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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94_b_01L월하 대화상 행장(月荷大和尙行狀)화상의 법휘는 계오戒悟, 자는 붕거鵬擧, 호는 월하月荷이시다. 속성은 권씨權氏,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비조鼻祖는 고려의 시중을 역임하셨다. 부친의 휘는 모현慕賢, 모친은 밀양 박씨이며, 선사先師는 영조英祖 계사년(1773)201) 10월 7일에 경주 천태산天台山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을 회임했을 때 박씨가 달이 품 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그 외로운 달이 둥실 뜨던 날에는 산이 세 차례나 울었다. 또한 수리부엉이가 찾아와 지붕 위에서 울었으니, 그의 호와 자는 실로 달 꿈의 징조와 수리부엉이의 상서를 취한 것이다.【세속에서는 수리부엉이를 붕새라 부르기 때문이다.】 태어나자 미목眉目이 수려하고 타고난 성품이 총명하였기에 마을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전해 오기를, 천태산이 바로 동해의 거령巨靈이고 이 산이 울면 반드시 기이한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것이 그 징조였구나!”일곱 살부터 글방에 다녔는데, 하루에 천여 자를 암송하고 재차 물어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법이 없었다. 젖니를 갈 무렵부터 시를 지었는데 걸핏하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말들을 하였다. 열한 살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머리를 깎고 팔공산八公山 월암 수좌月庵首座에게 출가하였으며, 지봉 화상智峰和尙202)의 법을 이어받았으니 화상은 바로 회암 화상晦庵和尙203)의 법을 정통으로 전한 3세이시다. 침허 법사枕虛法師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대덕들의 강석에 참여하여 공부하였으며, 식견과 이해가 출중하고 선지禪旨를 투철히 깨달아 스무 살 남짓에 이미 방패를 걸고 법을 연설하였다.출가한 후에도 머무는 가람 곁에 흙집을 지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봉양하면서 잠시 떨어지는 것도 못 견뎌 하셨다. 어머니가 연로하여 눈이 멀었다가 나중에 홀연히 다시 밝아졌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성에 감응한 결과라 하였다. 또 남는 힘이 있으면 패엽貝葉을 읽는 틈틈이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셨다. 그분의 문장은 민첩하고 풍부하고 호방하고 화창했으며 나물과 죽순의 기미라고는 전혀 없었다. 시는 매우 고상하고 예스러웠으며 애써 꾸미고 다듬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풍미가 있었다. 필법은 더욱 정밀하고 오묘했으니, 한 거리의 비석과 간판, 병풍 등이 거의 다 선사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계율을 엄수하여 명예와 이익을 위해 길을 나서는 법이 없었음에도 -
010_0794_b_01L月荷大和尙行狀
010_0794_b_02L和尙法諱戒悟。字鵬擧。號月荷。俗姓
010_0794_b_03L權氏。貫安東。鼻祖高麗侍中。幸考諱
010_0794_b_04L慕賢。妣密城朴氏。以正廟癸巳十月七
010_0794_b_05L日。擧先師于慶州之天台山下。其懷妊
010_0794_b_06L也。朴氏夢月入懷中。其懸孤也。山鳴
010_0794_b_07L者三。又有鵂鶹。來鳴屋上。其號與字。
010_0794_b_08L實取夢月之兆。鵂鶹之祥俗呼鵂鶹
爲鵬故云。生而
010_0794_b_09L眉目秀朗。姿性聰慧。父老曰。古傳云
010_0794_b_10L天台山乃海上巨靈。鳴必有異事。此其
010_0794_b_11L徵歟。七歲就塾。日誦千餘言。不煩敎
010_0794_b_12L授。離齔爲詩。動輒有驚人語。十一歲
010_0794_b_13L以父母之意。祝剃于八公山月庵首座。
010_0794_b_14L傳法于智峰和尙。和尙乃晦庵和尙之
010_0794_b_15L三世的傳。受具戒於枕虛法師。叅學於
010_0794_b_16L大德講會。識解超絕。透悟禪旨。弱齡
010_0794_b_17L已掛牌演法。出家後築土室于所住伽
010_0794_b_18L藍之側。奉母氏以㞐。怡愉志養。不忍
010_0794_b_19L蹔離。母氏年老。眼盲後忽復明。世以
010_0794_b_20L爲誠感攸致。又有餘力。以貝葉之暇。
010_0794_b_21L蒐獵百家。其文敏贍豪暢。絕無蔬荀氣。
010_0794_b_22L詩甚高古。不事彫琢。而自有風致。筆
010_0794_b_23L法又精竗。一路之碑版屛障。殆盡出於
010_0794_b_24L先師之手。嚴守戒律。不肎爲名利行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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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794_c_01L진신 선생들이 모두 그와 함께 노래하고 화답하였으며, 훌륭함을 칭찬하며 스스로 방외의 인연에 의탁하였다.예순이 넘어서자 시와 문장을 악업이요 마장이라 여겨 단칼에 잘라 버리고는 향을 사르고 면벽하면서 온 마음을 다해 염송하셨다. 그러다 헌종 기유년(1849) 2월 4일에 가지산伽智山 연등정사燃燈精舍에서 적멸을 보이셨으니, 세수는 77세요 법랍은 66년이셨다. 화장하던 날 저녁에는 무지개 같은 기운이 곧장 서쪽을 가리켰는데, 산 아래 여러 군에서도 이를 목격하고 이야기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시문 몇 권【유집 12권 가운데 10권은 간행하지 못하고 2권만 판각하였다.】을 수습하여 천을 바른 책 상자에 보관하고, 삼가 한평생의 삶을 대략 정리하여 당세의 입언군자立言君子를 기다릴 따름이다.기유년(1849) 3월 일 문인 희겸喜謙이 눈물을 닦고 삼가 쓰다. -
010_0794_c_01L而縉紳先生。皆與之唱酬。推奬自托於
010_0794_c_02L方外之契。旣踰六十。乃以詩文。爲惡
010_0794_c_03L業魔障。一刀斷除。焚香面壁。專心念
010_0794_c_04L誦。憲廟己酉二月初四日。示寂于伽智
010_0794_c_05L山燃燈精舍。壽七十七。臘六十六。闍
010_0794_c_06L維之夕。有氣如虹。直指西方。山下數
010_0794_c_07L郡人。有所見而言者。乃收拾詩文若干
010_0794_c_08L𢎥遺集十二卷中。十
卷未刊。二卷入榟。。藏諸巾衍。謹搆平生
010_0794_c_09L大略。用俟當世之立言君子云爾。
010_0794_c_10L己酉三月日。門人喜謙。抆泣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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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영조英祖 계사년(1773) : 원문은 ‘正廟癸巳’이다. 계사년은 영조 치세이므로 ‘英廟癸巳’라야 옳다. 행장을 지은 희겸喜謙의 착오로 추측된다.
- 202)지봉 화상智峰和尙 : 조선 스님. 법명은 거기巨機이고, 가지산 석남사石南寺에 부도가 있다.
- 203)회암 화상晦庵和尙(1685~1741) : 조선 스님. 법명은 정혜定慧이다. 9세에 범어사梵魚寺 자수自守를 찾아가 출가하자 자수는 그의 그릇이 뛰어남을 보고 충허冲虛에게 보냈으며, 충허는 그를 가야산 원민圓旻에게 데려가 참학參學시켰다. 이에 원민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장경藏經을 배웠다. 이어 향산香山의 추붕秋鵬이 호남에서 강석을 열자 원민의 허락을 얻어 참석하였고, 일암一庵·환성喚醒 등 고승을 두루 참방하고 금강산에서 좌선하였다. 이후 사람들의 청으로 석왕사釋王寺·명봉사鳴鳳寺·청암사靑巖寺·벽송사碧松寺 등지에서 강석을 열었고, 만년에 청암사에 주석하다가 1741년(영조 17) 5월 20일에 입적하였다. 저서로 『華嚴經疏隱科』·『禪源集都序著柄』·『別行錄私記畵足』·『諸經論疏句絶』 등이 있다. 불령산佛靈山 쌍계사雙溪寺에 그의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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