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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09_b_16L연파 노스님 유고집 발문(蓮坡老師遺集跋)옛말에 이르기를,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덕이 있는 사람은 입으로 말을 쏟아내어 시와 문장을 짓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문詩文은 진실로 불도를 수행하는 집안에서는 본분의 일이 아니라 여가가 있을 때 하는 일이다. 오직 선정禪定의 영액靈液(정수)을 닦다가 부득이하여 인간 세상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와 고려 사이의 고승들도 역시 많은 시문을 남겨 아직까지 이 세상에 나돌고 있다.연파蓮坡 노스님은 근대에 태어난 드문 인재로, 출가하고부터 경학에 마음을 두었을 뿐 저술은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학사들이 많이 찾아와 풍도風度를 듣고 서로 시문을 주고받았다. 아무렇게나 내뱉어도 주옥 같은 글이 되었는데, 문인들이 찾아 모으는 것까지 금하진 못했다. 그 약간의 유고를 살펴보니 담긴 뜻을 표현함이 맑고 심원할 뿐더러 꾸미거나 윤택하게 한 흔적이 전혀 없어 -
010_0709_b_16L蓮坡老師遺集跋
010_0709_b_17L古語有曰。有德者。必有言。謂其有德者。
010_0709_b_18L發於口而爲詩若文也。然詩文之能。固釋
010_0709_b_19L家之餘事。惟其脩養禪定之靈液。不得已
010_0709_b_20L而流露于人世。故羅麗間高僧。亦多詩文
010_0709_b_21L之遺。行於世尙矣。蓮坡老師。間生于近
010_0709_b_22L代。自出家。潛心經學。不喜著述。學土多
010_0709_b_23L至。聞風酬唱。涕唾珠玉。不禁門人之攟
010_0709_b_24L拾。觀其略干之遺稿。寄意淸遠。絕去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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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09_c_01L성큼성큼 옛사람의 경지에 들어갔으니, 곤륜산의 옥 조각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 값진 것과 같다고 말할 만하다.우리 동방의 나라에 명성이 있고 덕 높은 스님들이 시로 인해 소문이 난 이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이름이 나라 밖을 건너지는 못했다. 오직 우리 노장 스님의 시초詩抄만이 중국에까지 전해져서 건륭乾隆과 가경嘉慶 연간에 거수鉅手와 명조名曹들 모두로부터 부러워하는 찬탄을 샀다. 관각館閣 옹방강翁方綱과 같은 분도 얻기 힘든 인재를 얻었다 하여 몹시 기뻐하였고, 서로의 형상을 잊고 교분을 맺을 뜻을 보였으며, 자신이 직접 그린 담계覃溪의 초상과 동파東坡의 소상小像, 그리고 『복초재시집復初齋詩集』 6책, 손수 쓴 『금강경』 1부를,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연경燕京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편에 보내왔으니, 지금까지도 두륜산 산중에 보관되어 있다. 이는 일찍이 없었던 인연이니, 그 시의 품격이 매우 뛰어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었겠는가?변려문에는 더욱 뛰어난 솜씨가 있어서 격식과 율법이 정밀하고 엄격하였다. 이 때문에 다산 정약용이 「대둔사 비각 다례 축문大芚寺碑閣茶禮文」을 읽고 찬양하며 말하기를, “이 편篇은 바로 관각館閣의 큰 문장가가 지은 것 같아 이윤보李閏甫와 임이호林彜好의 빼어난 문장을 이을 만하다. 글자마다 치달리고 글귀마다 용솟음치는 것 같음을 느끼곤 했으니, 나물과 죽만 먹는 승려의 어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로 보건대 노스님은 참으로 덕을 지니신 분이라 하겠다. 그 말씀하신 시와 글들이 비록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이에 스님의 후손(雲仍)인 경허 취운鏡虛翠雲 공이 여러 문도들과 협의하여 그 유고를 간행하여 영원토록 먼 후세에 남기기를 도모하려고 하였다. 나도 또한 그 문하에 속하니,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어 손을 씻고 삼가 권말에 이 글을 쓴다.세존 기원 2947년 경신년(1920) 4월 일 불초不肖 문손門孫 원응 계정圓應戒定이 삼가 쓴다. -
010_0709_c_01L澤。駸駸入古人室。可謂崑山片玉。愈寡
010_0709_c_02L愈珍。我東名宿。以詩有聞者。不爲不多。
010_0709_c_03L而其名不踰方域矣。惟我老師詩抄。流入
010_0709_c_04L中原。乾嘉間。鉅手名曹。咸發羨企之歎。
010_0709_c_05L至若翁閣學方綱。深喜難得。爲表忘形之
010_0709_c_06L契。以自寫覃溪肖像。東坡小像。及復初
010_0709_c_07L齋詩集六册。手書金剛經一部。寄送金阮
010_0709_c_08L堂正喜。燕使回便。至今藏存頭輪山中。
010_0709_c_09L寔未曾有緣也。非其詩品超倫。焉能如是。
010_0709_c_10L尤工於騈儷文。格律精嚴。故丁茶山鏞。
010_0709_c_11L見其大芚寺碑閣茶禮文。讚曰。此篇是館
010_0709_c_12L閣大手。能嗣。李閏甫。林彜好之絕響。覺
010_0709_c_13L字字跳盪。句句聳疎。非復蔬笋口氣者也。
010_0709_c_14L由是觀之。老師眞有德者。其發言之詩若
010_0709_c_15L文。雖欲不聞於世。安可得乎。玆者。雲仍
010_0709_c_16L鏡虛翠雲公。協議諸門徒。期欲繡梓其遺
010_0709_c_17L稿。圖永遐世。余亦忝其門下者。不勝隨
010_0709_c_18L喜。盥手謹書于卷末。
010_0709_c_19L世尊紀元二九四七年庚申四月日。不
010_0709_c_20L肖門孫圓應戒定謹書。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두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