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解脫道論卷第一

ABC_IT_K0968_T_001
028_1009_a_01L해탈도론(解脫道論) 제1권
028_1009_a_01L解脫道論卷第一


아라한 우파저사(優波底沙)양나라 말로 대광(大光) 지음
양(梁) 부남(夫南)삼장 승가바라(僧伽婆羅) 한역
이태승 번역
028_1009_a_02L 阿羅漢優波底沙梁言大光造
梁扶南三藏僧伽婆羅譯


1. 인연품(因緣品)
028_1009_a_04L因緣品第一

세존ㆍ응공ㆍ정변지께 예배 올립니다.
028_1009_a_05L禮世尊應供正遍知

계ㆍ정ㆍ혜와
무상해탈(無上解脫)
이 법을 따라 깨달아
명성을 얻으신 구담(瞿曇).
028_1009_a_06L戒定智慧無上解脫隨覺此法有稱瞿曇

만약 사람이 갖가지 고난을 벗어나서 모든 집착을 떠나며, 승분심(勝分心)을 성취하고, 생ㆍ노ㆍ사를 두려워하며, 선(善)과 해탈을 즐겨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하며, 아직 이르지 못한 그 피안을 또한 구족하게 하기 위해서는 널리 수다라(修多羅:Sutra)ㆍ비담(毘曇:Abhidharma)ㆍ비니(毘尼:Vinaya)를 물어야 한다. 이런 해탈도를 내가 이제 설할 것이니, 잘 들어라.
028_1009_a_08L若人脫衆難已得離諸著成就於勝心畏生老死樂善樂解脫令到涅槃未到有彼岸亦令得具足廣問脩多羅毘曇毘尼事此解脫道我今當諦聽
【문】 무엇이 계(戒:Sila)인가?
云何爲戒
【답】 “계”란 위의(威畿)의 뜻이다. “정(定:Sāmādhi)”이란 불란(不亂)의 뜻이다. “혜(慧:Pañ̃ñā)”란 지각(知覺)의 뜻이다. “해탈”이란 계박을 벗어나다[離縛]는 뜻이다. “무상(無上)”이란 무루(無漏)의 뜻이다. “따라 깨달음[隨覺]”이란 지득(知得)의 뜻이다. “이 법”이란 4성법(聖法)1)을 뜻한다. “구담[Gotama]”이란 성씨를 뜻한다. “명성이 있다”란 세존(世尊)을 뜻한다. 계ㆍ정ㆍ혜ㆍ해탈의 뛰어난 공덕으로 가장 수승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그 명성이 한량없게 된다.
028_1009_a_13L戒者威儀定者不亂義慧者知覺義解脫者離縛義無上者無漏義隨覺者知得此法者四聖法義瞿曇者姓義稱者世尊義以戒定慧解脫殊勝功能到最勝名稱無量
해탈도(解脫道)란 무슨 뜻인가.
028_1009_a_18L解脫道者何
해탈이란 5해탈을 말하니, 즉 복해탈(伏解脫, Vikhambhana-vimutti)ㆍ피분해탈(彼分解脫, Tadamga- vimutti)ㆍ단해탈(斷解脫, Samuccheda-vimutti)ㆍ의해탈(猗解脫, Patippassaddha-vimutti)ㆍ이해탈(離解脫, Nissarana-vimutti)이다.
028_1009_a_19L解脫者五解脫伏解脫彼分解脫斷解脫猗解脫離解脫
무엇이 복해탈인가.
云何伏解脫
현재 초선을 닦아 모든 개(蓋)2)를 굴복시키는 것, 이것을 복해탈이라 하다.
028_1009_a_20L現脩行初禪伏諸蓋此謂伏解脫
피분해탈이란 현재 달분정(達分定)을 닦아 모든 견해로부터 해탈하는 것, 이것을 피분해탈이라 한다.
028_1009_a_21L分解脫者現脩達分定諸見解脫謂彼分解脫
028_1009_b_02L단해탈이란 출세간도를 닦아 능히 나머지 결박[結]3)을 없애는 것, 이것을 단해탈이라 한다.
028_1009_b_02L斷解脫者脩出世閒道能滅餘結此謂斷解脫
의해탈이란 과보를 얻었을 때 마음이 즐겁고 몸이 경쾌한 것[猗]4)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의해탈이라 한다.
028_1009_b_03L猗解脫者得果時樂心猗此謂猗解脫
이해탈이란 바로 무여열반이니, 이것을 이해탈이라 한다.
028_1009_b_04L離解脫者是無餘涅槃此謂離解脫
이 해탈도는 해탈을 얻기 위한 것이고, 이 구족도는 계ㆍ정ㆍ혜에 의해 얻어지는 해탈도라 한다. 해탈도를 나는 지금 마땅히 설할 것이다.
028_1009_b_05L此解脫道爲得解脫是具足道以戒定慧謂解脫道解脫道者我今當說
【답】 어떠한 필요로 해탈도를 설하는가?
028_1009_b_07L何用說解脫道
【문】 어떤 선량한 사람들[善人]이 기꺼이 해탈을 얻으려 해도 해탈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번뇌를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 번뇌를 바르게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눈먼 이가 안내하는 사람 없이 홀로 먼 나라로 가는 것과 같아 갖가지 고통을 받을 뿐 해탈을 얻을 수 없으며, 해탈을 얻고 싶어도 그 원인 되는 바가 없다.
028_1009_b_08L有善人樂得解脫不聞說解脫故又不伏解脫故又不正伏解脫故如盲人無導獨遊遠國唯嬰衆苦不得解脫欲得解脫而無所因
왜냐하면 해탈에 있어 이것이 원인이기 때문이니, 부처님께서 “진로(塵勞)5)가 미세한 중생이라 해도 법을 듣지 않는 까닭에 결국은 역시 퇴전하고 만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는 두 가지 인, 두 가지 연이 있어 능히 바른 견해[正見]를 일으킨다.
028_1009_b_11L何以故解脫是因如佛所說若有衆生塵勞微細不聞法故終亦退轉如佛說諸比丘有二因二緣能生正
무엇이 둘인가.
云何爲二
첫째는 다른 이로부터 듣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까닭에 해탈을 설한다.
028_1009_b_15L從他聞自正念故說解脫
번뇌를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는 자에게 싫어하여 떠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해탈을 설한다. 번뇌를 바르게 굴복시켜 해탈하지 못하는 자에게 바르지 않은 도[不正道]를 없애고 선해탈도(禪解說道)를 얻게 하기 위하여 해탈을 설한다. 마치 먼 길을 가는 사람이 좋은 안내자를 만나는 것과 같다.
028_1009_b_16L不伏解脫者爲生厭離說解脫不正伏解脫者爲除不正道爲得禪解脫道故說解脫如遠行人得善示導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伏解脫道]에서는 3음(陰)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是伏解脫道三陰成滿
무엇이 3음인가.
028_1009_b_19L等爲三
계음ㆍ정음ㆍ혜음이다.
謂戒陰定陰慧陰
무엇이 계음(戒陰)인가.
云何戒陰
정어ㆍ정업ㆍ정명 및 그 종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혹은 계음이란 갖가지 계의 공덕이 모인 것을 말한다.
028_1009_b_20L正語正業正命及種類所攝或戒陰種種戒功德聚
무엇이 정음(定陰)인가.
云何定陰
정정진ㆍ정념ㆍ정정 및 그 종류의 정음에 속하는 것이나 혹은 갖가지 정(定)의 공덕이 모인 것이다.
028_1009_b_22L正精進正定及種類定陰所攝或種種定功德聚
무엇이 혜음(慧陰)인가.
云何慧陰
정견ㆍ정사유 및 그 종류에 속하는 것이나 혹은 갖가지 지혜의 공덕이 모인 것이다. 이것이 3음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다.
028_1009_b_24L正見正思惟及種類所攝或種種慧功德聚此三陰成滿
028_1009_c_02L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에서는 마땅히 3학(學)을 배워야 한다. 즉 증상계학(增上戒學)ㆍ증상심학(增上心學)ㆍ증상혜학(增上慧學)이다. 계가 있고 증상계학이 있으며, 정이 있고 증상심학이 있으며, 혜가 있고 증상혜학이 있다. 또 계와 계학이 있고 계학과 증상계학이 있으며, 정과 심학이 있고 정학과 증상심학이 있으며, 혜와 혜학이 있고 혜학과 증상혜학이 있다.
028_1009_c_03L是伏解脫道當學三學謂增上戒增上心學增上慧學有戒有增上戒學有定有增上心學有慧有增上慧學復次有戒戒學有戒增上戒學有定心學有定學增上心學有慧慧有慧增上慧學
【문】무엇이 계학인가?
云何戒學
【답】 유상계(有相戒) 이것을 계학이라 하고, 달분계(達分戒) 이것을 증상계학이라 한다. 또 범부계 이것을 계학이라 하고, 성계(聖戒) 이것을 증상계학이라 한다.
028_1009_c_08L有相戒是名戒學謂達分戒是增上戒學復次凡夫戒是名戒學聖戒是增上戒學
【문】 무엇이 심학(心學)인가?
云何心學
【답】 소위 욕정(欲定)이다.
所謂欲定
【문】 무엇이 증상심학인가?
028_1009_c_11L云何增上心學
【답】 색정(色定) 및 무색정(無色定), 이것이 말하자면 증상심학이다. 또 유상정(有相定)은 심학이고, 달분정(達分定) 및 도정(道定)은 증상심학이다.
028_1009_c_12L色定及無色定此謂增上心學復次有相定心學分定及道定是謂增上心學
무엇이 혜학인가.
028_1009_c_14L云何慧
말하자면 세간지(世間智)를 혜학이라 하고, 사제상사지(四諦相似智) 및 도지(道智)를 증상혜학이라 한다. 세존이 근기가 둔한 사람[鈍根人]을 위하여 증상계학을 설하고, 근기가 보통인 사람[中根人]을 위하여 증상심학을 설하고, 근기가 예리한 사람[利根人]을 위하여 증상혜학을 설한 것과 같다.
028_1009_c_15L謂世閒智是名慧學四諦相似智及道智是謂增上慧學如世尊爲鈍根人說增上戒學爲中根人說增上心學爲利根人說增上慧學
【문】 학(學)이란 무슨 뜻인가?
028_1009_c_18L學者何義
【답】 가학(可學)을 배우는 것, 증상학(增上學)을 배우는 것, 무학(無學)을 배우는 것, 이것을 학이라 한다. 이와 같이 이 3학을 배우는 것을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라 한다.
028_1009_c_19L學可學學增上學學無學名如是學此三學謂伏解脫道
이 세 가지 학으로 청정(淸淨)을 성취하니, 소위 계청정(戒淸淨)ㆍ심청정(心淸淨)ㆍ견청정(見淸淨)이다. 여기에서 계는 곧 계청정이고, 정은 곧 심청정이고, 혜는 곧 견청정이다.
028_1009_c_20L以三種學成就淸淨所謂戒淸淨心淸淨見淸淨於是戒是戒淸淨定是心淸慧是見淸淨
계는 범계(犯戒)의 때[垢]를 씻어내고, 정은 전(纏)6)의 때를 씻어내는데, 이것을 심청정이라 한다.
028_1009_c_23L戒者洗犯戒垢定洗纏垢是謂心淸淨
혜는 무지의 때를 없애므로 이것을 견청정이라 한다.
028_1009_c_24L慧除無知垢此謂見淸淨
028_1010_a_02L또 계는 악업의 때를 없애고, 정은 전의 때를 없애고, 혜는 사(使)7)의 때를 없앤다. 이와 같이 세 가지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 곧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이다.
028_1010_a_02L復次戒除惡業垢定除纏垢慧除使垢如是以三淸淨是伏解脫
또 세 가지 선(善)으로써 번뇌를 굴복시키는 길이다. 말하자면 초선ㆍ중선ㆍ후선이니 계로써 초를 삼고, 정으로써 중을 삼고, 혜로써 후를 삼는다.
028_1010_a_04L又以三種善伏道謂初後善戒爲初以定爲中以慧爲後
계를 초선(初善)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028_1010_a_05L云何戒爲初善
정진하는 사람은 불퇴를 성취하고, 불퇴하는 까닭에 기뻐하며, 기뻐하는 까닭에 용약(踊躍)8)하며, 용약하는 까닭에 몸이 가볍고 편안하며, 몸이 가볍고 편안한 까닭에 즐겁고, 즐거운 까닭에 마음이 안정되니, 이것을 초선이라 한다.
028_1010_a_06L有精進人成就不退以不退故喜以喜故踊躍以踊躍故身猗身猗故樂以樂故心定此謂初善
정을 중선(中善)으로 삼는다는 것은 정으로써 여실하게 지견(知見)하는 것이니, 이것을 중선이라 한다.
028_1010_a_08L爲中善者以定如實知見此謂中善
혜를 후선(後善)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미 여실하게 알고 보았기에 과환을 혐오하고[厭患], 과환을 혐오하는 까닭에 욕심을 떠나며, 욕심을 떠나는 까닭에 해탈하고, 해탈하는 까닭에 스스로 지(知)를 성취하게 된다.
028_1010_a_09L慧爲後善者已如實知見厭患以厭患故離欲以離欲故解脫以解脫故成自知
이와 같이 세 가지 선의 길을 성취하고 나면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가 세 가지 즐거움을 얻게 되니, 즉 과오가 없는 즐거움[無過樂]ㆍ적멸의 즐거움[寂滅樂]ㆍ정각의 즐거움[正覺樂]이다. 그것은 계로써 과오가 없는 즐거움을 얻고, 정으로써 적멸의 즐거움을 얻고, 혜로써 정각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취하여 세 가지 즐거움을 얻는다.
028_1010_a_12L如是成就三善道已伏解脫得三種樂謂無過樂寂滅樂正覺彼以戒得無過樂以定得寂滅樂以慧得正覺樂如是成就得三種樂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는 양 극단을 멀리 떠나 중도를 얻어 구족하는 것이다. 이 계의 선(善)으로써 모든 욕망과 집착을 없애 과오가 없는 즐거움에서 유정이 흔연한 즐거움을 일으키고, 정으로써 몸의 분잡함을 없애 적멸의 즐거움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증진시키고, 혜로써 4제를 분별하고 중도를 구족하여 정각의 즐거움에서 깊이 사랑과 즐거움을 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양 극단을 멀리 떠나 중도를 얻어 구족하는 것이다.
028_1010_a_15L是伏解脫道遠離二邊得中道具足以此戒善除諸欲著於無過樂情生欣樂以定除身羸於寂滅樂而增喜以慧分別四諦中道具足於正覺樂深懷愛樂如是遠離二邊得中道具足
번뇌를 굴복시키는 해탈도는 계로써 악취(惡趣)를 없애고, 정으로써 욕계(欲界)를 없애며, 혜로써 모든 유(有)를 없애는 것이다. 계를 많이 닦고 정과 혜를 조금 닦으면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을 이루고, 계와 정을 많이 닦고 혜를 조금 닦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이루며, 세 가지 모두 원만히 닦으면 아라한(阿羅漢)의 무상해탈을 이룬다.
028_1010_a_21L是伏解脫道以戒除惡趣以定除欲界以慧除一切有於戒多脩定慧少脩成須陁洹斯陁含於戒定多脩於慧少修成阿那含脩三種滿成阿羅漢無上解脫
028_1010_b_02L
2. 분별계품(分別戒品)
028_1010_b_02L分別戒品第二

【문】 무엇이 계인가? 무엇을 상(相)으로 삼고, 무엇을 맛[味]으로 삼고, 무엇을 일어남[起]으로 삼고, 무엇을 족처(足處)로 삼는가? 어떤 공덕(功德), 어떤 계의(戒義)가 있는가? 계와 행에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몇 가지 계가 있는가? 무엇에서 일어난 것인가? 무엇이 계의 초ㆍ중ㆍ후인가? 몇 가지 법이 계도(戒道)를 장애하고, 몇 가지 법이 계의 인이 되는가? 계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는가? 무엇이 계를 청정케 하며, 어떠한 인이 있어 이 계를 머물게 하는가?
028_1010_b_03L云何戒何相何味何起何足處功德何戒義戒行何差別幾戒何所何戒初中後幾法障碍戒道幾戒幾種戒云何令戒淸淨幾因以是戒住
【답】 무엇이 계인가. 사계(思戒)ㆍ위의계(威儀戒)ㆍ불월계(不越戒)이다. 무엇을 사계라 하는가. “나는 악을 짓지 않고, 짓는다면 스스로 받겠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 위의계인가. 범할만한 곳을 피하는 것이다. 무엇이 불월계인가. 계를 지닌 사람이라면 신구(身口)에 과실이 없는 것을 말한다. 또 단(斷)의 뜻이 위의이며, 모든 선법(善法)이 계이다.
028_1010_b_08L云何戒者謂思戒威儀戒越戒何者爲思戒我不作惡作者自何者威儀戒離於犯處云何不越若有戒人身口無過復次斷義威儀一切善法是戒
이는 아비담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 것과 같다.
“출리법(出離法)으로 욕욕(欲欲)을 끊는다. 이 계가 능히 악을 벗어나게 하나니, 사계ㆍ호계(護戒)ㆍ위의계이다. 부진애(不瞋恚)로써 진애를 단멸하고, 광명상(光明相)으로써 수면을 끊는다. 불산란(不散亂)으로써 조희(調戱)를 끊고, 법이 일어남을 봄으로써 의회(疑悔)를 끊는다. 지(智)로써 무명을 끊고, 희(喜)로써 무가락(無可樂)을 끊는다. 초선(初禪)으로 5개(蓋)9)를 끊고, 2선(禪)으로 각관(覺觀)을 끊고, 3선(禪)으로 희(喜)를 끊고, 4선(禪)으로 낙(樂)을 끊는다.
028_1010_b_12L如阿毘曇說以出離法斷於欲欲是戒能離惡思戒護戒威儀戒以不嗔恚斷滅嗔恚以光明相斷於睡眠以不散亂斷於調戲見法起斷於疑悔以智斷無明以喜斷無可樂以初禪斷五蓋以二禪斷覺觀以三禪斷喜以四禪斷樂
공입정(空入定)10)으로써 색상(色想) 내지 진애 및 갖가지 상(想)을 끊고, 식입정(識入定)11)으로는 허공을 끊고, 무소유정(無所有定)12)으로는 식입상(識入想)을 끊고,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으로는 무소유를 끊는다.
028_1010_b_18L以空入定斷於色想乃至嗔恚及種種想以識入定斷虛空以無所有定斷識入想以非想非非想定斷無所有
028_1010_c_02L무상견(無常見)으로는 상상(常想)을 끊고, 고견(苦見)으로는 낙상(樂想)을 끊고, 무아견(無我見)으로는 아상(我想)을 끊고, 부정견(不淨見)으로는 정상(淨想)을 끊고, 과환견(過患見)으로는 애상(愛想)을 끊고, 무염견(無染見)으로는 욕상(欲想)을 끊고, 멸견(滅見)으로는 집(集)을 끊고, 소견(消見)으로는 후(厚)를 끊고, 분견(分見)으로는 취(聚)를 끊고, 생멸견(生滅見)으로는 상(常)을 끊고, 무상견(無相見)으로는 상(相)을 끊고, 무작견(無作見)으로는 작(作)을 끊고, 공견(空見)으로는 입(入)을 끊고, 증상혜견(增上慧見)으로는 집착을 끊고,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는 무명집(無明執)을 끊고, 과환견(過患見)으로는 거집(居執)을 끊고, 피관견(彼觀見)으로는 불피관(不彼觀)을 끊고, 전산견(轉散見)으로는 화합집(和合執)을 끊는다. 수다원도(須陀洹道)로는 견일처번뇌(見一處煩惱)를 끊고, 사다함도(斯陀含道)로는 추번뇌(麤煩惱)를 끊고, 아나함도(阿那含道)로는 세번뇌(細煩惱)를 끊고, 아라한도(阿羅漢道)로는 모든 번뇌를 끊는다.”
028_1010_b_21L無常見斷於常想以苦見斷樂想以無我見斷我想以不淨見斷淨想以過患見斷於愛想以無染見斷於欲想以滅見斷以消見斷厚以分見斷聚以生滅見斷以無相見斷相以無作見斷作空見斷入以增上慧見斷執著以如實知見斷無明執以過患見而斷居以彼觀見斷不彼觀以轉散見斷和合執以須陁洹道斷見一處煩惱斯陁含道斷麤煩惱以阿那含道斷細煩惱以阿羅漢道斷一切煩惱
이것을 불월계ㆍ사계ㆍ호계ㆍ위의계라 하고, 이것을 계라 한다.
028_1010_c_09L謂不越戒思戒護戒威儀戒此謂
무엇이 계의 상(相)인가. 비위의를 제외한 위의이다.
何戒相者威儀除非威儀
【문】 무엇을 비위의(非威儀)라 하는가?
028_1010_c_11L云何名非威儀
【답】 법을 깨뜨리는 것이다.
謂破法
법을 깨뜨리는 것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바라제목차법(波羅提木叉法)13)을 깨뜨리는 것이고, 둘째는 연법(緣法)을 깨뜨리는 것이고, 셋째는 근법(根法)을 깨뜨리는 것이다.
028_1010_c_12L破法有三種破波羅提木叉法破緣法破根
무엇이 바라제목차법을 깨뜨리는 것인가.
云何破波羅提木叉法
소위 무참(無慚)ㆍ무괴(無愧)로 여래에 대한 믿음을 떠나는 것이다.
028_1010_c_14L謂無慚無於如來離信
무엇이 연법을 깨뜨리는 것인가.
云何破緣法
명(命)이나 형식(形飾)과 상응하여 지족(知足)을 떠나는 것이다.
028_1010_c_15L命與形飾相應離於知足
무엇이 근법을 깨뜨리는 것인가.
云何破根法
육근의 문을 닫지 않은 채 염(念)ㆍ혜(慧)를 떠나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에 덮인 것이 비위의이다. 이것을 계의 상이라 한다.
028_1010_c_16L閉六根門離於念慧以此三覆非威是名戒相
맛[味]ㆍ일어남[起]ㆍ족처(足處)는 무엇인가.
何味者起者足處者
무과락(無過樂)이 맛이고, 무우(無憂)가 일어남이며, 3선행(善行)이 족처이다. 또한 열승(悅勝)이 맛이고, 불회(不悔)가 일어남이며, 모든 근을 감싸는 것이 족처이다.
028_1010_c_18L過樂是味無憂是起三善行是足處復次悅勝爲味不悔爲起覆諸根爲足處
무엇이 계의 공덕인가.
何戒功德者
불회가 계의 공덕이다. 세존께서 아난에게 “불회가 계의 선(善)이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공덕의 뜻이다.
028_1010_c_21L不悔是戒功德世尊告阿難不悔戒善是功德義
028_1011_a_02L또한 계라고 이름하는 이것은 과오가 없는 즐거움이고, 이것은 여러 종성의 으뜸이며, 이것은 부귀를 가져다주는 재물이고, 이것은 부처가 되는 땅이며, 이것은 물 없이 목욕하는 것이고, 이것은 향내가 널리 퍼지는 것이며, 이것은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이고, 이것은 일산이 가릴 수 있는 것을 가리는 것이며, 이것은 성스러운 종성이고, 이것은 위없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이것은 훌륭한 세계로 가는 길이다.
028_1010_c_22L次名戒者是無過樂是衆姓上是財爲富貴是處爲佛地是浴無水是香普薰是影隨形是繖覆可覆是聖種是學無上是善趣道
만약 사람이 계를 가지고 있으면 계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무외(無畏)를 성취하고, 친지와 벗들 사이에서 밝게 드러나고, 성인으로부터 연민(憐愍)을 받는다. 이것은 친지와 벗들이 의지할 곳이고, 이것은 훌륭한 장엄이며, 이것은 모든 행을 통솔하는 것이고, 이것은 공덕처이며, 이것은 공양처이며, 이것은 존중해야 할 동학처(同學處)이다. 모든 선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아 일체의 뜻과 원이 청정하게 되는 것이며, 비록 죽더라도 잊지 않는 것이며, 복해탈을 성취하는 즐거운 방편이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계의 공덕이 있다.
028_1011_a_03L若人有戒爲有戒故成就無畏榮顯親友聖所怜愍是親友依是善莊嚴是領諸行是功德是供養處是可貴同學處於諸善法不畏不退成一切意願淸淨雖死不忘成伏解脫樂方便如是無邊戒功德
【문】 계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戒者何義
【답】 냉(冷)의 뜻ㆍ증상(增上)의 뜻ㆍ행(行)의 뜻ㆍ자성(自性)의 뜻ㆍ고락의 성질과 상응한다는 뜻이 있다. 또 머리[頭]라는 뜻ㆍ시원함[冷]이라는 뜻ㆍ편안함[安]이라는 뜻이 있다.
028_1011_a_09L冷義增上義行義自性義苦樂性相應義復次頭義安義
【문】 왜 머리가 계의 뜻인가?
云何頭爲戒義
【답】 만약 사람이 머리가 없다면 일체의 모든 근(根)이 다시는 6진(塵)을 취하지 못하게 되니, 이때를 죽음이라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계로써 머리를 삼는다. 만약 머리가 떨어지면 모든 선법을 잃게 되는데 여기 불법(佛法)에서는 그것을 죽음이라 한다. 이것이 계가 머리의 뜻이라는 것이다.
028_1011_a_11L如人無頭一切諸根不復取塵是時名死如是比丘以戒爲頭若頭斷已失諸善法於此佛法謂之爲死是戒爲頭義
왜 시원함이 계의 뜻인가.
028_1011_a_14L者冷爲戒義
재질이 좋고 차가운 전단(栴檀)을 문지르면 곧 몸의 열이 없어지고 환희를 성취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계는 재질이 뛰어나고 차가운 전단이 되어 능히 계를 범했을 때의 공포와 두려움 등 마음의 열기를 없애고 환희를 성취하게 한다. 이것이 시원함이 계의 뜻이라는 것이다.
028_1011_a_15L如摩勝冷栴檀則除身成就歡喜如是戒爲勝冷栴檀滅犯戒恐畏心熱成就歡喜是冷爲戒義
【문】 편안함이 계의 뜻이라는 건 무엇인가?
何者安爲戒義
【답】 사람이 계를 가지고 있으면 그 풍모와 위의가 정숙하여 공포와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이것이 편안함이 계의 뜻이라는 것이다.
028_1011_a_18L若人有戒風儀整肅不生恐畏是安爲戒義
행(行)과 어떤 차별이 있는가.
028_1011_a_19L行何差別者
수행과 정진, 수지와 두타 이런 것들은 행이지만 계는 아니다. 하지만 계는 또한 행이라고도 하고 위의라고도 하며, 수(受) 또한 행이라고도 한다.
028_1011_a_20L修行精進受持頭陁是行非戒戒亦名行戒名威儀受亦名行
몇 가지 계가 있는가.
028_1011_a_21L幾戒
세 종류의 계가 있다. 즉 선계(善戒)ㆍ불선계(不善戒)ㆍ무기계(無記戒)이다. 무엇이 선계인가. 선한 신(身)ㆍ구(ㅁ)의 업과 정명(正命)으로 과환(過患)이 없는 까닭에 과보가 가히 좋다.
028_1011_a_22L謂三種戒善戒不善戒無記戒何善戒謂善身口業及正命無過患果報可愛
무엇이 불선계인가.
云何不善戒
소위 악한 신ㆍ구의 업과 사명(邪命)으로 과환이 있는 까닭에 과보가 가히 좋지 않다.
028_1011_a_24L謂惡身口業及邪命有過患故果報不可愛
028_1011_b_02L무엇이 무기계인가.
028_1011_b_02L何無記戒
무루의 신ㆍ구업과 청정명(淸淨命)으로 과환이 없고 또한 과보도 없다.
028_1011_b_03L無漏身口業及淸淨命有過患亦無果報
무엇이 계를 일으키는가.
云何起戒者
선심이 일으키는 바가 선계이며, 불선심이 일으키는 바가 불선계이며, 무기심이 일으키는 바가 무기계이다.
028_1011_b_04L善心所起善戒不善心所起不善戒無記心所起無記戒
무엇이 계의 초ㆍ중ㆍ후인가.
何戒初中後者
수계(受戒)가 초이며, 불월(不越)이 중이며, 환희가 후이다.
028_1011_b_06L受戒是初不越是中歡喜是後
【문】 계를 장애하는 법은 몇 가지이고, 계의 인(因)이 되는 법은 몇 가지인가?
028_1011_b_07L戒有幾法障碍幾戒因
【답】 34법이 장애도(障碍道)이며, 34법이 계의 인이다.
028_1011_b_08L三十四法是障碍道三十四法是戒因
소위 분(忿)ㆍ뇌(惱)ㆍ복(覆)ㆍ열(熱)ㆍ간(慳)ㆍ질(嫉)ㆍ환(幻)ㆍ첨(諂)ㆍ한(恨)ㆍ경(競)ㆍ만(慢)ㆍ증상만(增上慢)ㆍ오만(傲慢)ㆍ방일(放逸)ㆍ나타(懶惰)ㆍ탐욕(貪欲)ㆍ부지족(不知足)ㆍ부종지(不從智)ㆍ부정념(不正念)ㆍ악구(惡口)ㆍ악우(惡友)ㆍ악지(惡智)ㆍ악견(惡見)ㆍ불인(不忍)ㆍ불신(不信)ㆍ무참(無慙)ㆍ무괴(無愧)ㆍ몸짓과 말을 꾸미는 것[營身口味]ㆍ속인을 업신여기는 것[狎俗]ㆍ여인을 가까이하는 것[親近女人]ㆍ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것[不敬師]ㆍ배우고도 감관을 단속하지 않는 것[學不攝諸根]ㆍ음식을 절제하지 않는 것[於食不節]ㆍ초야와 후야에 게으름 떨며 좌선과 독송을 실행하지 않는 것[初夜後夜墮不禪誦]이다. 이 34법이 장애도이다.
028_1011_b_09L所謂忿增上慢傲慢放逸貪欲不知足不從智不正念惡口惡友惡智惡見不忍不信無慚無愧營身口味狎俗親近女人不敬師學不攝諸根於食不節初夜後夜墯不禪誦此三十四法是障碍道
만약 그 하나하나가 장애하면 계는 원만히 성취되지 못하고, 원만히 성취도지 못하면 반드시 뒤로 물러나게 된다. 만약 이 법과 반대되는 34종이라면 이것을 계의 인이라 한다.
028_1011_b_15L若二障戒不成滿若不成滿必還退失反是法三十四種是名戒因
계에는 어떤 종류들이 있는가.
028_1011_b_17L戒有幾種者
소위 두 종류ㆍ세 종류ㆍ네 종류가 있다.
謂有二種三種四種
무엇이 두 종류인가.
云何二種
소위 성계(性戒)와 제계(制戒)이다.
028_1011_b_18L謂性戒制戒
신(身)ㆍ구(ㅁ)의 소행으로써 부처님께서 “행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단언하신 것을 성계라 하고, 신ㆍ구의 가행(可行)으로써 부처님이 “행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단언하신 것을 제계라 한다. 성계는 신정진(信精進)으로써 능히 구족하게 되고, 제계는 신념지(信念持)로써 능히 구족하게 된다.
028_1011_b_19L以身口所行佛斷不行是名性戒身口可行佛斷不行是名制戒性戒以信精進能令具足制戒以信念持能令具足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퇴계(退戒)와 득계(得戒)이다.
028_1011_b_22L復次戒有二種退戒得戒
왜 퇴라고 하는가.
云何名退
능히 계 아닌 것[非戒]을 소멸하기 때문이다.
能滅非戒
왜 득이라고 하는가.
028_1011_b_23L云何名得
많은 선법을 얻기 때문이다.
得衆善法
028_1011_c_02L모든 계 아닌 것을 없애는 것은 빛의 그림자를 끊는 것과 같다. 계 아닌 것을 끊음으로써 악취로부터 벗어나고, 올바른 계[正戒]를 얻음으로써 능히 선도에 나아가며, 계 아닌 것을 끊음으로써 주분(住分)을 성취한다.
028_1011_b_24L除諸非戒如斷光影以斷非戒離於惡趣以得正戒能趣善道以斷非戒成就住分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세계(世戒)와 출세계(出世戒)이다.
028_1011_c_03L復次戒有二世戒出世戒
무엇이 출세계인가. 성도과(聖道果)로써 얻는 계와 같은 것을 출세계라 하며 나머지는 세계이다. 세계로써 성취하는 까닭에 구족이 있고, 출세계로써 성취하는 까닭에 해탈이 있다.
028_1011_c_04L云何出世戒如聖道果之所得戒是出世戒所餘世戒以世戒成就故有具足以出世戒成就有解脫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유량(有量)과 무량(無量)이다.
復次戒有二種有量無量
불구족계(不具足戒)를 유량이라 하며, 만약 구족계가 부처님께서 끊는 바라고 하면 이것을 무량이라 한다.
028_1011_c_07L具足戒是名有量若具足戒以佛所是名無量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유변(有邊)과 무변(無邊)이다.
028_1011_c_09L復次戒有二種有邊
무엇이 유변인가.
云何有邊
만약 사람이 세간의 이익[世利]을 위해, 수승함[勝]을 위해, 친지와 벗을 위해, 몸을 위해, 목숨을 위해, 의지하는 바를 뛰어넘기 위해 그 계를 받아 행한다면 그런 계에는 이익과 공양물[利養]이 한계[邊]가 되고, 칭찬과 명예[稱譽]가 한계가 되며, 몸이 존재하는 것이 한계가 되고,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 한계가 된다.
028_1011_c_10L若人爲世利爲勝爲親爲身爲命爲越所依而行受戒戒利養爲邊稱譽爲邊身有爲邊有爲邊
무엇이 무변인가.
云何無邊
이 비구는 출세간의 이익[出利]를 위해, 수승함을 위해, 몸을 위해, 목숨을 위해 법에 맞게 계를 받고 범하려는 마음[犯心]조차 일으키지 않는데 하물며 고의로 범하겠는가. 이것을 무변계라 한다.
028_1011_c_13L此比丘爲出利爲身爲命如法受戒不起犯心況故犯此謂無邊戒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유의(有依)와 무의(無依)이다.
028_1011_c_15L復次戒有二種有依無依
무엇이 유의인가.
云何有依
유(有)와 상응하는 계는 애(愛)에 의지하고, 계도(戒盜)와 상응하는 계는 견(見)에 의지하고, 자기를 높이고 남을 폄하하는 것[自譽毁他]과 상응하는 계는 만(慢)에 의지하니, 이런 것은 유의계이다. 만약 해탈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것이 무의계이다. 만약 유의계라면 지혜로운 사람이 즐기는 바가 아니며, 무의계라면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즐기는 바이다.
028_1011_c_16L有相應戒依愛盜相應戒依見自譽毀他相應戒依此有依戒若成就解脫資用是無依戒若有依戒非慧人所樂若無依戒是慧人所樂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범행의 시초[梵行之初]와 배워야 할 소소한 계[學微細戒]이다.
028_1011_c_20L復次戒有二種梵行之初學微細戒
무엇이 범행의 시초인가. 정업(正業)ㆍ정어(正語)ㆍ정명(正命)에 포섭되는 계로서 이것을 범행의 시초라 한다. 나머지 학계(學戒)는 가벼운 계[輕戒]라 한다.
028_1011_c_21L云何梵行之初正業正命所攝戒此謂梵行之初有餘學戒此謂輕戒
또 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유심상응(有心相應)과 무심상응(無心相應)이다.
028_1011_c_23L復次戒有二種有心相應無心相應
028_1012_a_02L무엇이 유심(有心)인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범행[初學梵行]이다. 무엇이 무심(無心)인가. 나머지 가벼운 계들을 말한다. 성문은 범행의 시초에 해당하는 계는 견고히 지키고 받들었지만 이런 가벼운 계에 있어서는 범하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이것이 해탈을 장애한다고 설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028_1011_c_24L云何有心謂初學梵云何無心謂餘輕戒聲聞於梵行之初堅戒上戒於此輕戒得犯得起何以故佛不說此障於解脫
또 두 종류의 계가 있으니, 무범계(無犯戒)와 청정계(淸淨戒)이다.
028_1012_a_04L復次有二種謂無犯戒淸淨戒
무엇이 무범인가. 성문들의 계이다. 무엇이 청정계인가. 부처 및 연각들의 계이다.
028_1012_a_05L云何無犯謂聲聞戒云何淸淨戒佛及緣覺戒
또 계에 두 종류가 있으니, 시분계(時分戒)와 진형계(盡形戒)이다.
028_1012_a_06L復次戒有二種謂時分戒及盡形戒
짧은 시간 잠깐 동안만 계를 수지하고 몸과 목숨과 함께 하지는 않는 것을 시분계라 한다. 스승에게 맹세한 순간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르는 것을 진형계라 한다. 시분계는 과보에 때[時]가 있고, 진형계는 과보에 때가 없다.
028_1012_a_07L少時暫受不俱形命謂時分戒從師始誓乃至捨壽謂盡形戒時分戒者果報有時盡形戒者果報無時
무엇이 세 가지인가. 지악불범(止惡不犯), 수불범(受不犯), 단불범(斷不犯)이다.
028_1012_a_10L何者爲三謂止惡不犯受不犯斷不犯
무엇이 지악불범인가. 아직 계를 받지 않았더라도 받을 때까지 행해야 할 곳이 아니면 범할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지악불범이라 한다. 무엇이 수불범인가. 계를 받고 나서 죽을 때까지 다시는 범하지 않는 것을 수불범이라 한다. 무엇이 단불범인가. 성인이 성도(聖道)로써 모든 악의 원인을 끊는 것을 단불범이라 한다.
028_1012_a_11L云何止惡不犯雖未受受至非所行處心不生犯是謂止惡不犯云何受不犯受受已終不復犯是謂受不犯云何斷不犯聖人以聖道斷諸惡因是謂斷不犯
또 계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촉계(觸戒)ㆍ부촉계(不觸戒)ㆍ의계(猗戒)이다.
028_1012_a_16L復次戒有三種謂觸戒不觸猗戒
무엇이 촉인가. 유위상(有爲相)을 처음 보고 사랑하는 것을 촉이라 하니, 이것은 범부의 선계(善戒)이다. 이를 바탕으로 도에 들어가는 것을 무촉계(無觸戒)라 한다. 무엇이 의계인가. 아라한의 계이다.
028_1012_a_17L云何爲觸有爲相初見愛爲是凡夫善戒資用入道是謂無觸云何猗戒謂阿羅漢戒
또 세 종류가 있으니, 의세계(依世戒)ㆍ의신계(依身戒)ㆍ의법계(依法戒)이다.
028_1012_a_19L復次有三謂依世戒依身戒依法戒
무엇이 의세계인가. 만약 사람이 공포(恐怖)를 품고 장차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을 보호하고자 모든 악법을 없앤다면 이를 의세라 한다. 무엇이 의신계인가. 만약 사람이 공구(恐懼)를 품고 장차 몸과 목숨을 보호하고자 모든 악법을 없앤다면 이를 의신이라 한다. 무엇이 의법계인가. 만약 사람이 경외(驚畏)를 품고 장차 정법을 보호하고자 모든 불선을 없앤다면 이것을 의법이라 한다.
028_1012_a_20L何者依世戒若人有恐怖將護世意除諸惡是名依世何者依身戒若人有恐懼將護於身命除諸惡法是名依何者依法戒若人驚畏將護於正法除諸不善是名依法
028_1012_b_02L또 계에 세 종류가 있으니, 소원부등(所願不等)ㆍ소원등(所願等)ㆍ무소원(無所願)이다.
028_1012_b_02L復次戒有三謂所願不等所願等無所願
무엇이 소원부등인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계를 수지하는 이런 것을 소원부등이라. 무엇이 소원등계인가 하면, 계를 받는데 현재의 유락(有樂)과 미래의 해탈락(解脫樂)을 위해 받는 것으로 이것을 소원등이라 한다. 무엇이 무소원계인가 하면, 계를 받아 후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요익케 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을 무소원이라 한다.
028_1012_b_03L云何所願不等惱他受戒此謂所願不等云何所願等戒受戒爲現有樂及未來解脫樂是謂所願等云何無所願戒受戒不悔爲饒益他此謂無所願
또 계에 세 종류가 있다. 청정계(淸淨戒)ㆍ불청정계(不淸淨戒)ㆍ유의계(有疑戒)이다. 무엇이 청정계인가 하면, 두 가지 인연으로 계가 청정을 이룬다. 첫째는 범하지 않은 것[不犯]이고, 둘째는 범하더라도 능히 후회하는 것[犯已能悔]이다. 이것을 청정계라 한다. 무엇이 불청정계인가 하면, 두 가지 인연으로 불청정을 이룬다. 첫째는 스스로 범하는 것[自故犯]이고, 둘째는 범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犯不悔]이다. 이것을 불청정이라 한다. 무엇이 유의계인가 하면, 세 가지 원인에 의하는 까닭에 유의를 성취한다. 첫째는 장소[處]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범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고, 셋째는 부정행(不正行)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유의계라 한다.
028_1012_b_07L復次戒有三種謂淸淨戒不淸淨戒有疑戒云何淸淨戒以二因緣戒成淸淨一不犯二犯已能悔此謂淸淨以二因緣成不淸淨一自故犯犯不悔此謂不淸淨云何有疑戒三因故成就有疑一以不分別處不分別犯三不分別不正行此謂有疑戒
만약 좌선하는 사람의 계가 청정하지 못하면 깊이 참회를 일으며 청정락을 성취하여야 하고, 또 의혹이 있으면 그 죄를 잘 알아 안락을 이루어야 한다.
028_1012_b_15L若坐禪人戒不淸淨深生慚悔成淸淨樂又有疑惑令現知罪得成安樂
또 계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학(學)ㆍ무학(無學)ㆍ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다.
028_1012_b_17L復次戒有三種謂學無學非學非無學
무엇이 학인가. 7학인(學人)14)
의 계이다. 무엇이 무학인가. 아라한의 계이다. 무엇이 비학비무학인가. 범부인의 계이다.
028_1012_b_18L云何爲學七學人戒云何無阿羅漢戒云何非學非無學凡夫人戒
또 계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외계(畏戒)ㆍ우계(憂戒)ㆍ치계(癡戒)이다.
028_1012_b_20L復次戒有三種謂畏戒憂戒
028_1012_c_02L 무엇이 외계인가. 사람이 죄를 두려워하여[畏] 감히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을 외계라 한다. 무엇이 우계인가. 만약 사람이 친지나 벗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곧 근심의 고통이 생기는 까닭에 이 근심의 고통으로 인해 모든 악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을 우계라 한다. 무엇이 치계인가. 사람이 소의 습관[牛戒]이나 개의 습관[狗戒]을 따라하는 것을 치계라 한다. 만약 치계를 완성하면 곧 소나 개가 되고, 만약 또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곧 지옥에 떨어진다.
028_1012_b_21L云何爲畏有人畏罪不敢爲惡謂畏戒云何爲憂若人念離親友蹔生愁苦以愁苦故不起諸惡斯謂憂云何癡戒有人受牛戒狗戒斯謂癡癡戒若成則爲牛狗若復不成則墮地獄
또 계에 세 종류가 있으니, 하(下)ㆍ중(中)ㆍ상(上)이다.
復次戒有三種謂下
무엇이 하인가. 상번뇌(上煩惱)ㆍ상상(上上)번뇌ㆍ대(大)번뇌에 시달리는 것으로 부지족(不知足)에 물드는 것을 하계라 한다. 무엇이 중인가. 세번뇌(細煩惱)에 시달리는 것으로 지족에 물드는 것을 중계라 한다. 무엇이 상인가. 시달리는 바가 없이 지족에 물드는 것을 상계라 한다. 하계가 원만하게 갖추어지면 사람으로 하여금 구족케 하고, 중계가 원만히 갖추어지면 하늘로 하여금 구족케 하고, 상계가 원만히 갖추어지면 해탈을 얻게 한다.
028_1012_c_03L何爲下謂上煩惱上上煩惱大煩惱所觸不知足所染此謂下戒云何爲細煩惱所觸知足所染此謂中戒云何爲上無所觸知足所染此謂上下戒成滿令人具足中戒成滿令天具足上戒成滿令得解脫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퇴분(退分)ㆍ주분(住分)ㆍ승분(勝分)ㆍ달분(達分)이다.
028_1012_c_09L復次戒有四種謂退分住分勝分達分
무엇이 퇴분인가. 도의 장애를 없애지 않고 정진을 떠난 사람이 알면서 고의로 범하고는 범하고 나서 감추는 것, 이것을 퇴분이라 한다. 무엇이 주분인가. 계를 성취하여 방일을 일으키지 않고 적견(寂見)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주분을 성취하는 것이다. 계ㆍ정을 원만히 이루어 방일을 일으키지 않고 적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승분을 성취하는 것이다. 계ㆍ정을 원만히 성취하여 방일을 일으키지 않고 적견을 일으킴으로써 달분을 성취한다.
028_1012_c_10L云何退分不除道障碍離精進人知而故犯已覆藏此謂退分云何住分於戒成就不起放逸不生寂見成就住分於戒定成滿不起放逸不生寂見就勝分於戒定成滿不起放逸以生寂見成就達分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비구계ㆍ비구니계ㆍ불구족계ㆍ백의계(白衣戒)이다.
028_1012_c_16L復次戒有四種比丘比丘尼戒不具足戒白衣戒
무엇이 비구계인가. 바라제목차의 위의, 이것이 비구계이다. 무엇이 비구니계인가. 바라제목차의 위의, 이것이 비구니계이다. 사미ㆍ사미니의 10계와 식차마니계15)를 불구족계라 한다. 우바새ㆍ우바이의 5계 및 8계가 백의계이다.
028_1012_c_17L云何比丘戒波羅提木叉威儀是比丘戒比丘尼戒波羅提木叉威儀是比丘尼沙彌沙彌尼十戒式叉摩尼戒是謂不具足戒優婆塞優婆姨五戒及八是白衣戒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성계(性戒)ㆍ행계(行戒)ㆍ법지계(法志戒)ㆍ초인계(初因戒)이다.
028_1012_c_22L復次戒有四種謂性戒行戒法志戒初因戒
028_1013_a_02L무엇이 성계인가. 울단월계16)를 성계라 한다. 무엇이 행계인가. 성족(姓族)ㆍ국토ㆍ외도 등의 법과 같은 것을 행계라 한다. 무엇이 법지계인가. 보살이 입태(入胎)하는 계, 이것이 법지계이다. 무엇이 초인계인가. 보살 및 마하가섭의 계 이것을 초인계라 한다.
028_1012_c_23L云何性戒鬱單越戒此謂性戒云何行戒如姓族國土外道等法是謂行戒云何法志戒菩薩入胎戒是謂法志戒云何初因菩薩及摩訶迦葉戒是謂初因戒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계(戒)ㆍ계집(戒集)ㆍ계멸(戒滅)ㆍ계멸도구족(戒滅道具足)이다.
028_1013_a_04L復次戒有四種戒戒集戒滅戒滅道具足
무엇이 계인가. 계에 두 종류가 있으니, 선계(善戒)와 불선계(不善戒)이다. 무엇이 계집인가. 선심은 선계를 모으고 불선심은 불선계를 모으는 것이다. 무엇이 멸계인가. 선계를 얻어 불선계를 없애고, 아라한을 얻어 선계를 없애는 것이다. 무엇이 멸도구족계인가. 4정근17)이니, 이것을 멸도구족계라 한다. 이와 같이 4법을 분별ㆍ요해하는 것을 정진이라 하고, 진지계(眞持戒)가 아닌 것을 정근이라 한다.
028_1013_a_06L云何戒戒者有二種善戒不善此謂戒云何戒集善心集善戒善心集不善戒云何滅戒得善戒滅不善戒得阿羅漢滅善戒云何滅道具足戒謂四正勤此謂滅道具足戒如是分別曉了四法是謂精進非眞持戒是名正勤
또 계에 네 종류가 있으니, 바라제목차위의계(波羅提木叉威儀戒)ㆍ명청정계(命淸淨戒)ㆍ근위의계(根威儀戒)ㆍ연수계(緣修戒)이다.
028_1013_a_12L復次戒有四種波羅提木叉威儀戒命淸淨戒根威儀戒緣修戒
무엇이 바라제목차위의계인가.
云何波羅提木叉威儀戒
여기에서 비구는 바라제목차 위의의 보호 아래 머물면서 행(行)과 행처(行處)를 구족하고, 미세한 죄[細罪]까지 두려워하며, 배워야 할 계를 올바로 수학한다.
028_1013_a_14L此比丘波羅提木叉威儀所覆住行行處具足畏於細罪正受學可學戒
“여기”란 이 스승의 법에 있어서이다. “비구”는 범부의 선(善)을 가진 자, 또 유학(有學)ㆍ무학(無學)ㆍ부동법(不動法)을 가진 자이다. “바라제목차”란 계(戒)요, 이것은 기(起)요, 이것은 초(初)요, 이것은 행(行)이요, 이것은 호(護)요, 이것은 위의(威儀)요, 이것은 탈(脫)이요, 이것은 무박(無縛)이다. 이것은 모든 법에 걸친 것으로 선법을 올바로 받는 것을 바라제목차의 뜻이라 한다.
028_1013_a_16L此者於此師法比丘者有凡夫善次有學無學不動法波羅提木叉者是戒是起是初是行是護是威儀是無縛是諸法面爲正受善法波羅提木叉義
신(身)ㆍ구(ㅁ)의 업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위의이다. “보호 아래”란 이 바라제목차로 위의를 성취하는 것이다. “머물다”란 네 가지 위의를 지키는 것이다. “갖가지 행을 구족한다”에서 다시 행(行)과 비행(非行)이 있다.
028_1013_a_21L不越身口業是威儀所覆者以此波羅提木叉威儀成就住者護四威儀衆行具足者復有行有非行
무엇이 비행인가.
云何非行
028_1013_b_02L만약 어떤 비구가 어떤 다른 사람에게 지팡이를 보시하거나 꽃과 과일을 보시하거나 양지(楊枝)와 조욕(澡浴)을 보시하거나 아름답고 추한 것으로 유혹하거나 희롱하고 아첨하며 잘난 체하거나 함부로 사람을 내쫓거나 널리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면, 이와 같은 행위들은 부처님께서 제제하신 것이니 이른바 사명(邪命)ㆍ자활(自活)이다. 이것은 비행이 된다.
028_1013_a_24L若有比丘於彼一或施杖竹或施花葉果實或施楊枝澡浴或販弄美惡或爲調戲或諂諛自進或恣驅馳遠招會賓如此諸行佛之所制謂邪命自活此爲非行
또 두 종류의 비행이 있으니, 즉 몸[身]과 입[ㅁ]의 비행이다.
028_1013_b_05L復次二種非行口非行
무엇이 몸의 비행인가.
云何身非行
만약 어떤 비구가 깔보는 교만한 마음으로 승가에 나아가 대덕을 공격해 함부로 말하면서 자신을 앞세우거나, 혹은 기대거나 걸어가 먼저 높은 자리에 앉고 대덕은 아래로 밀어내거나, 혹은 앉으면서 큰 소리를 내어 조화를 깨거나 어깨를 흔들며 농담을 하거나, 상좌가 맨발로 다니는데 자신은 가죽신을 신거나 연로한 대덕들도 낮은 길로 다니는데 자신은 높은 길로 다니거나, 갖가지 다른 인연으로 서로를 업신여기고 괴롭히거나, 혹은 자신의 잘난 점을 상대의 부족한 점과 비교하거나 열등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추대하거나, 혹은 욕실에서 땔감을 모조리 때면서 문을 닫고 누구에게도 자문을 구하지 않거나, 혹은 물가에 가자마자 스스로 먼저 뛰어들어 몸단장을 하고 물장구를 치는 등 온갖 비루한 상(相)을 보인다면, 만약 남의 집에 들어갔을 때 앞뒤를 벗어나 가고 앉음에 차례가 없거나, 은밀한 곳에서 여인이나 모든 동녀를 희롱하고 그 머리를 만진다면, 이와 같은 과실을 몸의 비행이라 한다.
028_1013_b_06L若有比丘以陵慢心往至僧中排觸大德叨很自前或猗或行先坐上位推大於下或坐猗排調或拍肩笑語上座徒跣自著革屣耆德下路己行高陌以衆異緣故相輕惱或以勝待推劣與長或於浴室燒諸薪木閉門戶皆無諮問或詣水邊輒自先入嬌身擊搏現諸鄙相若入他舍超越前後行坐無次或在屛處戲弄女人及諸僮女摩觸其首如是等過謂身非行
무엇이 입의 비행인가.
云何口非行
만약 어떤 비구가 마음에 경외하는 것이 없어 존숙과 명망 있는 이들에게 묻지도 않고 문득 스스로 법을 설하거나 바라제목차를 설하거나 어깨를 흔들며 말하거나, 혹은 남의 집에 들어가 여인을 응시하며 “성이 무엇이냐?”고 묻고 “먹을 것이 있는가. 있다면 나에게 내어라. 나는 음식을 얻고자 한다”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말은 입의 비행이 된다. 계를 범한 일체 행위를 비행이라 한다.
028_1013_b_17L若有比丘心無敬畏不諮宿望輒自說法或說波羅提木或拍肩而語或入他家顧問女人何所姓字有可食物不有者現我我欲得食如是等語爲口非行一切犯戒此謂非行
028_1013_c_02L무엇이 행인가. 비행의 반대이다. 또한 비구가 공경과 참회를 갖추고, 위의를 성취하여 조금의 부족함도 없고, 모든 근을 거두고 보호해 음식을 조절할 수 있고, 초야와 후야에는 잠든 적이 없고, 지혜를 성취해 욕심을 줄여 만족할 줄 알고, 세속의 의무를 벗어나 용맹심을 일으키고, 동학(同學)에게 공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깊이 일으키는 것, 이것을 행이라 한다.
028_1013_b_22L云何爲行反於非行次比丘有恭敬慚愧成就威儀無所乏少攝護諸根能節飮食初夜後夜未嘗睡眠成就智慧少欲知足不狎世務起勇猛心於同學所深生敬重此謂爲行
“행처”란 무엇인가. 소위 행처(行處)와 비행처(非行處)가 있다.
028_1013_c_04L行處者謂有行處有非行
무엇이 비행처인가.
云何非行處
만약 어떤 비구가 음녀의 방사[婬含]ㆍ과부의 방사[寡婦舍]ㆍ처녀의 방사[處女舍]ㆍ불남18)의 방사[不男舍]ㆍ비구니의 방사[比丘尼舍] 및 모든 술집에 들어가거나, 국왕ㆍ대신ㆍ외도의 사문ㆍ법답지 못한 벗을 가까이한다면, 이와 같은 무리들은 믿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 늘 4중에게 요익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꺼려해야 마땅하다. 이것을 비행처라 한다. 부처님께서 “비구가 비범행처로 갔다고 하자. 비범행처로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색을 매매하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028_1013_c_05L若有比丘入於婬舍寡婦舍處女舍不男舍比丘尼舍及諸酒肆親近國王大臣外道沙門法伴侶如是等輩無信樂心常於四衆不生饒益甚可厭患此謂非行處如佛所說比丘行非梵行處云何行非梵行處謂販賣女色
이에 견주어 행처를 알 수 있다. 또 세 종류의 행처가 있으니, 의행처(依行處)ㆍ수호행처(守護行處)ㆍ계박행처(繫縛行處)이다.
028_1013_c_11L行處可知復次三種行處依行處守護行處縛行處
무엇이 의행처인가.
云何依行處
10처의 공덕을 성취한 선우(善友)를 말한다. 이 공덕에 의지하여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게 되고, 만약 이미 들은 것이라면 듣고 나서 그것이 증장하여 의혹을 끊어 없애고 정견으로 청백하여 능히 법에 따라서 배우고 신심 용맹케 되는 계문시혜(戒聞施慧)로써 생각마다 증장케 된다. 이것을 의행처라 한다.
028_1013_c_13L謂十處功德成就善友依此功德未聞得聞若已聞聞已令其增廣斷除疑悔正見淸白能隨法學深信勇猛以戒聞施慧念念增長此謂依行處
무엇이 수호행처인가.
云何守護行處
만약 어떤 비구가 어쩔 수 없이 남의 집에 들어가거나 마을을 지나야만 한다면 땅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심인(尋仞)을 넘지 않고, 위용이 정숙하여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코끼리ㆍ말ㆍ마차 및 남녀의 나들이 모임을 쳐다보지 않고, 궁제(官第)ㆍ항맥(巷陌)을 쳐다보지 않고, 올려다보거나 4방을 둘러보지도 않는 것이다. 이것을 수호행처라 한다.
028_1013_c_17L若有比丘須入他舍及行村里看地而前不踰尋仞威容整肅人所瞻敬不看象馬車乘及男女遊會不看宮第巷陌仰觀四望此謂守護行處
무엇이 계박행처인가.
028_1013_c_21L何繫縛行處
부처님께서 “만약 비구가 있어 그 집과 경계를 본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을 계박행처라 한다. 이것을 행이라 하며, 이런 행처를 성취하는 까닭에 “행처를 구족한다”라고 하였다.
028_1013_c_22L如佛所說若有比丘觀其家境界此謂繫縛行處是名爲行以此行處成就故曰具足行處
028_1014_a_02L“미세한 죄[細罪]까지 두려워한다”라는 것은 “나는 배운 바를 완수했기 때문에 감히 짓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를 미세한 죄까지 두려워하는 것이라 한다. 또 설이 있다. 만약 불선심을 일으키면 이것을 미과(微過)라 한다. 이 미과에서 멀리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과환(過患)을 보고 두려워하며 출리를 보는 이것을 미과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이라 한다.
028_1013_c_24L畏於細罪者我於所學畢故敢造謂畏細復次有說若起不善心是謂微過於此微過心生避遠見過患畏見出此謂於微過見畏
“배워야 할 것을 올바로 수학한다”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을 지칭하는가.
028_1014_a_05L正受學可學者可學何名
소위 7취(聚)19)의 위의를 말한다. 올바로 수학한다는 것은 일체를 따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배워야 할 것을 올바로 수한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바라제목차위의계라고 한다.
028_1014_a_06L謂七聚威儀正受一切隨此謂正受學可學此謂波羅提木叉威儀戒
【문】무엇을 청정계라 하는가?
云何名淸淨戒
【답】소위 사명(邪命)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028_1014_a_08L謂不犯邪命
무엇이 사명인가.
云何邪命
해태(懈怠)ㆍ첨곡(諂曲)으로 상(相)을 보이는 것이고, 진매(瞋罵)로써 상을 보이는 것이고, 보시(布施)로써 보시를 바라는 것이다.
028_1014_a_09L懈怠諂曲示相嗔罵示相以施望施
무엇이 해태인가.
云何懈怠
해태에는 3처가 있으니, 얻고 싶은 목적으로 이리저리 궁리하고 계산해 타인의 4사(事)20)를 혐오하거나 일부러 위의를 엄숙히 하거나 널리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다.
028_1014_a_10L懈怠有三處思計欲得惡他四事假肅威儀普自稱說
만약 비구가 마음에 나쁜 욕심을 품고서 재물과 이익을 탐하고 즐기면서 (거짓으로) 훌륭한 옷과 음식을 사양하고 거칠고 떨어진 것을 구하거나, 얻고 싶지 않은 척하거나, 마치 타인에 대한 연민 때문에 이와 같은 4사를 받는 척한다면, 이것을 연계해태(緣計懈怠)라 한다.
028_1014_a_12L若比丘心懷惡欲貪樂財利讓勝衣食趣求麤弊如不欲得有若愍他如此四事此謂緣計懈怠
만약 어떤 비구가 나쁜 욕심으로 이득을 탐해 “나는 선정에 들었노라”며 거짓으로 위의를 나타내거나 공양과 보시를 유도할 목적으로 경전을 독송한다면, 이를 위의해태(威儀懈怠)라 한다.
028_1014_a_14L有比丘惡欲貪利詐現威儀我入禪要引供施讀誦經典此謂威儀懈
만약 어떤 비구가 탐욕과 거짓말로 사람들을 향해 “나는 성법(聖法)을 얻어 한적한 곳에 머무른다”고 말하거나 마치 선(禪)을 닦고 설법이 미묘한 척하거나 과인상(過人相)21)을 보여 이득을 탐해 자신을 향하게 하고 널리 자신을 선양한다면, 이것을 해태라 한다.
028_1014_a_17L若有比丘貪欲諂誑向人有言得聖法拪止閑寂有若禪習所說深示過人相貪利向己廣自宣揚謂懈怠
첨곡이란 자신이 생각한 대로 허상으로 추켜세우거나 좋은 말로 칭찬하거나 좋고 나쁜 것을 제멋대로 정해 팔거나 중간에서 조율을 하고 이득을 요구하거나 우스갯소리로 서로를 기쁘게 하여 이득을 자신에게 향하게 한다면, 이것을 첨곡이라 한다.
028_1014_a_20L諂曲者如其心念虛相推擧善言稱讚販弄好惡爲調要利排諧相悅引利自向此謂諂曲
“상을 보인다[示相]”는 것은 무엇인가.
云何示相
이득이 있는 자를 의지해 법을 설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고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넓어질 수가 없다. 이것을 상을 보이는 것이라 한다.
028_1014_a_22L依有利者而爲說法要利爲己心不能普此謂示相
028_1014_b_02L 진매로써 상을 보이는 것이란 남을 꾸짖어 두렵게 하거나, 있지도 않은 모습을 상정해 헐뜯거나, 때려 사람을 무섭게 하여 이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매로써 상을 보이는 것이라 한다.
028_1014_a_24L嗔罵示相者或罵他令畏或空相毀薄或加打觸怖人要此謂嗔罵示相
무엇이 보시[施]로써 보시를 바라는 것인가. 좋아서 가볍게 보시를 한 뒤 곧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시로써 보시를 바라는 것이라 한다. 이런 모든 악을 사명(邪命)이라 한다.
028_1014_b_03L云何以施望施者好爲輕施輒要厚答此謂以施望施以是諸惡謂爲邪命
또 사명이 있다. 지팡이를 보시하거나, 꽃과 과일을 보시하거나, 양지(楊枝)와 조욕(澡浴)을 보시하거나, 점을 보고 해몽을 하거나, 점성술을 하거나, 새나 짐승의 소리 등의 업을 잘 풀이하거나, 길흉사에 쫓아다니거나, 추악한 말로 대중을 해산시키거나, 꽃을 태우며 불을 섬기거나, 상단을 꾸려 여행하면서 물건을 판매하거나, 군대를 거느리고 무기를 모으는 이와 같은 갖가지 일들을 사명이라 한다. 만약 이를 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청정계라 한다.
028_1014_b_05L復有邪命或施杖竹或施花葉果實或施楊枝澡浴或占相夢悟觀察星宿善解禽獸音聲等業推步吉凶惡言離散燒花事商旅販賣將領軍衆蓄銳兵刃是種種此謂邪命若不犯者名淸淨
【문】 무엇이 수호근위의계(守護根威儀戒)인가?
云何守護根威儀戒
【답】 견(見)ㆍ문(聞)ㆍ각(覺)ㆍ지(知)ㆍ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에 번뇌가 서로 달라 불더라도 곧 수지하여 범하지 않는 것을 수호근위의계라 한다.
028_1014_b_11L於見聞覺知色聲香味觸法煩惱相著及受持不犯此謂守護根威儀戒
이 수호근계는 9행(行)으로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이니, 악으로 상(相)을 삼아 모든 근을 끊기 때문이며, 그것을 대치하여 작의하지 않기 때문이며,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일처럼 끝내 잠시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난타(難陀)를 보는 것처럼 위의로써 하기 때문이며, 악심을 조복하기 때문이며, 정상심(定相心)에서 자재하기 때문이며, 근을 수호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멀리 떠나기 때문이며, 근을 수호하면 사람들이 화합하기 때문이다.
028_1014_b_13L此守護根以九行成滿以惡爲相斷諸根故彼對治不作意故如救頭然終不蹔捨故如見難陁以威儀故伏惡心故於定相心自在故不守護根人遠離於守護根人和合故
【문】 무엇이 수행사사계(修行四事戒)인가?
028_1014_b_18L云何修行四事戒
【답】 이 8행을 관찰하고 나서 수행하고 걸식하는 것이다.
以此八行已觀修行乞食
8행이란 첫째 험악한 행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거만한 행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 둘째 과장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장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 셋째 이 몸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자신을 조절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하는 것, 넷째 굶주림과 갈증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 다섯째 범행을 섭수하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 여섯째 “음식은 예전의 병을 없애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고 늘 생각하는 것, 일곱째 마땅히 적은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것, 여덟째 과실이나 탐욕 없이 생활하는 것이다.
028_1014_b_19L者不爲兇險行不爲自高行二者不爲裝束不爲莊嚴三者爲此身住自調護四者爲除飢渴五者爲攝受梵行六常自思惟飮食爲除先病起新疾七當以少自安八無過貪住
【문】 무엇이 험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거만한 스스로를 높이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인가?
028_1014_b_24L云何不兇險行不自高行
028_1014_c_02L【답】 “나는 음식을 탐해 용맹하고 건강해 져서 험악하게 행동하고 겁주는 시늉을 하고 서로 싸우고 앞 다퉈 달려가리라”고 하는 것을 험악한 행동이라 한다. (거만한 행동이란) 성난 사람이 폭력을 휘두르듯이 교만하게 자신을 높이며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과장과 장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몸을 살찌우고 얼굴을 기름지게 하여 사람들이 사랑하고 좋아해 애정이 끝없게 하려고 한다면 이는 욕심을 가진 사람이다.
028_1014_c_02L我以貪食勇健兇險戲暴爭競馳走是兇險高慢自擧不知厭足如嗔者打撲不裝束莊嚴者爲身分充滿面貌肥令人愛樂情無厭足是有欲人
이 몸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자신을 조절하고 보호할 목적이란, 바퀴통에는 반드시 기름칠을 해야 하듯이 몸의 안주를 탐하는 것이다. 갈증과 굶주림을 없앤다는 것은 항상 조금씩만 먹는 것이니, 이와 같은 수행은 종기에 약을 바르는 것과 같다. 범행을 섭수한다는 것은 적은 음식의 힘에 의지하여 즐거이 성도(聖道)를 얻는 것이니, 이와 같은 수행은 자식을 먹는 생각[食子想]을 하는 것과 같다. 예전의 병을 없애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란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먹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습하는 것은 탕약(湯藥)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
028_1014_c_06L爲此身住爲自調護者貪身安住如轂須膏除飢渴者常資少食如是脩行猶瘡塗藥攝受梵行者依少食力樂得聖道如是脩行猶食子想爲除先病不起新疾者不少不多如是修習如服湯藥
적은 것으로 스스로 만족한다는 것은 적은 공덕으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안정시키는 것이니,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처럼 항상 익히고 행하여야 한다. 과실이 없다는 것은 적은 것으로 스스로 안주하며 이와 같이 수행하여 몸이 없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찬탄하는 바이다. 따라서 과실 없이 머문다고 하였다. 만약 음식 조절이 적당하다면 절대로 해태하지 않으며, 초야ㆍ중야ㆍ후야에도 잠들지 않고 안온을 성취한다. 이와 같이 이 8행으로써 관찰하고, 수행하고, 걸식하면서 이와 같이 닦아야 한다.
028_1014_c_12L以少自安者以少功德自安己身常應習行如看病人無過者以少自安如是修行不令身無是智慧所歎是故無過安住若食調適未嘗懈怠初中後夜亦不眠睡成就安如是以此八行已觀修行乞食如是修
또 이 8행은 줄이면 4관이 되니, 즉 가단관(可斷觀)ㆍ사관(事觀)ㆍ이소자안관(以少自安觀)ㆍ이소공덕관(以少功德觀)이다.
028_1014_c_18L復次此八行略爲四觀謂可斷觀事觀以少自安觀以少功德
【문】 무엇이 가단관인가?
云何可斷觀
【답】 험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고, 먼저 나서지 않고, 머리를 꾸미지 않는 것을 가단관이라 한다.
028_1014_c_20L不爲兇險行爲自高不爲先身不爲嚴首此謂可斷觀
이 몸을 머물기 위해, 올바로 조절하고 지키기 위해, 굶주림과 갈증을 없애기 위해, 범행을 섭수하기 위해 하는 것을 사관이라 한다.
028_1014_c_22L爲此身住爲正調護爲除飢渴爲攝受梵行此謂事觀
028_1015_a_02L “나는 마땅히 예전의 병을 없애고 새로운 병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하는 것을 이소자안관이라 한다. “나는 마땅히 적은 것에 스스로 만족함으로써 과실이 없이 안락을 성취해 머무리라” 하는 것을 이소공덕관이라 한다. 이것이 4관이다.
028_1014_c_23L我當除先病不起新疾者此謂以少自安觀我當以少自安無過成安樂住此謂少功德觀此四觀
이 4관을 줄이면 세 가지가 되니, 즉 단(斷)ㆍ이변득중(二邊得中)ㆍ구족(具足)이다. 단관(斷觀)으로써 욕(欲)ㆍ락(樂)ㆍ착(著)을 끊으니, 소위 굶주림과 갈증을 없애고 예전의 병을 끊고 새로운 병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또 이 관으로써 몸의 고단함에 대한 집착을 끊는다. 나머지 중관과 구족관도 마땅히 수행해야 한다.
028_1015_a_03L此四觀已略成三謂斷二邊得中具足以斷觀斷欲樂著除飢渴斷於本疾不起新疾又以此觀斷著身疲餘中具足觀應當修行
또 의복은 바람ㆍ추위 더위ㆍ모기ㆍ등에ㆍ개미 등과의 접촉을 막기 위한 것이고, 부끄러움을 일으켜 추함이 드러나는 것을 가리고 막기 위한 것이라고 관하고, 구족관에서 이와 같이 수행한다. 또 약을 복용하는 것과 나아가 질병을 관한다.
028_1015_a_06L又觀衣服爲除風寒暑蚊蝱蟻觸生慚恥遮覆醜露於具足觀如是脩又觀服藥乃至疾病
만약 이와 같이 설한다면 마땅히 어느 때 관해야 하는가.
028_1015_a_09L若如此說何時觀
걸식과 약을 복용함에 있어서는 한 끼니를 먹을 동안[一飡時] 관한다. 또 의복과 와구에 있어서는 처음 얻었을 때[初得時] 관해야 하며, 또 매일매일 때때로 관해야 한다. 나의 목숨은 다른 것에 연유하기 때문에 마땅히 관해야 한다. 이와 같이 일체가 모두 관행을 이룬다.
028_1015_a_10L於乞食服藥一飡時觀又於衣服臥具及初得時觀又於日日時時中觀我命由他是故當觀如是一皆成觀行
선사(先師)의 말씀에 네 종류의 수용이 있으니, 즉 도수용(盜受用)ㆍ부채수용(負債受用)ㆍ가재수용(家財受用)ㆍ주수용(主受用)이다.
028_1015_a_13L先師所說四種受用盜受用負債受用家財受用主受用
무엇이 도순용인가. 소위 계를 범한 사람의 수용이다. 무엇이 부채수용인가. 소위 스스로도 남들에게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명인(邪命人)의 수용이다. 무엇이 가재수용인가. 소위 정진하는 사람의 수용이다. 무엇이 주수용인가. 소위 성인의 수용이다.
028_1015_a_14L云何盜受用謂犯戒人受用云何負債受用謂無慚無愧邪命人受用何家財受用謂精進人受用云何爲主受用謂聖人受用
또 두 종류의 수용이 있으니, 소위 예오수용(穢汚受用)과 청백수용(淸白受用)이다. 무엇이 예오인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관찰하지는 못하는 것을 예오라 한다. 무엇이 청백인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관찰하고 알아 스스로 조절하고 염오상(厭惡想)을 갖춘 것을 청백이라 한다. 청백인 까닭에 항상 4사(事)를 수습해야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수행사사계(修行四事戒)라 한다.
028_1015_a_18L復有二種受用謂穢污受用淸白受用云何污穢慚愧人而不能觀是名污穢云何淸有慚愧人觀知自節有厭惡想謂淸白以淸白故常當修習四事可知此謂修行四事戒
028_1015_b_02L여기에서 율의계(律儀戒)는 깊은 신심으로 마땅히 채워야 하고, 명청정계(命淸淨戒)는 깊은 정진으로 마땅히 채워야 하며, 근위의계(根威儀戒)는 깊은 신심으로 마땅히 채워야 하고, 수행사사계(修行四事戒)는 깊은 지혜로 마땅히 채워야 한다. 여기에서 명청정계는 율의를 따른다. 왜냐하면, 수명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일을 끊어 안온한 자는 행하는 바에서 신업ㆍ구업의 위의를 얻기 때문이다.
028_1015_a_23L於是律儀戒者深信應令滿命淸淨戒者以深精進應令滿根威儀戒者以深信應令滿修行四事者以深慧應令滿於此命淸淨戒是隨從律儀何以故不爲壽命而斷諸事安者所作得身口業威
이 두 종류의 계는 근위의를 따른다. 왜냐하면 선에서 마음을 수호함으로써 신업ㆍ구업을 잘 수호하기 때문이다. 수행사사가 바로 근위의이다. 왜냐하면, 이미 집상의처(集相依處)를 알고 거슬리고 싫어하여 정념(正念)하고 정정(正定)하기 때문이니, “만약 어떤 비구가 능히 췌식(揣食:段食)을 알고 나아가 5욕을 안다면 ……”이라 하신 이런 세존의 말씀과 같다. 이 율의 및 명청정을 구족하는 것은 계음(戒陰)에 포섭되는 것이고, 근율의계는 정음(定陰)에 포섭되는 것이며, 수행사사계는 혜음(慧陰)에 포섭되는 것이다.
028_1015_b_06L此二種戒是隨從根威儀何以故謂於善以守護心善守護身口業行四事是根威儀何以故已知集相依處違厭正念正定如此世尊所說若有比丘能知揣食及知五欲具足於此律儀及命淸淨是戒陰所攝律儀戒是定陰所攝修行四事戒是慧陰所攝
무엇이 수계를 청정케 하는 것인가.
何者令受戒淸淨
만약 비구가 처음으로 선법(禪法)을 받아 7취 가운데서 자신을 관하여 만약 바라이를 범한 바가 있다면 비구법을 끊고 불구족계에 머문다. 만약 구족계에 머문다면 마땅히 승법(勝法)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선사(先師)가 설한 바로서, 만약 승가바시사22)를 범한 것을 보면 중사(衆事)로써 참회하여야 한다. 만약 다른 죄를 범한 것을 보면 그 범한 것에 대해 한 사람에게 참회하여야 한다.
028_1015_b_13L若比丘初受禪法於七聚中觀於自身若具犯波羅夷斷比丘法住不具足若住具足戒當得勝法是先師所若見犯僧伽婆尸沙以衆事懺悔若見犯餘罪於其所犯向一人懺
만약 사명(邪命)을 범한 것을 보면 그 범한 것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참회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참회하고 나서는 “나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보고 이와 같이 수지한다. 근위의 및 수행사사를 범했을 경우에도 “나는 다시는 짓지 않는다”고 하고 만약 수지한다면 마땅히 미래에 훌륭하고 뛰어난 위의를 얻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와 같이 청정계를 따라 자신의 신업과 구업에 있어서 지어야 할 것을 현재에 짓고, 이런 저런 것을 관하여 선을 짓고 악을 없애야 하며,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관하여 청정계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은 자라면 계를 청정히 할 것이다.
028_1015_b_18L見犯邪命於其所犯作相應懺如此悔已我不更作見如是受持犯根威儀及脩行四事我不更作若受持者當得未來勝上威儀彼人如是從淸淨戒所有身口業可作現作當觀彼彼作善除惡當觀朝夕住淸淨戒如是者令戒淸淨
무엇이 계의 청정상인가.
何戒淸淨相者
028_1015_c_02L상응과 모든 번뇌의 불기(不起)ㆍ퇴회(退悔)가 이루어지며 정(定)이 원만히 이루어진 것을 청정상이라 한다.
028_1015_c_02L相應及諸煩惱不起退悔得定成滿謂淸淨相戒
계는 어느 정도의 행에 머무는 것인가.
幾行住者
두 가지에 계는 머문다. 첫째는 계를 범하는 과환(過患)을 칭량(稱量)하는 것이고, 둘째는 계의 공덕을 칭량하는 것이다.
028_1015_c_04L以二戒住稱量犯戒過患二稱量戒功德
무엇이 과환을 칭량하는 것인가.
028_1015_c_05L何等稱量過患
만약 사람이 계를 범하면 비공덕을 이루고 모든 악처를 이루고 4중(衆)을 두려워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의심하고 계를 지키는 자를 기파하게 되어 가히 선(禪)을 가르칠 수 없고, 천인이 천하고 더럽게 여기며, 대중으로부터 미움과 천시를 받는다. 범한 계를 생각하여 사람이 지계(持戒)공덕을 찬탄하는 것을 보아도 마음으로 깔보고 믿지 않으며, 4중 가운데에서 매일 분쟁(忿諍)을 일으키고, 자신의 친지와 벗들에게 많은 혐오와 원망을 일으키며, 계를 지키는 사람들을 등지고 나쁜 붕당을 이룬다. 다시는 수승한 정법(定法)을 얻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028_1015_c_06L若人犯戒成非功德成諸惡處畏於四衆疑難智人有戒棄避不可敎禪天人鄙穢衆所憎薄思所犯戒見人讚歎持戒功德心悔不信於四衆中每生忿諍於其親友多起嫌怨背有戒人成惡朋黨不復堪得殊勝定法
설사 거짓으로 장엄하게 꾸미더라도 원래 추하고 더러운 것이 오줌이나 똥과 같고, 사람들의 증오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 모범(模範) 등과 같고, 감내하는 바가 극히 적은 것이 진흙 등과 같고, 현재ㆍ미래에 이익이 되는 바가 없고 항상 근심 걱정을 일으킨다.
028_1015_c_12L雖假嚴飾而故醜陋猶如屎尿人所憎惡如摸範等尟有所堪如瘀泥等於現未來無所饒益常生憂悴
만약 이미 죄를 지었다면 부끄러움이 뒤따라 생겨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 도둑이 감옥에 갇힌 것과 같고, 마음으로 성스러운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 전다라(旃陀羅)23)가 왕위에 욕심이 없는 것과 같으며, 그에게 문혜(聞慧)와 요설(樂說)의 공덕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는 것이 똥으로 피운 불과 같고, 여의치 못한 곳에서 살다가 죽을 때 헛소리를 하고 정신을 잃으면 신(神)이 악도로 이끈다.
028_1015_c_15L若已作罪追生慚悔心不安隱如盜在獄心不樂聖如旃陁羅無欲王位其有聞慧樂說功德人不貴敬猶如糞火生不如處死時惛忘神行惡道
028_1016_a_02L이와 같은 과실을 가히 칭량하여야 한다. 만약 이 악을 변화시켜 계의 공덕을 이루면 또한 가히 칭량할 수 있다. 이와 갈이 칭량하면 그 계를 범한 자는 마음의 거친 뜻이 꺾이고 욕정이 모조리 물러나 흩어지게 되며, 그 계를 지키는 자는 오로지 더욱 정진하고 믿음과 공경을 배로 일으켜 정진하는 사람이 되고 믿음으로 공경하는 사람이 된다. 일심으로 계를 보호하기를 개미가 알을 지키듯이 하고, 검정소가 그 꼬리를 사랑하듯이 하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하고, 하나 남은 눈을 지키듯이 하고, 무당이 몸을 지키듯이 하고, 가난한 자가 보물을 지키듯이 하고, 선장이 배를 지키듯이 하라. 내가 닦는 계를 이런 어떤 보호보다도 더 공경하고 보호해야만 한다.
028_1015_c_19L如此等過是可稱量若變此惡成戒功德亦可稱量如是稱量其犯戒者心意粗屈情悉退散其有戒者唯深精進倍生信敬成精進人成信敬人一心護戒如蟻守卵如犛牛愛如護一子如護一眼如巫師護身如貧人護寶如海師護舶此諸護中我所修戒最應敬護
이와 같이 수지하면 마음이 옹호되고, 선정에 안주하며, 계가 수호된다.
028_1016_a_03L如是受持心被擁安住禪定戒得守護
解脫道論卷第一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앞서 말한 계(戒)ㆍ정(定)ㆍ혜(慧)ㆍ해탈(解脫)의 네 가지를 가리킨다.
  2. 2)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다. 심성을 가려 선법(善法)이 발생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개(蓋)라 한다. 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회개(掉悔蓋)ㆍ의법개(疑法蓋)를 5개라 한다.
  3. 3)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다. 몸과 마음을 결박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서 결(結)이라 한다. 여기에 3결ㆍ5결ㆍ9결, 오하분결(五下分結)ㆍ오상분결(五上分結) 등의 구별이 있다.
  4. 4)의(猗)는 심소(心所)의 하나로 경안(輕安)이라고도 한다.
  5. 5)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6진의 경계를 따라 일어나 마음을 고달프게 하므로 번뇌를 진로라 한다.
  6. 6)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번뇌는 포승줄처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얽어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므로 전이라 한다. 3전ㆍ8전ㆍ10전 등의 구별이 있다.
  7. 7)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마음을 제멋대로 부려 악업을 짓게 하므로 사라 한다. 결사(結使)라고도 한다.
  8. 8)춤추듯 뛴다는 뜻이다.
  9. 9)마음을 덮는 다섯 가지 번뇌 혹은 장애로, 탐냄ㆍ분함ㆍ수면상태 같은 무지몽매함ㆍ조급하고 답답한 상태ㆍ의심을 말한다. 한역어로 탐욕개(貪慾蓋)ㆍ진에개(瞋恣蓋)ㆍ혼침수면개(惛沈睡眠蓋)ㆍ도거악작개(掉擧惡作蓋)ㆍ의개(疑蓋)라 한다.
  10. 10)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Akāsânan͂caâyatana-samādhi)이라고도 한다.
  11. 11)식무변처정(識無變處定, Vin͂n͂anan͂câyata-samādhi)이라고도 한다.
  12. 12)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Akin͂can͂n͂âytana-samādhi)이라고도 한다.
  13. 13)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Pratimokṣa)란 비구ㆍ비구니가 지켜야 할 규율ㆍ규정을 조목조목 설명한 것이다. 비구와 비구니가 받는 계에 각각 차이가 있다.
  14. 14)일곱 부류의 불제자, 즉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말한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15. 15)식차마니(式叉摩尼)는 Sikṡamānā(범)의 음역으로 식차마나니(式叉摩那尼)ㆍ식차마나(式叉摩那)라고도 하며, 학법녀(學法女)ㆍ정학녀(正學女)ㆍ학계녀(學戒女)로 의역하기도 한다. 사미니의 과정을 거친 후 정식으로 비구니계를 받기 전에 2년 동안 4근본(根本)ㆍ6법(法) 등의 행법(行法)을 수련시키고, 구족계를 받을 만한가를 시험하며, 또 임신 여부를 판단하는 시기이다.
  16. 16)울단월(鬱單越)은 Uttarāvati의 음역이다. Kuru인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uttarakuru주(洲)에 천연의 낙원이 있다고 보았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자연히 허물을 범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연의 계, 즉 성계(性戒)는 이 주에 있는 계(실은 계 없는 계)라고 전해진다.
  17. 17)4정근(正勤, Sammāpadhāna)은 4正斷이라고도 한다. 이미 생긴 악은 제거하기에 힘쓰고, 아직 생하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힘쓰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힘쓰고, 이미 생긴 선은 증장시키도록 힘쓰는 네 가지를 말한다.
  18. 18)불남(不男)은 비남(非男)이라고도 한다. 성기능을 상실한 남자를 말한다.
  19. 19)불제자를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일곱 부류로 분류한 것이다. 앞의 5중(衆)은 출가중(出家衆)이고, 뒤의 2중은 재가중(在家衆)이다.
  20. 20)4사(事)는 생활필수품인 의복ㆍ음식ㆍ와구(臥具)ㆍ탕약(湯藥)을 말한다. 또한 이런 물품들을 보시 받아 사용하는 것을 4사(事)라 하기도 한다.
  21. 21)보통사람을 뛰어넘는 징표들, 즉 성인(聖人)의 표상을 말한다.
  22. 22)Saṃghȃvaṣesa의 음역이며, 승잔僧殘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이 죄를 범할 경우 일정기간 승가와 따로 머물며 근신한 뒤 승가로 복귀할 것을 허락받아야 한다.
  23. 23)Caṇḍāla의 음역으로 가장 비천한 계급이다.