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아암유집(兒庵遺集) / 兒菴遺集卷之二

ABC_BJ_H0243_T_003

010_0696_b_02L
아암유집 제2권(兒菴遺集卷之二)
문文
두륜산 만일암 중건 상량문頭輪山挽日菴重建上樑文
대개 들으니 황룡사黃龍寺에서 경전에 주소註疏를 쓰니 채색 구름이 방에 가득 차는 감응이 있었고,1) 호구산虎丘山에서 법을 설하니 굳센 돌들이 법상法床을 부러뜨린 징험2)이 있었습니다. 지난 일들이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 같으나 도道는 황당한 속임이 아니니, 그런 까닭에 이인異人이 등기騰起하고 바른 가르침이 성대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1만 폭포가 다투어 흘러서 초제招提(사찰)의 경내에 두루 놓이고, 1천 봉우리는 수려함을 다투어 찬패讚唄의 단상을 항상 선양합니다. 장춘동長春洞 만일암挽日庵과 같은 경우는 호남 외곽의 명승지요, 숲 속에 있는 선원禪苑에는 신령한 샘물이 땅에서 솟아오르니 금쇄로金鎖老의 조부調符3)를 여러 번 맞이하였고, 오래된 탑이 하늘에 높이 솟아 있으니 일찍이 옥룡玉龍(道詵) 국사가 자취를 남기셨던 곳입니다.
층층의 바위는 우뚝 솟아 험준함이 마치 해를 휘두르는 창과 같고, 첩첩한 산마루는 흡사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같습니다. 가을 풍광의 새벽 기운은 8만 권의 경전 제목(經題) 아닌 것이 없고, 푸른 잣나무 누런 버들은 모두 다 무수한 문門의 공안公案입니다. 산 중턱에 모셔진 나한羅漢은……(결락)……신물神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석면石面의 발타勃陀4)는 아름다워서 인천人天들에게 둘러싸입니다. 수의銖衣5)를 두른 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철적鐵笛6)이 밤에 울립니다. 법당에 옮겨 가서 남전南泉 노장님의 고양이를 베고,7) 벽을 향해 앉아서 조주趙州 스님의 구자狗子 화두를 염念합니다. 어지러이 떠도는 구름과 야들야들한 풀은 연소延沼8)의 맑은 법언을 아뢰고, 오래된 시내와 푸른 소나무는 부산浮山9)의 미묘한 견해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들보는 틀어지고 기둥은 흔들리니, 아! 슬프옵니다. 위에서는 비가 새고 옆에서는 바람이 들어옵니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눈썹을 찡그리지만 경릉竟陵10)의 꿈은 성취하기 어려우며, 덕 높은 선승禪僧들은 발걸음을 금하였으니, 현도玄度11)의 종적을 따르지 못합니다. 북은 찢어지고 종은 삭아서 삼관三關12)의 종지를 이미 잃어버렸고, 당기幢旗는 기울어지고 번기幡旗는 거꾸러졌으니 구대九帶13)의 기연機緣은 완전히 비고 말았습니다.

010_0696_b_02L兒菴遺集卷之二

010_0696_b_03L

010_0696_b_04L頭輪山人惠藏無盡氏著

010_0696_b_05L

010_0696_b_06L頭輪山挽日菴重建上樑文

010_0696_b_07L
盖聞龍寺疏經感綵雲之盈室虎丘說
010_0696_b_08L驗頑石之折床事若杳茫道非荒
010_0696_b_09L故異人騰起正敎蔚興萬瀑爭流
010_0696_b_10L遍置招提之院千峯競秀常宣讚唄之
010_0696_b_11L至若長春洞挽日庵者湖外名區
010_0696_b_12L林中禪苑靈泉湧地累迎金鎻老之調
010_0696_b_13L古塔凌空曾引玉龍師之遊屐
010_0696_b_14L巖竦峻渾如揮日之戈疊嶺雕鎪
010_0696_b_15L如補天之柱秋光曙氣無非八萬卷之
010_0696_b_16L經題翠柏黃楊摠是百千門之公案
010_0696_b_17L山腰羅漢 神物之後先石面勃陀
010_0696_b_18L蔚人天之圍繞銖衣雲集鐵笛宵鳴
010_0696_b_19L移堂割泉老之猫向壁念趙州之狗
010_0696_b_20L雲芳草奏延沼之淸言古㵎靑松
010_0696_b_21L浮山之竗解不幸推 [2] 梁而撓棟嗟乎
010_0696_b_22L上雨而傍風大衆皺眉難就竟陵之夢
010_0696_b_23L高禪禁足未追玄度之蹤鼓死鐘沈
010_0696_b_24L已失三關之宗旨幢傾幡倒全空九帶

010_0696_c_01L
이에 자암慈菴14)과 은봉隱峯15) 두 노장 선사가 촛불을 켜고 함께 맹세하고 향을 사르면서 서원을 맺었습니다. 그리고는 묵어서 거칠어진 땅을 개척하고 우뚝 솟은 법당을 새로 바꾸었으니, 신도(信士)들은 정성을 다 기울여서 삼베·금·돈·칼 같은 물질을 보시하고, 훌륭한 장인들은 가지고 있는 솜씨를 다하여 도끼·낫·톱·대패 같은 것을 들고 절을 지었습니다.
앞면을 높다랗게 열어 오가는 강물의 달을 맞이하였고, 난간을 넓게 열어서 지금과 옛날의 바위에 낀 구름을 대하였습니다. 대나무 평상을 많이 벌여 놓고 편안하게 앉으면 풍신風神이 한산하고 밝으며, 방석을 가지런히 깔아 놓고 거기에 올라앉으면 마음의 실마리가 엄숙하고 한가해집니다.
이에 육위六偉의 노래를 지어 널리 시방의 대중들에게 고하나니, 그 시는 이러합니다.

拋梁指東         대들보 동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玉削三峯         세 봉우리를 옥으로 깎은 듯하네.
老僧面壁         노장 스님이 면벽을 하니
蘿月松風         넝쿨 사이로 달 비추고 솔바람 부네.
拋梁指南         대들보 남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彌勒精藍         미륵보살을 모신 정람精藍이로다.
雞山瓶鉢         계족산雞足山의 물병과 발우를 가지고
龍華大參         용화세계에 크게 참예하리라.
拋梁指西         대들보 서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溪鳥羣棲         냇가에 새들이 떼를 지어 깃드네.
我入我室         나도 내 방으로 들어가
法喜爲妻         법희法喜로 아내를 삼네.
拋梁指北         대들보 북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高髻崱㞧         뾰족한 상투처럼 우뚝하고
三界循環         삼계三界가 순환하여
一陽爲復         일양一陽이 다시 돌아오네.
拋梁指上         대들보 위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衆星昭朗         숱한 별들 밝고 찬란하며
端明所喟         단아한 광명을 토하니
精芒颯爽         정망精芒이 시원하고 상쾌하네.
拋梁指下         대들보 아래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紅泉暗寫         꽃에 붉게 물든 샘이 가만히 비치네.
流出人間         인간 세계에 흘러나와
浸彼沃野         비옥한 들을 적셔 주네.

엎드려 생각하건대 지금부터 이후로는 바다에 떠도는 요망한 기운은 영원히 사라지고, 제향帝鄕(皇城)의 어진 교화 멀리까지 미치게 하소서. 최상의 덕을 지닌 이와 최상의 근기를 지닌 사람들은 곧 조용히 불자(麈)를 잡고, 선남자와 선여인은 급히 따라 기뻐하며 어여쁜 꽃을 따게 하소서. 하얀 연꽃의 향기는 염불의 풍유風猷를 사라지지 않게 하고, 누런 매화 열매는 익어 참선의 공덕이 외롭지 않게 하소서. 비취와 가릉빈가는 이리저리 날아서 내려앉고, 구름 수레와 바람 말이 엄숙하고 화목하게 임하게 하소서.평론하기를, “당송唐宋의 변려문駢儷文은 율격이 정밀하고 엄숙하였는데, 뜻밖에 왕유王劉16) 일파가 산가山家에 출현한 것 같다.”라고 했다.
진도 쌍계사 시왕전 중수 상량문珍島雙溪寺十王殿重修上梁文

010_0696_c_01L之機緣於是慈菴隱峯兩禪老揷燭而
010_0696_c_02L尋盟炷香而結願更拓蓁荒之土
010_0696_c_03L新突兀之宮信士殫誠施布金錢刀之
010_0696_c_04L良工奏巧執斧斤鋸削之功正面
010_0696_c_05L高開邀去來之江月橫欄廣闢抗今
010_0696_c_06L古之巖雲竹榻森羅宴坐則風神散朗
010_0696_c_07L蒲團齊整登臨則意緖蕭閒玆陳六偉
010_0696_c_08L之謠普告十方之衆詩曰

010_0696_c_09L拋梁指東玉削三峯老僧面壁蘿月
010_0696_c_10L松風拋梁指南彌勒精藍雞山瓶鉢
010_0696_c_11L龍華大參拋梁指西溪鳥羣棲我入
010_0696_c_12L我室法喜爲妻拋梁指北高髻崱㞧
010_0696_c_13L三界循環一陽爲復拋梁指上衆星
010_0696_c_14L昭朗端明所喟精芒颯爽拋梁指下
010_0696_c_15L紅泉暗寫流出人間浸彼沃野

010_0696_c_16L
伏惟繼自今以徃海徼之妖氛永息
010_0696_c_17L鄕之仁化遐沾上德上機乃從容以握
010_0696_c_18L善男善女遽隨喜以採芳白藕花
010_0696_c_19L念佛之風猷未泯黃梅子熟叅禪
010_0696_c_20L之功德不孤翡翠伽陵紛紜而下降
010_0696_c_21L雲車風馬肅穆而來臨評曰唐宋儷文律格
精嚴不意王劉一派
010_0696_c_22L落在
山家

010_0696_c_23L

010_0696_c_24L珍島雙溪寺十王殿重修上梁文

010_0697_a_01L
원래 저 서쪽 나라에서 전해 온 패엽경貝葉經은 5만 8천 리 먼 곳에서 건너왔고, 우담발화優曇鉢花가 동쪽나라에 나타나 드리워서 동토東土 6조祖와 서천西天 28조가 덩굴처럼 뻗어났습니다. 그 도의 됨됨이는, 크고 작음이 서로 용납하고, 일一과 다多가 자재自在합니다. 신통한 공력이 넓고 커서 찰토刹土를 변화하여 금은으로 만들고, 미묘한 작용은 심오하고 그윽하여 강하江河를 휘저어서 소락酥酪(煉乳)으로 만듭니다. 음계陰界를 버렸으나 죽지 않아 마치 땔감이 다 타도 불씨는 남아 있는 것과 같고, 업業을 따라 다시 생겨남이 흡사 누에가 죽어서 나비가 되어 춤을 추는 것과 같습니다.
분한 마음이 홀연히 일어나면 7일 동안 사는 작은 벌레의 신세를 피하기 어렵고, 경전의 가르침을 잘못 전하면 천 년 묵은 요망한 짐승이 되는 것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구름이 바위 위에 자욱하니 원택圓澤17)을 보내고 맞이함을 기뻐하고, 못 속에 꽃이 피니 미타彌陁의 접인接引을 더디게 합니다. 이미 좌랑佐郞이 학鶴이 된 징험이 있었지만,18) 차율次律19)이 승려가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만합니다.
메아리는 소리로부터 생겨나고 그림자는 형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혼령이 육도六道에 떠도는 것은 시왕十王의 명命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검수劍樹지옥과 도산刀山지옥을 만들어 죄 지은 이를 징계하고 선한 사람을 권장하며, 구리 평상(銅床)과 쇠기둥(鐵柱)을 가加하여 도를 엄밀하게 하고 법을 공평하게 합니다. 말의 얼굴과 소의 머리를 한 옥졸은 방망이와 재갈을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야차와 나찰은 씌우는 칼 형틀과 쇠사슬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합니다. 귀신의 울음소리는 앵앵거리고 업의 바람은 스산(瑟瑟)합니다.
이에 염부제의 사람들이 혹은 나무를 깎고 혹은 흙으로 빚어 불상을 만들어서 그 불상을 안치하여 혼령을 편안하게 하며, 이에 기도를 하고 정성을 다하여 반드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니, 양계陽界(인간 세상)에서 위엄을 떨치고 풍도酆都(저승)에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 쌍계사 시왕전은 그 이름이 강호에 떨쳤고, 교화가 진토塵土를 적셨습니다. 명부전冥府錢20)을 찍어내고 과실을 차려 올리고는 전세에 인연 갚기를 바라며, 다음 세상에 태어날 몸이 갈 길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황금 가마와 옥 수레는 사방에서 오르내리며, 붉은 노을과 채색 구름이 온 실내에 날아오릅니다.
아! 슬프다.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있게 되는 것은 이수理數(天理)의 필연이요, 이루어졌다가 허물어지고 허물어졌다가 이루어지는 것은 일의 공에 있어서 으레 그런 것입니다. 이 절은 지은 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 사찰의 형태가 나날이 기울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에 경린敬璘이라는 비구가 보림사寶林寺에서 머리를 깎고 진도에 몸을 붙여 살고 있었습니다.

010_0697_a_01L
原夫貝葉西來經五萬八千之綿邈
010_0697_a_02L花東現垂二三四七之蔓延其爲道也
010_0697_a_03L大小互容一多自在神功浩瀚變刹
010_0697_a_04L土而作金銀妙用深玄攪江河而爲酥
010_0697_a_05L捨陰不死類薪盡而火傳隨業還
010_0697_a_06L若蠶劉而蝶舞恚心忽起難逃七
010_0697_a_07L日之細蟲經敎謬傳未免千年之妖獸
010_0697_a_08L雲迷石上喜圓澤之送迎花發池中
010_0697_a_09L遲彌陁之接引旣驗佐郞之爲鶴可疑
010_0697_a_10L次律之是僧響自聲生影隨形至
010_0697_a_11L以遊魂六道俟命十王設劍樹刀山
010_0697_a_12L罪者懲而善者勸加銅床鐵柱道之密
010_0697_a_13L而法之公馬面牛頭執槌鉗而先後
010_0697_a_14L夜叉羅刹嚴枷鎖而去來鬼哭嚶嚶
010_0697_a_15L業風瑟瑟於是閻浮提人或彫或塑
010_0697_a_16L特安像而妥靈乃禱乃虔必穰災而求
010_0697_a_17L施威於陽界莅位於酆都今夫雙
010_0697_a_18L溪寺十王殿者名擅江湖化沾塵土
010_0697_a_19L印錢薦果要酬前世之緣燃紙獻花
010_0697_a_20L佇見後身之路金輿玉輅陟降於四方
010_0697_a_21L紅靄綵雲飛揚於一室嗚呼有而無
010_0697_a_22L無而有理數之必然成而毁毁而成
010_0697_a_23L事功之固矣經營年久制度日傾
010_0697_a_24L有敬璘比丘削髮於寶林棲身於珍島

010_0697_b_01L
그가 정전正殿을 수리하기로 맹서하고 지혜의 힘으로 바람처럼 실천에 옮겨 단문檀門(시주)에 간절하게 구하니, 신도들의 마음이 바람에 풀이 쓰러지듯이 모여들었습니다. 곡식이 쌓이고 목공들은 부르지 않아도 찾아들며, 금전이 쌓이고 기와는 나르지 않아도 저절로 왔습니다. 큰북과 작은북이 일제히 울리고 도끼와 낫을 번갈아 드니, 지난날에 쓸쓸했던 시기를 탄식하고 오늘날의 성대함을 경하慶賀하였습니다.
위로는 진광대왕秦廣大王을 비롯하여 전륜대왕轉輪大王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왕을 모셨고, 아래로는 장군으로부터 동자童子에 이르기까지 많은 명부의 관리들을 모셨습니다. 공을 이룸이 저와 같으니 공덕을 칭송할 책임이 나에게 있으므로 시를 지어 올립니다.

拋梁指震         대들보 진방震方(동)을 가리키며 던지니
層峯萬仞         층층의 산봉우리 만 길이나 되네.
塞外淸平         변방 바깥이 맑고 태평하니
一烽傳信         봉화 올려 그 소식을 전하네.
拋梁指离         대들보 이방离方(남)을 가리키며 던지니
鷲嶺透迤         영취산靈鷲山 봉우리가 구불구불하네.
老僧無事         노장 스님들은 아무 일 없어
林下圍碁         숲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네.
拋梁指兌         대들보 태방兌方(서)을 가리키며 던지니
碧林晻藹         푸른 숲이 어둑어둑 가리네.
反照入江         석양빛이 강물에 드니
光飜山外         광채가 산 밖에 반짝이네.
拋梁指坎         대들보 감방坎方(북)을 가리키며 던지니
雲深石噉         구름은 짙게 끼고 돌은 빼곡하네.
獨鳥向人         외로운 새는 사람을 향하여
時供菡萏         수시로 연꽃(菡萏)을 공양하네.
拋梁指天         대들보 하늘 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赤道如椽         적도赤道가 서까래를 닮았네.
日行近北         해는 북쪽 가까이로 행하니21)
茂我原田         우리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네.
拋梁指地         대들보 땅 쪽을 가리키며 던지니
浮空如墜         하늘이 떨어진 듯 넓기만 하네.
傍帶南溟         곁에는 남쪽 바다를 끼고 있으니
大鵬時至         대붕大鵬이 때가 되면 이르겠지.

엎드려 생각하건대 혼령을 편안하게 모신 뒤에 범패가 산을 뒤흔들고, 범종梵鍾과 목어木魚가 땅을 진동하니, 온 나라가 마음이 넓어져 여유가 있고 바다처럼 넓은 은혜를 입게 하시고, 쌍궐雙闕이 우뚝 높게 솟아 수명이 저 높은 산과 가지런하게 하여 주소서.
대둔사 비각 다례 축문大芚寺碑閣茶禮祝文
엎드려 생각하건대 자비한 마음이 멀고 아득하여 천추千秋에 사리(設利)를 남기셨고, 서원의 힘 크고 깊어 여러 절에 부도를 세웠습니다. 멀리 서천西天의 가르침을 받들고 크게 남종南宗을 열었습니다.
오직 우리 서산西山 노스님께서는 1만 군진軍陣의 오랑캐들을 무찌르셨는데, 비유하면 흡사 허공에 가득한 모기나 등에를 잡듯이 하였으며, 1천 가문의 호걸들 보기를 진정 물그릇 속에 가득한 하루살이처럼 여겼습니다.
사명四溟 선사와 같으신 분은 머리는 깎으셨으나 수염은 남겨 두시어 장부의 표상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위험한 지역을 누비시면서 보살의 가풍을 전하셨습니다.

010_0697_b_01L誓修正殿慧力風行懇乞檀門信心
010_0697_b_02L草偃積粟兮工不言而至堆金兮
010_0697_b_03L無脛而來鼛鼓齊鳴斧斤交擧嗟往
010_0697_b_04L日之蕭索賀今時之奐輪上奉列王
010_0697_b_05L始秦廣而終轉輪下安羣吏自將軍而
010_0697_b_06L至童子成功如彼頌德在余詩曰

010_0697_b_07L
拋梁指震層峯萬仞塞外淸平一烽
010_0697_b_08L傳信拋梁指离鷲嶺透迤老僧無事
010_0697_b_09L林下圍碁拋梁指兌碧林晻藹反照
010_0697_b_10L入江光飜山外拋梁指坎雲深石噉
010_0697_b_11L獨鳥向人時供菡萏拋梁指天赤道
010_0697_b_12L如椽日行近北茂我原田拋梁指地
010_0697_b_13L浮空如墜傍帶南溟大鵬時至

010_0697_b_14L
伏惟妥靈之後梵唄振山鍾魚動地
010_0697_b_15L一邦皥皥被如海之恩雙闕巍巍
010_0697_b_16L齊山之壽

010_0697_b_17L

010_0697_b_18L大芚寺碑閣茶禮祝文

010_0697_b_19L
伏以悲心緬邈留設利于千秋願力弘
010_0697_b_20L建浮屠于諸刹遠承西敎大闡南
010_0697_b_21L惟我西山老師鏖萬陳之蠻夷
010_0697_b_22L似滿空之蚊蚋睨千家之豪傑正如盈
010_0697_b_23L缶之蠛蠓至若泗溟禪師削髮存髯
010_0697_b_24L不棄丈夫之表履危蹈險能傳菩薩之

010_0697_c_01L또한 우리 소요逍遙 스님 이후로 여러 선사들께서는 진흙 소에 빗대어 현묘한 뜻을 희롱하셨고, 옥으로 만든 불자拂子로 참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靈因旣著涕簌簌而聽經   영인靈因이 이미 이르러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경전을 듣고
至樂爰深          지극한 즐거움이 깊었으니
杵銎銎而動戺       절굿공이가 쿵쿵 소리 내어 집 모퉁이를 흔드셨네.
화악華嶽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華嶽大師)

猊頭設座集大衆於金山   사자 머리 모양의 법상法床을 시설하니 금산金山에 대중들이 모이고
鰲背乘槎濟迷倫於水國   자라 등 같은 뗏목을 타고 수국水國의 미혹한 중생들을 건지셨네.
환성喚醒(志安)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喚醒大師)

文章鳴世         문장은 온 세상에 떨치셨고
風度驚人         풍도風度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셨네.
연담蓮潭(有一)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蓮潭大師)

月照丹崖         달이 붉은 언덕을 비출 때에
步杏臺而喝虎       행대杏臺를 걷다가 호랑이를 꾸짖으셨네.
정암晶巖(則圓)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晶巖大師)

烟籠碧沼         노을이 푸른 못을 뒤덮었을 때에
遊竹塢而飼魚       대나무 밭 언덕을 노닐면서 물고기에게 밥을 먹이셨네.
송파松坡(覺暄)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松坡大師)

孕感孤星夢呑雙玉     고성孤星의 감응으로 꿈에 한 쌍 옥을 삼키고 잉태하였네.
응성應星(旻訓)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應星大師)

拈鎚示衆         쇠방망이 뽑아들어 대중들에게 보이면서
論格外之高談       격식 밖의 고상한 진리를 논하셨네.
만화萬化(圓悟)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萬化大師)

擊皷聞天         북을 두드려 하늘까지 들리게 하고
族人間之偉績       인간 세상의 위대한 업적을 알리셨네.
춘계春溪(天黙) 대사에 대하여 서술함(叙春溪大師)

다만 여기 장춘동長春洞은 실로 여러 대에 걸쳐 내려온 도량이어서 층층으로 이루어진 보탑寶塔은 한 구역의 언덕에 교착되어 있고, 수많은 풍비豊碑는 아홉 구비 다리 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벽옥 찻잔은 오히려 새롭고, 해맑은 구슬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오래된 사당은 우뚝 솟아 충분히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킬 만하고, 남겨 준 영정은 청아하고 고상하여 정성을 나타내어 예를 올릴 만합니다. 이에 꽃과 과실을 진설하고, 또한 떡과 차를 올리오니 흠향하소서.다산 초자茶山樵者가 이르기를, “이 편篇은 바로 관각館閣22)의 큰 문장가가 지은 것 같아 이윤보李潤甫와 임이호林彜好의 빼어난 문장을 이을 만하다. 내가 항상 산속 암자에서 조금 취하기만 해도 무릎을 치며, 시를 읊을 적에 글자마다 치달리고 글귀마다 용솟음치는 것 같음을 느끼곤 했으니, 나물과 죽순만 먹은 승려의 어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화악 대사 비명과 서문(華嶽大師碑銘)
화악 대사는 새금현塞琴縣 화산방花山坊23) 출신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대둔사大芚寺에서 머리를 깎았다. 돌아보건대 그는 바탕이 노둔하고 무식하여 가래(鏵臿)·괭이(鐝)·쟁기(鐴) 따위의 농기구를 팔아서 겨우겨우 죽을 끓여 연명하면서 생계를 이어 나가니, 비록 나막신을 만드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하루는 너무도 피곤해서 상원루上院樓 밑에 이르러 짐을 벗어 놓고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 누각에서는 취여 삼우醉如三愚 선사가

010_0697_c_01L至我逍遙以來諸先師弄玄旨於泥
010_0697_c_02L悟眞心於玉塵靈因旣著涕簌簌
010_0697_c_03L而聽經至樂爰深杵銎銎而動戺叙華嶽
大師

010_0697_c_04L猊頭設座集大衆於金山鰲背乘槎
010_0697_c_05L濟迷倫於水國叙喚醒
大師
文章鳴世風度驚
010_0697_c_06L叙蓮潭
大師
月照丹崖步杏臺而喝虎叙晶
巖大
010_0697_c_07L
烟籠碧沼遊竹塢而飼魚叙松坡
大師

010_0697_c_08L感孤星夢呑雙玉叙應星
大師
拈鎚示衆
010_0697_c_09L格外之高談叙萬化
大師
擊皷聞天族人間
010_0697_c_10L之偉績叙春溪
大師
第此長春之洞府實爲
010_0697_c_11L累世之道場寶塔層層交錯一區之堮
010_0697_c_12L豊碑鬱鬱幷攅九曲之橋碧椀猶新
010_0697_c_13L明珠如昨古祠突兀足興寓敬之心
010_0697_c_14L遺像淸高可作表誠之禮茲陳花菓
010_0697_c_15L且薦餅茶尙饗茶山樵者云此篇是館閣大手
能嗣李潤甫林彜好之絕響
010_0697_c_16L每山菴小醉爲之擊節高唱覺字
字跳盪句句聳竦非復蔬箰口氣

010_0697_c_17L華嶽大師碑銘并序

010_0697_c_18L
華嶽大師者塞琴縣之花山坊人也
010_0697_c_19L年出家於大芚寺落髮顧椎鹵無識
010_0697_c_20L爲留販鏵臿鐝鐴之屬行且粥以取飽
010_0697_c_21L雖捆屨者皆賤之一日憊甚至上院
010_0697_c_22L樓下捨擔而休焉時醉如三愚禪師

010_0698_a_01L대중들을 모아 놓고 『화엄경』의 종지宗旨를 강론하고 있었다. 화악 대사는 누각 판때기 아래에 있으면서 훔쳐 듣고는 그 자리에서 단박에 깨닫고, 지고 가던 농기구를 하나도 남김없이 같이 장사하던 친구에게 넘겨주고, 누각으로 올라가 꿇어앉아 눈물을 흘리는데 비가 쏟아지듯 하여 그치지 않았으며, 과정課程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니, 이날 사방에 앉아 있던 모든 대중들이 쇄연洒然해졌다.
마침 대둔사에 토목공사가 있었는데, 대사가 낮에는 도끼질과 벽 바르는 일을 돕고, 날이 저물면 돌아와서 솔방울을 주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밤이 새도록 불서佛書를 읽었다. 이윽고 3년이 지나자 그와 같이 공부하던 도반들은 모두 뒤로 처지고 말았다. 스님은 구름처럼 사방을 돌아다니며 참오參伍24)하여 인증引證을 받았고, 마침내는 취여醉如 스님의 조실祖室에서 염향拈香25)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에 그의 문전에는 학문을 배우려는 사미들이 폭주하였다. 대둔사에서 강론 법회를 크게 여는 날이면 학자들이 천여 명에 달했다.
그 당시 북방에서 월저月渚(1638~1715) 선사가 이 소문을 듣고 대사를 찾아와 뵙고 그와 더불어 선지禪旨를 토론하였는데, 화악 선사께서는 월저 대사가 종주宗主가 될 만한 인물임을 알고, 거느리고 있던 모든 대중들을 월저 대사에게 다 양보하고 물러났다. 그러자 학인學人들이 크게 놀라 동요하니, 대사가 대중들을 타일러 말하였다.
“너희들이 알 만한 일이 아니니라.”
그리고는 월저 대사의 손목을 끌어서 강석講席을 그에게 내주고, 스스로 작은 방 하나를 청소하고 들어가 문을 닫고 월저 대사의 법회가 끝날 때까지 면벽面壁에 들어갔다. 월저 대사는 법회를 마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남쪽 지방에 갔다가 육신보살肉身菩薩을 친견하였다.”
만년에는 술을 매우 좋아해서 매일 밤마다 흠뻑 취하여 큰 절굿공이를 잡고 절 주위를 돌곤 하였다. 몇십 번을 돌고 나서 절굿공이로 계단 모퉁이와 마당의 물받이를 치니, 그 소리가 크게 울려 산골짜기를 진동하였다. 그러자 학인學人들은 두려워서 숨을 죽이고 감히 부엌을 나서지 못했다. 그 까닭을 물으면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막 열반에 들었을 때에 두륜산에 뇌성雷聲이 울렸는데, 다비를 마치고 나서 사리 2립粒을 얻었다.
대사의 속성은 김씨이고 법명은 문신文信이며, 강희康熙(淸 聖祖의 연호) 연간의 사람이다. 그가 법등法燈을 이어받고 전해 준 순서는 위로 서산 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네 번 점등點燈하였으며, 아래로 혜장惠藏 스님에 이르기까지 네 번 넘어간 사실을 보이는데, 대사는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비명을 지으니, 그 글은 이러하다.

有趙▼(庣+刂)疀         입만 열었다 하면
買䤥▼(口+雝)▼(口+雝)         농기구를 사라고 외치셨네.
迺釋其勮         무거운 짐 내려놓고
涕洟衡從         종횡무진 눈물을 흘리셨네.
餓不値餼         굶주려도 음식을 만나지 못했으니
害餲害饛         쉰 것인들 어떠하며 수북하면 어떠리.

010_0698_a_01L集大衆講華嚴宗旨大師在樓版下
010_0698_a_02L竊聽之立地頓悟悉以其所負田器
010_0698_a_03L付其伴而歸之升而跽涕簌簌不已
010_0698_a_04L請受課程是日四座洒然適大芚寺
010_0698_a_05L有土木之役大師晝相斤堊暮歸拾松
010_0698_a_06L墖子爇于竈徹夜讀佛書旣三年
010_0698_a_07L列皆殿雲遊四方參伍印證遂於醉
010_0698_a_08L如室中拈香於是沙彌輻湊芚寺大會
010_0698_a_09L之日學者千有餘人時北方月渚禪師
010_0698_a_10L亦聞風來謁大師與論禪旨知其可
010_0698_a_11L悉以其所領大衆讓于月渚學者
010_0698_a_12L大驚擾亂大師喩之曰微爾等所知也
010_0698_a_13L挈以予之自掃一室杜門面壁俾終
010_0698_a_14L其會月渚歸曰吾至南方見肉身菩
010_0698_a_15L薩云晩年縱酒甚每夜沈醉執大杵
010_0698_a_16L繞寺行十百遍以杵樁階戺庭霤
010_0698_a_17L聲凾胡噌吰震動山谷學者悚息
010_0698_a_18L敢出鼂而請其故哂而不答方示寂
010_0698_a_19L頭輪雷嗚旣茶毗得舍利二粒大師
010_0698_a_20L姓金氏法名文信康熙年間人也
010_0698_a_21L燈燈之緖上溯西山四點炷下至惠藏
010_0698_a_22L四見跋而大師中焉銘曰

010_0698_a_23L有趙𠝡疀買䤥𡄸𡄸迺釋其勮

010_0698_a_24L涕洟衡從饑不値餼害餲害饛

010_0698_b_01L蝃蝀夜隮         무지개가 밤에 떠오르니
碧落穹窿         푸른 하늘 그지없구나.
槽廠闃寥         쓸쓸하고 고요한 도량(槽廠)에서
醉杵銎銎         술에 취해 절굿공이 휘두르셨네.
知爾者寡         그의 뜻 아는 이 사람이 적어
褎如其聾         귀를 감싸고 귀먹은 척하네.
不若大驚         만약 크게 놀라지 않으면
萬壑生風         온 골짜기 바람이 이네.
百年而逅         백 년이 지난 뒤에야
照若發矇         소경의 눈 밝혀 주듯 하리라.

현해 선사 탑명과 서문(懸解禪師塔銘)
살아서는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직위에 올랐고, 죽어서는 그 호를 현해懸解라 한 스님은 두륜 산승 모윤慕潤이다. 살아서는 풍족하게 잘 먹고 입고 살았으며(齧肥), 죽어서는 사리가 나왔다(超骨). 살아서는 재물이 많더니 죽어서는 깨끗한 이름을 남겼기에 논객들은 이러한 것을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비명을 지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다.

骨旣超塔         사리 거두어 이미 높은 탑 세웠으니
斯屹跡則         그 흔적이 이처럼 우뚝 솟아 있네.
然理難詰         그러나 이치를 따지기는 어렵네.
동천에게 답함이하는 편지이다.(答東泉)
1
혜장惠藏은26) 근래 손님 영접이 빈번한 까닭에 아침저녁으로 분주하고 피로합니다. 문득 정우亭郵(驛站)의 작은 관리(小吏)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 스스로 가련하고 불쌍하기만 합니다. 반드시 이름을 바꾸고 자취를 감춰 오대산 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이와 같은 근심을 면할 듯합니다. 『주역약례周易畧例』27)는 삼가 이미 다 읽었습니다. 하지만 왕보사王輔嗣의 학문은 물상物象을 제외하고 호체互軆를 빠뜨린 데다 아울러 괘변卦變까지도 취하지 않았으니, 세 집 정도 사는 작은 마을의 선생이 되는 것조차 부족할까 걱정스럽습니다. 하물며 순상荀爽이나 우번虞翻28)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고루한 적막감만 느껴질 따름입니다.
2
편지를 받고 보니, 시율詩律에 마음을 두어 손님으로 온 벗의 요구에 응하라고 하셨습니다. 일깨워 주신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나, 다만 음풍영월吟風詠月은 사려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 같습니다. 장차 물병 하나 발우 하나만 가지고서 늙은 두타로서 그렇게 생활을 하려고 하오니, 저의 생각이 어떠한지요?
3
시율은29) 그만두려고 한 지 오래되었으나 마음이 굳세지 못하고 뜻도 안정되지 못한지라, 한창 익은 밤알이 땅에 쏟아지는 격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리하여 이에 보잘것없는 티끌 같은 시를 맑은 안목에 올리오니, 어떠합니까?

010_0698_b_01L蝃蝀夜隮碧落穹窿槽廠闃寥

010_0698_b_02L醉杵銎銎知爾者寡褎如其聾

010_0698_b_03L不若大驚萬壑生風百年而逅

010_0698_b_04L照若發矇

010_0698_b_05L

010_0698_b_06L懸解禪師塔銘并序

010_0698_b_07L
生而嘉善其爵死而懸解其號者頭輪
010_0698_b_08L山僧慕潤也生而齧肥死而超骨
010_0698_b_09L而高貨死而淸名論者奇之銘曰

010_0698_b_10L骨旣超塔斯屹跡則然理難詰

010_0698_b_11L

010_0698_b_12L答東泉以下尺牘

010_0698_b_13L
藏近因客擾朝暮奔勞便作亭郵小
010_0698_b_14L吏生活自憐自憐必也更名晦跡
010_0698_b_15L入五臺山中方免此患耳周易畧例
010_0698_b_16L謹已覽畢然王輔嗣之學外物象而遺
010_0698_b_17L互軆幷與卦變而不取以之爲三家村
010_0698_b_18L裏村夫子猶患不足況可以方駕荀虞
010_0698_b_19L正是孤陋之寂耳

010_0698_b_20L
承喩留心詩律以塞賓友之求所誨誠
010_0698_b_21L至當第唯吟風咏月不如無思慮
010_0698_b_22L欲將一瓶一鉢作老頭陁生活如何如
010_0698_b_23L1) [2]

010_0698_b_24L
詩律久欲謝却奈無堅心定志能造乾
010_0698_b_25L栗䭾地頭又茲奉塵淸賞耳如何如何

010_0698_c_01L
4
지난번 들으니 새로 편찬한 농서農書에 매우 훌륭한 이치가 담겨 있다 하는데, 합석하여 참관參觀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럽습니다.
빈도는 날마다 몽학蒙學의 비구들과 더불어 힘겹게 씨름을 하느라 한동안 신기神氣가 온통 괴로웠습니다. 어찌해야 바가바婆伽婆(부처)의 가피력을 입어 이 번뇌를 깨트릴 수 있겠습니까? 색성賾性30)도 또한 이미 집으로 돌아가 버려서 수고로움을 나눌 사람이 없고 보니 더욱 난감합니다.
원교員嶠31)의 서첩書帖은 두번 세번 들춰 감상하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배 위에 그어 보기도 하고 허공에다 써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소림少林에서 면벽하여 상승 열반에 드는 것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회소懷素32)는 틀림없이 우리 불가佛家의 조사가 되지 못할 뿐입니다.
5
긴긴날에 할 일이 없어서 오직 꽃에 물을 주고 대나무를 씻으며, 돌을 쓸고 샘물을 끌어왔을 뿐인데 어느덧 저녁 종이 울려옵니다. 저 신을 손질하여 신고서 배다리로 달려가 시장에서 술을 사서 마시고 취해서 돌아오다가 일곱 번 자빠지고 여덟 번 엎어지곤 하였으니, 이것 모두가 일찍이 선禪 아님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그윽이 깊고 융화한 채로 만물을 털끝처럼 보고, 천지를 가리켜 여관쯤으로 여겼으니, 이야말로 상승선上乘禪일 뿐입니다.
6
보내오신 편지에 진실한 마음으로 저를 사랑하여 두륜산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니, 매우 두터운 보살핌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옛 어진 이가 말하기를, “한 몸이든 여러 몸이든 제각각 청정하고, 한 세계이든 여러 세계이든 모두가 허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도원량陶元亮(도연명)은 스스로 전傳33)을 지어 오직, “가고 머묾에 인정을 아끼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니, 또 어찌 꼭 한 곳에만 머물러 있겠습니까?
7
혜장이, 오늘날 이름은 비록 강회講會라고 하나 세존의 한 구절 말씀조차

010_0698_c_01L2)頃聞新纂農書 [3] 甚有佳致恨不合席
010_0698_c_02L叅觀也貧道日與蒙學比丘等力戰
010_0698_c_03L食頃神氣都苦安得婆伽婆破此煩惱
010_0698_c_04L3) [4] 亦已還家又無分勞之人
010_0698_c_05L難堪耳員嶠書帖再三披玩不覺畫
010_0698_c_06L肚書空然都不如少林面壁爲上乘涅
010_0698_c_07L槃也懷素未必爲吾家祖師4) [5]

010_0698_c_08L
長日無一事唯澆花洗竹掃石引泉
010_0698_c_09L居然夕鐘鳴矣彼捆屨赴舟橋市買醉
010_0698_c_10L七顚八踣者未甞非禪方其冲然
010_0698_c_11L融然視萬物如毫芒指天地爲逆旅也
010_0698_c_12L政是上乘禪耳

010_0698_c_13L
來喩拳拳令無得移住頭輪深領厚眷
010_0698_c_14L然古賢有言一身多身各淸淨一界多
010_0698_c_15L界都虛空故陶元亮自作其傳唯云
010_0698_c_16L5) [6] 情去留又何必礙滯一方6) [7]

010_0698_c_17L
7)8)今日 [8] 名雖講會 [9] 世尊一句話實未
010_0698_c_18L「何」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具
010_0698_c_19L謝」{編}
「頃」上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
010_0698_c_20L「庚暑酷熱不審靜體淸瑟」{編}
「性」金敏榮所
010_0698_c_21L藏兒菴遺稿筆寫本作「上人」{編}
「爾」下金敏
010_0698_c_22L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宣」{編}
「吝」金
010_0698_c_23L敏榮所藏筆寫本作「恡」{編}
「耶」下金敏榮所
010_0698_c_24L藏筆寫本有「不備」{編}
「藏」上金敏榮所藏兒
010_0698_c_25L菴遺稿筆寫本有 「謹忽沙門至問得啓處調適誠
010_0698_c_26L慰慕用之誠」{編}
「今日」金敏榮所藏兒菴遺稿
010_0698_c_27L筆寫本無有{編}

010_0699_a_01L실로 일찍이 외워 익히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소미통감少微通鑑』 1질만 가지고 있으므로 한 차례 다 읽고 다시 보기 시작하였으니, 문득 텁석부리 촌부자村夫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경究竟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기에 홀로 가련하게 생각할 뿐입니다.
8
여름밤이 너무 짧아 생각하고 있는 바를 다 정리하지 못했기에 돌아와서는 맺힌 걱정이 매우 깊었습니다.
『주역발미周易發微』34)를 두세 번 읽으면서 음미할 때에 혹은 껄껄대며 혼자 웃곤 하니, 문득 곁에 있던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왜 그러느냐고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유하건대 건장궁전建章宮殿35)의 천만 문호門戶에 한 개의 뾰족한 황금 열쇠를 얻어 철커덕 하며 열쇠를 열고 일제히 열어젖히니, 문득 서로 얽힌 서까래와 그림을 그린 기둥의 절묘함을 얻은 것 같습니다. 오묘한 뜻과 현묘한 말을 진실로 이루 다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돌아보건대 재지才智가 노둔駑鈍한지라 채찍의 그림자보다 앞서 곧장 내달리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윤윤尹潤 공에게 답함(答尹公潤)
1
김金 의원이 보고 나서 황달 증세가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하니, 놀랍고 염려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집사께서 평일에는 망령되게도 세존을 배척하시더니 오늘은 스스로 1장 6척의 금신金身(부처님)을 만들었다 하니 스스로 보기에 어떠합니까? 하하. 이에 여러 사문들을 시켜서 인진쑥(茵蔯蒿)36)을 채집하여 보내 드리라 하였습니다. 빈도貧道도 며칠 뒤에 한번 가서 뵙겠습니다.
2
산방山房이 맑고 고요한데 직접 쓰신 편지를 멀리까지 애써 보내 주시니 마음에 위안됨이 진실로 깊습니다. 사람이 한량없이 나고 죽고 하는 가운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킨다면 자기 자신도 또한 명사名士가 될 것이니, 술을 흠뻑 마시고 「이소경離騷經」을 읽는 것과 비교한다면 도리어 조금은 나을 것 같습니다.
3
보내온 편지를 세 번이나 되풀이해서 자세히 음미해 보니 조예가 정밀하고 깊은 줄을 더욱 알 수 있었습니다. 9라는 숫자가 비록 크지만 지수地數로 사용할 수는 없고, 4라는 숫자가 비록 적으나 천수天數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정말로 보내 주신 가르침과 같다면 무릇 1·3·5·7·9는 모두 삼參(天)의 수에 의지하고, 2·4·6·8·10은 모두 양兩(地)의 수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010_0699_a_01L嘗誦習只將少微通鑑一袠周而復始
010_0699_a_02L便作1)邋遢 [10] 村夫子身世究竟不知何如
010_0699_a_03L2)憐自憐 [11]

010_0699_a_04L
夏夜古短不磬所抱歸而耿結彌3) [12]
010_0699_a_05L周易發微再三誦味時或囅然自笑
010_0699_a_06L輒被傍人怪問譬如建章宮殿千門萬
010_0699_a_07L得一尖金鑰匙砉然一闢便得棼
010_0699_a_08L4)畫棟 [13] 結構之妙妙旨玄譚誠不可
010_0699_a_09L悉數5) [14] 顧才智駑鈍不能先鞭影而
010_0699_a_10L直騁 6)愧慚愧慚 [15]

010_0699_a_11L

010_0699_a_12L答尹公潤

010_0699_a_13L
金醫見過審有黃病不勝驚慮執事
010_0699_a_14L平日妄闢世尊今日自作丈六金身
010_0699_a_15L自視何如呵呵茵蔯蒿茲令諸沙門
010_0699_a_16L採獻之貧道亦當於數日後往拜7) [16]

010_0699_a_17L
山房淸寂手書遠8) [17] 慰意良深人能
010_0699_a_18L於無量生死中得發阿耨多羅三藐三
010_0699_a_19L菩提心自亦名士比之痛飮讀離騷
010_0699_a_20L却有寸長9) [18]

010_0699_a_21L
來喩三復詳玩益知造詣精深九雖
010_0699_a_22L多不可作地數用四雖少不可作天數
010_0699_a_23L誠如來敎則凡一三五七九皆所
010_0699_a_24L以參倚也二四六八十皆所以兩倚也

010_0699_b_01L양한兩漢의 구가九家37)에도 역시 이런 법이 있습니까? 있다면 보여 주십시오.
4
산가山家(佛家)의 지결旨訣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충분하게 응답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지난날 일찍이 들으니, “상常·낙樂·아我·정淨은 부처님이 부처가 된 까닭이요, 작作·임任·지止·멸滅은 바로 중생이 중생이 된 까닭이다.”라고 하더이다. 네 가지 병病(作·任·止·滅)을 제거하고 네 가지 덕(常·樂·我·淨)을 체득한다면 문득 그 자리에서 당장에 부처가 될 것입니다.
5
편지의 내용이 지극히 신실하여 돈오頓悟의 법문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새롭게 드높아 보입니다. 수십 년 동안 선禪과 교敎를 가르쳐 왔으나 돈오를 잠깐 체험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만 번 도끼질을 하여 나무를 벤다 할지라도 나무가 넘어갈 때는 잠깐 사이에 넘어가게 되고, 만 걸음을 걸어서 서울에 이른다 할지라도 도착할 때는 잠깐 사이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더이다. 여기에서 두 개의 만萬 자는 역시 몸소 연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6
편지를 받고 보니 매우 위로가 됩니다. 족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젊을 때 도연명陶淵明과 사영운謝靈運의 시를 읽을 때에는 그 시의 내용이 모두 순수하고 담박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관각館閣38)의 응교應敎39)들이 지은 시를 읽어 보라고 권하기에 이로부터 갑자기 옛날의 흥취를 잃어버렸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시에 대한 언급일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신참 의원은 비록 젖을 끊으라 했지만, 오래된 의원은 도리어 젖을 쓰라고 했다.”라고 했으니, 감히 이 말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금호에게 답함(答琴湖)
1
보내 주신 시가 맑고 뛰어나며 경계하여 깨우치는 것이 선승의 게송을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금으로 만든 그릇은 그릇마다 다 금이요, 맑은 영상은 영상마다 다 맑다. 비록 열 겹의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본질이 맑고 투명한 데야 어찌하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 견딜 길이 없기에 비평한다 하여도 참으로 이것은 부처님의 정수리(佛頂)를 더럽히는 것이니,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2
아침에 일어나 참선을 마치고 문득 일어나 시원한 전각 위에 앉아서 좋은 차 한 잔을 마시고 소주蘇州40)의 시 몇 편을 읊는 것이 또한 산가山家의 맑은 일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세간의 영화로운 명성과 녹봉의 이로움은 덧없기가 흘러가는 물과 같으며 꽃나무도 붙잡고 감상할 것이 못됩니다. 이런 것들은 다 제2의 달(月)로 보아 넘겨도 해롭지 않을 것입니다.
3
직접 써서 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 마치 여의보주如意寶珠처럼 어루만지고 쓰다듬듯이 하였습니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니

010_0699_b_01L兩漢九家亦有此法否示10) [19]

010_0699_b_02L
承問山家旨訣不足奉塞昔嘗聞之
010_0699_b_03L常樂我淨佛之所以爲佛也作任止滅
010_0699_b_04L衆生之所以爲衆生也去四病而軆四
010_0699_b_05L便當立地成佛*也

010_0699_b_06L
手畢至洵及頓悟法門掀聳良新
010_0699_b_07L十年禪講敎講都不如一瞥頓悟然古
010_0699_b_08L語云萬斧斮樹及倒頓倒萬步赴京
010_0699_b_09L及到頓到則兩箇萬字亦當軆究耳

010_0699_b_10L
承書慰甚足下11)嘗云 [20] 少讀陶謝詩
010_0699_b_11L語皆淳澹有人勸誦館閣應敎詩自是
010_0699_b_12L頓失舊步12)斯足以言詩也 [21] 古人云
010_0699_b_13L醫雖斷乳舊醫還用乳敢以是復13) [22]

010_0699_b_14L

010_0699_b_15L答琴湖

010_0699_b_16L
來詩淸絕警發勝聽禪偈古人云
010_0699_b_17L器器器皆是金鏡像像像皆是鏡雖有
010_0699_b_18L十重礙障奈本質淸澈何哉不勝欽玩
010_0699_b_19L評批眞是汙佛頂慚愧慙愧

010_0699_b_20L
朝起叅禪了便起坐快閣上啜佳茗一
010_0699_b_21L吟蘇州詩數篇亦自山家淸事
010_0699_b_22L念世間榮名祿利忽忽如水流花樹不
010_0699_b_23L堪把玩未妨眂之爲第二月耳

010_0699_b_24L
捧手書摩挲如摩尼寶珠也夜靜水寒

010_0699_c_01L고기는 물지 않아 텅 빈 배에 밝은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라는 시구는, 바로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경지를 읊은 것입니다.
보내 주신 가르침에서 “평범한 꽃과 새가 다 선가의 진리를 전해 주는 언어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진실로 보배로 삼아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4
보내 주신 편지에 저에게 달빛을 타고 한번 다녀가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너무도 좋으나, 그러나 족하足下께서는 도를 깨닫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저 달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달을 기약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달빛을 타는 것 또한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름이 가리고 비가 온다면 나의 달이 아니요, 잠이 깊이 들어 달이 뜨는 것도 알지 못한다면 그것도 나의 달이 아닐 것입니다. 설사 구름이 가리거나 비가 오지 않고, 또한 잠이 들지 않았다 해도 병이 들어 피곤하여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면 달빛을 타지 못할 것입니다. 혹 어떤 사고가 있어서 서로 얽매이게 되어도 달빛을 타기란 불가할 것입니다.
반드시 하늘이 맑아 밝은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백호白毫 만 리에 홀연히 양쪽 겨드랑이에서 서늘한 바람이 일어날 때 그 까닭을 알려고 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그런 연후라야 비로소 달빛을 타고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010_0699_c_01L魚不食滿船空載月明歸是禪宗悟境
010_0699_c_02L來喩尋常花鳥皆禪語洵足珍14) [23]

010_0699_c_03L
示喩令我乘月一過其言甚好然亦
010_0699_c_04L恐足下悟道未至也何者夫月不可期
010_0699_c_05L使月可期而其乘月又未可期也
010_0699_c_06L有雲雨爲之蔽非吾月也睡熟不知月
010_0699_c_07L非吾月也使不雲不雨亦不睡而或
010_0699_c_08L病憊氣不豪月不可乘也或有事故
010_0699_c_09L相牽礙月不可乘也必也見月白天
010_0699_c_10L白毫萬里忽兩腋風生冷然善莫
010_0699_c_11L知其所以然而後方有乘月相過之機
010_0699_c_12L「邋遢」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門*(㯿-木))闒」
010_0699_c_13L{編}
「憐」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
010_0699_c_14L具」{編}
「深」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
010_0699_c_15L「數數來起居淸穩否」{編}
「畫棟」金敏榮所藏
010_0699_c_16L兒菴遺稿筆寫本作「馺娑」{編}
「也」下金敏榮
010_0699_c_17L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在唐有一行氏在宋有
010_0699_c_18L麻衣道士誠欲一尋墜緖」{編}
「愧慚愧慚」金
010_0699_c_19L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慚愧慚愧不具」
010_0699_c_20L{編}
「也」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
010_0699_c_21L具」{編}次同
「辱」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
010_0699_c_22L本有「知別後興居安適」{編}
「也」下金敏榮所
010_0699_c_23L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宣」{編}
「之」下金敏
010_0699_c_24L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具」{編}
「嘗云」
010_0699_c_25L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欲聞詩道否」
010_0699_c_26L{編}
「斯足以言詩也」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
010_0699_c_27L寫本無有{編}
「之」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
010_0699_c_28L寫本有「不備」{編}
「也」下金敏榮所藏兒菴遺
010_0699_c_29L稿筆寫本有「不備謝規」{編}

010_0700_a_01L이 어찌 편지 같은 것으로 만날 기회를 정하여 그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이번 거동은 족하께서 반드시 요구해서도 안 되고, 내가 꼭 응낙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또한 반드시 응낙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그 연유에 분별심을 내지 말기만을 기다리겠습니다.
5
빈도貧道는 오랫동안 병들어 누웠으니, 참으로 금산金山의 와불臥佛이 나루와 다리에서 지쳐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연담蓮潭 대사의 시권詩卷을 삼가 보내 드리오니 보시고 나서 돌려주시기(還趙)41)를 바랍니다.
6
내가 지금 감에 진실로 일찍이 조계曹谿의 뜰을 밟아 보지 못했지만, 시험 삼아 소참小參 법문에서 “어떤 것이 조계의 시구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대사께서는 대답하시기를, “하늘을 날아가는 한 마리 기러기로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수룡 색성에게 답함(答袖龍賾性)
시詩와 기記의 고하高下를 논한 것은 과연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를 한탄한다. 가마솥의 국이 곧 서분鼠糞42)이요, 서분이 바로 가마솥의 국이다. 상인上人은 이 관문을 투득透得하지 못하였는가?
칭찬해야 할 것을 나무라고 나무라야 할 것을 칭찬했으니, 이후로는 일체의 곱고 추함과 아름답고 흉함을 조금이라도 가슴속에 남겨 두지 말라. 그래야만 비로소 드넓은 은빛 바다의 화문靴紋과 연평碾平을 볼 적에 아주 작은 것까지도 거울처럼 밝게 볼 수 있으리라.
기어 자홍에게 보냄(與騎魚茲弘)
소요부邵堯夫43)의 시에 이르기를, “세상에 풍파를 일으키지 말라. 저절로 빙탄氷炭이 가슴속에 이르지는 않으리라. 이 세상은 본래 풍파가 많은 것이거늘 하물며 스스로 자신이 풍파를 일으켜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고, 육평천陸平泉44)의 〈방편을 권함(勸方便)〉이라는 시에 이르기를, “방편을 찾음은 싸움을 그치게 하는 데에 있다. 소인배들은 서로 파당(搆和) 짓기를 좋아하니, 단정한 사람에 의지하여 조화를 이루어라.”라고 했다. 주공周公이 천하를 다스릴 때 조인調人45)이라는 관직을 만들었으니, 성현이 세운 뜻을 이와 같은 데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논란을 만들어 틈을 조성하는 것은 모두 소인배들이 하는 일이다.
진미공陳眉公46)이 말하기를,

010_0700_a_01L此豈簿書期會之所能致哉故此擧
010_0700_a_02L下不必求吾不必諾亦不必不諾
010_0700_a_03L莫知其所以然是俟也

010_0700_a_04L
1)貧道長日病臥 [24] 正是金山臥佛疲於
010_0700_a_05L津梁一般耳蓮潭詩卷謹茲奉獻
010_0700_a_06L即還2) [25]

010_0700_a_07L
我此今行實未嘗足踏曹谿試爲小參
010_0700_a_08L如何是曹谿詩句師曰天空一鴈飛

010_0700_a_09L

010_0700_a_10L答袖龍賾性

010_0700_a_11L
所論詩記高下果然不出所料爲之惋
010_0700_a_12L歎鑊羹是鼠糞鼠糞是鑊羹上人未
010_0700_a_13L透得此關否譽者爲訕訕者爲譽
010_0700_a_14L後一切妍媸美惡都勿留些子兒在胷
010_0700_a_15L方見萬頃銀海靴紋碾平毫髮畢
010_0700_a_16L

010_0700_a_17L

010_0700_a_18L與騎魚茲弘

010_0700_a_19L
邵堯夫詩曰莫作風波於世上自無氷
010_0700_a_20L炭到胷中斯世本多風波矧自我起之
010_0700_a_21L陸平泉勸方便詩云尋方便在息爭
010_0700_a_22L羣小喜相搆和調仗端人周公治天下
010_0700_a_23L設調人之職聖賢立意如此可見
010_0700_a_24L搆難修隟都是細人之事陳眉公曰

010_0700_b_01L“시대의 일이란 마치 두다가 남은 바둑판과 같나니, 부질없이 자웅을 다투어 본들 어찌 승부를 낼 수 있겠는가? 세상살이는 한바탕 환몽과 같은 것이니, 억지로 두각을 다투어 본들 깨고 나면 이기고 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중순仲淳(진미공의 字)이 또 말하기를, “처세에는 한 걸음 양보하는 것이 상책이니,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접함에 1푼만 너그럽게 하면 이 사람은 남을 복되고 이롭게 하는 사람이니, 진실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근기根基가 되기도 한다.”라고 했다.
객기를 증장增長시켜 가로 치달려 혼란을 유발하고 한마디 말이라도 부합하지 못하면 창을 뽑아 싸우고, 한 가지 일이라도 서로 부딪치면 성난 머리카락이 관을 찌르고 일어나 승리를 다투고 강함을 다툰다. 명성이 영웅의 대열에 끼지도 못하면서 손에 창을 잡고 눈을 부릅뜨니, 시정의 풍속에 부합되지 않음이 없다. 고기를 먹고 음행을 하는 사람들도 또한 이런 일을 하지 않거늘 일찍이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승려로서 냄새나는 채소와 비린내 나는 고기를 끊은 사람이 반대로 객기를 부려서야 되겠는가?
나는 화살처럼 곧고, 남은 갈고리같이 구부러졌다는 생각을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제나라와 초나라의 실정失政이 막상막하이고, 노나라와 위衛나라의 정치가 난형난제인 것과 같은 처지인데, 기어코 내가 주인이 되고 남은 종이 되게 하며, 나는 구천九天이요 남은 황천이 되게 하려고 하니, 그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명분을 바루고 기강을 세우는 일은 법관에게 달려 있는 일이지 필부의 직분이 아니요, 호탕하고 강함을 뽑아 버리고 고집 세고 악함을 징계하는 것은 어사에게 달려 있는 일이지 산문에 사는 승려들의 책무가 아니다. 묘족苗族47)을 이르게 하고 갈葛48)을 교화하는 일은 우임금과 탕임금도 또한 어렵게 생각했거늘 구구하게 누런 삿갓을 쓰고 있는 신분으로 감히 이런 일을 해내겠는가?
백운 도인에게 보냄(與白雲道人)
산천은 길고도 넓으나 속세와 공문空門(불문)은 길이 서로 달라, 한 번도 자비로운 얼굴을 우러러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높은 명성은 우레처럼 울리고 화려한 소문은 비처럼 퍼져서 이 궁산窮山과 절해絶海까지 이르렀으니, 풍채를 바라보고 흠모의 정 치달려도 마음이 피로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듣건대 족하께서는 영특한 젊은이들이 침륜沈淪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풍요風謠가 쇠퇴하여 사라지는 것을 개탄하여 널리 어부들과 나무꾼들이 부는 피리의 악보를 수집하고, 곁들여 단전丹詮과 범패의 음보까지도

010_0700_b_01L時事如半局殘棋妄鬪雌雄局更何分
010_0700_b_02L勝負世途直一場幻夢强爭頭角
010_0700_b_03L後那見輸贏仲淳又曰處世讓一步爲
010_0700_b_04L退步即進步的張本待人寛一分
010_0700_b_05L是福利人實利己的根基客氣增長
010_0700_b_06L橫奔亂發一言不合抽戈而鬪一事
010_0700_b_07L相激衝冠而起爭勝爭强名不列英
010_0700_b_08L雄之數戟手嗔目無非離市井之風
010_0700_b_09L食肉行淫者且不爲是曾謂受剃染絕
010_0700_b_10L葷腥者倒使客氣乎我直如矢人曲
010_0700_b_11L如鉤且當棄置況齊楚之失莫上莫下
010_0700_b_12L魯衛之政難兄難弟必欲我主而彼奴
010_0700_b_13L我九天而彼黃泉而可得哉正名分立
010_0700_b_14L紀綱有法官在非匹夫之職鋤豪强
010_0700_b_15L懲頑惡有御史在非山人之責格苗
010_0700_b_16L化葛禹湯且以爲難區區黃𥱀笠下
010_0700_b_17L敢爲是耶

010_0700_b_18L

010_0700_b_19L與白雲道人

010_0700_b_20L
山川修廣塵空路殊未能一瞻慈容
010_0700_b_21L而盛名雷磤華聞雨布至及此窮山絕
010_0700_b_22L望風馳慕能不勞心竊聞足下
010_0700_b_23L英髦之沈淪慨風謠之衰歇廣搜乎
010_0700_b_24L漁歌樵笛之譜傍釆乎丹詮梵唄之音

010_0700_c_01L채집하여 모두 잘 정리 정돈하여 판목에 새겨서 후세에 밝히려 한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불가의 대자대비한 원력願力입니다. 공경하고 아끼고 찬탄하여 진실로 족하를 위하여 편안하게 고삐를 잡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그러니 족하께서는 대자대비한 마음이 이미 이와 같으십니다.
진실로 한 어질고 호탕한 기질이 있는 특출한 선비가 사직을 위하여 우뚝 높은 공훈을 세우고, 꽃다운 아름다움을 온 나라에 드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시들어진 자취일 뿐 총림에서는 사대부들이 떠들어 대는 말을 어리석다 하지 않고, 도리어 애련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 뜻을 이룹니다. 아니 어쩌면 비웃고 냉담하게 여겨 돌아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서산西山 조사께서는 공렬功烈이 우뚝 높고 계행이 청고淸苦하시어 목릉穆陵49)의 거룩한 왕조에는 구름 같은 문장이 찬란한 빛을 발하였고, 게다가 묵죽도墨竹圖를 하사 받은 총애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조先朝(正祖) 13년(1737)에 이르러 특명을 내려 두륜산 장춘동에 사당을 세우도록 하고 영정을 그려 봉안하고 향화香火를 정성껏 받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또 이를 위하여 직접 영정을 모신 집의 명문銘文을 지어 내리셨기에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貞珉)에 그 글을 새겼습니다. 해와 달의 화려한 광채가 모래알처럼 많은 겁 동안 영원히 비출 것이니, 어찌 한 터럭만한 유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시 그 일을 관장했던 승려들은 오직 사대부의 글을 받는 일을 꺼려하여 의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정 대신의 반열에 있는 분들에게 한 구절 글귀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치문緇門의 빠진 부분이 있는 의식이요 총림의 크나큰 부끄러움입니다.
또한 생각건대 사명四溟 대사는 곧 서산西山 대사의 문도입니다. 그러나 밀양 표충사 원내에는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이 지은 시와 송頌 같은 글들이 여러 편이 이어지고 많은 척독尺牘들이 쌓여 있을 지경입니다. 높이 찬양하고 영원히 기려 이미 판각에 들어가 임천林泉에 유포하여 빛내고 있습니다.
돌아보건대 이곳은 노조사老祖師께서 의발을 거두어 간직하도록 게시하신 곳이지만, 여태 한 편의 아름다운 글조차도 혹 삼괴구극三槐九棘50)의 대열에 들거나 금마옥당金馬玉堂51)의 반열에 있는 사람이 지은 것이 없으니,

010_0700_c_01L網羅淘洗繡之梨棗以昭後世此吾
010_0700_c_02L家大慈大悲之願力欽愛讃歎誠欲爲
010_0700_c_03L足下執綏也足下之大慈大悲旣如是
010_0700_c_04L苟有一賢豪傑特之士建巍勳於社
010_0700_c_05L垂芳徽於寰區而只以其委跡
010_0700_c_06L林不蒙士大夫之稱誦者其將哀憐而
010_0700_c_07L致意乎抑嘻笑冷齒過之而莫之顧乎
010_0700_c_08L我西山祖師功烈卓犖戒行淸苦
010_0700_c_09L穆陵聖朝雲章煥發又賜墨竹圖以寵
010_0700_c_10L至先朝十三年特命建祠于頭輪山
010_0700_c_11L之長春洞妥其影幀虔其香火旣又
010_0700_c_12L爲之親製堂銘刻之貞珉日月光華
010_0700_c_13L永照沙劫夫豈有一毫遺憾而當時掌
010_0700_c_14L事之僧惟知怵畏且乏攀援遂不能
010_0700_c_15L乞一言於公朝薦紳之列茲誠緇門之
010_0700_c_16L缺典秖林之大恥且念泗溟大師
010_0700_c_17L西山之門徒也然而密陽表忠之院
010_0700_c_18L有公卿大臣之作若詩若頌連篇累牘
010_0700_c_19L崇讚永譽旣入剞劂以照林泉而顧
010_0700_c_20L此老祖師揭虔之地尙無一串瓊琚
010_0700_c_21L出於三槐九棘之列金馬玉堂之班
010_0700_c_22L「貧」上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李生
010_0700_c_23L伏承委翰謹審省定安勝深慰別緖」{編}

010_0700_c_24L「趙」下金敏榮所藏同本有「不宣」{編}

010_0701_a_01L전도되고 어긋나며 도리에도 맞지 않는 일입니다. 사당을 세운 이래로 18년 동안 용상龍象 대덕大德 스님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늘 이 일 때문에 슬퍼하고 탄식하였습니다.
영원히 탄식할 즈음에 듣자 하니 족하께서는 여러 문묵文墨의 일에 능통하여 답답한 것을 풀어 주고 어두운 것을 밝혀 줄 능력이 있는 분이라 하시니, 일찍이 강개하여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한 사람을 심부름으로 보내오니, 천금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우러러 청하나이다.
엎드려 바라건대 족하께서 힘써 큰 자비를 베푸시어 아름다운 시문들을 모아 우리 산문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바닷가 변방의 땅을 빛내 주신다면, 어찌 다만 선가禪家의 영광일 뿐이겠습니까? 어쩌면 족하의 명성도 또한 금석金石에 새겨져 길이 무궁한 세월을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족하께서 이 일을 도모하신다면 오직 관각館閣의 큰 장인匠人뿐이겠습니까? 비록 유림儒林과 통할 수 있는 길은 가려졌지만, 무릇 그 문장의 예술은 온 세상을 밝게 비추어 줄 것이니, 부디 널리 채집하고 널리 받아서 모아 주시옵소서. 일이 중대함에도 예를 소홀하게 하였으니, 너무도 두려워서 움츠려 드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무안 현감 서준보 공에게 올림(上務安宰徐公)
엎드려 생각해 보건대 봄볕이 화창한데 합하閤下52)는 정사를 하심이 자애롭고 청빈하십니다. 저 혜장은 보잘것없는 재질(樗櫟散材)이요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秕穅虛殼)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잃고 있다가 자라나서는 결국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내전內典(불경)에 종사하여 대승大乘에 귀의하였더니, 손가락을 튀기듯이 빠르게 흘러간 세월이 지금 30년이나 되었습니다. 구름처럼 여러 산문을 유람하고 부평초처럼 10여 군郡에 떠돌면서 오래되고 썩은 것을 담설談說하고 마르고 무너진 것을 스승처럼 벗처럼 가까이하였더니, 마침내는 다만 뱃속이 비어 굶주린 듯하고 마른 뼈가 말린 포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늘 한결같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마다 홀연히 꿈만 같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연담 유일蓮潭有一 화상을 따라 섬기면서 『화엄경』의 비밀한 지취旨趣를 들었고, 중세中歲에는 정암晶巖 노스님의 방에서 염향拈香53)의 예를 올렸습니다. 이 두 분 노스님은 그 지혜와 고행이 모두 치림緇林의 관면冠冕(首長)이 되고, 법문法門의 법고法鼓(스승)가 될 만한 분들입니다. 저는 그분들이 세상에 살아 계실 때에는 오히려 심오한 이치를 밝혀내고 진리의 관건을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대중들을 따라 학업을 묻는다는 것이, 글 몇 줄과 글자 몇 자에 지나지 못하고 법규에 의지하여 과정만 배웠으니, 이 모두가 옥을 포장하기 위해 만든 나무 상자를 사고, 그 속의 옥은 돌려주는 격입니다.

010_0701_a_01L亦齟齬顚倒未中於理也乎建院以來
010_0701_a_02L十有八年凡有龍象之會每以是咨嗟
010_0701_a_03L永歎際聞足下於諸文墨之事有可以
010_0701_a_04L揚鬰顯昧者未嘗不慷慨致力玆馳一
010_0701_a_05L价之使仰乞千金之惠伏望足下
010_0701_a_06L發弘慈廣收佳什以惠山門以光海
010_0701_a_07L則奚但禪家之榮抑足下之名
010_0701_a_08L將鐫之金石永垂無窮足下其圖之
010_0701_a_09L不惟館閣大匠雖蔭道儒林凡其文章
010_0701_a_10L藝術彪炳耀世亦願博採而廣受焉
010_0701_a_11L事重禮輕無任恐懼恧蹙之至

010_0701_a_12L

010_0701_a_13L上務安宰徐公俊輔

010_0701_a_14L
伏惟春煦閤下爲政慈淸藏樗櫟散材
010_0701_a_15L秕穅虛殼幼迷方向長遂剃染從事
010_0701_a_16L內典歸依大乘彈指流光于今三十
010_0701_a_17L年矣雲遊諸山萍漂十郡談陳說腐
010_0701_a_18L師枯朋朽究竟只得空腹如枵瘦骨如
010_0701_a_19L每一回念忽如夢寐少從蓮潭一
010_0701_a_20L和尙得聞華嚴秘旨中歲拈香於晶巖
010_0701_a_21L老師之室此二老者其慧智苦行
010_0701_a_22L足以冠冕緇林鐘鼓法門措其在世之
010_0701_a_23L猶未及叩發蘊奧抽奪鈐鍵隨衆
010_0701_a_24L問業不過尋行數墨依規塞課都是

010_0701_b_01L
바람 앞의 촛불은 안정되지 못하기에 운거雲車는 이미 아득히 멀리 가버렸습니다. 지금 비록 단선壇墠을 거듭 시설하고 가르침을 한번 들으려고 하니, 어찌 탄식한다 한들 미칠 수 있겠습니까? 몸을 어루만지면서 스스로 슬퍼하니 눈물이 턱에 흘러내려 금할 길이 없습니다. 벗이 없이 홀로 공부하고 들은 것이 적어서 고루하니, 사방의 산문을 돌고 돌아 고찰해 보아도 증명하여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말법시대에 법이 쇠미해진 차에 선배들은 먼저 돌아가셨으니, 무식한 승려들이 잘못 스승으로 추대하였기에 진작부터 스스로 밝고 진실한 척합니다.
분발해야 할 나이에 외람되게도 종법宗法을 지키고 사도邪道를 물리치는 자리에 앉았으나, 마침내는 나이 많은 사람을 따라 학문을 연구하는 공정功程이 변하여 시골 선생(夫子)의 생활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화엄경』을 강의한 지는 이미 일곱 차례가 넘었으니, 그 나머지 강의한 것들이야 어찌 손꼽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꽃다운 나이는 훌쩍 지나가고 서서히 늙어 가려고 하니, 깎다 남은 모발도 이미 짧게 모지라지고 희어졌습니다. 둘러앉아서 글을 읽는 소리는 점점 개구리 소리처럼 왁자지껄하여 귀가 따갑도록 들리고, 불자拂子를 세우고 담설談說을 하니 쇠파리가 코를 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수년 이래로 여러 학승學僧들을 돌려보내고 경전들을 묶어서 시렁 위에 올려놓고서 삼베로 만든 북을 두드려 소리를 내지 말라 타이르고, 토룡土龍54)에게 비를 빌려는 짓을 못하게 말렸습니다. 갈포로 모자를 만들고 솔잎으로 죽을 쑤어 먹으며 돌 동굴에 칩거하여 두타행을 닦고 번뇌(塵勞)의 장애나 제거해 볼까 생각합니다.
다만 생각해 보건대 눈썹은 아직 푸르고 마음의 재는 아직 식지 않아 오히려 두 가지 소원이 가슴속에 서리서리 맺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짚신을 신고 대지팡이를 짚고 표연히 동쪽으로 길을 나서서 태백산과 오대산등 여러 명산이나 두루 유람하고 발길을 바꾸어 기달산怾怛山(금강산)에 들어갔다가 서쪽으로 묘향산을 찾아가서 우리 서산西山 선생님께서 남긴 자취를 돌아보고, 남쪽으로 속리산에 들어가서 저 화양華陽55) 위대한 노학자의 옛터를 관람하려고 하니, 이는 금생에 마치지 못할 빚인가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다행스럽게도 천신薦紳56) 선생들과 관각館閣의 대장大匠들을 만나 보고, 마침내 또한 산림에 숨어 사는 선비들을 뵈옵고 그 향기(芬馥)를 움켜오고 어른의 가르침을 입는다면 어찌 다만 문채 있고 화려한 문장(篇翰)으로 풀숲(蓁莽)을 윤택하게 하는 정도일 뿐이겠습니까? 만약 단상彖象(『주역』)과 풍아風雅(『시경』)의 미묘한 뜻과 태극太極과 원회元會57)의 미묘한 논리에 대하여 모두 다

010_0701_b_01L買櫝還珠風燭不定雲車已邈今雖
010_0701_b_02L欲重設壇墠一聽謦欬何嗟及矣
010_0701_b_03L躬自悼不禁涕淚之交頣也獨學無朋
010_0701_b_04L孤陋寡聞環顧四山無與證訂又緣
010_0701_b_05L末法衰微先輩凋零無識髠徒謬推
010_0701_b_06L爲師已自明允發憤之年猥據充宗
010_0701_b_07L折角之席遂循老學究功程轉作村夫
010_0701_b_08L子生活講授華嚴已經七次其餘胡
010_0701_b_09L何以僂指年華倏忽冉冉將暮
010_0701_b_10L剃殘之髮亦已種種白矣繞坐經聲
010_0701_b_11L漸如蛙吹之聒耳竪拂談說不異蠓醯
010_0701_b_12L之蜇鼻數年以來謝遣諸僧束閣羣
010_0701_b_13L毋令叩音於布鼓祈雨於土龍
010_0701_b_14L欲以葛帽松粥蟄伏石穴精修頭陀之
010_0701_b_15L求除塵勞之障第念眉稜尙靑
010_0701_b_16L灰未冷猶有二願蟠結胷中一者
010_0701_b_17L履竹杖飄然東出徧遊太白五臺諸名
010_0701_b_18L轉入怾怛西窺妙香以跡我西山
010_0701_b_19L先生之遺躅南投俗離以觀夫華陽大
010_0701_b_20L老之舊基此今生未了之債也一者
010_0701_b_21L幸而邂逅於薦紳先生館閣大匠遂亦
010_0701_b_22L刺謁於山林肥遯之士挹其芬馥沾其
010_0701_b_23L咳唾則奚但藻華篇翰澆沃蓁莽
010_0701_b_24L彖象風雅之微旨太極元會之妙論

010_0701_c_01L멀었던 눈을 뜨고 귀먹었던 귀를 뚫어야 할 것이니, 이는 숙세宿世에 미처 깨닫지 못한 인연인가 생각합니다.
도성 안의 금지하는 법조문이 오히려 궁벽한 변방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엄격합니다. 명성과 행적은 서로 거리가 멀어 한형주韓荊州58)에게 바라는 바가 비록 간절하나 등왕각으로 빨리 가게 한 장풍長風을 만나지 못했으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난산亂山59) 속에 외로이 앉았으니, 일찍이 학문이 텅 비었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합하와 같은 경우는, 돌아가신 대감께서 손수 지으신 기적記蹟60)이 장춘동의 상징(眉宇)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늘 어진 정치(棠社)가 남긴 음덕陰德을 우러러볼 적마다 문득 동향桐鄕61)에 남긴 사랑을 느끼곤 합니다.
홀연히 듣자오니 검은 일산(皂盖)을 받쳐 들고 남쪽으로 행차하신다고 하니, 물들인 옷을 입은 사람이 한번 배알할까 생각합니다. 다만 염려가 되는 것은, 창검이 드리워져 있는 관청의 문에 물병과 발우를 지닌 승려의 행색으로는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 들으니 본사本寺의 여러 승려들이 심부름꾼의 책임을 맡아 예를 드리러 간다고 하기에 짧은 편지를 받들어 올려서 마음속에 쌓인 회포를 토로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다행히 우매함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신다면 매당梅堂을 우러러 바라보며 눈물과 슬픔을 가누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찾아가 영삭鈴索62)의 예를 다하지 못했으니, 지금 그냥 앉아서 좋은 시를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표충사表忠祠 기적記蹟에 대한 시는 마땅히 돌아가신 대감께서 새기신 비문碑文을 이어 혹시라도 좋은 시(華什)를 내려 주셔서 공문空門을 빛나게 한다면, 어찌 다만 얻기 어려운 지극한 보배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용의 턱 아래 여의주를 가져오려는 소원을 이룬 기쁨이 될 것입니다. 또한 좋은 글들이 이 뒤를 잇고, 이로 인하여 초미貂尾(귀한 사람)의 작품이 많이 잇따를 것입니다. 백 번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올리고 한 줄기 향을 사르오니, 미천한 정성을 밝게 살피시어 큰 은혜를 아끼지 않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대둔사 여러 승려들을 대신하여 무안 현감 서 공에게 올림(代大芚諸僧上務安宰徐公)
소승小僧 등이 슬프고 답답한 마음을 품은 지가 이미 10년이나 지났습니다. 옛날 무신戊申 연간에 돌아가신 대감께 일찍이 도백道伯(관찰사)을 통하여 주광黈纊63)의 귓전에 의견을 상주하였더니, 마침내 본사本寺에 표충사를 세우고 우리 서산 노스님께서 나라를 위하여 충성의 절개를 다한 것을 표창하셨습니다. 이에 운장雲章이 이미 내려왔고 이어 풍비豊碑를 세웠으니, 그 비문은 돌아가신 대감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010_0701_c_01L可以豁盲昭聾此宿世未了之緣也
010_0701_c_02L奈都門之內禁條猶嚴窮海之濱聲跡
010_0701_c_03L相遼荊州之願雖切滕閣之風莫遇孤
010_0701_c_04L坐亂山之中未嘗不咄咄書空也至若
010_0701_c_05L閤下則有先台監之手蹟久爲長春洞
010_0701_c_06L之眉宇每瞻棠社之餘陰便若桐鄕之
010_0701_c_07L遺愛忽聞皂盖之南顧即圖緇衣之上
010_0701_c_08L第念棨戟之門難投瓶鉢之跡
010_0701_c_09L聞本寺諸僧委价致禮玆奉咫尺之書
010_0701_c_10L聊攄方寸之蘊伏望洪慈幸恕愚昧
010_0701_c_11L瞻望梅堂不勝流悵旣不能往扣鈴索
010_0701_c_12L禮不當坐乞瓊篇第玆表忠祠記蹟之
010_0701_c_13L宜續先台監鐫碑之文倘賜華什
010_0701_c_14L用賁空門奚但至寶難得欣遂摘龍頷
010_0701_c_15L之願抑亦善歌必繼仍多續貂尾之作
010_0701_c_16L百拜頂禮一炷心香幸鑑微誠無惜
010_0701_c_17L大惠

010_0701_c_18L

010_0701_c_19L代大芚諸僧上務安宰徐公

010_0701_c_20L
小僧等之含哀茹鬰今已十年于玆矣
010_0701_c_21L昔在戊申年間先大監以曾經道伯
010_0701_c_22L白于黈纊之聽遂於本寺建表忠祠
010_0701_c_23L以旌我西山老師爲國効忠之節雲章
010_0701_c_24L旣降豊碑繼立其文則先大監之所撰

010_0702_a_01L
동표銅標64)는 바닷가 변두리에 영원토록 편안하고, 옥대玉帶는 산문山門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비록 자취를 멀리하여 스스로 문을 가로막아 저지하였으나, 성덕盛德은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다만 정성이 부족하고 신의가 공소空疎한 인연으로 풍상에 끊어지고 막혀서 상여를 잡아당기면서 곡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골 오두막집에서 세월만 보내며, 마침내 지면漬綿65)의 예를 올리지 못하니, 하늘에 부끄럽고 땅에 부끄럽습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주砥柱66)는 내리치는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정민貞珉67)은 겁우劫雨 속에서도 마멸되지 않았으니, 양숙羊叔68)의 사랑이 이미 깊었기에 정 공鄭公의 비석69)이 넘어지지 않은 경우와 같습니다.
새의 자취(鳥跡)는 훼손되지 않았고, 비석의 거북 머리는 아직까지 우뚝 솟아 있으니, 이는 어진 정치(甘棠)가 남긴 사랑 때문이요, 경초勁草70) 같은 절개를 징험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삼가 듣자오니 사또의 행차(五馬之駕)가 근래에 3사舍(90리)의 땅에서 머문다 하시니, 사세事勢로 보아서는 마땅히 구름처럼 달려가고 비처럼 모여서 슬프고 즐거운 정情을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는 길이 물이 흘러가 버리고 꽃이 떨어질 정도로 머니, 어찌 조문과 경하慶賀의 예를 올릴 수 있겠습니까? 이에 필추苾蒭(비구) 등 여러 사람을 보내 보잘것없는 작은 정성을 전해 드리오니 밝게 살펴 주시기를 엎드려 바라나이다.
정언 황기천에게 올림(上黃正言)
연전年前에는 어린 사미를 통하여 특별히 안부를 물어 주시더니, 이번 봄에 이르러서는 네 편의 아름다운 시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또 한번 와서 만나자는 뜻을 비치시니, 돌아보건대 이 궁벽한 산중에 숨어 사는 종적이 무슨 까닭으로 문원文苑71)의 학사에게 이런 호의를 받게 되었는지 감격의 정을 금석에 새기고 아침저녁으로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이후부터 배를 빌려 바다를 건너갈 계획이 마음속에 끊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90노부老父께서 병을 얻어 돌아가실 기미가 보이기에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는 동안 시시각각으로 임종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비록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은 몸이라 인륜의 도리와는 무관하다지만, 그래도 하늘이 준 양심은 어두워지지 않았으니 사람의 도리를 버리기 어렵습니다. 이에 부축해 드리면서 간호하느라 반걸음도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6월에 초상(巨創)을 당하여 상여를 끌어안고 호곡號哭하면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는 홀연히 하늘 높은 가을이 왔는데 생각하기는 초겨울이 되면 감사坎舍(齋室)의 문 앞에 한번 나아가 마침내 수년 동안 묵은 소원을 풀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010_0702_a_01L銅標永綏於海藩玉帶留鎭於山門
010_0702_a_02L雖遐蹤自阻於門闌而盛德常鐫於肝
010_0702_a_03L只緣精誠淺薄信義空疎絕塞風
010_0702_a_04L未遂攀輀之哭鄕廬日月遂缺漬
010_0702_a_05L綿之奠慚天愧地尙復何言徒幸砥
010_0702_a_06L柱不撓於頹波貞珉未泐於劫雨羊叔
010_0702_a_07L之愛旣深鄭公之碑不踣鳥跡無虧
010_0702_a_08L龜頭尙屹此則甘棠之遺愛敢曰勁草
010_0702_a_09L之可驗伏聞五馬之駕近稅三舍之地
010_0702_a_10L事當雲趨雨集以伸哀樂之情道在水
010_0702_a_11L流花謝何必弔慶之禮玆遣苾蒭等數
010_0702_a_12L聊達菲薄之寸誠伏惟監察

010_0702_a_13L

010_0702_a_14L上黃正言基天

010_0702_a_15L
年前因小沙彌特賜存問及至今春
010_0702_a_16L惠以瓊韻四篇又諭以一來投刺之意
010_0702_a_17L顧此窮山蟄伏之蹤何以得此於文苑
010_0702_a_18L學士感激銘刻日夕耿結自是厥後
010_0702_a_19L賃舟過海之計憧憧在心顧有九耋
010_0702_a_20L老父得病垂死自秋徂冬時刻待變
010_0702_a_21L雖剃染之身外於倫理而天良不昧
010_0702_a_22L人道難廢扶持看護跬步未轉竟以
010_0702_a_23L六月遂遭巨創攀號埋葬倏及高秋
010_0702_a_24L意欲以冬初一造坎舍之門得遂數年

010_0702_b_01L그러던 중 뜻밖에도 임금께서 금계金雞72)로 방면하여 주시어 학사의 얼룩말(班馬)이 유성流星처럼 달려가고 말았습니다. 이에 희망을 잃고 행차에서 일어나는 먼지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탄식해 본들 어찌 미칠 수 있겠습니까?
학사의 문장과 글씨는 남두성南斗星을 비추며, 고기를 낚고 사슴을 잡는 무리들에게까지 다 파급되었건만, 나만 홀로 아침저녁으로 기원 드리는 정성으로 끝내 단 한 번도 존안(芝眉)을 뵙고 끊어짐이 없는 가르침을 받들지 못했습니다. 타고난 복이 적어 교화를 입지 못하는 것인 줄 알고 있으니, 혀를 차고 스스로 한탄함을 어찌 그칠 수 있겠습니까?
돌아봐 주셔서 이미 소망에 넘쳤는데, 편지로 안부를 물으시고 겸하여 진귀한 필묵을 내려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게으르고 쓸모없이 지내는 터라 후의에 부합할 게 없습니다. 차의 꽃은 이미 짙푸르게 되어 안타깝지만, 다만 햇볕을 쬐어 맑은 듯한 것을 삼가 올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아드님께서 오셔서 편지를 전해 주시니, 삼가 초가을에 평안히 계심을 알게 되어 위로됨이 큽니다. 혜장惠藏은 근래 손님 영접이 빈번한 까닭에 아침저녁으로 분주하고 피로하답니다.……(이하 생략)…….73)
그리워하던 차에 편지를 받게 되어, 서리 내리는 계절에 정치하시는 몸이 평안하심을 알게 되어 적막한 마음에 진정 위로가 됩니다. 시율은 오래전부터 하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굳건한 심지로 건율태乾栗䭾74)를 짓지 못하고, 또 이렇게 고귀한 분께 제 글을 올립니다. 어떠한지요. 이만 줄입니다.
하인을 멀리까지 보내 나그네의 식사가 투박한 것을 살피시니 쏟으시는 마음이 진실로 깊습니다. 말씀하신 부석사의 사적은 근심 어린 위장을 씻어 주고 지저분한 내장을 털어 주니 완상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이 선생의 시는 더욱 단아하고 정중합니다. 일을 만듦(造事)은 더욱 괴이하여 특이할 뿐입니다.
답장 격식을 갖추지 못하고 줄입니다. 혜장은 두 번 절하고 올립니다.

010_0702_b_01L之願不圖金雞天放班馬星馳悵望
010_0702_b_02L行塵何嗟及矣學士之文章筆翰
010_0702_b_03L輝南斗釣魚射鹿之徒咸得波及
010_0702_b_04L此蚤夜願言之誠終不得一瞻芝眉
010_0702_b_05L承纚纚之誨自知福分凉薄不蒙沾潤
010_0702_b_06L咄咄自恨曷有其1) [26]

010_0702_b_07L「已」後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尺牘四
010_0702_b_08L篇如下「左顧旣踰所望惠牘又蒙存問兼賜筆
010_0702_b_09L墨珍瑰可玧不勝感謝之至藏懶散如時無以
010_0702_b_10L副厚意也嘅茗花已老蒼但其焙晒如淸謹玆
010_0702_b_11L奉獻也不備

010_0702_b_12L令胤至兼惠問書恭審新涼起居淸適慰浣良深
010_0702_b_13L藏近因客擾朝暮奔勞便作高郵小吏生活自
010_0702_b_14L懞懞必也更名晦跡走入五臺山中方免此患耳
010_0702_b_15L周易略例謹近覽畢法王輔嗣之學外物蒙而
010_0702_b_16L遺互體慈與卦實而不取以之爲三家村裡村
010_0702_b_17L夫子猶患不足况可以方駕荀虞哉正是孤陋之
010_0702_b_18L最耳不備

010_0702_b_19L㴑慕中得奉華翰謹審霜令政體淸白良慰寂
010_0702_b_20L寞之情詩律久欲謝却我無堅心定志能造乾
010_0702_b_21L栗䭾地頭又玆奉塵淸賞耳如何如何不備

010_0702_b_22L赫蹏遠辱審旅食麤傾㵼良深示喩浮石寺事
010_0702_b_23L滌煩胃盪塵腸珍玩未已李先生詩尤雅重
010_0702_b_24L造事尤恠異不倫耳不備謝規惠藏再拜」{編}

010_0702_c_01L
  1. 1)『三國遺事』 제4권에 내용이 나온다.
  2. 2)진晉나라 축도생竺道生이 호구산에서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고 시험 삼아 설법을 하자 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고사를 말한다.
  3. 3)조부調符 : 자음字音과 성조聲調를 구별하는 부호.
  4. 4)발타勃陀 : 두륜산 북미륵암北彌勒庵의 마애불磨崖佛 좌상坐像을 말한다.
  5. 5)수의銖衣 : 수銖는 극히 작은 단위의 중량인데, 이는 곧 선인仙人이 입는 옷을 말한다.
  6. 6)철적鐵笛 : 철로 만든 피리로, 은자隱者의 피리를 뜻한다.
  7. 7)『선문염송』 제7권 27칙 ‘참묘斬猫’ 조항의 남전참묘南泉斬猫 화두를 말한다.
  8. 8)연소延沼 : 속성은 유씨劉氏. 절강성 항주부 여항현餘杭縣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어육魚肉과 마늘을 먹지 않았다. 처음에는 유학에 힘썼고, 출가하여 천태의 상관上觀을 닦다가 남원南院에게서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 송나라 태조太祖 개보開寶 6년에 78세로 입적하였다.
  9. 9)부산浮山 : 명말 청초의 사상가 방이지方以智. 자는 밀지密之, 법호法號는 약지藥地, 법휘法諱는 홍지弘智이며, 동성桐城(안휘성) 사람이다. 유년부터 이재異才라고 전해졌고, 숭정 13년(1640)에 진사가 되었으며, 특이한 사상과 정확한 고증을 담은 많은 저작이 있다. 명 멸망 후 중이 되어 승명을 무가無可라 하였다. 세속 사람들은 그를 부산 은자浮山隱者라 불렀다.
  10. 10)경릉竟陵 : 남제南齊 때의 문선왕文宣王 소자량蕭子良. 『南史』 권59.
  11. 11)현도玄度 : 청담淸談을 즐겼던 동진東晉의 명사 허순許詢의 자字인데, 그의 벗 유윤劉尹이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이면 문득 그를 떠올렸다(淸風朗月。 輒思玄度。)는 고사가 전한다.
  12. 12)삼관三觀 : 관법觀法의 내용을 세 종류로 나누는 것. ① 천태종에서 세우는 공관·가관·중관. ② 화엄종에서 세우는 진공관·이사무애관·주변함용관. ③ 율종에서 세우는 성공관·상공관·유식관. ④ 『종경록』에 있는 별상삼관·통상삼관·일심삼관. ⑤ 법상종의 자은慈恩이 세운 유관·공관·중관.
  13. 13)구대九帶 : 부산浮山 스님이 학인을 지도한 아홉 가지 수단. 부산 스님이 학인들에게 종문에 내려오는 법을 설했는데, 그것을 학인들이 편집하여 스님께 이름을 붙여 달라고 하니 ‘불선종교의구대佛禪宗敎義九帶’라 하였다. 즉 불정법안장대佛正法眼藏帶·불법장대佛法藏帶·이관대理貫帶·사관대事貫帶·이사종횡대理事縱橫帶·굴곡수대屈曲垂帶·묘협겸대妙協兼帶·금침쌍쇄대金鍼雙鎖帶·평회상실대平懷常實帶이다.
  14. 14)자암慈菴 : 법명은 전평典平이며 자비행慈悲行을 널리 펼쳤다. 은봉隱峰 스님과 함께 정조正祖 23년(1799)에 만일암을 중건하였다.
  15. 15)은봉隱峯 : 조선 스님. 법명은 두운斗云. 해남 두륜산 대흥사에서 출가. 오파鰲坡의 법을 이었다. 1799년(정조 23) 자암 전평慈庵典平과 함께 만일암을 중건하였다.
  16. 16)왕유王劉:「滕王閣序」를 쓴 왕발王勃(648~675)과, 서곤체西崑體의 맥을 계승하였으며 사륙문四六文의 대가인 유균劉筠(971~1031)을 말한다.
  17. 17)원택圓澤 : 당唐나라 때 고승. 원택 스님은 이원李源과 교의가 매우 두터웠는데, 일찍이 함께 삼협三峽에 이르렀을 때 원택이 하는 말이, 자신이 지금 죽으면 12년 뒤에 항주杭州의 천축사天竺寺 뒤 삼생석三生石에서 다시 서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던 바, 과연 이날 저녁에 원택이 죽었고, 그로부터 12년 뒤에 이원이 그 약속대로 그곳에 나가 보니, 과연 원택이 그곳에 나와 있어 다시 서로 만나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18. 18)옛날 정령위丁令威라는 사람의 고향이 요동이었는데, 신선이 되어 갔다가 천년 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올 때에는 학鶴이 되어서 돌아왔다 한다.
  19. 19)차율次律 : 당唐나라 방관房琯의 자字이다. 현종玄宗 때 음보蔭補로 홍문생弘文生이 되었다가 봉선서封禪書를 지어 올리면서 장열張說에게 기재奇才로 인정을 받고 출세 가도를 달려 숙종肅宗 때 벼슬이 형부상서에 이르렀다. 『新唐書 권139.
  20. 20)명부전冥府錢 : 예수재預修齋에서 경전을 읽어야 할 빚과 돈 빚을 갚기 위해 지전紙錢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21. 21)해가 적도 북쪽으로 행한다는 것은 가을을 의미한다.
  22. 22)관각館閣:조선시대 문적文籍을 담당했던 관청인 예문관禮文館과 홍문관弘文館을 말한다.
  23. 23)화산방花山坊:옛 백제 때의 이름으로 지금은 해남군海南郡 화산면花山面이다.
  24. 24)참오參伍 : 여러 가지 증후를 비교하고 분석하여 진단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25. 25)염향拈香 : 향을 사르는 것을 말하는데 때로는 법통을 이어받을 때나 불사佛事를 할 때 행하는 의식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법사로부터 법통을 이어받는 의식을 말하는 듯하다.
  26. 26)「見月帖」에는 이 편지 앞에 “아드님이 온 데다 문안 편지까지 받고 보니 초가을에 기거가 편안하심을 알아 아주 마음이 놓입니다.(令胤至。 兼惠問書。 恭審新凉起居淸。 委浣良深。)”라고 하는 대목이 더 있다.
  27. 27)『주역약례周易畧例』 : 위魏나라의 학자 왕필王弼(226∼249)의 저서.
  28. 28)순상荀爽이나 우번虞翻 : 순상은 후한 때의 경학자로 『易傳』 등 많은 저서를 남겼고, 우번은 삼국三國시대 오吳나라 사람으로 역시 『易注』 등의 저서를 남겼다.
  29. 29)「見月帖」에는 이 앞에 “멀리서 그리던 중에 글월을 받자옵고, 서리 내리는 계절에 정치 펼치시면서 청백하심을 알게 되니 실로 적막하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溯慕中。 得奉華翰。 謹審霜令。 政體淸白。 良慰寂寞之情。)”라고 하는 내용이 더 있다.
  30. 30)색성賾性 : 1777~? 조선 스님. 호는 수룡袖龍, 속성은 임씨任氏, 해남 사람. 두륜산에 가서 모윤慕閏의 제자가 되었다. 외전外典을 잘 알았으며, 경학經學을 정연精硏하여 이성理性에 조예가 깊었다. 연파蓮坡의 법인法印을 전해 받았다. 저서에는 문집 1권이 있다.
  31. 31)원교員嶠 :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호. 자는 도보道甫이다. 이광사는 영조 시절 손꼽히던 서예가로서 자기 호를 딴 원교체圓嶠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남겼다.
  32. 32)회소懷素 : 초서에 능했던 당나라 승려.
  33. 33)전傳 : 「五柳先生傳」을 말한다.
  34. 34)『주역발미周易發微』 : 동천東泉이 지은 책인 듯하나 고증된 것은 아니다.
  35. 35)건장궁전建章宮殿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장안長安의 성서城西에 세운 궁전. 2층 복도로 미앙궁未央宮과 연결되어 있다.
  36. 36)인진쑥(茵蔯蒿) :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약초로 쓰는데 특히 황달黃疸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37. 37)양한兩漢의 구가九家 : 한나라 때 『주역』을 주석했던 아홉 명의 연구가. 경방京房·마융馬融·정현鄭玄·송충宋衷·우번虞翻·육적陸績·요신姚信·적자현翟子玄·순상荀爽.
  38. 38)관각館閣 :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藝文館을 말한다.
  39. 39)응교應敎 : 조선시대 홍문관·예문관의 정사품 벼슬.
  40. 40)소주蘇州 : 당唐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의 호이다. 소주 자사蘇州刺史를 지내면서 혜정惠政을 베풀었고, 고결한 성품에, 시가 또한 한담간원閒澹簡遠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도연명陶淵明과 병칭하여 도위陶韋라고 불렀는가 하면, 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왕맹위류王孟韋柳로 일컫기도 하였다. 『위소주집韋蘇州集』 권6 「감탄感嘆」을 보면, 〈상서傷逝〉·〈왕부평상회往富平傷懷〉·〈출환出還〉·〈동야冬夜〉 등 무려 열아홉 개의 소제목 아래 먼저 떠나간 부인을 추억하며 자신의 절절한 심경을 기막힌 시로 토로해내고 있다.
  41. 41)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초楚나라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었는데,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이를 빼앗고자 하여 거짓으로 열다섯 개의 성城과 바꾸자고 하였다. 조나라에서는 화씨벽만 빼앗기고 성은 얻지 못할까 염려하여 진나라에 사신으로 갈 사람을 구하였는데, 인상여藺相如가 가게 되었다. 인상여가 “진나라에서 성을 주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줄 것이고, 성을 주지 않으면 화씨벽을 손상 없이 가지고 조나라로 돌아오겠다.”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로 어떤 물건을 손상없이 돌려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42. 42)서분鼠糞 : 초목의 이름이다. 『爾雅』 「長楚銚芅」 주에 의하면, “넝쿨 식물이며 그 열매는 붉고 모양은 쥐똥과 같다. 그래서 서시라고도 하며 아이들이 따 먹는다.(藤生。 子赤。 狀如鼠糞故。 亦名鼠矢。 兒童食之。)”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산수유를 말하는 것 같다.
  43. 43)소요부邵堯夫 : 송나라 학자 소옹邵雍의 자字이다. 소옹은 초야에 은거하는 선비를 등용하는 정책인 유일遺逸로 추천을 받아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다 거절하고 소문산蘇門山에서 독서에만 심취하여 자기 거소를 안락와安樂窩라고 이름하고, 자호를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 하였다.
  44. 44)육평천陸平泉 : 명明나라 송강松江 화정華亭 사람으로 자는 여길與吉, 이름은 수성樹聲이며, 평천은 그의 호이다. 가정嘉靖 회시會試에서 장원하였고, 태상경太常卿·남경 좨주사南京祭酒事·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는데, 명리名利에 욕심이 없어 벼슬길에 오랫동안 앉아 있지 않았다.
  45. 45)조인調人 : 주周나라 때 벼슬 이름으로 지관地官에 속하며, 백성들의 분쟁을 화해시키는 일을 담당하였다.
  46. 46)진미공陳眉公 : 명明나라 진계유陳繼儒(1558~1639)의 호이다. 문인 화가.
  47. 47)묘족苗族:삼묘三苗를 말하는데, 『書經』 「大禹謨」에 “임금이 문덕을 크게 선포하니 70일 만에 묘가 이르렀다.(帝乃誕敷文德。 七旬有苗格。)”라고 하였다.
  48. 48)갈葛:하夏 시대의 제후국諸侯國으로 하남성河南省 규구현葵丘縣 동쪽에 있었다.
  49. 49)목릉穆陵:조선 선조宣祖와 그의 원비元妃 의인왕후懿仁王后 및 계비繼妃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으로 경기도 양주군에 있다. 여기에서는 선조를 일컫는다.
  50. 50)삼괴구극三槐九棘:세 그루 홰나무와 아홉 그루 멧대추나무라는 뜻인데, 주周나라 때 조정의 뜰에 홰나무 세 그루와 멧대추나무 아홉 그루를 심고 공경대부와 삼공三公들이 그 아래에서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51. 51)금마옥당金馬玉堂 : 한림학사가 대조待詔하는 금마문金馬門과 옥당서玉堂署로, 조정의 화려한 내직內職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52. 52)합하閤下 : 벼슬아치를 높여 부르던 말.
  53. 53)염향拈香 : 염향사법拈香嗣法의 준말로 향을 사르고 법을 잇는 것이다.
  54. 54)토룡土龍 : 흙으로 빚어 만든 용. 이 글에서는 자신에게 배워 봐야 별 이득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55. 55)화양華陽 : 송시열宋時烈을 말한다. 송시열이 충북 괴산槐山의 화양동華陽洞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56. 56)천신薦紳 : 관위가 있는 사람. 또는 지체가 높은 사람.
  57. 57)원회元會 : 천지의 운행 도수.
  58. 58)한형주韓荊州 : 한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고 사모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말로, 당나라 때 명신名臣 한조종韓朝宗을 말한다. 그가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에 이백李白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서 “살아서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질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번 한형주를 알기 원한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古文眞寶』 「與韓荊州書」.
  59. 59)난산亂山 : 산줄기를 이루지 않고 높낮이가 고르지 아니하게 여기저기 어지러이 솟은 산.
  60. 60)돌아가신 대감은 서유린徐有隣을 말하고, 기적이란 그가 지은 「表忠記蹟碑」를 말한다.
  61. 61)동향桐鄕 : 중국 안휘성安徽省 동성현桐城縣에 있는 지명인데, 수령이 어진 정사를 베푼 고을을 뜻한다. 한漢나라의 대사농大司農 주읍朱邑이 젊은 시절 동향桐鄕의 색부嗇夫가 되었는데, 청렴하고 공평하게 정사를 하였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면서 존경하였다. 그 뒤에 주읍이 병들어서 죽게 되었을 때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옛날에 동향의 관리가 되었을 적에 그 백성들이 나를 사랑하였었다. 그러니 반드시 나를 동향에 장사 지내라.” 하였다. 주읍이 죽자 그 아들이 동향에다가 장사 지내었는데, 동향의 백성들이 과연 사당을 세워서 세시歲時로 제사를 지냈다. 『漢書』 「循吏傳」 〈朱邑傳〉.
  62. 62)영삭鈴索 : 태수의 응접실에 설치한 방울을 단 노끈을 말한다. 태수를 방문하는 사람이 이 노끈을 잡아당긴다고 한다.
  63. 63)주광黈纊 : 면류관의 양쪽으로 귀에 닿을 만큼 늘어뜨려 달아맨 누런 솜 방울.
  64. 64)동표銅標 : 적병을 몰아내고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구리쇠 기둥.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멀리 교지交趾를 정벌한 뒤, 두 개의 구리 기둥을 세워 한나라의 영토임을 알린 고사가 있다. 『後漢書』 「馬援列傳」.
  65. 65)지면漬綿 : 솜을 술에 담근 것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의 고사高士 서치徐穉가 항상 솜을 술에 담갔다가 꺼내서 바싹 말리고 여기에 닭구이(雞炙) 한 마리를 싸 가지고 죽은 이의 묘 곁에 가서 그 솜을 물에 적시어 주기酒氣가 우러나게 한 다음, 그 묘 앞에 백모白茅를 깔고 이것을 올려 조문弔問하곤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권53.
  66. 66)지주砥柱 : 삼문협三門峽을 통해 흐르는 황하의 한복판에 있는 산 이름으로, 황하의 거센 물결에도 쓸려 나가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다고 한다. 흔히 어려움에 임해 굳건하게 버티는 것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변치 않는 굳은 절개를 비유하여 쓴다.
  67. 67)정민貞珉 :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
  68. 68)양숙羊叔 : 진晉나라 양호羊祜를 말하는데 그의 자字가 숙자叔子이다. 그가 양양 태수襄陽太守로 있을 적에 백성을 사랑하였으므로, 그가 노닐던 현산峴山에 백성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그 비문 가운데 “우주가 생기면서 이 산도 생겼을 텐데, 그동안 우리들처럼 이곳에 올라와서 멀리 바라보았던 멋진 인사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마는, 모두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생각하면 슬픈 일이다. 백 년 뒤에라도 나에게 혼이 있다면 혼령이라도 여기에 다시 찾아오리라.”라고 했던 양호의 말이 씌어 있다. 이 비문을 보고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자, 당양후當陽侯 두예杜預가 ‘타루비墮淚碑’라고 일컬었던 고사가 있다. 『晉書』 「羊祜傳」.
  69. 69)정 공鄭公의 비석 : 연주 자사兗州刺史 정희鄭羲의 비석을 말한다. 이 비석은 자연석에 새겼으므로 전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70. 70)경초勁草 : 줄기가 강하여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억센 풀이라는 뜻으로, 지조가 꿋꿋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71. 71)문원文苑:조선시대 홍문관弘文館과 예문관禮文館의 별칭이다.
  72. 72)금계金雞 : 사조赦詔를 반포하는 날 간두竿頭에 설치하는 금金으로 장식한 닭을 말한 것으로, 왕의 사명赦命을 뜻한다. 당나라에서는 대사大赦가 있으면 붉은 옷 입은 아전이 금으로 만든 닭을 가지고 돌아다닌다고 한다.
  73. 73)이하의 내용은 「동천에게 답함」의 1과 같다.
  74. 74)건율태乾栗駄 : 범어梵語 hrdaya. 건율타야乾栗陀耶의 다른 말. 견실심堅實心.
  1. 1)「何」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具謝」{編}。
  2. 2)「頃」上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庚暑酷熱不審靜體淸瑟」{編}。
  3. 3)「性」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上人」{編}。
  4. 4)「爾」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宣」{編}。
  5. 5)「吝」金敏榮所藏筆寫本作「恡」{編}。
  6. 6)「耶」下金敏榮所藏筆寫本有「不備」{編}。
  7. 7)「藏」上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 「謹忽沙門至問得啓處調適誠慰慕用之誠」{編}。
  8. 8)「今日」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無有{編}。
  9. 1)「邋遢」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門*(㯿-木))闒」{編}。
  10. 2)「憐」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具」{編}。
  11. 3)「深」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數數來起居淸穩否」{編}。
  12. 4)「畫棟」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馺娑」{編}。
  13. 5)「也」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在唐有一行氏在宋有麻衣道士。誠欲一尋墜緖」{編}。
  14. 6)「愧慚愧慚」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慚愧慚愧不具」{編}。
  15. 7)「也」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具」{編}次同。
  16. 8)「辱」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知別後興居安適」{編}。
  17. 9)「也」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宣」{編}。
  18. 10)「之」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具」{編}。
  19. 11)「嘗云」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作「欲聞詩道否」{編}。
  20. 12)「斯足以言詩也」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無有{編}。
  21. 13)「之」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備」{編}。
  22. 14)「也」下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不備謝規」{編}。
  23. 1)「貧」上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李生來。伏承委翰。謹審省定。安勝深慰別緖」{編}。
  24. 2)「趙」下金敏榮所藏同本有「不宣」{編}。
  25. 1)「已」後金敏榮所藏兒菴遺稿筆寫本有尺牘四篇如下「左顧旣踰所望。惠牘又蒙存問。兼賜筆墨珍瑰可玧。不勝感謝之至。藏懶散如時。無以副厚意也。嘅茗花已老蒼。但其焙晒如淸。謹玆奉獻也。不備。
    令胤至兼惠問書。恭審新涼起居淸適。慰浣良深。藏近因客擾。朝暮奔勞。便作高郵。小吏生活自懞懞。必也更名晦跡。走入五臺山中。方免此患耳。周易略例。謹近覽畢。法王輔嗣之學。外物蒙而遺互體慈。與卦實而不取。以之爲三家村裡村夫子。猶患不足。况可以方駕荀虞哉。正是孤陋之最耳。不備。
    㴑慕中。得奉華翰。謹審霜令。政體淸白。良慰寂寞之情。詩律久欲謝却。我無堅心定志。能造乾栗䭾地頭。又玆奉塵淸賞耳。如何如何。不備。
    赫蹏遠辱。審旅食麤。傾㵼良深。示喩浮石寺事蹟。滌煩胃。盪塵腸。珍玩未已。李先生詩。尤雅重鄭。造事尤恠異不倫耳。不備謝規。惠藏再拜」{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