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가산고(伽山藁) / 伽山藁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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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고 제4권(伽山藁 卷之四)
기記 8편
신흥사1) 대웅전 단확기新興寺大雄殿丹雘記
거대한 산악이 구불구불 서리고, 푸른 바다가 넓고 아득하며, 울창한 숲이 회오리처럼 솟구치고, 거대한 골짜기가 적막한 허공 같구나. 그 높고 탕탕함이 험절하여 바라보아도 그 끝이 보이질 않고, 그 이치를 궁구하고 싶지만 엇비슷한 모습조차 짐작할 수 없어 거의 반쯤 왔다가 물러났던 자가 삼사三舍2)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동산東山에 올라 층층의 파도를 바라본 적이 있는데, 힘차게 솟구쳤다 허공에서 뒤집히며 하늘과 땅 끝에서 끝없이 쌓였다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 감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웅장한 기운이로다. 사물이 그 사이에서 이 기운을 하나로 모은다면 반드시 용이 꿈틀거리듯 기이하고 신비할 것이며, 사람이 그 사이에서 이 기운을 하나로 모은다면 반드시 체구가 장대하고 성품이 강직하리라.”
아, 석씨釋氏께서 태어나기는 동방에서 출현하지 않으셨지만 멸도하신 후 그 법은 신라에서 비로소 대성하였고, 그를 따랐던 무리인 저 화쟁 국사 원효元曉3)와 의상義湘, 김생金生,4) 자장慈藏 같은 분들이 서로 계승하여 가람과 선찰을 건립하고 안개와 넝쿨, 달과 노송나무, 옥탑과 단청이 곳곳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어찌 석씨가 먼저 그 기운을 얻어 크게 소리친 것이 아니겠는가!
홍유후 설 선생弘儒侯薛先生,5) 문창공 최 선생文昌公崔先生6)이 나란히 신라에서 태어나 풍부하게 쌓은 문장과 빼어나고 큰 덕업으로 동국에 유풍을 드날렸으니, 이것이 어찌 또 그 기운을 얻어 크게 소리친 것이 아니겠는가!
(유가에서는) 그 후로도 이익재李益齋,7) 최예산崔猊山,8) 이제정李霽亭,9) 김초옥金艸屋10) 등이 학문과 지조와 절개에 힘을 쏟고 시와 논쟁에 능하여 그런 울음으로써 소리쳤던 자가 거의 끊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석씨의 무리에서만큼은 그런 울음이 아직 들리질 않는구나. 아, 옛날에는 그런 울음으로 크게 소리쳤건만 이젠 더 이상 소리칠 자가 없단 말인가? 도道란 이것저것 논할 것 없이 같은 것이고,

010_0784_b_02L伽山藁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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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84_b_05L新興寺大雄殿丹雘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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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嶽盤囷滄海浩渺鬱䓗扶搖鴻洞
010_0784_b_07L泬寥險絕峻蕩望之不見其涯涘
010_0784_b_08L窮其理而不能彷彿幾半塗而退下者
010_0784_b_09L不啻三舍余甞登東山望見層濤
010_0784_b_10L薄飜空乾坤端倪汗漫崩積歎曰
010_0784_b_11L哉氣也物於其間鍾此氣者必蜿蜒
010_0784_b_12L怪秘人於其間鍾此氣者必魁梧骯
010_0784_b_13L髒也嗚呼釋氏生不出現于東方
010_0784_b_14L度後其法始大于新羅爲其徒者
010_0784_b_15L和諍元曉義湘金生慈藏相繼以作
010_0784_b_16L寘伽藍禪刹烟蘿月檜玉塔金碧
010_0784_b_17L處相望是豈非釋氏先得其氣而大鳴
010_0784_b_18L者乎弘儒侯薛先生文昌公崔先生
010_0784_b_19L並生于羅朝文章縕藉德業勝大
010_0784_b_20L東國儒風是豈非又得其氣而大鳴者
010_0784_b_21L其下李益齋崔猊山李霽亭金艸屋
010_0784_b_22L力學志節能詩頡頑以鳴其鳴盖不
010_0784_b_23L而但釋氏之徒未聞其鳴者
010_0784_b_24L昔大鳴其鳴而無餘鳴者邪道者無論

010_0784_c_01L역易이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지만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하는 것이다.11)
해가 뜨는 동쪽 산마루의 신흥사 승통께서 편지를 보내 나에게 이렇게 부탁하셨다. “저희 절은 법당의 단청이 벗겨지고 떨어졌으며, 손질한 흙벽도 갈려져서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승려들은 모두 병들고 늙은 자들뿐이었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는 아무개 아무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늙고 또 병들었다. 만약 대웅전이 새로워지는 것을 보고 죽는다면 죽어도 썩지 않으리라.’ 그러자 중년자로서 절의 규율을 높이 받들면서 절의 소임을 맡아 보던 자들, 말하자면 동악실東岳室의 윤화閏花와 전 승통 금휘錦輝의 무리가 이 일에 뜻을 함께하고 모의하며 두루 일을 주관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병자년(1816) 8월 어느 날 서로 만나 계획을 시설하고는 병오 갑계甲契의 종잣돈 1천400전과 기실청의 종잣돈 1천 전의 4, 5년 치 이자를 이 일에만 쓰도록 따로 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승통 정홍定弘이 200전을 내놓아 금년 4월 어느 날 준공하게 되었으니, 옛날에 배 시중裴侍中이 월주의 탑을 건립하면서 두 생애에 걸친 일임을 확인했던 것처럼12) 대단히 기이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 스님께서 문장으로 이 일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나는 그 무렵 서쪽 움집으로 물러나 이런 저런 병을 몸에 달고 살면서 낮밤으로 들볶이며 번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전생에 했던 일과 다름없어 붓을 적셔야 하는 과업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억지로 질병을 견디면서 일전어一轉語를 주어 승려를 돌려보냈다. “저 우뚝 솟은 산악과 검푸른 바다의 아득한 하나의 기운은 혼돈의 양陽과 음陰일 뿐이다. 그 평등함을 통달하여 넓게 관찰한다면 가슴속이 깨끗이 씻겨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고, 억누르고 드날리기를 반복하는 조급함·포악함·분노·처량함이 일어나더라도 중심을 얻어 절도가 있게 된다.13) 모든 것이 이 기운에서 비롯되는데, 어찌 한없이 드넓고 휑하여 사람과 사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로만 있겠는가? 자연히 그 기운이 피어올라 새로이 흥성하는 법이다.
신흥新興이란 절이 새로 흥성한 것이 아니라 기운이 새로 흥성하였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옛날 불국佛國의 선찰禪刹과 비보사찰인 천룡사天龍寺·법광사法光寺 등도 거의 모두 공허한 폐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대들의 작은 모퉁이 외로운 절은 깨진 그릇에 담긴 물과 같다고 해야 마땅한데도 능히 이와 같이 크게 떨치고 일어섰다.

010_0784_c_01L彼此同易也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
010_0784_c_02L之故邪日東嶠新興寺僧統折簡要余
010_0784_c_03L寡寺法宇丹雘脫落墁圬縫裂
010_0784_c_04L合瞻過僧侶皆病老衘某某曰吾等
010_0784_c_05L老且病如見大雄殿之新而死死且不
010_0784_c_06L中齒擎寺之䂓橅捧寺之權務者曰
010_0784_c_07L東岳室閏花前僧統錦輝輩爰如爰謀
010_0784_c_08L周爰執事去丙子八月日相會設施措
010_0784_c_09L丙午甲殖泉一千四百錢記室廳殖
010_0784_c_10L泉一千錢別定任正四五秊息子而時
010_0784_c_11L僧統定弘所殖二百泉今年四月日竣
010_0784_c_12L政如昔日裴侍中建越州塔見二
010_0784_c_13L生事大奇以終惟吾師以文重事何如
010_0784_c_14L余方墊退西窩身上多少一箇病字
010_0784_c_15L晝宵煎懣鈆槧間無異前生課不克染
010_0784_c_16L然强扶疾以付一轉語歸僧日彼崧
010_0784_c_17L高維嶽絕險溟渤之鴻濛一氣混沌二
010_0784_c_18L儀者已使達齊博觀襟期洒落如光
010_0784_c_19L風霽月抑揚反復躁暴忿悽發得中
010_0784_c_20L節也於乎是氣也胡爲乎浩汗中空不
010_0784_c_21L涵人物邪自然薰蒿乎新興盖新興非
010_0784_c_22L寺之新興乃氣之新興何者古之佛
010_0784_c_23L國禪刹天龍法光等裨補擧皆空廢
010_0784_c_24L爾繄小陬孤寺應如破器盛水而能如

010_0785_a_01L분명 아무개 아무개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을 돌보면서 군영의 문지방과 부府의 무기 앞에서도 강력한 제압을 피하지 않고, 칼날의 숲마저 평탄한 길처럼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도덕을 논하자면 옛사람보다 못하지 않고, 그 공덕을 논하자면 또한 부끄럽지 않구나.
절에서 한 일은 나의 문장으로 중요해질 수 없다. 그리고 저 천지의 기운이 절의 흥폐에 간여하여 하나의 기운과 더불어 끝까지 머물게 하는 것도 내 붓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 분의 일도 불가능하다. 내 비록 절에 공은 없지만 이 축언으로 절을 도울 수는 있을까? 우스운 소리다.”
통도사 석종기通度寺石鍾記
통도사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까닭은 산이 맑고 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특별히 석사자의 영골사리14)를 탑에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종의 설치에 대해 말해 보자면, 대개 중국 5종의 여러 산에 있는 청묘淸廟를 예로 삼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제도를 상고할 수는 없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강릉江陵 오대산五臺山 중대中臺 위쪽에 있는 것이다. 그곳은 한없이 기다란 용 한 마리가 머리를 들락 말락 망설이고 꼬리를 순하게 흔들면서 몸을 숨길 듯 드러낼 듯 알 수 없는 형세로 내려오다가 동해를 돌아보면서 갑자기 힘차게 솟구친 곳이다. 그곳에 옛 탑의 제단을 만들고 적멸궁을 안치하고는 마치 태산의 거친 돌무더기 모양새로 단단한 돌들을 쌓아 놓았다. 이것은 바로 하늘의 힘에 맡기고 사람의 공력을 탐하지 않은 것으로서 황홀하여 측량하기 어렵고, 마음과 눈을 시원하게 씻어 주는 것이다. 반면 통도사 석종은 사람의 공력이 하늘의 힘을 능가한 것이다. 이것과 저것 가운데 어느 것이 낫고 못한지 가리기가 어렵고, 계파 능桂坡能 대사15) 이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만약 저 중수하고 시설한 연기年紀의 대략이라면 채 상국蔡相國의 비16)가 세워진 지 오래이니, 진실로 저 승사僧史에 군더더기를 붙여서는 안 된다.
예전에는 석단 아래로 전후와 좌우에 계단이 있어 궁전의 오르고 내리는 곳과 완전히 같았기에, 영남 영곤營梱의 장수들과 여러 품계의 장리長吏들이 거리낌 없이 제단에 오르곤 하였다. 비록 금지하는 비를 세워 보았지만,

010_0785_a_01L是大振者必某某子血心看寺營梱
010_0785_a_02L府牙不避彊禦視劒樹如平坦論其
010_0785_a_03L道德於古人不可𨀉論其功勞又不
010_0785_a_04L愧矣寺之事不能以余文重而至如
010_0785_a_05L天地之氣叅於寺之廢興而與一氣終
010_0785_a_06L留者匪余之筆不可萬一余雖無功
010_0785_a_07L於寺其祝言可以補寺乎好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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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85_a_09L通度寺石鍾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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度刹非以山明水麗名於域內特以釋
010_0785_a_11L獅子靈骨舍利塔藏以也曰若稽于石
010_0785_a_12L葢以中州五宗諸山淸廟之例爲之
010_0785_a_13L而厥制不可攷但見江陵五臺山中臺
010_0785_a_14L一龍衮衮然頭慳擡尾婉掉勢若
010_0785_a_15L潜若見而來睠顧東海忽噴薄騰怒處
010_0785_a_16L隊封古塔壝壇寘寂滅宮而積纍頑石
010_0785_a_17L如泰山中碨礌狀此乃任於天力不貪
010_0785_a_18L人功怳惚難測快洗心目度刹之石
010_0785_a_19L人功勝於天力彼此不揀紫黃
010_0785_a_20L桂影 [31] 能師之前所作未知如何若夫重
010_0785_a_21L修施設年紀大略蔡相國碑立之久矣
010_0785_a_22L寔不可贅彼僧史而石壇下前後左右
010_0785_a_23L面有梯砌完如宮殿陞降處嶺之南營
010_0785_a_24L梱之帥有品長吏無憚登封雖立禁

010_0785_b_01L어떻게 할 방도가 없어 절의 뜻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를 병통으로 여긴 지 오래이다. 그래서 도광 2년(1822) 임오 겨울에 대선사 홍명공鴻溟公께서 분연히 일어섰고, 그때 종백宗伯이신 도암度庵·우계友溪·구룡九龍과 아무개 등이 크게 부합하고 메아리처럼 응하여 경주·상주·안동·진주의 네 지역 여섯 곳의 사찰에서 두루 모연하였다. 그리고 도광 3년(1823) 계미 봄에 공사를 시작하여 돌을 다듬고, 옛 계단을 없애고, 가로 세로를 정확히 맞추고, 그 벌어진 틈새를 봉합하고, 등롱 1좌를 세웠다. 드디어 여름에 준공하자 아사리들이 구름처럼 모이고 무수한 천룡들이 기뻐하며 달려왔으니, 성대하도다! 그 공덕이여.
그해 겨울, 공께서 운문동雲門洞으로 사람을 보내 나에게 기문을 맡기셨다. 나는 복이 없어 그 일을 직접 보지 못하였지만, 참여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이것도 역시 인연이라 피하지 않고 기술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에 문장을 숭상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웃음거리가 될지, 또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석골사 위쪽 함화암 중창기(石骨寺上含花庵重記)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연화대에 걸터앉아 계시지만 육계도 검푸른 머리카락도 없고, 얼굴도 눈과 귀도 없다네. 하물며 고요하고 조급한 말과 행동이랴! 또 보지 못했는가? 유소씨有巢氏17)가 나무를 엮고 흙을 파서 집으로 삼았지만 앞과 뒤도 칸살의 규격도 없고, 기둥·두공·인방·가름대도 없었다네. 하물며 두공의 산 모양 조각과 동자기둥의 마름 문양이랴!18) 또 보지 못했는가? 곤계鵾鷄가 붕새로 변해 날개를 윙윙 휘저어 회오리바람을 박차고 떠나갈 때는 남북도 동서도 없고, 안과 밖도 위와 아래도 없다네. 하물며 마음속 수치를 밑바닥에서 긁어냄이랴!
평소 늙은 내가 함화산含花山에 올라 굽어볼 때면, 언어로 제멋대로 독점하던 자리가 끊어지고 사량으로 계산하고 비교하던 자리가 끊어지는 것이 앞에 줄줄이 엮어 놓은 말들과 같았다네.
대형【만월滿月 스님】이 두 차례에 걸쳐 힘들여 일하면서 몇 년 몇 월 며칠에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린 것, 몇몇 사찰과 암자 몇몇 군읍과 촌락에서 조금씩 모았던 곡식과 옷감과 돈 등 각 건에 대해서는

010_0785_b_01L亡可奈何寺下有志之人皆病之久
010_0785_b_02L道光二年壬午冬大禪師鴻溟公奮然
010_0785_b_03L于時宗伯度庵友溪九龍與某某子
010_0785_b_04L景附響應周募慶尙安晋四界六鎭之
010_0785_b_05L寺刹三年癸未春始役鐫治石捐其
010_0785_b_06L逼宜橫竪合其縫缺樹燈籠一座
010_0785_b_07L徂夏竣功闍棃濟濟雲集龍天振振驩
010_0785_b_08L懋哉功也是年冬公走伻于雲門
010_0785_b_09L屬余記文余以寡祐未叅見厥事
010_0785_b_10L嗟惋不䂊是亦緣也不避以述傍有
010_0785_b_11L崇文者之用哂亦不可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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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85_b_13L石骨寺上含花庵重剏記

010_0785_b_14L
君不見毘盧遮那踞蓮花臺藏乎
010_0785_b_15L肉髻翠髮無頭面目耳況靜𨅶云爲
010_0785_b_16L又不見有巢氏構木穴土爲居乎
010_0785_b_17L向背間架無柱欂楣楯況山節藻梲
010_0785_b_18L又不見鵾化爲鵬奮輪翅搏扶搖以去
010_0785_b_19L無南北東西無中外上下況卑渫
010_0785_b_20L奧辱平日老我登臨含花境上言語
010_0785_b_21L龍斷處斷思量計較處斷如上項絡索
010_0785_b_22L大兄即滿
月師
之二次執勞中某年月日字
010_0785_b_23L柱上梁幾處寺刹庵堂幾處郡邑村落
010_0785_b_24L僝具鳩合底粟米麻絲貨泉等各件

010_0785_c_01L창힐蒼頡19)에게 부절20)을 보내 아이로 삼으시게나. 태사씨太史氏21)가 잉태되기 이전의 일이라면 내 적극 협조하리다. 쯧쯧, 대형이여.
성주 쌍계사22) 청암 명진당 중창기(星州雙溪寺靑巖明眞堂重記)
우박·싸락눈·서리·이슬·바람·눈은 기운의 급격한 변화이지만, 만물이 이로 인해 견고해진다. 질병·전염병·굶주림·궁색·곤궁·초췌는 시운의 급격한 쇠락이지만, 사람이 이로 인해 지혜로워진다. 지금 청암靑巖 명진당明眞堂의 병신년(1836) 봄 화재도 운수의 하나가 아닐까? 그리고 암자가 이렇게 복원되었으니, 이것은 소양 무제蕭梁武帝가 칭했던 마귀23)가 아니라 바로 천·지·인 삼재 사이에 왕복하고 순환하는 이치이다.
나의 선사이신 회당 노인께서는 화엄종의 거장이시며, 동국 불가의 태양이요, 서천축 법의 깃발이셨다. 그런데 이런 재앙을 당했으니, 어찌 천지의 대운이 깊이 관여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또 빼어난 선비인 장씨 문잠張氏文潜24)에게서 한마디 들었는데 “한평생 안락하게 사는 것은 사람의 복이 아니고, 바람과 서리에도 부서지지 않는 것은 또한 요물이다.”라고 하였다.
아, 이 제사를 주관하면서 온갖 업무로 정신없이 바쁘던 문손 포봉공苞峰公25)은 이 참담한 일을 겪자 해와 별이 빛을 잃고 산과 강이 한순간 평지가 된 것만 같았다. 이에 강의 동쪽 서쪽으로 날아올랐던 법의 친척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온 힘을 다해 기울어진 것을 바로 세웠고, 오래지 않아 공사를 끝내게 되었다. 포봉공이 이때 팔다리의 힘을 다 바쳐 얽히고설킨 비밀스러운 전각을 예전의 법도대로 만들었으니, 곧 이것이 복잡하게 뒤엉킨 사태에서 포봉공이 공덕을 드러낸 점이다. 이를 미루어 논하건대, 앞에서 넌지시 지시했던 말들이 또한 부끄럽지 않도다.
계오는 무술년(1838) 윤달에 행장을 꾸리고 300리 길을 걸어 허겁지겁 이곳에 와서 갖가지로 위로하고 갱장羹墻의 그리움26)을 잠시 그곳에 담았다. 당시 나이가 예순여섯이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일 죽어도 영광이라는 것이 오늘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별장의 용악龍岳 스님이 새로 기문을 지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010_0785_c_01L莂付蒼頡爲兒太史氏未胎前事甚協
010_0785_c_02L咄咄大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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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85_c_04L星州雙溪寺靑巖明眞堂重剏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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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雹霰霜露風雪氣之一變而物於是
010_0785_c_06L疾疫飢窘困悴時之一衰而人於
010_0785_c_07L是智今靑巖之明眞堂丙申春灾
010_0785_c_08L之一否而庵於是復此匪蕭梁武帝之
010_0785_c_09L所稱魔也是天地人三才間往復循還
010_0785_c_10L之理也我先師晦堂翁華嚴宗鉅擘
010_0785_c_11L東國佛日西竺法幢則當此厄會
010_0785_c_12L非天地大運所關棙者然乎抑否乎
010_0785_c_13L又聞一說於上士張氏文潜曰逸樂終
010_0785_c_14L身者非人之福也風霜不敗者又物
010_0785_c_15L之妖也夫噫門孫苞峰公主於斯幾
010_0785_c_16L百務鞅掌見此慘怛日星無曜
010_0785_c_17L岳如坦騰變江左右法戚涕洟逐力扶
010_0785_c_18L功濟早晩公於是竭手足力秘殿
010_0785_c_19L輪囷制崇前軌則此公之見功於盤根
010_0785_c_20L錯節處也推此以論上項風旨又無
010_0785_c_21L忸怩戒悟維戊戌歲月潤褁足治三
010_0785_c_22L百里程匍匐來此慰勞種種以寓羹墻
010_0785_c_23L之慕時年六十有六死亡無日今日
010_0785_c_24L所願明日爲榮別業龍岳師丈以新剏

010_0786_a_01L이에 계오가 글 솜씨가 부족하다며 이를 사양하지 않고, 글 짓는 과업을 단번에 수락한 것은 동일한 연원을 한결같이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하동부 칠불선원27) 중창기河東府七佛禪院重剏記
저 칠불원七佛院에서 지난 경인년(1830)에 화재가 발생했으니, 이는 선가의 마귀였다. 팔방에서 “망했구나. 상교像敎28)가 시들고 파괴되는 것이 이렇게 혹독하단 말인가” 하며 다 함께 들끓듯 탄식하였다. 이때 우리의 종백이신 금담金潭 노장께서 그곳에 거주하고 계셨다. 그는 늙은이의 앙상한 뼈와 거센 불길에 타고 남은 혼으로 사지를 주섬주섬 수습하고는, 이를 회복할 계획에 본인이 앞장서겠다며 나서셨다. 이에 여러 도인들이 함께 달려들어 이듬해인 신묘년(1831)에 창설하였는데, 예전 규모와 한 치 한 척도 어긋나질 않았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직접 보아서 알고, 멀리서 들어 알게 된 자들이 처음에는 통곡했다가 마지막에는 기뻐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어느 날 금담 노장의 상족인 대은공大隱公께서 계오에게 들렀다가 기문을 부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본 선원이 옛 모습을 회복하게 된 것은 온 나라가 힘을 합한 것이지 아무개 아무개만의 공이 아닙니다. 일을 진행하면서 힘써 노력한 공로는 차이가 없이 똑같다고 해야 옳습니다. 혹 먼저와 나중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점은 있겠지만, 그들이 수행한 일의 경중에 있어서는 피차에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 역시 짐작하시겠습니까?”
계오가 벌떡 일어서며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계오는 선과 교의 한결같은 맛에 있어서 쭉정이와 같은 자입니다. 대사의 부탁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그러자 대은공이 말하였다. “우리 집안에 책상 위에서 힘쓰는 일이라면 스님 말고 누가 하겠습니까? 사양하지 마십시오.”
계오는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잠시 나무꾼의 얘기를 들어 보고 나서29)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 옛날 역易의 도를 살펴보자면, 복희씨伏羲氏 치세에는 하수河水에서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나와 그 형상을 본떠 팔괘八卦를 그렸고, 그 후로 황제黃帝가 이를 배워 해와 달과 별자리를 관찰하였으며, 대우씨大禹氏30)는 강과 토지를 평탄하게 개간하였습니다. 낙수洛水에서 글이 나와31)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가 운행하게 되었고, 희주姬周32) 초기에 문왕文王으로 인해 단彖33)이 있고, 주공周公으로 인해 상象34)이 있고, 그 중간에 공자孔子로 인해 서序35)가 있고, 대 송나라에서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로 인해 전傳36)에 대한 해설이 있게 되었습니다.

010_0786_a_01L記文囑悟不以文詞不足而辭之唯諾
010_0786_a_02L書課者一怙同淵源也

010_0786_a_03L

010_0786_a_04L河東府七佛禪院重剏記

010_0786_a_05L
於乎七佛院去庚寅災是禪家魔也
010_0786_a_06L八垓咸沸嘆曰滅矣像敎殄悴其如
010_0786_a_07L是酷邪時吾宗伯金潭老居斯袠耄殘
010_0786_a_08L爆烟餘魂甫拾四肢而爲回復圖
010_0786_a_09L本道居先諸道同赴越明年辛卯
010_0786_a_10L設制依前䂓寸尺弗▼(戈*心)邇以見知
010_0786_a_11L以聞知者始也哭之慟終也讙而躍
010_0786_a_12L日老之上足大隱公過悟以記屬乃言
010_0786_a_13L今本院之復古一國之協力匪某
010_0786_a_14L某之已功就中勞勤之異齊則也或有
010_0786_a_15L先却之早晩而於其受執之輕重少無
010_0786_a_16L彼此而已斯亦斟勺不悟起曰
010_0786_a_17L於禪敎一味置之糠秕不皮 [32] 於大師之
010_0786_a_18L敢乎公曰吾家册子上用力非師誰
010_0786_a_19L毋辭悟知避不得蹔倩蒭蕘已曰
010_0786_a_20L若稽古易之道伏羲世河出龍啚 [33] 象以
010_0786_a_21L畫之八卦是繇黃帝受之見日月星辰
010_0786_a_22L大禹氏平刊水土洛出書水火木金土
010_0786_a_23L是行至姬周之初以文王彖以周公
010_0786_a_24L中以孔子序大宋以程朱子繹傳

010_0786_b_01L
우리의 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세상에 출현해 백 년의 세월도 누리지 못한 채 죽어 하늘로 올라가시자 가섭迦葉이 종통을 계승하여 아난에게 전하였고, 아난으로부터 27대를 전해 달마達摩 대사에 이르렀습니다. 달마 대사는 서방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에서 교화를 펼쳐 혜가惠可가 이를 계승하였고, 혜가 이후로 4대를 거쳐 혜능惠能에게 이르렀으니, 그가 육조六祖가 됩니다. 그는 죽은 후 동국의 칠불선원 탑에 봉안되었으니,37) 이는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성장과 소멸은 영원하지 않고, 가고 돌아옴도 운수에 따른 것이다. 이제 화재로 사라졌다가 다시 이를 회복하니, 금담 노장과 대은공께서 이 일을 주관하셨다.
영정사 남계료 중창기靈井寺南溪寮重剏記
응천부凝川府 도호사都護使 홍 공洪公께서 도호사로 부임하시고 3년째 되던 해38)에 재약산載藥山 영정사靈井寺 남계료南溪寮가 화재로 소실되었던 상황을 절에 사는 사람들이 낱낱이 고하였다. 그러자 공께서 근심하시다 약봉藥峯과 기암奇岩 두 대사를 오라 명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양나라 황제는 동태사同泰寺에 9층의 부도를 만들고,39) 위후魏后는 영녕사永寧寺에 십만 칸의 승방을 건립했다40)고 들은 적 있습니다. 탑묘塔廟의 흥성은 보시로 인해 조성되는 법인데, 저만 그렇게 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게다가 제 관할 지역 안에 예속된 절입니다.” 이에 약봉에게는 일을 감독하라 하고, 기암에게는 화주를 맡으라 하면서 문장을 지어 이를 고하였다. 그러자 가까이로는 관료에서부터 멀리로는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일제히 기뻐하며 보시하였다.
아, 약봉공이 절의 안위에 한 몸을 바친 지가 20년이다. 절이 비운을 만나 승려들은 병들고 재물은 바닥났으니, 이런 시절에 만약 대사가 아니었다면 절이 계속 절이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암 대사는 어린 시절에 이곳으로 출가하여 약봉공과 행불행을 함께하였고, 서로 본받아 응하고 기운을 같이해 따랐던 분이다. 적마赤馬 유화流火41)에 요사가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거주하던 승려들이 넋을 놓고 풀 죽어 있자 두 현자께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우리가 무지하여 재앙을 미리 방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불행하다고 우리가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근심이 닥치고, 괴로움이 극에 달하면 좋은 일이 생기는 법입니다.”
이 말에 대중이 모두 크게 감동하여

010_0786_b_01L吾道亦然牟尼氏見世享年未百歲陟
010_0786_b_02L方乃死迦葉繼承宗統傳阿難阿難
010_0786_b_03L傳廿七而至達摩達摩生西化于中
010_0786_b_04L惠可嗣之惠可之後歷四世而至惠能
010_0786_b_05L是爲六祖卒塔于東七佛之通知天下
010_0786_b_06L以也消長不常往復在數今火已又
010_0786_b_07L復之金潭老大隱公主之

010_0786_b_08L

010_0786_b_09L靈井寺南溪寮重剏記

010_0786_b_10L
凝川府都護使洪公爲都護之三年
010_0786_b_11L藥山靈井寺南溪寮灾寺之人具狀
010_0786_b_12L悶悶命招藥峯奇岩二大師曰甞聞梁
010_0786_b_13L作同泰寺十 [34] 九層浮屠魏后建永寧
010_0786_b_14L寺千百間僧寮塔廟之興由施以造
010_0786_b_15L余獨不然況隷於境內日藥峰董事
010_0786_b_16L曰奇巖爲化作文喩之近自官僚
010_0786_b_17L至閭閻齊歡舍施嗚呼藥峰公以身
010_0786_b_18L係寺之安危者二十餘年寺丁否
010_0786_b_19L羸財匱於是時也若非師寺之爲寺
010_0786_b_20L未可知也奇巖師小少剃染于斯
010_0786_b_21L藥峰公同休戚殽比則應氣同則從也
010_0786_b_22L赤馬流火寮火居僧蒼皇失勢兩賢泣
010_0786_b_23L下曰吾徒無知禍不預防今不幸
010_0786_b_24L將安之樂極則憂苦極則甘衆皆感

010_0786_c_01L비로소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약봉공이 그 일을 감독하고 기암 대사가 그 화주를 주관하여 흑원黑猿42)(1812) 1월에 공사를 시작해 12월에 마치니, 대지와 목재가 높고 넓어져 그 규모가 예전의 배는 되었다.
어느 날, 기암 대사가 가산伽山을 찾아와 나에게 이 사실을 기록해 달라고 요구하기에 내가 붓을 잡고서 그 경위를 더듬어 보았으니, 즉 앞에서 기술한 것들이다. 그리고는 붓을 던지고 꿇어앉아 마주하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두 현자께서는 바야흐로 이 절이 위태로운 시기에 태산처럼 안정시켰으니, 가히 큰 공덕을 갖춘 법사라 하겠습니다. 대부이신 홍이간洪履簡43) 공께서는 자신의 관할 사찰이 파괴되어 사라지는 걸 차마 두고 볼 수 없었고, 또 그 요사가 잿더미가 된 것을 가엾이 여기셨습니다. 아, 염계濂溪와 낙양洛陽의 여러 철인들44)은 석씨의 도에 대해 (자신들의 도와는) 물과 불처럼 (상극이라) 여겼지만, 매번 시승詩僧과 명찰名刹을 볼 때마다 감탄하면서 시를 남기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대개 어진 사람의 마음은 비록 겉으로는 멀리해도 안으로는 은밀히 자비심을 품는 법이니, 지금 이분도 마찬가지이십니다. 그러니 홍 공께서 절에 베푼 공을 복전福田을 바라거나 불자들을 이롭게 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건 공의 의도가 아닙니다.”
절이 처음 창건된 연기年紀는 축융祝融의 사신에게 물어보라.45)
표충사 이건기表忠祠移建記
국가의 학교나 상서庠序46)는 그 땅이 마땅치 않고 그 건물이 기울어지려 하면 하루빨리 자세히 수습해 이를 옮기고 이를 다시 세워야 한다. 전적이 구차하지 않고 위의가 비루하지 않게 한 뒤에야 품격과 격식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밀주密州 표충사表忠祠47)는 산이 주변보다 높지도 않고 샘이 자주 마르며, 숲의 나무가 땔감으로 잘려 나가고 소와 양들이 들어와 풀을 뜯는 지경이니, 옮기는 것이 합당하다.”
예전에 이런 말들이 시작되어 떠돈 지가 오래되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이를 모의하여 비록 많은 이들이 결심하기는 했지만 혼자서 도모하려는 자만 많고 결행하려는 자는 적었으니, 대개 산남山南 사람들이 다들 “우리가 표충의 고향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도광道光 17년48)(1837) 정유丁酉에 이건하자는 논의가 다시 나오자,

010_0786_c_01L始有更生之志於是藥峰公董其
010_0786_c_02L奇巖師主其化黑猿月元始役
010_0786_c_03L姤告訖土木峻宏制倍前度日奇巖
010_0786_c_04L師詣加山索余記其事余操觚而探其
010_0786_c_05L經始則云云乃投筆跽對曰兩賢方其
010_0786_c_06L寺危殆之時而▼(尸*昔)泰山之安可謂有大
010_0786_c_07L功德法師大夫洪公履簡氏不忍其屬
010_0786_c_08L寺之殘微而又䘏其此寮之煨燼
010_0786_c_09L濂洛群哲於釋氏之道若水火而每見
010_0786_c_10L韻釋名刹未甞不留詩以嘆盖仁人之
010_0786_c_11L雖外絕而內含悲隱今之人如以公
010_0786_c_12L之功於寺爲要福田利益於佛氏者
010_0786_c_13L非公之意也寺之初剏年紀問於祝融
010_0786_c_14L使

010_0786_c_15L

010_0786_c_16L表忠祠移建記

010_0786_c_17L
國之若學若庠序厥地不宜厥宮比欹
010_0786_c_18L逐日仔拾移之蒐之使典籍不苟
010_0786_c_19L儀不鄙而後可以爲品式在維密州表
010_0786_c_20L忠祠山齒於眷屬泉隷於貪涸林木
010_0786_c_21L斧斤侵牛羊牧移之可也自前流言
010_0786_c_22L來之久矣聞之謀之雖多決之欲獨
010_0786_c_23L謀者多決者少盖由山南之人皆曰
010_0786_c_24L我表忠故也道光十六 [35] 年丁酉移議又

010_0787_a_01L서원書院 사람들이 이를 좌지우지하며 헌체獻替49)를 정탐하게 되었다. 그러다 무술년(1838) 봄, 뜻하지 않게 밀양부의 동쪽에 있는 영정사靈井寺가 폐사되자 온 읍의 선비와 서민들이 다들 말하였다. “표충사는 이미 이건하기에 충분하다. 옥절玉節을 그곳으로 옮기는 게 옳다.”
부의 주인인 사또께서 이를 들어서 알고는 서원의 유사有司와 주지를 비롯한 여러 스님을 불러 좌석을 베풀고 이렇게 다짐하였다. “옥절이 저 영취산50) 한 모퉁이에 있으니, 평범한 산줄기가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죽어서 돌아갈 근본 땅에 신령한 우물이 차갑고도 시린데, 절이 폐허가 되고 사람이 없어 오래된 동종 소리만 구슬프더군요. 때마침 ‘(표충사 신위를) 어디에 모셔야 할까?’ 하는 논의가 나왔으니, 기이하군요. 서원의 일이여! 아름다운 시절이 저절로 찾아왔으니, 저는 성심을 다해 의지할 생각입니다. 아, 그대 불자들이여. 이건 계획을 빨리 도모하십시오. 화살을 쏘아 박살내고51) 나중에 수습해야지, 기회가 물러가면 다시 얻기 어렵습니다.”
월파月波52) 등 여러 스님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절하고 물러났다. 이에 서원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내외감內外監은 아무개, 전곡감錢穀監은 아무개, 역감役監은 아무개, 공감供監은 아무개가 맡아 노인들은 마음으로 애쓰고 젊은이들은 힘으로 애썼다. 토목의 역사는 무술년(1838) 겨울부터 시작해 기해년(1839), 경자년(1840)에 이르기까지 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쉴 틈 없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오호, 당시 불법을 외호한 심씨沈氏는 그해 무술에 함흥咸興으로 옮겨가서도 일을 말끔히 처리하고 끝까지 잘 마무리하셨다. 아쉽도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자기 몸보다 소중히 여긴 분이고, 월파 대사가 태양이라 칭송한 분이었다.
월파 법장 및 주지 우공愚公께서 편지를 쓰고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계오에게 이 사실을 기록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계오는 지금 늙은 나이라 만사를 그만둔 지 이미 오래고, 타 버린 재와 땔감에 얹힌 송장이나 마찬가지니 사양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할 일을 저지르면서 거칠게나마 한두 마디 서술해 보겠다.
계오는 어린 시절에 「원주학기袁州學記」53)를 얻어 옛 문장에서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자를 배운 힘을 추모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표충사학기表忠祠學記를 짓게 되었다. 저 옛날 범양范陽 조씨祖氏54)는 학문을 중요히 여겨 원주 지사袁州知事로 있을 때 상서를 개설하였고, 영천頴川 진씨陳氏55)는 도모하길 좋아해 통판通判으로써 그 공을 도왔으며, 우강盱江 이씨李氏56)는 멋진 문장으로 이 사실을 기록해 대중에게 고하고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통솔하고 교화했다고 한다.
아, 오늘의 심씨가

010_0787_a_01L院人左之右之偵撢獻替戊戌春
010_0787_a_02L偶於府東靈井寺永廢混邑士庶人皆
010_0787_a_03L表忠祠旣熟移節移於彼可也主府
010_0787_a_04L使道聞知之召院有司及住持諸釋
010_0787_a_05L之座乃誓之曰節彼靈鷲一堣凡岡
010_0787_a_06L負不乘矣亡歸本地冽冽靈井寺廢
010_0787_a_07L人亡哀哀銅翁于何捿止異哉院事
010_0787_a_08L休期自臨予心誠賴嗟汝釋子亟圖
010_0787_a_09L移謨矢破後拾機退難得月波諸釋
010_0787_a_10L心說之拜退一院齊心內外監某
010_0787_a_11L穀監某役監某供監某年多者心勞
010_0787_a_12L年少者力勞土木之役自戊戌年冬
010_0787_a_13L至己亥庚子三年之距日不暇給云
010_0787_a_14L當時外護法沈氏其年戊戌遷咸
010_0787_a_15L判鮮克終可惜負戴之任尤重於
010_0787_a_16L身者以月波稱日者月波法丈及住持
010_0787_a_17L愚公注牘伻寛來請悟以記事悟今
010_0787_a_18L耋年廢閑已久死灰登薪然好箇辭
010_0787_a_19L事涉悔吝粗述一二曰悟幼年得
010_0787_a_20L袁州學記於古文自潜心追慕學字
010_0787_a_21L今於表忠祠學記諸昔者范陽祖
010_0787_a_22L重學知袁州改設庠序頴川陳氏
010_0787_a_23L好謀以通判協賛厥功盱江李氏
010_0787_a_24L記諗于衆履敎率化云今日沈氏

010_0787_b_01L옛날의 무택無擇이고, 오늘의 월파가 옛날의 진신陳侁이며, 오늘의 계오가 옛날의 이구李覯이니, 그 저반 사정과 역량이 어쩌면 이리도 비슷하단 말인가! 심씨는 밀주 도호부사密州都護府使로 휘는 의복宜復이다.
염화실기拈花室記
말로 표현하기 어렵구나! 성인께서 전수하신 심결이여. 나는 예전에 『염송念頌』을 보다가 (부처님께서) 영취산 최후 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신 대목에 이를 때마다, 『논어』를 읽다가 공자께서 “나는 말하고 싶지 않구나.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하던 대목에 이를 때마다, 책을 덮고서 길게 한숨을 내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성인의 언어와 문자를 떠난 소식이었다. 요임금은 이것을 순임금에게 전하고, 순임금은 이것을 우임금에게 전했다는데, 전한 것은 과연 어떤 일일까? 석가모니께서는 이것을 가섭에게 전하고, 가섭은 이것을 아난에게 전했다는데, 전한 것은 과연 어떤 일일까? 아, 말로 표현하기 어렵구나!
월생산月生山 아래 백련사白蓮舍가 있고, 백련사 속에 염화실拈花室이 있으니, 앞뒤로 그곳에 발을 디뎠던 강백은 그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하나의 등불로 천 개의 등불을 밝히면서 옛 부처와 조사로부터 전해진 심인心印이 일체종지一切種智의 광명을 드러내기 때문에 염화실이라 하며, 또 조실祖室이라 칭한다. 오호, 세상에 강림하셨던 성인께서 가신 지 오래라 사람들의 품성이 고르질 못하도다. 따라서 이런 이름을 붙인 뜻을 밝히자면 ‘존귀하신 분’이라는 의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아, 신미년(1811) 봄의 화재로 앞 사람의 기록이 불행히도 사라져 버렸다. 이에 당시 염화실 주인이셨던 황파 대사黃坡大士께서 이를 중창하셨다. 하지만 미처 수리와 장식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그해 겨울 그곳을 떠나 호계虎溪 심원동溪深源에 깃드셨으니, 혜원공慧遠公의 고사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암자의 승려 덕희德希·유점有沾·승윤勝玧 등 두세 명이 분연히 그 뜻을 계승하여 이듬해 임신년(1812) 봄에 공사를 마무리하였는데, 집의 짜임새가 멋들어져 예전보다 사치스럽다고들 하였다.
어느 날, 유점 스님이 가산으로 나를 찾아와 내 손으로 편액과 기문을 써 달라고 요구하였다. 가만히 생각건대,

010_0787_b_01L前日無擇今日月波前日陳侁今日
010_0787_b_02L戒悟前日李覯這畔力量何如是酷
010_0787_b_03L似邪沈氏密州都護府使諱宜復也

010_0787_b_04L

010_0787_b_05L拈花室記

010_0787_b_06L
難言哉聖人之傳授心訣也余甞看頌
010_0787_b_07L至靈鷲山末后會拈花示衆讀語至子
010_0787_b_08L予欲無言天何言哉未甞不閇卷
010_0787_b_09L長喟此兩處皆聖人之離言句消息
010_0787_b_10L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所傳者何
010_0787_b_11L釋迦以是傳之迦葉迦葉以是傳之
010_0787_b_12L阿難所傳者何事難言哉月生山
010_0787_b_13L有白蓮舍白蓮舍中有拈花室
010_0787_b_14L後講伯之接踵者不知其數而一燈引
010_0787_b_15L千燈自古佛祖所傳心印發明種智
010_0787_b_16L故曰拈花室亦稱祖室嗚呼世降聖
010_0787_b_17L人品不齊所以命名之義可謂尊
010_0787_b_18L者而已辛未春灾前人之記不幸
010_0787_b_19L時室主黃坡大士重刱之未畢修粧
010_0787_b_20L而其年冬辭寓虎溪深源洞依遠公故
010_0787_b_21L菴之僧德希有沾勝玧等二三子
010_0787_b_22L然繼其志越明年壬申春工告訖
010_0787_b_23L之制潤焉於古有侈云日沾師訪余于
010_0787_b_24L伽山索余之筆爲扁額而兼以記

010_0787_c_01L선대의 법왕이신 고 서악공西岳公께서 일찍이 이곳에 석장을 세우셨던 고사가 있으니, 절의 나이 많으신 분들은 이를 알고 있다. 법사이신 고 지智 노스님께서 또 이곳에서 발우를 씻었던 일이 있으니, 예전에 나도 까마득히 어린 제자로서 비록 스승의 뜻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욕되게도 입실하여 친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랑의 그리움이 뭉클뭉클 솟았으니, 만약 나의 문장을 그 방에 남긴다면 두 세대의 명승을 계승할 행운을 얻는 것이었다. 앞뒤로 두 차례의 창건에, 그래서 감히 문장의 졸렬함을 핑계로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기문을 짓게 되었다.
서序 3편
화곡집 후서 花谷集後序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태어남이 풀·나무·새·짐승과 다르다. 하지만 그 죽음이 풀·나무·새·짐승과 다른 자는 영 없지는 않을 정도이다. 그 믿을 만한 것은 성인에게 있으니, 전傳에서 “사람에게 썩지 않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덕德이 하나요, 공功이 하나요, 말씀(言)이 하나이다. 요임금·순임금은 덕을 성취했고, 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은 공을 성취했고, 이윤伊尹57)·여상呂尙58)·주공周公59)·소공召公60)·중니仲尼61)·맹가孟軻62)는 말씀을 성취했다.”라고 하였다.
오호, 사람이 이와 같은 뒤에야 삶과 죽음이 곧 풀·나무·새·짐승과 다른 것이다. 따라서 옛사람들 가운데도 이를 사모하고자 한 자들이 있었으니, 성한成僴·안연顏淵·공명고公明高63)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 다음으로 믿을 만한 것을 거론한다면 문사文詞에 있다고 하겠다. 굴자屈子의 「이소離騷」,64) 태사 씨太史氏의 『한서漢書』,65) 한 문공韓文公의 「원도原道」,66) 이백李白·두보杜甫·유종원柳宗元67)이 내뱉은 노래와 들이쉰 논의가 방에 넘치고 벽을 쓰러뜨렸으니, 이들이 그 대가라는 자들이다.
아, 우리 집안에도 덕을 성취한 분들이 분명히 계셨고, 공을 성취한 분들이 분명히 계셨고, 말씀을 성취한 분들이 분명히 계셨고, 그 다음 (문사를 성취한 분들) 역시 계셨다. 그리고 시詩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분으로는 근래에 화곡 대사花谷大士가 계셨다. 이분의 이름은 계誡이며, 천성이 밝고 부지런하셨다. 일상생활의 여가에

010_0787_c_01L惟先法王考西岳公曾於此卓錫之古
010_0787_c_02L寺之人耆老者知之法考智翁
010_0787_c_03L於此洗鉢之事曩者而余小弟种藐
010_0787_c_04L不及忝見其室而愛慕之心油然而
010_0787_c_05L若以文留之於室則幸以繼兩世之
010_0787_c_06L於前後之刱故不敢以文辭之拙辭
010_0787_c_07L而樂爲之記

010_0787_c_08L

010_0787_c_09L

010_0787_c_10L花谷集後序

010_0787_c_11L
凡人之生異於草木鳥獸而其死
010_0787_c_12L於草木鳥獸者不幾希其所恃者在聖
010_0787_c_13L人乎傳曰人之不朽有三德一功一
010_0787_c_14L言一堯舜曰德禹湯文武曰功
010_0787_c_15L呂周召仲尼孟軻曰言嗚呼人而如
010_0787_c_16L此然後生死即異乎艸木鳥獸也是故
010_0787_c_17L古之人有欲慕之者成僴顏淵公明高
010_0787_c_18L是也抑爲其次所恃者在文詞乎
010_0787_c_19L子之離䟽 [36] 太史氏之漢書韓文公之原
010_0787_c_20L李白杜柳之暢詠歙論溢室頹壁
010_0787_c_21L此其大者也吾之家必有德焉者
010_0787_c_22L必有功焉者必有言焉者其次亦有乎
010_0787_c_23L以詩名於世者而近曰花谷大士其人
010_0787_c_24L名誡天性明勤於日用暇於詩大

010_0788_a_01L당시唐詩를 모범으로 삼아 시를 크게 성취하였고, 그의 잡저雜著는 난해하고도 복잡하니, 후세까지 전해지리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느 날, 원산圓山 남쪽 봉일암捧日庵을 지나가는데 나의 벗 남봉공南逢公이 말하였다. “나의 선사이신 화곡 대사께서 시집을 남기셨는데 오탈자를 교정하고 서공徐公의 서문까지 받아 놓고도 여태 판각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네. 내가 선사의 뜻을 완성하고 싶던 차에 다행히 그대의 한마디를 얻게 되었구려.”
내가 말하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스님의 시는 맑고도 빼어나니, 백 그루 소나무의 노래를 채집한 것이요, 천 명의 성인의 골수를 호흡한 것이라네. 그분께서 지난날 남기신 썩지 않을 말씀들을 논하자면 비연秘演68)이나 문창文暢69)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겠네. 그러니 한창려韓昌黎나 구양자歐陽子70)가 아니면, 어떻게 그의 재능을 표현하면서 ‘불교에 은둔하였다’는 소리를 하고, ‘우리의 도로 들어오지 않은 게 한스럽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감히 그럴 수 없지.”
그러자 남봉이 말하였다. “자네는 법의 친척이니, 그분의 시와 문장에서 분명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야.”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알겠네. 이 문집이 세상에 유행한다면 스님의 삶과 죽음이 또한 썩어 문드러져 가뭇없이 사라지는 풀·나무·새·짐승과는 다르겠지. 그리고 또 차례로 그분의 덕을 언급하고, 공을 언급하고, 말씀을 언급하게 되겠지. 게다가 스승에 대한 자네의 정성이 이처럼 지극한데, 나의 붓이 감히 사양하겠는가?”
이로써 서문을 삼는다.
신선루 서神仙樓序
아, 절이 금강산의 요로에 있어 편히 다다르는 땅이라 할 수 있으니, 서울에서 유람 온 천신薦紳71)의 선비들치고 이 절을 경유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따라서 이를 지탱할 수가 없어 집안 살림살이라고는 사방의 벽뿐이고, 거주하던 승려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지난날 당백棠伯이신 윤사국尹師國72) 공께서 부임해 이 강원도를 다스리자 도의 백성들이 그로 인해 편안해졌다. 또 그는 산수와 서적을 좋아하여 두 사씨謝氏의 풍류73)가 있었다. 그분이 금강산의 승지일 것이라 짐작했다가 장안사長安寺가 패퇴한 것에 당황하고는, 단번에 도모하여 회복하고 하루도 되지 않아 이를 완성하셨다. 오호, 공의 은택을 석자의 무리들이 그래서 잊지를 못하는구나!

010_0788_a_01L率法乎唐於其雜著聱牙屈曲流之
010_0788_a_02L後世也無惑日過圓山陽捧日庵吾友
010_0788_a_03L南逢公曰吾先翁花谷大師詩正於睡
010_0788_a_04L徐公以序恨未入榟吾欲成先志
010_0788_a_05L幸得君一言乎余曰幸則幸矣師之
010_0788_a_06L詩淸秀采擷百松之韻呼吸千聖之髓
010_0788_a_07L論其向所謂不朽之言並肩秘演文暢
010_0788_a_08L而如非韓昌黎歐陽子則何以形其才
010_0788_a_09L而曰隱於浮屠而曰恨無贈吾家道乎
010_0788_a_10L不敢也公曰子有法戚之分於其
010_0788_a_11L詩與文必有所感乎余曰此集行
010_0788_a_12L之於世則師之生死亦異乎艸木鳥獸
010_0788_a_13L之糜爛澌盡而又次乎曰德曰功
010_0788_a_14L言也且公之誠於師如此其隆吾之
010_0788_a_15L筆敢辭乎以是序

010_0788_a_16L

010_0788_a_17L神仙樓序

010_0788_a_18L
寺在金剛之要路可謂便達之地
010_0788_a_19L自京洛間薦紳之士來遊者莫不由
010_0788_a_20L寺焉故不能支之家徒四壁居僧散
010_0788_a_21L徃者棠伯尹公師國氏來鎭一道
010_0788_a_22L道民以息又娛山水文籍有兩謝風流
010_0788_a_23L斟酌金剛之勝慌然長安之敗一謀以
010_0788_a_24L不日成之嗚乎公之澤也釋子輩

010_0788_b_01L
그 옛날 오월의 왕 전씨錢氏74)의 비가 표충관表忠觀에 있고, 장 익주공張益州公75)의 화상畵像이 정중사淨衆寺에 모셔져 있고, 신라 시대 경순왕敬順王의 영정이 은해사銀海寺에 최초로 안치되었고, 고려 시대 최제안崔齊顔76)과 김시습金時習 두 분의 화상은 천룡사天龍寺와 매월당 영당梅月堂影堂77) 등지에 모셔져 있고, 지금 이곳에도 노 고성盧高城78)의 화상이 또한 유점사榆岾寺에 모셔져 있다. 그렇다면 옛날부터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할 줄 알았던 것이다. 아, 그런데 윤 공의 진영은 왜 장안사에 없단 말인가!
나는 퇴암退庵이 서둘러 그 힘을 다하지 않고, 그저 손쓸 수 없는 시운의 변화만 두려워한 것이 한스럽다. 그렇긴 하지만 떠난 것은 반드시 돌아오고, 비루했던 것은 반드시 넉넉해지는 법이다. 무릇 그 공덕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왜 꼭 당시에만 있겠는가. 아, 공께서 절에 베푸신 공덕이 이처럼 위대하니, 비록 지금 사람이 재빨리 그에 보답하지는 못했지만 뒷시대 사람들을 기다려 봐야 마땅하리라.
오호, 훗날 장 공의 공덕을 사모하는 익주의 백성이 있어 그의 화상을 그렸고, 노천老泉의 기록79)을 얻었도다. 세월이 흘러 대 송나라 시대에 전씨錢氏의 공덕을 아름답게 여기는 자가 있어 그의 사당을 건립하였고, 미산眉山의 비80)를 얻었도다. 찬란한 오늘, 장안사 스님들이 윤 공의 공덕을 차마 잊지 못한다면 화상을 모셔도 옳고, 비석을 세워도 옳으리라. 이에 나의 말로 만분의 일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할 따름이다.
소은암 서小隱庵序
아, 선비가 은둔하는 것은 임금에게 쓰이지 못하거나 혹은 때를 만나지 못해서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의 절개는 꿋꿋하고 맹렬했으며, 그들의 기상은 우뚝하고 단도직입이었으며, 그들의 음성은 맑게 멀리 퍼졌으며, 그들의 말은 격렬하고 절박한 것이 마치 그리운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아, 대장부로서 때를 만나지 못한 자가 한 행동이여! 그들은 공후公侯의 지위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장상將相의 지위도 똥오줌처럼 여기면서 큰 뜻과 높은 기상으로 세상을 버리고 떠났었다. 하지만 찬란하게 빛나 해와 달처럼 밝고, 우뚝 솟아

010_0788_b_01L所以難忘焉昔者吳粵王錢氏之碑
010_0788_b_02L表忠觀張益州公像留淨衆寺羅朝
010_0788_b_03L敬順王影幀初安銀海寺麗朝崔齊顔
010_0788_b_04L金時習兩像在於天龍梅月等處今玆
010_0788_b_05L盧高城之像又在楡岾寺則自古人
010_0788_b_06L皆能爲之尹公之眞影烏不在於
010_0788_b_07L長安乎余恨退庵之未遑其力而但恐
010_0788_b_08L無操時之變也雖然徃者必有復否者
010_0788_b_09L必有泰凡功之顯於世者何必當時乎
010_0788_b_10L公之功於寺如此其大而其報雖
010_0788_b_11L不速於今人而冝有待乎後時者歟
010_0788_b_12L異日有如益州之民思張公之功者
010_0788_b_13L畫其像而得老泉記垂後大宋之世
010_0788_b_14L錢氏之功者建其堂而得眉山碑曜今
010_0788_b_15L長安之僧不忍忘尹公之德者像亦可
010_0788_b_16L碑亦可也以余之言爲萬一之補
010_0788_b_17L云尓

010_0788_b_18L

010_0788_b_19L小隱庵序

010_0788_b_20L
於戱士之爲隱或不用於君或不遇於
010_0788_b_21L窃觀其節亢厲其氣嶄截其聲淸
010_0788_b_22L其言激切如有所思大丈夫不
010_0788_b_23L遇者之所爲歟其間屣公侯糞將相
010_0788_b_24L倜儻離倫昭昭乎日月之明嵬嵬乎

010_0788_c_01L태산처럼 높았던 자는 거의 드물었다.
당우唐虞 시대에는 소보巢父와 허유許由81)가 있었으니, 이들이 이른바 기양箕陽82)의 드높은 절개라는 자들이다. 하夏 시대에는 이윤伊尹83)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가능성을 보고 은둔했던 자이다. 상商나라 때에는 백이伯夷84)가 있었으니,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실천했던 자이다. 주周나라에는 거친 음식을 먹던 자들이 있었고, 진秦나라에는 도원桃源에서 살던 자들85)이 있었으니, 이들은 모두 재앙을 피해 은둔했던 자들이다. 한나라 시대에는 엄광嚴光86)이 동월東粵에 은거했으니, 이는 자신이 선택할 바를 몰랐기 때문이다. 당나라 시대에는 이원李愿87)이 반곡盤谷으로 돌아갔으니, 이 사람은 낚시꾼으로 이름난 자였다. 송나라·원나라·명나라 이후로도 은둔한 자들이 비록 끊이지 않았지만, 모두 임금에게 선택되지 못해 세상에 알려질 수 없었을 따름이다.
지금 학산鶴山에 소은암小隱庵이 있고, 태호太湖에 일엽편주가 있으며, 여청정餘淸亭 반 칸에는 맑은 바람이 있으니, 참으로 처사處士들이 흥취를 깃들일 만한 곳이다. 세 개의 산봉우리에는 구름이 한가롭고, 두 갈래 강가 모래밭엔 하얀 갈매기가 있으니, 바로 처사處士들이 담소를 약속할 장소이다. 적선謫仙의 금릉 나들이88)요 자미子美의 동정호 노래89)라, 또한 처사들이 악기를 연주하기에도 알맞은 곳이다.
이곳이 은둔처로서 비록 기양보다 높이 드러나고 고야산姑射山90)보다 못하지 않지만, 유신有莘에서처럼 농사를 짓거나91) 수양산首陽山에서처럼 굶어 죽는다면92) 좁은 기량으로 교만을 떠는 것이리라. 진나라 한나라 이후의 은신처들이야 어찌 비교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은小隱’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장차 세상에 크게 쓰이고 싶어서 잠시 이 암자에 은거한다는 뜻이다.
상량문上樑文 12편
보광전 상량문普光殿上樑文
삼가 생각건대, 대술大術93)의 태 가운데 백옥의 코끼리 발굽 원만하고, 무우수 아래에 황금 수레바퀴 그림자가 층층이 아롱지니, 삼승三乘이란 소가 끄는 수레,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요, 일미一味가 곧 제호醍醐와 소酥와 낙酪입니다. 이에 영취산靈鷲山에서 꽃을 들어 보이시고, 쌍림雙林에서 태양이 기울었습니다.
저 중화에서는 나라를 이루어 이제二帝와 삼왕三王94)이 번갈아 다스렸고, 우리 조선도 창업하여 오경五經과 육예六藝95)를 돈독히 숭상하였으니,

010_0788_c_01L泰山之高者幾希唐虞之世有巢由
010_0788_c_02L此所謂箕陽高節夏之世有伊尹
010_0788_c_03L見可之隱商有伯夷此無所爲而爲者
010_0788_c_04L周有惡飯秦有桃源此皆避禍者
010_0788_c_05L漢之時嚴光隱於東粵是不知其
010_0788_c_06L所操也唐時李愿歸於磐 [37] 是釣名
010_0788_c_07L者也宋元明以來隱雖不絕皆不見
010_0788_c_08L用於君不得知於世而已今鶴山有小
010_0788_c_09L隱庵太湖上有一扁孤舟餘淸亭半間
010_0788_c_10L淸風眞處士之寓興三山頂閒雲
010_0788_c_11L水洲白鷗乃處士之談盟謫仙之金陵
010_0788_c_12L子美之洞庭詠亦處士之管弦稱
010_0788_c_13L此以隱雖高出乎箕陽姑射不下而有
010_0788_c_14L莘之▼(耒+田)首陽之餓慢以隘秦漢後所
010_0788_c_15L何足比乎雖然以小隱名將欲大
010_0788_c_16L用於世而姑此小隱於庵乎

010_0788_c_17L

010_0788_c_18L上樑文

010_0788_c_19L普光殿上樑文

010_0788_c_20L
伏惟大術胎中玉象之蹄圓滿無憂樹
010_0788_c_21L金輪之影層粼三乘曰牛羊鹿車
010_0788_c_22L一味則醍醐酥酪於是花拈靈鷲日頹
010_0788_c_23L雙林繄華夏之爲邦二帝三王之迭代
010_0788_c_24L粵朝鮮之創業五經六藝之敦崇襲姬

010_0789_a_01L주나라 백대의 의관을 계승하자 조정과 만백성이 하나로 통일되었고, 공자와 맹자와 여러 성현의 방책을 시행하자 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이 성대히 일어났습니다.
따라서 우리 세존께서 청량산淸凉山 보대寶臺에 그 형상을 나타내고 동해의 수승한 땅에 그 뼈를 묻으셨으니, 살아서는 두 나라에 덕을 베풀지 못하셨지만 죽어서는 오히려 만년 세월에 영험을 떨치신 것입니다. 인륜을 어지럽혔다 말하지 마오, 한창려韓昌黎와 호치당胡致堂96)의 망발이로다. 사납게 해치려는 뜻이 없다 하며, 한나라 영평永平과 양나라 보통普統97) 때 성대히 보시하셨습니다.
양주의 통도사라. 두 마리 오리가 노닌 못이요,98) 아홉 마리 용의 집99)이었으니, 계림의 고니와 소나무들이 남긴 자취 아득하고, 발우 모양 연꽃에 살대를 얹은 현묘한 기술이 당당합니다. 하나의 기둥으로 우뚝 치솟으니 나무 사자와 돌짐승들이 돌아보고, 높다란 층층 건물이 훌쩍 날아오르니 달님이 걸린 처마에서 풍경 소리가 쨍그랑 쨍그랑.
하얀 연꽃 우거진 동산이요,100) 밝은 구슬 같은 사리가 숨겨진 집이로다. 만조의 아라한들께서 모두 청정한 공양을 받고, 모든 불보살님께서 함께 청정한 단으로 부임하십니다. 그러나 선객들이 마음을 관조할 당이 없는 게 한스러워 그저 청신사가 공덕을 구할 날이 있기만 바랐으니, 경상도와 충청도의 준걸들이 모두 뜻은 있었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건물을 짓는 자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호명 대사湖溟大士는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3천 년 경에 태어나 천축국에서 거의 만 리나 떨어진 곳에서 살지만 월주의 탑이 회복되길 바라던 두 생애의 노력을 마무리하였고, 낙읍洛邑101)의 경영을 끝맺지 못한 선대 철인의 마음을 완수하셨습니다. 이에 여래의 부촉이 세차게 흘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자장 율사의 공덕이 면면히 이어져 그 후대까지 진동하는군요.
계오는 보잘것없는 말석의 초학이요, 아득한 후예이고, 못난 자손입니다. 복숭아, 자두 높다란 마을102)에서 홀연히 재능이 뛰어나다며 추천해 주시니, 낮은 언덕에 작은 기량이오나 복종하는 마음으로 천리마에 붙어 갈 생각입니다. 갈고羯鼓를 연주해 꽃을 재촉한 것을103) 하늘나라 조물주의 연주라 불러 주시니, 영郢의 도끼와 아촉국阿閦國의 목재를 멀리 우임금께서 손수 하시는 공사에 바칩니다.
두 번 절하고 청개구리 노래로 육위송六偉頌104)을 불러 제비처럼 축하드리오니,105)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106)
佛法扶桑外國同     불법은 부상扶桑107)의 외국에서도 같나니
何說人間傳授事     어찌 인간세계에서 전수한 일만 말하리오.

010_0789_a_01L周百世之衣冠朝廷萬民之壹正著孔
010_0789_a_02L孟羣賢之方册仁義禮樂之蔚興故我
010_0789_a_03L世尊留像淸凉之寶臺瘞骨東海之勝
010_0789_a_04L生未行德於二國死猶鎭靈於萬年
010_0789_a_05L莫道亂倫韓昌黎胡致堂之妄發無害
010_0789_a_06L暴義漢永明 [38] 梁普統之舍施梁州通度
010_0789_a_07L雙鳧之池九龍之宅雞林鵠松之
010_0789_a_08L陳迹杳杳鉢蓮架箭之玄術桓桓寫一
010_0789_a_09L柱而崢嶸木狻石獸之顧眄聳層廈而
010_0789_a_10L騰踔月簷風磬之玎璫芬陀羅尼華園
010_0789_a_11L舍利明珠幽宅萬祖羅漢之咸受淨食
010_0789_a_12L諸佛菩薩之同赴淸壇第恨無禪客觀
010_0789_a_13L心之堂只爲有信士要功之日而嶺而
010_0789_a_14L湖之俊髦皆意于古于今之結構一人
010_0789_a_15L湖溟大士生於佛滅度三千年間住於
010_0789_a_16L天竺國幾萬里外畢二生之力越州之
010_0789_a_17L塔待還遂先哲之心洛邑之營未果
010_0789_a_18L如來之託滾滾流於今乎慈藏之功
010_0789_a_19L緜緜振其後也戒悟末葉初學遠裔孱
010_0789_a_20L桃李高村忽推脫頴之薦部婁小
010_0789_a_21L靡念附驥之心羯鼓催花喚作天
010_0789_a_22L工之奏郢斤閃 [39] 邀呈禹手之功
010_0789_a_23L拜螻吟六偉燕賀其詞曰拋梁東
010_0789_a_24L法扶桑外國同何說人間傳授事玉凾

010_0789_b_01L玉凾千軸出龍宮     옥함 속 천 개의 두루마리가 용궁에서 나왔다네.108)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迦毘何處釋迦棲     석가모니께서 사셨던 가비라109)는 어딜까.
寶牙光爕魚珠奪     보배 어금니 치솟는 불빛에 물고기 눈 휘둥그레
毒龍九族讋魂迷     독룡의 아홉 족속이 두려워서 정신을 못 차리네.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慈藏力等善財男     자장 율사의 위대한 힘은 선남자 선재善財110)와 같아라.
束芻山積金牛飽     산처럼 쌓인 꼴 무더기를 황금 소가 포식하나니
人破天慳鬼不貪     하늘이 아낀 땅 사람이 차지하자 귀신도 탐내지 않네.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吾王聖德於何側     우리 임금님 성스러운 덕을 어디에 견줄까.
南山觚竹墨東波     남산의 고죽을 붓 삼고 동해의 파도를 먹 삼아도
難寫僧民絲粒力     승려들 입히고 먹이신 은혜는 묘사하기 어려워라.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桑楡未晩湖溟丈     노년에도 혈기 왕성하신 호명 어르신
自天陰遣護如來     하늘에서 몰래 파견해 여래를 보호하게 하니
六侶禪家今日刱     여섯 무리 선객의 집안이 오늘부터 시작이로다.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地藏誓如檻泉瀉     지장보살의 서원이 샘물처럼 쏟아지네.
冥間不用人間錢     저승 가면 인간세계 돈일랑 소용없다오.
念佛看經眞貴價     염불하고 간경해야 진짜 귀하고 값지다오.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임금님의 수명이 하늘처럼 길어지고, 법의 운수가 땅처럼 두터워지게 하소서. 천신天神과 지기地祇가 함께 보호하사 사방의 요상한 기운이 융화하여 맑게 빛나게 하시고, 경사와 상서가 모조리 찾아들어 먼 지역의 선사들까지 바큇살처럼 몰려와 나란히 예배하게 하소서.
통도사 사리각 중수 상량문通度寺舍利閣重修上樑文
삼가 생각건대, 구담瞿曇111)께서는 서천축에 출현하여 도덕을 유독 높이셨고, 대성大成112)께서는 중화에 임하여 인의仁義에 크게 힘쓰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갖가지 음식을 갖춰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있고, 또한 많은 향과 꽃을 바쳐 보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궁을 중수함으로 말미암아 재차 옥 같은 편액을 다니, 용과 봉황이 앞다퉈 상서를 나타내어 천지의 기운이 울창하고, 새들의 합창이 북소리처럼 울려 음양의 형상이 겉으로 드러나는군요.
자장 율사의 신비한 유적을 말해 보자면 임진년(1592)에 타 버렸고, 송운 대사의 아름다운 공적을 생각해 보면 신축년(1601)에 계승했나니,113) 당나라 정관貞觀 12년(638)114)과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의 행적115)은 고금과 전후의 문장에 일관된 기록이고, 왕족·귀족·선비·서민의 분주한 방문으로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렇게 낮과 밤이 항상 변화하듯이 우리 도는 흥성했다가 재앙을 만났고, 성상星霜이 수없이 바뀌듯이 이 절도 무너졌다가 다시 높이 솟았습니다.
우운友雲 대사116)께서 다시 세우자 층층의 용마루가 이리저리 뒤엉켰고,

010_0789_b_01L千軸出龍宮拋梁西迦毘何處釋迦棲
010_0789_b_02L寶牙光爕魚珠奪毒龍九族讋魂迷
010_0789_b_03L梁南慈藏力等善財男束芻山積金牛
010_0789_b_04L人破天慳鬼不貪拋梁北吾王聖
010_0789_b_05L德於何側南山觚竹墨東波難寫僧民
010_0789_b_06L絲粒力拋梁上桑楡未晩湖溟丈
010_0789_b_07L天陰遣護如來六侶禪家今日刱拋梁
010_0789_b_08L地藏誓如檻泉瀉冥間不用人間錢
010_0789_b_09L念佛看經眞貴價伏願上樑之後聖曆
010_0789_b_10L天長法運地厚神秖同護四堣妖氛
010_0789_b_11L之和融淸光慶祥畢臻遠方禪師之輻
010_0789_b_12L湊齊拜

010_0789_b_13L

010_0789_b_14L通度寺舍利閣重修上樑文

010_0789_b_15L
伏惟崔曇現於西竺道德維尊大成涖
010_0789_b_16L於中華仁義孔務旣陳爼豆之品節
010_0789_b_17L亦多香花之獻酬由是重脩寶宮再擧
010_0789_b_18L璿額龍鳳爭瑞天地之氣葱蘢彙鳥
010_0789_b_19L革音陰陽之象表襮曰慈藏之神蹟
010_0789_b_20L火於壬辰惟松雲之懿功繼於辛丑
010_0789_b_21L唐貞觀之十二明萬曆之始終貫古今
010_0789_b_22L前後之文章識公侯士庶之奔走吾道
010_0789_b_23L休咎晝夜之常易乎此寺圮崇星霜之
010_0789_b_24L屢改也友雲師之開創層甍危欄之輪

010_0789_c_01L응암凝庵 노장117)이 단청을 올리자 채색한 문과 분 바른 벽이 찬란하게 빛났지요. 등불과 촛불을 휘황하게 밝히면 범천에서 지혜의 달이 길이 밝았고, 종과 북이 쟁쟁하게 울리면 연화대의 현묘한 바람이 저절로 불어왔으며, 구름다리 위에서 도인과 석자들이 편안히 노닐고, 내리는 꽃비 속에서 법의 열락이 높이 휘날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150년의 세월이 흘러 기둥이며 서까래, 들보의 목재가 썩고 파손되자, 영인의 읍118)에서 훌륭한 장인을 찾고, 단월의 집에서 좋은 인연을 모집하였지요.
기이하구나, 문수의 신통한 점이여. 어떻게 통도사를 알았을까? 오호, 석가모니의 보배로운 뼈를 영취산 기슭에 안장하려 하셨네. 온갖 나라를 거치면서도 가로막는 자 없었으니, 신비한 용의 남모를 도움을 빌렸던 것이요, 수억 길의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건립할 때에는 신령한 비둘기의 기이한 영험이 있었습니다. 성인께서 세상에 강림하신 것이 아득한 옛날인데도 보시하는 자들이 뛸 듯이 기뻐하였고, 명당자리에 중요한 사찰이 분명하다며 당시 사람들 쏜살같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자취의 탁월함을 살피고는, 이 불사도 어렵지 않으리란 걸 알았습니다. 과거는 흘러가고 현재가 왔으니 복희씨의 역119)대로 회복된다는 걸 알겠고,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성취하였으니 성인들의 깊으신 징험에 감탄하게 됩니다.
백옥의 코끼리와 황금 수레바퀴가 비치는 마니구슬이요, 보배로운 깃발과 화려한 꽃다발이 나열된 제석천의 그물이로다. 비록 한 길에 불과하지만 이에 여섯 방위를 묘사하고자 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海上遊鵬獨運空     바다를 노니는 붕새가 홀로 허공을 떠도니
蠻日扶桑烟九點     부상의 오랑캐 땅은 아홉 점의 연기요120)
徘徊一抹彩霓虹     그 사이를 배회하는 한 가닥 옅은 무지개로다.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蒼壁縋天鶴有棲     푸른 절벽 하늘에 매달린 학의 둥지가 있었네.
載藥深山還訪逸     재약산 깊은 산중으로 다시 은자를 방문했더니
仙童遙指白雲梯     신선 동자 저 멀리 하얀 구름사다리 가리키누나.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金井梧桐月下龕     금정산 오동나무 달빛 아래 감실에는
元曉老僧遺跡在     원효 노스님의 유적이 여전히 남아 있고
滿山松桂又晴嵐     온 산에 소나무 계수나무 또 맑은 바람이로다.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慈藏璿系新羅國     자장 율사 고귀한 계보 신라의 왕족이요
千年古業更依然     천년의 옛날 업적이 예전 모습 그대로니
謾讀壇前金石刻     단 앞쪽 금석에 새긴 글 마음대로 읽어 보게.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浩浩蒼天無背向     넓고 넓은 푸른 하늘은 앞도 뒤도 없지만
聽視時臨俛仰間     고개를 까딱하는 순간 때때로 찾아와 보고 듣나니
誰云邈矣吾能誑     아득히 멀어 우리가 속일 수 있겠다 누가 말하는가.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老人炎界涕恒瀉     늙으신 분 염라 세계에서 항상 눈물을 쏟네.
金剛寶券受持不     보배로운 책 『금강경』을 수지하고 계시는가
阿鼻翻成兜率也     아비지옥이 훌쩍 뒤집혀 도솔천이 된다네.


010_0789_c_01L凝庵老之丹靑綉闥粉壁之照耀
010_0789_c_02L燈燭煒惶梵天之慧月長明鍾皷鏗鏘
010_0789_c_03L蓮臺之玄風自動道釋優遊於雲渠之
010_0789_c_04L法樂掀振於花雨之間年一百五十
010_0789_c_05L之往還材棟柱椽梁之朽破要良匠於
010_0789_c_06L郢邑募善緣於檀家異哉文殊之神占
010_0789_c_07L何知通度於乎釋迦之寶骨欲鎭鷲
010_0789_c_08L越萬國而無沮借神龍之陰助
010_0789_c_09L億丈而建刹有靈鴿之異奇雖世降聖
010_0789_c_10L而施者聳歡必地明寺重而時人
010_0789_c_11L▼(馬+務)驟顧其跡之以卓知此事之非艱
010_0789_c_12L古徃今來知羲易之爲復先難後獲
010_0789_c_13L嘆聖人之深徵玉象金輪之映照摩尼
010_0789_c_14L寶幢華鬘之羅列帝網聊敷一丈
010_0789_c_15L寫六方其詞曰拋梁東海上遊鵬獨
010_0789_c_16L運空蠻日扶桑烟九點徘徊一抹彩霓
010_0789_c_17L拋梁西蒼壁縋天鶴有棲載藥深
010_0789_c_18L山還訪逸仙童遙指白雲梯拋梁南
010_0789_c_19L金井梧桐月下龕元曉老僧遺跡在滿
010_0789_c_20L山松桂又晴嵐拋梁北慈藏璿系新羅
010_0789_c_21L千年古業更依然謾讀壇前金石刻
010_0789_c_22L拋梁上浩浩蒼天無背向聽視時臨像
010_0789_c_23L仰間誰云邈矣吾能誑拋梁下老人
010_0789_c_24L炎界涕恒瀉金剛寶券受持不阿鼻翻

010_0790_a_01L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성군의 교화가 멀리까지 미치고, 부처님의 지혜가 두루 퍼지게 하소서. 두드리는 종소리와 치는 북소리가 저 멀리 구천까지 맑게 울리게 하시고, 밝히는 촛불과 사르는 향으로 네 가지121)를 베풀어 주신 깊은 은혜에 보답하게 하소서.
불국사 극락전 상량문佛國寺極樂殿上樑文
삼가 생각건대, 천년의 고향은 흐르는 강물과 안개·구름이 남긴 자취이고, 8만 권의 대장경은 계율·선정·지혜와 이해에서 피어난 향기입니다. 저절로 귀의할 마음이 생기는데 갖가지 공양거리를 빠트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고, 궁궐 같은 방사에다 거주하는 이도 많습니다.
부처님 나라가 바로 동국의 가람이니 지나간 일들이 어제만 같고, 극락전을 오히려 서천축이라 부르겠으니 훗날 사람들은 지금 이것을 기준으로 삼을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이 이로써 깊어져 많은 사람이 무량수불을 염송하고, 어머니를 모시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져 김대성122)이란 사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쓸 것입니다.
청운교와 백운교여, 산허리를 꽂아 길을 만들었구나. 왼쪽 회랑 누각과 오른쪽 회랑 누각이여, 벼랑을 잘라다 하늘에 똬리를 틀었구나. 하늘거리는 안개 흩뿌리며 수양버들이 못을 에워싸고, 함박웃음 머금고 잠이 든 연꽃이 물 밖으로 나왔네. 크고 작게 울리는 한밤의 종소리 은은하고, 꽃피는 2, 3월이면 하늘의 바람도 흐릿해지나니, 태사공太史公을 다그쳐 이를 기록하라 해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용면龍眠123)을 다그쳐 이를 그리라 해도 풍경을 그리지 못하겠네.
오호, 경계가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하늘은 견고해도 사람의 힘은 쉽게 퇴락하는군요.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으니, 땅이 아무리 두터워도 적각의 기둥은 또 기우는군요. 기와와 평고대의 틈이 벌어졌으니 거주하는 승려들 가벼운 외투로는 따뜻하질 못하고, 단청도 세월이 아득히 흘렀으니 신상의 자비로운 모습인들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단월들 가운데 청신사가 많았다는 것을 지금 알게 되었으니, 세찬 여울 아래에 깊은 못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지요. 한 척의 망치를 맞은 종처럼 신들이 감격해 함께 진동하고, 봄바람 지나간 뒤 초목처럼 사람들 마음이 모두 빛나는군요. 아찔아찔 위태로운 선들이 그리지 않아도 이어지고, 우뚝우뚝 거대한 건물이 다시 안색을 찾았습니다.
이에 멋진 노래를 낭창하게 뽑아 손질한 들보를 드는 것을 거드나니,

010_0790_a_01L成兜率也伏願上樑之後聖化遠霑
010_0790_a_02L佛慧彌暢叩鐘打鼓戞淸韶於九天
010_0790_a_03L執燭呵香報深恩於四事

010_0790_a_04L

010_0790_a_05L佛國寺極樂殿上樑文

010_0790_a_06L
伏以一千年故都流水烟雲之陳迹
010_0790_a_07L萬卷大藏戒定慧解之現熏自有歸投
010_0790_a_08L之心可乏供養之具是故古今爲一
010_0790_a_09L室居多佛國乃是東伽藍往事如昨
010_0790_a_10L極樂猶曰西天竺後觀依今度生之願
010_0790_a_11L以深多人誦無量壽佛奉母之心尤切
010_0790_a_12L尺牘書金大誠 [40] 靑雲橋白雲橋揷峰
010_0790_a_13L腰而擁路左絰樓右絰樓割雲根而蟠
010_0790_a_14L楊柳裊烟雨而繞塘芙蓉恣笑眠而
010_0790_a_15L出水大小鳴半夜之鍾隱隱二三月上
010_0790_a_16L界之風濛濛驅太史而記之難言責龍
010_0790_a_17L眠而畫之莫狀嗚呼境則標爽天以
010_0790_a_18L固而人力易頹時已久延地雖厚而殿
010_0790_a_19L腳又蹇瓦梠衅缺不暖居僧之輕裘
010_0790_a_20L丹靑汗漫詎安神像之慈貌今知檀越
010_0790_a_21L之中多信士曾聞激湍之下有窮潭
010_0790_a_22L感似鼓金迎尺槌而同振人心如艸木
010_0790_a_23L過春風而皆熈岌岌危絲不圖綴連
010_0790_a_24L巋巋巨廈更生顔色朗唱善頌助擧

010_0790_b_01L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蔚州八十里開通     울주 80리가 활짝 열렸구나.
漫漫滄海扶桑上     머나먼 저 창해의 부상 위로
半出紅輪曲似弓     반쯤 솟은 붉은 태양 활처럼 굽었네.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珊瑚峯上草萋萋     산호봉 꼭대기에 풀이 우거졌구나.
暮▼(西+鳥)噪去咸池黑     저녁 물새 떠들썩 떠나고 함지咸池124)는 캄캄
月入黃昏杜宇啼     황혼에 달이 지니 두견새가 우는구나.
抛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鵄▼(术+鳥)千年怨氣含     올빼미는 천년의 원기를 품었구나.
回首靑山雲影斷     고개 돌린 청산에는 구름 한 점 없고
望夫石與碧天叅     망부석과 푸른 허공이 한바탕 뒤섞였네.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靈泉寒列玻瓈色     시리도록 찬 신령한 샘물은 유리색.
我將一椀奉金仙     내가 한 사발 떠서 금선金仙125)에게 바치고
祝壽萬年李氏國     이씨의 나라 만년에 이어지길 축수하노라.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蠢蠢蒼生帝育養     꿈틀대는 수많은 창생 상제께서 길러 주시네.
約束百神除禍殃     모든 신들과 약속하고 온갖 앙화 없애시니
地方千里皆無恙     천 리 땅 어디에서고 다들 아무 탈 없다네.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春池日映精藍寫     봄날 연못에 햇살 비추자 말쑥한 남색.
紫霞門外白雲橋     저 자하문 밖에 백운교가 있어
時有尊人來立馬     존귀하신 분 간간이 찾아와 말을 세운다네.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우리 임금님 교화의 바람이 영원히 불고, 부처님 지혜의 태양이 다시 빛나게 하소서. 새 건물이 영롱하며 귀신이 보호해 편안하게 하시고, 옛 터전이 안정되며 건곤이 보호해 영광되게 하소서.
문슬헌 상량문捫虱軒上樑文
하늘은 장막이요 땅은 돗자리라, 어딘들 이내 작은 몸 기탁하지 못할까. 음은 저울추요 양은 저울대라, 그윽한 경계는 반드시 점찍어 사들이는 사람이 있지. 더불어 흰 구름 사이의 신선이나 부러워하면서 그저 편안해하고, 동해를 떠돌면서 형邢 땅 주인의 손님 노릇이나 하였으니, 산수에 고질병이 깊은 선禪과 교敎의 술지게미로다. 그릇은 작으면서 뜻은 커 십만 가지 태도와 흉금을 경륜하였고, 지팡이 걸고 시로 노닐면서 봉래蓬萊와 영주瀛洲의 풍경과 호흡을 조망하였네.
스승으로 삼을 만한 한마디는 ‘개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126) 저 부처님 분명히 속이지 않았음을 자손들은 알아야 하리라. 그러나 걱정스럽게도 법은 약하고 마귀는 강해 외로운 과부는 사나운 오랑캐를 제압하기 어려웠고, 창고가 높고 곳간이 가득하자 적미赤眉127)와 황건黃巾128)이 단속이 허술한 창고를 손쉽게 약탈해 버렸네. 망했구나, 어찌할꼬! 번뇌 속에서 왕래하자니,

010_0790_b_01L脩樑其詞曰拋梁東蔚州八十里開
010_0790_b_02L漫漫滄海扶桑上半出紅輪曲似弓
010_0790_b_03L拋梁西珊瑚峯上草萋萋暮𪀹噪去咸
010_0790_b_04L池黑月入黃昏杜宇啼拋梁南鵄𩿯
010_0790_b_05L千年怨氣含回首靑山雲影斷望夫石
010_0790_b_06L與碧天叅拋梁北靈泉寒列玻瓈色
010_0790_b_07L我將一椀奉金仙祝壽萬年李氏國
010_0790_b_08L梁上蠢蠢蒼生帝育養約束百神除
010_0790_b_09L禍殃地方千里皆無恙拋梁下春池
010_0790_b_10L日映精藍寫紫霞門外白雲橋時有尊
010_0790_b_11L人來立馬伏願上梁之後王風永扇
010_0790_b_12L佛日再明新宇玲瓏護鬼神而安隱
010_0790_b_13L古基鄭重保乾坤之光華

010_0790_b_14L

010_0790_b_15L捫虱軒上樑文

010_0790_b_16L
天幕地席何處不寄寓此眇身陰權
010_0790_b_17L陽衡有人必買卜其幽境與羨白雲
010_0790_b_18L間仙只寧作東海上客邢主人山水膏
010_0790_b_19L禪敎糟粕器小志大經綸之千百
010_0790_b_20L態度胷襟杖掛詩遊登眺之蓬瀛風烟
010_0790_b_21L呼噏一言可以爲師者狗子話彼佛必
010_0790_b_22L也無欺乎兒孫知第恐法弱魔强
010_0790_b_23L阿寡婦之難制悍虜倉崇廩實赤眉黃
010_0790_b_24L巾之易掠慢藏亡奈煩惱間往來

010_0790_c_01L고통이 공한 자가 머물 곳 그 누가 일러 줄까? 돌집의 흙 침상에서 메마른 나무처럼, 식어 버린 재처럼 지내리라. 그렇게 살다 죽으면 뒤에 남겨 둔들 무엇이 아까우랴!
마침 함월산含月山 일대 새로 지은 사찰인 내원암129)에 거주하던 상인과 인연이 있었네. 두 번 세 번 부지런히 초청해 주는 은혜를 입었으니 평소 안면이 있음을 잊지 않았던 것이요, 남은 세월이라 해 봐야 곧 예순인데 두서없는 사사로운 의론에 어찌 인색하게 굴겠는가. 하지만 별장이 눅눅하고 비좁아 수용하기 어렵기에 노승의 몸을 잠시 머물고자 문슬헌捫虱軒으로 시작해 미소실微笑室로 공사를 마무리하였네.
바다 어귀가 문으로 연결되니 완전히 봉래산 신선의 항구요, 하늘 끝자락이 돗자리에 부딪치니 도솔천 구름의 거리와 똑같구나. 대나무 숲에 국화 우거지고 쓸쓸한 바람 너머엔 싸늘한 그림자, 패엽경 글자에다 옥 같은 게송 읊으며 조각조각 불단 앞에서 향이나 사르리라.
달도 길하고 날짜도 좋아 장인들 기뻐하기에 애오라지 육위의 노래를 불러 몇 개의 들보 드는 일을 거드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日出扶桑百尺紅     해 돋는 부상에 붉은빛이 백 척이로다.
十里烟波孤客帆     10리의 안개 물결에 배를 띄운 외로운 나그네.
夕拖龍骨掛層穹     저녁나절에 용의 뼈를 끌고 와 창공에 걸어 놓네.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鵬背淸飄白日含     붕새가 회오리바람 타고 태양을 삼키누나.
海上尋常仙侶過     바다 위로 신선 지나가는 건 늘 있는 일.
瀛洲一室寓玄談     영주에서 방 한 칸 얻어 현담을 나눈다네.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伽智山秋細雨迷     가지산에 가을이 들어 가랑비가 흩날리네.
回首楓林霜葉醉     고개 돌리니 단풍 숲엔 서리 맞아 취한 잎들.
匏樽無恙老詩題     바가지 술로 근심 잊는 건 오래된 시제로다.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吾王萬壽楓宸極     우리 임금님 만수를 누리며 대궐에 계시니
南薰殿上五弦歌     남훈전南薰殿130)에서 늘어지는 오현금의 노래.131)
爛熳雲星工喜色     구름과 별빛 흐드러지고 장인들도 기쁜 얼굴.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天臨泰宇淸虛曠     하늘이 태평한 마음에 임해 맑은 허공처럼 드넓구나.
竹風蘭月刼无邊     대숲에는 바람 난초에는 달빛 세월은 가없이 흐르고
萬象混然同俯仰     천태만상 혼연일체되어 함께 굽어보고 우러른다네.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深樓抱月東窓臥     깊숙한 누각 달님을 안고 동쪽 창가에 누웠더니
白鷗飛掠雪堂衿     하얀 갈매기가 날아와 설당雪堂132)의 옷고름을 채 가네.
無限精神淸夜瀉     청아한 밤에 쏟아지는 한량없이 맑은 정신이여.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용과 천신이 함께 보호하고, 옥루屋漏133)에 물러나 쉴 것을 고하게 하소서. 둥근 머리에 네모진 가사를 입고 촛불을 밝힌 높다란 불당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이 정토이게 하시고, 주미麈尾를 휘두르고 주장자를 세우며 불조의 등불을 전하는 작은 방에서 한 글자 한 글자가 은장銀章134)이게 하소서.

010_0790_c_01L道苦空家栖止土床石室槁木死灰
010_0790_c_02L守此以終遺後何吝秖緣含月山一代
010_0790_c_03L新刹內院庵上人時居寵招再三之勤
010_0790_c_04L弗諼顏面之有素餘晷六旬之迫奚靳
010_0790_c_05L私誼之無端以別業之湫隘難容爲老
010_0790_c_06L僧之形骸暫蹇捫虱軒經始微笑室爰
010_0790_c_07L海門連扃十分蓬渤仙巷天根抵
010_0790_c_08L一樣兜率雲衢竹枝菊叢騷騷風
010_0790_c_09L外寒影貝字玉偈片片壇前香灰
010_0790_c_10L吉辰良工歡匠戱聊唱六偉曲助擧
010_0790_c_11L數隊樑其詞曰拋梁東日出扶桑百
010_0790_c_12L尺紅十里烟波孤客帆夕拖龍骨掛層
010_0790_c_13L拋梁南鵬背淸飄白日含海上尋
010_0790_c_14L常仙侶過瀛洲一室寓玄談拋梁西
010_0790_c_15L伽智山秋細雨迷回首楓林霜葉醉
010_0790_c_16L樽無恙老詩題拋梁北吾王萬壽楓宸
010_0790_c_17L南薰殿上五弦歌煉熳雲星工喜色
010_0790_c_18L拋梁上天臨泰宇淸虛曠竹風蘭月刼
010_0790_c_19L无邊萬象混然同俯仰拋梁下深樓
010_0790_c_20L抱月東窓臥白鷗飛掠雪堂衿無限精
010_0790_c_21L神淸夜瀉伏願上樑之後龍天同護
010_0790_c_22L屋漏告休圓頂方袍之秉燭高堂念念
010_0790_c_23L淨土揮麈卓杖之傳燈小室字字銀章

010_0791_a_01L
연등암 영각 상량문燃燈庵影閣上樑文
생각건대, 산허리에 절집이 우뚝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창해로다. 참으로 동남방의 수승하고 아름다운 경계이기에 창공을 굽어보며 감실에 꺼져 가는 등불을 매달고서 부처와 조사의 심인을 펼쳤던 것이리라. 어찌 도량을 개창함에 그치랴, 반드시 향과 촛불이 길이 이어지게 해야 하리라.
주인 노릇 10년에 수없이 품었던 생각은, 항상 가슴과 뱃속에 품고 크게 흠모했던 여섯 스승께서 돌아와 의지할 만한 세 칸의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마음은 이와 같았지만 신통한 방법이 없었고, 힘은 솟았지만 어디부터 손써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다 강개한 선비 경월공慶月公을 붙잡고, 협조할 사람 동파당東坡堂을 얻게 되었다. 그러자 드디어 삼태기로 흙을 나르고 바위를 쌓아 마당을 만들고 새장을 엮게 되었으니, 광나무도 알맞고 산뽕나무도 알맞았다. 벌목꾼을 부르고 목수를 초청해 서까래·들보·기둥·두공을 깎았으니, 짧은 것도 마땅하고 긴 것도 마땅하였다.
평소 사치스러운 건물을 바랐던 것이 아니라 진실로 높고 낮음이 몸집에 알맞기만 바랐으니, 나의 짧고 얕은 지식과 술수를 돌아볼 때 감히 이런 집을 지었다는 것이 뿌듯하기만 하다. 많은 이들이 함께 이를 도모하였으니, 삼가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낫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시절 인연이 마침 도래한 것이니, 그래서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제압했으리라.
용상 대덕께서 예전처럼 풍광을 부드럽게 하시니, 가산이 이제부터 인물이 더 훤해지게 생겼다. 이에 애오라지 짧은 노래라도 불러 대들보 올리는 일을 돕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蠻氛爛日輪紅      남방 기후 후덥지근하고 태양이 붉었다.
鐘鳴鼎食纔罷      종이 울리자 다들 모여 솥단지 음식 나눠 먹고
象眷獜兒出宮      코끼리 권속 기린의 자손이 궁전을 나오는구나.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鷲栖山奮毘藍      취서산에 비람풍135) 휘몰아치네.
釋迦佛受迦葉      가섭이 전수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의
舍利浮圖玉凾      사리를 간직한 부도와 옥함의 경전들.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含花山上雲梯      함화산 꼭대기에는 구름사다리.
求仙祈佛齋戒      신선을 찾고 부처님께 기도하며 재계하나니
聞道有神碧雞      도를 듣고 신선이 된 벽계碧雞136)가 있었다네.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淸壇向拜宸極      맑은 단에서 대궐 향해 절을 올리며
消灾降福願心      재앙 소멸하고 복을 내려 주길 바라오니
一切衆生毖嗇      일체 중생 너무나 고달프고 궁색하답니다.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力行孝弟心廣      힘껏 효제를 실천하면 마음이 넓어지네.
反身愧怍如無      자신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해 부끄럽기만.
一向忘情俛仰      그저 모든 걸 잊고서 고개만 들었다 떨구었다.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朝莫陰晴變化      아침저녁 어둠과 밝음의 변화로
五穀登場歲豊      오곡이 잘 여물어 올해도 풍년이라.
萬人歌舞咸賀      만인이 춤추고 노래하며 다 함께 경사로다.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우임금의 위의가 온당해지고

010_0791_a_01L燃燈庵影閣上樑文

010_0791_a_02L
切以脊立伽瑟襟虛滄海眞東南勝佳
010_0791_a_03L境臨層穹龕懸殘燈展佛祖心印
010_0791_a_04L特道場之開敞必借香火之永綏主人
010_0791_a_05L十載抱負多玆數三架輪奐六師依
010_0791_a_06L歸屬每膺肚中丕欽機若此而無便
010_0791_a_07L力所出而岡措攬慶月公慷慨士得東
010_0791_a_08L坡堂協助人于是焉畚土築巖町畽
010_0791_a_09L籠樊楨支合榦支合呼斧邀鉅桷杗
010_0791_a_10L柱欂短者宜長者宜素匪堂宇之富
010_0791_a_11L實望崇圮之適軆顧短淺之知術
010_0791_a_12L敢構堂之肯心謀之僉同伏聞衆者勝
010_0791_a_13L於寡時乎方至切料弱者制於强
010_0791_a_14L象依前輭風光伽山自此增顔色聊引
010_0791_a_15L短唱遂擧浮樑其詞曰拋梁東蠻氛
010_0791_a_16L爛日輪紅鐘鳴鼎食纔罷象眷獜兒出
010_0791_a_17L拋梁南鷲栖山奮毘藍釋迦佛受
010_0791_a_18L迦葉舍利浮圖玉凾拋梁西含花山
010_0791_a_19L上雲梯求仙祈佛齋戒聞道有神碧雞
010_0791_a_20L拋梁北淸壇向拜宸極消灾降福願心
010_0791_a_21L一切衆生毖嗇拋梁上力行孝弟心廣
010_0791_a_22L反身愧作如無一向忘情俛仰拋梁下
010_0791_a_23L朝莫陰晴變化五穀登場歲豊萬人歌
010_0791_a_24L舞咸賀伏願上樑之後禹儀妥已

010_0791_b_01L문인들이 이를 보존하게 하소서. 난야에 경사가 많아져 해와 달과 별들이 찬란히 빛나게 하시고, 비추芘蒭137)들이 기뻐하며 몰려들어 정병과 발우와 가사를 받들어 지니게 하소서.
표충 서원 이건사우 상량문表忠書院移建祠宇上梁文
삼가 생각건대, 충과 의의 도리는 인륜의 준칙이기에 성인과 현인들께서는 그 무거운 짐을 몸소 이고 지셨으며, 임금과 신하의 질서는 일을 수행하는 강유綱維이기에 하늘과 땅 사이에 높고 낮음을 크게 정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는 이로 인해 흥성하고 쇠퇴하며, 백성도 이로 인해 흩어지기도 하고 풍성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살펴보면, 고금에 존재하고 망했던 세상은 한번 바로잡으면 한번은 혼란스러워졌고, 음과 양이 반복되는 양도 잠깐 짝수가 되었다가 금방 홀수가 됩니다. 그래서 하늘을 뒤덮는 홍수가 졌다가 지독한 가뭄으로 대지가 타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宣祖 치세 흑룡黑龍의 해138)(1592)에 이빨을 검게 칠한 도적 떼139)가 들이닥치자 어육魚肉이 된 백성들의 참혹한 시체가 온 도읍에 가득하였고, 임금의 가마가 피난을 떠나자 망국의 귀신이 텅 빈 성곽에서 울어야 했습니다. 이에 사나이라면 누구나 쓸개를 씹으면서 치욕을 씻으리라 다짐했으니, 야윈 승려인들 어찌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청허당淸虛堂140) 대선사시여.
선정과 지혜를 던져 버리고 작전 계획을 세워 팔난八難141)을 해결할 책략을 발표하셨고, 의병들을 모집하고 승제承制142)하여 삼군을 호령하는 목소리를 떨치셨으니, 푸른 청라 덩굴이 달님을 뿌리치고 벽유碧油143)에서 대장기를 휘날린 것이었습니다.
사명당泗溟堂 대선사시여.
황금 사자의 웅변을 토하자 저 오랑캐 두목은 원수의 자리를 내놓았고, 황금 용이 끄는 최고의 수레를 타고서 해약海若144)에게 배를 옹호하게 하셨으니, 저 왜놈들도 살아 계신 부처님이라 불렀던 공덕이 원만한 노스님이셨습니다.
기허당騎虛堂145) 대선사시여.
모란봉에 꽃이 지자 해와 별도 모습을 감추고 빛을 잃었으며, 금성진錦城鎭에서 옥쇄하시자 저 산악도 찢어지며 푸른빛을 잃었습니다. 의롭게 한 번 죽는 것 영광이라 하겠으니, 구차하게 만 번 살기를 어찌 바라리오.
이에 10대의 잔약한 후손들이 음덕에 힘입어 곳곳에서 법계法階에 올랐으며, 일등 공신이라는 공훈의 보답이 내려졌으니 구절구절 공신책에 분명합니다. 그러다 옛 사당의 건물이 눅눅하고 비좁다고 고하는 본 서원 사람들의 말들이 이건을 계획하던 작년부터 들끓어 일이 반쯤 진행된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때 마침 재약산 영정사가 폐사되어 비게 되었고, 그 산수의 빼어난 아름다움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90리 높고 험한 길에

010_0791_b_01L人保之蘭若慶多日月星宿照曜
010_0791_b_02L蒭歡集瓶鉢袈裟奉持

010_0791_b_03L

010_0791_b_04L表忠書院移建祠宇上梁文

010_0791_b_05L
伏以忠義人倫之準則負戴已重於聖
010_0791_b_06L君臣職事之網維高下大㝎於天地
010_0791_b_07L國家以之否泰士庶幾於渙豊觀夫世
010_0791_b_08L於古今存亡一治一亂易之陰陽徃復
010_0791_b_09L才偶才奇洚水滔天火魃焦土我宣
010_0791_b_10L廟黑龍之歲漆齒入寇魚肉慘於滿都
010_0791_b_11L大駕蒙塵杜鬼泣於空郭迺男子其甞
010_0791_b_12L縱枯僧而安心淸虛堂大禪師
010_0791_b_13L㝎慧而運籌發八難之餘筞募義旅而
010_0791_b_14L承制奮三軍之呼聲靑蘿擺月碧油
010_0791_b_15L飛幌泗溟堂大禪師動金獅之雄辯
010_0791_b_16L彼蠻酋而授元御黃龍之上乘令海若
010_0791_b_17L而擁舸倭奴曰生佛功德之老師
010_0791_b_18L虛堂大禪師花落牧丹峰日星潜而奪
010_0791_b_19L玉碎錦城鎭山嶽裂而退靑一死
010_0791_b_20L足榮萬生奚願於乎十世僝孫之資蔭
010_0791_b_21L處處登階一等功臣之酬勲章章明册
010_0791_b_22L第控舊祠宇之湫隘本院人之言騰
010_0791_b_23L前年之計中迄今日之事半偶於載藥
010_0791_b_24L寺空廢惜水之麗山之明九十里崎嶇

010_0791_c_01L차가워지는 날씨와 얼기 시작하는 땅을 참아 가면서 장인을 갖추고 목재를 갖추고 쇠와 돌을 갖추었고, 부에 품신하고 군영에 품신하고 예조에 품신하였습니다.
적절한 시기요, 적절한 시기니,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그저, 사람이란 그저, 한번쯤은 만나 봐야 또 마땅한 것이지요. 애오라지 정밀한 초상화를 공포하고 열사를 추모하는 짧은 노래를 부르오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宗嶽叅天萬古雄     종문의 산악 하늘을 찌르니 만고의 영웅이로다.
大器能鍾非常物     종처럼 큰 그릇이요 보통 물건이 아니셨으니
曾期於此建表忠     이곳에 표충사를 세우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네.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面洛背邙地道堪     낙동강 바라보고 북망산 등지니 지리도 뛰어나라.
師乃東方巨宗伯     스님께서는 동방의 거장이요 종백이셨으며
因緣通度見瞿曇     통도사에 인연이 있어 구담을 친견하셨다네.146)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悲風蕭瑟白楊凄     슬픈 바람 쓸쓸하고 백양白楊147)이 처량해라.
寒鴉每受平安否     갈까마귀148) 매일 문안 인사를 드리니
落日飛來告石梯     지는 해에 날아와 돌계단에 고한다네.【사명 화상의 부모님 묘소가 서쪽에 있다.】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絕頂孤庵垂列宿     꼭대기 외로운 암자에 수많은 별들 드리웠네.
去日忠精在擎天     지난날의 충정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나니
萬年永報朝鮮國     조선이란 나라 만년에 영원토록 보답하리라.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靑但遠乎仍俯仰     푸른 하늘 멀기만 하여 굽어보고 우러러보노라.
聖庶由人事異同     성인과 서민은 사람 따라 하는 일이 다르지.
拜祠惶恐心誠廣     사당에 절하자 황공한 마음 진실로 넓어지네.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雲仍洞口落成賀     구름도 동구에서 낙성을 축하하네.
如存靈鑑彼天偕     저 하늘과 나란히 신령한 거울이 있어.
一國太平之萬嘏     온 나라가 태평하고 만복을 누리리라.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조정이 고요하고 재야가 조용하며, 계절이 조화로워 해마다 풍년이게 하소서. 문관들 편안하고 무인들 위엄이 넘치며 양심을 지켜 최고로 아름답게 하시고, 산마루 같은 제사상과 호수 같은 부유함으로 이곳을 찾는 분들을 안심시키는 데 사용하게 하소서.
명인루 상량문明禋樓上梁文
저는 삼가 들었습니다. 『논어』에 말씀하시길, “마을에 인후한 풍속이 있어야 아름답다 할 수 있다.”149) 하셨으니, 위魏는 삭막한 북방을 떠나 낙중洛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릇이 오래되면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하였으니, 반경盤庚은 경읍耿邑에서 박亳 아래쪽으로 천도하였습니다.150) 역易의 도를 숭상해야 옳은데, 공자께서는 왜 “돌아가자.”151) 하며 탄식했을까요?
그래서 기이한 공훈을 계획하자 준마들이 신비한 갈기를 휘날려 작년에 표충사를 이건하였고, 금년 봄에는 명인루를 이어서 짓게 되었습니다. 영취산152)은 평범한 구릉이라 해를 걸러 가뭄이 들고, 비에 젖고, 폭풍이 몰아쳐 꺾고 쓰러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재약산은 대물이니 이곳은 산도 높고, 산마루도 길쭉하며,

010_0791_c_01L耐日方寒地方沍具工具木具金石
010_0791_c_02L府禀營禀禮曹時乎時乎再來不得
010_0791_c_03L人只人只一遭又宜聊敷精綃追列
010_0791_c_04L短曲其詞曰拋梁東宗嶽叅天萬古
010_0791_c_05L大器能鍾非常物曾期於此建表忠
010_0791_c_06L拋梁南面洛背邙地道堪師乃東方巨
010_0791_c_07L宗伯因緣通度見瞿曇拋梁西悲風
010_0791_c_08L蕭瑟白楊凄寒鴉每受平安否落日飛
010_0791_c_09L來告石梯泗溟和尙
親墳在西
拋梁北絕頂孤庵垂
010_0791_c_10L列宿去日忠精在擎天萬年永報朝鮮
010_0791_c_11L拋梁上靑但遠乎仍俯仰聖庶由
010_0791_c_12L人事異同拜祠惶恐心誠廣拋梁下
010_0791_c_13L雲仍洞口落成賀如存靈鑑彼天偕
010_0791_c_14L國太平之萬嘏伏願上梁之後朝晏野
010_0791_c_15L時和年豊文恬武威克嘉懿於夷
010_0791_c_16L嶺奠湖富庸綏和於來斯

010_0791_c_17L

010_0791_c_18L明禋樓上梁文

010_0791_c_19L
窃伏聞語云里川爲美魏去幽朔趍洛
010_0791_c_20L人言器舊維新盤自耿邑遷亳下
010_0791_c_21L易之道也可尙孔之歸與何嘆是庸謨
010_0791_c_22L謀異勲駿發神績前年表忠祠移建
010_0791_c_23L今春明禋樓承營靈鷲凡岡間年多旱
010_0791_c_24L枯雨濕風摧挨撲載藥大物此地有

010_0792_a_01L숲도 우거지고, 대나무도 꼿꼿합니다.
뜬소문이 틀림없는 사실이 되었으니 이른바 시절 인연이 저절로 찾아온 것이고, 하나가 됨으로써 모의하지도 않았으니 다들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베풀 것이 있어 그리 되었겠지만 절이 비고 폐허가 된 것은 실로 불쌍히 여길 만하였습니다. 하지만 서원이 타당한 위의를 갖춰 흠향하길 바라기에 이르렀으니, 이 산의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노천 소老泉蘇153)가 애석하게도 저보다 앞서 기회를 얻었군요. 진정 좇아야 할 것이 많지만 그 말씀 아래 한마디 붙이자면, 식객 모수毛遂도 남의 덕으로 일을 성취한 것입니다.154) 왜냐하면 대부 심후大夫沈侯155)께서 전대를 계승하여 후대의 잘못을 바로잡았고, 월파 천유月波天有 스님께서 옛 것을 고쳐 새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대지 위의 강과 산이 같은 이름인데, 왕일소王逸少156)가 감히 또 회계會稽에서만 나는 자손일까요? 하늘 아래 바람과 달이 한 빛깔인데, 소자첨蘇子瞻157)이 유독 적벽赤壁에만 그 모습을 잠시 깃들일까요? 오늘 영정사의 볼 만한 풍경과 그 옛날 술 빚는 샘가에서의 씩씩하고 상쾌했던 일들이라면 이미 누대에 아름답게 표현된 글이 있으니, 어찌 말과 문자를 더해 웃음거리가 되겠습니까?
이에 짧은 문장을 지어 마룻대를 던지는 일에나 쓰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兒郞偉拋梁東      여보게들,158)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月滿藥師之宮      보름달이 뜬 약사여래159)의 궁전이로다.
靑色琉璃十步      파란색 유리 세계가 열 걸음 앞에 펼쳐지니
春君浩浩時功      봄께서 철 따라 하시는 일 크고도 넓구나.
兒郞偉拋梁南      여보게들,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五十三善財男      53선지식 순방한 선재 동자 계셨네.
百十由旬城外      저 아득한 110유순의 성 밖에서
須知當日何談      오늘 무슨 말씀 하는지 알아야 하리라.
兒郞偉拋梁西      여보게들,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善逝彌陀佛兮      선서善逝 아미타부처님이시여.
戶戶家家同誦      집집마다 다 함께 염송하나니
百千萬億身齊      천백억 화신을 일제히 나투소서.
兒郞偉拋梁北      여보게들,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仁義崇朝鮮國      인의를 숭상하는 나라 조선이로다.
三三禮聲喝香      아홉 번 예배하고 향 사르며 외치니
吾王萬歲壽域      우리 임금님 만세를 누리게 하소서.
兒郞偉拋梁上      여보게들,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混綱頓擧明塽      혼탁했던 기강이 단박에 밝아지네.
極高自聽極卑      저 높은 곳에서 밑바닥 소리 들으시니
闇室之中毋誑      으슥한 방에서조차 속이지들 마시게나.
兒郞偉拋梁下      여보게들,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履吉臨誠泰我      좋은 일 정성껏 실천하면 내 마음 편안하네.
天地人事當然      하늘과 땅과 사람의 일이 마땅히 그러하니
千綱萬目悉寫      천만 가지 강목들이 모조리 거기서 나왔다네.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세 분의 대현사160)께서 우리의 명당에 복을 내리시고, 천신과 지기·기린·봉황·거북·용도 똑같이 상서로운 감응을 보이며, 금강반야金剛般若의 법사法事로 마하바라밀다를 실천하게 하소서.

010_0792_a_01L山崇嶺峻林茂竹脩浮言實牢所謂
010_0792_a_02L時乎自來以合不謀同得凭聞天也
010_0792_a_03L有𢌿者當這寺之空亡可矜本院之妥
010_0792_a_04L儀曁庶假山之不幸中又倖老泉蘇
010_0792_a_05L先我得之㝎從也多言下一言
010_0792_a_06L客毛打 [41] 因人成也大夫沈侯之隨前蠱
010_0792_a_07L月波有師之革舊鼎新江山地上同
010_0792_a_08L王逸少敢且會稽莂姓風月天下一
010_0792_a_09L蘇子瞻獨於赤壁寓形今日靈井
010_0792_a_10L觀光故事釀泉豪爽旣有樓臺題品
010_0792_a_11L何辭文字胡盧爰寫短章用拋上梁
010_0792_a_12L其詞曰兒郞偉拋梁東月滿藥師之宮
010_0792_a_13L靑色琉璃十步春君浩浩時功兒郞偉
010_0792_a_14L拋梁南五十三善財男百十由旬城外
010_0792_a_15L須知當日何談兒郞偉拋梁西善逝彌
010_0792_a_16L陀佛兮戶戶家家同誦百千萬億身齊
010_0792_a_17L兒郞偉拋梁北仁義崇朝鮮國三三禮
010_0792_a_18L聲喝香吾王萬歲壽域兒郞偉拋梁上
010_0792_a_19L混綱頓擧明塽極高自聽極俾闇室之
010_0792_a_20L中毋誑兒郞偉拋梁下履吉臨誠泰我
010_0792_a_21L天地人事當然千綱萬目悉寫伏願
010_0792_a_22L梁之後十方諸佛三大賢師祐我明
010_0792_a_23L天神地祇獜鳳龜龍瑞應等彼
010_0792_a_24L事金剛般若摩訶波羅1) [5]

010_0792_b_01L
영산 대흥사161)대웅전 상량문靈山大興寺大雄殿上梁文
기술해 보자면, 지사志士가 의를 취하고 삶을 버렸던 것은 단지 뜻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일 뿐이요, 용맹한 자가 뜨거운 것을 쥐고도 씻지 않았던 것162)은 오직 용맹한 힘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쩌나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주공周公이 대신 죽으려 했던 것163)은 사랑의 이치를 어기지 않았던 것이고, 기신紀信이 초楚를 속였던 것164)은 그저 한漢의 존립만을 위해 힘썼던 것입니다.
우리 불교의 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중국에 전해진 이래로 신라와 고려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존숭하면서 위로는 왕공과 아래로는 선비와 서민들이 아낌없이 보시하였으니, 앞세운 것은 머리와 팔이요, 뒤따른 것은 황금과 돈이었습니다. 위후魏后는 요광사瑤光寺에 9층의 탑을 세울 때 땅을 파면서 공사를 시작하였고,165) 양 무제梁武帝는 동태사同泰寺에 세 차례나 몸을 보시하면서166) 법을 받들고 가지하였습니다.
영산靈山 남쪽에 있는 대흥사大興寺라는 도량은 곧 이당李唐167)과 주량朱梁168) 때부터 전래된 곳이지만 문헌들이 이미 병화를 겪어 창건주를 확인할 수 없고,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께서 점지한 곳이지만 그 이름이 대부분 좀벌레가 우습게 여겨 갉아먹는 바람에 망실되었습니다. 그렇게 요사는 차례로 헐어 무너졌고, 법당만 아득한 세월을 겨우 버티면서 제비 새끼와 학 무리가 쉬어 가는 여관이 되고, 낙동강 상인과 영남의 장사꾼이 묵어가는 주막이 되었지요.
다행히 덕암德庵의 늙은이가 있었으니, 영산읍靈山邑 자손으로 선대 조상의 묘소가 줄지어 있고, 대흥사 승려로서 전대 스승의 의발이 그에게 맡겨졌습니다. 어느 날 도팽택陶彭澤이 요구해 혜원慧遠 노장이 호계虎溪에서 세 번 웃었던 갑자甲子가 돌아왔고, 때맞춰 백태부白太傅169)가 달려와 여만如滿 스님이 향산香山에서 한 차례 결사하던 기년紀年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현주縣主170)께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자 고금의 모든 이들이 빠짐없이 함께하였고, 법당을 옮겨 세우는 것 역시 예정된 운수에 우연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옛 터를 공허한 폐허로 그냥 둘 수 없어 새로운 암자로 장엄하고 싶은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 스님께서 선뜻 씩씩하게 나서신 것은 가슴속에서 뜻이 격렬하게 용솟음쳤기 때문이요, 절이 탈바꿈하여 편액을 걸게 된 것은 하늘의 시간을 따라 불도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애오라지 짧은 노래를 불러 손질한 마룻대를 던지는 일에 쓰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一穗天香襲貝宮     한 줄기 하늘의 향기 패궁貝宮171)에 스미는구나.
爛漫春光凝桂子     흐드러진 봄 풍경에 계수나무 꽃 엉기니
飄颻金色撼世雄     표표히 나부끼는 금빛이 세상 영웅 뒤흔드네.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洛江雲雨又村嵐     낙동강에는 구름과 비, 마을에는 아지랑이로다.
老龍險宅千尋下     늙은 용이 천 길 물속의 험난한 집에서
赤白光珠萬顆撢     붉고 하얀 빛나는 구슬을 만 개나 모았네.

010_0792_b_01L靈山大興寺大雄殿上梁文

010_0792_b_02L
述夫志士之就義捨生只爲志心所使
010_0792_b_03L勇者之執熱不濯惟恐勇力靡持周公
010_0792_b_04L之代身弗咈乎愛之理紀信之誑楚
010_0792_b_05L徒事於漢之存惟佛氏之道亦然始通
010_0792_b_06L中國以來及至羅麗相代尊崇上之
010_0792_b_07L王公下之士庶捐施先者頂臂後者
010_0792_b_08L金錢魏后之瑤光九級塔掘地經始
010_0792_b_09L梁武之同泰三捐身奉法加持靈山陽
010_0792_b_10L有大興寺道場即李唐朱梁相傳文獻
010_0792_b_11L已經兵火不徵剏主這元曉義湘所占
010_0792_b_12L名氏盖蠧葫蘆以失寮舍次第毁壞
010_0792_b_13L法堂汗漫枝梧燕子鷦羣蘧廬洛商嶺
010_0792_b_14L賈店幕倖値德庵叟靈山邑子先人
010_0792_b_15L丘壠成行大興寺僧前師衣鉢逌託
010_0792_b_16L日者陶彭澤之要遠老虎溪三笑甲回
010_0792_b_17L時乎白太傳之赴滿公香山一社紀再
010_0792_b_18L縣主之延攬古今克偕法宇之移成
010_0792_b_19L期數偶合莫以舊址空廢難忘新庵之
010_0792_b_20L嚴莊師之夬壯奮身志湧之激昻
010_0792_b_21L心肚寺之革鼎楊 [42] 佛道之反復天時
010_0792_b_22L聊唱短謌用拋脩棟其詞曰拋梁東
010_0792_b_23L一穗天香襲貝宮爛漫春光凝桂子
010_0792_b_24L颻金色撼世雄拋梁南洛江雲雨又村
010_0792_b_25L老龍險宅千尋下赤白光珠萬顆撢

010_0792_c_01L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七寶銀塘淨土題     칠보의 은빛 연못에 정토라고 쓰였구나.
同號同名十萬億     호칭도 같고 이름도 같은 십만 억 부처님.
蓮池九品華胎兒     구품의 연지에는 꽃 속에 잉태된 아이로다.172)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吾王活我民千億     우리 임금님 나를 살리니 백성이 천억이로다.
昊天上帝降臨之     높은 하늘의 상제께서 이 나라에 강림하시니.
無競太平仁壽域     다툼이 없는 태평세월 인수의 영역173)이로다.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宇宙人間同俯仰     우주와 인간세계를 함께 굽어보고 우러러보고
日用云爲善惡儀     평상시 말하고 행한 좋고 나쁜 행동에 대해
不加賛也不加讓     찬양을 더하지도 말고 겸손을 더하지도 말게.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一部金剛經卷寫     『금강경』 한 권을 사경해 두었다네.
白拂雲龕坐若尸     하얀 불자 들고 구름 속 감실에 시체처럼 앉아
懶拾香灰丁燭灺     향의 재나 슬금슬금 줍고 촛불 심지 돋우노라.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장엄하신 관음보살께서 오묘한 주문을 펼치시고, 미세한 먼지처럼 수많은 세계와 미세한 먼지처럼 수많은 바다를 상호로 갖추신 노사나부처님께서 그 몸을 화현하여, 사부대중이 환희하며 달려와 세 곳174)으로 회향하게 하소서.
경기도 광주 동쪽 칠성암 중창 상량문(京畿道廣州東七星庵重剏上梁文)
삼가 생각건대, 삼륜三輪175)에 평등하고 구요九曜176)와 나란한 분을 소재장위덕존消災障威德尊이라 하며, 만 가지 복을 성취하고 천 가지 마장을 물리치는 분은 바로 치성광熾盛光이란 명호를 가진 부처님이십니다. 위에 매달려 빙빙 도는 건상乾象177)을 우러러 관찰하고 떳떳한 양심인 인륜을 굽어 살피고자, 이에 보배로운 당堂을 새롭게 단장하니 신령한 터에 크고도 아름답군요.
돌아보면, 광주 관할 동남쪽 50리에 지척의 무릉도원이 있어 칠성암七星庵이라 부르며 안팎에 여섯 일곱 칸의 건물을 펼쳐 놓았으니, 옛날부터 지혜롭고 덕망 있던 고승들께서 지팡이와 신발을 쉬어 가던 곳이었고, 지금도 아름답고 의로운 판사께서 병들어 고단한 몸을 쉬고 있는 곳입니다.
슬프구나, 불도의 강령을 지키지 않는 것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다름이 없군요. 좋구나, 승려들 계율의 전대가 이미 터져 버린 것은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거의 같습니다. 폐단을 바꾸고 바로잡아 하루 만에 성취하였으니, 옛사람들이 수립했던 계획이 이제 회복되었습니다. 좀처럼 드문 일이 일어났다며 천 리에서 축하하였으니, 과거 왕조의 도량이 훤히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푸른 산, 초록 강의 움직임과 고요함은 그 근원이 하나이고,

010_0792_c_01L拋梁西七寶銀塘淨土題同號同名十
010_0792_c_02L萬億蓮池九品華胎兒拋梁北吾王
010_0792_c_03L活我民千億昊天上帝降臨之無競太
010_0792_c_04L平仁壽域拋梁上宇宙人間同俯仰
010_0792_c_05L日用云爲善惡儀不加賛也不加讓
010_0792_c_06L梁下一部金剛經卷寫白拂雲龕坐若
010_0792_c_07L懶拾香灰丁燭灺伏願上梁之後
010_0792_c_08L一千手一千眼莊嚴觀音菩薩妙呪
010_0792_c_09L塵刹微塵海相好盧舍那佛化身四部
010_0792_c_10L懽趍三處回向

010_0792_c_11L

010_0792_c_12L京畿道廣州東七星庵重剏上梁文

010_0792_c_13L
伏以平三輪等九曜曰消災障威德尊
010_0792_c_14L成萬福禳千魔是熾盛光名號佛仰觀
010_0792_c_15L乾象之懸斡俯察人倫之秉夷是庸重
010_0792_c_16L新寶堂輪奐靈址顧乃廣州治之東南
010_0792_c_17L五十里尺武七星庵之內外六七間開
010_0792_c_18L自古明德高僧居閒杖屨于今嘉
010_0792_c_19L義判事卒瘏形荕 [43] 䀌㢤佛道之綱領
010_0792_c_20L不提京鄕無異哿矣僧徒之戒橐已
010_0792_c_21L遠近盖同易廢來治一日成古人
010_0792_c_22L之䂓畫 [44] 需復幾無還有千里賀前朝
010_0792_c_23L之道場賁觀靑山綠水之動靜一源
010_0792_c_24L「蚤」疑「密」{編}

010_0793_a_01L붉은 노을, 푸른 넝쿨의 모였다 흩어짐은 끝이 없습니다. 봄에는 꽃, 가을에는 달님이 고요히 비추니 환상과 같고, 모래밭 갈매기 안개 속 오리는 한가하기만 하니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요? 강후康侯178)께서 은총을 입어 변방의 하늘에 먼지가 싹 가신 것입니다.
애오라지 짧은 노래를 불러 손질한 들보를 던지는 일에 쓰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一色琉璃世界中     한 빛깔의 유리 세계 그 한가운데
有佛如來藥師號     부처님 여래 계시니 그 이름이 약사.
無雙尊貴大雄公     누구보다 존귀하신 큰 영웅이시라네.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品物亨通一氣含     만물이 형통하고 한 기운을 머금어
千里封疆風化滿     천 리 강토에 덕화의 바람이 가득하니
君臣父子義親覃     군신과 부자 사이에 의리와 사랑 퍼지누나.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脩身治國又家齊     자신 닦고 나라 다스리고 집안을 바로잡으면
府廩囷倉方富實     창고와 곳간 바야흐로 풍부하고 넉넉해지리니
咸英韶濩喜栖栖     함영과 소호179) 연주하며 기뻐하느라 정신없겠지.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大明文物朝鮮國     대 명나라 문물을 본받은 조선이란 나라
堯風舜日世羲皇     요임금의 바람 순임금의 태양에 희황羲皇180)의 세상.
萬古鄗京王道德     만년 고도 서울 땅에는 임금님의 도와 덕이로다.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躍鳳蟠龍同俯仰     치솟은 봉황 서린 용이 함께 굽어보고 우러러보네.
峻宇飛甍縹眇間     높은 집 나는 용마루 까마득한 그 틈새에
祥雲瑞雨希夷狀     상서로운 구름과 비가 희이希夷181)의 형상이로다.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鞱光晦彩含章者     빛과 채색을 감추고 아름다움 간직한182) 자여.
君子行藏幾著微     군자의 나가고 물러남183)은 기미가 은미해라.
奉持六度名般若     육도六度184)를 받들어 지키니 그 이름 반야로다.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비추들이 구름처럼 지나가고, 단월들이 비처럼 보시하게 하소서. 위로 하늘과 아래로 대지까지 국왕의 크신 은혜를 우러러 받들고, 성실한 뜻과 정성스런 마음으로 신하된 승려들이 개미떼처럼 황공해하며, 낮에도 정진하고 밤에도 정진하면서 주재자이신 칠성七星을 우러러 예배하고, 하늘이 보호하고 귀신이 도우시며 어진 나라의 만백성을 편안하게 돌보소서.
통도사 전등전 초창 상량문通度寺傳燈殿草剏上梁文
삼가 생각건대, 태초에 생겨난 백성의 마음자리와 천성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하기에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것입니다. 그 옛날 서역 땅에서의 훌륭한 덕행을 면면히 계승한 자는 누구입니까? 교화를 펼치고 끝까지 완수한 자는 달마의 등불을 전한 분들입니다.
인연으로 생긴 법은 공하지만 하늘과 땅, 해와 달에다 만물이 무성하고, 은혜와 사랑의 길이 끊어졌지만 요임금·순임금·우임금·탕임금에다 수많은 관리가 있었으니, 지식과 이해가 빼어난 사리불舍利弗과 부루나富樓那도 멋대로 탄식하였고,

010_0793_a_01L霞碧荔之聚散無盡春花秋月之寂照
010_0793_a_02L如幻沙𩿨烟鶩之等閒何心康侯寵恩
010_0793_a_03L寒塵寥廓聊唱短律用拋脩梁其詞
010_0793_a_04L拋梁東一色琉璃世界中有佛如
010_0793_a_05L來藥師號無雙尊貴大雄公拋梁南
010_0793_a_06L品物亨通一氣含千里封疆風化滿
010_0793_a_07L臣父子義親覃拋梁西脩身治國又家
010_0793_a_08L府廩囷倉方富實咸英韶濩喜栖栖
010_0793_a_09L拋梁北大明文物朝鮮國堯風舜日世
010_0793_a_10L羲皇萬古鄗京王道德拋梁上躍鳳
010_0793_a_11L蟠龍同俯仰峻宇飛甍縹眇間祥雲瑞
010_0793_a_12L雨希夷狀拋梁下鞱光晦彩含章者
010_0793_a_13L君子行藏幾著微奉持六度名般若
010_0793_a_14L上梁之後芘蒭雲行檀越雨施
010_0793_a_15L天下地仰戴王國鴻恩誠志虔心
010_0793_a_16L恐臣僧蟻行晝精宵進瞻禮眞宰七星
010_0793_a_17L天保鬼佑安養仁邦萬姓

010_0793_a_18L

010_0793_a_19L通度寺傳燈殿草剏上梁文

010_0793_a_20L
伏惟厥初生民之心地性天寂然不動
010_0793_a_21L感而遂通則諸佛出世誰昔明德之西
010_0793_a_22L域中土緜然相承化而克終者達摩
010_0793_a_23L傳燈因緣法空天地日月蕃著恩愛
010_0793_a_24L路絕堯舜禹湯官家知解上舍利弗富

010_0793_b_01L문자에 치우친 창힐씨蒼頡氏와 태사공太史公은 그 집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살펴보면, 우리 통도사는 불법의 으뜸가는 사찰이요 한 시대의 가람입니다. 의지할 만한 것은 곧 보광전普光殿과 백운암白雲庵에서 염송하는 공로이고, 여한을 남기는 것은 고승당古僧堂과 적묵궁寂默宮에서 참선하며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구봉九鳳 사봉師封이라는 두타가 계셨으니, 힘을 모으리라 길이 맹세하고 초가라도 짓겠다며 마음먹었지요. 그러자 봄바람이 온갖 초목을 일으켜 세우듯이 원근의 단월들이 달려와 뜻을 따랐으며, 가을 달이 백 개의 시내에 비치듯이 이곳저곳의 선가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이에 절이 더욱 빛났으니 붕패朋貝185)가 배나 값이 나가서만은 아니었고, 터가 상서로워졌으니 황금이 솟아나는 거미줄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도량이 평안해 천신과 용이 모일 것이며, 사람들 분명 온화하게 어울려 하늘과 땅도 화평하게 따를 것입니다.
계오戒悟는 이곳에서 자라고 이곳에서 늙으면서 불법에 투신하고 승가에 의지해 옷과 음식을 주는 시주를 받들었고, 이곳에서 죽을 먹고 이곳에서 밥을 먹으면서 문장을 뒤지고 구절을 수집해 문자를 도둑질한 죄인입니다. 선을 맛봄에 있어서는 쭉정이 정도도 못 되고, 도가에 있어서는 그저 돌아가 기탁하게 되리란 걸 믿을 뿐입니다.
욕되게도 베풀어 주신 은혜에 미치고 싶지만 미흡하기만 하고, 졸렬한 솜씨로 낭간琅玕186)을 이리저리 엮어 보았지만 어찌 보답이 되겠습니까? 지금 줄줄이 늘어놓은 문자들은 중고中古에서 전래된 것이지 성인의 전적에서 내려온 게 아니고, 최상승의 말씀을 지난날 꿰뚫은 적이 없어 그저 나름대로 세속의 이치로 살핀 것이며, 칠불원에서 이미 사용하고 대웅전에도 대부분 등재된 것입니다. 엉겨 붙어 정체된 것은 구속되었기 때문이고, 기러기발이 고정된 것187) 역시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이에 애오라지 육위송을 불러 네 개의 들보를 던지는 일이나 돕나니,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拋梁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
滄海水之龍宮      저 푸른 바다의 용궁이여.
寶偈金文攸在      보배 게송에다 황금 문자가 있는 곳이니
也應靈氣無窮      신령한 기운 끝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拋梁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세.
陰陽家法以談      응양가의 법도로 얘기해 보자면
草山草之年綠      초산이면 풀이 해마다 푸르고
地丑無時不甘      지축이면 달콤하지 않은 때가 없다네.
拋梁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세.
鳳鳥高陽鷲栖      봉황이 취서산에 높이 날아올랐구나.
通度光如晈日      통도사의 광채가 태양의 볼기를 치고
景雲興禮漫兮      환한 구름처럼 흥성한 예의 넘쳐흐르네.
拋梁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세.
萬丈峰高環極      만 길의 높은 봉우리 북극성을 감쌌구나.
聖化如雲如雨      성군의 교화 구름과 같고 비와 같아서
吾民稽首祝國      우리 백성 머리 숙여 나라 위해 축원하네.
拋梁上         들보를 위쪽으로 던지세.
寥廓天文俯仰      텅 빈 우주의 천문을 굽어보고 우러러보게.

010_0793_b_01L樓那恣嗟文字邊蒼頡氏太史公退舍
010_0793_b_02L顧我通度寺佛法宗刹一代伽藍
010_0793_b_03L賴則普光殿白雲庵之念誦工勞遺恨
010_0793_b_04L古僧堂寂默宮之叅禪捿止曰有九
010_0793_b_05L師封頭陀永矢募力結茅爲心
010_0793_b_06L近檀越之赴從如春風之起萬卉彼此
010_0793_b_07L禪家之懽樂似秋月之印百川寺之爲
010_0793_b_08L不翅朋貝之倍價基之作瑞何堪
010_0793_b_09L湧金之結綱道場安平龍神之安集
010_0793_b_10L人心和應天地之和隨戒悟長於斯
010_0793_b_11L老於斯投佛倚僧欹施主以衣食
010_0793_b_12L於是饘於是尋章摘句偸文字之罪
010_0793_b_13L於禪味不止䊌 [45] 於道家惟恃歸寄
010_0793_b_14L辱賜惠及之未達拙搆 [46] 琅玕之何酬
010_0793_b_15L等文字中古所傳不垂聖籍上乘言
010_0793_b_16L前日無貫徒窃世觀七佛院已用
010_0793_b_17L大雄殿例登凝滯所拘膠柱亦失
010_0793_b_18L唱六衛助拋四樑其詞曰拋梁東
010_0793_b_19L海水之龍宮寶偈金文攸在也應靈氣
010_0793_b_20L無窮拋梁南陰陽家法以談草山草
010_0793_b_21L之年綠地丑無時不甘拋梁西鳳鳥
010_0793_b_22L高陽 [47] 鷲栖通度光如晈日景雲興禮漫
010_0793_b_23L拋梁北萬丈峰高環極聖化如雲
010_0793_b_24L如雨吾民稽首祝國拋梁上寥廓天

010_0793_c_01L此心无妄則淸      이 마음에 거짓 없으면 곧 청정한 세계이니
哿以誠心長▼(辶*(山/王))      진실한 마음으로 길이 추구하는 게 좋다네.
拋梁下         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지세.
天心地目可怕      하늘의 마음 땅의 눈을 두려워해야 옳으리.
一毫取與不情      터럭 하나 취하고 주는 것도 사사로우면 안 되니
吾過人間莫貰      나의 잘못은 인간세계에서도 용서하지 않는다네.

삼가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는 초제招提의 황금 사발과 단구丹丘188)의 옥 촛대가 동토를 에워싸 1만 8천 리 강토가 편안케 하시고, 옛터를 다시 다듬어 기린·봉황·거북·용이 찾아와 춤추게 하소서.
석남사 견역 유공비명【병서】(石南寺蠲役有功碑銘【并序】)
임금189)께서 조정에 임하신 지 12년에 삼강三綱190)을 떨치고, 오륜五倫191)을 굳게 지키고, 육행六行192)을 이끌면서 수신脩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도를 부리시니 손바닥 안에서 저울과 자를 맘대로 놀리는 것 같았고, 주 성왕周成王·한 문제漢文帝·당 태종唐太宗·송 태조宋太祖의 정치를 불꽃처럼 펼치시니 치세는 다르지만 그 도는 같았습니다. 이에 우리 황제께서 옛 왕업을 천명하신다며 다들 입을 모았고, 우리 조종께서 남기신 덕이라며 시끌벅적합니다. 이런 시절이라 경기와 수도는 물론이고 외진 군읍의 향당 선비와 서민들조차도 퍼지는 풍문을 듣고 넘치는 영광을 바라본 자들은 모두들 기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태평세월 만세, 태평세월 만세.”
언산彦山 남쪽 읍193)의 현후縣侯이신 김헌조金憲祖께서는 병오년(1846) 윤달에 수레에서 내려 부임하셨습니다. 그는 사랑과 용서를 몸소 실천하고 공평과 정직으로 백성을 다스리면서 홀아비와 과부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 은혜를 숲속까지 미쳤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큰 정치를 펼친 어진 성군께서는 형벌과 덕행을 함께 유포하셨으니, 조정에서는 존중하고 모든 관아에서는 엄격하며 만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하였습니다. 옛 노인은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가 직언을 한다.”194) 하였고, 가의 태부賈誼太傅는 “보좌하는 자를 얻으면 풍화가 아래까지 미친다.”195) 하였으니, 진실하구나, 그 말씀이여.
외로운 이 절은 신라 시대에 세워진 옛 건물로서 오랜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도 떠나가 옛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양쪽 암자가 마주 보고 서 있지만, 아침에도 서로 상의하지 못하고 저녁에도 뜻을 같이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에 관아의 주인께서 청렴한 아전을 파견해 사찰의 부역 21조를 정리해 오도록 명하셨고, 아울러 노승 두세 명을 불러 영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고질적 병통이었던 획급劃給196)을 영원히 없앴고, 그 나머지 역참驛站에서 사용하는 집기와 물품도 점검하여 삭제하였으니, 혹은 공급할 양의 절반을 감하기도 하고

010_0793_c_01L文俯仰此心无妄則淸哿以誠心長𨓏
010_0793_c_02L拋梁下天心地目可怕一毫取與不情
010_0793_c_03L吾過人間莫貰伏願上梁之後招提金
010_0793_c_04L丹丘玉燭環東土萬八千里安晏
010_0793_c_05L墍上墟獜鳳龜龍來儀

010_0793_c_06L

010_0793_c_07L石南寺蠲役有功碑銘并序

010_0793_c_08L
上之當宁一十有二年振三綱攝五倫
010_0793_c_09L率六行使脩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
010_0793_c_10L運掌權度燒然周成漢文唐宗宋祖之
010_0793_c_11L異世同道噲噲我皇明舊業囂囂
010_0793_c_12L我祖宗遺德於是時也畿甸都鄙郡
010_0793_c_13L鄕黨士庶聞下風而望餘光者
010_0793_c_14L忻忻然曰太平萬歲太平萬歲夫彦
010_0793_c_15L山南斗邑也縣侯金氏諱憲祖維丙午
010_0793_c_16L閏月下車涖知行己以仁恕治民以
010_0793_c_17L公直務哀鰥寡恩浹林泉伏惟大行
010_0793_c_18L仁聖刑德並流朝廷尊百司嚴萬民
010_0793_c_19L古老曰主明臣直賈傳曰得佐下
010_0793_c_20L信矣言繄孤刹羅代舊物年久人
010_0793_c_21L全匪古覩兩庵對立朝不謀夕不
010_0793_c_22L官主命遣淸吏來抄寺役二十一條
010_0793_c_23L並招老僧二三名使待令其中㝡痼者
010_0793_c_24L劃給永罷其他站用什物點削或截半

010_0794_a_01L혹은 3분의 1을 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목록을 작성해 발표하고 그날부터 그대로만 요구하게 하였습니다.
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감격해 슬픔이 북받쳐 울음을 삼켰으며, 감히 하직 인사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희희낙락하면서 저도 모르게 팔이 들려 덩실덩실 춤을 추고 발이 들려 펄쩍펄쩍 뛰는 것이 뜰이나 길거리의 광인이나 취객 같았습니다. 저 파란 것이 하늘이라 아득하기만 하지만, 또 멀지 않은 것이 하늘이니 지척이로다.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부모님이 여전히 살아 계셨네.
송하노라.

二南風化        이남二南197)에 풍화 펼치신 분
古今惟一        고금에 오직 한 분이시라.
詠之歌之        그를 읊고 그를 노래하니
勿剪勿伐        자르지 말고 없애지 마소.
太守之淸        우리 태수님 청렴하시어
珠還乳出        구슬에서 우유가 샘솟았네.
何暮之謠        왜 이리 늦었냐는 노래에다198)
兩歧之實        한 줄기에 두 가닥 이삭이로다.199)
豈徒前稱        어찌 옛날에만 칭송했으랴.
目今可說        지금 눈으로 보고 노래하니
明府來彦        현명하신 부사 언양으로 와
仁政之設        어진 정사를 크게 베푸셨네.
民人解憂        언양의 백성들 근심을 풀고
寺僧見佛        절집 승려들 부처님 보았네.
凡我緇流        저희 검은 옷 입은 자들이
感斯文曰        사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인 희겸에게(示門人喜謙)
석면石眠【가산의 일명】이 노년에 접어들어서는 통 글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문중의 여러 현사나 특별히 교류했던 분들이 “계오의 마음 씀씀이를 아느냐?”라고 묻거든, 대답하지 말거라. 그리고 그 사이 어쩔 수 없어서 대답이라고 했던 것이 두세 가지 있고, 잡서雜著 역시 마찬가지이고, 수창酬唱 또한 그렇다. 지금 뭉크러진 낡은 종이에 남아 있지만 직접 쓴 사람이 아니면 엇비슷하게나마 정자로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니, 물이나 불에 던져 버렸어야 옳았다. 하지만 산의 소인배들이 보고는 차마 버리질 못했더구나.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남들에게 비웃음과 꾸지람은 당하지 않을 성싶다. 왜냐하면 이는 뒷사람이 힘써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차 나를 후손에게 계책을 남긴 자200)로 만들고 싶거든 자네의 언어로 수결하고, 직접 손에 잡고서 눈으로 살펴봐 주게. 그리고 아울러 훗날 법도에 따라 바로잡는 자가 되어 주게.
아, 적멸하지만 적멸하지 않는 그 가운데 다시 한 조각 허실虛實이 있구나. 그렇지 않은가, 겸謙아.

010_0794_a_01L減給或三分一減給成節目出來使
010_0794_a_02L爲日後實責年老者感極哀生飮
010_0794_a_03L不敢拜辭年少者喜喜樂樂不覺
010_0794_a_04L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若狂醉於
010_0794_a_05L庭衢彼蒼者天邈矣不遠者天尺地
010_0794_a_06L生我父母死矣惠我父母在矣頌曰
010_0794_a_07L二南風化古今惟一詠之歌之勿剪
010_0794_a_08L勿伐太守之淸珠還乳出何暮之謠
010_0794_a_09L兩歧之實豈徒前稱目今可說明府
010_0794_a_10L來彦仁政之設民人解憂寺僧見佛
010_0794_a_11L凡我緇流感斯文曰

010_0794_a_12L

010_0794_a_13L示門人喜謙

010_0794_a_14L
石眠伽山
一名
仄景廢閒鉛槧而有問以後
010_0794_a_15L門中諸賢及別交知某心量處闕答
010_0794_a_16L其間可報許不可不者二三處雜著亦
010_0794_a_17L如是酬唱又如是方在爛紙中非本
010_0794_a_18L不能彷彿楷正投諸水火可也
010_0794_a_19L小山輩見而不忍舍去而窃觀其籌思
010_0794_a_20L不被他笑罵是務而將欲使余貽厥
010_0794_a_21L師之言語手訣目寓手撫而兼後日
010_0794_a_22L繩墨者然寂滅不寂滅中更有一
010_0794_a_23L段虗實也否乎
  1. 1)신흥사新興寺 : 현재 울산시 강동면 대안리에 소재한 사찰. 653년(신라 선덕여왕 4) 명랑明朗 법사가 창건하였다.
  2. 2)삼사三舍 : 우수한 학자들을 뜻한다. 송宋나라 때 태학太學에 상사上舍, 내사內舍, 외사外舍의 삼사三舍가 있었다.
  3. 3)화쟁 국사 원효元曉 : 원효와 의상이 동방의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비석이나 시호가 없어 그 덕이 크게 드러나지 않음을 애석하게 여겨, 고려 숙종이 1101년 8월에 원효 대사에게는 대성 화쟁 국사大聖和諍國師, 의상 스님에게는 원교 국사圓敎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를 세우게 하였다.
  4. 4)김생金生(711~?) : 통일신라 시대 서예가. 『三國史記』 권48 「金生傳」에 의하면,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80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여 예서·행서·초서가 모두 입신入神의 경지였다. 고려 숙종 때 송나라에 사신으로 간 홍관洪灌이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에게 김생의 행서와 초서 한 폭을 내보이자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라며 놀라워하였다.”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작품은 없어졌으나 그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필적으로 현재 경복궁에 있는 「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가 있다.
  5. 5)홍유후 설 선생弘儒侯薛先生 : 설총薛聰(655~?)을 지칭한다. 신라 10현新羅十賢의 한 사람으로 자는 총지聰智이고, 원효 대사元曉大師와 요석 공주瑤石公主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구경九經을 우리말(方言)로 읽어 학생들에게 강론하여 유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중국 문자에 토를 다는 방법을 만들었다. 고려 헌종 13년(1022) 홍유후弘儒侯에 추봉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6. 6)문창공 최 선생文昌公崔先生 : 최치원崔致遠(857∼?)을 지칭한다.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당나라에 유학하여 874년 18세의 나이로 예부시랑禮部侍郎 배찬裵瓚이 주관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879년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키자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인 고변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서기의 책임을 맡았다. 고려 헌종 11년(1020) 문창후文昌候에 추시追諡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7. 7)이익재李益齋 : 이제현李齊賢(1287∼1367). 고려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 어려서부터 남달리 성숙했고 문장에 비범하였다. 정치가로서 공민왕의 반원 운동에 협력하였고, 뛰어난 유학자로서 성리학의 수용과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8. 8)최예산崔猊山 : 최해崔瀣(1287∼1340). 고려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언명보彦明父 또는 수옹壽翁, 호는 졸옹拙翁·예산猊山·농은農隱, 시호는 문정文正.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춘추검열藝文春秋檢閱이 되었다. 원나라의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하고, 1321년 요양로개주판관遼陽路蓋州判官이 되었으나 5개월 만에 병을 핑계로 귀국하였다. 말년에 사자갑사獅子岬寺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저술에 힘썼다. 평생 시주詩酒로 벗을 삼으며, 이제현李齊賢·민사평閔思平과 가까이 사귀었다. 성품이 강직하여 출세에 파란이 많았다.
  9. 9)이제정李霽亭 : 이달충李達衷(1309∼1384). 고려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권仲權, 호는 제정霽亭, 시호는 문정文靖. 1326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리판서典理判書·감찰대부監察大夫·호부상서·밀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공석에서 신돈의 비리를 직언하여 파면되었다가 신돈이 죽은 후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10. 10)김초옥金艸屋 : 김진양金震陽(?~1392). 고려 후기 문신으로 경주慶州 사람이며, 자는 자정子靜, 호는 초려草廬 또는 초옥자草屋子. 성품이 강개하고 출중하였으며,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서해도안렴사西海道按廉使·좌우사의左右司議 등을 역임하였다. 정몽주鄭夢周의 지시를 받아 이성계의 일파인 조준과 정도전 등을 탄핵하여 살해하고, 이성계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정몽주의 피살로 실패하였다. 국문을 받아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11. 11)역易이란 고요하여~통하는 것이다 : 『周易』 「繫辭傳 上」에 “역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일단 느끼게 되면 마침내 천하의 일을 통하게 된다. 천하의 지극히 신령스러운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가 있겠는가?(易。 无思也。 无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라고 하였다.
  12. 12)옛날에 배~확인했던 것처럼 : 월주越州의 사문 담언曇彥이 허순許詢, 즉 허현도許玄度와 함께 두 개의 대탑을 조성하였는데, 도중에 허순이 죽어 공사가 중단되었다. 30년 뒤 악양왕岳陽王이 월주에 부임해 그 절을 방문하자 담언이 산문 밖까지 나가 기다리다가 “허현도가 왔구나.” 하며 반겼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선정에 들어 그의 전생을 깨닫게 하였다. 악양왕은 전생에 자신이 허현도였음을 깨닫고 두 개의 탑을 완공하였다. 그 무렵 또 용흥사龍興寺의 대전大殿이 붕괴되자 대중이 담언 스님에게 중수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담언 스님이 “빈도가 가진 인연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300년 후에 비의非衣 공덕주가 찾아와 이 대전을 다시 세우고 크게 불사를 일으킬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중이 이 말씀을 돌에 새겨 기록하였는데, 과연 약속한 시기에 배휴裴休가 월주 태수로 부임하여 용흥사 대전을 중수하였다. 『景德傳燈錄』 권12(T51, 293a).
  13. 13)일어나더라도 중심을~있게 된다(發得中節也) : 『中庸章句』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발동하기 이전 상태를 중이라고 하고, 발동했지만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한다.(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라고 하였다.
  14. 14)석사자의 영골사리(釋獅子靈骨舍利) : 석가모니부처님의 유골을 뜻한다. ‘석사자釋獅子’는 석가모니를 백수의 왕인 사자에 비유한 표현이다. ‘영골靈骨’과 ‘사리舍利’는 Śarīra의 의역과 음역을 병칭한 것으로 뜻은 동일하다. 초기에는 주검을 사리라 하였으나, 후세에는 화장한 뒤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유골을 사리라 하였다.
  15. 15)계파 능桂坡能 대사 : 조선 중기 승려로 법명은 성능性能, 호는 계파桂坡이다. 숙종의 도움으로 화엄사 장육전丈六殿, 즉 각황전覺皇殿을 중건하고, 팔도도총섭八道都總攝이 되어 북한산성을 축성하였다. 이후 화엄사에서 『華嚴經』 판각 불사를 완수하고, 다시 통도사로 옮겨 금강계단을 증축하였다.
  16. 16)채 상국蔡相國의 비 : 1706년 양산 통도사에 세워진 ‘석가여래 영골사리 부도비’를 말한다. 채 상국은 채팽윤蔡彭胤(1669~1731)을 지칭한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 도승지 이진휴李震休가 썼으며, 뒷면에는 성능 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 대사普允大師가 쓴 석가모니의 행적과 각지의 시주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채팽윤蔡彭胤의 자는 중기仲耆, 호는 희암希菴 또는 은와恩窩이다. 그의 문집인 『希菴集』 제24권에도 그가 쓴 「梁山通度寺釋迦浮圖碑」가 수록되어 있다.
  17. 17)유소씨有巢氏 : 상고 시대에 집 짓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친 자이다.
  18. 18)하물며 두공의~마름 문양이랴(山節藻梲) : ‘절節’은 기둥 위의 지붕을 받치는 두공枓栱이고, ‘절梲’은 들보 위의 동자기둥이다. 곧 ‘산절山節’은 두공에 산 모양을 새겨 넣는 것이고, ‘조절藻梲’은 동자기둥에 마름 모양을 그려 넣는 것이다. 이는 화려한 장식을 뜻한다. 『論語』 「公冶長」에 “장문중이 큰 거북의 등껍질을 보관하되, 그 방의 두공斗栱에 산 모양을 새기고 동자기둥에 수초水草 무늬를 그려 넣어 화려하게 꾸몄으니, 어찌 그를 지혜롭다 하겠는가?(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라는 공자의 비평이 나온다.
  19. 19)창힐蒼頡 :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으로 새의 발자국을 보고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20. 20)부절 : 돌,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들어 신표로 삼는 물건.
  21. 21)태사씨太史氏 : 사관史官을 말한다.
  22. 22)성주星州 쌍계사雙溪寺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영산佛靈山 자락에 있던 절이다. 현재 증산면사무소 자리가 옛 절터이다.
  23. 23)소양 무제蕭梁武帝가 칭했던 마귀 : 양나라 무제의 성이 소蕭씨이다. 양 무제가 보통普通 8년(527)에 9층의 부도가 있는 동태사同泰寺를 건립했는데, 중대동中大同 원년(546)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러자 양 무제가 “이것은 마귀의 소행이다.” 하고는, 조칙을 내려 “도가 높아지면 마귀도 성하고 선을 실천하면 장애가 생기는 법이다.” 하며 다시 12층의 부도를 세웠다. 『佛祖統紀』 권37(T49, 350b).
  24. 24)장씨 문잠張氏文潜 : 송宋나라 회음淮陰 사람인 장뇌張耒를 지칭한다. 문잠文潛은 그의 자. 그가 복약服藥에 빗대어 치국수신治國修身의 요법要法을 밝힌 「藥戒」가 『古文眞寶後集』에 실려 있다.
  25. 25)포봉공苞峰公 : 회암 정혜晦庵定慧의 5세손으로 법명은 일오日午이며, 화운 관진華雲觀眞의 스승이다.
  26. 26)갱장羹墻의 그리움 : 죽은 이에 대한 흠모의 정을 뜻한다. 요임금이 죽자 순임금이 그를 그리워한 나머지 앉아 있을 때는 요임금의 모습이 담장(墻)에 어른거리고 음식을 먹을 때는 국그릇(羹)에 어른거렸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권63 「李固列傳」.
  27. 27)칠불선원七佛禪院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지리산 반야봉에 있는 절로서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칠불암七佛庵, 칠불선원七佛禪院 또는 칠불사七佛寺라고도 한다.
  28. 28)상교像敎 : 상법 시대像法時代의 교敎란 뜻. 불보살의 형상과 사찰을 건립하는 등 외형에 치중하여 불법이 펼쳐지는 시대를 말한다. 석가모니부처님 입멸 후의 시대를 정법·상법·말법으로 구분한다.
  29. 29)잠시 나무꾼의~보고 나서(蹔倩蒭蕘已) :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신중에 신중을 더한다는 뜻이다. ‘추요蒭蕘’는 꼴꾼과 나무꾼, 즉 천한 사람을 뜻한다. 『詩經』 「大雅」 ≺板≻에 “옛날 분들 말씀에 ‘추요에게도 물어보라’ 하였다.(先民有言。 詢于蒭蕘。)”라고 하였다.
  30. 30)대우씨大禹氏 : 우禹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황하의 홍수를 다스리고 토지를 넓혔다. 이후 그 공덕을 인정받아 순임금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31. 31)낙수에서 글이 나와(洛出書) : 하夏 우왕禹王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이의 등에 1에서 9까지 나열된 반점이 있었는데, 우왕이 이를 보고 『書經』의 「洪範九疇」를 지었다고 한다.
  32. 32)희주姬周 : 주周나라의 별칭. 주나라 국왕의 성姓이 희씨姬氏였다.
  33. 33)단彖 : 『周易』의 괘卦를 풀이한 괘사卦辭를 말한다. 문왕文王이 지었다고 한다.
  34. 34)상象 : 『周易』의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풀이한 것으로 주공周公이 지었다고 한다.
  35. 35)서序 : 서괘序卦를 말한다.
  36. 36)전傳 : 『周易』에 대한 공자孔子의 주석을 뜻한다. 흔히 십익十翼이라 칭하며 「上彖傳」, 「下彖傳」, 「上象傳」, 「下象傳」, 「繫辭傳 上」, 「繫辭傳 下」, 「文言傳」, 「序卦傳」, 「說卦傳」, 「雜卦傳」을 말한다.
  37. 37)그는 죽은~탑에 봉안되었으니 : 하동 쌍계사에 다음과 같은 창건 설화가 전한다. 쌍계사는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는데, 삼법이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 “육조 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라는 꿈을 꾸고, 육조의 머리를 훔쳐 귀국하였다. 그는 한라산·금강산 등지를 두루 다녔지만 눈이 있고 꽃이 피는 땅을 찾지 못하다가, 지리산에 와서 호랑이의 안내로 지금의 쌍계사 금당金堂 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곳이 꿈에 지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38. 38)응천부凝川府 도호사都護使~되던 해 : 1812년을 말한다. ‘응천凝川’은 밀양密陽의 옛 이름이고, 홍 공洪公은 홍이간洪履簡이다. 그는 순조 10년(1810)에 밀양부사로 부임하였다.
  39. 39)양나라 황제는~부도를 만들고 : 양나라 황제는 무제武帝를 지칭한다. 그는 보통普通 2년(521)부터 대통大通 원년(527)까지 7년의 대역사를 시행해 동태사同泰寺라는 거대한 사찰을 건설하고, 그곳에 9층의 부도를 세웠다. 『佛祖統紀』 권37(T49, 350b).
  40. 40)위후魏后는 영녕사永寧寺에~승방을 건립했다 : 위후魏后는 북위北魏 효장 태후孝莊太后 호씨胡氏를 지창한다. 그녀가 북위 효명제孝明帝 희평熙平 원년(516)에 낙양洛陽에 영녕사永寧寺를 건립했는데, 그 불전佛殿이 왕궁인 태극전太極殿과 같았고, 법당에 순금으로 만든 1장 6척의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또한 9층의 불탑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90장이었고, 꼭대기의 찰간만 10장이었다. 고요한 밤이면 요령과 목탁 소리가 10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佛祖統紀』 권38(T49, 355c).
  41. 41)적마赤馬 유화流火 : ‘적마赤馬’는 병오년丙午年을 뜻한다. 십간十干의 병정丙丁은 오행五行으로 화火에 해당하고, 화火는 색깔로는 적赤, 방위로는 남南이다. 오午는 말(馬)을 뜻한다. ‘유화流火’는 7월을 뜻한다. 『詩經』에 “칠월유화七月流火”란 구절이 있는데, 하늘에 있는 대화심성大火心星이 7월이 되면 아래로 흐르므로 7월을 유화流火라 한다. 병오년은 1786년이다.
  42. 42)흑원黑猿 : 임신년(1812)을 뜻한다. 십간의 임계壬癸는 오행으로 수水에 해당하고, 수는 색깔로 흑黑에 해당한다. 신申은 원숭이(猿)이다.
  43. 43)홍이간洪履簡(1753∼1827) :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원례元禮, 호는 남헌南軒이며, 훗날 월하 대사와 교류한 홍직필洪直弼의 부친이다. 1777년(정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789년 음사蔭仕로서 휘릉참봉徽陵參奉에 임명되었다. 이후 의금부도사·형조좌랑·임실현감·대구부판관·공조좌랑·안성군수·전주부판관·밀양부사·경주부윤 등을 역임하고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청렴 강직하여 성예聲譽를 구하지 않았고, 외직에 있을 때는 이속들을 엄중히 단속하여 민폐를 끼치지 못하게 하였다. 저서로 『南軒稿』가 있다.
  44. 44)염계濂溪와 낙양洛陽의 여러 철인들 : 송나라 때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을 뜻한다.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 염계濂溪에서 성리학을 창도한 주돈이周惇頤의 염계학파가 일어났고, 그의 문하門下에서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가 배출되었는데 이들은 낙양洛陽 출신이었다.
  45. 45)축융祝融의 사신에게 물어보라 : 축융祝融은 화덕火德 즉 불을 관장하는 신神이다. 화재로 기록들이 소실되어 자세히 고증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46. 46)상서庠序 : 주周나라에서는 학교를 상庠이라 하고, 은殷나라에서는 서序라 하였다.
  47. 47)밀주密州 표충사表忠祠 : 현재 자리로 이건하기 전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웅동熊洞에 있던 표충사를 말한다.
  48. 48)도광道光 17년 : 원문은 ‘道光十六’이나 ‘道光十七’이라야 옳다. 도광 16년은 병신丙申이고, 도광 17년이 정유丁酉이다.
  49. 49)헌체獻替 : 시행해야 할 것을 건의하고 시행해선 안 될 것을 폐지시킨다는 ‘헌가체부獻可替否’의 준말이다. 곧 이전의 표충사를 폐하고 새로운 곳에 건립하자고 건의하는 것을 말한다.
  50. 50)영취산 : 양산 영취산이 아니라 밀양 영취산을 지칭한다.
  51. 51)화살을 쏘아 박살내고(矢破) : 단발의 화살로 과녁을 적중시키듯 시기를 놓치지 말고 힘을 집중해 일을 단번에 결행하라는 뜻이다.
  52. 52)월파月波 : 사명 대사의 8세손으로 법명은 천유天有.
  53. 53)「원주학기袁州學記」 : 송나라 이구李覯가 지은 글이다. 『古文眞寶後集』에 실려 있다. 인종 32년(1053)에 원주 지사袁州知事 조무택祖無擇과 통판通判 진신陣侁이 협소한 곳에 자리한 공자묘를 이건하여 개축하고 학교를 세워 널리 학문을 권장한 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54. 54)범양范陽 조씨祖氏 : 조무택祖無擇을 지칭한다. 송나라 때 원주 지사로 있으면서 공자묘를 이전하고 학교를 개설하였다.
  55. 55)영천頴川 진씨陳氏 : 통판通判으로서 조무택을 도왔던 진신陣侁을 지칭한다.
  56. 56)우강盱江 이씨李氏 : 이구李覯를 말한다. 송나라 남성南城 사람으로 자는 태백泰伯이다. 언변과 문장에 뛰어났으며 학자들이 우강 선생盱江先生이라 칭하였다. 저서에 『平禮論』·『退居類稿』 등이 있다.
  57. 57)이윤伊尹 : 은殷나라 탕왕湯王을 보필한 현상賢相.
  58. 58)여상呂尙 : 주周나라 문왕을 보필한 현상, 즉 강태공姜太公.
  59. 59)주공周公 : 주 문왕의 아들로 이름은 단旦. 조카 성왕成王을 도와 훌륭한 정치를 구현하였다.
  60. 60)소공召公 : 주 문왕의 아들로 이름은 석奭. 주공과 함께 성왕의 치세를 도왔다.
  61. 61)중니仲尼 : 공자의 자.
  62. 62)맹가孟軻 : 맹자. 가軻는 맹자의 이름.
  63. 63)공명고公明高 : 증자曾子의 제자이다. 『孟子』 「萬章 上」에 등장한다.
  64. 64)굴자屈子의 「이소離騷」 : 굴자는 전국시대 초楚의 굴원屈原을 지칭한다. 「離騷」는 양왕襄王 때 굴원이 모함으로 조정에서 쫓겨나 지은 작품이다. 임금이 간신의 유혹에 빠져 충신 군자를 몰라보는 것에 대한 원망과 아울러 임금이 잘못을 깨닫고 정도正道로 돌아와 자기를 다시 불러 주기를 바라는 뜻을 서술하였다.
  65. 65)태사씨太史氏의 『한서漢書』 : 태사씨는 사관史官을 뜻한다. 『漢書』는 후한의 문장가 반고班固가 엮은 전한의 역사서이다. 흔히 『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을 ‘태사공太史公’이라 칭하고 그 문장 역시 천하 명문으로 손꼽히는 점으로 볼 때, ‘사기’를 ‘한서’로 오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66. 66)한 문공韓文公의 「원도原道」 : 한 문공은 한유韓愈(768~824)를 지칭한다. 한유는 호가 창려昌黎, 자가 퇴지退之이고, 문공은 시호이다. 「原道」는 유도儒道의 인의도덕仁義道德을 강조하고, 도가道家와 불가佛家를 이단으로 배척한 글이다.
  67. 67)이백·두보·유종원(李白杜柳) : ‘두杜’는 두보, ‘유柳’는 유종원을 지칭한다. 모두 당송팔대가로 손꼽히는 문장가들이다.
  68. 68)비연秘演 : 송나라 때 시승詩僧. 그의 시집에 구양수歐陽脩가 「釋秘演詩集序」를 썼다.
  69. 69)문창文暢 : 당나라 때 시승. 한유韓愈가 그와 교유하였다. 한유가 그를 전송하며 「送浮屠文暢師序」를 써 주었다.
  70. 70)한창려韓昌黎나 구양자歐陽子 :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를 지칭한다. 창려는 한유의 호이다.
  71. 71)천신薦紳 : 진신縉紳과 같은 말로 높은 벼슬아치나 지체 높은 유자를 뜻한다.
  72. 72)윤사국尹師國(1728~1809) :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빈경賓卿, 호는 직암直庵이며, 대사성·강원도감찰사·형조판서·한성판윤·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서예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조정의 금보金寶·옥책玉冊과 당시 사찰·누관樓觀의 편액扁額을 많이 썼다.
  73. 73)두 사씨謝氏의 풍류 : 두 사씨는 남조 송宋나라의 사영운謝靈運과 제齊나라의 사조謝脁를 가리킨다. 두 사람 다 뛰어난 시인에다 산수 유람을 유독 즐겼다.
  74. 74)오월의 왕 전씨錢氏 : 송나라에 귀순한 오월 국왕吳越國王 전유錢鏐를 지칭한다. 그를 기리는 비가 집안의 사당 앞에 있는데, 소식蘇軾이 지은 것이다.
  75. 75)장 익주공張益州公 : 송나라 때 익주益州의 장관을 지낸 장방평張方平을 지칭한다. 낭야산瑯瑘山을 유람하다가 우연히 『楞伽經』을 보고 깨달아 불교에 귀의하였다. 소순蘇詢이 「張益州畵像記」를 지었다.
  76. 76)최제안崔齊顔(?∼1046) :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태사 문하시중太師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1040년 최제안崔齊顔이 경주의 폐사 수리사水利寺를 중창하고 천룡사로 개명하였다.
  77. 77)매월당 영당梅月堂影堂 : 매월당 김시습의 진영을 모신 사당으로 1670년(현종 11)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에 건립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78. 78)노 고성盧高城 : 안창현安昌縣 현관縣官이었던 노준盧偆, 또는 노춘盧椿을 지칭한다. 안창현은 고성의 옛 이름이다. 신라 때 노준이 53불을 모시고 금강산에 유점사를 창건하였다. 후대에 그의 공적을 기려 그의 화상을 모신 사당을 유점사 경내에 건립하였다.
  79. 79)노천老泉의 기록 : 소순蘇洵이 쓴 「張益州畵像記」를 말한다. 노천은 소순의 호이다. 소순의 자는 명윤明允이고, 호는 노천이며, 아들인 식軾·철轍과 함께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이다.
  80. 80)미산眉山의 비 : 미산眉山은 송나라 문장가인 소식과 소철 형제를 지칭한다. 그들의 고향이 사천의 미산이다. 여기서는 소식을 가리키고, 미산의 비는 곧 「表忠觀碑」를 뜻한다.
  81. 81)소보巢父와 허유許由 : 요임금이 허유를 불러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고 하자 허유가 이를 뿌리치고 기산箕山 아래에 숨어 버렸다. 그리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영수潁水에서 귀를 씻는데, 소보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왔다가 허유를 보고 귀를 씻는 까닭을 물었다. 허유가 그 까닭을 밝히자, 소보가 소의 입을 더럽히겠다며 상류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한다.
  82. 82)기양箕陽 : 기산 남쪽 기슭이란 뜻이다.
  83. 83)이윤伊尹 : 상商나라의 현상賢相 이윤은 처음에 유신국有莘國의 들판에 은거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러다 탕왕이 세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내 초빙한 후에야 조정에 나아가 탕왕을 보필하였다. 『孟子』 「萬章 上」.
  84. 84)백이伯夷 : 상나라 때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이다. 주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항거의 뜻으로 아우 숙제叔齊와 수양산首陽山에 은거하여 고사리만 캐먹다가 굶어죽었다고 한다.
  85. 85)도원桃源에서 살던 자들 : ‘도원’은 곧 무릉도원을 말한다. 도잠陶潛의 ≺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복사꽃이 떠내려 오는 시내를 따라 한없이 올라갔다가 선경仙境을 만났는데, 그곳에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피신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86. 86)엄광嚴光 : 자字는 자릉子陵. 그는 광무제光武帝와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광무제가 후한을 세우고 황제가 되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제수하면서 그를 불렀다. 하지만 이를 사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해 동강에서 낚시질하면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後漢書』 권83 「逸民列傳」.
  87. 87)이원李愿 : 당나라 임담臨潭 사람으로 반곡盤谷에 은거했다. 반곡은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이곳은 골짜기가 깊고 산세가 험준해서 은자가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한다. 이원이 벼슬을 사직하고 이곳에 은거하자 한유韓愈가 「送李愿歸盤谷序」를 지어 그를 송별하였다.
  88. 88)적선謫仙의 금릉 나들이 : 적선은 이백李白을 지칭한다. 이백이 처음 장안長安에 들어갔을 때 하지장賀知章이 그를 만나 문장을 보고는 “자네는 유배 온 신선(謫仙人)이다.”라며 감탄하고, 현종玄宗에게 천거했던 데서 유래하였다. 그가 금릉의 봉황대에 올라 지은 시 ≺登金陵鳳凰臺≻에 “세 산봉우리 반쯤은 푸른 하늘 밖으로 떨어지고, 두 줄기 강물을 가르는 백로들의 모래섬(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이란 구절이 있다.
  89. 89)자미子美의 동정호 노래 : 자미는 두보杜甫의 자. 그가 지은 ≺登岳陽樓≻가 동정호를 노래한 시로 유명하다.
  90. 90)고야산姑射山 : 『莊子』 「逍遙遊」에 나오는 전설의 산이다. “저 아득한 고야산姑射山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는데, 피부가 빙설氷雪 같고 얌전하기가 처녀 같다.”라고 하였다.
  91. 91)유신有莘에서처럼 농사를 짓거나 : 유신국有莘國의 들판에 은거해 농사를 짓고 살면서 탕왕의 요청을 두 번이나 거절하고 세 번째에서야 나아갔던 이윤伊尹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92. 92)수양산首陽山에서처럼 굶어 죽는다면 : 주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항거의 뜻으로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고사에 의거하였다.
  93. 93)대술大術 : 석가모니부처님의 어머니이신 Mahāmāyā의 의역이다. 대환大幻이라고도 한다.
  94. 94)이제二帝와 삼왕三王 : 이제二帝는 요堯·순舜, 삼왕三王은 우禹·탕湯·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말한다.
  95. 95)오경五經과 육예六藝 : 오경五經은 『시경』·『서경』·『역경』·『예경』·『춘추』를 말하고, 육예六藝는 선비가 배워야 할 여섯 가지인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말한다.
  96. 96)호치당胡致堂 : 송나라 사론가史論家인 호인胡寅을 말한다.
  97. 97)한나라 영평永平과 양나라 보통普統 : 후한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67)에 인도에서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흰 말을 타고 『四十二章經』을 가지고 중국으로 왔다. 이에 황제가 환대하며 낙양 근처에 백마사白馬寺를 건립해 거주하게 하였다. 양나라 무제는 보통普通 8년(527)에 동태사同泰寺라는 거대한 사찰을 건립하였다.
  98. 98)두 마리~노닌 못이요 : 청량산淸凉山 즉 오대산五臺山에서 부처님의 정골과 진신사리를 모시고 귀국한 자장 율사가 안장할 장소를 찾으면서 나무로 오리 두 마리를 깎아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나무오리가 칡꽃을 물고 왔고, 그 오리를 따라갔더니 한겨울 눈밭인데 그곳에 칡꽃이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을 택해 사리를 모신 것이 지금 통도사의 진신사리 부도라는 전설이 전한다.
  99. 99)아홉 마리 용의 집 : 통도사는 거대한 연못이었고, 그곳에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는데, 자장 율사가 그 용들을 제도하고 연못을 메워 사찰을 건립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100. 100)하얀 연꽃 우거진 동산이요(芬陀羅尼華園) : 불전에 ‘분다라니화芬陀羅尼華’라는 표현은 없다. 아마도 하얀 연꽃인 puṇḍarīka의 잘못된 음역인 듯하다. puṇḍarīka는 백련화白蓮華 등으로 의역하기도 하고, 분다리芬陀利·분다리가奔荼利迦로 음역하기도 하고, 꽃이라는 의미의 ‘華’를 병칭하여 분다리화芬陀利華·분다리가화奔荼利迦華로 번역하기도 한다.
  101. 101)낙읍洛邑 : 불지종찰 통도사를 주나라 도읍인 낙양洛陽에 비유한 표현이다.
  102. 102)복숭아 자두 높다란 마을(桃李高村) : 복숭아와 자두는 열매가 많이 달린다 하여 선대의 음덕을 받아 번성한 자손을 뜻한다. 당나라 때 적인걸狄仁傑이 요원숭姚元崇·환언범桓彦範 등 수십 명을 천거하여 그들이 모두 명신名臣이 되자 사람들이 “천하의 복숭아 자두가 모두 공의 문하에 모였다.”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唐紀」.
  103. 103)갈고를 연주해`~재촉한 것을(羯鼓催花) : 갈고羯鼓는 서방의 갈羯이라는 부족이 치던 북이다. 당나라 현종이 이원梨園의 화악루花萼樓 아래에서 갈고羯鼓를 연주하자 맺혔던 꽃봉오리가 이른 봄인데도 일제히 활짝 피었다. 그러자 현종이 “누가 나더러 하느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104. 104)육위송六偉頌 : 육위는 동, 서, 남, 북, 상, 하의 여섯 방위를 말한다. 상량식上樑式을 할 때 대들보를 여섯 방위로 돌려가면서 부르는 소래이다. 상량송上梁頌이라고도 하고, 아랑송兒郞頌이라고도 하는데, ‘아랑兒郞’은 젊은 사람을 뜻하며 ‘아랑위兒郞偉’는 그 복수형으로 도목수都木手가 장인匠人들을 싸잡아 부를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105. 105)제비처럼 축하드리오니(燕賀) : 『澮南子』에 “큰 집이 낙성되면 제비·참새가 서로 치하한다.(厦成而燕崔相賀)”라고 하였다.
  106. 106)들보를 동쪽으로 던지세(拋梁東) : ‘포량拋梁’은 젊은 목수들이 마룻대를 들고 던지는 시늉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떡을 던지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文體明辯附錄』 권13 「上梁文」에 “집을 지을 때 반드시 길일吉日을 택하여 상량식을 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떡이나 기타 잡물雜物을 가져와 축하하면서 이것을 장인匠人들에게 먹인다. 그러면 장인의 우두머리가 떡을 대들보에 던지면서 상량문을 읽고 축복을 한다.”라고 하였다.
  107. 107)부상扶桑 : 동해에 있다는 신목神木이다. 해가 뜰 때 이 나무 아래에서 솟아나 나무를 스치고 떠오른다고 한다. 곧 해가 뜨는 동쪽 또는 동해바다를 뜻한다.
  108. 108)옥함 속~용궁에서 나왔다네 : 용수보살이 용궁에 들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승경전을 열람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일부를 암송해 유포한 것이 『華嚴經』이라 한다.
  109. 109)가비라(迦毘) :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지인 Kapila-vastu를 말한다. 가비라위迦毘羅衛·겁비라벌솔도劫比羅伐窣堵·가비라바소도迦毘羅婆蘇覩·가유라위迦維羅衛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가비라迦毘羅·가이라迦夷羅·가유迦維라고도 한다. 황두거처黃頭居處·묘덕妙德·창색蒼色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110. 110)선재善財 : 『華嚴經』 「入法界品」에 등장하는 선재동자를 말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찾아 남방南方으로 110성을 편력하며 53선지식을 탐방하였다.
  111. 111)구담瞿曇 : Gotama의 음역으로 석가족釋迦族의 성姓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112. 112)대성大成 : 공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공자는 다른 성인들의 여러 가지 특징을 한 몸에 다 갖추었다고 한다. 『孟子』 「萬章 下」.
  113. 113)자장 율사의~신축년(1601)에 계승했나니 : 임진왜란 때 왜적이 통도사로 침입해 계단과 불전을 태우고 훼손하자 송운松雲 즉 사명 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그곳을 탈환하였다. 사명 대사는 재차 왜적이 분란을 일으킬까 염려해 불사리를 두 개의 함에 담아 금강산에 머물고 있던 서산 대사에게 보냈다. 이에 서산 대사가 하나는 돌려보내 통도사에 다시 안치하도록 명하고, 하나는 태백산太白山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114. 114)당나라 정관貞觀 12년(638) : 『三國遺事』 등의 기록에 따르면 자장 율사는 선덕여왕 12년 즉 당나라 정관 17년(643)에 귀국해 통도사를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월하 대사가 어떤 기록을 근거로 하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115. 115)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의 행적 :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가 사리를 다시 통도사에 안치한 일을 말한다.
  116. 116)우운友雲 대사 : 조선 중기 승려로 법명은 진희眞熙. 임진왜란 때 불타고 훼손된 통도사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1645년(인조 23)에 중건하였다.
  117. 117)응암凝庵 노장 : 조선 후기 승려로 법명은 희유禧有. 설송 연초雪松演初(1676~1750)의 법을 이었다.
  118. 118)영인의 읍(郢邑) : 『莊子』 「徐无鬼」의 고사를 인용한 표현이다. “영郢 지방 사람이 코끝에 백토를 파리 날개만큼 묻혀 놓고 장석匠石을 시켜 그것을 깎아 내게 하였다. 그러자 장석이 바람을 일으키며 도끼를 휘둘러 마음대로 깎아 내기 시작하였는데, 장석은 백토를 다 깎고도 코를 다치게 하지 않았고 영 지방 사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라고 하였다.
  119. 119)복희씨의 역(羲易) :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그은 역이라는 말로, 『周易』의 별칭이다.
  120. 120)아홉 점의 연기요(烟九點) : 높은 곳에서 구주九州를 내려다보면 구주가 마치 아홉 점의 연기처럼 보인다는 데서 온 말이다.
  121. 121)네 가지(四事) : 의복·음식·와구臥具·탕약湯藥을 말한다.
  122. 122)김대성金大城 : 『三國遺事』에 따르면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751년(경덕왕 10)에 불국사 창건 공사를 시작하였고, 죽을 때까지 평생 불사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123. 123)용면龍眠 : 송나라의 저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별호. 이공린이 벼슬을 그만두고 용면산에 들어가 지내며 용면거사라 자호하였다.
  124. 124)함지咸池 : 해가 목욕을 한다는 곳, 즉 서쪽을 뜻한다. 『澮南子』에 “해가 양곡에서 나와 함지에서 목욕한다.(日出於暘谷。 浴於咸池。)”라고 하였다.
  125. 125)금선金仙 : 부처님의 별칭이다.
  126. 126)‘개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 : 어떤 납자가 조주 종심趙州從諗(778~897) 선사를 찾아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127. 127)적미赤眉 : 전한前漢 말에 번숭樊崇 등이 일으킨 농민 반란군. 눈썹을 붉게 물들여 왕망王莽의 군대와 구별하였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128. 128)황건黃巾 : 후한後漢 말에 태평도太平道의 수령 장각張角 등이 거느린 농민 반란군. 모두 누런 두건을 썼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129. 129)내원암內院庵 : 울산 신흥사新興寺에 부속된 산내 암자.
  130. 130)남훈전南薰殿 : 당나라 때에 있던 대궐의 이름으로, 순임금이 지은 시가詩歌의 ‘남풍지훈南風之薰’에서 따온 명칭이다.
  131. 131)오현금의 노래(五弦歌) : 순임금이 오현금五絃琴을 처음으로 만들어 ≺南風歌≻를 지어 부르면서 “훈훈한 남쪽 바람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제때에 부는 남풍이여, 우리 백성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이라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禮記』.
  132. 132)설당雪堂 : 송나라 소식蘇軾을 지칭한다. 소식이 일찍이 황주黃州로 귀양을 갔을 때 임고정臨皐亭에 우거하면서 동파東坡에 설당雪堂을 세웠다고 한다.
  133. 133)옥루屋漏 : 집에서 가장 어두운 서북쪽 구석으로 신주神主를 모시는 곳이다. 또한 남들에겐 잘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깊은 속내를 뜻한다.
  134. 134)은장銀章 : 한나라 때 2천 석石 이상의 녹을 받는 관원이 찼던 은으로 만든 인장(銀印)이다.
  135. 135)비람풍(毘藍) : 비람毘藍은 vairam의 음역으로 비람毘嵐·비람鞞嵐·비람바鞞藍婆·폐람바吠藍婆라고도 한다. 또한 신맹풍迅猛風으로 의역하기도 하며, 비람풍毘嵐風이라 칭하기도 한다. 철위산 밖에서 부는 폭풍인데 속력이 매우 빨라 지나가는 곳은 모두 파괴된다고 한다.
  136. 136)벽계碧雞 : 전설 속에 나오는 신물神物이다. 한 선제漢宣帝가 왕포王褒를 촉蜀에 보내 벽계碧鷄와 금마金馬의 신神을 모셔오게 했다고 한다.
  137. 137)비추芘蒭 : bhikṣu 또는 bhikkhu의 음역으로 비구比丘·필추苾芻 등으로 음역하고, 걸사乞士로 의역하기도 한다.
  138. 138)흑룡黑龍의 해 : 임진년壬辰年을 뜻한다. 십간의 임壬과 계癸는 오행五行에서 북방北方 수水, 색깔로는 흑黑에 해당한다. 십이지의 진辰은 용龍을 뜻한다.
  139. 139)이빨을 검게 칠한 도적떼 : 왜구倭寇를 말한다. 이빨에 검은 칠을 하는 것은 남방 야만인들의 풍속이다.
  140. 140)청허당淸虛堂(1520~1604) : 조선 중기 승려로 법명은 휴정休靜. 묘향산 즉 서산西山에 오래 주석하여 서산 대사西山大師라 칭한다. 지리산에서 숭인崇仁에게 출가하여 영관靈觀에게서 법을 얻었으며, 30세에 승과에 급제하고 이어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지위에 올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8도 16종 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승병을 모집,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적을 세웠다. 75세에 제자 사명 유정四溟惟政에게 병사兵事를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 『禪家龜鑑』·『禪敎釋』·『三家龜鑑』·『淸虛集』 등이 있다.
  141. 141)팔난八難 : 원래는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장애를 뜻하는데, 여기에서는 혹독한 재난이란 뜻으로 쓰였다.
  142. 142)승제承制 : 임금의 허락하에 조정의 재가를 받지 않고 편의대로 적절히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143. 143)벽유碧油 : 푸른 휘장을 두른 막사로 대장군의 막사를 뜻한다. 벽유당碧油幢, 청유막靑油幕이라고도 한다.
  144. 144)해약海若 : 북해 약北海若의 준말로, 약若은 바다 귀신의 이름이다. 해신海神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楚辭』 「遠遊」, 『莊子』 「秋收」.
  145. 145)기허당騎虛堂(?∼1592) : 조선 중기 승려로 법명은 영규靈圭. 계룡산 갑사甲寺에서 출가하여 휴정休靜 문하에서 법을 깨우쳤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義僧 수백 명을 규합하여 관군과 함께 청주성 전투에 참가하였다. 전라도로 향하는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의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해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전몰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이 일어난 것은 그가 최초였다.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에 제향되었으며, 뒤에 법도法徒 대인大仁 등이 금산 남쪽 진락산進樂山 기슭에 그의 영정을 안치한 진영각眞影閣과 비를 세웠다.
  146. 146)통도사에 인연이~구담을 친견하셨다네 : 임진왜란 때 왜적이 통도사로 침입해 계단과 불전을 태우고 훼손하자 사명 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그곳을 탈환하였고, 재차 왜적이 분란을 일으킬까 염려해 불사리를 두 개의 함에 담아 금강산의 서산 대사에게 보냈다. 이에 서산 대사가 하나는 돌려보내 통도사에 다시 안치하도록 명하고, 하나는 태백산太白山에 안치하였다.
  147. 147)백양白楊 : 백양은 버드나무와 비슷한 교목喬木으로, 옛날 중국에서 무덤가에 이 나무를 많이 심었다.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148. 148)갈까마귀(寒鴉) : 까마귀 새끼가 장성한 뒤에는 먹이를 물어다 늙은 어미를 먹여 준다(反哺)고 한다.
  149. 149)『論語』 「里仁」의 내용이다.
  150. 150)반경盤庚은 경읍耿邑에서~아래쪽으로 천도하였습니다 : 반경盤庚은 은殷의 제19대 왕. 도읍이었던 반경을 버리고 하남河南의 박亳으로 천도하여 은나라를 중흥시켰다.
  151. 151)『論語』 「公冶長」의 내용이다.
  152. 152)영취산 : 양산의 영취산이 아니라 사명 대사의 생가 터가 있는 밀양의 영취산을 지칭한다. 이곳에 있던 표충사를 재약산 영정사로 이건한 것이다.
  153. 153)노천 소老泉蘇 : 노천老泉은 소순蘇洵의 호이다. 그가 「張益州公畵像記」를 지었다. 여기에서는 월하 대사에 앞서 명인루明禋樓의 기문을 지은 사람을 지칭한 것으로 추측된다.
  154. 154)식객 모수毛遂도~성취한 것입니다 : 월하 대사의 앞선 명인루의 기문을 쓴 사람이 재주가 빼어나긴 하지만 실재 명인루를 건립한 사람들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라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수毛遂는 전국시대에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이었는데, 빼어난 지혜와 용기로 초楚나라 왕과 동맹을 성사시켰다. 그 뒤 다른 문객들을 얕보면서 “그대들은 그저 녹록할 뿐이니, 이른바 남의 덕이나 보는 사람들이다.(公等碌碌。 所謂因人成事者也)。”라고 말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권76 「平原君列傳」.
  155. 155)대부 심후大夫沈侯 : 표충사 이건을 주도했던 밀양 부사 심의복沈宜復을 지칭한다.
  156. 156)왕일소王逸少 : 일소逸少는 왕희지王羲之의 자.
  157. 157)소자첨蘇子瞻 : 자첨子瞻은 소식蘇軾의 자字. ≺赤壁賦≻를 지었다.
  158. 158)여보게들(兒郞偉) : ‘아랑위兒郞偉’는 ‘아랑위兒郞威’로 표기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을 뜻하는 아랑兒郞의 복수형으로 장인匠人들을 싸잡아 부를 때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라고도 하고, 대들보를 들 때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어영차’ 하고 내는 소리의 의성어라고도 한다.
  159. 159)약사여래(藥師) : 약사藥師는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의 준말이다. 동방 정유리 세계淨瑠璃世界의 교주로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災禍를 소멸하고, 의복과 음식 등을 풍족하게 하며,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기를 서원한 부처님이시다.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160. 160)세 분의 대현사(三大賢師) : 청허淸虛, 사명四溟, 기허騎虛 3대사를 지칭한다. 표충사에 세 분의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161. 161)영산 대흥사 : 경상남도 창녕군에 소재한 사찰.
  162. 162)뜨거운 것을~않았던 것 : 『詩經』 「大雅」 ≺桑柔≻에 “뜨거운 물건을 손에 쥐었다면 얼른 가서 물에다 씻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誰能執熱。 逝不以濯。)”라는 말이 나온다.
  163. 163)주공周公이 대신~했던 것 : 주공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이고, 무왕武王의 아우이다. 무왕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무왕이 병들어 위독하자 주공이 자신이 무왕의 죽음을 대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 축책祝冊을 상장에 넣어 쇠사슬로 봉하였는데, 이튿날 무왕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164. 164)기신紀信이 초楚를 속였던 것 : 한 고조漢高祖가 형양滎陽에서 항우項羽에게 포위당해 사태가 급박해지자 장군 기신紀信이 고조의 수레를 타고 고조처럼 꾸며서 거짓으로 초楚의 항우에게 항복하는 척하였다. 그 틈에 고조는 탈출하였고, 기신은 항우에게 살해당하였다.
  165. 165)위후魏后는 요광사瑤光寺에~공사를 시작하였고 : 위후는 북위北魏 효장 태후孝莊太后 호씨胡氏를 지칭한다. 그가 희평熙平 원년(516)에 낙양洛陽에 영녕사永寧寺를 건립하고 9층탑을 세웠다. “요광사瑤光寺에 9층을 세웠다.(瑤光九級塔。)”라는 것은 착오이다. 이후 태후 호씨胡氏는 영안永安 원년(528)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고 요광사에 거주하였다. 『佛祖統紀』 권38(T49, 355b).
  166. 166)양 무제梁武帝는~몸을 보시하면서 : 양 무제는 대통大通 원년(527), 중대통中大通 원년(529), 중대동中大同 원년(546) 세 차례에 걸쳐 동태사에 몸을 보시하였고, 그때마다 신하들이 절에 1억만 전을 대가로 지불하고 궁으로 다시 모셔 왔다. 『佛祖統紀』 권37(T49, 351b).
  167. 167)이당李唐 : 당나라 임금의 성이 이李 씨이기 때문에 당나라를 이렇게 칭하였다.
  168. 168)주량朱梁 : 주전충朱全忠이 당나라를 멸하고 세운 양梁나라라는 뜻으로, 후량後梁을 가리킨다.
  169. 169)백태부白太傅 : 백거이白居易를 지칭한다. 태부太傅는 그가 역임한 벼슬이다.
  170. 170)현주縣主 : 왕세자의 서녀庶女에게 주던 정삼품의 봉작封爵.
  171. 171)패궁貝宮 : 용궁에 있다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궁궐이다. 흔히 대궐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172. 172)구품의 연지에는~잉태된 아이로다 : 서방의 극락정토에 아홉 종류의 연못이 있는데, 시방의 중생들이 각기 쌓은 공덕에 따라 그곳 연꽃 속에 화생化生한다고 한다.
  173. 173)인수의 영역(仁壽域) : 『論語』 「雍也」에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장수한다.(仁者壽。)”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누구나 천수天壽를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태평성대를 뜻한다.
  174. 174)세 곳(三處) : 보살은 자신이 쌓은 모든 공덕을 실제實際·보리菩提·중생衆生 세 곳으로 회향한다.
  175. 175)삼륜三輪 : 보시라는 행위와 관련된 세 가지, 즉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과 주는 물건을 말한다.
  176. 176)구요九曜 : 북두칠성과 그것을 보좌하는 옆의 두 별을 합쳐서 구요九曜라 한다.
  177. 177)건상乾象 : 천체天體의 현상.
  178. 178)강후康侯 : 나라를 잘 다스리는 제후諸侯라는 뜻이다. 『周易』 「晉卦」 괘사卦辭에 “진晉은 강후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낮에 세 번씩 접견하는 상이다.(晉。 康侯用錫馬蕃庶。 晝日三接。)”라고 한 데서 온 말로, 대신이 임금으로부터 각별한 은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179. 179)함영과 소호(咸英韶濩) : ‘함영咸英’은 함지咸池와 오영五英을 말한다. 함지는 황제黃帝의 음악이고, 오영은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의 음악이다. ‘소韶’는 순임금의 음악이고, ‘호濩’는 은나라 탕왕의 음악이다.
  180. 180)희황羲皇 : 중국 태고 시대의 임금인 복희씨伏羲氏와 황제皇帝를 가리킨다. 이때는 천하가 지극히 태평하였다고 한다.
  181. 181)희이希夷 : 현묘한 우주를 가리킨다. 『道德經』에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한다.” 하였다.
  182. 182)아름다움 간직한(含章) : 내면에 아름다운 자질을 간직한다는 뜻한다. 『周易』 「坤卦」 육삼六三에 “아름다움을 속에 품고 곧은 덕을 지킬 수 있다. 혹 나라의 일에 종사하여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끝내는 좋아질 것이다.(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라는 말이 나온다.
  183. 183)나가고 물러남(行藏) : ‘행장行藏’은 용행사장用行舍藏의 준말이다. 『論語』 「述而」에 “써 주면 나의 도를 행하고 써 주지 않으면 숨는다.(用之則行。 舍之則藏。)”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184. 184)육도六度 : 육바라밀六波羅密.
  185. 185)붕패朋貝 : 고대의 화폐.
  186. 186)낭간琅玕 : 경옥硬玉의 일종으로 녹색과 청백색을 띠는 아름다운 구슬인데, 대나무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187. 187)기러기발이 고정된 것(膠柱) : ‘교주膠柱’는 교주조슬膠柱調瑟의 준말로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는 말이다. 하나만을 고집해 융통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188. 188)단구丹丘 : 밤이고 낮이고 항상 밝다고 하는 신선 세계 이름이다.
  189. 189)임금 : 헌종憲宗을 지칭한다.
  190. 190)삼강三綱 :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
  191. 191)오륜五倫 :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 『孟子』 「滕文公」.
  192. 192)육행六行 : 여섯 가지 선행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孝), 형제간에 우애하고(友), 친지간에 화목하고(睦), 인척간에 정분이 도탑고(婣), 남을 위해 힘쓰고(任), 없는 자를 구휼(恤)하는 여섯 가지 행실. 『周禮』 「大司徒」.
  193. 193)언산 남쪽 읍(彦山南斗邑) : 곧 언양彦陽이다. 산은 남쪽을 양陽이라 하고, 북쪽을 음陰이라 한다.
  194. 194)임금이 현명하면~직언을 한다 : 위징魏徵은 간언諫言을 잘하였다. 당 태종이 조회를 받은 뒤에 내실로 들어와 “위징魏徵이 나의 뜻을 거스르니 없애 버리겠다.”라며 분노하자, 장손 황후長孫皇后가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직언하는 법입니다.(主明臣直)” 하며 태종을 축하했다고 한다.
  195. 195)보좌하는 자를~아래까지 미친다 : 한 효문제漢孝文帝 6년(기원전 174)에 회남왕淮南王 유장劉長이 모반에 실패하며 촉으로 유폐되었다가 죽은 사건을 두고 태부 가의賈誼가 올린 상소에 나오는 문구이다. 『資治通鑑』 권14 「漢紀」 6.
  196. 196)획급劃給 : 돈이나 곡식 등의 일정 부분을 떼어 주는 것.
  197. 197)이남二南 : 호남과 영남.
  198. 198)왜 이리 늦었냐는 노래에다(何暮之謠) : 백성들이 어진 정사에 감복하여 부르는 송가頌歌를 뜻한다. 동한東漢의 염범廉范이 촉군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주민의 편의를 위해 옛 법규의 폐단을 개혁하자 백성들이 “염숙도여, 왜 이리 늦게 오셨나. 불을 금하지 않아, 백성들 편케 되었네. 평생 속옷도 없다가 지금은 바지만 다섯 벌.(廉叔度。 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襦。 今五袴。)”이라며 노래했다고 한다. 숙도叔度는 염범의 자字이다. 『後漢書』 권31 「廉范列傳」.
  199. 199)한 줄기에~가닥 이삭이로다(兩歧之實) : 후한後漢의 어양태수漁陽太守 장감張堪이 호노狐奴에서 전답을 개간해 민생을 안정시키자, 백성들이 “뽕나무에는 곁가지 없고, 보리에는 이삭이 두 개. 장군께서 정사 행하자, 즐거움 감당키 힘드네.(桑無附枝。 麥穗兩歧。 張君爲政。 樂不可支。)”라고 노래하며 찬미했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권31 「張堪列傳」.
  200. 200)후손에게 계책을 남긴 자(貽厥) : ‘이궐貽厥’은 자손에게 좋은 계책을 물려주는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文王有聲≻에 “풍수 옆에 기라는 곡식이 자라니, 무왕이 어찌 이곳으로 천도하지 않으랴, 그 자손들에게 좋은 계책 물려줘, 그의 아들에게 편안함과 도움을 주려 함이니, 무왕은 참으로 임금답도다.(豐水有芑。 武王豈不仕。 貽厥孫謀。 以燕翼子。 武王烝哉。)”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1. 1)「蚤」疑「密」{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