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역산집(櫟山集) / 暎虛師遺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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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허당유집 서문暎虛堂遺集序文
내가 불가의 서적을 읽어 보니, 그 설은 비록 현玄과 허虛와 탈脫을 종지로 삼지만, 그 이름과 행적이 전해지는 것이 실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좌우하니, 불법佛法에 밝고 계율이 엄정하면, 그 사람에 대한 칭찬과 비방 때문에 그 사람의 행적을 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왕왕 문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 중에서도 참선으로 초탈하여 등등감감騰騰憨憨4)한 경우가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그렇다고 여긴다. 더구나 문자와 계율을 모두 안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지난 임술년(1862, 철종 13)에 내가 고주高州(함경도 高原郡) 수령이 되었을 때 설산 상인雪山上人 영허暎虛와 함께 소동파蘇東坡·참료參蓼5)의 교분을 나누었다. 그리고 계미년(1883, 고종 20) 봄에 내가 덕원 부사德源府使로 부임했을 때에는 영허가 입적한 지 이미 몇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영허가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하였는데, 어느 날 영허의 상좌 용해龍海6)가 상인의 글 여러 편을 가져와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내가 그 글을 받아 읽어 보니, 대개 평소에 저술한 것들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었는데, 문장을 하는 선비가 각고의 노력으로 다듬어 공교롭게 만들어 낸 것과는 달랐다. 그 드넓고 소슬하고 그윽한 기운은 고요하고 쟁쟁하여 쓸데없고 편협한 모습이 거의 없었으니, 참으로 계율과 문자를 모두 안 사람이었다. 비록 그러하나 “몸을 이미 숨겼거늘 어찌 글을 짓는가?”라고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던가.7) 또 이른바 선종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경계와 지혜를 모두 고요하게 하여 오직 명성이 혹시라도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것이니, 세상에 언어와 문자가 알려져 유행되기를 어찌 바라겠는가. 더군다나 상인은 일찍부터 온갖 번뇌를 내려놓고 선지禪旨를 정묘하게 증득하여

010_0940_b_07L暎虛師遺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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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覽釋氏書其說雖以玄虛脫爲宗
010_0940_b_10L其名跡之傳實輕重其人諦律莫之以
010_0940_b_11L毁譽廢是故徃徃有不解文字人參禪
010_0940_b_12L超如騰騰憨憨諸人是已况文字戒
010_0940_b_13L律俱解者乎昔在壬戌余宰高州
010_0940_b_14L雪山上人暎虛有蘇叅之契也曁癸未
010_0940_b_15L余莅德府映虛示寂已有年聞甚
010_0940_b_16L慨然一日其上足龍海裝上人文字數
010_0940_b_17L來示余余受而覽之盖其平生著
010_0940_b_18L述皆在焉非如文章之士刻鏤以爲工
010_0940_b_19L者也而其曠宕蕭散幽寂之氣黝然鏘
010_0940_b_20L鮮有曼穴狷狹之態眞是戒律文字
010_0940_b_21L具解者也雖然昔人不云乎身旣隱矣
010_0940_b_22L焉用之 [1] 且所謂禪敎者境智俱寂
010_0940_b_23L恐其聲譽之或著豈蘄之以言語文字
010_0940_b_24L行於世也哉矧上人早卸萬累竗解禪

010_0940_c_01L만년에 이르기까지 독실하게 믿어 나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근의 총림叢林에서 상인을 찾아와 법을 물었고, 상인의 법을 가리켜 상승의 법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그 이름과 종적이 세상에 전해져 유행됨에 있어 어찌 문자를 빌릴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 상인의 모습을 접하지 못하고 상인의 가르침을 맛보지 못한 자들이 그 시문을 얻어 읽는다면, 혹 상인의 심결心訣과 전법傳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현묘한 가르침이 또한 찬연하게 세상에 퍼지는 일도 여기에 있을 터이다. 상인의 법손들이 장차 상인의 문집을 간행하여 세상에 전하려 하면서 나에게 교정을 해 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사양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지라 대략 번다한 것을 산삭하고 잘못된 것을 보정하고서 이어서 서문을 짓는다.
갑신년(1884, 고종 21) 동짓날 덕원 부사 팔계八溪 정현석鄭顯奭8)이 서문을 짓다.

010_0940_c_01L以至晩年篤信不怠遠近叢林
010_0940_c_02L萃問難指以爲上乘行其名跡之傳
010_0940_c_03L亦何藉於文乎然而世有不能椄 [2] 上人
010_0940_c_04L之容入上人之堂者得其詩文而讀之
010_0940_c_05L或可以得上人之心訣傳法而闡玄亦
010_0940_c_06L於是乎在其徒將刊之以傳請余
010_0940_c_07L爲之校正余辭不獲已畧删繁補訛
010_0940_c_08L繼爲之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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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甲申冬至日德源知府八溪鄭顯
010_0940_c_10L奭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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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등등감감騰騰憨憨 : 등등올올騰騰兀兀과 같은 말로 자유자재하여 당당한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2. 5)소동파蘇東坡·참료參蓼 : 소동파는 북송北宋 때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문인으로 유명한 〈적벽부赤壁賦〉의 저자이다. 그는 평소 불교에 조예가 깊고 승려들과도 교분이 깊었는데, 그 가운데 시승詩僧이기도 했던 도잠道潛과는 10여 일 동안 여산廬山을 유람하며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참료는 도잠의 호이다.
  3. 6)용해龍海 :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나, 『역산집』 권말의 문도 명단에 있는 용해 정안龍海淨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4. 7)몸을 이미~말하지 않았던가 : 송宋나라 때 종방種放이라는 은사隱士가 있었는데, 그의 저술로 인해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마침내 조정에서 그를 부르는 명이 내려왔다. 그러자 그의 모친이 “너에게 항상 무리 지어 강학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몸을 이미 숨겼거늘 어쩌자고 글을 지었느냐?(身旣隱矣。何用文爲。)”라고 하였다. 과연 사람들이 알게 되어 “편안히 은거할 수 없게 되었구나. 나는 장차 너를 버리고 궁벽한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련다.”라고 하였다. 이에 종방은 병을 칭탁하고 조정에 나아가지 않았고, 그 모친은 종방의 필묵을 모두 불태운 다음 종방과 함께 궁벽한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송사宋史』 권457 「은일열전隱逸列傳」.
  5. 8)팔계八溪 정현석鄭顯奭(1817~?) :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팔계八溪는 초계 정씨에서 분관된 일파를 나타낸다. 자는 보여保汝, 호는 박원璞園이다. 고원 군수高原郡守, 덕원 부사德源府使,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