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경암집(鏡巖集) / 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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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行狀
스님의 법휘는 관식慣拭인데 후에 응윤應允으로 고쳤다. 집이 경호鏡湖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호를 경암이라고 하였다. 속성은 민閔이니 여흥驪興 민씨의 후예로 대대로 사대부 집안이다.

010_0454_c_21L1)行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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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法諱慣拭後改應允家在鏡湖故
010_0454_c_23L人號之曰鏡巖俗姓閔驪興之裔
010_0454_c_24L此行狀底本在卷頭(跋文之後) 編者移置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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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455_a_01L어머니 오씨가 계명산鷄鳴山에 기도하여 스님을 낳았다. 3세에 오씨 부인의 상을 당하였다. 5세에 입학하여 9세에 경사經史를 통하였다. 어느 날 밤 가을 달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아버지가 운을 불러 경치를 읊게 하자 곧 대답하였다.

秋高風動竹        가을 깊은데 바람이 대숲에 불고
水落月鳴川        물이 빠지자 달빛 어린 시내 소리
何處隨陽鴈        저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나
蕭蕭遠入天        쓸쓸하게 먼 하늘로 사라지네

아버지가 듣고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제들이 까닭을 묻자 말하기를, “이 시를 보니 이 아이는 일찍 죽거나 아니면 반드시 사문沙門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라고 하였다. 13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15세에 입산하여 진희 장로를 만나 삭발하고 한암 화상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여러 산문의 유명한 스님들을 두루 참배하고 마침내 추파의 문하에 돌아갔다. 28세에 개당하여 대중을 교화한 지 거의 20여 년이었다. 이윽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남의 보배를 세어 본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하고 환암 화상125)을 좇아 선지禪旨를 받았다. 이에 사방의 학자가 양종의 대종사로 높였다.
우리 임제臨濟126) 조사는 석애石崖에게 법을 전하고 석애의 후손에 태고太古가 있었다. 태고로부터 4대를 전하여 벽송碧松이 되고 벽송으로부터 7대를 전하여 회당誨堂이 되었으며, 회당은 한암에게 전법하니 한암은 추파의 스승이다. 또 청허로부터 7세 전하여 환암이 되니 이것이 실로 스님의 연원이다. 스님은 일찍이 허명이 실제보다 지나침을 부끄럽게 여겨 두류산 정상에 초가를 엮어 몇몇 납자들과 날마다 네 번씩 정진하고 다시는 세상과 상관하지 않았다. 갑자년 정월 13일 원적圓寂하실 때에 대중에게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게 하고 편안히 떠나셨으니 수가 62세요, 승랍은 48년이었다. 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자상하고 학문과 지혜가 정묘하고 투철하여 학자들이 내전內典 가운데 이해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반드시 스님에게 나아가 질정하였다. 말년에는 여러 번 포살범망회布薩梵網會127)를 개설하니 사부대중이 운집하였다. 이 때문에 당대의 승속僧俗이 스님의 설법을 총림의 으뜸으로 삼았다.

010_0455_a_01L世簮纓母吳氏禱鷄鳴山而生師
010_0455_a_02L歲遭吳夫人喪五歲入學九歲通經史
010_0455_a_03L一夕秋月政好嚴君呼韵令賦即景
010_0455_a_04L師即對曰秋高風動竹水落月鳴川
010_0455_a_05L何處隨陽鴈蕭蕭遠入天嚴君聞之
010_0455_a_06L甚不豫子弟問其故曰觀此詩兒不
010_0455_a_07L早歿必爲沙門徒也是以不豫十三
010_0455_a_08L嚴君棄世十五入山遇震熙長老薙
010_0455_a_09L受具於寒巖和尙徧叅諸山名師
010_0455_a_10L歸秋波門下二十八開堂化衆殆二十
010_0455_a_11L餘年旣而歎曰數寶何益從喚庵和
010_0455_a_12L受禪旨於是四方學者推爲兩宗
010_0455_a_13L大宗師我臨濟祖師傳法石崖石崖
010_0455_a_14L之後有太古太古四傳而爲碧松碧松
010_0455_a_15L七傳而爲誨堂誨堂傳之寒巖寒巖秋
010_0455_a_16L波師也淸虛七世而爲喚庵此實師之
010_0455_a_17L淵源也師嘗以虛名過實爲耻乃結茅
010_0455_a_18L頭流絕頂與二三衲子日以四番精進
010_0455_a_19L不復與世相干甲子正月十三日將圓
010_0455_a_20L令大衆向西念佛晏然而逝壽六
010_0455_a_21L十二僧臘四十八師賦性慈詳學解
010_0455_a_22L精透學者於內典有所未解處必就師
010_0455_a_23L質之末年累設布薩梵網會四衆雲集
010_0455_a_24L是以當世緇白以師說法爲叢林第一

010_0455_b_01L시를 읊거나 저술하는 것은 스님이 좋아하는 바가 아니나 문인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가운데서 수습하여 총 수십 편을 세상에 간행하였다.
문인 팔관八關 찬撰

경암 행장 끝


010_0455_b_01L若吟哦著述非師所喜門人等收拾於
010_0455_b_02L落葉中總數十篇刊行于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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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人八關撰

010_0455_b_04L鏡岩行狀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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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5)환암喚庵 화상 : 영조 48년(1772)에 문곡文谷 대사와 함께 경상남도 함양의 지리산 기슭에 있는 영원암靈源庵에서 만일회萬日會를 개최한 바 있다. 『樊巖集』 권57 「文谷大師碑銘」.
  2. 126)임제臨濟 : 당나라 선승인 의현義玄(?~867). 임제종臨濟宗의 개조開祖. 속성은 형邢. 시호는 혜조선사慧照禪師. 조주曹州 남화南華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불교를 좋아하고, 출가한 후 제방諸方에 다니면서 경론을 탐구하였다. 계율에 정통하였고 황벽 희운黃檗希運의 법을 이었다. 나중에 하북河北 진주성의 동남 호타하반滹沱河畔의 작은 절에 있으면서 임제원臨濟院이라 이름하였다. 태위太尉 묵군화墨君和가 성중에 있는 집으로 절을 삼고, 스님을 청하여 머물게 하며 또 임제라 하였다. 후에 대명부의 홍화사에 옮겼다가 함통 8년 4월에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臨濟慧照禪師語錄』 1권이 있다.
  3. 127)포살범망회布薩梵網會 : 승가에서 보름마다 모여 계경戒經을 설하여, 어긴 일이 있으면 참회하여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일.
  1. 1)此行狀。底本在卷頭(跋文之後) 編者移置於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