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아암유집(兒庵遺集) / 兒菴和尙詩文略鈔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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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암유집 제3권(兒菴遺集卷之三)
시문략초詩文略鈔
종명록鍾鳴錄
수룡 색성袖龍賾性이 물었다.
“일찍이 괘변도卦變圖를 살펴보았더니, 복괘(復, ䷗)·사괘(師, ䷆)·겸괘(謙, ䷎)·예괘(豫, ䷏)·비괘(比, ䷇)·박괘(剝, ䷖)는 양이 하나이고 음이 다섯(一陽五陰)인 괘라 말하고, 구괘(姤, ䷫)·동인괘(同人, ䷌)·이괘(履, ䷉)·소축괘(小畜, ䷈)·대유괘(大有, ䷍)·쾌괘(夬, ䷪)는 음이 하나이고 양이 다섯(一陰五陽)인 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양이 둘이고 음이 넷(二陽四陰)인 괘와 음이 둘이고 양이 넷(二陰四陽)인 괘에 이르러서는 모두 음과 양을 한꺼번에 거론했으나, 지금 방장실 스님의 말씀은 ‘『주역』에는 1양·2양·1음·2음의 괘는 있고, 5양·4양·5음·4음의 명칭은 없다’라고 말씀하시니, 또한 편기偏畸하여 공평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천지의 정해진 이치로 보면 늘 적은 것이 주인이 되고, 많은 것이 부림을 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엽편주에 노를 젓는 이는 다섯 사람이고, 소공艄工1)은 오직 하나뿐이므로 그가 주인이 되는 것이요, 토담에 둘러싸인 작은 집에 농사일을 하는 사람은 여덟 명이나 되지만 그 집의 가장은 오직 하나뿐이니, 그런 까닭에 그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또 마을에는 이정里正(이장) 한 사람이 있고, 고을에는 현령 한 사람만이 있으며, 도道에는 도백道伯 한 사람이 있고, 나라에는 임금 한 사람이 있나니, 모두가 다 이런 이치이다. 괘卦의 집안에도 적은 것이 주인이 되는 것은 그 법이 당연히 그런 것이다.”
색성이 또 물었다.
“주인공은 오직 하나라는 말씀은 이미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의심이 가는 점은 2양과 2음은 그 수가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분명코 두 개가 있습니다. 이는 마을에 이정里正이 두 명이 있고, 고을에 현령이 두 명이 있는 경우와 같으니, 어찌 주인공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010_0702_c_02L兒菴和尙詩文略鈔卷之三

010_0702_c_03L

010_0702_c_04L頭輪山人惠藏無盡氏著

010_0702_c_05L1)詩文略鈔

010_0702_c_06L鍾鳴錄

010_0702_c_07L
袖龍性問嘗見卦變圖復師謙䂊比
010_0702_c_08L謂之一陽五陰之卦姤同人履小
010_0702_c_09L畜大有夬謂之一陰五陽之卦至於
010_0702_c_10L二陽四陰之卦二陰四陽之卦皆並
010_0702_c_11L擧陰陽今丈室談易有一陽二陽一
010_0702_c_12L陰二陰之卦無五陽四陽五陰四陰
010_0702_c_13L之名無亦偏畸而不公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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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天地定理每少者爲主多者爲役
010_0702_c_15L一葉之舟枻者五人其艄工惟一
010_0702_c_16L爲之主也環堵之室耕者八口其家
010_0702_c_17L長惟一則爲之主也里有一正縣有
010_0702_c_18L一令道有一伯國有一君皆此理也
010_0702_c_19L卦家之以少爲主其法宜然

010_0702_c_20L
性又問主者惟一旣聞命矣今所
010_0702_c_21L疑者二陽二陰其數雖少却有兩
010_0702_c_22L是里有二正縣有二令豈得云
010_0702_c_23L主者惟一

010_0702_c_24L「詩文略鈔」編者補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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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임괘(臨, ䷒)가 임괘로 된 까닭은 두 번째 효가 강剛(陽)이기 때문이요, 둔괘(遯, ䷠)가 둔괘로 된 이유는 두 번째 효가 유柔(陰)이기 때문이다. 관괘(觀, ䷓)는 아래에서부터 다섯 번째 강剛(陽爻)이 주인공이 되고, 대장괘(大壯, ䷡)는 아래에서부터 다섯 번째 유柔(陰爻)가 주인공이 되며, 나머지 모든 괘들은 다 변동하는 효가 그 괘의 주인공이 된다.
또 중부괘(中孚, ䷼)나 소과괘(小過, ䷽)도 역시 그 괘의 위아래에 각각 주인공이 하나씩 있나니, 그것은 두 방백方伯이 동서로 나뉘어 각각 주인이 되고, 두 개의 조정이 각각 남쪽과 북쪽에 거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요약하건대 적은 것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역』에 이르기를 ‘양괘陽卦는 음효陰爻가 많고 음괘는 양효가 많다’라고 하였다.”
색성이 또 물었다.
“그것은 그러합니다. 3양과 3음의 괘는 음양이 서로 균적均適하여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으니, 장차 어느 것으로 주인공을 삼더라도 어울리지 않음이 없기에 그것을 이름하여 3양과 3음의 괘라고 합니다. 이 괘가 이미 이러하다면 다른 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니, 어찌 적은 것이 주인공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태괘(泰, ䷊)는 3양이 내괘內卦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는 양괘陽卦요, 비괘(否, ䷋)는 3음이 내괘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는 음괘陰卦이다. 이에 항괘(恒, ䷟)·정괘(井, ䷯)·고괘(蠱, ䷑)·풍괘(豊, ䷶)·기제괘(旣濟, ䷾)·비괘(賁, ䷕)·귀매괘(歸妹, ䷵)·절괘(節, ䷻)·손괘(損, ䷸)는 모두 태괘(泰)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은 3양의 괘요, 익괘(益, ䷩)·서합괘(噬嗑, ䷔)·수괘(隨, ䷐)·환괘(渙, ䷺)·미제괘(未濟, ䷿)·곤괘(困, ䷁)·점괘(漸, ䷼)·여괘(旅, ䷷)·함괘(咸, ䷞)는 모두 비괘(否)에서 나온 것이니, 이것은 3음의 괘이다.
태괘(泰, ䷊)는 아래에서 세 번째 강剛(陽爻)이 괘의 주인공이 되고, 비괘 (否, ䷋)는 아래에서 세 번째 유柔(陰爻)가 괘의 주인공이 된다. 항괘(恒, ䷟)는 첫 번째 음효로부터 네 번째인 양효로 상승하는 것을 괘의 주인공으로 삼고, 정괘(井, ䷯)는 첫 번째 음효로부터 다섯 번째인 양효로 상승하는 것을 괘의 주인공으로 삼나니, 다른 괘들도 모두 그러하다.”
기어 자홍騎魚慈弘이 물었다.
“하도河圖2)의 1과 6은 수水요, 2와 7은 화火며, 3과 8은 목木이요, 4와 8은 금金이라는 것에는 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5와 10이 토土라는 것에 대해서는 끝끝내 분명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5가 중앙에 있으니 비록 단정한 것 같지만, 10은 잘라서 둘로 만들어 상하로 나누어 놓는다면 이는 두 개의 5이지 10은 아닙니다. 제가 하도를 관찰해 보건대 5가 위아래로는 켜를 지어 쌓여 있지만 좌우는 허박虛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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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臨之所以爲臨者第二剛也遯之所
010_0703_a_02L以爲遯者第二務也觀以五剛爲主
010_0703_a_03L大壯以五柔爲主其餘諸卦皆以其變
010_0703_a_04L動者爲卦主又如中孚小過亦其上下
010_0703_a_05L各有一主與二伯之分主東西兩朝之
010_0703_a_06L各雄南北何以異矣要之少者爲主
010_0703_a_07L故易曰陽卦多陰陰卦多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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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又問斯則然矣三陽三陰之卦
010_0703_a_09L陰陽均敵毫髮不差將誰爲主
010_0703_a_10L得不合而名之曰三陽三陰之卦
010_0703_a_11L卦旣然他卦亦然豈得云少者爲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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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泰者三陽在內是陽卦也否者三陰
010_0703_a_13L在內是陰卦也於是恒井蠱豊旣濟賁
010_0703_a_14L歸妹節損皆自泰來是三陽之卦也
010_0703_a_15L益噬嗑隨渙未濟困漸旅咸皆自否來
010_0703_a_16L是三陰之卦也泰以第三剛爲卦主
010_0703_a_17L以第三柔爲卦主恒以自初而升於四
010_0703_a_18L者爲卦主井以自初而升於五者爲卦
010_0703_a_19L他卦皆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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騎魚弘問河圖一六水二七火
010_0703_a_21L八木四九金皆無疑而五十土
010_0703_a_22L有不可曉者五之在中雖若端正
010_0703_a_23L十則截爲兩段分處上下是兩五也
010_0703_a_24L非十也我觀河圖上下堆疊左右

010_0703_b_01L아마도 하늘이 이룩한 자연의 문양과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얼마간 안배하여 억지로 맞춰 놓았다는 생각이 짙은데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답하였다.
“하도河圖는 이치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진리는 본래 아무 형상도 없는 것이니 어찌 그리기가 쉽겠는가? 다만 이것은 모방(模榻)한 것이 흡사하게 닮았을 따름이다.
5는 중앙에 있고 10이 그 바깥을 에워싸고 있는 것도 다만 이 이치가 당연히 이와 같을 뿐이니, 어찌 꼭 하늘이 둥근 점을 찍기를 각성角星과 두성斗星 등 여러 별처럼 분명하게 할 수 있겠는가? 태극의 음양을 검고 하얗게 그린 것도 또한 대개 이치가 당연히 이와 같을 뿐이라고 말하니, 만약 태극에 참으로 검고 하얀 모양이 있다고 말한다면, 진씨陳氏3)의 도圖와 같은 경우는 태극을 형상이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어찌 진리라고 하겠는가?
하도의 1과 6이나 5와 10의 의미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선유先儒가 일찍이 하도를 취하여 원도圓圖4)를 그렸는데, 5를 중앙에 놓고 10으로 그 밖을 둘러싸 열 개의 점이 이어져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이 도형이 그럴듯하지만, 소강절邵康節도 또한 ‘원圓은 하도의 수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자홍이 또 물었다.
“『주역』에 이르기를, ‘하수河水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수洛水에서 서書가 나오니, 성인이 이를 법칙으로 여기고 이를 계승하였다’라고 했고, 또 이르기를, ‘『주역』에는 4상象5)이 있으니 이 4상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성인이 법칙으로 삼은 것은, 바로 음과 양의 노老와 소少에 대한 그림입니까? 하도와 낙서 가운데에는 다만 음양을 기수奇數(홀수)와 우수偶數(짝수)로 나눈 것만 있고, 음과 양의 노老와 소少에 대한 상象은 없으니, 성인이 무엇을 법칙으로 삼았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안국孔安國6)이 이르기를, ‘용마龍馬가 하수에서 나왔는데, 마침내 그 문양을 법칙으로 삼아 8괘를 그렸고, 신령한 거북이 문양을 등에 지고 나왔는데, 그것에 의거하여 차례로 배열해서 구류九類(洪範九疇)를 만들었다’라고 합니다. 유흠劉歆7)도 또 말하기를, ‘복희씨가 하도를 받아 8괘를 그렸고, 우임금은 낙서를 본받아 구주九疇를 지었다’라고 하니, 제자는 영민하지 못해서 그런지 하도에서 8괘가 나온 이치를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대답하였다.
“태극이 나뉘어 양과 음이 되고, 양이 나뉘어 천天·지地·수水·화火가 되고, 천·지·수·화가 서로 투합하여 뇌괘(雷, ䷲)·풍괘(風, ䷸)·산괘(山, ䷳)·택괘(澤, ䷹)가 생겼으니,

010_0703_b_01L虛薄恐與天成自然之文有所不同
010_0703_b_02L煞有些安排强合底意思不知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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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圖者理之畫也理本無形豈不難
010_0703_b_04L只是模榻其疑似髣髴而已五在
010_0703_b_05L中而十圍其外亦只是理當如此豈必
010_0703_b_06L天作圈點如角斗諸星乎太極之陰陽
010_0703_b_07L黑白亦盖云理當如此若云太極
010_0703_b_08L有黑白之形如陳氏之圖則太極爲有
010_0703_b_09L形之物豈得爲理河圖之一六五十意
010_0703_b_10L亦如此先儒嘗取河圖作圓圖五在
010_0703_b_11L十圍其外十點連綴不斷此圖似
010_0703_b_12L卲康節亦云圓者河圖之數

010_0703_b_13L
弘又問易曰河出圖洛出書聖人
010_0703_b_14L則之繼之曰易有四象所以示也
010_0703_b_15L不知聖人所則者是陰陽老少之畵
010_0703_b_16L河圖洛書中但有陰陽奇偶之數
010_0703_b_17L無陰陽老少之象不知聖人如何取
010_0703_b_18L孔安國云龍馬出河遂則其文
010_0703_b_19L以畵八卦神龜負文因而第之
010_0703_b_20L成九類劉歆亦云伏犧受河圖而畵
010_0703_b_21L八卦禹法洛書而陳九疇 弟子不敏
010_0703_b_22L河圖之所以爲八卦之理不能開悟

010_0703_b_23L
答太極分而爲陽陰陽分而爲天地水
010_0703_b_24L天地水火自相投合以生雷風山

010_0703_c_01L이것은 바뀌지 않는 논리이다. 1이 2를 낳고, 2는 4를 낳으며, 4가 8을 낳으니, 여기에서 8괘가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1·2·3·4·5·6·7·8·9·10이 8괘의 근본이 된다고만 말한다면, 이는 오직 그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스스로 몽매해질 것이다.
천수天數 1, 지수地數 2와 천수 3, 지수 4는 점을 치는 사람이 시초蓍草8)를 셀 때에 기수와 우수를 정하는 방법이다. 시초로 괘를 뽑는 방법은 3은 천수요 2는 지수이기 때문에 1·3·5·7·9는 천수가 되고, 2·4·6·8·10은 지수가 된다. 무릇 천수는 모두 3을 용用으로 삼고, 지수는 모두 2를 용으로 삼는다.
비록 지금의 하도가 실제로 용마의 문양과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취할 이치는 이러한 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하도를 가지고 8괘를 그렸다고 한다면 마침내 어그러져서 불안하게 될 것이다.
또 4상象이란 4시時의 형상이다. 『주역』에서 이르기를, ‘그것을 셀 때 4로써 하는 것은 4시를 형상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4상이 바로 4시의 상이 아니겠는가? 옛날 『주역』에서는 9와 6을 노양老陽과 노음老陰으로 삼았고, 7과 8을 소양少陽과 소음少陰으로 삼았는데, 오늘날 『주역』에서는 ⚌로 노양을 삼고 ⚍로 소양을 삼으며, ⚏로 노음을 삼고 ⚎로 소음을 삼았다. 그 이름은 비록 같으나 그 가리키는 바는 전혀 다르니, 혼동하여 말해서는 안 된다. 예전 『주역』은 음수인 4로 세어서 4상象을 삼았고, 오늘날의 『주역』에서는 ⚌·⚍·⚏·⚎으로써 4상을 삼았다. 그 이름은 비록 같으나 그 가리키는 바는 전혀 다르니, 혼동해서 말해서는 안 된다. 그대는 반드시 이를 명심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자홍이 또 물었다.
“태극이 양의兩儀(음양)를 낳고, 양의는 ⚌·⚍·⚏·⚎를 낳습니다. 그리고 또 1획을 더하여 8괘를 이루니, 이것은 바뀌지 않는 정해진 논리입니다. 8괘가 이미 이루어졌기에 천天·지地·수水·화火·뇌雷·풍風·산山·택澤의 이름이 주어집니다. 옛날에 이른 바 1이 2를 낳고, 2가 4를 낳으며, 4가 8을 낳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법을 가지고 주인공을 삼았습니까?”

010_0703_c_01L此不易之論也一生二二生四
010_0703_c_02L生八於是乎八卦立焉若云一二三四
010_0703_c_03L五六七八九十爲八卦之本不惟儞不
010_0703_c_04L開悟抑亦我自蒙昧天一地二天三地
010_0703_c_05L四者筮人揲蓍之時執定奇偶之法也
010_0703_c_06L蓍卦之法參天兩地故一三五七九
010_0703_c_07L以爲天數二四六八十以爲地數
010_0703_c_08L天數皆作三用凡地數皆作二用
010_0703_c_09L使今之河圖實係龍馬之文其所取
010_0703_c_10L不過在此以之畵八卦則終恐齟齬而
010_0703_c_11L不安且四象者四時之象也易曰揲
010_0703_c_12L之以四以象四時四象非四時之象乎
010_0703_c_13L古易以九六爲老陽老陰以七八爲少
010_0703_c_14L陽少陰今易以⚌爲老陽以⚍爲少陽
010_0703_c_15L以⚏爲老陰以⚎爲少陰其名雖同
010_0703_c_16L其所指絕殊不可以混同稱謂者古易
010_0703_c_17L陰四揲爲四象今易以⚌⚍⚏⚎爲四
010_0703_c_18L其名雖同其所指絕殊不可以混
010_0703_c_19L同稱謂者儞須銘記

010_0703_c_20L
弘又問太極生兩儀兩儀生⚌⚍⚏⚎ 又加一畵以成八卦此不易之
010_0703_c_21L定理也八卦旣成錫之以天地水火
010_0703_c_22L雷風山澤之名曩所謂一生二二生
010_0703_c_23L四生八者將以何法爲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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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괘를 그리는 법을 논해 보면, 먼저 하나의 양효인 ⚊과 하나의 음효인 ⚋을 그려서 양의兩儀를 만들고, 다음에 ⚌·⚍·⚏·⚎를 그려서 4상象을 만들고, 다음에 1획을 더하여 8괘를 만드는 것은, 진실로 바뀌지 않는 정해진 논리이다. 그러나 내가 일찍이 의심하기를 태극의 테두리 가운데 본래 음양이 있기에 흑과 백이 뒤섞인 모습으로 배태하고 있으니, 태극에서 음과 양이 생긴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다음 한 개의 양을 만들면 이것이 순양純陽이니, 그 가운데에는 1점의 음기도 없으며, 다음 한 개의 음을 만들면 그것은 순음純陰이니 그 가운데에는 1점의 양기도 없다. 그런데 순양이 어떻게 한 개의 음을 내며 순음이 어떻게 한 개의 양을 낼 수 있겠는가? 이 이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겠다. 또 건乾·태兌·이离·진震은 그 근기가 모두 양이요, 손巽·감坎·간艮·곤坤은 그 근기가 모두 음이다. 그런데 성인이 『주역』을 논함에 태兌와 이离는 문득 음괘라 하고, 감坎과 간艮은 문득 양괘라 하였으니, 이는 태극이 나뉠 때 1양과 1음으로 이름을 결정하는 것과는 서로 어울리지 않나니, 이 또한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겠다.
또 『주역』에서 이른 바 양의는 시초로 점을 치는 술사들이 나누어서 둘을 만들어 2를 형상(象)한 것이요, 『주역』에서 이른 바 4상은 시초로 점을 치는 술사들이 시초를 네 개씩 세어 4를 형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음양을 양兩이라고 말하면 되지, 굳이 양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요, 태양·소양·태음·소음을 4라 말하면 되지, 굳이 4상象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의儀라는 것은 본뜬다(象)는 의미요, 상이란 것은 닮았다는 의미이며, 닮았다는 것은 가탁(假)한다는 의미요, 가탁이라는 것은 방불彷彿이라는 의미이다. 지금 진음眞陰과 진양眞陽을 의儀라 하고 상象이라 하니, 이 또한 분명하게 알지 못하겠다.
두보의 시(杜詩)에서 이르기를, ‘이의二儀에 풍우風雨가 쌓였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의 이의는 지금 천지라는 이름으로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자는 모두 원류가 있나니, 그 흐름을 따라가 보고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이름은 진실로 서로 부합하지 않음이 이와 같으니, 이 또한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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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論以畵卦之法先作一⚊一⚋以當
010_0704_a_02L兩儀次作⚌⚍⚏⚎以作四象次加
010_0704_a_03L一畵以成八卦誠不易之定理然我
010_0704_a_04L嘗疑太極圈中本有陰陽胚胎黑白之
010_0704_a_05L混淪者太極生陰陽可也次作一陽
010_0704_a_06L是純陽也箇中無一點陰氣次作一陰
010_0704_a_07L是純陰也箇中無一點陽氣純陽如何
010_0704_a_08L生得一陰純陰如何生得一陽此理不
010_0704_a_09L能分曉且也乾兌离震其根基皆陽也
010_0704_a_10L巽坎艮坤其根基皆陰也然而聖人論
010_0704_a_11L兌离却爲陰卦坎艮却爲陽卦
010_0704_a_12L太極剖判時一陽一陰之定名却不相
010_0704_a_13L此又不能分曉者且也易所謂兩儀
010_0704_a_14L蓍家之分而爲二以象兩者也
010_0704_a_15L所謂四象者蓍家之揲之以四以象四
010_0704_a_16L者也然則陰陽可謂之兩不必謂之兩
010_0704_a_17L太陽少陽太陰少陰可謂之四
010_0704_a_18L必謂之四象何以故儀也者象也
010_0704_a_19L也者似也似也者假也假也者
010_0704_a_20L彿也今以眞陰眞陽曰儀曰象亦所
010_0704_a_21L未曉杜詩曰二儀積風雨二儀今爲
010_0704_a_22L天地之定名然文字皆有源流沿其流
010_0704_a_23L而溯其源則其名實之不相合如此
010_0704_a_24L又難曉

010_0704_b_01L
색성이 다시 물었다.
“공영달孔穎達9)의 『주역소周易疏』에 시초를 헤아려서 기수奇數를 도로 손가락에 끼우는 법에 대하여만 실려 있고, 그 나머지가 혹 4가 되거나 혹 2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습니다. 무릇 네 개씩 헤아릴 때 맨 마지막으로 헤아리고 남은 것을 기수라 하며, 또 그것을 돌려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것은 한漢나라 때부터 유전되어 온 법입니다. 지금 경문經文을 고찰해 보니, 이런 뜻이 없는데 선유先儒들은 어떻게 옛날 점치는 법이 반드시 이와 같다고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답하였다.
“기수奇數란 말은 우수偶數가 아니라는 뜻이요, 또 떨어진 나머지(零餘)라는 뜻이다. 2와 4는 모두 음수이니, 음은 우수가 되기 때문에 아마도 기수라고 이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2는 4에 차지 못하니 이것이 떨어진 나머지이다. 2를 기수라 말하는 것은 오히려 혹 가능할 듯하지만, 4는 이미 기수가 아니며, 또 떨어진 나머지도 아닌데 명명하여 기수라고 하는 지에 대해서는 진실로 분명하게 밝히기 어렵다.
또 4시時라고 말한 것은 12벽괘辟卦(열두 달을 나타내는 괘)를 말하는 것이다. 복괘(復, ䷗ : 11월)·임괘(臨, ䷒ : 12월)·태괘(泰, ䷊ : 1월)·대장괘(大壯, ䷡ : 2월)·쾌괘(夬, ䷪ : 3월)·건괘(乾, ䷀ : 4월)·구괘(姤, ䷫ : 5월)·둔괘(遯, ䷠ : 6월)·비괘(否, ䷋ : 7월)·관괘(觀, ䷓ : 8월)·박괘(剝, ䷖ : 9월)·곤괘(坤, ䷁ : 10월)는 진실로 4시의 괘이니, 그렇다면 네 개씩 세어서 이 괘를 형상한 것은 옳다. 그러나 64괘 가운데 본래 윤달을 나타내는 괘는 없는데도 기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윤달 1절節을 상징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분명한 일이 아니다. 선유가 틀림없이 논하여 결정한 것이겠지만, 나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의혹을 풀어 줄 수가 없다.”
자홍이 또 물었다.
“둔괘(屯)의 구오九五 효에 이르기를, ‘조금 곧으면(小貞) 길하고 크게 곧으면(大貞) 흉하다’라고 했는데, ‘곧다(貞)’라는 말은 바르다(正)는 뜻입니다. 일을 처리하는 도道는 곧을수록 더욱 길해야 할 터인데, 여기에서 경계하여 이르기를, ‘조금 곧으면 길하고 크게 곧으면 흉하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그렇다면 점을 쳐서 이 효를 만날 경우 장차 제1 등급인 의리義理는 버려 두고 틀림없이 제2 등급인 방편을 취해서 당장의 편안함만을 꾀하는 일시적인 방편으로 삼을 터이니, 그게 옳은 일이겠습니까? 『주역』에서는 무릇 곧으면 흉하다고 말한 곳이 매우 많은데, 점을 쳐서 곧으면 흉하다는 괘(繇)를 만난다면, 장차 바른 길은 버리고 따로 굽은 지름길로 나가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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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又問孔頴達周易疏載揲蓍歸奇
010_0704_b_02L之法毋論或四或二凡四揲之時
010_0704_b_03L最末之揲謂之奇數而歸之扐中
010_0704_b_04L此盖自漢以來流傳之法也今考經
010_0704_b_05L無此意思不知先儒何以知古法
010_0704_b_06L必當如此

010_0704_b_07L
答奇也者不偶也又零餘也二與四
010_0704_b_08L俱是陰數陰則爲偶恐不可名之爲奇
010_0704_b_09L然二不滿四此零餘也二之謂奇
010_0704_b_10L或可也四則旣非奇數又非零餘
010_0704_b_11L之曰奇誠所難曉且所謂四時者
010_0704_b_12L二辟卦之謂也復臨泰大壯夬乾姤遯
010_0704_b_13L否觀剝坤實爲四時之卦則揲之以四
010_0704_b_14L以象此卦可也六十四卦之中本無閏
010_0704_b_15L月之卦則歸奇於扐以象閏一節
010_0704_b_16L所未曉先儒必有論定我自未見
010_0704_b_17L以破惑

010_0704_b_18L
弘又問屯之九五曰小貞吉大貞凶
010_0704_b_19L貞者正也處事之道彌貞彌吉
010_0704_b_20L乃戒之曰小貞吉大貞凶若然筮遇
010_0704_b_21L此爻者將捨第一等義理必取第二
010_0704_b_22L等方便以爲姑息之計可乎易凡言
010_0704_b_23L貞凶者甚多筮遇貞凶之繇者將捨
010_0704_b_24L其正路別趨曲徑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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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였다.
“군자의 도는 바른 것을 지켜서 흔들리지 않고, 성공하고 패망하는 것이나 영리하고 둔한 것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니, 어찌 점을 쳐서 곧으면 흉하다는 괘사를 만났다 해서 바른 것을 버리고 굽은 것을 따르겠는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곧다(貞)’라 것은 일을 말하는 것이니, 『주례周禮』 「태복太卜」에서 ‘무릇 나라에 큰 일(大貞)이 있으면 거북점을 치고, 작은 일이 있으면 시초로 점을 친다’라고 하였고, 또 「소종백小宗伯」에서도 ‘무릇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옥백玉帛을 받든다(大貞則奉玉帛)’라고 했는데, 정현鄭玄10)은 ‘임금을 세우고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것(立君遷國)이 바로 큰 일(大貞)이다’라고 했다. ‘대정大貞’이란 큰 일(大事)이라는 뜻이니, 이 뜻에 대해서는 내가 옛날 자하산방紫霞山房11)에서 들었노라.”
이상은 『주역』에 대한 문답이다.
색성이 물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學而時習)’12)이라고 한 구절의 주석에서 이르기를, ‘익힌다(習) 함은 새가 자주 날갯짓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저는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대답하였다.
“‘습習’의 글자 됨이 ‘우羽’와 ‘백白’을 뜻으로 한 글자이다. ‘새가 자주 날갯짓을 한다(鳥數飛)’라는 것이 습習의 본래 의미이다. 새 새끼가 나는 방법을 배울 때에 자주자주 파닥거리면서 나는 방법을 익히나니, 나나 남이나 간에 도를 배울 적에는 역시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자주(數)’라는 말은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니, 만약 그것을 너무 중하게 여기면 도리어 본래의 뜻과는 어긋나 달라진다.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이른 아침에 안부를 여쭙고 저녁에 잠자리를 살피는(晨省昏定) 도리를 배웠으면 문득 이날부터 이른 아침에 안부를 여쭙고 저녁에 잠자리를 살피는 일을 실천하고, 발 모습은 신중하게 하고(足容重) 손 모습은 공손하게 한다(手容恭)고 배웠으면 곧바로 그날부터 발 모습은 신중하게 하고 손 모습은 공손하게 실행하는 것이 바로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다. 또 만일 투호投壺13)의 예를 익혔으면 곧바로 그날부터 투호의 예를 익히고, 향사鄕射14)의 예를 배웠으면 문득 그날부터 향사의 예를 익히며, 제사 지내는 예법을 배웠으면 제사 지내는 예법을 익히고, 장례 치르는 예법을 배웠으면 장례 치르는 예법을 익히는 것이 바로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니, 옛날 태학太學에서 예禮와 악樂을 익혔던 것이 다 이런 의미이다.’
오늘날의 유생들 중에 근기가 낮은 사람은 배우지도 않고, 근기가 좀 높은 사람은 배우긴 해도 익히지는 않는다. 배우긴 해도 익히지 않는 것은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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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君子之道守正不撓其成敗利鈍
010_0704_c_02L所不計焉豈可以筮遇貞凶而棄正趨
010_0704_c_03L曲乎雖然貞者事也周禮太卜凡國
010_0704_c_04L大貞則作龜小事則涖卜又小宗伯
010_0704_c_05L凡國大貞則奉玉帛鄭玄以立君遷國
010_0704_c_06L爲大貞大貞者大事也斯義也余昔
010_0704_c_07L聞之於紫霞山房

010_0704_c_08L
已上周易

010_0704_c_09L
010_0704_c_10L
性問學而時習註云習鳥數飛也
010_0704_c_11L我玆未悟

010_0704_c_12L
答習之爲字從羽從白鳥數飛者
010_0704_c_13L字之本義也鳥雛之學飛也數數習飛
010_0704_c_14L吾人之學道也亦當如此數者不輟之
010_0704_c_15L若看得太重反與本意差殊也
010_0704_c_16L謂學晨省昏定之道便自是日晨省昏
010_0704_c_17L學足容重手容恭之道便自是日
010_0704_c_18L足容重手容恭這便是學而時習
010_0704_c_19L如學投壺之禮便於是日習投壺之禮
010_0704_c_20L學鄕射之禮便於是日習鄕射之禮
010_0704_c_21L學祭禮習祭禮學喪禮習喪禮這便
010_0704_c_22L是學而時習古者太學習禮習樂
010_0704_c_23L此義也今之儒者下焉者不學上焉
010_0704_c_24L者學而不習學而不習者知而不行也

010_0705_a_01L또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우리 불가佛家 사람들은 청정무위淸淨無爲를 배우고도 강론이 끝나고 나면 짚신을 짜고 국수를 만들며 성질을 부리면서 이익이나 다투곤 하니, 이것도 역시 배우고도 익히지 않는 것이다.”
색성이 물었다.
“유자有子15)가 효제孝弟에 대하여 말할 때에 하필이면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킨다는 말을 했습니까?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대답하였다.
“춘추春秋시대에는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그 아비를 시해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윗사람을 범하고 난을 일으킨다’라는 것이다. 그 당시 임금과 세상의 군주들이 이런 일들에 대하여 구원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유자는 오직 효도하고 공경하는 법만이 이를 구원할 것이요, 상을 주고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하등下等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유자는 그 깨우치지 못함을 불쌍하게 여겨 특별히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색성이 물었다.
“약속이 진실로 의리에 가깝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이미 약속을 했으면 비록 의리에 가깝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말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공손함이 진실로 예와 가깝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이미 공손하게 했으면 아무리 예에 가깝지 않다고 하더라도 치욕은 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자의 말은 깊은 맛이 없는 듯합니다.”16)
대답하였다.
“그대의 말이 옳다. 나는 말하기를, ‘약속이 반드시 다 선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요, 공손함이 꼭 다 선한 것은 아니나 그래도 예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공손히 했다 하면 치욕은 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나니, 이와 같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자홍이 물었다.
“공자께서 태묘太廟에 들어가셔서 매사를 물어보셨다 하니, 이미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면 비록 물어보지 않고도 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에 공경하고 조심하는 의미라고 한다면 해로울 것은 없겠으나, 아마도 공자의 마음속에 오히려 완전하게 분명히 알지 못하여 두려워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물어보고 행한 것일 테니, 만약 알고 있는 것이 아무리 분명하다 해도 오히려 꼭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성실한 도리가 아닌 듯합니다.”
대답하였다.
“태묘는 주공周公을 모신 사당이다. 성왕成王이 노魯나라에

010_0705_a_01L亦何益之有吾家人學淸淨無爲
010_0705_a_02L旣輟捆屨壓麪嗔恚以爭利是亦學
010_0705_a_03L而不習者

010_0705_a_04L
性問有子言孝弟必擧犯上作亂
010_0705_a_05L不知何故

010_0705_a_06L
答春秋之世臣弑其君子弑其父
010_0705_a_07L所謂犯上而作亂也而時君世主不知
010_0705_a_08L所所救藥之術有子看得惟孝弟一法
010_0705_a_09L可以救此至於刑賞勸懲末也故有子
010_0705_a_10L憫其不曉特爲此說

010_0705_a_11L
性問信固有不近於義者然旣信則
010_0705_a_12L雖不近義言可復也恭固有不近於
010_0705_a_13L禮者然旣恭則雖不近禮遠恥辱也
010_0705_a_14L有子之說似無深味

010_0705_a_15L
答伊說是也余謂信未必皆善猶謂之
010_0705_a_16L近於義者爲其旣信則言可復也恭未
010_0705_a_17L必皆善猶謂之近於禮者爲其旣恭
010_0705_a_18L遠恥辱也如是看似好

010_0705_a_19L
弘問子入太廟每事問知之旣詳
010_0705_a_20L則雖不問而行之恐無害於敬謹
010_0705_a_21L怕孔子於自心中猶有所不能十分
010_0705_a_22L明白者故問而行之若云知之雖明
010_0705_a_23L而猶當問之則恐非誠實底道理

010_0705_a_24L
答太廟者周公之廟也成王賜魯以天

010_0705_b_01L천자天子의 예악禮樂을 쓰도록 허락해 주었으니, 주공에게 제사를 올릴 때에 태묘 안에서 거행하는 예절은 다 공자가 배운 제후의 예와는 확실하게 같지 않았다. 공자가 비록 이와 같은 예를 알았다 하더라도 만약 유사有司에게 묻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행한다면, 이는 공자가 노나라 태묘에서 천자의 예를 쓴 것을 당연하게 여겨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경우가 된다.
공자가 매사를 물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내가 알고 있는 예는 일상적으로 거행하는 예이니 이는 제후의 예요,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은 특별한 관례이니 이는 천자의 예이다. 천자의 예를 제후의 사당에 행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묻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물어보고 행한다면 내게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탓에 매사를 물어본 것이리라.”
자홍이 물었다.
“곡삭告朔17)은 초하루 제사(朔祭) 외에 별도로 곡삭의 제례가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곡삭제를 올릴 때에 당연히 두 마리 양을 써야 할 것입니다. 한 마리는 바로 삭제에 쓰는 양이고, 한 마리는 곡삭에 쓰는 양일 것입니다. 노나라 정치가 아무리 쇠해졌다 하더라도 종묘에서 거행하던 삭제는 틀림없이 거행하지 않을 이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공子貢18)이 없애려고 한 것은 곧 곡삭에 쓰는 양을 말한 것이지 삭제에 쓰는 양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삭제는 본래 양을 쓰는 법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대답하였다.
“「옥조玉藻」19)에 이르기를, ‘제후는 삭월朔月에 소뢰小牢를 쓴다’라고 하였는데, ‘소뢰’란 양과 돼지이다. 당시의 임금이 먹는 음식도 이미 소뢰를 썼는데, 그렇다면 선공先公의 제사에 어찌 양을 쓰지 않았을 리가 있겠는가?
또 삭제는 의당 이른 아침에 있었고, 곡삭의 예도 역시 이른 아침에 거행했지만, 일시에 두 마리 양을 한꺼번에 잡아 삭제도 지내고, 또 곡삭에도 썼다는 것은 틀림없이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곡삭의 제례가 삭제로 인하여 지낸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그렇다면 노나라에서 문공文公 이후에

010_0705_b_01L子之禮樂以祭周公則太廟之內所行
010_0705_b_02L禮節皆與孔子所學諸侯之禮截然不
010_0705_b_03L孔子雖知其如此若不問有司
010_0705_b_04L以其所知者而行之則是孔子以魯太
010_0705_b_05L廟天子之禮謂當然而無可疑也孔子
010_0705_b_06L之所以每事問者其意以爲我所知者
010_0705_b_07L常禮者是諸侯之禮也爾所知者
010_0705_b_08L例也是天子之禮也天子之禮之行於
010_0705_b_09L諸侯之廟吾所不知吾所不知如之
010_0705_b_10L何其不問乎問而行之吾無咎矣
010_0705_b_11L其所以每事問與

010_0705_b_12L
弘問告朔是於朔祭之外別有告朔
010_0705_b_13L之祭也乎若然方其告朔之時
010_0705_b_14L用二羊一是朔祭之羊一是告朔
010_0705_b_15L之羊魯政雖衰宗廟朔祭必無不
010_0705_b_16L行之理然則子貢之所欲去之者
010_0705_b_17L告朔之羊而朔祭之羊不在其中歟
010_0705_b_18L抑朔祭本無用羊之法乎

010_0705_b_19L
答玉藻云諸侯朔月少牢少牢者
010_0705_b_20L豕也時君之食旣用少牢則先公之
010_0705_b_21L豈有不用羊之理且朔祭宜在早朝
010_0705_b_22L告朔之禮亦宜早行一時之間疊殺
010_0705_b_23L二羊以行朔祭又以告朔必無是理
010_0705_b_24L告朔之仍爲朔祭無疑然則魯自文公

010_0705_c_01L결국 삭제를 폐지했다는 것은 그럴 리가 없을 것 같다. 만약 삭제를 거행했다면 비록 곡삭을 거행하지 않았더라도 이때 바칠 희양餼羊은 본래 자공이 없애려고 한 그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나라의 도가 이미 쇠퇴하여 제후가 정삭正朔을 중시하지 않았으니, 곡삭은 거행하지 않은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마침내 삭제를 없앴다는 것은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 자공이 어찌 애써 없애려고 했겠는가? 이 한 구절은 내가 자세히 밝히지 못하겠다. 외전外典을 두루 보았지만 어느 한 사람도 이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으니, 어찌 생소하지 않겠느냐?
또 ‘희餼’란 손님에게 음식을 이바지하는 것이니, 손님을 대접할 음식이라는 것 외에 ‘군량미(軍餼), 봉급으로 주는 곡식(祿餼), 구휼미(賙餼)’라는 말로 쓰인 것이 『춘추전春秋傳』과 「빙례聘禮」 등 여러 편에 여기저기 보이지만, 제사에 사용했다는 내용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희餼’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이 또한 의심해 볼 일이다.”
자홍이 물었다.
“‘〈관저關雎〉20)는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않고,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어떤 것이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 것입니까?”
대답하였다.
“내가 일찍이 어느 선비의 집에서 『춘추전』을 읽었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악공樂工이 「녹명鹿鳴」 3편을 노래하였다’라는 말이 있었다. 내가 이에 대하여 ‘관저는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않고,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라는 시의 의미를 깨달았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이른바 「녹명」 3편이란 곧 〈녹명〉·〈사모四牡〉·〈황황자화皇皇者華〉를 말한다. 〈사모〉와 〈황황자화〉를 모두 「녹명」이라고 말하는데, 〈갈담葛覃〉과 〈권이卷耳〉를 어찌 〈관저〉라 하지 않는 것인가?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권이〉를 이르는 말이다. 그 시에서 이르기를, ‘내 우선 저 쇠뿔 잔에 술을 따르고 영원히 슬퍼하지 않으리’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연주래延州來 계자季子21)가 〈갈담〉 시를 논하여 말하기를, ‘삼가하여 원망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또한 ‘슬퍼하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라는 것과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않다’라는 두 마디 말을 아울러 관찰하면서 마음을 다해 독송한 것이리라.”
자홍이 물었다.
“‘가난하고 천한 것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싫어하는 것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군자가 가난하고 천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010_0705_c_01L以後遂廢朔祭恐無是理若行朔祭
010_0705_c_02L則雖不告朔其所供餼羊非子貢之所
010_0705_c_03L當欲去者周道旣衰諸侯不重正朔
010_0705_c_04L則不告朔可也因此而遂廢朔祭宜無
010_0705_c_05L是理子貢何苦去之乎此一節吾所未
010_0705_c_06L歷觀外典無一人語及此事豈不
010_0705_c_07L疎哉且餼者賓食之致饋者也賓餼
010_0705_c_08L之外又有軍餼祿餼賙餼散見於春秋
010_0705_c_09L聘禮諸篇未聞祭祀所用亦名爲
010_0705_c_10L此亦可疑

010_0705_c_11L
弘問關雎樂而不淫哀而不傷
010_0705_c_12L何是哀而不傷

010_0705_c_13L
答余曾於一士人家得見春秋傳有云
010_0705_c_14L工歌鹿鳴之三余於是知關雎有哀而
010_0705_c_15L不傷之義也何以故所謂鹿鳴之三
010_0705_c_16L即鹿鳴四牡皇皇者華也四牡皇華
010_0705_c_17L皆云鹿鳴則葛覃卷耳豈非關雎乎
010_0705_c_18L哀而不傷者卷耳之謂也其詩曰
010_0705_c_19L姑酌彼兕觥維以不永傷斯豈非哀而
010_0705_c_20L不傷乎延州來季子論葛覃之詩曰
010_0705_c_21L謹以不怨亦可與哀樂二語並觀而專
010_0705_c_22L誦之

010_0705_c_23L
弘問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
010_0705_c_24L其道得之不去也君子之好貧賤

010_0706_a_01L여기에서와 같이 참으로 그와 같이 한다면, 군자는 끝내 가난하고 천함에서 벗어날 날이 없을 것입니다.”
대답하였다.
“위의 구절에서 ‘얻었다(得之)’라는 말은 ‘거기에 처해 있음을 얻었다(得處之)’라는 말이요, 아래 구절의 ‘얻었다(得之)’라는 말은 ‘떠남을 얻었다(得去之)’라는 말이니, ‘정당한 방법으로 부하고 귀함을 얻은 것이 아니면’이라거나 ‘정당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천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내가 『논어』 1부部를 읽어 보니, 우리 불가의 기미氣味와는 크게 같지 않아 세속을 버리거나 영화를 사양하는 뜻이 없으니, 어찌 한번 가난하고 천함을 얻으면 굳게 지켜서 벗어나지 않을 이치가 있겠는가? 다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는 기회를 얻지 않는다면, 군자가 가난하고 천함을 편안하게 여기고 구차스럽게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할 뿐이라는 말이다.”
자홍이 물었다.
“‘군자는 의義에 깨닫고 소인은 이利에 깨닫는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대답하였다.
“일찍이 주자朱子의 연보年譜를 보았는데, 주자와 육상산陸象山이 아호사鵝湖寺의 모임22)에서 이 장章을 강론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우리 세존과 같으신 분도 니원대회泥洹大會(열반대회)에서 진眞과 망妄 이 두 가지의 이치에 대하여 강설하시자 모든 아라한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온몸을 땅에 던져 예를 올리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 강론한 의리가 저것과 이것이 똑같다. 왜냐하면 의義는 우리의 진성眞性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요, 이利는 우리의 망념의 계산을 따라가는 것이니, 저 유가에서는 성인이 되고 우리 불가에서는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의義와 이利, 이 두 글자 사이에서 다투는 것일 뿐이니, 다른 요인이 있겠는가?
‘유喩’란 ‘비유하여 깨닫다(譬曉)’라는 뜻이다. 우리 불가에서는 이를 정각正覺이라 말하고 돈오라고 말하나니, 곧 8만 4천 바라밀이 모두 다 ‘의에 깨닫는다(喩於義)’라는 세 글자에서 머리가 되기도 하고 꼬리가 되기도 할 뿐, 다른 요인이 있겠는가?
일찍이 시골 마을에서 어떤 젊은이를 보았는데 한창 어릴 때에는 문자 보기를 좋아하고 시구 짓기를 좋아하며, 나를 따라 산에 들기를 좋아하고 나를 따라 설법 듣기를 좋아하였다. 설법을 듣는 태도가 낯빛에 화기가 도는 듯하여 함께 좋게 지낼 만하였다. 그런데 홀연히 사라져 7년~8년 동안

010_0706_a_01L是乎誠如是也君子終無去貧賤之
010_0706_a_02L

010_0706_a_03L
答上言得之者謂得處之也下言得之
010_0706_a_04L謂得去之也非謂不以其道得富貴
010_0706_a_05L不以其道得貧賤也余觀論語一部
010_0706_a_06L吾家氣味大不同無遺世辭榮之意
010_0706_a_07L豈有一得貧賤則固執不去之理但不
010_0706_a_08L以其道得去之則君子安貧賤而不苟
010_0706_a_09L去也

010_0706_a_10L
弘問君子喩於義小人喩於利
010_0706_a_11L甚麽話頭

010_0706_a_12L
答嘗見朱子年譜朱子與陸象山於鵝
010_0706_a_13L湖之會講此章四座爲之流涕如我
010_0706_a_14L世尊於泥洹大會講眞妄二義諸阿
010_0706_a_15L羅漢無不流淚悲泣四軆投地以其
010_0706_a_16L所講義理彼此相同也何以故義也
010_0706_a_17L從吾眞性中出來利也者從吾妄
010_0706_a_18L念上筭去彼家成聖吾家成佛皆爭
010_0706_a_19L義利二字有他事乎喩者譬曉也
010_0706_a_20L吾家謂之正覺謂之頓悟即八萬四
010_0706_a_21L千波羅密皆從喩於義三字作頭作尾
010_0706_a_22L有他事乎嘗見鄕里少年方其幼妙時
010_0706_a_23L好看文字好作詩句好入山訪好從
010_0706_a_24L我聽聽法夭夭然可與爲善忽七八

010_0706_b_01L그의 그림자도 보지 못해 내가 몹시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번에 그의 이웃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대답하기를, ‘젊은이 스스로 말하기를, 문자에만 힘쓸 것이요 가족들의 생업을 돌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하루는 그의 아내가 울면서 말렸고, 젊은이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깨달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책을 다 치우고 오로지 농업에 전념하니, 수년 사이에 집안이 화목하고 견실해지니 그 아내가 기뻐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모두 그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 옛날처럼 떠돌아다니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웃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보니 매우 즐거운 듯 그가 착한 사람으로 변화한 것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 슬프다. 이것이 ‘이利에 깨닫는다’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천하에 도도하게 흐르는 것은 모두 이에 깨달은 사람뿐이로구나.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차츰차츰 계산이 마음에 들어간다’라고 하니, 계산이 마음에 들어간다는 것이 바로 ‘이에 깨닫는다’라는 말이다.”
이상은 『논어』에 대한 문답이다.
능엄 서언楞嚴緖言본래는 18조목이었는데 10조목은 잃어버렸다.
제 마음은 진실로 몸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것은 또한 마치 등燈의 불빛이 방 밖에 있으면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나이다.23)

눈·코·귀·혀가 외물과 호응하면 안을 되돌려 비추어 볼 수가 없어서 심장·간장·비장·위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눈으로 보는 힘이 한계와 영역이 있기 때문이지, 영명靈明한 마음의 본체가 안을 비추어 볼 수 없어서가 아니다. 만약 마음이 밖에 있다고 하더라도 심장이 아프고 배에 적취積聚가 생겼을 때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자기 혼자만은 그 아픔을 안다.
등이 방 밖에 있다면 방 안의 동정은 전혀 비추어 살필 수가 없다. 그러나 마음과 등불의 빛은 절대 같지 않다. 존자尊者(아난)가 비유를 가설하여 뭇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방편을 세워 설하신 것일 뿐이다.

등불은 물질(色)을 나타내 보이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아서 보는 것은 바로 눈이지 등불이 아니며, 눈은 물질을 나타내 보이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아서 보는 성품은 바로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24)

등불과 눈이 비추는 대상 물질은 각기 한계가 있지만, 마음의 지각知覺이 살피는 대상은 그 한계가 없다.

010_0706_b_01L年來不見其影余甚疑之往者從其
010_0706_b_02L鄰人問之曰少年自言治文字不治
010_0706_b_03L家人生産一日其妻泣而言之少年言
010_0706_b_04L下頓悟遂毁其書卷專治農業數年
010_0706_b_05L之間室家敦實妻子歡洽鄰里皆以
010_0706_b_06L爲着實人非復舊日浮浪也觀鄰人之
010_0706_b_07L亦歆歆然慕其善變嗟乎玆非所
010_0706_b_08L謂喩於利者乎今天下滔滔皆喩於利
010_0706_b_09L者也人有恒言曰次次筭計入心
010_0706_b_10L所謂筭計入心者即所謂喩於利也

010_0706_b_11L
已上論語

010_0706_b_12L

010_0706_b_13L楞嚴緖言本十八條十條逸

010_0706_b_14L
悟知我心實居身外亦如燈光
010_0706_b_15L在室外不能照室

010_0706_b_16L
眼鼻耳舌以應外物不能反內其不
010_0706_b_17L能見心肝脾胃爲此眼力有所限域
010_0706_b_18L不是靈明不能照內若云在外心痛
010_0706_b_19L腹癥他人不知自己獨悟燈在室外
010_0706_b_20L室中動靜全未照察心與燈光煞有
010_0706_b_21L不同尊者設喩以牖羣迷權且立說

010_0706_b_22L
燈能顯色如是見者是眼非燈
010_0706_b_23L能顯色如是見性是心非眼

010_0706_b_24L
燈眼所照各有限域心知所察無有

010_0706_c_01L그러나 저 캄캄한 가운데에서는 다만 앞의 캄캄한 것만 본다면, 보이는 대상이 캄캄한 것일지언정 보는 주체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면 마치 구리거울이 붉은 것을 만나면 붉게 비추고 푸른 것을 만나면 푸르게 비추는 경우와 같다. 푸르고 붉은 것은 그 색깔이 다르지만, 거기에 비추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저 등불의 광명과 저 해와 달이 물질(色)을 나타내면, 사람들은 눈의 힘으로 그 물질을 살필 수 있다. 이와 같이 작용이 각각 다른 것이니, 마땅히 잘 분별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허공의 꽃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니,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며, 합해질 때에 마땅히 보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25)

등불에서 뻗어 나오는 가시 같은 빛과 별에서 뻗어 나오는 가시 같은 빛은 모두 눈을 통해서 나온 것이지, 저 등불과 별에 실제로 가시처럼 뻗어 나오는 빛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가시 같은 빛은 등불과 별에 속해 있는 것인데, 어떻게 눈을 통해서 나와야만 볼 수 있다고 하겠는가.
저 제2의 달(실제가 아닌 허상)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눈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니 만약 어떤 사람들이 보는 주체가 없다고 꾸짖는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침은 입에서 나오지만 맛을 구별하지는 못하고, 콧물은 코에서 나오지만 냄새를 구별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다 방편으로 비유를 든 것이지 실증實證은 아니다.

향로 속의 전단향旃檀香은 1수銖만 피워도 실라벌성室羅筏城(사위성)의 40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향기를 맡는다.

향온香蘊인 전단향은 온몸(通體) 전체가 모두 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전단향 나무는 딱딱하고 강한 것으로 되어 있어 향기를 멀리 뿜어낼 수가 없으므로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범위가 넓지 못하다. 그러나 한번 태워지는 계기를 만나면 그 향기는 그 본체를 벗어나 곧 퍼져서 흩어지고, 찌꺼기는 떨어져 재가 되며, 습기는 날아 올라가 연기가 된다. 이때 찌꺼기도 습기도 아닌 것을 바로 참다운 향이라고 말한다. 그 향기는 가볍고 은미하며 질박하고 맑아서 사람의 눈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연기가 멀리까지 미치지 않더라도 40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미 그 향기를 맡게 된다. 필경 이 향기는 전단나무에서 생긴 것이니, 허공에서 생기고 너의 코에서 생긴다고 말한다면 마침내 이치에 근접하지 못한다. 갇혀 있는 것을 열어서 풀어 주는 것은 불이요,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은 바람이며, 냄새를 맡는 것은 코요, 깨달아 아는 것은 제 마음이다. 모두 다 인연이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성품을 말미암는다. 향기라는 조건이 이미 흩어지면 곧 다시 소멸하고 마나니, 이를 일러 허망이라 말한다.

010_0706_c_01L涯際然彼暗中但見前黑所見者黑
010_0706_c_02L不是無見猶如銅鏡遇紅照紅遇靑
010_0706_c_03L照靑靑紅殊色不是無照又彼燈光
010_0706_c_04L與夫日月是能顯色人之眼力是能
010_0706_c_05L察色所用各殊該分別看

010_0706_c_06L
旣從目出還從目入當合有見

010_0706_c_07L
燈芒星芒皆從目出非彼燈星實有
010_0706_c_08L是芒然此芒光委屬燈星豈以目出
010_0706_c_09L便當有見彼第二月非是眞有亦從
010_0706_c_10L目出若有人等責其無見豈曰能慧
010_0706_c_11L津從口出不能辨味涕從鼻出不能
010_0706_c_12L辨臭諸如是者皆名權喩非是實證

010_0706_c_13L
鑪中旃檀然於一銖室羅筏城
010_0706_c_14L十里內同時聞氣

010_0706_c_15L
香蘊旃檀通體皆香緣木堅剛香不
010_0706_c_16L發越所聞者短一遇焚燒香則脫體
010_0706_c_17L隨即布散粗落爲灰濕騰爲煙非粗
010_0706_c_18L非濕是謂眞香輕微質淸不礙人眼
010_0706_c_19L所以煙氣未及遙遠四十里內都已
010_0706_c_20L得聞畢竟此香生於旃檀謂生於空
010_0706_c_21L生於汝鼻究不近理開鎖者火布寫
010_0706_c_22L者風嗅者爲鼻覺在我心總有因緣
010_0706_c_23L由自然性緣香旣散即復消滅是名
010_0706_c_24L虛妄

010_0707_a_01L
손으로 돋보기를 잡고 햇볕으로 불을 구하면, 이 불은 거울에서 나온 것인가, 쑥으로부터 나온 것인가, 태양에서 나온 것인가?26)

내가 돋보기(靉靆)를 관찰해 보건대 그것이 평평하기가 숫돌과 같다면 아무리 거울로 쑥에 햇볕을 쪼여도 불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 가운데 부분이 약간 볼록하다면 햇볕을 받아들여 손에 든 거울과 호응하여 쑥에 불이 붙을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돋보기에는 본래 불의 성질이 없고 오직 햇볕으로 하여금 돋보기를 통과시켜서 걸림이 없을 뿐이다. 햇볕이 엷게 펼쳐질 때에는 사람이나 사물이 열을 잘 견딜 수가 있다. 그러나 방촌方寸만 한 거울로 따뜻한 기운을 한 지점에 응집시키면 그 광명이 이미 갑절로 밝아지고 열도 또한 갑절로 강해질 것이니, 열이 강해지면 곧 불이 일어난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돋보기는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햇볕을 응집시킬 수 있고, 그리하여 만 줄기의 광선이 엇갈리게 비추던 것을 광명의 중심 지점에 모여들게 한다. 만약 돋보기를 숫돌에 갈아 버리면 햇볕이 새어 나가 위아래가 서로 같으리니, 어떻게 불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또 숲 속의 나무와 같은 것은 비록 돋보기보다 먼저 햇볕을 받지만 그 위에 돋보기가 없으면 어떻게 태우는 지경에 이르겠는가? 이와 같은 내용을 나는 들으니, “불이 태양으로부터 나오면 거울은 그것을 응집시키고 쑥은 그 볕을 받아들인다.”라고 하였다. 모든 것은 인연이 있는 법이나 자연 그대로의 성품을 말미암는 것이다. 쑥이 이미 다 타고 나면 불과 열이 일시에 모두 없어지나니, 이것을 허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때 흙을 한 자 파내면 거기에는 한 자 깊이의 공간이 생긴다.27)

사방 열 자 정도 되는 방이 있는데, 그 방 안이 텅 비어 아무 물건도 없다면, 곧 그 열 자 되는 방은 전체가 허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시자侍者가 하나의 책상을 방에 들여놓는다면 곧 이 방 속에서 책상 하나 크기만큼의 허공 부분이 줄어들 것이다. 또 어떤 한 사람이 책을 안배하여 천 권을 서가에 꽂아 두면 그 방에서 역시 책 천 권 분량의 허공이 줄어들 것이다.
다시 어떤 한 사람이 창문을 닫고 천정에 구멍을 뚫어 그곳에 좁쌀과 쌀을 들이부어 가득 찬 다음에 그친다면 그 방 속은 물건들이 가득 차서 공간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우물을 파서 공간을 얻는

010_0707_a_01L
彼手執鏡於日求火此火爲從鏡中
010_0707_a_02L而出爲從艾出爲於日來

010_0707_a_03L
我觀靉靆其平如砥雖以照艾火即
010_0707_a_04L不起若其中央微有突隆承受日光
010_0707_a_05L應手灼艾當知靉靆本無火性惟令
010_0707_a_06L日光透漏無礙日光舒薄人物是堪
010_0707_a_07L方寸之暖束于一點光旣倍明熱應
010_0707_a_08L倍敦熱之所敦即成爲火當知靉靆
010_0707_a_09L以突隆故能束日光萬線交斜會于
010_0707_a_10L光心若如砥時日光透漏上下相同
010_0707_a_11L安得火出又如林木雖先承日上無
010_0707_a_12L靉靆何至焚燒如是我聞火從日出
010_0707_a_13L鏡以束之艾以承受總有因緣由自
010_0707_a_14L然性緣艾旣灼火與其熱一時俱空
010_0707_a_15L是名虛妄

010_0707_a_16L
鑿井求水出土一尺於中則有一尺
010_0707_a_17L虛空

010_0707_a_18L
有室方丈室中空虛更無一物即此
010_0707_a_19L丈室全體虛空還有侍者安排一几
010_0707_a_20L即此室中所減虛空如一几大復有
010_0707_a_21L一人安排書史插架千卷即此室中
010_0707_a_22L所減虛空亦如千卷復有一人閉其
010_0707_a_23L牕戶從頂鑿孔灌以粟米取盈而止
010_0707_a_24L即此室中充塞滿實無有空虛鑿井

010_0707_b_01L이치도 이와 같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색色과 공空이 어금니처럼 딱 들어맞아 한 점의 공간도 없게 되면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며, 색이 오면 공이 가고 색이 가면 공이 와서 서로 사양하고 피하여 다투거나 대항하지 않는 경우와 같다.
그러나 이 세간에는 마침내 그 어떤 한 사람도 한 줌의 흙을 집어 하늘 밖으로 내던지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하늘 안에 있는 모든 소유물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이 오고 또 오며, 가고 또 가서 털끝만치도 손상되거나 이지러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산하대지는 우물을 파는 사람이 훼멸시킬 성질의 것이 못 된다.
흙이 있으면 흙을 보고 허공이 이루어지면 허공을 보는데,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더러는 착오를 일으키기도 한다.

맨 아래의 풍륜風輪과 금륜金輪이 서로 마찰하기 때문에 화광火光이 생긴다. 화광은 위를 뜨겁게 찌기 때문에 수륜水輪이 생긴다.28)

지·수·화·풍이 서로 화합하고 서로 변화하여 만물을 생기게 한다. 그 본체와 같은 것은 자연 그대로의 성품을 말미암는 것이기에 서로 생生을 받지는 않지만 혼연히 융합하여 맺어져서 모이기도 하며, 흩어져 퍼져 나가기도 하고 성대하게 일어나기도 하며, 넉넉하게 저절로 이루어지기도 하여 스스로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불은 본디 습기를 싫어하는데 습기가 열을 만나면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 버리므로 불이 곧 생겨난다. 물은 본디 차가운 것이지만 열이 쌓이면 수증기가 무성하게 일어나 곧 물이 되고 만다. 이것을 변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변화가 상입相入하고 만물이 화순化醇하며,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쌓이고 모여 양육(亭育)하여 나고 또 나며, 죽고 또 죽어서 금년에 생긴 풀이 내년에는 거름이 되나니, 그 거름이 양분이 되어 빛깔과 모습이 곱고 예쁘게 된다. 이처럼 썩고 새로 나는 것이 번갈아 가며 흥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한다. 색色이 곧 공空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보리菩提의 마음이 생겨나서 생멸의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면, 이것은 다만 나고 없어지는 것일 따름이니, 사라지고 생겨남이 다할 것이다.29)

저 보리의 마음은 생겨남도 여의었고 사라짐도 여의었으며, 있음도 없음도 없다.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청정하고 자재自在하다. 그러나 자재하다고 말하는 찰나에 문득 생生함이 있게 될 것이니, 이미 생함이 있고 나면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시작이 없다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010_0707_b_01L得空理亦如此當知色空犬牙相入
010_0707_b_02L無有一點非色非空色來空去色去
010_0707_b_03L空來胥遜相避不相爭據然此世間
010_0707_b_04L究無一人執一撮土投之天外所以
010_0707_b_05L天內所有諸物地水火風來來去去
010_0707_b_06L無有毫髮損壞虧欠山河大地非鑿
010_0707_b_07L井人所能毁滅土在見土空成見空
010_0707_b_08L非是眼見或有錯誤

010_0707_b_09L
風金相摩故有火光火光上蒸
010_0707_b_10L有水輪

010_0707_b_11L
地水火風相和相變以生萬物若其
010_0707_b_12L本體由自然性不相受生渾融結聚
010_0707_b_13L布寫肸蠁富有天成不自求丐火本
010_0707_b_14L惡濕濕熱所蒸火乃生之水本禀冷
010_0707_b_15L積熱蒸鬰乃成爲水是名變化非是
010_0707_b_16L本相變化相入萬物化醇絪縕亭育
010_0707_b_17L生生死死今年之草明年爲糞糞之
010_0707_b_18L所滋光色鮮好臭腐新奇遞相興滅
010_0707_b_19L色即是空斯之謂矣

010_0707_b_20L
菩提心生生滅心滅此但生滅
010_0707_b_21L生俱盡

010_0707_b_22L
這菩提心離生離滅無有有無自無
010_0707_b_23L始來淸淨自在纔言自在便是有生
010_0707_b_24L旣是有生不云無有若云無始云何

010_0707_c_01L“어린아이가 글자를 배우고 문장을 통하려면 걸음마다 어렵고 괴롭기가 마치 낚시에 걸린 고기와 같다.”라고 말할 것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마음이 비록 모퉁이를 떠났다 하더라도 이기理氣가 오묘하게 합하여 서로 버릴 수 없으니, 기氣가 한 푼 자라면 이理도 한 푼 투명해질 것이다. 만약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빛나고 밝아서 걸림이 없다고 하더라도 배우는 사람들은 한 눈금씩 쌓고 한 치씩 쌓으리니, 곧 나아감에 걸음을 생략할 수 없을 것이다.
탑명墖銘
아암 혜장 공의 탑명(兒菴藏公墖銘)
아암兒菴의 본성은 김씨이고, 소자小字는 팔득八得이며, 혜장惠藏은 그의 법명이다. 자字는 무진無盡이고, 본호本號는 연파蓮坡이며, 새금현塞琴縣 화산방花山坊(지금의 해남군 화산면) 출생이다.새금은 옛날 백제의 남쪽 변방에 있던 고을이다.
스님은 신분이 미천하고 집도 가난하였다. 어렸을 때 출가하여 대둔사에서 머리를 깎고, 춘계 천묵春溪天默 스님 밑에서 학업을 연마하였다. 천묵 스님은 외전外典을 널리 통달한 분이었으며, 아암은 무리를 뛰어넘는 출중한 지혜가 있어서 배운 지 몇 년 만에 그 명성이 치림緇林(승려 세계)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돌아보건대 그는 몸집이 작은 데다 질박하고 어리석은 듯이 보여 아사리阿闍梨에는 걸맞지 않은 듯하였다. 그러므로 시골 마을의 선비들이 모두 그를 ‘팔득八得’이라고 불렀는데, 대개 스님의 재주를 아끼고 됨됨이를 사랑하여 친근하게 여긴 때문이었다.
이미 성장해서는 널리 불가의 경전을 배웠고, 연담 유일蓮潭有一 스님과 운담 정일雲潭鼎馹 스님을 차례로 모셨다. 나이 27세에 정암晶巖 스님의 방에서 향을 사르는 의식(拈香)을 하고 법통을 이었으니, 곧 소요逍遙의 종파로 화악 문신華嶽文信 대사의 적통을 이었다.
아암은 여러 스승을 좇아 경전을 배웠는데, 비록 머리를 숙인 채 조용히 경청했지만, 문밖을 나서면 문득 입속으로 “흥(呸)” 하고 비웃는 소리를 냈다.비呸는 비웃는 것(哂)이다. 그러나 오직 연담 스님이 직접 쓴 차자(手箚)와 구수口授를 대할 때에는 비웃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이 겨우 30에 두륜산에서 열린 큰 법회에 주맹主盟이 되었는데, 이때 모인 사람이 백여 명을 넘었다.이하 일부는 생략하였다.
아암은 외전外典(유가 경전) 가운데에서도 『주역』과 『논어』를 지독하게 좋아해서 책 속에 담긴 뜻을 낱낱이 탐구하고 살펴서 조그만 것조차 빠뜨리지 않으리라 기약했고, 기윤朞閏(윤달이 생기는 이치)의 수數와 율려律呂의 도度, 그리고 성리학과 관련된 모든 서적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010_0707_c_01L嬰穉學字通文步步艱苦如魚上竿
010_0707_c_02L當知此心雖則離隅理氣妙合不能
010_0707_c_03L相捨氣長一分理透一分若自無始
010_0707_c_04L光明無礙不應學子銖絫寸積乃進
010_0707_c_05L厥步

010_0707_c_06L

010_0707_c_07L[墖銘]
兒菴藏公墖銘

010_0707_c_08L
兒菴本金氏小字八得惠藏其法名
010_0707_c_09L字曰無盡本號曰蓮坡塞琴縣之花山
010_0707_c_10L坊人塞琴古百濟南徼生地微家且
010_0707_c_11L幼而出家落髮於大芚寺從春溪
010_0707_c_12L天默學天默淹貫外典而兒菴警慧出
010_0707_c_13L學之數年名噪緇林顧短小樸獃
010_0707_c_14L不類闍棃鄕中薦紳先生皆呼之曰八
010_0707_c_15L蓋愛其才而狎之也旣長廣受佛
010_0707_c_16L歷事蓮潭有一雲潭鼎馹年二十
010_0707_c_17L拈香於晶巖之室即逍遙之宗
010_0707_c_18L嶽文信之嫡傳也兒菴從諸師受經
010_0707_c_19L低首聽說及出戶覺口中有聲曰呸
010_0707_c_20L呸也者哂之也惟蓮潭手劄口授
010_0707_c_21L不呸也年甫三十主盟於頭輪大會
010_0707_c_22L會者百有餘人以下删
錄之
兒菴於外典
010_0707_c_23L好周易論語究索旨趣期無遺蘊
010_0707_c_24L朞閏之數律呂之度及性理諸書

010_0708_a_01L정밀한 핵심을 연마해서 세속의 선비들도 도저히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스님의 성품은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아 평소 쓴 작품이 거의 없다. 또 시의 격식을 맞추는 데에는 능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시를 써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시를 지어 화답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더욱이 변려문騈儷文에 능통하여 율격이 정밀하고 엄격했고, 불교 경전 중에서는 『능엄경』과 『기신론起信論』을 독실하게 좋아했지만, 『조왕경竈王經』이나 측간에서 외우는 주문(厠呪)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아 스님들이 안타깝게 여겼다.
스님에게는 제자가 네 명이 있었으니, 수룡 색성袖龍賾性·기어 자홍騎魚慈弘·철경 응언掣鯨應彦·침교 법훈枕蛟法訓이다. 이미 의발을 전수하고 나서 아암이 점점 노쇠해지더니, 신미년(1811) 가을에 병을 얻어 그해 9월 기망幾望(14일)에 북암北菴에서 적멸을 보이셨다. 그때 스님의 나이 겨우 40이었다.
부록附錄
동방 제15조 연파 대사 비명東方第十五祖蓮坡大師碑銘

자하 산인紫霞山人 사암俟庵 정약용 지음

노자가 말씀하시기를, “기氣를 오롯하게 하여 부드러움을 이루어서(專氣致柔) 마치 어린아이처럼 할 수 있는가?……부드러운 것(柔)은 장생長生을 하는 무리들이다.”라고 하였는데, 혹 어떤 사람이 이 말을 가지고 두륜산 혜장惠藏 화상께 고하였더니,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성격이 강하고 고집이 센데 부드러움을 이루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화상은 자호自號를 아암兒庵이라고 하였다.
아암의 본래 성은 김씨이고, 어릴 때의 자字는 팔득八得이다. 혜장惠藏은 그의 법명이고, 자는 무진無盡이며, 본래 호는 연파蓮波이다. 새금현塞琴縣 화산방花山坊 사람으로서새금은 옛날 백제의 남쪽 변방에 있던 고을이다. 신분이 미천하고 집도 가난하였다.
어려서 출가하여 대둔사大芚寺에서 머리를 깎고 월송 재관月松再觀의 은혜를 받고 춘계 천묵春溪天黙에게 학업을 익혔다. 천묵 스님은 외전外典을 널리 통달한 분이었으며, 아암은 무리를 뛰어넘는 출중한 지혜로서 배운 지 몇 년 만에 그 명성이 치림緇林을 떠들썩하게 하였다. 돌아보건대 그는 몸집이 작은 데다 질박하고 어리석은 듯이 보여 아사리阿闍梨에는 걸맞지 않은 듯하였다. 그러므로 시골 마을의 선비들이

010_0708_a_01L精核硏磨非俗儒可及性不喜詩
010_0708_a_02L作絕少又不能副急有贈必追和之
010_0708_a_03L乃驚人尤工騈儷律格精嚴於佛書
010_0708_a_04L篤好首楞嚴起信論而竈經厠呪未或
010_0708_a_05L被脣髠者病之有四徒曰袖龍賾性
010_0708_a_06L騎魚慈弘掣鯨應彦枕蛟法訓旣授
010_0708_a_07L衣鉢兒菴乃老辛未秋得疾以九月
010_0708_a_08L幾望示寂于北菴其臘僅四十

010_0708_a_09L
010_0708_a_10L

010_0708_a_11L〔附錄〕

010_0708_a_12L東方第十五祖蓮坡大師碑銘

010_0708_a_13L紫霞山人俟庵丁鏞撰

010_0708_a_14L
老子曰專氣致柔能如嬰兒乎柔者
010_0708_a_15L生之徒也或以是告之于頭輪惠藏和
010_0708_a_16L尙者曰子之性倔强能致柔如嬰兒乎
010_0708_a_17L於是和尙自號曰兒庵兒庵本金氏
010_0708_a_18L小字八得惠藏其法名字曰無盡
010_0708_a_19L號曰蓮坡塞琴縣之花山坊人塞琴
010_0708_a_20L古百濟南徼生地微家且貧幼而出
010_0708_a_21L落髮於大芚寺受月松再觀恩
010_0708_a_22L春溪天默學天默能淹貫外典而兒菴
010_0708_a_23L警慧出羣學之數年名噪緇林顧短
010_0708_a_24L小樸獃不類闍棃鄕中薦紳先生

010_0708_b_01L모두 그를 ‘팔득八得’이라고 불렀는데, 대개 스님의 재주를 아끼고 됨됨이를 사랑하여 친근하게 여긴 때문이었다.
이미 성장해서는 널리 불가의 경전을 배웠고, 연담 유일蓮潭有一 스님과 운담 정일雲潭鼎馹 스님을 차례로 모셨다. 나이 27세에 정암晶巖 스님의 방에서 향을 사르는 의식(拈香)을 하고 법통을 이었으니, 곧 소요逍遙(太能의 법호)의 종파로 화악 문신華嶽文信 대사의 적통을 이었다.
아암은 여러 스승을 좇아 경전을 배웠는데, 비록 머리를 숙인 채 조용히 경청했지만, 문밖을 나서면 문득 입속으로 “흥, 흥, 흥(呸呸呸)” 하고 비웃는 소리를 냈다.비呸는 비웃는 것(哂)이다. 그러나 오직 연담蓮潭 스님이 직접 쓴 차자(手箚)와 구수口授를 대할 때에는 비웃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이 겨우 30에 두륜산에서 열린 큰 법회에 주맹主盟이 되었는데, 이때 모인 사람이 천여 명을 넘었다.
가경嘉慶(淸 仁宗의 연호) 신유년(순조 1, 1801) 겨울에 내가 강진에 귀양을 왔다. 5년이 지난 을축년(1805) 봄에 아암이 와서 백련사白蓮社에서 살면서 애타게 나를 만나 보려고 하였다. 돌아보건대 나는 손님들을 거절하여 만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내가 야로野老를 따라 신분을 감추고 그 절에 가서 그를 만나 그와 더불어 한나절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그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이미 가겠노라고 작별을 고하고 발길을 옮겨 북암北菴에 이르렀을 때는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암이 비틀거리며 쫓아와서 말하였다.
“공公께서는 사람 속이기를 어찌 이 지경에 이르십니까? 공께서 여유당與猶堂 선생이 아니십니까? 빈도貧道는 밤낮으로 공을 사모하였는데 공께서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러면서 손을 끌어 그가 살고 있는 산사의 방으로 가서 묵게 하였다. 밤이 이미 깊어 고요해지자 내가 말하였다.
“들으니 그대는 『주역』을 본디 잘 안다고 하던데 거기에 의심되는 곳이 없습니까?”
아암이 대답하였다.
“정씨程氏의 전傳과 소씨邵氏의 설說과 주자朱子의 『주역본의周易本義』·『역학계몽易學啓蒙』에는 모두 의심이 없습니다만, 오직 경문經文만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이에 내가 「계몽」에서 수십 장章을 뽑아내어 그 지취旨趣를 물으니, 아암은 「계몽」 1부部에 대해서는 정신과 융합하고 입에 익어서 한 번에 수십 수백 마디를 외웠는데, 마치 구슬(流丸)이 판때기에 구르는 것 같고, 술항아리(鴟夷)에서 물을 쏟아내는 것과 같아서 도도하여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비로소 크게 놀라 그는 과연 숙세宿世에 선비(儒)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윽고 제자를 불러 회반灰盤(재떨이)을 가져오게 하여 거기에다 낙서구궁洛書九宮30)을 그리고, 원위原委(본말)를 분석함에 있어 방약무인傍若無人하였다. 팔을 걷어붙이고 젓가락을 집더니

010_0708_b_01L呼之曰八得蓋愛其才而狎之也旣長
010_0708_b_02L廣受佛書歷事蓮潭有一雲潭鼎馹
010_0708_b_03L晶巖即圓年二十七拈香於晶巖之室
010_0708_b_04L即逍遙之宗華岳文信之嫡傳也兒庵
010_0708_b_05L從諸師受經雖低首聽說及出戶
010_0708_b_06L口中有聲曰呸呸呸呸也者哂之也
010_0708_b_07L唯蓮潭手劄口授則不呸呸也年甫三
010_0708_b_08L主盟於頭輪大會會者千有餘人
010_0708_b_09L嘉慶辛酉冬余謫康津越五年乙丑春
010_0708_b_10L兒庵來捿于白蓮社渴欲相見顧余謝
010_0708_b_11L莫之見一日余從野老匿跡往見
010_0708_b_12L與語半日不知爲誰旣告別轉至
010_0708_b_13L北菴日將夕兒菴蹡蹡然追至而言曰
010_0708_b_14L公何欺人至此公非與猶堂先生乎
010_0708_b_15L道日夜慕公公何忍如是於是携手
010_0708_b_16L至其房宿焉夜旣靜余曰聞君雅善周
010_0708_b_17L能無疑乎兒菴曰程氏之傳邵氏
010_0708_b_18L之說朱子之本義啓蒙皆無可疑
010_0708_b_19L經文不可知耳於是余抽啓蒙數十章
010_0708_b_20L問其旨趣兒菴於啓蒙一部神融口慣
010_0708_b_21L一誦數十百言如流丸轉坂鴟夷吐水
010_0708_b_22L滔滔乎不可窮余始大驚知其果宿儒
010_0708_b_23L旣而召其徒取灰盤來畫灰爲洛
010_0708_b_24L書九宮剖析原委旁若無人攘其腕

010_0708_c_01L왼쪽 어깨에서부터 그어서 오른쪽 발까지 이르니 15였고, 오른쪽 어깨에서 그어 왼쪽 발까지 이르니 15였다. 이미 그리기를 마치고 나서 가로와 세로로 각각 세 줄씩 긋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가든지 15가 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날 여러 비구들이 문밖에 서서 아암이 재(灰) 위에 그리면서 거북 무늬의 수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숙연해져서 머리카락이 곤두서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밤이 이미 깊어지자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우니, 서쪽 창가에 달빛이 낮과 같이 밝았다. 내가 그를 끌어당기며 말하였다.
“장 공藏公 잡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내가 다시 말했다.
“건괘乾卦의 초구初九(첫 번째의 陽爻)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아암이 대답하였다.
“구九라는 것은 양수陽數의 끝입니다.”
내가 다시 물었다.
“음수陰數는 어디가 끝입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십十이 끝입니다.”
내가 물었다.
“그렇소. 그렇다면 왜 ‘곤괘坤卦는 초십初十’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암이 깊이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잠자코 조금 있다가 벌떡 일어나 옷깃을 바로잡고 말하였다.
“산승山僧이 20년 동안 『주역』을 배운 것은 다 물거품처럼 헛일이었습니다. 감히 묻자옵건대, 곤괘의 초육初六은 어찌하여 그렇게 말한 것입니까?”
내가 대답하였다.
“나도 모르겠소. 귀기歸奇의 법이 무릇 최후에 세는 것은 혹은 4, 혹은 2를 모두 기수奇數(홀수)로 삼는데, 2와 4는 우수偶數(홀수)가 아닌가요?”
아암이 왈칵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우물 안의 개구리와 초파리(醯鷄)는 진실로 스스로 슬기로운 체할 수 없구나!”
그리고는 가르쳐 달라 간했으나 나는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이해 겨울에 나는 보은산방寶恩山房에 살고 있었는데, 아암이 자주 찾아와서 『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4년이 지난 봄날 내가 다산茶山에 오두막집을 지었는데, 대둔사와 가까웠고 성읍城邑과는 멀었으므로 그의 왕래가 더욱 잦아졌다. 그래서 미언微言과 묘의妙義에 대해 크게 부연할 기회를 얻었다.
아암은 『논어』를 지독하게 좋아해서 책 속에 담긴 뜻을 낱낱이 탐구하고 살펴서 조그만 것조차 빠뜨리지 않으리라 기약했고, 기윤朞閏의 수數와 율려律呂의 도度, 그리고 성리학과 관련된 모든 서적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정밀한 핵심을 연마해서 세속의 선비들도 도저히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스님의 성품은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아 평소 쓴 작품이 거의 없다. 또 시의 격식을 맞추는 데에는 능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시를 써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시를 지어 화답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더욱이 변려문에 능통하여 율격이 정밀하고 엄격했고, 불교 경전 중에서는 오직 『능엄경』과 『기신론』을 믿었고, 『조왕경』이나 측간에서 외우는 주문 (厠呪) 따위는 입에 올리지 않아 스님들이 안타깝게 여겼다.

010_0708_c_01L執筯自左肩畫至右足曰十五自右
010_0708_c_02L肩畫至左足曰十五旣又畫之爲三
010_0708_c_03L橫三直曰無往而非十五是日衆比丘
010_0708_c_04L戶外觀兒菴畫灰談龜文之數者無不
010_0708_c_05L瀟然動其髮毛者夜旣分並枕而臥
010_0708_c_06L西窓月色如晝余提之曰藏公睡乎
010_0708_c_07L曰未也余曰乾初九何謂也兒菴曰
010_0708_c_08L九者陽數之極也余曰陰數焉極
010_0708_c_09L極於十余曰然何不曰坤初十兒菴
010_0708_c_10L沉思良久蹶然起整衣曰山僧二十年
010_0708_c_11L學易皆虛泡敢問坤初六何謂也
010_0708_c_12L曰不知也歸奇之法凡最後之楪
010_0708_c_13L四或二咸以爲奇二四非偶乎兒菴
010_0708_c_14L澘然出涕曰井蛙醯雞眞不足以自智
010_0708_c_15L請益余莫之應是年冬余捿寶恩山
010_0708_c_16L兒菴數相過談易越四年春余結
010_0708_c_17L廬于茶山與大芚近而遠於城邑
010_0708_c_18L來彌數微言妙義得弘敷焉兒菴於酷
010_0708_c_19L好論語究索旨趣期無遺蘊若朞閏
010_0708_c_20L之數律呂之度及性理諸書皆精核
010_0708_c_21L硏磨非俗儒可及性不喜詩所作絕
010_0708_c_22L又不能副急有贈必追和之乃驚
010_0708_c_23L尤工騈儷律格精嚴於佛書惟信
010_0708_c_24L首楞嚴起信論而竈經厠呪未或被脣

010_0709_a_01L
제자로서 스님의 법을 얻은 사람이 다섯 명이 있으니, 수룡 색성袖龍賾性·기어 자굉騎魚慈宏·철경 응언掣鯨應彦·침교 법훈枕蛟法訓·일규 요운逸虬擾雲이다. 이미 의발衣鉢을 전해 받자 아암이 노쇠해지니, 그때 나이가 35세였다.
시詩를 즐기고 술을 마시며, 이리저리 거닐고 누워서 쉬던 것이 또 4년~5년이었다. 신미년 가을에 병이 들어 9월 기망幾望(14일)에 북암北菴에서 시적示寂하였으니, 그의 법랍은 겨우 40년이었다.
그해 봄에 아암이 〈장춘동잡시長春洞雜詩〉 20수를 나에게 보여 주었는데, 둘째 연聯은 다음과 같다.

柏樹工夫誰得力      뜰 앞 잣나무 공부로 어느 누가 득력을 했는가?
蓮花世界但聞名      연화세계蓮花世界라는 이름만 들었다네.
狂歌每向愁中發      미친 노래는 항시 근심 속에서 튀어나오고
淸淚多因醉後零      맑은 눈물은 대부분 술에 취한 뒤 흘리네.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은 슬퍼했다. 시적示寂하던 날 두륜산이 우레처럼 울었다. 그때 ‘뜰 앞 잣나무’라고 하는 시구가 중국에까지 소문이 나서 관각館閣의 노학사 옹방강翁方剛31) 담계覃溪 선생이 인재를 얻었다고 매우 기뻐하면서 자신의 시집詩集 6책과 손수 쓴 석판石板, 그리고 『금강경』 1권과 자기의 초상화 1축軸을 조선에서 간 사신에게 부탁하여 보내왔으니,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그 이듬해 겨울에 그의 문도門徒가 그의 행장行狀을 가지고 와서 말하였다.
“우리 스승님은 탑塔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며, 선생께서 그 명銘을 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비명碑銘을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燁燁優鉢         빛나는 우담발화가
朝華夕蔫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었네.
翩翩金翅         펄펄 나는 금시조金翅鳥가
載止載鶱         잠깐 앉았다가 곧 날아갔네.
哀玆都潔         슬프다! 아름답고 깨끗한 이여
有書無傳         글이 있으나 전해지지 않네.
與爾偕征         너와 더불어 같이 가서
手啓玄鍵         손으로 현건玄鍵(도의 관문)을 열었네.
靜夜收釣         조용한 밤에 낚싯대를 거두니
明月滿船         밝은 달빛만 배에 가득하구나.
殘春緘口         늦은 봄에 입을 다무니
山林寂然         산림이 적막해졌네.
是名壽童         그 이름이 수동壽童32)이었건만
天嗇其年         하늘은 그 수명에 인색하였네.
墨名儒行         이름은 승려(墨)나 행동은 선비(儒)이니
君子攸憐         군자들도 그를 사랑했다네.
아암 스님을 애도함(輓兒菴)

정다산丁茶山


010_0709_a_01L髠者病之弟子得法者五曰袖龍賾性
010_0709_a_02L騎魚慈宏掣鯨應彦枕蛟法訓逸虬
010_0709_a_03L擾雲旣受衣鉢兒菴乃老時年三十
010_0709_a_04L耽詩縱酒逍遙偃仰者四五年
010_0709_a_05L未秋得疾以九月幾望示寂于北菴
010_0709_a_06L其臘僅四十其年春兒菴以長春洞雜
010_0709_a_07L詩二十篇示余其二聯曰柏樹工夫誰
010_0709_a_08L得力蓮花世界但聞名狂歌每向愁中
010_0709_a_09L淸淚多因醉後零知者悲之示寂
010_0709_a_10L之日頭輪雷鳴於是以柏樹之句
010_0709_a_11L聞中國閣老翁覃溪先生深喜得人
010_0709_a_12L以其詩集六册手書石板金剛經一卷
010_0709_a_13L己像一軸因東使寄送是亦一未曾有
010_0709_a_14L厥明年冬其徒以其狀至曰吾師
010_0709_a_15L不可以不塔先生不可以不銘余曰然
010_0709_a_16L銘曰

010_0709_a_17L燁燁優鉢朝華夕蔫翩翩金翅

010_0709_a_18L載止載鶱哀玆都潔有書無傳

010_0709_a_19L與爾偕征手啓玄鍵靜夜收釣

010_0709_a_20L明月滿船殘春緘口山林寂然

010_0709_a_21L是名壽童天嗇其年墨名儒行

010_0709_a_22L君子攸憐

010_0709_a_23L輓兒菴 丁茶山

010_0709_b_01L精藍幽作別人居      깨끗한 가람 그윽이 별인別人의 거처가 되었더니
一抹寒烟已碧虛      한 줄기 차가운 연기 푸른 하늘로 사라졌네.
九曲水聲風定後      아홉 구비 물소리는 바람 잔 뒤에 들려오고
四更山色月明初      사경의 산 빛은 처음 달이 뜰 때라네.
墻根小小新移菊      담장 밑에는 새로 옹기종기 국화를 옮겨 심었고
架上亭亭舊束書      시렁 위에는 옛날부터 차곡차곡 책을 묶어 두었네.
無人說與庖羲事      이제는 포희庖羲의 일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 없어
獨立朱欄淚滿裾      붉은 난간에 홀로 서서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아암 화상 만사兒菴和尙輓詞

무명씨無名氏

[1]
墨名儒行世俱驚      중의 이름에 선비의 행위여서 세상이 모두 놀랐거니
怊悵華嚴舊主盟      아! 슬프구나, 화엄華嚴의 옛 주맹主盟이여.
一部魯論頻盥手      일부一部 노논어魯論語를 자주 읽었고
九家周易細硏精      구가九家의 주역을 상세히 연구했네.
凄凉破衲風吹去      찢긴 가사 처량히 바람에 날려가고
零落殘灰雨洒平      남은 재는 비에 씻겨 흩어져 버렸네.
帳下沙彌三四五      장막 아래 세, 네, 다섯 사미들
攀輀猶復喚先生      상여를 당기고 선생을 부르며 통곡하네.

[2]
靑山紅樹颯秋枯      푸른 산 붉은 나무 쓸쓸한 가을
殘照傍邊有數烏      희미한 낙조 곁에 까마귀 몇 마리
柞炭可憐銷傲骨      가련타, 떡갈나무 숯이 오골傲骨을 녹였는데
楮錢那得買冥塗      종이돈 몇 닢으로 저승길 편안히 가겠는가?
觀魚閣上書千卷      관어각觀魚閣 위에 책이 천 권이요33)
養馬箱中酒百壺      말 기르는 상방廂房에는 술이 백 병이네.34)
知己一生惟二老      지기知己는 일생에 오직 두 늙은이
無人重作藕花圖      다시는 연꽃 그림(藕花圖) 그릴 사람 없겠네.

010_0709_b_01L
精藍幽作別人居一抹寒烟已碧虛

010_0709_b_02L九曲水聲風定後四更山色月明初

010_0709_b_03L墻根小小新移菊架上亭亭舊束書

010_0709_b_04L無人說與庖羲事獨立朱欄淚滿裾

010_0709_b_05L兒菴和尙輓詞 無名氏

010_0709_b_06L
墨名儒行世俱驚怊悵華嚴舊主盟

010_0709_b_07L一部魯論頻盥手九家周易細硏精

010_0709_b_08L凄凉破衲風吹去零落殘灰雨洒平

010_0709_b_09L帳下沙彌三四五攀輀猶復喚先生

010_0709_b_10L靑山紅樹颯秋枯殘照傍邊有數烏

010_0709_b_11L柞炭可憐銷傲骨楮錢那得買冥塗

010_0709_b_12L觀魚閣上書千卷養馬箱中酒百壺

010_0709_b_13L知己一生惟二老無人重作藕花圖

010_0709_b_14L
010_0709_b_15L
  1. 1)소공艄工 : 배 뒷부분에서 배를 조정하는 사람.
  2. 2)하도河圖 : 복희씨伏羲氏가 용마龍馬가 도圖를 등에 지고 하河에서 나온 것을 보고 그 무늬를 본받아 8괘卦를 그었다고 한다.
  3. 3)진씨陳氏 : 송宋의 진박陳博을 말한다. 진박이 5대代 시절에 화산華山에 숨어 살면서 도를 닦고 벽곡辟穀을 하여 한번 잠이 들면 1백여 일을 깨지 않고 계속 잤는데, 후에 송나라 태조太祖가 등극하자 그제야 웃으면서 이제야 세상이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태종太宗은 그에게 희이 선생希夷先生이라는 호를 내렸다. 『宋史』 권457.
  4. 4)원도圓圖 : 소강절邵康節이 그린 것으로 두 가지가 있다. 소원도小圓圖는 선천先天 8괘 방위도方位圖이고, 대원도大圓圖는 64괘 방위도이다.
  5. 5)4상象 : 실상實象·가상假象·의상義象·용상用象을 말한다.
  6. 6)공안국孔安國 : 『尙書』 고문학의 시조인 공자의 11대손으로 전한前漢 무제 때의 학자. 공자의 옛집을 헐었을 때 나온 과두문자蝌蚪文字로 된 『古文尙書』·『禮記』·『論語』·『孝經』을 금문今文과 대조하고 고증, 해독하여 주석을 붙였다. 이것에서 고문학古文學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7. 7)유흠劉歆 : B.C. 53?~A.D. 25. 전한前漢 말기의 유학자. 궁정의 장서를 정리하고 육예六藝의 군서群書를 7종으로 분류하여 『七略』이라 하였다. 이것은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서적 목록이다.
  8. 8)시초蓍草 : 다년생 풀로 비수리라고도 한다. 옛날에 점을 칠 때 사용하던 풀로, 이것으로 괘卦를 벌인다.
  9. 9)공영달孔穎達 : 574~648. 당唐나라 초기의 학자. 자字 중달仲達.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수隋나라 양제煬帝 때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관계에 나갔으나, 양제가 그의 재능을 시기하여 암살하려 하였다. 당나라의 태종太宗에게 중용되어 신임을 받고, 국자박사國子博士를 거쳐 국자감의 좨주祭酒·동궁시강東宮侍講 등을 지냈다. 문장·천문·수학에 능통하였으며, 위징魏徵과 함께 『隋書』를 편찬하였다. 왕명에 따라 고증학자 안사고顔師古 등과 더불어 오경五經 해석의 통일을 시도하여 『五經正義』 170권을 편찬하였다.
  10. 10)정현鄭玄 : 후한後漢 시대의 대학자. 경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일대를 풍미했으며, 삼경三經을 비롯하여 『儀禮』·『孝經』·『論語』·『尙書大傳』 등 많은 경전의 주서註書를 남기고, 그 밖에도 천문天文·예설禮說 등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後漢書』 권65.
  11. 11)자하산방紫霞山房 : 정약용이 유배되었을 때 머물던 곳으로 그의 별호를 자하산인紫霞山人이라고 한 것도 이로 인해 지어진 것이다.
  12. 12)『論語』 「學而」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13. 13)투호投壺 : 항아리 속에 화살을 던져 넣어 이기고 짐을 겨루는 놀이인데, 전하여 투호 등속의 유교적인 예법을 뜻하기도 한다.
  14. 14)향사鄕射 : 옛날에 마을에서 활을 쏘면서 술을 마시던 의례이다.
  15. 15)유자有子 : 성명은 유약有若이며 자字는 자유子有이다. 노魯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이다.
  16. 16)『論語』 「學而」편에서, “유자가 말하기를, ‘믿음이 의로움에 가까우면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으며, 공손함이 예에 가까우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라고 했다.(有子曰。 信近於義。 言可復也。 恭近於禮。 遠恥辱也。)”라고 하였다.
  17. 17)곡삭告朔 : 옛날 천자가 매년 계동季冬에 다음 해 열두 달의 책력을 제후에게 나눠 주면, 제후는 이것을 받아서 선조의 종묘에 간직해 두고 매달 초하루에 양羊의 희생을 바치고 종묘에 고한 후 그 달의 책력을 꺼내어 정사를 펴던 일. 노魯나라의 문공文公 때에 이르러 이런 일은 없어지고 다만 양을 바치는 습관만 남게 되었다.
  18. 18)자공子貢 : 춘추 때 위衛나라 사람. 성은 단목端木이며, 이름은 사賜이다. 공자의 제자로 말을 잘하였다. 『논어』 「八佾」편에서, “자공이 말하기를, ‘곡삭에 쓰는 희양을 없애려고 합니다’라고 했다.(子貢曰。 欲去告朔之餼羊。)”라고 한 말을 거론한 것이다.
  19. 19)「옥조玉藻」 : 『예기』의 편명으로 천자의 면류관冕旒冠과 곤룡포袞龍袍에 관한 기록이다.
  20. 20)『詩經』 「周南」 〈關雎〉를 말한다.
  21. 21)연주래延州來 계자季子 :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계찰季札을 말한다. 그가 처음엔 연릉延陵에 봉해졌다가 뒤에 주래州來에 봉해졌으므로 이른 말인데, 그는 중원中原의 여러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국풍들을 구경했었다. 『左傳』 「昭公」 27년.
  22. 22)송宋나라 순희淳熙 2년(1175) 육상산과 주희가 여동래呂東萊의 주선으로 신주信州 아호사鵝湖寺에서 만나 학풍學風에 관해 3일 동안 토론했으나 끝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결렬되었는데, 박람한 뒤 요약(博約)하려고 한 주희는 육상산을 태간太簡 공소空疏하다고 비판하였고, 우선 본심本心을 밝혀야 함(簡易)을 강조한 육상산은 주희를 지리支離하다고 비판하였다.
  23. 23)『능엄경』 제1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24. 24)상동.
  25. 25)위의 책 제2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26. 26)위의 책 제3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27. 27)상동.
  28. 28)위의 책 제4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29. 29)『능엄경』 제4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30. 30)낙서구궁洛書九宮 : 하夏나라의 우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있었다고 하는 46점으로 된 무늬. 이른바 구궁九宮은 그 무늬의 2·4가 어깨가 되고, 6·8은 발이 되며, 좌는 3이고, 우는 7이며, 9는 이고 있고, 1은 밟고 있으며, 5는 중앙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31. 31)옹방강翁方綱 : 1733~1818. 청나라의 서예가요 학자로, 자는 정삼正三, 호는 담계覃溪·소제蘇齊이다. 1752년에 진사에 오른 뒤, 여러 성省의 학정學政을 거쳐 북경으로 돌아왔으며, 『四庫全書』의 찬수관纂修官을 지냈고, 내각학사內閣學士가 되었다. 서書는 당인唐人의 해행楷行과 한비漢碑의 예법隸法을 배우고 일가를 이루었다.
  32. 32)수동壽童 :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므로 나이 많은 아이라고 말하였다.
  33. 33)이 구절은 다산茶山을 가리킨다.
  34. 34)진도珍島의 감목관監牧官 이태승李台升은 곧 이서표李瑞彪의 아들인데 한번 만나서는 곧 벗이 되어 밤낮으로 싫도록 술을 마셨다.
  1. 1)「詩文略鈔」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