 손님이 찾아와도 예를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15년, 홀연히 어느 날 환하게 사물이 보이더니, 다시 캄캄해졌다 보였다 하였다. 놀랍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한 것이 분명하지 않아 집안사람들에게 자신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랬더니 왼쪽 눈동자가 움직이면서 한 가닥 빛이 보였다. 2개월 남짓 지나자 푸르스름한 동자가 점점 바뀌더니 양쪽 눈의 푸른빛이 다시 회복되어 소년들보다도 더 멀리 볼 수 있었다. 소악은 『금강경』을 염송한 신비한 힘에 감동하여 경전 염송을 더욱 정성껏 하다가 나이 80에 죽었다.
그 선대에 116세를 산 노인으로 호가 수의자壽誼者인 분이 계셨는데, 그는 은덕隱德이 많은 분이었다. 태조太祖께서 그를 편전으로 불러 만나보고는 경음례卿飮禮를 시행하도록 천하에 조칙을 내렸으니, 바로 그 노인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소악은 그의 8세손이다. 그의 손자인 일륭日隆이 백 번 절하고 기록하였다. 고백념顧伯念이 말하였다.
“이것은 우리 읍에서 근래 있었던 일로 내가 어린 시절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신비로운 감응들을 편집하면서 떠도는 말일 뿐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할까 염려스러워 직접 그의 적손的孫 융보隆甫를 찾아갔다. 그러자 그가 이 기록을 꺼내 나에게 주기에 채록하여 전하는 것이니, 믿을 만하다고 하겠다.”

008_0533_c_01L合掌請見果何功德化斯罪業
008_0533_c_02L察善簿祗有持論般若一日之功植此
008_0533_c_03L金剛不壞之體王曰善哉延爾壽祿
008_0533_c_04L魂普勸世人奉持返魂已經七日
008_0533_c_05L後課誦不輟刻施金剛六千卷官歷大
008_0533_c_06L年至七十臨終香聞里巷苦口囑
008_0533_c_07L子孫世代受持最上經典言畢而
008_0533_c_08L顏子六十六代孫愽士伯廉記

008_0533_c_09L
明崑山周少岳諱之程五十喪明
008_0533_c_10L瞳子反背碧色晝如黑夜自以爲廢於
008_0533_c_11L世矣一心歸依佛氏以消宿諐每日
008_0533_c_12L淸晨莊誦金剛經三卷誦則高聲讃楊
008_0533_c_13L客至不爲禮積十五年忽一日烱然見
008_0533_c_14L旋見旋晦驚疑未定令家人視之
008_0533_c_15L見左目眸子搖動露光一髮二月餘碧
008_0533_c_16L瞳漸轉兩眼淸光盡復比之少年
008_0533_c_17L能視遠少岳感念金剛神力誦經益虔
008_0533_c_18L年至八十考終其先代百十六歲翁
008_0533_c_19L壽諠者多有隱德太祖召見便殿
008_0533_c_20L天下行卿飮禮自翁始少岳其八世孫
008_0533_c_21L孫曰隆百拜志顧伯念曰此余邑
008_0533_c_22L中近事童年即聞之今因集靈應
008_0533_c_23L語焉而不詳乃躬叩其約孫隆甫出此
008_0533_c_24L授余採入以傳信云

008_0534_a_01L
명의 진명원陳明遠은 흥화군興化軍 사람이며 일찍이 진사進士로 천거되었다. 그가 사주泗州를 지나며 보조사普照寺를 유람하다가 떨어진 옷을 입고서 나무에 기대 푸른 종이로 된 책을 읽는 노스님을 보았는데, 그 책에서 100보 남짓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금으로 글자를 쓴 『금강경』으로서 양조梁朝 부 대사傅大士의 게송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스님은 명원을 돌아보며 “당신도 이 책을 좋아합니까?” 하고는 그것을 주었다. 다음 해 아버지 주鑄를 따라 해릉海陵의 관리로 갔다가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그리고 대렴大殮12)을 치르려는데 몸에 다시 온기가 돌아오더니 시간이 흐르자 다시 살아났고, 직접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눈이 푹 꺼지고 호랑이 주둥이를 한 네 명의 옥졸이 나타나 서북쪽으로 끌고 갔는데 그 기세가 매우 난폭하였다. 지나는 곳은 모두 광야라 먼지와 모래가 얼굴을 때렸고,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점점 큰 강에 가까이 다가갔다. 부서府署가 삼엄하고 엄밀하여 세 명의 옥졸이 먼저 들어가고 한 명은 명원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잠깐 사이에 한 스님이 허공을 타고 날아왔는데 바로 사주에서 만나 경을 주었던 분이었다. 부서의 책임자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나와 그를 맞이하였다. 곁눈질로 명원을 본 스님이 명원을 앞으로 불러 스스로 참회하게 하자, 책임자는 관리에게 그를 방면해 돌려보내라고 명하였다. 앞에서 인도하는 스님을 따라 양쪽 회랑을 거닐면서 수백 명의 죄수가 묶여 있는 것을 보았고, 또 날짐승과 들짐승 및 온갖 벌레가 모두 사람처럼 말하며 죄수와 대면해 죄상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대여섯 명의 사문이 앞에 썩은 음식 수십 항아리를 늘어놓고 앉아 있었는데 바로 길에서 만났던 이들이었다. 또 마을에서 과거에 위세가 크게 빛났던 사람이 이곳에 와선 갖가지 낭패스러운 형상을 면치 못하는 것도 보았다. 잠깐 사이에 앞서 지나왔던 광야에 다다랐는데 개울물이 그득히 불어나 있었다. 스님이 지팡이 한쪽 끝을 잡고 나머지 끝을 명원에게 내밀며 잡고 따라오라 하였다. 처음 물을 건널 때는 얕았는데 중간쯤 갑자기 깊어져서 빠졌고, 그래서 놀라 소리치다가 다시 살아났다.”
명 전당錢塘의 이시영李時英은 남해南海 흠주欽州 태수를 지냈으며, 항상 『금강경』을 염송하였다. 융경隆慶 정묘(1567)에 분고관分考官으로 있으면서 과거장에서 병사하였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먼저 황금 갑옷을 입은 신이 나타나 족쇄를 채우고 태산부군泰山府君에게 데려가려 하였다. 성황신城隍神과 토지신土地神이 모두 그 자리에 있었는데, 토지신이 “이시영은 『금강경』을 염송했다.”고 하며 압송에 강력히 항의하였다.

008_0534_a_01L
明陳明遠興化軍人甞擧進士過泗
008_0534_a_02L遊普照寺見老僧敝衣倚樹讀靑
008_0534_a_03L紙書書有光射百步許就視則金字金
008_0534_a_04L剛經係以梁朝傳大士之頌者僧顧明
008_0534_a_05L遠曰子亦樂此耶遂以授之明年從
008_0534_a_06L父鑄官海陵忽病死將大殮體復溫
008_0534_a_07L移刻乃蘇自言見四卒深目虎喙
008_0534_a_08L之西北行勢甚暴所經皆廣野塵埃
008_0534_a_09L撲面如在霧中漸逼大河府署嚴密
008_0534_a_10L三卒先入一守明遠須臾一僧乘空
008_0534_a_11L而來即泗州所遇授經者府主趨出迎
008_0534_a_12L旁睨明遠僧呼明遠前使自懴悔
008_0534_a_13L主乃詔吏放還僧前導遊兩廡見囚繫
008_0534_a_14L數百更有禽獸諸蟲悉能人言與囚
008_0534_a_15L對辨又坐沙門五六人前列敗壞飮食
008_0534_a_16L數十甕途中所遇又見里中向日
008_0534_a_17L勢孔灼到此不勝狼狽諸狀俄及前所
008_0534_a_18L過廣野溪水漲甚僧執杖端以末授
008_0534_a_19L明遠挈之行始涉亦淺中忽深陷
008_0534_a_20L驚呼而甦

008_0534_a_21L
明錢塘李時英爲南海欽州守恒誦金
008_0534_a_22L剛經隆慶丁卯爲分考官於闈中病
008_0534_a_23L死三日初見金甲神欲鎻去見泰山府
008_0534_a_24L城隍土地咸在土地以李誦金剛經

008_0534_b_01L황금 갑옷을 입은 신은 분노하며 소매에서 길이가 세 자 남짓이나 되는 달구어진 못을 꺼내 토지신의 정수리에 박아 넣었고, 그가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서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본래의 몸을 회복하고는 앞에서처럼 압송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황금 갑옷을 입은 신이 말했다.
“너희들도 함께 족쇄를 채워 태산으로 데려가리라.”
주위를 둘러보자 여러 귀신들이 원한을 호소하며 그의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영이 전생에 구강九江의 태수를 지내면서 뇌물을 받고 사람을 죽였다며 꾸짖었다. 깜짝 놀란 순간 『금강경』을 기억해 염송하자 홀연히 여조呂祖 스님이 구름을 타고 내려왔고, 귀신들은 모두 멀리 달아났다. 시영이 땅에 엎드려 애걸하자 여조 스님이 말하였다.
“이 늙은이의 단丹을 돌려다오.”
한참을 찬찬히 바라보더니 말하였다.
“업이 무겁구나, 업이 무거워. 안타깝게도 단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구나. 너는 『금강경』을 염송했으니 육조六祖 스님께 구해 달라고 청하라.”
잠깐 사이에 육조가 나타나 땅에 엎드린 시영을 보더니 역시 말하였다.
“업이 무겁구나, 업이 무거워. 오조五祖께서 널 살피실 때까지 기다려라.”
시영이 한 손을 내밀어 육조 스님의 가사를 붙잡자 조각조각 금빛이 날렸다. 잠시 후 갑자기 기이한 향기가 가득 풍기더니 허공에서 오조 스님과 육조 스님의 명령이 들렸다.
“경을 염송한 사람이니 일단 풀어 주어 돌려보내라.”
그러자 곧 황금 갑옷을 입었던 앞의 그 신이 다시 나타나 시영을 집어 들어 단번에 집어던졌다. 시영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다시 살아났다. 시영은 과거장을 나와 곧 관직을 버리고는 호남湖南 정자사淨慈寺에 귀의하였다. 그리고 새벽이면 꼭 『금강경』을 염송해 원한 맺힌 귀신들을 제도하다가 병 없이 죽었다.
명 만력萬曆 초(1573)의 일이다. 시중侍中 종부수鍾復秀 공과 서준수徐遵壽 공이 경성京城의 나羅씨 마을에 함께 살았다. 그들은 부처님을 받들고 『금강경』을 염송하였으며, 별원別院에 정실淨室을 여러 칸 짓고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지송하였다. 종 공의 집에는 하얀 거위가 두 마리 있었다. 그 거위는 독경 소리를 듣거나 염불 소리가 들리면 곧 두 사람 뒤에 붙어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쫓아도 가지 않았고, 마치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를 들고는 가건 멈추건 항상 뒤따르며 목탁 소리를 냈다. 수년이 흐른 뒤 두 마리 거위는 경안經案을 마주하고 선 채로 천화하였다. 두 사람은 정업사淨業寺 뒤쪽에 그 거위를 매장하고 ‘경을 듣던 거위의 무덤’이라 불렀다.

008_0534_b_01L故堅不肯押字金甲神怒袖出火釘
008_0534_b_02L三尺餘從土地頂門釘入立見焚燒盡
008_0534_b_03L俄復本形堅執不押如故金甲神曰
008_0534_b_04L當同鎻汝徃泰山旋見數鬼稱寃索命
008_0534_b_05L呵時英前世爲九江守受賕殺人正急
008_0534_b_06L怖間憶誦金剛經忽見呂祖師乘雲
008_0534_b_07L而下鬼俱奔逝時英伏地乞哀呂祖
008_0534_b_08L還我老君丹來熟視曰業重業重
008_0534_b_09L可惜丹俱壞盡矣汝誦金剛可求救六
008_0534_b_10L忽然間六祖至覩時英伏地亦曰
008_0534_b_11L業重業重待與五祖1) [3] 量來時英出
008_0534_b_12L一手曳六祖袈裟片片飛金光少頃
008_0534_b_13L倏異香滿鼻聞空中五祖六祖敕曰
008_0534_b_14L經人且放還隨見前金甲神復至
008_0534_b_15L時英一擲汗下如雨而甦時英出場
008_0534_b_16L即棄官歸湖南淨慈寺晨必誦金剛經
008_0534_b_17L超度寃鬼無疾終

008_0534_b_18L
明萬曆初侍中鍾公復秀徐公遵壽
008_0534_b_19L俱住京城羅家巷奉佛念金剛經別院
008_0534_b_20L淨室數間二公聯坐誦持鍾家有二白
008_0534_b_21L聞經聞念佛輒尾二公後作聲而
008_0534_b_22L逐之不去昻首若聽行止皆隨
008_0534_b_23L木魚聲逾數年二鵞並對經案立化
008_0534_b_24L二公爲瘞於淨業寺後地號聽經鵞塚

008_0534_c_01L
옛날 정영사淨影寺의 늙은 사문 혜원慧遠이 처음 고향에 있을 때 거위 한 마리를 키웠는데, 그 거위가 따라다니며 경을 듣곤 하였다. 혜원이 서울로 들어오고 거위는 절에 남겨지자 밤낮으로 목을 놓아 울기에 그 문도들이 거위를 서울로 보내게 되었다. 절 문 앞에 다다라 풀어 주자 거위는 스스로 혜원의 방을 알아보았고 곧 길들여졌다. 거위는 경전을 강의할 때마다 방에 들어와 엎드려서 들었고, 다른 일을 이야기할 때면 곧 울면서 날개를 치고 나가 버렸다.
이 두 가지 사안을 함께 살펴볼 때 거위의 신령함과 지혜도 이와 같으니, 경을 염송하며 잡된 생각을 일으키거나 경을 듣고도 귀가 꽉 막힌 자들은 진실로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다.
명 만력萬曆 연간(1573~1620)의 일이다. 소주蘇州 풍교楓橋의 성재덕盛在德은 강사 현명懸明으로부터 『금강경』을 배웠는데, 뜻하지 않게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추포되어 명부로 보내졌지만 곧 잡아갔던 원수 같은 귀신이 성재덕의 교화로 군郡의 성황城隍에게 알렸고, 그가 찾아와 대신 증언하였다. 재덕은 정직하다고 판결되어 명부의 옥사를 구경하게 되었고, 석방되어 돌아갈 때 성황을 만났다. 그때 성황이 계단을 내려와 당부하였다.
“나는 생전에 형주荆州 사람으로 성이 조曹씨였으며 이때부터 신들의 호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장태군張太君은 삼생에 거쳐 모두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대신해 현의 훌륭한 스님들께 간청하여 『금강경』과 『월상녀경月上女經』을 각각 500부 정성을 다해 염송해 준다면, 내 어머니는 남자로 태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재덕은 다시 살아나 예를 갖춰 현의 훌륭한 스님들을 초청하였다. 그리고 염송 횟수를 채우자 동해를 관장하는 신에게 편지를 써서 고하고, 서문을 지어 이를 기록하였다. 미륵게彌勒偈에서는 말하였다.

即今現在雙親   지금 현재의 부모님이
就是釋迦彌勒   바로 석가와 미륵이니
若能供養得他   그분들을 공양할 수 있다면
何用別求功德   따로 공덕을 구할 필요 뭐가 있으랴.

따라서 섬마睒魔보살13)이 눈을 뽑아 부모님을 구제하자 고질병이 곧 치유되었던 것이고, 자심慈心 동자14)가 고통을 대신 받겠다고 원을 세우자 불덩어리가 선 자리에서 꺼졌던 것이며, 황매黃梅 스님15)이 노모를 봉양하는 집을 두었던 것이 제방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명의 왕반王泮은 산음山陰 사람이며 만력萬曆 갑술년(1574)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그의 백부가 어린아이를 안고 문에서 어르다가 아이의 팔에 차고 있던 은팔찌를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008_0534_c_01L昔淨影老沙門慧遠初在鄕養一鵞
008_0534_c_02L相隨聽經及遠入京鵞留寺中晝夜
008_0534_c_03L長鳴其徒送入京至寺門放之自能
008_0534_c_04L知遠房入馴狎每講經入室伏聽
008_0534_c_05L說他事則嗚翔而出合觀二案鵞之
008_0534_c_06L靈慧如此彼誦經生雜想聞經若充耳
008_0534_c_07L誠異類不若矣

008_0534_c_08L
明萬曆間蘇州楓橋盛在德從講師懸
008_0534_c_09L明受金剛經偶病歿追赴冥司則被
008_0534_c_10L仇鬼盛之化告郡城隍逮對也在德
008_0534_c_11L理直得觀冥獄釋還時見城隍降階
008_0534_c_12L諭曰我生前荆州人姓曹自登神籙
008_0534_c_13L我母張太君轉世三度矣咸女身不育
008_0534_c_14L若代我懇懸明師虔誦金剛經月上女
008_0534_c_15L各五百部我母轉男必矣在德再
008_0534_c_16L禮請懸明誦滿牒告管東溟作序
008_0534_c_17L紀之彌勒偈曰即今現在雙親就是
008_0534_c_18L釋迦彌勒若能供養得他何用別求功
008_0534_c_19L故睒魔菩薩割目救親沉疴即愈
008_0534_c_20L慈心童子發願代苦火輪立消黃梅
008_0534_c_21L養母有堂載諸方册

008_0534_c_22L
明王泮山陰人萬曆甲戌進士其伯
008_0534_c_23L父抱幼兒戱於門兒臂帶銀鐲忽失
008_0534_c_24L{1">「啇」通用「商」{編}

008_0535_a_01L이때 왕반의 아버지가 마침 곁에 있었기에 그가 훔쳤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왕반의 아버지는 불평하며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고 『금강경』을 가져다 발로 밟아 버렸다. 왕반은 학생이 되어 여러 차례 고등과에 시험을 보았지만 급제하지 못했다. 하루는 새벽에 성 밖으로 나섰다가 수염이 허연 두 노인을 보았는데, 이런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대선사大善寺 앞에 사는 수재秀才 왕반은 상급으로 올라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금강경』을 모독한 탓에 지금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왕반이 까닭을 몰라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왕반이 크게 놀라 부처님 전에 참회하고 손수 경을 한 부 사경하자 그해 현서賢書에 올랐다. 돌아가 재차 한 부를 사경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자 상춘관上春官에서 쫓겨났고, 갑술년(1574)에 이어서 사경을 마무리하자 비로소 급제하였다. 적수赤水의 도륭屠隆이 직접 목격하고 그 사실을 전하였다.
명 만력萬曆 연간(1573~1620)의 일이다. 사명四明의 도륭屠隆 공이 당대에 기이한 재주를 추앙받아 청포현靑浦縣 지사로 있을 때였다. 감옥에 종종 사나운 귀신이 나타나 감옥의 죄수들을 어지럽혀 죄수들 가운데 이로 인해 죽는 자가 생겨났다. 감옥의 관리가 이를 도륭에게 알리자 글을 지어 감옥의 신을 타일렀다.
“신神이 있다면 귀신이 어찌 이럴 수 있으리오.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가 있다면 관리의 죄이지 죄수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
이에 뜰 안에 불을 피워 『금강경』 한 부를 비밀스럽게 사르고는 직접 감옥에 앉아 그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감옥의 아전에게 물어보니 귀신은 묘연하게 그 자취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명 해염海鹽의 어부 장원張元과 그의 동생 정貞이 그물을 치고 밤에 돌아가다가 청송당靑松塘쯤에 이르러 별빛이나 달빛을 가리는 기이한 광채가 수면에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 아래에 진주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물에 뛰어들었던 그는 뜻밖에 돌로 만든 상자를 하나 건졌다. 그것을 열어보니 금으로 쓴 『금강경』이었고, 광채가 범상치 않았다. 장원이 그것을 집에다 모시자 꿈에 황금 갑옷을 입은 신이 나타나 말하였다.
“그대는 전생에 장수長水 스님 강단에서 일을 맡아 보던 사람인데 도심道心이 없었던 까닭에 여기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숙세에 심은 좋은 인연이 없어지지 않았기에 그대에게 대법大法을 하사한 것이니, 마땅히 열심히 정진하며 지송해야 하리라.”

008_0535_a_01L時泮父適在傍疑爲所窃泮父不
008_0535_a_02L引神明爲呪取金剛經足踐之
008_0535_a_03L爲諸生屢試高等不得第一日曉出
008_0535_a_04L城外見兩白鬚翁相語曰大善寺前
008_0535_a_05L秀才王泮應登上第爲其父褻汙金
008_0535_a_06L剛經今削籍矣泮不知何故歸問父
008_0535_a_07L父語以前事泮大驚懴悔佛前手書
008_0535_a_08L經一部是年登賢書歸欲再書一部
008_0535_a_09L未訖上春官被放至甲戌續書完經
008_0535_a_10L始得第赤水屠隆目擊傳其事

008_0535_a_11L
明萬曆間四明屠公隆代推異才
008_0535_a_12L靑浦縣獄中驟有厲鬼亂獄囚囚有因
008_0535_a_13L而斃者獄吏以聞屠爲文以諭獄神曰
008_0535_a_14L神在鬼安得爾獄有寃死者官之罪
008_0535_a_15L囚何尤乃爇火庭內密焚金剛經一部
008_0535_a_16L而身坐獄至夜分明日問獄吏卒
008_0535_a_17L杳然遂絕蹟

008_0535_a_18L
明海鹽漁戶張元與弟貞撒綱夜歸
008_0535_a_19L靑松塘見水面有異光掩映星月
008_0535_a_20L其下有蚌珠遂沒水取焉得石匣一枚
008_0535_a_21L啓之乃金書金剛經光彩異常元置
008_0535_a_22L之家夢金甲神語曰汝生前爲長水師
008_0535_a_23L講壇作務人因無道心退墮至此
008_0535_a_24L宿因未泯賜汝大法當精進持誦

008_0535_b_01L
장원이 글자를 모른다며 사양하자, 신이 입을 벌리라 하더니 금환金丸을 먹여 주었다. 그러자 향기롭고 따스한 기운이 배로 들어와 깜짝 놀라며 깨어나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경을 펼쳐 염송하자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처럼 익숙하였으니, 이때가 만력 갑신년(1584)이었다. 장원이 달관達觀 대사를 찾아가 그 일을 낱낱이 고하자 스님은 더욱 열심히 경전을 염송하면 반드시 서방정토에 회향하리라고 하였다. 정축년(1637) 7월에 이르러 장원은 친지들에게 “내가 살생했던 업이 없어지고 연화대가 나타났다.” 하고는 병 없이 앉아서 천화하였다. 장원 형제는 손에 넣고도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명의 대사구大司寇 강보姜寶 공은 단양현丹陽縣 사람이다. 그는 서실에 있다가 홀연히 두 사자에게 잡혀 지부地府(명부)로 추포되어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 관리가 높은 관을 쓰고 두툼한 띠를 두르고 있었으며, 시위侍衛가 삼엄하게 늘어서 있었다. 강보에게 살아 있을 때 한 일을 물어 강보가 대답하지 못하자 곁에 있던 한 관리가 나와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지은 악이 많고 선은 적으니 축생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귀신이 드디어 소가죽을 가져와 그의 몸에 덮어 씌웠다. 그러나 세 번을 씌우려 했지만 세 번 다 덮이지 않았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자 관리가 대답했다.
“이 사람은 『금강경』 제목을 들은 것 외에는 선업이 전혀 없습니다.”
강보는 “만일 이승으로 돌아간다면 죽을 때까지 경을 지송하겠습니다.” 하며 풀어 달라고 애절하게 간청하였다. 그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자 왕은 결국 그를 풀어 주어 다시 살아나게 하였다. 강보는 이때부터 재계를 지키며 경을 염송하였고, 자신을 굽히고 치문緇門(승가)을 찾아가 『금강경』의 대의를 강론하고 연구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친지들에게 말하였다.
“내일 낮에 나는 떠날 것이다.”
약속한 때가 되자 과연 하늘에서 음악이 울리고 기이한 향기가 퍼지더니 합장한 채 서거하였다. 만력萬曆 무자년(1588)에 보문普門 거사 조봉曹奉이 기록하였다.
명 만력萬曆 연간의 일이다. 금단金壇의 왕방록王方麓 공이 병이 위독해지면서 번조증煩躁症을 보이자 그의 아들이 감히 당堂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대인大人께서는 평소 도를 간직하고 덕을 함양하는 공부를 하셨으니 바로 이럴 때 힘을 얻어야 합니다. 원컨대 마음을 맑히고 제가 전독하는 『금강경』을 들으십시오.”
방록은 머리를 끄덕이고 턱짓으로 경을 가져다 낭송하도록 명하였다. 그렇게 경을 듣다가 “아상我相도 없고 인상人相도 없고……” 하는 사구게에 이르자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번뇌가 본래 없는 것인데 아상을 누가 사랑하겠는가?”

008_0535_b_01L以不識字爲辭神令開口以金丸投之
008_0535_b_02L香煖入腹遂驚而覺明旦啓誦熟如
008_0535_b_03L久習矣時萬曆甲申年元叩達觀大師
008_0535_b_04L具陳其事師更勉以誦經必回向西方
008_0535_b_05L至丁丑七月元謂親識曰我殺業除
008_0535_b_06L蓮臺現矣無疾坐化張元兄弟得手
008_0535_b_07L在不識字上

008_0535_b_08L
明大司冦姜公寶丹陽縣人在書室中
008_0535_b_09L忽被二使追入地府一官峩冠愽帶
008_0535_b_10L侍衛森嚴問姜在生所作寶未對
008_0535_b_11L出一官對曰此人惡多善少當爲異類
008_0535_b_12L鬼使遂携牛皮披其身三披三不能覆
008_0535_b_13L王恠之官對曰此人但聞金剛經題
008_0535_b_14L餘無善業姜哀懇求脫如還陽世
008_0535_b_15L身持經王因其悔悟遂放回生寶自
008_0535_b_16L此持齋誦經折節緇門講究金剛大義
008_0535_b_17L與人衍說不懈一日告諸親曰明午我
008_0535_b_18L當去矣至期果聞天樂異香合掌而逝
008_0535_b_19L萬曆戊子普門居士曹奉記

008_0535_b_20L
明萬曆間金壇王公方麓病篤時煩躁
008_0535_b_21L其子肯堂進曰大人平日存養功夫
008_0535_b_22L於此際得力願澄心聽兒轉金剛經
008_0535_b_23L麓首頷頥解命取經朗誦聽至無我相
008_0535_b_24L無人相四句輒笑曰煩惱本無我相

008_0535_c_01L
드디어 합장하고는 영영 떠나갔다. 고덕께서 말씀하셨다.
“지인至人은 생각 생각에 정혜定慧를 갖추니, 죽음을 맞이해 어찌 어지러울 수 있겠는가? 범부는 생각 생각에 산란하니 죽음을 맞이해 어찌 안정될 수 있겠는가?”
방록 선생은 예전부터 도덕을 함양한 사람이라 칭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 위독해지자 오히려 이처럼 번조증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단번에 털어 버리고 곧바로 바꾸었으니, 그가 종전에 지녔던 식신識神의 힘을 알 만하다. 손암損菴 공은 지극히 존귀한 아버지께서 목숨을 마치는 순간인데도 어찌해야 할지 당황하는 일이 조금도 없이 조용히 부친에게 경을 들으라고 권했으니, 임종을 맞이해 큰 효를 실천함이 세속의 정을 아득히 벗어났고 사람의 아들 된 법도를 충분히 다했다고 하겠다. 지난날 문충文忠 구양歐陽 공은 임종할 무렵 자제들을 불러 이렇게 훈계하였다.
“나는 어려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는 부도浮圖(불교)를 힘껏 비난했었다. 그러다 근래에 문득 오묘한 뜻을 듣고는 비로소 바른 과보를 연구해 보려 했으나 뜻을 지녀 볼 겨를도 없이 죽게 되었다. 너희들은 열심히 힘써 나처럼 뒷날 후회하는 전철을 밟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는 노병老兵을 시켜 가까운 절에서 『화엄경』을 빌려오게 하였고, 염송이 8권에 이르렀을 때 편안히 앉은 채로 서거하였다. 또 원종도袁宗道 공은 말년에 그동안 배우고 실천했던 학문이 생사生死와 무관했음을 깊이 뉘우치고는 결국 오로지 염불왕생만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니, 두 사람은 마침내 고향 소식을 깨달은 자라 할 수 있겠다.
명의 심제환沈濟寰은 가흥嘉興에 살면서 청과점靑菓店을 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반드시 『금강경』을 지송하고, 혹 외출할 일이 있으면 경을 넣은 띠를 가슴팍에 두르고 다녔는데, 훤히 지송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동정洞庭으로 귤을 매매하러 갔다가 호수에서 갑자기 사나운 용과 같은 바람을 만나게 되었다. 배가 이미 침몰해 호수 바닥에 닿았는데, 아비규환 속에서 홀연히 어떤 큰 힘이 배를 잡아 세우더니 파도 더미에서 건져내어 날듯이 끌어다 잠깐 사이에 언덕으로 올려놓았다. 그때 언덕에 있던 사람 모두가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신이 좌우에서 배를 들고 오는 것을 보았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금강역사가 건져준 것임을 알았고, 모두들 심제환의 덕에 감복해 그를 심불가沈佛家라 불렀다.
명의 심광화沈光華는 일찍이 양회兩淮 지방의 소금과 철을 관장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날 우연히 같은 군의 오송吳淞이란 사람과 한가히 앉아 있게 되었다.

008_0535_c_01L誰戀遂合掌長逝古德有云至人念
008_0535_c_02L念定惠臨終安得而亂凡人念念㪚亂
008_0535_c_03L臨終安得而定方麓先生宿稱有養
008_0535_c_04L病篤尙爾煩躁不免然能一撥便轉
008_0535_c_05L從前之識力可知至損菴公於至尊彌
008_0535_c_06L留之際毫不手忙脚亂從容勸親聽經
008_0535_c_07L其終事大孝逈出俗情足爲人子法也
008_0535_c_08L昔文忠歐陽公易簀時呼子弟誡曰
008_0535_c_09L吾少以文章名世力詆浮圖邇來忽聞
008_0535_c_10L奧義方將硏究正果不料賫志以歿
008_0535_c_11L汝等勉旃無蹈後悔令老兵於近寺
008_0535_c_12L借華嚴經誦至八卷安然坐逝又袁
008_0535_c_13L公宗道暮年深悔所學所行無關生死
008_0535_c_14L遂純提念佛徃生以示人二公可謂終
008_0535_c_15L悟故鄕消息者矣

008_0535_c_16L
明沈濟寰居嘉興開靑菓店每晨起
008_0535_c_17L必持金剛經或出外則一袋貯經懸胷
008_0535_c_18L不曠持誦偶徃洞庭販橘湖中陡
008_0535_c_19L遇龍風船已陷水底矣呼號間忽有
008_0535_c_20L巨力提船而起拔出波間來送如飛
008_0535_c_21L頃刻登岸則岸人共見有兩金甲神
008_0535_c_22L右擎船而來船中人知爲金剛拯救
008_0535_c_23L共感沈德號爲沈佛家

008_0535_c_24L
明沈光華嘗判兩淮鹽鐵歸田日

008_0536_a_01L그가 요즘 뭘 하며 지내냐고 조용히 묻기에 심광화가 대답했다.
“새벽에 일어나 채식을 하고 『금강경』을 염송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오송은 역시나 그러냐며 별일 아니라는 듯 치부하였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지내다 어느 날 오송이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 심씨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는 축하하며 말했다.
“아드님이 급제하여 남쪽 대문에 명패가 걸릴 것이 분명합니다.”
심광화가 무슨 근거로 그러냐고 묻자 오송이 말했다.
“간밤에 신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이 군의 한 사대부가 『금강경』을 지송한 공덕으로 그의 아들이 마땅히 준걸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자 공에게 이 꿈을 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해 가을 그의 아들 응명應明이 과연 응천향천應天鄕薦에 올랐다.
명 가흥嘉興의 범范씨 집안의 하인 이야기이다. 그의 성명은 알 수 없다. 거사 왕재생王載生은 어린 시절 그가 매일같이 채소를 어깨에 짊어지고 시장을 거닐며 중얼중얼 염송하는 것을 보곤 하였다. 듣기로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꼭 먼저 부처님 전에 향을 사르고 『금강경』을 여러 권 염송하였으며, 집을 나서자마자 반드시 금명사金明寺로 달려가 부처님께 예배하고 회향하였다. 또 돌아오는 길에 짐승을 파는 것을 보면 사서 풀어 주었고, 거지나 병자를 만나면 입에 넣었던 음식까지 덜어 나눠 주었다. 이에 그의 주인도, 그의 아내도 그런 그를 원치 않아 결국 출가를 허락받게 되었다. 그는 고된 임무를 맡아 부지런히 수행하였고, 무릇 선당禪堂의 고역에도 온몸으로 임하며 한 번도 피곤하다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하루는 병세를 보이더니 대중에게 “나는 전생에 『금강경』 염송을 태만히 한 벌로 남의 종이 되었다. 이제 그 분량을 다 채웠으니, 분명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리라.” 하고는 바로 눈을 감았다.
명 회북淮北의 대상大商 호연胡燃은 관중關中 사람이고, 그의 아내는 오吳씨이다. 그는 수십 만금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이 40이 되도록 선을 짓기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없었다. 어떤 스님이 그에게 화주하며 “그대가 『금강경』을 판각해 한 장藏을 보시하면 분명 기린아麒麟兒를 생산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호연은 흔쾌히 그의 말대로 하였다. 또한 관목棺木 한 장藏을 보시하고 아울러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뼈들을 수습해 주었다. 이와 같이 하기를 10여 년에 어느 날 홀연히 꿈에 신인이 나타나 말했다.
“그대는 아들이 늦는다고 근심하지 말라. 상제께서 그대의 원이 진실한지, 처음부터 끝까지 딴 생각은 없는지 세밀히 살피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나 첩실들이 연이어 세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 총명하고 빼어났다. 부부는 70이 넘도록 살았으며 집안은 더욱 융성하였다.

008_0536_a_01L與同郡吳淞閑坐從容問日間所爲
008_0536_a_02L云晨朝茹泰誦金剛經積二十年
008_0536_a_03L亦漫然置之居無何吳忽晨起疾詣
008_0536_a_04L沈家賀云郞君南闈必第矣沈問何據
008_0536_a_05L吳云夜夢神言郡中一士夫以持金剛
008_0536_a_06L功德其子應得雋覺來憶公當酬是
008_0536_a_07L是秋其子應明果登應天鄕薦

008_0536_a_08L
明嘉興范氏僕失姓名居士王載生幼
008_0536_a_09L見每肩菜擔行市中喃喃念誦
008_0536_a_10L蚤起必先佛前焚香誦金剛數卷始出
008_0536_a_11L必赴金明寺禮佛回向歸途遇生命買
008_0536_a_12L逢乞病者減口食而施之家主與
008_0536_a_13L之妻不願遂聽出家辛勤作務凡禪
008_0536_a_14L堂苦役悉身任之未甞告倦一日示
008_0536_a_15L疾告衆曰我宿生以誦金剛怠慢罰作
008_0536_a_16L人奴今限滿當徃善地受生矣遽瞑

008_0536_a_17L
明淮北大啇胡燃關中人妻吳氏
008_0536_a_18L貲數十萬年四十好善而無子有僧
008_0536_a_19L化之曰爾能刻金剛經施捨一藏
008_0536_a_20L產麟兒燃慨如其言又施棺木一藏
008_0536_a_21L并掩骴骼之暴露者如是者十餘年
008_0536_a_22L忽夢神人告曰爾無憂子之遅也上帝
008_0536_a_23L細察爾願誠否始終無賛念否越一載
008_0536_a_24L姬妾連擧三子皆聰頴夫婦年踰七十

008_0536_b_01L
명 낭주閬州의 백성인 용의龍義는 품을 팔아서 먹고살았다. 우연히 친지의 병문안을 갔다가 『금강경』 사경하는 것을 본 용의는 까닭도 없이 비방하며 배척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의사도 기도도 효험이 없었다. 그 후 또 이웃집 사람이 그 경을 염송하는 것을 듣고는 통탄하며 자책하였다.
“내가 예전에 경을 비방했던 죄로 벙어리가 되는 이 병을 얻은 것이다. 이제라도 죄를 뉘우치고 죽을 때까지 공경히 받들면 다시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때부터 경 읽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곧 벽에 기대어 들었다. 온 마음을 기울여 이렇게 하기를 한 달 남짓했는데, 하루는 절에 갔다가 한 노스님을 만났다. 공경히 예배드리자 스님이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용의가 입을 가리키며 목에 걸린 소리를 내자, 스님은 “내가 네 병을 고쳐 주겠다.” 하고는 칼로 혓바닥 아래를 여러 차례 뒤적였다. 그러자 곧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경을 염송했는데 그 목소리가 이웃집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시 지나는 길에 이웃집에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벽에 초상화만 그려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이웃 사람과 매우 비슷했다. 절에 사는 스님들이 이분은 수보리須菩提라고 하였고, 용의는 그때서야 보살이 감응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명의 채괴정蔡槐庭은 초楚나라 사람인데 가흥嘉興 태수가 되어 스스로를 청렴히 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늘 재계를 지키고 부처님을 받들었다. 공은 여가가 생기면 오로지 『금강경』을 지송하였고, 관청 내에 쓸데없는 물건이라곤 털끝만큼도 두지 않았다. 공은 몸이 창백하고 야윈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학생 시절 위독한 질병에 걸렸었는데 가난해 의사도 약도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이웃 삼으며 목숨이 다하도록 이 경을 지송하겠다고 원을 세웠다. 그러자 점차 병이 치유되었고 과거에서 장원으로 발탁되었다. 이제 남은 생에 관리가 되었으니, 오직 바람이 있다면 이 경을 휴대하고 왔듯이 역시 이 경만 휴대하고 떠나며 임무를 마치는 것이다.”
그는 외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을 아픈 상처처럼 돌보았으며, 음식은 채소나 젓갈만 먹고 시정의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또한 옷도 베로 짠 핫옷만 입고 시정의 명주는 입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이 경과 살생을 경계하는 글을 간행하여 백성을 교화하였다.
명 오문吳門의 주공정朱恭靖 공이 집에서 지낼 때였다. 어떤 유랑하던 스님이 걸식하였는데 한 말의 곡식을 한 끼에 먹었다. 그날 그 스님이 세 끼의 음식을 연이어 받자 시정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008_0536_b_01L家道益隆

008_0536_b_02L
明閬州民龍義傭力自給偶省親疾
008_0536_b_03L見寫金剛經義無故毁斥之忽喑啞不
008_0536_b_04L能言醫禱無驗後又聞隣人有念此經
008_0536_b_05L痛自責曰我前謗經得此啞病
008_0536_b_06L悔罪願終身敬奉未知復能言否自此
008_0536_b_07L每聞經聲即倚壁而聽專心月餘
008_0536_b_08L日入寺逢一老僧敬而禮焉僧問何
008_0536_b_09L義指口啞僧曰吾爲汝治之以刀
008_0536_b_10L括舌下數次便能語因與誦經聲同
008_0536_b_11L鄰人無二再過候之不遇矣壁有畫
008_0536_b_12L甚肖焉寺僧曰此須菩提也義始
008_0536_b_13L悟菩薩顯應

008_0536_b_14L
明蔡槐庭楚人守嘉興潔己愛民
008_0536_b_15L齋奉佛公暇惟持金剛經署內毫無長
008_0536_b_16L公體素羸自言爲諸生時遘危疾
008_0536_b_17L貧無醫藥與死爲隣發願盡形誦持
008_0536_b_18L是經漸次痊愈得發科甲今以餘生
008_0536_b_19L作官誓願携此經而來亦携此經而去
008_0536_b_20L故竟任不畏强禦視民如傷食惟菜
008_0536_b_21L未甞市肉衣但布袍未甞市絹
008_0536_b_22L以是經併戒殺文刊行勸化

008_0536_b_23L
明吳門朱恭靖公家居時有游僧乞食
008_0536_b_24L斗栗一飡是辰僧連受三齋市人駭之

008_0536_c_01L소문이 공에게까지 들리자 공이 그를 초대해 방으로 들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스님은 인과법문因果法門에 능숙하였다. 공이 말했다.
“저희가 면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말했다.
“명부의 과보는 귀함과 천함,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시행되는 것입니다. 공께서 이 몸이 죽은 뒤의 인과를 알고 싶다면 공께서 믿는 귀신에게 한 차례 현몽해 달라고 함께 기도해 봅시다.”
공이 스님을 유숙하게 하고 그의 말대로 하자 기이한 조짐이 나타났다. 공이 아침 일찍 일어나 스님에게 알리자 스님이 말했다.
“반드시 『금강경』을 지송해야만 풀 수 있습니다.”
공은 이에 이 경을 부지런히 염송하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후 여러 차례 영험이 있었으며, 임종하기 며칠 전에는 친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금강경』을 수지한 이익으로 이 길로 곧장 귀한 집안에서 몸을 바꿔 태어나게 되었다.”
나이 81세의 늙은이 노천魯川의 조윤유曹胤儒가 기록하였다.
명의 등소봉鄧少峯은 강서江西 사람으로 가정嘉靖 기유년(1549)에 태어났다. 매번 수명을 점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들 그는 자식도 적고 수명도 짧을 것이라고들 하였다. 등소봉은 결국 발심하여 『금강경』을 염송하면서 수명이 늘어나고 자식이 많기를 기원하였다. 그는 숭정崇禎 임오년(1642)에 이르러 95세로 목숨을 마쳤는데, 아들 열셋에 손자가 서른여섯이었다.
명의 항성杭城 사람 장수성張守誠은 자가 불이不易이다. 그는 밤낮으로 『금강경』을 경건하게 염송하였고, 출입할 때마다 경을 주머니에 담아 가슴팍에 걸고 다녔다. 그는 숭정崇禎 임오년(1642)에 친구 따라 북쪽으로 무역을 떠났다가 도중에 마적을 만나 친구와 함께 상해를 입었다. 이때 장수성은 화살 한 발을 맞았는데 가슴팍에 걸고 다니던 경을 넣은 주머니에 적중하여 심장을 관통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황심부黃心符 참군叅軍이 사부암舍桴菴의 승려 혜우慧雨에게 들려준 것이다.

008_0536_c_01L聲聞于公公延入與語僧善談因果
008_0536_c_02L公曰不知吾軰可免否僧曰冥報不擇
008_0536_c_03L貴賤智愚而平施者也公欲知身後因
008_0536_c_04L合禱於所信鬼神祈一夢公留僧
008_0536_c_05L宿如其言有異兆公夙興告僧僧曰
008_0536_c_06L必持金剛經方可釋也公乃勤誦此經
008_0536_c_07L不懈屢有靈驗易簀前數日告親曰
008_0536_c_08L吾受金剛經益此行翛然轉生貴戚矣
008_0536_c_09L八十一翁魯川曹胤儒誌

008_0536_c_10L
明鄧少峯江西人生嘉靖己酉年
008_0536_c_11L逢推命者皆謂其少子少壽少峯遂發
008_0536_c_12L誦金剛經祈壽併祈子至崇禎壬
008_0536_c_13L壽終九十五歲生十三子三十六
008_0536_c_14L

008_0536_c_15L
明杭城人張守誠字不易晝夜虔誦金
008_0536_c_16L剛經每出入以囊貯經懸佩胷前
008_0536_c_17L禎壬午年隨伴北上貿易途遇响馬
008_0536_c_18L同伴受傷張被一箭正中胷前經袋
008_0536_c_19L不致透心因得全命此黃心符叅軍
008_0536_c_20L語舍桴菴僧慧雨

008_0536_c_21L
金剛經持驗紀終
  1. 1) 정화政和 : 정화政和(1111~1117)는 송宋 휘종徽宗의 연호이다. 당 예종睿宗의 연호인 연화延和(712)의 오기로 추측된다.
  2. 2) 원문은 “法尙應捨。 何况非法。”이다. 앞뒤 구절을 살펴볼 때,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의 『金剛般若波羅密經』에는 “汝等比丘。 知我說法。 如筏喻者。 法尙應捨。 何況非法。”으로 되어 있어 4구의 게송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리류지菩提留支와 진제眞諦의 번역에는 “若觀行人。 解筏喻經。 法尙應捨。 何況非法。”의 4구 게송으로 되어 있다.
  3. 3) 사공司空 엄수嚴綬 : 사공司空은 관직명이다. 내용으로 보아 엄수는 주인공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기록하거나 전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4. 4) 아참衙參 : 관리들이 조석朝夕으로 조정이나 관청에 모이는 일을 말한다.
  5. 5) 어느 경에서 인용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萬善同歸集』(T48, 962a)에서는 “중생이 우둔하여 관법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염송하는 소리를 끊임없이 이어지게만 하면 저절로 불국토에 왕생하게 된다.(衆生愚鈍。 觀不能解。 但令念聲相續。 自得往生佛國。)”는 문구를 인용하고 『文殊般若經』의 말씀이라 하였다.
  6. 6) 거자擧子 : 향시鄕試에 급제하고 다시 회시會試를 준비하는 사람, 즉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을 말한다.
  7. 7)사구게 전문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이다. 『金剛般若波羅蜜經』(T8, 752b).
  8. 8)백의대사白衣大士 : 관세음보살을 말한다.
  9. 9) 상주국上柱國 :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발군의 전공을 세운 공신에게 수여하던 벼슬 이름이었다. 후대 최고의 공신이나 훈신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0. 10)사마司馬 : 관직 이름이다.
  11. 11) 일자日者 : 시일時日의 길흉을 점치는 사람을 말한다.
  12. 12)대렴大殮 : 소렴小殮을 치른 다음날 다시 시체에 옷을 입히고 묶는 일을 말한다.
  13. 13)섬마睒魔보살 : 섬마는 Samaka의 음역으로 섬마睒摩ㆍ상막가商莫迦라고도 한다. 『菩薩睒子經』ㆍ『睒子經』 등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나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효성이 지극했던 섬마는 열 살 때 눈이 먼 두 부모를 따라 산에 들어가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이국迦夷國의 왕이 사냥을 하다 실수로 사슴가죽 옷을 입은 섬마를 쏘아 죽이게 되었다. 눈이 먼 부부가 하늘을 우러러 “섬마는 효성이 지극하오니 하늘이 아시면 섬마를 다시 살려 주소서.” 하며 탄식하자, 하늘의 신들이 내려와 화살을 뽑고 약을 먹여 섬마가 살아났다. 부모가 놀라움에 두 눈을 부릅뜨자 예전처럼 눈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睒子經』(T3, 438b).
  14. 14)자심慈心 동자 : 어머니를 지극한 마음으로 봉양한 공덕으로 수많은 복락을 누렸고, 어머니에게 패악한 짓을 한 인연으로 지옥에 들어가 불화로를 머리에 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雜寶藏經』에 나온다. 『雜寶藏經』에서는 이름을 자동녀慈童女라 하였고, 자동녀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다른 불효자들의 죄까지 자신이 받겠다고 마음먹자 머리에 인 불화로가 저절로 떨어졌다고 한다. 『雜寶藏經』(T4, 450c).
  15. 15)황매黃梅 스님 : 황매산黃梅山에 거주했던 오조 홍인弘忍 대사를 말한다.
  1. 1){1}此題名及撰者名補入{編}。
  2. 1){1">「釰通」用「釖」{編}次同。
  3. 1){1">「啇」通用「商」{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