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615_T_002
- 017_0605_b_01L대장부론 하권
- 017_0605_b_01L大丈夫論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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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라 지음
도태 한역
김월운 번역 -
017_0605_b_02L提婆羅菩薩造
北涼沙門道泰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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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발보리심품(發菩提心品) - 017_0605_b_04L發菩提心品第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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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하는 일이 일체 중생의 친구가 된 사람은 일찍이 잠깐 동안이라도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적이 없다. 보살의 가엾이 여기는 대비의 마음은 일체 것을 두루 반연하여 반연하지 않는 것이 없다. 대비의 마음이 두루한 까닭에 나중에 부처가 될 때에 일체종지(一切種知)를 얻기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대비의 마음 때문에 성품의 해탈을 버리고 보리의 마음을 낸다.
이 최초의 한 생각은 부처님만이 그 한계를 헤아려 아신다. 하물며 보리의 행으로 해탈을 얻는 즐거움이겠는가? 최초의 한생각으로 보리심을 일으키면 마치 온누리의 흙과 온누리의 금은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최초에 보리심을 낼 때에 모든 번뇌를 맑히고 일체 공덕을 일으킨다. 보리는 발심의 결과이니, 일체 중생이 즐거움을 구하게 하기 위해 보살은 이미 보리심을 발했다. - 017_0605_b_05L施事已足爲一切衆生親者,未曾一念不與悲心相應。菩薩悲心遍緣一切無不緣者,以悲心遍故,後成佛時得一切種智無有障㝵。以悲心故,捨聲聞解脫發菩提心。此初一念之心,唯佛知其邊量,況菩提行解脫樂?方初一念發菩提心,猶如大地金,大地土不相方喩。初發心時以能淨諸結,使招一切功德。菩提是發心果,爲一切衆生求樂。菩薩發菩提心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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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5_c_01L아직 원을 세우지 않은 사람이 묻되 ‘해탈이란 어떤 것인가?’하는데 왜 묻는가 하면 발심한 이는 해탈에서 오는 것같이 여기기 때문에 묻기를 ‘어떤 것이 해탈의 모습인가. 해탈에게로 갔으므로 해탈에서 왔단 말인가?’ 한다.
이미 원을 세운 사람이 대답하되 ‘보리심을 발할 때에 기뻐하고 상쾌해 하는 것이 해탈과 같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한다.
부처님들께 공양하려 하거든 보리심을 내어라.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자 하거든 견고한 보리심을 내어라. 보리심을 내는 일밖에는 보리에 이르는 방법이 없다. 만일 보리심이 없다면 부처의 과위를 얻을 수 없고, 부처의 과위를 얻지 못하면 중생을 구제할 수 없다.
일체 중생에게 큰 즐거움을 주려거든 보리심을 내어라. 왜냐 하면 보리심은 일체 중생의 즐거움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일체 색은 4대(大)를 떠나지 않고, 일체 즐거움은 보리심을 떠나지 않는다. 이상하구나. 어찌하여 생사의 고통은 겁내지 않으면서 두려움 없는 보리심을 두려워하는가? - 017_0605_b_15L未發願者問:“解脫云何?”以何因緣故問?以發心者如從解脫中來,是故問言:“云何爲解脫相?爲往到解脫故知?爲解脫來耶?”已發願者答言:“發菩提心時歡喜快樂猶如解脫,是故得知。”欲供養一切佛者,當發菩提之心;欲報佛恩者,當發堅牢菩提之心。除發菩提心,更無有法能至菩提。若無菩提心則不得佛果,若不得佛果則不能救度衆生。欲與一切衆生無量大樂,當發菩提之心。何以故?菩提心者是一切衆生樂因。一切諸色不離四大,一切樂事不離菩提心。怪哉!云何迺不畏生死之苦,乃畏無畏菩提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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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일체 중생의 괴로움을 쉬게 하려면 보리심을 내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보리심을 내는 것은 첫 지식(止息)의 원인이니 처음 지식의 원인에서 위없는 지식을 얻는다. 재물을 얻는 이익은 공덕을 얻는 이익만 못하고 공덕을 얻는 이익은 지혜를 얻는 이익만 못하고 지혜를 얻는 이익은 보리심을 얻는 이익만 못하다.
만일 방일하고 게을러서 보리심을 생각지 않는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그대는 지금 어찌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가? 분명히 알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곧 큰 보리심이다. 부처의 지혜로 향해 나아가려면 보리심을 일으켜라.
번뇌의 결박에 가려진 이는 해탈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업보에 끄달린 이는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한다.
어떤 것이 삿된 길이며, 어떤 것이 바른 길인가? 애욕에 끄달려서 네 가지 공(空)으로서 해탈이라 여기면 삿된 길이라 하고, 보리심을 일으켜 8정도(正道)를 행하면 바른 길이라 한다. - 017_0605_c_07L若欲止息一切衆生苦者,無過發菩提之心。發菩提心者是初止息因,初止息得無上止息。得財寶利不如得功德利,得功德利不如得智慧利,得智慧利不如得菩提心利。若放逸廢忘不念菩提心者,如禽獸無異。汝今云何不發悲心?當知悲心者卽是大菩提。欲趣向佛智,應發菩提之心。爲結使所障者不能發解脫之心,爲業報障者不能發菩提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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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6_a_01L부귀의 과보를 받고자 하거든 보시를 행하고, 즐거운 과보를 받고자하거든 대비심을 행하고 중생을 구제하여 안락하게 하려거든 굳게 보리심을 일으켜라.
복을 지으려는데 세 가지 얻기 어려운 일이 있으니, 첫째는 착한 벗을 가까이 섬기는 일이요, 둘째는 자비심을 멀리 여의지 않는 일이요, 셋째는 부처의 지혜를 공경하고 숭상하는 일이다. 아직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은 이는 보리심을 일으켜라.
만일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면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는다. - 017_0605_c_17L云何邪趣?云何正趣?爲有愛所牽,以四空爲解脫者,名爲邪趣;發菩提心,修八正道,名爲正趣。爲得富報者修行於施,爲得樂報者修行悲心,爲欲救濟安樂衆生者當堅發菩提之心。不修福者有三事難得:一者不得親近善友;二者不能悲心厭離;三者不能敬尚佛慧。未發菩提心者應當發心,若發菩提心者得一切種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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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공덕승품(功德勝品) - 017_0606_a_03L功德勝品第十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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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재물을 가지고 동일한 복전(福田)에다 보시를 하여도 마음이 같지 않아서 과보를 받는 데는 갖가지 차별이 있으니, 3계의 즐거움을 얻는 이도 있고, 적멸의 즐거움을 얻는 이도 있고, 남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을 얻는 이도 있다.
생각과 원이 훌륭하고 과보를 받는 것이 같지 않으니, 애욕의 마음으로 복을 짓는 이는 과보를 받을 때에 어리석고, 자비심으로 복을 짓는 이는 과보를 받을 때에 지혜롭고, 보리심을 무너뜨리지 않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복을 짓는 이는 복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하다. 그 밖에 닦는 복은 비슷한 복이라 하여 제1의 복이 되지 못한다. 한 맛[味]의 지혜를 닦는 것은 가장 제1의 복이라 할 수 있다.
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3보의 종자는 끊이지 않는다. 업을 알고 과보를 알고, 부처님의 자비에 귀의할 줄 알고, 내가 복 짓는 행이 악을 행하는 것같이 매우 부끄러운 것임을 헤아려 알라. - 017_0606_a_04L有人等以財物施一福田,心不同故得報有種種——有得三有樂者、有得寂滅樂者、有得利他樂者——思願勝故,得報不同。以愛心作福者,受報時愚闇;悲心修福者,受果時得於智慧;不敗壞菩提心爲饒益衆生作福者,當知此福爲福中最勝;其餘修福,名相似福非第一福。修一味智慧,當知此福爲最第一,饒益世閒故三寶種不斷,知業知果知歸依佛慈悲。計我行福如行惡者甚可慚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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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6_b_01L착한 대장부는 인간과 하늘의 세간에 아무도 구제할 이가 없는 것을 보고는 자기만을 위해서 복을 닦지 못하나니, 생사의 고통은 차마 듣지도 못하거늘 하물며 눈으로 보겠는가? 중생이 몸을 받는 것은 지극히 싫어할 만한데 어찌 나를 위해 복을 짓고, 업을 쌓겠는가? 자비심이 있는 이는 차마 못할 일이다.
찰나 사이에도 자비심을 여의지 않고 중생의 친한 벗이 되어야 하거늘 어찌 나를 위해 복을 짓겠는가? 공덕의 맛을 아는 이라면 자유로이 복을 지어서 남에게 은혜 갚는 훌륭한 맛을 얻으리라. 꿈속에서라도 자기를 위해 복을 짓지 않거늘 하물며 깨었을 때이랴. 지혜로서 허물됨을 보고 끝내 유위의 법을 구하기 위해서 복을 짓지 않는다.
자비심이 있는 이는 끝내 해탈을 위해 복을 짓지 않는다. 지혜로운 이는 유위의 법을 구하는 업을 버리고, 자비심이 있는 이는 해탈의 업을 버린다. 무슨 까닭인가? 자비심이 있는 이는 남을 이롭게 하려는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지혜로서 평등하게 복을 지으면 원인의 복과 결과의 복에서 같을 이가 없나니, 10력(力)의 지혜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017_0606_a_15L善丈夫者見人天世閒無救,終不爲己修福。生死中苦尚不可聞,況復眼見?衆生受身極可患厭,云何爲我修福作業?悲者所不能作。一剎那頃不離悲心爲衆生親友,云何爲我作福?有嘗功德味者,得自在修福、得他報恩勝氣味,夢中尚不爲己修福,況復覺時?以智能見過,終不求有造福,悲心者終不爲解脫修福。智者棄求有業,悲者棄解脫業。所以者何?悲者爲利益他故,無勝智慧平等造作。因福一果福無與等者,從十力得智。
- 자기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남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을 버리는 이를 은혜를 저버린 자라 한다. 오직 나만이 아나니, 부처님을 따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은 내가 복 짓는 일의 동무이니, 설사 으레 받을 과보이지만 혼자만 누리면 은혜를 저버린 자라 한다. 지극히 얻기 어려운 즐거움을 어찌 혼자서 누릴 수 있으랴. 이런 사람은 모든 대중에게 버림을 받고 설사 천 열반의 즐거움을 얻더라도 남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것만 못하나니 천 열반보다 더 수승하다. 해탈의 즐거움까지도 혼자 받을 수 없나니, 무슨 까닭인가? 세간 중생들이 귀의할 곳 없고 구제할 이 없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해탈의 즐거움도 누리지 않거늘 하물며 위없는 보리이겠는가?
- 017_0606_b_03L爲己得樂捨利他樂,名背恩者。唯我能知,從佛得知,故一切衆生是我修福之伴。設當得果而獨受用,名背恩者。極難得樂,豈得獨受?其如是丈夫爲一切所棄。設得千涅槃樂不爲饒益,不如救一衆生苦,勝得千涅槃樂。解脫樂尚不獨受。何以故?見世閒衆生無歸無救故。尚不獨受解脫樂,況復無上菩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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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승해탈품(勝解脫品) - 017_0606_b_11L勝解脫品第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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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밖에 삼매와 정혜(定慧)의 경계가 있어 중생들 모두가 부처가 되게 한다. 이 삼매가 있으므로 해탈을 취하려 하지 않는다. 두타(頭陀:수행자)는 일체 허물을 제거하여 적멸이 입안에 있는 것 같다. 참된 구제자(救濟者)는 중생의 괴로움 때문에 적멸을 증득하지 않을 뿐이다. - 017_0606_b_12L更有餘三昧定慧境界衆生皆悉作佛,以有此三昧故不欲取於解脫。頭陁除一切過惡,寂滅如在口中;眞濟者爲衆生苦故而不證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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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과 지혜에서 자비가 생겨
세간 중생의 고통을 본다.
세간의 참된 구제자는
끝내 해탈하지 않는다. -
017_0606_b_16L定慧悲自生,
見世閒衆苦,
世閒眞濟者,
終不越度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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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6_c_01L
바다의 조수가 한도를 넘지 않는 것같이, 자비를 닦는 이는 백 겁을 고행하여 만약 한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면 끝내 생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기의 힘이 능히 해탈을 얻을 수 있지만 중생 때문에 생사에 머물러 있다.
세 가지 보시에 대하여 항상 명절 때와 같이 좋아하고 자기의 즐거움을 좋아하지 않고 남을 위해 즐겁게 하며 밤낮으로 생사 속에 머물지 않아 기쁘고 상쾌함이 열반과 같다.
보살은 항상 중생을 위해 이익 되는 업을 지어 기뻐하고 좋아하는 자미가 있다. 보살은 꿈속에서도 기뻐하는 즐거움을 얻는데 해탈보다 뛰어나다.
보살은 남을 기쁘게 하는 자미를 얻었는데 중생들은 그 자미를 얻지 못해서 해탈의 길을 택한다.
지혜로운 사람이 해탈을 얻어 남을 기쁘게 하는 즐거움과 자미를 알면 반드시 다시 이 세상에 와서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다.
생사를 두려워해서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해탈을 구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는 것은, 보살이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몸을 받아 태어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니, 남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자기 하나만이 괴로움을 받는다면 열반에 들겠지만 일체중생이 모두 괴로움에 시달리거늘 어찌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들겠는가. 자기의 괴로움을 본다면 열반에 들겠지만 자비한 이가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보고 모두가 마음에 걸리거늘 어떻게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들겠는가? 만일 남을 즐겁게 하고 기뻐한다면 그것이 곧 열반이거니와 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생사이다. - 017_0606_b_18L如海潮終不過限,修悲者百劫苦行,若能度於一人,終不出生死。力能得解脫,爲衆生故處於生死。於三種施一切時常如節會,不樂己樂爲他作樂,日夜於生死中而不處,歡喜快樂如處涅槃。菩薩常爲衆生作利益業歡喜樂味智,菩薩乃於夢中得歡喜樂勝於解脫,菩薩得爲他作樂歡喜氣味。諸有衆生不得氣味證於解脫,智人若得解脫知利他樂歡喜氣味者,必當還來利益衆生。畏於生死、爲自利益求於解脫以爲極樂者,不如菩薩受陰身時歡喜快樂,爲利他故。若自一已受逼迫苦者乃可入於涅槃,一切衆生受逼迫苦,云何捨於衆生入於涅槃?見自己苦者入於涅槃,悲者見一切衆生苦皆住己心,云何捨於衆生入於涅槃?若能爲他作樂歡喜卽是涅槃,若不如是卽是生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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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7_a_01L중생들에게 평등한 자비를 가지고 남을 즐겁게 함으로써 기뻐하는 것은 곧 열반이니, 부처님께 칭찬을 받고 만일 해탈을 얻어 한 사람을 이롭게 하였을 때의 기쁨같이 하면 지혜로운 이에게 사랑을 받는다. 만일 남에게 중대한 즐거움을 주고도 공을 따지지 않으면 그것은 곧 해탈이다.
자비한 이는 남을 즐겁게 하고도 과보를 바라지 않나니, 이와 같이 한다면 곧 해탈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곧 생사이다. 자기를 위해서 즐거움을 구하면 괴로움이요,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고 남을 위해 즐거움을 구하면 열반이다. 세간의 중생들은 괴로움을 무찌르는 것으로 해탈이라 하지만 자비를 닦는 이는 남의 고통을 없애 주는 것으로써 가장 훌륭한 해탈로 여긴다. 남의 괴로움을 없애 주면 양쪽이 모두 쾌락을 얻는데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두 가지 해탈에서 한 해탈만을 취하겠는가?
세간 사람들이 말하되 “지혜 있는 이는 해탈을 얻는다” 하는데 보살은 이에 대해 생각하기를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남을 구제하는 즐거움을 버리고 해탈을 취하겠는가? 자기도 즐거움을 얻고 남을 위해서도 즐겁게 한다. 3계 안에서 가장 훌륭한 즐거움은 해탈의 즐거움이다’라고 한다.
보살이 중생을 위해 고통을 받는 것은 남이 자신을 위해서 해탈을 얻는 즐거움보다 더 훌륭하다. - 017_0606_c_14L於衆生有平等悲者,爲他作樂歡喜卽是涅槃,佛所讚說。若解脫如利益一人歡喜樂者爲智者所愛,若與他重樂不計功者卽是解脫。悲者爲他作樂不望果報,若能如是卽是解脫,若不如是卽是生死。若爲己求樂者卽是苦也,捨於己樂爲他求樂卽是涅槃。世閒衆生以破苦故名爲解脫,修悲者能破他苦卽是勝解脫也。破他苦者二俱得樂,何有智者捨二解脫取一解脫?世閒人言:“有智者得於解脫。”菩薩作是思惟:“我不信是語。何有智人捨救他樂,取於解脫自己得樂?能與他作樂、三有中樂勝解脫樂。”菩薩爲衆生受苦,勝於他人爲己得解脫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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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요익타품(饒益他品) - 017_0607_a_06L饒益他品第十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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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중생은 자기의 쾌락을 위해 생사 속에서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보살은 마음을 푹 쉬고, 자비한 마음으로 남을 이롭게 한다.
생사 속에서는 물리치는 법[對治法]을 제하고는 다른 즐거움이 없지만,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제하고는 딴 즐거움이 없다.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을 얻고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임을 좋아한다.
자기를 이롭게 하는 즐거움이 곧 남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임을 알고 남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이 곧 자기를 이롭게 하는 즐거움임을 아나니, 남을 이롭고 즐겁게 할 때가 곧 자기의 즐거움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상ㆍ중ㆍ하의 차별이 있으니,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즐거움을 보면 괴로워하고 중간 사람은 자기가 괴로울 때 괴로움을 느끼고, 상등 사람은 남의 즐거움을 볼 때에 자기도 기뻐하고 남의 괴로움을 볼 때에 자기도 괴로워한다. - 017_0607_a_07L世閒衆生爲己樂故,於生死中身心疲勞;菩薩心得休息,悲心作饒益他生死中除對治法,更無有樂,菩薩除利益他更無有樂。菩薩得作利他歡喜樂,知利他者卽是自利,捨自己利愛利他樂,知利己樂卽是利他樂,知利他樂卽是利己樂,知利他樂時卽自己樂故。人有上中下:愚人者見他得樂心生苦惱;中人者己自苦時知苦;上人者見他樂時心生快樂、見他苦時如自己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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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7_b_01L보살의 네 가지 거두는 법[四攝法]에는 남과 이익을 함께하는 법[同利]이 있다. 무엇이 이익을 함께하는 것인가? 남이 괴로울 때 괴로워하고 남이 즐거울 때 즐거워한다. 이것이 이익을 함께하는 법이니, 자비한 마음이 평등하여 남이란 생각이 없다.
보살은 중생과 같이 괴로워하고 중생과 같이 즐거워하는데, 특히 자기 혼자서 걱정을 한다. 왜냐 하면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도 보지 않고, 미래도 보지 않고, 오직 중생의 뜻에 따라 괴로움을 멸하는 일을 할 뿐이다.
보살은 자기의 뜻이지만 남의 뜻과 같이 여긴다. 세간의 중생은 남에게 이익을 주고는 과보 받기를 바라거니와 보살은 남에게 이익을 주어도 과보를 바라지 않는다.
보살은 비록 자비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나 원망하고 미워하는 이에게 더욱 이익을 주고, 그들에게 이익을 줄 때에 속으로 기뻐한다. 몸과 목숨을 버릴 때에 기뻐하는 것은 평등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평등하지 못함이라 한다. 미운 이에게 배(倍)나 이익을 주는 것은 소문난 자비의 마음이라야 할 수 있다.
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평등하게 자비한 마음을 낸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하는 중생에게 배나 가엾은 생각을 내나니, 비유컨대 큰 부자에게 외아들이 있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뼈에 사무치는 것같이, 보살이 일체 중생을 사랑하는 것도 이와 같다.
나쁜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자기보다 좋은 것 가지는 것을 싫어하면 이는 은혜를 등진 사람이라 한다. 일체 미운 중생은 보살에게 대하여 똑같이 악하고, 보살은 미운 중생에게 똑같이 자비롭다. 세간 중생들은 은혜에 보답하는 이를 만나면 기뻐하는데 보살이 미워하는 중생에게 이익을 주면 그 즐거움은 이보다 배나 더하다.
세간 중생들은 남을 꾸짖었을 때 남이 보복하지 않으면 몹시 기뻐하는데 보살은 남의 꾸지람을 들을 때에 몹시 기뻐한다. 애착의 마음이 있는 이가 3계 안에 널리 두루 하듯이 보살의 자비한 마음도 3계에 두루 한다. - 017_0607_a_18L菩薩四攝法中與他同利。云何同利?他苦則苦、他樂則樂,是名同利。悲心平等無有他想,菩薩與衆生同苦同樂,菩薩自己身特生苦惱。何以故?不能救衆生苦故。不觀過去、不觀未來,隨衆生意作滅苦對治,菩薩自意亦如他意。世閒衆生與他利樂還望返報,菩薩與他利樂不望其報。菩薩雖悲心平等愛一切衆生,然於怨憎中倍與利樂,於怨憎邊與利樂時心中歡喜。如捨身命時歡喜者名爲平等,若不如是名不平等。於怨憎中倍與利樂者,名稱悲心所作。菩薩於一切衆生等生悲心,然於惡行衆生倍生怜愍。譬如大富長者唯有一子,愛念之心徹於骨髓;菩薩愛念一切衆生亦復如是。如有惡子不欲父得勝己事者是名背恩,一切怨憎衆生於菩薩所同一味惡,菩薩於怨憎人生同一味悲心。世閒衆生得報恩者生其歡喜,若菩薩於怨憎人所與其利樂心生歡喜倍過於是。世閒衆生若罵時,他不還報便大歡喜;菩薩得他罵時心大歡喜。有愛心者於三界中悉皆普遍,菩薩悲心亦普遍三界。菩薩悲地獄衆生,不如悲愛著三界愚癡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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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7_c_01L중생은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 한량없는 큰 고통에 얽매이고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을 위해 한량없는 큰 고통에 얽매인다.
일체 중생은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나니, 모두가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으려 하며 남에게 이로움과 즐거움을 주려는 것을 훌륭하게 여긴다.
유위의 이익이 자기에게로 향하는 것이 슬픔의 원인이기도 하고 기쁨의 원인이기도 하거니와 이익이 남을 향하면, 보는 즉시 슬픔과 기쁨을 일으키나니, 스스로가 자기의 이익을 위하는 것은 슬픔을 내는 까닭이요,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면 기쁨을 내는 까닭이다.
네 가지 한량없음[四無量]이란 중생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훌륭하다.
네 가지 한량없음을 닦는 이는 능히 세간 법과 세간 밖의 법과 함께하는데 세간 법과 세간 밖의 법과 네 가지 한량없음은 모두 한 경계이다. 무슨 까닭인가? 똑같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똑같이 동일한 위없는 보리의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자비한 이는 능히 남을 이롭게 하고 지혜로운 이는 능히 버리나니, 희유(稀有)하다는 마음도 내지 말고 높고 낮다는 마음도 내지 말라. - 017_0607_b_21L衆生樂於己樂爲無量大苦之所繫縛,菩薩爲利他樂故爲無量大苦之所繫縛。一切衆生皆同一事,皆欲離苦得樂,與他利樂爲勝有爲。利向己者亦是悲因亦是喜因,爲利向他者見之生於悲喜,自爲己利所以生悲,見其得樂所以歡喜。四無量心者內心欲修緣,四攝法者爲衆生利樂名爲最勝。修四無量者能與世法及出世法,因世法出世法及四無量心都是同一境界。何以故?同一利益衆生、同得一無上菩提果故。悲者能利他,智者能捨,不生希有心、不生高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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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승시타고품(勝施他苦品) - 017_0607_c_11L勝施他苦品第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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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8_a_01L
보살은 남이 괴로워함을 볼 때가 가장 괴롭고 남이 즐거워함을 볼 때가 가장 큰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남을 이롭게 한다. 어리석은 중생은 남의 괴로움을 볼 때에 자기는 즐겁다 하고 남의 괴로움을 보면서도 괴로움으로 즐거움을 삼고 남을 즐겁게 함으로써 자기의 고생으로 여기지 않으나, 어리석은 중생은 자기의 적은 즐거움을 위해 남을 크게 괴롭힌다.
현명한 사람은 남에게 적은 즐거움을 주기 위해 자기는 큰 고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는 이는 조그마한 즐거움의 인연을 짓고 큰 즐거움을 얻을 때에 기뻐하기는 하지만 보살이 조그만 즐거움으로 남을 이롭게 했을 때에 기쁜 마음에는 미치지 못하나니, 그보다 훨씬 지난다.
보살은 남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 몸으로 대신해 주나니 몸은 비록 고통을 받으나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마음속이 쾌락해서 몹시 기뻐한다.
보살의 자비한 마음은 자재한 즐거움을 얻어서 3계의 모든 괴로움의 핍박을 받지 않나니, 보살은 자비의 감로(甘露)를 마셨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의 핍박을 받지 않는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으므로 남을 대신해서 괴로움을 받는다.
어리석은 중생은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볼 때에 좋아하고 남이 즐거워하는 것을 볼 때에 괴로워하지만 보살은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괴로워하고, 남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즐거워한다. 자비심이 있는 이는 남이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보면 여름 햇빛같이 뜨겁거니와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를 막론하고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볼 때엔 모두가 싫어하여 여읠 생각을 내고 근심과 걱정을 해야 한다. - 017_0607_c_12L菩薩見他苦時卽是菩薩極苦,見他樂時卽是菩薩大樂,以是故菩薩恒爲利他。凡愚衆生見他苦時自己爲樂,見他苦不以爲苦;賢人者自苦以樂樂他,不以己苦。凡愚衆生爲己少樂而大苦他,賢人者爲與他少樂,自受大苦。惡行者修少樂因,得大樂時雖生歡喜,不及菩薩以少樂利他人時心大歡喜,倍過於是。菩薩見他受苦以身代之,身雖受苦不以爲苦,心中快樂生大歡喜。菩薩悲心得自在樂,不爲三有諸苦之所逼惱。菩薩飮悲甘露故不爲諸苦所苦,不爲苦所苦故能爲他受苦。凡愚衆生見他苦時心中生樂,見他樂時心中生苦;菩薩見他苦時則苦、樂時則樂。無悲心者見他苦時如月極冷,有悲心者見他受苦如夏盛日。不問愚智見他苦時,皆生厭離生憂惱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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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8_b_01L자비심이 있는 이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깊이 내어 결정적인 생각을 하되 ‘일체 중생의 괴로움이 곧 나의 괴로움이라’ 한다. 보살은 다시 생각하되 ‘일체 중생의 괴로움이 곧 나의 괴로움이라’ 한다. 보살은 다시 생각하되 ‘만일 큰 정진을 하지 않으면 어찌 능히 이 큰 고통을 깨뜨리랴’ 한다. 보살은 일체 중생과 이익을 같이 하고, 고락을 모두 같이 하나니, 모름지기 부지런히 애써야 보리를 이룬다.
보살은 생각하되 ‘네가 보리를 얻은 뒤엔 일체 중생에게 주고, 다시 생사의 가운데로 돌아가 처음 발심함으로부터 보리에 이르면 다시 버려 중생에게 주리라’ 한다. 그러나 얻을 바는 없다.
보살은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 네 가지 거두어 주는 법[四攝法]을 행하되 끝내 피로해 하지 않나니, 마치 땅덩이가 일체 물건을 바치고 있으나 끝내 피로해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자기의 몸을 위하는 이는 스스로의 즐거움을 받을지라도 피로한 생각을 내거니와 보살은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피로한 생각을 내지 않는다. 보살이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아비지옥의 고통을 당할지라도 열반의 즐거움같이 여기는데 그 밖에 딴 고통을 어찌 피로해 하겠는가? 만일 한 중생이 즐거움을 받게 하기 위해 자기가 끝없는 지옥의 고통을 받을지라도 항상 용맹한 생각을 내어 그들을 즐겁게 하되 피로한 생각을 내지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남을 위해 즐거움을 주기에 피로한 생각을 내지 않는가? 보살은 일체 중생을 보되 남이란 생각을 내지 않고, 도무지 자기와 같이 여긴다. 중생은 번뇌에 집착되었으므로 어디서나 남을 해치고자 하고, 자비심으로 유지되는 이는 온갖 고통을 몽땅 대신 받고자 한다.
보살은 남의 핍박당하는 고통을 대신 받되 괴로운 이가 해탈의 즐거움을 좋아하는 것같이 한다. 보살은 남을 대신해서 핍박당하는 고통을 받기를 좋아할 때에 대비의 마음이 맑아진다. 지혜로써 남이 고통 받는 것을 볼 때에 자비한 마음이 그 속에 있다. 자비한 마음이 머무는 곳에 괴로움이 머무를 수 없다. - 017_0608_a_08L有悲心者深生憐愍作決定心,一切衆生苦卽是我苦。菩薩作念:“若不能發大精進者,何由能壞此大苦?”菩薩與一切衆生同利苦樂皆同,須勤勞得成菩提。菩薩作念:“我得菩提已捨與一切衆生,還於生死之中。”從初發心還至菩提,復捨與衆生,然不可得。菩薩爲利他故,行四攝法終不疲厭,猶如大地持一切物終不疲厭。爲己身者自受其樂尚生疲厭,菩薩爲他作樂不生疲厭。菩薩爲他作樂,見阿鼻苦如涅槃樂,於餘苦邊有何疲厭?若爲一衆生受樂、自受無量地獄,常作勇猛與他作樂不生疲厭。以何因緣爲他作樂不生疲厭?菩薩觀一切衆生,不見他想都如自己。衆生爲結使所著,於一切處皆欲害他;爲悲所持者,於一切苦無不欲受。菩薩爲他受逼迫苦,如苦者樂解脫樂。菩薩樂代他受逼迫苦時卽大悲心淨,智慧觀他受苦,悲心卽在中住,悲心住處則苦不得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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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비한 이는 일체 중생을 위해 괴로움에 얽히나 이와 같이 남을 위해 이익과 즐거움을 줄 때에 기뻐함은 해탈의 즐거움보다 더하다. 보살은 남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 자기의 고통과 같이 여기고 자기가 즐거움을 얻은 뒤엔 남에게 주고자 하여 열반보다 수승한 것으로 느낀다.
자비한 이는 항상 자기는 고통을 받고 남에게는 즐거움을 주고자 하나니, 자비와 괴로움은 잠시도 함께 머무르지 못한다.
나쁜 짓을 하는 이는 남이 괴로워함을 볼 때에 멀리 피하려 하고 남이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보면 좋아하지 않지만 보살은 남이 괴로움을 받는 것을 볼 때에 멀리 피하려 하지 않는다.
애착이 없는 이에게는 일체 괴로운 업이 없나니, 무슨 까닭인가? 남의 고통을 제해 주고 큰 기쁨이 생기기 때문이다. 보살은 남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을지라도 반드시 기뻐하는 것은 아니고, 남이 다른 이에게 조그만 즐거움을 주는 것을 보면 몹시 기뻐한다. 무슨 까닭인가? 성품이 본래 그렇기 때문이다. 보살은 남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자기도 즐거워하는데 남이 다른 이에게 조금의 즐거움을 줄 때인들 어찌 기뻐하지 않으랴. - 017_0608_b_06L雖復悲者爲一切衆生苦之所纏,如是爲他利樂心生歡喜,勝解脫樂。菩薩見他受苦如自己苦,自己得樂欲與他人,自覺勝於涅槃。悲者常欲自受其苦、與他樂,悲之與苦不得一剎那頃而得共住。行惡者見他苦時欲得遠避,見他得樂心不憙悅;菩薩見他苦時不欲遠離,無愛者無一切苦業。何以故?除他人苦生大歡喜故。菩薩與他大樂不必歡喜,見他與人少樂心大歡喜。何以故?體性爾故。菩薩見他得樂自己亦樂,菩薩見人與他少樂,云何不生歡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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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애비품(愛悲品) - 017_0608_b_19L愛悲品第二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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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몸과 마음이 항상 심한 고통에 얽매였음을 알지 못하면 다른 이의 마음 속의 고통을 알 수 없다. 자비가 없는 이는 못할 짓이 없다. 다른 이가 쇠퇴하고 불행한 것을 보아도 마음이 부드럽지 못하면, 이런 이는 지극히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라 한다. 만일 중대한 은혜를 입었더라도 언제 기억해 보겠는가?
죽음에 당한 이는 비록 좋은 약이 있으나 지극한 고통으로 여기나니, 지극히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요, 복덕이 없는 이는 자비의 좋은 약을 만나더라도 지극히 괴롭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이 재물이 많은 큰 부자이면서도 자기 혼자 먹고 남에게 주지 않으면 남에게 비난을 받는 것같이 지혜와 지식이 있으나 자비가 없으면 역시 남에게 비난을 받는다.
괴로워하는 중생을 보고서도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기 어려우면 공덕의 그릇이 아니니, 마치 깨진 그릇에 물을 담을 수 없는 것 같다. 자비심이 있는 이는 괴로워하는 중생을 보면 비록 구제하지는 못하나 ‘괴롭구나. 중생이여’ 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생들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때문에 병들어서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의 고통이 항상, 뭇 고통을 몰고 핍박하는 것을 보면 탄식하되, ‘괴이하구나. 중생이 이 큰 고통에 빠졌구나. 세간 중생은 몸도 괴롭고 마음도 괴롭고 항상 번뇌의 업 때문에 파괴되니 아, 괴이하구나’ 한다. - 017_0608_b_20L若人不知身心常爲極苦所縛,則不能知他心中苦。無悲者無惡不作,若見他衰禍心不調軟,此人名爲極惡行者,若有重恩者何時能念?臨死之人雖有美藥以爲極苦,爲極行惡;無福德者得慈悲甘藥作極苦想。若人巨富多饒財寶,但自食噉不與他人,爲人所呵;雖有智慧多聞,若無悲心亦爲人之所譏呵。若見苦惱衆生難得悲心者非功德器,猶如破器不任盛水;有悲心者見苦衆生,雖不能救濟,可不能歎言苦哉衆生,見衆生爲貪欲瞋恚愚癡所病生老病死之苦,常爲衆苦之所惱逼。怪哉衆生墮是大苦!世閒衆生身苦心苦,常爲結業之所破壞。嗚呼怪哉!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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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09_a_01L세간 중생을 핍박하는 고통에 대해 어떤 보살이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내지 않겠는가? 몸이 급한 물결에 휩쓸리듯 생사에 빠져서 무궁한 세월을 보낸다. 두려운 큰 고통의 바다에서 중생은 항상 괴로움의 괴로움[苦苦]에 시달리고, 변천의 괴로움[行苦]에 시달리고, 무너지는 괴로움[壞苦]에 시달린다. 한 가지 괴로움만 보아도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내기에 족하거늘 하물며 세 가지 고통이 구족함에서이랴.
어리석은 중생은 항상 백ㆍ천 가지 괴로운 고통을 받나니 한 가지 괴로움을 보아도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내야 되거늘 하물며 백ㆍ천 가지 고통들이겠는가?
분명히 알라. 세간의 온갖 고통에서 낱낱 고통에 대하여 아직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지 않은 이는 당장에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고, 이미 낸 이는 더욱 자라게 해야 할 것이거늘 하물며 한량없는 고통에 대해서이랴.
세간의 갖가지 고통에 관한 말을 들으면 돌이라도 부드러워질 것이거늘 하물며 마음 있는 이가 가엾다는 생각을 내지 않겠는가? 세간의 슬피 우는 소리를 들으면 죽은 나무라도 꽃이 필 것이거늘 하물며 마음 있는 이가 가엾다는 생각을 내지 않겠는가.
세간의 괴로움은 한 맛인데 마음이 부드러운 이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기 쉽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있는 이는 보리를 얻기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쉽다. - 017_0608_c_13L閒衆生逼迫之苦,何有菩薩而不生悲?身住於駛流,沒生死無窮可畏大苦海。衆生常爲苦苦所苦、行苦所苦、壞苦所苦,若見一苦足生悲因,況復具足三苦?愚癡衆生常爲百千諸苦所苦,若見一苦應生悲心,況復百千諸苦?應當了知世閒諸苦,於一一苦中未生悲心者應當生悲,已生悲心應當增長,況復無量?若聞世閒種種無量諸苦,石尚應軟,況有心者而不生悲?若聞世閒悲呼之聲,枯樹猶應生華,況有心者而不生悲?世閒苦一味,心柔軟者易生悲心,有悲心者菩提之果便在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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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각오녕장부품(覺悟儜丈夫品) - 017_0609_a_04L覺悟儜丈夫品第二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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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한 마음은 지극히 풍부하여
남을 이롭게 하고는 기뻐하거니와
자비한 마음이 빈궁한 사람은
이 즐거움을 바라지 못한다. -
017_0609_a_05L悲心極豐富,
利他已生樂,
貧窮悲心人,
不能貪此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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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이가 애욕에 자재하면
자비한 마음은 사라져 가나니
자비한 마음이 사라진 뒤엔
뭇 고통이 모두 모여 온다. -
017_0609_a_07L 嬰愚愛自在,
悲心則背去,
悲心已背去,
衆苦皆來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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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욕에 자재한 이는 생사 속에서 괴로움을 나누어 남에게 주려 하여 생사와 함께 소용돌이친다. 자비한 마음이 있는 이는 세간 중생에게 적멸의 즐거움을 나누어 그와 함께 간다. 애욕의 마음이 있는 이는 3계를 좋아하고 애욕의 허물을 아는 이는 열반을 좋아하고 남을 이롭게 하려는 이는 자비한 마음을 좋아한다.
애욕에 자재한 이는 항상 세간을 좋아하나니, 몸을 받는 것이 자기의 즐거움만을 위하기 때문이요, 자비에 자재한 이는 항상 몸을 받아 태어나기를 좋아하나니,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한 때문이다.
애욕에 자재한 이는 항상 자기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으로써 자기를 결박하고 자비한 마음을 가진 이는 항상 남을 이롭게 하려는 것으로 자기를 속박한다. 애욕에 자재한 이는 항상 자기의 즐거움을 좋아하기에 피로함이 없고 자비한 마음이 있는 이는 남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피로함이 없다. 어리석어서 작은 것을 사랑하는 이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남도 사랑하지 않거니와 보살은 자기까지도 사랑한다. 어리석은 중생은 항상 나를 위한다 하나 사실은 남을 위하는 것이다. - 017_0609_a_08L愛自在者,處生死中欲分苦與他共迴流生死;悲心者,於世閒衆生分寂滅樂共之而去。有愛心者樂於三有,知愛過者則樂涅槃,作利益他者則樂悲心。愛自在者常樂世閒,受身爲己樂故;悲自在者常樂受身,爲樂他故。愛自在者常樂己樂以爲自縛,悲心者恒爲欲與他樂而爲自縛,愛自在者常爲己樂無有疲厭,悲心者爲與他樂而無疲厭。愚愛小者不愛自己亦不愛他,菩薩亦愛自己。愚癡衆生常爲我者,實是爲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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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대장부품(大丈夫品) - 017_0609_a_20L大丈夫品第二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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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오직 한 가지 일에 쫓기나니 항상 남을 위하는 일의 괴로움이 닦쳐 와서 핍박할 뿐이요, 다른 일이 없다. 이것이 자비의 덩어리를 성취한 것이라 한다.
열반 버리기를 괴로움 버리듯 하고, 유위의 몸 받기를 해탈 받듯 하여, 세간에 이익을 주는 것을 가엾이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라 한다. 열반의 공덕과 생사의 허물을 알았지만 유위의 법을 버리지 않으면 이들은 모두가 대비의 공덕이다.
어디서나 애욕을 여의고, 열반으로써 본체를 삼았으되 열반을 취하지 않으면 용맹하고 건장한 이라 한다.
대비의 인연 때문에 능히 생사 속에 들어가서 두루두루 왕래하며, 유위의 법은 모두가 멸하는 것으로 관찰하고 중생은 괴로운 것임을 알아서 구호자가 되고 의지할 곳이 되어 준다. 마음에 대비를 지녀, 자기의 몸을 싫어하고 열 가지 힘[十力]을 갖춘 몸을 구하며, 대비가 머무르는 곳에 머무르고 공덕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륜왕에게 천 명의 아들이 있지만 좋은 상호를 갖춘 아들을 더욱 사랑하는 것같이 부처님도 일체 중생 가운데서 자비한 마음이 있는 이를 사랑한다.
오직 복만을 짓고 지혜도 자비도 없는 이를 장부라 하고, 복도 있고 지혜도 있는 이를 좋은 장부라 하고, 복과 지혜를 닦고, 자비도 닦으면 대장부이니, 자비한 이를 지켜보아서 자비가 있는 이거든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자비한 이에게 경례하면 일체 공덕을 갖춘다. - 017_0609_a_21L菩薩悲心唯有一事之所逼迫,常爲他事苦來逼迫,更無餘事,是名成就悲聚。棄於涅槃如棄其苦,受於有身如取解脫,與世閒利樂者名此爲悲。知涅槃功德生死過患然不捨有爲,如是一切盡是大悲功德。一切處離欲,以涅槃爲體而不取涅槃,名勇健者。大悲因緣故,能入生死周旋往返,觀諸有盡滅,知衆生是苦,爲救爲依,心持大悲,厭惡己身求十力身,大悲之處得處悲處功德。如轉輪聖王雖有千子,然愛相好具者;佛亦如是,於一切衆生愛有悲心者。唯能作福無智無悲名爲丈夫,有福有智名善丈夫,若修福修悲修智名大丈夫。應看悲者,有悲者應共語說,敬禮悲者具一切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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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설비품(說悲品) - 017_0609_b_15L說悲品第二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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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인간ㆍ하늘ㆍ아수라 들은 몸을 받되 갖가지 괴로움이 있거니와, 보살로써 자비가 골수에 사무친 자는 온갖 착한 법에서 자비가 으뜸이 되는 줄 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알라. 마치 온갖 글자가 실담(悉曇:범어의 자모)으로써 바탕을 삼는 것과 같다.
온갖 착한 법이 모두가 대비(大悲)속에 들어가니, 마치 한 채의 집에 여러 물질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 만일 허공이 맑은 것을 보면 대비의 맑음을 보고 허공이 끝없음을 보거든 대비도 끝없음을 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장에 나를 보려거든 대비(大悲)를 공경하고, 나를 보려거든 3계가 모두 고통을 받고 있음을 관찰하라’ 괴로움이 끝없는 까닭에 대비도 끝없고 괴로움이 머무는 까닭에 대비도 머무른다.
‘대비가 머무른다’ 하니, 대비가 어디에 머무르는가? 일체 중생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 따위 갖가지 괴로움 덩어리와 권속(眷屬)들 사이에 머무른다.
대비의 마음이 있는 이는 남의 고통을 아나니, 이것이 부처와 함께 머무는 것이다. 세 가지 보시가 있어 일체 공덕으로 몸을 기르나니, 마치 유모와 같다. 이것이 대비이다. - 017_0609_b_16L世閒人天阿修羅等,受身有種種苦。唯有菩薩徹髓悲者,知一切善法以悲爲首。智人當知,如似一切諸字悉曇爲首,一切善法皆入悲中。如似一舍衆色皆入,若見虛空淨卽見大悲淨,見虛空無邊大悲亦無邊。佛說:“若欲現前見我,當恭敬大悲;若欲見我,當觀三界皆悉受苦。”苦無邊故大悲亦無邊,苦住故大悲亦住。大悲住在何處?住在一切衆生貪欲、瞋恚、愚癡、生老病死種種苦聚,與諸眷屬在中而住。有大悲心能知他苦,此名與佛共住。有三種施一切功德養身,猶如乳母,是名大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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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시비정품(施悲淨品) - 017_0609_c_07L施悲淨品第二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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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에서 온갖 약(藥)이 나는 것같이, 대비의 설산에서 세 가지 보시가 나온다. 온갖 공덕에서 대비를 제하고는 어떤 법도 세간을 위해 약이 되어 주지 못한다. 보시는 자비의 본체(本體)로서 세간을 위해 갖가지 즐거움이 되어 준다.
위없는 과보는 세 가지 보시로 이뤄진 결과이고, 대비는 세 가지 보시의 원인이다. 중생은 할머니와 어머니가 낳아 주시고, 여래는 일체 중생의 위없고 가장 훌륭한 귀의할 곳이니, 뉘라서 공경하지 않으랴. 능히 세 가지 보시를 할 마음을 내면 이것이 대비이다.
보살의 대비는 공덕이 가장 많아서 마음 속에 머무는 데 오직 한 가지 만이 멀리 여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나니, 항상 남을 이롭게 하기에 피로함이 없는 일이다.
세간이나 세간 밖의 즐거움과 남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이 모두가 대비에서 나오나니, 그러기에 내 이제 대비로써 세간을 이롭게 하는 대비한 이를 공경한다. - 017_0609_c_08L猶如雪山生一切藥,大悲雪山生三種施。一切功德除悲,更無有法能與世閒作樂;施作悲體,能爲世閒作種種樂。無上果報爲三施所成,悲是三施之因。衆生祖母能生如來,一切衆生無上最勝歸依誰不恭敬?能生三施是名大悲。菩薩大悲功德極多在心中住,唯有一事而不遠離無有染著,常作利益他事無有疲厭。世閒出世閒樂及利他樂,皆從悲生,是以我今恭敬於悲、能利益世閒大悲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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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0_a_01L나는 갖가지 공덕도 공경한다. 진실로 전부터 말한 바와 같이, 두 가지 공덕이 가장 훌륭하니 남을 이롭게 하는 일과 자기를 맑게 하는 자비이다. 대비는 보시를 맑게 하나니, 그러기에 내 이제 보시로써 대비를 장엄하는 이를 공경한다.
나는 또한 모든 유정을 가엾이 여기는데 있어서 대비의 뜻을 같이 하는 이를 공경하며, 또한 대비로 마음의 본체를 맑히고 보시로 업의 길도 맑히는 자를 공경한다. 마음의 본체를 맑히거나 업의 길을 맑히는 것은 곧 열반의 길을 맑히는 것이며 위없는 보리의 길을 맑히는 것이다.
대비는 보시를 맑게 하나니, 대비가 없는 이는 보시를 더럽힌다.
보시가 대비를 맑히고 대비가 보시를 맑히면 이것이 세간의 단정이라 한다.
대비는 믿음과 공경을 내나니, 마치 땅덩이가 여러 꽃에 싸여 장엄된 것 같이 대비도 그렇다. 세간 중생은 번뇌의 햇살에 쪼들리는데 대비의 마음을 얻은 이는 모두가 서늘한 즐거움을 얻으니, 마치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바람을 만나면 모두 그치는 것과 같다. - 017_0609_c_19L我亦恭敬種種功德,實如所說有二功德最勝:能利益他及自淨悲。悲能淨於施,是以我今愛敬;施能莊嚴於悲,我亦愛敬;悲諸有同悲音者,亦復愛敬。悲能淨心體、施能淨業道,能淨心體、能淨業道,卽能淨涅槃道、能淨無上菩提道。悲能淨捨,無悲者垢污於捨。施能淨悲、悲能淨施,是名世閒端正。悲能生信敬,猶如大地爲衆華莊嚴;大悲亦復如是。世閒衆生爲煩惱日之所燒逼,得悲心者皆生涼樂,猶如夏熱之時得淸涼風皆得止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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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애비승품(愛悲勝品) - 017_0610_a_08L愛悲勝品第二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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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취함[取]을 인연으로 하고, 취함은 애욕[愛]을 인연으로 한다. 애욕이 있으면 취함이 있고, 애욕이 없으면 취함이 없다.
대비가 있으면 반드시 버림(보시)이 있고, 대비가 없으면 버림도 없다. 애욕 때문에 취함이 늘고, 버리기 때문에 대비가 는다. 사랑스럽고 은혜로운 이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잘못이요. 원망스러운 이에게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더하라. 애정이 늘어나서 자기가 즐거우면 남을 해치게 되고 대비가 늘어서 남에게 즐거움을 주면 자기는 괴롭다.
애욕이 늘어서 남을 해치는 이는 드물지 않고, 대비한 마음을 가진 이가 자기의 몸과 목숨을 버려 남에게 주는 것은 드【문】일이다. - 017_0610_a_09L施緣取、取緣愛,有愛則有取、無愛則無取;有悲必有捨、無悲亦無捨。愛故取增長,捨故悲增長。愛恩者生愛,是過患怨則增長悲心。愛增長爲自己樂則害他,悲增長能與他樂自己則苦;愛增長而害他者則非希有,悲心者捨己身命而與他人是爲希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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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0_b_01L애착이 있는 이는 어리석고 천한 사람이라 하여 항상 빈궁에 빠져 온갖 고통을 받거니와 자비의 공덕이 있는 이는 항상 부귀를 누린다. 탐욕과 애착이 있는 이가 끊을 수가 있겠는가. 만족함을 알아 그칠 때에 지혜를 얻으면 끊어지고 만족함을 알게 된다.
자비한 마음을 얻은 이는 그칠 줄을 모르나니, 항상 남에게 보시하기 때문이다. 애착의 마음이 있는 이는 온갖 괴로움을 불러모아 큰 괴로움 덩어리를 이루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있는 이는 온갖 공덕을 낸다.
자비스러우면서도 더러운 업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요, 자비스러워도 남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도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요, 자비스러워도 보리를 구하려 하지 않는 것도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애착의 마음은 온갖 고통을 내고, 자비의 마음은 온갖 즐거움을 낸다. 자비에 의해 몸과 입의 업을 일으키면 수승한 업이다 하나니, 자비로운 마음이 있는 이는 일체 중생에게 끝없는 즐거움을 준다. - 017_0610_a_16L愛著者名愚賤人,常在貧窮受諸苦惱;有悲功德者常處富貴。貪愛者可得斷絕,有止足時得智慧則能斷絕止足;得悲心者無有止足,常施他故。愛心者能招集一切諸苦成大苦聚,悲心者能生一切功德。若悲不捨不淨業者,我所不欲;設悲不能救濟,我亦不欲;若悲不樂求菩提,亦非我所欲。愛心者能生一切苦,悲心者能生一切樂。從悲起身口業者名爲勝業,悲心者能爲一切衆生作無盡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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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지비해탈품(智悲解脫品) - 017_0610_b_04L智悲解脫品第二十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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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자비 두 가지에서 어느 것이 수승한가? 지혜로운 이는 자기만이 귀의하고, 자비한 이는 남까지도 위없는 도에 귀의하게 한다. 자비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지혜로운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지혜만 있고 자비가 없어도 역시 지혜로운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나니, 능히 위없는 도를 장애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자비로운 마음과 상응하지 않아 능히 위없는 도를 장애하는 지혜를 보살은 지혜 없는 사람이라 한다.
잠깐 사이에라도 생사를 좋아하지는 않으나 자비는 해탈을 희망하지 않게 한다. 해탈의 맛은 감로(甘露)와 같은데 자비한 이는 맛이 없다고 여긴다. 마치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간이 맞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이 해탈이 아무리 감미로우나 자비의 마음이 없으면 보살은 맛이 없다고 여긴다. - 017_0610_b_05L智、悲二事何者爲勝?智者唯能自歸依,悲者能使他人歸依無上之道。有悲無智非智者所愛,有智無悲亦非智者所愛,能障無上道。智不與悲心相應,能障無上道智,菩薩以爲無智。一念不樂生死,悲不欲解脫。解脫味如甘露,悲者以爲無味,如美食無鹽以爲無味,解脫雖甘,若無悲心菩薩以爲無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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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대비한 이가 해탈과 별해탈(別解脫:계율)과 함께한다면 모두가 경례하여야 하나니, 대비가 부처님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해탈이란 영원히 남음이 없고 온갖 일이 모두 멸하는 것이요, 자비한 마음이란 좋은 주문(呪文)이 죽은 이에게 주력을 주어 깨어나게 하는 것과 같다.
만일 상속하여 끊이지 않는 몸을 받으면 이는 항상함[常]의 허물이요, 만일 해탈을 취하면 아주 없어짐[斷]의 허물이요, 이 두 가지 허물을 여의면 부처님이 일체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만일 부처가 없다면 해탈이 없고, 자비가 없으면 부처도 있을 수 없다. 자비는 능히 해탈을 내나니, 이 까닭에 보살은 자비를 취한다. 자비의 본체는 하나이나 두 가지 일을 하나니, 하나는 중생을 구제하고 또 하나는 부처가 될 종자 지혜를 내는 것이다. - 017_0610_b_14L若大悲與解脫別解脫皆應敬禮,以大悲是諸佛母故。解脫者名永無餘,滅一切事;悲心如善呪,能呪死者還活。若受有相續不斷身者是常過,若取解脫是斷過,離二邊故名之爲佛救一切衆生。若無佛者則無解脫,若無悲者亦無得佛。悲能生解脫,以是事故菩薩取悲。悲體一事能作二事:一能救衆生;二能生佛種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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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발원품(發願品) - 017_0610_b_22L發願品第二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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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생각하되 ‘일체 중생은 모두가 한량없는 고통을 가지고 있으니 나는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서 일체 종자 지혜를 이루고, 일체 중생의 한량없는 공통한 괴로움을 없애 주리라’ 한다.
보살은 일체 중생이 한량없고 끝없는 생사의 고통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평등한 자비심을 일으키고, 어리석고 무지해서 해탈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놓아주려는 마음[放捨心]을 내게 하고 ‘세간의 큰 괴로움 덩어리는 나로 하여금 훌륭한 자비심을 내게 하는구나’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내가 자비심을 가지고 괴로운 중생을 관찰하건대 아직 보리의 도를 얻지 못했으니 내가 어찌 하여야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의 도를 얻게 하겠는가?’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일체 세간에서 내가 가장 복이 적다. 나는 이제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겠구나’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3계의 중생에게 큰 친구가 되어 주리라. 그러나 그들은 항상 몸과 마음의 고통에 쪼들리고 있으니 나는 지금 헛되이 악하게 산 사람이라 불리워야 하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태어난 이래 아직도 세간의 고통을 깨뜨려 주지 못했고 중생을 이롭게 하지 못했는데 내가 이런 몸을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일체 중생의 친한 벗이니, 원수를 잘 양육해서 큰 이익을 주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일체 중생은 모두가 나에게 단정한 업을 짓게 해 주었으니 한 중생이라도 단정하지 못한 마음을 짓지 않게 하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되 ‘남을 이롭게 한다고 말하지만, 남이라는 모습을 찾아도 전혀 얻을 수 없고 자기와 꼭 같을 뿐이니, 무엇이 남을 위하는 것이겠는가? 곧 자기를 위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서원을 세우나니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의 고통이 일시에 내게로 몰려와 항상 그들을 위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되 고통으로 여기지 않으리라’ 한다. - 017_0610_b_23L菩薩思惟:“一切衆生共有無量種苦。我當發於悲心成一切種智,滅一切衆生無量種共有之苦。”菩薩見一切衆生沈沒無量無邊生死苦海,得平等悲心。嬰愚無知,樂解脫者生放捨心。“世閒大苦聚,生我勝悲心。”菩薩思惟,“我有悲心觀苦衆生未得菩提道,我云何使衆生得解脫道?”菩薩思惟:“一切世閒我最少福,我今不能救濟衆生。”菩薩思惟:“我於三界衆生作大親友,而衆生常爲身苦心苦逼惱,我今名爲空惡活者。”菩薩思惟:“我生不能破世閒苦、不能利益衆生,我用受是身爲?”菩薩思惟:“我是一切衆生親友,我當養育於怨家所作大利益。”菩薩思惟:“一切衆生能爲我作端嚴業,不使一衆生作不端嚴意。”菩薩作是思惟:“言利他者,求他人之相都不可得,都如自己。何者?爲他卽是利己。”菩薩思惟:“若有可願處,使一切衆生身心之苦,一時俱集我身常爲受之,使衆生得樂不以爲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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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1_a_01L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보리도(菩提道)에 머물러서 온갖 고통을 내가 모두 감당하리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중생이 생사의 고통바다에 빠졌는데 내가 구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비록 무거운 번뇌가 있어서 보리의 도를 얻기 어렵게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비와 지혜, 두 가지만 있으면 마음은 끝내 피로하지 않으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선서(善逝:부처님)께서 행하신 도를 나는 지금 알맞게 따라 가리라. 나는 지금 세간에서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에게 베풀면서 생각하기를 나도 저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하리라.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지금 세간 중생들의 의지가 되었으니, 큰 서원을 세워야겠다. 원컨대 큰 장엄의 지혜를 닦아서 좋은 반려자로 삼으리라. 나는 지금 부처 지혜의 어금니가 나려 하는구나’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중생의 고통을 멸해 주고 일체 중생들이 모두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 무엇이든지 하려 할 때엔 나는 항상 자비한 마음의 분부를 따르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생사의 고통은 듣기만 하여도 싫은 생각이 나는 것이나, 자비한 이는 세간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는 까닭에 자비심의 힘에 따라 도리어 생사의 문턱으로 향해 들어간다’라고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생사의 괴로움은 지극히 싫어할 만한 것이어서 속히 열반에 들고자 하지만 자비로운 이는 말하기를, 괴로워하는 중생이 아직 제도되지 못했는데 어찌 그들을 버리고 떠나는가 하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유위의 고통에 열반의 즐거움이 구족돼 있다. 나는 지금 생사의 유위의 고통이 열반의 무위의 즐거움임을 알았으니 자비한 마음으로 항상 세 가지 보시를 좋아하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모든 유위의 세계를 심히 두려워하지만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여러 세계에 즐거이 뛰어들리라’ 한다. 자비한 마음이 보살에게 말하되 ‘나는 당신을 오래도록 생사 속에 묶여 있게 하여 놓아주지 않겠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은혜를 갚기 위해서이다’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해탈의 즐거움까지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지 않나니, 자비한 마음이 나를 가로막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생사 속의 견고하지 못한 즐거움이겠는가’ 한다. - 017_0610_c_22L菩薩思惟:“我菩提道中住一切所有諸苦,我皆能堪忍。所以者何?衆生沒溺生死苦海我不能度脫。”菩薩思惟:“雖有重結使,然菩提道難得。如是但有悲智二事爲伴,心終不疲厭。”菩薩思惟:“善逝所行道,我今從中去;我今於世閒,悲心施衆生。當思惟,我如彼無異。”菩薩思惟:“我今爲世閒依救,當發弘誓願,修大莊嚴智慧爲善伴,我今佛慧牙將生。”菩薩思惟:“我欲滅衆生苦,使一切衆生得樂,欲作一切事,我常爲悲心之所教詔。”菩薩思惟:“生死之苦聞尚疲厭,悲者能得堪忍世閒苦故,爲悲心尚向生死門。”菩薩思惟:“生死苦極可厭惡,欲入涅槃。”大悲語言:“苦惱衆生未度,云何捨棄而去?”菩薩思惟:“有爲苦具足,涅槃出世樂。我今知生死有爲苦、涅槃無爲樂,悲心常樂三種施。”菩薩思惟:“我甚畏諸有,以悲心救衆生故樂處諸有。”悲心語菩薩言:“我使汝處生死,終不放汝。何以故?爲報恩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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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1_b_01L보살은 또 생각하되 ‘온갖 즐거움 가운데서 제1의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열반이라고 하셨다. 이 열반이 즐겁기는 하나 나의 지혜는 찾아가지 않으리니 나의 지혜가 찾으러 가지 않는 까닭은 자비한 마음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지금 열반을 공경하고 숭상한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열반에는 생ㆍ노ㆍ병ㆍ사가 없기 때문이다. 열반이 즐겁기는 하나 자비한 마음에 끌려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찾아갈 수 없다. 자비한 마음은 부처님들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그 자비한 마음을 버리고서 열반으로 향하지 못한다. 설사 열반이 내게로 닥쳐온다 하여도 증득하지 않겠거늘 하물며 중생을 버리고서 열반으로 향하겠는가’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도 열반으로 향하고자 하나 자비한 마음은 부처님 어머니로서 나에게 젖줄을 주셨거늘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설사 위없는 보리일지라도 중생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다면 나는 그것까지도 구하려 하지 않겠거늘 하물며 열반이겠는가’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열반에 향하지 말아야 하나니, 귀의할 곳이 없는 중생을 버리기 때문이다. 자비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게 한다. 열반은 생명이 끝나는 경지인데 생명이 없으면 어찌 중생을 구제하겠는가’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생명을 받는 데 두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첫째는 중생을 구제하는 즐거움이요, 둘째는 해탈을 얻는 즐거움인데 어찌 두 가지 즐거움을 버리고서 한 가지 즐거움만을 취하겠는가’ 한다. - 017_0611_a_20L”菩薩思惟:“解脫樂,爲度衆生尚不欲食,悲心遮我使不得食,況生死不堅牢樂?”菩薩思惟:“一切樂中第一,佛說涅槃。是涅槃雖樂,我智不欲去。所以智不欲去者,悲和合故。”菩薩思惟:“我今敬尚涅槃。所以者何?涅槃中無生老病死故。涅槃雖樂,悲心所牽,爲衆生故而不得去。悲心是諸佛之母,是以不捨向於涅槃。若涅槃就我猶尚不證,況棄衆生而向涅槃?”菩薩思惟:“我欲向涅槃,悲是佛母,就我與乳。云何捨去無上菩提?設當不與衆生利樂,我亦不求,況復涅槃?”菩薩思惟:“不應向涅槃,捨無歸依衆生故。悲心故,使我不證涅槃。涅槃是盡生邊,若無生者何能救拔衆生?”菩薩思惟:“受生者有二種樂:一者救衆生樂、二者解脫樂。我云何捨二種樂取一種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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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1_c_01L보살은 또 생각하되 ‘일체 범부는 모두가 일체종지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일체종지를 범부는 쉽게 얻는다. 그러므로 나는 범부를 사랑할지언정 해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괴로운 중생이 있는 곳마다 자비한 마음이 생겨나고 자비한 마음이 자란다. 그러므로 나는 유위의 세계 속에 머물러야겠다’ 한다.
보살은 자비한 마음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로 하여금 청정함이 늘어나게 해주고, 일체 중생으로 모두가 청정함을 얻고, 모두가 늘어날 수 있게 하자’ 한다.
보살은 또 자비한 마음에서 말하기를 ‘중생이 고통 속에 있으면서 백ㆍ천 가지 고통에 쪼들리니 오늘 그들로 하여금 반드시 안락을 얻게 하고 나와 함께 이 일을 갖추도록 하자’ 한다.
보살은 또 자비한 마음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애욕에 속박되고, 죽음에 끄달리고 있다. 세간을 살펴보건대 귀의할 곳이 없으니,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 갖가지 괴로움을 받자’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는 대장부를 좋아한다. 중생이 괴로움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열반의 즐거움을 버리자.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이 일에 힘쓰자’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중생을 구제하는 길로 향하면 무생법인(無生法忍)의 결정적인 지혜를 얻고 수기를 받나니, 수기를 받은 이를 나는 공경하고 공양하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부처님은 두루 청정한 눈[遍淨眼]을 얻으셔서 나로 하여금 당장에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청원하되 저에게 수기를 주옵소서 하는구나’ 한다. - 017_0611_b_15L菩薩思惟:“一切凡夫盡共有一切種智性,一切種智凡夫易得。以是故,我愛凡夫不愛解脫。”菩薩思惟:“隨有苦衆生處,悲心得生、悲得增長。以是故,我愛有中。”菩薩語悲心言:“汝使我得淸淨增長,使一切衆生盡得淸淨、盡得增長。”菩薩語悲心言:“衆生在苦,爲百千衆苦之所逼迫。今日使衆生必得安樂,與我成辦此事。”菩薩語悲心言:“衆生爲愛所縛,爲死所攝。見世閒無歸無依,爲救衆生故受種種苦。”菩薩思惟:“我愛大丈夫,見有衆生墮在苦中,捨涅槃樂,爲安樂衆生自勉勵此事。”菩薩思惟:“向救衆生得無生忍、決定智得授記別,得授記別者我今供養恭敬。”菩薩思惟:“佛得遍淨眼,使我現前合掌請佛,願授我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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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등동발원품(等同發願品) - 017_0611_c_09L等同發願品第二十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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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의 부처님들이 나타나 계시는 뜻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심이니, 나는 이제 보리의 원을 세웠다. 일체 중생이 하는 일을 나는 모두 감당해냈다.
부처님들의 대비(大悲)는 모두가 우리들에게 맞으니 좋구나. 나에게 있는 지혜와 복은 나로 하여금 의지할 곳 없는 이에게 해탈을 얻도록 하게 하소서. 세존이시여, 나로 하여금 언제나 작은 지혜를 좋아하지 않게 하시고 세존이시여, 나로 하여금 부처님과 같이 열 가지 힘을 구족하게 하소서.
중생들의 번뇌의 불길이 번성하여 마음을 태운다면 저로 하여금 바른 법의 물로써 중생들의 번뇌의 불길을 끄게 하소서. 마와 원수를 무찔러 현명한 지혜를 얻고, 법륜(法輪)을 굴려 일체 중생의 번뇌를 소멸하오리이다.
일체 중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도 나는 모두 일시에 법륜을 굴리리라. 온갖 지은 복은 모두 이에 쓰고, 이 복덕으로써 내가 가장 훌륭한 법신을 얻으리라. 마치 허공이 온갖 곳에 두루하는 것같이 두 가지 몸을 얻어 세간을 교화하리라.
나의 이 복덕으로써 부처님과 화합하여 구제할 이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리라. 갖가지 번뇌의 제각기 다른 모습은 괴로움이 되어서 능히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데 나의 복이 지혜의 힘으로써 중생의 괴로움을 멸하리라.
나의 이 복으로써 일체 중생이 허공계(虛空界)에 가득하더라도 그들에게 한맛의 즐거움이 되어주고 나의 소원이 원만하여져서, 도적의 무리가 공덕을 겁탈하는 일을 막아 주어지이다. 세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나의 이 복덕으로써 일체 중생을 구호하고 가려 주리라.
세간이 얼마나 머무는가에 따라 나의 착한 법도 머무르고, 나의 착한 법 때문에 일체 세간과 세간 밖이 모두가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고 항상 일시에 일체 중생과 화합하리라. - 017_0611_c_10L十方諸佛現在前者爲救衆生事,我今作發菩提願:“一切衆生所作事,我已堪任爲作。諸佛大悲皆稱我等善哉。我所有若智若福,使我一切無歸依爲作解脫。世尊使我常莫樂小智之心,世尊使我如世尊具足十力。若衆生結使熾火燒心,使我以法水滅衆生結使熾火、摧破魔怨,得賢智、得轉法輪,壞一切衆生衰惱。隨有一切衆生,我皆一時爲轉法輪,一切所作福皆用爲是。以此福德使我得最勝法身,猶如虛空遍一切處,得二種身教化世閒;以我此福與諸佛和合,無救衆生使得解脫。種種煩惱異相作苦、能爲苦因,我所有福以智慧力滅衆生苦,使我以此福一切衆生滿虛空界爲作一味樂,使我常滿所願。陰蓋賊衆能劫功德,世閒畏死,使我以此福救藏一切衆生。隨世閒幾時而住,我善法亦住,以我善故,一切世閒出世閒悉皆離苦得樂,常一時和合一切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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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2_b_01L보살은 생각하되 ‘지금부터는 항상 구걸하는 이의 청을 따르리라. 지금부터는 항상 나의 몸에 대하여 확실히 믿는 마음을 내게 하고 남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게 하자. 그리고 갖가지 소원에 따라 모두 만족하게 하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내가 지금부터 보리를 얻기까지 어느 한 몸도 부처님을 뵙지 않는 때가 없으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내가 지금부터 나고 죽는 긴 소용돌이에 빠져서 부처님을 뵙지 못하는 때일지라도 잠시도 자비한 마음을 여의지 않으리라’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내가 부처를 이룰 경지에 가까웠을지라도 밖의 중생들이 받는 온갖 괴로움이 지극한 것을 보면 나는 치가 떨리어 내가 모두 대신 받으리라. 나의 이 몸으로 뼈에 사무치는 자비심을 얻고 나의 몸이 몸으로 부처님 지혜의 해탈을 얻게 되어지이다’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의 자비한 마음이 허공 같아지이다. 산ㆍ강ㆍ숲ㆍ새ㆍ짐승 따위 온갖 것이 모두 허공에 의해서 머무는 것같이, 일체 중생이 언제나 나의 자비 속에 들어지이다. 나는 일체 중생에 의해서 나의 선근(善根)이 성립되었으니, 나의 이 선근을 일체중생에게 돌려주어 해탈의 과위를 얻게 하여지이다. 온갖 도로ㆍ다리ㆍ배ㆍ방위[向方]들은 모든 중생이 함께 가지는 것과 같이 나의 이 선근도 일체 중생이 공동으로 가질지이다’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땅ㆍ물ㆍ불ㆍ바람은 일체 중생이 공통으로 갖는 것과 같이 내가 닦은 온갖 선근도 일체 중생이 공동으로 가질지이다. 나는 일체 중생을 인하여 얻은 선근을 일체 중생에게 돌려주어 걸림 없는 지혜를 얻게 되어지이다’ 한다. - 017_0612_a_09L菩薩思惟:“自今已去,常從乞者請受教令;從今以往,常於我身所深生體信,莫生他想,種種所欲,隨其給使滿足。”菩薩思惟:“使我從今乃至菩提,無有一身不見佛時。”菩薩思惟:“使我從今生死長遠設我不見佛時,莫一剎那頃離於悲心。”菩薩思惟:“使我迫至成佛,見外衆生所受諸苦極逼惱我身,我皆代受,使我身得徹髓悲心,使我身身得使佛智解脫。”菩薩思惟:“使我悲心猶如虛空。一切山河樹木、飛鳥走獸皆依空住,一切衆生一切時皆入我悲中。我依一切衆生得立善根,以我此善迴與一切衆生得解脫果。一切道路、橋、舩、方所皆是衆生共有,使我一切諸善亦一切衆生共有。”菩薩思惟:“地水火風一切衆生共有,使我所修諸善亦一切衆生共有。我因一切衆生所得善根,迴與一切衆生得無㝵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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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또 생각하되 ‘내가 닦은 모든 선근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악마의 경계를 여의고 부처의 경계에 들게 하며 나로 하여금 지혜를 얻어 항상 열 가지 바라밀과 부처의 지혜가 눈앞에 나타나게 하며,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편안함과 쾌락을 얻어 요동치 않는 마음을 얻게 하며 일체 중생의 온갖 걱정근심은 서로서로 구제하게 되어지이다’ 한다.
보살이 복덕(福德)에게 말하되 ‘일체 중생이 무명에 가리워져서 자기의 고통과 남의 고통을 알지 못하니, 네가 잘 깨우쳐 주라’ 한다.
보살이 보시하기 위해 맑은 물을 돌릴 때에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애욕의 목마름을 제하고 위없는 도의 자비를 얻게 하나니, 내가 물을 보시할 때에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애욕의 종살이를 벗어나서 항상 자유를 얻고, 법의 재물이 풍부하여지이다. 나의 복덕이 강물과 같을지이다. 자비한 마음은 더러움 없는 꽃이니, 계행을 지킴으로써 밑둥을 삼는다. 보시는 빨리 흐르는 물과 같아서 중생의 목마른 고통을 덜어 주고, 나의 자비한 마음은 항상 큰 강물과 같을지이다’ 한다.
보살은 또 생각하되 ‘나의 자비심은 바다와 같고, 맑은 계행은 조수와 같고, 인욕은 파도와 같고, 지혜는 바다벌레의 운동과 같고, 자비한 마음은 한 맛의 물과 같을지이라. 무릇 내가 보시한 공덕은 자비한 마음의 바다를 이루고, 보시의 복덕으로 자비의 감로를 얻어 중생의 생ㆍ노ㆍ병ㆍ사의 고통을 제하게 되어지이다’ 한다. - 017_0612_b_05L”菩薩思惟:“我所作諸善,使一切衆生得離魔界入於佛界,使我得智恒十波羅蜜佛智現前,使一切衆生得安隱樂、得不動心。一切衆生所有衰惱,使互相救濟。”菩薩語福德言:“一切衆生爲無明所障,不知自苦他苦,汝當開解。菩薩布施行淨水時,使一切衆生除有愛結渴得無上道悲。我施水時,願使一切衆生免恩愛僮僕,恒得自在、得法財富。使我福如河、慈心無垢花、持戒以爲底、施如駛流水,除衆生渴苦。使我悲心恒如大河。”菩薩思惟:“我悲心如海、淨戒如海潮、忍辱如波浪、智如海虫動、慈心如一味水。凡我所施者,使成慈心海,使施福得悲甘露,除衆生生孝病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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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승발원품(勝發願品) - 017_0612_b_21L勝發願品第二十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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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한 중생에게 자비한 마음을 일으켜 이익과 즐거움을 줄 때에 대비심이 견고해지게 하시고, 대비로써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어 일체 중생의 괴로움이 모두 밀려와서 나를 핍박하게 하소서. 나의 지금 이 두려움 없는 보시의 복으로써 일체 중생이 모두가 대비를 얻게 하소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욕의 공덕으로써 오는 세상의 도병겁(刀兵劫) 때에 나의 자비한 마음으로써 일체 중생의 성냄을 멸하게 하소서.
밥을 보시한 공덕으로 기근겁(肌饉劫)이 닥쳐왔을 때에 음식이 일체 중생에게 풍족하게 하소서. 물을 중생에게 보시한 공덕으로 자비한 마음을 성취하여 일체 중생의 마음속에 머물게 하소서. 옷을 중생에게 보시한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부끄러움을 알게 하소서. 등불을 부처님께 보시한 공덕으로 내가 장래에 부처님의 해[佛日]를 얻어 온갖 어둠을 멸하게 하소서.
눈을 보시한 공덕으로 내가 장래에 일체 중생이 속히 불안(佛眼:부처 눈)을 얻는 것을 바라게 하소서. 내가 머리를 보시한 공덕으로 일체 중생들이 보리심에 향하게 하소서. 내가 약을 보시한 인연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생ㆍ노ㆍ병ㆍ사를 제거하게 하소서. - 017_0612_b_22L“若我於一衆生起於悲心與利樂時,願使大悲堅固,以悲滅衆生苦。使一切衆生苦皆來逼我。我今以此無畏施福,使一切衆生皆得大悲。我今所有忍辱功德,於將來世刀兵劫時,以我悲心滅一切衆生瞋。以施食功德飢饉劫時,使得飮食充足一切衆生;以水施衆生功德,使成就悲心,住一切衆生心中;以衣施衆生功德,使一切衆生得漸愧心;以燈明施佛因緣功德,使我將來得於佛日滅一切闇;以施眼功德,使我將來世,願一切衆生速得佛眼;以我捨頭功德,使一切衆生向菩提心;以我藥施因緣功德,使一切衆生除生老病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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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3_a_01L내가 중생들에게 시봉한 공덕의 인연으로 일체 중생이 위없고 누(漏:번뇌)없는 보리의 도를 이루게 하소서. 내가 꽃과 깃대와 일산으로써 부처님 탑에 공양한 인연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높고 훌륭한 복을 얻게 하소서. 내가 깃발을 사리에 공양한 공덕의 인연으로 일체 중생들이 어둠을 제거하고 광명을 얻게 하소서. 방울 소리를 공양한 인연으로 일체 중생들이 범음성(梵音聲)을 얻게 하소서. 향과 꽃과 영락으로써 공양한 인연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모든 결사(結史)의 때와 번뇌의 더러움을 제거하게 하소서. 3보에 공양한 인연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들이 항상 3보를 만나서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게 하소서.
내가 험난한 길에서 여러 상인들을 위해 온갖 험난함의 두려움을 제거해 준 공덕의 인연으로 일체 중생이 생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내가 중생들을 바다의 재앙에서 건져 준 공덕의 인연으로 일체 중생이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소서. 나의 맑고 착한 인연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네 가지 악마를 무찌르고 정각을 이루게 하소서.
내가 3보리(菩提)를 얻을 때에 중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중생들을 안위시키려는 까닭에 이런 말을 하리라. 이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위없는 보리를 얻게 하소서.
일체 중생의 보리가 곧 나의 보리인데 일체 중생은 어리석음에 가리웠기 때문에 위없는 보리를 얻게 하리라. 이 공덕에 의하여 일체 중생은 나보다 앞에 성불하고 나는 마지막에 성불하리라. - 017_0612_c_14L以我走使供給衆生功德因緣,使一切衆生得無上無漏成菩提道;以我華幢蓋供養佛塔因緣功德,使一切衆生得高勝福;以我幡供養舍利功德因緣,使一切衆生除闇得明;以鈴聲供養因緣,使一切衆生得梵音聲;以香華瓔珞供養因緣功德,使一切衆生除諸結使垢煩惱臭穢;以供養三寶因緣功德,使一切衆生常値三寶不曾空缺;以我於嶮道中爲諸商賈除嶮道畏功德因緣,使一切衆生出生死畏;以我度衆生海難功德因緣,使一切衆生度生死海;以我所有淨善因緣功德,使一切衆生摧破四魔得成正覺。我當得三菩提,我於衆生雖道是語,爲欲安慰衆生故說是語,以此功德使一切衆生得無上菩提,一切衆生菩提卽是我菩提。一切衆生爲癡所障,使得無上菩提,以此因緣功德,使一切衆生於前成佛,我最後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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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3_b_01L내가 생사 속에서 왕래한 인연의 공덕으로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를 이루게 하소서. 내가 착한 마음을 일으킨 공덕의 인연으로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
만일 보고, 듣고, 지니고, 읽는 이가 있으면 모두가 위없는 보리의 원인이 이루어지이다. 나는 일체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의 소원은 일부러 채우지 않으리라. 내가 괴로운 중생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면 이 공덕에 의하여 일체 중생이 모두가 부처를 이루게 하고 기꺼이 우러러뵈오리라.
설사 내가 온갖 착한 행을 닦아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를 이루게 한다 하여도 듣기를 좋아하지 않겠거늘 하물며 행할까보냐.
보살이 공덕에게 말하되 ‘네가 중생들을 옹호해서 의지할 곳이 되어 주지 못한다면 나는 너나, 너에 의해 생기는 과보까지도 희망하지 않으리라. 왜냐 하면 중생을 위해서 복을 닦았을지언정 자기를 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들이 다한다면 나의 선생은 허공과 같으리니, 하루 세 때에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보시할 때엔 보리의 마음으로써 시행하리라’ 한다.
수승한 장부가 자비한 마음으로 서원을 세우면 이것은 자비한 마음을 말한 것이라 하고, 또한 다섯 가지 설법이라고도 하고 중생을 구호한다고도 하고, 통틀어 말하건대 대장부가 어진 일을 행한다고 한다. 게송이 5백이 있는데 옛날 책에는 8백이 있었다. 아사리(阿闍梨:교수사)인 독자부(犢子部:고대 인도에 있는 불교의 종파)의 제바라(提婆羅)대보살은 남쪽 나라에 태어나셨는데 그가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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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613_a_11L以我於生死中往返因緣功德,使一切衆生皆得作佛;以我發善心功德因緣,使一切衆生皆得佛智。若有見聞受持讀誦者,皆作無上菩提之因。我欲滿一切衆生欲願,我願故未滿,若我見苦衆生悲吟之聲,以此功德,使一切衆生皆得作佛歡喜瞻睹。設我修諸善行不使一切衆生作佛者,我尚不喜聞,況復履行?”菩薩語功德言:“汝若不能擁護衆生作依止者,我亦不欲於汝及以果報。何以故?爲衆生修福不自爲己故。若衆生盡,我善如虛空,於三時中與衆生樂,施以菩提心。”勝丈夫悲發願,此名說悲心,亦名五種說,亦名救衆生,摠名大丈夫行賢。偈有五百,古書有八百。阿闍梨犢子部提波羅大菩薩生在南方,是所作竟。
大丈夫論卷下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