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경암집(鏡巖集) / 鏡巖集卷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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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집 중권(鏡巖集 卷之中)
서書
채 상국 번암공1)께 올림(上蔡相國樊巖公)
방장산인方丈山人 아무개는 재계목욕하고 삼가 대감의 안부가 어떠하신지 여쭙니다. 그리운 마음이 간절합니다. 저는 산인山人으로 일찍이 문하에 알현하지 못하였으나 돌아가신 스승 추파秋波 대사께서 유년 시절에 돌아가신 희암希庵(채팽윤蔡彭胤) 선생께 수학하였고, 돌아가신 합하閤下2)께서 적성赤城(충북 단양)의 수령으로 부임하실 적에 대대로 이어 온 교분으로 이아貳衙3)에서 대감을 뵐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망사亡師께서 대감의 문하에 삼세三世의 인연이 있는 것이니 돌아가신 스승에 대한 문자를 대감이 아니면 누구에게 구하겠습니까? 옛날 당나라 사람들은 한문공韓文公4)의 묘지墓誌를 얻지 못하면 장례 지내지 못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돌아가신 스승의 영정에 찬문贊文이 없으니 감히 대감의 훌륭하신 글솜씨를 청합니다. 지극히 외람된 일이오나 또한 삼세의 다정한 인연을 없앨 수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하교하실는지요? 돌아가신 합하의 수찰手札이 돌아가신 스승께서 남기신 책 상자 안에 있어서 아울러 바칩니다. 황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정 진주 표천5)께 올림(上鄭晉州瓢泉)
합하께서 전에 회계會稽를 다스릴 때 저의 선사先師와 방외의 교유를 맺고, 후에 괴산槐山으로 옮기고 나서도 잊지 못하여 항상 남쪽을 바라보시며 그리워하여 손수 서찰을 주셨습니다. 이제 선사께서 남기신 책 상자 중에 수십 쪽의 편지는 선사께서 소중히 간직하고 읽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좋은 문장이로다. 나를 이렇듯 사랑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어려서 문하에 나아가 인사드리지 못했으나 또한 선사의 말을 인하여

010_0431_b_02L鏡巖集卷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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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31_b_06L上蔡相國樊巖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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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丈山人某齋沐謹伏問大監氣體候
010_0431_b_08L若何伏慕不任之至伏以山人未曾謁
010_0431_b_09L見於門下亡師秋波名某幼年受學於
010_0431_b_10L先希庵先生先閤下下車赤城時以世
010_0431_b_11L誼得拜大監於貳衙是亡師於大監門
010_0431_b_12L有三世之緣欲爲亡師文字非大
010_0431_b_13L監門下而奚求哉昔唐人不得韓文公
010_0431_b_14L墓誌與不葬同亡師像幀未有賛文
010_0431_b_15L敢伏請于大監如椽筆下雖極猥越
010_0431_b_16L三世情緣之不可自沒也未知下敎如
010_0431_b_17L先閤下手札在亡師遺篋中並伏
010_0431_b_18L不勝惶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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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31_b_20L上鄭晉州瓢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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閤下前治會稽辱以先師爲方外交
010_0431_b_22L移槐山亦不能忘常有悠然望南之思
010_0431_b_23L手賜書札今在先師遺篋者數十紙
010_0431_b_24L師珎藏而讀之曰好文章愛我至此
010_0431_b_25L山人時幼雖未蒙趍拜軒下而亦因先

010_0431_c_01L합하를 사모한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뜻밖에도 선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합하께서 이제 진양晋陽(진주)으로 부임하시어 행차가 회계를 지나가니 산천초목도 모두 기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돌아가신 분은 어찌 무궁한 한이 없겠습니까? 전년 봄에 제가 합하가 다스리는 지역의 서산에 거처하여 한번 뵙고 인사를 드릴 수 있었는데, 평생 공문公門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두려움과 겁이 쌓여 주저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10년 동안 우러러 사모하는 정성과 선사께서 평소의 교유하신 마음을 하나도 아뢰지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이제 뜬구름처럼 정처 없어 지금은 덕유산德裕山 상상봉上上峰에 있습니다. 합하께서 임기를 마치고 수레가 북쪽을 향해 떠나면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인연이 없을 것이니 슬프고 한스러움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선사께서 남기신 시문 약간 편을 교유하시는 분들에게서 수습하여 출판하고자 하는데 합하와 수창한 것이 유독 한 글자도 없어 매우 미진하다고 여깁니다. 합하의 아름다운 시문집 중에 혹시 기록된 것이 있으면 등사해서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 승지 여암공6)께 올림7)(上申承旨旅庵公)
선생의 문장은 온 세상이 높여서, 심산궁곡이라도 문장에 종사하는 자라면 모두 사모하여 우러르고 분주奔走하여 선생의 모습을 뵙고자 합니다. 아, 유불儒佛의 가르침은 그 유래가 오래되고 그 근원이 큽니다. 미혹되면 제초齊楚가 다 그릇되고 깨달으면 호월胡越이 일가이니, 어찌 피차 모순이라고 여겨 상대를 천시하고 나만을 높이겠습니까? 선생께서는 주공周公과 공자를 학습하면서도 또한 불가의 문자를 피하지 않아서 평생의 지으신 작품이 때때로 총림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대개 유학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곧바로 불지佛地에 이르렀으니

010_0431_c_01L師之言誦慕閤下者有年矣不意先師
010_0431_c_02L奄忽而閤下今下車晋陽旌旆行過會
010_0431_c_03L雖山川草木皆有欣感之態哀哉長
010_0431_c_04L逝者豈無私恨之無窮哉前年春山人
010_0431_c_05L居治下西山得一拜堂下而平生不入
010_0431_c_06L公門畏㤼之積踧踖而不能進囁嚅
010_0431_c_07L而不能言十年慕仰之誠先師素契之
010_0431_c_08L一無所陳達而退而浮雲無住
010_0431_c_09L則德裕上上峰矣閤下瓜期已滿五馬
010_0431_c_10L將北則此生再謁無緣悵恨曷喩
010_0431_c_11L師遺稿詩文略干篇於交遊中收拾
010_0431_c_12L付之梓氏而爲閤下酬唱者獨不得一
010_0431_c_13L甚自缺然閤下瓊集中倘或有錄
010_0431_c_14L載者騰取伏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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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31_c_16L上申承旨旅庵公

010_0431_c_17L
先生文章爲一世所宗雖深山窮谷
010_0431_c_18L苟能從事文學者則莫不慕仰奔走
010_0431_c_19L欲望見其顏色儒佛之敎其來尙
010_0431_c_20L其原大矣迷之則齊楚俱失悟之
010_0431_c_21L則胡越一家夫何彼此而矛盾出奴而
010_0431_c_22L入主乎先生自是學習周孔者而亦不
010_0431_c_23L避浮屠文字平生述作間甞流通於叢
010_0431_c_24L林界其言盖不背儒術而徑造佛地

010_0432_a_01L읽는 자가 유학자이면 유학으로, 스님이면 불교로 여기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빈 배가 넓은 바다에 떠 동서로 자유롭게 다니며 사람도 싣고 물건도 실어, 오고 감에 막힘없이 가는 곳 따라 편안한 것과 같으니 이 어찌 보통 사람이 엿보고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가만히 탄복합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곤궁하여 갈 곳이 없어 드디어 입산 삭발하였으나, 다만 골짜기의 부처가 사람을 살린다는 말8)만 있는 줄 알았지 그 도가 성현의 도에 맞는지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때 선사께서 석교釋敎의 사범이 되시어 곧 책 상자를 짊어지고 도를 구하였습니다. 선사께서 제가 사대부의 자손임을 물어 아시고는 슬퍼하시고 어루만지며 글로 훈계하시기를, “하늘이 반드시 너로 하여금 속세를 벗어나 니원泥洹(열반)의 세계에 노닐게 하리라.” 하시고 부처님의 설산의 고사로써 힘쓰게 하셨습니다. 제가 이에 천명의 소재를 알고 따라야 할 도리를 배우기를 청한대, 스승께서 일일이 깨우쳐 주시어 4년에 이르도록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비록 타고난 자질이 몽매하여 깨달음을 얻을 인연은 없었으나 또한 이 학문으로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닦으며 임금과 어버이의 은혜를 보답하게 되었으니 이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선사께서 애써 훈도하지 않았다면 불법을 허무虛無 공멸空滅이라고 여기는 데 그쳤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항상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보답할 방법을 생각하여, 얻지 못하면 저도 모르게 가만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이 이미 돌아가시어 세상에서 다시 뵐 수 없고 그 언어와 문장도 따라서 흩어져 사라지게 되면 훗날에 다시 고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만둘 수 없어서 도를 행했던 모습을 비단에 그리고 열반의 자취를 돌에 나타내며, 흩어진 시구들을 수습하고 교유하신 분들 가운데서 유문遺文을 수록하여 대략 수십여의 문자를 모으고 또 출간하여 오래 전해지기를 꾀합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제가 욕되게 스승의 문하에 들어왔으나 그 도덕과 문장이 막연하여 연구하지 못하였고, 지난번에 수습한 것도 대부분 선사께서 손수 기록하신 것이 아니니

010_0432_a_01L使讀之者爲儒而儒爲佛而佛譬如
010_0432_a_02L虛舟駕海任運東西可以載人可以
010_0432_a_03L載物徃復無礙惟適之安此豈常人
010_0432_a_04L之所能窺測哉某窃服焉某幼年失恃
010_0432_a_05L窮無所歸遂入山薙髮但知有谷
010_0432_a_06L佛生人之該 [6] 而曾未謂其道之可聖賢
010_0432_a_07L否也時先師某堂爲釋敎宗範即荷
010_0432_a_08L笈而求之師問知爲士人子悲而撫之
010_0432_a_09L文以誡之曰天必使爾蟬蛻乎塵寰
010_0432_a_10L夷猶乎泥洹勉以瞿曇氏雪山故事
010_0432_a_11L於是知命之所存請學其所由道師一
010_0432_a_12L一分曉至四年而不倦某雖賦質懵眛
010_0432_a_13L未有悟得因緣而亦以是學足以正心
010_0432_a_14L足以修身足以報君與親則乃非偶然
010_0432_a_15L而得也向無師訓之劬勞則將謂佛法
010_0432_a_16L祗是虛無空滅而止矣由是每念其恩
010_0432_a_17L之不可辜思所以報效不得則不覺潜
010_0432_a_18L然下涕其人已沒不可復見於世
010_0432_a_19L言語文章亦從歸散滅不可復考於後
010_0432_a_20L無已則綃寫行道之影石表涅槃之跡
010_0432_a_21L拾詩句於落葉錄遺文於交遊略集數
010_0432_a_22L十紙餘又欲被諸梓以壽其傳反以
010_0432_a_23L思之吾雖忝入於師門其道德也
010_0432_a_24L章也漠無以究矣向所收拾多非先

010_0432_b_01L전해지는 동안에 반드시 오류와 와전이 없지 않을 것이라, 이대로 남에게 보이면 선사께 죄를 얻을 뿐만 아니라 또 누가 믿겠습니까? 예전에 용담龍潭 법사의 시집을 냈을 때 선생께서 서문을 써 주셨는데 선사께서는 초년에 용담에게 수학하였으니 인연으로 삼을 만하고, 게다가 제가 평생 사모하여 우러르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니 선사의 문자를 짓는 분은 선생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멀리 있어 선생께 나아가지 못하고 드디어 백실白室 유 공柳公9)께 부탁하였더니, 유공께서 저의 뜻을 가련히 여겨 선생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생께서도 또한 이단이라 버리지 않으시고 슬피 여겨 받아들이고 몇 날을 등불 앞에서 퇴고를 다하여 주시니, 저에게는 금옥 같은 깊은 은혜인지라 어찌 보답해야 할는지요? 이 어찌 어진 군자가 사람을 대하는 자연스러운 도량이 아니겠습니까? 더욱더 감격스러운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선생의 문장을 보니, 기궤하고 굳건하여 깊이 만물의 실정을 체득하고 도를 조용히 따르시니 그 공부의 극진한 곳은 제가 헤아릴 바가 아닙니다. 용담 법사의 시집 서문에서는 공空 한 글자로 법을 삼아 불공不空으로 귀결시켜, 불공이면서 공이고 공이면서 불공이 되니 공·불공은 두 가지가 아니면서 또한 하나가 아닌 것이 밝히지 않아도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선사의 문집 서문에서도 경境 한 글자로 용用을 삼아 경계를 잊은 후에 참 경계를 얻는 데 이르고, 참 경계의 비유를 들어 말하기를 시내와 연못의 물이 맑고 깨끗하여 흰 유리와 같다고 하시니, 오호라, 선사의 심인心印이 어찌 이러하지 않겠습니까? 두 선사의 시문은 대개 성정으로부터 나왔으나 선생의 시문이 아니라면 그러함을 알 수가 없으니, 선생은 법요를 잘 해설한다고 이를 만하니 스스로 증득한 곳이 어떠하신지요? 두 선사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선생의 이 서문을 보아야 할 것이요, 선생의 도를 알고자 한다면 도리어 두 선사의 마음 가운데에서 구해야 할 것입니다.

010_0432_b_01L師手錄歷傳之間未必無謬訛以是
010_0432_b_02L示人非但得罪於先師又誰信之
010_0432_b_03L者龍潭法師有詩集先生爲之弁文
010_0432_b_04L師初年從龍潭受學此足爲籍緣况余
010_0432_b_05L之平生慕仰之不自已則欲爲先師文
010_0432_b_06L字者非先生不可第以山人遠跡
010_0432_b_07L敢遽進遂托於白室柳公公愍我之志
010_0432_b_08L爲言先生先生又不以異學棄之哀而
010_0432_b_09L受納幾日燈前推敲備盡於山人
010_0432_b_10L謂全 [7] 玉深恩何以報答此豈非仁人君
010_0432_b_11L子應物自然之度耶尤不勝感激之忱
010_0432_b_12L伏見先生之文奇詭遒健深軆萬物之
010_0432_b_13L而從容於道其工用之極處非某
010_0432_b_14L所能測也其序龍潭之詩則一空字爲
010_0432_b_15L結歸於不空不空而空空而不空
010_0432_b_16L空不空非兩㨾亦非一塊無卞白也
010_0432_b_17L今序先師之文也又以一境字爲用
010_0432_b_18L於忘境而後得眞境眞境之喩則曰
010_0432_b_19L溪潭之水瑩然若白琉璃也嗚呼
010_0432_b_20L師之心印豈不是歟二師之詩之文
010_0432_b_21L盖從性情中出而微先生之序不能知
010_0432_b_22L其然先生可謂善說法要其自證處
010_0432_b_23L爲如何哉欲求二師之心當看此先生
010_0432_b_24L之序欲知先生之道却於二師中求

010_0432_c_01L그러니 선생께서 두 선사를 일찍이 만나지 못했으나 만나지 않은 것도 아닌 것입니다. 제가 선생을 사모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비록 모습은 뵌 적이 없으나 항상 친근하게 여겼으니 이것이 바로 경계의 진실처요, 이른바 진인眞人의 적정寂靜의 즐거움은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 어찌 몸이 멀리 떨어져 있음을 한스러워하겠습니까?
출간하는 일이 이제 다행히 끝나 저의 일도 마쳤습니다. 원하건대 이를 영원한 시간에 받들어 행하여 모든 대지의 일체중생을 제가 모두 이 심인으로 제도하여 적멸의 즐거움에 들게 하고, 유리세계에 안주하게 하여 유학에서 나와 불교에 들어가며, 불교로 좇아 유학으로 들어가 귀천과 시비를 없애고 함께 태화太和의 도에 귀의케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선생의 책상 아래 돌아가 뵐 날이 있을 것입니다. 구구한 마음은 이뿐입니다. 삼가 법제法弟를 보내어 고루한 마음을 대략 아룁니다. 황공합니다.

유 익위 풍암공께 올림10)(上柳翊衛楓巖公)
선대감께서 세상을 뜨신 지 이미 3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병 때문에 달려가 곡하지 못했으니 죄송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가을바람이 점차 높아지는데 선생의 수도하시는 생활이 여러 가지로 좋으신지요? 강에는 살찐 농어가 있고 밭에는 돋아난 순채가 있으며, 정원에는 도연명의 국화가 심어져 있고 책상에는 성인의 책이 가득하여 선생의 부귀가 이와 같으니 누구인들 선생께 축하드리지 않겠습니까? 선사의 문집은 실로 상사上舍(생원이나 진사)의 힘을 입어 책을 이루었고 또 선생의 변론으로 총림에 영화로운 빛이 지극하니 먼 훗날까지 유통되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출판의 일을 겨우 마쳤으니 이후로는 한가하게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11)와 함께 항상 청산을 마주할 뿐입니다. 선생의 활계는 저와 같은지 다른지 알지 못하겠군요. 이만 줄입니다.


010_0432_c_01L然則先生之於二師雖未甞値而未始
010_0432_c_02L不相見也某之慕悅先生之心雖未識
010_0432_c_03L而未甞不親近是乃爲境之眞實處
010_0432_c_04L所謂眞人寂靜樂在此而不在他何恨
010_0432_c_05L形骸之爲阻刊役今幸訖了某事畢矣
010_0432_c_06L願以此奉行於塵墨刼盡大地所有一
010_0432_c_07L切衆生我皆以此心印度之令入寂滅
010_0432_c_08L安住琉璃界出儒而入佛從佛而
010_0432_c_09L入儒無主無奴無是無非同歸於太
010_0432_c_10L和之道然后先生床下歸拜有日區區
010_0432_c_11L之心只此而已謹走法弟略陳孤陋
010_0432_c_12L不勝惶恐

010_0432_c_13L

010_0432_c_14L上柳翊衛楓巖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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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大監捐舘已過三霜山人病不能奔
010_0432_c_16L罪悚無任秋風漸高伏惟先生道
010_0432_c_17L履萬珎江有肥鱸园有抽蓴庭植淵
010_0432_c_18L明之菊案積聖人之書先生之富貴如
010_0432_c_19L孰不爲先生健賀哉先師文集
010_0432_c_20L賴上舍成秩而又辱先生之辯作叢林
010_0432_c_21L榮色至矣流通遐刼亦何難感感誦誦
010_0432_c_22L榟役今纔了訖自后便可無事庭前栢
010_0432_c_23L樹子長與對靑山而已矣抑未知與先
010_0432_c_24L生活計是同是別不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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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백실12)께 올림(上柳白室)
이별한 후로 천 리 먼 곳 운산雲山에 떨어져 지냈습니다. 가을의 서늘함이 점점 더해 가는데 생활은 여러 가지로 좋으신지요? 급제한 지 30년에 침랑寢郞13)의 녹에 불과하니 아마도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하는가 봅니다. 안자顔子14)는 성문聖門의 높은 제자이면서도 오히려 가난한 동네에서 곤궁함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군자는 곤궁할 때에도 지조를 굳게 지키는 법이니 우리 거사께서도 그러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쇠잔함이 더욱 심하여 주야로 두문불출하고 죽어서 서방으로 떠날 생각뿐입니다. 다만 연방蓮榜의 구품九品에 이름이 쓰여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우습고 가련하기만 합니다. 선사의 유고를 간행하여 펴는 일을 다행히 마쳤으니 그대가 베푸신 성대한 은혜를 어느 날인들 감히 잊겠습니까? 저도 또한 산수의 여러 기문들을 전하는 말 중에서 망령된 뜻으로 논평하여 취했습니다. 이제 당신께 받들어 드리니 옳고 그름을 증명하여 바르게 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목 참판 여와공15)께 올림(上睦叅判餘窩公)
선사의 유고를 간행하고 나서 20여 년을 칩거하여 도성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마침 선생의 마을로부터 온 옥천사玉泉寺의 진상進上하는 스님을 만나 선생께서 줄곧 건강하심을 알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뜻밖에 번암樊巖 상공께서 별세하시어 공사 간에 애통한 마음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영남 사람들은 항상 선생과 상공을 태산북두처럼 우러르는데, 이제 상공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저는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문장의 정종正宗을 청하여 묻기를 원합니다.

산청군수 이후께 올림(上山淸官李侯)
날씨가 찌는 듯 무더운데 백성들을 보살피는 생활이 어떠하신지요? 축원하고 사모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010_0433_a_01L上柳白室

010_0433_a_02L
奉別已來雲山千里秋凉漸高伏惟
010_0433_a_03L起居萬勝登榜三十年祿在寢郞
010_0433_a_04L所謂詩之窮人者非歟子顏子以聖門
010_0433_a_05L高弟猶不免陋巷單瓢所以君子固窮
010_0433_a_06L我居士其人乎山人衰耗轉甚日夜閉
010_0433_a_07L惟有化徃一念抑未知蓮榜九品
010_0433_a_08L名題有無可咲可憐先師遺稿幸刊
010_0433_a_09L布卒役莫非盛賜何日敢忘山人亦
010_0433_a_10L有山水雜記於傳該 [8] 妄意評取也
010_0433_a_11L今以奉覽丌下證正是否伏望耳

010_0433_a_12L

010_0433_a_13L上睦叅判餘窩公

010_0433_a_14L
先師遺稿了刊後蟄坏二十年餘都下
010_0433_a_15L消息漠然無聞適逢玉泉進上僧
010_0433_a_16L先生里巷來憑伏審先生體候一向健
010_0433_a_17L欣躍不任之至不意樊巖相公捐舘
010_0433_a_18L公私之慟不可言喩嶠南之人每以
010_0433_a_19L先生與相公爲山斗之仰今相公已矣
010_0433_a_20L山人願至先生軒下請問文章以何爲
010_0433_a_21L正宗也

010_0433_a_22L

010_0433_a_23L上山淸官李侯

010_0433_a_24L
日氣蒸炎伏不審莅字體履若何祝慕

010_0433_b_01L듣자니, 지사智寺의 중이 부모이신 관가에 고하지 않고 감히 상사上司에 청탁했다고 하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불과 한둘의 허깨비 같은 놈들의 소행이요, 여러 스님들이 동모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노여움을 옮겨 다 잡아들이신다면 어찌 무고한 자에게도 화가 미치지 않겠습니까? 간청하오니 죄 있는 자는 벌을 주고 용서할 자는 사면하여 합하의 적자赤子로 하여금 스스로 몸을 보존케 하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유불의 동이同異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받은 이래로 깨달은 것이 많아 하백河伯이 해약海若에게 부끄러운 것16)보다 더합니다. 그런데도 한마디 말로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17)고 판단하시니 어찌 된 것입니까? 병이 낫기를 기다려 나아가서 다시 바른 의론을 듣고자 합니다.

안의군수 한후께 올림(上安義官韓侯)
편지와 달력을 보내 주시어 새해 수령의 안부와 생활이 더욱 복되시고 여러 가지로 편안하심을 알고 축하하는 마음 넘칩니다. 관關 스님이 제가 뵙기를 바란 것은 이미 하교하신 가운데 있으니 진실로 다행스럽고 바라는 바입니다. 다만 승제僧制에 주문朱門18)에는 발걸음을 금지하니, 만일 제가 계율을 훼손하여 명예를 좇는다면 합하께서 무엇을 취하여 사랑하겠습니까? 옛날 한문공韓文公은 고을 외곽으로 태전太顚 스님을 불러 보고 후에 그 집에 가서 옷을 남겨 주고 이별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에 태전이 홍련紅蓮에게는 계율을 능히 지켰지만 주문에는 하지 못하였으니, 그 겉모습은 비웠지만 명예는 비우지 못했다고 여깁니다. 한문공이 어찌하여 그 집을 찾아가고 무엇을 사랑하여 옷을 남겨 주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불교를 배운 것은 비록 태전에게 몇 층 미치지 못하나 합하께서 만일 교화 밖의 사람을 용서하여 놓아두시고, 회피(逋逃)하는 죄를 생각지 않으신다면 산승을 사랑하는 풍모가 오늘날의 한유韓愈가 옛날의 한유보다 못하지 않을 것입니다.


010_0433_b_01L不任之至伏聞智寺僧不告父母官
010_0433_b_02L敢托上司罪死無赦而此不過一二怪
010_0433_b_03L鬼輩所爲非關衆僧之同謀也若一網
010_0433_b_04L遷怒豈無無辜之或及乎伏乞當罪者
010_0433_b_05L罪之當赦者赦之使閤下赤子得以
010_0433_b_06L自保不勝幸甚至於儒釋同異受誨
010_0433_b_07L已來多所省入者何啻河伯之慚海若
010_0433_b_08L而一言仰斷曰道不同不相爲謀奈何
010_0433_b_09L待病蘇趨進再聽格論伏計

010_0433_b_10L

010_0433_b_11L上安義官韓侯

010_0433_b_12L
下賜書敎並曆日伏審新年字候動止
010_0433_b_13L增福萬安誦賀不任關師欲山人請謁
010_0433_b_14L旣是下敎中則固所幸願而第以僧制
010_0433_b_15L禁足朱門之下使山人毁戒而趨名
010_0433_b_16L下何所取愛哉昔韓文公召見太顚於
010_0433_b_17L州郭後造其廬留衣爲別窃謂顚之
010_0433_b_18L守戒也能於紅蓮而不能於朱門
010_0433_b_19L其色則可矣空其名則未也抑未知文
010_0433_b_20L何爲而造其廬何愛而留之衣乎
010_0433_b_21L山人之學佛雖不及於顚之幾層而閤
010_0433_b_22L下倘恕置於化外之物不記逋逃之罪
010_0433_b_23L則愛甚山人之風未必後韓子不若前
010_0433_b_24L韓子也

010_0433_c_01L
함양 자사19)께 답하여 올림(答上咸陽子舍)
경승境僧이 돌아오는 편에, 편지와 아름다운 시문을 받았습니다. 손을 씻고 백번 읽어 보니 인색한 마음이 소멸되어 화성化城 가운데 멸지滅智20) 공부보다 더 낫습니다. 요즈음 조용히 수양하시는 생활이 더욱 복되시고 좋으신지요? 서울 길이 가까운 날에 있다고 하니 용방龍榜21)에 이름을 취하는 것이 어찌 대장부의 능사能事가 아니겠습니까? 밝은 세상에 재주 있는 선비가 숨어 지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를 끼쳤다는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내 주신 달력은 연루蓮漏22)를 대신하겠습니다. 운산雲山도 또한 요임금의 뜰에 있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기쁜 마음 가누지 못합니다.

김 천총23) 수대에게 주다(與金千捴壽大)
삼가 안부가 어떠하신지 여쭙니다. 저는 속세 밖의 사람이라 편지글로 남에게 알기를 구하여서는 안 되지만 이제 그대에게 그럴 수 없는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추파 대사께서는 저의 법사이시고 또한 일찍이 당신의 스승이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비록 당신을 뵙지는 못했지만 이치상 반드시 마음이 서로 비추어 산하와 몸만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니 이 편지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은 어떻게 여기시는지요?
갑오년 5월 13일 진시辰時(오전 7~9시)에 선사께서 영결하시자 탑과 진영, 비석과 문집을 모두 산청 심적암深寂庵에 두었습니다. 문집 중에 김 아무개 둘은 종형제라는 말이 있는데 어찌 당신이 그 사람일 줄 알았겠습니까?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부고를 알리지 못했으니 죄를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선사의 교훈은 팔도의 유자와 불자 사이에 퍼져 있는데 친히 상례를 행한 자는 불과 열몇이요, 시봉한 제자 둘도 이제 모두 환속하였습니다. 지난가을 선사의 둘째 동생이 작고하였는데, 문경에 아들 하나가 있어 나이가 25세인데 병든 몸으로 내방하여 서로 통곡하고 이별하였습니다. 선사의 제삿날은

010_0433_c_01L答上咸陽子舍

010_0433_c_02L
境僧還伏承下書並瓊篇盥讀百回
010_0433_c_03L鄙吝消滅何翅化城裡滅智工夫耶
010_0433_c_04L審數宵間靜養體履增祉萬安京行
010_0433_c_05L在邇龍頭取榜豈非大丈夫能事乎
010_0433_c_06L明世負才之士不可隱逃爲累之示
010_0433_c_07L未敢聞命下送曆日用代蓮漏雲山
010_0433_c_08L亦在堯庭中感賀不任

010_0433_c_09L

010_0433_c_10L與金千捴壽大

010_0433_c_11L
謹問起居何如山人世外物也不當書
010_0433_c_12L求知於人今於尊軒不能免者
010_0433_c_13L由焉先秋波大師山人之法師也
010_0433_c_14L曾尊軒之先生也山人雖未甞奉拜尊
010_0433_c_15L理必心肝相照非以山河形骸爲阻
010_0433_c_16L此書亦不可無也未知尊軒以爲何如
010_0433_c_17L斯甲午五月十三日辰時先師永訣
010_0433_c_18L塔影樹碣文集並在山淸深寂庵文集
010_0433_c_19L中有金某兩從兄弟豈知尊軒其人也
010_0433_c_20L惟不知故不得通訃罪尙何喩先師
010_0433_c_21L敎訓儒釋間殆遍八域其親執喪禮者
010_0433_c_22L不過十數有養足二今皆歸俗客
010_0433_c_23L先師仲氏作故於聞慶有一子年二十
010_0433_c_24L衰身來訪相哭而別先師祀事之

010_0434_a_01L심적암이 유가의 서원의 예에 따라 제향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만 산승의 살림이 청빈하여 위전位田24)을 넉넉히 두지 못하니 죄스럽고 한스럽습니다.
듣자니 사람의 바람을 피하지 못하여 자신을 낮추어 아전의 직책을 행하신다고 하니, 창생蒼生을 위하여 구제하여 살리는 일이 어찌 허물이 될 것입니까? 저는 다만 송경誦經과 염불을 일삼고 행색이 거칠고 우활하여 선사의 사후 일 처리에 여전히 여한이 많습니다. 매번 나아가 마땅한 계책을 듣고자 하였으나 만나 보지 못한 사이에 세상의 정을 요청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원컨대 밝은 수령을 잘 보좌하여 고을의 모든 백성이 송축하고 억울함이 없게 한다면 평생의 배움을 거의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역암 화상께 답장하여 올림(答上櫟庵和尙)
자애로운 편지를 받고, 법체法軆(스님의 안부)가 여러 가지로 좋으시다니 경하드립니다. 가르침을 주시어 이끌어 주시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세계가 이렇게 춥고 어려운 시절이나 이는 후생의 업보라 회피할 곳이 없습니다. 우리 화상께서 계신 밀실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포단蒲團 위의 일과는 거리가 얼마인지요. 도솔천 위에서 하계의 수고로운 중생에게 손을 내려 주는 것이 어찌 평생의 행원行願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나이 70세에 부처를 추구할 힘도 없는 것이 한스럽고, 거짓을 여의고 참을 구하는 지나침이 두려워 수행을 폐하고자 하신다고 하니, 중도에 그만두는 것이요,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격입니다.
불경에 이르기를, “사생육도四生六道25)의 중생을 내가 모두 무여열반에 들게 하나 한 중생도 열반을 얻는 자가 없다.”26)고 하니 감히 묻습니다. 어떤 것이 거짓이며 어떤 것이 참인지요? 부처를 추구하여 수행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생각건대 이에 대하여 반드시 깊이 득력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부처를 추구할 힘이 없다고 하니 함이 없으면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면서 함이 없는 것입니까? 이와 같을진대, 저의 업보를 회피하지 못하는 곳이 안락세계가 됨이 해롭지 않은지라

010_0434_a_01L使深寂庵行享如儒家書院例
010_0434_a_02L山人淸水生涯不能優置位田罪恨
010_0434_a_03L聞不免人望下行椽吏爲蒼生濟活
010_0434_a_04L何足累也山人惟以誦經念佛行色踈
010_0434_a_05L先師身後處事尙多餘恨每欲進
010_0434_a_06L宜計不面之間不敢干以世情也
010_0434_a_07L但願善佐明侯使一州元元有頌無寃
010_0434_a_08L則庶不負平生之學也

010_0434_a_09L

010_0434_a_10L答上櫟庵和尙

010_0434_a_11L
伏承慈敎法軆萬相貢賀不任下示
010_0434_a_12L提奬何等感激而世界尹麽寒波波吒
010_0434_a_13L吒之時節是后生業報無可回避處
010_0434_a_14L與我和尙密室暖軟之蒲團上事相去
010_0434_a_15L何如兠率之上垂手下界勞生是豈
010_0434_a_16L平生行願而春秋七旬自以無力求
010_0434_a_17L佛爲恨又恐離妄求眞之過欲廢修行
010_0434_a_18L窃以謂畫於中途而畏蛆禁醬也經云
010_0434_a_19L四生六道衆生我皆令入無餘涅槃
010_0434_a_20L一衆生得涅槃者敢問那箇是妄那箇
010_0434_a_21L是眞其求佛修行者更是阿誰伏想
010_0434_a_22L於此必深有得力處今云無力求佛
010_0434_a_23L無爲而爲爲而無爲乎如是則某之業
010_0434_a_24L無回避處不妨爲安樂世界何徃

010_0434_b_01L어찌 서방 십만억 국토 밖으로 가느라 허다한 짚신을 허비하겠습니까? 황공합니다.

화림 장실에게 주다(與花林室)
편지가 와서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약을 먹어도 병이 떠나지 않으니 노쇠한 사람의 상리常理입니다. 그러나 병이 만약 그치지 않으면 약도 또한 그만둘 수 없으니, 다만 병이 나을 때를 기다려 당신에게 효험 있는 약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사찰 승려들의 무례함은 불법佛法의 시운이 그러하니 어찌 개의할 것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둥지가 불탄 새와 같습니다. 두류산 한줄기의 서식처로는 벽송암碧松庵만 한 곳이 없으니 욕되다고 여기지 않으시면, 와서 만나면 다행이겠습니다. 듣자니, 전지田地를 잃어 근심하고 분하게 여긴다고 하시니 위로드립니다. 인생의 복록은 정해진 것이라 잃은들 무엇을 근심하며 얻은들 무엇을 기뻐하겠습니까? 근심과 기쁨은 모두 마음의 병이니 증세를 따라 약을 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금대 신실에게 보내는 답장(答金臺新室)
찰간을 이웃에 높이 세웠다 하니 기쁘고 축하합니다. 저는 병으로 가지 못하였습니다. 가는 것의 짝은 오는 것이니, 가고 옴이 없는 것이 본연의 소식입니다.

도솔암 법형께 올려 새해를 축하하다(上兠率法兄歲賀)
도솔천 위는 인간 세상의 시간이 아니지만, 저는 하계 사람이라 하계의 인사로 세배를 세 번 올립니다. 옛날에 백거이白居易27)는 처음에 선도仙道를 배워 이름이 옥부玉府28)에 있다고 들었는데, 중년에 또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였고 급기야 정토왕생문淨土往生門을 보게 되자 앞서의 두 부질없는 공부를 버렸습니다. 우리 법형法兄은 또한 도솔천 위에서

010_0434_b_01L西方十萬億國土外破却多少草鞋哉
010_0434_b_02L惶恐

010_0434_b_03L

010_0434_b_04L與花林室

010_0434_b_05L
書來知調度向蘇喜慰此間服藥
010_0434_b_06L不去老朽人常理然病若不已藥亦
010_0434_b_07L不可廢直待病差日報君驗方在寺
010_0434_b_08L僧之無禮佛法時運何足介懷當今
010_0434_b_09L吾輩如焚巢鳥頭流內山一枝棲息處
010_0434_b_10L無如碧松欲得無辱即來相會爲幸
010_0434_b_11L聞失田憂憤爲慰而人生福祿有定
010_0434_b_12L而何憂得而何喜憂與喜皆心疾
010_0434_b_13L症製藥可矣

010_0434_b_14L

010_0434_b_15L答金臺新室

010_0434_b_16L
刹竿隣高欣賀余以病不能徃徃之對
010_0434_b_17L來也無去無來是本然消息

010_0434_b_18L

010_0434_b_19L上兠率法兄歲賀

010_0434_b_20L
兠率之上雖非人間時分弟則下界人
010_0434_b_21L聊以下界人事賀歲三拜耳昔白
010_0434_b_22L香山始學仙道聞名在玉府而中年
010_0434_b_23L又願上生兠率及見淨土徃生門則並
010_0434_b_24L棄前兩度枉工焉我大法兄亦兠率之

010_0434_c_01L백향산白香山29)의 세 번째 공부를 더하시니, 축하하는 것이 다만 새해의 인사일 뿐만이 아닙니다.

구연 형께 보내는 답장(答九淵兄)
숙환으로 편안치 못하다는 소식을 받드니 참으로 염려됩니다. 해가 갈수록 뿌리와 잎의 질병이 혈기가 쇠함에 여러 가지 변괴로 생기는 것은 허망한 몸의 통상적인 이치이니, 약물로써 장생하려고 하는 것은 망령된 일입니다. 총림의 일로 날마다 애를 태우니 형은 어디로 돌아가야 극락세계입니까? 이쪽 암자는 돌아가신 조사祖師께서 은혜를 끼치고 도를 행하여 다른 어지러움은 없습니다. 이제 불경을 배우는 자 열몇 명과 참선하는 자 열몇이 있으니, 형이 만약 와서 거처하여 큰 가르침을 펴신다면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더라도 저의 행복입니다. 우리들의 안신처는 반드시 심산궁곡의 청정한 도량이라야 선정을 돕고 지혜를 발현할 수 있으니, 종사宗師께서 어찌 밭두둑을 베고 죽은 자가 될 것입니까?

징월 장실에게(與澄月丈室)
이별한 후로 수도 생활이 진중하신지요?
물이 깨끗하면 아름다움과 추함을 비출 수가 있고, 달이 둥글게 되면 천하가 크게 밝아지나니 이것이 우리들의 덕을 높이고 덕을 닦는 기약인 것입니다. 깊은 물은 혼혼하여 바닥이 없는 듯하여야 비로소 큰 고기가 살고, 백천百川의 달은 문득 드러나 사사로움이 없어야 두루 비추어 빠뜨림이 없으니 이는 우리들이 사물을 응접하는 방법입니다. 아래를 좋아함이 물만 한 것이 없고 다투지 않는 것이 물만 한 것이 없으되 세찬 여울물에 이르면 기상을 볼 수가 있고, 맑은 빛이 달만 한 것이 없고 우러러보는 것이 달만 한 것이 없으되 초하루와 그믐이 되면 나아가고 물러남을 볼 수 있으니 이는 우리들이 세상을 헤쳐 가는 기틀인 것입니다. 이 밖에는 음식 잘 먹고 기거를 삼가며 사대四大30)를 보호하여 도의 근본에 힘쓰기를 지극히 바랍니다.
늙고 졸렬한 저는 그대에 대한 은애恩愛를 벗지 못하고 부채 또한 많아

010_0434_c_01L更加白香山第三節功業賀祝不
010_0434_c_02L趐歲禮而已

010_0434_c_03L

010_0434_c_04L答九淵兄

010_0434_c_05L
宿痾違和奉慮萬萬年深根葉之疾
010_0434_c_06L血氣衰時變出百端幻𨈬上常理
010_0434_c_07L欲餌藥長生妄也叢林僧役膏火日煎
010_0434_c_08L兄欲何歸則極樂世界乎是庵先祖師
010_0434_c_09L遺蔭行道無他撓今有學經者十數人
010_0434_c_10L叅禪者亦十數人兄若來住開闡大敎
010_0434_c_11L朝聞而夕死是弟之幸也吾徒安身處
010_0434_c_12L必山水深僻道場淸淨可以助定發慧
010_0434_c_13L宗師豈枕田頭死者乎

010_0434_c_14L

010_0434_c_15L與澄月丈室

010_0434_c_16L
別來道履珍重水到澄時妍蚩斯鑑
010_0434_c_17L月得圓時天下大明此吾人進修之期
010_0434_c_18L厚積之水渾若無底始居大魚
010_0434_c_19L川之月頓現無私曲照無遺此吾人
010_0434_c_20L接物之方也好下莫如水無競莫如水
010_0434_c_21L及乎激湍氣象可見淸光無若月
010_0434_c_22L仰無若月及乎晦朔行藏可知此吾
010_0434_c_23L人涉世之機也此外勉食飮愼起居
010_0434_c_24L護四大爲道本至祝老拙恩愛未脫

010_0435_a_01L재가 되기 전에 항상 세상을 떠나기만 생각하니 참으로 가련합니다. 보내 주신 바랑은 누가 소장해야 합니까? 만일 삼라만상을 모두 여기에 둔다 하더라도 다 채우지 못할 듯합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는 모두 가는 사람에게 맡기고 일일이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진 스님에게(與珍師)
작년 행각行脚 때 꿈결에 강산을 지나던 차에 아는 분이 홀연히 찾아와 마주한 듯한 기쁨이 손에 잡힐 듯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일상생활이 맑고 복됨을 알았습니다. 지금 세상에 스님과 같은 이는 참으로 우담발화가 나타난 것입니다. 더욱 바라는 것은 진중하고 더 나아가 선재동자가 보현普賢 모공찰毛孔刹에 들어가 한걸음에 불가설不可說 불찰佛刹에 이르고, 일념으로 불가설 선지식을 받들어 섬겨서 불가설 해탈 법문을 깨달아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을 무여열반으로 제도하고 교화한 것같이 하여야 거의 우리 악형岳兄의 가풍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정 스님에게(與淨師)
듣자니, 친가에 화재가 나서 재물을 다 태웠다고 하니 위로를 그치지 않습니다. 무명의 탐애貪愛도 다 태워 남김이 없어야 하니 옛사람은 여기에서 마하반야摩訶般若를 염송하였습니다. 사실 말하자면 마하반야도 또한 소각하여야 비로소 깨끗이 드러나서 잡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대四大는 쉽게 비울 수 없어, 해를 보내는데 옷이 없으면 춥고 밤이 되도록 밥을 짓지 못하면 굶주리게 되니 어찌 안타까움이 없겠습니까? 이는 바로 보임保任하는 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니 잘 기억하소서.


010_0435_a_01L於講軒負債亦多未灰前一念長徃
010_0435_a_02L愍惠囊欲誰藏之若道森羅萬象
010_0435_a_03L在遮裡亦似不能盈也多少都付去人
010_0435_a_04L舌頭不一一

010_0435_a_05L

010_0435_a_06L與珍師

010_0435_a_07L
昨年行脚夢過江山次面忽至如對
010_0435_a_08L之喜可掬靠知經案上日用淸福
010_0435_a_09L筆俱善今世如師者眞優曇花現
010_0435_a_10L望珎重勝進如善財之入普現毛孔刹
010_0435_a_11L一步至不可說佛刹一念承事不可說
010_0435_a_12L知識領得不可說解脫法門化度不可
010_0435_a_13L量衆生於無餘涅槃庶不孤我岳兄家
010_0435_a_14L

010_0435_a_15L

010_0435_a_16L與淨師

010_0435_a_17L
聞親家火災燒盡資貲爲慰不已
010_0435_a_18L明貪愛燒燼無餘古人於此念得摩
010_0435_a_19L訶般若以實言之摩訶般若亦須燒
010_0435_a_20L方是淨躶躶沒可把也然四大未易
010_0435_a_21L更歲無衣則寒終夕不炊則飢
010_0435_a_22L無悶然此乃保任事不可無者記取
010_0435_a_23L記取哉

010_0435_b_01L
또 별지에(又別紙)
스님의 스승은 평소에 좋은 기품으로 지혜가 명달하여 사람들이 미치기 어렵습니다. 스님께서 다른 곳에서 배우기를 구했을지라도 스님의 스승보다 나은 분은 드물 것입니다. 다만 세상의 인연을 다 탈피하지 못하고 인아人我를 아직 제거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때때로 규간하여 무쟁삼매無諍三昧31)를 얻게 하면 좋은 사제자의 수승한 인연이 되리니, 옛 성인을 권속으로 삼아 서로 제도한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친구 승통에게(與朋僧統)
세밑에 부친 편지를 보고, 다른 일 제쳐 놓고 나오려 했는데 얼마 후에 복물卜物(짐)을 수습하여 묵계默溪에 올라갔다 들었고, 또 주지를 청하여 들어갔다가 이제는 그만두고 금당金堂에 거처한다고 하니 짧은 시일에 많은 일들이 있었구려. 역병이 세상에 두루 퍼져 사망자가 많은데, 그대는 여전히 기거가 청정하니 복을 닦는 이는 또한 다른 것인가? 법당을 잘 마쳤다고 하니 축하하오. 이미 여래의 심부름꾼이 되었으니 이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마시게. 극락세계의 칠보 궁전이 스스로 와 사람을 따라와서 근력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 얻을 것이네.
원컨대 그대는 일체의 중생을 인도하고 권면하며 일체의 보시의 선을 수습하여 극락세계에 회향하여 법왕의 보전을 곳곳에 건립하되, 반드시 직심直心으로 터를 삼고 심심深心으로 섬돌을 삼으며, 불전도심不顚倒心으로 기둥을 삼고 원심願心과 대비심大悲心으로 서까래와 들보를 삼아 만행화萬行花로 장엄하시게. 백천 세계가 모두 불전이라도 여전히 일 마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니.

언 장실에게(與彦丈室)
오이를 심으면 반드시 오이를 얻게 되니, 어찌 인연이 깊은데 과보가 원만하지 아니하랴.

010_0435_b_01L又別紙

010_0435_b_02L
師之師平生好氣品智慧明達人所
010_0435_b_03L難及也師求學於他鮮有勝於師之師
010_0435_b_04L但世緣未盡脫人我未能除當時
010_0435_b_05L時䂓諫做得無諍三昧則好箇師子殊
010_0435_b_06L勝因緣古聖爲眷屬相度者此也

010_0435_b_07L

010_0435_b_08L與朋僧統

010_0435_b_09L
歲下寄語則欲擺脫出來俄聞收拾卜
010_0435_b_10L物上默溪又聞以住持請入今又免辭
010_0435_b_11L居金堂不多日間多小節文瘟疾遍
010_0435_b_12L滿世界死亡者多吾尊起居淸淨自如
010_0435_b_13L豈亦修福者有異歟法堂善終云賀善
010_0435_b_14L而旣爲如來使人不可守此爲足極樂
010_0435_b_15L世界七寶宮殿自來隨人不勞筋力而
010_0435_b_16L得也願尊引勸一切衆生收拾一切施
010_0435_b_17L回向極樂世界法王寶殿隨處建立
010_0435_b_18L而必以直心爲基深心爲砌不顚倒心
010_0435_b_19L爲柱願心大悲心爲椽樑萬行花莊嚴
010_0435_b_20L百千世界盡是佛殿猶未爲了事
010_0435_b_21L人也

010_0435_b_22L

010_0435_b_23L與彦丈室

010_0435_b_24L
種瓜者必得瓜安有因深而果不圓耶

010_0435_c_01L백장 총림百丈叢林이 이렇게 건당建幢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32) 크게 근본사를 두었도다. 듣자니, 따르는 무리가 수십 명을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니 개당開堂한 처음에 이와 같은 자가 몇이나 되는고? 교화하는 것이 좋고 생활하는 여러 일들은 모두 뜻과 같은가? 교학은 항상 완곡하게 이끌고 훈도하여 으스대거나 소홀히 하지 말며, 사람을 복종시킬 때는 항상 마음을 열고 성의를 보여서 지혜를 놀려 전도하지 말지어다. 보내고 맞이함에 다만 오는 자를 막지 말고 가는 자를 애써 쫓지 말며, 뜻을 세움에 마땅히 궁달에 변치 말고 급급하게 경영하지 말지어다. 이 사물四勿(네 가지 금지 사항)은 모두 내가 일찍이 효험을 본 방법이요, 또한 총림의 거울이 될 만하다. 그 나머지 실중의 도정途程은 따로 필설 밖에 있으니 부디 진중하라.

영파 법제에게 주다(與瑩波法弟)
이별 후에 소식이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올여름 정암靜庵이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비로소 건당建幢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선사先師를 위하여 향을 피운다. 교화의 법도가 좋고 여러 마사魔事가 없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다. 나는 목숨이 모질어 숨만 쉬며 죽지 않고 있다.
을미년(1775) 겨울에 영정을 회계會稽 심적암深寂庵으로 모시고 돌아와 병신년(1776) 4월에 비석과 탑을 암자 아래 옥류동에 세웠다. 기해년(1779)에 문집을 수습하여 간행하고 영각影閣의 왼편에 보관하였으니 모두 여러 형제들의 정성을 다한 힘 때문이라. 다행스러움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법물은 여러 산문에 나누어 보내고 나에게 있는 것은 한 조각 마음뿐이라, 이조차도 스승이 주었다고 한다면 옳지 아니하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석가모니는 연등불의 처소에서 실로 얻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연등불이 수기를 준 것이다. 도호道號는 아직 듣지 못했으니 ‘영파 상곤瑩波相涃’이라 붙이려 한다. 선사의 문집 서문에 “산중의 물은 맑아서 흰 유리와 같으니 곧 선사의 심인이다.”라고 한 것이 이 뜻이다.
이후로 서로 만나는 것은 기약할 수 없다. 마땅히 안색과 근력이 강건할 때 실중의 일을 궁구하고, 시문 구절에 즐거움을 붙이지 말며

010_0435_c_01L百丈叢林之始於此建幢大有根本事
010_0435_c_02L聞隨衆不下數十開堂之初如是
010_0435_c_03L者幾人未知化履佳勝活計諸節
010_0435_c_04L得如意否敎學常委曲提誨勿誇矜示
010_0435_c_05L服人常開心見誠勿舞智顚倒
010_0435_c_06L迎但來者莫拒勿强追其背立志當窮
010_0435_c_07L達自如勿經營汲汲此四勿皆某之
010_0435_c_08L曾驗方亦可與叢林作龜鏡其又室中
010_0435_c_09L途程別在筆舌外千萬珎重

010_0435_c_10L

010_0435_c_11L與瑩波法弟

010_0435_c_12L
別後音信漠無以嗣今夏靜庵南下
010_0435_c_13L始得建幢消息爲先師拈香化度珍勝
010_0435_c_14L無諸魔事感喜感喜某頑喘不滅
010_0435_c_15L未冬奉歸影幀閣于會稽深寂庵丙申
010_0435_c_16L四月樹碑塔於庵下玉流洞己亥收
010_0435_c_17L文集開刊藏之影閣之左皆諸兄弟效
010_0435_c_18L誠之力也私幸何言法物散歸諸山
010_0435_c_19L在余者一片心也相授却不是何則
010_0435_c_20L釋迦於然燈佛所實無所得故然燈佛
010_0435_c_21L即與授記道號姑未聞欲以瑩波相涃
010_0435_c_22L先師文集序山中之水瑩然若白琉璃
010_0435_c_23L即師之心印此意也此後相面不可期
010_0435_c_24L當以色力强時窮究室中事毋著

010_0436_a_01L명리를 추종하지 않아야 가풍을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목 참판33)께 올림(上睦叅判)
가을이 깊어 추위가 문득 닥쳐 하나같이 노년의 안색을 재촉합니다. 요즈음 대감의 체후는 어떠하신지요? 멀리서 그리운 마음 간절합니다. 공명은 경대부에 이르러 사산四山34)이 해치지 못하고 문장은 나라 안에 가득하여 뭇사람이 빼앗지 못하니 대감의 분수에 맞는 일입니다. 다만 마음 안에 몇 섬의 영단靈丹을 쌓는 것은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허망한 세상에 부침한들 어찌 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번에 알려 주신 형제의 상을 당하신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로 위로를 드립니다. 이 또한 늘그막에 늘 있는 일이라 어찌하겠습니까? 뜻밖에 유백실柳白室35)이 별세했다고 하니 통곡할 뿐입니다. 평생 문장으로 작은 봉록에 분주하다가 구천九泉으로 돌아가는 길에 4품관의 명정만 쓸쓸할 뿐이니 슬프고 슬픕니다. 저승 세계에서는 청빈한 자가 지위가 높다고 하니 또한 한스러움은 없겠지요.
저는 숙환이 더 심해져서 죽음이 곧 닥쳐오는데, 제자들이 몇몇 거칠고 하찮은 시문을 습득하여 선사先師의 유고 아래에 붙이고자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죽게 되어 금지할 수 없게 되면 선사의 유고를 더럽힌 죄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바라오니 이 글을 읽으신 후 한 구절 적어 보내시어 분수에 넘친 일을 끊어 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경암집 중권

010_0436_a_01L樂文句去毋趨從利名去乃爲不辱家
010_0436_a_02L風耳

010_0436_a_03L

010_0436_a_04L上睦叅判

010_0436_a_05L
秋老凍寒奄至一一老年催色伏不審
010_0436_a_06L此時大監體候若何遠伏慕不任之至
010_0436_a_07L功名至卿月四山不能害文章滿一國
010_0436_a_08L衆人不能奪大監分中事也但方
010_0436_a_09L塘之內積來幾斛靈丹不是偶然
010_0436_a_10L得者幻界浮沉何足恨哉前下示同氣
010_0436_a_11L之慟不勝驚慰此亦老境中常事
010_0436_a_12L何奈何不意柳白室亦云歿痛哭痛哭
010_0436_a_13L以平生文章奔走五斗之俸九泉歸路
010_0436_a_14L蕭然四品之旌哀而哀而聞冥界淸貧
010_0436_a_15L爲高位亦可無憾者乎山人宿疾
010_0436_a_16L劇灰滅只在朝夕徒弟等拾得一二蔬
010_0436_a_17L將欲付之先師遺稿下恐一朝唇合
010_0436_a_18L不可禁止之則先稿浼糞之罪無所自
010_0436_a_19L伏望下覽後一筆句下以絕濫分
010_0436_a_20L之事至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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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巖集卷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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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채 상국蔡相國 번암공樊巖公 : 조선 영조·정조 때 문신인 채제공蔡濟恭(1720~1799)을 말한다.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이며 영의정을 지냈다. 정조 5년(1781) 서명응徐命膺과 함께 『國朝寶鑑』을 편찬하였으며, 가톨릭교에 대하여 온건 정책을 폈다. 저서에 『樊巖集』 59권이 있다.
  2. 2)돌아가신 합하閤下 : 채제공의 부친 채응일蔡膺一을 가리킨다. 『樊巖集』 권55 「先考府君遺事」 참고.
  3. 3)이아貳衙 : 감영監營이 있는 곳의 군아郡衙.
  4. 4)한문공韓文公 : 당나라의 문인·정치가인 한유韓愈(768~824)를 말한다.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가 문文이어서 한문공이라고도 불린다.
  5. 5)정 진주鄭晉州 표천瓢泉 : 진주 수령 정홍순鄭弘淳(1720~1784)을 말한다. 표천은 호. 호조판서로 10년간 재직하면서 재정 문제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 제일의 재정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영조 38년(1762) 호조판서로 예조판서를 겸하고, 장헌세자의 장의葬儀를 주관하여 그 공으로 우의정에 승진하고, 이어 좌의정을 지냈다.
  6. 6)신 승지申承旨 여암공旅庵公 : 신경준申景濬(1712~1781). 조선 영조 때 학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菴. 아버지는 신숙주申叔舟의 아우 말주末舟의 10대손인 진사 내淶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의홍儀鴻의 딸이다. 33세 때까지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다가 33세부터 43세까지 고향에 묻혀 살면서 저술에 힘썼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韻解訓民正音』(세칭 『訓民正音韻解』)을 꼽을 수 있다.
  7. 7)전前 승지承旨였던 신경준申景濬에게 스승인 추파 선사의 문집(『秋波集』) 서문序文을 써준 데 대한 감사의 글이다.
  8. 8)사람을 살린다는 말 : 원문 ‘生人之該’의 ‘該’는 ‘語’의 잘못인 듯. 절에서 사람들을 구호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9. 9)백실白室 유 공柳公 : 「鏡巖稿序」를 쓴 유숙지柳肅之를 가리킨다.
  10. 10)전前 익위翊衛 유광익柳光翼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광익(1713~1780)은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자는 사휘士輝, 호는 풍암楓巖·항재恒齋. 일찍이 성리학을 연구하여 『心經』의 주해를 보충하였으며, 한성 남쪽에 서재를 세워 제자를 가르쳤다. 저서로 『大學輯要』가 있다.
  11. 11)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 : 『無門關』에 나오는 화두이다. 한 승려가 조주 종심趙州從諗 선사에게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묻자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다. 불법佛法의 진리를 묻자 화두話頭를 제시한 것이다.
  12. 12)유백실柳白室 : 「鏡巖稿序」를 쓴 유숙지柳肅之를 말한다.
  13. 13)침랑寢郞 : 종묘宗廟·능陵·원園의 영令과 참봉參奉.
  14. 14)안자顔子 :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15. 15)목 참판睦參判 여와공餘窩公 : 「鏡巖集序」를 쓴 목만중睦萬中(1727~1810)을 말한다. 조선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유선幼選, 호는 여와餘窩. 1759년(영조 3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6년(정조 10) 도사都事로서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여 돈녕도정敦寧都正에 임명되었다. 태천현감泰川縣監을 거쳐 1797년 병조 참의, 승지承旨를 지내고, 1798년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801년(순조 1) 신유사옥 때 대사간大司諫으로서 영의정 심환지沈煥之와 함께 남인南人 시파時派 계열의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주도하였다.
  16. 16)하백河伯이 해약海若에게 부끄러운 것 : 하백은 황하의 신이고, 해약은 바다의 신이다. 하백이 황하의 큼을 자랑하다가 바다를 보고 위축되었다고 한다. 『莊子』 「秋水」.
  17. 17)도가 같지~도모하지 않는다 : 『論語』 「衛靈公」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18. 18)주문朱門 : 관리나 부귀한 집안을 비유한 말이다.
  19. 19)자사子舍 : 고을 원의 아들이 거처하는 곳.
  20. 20)멸지滅智 : 십지十智의 하나로, 멸제滅諦를 체득한 지혜를 말한다.
  21. 21)용방龍榜 : 과거 급제자 명단.
  22. 22)연루蓮漏 : 물시계.
  23. 23)천총千摠 : 조선 시대 훈련도감訓鍊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총융청摠戎廳·진무영鎭撫營 등에 딸렸던 정3품 무관 벼슬. 여기서는 수령 밑에 있던 아전을 가리킨다.
  24. 24)위전位田 : 제사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경작하는 밭.
  25. 25)사생육도四生六道 : 사생은 태생胎生·난생卵生·습생濕生·화생化生, 육도는 일체중생이 선악의 업인業因에 의해 필연적으로 이르는 여섯 가지 미혹된 세계, 곧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을 말한다.
  26. 26)사생육도四生六道의 중생을~자가 없다 : 『金剛般若波羅蜜經』 권상 「大乘正宗分」 第三.
  27. 27)백거이白居易(772~846) : 당나라 때의 시인.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취음선생醉吟先生. 시마詩魔 또는 시왕詩王으로 일컬어졌다. 작품으로는 〈長恨歌〉, 〈琵琶行〉 등이 있다.
  28. 28)옥부玉府 : 신선 세계를 말한다.
  29. 29)백향산白香山 : 향산은 백거이白居易의 별호이다.
  30. 30)사대四大 : 몸을 이루는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의 네 가지 요소.
  31. 31)무쟁삼매無諍三昧 : 무쟁無諍은 공리空理에 철저하게 안주安住하여 다른 것과 다투는 일이 없는 것이며, 삼매三昧는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여 망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32. 32)백장 총림百丈叢林이~시작되었다고 하니 : 백장이 마조馬祖를 찾아뵈니 마조가 불자拂子를 세웠다. 백장이 말하기를, “이것에 의해서 활용하오리까?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오리까?”라고 물었다. 마조가 불자를 제자리에 세우고 한참 후 백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훗날 무엇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는가?” 백장이 말없이 불자를 세우니 마조가 물었다. “이것에 의하여 활용하는가? 떠나서 하는가?” 백장이 역시 말없이 불자를 제자리에 세웠다. 이에 마조가 ‘할’ 하고 고함을 치니, 백장의 귀가 3일이나 먹었다. 후에 백장이 황벽黃檗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황벽이 자기도 모르게 혀를 빼물었다. 위산潙山이 앙산仰山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는 무슨 뜻인지 물으니, 백장은 대기大機를 얻었고 황벽은 대용大用을 얻었다고 하였다.
  33. 33)목 참판睦叅判 : 「鏡巖集序」를 쓴 여와공餘窩公 목만중을 말한다. 주 15 참조.
  34. 34)사산四山 : 생로병사를 말한다. 『趙州錄』에 한 스님이 “사산四山이 핍박해 올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四山相逼時如何。)”라고 하자 조주가 “빠져나온 종적이 없다.(無出跡。)”라고 하였다.
  35. 35)유백실柳白室 : 「鏡巖稿序」를 쓴 유숙지柳肅之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