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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4_b_02L동사열전 제6권(東師列傳 第六)두륜산인 구계 선집 편차頭輪山人 九階 選集 編次우담강사전雨潭講師傳스님의 법명은 유정有定이고 호는 우담雨潭이며, 속성은 ▣씨이고 포은 운양布恩雲養의 제자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포은은 순천 선암사仙岩寺 스님이다.스님은 용암 혜언龍岩慧彦 선사의 선실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어받았으니, 설월 원민雪月圓旻 스님과는 동문 형제지간이다.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다가 서울 근교의 산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단월檀越(신도)이 재齋를 올리기 위해 절에 들어왔는데,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왔다. 그 아이는 나이가 겨우 대여섯 살 정도였지만 스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 어머니에게 고하였으나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강하게 청하며 뜻을 굽히지 않으니 어머니는 어쩔 수 없어 허락하였다.아이는 절에 남아 있으면서 절 일을 하였는데 어찌나 일을 잘하던지 건장한 아이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그 뒤에 칠불암七佛庵 아장선방亞莊禪房(亞字房)에 있을 적에 홀연히 종환瘇患1)을 앓게 되었는데, 어떤 선객 한 사람이 자청하여 주문을 염송하자 홀연히 병이 나았다.우담 스님은 어린 나이에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어 구족계를 받았다. 스님은 지극히 총명하여 한문과 한글은 물론 범어와 경經·논論·선禪·율律에 이르기까지 모든 글을 한 번만 보면 외울 정도였으며, 시詩·부賦·변려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능하여 마치 미리 글을 지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신속하게 글을 짓곤 하였다.포은布恩 스님의 선실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어받을 때 마치 10년 동안 하안거를 지낸 비구 같았다. 통도사 불사(通度佛事)에는 사부대중이 경향京鄕 각지에서 구름처럼 모였다. 모든 산중 스님들이 시위侍衛하여 괘불掛佛을 옮기는 이운작법移運作法을 마치고 우담 스님이 단상에 올라가 법을 설하니 마치 바다에 밀려드는 조수 소리처럼 진동하였으며, 병에서 물을 쏟아 내듯이 거침없이 법을 설하니 그때 스님의 법을 듣고 발심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이때 용완龍玩이라는 사람은 본디 화사畫士였는데 이 법회에 가서 참예하여 스님의 설법을 듣고는 돌연 마음을 고쳐먹고 그림 그리던 붓을 버리고 강론하는 도량에 들어간 일까지 있었다. 그 당시 스님의 나이는 겨우 20세였다. 그 이후에 통도사 극락암極樂庵에서 강론하는 문을 크게 열자 여러 지방에서 학문을 익히려는 이들이 구름이 내닫듯 물이 흘러가듯 몰려들어 방장실이 꽤나 넓었는데도 오히려 좁은 것처럼 느껴졌다.스님은 나이가 많아져 기운이 어느새 떨어지자 강당의 문을 닫고 -
010_1064_b_02L東師列傳第六
010_1064_b_03L[傳]
010_1064_b_04L頭輪山人九階選集編次
010_1064_b_05L雨潭講師傳
010_1064_b_06L師名有定。號雨潭。姓□氏。布恩雲養
010_1064_b_07L弟子。楊州人。布雲。順天仙岩寺人。拈
010_1064_b_08L香於龍岩慧彥禪師之室。與雪月圓旻。
010_1064_b_09L爲門兄弟。遊化諸方。至于京山。有1)擅 [1]
010_1064_b_10L越修齋次。入寺。率幼子至。其子。年才
010_1064_b_11L五六。以爲僧之意。告其母。母不許。强
010_1064_b_12L請不已。母不獲已許之。在寺行事。無
010_1064_b_13L異健兒。人皆欽服。後在七佛亞莊禪房。
010_1064_b_14L忽有𤺄患。有一禪客。自請誦呪。因忽
010_1064_b_15L無患。早年。剃染受具。眞諺梵2)守。 [2] 經論
010_1064_b_16L禪律。一覽輒記。詩賦編儷。速如宿搆。
010_1064_b_17L拈香受印。如十夏比丘。通度佛事。四
010_1064_b_18L衆雲集。京鄕渾聚 3)詩 [3] 山侍衛。作法移
010_1064_b_19L運。登壇法說。震海潮音。如瓶注水。因
010_1064_b_20L此發心者。無數無量。時龍琓以畫士。
010_1064_b_21L徃叅見聞。頓然改心。棄4)猫 [4] 筆而入講
010_1064_b_22L場。于時師年。才二十。大開設話門於極
010_1064_b_23L樂庵。諸方學者。雲奔水至。方5)文 [5] 雖寬。
010_1064_b_24L物情猶隘。年已過高矣。氣已衰也。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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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4_c_01L선실禪室을 열었는데 거기에도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팔八 자로 열어젖힌 선관禪關도 오히려 좁기만 했다.취서산鷲捿山 백련난야白蓮蘭若의 수행 모습은 여산廬山의 백련결사白蓮結社의 모습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흥왕하였다. “생하고 멸하는 것이 멸하고 나면 적멸이 낙이 된다.(生滅滅已。 寂滅爲樂。)”라고 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병자년(고종 13, 1876) 여름에 조용히 적멸을 보이시니, 나무도 하얗게 변하고 시냇물도 오열하였다.우담 스님은 율봉栗峯 스님의 3대 법손이고 호암虎岩 스님의 5대 법손이다. 화운 관진華雲寬眞·보봉 이선寶峯利善·응허 보신應虛普信과는 동문 법형제 사이이다.백파白坡 신 판서申判書(申獻永)가 말하기를, “내가 관동 지방의 어사御史로 있었을 때 특별히 서래각西來閣(유점사에 있던 누각)을 찾아가서 대운 스님과 하룻밤 잔 적이 있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끝날 무렵 ‘스님은 나보다 훌륭하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후일을 기약하며 나온 지 3년 뒤에 대운 스님이 적멸을 보였다고 한다.”라고 했다.이 대운 스님이 바로 우담 스님의 사숙師叔 되는 스님이다. 우담 스님이 누구에게 법을 전해 주었는지, 남긴 책이 몇 질이나 되는지는 아물아물하여 알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혼허강백전渾虛講伯傳스님의 법명은 상능尙能이고 호는 혼허渾虛이며, 속성은 최崔씨이고 낭주朗州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일찍이 현허玄虛에 뜻을 두어 달마산으로 들어가 의지해 살 곳을 찾다가 진학眞學 장로의 회상에서 머리를 깎고 가사장삼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붕명鵬溟 선사의 계단에서 연비燃臂를 하고 계를 들었으며, 응화應化 강백의 강당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계승하였다.또 ▣▣ 강백의 강석에서 교학을 버리고 선문에 들어갔다. 초의草衣 선백의 법회에서 대승계大乘戒를 받아 보살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가지산 보림사寶林寺 수남암水南庵으로 인암忍庵 선사를 참방하여 사집四集을 배우고, 장춘동長春洞 북미륵암北彌勒庵으로 운거雲居 대사를 참알하고 사교四敎를 공부하였으며, -
010_1064_c_01L講堂門。開禪室關。四衆雲集。八字猶
010_1064_c_02L狹。鷲捿之白蓮蘭若。與廬山之白蓮結
010_1064_c_03L社。無異。其興也。生滅滅已。寂滅爲樂。
010_1064_c_04L丙子夏。泊然示寂。樹爲之白。澗爲之咽。
010_1064_c_05L栗峯之三世。虎岩之五世。與華雲寬眞。
010_1064_c_06L寶峯利善。應虛普信。同門兄弟。白坡。
010_1064_c_07L6)中 [6] 判書曰。關東御史時。特尋西來閣。
010_1064_c_08L與大雲。一夜同宿。言罷。勝己之誣。後期
010_1064_c_09L而出。後三年。示寂云。此師。師之叔師也。
010_1064_c_10L傳法之誰某。遺書之幾7)秩。 [7] 茫然何。
010_1064_c_11L
010_1064_c_12L渾虛講伯傳
010_1064_c_13L師名尙能。號渾虛。姓崔氏。朗州人。幼
010_1064_c_14L厭腥葷。早發玄虛。入達摩山。窺依止
010_1064_c_15L處。眞學長老之室。圓頂方袍。鵬溟禪
010_1064_c_16L師之壇。受火聞戒。應化講伯之堂。拈
010_1064_c_17L香入室 □講8)伯 [8] 席。舍敎入禪。草衣禪
010_1064_c_18L伯之會。受大乘戒。登菩薩位。訪忍庵禪
010_1064_c_19L師於伽智山水南庵。學四集。叅雲居大
010_1064_c_20L師於長春洞北彌勒 9)開 [9] 四敎。謁枕溟
010_1064_c_21L「擅」甲本正誤表作「檀」。「守」甲本正誤表
010_1064_c_22L作「字」。「詩」甲本正誤表作「諸」。「猫」甲本
010_1064_c_23L正誤表作「描」。「文」疑「丈」{編}。「中」甲本
010_1064_c_24L正誤表作「申」。「秩」下甲本正誤表有「奈」。
010_1064_c_25L「伯」下甲本正誤表有「之」。「開」甲本正誤表
010_1064_c_26L作「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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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5_a_01L조계산 대승암大乘庵으로 침명枕溟 화상을 찾아가 대교大敎를 공부하고, 소림산 중봉암中峰庵에서 응화應化 법사를 모시고 염송拈頌을 깨우쳤으니, 가히 설산雪山동자가 다시 나찰羅刹에게 법을 들은 것이며,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다시 뵌 격이라 할 만하다.선지식 참방하는 것을 마치고 나니 여러 산문의 학인들이 배우고자 모여들었다. 강당 문을 활짝 열고 학인들을 맞아 가르침을 연 지 수십 년이요, 강사의 자리에서 물러나 지관止觀을 수행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월출산에서 국태민안을 위해 기도를 올렸고, 미황사美黃寺에 곡탑鵠塔 (부도)을 세우기도 했다. 두 그루 어린 계수나무(嫩桂, 제자)에게 돌부鈯斧를 전하고 삼한三韓의 소림少林에서 연대蓮臺를 꿈꾸었다.스님은 몸집이 풍후豊厚하고 언어는 둔한 듯 고풍스러웠으며, 내외의 재물을 갖추었고 절의 일이나 수행에도 두루 원융하였다. 어디에도 안주하거나 집착함이 없이 아무 곳에서나 일상생활을 하였으며 대둔사와 미황사 등지로 주석처를 옮겨 다니며 얼마나 많은 제자들을 득도시켜 이 의조사義照寺를 지키게 했는지 알 수 없다.스님은 도광道光 병술년(순조 26, 1826)에 태어났으며 광서光緖 갑오년(고종 31, 1894) 현재 적련정사赤蓮精舍에 머물고 있다.청연강백전淸淵講伯傳스님의 법명은 월영月影이고 호는 청연淸淵이며, 속성은 ▣씨이고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다.달마산으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가지산 보림사 수남암水南庵으로 인암忍庵 스님을 찾아가 사집四集을 배웠으며, 두륜산 북미륵암北彌勒庵으로 운거雲居 스님을 참배하고 『능엄경』과 『기신론』을 배웠으며, 응화應化 스님의 강석에 가서 참례하고 『반야경』과 『원각경』을 배웠다. 이어 운거雲居 스님을 참알하고 『화엄경』을 배워 마친 다음 곧 설월雪月 법사의 조실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어받았다.설월 스님은 미봉 보한眉峰甫垾 스님의 법을 이은 제자이고, 미봉 스님은 연담蓮潭의 법을 이은 제자이며, 응운 영화應雲永化 스님과는 동문 형제이고, 낭호 승찰朗湖勝察 스님은 법사 설월 스님과 동문 형제이다. 미황사美黃寺 상수암上峀庵에서 강당 문을 열고 푸른 눈을 지닌 청년 학인들을 맞아들여 여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경을 거듭 강설하였다. 그 뒤에 문을 닫아걸고 학인들의 방문을 거절한 채 백의거사白衣居士가 홀로 조사들의 1,700칙 공안을 참구하듯이 선문의 공안을 참구하였다. 청연 스님은 두륜산과 천개산에 머물기도 했고, 고 -
010_1065_a_01L和尙於曹溪山大乘庵。*開大敎。侍應化
010_1065_a_02L法師於少林山中峯庵。證拈頌。可謂雪
010_1065_a_03L山再*開羅刹。善財再見文殊。叅訪已矣。
010_1065_a_04L諸山會也。開門提接者。數十年。退處
010_1065_a_05L止觀者。多春秋。奉爲祝於月出山。點
010_1065_a_06L鵠塔於美黃寺。傳鈯斧於二株嫩桂。夢
010_1065_a_07L蓮臺於三韓少林。師軀榦豊厚。言語鈍
010_1065_a_08L古。內外財具足。事理相圓融。以無住
010_1065_a_09L着回向。爲日用行履處。移缾鉢於大芚
010_1065_a_10L美黃。度箇幾多人。守斯義照寺。道光
010_1065_a_11L丙戌生。光緖甲午。住赤蓮精舍。
010_1065_a_12L
010_1065_a_13L淸淵講伯傳
010_1065_a_14L師名月影。號淸淵。姓□氏。靈岩人。出
010_1065_a_15L家於達摩山。削髮染衣。尋忍庵師於伽
010_1065_a_16L智山水南庵。學四集。叅雲居師於頭輪
010_1065_a_17L山北彌勒庵。受楞嚴起信。謁應化師席。
010_1065_a_18L受般若圓覺。叅雲居師。了華嚴。乃拈
010_1065_a_19L香於雪月法師。雪月。眉峰甫垾之子。眉
010_1065_a_20L峰。蓮潭之子。與應雲永化。門兄弟。朗
010_1065_a_21L湖勝察。與法師雪月。門兄弟。美黃寺
010_1065_a_22L上峀庵。開門。迎納靑眼學人。重說如來。
010_1065_a_23L四十九年之說經。掩關杜絕。白衣居士。
010_1065_a_24L獨看祖師千七百則之看話。住頭輪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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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5_b_01L금도古今島의 백운산에 머물기도 하였으며, 삼도사三島寺의 추정암樞正庵에 머물러 있기도 하였다.정해년(고종 24, 1887) 가을에는 범해梵海 스님·혼허渾虛 스님과 함께 나라를 위한 기도 법회에 초대를 받아 증명법사의 자리에 나가기도 하였고, 여섯 달 동안의 추위가 풀리는 기간까지 월출산 상견성암上見性庵에서 결제를 하기도 했다.신묘년(고종 28, 1891) 겨울에는 미황사 방부도원放浮屠園에 설월 스님과 응운 스님 두 스님의 부도를 세우기도 했다. 스님은 지식이 남보다 탁월하였고 원래 남에게 교만하게 대하는 일이 없었으며, 글쓰기를 신속하게 하였지만 글을 다시 고치는 일이 없었으며, 마음이 겸허하고 조용한 모습은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이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에 처하였고, 밖으로 은연隱然한 모습은 마치 봄 동산에 사향노루가 지나가면 풀이 저절로 향기가 나듯 하였다.법을 전한 제자는 성암性菴과 성일性日 등이 있는데 지금 삼도사 추정암에 머물고 있다.수성선사전壽星禪師傳스님의 법명은 근헌謹憲이고 호는 수성壽星이며, 속성은 허許씨이고 청해 당인내塘仁內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어린 나이에 두륜산으로 들어가서 마음속에 출가할 것을 서원하고 취암鷲岩 스님에게 몸을 던져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그 후 ▣▣ 스님을 참알參謁하고 계를 받았고, 경월鏡月 스님을 찾아뵙고 그의 법통을 이었으며, 초의 스님에게 예를 올리고 보살계를 받았다. 철선鐵船 스님의 처소에서는 『통감』·『사기』·『고문진보』를 배웠고, 문암聞庵 스님의 처소에서는 사집四集을 배웠으며, 침명枕溟 스님에게서는 경론經論을 두루 공부했다.스님은 일천 산과 일만 냇물을 두루 구경한 다음 강당을 개설하여 문을 열고 학인들에게 널리 교학을 강설했다. 선암사 칠전七殿에서 네 번의 하안거를 마치고 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서 두 번의 하안거를 마쳤으며, 대둔사 만일암挽日庵에서 한 번의 하안거를 마치고 무량회無量會에서 한 번의 하안거를 마쳤다.신유년(철종 12, 1861) 겨울에 동산東山·나운羅云·서현瑞賢 등 15명 스님에게 단자端字2)를 건네주었다. 을유년(고종 11, 1885) 겨울 12월 26일에 원적圓寂을 보이시자 제자 이운理雲 스님은 스승의 영단 앞에서 법인을 이어받고 호를 용허龍虛라 하였다. 용허 스님의 사법 제자인 종민宗敏 스님은 신묘년(고종 28, 1891)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계사戒師는 동화東化 스님이다.수성 스님은 연담蓮潭 스님의 4대 법손이고 은암銀岩 스님의 2대 법손이며, 영담 지명影潭智明·혜운 보정惠雲普淨·수암 석훈壽庵碩訓 등과는 -
010_1065_b_01L天蓋山。住於古今之白雲。住於三島之
010_1065_b_02L1)柩 [10] 正。丁亥秋。與梵海渾虛。應爲祝證
010_1065_b_03L座。請結六朔寒際。於月出山上見性庵。
010_1065_b_04L辛卯冬。立雪月應雲。兩浮屠於美黃之放
010_1065_b_05L浮屠園。知識卓越。元無施慢。製作神
010_1065_b_06L速。文不加點。中退然如水之處。衆人
010_1065_b_07L之所惡。外隱然若麝過。春山草自香。傳
010_1065_b_08L法弟子。有性菴性日等。今在三島寺
010_1065_b_09L*柩正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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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5_b_11L壽星禪師傳
010_1065_b_12L師名謹憲。號壽星。姓許氏。淸海塘仁
010_1065_b_13L內人。幼入頭輪山。志願出家。投鷲岩
010_1065_b_14L2)寺 [11] 染衣。叅□□師受戒。謁鏡月師嗣
010_1065_b_15L法。禮草衣師。受菩薩戒。鐵船師處。學通
010_1065_b_16L史古文。聞菴師處。解四集。枕溟師講經。
010_1065_b_17L綸 [12] 看千山萬水。設開3)當 [13] 普說。仙4)若 [14] 七
010_1065_b_18L殿。結四夏。松廣三日。結二夏。大芚挽
010_1065_b_19L日。結一夏。無量會。結一夏。度端字於
010_1065_b_20L辛酉冬。東山羅云瑞賢寺十五人。示圓
010_1065_b_21L寂於乙酉冬十二月二十六日。理雲。受
010_1065_b_22L印於影壇。號穪龍虛。宗敏。削髮於辛卯。
010_1065_b_23L戒師東化。蓮潭之四世。銀岩之二世。
010_1065_b_24L與影潭智明。惠雲普淨。壽庵碩訓等。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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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5_c_01L동문 형제이다.보제강백전普濟講伯傳스님의 법명은 심여心如이고 호는 보제普濟이며, 거처하던 방의 당호는 포의蒲衣이다. 속성은 마馬씨이고 강진 백도방白道坊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스님은 도광道光 8년 무자(순조 28, 1828)에 태어나서 광서光緖 원년 을해 (고종 12, 1875) 2월 30일 대둔사 상원암上院庵에서 적멸을 보이셨으니, 세속 나이는 48세이고 하랍夏臘은 33년이었다.어린 시절에 두륜산 가선대부嘉善大夫 희문禧文 화상의 처소로 입산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문암聞庵 강주의 계단에서 계를 받았고 철선鐵船 강백의 문하로 입실하였으며, 초의草衣 선백의 조당에서 보살계를 받았다. 그 뒤 철선·문암·용연龍淵·운거雲居·응화應化·영허靈虛·벽해擘海등 7대 법사를 두루 찾아다니며 학문을 연마했다.연꽃 향기 나고 매실이 익자 벼슬을 얻고 식록食祿이 생기게 되었다. 강당 문을 열고 삼남三南의 학인들을 맞아들여 경을 강설하고 선법을 설한 지 20여 년이나 흘렀다. 이후 스님은 풍악산·삼각산·태백산·가야산·지리산 등 이름난 산을 두루 유람하였으며, 한양·강릉·경주·공주·전주 등 큰 고을을 다니면서 철선 스님과 초의 스님의 게송을 읊고 열수洌水와 추사秋史의 글씨를 그대로 들고 다니기도 했다.3)스님은 청정한 데만 머무르지 않고 세속 먼지 속에 스며들었으며, 더럽든 깨끗하든 걸림이 없었고 좋든 나쁘든 구분하지 않았으니, 진실로 격식을 초월한 큰 인물의 마음 쓰는 방법이라고 하겠다.금강산을 구경하고 와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한 내용을 손수 기록한 「금강산유산록金剛山遊山錄」 1편을 보여 주자 박노하朴盧河가 글을 좀 고치고 서문까지 써서 붙이니 완연한 1권의 책이 되었다.옛날 의상義湘 대사가 「서방가西方歌」를 지었고 도선道詵 국사는 「산수가山水歌」를 지었으며, 나옹懶翁 화상은 「서양가西養歌」를 지었고 청허淸虛 대사는 「회심곡回心曲」을 지었으며, -
010_1065_c_01L門兄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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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5_c_03L普濟講伯傳
010_1065_c_04L師名心如。號普濟。室曰蒲衣。姓馬氏。
010_1065_c_05L康津白道坊人。道光八年戊子生。光
010_1065_c_06L緖元年乙亥二月三十日。示寂于大芚
010_1065_c_07L之上院庵。世壽四十八。夏臘三十三。
010_1065_c_08L幼入頭輪山嘉善大夫禧文和尙處。剃頭。
010_1065_c_09L聞庵講主壇。受戒。鐵船講伯室。入室。草
010_1065_c_10L衣禪伯堂。受菩薩戒。叅學於鐵船聞庵
010_1065_c_11L龍淵雲居應化靈虛擘海七大法師。蓮
010_1065_c_12L香梅熟。封侯食祿。開5)開 [15] 接三南學人。
010_1065_c_13L講經說禪者。二十餘年。遊楓岳三角大
010_1065_c_14L白加耶智異之名山。履漢陽江陵慶州
010_1065_c_15L公州全州之雄州。吟咏鐵船草衣之偈
010_1065_c_16L頌。拖白冽水秋史之字書。不泥灰心。
010_1065_c_17L和光同塵。染淨無碍。好惡不分。實出
010_1065_c_18L格大人用心之道也。自金剛來。示其手
010_1065_c_19L記金剛山遊山錄一篇。朴盧河筆削序
010_1065_c_20L文。一册完然。昔義湘。作西方歌。道詵。作
010_1065_c_21L山水歌。懶翁。作西養歌。淸虛。作回心曲。
010_1065_c_22L「柩」甲本正誤表作「樞」次同。「寺」甲本正
010_1065_c_23L誤表作「師」。「當」甲本正誤表作「堂」。「若」
010_1065_c_24L甲本正誤表作「岩」。「開」甲本正誤表作「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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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6_a_01L박자재朴自在는 「유산록遊山錄」과 「만고가萬古歌」를 지었고 임형산任荊山은 「선유가船遊歌」를 지었으며, 김매소金梅巢는 「유산록」을 지었고 영암靈岩 스님법명은 취학就學이다.은 「토굴가土窟歌」를 지었으며, 구계九階 스님은 「유산곡遊山曲」을 지었고 포의蒲衣 스님은 「금강록金剛錄」을 지었는데, 모두가 사물에 빗대어 자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지은 것이지 지니고 있는 재주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나서 지은 것이 아니다.스님의 저서로는 문집 1권이 문인들에게 보관되어 있으며, 제자로는 만공 부정萬空富定과 월파 원준月坡圓俊 등이 있다.금성선사전錦城禪師傳스님의 법명은 보헌普憲이고 호는 금성錦城이며, 속성은 강姜씨이고 영암 소완도小莞島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도광道光 을유년(순조 25, 1825)에 태어나 광서光緖 계사년(고종 30, 1893) 7월 1일에 입적入寂하였으니, 세속 나이는 69세이고 승랍은 53년이다.어릴 때 두륜산으로 들어가 송계당松溪堂에서 책을 읽다가 스스로 스님이 되겠다는 마음을 내어 어버이께 하직 인사를 하고 출가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늘 ‘출가한 아들을 생각하며 스님의 발을 씻어 주었다’는 옛이야기를 되새기며 한탄하면서 북쪽 하늘을 향하여 울기도 하고 혹 스님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소년은 견향見香 스님의 회상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고 문암聞庵 스님의 계단에서 계를 받았으며, 뒷날 은사의 방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어받았다. 또한 범해梵海 스님의 강당에서 비구 이백오십계와 대승보살 오십팔계를 받았고, 이어 운거雲居·문암聞庵·응화應化·범해 스님의 강론 자리에서 내서內書와 외서外書를 모두 배웠다.스님은 서기와 수승首僧의 직책을 역임하였고 주지와 총섭의 직인을 차고 다니기도 했으니, 행정에 숙련된 속된 관리였고 쓰고 지우기를 일삼는 아전 같은 노덕老德이었다. 그러나 금성 스님은 이러한 급류急流에서 용감하게 물러나 학처럼 흰 머리에 푸른 눈을 지니고 선지식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하늘에는 바람과 비가 있고 사람에게는 화禍와 복福이 있는 법이다. 사산四山(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산)이 시시각각 다가와 핍박하고 오관五官(눈·코·귀·혀·몸의 다섯 감각기관)이 막히며, 사람娑囕은 보이지 않고 알가閼伽는 여유가 있다.4)스님에게 계를 받은 제자는 두건을 쓰고 따르고 의발을 전해 받은 제자는 꽃을 들고 돌았다. 완함阮咸은 슬퍼하며 뛰면서 통곡하였고 가섭迦葉은 관 밖에 내민 발을 어루만졌다.금성 스님은 천성이 질박하고 정직하였으며 언어는 자상하고 신중하였다. 또 들어가거나 나가거나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시종 한결같았다. 남쪽 영주瀛洲(제주도)에 들어가 지방 풍속을 실컷 탐문하고 북쪽으로 설봉산에 이르렀으며, 동쪽으로 금강산을 오르면서 -
010_1066_a_01L朴自在。作遊山錄萬古歌。任荊山。作船
010_1066_a_02L遊歌。金梅巢。作遊山錄。靈岩名就
學。作土
010_1066_a_03L窟歌。九階。作遊山曲。蒲衣。作金剛錄。皆
010_1066_a_04L託意而記。非技1)養 [16] 而作也。文集一卷。
010_1066_a_05L在門人。弟子。有萬空富定月坡圓俊等。
010_1066_a_06L
010_1066_a_07L錦城禪2)師 [17]
010_1066_a_08L師名普憲。號錦城。姓姜氏。靈岩小莞
010_1066_a_09L島人。道光乙酉生。光緖癸巳七月初一
010_1066_a_10L日寂。世壽六十九。僧臈五十三。幼入
010_1066_a_11L頭輪山。讀書于松溪堂。自發爲僧之心。
010_1066_a_12L辭親出家。其母。每發洗足之歎。向北而
010_1066_a_13L泣。見僧則泣。染衣於見香師室。聞戒
010_1066_a_14L於聞庵師壇。拈香於恩師室。受比丘二
010_1066_a_15L百五十戒及大乘菩薩五十八戒於梵海
010_1066_a_16L師講堂。學內外書於雲居聞庵應化梵
010_1066_a_17L海之肆。行書記首僧之役。佩住持揔攝
010_1066_a_18L之印。鍛鍊之俗吏。刀筆之老德。急流
010_1066_a_19L勇退。鶴髮靑眼。天有風雨。人有禍福。
010_1066_a_20L四山來逼。五官窒塞。娑囕不見。閼伽
010_1066_a_21L有餘。受戒者。麻巾而隨之。受封者。拈
010_1066_a_22L花而繞之。阮咸踊地 3)葉迦 [18] 撫趺。師。賦
010_1066_a_23L性質直。言語詳愼。出入遠近。始終恒
010_1066_a_24L一。南入瀛洲。飽采方俗。北抵雪峰。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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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6_b_01L풍토風土를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다시 한양에 이르러서 견문見聞을 웅장하게 키웠다. 그에게는 두 그루 어린 계수나무(嫩桂, 제자)가 있고, 스님의 진영 1축이 전한다.설우대사전雪藕大士傳스님의 법명은 대운大雲이고 호는 한명漢明이며, 선호禪號는 설우雪藕이다. 속성은 도강道康 김씨이고 아버지는 추광秋光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고, 해남 산일도山一道 산수동山水洞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도광道光 10년 경인(순조 30, 1830)에 태어나 동치同治 7년 무진(고종 5, 1868) 봄에 강진의 보리산 수인사修仁寺 청계암淸溪庵에서 적멸을 보이시니, 세속의 나이는 39세이고 승하僧夏는 26년이다.스님은 13세에 월출산 도갑사道甲寺로 들어가 침송 회성枕松會成 대사에게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침월枕月 대사에게 계를 받았다.갑자년(고종 1, 1864) 겨울에 진불암眞佛庵 범해梵海 스님의 강당에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으며, 병인년(1866)에 은사의 조실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스승의 법통을 전해 받았으니, 연담蓮潭 스님의 5대 법손이 되고 월화 덕혜月華德惠 스님의 3대 법손이며, 도암 보언道庵保彥 스님의 2대 법손이 된다.장흥 보림사寶林寺 송대松坮의 이봉离峯 스님, 남암南庵의 운거雲居 스님, 도갑사 남암의 침월枕月 스님, 대둔사 북암北庵의 운거雲居 스님, 만일암挽日庵과 진불암眞佛庵의 범해梵海 스님을 찾아다니며 학업을 익혔다.그 후 수인사修仁寺로 자리를 옮겨 살다가 젊은 나이에 적멸을 보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스님의 천성은 온화하고 청아하였으며 행동거지는 한가하고 조용하였다. 그래서 한 번만 만나 보면 도가 있는 사람임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응룡선사전應龍禪師傳스님의 법명은 문찬文贊이고 호는 응룡應龍이며, 순천 영취산 흥국사興國寺 출신이다. 스님의 종파를 말하면, 선암사 상월 새봉霜月璽篈의 법을 이은 제자가 응운 증오應雲證悟이고, 응운의 법을 이은 제자가 영취산 침룡 영원枕龍永源이며, 영원의 법을 이은 제자가 바로 응룡 문찬이다. -
010_1066_b_01L登金剛。風土點心。再到漢陽。聞見雄。
010_1066_b_02L壯。二株嫩桂。一軸眞影。
010_1066_b_03L
010_1066_b_04L雪藕大士傳
010_1066_b_05L師名大雲。字平沄。號漢明。禪號雪藕。
010_1066_b_06L姓道康金氏。父秋光。母密陽朴氏。海
010_1066_b_07L南山一道山水洞人。道光十年庚寅生。
010_1066_b_08L同治七年戊辰春。示寂于康津菩提山
010_1066_b_09L修仁寺淸溪庵。世年三十九。僧夏二十
010_1066_b_10L六。師十三。入月出山道甲寺。祝髮於枕
010_1066_b_11L松會成大師。受戒於枕月大師。甲子冬。
010_1066_b_12L受比丘及菩薩戒於眞佛庵梵海師講堂。
010_1066_b_13L丙寅。大拈香於恩師主。蓮潭之五世。月
010_1066_b_14L華德惠之三世。道庵保彥之二世。遊
010_1066_b_15L學於寶林之松坮离峯師。南庵雲居師。
010_1066_b_16L道甲之南庵枕4)月。 [19] 大芚之北庵雲居師。
010_1066_b_17L挽日眞5)佛 [20] 梵海師。移居于修仁。早年
010_1066_b_18L示寂。惜哉。賦性溫雅。進止閒靖。一見
010_1066_b_19L可知其有道之人也。
010_1066_b_20L
010_1066_b_21L應龍禪師傳
010_1066_b_22L師名文贊。號應龍。順天靈鷲山興國寺
010_1066_b_23L人。言其宗派。仙岩霜月璽篈子。應雲證
010_1066_b_24L悟。應雲子。靈鷲山枕龍永源。源子。應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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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6_c_01L고려조에 보조 국사普照國師가 이 절(흥국사)을 창건했고 우리 조정(조선)의 정조대왕 때에 응운 스님이 중건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응운 스님은 당시의 문장가요 재사才士였다. 해남 표충사表忠祠를 처음 창건할 때에 조정에서 특별히 총섭의 직책을 주었다. 처음 창건 당시의 범례凡例를 살펴보면 스님이 예조禮曹에 보고하고 감영監營에 보고하여 복호復戶를 특별히 허락하고 보솔保率을 주도록 허락하는 법을 세워 일신一新하였는데, 그때 그 문서의 분량이 쌓여 책 1권을 만들 정도였으니, 이 모두가 응운 스님이 손수 작성한 문건들이다. 사원 불사에 공이 있기로 말하면 영남과 호남을 통틀어 승려들 중에 제일이다.흥국사 중수의 일을 살펴보면 폐허가 된 것을 일으키고 무너진 곳을 보수한 일과 보조 국사의 구물舊物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전된 것도 모두 응운 스님과 침룡 스님의 위대한 자취이니, 큰 지략을 지닌 거벽巨擘이었다. 침룡 스님과 응룡 스님의 공로를 추앙하여 감영과 순천도호부에 보고하여 사찰을 우뚝하게 만들고 사찰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을 닦기도 했으니, “네가 네 조상을 기억함으로 인해 이에 네 자손이 번성한다.”고 한 옛말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불일佛日(보조 국사) 스님께서 맨 처음 이 절을 창건하였고 응운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응룡 스님이 잘 지켜내어 잃지 않았으니, 사람은 비록 셋이지만 그 공은 하나이다.응룡 스님의 사제師弟인 재신在信 스님은 함께 나아가고 함께 물러나며 고락을 함께하였으니 스님의 날개 같은 존재이다.금파선사전金波禪師傳스님의 법명은 응신應信이고 호는 금파金波이며, 속성은 김해金海 김씨이고, 청해淸海 세포細浦에서 출생한 사람으로서 도광道光 계사년(순조 33, 1833)에 태어났다.두륜산으로 출가하여 석호石虎 선사의 조실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지허止虛 선덕의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은사인 석호 스님의 회상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어받았다. -
010_1066_c_01L文贊也。普照國師麗朝時。創建此寺。
010_1066_c_02L我朝正宗大王時。應雲師。重建此寺。無
010_1066_c_03L疑也。應雲。當時文章才6)師 [21] 也。一并
010_1066_c_04L海南表忠祠。初創建時。特贈揔攝之職。
010_1066_c_05L初創凡例。報禮報營。復戶保率。特許
010_1066_c_06L特授。一新立法。其文其籍。積成卷軸。
010_1066_c_07L皆其手跡。有功於院事。兩南僧幕之第
010_1066_c_08L一也。一并興國寺重修事。興廢補弊。
010_1066_c_09L普照之舊物。至今依舊者。亦皆應雲枕
010_1066_c_10L龍之雄蹈。俊畧之巨擘也。枕龍應龍。
010_1066_c_11L追仰先功。營告府報。寺刹7)巋。 [22] 要路安
010_1066_c_12L然。念祖爾祖。寔繁有徒。於此可尙。佛
010_1066_c_13L日。初8)荊。 [23] 應雲。重修應龍。守而勿失。人
010_1066_c_14L雖三。功則一也。師弟在信。同進同退。
010_1066_c_15L師之羽翼哉。
010_1066_c_16L
010_1066_c_17L金波禪師傳
010_1066_c_18L師名應信。字弼文。號金波。姓金海金
010_1066_c_19L氏。淸海細浦人。道光癸巳生。出家於
010_1066_c_20L頭輪山。染衣於石虎禪師室。受具於止
010_1066_c_21L虛禪德壇。拈香於恩師室。受比丘戒及
010_1066_c_22L「養」甲本正誤表作「癢」。「師」下疑脫「傳」
010_1066_c_23L{編}。「葉迦」甲本正誤表作「迦葉」。「月」下甲
010_1066_c_24L本正誤表有「師」。「佛」下甲本正誤表有「之」。
010_1066_c_25L「師」甲本正誤表作「士」。「巋」下甲本正誤
010_1066_c_26L表有「然」。「荊」疑「剏」{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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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7_a_01L스님은 또 범해 각안의 강당에서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으며, 범해·운곡雲谷·보제普濟·응화應化 스님이 강론하는 자리에서 경론을 공부하였다.금파 스님은 사찰의 수승 소임을 맡아보았으며 나중에는 총섭의 인수印綬를 차고 사찰 행정을 총괄하기도 하였다. 스님은 지식이 탁월하였고 행장行藏이 청아하고 신중했다. 일을 함에 있어서 잘못 처리하는 일이 없었고 벗들 중에는 지기知己가 많았다. 공적인 일이나 사사로운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였다.스님이 계를 주어 득도시킨 스님은 약간 명이 있고 양육하여 은혜를 입힌 제자도 두서너 명은 된다. 스님이 법을 이은 연대는 고금古今을 통해 소상昭詳하다.우리 태조太祖대왕이 대명大明 홍무洪武 29년 임신(1392)에 즉위한 이래 대청大淸 광서光緖 20년 갑오(1894)까지는 503년이다. 우리 세존께서는 주周나라 소왕昭王 33년 임신에 적멸을 보이신 이래 대청 광서 20년 갑오까지 2,842년이다. 그러니 금파 스님은 석가문釋迦文의 74대 법손이고 태고太古 스님의 17대 법손이며, 청허淸虛 대사의 11대 법손이고 연담蓮潭 대사의 5대 법손이다.스님은 완호玩虎 스님의 증손 법제자이고 석호石虎 스님의 법을 이은 제자이며, 인파印波·호월湖月·복암福庵·금성錦城·상운祥雲·응룡應龍·완파玩坡·석담石潭·쌍련雙蓮·동산東山·서룡瑞龍·운담雲潭 스님과는 재종再從간이 된다. 금파 스님은 무위無爲 스님의 완함阮咸5)이고 만파萬波 스님의 무착無着6)이다. 또 스님은 봉언奉彦·봉환奉煥·월현月現·봉화奉和 스님의 화상和尙 아사리阿闍梨7)이다.월화강사전月華講師傳스님의 법명은 인학仁學이고 호는 월화月華이며, 속성은 윤尹씨이고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일찍이 달마산達摩山으로 들어가 추담秋潭 스님으로부터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으며, 영담靈潭 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월화 스님은 남북으로 강당을 찾아다니며 명망 있는 승문에 몸을 던져 머물면서 교학을 배웠고, 선교禪敎의 법석을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수행했다. 삼제三際8)에 있어서 더위와 비와 추위를 피하지 않았으며, 사사四事9)에 있어서 옷·음식·약·방사房舍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인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머물렀다. 초청한 것도 아닌데 홀연히 찾아와서 우리 은사 추담 스님의 법인을 전해 받고, -
010_1067_a_01L菩薩戒於梵海覺岸堂。受經論於梵海
010_1067_a_02L雲谷普濟應化師之講肆。受行首僧之
010_1067_a_03L後。高佩揔攝之印。知識卓越。行藏雅
010_1067_a_04L愼。擧無過事。朋有知己。於公於私。載
010_1067_a_05L務載勤。說戒度人者。若干數也。養育
010_1067_a_06L被恩者。二三人矣。嗣法年代。古今昭
010_1067_a_07L詳。我太祖。大明洪武二十九年壬申。即
010_1067_a_08L位。至大淸光緖二十年甲午。五百三年。
010_1067_a_09L我世尊周昭王三十三年壬申。示滅。至
010_1067_a_10L大淸光緖二十年甲午。二千八百四十
010_1067_a_11L二年。師釋迦文之七十四世。大古之十
010_1067_a_12L七世。淸虛之十一世。蓮潭之五世。玩
010_1067_a_13L虎之曾。石虎之弟子。與印波湖月福庵
010_1067_a_14L錦城祥雲應龍玩坡石潭雙蓮東山瑞龍
010_1067_a_15L雲潭。爲再從。無爲師之1)玩 [24] 咸。萬波師
010_1067_a_16L之無着。奉彥奉煥月現奉和等之和尙
010_1067_a_17L阿闍梨。
010_1067_a_18L
010_1067_a_19L月華講師傳
010_1067_a_20L師名仁學。號月華。姓尹氏。靈岩人。早
010_1067_a_21L投達摩。從秋潭師。薙染。就靈潭師。受具。
010_1067_a_22L南北講堂。望門投止。禪敎法席。從心
010_1067_a_23L所如。三際。不避熱雨寒。四事。不着衣食
010_1067_a_24L藥舍。有緣則住。不速請也而來。受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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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7_b_01L우리 조사 벽해擘海 스님의 법석을 물려받았다.강당 문을 열어 무명無明의 풀숲을 헤치고 불조의 가풍을 우러러 찾아오는 학도들을 맞아들여 가르치는 한편, 결제에 들어가 기용살활機用殺活의 화두를 참구하기도 하였다.월화 스님은 천성이 청렴강직하고 털끝만한 잘못도 범하는 일이 없었으며 행리行履가 정밀하고 부지런하여 밤이나 낮이나 늘 작용하였다. 벽해擘海 스님과 응화應化 스님이 연 법회의 자리에 참예하였고, 침명枕溟 스님과 우담優曇 스님의 회상을 찾기도 하였으며, 범해梵海 스님과 연주蓮舟 스님의 강당에서 강론을 듣기도 하였고, 두륜산 남미륵암南彌勒庵·북미륵암北彌勒庵·만일암挽日庵·상원암上院庵·진불암眞佛庵·남암南庵에서 낱낱이 하안거 결제를 마쳤으며, 조계산 대승암大乘庵과 보조암普照庵에서도 모두 한 번씩 하안거 결제를 마쳤다.스님은 가지산 보타補陁에 주석했고 소림少林에서 성장기를 보냈으며, 노년에는 주로 장춘동長春洞에서 보냈다. 산과 산은 운수행각의 도량이요 곳곳마다 공화空花 불사佛事의 도량이다. 스무 겹 큰 사찰들이 눈앞에 소삼昭森하구나. 72번 오고 가고 하였으니 그 형용形容이 마음속에 뚜렷하네.스님은 도광道光 16년 병신(헌종 2, 1836)에 태어났으며 광서光緖 20년 갑오(고종 32, 1894)에 장춘동 첨성각瞻星閣에 살고 있는데, 나이는 59세이다.호은강사전湖隱講師傳스님의 법명은 축함竺函이고 호는 호은湖隱이며,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지장암地藏庵 사람이다.스님은 본래 서울 부근에서 출생한 사람인데 금강산으로 들어가 거주했으며 현옹玄顒 선사의 제자이다. 금강산에는 함경도·강원도·경기도·충청도 등 네다섯 도의 학인들이 폭주하여 몰려들었으니,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또한 명산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명산의 물과 돌 따위를 관람하기 위해 내왕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비단 절 이름이 장안長安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산수가 장안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경성京城을 통상 장안이라고 불렀다. 진秦나라 왕이 관중關中에 도읍을 정했는데, 네 관문의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에 서도西都를 일명 관중이라고 부르고, 일명 장안이라고도 하였다. 장안이라는 지명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합하여 천자가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이후로 수도를 통상적으로 장안이라고 부른 것이다. -
010_1067_b_01L恩師秋潭之印。奪我祖師擘海2)之。 [25] 開
010_1067_b_02L門而迎。跋草瞻風之徒。結制而究機用。
010_1067_b_03L殺活之話。性禀廉直。無毫里 [26] 之錯。行
010_1067_b_04L履精勤。有晝夜之作。叅於擘海應化之
010_1067_b_05L筵。訪於枕溟優曇之會。講於梵海蓮舟
010_1067_b_06L之堂。頭輪之南北彌勒挽日上院眞佛
010_1067_b_07L南庵。一一結夏。曺溪之大乘普照。皆結
010_1067_b_08L一夏。住於伽智。住於補陁。長於少林。
010_1067_b_09L老於長春。山山雲水道場。處處空花佛
010_1067_b_10L事。二十重大刹。4)胎 [27] 森於目前。七十二
010_1067_b_11L徃復。形容於心上。道光十六年丙申生。
010_1067_b_12L光緖二十年甲午。居長春洞瞻星閣。年
010_1067_b_13L五十九。
010_1067_b_14L
010_1067_b_15L湖隱講師傳
010_1067_b_16L師名竺凾。號湖隱。金剛山長安寺地藏
010_1067_b_17L庵人。師本京山人。入居金剛山。玄顒
010_1067_b_18L禪師弟子也。咸江京淸四五道學人。輻
010_1067_b_19L湊並臻。非但人也。抑亦有名山中故。
010_1067_b_20L以貪名山水石。來徃不絕。非但寺名之
010_1067_b_21L長安也。抑亦山水之長安也。世人。以京
010_1067_b_22L城。通穪長安。秦王都於關中。四關之
010_1067_b_23L中故。西都。一名關中。一名長安。長安
010_1067_b_24L地名。以統合天下。天子所居故。因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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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7_c_01L이 절(장안사)은 산중의 장안과 같은 곳이다. 그런즉 사람들이 모두 왕성의 장안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산중의 장안인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당나라의 이위공李衛公이름은 적績이다.이 “내 소원은 고려 오랑캐 나라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 번 구경하는 것(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라는 시를 읊었고, 해남의 은사隱士 매소梅巢 김세신金世臣은 금강산을 유람하고 『유산록遊山錄』 1권을 쓰고 그 책 이름을 ‘일견고一見藁’라고 하였다. 이는 곧 이위공의 ‘금강산을 한 번 구경했으면’ 하는 시에서 빌려다가 붙인 이름이다.내(각안)가 일찍이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에 들어갔더니, 어떤 삼베 두건을 쓴 선비가 『화엄경』을 펼쳐 놓고 스님과 강론하고 있었다. 또 영원암靈源庵에 올라갔을 때에는 그 삼베 두건을 쓴 선비가 혼자 앉아서 불경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주지에게 물었더니 주지가 말하기를, “그 선비는 영남에서 온 선비인데 여기에 머물면서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고 있다.”라고 하였다.봉우리면 봉우리, 돌이면 돌, 절이면 절, 사람이면 사람 모두가 다 별천지였고 인간의 세계가 아니었다. 일찍이 영주瀛州에 들어갔더니 산이면 산, 물이면 물, 집이면 집, 사람이면 사람 모두 다 물결 위의 건곤乾坤이요 우공의 산천이었다.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본 자는 믿을 것이요, 보지 못한 자는 믿지 않을 것이니 “도가 같아야 바야흐로 알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주인과 벗이 서로를 볼 수 없으니, 사바세계에 거처하면 시방세계가 다 그렇게 신령스럽고 기이한 것과 같다. 소요산 대자암大慈庵에 갔을 때 마침 지나가는 소년 수좌首座가 송낙松落으로 만든 승복을 입고 있었다. 그와 함께 구경을 다니게 되었는데, 사찰의 벽 위에 절구 시 한 수가 쓰여 있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逍遙山客逍遙在 소요산 나그네가 소요산에 머무니
日月逍遙水石間 해와 달도 수석水石 사이 소요하네
水石逍遙非水石 수석이 소요하면 수석이 아니니
逍遙剩得一生閒 소요함이 넘치면 일생이 한가하네
내가 이 시의 운을 따다가 시 한 수를 지으니 다음과 같다.
天曉逍遙相繼住 원효元曉와 소요逍遙가 이어서 살았으며
靈泉湧出窟岩間 바위 사이에선 신령한 샘물 솟아나네
內外城門神力閇 안팎 성문을 신통의 힘으로 닫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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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7_c_01L京曰。長安。此寺。山中之如長安也。然則
010_1067_c_02L人皆願見王城之長安。如願見金剛之
010_1067_c_03L長安。此也。唐之李衛公績。有願生高麗
010_1067_c_04L夷國。一見金剛山之詩。而海南隱士。梅
010_1067_c_05L巢金世臣。遊金剛山。作遊山錄一卷。
010_1067_c_06L名曰。一見藁。即李衛公。一見金剛山之
010_1067_c_07L詩。借作也。予曾入金剛山地藏庵。有一
010_1067_c_08L布巾士人。展華嚴經。與師講論。又上
010_1067_c_09L靈源庵。其布巾士人。獨坐看經。問其
010_1067_c_10L主人曰。嶺南士人來住。看經念佛云。
010_1067_c_11L峯峯石石。寺寺人人。皆別天地。非人
010_1067_c_12L間也。曾入瀛州。山山水水。家家人人。
010_1067_c_13L盡是波上乾坤。藕5)空 [28] 山川。對人言之。
010_1067_c_14L見者信之。不見者不信之。同道方知。
010_1067_c_15L於此可知也。主主伴伴不相見。若當娑。
010_1067_c_16L婆處。十方悉亦然之靈異也。入逍遙山
010_1067_c_17L大慈庵。有一過去少年首座。緇衣松落。
010_1067_c_18L同步觀玩。壁上。有一絕詩曰。逍遙山客
010_1067_c_19L逍遙在。日月逍遙水石間。水石逍遙非
010_1067_c_20L水石。逍遙剩得一生閒。予次曰。天 [29] 曉
010_1067_c_21L逍遙相繼住。靈泉湧出窟岩間。內外城
010_1067_c_22L「玩」甲本正誤表作「阮」。「之」下甲本正誤
010_1067_c_23L表有「席」。「里」甲本正誤表作「釐」。「胎」甲
010_1067_c_24L本正誤表作「昭」。「空」甲本正誤表作「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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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8_a_01L大悲會上萬年閒 대비大悲 회상은 만년 동안 한가하네
수좌가 말하기를, “현옹 스님은 저의 은사입니다. 지금은 서울 근교의 산에 있는 지장암에 계시고, 호은湖隱 스님은 저의 사형師兄인데 저는 지금 사형이 있는 곳으로 가는 중입니다.”라고 하였다. 현옹 노장은 아직도 석릉石陵에 머물면서 갑오년(1894) 여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원해강백전圓海講伯傳스님의 법명은 문주文周이고 호는 원해圓海이며, 속성은 음陰씨이고 순천 흥양興陽(고흥군)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일찍이 조계산 송광사로 들어가 수산 원만守山圓滿 선사의 처소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입실하여 법통을 계승하니, 묵암 최눌默庵㝡訥의 4대 법손이고 보봉 맹섭寶峯孟涉의 증손 법제자이며, 계봉 기준繼峰琪俊의 손자 법제자이고 수산 원만의 법을 이은 제자이다.두륜산 범해 각안 스님의 강당에서 비구 이백오십계와 대승보살 오십팔계를 받았다.
行如雪山 수행은 마치 설산雪山동자가
再逢羅刹 나찰을 다시 만난 것과 같고
回若善射 회향은 흡사 선재동자가
再見文殊 문수보살을 다시 만난 것 같네
周遊歷盡方外事 두루 돌아다니면서 방외方外의 일을 다 겪었고
曾爲浪子偏憐客 일찍이 방랑자 되어 외롭고 가엾은 나그네 되었네
把茅盖頭開門坐 백발 노장이 되어(把茅蓋頭) 문을 열고 앉았으니
龍蛇混雜凡聖叅 용과 뱀이 섞여 있고 범부 성인 참예하네
及釋戒環釋 계환戒環의 주석서『능엄경』 주석서(楞嚴經䟽)를 다시 풀이하고
重論馬鳴論 마명馬鳴의 논서『기신론』(起信論)를 거듭 논하였네.
住對面念打床爭 면전面前에 마음을 집중하고 책상을 치며 논쟁하고
句對不同思量起 대구對句가 같지 않아 생각을 일으키네『반야경』과 『원각경』(盤若圓覺)
星羅十門破碎了 별처럼 늘어선 열 개의 문을 부수자
月滿三觀滿天明 삼관三觀에 달빛 가득하니 온 하늘이 밝구나『화엄경』(華嚴)
禪門三寶次第說 선문禪門의 세 가지 보배를 차례로 설하매
千二百則無名相 1천2백 칙則 공안, 이름도 모양도 없네『선문염송』(拈頌)
十八國師常住處 열여덟 국사 상주常住하던 곳이요
十六宗師道場續 열여섯 종사宗師가 계속해 나온 도량이네팔도 좌우를 합하여 2×8 하여 16종사이다.(八道左右合二八十六宗)
傳鈯斧入三時 돌부鈯斧를 전하고 삼매에 드니
白首阿師撫躬歎 백수아사白首阿師10)가 몸 만지며 탄식하네적멸을 보임(示寂)11)
원해 스님이 어느 어느 스님에게 수업을 받았고 어느 어느 산중에서 글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스님의 천성은 건실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였으며, 어떤 일을 만나면 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장섰다. 식사 때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먼저 먹고 나면 뒤에 먹었고 -
010_1068_a_01L門神力閇。大悲會上萬年閒。首座曰
010_1068_a_02L玄顒。我之恩師。在京山地藏。湖隱。我
010_1068_a_03L之師兄。今行師兄處云。玄顒老尙居石
010_1068_a_04L陵。甲午夏。
010_1068_a_05L
010_1068_a_06L圓海講伯傳
010_1068_a_07L師名文周。號圓海。姓陰氏。順天興陽
010_1068_a_08L人也。早入曺溪山松廣寺守山圓滿禪
010_1068_a_09L師處。染衣入室。默庵㝡訥之四世。寶
010_1068_a_10L峯孟涉之曾孫。繼峰琪俊之孫。守山圓
010_1068_a_11L滿之嗣。受比丘二百五十戒及大乘菩
010_1068_a_12L薩五十八戒於頭輪山梵海覺岸師講堂。
010_1068_a_13L行如雪山。再逢羅刹。回若善射。再見
010_1068_a_14L文殊。周遊歷盡方外事。曾爲浪子偏憐
010_1068_a_15L客。把茅盖頭開門坐。龍蛇混雜凡聖叅。
010_1068_a_16L1)及 [30] 釋戒環釋楞嚴
經䟽。重論馬鳴論起信
論。住對
010_1068_a_17L面念打床爭。句對不同思量起2)盤 [31] 若
圓覺。星
010_1068_a_18L羅十門破碎了。月滿三觀滿天明華
嚴。禪
010_1068_a_19L門三寶次第說。千二百則無名相拈
頌。十
010_1068_a_20L八國師常住處。十六宗師道場續八道左
右合二
010_1068_a_21L八十
六宗。傳鈯斧入三3)時。 [32] 白首阿師撫躬歎
010_1068_a_22L示
寂。某某師處受業。何何山中讀書。不
010_1068_a_23L識。性健力勤。臨事不避。役先衆人。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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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8_b_01L공적인 일은 먼저 하고 사적인 일은 뒤로 미루었으며, 말은 적게 하고 지혜가 뛰어났다.보지 못했던 것을 배울 때에는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것조차 잊고 탐구했으며, 참례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눈이나 비를 무릅쓰고 찾아가서 만나곤 했다. 일이 있어 초청하면 사양하지 않고 다 들어 주었으니 금고金鼓를 따라간 행동이 바로 이것이며, 마음에 있어서 찾아가 참례할 적에는 도반들을 물리치고 행장을 꾸렸으니 범해의 처소를 찾아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착한 일을 보고 그것을 본받아 효행으로 옮기는 것은 멀리서 스승을 생각하여 대신 연비燃臂의식을 받들기 위해서이며, 어진 일을 당하여 사양하지 않은 것은 종문의 법통을 이어서 후사를 이으려고 하는 것이었다.남쪽 지방을 지나갈 때에 사람들이 다 원해 스님을 한번 만나 보고 싶어 했으며, 서방세계 갈 때에는 사람들이 다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께 이별을 고하고자 하였으니, 어찌 사람들로 하여금 이와 같이 감동하고 흠모하게 할 수가 있었을까? 채옹蔡邕이 말하기를, “내가 비명碑銘을 많이 썼으나 모두 창피한 마음이 들더니 오직 곽유도郭有道의 비석만은 부끄러운 기색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나도 원해 스님의 전기를 쓰면서 그와 같은 심정이 든다.경운강백전擎雲講伯傳스님의 법명은 원기元奇이고 호는 경운擎雲이며, 속성은 김金씨이고 본은 김해金海이며 영남 웅천熊川(진해)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조계산 선암사 대승암일명 남암南庵이라고 한다.의 강주이다. 함명涵溟 스님의 손자 제자이고 경붕 익운景鵬益運 스님의 법통을 이은 제자이다. 어려서는 여러 지방을 유람하다가 자라서는 학덕으로 이름이 높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그 또한 기쁘지 않을쏜가?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발길 닿는 곳에 머물곤 했다.글씨 보기를 좋아하여 구미에 당기면 글씨를 쓰곤 했다. 글씨를 그리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숙세夙世에 익힌 여경餘慶이었던지 부지런히 노력한 대가로 이룬 것은 아니었다. 이는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이 도와서 된 것이지 가르치고 인도하여 잘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강학은 3대에 전하여 솥의 세 발처럼 자처했고 필명筆名은 일신一身만이 홀로 드러났다.사람들은 말하기를 ‘글씨를 쓰는 것은 형식(名)이고 문장을 익히는 것은 실속(實)이다. 그런데 형식과 실속을 모두 잘하는 이는 드물다’고 하였다.성묘成廟(성종)가 어필로 글씨를 써서 김규金虬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예부터 문장에 능한 선비는 글씨를 잘 못쓰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문장을 잘하지 못하거늘 너는 글씨도 잘 쓰고 문장도 잘하는구나. -
010_1068_b_01L後高年。先公後私。小言多智。學所不
010_1068_b_02L見。忘寢食而求見。禮所不叅。冒雨雪
010_1068_b_03L而當叅。有事召請。則不辭免而聽許。
010_1068_b_04L隨金鼓之行。是也。有心徃叅。則退伴侶
010_1068_b_05L而治行。尋梵海之居。是也。見善移孝。
010_1068_b_06L遙思師而代受火。當仁不讓。宗嗣師而
010_1068_b_07L預繼後。過去南方。人皆願欲師一見。
010_1068_b_08L徃生西土。人皆泣。欲師一別。何令人之
010_1068_b_09L感慕如此哉。蔡▼(艹/邕)曰。吾爲碑銘。多矣。
010_1068_b_10L皆有慚色。惟郭有道碑。無慚色耳。圓
010_1068_b_11L海傳近理乎。
010_1068_b_12L
010_1068_b_13L擎雲講伯傳
010_1068_b_14L師名元奇。號擎雲。俗姓金氏。本金海
010_1068_b_15L嶺南熊川人也。曺溪山仙岩寺大乘庵
010_1068_b_16L一称
南庵講主也。涵溟之孫。景鵬益運之嗣。
010_1068_b_17L幼而遊方。長而高名。學而時習之。不
010_1068_b_18L亦悅乎。從心所如。湊州則居。觀筆所
010_1068_b_19L好。着味則書。夙世餘慶。非勤力之所
010_1068_b_20L得。自天祐之。非敎導之所能。講傳三
010_1068_b_21L世鼎居。筆名一身獨露。人之言曰。書
010_1068_b_22L寫名也。文章實也。名實并持者。小也。
010_1068_b_23L成廟御筆書紙。賜金虬曰。自古能4)文。 [33]
010_1068_b_24L士不能書。能書之人不能文。爾能文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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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8_c_01L너의 문장을 보면 네 아버지의 문체를 닮았고 네 글씨를 보면 네 아비 동료의 글씨체와 흡사하니 부모에 대한 효심을 옮겨 나라에 충성을 다하라.”라고 하였다. 이때 김규의 나이 겨우 열세 살이었다.옛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취하였다면 자우子羽 같은 인물자우는 담대멸명澹臺滅明을 잃을 뻔했다.”라고 했다. 말하자면 문장과 글씨 두 가지 다 갖춘 사람은 드물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스님은 둘 다 잘하였으니, ‘으뜸이며 기이한 인물(元奇)’이라는 법명을 가진 것은 미리 예언하여 붙여진 이름처럼 자연스럽다.정해년(고종 24, 1887) 봄에 서울에 사는 거사 안기선安箕仙이 찾아와서 같이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국가에서 지내는 재齋에서 경전을 서사書寫하였는데 원기 스님이 최고의 명필로 인정받았고 그 나머지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뒤처졌다.”라고 하였다. 안安은 나를 위해 글씨 1편을 써 주었는데 글씨를 참 잘 썼다. 원기 스님은 문장과 글씨 둘 다 잘하는 스님이다.응운강백전應雲講伯傳스님의 법명은 성능性能이고 호는 응운應雲이며, 장성 백양산 정토사淨土寺(백양사) 강원의 학인이다. 한양 용주漢陽龍珠 스님의 처소에 입실하여 법통을 이으니, 양악羊岳의 4대 법손이고 덕운德雲의 법손이며 보경寶鏡과는 동문 법형제가 된다.스님은 영구산靈龜山·조계산·지리산의 강원 강주들을 찾아다니면서 내전은 물론 외전까지도 공부하는 데 몰입하였다. 강론의 향기를 맡고 산 기운에 취하며, 산봉우리를 감상하고 흰 구름을 읊으면서 정토사로 돌아왔다. 정토사에 돌아와 지혜의 향을 피우고 강당에 앉아서 경전을 가지고 의문 가는 부분을 묻기 위해 오고가는 학인들을 맞아 강론을 펼쳤다. 사방에 걸림이 없고 바람을 관찰하는 무리들도 물이 바다로 돌아가고 구름이 모여들듯 밀려들었다.강당에서는 해조음海潮音으로 떠들썩했고 부엌은 정갈한 음식이 풍성하였으며, 행자는 돌을 지고 디딜방아 밟아 대고 소공小空은 땔나무를 해 오며 물을 길었다. 한 번 선다파仙茶婆를 부르니 사실四實이 구족하고 세 번 옴唵·아啊·훔▼(口+件)을 송誦하니 삼륜三輪이 성취된다. 사교四敎가 드러나고 일승一乘이 원만하게 밝아졌다.문자에 깊이 들어가 다시 공적空寂을 이야기하고 -
010_1068_c_01L能筆。見爾文。放爾父。見爾書。放爾父之
010_1068_c_02L同僚。其移孝于忠。虬。時年十三也。子
010_1068_c_03L曰。以貌取人失之。子羽5)澹 [34] 臺滅
明字言。文筆
010_1068_c_04L俱備者。其稀也。師能得之。元奇。自然
010_1068_c_05L之讖名也。丁亥春。京居士人安箕仙。尋
010_1068_c_06L來同宿言。國齋書經。元奇。爲首筆。其
010_1068_c_07L餘。募聚人。皆殿。安。爲我書一篇。善書。
010_1068_c_08L師乃文筆6)兼。 [35]
010_1068_c_09L
010_1068_c_10L應雲講伯傳
010_1068_c_11L師名性能。號應雲。長城白羊山淨土寺
010_1068_c_12L講學人。入室於漢陽堂龍珠師處。羊岳
010_1068_c_13L之四世。德運之孫。與寶鏡。同門兄弟。
010_1068_c_14L遊於靈龜山曺溪山智異山講諸主處。
010_1068_c_15L沒受內外經典。臭講香。醉山氣。玩巒
010_1068_c_16L唱白雲而歸 ▼(蓻/火)香慧而坐。帶經問疑之
010_1068_c_17L人。來之去之。通方觀風之徒。水歸雲
010_1068_c_18L屯。堂聒潮音。厨豊淨食。行者負石踏
010_1068_c_19L碓。小空覔7)大 [36] 擔泉。一呼仙茶婆。四實
010_1068_c_20L具足。三誦唵啊𠲟。三輪成就。四敎弄
010_1068_c_21L顯。一乘圓明。深入文字。還談空寂。抖
010_1068_c_22L「及」作「反」{甲}。「盤」甲本正誤表作「般」。
010_1068_c_23L「時」甲本正誤表作「昧」。「文」下甲本正誤。
010_1068_c_24L表有「之」。「澹」甲本正誤表曰當細書。甲本
010_1068_c_25L正誤表曰兼下缺。「大」甲本正誤表作「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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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9_a_01L정신을 가다듬어 네거리(康莊, 사통팔달의 큰 길)를 두루 돌아다녔다. 일천 마을 일만 가호家戶를 찾아다니며 청동靑銅과 백미白米를 모아 보경寶鏡 스님은 입암笠岩을 중건했고 덕송德松 스님은 약사전을 세웠다. 금해錦海 스님은 선방을 새로 열어 참선과 교학을 함께 운행하였고, 응운應雲 스님은 운문암雲門庵을 중흥시켜 강론과 독송을 아울러 정립하였다.신선은 양羊을 타고 오르내리고 산은 허공을 능멸하며 푸르렀다 희었다 한다. 각진覺眞 국사는 뒤에서 먼지를 밟으면서 강림하였고 백파白坡 율사는 앞서 간 발꿈치를 이어서 찬양하였다.백양산에 구름 걷히매 하늘가 산봉우리 고수高壽를 드리고 한강 물 거울처럼 열리매 파도 밑 어룡魚龍이 여주驪珠를 바친다. 용상龍象 대덕 끊이지 않고 문장文章들도 맑은 이름 떨쳤다. 인걸人傑은 간간이 나타나서 절의 풍속 길이 이어진다. 맑은 연못(鏡潭)에는 연꽃이 피어나고 소나무 아래 암자(松庵)엔 군자가 쉰다. 꽃 핀 연못(華潭)엔 산 그림자 비추고 비단 같은 바다(錦海)엔 신선이 떠가네. 이것은 모두 용운 스님의 동서東西에 사는 벗들이고 학문하는 바다의 옛 친구들이다. 인근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하니 제각각 말할 수 없다. 뭉뚱그려 한꺼번에 보라.구연강백전九淵講伯傳스님의 법명은 법선法宣이고 호는 구연九淵이며, 승주昇州(순천)의 옛 길상사吉祥寺(송광사) 강주이다. 속성은 박朴씨이고 순천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용운龍雲(1813∼1888) 선백의 법통을 이었으니, 응해 성홍應海晟弘과 한운 한오漢雲漢悟와는 법형제가 되며, 법해 봉주法海琫注는 법문의 조카이다.일찍이 지혜를 갖추었으며 어릴 적에 이미 세속의 전적을 모두 읽었다. 머리를 깎고 승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스승을 찾아 강론을 들었다. 스님이 찾은 산문은 지리산·조계산·백양산이고 배알한 사람은 침공枕公·백공白公·경사慶師·응사應師였으며, 벗은 삼남三南의 눈 푸른 학인들로 미래의 종장宗長들이었다.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서 동쪽에 갔다 서쪽에 갔다 하다가 백발노인이 되어서 향을 사르고 임금의 축수를 기원하니, 무명의 숲을 헤치고 불조의 가풍을 우러러 찾아오는 스님들이 곡절曲折을 묻지 않고 찾아왔으며, 일대사를 깨닫고 귀숙歸宿할 곳을 찾은 사람들이 도연徒然히 신을 신고 가버린다. 그리하여 홀방笏房은 오히려 좁아터지고 -
010_1069_a_01L擻精神。周遊康莊。過千村萬家。募靑
010_1069_a_02L銅白米。寶鏡重笠岩。德松建藥師。錦
010_1069_a_03L海新開禪房。禪敎雙運。應雲重興雲門。
010_1069_a_04L講誦並立。仙騎羊而陞降。山凌虛而靑
010_1069_a_05L白。覺眞國1)師。 [37] 後塵而降臨。白坡律師。
010_1069_a_06L繼前武而贊揚。雲收羊山。天邊峯2)立 [38]
010_1069_a_07L獻高壽。鏡開漢水。波底魚龍呈驪珠。
010_1069_a_08L龍象蹴踏。文章淸振。人傑3)問 [39] 出。寺風
010_1069_a_09L長吹。鏡潭蓮花開。4)松 [40] 君子休。華潭映
010_1069_a_10L山照。錦海仙舟泛。此皆應雲之東西得
010_1069_a_11L朋。黌海古友。隣近同事。不可各說。
010_1069_a_12L5)電 [41] 同一覽。
010_1069_a_13L
010_1069_a_14L九淵講伯傳
010_1069_a_15L師名法宣。號九淵。昇州古吉祥寺講主
010_1069_a_16L也。俗姓朴氏。順天人也。嗣法於龍雲
010_1069_a_17L禪伯。應海晟弘。漢雲漢悟。爲法兄弟。
010_1069_a_18L法海琫注。爲法門之阿咸。夙具智慧。
010_1069_a_19L幼閱世典。削髮改衣。尋師臭講。山則
010_1069_a_20L智異曺溪龜山羊山。人則枕公白公慶
010_1069_a_21L師應師。友則三南靑眼。未來宗長。從
010_1069_a_22L心所如。之東之西。把茅盖頭。拈香祝
010_1069_a_23L上。跋草瞻風之師。不問曲折而至。了
010_1069_a_24L事歸宿之人。徒然納履而去。笏房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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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9_b_01L쇠문지방도 저절로 닳을 지경이었다. 초옥草屋에 물러나 시홀방장十笏方丈12)에서 졸고 있다.벽련선사전碧蓮禪師傳스님의 법명은 인성仁性이고 호는 벽련碧蓮이며, 순천 조계산 송광사의 대사이다. 속성은 장張씨이고 순천군 월등면 주동珠洞에서 태어난 사람이다.스님은 지봉 지안智峯之安 선사의 계단에서 법인을 받았다. 지봉은 성월 서유聖月瑞薷의 법을 이은 제자이니 벽련 스님은 응암應庵의 5대 법손이다.스님이 사는 절은 십팔공十八公13)이 배출된다고 하는 옛 가람이요, 16종사가 계셨던 큰 도량이다. 법인은 바다에 그림자 드리우고(影海) 가을은 단풍 드는 바위에 미친다(楓岩). 침묵으로 대응하여 말이 없으니 삼한의 옛 산천에 사자후獅子吼를 떨치며, 향기 어린 백벽白碧이 동방의 크고 작은 사람과 신들에게 장광설長廣舌을 편다. 성월聖月은 더욱 밝으며 지봉智鋒은 빼어남을 다툰다. 벽련碧蓮에 이르러 실상實相의 묘법妙法을 머금었고 인과의 큰 법을 선설한다. 법제자도 있고 법손도 있으니, 그 이름 금명錦溟이로다. 학업의 땅에 그 이름 알려졌고 명성이 강당에 퍼지니, 스님은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 있다. 나의 도가 동쪽으로 갔구나.”라고 말할 만하다.나(범해)는 금명 스님의 노스님(벽련 선사)을 보지는 못했지만, 금명 스님의 훌륭한 됨됨이는 보았도다.법해강백전法海講伯傳스님의 법명은 봉주琫注이고 호는 법해法海이며, 옛 송광산 수선사修禪社의 강사이다. 속성은 김씨이고 낙천洛川 고을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한운 한오漢雲漢悟 선사의 처소에서 은혜를 받아 은사로 모셨고 뒷날 법인까지 전해 받았다. 법해 스님은 한운 스님의 이름난 제자 중에 한 사람이다.이름 있는 종사宗師들을 찾아다니며 참례하고 내서內書(불경)는 물론 외서外書까지도 두루 배웠다. 이름난 산이면 반드시 찾아갔고 훌륭한 인물이면 기어이 방문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동방의 산과 물을 보고 마시지 않은 곳이 없고 총림의 석덕碩德치고 훈습薰習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스님의 성품은 본래 영걸英傑하고 호탕하였으며, 게다가 밝고 깨끗함마저 지니고 있었으며, -
010_1069_b_01L隘。鐵閾自甐。退隱草屋。坐睡十笏。
010_1069_b_02L
010_1069_b_03L碧蓮禪師傳
010_1069_b_04L師名仁性。號碧蓮。順天曺溪山松廣寺
010_1069_b_05L大師也。姓張氏。順天郡月登面珠洞人
010_1069_b_06L也。受法印於智峰之安禪師之壇。智峯。
010_1069_b_07L聖月瑞薷之弟子。應庵之五世。寺乃
010_1069_b_08L十八公之古伽藍。十六宗之大道場。法
010_1069_b_09L印影海。秋及楓岩。默應無言。振獅子
010_1069_b_10L吼於韓之古園山川。白碧有香。覆廣長
010_1069_b_11L舌於東之大小人神。聖月尤明。智鋒爭
010_1069_b_12L秀。至於碧蓮。含實相之6)好 [42] 法。宣因果
010_1069_b_13L之7)之 [43] 大典。有子8)有孫。 [44] 曰錦溟。9)曰 [45] 名
010_1069_b_14L在學地。聲聞講堂。師可謂展脚而睡。
010_1069_b_15L吾道東矣哉。吾不見師祖。吾見錦溟之
010_1069_b_16L爲人可人哉。
010_1069_b_17L
010_1069_b_18L法海講伯傳
010_1069_b_19L師名琫注。號法海。古松廣山修禪社講
010_1069_b_20L師。俗姓金氏。洛川人也。受恩受印於
010_1069_b_21L漢雲漢悟禪師處。漢雲師之高弟。遊叅
010_1069_b_22L有名宗師。講學內外書籍。山之名必至。
010_1069_b_23L人之眞必訪。東方山水。無不見飮。叢
010_1069_b_24L林碩德無不熏矣。性本傑浩。曠盪之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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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69_c_01L다시 웅호雄豪하고 투철한 기개까지 충만하였다. 기운은 산 형세처럼 솟아났고 말은 흐르는 물처럼 줄줄 흘러나왔다.연꽃에 향기 어리고 매실이 익자 스승의 강석과 법인을 물려받아 사자좌에 올라 사자후를 토해 내니 귀머거리 말을 듣고 봉사가 눈을 뜨듯 듣는 이에게 새로움을 열어 주었다. 강당 문을 열고 학인들을 영접하니 날마다 쉴 겨를이 없었으며, 자리에 올라 질문에 응해 답하니 그 곁엔 마치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달을 대하여 시를 읊고 문장에는 수정을 가하는 일이 없었다.남쪽으로 두륜산을 유람하다가 만일암挽日庵 삼보단三寶壇 앞에서 보살계를 받고, 북쪽으로 길상사吉祥寺에 이르러 보조암普照庵 세 가닥 서까래 아래14)에서 깨달음의 언덕(覺岸)을 보았다. 그 후에 교학을 버리고 선방에 들어가 명패名牌를 걸고 공空의 실상을 증명하기 위하여 온갖 인연을 모두 쓸어버리고 오직 ‘하나의 참된 것’만 취했다.나이가 높아지고 승랍이 길어지니 육신은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은 꺼진 재와 같았다.청담선사전淸潭禪師傳스님의 법명은 이현理玄이고 호는 청담淸潭이며, 속성은 원元씨이고 남평南平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운흥사雲興寺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이곳저곳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다니며 명패를 걸었다 거두곤 하였다. 두륜산에 가서 문암聞庵·용연龍淵·운기雲起 스님에게 학문을 익혔고, 이어 달마산의 응화應化·영허靈虛 스님과 조계산의 침명枕溟·청공靑空 스님들로부터 각각 가르침을 받았다.스님은 깃발을 세우고 향을 사르고 스승으로부터 법통을 이어받았다.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르기 위하여 선암사로 옮겨 늙어 죽을 때까지의 계획을 정하였다. 책궤와 의발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고 일곱 근 장삼(七斤衫)15)과 여섯 수 옷(六銖衣)16)만 가지고 산수를 두루 유람하면서 선교禪敎의 선지식을 참방하였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모습은 마치 기러기 털이 순풍順風에 날리듯 거리낌이 없었으니, 이러한 선사의 뜻을 빼앗을 수 없었으며 그 형세를 막을 수 없었다.스님은 말을 어둔한 것처럼 조심성 있게 하였고 성품은 느릿느릿 신중하게 하였다. 재를 올리는 자리를 만나면 옛 법을 설하고 시 읊는 자리에 가면 맑은 시로 화답하였으며 글씨를 쓰는 자리에 가면 전서篆書와 예서隷書를 쓰곤 했다. 붓글씨는 초의草衣에게서 익혔고 설법은 환월喚月 스님으로부터 배웠으며 율律은 선곡禪谷 스님에게 익혔다. -
010_1069_c_01L更充雄豪透徹之氣。氣踴山勢。言出川
010_1069_c_02L流。蓮香梅熟。傳斧封印。據猊震吼。如
010_1069_c_03L聾若盲。開門迎接。日不暇給。登座酹
010_1069_c_04L答。傍若無人。對月唱和。文不加點。南
010_1069_c_05L遊頭輪。受菩薩位於挽日三寶壇前。北
010_1069_c_06L歸吉祥。見覺岸形於普照三條椽下。捨
010_1069_c_07L敎入禪房。掛牌證空。都掃萬緣。惟取
010_1069_c_08L一眞。年高臘長。形枯心灰。
010_1069_c_09L
010_1069_c_10L淸潭禪師傳
010_1069_c_11L師名理玄。號淸潭。姓元氏。南平人。入
010_1069_c_12L雲興寺。薙髮染衣。從心所如。掛牌收
010_1069_c_13L牌。學於頭輪山之聞庵龍淵雲起。達摩
010_1069_c_14L山之應化靈虛。曺溪山之枕溟靑空。建
010_1069_c_15L幢拈香。捨舊從新。移立於仙岩。定終
010_1069_c_16L老之計。傳櫝托衣。七斤彩。 [46] 六銖衣。周
010_1069_c_17L覽山水。徧叅禪敎。飄飄然若鴻毛遇
010_1069_c_18L順風。志不可奪。勢不可遏。口訥訥。性
010_1069_c_19L遲遲。逢齋說古法。遇吟和淸韻。見斫
010_1069_c_20L書篆隷。筆師草衣。說紹喚月。律依禪
010_1069_c_21L「師」下甲本正誤表有「躡」。「立」甲本正誤
010_1069_c_22L表作「岳」。「問」甲本正誤表作「間」。「松」下
010_1069_c_23L甲本正誤表有「庵」。「電」甲本正誤表作「雷」。
010_1069_c_24L「好」疑「妙」{編}。「之」疑衍字{編}。「有孫」作
010_1069_c_25L「孫有」{甲}。「曰」甲本正誤表曰衍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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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0_a_01L연대蓮坮에 머물기도 하였고 운흥사雲興寺에 머물기도 하였으며, 대둔사에 살기도 했고 선암사로 옮기기도 하였다. 마치 대붕大鵬이 거처를 옮겨 날아가고 기러기가 북쪽으로 돌아가며 제비가 찾아오는 것처럼 천성이 한곳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고, 음풍영월吟風咏月을 좋아하였다. 호연浩然하여 생각도 없고 근심하는 것도 없는 듯하였다.예암선사전禮庵禪師傳스님의 법명은 광준廣俊이고 호는 예암禮庵이며, 속성은 최씨이고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어릴 때 두륜산으로 들어가 포운浦雲 스님의 회상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이어 만휴萬休 스님의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고, 은사의 문하에서 법인을 전해 받았으며, 범해梵海 스님에게서 대승보살계를 받았다.이후, 스님은 범해 스님·응화應化 스님·보제普濟 스님·운곡雲谷 스님의 처소를 찾아다니며 경학을 공부하였다. 수승의 소임을 맡아보았고 총섭의 직첩을 받았으며, 자헌대부의 교지를 받기도 하였다.스님은 전신이 장대長大하고 외재外財가 넉넉하였으며, 사찰 안의 일을 꾸려나감에 있어서도 남에게 원한을 사는 일이 없었다. 몸은 육중하고 말은 신중하였으며, 대인大人의 행리行履가 보이는 인물이었다.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는 신용이 있었고 모든 일에 대하여 신중하게 하고 경솔하게 처리하는 일이 없었으며, 선조들을 받들 때에는 예절 바르게 하였다.예암 스님은 연담 스님의 4대 법손이고 은암銀岩 스님의 손자 제자이다. 스님에게 계를 받은 제자는 재민在敏·재윤在允·재호在浩 등 15명이 있고, 법인을 전해 받은 제자는 육파六波·기운奇雲 등 23명이 있다.스님은 도광道光 14년 갑오(순조 34, 1834)에 태어나 광서光緖 20년 갑오 (고종 31, 1894)에 입적하였으니 세속 나이는 61세였다. 대둔사 명적암明寂庵 명조전明祖殿에 머물러 계셨다.운담선사전雲潭禪師傳스님의 법명은 희영喜永이고 호는 운담雲潭이다. 백하 근학白荷謹學 선사의 선실에 들어가 입실 제자가 되었다. 백하 스님은 망해 지일望海知一 스님의 법을 이은 제자이고, 망해 스님은 정암 즉원晶岩卽圓 스님의 법을 이은 제자이다.운담 스님은 하담 찬홍荷潭贊弘 스님과 동문 형제지간이다. 하담 스님의 속성은 -
010_1070_a_01L谷。住蓮坮。住雲興。居大芚。移仙岩。
010_1070_a_02L若鵬之1)徏。 [47] 鴈之歸。燕之來。性不常住。
010_1070_a_03L好吟風咏月。浩然若無思無慮然也。
010_1070_a_04L
010_1070_a_05L禮庵禪師傳
010_1070_a_06L師名廣俊。號禮庵。姓崔氏。靈岩人。幼
010_1070_a_07L入頭輪山。染衣於浦雲師室。受具於萬
010_1070_a_08L休師壇。受法印於恩師席。受大乘菩薩
010_1070_a_09L戒於梵海師。重遊學於梵海師應化師
010_1070_a_10L普濟師雲谷師處。行首僧之役。贈揔攝
010_1070_a_11L之帖。贈資憲大夫敎旨。全身長大。外
010_1070_a_12L財有餘。用舍之間。無寃於人。軆重語
010_1070_a_13L屯。有大人之行履處。與人交而有信。
010_1070_a_14L凡於事。有重不輕。奉先有禮。蓮潭之
010_1070_a_15L四世。銀岩之孫。受戒者。在敏在允在
010_1070_a_16L浩等十五人。受法印者。六波奇雲等二
010_1070_a_17L三人。道光十四年甲午生。光緖二十年
010_1070_a_18L甲午寂。年六十一。居大芚寺之明寂明
010_1070_a_19L祖殿。
010_1070_a_20L
010_1070_a_21L雲潭禪師傳
010_1070_a_22L師名喜永。號雲潭。入室於白荷謹學禪
010_1070_a_23L師室。白荷。望海知一之嗣。望海。晶岩
010_1070_a_24L即圓之嗣。師。與荷潭贊弘。同門兄弟。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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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0_b_01L추秋씨이고, 그의 제자 서봉瑞峯 스님의 속성도 추씨이다. 지금은 청해淸海 관음암觀音庵에 살고 있는데 그 전에는 정수사淨水寺에 살았다.세월이 흘러 말법 시대가 되어 절은 피폐해지고 승려들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절에는 절의 가풍이 없어졌고 승려에겐 승려가 해야 할 일이 사라졌다. 좋지 않은 일들만 계속해서 일어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스님은 이 어려운 일들을 잘 감당해 나갔다.동쪽이 무너지고 서쪽 벽만 남아 있는 상태였으나 이 일을 처리해야 할 자리에 앉아서 일처리를 하느라 온종일 겨를이 없었다. 성품이 본래 순박하고 마음과 입이 무겁고 신중하였다. 스님은 한편으로는 일을 좋게 처리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한편으로는 선대 스님들의 은덕에 보답하고자 애를 썼다. 사람이 죽으면 산문도 절도 황폐화되고 마니 인재가 죽고 난 뒤에 어려움을 알 만하다.계를 받고 법을 전한 사람을 다 논할 수 없지만, 제자 중에 으뜸인 찬일贊一 스님이 뒤를 이어 업적을 쌓아 나갔다.자신의 일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사찰의 일과 조사의 사당에 예를 올리는 일에 대하여 한결같이 옛 법도에 맞게 하였으며, 이리저리 버티어서 겨우 지탱해 가면서도 법도를 잃지 않았다. 바람으로 빗을 삼아 머리를 빗고 빗물로 머리를 감으면서 가서 구원하고, 와서 보수하였다. 원통함을 말하는 자가 많았지만 다 듣지 않고, 주선하기도 하고 끊어버리기도 하였다. 다른 이들이 맨발로 뛰어도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용월선사전龍月禪師傳스님의 법명은 경언敬彦이고 호는 용월龍月이며, 나주 덕룡산 쌍계사雙溪寺 사람이다.재능과 지식이 남음이 있어 기예를 배우기 위해 따르는 이가 많았다. 스님은 어려서는 내외의 전적을 두루 배우고 장성해서는 크고 작은 기술을 다 익혀 성취하지 못한 것이 없었으니, 이른바 재능과 기술을 모두 겸하여 갖추었다고 하겠다. 스님의 재주 중에는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선비들의 옷을 지음에 있어서 크고 작은 사람에 따라 재단하여 옷을 만들면 맞지 않는 법이 없었으며, 법의를 만드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품品이나 조條, 크고 작고 길고 짧음에 있어서 소밀踈密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무리를 지어 그 재능을 배우려고 귀를 기울이고 신을 고쳐 신으면서 따르는 이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스님은 나무를 다루는 목공 일에도 조예가 깊었다. 스님은 기와집을 지음에 있어서 높낮이와 길이와 너비 등을 재어 짓고 싶은 집을 지었다. 완성되고 나서 살펴보면 새가 날개를 펴고 나는 것같이 아름답고 훌륭하였다. 멀리서 보면 사자가 걸음을 옮겨 놓는 것 같았고, 가까이서 보면 봉황의 머리와 원앙의 무늬처럼 아름다웠고 하늘을 가리고 땅을 누르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스님의 건축법과 목공 일을 배우려고 도구를 메고 자를 끌면서 -
010_1070_b_01L潭。姓秋氏。弟子瑞峯。姓秋氏。今居淸
010_1070_b_02L海觀音庵。常 [48] 居淨水寺。世降俗末。寺
010_1070_b_03L敗僧殘。寺無寺風。僧無僧事。弊邊疊
010_1070_b_04L生。站時難耐。師能當之。東破西2)壁。 [49]
010_1070_b_05L坐防行處。日不暇給。性元淳朴。心口
010_1070_b_06L默重。一以善處之力。一以誕報廟之德。
010_1070_b_07L人之云亡。寺山殄瘁。人亡則難可知矣。
010_1070_b_08L受戒傳法之人。卒不可論。而元弟子贊
010_1070_b_09L一繼績。自己事不可暇。而寺事廟禮。
010_1070_b_10L一準古道。左枝右梧。不失䂓貌。櫛風沐
010_1070_b_11L雨。去救來補。稱寃者。多而不聽。周旋
010_1070_b_12L折旋。而補合之。人非脫足及者也。
010_1070_b_13L
010_1070_b_14L龍月禪師傳
010_1070_b_15L師名敬彥。號龍月。羅州德龍山雙溪寺
010_1070_b_16L人。才知有餘。隨從斅藝者。衆矣。幼學
010_1070_b_17L內外典籍。長習大小巧工。無不成就。
010_1070_b_18L可謂兼并才工也。最能針線之工。儒服
010_1070_b_19L法制。隨大小裁作。無不允叶。諦當佛
010_1070_b_20L衣品條。大小長短。無不踈密。適中儕
010_1070_b_21L輩。受業者。傾耳納履。而從者。數不可
010_1070_b_22L量。又能掄木之匠。瓦家制度。高低長
010_1070_b_23L廣。從心所欲。翬飛鳥革。遠見而獅子
010_1070_b_24L移步。近見而鳳頭鴦畦。蔽天壓地。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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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0_c_01L따르는 자들 또한 헤아릴 수 없었다. 스님은 얼마 뒤에 장흥 보림사寶林寺로 옮겨 주석했는데, 재능으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저 도림사道林寺의 백련白蓮 스님법명은 영해影海이다., 송광사松廣寺의 백순白淳 스님, 선암사仙岩寺의 상문尙文 스님, 보림사寶林寺의 대윤大允 스님법명은 도안到岸이다., 대둔사大芚寺의 책오策悟 스님 등은 다 예전 장석匠石(장인)의 부류들이다.관음암觀音庵의 혜원蕙元 스님호는 송파松坡, 보림사의 교화敎化 스님호는 도월道月, 송광사의 취선就善 스님호는 운파雲坡, 불호사佛護寺의 ▣▣17) 스님호는 신월信月, 대둔사의 교율敎律 스님호는 남파南坡 등은 모두 다 옛적 아난阿難과 같은 벗18)들이다.미황사美黃寺의 진일眞一 스님호는 창월蒼月, 대둔사의 보한普閒 스님, 만덕사萬德寺의 보인普印 스님, 보림사의 행준幸俊 스님은 모두 다 옛날 계환戒環 같은 무리19)들이다.용월 스님에게는 이러한 세 가지의 재주가 있었으니, 어찌 한 세대에 큰 이름을 떨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학三學계·정·혜를 말한다.이 전해질지 전해지지 못할지는 이로 인해 알 수 있을 것이다.원응강백전圓應講伯傳스님의 이름은 계정戒定이고 호는 원응圓應이며, 속성은 이李씨이고 해남 녹산방鹿山坊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어려서 장춘동長春洞에 들어가 동화東化 스님에게서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영호 율간靈湖栗間 선사에게 구족계를 받고 보제普濟 강백講伯에게서 보살계를 받고 동화 은사恩師의 조실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었다.스님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기 짝이 없었고 자라서는 지해知解가 보통 사람들을 뛰어넘었다. 글에 임하면 눈이 지나치기만 해도 줄줄 외웠고 그림을 모사하는데 종이만 바뀌었지 그림은 똑같았다.보제普濟·범해梵海·연주蓮舟·응화應化·월화月華 등 5대 강사에게 참학하였고, 성호誠浩·보정寶鼎·찬의贊儀·원기元奇·화일化一·기운奇雲·세영世英 등 일곱 분의 고명한 벗과 우애가 깊었다.영남과 호남을 전전하면서 경전을 강론하였고 시를 지어 산야山野를 찬미하기도 하였다. 비록 남복南服20)에 있으나 북관北關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스님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불만을 품지 않으니 이 또한 참다운 불제자가 아니겠는가? 예부터 지금까지 소은小隱을 귀히 여겼다. -
010_1070_c_01L器曳尺。而隨者。其儷不3)意。 [50] 尋移寶林。
010_1070_c_02L以才鳴於世。彼道林之白蓮影
海。松廣之
010_1070_c_03L白淳。仙岩之尙文。寶林之大允到
岸。大
010_1070_c_04L芚之策悟。皆古匠石之類。觀音之蕙元
010_1070_c_05L松
波。寶林之敎化道
月。松廣之就善雲
坡。佛護
010_1070_c_06L之□□信
月。大芚之敎律南
坡。皆古阿難之
010_1070_c_07L友。美黃之眞一蒼
月。大芚之普閒。萬德之
010_1070_c_08L普印。寶林之幸俊。皆古戒環之等也。有
010_1070_c_09L此三才。豈不大名於一世哉。三學定慧
戒
010_1070_c_10L之傳不傳。因此可覺也哉。
010_1070_c_11L
010_1070_c_12L圓應講伯傳
010_1070_c_13L師名戒定。號圓應。姓許氏。海南鹿山
010_1070_c_14L坊人。幼入長春洞。染衣於東化師。受
010_1070_c_15L具於靈湖栗間禪師。受菩薩戒於普濟
010_1070_c_16L講伯。拈香於東化恩師。幼而頴悟絕倫。
010_1070_c_17L長而知解超等。臨文過目成誦。摹畫移
010_1070_c_18L紙同本。叅於普濟梵海蓮舟應化月華
010_1070_c_19L五大講師。友於誠浩寶鼎贊儀元奇化
010_1070_c_20L一奇雲世英七處高朋。經轉嶺湖。詩贊
010_1070_c_21L山野。雖在南服。不愧北關。以人不知
010_1070_c_22L而不慍。不亦佛子乎。自古及今。小隱
010_1070_c_23L「▼(彳+歩)」甲本正誤表作「徙」。「壁」作「避」{甲}。
010_1070_c_24L「意」甲本正誤表作「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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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1_a_01L옛날 장구령張九齡21)은 주애珠涯22)에서 태어났고 소동파蘇東坡는 미주眉州에서 태어났으며, 강홍엽康弘曄은 제주에서 태어났고 장보고張保皐는 청해에서 태어났으며, 유미암柳眉岩(柳希春)과 윤고산尹孤山(尹善道)은 해남에서 태어났다. 난초가 재앙을 만나면 혜초蕙草가 탄식하고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옛날 사람들은 뒷세상의 사람들을 위해서 문자의 사이에 온 정성을 다 기울였건만 뒷세상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도 못하고 힘쓰지도 않으니, 먼저 깨달은 사람이 후세 사람들을 깨우치는 도리에 부합하지 못한다.우리 동국의 일로 살펴보면, 원효 대사의 『화엄경소』·『금강삼매경소』·『발심문』, 의상 대사의 『화엄약소華嚴略䟽』·『산수기山水記』·『법성게』, 도선국사의 『음양지리서』, 대각 국사의 『화엄』, 보조 국사의 『결사문』·『계초심학인문』, 진각 국사의 『염송』30편·『강요綱要』1권, 진정 국사의 『선문보장록』3권·『선문강요禪門綱要』1권, 부암浮菴 스님의 『석가여래행적송』2권, 함허涵虛 스님의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2본, 구곡龜谷 스님의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10권, 야운野雲 스님의 『자경문自警文』, 청허 대사의 『선문귀감禪門龜鑑』·『선교석』·『운수단가사雲水壇歌辭』·『삼가일지三家一指』, 송파松坡 스님의 『해의解疑』, 허백虛白 스님의 『승가예의문僧家禮義文』, 회암 스님의 『화엄소과기華嚴䟽科記』, 연담 스님의 『화엄유망기華嚴遺忘記』5권·『현담사기玄談私記』2권·『사집수기四集手記』각 1권·『기신사족起信蛇足』1권·『금강하목金剛鰕目』1권·『원각사기圓覺私記』1권·『염송착병拈頌着柄』2권, 나암懶庵 스님의 『증관문證觀文』1권, 묵암黙庵 스님의 『화엄품목華嚴品目』1권·『회요會要』1권, 백파白坡 스님의 『작법귀감作法龜鑑』2권·『선문수경禪門手鏡』1권·『사교사기四敎私記』, 양악羊岳 스님의 『고문진보사기古文眞寶私記』1권, 구연九淵 스님의 『통감요해通鑑要解』2권, 초의 스님의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辯漫語』1권, 우담優曇 스님의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1권, 설두雪竇 스님의 『해정록楷正錄』1권, 범해梵海 스님의 『삼경과유교평三經科遺敎評』1권·『치문필담緇門筆談』1권 등 -
010_1071_a_01L爲貴。昔張九齡。生珠涯。蘇東坡。生眉州。
010_1071_a_02L康弘曄。生濟州。張保皐。生淸梅。柳眉岩
010_1071_a_03L尹孤山。生海南。蘭灾而蕙歎之。松茂而
010_1071_a_04L栢悅之。古之人。爲後人。拳拳懇懇於
010_1071_a_05L文字之間。後人不覺不務。甚非所以先
010_1071_a_06L覺覺後覺之道也。以我東見之。則元曉。
010_1071_a_07L華嚴䟽三昧䟽發心文。義湘。華嚴略䟽
010_1071_a_08L山水記法性偈。道詵。陰陽地理書。大覺。
010_1071_a_09L華嚴。普照。結社文初心文。眞覺。拈頌三十
片。
010_1071_a_10L綱要一
卷。眞靜。寶藏錄三
卷。禪門綱要一
卷。浮
010_1071_a_11L菴。釋迦行蹟二
卷。涵虛。金剛說1)敎 [51] 誼二
本。龜
010_1071_a_12L谷。拈頌說話十
卷。野雲。自警文。淸虛。禪門
010_1071_a_13L龜鑑禪敎釋雲水壇三家一指。松坡。解
010_1071_a_14L疑。虛白。僧家禮。晦庵。華嚴䟽科記。蓮潭。
010_1071_a_15L華嚴遺忘記五
卷。玄談私記二
卷。四集手記
010_1071_a_16L各一
卷。起信2)▼(虫+(枕-木)) [52] 足一
卷。金剛鰕目一
卷。圓覺私
010_1071_a_17L記二
卷。諸經要會一
卷。拈頌着3)栖 [53] 二
卷。懶庵。證
010_1071_a_18L觀文一
卷。默庵華嚴品目一
卷。會要一
卷。白坡。
010_1071_a_19L龜鑑二
卷。禪文手鏡一
卷。四敎私記。羊岳。古
010_1071_a_20L文私記一
卷。九淵。通鑑要解二
卷。草衣。四辯
010_1071_a_21L漫語一
卷。優曇。禪門證正錄一
卷。雪竇。楷正
010_1071_a_22L錄一
卷。梵海。三經科遺敎評一
卷。緇門筆談一
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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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1_b_01L이 모든 저술은 강의를 하는 사람들의 안목이니 그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사서삼경은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로 안목을 삼고 훈해訓解로 지남指南을 삼고 있으니, 유교와 불교가 무엇이 다르겠는가?스님은 화악 문신華岳文信 스님의 8대 법손이고 명진 재엄明眞再嚴 스님의 5대 법손이며, 용파 영훤龍坡永烜 스님의 3대 법손이다. 함풍咸豊 6년 병진(1856)에 태어나 광서光緖 20년 갑오(1894)에 세속 나이 39세로 심적암深寂庵 강당에 있다.호연선사전浩然禪師傳스님의 법명은 유우有愚이고 호는 호연浩然이며, 속성은 김씨이고 청해 장자리長者里에서 출생한 사람이다.달마산에 들어가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으며, 두륜산으로 옮겨 가서 금담 새권錦潭璽卷 스님해남 용정龍井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의 계단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었으니, 화악華岳(文信) 스님해남 화산華山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의 4대 법손이고, 진봉珍峰(深祐) 스님해남 이도방二道坊 진산리珍山里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의 2대 법손이며, 금담 양옥金潭養玉 스님용정리에서 출생한 사람이다.과는 동문 형제가 된다.금담 스님에게 두 명의 제자가 있었으니, 하나는 설암說庵 스님법명은 여홍汝弘이다.이고 다른 하나는 삼담 의연三潭義演 스님이다. 호연 스님에게는 법제자 청하 미윤靑霞美允이 있으니 속성은 주朱씨이고 영암 옥천방玉泉坊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미윤 스님이 계를 전한 제자는 응허 성안應虛聖眼 등 15명이 있고, 수은受恩 상족上足으로 경윤慶允 스님이 있으니 속성은 최씨이고 영암 신풍新豊에서 출생한 사람이며 주지의 직책을 역임하였다.경윤 스님에게는 상족 민오敏悟 스님이 있었는데 수인사修仁寺 주지의 직책을 역임하였다. 계를 전해 준 제자 상운 응혜祥雲應慧 스님은 조정에서 자헌대부의 품계를 받았으며 도총섭의 직책을 수행하였다. 종관 스님도 조정으로부터 자헌대부의 품계를 받았다.호연 스님의 진영 1축이 있는데 선대 조사인 화악당華岳堂의 영각影閣에 배향되었다. 스님은 문장도 잘했고 덕망도 있었으며, 세 가지 썩지 않는 것문文·공功·덕德을 말함을 겸하여 지니셨고 불사佛事·법사法事·승사僧事로 일컬어지는 세 가지 보배불·법·승에 대한 일을 모두 통달하였다.스님은 타고난 천성의 바탕이 남의 말을 잘 따라 주었으므로 남들과 교제를 하면 신의가 있었고, 골상骨相이 풍후豊厚하여 일반 사람들보다 출중하였으며, -
010_1071_b_01L此皆講人眼目。豈可忽哉。四書三經。
010_1071_b_02L以集註爲眼目。以訓解爲指南。儒釋豈
010_1071_b_03L異耶。師。華岳文信八世。明眞再嚴五世。
010_1071_b_04L龍坡永烜三世。咸豊六年丙辰生。光緖
010_1071_b_05L二十年甲午年三十九。在深寂庵講堂。
010_1071_b_06L
010_1071_b_07L浩然禪師傳
010_1071_b_08L師名有愚。號浩然。姓金氏。淸海長者
010_1071_b_09L里人。投達摩山染衣。移入萬德山居生。
010_1071_b_10L移入頭輪山。拈香於錦潭璽卷海南龍
井人師
010_1071_b_11L壇。華岳海南華
山人文信四世。珎峯海南二道坊
珍山里人師。
010_1071_b_12L深祐二世。與金潭龍井
里人養玉。4)洞 [54] 門兄弟。
010_1071_b_13L金潭。有二弟子。一曰說庵汝
弘。二曰三潭
010_1071_b_14L義演。師有弟子。靑霞美允。姓朱氏。靈
010_1071_b_15L岩玉泉坊人。允。有傳戒弟子。應虛聖眼
010_1071_b_16L等十五人。受恩上足。有慶允。姓崔氏。
010_1071_b_17L靈岩新豊人。行5)住 [55] 持。允。有上足敏悟。
010_1071_b_18L行修仁6)住 [56] 持。有傳戒弟子。祥雲應慧。
010_1071_b_19L贈資憲大夫。行都揔攝職。宗寬。贈資憲
010_1071_b_20L大夫。有眞影一軸。先祖師華岳堂影閣
010_1071_b_21L配享。有文有德。三不朽兼存7)文劫 [57]
德。佛
010_1071_b_22L事法事僧事。三寶並達佛法
僧。天質隨順。
010_1071_b_23L與人交而信。骨相豊厚。出衆超等。語
-
010_1071_c_01L말은 어눌한 듯 신중하였고 기개는 호연浩然하였으니 진실로 옛사람의 기상이라고 할 만하다.팔굉선백전八紘禪伯傳스님의 법명은 관홍寬弘이고 호는 팔굉八紘이다.가지산으로 입산하여 머리를 깎고 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학업을 성취하였다. 고독한 단신單身으로 그림자와 몸뚱이가 서로 위로하면서 두륜산으로 들어가 갈포葛布로 만든 옷을 입고 솔잎을 따 먹으면서 수행에 전념하였다.이후에 풍암豊庵 선사의 파계 계보派系系譜를 이었으니, 보운 석일寶雲碩一 스님과 남파 교율南坡敎律 스님은 스님의 동문 형제로서 우애가 날로 깊어 갔다. 이들은 모두 철선鐵船 스님의 법손이고 연파蓮坡 조사의 4대 법손이다.스님은 성품과 행실이 엄숙하고 평등하였으며 언어는 과묵하고 신중하였다. 게다가 재능과 솜씨를 두루 갖추었고 문학도 남들보다 뛰어났다. 재를 올리거나 법회를 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고 구차하게 굴지 않았다. 불경을 강론하고 불서를 풀이할 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풀어서 전해 주었으며, 바느질 솜씨가 좋아 스님이 지은 가사는 가치를 따지지 않았다. 또한 조화造花를 잘 만들었으나 공임을 계산하지는 않았다.스님은 말을 빨리 하거나 얼굴빛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물건의 값을 깎는 일도 없었으며, 어른이라고 해서 어린아이들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었고 자신은 이익을 취하고 남을 손해 보게 하는 일이 없었다. 세속의 이익을 경영한 적이 없었고 권속을 많이 늘리려고 애쓰는 일도 없었다. 장점과 단점,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없었고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을 출입出入하지 않았고 의식衣食을 걱정하지 않았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하지 않았다.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았고 초대하지 않으면 가지 않았으며, 혼자 있어도 걱정하지 않았고 많은 대중들과 함께 있어도 괴로워하지 않았다.인정仁定 스님이 환속하였어도임진년에 떠나갔다. 우려하지 않았고 화적떼가 자주 침범했으나국사암國士庵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두려워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동언문東彦文쌍계사에 살았으니 한 번도 게으른 적이 없었고 천 리 길 평안도平安道를 다녀올 때도 한 번도 신음 소리(殿屎)를전미殿屎란 신음 소리이다. 낸 적이 없었다.나이가 높아지고 승랍이 길다 하여 -
010_1071_c_01L訥訥然。氣浩浩然。眞古人氣像也哉。
010_1071_c_02L
010_1071_c_03L八紘禪伯傳
010_1071_c_04L師名寬弘。號八紘。投於伽智山。薙髮
010_1071_c_05L聽8)戎。 [58] 遊方學成。孤獨單身。形影相吊。
010_1071_c_06L移入頭輪山。衣葛食松。繼豊庵禪師。
010_1071_c_07L派系譜系。與寶雲碩一南坡敎律。同門
010_1071_c_08L兄弟。友愛日深。乃鐵船禪師之孫。蓮
010_1071_c_09L坡祖師之四世。性行肅均。言事默重。
010_1071_c_10L才工周具。文學超等。齋儀法事。精硏
010_1071_c_11L不苟經。講書訓解。傳無疑。善9)線。 [59] 不
010_1071_c_12L論價10)直。 [60] 善造花。不計手11)切。 [61] 無疾言
010_1071_c_13L12)劇 [62] 色。無物折閱。無以長凌少。無利自
010_1071_c_14L損他。無世利經營。無多貪眷屬。無長短
010_1071_c_15L是非。不遠近出入。不憂衣食。不憂雨雪。
010_1071_c_16L不問不言。不請不徃。獨在不患。稠中
010_1071_c_17L不苦。仁定下俗壬辰
年去。不爲慮。火賊數侵
010_1071_c_18L居國
士庵。不爲恐。十年居東彥文雙溪
寺。不爲懈
010_1071_c_19L怠。千里行平安道。不爲殿屎呻
吟。年高臘
010_1071_c_20L「敎」甲本正誤表曰衍字。「▼(虫+(枕-木))」甲本正誤表
010_1071_c_21L作「蛇」次同。「栖」甲本正誤表作「柄」。
010_1071_c_22L「洞」甲本正誤表作「同」。「住」作「徃」{甲}。
010_1071_c_23L「住」甲本正誤表作「任」。「文劫」甲本正誤表
010_1071_c_24L作「言功」。「戎」甲本正誤表作「戒」。「線」上
010_1071_c_25L甲本正誤表有「針」。「直」作「眞」{甲}。「切」甲
010_1071_c_26L本正誤表作「功」。「劇」甲本正誤表作「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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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2_a_01L객지에 나가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온종일 한 끼니만 먹고 수행하여도 사지를 놀리지 않았다. 바랑에 한 되 한 홉의 쌀이 없어도 근심하지 않았고 가난하고 늙어서 따르는 이가 없어도 외로워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홀로 세상을 초월한 삶이 남전 보원南泉普願 스님의 큰 인물다운 삶을 연상케 하였다.정수사淨水寺와 선암사仙岩寺에서 하안거를 마쳤고 쌍계사에 오래 머물렀으며 칠불암에서도 오랫동안 있었다. 금년, 즉 갑오년(1894)에 지리산 아자방(亞房) 선실에서 하안거 결제에 들어갔는데 세속 나이로 71세이다.성담강백전聖潭講伯傳스님의 법명은 의전儀典이고 호는 성담聖譚이며, 중고中古에 통도사通度寺에서 이름을 떨쳤던 큰 강백이다. 청담 준일淸潭俊一 스님의 법통을 이은 법제자이고, 도암 우신度庵宇伸 스님의 손제자이며 연파 덕장烟波德藏 스님의 증손 법제자이다. 응암 희유凝庵禧有 스님의 5대 법손이고 설송 연초雪松演初 스님의 6대 법손이며, 환성喚惺 스님의 5대 법손이다.어릴 때에 내전은 물론 외전까지 두루 다 배웠고 성장해서는 영남과 호남 지역의 강당을 찾아다니며 선교의 깊은 뜻을 공부하였다. 스님은 명성을 총림에 떨쳤으며, 비단 총림에만 명성을 떨쳤던 게 아니라 유림의 사대부들까지 한번 만나 보기를 소원할 정도였다.권일미權一味와 김추사金秋史는 편지를 보내 스님을 초대하기도 하였으며, 편지를 보내 찬미하기도 하였다. 백파白坡·초의草衣·제산霽山 스님 등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스님의 기연어구機緣語句는 비명과 탑명에 갖추어 실려 있으므로 다시 군말을 할 필요가 없다.스님은 수명이 수승한 덕에 미치지 못하였던지 일찍이 세상을 버렸으니, 선문에서는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을 잃어버렸고 학자들은 눈을 잃어버렸다. 불가佛家의 기둥과 대들보가 부러지고 사림士林의 도로道路가 막혔으며, 새와 짐승은 주인을 잃었고 계곡의 물은 부질없이 흘러만 갔다. 거듭 스님에 대한 찬미하는 글을 쓰노니 다음과 같다.
來兮有緣 인연 있어 왔다가
去兮有果 결과 맺고 떠나가셨네
去來定限 오고 감은 정해진 기한이 있고
早晩不躱 이르고 늦음은 피할 수 없네
跡遺三韓 발자취 삼한의 땅에 남기고
灰飛七火 육신은 재가 되어 흩어졌네
世情交感 세간의 정 만감이 교차하여
鮫珠連墮 상어 구슬 같은 눈물 연달아 떨어진다
言語似聞 스님의 말소리 들려오는 듯하고
形影如坐 스님의 모습 앉아 있는 것 같네
設奠燒香並立待 제물 올리고 향 사르고 나란히 서서 기다리니
上乘超悟都不可 상승上乘보살 뛰어난 깨달음 도저히 미칠 수 없네
潭潭聖潭雨潭來去一何早 담담潭潭성담聖譚과 우담雨潭이 한결같이 일찍 가버리니
換骨改面誰知那 뼈 바꾸고 얼굴 바꾸면 그 누가 알겠는가?누가 성담이고 누가 우담인지 어찌 알겠는가?(誰知何聖何雨) -
010_1072_a_01L長。不厭作客。一食日中。1)下 [63] 遊四肢。
010_1072_a_02L囊無2)外 [64] 合。不憂賓老。無隨從。不爲孤
010_1072_a_03L眞。獨超物外。南泉普願之大人行履處
010_1072_a_04L也。結夏於淨水。結夏於仙岩。久居雙
010_1072_a_05L溪。長在七佛。今甲午夏。結夏於智異
010_1072_a_06L山亞房禪室。年七十一。
010_1072_a_07L
010_1072_a_08L聖潭講伯傳
010_1072_a_09L師名儀典。號聖潭。通度寺之中古大講
010_1072_a_10L伯也。淸潭俊一之嗣。度庵宇伸之孫。
010_1072_a_11L烟波德藏之曾。凝庵禧有之五世。雪松
010_1072_a_12L演初之六世。喚惺之七世。幼學內外典。
010_1072_a_13L長叅嶺湖講場。名振叢林。非但名振叢
010_1072_a_14L林。儒林士夫。願一見之。權一味金秋
010_1072_a_15L史。折簡召之。寄書賛之。與白坡草衣
010_1072_a_16L霽山。并驅一時。機緣語3)白。 [65] 具載碑塔。
010_1072_a_17L更不贅說。壽不勝德。早棄世間。禪門
010_1072_a_18L失鑑。學者失眼。佛家之棟梁折。士林
010_1072_a_19L之道路塞。鳥獸無主。溪谷空流。從而
010_1072_a_20L重贊曰。來兮有緣。去兮有果。去來定
010_1072_a_21L限。早晩不躱。4)跡 [66] 遺三韓。灰飛七火。世
010_1072_a_22L情交感。鮫珠連墮。言語似聞。形影如
010_1072_a_23L坐。設奠燒香並立待。上乘超悟都不
010_1072_a_24L可。潭潭聖潭
雨潭 來去一何早。換骨改面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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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2_b_01L청악선백전淸岳禪伯傳스님의 법명은 만하晩霞이고 호는 청악淸岳이며, 경산京山(서울 부근)에서 출생한 사람이다. 고향을 떠나 멀리 강진 보리산 수인사修仁寺에 우거하였다.화월化月 선사의 처소에서 법인을 이어받았으니, 혜암惠庵·청봉淸峯과는 동문 형제지간이다. 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호매豪邁하고 세세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사람을 만나면 기쁜 마음으로 접대하였다. 호연浩然한 기상을 지녔으며 작고 옹졸한 마음이 없어서 스님이나 속인을 막론하고 멀리 살든 가까이 살든 모두 한번 만나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날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나 대접하는 데 있어서 늘 변함이 없었다.스님은 또 돌아가신 부모의 혼령을 위하여 천도재를 지내는 데 정성을 다하고 온 힘을 다 기울였으며, 참기 어려워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법사의 상을 당해서는 장례와 제례에 있어서 정성을 다하고 효심을 다하여 시작과 끝이 한결같다는 이야기로 칭찬하는 말들이 자자했다.스님은 석문암石門庵을 다시 짓고 염불당念佛堂을 개설하니 절에 들어와 이를 수용受用하는 사람들의 온갖 구차하고 어려운 일이 모두 해소되었다. 이어서 절 안의 공전公殿과 방사房舍를 다시 건립하기 위해서 무한한 노력을 다 기울였다. 동서 양쪽의 재각齋閣은 아직 작업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이다.보수공사를 낙성한 이후에 자신이 단월에게 받은 사재私財까지 다 사용하였으니 무엇을 성취하지 못할 것인가? 그 소원하는 것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부처님과 신장들에게 달려 있는 만큼 틀림없이 중생들이 감동하고 모든 부처님이 호응해 주실 날이 있을 것이다. 더디고 빠름을 어떻게 가볍게 말할 수 있겠는가?스님은 다른 사람들과 사귐에 있어서 신용이 있었으므로 상대방이 만약 신용이 없을 경우에는 다시는 그와 상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지모智謀가 있고 판단력과 수단도 좋고 마음도 잘 쓰는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사람들이 말하기를, “한강물을 마시는 사람은 성품이 맑고 예리하며, 낙동강 물을 마시는 자는 성품이 탁하나 곧다.”라고 하더니 청악 스님에게서 징험할 수 있었다. 스님의 그늘에서 혜택을 받은 제자들은 수없이 많고, 제도를 받은 제자도 일마다 특이한 일면을 갖고 있다.스님은 광서光緖 갑오년(고종 31, 1894) 현재 강진의 보리산에 주석하고 있다. -
010_1072_b_01L知那誰知何
聖何雨。
010_1072_b_02L
010_1072_b_03L淸岳禪伯傳
010_1072_b_04L師名晩霞。號淸岳。京山人。㝢居於康
010_1072_b_05L津菩提山修仁寺。受法印於化月禪師
010_1072_b_06L處。與惠庵淸峯。爲同門伯仲。5)行 [67] 賦性
010_1072_b_07L豪邁。不拘細務。見人欣待。有浩然之
010_1072_b_08L氣。無小拙之心。無論緇素。遠者近者。
010_1072_b_09L願一見之。人之來徃。日無其數。接之
010_1072_b_10L如常。爲父母亡靈。薦度之齋。盡心竭
010_1072_b_11L力。不見難6)忍 [68] 當之氣。哭法師。喪葬祭
010_1072_b_12L禮。盡誠盡孝。稱贊始終恒一之說。改
010_1072_b_13L作石門庵。設念佛堂。凡所受用。無諸
010_1072_b_14L苟艱。重建寺中公殿房舍。無限喫勞。
010_1072_b_15L東西兩齋。尙未畢役。繕工落成以後。
010_1072_b_16L以己檀越所需。何不成就。其所願也。
010_1072_b_17L有效無效。關在佛神。7)必 [69] 有衆生感。諸
010_1072_b_18L佛應之日。遲速何輕言㦲。與人交而有
010_1072_b_19L信。彼若不信。更不從事。可謂有謀有
010_1072_b_20L斷之善手善心也。人之言曰。食漢水者
010_1072_b_21L性淸銳之。食洛水者性濁直之。於師
010_1072_b_22L可驗也。受其蔭者。多多有之。受其度
010_1072_b_23L者。事事異之。光緖甲午。住菩提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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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2_c_01L응암선사전應庵禪師傳법명은 학성學性이고 호는 응암應庵이며, 속성은 김씨이고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어린 시절에 해남 두륜산으로 들어가 자행 책활慈行策活 스님의 처소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서주 의첨犀舟懿沾 스님의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은사인 자행 스님의 선실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었으며, 범해 각안梵海覺岸 스님의 강당講堂에서 대승보살계大乘菩薩戒를 받았다.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견고하여 승가僧家의 사무를 법도대로 따랐다. 스승을 받들어 모심에 있어서는 숙수菽水23)의 예를 극진히 하였으며, 부리는 아랫사람에게는 오유吾幼24)의 어진 마음으로 대하였다. 하기 어렵고 하기 괴로운 일들을 도맡아서 하였으며, 강수綱首와 동장洞長의 소임까지 행하였다.주지의 직인을 차고 유나의 직책을 역임하면서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선대 조사들의 제사를 받들 때에는 정성을 다하고 온 힘을 기울였고 공적인 재물이든 사적인 물건이든 털끝만 한 부분까지 소상하게 살펴서 분명하게 처리하였으니, 이른바 “재산상에 있어서 분명하게 하면 그것이 바로 대장부이다.”라는 옛말에 부합한다 하겠다.맹자가 이르기를, “나는 자기 자신이 비뚤어진 사람으로서 남을 바로잡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더구나 자기 자신을 욕되게 해서 천하를 바로잡는 일이겠는가.(吾未聞枉己而正人者也。 況辱己而正天下者乎。)”라고 하였으며, 「백이전伯夷傳」에 이르기를, “몸가짐이 법도에 맞지 않고 오로지 꺼리고 기피하는 일만 하고도 종신토록 편안하고 즐겁고 부함을 누리면서 누대에 끊어지지 않는다. 혹은 땅을 골라 딛고 때를 만난 연후에 말을 하고 지름길을 가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으면 발분하지 않았으나 재앙을 만난 사람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나는 매우 미혹됨이 있다.”라고 하였다.스님은 도광道光 10년 경인(순조 30, 1830)에 태어나 광서 12년 병술(고종 23, 1886) 3월 15일에 두륜산 청신암淸神庵에서 입적하였으니, 세속 나이는 57세이고 승하僧夏는 40년이었다.청호강백전靑湖講伯傳 -
010_1072_c_01L應庵禪師傳
010_1072_c_02L師名學性。號應庵。姓金氏。靈岩人。幼
010_1072_c_03L入海南頭輪山。染衣於慈行策活師處。
010_1072_c_04L受具於遲舟懿沾師壇。拈香於受恩師
010_1072_c_05L室。受大乘菩薩戒行於梵海覺岸師堂。
010_1072_c_06L賦性堅固。一準僧事。奉師盡菽水之禮。
010_1072_c_07L御下用吾幼之仁。歷盡難行苦行之役。
010_1072_c_08L擧行綱首洞長之任。佩住持印。行維那
010_1072_c_09L職。公政私事。無不允叶。奉先行祀。盡
010_1072_c_10L誠盡力。公私物情。察毫8)折里。 [70] 所謂財
010_1072_c_11L上分明大丈夫者也。孟子曰。吾未聞枉
010_1072_c_12L己而正人者也。況辱己而正天下者乎。
010_1072_c_13L伯夷傳曰。操行不軌。專犯忌諱。而終
010_1072_c_14L身逸欲樂富厚。累世不絕。擇地而蹈時
010_1072_c_15L然後。出行言。不由經。非但公正。不發
010_1072_c_16L憤。而遇禍灾者。不可勝數。余甚9)或 [71] 焉。
010_1072_c_17L道光十年庚寅生。光緖十二年丙戌三
010_1072_c_18L月十五日。示寂于淸神庵。世壽五十七。
010_1072_c_19L僧夏四十。
010_1072_c_20L
010_1072_c_21L靑湖講伯傳
010_1072_c_22L「下」甲本正誤表作「不」。「外」甲本正誤表
010_1072_c_23L作「升」。「白」甲本正誤表作「句」。「跡」作
010_1072_c_24L「路」{甲}。「行」疑衍字{編}。「忍」下甲本正誤
010_1072_c_25L表有「難」。「必」作「心」{甲}。「折里」甲本正
010_1072_c_26L誤表作「析釐」。「或」甲本正誤表作「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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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3_a_01L법명은 화일華日이고 호는 청호靑湖이다. 장흥 가지산으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고, 벽파碧波 장로의 회상에서 은사이자 법사의 인연을 맺었다.스님은 재능과 지혜로 이름이 났으며 성취할 사람의 원인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유가의 서적을 읽어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의 성리性理를 알았고, 불교경전을 강론하면서 삼장三藏과 오교五敎의 깊고 옅음에 통달하였다.그릇도 이미 가득 찼고 지식도 또한 있게 되자, 스님은 스승의 강석을 물려받아 설법을 하니 시주하는 이들이 있어 재물도 넉넉해졌다. 그러니 연담 노장님이 말씀했던, “돌아가신 스승님의 강탑講榻에 다시 와서 앉은 이는 20년 전 시자 스님이더라.(先師講榻重來坐。 二十年前侍者僧。)”라고 한 것이 참말임을 알겠다.복전의福田衣(가사)를 입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였으니 추사 늙은이가 말한,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여 조사의 법인 전했다고 말하지 말라. 부처님은 아무 탈 없이 석란산에 계신다네.(莫把示趺傳祖印。 金身無恙錫蘭山。)”라고 한 것이 정도가 지나친 말임을 알겠다.두륜산에 뿌리를 내리고 보림사에서 꽃을 피우고 조계산에서 결실을 맺었으니, 여래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한 것(三處傳心)과 같은 것이요, 대둔사에 거처하였고 보림사에서도 거주하였으며 선암사에서도 거주하였으니,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하여 자식을 가르쳤던 것과 비슷하다.설화說話의 문을 열고 오랜 세월 강설을 하였고 간화看話의 문을 열고 명패를 걸어놓고 좌선에 들었으니,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끝내 한 글자도 설한 적이 없거늘 무엇을 다시 설한단 말인가.(終不說一字。 何爲更說耶。)”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요,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늘이 무슨 말을 했으며 땅은 또 무슨 말을 했더냐?(吾欲無言。 天何言㢤。 地何言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대공大空과 소공小空이 앞뒤에서 시위侍衛하고, 한 사미는 차를 달여 올리고 한 사미는 밥을 지어 올리니, “네 조상을 걱정하게 하지 않아 그 자손이 번창하는구나.(無念爾祖。 寔繁有徒。)”라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법을 전해 받아서 그 법을 다시 전해 주었으니, 태고太古 스님이 말하기를,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겠구나.(展脚而睡。)”라고 한 말과 일행一行 스님이, “내 도가 동쪽으로 갔다.(吾道東矣。)”라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완전히 보림사로 옮기고 완전하게 선암사로 옮겼으며, 온전하게 보림사에 있었고 온전하게 대둔사에 있었으니, 마치 “화엄찰종華嚴刹種이 온전하게 저기에 있고 온전하게 여기에 있으며, 사바세계에서는 주인과 주인이 서로 보지 못하고 나그네와 나그네가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이니 시방세계가 다 또한 그러하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이는 일을 마친 한가한 사람이요 천하에 태평한 수좌首座이며, 한바탕 춘몽春夢을 꾼 상인上人이로다. 한 조각 묻고 대답한 곳에 도가 같음을 비로소 알겠다.스님의 종맥宗脈을 살펴보면, 호암虎岩 스님의 6대 법손이고 -
010_1073_a_01L師名華日。號靑湖。出家於長興伽智山。
010_1073_a_02L結恩師法師於碧波長老祖室。有才智
010_1073_a_03L之名。得成人之因。學讀儒書。知三綱
010_1073_a_04L五常之性理。講論佛經。達三藏五敎之
010_1073_a_05L㴱淺。器已滿矣。識且有矣。奪先師席。
010_1073_a_06L施有餘財。蓮老所謂。先師講榻重來坐。
010_1073_a_07L二十年前侍者僧之眞談也。着福田衣。
010_1073_a_08L說金口文。秋翁所謂。莫把示趺傳祖印。
010_1073_a_09L金身無𧏮錫蘭山之過量也。頭輪托根。
010_1073_a_10L寶林開花。曺溪結宲。如來三處傳心如
010_1073_a_11L也。居於大芚。居於寶林。居於仙岩。孟
010_1073_a_12L母三遷之敎如也。開說話門。長年講說。
010_1073_a_13L入看話門。掛牌而坐。如來曰。終不說
010_1073_a_14L一字。何爲更說耶。是也。孔子曰。吾欲
010_1073_a_15L無言。天何言㢤。地何言㢤。是也。大空
010_1073_a_16L小空。侍衛前後。一沙彌奉茶。一沙彌
010_1073_a_17L炊飯。無念爾祖。寔繁有徒。是也。受法
010_1073_a_18L傳法。太古。1)傳 [72] 脚而睡。一行。吾道東矣。
010_1073_a_19L是也。全移於寶林。全移於仙岩。而全
010_1073_a_20L在於寶林。全在於大芚。若華嚴刹種。
010_1073_a_21L全在彼。全在此。當娑婆處。主主不相
010_1073_a_22L見。伴伴不相見。十方悉示然。是也。此
010_1073_a_23L是了事閒人。天下太平首座。一場春夢
010_1073_a_24L上人。一段問答處。同道方知。宗脉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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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3_b_01L설파雪坡 스님의 5대 법손이며, 낭송 유화朗松有華 스님의 4대 법손이요 해암 청윤海岩淸閏 스님의 3대 법손이다. 연서蓮捿 스님의 손자 제자이고 벽파碧波 스님의 법을 이은 제자이다.지금 갑오년(1894) 여름에 대각 국사 의천義天 스님이 머무셨던 큰 도량에 머물고 있다.청봉선백전淸峯禪伯傳법명은 세영世英이고 호는 청봉淸峯이며, 속성은 박씨이고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다.해남 두륜산으로 출가하여 천게千偈 선사의 조실에서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설허 지연雪虛智演 선백의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화월 숙홍化月淑葒 선사의 강당에서 법인을 받고 법통을 이었으니, 화악華岳 스님의 8대 법손이고 연파蓮坡 스님의 4대 법손이며, 서주 의첨犀舟懿沾 스님의 손제자이고 청악淸岳 스님·혜암蕙庵 스님과는 동문 형제지간이다.대둔사 설허雪虛 스님·보제普濟 스님·연주蓮舟 스님·범해梵海 스님, 미황사美黃寺 응화應化 스님, 정토사淨土寺 경담鏡潭 스님·한양漢陽 스님, 보림사寶林寺 이봉离峯 스님, 구암사龜岩寺 설두雪竇 스님, 선암사仙岩寺 함명涵溟 스님에게서 경학經學을 배웠다.연꽃에 이미 향기 어리고 매실이 장차 익으려 하자 선후禪侯에 봉해진 뒤 주실籌室에 들어가 법통을 이어받았다.스님은 혹은 백양산에서 하안거 결제를 하기도 하였고 혹은 계룡산에서 하안거 결제를 하기도 하였으며, 몽성산夢聖山에서 여름 안거 결제를 하였고 조계산에서 하안거 결제를 하였다. 가지산에 살았고 보리산에서도 살았으며 만덕산에서도 살았다. 스님은 성품이 사리에 밝고 기질이 뛰어나 산악이 우뚝 솟은 듯하였다.한강의 흐름과 낙동강의 물결에서 호호탕탕浩浩蕩蕩함과 영대靈坮의 미만청정瀰滿淸淨함을 배웠고, 금강산과 묘향산에서 외외락락嵬嵬落落한 경치를 구경하고 나니 염불 소리(梵響) 푸른 하늘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스님의 몸은 영웅의 모습에 취했고 말은 웅변을 토했다.신묘년(1891) 가을에 무량회無量會의 옛 전통을 복구하였고, 계사년(1893) 봄에는 용허龍虛 스님의 신병新柄을 전해 받았다. 삼전三殿을 수리하였으니 기도하는 법당이고, 사분四分을 시설하였으니 염불하는 선실禪室이다. 백양산 신선 경계에서 기도를 하는데 결계結界25)를 하였고 -
010_1073_b_01L岩六世。雪坡五世。朗松有華四世。海
010_1073_b_02L岩淸閏三世。蓮捿孫。碧波弟子。今甲
010_1073_b_03L午2)夏。 [73] 仙岩大覺國師義天僧統大道場。
010_1073_b_04L
010_1073_b_05L淸峯禪伯傳
010_1073_b_06L師名世英。號淸峯。姓朴氏。靈岩人。出
010_1073_b_07L家於海南頭輪山。薙染於千偈禪師之
010_1073_b_08L室。受具於雪虗智演禪伯之壇。受禪
010_1073_b_09L3)受 [74] 印於化月淑葒禪師4)堂之。 [75] 華岳之
010_1073_b_10L八世。蓮坡之四世。犀舟懿沾之孫。與
010_1073_b_11L淸岳蕙庵。同門兄弟。受經學於大芚之
010_1073_b_12L雪虛師普濟師蓮舟師梵海師。美黃之
010_1073_b_13L應化師。淨土之鏡潭師漢陽師。寶林之
010_1073_b_14L离峯師。龜岩之雪竇師。仙岩之涵溟師。
010_1073_b_15L蓮已香矣。梅將熟也。封禪侯入籌室。
010_1073_b_16L或結夏於白羊山。或結夏於鷄龍山。結
010_1073_b_17L夏於夢聖山。結夏於曺溪山。住於伽智
010_1073_b_18L山。住於菩提山。住於萬德山。性理氣
010_1073_b_19L勝。山岳倒卓。學漢流洛波之浩浩蕩蕩。
010_1073_b_20L靈5)王 [76] 坮瀰滿淸淨。玩金剛妙香之嵬嵬
010_1073_b_21L落落。梵響嘹喨碧霄。身醉英儀。口吐
010_1073_b_22L雄辯。辛卯秋。復無量會之舊轍。癸巳春。
010_1073_b_23L傳龍虛師之新柄。修三殿。爲祝爲法堂。
010_1073_b_24L設四分。念佛之禪室。結界爲祝於白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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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3_c_01L승달산僧達山 목우암牧牛庵 낙성식의 초청에 응하기도 하였다.산문 밖에서는 동학東學이 난리를 일으키고 서양 천주교들은 사회를 혼란하게 하므로 스님은 축성각祝聖閣에서 나라의 안녕을 위해 특별히 기도를 올려 백성(普率)26)의 예를 다하기도 하였으며, 숲속에 사는 스님들을 더욱 빛나게 하기도 했다.스님은 함풍咸豊 5년 을묘(철종 6, 1855)에 태어났으니 광서光緖 20년 갑오(고종 31, 1894) 현재 세속 나이 40세이다. 대둔사 적련암赤蓮庵에 기거하면서 무량회를 주관하고 있으며, 스님에게 계를 받은 제자는 상선相善·상복相福·선혜善慧 등 열 명이다.취운강백전翠雲講伯傳법명은 혜오慧悟이고 호는 취운翠雲이며, 속성은 백白씨이고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다.해남 두륜산으로 출가하여 응허應虛 선사의 회상에서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복암福庵 선사의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고 범해 각안梵海覺岸 선사의 강당에서 비구 이백오십계와 대승보살 오십팔계를 받았으며, 법유法乳로 길러 준 은사 응허 스님의 법탑法榻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었으니, 화악 문신華岳文信 선사의 11대 법손이요 연파 혜장蓮坡惠藏 스님의 7대 법손이며, 철선 혜즙鐵船惠楫 스님의 5대 법손이고 호은 경은虎隱敬恩 스님의 손제자이다.스님은 어릴 때 내전은 물론 외전까지 두루 다 배웠으며, 장성해서는 불교의 교리행과敎理行果27)를 달통하였다. 대둔사의 연주蓮舟 스님과 범해梵海 스님, 미황사美黃寺의 혼허渾虛 스님과 월화月華 스님, 송광사松廣寺의 구연九淵 스님과 원해圓海 스님, 선암사仙岩寺의 경운擎雲 스님 등 여덟 분 고승들의 자리를 참방하여 가르침을 받았고, 선암사와 송광사 두 절을 소요하며 노닐기도 하였다.여러 지방을 유람하는 것을 비로소 마치고 스승의 법석을 물려받아 강당 문을 여니, 스승과 부모와 벗이 미흡하다는 탄식(三常不足之歎)은 없었고 사방에서 벗들이 수없이 찾아오는 즐거움을 누렸다.또한 스님은 글씨도 잘 써서 마치 용이나 이무기가 꿈틀대는 것처럼 쇠못이 번쩍거리듯이 필력筆力이 힘차 보였다. 구당瞿塘28)이 드넓은 것처럼 농판隴阪이 구불구불한 것처럼 스님의 -
010_1073_c_01L之物外。應請落成於僧達之牧牛。東學
010_1073_c_02L惹端。西笑渾動。更加別祝於祝聖閣。
010_1073_c_03L普率之禮。益彰於林下之髠㢤。咸豊五
010_1073_c_04L年乙卯生。光緖二十年甲午。年四十。
010_1073_c_05L居大芚之赤蓮庵無量會。受戒者。相善
010_1073_c_06L相福善慧寺十人。
010_1073_c_07L
010_1073_c_08L翠雲講伯傳
010_1073_c_09L師名慧悟。號翠雲。姓白氏。靈岩人。出
010_1073_c_10L家於頭輪山。薙染於應虛禪師室。受具
010_1073_c_11L於福庵禪師壇。受比丘二百五十戒及
010_1073_c_12L大乘菩薩五十八戒於梵海覺岸禪師堂。
010_1073_c_13L拈香受法於法乳之恩師榻。華岳文信
010_1073_c_14L禪師十一世。蓮坡惠藏七世。鐵船惠楫
010_1073_c_15L五世。虎隱敬恩孫。幼學內外典。長通
010_1073_c_16L敎理行果。叅大芚之蓮舟梵海。美黃之
010_1073_c_17L渾虛月華。松廣之九淵圓海。仙岩之擎
010_1073_c_18L雲等。八高座。逍遙遊於仙松兩寺。遊方
010_1073_c_19L方罷。奪席開堂。無三常不足之歎。有
010_1073_c_20L四友餘饒之樂。龍*▼(虫+(枕-木)) [77] 蠢蠢。鐵釘磷磷。
010_1073_c_21L筆力之勍也。瞿塘之浩汗。隴阪之逶迤。
010_1073_c_22L「傳」甲本正誤表作「展」。「夏」下甲本正誤
010_1073_c_23L表有「在」。「受」甲本正誤表曰衍字。「堂
010_1073_c_24L之」甲本正誤表作「之堂」。「王」甲本正誤表
010_1073_c_25L曰衍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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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4_a_01L문장에서는 웅장함이 느껴진다. 시운詩韻을 부르며 주는 잔은 사양하지 않았고 설법을 하는 법상도 사양하지 않았으니 종사宗師 중에 대종사요, 강사 중에 큰 강사이다.입을 열었다 하면 부처님께서 49년 동한 설법하신 말씀이 흘러나오고 눈을 부릅뜨면 8만 4천 마구니가 순식간에 항복을 하였다. 절 일을 보는 데 있어서는서기書記·수승首僧·결감結監의 직무 우활迃濶하거나 기승을 부리지 않았고 문자로 명성이 드높아도강학講學과 음영吟詠 등을 말함 재주를 부리거나 교만에 빠지지 않았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여 몸이 활동하는 장소로 삼았고 성인의 경전과 현인의 전법으로 마음을 거울처럼 맑혔다. 소은小隱하는 것으로 몸을 마칠 움막으로 여겼으며, 부처님의 말씀으로 입을 다무는 경계로 삼았다.스님이 되었다 하여 세속을 버려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모에게 효도를 하였고, 속인이라 하여 스님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다. “그가 행하는 바를 보고 그가 종사하는 일을 관찰하며, 그가 즐기는 것을 살피면 사람이 어찌 숨기리오.”29)라고 한 말이 있다.스님은 동치同治 5년 병인(고종 3, 1866) 12월 6일에 태어나 광서光緖 20년 갑오(고종 31, 1894) 현재 29세 나이로 대둔사 적련암赤蓮庵 강당에 있다.자운선사전慈雲禪師傳스님의 법명은 천우天祐이고 호는 자운慈雲이며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다.월출산으로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계를 받았으며, 인허仁虛 선사에게서 법인을 전해 받았다.자운 스님은 힘이 세고 기상이 호탕하며 모든 사무를 봄에 있어서 스스로 손수 나서서 하고 공적인 물건이든 개인 물건이든 함부로 쓰는 일이 없었다. 존귀한 손님이든 지위가 낮은 손님이든 찾아오면 기쁘게 영접하고 멀고 가까운 곳을 출입할 때에는 기한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아침에 죽을 먹고 낮에는 재법齋法을 지켰으며, 오직 정밀하고 한결같이 하였고 대중들이 모인 곳에서 행사를 할 때에는 원로나 젊은 사람이나 음식을 달리하지 못하게 하였다. 어떤 일에 임해서는 자기 마음에 거슬 리는 일이 있더라도 노여워하거나 독기를 품는 일이 없었으며, 나이가 높고 승랍이 오래되었다 하여 손발을 쉬게 하지도 않았다. 노장들을 보면 공경을 다하고 어린아이를 보면 자식처럼 진실하게 대하였으며, 거친 음식이라 할지라도 걱정하지 않았고 해진 옷이라 하더라도 창피스럽게 여기지 않았다.선대 조상의 묘를 쓴 곳에 누가 몰래 묘를 쓴 것을 파내게 하고 끝내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게 하였으니,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해하는 지극한 효심이라 하겠다. -
010_1074_a_01L作文之雄也。呼韻之盃。不辭。說法之床。
010_1074_a_02L不讓。宗師之大宗師。講肆之大講1)肆。 [78]
010_1074_a_03L開口則四十九年之說。滿出阿憂。弩目
010_1074_a_04L則八萬四千之魔。瞬息降伏。看於寺事。
010_1074_a_05L而書記首
僧結監 不以迃濶氣勝。名於文字。而
010_1074_a_06L講學
吟咏 不以役才憍溢。樂山樂水。爲行身
010_1074_a_07L處。聖經賢傳。爲明心鑑。以小隱。爲終身
010_1074_a_08L幕。以金人。爲緘口箴。僧不離俗故。孝
010_1074_a_09L於父母。俗不離僧故。悌於兄弟。視其
010_1074_a_10L所以。觀其所由。察其所安。人焉瘦哉。
010_1074_a_11L同治五年丙寅十二月六日生。光緖二
010_1074_a_12L十年甲午。年二十九。在大芚寺赤蓮庵
010_1074_a_13L講堂。
010_1074_a_14L
010_1074_a_15L慈雲禪師傳
010_1074_a_16L師名天祐。號慈雲。靈岩人也。出家於
010_1074_a_17L月出山。薙染受戒。受法印於仁虛禪師。
010_1074_a_18L力健氣浩。凡於作務。自手爲之。公私
010_1074_a_19L什物。無所濫用。尊卑賓客。欣然迎接。
010_1074_a_20L遠近出入。不失2)限。 [79] 朝粥午齋。惟精惟
010_1074_a_21L一。衆處行事。俾無老少異粮。臨事逆
010_1074_a_22L情。不起忿毒。年高臘長。不休手足。見
010_1074_a_23L老恭敬。見幼子諒。糲飯不憂。鶉衣不
010_1074_a_24L愧。掘先山之偸葬。而終見屈首。慷慨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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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4_b_01L또한 본사本寺가 장차 패망하려 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얼굴을 가리고 다른 산으로 가버렸으니, 근본을 잊지 않는 의리를 보였다고 하겠다.장성 하청사下淸寺에 머물면서 낡은 건물을 복구하여 낙성식을 할 때에 불사의 재를 올렸고, 함평 용천사龍泉寺에 머물면서 건물을 중수하여 낙성식을 할 때에 불사의 재를 올렸다. 영광 불갑사佛甲寺 사내 암자인 해불암海佛庵에 머물면서 퇴락한 건물을 중수하여 낙성식을 할 때에 불사의 재를 올렸으며, 무안 법천사法泉寺에 머물면서 낡은 건물을 복구하여 낙성식을 할 때에 불사의 재를 올렸다.스님은 이렇듯 본사의 퇴락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하청사·용천사·해불암·법천사 이 네 절에서 그 지혜를 힘써 실천하였으니 참으로 장하다.스님에게는 수은受恩 제자 2명이 있으니, 월응 예순月應禮淳은 속성이 김씨이고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며, 처음에는 종사從師 소임을 보다가 나중에는 은사의 종좌從佐 소임을 보았다. 위의 서너 가지 일들은 모두 은사의 종좌 소임을 맡아볼 때에 한 일이다.아! 애석하다! 월응 스님이 다른 사람의 법통을 이었다는 것이 흠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제자 관신寬信은 영암에서 출생한 사람이며, 자운 스님의 법통을 이었으니 올바른 처사라 하겠다.스님은 정축년(순조 17, 1817)에 태어났으니 지금 갑오년(고종 31, 1894) 현재 세속 나이 78세이고, 무안 법천사 목우암牧牛庵에 머물고 있다.금월선덕전錦月禪德傳스님의 법명은 ▣▣이고 호는 금월錦月이며, 경북 의성 고운사孤雲寺로 출가하였다.스님은 사교四敎(『능엄경』·『기신론』·『금강경』·『원각경』)와 『화엄경』을 배우고 『사분율』과 『범망경』을 청문請聞하여 마침내 그 본원을 깨달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을 통달하게 되었다.스님은 경지가 깊어져(昇堂入室) 개당하여 향을 사르고 법맥을 이으니, 곧 청허淸虛 스님의 11대 법손이다.연꽃에 향기 나고 매화 열매가 익자 마치 구름이 용을 좇고 호랑이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선지식을 한 번 참알參謁하였고 두 번 참알하였으며, 심지어는 53번 선지식을 참알하였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 병오년까지 세 해째 선지식을 찾아 학문을 익혔다.스님은 화개동花開洞·홍류동紅流洞·구천동九泉洞·만폭동萬瀑洞·수렴동垂簾洞·백탑동百塔洞·장춘동長春洞·용수동龍藪洞·청류동淸流洞·향린동香麟洞·청학동靑鶴洞 등에서 하안거 결제를 하였고, 강원도 간성 건봉사乾鳳寺 만일회萬日會에 참석하여 정진하였으나 1만 일을 다 채우지 못하고 매미가 허물을 벗듯 사라 숲이 하얗게 변화하듯 적멸의 세계로 떠났다.사유闍維 의식을 거행하던 날 상서로운 기운이 허공에 서리고 영혼을 전송하던 시간에는 -
010_1074_b_01L孝也。不忍見本寺之將亡。掩面向他山。
010_1074_b_02L不忘之義也。住長城下淸。復舊而落成
010_1074_b_03L佛事齋。住咸平龍泉。重修而落成。佛
010_1074_b_04L事齋。住靈光佛甲海佛。重3)佛 [80] 而落成。
010_1074_b_05L佛事齋。住務安法泉。復舊而落成。佛
010_1074_b_06L事齋。以本寺不忍見之智。移於下淸龍
010_1074_b_07L海 [81] 泉佛法泉四寺。力行其智。壯哉。有
010_1074_b_08L受恩者。二人。月應禮淳。姓金氏。靈岩
010_1074_b_09L人。初從師。後師 [82] 從佐。上之三四段事。
010_1074_b_10L皆師從佐之時事也。吁。月應嗣他人欠
010_1074_b_11L也。寬信靈岩人。嗣師宜也。師丁丑生。
010_1074_b_12L今甲午年七十八。在法泉寺牧牛庵。
010_1074_b_13L
010_1074_b_14L錦月禪德傳
010_1074_b_15L師名□□。號錦月。義城孤雲寺。出家
010_1074_b_16L修行。師受四敎華嚴。請聞四分梵4)綱 [83]
010_1074_b_17L悟心本源。達天眞面。昇堂入室。開堂
010_1074_b_18L拈香。乃淸虛之十一世。聞香看梅。風
010_1074_b_19L龍雲虎。一叅二叅。至於五十三叅。一
010_1074_b_20L春二春。至於丙午三春。結夏於花開洞
010_1074_b_21L紅流洞九泉洞萬瀑洞垂簾洞百塔洞長
010_1074_b_22L春洞龍藪洞淸流洞香麟洞靑鶴洞。栖
010_1074_b_23L遲於杆城之乾鳳萬日會。未滿萬日。蟬
010_1074_b_24L脫鶴化。闍維之日。瑞氣盤空。送鬼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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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4_c_01L설리라設利羅30) 57개를 얻었으니, 이는 세간을 벗어난 수행인의 참다운 자취라 하겠다. 이러한 신령한 이적은 예전부터 드문 일이니 흠모하는 마음 더욱 새로워짐을 느낀다. 이것은 1천 부도浮屠의 예언을 위한 것인가? 화상의 신심을 징험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만일회의 염불로 인하여 감응이 나타난 것인가?염불이란 곧 자기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요 참선은 곧 자기 선禪을 참구하는 것이다. 나를 벗어나 저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나를 벗어나 저 밖에 따로 선정이 없으니, 동방東方이 곧 서방西方이요 건봉乾鳳이 곧 연봉蓮鳳이다.스님은 동방 세계 건봉사의 화신불化身佛이다. 그 뒤에 몽월 영홍夢月泳泓·동봉 욱일東峯旭日·대인 등전大印燈傳 스님들도 금월 스님과 수행의 발자취가 비슷하였다. 이 네 스님의 발자취를 기록해 글을 통하여 세상에 알린다면 어느 누군들 흠앙欽仰하고 찬양하지 않겠는가?환명선사전幻暝禪師傳스님의 법명은 경찬敬贊이고 호는 환명幻溟이다.무장務長(고창) 선운사禪雲寺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스님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서 승랍이 높아지자 스승의 방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어받았다. 그런 후에 전국의 명산을 전전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교화하였다. 창평昌平(담양) 막성산莫聖山 용흥사龍興寺에 머물기도 하였는데 그곳은 현종顯宗대왕 때 산신령이 임금님의 꿈에 나타나 기도하는 단壇을 만들고 장래 숙종肅宗대왕의 탄신을 기원한 절이다. 그런 까닭에 그 산 이름을 몽성산夢聖山으로 고치게 하였다. 숙종대왕이 즉위하자 절 이름을 바꾸어 용흥사라고 하였다.영조대왕은 자기의 생모인 육상궁毓祥宮 최씨의 위패를 그 절에 봉안하고 30결結의 토지와 이 일을 감당할 민호民戶를 내려 봄가을로 제향을 올리게 하였다. 한편 양주楊州 효령원孝寧園 조포사造泡寺를 왕실의 안녕과 홍복을 기원하는 원당願堂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
010_1074_c_01L時。得設利羅五十七箇。此是出世之眞
010_1074_c_02L跡。靈異稀古。欽慕感新。千浮屠之讖
010_1074_c_03L歟。5)微 [84] 和尙之信歟。萬日會之應歟。念
010_1074_c_04L佛即念我佛。叅禪即叅我禪。我外無佛。
010_1074_c_05L我外無禪。東方即西方。乾鳳即蓮鳳。
010_1074_c_06L師。東方世界乾鳳之化佛也。其後夢月
010_1074_c_07L泳泓。東峯旭日。大印燈傳。跡同一切。
010_1074_c_08L此四師之跡。通文於告諭於八方6)窟
010_1074_c_09L幕。 [85] 誰不欽仰贊揚也哉。
010_1074_c_10L
010_1074_c_11L幻7)暝 [86] 禪師傳
010_1074_c_12L師名敬贊。號幻*暝。出家於務長禪雲
010_1074_c_13L寺。學而時習。臈已高多。拈香封侯。轉
010_1074_c_14L山行化。住札於昌平莫聖山龍興寺。顯
010_1074_c_15L宗大王時。山靈現夢於玉枕。設祈壇而
010_1074_c_16L爲祝誕肅宗大王。改山名曰8)▼(艹/罒/心) [87] 聖。肅
010_1074_c_17L宗大王即位。易寺名曰龍興。英宗大王。
010_1074_c_18L奉安毓祥宮崔。賜戶三十結。春秋享
010_1074_c_19L事。楊州孝寧園造泡寺。祈福及願9)當。 [88]
010_1074_c_20L「肆」甲本正誤表作「師」。「限」上甲本正誤
010_1074_c_21L表有「期」。「佛」甲本正誤表作「修」。「綱」甲
010_1074_c_22L本正誤表作「綱」。「微」甲本正誤表作「徵」。
010_1074_c_23L「窟幕」甲本作「窟募」而正誤表曰衍字。「暝」
010_1074_c_24L甲本正誤表作「溟」次同。「▼(艹/罒/心)」甲本正誤表作
010_1074_c_25L「夢」。「當」甲本正誤表作「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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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5_a_01L이와 같이 왕실에서조차 존경하고 숭배하던 절인데, 법 제도가 어떠하였기에 절이 망하고 승려들도 다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았으며 좋지 않은 일들이 층층으로 발생하는지 모르겠다.환명 스님이 용흥사 수호총섭守護摠攝을 맡아볼 때에 이러한 사실을 안타깝게 여겨 영읍營邑에 호소하여 폐단을 다 쓸어 없애고 제향의 소임을 다하지 않고 민호를 숨긴 이들을 탄핵하여 임금의 어머니 위패를 모신 거룩한 곳에 예를 다시 올릴 수 있게 되었고 사찰과 산문은 근심이 없게 되었다. 스님은 이와 같이 위엄과 덕을 병행하여 일처리를 하였으므로 스님이나 속인 모두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그러자 인연 있는 시주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용흥사에 선불장選佛場31)을 시설하고 환명 스님을 입승立繩32)으로 초청하여 정진하니, 도량이 엄정嚴淨해지고 산문도 숙연하고 조용해졌다. 어느 누가 그 권력이 위대하고 웅대함을 흠앙하지 않겠는가?회광강백전晦光講伯傳스님의 법명은 유선有璿이고 호는 회광晦光이며, 속성은 이씨이고 강원도 양양에서 출생한 사람인데 뒤에 간성으로 옮겨가 살았다.어릴 적에 ‘부처님께서 성을 넘어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수행하여 새벽별을 보고 깨달았다’는 고사를 듣고 어버이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산문에 들어가 스승을 찾아다니다가 설악산 신흥가람神興伽藍의 설허雪墟 선사에게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스님이 되었다. 뒷날 구족계를 받은 뒤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내전은 물론 외전까지 모두 배웠으니, 목서木樨의 향기를 맡았는가? 매화 열매 익은 것을 보았네. 네거리 술집에서 술에 흠뻑 취하여 집에 돌아오니 더 이상 갈 길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그렇게 되자 스님은 마침내 보운寶雲법명은 긍엽亘葉 선사의 선실에서 향을 사르고 법통을 이어받았다. 종맥을 살펴보면 환성 지안喚醒志安에서 함월 해원涵月海源, 함월에서 영파 성규影波聖奎, 영파에서 낙허 치관樂虛致寬, 낙허에서 성원 의찰性圓宜察, 성원에서 경암 신묵鏡庵信默, 경암에서 진암 정우眞庵定旴, 진암에서 보운 긍엽, 보운에서 회광 유선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회광 스님은 환성 스님의 8대 법손이고 청허 스님의 12대 법손이며, 연파蓮坡 스님과 일봉日峯 스님과는 동문 형제지간이다.회광 스님이 강당을 개설하고 설법을 시작하니 양서兩西와 삼남三南 지역의 학인들이 무명의 숲을 헤치고 불조의 가풍을 우러러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일 년 사시四時 내내 귀에 입을 가까이하고 얼굴을 맞대고 가르쳐(提耳面命) 보내느라 쉴 겨를이 없었다. 스님의 명성은 드높을 대로 높아져서 피할 길이 없었다.스님은 오대산과 건봉사乾鳳寺에 머물기도 하였고, 금강산과 삼각산에도 머물렀으며, 양산 통도사通度寺에서 하안거를 결제하고 성덕산에서 동안거를 결제하였다. 백양사白羊寺에 머물러 있다가 구곡九曲으로 들어가 수행을 하기도 했다. 스님이 하룻밤 자고 한번 지나가면 마치 봄 동산에 사향노루가 지나가면 풀이 절로 향기로운 것 같다는 말처럼 되었으며, 한 마디 말을 어떤 사람에게 주면 흡사 밝은 달빛이 선정에 든 스님을 오래도록 비추는 것과 같았다. -
010_1075_a_01L其所尊崇。法制何如。而寺敗僧殘。𡚁
010_1075_a_02L攰層生。師。任守護揔攝。告訴營邑。𡚁
010_1075_a_03L攰掃除。隱戶彈劾。聖地有禮。寺山無
010_1075_a_04L憂。威德并行。僧俗俱安。募諸嚫緣。爰
010_1075_a_05L設選佛場。請師立繩。道場嚴淨。山門
010_1075_a_06L肅靖。誰不欣仰。其權力之偉雄哉。
010_1075_a_07L
010_1075_a_08L晦光講伯傳
010_1075_a_09L師名有璿。號晦光。姓李氏。襄陽人。移
010_1075_a_10L居杆城。幼耳踰城出家斷髮見星之古
010_1075_a_11L事。辭親入山覓師。剃染於雪岳山神興
010_1075_a_12L伽藍雪墟禪師。受具。遊歷四方。學習
010_1075_a_13L內外典。聞木樨香乎。看梅子熟矣。滿
010_1075_a_14L醉於衢樽。歸家破問程。拈香於寶雲亘
葉
010_1075_a_15L禪師之室。宗脉則喚惺志安。涵月海源。
010_1075_a_16L影波聖奎。樂虛致寬。性圓宜察。鏡 [16] 信默。眞
010_1075_a_17L庵定旴。寶雲亘葉。晦光有璿。凡喚惺之
010_1075_a_18L八世。淸虛之十二世。蓮波日峯。同門
010_1075_a_19L兄弟。開堂普說。兩西三南學人。1)跋 [89] 草
010_1075_a_20L瞻風而至。一年四時。提耳面命而送。
010_1075_a_21L聲已高矣。名難逃也。住五坮乾鳳。居
010_1075_a_22L金剛三角。結夏於通度。結冬於聖德。
010_1075_a_23L卓錫白羊。結納九曲。一宿過去。若麝
010_1075_a_24L過春山草自香。一言與人。如月明長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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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75_b_01L정신을 가다듬은 지 오래되지 않아 조규刁圭를 사용하니 도가 높아지면 마魔가 왕성해지는 법인가? 좋은 일에 마장이 많은 법인가? 옛날 의상義湘 대사가 당나라에 들어가다가 요동 땅에서 어떤 사람의 무고를 당해 감옥에 갇힌 일이 있었고, 나옹懶翁 선사가 오대산에 머물 때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재앙을 면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스님에게도 왜인倭人의 복색을 한 이들이 성안에 가득하고 오랑캐들이 마을을 메워 숫양이 뿔을 울타리에 박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듯이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유성裕性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나(客)는 겨울에 한창 추울 적에 성덕산에서 동안거 결제를 마친 뒤 벗과 나 네 명이 도반이 되어 영주瀛洲(제주)로 들어가 여름을 보내기로 뜻을 세워 발원하였는데 병病이라는 큰 산이 길을 막아 경영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태완泰玩 스님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내 나이 지금 열다섯 살인데 2년 동안 나그네로 떠돌아다니다가 보니 돌아가서 편안하게 쉬고 싶다는 마음이 밤낮으로 간절해져서 곧바로 영남으로 돌아갔다.”축념竺念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승려의 바랑이 바닥이 드러나고 시절 운수마저 막힌 데다 해마다 농사마저 심한 가뭄이 들어 쥐구멍에 머리만 내민 쥐가 나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듯이, 이리가 앞으로 가려 하면 턱살이 밟히고 뒤로 가려 하면 꼬리가 밟히는 것처럼(跋前疐後)33)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운명만 기다릴 뿐이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처지가 되자 회광 스님은 게송 한 수를 지어 보여 주었다. 그 게송에 ‘저 옛날 의상 대사와 나옹 대사의 사적事蹟과 꼭 같고 원효 대사가 돌아온 발자취와 고금의 행적이 다르지 않으니, 어느 곳엔들 무릎 하나 용납할 만한 토굴이 없을 것이며 어느 산인들 하루 한 끼니 먹을 솔잎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도 역시 한 장의 선게禪偈를 지어 주고, 받고 하는 한편 이 무렵의 기연機緣을 기록하여 빛을 감추어도(晦光) 저절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흔적을 표하고자 이와 같이 한다.”스님은 광서光緖 갑오년(고종 31, 1894) 현재 세속의 나이 33세로 강원도 간성 건봉사에 머물고 있다.원본은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 소장되어 있다.소화昭和 16년(1941) 7월 등사謄寫하다. -
010_1075_b_01L定中僧。抖擻非久。刁圭是用。道高魔盛
010_1075_b_02L歟。好事多魔歟。義湘入唐。誣囚遼東。
010_1075_b_03L懶翁居臺。僅免紅賊。倭服滿城。𢎥人
010_1075_b_04L塞鄕。2)牴 [90] 羊觸藩。進退3)惟 [91] 谷。裕性曰。
010_1075_b_05L客冬結寒際於聖德山。四友作伴。入瀛
010_1075_b_06L過夏。次立志發願。病山遮路。所營未
010_1075_b_07L穩。泰玩曰。年今十五。作客兩歲。敀寧
010_1075_b_08L一心。日夜殊切。旋歸嶺南。竺念曰。僧
010_1075_b_09L橐到底。而時運4)丕 [92] 塞。年事亢旱。首鼠
010_1075_b_10L兩端。跋前㚄後。以待命分。欲行不行。
010_1075_b_11L師作一偈。以示5)离中。 [93] 義湘懶翁之事。
010_1075_b_12L適同事蹟。元曉之還歸。古今眞跡。何
010_1075_b_13L處無容膝之窟。何山無一食之松乎。予
010_1075_b_14L亦作一章禪偈。授受而記其機緣。以旌
010_1075_b_15L晦光自現之跡如此。光緖甲午三十三
010_1075_b_16L甲。時在杆城乾鳳。
010_1075_b_17L
010_1075_b_18L原本。朝鮮史編修會藏。
010_1075_b_19L昭和十六年七月謄寫。
010_1075_b_20L「跋」甲本正誤表作「撥」。「牴」甲本正誤表
010_1075_b_21L作「羝」。「惟」甲本正誤表作「維」。「丕」甲本
010_1075_b_22L正誤表作「否」。「离中」甲本正誤表曰衍字。
- 1)종환瘇患 : 다리가 붓는 병, 즉 수중다리.
- 2)단자端字 :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으나 다만 동산·나운·서현 등은 범해 각안梵海覺岸의 사법 제자인 점을 감안할 때 사제 간의 의식에 쓰이는 물건이 아닌가 생각된다.
- 3)철선 스님과~다니기도 했다 : 철선과 초의의 문장과 열수와 추사의 글씨가 워낙 뛰어났으므로 자작시나 자필 글씨에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 4)사람娑囕은 보이지~여유가 있다 : ‘사람娑囕’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고, ‘알가閼伽’는 원래 ‘가치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불전에 바치는 공양물을 말하나 여기에서는 스님의 입적과 관계된 것인 듯하다.
- 5)완함阮咸 :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명으로 완적阮籍의 조카이다. 호방하여 세속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음률에 밝아 비파를 잘 탔다. 여기서는 ‘조카’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 6)무착無着 : 4세기 때 북인도 바라문 출신의 유식불교 대성자. 범어로 아상가라고 한다. 음역해서 아승가阿僧伽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착無着, 무장애無障㝵로 의역한다. 유식학으로 유명한 세친世親의 형이다. 여기서는 법형法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7)화상和尙 아사리阿闍梨 : 아사리는 제자들의 행위를 바로잡아 주는 스승을 말하고 화상은 수계사를 지칭한다.
- 8)삼제三際 : 인도에서 열제熱際, 우제雨際, 한제寒際로 나누었던 것을 말한다.
- 9)사사四事 : 네 가지 공양 거리인 의복·음식·탕약·방사를 말한다.
- 10)백수아사白首阿師 : 머리 하얀 스님이란 뜻으로 아무 지위를 얻지 못한 스님을 지칭하는 듯하다.
- 11)이 운문체의 글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원해 스님의 행장을 말한 것 같다.
- 12)시홀방장十笏方丈 : 작은 방을 의미한다.
- 13)십팔공十八公 : ‘十八公’ 세 자를 조합하면 ‘松’ 자가 되니 송광사를 의미하는 말이다.
- 14)세 가닥 서까래 아래 : 한 사람이 차지하는 길이 6척 너비 3척의 공간을 말한다.
- 15)일곱 근 장삼(七斤衫) : 『禪門拈頌集』 408칙則 「萬法」 조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지만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내가 청주靑州에서 베 장삼(布衫) 하나를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 16)여섯 수 옷(六銖衣) : 1수銖는 1양兩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무게로 여섯 수의 옷이란 아주 가벼운 옷을 말한다.
- 17)호윤好潤이 아닌가 생각된다.
- 18)아난阿難과 같은 벗 : 학식이 아난처럼 다문多聞한 경지에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 19)계환戒環 같은 무리 : 경전 주석을 잘하는 스님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 20)남복南服 : 복服은 서울 밖 500리 되는 지역을 뜻한다.
- 21)장구령張九齡 :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의 명재상이며 뛰어난 문장가. 자는 자수子壽. 저서에는 『曲江集』이 있다.
- 22)주애珠涯 : 중국 최남단에 있는 지명.
- 23)숙수菽水 : 자로子路가 집안이 빈한해서 어버이에 대한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탄식을 하자, 공자가 “콩죽을 쑤어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린다면 그것이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위로했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 하.
- 24)오유吾幼 : 『맹자』 「梁惠王章句」 상편에 “내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겨서 남의 어버이에게까지 미치며 내 자식을 자식으로 사랑하여 남의 자식에게까지 미친다.(老吾老以及人之老。 幼吾幼以及人之幼。)”라고 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 25)결계結界 : ⓢ simābandha. 반타야사만畔陀也死曼, 만타야사만滿馱也徙滿이라 음역. 제한된 경계라는 뜻이다. ① 불도를 수행하는 데 장애를 없애기 위해서 비구의 의·식·주를 제한하는 것. 곧 일정한 장소에 거처하는 것, 남은 음식을 간직하여 두지 않는 것, 옷을 벗지 않는 것을 말한다. ② 마군의 장난을 없애기 위하여 인명법印明法에 따라 제정한 도량의 구역. 이것은 밀교에서 쓰는 법으로, 주로 도량의 정결을 그 목적으로 한다.
- 26)백성(普率) : “넓은 하늘(普天) 아래 다스리고 있는 땅(率土)의 백성들이 모두 황제의 백성이다.”라고 한 말에서 따온 말이다.
- 27)교리행과敎理行果 : 사법四法이라 한다. 구경究竟 목적에 이르는 수양의 과정을 네 단계로 분류한 것이다. 교敎는 언어·문자로써 말하는 교설, 이理는 교의 내용인 도리, 행行은 그 도리에 따라 실천하는 수행, 과果는 수행의 결과로 체득하는 결과, 곧 깨닫는 것. 교는 이를 나타내고, 이는 행을 일으키고, 행은 과를 얻는 순서로 어떤 종의宗義에도 통용되며, 그중 교敎·리理·행行은 문聞·사思·수修에 배당된다.
- 28)구당瞿塘 : 장강長江의 삼협三峽 가운데 하나로, 사천성四川省 백제성白帝城에 있는데, 강물의 흐름이 아주 빠르고 산세가 몹시 험하기로 유명하여 서촉西蜀의 관문關門이라고 칭해진다.
- 29)『논어』 「爲政篇」에 나오는 말이다.
- 30)설리라設利羅 : ⓢ Śarīra의 음역. 즉 사리舍利.
- 31)선불장選佛場 : 교학과 참선 수행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 32)입승立繩 : 선방의 법규와 질서를 담당한다. 대개 선방의 회장 격인 셈이다.
- 33)발전치후跋前疐後 : 『시경』 「豳風」 〈狼跋〉에서 나온 말로, 이리가 앞으로 가려 하면 턱살이 밟히고 뒤로 가려 하면 꼬리가 밟히는 것처럼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처지에 놓인 것을 말한다.
- 1)「擅」甲本正誤表作「檀」。
- 2)「守」甲本正誤表作「字」。
- 3)「詩」甲本正誤表作「諸」。
- 4)「猫」甲本正誤表作「描」。
- 5)「文」疑「丈」{編}。
- 6)「中」甲本正誤表作「申」。
- 7)「秩」下甲本正誤表有「奈」。
- 8)「伯」下甲本正誤表有「之」。
- 9)「開」甲本正誤表作「聞」。
- 1)「柩」甲本正誤表作「樞」次同。
- 2)「寺」甲本正誤表作「師」。
- 3)「當」甲本正誤表作「堂」。
- 4)「若」甲本正誤表作「岩」。
- 5)「開」甲本正誤表作「關」。
- 1)「養」甲本正誤表作「癢」。
- 2)「師」下疑脫「傳」{編}。
- 3)「葉迦」甲本正誤表作「迦葉」。
- 4)「月」下甲本正誤表有「師」。
- 5)「佛」下甲本正誤表有「之」。
- 6)「師」甲本正誤表作「士」。
- 7)「巋」下甲本正誤表有「然」。
- 8)「荊」疑「剏」{編}。
- 1)「玩」甲本正誤表作「阮」。
- 2)「之」下甲本正誤表有「席」。
- 3)「里」甲本正誤表作「釐」。
- 4)「胎」甲本正誤表作「昭」。
- 5)「空」甲本正誤表作「孔」。
- 1)「及」作「反」{甲}。
- 2)「盤」甲本正誤表作「般」。
- 3)「時」甲本正誤表作「昧」。
- 4)「文」下甲本正誤。表有「之」。
- 5)「澹」甲本正誤表曰當細書。
- 6)甲本正誤表曰兼下缺。
- 7)「大」甲本正誤表作「火」。
- 1)「師」下甲本正誤表有「躡」。
- 2)「立」甲本正誤表作「岳」。
- 3)「問」甲本正誤表作「間」。
- 4)「松」下甲本正誤表有「庵」。
- 5)「電」甲本正誤表作「雷」。
- 6)「好」疑「妙」{編}。
- 7)「之」疑衍字{編}。
- 8)「有孫」作「孫有」{甲}。
- 9)「曰」甲本正誤表曰衍字。
- 1)「▼(彳+歩)」甲本正誤表作「徙」。
- 2)「壁」作「避」{甲}。
- 3)「意」甲本正誤表作「億」。
- 1)「敎」甲本正誤表曰衍字。
- 2)「▼(虫+(枕-木))」甲本正誤表作「蛇」次同。
- 3)「栖」甲本正誤表作「柄」。
- 4)「洞」甲本正誤表作「同」。
- 5)「住」作「徃」{甲}。
- 6)「住」甲本正誤表作「任」。
- 7)「文劫」甲本正誤表作「言功」。
- 8)「戎」甲本正誤表作「戒」。
- 9)「線」上甲本正誤表有「針」。
- 10)「直」作「眞」{甲}。
- 11)「切」甲本正誤表作「功」。
- 12)「劇」甲本正誤表作「遽」。
- 1)「下」甲本正誤表作「不」。
- 2)「外」甲本正誤表作「升」。
- 3)「白」甲本正誤表作「句」。
- 4)「跡」作「路」{甲}。
- 5)「行」疑衍字{編}。
- 6)「忍」下甲本正誤表有「難」。
- 7)「必」作「心」{甲}。
- 8)「折里」甲本正誤表作「析釐」。
- 9)「或」甲本正誤表作「惑」。
- 1)「傳」甲本正誤表作「展」。
- 2)「夏」下甲本正誤表有「在」。
- 3)「受」甲本正誤表曰衍字。
- 4)「堂之」甲本正誤表作「之堂」。
- 5)「王」甲本正誤表曰衍字。
- 1)「肆」甲本正誤表作「師」。
- 2)「限」上甲本正誤表有「期」。
- 3)「佛」甲本正誤表作「修」。
- 4)「綱」甲本正誤表作「綱」。
- 5)「微」甲本正誤表作「徵」。
- 6)「窟幕」甲本作「窟募」而正誤表曰衍字。
- 7)「暝」甲本正誤表作「溟」次同。
- 8)「▼(艹/罒/心)」甲本正誤表作「夢」。
- 9)「當」甲本正誤表作「堂」。
- 1)「跋」甲本正誤表作「撥」。
- 2)「牴」甲本正誤表作「羝」。
- 3)「惟」甲本正誤表作「維」。
- 4)「丕」甲本正誤表作「否」。
- 5)「离中」甲本正誤表曰衍字。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두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