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가산고(伽山藁) / 伽山藁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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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고 제3권(伽山藁 卷之三)
오언고시 五古 11편
비 온 후에 짓다(雨後作)
南岳丹霞落       남쪽 산마루에 붉은 노을 지고
東溪白水多       동쪽 계곡에는 하얀 강물 넘쳐라
晴川花事歷       비 갠 시내에는 꽃의 계절 지나고
隔岸草芒和       건너 언덕에는 새 풀 묵은 풀 섞였네
嬌態鶯流苑       아리따운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동산
淸癯鶴立阿       청아하게 야윈 학이 서 있는 산비탈
蟬風飜婉曲       바람결 따라 바뀌는 매미의 어여쁜 곡조
樹夕剩淸歌       저녁이면 넘쳐 나는 나무의 맑은 노래
偃蹇靑山色       허나 푸르른 산색이 슬금슬금 기울자
冷冷洗碧蘿       말끔히 씻은 푸른 넝쿨만 싸늘하여라
비가 막 개고(新霽)
乾坤如明鏡       하늘과 땅이 밝은 거울 같아
其氣忽淸凉       그 기운 홀연히 맑고 시원해라
蒼莽大野色       큰 들판의 색깔은 끝없이 푸르고
扶踈平林光       평지 숲의 빛깔도 무성해졌구나
望彼雲際寺       저 멀리 구름 끝의 절을 바라보고
草樹又夕陽       풀과 나무 또 저녁 햇살도 보나니
隔岸嚲腓卉       건너편 언덕에는 휘늘어진 병든 초목
挾磵眠垂楊       계곡을 끼고서 잠이나 자는 수양버들
病懷難自抑       병자의 심정 스스로 억누르기 어려운데
於是增感傷       저런 모습 보자니 슬픈 마음 더해라
桃溪知不遠       복사꽃 개울이 멀지 않다는 걸 알기에
扶藜訪漁郞       명아주 지팡이 짚고 어부 찾아 나섰더니
精爽煙浮似       상쾌해지는 정신이 떠도는 안개 같고
渥然檀木腸       반드르르 윤기가 도는 전단나무의 속심
可憐窓外鳥       가련하여라, 저 창밖에서 우는 새들
輕身能翺翔       경솔한 몸짓으로 퍼덕대기만 할 뿐1)
浪蝶有何欲       물결치는 나비야, 뭐가 그리 탐나느냐
還似太忩忙       엄청 바쁜 것처럼 부산을 떠는구나
況眺長空裏       게다가 긴 허공 속 한참을 노려보다
萬里去蒼蒼       만 리 길 떠나가네, 아득한 저 하늘로
한강을 건너며(渡漢江)
吾聞漢水源       나는 들었네, 한수의 근원이
于筒水以由       우통수2)에서 시작된다고
江淮汝許注       강회3)도 너라면 채우겠건만
逝㦲無時休       가는구나, 잠시도 쉬지를 않고

010_0775_a_02L伽山藁卷之三

010_0775_a_03L

010_0775_a_04L五古

010_0775_a_05L雨後作

010_0775_a_06L
南岳丹霞落東溪白水多

010_0775_a_07L晴川花事歷隔岸草芒和

010_0775_a_08L嬌態鶯流苑淸癯鶴立阿

010_0775_a_09L蟬風飜婉曲樹夕剩淸歌

010_0775_a_10L偃蹇靑山色冷冷洗碧蘿

010_0775_a_11L新霽

010_0775_a_12L
乾坤如明鏡其氣忽淸凉

010_0775_a_13L蒼莽大野色扶踈平林光

010_0775_a_14L望彼雲際寺草樹又夕陽

010_0775_a_15L隔岸嚲腓卉挾磵眠垂楊

010_0775_a_16L病懷難自抑於是增感傷

010_0775_a_17L桃溪知不遠扶藜訪漁郞

010_0775_a_18L精爽煙浮似渥然檀木腸

010_0775_a_19L可憐窓外鳥輕身能翺翔

010_0775_a_20L浪蝶有何欲還似太忩忙

010_0775_a_21L況眺長空裏萬里去蒼蒼

010_0775_a_22L渡漢江

010_0775_a_23L
吾聞漢水源于筒水以由

010_0775_a_24L江淮汝許注逝㢤無時休

010_0775_b_01L太古羊膓劈       아득한 옛날에 양장4)을 가르고
其道衝長洲       그 물길 기나긴 모래밭을 찌르니
嶺海▼(巾+乏)外仄       산맥과 바다가 돛 너머로 어렴풋
乾坤江上浮       하늘과 땅이 강 위에 두둥실
夾岸汀花冷       양쪽 언덕 물가에는 꽃이 시들고
阧塘老龍留       가파른 못에는 늙은 용이 서렸네
風掣鳴嫠婦       바람이 저리 세차 과부를 울리고
雨蕭飜玉虬       쓸쓸한 빗줄기에 옥룡이 뒤척이네
如匪借一葉       일엽편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薪米洛不優       낙양에 쌀과 땔감 넉넉지 않다오
黛綠雲際杳       검푸른 빛깔이 구름 끝에 아득하고
終南翠中流       종남산이 비췻빛 속에 흐르는데
紫鯉戲浪花       자줏빛 잉어가 물결을 희롱하고
白鳥坐石頭       하얀 새가 바위 턱에 앉았구나
성 서쪽의 작은 모임에서(城西小社)
井渫枕顚鳴       우물 청소하고 베갯머리에서 우니5)
月虧戶郄明       이지러진 달님만 문틈에서 밝아라
殿屎弊庐中       허름한 집에서 끙끙 신음하자니
稜稜骨骼淸       골격이 맑아져 뼈가 툭툭 불거진다
彊起臨山麓       억지로 일어나 산기슭 굽어보고
野僧石逕行       촌뜨기 중이 오솔길을 나서나니
莫蟬輕葉曳       매미야, 엽전 따라간다 깔보지 마라
圓藕滿塘生       둥근 연뿌리가 못 가득 자란단다
小澗鳥相喚       작은 시내에서 새들이 서로 불러
南山雲縱橫       남쪽 산의 구름이 이리로 또 저리로
人心夕照厚       사람들 마음 석양빛처럼 도타운데
世事秋毛輕       세상사 가을 털처럼 가볍기만 해라
利上將身居       이익을 보고 참석해 앉아 있자니
大慚蕫仲舒       동중서6)에게 너무도 부끄러워라
求志今無奈       구하던 뜻도 이젠 어찌할 수 없고
欲言終未攄       하고 싶던 말도 끝내 다 못 하겠네
光陰如過客       세월은 지나가는 나그네요
天地一蘧廬       하늘과 땅은 하나의 여인숙
貧窮非所憾       가난이야 한탄할 바 아니지만
沉痼第縈紆       차례로 옥죄는 고질병을 어쩌겠소
金玉久猶質       금옥은 오래되어도 성질이 여전한데
人容老漸癯       사람은 늙어 가면서 점점 파리해지니
艱虞纏緜極       얽히고설킨 고난 근심이 극에 달해
餘事被牽驅       끌려다니는 신세쯤 여사가 되었다오
경주에서 있었던 일(東州記事)
東山墳墓在       동쪽 산마루에 분묘가 있어
離鄕故邑新       떠나온 고향이 새삼 그리우니
壬戌秋七月       때는 임술년7) 가을 7월에
十五夜未晨       15일 밤 날이 밝기 전이라
兩肩掛藍縷       양 어깨에 누더기를 걸치고
邐迆去西隣       비실비실 서쪽 이웃을 떠나니

010_0775_b_01L太古羊膓劈其道衝長洲

010_0775_b_02L嶺海▼(巾+乏)外仄乾坤江上浮

010_0775_b_03L夾岸汀花冷阧塘老龍留

010_0775_b_04L風掣鳴嫠婦雨蕭飜玉虬

010_0775_b_05L如匪借一葉薪米洛不優

010_0775_b_06L黛綠雲際杳終南翠中流

010_0775_b_07L紫鯉戲浪花白鳥坐石頭

010_0775_b_08L城西小社

010_0775_b_09L
井渫枕顚鳴月虧戶㕁明

010_0775_b_10L殿屎弊庐中稜稜骨骼淸

010_0775_b_11L彊起臨山麓野僧石逕行

010_0775_b_12L莫蟬輕葉曳圓藕滿塘生

010_0775_b_13L小澗鳥相喚南山雲縱橫

010_0775_b_14L人心夕照厚世事秋毛輕

010_0775_b_15L利上將身居大慚蕫仲舒

010_0775_b_16L求志今無奈欲言終未攄

010_0775_b_17L光陰如過客天地一蘧廬

010_0775_b_18L貧窮非所憾沉痼第縈紆

010_0775_b_19L金玉久猶質人容老漸癯

010_0775_b_20L艱虞纏緜極餘事被牽驅

010_0775_b_21L東州記事

010_0775_b_22L
東山墳墓在離鄕故邑新

010_0775_b_23L壬戌秋七月十五夜未晨

010_0775_b_24L兩肩掛藍縷邐迆去西隣

010_0775_c_01L病葉寒露滴       차가운 이슬 병든 잎에 떨어지고
步步打山巾       걸음걸음마다 산건을 때리는구나
晩景扣村舍       저녁 햇살에 시골집 문 두드리고
借兒指所親       아이 통해 친척 되는 이를 물어
相見兩不知       얼굴을 마주했지만 서로를 몰라
羞澁對津津       어색하고 멋쩍음만 넘쳐흘렀네
良久言乳名       한참 있다 어릴 적 이름을 댔네
又有行字仁       또 항렬자에 인 자가 있었지요
家業一何遆       가업이 한순간에 어찌 이리 되었나
不吊彼秋旻       저 가을 하늘이 돌보지 않은 탓이지요8)
血肉同父母       혈육과 함께 아버지 어머니도
命分已不均       타고난 수명이 이미 공평하지 못했고
非商非工匠       상인도 아니고 공인 장인도 아니라
流隷三十春       유민으로 보낸 30년 세월
他年燈下子       그해 등불 아래서 본 아이가
今日夢中人       오늘 꿈결처럼 만난 사람이라오
寓形自有異       잠시 머문 육신들 돌아가시고는
蹤跡曠無垠       그 자취 휑하니 가뭇없이 사라져
風燭掩忽然       바람 앞 촛불 갑자기 보이지 않아
夢想徒頻頻       부질없이 꿈에서나 자주 그리웠지요
伊余窮途子       그런 저는 길이 막힌 사람
於世未嘗伸       세상에 뜻을 펼친 적도 없고
茅椽借伽山       가지산에서 초가나 빌려 사니
林丘半松筠       숲과 언덕에는 솔과 대가 반반이라오
行年知非矣       지나온 세월 잘못 살았단 걸 알기에
不患死荒濱       휑한 물가에서 죽어도 걱정 않습니다
先祀絕於我       선대의 제사가 저에게서 끊겼는데
萬死罪加身       만 번 죽을 죄 마땅히 받아야지요
게으름을 노래하다(咏慵)
我有稼穡慵       나는 심고 거두는 일에 게을러
田疇不作農       논밭에 농사를 짓지 않았네
我有條桑慵       나는 뽕나무 가지치기에 게을러
衣服不甞縫       의복을 기워 본 적이 없네
我有絲竹慵       나는 악기 다루기에 게을러
宮商盲聾同       음악에는 장님에다 귀머거리
我有麴糵慵       나는 누룩과 엿기름 빚는 일 게을러
壺樽日夜空       술병과 술통이 밤낮으로 비어 있네
囊中乏所儲       바랑에 쌓아 둔 쌀 한 톨 없어도
寧飢不早舂       차라리 굶지 절구질한 적 없고
簾前莓苔産       드리운 발 앞에 이끼가 끼어도
寧屣不擺封       차라리 문대지 털고 메우질 않네
文學不免下       문학은 하류를 면치 못하고
形貌堇爲中       생김새는 근근이 보통은 되고
以慵比於古       게으름에 있어서야 옛사람과 비교해도
能爲上上慵       최고 중에 최고 게으름뱅이라 하겠네
옛날을 생각하다(感古)

010_0775_c_01L病葉寒露滴步步打山巾

010_0775_c_02L晩景扣村舍借兒指所親

010_0775_c_03L相見兩不知羞澁對津津

010_0775_c_04L良久言乳名又有行字仁

010_0775_c_05L家業一何遆不吊彼秋旻

010_0775_c_06L血肉同父母命分已不均

010_0775_c_07L非商非工匠流隷三十春

010_0775_c_08L他年燈下子今日夢中人

010_0775_c_09L寓形自有異蹤跡曠無垠

010_0775_c_10L風燭掩忽然夢想徒頻頻

010_0775_c_11L伊余窮途子於世未嘗伸

010_0775_c_12L茅椽借伽山林丘半松筠

010_0775_c_13L行年知非矣不患死荒濱

010_0775_c_14L先祀絕於我萬死罪加身

010_0775_c_15L咏慵

010_0775_c_16L
我有稼穡慵田疇不作農

010_0775_c_17L我有條桑慵衣服不甞縫

010_0775_c_18L我有絲竹慵宮商盲聾同

010_0775_c_19L我有麴糵慵壺樽日夜空

010_0775_c_20L囊中乏所儲寧飢不早舂

010_0775_c_21L簾前莓苔産寧屣不擺封

010_0775_c_22L文學不免下形貌菫爲中

010_0775_c_23L以慵比於古能爲上上慵

010_0775_c_24L感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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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氏返于魯       공자님 노나라로 돌아오시니
隱公元年春       은공 원년 봄9)에 있던 일
尊抑自有條       높이고 억제함이 이때부터 조리 있고
仁義已所陳       어짊과 의리는 이미 펼쳐지고 있었지
於止知所止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출 줄 알았으니10)
堯舜豈異人       요임금 순임금이 어찌 다른 사람이랴
其言正如髮       그분의 말씀은 머리카락처럼 곧고
其德猜鬼神       그분의 덕은 귀신도 시기하였으며
庶幾顏氏子       안 씨의 아들 정도는 되어야
三月不違仁       석 달 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지11)
此道用於世       이런 도가 세상에서 시행되니
必也濟斯民       반드시 우리 백성 구제하겠네
상가행傷歌行
分背古主人       옛 주인과 이별하고서
外面犇走來       외면한 채 달려왔는데
五十星霜更       성상이 50번이나 바뀐
白髮今朝哀       오늘 아침 백발이 서글퍼라
幼日幻炰烋       젊은 시절엔 용맹과 뽐냄에 홀렸다가
老境事崔嵬       늘그막에는 우뚝한 봉우리 섬기나니
衰候不預期       노쇠의 징후는 예고 없이 오는 것
芳心自可催       꽃다운 마음 스스로 재촉해야 하리
莊蝶翩翩至       장자의 나비가 나풀나풀 다가와
枕上獨徘徊       머리맡에서 홀로 배회하나니
此道尋常尓       이 도는 너무나 평범하지만
如究亦難裁       궁구하면 또한 알기 어렵지
어머니 생각(念慈親)
慈母享天壽       자모께서 누리신 천수
除七之九旬       구순에서 일곱 제한 해
性愛香糯酒       향긋한 곡주를 본래 좋아하셨건만
家貧虛度春       집이 가난해 그냥 보내야 했던 봄날
抱憾四十年       한을 끌어안고 보낸 40년 세월
不孝林泉身       불효한 채 숲속에서 살아가는 몸
今爲中老者       이제 중늙은이가 되었다지만
尙戱嬰兒親       여전히 응석부리고 싶은 아이의 엄마
少不妨藜藿       젊어서는 거친 나물도 싫다 않더니
老不忍苦辛       나이 들어선 신고를 참지 못하셨지
讀禮心自怍       예문을 읽으면서12) 스스로 마음먹었네
天地一刑人       천지에 형벌을 받은 한 사람이 되기로
가을밤에 짓다(秋夜作)
永夜疊愁夢       기나긴 밤 근심스런 꿈만 쌓이고
孤燈倍客情       외로운 등불 나그네 시름만 더해
摳身凭檻嘯       몸 추슬러 난간에 기대 휘파람 불고
尋句面月行       시구를 찾아 달님 보며 거닌다
簾外蒼茫影       주렴 밖에는 창망한 그림자
樹間浙瀝聲       숲에는 쏴아 하는 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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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氏返于魯隱公元年春

010_0776_a_02L尊抑自有條仁義已所陳

010_0776_a_03L於止知所止堯舜豈異人

010_0776_a_04L其言正如髮其德猜鬼神

010_0776_a_05L庶幾顏氏子三月不違仁

010_0776_a_06L此道用於世必也濟斯民

010_0776_a_07L傷歌行

010_0776_a_08L
分背古主人外面犇走來

010_0776_a_09L五十星霜更白髮今朝哀

010_0776_a_10L幼日幻炰烋老境事崔嵬

010_0776_a_11L衰候不預期芳心自可催

010_0776_a_12L莊蝶翩翩至枕上獨徘徊

010_0776_a_13L此道尋常尓如究亦難裁

010_0776_a_14L念慈親

010_0776_a_15L
慈母享天壽除七之九旬

010_0776_a_16L性愛香糯酒家貧虛度春

010_0776_a_17L抱憾四十年不孝林泉身

010_0776_a_18L今爲中老者尙戱嬰兒親

010_0776_a_19L少不妨藜藿老不忍苦辛

010_0776_a_20L讀禮心自怍天地一刑人

010_0776_a_21L秋夜作

010_0776_a_22L
永夜疊愁夢孤燈倍客情

010_0776_a_23L摳身凭檻嘯尋句面月行

010_0776_a_24L簾外蒼茫影樹間浙瀝聲

010_0776_b_01L沈沈㪅漏滴       울적한 마음에 눈물까지 맺혀
歷歷漢流傾       또박또박 한강물에 쏟는다
錦綉西山積       수놓은 비단이 서쪽 산에 쌓이고
烟霞北海明       안개와 노을이 북쪽 바다에 환한데
幽懷筆所託       그윽한 회포를 붓으로 옮기려 해도
美酒樽無盈       술통에 채워진 감미로운 술이 없네
雁忽天南向       기러기 문득 하늘 남쪽으로 향하는데
人胡水北征       사람은 어쩌자고 한강 북쪽으로 갈까
忘憂惟在物       근심을 잊게 하는 건 오직 사물뿐
黃菊數千莖       노란 국화 수천 송이가 흐드러졌구나
이치를 통달하다(達理)
已缺有時滿       이지러졌어도 때가 되면 가득 차고
至窮必期通       궁색해지면 반드시 통할 날 있지
不見伯王國       보지 못했나, 패왕의 나라를
視此阿房宮       또 이 아방궁을 한번 보게나
祖龍滈池據       조룡13)이 호지14)에 웅거할 때
誰知劉起豊       유방이 풍패15)에서 일어날 줄 누가 알았으랴
隆中諸葛利       융중에서도 제갈량은 통했고16)
渭上呂望窮       위수에서는 여망도 궁색했지17)
十載潜郞馮       10년 동안이나 묻혀 있던 낭관 풍당18)
弱冠請纓終       약관의 나이에 긴 끈을 청했던 종군19)
夢飜千萬古       천만년 세월이 꿈속의 뒤척임이요
雲點太虛空       아득한 허공에 찍힌 한 점의 구름
衆醉獨何醒       다들 취했는데 홀로 어찌 멀쩡하랴
人異我何同       남들이 다르다는데 내 어찌 같다 하리
違順從所適       역행과 순행이 가는 방향에 달렸음을
得乎方寸中       깨달았네, 사방 한 치20) 가운데서
칠언고시(七古)
언양현에 잠시 머물며(寓居彦陽縣)
有客有客鵬擧子     객이 있네, 객이 있네, 붕거21)라는 자
厖眉以皓又黃耳     기다란 눈썹 하얗고, 또 귀는 누렇고
其書仁義性理說     그의 글은 인과 의 성리학의 설이요
其道佛老虗无裏     그의 도는 부처와 노자 허무의 마음
一物綜叅天地間     한 물건이 천지 사이에 두루 스며 있어
不隨而生不隨死     따라 생기지 않고 따라 죽지도 않는다네
嗟 我有歌兮歌一哀   아! 나에게 노래가 있어 첫 번째 노래 구슬퍼라
笑殺秋愁賦自來     웃긴 시도 청승맞은 노래도 여기에서 나온다네
그 두 번째(其二)
生涯生涯筆一柄     생애여, 생애여, 붓 한 자루뿐이로다
達亦有命窮亦命     통하는 것도 운명이요, 막히는 것도 운명
舘外驕兒踞夷然     객사 밖 버릇없는 아이 태연히 걸터앉아
低眉邪視不打脛     눈썹 깔고 째려보아도 종아리 치지 않으리

010_0776_b_01L沈沈㪅漏滴歷歷漢流傾

010_0776_b_02L錦綉西山積烟霞北海明

010_0776_b_03L幽懷筆所託美酒楢無盈

010_0776_b_04L雁忽天南向人胡水北征

010_0776_b_05L忘憂惟在物黃菊數千莖

010_0776_b_06L達理

010_0776_b_07L
已缺有時滿至窮必期通

010_0776_b_08L不見伯王國視此阿房宮

010_0776_b_09L祖龍滈池據誰知劉起豊

010_0776_b_10L隆中諸葛利渭上呂望窮

010_0776_b_11L十載潜郞馮弱冠請纓終

010_0776_b_12L夢飜千萬古雲點太虛空

010_0776_b_13L衆醉獨何醒人異我何同

010_0776_b_14L違順從所適得乎方寸中

010_0776_b_15L

010_0776_b_16L七古

010_0776_b_17L寓居彦陽縣

010_0776_b_18L
有客有客鵬擧子厖眉以皓又黃耳

010_0776_b_19L其書仁義性理說其道佛老虗无裏

010_0776_b_20L一物綜叅天地間不隨而生不隨死

010_0776_b_21L我有歌兮歌一哀笑殺秋愁賦自來

010_0776_b_22L其二

010_0776_b_23L
生涯生涯筆一柄達亦有命窮亦命

010_0776_b_24L舘外驕兒踞夷然低眉邪視不打脛

010_0776_c_01L吉凶何須桑田覘     길흉을 뽕나무밭22)에서 엿볼 필요나 있나
此道收藏云躁靜     이 도는 거두고 간직해 조급함 잦아드는 것
嗟 我有歌兮歌二放   아! 나에게 노래가 있어 두 번째 노래 풀어놓네
心爲形役奚怊悵     몸이 마음을 부려 먹었지만 어찌 슬퍼만 하랴23)
그 세 번째(其三)
美人美人天一方     미인이여, 미인이여, 저 하늘 한쪽 끝에
同心親近非葛强     한마음으로 가까이하며 갈강24)은 되지 마세
故國烟花零家事     옛 고향 안개와 꽃에 쇠락한 집안 이야기
愁夢燈前道路長     근심스러운 꿈 등불 앞에 갈 길이 멀어라
母子流離寄於此     어미와 아들 유랑하다가 이곳에 기탁하여
卜誅茅楝烟霞傍     노을 가에 터를 잡고 초가집을 지었다오
嗟 我有歌兮歌三發   아! 나에게 노래가 있어 세 번째 노래 터지네
可憐艸木拋朽骨     가련하구나, 풀숲에 버려진 썩은 뼈들이여
그 네 번째(其四)
浮世浮世莫乖離     떠도는 세상, 떠도는 세상, 헤어지지 마세
終日嘿然如孩痴     하루 종일 침묵하니 어리석은 아이 같구나
豺虎咆嘷魚龍冷     승냥이 호랑이 포효하고 물고기 용 싸늘한데
陰厓窈窕向寒時     그늘진 언덕 으슥한 곳에 추운 계절 다가오네
山竹欲裂王母降     산대가 터질 듯하자 서왕모께서 내려오시니
林梢怳惚雲霓旗     수풀 끝에는 황홀한 무지개와 구름의 깃발25)
嗟 我有歌兮歌四奏   아! 나에게 노래가 있어 네 번째 노래 연주하네
鐘磬秘恠山未晝     종과 경쇠 소리 신비하건만 산엔 아직도 어둠이
그 다섯 번째(其五)
巖架四隅湍流急     바위에 걸친 초가집 사방에 여울목 급하고
冷射蘆簾寒雨濕     냉기 쏟아지는 갈대 주렴에 찬비가 축축해
雲水砧邊童子啼     구름과 강물 다듬잇돌 곁에서 동자가 울고
玉宸壇前丈人立     옥황상제 거룩한 단 앞에 어른이 서 있구나
衰暘易充食所餘     작아진 창자 채우기 쉬워 먹고 남는 것들은
置於石上飢鴉集     바위에 올려놓으면 주린 까마귀 몰려든다오
嗟 我有歌兮歌五長   아! 나에게 노래가 있어 다섯 번째 노래 길어지네
廓爽烟月無何鄕     탁 트인 하늘에 안개와 달이 무하유지향26)이로다
그 여섯 번째(其六)
孟獸靠山龍藏湫     맹수는 산에 의지하고 용은 계곡에 숨어 있고
風雲慘黑木南樛     참혹한 바람 검은 구름에다 남쪽엔 굽은 나무
寁雷崩泉巨鼉泳     천둥 내리쳐 무너진 샘에는 큰 악어 헤엄치고
疊山鏨臺道士遊     첩첩 산중에 누대 깎으니 도사가 노니는구나
人生五十知天命     인생살이 50이면 하늘의 명령을 알 나이
學之工拙亦可休     배운 재주 졸렬하니 또한 쉬어야 옳으리라
嗟 我有歌兮歌六遲   아! 나에게 노래가 있어 여섯 번째 노래 지루하네
癯然靑鶴不老姿     파리하게 야윈 푸른 학27)이여, 그 자태일랑 늙지 마오
그 일곱 번째(其七)
浪子 覉旅人間何以老  유랑자여, 인간 세상 떠돌며 어떻게 늙어 왔나
祗恨幼年無聞道     어려서 도 배우지 못한 게 그저 한스러울 뿐

010_0776_c_01L吉凶何須桑田覘此道收藏云躁靜

010_0776_c_02L我有歌兮歌二放心爲形役奚怊悵

010_0776_c_03L其三

010_0776_c_04L
美人美人天一方同心親近非葛强

010_0776_c_05L故國烟花零家事愁夢燈前道路長

010_0776_c_06L母子流離寄於此卜誅茅楝烟霞傍

010_0776_c_07L我有歌兮歌三發可憐艸木拋朽骨

010_0776_c_08L其四

010_0776_c_09L
浮世浮世莫乖離終日嘿然如孩痴

010_0776_c_10L豺虎咆嘷魚龍冷陰厓窈窕向寒時

010_0776_c_11L山竹欲裂王母降林梢怳惚雲霓旗

010_0776_c_12L我有歌兮歌四奏鐘磬秘恠山未晝

010_0776_c_13L其五

010_0776_c_14L
巖架四隅湍流急冷射蘆簾寒雨濕

010_0776_c_15L雲水砧邊童子啼玉宸壇前丈人立

010_0776_c_16L衰暘 [20] 易充食所餘置於石上飢鴉集

010_0776_c_17L我有歌兮歌五長廓爽烟月無何鄕

010_0776_c_18L其六

010_0776_c_19L
孟獸靠山龍藏湫風雲慘黑木南樛

010_0776_c_20L寁雷崩泉巨鼉泳疊山鏨臺道士遊

010_0776_c_21L人生五十知天命學之工拙亦可休

010_0776_c_22L我有歌兮歌六遲癯然靑鶴不老姿

010_0776_c_23L其七

010_0776_c_24L
浪子覉旅人間何以老祗恨幼年無聞

010_0777_a_01L卿相何人我何人     공경과 장상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貴達多能貧窮早     부귀 영달할 재능 많건만 빈천과 궁색이 일찌감치
如遇燕都悲歌士     저 연도에서 슬픈 노래 부르는 선비님 만나거든
抒攄平日之所抱     평소 속으로 품었던 뜻을 왈칵 쏟아 내시게나28)
嗟 我有歌兮歌七曲   아! 나에게 노래가 있어 일곱 번째 노래 읊조리네
哀訴蒼穹終瀆告     하늘에 슬피 호소하다 결국 군말29)이 되었구려
잡저 찬雜著 讃
동명 대사 상찬東溟大師像讃
師何來         대사께서는 어디서 오셨을까.
渡海一杯        술잔 하나로 바다를 건너셨지.
師何去         대사께서는 어디로 가셨을까.
蓮華深處        연꽃이 우거진 곳으로.
靈就山萬樹烟月     영취산에는 수많은 나무와 안개와 달님.
白㲲紅綃彩毫端     하얀 무명 붉은 비단은 붓끝의 물감에서.
彷彿生即生底      살아 계신 것 같다 하면 살아 계신 것.
滅即滅底        돌아가셨다고 하면 돌아가신 것.
生滅底         생멸이란 것이
了做不生滅底      결국 생멸하지 않는 것.
밀암 대사 상찬密庵大師像讃
生而寄而        태어나 의탁하시다
死而歸而        죽어서 돌아가셨네.
生寄死歸        태어남과 의탁함과 죽음과 돌아감은
可以目寓視心寓思    눈으로 볼 수도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而七分英爽       7할의 영명하신 혼만큼은
瞭然常明        환하게 항상 밝으니
不可後天而死      하늘이 무너진 뒤에도 죽을 수 없고
又不可先天而生     또 하늘보다 먼저 생길 수도 없도다.
구룡 대사 상찬九龍大師像讃
그대의 허허롭고 신령한 지각은 마음에서 발현하여 범위를 창조하였습니다. 그대는 움직임과 고요함을 졸병으로 삼는다 하고, 주관을 장수의 깃발이라 하였지요. 그렇다면 그대의 눈썹과 그대의 허리띠도 달을 가리키는 표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우께서는 그저 황홀한 정신을 저 그림에 의탁하소. 그래야 내가 공의 영정을 보고 애달픈 그리움이라도 담을 수 있지 않겠소.
석담 대사 상찬石潭大師像讃

010_0777_a_01L卿相何人我何人貴達多能貧窮早
010_0777_a_02L如遇燕都悲歌士抒攄平日之所抱
010_0777_a_03L我有歌兮歌七曲哀訴蒼穹終瀆告

010_0777_a_04L

010_0777_a_05L雜著 讃

010_0777_a_06L東溟大師像讃

010_0777_a_07L
師何來渡海一杯師何去蓮華深處
010_0777_a_08L靈就山萬樹烟月白㲲紅綃彩毫端
010_0777_a_09L彷彿生即生底滅即滅底生滅底
010_0777_a_10L做不生滅底

010_0777_a_11L

010_0777_a_12L密庵大師像讃

010_0777_a_13L
生而寄而死而歸而生寄死歸可以
010_0777_a_14L目寓視心寓思而七分英爽瞭然常明
010_0777_a_15L不可後天而死又不可先天而生

010_0777_a_16L

010_0777_a_17L九龍大師像讃

010_0777_a_18L
而虛靈知覺發見乎心底甄陶範圍
010_0777_a_19L動靜云爲以卒徒注觀將帥旗麾
010_0777_a_20L則而眉毛而衣帶雖指月標幟第只神
010_0777_a_21L之怳惚彼繪素依歸故吾於公之幀
010_0777_a_22L寓哀思而

010_0777_a_23L

010_0777_a_24L石潭大師像讃

010_0777_b_01L
妙峯海上        바다 위 묘봉산
孤岑石潭        높은 봉우리의 석담은
禪門之虨        선문의 범 무늬요.
窈窕春晝閴靜雲關    한적한 봄날의 고요한 구름 빗장
嫺然一幅        우아한 한 폭의 그림이
大師容顔        바로 대사의 얼굴이요.
畫裡瞻想        그림 속에서 우러러보는 건
七分之間        7할의 영명하신 혼이지요.
침허 대사30) 상찬枕虗大師像讃
錫杖雲瓶        석장 구름 정병으로
徧遊名山        명산 두루 유람하고
念佛叅禪        염불하고 참선하여
透入玄關        현묘한 관문 통과했네.
師今何在        대사 지금 어디 계시나.
超出塵寰        티끌 세계 벗어나셨도다.
월파 대사31) 상찬月波大師像讃
아! 세상이 문장을 숭상한다지만 소박함을 숭상하진 않으니, 소박하면 반드시 시대의 기호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군자는 이로써 옳다고 할 것이다. 대사의 마음 씀씀이는 질박하고 정직하여 사사로운 뜻은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오호, 뒷날 이 초상을 뵙는 사람들은 눈썹을 볼 것이 아니라 심지心志의 뒤를 봐야 할 것이다.
서書 8편
금학헌 좌하의 편지에 재차 답장을 올립니다(復答上琴鶴軒座下書)
매산재 홍직필32) 공의 답장을 첨부한다(附答梅山齋洪公【諱直弼】)
초봄에 정병과 석장을 욕되게 하며 찾아 주셨으니, 이는 현도玄度33)가 지둔支遁34)에게서 얻었던 것과 같습니다. 다만 『남화경』 첫 편을 입을 크게 벌려 강론하고 토론하는 것35)을 빠뜨려서 마음에 걸림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거듭 사미를 보내 법음을 들려주시니, 거의 인정을 잊지 못하신 분만 같습니다. 이러시면, “무심이 바로 도다.”라고 하신 옛 선사들의 말씀을 어기시는 것 아닙니까? 왜 이런 짓을 시빗거리라 여겨 무시하질 않으십니까?
손가락 한번 튕길 사이에 어느덧 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구름에 물든 노을과 강물에 어린 달님을 상상하면서 더없는 맑음을 그리워하였지만

010_0777_b_01L
妙峯海上孤岑石潭禪門之虨窈窕
010_0777_b_02L春晝閴靜雲關嫺然一幅大師容顔
010_0777_b_03L畫裡瞻想七分之間

010_0777_b_04L

010_0777_b_05L枕虗大師像讃

010_0777_b_06L
錫杖雲瓶徧遊名山念佛叅禪透入
010_0777_b_07L玄關師今何在超出塵寰

010_0777_b_08L

010_0777_b_09L月波大師像讃

010_0777_b_10L
世尙文而不以素矣素必不合時好
010_0777_b_11L而君子可以爲是矣師之用心質直
010_0777_b_12L容一毫私意嗚乎後之人瞻像者
010_0777_b_13L以眉毛以心志後已矣

010_0777_b_14L

010_0777_b_15L

010_0777_b_16L復答上琴鶴軒座下書

010_0777_b_17L附答梅山齋洪公諱直弼

010_0777_b_18L
孟春辱瓶錫爲顧此玄度之所得於
010_0777_b_19L支遁者而但欠南華首篇大開口講
010_0777_b_20L則不能無介介于中荐屈沙彌
010_0777_b_21L被以法音殆若不忘情者然莫無有
010_0777_b_22L違於古禪無心即是道之云耶豈以
010_0777_b_23L爲非是而不取耶彈指之頃歲居然
010_0777_b_24L一周於其間想象雲霞水月心思淸

010_0777_c_01L딴 세상에 계신 분처럼 휑하여 다시는 뵐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던져 주신 경거瓊琚36)를 간간이 꺼내서 읊고 노래하기를 쉬지 않았는데, “방 한 칸이면 공가公家건 사가私家건 이 몸 족히 누울 곳, 삼재三才와 경수涇水 위수涇水는 마음을 희롱하는 마당이로다.”란 구절에 이르러서는 그 말씀으로 인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쭙겠습니다.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정이 더욱 안정되시며, 이로써 온갖 것을 움직이고 모든 경계를 받아들이는 것37)을 깨달아 응당 빛깔과 모습 밖에 보존하시고, 푸른 대와 누런 꽃에서 진면목의 풍광을 흠뻑 취하고 계신지요? 현재 어느 산에다 방패를 걸고 계십니까? 너무도 험난한 이 시절에 먹고 마시는 데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스님께서는 티끌 세계를 훌쩍 벗어나 법문에 귀의하고는 오온五蘊이 모두 공하고 육근六根이 이미 사라진 즐거움에 빠져 돌아올 줄 모르니, 그렇게 한평생을 마치시려는 것입니까? 보내신 편지의 말씀에 따르면, 성현들의 책을 읽어 공자孔子·맹자孟子·정자程子·주자朱子의 도를 대강은 안다고 하셨습니다. 또 “불교의 해로움은 양주楊朱나 묵적墨翟보다 더하다.”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러시다면 왜 돌아와서 순수해지질 않고, 환상처럼 헛되고 실체가 없는 땅에서 그렇게 한평생을 마친단 말입니까! 묵가의 이름을 하고 유자의 행동을 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또 마음은 유자에 행적은 불자인 자입니까?
행적이란 자연히 마음과 더불어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이런 마음이 있으면 이런 행적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형체에 보존된 마음이 변화한 것을 이미 알아 손과 발을 엄숙히 할 수 있다면, 왜 용감하게 사자좌를 치워 버리고 크게 한번 변모하여 (우리) 도道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까?
도라는 것은 곧 천만세에 항상 통행해야 할 길이고, 천만인이 함께 본받아야 할 길입니다. 그러나 석씨에게는 임금도 신하도 부모도 자식도 없습니다. 임금·신하·부모·자식 없이도 도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어찌 있겠습니까? 생명체가 대를 이어 가는 이치를 막아 장부는 아내를 얻지 못하게 하고 여자는 지아비를 얻지 못하게 하니, 이는 만물을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만물을 단절시키면 만물이 생겨날 수 없고, 만물이 생겨날 수 없으면 인류는 소멸하고 맙니다. 그러면 잘 인도하는 문을 열고, 상법象法39)의 가르침을 베푸는 것을 누가 한답니까?

010_0777_c_01L而曠若隔世不可以再親則時
010_0777_c_02L出所被瓊琚而諷咏不休至一間公
010_0777_c_03L私容髮處三才涇渭玩機場之句
010_0777_c_04L以喚醒者大矣爲問天寒禪況益㝎
010_0777_c_05L所以了羣動而納萬境者應存乎色
010_0777_c_06L相之外而翠竹黃花領取眞面風光
010_0777_c_07L挂牌見在何山値歲大險得無
010_0777_c_08L飮啄之累否師脫略塵界歸依法門
010_0777_c_09L五蘊咸空六根已盡樂而忘返
010_0777_c_10L終其身否承喩讀聖賢書粗識孔孟
010_0777_c_11L程朱之道又言佛氏之害甚於楊墨
010_0777_c_12L苟其然者曷不反之而醇如了平生
010_0777_c_13L於虛幻無實之地乃爾乎哉無乃爲
010_0777_c_14L墨名而儒行者耶抑亦爲心儒而跡
010_0777_c_15L佛者耶跡則然矣心與之化此所
010_0777_c_16L謂有是心則有是跡者也旣知其形
010_0777_c_17L存心化手足可嚴則何不勇撤獅座
010_0777_c_18L一變至道耶道者即千萬世所通行
010_0777_c_19L千萬人所共由者而釋氏無君臣父
010_0777_c_20L安有無君臣父子而可以爲道者
010_0777_c_21L遏生生之理俾丈夫不得有室
010_0777_c_22L女子不得有家是絕物也絕物則物
010_0777_c_23L不得生物不得生則人之類滅矣
010_0777_c_24L誰爲而開善誘之門施象法之敎耶

010_0778_a_01L이런 것을 통행해야 할 길이고, 함께 본받아야 할 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점을 알았다면 누군가의 몇 마디 확언을 기다릴 것도 없이 방법을 생각해서 새롭게 모색해야 마땅합니다. 스님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스님의 현명함이면, 또한 어찌 옛것을 좋아하지만 새로운 것에 적용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이미 자른 머리카락을 다시 기르고 이미 허깨비로 만든 몸을 변화시키는 것을 어렵다고 여기실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진실로 옳고 그름을 실제로 볼 수 있다면 불교에서 도망쳐 유교로 돌아와야 하고, 또한 의리로 보아도 그게 마땅합니다. 어찌 그 지나간 허물을 쫓고 그 장래를 염려하느라 지금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명교名敎40)에 본래 즐거운 땅이 있어 성인이 되고 현인이 되니, 또한 이를 본받고 이를 실천할 따름인 것입니다. 왜 꺼리면서 시행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누가 요임금 순임금을 만나 마음을 전수받고, 누가 공자와 맹자를 만나 말씀을 들었는가? 그저 이는 분전墳典41)일 뿐이다.”라고 하셨는데, 참으로 진실한 말씀입니다. 세월이 아득하여 사람은 죽고 오직 그들의 말씀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들의 말씀에 나아가 그분들의 마음을 얻는다면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전수받고 그들의 말씀을 수용하는 방법입니다. 스님께서 우리의 도를 좋아하고 사모함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분전에서 찾아야 옳습니다. 세상에 드물게 출현하는 영걸한 인재들이 석씨의 속임수에 놀아나 태어나면서부터 눈과 귀를 고요히 하는 일에 빠지고, 자라서는 세속적인 유자들이나 숭상하는 말들을 배우며, 그 작용을 일신으로 가리고 그 뜻을 공적에 빠뜨려 큰 것을 말하건 작은 것을 말하건 실체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중도를 잃어버리니, 이것이 옛 현인42)께서 심히 애석해하셨던 바입니다.
스님 역시 당대의 영걸한 인재이십니다. 말을 몰아서 선善으로 나아가 함께 대도를 걷는 자가 됩시다. 이렇게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권하는 것은 스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재주 때문입니다. 인재는 얻기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43) 스님의 문장 짓는 솜씨는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고 오묘하니,

010_0778_a_01L是可謂所通行而所共由者耶有見
010_0778_a_02L乎此則應不待片言之決而思所以
010_0778_a_03L改圖也師非不知也知而不爲也
010_0778_a_04L不知者非罪也知而不爲者乃爲
010_0778_a_05L罪耶以師之賢亦豈悅故而不即乎
010_0778_a_06L新哉必應以長旣短之髮變已幻之
010_0778_a_07L形爲難而苟能實見得是非則逃佛
010_0778_a_08L歸儒亦理義之所固然何可追咎其
010_0778_a_09L旣徃而迎慮其將來不爲其所當爲
010_0778_a_10L名敎中自有樂地爲聖爲賢
010_0778_a_11L由是而之焉而已何憚而不爲哉
010_0778_a_12L見堯舜而傳心誰見孔孟而受說
010_0778_a_13L是墳典而已云者誠哉言乎世遠人
010_0778_a_14L獨其言在耳即其言而得其心
010_0778_a_15L則乃所以傳其心也受其說也師悅
010_0778_a_16L吾道而有慕焉則必求之於墳典可
010_0778_a_17L英才間世被釋氏所誤生則溺
010_0778_a_18L耳目恬習之事長則師世儒崇尙之
010_0778_a_19L蔽其用於一身役其志於空寂
010_0778_a_20L語大語小流遁而失中此爲昔賢之
010_0778_a_21L所痛惜而莫之救者也師亦當世之
010_0778_a_22L英才也要其敺而之善偕底大道者
010_0778_a_23L乃心眞切非爲師也爲其才也才難
010_0778_a_24L不其然乎師之於文詞敏妙警絕

010_0778_b_01L백곡白谷44)이나 인악仁岳45)과 서로 형제가 된다 하겠습니다. 진실로 머리를 돌려 생각을 바꿀 수만 있다면 또한 문장을 바탕으로 우리 도에 받아들여질 것이니, 어찌 일이 반은 이미 성사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아서는 바른 도로 돌아온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도를 들은 귀신이 된다면, 또한 순리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산을 나오면 돌아갈 곳도 없고 먹고살 방도도 없다 하시지만, 이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성심으로 도를 향한다면 또한 그대의 귀의를 받아 주고 그대의 땅이 되어 주는 자가 왜 없겠습니까. 하늘의 이치를 헤아리는 것이건 인간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건 안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스님이 그 불법을 끌어안고서 “그럴 수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명성明誠46)께서 말씀하길,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 살아 원하는 바가 여기에 있지만 시행할 수 없다. 그래서 재액齋額을 깎아 버린 지 오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다시는 이런 말씀 마십시오.
명협 두 포기47)를 보내 주시니, 여산의 오동잎48)을 갖추게 되어 다행입니다. 저는 봄 무렵에 시시한 벼슬살이를 하느라 구질구질하게 천 리 길을 쏘다녀야 했습니다. 스님이야 삼공三空49)을 깨달아 십지十地50)를 초월하신 분이니, 분명 이를 돌아보며 가엾게 여기실 것입니다. 돌아와 병으로 누웠더니 훌쩍 세월이 흘러 섣달그믐도 얼마 남지 않았더군요. 삼소三笑의 모임은 그래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 역시 세상 인연에 얽힌 탓일까요?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의 풍류에 부끄러움이 큽니다.
병을 무릅쓰고 남에게 대신 쓰게 하는 편지라서 일일이 다 표현할 수 없군요. 그저 차 마시고 밥 드시는 일이 새해에 더욱 편안하기만 바랍니다.

옛 선사들께서는 섣달그믐에 시절인연이 도래하여 한평생 참학했던 일을 끝마쳤다던데, 지금 저 계오戒悟도 섣달그믐에 역시나 좌하께서 손으로 쓰신 꾸지람을 얻게 되었군요. 그 10년 전에 의심했던 바가 가슴 한복판에서 아찔한 것이, 마치 악몽에 시달리던 사람이 옆 사람의 부르는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깬 것만 같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좋은 시절을 맞아 기력과 몸은 어떠신지요. 청정한 거처는 더럽혀지는 일이 없고, 색동옷 입고 춤추는 일51)도 두루 빼어나시겠지요.

010_0778_b_01L當與白谷仁岳相伯仲苟能回頭轉
010_0778_b_02L亦當因文入道豈不收事半之功
010_0778_b_03L生爲歸正之人死作聞道之鬼
010_0778_b_04L則亦可以存順而歿寧矣一朝出山
010_0778_b_05L無所乎依歸無賴乎活計斯事也
010_0778_b_06L在所當念誠心向道則亦豈無受其
010_0778_b_07L歸而爲之地者哉揆之天理叅以人
010_0778_b_08L無一之不可而但恐師拘其法而
010_0778_b_09L不能也明誠之云少時事也乃所
010_0778_b_10L願則在玆而不能有行故刊落齋
010_0778_b_11L額者久矣後以書來勿復云爾也
010_0778_b_12L二蓂送去幸備廬山之銅 [21] 葉焉俺春
010_0778_b_13L間被薄宦所驅屑屑爲千里役如師
010_0778_b_14L悟三空超十地者應爲之回憐也
010_0778_b_15L來淹病奄薄短臘之三十矣三笑之
010_0778_b_16L因之不遂是亦世緣所嬰耶
010_0778_b_17L愧陶陸風流大矣力疾倩書書不
010_0778_b_18L能盡宣惟幾杯鉢迓新益安

010_0778_b_19L
010_0778_b_20L
古禪以臘月三十日時節因緣到來
010_0778_b_21L生叅學事畢今悟以臘月三十日亦得
010_0778_b_22L座下手滋啐嚗其十年前所疑中心怳
010_0778_b_23L如夢魘底人因被他人喚惺去
010_0778_b_24L惟令辰氣體候淨居無染舞彩勻勝

010_0778_c_01L만 가지 복을 산문에 보존하리니, 내리신 은덕을 조금이나마 얻게 되어 너무나 다행입니다. 그리고 내리신 첩지의 말씀과 논의가 바로 집대성이요, 금성옥진입니다.52) 구절구절 조리를 갖춘 것이 당대에 비교할 자가 없겠군요. 세 번 네 번 읽고 나자 가슴속 응어리가 저절로 풀리는 것이 마치 가난뱅이가 옷 속에 매달아 주었던 구슬을 얻은 것만 같고,53) 또 병에 걸린 사람이 편작扁鵲의 처방전을 얻은 것만 같습니다.
삼가 보내신 편지의 말씀에 따르면, 그 대략은 “왜 용감하게 사자좌를 치워 버리고 크게 한번 변모하여 도에 이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진실로 그렇게 한다면 이른바 깊은 골짜기를 벗어나 높은 나무54)로 옮겨 가는 것이니, 그러길 원해야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헤아리는 일의 정황과는 큰 맥락에서 서로 어긋납니다.
대략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세상의 쓸모없는 백성이 장차 세상에 쓰일 날이 있으리라 자처하면서 자취를 지우고 빛을 숨기고 홀로 자신만 선하게 한다고 해도 오히려 군자의 꾸지람을 면치 못합니다. 하물며 허무의 땅에 빠지고 버려져 임금도 신하도 부모도 자식도 모르는 도이겠습니까?
저 계오는 속가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일찌감치 불교에 의탁하여, 복종하는 것이라고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설 한 가지입니다. 무릇 세간에서 쓰임새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윗사람이라면 이른바 덕이요, 아랫사람이라면 이른바 언변입니다. 어느 하나 마땅한 구석이 없는 자인데 자신의 힘을 가늠하지도 않고 감히 딴생각을 내겠습니까? 오늘 산을 나갔다가 내일 송장이 되어 골짜기를 메운다면 어느 누가 바른 도로 돌아간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죽더라도 이미 도를 들은 귀신이 되었으니 편안하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죽고 사는 마음이 이미 타파되었다면 세상의 고통과 즐거움, 영화와 쇠락은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 떨어지는 한 점의 눈송이입니다. 오직 죽고 사는 일이 역시 중대하다는 것만 알 뿐, 의리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바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셔 나이가 이제 여든둘이십니다. 아침저녁으로 바치는 바랑 속의 죽이 열이면 열 모두 산문의 넉넉한 은택인데, 오늘 당장 이것을 버리고 어느 곳으로 돌아가 어떤 사람에게서 살 궁리를 한단 말입니까?
옛날 유 중서劉中書 총 대사聰大師55)는 진실로 행적은 불자이지만, 마음은 유자인 분이셨습니다. 이 도에 들어가 그 미묘함을 끝까지 연구하고 그 지혜를 더욱 증장시키고는,

010_0778_c_01L萬嘏山門保之儘獲所賜倖甚第下帖
010_0778_c_02L言論諟集大成金聲玉振章章條理
010_0778_c_03L當世無雙三四讀過胸中自無滯礙
010_0778_c_04L如窮子得衣內繫珠又如嬰病獲扁鵲
010_0778_c_05L方劑伏承來喩其略曰何不勇撤獅
010_0778_c_06L子座一變至道耶苟如此所謂出幽谷
010_0778_c_07L遷喬木是可願也而與主人公忖之
010_0778_c_08L事機大叚 [22] 相左焉蓋非不知世之逸民
010_0778_c_09L其自處將有可庸於世而晦跡韜光
010_0778_c_10L善其身者猶不免君子之譏而況淪棄
010_0778_c_11L於虛無之域而無君臣父子之道乎
010_0778_c_12L悟者在家失怙恃早托於釋氏所服
010_0778_c_13L即一種浮屠因果說夫世間之所以爲
010_0778_c_14L用者上所謂德下所謂言無一可者
010_0778_c_15L而不度其力敢生異計乎今日出山
010_0778_c_16L明日塡壑孰謂歸正之人雖死已作
010_0778_c_17L聞道之鬼可謂寧矣乎哉生死心已破
010_0778_c_18L則世上苦樂榮枯如烘鑪中點雪惟知
010_0778_c_19L生死之亦大矣而不知理義之所當爲
010_0778_c_20L又況上有老母年當八十有二鉢囊中
010_0778_c_21L餰粥之爲供昒晡者什什山門之餘澤
010_0778_c_22L今日舍此而依歸乎何處活計乎何人
010_0778_c_23L前日劉中書姚 [23] 大師者眞實底跡佛心
010_0778_c_24L入於是妍窮其微妙增益其智慮

010_0779_a_01L한번 나아가 자신이 시험했던 바를 국가에 시행하자 터럭 하나만큼도 어긋나지 않았지요. 또한 소성 거사少性居士56)도 법계法階에 오른 스님이셨지만 도술이 있었던 그는 전생의 인연들을 위해 스스로 환속하기도 하고, 스스로 제사를 받들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분들은 모두 옛날의 현인들이셨으니, 포정 씨庖丁氏의 칼이 뼈마디 사이로 휙휙 들어갔던 것처럼57) 어느 곳에 계시건 마땅치 않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오 같은 자야 푸른 솔잎이나 먹고 흐르는 물이나 마시다가 어느 아침 저녁 나절에 죽어 함께 풀숲으로 돌아가 썩어 문드러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인물일 따름입니다. 이곳에 있은들 무엇이 걱정이고, 나간들 무엇이 이롭겠습니까?
좌하께서는 어진 분이고 의로운 분이십니다. 자신의 어린 아들이 물에 빠지고 불에 타는 것을 보고는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달려가 구해 주려 하면서 오직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못나고 볼품없는 이 계오에게까지 주자朱子가 그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하시질 않는 것입니다. 불교나 도교의 문자로 표현한 적이 없으신 것은 찾아와 배우려는 이들로 하여금 치우치고 방탕한 대법58)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인의와 도덕의 말씀으로 허심탄회하게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겠지요. 계오도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이런 말씀을 들으면 흔연히 저도 모르게 돌연 현명하신 성자들의 묘역으로 들어가는 자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대략 앞에서 밝힌 바와 같아 명을 받들 수가 없군요.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명협 두 포기를 보내 주시니, 이제 비상계非想界로 비비상계非非想界를 만드셨군요. 좌하의 도가 위대하건만 바위틈 샘가에서 메말라 가시는군요. 하지만 살아서는 동산을 이루고 죽어서도 향기로울 것입니다.

삼가 바라오니, 부모님을 모시는 여가에 도학의 수양을 스스로 굳건히 하며 쉼 없이 노력하여 저의 미미한 정성이 적중되게 하소서.
인산 대아께 올리는 편지(上仁山大衙書)
작년 단풍과 국화가 우거질 무렵에 검은 수레 덮개(皂盖)59)가 가산에 머물러 가산의 낯빛이 이때부터 좋아졌는데, 다만 그러고는 행차하시질 않으시는군요. 일이 너무나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그간 쌓으셨던 것의 만 분의 일을 편안히 꺼내 보이셨으니, 허현도가 일찍이 지둔 선사의 당堂에서

010_0779_a_01L一出而以其所試驗施於家國則毫髮
010_0779_a_02L不爽且少性居士徐登堦者有道術爲
010_0779_a_03L夙緣而或因其汰淘或因其奉祀
010_0779_a_04L等皆古之賢人也如庖丁氏之刀砉然
010_0779_a_05L入於骨節無所處而不當耳又如悟者
010_0779_a_06L啄靑松飮流水朝莫死而同歸於艸木
010_0779_a_07L腐爛泯滅而已處何悶乎出何益乎
010_0779_a_08L座下仁人也義人也見其孺子溺於
010_0779_a_09L水火被髮以往救之惟恐不及故於
010_0779_a_10L悟之不肖無狀也不以爲坐於子朱子
010_0779_a_11L之爲不甞寫寺觀文字使來學不可陷
010_0779_a_12L溺詖淫大法而以仁義道德之說虛心
010_0779_a_13L召敎來悟亦人也有是心而聞是說
010_0779_a_14L忻忻然不覺突入於聖明之兆域者也
010_0779_a_15L而私情盖如右故不獲承命罪死罪死
010_0779_a_16L二蓂下送今非想界以作非非想界
010_0779_a_17L座下道大巖泉枯朽又生化囿死且
010_0779_a_18L芬矣伏願侍餘道履自彊不息以中
010_0779_a_19L微誠

010_0779_a_20L

010_0779_a_21L上仁山大衙書

010_0779_a_22L
客年楓菊皂盖駐伽山伽山顔色
010_0779_a_23L此以好只乏行次倥傯不克穩做其
010_0779_a_24L所蘊在底萬一而許玄度嘗與遁禪師

010_0779_b_01L『유마경』에 대해 질의하고 비판했던 일60) 역시 홀로 옛날의 미담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봄날에 정사를 돌보시는 몸은 어떠신지요. 분수를 지키며 모범을 보이시는 모습을 위로하고 우러르는 마음 간절합니다. 계오는 정병과 발우로 살아온 생애가 보잘것없는 데다가 시절 또한 험하고 흉흉해 배를 채우기 위한 노역도 엉망진창이고, 마음의 뜻을 기를 양식도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밤기운으로 윤택해진다는 것을 알고야 있지만 아침과 낮에 하는 일들을 이기지 못해 구속의 폐해가 나날이 심해지고 우산牛山의 나무는 더 이상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61)
연 사미가 “합하께서 정무에 힘쓰느라 공적인 휴가는 물론이고 한가할 틈이 조금도 없으시다.”라고 하더군요. 아랫사람들의 바람에 너무나 흡족한 일입니다. 자인현慈仁縣이 비록 작다지만 정신없이 분주하기는 매한가지이겠지요. 게다가 흉년이 겹쳐 길거리에 굶어죽은 시체들이 널렸습니다. 하지만 합하께서 다스리는 고을에서는 “편안하여 아무 일 없다.”라고 송덕의 노래를 부르며 지금까지도 합하를 크게 치하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도 태위陶太尉가 공정하고 청렴하자 형주荊州와 광주廣州의 선비와 여인들이 모두 그를 경하하며 칭송하였고,62) 그의 손자 정절 선생靖節先生63)은 천고에 빼어난 놀라운 인물이 되었지요. 아, 하늘의 도는 돌려 주길 좋아하니, 선한 일에는 복이 따르고 음란하면 재앙을 초래하는 법이지요. 이를 말미암아 말하건대, 자신이 지키는 도를 왜곡해 안으로 마음에 부끄럽고 밖으로 백성을 속이는 짓을 어찌 하겠습니까!
마음이 이미 지극하면서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것은 소인도 해서는 안 될 짓입니다. 그래서 그 정치하는 도를 함부로 말하여 합하를 위해 칭송해 보았는데,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일천 허형 공의 답장을 첨부한다(附答一川許公【諱珩】)
이른 봄에 돌아와서는 일이 너무나 급해 다시는 얼굴을 뵙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이별해 돌아온 후로 벌써 계절이 네 번이나 바뀌었군요. 남쪽 산마루 구름을 바라보면서 어찌 슬퍼하며 탄식이 흘러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천하에 가장 날카로운 칼로도 끊기 어려운 것이 인정이란 걸 조금은 알겠군요. 스님의 마음 역시 분명 저와 같으시겠지요. 추 대등秋大登 역시 인정이 많은 분입니다. 이렇게 천 리를 멀다 않고 일부러 찾아와 얼굴을 마주하고는 스님 소식을 상세히 전하여 저의 마음속 고통을 쉬게 해 주는군요.

010_0779_b_01L設問難維摩事亦不獨專美於前日
010_0779_b_02L伏惟春日政體候若何慰昻傃䂓
010_0779_b_03L悟瓶鉢生涯么麽値歲險凶口腹
010_0779_b_04L之役汨陳心志之養不給聊知夜氣所
010_0779_b_05L不勝朝晝所爲梏害日深牛山木
010_0779_b_06L㪅不孶芽演沙彌曰閤下勤於政務
010_0779_b_07L一切公冗少無閒暇甚愜下望慈縣
010_0779_b_08L雖小鞅掌一也且年歲不登稔塗有
010_0779_b_09L餓莩而四隣之內晏然無事頌作
010_0779_b_10L今爲閤下大賀昔日陶太尉公廉得荊
010_0779_b_11L廣士女之慶稱厥孫靖節先生聳動千
010_0779_b_12L天道好還福善禍淫由此以言
010_0779_b_13L安爲枉其所守之道而內以怍乎心乎
010_0779_b_14L外以欺乎民乎情已至而事不得從者
010_0779_b_15L乃是小人之所不爲故妄言其爲政之
010_0779_b_16L爲閤下頌之未知如何

010_0779_b_17L

010_0779_b_18L附答一川許公諱

010_0779_b_19L
春初歸事甚急更不得一面而別
010_0779_b_20L歸後已四易序矣南望嶺雲何甞
010_0779_b_21L不悵然流嘆儘知天下利刀難斷者
010_0779_b_22L人情也師之心亦必同此也秋大
010_0779_b_23L亦有人情者也能不遠千里
010_0779_b_24L來相面細傳師信息其意良苦

010_0779_c_01L
겨울이 이미 시작되어 추위가 심해질 기세입니다. 이런 계절에 선사께서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스님께 늙으신 어머님이 계신 것으로 아는데, 모시기에 편안하고 여러 가지 형편도 예전 모습 그대로이신지요? 멀리서 생각만 구구합니다.
돌아왔을 때 잘 도착했다는 인사를 빼먹었던 것은 이 몸이 낭패를 당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세상의 도가 참으로 너무도 마음을 시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굽고 곧음 옳고 그름이 본래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이지, 공언公言이야 저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요즘은 성 밖 옛집에 잠시 머물며 하는 일 없이 자유롭고 한가하게 지냅니다. 그랬더니 관청의 여러 문서와 장부 등으로 근심하고 고뇌하던 때보다 훨씬 좋습니다. 다만 노인을 모셔야 하고 추위까지 닥치는데 예전처럼 책과 씨름만 하고 있으니, 이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분수입니다. 무슨 원망이 있겠습니까?
관아에서 지내던 시절에 보내 주셨던 시권은 믿고 전할 길이 없어 믿을 만한 아전 김종철金宗哲이란 자에게 맡겨 두었습니다. 인편을 보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아전은 현재 유리由吏64)를 맡아 보는 자입니다. 그라면 분명 잃어버릴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등을 통해 『사명집』을 찾으셨는데, 이미 서울로 올려 보낸 서책 가운데 들어가 버렸습니다. 따라서 읽을거리로 남겨 두고 돌려드리지 못하니, 이를 양해해 주십시오.
우안遇岸 스님 역시 한 몸 편히 잘 지내시는지요? 여러 처소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기 어렵고, 각 장에 쓸 수도 없군요. 이런 뜻을 부디 전해 주시고, 저를 대신해 안부를 여쭈어 주십시오. 서로 천 리나 떨어져 만나기 쉽지 않기에 써 놓은 편지 앞에서 허전한 슬픔만 더합니다.
양산 대아께 올리는 편지(上梁山大衙書)
바위의 단풍나무에 붉은 빛깔이 흐드러지고, 울타리 아래에는 국화가 만개하였습니다. 궁벽한 암자에 멍하니 앉아 그 천지의 숙연한 기운을 상상하고 초목과 모든 동물들을 널리 헤아려 보았더니, 사람 노릇을 다하지 못한 일개 까까머리임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는군요.
삼가 생각건대, 합하께서는 정무를 돌보시면서 때때로 정밀하고 밝은 기운을 균등하게 획득하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덕으로 임하여 선비와 백성들이 각기 그 삶을 성취하게 하시겠지요.

010_0779_c_01L候已啓寒意向緊此時禪履何如
010_0779_c_02L知師有老母侍奉安寧而諸節一依
010_0779_c_03L宿狀否遠念區區歸時敗歸事
010_0779_c_04L徒此身之狼狽世道誠極寒心曲直
010_0779_c_05L是非自有人公言於我何關焉
010_0779_c_06L寓城外舊巢冗散自在閒趣則絕勝
010_0779_c_07L於朱墨簿牒之愁惱但奉老當寒
010_0779_c_08L舊攻苦是悶悶然亦分也有何怨尤
010_0779_c_09L在衙之日所投詩券無信傳之路
010_0779_c_10L留付於可信吏金宗哲家者待便傳
010_0779_c_11L金吏即今之由吏者也想必無閪
010_0779_c_12L失之理故今托大登覔傳泗溟集
010_0779_c_13L旣入上京書策之中故留覽不還
010_0779_c_14L諒之也遇岸師亦一體安住否諸處
010_0779_c_15L書難於酬應不能各幅此意倖傳之
010_0779_c_16L爲余存問之兩地千里相逢未易
010_0779_c_17L臨帋尤覺冲悵

010_0779_c_18L

010_0779_c_19L上梁山大衙書

010_0779_c_20L
巖楓恣丹籬菊徧開嗒坐窮菴想像
010_0779_c_21L其天地肅然之氣夷商乎艸木羣動之
010_0779_c_22L而可以感心於不盡人事底一箇秃
010_0779_c_23L伏惟閤下政體候以時均獲精明之
010_0779_c_24L而臨以仁恕之德使士民各遂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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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오는 한 사람의 불제자로서 부모도 없고 임금도 없으며, 또한 서로 낳아서 기르는 도도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처럼 부처와 조사의 활구에 표본으로 삼을 만한 것이 한 조각도 없어 지금까지도 흰머리로 심란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일심一心을 지난 일로 여길 따름이다.”라고 말하겠습니까? 무릇 마음이란 몸의 주인이며, 모든 신체 부위에 명령을 내려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삼재가 됩니다. 어찌 눈과 귀의 보고 들음과 손발의 운동이 그 사이에 침투하고 틈을 벌려서 이 마음을 병들게 해서야 되겠습니까?65) 그래서 분연히 『동서명東西銘』66)·『경재잠敬齋箴』67)·『근사록近思錄』68) 등의 서적과 공자·맹자·정자·주자의 지극히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에 종사하였지요. 그랬더니 도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저절로 남모를 도움이 있어 최초로 정언正言 허 공許公69)의 얼굴을 뵙게 되었고, 지금은 또 합하께 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한 문공韓文公은 조주 자사潮州刺史 시절에 태전太顚 선사와 방외의 교류를 가지면서 때때로 많은 말들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계오가 합하께 오늘 그리하자니 두렵기만 합니다. 계오 역시 사람입니다. 이름은 비록 묵가지만 행실은 바로 유자이니, 아침 점심으로 하는 바들이 어찌 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추하고 낮은데, 어찌 낙서회樂西會에 참석할 수 있었겠습니까. 합하께서 한마디 하셨기 때문에 높은 산처럼 우러르고 밝은 길처럼 따라 걷는 열 분의 친구들이 그 내리신 말씀에 동의하셨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안건 중 시회에 동참시키는 일에 대해서 당시는 분위기가 엄숙해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명촌鳴邨 양동良洞의 원장 어른께서 말씀하시길, “시권詩券은 그 차례를 중요하게 여긴다. 문장의 거장도 없이 동참하라고 하면 그것을 구실 삼아 참여를 거절할 것이다.”라고 하시더군요. 또 곁에서 도모하기를 “요행히 양산에서 김해金海 사군使君70)을 얻게 되었으니, 문장으로도 덕으로도 또한 남쪽 지방에서 이름난 분이다. 만약 설루雪樓71)의 이름으로 편지를 한 통 보낸다면 아마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도 회원이 될 마음이 없지 않다. 다만 우두머리가 되는 걸 싫어할 뿐이다.”라고 하더군요.
이 모임의 경중은 합하께서 결정하시는 한 생각에 달렸습니다. 삼가 바라오니, 추산께서 남쪽 큰 선비들의 우두머리가 되시는 걸 더 이상 사양하지 마시고,

010_0780_a_01L生乎悟一種浮屠无父無君而又無
010_0780_a_02L相無養之道抑如是佛祖活句上無一
010_0780_a_03L分榜樣而于今白頭憒憒何言一心以
010_0780_a_04L爲往事已矣夫心者爲身之主而百
010_0780_a_05L軆從令者也所以叅天地之才豈可以
010_0780_a_06L耳目之視聽手足之運動投間抵郄
010_0780_a_07L而爲此心之病乎奮然從事於東西銘
010_0780_a_08L敬齋箴近思等書孔孟程朱至公無私
010_0780_a_09L之心自有冥助於慕道之人㝡初見容
010_0780_a_10L於正言許公今也獲拜於閤下昔日韓
010_0780_a_11L文公刺潮州時與太顚作方外交
010_0780_a_12L多口於時悟爲閤下今日懼然悟亦
010_0780_a_13L人也名雖爲墨行則是儒朝晝所爲
010_0780_a_14L盍復愧怍如其汙下何有第樂西會
010_0780_a_15L以閤下一言之故而高山之仰景行之
010_0780_a_16L於其所賜十朋之不啻而案中入叅
010_0780_a_17L當時嚴不敢言歸路入鳴邨良洞院
010_0780_a_18L長丈曰券以是序爲重而但無文章
010_0780_a_19L鉅匠同叅者以藉口實拒叅而又從傍
010_0780_a_20L爲圖曰徼倖有得於梁山金海使君
010_0780_a_21L文以德又名南土如以雪樓一書付
010_0780_a_22L則或者不拒云其心亦不無於會券
010_0780_a_23L而但以先爲嗛此會之輕重考卜閤下
010_0780_a_24L一念也伏乞母 [24] 恡秋山爲南大儒之先

010_0780_b_01L동림사東林寺 향산당香山堂에 고금의 한결같은 법도를 내려 주소서. 이는 만 냥의 황금을 가산에 베푸는 것이니, 그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해 사군께서 행차하는 문제는, 또 합하의 처분을 한번 들어 보고 그런 다음에 출발 일정을 생각하겠답니다. 다시는 이 비천한 자가 외람된 짓으로 죄를 범하게 하지 마시고 이를 지휘해 주소서. 황공한 마음으로 두 번 절을 올립니다.
추산 김유헌 공의 답장을 첨부한다(附答秋山金公【諱裕憲】)
설루에서 나눈 하룻밤 시 이야기는 백 년의 부질없는 생애를 잊게 할 만하였습니다. 마음의 시들을 소매에 넣어 두고 심심할 때마다 꺼내 완미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분의 편지가 오니 더욱 위로가 됩니다. 게다가 직접 돕고자 제시하신 의견까지 살피게 되었으니, 어떤 기쁨이 이와 같겠습니까?
저의 개략적인 생각은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수행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일들이 몰아치면 다시 겹겹의 산마루를 넘어야 합니다. 기침병에다 백성들의 고초가 심하여 근심스런 적막함이 너무나 심합니다. 그런데 직무를 소홀히 하게 되는 여가의 일로 고뇌와 번민에 얽히는 일들이 많아지는군요. 지척이라 할 수 없으니, 실로 먼 집과 같습니다. 가는 것도 오는 것도 모두 반갑지 않으니, 원망스럽긴 피차일반입니다. 하지만 사정이 그렇습니다.
제가 스님을 깊이 생각하는 이유가 어찌 한낱 문장 때문이겠습니까? 구름처럼 강물처럼 정병과 발우로 살아오신 자취로 남쪽 언덕의 하얀 꽃이라는 명성을 갖추었으며, 그 훌륭함을 칭찬하는 말들이 끝이 없으니, 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내온 시는 특별한 일종의 현묘한 이해라서 고치거나 평론할 것이 없습니다. 더불어 허현도許玄度72)의 소식까지 듣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인연이 있다면 앞으로도 이어 가길 바랍니다. 암담하여 감사의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 남가락 어른의 편지에 삼가 답합니다(奉答南駕洛李丈書)
사문 이학규의 질문하는 편지를 첨부한다73)
지난 가을 말 많은 분들께서 오시어 우리 스님의 근황에 대해 대략은 들었습니다. 신체와 얼굴이 매우 평안하고, 계율은 더욱 정밀하며, 하루에 여섯 차례 부처님을 관하고 염하며, 한밤에는 경책해,

010_0780_b_01L與東林寺香山堂古今一揆此有萬金
010_0780_b_02L施於伽山若何若何金海之行又一
010_0780_b_03L聽閤下處分然後發程爲料㪅勿以俾
010_0780_b_04L猥爲罪指麾之惶恐再拜

010_0780_b_05L

010_0780_b_06L附答秋山金公諱裕憲

010_0780_b_07L
雪樓一夜詩話可抵百年浮生懷詩
010_0780_b_08L在袖尋常把玩即者書來尤可慰
010_0780_b_09L況審將親依度何喜如之此中
010_0780_b_10L大擬遂初被量事之驅迫而復踰重
010_0780_b_11L喝病民苦悄寂殊甚曠官之餘
010_0780_b_12L多繳惱悶不可謂尺地實如遐
010_0780_b_13L朅來並不欣握悵當一般而勢則
010_0780_b_14L然矣吾之深取於師者豈在文章之
010_0780_b_15L以雲水瓶鉢之蹤具南陔白華之
010_0780_b_16L永言嘉歎亶在於斯來詩另是
010_0780_b_17L一種玄解無可改評仍之而得許玄
010_0780_b_18L度信息尤可喜也有緣當續要之
010_0780_b_19L黯然不宣謝

010_0780_b_20L

010_0780_b_21L奉答南駕洛李丈書

010_0780_b_22L附問斯文李學逵

010_0780_b_23L
去秋嘩公至槩聞吾師近日軆䫉甚
010_0780_b_24L戒律愈精六時觀念中夜警策

010_0780_c_01L보고 듣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움직임 하나하나를 본받게 하신다니, 근세에는 없던 분이라 하겠습니다. 조잡하나마 이 한 줄기 향을 구멍 뚫린 칠조 가사 걸치고 좌선하시는 분께 올리오니, 동갑내기처럼 편히 말해도 되겠지요.
우리 스님의 편지를 받아 보니, 아울러 근체시 다섯 편까지 보내 주셨더군요. 생각지도 못했던 생공生公74)의 법문이요, 다시 보는 임평의 연꽃 구절75)입니다. 비흥比興76)이 보통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쯧쯧, 시는 이렇게 써야 한다며 사람을 다그치시는군요. 온종일 감탄하며 감상하였답니다.
그리고 “곤궁과 영달은 이미 정해져 있던 일, 부질없이 올빼미에게 반평생의 기쁨을 맡긴다.”77)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한마디 짧은 말씀으로 선종의 종지를 설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구절에 매달려 미묘한 뜻을 오랫동안 찾아보았지만 끝내 그 핵심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개 선종 일파는 달마 대사를 비조로 삼습니다. 이른바 10년 동안 면벽하다가 하루아침에 돈오한다고 하는데, 어떤 인연으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엔, 돈오頓悟에서 ‘돈頓’은 갑작스럽다는 의미이고, ‘오悟’는 깨달은 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겠습니다.
“10년 동안 면벽하며 어떤 마음을 관하고, 하루아침 돈오하여 어떤 뜻을 통달하는 것입니까?”
분명 이렇게 응대하실 것입니다.
“관하는 것은 보리심菩提心이고, 통달하는 것은 성제제일의聖諦第一義이다.”
그렇다면 또 묻겠습니다.
그랬을 때, 구경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백정이 칼을 내려놓고 참회의 법을 크게 깨닫는 것과 같습니까? 몽둥이와 할로 그 자리에서 어긋난 습관을 단번에 제거하는 것과 같습니까? 혹시 또 기쁨이 한량없고, 통쾌함이 위없으며, 들건 나건 즐겁게 노닐고, 일찍이 없던 것을 얻게 됩니까? 또 어떻게 여기에 답하시겠습니까?
또 저 이른바 성문과 연각들은 정녕 소리와 인연이 본래 스스로 본성이 없음을 아직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듣고 느껴야 의식이 있게 됩니다. 저 향엄香嚴78)은 기왓장 조각이 대나무를 때리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크게 깨달았고, 도오道吾79)는 무당이 부는 뿔피리 소리를 듣고 갑자기 크게 깨달았고, 근세의 연지 주굉蓮池袾宏80)은 『혜등록慧燈錄』을 열람하다가 실수로 차 사발을 깨트리고서 깨달은 바가 있어 이에 처자를 노린내 풍기는 윗도리처럼 보고는

010_0780_c_01L使夫一切觀聽動爲法式當非近世
010_0780_c_02L粗辦一炷香穿破七條坐者可同日
010_0780_c_03L語也嗣得吾師書兼致近軆五章
010_0780_c_04L不意生公說法之門復見臨平藕花
010_0780_c_05L之句乃比興殊倫咄咄逼人爲之
010_0780_c_06L嘆賞彌日也第所謂窮達由來前定
010_0780_c_07L鵩邊虛付半生懽者豈非一語道
010_0780_c_08L破禪宗之旨邪走於此箇微義尋覓
010_0780_c_09L旣久訖未懂得要領蓋禪宗一派
010_0780_c_10L以達摩爲鼻祖所謂十年面壁一朝
010_0780_c_11L頓悟者未審是何因緣窃謂頓悟者
010_0780_c_12L頓爲遽然之意悟有惺然之理設若
010_0780_c_13L問之曰十年面壁所觀何心一朝
010_0780_c_14L頓悟所達何義當有應之日觀是
010_0780_c_15L菩提心達爲聖諦義又問曰爾時
010_0780_c_16L究竟爲如屠兒放刀大覺懺悔之法
010_0780_c_17L如棒喝當頭一去惉懘之習邪
010_0780_c_18L倘又悅可無量快然無上出入遊戱
010_0780_c_19L得未曾有邪又當何以應之且彼所
010_0780_c_20L謂聲聞緣覺者政未知這聲緣本自
010_0780_c_21L無情而自家聞覺爲有意若香巖 [25]
010_0780_c_22L聞瓦礫擊竹忽然大悟道吾之聞巫
010_0780_c_23L吹角瞥地大省近世蓮池袾宏之閱
010_0780_c_24L慧燈錄失手碎茶甌有省乃視妻子

010_0781_a_01L세상에 일필휘지로 시를 남기신 분이 아닙니까? 게다가 저의 듣고 느낌은 본래 앎이 없는 것이 아니기에 저 소리와 인연에서 진실을 파악하는 이치가 있습니다. 저 영산회상의 대중도 알지 못한 것이 아니었기에 부처님께서 쌍림雙林에서 열반하신 후 “다음과 같이 저는 들었습니다.” 하는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눈물을 쏟았던 것 아닙니까? 모든 하늘의 신과 용들도 알지 못한 것이 아니었기에 화엄 도량에서 하늘의 북소리·음악소리를 듣자마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던 것 아닙니까?
무릇 앎(知)과 깨달음(悟)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한 조각의 뜨거운 쇠는 삼척동자도 감히 다가가 잡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앎의 양태입니다. 만약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곧 “속까지 달궈진 쇠가 온통 붉으니 피부와 여린 손발톱을 태우고 지질 게 뻔하다. 내가 심장을 파고들고 뼈를 깎는 고통을 당하겠구나.” 하며 알아차리고는, 놀라면서 물러나고 몸을 움츠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양태입니다. 완고하고 둔해 깨닫지 못한 저는 우리 스님께서 다시 일전어一轉語81)를 내려 설파해 주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남에게 대신 쓰게 하는 편지라 일일이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석문石門의 작은 집에서 우두커니 힘없이 앉았는데 홀연히 남가락南駕洛으로부터 편지가 왔군요. 대개 화두란 난해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반고盤古82) 아촉 씨阿閦氏83)는 저 먼지 알갱이 숫자만큼 아득한 세월 이전에 한순간 신속하게 뿌리부터 꼭지까지 캐내어 만물을 끝없이 창조하고 변화시켰으며, 가지와 마디를 깎고 새겨 실타래처럼 펼쳐 놓고서는 낮고 높은 용문에서 우임금이 도끼질을 하건 말건84) 영인에게 도끼를 휘두르건 말건85) 재갈을 놓고 고삐를 맡겨 버린 채 지내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 시골 중도 10년 동안 업을 닦고 공을 실천하면서 문장에는 봉사처럼 음악에는 귀머거리처럼 지냈습니다. 그랬더니 비슷하게 닮을 수는 없었지만, 갑자기 잘못될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큰 잘못이 있고 천박하고 못났더라도 그저 칭찬하고 허용하십시오. 왜 어르신께서는 끊고 또 끊으면서 그 마음이 쉬고 또 쉬는 것을 아름답다 여기십니까? 만약 허용하신다면 도리어 또한 도에 매우 가까워질 것이고, 아주 관대하고 두루 융통하여 먼지와 쭉정이를 가지고도 오히려 요순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010_0781_a_01L爲鶻臭布衫於世相一筆盡句者邪
010_0781_a_02L抑自家聞覺本非無知爲這聲緣
010_0781_a_03L著實有理若靈山大衆非不知雙林
010_0781_a_04L涅槃而一聞如是我聞驀地下淚
010_0781_a_05L諸天神龍非不知道場華嚴而一聞
010_0781_a_06L天鼓伎樂懽然踊躍者邪葢知與悟
010_0781_a_07L則有聞 [26] 譬如一片熱銕雖三尺孩
010_0781_a_08L不敢向前把捉這是知之樣子
010_0781_a_09L若有見識人即省得徹裏烘烘銕猶
010_0781_a_10L通紅脂皮媆甲立見燒燲我遭苦
010_0781_a_11L刺心剚骨爲之驚退縮肉這是
010_0781_a_12L悟之樣子走固頑鈍不悟者望吾師
010_0781_a_13L㪅下一轉語道破耳倩艸不一

010_0781_a_14L
010_0781_a_15L
石門小室兀然頹坐忽有信息自南
010_0781_a_16L駕洛來底槩話頭聱牙屈曲盤古阿
010_0781_a_17L [27] 塵點劫中一間上駛根蔕掇撷
010_0781_a_18L陶甄變化罔涯刊鐫支節排寘縷脉
010_0781_a_19L低昻龍門禹斧郢斤稅啣委轡來者
010_0781_a_20L [28] 野衲十年修業行空如瞽者於文章
010_0781_a_21L聾者於鐘鼓不能彷彿而造次無所錯
010_0781_a_22L用焉但其推許太過謭劣豈左右斷斷
010_0781_a_23L猗其心休休焉若有容乎抑亦造道切
010_0781_a_24L博貫融通雖塵垢秕糠將猶陶鑄

010_0781_b_01L또한 쌓아 두셨던 것이 여유롭게 흘러넘쳐 사랑하고 용서하고 조용할 것이며, 남의 사정을 자기 일처럼 보살펴 그 마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게 할 것입니다. 진실로 뚫으려고만 하고 우러르기만 한다면 더욱 견고해지고 높아져 한 조각도 맛볼 수 없게 될 따름입니다.
어르신께서 보시기엔 계오가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 비유하자면 튼실한 오곡의 씨앗이 그늘지고 비루한 곳에 떨어져 신발 끝에서 움츠리고 소와 말에게 짓밟히면서 여름에는 무성하지 못하고 가을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다가 저절로 말라 죽은 것과 같습니다. 또 떡갈나무·갈참나무·소나무·잣나무가 성 밖 사방의 경계에서 홀연히 싹이 터 그 싹이 비와 이슬에 성장하고 밤기운으로 무성해졌지만 소와 양이 그것을 뜯어먹고, 자귀와 도끼가 그것을 찍어 그 성품을 완수하지 못한 채 저절로 시들어 죽은 것과 같습니다. 또 살이 흰 검은 말, 온통 검은 말, 흰 점이 있는 검은 말, 검은 갈기의 흰말이 국경의 넓은 들판에서 태어나지 못해 힘이 약하고 값도 싸서 갈증에 시달리고 굶주림에 허덕여 왕량王良86)도 흘겨보고 조보造父87)도 버린 것과 같습니다.
구유에 엎드려 목 놓아 울어 보지만 천한 노예들에게 모욕만 당하니, 오호, 이것이 운명이란 말입니까, 하늘의 뜻이란 말입니까? 하늘의 뜻이 이미 정해졌다면 누구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늘의 뜻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북방·남방의 오랑캐 땅에서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입니다. 이런 모습인데, 어찌 사람 취급이나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음은 돈오에 관한 말씀에 대답해 보겠습니다. 제 앞쪽은 볼품없는 쇠붙이뿐이지만, 뒤쪽에 은이 있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 비유하자면 어르신께서는 계오에 대해 “아무개는 석남산 한 구석에 살고 있고, 겨우 글자를 알아 고사에 통한 사람이다.”라는 것만 아십니다. 저를 어여삐 보고 사람으로 대접해 편지로 깨우침을 주셨지만 사실 나이는 얼마고 어떻게 생겼는지, 키는 어느 정도이고 뭘 좋아하는지, 웃고 말할 때의 정신은 어떤지 모르십니다. 계오도 어르신에 대해 “아무개는 남가락에 계시고, 고국의 문장이 호한한 사람이다.”라는 것만 압니다. 하늘의 별보다 탁월하고 태산보다 우람해 항상 우러르고 사모하며 기뻐하지만 사실 나이와 생김새, 키와 기호, 말하고 웃을 때의 정신은 모릅니다.
가령 여래의 가르침에서 인용한 것이고, 향엄 등의 부류가 힘을 쓴 곳이라 해도 그저 그 말만 쫓아서 두찬杜撰88)과 색항色巷89)을 모범으로 삼아

010_0781_b_01L堯舜乎抑亦蘊在裕衍仁恕從容
010_0781_b_02L己與人使無一夫不遂其心乎寔爲
010_0781_b_03L鑚仰而堅高不能容啄而已左右見悟
010_0781_b_04L爲何狀底人邪譬如五穀之美落於作
010_0781_b_05L屏卑陋蹙跼履端牛馬蹂躤不見夏
010_0781_b_06L繁秋實而自伊枯死又如柞棫松栢
010_0781_b_07L忽生四郊封壃其萠芽生長乎雨露
010_0781_b_08L翳乎夜氣而牛羊牧之斧斤戕之
010_0781_b_09L遂其性而自伊剝落又如驈驪驒駱
010_0781_b_10L不生坰野力小價廉渴飮飢食王良
010_0781_b_11L盻視造父背棄伏櫪長嘶而辱於皁
010_0781_b_12L嗚乎此命邪天邪天旣有㝎
010_0781_b_13L人不勝盖天其未㝎拋在胡越薉貊
010_0781_b_14L任生任死也這个狀何足數㢤第頓悟
010_0781_b_15L一節自家前面惟庸鐵焉知後面有銀
010_0781_b_16L辟如左右於悟也但知某在石南一
010_0781_b_17L堇識字通古人也可愛而數以書示
010_0781_b_18L實不知年貌若干身短長若干
010_0781_b_19L嗜好若干言笑精神若干悟於左右
010_0781_b_20L但知某在南駕洛故國文章浩汗人也
010_0781_b_21L卓乎星宿嵬乎泰山常景慕忻忻
010_0781_b_22L實不知年貌身長短所嗜好言笑精神也
010_0781_b_23L假使如來示中所引香巖 [29] 等輩用力處
010_0781_b_24L但其言句上杜撰色項以爲模範萬一

010_0781_c_01L만에 하나라도 그 실재에서 어긋난다면 이는 천만리를 벗어난 정도가 아닙니다. 석가도 가섭에게 전해 줄 수 없었고, 가섭도 아난에게 전해 줄 수 없었습니다. 대개 석가와 가섭과 아난께서 사용한 마음자리는 곧바로 그렇게 했던 것일 뿐입니다. 깨달음 이후의 효능은 하나의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지, 어찌 마음을 쓰는 경지에 있겠습니까. 깨달은 뒤의 신령함을 미리 헤아리려는 것입니까? 그런 깨달음이라면 천 번이 있다 해도 그 자리에서 단박에 내려놓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 하.
황벽黃蘗의 작은 삿갓,90) 단하丹霞의 풀 매기,91) 석공石鞏의 사슴 쫓기,92) 반산盤山의 장거리 떠돌기93) 등 이치가 심상해 특별히 별날 것도 없는 것 속에서 그저 “저들은 무슨 도리가 있었기에 이렇게 했을까?” 하며 참구하십시오. 어르신과 계오는 본분의 먹잇감을 바탕으로 평등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섣달그믐94)까지 이미 그러셨듯이 앞으로도 힘을 써서 살피고 염하십시오. 그것을 관하고 상세히 이해해 단박에 깨닫게 된다면, 또한 객진의 번뇌를 아득히 벗어나 흔쾌히 불법의 문 안으로 두뇌를 돌리고 반야의 혜명을 깊이 심는 일이 혹시라도 있게 된다면, 흠모와 부러움 그지없을 것입니다.
이른바 이승의 삼매는 아我와 법法에 얽히고 물들어 인과응보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격식을 벗어난 선종의 한결같은 맛인 밝은 마음에서 보면 털끝만큼 어긋나도 천 리나 벌어집니다. 세간의 명문귀족께서는 관사와 누각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높은 관직과 중요한 직분에 자유자재로 들고 나며, 문서와 장부를 담당하는 사람이 되어 들은 말을 글로 옮기고 질문에 응수해 차례차례 대답하기를 죽는 날까지 하면서도 피로한 줄 모르는 분이 되소서. 이것이 어찌 상승上乘의 경계를 논한 것이라 하기에 충분하겠습니까? 제 말을 옳다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한 줄의 글로 적지 않게 누를 끼쳤습니다.
도와 최남복 상사께 삼가 안부를 여쭙는 편지(奉候陶窩崔上舍【南復】書)
장석께서 절 문을 지나가실 줄도 모르고 계오가 출타하는 바람에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찌 신선과의 연분이 이리도 박할까요? 처소로 돌아와서는 스스로 마음을 가눌 길 없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청정한 거처는 한결같이 고루 빼어나겠지요. 산승은 초가집에서 ‘뜰 앞에 잣나무’ 화두 하나 외에는

010_0781_c_01L於其實際差爽不啻千萬里外也以釋
010_0781_c_02L迦不能與受迦葉以迦葉不能與受阿
010_0781_c_03L葢釋迦迦葉阿難所用心底地便當
010_0781_c_04L做他了悟後功効同歸一條惡在用心
010_0781_c_05L底地逆覩悟後靈的邪此縱有千箇悟
010_0781_c_06L不可直下頓放處也呵呵黃蘗小笠
010_0781_c_07L丹霞剗艸石鞏趨鹿盤山游市等
010_0781_c_08L裏理會尋常處另無別般樣底只他有
010_0781_c_09L甚麽道理此事左右與悟本分草料
010_0781_c_10L一等命脉着力省念限臈卅日
010_0781_c_11L諸未諸且觀其解詳頓悟來者亦或有
010_0781_c_12L逈脫客塵快回頭腦於佛法門中深種
010_0781_c_13L般若慧命不勝歆羨所謂二乘三昧
010_0781_c_14L纏染我法汨陳報應於格外禪宗一味
010_0781_c_15L明心上毫氂之差千里之繆如世間
010_0781_c_16L宦族翺翔舘閣出入淸要以朱墨簿形
010_0781_c_17L聽言摛筆酬問階答終其身而不
010_0781_c_18L知倦此何足與論上乘境界耶勿以爲
010_0781_c_19L是而蘄焉如上一絡索漏逗不少

010_0781_c_20L

010_0781_c_21L奉候陶窩崔上舍南復

010_0781_c_22L
悟不知丈席過寺門出他不拜候
010_0781_c_23L仙分以薄耶還巢心不自抑伏惟淨居
010_0781_c_24L一向均勝山僧茅茨下事業庭前柏樹

010_0782_a_01L마음에 한가할 것도 바쁠 것도 없이 지냅니다. 다만 올해 들어 어머니의 병환이 점점 심해져 여유가 조금도 없어 문밖조차 나가질 못했는데, 팔공산八公山에서 긴박하게 주간할 일이 생겼지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도 없어 갔다가 돌아왔더니, 그 사이 장석께서 왕림해 시를 남기고 가셨더군요.
오랫동안 소식이 뜸해 거의 잊고 지냈는데, 이런 말씀이 귀에 들어오니 방촌方寸 가운데서 다시 한 조각 심회가 타오르는군요. 저도 모르게 당장 진나라 사안謝安95)께 달려가 조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조물주께서 가로막더군요. 거처를 호계虎溪 심원동深源洞으로 옮기고는 큰 빚을 진 것만 같아 자주자주 번민하였답니다.
모르겠습니다. 항상 서사書社96)에서 지내십니까? 아니면 또 댁으로 돌아갔다가 간간이 산장에 올라 두루 유람하시는 겁니까? 항상 서사에 계신다면 혹시 초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댁으로 돌아가셨다면 삼가 찾아뵙고 싶은데, 언제쯤이 좋을지 몰라 암담하기만 합니다.
답장을 첨부한다(附答)
상란喪亂97)이 닥치니 바위 굴에서 좌정하시는 분이 더욱 부럽군요. 꿈속의 생각이 발동하자마자 곧바로 답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개와 노을 속 얼굴을 직접 뵙는 것만 같아 종이가 풀어지고 먹물이 번지도록 차마 손에서 놓질 못했습니다. 게다가 강독하는 맛이 있음을 알겠더군요.
올해 설을 쇠기 전에 천륜을 잃는 애통한 일을 겪고는 오랫동안 근신하며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른 봄에 집을 나와 연꽃이 우거진 곳98)에서 지내다가, 매서운 추위가 닥쳐 다시 본가로 돌아왔지요. 그랬더니 번뇌가 차곡차곡 가슴 가득히 쌓이더군요. 어떻게 하면 조계의 청정한 한 줄기 강물을 빌려 이 가시덤불을 씻어 낼 수 있을까요?
꽃 붉고 버들잎 푸를 무렵, 또 서사에 잠시 기거할 생각입니다. 스님의 거처로부터 근교라 할 수 있는 거리이니, 혹 시통詩筒 들고 석장 짚고서 찾아 주시려는지요?
일천 최림 사문께 삼가 안부를 여쭙는 편지(奉候逸川崔斯文【琳】書)

010_0782_a_01L一箇話頭外無關捩 [30] 閑忙底懷但年
010_0782_a_02L親憂層鱗無一時暇給不出戶庭
010_0782_a_03L八公山中緊有所幹事代人不得
010_0782_a_04L去以歸其間丈席枉屈有詩而去
010_0782_a_05L阻不聞幾在忘處而此言入耳方寸中
010_0782_a_06L㪅熾一段心懷不覺以作即圖匍匐晋
010_0782_a_07L而造物自沮移寓虎溪深源洞
010_0782_a_08L擔重負往往煩悶不識恒作書社中
010_0782_a_09L起居乎抑亦歸宅而間有登山墅
010_0782_a_10L備遊觀乎常在書社或有蒙賜陳悃
010_0782_a_11L而若歸宅奉覲卒未指期黯然

010_0782_a_12L

010_0782_a_13L附答

010_0782_a_14L
喪亂來尤羨巖穴坐㝎者至發夢想
010_0782_a_15L即奉遞書若對烟霞眉宇紙毛墨渝
010_0782_a_16L不忍釋手況知講讀有味此歲前遭
010_0782_a_17L天倫之慟宿眘大劇春初出栖蓮華
010_0782_a_18L深深處爲時氣所逼還本第塵累
010_0782_a_19L滿腔何以借曺溪一派淸淨以洗此
010_0782_a_20L荊棘耶花紅柳綠之際又欲蹔寄社
010_0782_a_21L去仙扃可莽蒼或可以詩筒道錫
010_0782_a_22L以相訪不

010_0782_a_23L

010_0782_a_24L奉候逸川崔斯文

010_0782_b_01L
계오가 얼마 전 가산에 있을 때 언彦 사리闍棃99)를 통해 어르신에 대해 듣고는 늘 한번 뵈었으면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올 7월에 호계 심원동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어르신과 함께 지내면서 음식을 대접한다면 혜원慧遠 노사의 백련사나 태전太顚 선사의 남쪽 언덕에서 있었던 옛일과 똑같을 것입니다. 도 처사陶處士와 한 형부韓刑部100)의 편지도 황홀하게 난야蘭若101)에서 나비102)를 놀라게 하는데, 하물며 예전부터 귀에 익숙히 들어왔던 분이겠습니까? 이는 곧 뽕밭에서 하룻밤 묵었던 빚103)이 남았던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금생에 기탁하는 처소가 왜 그전에는 멀다가 지금은 가깝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애통해하며 상례를 치르는 중이다.”104)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오에게는 처소를 침범한 두 더벅머리 아이105)가 있어 거의 눈에 보일 지경입니다. 또다시 몇 달을 지체하신다면 머리맡에 화현한 아이들이 어떻게 장난을 칠지 정말로 모를 일이니, 꼭 한번 참석해 주십시오. 이제 한순간 눈길을 부딪쳐 전생과 금생의 다함없는 회포를 완전히 풀어 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학을 수양하시는 몸 더욱 건승하시기만 바랍니다.
답장을 첨부한다(附答)
일찌감치 스스로를 산과 들에 풀어 놓았던 제가, 황무지처럼 부족한 자질이란 걸 스스로 헤아리지 못해 결국 사람들 눈에 띄고 말았군요. 저는 진실로 선善을 즐기고 옛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직접 그 집으로 찾아가 그가 말하고 논하는 풍도와 종지를 들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 습관이 쌓여 이젠 고질병이라 할 정도입니다.
언젠가 언彦 선사가 가산에서 찾아와 진심으로 말하더군요. 스님은 경전을 탐독해 도를 얻었고, 또 염화미소나 방과 할 등 선종의 도리 외에도 우리 도가 즐길 만하고 구할 만하다는 것을 알아, 평상시 말씀하고 음미하는 것이 우리 공자, 맹자, 정자, 주자의 책이 아닌 경우가 없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말을 들어 보니, 진심으로 받드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용이 꿈틀거리다 단단하게 뭉친 영취산의 기운과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정밀한 옥, 아름다운 옥, 경남梗楠과 예장豫章을 스님이 몽땅 얻어 기운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능히 매미가 허물을 벗듯 속세를 버리고 오신五辛106)의 기운을 말끔히 씻어 내고서

010_0782_b_01L
悟頃在伽山因彦闍棃聞左右常欲
010_0782_b_02L一見而未果今七月移寓虎溪深源洞
010_0782_b_03L與左右起居飮食相接如遠老白蓮
010_0782_b_04L師南陔故事必也陶處士韓刑部眞尺
010_0782_b_05L怳然蘭若上驚蝶而況昔者所耳復貫
010_0782_b_06L此則如非宿桑餘債寄在今生
010_0782_b_07L其前也遠而今也近雖然左右云
010_0782_b_08L期功之慘悟有二豎之侵幾相見也
010_0782_b_09L又將數月沉殢誠未知前頭化兒如何
010_0782_b_10L作戱須一席傾盖刻今目擊抒罷前
010_0782_b_11L今無盡藏懷抱了未知若何惟幾道履
010_0782_b_12L益勝

010_0782_b_13L

010_0782_b_14L附答

010_0782_b_15L
俺早自放於山野不自量鹵資之不
010_0782_b_16L以見取於人苟聞有樂善好古之
010_0782_b_17L則必欲躬造其廬以聽其言論風
010_0782_b_18L旨者積爲膏肓于時彦禪自伽山
010_0782_b_19L盛言師耽經得道又於拈花棒喝
010_0782_b_20L之外知有吾道之可嗜可求尋常語
010_0782_b_21L言咀嚼無非吾孔孟程朱之書余聞
010_0782_b_22L歆聳有以知鷲山蜿蜒磅礡之氣
010_0782_b_23L精璆美璞梗楠䂊章之不能顓者
010_0782_b_24L盡得之以爲氣又能蟬蛻塵臼洗滌

010_0782_c_01L그 가슴과 오장육부를 길러 하나의 근원을 추구하는 공력의 밑천으로 삼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얻은 바와 온축한 바가 세속 학자들의 더러운 마음으로는 만 분의 일도 이루지 못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곧장 비공費公의 갈피용葛陂龍107)을 빌려 경을 강론하는 대 아래에서 한번 들어 보고 싶었지만, 매번 병고로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탓에 한 마당 좋은 모임과 어긋나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한을 품은 것이 이미 여러 해입니다.
몇 년 동안 병든 몸을 스스로 치료하면서 굽어보고 우러러볼 만한 곳이 없어 산장에 자취를 기탁했더니, 쓸쓸하고 허전함이 매우 심했습니다. 이러던 즈음에 마침 우리 스님께서 물소리와 산 빛깔 사이에 주석하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서로 떨어진 거리도 지척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과거의 묵은 인연이, 부질없는 세간에서 자나 깨나 꿈에서마저 그리워한 보답보다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그 뒤로도 먼저 베푸는 일에 능숙하지 못했는데,108) 스님께서 어떤 엉터리 같은 말을 들으셨는지 이렇게 황량한 물가에서 메말라 가며 버려진 자를 알아주면서 여러 차례 욕되게도 심부름꾼을 보내 초대해 주시는군요. 이는 실로 한가하게 노닐던 놈이 예전부터 품어 왔던 소원입니다. 선방의 빗장을 한번 두드리는 것을 왜 망설이겠습니까?
광대한 세월에 차례로 만난 기상期喪109)의 상례를 훌쩍 벗어던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삼소三笑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바야흐로 사모하고 우러르던 마음이 더욱 늘어나려던 차에 평생의 살림살이를 한 통의 진중한 편지에 담아 또 족제비나 다니는 쑥대 명아주 우거진 길110)에 떨어뜨리시는군요.
받들어 읽어 보고는 기쁘고 속이 시원했으며, 황홀한 것이 마치 총령의 연화대가 인간세계에서 멀지 않아 고해의 허다한 번뇌를 쏟아 내기에 충분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개하여 편안치 않은 마음이 변치 않는 절개보다 깊다는 게 저절로 느껴지더군요. 한 명의 훌륭한 남자가 세상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여 도리어 서방의 신독身毒111) 집안에 자취를 의탁해 화현한 자가 되었으니, 애석한 일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도에도 특별한 풍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될 따름입니다. 하지만 유가와 석가에서 말하는 도는 모두 겁화에 태워져 식은 재가 되는 것을 면치 못합니다. 그렇다면 스님께서 형체의 분수 안에서 즐거움으로 삼는 것에는

010_0782_c_01L五辛而養其心胸腑肺以資一原之
010_0782_c_02L則其所得所蘊必非俗學垢襟所
010_0782_c_03L可萬一者直欲借費公葛陂龍以一
010_0782_c_04L聽於講經臺下而每因病苦顚躓
010_0782_c_05L却一場好會抱此溯洄道躋之恨者
010_0782_c_06L已有年矣數年來自度病軀無所
010_0782_c_07L俯仰寄迹山庄殊甚寥夐玆際適聞
010_0782_c_08L吾師住錫於水聲山色之間而道途
010_0782_c_09L相拒若可以只尺許豈釋家所謂過
010_0782_c_10L去宿緣有能巧於浮世間寤寐夢想
010_0782_c_11L之餘耶伊后先施之未能也師迺緣
010_0782_c_12L何誤識此荒濱枯槁留落之狀而屢
010_0782_c_13L辱使价許以召敎此實閒漢從前
010_0782_c_14L所抱願者何慳一叩禪扉脫略塵劫
010_0782_c_15L第遭朞喪襄禮斯遽至今未就三笑
010_0782_c_16L之約方慕仰之懷尤倍平昔所有者
010_0782_c_17L珍重一書又落於鼪鼬蓬藋之逕
010_0782_c_18L讀欣豁怳然若葱嶺蓮臺去人不遠
010_0782_c_19L足以倒瀉苦海間許多塵累而其感
010_0782_c_20L慨不平之意自覺深於一節可惜一
010_0782_c_21L種好男子無所遇於世反爲西方身
010_0782_c_22L毒家托跡化現者重可爲吾道恨不
010_0782_c_23L特風物之輸歸而已然儒釋家所謂
010_0782_c_24L俱不免劫燼死灰則師之所樂於

010_0783_a_01L과연 색을 관하고 공을 관했던 태전 선사의 오묘함112)이 있습니까? 그리고 요즘 세상의 소위 유자라는 자들 쪽에서는 또한 이단을 배척하고 부처와 노자를 물리치는113) 주공의 마음과 공자의 사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니, 써 놓은 편지 앞에서 세 번을 크게 탄식하게 되는군요.
얼굴을 마주할 시기는 아마 이달 안이 될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직언하지 않으면 도가 드러나지 않으니, 나 또한 꾸미지 않겠다.”114) 하였으니, 저 역시 이것으로 법을 삼습니다. 뵙지 못하는 동안 참된 성품을 천만 배로 배양하여 이로써 곁에서 우러르겠습니다.
용담사 최옥 사문께 삼가 안부를 여쭙는 편지(奉候龍潭社崔斯文【▼(沃/王)】書)
선비들 사이에서 칭찬하고 지리도 하나로 연결되어 인사에 함께 참여했던 것이 벌써 10년 전이군요. 장석丈席115)께서 문장으로 일찌감치 이름을 드날렸지만 늙으신 지금까지 항상 천거하는 자를 얻지 못하셨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무릇 번영과 쇠락에 자재함은 분수 안에 갖춰진 것입니다. 소양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시세가 불리하고 쓰임새가 합당치 못했던 것이 어찌 장석만의 일이겠습니까? 그 옛날 이름난 철인들에게도 역시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 필연적인 일임을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아, 그 사람됨이 넉넉한들 넉넉지 못한들 어떠리오!
감히 여쭙겠습니다. 서사에서의 기거는 한결같이 고루 빼어나시고,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말씀과 행동에 취할 바가 많아 윗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아랫사람들에까지 미치시는지요? 계오는 어린 시절 불교 집안에 의탁한 몸입니다. 타 버린 장작의 식은 재처럼 공하고 고요하게 만 가지 움직임을 쉬어 남은 정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한결같이 힘쓰는 일이라면 생멸인가 불생멸인가 여부로 귀결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제가 어찌 정성스런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추구해 지식을 넓히는 학문을 함께 논하기에 충분하겠습니까? 일찍이 영취산의 철喆 선사가 계오의 쓰임새가 대략 어떤지도 모르면서 근거도 없이 세 치 혓바닥으로 떠든 외람된 칭찬으로 인해, 장석께서 혹 책자의 허실에서 얻으신 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오의 마음에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삼가 보내신 편지를 읽고 저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010_0783_a_01L形骸之分者果有太顚觀色觀空之
010_0783_a_02L而今世所謂吾儒分上又有如觝
010_0783_a_03L排攘斥周情孔思者乎此可爲臨案
010_0783_a_04L三太息也會面之期似在月內
010_0783_a_05L子曰不直道不見我且質之吾亦
010_0783_a_06L以是爲法焉未間千萬養眞以副企
010_0783_a_07L

010_0783_a_08L

010_0783_a_09L奉候龍潭社崔斯文▼(沃/王)

010_0783_a_10L
慶於彦間地理一連人事相叅故十
010_0783_a_11L年前聞知丈席文章早擅而迄今老上
010_0783_a_12L常不得擧者大凡榮枯自在分內所具
010_0783_a_13L假使贍足時之不利用之不合豈獨
010_0783_a_14L在丈席然乎古昔名哲亦多有之
010_0783_a_15L然之事以此可知其爲人優不優
010_0783_a_16L何如也敢問書社中起居一向均勝
010_0783_a_17L日用間云爲多所獲上達下逮不悟幼
010_0783_a_18L日托浮屠家底狀猶如薪盡灰死空空
010_0783_a_19L寂寂萬箇動息了無餘情一功歸於
010_0783_a_20L生滅不生滅與否耳此何足與論誠意
010_0783_a_21L格物致知之學歟丈席嘗因鷲山人喆
010_0783_a_22L禪師不知悟之功用彷彿而無端掉三
010_0783_a_23L寸舌濫稱或可有所得於册子上虛實
010_0783_a_24L然悟之心萬不當之謹讀來書不覺

010_0783_b_01L게다가 여러 줄의 먹의 향기가 그 빼어난 능력을 단박에 전달해 주어 이 노승으로 하여금 빛나는 태양 아래의 수놓은 비단 주머니 속으로 당장 뛰어들고 싶게 하더군요. 축 늘어져 숨어 살던 곳을 불쑥 벗어나고 싶지만 저는 또 그러지도 못하는 자입니다. 도학자께서 사시는 마을이 조금은 멀고 나이도 점점 많아져 만남을 약속하기 어려우니, 암담할 뿐입니다.
답장을 첨부한다(附答)
이름만 듣고 직접 뵙질 못하는군요. 한 납자가 취서산鷲栖山116)에서 편지와 시를 소매에 담아 왔는데, 편지로 뜻을 담고 시로 뜻을 표현했더군요. 오랫동안 사랑하고 음미하자 보배 구슬을 얻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저 상쾌함만 받들고 칭찬하니 실로 허물이라 해야겠지만, 허무를 숭상하는 불도의 말에 해당하니 또한 옳다고 해야 할까요? 웃기 좋을 만한 편지를 보낸 후 올해도 다 가고 추위가 더욱 심해질 듯합니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수양하는 처소는 청정하고 몸은 건강하신지요. 거슬러 위로하는 마음 더하기만 합니다. 쓸모없는 저는 반평생을 분주히 풍진 속에서 내달리다가 만년에 이 산으로 깊이 들어와 안개와 구름, 물고기, 새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70이 다 된 늙은이에게 남은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른바 해는 저무는데 가야 할 길은 아득하다는 탄식 그대로입니다.
보내신 편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표현이 아득하고 뜻이 지극하더군요. 완전히 유가의 법도를 사용한 것이지, 이포새伊蒲塞117)의 기운과 맛이 아니었습니다. 시 역시 원활하고 청아해 마치 구름과 노을을 두른 듯한 언어였지, 또한 나물과 죽순만 먹고 사는 사람들의 입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스님이 그 이름은 묵가이면서 행실은 유자라는 자입니까? 애석합니다. 머리를 돌리고 발길을 돌려 일찌감치 유가에 종사해 공명의 사업을 법도에 맞게 시행하였다면 이 정도에 그치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님 역시 늙었으니, 분명 참회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쓸모없고 엉성하며 낙담한 채 살아가는 자입니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업으로 삼았다지만 남을 위해 도모할 겨를이나 있었겠습니까? 근원에서 일러 주신 편지의 말씀은 현묘한 도리를 끄집어내고 그윽한 이치를 눈을 크게 떠서 본 것이니, 오직 안락한 조사이실 따름입니다. 진실로 세상을 경영하는 학문이 아닌데,

010_0783_b_01L作而頓踣又況數行墨香賁達精銳以
010_0783_b_02L使老僧砉然投入朱陽錦綉囊中
010_0783_b_03L欲揬出嚲避而又不得者乎道里稍敻
010_0783_b_04L年齒漸岌逢着例難黯然

010_0783_b_05L

010_0783_b_06L附答

010_0783_b_07L
只聞其名不見其人一衲自鷲栖
010_0783_b_08L袖書若詩至書以寄意詩以言志
010_0783_b_09L愛玩久矣如獲拱璧但推許爽
010_0783_b_10L稱謂過當佛道尙虛无言亦稱是耶
010_0783_b_11L好笑信後歲行且盡寒事料峭
010_0783_b_12L修養啓居淸健益庸溯慰拙半
010_0783_b_13L世奔走風埃晩莫深入此山烟雲魚
010_0783_b_14L爲度日之資年迫七耋餘日幾
010_0783_b_15L信所謂日莫程遙浩歎細看來書
010_0783_b_16L辭邈意至全用儒家法尺不是伊蒲
010_0783_b_17L塞氣味詩亦圓活淸雅如帶雲霞
010_0783_b_18L又不是蔬筍人口氣師其墨名儒
010_0783_b_19L行者乎惜乎回頭轉腳早從事於
010_0783_b_20L儒家彀率功名事業不止於此
010_0783_b_21L師亦老矣想應有懺悔之心如余空
010_0783_b_22L踈落託者從少業儒而尙不免醉生
010_0783_b_23L夢死而暇爲人謀乎根窟之喩
010_0783_b_24L玄頣幽者惟安樂祖師而已苟非經

010_0783_c_01L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철哲이 저를 따라 노닐면서 겨우 1년을 배웠는데, 지척도 나아가지 못하고 한없는 쓴맛과 덤덤함만 진탕 맛보아야 했습니다. 재주야 둔한 근기이지만 그 근면함이 가상했는데, 내년 봄 호계의 삼소로 돌아가겠다고 고하니 도리어 갈림길에서 눈물짓게 되는군요.
어쩌자고 가산은 저리 아득하답니까? 그곳까지 갈 힘이 없군요. 스님이 저보다 10년은 젊으시니, 호젓하게 행각을 나서면 백 리 길도 거뜬할 것입니다. 화창한 봄에 날이 따뜻해지거든 철과 함께 나란히 지팡이를 짚고 적막한 물가로 저를 찾아 주십시오. 그렇게 못 하신다면 편지라도 서로 통해 회포를 전해 주십시오. 그러신다면 얼굴을 대신할 밑천으로 삼기에 또한 충분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가는 인편이 없어 이 또한 기약하기가 쉽질 않으니, 써 놓은 편지 굽어보며 어찌 슬픔과 암담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다 쓰지 못합니다.
호운 대사에게 답하다(答灝雲大師)
지난날 민雯 스님이 찾아와 귀하가 있는 곳의 풍경을 알게 되었네. 들어 보이는 한쪽 모서리에서 나머지 셋을 파악하건대118) 암송하면서 음미할 만한 형상들이 있겠더군. 이곳 적막한 산속 재실에는 단풍과 국화가 부질없이 살아가는 나를 위해 스스로 소생하여 환하게 빛나고 있다네. 하지만 볼 만한 풍경이라 할 수는 없으니, 어디에 깃들고 머물겠는가?
편지의 말에 따르면 『논어』 1부의 뜻과 이치가 심오해 수십 번을 읽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하였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저 앎과 행실이 천성적으로 편안하셨던 분도 오히려 가죽 끈을 세 번이나 끊었는데119) 하물며 힘들게 노력해야 실천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자이겠는가? 조용히 침묵하고 백 번 천 번 반복하면서 폐가 타서 문드러지도록 문장을 힘써 살펴보게. 그렇게 한다면 뚫고 깨뜨려 가까워지고 쉬워지는 경지의 실마리가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성현의 골수는 황홀하게도 우리의 방촌에 있다네. 이를 얻는다면 상쾌하고 화창하며 조리가 있을 것이네.
아, 수십 번을 읽었다고 하는구나. 요즘 학자들은 다들 경전의 기름진 맛은 음미하질 않고 속히 알음알이의 효과를 보려고 해 천리만리 아득히 멀어지니, 나는 이를 옳다고 보지 않네. 우리 스님은 농락한 문서가 대궐로 나아가기에 충분하고,

010_0783_c_01L世學安能容易道哉哲也從吾遊
010_0783_c_02L才一秊學無只尺進而喫盡無限苦
010_0783_c_03L才若鈍根而其勤勵可尙將以
010_0783_c_04L明春告歸虎溪笑反作歧路泣
010_0783_c_05L何伽山逖矣無力可致師則少於我
010_0783_c_06L十年蕭然行腳能辦百里行竢春
010_0783_c_07L和日暖與哲聯笻訪我於寂莫之濱
010_0783_c_08L不然則書尺相通噵達懷緖
010_0783_c_09L足爲替面之資而偵便無路此亦未
010_0783_c_10L易期也臨書烏得無悵黯底懷不宣

010_0783_c_11L

010_0783_c_12L答灝雲大師

010_0783_c_13L
去日雯師來得貴界爻象擧一隅反三
010_0783_c_14L仍諳做味有相而此中寂歷山齋楓菊
010_0783_c_15L自爲浮生蘇朗而未景風槩于何捿泊
010_0783_c_16L承喩一部論語義理深奧讀去數十
010_0783_c_17L多不能通曉者是何言也盖知行
010_0783_c_18L生而安而猶三絕韋編而況困勉行知
010_0783_c_19L從容沉默千回百復討尋章句
010_0783_c_20L爛肺臟而安有無端透破近易處聖賢
010_0783_c_21L膈髓怳爾在吾方寸而也得快暢條理
010_0783_c_22L去乎數十遍了近日學者皆不咀
010_0783_c_23L嚼經典膏腴而欲速效知解萬萬迂濶
010_0783_c_24L吾不見是處尓吾師文書籠絡足以趍

010_0784_a_01L또한 법도에 맞춰 글을 짓는 솜씨도 보통 사람을 뛰어넘네. 진정 이는 조금씩 닦아 가며 조금씩 깨달아 가는 선가의 방편이라네. 그렇게 함으로써 힘을 운용하고 공을 세울 수 있으니, 노력하고 또 노력하게나.
아비와 자식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더더욱 책선責善120)하지 말아야 한다네. 지난날의 광장匡章121)이 오늘날의 호운灝雲이니, 친구 사이의 책선도 심하면 의를 상하는데 하물며 친애하는 사사로운 관계에서 용납되겠는가? 진실로 지나쳐서는 안 되겠지.
무릇 하늘의 이치는 곧게 서면 주인이 되고 가로 누우면 노예가 되며, 참되면 내가 되고 거짓되면 사물이 된다네. 노예가 주인이 되고 사물이 내가 되었다는 소리를 나는 들어 본 적이 없네.
술주정 덕담도 오래 하면 질리는 법인데 내가 선하지 못한 짓을 했군. 해 저물어 집으로 돌아왔다면 또한 내 말도 근심거리로 삼지 말게. 군더더기는 생략하겠네.

010_0784_a_01L進閫域又製作䂓行出凡超例政是
010_0784_a_02L禪家漸修漸悟方便可以運力樹功
010_0784_a_03L哉懋哉父子之間師弟子之際甚非
010_0784_a_04L責善之地前日匡章今時灝雲朋友
010_0784_a_05L之責瀆則傷義況親愛之私可以容乎
010_0784_a_06L愼勿過矣大凡天理直爲主橫爲奴
010_0784_a_07L眞爲我假爲物吾未聞奴爲主而物爲
010_0784_a_08L我也酗德久猒作善外事日暮還家
010_0784_a_09L又勿以爲憂也切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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伽山藁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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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퍼덕대기만 할 뿐(能翺翔) : 고상翺翔은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고 낮은 가지나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메추라기(斥鴳)가 구만리 창공으로 날아올라 남쪽 바다로 가는 붕새를 비웃으며 “저건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걸까? 내가 힘껏 날아올라 보았지만 몇 길을 넘지 못하고 내려와 쑥대밭 사이에서 퍼덕거릴 뿐이었으니, 이것이 날 수 있는 한계이다. 그런데 저건 또 어디를 간단 말인가?(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翺翔蓬蒿之間。 此亦飛之至也。 而彼且奚適也。)”라고 하였다. 『莊子』 「逍遙遊」.
  2. 2)우통수于筒水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장령봉 밑에서 나는 샘물. 태백시 금대봉에 있는 검룡소儉龍沼와 함께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3. 3)강회江淮 : 중국의 양자강揚子江과 회수淮水를 말한다.
  4. 4)양장羊腸 : 산서성山西省에 판도坂道인 양장판羊腸坂이 있는데, 비탈길이 마치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하고 매우 험난하다고 한다. 흔히 험난한 세로世路를 비유한다.
  5. 5)우물 청소하고 베갯머리에서 우니(井渫枕顚鳴) :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한탄하는 표현이다. ‘정설井渫’은 우물 바닥의 오물을 깨끗이 퍼내듯 스스로 몸가짐을 깨끗이 한 것을 뜻한다. 『周易』 「井卦」 구삼효九三爻에 “우물 청소했는데도 먹는 사람이 없어 내 마음 슬프게 한다.(井渫不食。 爲我心惻。)”라고 하였다.
  6. 6)동중서蕫仲舒 : 한 무제漢武帝 때의 재상. 유교가 중국의 국교이자 정치 철학의 토대가 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유교 철학과 음양 철학陰陽哲學을 통합하였고, 국가 교육 기관인 태학太學을 설립하였다.
  7. 7)임술년 : 1802년으로 스님의 나이 만 29세 되던 해이다.
  8. 8)저 가을~않은 탓이지요(不吊彼秋旻) : 불운을 한탄하는 표현이다. 공자孔子가 죽었을 때에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내린 조사弔辭에 “하늘이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구나. 나라의 원로를 조금 더 세상에 있게 하여 나 한 사람을 도와 임금 자리에 있게 하지 않는구나.(旻天不弔。 不憖遺一老。 俾屛余一人以在位。)” 하고 탄식한 구절이 있다. 『春秋左氏傳』 「哀公 16년」.
  9. 9)은공 원년 봄(隱公元年春) :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해는 애공哀公 11년(B.C. 484), 공자 나이 68세 때였다. 아마도 『春秋』의 편찬 기년을 공자의 귀환 년으로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春秋』는 노나라 은공隱公 원년(B.C. 722)부터 애공哀公 14년(B.C. 481)까지 242년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0. 10)멈춰야 할~줄 알았으니(於止知所止) : 『詩經』 「小雅」 ≺綿蠻≻에 “꾀꼴꾀꼴 꾀꼬리가 언덕 모퉁이에서 멈추네.(綿蠻黃鳥。 止于丘隅。)”라는 말이 나오는데, 공자가 이 시를 해설하면서 “꾀꼬리도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출 줄 아는데, 사람이 새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於止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라고 한 말이 『大學章句』에 나온다.
  11. 11)안 씨의~어기지 않았지 : 공자가 “안회는 그 마음이 석 달 동안 인을 떠나지 않았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 동안 유지될 뿐이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12. 12)예문을 읽으면서(讀禮) : ‘독례讀禮’는 거상居喪을 뜻한다. 『禮記』 「曲禮 下」에 “장사 지내기 전에는 상례를 읽고, 장사 지낸 뒤에는 제례를 읽는다.(未葬讀喪禮。 旣葬讀祭禮。)”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13. 13)조룡祖龍 : ‘조祖’는 시始의 뜻이고, ‘용龍’은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즉 시황始皇을 가리킨다. 『史記』 권6 「秦始皇本紀」의 “금년에 조룡이 죽을 것이다.(今年祖龍死)”라고 한 예언에서 비롯되었다.
  14. 14)호지滈池 : 서주西周의 서울인 호경鎬京에 있던 못 이름으로, 지금 중국의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서쪽에 위치한다. 진시황이 죽던 해인 기원전 210년에 관동關東 지방에 나갔던 사자使者가 수신水神을 만났는데, 옥을 주면서 “이것을 호지군滈池君께 넘겨주시오. 금년에 조룡祖龍이 죽을 것이오.”라고 예언하였다. 호지군은 주 무왕周武王을 뜻하며, 무왕 같은 인물인 유방이 나타날 것을 예언한 말이다.
  15. 15)풍패(豊) : ‘풍豊’은 풍패豐沛를 뜻한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이다.
  16. 16)융중에서도 제갈량은 통했고 : 융중隆中은 제갈량諸葛亮이 출사出仕하기 전 농사를 지으며 은거하던 곳이다. 이후 유비劉備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자 군사軍師가 되어 촉한蜀漢을 건국하였다.
  17. 17)위수에서는 여망도 궁색했지 : 여망呂望은 태공망太公望 즉 여상呂尙을 가리킨다. 강태공은 위수渭水 가의 반계磻溪에서 낚시질이나 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문왕文王을 만나 사부師傅로 추대되었고,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였다.
  18. 18)낭관 풍당(郞馮) : 풍당馮唐은 한漢나라 안릉인安陵人으로 고제高帝 때 하관말직인 낭관郎官이 되었고, 현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혜제惠帝를 거쳐 문제文帝 때 이르러서야 겨우 발탁되어 낭중서장郞中署長을 거쳐 차기도위車騎都尉까지 이르렀다. 『史記』 권102 「馮唐列傳」.
  19. 19)긴 끈을 청했던 종군(請纓終) : ‘종終’은 한 무제 때 사람 종군終軍을 가리킨다. 종군은 문학과 언변이 뛰어나 약관弱冠의 나이로 간의대부諫議大夫로 발탁되었다.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가기를 자청하면서 “긴 밧줄 하나만 주시면 남월왕을 꽁꽁 묶어 대궐 아래에 바치겠습니다.(願受長纓。 必羈南越王而致之闕下。)”라고 하였고, 사명使命을 받들고 가서 남월왕南越王을 설득해 천자로부터 큰 은총을 받고 명성이 천하에 떨쳤다. 하지만 곧 남월왕의 재상인 여가呂嘉의 반란으로 그곳에서 죽고 말았는데, 그때 그의 나이 20세였다. 『漢書』 권64 「終軍傳」.
  20. 20)사방 한 치(方寸) : 방촌方寸은 사방 1촌이란 뜻으로, 마음의 별칭이다. 『列子』에 “내가 자네의 마음을 보니 방촌方寸만 한 곳이 텅 비었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21. 21)붕거鵬擧 : 월하 대사의 자字.
  22. 22)뽕나무밭(桑田) : 상전벽해桑田碧海에서 나온 말로 덧없는 세상을 뜻한다.
  23. 23)몸이 마음을~슬퍼만 하랴 : 도잠陶潛이 ≺歸去來辭≻에서 “스스로 마음을 몸의 노예로 부려 먹었지만 어찌 서글프게 슬퍼만 하리오.(既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라고 하였다.
  24. 24)갈강葛强 : 진晉나라 정남장군征南將軍 산간山簡의 부장이다. 호기가 넘쳤지만 술을 너무 좋아해 항상 산간과 술자리를 함께하였다고 한다.
  25. 25)산대가 터질~구름의 깃발 : 산대가 터질 듯하다(山竹欲裂)는 것은 두견새 소리의 처량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玄都壇歌寄元逸人≻에 “두견새 밤에 울어 산대가 터지고, 서왕모 낮에 내려와 구름 깃발 번득이네.(子規夜啼山竹裂。 王母晝下雲旗翻。)”라고 하였다.
  26. 26)무하유지향(無何鄕) : 무하향無何鄕은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준말로 아무것도 없는 끝없이 펼쳐진 적막한 세계를 말한다. 장자莊子가 설한 이상향이다. 『莊子』 「逍遙遊」에 “그대가 큰 나무를 갖고서 아무 쓸모가 없다고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나무를 무하유지향의 광막한 벌판에 심어 두고서 하릴없이 그 곁을 서성이거나 그 밑에 누워 소요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27. 27)푸른 학(靑鶴) : 학은 천 년을 묵으면 푸른색이 되고, 2천 년을 묵으면 검은색이 된다고 한다.
  28. 28)저 연도에서~쏟아 내시게나 : 협객 형가荊軻의 고사에 의거하였다. 울분을 토할 길 없던 형가가 연나라 시장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고점리高漸離를 만났는데, 두 사람이 뜻이 통하여 고점리는 축筑을 불고 형가가 노래하며 함께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史記』 「荊軻傳」.
  29. 29)군말(瀆告) : 독고瀆告는 번거롭게 두 번 세 번 자꾸 고하는 것을 말한다. ‘독瀆’은 모욕하다라는 뜻으로 『周易』에 “두 번 세 번 말하면 모독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30. 30)침허 대사枕虛大師 : 월하 대사의 계사이다. 1803년(순조 3)에 수일守一과 함께 석남사를 중수하였다는 기록 외에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31. 31)월파 대사月波大師 : 사명 대사의 8세손으로 법명은 천유天有. 경남 밀양의 무안면 중산리 웅동熊洞에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靈井寺로 이건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32. 32)홍직필洪直弼(1776∼1852) : 조선 후기의 학자. 초명은 긍필兢弼, 자는 백응伯應·백림伯臨, 호는 매산梅山. 병마절도위 상언尙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선양善養, 아버지는 판서 이간履簡이다. 재능이 뛰어나 7세 때 이미 문장을 지었다. 17세에 이학理學에 밝아 성리학자 박윤원朴胤源으로부터 ‘오도유탁吾道有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810년 돈녕부 참봉에 제수된 것을 시작으로 익위사 세마翊衛司洗馬, 장흥 고봉사, 황해도 도사, 군자감정, 공조 참의, 성균관 좨주, 대사헌, 지돈녕 부사, 형조판서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월하 대사에게 보낸 이 편지는 또한 『梅山先生文集』 권26에 「答戒悟上人」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목 옆에 ‘甲戌(1814)’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의 나이 만 38세에 쓴 편지이다. 당시 월하 대사는 만 41세였다.
  33. 33)현도玄度 : 동진東晉의 명사 허순許詢의 자字. 승려 지도림支道林과 교유하면서 청담淸談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유윤劉尹이 그를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대하노라면, 문득 현도가 생각난다.(淸風朗月。 輒思玄度。)”라고 평한 말이 유명하다. 『世說新語』 「言語」.
  34. 34)지둔支遁 : 진晉나라 고승高僧으로 자는 도림道林. 25세에 출가하여 세상에 나와 불법의 미묘한 뜻을 널리 펼쳤다. 또한 사안謝安·왕흡王洽·유회劉恢·은호殷浩·허순許詢·극초郄超·손작孫綽·환언표桓彥表·왕경인王敬仁·하차도何次道·왕문도王文度·사장하謝長遐·원언백袁彥伯 등 일대의 명사들과 널리 교유하며 명망을 떨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세상에서는 그를 지공支公, 또는 임공林公이라 칭하였다.
  35. 35)『남화경』 첫~토론하는 것 : 『南華經』은 『莊子』를 말한다. 이는 사실 현도와 지둔 사이에 있었던 고사가 아니라 유계지劉系之와 지둔 사이에 있었던 고사이다. 지둔이 백마사白馬寺에 머물 때 유계지 등과 『莊子』 「逍遙遊」 편에 대해 담론하였다. 그때 유계지가 “각기 성품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소요逍遙’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지둔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 폭군 걸왕과 도척은 생명을 해치는 성품을 타고났습니다. 만약 성품 따라 살면 된다고 한다면, 그들 역시나 소요한 것이 됩니다.” 지둔이 자리에서 물러나 「逍遙遊」 편에 주석을 썼는데, 수많은 석학과 유생들이 그것을 읽고 탄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高僧傳』 권4 「支遁」(T50, 348b).
  36. 36)경거瓊琚 : 보배 구슬인데 훌륭한 시문을 뜻한다. 『詩經』 「衛風」 ≺木瓜≻에 “나에게 목과를 주거늘 경거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37. 37)온갖 것을~받아들이는 것(羣動而納萬境者) : 만물의 근원 즉 마음(心)을 뜻한다.
  38. 38)불교의 해로움은~묵적보다 더하다 : 『近思錄』 「辯異端」에 나오는 정명도程明道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양주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로 “내 몸의 털 하나를 뽑으면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해도 하지 않겠다.(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라고 하였다. 묵적은 박애주의자로 “이마에서 발끝까지 부서진다 해도 천하를 이롭게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摩頂放踵。 利天下。 爲之。)”라고 하였다. 유교에서는 이 둘을 철저히 배척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맹자는 “양씨는 나만을 위하니 이것은 임금이 없는 것이며, 묵씨는 모두를 사랑하니 이것은 아버지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없고 임금이 없는 것은 금수이다.(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 下」.
  39. 39)상법象法 : 불법을 뜻한다.
  40. 40)명교名敎 : 유교儒敎는 명분名分을 중시하므로 명교名敎라 한다.
  41. 41)분전墳典 : 삼분오전三墳五典의 준말. 옛 전적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삼분三墳은 삼황三皇의 글, 오전五典은 오제五帝의 글이다.
  42. 42)옛 현인 : 불교에 대한 이상의 비판은 남송南宋의 주희周熹와 여조겸呂祖謙 등이 편찬한 『近思錄』 「辯異端」에 수록되어 있다. 횡거 선생橫渠先生 장재張載가 불교를 비판하면서 “완전히 밝힐 수 없자 천지天地와 일월日月이 환상처럼 허망한 것이라며 거짓말을 하면서 그 작용을 작은 일신으로 가리고, 그 뜻을 큰 허공에 빠뜨린다. 이것이 큰 것을 말하건 작은 것을 말하건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중도를 잃게 되는 이유이다.(明不能盡。 則誣天地日月爲幻妄。 蔽其用於一身之小。 溺其志於虛空之大。 此所以語大語小。 流遁失中。)”라고 하였고, 또 “영재나 간기間氣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눈과 귀를 편안히 하는 일에 빠지고 자라서는 세속적인 유자들이나 숭상하는 말을 배우게 하여, 결국 멍청하게 부림을 당하게 한다.(使英才間氣。 生則溺耳目恬習之事。 長則師世儒崇尙之言。 遂冥然被驅。)”라고 하였다.
  43. 43)인재는 얻기~그렇지 않습니까 : 『論語』 「泰伯」에서 공자께서 “인재는 얻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은가?(才難。 不其然乎)”라고 하였다.
  44. 44)백곡白谷(1617∼1680) : 조선 후기 승려로 법명은 처능處能, 자는 신수愼守, 백곡은 호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지리산 쌍계사雙磎寺 각성覺性 회하에서 23년 동안 수학하였다. 1674년(현종 15)에 김좌명金佐明의 주청으로 팔도선교십육종도총섭八道禪敎十六宗都摠攝이 되었다. 「諫廢釋敎疏」를 올려 조선 승단을 대변해 호불간쟁護佛諫諍에 앞장섰다. 조선 승가에서 보기 드문 문장가로 평가받고 있다. 저술로 『白谷集』 2권과 『任性堂大師行狀』 1권이 전한다.
  45. 45)인악仁岳(1746~1796) : 조선 후기의 승려로 이름은 의선義宣, 자는 자의字宜, 호는 인악. 의첨義沾·의침義砧이라고도 한다. 당시 불교계에서 교학敎學의 대강백大講伯으로 편양문파鞭羊門派의 선승이기도 하다. 당대의 고승인 연담 유일蓮潭有一과 쌍벽을 이루었는데, 유일은 호남 지방에서, 그는 영남 지방에서 각각 불교학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46. 46)명성明誠 : 월하 대사를 밝음(明)과 진실함(誠)을 추구하는 사람, 즉 유교의 도에 참여한 사람이란 뜻에서 붙인 호칭이다. 분명히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하고, 마음에 거짓이 없고 지극히 진실한 상태를 성誠이라 한다. 『中庸章句』 제21장에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명으로 말미암아 성해지는 것을 교라 이르니, 성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해진다.(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고 하였다.
  47. 47)명협 두 포기(二蓂) : 요堯임금 조정의 뜰에서 명협蓂莢이란 풀이 자랐는데 초하루에 한 잎이 나고 매일 한 잎씩 늘었다가 16일부터 매일 한 잎씩 떨어져서 그믐이면 다 졌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달력을 만들었다 한다. 따라서 역초曆草라고도 한다. 여기에서는 명협의 의미가 분명치 않다. 글자 수가 28자인 칠언절구 두 수, 또는 60자로 된 오언고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48. 48)오동잎 : 오동나무 잎에 쓴 시란 뜻이다. 두보杜甫의 ≺重過何氏≻에 “돌난간에서 비스듬히 붓에 먹을 찍어, 앉아서 오동잎에 시를 쓴다.(石欄斜點筆。 桐葉坐題詩。)”라고 하였다.
  49. 49)삼공三空 : 삼해탈문三解脫門 또는 삼삼매三三昧라고도 한다. 해탈을 얻는 세 가지 방법으로 공해탈문空解脫門·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을 말한다.
  50. 50)십지十地 : 보살의 열 가지 수행 계위이다.
  51. 51)색동옷 입고 춤추는 일(舞彩) : 부모를 성심껏 모시는 일을 뜻한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 노래자老萊子가 일흔 살의 나이에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린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小學』 「稽古」.
  52. 52)바로 집대성이요, 금성옥진입니다(諟集大成。 金聲玉振) : 상대를 공자의 덕에 견주어 칭찬한 것이다. 맹자가 이르기를 “공자는 말하자면 모든 성인의 지덕을 모아 크게 완성하신 분이시다. 집대성集大成이란 바로 음악을 연주할 때 금속 악기로 발성을 시작하여 옥의 악기로 소리를 거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쇠로 소리를 낸다는 것은 시작의 조리요, 옥으로 거둔다는 것은 마침의 조리이다. 시작을 조리 있게 하는 것은 지혜의 일이요, 마침을 조리 있게 하는 것은 성인의 일이다.(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 金聲也者。 始條理也。 玉振之也者。 終條理也。 始條理者。 智之事也。 終條理者。 聖之事也。)”라고 하였다. 『孟子』 「萬章 下」.
  53. 53)가난뱅이가 옷~것만 같고 : 『法華經』 「五百弟子授記品」에 부유한 친구가 가난한 친구의 옷섶에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배 구슬을 넣어 두었으나 가난한 친구가 그 사실을 몰라 여전히 궁상을 떨고 살았다는 비유가 나온다.
  54. 54)높은 나무(喬木) : 교목은 몇 대에 걸쳐 크게 자란 나무라는 뜻으로, 누대에 걸쳐 경상卿相을 배출한 명가名家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55. 55)유 중서劉中書 총 대사聰大師 : 중서시랑中書侍郞 유병충劉秉忠(1216~1274)을 지칭한다. 유병충은 서주瑞州 사람으로 자는 중회仲晦, 초명은 건侃이다. 그는 본래 승려였고, 법명이 자총子聰이었다. 원元 세조世祖를 만나 문서를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20여 년을 보필하였고, 광록대부태보참예중서성사光祿大夫太保參預中書省事에 올랐다. 그는 세조에게 참언하여 점령하는 고을에서 살상을 금하게 하였고, 세조의 총애로 신하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지만, 평범한 거처에서 거친 음식으로 자족하면서 평생 승복을 벗지 않았다. 1274년 11월 8일에 붓을 찾아 “나는 세상을 등지지 않았고 세상도 나를 등지지 않았네. 한세상 살아온 나는 물속의 어린 달이요 허공에 핀 꽃이로다. 이제 꽃이 떨어지고 달도 지니, 이것이 무엇인가? 쯧.”이란 게송을 남기고 가부좌한 채 서거하였다. 『五燈全書』 권61(X82, 260b).
  56. 56)소성 거사少性居士 : 원효 대사元曉大師의 호칭이다.
  57. 57)포정 씨庖丁氏의~들어갔던 것처럼 : 포정庖丁은 백정으로서 『莊子』에 나오는 수많은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문혜군文惠君이 소를 잡는 백정의 솜씨가 유난히 빼어난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묻자 “소의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지만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새가 있는 곳에 넣으므로 칼날을 휘두르는 데에 반드시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莊子』 「養生主」.
  58. 58)치우치고 방탕한 대법(詖淫大法) : 불교를 비판적으로 지칭한 표현이다.
  59. 59)검은 수레 덮개(皂盖) : 지방 관원을 뜻하는 말이다. 지방 관원은 행차할 때 수레 위에 검정 비단을 쳤다고 한다.
  60. 60)허현도가 일찍이~비판했던 일 : 지둔支遁이 만년에 산음山陰에서 『維摩經』을 강설하게 되었다. 그때 지둔이 법사法師가 되고 허순都講이 도강都講이 되었는데, 지둔이 한 가지 뜻을 명쾌하게 설명하면 대중들 모두 “허순도 비판할 길이 없겠구나.” 하였고, 허순이 한 가지를 비판하면 대중들이 역시나 “지둔도 명쾌히 설명하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이렇게 강의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의 설명과 비판이 쉴 새가 없었다고 한다. 『高僧傳』 권4 「支遁」(T50, 348b).
  61. 61)밤기운으로 윤택해진다는~못하고 있습니다 : 유가에서는 밤사이에 생겨나는 천지의 맑은 기운 즉 야기夜氣를 흔히 사람의 양심良心에 비겨서 중하게 여긴다. 그런데 외물을 접하기 이전의 청명한 새벽에는 이런 마음이 남아 있다가 낮에 선하지 못한 행위들로 인해 그 양심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孟子』 「告子 上」에서 “제齊나라 동쪽에 있는 우산牛山에는 원래 나무가 많았는데, 큰 도읍 곁에 있던 까닭으로 사람들이 나무를 자꾸 베어내고 그나마 밤사이에 돋아난 싹을 또 가축들이 뜯어 먹으니, 결국은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의의 양심도 마찬가지이다. 자꾸 어긋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양심이 상하게 되지만, 밤사이에는 기욕嗜慾이 가라앉고 양심이 다시 자라나게 된다. 그러나 낮에 다시 어긋나는 행위를 하여 자꾸 쌓이게 되면 결국은 우산의 나무와 같이 양심이 모두 없어져 금수와 같게 된다.”라고 하였다.
  62. 62)도 태위陶太尉가~경하하며 칭송하였고 : ‘도 태위陶太尉’는 동진東晉을 중흥한 명장 도간陶侃(259~334)을 가리킨다. 자는 사행士行. 형주荊州·강주江州·양주梁州·옹주雍州·교주交州·광주廣州·익주益州·영주寧州 등 8주의 군사도독軍事都督으로 반란을 평정하고 빈틈없이 성실히 직무를 처리하였기에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63. 63)정절 선생靖節先生 : 도연명陶淵明(365~427)을 지칭한다. 도연명은 도간陶侃의 손자이다. 동진東晉이 망하고 유송劉宋이 서자 정절靖節을 지켜 율리栗里에 은거하였다.
  64. 64)유리由吏 : 수령의 해유解由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아전, 즉 지방 고을의 이방을 말한다.
  65. 65)무릇 마음이란~해서야 되겠습니까 : 이상 마음에 관한 설명은 범준范浚의 ≺心箴≻에서 인용하였다. ≺心箴≻에서 “이 몸의 미미함이 큰 창고 속의 낱알과 같건만, 참여하여 삼재가 됨은 오직 마음 때문이라 하겠다. 과거·현재·미래에 누가 이 마음이 없겠냐마는,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면 마침내 금수禽獸가 되니, 이는 오직 입과 귀와 눈과 수족手足과 동정動靜이 그 사이에 침투하고 틈을 벌려서 그 마음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是身之微。 太倉稊米。 參爲三才。 曰惟心爾。 往古來今。 孰無此心。 心爲形役。 乃獸乃禽。 惟口耳目。 手足動靜。 投間抵隙。 爲厥心病。)”라고 하였다.
  66. 66)『동서명東西銘』 : 횡거 선생橫渠先生 장재張載의 저술이다.
  67. 67)『경재잠敬齋箴』 : 주희의 저술이다. 주자朱子는 본당의 왼쪽 방을 경재敬齋라 칭하고, 오른쪽 방을 의재義齋라 칭하였다.
  68. 68)『근사록近思錄』 : 남송南宋의 주희周熹와 여조겸呂祖謙 등이 공동 편찬한 성리학 해설서.
  69. 69)정언正言 허 공許公 : 허형을 지칭한다.
  70. 70)사군使君 : 지방 행정관의 별칭.
  71. 71)설루雪樓 : 양산 관아에 있던 누각인 춘설루春雪樓의 준말로 곧 양산현감을 뜻한다.
  72. 72)허현도許玄度 : 허형許珩을 동진의 명사 허순許詢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현도는 허순의 자字이다.
  73. 73)이학규가 보낸 이 편지는 그의 『洛下生集』 권 15에 「與釋戒悟」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신사년辛巳年(1821) 그의 나이 만 51세에 보낸 편지이다. 당시 월하 대사는 48세였다.
  74. 74)생공生公 : 남북조시대의 고승 도생道生(?~434) 법사를 말한다. 축법태竺法汰에게 출가하였고, 여산에 들어가 혜원慧遠과 함께 7년 동안 경학을 연구하였으며, 장안長安으로 구마라집을 찾아가 다시 교학을 연구하였다. 409년(의회 5) 청원사에서 돈오성불頓悟成佛·천제성불闡提成佛 등을 주창하다가 빈척당하였다. 그 후 평강平江의 호구산虎丘山에 들어가 바위들을 청중으로 삼아 『涅槃經』을 강설하면서 “천제闡提도 성불한다.”라고 하자, 돌들이 끄덕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75. 75)임평의 연꽃 구절 : 송나라 때 소식蘇軾과 친분이 두터웠던 시승詩僧 참료자參廖子의 절창絶唱을 뜻한다. 그의 ≺臨平道中≻이란 시에 “바람이 부들 잎을 하늘하늘 희롱해, 잠자리 앉고 싶어도 맘대로 되질 않네. 5월이라 임평 땅 산 아랫길로, 무수한 연꽃이 물가에 가득하구나.(風蒲獵獵弄輕柔。 欲立蜻蜓不自由。 五月臨平山下路。 藕花無數滿汀洲。)”라고 하였다. 임평은 지명이다.
  76. 76)비흥比興 : 시를 지을 때 사용하는 표현 수법인 ‘육의六義’ 가운데 비比와 흥興의 병칭이다. 비比는 비유법이고, 흥興은 특정 사물을 먼저 거론하여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77. 77)곤궁과 영달은~기쁨을 맡긴다 : ≺삼가 해려께서 보내온 ‘남호’의 운을 따라(謹次海廬所送南湖韵)≻에서 인용하였다.
  78. 78)향엄香嚴 : 위산 영우潙山靈祐 선사의 제자로 법명은 지한智閑(?~898). 향엄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이전의 본분사本分事를 묻는 위산 스님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평생의 공부가 헛되었음을 느끼고 남양南陽 혜충 국사慧忠國師의 유적지에 은거하였다. 그곳에서 하루는 풀을 베다가 기왓장 조각을 주워 던졌는데, 그 기왓장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쳐 나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았다.
  79. 79)도오道吾 : 『傳燈錄』에 도오로 지칭되는 인물이 여러 명인데,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깨달은 인연이 가장 유사한 분은 관남 도상關南道常 선사의 법을 이은 양주襄州의 관남 도오關南道吾 선사이다. 관남 도오 선사는 어느 시골 교외를 지나다가 무당이 귀신을 즐겁게 하면서 “식신識神은 없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홀연히 깨달았다. 『景德傳燈錄』 권11(T51, 288c).
  80. 80)연지 주굉蓮池袾宏(1535~1615) : 명明나라 4대 고승 중 한 분. 속성은 심沈씨, 자는 불혜佛慧, 호는 연지蓮池. 운서산雲棲山에 오래 주석하여 흔히 운서 주굉이라 칭한다. 31세의 늦은 나이로 성천 리性天理 선사 문하에 출가하여, 유암柳庵의 송암 득보松庵得寶에게 참구하였고, 초서譙棲에서 북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융경隆慶 5년(1571)인 37세 때 운서산에 절을 짓고 머물렀다. 저서로 『禪關策進』·『緇門崇行錄』·『自知錄』 등이 있다.
  81. 81)일전어一轉語 : 상황을 일거에 변화시킬 전기가 되는 언구, 공부에 큰 비약을 가져오는 핵심적인 가르침을 뜻한다.
  82. 82)반고盤古 : 천지가 개벽할 때 가장 먼저 나와 세상을 다스렸다는 중국 신화 속의 인물이다. 최초의 인간인 동시에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이다. 일명 혼돈씨混沌氏라고도 한다.
  83. 83)아촉씨阿閦氏 : 아촉阿閦은 Aksobhya의 음역이다. 동쪽 아득한 곳에 계신다는 부처님 이름으로 흔히 동방東方 아촉불阿閦佛이라 칭한다.
  84. 84)우임금이 도끼질을 하건 말건 : 황하黃河가 산간 지대에서 평야 지대로 나오는 곳인 하남성河南省에 우문禹門이라는 협곡이 있다. 고대에 우임금이 도끼로 쪼개 물을 통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잉어가 이 폭포를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고 하여 용문龍門이라고도 한다.
  85. 85)영인에게 도끼를 휘두르건 말건 : 『莊子』 「徐无鬼」에 “영郢 지방 사람이 코끝에 백토를 파리 날개만큼 묻혀 놓고 장석匠石을 시켜 그것을 깎아 내게 하였다. 그러자 장석이 바람을 일으키며 도끼를 휘둘러 마음대로 깎아 내기 시작하였는데, 장석은 백토를 다 깎고도 코를 다치게 하지 않았고 영 지방 사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라고 하였다.
  86. 86)왕량王良 : 춘추시대 진晉의 대부 조간자趙簡子의 마부로 말을 잘 알아보고 잘 길렀던 사람이다.
  87. 87)조보造父 : 주周 목왕穆王의 마부이다.
  88. 88)두찬杜撰 : 조리와 근거가 희박한 말과 글을 뜻한다. 두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로 『野客叢談』에서 “두묵杜黙이 시詩를 지었는데 율律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일이 격에 맞지 않은 것을 들어 두찬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89. 89)색항色巷 : 술집과 사창가를 뜻한다. 일부 선사들이 불음계不淫戒와 불음주계不飮酒戒 등을 파하면서까지 자유자재로 교화를 펼친 사례들이 있다.
  90. 90)황벽黃蘗의 작은 삿갓 : 남전南泉 선사가 황벽 희운黃檗希運을 산문에서 전송하면서 그의 삿갓을 들어 올리고 “장로의 몸은 헤아릴 수 없이 큰데, 삿갓은 대개 작군.” 하자 황벽이 “그렇지만 삼천대천세계가 몽땅 이 속에 들어갑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남전 선사가 말하였다. “이 왕 노사도?” 『景德傳燈錄』 권9(T51, 266a).
  91. 91)단하丹霞의 풀 매기 : 단하 천연丹霞天然 선사가 석두石頭 선사 회상에서 행자로 지낼 때였다. 하루는 석두 석사가 대중에게 “내일은 불전 앞의 풀을 매자.”라고 하였다. 다음 날 모든 대중이 삽과 호미를 들고 와 풀을 매는데, 스님만 홀로 대야에 물을 담아 머리를 감고 석두 선사 앞에 합장하고서 무릎을 꿇었다. 석두 선사가 이를 보고 웃으면서 곧바로 머리를 깎아 주었다. 이어 계를 설해 주려고 하자 단하가 곧장 귀를 막고 나가 버렸다. 『景德傳燈錄』 권14(T51, 310b).
  92. 92)석공石鞏의 사슴 쫓기 : 석공 혜장石鞏慧藏 선사는 본래 사냥꾼이었다. 사슴을 쫓다가 마조馬祖 선사를 만나 크게 참회하고 출가하였다. 훗날 그는 석공산에 주석하며 학인이 찾아오면 항상 활을 팽팽히 당겨 겨누고서 “화살을 보라.”라고 소리쳤다. 『景德傳燈錄』 권6(T51, 248b).
  93. 93)반산盤山의 장거리 떠돌기 : 진주 보화鎮州普化 선사를 반산 보적盤山寶積 선사로 오칭誤稱한 것이다. 보화 선사는 반산 보적 선사의 제자인데, 미친 척하며 장거리와 무덤가를 돌아다니면서 요령을 흔들고 “밝음이 와도 때리고, 어둠이 와도 때린다.”라고 하였다. 『景德傳燈錄』 권10(T51, 280b).
  94. 94)섣달그믐 : 죽는 날을 뜻한다.
  95. 95)진나라 사안(晉安) : 안安은 사안謝安의 약칭이다. 최남복崔南復을 동진東晉의 명사 사안謝安에 빗대어 칭한 것이다. 최남복이 사안처럼 바둑을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96. 96)서사書社 : 울주군 두서면에 있던 백련서사白蓮書社를 말한다.
  97. 97)상란喪亂 : 사람이 죽는 재앙.
  98. 98)연꽃이 우거진 곳 : 백련서사白蓮書社를 뜻한다.
  99. 99)사리闍棃 : ācārya의 음역인 아사리阿闍梨의 준말로 제자를 가르치는 모범적인 승려를 뜻한다.
  100. 100)도 처사陶處士와 한 형부韓刑部 : 산림에 은거했던 도잠陶潛과 형부시랑刑部侍郞을 역임했던 한유韓愈를 지칭한다. 도잠은 여산의 혜원 법사와 교류하였고, 한유는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시절 태전 선사와 교류하였다.
  101. 101)난야蘭若 : 아란야阿蘭若의 준말이다. 교외의 한적한 수행처인 공한처空閑處를 뜻하는데, 후대에는 수행자들의 처소를 통칭하는 말로 쓰였다.
  102. 102)나비 : 계오戒悟 자신을 비유한 말이다. 인생을 한바탕 꿈속 나비의 나들이로 표현한 『莊子』 「齊物論」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103. 103)뽕밭에서 하룻밤 묵었던 빚 : 전생에 불가와 인연이 있었다는 뜻이다. “승려는 애착을 끊기 위해 비록 뽕나무 아래라 할지라도 사흘을 묵지 않는다.(浮屠不三宿桑下)”라는 고사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104. 104)애통해하며 상례를 치르는 중이다(有期功之慘) : ‘기공期功’은 기복期服과 공복功服의 병칭으로 곧 상례喪禮를 뜻한다. 기복期服은 1년 동안 입는 복장이고, 공복功服에는 또 9개월 동안 입는 대공大功과 5개월 동안 입는 소공小功이 있다.
  105. 105)두 더벅머리 아이(二豎) : 병마病魔를 뜻한다. 춘추시대 진 경공晉景公의 꿈에 병마가 더벅머리 두 아이(二豎)로 변해서 고황膏肓으로 들어갔는데, 결국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106. 106)오신五辛 : 오훈五葷이라고도 한다. 향과 맛이 강한 자극성 음식이나 양념으로 마늘(大蒜)·부추(茖葱)·파(慈葱)·달래(蘭葱)·흥거興渠를 말한다.
  107. 107)비공費公의 갈피용葛陂龍 : 비공費公은 비장방費長房을 지칭하고, 갈피葛陂는 하남성河南省 신채현新蔡縣에 있던 늪의 이름이다. 후한 때 비장방이 시장에서 약을 팔던 노인을 따라 호리병 속에 들어갔는데, 그 속에 별천지가 있었다. 그곳 화려한 집에서 좋은 술에다 맛있는 안주를 실컷 먹고 돌아가려 하자 노인이 대지팡이(竹杖)를 하나 주면서 “이것만 타면 저절로 집에 갈 수 있다.”라고 하였다. 지팡이를 타자 순식간에 홀연히 집에 도착하였고, 비장방이 그 지팡이를 갈피 속에 던져 버리자 청룡靑龍으로 변했다고 한다. 『後漢書』 권82 「方術列傳」 ‘費長房’.
  108. 108)먼저 베푸는~능숙하지 못했는데 : 자기가 먼저 초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中庸』 13장에서 공자가 “친구에게 바라는 것을 내가 먼저 베푸는 일에 능숙하지 못했다.(所求乎朋友。 先施之。 未能也。)”라고 하였다.
  109. 109)기상期喪 : 1년 동안 입는 상복.
  110. 110)족제비나 다니는~우거진 길 : 아주 깊은 산중에서 외로이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莊子』 「徐无鬼」에 “텅 빈 골짜기에 숨어 사는 사람은 명아주와 콩잎이 족제비의 길마저 막고 있기에 빈 골짜기에서 홀로 걷다 쉬다 하다가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뻐한다.(逃空虛者。 藜藿柱乎。 鼪鼬之逕。 踉位其空。 聞人足音。 跫然而喜。)”라고 하였다.
  111. 111)신독身毒 : Sindhu의 음역으로 인도를 지칭한다.
  112. 112)색을 관하고~선사의 오묘함 : 배불론자였던 한유가 조주자사로 좌천되었을 때, 기생 홍련紅蓮을 형산衡山 축융봉祝靈峰에 거주하는 태전에게 보내 유혹하게 하였다. 태전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홍련이 벌을 두려워하자 치마폭에 “10년을 축융봉에서 내려가지 않고, 색을 관하고 공을 관했더니 색이 곧 공이네. 어찌 한 방울 조계의 물을, 붉은 연꽃 잎사귀에 떨어뜨리겠는가.(十年不下祝靈峰。 觀色觀空卽色空。 如何一滴曹溪水。 肯墮紅蓮一葉中。)”라는 시를 써서 돌려보냈다. 이에 감복한 한유가 직접 태전 선사를 찾아왔고, 작별하면서 자신의 의복을 남겼다고 한다.
  113. 113)이단을 배척하고~노자를 물리치는(觝排攘斥) : ‘저배양척觝排攘斥’은 ‘저배이단觝排異端 양척불노攘斥佛老’의 준말이다. 한유의 「進學解」에 “이단을 배척하고 부처와 노자의 주장을 물리쳤으며, 틈새와 물이 새는 곳을 보완하고 오묘한 이치를 펼쳐서 밝혀 놓았다.(觝排異端。 攘斥佛老。 補苴罅漏。 張皇幽眇。)”라는 말이 나온다.
  114. 114)직언하지 않으면~꾸미지 않겠다 : 『孟子』 「滕文公 上」에 “不直則道不見。 我且直之。”라 하였다. 여기서는 ‘直’을 ‘質’이라 하였으나 뜻은 동일하다.
  115. 115)장석丈席 :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
  116. 116)취서산鷲栖山 : 경상남도 양산에 소재한 영취산靈鷲山을 지칭한다.
  117. 117)이포새伊蒲塞 : ‘이포새伊蒲塞’는 원래 upāsaka의 음역인 우바새優婆塞의 와전된 표기로서, 사부대중의 하나인 재가의 남자신자를 뜻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불교를 믿는 사람, 즉 불제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118. 118)들어 보이는~셋을 파악하건데(擧一隅反三) : 말이나 글을 깊이 헤아려 그 다양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論語』 「述而」에 “한쪽 모서리를 들어 보였을 때 그 나머지 세 모서리를 헤아려 대답하지 못하면 더 이상 말해 주지 않는다.(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하였다.
  119. 119)가죽 끈을~번이나 끊었는데 : 공자孔子가 말년에 『周易』을 좋아하여 많이 읽은 탓에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 『史記』 권47 「孔子世家」.
  120. 120)책선責善 : 상대방에게 선행을 하라며 질책하고 권면하는 것이다. 『孟子』 「離婁 下」에 “책선은 친구 사이에 적용되는 도리이다. 부자가 책선하는 것은 은의恩義를 해치는 것 가운데 큰 것이다.(責善。 朋友之道也。 父子責善。 賊恩之大者也。)”라고 하였다.
  121. 121)광장匡章 : 광장은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이다. 당시 온 나라 사람이 모두 그를 불효자라 칭했지만 맹자는 그를 예우하였다. 공도자公都子가 맹자에게 그 까닭을 묻자, 맹자가 “광장은 부모에게 불효했다고 할 만한 실상이 전혀 없다. 다만 부자간에 서로 잘하라고 책망을 하다가 사이가 나빠진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孟子』 「離婁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